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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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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라캉의 언어심리 [스크랩] 댓글:  조회:1093  추천:0  2018-11-13
라캉의 언어심리    1. 프로이드와 라캉 프로이드는 신경증, 히스테리로 치료를 위해 정신분석을 시작했다. 따라서 정신병 치료에 연구의 주목적이 있었다. 라캉은 프로이드의 연구를 바탕으로 한다. 라캉도 정신병과 관련해 연구를 시작했으나 정신병 치료와 무관한 철학 사상으로 발전시킴. 따라서 라캉의 연구는 정신병 치료와는 무관하게 진행되었다. 라캉은 1936년 거울단계에 관한 최초의 이론을 제시한 이후 언어학 쪽으로 관심 이동했다. 정신분석학을 육체와 관련된, 신경 생물학적 연구의 한 분야로 간주하려는 경향에 반대하면서 구조 언어학을 적극적으로 정신분석에 적용하려고 한 것이다. 물론 이때 라캉은 소쉬르의 연구를 바탕으로 한다. 그러니까 라캉은 언어학과 정신분석학(심리학)을 결합시켜 현대인간의 삶이 갖는 특징을 해명하려고 한 것이다.   2. 꿈 분석의 한 사례 프로이드는 꿈이 무의식적 욕망을 표현하는 것은 주로 두 가지 작업을 통해서라고 말했다. 하나는 압축이고 다른 하나는 전치이다. 꿈의 구체적 내용을 꿈 내용, 그 꿈의 밑바닥에 자리하고 있는 원래의 욕망을 꿈 사고라고 한다면, 이 꿈 사고의 풍부함은 검열 작업 때문에 그대로 드러나지 못하고 매우 빈약한 내용으로 표현된다. 이것은 압축의 결과이다. 압축이란 꿈 사상(사고)의 서로 다른 부분들을 하나로 묶어 버리는 것이다. 전치는 꿈 사상을 표현하는 꿈 내용의 여러 요소 가운데 검열 작업을 피하기 위해 중요성의 강도가 차지하는 위치를 이동시키는 작업이다. 무의식은 의식으로 떠오르는 경우 일정하게 왜곡된다. 그러므로 그러한 욕망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분석이 필요하다. 라캉의 경우에 혁신적인 측면은 이러한 분석의 중요수단을 언어라고 보았다는 점이다. 라캉은 정신분석에서 언어를 전면화하면서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라는 주장했다.   3.구조주의 언어학의 몇 가지 특징 첫째, 기표가 기의와 자의적이어서 필연적인 관계를 갖지 않는다면 한 기표와 다른 기표간의 관계 역시 기표체계를 떠나 외부의 실체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각 기표들 간의 관계는 서로의 관계에 의한 것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기표와 기표간의 관계는 차이에 있다. 차이라는 말이 의미하는 바는 내부의 상호관계를 표현하는 것이다. 둘째, 차이의 강조는 기의보다 기표를 강조하고 우위에 두는 사고방식이다. 내용이나 의미에 해당하는 기의의 차이가 아닌 물리적 기표의 차이를 통해 서로를 구별하므로 기표가 기의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셋째, 그렇게 되면 언어의 지시성은 무의미해진다. 넷째, 언어에서 내부적인 것이 지배적인 것이 되면 언어를 연구하는 방식 역시 그러한 성격을 갖게 된다. 그래서 선택과 결합(배열)이 주요한 조작이 된다. 선택은 여러 유사한 기표들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며 결합(배열)은 명사에 조사가 붙듯이 접근한 관계에서 서로 결합되는 설질을 뜻한다. 그러한 연유로 선택은 은유적이고, 결합(배열)은 환유적이다. 압축은 유사성(은유)과 관계하고, 전치는 근접성(환유)에 관계한다.   4.라캉의 이론   (1)실재계 현실계는 인간이 직접적으로 인식하거나 전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실재계에 속하는 대표적 두 가지는 개인이 생물학적 존재로서 생존하기 위해 충족시켜야 할 욕구와, 그것의 밖에 존재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현상의 세계 즉 사물들의 세계이다. 따라서 현실계란 부분적으로 마주칠 수는 있지만 그 전체로 볼 때나 원래의 모습으로는 감추어져 있는 세계이다. 실재계란 라캉이 인간을 규정하는 핵심적 사항으로 보고 있는 결여의 배경이다. 물론 출생은 결여의 시작, 출발이다. 실재계의 또 다른 흔적은 성감대로, 이는 문화적·사회적 규정에 의해 형성된다. 대상 a - 구체적이고 의식적인 경험에서 인지된 것이 아니라 아직 자아를 형성하지 못한 수준에서 파악된 것이기 때문에 상세한 모습으로 떠오르지는 않는다.   (2)상상계 자아가 형성되는 영역이다. 대략 6개월에서 18개월 사이에 나타나지만 그 시기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상상계는 상징계에 진입한 후에도 여전히 남아 작용하는 영역이며 인간이 죽는 순간까지 벗어나지 못하는 영역이다. 상상계를 지니고 있어 인간은 불가능한 이상을 갖는다. 상상계는 '거울단계'로 특징지어진다. 상상계를 규정짓는 두 가지 특징이 있는데, 이중성과 동일화가 그것이다. 아이는 자신과 자신의 거울이미지를 동일화함으로써 자아에 대한 관념을 형성한다. 그러나 이는 결여나 상실과 마찬가지로 또 하나의 소외일 따름이다. 아이가 자신과 동일시하는 거울의 이미지는 자신의 외부에 존재하는 것이며 실물이 아니라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상계는 차이성보다는 동일성에 기초하는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아이는 자신의 자아를 거울상에 비추어 규정한다. 거울상은 내면으로 투사되어 자신을 형성한다. 내면의 자아에 의해 거울상은 전적으로 동화되거나 소유될 수 없으므로 이중성은 남는다.   (3)상징계 아이가 언어의 체계 안으로 진입하는 것은 현실계와의 철저한 분리를 마무리 짓는 일이다. 그러므로 기표는 현실적인 것과의 모든 연관을 끊고 자기 폐쇄적인 영역에 머무는 것이 보통이다. 생물학적 육체와의 연관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분리는 자신의 본능에서 소외되는 것인데 정작은 이를 통해 욕망이 형성된다. 자연의 흔적은 최소화되고 문화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주체로서 남게 된다. 상징계로의 진입은 바로 무의식이 형성되는 순간이다. 무의식이 형성되는 것은 언어로 대표되는 문화적 체계의 미리 정해져 있는 질서에 따라 욕망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무의식이란 원본을 상실하고 언어를 통해 간접적인 매개만이 존재하는 욕망을 의미한다. 아이는 언어의 체계 또는 기표의 체계, 즉 상징계에 진입하는 결과로 현실계와 상상계에서 가지고 있었던 모든 욕구와 요구를 잃어버리게 된다. 하지만 그것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무의식으로 남는다. 이에 따른 상실감 또는 결여감의 자리가 욕망이 위치하는 곳이다. 라캉의 경우 욕구와 요구란 상징계로의 진입 이전의 것이며 욕망은 그 이후의 것이다. 상징계가 상상계와 다른 점은 상상계가 동일시를 원리로 하고 있다면 상징계는 차이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는 2차적 동일시, 즉 상징적 남근과의 동일시를 상징계는 원리로 한다. 현실계를 상실의 자리로 남겨두고 상상계에서 상징계로 진입하는 것은 자연의 영역에서 문화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이며 아이에게는 사회 안에서 하나의 주체로 살아갈 지위에 이르는 일이다. 상상계에서의 자아는 타인의 자아라고 간주되는 이미지를 따라 이루어진다. 그것은 대상 a를 내면적으로 투사하는 것이다. 상징계에 진입하면 이제 주체는 기표체계를 통해 정립된다. 따라서 주체와 상상적 자아는 분열된다. 이를 통해 이전에 상상적 자아에 의해 파악되던 대상 a 는 상실된다. 대상 a를 다시 규정하자면, 그것은 주체의 분열에서 상실된 대상으로서 상징계에서 언어화된 대상으로 자리 잡지 못하기 때문에, 따라서 무의식화되기 때문에 결코 그 충족을 바랄 수 없는, 끝없이 유예되는 대상이다. 이제 그것은 결코 채워지지 않을 욕망의 근원이 된다. 아무리 상징계적 거세를 극복했다고 해도 상상계적 요소가 남기 때문에 인간은 불행하다. 프로이드는 인간이 상상계를 떠나와서 인간이 불안하다고 이야기한다면, 라캉은 상상계에 계속 집착함으로써 불안하다.   (4)외디푸스 콤플렉스와 외디푸스 콤플렉스의 세 단계 ①아이에게 어머니는 아무런 부족함이 없는 존재로서 나타난다. ②이내 어머니는 무언가를 욕망하는 존재로서 인식된다. 즉 '남근'을 욕망하는 존재로 인식된다. 따라서 자기가 상상적 남근이 되고자 한다. ③그러나 자신이 그것을 충족시켜줄 수 없음을 발견한다. 그때 어머니의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아버지가 등장한다. 처음에는 아버지를 거부한다. 그러나 이후의 시기에는 아버지는 상징적 남근으로 등장한다. 아버지와 자신을 동일시한다. 사회화는 성숙을 의미한다. 좀더 자세히 말하면 사회화는 근친상간 금지에 바탕을 둔 문명세계로의 진입과 기표체계에 갇히는 것을 의미한다. 외디푸스 콤플렉스가 극복되는 과정은 욕망의 발생과 억압을 나타낸다. 환유 혹은 전치의식이 보여주는 것은 욕망의 항구성이다. 이는 욕망이 결코 채워지지 못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어머니에 대한 욕망은 다른 사람, 다른 사물에 대한 욕망으로 계속 이동해가지만 그것이 원래 지향했던 욕망의 충족이 아닌 이상은 결코 채워지지 않는다. 은유, 그리고 응축의식이 보여주는 것은 욕망이 이따금 일정한 대상을 환기시키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도달되지는 않지만 마치 성욕의 만족에서 순간적으로 체험되는 남근에의 환기 같은 것을 나타낸다.
3    시 읽기의 방법 / 이은봉 댓글:  조회:1394  추천:0  2018-11-13
  시 읽기의 방법     이은봉     1-1. 화자가 누구인가-서정시의 화자는 창작의 순간에 끊임없이 수정되고, 조정되고, 가공되기 마련이다. 다시 말해 허구화되기 마련이다. 1-2. 그렇다고 하더라도 서정시의 화자는 기본적으로 ‘나’이다. ‘나’이지만 이때의 나는 시인일 수도 있고, 배역일 수도 있다. 따라서 이 시의 화자가 시인인가, 배역인가를 묻는 것은 중요하다. 1-3. 화자가 시인이라면 주관적(진술적) 화자인가, 객관적(묘사적) 화자인가. 1-4. 배역이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탈을 쓰고 있는가. 아이인가, 어른인가. 남자(소년)인가, 여자(소녀)인가. 배역의 직업이 드러나 있는가, 없는가. 2-1. 화자의 위치―화자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어디에 서서 말하고 있는가. 시의 안에 있는가, 시의 밖에 있는가. 수평적인 위치에 있는가, 수직적인 위치에 있는가. 3. 화자의 성격  3-1. 주관적 화자인가(일인칭 진술적 화자인가), 객관적 화자인가(3인칭 묘사적 화자인가). (낭만주의 시에는 일인칭 주관적(진술적) 화자가 많고, 리얼리즘시에는 3인칭 객관적(묘사적) 화자가 많다.)  3-2. 온순한 화자인가, 사나운 화자인가. 여성 화자인가, 남성 화자인가. 어른 화자인가, 아이 화자인가. 소년 화자인가, 소녀 화자인가. 기타 등등. 4. 청자-따로 청자가 있는가, 없는가.(대부분의 시는 청자가 따로 없다. 물론 편지 형식의 시는 수신자로서 청자가 있는 경우도 있다.) 5. 어조-독백조(혼잣말)-엿들어지는 독백(이는 시의 제시형식이 지니는 기본적인 특징이다.) 6. 시점-일인칭 시점과 3인칭 시점(주관적 시점인가, 객관적 시점인가)         일인칭 주관적 고백자/진술자/해석자/의미부여자/낭만자 시점인가, 3인칭 객관적 관찰자/묘사자/진술자/해석자/의미부여자/사실기록자 시점인가. 7. 구조-대상의 실제  7-1. 나인가, 너인가, 그인가, 神인가.  7-2. 나-나 구조인가,  7-3. 나-너 구조인가,  7-4. 나-그 구조인가,  7-5. 나-神 구조인가.  7-6. 내가 나에게 말하는가, 너에게 말하는가, 그에게 말하는가, 절대자에게 말하는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8. 대상의 성격  8-1. 긍정적 대상인가, 부정적 대상인가. 연민의 대상인가, 비판의 대상인가. 사랑의 대상인가, 미움의 대상인가.  8-2. 구체(구상)적인 이미지(풍경)인가, 추상적인 관념인가. 객관적인 장면인가, 주관적인 상념인가. 가시적인 이미지인가, 비가시적인 의미인가.  8-3. 모든 이미지는 그 자체로 유의미성을 갖는다. 이미지들이 만드는 풍경이나 장면도 마찬가지이다. 풍경이나 장면의 선택은 곧 세계관의 선택이다. 9. 대상에 대한 화자의 태도  9-1. 일치, 연민, 애정의 태도를 보여주는가, 미움, 갈등, 고뇌의 태도를 보여주는가. 조화의 태도를 보여주는가, 갈등(대립)의 태도를 보여주는가. 서정적 태도를 보여주는가, 극적 태도를 보여주는가. 조화(사랑)의 태도를 보여주는가, 파도스적 태도를 보여주는가. 10. 정서의 특질  10-1. 조화의 정서인가, 대립(갈등)의 정서인가. 서정적 정서인가, 극적(파토스적) 정서인가. 긍정(칭찬)의 정서인가, 부정(비판)의 정서인가.  10-2. 공적 정서인가, 사적 정서인가. 11. 구성  11-1. 無聯詩인가, 有聯詩인가? 單聯詩인가, 多聯詩인가? 연이 있는 시인가, 없는 시인가.  11-2. 연이 있다면 연의 기본 형식은 무엇인가. AAB형식인가, ABB형식인가, AABA형식인가, ABAB형식인가, ABBA형식인가, ABCA형식인가.  11-3. 부연과 나열의 시인가 응축과 압축의 시인가.  11-4. 모두 몇 연이고, 몇 행인가. 연과 행의 배열은 알맞은가. 12. 문장  12-1. 모두 몇 문장인가. 문장의 길이는 알맞은가. 어떤 한 문장이 너무 길어 다른 문장과 호응을 이루지 못하는 문장은 없는가.  12-2. 행의 수와 문장의 수가 이루는 관계는 알맞은가.  12-3. 짧고 경쾌한 문장을 쓰는가, 길고 지루한 문장을 쓰는가,  12-4. 근대의 속도감 있는 문장인가, 전근대의 느리고 치렁치렁한 문장인가. 13. 형상의 특성  13-1. 진술의 문장인가, 묘사의 문장인가. 진술 위주의 형상인가, 묘사 위주의 형상인가.  13-2. 이미지 위주의 형상인가, 이야기 위주의 형상인가, 정서 위주의 형상인가, 의미(지성) 위주의 형상인가. 14. 수사  14-1. 특별히 사용된 수사가 있는가. 있다면 무엇인가. 수사는 이 시에서 어떤 역할과 기능을 하는가.  14-2. 수사의 이미지는 물, 불, 공기, 흙 중 무엇인가? 수사의 이미지가 내포하고 있는 의미(원관념)은 무엇인가. 15. 핵심 이미지  15-1. 이 시의 씨앗은 무엇인가, 중심 모티프는 무엇인가. 핵심 표현은 무엇인가.  15-2. 시의 씨앗, 시의 종자가 제대로 발현되었는가. 어쨌는가.  
2    상상과 환상 ―시적 환상의 이해를 위해 / 이은봉 정리 [스크랩] 댓글:  조회:1359  추천:0  2018-11-13
상상과 환상 ―시적 환상의 이해를 위해     이은봉 정리     1. 혼돈과 무질서1)   우주는 혼돈과 무질서로, 미지의 신비로 가득 차 있다. 그것은 거시의 세계만이 아니라 미시의 세계도 마찬가지이다. 우주물리학의 대상인 거시의 세계 역시 혼돈과 무질서로, 미지의 신비로 가득 차 있지만 양자역학의 대상인 미시의 세계 역시 혼돈과 무질서로, 미지의 신비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다. 거시의 공간도 텅 비어 있는 비의의 존재이지만 미시의 공간도 텅 비어 있는 비의의 존재라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들 공간이 무질서와 불확정성 그 자체로 채워져 있다는 것은 이들 공간이 환상성과 혼돈성을 토대로 하고 있다는 뜻이 된다. 환상성과 혼돈성을 토대로 하고 있기는 흔히 소우주라고 일컬어지는 인간의 심리세계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심리는 언어를 통해 현현되거니와, 언어의 밑바닥에 무의식이라는 혼돈이, 곧 환상(幻想)이 깊이 자리해 있다는 것을 먼저 기억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환상이 혼돈을, 즉 혼돈의 이미지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은 불문가지이다. 바로 그러한 점에서 환상(fantasy)은 언어의 가장 밑바닥에 자리해 있는 무의식적 이미지의 표현, 곧 혼돈의 이미지를 투사한 것을 가리키지 않을 수 없다. 결국은 프로이트나 융, 라캉의 연구대상도 이때의 무의식적 환상과 별로 멀지 않다. 무의식적 환상은 본래 주체가 받는 억압과 금지, 핍박을 통해 태어나기 마련이다. 이러한 논의와 관련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오늘의 시가 거시의 세계보다는 미시의 세계에 좀 더 집착해 있다는 점이다. 지나칠 정도로 사적인 세계, 트리비얼한 세계에 갇혀 있는 것이 오늘의 한국시이지 않은가 싶다. 지나칠 정도로 사소한 공간, 곧 미시한 공간을 시적 대상으로 선택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한국시라는 것인데, 어쩌면 그래서 오늘의 시가 독자들과의 소통을 문제로 삼는지도 모른다.   2. 환상의 발생   환상이 무의식의 산물이라는 것은 불문가지이다. 그렇다. 환상은 무의식에서 태어난다. 시에서의 환상, 곧 시적 환상은 무의식으로서의 환상을 의식적으로 드러낸 것이다.의식에 의해 질서의 안으로 들어온 무의식으로서의 환상을 언어로 표현한 것이 시적 환상이다. 그럴 때 시적 환상은 소통과 공감을 만든다.   프로이트에게는 환상이 응축과 치환의 심리를 통해 일어난다. 응축은 은유의 형식으로 드러나는 이미지와 관계되어 있고, 치환은 환유의 형태로 드러나는 이미지와 관계되어 있다. 라캉에게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이미지에서 출현하는 환상, 곧 상상계적 환상이 있고, 타자에 대한 욕망이 금지되는 데서 출현하는 환상, 곧 상징계적 환상이 있다. 라캉에 의하면 거울단계에서의 어린 아이는 거울에 비친 환상과 자신의 동일시를 통해 소문자 타자를 생성한다. 이 소문자 타자는 상징계에 들어서면서 대타자와 만나는데, 대타자는 절대적인 아버지와 언어, 법률 등을 가리킨다. 아버지와 언어, 법률 등 엄중하고 위엄한 것인 대타자는 금지의 대상이기 쉽다. 이들 금지의 대상, 즉 대타자는 끊임없이 욕망을 발생시킨다. 중요한 것은 이때의 욕망이 주체에 의해 발생하지 않고 타자에 의해 발생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바로 여기서의 욕망이 주체의 정신 내면에 무의식적 환상으로 출현한다. 말하자면 환상이라는 것이 대타자에 의해 억압된 심리기제에서 발생하는 욕망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 환상은 주체에 의한 욕망이 아니라 타자에 의한 욕망에서 비롯되거니와, 바로 그렇기 때문에 주체의 소외는 일어난다. 소외를 벗어나려면 타자에 의한 욕망으로부터 벗어나는 과정, 곧 타자에 따른 욕망과 분리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흔히 이를 ‘환상가로지르기’라고 한다. 소외된 주체는 ‘환상가로지르기’를 통해 자신의 무의식을 성찰하는 가운데 진정한 욕망에 이르는데, 정신분석학에서는 바로 이것이 목표이다. 환상 자체는 라캉이 말하는 대타자보다 훨씬 더 절대적인 대타자이다. 중요한 것은 개인의 병리적인 무의식으로서의 환상이 아니다. 병리적인 무의식으로서의 환상을 주목하는 것보다 의미 있는 것은 인간의 몸이 무의식적인 환상을 발생시키기 쉬운 구조를 지니고 있다는 점을 주목하는 것이다. 융은 인간의 무의식을 세 개의 이미지인 그림자, 영혼, 탈로 구분해 원형이라고 불렀는데, 이들 또한 실제로는 환상과 다르지 않다.환상 자체가 대타자라면 원형 자체도 대타자라고 할 수 있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그렇다면 환상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전통적인 학습을 통해 인간의 무의식 깊은 곳으로 들어와 대타자로 구조화되어 있는 셈이 된다. 물론 시적 환상을 곧바로 여기서 말하는 무의식적 환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가공되지 않은 무의식적 환상이 시적 환상이 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3. 상상과 환상   자본주의적 근대가 진행되는 동안 환상은 연구의 대상이 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이 시기 동안 환상은 대부분 무가치한 대상으로 버려져 있었다고 해야 옳다. 그동안은 현실을 왜곡시키는 비주류의 대상으로 인식되어왔던 것이 환상이다. 중세와는 달리 근대에는 환상보다는 상상(想像)이 이미지를 중심으로 하는 사유의 중심이 되어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탈근대의 세계로 진압하면서 환상은 상상에 못지않은 중요한 이미지 사유로 재발견되고 있다. 역사적으로 말하면 환상의 시대에서 상상의 시대로, 상상의 시대에서 환상과 상상이 공존하는 시대로 이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환상은 본래 설화의 세계, 곧 신화, 전설, 민담이나 원시예술, 종교적 세계의 주요내용을 이루어온 바 있다. 이는 우리나라의 수많은 설화, 그리스 로마의 신화, 기독교의 바이블, 불교의 경전 등을 보더라도 쉽게 알 수 있다. 따라서 탈근대의 시대는 환상의 회복을 통해 인류 초기의 시원성 혹은 원시성을 회복해가는 시대로 이해되어야 한다.원시예술이 지니고 있는 신화적 신비성을 회복해가는 과정이 인류의 단기적인 미래라고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환상에서 상상으로의 이행, 곧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은 불확실성의 세계에서 확실성의 세계로의 이행과 무관하지 않다. 이를 미지에서 기지로, 신비에서 현실로, 관념에서 구체로, 비합리에서 합리에로의 이행과정으로 이해해도 기본적으로는 다르지 않다. 이로 미루어 보면 상상의 세계는 개연성의 세계를 가리킨다고 해도 무방하다. 있음직한 세계, 예측이 가능한 세계에 대한 전망을 담는 것이 개연성의 세계이고 상상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상상이라는 인간의 인식능력에 대해 맨 처음 가장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사람은 코울리지이지만 그것의 구조를 체계화시키고 집대성시킨 것은 바슐라르이다. 물, 불, 공기, 흙이라는 4원소로 세계의 모든 사물을 구조화시킨 바슐라르가 이미지의 사유의 하나인 ‘상상’을 가장 설득력 있게 체계화시킨 사람이라는 것은 덧붙여 강조할 필요가 없다. 많은 사람들이 이 네 가지 원소와 그 변형을 중심으로 논문을 쓰고 있는 것만 보더라도 바슐라르의 상상에 대한 연구는 놀랄만하다. 그러나 상상이 오성,곧 이해력과 함께 사유의 중요한 두 축으로 자리를 잡기까지는 많은 세월이 필요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해력과 함께 상상력이 인식의 두 코드로 인정받는 데는 플라톤 이후 근대에 들어설 때까지 무려 2000년의 세월이 요구되었다는 뜻이다. 이해과 이성이 서로 다른 추상사유능력이듯이 상상과 환상도 서로 다른 구상사유(이미지사유)능력이다. 물론 그것들 사이의 변별성이 아주 크지는 않지만 말이다. 그러한 점에서도 여기서 정작 주목해야 할 것은 상상과 환상이 각기 같으면서도 다른 심리상태, 곧 사유형태라는 점이다. 그러한 점에서 상상과 환상은 쉽게 대조, 비교될 수 있거니와, 우선 상상이 현실에 기초한 이미지 사유라면 환상은 비현실, 신비나 비의의 세계에 기초한 이미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환상에 대한 긍정은 비현실, 신비나 비의의 세계에 대한 긍정이 되기도 한다.많은 사람들이 탈근대, 후기근대, 자본주의 이후 등을 얘기하고 있거니와, 이 시기는 이제 상상보다는 환상을 상대적으로 더 필요로 한다. 오늘의 예술은, 곧 문학, 영화, 게임, TV드라마, 애니메이션은 이제 환상을 토대로 하지 않고서는 창작되기 어렵다. 복잡한 환상의 개입이 없이 평범한 상상만으로 생산되는 오늘의 예술이 독자들의 구미를 맞추기는 힘들다.   현대예술이 불가피하게 환상을 필요로 한다면 그것의 토대가 되는 불확정성, 혼돈 등 또한 긍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하려면 과도한 이성의 개입에 의해 주류를 형성해왔던 상상을 옆으로 좀 비켜 세우고, 그 자리에 신비나 비의로서의 원시적이고도 시원적인 시각을, 곧 환상의 시각을 불러 세우는 수밖에 없다. 따라서 환상의 수용은 원시의 상태로, 시원의 상태로 세계를 파악하려는 노력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고 해야 옳다.   4. 상상과 환상의 통합   상상과 환상의 차이는 결국 현실 중심의 이미지사유와 비현실 중심의 이미지사유의 차이를 가리킨다. 따라서 상상이 모더니즘과 관계하며 ‘새로움의 유희’를 추구한다면,환상은 아방가르드와 관계하며 ‘다름의 유희’를 추구한다고 할 수 있다. 상상이 상대적으로 형식이나 질서, 구체성을 소중히 여긴다면 환상은 무형식이나 혼돈, 관념성을 소중히 여긴다고 해도 좋다. 상상이 알 수 있는 것(기지)에, 사실이나 진실에 기대고 있다면, 환상은 알 수 없는 것(미지)에, 신비나 비의에 기대고 있다고 해야 옳다. 상상이 이차원적인 이미지를 변형시키는 인식능력이라면 환상은 이차원적인 이미지에 입체성을 부여하는 인식능력이라는 것이다. 상상이 대지와 현실, 경험에 뿌리내리고 있는 이미지 중심의 심리라면 환상은 하늘과 비현실, 관점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이미지 중심의 심리라고 할 수 있다. 이미지사유, 곧 이미지심리라는 점에서는 같지만 그것이 실제적으로 구현되고 실현되는 과정이나 토대는 다른 것이 상상과 환상인 셈이다. 이로 미루어 보면 상상과 환상의 충돌은 문명의 충돌이라고 할 수 있다. 비유적으로 말하면 나날의 현실과 생활에 토대를 두고 있는 유교적 세계관과, 비현실적과 꿈에 토대를 두고 있는 불교적 세계관의 충돌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도 상상과 환상은 상호충돌의 측면으로 길항하거나 갈등하기보다는 상호공존의 측면으로 화합하거나 통합하는 것이 좋다. 물론 이는 확실성과 불확실성의 상호공존, 현실과 꿈의 상호공존, 의식과 무의식의 상호공존을 뜻하니 만큼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앞으로의 새로운 문학, 새로운 미래의 시는 상상과 환상이 행복하게 결합되고 통합되는 데서 가능해지리라는 자명하다. 상상과 환상을 행복하게 결합하고 통합하는 일은 일단 환상을 무분별하게 사용하지 않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환상에 대한 무분별한 도취가 소통의 어려움을 만들고,시의 난해성을 만든다는 점을 꼭 기억해야 한다. 그동안 한국 시단에 소통의 문제가 거듭 제기되었던 것도 실제로는 이와 무관하지 않다. 시의 난해성에 대한 논의는 항용 시의 애매성에 대한 논의로 전이된다. 이와 관련해 기억해야 할 것은 시의 애매성이 정작의 시에서는 입체성과 깊이를 더해주는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애매성과 다른 것이 시의 애매성이라는 것인데, 이는 일반적인 환상과 시적 환상이 다른 것도 이에 그대로 상응한다.     5. 시적 환상을 위하여   정신분석학에서는 보통 두 가지 환상을 말하고 있다. 하나는 무의식적 환상이고 다른 하나는 의식적 환상이다. 무의식적 환상은 정신의 표면에 나타나지 않은 환상을 가리키고, 의식적 환상은 백일몽 등처럼 정신의 표면에 나타난 환상을 가리킨다. 프로이트나 융, 라캉 등이 연구의 대상으로 삼은 것도 이때의 의식적 환상이다. 하지만 이때의 의식적 환상은 새로운 미래의 시의 창작과 관련해 여기서 말하는 의식적 환상과 많이 다르다. 여기서의 의식적 환상은 시적 환상을 낳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반적 환상이 부정확함에 기초하고 있다면 의식적 환상은 비정확함에 기초하고 있다. 비정확함은 정확함을 위해 엄밀하게 의도된 것이고, 부정확함은 문자 그대로 정확하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의식적인 환상의 토대가 되는 것이 비정확함이라고 할 수 있다. 의식적 환상은 일반적 환상의 밑바닥에서 들끓고 있는 혼돈에 질서를 부여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비정확성에 기초해 환상을 제어하고 조절하고 통제하는 능력이 의식적 환상이거니와, 이 의식적 환상에 의해 시적 환상이 발생한다. 일반적인 환상과는 달리 의식적 환상의 결과인 시적 환상은 들끓는 혼돈에 질서와 체계를 부여하는 시인의 각성된 눈에 의해 태어난다. 말하자면 시적 환상은 환상의 밑바닥에서 들끓고 있는 혼돈에 질서를 부여하는 각성된 정신행위라는 것이다. 환상과 상상이 만나 조화롭게 통합되는 자리에도 일반적 환상을 제어하고 조절하고 통제하는 의식적 환상은 존재한다. 환상과 상상이 만나 조화롭게 통합되지 않고서는 앞으로 한국시의 새로운 풍요를 얻기가 힘들다. 환상과 상상이 만나 조화롭게 통합될 때 한국시가 훨씬 더 찬란한 이미지를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환상과 상상의 통합은 혼돈과 질서의 통합이거니와, 혼돈과 질서의 통합, 곧 카오스모스로서의 세계인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보더라도 의식적 환상은 실질적인 창작의 매개가 되는 정작의 환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의식적 환상이라는 도구를 가질 때 시인은 이차원적인 상상의 이미지에 입체성을 부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와 더불어 시의 표현영역이 엄청나게 넓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오늘의 한국시가 의식적 환상에 뿌리를 두고 있는 시적 환상을 포기해서는 안 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말하자면 환상과 상상의 통합, 곧 혼돈과 질서의 통합 한국현대시의 바른 활로를 틀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환상과 상상이 제대로 통합된 시가 어찌 소통이 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런 시가 어찌 소통을 걱정할 수 있겠는가.(2012. 8. 20 이 글은 『시와환상』 2011년 겨울호(통권 3호)에 수록된 원구식 시인과 김제욱 시인의 대담 「상상과 환상의 통합 2」의 내용을 필자가 첨삭, 정리한 것이다.) 1)  이 글은 『시와환상』 2011년 겨울호(통권 3호)에 수록된 원구식 시인과 김제욱 시인의 대담 「상상과 환상의 통합 2」의 내용을 필자가 첨삭, 정리한 것이다.  
1    텍스트를 위한 해체 전략 / 정신재(문학평론가) [스크랩] 댓글:  조회:1524  추천:0  2018-11-13
  ♧시 창작 특강    텍스트를 위한 해체 전략 / 정신재(문학평론가)      1. 해체 전략    소쉬르는 문자보다 말이 더 기호의 본질에 가깝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데리다는 말이나 글 모두가 일종의 글쓰기 즉, '본원적 글쓰기'라고 말함으로써 말과 글의 서열제도를 없애버렸다. 나아가 해체주의자들에 의하면 '기호'란 더 이상 확실한 것이 아니고 '의미' 역시 유동적이고도 일시적인 '유보된' 상태일 뿐1)이다.  데리다는 텍스트가 가지는 본질에 접근하기 위하여 '차연'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차이'라는 단어와는[e]와 [a] 차이지만,'차연'이라는 단어에는 시간적으로는 자연, 공간적으로는 거리, 의미상으로는 '흩뿌림'이라는 의미를 가지면서 텍스트의 흔적을 찾아나가는 놀이의 방식이 내포되어 있다.    이외에도 그는 '백색 신화'를 제시하였다. 서양의 철학이 전개해 온 것은 존재나 세계의 편협함만을 일구어 온 것이기 때문에 '백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는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도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그것은 중심이나'있음'을 전제로 하는 체계적인 구조를 요구하는데, 이것 역시 텍스트의 본질과는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오히려 '없음'을 추구하기도 한다. 이는 에서 無와 有를 편협하게 바라보지 않는 태도와도 유사함이 있다.  老子는 '道라고 말할수 있는 것은 道가 아니'라고 하였는데, '있음'이나 '중심'은 사람들이 세계를 편협하게 바라볼 공산이 크게 하는 것이다.    롤랑 바르트도 언어란 결코 명료하지 못한 것이며, 따라서 언어를 통하여 독자가 분명한 진실이나 리얼리티에 도달할 수는 없다고 믿었다.  그래서 롤랑 바르트는 언어의 그러한 속성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글쓰기를 통하여 '유희'를 해야 한다2)고 보았다.  따라서 해체의 방법으로 이루어진 텍스트를 이해하기란 매우 어렵다.    필자 역시 오태석의 희곡[초분]을 여러번 읽고 나서야 그 스토리를 겨우 감지할수 있었으며, 이추림의 시에서는 아직도 제대로 분석을 못하는 부분이 많다.  해체적 작법은 텍스트의 본질을 추구한다는 것이 매우 어렵기 때문에 기존의 해석을 편협하다고 보고 새로운 글쓰기를 시도하는 것이다. 아마도 이추림 시인이 그의 시에서 난해한 어휘를 많이 사용한 것은 존재의 본질을 들여다 보려는 새로운 시도였다고 보여진다.  따라서 나는 본문에서 새로운 글쓰기 전략을 시도하려 한다.      -------------  1)김성곤 편,(서울:민음사,1988),16쪽  2)상게서, 17쪽.       2. 발상 차원의 5단계    일본의 이또게이찌는 시작단계를 "발상 차원의 8단계'로 정리하였다.  나무를 대상으로 한 '발상 차원의 8단계는 다음과 같다.    1단계: 나무를 나무 그대로 나무로서 본다.  2단계: 나무의 종류나 모양을 본다.  3단계: 나무가 어떻게 흔들리고 있는가를 본다.  4단계: 나무의 잎사귀가 흔들리고 있는 모습을 세밀하게 본다.  5단계: 나무 속에 승화하고 있는 생명력을 본다.  6단계: 나무의 모습과 생명력의 상관관계에서 생기는 나무의 사상을 본다.  7단계: 나무를 흔들고 있는 바람 그 자체를 본다.  8단계: 나무를 매체로 하여 나무의 저쪽에 있는 세계를 본다3)    나도 시 습작을 하면서 이 방법을 많이 사용해 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단계는 어느 수준에 이르면 시가 너무 도식화되고, 발상이 참신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래서 박진환교수가 이또게이찌 것을 바탕으로 해서 다시 정리해 놓은 '발상 차원의 5단계'를 시 창작에 적용해 보기도 한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첫째 단계:상식의 단계, 둘째단계:감각의 단계, 셋째 단계:변용의 단계  넷째 단계: 정신적 단계, 다섯째 단계: 창조적 단계    독자의 이해를 돕기위하여 이 방법을 간략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제 1단계는 상식의 단계로서, 누구나 볼수 있고, 생각할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그런 항용의 보편성을 발상으로 하는 단계라 할수 있다.    **제 2단계는 감각이 동원되는 단계로서,대상을 감각으로 해석하거나 마주하게 되면 감각적 체험이 개입하게 되고, 체험이 개입하게 되면 상상력이 작용하게 된다. 그리고 상상력이 작용하면 감각상호간의 호소력으로 자극하게 되고 그리하여 대상 사물은 단순히 주어진 그대로에서 경험이나 지식같은 것들이 끼어들게 되고, 그렇게 되면 변별력이 요구되고, 변별력이 요구되면 판단이 곁들이게 돼 해석이 이루어지게 된다.  '해바라기가 누런 금니를 드러낸 채 햇살 앞에서 배시시 웃고 있다'는  시각 이미지와 의인화가 동원된 구절이다.    **제 3단계인 변용의 단계는 주어진 사물이나 대상을 본디의 것에서 새로운 것으로 바꾸어 낸다는 점에서 시적 단계라고 할수 있다.    우리는 현대시를 정의할 때 변용의 미학이라고 한다.잘 알다시피변용은 용모가 바뀌는 것을 말한다. 곧 본디의 것을 보다 새로운 모습으로 바꾸었다는 뜻인데, 변용의 시적의미는 바뀐모습이 그대로 있지 않고 바꿈으로써 새로움으로 태어나게 한다는데 있다. 흔히 우리는 낯설게 만들기라는 말을 자주 듣고 또 쓴다. 다름 아닌 현대시를 두고 하는 말인데 현대시는 낯설게 만들어진 것이란 뜻이다. 낯설게 만들지 않으면 기성. 기존의 것과 똑같게 되므로 새로움으로 태어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새로움으로 태어나 새로운 감동을 체험하는 시가 되기 위해서는 낯설게 만들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것이 현대시법이다.      갈대 서걱이는 甕岩 다리의 녹슨 수문을 지나  불행했던 나의 유년시절의 산성 물안개빛  공중조차 못 머무는 잔못(釘)공장의 불바람  몇 모금 연거푸 빨아대는  파이프 담배 연길  甫吉道 출신의 張교수와 옛 구름 섞어 깊이 마신다.      무섭기만 하던  옹이 갉는 꽃집의 추운 대팻밥 무심히 쌓이는  소름 끼치던  대못 박는 소리      무한으로 열린 상징같은 죽음과 삶이 맞닿아 있는  동행  하는 동행자의 步速이 빨라지는  牛浦里의 울적하고 멍멍한 석양      많게도 연착한 향수  茁浦꽃집 앞에서의 되돌리는 남은 출발은  가늠조차 안 가는 어머님의 아련한 뒷모습  내 평생 벗을 수 없는 핏빛 한 벌뿐인 속옷이네    -이추림,[茁浦 꽃집] 전문        점령군대가 진주한  주둔한 사령관의 계산법대로라면  점령당한 지역의 모든 여자는 폭거당하는 집 밖의 여왕벌    원숭이의 더운 가슴털로 불 끓는 총구를 커버한  샛길 없는 무심한 大路  대중요법조차 백방이 무효인  지금은 숨는 비밀의 넓은 정원    장군의 정액속에서 장군의 모형  뚜쟁이의 정액속에서 뚜쟁이의 모형이 관찰되나  등대 없는 섬의 절망하는 뒷골목에  신호용 랜턴이라도 하나 걸어 둬야 하겠느니    지독한 악평의 뒤 끝에 당황하는 동시통역자 같은  그녀의 다시 펴는 바쁜 旗  쪽발이적의 우리네 누님들에 비하면  너희들은 격식 갖추고 신혼여행에서 돌아오는 행복한 신부다    -이추림, [將軍과 뚜쟁이- 베트남전쟁 중 여자 베트콩의 회상]      이추림의 시를 접하면 그 백과사전적인 다양한 어휘의 나열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거기에는 우리가 한때 잊고 지냈던 유교문화의 어휘, 보들레르적 열정을 지닌 핏빛 사랑이야기, 월남전, 세계사적 사건, 향토적 어휘, 현대 과학용어 등이 복합적으로 그려져 있다.  따라서 그의 시에는 하나의 거울이 아닌 여러개의 복합적인 거울들이 산재해있고, 그 밑바닥에는 보들레르적 열정과 전락의 기쁨이 있다.곧 현존하는 것 속에서 기존의 도덕규범이나 인습의 틀과 이데올로기를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같은 것을 볼 수 있다. 가령 한 여인이 순수하고 아름다워야만이 미적이라는 통념이 얼마나 구태의연한 인습의 틀이었는가를 알게 되는 것도 하나의 소득이다.  그리고 그것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거울을 들춰내면 새로운 모습의 여인이 나타나고 하는 것이다. "어떤 인간성을 가진 여인이겠지'하고 다른 구절을 보면 거기에는 또 다른 매력을 지닌 여성이 살포시 고개를 드는 것이다.  [줄포 꽃집].[眼壓].[그녀의 後聞] 등에서 도망간 친어머니.보들레르적 여인. 베트콩 여인 등의 이미지가 나타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의 여인 이미지에는 전락의 기쁨이 있다. 전락의 결과는 세상 사람들의 인습에 의해 악으로 규정된다. 그러나 전락으로 가는 과정에서의 유희는 미적 가치가 있다. 악마들 속에서의 진실과 미는 역경을 딛고 미의 궤적을 추리해 나가는 고귀한 여정이 될 수도 있다.    이추림은 을 적어도 여섯번이나 정독하였다. 서정주 시인이 [대낮].[문둥이]등에서 인간의 가슴에 뛰노는 순수한 육정과 관능미를 있는 그대로 그려냄으로써 일제 식민지 현실에서의 명랑성을 추구했다면, 이추림 시인은 도시 메카니즘의 삭막함을 그대로 나열하면서 미적 가치를 추구한다. 그래서 그의 시에는 어지러이 흩어져 있는 도시의 산술 속에서 생명을 가지고 움트는 미적 자유가 놓여있는 것이다.  이것이 이추림이 추구하는 변용의 미학이다.  이와 같이 시인은 현실에서 새로움으로 나아가는 변용의 기술을 나름대로 갖추고 있어야 한다.            ---------------  3)박진환, (서울:조선문학사, 1999), 14,15쪽  4) 상게서 61,62쪽         5단계는 창조적인 단계로서, 사물적 요소와 정신적 요소의 결합, 육체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의 통합과 같은 두 요소의 합성을 통해 시를 성립시키는 포괄적 형상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신의 불꽃 속으로  나의 눈송이가  뛰어듭니다.    당신의 불꽃은  나의 눈송이를  자취도 없이 풀어 줍니다.    -김현승,[절대신앙] 전문      우리 두 마음은 하나이므로  나는 가야 하지만, 또한 한 몸을  두쪽으로 쪼개는 것이 아니라 늘 이어놓네  마치 금이 공기처럼 얄팍하게 늘어나듯이    -던,[슬퍼하지 말아라]      김현승의 작품은 '불꽃'과 '눈송이'라는 상대적인 것을 결합시킴으로써 시가 텐션으로 표현한 것이며, 던의 작품은 '금'과 '공기'를 동원하여 두 존재를 폭력적으로 결합시키고 있다.  박진환교수가 발상 차원의 5단계에서 소개하는 기법은 비유나 알레고리를 동원하여 자연을 의인화시켜 표현하는 전통적 표현 기법이나 컨시트나 전경화를 이용한 두 사물의 폭력적 결합이나 펀 등의 방법이었다. 이러한 발상의 5단계는 요즘 많이 일반화되어 그 책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는 추세이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해체적 방법을 권하고 싶다. 포스트모던 시가 나온 이후로는 시 창작 표현 기법이 매우 다양하게 소개되어 있다. 심지어 이전의 시 작품을 패러디하여 새롭게 표현하는 경우도 있고, 이전의 시구를 혼성모방하여 전개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추세라면 초심자가 반드시 5단계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5단계에서도 변용의 단계를 먼저 사용할 수도 있고, 정신적 단계를 먼저 사용할 수도 있다.  어쩌면 위의 5단계보다 그것을 뒤섞어서 창작에 응용하는 것이 훨씬 더 자연스러울 수도 있다. 해체 시에서 두 존재사이의 텐션이나 폭력적 결합을 통하여 훨씬 더 다양한 의미를 얻어낼 수 있고, 기존의 시구를 비틀어짜기하여 전개할 수도 있는 것이다. 행과 행, 사물과 사물을 비틀어 짠 것 같은 인상이 드는 작품이 독자의 마음에 존재의 본질을 일깨우는데 더 큰역할을 할수도 있는 것이다.  초현실주의에서 '無線想像'의 기법은 두 사물 사이에 거리감이 클수록 그 사이에서 더 많은 의미를 추출할 수 있다고 하지 않는가. 또한 우리의 무의식에는 현실적인 것과 몽상적인 것이 얼마나 많이 뒤섞여 있는가,그리고 그 무의식은 우리의 정신세계에 놓여 있는 진실한 것이 아닌가.  우리가 시를 창작할 때에는 발상의 단계를 염두에 두고 쓰는 것은 아니다. 사물을 보고 영감이 떠오르면 위의 창작 방법을 생각나는 대로 동원하여 걸작이 되도록 다듬어 가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위에서 예로 든 창작 방법을 반드시 순서대로 적용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발상의 5단계를 흐트려 놓고 하나씩 주워 담는 것도 그 한 방법이 될 것이다.  곧 해체적 방법을 동원하라는 것이다. 그러다가 새로운 세계를 몽상하다 보면, 낯설게 쓰기도 되는 것이고, 해체적인 글쓰기도 될것이다. 현대의 시인은 이와같이 흐트려 놓은 것에 대해서 불안해 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현대 사회는 탈경계를 추구하면서 존재의 본질을 모색한다.시인이 해체의 방법을 동원하더라도 독자는 현실의 규범과 논리에 얽매여 논리적인 놀이를 할 것이고, 이를 통해서 권력이나 규범의 노예가 된 현실에서 새로운 세계를 몽상할 기회를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현대의 시인들은 하나의 시에서 경계를 만들어 놓고 탈경계를 시도하기도 하고, 기존의 책을 허물어 뜨리고 텍스트를 향한 해체를 시도하고 기호의 놀이를 지속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해체적 글쓰기가 기존의 편협한 관념을 해체하고 존재의 본질을 향하면서 다양한 의미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매우 필요 적절한 기법이라고 본다.    ♧시 창작 강의      - 시인정신 2003 여름호에 실린 시 창작 특강을 3부분으로 나누어  옮겼습니다. 참고가 되시길 바랍니다 -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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