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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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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날짜 : 2018/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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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소금꽃 손해일 댓글:  조회:754  추천:0  2018-12-20
소금꽃          손해일      신안 증도 슬로시티에 소금꽃 피었다 물 햇빛 바람이 살 섞은 열꽃 형체 없는 물 가두고 열고 풀어    염부가 돌리는 무자위 수차와 당그래질  무한궤도로 증발한 지상의 땀꽃     한때 바다였다 솟구친 희말라야 연봉 아득한 만년설 눈보라에 흩날려  몽골초원 고비사막 하늘땅 홀리는 신기루 볼리비아 우유니 소금사막에 순장된 암염들이  눈사람 예띠의 이른 아침 키 쓰고 소금 얻는 오줌싸개의 홍안에도 피었다     득도한 부처 염화시중의 우담바라 “헛되고 헛되니 헛되도다” 사해(死海) 갈릴리 물위를 걷는 예수 썪지 않는 빛과 소금       찬연한 생명꽃            ‘소금꽃’은 ‘생명꽃’이다. 이 시의 주제다. 첫 연과 끝 연, 알파와 오메가다. 생활에서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 매일 만나는 것이 소금이다. 그러나 마냥 잊어버리고 존재감이 없는 것이 또한 소금이다. 있지만 없는 것, 그림자 같은 존재가 소금이다. 소금에 대하여 말하라고 하면 누구나 한 바가지 분량의 소금관념, 소금은유, 소금비유를 쏟아낼 수 있다.   그러나 손해일은 그 흔한 소금 이야기를 종횡무진 하면서 관념에 빠지지 않는다. 작고 흔한 보잘 것 없는 것을 ‘히말라야/ 아득한 만년설/ 부처 염화시중의 우담바라/ 사해 예수’까지 자연주의와 우주, 종교론까지 확장시키고 있다.   쉬운 소재를 좋은 작품으로 형상화하는 것은 낯선 튀는 소재로 독특한 시를 쓰는 것보다 쉽지 않다. 그러나 평범한 것, 만만한 것을 만만치 않게, 사물을 잡고 끈질기게 파고들어가서 근본까지 파헤치는 것은 더욱 쉽지 않다. 손해일의 「소금꽃」은 김치, 간장, 젓갈, 어떤 음식 속에 들어가서 이름 없는 무엇이 된 소금을 다시 끄집어내서 성분과 영양분과 원소를 분류해 놓은 것 같다.   시라는 음식은 최소단위 원소들을 소금과 잘 섞고 뭉쳐서 맛깔스럽게 접시에 구성미를 살려 차려낸 화려한 음식과 같다. 그 시의 구조가 집합적으로 어떤 이미지로 그려낼 지는 작가의 손과 눈, 감각이 어떻게 단어를 뭉치느냐 하는 기술에 달려 있다. 좋은 시는 비유와 관념이 스스로 혼자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는다. 손해일의 소금은 홀로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는다. 자연과 인물, 사건 속에 숨어서 자신의 존재를 녹이고 있다.   소금은 생활의 근본이며 기독교의 근본이다. 또한 자연의 근본이며 음식의 근본이다. 소금은 ‘희말라야 연봉’ ‘몽골고원 고비사막’ ‘볼리비아 우유니 소금사막’ ‘눈사람 예띠’ ‘오줌싸개’였던 ‘나’ 손해일에게까지 연결되는 맛의 근본이며 생명의 고향이다. 소금의 역할을 제대로 해석한 시 구성기법이다. 스스로 녹아서 스스로를 잊혀진 존재로 만들어낸다. 두리뭉실 섞어서 뭉쳐낸다.             가져온 곳 :  카페 >시와 도자기|글쓴이 : 이선| 원글보기
19    교차로 Y 김인숙 댓글:  조회:784  추천:0  2018-12-20
교차로 Y    김인숙        8월의 교차로에 차들이 뒤엉켜 있다 노란 유치원차와 파란 활어차가 부딪쳐 난장판이 되었다    유치원 아이들이 노랗게 노랗게 엄마를 부른다 울음소리가 교차로를 뛰어 다닌다 물 밖으로 튕겨진 활어들이 아스팔트 바닥을 긴다 배를 뒤집고 거품을 내뱉는다   어디로 가란 말이냐 한낮의 햇살이 아스팔트를 녹인다 농어의 점이 점점 더 짙어진다 붉은 아가미의 탄식을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다 광어의 배가 노랗게 익어간다    노란 모자를 놓친 아이가 농어를 들어 올려 품에 안는다 농어의 입에 숨결을 불어 넣는다        김인숙의「교차로 Y」는 제목이 감각적이며 실재적이다. 영문자 ‘Y’는 좁은 삼거리 형상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의도하였든, 의도하지 않은 우연이든, 확산적 이미지를 가진 파장이 큰 제목이다. 시에서 제목은 매우 중요하다. 시를 한편의 영화라고 가정하여 보자. 설명적이거나 진술적인 제목은 우선 관객의 선택에서 밀린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영화 제목이 많은 이유다. 글자 6자 영화는 성공하고 12자가 넘으면 망한다는 등 다양한 속설이 있다.  반어적이고 역설적인 영화제목을 만나면 참 시적이라는 생각이 한다. 영화를 하는 사람들이 시를 쓰면 제목을 잘 붙일 것이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김인숙의 시에「다시 시작되는 천국」이란 제목의 시가 있다. 을 패러디한 제목이다. 실재로 그 시에는 등 여러 편의 영화제목이 등장한다.   김인숙의 시는 템포가 빠르다. 문장이 짧다. ‘―이다’체의 선명하고 단순한 문장을 던지듯  배열한다. 설명적이거나 지루하지 않다. 사실과 상황을 직설적으로 던진다. 시적거리가 먼 단어들이 벌이는 언어충돌은 낯설고 신선하다. 그러나 위의 시에서는 그녀의 재능과 달리 언어충돌을 많이 하지 않았다. 다만 극 사실주의 기법을 사용하였다. 사실과 사건을 아주 단순하게 보이는 대로 적는다. 시인은 화자의 느낌이나 감정이 개입할 틈을 주지 않는다.  위 시의 중심어는 ‘8월-교차로- 노란 유치원차-활어차-아스팔트-광어- 농어-노란 모자를 놓친 아이- 농어 입- 숨결’  10개의 단어가 전부다. 나머지는 문장을 만들기 위한 수식어들이다. 10개의 단어만 읽어도 여름날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일어난 활어들이 벌이는 난장판이 생생하게 감지된다. 유치원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귀를 쟁쟁 울린다.   그러나 시인은 단순한 사실에서 극적 진실을 도출해낸다. 그리고 긴 질문과 여운을 던진다. 10개의 중심 단어와 한 개의 질문. 이 시의 쿨한 매력이다. 시인의 잠재된 능력을 읽는다.       “노란 모자를 놓친 아이가 농어를 들어 올려 품에 안는다       농어의 입에 숨결을 불어 넣는다“           가져온 곳 :  카페 >시와 도자기|글쓴이 : 이선| 원글보기  
18    積 ․ 3 양준호 댓글:  조회:750  추천:0  2018-12-20
積 ․ 3                                                      양준호          오늘도    나는    흑거미를 소리나게 밟아 죽였다     누군가    나의 눈빛을 읽고 가는 아직도   어린놈이    벽을 몇 번 두들기다 갔다     고요하다      오월이 숨찬 기氣를 내뿜고 가는   여기는 관악의 하반신이 시작되는……     고요하다      딸은 잘 있을까     고요.    물고기의 눈동자에서 파닥대던   무늬산호수꽃    고요.      고요하다                                                                                                             양준호는 시문학 시인들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하이퍼시’ 동인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등단하던 80년대부터 독특한 하이퍼시를 써 왔다. 양준호의 시는 상황시다. 실존적 단절과 절대고독을 으로 허공중에 단어를 던지며 의미를 함축한다. 시인의 시에는 대사와 반복어가 많다. 단어와 행이 짧다. 꼬리가 잘려나간 연 같다. 토막 난 단어들이  긴장감과 위기감을 준다. 축약된 연극 대본처럼 양준호는 설명을 버린다. 의미도 버린다.   양준호의 시를 읽으면 혼자 골방에서 울고 있는 소년을 보는 것 같다. 카리스마와 괴기스러움, 파격 속에 숨어있는, 어리고 상처받은 어린이가 보인다. 그 어리고 여린 것, 그 단단하고 날카로운 것, 그 도발과 반격이 시를 쓰게 하는 원동력일 것이다. 단어와 단어는 단절되고, 연과 연도 단절된다. 단어들이 제각각 결합되고 사방으로 내던져진다. 그 단절된 것들의 구성 조합이 하이퍼시의 조건인 ‘리좀’을 충족시키고 있다.「積 ‧ 3」은 양준호의 작품 중에서 순한 편이다. 부사와 어미를 제목으로 쓴 시를 한권의 시집으로 엮을 만큼 역량 있는 시인이다.    시인은 희귀한 꽃 이름이나 사물 단어카드를 늘 가지고 다닌다. 7연의 ‘무늬산호수꽃’도 그런 열정으로 찾아낸 꽃일 것이다. ‘무늬산호수꽃’은 다른 꽃 으로 대체하여도 시의 형태가 무너지지 않는다. 무의미 단어의 연결과 결합, 대체 가능한 단어들은 ‘무의미’와 ‘탈관념’을 주장하는 하이퍼시의 특징이다. ‘무늬산호수꽃’은 시와 환상적인 결합을 하고 있다. ‘물고기의 눈동자에서 파닥대는 무늬산호수꽃’에서 예리한 관찰과 섬세한 자율신경을 가진 시인의 감각을 본다. ‘무늬산호수꽃’은 ‘고요’와 만난다. 고요한 감성의 그림자를 만든다. 의도된 완벽한 계산이며 효과다.   양준호 시인의 ‘積’ 은 시집 한권 분량의 시리즈물이다. ‘흑거미’를 밟아죽이면 어떤 소리가 날까? 절대고요의 절대상황을 상상하여 보라, 시대를 잃어버린 고독한 시인은 칩거 중 거미 한 마리와 대적하게 된다. 일련의 과정과 단계는 실존적 절대상황이다. 절대고요가 먼저일까? 절대고독이 먼저일까?   ‘어린놈이 벽을 몇 번 두들기다 갔다’ 부분에 주목한다. ‘어린놈’은 손자이거나 은둔시인에게 전화를 거는 행세하는 어줍잖은 시인일지도 모를 일. 양준호 시인은 세상을 향해 벽을 여러 번 두들겼을 것이다. 미련과 실망 뒤 마침내 스스로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격리시켰을 것이다. 침묵과 고요.   ‘관악의 하반신이 시작되는’ 봉천동 어느 적막한 골방에서 세상과의 소통을 기다리고 있는 시인을 상상해 본다.   ‘딸은 잘 있을까?’   격리된 고요 속에서도 딸은 유일한 관심거리다. 자신의 분신에게만 소통의 의도를 갖고 있다. ‘물고기의 눈동자에서 파닥대던 무늬산호수꽃’의 그림자, 시인의 속눈썹 위에 걸려 있다. 지친 고요가 심심하고 고단하다.   양준호 시인은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은둔 시인이다. 하찮은 세상을 비웃듯 세상과 섞이기를 거부한다. 시인의 필체는 나비의 날갯짓처럼 길고 길쭉하다. 마치 세상에서 벗어나 허공을 날아가는 나비의 자유로운 날개처럼. ‘積’ 시리즈는 세상에서 밀려난 천재 시인이, 세상을 역으로 다시 물끄러미 바라보며 관찰하는 듯 고요로 침잠하는 詩다.     시인을 다시 세상으로 불러내어, 헛웃음 웃게 하고 싶다. 동료시인의 변변치 못한 시를 험담하며 반주 삼아 술 한 잔 마시게 해 주고 싶다.  나의 골방도 고요하다. 모기 죽이는 소리.  들린다.     가져온 곳 :  카페 >시와 도자기|글쓴이 : 이선| 원글보기  
17    y거나 Y 유지소 댓글:  조회:744  추천:0  2018-12-20
엔지오 신문/ 시가 있는 마을 21호/ 유지소 y거나 Y   유지소   나무란 나무는 모두 y거나 Y; 일평생 새총을 만든다 떡잎부터 고목까지 나무는 나무로부터 새를 날려버리기 위해 y거나 Y; 새총전문제조자가 되었다 새는 나무의 도플갱어; 이것은 나만 아는 사실 새는 나무의 육체로부터 유체이탈한 나무의 영혼 ; 이것은 나무만 알고 새는 모르는 사실 나무는 영혼이 육체로 돌아오는 것을 원치 않는다 유배자처럼 머무는 것을 원치 않는다 고정식 탁자 같은 나무에게 새는 일종의 접이식의자 같은 것이다 나무 이전에 새가 있었다,는 말을 나는 한 번도 듣지 못했다 단언컨대, 새는 나무 이후에 있었다. 새; 나무에게 새는 뿌리를 탈출한 나무이다 나무; 새에게 나무는 뿌리를 박은 새이다 y거나 Y; 공중에 떠 있는 새의 은자부호 y거나 Y; 공중에 떠다니는 나무의 부표 새는 뿌리를 내리기 위해 나무에 둥지를 틀고 나무는 더 멀리 날아가기 위해 새를 날린다 새는 나무로 돌아오는 힘으로 일생을 살고 나무는 새를 날려버리는 힘으로 일생을 산다 새가 영원히 나무로 돌아오지 않을 때 나무는 비로소 완전한 나무가 된다      * 2012년 시인광장 상 수상작품      「y거나 Y」는 나무의 형태를 관찰하여 ‘y거나 Y’로 읽는다. 또한 새총모양으로 읽는다. 붙박이로 서 있는 나무와 나무에 둥지를 틀고 사는 새와의 관계를 ‘y거나 Y’로 상징적으로 읽는다.   부부관계, 부모자식관계, 연인관계, 불륜관계, 상하복종관계, 이별, 집착…, 모든 관계는 함수 'x와 y'로 이루어져 있다. 그와 같이 위의 시「y거나 Y」에 어떤 대립적인 관계와 상황을 대입하여도 그 관계가 성립된다. 기호시가 독자의 확산적 사고를 도출하는 이유는, 대입하는 사물에 따라서 의미확장이 크기 때문이다. 남의 은밀한 일기장을 훔쳐 읽는 것 같은 쾌감이 있다.   그 대상은 밀착된 자아이면서 대립되는 타자다. ‘자신’이면서 타자다. 라캉은 ‘욕망이론’에서 ‘자아를 타자로 인식하는 자아의 시선’에 대하여 언급하였다. 시의 본질은 자아를 객관화시키는 작업일 것이다. ‘가까이 있는 자아를 멀찍이 놓고 바라보기’라고 이름붙여 본다. 기호 'x와 y'는 자아면서 동시에 ‘타자’를 의미한다. 위의 시 6-7행에서 ‘새는 나무의 도플갱어; 이것은 나만 아는 사실/ 새는 나무의 육체로부터 유체이탈한 나무의 영혼’이라고 표현한 부분이 그 사실을 증명해 준다. ‘자아의 타자화’는 16-17행 ‘새; 나무에게 새는 뿌리를 탈출한 나무이다/ 나무; 새에게 나무는 뿌리를 박은 새이다’ 부분에서도 증명된다.  「y거나 Y」는 설명적이고 지루하고 빤한 시들에 식상한 독자에게, 신선하고 감각적이며 낯선 이국 거리에서 매력적인 외국 이성을 만난 것 같은 낯설음이 주는 호기심과 설렘을 준다. ‘고정식 탁자 같은 나무에게/ 새는 일종의 접이식의자 같은 것이다’와 같은 표현은 내용과 표현의 ‘낯설게하기’의 극치다.     ‘새는 뿌리를 내리기 위해 나무에 둥지를 틀고/ 나무는 더 멀리 날아가기 위해 새를 날린다/ 새는 나무로 돌아오는 힘으로 일생을 살고/ 나무는 새를 날려버리는 힘으로 일생을 산다’ 위의 시의 주종을 이루는 대귀법이다. 대귀법의 단순하고 간결한 문장들이 선명하고 쿨하게, 때론 따끔하게, 새콤하게, 은밀하게 독자를 유혹한다.   ‘자아의 타자화’는 갈등과 배리의 ‘등배관계’다. ‘새가 영원히 나무로 돌아오지 않을 때/ 나무는 비로소 완전한 나무가 된다’ ‘관계의 미학’의 정점이다. 사유의 깊이와 절제와 정돈, 버림의 미학이 감각적인 기호시로 완성된 간결함이 돋보인다.   가져온 곳 :  카페 >시와 도자기|글쓴이 : 이미지| 원글보기
16    탈 위선환 댓글:  조회:604  추천:0  2018-12-20
  / 엔지오 신문- 시가 있는 마을      탈                                                                       위선환         목 안이 칼칼하고 바람은 낮게 분다 돌들이 구르면서 서로 부딪친다   냇가에서 집어든 물방울은 깨졌고 돌멩이가 뛰어서 건너간 수면은 잘게 부서졌고      달빛 환한 밤에      河回의 물굽이를 깔고 앉은 각시의 하얀 각시탈을 입 벌리고 바라보는 이매의 이매탈은      턱이 떨어져나가고 없다   걸립할 때, 별이 춤판으로 떨어졌다 강 건너 낮은 하늘로 빛이 지나가고 개가 짖더니   벗은 여자의 배 위에서 벗은 남자가 죽었다   나는 다섯째 마당에 나가서 파계하고 중탈을 벗는데 갑자기 얼굴이 없다                                                                    위선환의「탈」은 4연으로 이루어진 시나리오 기법의 시다. 마당극이나 춤판에 올릴 수 있는 극적 구성을 갖고 있다. 시인은 4연에서 ‘춤판’과 ‘다섯째 마당’을 제시어로 사용하여이 시의 공연성을 암시하고 있다.   위의 시는 극의 구성요소인 4단계로 나눌 수도 있다. 또한, 더 세분하여 의 5단계로 나눌 수 있다.   위선환의 시는 가장 한국적인 ‘하회탈’이라는 고전적 소재를, 가장 모던한 스타일의 현대적 기법으로 입체적으로 재구성하였다. 위의 시는 강한 극적 자극이 있다. 시골장날 마당극에서 볼 수 있는 편안하고 느긋한 해학적 소재는 아니다. 굳이 분류한다면 스릴러 추리극에 가깝다. 불안하고 급박한 위기감이 시 전체에 깔려 있다.   위의 시를 구성의 5단계로 나누어 보면 으로 분류할 수 있다.   1연 발단 부분 - ‘목 안이 칼칼하고’ ‘서정적 자아’는 불안정하다. ‘돌이 구르면서 부딪치고/ 물방울이 깨지고/ 돌멩이가 수면을 부순다‘. 연극이 일상적이지 않듯이, 배경으로 등장하는 첫 장면도 일상적이지 않다. 극 초반부터 불안과 위기감이 조성되고 있다.   2-3연 전개 부분 - ‘달빛 환한 밤’에 모호한 극적 분위기가 고조된다. 도깨비가 나올 것도 같고 사랑이 무르익을 것도 같은 아릿한 밤이다. 턱이 없는, 모자라고 불안정한 병신탈인 ‘이매탈’은 ‘하회의 물굽이를 깔고 앉은’ ‘각시탈’을 입을 벌리고 넋놓고 바라본다. 정신지체인 병신이 젊은 아낙을 ‘짝사랑’하면 집착의 사랑으로 치닫게 될 것이다. 도망치느냐, 죽느냐, 죽이느냐 결국, 극단의 사랑이 될 것이다.   4연 1행 위기 부분 - ‘턱이 떨어져 나가고 없다’는 부분은 ‘위기 부분’에 해당된다. 불안과 위기상황은 4연 2행의 ‘개가 짖’을 때에 한층 고조된다. ‘도둑’이 들거나 ‘낯선 사람’이 침입했을 때 개가 짖는다. ‘이매탈’은 드디어 행동을 일으키며, 사건을 벌이는 것이다.   4연 3행 절정 부분 - 극은 박진감 넘치게 ‘절정’을 향하여 달린다. ‘벗은 여자의 배 위에서 벗은 남자가 죽었다’ 치정살인? 복상사? 과연 어느 쪽일까? 이매탈인 많이 모자라는 ‘병신탈’은 ‘젊은 각시탈’을 짝사랑하다 동반자살을 하는 것? 갈대밭 무성한 저녁, 쪽배 위에서? 궁금궁금 하게, 위태위태하게, 긴장감 조성하기.   4연 4행 결말 부분 - ‘나는 다섯째 마당에 나가서 파계하고 중탈을 벗는데 갑자기 얼굴이 없다’. 결말이 해피엔딩이 아니다. 스산하다. 왜냐하면 이 시극은 스릴러물이기 때문이다. 파계와 파격미.      스릴러 기법을 도용한 위선환의 시는 연극과 시나리오로 꾸미거나 마당극으로 공연할 수 있는 공연성을 가지고 있다.   위의 시는 하회탈 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하였다. 여자가 남자를 짝사랑한 하회탈 설화를, 반대로 남자인 ‘이매탈’이 ‘각시탈’을 사랑하다 죽는 것으로 바꿔서 각색하였다. 하회탈의 열 번째 탈인 ‘이매탈’은, 허도령이 꿈에 계시를 받아 외부와 단절하고 숨어서 목욕재계하고 신성한 ‘탈’을 만들던 중, ‘허 도령’을 짝사랑한 동네 ‘처녀’가 얼굴이라도 보려고 문에 구멍을 뚫고 문구멍으로 들여다본 죄로, 허도령은 부정을 타서 피를 토하고 죽는다. 그래서 10번째 ‘이매탈’은 턱이 없는 미완성으로 남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위선환은 ‘아사달과 아사녀’ 설화처럼 고려시대의 슬픈 선남선녀의 사랑 이야기를 다시 재구성하여 한편의 시로 완성하였다. 국보 제121호로 박물관에서 귀히 대접받는 하회탈. 분명 역사적 의미가 크다.   하회탈은 ‘신’으로 모시고, 사람이 범접하지 않고 신성시하여 제를 올리고 잘 보존했기 때문에 11-12세기 작품이 지금까지 원형이 잘 보존되고 있다. 제사장만 1년에 한번 제사를 지내고 닦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이 신성시하는 성경의 ‘언약궤’와 같다. 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싣고, 산에 있는 아빈아답의 집에서 나왔는데,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들어 하나님의 궤를 손으로 붙들었더니 하나님이 진노하사 그를 그곳에서 치시니 그가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으니라고 성경에서 언약궤를 언급하고 있다. 당시 탈을 만들던 장인은 천민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육체의 지배계급인 ‘양반’과 정신의 지배계급인 ‘중’을 존중하고 두려워하면서도, 천민 계급인 ‘백정’과 같이 춤판과 마당극으로 등장시켜 회화하여 놀이를 하였다.   계급을 뛰어넘은 사랑은 어느 시대나 금기다. 그 사랑의 결말은 비극이다.   위선환의 「탈」은 서정주의 ‘문둥이’ 시처럼 섬뜩한 배반의 사랑을 다룸으로써 ‘낯설게하기’를 실현하였다. 묘하게 호기심과 미의식을 자극한다.   마지막 행의 ‘나는 다섯째 마당에 나가서 파계하고 중탈을 벗는데 갑자기 얼굴이 없다’는 부분에서 다시 1행의 현재의 시점으로 돌아가서 ‘서정적 자아’가 재등장한다. 그러나 1연의 사건이 생기기 전의 시점과는 확연히 다르다. 이미 ‘어떤 결과’를 도출한 위기의 상황에 서정적 자아가 놓이게 된다. 이야기는 끝났지만 막이 내려도 독자는 불안하다.   아주 희귀한 복상사를 다룸으로써, 위험하고 불안정한 사랑의 정점을 ‘보여주기’하고 있다. ‘남자가 여자의 배 위에서 죽었다,’는 이야기는 여러 세기 동안 동네 아낙네들 입방아에 오르내리며 쉬쉬, 만담거리가 될 것이다.   전설적 구조를 가지고 있는 이 시는 꼭 스릴러 연속극을 보는 것 같다. 악마는 죽었는데 꼭 또 현재에 살아날 것만 같은.   극적 긴장감과 호기심, 불안감을 조성하는 능력은 위선환 시의 힘이다.   위선환은 가장 한국적인 하회탈을 소재로 가장 현대적인 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탈은 존재의 분신이면서 또한 존재 자체이다. 몸체이면서 외형이요, 내면이다. 외형에 자아의 얼굴을 가리고 자유롭게 자신을 희화하고 상대를 조롱한다. 그리하여 얼굴 맞대고는 차마 할 수 없는 진정한 이야기를 희극적으로 적나라하고 보여준다.   탈 뒤에 숨은 자아와 탈을 벗은 자아의 괴리감이라고나 할까? 성을 버려야 하는 중이 성을 선택한다면 갈등과 불안증이 고조될 것이다. 파계라는 극단적 방법으로 현재의 자아를 던져버리고, 탈 뒤에 숨는다. 얼굴 없는 자아다.   어느 것도 자신의 모습이 아니다, ‘탈’을 쓰고 있어도 ‘탈’을 벗어 던져도 진정한 ‘자아’를 찾지 못하는, 시인의 존재의 불안.   부조리극의 극치다,   위선환의 「탈」은 민화처럼 가장 한국적인 소재다. ‘탈’은 ‘자아’며 ‘초자아’다. 왜냐하면 ‘탈’의 인물은 초월자인 ‘신’을 의미하면서 또한 타락자인 ‘양반’과 ‘병신’, ‘중’ 등 기존의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 천시받는 인물을 대변한다. 현대물로 치면 매스컴을 떠들썩하게 하는 치정행각의 주인공일 수도 있다. 이미 각시는 각시가 아니다. 중은 중이 아니다. 양반은 양반이 아니다. ‘탈’을 뒤집어 쓴 순간 역할이 바뀐다. 대표성을 잃고 반어적이고 역설적인 인물이 된다.   위선환은 4연 3행의 ‘벗은 여자의 배 위에서 벗은 남자가 죽었다’는 극적상황을 제시함으로써 극적 클라이맥스를 만들었다. 치정관계에 얽혀 보험사기를 하고 아내를 죽인 살인자나, 점잖은 척하면서 뒤로 연애질과 잡기를 하는 현대 양반의 모습이기도 하다.   ‘나는 다섯째 마당에 나가서 파계하고 중탈을 벗는데 갑자기 얼굴이 없다’   마지막 4연 4행 결말 부분은 ‘다섯째 마당’이라는 극의 장면제시를 하고 있다. 파계한 중이 ‘탈’을 벗으니 얼굴이 없다. ‘탈’은 얼굴을 가려서 진짜 얼굴이 안 보인다. 오랫동안 탈을 쓰고 있으면 이미 진정한 자신의 ‘얼굴’이 없다. 탈을 벗는 순간 진실에 노출된다. 탈을 쓰지 않으면 현실과 존재마저도 위태롭고 불안하다. 현대에 다시 한번 언급할 필요성이 있는 질문이다. 누가 ‘탈’을 벗을 것인가?        가져온 곳 :  카페 >시와 도자기|글쓴이 : 이선| 원글보기  
15    부드러움의 단상 ―접사 오남구 댓글:  조회:661  추천:0  2018-12-20
  부드러움의 단상  ―접사     오남구       비, 비, 파란 신호등이 켜지자 부드러운 산들이 팔딱팔딱 숨을 쉰다. 에워싸 나를 가둔다 금시 차다 단단하다 날카롭 게 날을 세운다 수직으로 솟으면서 수평으로 퍼지면서 나무들 이 솟아오르고 녹색이 번지고 빗물이 번지고 속도가 날을 세 운다. 빨간 신호등이 켜지자 모두 갇혀 버린 빗길, 팔딱팔딱 선들이 곡선을 그리다가 부서져 떨어진다.       흘깃 보는, 조각 허공에서 뿌리는 부스러기 무지개       겹쳐 그리기 기법 - ‘다시점’'다초점’     오남구 시인은 작고하기까지 문학사에 남을 새로운 시론을 증명하기 위하여, 열정적으로 을 연구하였다. 후학들에게 실험시를 가르치고, 직접 시 작품을 쓰면서‘염사’와 ‘접사’, ‘탈관념’으로 디지털 이론을 요약하였다. 그 방법론으로 ‘사진찍기’ 기법의 ‘클로wm업’과 수학공식을 응용하였다. 오남구의 디지털 시론은 ‘표현주의’시론으로 텔레비전의 ‘보여주기’ 기법이다. 그이 ‘탈관념 이론’은 문덕수의 과 심상운이 정의한 하이퍼시론에도 영향을 미쳤다. 문덕수는 광법위하고 넓은 ‘디지털’개념을 축소하여, 선명하고 객관화된‘하이퍼시론’으로 발표하였다. 오남구의 시론이 실험시로서 문학사에 한 획을 긋는 역할을 할 것을 기대한다.   위의 시는 필자가 주장하는 이론으로, 하이퍼시의 8가지 방법론 중 한 방법론인 으로 논의해 보고자 한다. 은 피카소의 그림 과 같은 시 창작 기법이다. 사람의, 앞, 뒤, 옆을 한 평면 위에 그린다. 피카소는 ‘다시점’‘다초점’ 그림을 그렸다. 점선으로 눈 표시를 하여 여러 방의 성행위를 훔쳐보는‘엿보기’그림도 있다.  ‘겹쳐 그리기 기법’의 시는 건축물의 투시도나 단면도처럼 하이퍼시의 양방향성과 쌍방향성을 추구한다.‘다시점’과 ‘다초점’하이퍼시는 보이는 사실뿐만 아니라, 존재하는 사실을 한 화면에 한꺼번에 펼쳐 보여준다. '겹쳐 그리기 기법‘은 ‘외면 겹쳐 그리기’와 ‘내면의 겹쳐 그리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오남구의 시「부드러움의 단상」은 ‘외면 겹쳐 그리기’와 ‘내면 겹쳐 그리기’를 병행하고 있다. 비를 세밀하게 관찰하여 비의 내형과 비의 외형을 대조적으로 파고들어간다. 비의 내형에서는 비를 직관하여 날카롭게 재해석하였다. 1연의 ‘숨을 쉰다, 에워싸 가둔다, 날카롭게 날을 세운다, 수직으로 솟는다, 수평으로 퍼진다, 빗물이 번진다, 속도가 날을 세운다, 갇혀 버린다, 곡선을 그리다가 부서져 떨어진다’ 등 비에 대해 다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위의 비에 대한 표현은 오남구가 주장하는 ‘바라보기’나 ‘보여주기’의 표현주의 관점을 넘어 그 이상의 새로운 시세계를 보여준다. 새로운 ‘표현기법’으로‘날카롭게 관통하기 기법’을 사용하였다. 오남구가 디지털시론에서 주장한 ‘보여주기’ 기법보다 시가 한발 더 앞서 갔다.   위의 시는 짧은 단문 문장을 사용하였다. 문장은 날카롭고 직선적이다. 짧고 직선적인‘문장기법’은 줄기차게 꼿히는 비의 외형과 성격을 잘 대변하고 있다. 2연의 ‘조각 허공’과 ‘부스러기 무지개’는 시인이 시각적 이미지를 극명하게 잘 표현한 ‘표현주의’의 극치다.   오남구의 ‘비’는 아날로그 시대의 ‘슬픔’과 ‘이별’의 대명사인 관념의 비가 아니다. ‘비’를 여러 방향, 여러 각도에서 절개하고 분류하여 한 화면에 펼쳐 보이고 있다.‘신호등이 켜진’ 거리에서 아주 짧은 찰라의 순간 직면한 ‘비’를 여러 방향에서 관찰하여 직관하였다. 내면의 눈과 외면의 피부로 접촉한 비다.‘겹쳐 그리기 기법’으로 그린 ‘하이퍼 그림’이다. 위의 시는 심상운이 ‘다선구조론’에서  주장한 ‘다시점’과 ‘다초점’하이퍼시의 성립조건을 갖고 있다.      가져온 곳 :  카페 >시와 도자기|글쓴이 : 이미지| 원글보기
14    어머니의 간장사리 이 혜 선 댓글:  조회:791  추천:0  2018-12-20
엔지오 신문 시가 있는 마을 15     어머니의 간장사리                              이 혜 선     시어머니 제사 파젯날 베란다 한 구석에 잊은 듯 서 있던 간장 항아리 모셔와 작은 단지에 옮겨 부었다 20년 다리 오그리고 있던 밑바닥을 주걱으로 긁어내리자 연갈색 사리들이 주르륵 쏟아진다   툇마루도 없는 영주땅 우수골 낮은 지붕 아래 허리 구부리고 날마다 이고 나르던 체수 작은 몸피보다 더 큰 꽃숭어리들 알알이 갈색 씨앗 영글어 환한 몸 사리로 누우셨구나   내외간 살다보먼 궂은 날도 있것제 묵은 정을 햇볕삼아 말려가며 살아라 담 너머 이웃집 연기도 더러 챙기며 묵을수록 약이 되는 사리 하나 품고 살거라   먼 길 행상 가는 짚신발 행여나 즌데를 디디올셰라 명일동 안산에 달하 노피곰 돋아서 어긔야 멀리곰 비추고 있구나* 물의 마음 환히 비추는 사리 하나   이승 저승 가시울 넘어 맨발로 달려오신 어머니의 간장사리   * 백제 가요 ‘정읍사’에서 차용         이혜선의 「어머니의 간장사리」는 과거형이다. 백제가요 「정읍사」를 차용한 것이나 향토적 순수의 다정인 시어머니에 대한 정서가 예스럽다. 그러나 이 시가 상투적이거나 지루하지 않고 진정성이 있는 것은 ‘간장사리’라는 사물성에서 출발하여 시어머니의 지아비를 향한 사랑과 당부의 말씀을 객관화시켰기 때문이다.   ‘간장사리’보다 더 적절한 한국 어머니에 대한 비유를 찾기도 힘들 것이다. 간장항아리는 가난한 지어미가 대를 물려오면서 시어머니에게 전수받은 가장 소중한 자산이었다. ‘간장 맛이 좋으면 살림이 불어난다’, ‘집안이 망하려면 장맛부터 변한다’는 말이 있다. 간장은 옛 어머니들의 가장 귀중한 기초양념이며 조미료였다.   위의 시는 시어머니가 물려준 간장항아리와 시어머니의 몸체 같은 ‘간장사리’. 시어머니가 들려준 지아비를 섬기는 자세. 백제 여인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여러 세대의 여인의 삶을 조명하였다. 대상에 대한 확장, 소재의 확장을 통한 시의 시케일이 크다.   ‘간장 찌꺼기’라는 ‘사물’에 집중하여 묵을수록 약이 되는 ‘사리’의 경지까지 찾아내었다. ‘간장사리’라는 말 속에 인내와 고난, 찌꺼기로 ‘나머지 생’을 산 ‘어머니’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표현과 기교로 멋을 부리지 않아도 좋은 시는 ‘느낌’과 ‘설득력’을 스스로 가지고 있다.   ‘진정성’과 ‘객관화’는 시의 중추신경이며 뼈대다. 뼈대가 으스러지면 허리가 굽고 온 몸이 저리고 아프다. 기초공사를 튼튼히 한 작품은 구성이 단단하고 힘이 있다. 연과 연이 서로를 받쳐준다.   가져온 곳 :  카페 >시와 도자기|글쓴이 : 이미지| 원글보기  
13    이선의 시 읽기- 김규화 <한강을 읽다> 댓글:  조회:678  추천:0  2018-12-20
엔지오 신문 시가 있는 마을 16 - 김규화     한강을 읽다                             김규화         이젤을 거꾸로   일요일의 한강이 그림을 그린다   부우우 몰려와 늘어선 물가의 아파트군   단숨에 세우고   짐짓 흔들어본다   하늘을 제 가슴 깊숙이 클릭하고   그 위에 구름 몇 송이 흘러내리는   이내 지워버린다   아파트를 흑수정으로 꾸며놓고   올랑촐랑 물살 속의   창문을 열고 들어가시는 구부정한 어머니   뒤 따르는 나를 덥석 안는다   돛단배 하나 지나가면서   한강은 우리를 지운다   피사로의 「수문」을 물새가 가로 지른다         이선의 시 읽기   움직이는 그림 기법- ‘상상력의 이동’     아날로그 시에서‘상상력’은 시의 중요한 요소다. 그러나 하이퍼시에서 ‘상상력’의 부재는 하이퍼시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 아날로그 시가 정지한 그림이라면 하이퍼시는 ‘움직이는 디지털 그림’이다. 하이퍼시는 상상력의 공간이동과 시간이동으로 공감각적 운동 이미지를 만든다. 하이퍼시는 화면이 선명하고 장면 전환이 빠르다.    ‘움직이는 그림 기법’의 하이퍼시는 합성과 분리, 삽입이 가능한 합성사진이다. 상상력의‘공간이동’과 ‘시간이동’이 연속적으로 이루어진다. 새로운 구조, 새로운 의미, 새로운 감각을 만든다. 새로운 상상력, 즉 시에서의 새로움은 새로운 철학이다.   김규화의 시는‘어머니’라는 보통명사를 특별한 그림으로 다시 그렸다.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 것 같다. ‘한강’이 ‘거꾸로 이젤’을 들고 순행적인 시간의 시점을 거꾸로 돌려 ‘반시계 방향’으로 진입하며 시에 감각적 미의식을 준다. 아날로그 시가 시인의 관점에서 시에 접근했다면 이 시는 사물, 즉 피사체의 관점에서 관찰한다. 상상력의 시간이동과 공간이동을 하여‘아파트- 하늘- 구름- 어머니- 돛단배- 새’로 그림의 화면이 바뀐다. 사물에 운동성을 주며 장면전환을 하며‘움직이는 그림’을 그린다.    시어 선택에서도 고정성과 획일성에서 벗어나 독자에게 정서환기의 장을 열어준다. 아파트라는 사물을 ‘부우우 몰려와 늘어선’이라는 운동성을 줌으로써 시에 생동감과 움직임을 준다. 평면 그림에 운동성을 주어 입체시로 만들었다. 수채화의 여백처럼 시적 여운을 남긴다. ‘출렁, 흘러내리는, 올랑촐랑’등의 시어는 시에 운동감을 준다. 사실적인 표현과 정서적인 표현이 아우러져 심상에 한 폭의 그림을 그린다. 붓으로 물을 찍어 독자의 추억도 감각적으로 그렸다 지운다.‘돛단배’와 ‘물새’라는 사물이 장면전환을 하는 붓이다.    김규화의 「한강을 읽다」는 아날로그 시가 아닌 파스텔톤의 ‘움직이는 풍경화’다. 상상력의 시간이동과 공간이동이 여러 번 이루어진다. 여러 번 출렁거림을 주어 ‘풍경화’에 ‘움직임’을 준다. 하늘과 구름과 물새라는 사물을 공간이동하여 붓으로 사용한다. 김규화는 이 시로 독창적인 현대적 하이퍼시 창작기법을 창조하였다.    가져온 곳 :  카페 >시와 도자기|글쓴이 : 이미지| 원글보기
12    내 침실 문덕수 댓글:  조회:660  추천:0  2018-12-20
내 침실   문덕수     신발 밑바닥을 털지 않아도 신장은 투덜대지 않는다 낡은 TV만이 한 대 오롯이 앉은 거실의 벽시계 밑을 탈 없이 지나서 내가 없는 내 방을 들어간다 아무도 말리지 않는다 천장은 어제 그대로의 높이여서 안전하고 벽은 10년 전의 그 높이로 날 안아준다 등산모 운동모 맥고모자는 모자걸이에 걸려 있고 오늘은 벗어 걸 아무 것도 없다 내 생일 선물의 빨쁘레질리 카운티스마라도 있지만 사흘 전의 구겨진 와이셔츠도 그대로다 침대 머리맡 탁자 위의 그리스도의 비밀, 붓다의 입문 아직 못 읽은 신간이 천장을 받치고 있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상념없이, 주관을 버리고 바라보면 어떤 색깔, 어떤 모양일까? 신발은 제 생각을 주장하여 깔끔 떨지 않고, 신발장은 선입견을 가지고 신발을 배척하지 않는다.   무념무상의 사물들이 조용히 눈뜨고 노 작가를 직시하는 직관의 시간. 그리스도의 비밀과 붓다의 깨달음이 공존하는, 침실풍경.    조용히 정지된 침실, 그 풍경화를 읽는다. 와락 가슴 두근거리게 내면으로 안겨오는 성숙과 겸허함.   3행의 부사어. ‘오롯이, 탈없이’ 하루를 또 살아낸 가난한 영혼이 진득하니 손끝에 만져진다.   4행을 주목하여 보자. ‘내가 없는 내 방을 들어간다’ - 탈관념과 직관, 객관화를 이보다 잘 표현할 수 있을까? 객관화된 나를 내가 들여다본다. 말로 주장하거나 설득하지 않는다. 행동과 행위를 자연 그대로 ‘보여주기’ 한다. 시간이 흘러 ‘그’ 나이가 되면 누구나 5행처럼 ‘아무도 말리지 않는다’는 시간이 올 것이다. 이순을 지나면 행동하는 모든 것이 순수자연 그대로의 의지다. 9행의 ‘오늘은 벗어 걸 아무 것도 없다’ - 비움의 미학. 가볍게, 더 가볍게 물질을 내려놓는.   마지막 행의 ‘ 아직 못 읽은 신간이 천장을 받치고 있다’ 나이 들어 갈수록 덕성과 지성으로 생각을 지배하고, 야성과 욕망을 비우는 행위가 아름답다.   문덕수라는 노작가의 내면의 방, 일기장처럼 혼자만 보는 ‘비밀의 방’을 슬쩍 들여다본 부끄러움.    문덕수는 이 한 편의 시로 인생과 자아와 시론을 썼다. 예수와 석가가 공존하는 내면. 가져온 곳 :  카페 >시와 도자기|글쓴이 : 이미지| 원글보기
11    봄밤의 멀미 정연덕 댓글:  조회:762  추천:0  2018-12-20
봄밤의 멀미                                             정연덕       작은 귀를 세우고 그 얼굴에 욕망을 잘라낸다 땡볕에 몸을 태우는 원시인 하나 산피에트로 광장에 흰나비 날고 수채화 속에 몸을 숨기고 있다 서성이던 로테*의 가슴에 쪽빛 파도가 출렁이다   홍매화와 딱따구리 사이 키들거리는 버들치가 어떤 빛인지 무엇이 옳은지 모르겠다며 투명한 바다를 찾아 나선 여자들의 아랫도리가 나비 그림 속으로 하나씩 둘씩 뛰어든다   바로크의 메리안* 그녀의 꽃과 나비들 뜨겁게 자란 촉수로 봄의 손가락을 잡는다 숲에서 천둥번개를 찾다 멀미를 한다   큐폴라* 천정의 벽화가 있는 제단을 나와 날아오르다 나풀나풀 거리다 솔솔 입력되고 봄을 끌어내 청보리 물결로 춤을 춘다       * 로테(Rothe): 독일 관념론 학파의 루터교 신학자, 저서에 신학적 윤리학 등 * 메리안: 독일의 삽화가, 판화가, 여성 불평등에 반기를 든 바로크시대의 인물 * 큐폴라: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대성당의 대원개 큐폴라(Cupla)의 빨간 돔                       정연덕의 「봄밤의 멀미」는 하이퍼시의 성립조건과 서정시의 성립조건을 복합적으로 충족시키고 있다. 하이퍼시의 단점으로 고착될 것 같았던 정서적 건조, 철학의 부재, 시의 진정성을 모두 해결하였다. 하이퍼시와 서정시의 그 방법론을 찾아보자.   첫행의 ‘작은 귀를 세우고 그 얼굴에 욕망을 잘라낸다’는 부분을 주목하여 보자. ‘욕망’이라는 관념어를 첫행에서 서슴없이 ‘의제’로 제시한다. ‘욕망’은 모든 인류의 역사와 문화, 사랑, 배반을 내포하는 포괄적 주제다.  ‘욕망’을 다루면서도 이 시가 관념에 빠지지 않는 것은 ‘사실과 사물’을 시의 기본재료로 사용하면서 ‘사건’을 꾸미기 때문이다. 첫째, ‘로테’라는 실존적 인물을 등장시켰다. 또한 ‘산피에트로 광장’이란 장소를 제시하여 ‘현재의, 장소와 시간’을 제시하고 ‘현재성과 진정성’을 획득한다.   둘째, ‘바로크의 메리안’과 ‘큐폴라 천정의 벽화가 있는 제단’을 제시함으로써 철학과 신화, 여성주의까지 언급한다. 갸웃갸웃 놀이판을 들여다보며 숨은 의도성과 배반을 찾아내도록 호기심을 자극한다.   셋째, ‘큐폴라 천정의 벽화가 있는 제단’을 내세워 첫행에서 제시한 시제인 ‘인간의 욕망’의 문제를 다시 거론한다. 각 연에서 네트워크를 결성하여 제목으로 연관시키는 하이퍼시의 필요충분 조건을 만족시키고 있다.   넷째, 서정성이다. ‘1연- 롯테의 가슴에 출렁이는 쪽빛 파도, 2연- 투명한 바다를 찾아 나선 여자들의 아랫도리가/ 나비 그림 속으로 하나씩 둘씩 뛰어든다, 3연-뜨겁게 자란 촉수로 봄의 손가락을 잡는다, 4연-봄을 끌어내 청보리 물결로 춤을 춘다’ 등 자연과 여인과 서정이 파도치며 흰 물결을 일으킨다. 짐짓 치고 빠지며 역사적 여인들과 놀망놀망 희롱하는 여유를 보인다.     또한 여러 개의 그림들이 겹치며 무한 미술구성을 그린다. ‘흰나비, 수채화, 바다, 숲, 청보리 물결’ 등 회화성과 운동감, 서정성을 갖춘 상상력이 감각적이다.   가져온 곳 :  카페 >시와 도자기|글쓴이 : 이미지| 원글보기  
10    머리카락의 자서전 박남희 댓글:  조회:796  추천:0  2018-12-20
머리카락의 자서전   박남희   머리카락은 수시로 자서전을 쓴다 바람에 흩날리면서 이리저리 헝클어지면서 자서전을 쓴다 머리를 감을 땐 한 뭉치씩 빠지면서, 가려움을 토해 놓으면서 자서전을 쓴다   내 마음 가까이에 사는 여자는 얼마 전에 긴 머리를 잘랐다 사람들은 산뜻하고 젊어졌다고 말하지만 난 그녀가 자신의 자서전에 변화를 주기 위한 것이라는 걸 안다   갈대들도 가을이면 허리를 굽혀 한 계절의 마지막 자서전을 쓴다 갈대의 머리가 흰 것은 이제 더 이산 먹물을 찍을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가을 능선이 점점 흰 머리가 늘어간다 무덤에 들었던 아버지가 바람에 함께 출렁이며 일어나 못다 쓴 흰 머리카락의 자서전을 쓰고 있다         박남희의 「머리카락 자서전」은 1연 나의 머리카락, 2연 그녀의 머리카락, 3연 갈대의 머리카락, 4연 아버지의 머리카락의 구조로 되어 있다. 정확하게 구획정리된 논밭처럼, 잘 자란 나무처럼, 박남희 시는 단단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박남희 시의 구조를 나무에 비유한다면 뿌리와 줄기, 잎, 잘 익은 열매의 구조라고 할 수 있다. 거기에 새, 바람, 비, 안개까지 다양한 보조자료들이 분위기를 돋운다. 어린아이가 열매를 따 먹고 입맛을 다시는 묘미까지 상상력을 펼친다.   또한 직관과 사유를 통한 ‘낯설게하기’가 감각적 즐거움과 감상의 깊이를 더해준다.   박남희 시는 통합공과처럼 스케일이 크다. 또한 객관화된 상상력이 주는 즐거움이 있다.   박남희 시는 철저하게 사물에 기초한 사물시다. ‘사물이 말하게 하라’는 규칙을 엄격하게 지킨다. 객관화된 상상력으로 시를 쓰기 때문에 낯선 전개와 새로운 철학의 전개에도 불구하고 진정성이 있으며, 독자는 그에게 설득당한다.   박남희 시가 객관적이고 과학적이라서 딱딱한가? 전혀 그렇지 않다. 그 이유는 인간본연의 보편타당한 서정을 건드려서 새롭게 조명하기 때문이다. 언제 어디서나 일상에서 만나는 소재를 선택하여 사람 사는 기본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박남희 시인의 재능은 많은 시인 독자를 끌어들이고 있다.   가져온 곳 :  카페 >시와 도자기|글쓴이 : 이미지| 원글보기  
9    점화(點話) 문정영 댓글:  조회:599  추천:0  2018-12-20
시가 있는 마을- 문정영   점화(點話)    문정영     보고 듣지 못하는 그는 손가락에 눈과 귀가 있다.     상대방의 손가락 위에 자기 손가락으로 점자(點字)를 쳐서 대화를 한다.     눈물 한 방울이 점자처럼 손등에 떨어지기도 한다.     보이거나 들리는 것은 화려함이 먼저라고 척추장애인 아내에게 배운다.     눈과 귀를 닫고 마음으로 보면 세상은 눈물방울보다 작다.     아내의 손끝에서 꽃향기와 별빛을 읽는 그는 부드러워지고 부드러워진다.     그는 불안과 고통에 이르는 것도 달팽이만큼 느리다.     일 년처럼 읽으며 십 년처럼 느낀다.     문장이 단순해진 것은 모르는 것까지 일일이 적기 위해서이다.     그는 손가락으로 풀잎과 공기를 더듬어 쓰는 작가이다.     새벽의 연우(煙雨)가 막 깨어난 꽃잎을 감싸는 것처럼 손끝이 별빛에 가 닿는다고 쓴다.     그가 점화(點火)되는 것은 아무도 모르는 한밤중의 일이다.         시인은 대상의 마음을 여는 열쇄를 가졌다. 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진실을 찾아내서 객관적으로 드러내어 사물화하는 작업이다.   대상이 꽃이나 나무여도 좋고, 가위나 색종이라도 좋다. 사물시는 객관화가 쉽다. 그런데 사물이 인간일 경우에는 객관화가 쉽지 않다. 시인이 매력을 느낀 대상의 행위와 생각, 느낌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 인간에 집중하여 시를 쓸 때 자칫 감정에 빠지기 쉽다.   문정영이 측은지심이란 자기 ‘감정’에 휘말리지 않고, 시적 대상인 ‘맹인’에 대하여 개관화시킨 것에 주목하여 보자.   ‘척추장애인 아내’와 느리고 단순하게 사는 어느 작가의 인생이 슬로우 비디오로 재생된다. 이 시의 압권은 12행이다. ‘그가 점화(點火)되는 것은 아무도 모르는 한밤중의 일이다’라는 구절이다. 또한 제목의 ‘점화(點話)’와 마지막 연의 ‘점화(點火)’의 중의성도 이 시의 묘미다.   이 시는 12행으로 끝난 시가 아니다. 1-11행까지 느리게 전개되던 시가 12행에서 힘을 받는다. 12행은 시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13, 14행은 독자의 상상력의 공간이다.   ‘달팽이처럼 느리고 단순하게’ 살던 작가는 아내가 잠들고, 별들도 잠든 밤중에 탄력을 받아 작품을 구상하고, 줄거리를 짜고, 자기가 구상하는 소설의 주인공인 ‘아름다운 그녀’와 사랑에 빠질지도 모를 일. 또한 낮엔 잊었던 ‘불안과 고통’도 뇌활동이 활발하고 심장박동수가 빨라지며, 더 첨예하게 그를 추궁해 올 것.   예술은 밤중에 더 눈이 초롱초롱 빛나는 밤의 지배자니까.  
8    목숨祭 -수술실에서 가영심 댓글:  조회:578  추천:0  2018-12-20
목숨祭 -수술실에서   가영심   고요의 가슴 강물로 흘러간다. 낯선 강물처럼 거울 벽은 순간 흔들리고 헌혈을 위해 눕던 그대의 기도마저 하얗게 목마름으로 누워 있는 방   한 모금의 생명을 위하여 또 다른 시간 밖에서 내가 기다림으로 울음 울 때 아픔은 神의 최후의 눈물방울.   그대가 만드는 운명의 종이꽃을 만지다가 부수다가   한 잎 한 잎 시간을 불꽃으로 태워가고 아, 이름 모를 영혼의 새 한 마리   나에게서  지금 막 눈 떠 날아간다.          가영심의 시「목숨祭」에는 ‘물, 불, 새’의 심상이 있다. 가장 압축한 인간의 심상에 남은 마지막 이미지가 ‘물, 불, 새’의 이미지일 것이다. ‘흙’의 이미지를 더하면 완벽한 죽음의 이미지가 연상된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병자는 자기 자신을 다 버리고, 마지막 남은 심상을 내부로부터 끄집어내서 표출한다.   절대상황과 절대고독 앞에서 죽음과 대치하여 보라, 누군들 작아지고 가벼워지지 않을까? 안으로 침잠하여 고요한 강물로 흐를까? 거부하며 폭발하여 불꽃으로 타오를까? 그도 아님. 한 마리 새가 되어 절박함에서 가볍게 벗어나서 희락의 나라로 날아가기를 염원할까?  시인은 병마와 싸우며 작아지는 연습을 많이 했을 것이다. 음식을 줄이면 체중이 작아질 것이다. 욕심을 버리면 영혼도 가벼워질 것이다. 시간도 버리고 방치하여 놓아두면 새처럼 가벼워져 호르르 날아갈 것이다.      1연의 ‘거울 벽은 순간 흔들리고/…기도마저/ 하얗게 목마름으로 누워있는 방’, 2연의 ‘또다른 시간 밖에서/ 내가 기다림으로 울음 울 때’, 3연의 ‘종이꽃을 만지다가/ 부수다가’ 시인은 모든 갈등을 놓고, 비움의 미학을 터득할 것이다. 드디어 4연의 한 마리 ‘이름 모를/ 영혼의 새’가 되는 경지까지 오르게 되는   위의 시 1-4연은 5연을 완성하기 위한 조건 연들이다. 5연에서 이 시는 비로소 완성된다. 가벼워져 날아가는 영혼, 지금 막 눈 떠 날아가는 영혼을 화자의 객관적인 눈이 바라보고 있다, 5연에서 시의 객관화가 완성된다. 시가 완성된다.  이 시는 가벼워짐의 미학이라고 이름붙일 수 있다. 체중을 버리고, 욕심을 버리고, 친구를 버리고, 말도 버리고, 돈도 버리고, 미모와 기호까지 버릴 때 완성되는 가벼움의 미학. 그 순간 영혼이 ‘지금 막 눈 떠 날아’가는 찰라적 순간을, 바라보는 시인의 지혜자의 눈이 객관적이다.           가져온 곳 :  카페 >시와 도자기|글쓴이 : 이선| 원글보기  
7    5시 28분 이소정 댓글:  조회:684  추천:0  2018-12-20
엔지오 신문 시가 있는 마을   5시 28분     이소정     이때 쯤 되면 동이 튼다 하늘의 허벅다리에 어느 한 구석이 터지고야 말아 빛 몇 가락이 새어나오고 부피 늘어난 하늘의 입꼬리가 씰룩인다  괴기스럽던 밤의 홀쭉한 복부가 끊임없이 부풀다 마침 어미별 잃은 아침새가 짧고 뭉툭한 부리로 하늘을 쪼이면 터진 배꼽사이로 아침이 무수하다       이소정 시인은 아시아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명덕외고 3학년 재학생이다. 아직 어린 고등학생이 상상력과 객관화를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음을 알고 깜짝 놀랐다. 오래 시를 쓴 기성시인의 시 중에서도 객관화에 실패한 시를 자주 접하기 때문이다. 개관화 되지 않은 상상력은 작품의 긴장감을 떨어뜨리고 진정성을 잃는다.   위의 시는 제목부터 객관화 되어 있다. 이소정 학생이 어느 여름날 일찍 등교할 때, 해 뜨는 시각이 5시 28분이었을 것이다. 매일 TV에서 해 뜨는 시각과 해 지는 시각을 예보하니 객관화된 분명한 사실이다.   해가 뜨는 것은 사실이면서, 큰 사건이기도 하다. 사실 우주가 열리는 시각이다. 그러나 그 큰 사건이 매일 일상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우리는 주목하지 않았다. 해가 뜨는 것은 분명 찰라적 순간에 일어난 사건이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잊혀지는 일상이다. 손에 잡혀서 기억될 물건도 아니다. 그러나 이소정은 예리하게 그 시각에 집중하였다. 그리고 천체의 거대한 움직임을 순식간에 입체적이고 선명한 이미지로 구성하여 구체적으로 그려내었다.   ‘허벅다리, 입꼬리, 복부, 배꼽’으로 인체의 부분, 부분으로 비유함으로써 감각적이고 선명하게 그리고 있다. 또한 ‘터지다, 새어나오다, 끊임없이 부풀다, 무수하다’ 라는 생성과 발산, 확장의 이미지의 단어들을 구사하여 해가 뜨는 모습을 확산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어미별 잃은 아침새가/ 짧고 뭉툭한 부리로 하늘을 쪼이면/ 터진 배꼽 사이로 아침이 무수하다’   이 시의 백미는 9-11행이다. ‘어미별 잃은 아침새’는 아침에 홀로있는 ‘외로움’의 이미지와 ‘배고픔’의 이미지가 중첩되어 ‘짧고 뭉툭한 부리로 하늘을 쪼’는 행위에 시적 논리를 부여한다. 또한 10행은 11행 ‘터진 배꼽 사이로 아침이 무수하다’는 구절에 시적 논리성을 부여한다. 또한 11행은 필자가 중국 가는 배 위에서 본 일출광경처럼 무수한 빛기둥이 상상된다.   위의 시는 해가 뜨는 찰라적 장면을 잡아, 아주 감각적이고 입체적으로 선명하게 보여준다. 이 시인의 재능이 앞으로 어떤 꽃을 피울지 기대해 본다.  가져온 곳 :  카페 >시와 도자기|글쓴이 : 이미지| 원글보기
6    저년을 잡아라 박재릉 댓글:  조회:647  추천:0  2018-12-20
저년을 잡아라   박재릉   저년을 잡아라. 정신 나간 저년이다. 나를 노려보는 춘향이 같은 입술이 뱀처럼 달큰히 징그럽게 날름거리는 저년이다.   삼도천서 멱감던 저년이 도솔천서 깔깔거리던 저년이 이승 어느 낭자에 실려 내 입술이 지그시 닿으면 소름끼치게 펄쩍 뛰는 저년이 미친 저년이   이승 신방 숨은 골방을 몰래 덥쳐 안고 빨간 등불 시왕각시 타는 알몸으로 알몸으로...........   머구리를 먹은 듯 울렁거리는 질갱이를 씹은 듯 메스껍게 체한 울음을 토할 듯 미친 저년이   칠성당서 웃는 저년이 양천 우물가에서 뒤보는 저년이 감악산 약수터를 휘휘 돌아서 깔깔깔깔 달아난다. 달아난다. 저년을 잡아라.   저년을 잡아라. 내 혼비백산 타는 앓는 숨결속에서 주름살이 울고 바람이 울고 저년을 잡아라. 저년을 잡아라.    ―「저년을 잡아라」전문   * 시왕각시: 이승에서 한 맺힌 젊은 여자 * 칠성당七星堂): 수명장수신(壽命長壽神)인 칠원성군(七元星君)을 모신 집     박재릉의 시는 원초적 관능미와 리듬감, 색채이미지가 급박하게 어우러져 달려간다. 한용운의 가슴 서늘한 ‘문둥이’ 시와 서정주 시의 관능적 ‘뱀’ 이미지가 무속과 어우러져 낯설고 섬뜩한 새로운 미의식을 만들고 있다.   박재릉의 「저년을 잡아라」는 서정주의 「춘향의 말」을 패러디한 작품처럼 보인다. 당대 유명한 시인의 작품을 자존감을 걸고 더 관능적이고 더 격조 높은 수준의 작품으로 만들어 서정주를 능가하는 시인이 되겠다는 결의를 다진 것은 아닐까?   그 이유는 ‘뱀, 도솔천, 춘향’ 등 서정주 시에서 보여주는 낯익은 단어들 때문이다.  또한 서정주의 「춘향의 말」은, 1연 ‘향단아, 그네 줄을 밀어라/ 머언 바다로/ 배를 내어 밀듯이/ 향단아’ 라고 시의 첫행을 대사로 치며 리듬감과 운동감을 주고 있다. 1연, 2연, 3연 모두 끝행에서 ‘나를 밀어올려 달라’고 계속 다그치면서 달리는 이미지, 운동감을 계속 증폭시키고 있다.    위의 시는 「저년을 잡아라」는 제목부터, 내용까지 ‘저년을 잡아라, 저년을 잡아라’ 달리는 이미지를 주고 있다. 또한 낯설고 무섭고 에로틱한 표현. ‘춘향이 같은 입술’이나 ‘뱀처럼 날름거리는 저년’ ‘도솔천서 깔깔거리는 저년’ ‘체한 울음을 토할 듯 미친 저년’ ‘신방 숨은 골방을/ 몰래 덥쳐 안고/ 빨간 등불 시왕각시/ 타는 알몸으로 알몸으로’ ‘우물간서 뒤 보는 저년’ 등의 표현에서 자유분방하고 거리낌 없는 토속적 관능과 에로티시즘이 거칠게 뿜어져 나온다. 박재릉 시는 관념이 전혀 없다. 행위와 리듬과 원초적 관능이 극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저년을 잡아라’는 연극적 모티브를 갖고 있다. 뮤지컬이나 연극, 노래로 재구성할 수 있는 매력을 한가득 담고 있다.   
5    크리스마스이브의 백석 박정원 댓글:  조회:635  추천:0  2018-12-20
  크리스마스이브의 백석     박정원     남편을 잃은 여자와 아내를 버린 남자가 커피 볶는 집에서 백석을 읽는다   소나무부부가 손을 꼬옥 잡고 드센 바람도 좋아라 유리창 밖에서 응앙응앙 울고   가는 눈이 간간이 뿌려지는 전봇대에 앉아 볶은 커피 향을 기웃거리는 직박구리 한 마리   강 건너 저편엔 천국행열차가 산 그림자를 끌어내려 굼벵이처럼 지나가고   서서히 지워지는 마을들 하나 둘씩 불이 켜지는 만주벌판의 집들   여자는 말없이 백석과 동침하려 이불을 펴고 마침내 도착한 나타샤와 흰당나귀를 연신 스마트폰에 담아내는 남자   당신에게로 가는 길이 세상한테 지는 길이라네 내가 좋아서 버리는 거라네   눈도 푹푹 나리지 않는데 도무지 일어설 생각을 않는다        박정원의 시「크리스마스이브의 백석」은 두 개의 구도를 가지고 있다. 하나의 구도는 ‘백석’과 백석의 ‘애인’이고 또 하나는 ‘나’와 ‘그녀’의 구도이다. 두 개의 그림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고 있다. 또한 과거와 현재가 오버랩 된다. 시의 복합적인 이중구조는 시점과 관점을 흐트러놓음으로써 독자에게 감각적인 즐거움을 준다. 시가 평이하거나 싱겁지 않고, 현대적 감각의 맛갈스러움을 더해 준다.  1연의 현재적 상황은 ‘남편을 잃은 여자’와 ‘남편을 버린 남자’가 찻집에 앉아 있다. 과거  ‘백석’과 백석의 ‘애인’처럼 정상적이지 않은 만남이다. 일일 연속극 현장이며, 현대 대한민국 성풍속도이기도 하다. 불륜은 감미롭고도 불안함을 내포하고 있는, 어느 시대에나 흥미있는 소재다. 시에 극적 긴장감을 준다.   위의 시는 8행의 시가 한 연을 이루고 있다. 1행부터 현재 → 과거 → 현재 → 과거, 과거 → 과거․현재 → 현재 → 현재로 짧은 8행은 사실과 사건을 나열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과 배경이 어우러진 박정원의 시가 하이퍼적 상상력을 갇는 것은 6연이다.   “여자는 말없이 백석과 동침하려 이불을 펴고‘ 과거시점이다. 그러나 ’마침내 도착한 나타샤와 흰당나귀를 연신 스마트폰에 담아내는 남자‘ 는 현재시점이다. 이 구절 때문에 불륜을 꿈꾸는 현대의 남녀가 극적으로 클로즈업된다. 남자의 ’그녀‘가 ’나타샤‘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다. ’흰당나귀‘가 사실적인 당나귀냐, 시의 구절을 사진 찍는 것이냐도 중요하지 않다. 독자는 이미 크리스마스 이브에 이 불륜남녀와 함께 ’나타샤‘와 ’흰당나귀‘를 마음속으로 초대한다. ’백석‘과 ’애인‘을 용서하였듯이, 이 남녀의 불륜을 이해하고 수용한다. 한편의 시가 갇는 힘이다. 도덕과 역사를 뛰어넘어 새 역사와 도덕을 쓴다. 흰 눈밭 위에. 크리스마스 이브니까.  
4    도마 여영미 댓글:  조회:659  추천:0  2018-12-20
도마     여영미     방패보단 도마가 되기로 했어 모두가 피하는 칼 늠름히 받아내며 울퉁불퉁한 모든 삶의 재료 내 안에서 알맞게 반듯해지고 다져지는데 까짓 칼자국이야 한두 개일 때 흉터, 삶이 되고 보면 꽃보다 향기로운 무늬가 된다   평론:      여영미의 「도마」는 인식과 재인식을 넘나드는 춤추는 나비다. 시의 날개는 통통하며 긴장감이 있다. 상처에서 피워낸 꽃이 늠름하다. 잠언, 장자, 불경, 도덕경 한 페이지씩 넘기는 바람결. 인생의 체험과 철학이 관조로 압축되어 있다.    1행의 ‘방패보다 도마가 되기’는 말처럼 쉽지 않다는 걸 반백년 살아낸 사람은 안다. ‘모두가 피하는 칼/ 늠름히 받아내며/ 꽃보다 향기로운 무늬‘를 만든 여영미의 시는 서정주 시인의 ’국화‘보다 한 차원 높은 시성의 세계를 보여준다.   여영미의 시는 표현 중심주의 현대시를 계단 아래로 저, 멀리 밀쳐버렸다. 의미가 표현을 이긴 현장검증 자리. 여영미의 시가 아름다운 것은 무저항의 저항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삶이 내포하고 있는 ‘칼’과 ‘도마’의 예리한 경계에 서 보라, 시는 웅변보다 강하다. 선명하고 강렬하게.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마구 나를 내리쳐 달라’는 도마의 항변은 4-6행의 ‘울퉁불퉁한 모든 삶의 재료’들을 ‘내 안에서 알맞게 반듯해지고/ 다져’ 본 현장에 서 본 사람은 안다. 고통과 상처를 무늬로 승화시키기 위해 얼마나 긴 깨달음의 시간을 가져야 하는가? 상처에서 향기가 나기까지에는.   노대가의 예술세계에서나 만날 것 같은 관조와 인내, 용서의 미학. 여영미 시가 추구하는 새로운 미의식은 고통과 상처도 향기로운 꽃이 된다는 새로운 인식과 철학이다. 수용과 순응, 겸허함을 받아들인 완숙미가 돋보인다.   향기로운 빛을 내는 탁자처럼. 비바람과 눈비를 맞고 단단하게 자라서 자신의 몸을 다 내어주고, 톱질과 끌을 맞고 멋진 테이블이나 변신하는 나무를 보는 것 같다. 여영미는 젊은 날을 단단하게 익어가며 뜨거운 태양과 비바람과 눈비를 다 맞고 견딘 낙엽송이다.   위의 시는 ‘먼저 인간이 되라’는 명제를 보는 것 같다.  
3    용서하라, 저녁이 된 것을!* / 김영찬 댓글:  조회:550  추천:0  2018-12-20
엔지오 신문 연재: 시가 있는 마을 - 김영찬   용서하라, 저녁이 된 것을!*   김영찬   내 생애의 마지막 남자가, 라고 말문을 연 여인은 입술을 깨물었다 라이터 있니? 옆의 여인은 한없이 느리고 게으른 손가락으로 가늘고 뚱뚱한 핸드백을 열어 뒤적거린다   Cafe Gracias의 흐린 유리창 밖으로 끈 끊어진 풍선 하나가 날아가다가 전선에 감겨 제지당하는 걸 두 사람 모두 못 본 체 한다   담배는 없고 불만 있네……, 불필요한 사람도 글쎄 얼마든지 드물지 않는 법 비를 머금은 구름이 커튼 틈새로 하릴없이 참견하려다가 검은 외투를 걸친 듯이 무거운 침묵 촛불 흔든 바람의 길이 엇갈리고   내 생애의 마지막 남자를, 이라는 상투어를 수습하려던 여인은 손마디가 풀려 찻잔을 놓쳤다 박살난 커피 잔이 크고 작은 파편들로 나뉘자 그것은 구체적인 사건처럼 저녁이 되었다 용서하라 저녁이 된 것을!   그리고 오래 머물러 있어라, 밤이여   * 니체「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위의 시는 연극 대사의 한 토막처럼, 연극 도입부처럼 대사를 툭 던져 놓는다. 김영찬의 시는 설명적이지 않다. 또한 긴 시도 지루하지 않다. 연극은 길어도, 장면이 바뀌고, 극적 구도를 갖기 때문이다. 김영찬의 시도 대부분이 길다. 장면전환을 하면서 인물의 성격을 부각시키고, 사건을 전개하고, 사유와 극적반전, 대사를 치려면 결코 이야기가 짧을 수가 없다.   위의 시는 김영찬 시의 구도를 표본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남녀의 이야기는 구상과 추상을 섞은 듯, 이해가 되는 추상화를 그렸다고나 할까? 일상의 이야기를 툭 던지지만, 전혀 일상적이지 않은 연극처럼, 그의 시는 낯선 풍경을 만든다. ‘낯설게하기’를 실현하면서 감각적 새로움이 오감을 자극하며 긴장하게 한다. 연극적 요소 때문이다.   1연의 나른하지만 억눌린 남녀의 대화는, ‘박살난 커피 잔이/ 크고 작은 파편들로 나뉘자’ 구체적인 사건이 생성된다. 불안불안한 풍경들이 연극의 배경처럼 2연에서 펼쳐진다. ‘유리창 밖으로 끈 끊어진 풍선 하나가/ 날아가다가 전선에 감겨 제지당하는 걸’ 두 사람 모두 못 본체 하는 구도는 두 남녀의 관계가 갈등구조를 갖고 있음을 반영한다.   그러나 삼류 멜로 드라마적 요소를 가지고 있지만 유치하거나 저질이 아니다. 그 이유는 3연의 ‘검은 외투를 걸친 듯이 무거운 침묵/ 촛불 흔든 바람의 길이 엇갈리고’ 처럼 직관과 사유, 시적 은유적 표현을 세련되게 구사하기 때문이다.   잘 계산된, 또는 훅 내던지듯, 놓아버린 ‘자유’가 김영찬 시의 특징이다.   이선 프로필   2004년 동서커피문학상 은상수상, 2004년 하나은행 공모 특선 2007년 『시문학』 등단 2007년 서경대학교 대학원 문학석사, 2011년 백인 선정, 2011년 제8회 푸른시학상 수상. 시집: 외 동인지 20여권 논문집: 평론: 심상운 서평, 및 평론 다수 한국현대시인협회 사무국장 좋은시공연문학회 사무차장 한국시문학문인회 이사  
2    이선의 시 읽기/ 김규화- 거목 댓글:  조회:570  추천:0  2018-12-20
엔지오 신문 연재 2       거목   김규화     뿌리는 땅속에 묻고 아름드리 기둥을 세워 하늘로 키 늘리고 그 기둥에 굵은 가지를 서너 개 엇갈리게 박고 조금 잔 줄기를 그 배로 늘려서 그 기둥에 박고 또 조금 잔 줄기를 그 배로 늘려서 그 기둥에 박고 또 조금 잔 줄기를 그 배로 늘려서 째고 또 째서 마지막에는 한산 모시올 같은 잔가지들의 집채 만한 온몸에다가 당나귀 귀 백성들을 나폴나폴 달려붙인 그 나라 임금은 통치 천년의 바람나무 그 나라에서는 날마다 뿌리에서 물 끌어올려 고루고루 가지의 맨 끝에 매달린 백성들에게까지 젖줄 대주느라고 힘차게 경 읽는 소리가 뿌리에서부터 나무기둥을 타고 하늘 공중의 나무 끝에까지 도르래로 오르고 임금은 수고롭고 백성들은 얇고 작은 몸을 자주자주 뒤집어 반짝이면서 임금과 함께 트고 둥그렇게 만들어가는 나무나라 평론: 이선 시 읽기   김규화는 ‘하이퍼시 동인’으로 뉴미디어 시대의 하이퍼시 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는 ‘하이퍼시’ 창단 멤버이다. 은 사물성에 기초하여 쓴 시로, 사유와 직관을 입체적으로 구조화한 시다. 은 칼릴 지브란의 철학시와 같은 우화적 기법과 전설적 구조를 가진 이야기시다.   은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날 없다’는 속담을 생각나게 한다. 나무를 입체적으로 구조화하여 사물의 시각으로 재구성하여 이야기시를 만들었다. 위의 시의 중심어는 1연의 ‘배수’라는 단어다. ‘나무의 큰 기둥과 작은 줄기, 잔 가지와 잎사귀’의 구성요소를 배수로 나타내어 나무를 냉정하게 관찰하고 있다.   1연은 냉정하게 ‘나무’라는 사물을 관찰하여 사실만 정의하였다. 그러나 2연에서는 나무의 삶의 문제, 나무의 본질을 다루고 있다. ‘임금’과 ‘백성’의 역학관계로 나무의 구조를 직관하여 전설같은 이야기 구조를 만들었다.    1연은 나무의 사실적인 부분만 부각시켰다. 냉정한 관찰자 시점이다. 그러나 2연은 나무의 삶을 부각시켰다. 2연은 나무의 일상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실상은 시인의 속내이면서 인간의 삶을 치환은유 구조로 보여주고 있다. 인간군상들을 거시적 안목으로 바라보는 ‘통치 천년 바람나무인 임금’의 마음은 참으로 수고롭다. ‘백성에게 경을 읽어주고, 젖줄을 대주고, 도르래질을 하는‘ 나무의 고단한 삶이 읽힌다. ‘나폴나폴 당나귀 귀’처럼 변덕스러운 인간들과 나무의 삶이 치환은유 구조로 오버랩 된다.
1    검붉은 색이 들어간 세 개의 그림 / 심상운 댓글:  조회:581  추천:0  2018-12-20
엔지오 신문 연재 1호       검붉은 색이 들어간 세 개의 그림                                                      심상운    밤 12시 05분. 흰 가운의 젊은 의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을지병원 응급실에 실려 온 40대의 사내. 눈을 감고 꼬부리고 누워있는 그의 검붉은 얼굴을 때리며 “재희 아빠 재희 아빠 눈 떠 봐요! 눈 좀 떠 봐요!“ 중년 여자가 울고 있다. 그때 건너편 방에서 자지러지는 아이의 울음소리.     그는 허연 비닐봉지에 싸여진 채 냉동고 구석에서 딱딱하고 차갑게 얼어붙은 밥을 꺼내 후끈후끈한 수증기가 솟구치는 찜 통에 넣고 녹이고 있다. 얼굴을 가슴에 묻고 웅크리고 있던 밥 덩이는 수증기 속에서 다시 끈적끈적한 입김을 토해 내고, 차 갑고 어두운 기억들이 응고된 검붉은 뼈가 단단히 박혀 있던 밥의 가슴도 끝내 축축하게 풀어지기 시작한다. 푸른 옷을 입고 가스레인지 앞에 서 있는 그는 나무젓가락으로 밥의 살을 찔러 보며 웃고 있다.     이집트의 미라들은 햇빛 찬란한 잠속에서 물질의 꿈을 즐기고 있는 것일까? 나는 미라의 얼굴이 검붉은 색으로 그려진 둥근 무화과나무 목관木棺의 사진을 본다. 고대古代의 숲 속에서 날아온 새들이 씨이룽 찍찍 씨이룽 찍찍 쪼로롱 쪼로롱 5월의 청계산 숲을 휘젓고 다니는 오전 11시.           하이퍼텍스트 이론은 컴퓨터 용어인 하이퍼와 텍스트를 합한 단어로서 1960년대 컴퓨터 개척자 테오도르 넬슨이 만든 말이다. 미국작가 조지 피 랜도(George P. Landow)의 저서 『Hypertext』(1992)에서 유래된 문학이론이다. 하이퍼링크와 쌍방향성이라는 컴퓨터의 특성을 결합한 용어를 문덕수 시인이 시에 처음 도입하였다. 컴퓨터의 링크 기능으로 블록에서 다른 블록으로 이동하며 건너뛰기한다. 하이퍼텍스트의 병렬구조는 탈중심적으로 텍스트를 링크하며 무한한 상상력을 한 공간에 집합한다.   은 심상운이 하이퍼텍스트 시론에 입각하여 쓴 새로운 디자인의 시다. 심상운 시인은 컴퓨터의 모듈(module)과 리좀 용어를 시론에 도입하여 하이퍼텍스트 시의 정의를 이론으로 정립한 시인이다.   은 3연이 각각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다. 1연은 병원 응급실, 2연은 밥, 3연은 이집트 미라, 세 개의 이야기를 짜깁기 하였다. 시적 거리가 먼 각각 독립된 이야기를 한 공간에 펼쳐 놓았다. 소설의 옴니버스 구조를 도입한 짧은 이야기는 극적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 시에서 다루고 있는 ‘병’과 ‘밥’, ‘죽음’의 문제는 인간과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간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큰 관심 주제다. 따라서 이 세 가지 이야기는 ‘인생’과 ‘인간’이라는 큰 그림 속에 그려진 또 작은 세 개의 그림이다.   심상운의 시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한다. ‘고대미이라 목관 사진’과 ‘고대숲’에서 ‘씨이룽 찍찍 씨이룽 찍찍 쪼로롱 쪼로롱’ 현대의 새들이 ‘5월의 청계산 숲을 휘젓고‘ 울고 있다.   시인은 그림 한 장을 감상하다가 상상력의 줄기를 우주까지 뻗어서 한편의 새로운 그림을 그렸다. 1연, 2연, 3연이 각각 다른 그림이다. 1연의 병원 응급실과 2연의 냉장고 밥과 3연의 미이라 목관은 각각 다른 그림이지만 링크되어 연관성을 갖는다. 과거면서 현재를 조명하고 있다.   심상운은 에서 하이퍼텍스트 시의 한계성으로 지적된 사유와 철학의 부재를 극복하고 있다. 하이퍼시에서 문제로 지적되었던 시의 ‘진정성’을 증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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