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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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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정민교수의 한시 이야기 댓글:  조회:1592  추천:0  2019-01-31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말하지 않고 말하는 방법(1) 사람들은 왜 시를 짓고 시를 읽을까? 그냥 우리가 생활 속에서 하는 말과 시에서 쓰는 표현은 어쩐지 조금 달라 보인다. 시를 읽으면 나도 모르게 머릿속에 어떤 풍경이나 느낌이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우리가 그냥 주고받는 표현 속에는 이런 느낌이 없는데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언어와 문학 작품 속에서 쓰는 언어는 어떻게 다를까? 다음 예화를 통해 알아보자.   옛날 중국의 유명한 철학자 노자의 스승은 상용이란 사람이었다. 스승은 늙고 병들어 이제 곧 숨을 거두려고 하였다. 노자는 마지막으로 스승에게 가르침을 청하였다. “선생님! 돌아가시기 전에 제게 가르쳐 주실 말씀이 없으신지요?” 스승은 이렇게 말했다. “고향을 지나갈 때에는 수레에서 내려 걸어서 가거라. 알겠느냐?” 노자가 대답했다. “네! 선생님! 어디에서 살더라도 고향을 잊지 말라는 말씀이시군요.” 수레에서 내려서 걸어간다는 것은 자신을 낮추는 데서 나온 예의 바른 행동이다. 그래서 노자는 스승의 엉뚱해 보이는 말을 듣고 이렇게 알아들었던 것이다. 스승이 다시 말했다. “높은 나무 밑을 지날 때는 종종걸음으로 걸어가거라. 알겠느냐?” 노자가 바로 대답했다. “네! 선생님. 어른을 공경하라는 말씀이시지요?” 높은 나무는 그 숲에서 가장 키가 크고 나이가 많은 나무다. 종종걸음은 걸음의 폭을 짧게 해서 어른이나 임금님 앞을 지날 적에 걷는 걸음걸이이다. 높은 나무 밑을 지나갈 때 종종걸음으로 가라는 스승의 말을 듣고 노자는 윗사람을 공경하라는 말씀으로 금세 바꾸어서 알아들었다. 이번에는 스승이 입을 크게 벌렸다. “내 입속을 보거라. 내 혀가 있느냐?” “네. 있습니다. 선생님!” “그러면 이가 있느냐?” 상용은 나이가 너무 많았기 때문에 이빨이 다 빠지고 없었다. “하나도 없습니다. 선생님!” 스승은 곧바로 제자에게 말했다. “알겠느냐?” 노자는 바로 이렇게 대답했다. “네!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뜻을 알겠습니다. 이빨처럼 딱딱하고 강한 것은 먼저 없어지고, 혀처럼 약하고 부드러운 것은 오래 남는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러자 스승은 돌아누웠다. “천하의 일을 다 말하였다. 더 이상 할 말이 없구나.” 이빨은 딱딱하고 굳센 것인데 먼저 없어져 버렸다. 혀는 부드럽고 약한 것인데 남아 있었다. 상용이 혀와 이빨을 차례로 보여 준 것은 부드럽게 남을 감싸고, 약한 듯이 자신을 낮추는 사람은 오랫동안 복을 받고 잘 살 수가 있고, 제 힘만 믿고 멋대로 행동하는 사람은 얼마 못 가서 망하고 만다는 뜻이었다.   상용이 말한 것을 정리해 보면 고향을 잊지 말고, 어른을 공경하며, 부드러움으로 강한 것을 이기라는 가르침이었다. 이렇게 직접 말하면 될 것을 가지고 상용은 일부러 빙빙 돌려서 비유를 통해 설명했다. 왜 상용은 직접 말하지 않고 일부러 어렵게 돌려서 이야기했을까? 사실 상용이 이 말을 직접 했다면 그것은 아무런 느낌도 주지 못하는 싱거운 말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대신에 상용은 직접 입을 벌려서 혀를 보여 주고 또 이빨을 보여 준 후, “알겠느냐?” 하고 물었다. 이렇게 해서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는 평범한 교훈을 늘 잊지 않고 기억할 수 있도록 인상 깊게 심어 줄 수가 있었다. 시도 마찬가지다. 시라는 것은 상용의 말처럼 직접 말하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을 돌려서 말하고 감춰서 말하는 것이다. 그렇게 돌려서 말하고 감춰서 말하는 가운데 저도 모르게 느낌이 일어나고 깨달음이 생겨난다. 이렇게 해서 생겨난 느낌과 깨달음은 지워지지 않고 오래오래 마음 속에 남는다.   [참고문헌] 정민,『정민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이야기』(2003, 보림), pp. 15-18. [출처]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1> 말하지 않고 말하는 방법(1)|작성자 옥토끼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말하지 않고 말하는 방법(2)   한시에서는 도대체 어떤 식으로 말하고 있을까? 이제 직접 한시를 한 수 감상해 보기로 하자.   흰둥개가 앞서 가고 누렁이가 따라가는                  白犬前行黃犬隨(백견전행황견수) 들밭 풀 가에는 무덤들이 늘어섰네.                       野田草際塚纍纍(야전초제총누루) 제사 마친 할아버지는 밭두둑 길에서                     老翁祭罷田間道(노옹제파전간도) 저물녘에 손주의 부축 받고 취해서 돌아온다.          日暮醉歸扶小兒(일모취귀부소아)   - ‘제총요(祭塚謠)무덤에서 제사지내는 노래’ 전문   조선 중기의 이달이라는 시인의 작품이다. 이 시의 제목은 이다. 시 속의 광경을 먼저 살펴보자. 먼저 첫 번째 구절에는 흰 강아지와 누렁 강아지 두 마리가 나온다. 흰 강아지가 앞장서서 뛰어가고 누렁 강아지가 뒤질세라 멍멍 짖으며 그 뒤를 따라간다. 밭들이 옹기종기 펼쳐진 풀밭 가에는 무덤들이 굉장히 많다. 거기에 어떤 할아버지가 손자와 함께 개를 앞세우고 집으로 돌아오는 모습이다. 세 번째 구절에는 ‘제사를 마쳤다’는 표현이 나온다. 이것으로 보아 할아버지는 그 풀밭 가에는 많은 무덤들 가운데 어느 한 무덤에 제사를 지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던 모양이다. 시간은 땅거미가 밀려드는 저물녘이다. 할아버지는 술에 취하셨다. 술 취한 할아버지가 자꾸 비틀거리시니까 옆에 있던 손자가 걱정이 되는지 할아버지를 부축하고 있다. 자! 이제 조용히 눈을 감고, 이 시 속의 풍경을 그림으로 떠올려 보자. 강아지 두 마리와 밭두둑이 보이고 무덤들도 있다. 그리고 할아버지와 손자. 지금 여러분의 머릿속에는 어떤 생각이 지나가는가? 우리는 지금도 추석 때나 한식날이 되면 조상의 산소에 성묘를 간다. 지금 할아버지와 손자는 조상의 산소에 성묘를 갔던 모양이다. 그런데 이렇게만 보기에는 위 시의 내용이 왠지 너무 심심하다. 할아버지가 손자와 강아지 두 마리를 데리고 성묘를 갔다가 저녁 무렵이 되어 돌아온다는 것이 시에서 말하고 있는 전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쨌다는 걸까? 과연 위의 시에서 시인이 말하려고 한 것은 이것이 전부일까? 주의 깊게 살펴보면 몇 가지 이상한 부분을 발견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무얼까? 우선 왜 아버지는 없고 할아버지와 손자만 성묘를 갔을까 하는 점이 궁금하기 짝이 없다. 왜 산 위도 아니고 밭두둑 가에 있는 풀밭에 무덤이 많다고 했을까? 보통 풀밭에는 무덤을 쓰지 않는데 말이다. 또 할아버지는 왜 술에 취했을까? 저물녘이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왜 할아버지는 하루 종일 그렇게 술을 마시면서 무덤 옆을 떠나지 못했던 걸까? 이런 의문을 품고 이 시를 새로 읽어 보면, 앞서 와는 다른 느낌이 일어난다. 이 시는 그냥 단순히 조상의 성묘를 갔다 온 장면을 노래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할아버지와 손자가 제사를 지낸 사람을 누구였을까? 증조할아버지? 아니면 고조할아버지? 그도 아니라면 할머니였을까? 그렇지가 않다. 두 사람이 제사를 지낸 주인공을 바로 시 속에 나오는 할아버지의 아들이고, 손자의 아버지였다. 그렇다면 밭두둑 옆 풀밭에는 왜 그렇게 무덤이 많았던 걸까? 아마도 전쟁이나 전염병 같은 것 때문에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이 죽었던 모양이다. 너무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죽어서 사람들은 죽은 사람들을 양지바른 산 위에다 묻을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소년의 아버지도 전쟁 같은 천재지변을 만나 돌아가신 것이 틀림없다. 할아버지는 손자를 데리고 아들의 산소에 성묘하러 왔다. 무덤에 돋은 풀을 뽑고, 술을 부어 한 잔 따라 주고 나니까 죽은 아들이 너무 보고 싶어서 차마 그대로 돌아오지 못하고 하루 종일 무덤 옆에 앉아서 속이 상해 술을 마셨다. 강아지를 두 마리나 데리고 간 것으로 보아, 무덤이 동네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던 사정도 알 수 있다. 이 시를 지는 이달은 조선 시대 임진왜란을 직접 체험했던 시인이었다. 이런 정보를 가지고 시를 다시 읽어 보면, 좀 더 깊이 있게 이 시를 이해할 수 있다. 할아버지의 아들은 임진왜란 때에 쳐들어온 왜적에게 죽음을 당했고, 이 때 온 동네의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억울한 희생을 당했다. 한식날 할아버지는 아들이 남긴 하나뿐인 혈육인 손자를 데리고 죽은 아들의 무덤을 찾아왔다. 하루 종일 슬픔에 잠겨 있던 할아버지는 제사를 지내려고 가지고 간 술을 혼자 다 마셔서 취하고 말았던 것이다. 손자는 나이가 어려서 할아버지의 슬픔을 잘 알지 못한다.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기억도 별로 없다. 오늘따라 할아버지가 왜 저러실까 싶어서 걱정스런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할아버지를 올려다볼 뿐이다. 이렇게 한 편의 시를 곰곰이 따져서 읽어 보면, 처음 별생각 없이 시를 읽었을 때와는 완전히 달라진다. 시인은 시 속에서 벌써 다 말하고 있지만, 겉으로는 이런 사실을 하나도 표현하지 않았다. 시인이 이 시 속에서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얼까? 임진왜란이라는 참혹한 전쟁이 가져다준 뜻하지 않은 죽음과 그 죽음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긴 깊은 상처였다. 그러나 시인 말하려고 했던 이런 의미는 꼼꼼히 따져 보아야 이해할 수 있다. 만약 위의 시를 읽고서 그냥 한식날 성묘 간 일만 생각했다면 이 시를 제대로 읽은 것이 아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쓰는 말은 금세 이해할 수 있고 또 다른 생각이 필요 없다. 그러나 시에서 쓰는 말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한 번 더 생각해 보아여 한다. 대충 겉만 보아서는 쉽게 이해할 수가 없다. 이것이 시를 읽는 재미이다. 좋은 시 속에는 감춰진 그림이 많다. 그래서 우리에게 생각하는 힘을 살찌워 준다. 보통 때 같으면 그냥 지나치던 사물을 찬찬히 살피게 해 준다.   [참고문헌] 정민,『정민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이야기』(2003, 보림), pp. 18-24. [출처]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2> 말하지 않고 말하는 방법(2)|작성자 옥토끼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옛날부터 그림과 시는 아주 가까운 사이였다. 시는 모양이 없는 그림이고, 그림은 소리가 없는 시라는 말도 있었다. 이번에는 그림 이야기를 통해 시를 이해하는 공부를 해보기로 하자. 시인은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직접 하지 않는다. 사물을 데려와서 사물이 대신 말하게 한다. 그러니까 한 편의 시를 읽는 것은 시인이 말하고 싶었지만 말하지 않고 시 속에 숨겨둔 말을 찾아내는 일이다. 이것은 숨은그림찾기 또는 보물찾기놀이와도 비슷하다. 이 점은 화가도 마찬가지다. 화가는 풍경을 그리거나 정물화를 그린다. 이때 화가는 화면 속에 자신의 느낌을 직접 표현할 수가 없다. 그림은 사진과는 다르다. 화가는 색채나 풍경의 표정을 통해 자기 생각을 담는다. 이제부터 살펴볼 몇 가지 이야기는 그림이 시와 얼마나 가까운 사이인지 잘 보여준다.   옛날 중국의 송나라에 휘종 황제란 분이 있었다. 그는 그림을 너무 사랑했다. 그림을 사랑했을 뿐 아니라 그 자신이 훌륭한 화가였다. 휘종 황제는 자주 궁중의 화가들을 모아 놓고 그림 대회를 열었다. 그때마다 황제는 직접 그림의 제목을 정했다. 그 제목은 보통 유명한 시의 한 구절에서 따온 것이었다. 한번은 이런 제목이 걸렸다.   꽃을 밝고 돌아가니 말발굽에서 향기가 난다.   말을 타고 꽃밭을 지나가니까 말발굽에서 꽃향기가 난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황제는 화가들에게 말발굽에 묻은 꽃향기를 그림으로 그려 보라고 한 것이다. 꽃향기는 코로 맡아서 아는 것이지 눈으로는 볼 수가 없다. 보이지도 않는 향기를 어떻게 그릴 수 있을까? 화가들은 모두 고민에 빠졌다. 꽃이나 말을 그리라고 한다면 어렵지 않겠는데, 말발굽에 묻은 꽃향기만은 도저히 그려 볼 수가 없었다. 모두들 그림에 손을 못 대고 쩔쩔매고 있었다. 그때였다. 한 젊은 화가가 그림을 제출하였다. 사람들의 눈이 일제히 그 사람의 그림 위로 쏠렸다. 말 한 마리가 달려가는데 그 꽁무니를 나비 떼가 뒤쫓아 가는 그림이었다. 말발굽에 묻은 꽃향기를 나비 떼가 대신 말해 주고 있었다. 젊은 화가는 말을 따라가는 나비 떼로 꽃향기를 표현했다. 이런 것을 한시에서는 ‘입상진의(立象盡意)’라고 한다. 이 말은 ‘형상을 세워서 나타내려는 뜻을 전달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나비 떼라는 형상으로 말밥굽에 묻은 향기를 충분히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형상을 시에서는 이미지(image)라는 말로 표현한다. 시인은 결코 직접 말하지 않는다. 이미지를 통해서 말한다. 그러니까 한 편의 시를 읽는 것은 바로 이미지 속에 담긴 의미를 찾는 일과 같다. 다시 휘종 황제의 그림 대회 이야기를 하나 더 해보자. 이번에는 이런 제목이 주어졌다.   어지러운 산이 옛 절을 감추었다.   절을 그려야 하지만 감춰져 있어야 한다고 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화가들은 고민에 빠졌다. 어떻게 그려야 할까? 한참을 끙끙대다 화가들은 그림을 그렸다. 그림은 대부분 산을 그려 놓고, 그 숲 속 나무 사이로 절 집의 지붕이 희미하게 비치거나, 숲 위로 절의 탑이 삐죽 솟아 있는 풍경이었다. 황제는 불만스런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그때 한 화가가 그림을 제출했다. 그런데 그가 제출한 그림은 다른 화가의 것과 달랐다. 우선 화면 어디에도 절을 그리지 않았다. 대신 깊은 산속 작은 오솔길에 웬 스님 한 분이 물동이를 이고서 올라가는 모습을 그려 놓았을 뿐이었다. 황제는 그제야 흡족한 표정이 되어 이렇게 말했다. “이 화가에게 1등 상을 주겠다.”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황제가 설명했다. “자! 이 그림을 보아라. 내가 그리라고 한 것은 산속에 감춰져 보이지 않는 절이었다. 보이지 않는 것을 그리라고 했는데, 다른 화가들은 모두 눈에 보이는 절의 지붕이나 탑을 그렸다. 그런데 이 사람은 절을 그리는 대신 물을 길으러 나온 스님을 그렸구나. 근처에 절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산이 너무 깊어서 절이 보이지 않는 게로구나. 그가 비록 절을 그리지 않았지만, 물을 길으러 나온 스님만 보고도 가까운 곳에 절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않겠느냐? 이것이 내가 이 그림에 1등을 주는 까닭이다.” 사람들은 그제야 황제의 깊은 뜻을 알아차리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 화가는 절을 그리지 않으면서 절을 그리는 방법을 알았다. 화가가 그리지 않으면서 절을 그렸다. 시인은 말하지 않고서 자기가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한다. 따지고 보면 하나도 다를 것이 없다.   이제 위의 그림과 비슷한 한시를 한 수 감상해 보자.   약초 캐다 어느새 길을 잃었지 천 봉우리 가을 잎 덮인 속에서. 산 스님이 물을 길어 돌아가더니 숲 끝에서 차 달이는 연기가 일어난다.   율곡 이이 선생의 이란 작품이다. 단풍이 물들고 나더니 어느새 낙엽이 수북이 쌓였다. 어떤 사람이 망태기를 들고 낙엽 쌓인 산속에서 약초를 캔다. 여름에는 잘 보이지 않던 약초가 낙엽을 들추자 여기저기서 제 모습을 드러낸다. 보통 때는 볼 수 없던 귀한 약초들도 많다. 정신없이 약초를 캐다 보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새 깊은 산속으로 들어와 버렸다. 정신을 차려 보니 길에서 한참이나 들어온 가을 산속이다. 낙엽은 어느새 무릎까지 쌓여 오고, 조금 전 자기가 올라온 길이 어딘지조차 알 수가 없다. 약초꾼은 그만 털컹 겁이 난다. 어느새 해도 뉘엿뉘엿해졌다. 어서 빨리 집으로 돌아가야겠는데 어디가 어딘지 도무지 방향을 알 수가 없다. 덮어놓고 내려가다가 낭떠러지가 나오면 어쩌나? 길을 잘못 들어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가면 어쩌지? 이러다가 밤이 되면 산짐승들이 내려올 텐데 어찌할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때였다. 저 건너편 숲 사이로 희끗 사람의 그림자가 보인다. 하도 반가워 자세히 살펴보니 웬 스님 한 분이 물동이에 물을 길어 가고 있다. 스님의 모습은 금세 숲 사이로 사라지고 말았다. 저리로 가면 스님이 계신 암자가 나올까? 혹시 나오지 않으면 어떡하지? 짧은 시간에도 생각은 어지럽기만 하다. 바로 그때다. 스님이 사라진 숲 저편 너머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좀 전에 물을 길어 간 스님이 낙엽을 태워 찻물을 끓이고 있는 모양이다. 약초꾼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연기가 구세주라도 만난 듯이 반가웠겠다. 마치 스님이 약초꾼의 다급한 마음을 알아서 신호탄을 쏘아 올린 듯한 느낌까지 들었을 것 같다. 갑자기 목이 마르다. 어서 가서 스님에게 차 한 잔을 얻어 마셔야지. 하루 종일 캔 약초로 망태기는 이미 묵직하다. 하지만 발걸음이 가벼워져서 무거운 줄도 모른다. 무릎까지 푹푹 파묻히는 숲길도 이제는 조금도 힘들지 않다. 이 시를 그림으로 그리면 어떻게 될까? 낙엽 쌓인 산속에 망태기를 든 약초꾼 한 사람이 먼 곳을 보며 서 있겠지. 스님의 모습은 그리면 안 된다. 다만 숲 저 편으로 실오리 같은 연기가 모락모락 하늘 위로 피어오르면 된다. 앞서 본 휘종 황제의 그림 이야기와 비슷하지 않은가? 정말 소중한 것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뛰어난 화가는 그리지 않고서도 다 그린다. 훌륭한 시인은 말하지 않으면서 다 말한다. 좋은 독자는 화가가 감춰 둔 그림과 시인이 숨겨 둔 보물을 가르쳐 주지 않아도 잘 찾아낸다. 그러자면 많은 연습과 훈련이 필요하다.        [참고문헌] 정민,『정민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이야기』(2003, 보림), pp. 25-32. [출처]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3>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작성자 옥토끼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진짜 시와 가짜 시     시에도 진짜와 가짜가 있을까? 물론 있다. 진짜 시와 가짜 시는 어떻게 구분할까?   겉보기에는 멋있는 것 같은데 읽고 나도 아무 느낌이 남지 않는 시는 가짜 시다.  특별히 잘 쓴 것 같지 않아도 읽고 나면 느낌이 남는 시가 진짜 시다.  시뿐 아니다.  그림도 마찬가지다.   조선 시대에 천하에 명화로 알려진 유명한 그림이 있었다.  소나무 아래서 선비 한 사람이 뒷짐을 지고 위를 올려다보는 그림이었다.소나무도 잘 그렸지만 뒷짐 진 선비의 표정이 너무너무 생생했다. 모두들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를 그린 유명한 화가 안견이 이 그림에 대한 소문을 들었다. 그래서 일부러 이 그림을 구경하러 갔다. 그림 주인은 훌륭한 화가가 자기 그림을 보겠다고 직접 찾아온 것이 자랑스러웠다. 그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그림을 펼쳤다. 이제 과연 어떤 칭찬이 쏟아질까? 주인은 설레는 표정으로 침을 꼴깍 삼켰다. 한참 만에 안견은 실망스럽다는 듯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잘 그리긴 했는데, 조금 아깝구려.”   주인은 깜짝 놀랐다. 무슨 말이냐고 물었다.   “한번 생각해 보시오. 사람이 높은 곳을 올려다보자면 목 뒤에 반드시 주름이 잡히게 마련이오. 그런데 고개를 젖혀 바라보는 선비의 뒷덜미에 주름이 하나도 없질 않소?”   안견은 다시 보기도 싫다는 듯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와 버렸다. 이 일이 있고 나서, 이 그림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버린 그림이 되고 말았다. 소나무를 그리는 솜씨도 뛰어났고, 사람의 표정도 생생했다. 다만 화가는 소나무를 올려다보는 선비의 목 뒤의 작은 주름을 놓치고 말았다. 그 결과 소나무의 푸르른 기상을 우러르는 선비의 마음까지 달아나 버리고 말았다.   이런 그림도 있었다. 할아버지가 손자를 안고 밥을 떠먹이는 그림이었다. 천하의 명화로 이름이 높았다. 소문을 듣고 세종대왕께서 이 그림을 보았다. 왕은 한참 바라보더니 무엇이 못마땅한지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긴 참 잘 그렸다. 그렇지만, 어른이 어린아이에게 밥을 먹일 때에는 저도 모르게 자기의 입이 벌어지는 법이다. 그런데 이 그림 속의 노인은 입을 다물고 있구나. 아! 아깝다.”    정말 그렇다. 엄마가 어린아이에게 밥을 먹일 때를 생각해 보자. 엄마는 숟가락에 밥을 떠 가지고 그 위에 반찬을 얹는다.아이의 입 가까이에 가져간다. “아! 아.” 하며 자기의 입을 벌린다. 아이는 엄마의 벌린 입을 보며 자기의 입을 벌려 음식을 받아먹는다. 그런데 그림 속의 할아버지는 입을 꽉 다문 채로 마치 화가 난 사람처럼 손자에게 밥을 먹이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보면 화가는 다 잘 그려 놓고 조그만 실수를 한 셈이다. 그렇지만 이 조그만 실수가 가장 큰 실수가 되고 말았다.화가는 자기도 모르게 벌어진 할아버지의 입을 그리지 않았다. 이것을 놓쳤기 때문에, 손자에게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이고 싶은 할아버지의 마음이 그림에서 없어져 버렸다.   화가는 그림 속에 자기의 진실한 마음을 담아야 한다. 마음이 담기지 않으면 아무리 사진처럼 똑같이 그린 그림도 죽은 그림이 되고 만다. 그런 그림은 가짜다.   시인도 마찬가지다. 시인은 눈앞에 보이는 사물을 노래한다. 그런데 그 속에 시인의 마음이 담기지 않으면 아무리 표현이 아름다워도 읽는 사람을 감동시킬 수 없다.   살아 있는 시는 어떤 시일까? 한시를 한 수 살펴보자. 고려 때 시인 고조기가 지은 라는 작품이다.         어젯밤 송당에 비가 왔는지     베갯머리 서편에선 시냇물 소리.     새벽녘 뜨락의 나무를 보니     자던 새는 둥지를 아직 떠나지 않았네.       내용만 보면 단순하기 짝이 없다. 간밤 잠결에 시냇물 소리를 들은 것도 같다. 간밤에 비라도 온 걸까? 새벽에 방문을 열고 내다보았다. 마당 나무 위 새둥지에 새가 아직도 그대로 있다. 그래서 어쨌다는 것인가?   이 시의 내용은 별것이 아니다. 이 시에서 중요한 것은 시인의 마음이다. 시인은 어째서 나무 위에서 자던 새가 여태까지 둥지를 떠나지 않은 것을 말했을까? 산속 집의 아침은 먼동이 트기가 무섭게 노래하는 산새들의 합창으로 시작된다. 보통 때 같으면 새소리에 늦잠을 자고 싶어도 잘 수가 없었다. 오늘은 어쩐 일인지 날이 훤히 밝았는데도 밖이 거짓말처럼 조용하다. 시인은 처음에 “어? 오늘은 웬일로 요놈들이 이렇게 조용하지?”하고 생각했다. 그는 궁금해서 방문을 활짝 연다. 처음에는 새들이 울지 않기에 아직도 날이 새지 않은 줄 알았다. 문을 열고 보니, 새들은 포근한 제 보금자리를 나올 생각이 없다는 듯이 둥지 속에다 제 몸을 파묻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시인은 모든 사실을 다 알아차렸다. 그래 어젯밤에 꿈결에 시냇물 소리가 들려왔었지. 간밤에 산속에 비가 많이 왔었구나. 그 비에 시냇물이 불어났던 게로군. 숲이 온통 젖어 먹이를 찾을 수가 없으니까 저 녀석들이 둥지에 틀어박혀 있는 게로구나. 시인은 배를 깔고 두 손으로 턱을 괴고 둥지 속의 새를 쳐다본다. 둥지 속의 새도 말똥말똥 주인을 바라본다. 오늘 아침은 이렇게 말없이 놀자고 한다.   가만히 이 시 속의 정경을 그림으로 옮겨 보면 참 재미가 있다. 숲 속에 작은 오두막집이 있다. 오두막집의 방문을 열려 있다. 주인은 턱을 괴고 창밖을 바라본다. 숲 속 둥지에선 새가 주인을 마주 본다. 마당은 젖었다. 나무에선 아직도 물방울이 똑똑 떨어지는 것 같다. 이 가운데 주인과 둥지 속의 새 사이에 오고 가는 말 없는 대화가 귀에 쟁글쟁글 들리는 것만 같다. 자연을 아끼고 생명 있는 것을 사랑하는 시인의 따뜻한 마음씨가 그대로 전해져 온다.   아무리 기교가 뛰어나도 입을 꽉 다문 할아버지의 그림은 가짜 그림일 뿐이다. 비록 덤덤하지만 그 속에 시인의 투명한 정신이 담겨 있을 때 진짜 시가 된다. 겉꾸밈만으로는 안 된다. 시 속에 참된 마음이 깃들어 있어야 한다.          [참고문헌] 정민,『정민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이야기』(2003, 보림), pp. 33-38. [출처]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4> 진짜 시와 가짜 시|작성자 옥토끼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다 보여 주지 않는다     좋은 시는 직접 말하는 대신 읽는 사람이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 하나하나 모두 설명하거나 직접 다 말해 버린다면 그것은 시라고 할 수가 없다. 한시 한 편을 살펴보도록 하자.   혼자 앉아 찾아오는 손님도 없이 (독좌무래객 獨坐無來客) 빈 뜰엔 비 기운만 어둑하구나. (공정우기혼 空庭雨氣昏) 물고기가 흔드는지 연잎이 움직이고 (어요하엽동 魚搖荷葉動) 까치가 밟았는가 나뭇가지가 흔들린다. (작답수초번 鵲踏樹梢飜) 거문고가 젖었어도 줄에서는 소리가 나고 (금윤현유향 琴潤絃猶響) 화로는 싸늘한데 불씨는 아직 남아 있다. (로한화상존 爐寒火尙存) 진흙길이 출입을 가로막으니 (니도방출입 泥途妨出入) 하루 종일 문을 닫아걸고 있는다. (종일가관문 終日可關門)   조선 초기의 문인 서거정의 라는 작품이다. 시를 읽고 나면 아무도 찾지 않는 빈집에 혼자 우두커니 앉아 있는 시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오는 손님이 없다는 말은 아무도 나를 찾아올 리가 없다는 뜻이다. 누군가 좀 찾아와서 이 심심하고 적막한 위로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도 담겨 있다. 빈 뜰이라고 한 것은 시인의 마음이 텅 빈 것처럼 허전하다는 뜻도 된다. 비 기운 때문에 어둑한 날씨는 우중충한 시인의 기분과 꼭 같다. 시인은 지금 마당이 보이는 마루나 사랑방에서 밖을 내다보고 있다. 연못의 연잎이 툭 하고 흔들린다. 물고기가 연잎 줄기를 툭 건드리고 지나간 모양이다. 무심코 고개를 드니 나뭇가지가 흔들린다. 가지 위에 앉아 있던 까치가 훌쩍 날아간 것이다. 시인은 마당에서 일어나는 작은 변화에도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는 지금 너무도 심심해서 무언가 변화가 일어나 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다섯 번째, 여섯 번째 구절을 보면 갑자기 젖은 거문고와 식은 화로 이야기가 나온다. 거문고 줄을 삼실을 꼬아서 만든다. 비가 오거나 흐려서 공기 중의 습도가 높아지면 젖은 기운을 머금어 소리가 잘 나지 않는다. 시인은 날씨가 흐리니까 거문고에서 소리가 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혹시나 싶어 뚱겨보니 뜻밖에 맑은 소리가 난다. 조금 추운 듯싶어 화로 가까이에 손을 가져갔다. 온기가 없이 차갑게 식어 있었다. 불씨가 다 꺼졌나 보다 싶어 뒤적여 보니 식은 재 속에 따뜻한 불씨가 아직 남아 있다. 시인은 왜 갑자기 젖은 거문고와 식은 화로 이야기를 꺼냈을까? 젖어서 소리가 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소리를 간직한 거문고, 식어서 불씨가 없을 줄 알았지만 불씨를 지닌 화로는 무엇을 말하기 위해 끌어들인 것일까? 두 사물의 공통점은 겉으로는 쓸모가 없어 보이지만, 속으로는 쓸모를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다.이것은 바로 시인 자신이 지금 처한 상황과 꼭 같다. 그는 지금 아마도 현실에서 어떤 힘든 일을 경험하고 물러나 있는 처지였던 모양이다. 세상이 자신을 버려 지금은 아무도 찾지 않지만, 나는 아직 가슴속에 세상을 위해 일할 열정과 포부를 지니고 있노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끝에서 그는 나가고 싶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기 때문에 문을 닫아걸고 기다리고 있겠다고 말했다. ‘진흙길’이 출입을 방해한다는 말을 통해 그것을 알 수 있다. 진흙탕 길에 나가 봐야 옷만 더럽히게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아직도 진흙탕 길처럼 어수선하고 어지럽다. 그래서 마음속의 열정을 묻어 둔 채 식은 화로처럼 그렇게 문을 닫아걸고서 때를 기다리겠다고 했다. 시인이 정말 말하고 싶었던 것은 바로 이 말이다. 그렇지만 그는 하고 싶은 말은 모두 아껴 두고, 연잎을 흔드는 물고기와 나뭇가지를 밟고 날아간 까치, 그리고 젖은 거문고와 식은 화로 이야기를 슬쩍 던져 놓고, 그것들을 시켜 자기가 할 말을 대신하게 한다. 시인은 시 속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다 말하지 않는다. 말하지 않았는데도 그가 하고 싶었던 말을 독자는 다 알아들을 수가 있다.   [참고문헌] 정민,『정민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이야기』(2003, 보림), pp. 45-48.  [출처]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5> 다 보여 주지 않는다|작성자 옥토끼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연꽃에서 찾는 여러 가지 의미   하나의 사물도 보는 방향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사물 속에는 다양한 의미가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연꽃과 관련된 세 편의 한시에서 같은 사물 속에 담긴 다양한 의미를 살펴보자. 곽예는 고려 때의 유명한 문장가였다. 겸손하여 높은 지위에 올라서도 벼슬하지 않은 사람과 같이 검소하게 살았다. 그는 바쁜 일과 중에도 조용히 생각에 잠길 때가 많았다. 그는 비가 오면 혼자 우산을 펴 들고 맨발로 연못으로 가서 연꽃을 감상하곤 했다.   어느 날 연꽃을 보면서 이란 시를 지었다.          세 번이나 연꽃 보러 삼지를 찾아오니 (상련삼도도삼지 賞蓮三度到三池)    푸른 잎 붉은 꽃은 그때와 변함없다. (취개홍장사구시 翠盖紅粧似舊時)    다만 꽃을 바라보는 옥당의 손님만이 (유유간화옥당객 唯有看花玉堂客)    마음은 변함없어도 머리털이 희어졌네. (풍정미감빈여사 風情未減鬢如絲)        연못 이름을 삼지(三池)라고 한 것으로 보아, 아마도 그곳은 작은 연못이 세 개로 나뉘어 있었던 모양이다. 세 번째로 찾아왔다고 했지만 삼지란 말과 호응을 이루기 위해서였고, 그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이 이곳을 찾아왔었다. 커다란 푸른 잎과 아름다운 연꽃을 보기 위해서다. 연꽃은 옛날 내가 이곳을 처음 왔을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곱고 어여쁜데 그것을 구경하고 있는 나는 어느새 귀밑머리털이 희게 변해 버렸다.아마도 그는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는 자연과 더불어 살지 못하고 매일 매일 바쁘게 지내다가 훌쩍 나이만 먹어 버린 것이 슬펐던 것 같다. 곽예는 연못가에 맨발로 우산을 쓰고 앉아서 연못 가득 피어난 아름다운 연꽃을 보며 이런 다짐을 했을 것이다. 높은 벼슬아치가 되면 교만해져서 거들먹거리기가 일쑤인데, 곽예는 오히려 맨발로 연꽃을 구경하면서 겸손하고 깨끗하게 살려고 애썼다.   옛날 중국 송나라 때 유학자 주돈이는 란 다음과 같은 유명한 문장을 지은 일이 있다. 연꽃은 진흙탕에서 나왔지만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다. 맑은 물결에 씻기어도 요염하지가 않다. 속은 비었고 겉은 곧다. 넝쿨도 치지 않고 가지도 치지 않는다. 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다. 꼿꼿하고 깨끗하게 심어져 있다. 멀리서 바라볼 수는 있어도 업신여겨 함부로 할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홀로 연꽃을 사랑한다.이후로 연꽃은 군자를 상징하는 꽃이 되었다. 글 가운데 “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다.”는 말이 있다. 연꽃은 연못 가운데서 피니까 가까이 가서 코를 대고 그 향기를 맡을 수가 없다. 그렇지만 이따금 바람결에 실려 오는 그 향기는 더욱 맑게 느껴진다.       고려 때 시인 최해도 이라는 시를 남겼다.           후추를 팔백 가마나 쌓아 두다니 (저초팔백곡 貯椒八百斛)    천년 두고 그 어리석음을 비웃는다. (천재소기우 千載笑其愚)    어찌하여 푸른 옥으로 됫박을 만들어 (여하벽옥두 如何碧玉斗)    하루 종일 맑은 구슬을 담고 또 담는가. (경일량명주 竟日量明珠)       당나라 때 원재란 사람은 탐욕스런 관리였다. 그는 지위를 이용하여 뇌물을 받아 엄청난 재산을 모았다.그가 죽은 뒤 창고를 뒤져보니, 후추가 무려 팔백 가마나 나왔다. 종유 기름도 오백 냥이나 나왔다. 평생을 써도 절대로 쓸 수 없는 양이었다. 그래서 나라에서 이를 몰수하였다. 첫 번째, 두 번째 구절에서는 원재의 이 탐욕스런 마음을 이야기했다. 무슨 욕심이 그렇게 많으냐고 나무란 것이다. 그런데 이 시는 빗속의 연꽃을 노래한 것이다. 도무지 무슨 말인지 잘 연결이 되지 않는다. 이는 바로 세 번째, 네 번째 구절을 이야기하기 위해서이다. 세 번째 구절에서 말한 ‘푸른 옥으로 만든 됫박(바가지)’은 바로 넓고 푸른 연잎을 말한다. 비 오는 날 연잎마다 비 구슬을 담았다가 연못에 붓고, 또 담았다가 연못에 붓고 하는 됫박질이 한창이다. 이제 연못은 연잎이 하루 종일 모아서 쏟아 놓은 맑은 구슬로 가득 차 버렸다.   비록 원재는 후추를 그렇게 욕심 사납게 쌓아 두었다가 후세 사람들의 비웃음을 받았다. 그렇지만, 하늘이 준 맑은 구슬을 연못 속에 가득 쌓아 두고픈 시인의 욕심은 아무리 지나쳐도 나쁠 것이 없을 것 같다.그만큼 마음이 맑아질 것 같기 때문이다.   원나라에 머물고 있던 충선왕이 임금이 되기 위해 고려로 돌아올 때의 일이다. 충선왕이 너무도 사랑한 여인이 있었지만 그녀를 함께 데리고 올 수가 없었다. 왕은 그녀에게 이별의 정표로 연꽃 한 송이를 꺾어 주고 차마 떨어지지 않은 걸음을 돌렸다. 왕은 도저히 그녀를 잊을 수가 없어 한참을 지낸 후 신하인 이제현을 시켜서 그녀를 찾아보게 하였다. 그녀는 왕과 헤어진 후 상심하여 며칠 째 아무 것도 못 먹고 누워 말도 제대로 못하는 지경이었다. 그녀는 겨우 일어나 울면서 이란 시 한 수를 써서 왕에게 전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떠나며 보내 주신 연꽃 한 송이 (증송연화편 贈送蓮花片)     처음엔 너무도 붉었는데, (초래적적홍 初來的的紅)     줄기를 떠난 지 며칠 못 되어 (사지금기일 辭枝今幾日)     초췌함이 제 모습과 똑같습니다. (초췌여인동 憔悴與人同)        이제현은 이 시를 받아 가지고 돌아왔으나 왕에게 보여주지 않고 오히려 이렇게 거짓말을 했다. “전하! 제가 그 여인을 찾아가 보니, 술집에서 젊은 사람들과 웃고 떠들며 술을 마시고 있어서, 아무리 찾으려고 해도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충선왕은 너무도 분해서 침을 뱉으며 그녀를 잊었다. 고려에 돌아온 이듬해, 왕의 생일이 되었다. 이제현은 왕에게 생일을 축하하는 술잔을 올리고 나서, 갑자기 뜰에 엎드렸다 “신이 죽을죄를 지었나이다.” 그러고는 이제현은 그때의 일을 사실대로 아뢰었다. 왕은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했다.“그날 만약 내가 이 시를 보았더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다시 그녀에게 돌아갔을 것이다. 그대가 나를 사랑한 까닭에 거짓으로 말하였으니 참으로 그 충성이 간절하도다.” 임금과 신하 사이의 아름다운 미담으로『용재총화』라는 책에 전하는 이야기이다.   앞서 곽예의 시에서 연꽃은 멀리서 은은한 향기를 전해 주는 군자의 모습으로 그려졌는가 하면, 최해의 시에서는 반대로 비 구슬을 사랑하는 욕심꾸러기로 나온다. 한편 위의 시에서 연꽃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서 슬픔을 이기지 못해 시들어 가는 여인의 모습으로 노래되고 있다. 이처럼 같은 꽃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된다. 연꽃만 그런 것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사물들이 다 그렇다. 좋은 시는 어떤 사물 위에 나만의 의미를 부여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시이다.              [참고문헌]   정민,『정민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이야기』(2003, 보림), pp. 49-58.  [출처]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6> 연꽃에서 찾는 여러 가지 의미|작성자 옥토끼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새롭게 바라보기     어떤 사물이 어느 날 갑자기 너무나 낯설게 보이는 수가 있다. 그것을 바라보는 내 마음이 보통 때와 달랐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새롭게 바라보면 다르게 보인다. 새롭게 바라볼 때 우리는 그 사물과 비로소 만날 수가 있다. 시는 이런 만남을 주로 노래한다. 시인은 사물과 새롭게 만나게 해 주는 사람이다. 시를 쓸 때는 남들 보는 대로 보지 않고, 내가 본 대로 느낄 줄 알아야 한다. 시를 통해 우리는 나와 아무 상관없던 사물과 새롭게 만난다. 새롭게 만나려면 새롭게 보아야 한다. 남들 보는 대로 보아서는 그 사물의 새로운 점이 보이지 않는다. 낯익은 사물도 새롭게 보면 낯설어진다. 매일 똑같이 보던 것인데 어느 날 갑자기 처음 보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럴 때 그 사물이 너무도 사랑스럽고, 지금까지 그것을 보지 못한 내가 너무 바보 같아 보인다. 그래서 내가 느낀 것을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시는 시인이 사물과 새롭게 만나 느낀 감동을 입을 열어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어서 적은 것이다. 다음 시를 한 수 보자.   오늘 핀 꽃이 내일까지 빛나지 않는 것은 (甲日花無乙日輝 갑일화무을일휘) 한 꽃으로 두 해님을 보기가 부끄러워서다. (一花羞向兩朝煇 일화수향양조휘) 날마다 새 해님 향해 숙이는 해바라기를 말한다면 (葵傾日日如馮道 규경일일여빙도) 세상의 옳고 그름을 그 누가 따질 것인가. (誰辨千秋似是非 수변천추사시비)   고산 윤선도의 라는 작품이다. 무궁화는 우리나라의 꽃이다. 무궁화는 이른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진다. 다 진 꽃이 다음날 아침에 보면 어느새 나무 가득 다시 활짝 피어 있다. 그래서 피고 지고 또 피는 그 은근과 끈기의 정신을 기려서 우리나라에서는 이 꽃을 무궁화, 즉 ‘다함이 없는 꽃’이라고 이름을 지어 주었다. 그리고 나라꽃으로 정해 아끼고 사랑해 왔다. 그런데 중국 사람들은 우리가 나라꽃으로 사랑하는 이 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꽃이 하루도 못 가서 땅에 떨어져 버리기 때문이다. 꽃 이름도 무궁화라 하지 않고,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는 꽃’ 또는 꽃의 화려함이 하루밖에 못 간다고 ‘하룻영화꽃’이라고 낮춰서 불렀다. 가진 것도 없이 뽐내는 소인배를 가리키는 뜻으로도 쓰였다. 윤선도는 무궁화를 ‘일일화(一日花)’라고 불렀는데, 이 말도 하루밖에 못 가는 꽃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하루밖에 못 가는 꽃에 대한 윤선도의 생각은 중국 사람과 아주 다르다. 무궁화는 오늘 피었다가 오늘 진다. 하나의 꽃으로 두 해님에게 인사하는 것이 부끄럽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을 바꾸고 보니까, 무궁화는 이랬다저랬다 하는 꽃이 아니라 참으로 순수하고 충직한 마음을 지닌 꽃이 되었다. 다른 꽃들은 오늘 핀 꽃으로 내일도 모래도 글피도 새로 떠오르는 해님에게 인사한다. 시들어 가는 줄도 모르고 새 해님 앞에 자태를 뽐내는 꽃들은 부끄러운 줄을 모른다. 그렇지만 무궁화는 다르다. 한편, 해바라기는 언제나 태양을 향하여 고개를 숙이기 때문에 임금님을 향한 일편단심을 나타내는 꽃으로 늘 칭찬받아 왔다. 이렇게 해바라기는 일편단심의 충성스런 마음을 상징하는 꽃이다. 그런데 위 시에서 윤선도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무궁화는 한 태양만을 섬기기 위해 매일 지는데, 해바라기는 매일매일 떠오르는 다른 태양을 향해 한결같이 고개를 숙이니 오히려 지조가 없다고 볼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 태양을 임금이라고 생각해 보자. 윤선도가 말하려고 한 뜻을 금세 알 수 있다. 옛말에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고, 열녀는 두 남편을 섬기지 않는다고 했다. 하나의 태양, 즉 한 분의 임금님만을 섬기기 위해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는 무궁화는 정말로 충성스런 꽃이다. 반대로 여러 개의 태양, 즉 여러 임금에게 모두 다 아첨하는 해바라기야말로 간신배가 아니겠는가? 이렇게 보니까 무궁화는 하루 만에 지지만 매운 정신을 지닌 꽃이 되었고, 해바라기는 지조도 없고 아첨만 잘하는 소인배를 나타내는 꽃이 되었다. 위 시에서 두 해님이라 읽은 것은 ‘양조(兩朝)’인데 두 조정, 즉 두 임금이라는 뜻으로 읽을 수도 있다. 한시에서 하나의 단어를 이렇게 두 가지 뜻으로 읽는 것을 ‘쌍관의(雙關義)’라고 말한다. 윤선도는 효종 임금을 위해 평생 충성을 바쳤던 분이다. 그런데 조정에서는 그를 간신배라고 비방하고 헐뜯었다. 그는 평생 20년 가까이 귀양살이를 했다. 이 시도 귀양 가서 지은 것이다. 자신을 소인배라고 헐뜯는 조정 벼슬아치들에게 윤선도는 자신은 무궁화와 같은 사람이라고 당당히 대들었던 것이다. 오히려 해바라기 같은 너희들이 바로 간신배가 아니냐고 따졌던 것이다. 이 시가 좋은 작품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남들이 생각하는 대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 속에 보이는 무궁화는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무궁화와는 전혀 다른 꽃처럼 느껴진다. 무궁화를 이렇게 바라본 사람은 없었다. 시인은 늘 사물을 새롭게 태어나게 하는 사람이다.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든다. 그래서 그 사물을 한 번 더 살펴보게 해 준다. 어느 날 내가 그것들은 주의 깊게 살펴 대화할 수 있게 되면, 사물들은 마음속에 담아 둔 이야기들을 나에게 건네 오기 시작한다. 시는 사물이 나에게 속삭여 주는 이야기를 글로 적은 것이다.   [참고문헌] 정민,『정민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이야기』(2003, 보림), pp. 75-82. [출처]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8> 새롭게 바라보기|작성자 옥토끼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의미가 담긴 말       한시 속에는 어떤 단어 안에 사전에 나오는 의미 외에 다른 뜻이 담긴 말들이 많다. 하나의 단어가 특별한 의미를 담고 반복적으로 노래되다 보니 새로운 뜻을 갖게 된 것이다. 이런 새로운 의미를 ‘정운의(情韻義)’라고 한다. 정운의를 잘 알아 두면 시를 감상하는 데 아주 편리하다. 조선 시대 홍랑이란 기생이 함경도에 벼슬 살러 온 최경창이란 시인을 사랑했다. 임기가 끝나 최경창이 서울로 돌아가게 되었다. 홍랑은 최경창에게 시조를 한 수 지어 주며 이별하였다.             묏버들 가려 꺾어 보내노라 임의 앞에 주무시는 창밖에 심어 두고 보소서 밤비에 새잎이 나거든 날인가도 여기소서   옛날에는 친구나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질 때 이별의 정표로 버들가지를 꺾어 주는 풍습이 있었다. 버들가지는 꺾은 가지를 땅에 심어도 다시 뿌리는 내리는 성질을 지닌 나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 비록 이렇게 헤어지지만 훗날 반드시 다시 만나자는 간절한 바람을 담은 것이다. 다시 버들가지를 꺾는 이야기가 나오는 한시를 감상해 보기로 하자.   이별하는 사람들 날마다 버들 꺾어 (離人日日折楊柳 리인일일절양류) 천 가지 다 꺾어도 가시는 임 못 잡았다. (折盡千枝人莫留 절진천지인막류) 어여쁜 아가씨들 눈물 때문일까 (紅袖翠娥多少淚 홍수취아다소루) 안개 물결 지는 해에 근심만 가득하다. (烟波落日古今愁 연파락일고금수)   조선 시대 임제가 지은 가운데 한 수이다. 원문을 보면 첫째 구절 끝에 버들‘류(柳)’자가 있고, 둘째 구절 끝에 머무를 류(留)자가 있다. 두 글자의 소리가 같기 때문에 버드나무라는 말은 가지 말라는 뜻으로도 읽힌다. 그래서 버들가지를 준 것은 다시 만나자는 다짐보다 가지 말라는 만류의 뜻이 더 많았던 것을 알 수 있다, 날마다 대동강 가에서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헤어진다. 헤어지는 사람마다 버들가지를 꺾어 주며 가지 말라고 붙든다.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다 떠나가 버렸다. 평양의 아가씨들은 매일 강변에 나와서 돌아오지 않는 사람을 그리워하면서 한숨 쉬며 눈물을 흘린다. 강물 위에는 그녀들이 흘리는 눈물과 내쉬는 한숨 때문에 안개가 저렇게 자욱하다고 시인은 과장해서 말했다. 한시 속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나무가 바로 버드나무이다. 버드나무는 봄날의 설렘과 사랑하는 사람과 다시 만날 희망을 나타내는 나무이다. 이런 뜻은 물론 사전에는 나오지 않는다. 한편으로 한시에 보면 가을 부채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왜 가을에 부채를 부칠까? 먼저 다음 한시를 한 수 읽어 보자.   은촛대에 가을빛은 그림 병풍에 차가운데 (銀燭秋光冷畵屛 은촉추광냉화병) 가벼운 비단 부채로 반딧불을 치는구나. (輕羅小扇撲流螢 경라소선박류형) 하늘 가 밤빛은 물처럼 싸늘한데 (天際夜色凉如水 천제야색량여수) 견우와 직녀성을 앉아서 바라본다. (坐看牽牛織女星 좌간견우직녀성)   당나라 때 유명한 시인 두목의 이란 작품이다. 가을밤이면 추워서 오싹하고 찬 기운이 느껴진다. 가을밤에 어떤 여인이 혼자 앉아 견우와 직녀성을 바라보고 있다. 시속에는 ‘차갑다’와 ‘싸늘하다’는 표현이 나온다. 그런데도 그녀는 손에 부채를 쥐고 있다. 추운 가을밤에 왜 그녀는 손에 부채를 쥐고 있는 걸까?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녀는 부채로 방 안으로 날아드는 반딧불이를 치고 있다. 열어 둔 창문으로 반딧불이가 자꾸만 날아든다.반딧불이는 원래 인적 없는 황량한 들판에서 날아다닌다. 그런데 그녀의 방까지 날아들었다. 그녀가 살고 있는 곳이 그만큼 황량해졌다는 뜻이다. 그녀는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래서 부채를 들어 반딧불이를 내쫓는다. 이 시는 임금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잊혀 진 궁녀의 신세를 노래한 것이다. 끝에서 그녀가 우두커니 앉아서 견우와 직녀성을 바라보고 있다고 했다. 견우와 직녀는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일 년 내내 떨어져 있다가 칠월칠석날 단 하루만 만난다. 견우와 직녀는 이 다리를 건너서 반갑게 만난다. 두 사람은 만남이 반갑고 또 헤어질 것이 슬퍼서 눈물을 흘린다. 그래서 칠월칠석날에는 늘 비가 온다는 전설이 있다. 그녀는 왜 하필 많고 많은 별 중에서 견우성과 직녀성을 바라보고 있었을까? 이것은 두 가지 풀이가 가능하다. 하나는 우리도 견우와 직녀처럼 헤어져서 만나지 못하니 너무 슬프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견우와 직녀는 그래도 일 년에 한 번씩 만날 수 있는데, 나는 영영 사랑하는 임과 다시는 만날 수가 없어 슬프다는 것이다. 아마 나중의 풀이가 더 맞을 것 같다. 시인은 그녀가 임금에게 버림받은 궁녀라는 것을 단지 그녀의 손에 부채를 쥐여 줌으로써 독자들이 눈치 챌 수 있도록 했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이전부터 많은 시인들이 가을 부채를 버림받은 여인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사용해 왔기 때문이다. 버들가지를 꺾어서 다시 만나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현한다. 가을 부채가 버림받은 여인의 의미를 나타낸다.이렇게 된 것은 그 물건이 지닌 성질 때문이다. 처음에 어떤 시인이 이것을 시로 쓰자, 그 비유가 너무나 알맞았기 때문에 그 뒤로 많은 시인들이 뒤따라 이 표현을 사용하였다. 마침내 이 비유는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표현으로 굳어지게 된 것이다. 처음 가을 부채로 버림받은 여인을 비유했을 때는 매우 낯설어서 새로운 느낌을 주었다. 그것이 자주 쓰여서 상징이 되면, 일반적인 부채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의미, 즉 정운의를 간직하게 된다. 겉으로 보아서는 별 상관이 없어 보이는 사물들이 생각의 단계를 거쳐 전혀 다른 의미와 연결된다. 한시에는 이런 말들이 많다. 이 정운의에 대해 잘 알고 있다면 시를 훨씬 더 깊이 음미할 수 있다.     [참고문헌] 정민,『정민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이야기』(2003, 보림), pp. 83-90. [출처]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9> 의미가 담긴 말|작성자 옥토끼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미치지 않으면 안 된다   옛말에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不狂不及)’는 말이 있다. 무슨 일이든지 미친 듯한 열정으로 하지 않으면 성취를 이룰 수 없다는 뜻이다. 조선 시대 유명한 서예가인 최흥효란 사람이 있었다. 젊어서 과거 시험을 보러가서 문제의 답안을 쓰다 보니 그 중에 한 글자가 중국의 유명한 서예가 왕희지의 글씨와 꼭 같게 써졌다. 평소에는 수백 번씩 연습해도 잘 써지지 않던 어려운 글자였다. 그런데 이번에 쓴 것은 오히려 왕희지보다 더 잘 쓴 것 같았다. 그는 그만 자기 글씨에 도취되어 차마 아까워서 답안지를 제출하지 못하고 그냥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우연히 같게 써진 한 글자의 글씨 앞에서 그는 자기가 과거 시험을 보고 있다는 사실마저 까맣게 잊고 말았던 것이다. 그렇게 열심히 글씨 연습을 해서 그는 뒷날 과연 이름난 서예가가 되었다. 조선 중기에 이징이란 화가가 있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그의 아버지 이경윤도 이름이 알려진 화가였는데 그림을 잘 그려도 천한 대접만 받았으므로 아들이 그림 그리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림이 너무 그리고 싶었던 이징은 몰래 집 다락에 숨어서 그림을 그렸다. 집에서는 갑자기 아이가 없어졌기 때문에 큰 소동이 일어났다. 가족들은 사흘 만에 다락방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소년을 찾아냈다. 아버지는 너무도 화가 나서 볼기를 때렸다. 소년은 매를 맞고 울면서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을 찍어 새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것을 본 아버지는 소년에게 그림 그리는 것을 허락하고 말았다. 또 조선 시대 왕실의 친척이었던 학산수란 이가 있었다. 그는 노래를 잘 부르는 명창으로 이름이 높았다.산에 들어가 노래 공부를 할 때는 반드시 신발을 벗어 앞에 놓고 노래 한 곡을 연습하고 나면 모래 한 알을 주워 신발에 담았다. 또 한 곡이 끝나면 다시 모래를 한 알을 담았다. 그렇게 해서 모래가 신발에 가득 차면 그제야 산에서 내려왔다. 한번은 황해도로 여행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도적 떼를 만났다. 도적들은 그의 복장을 보고 귀한 신분인 줄 알아채고, 가진 것을 다 빼앗은 후 그를 죽이려고 했다. 그는 이렇게 죽는구나 생각하니 자기도 모르게 슬퍼져서 나무에 꽁꽁 묶인 채로 바람결을 따라 노래를 불렀다. 노래를 들은 도적들은 모두 감동하여 눈물을 줄줄 흘렸다. 노래가 끝나자 도적들은 그 앞에 일제히 무릎을 꿇고 울면서 잘못을 빌었다. 그를 풀어 주고 빼앗았던 물건도 다 돌려주었다. 조선 후기에 이삼만이라는 서예가는 초서 글씨를 잘 쓰기로 유명했다. 종이를 구하기 힘든 때였기 때문에 그는 흰 베를 빨아서 그 위에 글씨를 썼다. 흰 베가 온통 까맣게 되면 이것을 빨아서 다시 썼다. 아무리 아파도 하루에 천 자씩은 꼭 썼다. 처음에 그는 부자였는데, 글씨만 쓰고 다른 일은 돌보지 않았기 때문에 나중에는 아주 가난하게 되었다. 그래도 그는 열심히 글씨만 썼다. 그는 글씨를 배우려는 젊은이에게는 늘 이렇게 말하곤 했다. “자네가 글씨를 잘 쓰려면 적어도 벼루 세 개쯤은 먹을 갈아 구멍을 내어야 할 걸세.” 그 단단한 벼루가 먹을 갈아서 구멍이 나도록 그는 글씨를 쓰고 또 썼다. 그래서 마침내 훌륭한 서예가가 되었다. 우연히 같게 써진 글자 하나 때문에 과거 시험 답안지를 제출하지 않았던 최흥효나 매를 맞으면서도 눈물을 찍어 새 그림을 그렸던 이징, 노래 한 곡을 부를 때마다 모래 한 알을 담아 넣으며 노래 공부를 했던 학산수,여러 개의 벼루를 구멍 내 가면서 글씨 연습을 했던 이삼만, 이 네 사람은 모두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 미쳤던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위대한 예술은 이런 끊임없는 노력과 미친 둣한 몰두 속에서 이루어진다. 노력 없이 이룰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시도 이와 다를 것이 없다. 시인은 마음에 드는 좋은 시를 쓰기 위해서 이렇게 노력한다. 고려 때 강일용이란 시인이 있었다. 그는 깃이 흰 백로를 유난히 사랑했다. 백로를 가지고 정말 훌륭한 시를 한 수 짓고 싶었다. 그래서 비만 오면 짧은 도롱이를 걸쳐 입고 황소를 타고 개성 시내를 벗어나 천수사란 절 옆의 시냇가로 갔다. 황소 등에 올라앉아 비를 쫄딱 맞으며 백로를 구경하곤 했다. 비가 올 때마다 나가서 백로를 관찰하였지만, 아름다운 시상(詩想)은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다 백일 만에 갑자기 한 구절을 얻었다. 그 시구는 이러했다.   푸른 산허리를 날며 가르네. (飛割碧山腰 비할벽산요)   그는 어느 날 시내를 박차고 날아오른 백로가 유유히 산허리를 가르며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 비가 와서 푸른 산허리에는 흰 안개가 자옥이 깔려 있었다. 그런데 시인은 흰 안개가 흰 백로가 훨훨 날아가면서 푸른 산허리에 흰 줄을 그어 놓은 것이라고 상상했던 것이다. 이 구절을 얻고서 그는 너무도 기뻐서 이렇게 소리쳤다. “내가 오늘에야 옛사람이 미처 말하지 못한 것을 비로소 얻었다. 훗날 이 구절을 이어 시를 완성할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 한 구절이 너무도 마음에 들고, 또 이 구절을 얻은 것이 너무도 기뻤던 나머지, 그는 다른 구절을 채워 한 수의 시를 완성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위대한 예술가는 하나의 예술 작품을 탄생시키기 위해 이러한 고통을 마다하지 않는다. 나를 완전히 잊는 몰두 속에서만 위대한 예술은 탄생한다. 옛 시인들은 한 편의 마음에 드는 시를 짓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을까. 당나라 때 시인 맹교는 좋은 시를 짓기 위해서라면 칼로 자기 눈을 찌르고 가슴을 도려내는 고통도 마다하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그는 이렇게 노래한 적이 있다.   살아서는 한가한 날 결코 없으리 (生應無暇日 생응무가일) 죽어야만 시를 짓지 않을 테니까. (死是不吟詩 사시불음시)   ‘괴로이 읊다(苦吟)’란 제목의 이 시처럼, 죽기 전에는 결코 시 짓는 일을 그만둘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당나라 때 노연양이란 시인도 아주 재미난 시를 남겼다.   한 글자를 꼭 맞게 읊조리려고 (吟安一箇字 음안일개자) 몇 개의 수염을 배배 꼬아 끊었던가. (撚斷幾莖髭 연단기경자)   시를 지으려고 하는데 알맞은 표현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 글자가 좋을까, 저 글자가 좋을까? 고민하느라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수염을 배배 꼬다가 도대체 몇 가닥이나 끊어졌는지 알 수가 없다는 말이다. 생각에 골똘히 빠져서 손가락 끝에 수염 하나를 감아쥐고 배배 꼬는 그 모습이 눈에 선하게 떠오른다. 누가 시킨 일도 아닌데, 스스로 만족스러울 때까지 그들은 자기 자신을 이렇게 들볶았다. 남들이 보기에는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작품 하나에도 한 예술가의 일생이 담겨 있다. 시인은 한 편의 아름다운 시를 남기기 위해 어떤 괴로움도 다 참아 내며 견딘다. 화가는 멋진 그림을 그리기 위해, 음악가는 아름다운 곡을 작곡하려고 힘든 줄도 모르고 밤을 새우며 작업에 몰두한다. 위대한 예술은 자기를 잊는 이런 아름다운 몰두 속에서 탄생하는 것이다. 훌륭한 시인은 독자가 뭐라 하던 자신이 만족할 때까지 고치고 또 고친다. 우리가 쉽게 읽고 잊어버리는 작품들 뒤에는 이런 보이지 않는 고통과 노력이 담겨 있다.       [참고문헌] 정민,『정민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이야기』(2003, 보림), pp. 91-98 [출처]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10> 미치지 않으면 안 된다|작성자 옥토끼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시는 그 사람과 같다   옛말에 ‘글은 그 사람과 같다’는 말이 있다. 시를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가 드러난다. 시인이 사물과 만나면 마음속에서 어떤 느낌이 일어난다. 그는 그것을 시로 옮긴다. 이때 사물을 보며 느낀 것은 사람마다 같지 않다. 그 사람의 품성이나 생각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 한 마디에도 그 사람의 성격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시도 마찬가지다. 시를 읽으면서 우리는 시인과 만날 수 있다. 고려 예종 때 시인 정습명이 지은 이란 작품을 보자. * 한시의 제목은 석죽화(石竹花)이다.   세상 사람들은 모란을 사랑해서 (世愛牧丹紅 세애목단홍) 동산에 가득히 심어서 기른다. (栽培滿園中 재배만원중) 그렇지만 황량한 들판 위에도 (誰知荒草野 수지황초야) 예쁜 꽃 피어난 줄은 아무도 모르네. (亦有好花叢 역유호화총) 그 빛깔은 시골 연못에 달빛이 스민 듯 (色透村塘月 색투촌당월) 향기는 언덕 위 바람결에 풍겨 온다. (香傳隴樹風 향전롱수풍) 땅이 후미져서 귀한 분들 오지 않아 (地偏公子少 지편공자소) 아리따운 자태를 농부에게 맡긴다. (嬌態屬田翁 교태속전옹)   모란은 부귀를 상징하는 꽃이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모란을 마당 가득히 심어 놓고 그 붉은 꽃처럼 부귀하고 영화롭게 살았으면 한다. 그렇지만 패랭이꽃은 그렇지가 않다. 다섯 개의 가녀린 꽃잎을 가진 패랭이꽃은 꽃잎도 작고 빛깔은 수줍은 분홍빛이다. 아무도 이 꽃을 마당에 심어 두려는 사람이 없다. 아무도 오지 않은 들판의 오솔길 옆에서 바람에 맑은 향기를 날리며 피었다가 조용히 질 뿐이다. 그렇지만 패랭이꽃도 모란꽃만큼이나 아름답다. 아니 모란꽃보다 훨씬 더 아름답다. 모란꽃은 짙게 화장을 하고 화려하게 옷을 차려입은 영화배우와 같다. 패랭이꽃은 부끄러워 얼굴이 빨개진 순진하고 해맑은 산골 아가씨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오늘도 패랭이꽃은 그 아름다운 모습을 농사짓는 시골 농부들에게만 보여 주며 피어 있다. 하지만 시골 농부는 늘 농사일에 바빠 패랭이꽃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신분 높은 귀한 사람은 시골에 오지 않는다. 결국 패랭이꽃은 그냥 혼자 피었다가 혼자 질 뿐이다. 남이 알아주고 알아주지 않고는 패랭이꽃과 상관이 없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아도 어여쁜 꽃잎을 피우고, 맑은 향기를 바람결에 흩날릴 뿐이다. 정습명은 이 시를 왜 썼을까? 그는 기이한 재주와 넓은 포부를 지녔던 뜻 높은 선비였다. 그렇지만 세상 사람들은 아무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이 시를 지어 자신의 마음을 가만히 내보여 주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이 시는 자기 소개서인 셈이다. 고려 예종 임금께서 이 시를 보고 깜짝 놀랐다. “이렇게 뛰어난 시인이 있었단 말이냐. 어서 가서 그를 불러오너라.” 시 속에 담긴 내용이 너무 훌륭했기 때문이었다. 예종은 그를 만나보고는 좀 더 일찍 만나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했다. 그에게 벼슬을 내리고 늘 가까이 머물게 했다. 다음 시는 역시 고려 때 시인 최해가 지은 이란 작품이다. * 한시의 제목은 현재설야(縣齋雪夜)이다. 세 해의 귀양살이 병까지 들고 보니 (三年竄逐病相仍 삼년찬축병상잉) 한 칸 집에 사는 모습 스님과 비슷하다. (一室生涯轉似僧 일실생애전사승) 눈 덮인 사방 산엔 찾아오는 사람 없고 (雪滿四山人不到 설만사산인불도) 파도 소리 속에 앉아 등불 심지 돋운다. (海濤聲裏坐挑燈 해도성리좌도등)   최해도 높은 기상과 재주를 지녔던 사람이다. 젊은 시절 그는 자신의 능력을 뽐내어 거만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다가 맡은 일에 큰 실수를 저질러 구석진 시골로 쫓겨나 있었다. 첫 번째 구절을 보면 그가 쫓겨나 이곳에 온 것이 벌써 삼 년이나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아무 것도 없는 가난한 살림에 병까지 들었다.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이 가난한 스님과 같다고 했다. 하루 세 끼 끼니초자 잇기 어려운 힘든 형편을 하소연했다. 가뜩이나 살아가기 힘든데, 눈이 펑펑 내려서 춥기도 하고 밖으로 통하는 길이 다 막혀 버렸다. 군불도 때지 않은 추운 방에서 벌벌 떨고 있자니 창문 밖에서 엄청난 파도 소리가 들려온다고 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고 했으니까 진짜 파도 소리는 아니다. 휘몰아치는 눈보라 소리가 마치 집채만 한 파도가 집을 덮쳐오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말이다. 그는 잠을 못 이루며 오두마니 앉아서 등불 심지를 돋우고 있다. 예전 등불은 심지가 다 타면 다시 심지를 돋우어 주어야 불이 꺼지지 않았다. 그러니까 등불 심지를 돋우는 것은 불이 꺼지지 않게 하려는 행동이다. 눈이 펑펑 내렸다. 이 눈 속에 이곳을 찾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도 시인은 등불 심지를 돋워서 불을 꺼트리지 않으려고 한다. 등불마저 꺼져 버린다면 깜깜한 어둠 속, 집채만 한 파도 소리 속에 자신마저 휩쓸려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가물대는 등불 심지를 돋우는 모습에서 깊은 밤에 혹시 누군가 자신을 찾아 주지는 않을까 하는 안타까운 기다림의 심정마저 느껴진다. 이 시를 읽어 보면 앞서 패랭이꽃을 노래한 정습명이 태도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정습명은 누가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상관하지 않고 자신의 아름다움을 가꾸어 나가겠다고 했다. 그런데 최해는 아무도 올 수 없는 눈 오는 밤중에도 누군가 찾아오지 않을까 하여 등불 심지를 돋우고 있다. 그는 오랜 귀양살이 끝에 세상 사람들에게 자기의 존재가 완전히 잊혀질까 봐 괴로워했던 것 같다. 결국 최해는 이렇게 불우하게 살다가 다시 세상에 나오지 못하고 세상을 뜨고 말았다. 시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정습명과 최해의 시를 보면 이 말을 더 실감할 수가 있다. 말이 씨가 된다는 속담이 있다. 한자로는 ‘농가성진(弄假成眞)’이라고 하는데, 뜻 없이 한 말이 말한 그대로 진짜로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말 속에 정령이 살아 숨 쉰다고 믿어 함부로 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항상 말을 조심하고, 행동을 가려서 할 줄 아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내가 오늘 무심히 하는 말투와 행동 속에 내가 품은 생각이 다 드러나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정민,『정민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이야기』(2003, 보림), pp. 99-106. [출처]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시는 그 사람과 같다|작성자 옥토끼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치마 위에 쓴 시     한시 속에는 옛날의 유명한 시인들이 쓴 표현이나 이야기를 빌려 오는 경우가 꽤 많이 보인다. 이런 것을 ‘용사(用事)’라고 한다. 말을 많이 하지 않으면서 자기 생각을 충분히 전달하는 아주 효과적인 표현 방법이다. 왕헌지는 중국의 유명한 서예가 왕희지의 아들이었다. 그도 역시 명필로 이름이 높았다. 그가 오흥 태수로 있을 때의 이야기다. 그 마을에 양흔이란 열두 살 난 소년이 글씨를 아주 잘 썼다. 왕헌지는 양흔을 아주 아꼈다. 하루는 양흔이 보고 싶어서 그가 사는 집으로 찾아갔다. 그때 소년 양흔은 마침 새로 해 입은 비단옷을 입고 글씨 연습을 하다가 붓을 한 손에 든 채로 곤하게 낮잠이 들어 있었다. 천진스레 낮잠에 빠져 있는 소년을 보던 왕헌지는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장난을 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양흔의 붓을 빼앗아 들고 양흔의 새 옷 위에다 글씨를 써놓고 갔다. 이윽고 잠에서 깨어난 소년은 새 옷 위에 어지럽게 글씨가 써진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정신을 가만히 차리고 살펴보니 다름 아닌 선생님의 글씨였다. 감격한 소년은 옷 위에 써 준 선생님의 글씨를 보면서 더욱더 글씨 공부에 정진해서 훌륭한 서예가가 되었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왕헌지가 양흔의 옷자락에 글씨를 써 준 것을 가지고 ‘글씨 치마’라는 말을 만들어 후세에 전했다. 스승이 제자를 아끼는 마음과 제자가 스승을 존경하는 마음이 빚어 만든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조선 후기의 유명한 실학자 다산 정약용 선생에게도 이 글씨 치마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 1813년에 정약용은 천주교를 믿었다는 죄로 전라남도 강진 땅에 귀양 가 있었다. 강진의 만덕산 옆에 조그만 초가집을 짓고 살면서 오로지 책 읽고 글 쓰는 일에만 골몰하고 있었다. 벌써 귀양살이도 13년째로 접어들고 있었다. 서울 집에서 인편에 편지와 옷가지를 부쳐 왔다. 반가워 보자기를 열어 보니 가족들 모두 편안히 잘 있다는 안부 편지와 함께 낡아서 못 입게 된 치마 몇 벌이 들어 있었다. 아내가 시집오던 날 입었던 붉은색의 활옷이었다. 오랜 세월이 흘러 붉은빛은 이미 다 바래 버리고 노란색도 이제는 희미해져 버린 것이었다. 아내가 왜 이 낡은 치마를 나에게 보냈을까? 정약용은 이렇게 생각하다가 가위를 가져와서 빛바랜 치마를 펴고는 네모나게 잘랐다. 그것으로 공책을 만들었다. 거기에 먼저 두 아들에게 주는 훈계의 말을 적었다. 죄인이 되어 멀리까지 귀양 와 사는 동안 자식들 교육도 제대로 시키지 못한 아버지의 아픈 마음을 담아 열심히 공부하고 바른 사람이 되라는 부탁을 함께 곁들였다. 어머니가 시집오시던 날 입었던 빛바랜 치마 위에 아버지가 써주신 훈계의 말씀을 받아 들었을 때 자식들의 가슴은 얼마나 뭉클하였을까? 아들에게 보내는 당부의 글을 적고 나서도 치마 천이 조금 남았다. 그래서 다시 시집간 딸을 위해 그림을 그렸다. 딸을 위해 그려 준 그림과 시는 지금도 고려대학교 박물관에 그대로 남아 있다. 그림을 보면 먼저 위쪽에 매화 가지를 그렸다. 가지에는 매화꽃이 활짝 피었다. 봄날이 온 것이다. 어디선가 날아온 꾀꼬리 두 마리가 정답게 매화가지 끝에 앉아 있다. 두 마리 꾀꼬리는 모두 한 방향을 바라보며 즐겁게 봄날을 노래한다. 그 아래에 이렇게 시를 써 놓았다. 이 시의 제목은 ‘매조도에 쓴 시(梅鳥圖詩)’이다.   펄펄 나는 저 새가 (翩翩飛鳥 편편비조) 우리 집 매화 가지에서 쉬는구나. (息我庭梅 식아정매) 꽃다운 그 향기 짙기도 하여 (有烈其芳 유렬기방) 즐거이 놀려고 찾아왔다. (惠然其來 혜연기래) 여기에 올라 깃들여 지내며 (爰止爰棲 원지원서) 네 집안을 즐겁게 해 주어라. (樂爾家室 락이가실) 꽃이 이제 다 피었으니 (花之旣榮 화지기영) 열매도 많이 달리겠네. (有蕡其實 유분기실)   한 쌍의 꾀꼬리가 매화 향기를 찾아 내 집 마당으로 날아들었다. 그 춥던 겨울이 다 끝난 것이다. 새들은 꽃향기에 취해 나뭇가지를 떠날 줄 모른다. 즐거운 노래가 그치지 않는다. 겨우내 쓸쓸하던 마당이 갑자기 환하다. 이 시의 원문은 공자가 엮은『시경』이란 옛 시집 속에 실려 있는 시들처럼 네 글자 형식으로 되어 있다. 시경에 있는 이란 다음 시도 이와 같은 형식이다.   아내와 자식이 정답게 지내는 것이 (妻子好合 처자호합) 마치 금슬을 연주하는 것 같아도 (如鼓琴瑟 여고금슬) 형님과 아우가 화목해야만 (兄弟其翕 형제기흡) 즐겁고 기쁘다고 할 수가 있다. (和樂且湛 화락차담) 네 집안을 화목하게 하고 (宜爾室家 의이실가) 그대의 처자식을 즐겁게 해 주어라. (樂爾妻帑 락이처탕) 이렇게 하려고 애를 쓴다면 (是究是圖 시구시도) 정말로 그렇게 될 수 있을 것이다. (亶其然乎 단기연호)   위 시의 다섯 번째 구절을 보면 ‘네 집안을 화목하게 하고’라는 말이 나온다. 이것은 앞에서 본 정약용 시의 여섯 번째 구절에 나오는 ‘네 집안을 즐겁게 해 주어라’라는 말과 비슷하다. 정약용은 일부러『시경』의 시와 비슷한 표현을 골라서 위 시의 내용을 자기의 시 속에 담으려고 했던 것이다. 정약용이 딸을 위해 이 그림을 그려 주며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은 이런 것이었다. 딸은 아버지가 치마에 그려 보내 준 그림을 보고 멀리 계신 아버지가 너무 보고 싶어서 눈물을 흘리고 말았을 것이다. 이렇게 예전에 있던 시의 표현을 슬쩍 빌려 와서 자신의 생각을 담는 것을 한시에서는 ‘용사’라고 한다. 그래서『시경』에 실려 있는 이라는 시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정약용이 새에게 하고 있는 말만 듣고도 가족들과 함께 오순도순 살고 싶은 마음을 노래하고 있는 줄 금세 알아차릴 수가 있는 것이다. 다 떨어져서 입을 수 없게 된 치마가 이렇게 해서 훌륭한 예술 작품이 되었다. 이 그림과 시가 참으로 아름다운 까닭은 그 안에 가족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따뜻한 마음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은 모든 것이 너무나 풍족하니까 물건이 아까운 줄도 모른다. 멀쩡한 새 옷도 다 내다 버리고 학용품도 아낄 줄 모른다. 아낄 줄 아는 마음이 없이는 소중한 것도 없다. 부모가 소중하고 형제가 소중하고 가족이 소중하고 친구가 소중한 줄을 모른다. 헌 치마 조각도 이렇게 아껴서 서로 사랑하는 마음을 나눌 줄 알았던 옛 선인들의 거룩한 마음씨를 잊지 말아야겠다.   [참고문헌] 정민,『정민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이야기』(2003, 보림), pp. 107-114 [출처]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12> 치마 위에 쓴 시|작성자 옥토끼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계절이 바뀌는 소리   시 속에는 시인이 일부러 분명하게 말하지 않을 때가 있다. 분명하게 말하기 않았기 때문에 읽는 사람은 이렇게도 볼 수 있고 저렇게도 볼 수 있게 된다. 이런 것을 전문적인 말로는 ‘모호성’이라고 한다. 시인은 일부러 모호하게 말해서 독자가 더 많이 생각하고 더 크게 느낄 수 있도록 해 준다. 이번에는 계절의 변화를 노래하고 있는 한시 몇 수를 함께 읽으면서 이 모호성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하자. 주의 깊게 살펴보면 사물들은 끊임없이 소리를 낸다. 그런데 그 소리는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에게만 들린다. 다음 한시는 고려 말의 충신인 정몽주의 라는 작품이다.   봄비가 가늘어서 방울도 짓지 못하더니 (春雨細不滴 춘우세부적) 한밤중에 가느다란 소리가 들려온다. (夜中微有聲 야중미유성) 눈 녹아 남쪽 시내에 물이 불어나니 (雪盡南溪漲 설진남계창) 새싹들이 많이도 돋아났겠다. (草芽多少生 초아다소생)   봄비는 너무 가늘어서 마치 분무기로 물을 뿌리는 것처럼 사각사각 내린다. 비를 맞아도 옷이 젖는 줄을 모른다. 낮에 시인은 땅을 촉촉이 적시며 봄비가 내리는 것을 보았다. 아! 봄이 왔구나. 공연히 가슴이 두근거리고 설레어 흥분된 마음을 가눌 길이 없었다. 시인은 방안에서 가느다란 소리를 듣는다. 무엇이 내는 소리일까? 시인은 시 속에서 분명하게 말해 주지 않는다. 시인은 방 안에 앉아서 소리를 따라 생각에 잠긴다. 산속 깊은 곳에 쌓인 눈도 이제 녹기 시작하겠구나. 깊은 산속에는 지금쯤 새싹들이 언 땅 여기저기서 고개를 내밀고 있겠지. 이 밤 봄비를 맞으며 겨우내 언 몸들을 녹이고 있겠구나. 이런 생각을 하다가 시인은 한없이 행복하고 따뜻한 느낌이 들어 이 시를 썼을 게다.   쓸쓸히 나뭇잎 지는 소리를 (蕭蕭落木聲 소소락목성) 성근 빗소리로 잘못 알고서, (錯認爲疎雨 착인위소우) 스님 불러 문 나가서 보라 했더니 (呼僧出門看 호승출문간) “시내 남쪽 나무에 달 걸렸네요.” (月掛溪南樹 월괘계남수)   조선 시대 시인 송강 정철의 라는 작품이다. 시인은 산속에 있는 절에 와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웬일인지 잠은 오지 않고 정신을 갈수록 또랑또랑해진다. 바쁘게만 지내다가 절에 와서 한가로이 누워 있으려니까 새삼스러운 느낌이 들었던 모양이다. 창밖에서 아까부터 비 오는 소리가 들린다. 맑고 쾌청한 날씨였는데 갑자기 웬 비가 오는 걸까? 절에서 심부름 하는 어린 사미승을 불러 비가 오는지 알아보라고 했다. 그랬더니 꼬마 스님은 돌아와서 빙그레 웃으며 “시내 남쪽 나무 위에 달이 걸려 있는 걸요.”라고 동문서답을 한다. 달이 떴다면 비가 올 리가 없고, 비가 온다면 달이 뜰 수가 없다. 그러니까 그렇게 대답한 것이다. 그 순간 손님은 그것이 비 오는 소리가 아니라 사실을 낙엽 지는 소리인 줄을 깨닫게 되었다. 어린 스님의 이 엉뚱한 대답이 이 시를 읽는 재미를 더해 준다. 만일 “비 안와요. 낙엽 지는 소리예요.”라고 했다면 이것은 시가 될 수 없다. 독자가 생각할 빈틈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시 속에서 모호성은 독자가 들어갈 빈 공간을 만들어 준다.   첫째 개가 짖어대자 (一犬吠 일견폐) 둘째 개가 짖어대네. (二犬吠 이견폐) 셋째 개도 덩달아 따라 짖으니 (三犬亦隨吠 삼견역수폐) 사람일까 범일까 바람 소릴까? (人乎虎乎風聲互 인호호호풍성호) “산 달은 촛불처럼 환히 밝고요 (童言山月正如燭 동언산월정여촉) 반 뜰에는 오동 잎새 소리뿐예요.” (半庭惟有鳴寒梧 반정유유명한오)   조선시대 시인 이경전이 아홉 살 때 지었다는 이란 시다. 달이 환한데 온 마을에 개 짖는 소리가 시끄럽다. 개들이 왜 저렇게 한꺼번에 짖을까? 이 밤중에 누구 집에 도둑이라도 든 걸까? 아니면 산에서 범이라도 내려왔나? 아니면 가을바람 소리를 듣고 기분이 이상해진 걸까? 밖을 내다본 꼬마는 막 동산 위로 둥실 떠오른 환한 달빛을 보았다. 마지막 구절에서 ‘반 뜰(半庭)’이라고 말했다. 달이 아직 하늘 한가운데까지 솟아오르지 않았기 때문에 담장에 걸려 마당의 절반에만 달빛이 비친 것이다. 산에 달빛이 저렇게 밝은 걸 보니 도둑이 들 리도 없고, 호랑이가 내려올 리도 없다. 바람 소리 때문도 아니다. 온 동네 개들은 저 환하게 뜬 달빛을 보고 저렇게 짖어대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개들은 보름달이 뜨면 달을 보고 우우거리며 소리를 지른다. 보름달빛은 동물을 들뜨게 만드는 모양이다. 온 동네 개들을 저렇게 짖게 만든 것은 바로 달빛이었다. 여기서도 시인은 분명하게 달빛을 범인으로 지목하지 않았다. 도둑과 호랑이와 바람을 꼽아 놓고, 여기에 다시 달빛과 오동잎 소리를 더해 놓았을 뿐이다. 시인은 분명하게 말하기를 싫어하는 사람이다. 분명하게 다 말해 버리고 나면 독자들이 생각할 여지가 조금도 남지 않는다. 그래서 자기는 슬쩍 빠져 버리고 독자들이 빈 칸을 채워 넣게 한다. 계절은 이렇게 소리 속에 오고 간다. 봄비 내리는 소리, 시냇물 흐르는 소리, 낙엽 지는 소리를 따라 봄이 가고 가을이 온다. 도시의 복잡한 소음 속에서는 이런 소리들이 하나도 들리지 않는다. 아파트에 앉아서 귀를 귀울이면 자동차의 경적 소리, 옆집의 텔레비전 소리, 아이들이 쿵쾅거리는 소리, 사람들이 티격태격 다투는 소리만 들려온다. 우리의 생활이 날이 갈수록 자연의 소리와 멀어지는 것은 참 슬픈 일이다. 깊은 밤중에만 들려오는 우주가 돌아가는 소리, 내 마음에 새싹이 터 오는 소리, 낙엽이 툭 하고 떨어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환한 달빛이 내 창 가득히 고여 올 수 있도록 마음의 창을 깨끗이 닦아 놓아야겠다.    [참고문헌] 정민,『정민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이야기』(2003, 보림), pp. 115-124. [출처]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13> 계절이 바뀌는 소리|작성자 옥토끼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자연이 주는 선물   자연은 예술의 영원한 주제다. 자연은 말 없는 선생님이다.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른 삶인지 일깨워 준다. 자신을 닮으라고 한다. 예술가들은 넘치는 자연의 에너지를 받는다. 조선 후기 이덕무가 지은『이목구심서』란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지리산 속에는 연못이 있다. 연못가에는 소나무가 주욱 늘어서 있어, 그 그림자가 언제나 연못 속에 비친다. 연못 속에는 물고기가 살고 있는데, 그 무늬가 몹시 아롱져서 마치 스님이 입고 다니는 가사옷 같다. 그래서 이 물고기의 이름을 가사어라고 부른다. 물고기의 이 무늬는 연못에 비친 소나무의 그림자가 변해서 된 것이다. 이 물고기는 너무 날쌔서 잡기가 어렵다. 그렇지만 이 물고기를 잡아서 삶아 먹으면 능히 병 없이 오래 살 수가 있다고 한다.   지리산 속에 있는 깊은 연못 속에는 물고기가 살고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시사철 언제나 푸른 소나무의 기상을 닮아서 삶아 먹으면 병도 없어지고 오래오래 살 수 있게 해 준다는 물고기가 살고 있다. 소나무의 무늬가 물고기에 비친다. 무늬가 물고기 위에 새겨진다. 그 물고기를 먹으면 소나무처럼 오래 살 수가 있다. 과학적으로는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이지만, 옛사람들의 생각하는 방법을 알게 해 주는 글이다. 호랑이의 줄무늬는 가죽에 있고, 사람의 줄무늬는 마음속에 있다고 했다. 소나무의 그림자가 오래 쌓여서 물고기 무늬를 만들 듯이 사람도 사물에 내 마음을 주면 어느 순간 그 사물이 내 속으로 걸어 들어온다. 옛사람들이 자연을 사랑하고 예찬한 것은 모두 이런 이유에서였다.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만 권의 책을 읽고, 먼 길을 여행 다녀 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독서를 많이 하고 여행을 많이 하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책과 자연을 통해 듣고 본 것들이 내 속으로 들어와 나를 변화시킨다. 글을 쓰면 글에서 솔바람 소리가 울려 나오고, 그림을 그리면 도화지 위에서 꽃향기와 새소리가 퍼져 나온다. 다음 시는 송시열의 이란 한시이다.   산과 구름 다 하얗고 보니 (山與雲俱白 산여운구백) 산인지 구름인지 알 수가 없다. (雲山不辯容 운산불변용) 구름이 돌아가자 산만 홀로 섰구나. (雲歸山獨立 운귀산독립) 일만 이천 봉우리 금강산이다. (一萬二千峰 일만이천봉)   겨울의 금강산은 개골산(皆骨山)이라고 부른다. 모두 ‘개(皆)’, 뼈 ‘골(骨)’, 흰 뼈처럼 모두 하얀 산이라는 뜻이다. 금강산에 와 보니 온통 흰 빛깔뿐이다. 산도 희고 그 위에 잠긴 구름도 희다. 산봉우리가 구름에 잠겨 있을 때는 산의 모습을 알아볼 수가 없었다. 날씨가 개자 구름이 걷혔다. 구름이 사라지고 나니 우뚝하게 솟은 금강산의 일만 이천 봉우리가 한눈에 다 들어온다. 세상에는 진짜와 가짜가 섞여 있어 옳고 그른 것을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시인은 산과 구름이 섞여서 모습을 알아볼 수 없던 상태에서 구름을 걷어 냄으로써 홀로 우뚝하게 솟은 금강산의 본래 모습을 드러내 보여 주었다. 우리의 삶도 마땅히 이러해야 할 것이다. 자질구레한 집착과 욕심, 좀 더 놀고 싶은 생각, 더 게을러지고 싶은 마음 같은 것들을 활짝 걷어낼 수 있을 때 비로소 자신의 본마음이 환하게 드러날 수 있을 것이다. 산은 언제나 변하지 않는 자태로 그렇게 우뚝 솟아 있다. 사람들은 멀리서 그 산을 바라보면서 그 늠름한 기상을 마음속에 새기곤 한다. 늘 바라보던 그 산빛이 내 안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와서 내가 바로 산이 된다. 산은 나를 비추는 거울이다. 다음 시는 고려 때 김부식의 라는 한시이다.   세속 나그네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 (俗客不到處 속객부도처) 올라오니 생각이 해맑아진다. (登臨意思淸 등임의사청) 산의 모습은 가을이라 더욱 곱고 (山形秋更好 산형추갱호) 강 물빛은 밤인데도 오히려 밝다. (江色夜猶明 강색야유명) 해오라기 높이 날아 사라져 가고 (白鳥高飛盡 백조고비진) 외론 돛만 혼자서 가벼이 떠간다. (孤帆獨去輕 고범독거경) 달팽이 뿔 위에서 (自慙蝸角上 자참와각상) 공명(功名)을 찾아다닌 반평생이 부끄럽구나. (半世覓功命 반세멱공명)   복잡한 세속에서 바쁘게 살다가 절 집을 찾아 산에 올랐다. 높이 올라 멀리 보니 마음이 아주 맑고 편안해진다. 가을 산은 이미 낙엽이 다 떨어지고 없다. 잎이 다 지고 없는 텅 빈 가을 산인데, 내게는 그것이 봄 산의 화려함보다 더 좋게 보인다. 멀리 강물이 보인다. 강물 빛은 밤이 되자 오히려 달빛을 받아서 더 희게 느껴진다. 강물을 한밤중에도 달빛 아래서 저렇게 흘러가고 있구나. 저 아래 물가에서 흰 해오라기 푸드득 날개를 치는가 싶더니, 이 한밤에 높이 높이 솟아올라 어디론가 날아간다. 강물 위엔 배 한 척이 바쁜 세상일은 상관도 않겠다는 듯이 가볍게 강물 위를 떠내려간다. 허공 위로 훨훨 날아가 버린 해오라기, 바쁠 것 없어 유유히 떠내려가는 돛단배를 보다가 시인은 갑자기 말도 못하게 부끄러워졌다. 그동안 달팽이 뿔처럼 좁디좁은 세상에서 부귀영화와 권세를 누리겠다고 아옹다옹 다투고 싸우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높이 올라 날아가 버린 것은 해오라기가 아니었다. 홀로 가볍게 떠내려간 것은 돛단배가 아니었다. 정작 날아가 버리고 사라져 버린 것은 내 안에 잔뜩 들어 있던 욕심스런 마음이었다. 속세의 나그네로 들어온 가을 산속에서 그는 비로소 새롭게 태어나 깨끗한 마음을 갖게 된 것이다. 자연은 이렇듯 우리에게 떳떳한 삶의 모습을 일깨워 준다. 일상에 찌들어 풀이 죽어 있을 때, 자연은 인간에게 싱싱한 생기를 불어넣어 준다. 지리산 연못 속에 산다는 그 물고기처럼, 우리도 마음속에 남들에게 보이지 않는 아름다운 무늬를 지니고 살았으면 참 좋겠다. 산을 닮고 나무를 닮고 강물을 닮을 수 있다면 참 좋겠다.    [참고문헌] 정민,『정민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이야기』(2003, 보림), pp. 115-132. [출처]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14> 자연이 주는 선물|작성자 옥토끼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울림이 있는 말   때로는 침묵이 웅변보다 더 힘 있게 느껴질 때가 있다. 시시콜콜히 다 말하는 것보다 아껴 두고 말하지 않는 것이 더 나을 때가 있다. 직접 말하는 것보다 스스로 깨닫게 하는 것이 더 좋다. 시 속에서 시인이 말하는 방법도 이와 같다. 다 말하지 않고 조금만 말한다. 직접 말하지 않고 돌려서 말한다.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대신 스스로 깨닫게 한다. 멀리 함경도 안변이란 곳에 벼슬 살러 가 있던 양사언이 한양에 있던 친구 백광훈에게 편지를 보내왔다. 오랜만에 친구의 편지를 받은 백광훈은 반가워서 편지 봉투를 서둘러 뜯었다. 그런데 편지가 좀 이상했다. 다음과 같이 딱 한 줄, 한문으로는 열두 자만 씌어 있었던 것이다.       삼천 리 밖에서 한 조각 구름 사이 밝은 달과 마음으로 친하게 지내고 있답니다.   옛날에는 편지도 직접 사람을 보내 전달하는 수밖에 없었다. 보낸 편지가 받을 사람에게 도달하는 데도 한 달이 넘게 걸렸다. 그 먼 길에 그렇게 힘들게 보낸 편지인데, 고작 열두 글자만 썼다니 이상하다. 한참 그 편지를 읽어 보던 백광훈은 눈물을 글썽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양사언은 이 편지에서 무슨 말이 하고 싶었던 것일까? 편지의 내용을 다시 한 번 살펴보자. 먼저 그는 삼천 리 밖에 있다고 했다. 그리고 밝은 달과 친하게 지내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이 달은 구름에 가려 보일 듯 말 듯하다. 환한 달빛을 보고 싶은데 구름이 자꾸 방해를 한다. 그는 왜 달빛과 친하게 지낸다고 했을까? 달은 내가 있는 이곳이나 네가 있는 그곳이나 똑같이 뜰 것이다.나는 여기서 너를 생각하면서 저 달을 본다. 너는 또 내가 보고 싶어서 달을 보겠지. 나는 네가 너무 보고 싶은데, 만나 볼 길이 없어서 매일 저 달만 쳐다본다. 그런데 그 달마저도 구름에 가려서 보일 듯 말 듯하니 너무 안타깝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양사언은 백광훈에게 멀리서 나는 네가 보고 싶어 죽겠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길게 안부를 묻고 보고 싶다는 말을 적은 편지보다 훨씬 더 깊은 정이 느껴진다. 이 편지를 손에 들고 달을 올려다보며 친구 생각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을 백광훈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직접 다 말해야만 좋은 것이 아니다. 말하지 않아도 마음으로 통하고, 속으로 고여서 넘치는 정이 있다. 다음은 조선 시대 능운이란 기생이 사랑하는 임을 그리며 지었다는 란 한시다.   달 뜨면 오시겠다 말해 놓고서 (郞云月出來 랑운월출래) 달 떠도 우리 임은 오시지 않네. (月出郞不來 월출랑불래) 아마도 우리 임 계시는 곳엔 (想應君在處 상응군재처) 산이 높아 저 달도 늦게 뜨나 봐. (山高月上遲 산고월상지)   임은 달이 뜨면 돌아오겠다고 약속을 했다. 하지만 저 달이 중천에 이르도록 임은 오실 줄을 모른다. 그녀는 저녁 내내 조바심이 나서 달만 보며 마당에 나와 서 있다. 왜 안 오실까? 저 달을 못 보신 걸까? 혹시 마음이 변하신 것은 아닐까? 조바심은 점차 불안감으로 변해 자칫 그리움의 원망이 쏟아지고 말 기세다. 그러나 그녀는 슬쩍 말머리를 돌렸다. 오지 않는 임에게 푸념을 늘어놓는 대신 오히려 임의 편을 들어 주기로 한다. 아마 지금 임이 계신 곳에는 산이 하도 높아서 내게는 훤히 보이는 저 달이 아직도 산에 가려 보이지 않는 모양이라고 말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임이 내게로 오시지 않을 까닭이 없다. 설령 임이 나와의 언약을 까맣게 잊고 안 오시는 것이라 해도 나만은 이렇게 믿고 싶다. 여기에는 또 혹시 이제라도 오시지 않을까 하는 안타까운 바람도 담겨 있다. 임을 향해 직접적으로 원망을 퍼붓는 것보다 은근한 표현 속에 읽는 이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더 큰 매력이 있음을 느낀다. 황희가 정승이 되었을 때, 공조판서로 있던 김종서는 태도가 자못 거만하기 짝이 없었다. 의자에 앉을 때도 삐딱하게 비스듬히 앉아 거드름을 피웠다. 하루는 황희가 하급 관리를 불러 이렇게 말했다. “김종서 대감이 앉은 의자의 다리 한쪽이 짧은 모양이니 가져가서 고쳐 오너라.” 그 한마디에 김종서는 정신이 번쩍 들어서 크게 사죄하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뒷날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육진(六鎭)에서 여진족과 싸울 때 화살이 빗발처럼 날아오는 속에서도 조금도 두려운 줄을 몰랐는데, 그때 황희 대감의 그 말씀을 듣고는 나도 몰래 등 뒤에서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었네.” 정색을 한 꾸지람보다 돌려서 말한 한마디가 거만하기 짝이 없던 김종서로 하여금 마음으로 자신의 교만을 뉘우치게 했다. 다음은 중국 당나라 때의 시인 이백이 지은 이란 작품이다.   나더러 무슨 일로 푸른 산에 사냐길래 (問余何事棲碧山 문여하사서벽산) 웃으며 대답 않았지만 마음만은 한가롭다. (笑而不答心自閑 소이불답심자한) 복사꽃이 흐르는 물에 아득히 떠내려가니 (桃花流水杳然去 도화류수묘연거) 인간 세상이 아니라 별천지이다. (別有天地非人間 별유천지비인간)   산에서 사는 나를 보고 지나가던 사람이 불쑥 묻는다. “왜 이렇게 깊은 산속에서 사십니까?” 나는 싱긋이 웃기만 하고 대답하지 않았다. 그냥 산이 좋아서 사는 사람에게 산에 사는 이유가 달리 있을 까닭이 없다. 산이 좋은 까닭을 말로 설명할 재주도 없지만, 말한다 한들 그가 알아듣기나 하겠는가? 대답해 주지 않았지만 답답하기는커녕 오히려 마음이 한가롭다. 고개를 들어 둘러보면 강물 위에는 복사꽃이 둥둥 떠내려간다. 인간 세상에는 달리 이토록 아름다운 곳이 있을 것 같지가 않다. 그런데도 그는 나더러 왜 답답하게 산속에서 혼자 살고 있느냐고 묻는다. 나는 웃는 것 외에는 대답할 방법이 없다. 이것은 침묵의 언어가 지닌 힘이다. 추사 김정희의 글에 이런 것이 있다.       작은 창에 햇볕이 가득하여, 나로 하여금 오래 앉아 있게 한다.   책상 하나만 놓여 있는 방안으로 따스한 햇볕이 쏟아져 들어온다. 그 볕이 고마워서 말없이 오래도록 꼼짝 않고 앉아 있었다. 물질의 풍요로움은 비록 지금만 못했지만, 정신만을 넉넉하고 풍요로웠던 선인들의 체취가 문득 그립다. [참고문헌] 정민,『정민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이야기』(2003, 보림), pp. 133-140. [출처]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15> 울림이 있는 말|작성자 옥토끼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간결한 것이 좋다   말과 글은 다르다. 말로 하면 긴데, 글로 쓰면 몇 줄 안 된다. 전화로 하면 한 이야기를 또 하고, 다른 이야기도 하면서 말이 길어진다. 편지를 쓰면 그 많던 말은 다 어디로 가고 없고 몇 줄 쓰고 나면 쓸 말이 없다.글은 말을 간추려 요점만 모아 놓은 것이다. 시는 글을 다시 한 번 더 압축해 놓은 것이다. 시인은 절대로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다. 시에서는 말하지 않는 것이 자세한 설명보다 좋은 점수를 받는다. 시에서는 말을 아낄수록 여백이 더 넓어진다. 구양수는 송나라의 유명한 문장가다. 그는 글을 쓸 때 벽에 붙여 놓고 고치고 또 고쳤다. 마음에 들 때까지 고쳤다. 글을 완성한 뒤에 보면 제목만 빼고 다 고친 경우도 있었다. 그가 처음 글쓰기를 배울 때 일이다.어떤 사람이 비문을 지어 스승에게 보여 주었다. 스승은 다 읽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잘 지었다. 그렇지만 쓸데없는 말이 너무 많구나. 절반으로 줄여 오너라.” 구양수는 스승의 말을 따라 처음 천 글자에 가깝던 글을 힘들게 5백 자로 줄여 가지고 갔다. “많이 좋아졌다. 다시 3백 자로 줄여 오너라.” 구양수는 다시 2백 자를 더 줄였다. 이상한 일이었다. 처음에 천 글자로 썼던 비문을 3백 자로 줄이고 나니,처음보다 나중 글이 훨씬 더 짜임새가 있고 훌륭해진 것이다. 여기서 구양수는 문장을 짓는 방법을 크게 깨달았다. 한시에는 설명하는 말이 없이 단어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꽤 있다. 이달의 라는 시를 보자.   한 줄 두 줄 기러기(一行二行雁 일행이행안) 만 점 천 점 산.(萬點千點山 만점천점산) 삼강 칠택 밖(三江七澤外 삼강칠택외) 동정 소상 사이.(洞庭瀟湘間 동정소상간)   도대체 무슨 말일까? 설명하는 말은 하나도 없고, 단어만 나열해 놓았다. 삼강과 칠택, 동정과 소상은 모두 중국 남쪽 지방에 있는 유명한 호수와 강물의 이름이다. 제목을 보면 김양송이라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그림책을 보고, 그 그림의 빈 곳에 써 준 시임을 알 수 있다. 시인은 지금 그림의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어떤 그림이었을까? 한 줄 두 줄 기러기라고 했다. 그림 속에는 V자 모양으로 줄을 지어 날아가는 기러기 떼의 모습이 있었을 것이다. 만 점 천 점 산이라고 했다. 무수히 많은 산들이 그려져 있었던 모양이다. 삼강과 칠택의 밖, 동정과 소상의 사이라고 했으니, 무수한 산과 들 사이로 많은 호수들이 있었겠다. 그림은 기러기 떼가 산 넘고 강 건너 따뜻한 남쪽 나라를 찾아 날아가는 장면이었다. 멀리 조그만 점으로 기러기 떼를 그려 놓고 다시 그 아래에 산과 호수를 그려 놓았다. 호수가 많은 것으로 보아 중국 남쪽 지방을 그린 것 같다는 말이다. 시인의 생각을 헤아려서 설명을 보태면 이렇게 된다.   한 줄인지 두 줄인지 기러기가 날아가는데 만 점인지 천 점인지 산은 많기도 많다. 삼강과 칠택의 바깥 같기도 하고 동정호와 소상강 사이 같기도 하다.   이렇게 많은 설명이 필요한 것을 시인은 아무 설명 없이 그냥 단어만 늘어놓았던 것이다. 말을 아낄수록 뜻이 깊어지는 것은 현대 시에서도 마찬가지다. 다음은 박목월의 란 작품이다.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다섯 도막의 짧은 시다. 그나마 두 번째와 마지막 연은 내용이 꼭 같다. 저녁 무렵 남도로 가는 길에 어떤 나그네가 걸어가고 있다는 것이 시에서 말하고 있는 내용의 전부다. 하지만 시를 읽고 가만히 눈을 감으면 어떤 풍경이 떠오른다. 지금은 다리가 다 놓여서 나루터에서 배 타고 강을 건너는 모습을 보기 힘들다.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다.나그네는 배를 타고 나루터를 건넌다. 길옆으로 푸른 밀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바람이 일렁일 때마다 춤추는 밀밭은 마치 구름밭 같다. 그 구름밭 사이로 나그네는 마치 일렁이는 달빛처럼 흘러간다. 외줄기 밀밭 길은 끝없이 이어진다. 나그네가 갈 길도 끝이 없다. 그런데도 그는 하나도 바쁠 것 없다는 듯 유유히 걸어간다. 어느덧 건너편 산 너머로 빠알간 노을 불타고 있다. 산 아래 그림같이 예쁜 마을이 보인다. 집집마다 술을 담가 놓고 지나는 나그네가 재워 달라고 하면 따뜻한 잠자리를 내주고, 밥과 술을 내오는 그런 착한 마음씨를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을 것만 같다. 오늘 밤은 저 마을에서 묵고 가야지. 나그네는 마음이 먼저 훈훈해 오는 것을 느끼며 발길을 그리로 옮긴다. 시인은 짧게 말했지만, 시를 따라 가며 그림으로 그려보면 이처럼 많은 설명이 필요하다. 또, 이 시에서 알지 못할 슬픔이 서려 있다. 나그네의 허전한 마음이 내 마음속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 시는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략했던 시기에 지어졌다. 먹을 것을 모두 빼앗기고, 술을 담그기는커녕 끼니도 잇지 못해 풀뿌리를 캐 먹으며 겨우 살아가던 힘겨운 시절이었다. 이렇게 보면 이 시는 실제의 광경이 아니다. 어려운 현실 속에서 인심이 넉넉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사랑과 믿음이 있던 옛날을 꿈꾸듯 그려 본 것이다. 나그네가 찾아오면 재워 주고, 밥과 술을 넉넉히 먹여 보내던 사람들. 그 시절의 인정을 그리워하며 그려 본 상상 속의 풍경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시인이 말을 아끼고 있는 시는 그냥 읽기만 해서는 알 수가 없다. 가슴으로 느껴야 한다. 이런 시는 다 읽고 천천히 음미하고 나면 마음이 훈훈해진다. 말이 많으면 언제나 탈이 난다. 말을 아낄 때 그 말이 가치가 있다. 시인은 말하지 않으면서, 웅변보다 더 큰 효과를 거두려는 사람이다. 좋은 시는 절대로 다 말해 주지 않는다.    [참고문헌] 정민,『정민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이야기』(2003, 보림), pp. 151-158. [출처]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16> 간결한 것이 좋다|작성자 옥토끼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물총새가 지은 시   시인은 시를 통해 사물과 만난다. 이전까지 나와 아무 상관이 없던 사물이 시 속으로 들어오면 문득 달라진다. 나와 사물들 사이에 대화가 오고 가고,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게 된다. 내 마음이 그대로 사물에게 전달되기도 하고, 사물들이 품은 생각이 내게로 옮겨오기도 한다. 다음은 조선 시대 시인인 이경동이 지은 란 작품이다.   피곤한 나그네는 턱을 괴고 누워서 (倦客支頤臥 권객지이와) 날이 다 새도록 시를 짓고 있다. (探詩日向中 탐시일향중) 비취새의 울음소리 한 번 들리니 (一聲聞翡翠 일성문비취) 역창의 동쪽에서 울고 있구나. (啼在驛窓東 제재역창동)   사근역은 경상남도 거창에 있던 역 이름이다. 역은 조선 시대에 나라에서 운영하던 여관이다. 암행어사가 마패를 보여 주고 마패에 새겨진 숫자만큼 말을 빌리던 곳도 이곳이다. 말은 금세 지쳐 먼 길을 못 가므로 역에서 말을 바꿔 타고 가곤 했다. 위 시에서 보이는 나그네는 전날 먼 길을 힘들게 왔던 모양이다. 해가 훤히 떴는데도 이불 속에 누워 있다. 턱을 괴고 있다는 것은 그가 잠이 깨 있었다는 뜻이다. 무언가 생각에 잠겨 있다는 말이다. 그는 아침부터 무슨 생각에 잠겨 있는 걸까? 그는 시를 짓고 있었다. 새벽 이불 속에서 갑자기 시상이 떠올랐다. 그런데 이 시가 될 듯 말 듯 마무리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해가 중천에 떠올라 오는 것도 잊은 채 온통 시에 정신이 뺏겨 있다. 아예 안 될 것 같으면 훌훌 털고 일어나겠지만 금방이라도 될 듯 말 듯 하면서도 막힌 생각이 열리지 않으니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다. 바로 그때 그는 창밖에서 우는 비취새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시인은 저도 몰래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순간 그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동쪽 창이 벌써 환히 밝았던 것이다. “날 샜다. 빨리 떠나거라. 그깟 시 때문에 낑낑대지 말고.” 비취새는 아마도 시인에게 이렇게 말한 것만 같다. 그 순간 신통하게도 시인의 시도 순식간에 이루어지고 말았다. 비취새는 물총새다. 파랑새목 물총샛과 물총새속에 속하는 여름 철새다. 작은 몸에 큰 머리, 길쭉한 부리로 물고기를 잡아먹고 산다. 비췻빛의 푸름을 지닌 아름다운 깃털 때문에 푸른 보석인 비취에 견주어졌다. 물고기 잡는 솜씨가 워낙 탁월해서 대장 어부(kingfisher)라는 영어 이름을 가졌다. 낚시꾼이란 별명도 있다. 모두 뛰어난 물고기 사냥 솜씨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다음 시는 당나라 때 육구몽이란 시인의 물총새를 노래한 작품이다.   붉은 옷깃 푸른 날개 알록달록 고운데 (紅襟翠翰兩參差 홍금취한양참치) 안개 꽃길 날아와 가는 가지 앉았다. (徑拂煙花上細枝 경불연화상세지) 봄물이 불어나 고기 잡기 쉬우니 (春水漸生魚易得 춘수점생어이득) 비바람도 싫다 않고 앉았을 때가 많구나. (不辭風雨多坐時 불사풍우다좌시)   첫 번 구절에서 ‘붉은 옷깃’을 말한 것은 이 새의 앞가슴이 주황색이기 때문이다. 물총새가 물가 나뭇가지 위에 앉아 있다. 봄이 왔고, 물이 불었다. 물고기들이 수면 위로 자꾸만 입을 뻐끔거린다. 비바람에 옷깃이 젖어도 물총새는 꼼짝 않고 앉아 있다. 물고기만 나타나면 곧장 수면 위로 차고 내려 물고기를 낚아채려는 속셈이다. 다음 시는 정약용의 20수 중의 한 수이다.   흰 종이 펴고 술 취해 시를 못 짓더니 (雲牋闊展醉吟遲 운전활전취음지) 풀 나무 잔뜩 흐려 빗방울이 후두둑 (草樹陰濃雨滴時 초수음농우적시) 서까래 같은 붓을 꽉 잡고 일어나서 (起把如椽盈握筆 기파여연영악필) 멋대로 휘두르니 먹물이 뚝뚝 (沛沿揮洒墨淋漓 패연휘쇄묵림리) 또한 통쾌하지 아니한가 (不亦快哉 불역쾌재)   시를 지으려고 종이를 펼쳐 놓고 붓에 먹을 찍었다. 술에 취해서인지 생각이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다. 붓을 들고 한 글자도 쓰지 못한 채 붓방아만 찧고 있다. 창밖은 소나기라도 한바탕 오려는지 잔뜩 흐렸다. 답답한 내 마음과 같다. 한순간 천둥 번개가 우르릉 꽝 하고 친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이 소나기가 퍼붓는다. 그 순간 답답하게 꽉 막혔던 내 생각도 걷잡을 수 없이 터져 나온다. 큰 붓을 움켜쥐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쓸 겨를도 없다. 마구 붓을 휘두르니 여기저기 먹물이 뚝뚝 떨어진다. 답답하던 마음이 시원스레 뚫린다. 앞서는 물총새의 울음소리가 막혔던 생각을 뚫어 주었고, 여기서는 쏟아진 소나기가 내 생각을 열어 주었다. 시에서 이렇게 바깥 사물이 내게로 와서 나와 하나가 되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이것은 시 속에서만 가능한 마술이다. 반대로 시인의 행동이 사물에게로 옮아가는 경우도 있다. 다음은 박은의 라는 작품이다.   베개 베고 시를 얻어 계속 읊조리는데 (枕上得詩吟不輟 침상득시음불철) 마구간에 마른 말이 길게 따라 울음 운다 (羸驂伏櫪更長鳴 리참복력갱장명) 밤 깊어 초승달은 그림자를 만들고 (夜深纖月初生影 야심섬월초생영) 고요한 산 찬 소나무는 절로 소리를 낸다 (山靜寒松自作聲 산정한송자작송)   사실 내가 시를 읊조리는 소리와 말 울음소리, 달빛과 솔바람 소리는 아무 상관없이 동시에 일어난 우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시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자기가 낭랑하게 읊은 시 소리를 듣고 마구간에 지친 말은 갑자기 빨리 길 떠나자고 힝힝거리기 시작했고, 달빛도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디밀고 있으며, 마침내 소나무까지도 소리를 내며 내 목소리에 박자를 맞추더라는 것이다. 보고 듣는 것이 시인의 눈과 귀를 거치고 나면 모두 시의 재료로 된다. 마구간의 말이 말을 건네 오고, 물총새가 시비를 걸어온다. 소나무도 같이 놀자고 하고, 소나기도 내 마음을 알겠다고 한다. 시 속에서는 안 되는 일이 없다. 시인은 하지 못하는 일이 없다.   [참고문헌] 정민,『정민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이야기』(2003, 보림), pp. 159-166. [출처]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17> 물총새가 지은 시|작성자 옥토끼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아비 그리울 때 보아라   옛 여성들은 참으로 힘든 시집살이를 했다. 무서운 시어머니와 어려운 남편을 모시면서 어려운 집안 살림을 도맡아 했다. 그래서 한시에는 시집살이에 대한 한시가 적지 않다. 이번에는 시집살이의 어려움을 노래한 작품들에서 옛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살펴보자.   우리 임을 위해서 누비옷을 짓는데 (爲郞縫衲衣 위랑봉납의) 꽃 기운 때문에 나른하고 피곤해서 (花氣惱憹倦 화기뇌뇌권) 바늘을 돌려 감아 옷섶에 꽂아 두고는 (回針揷襟前 회침삽금전) 앉아서《숙향전》을 읽었답니다. (坐讀淑香傳 좌독숙향전)   이옥의 라는 작품 가운데 한 수인 이다. 시집간 지 얼마 되지 않은 새아씨의 마음을 잘 그려 내었다. 명주 고운 천 안에 얇게 솜을 두어 임이 입으실 옷을 바느질한다. 한 땀 한 땀 정성을 기울여 임을 향한 나의 사랑을 담았다. 한참을 바느질만 하려니까 문득 졸음이 온다. 봄날, 창밖에는 예쁜 꽃들이 피어 있고 바람은 살랑살랑 불어와 내 얼굴을 간지럽힌다. 노곤한 봄날이라 낮잠이 쏟아진다. 계속하다가는 바느질이 고르게 될 것 같지가 않다. 까딱하면 바늘로 손가락을 찌를 것만 같다. 새아씨는 잠시 바느질을 멈추기로 한다. 바늘로 실 끝을 한 번 되감아 홀쳐서 옷감을 저만치 밀려 두고《숙향전》을 꺼내서 읽어 본다. 새아씨는《숙향전》을 수도 없이 많이 읽었을 것이다. 그래도 읽을 때마다 온갖 어려움을 이겨 내고 행복을 되찾는 숙향의 이야기는 힘든 시집살이에 큰 위안이 되었을 것이다. 옛날에는 지금처럼 읽을거리가 많지 않았다. 그나마 모두 한문으로 쓰여 있어서 일반 백성들은 무슨 말인지도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위 시에서처럼 한글로 쓰인 소설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옛날에는 소설책을 지금처럼 눈으로 읽지 않고 귀로 들었다. 목소리가 좋은 사람이 연극배우처럼 여러 사람 목소리를 내면서 소설을 읽으면, 방 안에 여러 사람이 둘러앉아서 바느질을 하거나 새끼를 꼬면서 그 이야기를 실감 나게 들었다. 읽다가 신바람이 나면 소설에 쓰여 있지도 않은 내용을 보태기도 했고, 이야기를 한참 하다가 반응이 신통치 않으면 훌쩍 건너뛰기도 했다. 소설책의 인기가 너무 높았기 때문에 여자가 시집갈 때 가져가는 혼수 품목 중에는 반드시 소설책이 들어 있었다. 소설책 값이 너무 비싸서 살 형편이 못 되는 집에서는 공책을 만들어 소설책을 빌려다가 붓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직접 써서 베꼈다. 이렇게 베낀 소설책을 필사본 소설이라고 부른다. 그 많은 분량의 소설을 다 베껴 쓰고 나면 베껴 쓴 사람은 소설 끝에다 몇 마디씩 베껴 쓰게 된 이유나, 쓰면서 느낀 생각들을 몇 줄씩 써서 남겼다. 다음은《임경업전》이라는 고전 소설의 끝에 누군가가 쓴 글이다.   병오년 2월에 조씨 집안에 시집을 간 딸이 자기 동생의 결혼식을 맞아 집으로 왔다. 《임경업전》을 베껴 쓰려고 시작하였다가 미처 다 베끼지 못하고 시댁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제 동생을 시켜서 베껴 쓰게 하고, 사촌 동생과 삼촌과 조카들도 글씨를 중간 중간에 쓰고, 늙은 아비도 아픈 중에 간신히 서너 장 베껴 썼으니, 아비 그리울 때 보아라.   아버지가 시집간 딸을 위해 소설책을 베낀 뒤에 써 준 글이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딸이 시집갈 때 소설책 한 권도 보내지 못했던 모양이다. 동생, 사촌 동생, 삼촌, 조카까지 동원해서 필사가 끝나 책을 매면서 아버지는 딸에게 편지를 쓰는 심정으로 위의 글을 쓰고 나서 맨 끝에 이렇게 썼다. “아비 그리울 때 보아라.” 이 얼마나 가슴 뭉클한 말인가? 시집간 딸은 이 글을 볼 때마다 아버지가 보고 싶어서 울었을 것이다. 이럴 때 소설책은 단순히 그냥 책이 아니다. 아버지와 딸 사이의 애틋한 정이 담긴 사람의 정표이다. 시집살이가 아무리 고되고 힘들어도 아버지를 생각하면 든든하고 힘이 절로 솟았을 것이다. 부모는 그렇게 뒤에서 자식들의 듬직한 울타리가 되어 주었다. 다시 이옥의 이라는 한시 한 수를 감상해 보자.   새벽 두 시에 일어나 머리를 빗고 (三更起梳頭 삼경기소두) 네 시에는 시부모님께 아침 인사를 올리죠. (五更候公姥 오경후공모) 친정집에 돌아가기만 하면 (誓將歸家後 서장귀가후) 밥 안 먹고 대낮까지 잠만 잘래요. (不食眠日午 불식면일오)   옛사람들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났다. 그래도 새벽 두 시에 일어나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이다. 그때부터 머리를 빗고 단장을 해야지 닭이 울어 시부모님께 인사할 때 단정한 모습을 보일 수가 있다. 잠이 쏟아지지만, 조금만 더 자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다. 그래서 다음에 친정집에 갈 일이 있어 간다면, 밥도 안 먹고 그냥 잠만 자겠다고 다짐했다. 얼마나 잠이 부족했으면 이런 생각을 다 했을까? 예전에는 출가외인이라고 해서 딸은 시집가면 마음대로 친정집에 올 수가 없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보고 싶고 형제들을 만나고 싶어도 만나 볼 수가 없었다. 어려서부터 금지옥엽 귀하게만 자라다가 고된 시집살이들 하자니 가족 생각이 더 간절했겠다. 다음은 이양연의 란 시이다.   자네 친정은 멀어서 오히려 좋겠네 (君家遠還好 군가원환호) 집에 가지 못해도 할 말이 있으니까. (未歸猶有說 미귀유유설) 나는 한동네로 시집와서도 (而我嫁同鄕 이아가동향) 어머니를 삼 년이나 못 뵈었다네. (慈母三年別 자모삼년별)   마을 아낙네 둘이서 주고받는 대화이다. 대화를 나누면서 두 아낙네는 어머니 생각에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을 것이다. 이 대화를 시로 옮겨 놓은 것이다. 옛날의 여성들은 참으로 힘든 시집살이를 했다. 집안의 크고 작은 살림을 혼자 다 감당했다. 그러자니 잠이 늘 부족했고, 겨울엔 얼음을 깨고 찬물에 빨래를 하느라고 손등이 다 얼어 터졌다. 바느질을 해서 식구들 옷을 다 해 입혀야 했고, 농사일도 직접 다 챙기지 않으면 안 되었다. 친정은 집안에 혼사 같은 큰일이 있을 때만 몇 년에 한 번 겨우 다녀올 수가 있었다. 그렇게 힘들고 고단할 때, 그녀들은 이야기책을 읽었다. 주인공들이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마침내 행복을 찾아 가는 이야기를 읽으며, 마치 자기가 소설 속의 주인공이기라도 한 듯 착각을 하며 행복한 상상에 젖곤 했다. 문학은 이렇게 사람들에게 꿈을 주고 희망을 주고 용기를 준다.     [참고문헌] 정민,『정민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이야기』(2003, 보림), pp. 167-176. [출처]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18> 아비 그리울 때 보아라|작성자 옥토끼  
5    構造主義 槪觀 / 曺 惠 蓮 댓글:  조회:1301  추천:0  2019-01-31
構造主義 槪觀   曺 惠 蓮(96207022)   Ⅰ. 여는 글   Ⅱ. 구조주의의 개념과 원리 1. 구조의 개념과 특성   1) 구조란 무엇인가   2) 구조의 특성   3) 구조주의란 무엇인가   Ⅲ. 구성으로서의 구조주의 사상 1. Ferdinand de Saussure의    구조언어학   1) 소쉬르의 생애  2) 구조언어학의 기본원리 2. Lévi-Strauss의 구조인류학   1) 레비스트로스의 생애   2) 레비스트로스의 기본적 사상   Ⅳ. 구성으로서의 구조주의와         지리학과의 관계   Ⅴ. 구조주의의 문제점과      탈구조주의의 등장   Ⅰ. 여는 글   구조주의는 20세기초기에 전통적인 역사주의적 인간 인식에 반기를 들고 나온 언어학자 소쉬르의 〈일반언어학 강의〉에서 출발하여 프라그언어학파, 코펜하겐 언어학파로 그 정통성이 이어지고 발전되어 구조언어학으로 정식화되자 이 언어이론의 원리와 법칙은 반세기를 지난 1960~70년대에 구조주의로 개화되었다. 구조언어학이론은 이때부터 언어학을 벗어나 인간과학 제분야의 향토개념이 되어 신화․설화․문학․영화․TV․심지어는 요리와 의상유행에 이르기까지 그 내재적 구조분석의 기본이 되었다. 물론 그 확산이 일시적인 붐으로 끝나기는 했지만 이 이론을 바탕으로 각 분야에 대한 해석이 새로운 관점에서 시작되는 계기를 마련했으므로 그 영향력은 막강했다고 할 수 있다. 현재도 후기구조주의에서 포스터모더니즘까지 그 기저엔 구조주의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구조주의 자체는 지리학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았지만 구조주의 영향을 미쳤으므로 이 이론에 대한 논의는 필수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는 구조주의의 선구자라 불리우는 소쉬르와 구조주의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레비스트로스를 중심으로 그 시작과 확산을 알아볼 것이다.     Ⅱ. 구조주의의 개념과 원리   1. 구조의 개념과 특성   1) 구조란 무엇인가 (1) 체계와 구조 구조(構造)라는 말은 일반용어로서도 또 학문적인 술어로서도 흔히 쓰이는 말이다. 원래 건축구조물이란 건축용어로 쓰였던 말로 생물구조라든가 심리구조 등 생물․심리학에서도 예사로 쓰이는가하면 경제구조, 유통구조 또는 사회구조 등 사회과학적인 용어로도 쓰이고 있고 심지어 마르크스경제학에서도 상부구조라는 말이 하부구조에 대위되는 말로 쓰이고 있다. 이 구조란 말은 실은 19세기 실증주의에서부터 빈번하게 쓰이는 말로서 막연한 의미로 쓰여오기도 하고 있다. 구조의 어원을 살펴보면 멀리 라틴어의 structura(strutuere〈건조하다〉에서 파생됨)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건조물, 건축물을 나타내는 말이었다. (2) 구조의 개념 구조의 개념은 철학적으로 도는 이념적으로 많은 논의의 대상이 되고 있으나 우선 그 기본적인 개념부터 정밀하게 규정지어 놓는 것이 좋겠다. 구조의 개념은 그 시발점이라고 할 구조언어학에서 조작적 개념으로 형성하는 데 성공했다. 가장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개념은 옐름스레우의 정의이다. ① 내적 관계란 특성을 지닌 이 개념은 언어체계의 내부에서 각 요소의 관계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구조는 무엇보다도 하나의 관계의 망이며 그 관계의 교차가 사항을 규정하여 상대적으로 제사항(諸辭項)을 구성하는 것이다. ② 구조를 규정짓는 관계의 망은 계층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구조라는 하나의 총체는 부분으로 분해할 수 있으며 그 부분들은 부분 상호간에 그리고 그 부분들이 이루고 있는 전체와도 관계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③ 구조가 자율적 실체라 함은 구조가 그보다 큰 총체와의 의존성 또는 상호의존성을 유지하고 있는, 구조 그 자체에 특유한 내적 조직(내재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④ 구조가 하나의 실체라 함은 그 실재론적 지위는 따질 필요가 없고 다만 조작개념을 가능케 하기 위한 하나의 총체라는 뜻이다.   2) 구조의 특성 구조주의는 무엇보다도 인간의 문화활동의 전체성을 파악하는 과학적 방법과 그 사상적 자각으로서의 이념으로서 등장했다. 그것은 대상을 구성하는 제요소간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구체적인 것을 그대로 통합적으로 포착하려는 것이다. 그 전체로서 당연히 주체와 대상에 대한 코페르니쿠스적 전회가 요구될 수 밖에 없다. 곧 인간의 문화활동의 전체성은 시각으로나 촉감으로 감지할 수 있는 구체적인 경험의 장이나 또는 서기자료나 통계적 자료의 장에서는 파악될 수 없고 항상 경험의 배후에 잠재되어 있는 무의식의 세계에서만 포착될 수 있는 것이다. 구조란 계층(階層)으로 이루어진 내적 관계(relations internes)의 자율적(自律的)실체(實體)이다. 피아제(Jean Piaget)에 의하면 구조란 다음과 같은 세가지 기본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1) 전체성 - 첫째로 구조가 실재 속에 숨겨져 있는 전체성을 발견하는 조작개념이라면 그 구조는 전체성이란 요건을 갖추고 있지 않으면 안된다. 전체성의 요건이란 구조를 이루는 제요소가 단순한 고립된 집합상태에 있는 것이 아니고 모든 요소가 불가분의 관계에 의해서 결합되어 있다는 데 있다. 구조를 이루는 실체의 배치는 가치충족적이며 전체성이란 내재적인 통합성을 의미하게 된다. 이 전체성을 이루는 구성요소는 그 배치의 성질 및 각 요소의 성질을 결정하는 고유의 법칙에 따르게 된다. 이러한 법칙은 그 구조내의 구성요소에 대하며, 그 구조를 떠났을 때 각각 가지게 되는 여러 가지 개별적 특성 이상의 전체성을 부여한다. 말하자면 구조의 요소는 서로의 상관관계뿐만 아니라 그 구조가 속하고 있는 총체 또는 전체라는 전체성과도 상관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구조는 단순한 집합과는 다른 것이며 그 구조요소는 구조를 떠나서 구조 밖에 있어도 구조 내에 있는 바와 똑같은 형태로 대립해서 존재할 수는 없고 다만 구조의 전체성에서의 관계의 망에 의해서만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구조가 자기충족적이면서 자기 폐쇄적이라는 것은 그러한 뜻이다. (2) 변환 - 구조는 실재를 산 것으로 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정지적인 것이 아니다. 소쉬르가 정태언어학이라고 한 것은 그 자신이 인정하고 있는 언어의 변화성속에서의 어느 시점에 있어서의 공시적 대립관계를 연구해야 한다는 조작관점이지 언어가 정지상태에 있다는 주장의 표현은 아니었다. 언어의 공시대라는 것은 부동의 상태를 뜻하는 것이다. 그것은 체계의 대립이나 결합에 의하여 결정지어지는 필요에 따라 혁신을 억압하거나 수용하거나 하는 것이다. 구조의 법칙은 단순히 그것이 구조화되는 방향으로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고 구조 자체가 구조화를 행하는 방향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소쉬르는 구조란 말을 쓰지 않고 체계란 말밖에 쓰지 않았는데 그것은 공시적 대립과 공시적 균형의 법칙을 특징짓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다. 이 균형의 개념은 구조의 개념과 결부되어 있다. 어떤 일정한 시점에서 구조는 한 언어의 제사항이 상호간에 유지하고 있는 관계의 총체로 정의되는 것이다. 그 관계란 요소상호간의 결합규칙을 말하는 것으로 따라서 구조는 하나의 균형을 이루고 있다. 그 규칙의 일부, 다시 말해서 관계의 일부에서 일어나는 모든 변화를 일으키게 한다. 그러나 그러한 변화에 대하여 구조는 단순히 구조화되는 수동적 수준에 떨어지지 않고 변환의 절차를 밟아 오히려 균형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변환은 구조화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3) 자동제어 - 구조는 다음과 같은 의미에서 자동제어적이라고 할 수 있다. 곧 구조는 그 변환절차를 유효하게 하기 위해서 그 자체를 넘어선 것에 의존하려 하지 않고 또 그럴 수도 없다. 왜냐하면 언어의 균형성과 같은 구조의 특성은 구조의 불변성을 위협하는 제요소의 대립이나 잘못된 결합을 항상 점검하고 미지의 무수한 제요소가운데서 적합한 것만 선택하여 결합해 가는 기능 곧 자동제어 기능이 있음으로 해서 비로소 구조화작용이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자동제어(自動制御)란 어떤 행위계의 결과를 재도입함으로써 얻어지는 제어방식으로서 반송되는 정보에 의하여 그 계의 작용과 방법을 모델로 바꿀 수 있을 때 이루어진다. 이는 환류활동(還流活動)의 원리로서 이 원리에 의하여 언어는 고도로 발달된 컴퓨터처럼 스스로 기능장해를 제거하는 하나의 능력이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언어도 하나의 자동제어기구라고 볼 수 있다. 넓은 의미에서 언어의 자동제어기능으로서 널리 알려져 있는 예로서는 음성변화에 의하여 어떤 불편한 동음이의가 생겼을 대 이를 제거하는 과정이 그렇다. 언어에 이러한 자동제어기능이 없다면 언어는 상호이해에 필요한 최소한도의안정성을 잃게 될 것이다. 이 안정성을 유지하려는 무의식적인 기능이 공시적 균형을 이룩하게 하고 따라서 공시론적 연구를 가능케 하는 기반이 되는 것이다.   3) 구조주의란 무엇인가 구조주의란 무엇인가? 야콥슨의 언어학, 레비-스트로스의 인류학, 라깡의 정신분석학, 푸코의 인식론, 알뛰세의 정치경제학, 바르뜨의 문예비평 그리고 Tel Quel의 저자들간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결국 구조주의가 언어학에서 출발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으며 우리는 ‘언어적인 것’이라는 개념에서 단서를 잡아야 한다. 언어적인 것에 구조가 있다. 무의식은 그것이 말하는 한에서, 그것이 언어인 한에서 구조를 가진다. 신체는 그것이 징후들을 드러내는 한에서 그리고 그 징후들이 기호로서, 언어로서 읽히는 한에서 구조를 지니는 것이다. 구조주의란, 단순히 표현해서, 결국 세계를 언어로 보는 한에서 성립한다. 사물들은 기호로서, 언어로서 해석된다. 그들은 침묵의 언설을 가지고 있다. 구조주의는 플라톤 이래의 인간의 강렬한 욕구인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자 하는 꿈을 사물의 기호(記號)와 구조를 드러냄으로써, 인식의 어떤 형식적인 측면을 포착함으로써 이루고자 한다. (1) 구조주의의 특징 ① 상징적인 것(le symbolique)에서 찾을 수 있다. 구조주의 이전의 철학자들은 그들이 다루는 존재를 크게 실제적인 것과 상상적인 것으로 나누곤 했다. 실제적인 것과 상상적인 것의 대립에 대해, 때로 그들의 상보성에 대해 논하고 했다. 이들 사이에 복잡한 관계에 대한 틀 내에서 초험적 통일성과 경계선상의 긴장 그리고 상호간의 융합과 날카로운 대립을 발견할 수 있다. 구조주의의 발견 중 가장 첫 번째의 것은 실제적인 것과 상상적인 것과는 전혀 다른 제 삼의 질서로서의 상징적인 것의 발견이다. 우리가 언어에서 발견하는 실제적 차원, 즉 말의 시각적 모양과 청각적 감각의 차원 그리고 상상적 차원, 즉 우리가 그 말에 연결시켜 생각하는 이마쥬나 관념이 아닌 제 삼의 차원 즉 그 말의 구조적 차원을 발견함으로써 현대언어학은 시작되었다. 「상징적」이라는 개념을 직접적으로 다루었던 사람은 쟈크 라깡이었다. 정신분석학은 라깡에 의해 언어학과 접속된다. 「무의식」이라는 개념은 19세기 프랑스심리학이 다룬 중심주제중 하나였다. 프로이트가 공헌한 점은 이 무의식에 어떤 의미(意味)를 부여했고 따라서 해석의 여지가 있는 것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라깡에 따르면 무의식 역시 결국은 하나의 언어일 뿐이며 언어인 한에서 그것은 구조를 지니는 것이다. 무의식은 이제 언어학적 기초를 가지게 된 것이다. 보다 더 들어가 말하면, 구조는 요소로서의 상징적인 것은 생성의 원리로 이해된다. 실제적인 것과 상상적인 것 외에 상징적인 것의 존재에 대한 강조는 구조주의의 첫 번째 특성인 것이다. 구조주의자들은 「보는 것」과 「표상하는 것」외에 비가시적인 어떤 것을 「읽어내기」를 원하는 것이다. ② 구조의 국소적인(local), 위치에 관련해서의 특징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구조의 요소들은 외적인 지시에 의해서도(실제적인 것) 내적인 의미작용에 의해서도(상상적인 것) 밝혀지지 않는다는 것을 말했다. 구조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필연적으로 그리고 유일하게 「위치」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이때의 의치란 실제공간에서의 위치도 아니며 상상적 공간 속에서의 위치도 아니다. 그것은 구조적 공간 속에서의 위치이며 본질적으로 위상적topologigue)이다. 이 공간 속에서 중요한 것은 외정으로서의 거리가 아니라 이웃관계인 것이다. 사물이 있음으로써 구조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구조가 있음으로써 사물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유희와 극장에 대한 구조주의적 선호가 나타난다. 레비 스트로스의 유희이론, 라깡의 유희에 대한 은유들, 알뛰세는 실제의 극장, 관념의 극장이 아닌 자리와 위치의 순수한 극장을 말한다. 이런 맥락에서 유명한 구조주의적 표현이 나온다 : ‘사유하는 것, 그것은 주사위를 던지는 것이다.’ 결국 구조주의는 최근 형태의 유물론이며 무신론, 앙띠 휴머니즘이다. 신(神)은 죽었고 이제 인간(人間)도 죽었다. 내가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위치가 나를 통해 말하는 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고 말한 데카르트에 대해 라깡은 다음과 같이 반론한다: “내가 사유하는 그곳에 나는 있지 않고, 내가 있지 않은 그곳에서 나는 사유한다”(사유(思惟)와 존재(存在)의 불일치(不一致))」 ③ 「변별적인 것」과 「단일한 것」을 들 수 있다. 언어의 경우에 있어 감각적 소리와 말에 연결된 이마쥬 외에 또 하나의 요소를 음소(音素)라 한다. 음소는 문자나 그 소리에 구현되어 있지만 그와 구별되어야 한다. 이 음소는 그것이 속하는 관계체계 내에서 다른 요소들과 함께 상호 동시적으로 결정되는 것이다. 어떤 영역에 구조가 존재하는가라는 물음은 상징적 요소들, 변별적인 요소, 단일한 점들의 유무에 따라 대답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것들이 비가시적인 것들이라 할지라도 그들은 가시적인 것들에 구현되어 있으며 가시적인 것들을 넘어 이들을 읽어내야 하는 것이다. ④ 「분화시키는 것」과 분화를 들 수 있다. 구조는 필연적으로 무의식적이며 모든 구조는 하부구조, 미시구조이다. 그것은 실제적이지도 않고 허구적이지도 않다. 그러면 현실적이지도 가능적이지도 않다면 그것은 어떤 존재인가? 야콥슨이 말했듯이 음소는 문자나 음절, 그 소리 등과 또는 그에 연결되는 관념들과 동일시될 수 없을 것이다. 아마 구조 혹은 이론의 대상을 가장 적절히 가리킬 수 있는 말은 잠재성일 것이다. 잠재성은 직접적인 실재성과는 다른 그 나름대로의 실재성을 가지고 있다. 또 그것은 추상적이지도 않은 나름대로의 관념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잠재성으로서의 구조는 현실적이지 않으면서 실제적이고 추상적이지 않으면서 관념적이다. 구조 속에는 모든 것이 잠재적으로 공존한다. 그중 부분적인 조합이 현실화되는 것이다. 구조를 밝힌다는 것은 모든 현실적 존재 이전에 존재하는 모든 잠재성을 밝히는 것이다. ⑤ 구조의 계열적인 특성을 들 수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구조의 반쪽만을 논의해 왔다. 그러나 구조가 실제 작동하기 위해서는 요소들이 계열을 이루어야 한다. 모든 구조는 복수계열적이다. 우리는 음소와 형태소의 구분을 상기할 수 있다.     Ⅲ. 구성으로서의 구조주의 사상   -Ferdinand de Saussure 의 구조언어학과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인류학을 중심으로- 구조주의사상은 구성과 과정으로 양분된다. 구성으로서의 구조주의사상은 소쉬르, 레비스트로스, 푸꼬에 이르는 사상이고 과정으로서의 구조주의사상은 맑시즘의 토대위에서 성립되었다. 구성으로서의 구조주의에서 관찰되는 현상들이란 인간의식에 선천적으로 각인된 심층주고의 표현이라고 간주하는데 비해서 과정으로서의 구조주의는 그 현상들이란 기저에 눌린사회구조의 표층이며, 그 사회구조의 토대는 물질적 존재 조건위에 놓여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의 구조와 전에 말한 심층구조를 연결시키려는 시도는 전혀 없다. 구성구조주의와 과정구조주의간에는 다음과 같은 차이점이 있다. ☞과정구주조의에 따르면, 변형은 자연적 수준에서보다는 차라리 사회적 수준(하부구조, 토대)에서 발결되는 구조에 속한다. ☞과정 구조주의에 의하면, 구조는 본질적으로 끊임없이 변형되는 것이라고 한다. 위와 같은 차이점으로 인해 접근방식에서도 상이한 면이 많다. 여기서는 구성으로서의 구조주의에서 구조주의의 시조인 소쉬르와 구조주의의 아버지인 레비스트로스에 대해서 논하겠다.   1. Ferdinand de Saussure의 구조언어학   ☞즈네브대학의 선사(先師)소쉬르(1857~1913)는 스스로가인구어의 역사언어학을중심과제로 하는 소장문법학파의 밭에서잘 약관 21세인 1878년에 「인구어 모음의 원초체계에 관한 논고」라는 독창적인 논물을 발표한 천재적인 학자였으나 그는 인구어뿐만 아니라 세계의 다른 언어학의 조류에 대해서도 널리 관시믈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일체의 언어현상을, 19세기가지의 인문․사회과학의 일률적인 방법에 회의를 품고 언어 자체의 형식적 체계화라는 과학적 분석의 방안을 강구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나온 것이 「일반언어학강의」라는 책인데 이 책은 오늘날의 과학적 언어학의 발전에 헤아릴 수 없는 중요성을 부여하게 되고 소쉬르 이후의 언어학 논의치고 소쉬르이론을 들먹이지 않는 것은 없다시피할 정도로 크게 영향을 끼지게 된다. 소쉬르의 영향이 가장 직접적으로 미치기 쉬운 불어사용권에 있어서는 소쉬르이론에 대한 발전적 논의가 저조했던 데 비겨 1920년대에는 프라그학파1)에서, 그리고 1930년대에는 코펜하겐학파2)에서 소쉬르의 일반언어학이론이 구조주의언어학으로 먼저 정립되고 다시 후술하는 것처럼 프랑스에서는 그 뒤에야 구조언어학으로, 그리고 1960년대에 들어서야 그 폭발적인 구조주의의 유행을 맞이하였다는 것은 역사의 장난이랄까, 적이 기이한 느낌마저 들지 않을 수 없다.   1) 소쉬르의 생애 소쉬르는 1857년 11월 26일 프랑스에서 이민온 즈네브의 위그노 신교도 가정에서 태어났는데, 그 집안은 대대로 과학자가 많이 배출된 명문집안이었다. 이러한 과학적 가문은 그 자체가 자랑할 만한 것이었고 그것을 이어가야 하겠다고 생각할 만한 환경이었다. 그런 환경때문인지 소쉬르가즈네브의고등중학교를 졸업하고 1875년에 즈네브대학에 들어갔을대 가족의 과학자적 전통에 어울리게 처움에는 물리화학을 전공으로 택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놀라울 정도로 조숙하여 그러한 조숙성이 어릴 때부터 두드러져서 다방면에 관심을 쓰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그는 신학, 과학, 법률 등 여러 방면의 강의를 듣기도 했다. 이러한 과학적 교양과 다방면에 걸친 그의 관심이 그의 일반언어학에 관한 이론을 형성하는데 크게 이바지 했을 것이다. 그후 소쉬르는 파리언어학회에서 적극적인 활동을 하면서 명성을 남긴다. 그러나 그는 다시 즈네브로 돌아와 대학에서 강의하는 것 외에 논저를 발표하지 않는 등 활동이 점점 줄어들게 된다. 소쉬르는 이 무렵 언어학에 대해 권태를 느끼고 있었는데 언어학연구의 근본적인 것에 회의를 느낀듯 하다. 그러니까 언어활동의 연구에 있어서의 개념을 명백히 세우는 일 한마디로 말해서 일반언어학의 이론의 기초를 확립하는 일에 고심하고 있었다는 그이 고뇌의 편린이 여기저기 나타나있다. 소쉬르의 즈네브대학에서의 제자들은 그들의 선제의 이 겸손하면서도 전대미문의 독창적인 강의 〈일반언어학강의〉를 그 스승에 대한 무한한 존경심과 애정으로써 자기들이 필기한 노트를 면밀하게 정리하여 재현시켜 스승의 족적을 남기게 한 것이요, 그것이 오늘날 바로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는 소쉬르의 「일반언어학강의」이다.   2) 구조언어학의 기본원리 오늘의 구조주의적 사조의 대부분은 그의 업적에 바탕하고 잇다. 소쉬르는 전통적인 관심, 즉 세계는 독립해서 존재하는 대상물로 되어 있어서 정밀하고 객관적인 관찰과 분류확 가능하다는 관점을 이어받았다. 언어학적 견지에서 말하면, 이러한 관점에서는 다음과 같은 언어관이 생긴다. 즉 언어는 「낱말」이라고 하는 분리독립해 있는 단위의 집합으로서, 그것의 하나하나는 각자에 부착되어 있는 독립된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그것의 전체는 통시적 즉 역사적 차원에서 존재하는데, 이런 것이 언어를 관찰가능한 그리고 기록이 가능한 변화법칙에 따르도록 한다라는 견해인 것이다. 소쉬르가 이룩한 언어연구에서의 혁명적인 공헌은 언어를 「실질」로 보는 견해를 배척하고 「관계적」이라는 견해를 취하게 된 일인데, 이것은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은 인식방법에서의 더 큰 변화에 긴밀히 연관되는 발상의 전환이었다. 또 언어는 개개의 부분이라는 견지에서 그리고 통시적인 관점에서 뿐만 아니라 그 부분들 상호간의 관계라는 견지에서 그리고 공시적 관점에서, 다시말하면 그 언어의 현시점에서의 타당성이라는 견지에서도 연구되어야 한다고 제언했던 것이다. 소쉬르가 언어연구에서 공시적 연구를 통시적 연구로부터 뚜렷하게 구별한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하게 주장한 것은 중대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 데는 언어가 걸어온 역사적 경위의 인식도 그러하거니와 지금 현재 통용되고 있는 구조상에 대한 인식도 요구되었기 때문이다. 소쉬르의 독창성은, 언어가 하나의 전체적 체계로서, 그 한순간 전에 무엇인가가 그 체계에 변화를 주는 일이 있었을지라도, 언제나 그 순간마다 완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강조했던 일이다. 즉 각 언어는 그 역사적 경위와는 상관없이 그 언어를 지금 말하고 있는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음성의 체계라는 점에서 온전히 정당하게 존재하고 있으며, 그들의 호언은 사실상 그 언어의 현재의 모습을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소쉬르는 언어현상 전체의 고찰을 언어가 지니는 두 개의 기본적 차원에서 진행시키고 있다. 즉 랑그(langue)라는 측면과 빠롤(parole)이라는 측면에 대해서이다. 그가 행한 이 양자간에서의 변증법적 구별은, 언어학 전반의 발전 특히 구조주의의 발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 뒤에서 더 자세히 다루기로 하겠다. 또한 인간은 언어를 고안하고 구사하는 특성을 가진 짐승이라고도 말해질 수 있는데 이 언어라는 것은, 구별이 뚜렷한 기호와 이 기호가 변별적으로 연관되는 분명한 개념 즉 「의미」와의 사이에 맺어지는 대응관계에 의해서 성립되는 복잡한 체계 또는 구조인 것이다. 아마도 우연이기는 하겠으나, 현실세계의 사회적 교류에서는, 음성기관이 언어의구체적 실현의 주된 수단 방법이 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에 있어서, 자연스러운 것은 입으로 행하는 말이 아니고, 언어 즉 각각 다른 개념에 상응하는 구별있는 기호의 체계를 구성하는 능력이다. 이 「고유의 언어능력」이라는 능력은 실제로는 여러 가지 기관의 기능을 넘어서서 존재하는 것이며, 「기호를 지배하는 더 보편적인 능력」이라고 생각되어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기호를 조립하는 그 능력이 언어에서 생성하고 있는 것은, 현실적 물리적 의미에서는 듣지도 보도 못하는 것이나, 실제의 인간의 발화에서 순간적으로 노출되는 것에서 연역적으로 추측이 가능한 더 큰 구조라고 생각할 수 있다. 따라서 랑그라는 것은 「언어능력의 사회적 산물인 동시에, 개인이 그 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해부는 사회단체에 의해서 채용되고 있는 필요한 약정의 집합」인 것이다. 그러니 빠롤은 물위에 나타나 있는 빙산의 일각이며, 랑그는 그것을 받쳐주는 그리고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에 다같이 느껴지면서도 결코 그 자체는 모습을 나타내지 아니하는 더 큰 빙산덩어리인 것이다. 언어는 만져볼 수 없는 것이며 또 결코 그 전체 모습을 한꺼번에 드러내는 일이 없고, 개개의 학자에 의해서 그 목록의 일부분이 불완전하게 운용되는 데에서만 모습을 나타낸다. 이 사실은 소쉬르 이후의 현대언어학의 앞날에 결실이 풍부한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다시 말하면, 개개의 발화와 이해의 목표가 되고 또 전체가 되고 있는 체계화된 관계에 의해서 이루어진 완전한 패턴을 기술하고자 하는 방향이 그것인데, Noam Chomsky와 같은 더 최근의 언어학자가 제안하는 수정된 용어를 사용해서 말하면, 그것은 개개의 「언어운용」에 앞서서 존재하는 그리고 그 언어운용을 「생성」하는 「언어능력」의 체계를 설명하는 방향인 것이다. 언어운용이나 빠롤은 패턴이 없고 체계적인 긴밀성도 없어서 혼질적인 것으로 보이는데 이것에 앞서서 있는 언어능력이나 랑그는 균질적인 것으로 보인다는데 대해서는 놀라울 것이 없다. 즉 그것은 분명히 알아 볼 수 있는 구조를 나타내고 있다. 언어는 결국 「낱말이라는 자료적인 실질」에 내재하는 것이 아니라, 더 크고 추상적인 「기호의 체계」안에 있다는 것이다. 낱말들은 이 체계의 지엽말단일 뿐이다. 실제로 「기호 및 기호들의 관계가 언어학의 연구대상」이며, 기호 및 기호들간에서의 관계의 본질도 역시 구조적인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언어기호는, 그 「개념」과 「청각이미지」, -혹은 소쉬르의 저서에서 유명해진 용어를 사용한다면, 소기(signifie)와 능기(signifiant)라는 두 측면간에 존재하는 관계라는 견지에서 특징지어질 수 있다. 「나무」의 개념(즉 소기)과 「나무」라는 낱말의 청각이미지(즉 능기) 사이에 있는 구조적 관계는 이렇게 해서 하나의 언어기호를 구성하며, 언어는 이들 언어기호에 의해서 성립된다. 즉 언어는 「관념을 표현하는 기호의 체계」인 것이다. 언어는 기본적으로 청각적 체계이므로, 능기와 소기의 관계는 시가의 흐름을 통해서 성립된다. 그림은 그것에 포함되어 있는 복잡한 요소들을 동시에 제시하고 병치해서 보여줄 수 있으나 입으로 행하는 발화는 그런 종류의 동시성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그 요소는 그 자체로서 유의적인 어떤 순서나 연쇄에 따라서 제시되어야 한다. 요컨대 능기와 소기의 관계의 양은 비록 사소하게 이기는 하나, 본질적으로는 계기적인 성질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 관계의 전체적인 특징은, 이미 보았던 바와 같이 임의적이라는 것이다. 「나무」라는 청각이미지 즉 능기와 그것에 수반되는 개념 즉 소기, 그리고 지상에 실제로 자라고 있는 물리적인 나무 사이의 연결에는 아무런 필연적인 적합성도 존재하지 아니한다. 「나무」라는 낱말에는 요컨대 「자연 그대로인」 혹은 「나무다운」성질이 없다. 그러니 언어의 구조를 떠나서는 「현실」에서의 연결을 보증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언어기호는 바로 그 임의성 때문에 쉽게 변하지 않게 되어 있다. 소쉬르가 말하는 것처럼, 「어떠한 문제라도 논의되기 위해서는 합리적인 근거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언어기호의 임의성은 「합리적」이 아니다. 그래서 그것의 타당성을 고려하거나 논의한다고 해도 얻는 것이 없다는 의미에서, 토론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기호는 그냥 존재하는 것이다. 영어의 tree 대신 다른 어원에서 온 낱말인 arbre(프랑스어), baum(도이치어), arbor(라틴어), 혹은 제멋대로 만든 낱말인 fnurd를 더 좋아할 이유는 정녕 없는 것이다. 어떠한 것도 다른 것보다 더 적절하다거나 혹은 더 「합리적」이거나 하지는 않다. 나무라는 낱말이 따위에서 자라고 있는 잎이 있는 물리적 물체를 의미하는 것은, 그 언어의 구족 그 낱말에 그 물체를 의미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될 때, 비로소 그 낱말은 그 효력을 인정받게 된다. 이렇게 되면, 언어는 인간이 세계를 이해함에 있어서, 강한 보수적인 힘으로 작용하게 된다. 또한 언어는 자기충족적인 「상관적」구조의 가장 좋은 예가 되는 것이다. 그것은 구성부분은, 그 구조의 테두리 안에서 통합되지 않는 한은, 아무런 의미도 지니지 못한다. 소쉬르가 말하는 것처럼, 「언어는 상호의존적인 사항의 체계인데, 여기서 각 사항의 가치는 다른 사항들이 동시에 존재함으로써만 얻어진다」 이처럼 언어는 그 모든 측면이 「관계에 바탕하고」있는데, 만일 그렇다고 한다면 이들 관계중에서 두 개의 차원이 특별한 중요성을 띠고 있다. 소쉬르는 그것을 언어기호의 연합적 관계와 동시적인 상합적 관계인 것으로 제시하고 있다. 능기이든 소기이든간에, 언어에는 언어체제 이전에는 관념도 음도 존재하지 않으며, 다만 그 체계에서 비롯하는 개념적 및 음적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렇게 보았을 때, 언어는 최종적으로, 「형식이고 실질이 아니다」로 판단되어야 한다. 즉 언어는 내용을 가지고 있는 항목의 집합이 아니고, 오히려 양식을 가지고 있는 구조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자기중심적이고 자기 조절적인 형식은, 우리 이외의 세계를 만나서 그것에 대처해가는 우리의 독특한 수단이 되고 있는 터이므로, 그 형식은 아마도 특유한 인간구조를 구성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간다면, 아마도 이 형식은 또 인간현실의 특징적인 구조가 되리라는 논의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2. Lévi-Strauss의 구조인류학   1) 레비스트로스의 생애 끌로드 레비-스트로스(Calude Levi-Strauss)-예술가의 아들이며, 랍비의 손자인-는 1908년에 벨기에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4년에 양친을 따라 베르사이유로 갔다. 그는 이 시기 이전에 대해서는 거의 기억이 없다고 말한다. 그는 내성과 사색과 독서에 심취하면서 고독한 유년시절을 보냈던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그가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는 바에 따르면 그는 혼자 걸으면서, 또한 그가 수집했던 여러 잡동사니들-그가 짜맞추기(bricolage)라고 부르는 돌멩이들, 자갈들, 식물들(그는 “모자이크”의 조립을 의도했다)-의 본성에 관해 사색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그는, 그러한 활동들이 자신의 지질학에 대한 관심을 자극했고, 후에는 자신의 구조주의 이론에 영향을 주었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그는 훨씬 더 늦게까지도 과학도가 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는 얼마 동안 파리에서 법률을 공부했기 때문이다. 그는 1932년에 철학교수자격시험에 합격했고, 고등학교의 교사로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1934년에 상파울로 대학의 인류학 교수자리가 주어졌을 때, 그는 그것을 거절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 직책은 브라질의 내륙지방을 수시로 여행할 수 있는 기회를 그에게 제공해 주기 때문이었다. 그 지역에서 그는 많은 원시 종족들을 연구했는데, 그들은 그가 훗날 발전시켰던 아이디어들을 그에게 제고해 주었다. 1939년에 그는 군복무를 위해 프랑스로 돌아왔으나 파리가 함락되자 뉴욕으로 갔다. 이곳에서 그는 신사회 연구원에서 강의했고, 야콥슨과의 친교가 도화선이 되어 구조언어학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그 결과 1945년에는 「뉴욕 학단 연구지」에 ‘언어학과 인류학에서의 구조적 분석’이라는 논문을 기고하기도 했다. 종전이 되어 이 학원이 종신 재직 조건을 그에게 보장해 줄 수 없게 되자, 그는 파리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는 1955년까지는 「슬픈 열대」를 저술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 책은 여행담이라든가 답사보고서라기보다는 지적인 재구성물 이라고 할 수 있다. 선택된 기억과 경험적 지역 탐사와 과학적 연역이 묘하게 조화된 「슬픈 열대」는 뜻밖에도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렇지만 만일 그 책이 1950년대 중반에 출판되지 않았더라면, 그와 같은 즉각적인 호응을 얻지는 못했을 것이다. 회상들과 해석들, 관찰과 사색, 사실과 자유연상이 혼합된 이 민족학적 자서전은, 「친족의 기본구조」와 같은 레비트로스의 친족 이론과 그의 신화론「신화의 구조적 연구」를 부상시켜 주었고 정당화해 주었다. 또한 이 학문적 저작들은 사변적 관념들을 상당한 정도의 과학적 지위로 올려놓았고 다시 이 관념들은 「야만적 사유」와 4권으로 된 「신화학」에서의 새로운 개척을 위한 발판을 마련해 주었다. 아무튼 이 초기 저작들을 통해 그는 꼴레쥬 드 프랑스의 명망있는 교수가 되었으며, 그곳에서 그는 그이 이론적 탐구들을 확장하여 남북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신화연구를 구체화했다.   2) 레비스트로스의 기본적 사상 위와 같은 이론들은 검토하는데 있어서 다음과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첫째로, 신화들을 체계화하려는 레비스트로스의 시도-즉 여러 가지 경우의 모든 신화들은 그 문화와의 관련 속에서 말해야 한다는 시도-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채 진행중인 과업이다. 레비스트로스의 접근 방식에 있어서 기초적인 가정들은 미국의 대부분의 체계 이론들과 판이하다. 후자의 경우 관찰 가능한 자료들만 취급하고 정신의 무의식적인 구조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둘째로 “과학적”이라는 개념의 불어 용법은 미국에서의 용법처럼 경험적 증명과 연결된 것이 아니다. 셋째로 프랑스 저술가들은 전통적으로 개인적 경험들을 역사 해석에 적용해 왔다. 이상과 같은 지적 습관들이 합쳐져서 매우 암시적인 언동 형식이 발생하게 되었으며 또한 그로 인해 레비스트로스의 초기 이론들에 관한 다양한 해석들이 가능할 수 있었다. 레비스트로스는 종종 사변적인 관념들을 사실들에로, 과거의 반성들을 현재의 가정들에로 변형시킨다. 그는 지질학과 정신분석학과 마르크스주의를 자신의 “3명의 연인들”이라고 주장함으로써 개인적 경험과 지적인 해석의 혼합을 정당화한다. 예를 들어 소년 시절의 레비스트로스는 어떻게 식물들이 상이한 토양에서 자라는가라든가 혹은 어떻게 상이한 시대의 유물들이 암석의 복잡한 퇴화과정 속에 스며들었는가와 같은 문제에 주목했었기 때문에, 인류학자로서 레비스트로스는 모든 지각에는 과거의 경험이 스며들어 있다는 점과, 따라서 지각은 “시간과 공간을 뒤섞는…한 순간의 활동하는 다양성 속에서 계속 존재한다”는 점을 사색한다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다음과 같은 생각을 받아들인다면, 즉 역사가들의 역사와는 달리 지리학자와 정신분석학자들이 보는 역사는 물리적이며 정신적인 우주의 근본적인 속성들을 시간 밖에서 - 차라리 일종의 활인화의 방식으로 -구체화하려 한다는 생각을 받아들인다면 역사란 재수집될 때 현재의 일부가 된다는 레비스트로스의 사상에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반역사적인 조망이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유쾌할 리는 없었다. 이는 특히 레비스트로스가 다음과 같이 생각했을 때 더욱 그러했다. 즉 레비스트로스에 의하면 “마르크스주의는 지리학 및 정신 분석학과 동일한 방식으로 진행된다…이 세가지는 모두, 이해란 한 형태의 현실을 다룬 형태로 환원시키는 것이라는 사실과 아울러, 문제는 항상 이성과 감각적 지각 사이의 …관계에 기인하기 때문에…참된 현실이란 결코 가장 명백하게 나타난 현실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라는 것이다. 한편 레비스트로스에게는 네 번째 애인이 있다. 그것은 음악인데 음악의 영향은 「날것과 익힌 것」에 잘 나타난다. 비록 그가 후에는 그 영향력을 감소시켰던 것으로 보이지만, 그는 다양한 경우의 종족 신화들이 음악의 보표처럼 읽혀질 수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그의 방법론 속에 음악의 3차원적 성격을 구체화했다. 「날것과 익힌 것」과 「벌거벗은 인간」의 종절은 음악적 주제들의 주변에서 형성되었다. 야콥슨에 의해 구조언어학이 소개되자 레비스트로스는 소쉬르의 언어연구를 모든 언어적 기호들의 구성 요소들 사이의 , 언어 체계와 개인의 언어표현사이라든가 청각이미지와 개념사이의 역동적 관계를 제시하는 하나의 자족적인 체계로 간주하기 시작했다. 레비스트로스는 바로 그 기본적 이원론 위에 야콥슨의 음성학적 분석 모형을 얹어 놓았다. 아큡슨은 구조언어학을 통해 언어구조란 항상 대칭적 구성들의 두갈래 길을 따른다는 사실을 증명하려 한다. 레비스트로스는 야콥슨의 구조언어학의 발견을 계시에 비유했으며, 그 발견으로 인해 언어학 뿐만 아니라 인류학과제반 사회과학이 대변혁을 받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레비스트로스는 음소 체계에 관한 야콥슨의 연구를 친족 구조에 관한 자신의 연구에 반영시켰다. 그러나 그에 병행하여 음소적 방법이 단순하게 인류학적 분석으로 전치될 수 없음을 환기시켰다. 대신에 그 방법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허용할 수 있도록 다듬어져야 한다. 즉 인류학에 있어서 미시 사회학적 분석에 의해 발견되는 법칙들은 거시 단계에 적용될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예컨대 친족 체계에 있어서 용어법의 체계와 예법의 체계 혹은 명명법의 체계와 사회 조직의 체계간에는 커다란 차이점들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비스트로스는 이들 모든 체계가 상징적이라는 점에서 모두 유사하다고 말한다. 따라서 레비스트로스의 입장에서 볼 때 직접적인 경험적 관찰만으로 설명될 수 있는 현상이나 친족체계는 없으며, 오히려 그것들을 언어학에서처럼 상징적 제관계의 집합들로 취급되어야 한다. 거시단계에서 이 상징적 관계들은 언어와 문화 사이에 존재하며, 종족 사회들 내에서 그것들은 신화의 형태로 표현된다고 한다. 모든 기지들의 신화들이 신화의 구조적 법칙에 의해 발견되고 따라서 현재의 무질서에서 질서정연한 분석이 뒤따르게 될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자연에서 문명으로서의 전환이 어떻게 관습의 변화와 병행될 수 있었는가를 그는 보여줬는데 예컨대 음식을 날것으로 먹지 않고 익힌 것으로 먹는다든지 또는 손대신 식기류가 등장하는 것 등이다. 이런 예들은 단지 신화의 공통 요소를 설명하려거나 아니면 그것의 구성단위를 보이려고 하는 가정에 불과했다. 예컨대 두 편의 보로로족 신호는 문화의 출현을 한 공동체의 대학살과 대등한 것으로 나타내고 있기 때문에 “자연”에서 “문화”로의 전환은 항상 신화의 사상 그대로 “연속적인 것”에서 “불연속적인 것”으로서 전이에 대응된다. 그러나 레비스트로스는 항상 신화의 분석은 그것의 용어 혹은 내용의 분석 그 이상의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므로 구조들을 파악하는 작업은 일종의 문화에 대한 심리분석이다. 또한 계속해서 신화의 구조적 “법칙들”을 발견함으로써 마침내는 옛날 이야기들을 과학으로 변형시킬 것이라고 공언했다. 구조주의의 이러한 대계획이 성공을 거든다면 원시적이고 무의식적 단계에서 모든 사람의 유년기의 환상이 신성시 될 것이다. ※사르트르의 레비스트로스 비판 사르트르는 레비스트로스를 공격한 첫 번째 인물인데 무의식의 세계를 부정한 사르트르에게 레비스트로스의 무의식적 정구조들은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그는 또는 레비스트로스의 방법이 관념의 진리를 논증하는 방법론적인 동어 반복에 불과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레비스트로스는 현상학과 실존주의를 주고나성의 환영에 사로잡힌, 참된 사유에 반대되는 것으로 무시했다. 역사를 보는 관점에서도 전통적인 진화론 혹은 발전 이론을 무시했다. 사르트르의 변증법은 인간과 그의 환경 그리고 인간의 이 주위 환경들과 관계하여 의식적으로 행위하는 과정들 사이에 있기 때문에 레비스트로스의 변증법과 대립된다. 실존주의자의 “표면”은 구조주의자의 “심층”과 대비된다.     Ⅳ. 구성으로서의 구조주의와 지리학과의 관계   실증주의나 인간주의와 마찬가지로 구조주의가 지리학에 도입된 것도 역시 다른 사회과학을 통해서였다. 구성구조주의를 인문지리학의 연구에 적용시키려는 시도는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다. 구성구조주의 중에서도 다만 Piaget의 연구만이 지리학에 영향을 미쳤을 뿐이다. 그의 발달심리학에는 아동의 공간 및 기하학적 지식을 어떻게 습득하는가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Piaget의 실험에서 제시된 바에 의하면 아동의 공간관 발달에는 4단계가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연구결과는 지리학적인 연구에 큰 영향을 주지는 못하였다. 몇 사람의 연구자들은 아동이 어떻게 지리적 지식을 획득하는가라는문제에 관심을 가졌지만 그들의 연구 역시 구조주의적 설명양식보다는 그 패턴에 관심을 가졌던 실증주의적 경향이 강하였다고 할 수 있다. Piagetian적 연구의 잠재가능성은 분명히 주목할 만한 것이지만, 진정으로 구조주의적 연구라고 할만한 것은 비교적 극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반면 과정구조주의는 경제지리, 정치지리 등 많은 지리분야에 영향을 미쳐 구성구조주의와 대조적이라고 할 수 있다.   Ⅴ. 구조주의의 문제점과 탈구조주의의 등장   1. 구조주의의 문제점   구조주의는 그 특성 자체가 처음부터 스스로의 숙명적인 해체요인이 되어왔다. 왜냐하면 구조주의는 우선 개개의 텍스트들의 특성과 가치는 무시한 채, 전체적인 〈구조〉만을 중시함으로써 개체를 전체에 종속시키는 전체주의적 독설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언어의 구조가 리얼리티를 창조하는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한 문학작품의 의미가 작거나, 독자의 개인적 경험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개인을 지배하는 언어체계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주장하였다. ☞ 구조주의는 보편적인 〈구조〉, 〈문법〉, 〈구문〉또는 〈법칙〉을 찾아내고 수립하려는 과정에서 스스로 경직된 과학적 이론이 되고 말았다. ☞ 구조주의는 하나의 구조, 하나의 체계를 분리해 내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역사를 무시하는 비역사적 태도를 보이게 된다. ☞ 구조주의의 이와같은 태도는 자연히 자아나 주체나 개인의 사유를 인정하지 않고 모든 것을 객관화시키는 비인본주의적․비실존주의적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 구조주의에 의하면 〈구조〉는 곧 모든 것의 기원이나 센터가 되며 〈개체〉에 대해 특권을 부여받은 존재가 된다. ☞ 구조주의는 비록 지시어와 지시대상의 사이가 필연적이 아니고 임의적이라는 것을 인정했지만, 궁극적으로는 언어의 재현가능성을 믿었던 직관주의에 근거하고있다. 다시 말해, 구조주의자들은 모든 것의 근본이 언어체계로 설명될 수있다고 믿었는데 언어체계는 곧 기호체계이기 때문에 구조주의는 자연기호학적 특성을 띄게 되었고, 더 나아가 기호의 재현능력을 결코 의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2. 탈구조주의의 등장3)   구조주의가 등장한지 불과 몇 년이 채 되지 않은 1960년대 후반에 이미 강력하게 부상하기 시작한 탈구조주의는 위에 지적한 구조주의의 6가지 특성을 모두 비판하면서 등장했다. 하지만 탈구조주의가 구조주의 밖에서 나왔다기보다는 오히려 그 내부에서 스스로의 잘못을 발견한 사람들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보는 편이 더 타당하다. 탈구조주의는 구조주의의 단순한 연장도 아니지만 동시에 그것의 완전한 배제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전체적인 〈구조〉보다는 〈개체〉의 존엄성과 자유를 인정한다. ☞사고의 경직화 및 문학과 학문의 과학화를 배격하며 인본주의적 태도를 지향한다. ☞역사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역사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표명하며, 과거를 향수가 아닌 탐색의 대상으로 취급한다. ☞자아와 주체를 중요시한다. ☞절대적인 진리나 센터나 근원의 독선과 횡포를 거부하며 이분법적 사고방식으로부터 탈피하여 〈타자〉를 인정하고 포용한다. ☞모든 기호와 그것들의 재현능력을 불신한다. [출처] [공유] 구조주의 개관 ①|작성자 옥토끼  
4    구조언어학 댓글:  조회:1270  추천:0  2019-01-31
퍼온 글임 구조언어학        서론       인류학은 구체적 관심 분야가 어떠한 것이든 지간에 인간의 고유한 속성인 인간성이 어떻게 자연과 대립을 이루거나 또는 조화를 이루면서 하나의 문화 속에서 인간성의 특질을 표현하고 있는지를 탐구하는 것이다. 레비스트로스의 연구도 인간정신을 보편적으로 입증하는 사실들을 추출해 내려는 것이다. 레비스트로스는 무의식의 구조적 측면을 통해서 인간의 정신에 접근하려고 했는데, 그의 접근 방식은 심리학을 통해서라기 보다는 구조언어학을 통해서 였다.   레비스트로스는 저명한 구조주의 언어학자였던 야콥슨과 학문적인 대화를 통하여 구조언어학의 방법론을 습득하였으며, 그 성과로서 1954년에는 야콥슨과 공동으로 이라는 논문을 집필하였다. 이를 통하여 레비스트로스는 구조언어학의 영향을 받았다.   레비스트로스는 인간정신의 구조와 사회관계의 복합적인 전체는 현대언어학의 방법론을 응용하여 가장 적절히 연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실제로 그는 현대의 구조주의 언어학, 특히 야콥슨의 이론으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았다. 즉, 그는 모든 문화현상은 하나의 언어라는 견해를 세련시켰다. 문화에 대한 그의 이미지는 하나의 구문으로 표현될 수 있는데, 이 구문의 이해를 통하여 우리는 특정한 의식, 교환, 신화 등의 인간행위를 음운으로서 분석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분석은 서로 다른 종류, 혹은 서로 모순적인 요소들의 진실한 상호관계를 나타내어 준다. 구조언어학의 경우처럼 레비스트로스의 인류학은 사회현상의 각 요소는 오직 내재적인 수준에서만 의미를 지닐 수 있다고 간주하였다. 따라서 그는 모든 문화를 하나의 의사전달 부호로 간주하고, 모든 사회과정을 하나의 문법으로 취급하는 것이다.     실제로 인류학에 있어서의 주요한 가정이나 방법은 역사적인 이론체계들로부터 파생된 것이다. 레비스트로스에 대한 적절한 이해를 이해서는 그의 구조인류학이 영향을 받고 있는 루소, 뒤르켐, 마르크스, 프로이드 등의 학자들의 이론에 대한 재인식이 필요하며, 나아가 구조언어학의 기본적 특성을 파악해야 할 것이다.1)   위의 내용을 근거로 구조주의의 이해에 있어서 구조언어학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구조언어학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하였다. 또한 구조주의가 레비스트로스에게 어떠한 영향을 받았는지도 알아본다.        본론    1. 구조언어학의 연원    언어학이 독자적인 학문이 되기 이전에는 언어의 진화문제가 사람들의 의식에 크게 떠오르게 되었고 18세기말부터 19세기에 거쳐 언어의 기원에 관한 여러 가지 억설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로나 비교언어학과 사적언어학이 발달함으로써 언어의 신빙성을 잃게 되고 그 여세를 몰아 언어의 연구는 주로 언어의 역사적 연구로 흐르게 되었다. 제언어의 역사적 연구는 다시 언어 자체의 구조와 진화에 관한 일반적인 문제를 제기하게 되고 그것을 규명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그 결과 특히 20세기 초두 이래로 새로운 기초 위에서 언어의 일반적인 성격에 관한 연구가 추진되게 되었다. 제언어의 공통된 원리에 관한 이러한 고찰은 일반언어학을 탄생시키게 되고 그 연구과정에서 언어가 지니고 있는 체계적인 구조와 기능 문제가 구명되기에 이르러 구조언어학이 발생하게 되었다.   소쉬르는 스스로가 인구어의 역사언어학을 중심과제로 하는 소장문법학파의 밭에서 자라 1878년에 라는 독창적인 논문을 발표한 천재적인 학자였으나 그는 인구어 뿐만 아니라 세계의 다른 언어학의 조류에 대해서도 널리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일체의 언어현상을 19세기까지의 인문사회과학에서 지배적이었던 역사주의 관점에서 언어의 역사적인 변천에만 설명하려던 비교문법이나 소장문법학파의 사적언어학의 일률적인 방법에 회의를 품고 언어 자체의 형식적 체계화라는 과학적 분석의 방안을 강구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언어의 역사적 연구를 포기했다기 보다는 과학적 언어학 이론을 정립하기까지, 그래서 언어의 전면적인 개혁이 이루어 질 때까지 사적언어학적인 방법은 당분간 보류하고 언어의 본질과 그 기능에 대한 기본적인 성찰을 선행시켜야 하겠다는 학문적 입장에서 서게 된 것이다.   소쉬르의 그러한 언어에 대한 기본적 성찰의 결실이 나타난 것은 1907년, 1908-1909년 그리고 1910-1911년의 세 번에 걸쳐 즈네브대학에서 행한 라는 강좌에서 였다. 이 강의의 원전은 오늘날의 과학적 언어학의 발전에 헤아릴 수 없는 중요성을 부여하게 되고 소쉬르 이후의 사람들에게 크게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2)    2. 구조언어학의 대두     구조주의는 1960년대에 프랑스에서 폭발적인 유행사상으로 등장했다고 했지만 구조주의 인식방법이 시대적, 사상사적 배경에서 역사주의의 오류에 대한 하나의 뼈아픈 반성으로 너무나 올바르게도 또 그릇되게도 제인간문화의 사상에 적용되기 시작했다는 뜻이지 구조주의라는 과학적 이데올로기가 그 때 처음으로 창시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구조주의는 사회과학적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넓은 의미에 있어서의 방법론으로서 하나의 선작관념임을 먼저 인식하고 들어가야 할 것이다.   구조주의는 실상 소쉬르의 에서 배태된 것이다. 인간문화 사상 중에서도 두드러지게 인간 문화적인 언어연구에 있어서 19세기의 언어학이 사적언어학 및 비교언어학 또는 언어계통론 등으로 하나같이 역사적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한 회의를 품은 나머지 역사의 어느 시점에 있어서의 언어상태를 정태적이고 공시적인 관점에서 하나의 체계로서 파악하자는 데서 구조언어학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독창적인 인식방법은 같은 불어문화권인 즈네브와 프랑스에는 바로 계승되지 못하고 도리어 1920년대, 30년대에 체코슬로바키아의 프라그언어학파 그리고 이윽고 덴마크의 코펜하겐학파에 의하여 계승하여 구조언어학의 구조가 잡혀갔던 것이다.   구조언어학의 원리를 언어가 아닌 다른 인간문화사상, 특히 민속학적, 문화토템현상 등의 원초적 인간문화 현상에 대한 새로운 조명을 한 것이 유명한 레비스트로스였다. 그의 연구는 이미 1940년대부터 남미의 원시부족에 대한 현지조사에서부터 구조주의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1960년대에 와서부터 역사주의를 불신하게 된 지적 상황이 그 타개구로서 찾은 것이 레비스트로스와 같은 구조언어학의 원리에 여타 인간문화사상에 대한 적용으로 일시에 꽃피게 된 것이다.3)    3. 구조언어학의 기본원리들    1> 랑그(langue)와 빠롤(parole)    의 편집자들은 양분법으로부터 시작하려고 하였는데, 그것은 이로부터 소쉬르의 언어학의 제반 원리가 생겨났기 때문이다. 이는 랑그(언어의 공동체가 수용하고 있는 기호체계)와 빠롤(발화체를 말하거나 이해하기 위해 랑그를 사용하는 개인적인 행위)의 구별이다.   소쉬르는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바의 이러한 구별을 훨씬 나중에 가서야 행했지만, 그는 언어의 기본적인 요소들을 찾아내려고 오랫동안 노력했던 것이다. 그런데 언어학의 대상은 아주 다양하고 잡다한, 따라서 물리적인 면과 심리적인 면, 그리고 정신적인 면을 지닌 전체로서의 언어활동이 될 수는 없다. 방언적 차이, 역사적 변화, 개인적 오류, 이 모든 것은 언어활동에 속하지만 이 언어활동에 고유한 것을 분리해 내려는, 즉 발화체를 있는 그대로 취하려는 우리의 시도를 성공적인 것으로 만들어 주지는 못할 것이다. 따라서 발화의 의미에 본질적이지 못한 우연한 사실들(역사적, 방언적, 문제적인 것들)을 모두 제거해야 한다. 즉 빠롤을 제외하면 우리에겐 “언어학의 전적이고도 동시에 구체적인 대상”인 랑그가 남게 된다. 그 당시까지 언어학은 랑그의 정체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에 의하면 언어학은 진정하고 유일한 대상을 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요약하자면 언어활동은 모든 언어현상에 적용된다. 소쉬르는 언어활동을 랑그와 빠롤로 나누었고, 그렇게 구별함으로써 그는 언어의 체계적이고 사회적인 면과 우연적이고 개인적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구별했다. 랑그는 또한 언어의 공동체가 수용하고 있는 기호들간의 관계의 체계이다. 반면 빠롤은 말하고 듣기 위해 이 랑그를 이용하는 행위이다.4)     2> 공시태와 통시태    소쉬르 이전의 언어학은 주로 언어의 역사적 변천을 기술하는데 시종되어 왔다. 이에 비겨 언어상태를 일정시기에 있어서의 기능작용의 측면에서 고찰할 때 이를 공시태라고 한다. 다시 말해서 언어를 일정시기에 있어서 정태적인 체계로 고찰하는 것이 공시론이며 그 특정한 시기에 기능하는 체계로서 정지상태로 간주하여 연구하는 사실이 공시적 사실이라고 일컬어진다.   언어의 활동을 랑그와 빠롤로 구별한 후 소쉬르는 또 하나의 구별을 하였다. 소쉬르는 언어에 있어서의 공시적 연구와 통시적 연구를 구별하고 공시론에 있어서의 기술을 강조했다. 그의 생각으로는 공시태란 일정시기에 체계를 구성하는 것으로 간주된 언어 사실의 총체인 동시에 언어를 일정시기에 체계를 구성하는 것으로 고찰하는 관점을 나타내는 용어이다. 그러나 냉정히 생각해 보면 언어의 모든 현상은 항상 역사적 인자와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에서 구체적으로 공시적 사실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공시태란 어떤 사실을 기술하고 설명할 경우에 어느 특정한 언어의 상태에 속하는 것 이외에는 고려밖에   둔다는 방법론적 관념을 나타내는 것이다.   통시태란 언어의 사실이 진화의 면에서 분석되는 체계로 간주된다. 통시론에 의하여 언어사상을 역사적 어느 시점에서 다른 시점으로 이르는 계기적 연속 곧 그 변화의 족적을 살필 수 있다. 소쉬르에 의하면 통시론은 첫째로 언어학자가 선택을 자유로이 할 수 있는 입장의 하나이며 공시론과 대립되는 것이다. 통시론의 관점에서는 통시론의 연구 전체가 공시적 체계의 역사적 설명이며 통시적 사상은 그 언어가 겪은 변화이다. 따라서 통시태는 공시태의 계기적 연속이며 소쉬르의 생각으로는 이 계기적 연속만이 언어의 진화를 설명할 수 있는 것으로 간주되었다.5)     3> 능기와 소기    소쉬르는 언어를 기호의 체계라고 생각했다. 기호는 음성표현인 능기(의미하는 것)와 의미내용인 소기(의미되는 바)의 두 측면을 본래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언어기호에 있어서는 그 기호의 음성과 그것이 전달하는 개념을 분리시킬 수는 없다. 말하자면 능기가 없이는 소기가 없고 소기가 없이는 능기도 없다. 소쉬르는 이 능기와 소기의 불가분의 관계를 종이 한 장의 표리에 비겼다. 능기와 소기의 관계는 종이와 같이 이면과 표면을 떼낼 수 없는 것과 같이 기호의 두 측면이란 불가분의 것이라고 주장했다.6)     4> 가치    언어의 가치의 개념도 소쉬르에 의하여 고안된 것인데 이 가치의 개념이야말로 구조분석의 중심개념이다. 언어기호의 소기는 낱말의 대립에서 오는 차이에 의하여 규정될 따름이지 기호의 자의성의 원리에 따라 기호의 능기 자체는 적극적으로 어떤 소기와 자연적이거나 필연적인 관계는 없을 것이다. 소쉬르는 언어를 화폐와 비교했는데 이유는 화폐는 다른 것들과 관련해서 가치를 갖기 때문이다. 가치로서의 기호는 자의적이다. 기호와 실재 세계의 사이에는 관계가 없다. 단어 (그런데 이 외의 어떤 다른 음성들의 배열은 안 된다)가 네 바퀴 달린 자동차를 지시하는 유일한 이유는 그것이 그렇게 사용된다는 사실에 모든 사람이 동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호의 체계는 일종의 사회계약으로서 기능을 행하고 있는데 그것은 동일한 음성 즉 사고의 연합이 모든 화자들의 뇌리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pere(아버지)와 mere(어머니)는 p와 m의 대립에 의해서만 소극적으로 한쪽은 어머니가 아닌 아버지요, 또 한쪽은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 차이에 의해서 언어의 가치가 생기는 것이다.7)    4. 구조언어학의 제법칙    1> 내재성의 원리    소쉬르는 라는 기본적인 견해에서 그러한 특성을 가진 언어를 대상으로 하는 언어학의 자율성을 강조했다. 이러한 소쉬르의 주장을 옐름세우는 다시 문제삼아 내재성의 원리라는 형식으로 재정립하였다. 내재성이란 언어가 그 체계 속에 내유하고 있는 그 나름대로의 특유한 자율적인 관계를 말하는 것으로서 언어학의 대상은 어디까지나 언어이며 따라서 언어의 언어외적 사실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은 언어기술의 동질성에 편견이 개입될 우려가 있으므로 이를 일체 배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첫째 언어전달에 있어서의 기능작용을 통하여 실현되는 언표는 내재성의 원리에 따라 그 언표의 내적 특성에 의해서만 분석되어야 한다. 이러한 내재성의 원리에 의하면 하나의 언표는 모든 역사적 과정은 배제하고 그 자체가 자기 폐쇄적 구조로서 규정되어야 한다.   바로 이 내재성의 원리에서 소쉬르가 제기한 기본적 개념규정의 하나인 공시태와 통시태의 구분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공시론 같은 언어공동체의 집단의식에 의해서 인지되는 바 언어의 체계를 이루는 동시에 공존하는 제사항간의 논리적, 심리적 관계를 고찰하는 것이고 이에 비겨 통시론 같은 집단의식에 의하여 인지되지는 않으며 체계를 이루지 않으면서 서로 교체되는 계기적인 사항들의 관계를 고찰하는 것이다.   둘째로 내재성의 원리는 언어와 언사의 구분이 이론적 근거로서 그야말로 내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언사는 언어연구의 자료체의 역할을 하게 된다. 다시 말하자면 언어에 있어서의 여러 가지 분석절차가 적용될 수 있는 자기 폐쇄적인 원전으로서 그것이 바로 언어기술의 자료체가 된다는 말이다.8)     2>관여성의 법칙     관여성의 개념은 원래 프라그학파의 음운론에 의하여 도입되었다. 애초에는 어떤 표가 이에 대비되는 다른 요소와 구별되고 그럼으로써 언어전달을 가능하게 하는 특성을 말한다. 이러한 특성을 관여적 특징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넓은 의미에서 관여성이란 언어학자나 기호학자가 어떤 선택된 대상을 어떤 한 관점에서만 기술하는 입장을 말한다. 기호학자는 어떤 주어진 자료체에서 관여적이라고 생각되는 요소를 추출하는데 있어 비관여적이라고 생각되는 요소를 배제하고 작업에 임하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는 관여성은 과학적 기술의 필수적인 규칙 중으로 통용되고 있으며 이 규칙에 따르면 관여성은 어떤 대상의 가능한 관여적 특징 중에 일정한 관점에서 정의를 내리기에 필요하고도 충분한 특징밖에 고려하지 않는 과학적 태도와 입장을 일컫게 된다. 따라서 그 대상은 같은 수준에 있는 다른 대상과 혼동되어서는 안된다.   구조분석에 있어서 관여성은 어떤 선택의 형으로 특징 지워진다. 그 선택이라 함은 선택된 언어요소 자체의 차이로 말미암아 체계의 분절을 구성하고 전달을 가능케 하는 선택을 말한다.9)    5.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     앞에서 우리는 구조언어학의 발생과 기본적인 몇 가지 사항들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소쉬르의 사상은 언어학뿐만 아니라 여러 방면에 영향을 끼쳤다. 들뢰즈는 구조언어학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바 있다. 구조주의는 야콥슨의 언어학, 레비스트로스의 인류학, 라깡의 정신분석학, 알뛰세의 정치경제학, 바르뜨의 문예비평 등의 다방면에 영향을 주었지만 결국 언어학에서 출발한다라고 했다. 이 중에서 구조언어학이 레비스트로스에게 어떻게 영향을 주었는가를 알아보기로 하자.    1> 신화 연구에서의 구조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는 야콥슨의 언어학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레비스트로스는 2차대전 중에 뉴욕에서 야콥슨을 알게 되었고, 그 결과 WORD의 제2호의 한 논문에서 트루베이코츠의 음운론의 원리를 친족체계 연구에 적용했다. 레비스트로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음운론은 사회과학에 대해서, 예컨데 핵물리학이 전체 자연에 대해 가졌던 혁신적인 역할과 같은 역할을 반드시 할 수 있다.”   소수의 기본 규칙과 이들의 변형으로 사회조직을 표상하는 작업은 신화 연구에서 그 극치를 이룬다. 이 신화의 분석은 양분대립체계를 이용함으로써 야콥슨의 영향을 엿볼 수 있다. 이 양분 대립은 몇몇 기본적인 대립(남성/여성, 밤/낮)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이들의 적용이 일반화 될 때는 아주 경직된 것처럼 생각된다.   레비스트로스는 그의 분석이 너무 형식주의적이라고 비난을 받기도 하지만, 그 자신은 프로프(Propp)가 에서 형식과 내용을 완전히 분리했다고 비판하고, 나아가서 “소쉬르 이후 모든 언어체계에서 인정된 시니피에10)와 시니피앙11)의 상보성”을 무시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는 형식주의와 구조주의를 구별한다.   은 이 형식과 관계가 없는 실질과의 대립에 의해 정의된다. 그러나 는 독자적인 내용이 없다. 왜냐하면 구조는 내용 그 자체이며, 실제의 속성으로 간주되는 논리적 조직 내에서 파악되기 때문이다.   신화라는 의사소통 체계 내에서 “동일한 요소들은 차별없이 시니피앙과 시니피에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기호는 시니피앙과 시니피에의 결합에 의해 랑그의 차원에서 생성된 것이므로, 상위의 차원, 즉 신화에 의미작용을 부여하는 차원의 시니피앙이 될 수 있다. 이 두 차원에서의 기능작용은 많은 기호체계의 속성이며, 이로 인해 언어와 여타 기호체계들이 구별된다.   구조주의를 문학에 최초로 적용한 것은 레비스트로스와 야콥슨의 분석이다. 야콥슨에 의하면 시란 구조화가 아주 심한 언어라고 한다. 레비스트로스와 함께 그는 보들레르의 소네트에 내재한 구조를 설명하는 규칙들을 발견하려고 노력했다. 이 분석은 문학비평계의 대논쟁의 서막을 알리는 것이었다. 1966년 미셀 리파테르의 이 소네트에 대한 논평은 이들의 분석을 비판하고 능가하려는 것이었다. 동시에 그는 구조주의적 방법을 문학비평에 적용시키는데서 파생되는 점을 명석하게 해설하고 있다.12)    2> 친족체계의 구조    모든 사회는 친족체계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누구와 결론할 수 있느냐, 또는 일반적으로 누구와 결혼할 수 없는가 하는 문제에 관해서 가족관계의 일반적 성격을 규정한 일련의 규칙이다. 레비스트로스는 같은 사회에 있어서의 다른 유형의 전달체계인 친족체계와 언어란 것이 실제로는 같은 무의식적 구조에 의하여 생성되고 있다는 근거에서 이러한 친족의 체계 내지 구조는 그것을 가지고 있는 사회의 언어의 구조와 상동적이 아니겠는가 하는 가설에서 출발한다.   그 어떤 경우에도 인간문화현상의 특질을 결정하는 것은 그 현상자체의 어떤 내부적 양상이 아니고 현상의 구성 요소간의 관계라는 것이 구조주의의 기본적 원리이다. 레비스트로스는 로만 야콥슨이 음운론을 전개한 구조적인 방법에서 영감을 얻어 친족의 기본 구조가 가지고 있는 광범위한 표의작용에 대하여 새로운 조명을 해볼 수 있었다. 특히 그는 인류학에서 늘 문제가 되어 오던 부모사촌혼에 있어서의 여자의 교환과 숙질관계의 구조를 분석했다. 곧 여태까지의 역사주의적 인류학의 방법은 부모, 숙부, 숙모 등 친족의 명칭의 체계와 그들 상호간의 애정이나 반발이라는 친족의 체계의 두 개의 수준을 혼동하여 이를테면 다수의 미개사회에서 볼 수 있는 외숙과 생질간의 특수한 관계를 모계제사회의 유물처럼 보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에 대해 레비스트로스는 구조주의적인 갚은 통찰을 통해 그 부당함을 지정하였다.13)   결론    지금까지 구조 언어학에 대해서 그리고 구조주의 언어학에 관련하여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이 글을 쓰면서 구조주의에 대해서 깊이는 아니지만 이 책 저 책 뒤적거리다가 구조주의에 대하여 많은 글들을 보게 되었다. 를 읽으면서도 구조주의는 단지 레비스트로스가 연구하는 인류학에 대해서만 한정되어 있는 줄 알았는데 실상 구조주의는 당시 여러 방면에 영향을 끼치고 있었던 사상의 한 조류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러한 구조주의가 다름 아닌 언어에서 부터 시작되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는 단순하게도 한 책에 의존하여 ‘구조언어학’이라는 단어가 그냥 끌려서 손을 댔는데 다행히 끝마칠 수 있어서 기쁘다.   이 글은 소쉬르의 를 많이 참조했으며 소쉬르를 중심으로 하여 작성되었음을 밝혀 둔다. [출처] [공유] 구조언어학|작성자 옥토끼    
3    황지우 시론 댓글:  조회:1085  추천:0  2019-01-31
황지우 시론 ​ ※해체시란? 언어가 현실을 그대로 재현할 수 없다는 불신에서 출발하여 기존 전통시의 형태를 파괴한 일련의 전위적 실험시이다. 해체시는 1차 세계대전 이후 등장한 시의 새로운 흐름으로 우리나라에서도 1980년대 들어 박남철, 황지우 등 많은 시인들에 의해 시도되고 있다. ​ ​   '우리에게 문학은 무엇인가' 했을 때 '우리'는 원초적 의사소통이 가능한, 이러한 간주관적인 자장권을 가리킨다고 나는 말하고 싶다. '우리'는 말하자면 '의미 공동체'이다.   의미공동체 = 일종의 역사 공동체. 역사를 공유하여 표현, 단어의 의미도 함께 공유한다.   ex) 아, 오월 → 5.18       아, 삼월 → 3.1     문학은 의사소통의 일종이며 이게 되려면 의미공동체(역사,문화 공동체)가 전제되어야 한다.   ​ 문학은 '열린 개념'이기 때문에     열린개념? - '한마디로 규정해낼 수 없다'라는 뜻이다. 즉, 공동체가 문학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각기 다르다. 시란, 하나의 시의 개념정의가 다르기 때문에 다른 시에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없다.       시는 말하는 것과 말하지 않고 남겨 두어야 할 것,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즉 텍스트와 콘텍스트로 되어있다. 우리는 텍스트를 읽으면서 그것의 기화된 어떤 상태, 어떤 마성을 띤 뽀얀 에테르 상태의 콘텍스트를 통과한다.시적인 것은 이같은 에테르 상태를 경험하면서 겪게 되는 의식의 화학적 변화에 의해 주어진다.  나는 시를 쓸때, 시를 추구하지 않고 '시적인 것'을 추구한다.… 그것들의 관계를 나는 응시한다.     시적인 것= 시가 될 수 있는 것들. 이 세상의 모든 대상이 시가 될 수 있다. 모든 것은 시적인 것들이 될 수 있고 그것들의 관계를 주시한다.  시적인 것 A와 B의 관계를 중시한다.       나에게 시는 '시적인 것'의 '보기'(창조가 아니다!)에 의해 얻어진다.   시적인 것은 창조가 아니다.원래 있는 것들의  관계를 보고 시를 창조한다.    그러면 시적인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 그것은 모든 그때그때의 시속에 있다. … 시적인 것의 포착은 '그것을 어떻게 쓸 것인가' 까지의 포착이기 때문이다. 내용 자체가 형식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때그때의 내용이 그때그때의 형식을 가져다 준다.   변한 내용이 형식이다. ex) 해체시.   시가 자기 표현, 즉 자기 노출로써 얻어졌던 낭만주의자들에게 시적인 것은 자기가 주관적으로 느낀 성질로 받아들여졌다. …우리가 시적인 것을 이해하고 체험하는 속사정을 자세히 보면 시적 인 것의 개념 자체가 주관과 주관 사이에 열려 있는 공통감각, 즉 상식의 배관을 지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나의 시적인 것이 그의 시적인것과 일치할 수 있을까?   낭만주의자들에게 시적인 것은 '주관적'인것. * 그러면 주관을 버리지 않고 소통하는 방법은?   나는 시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혹은 느끼고 표현했는데 읽는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거나 느끼지 않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또 실패한 시들이 대개 그렇다. 하지만 나 한사람만을 제외한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시적인 것으로 느껴주지 않는 시적인 것이 있을 수 있을까? 없다. 없는 이유는 그와 같은 시적인 것이 없기때문이 아니라 아무리 비시적인 것으로 혹은 덜 시적인 것으로 보인다 할지라도 그것을 시적인 것으로 느껴줄 몇몇 사람은 이 세상에 꼭 있기 때문이다. 시적인 것의 수준과 감수성에 따라 시적인 것을 느낀다. 한 개인의 피부 속에서만 필연적으로 시적인 것은 그것의 인식론적인 이유에서가 아니라 존재론적인 이유에서 무의미하다.   나만 이해되는 시는 무의미하다. 시란 의사소통의 일종이다. 간주관성= 완벽한 주관주의 ,극단적 객관주의 둘다 아니다. 주관과 주관사이의 공통감각. 이것을 시 쪽으로 가져오는 것.   읽히지 않고 이해되지 않고 해석되지 않는 작품은 무의미하다.   ↑황지우의 시에 대한 생각.    어느 경우든 문학은 현실에 이미 참여되어 있다.   황지우는 문학은 사회속에 참여 되어있다고 본다. 사회, 정치 이런것들의 참여. 문학은 순수해야! 가 아니라 사회에 대한 참여이며 문학은 사회성을 띠어야한다.     매스컴은 반커뮤니케이션이다. 인간의 모든것을 부끄럼 없이 말하는, 어떻게 보면 좀 무정할 정도로 정직한 의사소통의 전형적인 문학은 따라서, 진실을 알려야할 상황을 무화시키고 있는 매스컴에 대한 강력한 항체로서 존재한다. '문학은 근본적으로, 표현하고 싶은 것을 표현할 뿐만 아니라 표현할 수 없는 것, 표현 못하게 하는 것을표현하고 싶어하는 욕구와 그것에의 도전으로부터 얻어진 산물이기 때문이다.   매스컴 = 일방적으로 전해질뿐. 표현할 수 없거나 금지된 것을 표현하는 것이 문학이다.   다시 말해서 나는 시에서, 말하는 양식의 파괴와 파괴된 이 양식을 보여주는 새로운 효과의 창출을 통해 이 침묵에 접근하고 있다. …일상의 거의 모든 프로토콜을 마치 처음 본 것처럼 아주 '낯설게'느끼도록 하는 효과에 나는 치중한다.   내용이 곧 형식이다, 파괴를 양식화 한다.       문학은 혁명에 관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조짐에 관여한다. 그리고 문학은 반혁명에 관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정치에 관여한다. 문학은 징후이자 진단이 아니다. 좀더 정확히 말해서 징후의 의사소통이다. 작가는 독자로 하여금 그 징후를 예시받을 수 있게 하는 것으로 그쳐야한다. 그래서 독자가 단순히 읽는 것이 아니라 그 징후의 내적 의미를 '자발적으로' 해석하고 재구성 할 수 있게 해야한다. 바로 이것이 해방을 예시하는 방식이다.      문학은 사회의 징후를 보여줄 뿐. 혁명이라는 진단을 내리는 것은 아니다! 시는 혁명의 도구가 아니다. 사회가 어떤 상황인지 보여주는 것에서 끝나야한다.   (* 이게 민중시들과 엇갈리는 부분!! 문학은 사회적이다! 라고 했지만..80년대의 민중시, 민중문학을 했던 사람들(박노해 등)과 엇갈리는 부분이다. 문학은 혁명의 관여가 아닌 그 조짐에 관여하는 것이다. 김남주와 박노해는 시 자체가 도구라고 생각하고 시인보다는 혁명가라는 정체성이 더 컸음. 그들은 조짐이 아니라 시는 직접적으로 혁명에 나서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 황지우가 사회적인 어떤 것들을 중요시하고 시를 썼지만 결국 민중시인들과 엇갈려 나갈 수 밖에 없었던 부분이 이 부분이었다.  김남주의 경우 민중들만 일어세울 수 있다면 시는 바로 쓰고 없어져도 상관 없다고 생각했음.)   [출처] 황지우 시론 정리|작성자 최고민혁 [출처] [스크랩] 황지우 시론 정리|작성자 옥토끼  
2    강조법 댓글:  조회:931  추천:0  2019-01-31
강조법   생각이나 느낌의 일부를 강조하기 위해서 쓰이는 표현 기법이다. 현대에 와서는 잘 쓰이지 않으며, 특히 설명하는 글이나 주장하는 글에서는 더욱 사용을 꺼린다. 시에서 일부 활용된다. 국회의원 후보의 연설처럼 선동성(煽動性)이 강한 글이나 말에서 자주 등장한다. ※ 선동(煽動) [부추길 선, 움직일 동] 남을 부추겨 어떤 일이나 행동에 나서도록 함.   강조법에는 영탄, 반복, 열거, 점층, 대조, 과장 등이 있다.   영탄(詠嘆) : 감탄사, 감탄조사, 감탄형어미 등을 통해 감정을 직접적으로 강하게 나타내는 표현 방법이다. ‘아아!’, ‘오!’, ‘임이시여!’, ‘보았는가!’ 등인데, 현대시에서는 잘 쓰이지 않으며 자주 쓰면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 예외적으로 김소월의 「초혼(招魂)」은 이 영탄법의 효과를 극대화시킨 거의 유일한 작품이다.   반복과 열거 : 같은 말을 반복하거나 비슷한 내용을 열거하는 방식이다. 시에서 반복과 열거는 의미를 강조하는 효과와 함께, 강한 운율감을 형성하여 때로는 주술적 효과를 발휘하기도 한다. 반복과 열거의 기법을 활용한 광고가 중독성이 강한 것도 이 때문이다.     - 이 시는 반복과 열거, 그리고 영탄법이 함께 쓰여 강렬한 정서적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 - 의미 역시 일정한 구조를 이루면서 점층적으로 강조된다. 산산이 부서져서(1행), 허공 중에 헤어졌으며(2행), 그래서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 되었지만(3행), 그래도 너의 이름을 부르다가 내가 죽을지도 모르겠다(4행).   점층(漸層) : 뜻을 점점 강하게 고조시켜 마침내 절정에 이르게 하는 표현법이다. 이를 거꾸로 하면 점강(漸降)이 된다. 점층도 뜻을 강조하는 효과와 함께 강한 운율감을 동반한다. ※ 점층법을 영어로 ‘climax(클라이맥스)’라고 하며, 점강법을 ‘anti-climax’라고 한다.     - 이 경우, ‘눈은 살아있다’가 점층적으로 반복됨으로써 운율적 효과와 함께 대상(‘눈’)이 점점 초점화되어 의미가 강조되는 효과를 주고 있다.   이 밖에도 강조법에는 서로 반대되는 내용을 맞세워 뜻을 강조하거나 선명하게 하는 대조(對照), 실제보다 더 크게 또는 더 작게 표현하는 과장(誇張) 등이 있다. [출처] [공유] 시의 표현 방법 - 강조법|작성자 옥토끼  
1    비유법 댓글:  조회:809  추천:0  2019-01-31
시에서 받는 감동은 내용의 진정성에서도 오지만 표현의 아름다움에서 오기도 한다. 느낌이 깊고 독창적일수록 표현의 기교가 더욱더 요구된다. 아름다운 표현은 손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물과 인생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력에서 나온다.     시의 표현 방법은 크게 비유, 강조, 변화로 나눌 수 있다. 이들은 시에서만이 아니라, 설명하는 글, 주장하는 글과 같은 논리적인 글에서도 활용된다.   비유법   필자는 알고 있으나, 독자가 잘 알지 못하는 사물을 설명하려고 할 때, 또는 감정이나 기분같이 객관화하기 어려운 마음의 상태를 독자에게 눈에 보이듯이, 손에 잡힐듯이 느끼게 하고 싶을 때 ‘비유’가 사용된다. 표현하고자 하는 사물이나 관념(원관념)을 다른 사물(보조 관념)에 빗대어 표현한다. 원관념과 보조 관념은 ‘유사성’의 원리에 따라 결합된다.   비유에는 직유, 은유, 활유, 의인화, 풍유, 대유(환유, 제유) 등이 있다.   직유(直喩)와 은유(隱喩) : 원관념과 보조 관념이 ‘~처럼, ~듯이, ~같이, ~인 듯’ 등의 연결어로 맺어진 관계를 직유라고 하며, 이런 연결어 없이 곧바로 결합된 비유가 은유이다. 은유는 'A는 B이다', 또는 'A의 B'와 같은 형식으로 드러나며 가끔 원관념이 생략되기도 한다.     * 갓나희 여인들   * 층이오레 층이더라   * 백화원리(百花園裡) 온갖 꽃들이 만발한 뜰 안   * 녹수파란(綠水波瀾) 푸른 물결. 푸른 파도   * 비오리 오리과에 속하는 물새   * 개일색 다 뛰어난 미인   - 여인들을 다양한 새에 비유함으로써, 서로 다르지만 모두가 아름답다는 화자의 여인관을 드러내고 있다.       - 꽃을 '속삭임', '울음', '피 흘림', '핏방울', '정적', '호심] 등의 다양한 은유로 표현하여 생명의 신비함과 아름다움을 노래했다.   ※ 사은유(死隱喩) : 처음 비유되었을 때는 참신했지만, 오랜 세월 동안에 그 참신성을 잃은 은유. 쥐꼬리만한 봉급, 상다리가 휘어지게, 보름달 같은 얼굴 등   활유(蛞蝓)와 의인화(擬人化) : 무생물을 생물처럼 표현하면 활유, 무생물이나 생물을 인간처럼 표현하면 의인화가 된다. 무생물이나 생물에도 영혼이 있다고 믿는 애니미즘(Animism)이 바탕에 깔려 있다.     풍유(諷諭, 알레고리allegory) : 비유의 방식 중에서 가장 발달한 형태로서, 원관념은 숨기고 비유하는 말만으로 숨겨진 뜻을 암시하는 방법이다. 원관념은 풍자나 익살, 기지와 교훈을 포함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 방법은 흔히 의인화의 과정을 거치는데, 의인화가 무생물이나 생물의 인격화(人格化)로 그치는 데 비해, 풍유는 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러한 것을 보조관념으로 하고 원관념에 깊은 의미를 내포시키는 것이다. 우의적(寓意的) 표현이라고도 한다.     * 기린 성인이 세상에 나올 징조로 나타난다는 상상 속의 동물. - 이 시에서 김영랑은 ‘거문고’를 ‘울지 못하는 기린’에 빗대어 표현함으로써, 더 이상 시를 쓰는 것 자체가 어려웠던 일제 강점기의 현실을 우의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이 시에는 원관념이 끝까지 숨고 보조관념(‘거문고’)만 나타난다.   - 이규보의 「국선생전」과 같은 고려말의 가전체(假傳體)소설*도 풍유에 속한다. * 가전체소설 술, 돈, 지팡이, 대나무, 거북 등 사물을 의인화하여 사회를 비판하고 풍자하면서 교훈을 주고자 쓴 고려시대 한문학이다. - 이솝의 「이솝 이야기」, 고전소설 「장끼전」「별주부전」 등도 풍유의 방법을 이용한 우화(寓話)*이다. * 우화 인간 이외의 동물 또는 식물에 인간의 생활 감정을 부여하여 사람과 꼭 같이 행동하게 함으로써 그들이 빚는 유머 속에 교훈을 나타내려고 하는 설화(說話).   대유(代喩) : 친구를 이름 대신 별명으로 부르는 방식이 대유이다. 별명으로 부르면 친밀감이 더해지고 그 친구의 특징을 더 잘 알 수 있다. 이렇게 어떤 사물의 특징으로 그 사물을 나타내면 환유(換喩)가 되며, 사물의 한 부분으로 전체를 나타내면 제유(提喩)가 된다.   (운명이 기구한 여자야 나 같은 사람이 또 있을까)   ‘홍안’ 즉 붉은 얼굴은 여자, 특히 젊은 여자의 특징이다. '들'은 국토의 부분이다. [출처] [공유] 시의 표현 방법 - 비유법|작성자 옥토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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