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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    [응모작품] 반잔술의 여향 (가문)-길림신문 댓글:  조회:4871  추천:6  2011-07-01
반잔술의 여향    가문   술이라는 물건이 직관적으로 나의 머리속에 자리잡은건 아버지와 개산툰시가지 재봉사 홍연엄마가 술을 나누는걸 지켜보면서부터였다.   썩 오래동안은 그때 두분이 나누는 술자리가 어릴적의 나의 가슴속에 버겁게 자리잡은듯한 기억이다. 홍연엄마는 아래마을 장거리에서 살던 재봉사였는데 토개때 살구평의 촌장이던 아버지의 주선으로 남편이 개산툰화학섬유팔프공장 로동자로 들어가면서 우리 집과 인연을 맺었다는게 큰누나가 들려준 말이다. 형제 많은 우리 집안의 모든 마선질을 도맡아해주는 은인이지만 한주일에 한번씩은 거의 10리되는 우리 집으로 찾아와 어머니가 술안주를 볶아놓느라고 바삐 돌아치든말든 여유작작하게 아버지와 술을 마시며 담소하는 홍연엄마가 반갑지만은 않았다. 아버지와는 5살 년상이든말든 말이다.   홍연엄마는 생김새도 어데나 남자처럼 굵직굵직하고 아버지 담배쌈지를 제것처럼 스스럼없이 열고 엽초를 말아 피우리만치 성격도 소탈했다. 배갈 대여섯잔쯤은 거뜬히 넘길만큼 주량도 대단해보였다. 그에 비해 죄꼬만 배갈잔을 반나절 들었다놨다하면서도 상을 물릴 때면 노상 반나마 잔에 남아있는 술을 안되겠다면서 도루 술병에 되부어넣는 아버지의 붉게 상기된 얼굴이 오히려 작아보이는 때가 많았다.   아무튼 어릴적 남자와 녀자는 이렇게도 술을 마실수 있는걸 보아 술이 풍류나 일상에는 약국의 감초나 다름없구나 하는 어렴풋한 감성에 어섯눈을 뜨게 된건 그무렵이였다. 또한 그 술좌석은 나, 아니 우리 형제 6남매가 보아온 아버지의 유일한, 그러면서도 촌티 다분한 《로맨스》였다.   가뜩이나 썩 반갑지 않은 술놈에 가슴이 섬뜩해난건 그때 소꿉친구이던 수호네 아버지가 꿈틀꿈틀하는 술회충을 달래다 못해 공업용알콜을 물에 타서 동네분들과 마신게 덜컥 중독되여 3명이 급사한 사건이 터질 때였다. 그때 주성분이 알콜이던 배갈의 살인적마력을 일별하면서 놀란 가슴을 어루쓸던 때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온 동네방네가 알콜사망사건으로 들썩거리든말든 아버지의 술잔은 여전히 찬장과 밥상 사이를 오고갔다. 물론 여전히 홍연엄마가 올 때거나 큰사위, 둘째사위가 명절이나 생일에 술을 사들고 오면 마주앉아 그 작은 잔에 반쯤가량 마시는게 전부였다. 언제인가 하도 궁금해서 상을 물리는 아버지한테 《술 대면 뭐가 좋습둥!》 하고 슬쩍 물은적이 있다. 그러자 아버지는 《속 편해지고 가슴이 더워나지.》 하고 짤막하게 끊었다. 그러자 내가 장난삼아 《그러자면 반잔씩 홀짝거리지 말고 종지채로 굽내면 훨씬 통쾌하지 않겠어요!》 하고 한수 거들자 아버지는 노여운듯 눈을 흘기면서 《뭐나 체질에 맞아야 해. 과식이 불식이라잖아. 술이나 세상사 다 그래…》 하고 일러주시고는 그대로 베개에 기대여 잠드시는것이였다.   소학교 3학년때인가 술이란 대체 어떤 놈일가 하는 호기심에 끌려 집이 빈틈에 술병의 술을 숟가락에 조금 부어 마셔본적 있다. 순간 컥 하고 숨이 막히는듯하더니 창자가 타들어가는듯이 온 가슴이 옥죄여들고 눈물이 찔끔 쏟아져나왔다. 독약처럼 무서운 놈이였다.   그러나 그 지독한 배갈도 너털웃음을 치며 꿀꺽꿀꺽 들이키는 대장부들이 있었다. 70년대 중반에는 세상 모든게 어수선했다. 그속에서 어머니가 장본 돈에서 겨우 5전, 10전을 홀려내여 개눈깔사탕을 사먹는게 방과후 귀가길에 가장 신나는 걸음이였다. 상점이 있는 장거리마을가운데로 개산툰섬유팔프공장과 룡정시가지를 잇는 모래도로가 가로지르고있었다. 늦은가을부터 이듬해 양력설이 지날 때까지 그 길옆에 있는 상점에 들어가면 안에는 개산툰진량식창고에 징구량을 바치고 귀가길에 들린 덕신골 농민들이 북적일 때가 많았다. 일년 뼈빠지게 피땀뿌려 거둔 량곡을 바치고도 빈손으로 돌아가는게 허탈한지 그네들은 벌겋게 달아오른 난로에 고드름이 질펀히 녹아든 개털모자며 얼어 딱딱해진 헝겊솜신을 말리우면서 미역부스레기나 열콩알만한 소금알에 독한 배갈을 칵칵하면서 마셔대는게 참으로 가관이였다. 이윽고 집에 돌아와 뙤창문틈사이로 모래도로를 내다보면 문안골을 휩쓸며 몰아쳐오는 칼바람속을 헤집고 느적느적 힘겹게 움직이는 소수레행렬이 지나가고있었다. 이상하게도 수레우에 그대로 누워 착하고 얌전한 소들이 끄는대로 따라가는 그 흐름이 저물어가는 석양그늘밑에 깔려 그처럼 처량할수가 없었다. 어찌 보면 시름없이 잠든듯했으나 한해 농사뒤의 실의, 한치앞도 막막한 래일, 매서운 한기를 막으려는 공복배갈추렴에 기실은 꽁꽁 취해있었다. 이제는 그 어데서도 볼수 없이 력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어제날의 가슴시린 진풍경이였다.   그렇게 미웠다 고왔다 헛갈리는 술과 고중졸업때까지는 그런대로 담을 쌓고있었으나 대학에 와서는 몸이 따라주지 않아 살짝 고민도 있었다. 년령이나 경력이 한참 앞선 선배들이 술을 즐기는 운치가 부러워나는게 이상했다. 가끔 학교식당에서 《앙증맞》은 료리들을 제각기 숙사에 받아와 가지고 배갈뚜껑을 떼는 어른동창들이 아무리 권해도 손사래를 치다가 나중에 《남자란게 술도 못 먹고 뭘해.》 하고 조롱하듯이 건드리자 오기가 발동되여 야금야금 댔다뗐다하는 시늉을 하던게 어느새 스르르 맛에 빠져들고말았다. 주량도 푹푹 늘어나 아무리 마셔도 취할것 같지 않을만큼 대학교졸업무렵에는 배짱까지 두둑해졌다. 덕분에 졸업해서 신문사에 배치받은 뒤 출장때마다 술자리가 많아도 무난히 지나갈수 있었다.   1984년 류하현에 삼원포조선족향이 설립되면서 초청을 받고 취재갔을 때 주인측의 극진한 환대에 3박4일 때마다 술을 반근남아 리레식으로 마셨는데도 스스로는 정신이 말짱한것 같아 술이 나한테는 맹물이 아닌가 착각하기도 했다.   술의 고마운 구석은 또 있었다. 신문사에 온 두번째해에 사옥신축사정으로 원 기숙사가 헐리면서 당시 청년늪 근처에 있는 어느 단위 구락부에서 림시 겨울을 나게 되였다. 이름이 구락부라지만 전에 일본놈들의 마구간이였다는 이 숙소는 섬유판으로 대충 칸을 막아 칼바람이 동서남북에서 거침없이 들이치는가 하면 난방시설까지 엉망이여서 바닥에 뿌린 물이 이튿날 깨여나면 얼음장으로 바삭바삭 굳어지는게 랭장고속과 다름없었다. 그래서 한숙소를 잡은 나와 동료는 저녁이면 사무실에 나가 원고를 끄적이다가 9시 반쯤이면 근처 맥주점을 찾는게 일상이였다. 그래서 한근들이 록색비닐맥주컵에 배갈을 반쯤 받아놓고 명태나 땅콩따위 안주로 벌컥벌컥 들이켜면서 몸을 달구는데 길들어지고말았다. 이윽고 속이 따끈해날가 할 때 흐리터분한 기분 그대로 숙소에 들어오면 그런대로 차디찬 이불속으로 기신기신 기여들어갈수 있었다. 과동에 어쩔수 없는 고육지책이였으나 젊음이 넘쳐 겁난게 없던 그 엄동에 역한 배갈이 동무해주고있어서 가슴이나마 따뜻이 덥힐수 있는게 어쩌면 자그마한 행운이기도 했다.   여지껏 거의 잔소리없이 철부지자식들을 키워오던 아버지께서 술에서만은 까다로왔다. 형제들중 맏형의 주량이 아버지와 근사하고는 둘째형, 셋째형, 나까지 술에 너무 자신있어하니 걱정이 안 생길리 없었다. 마셔도 맞춤히 들고 술집을 똑바로 잡으라고 자주 일러주었고 특히 나한테는 이른바 국가간부라는게 과음으로 말실수, 헛발질을 할수 있으니 주의하라고 앉혀놓고 따끔하게 충고한적도 있었다. 물론 아버지의 예상은 그뒤 빗나가지 않았다.   어쩌면 아버지의 《맞춤형음주》, 《맞춤형처신》은 나름의 삶의 철학이였고 그 깊이를 제대로 받아들인 자식은 대학을 나온 내가 아니라 맏형이였다. 맏형은 문화대혁명전 연변1중에서도 잘 나가던 우등생이였다. 불운하게도 대학입시에서 삐걱하는 바람에 맏형은 울분을 씹어삼키며 중등전문학교에 들어가야 했다. 그것도 석탄학교였다. 졸업뒤 맏형은 산설고 낯선 통화지역탄광에 배치받았다. 맏형은 분발하여 일개 초보기술원으로부터 기술과 과장을 거쳐 3000여명 광부를 가진 국유기업의 총공정사직까지 맡게 되였다. 물질이 궁핍하던 70년대에 맏형한테로 가면 《모태주》, 《분주》며 《죽엽청》 같은 우리 연변에서 보기 힘든 명주에 포장이 화려한 각가지 통화산 포도주를 볼수 있어 참으로 희한했다. 덕분에 동네어른들도 우리 집에 와서 명주의 향연을 가끔씩 즐길수 있었다.   1997년말의 어느 날, 형님이 기별없이 문득 아버지를 찾아왔다. 퇴근해서 룡정에 이르니 형님, 누님네가 아버지를 모시고 밥상에 둘러앉아있었다. 아버지가 철저한 배갈반잔맨이라면 맏형은 한잔맨이라 할수 있었다. 역시 아버지처럼 드네마네하다가 술좌석이 끝날무렵 한모금에 쭉 들이켜고 잔을 탁 상우에 놓으면 OK였다. 그만큼 전문가답게 매사에 신중했고 직장생활에서 술실수를 빚은적이 없다고 스스로 자부하고있었다. 물론 오늘의 화제는 술이 아니였다.   《아버지 곧 퇴임하게 되는 광장장(砿長) 이 저한테 자리를 넘기겠다고 하는데 선뜻 마음이 움직이지 않고 해서 아버지 말씀을 들어보려고…》   평소에 술만 대면 말씀이 술술 나오시던 아버지가 이번에는 한동안 잠자코 맏형만 응시하였다. 이윽고 무겁게 입을 떼는 아버지의 얼굴은 근엄했다.   《판단은 네가 할 일이지만 총공정사쯤 했으면 가문에도 최고의 영광 아니겠냐.》   어쩌면 완곡한 의미가 깔려있는 말씀이였다.   《알겠습니다. 실은 아버지의 그 말씀을 듣자고 온겁니다. 50년대초에 아버지가 자기는 글이 무뎌 안된다면서 촌장직을 내놓을 때 참으로 우러러보였습니다. 나 역시 아버지 아들입니다.》   맏형은 이번에는 여느때와 달리 거의 넘쳐있는 흰술 한잔을 단꺼번에 쭉 굽냈다. 광장장이면 현(퇀)급행정급별이였다. 어려운 용단을 내린 맏형은 대신 조선족으로서는 유일하게 총공정사였다는 위당(葦塘)광산의 영원한 전설을 남기게 되였다.   진작 퇴직한 맏형은 형수님하고 두세해에 한번씩 통화로부터 룡정으로 부모님 성묘하러 올 때마다 우리 하고 우리 가문이 파란없이 오늘까지 오게 된 힘이 뭔지를 즐겨 담론한다. 그속에는 애잔한 향수가 묻어있었다. 맏형은 과격을 부릴 대신 주어진 삶에 충실하고 분촌있게 살아가자는 아버지의 인생가치관이 그 반잔술에 담겨있다고 흥분할 때가 많았다. 하긴 나의 기억속에 아버지는 혼인에서마저도 자식들의 뜻에 맡겼고 이상한 조건같은걸 내놓지 않았다. 썩 오래전부터 온 세상이 코리안드림으로 시끌벅적해오고있지만 우리 형제 6남매는 물론 그 아래로 나온 친조카, 외조카들속에 리혼은 물론 가짜리혼 하나 나지지 않았다. 지금 지난세기 90년대초부터 서울쪽으로 친인들이 반나마 들락거리고 있지만 여지껏 불법체류자 한사람도 없다는 사실에 동네에서도 혀를 끌끌 차며 놀라고있다. 남들처럼 희끔하게 살지는 못해도 오손도손 재미나게 살아가는 자손들을 보면서 생전에 아버지께서 그토록 뿌듯해하시던 가문의 기틀은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근 15년 세월을 갈면서도 그 반잔술이 더 내려가지 않았듯이 오늘까지 흔들리지 않고있다.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세번째 청명을 맞을 때 아버지는 발목을 접질러 운신이 힘들었다. 그래도 기어이 어머니묘소를 찾겠다고 고집하기에 셋째형이 동네에서 편한 소수레를 끌고왔다. 덜컥거리는 소수레에 앉아 애들은 신나서 야단인 속에 아버지는 묵묵히 먼발치만 바라보고계셨다. 그날따라 아버지는 내가 아버지한테 들고간 수입제 와인을 어머니묘소에 부어올렸다.   《술이란걸 평생 못했는데 막내가 서울서 가져온 포도주나 맛보오.》   그해 추석을 며칠 앞두고 나는 아버지를 모시고있는 둘째형수한테서 아버지가 주무시다가 그만 운명했다는 전화를 받게 되였다. 내가 뛰여가보니 집뜨락 남새전에는 아버지가 방금전에 기음을 매던 호미가 그대로 놓여있었다. 아버지의 림종을 동무해준건 평생 보고 또 보아 보풀이 두텁게 진 《삼국연의》와 허술한 돋보기였다. 향년 83세였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골회를 합장하고나서 둘째형수가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아버지, 어머니께서 평소에도 술을 별반 안 드셨는데 평소 두분이 같이 나누게 술을 묻어두면 어떨가요?》 우리는 묘소에서 한메터 반가량 떨어진 토층을 반메터가량 파고 그속에 백주 한병과 포도주 한병을 고이 묻어놓았다. 부모님의 묘소는 말발굽산, 비암산, 해란강은 물론 온 룡정시가지를 한눈에 굽어볼수 있는 과수농장뒤 양지바른 산언덕에 자리잡고있다. 지금도 아버지가 어머니와 함께 홍연엄마와 마주앉아 우리 남긴 술을 나누면서 자식들 얘기를 재미나게 나누는것 같아 마음이 포근해진다.   인터넷길림신문 2011-07-01    
106    [응모작품] 술을 알고 잘 마시자 (주봉)-길림신문 댓글:  조회:4866  추천:106  2011-07-01
술을 알고 잘 마시자    주봉     술, 그 이름에 얽힌 추억은 참 감미로왔다. 바로 내가 어릴 때 술찌끼가 풍기는 냄새를 맡을 때마다 어쩌면 그리도 구수하고 싱그럽던지… 또 한번은 내가 발목을 상했을 때 옆집 아저씨가 불이 이는 소주를 손바닥에 자주 묻혀 상한 발목을 마사지하니 어쩌면 그 동통과 부증이 훌~ 경감됐던지… 그때 나는 꼭 마술에 빠진 격이였다.   실상 지난날 내가 술에 대한 느낌은 칸트(미국)의 《술은 마음을 열게 하는 도덕적 물질이다》는 론술에 힘입어 종종 친구들과 인생의 희로애락을 담아 나눈 술에서였다. 이를테면 속상하거나 스트레스 쌓일 때 마음을 터놓아 잠시 여유를 갖고 또 스트레스도 해소되여 그 무엇이 존재하는 촉매로 어쩌면 순진한 소녀의 랑만도 다 지녀봤던지? 이런 술문화의 일조로 나의 청춘은 나래쳤으니 참말, 술의 례찬은 동서고금이 따로 없었다.   세월은 흘러 몸과 맘도 다 개혁개방 물결속에서 출렁이던 1992년, 학교를 퇴직한 나는 야심차게 무역상사를 꾸리고 한국대양회사가 흑룡강성내 복장과 일용품의 전매권을 대리받았다. 이 별안간의 물망은 상사의 문쪽에 불이 날 지경인데 조, 한 상인들은 또 서로 내 팔 끌어 음식점에 가는 붐을 일구며 복닥거렸다.   이런 술은 그들이 함께 베푼 초대연이라 그 술문화는 일견 사람을 사귀고 인연을 느리며 감성과 우정을 담아내는 그런 전달매체와 다양한 콘텐츠로 거개가 서로의 상업리익을 챙기는데 기인되여 퍽 열기를 띠였다.   보라, 연회는 정말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차려 우선 주최자의 기발된 건배사에 따라 소주를 련거퍼 석잔을 《깐!》 (干杯)하는 대작형식으로 시작했다. 다음은 위계순으로 각자가 욕구를 곁붙여 나와 각각 소주 한잔씩 건배했는데 참 《취옹의 심사는 술에 있지 않다》처럼 어떤이는 《한국에 보내 주세요》란 청도 하였다.   그런데 술상의 생선머리가 나를 향했다고 어미쪽 대상자와 막 건배시켰고 또 내가 술을 흘리고 남겼다고 의뭉스레 억지부려 두잔 더 벌주 시켰다. 이어서 수작형식과 획권(划拳)도 해 나는 또 여러잔의 술을 마셨는데 아무튼 강권해서라도 손님의 만취가 잘 된 접대라니 이 폭주족천국에서 나는 부득이 초반취기도 마다 한 끼와 용기로 계속 순배되는 포도주를 다 마셨고 맥주도 마구 건배했다. 하여 사람들은 모두 《폭탄주》를 마셔 어찌 취하지 않았겠는가? 그러니 이런 술문화와 음주량 또 권주문화나 안주문화는 가히 세계적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도 이번엔 또 우르르 노래방에 몰려가 고성방가에 춤추고 다시 술을 마시며 밤을 패던 것이다. 허나, 나를 포함해 숙취된 사람도 있어 소식을 접한 집은 자기 남편이나 부인들을 모셔 갔다고 한다.   원래 조선의 술문화는 술맛을 음미하며 풍류를 즐겼고 또 인생도 학문도 담론하던 그런 삶의 표출이였다. 허나, 지금 이 후손(폭주족)들은 《술에 먹히워》 그 술 버릇은 참말, 험하기로 진작 말이 아니라고 전해 왔다.   보라, 그 중 한분은 곤드레만드레 취해 거리에서 비츨대고 웃고 울다 쓰러져 자면서 대소변도 실금했다면, 또 다른 두 분은 광장에서 토하고 소피보고 욕질에 싸우다 경찰이 오니 대뜸 이완돼 《워메이쭈이》(我没醉)란 아는 주정의 그런 인격과 덕행을 반사시켰다. 결국 술에 지친 그들은 모두 파출소에서 하루 더 잤다고 한다.   더욱힌 또 한 분은 택시덕에 집동네는 왔어도 마구 남의 집문을 두둘여 외려 나온 주인을 욕질 해 동네를 번졌고 또 제집에 가서는 처자를 때리고 가장집물을 마스는 등 상습적 비행이라, 정녕 도덕의 저선(底线)을 넘어 《110》에서까지 간섭됐으니 어찌 타민족들이 《조선족의 술 버릇은 참 나쁘다》라고 하지 않았겠는가?   그렇다. 인젠 더는 간과 못 할 이 술 과음과 강권에 나는 깊이 자성해 그 후 초대연부턴 금약세워 다시는 비일비재한 술 주정이 없게 됐다. 허나, 3년을 계속 이런 술 선행 《거래법칙》따라 지내서 우선 내가 지나친 음 주 세례로 끝내 지방간이 유발 돼 결국 술을 끊고 후에 치유 받았지만 내 동생만은 폭주로 숨지고 말았다......   이와 같이 과분한 음주는 리성을 잃고 술 주정으로 사회불화와 가정폭력을 야기시켜 조선족의 낯도 깎았고 또 건강을 해쳐 질병과 로화에 목숨마져 빼앗아 정녕 친인들 가슴속에 뜨거운 눈물만 남겼던 것이다.   실상 음주폐단은 술 자체보다 어찌 술 마시는 사람나름에 기인되지 않았던가? 때문에 이는 어디까지나 모든 국민의 소질, 도덕적 힘과 지적수준의 향상을 우선 급선무로 해야 할 일이다. 오직 이런 선행만이 세계인이 괄목하는 문명하고도 건전한 음주문화와 술문화가 확립 됨을 필자는 재삼 강조하고 싶다.   이상 사람마다 술의 리병과 량면적문화에 제한 인식의 차이는 컷고 그 음주의 효과나 영향도 참, 달랐다. 때문에 술을 좀 더 깊이 알기 위해 현대의학과학은 또 이른바 《모든 술은 발암물질이다……술속의 알콜은 인간에게 암을 일으킨다.》(11/01/15 흑룡강신문)는 정설도 파급했다. 하다면 이는 어찌 생명을 아끼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께 내린 《금주령》이 아니며 또 음주는 어찌 만성적 자살이 아니겠는가?   예서 많은 친구들은 내가 이미 술을 끊어 건강과 삶의 가치 품격이 퍽 늘었다고 부러워하고 있다. 그래도 나는 지난날 몸에 축적 된 알콜 총량이 언제 쯤 시한폭탄과 같은 암병을 터칠까워 은근히 근심할 때도 많았다.   하여 지금 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 부러운것은 바로 알콜 0흡수자인 이슬람교도들과 청소년들이다. 이로써 부모나 선생님들도 청소년들께 《제발 술을 마시지 말라.》는 충고가 많게 된다. 허나, 바꾸어서 《술은 간암, 유방암 등 60여종 질병과 관련되는데 이로 인해 중국은 매년 250만명이 사망된다(2008년 기준)》는 사실과 과학적 근거도 겸해 강의된다면 그 충고의 효험은 어찌 더 크지 않겠는가?   《아니, 이눔이 자식들, 공부는 안하구 또 술을 먹었니? 》   이는 술에 취해 남의 등에 업혀 온 손자를 보고 속상해 외치는 한 할머니의 격한 하소연이였다.   이처럼 술 유혹에 잠시 도취된 청소년들은 진작 음지에서 엽기적으로 마신 술이라 어찌 그 맛과 향, 멋과 뜻을 알며 또 어찌 그 술 버릇도 기형적이 아니겠는가? 이 차세대에 제해 특히 학교는 《조선족수양》과나 과외활동을 통해 응당 옳바른 술 지식과 그 문화 및 술의 해악과 음주례의범절에 거쳐 차근차근 강의와 설득에 갈파시키고 인도한다면 그들은 최종 술을 끊지 않고도 어릴적부터 좋은 술 버릇으로 벅찬 미래를 향 할 것이다.   한편 술의 발암설은 오늘도 참, 많은 사람들을 놀래워 필자는 의학자문을 하였다. 즉 《술의 발암기전은 알콜의 대사물인 아세트알데히드에 기인되며 또 음주량과 발암빈도는 정비례된다. 그리고 알콜의 대사는 대체로 알콜-아세트알데히드(유독물)-아세트산(무독물)-이산화탄소,물-체외로 배설 된다》고 한다.   예서 적당한 음주는 아세트알데히드의 정상적 대사로 몸에 무리가 없으나 일단 과분한 음주는 알콜과 아세트알데히드의 대사 한계로 그 대부분이 대사 못한 채 체내 각 장기에 머물며 취기를 준다. 만약 술 과음이 잦으면 필경 체내에 루적된 알콜과 아세트알데히드가 많아 결국 중독 혹은 암을 유발시키는것이다.   그러나 와인은 페놀성항산화제가 들어 있어 생체가 섭취한 발암물질까지 대폭 해독하여 일반 와인량을 마셔도 발암위험이 없다. 또 심혈관계질환방지와 항산화, 항우울작용과 각종 퇴행성 병에도 효과적이라고 한다.   때문에 세계 주류의 술문화중 현대인들은 언녕 와인을 선호하여 음주관습을 변천시켰다. 이에 우리도 와인 문화의 새 시대에 돌입하는 창의정신으로 술문화를 갱신하여 보자! 바로 그 맛과 향기, 빛갈과 품위가 어우른 서정시속에서 우아한 교제로 마신 와인의 랑만으로 말이다. 하지만 당전 생활수준은 값진 외국와인보다 그래도 원사보같이 값싼 국산와인을 선택하거나 혹은 요리집에서 한컵씩 사서 규칙적으로 마실 수도 있지 않겠는가?   이런 술은 먼 옛날 원숭이가 저장한 과일이 우발적으로 발효 돼 그 맛도 좋아 의식적으로 만든 기원설로 고고학은 술을 무려 20만년 력사를 어우르게 한다. 바로 인류와 함께 탄생한 것과 다름없는 술은 이미 문화적으로 술이 없이는 살수 없듯이 일반화와 세계화한 현실상태의 청신호로 됐다.   하지만 술은 필경 안전햔량이 없어 꼭 알고 잘 마셔야 랑만에 찬 내 건강 챙기고 또 나라와 민족과 인류를 위해 기여하게 끔, 정녕 부끄럼도 실례도 없는 그런 숭고한 약속이 될 것이다!   술, 그 이름에 얽힌 술문화는 이 시대 문명발전의 축사(缩写)다. 허나, 음주량은 이 문명발전을 대표하지 못하며 또한 음주는 그 어디까지나 사회적인 약속과 행위범주에 속하는 속성으로써 필시 법치를 떠날 수 없다.   이에 필자는 중국도 캐나다나 미국처럼 우선 사회적인 술소비를 줄이는 규제부터 세워 아무사람(특히 임신부 와 아동)이나 아무곳에서 술을 살수 있고 또 아무때나 아무데서 술을 마시는 것을 제한시키며, 그 외 주정뱅이 단속 등 규정도 정비 할 것을 특히 제의한다. 그러면서 이 혁신 조취는 필경 당대 중국에서 획기적인 술문화의 창의적 갱신과 영조 및 조화사회 구축에도 그 이채를 돋구어 줄 것임을 굳게 확신하고 기대하게 되는것이다.   인터넷길림신문 2011-07-01    
105    [응모작품] 술엔 죄가 없다 (강효삼)-인터넷료녕신문 댓글:  조회:3635  추천:21  2011-07-01
술엔 죄가 없다    강효삼   지금으로부터 꼭 41년전인 1970년도  봄에 있은 일이다. 그때는 쉴새없이 "문화대혁명"이 지속되던 때였는데 어느날 저녁, 당시 교원이였던 나는 최모모와 학교숙직을 서게 되였는데 그날따라 술도 좀 마신데다 그동안 나름대로 보고들은 "문화대혁명"에 대해(물론 부정적인면에서) 부글부글 고여있는 불만을 털어으며 속심을 드러내놓은것이 그만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 격이 되였다. 그때는 잠자코 들으면서 때론 공감하기도 한 그가 딴생각을 품고있을줄이야  누가 상상인들 했을가. 후에 "문화대혁명"이 심입되면서 세가지를 타격하는 공작대가 들어와 새로이 숨어있는 “적”을 잡을 때 나를 지목했는데  나를 투쟁하면서 그가 하는 말이 당시 옆에서 내가 한 말을 들으면서 자신은 무산계급독재와 사회주의 담벽을 허는  가장 위험한 계급의 적이 옆에 있다는것을 대뜸 간파했다는것이다. 그리하여 그의 드높은 계급각성에 의해 나는 하루아침에  반혁명으로 전락되였던것이다.그 일이 터진후 누군가 나더러 술을 마시고 격해서 한 말이니 잘못을 술에 밀라고 슬그머니 귀뜸해주었다. 그러면서 1960년대초, 농민들의 생활이 극도로 빈궁하던때 바른말 하기 좋아하는 한 로인이 죽 먹기가 진저리나서 “모주석이 아니라 죽주석”이라는 말을 하여 공작대의 추궁을 받게 되였는데 주위사람들이 나서서  “사람이 그랬나? 술이 그랬지,그 령감 술만 마시면 아무 소리도 막한다니까.”ㅡ 이렇게 술에다 미루어 엄중성이 크게 약화됐고  비판투쟁만 받았을뿐 무시무시한 독재대상이 되지는  않았다는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비록 술을 마시고 용기를 내여 한 말은 분명하지만 평소에 늘 마음속으로 하고싶던 말을 했다는것을 누구보다 자신이 잘 알고있었기때문이다. 결국 나는  교직에서 쫓겨났고  꼭 5년 세월 로동개조를 하였지만 지금 생각해도 그때 내가  나의 잘못을 술에 밀지 않은것이 참으로 잘한 일이였다고 생각한다. 설사 그때 내가 자신의 잘못을 술에다 돌렸다한들 이미 나를 잡으려고 철석같이 작심한 그가 관대하게 처리해줄리 만무했고 술에 핑게를 대고 용서를 받으려한 자신이 더욱  부끄러워졌을것이다. 술엔 죄가 없다. 하지만 우리주위에는  흔히 자신의 잘못을 술에다 미는 사람들이 있다. 이를테면 술을 마시고 사람을 때렸다거나 과격한 언사를 던졌다든가 성폭행 등 짓을 해놓고 모든 잘못을 술에 미룬다. 마치 술이 일부러 그렇게 하라고 시키기나 한것처럼. 그래서  “술만 아니면?” 혹 “술때문에?”라고 하면서 빚어진 죄나 잘못의 원인을 죄다 술에 미루어 모면하거나 경감하려 한다.  물론 술을 마시고 한 행동이니 술과 전혀 무관한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니 땐 굴뚝에서 연기 날가?  머리속에 행동을 지배하는 그러한 동기와 목적이 없었다면 그런 결과를 초래하지 않았을것은 뻔하지 않는가.  한편 이같이 술에 대한 잘못된 평가는 그 사람과 술은 기실 무관한데도 애매하게 술과 련계시켜 한 사람을 가늠하는것이다. 나의 한 친구는 마음씨도 좋고 다재다능한 사람인데 단지 술을 너무 좋아하여 때로 술주정을 좀 한다는 리유로 승급도 못하고 자신이 념원하던 일도 해보지 못한채 생을 마감했다. 아마 이같이 술을 빙자하여 그 사람의 긍정적인 면까지 부정하면서 응당 써줄것도 써주지 않고 밀리운 사례는 누구보다  정과 한이 많아 술을 좋아하는 우리 조선족들에 더 많지 않았나싶다. 술엔 죄가 없다. 설사  술을 마시고 건강에 지장을 받았다 해도 술에 미루어서는 안된다. 이같은 경우는 간질환이나 위병, 고혈압 등 병에 걸려  아까운 나이에 페인이 되거나 목숨을 잃은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인데 흔히 이런 경우에 사람들은 “그 사람 술만 마시지 않았더라면?” 하는 조건부를 붙이는데 엄격히 따져보면 술을 절제못한 그 자신의 탓임을 어찌 모르랴. 헌데도 술에 미루는것 ㅡ 이 역시 우리들이 술에 대한 낡은 관습이 아닐가. 내가 아는 한 사람은 간이 나빠질대로 나빠져 자칫하면 간경화복수로 넘어갈 위험이 있어 절대 술을 마셔서는 안되는데도  먹고 죽는 것은 한이 없다며 한몸을 내번지고 용감하게 술을 마신데서 “영광스럽게” 타계하였다. 술이란 꼭 밥을 먹듯 먹지 않으면 안되는 필수품이 아닌이상 아무리 술을 마시고싶어도 마시지 않으면 그만인데 왜 알면서도 기어이 마실가? 다르게 병이 생긴것도 억울한데 마시지 않으면 그만인 술을 억지로 마셔  불치의 병에 걸렸다면 누구를 원망해야 하는가!. 나 역시 한때 과음하여 몇번 죽을 고비를 넘기였다. 그래서 술때문이란 말을 버룻처럼 하지만 기실은 내 자신의 문제이다. 과음하면 인체에 좋은 점이 없음을 모르는바 아니나 정신적인 위안을 바라고 혹은 그 어떤 명분이나 체면 때문에  과음하군 하였다. 관을 보고야 눈물을 흘린다는 격으로 몇번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나서야 어떤 장소에서든  술을 절제할수 있어  술로 받는 건강상의 피해는 많이 줄어든것같다. 오히려 적당량을 마시니 기분 좋고 밥맛이 나서 제대로 마시면 술도 보약이라는 말에 긍정이 간다. 그러할진대 인간이 술을 어떻게 대하고 술 마신후에 어떻게 처사하는가는 어쩌면 그 사람의 인간적인 자질과 품격 여하를 보여주는 시금석이 될수도 있지 않을가. 술엔 죄가 없다. 죄가 없음으로 하여 간혹 술주정, 술 단련에 진저리가 난 나머지 술이 화근이니 술공장이 하루아침에 불이라도 콱  났으면 좋겠다는 말도, 술은 사람을 미치게 하는 도깨비장물이나 마찬가지라는 잘못된 비유도 이젠 삼가하는것이 좋을것 같다. 여하한 경우에도 몸에 알맞게 마시겠다는 의지와 결심이 있고 그대로 실천할수만 있다면 설사 술독이 곁에 있다한들 두려울게 무엇이랴. 대신 술은 공로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술을 마심으로써 육체적인 피곤이나 정신적인 콤플렉스 등 삶이 인간에게 주는 온갖 스트레스를 쉽게 날려버리고 흥분을 돋구어 마음을 즐겁게 한다. 이제 우리들이 정립해야할 새로운 술문화란 바로 술을 마시기 앞서 이  술이란 물건이 갖는 그 존재와 가치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공정하게 평가하는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할것 같다. 사람사는 세상에 술은 꼭 있어야 하고 인간이 철저히 주동권을 쥐고 술을 잘 지배하고 관리한다면 인간에게 유익한 엔돌핀을 선사해주는것이 바로 다름아닌 술, 술이거늘  술의 위망을 높이고 아름답고 건전한 술문화가  우리 생활에 정착할수 있도록 착한 마음, 즐거운 마음, 화애롭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술을 마시자! 인류의 과학이 발달하여 술보다 더 좋은것을 개발하지 않은한 어쩌면 술은 인간과 함께 영원할지도 모른다.   인터넷료녕신문 2011-06-28    
104    [응모작품] 주향(酒香)과 그 악취 (김충국)-길림신문 댓글:  조회:3675  추천:9  2011-06-29
주향(酒香)과 그 악취   김충국   술을 천지미록(天之美禄)이라고도 한다. 고금중외 무릇 인간들이 활동하는 장소에는 술이 있다. 각 국, 각 민족의 풍속은 천차만별이지만 잔을 나누면서 즐기는것은 공동의 기호(嗜好)이다. 이러고 보면 음주는 세계성의 문화현상이다. 때문에 술은 늘 볼수 있는 보통음료이다. 동시에 술은 사람들의 격정을 흉용팽배(汹涌澎湃)하게 하는 마력(魔力)이 있으므로 제일 독특하고 기이한 음료인것이다.   인류사회에 주향이 풍기기에 생활은 양광(阳光)으로 충만된다.   술은 기쁨을 팽창시킨다. 타향에 옛 친구를 해후(邂逅)했을 때, 귀동자, 귀동녀가 금방제명(金榜题名)했을 때, 동방화촉의 밤에, 직장에서 승직하였을 때, 일확천금하였을 때, 술을 한잔 쭉 하면 기쁨은 하늘만큼 커진다.   술은 진정제이다. 《백발인》이 《흑발인》을 보낼 때, 사랑하는 이가 외도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개구리가 올챙이적 생각을 못하고》 거들먹거리는 사람을 상대했을 때 술을 한잔 쭉 하면 《진정제》를 먹은것마냥 마음이 잠시나마 진정될것이다.   술은 물이다. 청상과부가 되였지만 술로 지긋지긋한 나날을 보내며 나어린 자식을 키워 마침내 인재로 양성하였다. 술은 《물》이 되여 청상과부의 고통의 《심연》속에서 《헤염쳐》나오게 한것이다.   술은 불이다. 정열을 활활 타오르게 하는 불이다. 고독할 때, 우울할 때, 스트레스에 억눌려 숨이 막힐 때 술을 한잔 쭉 하고 돼지멱따는 소리일지라도 카라OK방에서 한번 질러보면 생의 정열이 넘쳐날것이다.   술은 지혜의 천사이다. 술은 음주자로 하여금 령감의 불꽃이 튀게 한다. 《리백두주시백편(李白斗酒诗百篇)》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술은 장사(壮士)의 담기(胆气)이다. 영웅들의 장거(壮举)는 술로 주조(铸造)된것이다. 무송이 취중에 맨주먹으로 범을 때려 잡은 이야기를 그 누가 모르랴! 술은 졸장부를 대장부로 되게 한다. 전장에서 《가재걸음》을 하는 겁쟁이도 술 석잔만 쭉 들이키면 《사신》을 향해 맹진하는 《용사》로 변하는것이다.   술은 달이다. 어두운 마음의 밤하늘을 밝게 비추는 달이다.   술은 태양이다.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주는 태양이다.   술은 바다이다. 사색의 마음을 울렁이게 하는 바다이다.   술은 하늘이다. 옥생각을 가질 때 마음을 확 트이게 하는 믿음의 하늘이다.   술은 미녀이다. 항시 이뻐서 사나이의 마음을 활홀케 하는 미녀이다.   술은 생활의 에너지이다. 인류의 생활을 윤택있게 하고 다채롭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영원한 에너지일것이다.   술을 적당히 마시면 신체에 리롭고 질병을 예방하며 연년익수(延年益寿)할수 있다는것은 주지하는바이다.   세계위생조직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남성은 하루에 20그람의 순알콜을 초과하지 말아야 하고 녀성은 하루에 10그람의 순알콜을 초과하지 말아야 한다고 한다. 즉 남성은 하루에 맥주 두병, 혹은 소주 두냥을 초과하지 말고 녀성은 하루에 맥주 한병, 혹은 소주 한냥을 초과하지 않으면 적합하다고 한다.   하지만 《진리도 한걸음 더 나아가면 유론》이고 《보약도 과분하면 독약이 되듯》이 술도 과분하면 해가 된다. 연구에 의하면 술을 과음하는것이 사망을 앞당기는 두번째 원이(흡연이 제1원인)이라고 한다. 알콜은 고혈압, 심장박동멈춤, 중풍, 위암, 유선암, 전렬선암, 간경화 등 병을 초래할뿐더러 의외사고와 자살을 초래한다. 아동시기에 술을 마시는 습관을 양성하면 학업을 망칠뿐더러 행위가 이상한 주정뱅이로 되고 쉽게 범죄의 길로 들어설수 있다.   사람들이 일단 음주하기 시작하면 거개가 술인이 박혀 헤여 나오지 못한다. 전하는데 의하면 미국에는 1400만 성인이 술에 빠져있고 중국에는 3억의 《술군》이 있다고 한다.   술은 《타락제》이다. 술을 자주 과음하는 사람은 해이해지고 소침해지면 요행에 미련을 두게 되고 게을러지게 되며 신용을 잃게 되고 타락의 심연으로 빠져 들어간다. 술은 또 사람들을 참욕의 바다에서 헤매게 한다. 아마도 이래서 《술과 계집에 빠지면 목숨도 잃는다》는 속담이 생겼을것이다.   술은 《실수》를 낳는다. 마을에서 《일등처녀》라고 불리우는 20대의 미녀가 《생활개선》하는 날에 술에 취해 마을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주방에서 바지를 무릎까지 내리우고 세수대야에다 《배설물》로 《폭포》를 형성시킨 사실, 중년교원이 초중졸업식날에 《인사불성》이 되여 요에다 《지도를 그린》사실, 한 술군이 술을 과음하고 집으로 돌아 간다는게 엄동설한에 논뚝아래에 신을 가지런히 벗어놓고 논뚝을 베고 누워서 꽁꽁 얼어죽은 사실. 참으로 《삶은 소가 웃다가 꾸레미터질》일이 우리 주변에서 많이 생긴다. 술은 과음하면 대뇌신경이 《억제》되여 리지를 잃으므로 그 결과는 막대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술은 마귀이다. 《충동은 마귀》라고 술을 과음하면 《흥분》되여 쉽게 충동한다. 술을 과음하여 개인, 가정, 사회에 막대한 손실을 가져다 준 사실은 사람들을 모골이 송연하게 한다. 평소에 안해를 《의심》하던차에 술김에 가시집사람, 자기 아버지, 아들까지 도합 7명을 살해한 자가 있는가 하면 술을 과음하고 운전하다가 사람을 치운 다음 도주하다가 사람 7명을 치워죽인 자도 있다. 술은 재앙의 《촉매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것 같다. 생활에서 제일 소중한것이 《평안》이 아니고 무엇인가? 《악마는 사람을 찾아다니기에 바쁠 때 대리로 술을 보낸다》는 속담을 잘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지명지년(致命之年)을 넘은 오늘에 할아버지의 말씀이 새삼스럽게 생각난다. 《술은 배울 때 잘 배워 두거라. 절대 과음하지 말고.》워낙 할아버지는 19살에 술을 딱 끊으시였다고 한다. 열아홉살때의 어느 하루, 할아버지께서 술을 과음하시고 광증이 일어나 속옷바람으로 동네를 뛰여 돌다가 증조할아버님께 발견되여 호되게 《교육》을 받고 그길로 술을 아예 떼시였다고 한다. 얼마나 대단한 분이신가! 혹시 술장소에 가시더라도 식사만 하시고 친구들이 젊어서 호랑이 때려잡았다는 이야기가 나오기전에 집으로 돌아오셔서 책을 읽으셨다. 그이께서는 87세에 세상을 하직할 때까지 병원에 가신적이 없었다. 아마도 술과 담을 쌓은 덕일것이다.   《술이 떨어질 무렵 친구도 떨어진다》는 속담이 있지만 《술이 들어오면 지혜는 나간다.》는 속담을 명기해야 한다. 기실 술친구가 진정한 친구가 아니다. 자주 한 술상에 앉는것은 《다리 부러진 노루 한곳에 모인격》으로 《동병상련》하는데 불과하다. 《비둘기 콩밭에만 마음을 두듯》 술생각이 나서 《동생》 혹은 《형님》을 찾은것이다. 《래일은 산수갑산에 갈》지라도 술이나 한잔하고 보자는것이다. 따지고보면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수요에 따라 사람을 사귄다. 《내 집지붕에 불이 붙어야 진정한 친구를 알아본다》고 술친구를 믿는 자는 지혜롭지 못하다. 《진날 나막신 찾듯》이 불리우는 술친구가 되지 말아야 한다. 한 사람이 일생에 《생사고락》을 함께 할수 있는 친구 한사람만 있으면 그 사람은 《대부자》이다.   술은 《들말》과도 같이 《야생》을 갖고있기에 잘 다루고 길을 들여야 한다. 술은 《마귀》이기때문에 《제어》할줄 모르면 《불행》을 입는다. 술을 잘 다루는 자가 지혜로운 사람이다. 술을 탐하는 사람은 미련한 사람이다.   술은 모락모락 피여오르는 석연(夕烟)이다. 주향이 풍기기에 인류는 대대손손 이어갈수있다. 술을 마시고 구토한후 풍기는 악취는 언어로 형용하기 어렵다. 때문에 우리는 《환경》을 《오염》하는 고약한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한다.   술은 한수의 서정시이다. 격정이 넘치는 서정시이다. 술은 한수의 서사시이다. 눈물겨운 사연도 있고 아름다운 이야기도 씌여진 서사시이다. 자, 우리 모두 주옥같은 시를 지읍시다! 건배!!!    길림신문 2011-06-29    
103    [응모작품] 아름다운 나눔의 진맛-술 (량태은)-길림신문 댓글:  조회:4239  추천:12  2011-06-29
아름다운 나눔의 진맛-술   량태은     술이란 알코올이 함유되여있어 마시면 취하게 되는 음료의 총칭이다. 술은 대개 양조주, 증류주, 혼성주로 구분된다.   오랜 옛날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술을 인간이 우연히 맛보게 되면서 술의 력사가 시작되였다고 한다. 우리 나라 양주력사는 5천년전 《용산문화》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상고시대 술의 용도는 주로 제신용이였지만 인류사회가 발전하면서 술은 인간의 삶에서 빠질수 없는 기호품으로 변천하여 사람들의 물질적, 정신적 생활과 사교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사람들은 그 술로 자기만의 례의, 기분, 정취, 심경을 표달하였다. 술은 자고로 희노애락의 촉매제로 사람들에게 기쁨과 용기를 주고 힘과 열정에 넘치게 하며 사랑과 진정을 토로하게 하였다. 그래서 성숙된 음주문화 그 속에는 소중한《추진력》요소와 아름다운《나눔》의 진맛이 담겨져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술은 땀동이 쏟으며 일하고 난후 시원한 청량감으로 로동의 힘겨움을 달래주는 신비한 령약이였고 더불어 사는 세상에서 친한 동네 벗과 권커니 작커니 서로 잔을 기울이며 우정을 나눌 때 그 진맛을 느낄수 있다. 이 점은 분명 가정에서와 사회생활에서 훈도로 이루어진것이다.   나의 어머님은 음식솜씨가 동네에서 첫 손 꼽히는 분이시였다. 특히 조선족전통주-막걸리 담그는 솜씨는 동네방네에 소문이 자자했었다. 인정많고 후더운 어머님은 늘 막걸리를 손수 만들어 동네어르신들을 대접하고 마을사람들과 나누어 먹었다. 그리하여 우리 집에는 항상 사람들로 흥성흥성했으며 특히 설명절이 되면 많은 동네 젊은이들이 세배인사하러 왔는데 물론 어르신을 존경하는 마음도 있었겠지만 또한 우리 집 막걸리를 탐내여 오는 속셈도 깔려있었다.   우리집에는 또 아버님의 한족 친구들도 자주 찾아와 술을 마셨는데 막걸리와 조선족의 전통김치는 그들에게 특히 인기가 높았다. 인심 후한 어머님은 그들이 돌아갈 때면 항상 포기김치나 고추장을 조금씩 담아주고 막걸리술을《푸른 대병》에다 가득 담아주셨다. 이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익숙히 보아온 장면이였다.   어느 한번 나는 아버지, 어머니가 들에 일 나간 틈을 타서 한동네의 내 또래 개구쟁이친구들을 한구들 청해놓고 술독에 거꾸로 엎드려 술독밑에 깔린 술을 술바가지로 박박 긁어퍼서 친구들과 돌아가면서 술맛도 모르고 꿀꺽꿀꺽 들이켰다. 그리고 배추김치를 썰지도 않고 저마다 줄줄 짲어서 안주삼아 먹었다. 코흘리기친구들은 고추가루가 벌겋게 묻은 입가며 술독이 올라 빨개진 얼굴들을 서로 쳐다보고 깔깔 웃어댔다. 그중에는 말괄량이 계집애들도 셋이나 끼여있었다. 조금 지나니 꼬맹이들은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다가 하나둘씩 구들방우에 꼬꾸라지기 시작했다. 들일 마친 어른들이 제집 아이들을 찾으러 와 깨워서야 한구들 늘어졌던 우리는 영문을 알게 되였다. 부모들과 마을 어른들은 모두 허리를 잡고 웃느라 우리를 그 자리에서 나무라지 않으셨다. 이것이 바로 내가 소시적 청한 첫 술파티였고 나눔이였던것 같다. 근 60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40년 공직생활 또 정년퇴직후 지금까지 나는 부동한 장소에서 이런저런 많은 사람들과 각종 명목의 술을 마시고 나누었다. 그가운데 제일 맛있고 즐거운 술의 나눔은 60년대초부터 80년대말 현성으로 조동되기전까지 근 20년간 농촌에서 사업할 때 마셨던 술인것 같다. 그때 나는 기층에서 인생의 황금시기를 불태웠고 많은 시련도 겪으면서《술 한몫 일 한몫》이란 나름대로의《어록》까지 지어냈었다.   그러나 항시 깨끗한 술을 마셨고 깨끗하게 술을 마셨다. 그중에도 60년대 국민경제 잠시 곤난시기 술표로만 살수 있는 모자리술, 수전농사하는 우리 조선족에게만 차례지는 특혜술, 얼음받친 무논에서 맨발로 작업하는 우리 농민들 몸을 따뜻하게 녹였던 그 술이 참으로 달았고 시간 절기 앞당기겠다고 별을 이고 나갔다가 달을 이고 돌아오는 강도높은 모내기철에 마시던 새참술이 꿀맛이였고 해마다 있던 풍년농사 수익분배 및 총결대회에서 뭉치돈 타가는 우리 사원들의 행복한 얼굴들을 보면서 온 마을이 모여 나누는 총결술이 제일 즐거웠던것 같다.   촌간부나 기관간부들이 애로나 고민이 있을 때 달려가 내가 가지고 간 술을 권하면서 속심을 털어놓고 나눈 끝에 사상보따리를 던지고 새 사람이 된 모습으로 화답술을 마실 때 그 술이 제일 통쾌했고 저수지건설, 국도건설, 송화강 제방건설, 전비용삼선도로건설 등 현장에서 민공들과 마신 위문술이 제일 감동적이였는가 하면 느닷없이 몰아치는 차가운 정치운동바람에 살아남기 위하여 마셨던 담키우기술이 제일 쓰고 또 인차 취한것 같았다.   술은 알고 마시면 장수한다. 적당하게 마시는 술은 혈약순환개선, 신진대사촉진, 신경안정에 리로울뿐만아니라 위장에 적당한 자극을 주어 소화에도 도움을 주며 질병의 원인되는 스트레스의 해소에도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한다. 하지만 술은 또한 마약과 같은 중독성이 있어서 많이 마시면 신경계통장애, 심장계통장애, 소화계통장애 등 우리 몸 곳곳을 손상시킬수도 있다. 술의 이러한 작용으로 약이 되느냐, 독이 되느냐 하는것은 남녀로소를 막론하고 결국 마시는 사람 자신에게 달려있다.   술의 흡수속도는 위내 음식의 량, 술의 종류, 술의 량, 마시는 사람의 체질, 술 마실 때의 분위기, 감정 등에 따라 사람마다 많은 차이가 있지만 술에 취하거나 술을 깨는것은 알코올대사 과정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관건은 어렵지만 폭주를 하지 말아야 한다. 한때 이런 웃음거리가 있었다. 술을 처음 마시기 시작할 때에는 양과 같이 온순하던 사람이 조금 더 마시면 사자처럼 사나와지며 조금 더 마시면 원숭이처럼 춤을 추거나 노래를 부르게 된다. 그리고 더 많이 마시면 토하고 뒹굴면서 돼지처럼 추해지게 된다. 모든것은 지나치면 인성을 망치기 마련인바 술마시는것도 자제력이 필요하다. 동서양 음주문화의 차이점으로 보면 동양의 음주문화는 권주를 즐기며 주량이 많은 이를 높이 평가하는 문화인 반면에 서양의 음주문화는 철저히 개인적인바 각자 자신이 마시고 싶은만큼 각자가 따라 마신다. 나는 장소와 대상에 따라 종합적으로 받아 들이는 편이다.   황혼에 접어들면서부터 나는 꼭 옳바른 음주습관을 지켜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즉 하루에 알각잔 한잔 정도의 음주만을 즐기고 일주일에 적어도 이삼일의 휴간일을 갖는다. 공복에 절대 마시지 않으며 술좌석에서 천천히 마신다. 안주를 충분히 먹으며 섞어서 마시지 않고 음주후 목욕을 피한다. 젊었을 때는 나도 흰술을 즐겨 마셨으나 이제는 부인과 함께 어머님께 물려받은 조선민족 전통주-막걸리를 손수 만들고 마시고 나누며 즐기려고 한다. 짧게나마 몇년전부터 마시기 시작한《통천포도주》를 앞으로도 계속 동반하고 싶다. 와인도 알면 알수록 참 매력적인 술이지만 외국 와인을 즐기려면 어느정도 경제적인 부담이 된다는게 흠이다.   격변기 대이동속에서 살아가는 중국조선족, 흥성하던 조선족마을은 절반이상 없어지고 조상들이 피땀으로 개척한 논밭에는 눈을 씻고 봐도 이제는 조선족사원이 일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고 인구감소로 몇곳 남지 않은 중소학교의 그 넓은 운동장에 몇줄 안되는 학생들과 로인협회가 주축이 되여 고향을 지키고있는 현실이지만 실로 자랑할만한 우리의 음주문화는 아직 살아 숨쉬고있다. 인심은 천심이라 음주문화의 아름다운 나눔의 진맛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있느냐를 막론하고 영원히 우리 민족을 똘똘 뭉치게 하고 나눔과 사랑으로 더불어 사는 이 세상을 더욱 아름답고 찬란하게 장식할것이다.    길림신문 2011-06-29    
102    [응모작품] 술이 낳은 걸작 (최영환)-길림신문 댓글:  조회:3891  추천:9  2011-06-29
술이 낳은 걸작    최영환     초상집에 가 후사를 돕고나면 의례 술상에 마주앉게 된다. 제사날이나 산소에 가서도 세상 떠난이에게 술을 부어 올리는게 우리 민족의 미풍량속으로 되여있다.   술은 유전되는가 보다. 아버지의 네 형제, 그리고 나와 세 자녀 모두가 술에는 빵점이다. 명절날 아침에 로친이 술 한잔 들자고 할때서야 《오늘이 명절이지》하며 겨우 한잔 굽을 내면 그만이다. 이 세상 남자들은 주색을 즐긴다는 말이 있는데 나는 술을 즐기지 아니하니 반편짜리 남자라는 위축감마저 들때가 있다. 이런 내가 술에 대해 말하자니 어딘가 어색한 감이 든다.   한족들은 안주를 먹기 위해 술을 마시고 우리 조선족들은 술을 마시기 위해 안주를 먹는다는 말이 있는데 나는 뭇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 술을 좀 마신다. 퇴직후 로인들과 자주 술좌석에 앉다보니 인젠 소주를 둬냥 마셔도 별탈 없다. 하지만 고혈압이기에 평상시에는 소주를 극력 자제하고 레드와인을 한 두잔씩 마신다. 레드와인은 세계 10대 건강식품에 속한다기에 때로는 내가 직접 사다 마시기도 한다.   기뻐도 술, 슬퍼도 술, 산 사람도 술, 죽은 사람도 술, 모든 연회에서도 술 ...하여간 술은 빠뜨릴데 없는 약방의 감초다. 술은 또 사람들의 피로, 우울, 고독과 스트레스르를 해소시킴과 동시에 국가, 사회단체, 사람들 지간의 친선을 증진시키며 때론 춤판과 울음판, 싸움판을 낳는 특유의 기능도 갖고있는 명물이다.   춤판의 사례를 하나 든다면 몇년전 한 로인협회에서 버드나무 우거진 강변으로 들놀이를 갔었다. 점심식사가 시작되니 당연히 술이 앞섰다. 삼삼오오 모여앉은 로인들은 곳곳에서 《당나발은 위하여!》, 《나가자를 위하여!》등 이상야릇한 건배사를 웨치며 한창 열을 올리고있는데 때마침 록음기에서 흥타령이 흘러 나왔다. 다정다감한 안로인들이 먼저 춤을 추기 시작했다. 남아대장부로서 녀성들한테 뒤져서야 되겠냐며 바깥로인들이 합세하니 삽시에 춤판이 이루어졌다. 이 춤판은 술이 낳은 흥겨운 걸작이 아니라 할수 없다.   술이 낳은 울음판을 들어보자. 작년 여름 어느날 영길현 구전진에서 비참한 광경과 비통한 참상이 벌어졌다. 조선족 중년남자 2명이 평소에 마작친구로 사귀여 온 20대의  두 한족처녀와 함께 자가용차를 몰고 들놀이를 갔다. 돌아올 때 취중운전에다 과속으로 인해 길가의 한 사택을 들이받아 당장에서 두 남성은 사망했고 중상을 입은 두 처녀는 병원까지 호송되였으나 과다출혈로 사망했다. 이렇게 삽시에 벌어진 취중운전사고로 네집에선 동시에 비통한 울음판이 벌어졌다.   《락이 극도에 이르면 슬픔이 온다》는 사마천의 명언이 떠오른다. 이 사실을 통해 우리는 《술이 부정적인 면이 더 크게 작용할수 있는 애물단지일수도 있다》는걸 절감하게 된다. 물에 빠져죽은 사람보다 술독에 빠져죽은 사람이 더 많다더니 아마 이를 두고 한 말같다. 이 사건 역시 취중운전이 보여준 비극중의 비극이라 생각된다. 이러하오니 WHO에서도 술도 담배와 같이 제한조치로 《주류판매 경로제한, 주류광고금지, 주세인상》등 옐로카드를 들었다고 본다. 물론 음주로 인한 만성병 발생과도 관련되지만도.   올해 5월 1일부터는 취중운전이 형사상 범죄로 인정되고 특히 공직일군들이 취중운전으로 형사처벌을 받게 되면 공직자격도 박탕당하는 등 엄중한 후과를 빚어 내므로 애주가들은 특히 류의해야 할 바이다.   술마신 후에는 입과 몸을 잘 단속해야 한다. 술이 극도에 이르러 망발이 나가면 상대방도 인내의 한계를 넘게되여 싸움판이 벌어지기 십상이다. 이때면 수양이건 례법이건 문명이건 모조리 박산나는 판이여서 술의 진정한 가치와 의미 또한 상실되고 만다.   술 겨루기와 폭탄주는 시한폭탄이라 삼가해야 한다. 음식겨루기는 미련하고 어리석고 옹졸한 저급적인 행위인것이다. 행복중에 가장 큰 행복이 건강일진데 과음해서 신체를 망가뜨리지 말아야 한다. 음주관련 질환으로 죽는 사람이 세계적으로 매년 250만명이나 된다고 한다. 특히 《알콜중독으로 죽는 사람이 마약중독으로 죽는 사람의 20배도 넘는다》고 하니 실로 놀라운 수치이다. 술은 사람마다 주량이 다르고 술좌석의 분위기와 본인의 심리상태 그리고 차려진 안주여하에 따라 술이 당길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는데 우격다짐으로 강권할 필요는 없다. 상대방도 자신의 주량과 분위기 유지를 감안해서 례절스레 사절함이 현명한 처사이다. 한국사람들이나 서양사람들은 술을 권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고 하여 그들을 야속하거나 몰인정하다고 보는 사람은 없을거이다.   집에서 독작음주로 곤죽이 됐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여럿이 마시는 술좌석에서 공짜는 양재물도 마신다는 약삭빠른 생각으로 주는대로 마구 마시고는 곤드레, 만드레 녹초가 되여 옆사람들과 《시비》를 걸며 입씨름을 하여 흥겨웠던 분위기를 어수선하게 망가뜨리거나 이리 비틀, 저리 비틀하여 뭇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는건 문명하지 못하고 광채스럽지 못한 행실이다. 《마음대로 행동하고 놀고 싶은대로 놀고 마시고 싶은대로 마시는것은 유해한 즐거움이다》라고 공자님이 일깨워 준바가 있음에도 말이다.   우리는 너나없이 건강한 술문화를 키우기 위해 이신작칙해야 한다고 본다.   길림신문 2011-06-29    
101    [응모작품] 알고 마셔야 할 음품-술 (양상태)-길림신문 댓글:  조회:3869  추천:4  2011-06-29
알고 마셔야 할 음품-술   양상태   술은 왜 마시는가? 담배를 피우게 되면 신체에 백해무익하지만 술은 적당하게 마시면 신체에 리롭다. 술은 일반적으로 기쁜일이 생겼거나 슬픈일이 있을 때 많이 마시게 되는데 술이 취하게 되면 사람들의 정서가 달라지며 모임장소의 분위기도 새로워 진다. 손님을 청할 때도 술상을 차리게 되는데 교제에서도 필요한 음식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술은 식생활에서 없어서는 안될 장식품이 되고있다.   술을 마시게 되면 일반적으로 남성주량이 녀성보다 우세인데 이는 생리적 원인이라고 한다. 술상에서 보면 일반적으로 적게 마시는 사람, 많이 마시는 사람, 적당하게 마시는 사람이 있고 특수한 사람도 있는데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 술덤벙물덤벙 멋 모르고 마시는 사람도 있다.   술상에서 술 마시는 사람들은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보고 《술도 안 마시고 돈 모아 부자되겠냐》며 말한다. 항간에 《술, 담배 참아 산 소, 호랑이가 물어간다》고 지나치게 린색하게 굴지 말고 쓸데는 써야 한다는것을 형상적으로 이르는말로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에 대한 충고일것이다. 어쨋든 술을 마시려면 공짜 술외는 술값을 치르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공술보고 십리간다》는 말이 있다. 이런자는 자기돈 안들고 공짜로 생기는것이라면 아무것이나 좋아한다. 우리 동네 이런 사람이 있었다. 마을에 누구집을 지나가다가 술상 차리는 기미가 보이면 일부로 헛기침을 자꾸 해대며 불러 들이기를 은근히 기다리다 못이기는척하고 들어간다. 사람들은 이런자를 보고 《술이라면 감투 벗겨지는줄도 모른다》며 비웃기도 한다.   《아무리 친한 술친구도 돈 떨어지면 길가는 손님밖에 안된다》는 도리도 좀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지나치게 공짜를 바라지 말고 너 한잔 나 한잔 낼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술군이 술과 안주를 보면 맹세를 잊게 된다.》 그러므로 술을 마시지 않겠다는 맹세는 거짓맹세나 다름없다. 그래서 술은 남자들을 유혹하는 음식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여 요즘 세월에 술 장소와 술 마시는 사람이 날로 늘어가고있는 추세이다.   술장소에서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 처음에는 사람이 술을 마시게 되고 차츰 술이 술을 마시게 되며 나중에는 술이 사람을 마시게 되는데 술 마시는 고조가 일어나면 술을 많이 마시는 무지한 사람의 입에서는 《술 단지는 지고는 못가도 마시고는 간다》고 장담한다. 하기야 옛날 사회에서는 술량이 큰 사람이 도량이 넓고 큰 사나이라고 했던것이다. 요즘 세상에도 그 유래가 있어 술이 해량(海量)인 사람은 담량이 있어보이고 대단한 인물로 돋보인다. 이런 사람은 결국 술이 사람을 마시게 되며 큰 욕을 보게 된다.   《술취한 사람과 아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술상에서 술이 거나하게 취하면 취중진담이 나오는데 취한 속마음을 들여내여 평시에 못하던 말도 취한김에 내놓고 말하고 허튼 소리고 하게 되는데 《술이 취하면 사촌을 기와집 사준다.》는 속담이 나왔다. 이런 사람은 술이 깬 후에 후회하게 된다.   《술이 들어가면 겸손이 물러난다.》 일단 술에 취하면 보통때는 착하고 겸손하던 사람도 용감해지고 제 세상인듯 놀아대는것이다.   술과 계집에 빠지면 목숨까지 잃게 된다. 사람이 술에 빠지거나 부화방탕한 생활에 빠지면 나중에는 그속에서 헤여나오지 못하여 결국 그로 말미암아 돌이킬수 없는 결과를 빚어내게 된다. 중국력사를 돌이켜보면 봉건사회 한 왕조가 멸망할 때는 지고무쌍의 최고 권력자 황제로서 정치에 힘쓰지 않고 백성들의 피를 빨아 먹었는데 그들은 고대 왕실에서 술과 계집에 빠져서 밤낮 먹고 마시며 부화방탕한 생활을 누렸던것이다. 그리하여 력사의 무대에서 쫓겨 나거나 목숨을 잃었던것이다.   사람들은 술취해서 행실이 나쁜자를 《술 먹은 개》라고 욕한다. 한번은 내가 장례집에 갔었는데 초상집일을 보러 온 그중 한 조문객이 술주정을 해 시신의 옷을 태우는 불에다 명태를 구워서 그날 같이 온 사람들의 입에다 안먹으려는데 억지로 쑤셔 넣었다. 술이 아무리 독해도 마시지 않으면 취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술버릇이 나쁜 사람, 심장병이 있거나 고혈압환자는 금주하는것이 좋다.   군사가 손자병법에 이르기를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고 했다. 그러므로 술을 마시려면 술에 대한 상식을 알아서 적당히 마시며 술이 신심건강에 좋은 약주가 되기를 바란다.   길림신문 2011-06-29    
100    [응모작품] 술과 인생 (김순선)-길림신문 댓글:  조회:3346  추천:0  2011-06-29
술과 인생    김순선   술은 술술 넘어 간다고 술이라 했다. 술을 마시고 내리막으로 내려가면 어쩌나 하면서도 사람들은 흥분에 싸여 얼근한 기분에 도취된다. 사회생활에서 보면 우리는 늘 인생살이 희노애락을 술로 풀어보고 마음을 달래보기도 한다.   내가 소녀시절, 아버지세대 분들은 충족하지 못한 안주에 흰술을 과음하고 속이 쓰리는 고통으로 이튿날 아침이면 해장술을 마시군 했고 술주정을 하는 일도 가끔씩 볼수 있었다. 술취한 어른들은 길이 좁다고 몸을 꼬며 소리도 지르고 호언장담하며 《사촌을 기와집을 사주기》도 한다. 우리가 싸리나무를 하고 공소사에 팔고 돈 받으러 공소부안에 들어가면 술판매대에서 어른들은 술 두냥(二两)을 잔을 부딪히며 건배(干杯)하는것을 볼수 있었다. 안주도 없는 술을 그렇게 마시고는 《호언장담》에 푹 빠져 취기를 절제하지 못하고 사람이 술을 마시다가 결국 술이 사람을 마시게 되여버리기도 했다.   술은 농경시대에 있어서 흥분제와 윤활제로 되였으며 활력소로도 매력이 있었다. 내가 소녀시절로부터 처녀시절까지 줄곧 농가일을 하면서 장화도 없이 맨발로 찬물에 들어서 일할 때였다. 모내기때면 술과 막걸리를 발머리에 갖고가서 사발에 부어 쭉 마시고는 혈기가 화끈 오르는대로 찬물에 발목을 잠그고 써레질과 모뜨기, 모내기를 했다.   비가 오거나 흐린 추운 날이면 더구나 술을 애음하게 되였다. 모내기 총결에 과자나 월병을 나누어 먹기도 하고 모여서 푸짐히 음식을 해놓고 술도 곁들면서 즐거운 기분에 도취되여 흥겨운 오락판을 벌이기도 했다. 한잔술에 몸에 쌓였던 피로를 풀고 두잔술에 마음에 엉켰던 고뇌와 고통을 해소했으며 석잔술로 생활의 끈을 단단히 쥐고 삶의 용기를 얻을 신심을 가지게 되는것이다.   술이란 우리 생활에서 없어서는 안될 필요한 존재로서 간혹 큰 대가를 치르는 일도 있다. 우리 툰의 린근 마을에는 안해를 잃은데다 살림이 어려운 쉰고개를 넘어선 남성이 있었다. 혼자 살다보니 점점 일하기기 싫어지고 쌀도 땔나무도 구할데 없었으며 하소연 할곳이란 술마시기 좋아하는 그 술에 얽매여 허송세월을 보내다가 결국은 술로 인해 인생을 종말짓고 말았다.   이웃마을의 68세에 사망한 로인은 젊어서부터 술을 즐기다 보니 다른 병은 없지만 술중독이라 술이 없으면 안되였다. 일하고 오면 술이고 때마다 밥상에 마주 앉으면 술이고 깨고 나면 또 술이다. 나중에는 술을 즐겨마셔 술중독으로 앓게 되였는데 저승가지전까지 쌀물은 못 삼켜도 술만은 잘도 넘어가서 숟가락으로 술을 떠먹였다고 했다. 술술 내리막으로 내려가는 길에 왜 그렇게 자신의 몸도 돌보지 않고 마셨을가?   술이 우리 생활에서 필요한 존재라지만 자신을 잃고 가정을 잃고 생명까지 잃는다면 그 후과는 애달픈 인생으로만 되는것이 아니겠는가.   현실에서 보면 주석(酒席)을 마주하는 일이 많아도 사업과 생활에서 모두 필요로 하고있으며 촉매제로 자리매김을 하고있다. 술향기와 술의 개운한 맛은 참말로 인생의 감미로운 향수로서 느낌이 좋다. 그러므로 주석과 주량을 자아공제하여 주도(酒道)의 선결조건으로 되게 함이 바람직한 술문화이다.   89세인 나의 시아버지는 8남매를 키우면서 가난에 쪼들리고 등이 휘여지게 일해오면서 반세기 넘도록 술과 담을 쌓은 분이다. 술을 마시지 않으니 술친구는 자연스럽게 없었고 술모임장소에도 부르지 않았다고 한다. 하여 시아버지는 일부로 모임축에 찾아가신 일도 있었다고 한다.   회갑때부터 술이란 귀물(贵物)을 벗으로 동무하게 되였는데 지금 끼니마다 밥상에 약주는 빼놓지 않는다. 하지만 년로하신 시아버지는 종래로 과음하거나 술주정으로 싫은 소리 하는 모습은 절대로 보이지 않았다. 로인총결모임이나 생일파티를 막론하고 주석에서 오래 앉아 술마시지 않으며 그 누구의 강권도 모두 제치고 술량이 맞춤하면 자리를 뜬다. 시종 땅을 다루면서 뼈를 굳혀오며 가정을 영위하던 몸에 남들이 즐겨 마시는 술, 피곤을 가셔주는 술도 변변히 마시지 못하고 살아오셨지만 오늘날 시아버지의 술마시는 비결은 술의 노예가 아니라 술의 진정한 주인으로서 활력소이자 보약인것이다.   명절이나 모임에서 술 순배는 피할수 없으나 술로 인해 치안사건과 교통안전위험이 초래될 경우가 있으므로 당신과 가정의 행복을 위해 적당한 음주로 아름다운 술문화를 지켜가고 술을 조화로운 사회발전의 원동력으로 되게 함이 바람직하다.     길림신문 2011-06-29    
99    [응모작품] 건강한 음주의 문화적건설 (김강)-길림신문 댓글:  조회:3322  추천:3  2011-06-29
건강한 음주의 문화적건설    김강   자랑도 많고 지극히 보귀하고…그러면서도 아픔과 치욕으로 얼룩진 우리 조선족 음주문화이다. 어떻게 흠집은 없애고 보귀한 대로 더욱 훌륭하게 건강한 음주문화로 만들것인가? 천박하나마 더듬어 본다.   1. 우리 조선족 음주문화에서 가장 자랑스럽고 보귀한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혼자서는 술맛이 나지 않는다》는 음주문화심리라고 본다.   우리 조선족은 옛날 조상들로부터 물려온 《두레》, 《품앗이》같은 우수한 문화전통을 이어받아 력사적이민-정착문화과정에서 살길찾아 온 다같이 가난한 처지에 직위 신분을 가리지 않고 잘살고 못살고 없이 서로서로가 한데 어울리여 마음과 뜻을 같이 하고 고락을 함께 나누며 힘을 합쳐 함께 일을 성사하는것을 보람으로 여기는 특이한 민족공동체 가치관을 형성하여 문화전통으로 굳히였다.   맛나는 음식은 이웃과 함께 나누어야 마음에 내려가고 《혼자서는 술맛이 나지 않는》 음식-음주문화심리는 바로 이런 가치관의 표현으로서 조선족의 《평민성-평등성-인간성》 문화특수본질을 반영하고 그에 따르는 응집력과 뭉치는 힘을 보여주는 심각한 문화 우수성 의의가 있는것이다. 왜 《혼자서는 술맛이 나지 않는》가? 《함께 나누는 맛(멋)》이 없기 때문이다. 《술 맛》—바로 함께 나누는 맛(멋)이다.   《함께 하는 술》은 조선족음주문화의 정수(精髓)이고 《함께 나누는 맛(멋)》은 조선족음주문화의 령혼이다. 본질적으로 조선족음주문화는 단순생활소비문화가 아니라 《응집-뭉침》 문화에너지-기능을 내재하고 있는 생산적이고 건설적인 문화재보이다. 이보다 더 자랑찬 (음주)문화 어디있을가.   2. 조선족음주문화는 이처럼 자랑찬 문화재보이지만 아픔과 치욕의 흠집이 묻어있다. 그 가운데 가장 큰 흠집은 바로 《과음》이라고 본다.   과음이 우리의 건강과 생명을 해친다는것은 주지하는바이다. 《길림신문》 최근 소식—《조선족남성들이 50대부터 수명에 빨간불이 생기》여 《남들보다 15년 짧다.》 그 주요한 원인이 바로 《과음》이라는 추측이 맞을거라고 생각한다. 인구—간부—인재가 푹푹 줄어들고있는 현실 민족사회 위기상태에서 이는 더구나 가슴아픈 일이다.   과음은 가정파탄을 초래하는 괴수이기도 하다. 수많은 가정의 해체가 자녀교양을 망라하여 심각한 사회문제로 되고 있는 현실에서 이는 더구나 큰 문제로 된다.   과음은 조선족사회 커다란 병페인 과소비와 단짝이 되여 조선족의 문화적이미 지를 흐리우고 생산적이고 진취적인 기질을 갉아먹고있으며 경제-사회발전의 밑천을 《마셔》버리고 있다. 《술 잘 먹고 잘 놀고》, 《조선족의 돈 벌기 쉽고》, 《조선족은 한국돈 을 벌고 우리는 조선족의 돈을 벌고》—민족의 치욕이다.   이보다 더 험한 허물이 있을가. 더는 그런대로 지낼수 없는 손실, 견딜수 없는 치욕이다. 이처럼 험한 허물을 똑똑히 들여다 볼 때 우리는 《과음》에 대한 문화적각성이 있게 될것이다.   건강—생명에 해를 끼치는 음주가 《과음》이라면 가정—사회의 밑천을 말아먹는 과소비음주를 《과음》이 아니라고 할수 없는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조선족의 《과음》의 주요표현은 첫째, 《해장술》이다. 《해장술》은 숙취의 《대표》이고 숙취—과음의 분 명한 척도이다. 둘째, 《사흘이 멀다하는 술판—술놀이》이다. 이런 술판—술놀이는 흔히 《해장술》을 요청할 지경이며 《사흘이 멀다하는》그 빈도(频度)자체가 《과음》과 통하는것이다. 셋째, 《술 소비량 전국 으뜸》이다. 《으뜸》은 《과음》의 최고표현이다.   3. 건강한 음주문화만들기 문화작업—알맹이를 보전—발양하고 흠집을 없애기이다.   ㄱ) 주요목표   1) 알맹이 보존—발양하기   새로운 력사시대에 조선족특수문화 본연의 《술맛》을 보전하고 그에 내재되여있는 생산적이고 건설적인 문화에너지를 발굴하는것은 조선족음주문화의 새로운 력사적과 업으로 제기되고있다.   《함께하는 술》의 실질적 내용은 바로 《마음과 뜻을 같이 하고 고락을 함께 나누며 힘을 합쳐 함께 일을 성사하는것》으로서 응집—뭉치는데 기운이 되는 《술맛》이다. 이런 《술맛》기운을 보전—발양하는것은 조서족의 건강한 음주문화를 만드는데 기본으로 된다. 이 기본을 떠난다면 《혼》 나간 말라버린 음주문화로 변질되고 말것이다.   2)가장 큰 흠집—《과음》없애기   점차 《해장술》과 리별-멀리하고 《사흘이 멀다하는 술판-술놀이》를 점차 거둔다면 나중에 《술 소비량 전국 으뜸》에서 물러나게 될것이며 과음문제가 기본적으로 해결 될것이다.   ㄴ) 주요목표 실현방도   1) 《금전복사(辐射)》에 《로출》된 상태에서 우리의 음주문화 령혼—조선족특수문화 본연의 《술맛》을 지킨다는 것은 결코 쉽지는 않을것이다. 《뭐 좀 먹을만한게 없소?》 (《길림신문》2011년 5월10일자 제1면)하는 오늘의 세월에 정신-령혼은 오염되지 않는다고 장담할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생태환경을 보호하듯이 조선족특수문화본 연의 《술맛》—우리의 생태음주문화를 잘 보호하는 문화작업 계통공정이 필수적이다.   문화는 그 력사적인 공고성에 의하여 관습의 힘을 갖고있다. 일종 문화부산물 로서의 《과음》도 마찬가지이다. 《가장 무서운 힘은 관습의 힘》이라는 명언이 있다. 《과음》을 극복하는데 있어서 거대한 저애력과 난관에 부딪치게 된다는 말이다. 그러나 보다 강한 실제적수요가 있고 강한 사회적책임과 조직력(로년회)이 있는 로년계 층이 솔선적으로 이끌고 강한 학교교육의 힘을 지니고있는 학생계층이 광대한 학부모를 통하여 떠민다면 능히 저애력을 극복하고 상기의 목표에 도달할수 있을것이다.   2) 건강한 음주문화건설활동에 관하여 몇마디   (1) 활동의 주도사상: 조선족음주문화의 특이한 본질적우수성과 흠집에 대한 문화 적각성을 깨우치고 새롭게 건설적인 음주문화분위기를 이루는것이다.   (2) 여론-토론 테마: ⓐ 우리 음주문화 특성, 우수성, 문제점, 어떻게 개진? ⓑ 《과음》에 관한 견해, ⓒ 《해장술》, 《2차 3차》, 《폭탄주》, 《으뜸 술소비량》에 관한 견해   (3)구호: ⓐ 《최고는 ‘함께하는 술맛’》, ⓑ 《주혼(酒魂)은 ‘함께 나누는 맛’에》, ⓒ 《건배(干杯)》를 《량껏(성의껏)》으로 바꾸고, ⓓ 《감정의 술(感情酒)》을 《정이 넘치고 리성이 이끄는 술》로 바꾼다.   (4) 주요 참여자: ⓐ 로년회를 비롯한 민간단체(관내와 국외에서는 향우회, 동창회 등). ⓑ 중소학교학생과 대학생(후대교육 의의)—활동내용은 부모, 친척, 이웃의 음주 관련 사실과 결부(특히 뼈아픈 《과음》의 교훈), 활동방식은 토론회, 변론회, 주제반회, 문예절목 등, 주제는 《술과 우리 가정》 등   (5) 주요리더—《우리》의 언론매체(신문방송 특히 위성텔레비방송, 네트워크)의 조직, 선전이다.   우리의 《4대신문》이 련합하여 나섰다. 그에 따라 우리가 전체적으로 뭉쳐나선다면 꼭 성공하리라 믿는다.     길림신문 2011-06-29    
98    [응모작품] 요즘 녀자 술취하는 녀자(김옥)-흑룡강신문 댓글:  조회:3902  추천:0  2011-06-28
 요즘 녀자 술취하는 녀자   김옥     오늘도 신문사이트들을 뒤져본다. 건강한 술문화 만들기. 신문사에서 조직한 공모 이름 자체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몇달전부터 컴에 오르기만 하면 습관처럼 찾아 읽어보게 되였다. 술문화에 대한 여러 사람들의 견해들을 읽으니 문득 녀자도 안되느냐 하는 질문이 불쑥 튕겨 나온다.     저녁먹고 금방 텔레비죤 뉴스를 시청하고 있는데 딸애의 대학입시때문에 청도에서 현소재지에 와 살고있는 동창생 이름이 휴대폰 벨소리와 함께 폰창에 동동 떠올랐다.     “얘, 래일 쉬지?”     “그럼. 토요일이지 않아? 왜 그래?”     “잘됐다. 딸애의 대학시험도 끝나고 훈춘에서 사업하는 친구가 오니 래일 점심에 모이자. 내가 한턱 쏠게”     친구들이 모여 술이나 한잔 나누자는 이야기다.     하긴 녀자들도 언제부터 술 마시기 시작했는지는 몰라도 요즘에 들어서서 우리 녀성들도 술자리가 무척 많다. 아니 녀성들도 척척 술자리를 만들고 있다.     그렇지만 한때는 녀성들이 술에 취하면 안되고, 녀성들의 입에서 술냄새가 나도 안된다는것이 전통처럼 내려왔었다. 녀성들은 술 한잔 마셔도 자세가 흐트러지면 안된다는것도 숙명처럼 받아들여야 했다. 어쩌다 모이는 설명절에도 부모나 남편의 눈치를 보면서 마셔야 했다.     녀성들의 명절인 ‘3.8’절에도 취하는것은 녀성이 아니고 오히려 남성이다. 아침 일찍부터 남성들이 먼저 멋있게 빼입고 ‘3.8’절 쇠는 집에 모여 마작이나 트럼프를 놀다가도 술상에 앉으면 말로만 “녀성들의 명절을 축하합니다”, “건강하고 예뻐지기 바랍니다.”하면서 권커니 작커니 하는사이에 먼저 취한다. 그래서 설겆이랑 심부름도 결국은 모두 녀성들이 몫이다. 그리고 가끔은 술에 취해 저희 남성들끼리 얼굴을 붉히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한다.     하지만 글로벌 시대에 술이 술문화까지 된 오늘날 우리 녀성들도 술에 취하면 어떠하랴?     녀자들이 취한 모습은 또 하나의 즐거움을 낳는다. 취해야만 했던 선배언니와 내 사촌언니 같은 녀자들은 이 시대 또 하나의 녀성술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는것이 아닐가?     나의 선배언니는 남편이 한국으로 간뒤에도 심한 풍습으로 앓고 있으면서도 애들을 셋이나 거두고 촌 부녀주임 사업에 또 소대 대장까지 맡아 하는데 힘들 때마다 집에서 혼자서 한잔씩 하기도 한다. 가끔은 나도 끼우는데 술에 취해 둘이 마음속 이야기까지 하다나니 밤11시까지 마시기도 한다. 선배언니는 이렇게 술로 뼈를 파고드는 아픔을 달래기도 하고 긴긴 밤의 고독을 달래기도 한다. 선배언니는 촌의 일로 술자리가 많지만 언제나 주량만큼 마사시고 ‘이젠 스톱’ 하면 그 누가 부어도 한방울도 더 안마신다. 그러니 언제, 어디서나 흐트러진 모습을 볼수 없다.     “술에 취해도 집안에서 취해야지 밖에서 취하면 안돼” 이것이 선배언니의 좌우명이다. 그리고 이튿날에는 언제 술에 취했나싶게 깔끔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한점 취한 모습 남에게 보일세라, 흐트러진 모습 남에게 보일세라, 집에서만 취하는데 이런 녀성이 이렇게 술에 취하면 어떠랴? 녀성들도 힘들 땐 술로 그 순간순간들을 넘기면 안될가? ‘술을 빌어 근심을 덜려 하니 근심은 더해만 간다’고 남성들은 근심거리가 생기거나 스트레스도 술로 푼단다. 인젠 술에 취하는것도 남자의 특권만 아니라고 본다.     원래 부드러운 맛이라곤 없이 무뚜뚝한 나의 사촌언니는 어느날인가 친구들과의 술상에서 남편에 대한 호칭에 대하여 담론하게 되였는데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와 “자기야, 내가 돌아왔어요”하고 인사하고 또 시어머니 방에 들어가 “어머니 제가 돌아왔어요, 술 마시고 취해서 미안합니다. 편히 주무세요”하고는 곱싹 경례까지 하며 물러나왔단다.     놀란 형부가 이 녀편네 오늘 취했나 하면서 꿀물 타준다, 젖은 물수건을 갖다 준다 하면서 한참 부산을 떨었단다. 그 일로 서로 아니꼬와 하던 고부관계가 샘물처럼 다시 맑아지고 안해가 무뚜뚝하다고 늘 나무람만 하던 남편도 며칠이 지나도록 벙글벙글 입을 다물지 못하더란다.     이렇게 술에 취해서 녀성의 아름다운 본의를 보여주는데 누가 술에 취해 주정했다 하겠는가? 누군가가 술을 마시려거던 취하라고 한다. 술은 취하려고 마시는것이다.     이런 아름다운 실수는 그 누구나 용서하고 리해해 줄수 있는것이 아닐가? 아니 누구나 다 이런 실수를 하라고 나는 말하고싶다. 누가 “술 마시고나서야 진심의 말이 나온다”는 말을 남자들의 전매권이라만 하였는가?     녀성들은 술상에서 남성들이 해결못해 안달아하는 문제들을 척척 해결한다. 남자들끼리는 연구, 연구하면서 이붓애비 제사날 미루듯 미루기만 하던 일들도 술상에서 녀성들의 술 몇잔으로 금방 ‘연구’가 끝나버리기도 한다. 녀성들이 술상에 끼워야만 술맛이 제대로 난다고 녀성들이 함께 앉은 술상이고야 웃음꽃이 활짝 피여난다.     하지만 아주 가끔씩은 눈에 담기지 말아야 할 모습들이 보이는게 가슴이 아프다. 술에 취해 길가에 앉아 웩웩거리기도 하고 술상에서 징징 눈물을 쥐여짜 분위기를 엉망으로 만들기도 하고 큰 길에서 고래고래 소리치며 싸우기도 하고…. 이건 실수라도 아름답지 못한, 술을 만들어 낸 사람한테 미안한 실수가 아닐가?     우리 녀성들도 술 마시거든 취해보자. 취해서 아름다운 실수를 저질러 보자. 힘들게 사는 인생에 때로는 세상이 노랗게 보이게, 우리 민족 녀성의 아름다운 품성에 미운 칠을 하지 않는 실수를 해보자. 흑룡강신문 2011-06-28    
술이 싫으면 술상에 앉지 말라   남영선     술은 우리와 너무도 오랜 세월을 두고 돈독한 인연을 맺어왔는바 우리 민족의 시조신화에서도 나오고있다. 술이 우리의 곁으로 와서부터 지금까지 기쁘나 슬프나, 좋거나 궂으나 빠질수 없는 촉매제로 자리매김하여 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너무 먼 옛날은 그만두고 내가 아는 지난세기 70년대말까지도 술이 지금보다는 귀하여 마음놓고 마실수가 없었다. 간혹 벌어지는 생산대모임에서나 아니면 마을에 있는 아이돐잔치, 결혼잔치, 환갑잔치가 있어야 술을 마셔볼수 있었는데 그때면 모두가 얼굴이 불깃불깃해서 세상이 녹두알만큼 돌아가 공연히 흥이나 들에서도, 초가삼간의 구들우에서도 바가지 장단에 타령을 뽑으면서 딴스를 추었다. 또 어떤 축들은 힘을 쓸데가 없어 팔을 걷어부치고 크게 한판 싸워보기도 하였는데 결국 술의 작간이였기에 이튿날 화해술 한잔이면 모든것이 소나기뒤의 하늘처럼 말끔히 가셔지군 하였다.     가장 인상깊었던 일은 징구량을 바치거나 밤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생산대에서 특별 배려하여 닭이나 게사니를 잡아주는데 그때 일부 사람들은 고기를 많이 먹기 위하여 몸이 좋지 않다는 핑게를 대면서 술상에 앉아 술은 마시지 않으면서 고기로 배를 불리였었다. 그때는 그러는 그들이 정말 꼴불견이여서 술군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았었다. 그런 사람은 어쩌다 한둘뿐 대부분이 술을 만취되도록 마시고 흥이나서 손을 저으며 이야기판을 벌리군 하였는데 당시로서는 제일 즐거운 일이 아닐수 없었다.     지금처럼 풍족한 시기가 아니여서 술을 마시지 않고 안주만 먹는 사람이 눈총을 받았다면 요즘처럼 먹고싶은것이 없고 상다리가 부러지게 음식을 차려놓고도 먹을것이 없다는 세월에도 술상에 앉아서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은 그 본인도 재미없겠지만 함께 술상에 앉은 사람도 술을 마시지 않고 말뚱거리면서 앉아있는 사람이 곱게 보이지 않는다.     술이란 서로 부어주고 권하면서 분위기를 둥글게 만들어가는 재미에 마시는것이라고 본다. 술을 마셔본 사람은 다 알다싶이 술상에 앉은 사람중 령도나 껄끄러운 사람이 있어서 틀을 차리면 자연 술상분위기가 식어지면서 술맛을 잃어가지만 령도라도 틀거지가 없이 무랍없이 어울려 술상분위기를 만들어간다면 술맛도 좋겠지만 즐거운 분위기를 만들어갈수 있는것이다. 신분제도가 엄했던 리조시기도 주막에서만은 서로가 잘 어울렸다고 하였으니 예나 지금이나 술상에서만큼은 무랍없는 분위기가 중요함을 알수 있다.     나도 한때는 건강으로 술을 절제하게 되였었는데 술을 마시지 않으면서 술상에 앉자니 남들보다는 나 자신이 재미가 없고 싫어지는걸 느꼈었다. 술이 몇순배 돌아가자 모두들 얼굴이 불깃불깃해지면서 주흥에 못이겨 서로가 무랍없이 이야기를 하는데 나만이 정신이 말뚱말뚱해서 앉아있자니 참으로 고역이 아닐수 없었다. 그후로 한동안 술상을 피해다녔는데 피치못할 사정으로 꼭 가야 할 때는 잠간 앉았다 일어나군 하였었다. 그것이 나나 술마시는 술상의 분들에게 더 편한 일이여서 좋았다.     술을 마시면서 보면 남자는 물론 녀성들도 술상의 분위기를 둥글게 만들어가는 녀성이 돋보인다. 꼭 자신이 취토록 마셔야 한다는것이 아니라 술상의 분위기를 맞추어 수시로 권주도 하고 또 롱담도 섞어간다면 모두가 거기에 끌려서 술을 마실수가 있는데 왜 즐겁지 않겠는가.     남자라면 술도 적당히 마실줄 알아야 하며 또 때로는 가까운 사람과 마시면서 취해보기도 하고 속심도 털어놓는다면 스트레스 해소는 물론 그때만큼은 세상의 모든것을 자기가 다 독차지한 기분이고 대통령이라도 된 기분이여서 즐겁지 않을수 없다. 그렇다고 매일 취중에서 살자는 말은 결코 아니다. 대신 간혹 취할줄 아는 사람의 흉금이 넓고 술상에서 술도 마시지 않고 눈치만 보는 사람의 흉금은 단추구멍만 하지 않을가 생각해보게 된다. 적어서 술에 취해본 사람은 다른 사람의 실수를 리해해주고 쉽게 마음을 푸니깐 말이다. 술에 취해보지 않은 사람은 항상 맑은 정신이여서 좋겠지만 타인의 실수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실례를 많이 보아왔다.     술상에 앉았으면 흙이 되도록 만취가 되자는 말은 아니지만 얼근하게는 마셔야 둥근 분위기를 만들어가면서 즐거울수 있다. 사람이 술을 마시고 술이 술을 마시며 술이 사람을 마신다는 술3부곡은 누구나 다 아는 말이다. 술을 마시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술이 술을 불러올 때 스톱하기가 힘들지만 거기서 그친다면 마음도 즐겁고 실수도 하지 않을것이며 분위기도 좋을것이다. 술이 사람을 마신다면 그건 건강을 해치는것은 물론 쉽게 리지를 상실하게 할수 있으며 리지를 상실하면 자연히 점잖은 사람이 없이 실수를 불러오기 마련이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서 술상에 앉으면 맑은 정신으로 얼근해지는 사람들을 보게 될것이며 그런다면 마치도 바늘방석에 앉은 기분이 될것인바 술이 싫다면 아예 술상에 앉지 않는것이 좋을것이다. 만약 앉았다면 신체상황을 봐서 조금은 마시면서 권주도 적극적으로 하고 술상의 분위기를 둥글게 만들어가는데 한몫해보는것도 즐거운 일이 될것이다. 흑룡강신문 2011-06-28        
96    [응모작품] 와인의 세계《보르도》로! (김해연)-길림신문 댓글:  조회:3824  추천:1  2011-06-27
와인의 세계《보르도》로!    김해연 /사진 김파     우리의 아버지세대(70,80세)는 알콜도가 50도 이상인 배갈술이고야 술이라 했고 우리세대(40, 50세)는 《맥주세대》라 할 정도로 맥주로 배를 불리워왔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배갈술로 고달픔을 달래였던 아버지세대의 속 아린 옛말도 우리세대의 맥주배(肚)이야기도 이제는 력사속으로 흘러가고있다. 세월이 달라졌다. 아버지세대도 이제는 시원한 맥주로 배갈에 타버린 속을 식혀가는 여유로움을 즐기시는가 하면 맥주배가 되도록 지치던 우리세대도 《적당히!》 또 《적당히!》하고있으며 《와인 두잔씩!》도 멋스럽게 발탁해 전례없던 술상위 민주화시대를 맞고있다. 아버지세대는 구경도, 맛도 보지 못한 와인이란 술이 발볌발볌 우리에게로 다가와 이제 배갈, 맥주와 어깨 겨루게 되였다. 와인을 우리는 흔히 포도주라 하는데 우리나라 포도주의 력사도 2000년이 넘지만 포도재배나 포도주를 빚는 기술을 서양에서 들여와 귀족들만이 향수할수 있었던 술이였다고 할수 있다. 개방의 문호가 틔이면서 문명의식이 달라지고 우리의 술문화도 모름지기 일대 변화를 일으키고있다. 우리나라 와인 소비추세가 급작스러울 정도로 빨라지고있는데 2010년은 술소비시장의 26%를 육박하고있다는 통계가 나왔다.이는 3,4년전의 2배에 가까운 수자다. 그중 수입 와인이 아직 50%이상을 차지하고 있는데 지난해 수입량이 0.3억리터 된다고 한다. 그제날 서양사람들은 중국사람이 와인을 생산해내리라고는 믿지 않았다고 하는데 100년력사를 자랑하며 국제 와인시장에 출두하는 《장유》, 뒤이어 《장성》, 《고정》, 《모태》 등 중국브랜드의 포두주가 속출되고있으며 포도주의 깊은 매력은 날로 우리 백성들한데까지 널리 확산돼 가고있다 할수 있다. 주변에서 와인소리가 부쩍 들려오는것도 퍼그나 자연스러워졌다. 일전 나도 《보르도》(波尔多)에 초대받은적 있다. 보르도하면 세계 포도주중심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서남부 도시다. 내가 간 《보르도》는 보르도의 축소판이 아닐가 싶다. 센스있는 친구 왕정(王晶)포도주경영보스가 연길시 광명거리 광명로에 차린 와인방이다. 세계적으로 와인의 종류가 1000가지 이상으로 헤아릴수 없다지만 아직은 와인의 벽지라할수밖에 없는 이곳 연길에서 이렇게 많은 종류와 다층차의 와인을 볼수있고 현장에서 음미할수 있다는것만으로도 활홀경이 아닐수 없다. 격층으로 된 《보르도》 아래층엔 프랑스, 에스빠냐, 미국, 오스트랄리아 등 나라들과 우리나라 와인 60여가지가 진렬돼 각이한 소비군체를 상대하고 위층은 바로 선택한 와인을 적격의 안주와 음악과 함께 음미할수 있는 장소로 설치돼있다. 예서 손님들은 자신이 택한 와인의 류형에 따라 궁합안주도 안내받을수 있고 어덯게 마시면 와인의 최적 효과를 향수할수 있는가 하는 등등 상식도 눈으로 마음으로 터득할수 있게 된다. 와인은 보다 건강하게 마셔야! 왕정은 고급술도매경영을 수년째 하면서 돈버는 재주가 늘었다기보다 일정한 술문화를 료해하고 접수하게 된것이 더 큰 수확인것 같다고 한다. 서양사람들이 포도주를 토록 좋아하는가 하는 리유부터 오늘날 우리나라 사람들도 날로 포도주를 선호하는 포도주의 깊은 매력에 매료되여 아예 이 와인방을 차렸다고 한다. 간판 이름도 포도주문화의 대표적인 도시인 보르도를 인용했는데 여기서 포도주세계를 료해할수 있도록 도우미해드리고 싶다는 그녀, 포도주를 보다 건강하게 마시는 리념으로 리드해가는데 앞서고있다. 인류가 지금까지 발굴해낸 포도주의 인체 유익 성분이 무려 600가지라 한다! 포도주의 자양, 항로쇄, 항병, 항암 등 다종 효능과 오늘까지도 다 파헤치지 못한 포도주의 백층천층되는 신기루문화가 반드시 우리의 음주문화권에 깊이 침투해 그 미스터리를 한층한층 베껴내는데 우리도 동조하게 될것이란것을 확신한다는 왕정, 연길에 정착한 외국인 단골이 있은지도 한참이고 당지 시민단골도 늘어나는 편이라 한다. 와인 한병을 한사람이 4, 5일회로 나누어 (남는 와인을 보관시키거나 가져가게 포장해준다.)마시는것이 몸에 적당량이고 와인색상에 따라 흰와인,붉은 와인으로 가르는데 흰와인 적격의 안주는 흰살로된 생선류생회료리 등, 붉은 와인의 궁합료리는 붉은 색의 육류나 과일, 남새샐러드. 등으로 부동하다고 한다. 와인 한잔의 향수, 소갈비+와인의 광경은 영화에서만 보던 서양식이라고만 생각할것이 아니라 《보르도》에서 바로 체험하면서 그속의 과학적인 자양효과성에 대하여 알게 된다. 배갈도 맥주도 다 그만한 미식도리를 가지고있지만 그 도리를 지켰다는 사람 있을가? 한것은 바로 술의 제작 공예로부터 술의 가치가격 및 그 술을 마시는 제반 배경, 환경, 조건 등등 요소가 술을 어떻게 마시는가를 말해주고있음을 우리는 와인과 더불어 알게 될것라며 왕정은 와인방의 련발하는 에피소트를 들려준다. 와인방에 와서도 호걸호담을 내색느라 몇백원, 지어는 천원넘는 와인을 몇이서 인당 한병꼴도 더 되게 련속 건배를 웨치며 마시고 가는 못말리는 부자들이 있는가 하면 와인 안주를 배갈안주나 맥주안주와 분별없이 아무렇게나 시키는 현상은 더구나 여사라고 한다... 그래서 《보르도》는 술만 파는데 그치지 않아 할일이 많다는 왕정, 손님들을 분별하여 나름으로  쌓아온 와인문화소개에 드바쁘지만 때론 한계를 느낀다면서 와인 감별사자격을 따러 곧 북경으로 간다고 한다.   길림신문 2011-06-27    
95    [응모작품] 내가 보는 우리네 술문화 (오기수)-길림신문 댓글:  조회:3072  추천:0  2011-06-23
내가 보는 우리네 술문화   오기수     우리 백의동포들은 한많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인생의 온갖 희로애락을 한잔 술에 담아 꿀꺽 삼키기를 좋아하는것 같다. 술이란 사람을 흥분시켜 웃게도 하고 울게도 하고 때론 실수하게도 만들지만 더불어 사는 세상에 술이 없다면 우리의 삶은 얼마나 맹맹하고 따분하고 무미건조할가? 어찌 보면 술이 있어 이 세상이 더욱더 다채롭고 랑만과 풍요가 있는것 같다.   나는 어려서부터 우리 마을 어른들이 줄기차게 술마시는 모습을 보면서 자랐다. 크고작은 명절이나 누구네 생일, 잔치며 제사날이며 아무튼 마을에 색다른 날만 있으면 어김없이 술판이 벌어지군 했다. 술은 도깨비물이라는 말과 같이 술이 거나해지면 모두가 하나같이 얌전하지 않다. 휘청거리는 사람, 토하는 사람, 바지에 지도를 그리는 사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사람, 실로 각양각색이였다. 하지만 대체로 술상이 끝나면 흥겨운 오락판이 벌어지군 했다. 그때면 헐벗고 초라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북치고 장단치고 흥겨운 가락에 덩실덩실 춤을 추며 돌아가는 행복한 모습들은 그야말로 동네방네 화합과 친목을 다지는 한마당 잔치였다.   류수같은 세월속에 어느덧 나 역시 어른이 되여 저도 몰래 우리네 술문화에 빠져들게 되였다. 타고난 술체질은 아니지만 사회에 적응하고 내 나름의 이름값에 살아가려면 우리 사회 술문화를 외면할수가 없었다. 그 당시 술 잘하는 사람이 부러움의 대상이였고 술자리가 많은 사람이 잘 나가는 사람으로 치부되였다. 우정을 다지고 대인관계를 돈독히 하고 상호 신뢰를 짭짤하게 구축하는데는 술을 따를만한 매개물이 없을것이다. 그리하여 반가운 사람을 만나면 밥먹자가 아니라 술먹자였다. <<술은 맛으로 마시나 기분으로 마시지.>> 이것이 젊은 시절 우리네 친구들의 한결같은 술철학이였다. 우리는 그저 취하기 위해 마시고 술이 좋든 나쁘든 정때문에 마시고 분위기때문에 마셨다. 물론 우리네 술상은 늘 끈끈하고 화기애애하고 랑만이 숨쉬는 멋진 풍경이였다. 허나 여기엔 치명적오류가 있었다. 인생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건강이 배제된것이다. 빛좋은 개살구처럼 겉보기엔 화려하나 실은 품위와 절제를 내던지고 스스로 자기 몸을 혹사하는 어리석은 술문화였다. 우리는 이러한 질곡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부어라 마셔라 하면서 정말로 많은 술을 마셨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나는 항상 춤도 잘 추고 노래도 잘하고 술도 잘 마시는 우리 민족에 대한 자부심을 안고 살아왔다. 허나 처음에 한국에 오니 아무리 한뿌리요 한족속이라고 해도 오십년 가까이 서로 다른 사회체제에서 다져진 문화의 이질성때문에 술상에서마저 코드와 박자가 엇갈렸다.   한국에 온지 삼일째 되던 날 회식이 있다는 소식에 귀가 솔깃해졌다. 상다리 부러지게 차려올린 푸짐한 산해진미에 찰찰 넘치는 술잔과 하얀 물꽃 피는 맥주컵이 눈앞에 얼른거리고있었다. 허나 옷을 갈아입고 회사식당에 들어서니 밥상에 달랑 김치 몇접시를 놓고 삼겹살을 굽고있었다. 도저히 믿을수가 없었다. 알각잔에 부어주는 소주를 마셔보았더니 술인지 물인지 간에 기별도 없다. 가슴이 부글부글 끓어올라 참지 못하고 맥주컵으로 원샷을 했더니 다들 놀란 사슴마냥 두눈이 퉁사발이 된다.   허나 보슬비에 옷 젖는줄 모른다더니 난 점차 한국의 술문화에 젖어들게 되였다. 물론 한국 역시 술문화의 키워드는 공음이다. 술잔을 돌려가면서 다 함께 마시는 권주문화이다. 가끔 폭탄주도 터치고 2차 3차도 간다. 하지만 자가용의 시대를 살고있는 현실에서 자기 주량에 따라 술을 마시는것이 한국 술문화의 주류이다. 때문에 지나치게 술을 권하는 행위는 실례가 된다. 술을 잘하든 못하든 차별없이 똑같이 강요하지 않는다. 술이 남아있는 잔엔 술을 붓지 않으며 찰찰 넘치게도 붓지 않는다. 자칫 흘릴수도 있으니 상대방을 불편하게 만든다는 론리이다. 자리를 비운 사이 주인없는 잔에 술을 붓는것은 제사상에서나 행할수 있는 실례라고 한다. 잔이 비면 옆에서 바로 채워준다. 잔을 비우는것은 술을 더 마실수 있다는 표시이기도 하다. 누가 자신에게 술을 부을 때면 두손으로 술잔을 잡고 공손히 술을 받으면서 감사합니다, 혹은 고맙습니다 하고 꾸벅 인사를 올린다. 한손에 술병을 들고 다른 한손에 술잔을 들고 따라주는 그런 자세는 볼수 없다. 랑비도 없다. 안주는 먹을만큼만 시키고 남으면 싸달라고 해서 챙겨간다. 전에 상다리 부러지게 차려놓고서도 술만 마시다보니 안주는 절반도 못 먹고 그냥 쓰레기통에 버려야만 했던 그런 랑비문화는 찾아 볼수가 없다.   우유를 마시는 사람보다 우유를 배달하는 사람이 더 건강하다는 말이 있다. 긍정적인 사고로 활기차게 일하고 적당히 운동도 하면서 가끔 제 몸에 알맞게 술을 마시니 한국생활 15년이 넘도록 아직까지는 무병무탈이다. 쑥스러운 자화자찬일지는 몰라도 오십을 넘긴 중년이지만 아직까지도 맥주 열대병정도는 거뜬히 넘길수 있다. 이제 고향에 돌아가면 그립던 고향친지들과 마주앉아 맥주병을 뻥뻥 터뜨리며 한여름 소나기처럼 시원한 맥주를 벌컥벌컥 마시고싶다. 허나 고향에 전화를 하면 종종 반갑지 않은 소식이 들려온다. 술상에서 내노라 하던 멋쟁이 친구들이, 술판을 휘젖고 다니며 잘 나가던 동료들이 하나 둘 술때문에 쓰려졌다는 비보에 가슴이 철렁하군 한다. 잘못된 음주문화때문에 우리네 사람들이 병들고 망가져가고있는것이다. 정말로 세월앞에 장수가 없고 술앞에 장군이 없구나 하는 허무한 생각이 머리를 스치며 착잡한 심정을 금할수 없다.   새삼스러운 얘기지만 술은 적당히 마시면 보약이고 과음하면 독약이라고 했다. 백번 들어도 지당한 말이다. 한잔 술은 사람이 술을 마시고 두잔 술은 술이 술을 마시고 석잔 술은 술이 사람을 마신다고 했다. 술을 우습게 보지 말아야 한다. 한잔, 한잔만 더 하다보면 고주망태가 된다. 때와 장소를 알고 물러날줄 아는 사람이 진정한 술군이다. 술을 잘못 질을 들이면 인생을 조지고 페인이 된다.   흔히들 술은 권배에 마신다고들 하지만 권주는 필히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우선돼야 한다. 친구의 귀를 잡고 입에 벌주를 부어넣던 철없는 술문화, 저가락으로 밥상을 두드리며 농부일생은 무한이라고 세상을 한탄하던 색바랜 문화, 술에 떡이 되여 밤새도록 엉뎅이를 깔고앉아 물러날줄 모르던 망각의 문화, 술이 주인이 되고 사람이 노예가 되는 굴욕의 문화, 부질없는 허영심으로 실속 없는 넉넉함을 뽐내는 랑비문화, 이러한 기형적인 술문화의 고질적잔재는 인젠 정말로 깡그리 사라져야 한다. 우리는 지금 현란하게 눈부신 지식정보화의 고령화시대를 살아가고있다. 우리의 술문화도 이 시대에 걸맞게 깔끔하게 거듭나야 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건강한 술문화를 만들려는 우리 사회 일각의 눈물겨운 노력이 결실을 맺기를 바라며 아울러 과학적이고 건전하고 참신한 음주문화가 하루빨리 정착될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기를 바라는 바이다.     길림신문 2011-06-23        
술상에서 족(族)을 잃는 조선족     김인섭       애시적 우리 동네는 한족마을과 이웃하였었는데 두 민족 생활습성차이에서 돋보이는것이 술습관이였다. 아무튼 음주의 차수, 명목,수량이 한족들보다 많은것은 물론 술뒤의 행태도 환하게 지저분했다는 기억이 생생하다. 지금은 민족의 특성으로까지 여론화되는 판국이다. 이 경관도 현재 변화를 보이나 결과적으로 구습을 벗어나기는 고사하고 더 저속한 역방향으로 나가는 양상이고 술놀이에 민족이 망한다는 가슴아픈 소리도 높아가는 현실이다.   술은 원초로부터 로동후의 긴장을 풀어주고 대인관계를 돈독히 하는 촉매제로서 사회생활의 필수품으로 전해져왔다. 적당량의 술은 인체에 유리하며 사람들 사이에서 휴머니즘을 돋구는 뉴대로 되여 사회의 균형과 조화를 이루게 하며 물질, 문화적 재부를 창조하는 동력에도 가세하게 된다. 허나 도를 넘으면 심각한 건강문제와 사회문제를 야기시키는데 민족사회를 멍들게 한다고 구설이 분분하다.   조선족은 술을 모르면 인맥이 좁아진다며 차수가 많고 과음하고 강권하는것을 당연한것으로 생각하며 돈독한 인연을 위해서는 취해도 무방하다는 사고를 깊숙히 가지고있다. 취중의 웬만한 잘못도 술을 탓하면서 넓은 관용을 보인다. 허나 오늘은 부재차한(不在此限)의 지경에 이르렀다. 먹고 마시고 놀음에 빠진다는 이미지는 항간의 구문보다 심각한, 술에 잠식되여 리지를 잃고 시간을 잃는 와중에서 자기의 사회적존재의 가치를 잃어버린다는것에까지 이르렀다.   조선족 집거지인 연변에서 그 음주행태와 기막힌 부산물을 본다.   일자리가 책상머리라는 사람들은 출근해 일을 좀 보다 10시가 넘으면 술자리를 만들고 다시 딴판을 벌이는건 거의 묵시적인 생활이 되였는데 적은 수도 아닌 상당수이다. 사무를 본다쳐도 그러한 자세로 일하면 일은 또 얼마 하랴는 짐작도 간다. 사무실부재의 원인을 물으면 그럴법한 리유들를 대는데 곁에서 열심이 일하는 사람들이 되려 무안할 정도이다.   술좌석 명목도 파다하다. 명절, 경조사는 제외하고 고향사람, 한집안사람, 동창생, 동갑, 전우 모임에다 네 생일 내 생일 등등 련속 술좌석으로 이어지는데 하루가 멀다이다. 하도 많으니 인젠 다수가 질색이지만 무작정 끌려다니는 양상이다.   연변에서 접대를 잔뜩 받고도 질탕한 음주행이였다고 볼멘소리를 하면서 연변사람들을 욕보이던 한 외국인의 넉두리가 귀에 쟁쟁하다. 그 소리에 귀가 따가왔다. 대접하는 사람들도 정성을 들여 접대하느라 지쳤을것이지만 돈을 팔고 시간을 깨고 몸을 까고 욕을 사는것이니 억울하다 할가! 다른 방법이 없을가! 묻지 않을수가 없다.   술과 관련된 부조돈도 엄청나다. 월급이 2000∼3000원인데 매번 적어도 100∼200원이고 좀 가까우면 500∼1000원인데 이틀 바쁘게 이어지는 술행사에 돈을 들이밀어야 한다.   북경의 한 학자는 80년대부터 30여년간 낸 부조가 단 51원이라는데 체면을 지키는데는 지장이 없었단다. 만약 연길이였다면 한달에 두번쯤 참가해도 800여번인데 적어도 소주 400근은 마셨고 부조돈 12여만원에 1600여시간은 허비했을것인데 흐린 정신에 랑비된 시간은 더구나 많았을거란다. 조선족들이 무엇을 하였을가는 회의가 늘 맴돈다. 해야 하고 피치 못할 상황도 많겠지만 연변의 풍토는 한계선을 훌쩍 넘은지 한참 된다.   이런 악재가 지속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객지에서 들어보면 사람들이 연변으로 가기 싫어하는데는 여러 가지 여건부족도 탓이겠으나 술놀이를 위시한 사회분위기에 생을 망친다는 공동어가 있다. 연변의 술바람은 돈이 독이 되고 금석이 석돌이 되는 큰 소지이기 때문이다. 연변의 악브랜드라 말하는 사람도 없지 않다. 이 흉상이 바로 우리들 사회에서 만연되는 현재진행형이다.   음주로 인한 돈까기, 시간랑비, 건강부식, 사업지체, 가정불화 등 기형괴상이 산적하기만 한다. 여기의 급소는 생활의 정도(正道), 지혜, 의지, 신념, 가치관이 걸레쪽같이 내팽개쳐지고 멋지던 문화적 인간형이 일그러지고있다는 점이다. 라태와 허망에 뒤따르는 과소비, 과사치, 과유흥 등등이야말로 조선족을 장식하는 허화한 거품양으로 번뜩거리는 경색이다.   고쳐야만 하는 민습(民習)인것이다. 상처를 도려내는 극통을 감내하면서 병소(病巢)를 긁던지 자르던지 퇴치하는 용단을 내려야 할 때이다.   어이해야 할고!   우선, 조선족 공무원들이 앞장서야 한다. 인민의 공복들이 자기의 권리, 의무, 영예와 량심으로 틀어진 술문화를 개조하는 진두에 서야 지당하다. 하물며 간부들이 술먹기에 앞장서고 공짜술을 먹어대며 관혼상제를 차리면 떼돈을 번다고 술렁거리는 세태인데 이것은 결코 간과하여야 할 공뜬 랑설(浪說)이 아니므로 솔선하여 적게 마시고  적게 차리고 적게 참가해야 한다. 한 사회현상의 개조는 옳바른 정책적, 가치적 지향이 있어야 할뿐만 아니라 모델이 될 본보기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음, 지성인들이 문명한 음주문화의 정립을 위한 보루를 다져가야 한다. 이건 한순간의 돌관작업이 아니고 긴 나날을 수요하는 체계적인 역사(役事)이다. 지성사회가 민족문화의 오아시스로 되고 지성인들이 언론에서의 견인차 역할이 절실히 필요한 오늘이다.   그다음은 교육이다. 금지옥엽들의 령혼을 키우는 학교에서 도덕교육의 일환으로 건전한 술문화의 주입에 진력해야 한다. 교사들이 조선족특색의 새 문화화원 가꾸기에 정진한다면 이야말로 민족발전의 백년대계라고 역설하고싶어진다.   길림신문 2011-06-23        
고향마을의 '주정뱅이'가 그립다   채송화     단지 술을 놓고 한 인간을 분류한다면 나는 중성(中性)에 속할것 같다. 술을 좋아하는 애주가도 아니다. 그렇다고 술을 싫어하는 혐주가도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동년시절을 농촌에서 보냈는데 그때는 내가 살던 마을에 애주가들이 참 많았다. 어느 집에 결혼잔치, 환갑잔치가 있다고 하면 동네 어른들이 몰려들어 아침부터 술이 거나해서 떠들어댔고 해가 질무렵이 돼야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때론 동네 어른들이 술에 폭 취해 길가에 대자로 쓰러지기도 했다. 물론 마누라와 자제분들의 눈길도 곱지가 않았다.     그때 동네에서 소란을 피우는 ‘주정뱅이'를 목격할 때면 “나는 커서 절대 ‘주정뱅이’가 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술을 마시지 않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이 세상은 술을 떠날수 없다는것을 알게 됐다.     왜 술을 마셔야 하는지, 그리고 마셔야 하는 리유도 없이 가끔씩 술을 입에 대기 시작했다. 그러나 술을 본격적으로 마시기 시작한것은 대학을 졸업하고 신문사에 입사해서부터이다.     가끔 출장을 다니게 됐고 자연 술자리에 앉는 회수가 많았다. 그래서 못마시는 술도 자의반 타의반으로 마시게 됐고 술량도 조금조금 늘어난것 같다.     처음에는 취재길에 농촌에 가서 독한 술을 마시고 새기지 못해 오바이트도 많이 했던것으로 기억된다.     기자생활을 시작해서 얼마 안되여 어느 한 곳에 취재를 갔는데 점심에 술을 조금 마셨다. 함께 술을 마셨던 촌간부가 자전거 2대를 가져오며 나보고 자전거를 타고 자기 마을로 가자고 했다. 그 촌간부가 자전거를 타고 앞에서 길 안내를 했는데 옥수수밭속의 오솔길로 달리는것이였다. 나도 술을 좀 마시긴 했어도 자전거를 타고 오솔길로 제법 잘 따라갔다.     저녁에 또 술을 마시게 됐는데 술이 한순배 돌자 그 촌간부는 "기자를 시험해 보느라고 좋은 길이 있는데 일부러 옥수수밭 오솔길로 왔다"며 "우리 농촌 사람들의 생활을 체험해보아야 한다"고 웃는것이였다.     그날 저녁 나와 그 촌간부는 서로 허심하게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나는 농촌의 많은 실정을 알게 됐다. 아마 내가 술을 마시고 그 촌간부의 ‘시험'에 합격하지 못했더라면 그 촌간부와 허심하게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눌수가 없을것이고 또 농촌의 현실을 파악하는데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지금 돌이켜 보면 술이 결국 햇내기 기자였던 나와 그 촌간부간의 서먹서먹했던 관계를 가깝게 만들었던것이다.     매번 출장을 다녀온 후에는 그 놈의 술때문에 며칠씩 고생을 했던 기억도 생생하다. 하지만. 만약 술이 없다면 농민들의 ‘취중진담'을 들을수 없을것이고 또한 현실에 가까운 기사를 쓸수가 없었을것이다.     기자생활을 하면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술과 어느정도 인연을 맺게 됐고 애주가는 못돼도 반면에 혐주가도 되지 않았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때 동네가 사람사는 맛이 났고 인정이 감돌았던것 같다.     그런데 요즘은 가끔 조선족마을에 가보면 가슴이 아플 때가 많다. 개혁개방후 동네에 오손도손 모여살던 조선족들이 하나둘 도시로, 외국으로 떠나는 바람에 마을은 황페해졌고 황금파도가 물결치는 논판에는 풍년의 기쁨을 만끽하며 환하게 웃음짓던 농민들 대신 새를 쫓기 위해 세워둔 허수아비만 달랑 서있다.     인산인해를 이루어 경기를 펼치던 학교운동장에는 풀만 무성하다. 새농촌건설로 마을길은 콩크리트로 포장됐지만 그 길로 다니는 사람이 없어 한산하기만 하다. 어제날 ‘주정뱅이'가 소란을 피우던 옛 모습은 자취를 감춘지 오래다.     오늘에 와서는 웬일인지 그때 그 시절의 ‘주정뱅이'가 그리워난다. 또 흥성흥성하던 동네가 그리워나고 그때의 '백장군', '황장군'이 그리워난다.     ‘주정뱅이'가 가끔 모습을 보이던 옛날의 화기애기하던 고향마을을 그리며 또한 고향마을에 다시 사람들이 ‘욱실거리'는 번영을 기대하는 마음에 애주가는 아닐지라도 술 한잔 실컷 마시고 단 한번이라도 ‘주정뱅이' 극을 놀고싶다. 그래서 가끔 술 생각이 더 나는지 모르겠다.   흑룡강신문 2011-06-21    
92    [응모작품] 술, 문화, 그리고 정(천봉)-흑룡강신문 댓글:  조회:3247  추천:0  2011-06-22
술, 문화, 그리고 정   천봉     술도 이젠 문화라고 한다.     술문화!     언제부터 술이 문화권에 들었고 사전 어느 귀퉁이에 술문화라고 적혀있는지는 알수 없는 일이지만 처음 술 문화라는 말을 들었을 때에는 그냥 코웃음을 쳐버렸다. 술 문화라는 말도 어느 언어학자나 어휘학자들, 문화연구원들이 만들어내거나 발견한것도 아니고 외국나들이를 하는 이들의 입에서 제일 처음 만들어진것으로 알고 있으니 더 우습기만 했다. 외국 나들이가 이웃집 강아지 시골장터 다니듯 자유로워진 오늘날 할 짓도 없어 술까지도 문화라고 하니 코웃음만 흘러다녔다. 술이 문화가 되건 문화가 술이 되건 그런것은 나와는 늘 별로였고 외국 물 몇년 먹고 우주인이라도 된듯 착각하는 인간들이 한마디로 꼴불견이였다. 사사건건 외국과 비교하더니 술까지도 문화로 만들어가는 량반들이 정말 문화의 참 뜻이나 알가 하는 의문도 가끔 생겼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도 조금씩 그놈이 문화라는데 적응하기 시작했다. 술만 문화인것이 아니라 음식문화에서 화장실문화까지 만들어지는 세월에 구태여 술만 부정해야 할 리유를 찾지 못하니 차라리 거기에 적응하는데 노력했다고 할것이다. 남들을 따라 흉내내기보다는 그냥 환경에 적응한다고 순리로 받아들이니 그 순리란 놈이 주는 혜택도 없것은 아니였다. 술을 문화라고 함께 주절거려주니 술을 못마시는 나같은 놈들도 술좌석에 편하게 끼울수 있고 예전의 못 마시는 술을 억지로 마시던 고통이 사라졌다. 시간이 흐르면서 거부반응보다는 술문화가 가져다주는 혜택으로 나도 그 말에 적응해가기 시작했다.     허나 얼마전 한국에 다녀오면서 술문화란 말을 다시 생각해보지 않을수 없었다. 술문화란 말도 내 짧은 소견같아서는 한국에서부터 흘러들어왔을건데 한국에 나가서 술마셔보니 그놈이 술 문화란것은 도무지 ‘정’을 찾을수 없었다. 술은 안주를 보고 마시는것이 아니라 기분으로 마신다고 하는데 반가운 사람과 함께 할 때는 당연히 정이 넘치고 그래서 술자리가 둥글어지는것이였다. 헌데 한국은 술문화가 너무 발전하여 오랜만에 만난 반가운 친구와도 권커니 작커니가 아니라 상위에 술병을 달랑 올려놓고 자기 잔에 스스로 부어서 마시고 있었다. 술도 문화가 되여서 강권하는 풍속은 떠나갔지만 술군이 아닌 나도 술은 권하는 재미로 마신다고 했었는데 둘만 앉은 공간에서 자작을 해야 하는 술상은 도무지 그놈이 좋은 문화라도 받아들일수 없었다.     평소에 호형호우 하면서 지내던 분과 함께 앉아서 자작술을 마시고 들어오니 술문화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지 않을수 없었다.     중국의 술문화란 타인에게 강권을 하는 그야말로 무지몽매한 문화였다. 하지만 그것도 돌아보면 술잔으로는 담을수 없는 넘치는 정이 담겨서가 아니였을가?     우리에게는 먹는것이 귀했던 시절이 있었다. 배불리 먹지도 못하는 세월이였으니 술을 마신다는것도 쉬운 일이 아니였었다. 마을의 어느 집에 희사가 있거나 명절이 아니면 평소에는 술을 냄새도 맡을수 없을만큼 귀하던 그 시절, 타인에 대한 배려로 귀한 술 한잔 더 권했고 그래서 내려오면서 굳어진 습관이 어쩌면 강권하는 중국의 술문화가 아니였을가?     떡메로 찰떡을 치던 그 시절, 시골에서 결혼식이나 회갑이면 제일 먼저 술상을 갖춰주는 사람들은 찰떡을 친 사람들이였다. 그날 하루동안에 가장 고생을 한 사람이라고 차려주는것이 술상이였다면 그만큼 술은 귀한 존재였다. 그 귀한것을 타인에게 하나라도 더 권하려는 넘쳐나는 정이 담겨 있었다. 그래서 권주는 무지몽매와만 통하는것이 아닌 따스한 정도 담겨져 있는것이다.     며칠전 친구에게서 어느 경로원에 위문을 갔다가 로인들이 술잔을 밀어두고 병뚜껑으로 마시더라면서 혀를 차는 모습을 보고 찬물을 끼얹어버렸다. 술 흔한 세월이라지만 그 로인들이 네 말처럼 타인이 더 마실가봐 두려워서 그런것이 아니라 왜 귀한 술 자신이 더 마실가봐 걱정되여서 그런다고 생각못하냐구 했었다.     경로원에서 만년을 보내는 로인들이라면 술이 귀한 시절을 몸으로 체험했을것이고 그 그늘로 하여 자신의 욕심보다는 타인에 대한 배려에 돌려주고싶었을것이다.     술도 이젠 문화가 되였다.     한국의 술문화가 우리의 생활속에 침투되였으면 우리도 이젠 우리의 권주문화를 만들어 그들에게 전수할 때가 온것 같다.   술은 기분으로 마신다.     그래서 술상은 정이 넘쳐야 한다.     정이 없는 술자리라면 그건 결국 술문화를 담론할 가치마저도 없다.     한잔의 술잔속에도 정이 담길 때 그것이 진정 술도 문화의 행렬에 끼울수 있을것이다.     흑룡강신문 2011-06-21    
바야흐로 정착되여 가는 우리 술 문화   강수련    요즘 음식점이나 다방에 가면 삼삼오오 다정히 모여앉아 술을 드는 녀성들을 종종 볼수 있다. 10여년전만 해도 어설픈 모습으로 다가오겠지만 지금은 자신감과 즐거움이 넘치는 하나의 풍경으로 아름답다. 사회발전과 물질의 향상, 그리고 자아의 회귀와 진보가 만들어낸 높은 단계 문명사회가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것이다.     알고 보면 술의 력사는 인류문명사와 거의 시작을 함께 하고 있다. 술은 우리에게 종교와 생명과 정열과 예술과 문화와 사랑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술 문화는 인류발전과 더불어 변화, 발전하면서 인류문명에 기여하였다. 고대그리스에서는 음악가와 무용가를 제외하고는 음주할수 없게 되여있다. 또 로마시대 남성들은 안해의 입에서 술 냄새가 나면 극형에 처했다고 한다. 오늘에 이르러 이러한 술문화는 우리들이 술안주로 삼는 한담에 지나지 않는다.     인류사회가 발전하고 물질이 풍성해지면서부터 술의 종류도 변화고 있다. 처음엔 흰 술이 주류문화를 이끌었다. 알콜 농도가 50-60도에 달하는 ‘열성술’이 우리의 속과 마음을 덥히였고 나중에는 속과 마음에 타들어갔고 더 나중에는 신성한 간을 훔쳤다. 술안주는 극히 간단했고 술잔이나 장소에 대한 요구도 거의 없었다. 우리가 기억할수 있는 술이 극히 귀한 나날에 마을 어르신들은 농촌 합작사나 작은 가게에 가서 알사탕 한개, 마른 미역 한쪼각이나 덩어리 소금 한알로 선 자리에서 술 ‘얼냥’을 하는것이 기본이였다. 그러한 안주조차 없을 때는 녹 쓴 대못을 얻어다가 술 한 모금에 못을 한번 빨았다고 한다. 녹이 입안에서 조금은 짠 맛이 난다는것이다.     우리 민족은 많은 사람들의 가족사 역시 술로 이어진 경우가 많다. 주인공은 남편일수도 있고 자식일수도 있고 부모일수도 있고 형제일수도 있다. 좋은 술로 좋은 인연 맺은 이도 있고 나쁜 추억, 또는 상상할수도 없는 웃음거리를 수두룩하게 남기기도 했다.     어느 한번 A씨가 친구의 집에 갔었는데 과음하다보니 저녁에 그 친구 집에 머무르게 되였다. A 씨는 잠결에 깨어나 소피를 보았다. 그런데 자고 있던 친구가 소스라쳐 깨여나서 소리 질렀다.     "야, 너 어디다 오줌 누니?"     A씨가 화장실로 알고 사립문을 열고 친구 부부가 자고 있는 방에 대고 오줌을 누고 있었다.     오줌을 싸면서 휘청거리던 A가 시끄럽다는듯 답했다.     "하필 왜 화장실에 와서 자니?"     ……     조선족 술 문화를 주도해오던 흰술은 1980년대부터는 점차 맥주시대로 전환되였다. 알콜 농도가 대폭 낮아져 대량 음주가 가능해졌고 안주도 명태나 낙지 같은 마른 생선과 건과가 주요 안주로 부상되였다. 맥주가 보급됨에 따라 녀성도 주요한 소비군체로 왕림하였다. 맥주문화의 정착은 장소와 시간에 대한 요구가 흰술보다는 구체적이였고 술잔도 배급사발에서 퍼런 500ml 비닐컵, 다시 유리컵에로 변모했다.     맥주문화의 발전은 세상 모든 사물과 마찬가지고 자신이 태여난 모체의 옛 흔적을 지워버릴 수가 없었다. 이렇게 되여 태어난것이 조선족의 소맥 문화요, ‘폭탄주’였다. 자극과 류행 멋을 추구하는 극단의 사례로 되었던것이다.     맥주문화의 발전은 조선족사회의 다방문화를 탄생시켰고 이러한 발전은 와인문화의 발전에 기여하게 되켰다.     와인은 세계 최초 이란에서 양조하였고 유럽의 경우 그리스에서 첫 선을 보였다. 와인문화 역시 오랜 력사를 거쳐 발전된것이다. 종교에서 와인은 예수의 피로 간주되여 있고 옛날 사람들은 와인을 마시면 그것이 피로 된다고 믿었다. 온역이 퍼질 때면 와인을 마시면 사악한 기운을 막을수 있다고 믿었다.     와인하면 우리들은 프랑스 와인문화를 련상하게 된다. 1650년대 파리에는 벌써 와인을 마실수 있는 다방이 생겨났다. 프랑스는 와인문화를 대표하는 전문용어로 굳어지고 있으며 프랑스 와인은 세계의 최고 품질을 자랑하고 있다.     한국에 있을 때 한 친구를 만나게 되였다. 서울사람인데 파리에서 7-8년 생활했고 언론인으로 일했다. 맥주보다는 와인을 더 선호한다면서 괜찮으면 점심에는 함께 와인을 들자는것이였다. 그가 정한 레스토랑에 갔다. 와인에 대한 나의 상식적 리해는 이날이 시작이었다.     와인은 색상으로는 붉은 와인, 흰색 와인, 복숭아 색 와인으로 나누며 당 성분으로는 적포도주, 단 적포도주 등으로 나눈다. 또 와인문화는 짜릿한 자극과 취기를 추구하는 소주나 시원함과 호방을 추구하는 맥주문화보다 음미하고 향수하고 즐기는 문화이다.     상등품질의 와인은 십여년 또는 수십 년 시간을 거쳐야 숙성되며 무르익는다. 와인을 마시는것도 학문이 허다하다. 와인잔을 들기 전에는 대화를 잠시 중지하고 평온한 마음으로 림해야 하며 잔을 든후에는 포만하고 깨끗하고 빛나는 와인의 색상을 흠상한다. 전업인은 와인 색상을 통하여 주령(酒龄)을 안다는것이다. 와인 컵을 사선으로 기웃하고 좌우로 약간 돌리면 와인이 컵 벽을 타고 내리는데 이로서 와인의 품질을 알아본다고 한다. 균일하게, 천천히 와인이 와인 컵 벽을 타고 내리면 우질 와인이다. 또 술잔을 살짝 흔들어 흩어져 사라지는 향기를 맡고 입속에 와인 한 모금 넣으면서 시고, 달고, 쓰고, 짠맛을 음미한다. 와인을 넘긴 후에는 향기가 입속에서 맴돌아치며 피여오른다.     와인문화는 흰 술이나 맥주보다 술잔의 형태, 재료, 재질, 투명도에 신경을 쓴다. 보통 굽 높은 유리컵을 사용하며 컵은 투명하고 재질은 입술에 편안한 감을 주어야 한다. 또 안주 역시 흰 술 경우의 고기요리나 맥주 경우의 건 해물과는 달리 과일이 많이 적합하다. 환경 역시 조용하고 음악이 바람처럼 스쳐가는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선호한다. 일종의 향수와 교제의 수단으로 장착되여 가고 있는것이다.     와인문화가 솜에 스며들듯 천천히 우리를 적시고 있지만 우리 역시 하루아침에 변할수 없는것이 현실이다. 한때는 와인을 대야 같은 유리그릇에 붓고 거기에 포도, 귤, 또는 사과 같은 과일을 넣고 맥주컵에 부어 ‘완쌰’ 하는것이 류행되였다. 어느 날은 맥주 마시는 버릇이 그대로 되살아나 친구와 함께 그 유리그릇을 몇개나 마셨는지 이틀이나 취중에서 깨여나지 못했다. 흰술 마셨을 때에도 없었던 희한한 일이였다.     우리는 점차 맛과 향수와 교제를 겸비하는 문명한 술 문화를 구축해야 한다. 이는 흰술이든, 맥주든, 아니면 와인이든 똑같은 발전추세이지만 현대인의 술 습관 변화는 와인을 선호하고 있다. 이는 흰 술이나 맥주보다 와인이 현대인의 성격과 음식 특징에 가깝기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과학기술발전시대라 하지만 보총과 수류탄, 폭탄, 그리고 원자탄이 병행하고 있듯이, 그리고 우마차, 자동차, 기차, 비행기, 우주선이 공존하듯이 흰술과 맥주, 와인은 오래도록 공존할것이며 서로 보충하면서 조선족사회의 술 문화를 수놓을것이다.   흑룡강신문 2011-06-21        
90    [응모작품] 술과 나 나와 술 (장영화)-인터넷길림신문 댓글:  조회:3572  추천:0  2011-06-15
술과 나 나와 술     장영화     술, 술은 우리 일상 생활에서 인간관계를 밀접히 하는 윤활제이고 감정교류를 밀접히 하는 매개물이기도 하다.   나는 어릴 때 밥상에 앉은 할아버지가 《카,이놈의 술은 마시면 마실수록 기분이 좋다니깐》하며 술마시는것을 자주 보았다.   명절때마다 아버지 동사자들이 우리 집에 모이면 어머니가 팽이처럼 돌아치며 술상을 차리는것을 보았다. 술은 오직 남자들만 마시는 특허품이라고 보며 자라왔다. 헌데 녀자인 내가 술을 마시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하였다.   1981년 연변재정무역학교를 졸업한 나는 23살의 한창나이에 도문시 철물전기화공공사 재무과에 배치받았다. 이때로부터 나는 술과 인연을 맺게 되였다.   재무과에는 7명이 있었는데 60대의 재무과 과장님만 남자이고 나머지는 6명은 말짱 녀자들이였다.   80년대 우리 공사는 경제효익이 높아 상업계통에서 첫 코치여서 상급령도들의 위문, 업무부문의 검사, 상품판매 관계, 각과의 업무핵산 등 업무가 잦았고 그만큼 술자리도 잦았다. 나는 《남성들이 마시는 술을 어떻게 녀성들이 마시는가?》며 아예 술잔을 입에 대지도 않았다. 술 순배가 나의 차례에 와서는 술자리기분이 잡쳐지군 하였다.   술장소에 앉으면 취할가봐 정신부담이 더 크고 술을 입에 대니 입안이 쓰겁고 목이 타는것 같고 한두잔 마시니 얼굴이 홍당무우 같았다.   원래 사업심이 강한 나는 술마시는것도 사업이라던 과장의 말을 듣고난 후부터 의식적으로 술을 마셨다. 그랬더니 주량도 차츰 느는것 같았고 한잔 두잔 마시니 기분도 상쾌하여 무한한 자호감에 도취되였다.   어느 한번 과에서 은행을 청하게 되였다. 그날따라 술 한잔에 대출금 얼마를 주겠다는 롱담이 술자리에서 나왔다. 그 롱담을 나는 진담으로 듣고 고지식하게 대출금 많이 달라고 7푼 알각잔으로 얼마나 많이 마셨는지 모른다. 세방살이 했던 나는 그 무서운 오공촌 밤길을 어떻게 자전거를 타고 왔는지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온 밤 토하고 이튿날 노란 열물까지 토했더니 기진맥진해 며칠동안 앓아 누웠다. 일주일후 은행에서 50만원 대출금이 내려왔다. 그때 돈으로 말하면 상당한 액수다. 원래 자금난으로 여러 과의 상품구입이 정지 되였던지라 공사의 령도들은 내가 큰 공을 세웠다고 높이 치하하였다. 아마 그날 체격이 작은 내가 결사적으로 술을 마시는 행동에 은행령도들이 감동되였던 모양이다.   1991년 1월,나는 상업무역국으로 전근하게 되였다. 기업을 떠났으니 술 장소도 적으려니 생각하였지만 정부 기관의 술장소는 오히려 더 빈번했다.   매번 취김에 집으로 돌아가 잠에 곤드라 질때면 한창 공부하는 딸애가 남편의 밥상을 챙기고 나의 곁에서 물을 떠온다, 약을 가져온다 하며 분주히 돌아쳤다. 또 과음하여 온밤 토하고나면 위가 몹씨 쓰리고 이튿날 사맥이 나른하여 맥이 똑 떨어지고 흐리멍텅한 정신으로 피곤한 몸으로 출근해야 했으며 화장을 하여도 큰 병에 걸린 사람처럼 얼굴이 추들추들하고 엉망이였다. 그럴때마다 인젠 다시는 술 마시지 않겠다고 결심하면서도 술상에 마주 않으면 아예 모든것을 잊어버리고 대방이 기분을 상할가봐 또 그 분위기를 위하여 나를 “희생”하면서도 술을 마시군 하였다.   남편은 아니꼬운 눈길로 나를 보군 하였다. 그래도 나는 할말이 없었다. 이 세상에 어느 남자인들 술 마시고 돌아오는 안해를 좋아 하겠는가? 남편은 《우리 학교 녀선생들은 술 장소에서 술 대신 물로 가만히 바꾸는데 당신은 왜 그리 수완이 없는가? 남이 주면 주는대로 다 마시는가?》하면서 꾸지람 하였다.   실로 너무 고지식하고 직심인것이 나의 흠이였다. 허지만 연회상에서 물로 술을 가만히 바꾸자면 량심의 가책을 받는것 같고 던지자면 술이 아까운것 같았다. 예로부터 우리 선조들은 술도 쌀물이라 하지 않았던가. 이러다 보니 나는 언제나 술도 남보다 더 마시고 취할 때가 더 많은것 같다.   2005년 8월 딸애를 대학에 보내고저 우리 가족 셋은 북경행 렬차에 앉았다. 딸과 마주 앉은 순간, 나는 눈물이 왈칵 솟구쳐 흘러내렸다. 딸이 20살 되도록 내가 사업에서 남보다 크게 뛰여난 성적도 없으면서 사업술을 마신다는 핑게로 딸이 곁에 있을 때 살뜰하게 보살펴주지 못하고 이렇게 떠나 보낸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앞섰다.   금년은 내가 사회 사업에 참가한지 3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 사이 나는 세번 새로운 사업단위로 전근 하였다.   흘러간 이 30년 동안 나는 령도간부도 아닌 일반 과원으로서 마신 사업술, “영예증서”도 없는 자아 “희생”적인 술을 그 얼마나 마셨는지 모른다.   나는 한 가정의 어머니로서 안해로서 현처량모가 되지 못 한것이 참으로 부끄럽다.   3년후면 나는 퇴직하게 된다. 류수와 같은 세월속에서 나는 어느덧 50대를 넘어선 중년 아줌마로 되였다. 지금은 나이 많다는 리유로 몸이 피곤 하다는 리유로 술장소를 피하여 다니지만 그때에 가면 그래도 지난날 재미있게 행복에 도취되여 술 마시던 그 나날을 추억하면서 나의 허전한 마음을 달래고저 술로 스트레스를 풀려고 내가 먼저 술장소를 찾아 갈것 같다.   이러고 보면 술과 나, 나와 술은 내 인생에서 생활에서 희로애락을 함께 나누는 영원한 친구인것 같다.   인터넷길림신문 2011-06-15    
심리상태로 뜯어보는 술상문화     리헌            술은 물질문화의 하나로 그 존재형태가 다종다양하며 그가 걸어온 발자국만 훑어봐도 경제사회의 발전이 알린다. 술은 특수한 음식으로 정치생활, 문학예술, 인생태도, 심미정취 등 여러 방면의 정신문화가치로도 체현된다. 하기에 술을 마심은 단순한 술을 마심이 아니라 역시 문화를 마심이라 하겠다.     옛날 우리선배들은 술의 작용을 세가지로 귀납했다. 하나는 술은 병을 고치고 둘째로 술은 양로(养老)하며 셋째는 술은 례절(成礼)을 불러일으킨다고 했다.기실, 중화의 5000년 문명사에 침투된 술의 '업적'은 세가지뿐만이 아니다. 오락연회에서의 흥분제로, 인간관계 개선의 윤활제로, 생존환경 확대의 뉴대로 술의 역할은 매우 크다. 우리 민족은 기뻐도 술, 슬퍼도 술, 좋아도 술, 나빠도 술을 쓰고 마신다.     술상에서 빚어지는 사람들의 심리상태는 천태만상이다. 술잔이 몇순배 돌다보면 술상이 점점 엉망이 되여 목숨을 걸고 대방을 배동하거나(舍命陪君子), 거나하게 취해서도 안취했다(烂醉不罢休)고 뻐겨 이런저런 생기지 말아야 할 일들이 일어난다. 술만 들어가면 말이 많아 말로 술을 깨는 '우수생'들, 제만 안다고 부산을 떠는 '박사생'들, 집에 돌아와 트집쓰며 때리고 부시는 '대장부'들, 남과 싸우기를 즐기는 '용사'들, 끝을 모르고 밤과 낮을 이어가는 '련속작전 폭주족'들, 과음으로 친구들 앞에서 존엄을 잃거나 남의 입에 오르거나, 시간을 랑비해 사업에 손실을 가져오거나, 몸에 상처를 남기거나 지어는 한창 나이에 염라대왕에게로 가는 사람들을 심심치않게 볼수 있다.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의 술주정은 모두가 일정한 심리 원인에서 유인된다고 한다.     친구들앞에서 더우기는 녀사들 앞에서 '남자는 술을 먹어야 남자다'란 심태로 억지로 대방을 강권하여 쓰러지게 함을 자랑으로 간주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는 일종 승벽이다. 또 어떤이들은 사업에서 스트레스를 받았거나, 인간관계가 순리롭지 않거나, 아니면 가정생활에서 좌절을 당해 기분이 한풀 꺾여 술을 마시면 마실수록 소극적이고 비관적인 심리상태에 빠져 때로는 리지를 잃고 충동적인 행동을 한다.     측정에 따르면 북경맥주에 포함된 알코올(酒精)의 농도는 5.4%이고 와인은11~16%이며 백주는 38%~60%이다. 체내 혈액 중 알코올의 농도가 0.1%에 달하면 사람들은 감정의 충동을 받게 되고 0.2%~0.3%에 달하면 정상적인 상태를 잃게 된다. 술에 취한 사람들은 주의력, 판단력이 한곬으로만 집중되여 다른 사람들의 충고와 의견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독선적으 행동한다.     하다면 제창할만한 술문화란 무엇일가? '유주무량, 부급란(唯酒无量,不及乱)' 이는 주덕(酒德)을 강조한 공자의 말이다. 뜻인즉 술을 마심은 사람마다 달라 량을 정할수 없지만 술상이 끝나면 정신은 똑똑해야 하고 형체가 흐트러지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술군들의 술상에서의 심리상태를 정상적심리상태와 병태적심리상태 두가지로 나눠본다면 전자는 '존엄있는 술상'으로 건강한 술문화에 속하고 후자는 경계하여야 할 술상이라 하겠다.     한잔 술에서도 음주자의 높은 도덕수양과 덕성이 보여진다.     ―술좌석에 앉을 땐 반드시 례절있게 앉을 자리를 보아가며 앉아야 한다. '주 좌석'엔 어르신님들을 모시고 술을 부을 때도 웃어른들께 먼저 부어올려야 한다.     ―술은 잔마다 쭉쭉 굽을 내는것보다 점잖게 조금씩 잔을 비우면서 즐거운 대화로 이어간다.     ―주량을 가늠하고 통제할줄 알아야 한다. '맞춤하면 약주요, 많으면 망주'라고 보약도 과하면 독약이 되는데 술좌석에선 언제나 '도'를 지켜야 한다.     ―웃물이 맑아야 아래물도 맑다. 어른들이 솔선수범하여 '례절술', '문명술', '법제술'을 마시고 건강한 음주관념으로 후대들을 교육해야 한다.     ―술에도 '법'을 마시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취중운전으로 작게는 당사자가 교통사고로 상하거나 생명위험이 있을수 있으며 크게는 무질서한 교통질서로 그 지방과 국가의 이미지에 악영향을 미칠수 있다. 5월 1일부터 음주운전 관련법이 실시된후의 20일간에 발생한 교통사고만 보더라도 음주운전사고로 목숨을 바친 '술선수'들이 전국적으로 2000여명에나 달한다.     ―참다운 술문화는 하루한시에 이루어지는것이 아니다. 국민 자질을 높여 인격수양을 다져야 한다. 학자들의 론증에 따르면 독서는 '고급비타민'이라 한다. 부단한 '충전'에서 수양을 련마하고 건강생활지식을 익히고 참다운 생활을 조직할줄 아는 '술의 주인'이 되여야 한다.     흑룡강신문 2011-06-14        
88    [응모작품] 발에 눈이 달린 남자들 (조영기)-인터넷길림신문 댓글:  조회:3153  추천:0  2011-06-14
발에 눈이 달린 남자들     조영기     발에 눈이 달렸다면 괴물취급을 할지도 모르지만 술에 취해본 남자들은 그 누구나 공감이 갈것이다. 술에 흙이 되게 취했어도 이튿날 눈을 뜨면 자기 집 침대에 척 누워있고…   술 마시고 집에 온 기억은 하나도 떠오르지 않는데 침대에 번듯하게 누워있다는것이 참으로 신기하다. 발에 눈이라도 달린듯싶다.   술 마시러 떠날 때는 오늘은 적당히 마셔야지 하면서도 정작 가면 2차, 3차에 지어는 4차, 5차까지 쭉 갈 때가 많다. 몇시에 집들어온것도 통 기억이 나질 않는다.   (어제 어떻게 집에 돌아왔지? )   혹시 함께 술 마신 어느 친구가 집까지 부축해왔나싶어 전화를 해 물어보면 자기들도 모른다고 한다. 분명 발에 눈이 달려 나를 집까지 무사히 끌고온것이다. 아무리 취했어도 아무 탈 없이 집까지 걸어와준 보배둥이 발이다.   술에 취해 집에 들어오는 이튿날 아침이면 녀친의 잔소리가 우박처럼 쏟아진다.   <<그렇게 취해서 집은 어찌 찾아옴까? 사고라도 나면 어찔려구 그렇게 마심까…>> <<나도 몰라, 집에 어떻게 왔는지… 내 발엔 눈이 달렸나봐…>>   그러나 필경은 발에 달린 눈이라 시력이 나쁜지 실수할 때도 드문드문은 있다. 집은 5층인데 6층집 문에 열쇠를 꽂고 아무리 돌려도 열리지 않는다. 왜 이렇지? 분명 우리 집 맞는데… 탕탕탕~ 문을 두드려댄다. 덜컹 문이 열리며 수염이 거칠한 한족남자가 노기등등해서 째려본다.   이크! 우리 집이 아니군. 그제야 정신이 좀 드는듯싶어 비칠비칠 아래층으로 내려온다. 4층집 문을 두드려댄적도 벌써 몇번이다.   또 어떤 땐 눈이 멀었는지 친구들 말로는 저녁 10시쯤 헤여졌다건만 녀친의 말로는 새벽 1시가 넘어서 집에 들어왔다고 한다. 작은 시가지라 반시간이면 집에 돌아왔을련만 시간계산이 통 안된다. 그 몇시간은 이눔 발이 나를 데리고 어디로 갔을가?... 이럴적이면 더럭 겁이 난다. 이 몇년간 겨울에 술에 취해 얼어죽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으니. 올해 보름날에 20살짜리 청년이 술에 취해 얼어죽었다거니, <<3.8>>절에도 어느 마을 촌장이 얼어죽었다고 하는데, 또 그 누구는 술에 취해 달려오는 택시차에 치워죽었다는데.   무시무시한 이야기들을 전해듣노라면 눈이 달렸다는 발에 대한 신뢰감이 점점 없어진다. 그 사람들도 나처럼 발에 눈이 달렸노라 으쓱했을련만 발의 단 한번의 실수로 영영 돌아오지 못할 저승길을 걸어갔겟으니 말이다. 오늘도 장밤을 술 한잔으로 친구들 사이에 말이 많다. 술에 넘어간 사람들이 많고 많으니 인젠 더는 2차, 3차 하지 말고 집 돌아가자고…   참으로 일리있는 말들이다. 지금껏 첫 장소에서 끝나 집에 들어와본적이라고는 없으니. 예로부터 술에 장수가 없다고 했거늘 지금부터라도 적당히 술을 마시고싶다. 사회생활을 하노라면 술을 피할수는 없다지만 그렇다고 술을 못 마신다면 그 누가 입에 쏟아부을 사람도 없다. 다 자기나름의 술량이 아닌가…   요즘엔 별의별 일들이 다 있다. 병이 사람의 나이를 가리지 않는다. 20살난 어린애가 술에 취해 광기를 부리다 간질병이 왔다거니, 그 누구는 술로 30살 아까운 나이에 중풍에 걸렸다거나 또 암에 걸렸다거니. 원인은 어디에 있을가?   발에 눈이 달린 남자들…인젠 발에 눈이 달렸다고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말자. 눈이 달린 발을 신뢰하기보다는 적당하게 안성맞춤하게 마시는 음주습관을 키우는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가. 술은 좋은것이지만 도를 넘으면 필연코 해를 가져다주는 법이니 한번 실수로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친우들에게, 동료들에게 크나큰 고통을 안겨준다면 술 마신 보람은 구경 어디에 있을가?   인젠 우리도 한잔의 양주에 얼음을 타 유유히 음미하며 친구간의 정분을 나누는 유럽의 술문화를 따라배움도 괜찮을것 같다.   인터넷길림신문 2011-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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