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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도문 오중순원장의 고향애 오늘도 이어져 댓글:  조회:1265  추천:0  2015-10-07
도문 오중순진료소의 오중순원장이 고향의 길닦이, 로인활동 등 공공사업에 헌금을 하는 등 고향애에 촌민들의 찬사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올해 여름에 도문시 석현진 향양촌에서 새로운 로인활동실을 마련하자 오중순원장은 5000여원의 거금을 팔아 상점에서제일 큰 액정텔레비죤을 사서 로인활동실에 보내왔다. 이에 얼마전 도문시 석현진향양촌로인협회에서 는 글발을 색인 금기를오중순원장에게 증송하였다.  /오기활
9    착한 가격 댓글:  조회:1898  추천:0  2014-11-17
8    인증서 (2) 댓글:  조회:1700  추천:0  2014-11-17
7    공로상(1) 댓글:  조회:1731  추천:0  2014-11-17
6    “打着灯笼也难找”的好医生——吴仲淳 댓글:  조회:2489  추천:0  2014-11-17
“打着灯笼也难找”的好医生——吴仲淳        人们常常对难得的人才或事物形象地比喻成“打着灯笼也难找”。最近笔者对这句话深有感触。因为在近30年的记者生涯中,特别是作为延边日报社驻图们记者这么多年,曾经多次报道过优秀的医生,但却没有报道过“全国百家知名特色门诊”、“世界优秀专业人才”、“共和国功模人物”吴仲淳医生。通过对他的采访,我深感他是“打着灯笼也难找”的好医生。   他的确是一个“打着灯笼也要找”的好医生   如今是竞争年代,早就不是“酒香不怕巷子深”的时候了。人们为了宣传自己,争先恐后地在各种媒体上登广告,医院、医生、药物广告多得几乎到了泛滥的地步,可是吴仲淳医生却一次也没有做过任何的广告,从这一点能够看出他与众不同的独特一面。 笔者是在几年前,一次小学同学聚会的时候见到吴医生的。当时有个叫崔今善的同学作自我介绍时说“我本人没有什么可介绍的,我想借此机会隆重介绍伟大的人物吴仲淳”。通过崔今善的介绍,我对吴医生有了初步的了解,并对他产生了浓厚的兴趣,想着有机会对他进行采访。 上小学的时候吴仲淳成绩并不怎么优秀,那个时候很少有人能上公办中学,所以小学毕业后,吴仲淳就去了一个民办的农业中学。 吴仲淳之所以学医是因为疾病缠身的母亲。在他上小学的时候,母亲得了一场痢疾,当时医疗条件差,母亲差点儿没了命,这件事对吴仲淳触动很大,他下决心一定要学好医术,使他的母亲不再遭受病痛的折磨。 上个世纪60年代我国正经历着前所未有的“文化大革命”。自解放以来一直担任村党支部书记的父亲被划为“走资派”。吴仲淳受到了牵连,被剥夺了参加社会活动的资格。吴仲淳就偷着找到他自己认为很有名的医生韩时雨,开始学习中医,随后解放军住进了村子里,他就每天晚上找军医学针灸。他在自己身上试针,熟记针法,很快学会了很多东西。 后来他受到当兽医的舅舅的启发,在村子里做了兽医。当大队招聘著名医生孙长德办大队医院的时候,吴仲淳被聘为药剂师,这对渴望知识的吴仲淳来说,就像在沙漠里遇到了泉水。他拜治疗肝病非常有名的韩时雨和孙长德为师,不分昼夜地抄医书、背药方。他听说牡丹江有一个很有名的中医,就找他学治胃病。后来他在图们又找到“针灸王”金常寿,每天往返15里,学习了9个月的针灸。 1974年,吴仲淳光荣的加入了中国共产党,工作单位也从红光乡医院调到了图们市卫生进修学校健康教育所。这期间他先后被推荐到延吉县黎明农业大学、延边医学院、长春中医中药研究所等单位学习,他非常珍惜难得的学习机会,用自己全部的光和热,投身到钻研医学当中。 他学习的范围很广泛。除了中西药以外,还学习了按摩、针灸、气功、舒术疗法、八卦象术疗法,用综合疗法治疗各种疑难病症,被患者们称为“魔法师”。 舒术疗法和八卦象术疗法是他在60年代后期到北京和青岛等地学到的。 老中医韩时雨把吴仲淳作为自己的接班人,不顾90岁高龄,亲笔整理出满满7张16开纸的秘方,送给了吴仲淳。   不懈努力,成为“世界优秀专业人才”     最近10年间,吴仲淳先后六次参加了在北京人民大会堂举行的国家最高级医学学术交流会,三次参加了在台湾、越南、珠海举行的国际医学艺术交流大会。 吴仲淳撰写的“慢性扁导体炎治疗经验”、“阴电感治疗慢性狂症经验”、“黄疸肝炎恢复治疗体会”等6篇论文,发表在世界文人艺术中心和中国科学技术研究交流中心推荐的国家级论文集《中华中西医结合杂志》上。     40多年来,吴仲淳以“名医”的声誉,治疗了从东北三省,乃至北京、上海、广西、深圳、美国、日本、朝鲜、韩国等地慕名而来的患者,创造了很多奇迹和传说,人们称吴仲淳是“农家状元”。 2000年,延边大学附属医院吴某得了肝癌综合症和肺水肿,长春中医院下了最后判决书,说他活不过10天。吴某的家人回来准备后事的过程中,抱着一线希望,找到了吴仲淳医生。 面对大医院已经放弃了的“尸体”,吴医生虽没有信心,但他被患者对自己的信任所感动,百分之一的希望,加上百分之百的努力,结果延长了这位患者8年的寿命。 1998年,时任图们市人大常委会主任的金统一得了腰间盘突出、增生、粘连等综合症,卧床不起。当时的图们市卫生局局长找到吴仲淳,要他给金统一主任出诊。金统一在大医院治疗过,却没有得到很好的效果。吴仲淳犹豫了一阵,不好拒绝,只好硬着头皮去了。到了金主任家,吴仲淳看到患者在床上一动也不能动,连头都抬不起来。他很快调整好自己的情绪,动用针灸、按摩、气功等多种方法,给金主任实施治疗。 “能治愈吗?” “一个星期就差不多。”吴医生给予了肯定的答复。 没想到,奇迹果然出现了。 原来一动不能动的患者竟然坐了起来。在场的人们看着医生和患者,惊讶的瞪大了眼睛。患者从第三天开始可以走路了,第四天竟然不用医生出诊,自己到医院接受治疗,第七天生活完全可以自理了。 2003年,图们市卫生局马局长得了脑梗塞住进了图们铁路医院。这天晚上,马局长的女婿找到吴仲淳医生,请他为马某看病。吴医生这一次为难了。马局长当时已经近似植物人了,治疗效果很难预料,但又不忍拒绝,只好去了。 经过吴医生一个月的精心治疗,奇迹在马某身上出现了,他能够说话了,治疗46天后可以走路,生活可以自理了。如今,马某时不时提起吴医生,常说如果没有吴医生,他早就不是这个世界上的人了。 去年12月18日,记者再次采访“吴仲淳诊疗所”的时候,他给笔者看了从沈阳送过来的一面锦旗。 这个锦旗是抚顺市石油化工研究所的李继莲因为吴医生不收分文救治他的弟弟,为表达感激之情而送的。 这样的事例还有很多很多。 吴医生治疗20多名患有顽固不孕症的妇女,使她们都怀上了宝宝。很多重症患者在吴医生的调治下恢复了健康,对于一些奇迹般治愈的病例,连吴医生自己有时都感到“不可思议”。 2002年,世界文人医术研究中心和中国科学技术研究交流中心评选吴仲淳为“世界优秀专业人才”。   想要说的话   2013年12月18日,记者与吴医生进行了下面一段对话,结束了对吴医生的采访。 问:40年从医生涯中你最难忘的事是什么? 答:1974年,有一个11岁的小孩因农药中毒而死亡。当时实施吴大中疗法后,用牛车把孩子拉到图们市医院,因延误时间而失去了宝贵的生命。当时医疗设施和交通手段太落后。 问:到现在你觉得遗憾的事是什么? 答:患者不听医生的劝告。 问:你在行医时遵守的信条的什么? 答:医生应该成为心医,医生针对的是病人,治的是病同时更是人,医生应该是理解患者心理的心医。不是有句话叫做“得到爱的细胞可以征服癌症”吗? 吴仲淳是成功的医生,成功属于懂得爱的人,成功属于感谢生命,热爱生命的人,更属于不仅热爱自己的生命,而且热爱所有生命存在的人。 吴仲淳富有爱心,他时刻不忘回报社会。 他不断地对生活在逆境中的人们提供力所能及的帮助,他资助故乡的建设和周边环境的建设。人们说,遇到吴仲淳医生的人都是有福的人。 笔者因为没有尽早把我们民族文化优秀的人才报道出来而深感内疚。现在虽然晚了一点,但出于一种责任感,把从来没有上过广告的吴仲淳的电话0433-3639973、19844328331登出来,让更多的人得到他的治疗,找到自己的健康。这也是为了让“世界专业优秀人才” 吴仲淳的医术得到更广泛的普及。  吉林朝鲜文报记者   吴基活 2014년 3월 9일 연변일보(한문)          
5    《3.8》절에 무료 진찰치료를 받았어요 댓글:  조회:3788  추천:0  2014-03-11
환자를 진맥하고있는 오중순의사 도문시 오중순진료소의 오중순(69세)의사가 《3.8》절에 진료소를 찾은 녀성환자들을 무료로 진찰치료해주어 찬양받고있다. 요즘 피부가 가려워서 오중순진료소를 찾았다는 도문의 한 70대 녀성은 치료를 끝내고 치료비를 지불하자고 하니 오중순의사가《오늘은 절이니 녀성들의 치료비는 무료입니다.》라고 해서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무료진료를 받았다고 기뻐했다. 알아본데 따르면 오중순의사는 《3.8》절 하루에만 해도 근 20명 녀성환자들의 병을 무료로 봐주었는데 환자들로부터 받지않은 치료비만해도 700여원에 달한다. 오중순의사는 70년대에 입당한 로당원으로서 고향건설, 주변환경개선, 빈곤가정 돕기 등 도움과 사랑이 필요한 적시적소에 항상 돈지갑을 잘 연다고 주변사람들이 소개했다. / 오기활기자  
4    《개천에서 난 룡》 (길림신문) 댓글:  조회:2751  추천:0  2014-01-14
세계우수전문가인재》 -오중순의사의 성공스토리 요즘 필자는《등잔밑이 어둡다》는 속담을 곧 잘한다. 그도 그럴것이 필자는 근 30년간의 기자생활을 하면서 특히는《연변일보》 도문 주재기자로 활약하면서 여러 의사들을 보도했어도《전국 백가지 명특색문진부》,《세계우수전문가인재》,《공화국공모인물》의 주인공인 오중순(도문시 위생협회 제1문진부)에 대한 보도는 한번도 한적 없었으니 말이다. 확실히《등잔밑이 어두웠다》 지금까지 오중순은 병원, 의사, 약광고가 폭포처럼 쏟아지는 치렬한 경쟁년대에 한번의 광고도 내지 않았으니 말이다. 필자가 오중순을 취재하게 된 계기는 지난 11월 7일 51년만에 조직한 소학교동창모임이다. 모임에서 저마다 반주임(허은금)선생님에게 올리는 인사말과 자아소개때 최금선이《나에 대한 소개보다도 저기 오중순이라는 대단한 인물임을 소개합니다》라고 하기에 돌아와서 오중순 인터뷰를 하게 되였다. 불타는 구지욕 소학교때 오중순은 학습성적이 그저 그랬다. 그때만도 공반중학교입학이 제한된데서 오중순은 소학교를 졸업하고 민반중학인 농업중학교를 다녔다. 오중순이 의학공부를 하게된데는 병에 시달리는 어머님과 소학교때 리질병에 걸려 고생했던 과거사가 계기로 되였단다. 지난세기 60년대 전례없던《문화혁명》시기에 해방후 줄곧 촌 당지부서기를 지낸 아버지가《주자파》로 투쟁을 받자 사회활동자격을 빼앗긴 오중순은 자기의 속궁리대로 용하다는 중의(한시우)를 찾아가 중의를 배웠고 마을에 해방군이 주둔하자 밤마다 군의사를 찾아가서 자기 몸에 침을 놓으며 침술을 익혔다. 그후 수의로 지낸 외삼촌의 계발로 대대(촌)수의를 맡았고 또 당년에 대대에서 명의(손정덕)를 초빙하고 대대병원을 꾸릴때 오중순이 약제사로 발탁되였다. 배움의 갈증을 느끼던 오중순에게는 그야말로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것이였다. 그는 간병치료에 소문이 높은 한시우와 손정덕을 스승으로 모시고 밤낮이 따로 없이 의서를 베끼고 처방을 암기하고 또 목단강에 용한 중의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그를 찾아가 위병치료를 배웠고 15리길을 밤낮으로 오가며 도문《침술왕》 김상수한테서 9개월이나 침술을 배워냈다. 오중순의 구지욕은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1974년에 입당하고 홍광향병원, 도문시위생진수학교 건강교육소에 사업터를 옮기며 선후하여 연길현려명농업대학, 연변의학원, 장춘중의중약연구소 등 학부에 추천되여 한눈 팔지 않고 배움의 한길에서 열과 성을 다 했다. 그는 중서약외에도 안마, 침, 기공, 서술료법(舒術疗法), 팔괴상수료법(八卦象數疗法) 등 종합료법으로 여러가지 의난병을 기적같이 치료한데서 환자들로부터《마법사》라 불리고있단다. 서술료법과 팔괴상수료법은 그가 60대후 북경과 청도에 찾아가 배워낸 의술이다. 많은 신염환자들로부터《오선생비방》이라 구전(口傳)되여 내려온 신염치료비방도 그가 1957년 12월 10일에 사촌형님이 연길명의한테서 전수받은 비방이라고 한다. 오중순을 후계자로 점찍은 로중의(한시우)는 90고령에 자기의 비방을 16절지에 일곱장이나 친필로 정리해 오중순에게 넘겨주었다. 하늘은 노력하는 자를 돕는다. 오중순은 최근 10년간 북경인민대회당에서 열린 국가 최고급의학학술교류회에 6번 참가했고 대만, 윁남, 주해에서 열린 국제의학학술교류대회에 3번 참가하였다. 오중순이 쓴《만성편도체염치료경험》,《이음전가감치료만성광증(狂症)경험》,
3    "나의 한순간이 환자의 일생이 될수 있어" (조글로미디어) 댓글:  조회:10370  추천:0  2013-11-12
인물이름 : 오중순 [조글로 명의탐방] 도문 오중순중의진료소를 찾아    매일 30~40명 환자들이 도문이라는 작은 시가지에 있는 오중순중의진료소를 찾는다. 광고 한번 낸적 없는 이 작은 진료소에 어떻게 되여 이렇게 많은 환자들이 몰려들가? 의문의 탕개는 오중순소장을 만나고나니 자연 풀리였다.   올해 67세인 오중순소장은 먹은 나이와는 달리 너무나 젊어보였다. 건강한 모습으로 맑은 정신으로 환자를 대하기 위해 매일같이 운동을 하고 마음 수련을 한단다.         그렇다면 오소장이 의학을 전공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가?        민영중학교인 농업중학교(农中)를 졸업한 오중순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이 닥쳤다. 당시 어머님은 늘 병마에 시달렸고 자신도 자주 리질에 걸리군 했다. 엎친데 덮친격이라고1966년, 전례없던 ‘문화혁명’이 불어와 수십년을 대대 당지부서기로 지낸 아버지께서 ‘주자파’로 투쟁받게 되였다. 주자파 자녀라 사회활동에 참가할수 없게 되자 그는 로중의을 찾아다니며 중의를 배우는 한편 의서를 빌려 밤을 패가며 읽군 했다. 그후 수의로 지낸 외삼촌의 계발로 대대(촌)수의를 맡았고 또 당년에 대대에서 명의(손정덕)를 초빙하고 대대병원을 꾸릴 때 약제사로 발탁되였다.   노력은 결과에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이 오소장을 두고 한 말 같다. 배움에 갈증을 느낀 그는 간병치료에 소문이 높은 한시우와 손정덕을 스승으로 모셨고 또 목단강에 용한 중의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그를 찾아가 위병치료법을 익혔으며 15리길을 밤낮으로 오가며 도문 “침술왕” 김상수한테서 9개월이나 침술을 배워냈다. 1974에 입당한 그는 대대위생원, 향 병원, 시 위생진수학교(건강교육소)로 사업터를 옮기며 선후하여 연길현려명농업대학, 연변의학원, 장춘중의중약연구원 등 대학과 연구원에 추천되여 중의학을 배우며 의술을 한층 련마했다. 그는 중서의외에도 안마, 침, 기공, 서술료법(舒術疗法), 팔괴상수료법(八卦象數疗法) 등 종합료법으로 여러가지 의난병을 기적같이 치료한데서 환자들로부터 “마법사”라 불린다. 서술료법과 팔괴상수료법은 그가 60대후 북경과 청도에 찾아가 배워낸 의술이란다. 2000년이후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국가 최고급의학학술교류회에 6번 참가, 대만과 베트남에서 열린 국제학술교류회에 2번 참가, 《만성편도체염치료경험만성(慢性扁桃體炎治疗驗)》, 《이음전가감치료만성광증경험(이(二陰煎加减治疗慢性狂症經驗)》등 6 편 론문이 국가급 론문집에 발표되였으며 2002년에는 세계문인예술연구중심과 중국과학기술연구교류중심에서 추천한 “세계우수전문가인재”로 평선되였다. 오소장은 실로 ‘개천에서 난 룡’이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오소장은 어떤 부류의 환자들을 치유했을가? 오소장은 침구, 기공, 뜸, 중약 등 료법으로 지난 40여년간 동북 3성은 물론 북경, 상해, 광서, 심수, 미국, 일본, 조선, 한국에서 찾아온 많은 환자들을 치료해주었다. 환자들이 오중순 진료소를 찾는것은 1%의 희망이라도 보이면 절대로 환자를 포기하지 않는 높은 책임감, 약재 가격표(여타 병원의 반값)를 걸어놓고 처방하는 투명한 진료, 가족을 치유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정성껏 진료하는 높은 의덕과 뛰여난 의술이 있기때문이라 한다.   2000년 연변대학부속공장의 오모는 간암종합증에 페수종까지 와서 장춘중의병원으로부터 ‘열흘을 못넘긴다’는 연변대학부속공장의 오모씨를 8년간 더 살수 있게 해주었으며 요추간판탈출, 증생, 협착 등 합병증으로 머리조차 돌리기 힘들어 하는 도문시 인대주임인 김씨를 침구, 안마, 기공, 중약 등으로 7일내에  침상에서 일어날수 있게 했다. 이밖에도 뇌경색으로 식물인이 된 도문시 마국장을 한달만에 말을 하게 했고 46일만에 걸어다닐수 있게 해주었고 20여명의 불임녀성을 채료해준 등 사례가 헤아릴수 없이 많았다. 벽에 걸린 금기와 매일 질료소를 찾는30~40명의 환자들만 봐도 그의 의술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수 있다. 오소장은 늘 이렇게 말한다. “나의 한순간이 환자의 일생이 될수 있다”고. 그러했기에 그는 매 환자를 대함에 있어서 항상 최선을 다하고있다. 순간의 게으름으로 환자에게 조금이라도 등한시 하지는 않는지, 환자에게 삶의 희망을 어느만큼 부여했는지, 환자의 마음을 어느 정도 리해할수 있는지…항상 자신에 대한 요구를 높여왔다. 그러했기에 그는 환자들로부터 “심의(心医)”로,“명의(神医)”로, “마법사”로 불리운다. 조글로미디어 문인숙기자 원문보기
2    뜻깊은 만남(길림신문) 댓글:  조회:1857  추천:0  2013-11-12
  51년만의 만남 2월 25일 이란 필자의 글(길림신문)에 이런 내용이 있다. 과연 이 글이 발표된지 꼭 8개월만인 지난 10월 22일, 필자는 동창생 최옥인과 오중순의 노력으로 룡정에서 오매불망하던 허은금선생님을 만났다. 허은금선생은 왕청현 석현진 수남소학교에서 1학년부터 5학년까지 우리 반 담임을 했었다. 1960년에 소학교를 졸업한후 첫 동창생모임이라 1957년 봄철야영때 찍었던 전반사진을 놓고 여러모로 련계해 보았지만 전 반의 42명중 겨우 다섯이 모였다. 반간부였던 최옥인의 리더로 진행된 모임은 뜻깊은 회포와 웃음, 감동, 약속으로 이어졌다. 뜻깊은 회포 첫 순서로 저마다 반백년과거사를 선생님께 회보하였다. 필자가 먼저 선생님에게 당년의 영화표값을 한후 어려서부터 큰집에 얹혀살다가 때 백부님이 루명을 쓰고 타살된것으로 하여 정치권리를 빼앗기고 생산대양돈장에서 5년간이나 돼지를 열심히 사양한 일부터 시작해 오늘의 기자사업을 하기까지를 회보, 소선대입대식에서 선서를 하고나서 이라 말해 그때부터 이라 불리워진 강죽송이 으로 봄철산나물을 캐러 산에 갔다가 우둥치뿌리(랑독)를 캐먹고 중독되여 허은금선생님의 등에 엎혀 다니며 병원치료를 받던 일을 회포하고 나서 이번에도 생산대, 대대(촌), 공사(향)순으로 열심했던 회계사업을 회보해 또 으로 모두를 웃겼다. 최옥인이 당년에 농촌서 입당을 하려고 그렇게도 애를 쓰다가 때 로 몰려 입당도 못하고 을 손에 들고 시집을 가던 잊지 못할 일, 당의 개혁개방시책에 힘을 얻고 복장업으로 세 자식의 대학공부 뒤바라지를 한 창업사, 몇 년간 사회구역주임으로 활약하다가 최근에야 은퇴했다는 기왕사를 회보하자 최금선은 자기는 두 아들을 군대에 보낸것외 아무런 자랑거리가 없다며 며 오중순을 모델로 추천하였다. 이렇게 화두를 뗀 오중순이 지나온 과거를 회포했다.   건강음식을 말하는 오중순(66)은 소문대로 젊었다 오중순은 소학교를 졸업한후 민반중학교인 농중(农中)을 다녔다. 그때만도 사회적으로 공반과 민반이 차별이 많았다. 오중순이 의학을 배우려는 결심은 한뉘 병에 시달리던 어머님과 또 자기가 리질병에 걸린 것이 계기였다. 1966년은 전례없던 때라 수십년을 대대 당지부서기를 지낸 아버지가 로 투쟁받자 사회활동에 참가할 자격을 잃은 오중순은 로중의을 찾아 다니며 중의를 배우고 의서를 빌려서는 밤을 패며 벼꼈고 마을에 해방군이 주둔하자 해방군위생원을 찾아 다니며 자기 몸에다 침을 놓으며 침술을 배웠다. 처음 대대수의로부터 시작한 오중순의 의학구지욕은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1974에 입당한 그는 대대위생원, 향 병원, 시 위생진수학교(건강교육소)로 사업터를 옮기며 선후하여 연길현려명농업대학, 연변의학원, 장춘중의중약연구원 등 대학과 연구원에 추천되여 중의학을 배우며 련마할 기회가 차려졌다. 공든탑이 무너지랴 오중순은 2000년이후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국가 최고급의학학술교류회에 6번 참가, 대만과 윁남에서 열린 국제학술교류회에 2번 참가, , 등 그의 6 편 론문이 국가급 론문집에 발표, 2002년에는 세계문인예술연구중심과 중국과학기술연구교류중심에서 추천한 로 평선되였다. 오중순은 실로 이다. 피와 땀으로 이룩한 뜻 깊은 회포와 현실앞에서 감동을 먹은 우리는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반드시 성공의 삶을 산다는것을 동창들의 몸에서 터득하였다. 기쁨과 약속 제자들의 회보를 열심히 듣고 묻고하던 허은금선생님이 감동과 기쁨에 겨워 말씀하였다. 나는 엊저녁에 잠을 설쳤다… 오늘의 만남이 정말로 뜻깊다. 동무들은 나의 제1기생이다. 나는 18세에 교단에 올라 오늘까지 느껴본 교원의 최고기쁨이 스승을 초과한 제자들과의 만남이다. 평범한 교원인 나에게 기자, 의사, 회계사, 대학생부모 제자들이 있다는것이 나의 최대의 기쁨이고 영광이다. 선생님의 말씀에 제자들은 박수와 함께 동심에 젖어 학창시절에 부르던 그때 그노래를 열창하였다. 50 여년만의 만남은 뜻 깊고 즐거웠다. 만남은 한 뿌리다. 함께 웃고 함께 울며 함께 나누다 보면 서로가 한 뿌리로 이어진다. 서로의 인격에서 자신을 찾아보며 미래의 내 몸을 가꾸게 된다. 참다운 우정은 서로의 만남과 미래를 위한 사랑에서 아름다운 인간적관계로 이어지고 피여난다. 만남은 약이다. 챙겨주고 아껴주는 형제간의 만남은 다종비타민, 늘 걱정해 주고 앞길을 인도하는 부모님과의 만남은 만병통치약, 참다운 우정의 만남은 울타리를 튼튼히 하는 안정환(定心丸)이다. 아름다운 만남은 앉아서가 아니라 열심히 찾아 나서는 사람에게 미소하며 다가온다. 그래서 이번 만남을 위해 애를 쓴 최옥인과 오중순이 감사하다 는 최옥인의 말에 허은금선생님이 부언하였다. 좋은 부모를 만나는 기쁨은 큰 기쁨이고 훌륭한 스승을 만나는 기쁨은 귀한 기쁨이며 참된 의로운 인간을 만나는 기쁨은 고동치는 기쁨이다. 제자를 만나니 그렇게도 기쁘십니까?    [ 길림신문 ]오기활기자
1    吴仲涥诊所 댓글:  조회:16327  추천:2  2013-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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