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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패션 손향사장 복장문화를 선도
코리아패션 손향사장
“맞춤양복은 고객 한분한분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정성을 다하는 시스템이지요.”
이 말은 22년동안의 끈질긴 노력끝에 맞춤형양복의 제1번지를 고수하고있는 코리아패션 손향사장의 좌우명이다.
옷이 날개란 말이 있듯이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옷차림을 단정히 해왔고 흰옷을 좋와해 “백의민족”으로 불리운다. 양복 역시 우리 민족 남성들이 즐겨입는 옷이다.
양복이 연변에 류행된 시기는 지난 80년대초 개혁개방초기이다. 그러나 당시 맞춤형양복은 저가의 원단을 바탕으로 단조롭게 가공하였을뿐 소재, 색상, 패턴이 조화로운 고품격의 디자인을 운운할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당시 사람들은 양복을 입을수 있다는것만으로도 대단하고 자랑스러운 일로 여겨왔다.
맞춤형양복이 연변에서 남성의 고귀한 품위와 격조에 어울릴수 있게 복장문화로 다가올수 있게 된것은 바로 코리아패션의 끈질긴 노력과 갈라놓을수가 없다.
고객들이 단골로 맞춤복을 선호하는 리유
기성복천하라 해도 과언이 아닌 치렬한 패션세계에서 코리아패션이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맞춤복장만을 추구해온 리유는 무엇때문이였을가?
손향의 분석에 의하면 한국의 기성복이나 중국의 기성복들은 우리 연변이라는 특정된 지역의 사람들에게 맞춰진 패션이 아니라는 점이다.
고객의 신체적인 특성뿐만아니라 취향과 걸음걸이,어깨의 형태와 허리드롭, 생활방식에 이르기까지 모든 요소를 고려해야 하기때문이다.
기성복을 사서 고쳐입는 사람들도 있지만 옷은 고치면 고칠수록 균형이 무너진다. 그런 원인으로 신체적 특징이 뚜렷한 사람일수록 맞춤복을 찾는 경향이 있고 그만큼 한번 빠져들면 그 매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맞춤양복은 당연히 제작도 기성복에 비해 훨씬 섬세한 공정을 거친다. 기성복처럼 접착방식을 사용하는것이 아니라 손바느질로 완성하는 비접착식을 고수해 착용감이 더욱 뛰여나다.
코리아패션에 들어서면 칠순이 넘는 할아버지로부터 30,40대에 이르기까지 복장점이 설립되여서부터 지금까지 줄곧 단골로 찾아오는 손님이 적지 않다. 원인은 단 하나, 코리아패션 맞춤형양복이 우아하고 마음에 무척 들기때문이다.
손향은 한국재단사와 함께 차례로 시침질로 재단한 원단을 이어붙혀 만든 가봉옷을 입어보게 하고 치수를 꼼꼼히 확인한다.
처음 매장을 방문해 원단을 선택하고 체촌을 통해 정확한 신체사이즈를 측정하는데로부터 시작한다. 가봉단계를 거쳐 한벌을 완성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평균 3주다. 길게 느껴질수 있지만 자신에게 딱 맞는, 세상에서 단 한벌뿐인 옷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그 정도의 기다림은 충분히 가치가 있지 않을까. 가봉과정이 마무리되고 봉제작업에 들어간후 섬세한 손놀림으로 심사숙고해서 하나의 예술작품을 만드는 마음가짐과 정성으로 단추 달기와 안감, 마감 등의 수작업을 마무리지으면 오직 자신만의 수트가 완성이다.
맞춤복의 기본은 사람을 옷이나 브랜드에 억지로 맞추는것이 아니라, 옷을 각기 다양한 사람의 몸에 최대한 맞추는것이다. 특정한 라인과 패턴을 만들어내고 시즌마다 인위적으로 디자인을 변화시키며 보다 많은 사람들을 자신의 브랜드에 종속시키는것이 녀성복의 황금률이라면, 전통과 클래식을 지향하는 남성복은 일단 디자인보다는 그것을 입는 사람의 몸 그 자체에 집중하는것이라고 손향은 설명한다.
“양복점을 운영하며 가장 보람을 느낀 순간을 콕 집어 자랑한다면 언제입니까?” 하는 기자의 물음에 손향사장은 “양복이 완성된후 고객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볼 때면 저도 모르게 마음이 흐뭇해납니다. 특히 비즈니스행사에서 저희가 재단한 양복을 입고 권위를 인정받는 고객들의 모습을 지켜보는것도 저의 큰 보람이기도 합니다.”고 대답한다.
기본적으로 코리아패션의 모든 옷은 1인1패턴으로 원단 선택부터 깃의 모양까지 모두 손님의 신체특징에 따로 최적화한 선택으로 만들어준다. 한 패턴으로 몇백벌을 찍어내는 기성복과 가장 차별화한 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기성복에 사이즈 단위가 없는것이 아니지만 정장은 착용감이 중요한 옷인만큼 맞춤양복의 섬세함을 따라올수가 없다.
손향사장이 지난 20년동안 변함없이 코리아패션이라는 맞춤복기업을 이끌어 올수 있었던것은 맞춤복 주문, 제작, 류행, 마케팅 등 각 분야의 책임성 높은 고수들을 가장 지혜롭고 가장 적합하게 가장 유능하게 리더를 한 출중한 경영인이라는 점에 있다.
고객의 립장에서는 시선을 더욱 잡아끄는것은 아무래도 코리아패션의 한땀한땀 지어낸 손바늘질이 아닐가 한다. 섬세하고 정교롭고 신사스러운 손바느질을 확인하게 된다면 당신도 "코리아패션은 맞춤복의 지존이구나!"라고 승복할것이다.
창업으로 맞춤양복의 성공일로를
손향이 1993년 연길시로동국 보이라검험소에서 출근하던 시절, 정부에서는 제3산업을 적극 지지하였고 사람들은 다투어 하해하던 시기였다. 그때 손향도 고민하던 끝에 창업을 위해 철밥통을 버리고 하해의 물결속에 뛰여들어 지하상가에 매대 하나를 세맡게 되였다.이렇게 그는 사업가의 인생에 첫발자국을 내디디게 되였다.
당시 시장에는 많고많은 한국옷들가운데서 고급스럽고 이쁜 녀성옷들은 많았지만 남성옷이 아주 희소했다. 남성들은 호주머니에 돈은 있어도 좋은 옷 한벌 해입으려고 해도 그만큼한 물품이 없는 상황이였다. 이 점을 파악한 손향은 좋은 원단, 선진적인 기술로 고급적인 남성복장을 개척해보려고 마음먹었다.
무엇이든 시작하면 꼭 끝을 보고야마는 끈질긴 성격의 소유자인 손향은 최고의 질량이야말로 사업이 성공하는 밑거름이라고 생각했다. 제일 좋은 원단, 최고로 되는 기술을 얻기 위해 손향은 한국의 개인사업가와 손잡고 합자기업을 앉히고 한국의 유명한 기술인원에게 복장디자인과 재단을 맡기고 일을 벌려나갔다.
한국의 사업가가 원단과 기술, 인재 등 기술을 제공하였고 손향이 공장, 매대 등 비용을 부담하기로 하였다. 손향은 고작 8000원밖에 안되는 투자금으로 집세, 공장, 매대를 세맡아 일을 시작했다.
첫달 회사원들의 월급을 발급할 시일이 다가오자 손향은 속이 바질바질 타들어갔다. 사처에서 돈을 구해보았지만 조금 모자랐다. 그는 농짝에 깊이 보관해두었던 시집올 때 친정어머니가 대물린 보배로 딸에게 주었던 지참금인 금가락지마저 과감히 꺼내 팔아 월급을 줄 돈을 마련했다.
장춘에서 개최된 세계급 모델 및 한국 유명배우들이 참가한 코리아패션쇼에서.
손향사장의 노력은 직원들을 감동시켰다. 회사가 그토록 어려운 상황에서 첫달 월급을 받은 직원들은 그후로부터 자신들의 맡은바 일에 열성을 다했다.
손향은 또한 고객들이 언제나 만족할수 있도록 신용을 첫자리에 놓고 최선을 다했다.
한번은 해외로 출장 떠나는 한 고객이 출국을 한주일 앞두고 코리아패션을 찾아와 출국전에 양복을 급히 지어달라고 사정했다.
비록 정상시간으로 3주일이 걸려야 한벌의 양복을 만들수 있었지만 손향은 흔쾌히 승낙하고 밤낮을 패가며 옷을 지어 출국을 하루 앞두고 손님에게 양복을 지어드렸다.
몸에 맞는 멋진 양복을 입고 고객은 더없이 만족해했다.
그후로부터 입소문을 듣고 고객들이 회사의 문턱이 닳토록 몰려들었다.
1998년 1월부터 손향사장은 사업을 확장해 독자기업으로 등록했다.
그리고 종신제 무료가공를 실시하고 코리아세탁소를 세워 회사의 봉사수준을 끊임없이 높였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손향의 피타는 노력끝에 코리아패션은 연변주내를 벗어나 전국 나아가서는 아시아복장분야에서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다.
1998면도의 연변력사상 맨 처음 패션쇼를 개최한후 그 이듬해부터 작년까지 해마다 한국맞춤양복패션쇼를 비롯해 세계주문양복총회와 아시아주문양복총회에 참가해 《아시아양복련맹패션발표회 창작품우수상》, 《한국맞춤양복기술학회 작품표창상》 등 10여개의 영예를 수상했다. 재작년에는 장춘에서 세계급모델 및 한국유명배우들이 등장한 패션쇼를 열어 감동의 장을 연출하기에 이르렀다.
기업경영에서 성공한후 손향은 사회불우이웃돕기와 여러가지 공익사업에도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지난 몇해사이에 불우학생, 빈곤가정, 재해지구를 돕는 자선공익활동에 도합 30여만원의 물자를 기증했다. 지난해 10월, 손향은 문화부의 주최로 북경에서 열린 “동방의 정—최경호음악회” 주요 출연배우들의 무대양복을 무상으로 지원하기도 했다.
현재 손향씨의 코리아패션은 연변복장문화의 “코기러기”, 연변복장문화의 “1번지” 등 다양한 기업이미지들로 연변복장업분야에서 홀시할수 없는 맞춤복장의 절대적인 권위를 차지하고있다.
지난해 한국에서 제35차 세계주문양복련맹총회가 개최됐다.세계23개 회원국에서 6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코리아패션 손향사장은 조선족으로서 유일하게 참가했다.
손향사장이 그동안 밤잠을 설치면서 품들인 신사용 “봄가을 코트”와 “연회복” 2벌이 출품작으로 당선돼 당당하게 패션쇼를 통해 출시되였는데 동업계의 찬사를 받았다.
“우리 연변에서도 외국 명품브랜드 못지 않은 남성신사복을 만들어낼수 있다는걸 보여주고싶었다”고 손향사장은 담담하게 속내를 드러냈다.
향후 타산에 대해 손향사장은 맞춤양복업계의 좋은 기술과 정성이 담긴 대중적인 양복을 고객들에게 전하고싶다고 한다. 그러면서 아무리 좋은 기술도 고객들이 외면하면 그 빛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다며 “축적된 기술과 디자인을 통해 보다 대중에게 다가갈수 있는 맞춤양복을 제작해 보급하며 시장을 넓혀갈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세계 패션무대를 향한 코리아패션의 도전은 끝나지 않을것이다.
길림신문 강동춘특파기자
2016-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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