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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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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에즈라 파운드 (Ezra pound 1885~1972 ) 시론 간단정리[공유] 댓글:  조회:117  추천:0  2018-09-02
◎ 에즈라 파운드 (Ezra pound 1885~1972 ) 시론   " 많은 양의 작품들을 내놓는 것보다 일생에 걸쳐 하나의 이미지를 제시하는 것이 낫다. " (= 작은 작품에 집중하고 오랫동안 고쳐 써라.) 에즈라 파운드는 '이미지'라는 용어를 최초로 만들어 냈다. 이미지를 현대시의 필수 불가결한 요소로 끌어올렸다.     파운드의 시론= " 군더더기 없는 시각적 이미지" 가장 핵심에 있던 것은 이미지즘. 보들레르가 현대시의 시조라면 에즈라 파운드는 현대시의 중시조라고 할 수 있다. 즉, 현대시에 에즈라 파운드가 끼친 영향이 대단하다.  이미지즘은 당시 낭만주의와 상징주의 시가 지배하던 영국시의 침체된 전통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방법으로 시도된 '혁신적 모험'이었다.   에즈라 파운드는 철학자이자 시인인 흄을 만나게 된다.  파운드는 번역시집을 내면서 그 부록에 흄의 등 시 5편을 수록하고 '이미지스트(Les Imagistes)'란 말을 최초로 사용했다. 이때 사용한 '이미지스트'와 '이미지즘'이란 용어는 프랑스어에서 파생된 것으로, 이미지즘이 프랑스 상징주의의 영향 아래서 생겨났음을 보여준다. 파운드가 내세운 이미지즘 이론은 흄의 반 낭만주의 사상과 중세 문학 및 동양 시에서 추출한 고전주의 시론을 모태로 하고 있다. 이 운동은 프랑스 상징주의를 계승했지만, 그리스와 로마의 단시 그리고 중국의 한시와 일본의 하이쿠의 영향이 강하게 배어 있다. 당시 영시가 지닌 감상주의와 느슨하고 장신적인 언어를 청산하게 만들었던 이미지즘 운동은 기본적으로 사물과 언어, 대상과 표현을 정확하게 1대1로 대응시키려는 '일사일언'을 목표로 했다. 시인은 자신의 주관에 의해 대상을 굴절시켜선 안 되며, 대상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낭만주의란 감정을 최대한으로 폭발시키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반 낭만주의 = 감정 거부, 이성의 뜻이 될 수 있다. 그렇지만 감정을 완전히 배제한다는 것이 아니고 이성과 감정이 함께 하는 시를 말한다. '시작법의 궁극적인 달성(ultimate attainments of porsy)'을 위한 방안을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흄이 주장한 '절대적으로 정확한 표현','군말의 폐지'와 비슷한 입장이다.     1. 사물을 보듯이 그려내라 (= 회화적 기법, 보듯이 그려내는 것) 2. 미적(美的)이어야 한다. 3.교훈적 경향에서 탈피하라. (= 20c까지만 해도 고전주의적, 계몽주의적 이론들이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지금 현대시는 탈피 했다. ) 4. 다른 시를 더 좋게 또는 더 간단하게 반복해도 좋다. 완전한 독창성이란 불가능하다. ( 엘리아르의 와 김지하의 사이의 유사성과 같은 말을 하는 듯하다.)         파운드는 이와 같은 '시작법원칙'을 발전시켜 1912년 리처드 알딩톤, 힐다두리틀과 함께 '좋은 글의 3원칙'을 마련했는데, 이는 다음과 같다.     1.주관적이든 객관적이든 사물을 직접 다룰 것. (사물에 대한 이미 만들어진 관념을 배제하고 너의 개념을 만들어 내야한다.)     2.표현에 도움이 안 되는 말은 절대 사용하지 말 것. (장식적인 말 사용 X ) 3. 리듬은 메트로놈의 규칙에 따르기보다 음악적 구절의 연속성을 따라갈 것. (외재율이 아닌 내재율로서의 리듬 형성을 말하고 있음)         파운드는 이를 보완하여 1913년 월간 에 이라는 제목의 평론을 발표했다. 이는 공식적으로 그리고 서구 문단 최초로 이미지의 중요성을 논의한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이미지의 개념 : " 이미지는 일순간에 지적이고 정서적(이성적이라고 바꿔말해도 무방하다.)인 복합체를 나타내는 것이다 "      이미지의 효과 : " 그러한 '복합체'를 순간적으로 드러냄은 갑작스런 해방의 의식, 시간적 한계와 공간적 한계로부터의 해방 의식 그리고 우리가 가장 위대한 예술작품 앞에서 경험하는 갑작스러운 성장 의식을 고취시킨다," (= 이미지는 갑작스럽게 나타나서 우리는 갑작스런 인지,인식하게 된다.)  - 불필요한 낱말이나 형용사는 쓰지 말 것. '어렴풋한 평화의 땅'과 같은 표현은 쓰지 말아라. 그런 것은 이미지를 둔화 시킨다. (= 평화/ 땅 중 무엇을 수식하는지 애매함. 의미 또한 불명확! ) - 추상화를 두려워하라. 훌륭한 산문에서 이미 행해진 것을 어줍잖은 운문으로 다시 얘기 하려 하지 말라. - 자신의 마음을자신이 발견할 수 있는 최상의 운율들로 채우라. 그런데 낱말들의 뜻 때문에 소리의 움직임에 대한 관심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될 수 있으면 외국어로 된 글들을 보라 - '그럴 듯 하려고' 하지 말라. 이것은 예쁘장한 철학적 에세이들을 쓰는사람들에게 맡겨라. 묘사적이 되려고 하지 말라. 화가가 당신보다 훨씬 잘 경치를 묘사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가 그것에 대해 훨씬 많은 것을 알아야만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 구구절절 무언가를 표현X) - 각 행이 말미에서 뚝 그치는 일이 없이 하며, 다음 행을 매번 고양시켜 시작할 것. 확연한 긴 휴지(休止)를 원하는 때가 아니라면, 다음 행의 시작을 리듬 물결이 올라갈 때를 택하라.     이는 '시어'와 '운율' 그리고 '표현방법'에 대한 논의였다. "불필요한 낱말이나 형용사"의 수식을 피해야 한다는 말은 '추상화'를 그려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추상화'는 표현의 간결성과 정확성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모호한 관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파운드는 일체의 관념을 배제하고 사물을 직접 다룰 것을 주문했는데, 그러면서 시의 음악성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니까 기계적인 운율 대신 시어의 리듬을 그대로 따라가는 '자유시형(free verse)'을 택하라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행갈이의 리듬까지 고려해야 된다는 게 파운드의 주장이다. 게다가 파운드는 낱말들의 뜻 때문에 소리의 움직임을 무시해선 안 된다고 했다. 흔히 이미지라면 '시각적 이미지'를 떠올리기 마련이고 요즘도 그렇게 통용되고 있는데, 파운드는 '시각적 이미지'와 함께 '시의 리듬'을 더욱 중시했다. 이 점이 바로 T.E 흄의 이미지 이론과 구분되는 지점이다. (= 즉 파운드는 이미지즘 창조, 이미지스트로서의 시를 창조했으나 음악성을 중요시 했다는 것!★ ) ​파운드는 좋은 예술은 참된 증언을 하는 정확성을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그만큼 시 표현의 정확성을 강조한 셈이다.                                 나쁜 예술은 부정확한 예술이다. … 그리고 저 좋은 예술은 아무리 '비도덕적'이라고 하여도 전적으로 훌륭한 것이다.결코 좋은 예술은 비도덕적일 수 없다. (※ 근데 여기서 논의 할 점. 예를 들어 작품 '로리타'도 훌륭..? 숙고가 필요하지 않나. ) 나는 좋은 예술을 가지고 참된 증언을 하는 예술, 가장 정확한 예술이라고 말한다. 막연한 것을 나타내는 데도 아주 정확할 수 있다. 예술의 시금석은 정확성이다. … "예술의 최고의 기능은 고귀하리만치 풍부한 소리와 이미지로 마음을 채워주는 것"이며, "시에는 음악을 지향하는 시와 조각이나 그림을 지향하는 시, 두 종류가 있다."고 말했다. … 첫째, 발화 되는 소리에 의해 충전되는 청각적 언어인 '음악시', 둘째는 시각적 상상력에 의해 이미지가 투영되는 시각적 언어인 '회화시', 셋째는 직접적인 의미와 문맥에 기초를 둔 '언어시'라는 것이다. 파운드는 이 세 종류의 시가 따로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한 편의 시에 모두 나타나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 이유는 "모든 글은 이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되었다." 고 여겼기 때문이다. (= 시에서는 음악성과 회화성, 언어성(의미성)이 적절하게 배합이 되어 나온 시가 좋은 시라고 보았다.) ​ 이와 같은 파운드의 시론은 당시 시인들의 산발적이고 혼돈된 시작 활동의 좌표가 되었고, 보다 새로운 시 쓰기의 지향점이 되었다. 그와 동시에 파운드는, 흄이 을 이미지즘 시의 전형으로 써 보인 것 처럼, 자신또한 1913년 월간 를 통해 저 유명한 를 발표했다.       파운드의 시 에 드러나는 '감정의 객관화'는 후일 T.S 엘리엇에 의해 한층 발전 되어 '객관적 상관물'을 낳게 했다. 이것은 외부 대상과 창작자의 지성이 결합된 시적 감수성의 결정체이다.     ※ 여기서 알아 둘 것은, * '정서적 등가물' = 대상의 정서와 화자의 정서가 일치 * '객관적 상관물' = 대상의 정서와 화자의 정서가 꼭 일치될 필요X, 그렇지만 이를 통해 화자의 정서가 드러나는 것.         파운드가 말하는 시의 요체 =  간결한 언어, 객관적인 표현, 구어체     (특히 파운드는 형용사를 격렬히 싫어했다.)  시는 산문처럼 잘 쓰여져야 합니다.(=일물일어설을 주장했던 소설가들을 염두하는 말, 일물일어설을 주장하고 정확한 문장구사를 주장한 산문들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임.)  시의 언어는 훌륭한 언어이어야 합니다. 고양된 강렬성(즉 단순성)에 의한 경우를 빼면 구어체에서 결코 벗어나서는 안됩니다. 책의 언어도, 에두르는 표현도, 도치도 있어서는 안됩니다. 시는 모파성의 산문과 스탕달의 산문처럼 간결해야합니다. (= 다른 사람의 시선이 아닌 자신의 시선으로 대상을 접해야 한다. 자신의 생각과 감각으로.)       감탄사가 있어서도 안 됩니다. 어떠한 말도 허공을 향하여 날아가서는 안 됩니다. (=  1. 필요 없는 수사어구 X 정확한 문장 필요 2. 구체적으로 표현. 추상성 X) … 객관성, 그리고 다시 객관성, 그리고 표현이 있을 뿐입니다. 앞뒤가 바뀌는 것도,("썩은 이끼 낀 각진 모서리"와 같이)양다리 걸친 형용사도, 테니슨이 사용하는 것 같은 말도, 어떤 환경, 어떤 감정의 압박 상태에 있어서, 실제로 이야기 될 수 없는 것은 어떠한 것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여기서 논의한 '구어체'는 '시의 음악성'과 결부되는 요소인데 '입말'이 '리듬'을 저절로 해결해주기 때문이다. ( = 음악적인 시들은 외재율이 아니라 내재율. 각편의 시들이 가지고 있는 독립적 리듬을 중요시. 외형을 가진 정형시 X)            이미지즘 운동이 정적이고 시각적인 이미지 창출에만 매달리는 '인상주의'로 흐르게 되자 에즈라 파운드는 사물이 아닌 인간의 의식세계를 탐구 하기 시작했다. … 그는 사물의 존재보다 인식의 세계로 빠져들었고, 당시 첨단 전위 예술이었던 '소용돌이 주의(Vorticism)'에 몰입했다.   그가 떠났어도 이미지즘 운동은 계속 되었다. < 몇 명의 이미지스트 시인들>이라는 시집에서는 이들이 합의 한 '이미지즘 6원칙'이 실려 있다.  1. 일상적인 언어를 쓰되 유사하거나 장식적인 단어는 결코 사용하지 말고 정확한 단어만을 사용한다.  2. 새로운 분위기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운율을 창조하도록 한다. 우리는 자유시를 유일한 시작법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자유의 원칙을 위해 싸우듯이 자유시를 위해 싸운다. (중략) 시에서 새로운 운율은 곧 새로운 생각을 뜻한다. (= 시조가 근대로 들어와 사상을 담기엔 역부족 (민족주의적 사상입장에서 시조 부흥운동이 일어났으나 실패할 수 밖에 없었다. )) 3. 시 제재 선택에 있어서 완전히 자유로워야 한다. (= 세상 모든게 시가 될 수가 있다. +과거 ,현재 모두 좋은시가 될 수 있다.) 4. 하나의 이미지를 제시한다.(= 시각적인 것에 기울여져있음)  5. 흐릿하거나 확실치 않는 것은 완전히 배제하고 견고하고 명료한 시를 쓴다. 6. 끝으로, 우리 대부분은 압축이 바로 시의 본질이라고 믿는다.         '정확한 단어' = 정확히 모사 X 시인의 마음에 나타난 대상을 독자들에게 생생하게 전달하라는 뜻. "새로운 운율은 곧 새로운 생각을 뜻한다"= ex) 80년대는 왜 해체시인가? 기존의 시적 문법으로는 변화된 80년대를 담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즉, 새로운 것을 담아내려면 새로운 형식이 필요하다.  이 무렵 파운드는 이미 '소용돌이주의'로 발걸음을 옮겨가 있었다. … 이미지즘의 한계를 뛰어넘는 동적 이미지를 창출하고자 했다. 그는 '소용돌이주의'를 통해 객체적 사물의 세계보다는 시인의 창조적 인식을 중시하기 시작했고, 이를 바탕 삼아 대하 서사시 를 집필해 나갔다. 이 작품에는 그가 영향 받은 다다이즘(dadaism)과 초현실주의도 개입되어 있는데, 이들 사조를 보다 새로운 시학을 추구하는 동인(動因)으로 삼았다.          는 이미지즘, 소용돌이, 초현실주의, 다다이즘을 거치면서 점점 확장되어 집필되었다.     흄 :  언어란 의사소통의 도구, 언어란 개념이 정확하지X 언어는 우리의 개념을  추상화 시킨다. → 정확한 이미지즘을 창출하려 했음. 정확한 표현, 군더더기 없는 시각적 세계 But 시각적 이미지만으로는 강렬한 것을 전달할 수 없다.     이를 극복하려고 파운드는 소용돌이 이론(시= 집중된 표상) 으로 발걸음을 옮겼음을 짐작할 수 있다.  
1    현대시 창작시론 -보들레르에서 네루다까지[공유] 댓글:  조회:204  추천:0  2018-09-02
  현대시 창작시론 -보들레르에서 네루다까지     (1821~1867)   "저는 제가 유죄라고 여겨지지 않습니다. 반대로 저는 오로지 악에 대한 공포와 혐오만을 불러일으키는 책을 냈다는 것이 매우 자랑스럽습니다.“   보들레르는 아날로지를 그의 시학의 중심으로 삼았다.   *아날로지 : 시인은 상상력을 통하여 현실세계(상징적 외관)와 곤념세계(전신적 실재)를 하나 의 기호로 결합시키는 자이며, 이것이 바로 상징주의 문학의 ‘상응이론’이다. 이 러한 상응을 옥타비오 파스는 ‘아날로지’라고 명명했다.   보들레르에게서 특히 주목되는 건 ‘예술의 현대성’과 ‘추(醜)와 악(惡)의 미학.   그는 미에 공격적인 자극, ‘낯설게 하는 향료’를 부여하기 위해 변용해석과 역설이라는 보충 수단을 동원한다. 미를 범속성으로부터 보호하고 진부한 취향에 자극을 주기 위해서 미는 기이한 것이 되어야 한다. 미에 대한 그의 정의들 중의 하나는‘순수하고 기괴한 것’이라는 것.   “시인은 추로부터 새로운 마력을 일깨운다” 보들레르는 ‘추의 마력’을 살려내는 것이 바로 시라고 말했고, 시인은 “추함 자체도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며 ‘추함’은 하나의 관념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게다가 추함을 즐기는 행위는 인간의 불가사의한 본성에 내재되어 있다고. 더욱이‘추악함의 향락’은 불가사의한 감정에서 비롯되며, 그 감정엔 미지에 대한 갈증과 공포를 즐기려는 ‘끔찍스럽고 징글맞은 취미’가 깃들어 있다고 보았다. ‘그로테스크의 시학’ ⇒ ‘추의 미‘           (1842~1898)   "순수한 작품이란 필연적으로 화자로서의 시인의 소멸을 의미하는 것이며, 시인은 낱말들에게 주도권을 양도한다. 낱말들은 하나하나가 다르기 때문에 서로 충돌함으로써 동원상태(動員狀態)에 놓인다. 낱말들은 마치 보석들 위에 길게 뻗어 있는 허상의 불빛처럼 그 상호 간의 반영으로 점화된다.“   말라르메는 맨 처음 보들레르처럼 현실도피의 이상세계를 시적 주제로 삼았고, 점차 이상적인 세계의 본질을 지성적으로 탐색해나갔다.   “ 새로운 미학이란 바로 이런 걸세: 사물을 그려내지 않고 사물이 발산하는 효과를 그리는 것. 그리하여 거기서는 시가 낱말들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의도로 이뤄지고 모든 언어는 그 감각 앞에서 사라져야만 한다네......”   언어를 통해 바라보는 현실 너머에는 아무것도 없지만 그 공허 속에 완벽한 형태의 본질이 숨어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시인이 할 일은 바로 그 본질을 감지하여 구체화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말라르메는 평생토록 언어의 본질을 고민햇다. 시의 언어가 과연 의미의 순수성을 지니고 있는가? 잡다한 감정의 결함에서 울려나오는 ‘빈말’이 아닌가?   “모든 것은 허망하고, 오직 남게 되는 미, 그것이 바로 시”               (1854~1891)   "나는 감히 견자이어야 하며 의식적으로 견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겠습니다. 시인은 모든 감각의 오랜, 엄청난 그리고 추리해낸 착란에 의해서 자신을 의식적으로 견자로 만듭니다. 사랑과 고통, 광증의 모든 형태들이 다 그런 것입니다.“   “감각의 착란” ⇒ “사랑과 고통, 광증의 모든 형태“ 결국 시인은 그러한 착란 속으로 자신을 던져 넣어야 하며, 그리하여 “가장 위대한 범죄자, 가장 위대한 저주 받은 자” “최상의 박식한 자”가 된다는 것. 그때서야 비로소 시인은 미지의 세계에 도달하고, 그곳이 바로 ‘시인이 태어나는 자리’ 이며, ‘견자로서의 시인’이 첫걸음을 내딛는 공간이 된다.   랭보의 시는 의미를 초월하는 ‘혼돈의 진동’이었고, ‘그 오랜 관습’의 원고지 위에 “낯선 세계의 얼굴”을 남기는 작업이었다.그러한 작업이 시인 자신을 파괴하기 시작하자 시인은 결국 ‘침묵의 시’를 택하게 된 셈이었다.             (1871~1945)   "신들은 고맙게도 어떤 시의 첫 구절은 공짜로 준다. 그것과 화음을 이룰 둘째 구절을 불러내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다.이렇게 하나의 단어로 시작되는 시는 ‘아직 말을 더듬거리기 때문에’ 우발적인 단어를 빌려 쓸 수 밖에 없는데, 그 단어들은‘놀라우리만큼 정확하게’ 또 다른 단어를 불러 온다.“     발레리는“순수한 물”과 같은 시, 불순물이 전혀 섞이지 않은 시를 ‘순수시’라고 칭하면서, 여기엔 “산문에 딸린 것은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게 되고” “음악적인 연속성이 절대로 중담되지 않아야 한다.” “순수시라는 말 대신 절대적인 시라고 말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며 단어들 사이의 공명 효과를 탐구하고자 했다.   산문은 보행이요, 시는 춤이다   ‘춤의 언어’, 즉 ‘시’가 지니는 리듬은 리듬 자체가 목적이면서 그와 동시에 독자에게 황홀한 아름다움을 가져다 준다.   춤은 율동처럼 행위 자체가 목적이다.   시의 리듬이란 시인이 자신의 육체를 통해서 외부 세계와 교감하는 것이며 외부 세계를 호흡하는 것이다. 시의 리듬은 삼라만상의 우주로부터 시인의 몸으로 흘러드는 것이다.   단어와 단어들이 호응하여 “음악화 되고” “화음적으로 대응하는” 공명관계를 이룰 때. “시적 우주”가 여린다는 것.   ‘수공업’처럼 언어를 매만지고 두드리고 밀고 나가는 창작 행위를 중시했다.   발레리는 시의 리듬과 이미지, 상징과 비유 등 말의 모든 힘을 구사하여 ‘언어 공학’을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 따라서 시인은 ‘언어 공학’의 ‘기하학자’ ‘건축가’ ‘지성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               (1886~1956)   "시는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완성된다. 작가는 그의 텍스트를 아직 모를 뿐이다.“   벤은 평생토록 ‘새로운 시’ ‘새로운 현대시’ ‘새로운 서정시’를 탐문했다.   현대시가 될 수 없는시 : 1) 허구성; 외부세계를 모방하거나 거기에 기대어 자신의 감정을 노 래하는 언술 방식을 버려야! ‘경험적 자아’가 아닌 ‘시적 자아’로서만 시를 써야 한다. 2) ‘~인 양’ ‘처럼’ 등 직유의 빈번한 사용을 피해야! 이로 인해 언어의 긴장감이 이완되고 창조적인 변형이 약해진다. 3) 빨강 ‧ 보라 ‧ 금빛 등 색채의 빈번한 사용을 하지 말아야! 4) 독자의 감흥을 불러일으킥 위한 해맑은 톤을 피할 것! ‘졸졸대는 샘물’ ‘아름다운 밤’ 등의 표현은 현실도피적 발상이며, 독자의 감상을 노리고 값싸게 머리를 짜내는 행위라는 것.             (1898~1956)   “시를 통해서는 개인들이 표현되기도 하지만, 그 개인들이 속한 계급도 표현된다. 또한 여러 시대의 모습이 시 속에 표현되는가 하면 인간의 격한 감정 역시 펴현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결국 표현되는 것은 ‘인간 그 자체’다.”   시인이여, 이성(理性)을 두려워 말라     나도 안다, 행복한 자만이 사랑받고 있음을, 그의 음성은 듣기 좋고, 그의 얼굴은 잘생겼다.   마당의 구부러진 나무가 토질 나쁜 땅을 가리키고 있다, 그러나 지나가는 사람들은 으레 나무를 못생겼다 욕한다.   해협의 산뜻한 보트와 즐거운 돛단배들이 내게는 보이지 않는다, 내게는 무엇 보다도 어부들의 찢어진 어망이 눈에 띌 뿐이다. 왜 나는 자꾸 40대의 소작인 처가 허리를 꼬부리고 걸어가는 것만 이야기하는가? 처녀들의 젖가슴은 예나 이제나 따스한데.   나의 시에 운을 맞춘다면 그것은 내게 거의 오만처럼 생각된다.   꽃피는 사과나무에 대한 감동과 엉터리 화가에 대한 경악이 나의 가슴 속에서 다투고 있다. 그러나 바로 두 번째 것이 나로 하여금 시를 쓰게 한다. -베르톨트 브레히트, 김광규 옮김,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 부분     “아우슈비츠 이후 서정시를 쓰는 것은 야만”이라는 아도르노의 선언은 이 시로부터 비롯되었다.   “새로운 내용만이 새로운 형식을 지탱할 수 있다.”               (1885~1972)   "많은 양의 작품들을 내놓는 것보다 일생에 거쳐 하나의 이미지를 제시하는 것이 낫다.“   시를 인체에 비유하면, 메시지는 뼈에 해당되고 리듬은 핏줄과 같고, 이미지는 살갗이라고 볼 수 있다. 흄의 ‘절대적으로 정확한 표현’ ‘군말의 폐지’와 비슷한 입장.   1) 주관적이든 객관적이든 사물을 직접 다룰 것. 2) 표현에 도움이 안 되는 말은 절대 사용하지 말 것. 3) 리듬은 메트로놈의 규칙에 따르기보다 음악적 구절의 연속성을 따라갈 것.   1) 일상적인 언어를 쓰되 유사하거나 장식적인 단어를 사용하지 말고 정확한 단어만을. 2) 새로운 분위기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운율을 창조하도록. 3) 시 제재 선택에 있어서 완전히 자유로워야 한다. 4) 하나의 이미지를 제시한다. 애매하고 일반적이 아닌 구체적인 것을 정확하게. 5) 흐릿하거나 확실치 않은 것은 완전히 배제하고 견고하고 명료한 시를 쓴다. 6) 압축이 바로 시의 본질이다.   ‘시는 지성인들 사이의 의사전달’ ‘어떠한 예술도 대중의 눈으로 바라봄으로써 성장한 적이 없다’   (1888~1965)     "예술가의 과정은 계속적인 자기희생의 과정, 즉 계속적인 개성 소멸의 과정이다“   엘리엇은 ‘강한 감정의 자발적 유출’이라는 낭만주의적 시관에 반발하면서 시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정서 그 자체가 아니라 예술적 변용 과정임을 역설하였다. 그에게 있어서 예술적 관정이란 비개성화 과정으로 요약된다. ‘개성적이고 사적인 경험’을 보편적이고 비개성적인 어떤 것‘으로 바꾸는 것이 그의 예술 작업이었다.   예술가의 과정은 계속적인 자기희생의 과정, 즉 계속적인 개성 소멸의 과정이다.   ‘객관적 상관물(Objective Correlative)를 찾아야 한다는 것. 시인은 일상적 사건이나 풍경 그리고 기존의 예술 작품 등에서 시인의 감정을 대변해 줄 ‘정서적 등가물’을 찾아야 한다는 것.     자 이제 가자, 너와 나, 수술대 위에 마취당해 있는 환자처럼 저녁이 하늘을 배경으로 쭉 뻗어 있는 이때, 가자, 반쯤은 썰렁한 길들을 지나 잠 못 이루는 밤 하루 묵을 싸구려 호텔로 굴 껍질이 뒹굴고 톱밥이 흩날리는 식당으로 중얼대며 들어가는 길들을 지나, 길들은 너를 감당하기 힘든 질문으로 이끌고 가려고 음험한 의도를 지닌 지루한 논쟁처럼 뒤따라오는데‧‧‧‧ 오 묻진 마, ‘그게 뭐냐’고 가서 방문이나 하지.   방에선 여인들이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고 있다 미켈란젤로를 들먹이며.   -T.S. 엘리엇, 이일환 옮김, 「J. 앨프렛 프루프록의 사랑 노래」 부분                 (1892~1966)     "시인은 문장 속에서는 물론이고 일상적인 삶 속에서도 자신에게 신호를 보낼 수 있는 의미심장한 우연의 일치들, 기묘한 유사점들을 주의 깊게 포착하는 일종의 감시병이 된다.“   ‘초현실주의’   ‘상상력의 극대화, 욕망의 해방’   * 초현실주의: 남성명사, 말이나 글 혹은 기타 그 어떤 방법으로든 간에 사고의 실제적 기능 상태를 표현하고자 하는 순수한                                   심리 적 자동 현상.                         이성에 의한 모든 조종에서 벗어나고, 모든 미적, 도덕적 편견을 떠나 사고 그 자체를 받아쓰는 것.     브르통은 ‘꿈’과 ‘광기’의 시 쓰기를 논리화시킨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바탕으로 삼아 인간의 무의식에서 솟아오르는 광기를 인간의 가장 자유로운 상상력의 표출이라고.   이미지란 순수한 정신적 창조물이다. 이미지는 어떤 비유에 의해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멀리 떨어져 있는 두 가지 현실을 접근시키는 데서 태어난다. 접근된 이 두 가지 현실의 상호관계가 멀면서도 적절할수록, 이미지는 더욱더 강렬한 것이 될 것이고, 보다 더 강력한 감동력과 시적인 현실성을 얻게 될 것이다.             (1893~1930)     “왜 어째서 문학은 한쪽 구석으로 몰려야 하는가? 그것은 모든 신문에, 매일같이 모든 페이지마다 실려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디저트 정도로만 내놓는 문학 따위라면 죽어버려야 한다.”   ‘미래파’ ‘선동가’ ‘혁명의 계관시인’ 그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시의 혁명’과 ‘정치혁명’을 꿈꾸고 노래한 20세기 러시아 최고의 시인이었다.       「어떻게 시를 만들 것인가」   1) 시는 생산품이다. 2) 시 쓰기의 연습은 새로운 기술 창조에 도움이 되는 생산 기술에 대한 공부이다. 3) 참신성, 재료와 방법의 참신성은 모든 시 작품에 필수적이다. 4) 시 만드는 사람은 매일의 연습을 통해 장인성을 연마하고 시적 자원을 저장해야 한다. 5) 이미 오래 전에 존재 가치를 상실한 운율법에 정확하게 맞는 시를 쓰는 능력보다 훌륭한 창작 노트를 작성하고 그것을 효과적      으로 활용하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 6) 자신을 표현 할 수 있는 수단이 오로지 시뿐일 때 펜을 잡아야 한다. 그리고 사회적 소명을 확실하게 감지할 수 있을 때에만 완      결된 시 작품을 생산해야 한다. 7) 사회적 소명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 시인은 사물과 사건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 8) 사회적 소명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기 위해서 시인은 자기 계급의 선도적 위치에 있어야 한다. 비정치적 예술에 관한 동화는 완      전히 분쇄되어야 한다.       「새로운 언어 창조의 세부 방침」   1) 어휘를 조작할 것. (말의 혁신, 음성, 기억 편성 등) 2) 약강격이나 강약격 같은 관례적인 운율을 언어 자체의 다각적인 리듬으로 대체할 것. 3) 구문을 변형시킬 것. (단어 결합 형태의 단순화, 비일상적 단어 사용의 강조 등) 4) 단어와 단어결합의 의미론을 새롭게 할 것. 5) 교묘한 슈제트 구성의 모델을 창조할 것. 6) 말의 시각적 측면을 드러낼 것.     리듬은 시의 힘이자 에너지이다 “시인은 리듬 감각을 자신의 내부에서 발전시켜야 한다.”             (1898~1936)     "예술 작품이 진정한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세련되고 잘 다듬어진 기법 뿐 아니라 영감이라는 거대하고도 신비로운 불꽃이 필요하다.“   시는 세상의 모든 것, 즉 추한 것, 아름다운 것, 그리고 심지어는 혐오스러운 것에서도 존재한다. 문제는 우리 영혼의 깊은 늪 속에 잠들어 있는 그것을 찾아서 깨울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정신이 지닌 놀라운 면은 마음 속에 떠오르는 어떤 감정도 다양한 방법으로- 저마다 다 다르게, 또 때로는 아주 모순된 방식으로-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세상을 살아가다 어느 순간 ‘고독의 길’에 이르는 문에 당도하면, 마음 속에 존재하는 모든 감정과 덕성, 그리고 죄업과 순결함이 담긴 잔을 깨끗이 비울수 있게 될 것이다.항상 우리의 영혼을 세상 사물에 따라 부으면서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어른거리는 영혼의 그림자를 보고, 또 마법과도 같은 우리의 감성에 형식을 부여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세상을 이해하게 된다.         기타의 울음을 멈추게 할 수는 없으리라 먼 곳을 그리워하며 기타는 눈물을 흘린다. 더운 남국의 모래는 흰 동백을 찾고, 과녁을 잃은 채 허공을 떠도는 화살, 아침을 잃어버린 오후, 그리고 나뭇가지 위에서 제일 먼저 죽은 새를 슬퍼하며 기타는 눈물을 흘린다. 아, 기타여! 다섯 개의 칼에 의해 상처 입은 심장이여!   -로르카, 엄지영 옮김, 「기타」 부분           (1920~1970)     "시란,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저에게는 하나의 사건이며, 움직임이며, 또한 유동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어떤 방향을 구축하려는 시도였습니다. 그것의 의미가 무엇인가 묻는다면, 이 질문은 시계의 시침에 대한 질문이라고 생각됩니다.왜냐하면 시는 무한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물론 시는 무한성에 대한 요청이 있지만 시대를 관통합니다. 시대를 관통하지만 그것을 초월하지는 않습니다.“     시는 언어의 한 현상 형태로 그 본질상 대화적이기 때문에 일종의 ‘유리병 편지(Flaschenpost)' 같습니다, - 분명 희망이 늘 크지 않은- 믿음, 그 유리병이 언젠가, 그 어딘가에, 어쩌면 마음의 땅에 가 닿으리라는 희망을 품고 유리병에 담아 띄우는 편지요. 한 편의 시들도 이런 식으로 도중에 있습니다. 무언가를 마주해 있는 겁니다. 열려있는 것, 점령할 수 있는 것을 향해서, 어쩌면 말을 건넬 수 있는 ‘당신’을 향해서, 말을 건넬 수 있는 현실 하나를 향해서.   첼란은 인간에게 귀속되는 언어로서의 시를 추구했다. 시는 ‘언어 조작으로서의 시’가 아닌 ‘인간의 현시을 담아내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   * 시란 “자신에게서부터 자신에게로 가는 우회로” “인지하는 너에게로 가는 목소리의 길”             (1914~1998)     "언어는 리듬이 되려고 하는 본래의 경향을 갖는다. 마치 신비스러운 중력의 법칙에 따르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들은 자발적으로 시로 돌아간다.“     “시어는 적확한 의미 규정을 거부한다.” “언어의 본질은 상징성” “맨 처음의 인간적 언어는 모방적이고 마법적인 무언극이었을 것” “아날로지적 사유 법칙의 지배를 받아 신체적 동작들은 대상과 상황을 모방하고 재창조하는 것” 따라서 오늘날 인간의 언어는 대상의 실재를 표현하려 들지만 사실은 실재의 일부분을 표상하는 데 불과하다는 것. 그러므로 시인은 현존의 언어를 일상적 의미의 획일적 세계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는 주장.       뒤집어엎어라, 꽁지를 잡아라(악을 쓰라고 그래, 똥갈보 년들), 집어 패라, 채찍에 묻혀 입에다 설탕을 먹여라, 풍선처럼 불어대, 그리고 터트려, 말려라, 공알을 까버려라, 짓이겨라, 멋진 수탉처럼, 울대를 비틀어라, 요리사처럼, 털을 벗기고, 창자를 꺼내고, 투우처럼, 수소처럼, 짓이겨놓아라, 새말을 만들어라, 시인아, 제가 한 말을 혼자 다 들이마시게 하라.   -옥타비오 파스, 민용태 옮김, 「말들」 전문       이처럼 시인들이 일상의 언어를 붕괴시킴으로써 새로운 시가 탄생한다는 것이다.이를 통해 시의 언어는 획일적인 의미를 뛰어넘어 원초적 상태로 되돌아가게 된다.   “시인은 말을 자유롭게 풀어주고 산문 작가는 말을 구속한다.”   파스의 시적 주제는 사랑과 에로티시즘이다. 이 또한 ‘나’의 ‘타자’를 발굴해내기 위한 몸짓이기 때문이다.           (1904~1973)     "대낮에 광장에서 읽는 시가 되어야 한다. 책이란 숱한 사람들의 손길에 닳고 닳아 너덜너덜해져야 한다. 낯선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해변에서, 낙엽 속에서 문득 시를 낭송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들이 지은 시를 소중하게 낭송할 수 있어야 한다.그럴 때만이 우리는 진정한 시인이며 시는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 그 무렵이었다‧‧‧‧‧ 시가 날 찾아왔다. 난 모른다. 어디서 왔는지 모른다. 겨울에선지 강에선지 언제 어떻게 왔는지도 모른다 아니다. 목소리는 아니었다. 말도 침묵도 아니었다 하지만 어느 거리에선가 날 부르고 있었다 밤의 가지들로부터 느닷없이 타인들 틈에서 격렬한 불길 속에서 혹은 내가 홀로 돌아올 때 얼굴도 없이 저만치 지키고 섰다가 나를 건드리곤 했다   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입술은 얼어붙었고 눈먼 사람처럼 앞이 캄캄했다 그때 무언가 내 영혼 속에서 꿈틀거렸다 열병 혹은 잃어버린 날개들 그 불탄 상처를 해독하며 난 고독해져 갔다 그리고 막연히 첫 행을 썼다 형체도 없는, 어렴풋한, 순전한 헛소리 쥐뿔도 모르는 자의 알량한 지혜 그때 나는 갑자기 보았다 하늘이 흩어지고 열리는 것을 행성들을 고동치는 농장들을 화살과 불과 꽃에 들쑤셔진 그림자를 소용돌이치는 밤을, 우주를 보았다   그리고 나, 티끌만 한 존재는 신비를 닮은, 신비의 형상을 한, 별이 가득 뿌려진 거대한 허공에 취해 스스로 순수한 심연의 일부가 된 것만 같았다 나는 별들과 함께 떠돌았고 내 가슴은 바람 속에 풀려났다 -파블로 네루다, 김현균 옮김, 「시(詩)」 전문         “최상의 시인이란 우리가 일용할 빵을 마련해 주는 사람” 모든 민중의 일상적 노동에 바치는 자신의 헌신과 애정“을 담아내야. “땀과 빵과 포도주와 모든 인간의 꿈”에 참여해야.     네루다는 “거리나 시장에서 주워온 말로 시를 쓴다”   책에선 배울 게 없다. 대자연의 경이와 생명에서 시를 느껴라. 굳이 혁신적인 시어와 형식미를 갖추지 않아도 ‘시적 정서’에 의해 시의 개성은 표출된다. “탁월한 시인이 되려면, 자신이 추구하는 방향을 고수하고 자연, 문화, 사회생활에 대한 지나친 관심을 통제하는 거싱 매우 중요하다.     리얼리스트가 아닌 시인은 죽은 시인이다. 그러나 리얼리스트에 불과한 시인도 죽은 시인이다. [출처] 현대시 창작시론 -보들레르에서 네루다까지|작성자 옥토끼   현대시 창작시론 ―보들레르에서 네루다까지   오정국 편저      ​오정국 편저 | 현대시 창작시론 | 문학(이론) | 신국판 | 254쪽 | 2016년 2월 26일 출간 값 15,000원 | ISBN 979-11-5896-244-9 03800 | 바코드 9791158962449 ​ ​ ​ [책 소개]   이토록 뜨겁고 생생한 시론, 시의 육성(肉聲) 세기의 시인들의 시론을 한데 묶은 최초의 책   현대시의 금자탑을 세운 시인들의 시적 세계관을 한데 묶은 책. 보들레르부터 네루다까지, 이름만 봐도 그 면면을 알 수 있는 당대의 대표적 시인들 14명이 직접 밝힌 시론을 한자리에 모았다. 국내의 여러 시론집들이 뚜렷한 변별성 없이 서구의 시론을 번역하여 정리하거나 서구 문예 이론가들의 논리를 시의 구성 요소별로 분류해서 체계화하는 데 머물러 있는 걸 본 필자는 시인들이 직접 토로한 ‘경험적 시론’을 한 권의 책으로 엮기 위해 지난 5년간 온갖 자료를 섭렵했다. 그들이 남긴 일기를 비롯해 창작 노트, 편지글, 문학상 심사평, 신문·잡지 기고문, 저서 그리고 〈노벨문학상〉 등 각종 문학상 수상 소감을 뒤졌다. 필자는 그 치열한 노력의 집성체인 이 책에 그 자체 현대시의 역사에 다름 아닌 14명 시인들의 삶과 스스로 밝힌 시론을 실었고, 이에 대한 비평가의 논평을 덧붙였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설명도 빼놓지 않았다. 현대시 개척자들의 창작시론을 한 권으로 엮은 이 『현대시 창작시론』은 시에 관심이 있는 일반 독자는 물론 시를 쓰고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도 새롭게 시를 바라보는 즐거움을 선물할 것이다. 시는 무엇인가? 여기, 위대한 시인들이 육성(肉聲)으로 토해낸 시론(詩論)이 있다.       [책 속으로]   저는 제가 유죄라고 여겨지지 않습니다. 반대로 저는 오로지 악에 대한 공포와 혐오만을 불러일으키는 책을 냈다는 것이 매우 자랑스럽습니다. ―샤를 보들레르 p.12   나는 감히 견자이어야 하며 의식적으로 견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겠습니다. 시인은 모든 감각의 오랜, 엄청난 그리고 추리해낸 착란에 의해서 자신을 의식적으로 견자로 만듭니다. 사랑과 고통, 광증의 모든 형태들이 다 그런 것입니다. ―아르튀르 랭보 p.48   신들은 고맙게도 어떤 시의 첫 구절은 공짜로 준다. 그것과 화음을 이룰 둘째 구절을 불러내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다. 이렇게 하나의 단어로 시작되는 시는 ‘아직 말을 더듬거리기 때문에’ 우발적인 단어를 빌려 쓸 수밖에 없는데, 그 단어들은 ‘놀라우리만큼 정확하게’또 다른 단어를 불러온다. ―폴 발레리 p.64   시는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완성된다. 작가는 그의 텍스트를 아직 모를 뿐이다. ―고트프리트 벤 p.80   시를 통해서는 개인들이 표현되기도 하지만, 그 개인들이 속한 계급도 표현된다. 또한 여러 시대의 모습이 시 속에 표현되는가 하면 인간의 격한 감정 역시 표현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결국 표현되는 것은 ‘인간 그 자체’다. ―베르톨트 브레히트 p.98   많은 양의 작품들을 내놓는 것보다 일생에 걸쳐 하나의 이미지를 제시하는 것이 낫다. ―에즈라 파운드 p.114   예술가의 과정은 계속적인 자기희생의 과정, 즉 계속적인 개성 소멸의 과정이다. ―T. S. 엘리엇 p.130   시인은 문장 속에서는 물론이고 일상적인 삶 속에서도 자신에게 신호를 보낼 수 있는 의미심장한 우연의 일치들, 기묘한 유사점들을 주의 깊게 포착하는 일종의 감시병이 된다. ―앙드레 브르통 p.148   왜 어째서 문학은 한쪽 구석으로 몰려야 하는가? 그것은 모든 신문에, 매일같이 모든 페이지마다 실려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디저트 정도로만 내놓는 문학 따위라면 죽어버려야 한다. ―블라디미르 마야코프스키 p.166   예술 작품이 진정한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세련되고 잘 다듬어진 기법뿐 아니라 영감이라는 거대하고도 신비로운 불꽃이 필요하다.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p.184   언어는 리듬이 되려고 하는 본래의 경향을 갖는다. 마치 신비스러운 중력의 법칙에 따르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들은 자발적으로 시로 돌아간다. ―옥타비오 파스 p.216   대낮에 광장에서 읽는 시가 되어야 한다. 책이란 숱한 사람들의 손길에 닳고 닳아 너덜너덜해져야 한다. 낯선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해변에서, 낙엽 속에서 문득 시를 낭송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들이 지은 시를 소중하게 낭송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만이 우리는 진정한 시인이며 시는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파블로 네루다 p.232     [출판사 서평]     현대시의 금자탑을 세운 시인들의 시적 세계관을 한데 묶다   시는 아직 써지지 않았다. 시를 쓸수록 시는 오리무중이다. 누구에게나 그럴 것이다. 시는 거대한 관념의 추상체이다. 시를 쓰기 위한 번민과 고독, 실패의 기록만 존재할 뿐이다. 시는 형이상학적 추상성과 현실적인 구체성이 서로 만나 충돌과 삼투를 거듭하다가 하나의 언어로 육화되는 공간이다. 정말 그런 것인가? 시는 무엇인가? 여기, 시인들이 육성(肉聲)으로 토해낸 시론(詩論)이 있다. 지금껏 시를 쓰고 공부하고 강의하면서 필자는 국내의 여러 시론집을 접해왔던 바, 뚜렷한 변별성을 발견할 수 없었다. 한국 현대시가 서구에서 유입되었기 때문일까, 서구의 시론을 번역하여 정리한 책이 대부분이었다. 이들 시론집은 대체로 ‘시어’ ‘이미지’ ‘비유’ ‘상징’ ‘리듬’ ‘화자’를 중심으로 시를 논했다. 서구 문예 이론가들의 논리를 시의 구성 요소별로 분류해서 체계화한 것인데, 여기엔 시인의 육성이 담겨 있지 않았다. 필자는 지금껏 대학에서 시를 강의하면서, 줄곧 머릿속의 의문 하나를 떨쳐버릴 수 없었다. 그것은 시인들이 생각하는 시의 모습이었다. 시인들은 과연 시를 어떤 존재로 생각하고 있으며, 그들이 말하는 ‘시란 무엇인가?’였다. 시인들의 직접 토로한 ‘경험적 시론’, 나아가 ‘창작시론’은 어떤 것일까? 탁월한 시인에게는 탁월한 시론이 있다고 한다. 과연 그런 것인가? 필자는 이를 탐문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모인 14명의 시인들, 이름만 봐도 그 면면을 알 수 있는 당대의 대표적 시인들이다. 특이하게도 이들은 시를 쓰면서 시를 논했고, 시문학 논쟁의 황금기를 열었다. 그 결과, 종래의 시의 개념이 요즘처럼 바뀌게 되었고, 이름하여 ‘현대시’가 여기까지 올 수 있게 됐다. 시에 대한 논의의 역사는 유구하다. 플라톤이 그의 『국가론』을 통해 ‘시인 추방’을 명령했다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시를 ‘율어(律語)에 의한 모방(模倣)’이라고 정의하면서 시의 리듬과 비유 그리고 시의 기능을 논했다. 그가 말한 모방(imitation)이란 사물이나 풍경을 있는 그대로 모사(mimesis)하는 행위가 아니었다. 여기엔 ‘있을 수 있는 세계’를 그럴듯하게 담아내는 ‘창작의 개연성’이 개입되어 있었고, ‘당위적 진실’을 지향하는 ‘표현(expression‎‎)’과 ‘이상화(idealization)’라는 지향점이 제시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이때 이미 ‘유비적 상상력’에 의한 비유의 필요성이 논해졌던 셈이다. 이러한 ‘모방론’은 17세기 고전주의에 이르기까지 시문학 이론의 핵심이 되어왔다. 이 ‘모방론’은 자아와 세계가 분리되어 있다는 세계관에 따른 것인데, 18세기 낭만주의가 시작되자 상황은 달라진다. 시가 더 이상 대상을 모방하는 도구가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시적 대상보다도 시인 자신의 개성을 중시하는 ‘표현론’이 나타난 것인데, 이때부터 시는 자아와 세계의 합일을 꾀하였다. 다시 말해 시적 주체와 객체가 혼융된 ‘동일성의 시학’을 지향하면서 이를 ‘서정시’라고 칭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시에 대한 논의는 19세기 말 상징주의에 이르러 또다시 획기적인 전환점을 맞게 된다. 비로소 ‘현대시’에 관한 논의가 시작됐던 것이다. 시적 정서는 물론 그 표현 방식에 있어서 자연주의와 사실주의를 배격하고, 낭만주의와도 구분되는 새로운 시에 대한 질문이 시작되었다. 상징주의의 비조(鼻祖)로 일컬어지는 샤를 보들레르가 바로 그 출발점이었다. 이후 프랑스·독일·영국·러시아·스페인 등 유럽을 비롯해 미국을 거쳐 멕시코·칠레 등 중남미에 이르기까지 현대시의 개념과 성격을 둘러싼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20세기 중반까지 벌어진 이 논쟁은 가히 폭발적이었고, 그 어느 세기도 경험해보지 못한 ‘시문학 논쟁의 황금기’를 이루었다. 그때의 시인들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들은 당대의 시를 끊임없이 부정하는 변증법적 투쟁의 궤도를 달려왔다. 각 시인의 시론은 서로 대립하고 충돌하면서 보완됐고, 정반합(正反合)을 거듭하면서 또 다른 시의 시야를 열어젖혔다. 바야흐로 현대시의 새로운 미학이 창출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들의 시론은 이단(異端)의 언어였고 자신은 물론 이 세계와의 험난한 싸움이었다. 게다가 이들에게 있어서의 현대시는 시인의 존재성에 대한 비판이기도 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중반까지 불과 50여 년의 논쟁이었지만 그 결과는 놀라웠다. 시의 영역이 최대치로 확장되어 오늘날의 현대시가 이토록 다변화됐다. 현대시의 개념과 특징 그리고 시의 구성 요소에 관한 치열한 논쟁 끝에 오늘날의 시론이 정립됐던 것이다. 아쉽게도 논쟁은 더 이상 이어지질 않았다. 시문학 논쟁의 역사를 되짚어보면, 시인들이 직접 시를 말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시인들은 다만 시를 썼고, 시를 통해 자신의 세계관이나 시론을 피력해왔다. 그러나 이 자리에 모인 14명의 시인은 자신의 시론을 거침없이 토로했고, 이론 투쟁을 마다하지 않았다. 시 창작의 미학적 근거를 마련하고자 했다. 필자는 그 자료를 찾기 위해 지난 5년간 이들이 남긴 일기를 비롯해 창작 노트, 편지글, 문학상 심사평, 신문·잡지 기고문, 저서 그리고 〈노벨문학상〉 등 각종 문학상 수상 소감을 뒤졌다. 여기엔 당대의 정치 상황과 이데올로기, 사회문화적 요소들이 개입되어 있었다. 그리고 당대의 시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 담겨 있었다. 그 통찰력을 살피는 동안 필자는 시인의 육성이 생생하게 들려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토록 뜨겁고 생생한 시론, 시의 육성(肉聲)이 또 어디 있을까 싶었다. 이들의 시론이 그러했듯이, 시는 ‘움직이는 언어’이다. 리듬이 그러하고 의미가 그러하다. 시는 자신을 드러내는 동시에 자신을 숨긴다. 그 목소리와 얼굴을 종잡을 수 없다. 그렇게 불투명하고 불연속적이기 때문에 시의 생명력이 지속되는 게 아닐까? 시는 독자들에 의해 거듭거듭 육화되는 존재이다. 시가 그러하듯 이들의 창작시론 역시 오늘날에도 끊임없이 재생되는 화두이자 질문이며 시적 잠언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은 현대시 논쟁의 전개 과정에 따라 시인들을 배열했다. 각 시인의 삶을 요약하면서 스스로 밝힌 시론을 실었고, 이에 대한 비평가의 논평을 덧붙였다. 인용한 문장은 각주를 달아 이를 밝혔고,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필자의 각주를 따로 붙이기도 했다. 이 책은 시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일반 독자는 물론이거니와 시를 쓰거나 시론을 공부하는 이들이 현대시의 금자탑을 세운 시인들의 시적 세계관을 살펴보는 한편 현대시의 변증법적 전개 과정을 탐구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저자 소개]   오정국 1956년 경북 영양에서 태어나 중앙대학교 예술대 문예창작학과와 동 대학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문학박사). 1988년 『현대문학』 추천으로 등단했으며, 시집 『저녁이면 블랙홀 속으로』 『모래무덤』 『내가 밀어낸 물결』 『멀리서 오는 것들』 『파묻힌 얼굴』, 문학평론집 『시의 탄생, 설화의 재생』 『비극적 서사의 서정적 풍경』을 펴냈다. 〈지훈문학상〉 〈이형기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한서대 인문사회학부 미디어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차례]   책머리에   샤를 보들레르 예술의 현대성—추(醜)의 미학   스테판 말라르메 순수관념으로서의 시   아르튀르 랭보 견자(見者)의 시   폴 발레리 순수시—시의 음악성   고트프리트 벤 절대시   베르톨트 브레히트 시의 효용   에즈라 파운드 시와 이미지   T. S. 엘리엇 시의 화자—탈(脫)개성의 시   앙드레 브르통 초현실의 시—무의식의 메시지   블라디미르 마야코프스키 미래주의—투쟁의 시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시와 영감(靈感)   파울 첼란 시와 현실   옥타비오 파스 무의식의 시—타자의 언어   파블로 네루다 광장의 언어—해방의 언어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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