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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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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날짜 : 2021/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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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동위원소인간 - 찰스 에릭 메인 Charles Eric Maine 지음 댓글:  조회:32  추천:0  2021-03-19
동위원소인간   찰스 에릭 메인 Charles Eric Maine 지음 등장 인물   델라니 : 주인공으로서 주간지 '뷰'의 민완 기자. 사건 사진 중 신원 불명인 한 장의 사진이 유명한 과학자와 닮은 걸 발견하고 조사한다. 그런데 그 뒤에 무서운 사건이 숨겨져 있었으니……. 데이 : 주간지 '뷰'의 사진 기자. 델라니와 함께 사건을 추적하는,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만만치 않은 여자. 레이너 : 원자 물리학자. 방사성 물질 전문가로서 프란드 연구소 교수. 이 사건의 열쇠를 쥔 중요 인물 구레아리 경부 : 이 사건의 음모를 미리 알아채고 있으면서, 델라니의 조사를 방해라고 생각한다. 프레스튼 박사 : 노잔 병원의 의사. 레이너 박사를 치료한다. 바스코 : 이 사건의 음모 주모자. 올리베 : 주간지 '뷰'의 편집장 메인랜드 : 원자력 연구소 소장 브레슬라 박사 : 전쟁 전까지는 유럽에서 제일 손꼽히는 정형외과 의사로 유명했었는데, 전쟁이 끝나자 행방을 감추었다. 마르크스 박사 : 노잔 병원의 정신과 의사 아레건 : 바스코 일당의 한 사람     사건 발생···················· 4 엉터리 기자··················· 9 레이너 박사··················· 15 한 번 죽었다?·················· 20 수수께끼의 회화················· 23 가짜 박사···················· 29 7초 반 빠르다.················· 36 자백제(자백시키는 약)············· 43 탈출······················ 47 역(반대)치료법················· 50 본 정신을 되찾다.················ 56 원자 폭발은 막을 수 없다.············ 64 타오르다.··················· 68 위기 일발···················· 71   사건 발생   내가 출판사 편집실에 들어갔을 때 기자 마크레는 편집장 책상 곁에서 현상한 사진을 보아가며 올리베 편집장과 이야기하고 있었다. "여보게 델라니, 늦었네. 곧 사진기자를 데리고 신축한 스테파나 병원의 개원식(병원이 개원하는 날 행하는 의식) 상황을 취재하고 오게." 편집장은 내 얼굴을 보자마자 항상 말하는 식으로 날카롭게 말했다. "병원의 개원식 에요? 그 따위 일은 누군가 딴 사람에게……."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올리베 편집장은, "일하는 데 마음에 드는 일과 안 드는 일을 선택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어. 잔소리 말고 빨리 갔다와!" 하고, 호령하자마자 밖으로 나갔다. 나는 마크레와 서로 마주보았다. 마크레는 빙긋이 웃었다. 나는 그 동료가 부러웠다. 아마 뭔가 재미있는 사건이 있어서 밤늦게까지 뛰어다닌 것 같았다. 나는 책상 위에 흩어져 있는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캄캄한 빌딩 거리를 배경으로 경찰 순찰차가 서 있고, 정복 경찰관과 형사가 길바닥에 쓰러져 있는 피해자를 둘러싸고 있는 사진과, 고속도로에서 경기용 차와 세단 차가 형편없이 부서져 있는 무서운 교통 사고의 사진들이 뒤섞여 있었다. 그런데 그 사진 중의 한 장이 내 마음에 걸렸다. 그것은 예사로 보면 흔히 있는 사건 사진이었다. 물에 빠져 온 몸이 물투성이인 한 사나이가 들것에 태워져 있었다. 얼굴빛은 죽은 사람 같고 숨도 쉬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런데 나의 흥미를 끈 것은 그 사나이의 얼굴이 어디에서인가 만나 본 낯익은 얼굴인 것이다. 그리고 또 그 사나이 몸 둘레가 희미하게 희게 빛나고 있는 것 같이 보인 것이다. 나는 마크레를 돌아보며 물었다. "이게 누구야?" 마크레는 그 사진을 보고 어깨를 들썩하더니, "누군지 몰라. 대단치 않은 사람이겠지. 총에 맞고 강에 버려진 모양이야. 보통 강도가 아니면 부랑자들 사이의 싸움이겠지." "죽었는가?" "아니, 곧 죽을만한 중상인데 숨은 붙어 있어서 노잔 병원에 수용되어 생명은 건진 모양일세." "이 사진에 희미하게 보이는 것은 무엇일까?" "사진을 현상할 때 광선이 들어갔겠지." 나는 그 사진을 한 번 더 주의 깊게 보았다. 아무래도 어디에서 만나 본 사람의 얼굴이었다. 40살 정도의 사나이는 눈언저리가 쑥 들어가고 턱이 긴 특징 있는 얼굴이다. 나는 생각이 안 나서 초조하고 짜증이 났다."이 사진을 좀 빌리자." 내가 부탁을 하니 마크레는 이상히 여기며, "좋아. 이 사진은 쓸모 없는 것이니까." 내가 그 사진을 호주머니에 넣고 있는데 올리베 편집장이 되돌아와서 또 재촉했다. "여보게 델라니, 아직 가지 않았는가? 스테파나 병원의 기사와 사진은 해질 무렵까지 필요한 거네." "네, 알았습니다. 곧 출발하겠습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고 그 방에서 나왔다. 그러나 나는 곧바로 출발하지 않았다. 승강기를 타고 아래층의 자료실에 들어갔다. 자료실에는 많은 서류가 정리되어 있었다. 기사를 쓸 때 참고로 하기 위하여 가지각색의 자료가 잘 정리되어 있는 것이다. 유명한 인물, 유명한 장소, 유명한 사건, 그 외에도 어지간한 것은 모두 찾아볼 수 있게 되어 있는 곳이다. 나는 방안에 꽉 차 있는 자료 정리 서고를 한 바퀴 돌아보았다. 호주머니에 들어 있는 사진의 사나이를 여기서 조사할 생각인 것이다. 나는 과학 기자였기 때문에 내가 만나는 사람은 대개 과학자이다. 그러므로 그 사나이는 내가 이 수개월동안 어떤 용무로 만난 일이 있는 과학자일 것이다. 나는 서고 앞을 왔다갔다하며 그 사나이를 기억해내려고 애썼다. 천문학자도 아니고, 생물학자, 전자공학자, 과학자, 모두 아니다. 나는 물리학자의 서류철이 있는 곳 앞에서 발을 멈췄다. 그렇다! 그 사나이는 반년쯤 전에 원자력 연구소 회의장에서 만난 것이 틀림없다. 이름은 기억이 안 나지만 한 원자 물리학자를 닮았다! 서류철을 꺼내어 나는 한 장 한 장 넘기기 시작했다. 한 장 한 장에는 그 인물의 사진과 경력과 주요 연구 제목이 실려 있다. 그 서류철을 반쯤 넘겼을 때 눈언저리가 쑥 들어가고 턱이 긴 40세쯤 되는 사나이의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이것이다!" 나는 무심코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그 사진 밑의 기사를 읽었다.     나는 마크레에게서 가져온 사진을 꺼내어 서류철에 있는 사진과 대조하여 보았다. 그 사람이 틀림없다. 나는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레이너 박사라면 지금 동위원소 K를 응용한 원자력 엔진 연료의 발명자로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학자이다. 그러한 중요 인물이 등에 총을 맞고, 빈사 상태의 중상을 입고 강속에 내던져졌다. 더구나 아무도 모르게 병원 한 방에 수용되어 있다! 이것은 큰 사건이다. 특종 기사다!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자료실을 나왔다.   엉터리 기자   "어디로 갈 거예요. 스테파나 병원으로 가는 길이 아닌데요?" 조수석에 앉아 있는 여자 사진 기자 데이가 말했다. "스테파나 병원에 가기 전에 레이너 박사 일을 조사하러 노잔 병원으로 가는 거다." "그러나 그 사나이가 레이너 박사가 아니라면 공연한 시간 낭비예요. 스테파나 병원 개원식의 기사를 해질 무렵까지 준비하지 못하면 편집장이 굉장히 화를 낼 거예요." "책임은 내가 진다. 하여튼 조사 해야겠으니 협력해 줘." 데이는 난처한 표정이었으나 차가 노잔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노잔 병원에 도착한 나는 데이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가 접수처에 이름을 기재했다. "오늘 아침 일찍 운반된 환자의 방은 몇 호실입니까? 경찰이 강에서 구조한 사나이 말입니다." 접수계원은 의심스러운 눈빛이었다. "구레아리 경부에게 허가를 받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물어 봐 주십시오." "지금 수술실에 계시니 연락이 될는지 모르겠습니다. 조금 기다려 주십시오." 접수계원이 전화 있는 곳으로 갔다. 나는 데이의 손을 잡고 재빨리 그 곳을 나와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어떻게 할 작정이에요?" "수술실로 간다. 전화를 걸면 면회를 못할 것이 뻔하지." 주저하는 데이를 데리고 수술실 출입문까지 왔을 때 문이 안에서 열리면서 간호원이 침대를 밀고 나타났다. 침대에 누워 있는 사람은 레이너 박사가 틀림없어 보였다. 방안에는 간호원과 의사, 그리고 비옷을 입은 두 사나이가 있었다. 키가 크고 건장하게 생긴 사람이 구레아리 경부 같았다. 우리는 주저하지 않고 수술실로 들어갔다. "안녕하십니까? 경부." 구레아리 경부는 아무 말 없이 우리를 쏘아봤다. "지금 그 사람은 오늘 아침 강에서 구조한 사람이지요? 그의 신원을 알았습니까?" "자네는 주간지 '뷰'의 델라니 기자인가? 나는 승낙도 없이 찾아오는 무례한 사람에겐 말을 않겠네." "아니요. 기다려 주십시오. 나는 중요한 정보를 가지고 왔습니다." "어떤 정보인가?" "나는 그 사람의 신원을 알고 있습니다." "뭐라고? 엉터리 같은 소리하지 말게." "이것을 보십시오." 나는 호주머니에서 마크레에게 빌린 사진과 자료실에서 가지고 온 레이너의 사진을 꺼냈다. 경부는 양쪽 사진을 보고 뒤쪽에 씌어 있는 설명문을 읽었다. "스티븐 레이너……." 구레아리 경부는 소리 내어 읽고 나를 쳐다보았다. "이 사실을 딴 사람에게 얘기했는가?" "아니요. 특종 기사라고 생각되어 편집장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구레아리 경부는 부하 형사를 돌아보고, "본서에 들어가 레이너의 집과 프란드 연구소를 조사하라! 만약 레이너가 없으면 왜 행방불명 신고를 하지 않았는가도 조사하라." 형사는 명령을 받고 곧 밖으로 나갔다. "만약 자네가 말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틀림없이 중대한 사건이지만……. 그러나 믿을 수가 없다." "그러나 나는 레이너 박사를 만난 일이 있습니다. 절대 틀림이 없습니다." "서둘지 말게. 곧 알게 되겠지." 구레아리 경부는 의사와 같이 방을 나갔다. 우리도 급히 뒤를 따랐다. 의사와 경부는 계단을 계속 내려갔다. 그 환자의 병실로 가는 모양이다. 이윽고 두 사람은 별관의 격리 병동으로 갔다. 그 곳에서 경부가 우리를 돌아보더니, "아직 자네에게는 환자를 면회시킬 수 없다. 돌아가 주게." "그러나 신원을 알았는데요……." "나중에 본서에 오면 알려주지." 그 이상 버텨 보았자 별 도리가 없을 것 같아서 하는 수 없이 우리는 돌아섰다. 그러나 이대로 두고 돌아갈 생각은 없었다. 경부와 의사가 한 방에 들어가고 난 다음, 나는 데이의 팔을 붙들고 속삭였다. "아무 말 말아." 나는 데이와 함께 살금살금 경부와 의사가 들어간 방 쪽으로 걸어갔다. 그 방 문틈으로 안을 들여다보니 구레아리 경부와 의사와 간호원이 레이너의 침대를 둘러싸고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이 봐, 데이! 내가 안에 들어가서 그 사람들과 말을 할 것이니 데이는 재빨리 사진을 찍어줘야 해." "그러나 델라니씨, 그런 짓을 하면 경부가……." "잔소리 말고 내가 시키는 대로 하라고……." 나는 그렇게 명령조로 말하고 문을 열고 갑자기 큰 소리로 외쳤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방안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깜짝 놀라 내가 있는 쪽을 돌아보았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데이가 카메라의 셔터를 눌렀다. 플래시가 번쩍이니 모두들 눈이 캄캄한 모양인지, 얼떨떨하니 서 있었다. 그 사이에 우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재빠르게 도망쳐 나왔다. "야, 도망치지 말고 기다려!" 성난 구레아리 경부의 소리를 들은 체 만 체 우리는 출구를 향한 복도를 달렸다. 우리가 현관 계단을 내려섰을 때 급한 걸음으로 들어서고 있는, 명령을 받고 나갔던 형사를 만났다. 나는 천연스럽게 형사를 불러 세웠다. "아, 형사님, 레이너 박사는 역시 행방불명이었지요?" 형사는 내 말을 듣고는 나를 노려보았다. "당신 같은 기자는 정말 엉터리없는 거짓말쟁이다. 기사를 재미있게 쓰기 위하여 어떤 거짓말이라도 예사로 하니 말야." "무슨 이야기요?" 형사는 우리를 경멸하듯 쳐다보았다. "나는 지금 프란드 연구소에 전화를 걸어 레이너 박사와 직접 이야기하고 왔다. 박사는 여전히 연구에 몰두하고 계시더라." 형사는 쏘아 부치듯 말하고 우리의 옆을 바람같이 스쳐가며, 한 마디 덧붙였다. "빨리 집에 돌아가서 머리나 식혀라."   레이너 박사   조금 후 우리는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나는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생각에 잠겼다. 도대체 이것은 어떻게 된 일일까? 그 사나이는 틀림없이 레이너 박사일 것이다. 그러나 그 레이너 박사는 틀림없이 연구소에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 사나이는 역시 레이너 박사가 아닌 모양이다. 내가 경솔하게 생각하고 엉뚱한 공상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무엇인가 이상하다. 그렇게 꼭 닮은 얼굴은 쌍둥이 외에는 없을 것이다. 더욱이 국가 기밀에 속하는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과학자이다. 아무래도 무언가 흑막이 있는 것 같다. 좀 더 자세히 알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자신이 직접 프란드 연구소에 가 레이너 박사를 만나는 것이 좋겠다. 그렇게 생각하니 한시도 주저할 수가 없었다. "데이 양은 회사에 되돌아가 방금 찍은 사진을 현상해 줘. 나는 잠깐 프란드 연구소에 갔다 올 테니." 데이는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면 스테파나 병원 기사는 어떻게 할 작정입니까?" "내 육감으로는 이 일이 스테파나 병원의 취재보다 몇 백 배 더 중요한 것 같다." "큰 일을 저지르겠네요." 데이는 불만스럽게 말했다. 나는 식사를 하는 둥 마는 둥 끝내고, 차를 집어타고 프란드 원자력 연구소로 달렸다. 검문소를 지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돌아보니 한 대의 경찰 차가 눈에 띄었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상상한 대로 경부는 부하 형사와 같이 소장인 메인랜드 박사의 사무실에 있었다. 나는 메인랜드 박사와 1년 전에 만난 일이 있어서 서로 악수를 나누었다. 내가 사진을 내어놓았더니 메인랜드 박사는 그 사진을 보고, "정말 이 사나이는 레이너 박사와 아주 닮았네. 그러나 뭔가 잘못 봤겠지. 하여튼 레이너는 여기에 있어요." "그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너무 닮았기에 확인해보려는 것입니다." 구레아리 경부가 말했다. "지금 곧 올 것이니 확인해 보십시오." 이윽고 출입문에 노크 소리가 나고, 레이너 박사가 들어왔다. 그는 틀림없이 반 년 전에 내가 만난 레이너 박사였다. 그러나 얼굴은 상처투성이고 이마에는 넓은 반창고가 붙어 있었다. 메인랜드 박사는 우리들을 소개하였다. 나는 레이너 박사 앞으로 다가서서, "오랜만입니다. 박사님. 델라니입니다. 기억하시겠습니까?" "음……기억할 것도 같고……." 그 소리가 감기라도 걸려 있었는지 몹시 쉰 목소리였다. "레이너 박사, 직무상 물어 보아야 할 일이 있습니다. 실은 어제 저녁 당신과 꼭 닮은 사나이가 총에 맞고 템즈 강에 떠내려오는 것을 구조했습니다. 이것이 그 사진입니다. 마음에 집히는 것이 없습니까?" 구레아리 경부는 그 사진을 박사에게 건네주었다. "쌍둥이 형제나, 아니면 당신과 꼭 닮은 친척이라도 계십니까" 레이너 박사는 불쾌한 표정으로 머리를 가로 저었다. "없습니다." "그렇습니까? 실례했습니다. 그 사나이의 신원을 전혀 알 수가 없어서요." "그 사나이는 아직 살아 있습니까?" 레이너 박사가 물었다. "네, 그러나 의식이 없습니다." 박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나는 지금 바쁩니다. 내 사무실로 돌아가겠습니다." "네, 좋습니다." "한 마디만 물어 보겠습니다." 나는 나가려는 박사를 불러 세웠다. "그 부상은 어떻게 입었습니까? 자동차 사고라도 당했습니까?" "그래요. 트럭이 내 차의 뒤를 받았어요." 레이너는 귀찮은 듯이 대답하고 바로 그 방을 나가버렸다. "정말 부상이 그만한 것이 다행이었어요. 중요한 실험이 있어서 걱정이 되었는데……" 메인랜드 박사가 레이너의 뒷모습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제는 이 이상 이곳에 있어도 아무 소용이 없다고 생각되어, 우리는 메인랜드 박사에게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한참 걷다가 나는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올라 구레아리 경부에게 말했다. "경부님, 당신은 트럭에 충돌 당한 일이 있습니까?" "왜 그런 것을 묻나?" 구레아리 경부는 여기까지 와서 조사하였는데도 별 신통한 게 없어 기분이 좋지 않은지 퉁명스레 대꾸했다. "충돌 당했을 때는 뒤로 넘어지겠지요? 그렇다면 얼굴에 중상을 입는 것은 이상하다고 생각지 않습니까?" 구레아리 경부는 귀찮은 듯이 크게 한숨을 쉬었다. "델라니 군, 자네는 왜 사건에 대해서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는가?" "네, 알았습니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한 번 죽었다?   나는 차를 천천히 몰아 달렸으나 회사에 들어갈 생각도, 스테파나 병원에 갈 생각도 나지 않았다. 가슴속에는 여러 가지 의문이 솟아올라서 결국 나는 핸들을 돌려 다시 노잔 병원으로 갔다. 그리고 조금 전에 환자를 치료하고 있던 의사 프레스튼 박사에게 면회를 신청했다. 프레스튼 의사는 귀찮은 듯, 달갑지 않은 태도로 만나 주었다. "도대체 무슨 용건이오?" "박사님, 저는 원자력 연구소에 가서 레이너 박사를 만나고 왔습니다. 그러나 저는 어쩐지 그 사람이 진짜 레이너 박사같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즉 진짜는 이 병원에 있는 그 사나이이고, 원자력 연구소에 있는 사람은 가짜같이 느껴집니다." "자네는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가?" 프레스튼 박사는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제 말을 들어보십시오. 제 마음에 걸리는 것은 첫째로 레이너 박사가 얼굴에 심한 부상을 입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는 그 부상을 입게 된 교통 사고 이야기가 앞뒤가 맞지 않다는 것입니다. 셋째로는 목소리가 제가 들었던 목소리와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일들은 얼마든지 설명이 되겠지. 경찰은 뭐라고 하던가?" "경찰은 저를 상대도 해주지 않습니다." "그것 봐." 프레스튼 박사는 더 이상 내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또 질문하였다. "박사님, 그 환자의 상황을 이야기하여 주십시오." 프레스튼 박사는 우물쭈물하더니 겨우 입을 열었다. "등에 두 발의 권총 탄환이 명중되어 있었다." "그런 몸으로 강에 빠졌는데, 왜 익사하지 않았을까요?" "운이 좋았지. 한 발은 어깨 살에 꽂혔을 뿐이고, 또 한 발은 척추 뼈를 스쳐갔다. 그 충격으로 심장과 폐가 정지되어 거의 호흡도 중단되어 있었다. 그 까닭에 익사하지 않았던 것이다." "환자는 아직도 의식불명입니까?" "아니, 지금은 의식을 되찾았어." "그렇다면 왜 본인에게 신원을 묻지 않습니까?" 프레스톤 박사는 머리를 저었다. "그것이 안 된단 말이야. 환자는 일종의 기억상실에 걸려 있다. 이야기하는 것이 모두가 횡설수설이야." 박사는 조금 생각하더니, "그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 사람은 수술대 위에서 한 번 죽었었으니까." "한 번 죽고 되살아난 겁니까." "그렇다. 심장이 몇 초 동안 정지되어 있었는데, 강심제 주사를 놓아서 다시 움직이게 되었다." 프레스튼 박사에게 더 이상 질문을 해봐도 시원한 대답을 들을 수 없음을 깨닫고 나는 회사로 돌아왔다. 데이가 편집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사진은 다 되었어요." 나는 봉투 안에 든 사진을 꺼내어 보고 깜짝 놀랐다. 사진 속의 그 환자의 둘레가 또 허옇게 흐려져 보이지 않는가! 여기 희미하게 흐릿해진 것은 무엇일까?" "모르겠어요. 필름에 광선이 들어갈 리 만무하고요. 다른 사진들을 깨끗하게 나왔는데, 정말 이상해요." 나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으나 까닭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이렇게 흐려진 것은 무언가 사건에 중대한 관계가 있을 것으로 느껴졌다. 나는 그 사진을 챙겨들고 올리베 편집장을 만나러갔다. 편집장은 예상했던 대로 굉장한 화를 냈다. 내가 레이너 박사의 사건을 설명하기 시작하였으나 전혀 듣지도 않으려고 하였다. "알겠지? 자네는 사건 기자가 아니야. 과학 기자야. 나는 스테파나 병원 개원식의 기사와 사진이 필요한 거야." 편집장은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7시까지 가지고 오지 않으면 너는 해고다. 알겠나!" "알았습니다."   수수께끼의 회화   재차 데이를 데리고 스테파나 병원을 향하여 차를 운전하면서 나는 그 사진이 왜 희미하게 흐려졌을까를 곰곰이 생각했다. 그러는 동안 문득 지금까지 생각지 못했던, 흐려진 것에 대한 원인을 하나 생각해냈다. 방사성 물질에 부닥치면 필름이 감광(광선의 감을 받음)되어 사진이 나오지 않는 수가 있다. 방사성 물질……. 레이너 박사는 방사성 물질의 전문가이라서 항상 방사선을 받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별명을 '동위원소 인간'이라고 부를 정도이다! 즉 레이너 박사와 같이 항상 방사성 물질을 취급하고 있으면 그것이 신체에 영향을 미쳐 방사성을 띠게 될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만약 그렇다면 그것이 이 희미하게 흐려진 원인일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나는 더 참을 수가 없어 핸들을 돌려 노잔 병원 쪽으로 차를 달렸다. "델라니! 어디로 갈 작정이에요?" 데이가 고함을 쳤다. "10분밖에 안 걸린다. 부탁하네!" 나는 그렇게 말하고 데이가 쫑알대는 소리를 들은 체 만 체 차를 몰았다. 데이는 화가 나서 아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아무 말도 없이 어딘 가로 사라져 버렸다. 나는 접수계에서 거절당할 것을 피하기 위하여 뒷문으로 돌아서 살며시 병원으로 들어갔다. 프레스튼 박사의 출입문을 노크도 하지 않고 문을 여니, 박사는 깜짝 놀라면서 나를 바라보았다. "이렇게 무례하게 굴어서 미안합니다. 아무래도 꼭 만나지 않으면 안 될 일이 있어서였습니다." 나는 호주머니에서 데이가 찍은 사진을 꺼냈다. "이것은 오늘 아침 병원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프레스튼 박사는 사진을 받아들었다. "이 사진의 흐려진 곳을 보십시오. 이것은 그 사람이 방사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여겨집니다. 그리고 레이너 박사는 동위원소 인간이라는 별명까지 가지고 있었습니다." "방사능이라……. 자네가 그렇게 말하니 생각이 나네. 그 환자는 적혈구(붉은 피톨)가 적고 신경이 많이 약해져 있었다. 또 뇌 장애도 일으키고 있었네." "그것은 모두가 방사성 장애의 징조이지요." 프레스튼 박사는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다시 머리를 가로 저었다. "그러나 레이너 박사는 틀림없이 연구소에 있다고 경찰에서 말하고 있다." 나는 실망하였으나, 다시 기운을 내어 질문하였다. "박사님, 단 1분이라도 좋으니 그 환자와 이야기하도록 해줄 수 없겠습니까?" "시간의 낭비이다. 할 필요성이 없네." 프레스튼 박사는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종이를 집어 나에게 건네주었다. "내가 조금 전 환자와 이야기한 속기록이다. 읽어보게." 속기록에는 다음과 같은 대화가 적혀 있었다.   "의사 : 너는 미국 어디에서 태어났는가?" "환자 : 아니오." "의사 : 너는 가족이 있는가?" "환자 : 나는 열심히 하려고 하는데 당신 쪽에서는 내가 말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의사 : 나는 너를 이해하고 있다. 그런데 너는 나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있다." "환자 : UTC이다." "의사 : UTC라니?" "환자 : 나는 말리려고 하였다."   정말 무슨 말인지 전혀 알 수가 없다. 환자 자신은 나름대로 이치에 맞는 말을 하고 있으나, 질문은 전혀 무시하고 있다. 말하자면 의사와 환자 사이에는 마음이 통하고 있지 않다. "당신은 스티븐 레이너인가하고 물어 보았습니까?" "이름은 물어 보았지만 아무 것도 기억해내지 못하였다." "이쪽에서 스티븐 레이너 박사인가 물어보는 것입니다. 자기 이름을 부르면 무엇인가 기억해낼는지도 모릅니다." 프레스튼 박사는 잠시 생각하더니 곧 승낙하였다. "좋아. 다시 한 번 해보자. 만약 그 환자가 레이너라면 이것은 정말 큰 일이다. 프란드 연구소에 무언가 무서운 음모가 숨겨져 있는 것이다." "바로 그것입니다!" 나는 큰 소리로 외쳤다. 드디어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는 한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우리는 급히 격리실로 갔다. 프레스튼 박사가 전등을 켜니 환자는 겨우 몸을 요동하고 눈을 떴다. 갑자기 여위어 있었으나, 정신이 든 사람의 얼굴이었다. 그는 우리를 보고 입을 움직여 중얼거렸다. 프레스튼 박사는 침대를 몸을 굽히고, "레이너 박사, 스티븐 레이너 박사." 1, 2초 동안 환자는 프레스튼 박사를 쳐다보더니 성난 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나를 돈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가?" "당신은 내가 말하는 것을 모르는가?" 프레스튼 박사는 이렇게 물었다. 환자는 초조한 빛으로, "왜 모두 똑같은 말만 되풀이하는가?" "나의 질문에 대답해라!" 환자는 눈을 감고 피로한지 눈 위에 손을 얹었다. 내가 앞으로 다가서며 물었다. "누가 당신을 쏘았소?" 환자는 대답이 없었다. 내가 다시 한 번 말하려고 할 때, 그는 갑자기 큰 소리로 외쳤다. "테스트(시험) 때문이다!" "누가 당신을 죽이려 하였나?" "하고 있지 않는가! 그런데 당신들은 똑같은 소리를 되풀이하고 있다." "당신은 똑바로 대답해 주시오." 나는 강한 어조로 말했다. 환자는 또 힘이 빠진 것 같았다. "그대로이다. 바스코다." "바스코는?" "물론 모든 것이 UTC 때문이다. 나는 신경이 긴장되었다. "당신은 계속 UTC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것은 무슨 뜻인가?' "아니, 정신이 희미해져 모든 것이……." "무엇이든 좋으니 기억나는 것이 없습니까?" 환자는 또 잠자코 있다가 이윽고, "그 사람이 나를 매수하려 하였다." "누가 당신을 매수하려 했는가요." 그러나 환자는 얼굴을 찡그리더니, 이윽고 가냘픈 소리로 말했다. "물을 한 잔." 프레스튼 박사는 물을 한 잔 따라 주었다. 그 때 간호원이 초록색 큰 봉투를 가지고 들어왔다. "선생님, 여기에 계셨습니까? 이 환자의 엑스선 사진이 완성되었습니다." "그래, 뒤에 볼 것이니 거기다 두고 나가." "지금 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프레스튼 박사는 이상한 얼굴로 간호원을 쳐다보았다. "왜? 이상한 일이라도 있었나?" "아무 것도 찍혀지지 않았습니다!" 간호원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프레스튼 박사는 아무 말 없이 봉투를 받아들여 안에 든 필름을 꺼내 보았다. 까맣기만 하고 아무 것도 찍혀져 있지 아니하였다. "방사능 때문이오! 그의 몸에 있는 방사능 때문에 필름이 감광되었습니다." 나는 외쳤다. 박사와 나는 서로 얼굴을 한참 동안 마주보았다.   가짜 박사   해질 무렵 데이와 나는 회사 가까운 다방에 있었다. 나는 올리베 편집장에게 휴직 명령을 받았다. "지금부터 어떻게 할 거예요?" 데이가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물었다. "모르겠어. 하여간 그 사나이가 레이너 박사라는 것은 절대로 틀림없는데, 아무래도 그것을 밝혀 낼 방법이 없어." "그러나 그것을 해결해내지 못하면 올리베 편집장은 당신을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 "그렇다……. 그러나 이 이상 어떻게 하면 좋을지 나도 모르겠다." "잘 하면……." 데이가 말을 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뭐라고?" "잘 하면, 프란드 연구소에 있는 레이너 박사를 조사하면 새로운 좋은 방법의 실마리가 풀릴는지도 몰라요." "어떻게 조사할까?" "예를 들면 그 사람의 사진을 찍어서……. 그 사진이 만약 방사능의 감광이 없다면……." "그러면 가짜라고 알 수 있게 된다. 정말 그것은 좋은 생각이다. 데이, 나에게 카메라를 빌려다오." "왜요. 델라니?" 데이가 긴장된 어조로 말했다. "물론 내가 그 사람 사진을 찍으러 가는 거야." "사진이라면 내가 더 전문가예요." "데이는 안 오는 게 좋겠어. 레이너 박사는 나를 명예훼손죄로 고소할지도 몰라."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그리고 만약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 사람들은 나를 습격할지도 몰라. 그렇게 되면 데이도 위험한 거야. 그래도 좋아?" "좋아요! 그게 무슨 상관이죠?" 데이는 태연스럽게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데이의 얼굴에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결심이 똑똑히 나타나 있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반가웠다. 지금까지 혼자 일한다고 생각했었는데, 내 곁에 훌륭한 동료가 나타난 것이다. "좋아, 그렇다면 가자. 데이!"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날 밤 8시를 지나 우리는 프란드 연구소에서 나온 레이너 박사의 차를 미행하기 시작하였다. 연구소에서 사진을 찍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레이너 박사의 집에서 찍으려는 것이었다. 레이너 박사의 차 뒷부분에는 충돌 당했을 때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차는 포드 가도를 남으로 달려 주택가로 들어서기 시작하였다. 그 때 한 대의 검은 차가 우리 차와 레이너 박사 차 중간으로 끼여들어 왔다. 그래서 박사의 차가 잘 보이지 않았다. 나는 혀를 차며 액셀러레이터(동력을 내는 발로 밟는 장치)를 밟고 속력을 내어 그 차를 앞지르려하였다. 그 때 데이가 내 손을 잡았다. "앞지르지 마세요." "왜?" "그 차는 프란드 연구소에서부터 계속 우리 뒤를 따라왔어요." "뭐라고?" "정말이에요. 운전사 옆에 흰 목도리와 흰 장갑을 낀 키 큰 사나이가 앉아 있어요." "그렇다고 그 차가 우리를 미행한다고는 볼 수 없잖아. 그런데 미행한다면 왜 우리 차를 앞지를까?" "그런 것이 아니에요. 우리를 미행한 것이 아니고 레이너 박사를 미행하고 있는 거예요." "음, 그래!" 데이의 추리가 옳다는 것을 곧 알게 되었다. 북 런던 거리에 왔을 때 레이너 박사의 차가 급히 정거하니, 그 검은 색의 차도 따라서 정거한 것이다. 나는 그대로 차를 달려 그 차들을 앞질러가 십자로 모퉁이에 정거하였다. 뒤를 돌아보니 레이너가 차에서 내려 아파트 출입문을 열고 있었다. 그 때 뒤차에서도 키가 큰 사나이가 내렸다. 그 사나이는 검은 색 모자를 쓰고, 목둘레에 털을 단 오버를 입고, 흰 장갑을 끼고 있었다. 흡사 스파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같았다. 그 사나이는 레이너의 뒤를 따라 아파트로 들어갔다. "이제 어떻게 하죠?" 데이가 물었다. "10분 기다렸다가 현관으로 정정당당히 들어가, 주간지 '뷰'에서 인터뷰(기자가 기사를 취재하기 위하여 하는 회담)하러 왔습니다, 라고 말하지." "만약 거절당하면?" "그 때는 데이가 재빨리 사진을 찍고 달아나는 거야. 아파트에 들어가서 하얀 장갑을 낀 사나이의 얼굴을 한 번 똑똑히 보아야겠어. 그 놈이 범인인지도 모르겠는데……." "그 까닭은?" "가짜 레이너 박사는 이 사건의 주역일는지도 모른다. 주범은 흰 장갑을 낀 사나이이고, 레이너의 가짜는 그 놈에게 조종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이유는?" "그것은 모르겠지만 지금부터 조사하는 거다." 10분 뒤에 우리는 레이너 박사 집 앞까지 갔다. 초인종을 누르니 문이 살며시 열리고, 얼굴이 둥글고 건강한 사나이가 밖을 내다본다. 그는 흰 장갑을 낀 사나이의 차를 운전한 사람 같았다. "레이너 박사를 만나고 싶습니다. 나는 주간지 '뷰'의 기자 델라니, 이 사람은 사진 기자입니다." 그 사나이는 흘끔흘끔 우리를 쳐다보더니, "기다려 주십시오. 박사에게 여쭈어 보겠습니다." 하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이윽고 또 한 번 문이 열리고 얼굴이 상처투성이인 레이너 박사가 나타났다. "밤늦게 대단히 미안합니다. 편집장이 이번 사건이 대단히 재미있다고 하며, 꼭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오라고 해서 왔습니다. "그러나 나는 총에 맞은 사람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물론이시겠지요. 그러나 하여튼 세계적 과학자와 꼭 닮은 사람이 총에 맞았으니, 우리 독자들은 대단히 흥미롭게 생각합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레이너 박사는 하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우리를 집안으로 안내했다. 현관 안에 들어가자 책장 위에 검은 색의 모자와 흰 장갑이 놓여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털을 단 검은 오버와 흰 목도리도 걸려 있었다. 우리는 서재로 안내되었다. 그 흰 장갑을 낀 사나이는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무엇을 묻고 싶습니까?" 레이너 박사가 물었다. "나는 이 사건은 내일 원자력 연구소에서 거행될 특별 테스트와 관계가 있지 않은가 생각합니다만, 어떻습니까?" 박사는 힐끔 나를 노려보았다. "그 까닭은?" "특별한 이유는 없습니다. 기자의 육감이라고 할까요?" "육감이란 아무 소용이 없어. 내일 테스트와 이 사건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 나는 몰라." 나는 작전을 바꾸기로 하였다. "박사님은 지금까지 여러 방면의 연구를 많이 하셨지요? 아마 전쟁이 끝나고 얼마 후인 1948년경에 콜롬비아 대학에서 신기한 금속의 연구를 하시고 계셨을 겁니다." 레이너 박사는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대학에서 몇 년 계셨습니까?" "아 그렇지……. 똑똑하게 기억이 안 나는데……." "1년 반정도 아니었던가요. 아참, 타이어 교수님과 공동 연구를 하셨잖아요." "아 그랬던가." 나는 데이에게 눈짓을 했다. 데이는 준비하고 있던 카메라로 갑자기 셔터를 눌렀다. 플래시가 비쳤을 때 레이너 박사는 양손으로 눈을 가렸다. "무슨 짓을 하는가, 무례하게!" "실례했습니다. 우리는 항상 인터뷰할 때는 사진을 찍게 되어 있습니다." "대단히 기분 나쁘다! 곧 돌아가라." 레이너 박사가 일어서면서 말했다. "그리고 말해두지만 이 사진을 보도하면 나는 자네를 명예훼손죄로 고소하겠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은 그런 짓은 하지 않을 거요." "그건 왜?" "당신은 진짜 레이너 박사가 아니니까요." "뭐라고?" 레이너는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당신은 지금 약점을 드러냈습니다. 알겠습니까? 스티븐 레이너 박사는 1948년경에는 콜롬비아 대학에 재직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타이어 교수라는 사람도 없습니다. 이 두 가지는 모두 내가 꾸며낸 말입니다. 그 무렵 레이너 박사는 남태평양에서 원자폭탄 실험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찌하여 그런 것을 아는가?" "6개월 전 진짜 박사님으로부터 들었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나는 데이의 손을 잡고 방문을 나왔다. 레이너는 현관까지 따라 나왔다. 나는 나올 때 그 곳에 놓여 있는 모자 안에 새겨진 글귀를 보았다. 거기에는, 라고 씌어져 있었다. 나는 출입문 손잡이를 잡으며 뒤돌아보며 말했다. "충고해둔다. 가짜 박사, 형무소에 가고 싶지 않거든 빨리 달아나는 게 좋을 거야. 동료 바스코를 데리고." 그렇게 말하고 나는 그 방을 뛰쳐나왔다.   7초 반 빠르다.   우리는 차를 타고 곧 출발했다. 뒤돌아보았으나 뒤따라오는 차는 없었다. 나는 가까운 공중 전화통 앞에 차를 세우고 경시청에 전화를 걸었다. 구레아리 경부는 자리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형사에게 대충 이야기를 했다. "레이너 박사의 주택을 감시하도록 구레아리 경부에게 부탁해주시오. 박사는 날이 새기 전에 그 일당과 도주할 우려가 있습니다. 정체가 탄로 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통화를 끝내고 우리는 곧 시가를 향하여 빠르게 차를 몰았다. "정말 용단 있는 일을 했습니다." 데이가 한숨 돌리고 말했다. "그렇게 했으니 놈들은 꼭 어떤 반응이 있을 거야. 그리고 경시청에서 활동하게 될 것이다. 아마 그 놈들은 원자력 연구소에서 어떤 비밀을 훔쳐내려는 스파이일 것이다." "정말 그렇다면……." 데이가 몸을 부르르 떨면서 말했다. "자기들의 정체를 밝혀 낸 기자를 그대로 둘 리가 없잖아요." "자기들이 도망치기에도 바쁠 텐데, 그럴 여유가 없을 거야." 나는 차를 회사 쪽으로 몰았다. "하여간 데이 양은 오늘 밤 안에 그 사진을 현상해놓게." "나는 아무래도 모르겠어요. 어째서 그 사람이 그렇게 레이너 박사를 닮았는지 말이에요." "그것은 간단하지." "레이너 박사와 닮은 사람과 의사를 매수하여 성형수술을 시켜, 얼굴을 레이너 박사같이 만든 거야. 교통 사고를 당하였다는 것은 수술할 때 생긴 얼굴의 상처를 감추기 위한 방법이지." 차는 곧 회사에 도착하였다. 우리는 사진부로 가서 사진을 현상하였다. 사진은 깨끗하게 나왔다. "잘했다. 이 사진을 보니 그 놈이 가짜라는 것을 똑똑히 알 수 있군. 다음은 흰 장갑을 낀 바스코라는 사람을 조사하자." "그 사람이 바스코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지요?" "레이너 박사의 아파트에서 나올 때 모자에 이름을 새겨 놓은 것을 보았지. EV, 즉 이(E) 바스코이다." "어떤 사람일까요?" "그 환자, 즉 진짜 레이너 박사는 바스코의 이름과 UTC라는 말을 자주 하였지. 틀림없이 이 두 사람은 중대한 관계가 있을 것이다. 자, 회사 자료실에 가서 조사하자." 우리는 자료실로 갔다. 그러나 자료실에는 수천 개의 서류철이 있었으므로 조사는 수월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프레스튼 박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아, 델라니 군인가. 그 환자의 방사능 테스트를 해보니 매분 6천 카운트(방사성의 입자의 수효를 셀 때 1초 또는 1분간당의 수효)의 방사능이 검출되었다. 보통 같으면 이렇게 방사능을 받는다면 살수가 없다." "오랫동안 차츰차츰 방사능에 익숙해진 사람, 즉 레이너 박사 같은 사람 아니면 이미 죽고 말았을 테지요?" "그렇게 밖에는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나는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 드디어 프레스튼 박사도 내 편이 되어 준 것이다. "박사님, 오늘 밤 한 번 더 그 환자를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좋지요?" 프레스튼 박사는 승낙하였다. 나는 데이를 돌아보고 지시하였다. "나는 지금부터 한 번 더 노잔 병원으로 간다. 데이 양은 여기서 UTC를 조사해주게. 자, 내일 만나." 데이는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나는 상관하지 않고 회사 녹음기를 찾아들고 차를 탔다. 20분 후, 나는 노잔 병원 경리실에서 프레스튼 박사와 수수께끼의 환자 침대 곁으로 다가갔다. 나는 환자에게 질문을 하기 위하여, 녹음기의 스위치를 켠 뒤에 마이크를 환자의 입에 갖다 대었다. 그러자 환자는 가냘픈 목소리로 이야기하기 시작하였다. "안 되요……. 할 수 없어요……. 생각해내려고 애쓰지만……." "당신은 전혀 자기에 대한 일을 기억할 수 없습니까?" 나는 이렇게 물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뒤범벅이 되고 말아서……." 그가 또 말꼬리를 흐렸지만 나는 단념하지 않고 계속 물었다. "나는 당신이 스티븐 레이너 박사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름을 듣고도 아무 생각이 안 납니까?" 그러자, 환자의 얼굴이 일그러지면서 고통스러운 표정이 떠올랐다. "그 일은 전에 전부 말했습니다. 바스코의 이야기도, 그 외의 사람들에 대해서도……." "그 바스코라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이 때까지 나는 그들을 만난 일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 중의 한 사람은 독일 사람 같았습니다." "그 외의 사람은 도대체 누구일까요?" 레이너 박사의 얼굴에는 땀이 솟아올랐다. "차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검고 큰 건물이……." 그렇게 말하고 레이너 박사는 입을 다물었다. 잇달아 질문을 당하니 괴로운 모양이었다. "그 외에 뭔가 생각나는 것은 없습니까?" 그러자, 레이너 박사는 갑자기 화난 얼굴로 나를 바라다보며 퉁명스럽게 말하였다. "대체 나더러 어떻게 하란 말이오? 당신들의 물음에 나는 성의껏 대답하고 있소. 이 이상 무엇을 대답하란 말이오." "뜻을 알 수 없습니다." 내가 이렇게 말했으나 레이너 박사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프레스튼 박사는 나를 바라보며 말하였다. "더 이상 질문하는 것은 무리이다. 환자는 몹시 지쳐 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녹음기 스위치를 껐다. 나는 프레스튼 박사 방으로 가서 녹음기 소리를 재생시켜 종이에 받아썼다. 그러나 몇 번 들어 보아도 앞뒤가 맞지 않아 뜻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델라니 군, 헛된 일이야. 그 사람이 진짜 레이너이건 아니건 간에, 아무튼 머리가 돌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어. 하여튼 한 번 죽었다 되살아났으니까 뇌가 이상해진 것도 무리가 아니겠지." 나는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박사님, 레이너는 7초나 8초 동안 죽었다가 다시 되살아났지요?" "그렇다네." 나는 또다시 녹음기 소리를 재생시켰다. 그리고 시계의 초침을 들여다보았다. 나의 생각은 들어맞았다. 나는 흥분하였다. 그래서 떨리는 손으로 종이에 내가 생각한 대로 다시 녹음의 소리를 정리해 보았다. 그리고 나서 그것을 프레스튼 박사의 눈앞에 내밀었다. "이것을 보십시오."   "델라니 : 당신은 전혀 자기 일에 대한 일을 기억할 수 없습니까?" "환자 : 안돼요……. 할 수 없어요……. 생각해내려고 애쓰지만……." "델라니 : 나는 당신이 스티븐 레이너 박사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름을 듣고도 아무 생각이 안 납니까?" "환자 : 나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뒤범벅이 되고 말아서……." "델라니 : 그 바스코라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환자 : 그 일은 전에 전부 말했습니다. 바스코의 이야기도 그 외의 사람들에 대해서도……." "델라니 : 그 외의 사람은 도대체 누구일까요?" "환자 : 이 때까지 나는 그들을 만난 일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 중의 한 사람은 독일 사람 같았습니다." "델라니 : 그 외에 뭔가 생각나는 것이 없습니까?" "환자 : 차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검고 큰 건물이……." "델라니 : 뜻을 알 수가 없습니다." "환자 : 대체 나더러 어떻게 하란 말이오. 당신들의 물음에 나는 성의껏 대답하고 있소. 이 이상 무엇을 대답하란 말이오?"   우리 둘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다. 조리가 맞는다. "이 환자는 시간을 앞지르고 있습니다. 박사님!" "그러나…… 그런 일이 과학적으로 불가능하다." 프레스튼 박사는 우울한 소리로 말했다. "어쨌든 사실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내가 시간을 재어 보니 레이너 박사는 정확히 7초 반만큼 질문하는 것보다 앞의 것을 시간적으로 앞질러 대답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을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일어섰다. "박사님, 그 이유는 오늘 저녁 잘 생각해 보십시오. 나는 회사로 돌아가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나는 녹음기를 거기에 둔 채 밖으로 나와 차를 탔다. 회사로 가는 동안 나는 여러 가지 일을 곰곰이 생각했다. 프란드 원자력 연구소에서 무엇인가 큰 음모를 꾸민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되었다. 진짜 레이너 박사는 그 음모 때문에 유괴되어 총에 맞고 강에 버려진 것이 확실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그 음모는 무엇일까?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그들을 체포하던가 아니면 진짜 레이너 박사가 기억을 되찾든지 해야만 한다. 회사에 돌아와 자료실에 들어가 보니, 이미 데이는 집으로 돌아가고 없었다. 경찰에 전화를 걸었으나 구레아리 경부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그 때 나는 비로소 피로를 느꼈다. 생각해보니, 나는 하루 종일 돌아다니며 조사하고 여러 가지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내 아파트로 차를 몰았다. 아파트에 도착하였을 때에는 1시 30분 경이었다. 나는 무거운 발을 끌다시피 하여 계단을 올라가 방으로 들어갔다. 그 순간 나는 머리를 강하게 두들겨 맞고 의식을 잃고 말았다.   자백제(자백시키는 약)   나는 잠에서 깨어나듯이 천천히 정신을 되찾았다. 머리가 몹시 아팠다. 나는 아픈 머리에 손을 대어 보려다가 비로소 내 손이 묶여있는 것을 알았다. 나는 천천히 사방을 살펴보았다. 내 테이블 위에는 검은 모자와 흰 장갑이 얹혀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두 사람의 발이 보였다. 쳐다보니 그들은 요전에 본 운전사와 흰 장갑을 낀 사나이였다. "일어나라." 운전사가 말했다. 나는 겨우 일어났다. "델라니 군, 너는 대단히 귀찮은 놈이다." 바스코가 여송연 담배 연기를 뿜어내면서 말했다. "나는 앞뒤가 맞지 않는 사건을 조사하는 것이 직업이다." "쓸데없는 소리 마라." 갑자기 운전사가 내 배를 쳤다. 그 힘이 얼마나 세었던지 나는 마룻바닥에 쓰러졌다. 운전사가 난폭하게 나를 잡아 일으켰다. "너는 어느 정도 알고 있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 "모든 것이라니, 어느 정도이냐?" "그것은 말할 수 없다." "이놈아! 바스코 씨가 묻는 말에 순순히 대답해라!" 운전사의 주먹이 내 얼굴에 날아왔다. 나는 또 쓰러졌다. "이 놈은 대단한 놈이다. 시간이 없으니 이 놈에게 주사를 놓을까?" 흰 장갑의 주인공인 바스코가 말했다. 그의 말이 떨어지자, 방 모퉁이에 있던 또 한 사람이 쓰러져 있는 나에게 다가왔다. 독일 사람 같은 백발의 노인이었다. 이 사람이 레이너 박사가 말한 독일 사람인 모양이다. 그는 주사기를 꺼내어서 내 팔에 찔렀다. 그 순간 나는 뇌 세포가 폭발되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갑자기 내 자신이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러면 무엇이든지 정직하게 대답하겠지." 독일 사람이 말했다. "됐다. 델라니, 레이너 박사는 지금 어디에 있나?" 바스코가 물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내 입은 제멋대로 지껄이고 있었다. "노잔 병원에 있다." "몇 호실에?" "격리실에 있다." "레이너 박사는 의식을 회복했나?" "회복했다." "경찰은 박사를 만나 이야기하였나?" "아마 이야기했을 것이다." "박사는 무슨 말을 했나?" "아무 이야기도 못 하였다. 기억 상실증에 걸려 아무 것도 기억해 내지 못하였다." "병세는 좋아졌는가?" "조금씩 좋아져 간다. 내일이면 기억 상실증이 나을는지도 모른다." 바스코가 독일 사람을 돌아보며 미심쩍은 듯이 말했다. "지금 이 놈이 이야기하는 것은 사실일까?" "사실일거야. 실력 있는 정신과 의사라면 기억 상실증 정도는 간단하게 치료할거야." "그렇다면 일찌감치 손을 써야지." 바스코는 그렇게 말하고 나를 돌아보며 말을 계속하였다. "이 놈을 잠재워라." 그러자, 독일 사람은 나에게 또 다른 주사를 놓았다. 그 순간 내 머리 속에서 쾅하는 소리가 나는 것 같더니 나는 또 의식을 잃고 말았다.   탈출   내가 의식을 되찾았을 때에는 나는 침대에 묶여 있었다. 낮인지 밤인지 분간할 수 없었으나, 침대 옆에 한 여자가 앉아 있었다. "이제 정신을 차린 모양이군요." "음…… 잠깐 이 끈을 풀어 불 수 없을까요?" "안돼요." "부탁이오. 오줌이 마려워요." 여자는 좀 곤란하다는 표정을 짓더니 무거운 자동 권총을 꺼내어 나에게 들이대며, "달아날 기색이 보이면 쏘아 버리겠어요." 하고 끈을 풀어 주었다. 나는 일어서다가 그 자리에 쓰러졌다. 다시 온 힘을 다해 일어서니 눈앞에 자동 권총의 총구가 보였다. "자, 빨리 화장실로 가요." 나는 그 여자의 감시를 받으며 화장실로 갔다. 용무를 마치고 세면대에서 얼굴을 씻었다. 힐끔 창 밖을 내다보니 아침인데, 거리에는 왕래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고 조용하였다. 침실로 되돌아오니 그 여자는 나에게 침대에 누우라고 명령했다. "조금만 이대로 놓아두시오. 그건 그렇고, 당신같이 예쁜 여자가 왜 강도의 흉내를 내고 있소?" 나는 조금이라도 시간의 여유를 얻기 위하여 그렇게 말했다. "나는 브레슬라 선생의 간호원이오. 선생의 명령을 지킬 따름이오." "브레슬라 선생이라니, 그 늙어빠진 독일 사람 말이오?" "우리 선생님을 헐뜯으면 용서하지 않겠어요. 선생님은 전쟁 전에는 유럽에서 제일 가는 의사였던 분이에요." "그러나 그 훌륭한 선생은 지금에 와서는 강도와 한 패이거나 스파이의 앞잡이가 아니오?" "선생님은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당신은 잘못 알고 있소. 사실은……." 나는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척하면서 기회를 엿보다가 재빨리 그 여자에게 달려들었다. 그러자, 그 여자는 엉겁결에 권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탕하는 소리와 함께 총알이 나의 왼쪽 어깨를 파고들었다. 나는 아픔을 참으며 오른손으로 여자를 갈겼다. 그 여자는 권총을 떨어뜨리고 마룻바닥에 쓰러졌다. 나는 권총을 집어 호주머니에 넣고, 여자를 침대에 눕혀 끈으로 묶었다. 그리고 나서 상처를 돌보았다. 탄환이 어깨에 들어박혀 있어서 왼쪽 팔을 쓸 수가 없었다. 나는 웃옷을 입고 주위를 자세히 조사하였다. 책상 서랍을 열어보니 거기에 많은 사진이 들어 있었다. 그 사진은 모두가 스티븐 레이너 박사의 얼굴을 크게 만든 사진이었다. 사진을 호주머니에 넣었을 때 힘 센 운전사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운전사는 놀란 표정을 짓더니, 곧 흉악한 눈빛으로 나를 쏘아보며 호주머니에서 주머니칼을 꺼내어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권총을 꺼내어 정확하게 겨냥하여 쏘았다. 그러자, 운전사는 신음 소리를 내며 손에서 칼을 떨어뜨렸다. 그리고는 잠시 잔뜩 일그러진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다가, 그대로 마룻바닥에 쓰러졌다. 나는 천천히 운전사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는 눈을 뜬 채로 죽어 있었다. 나는 곧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펴보았다. 그 건물 안에는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나는 재빨리 건물 밖으로 빠져 나왔다. 거리에 나선 나는 택시를 잡아타고 집으로 향하였다. 집에 도착하였을 때는 8시 30분 경이었다.   역(반대)치료법   방에 들어서니 전화벨 소리가 계속 났다. 나는 수화기를 들었다. 데이의 전화였다. "잠꾸러기예요! 계속 전화를 걸었어요." "알았어……. 그런데 무슨 용건이지?" 데이는 화난 소리로 말했다. "정말! 당신은 나에게 UTC에 대해서 조사하여 달라는 것을 잊었어요?" "그랬지……. 알아냈나?" "알아냈어요. 그것은 회사의 이름이에요." "어떤 회사이지?"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는 유나이티드 텅스텐스틸 주식회사인데, 런던에도 지사가 있고 텅스텐 광업에서는 세계 제일의 큰 회사예요. 더욱이 그 중역에 에마뉴엘 바스코라는 사람이 있어요." "바로 그것이다!" 나는 흥분했다. "그 회사가 뭔가 프란드 연구소와 관계가 있을 것이다." "지금부터 어떻게 하지요?" "나는 노잔 병원으로 가겠다. 데이도 그 곳으로 빨리 와." "네, 알았어요. 가겠어요." 데이는 힘차게 대답했다. 나는 방을 나오자마자 낯익은 형사와 마주쳤다. "델라니씨, 구레아리 경부가 기다리고 계십니다." "경부는 어디에 있지요?" "노잔 병원에." "그것 참 잘 됐소. 나도 그 곳으로 가려는 중이오." 형사는 부상을 입은 내 얼굴을 바라보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얼굴은 왜 그래요?" "좀 난폭한 친구에게 얻어맞았지." 나는 지난 밤 이야기를 대충 이야기해주었다. 그리고 운전사를 쏜 권총을 꺼내어 형사에게 넘겨주었다. 형사는 긴장된 표정으로, 순찰차 무전으로 경시청에 연락했다. 그리고 우리는 곧 노잔 병원으로 떠났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부상의 치료를 받았다. 어깨의 총알을 빼내고 붕대를 감으니 한결 시원하였다. 그리고 나서 구레아리 경부를 만났다. 경부는 찌푸린 얼굴로 입맛을 다시었다. 어제 저녁 이야기를 이미 형사로부터 보고 받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어제 저녁에 찾아냈던 레이너 박사의 사진을 호주머니에서 꺼내어 경부의 눈앞에 들이댔다. "이 사진을 봐요. 이것은 그 가짜 박사의 얼굴을 레이너 박사의 얼굴과 닮도록 하기 위해 정형 수술에 이용한 사진이오. 이래도 그 사나이가 가짜가 아니라고 우겨댈 셈이오?" 구레아리 경부는 눈을 둥그렇게 뜨더니 내 얼굴을 쏘아보았다. "델라니, 이렇게 되었으니 다 이야기해주지. 경찰은 자네가 생각하듯 굼벵이도 아니고 바보도 아니야. 레이너의 정체를 우리는 진작부터 알고 있었네. 프란드 원자력 연구소에는 어제부터 부하들을 배치시키고 있다. 지금쯤은 UTC의 바스코 사무실을 경찰대가 둘러싸고 있을 것이다." 듣고 보니 내가 어리벙벙해졌다. "그러나…… 그것을 알고서 왜 지금까지 아무 일을 하지 않았소." "아무 것도 모르는 체하기 위해서다. 우리는 자네가 템즈 강에서 발견한 사나이를 레이너 박사라고 말한 직후부터 MI5(영국 정보부)와 미국FBI(연방 경찰국)와 연락을 하여 수사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범인들은 송두리째 체포하기 위하여 비밀도 해두었던 것이다. 레이너 박사의 일도 일부러 숨기고 있었다. 그래서 범인들은 레이너 박사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자네 같은, 바보 같은 기자가 소란을 피우지 않았더라면……." 나는 맥이 풀려서 의자에 주저앉고 말았다. 구레아리 경부는 말을 이었다. "자네는 모든 것에 훼방을 놓아 일을 그르치게 하고 말았다. 그 때 프레스튼 박사와, 대머리에다 음산한 표정을 한 야윈 사람이 들어왔다. 프레스튼 박사는 그 사람을 구레아리 경부에게 소개했다. "이 사람은 이 병원 정신과 의사인 아레구스 마르크스 박사입니다." 그리고 나서, 박사는 나를 그에게 소개했다. "이 사람은 델라니라는 기자인데, 레이너 박사의 의식이 시간적으로 사실보다 앞지르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 사람입니다." "마르크스 박사님, 레이너 박사는 어떻게 된 일입니까? 천리안(먼데서 일어난 일을 즉각적으로 알아내는 능력)이 된 것입니까?" 내가 이렇게 묻자, 마르크스 박사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보통의 천리안이 아니야, 내가 여러 가지로 테스트해 보았다. 밝은 불빛으로 눈을 비추니, 그 환자는 내가 불빛을 비추기 꼭 7초 반 전에 눈을 깜박거렸다. 말하자면 그 사람은 마음도 육체도 모두 7초반을 앞지르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이상한 일이 일어날 수 있어요?" 구레아리 경부가 참견하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박사님, 이런 일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까?" "가설을 세울 수는 있지." 마르크스 박사는 조용히 말해다. "프레스튼 박사의 이야기를 들으니, 그 환자는 7초 반 동안 죽어 있었다. 그러나, 그의 의식은 심장이 정지되고 육체가 죽어 있는 동안에도 살아 있었던 모양이다. 즉 그 사람의 이식은 7초 반만큼 앞지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심장이 정지되면 뇌의 활동도 정지되어야 하지 않습니까?" 내가 이렇게 말하자, 프레스튼 박사가 대답했다. "그렇다. 보통 같으면 심장이 정지되고 혈액을 보낼 수가 없으면 뇌도 죽은 것이다. 그러나 그 환자는 보통의 환자가 아니다. 몇 년 동안 보통 사람 같으면 곧 죽고 말 정도의 방사능을 계속 쪼여서 강한 방사능을 지닌 인간이 된 것이다. 즉 동위원소 인간이다." 마르크스 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의학적으로 조사해보지 않으면 확실한 것은 모르지만, 방사선이 그 사람의 뇌를 아주 특수하게 변화시킨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구레아리 경부가 또 참견을 했다. "레이너 박사의 기억 상실증도 치료할 수 있습니까? 그리고 시간을 앞지른 것도 고칠 수 있습니까?" 마르크스 박사가 대답했다. "지금의 레이너 박사의 기억에는 7초반의 차이가 있소. 그 차이를 고쳐 주면 기억은 반드시 되돌아올 수 있소. 다시 말하면, 시간을 앞지르고 있을 때 그 반대 일을 해주면 되는 것이오. 즉 육체를 살려둔 채 의식만을 7초 반 죽이는 방법인 것이오." "그 일은 위험합니다. 자칫 잘못하면 그대로 죽을는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으며 영원히 고칠 수 없을 것이오." 이렇게 말하고 마르크스 박사는 프레스튼 박사를 쳐다보며 물었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소?" "글쎄요…… 강력한 알칼로이드(식물 중에서 발견된 특수한 알칼리성의 유기 화합물인데, 모르핀, 코카인, 니코틴 같은 것이다. 사람의 신경에 큰 영향을 주고 환상을 일으키기도 하며 정신을 돌게 하는 작용을 한다. 특히 모르핀 성질을 가진 아편과 코카인 등의 독성은 무섭다.)를 주사시켜 뇌 세포를 마비시키고, 정확히 7초 반 뒤에, 이번에는 반대의 효력을 가진 뇌의 자극제를 주사하면, 환자의 이식과 육체와의 시간적 간격이 없어질는지도 모르지요." "위험하오. 그건 너무나 위험하오!" 경부가 머리를 흔들며 외쳤다. 한동안 그들은 잠자코 서로 얼굴들만 바라보고 있었다. 한 사람도 결단을 내리지 못하였다. 그 때 복도에서 요란스러운 발자국 소리가 나더니, 출입문이 힘차게 열리고 병원의 한 의사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들어왔다. "프레스튼 박사님! 지금 격리실의 환자의 방에 이상한 사람이 몰래 숨어 들어와 환자에게 주사를 놓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뭐라고?" 모두가 놀란 눈빛으로 그 의사를 바라보았다. 의사는 계속하였다. "겨우 주사를 못 놓도록 막았지만, 그 사람은 자기 목에 주사기를 찌르고 죽고 말았습니다. 주사기에는 청산가리가 들어 있었습니다!" 구레아리 경부가 앞서 방을 뛰쳐나가고 우리들도 그 뒤를 따랐다.   본 정신을 되찾다.   네 사람은 격리실로 뛰어갔다. 쓰러져 있는 사람을 보고 마르크스 박사가 큰 소리로 말했다. "이 사람은 브레슬라 박사이다!" 나는 곁으로 가까이 갔다. 그 사람은 내가 바스코에게 잡혔을 때 같이 있었던 늙은 독일 사람이었다. "그는 유럽 제일의 성형외과 전문 의사로서 유명한 사람이오. 전쟁 중에는 나치스에 협력하여 유태인의 산 사람을 실험용으로 사용하였던 사람이오. 그리고 전쟁이 끝난 후 행방불명이 되었소." "그래요? 아마 그 동안 영국에서, 숨어서 의사 노릇을 한 모양이지. 성형수술의 기술이 뛰어났기 때문에 레이너 박사의 가짜를 만드는 데 협력했구나!" 나는 구레아리 경부를 돌아다보았다. 경찰 수사를 방해한 것은 잘못했다고 생각되나, 나는 전혀 몰랐던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나 자신의 육감이 적중된 것이 기뻤다. 그 때 간호원이 급히 들어와 구레아리 경부에게 전화가 왔다고 전했다. 경부가 나간 다음 브레슬라의 시체는 운반되어 나가고, 레이너 박사도 다른 병실로 옮겨졌다. 이윽고 되돌아온 구레아리 경부는 나에게 화를 벌컥 내며 말했다. "자네가 한 일도 귀찮아서 못 견디었는데, 이번에는 자네의 동료인 여자 사진 기자까지 귀찮게 구는구나." "데이가 무슨 일을 저질렀습니까?" "저지른 것뿐인가? 그녀는 경찰보다 먼저 바스코의 사무실에 몰래 들어갔다." 나는 빙긋이 웃었다. 데이의 기자 정신을 칭찬하여 주고 싶었다. "그 때문에 바스코 일당은 달아나고 말았다. 물론 그녀를 유괴해서." 나는 깜짝 놀라 일어섰다. "그러면 데이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을 모르니까 수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잖아도 복잡한데 큰 일을 저질러 놓았다." "그러면, 구출할 방법이 없습니까?" "글쎄, 우리는 자네의 연락으로 브레슬라의 조수인 간호원을 붙들어 놓았다. 지금 그 간호원을 심문하고 있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 "가짜 레이너 박사도 있지 않습니까. 그 가짜를 잡아서 조사하면 어떨까요?" 나의 제의에 경부는 머리를 가로 저었다. "레이너도 달아났다. 오늘 아침 일찍이 연구실에서 사라진 채 자기 집에도 돌아오지 않고 있다." "바보 같은 경찰이구나! 용의자를 모두 놓치고 말다니!" 나는 화가 나서 그 방에서 뛰쳐나오려고 했다. 그러자, 구레아리 경부가 내 팔을 잡았다. "자네 혼자 뛰쳐나가 보아야 데이 양을 찾을 수는 없네. 그러기보다 여기서 진짜 레이너 박사의 기억을 되찾는 일에 협력하는 게 좋겠어. 그렇게 되면 그녀가 유괴된 장소를 알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나는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별 도리가 없었다. 나는 간신히 마음을 진정시켜 병원에 남기로 했다. 그로부터 레이너 박사의 기억을 되찾는 수술 준비가 될 동안 2시간이 걸렸는데, 나에게는 지루한 시간으로 2년이나 된 것 같았다. 겨우 준비가 완료되어 우리는 수술실로 갔다. "자, 그러면 지금부터 시작한다." 흰 수술복을 입은 프레스튼 박사는 우리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최초의 주사를 놓으면 레이너 박사는 의식을 회복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약은 극히 짧은 시간인 1,2분밖에 약 효과가 없고, 그 시간이 지나면 또 몇 시간 의식을 잃을 것이오." "우리는 2분간밖에 질문할 시간이 없다는 말이지요?" 구레아리 경부가 말했다. "그렇지요. 더욱이 너무 복잡한 이야기를 들으면 발작을 일으킬는지도 모르니 주의해주십시오." 프레스튼 박사는 환자 쪽을 향하였다. "주사기를……." 박사가 이렇게 말하니 간호원이 주사기를 박사에게 넘겨주었다. 박사는 레이너 박사의 목에 주사기를 꽂았다. 한동안 방안에는 침묵이 흘렀다. 얼마 뒤에 레이너 박사는 눈을 번쩍 떴다. 그러자, 프레스튼 박사가 우리들에게 눈짓을 하면서, "시작하십시오." 하고 말했다. 구레아리 경부가 레이너 박사 곁에 바싹 다가섰다. "나는 경찰에 있는 사람인데 물어 볼 말이 있습니다. 내가 말하는 것을 알아듣겠소?" "네." 레이너 박사는 가냘픈 소리이나 똑똑하게 대답하였다. 나의 가슴은 두근두근하였다. 레이너 박사가 본 정신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당신을 쏜 사람은 누구요?" "바스코의 운전사 브로아이입니다." "왜 총에 맞았습니까?" "달아나려고 강에 뛰어들었더니 뒤에서 쏘았소." "당신은 갇혀 있었습니까?" "그렇소. 바스코가 매수하려 하는 것을 거절했더니……." "그 일을 좀 자세히 이야기해 주십시오." 구레아리 경부가 계속 질문을 하자 좀 괴로운지 레이너 박사는 고통스럽게 숨을 쉬었다. 이윽고 레이너 박사는 응답을 하였다. "바스코는 내가 협력해주면 10만 달러를 준다 하였으나 나는 거절했소." "어떤 일을 도와 달라고 했습니까?" "원자로에 손을 써 달라는 것이오. 플루토늄(방사성의 초우란 원소의 하나)을 한 개 더 넣으라고 말했소. 그런 짓을 하면 제어봉(원자로에서 핵분열에 의한 연쇄 반응이 적당한 비율로 진행되도록 하는 막대기)을 당기는 순간에 프란드 연구소는 날아가고 말아요." 레이너 박사는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때의 일을 회상하니 새삼 화가 나는 모양이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며 박사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구레아리 경부가 다시 물었다. "그 후 어떻게 했지요?" "4, 5일전에 밤늦게 집에 돌아오니 세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소. 나는 강제로 차에 실려가고 말았소." "세 사람이라니?" "바스코와 브로아이와 브레슬라 말이오." "어디로 끌고 갔습니까?" "강가에 있는 창고 같은 건물이오. 불에 탄 것 같은 건물인데, 나는 사흘동안 그 곳에 감금되어 있었소……." 2분이 다 되어 가자, 레이너 박사는 대단히 괴로운 표정이었으나, 억지로 힘을 내어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나는 연구소에서 아레건이라는 사람을 알게 되었소. 그 사람이 UTC 사람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소." "그 사람은 우리도 알고 있소. 그 사람은 MI5의 협조를 받아 감시하고 있었습니다." 구레아리 경부가 말했다. "모두 체포해주십시오. 제어 장치를 엄중히 지켜주시오." "잘 알았습니다." 구레아리 경부가 힘있게 대답했다. "당신이 감금되었던 창고는 어디인지 알 수 있습니까?" "상파울로…… 엘루……." 말을 다 끝맺지 못하고 레이너 박사는 정신을 잃고 말았다. 프레스튼 박사는 레이너 박사의 맥을 짚어보고 눈을 조사하고 나서 말했다. "이제는 더 말할 수 없소. 몇 시간동안은 회복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수술실을 나왔다. "상파울로 엘루라는 뜻은 무엇일까요?" "남아메리카의 지명 같은데……. 하여간 템즈 강가에 있는 창고를 이 잡듯 찾아볼 수밖에 없다." 구레아리 경부가 단언하듯 말했다. "그러나, 그렇게 하고 있다가는 어떻게 하지요? 데이는 그 동안 그 놈들이 죽이고 말는지도 모르잖습니까!" 나는 화난 소리로 외쳤다. 그러나 경부는 내 말을 들은 체 만 체 하고, 부하 형사들에게 뭔가 지시하였다. 내가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올라 급히 밖으로 뛰쳐나가려는 순간, 경부가 나를 불러 세웠다. "델라니, 어디로 가는 건가?" "바스코의 사무실에 가면 어떤 증거라도 잡을 것 같아서……." 경부는 조금 주저하더니 말했다. "그러면 좋아. 그러나 뭔가 발견했을 때에는 우리에게 연락을 하게. 절대 혼자 행동을 하면 안 되네. 그 곳에는 내 부하들이 있을 걸세." "잘 알았습니다."   원자 폭발은 막을 수 없다.   얼마 안되어 나는 밥랜드 거리에 있는 바스코의 사무실에 도착했다. 그 곳에는 얼굴을 아는 형사와 또 한 사람이 사무실 안을 조사하고 있었다. 구레아리 경부가 전화를 걸어서 부하들에게 연락을 한 모양인지 그들은 나에게 친절했다. 나는 책상과 선반 등을 조사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미 형사들이 뒤진 뒤라 형편없이 흐트러져 있어서 이렇다 한 증거를 잡을 수가 없었다. 나는 지쳐서 의자에 앉아 담배를 피워 가며 방안을 살펴보고 있었다. 벽에는 광산과, UTC 본사와, 항구에서 배에 짐을 싣고 있는 칼라 사진 등이 걸려 있었다. 나는 그 사진들을 살펴보았다. 그 순간 내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나는 광석을 실어내는 풍경의 사진을 자세히 보았다. 부두에 대놓고 있는 배 이름은 희미하여 잘 보이지 않았는데, 곁에 가서 자세히 들여다보니 상파울로 호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 그것은 지명이 아니고 배 이름이다!" 나는 무심코 큰 소리로 외쳤다. 형사들은 깜짝 놀라 나를 돌아보았다. 그 때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얼굴을 아는 형사가 전화를 받고 무엇인가 이야기를 주고받은 다음, "알았습니다." 하고 전화를 끊었다. "경부가 프란드 연구소로 빨리 오라는 전갈이다. 당신은 멋대로 행동하면 안되오." "알고 있어요." 두 형사가 나가고 난 다음 나는 서류 상자를 뒤적거렸다. 거기에서 주문서 한 장을 보았다. 거기에는 '마그네슘 배달할 곳-런던 항 엘루 도크(부두) 상파울로 호' 라고, 적혀 있었다. "레이너 박사가 '엘루'하고 말을 끊었는데, 이 엘루 도크라는 말이군! 이제 알았다!" 나는 큰 소리로 외쳤다. 프란드 연구소에 전화를 걸었으나, 구레아리 경부는 아직 와 있지 않았다. 나는 경부가 오면 이야기를 전해 달라고 부탁하고 밖으로 나왔다. 구레아리 경부와 연락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되겠지만, 그렇게 참고 있을 수가 없었다. 데이의 생명이 위태롭다. 1분이라도 빨리 가지 않으면 늦을지도 모른다. 나는 엘루 도크로 차를 달렸다. 엘루 도크는 썩은 냄새가 나는 지저분한 부두였다. 이 곳은 작은 화물선만 사용하는 쇠퇴한 부두인데, 이 곳에 서있는 창고도 오래되어 낡은 건물뿐이었다. 부두 근처까지 왔을 때, 폭격을 당해 형편없이 되어 버린 너덜너덜한 창고가 보였다. 입구에는 'UTC 화물 창고'라고 씌어져 있었다. 나는 그 창고를 지나쳐 다른 창고 쪽으로 차를 달렸다. 창고 가까운 바다에 1척의 소형 화물선이 떠 있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으나 그것이 상파울로 호 같았다. 나는 상파울로 호와 창고를 훑어보았다. 바스코와 데이는 어디에 있을까? 그러나 생각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는 창고 정면의 출입문 앞에 다가가서 무거운 출입문을 당겼다. 문은 끽 소리가 나고 곧 열렸다. 나는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갔다. 안쪽에 계단이 있고 그 위에 있는 방에서는 불빛이 새어 나왔다. 거기에는 누가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쇠파이프를 하나 손에 집어들고 천천히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하였다. 반쯤 올라갔을 때 아래에서 사람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나는 깜짝 놀라 걸음을 멈추었다. 그 때 회중전등 빛이 내 얼굴을 비추었다. 아래에 있던 사람이 고함을 질렀다. 바로 그 때 위에 있는 방의 문이 열리고 바스코가 쑥 나왔다. "아레건인가?" 바스코가 물었다. 나는 그 순간 계단 손잡이를 뛰어넘어 아래에 있는 사람에게 덤벼들었다. 나는 그 사람과 맞붙어 마룻바닥에서 뒹굴며 싸웠다. 싸우는 동안에 나는 누군가에게 머리를 두들겨 맞고 정신을 잃고 말았다. 얼마쯤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지만, 누군가가 갑자기 물을 끼얹어 나는 정신을 되찾았다. 눈을 떠보니 가짜 레이너가 빈 물통을 손에 들고 서 있었다. 즉 그 사람이 아레건이었다. 나는 방안을 한바퀴 돌아보았다. 지저분한 창고 안인데, 천장에는 거미줄이 걸려 있고 방 한구석에 상자 2개를 포갠 것 위에 초가 커져 있었다. 그 옆에 광석 부대와 파라핀(석유에서 분리되는 희고 반투명한 납 모양의 고체)이 쌓여 있었다. 그 곳에 데이가 힘없이 앉아 있고, 그 옆에 바스코가 앉아 있었다. "정말 너는 바보 같은 놈이다." 바스코가 큰 소리로 말했다. "그럴까? 그렇게도 뽐내던 UTC도 이제는 마지막이다. 곧 여기에 경찰이 달려올 것이다. 내가 여기에 오기 전에 프란드 연구소에 연락해놓았으니까." "그러니까, 너는 단순한 바보야. 우리 조직은 자네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더 복잡하게 되어 있다. 자네가 프란드 연구소에 부탁한 말은 절대로 경찰에 연락이 안 될 것이다." 나는 속으로 놀라면서 바스코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는 득의에 찬 미소를 띠었다. "그것 뿐이 아니다. 아무리 경찰이 엄중히 감시하여도 프란드 연구소의 폭발은 막을 수 없다. 원자로는 조금만 있으면 큰 폭발을 일으킨다. 그러나 너는 그 전에 이미 죽을 것이니, 굉장한 폭발을 구경 못할 것이다. 바스코는 그렇게 말한 다음 아레건을 방 모퉁이로 불러 무엇인가 귓속말로 속삭였다.   타오르다.   내가 데이 곁으로 다가가자, 데이는 나를 보고 몸을 떨고 있었다. "델라니 씨, 용서해요. 내가 잘못하여 당신까지 이렇게 만들고 말았어요." "염려 마! 그것보다 그들은 왜 기다리고 있을까?" "한 동료를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에요. 그 사람이 오면 모터보트를 타고 상파울로 호로 갈 모양이에요." "그 사람은 누구일까?" "모르겠어요." 데이는 나에게 매달렸다. "우리는 어떻게 될까요?" "상파울로 호를 탈 때까지는 무사할 것이다. 그리고 출항한 다음 바다에 떠밀어 넣을 거다." 그 때 귓속말로 속삭이고 있던 바스코와 아레건이 이 쪽으로 왔다. "델라니 군, 내가 잠시 밖에 나갔다 올 때까지 조용히 있는 것이 좋을 거야. 만약 탈출을 기도하면 아레건이 너희들을 그 자리에서 죽일 것이니까." 바스코가 턱으로 가리킨 곳에 대형 자동 권총을 쥔 아레건이 서 있었다. 바스코는 밖으로 나갔다. 아레건은 무서운 얼굴로 우리를 쳐다보았다. 나는 촛불 쪽으로 걸어갔다. "가만히 앉아 있지 않고 왜 이래!" 아레건은 권총을 겨누어 다가와서 말했다. "아레건, 생각을 고치는 것이 어때!" 나는 침착한 목소리로 아레건에게 말을 건넸다. "너는 바스코에게 이용당하고 있다. 일이 모두 끝나면 바스코에게 귀찮은 사람이 되고 만다. 도망쳐봤자 한평생 숨어살아야 한다. 그리고 바스코에게는 너는 대단히 위험한 인물로 보일 것이다. 왜냐하면 언젠가 너는 경찰에 잡히게 될 것이니까. 그럴 경우 바스코는 아주 난처하게 된다. 바스코는 그것을 예상하고 너를 살려 두지 않을 거다." "닥쳐라!" 아레건은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호령했다. "마음을 고치게, 아레건. 너는 이용당할 뿐이야. 지금이라도 늦지 않네. 비교적 가벼운 형을 받을 거다." "이 놈 더 중얼거리면……." 아레건이 가까이 왔다. 나는 무서워서 피하는 체 한 발 뒷걸음질하여 일부러 촛불을 세워 놓은 상자에 부딪쳤다. 촛불은 파라핀 위에 굴러 떨어져서 삽시간에 불이 붙었다. "이 놈!" 아레건이 외치며 권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총알은 내 얼굴 옆을 스쳐 지나갔다. 나는 마룻바닥에 엎드리며 광석 부대를 집어 던졌다. 그 부대가 아레건의 얼굴에 맞았다. 그 순간 또 한 발 총알이 튀어나왔다. 나는 아레건에게 덤벼들었다. 아레건은 넘어져 타오르는 파라핀 안에 얼굴을 처박았다. 그는 비명을 울렸다. 나는 아레건을 발로 차고 그의 손에서 권총을 빼앗았다. "꼼짝 마라!" 나는 호령했다. 아레건은 몸에 붙은 불을 끄려고 마룻바닥에서 대굴대굴 뒹굴었다. 불은 점점 퍼져서 나무 계단과 문에까지 번져갔다. "나가자! 아레건, 밖으로 나가자!" 나는 데이의 팔을 잡고 아레건을 앞세워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왔을 때는 불은 이미 2층 창문으로 솟아오르고 사방이 불바다가 되었다. 나는 데이에게 차를 몰고 오라 하여, 아레건의 손을 묶고 차 뒷좌석에 밀어 넣었다. 그리고 프란드 원자력 연구소로 빠르게 차를 달렸다.   위기 일발   원자력 연구소에 도착한 것은 8시쯤이었다. 연구소 안은 8시 반에 시작될 테스트 때문에 몹시 분주하였다. 구레아리 경부는 아직 부하 형사와 같이 연구소 안에 있었다. 테스트하는 동안 경계를 맡은 것이다. 나는 차에서 아레건을 붙들어 내려 경부에게 인도하고, 그 동안 일어난 일을 간단하게 설명하였다. 구레아리 경부는 그 장소에서 아레건을 심문하였다. 그러나 아레건은 입을 굳게 다문 채 대답하지 않았다. 아레건을 별실로 데려가고, 바스코 체포의 수배를 지시하고 나서, 경부는 나를 흘려보면서 말했다. "델라니, 자네는 또 자네 멋대로 행동하였구나. 그만큼 주의시켰는데, 왜 우리에게 미리 연락하지 않았는가?" "아니, 나는 틀림없이 연락했습니다. 그것뿐만 아니라 연락을 받고 당신이 급히 달려올 줄 알았어요. 그러나 소식조차 없어서 나 혼자 할 수밖에 없었어요." "나에게는 연락이 없었다." 나는 바스코가 말한 것이 머리에 떠올랐다. "그래요. 바스코도 그렇게 말했어요. 자기들의 조직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다고요. 그렇게 생각해보면 연구소 내에 스파이가 있다는 말이 됩니다. 그 사람이 당신에게 연락하는 것을 방해했군요." 구레아리 경부는 유심히 나를 바라보았다. "그 것뿐 아닙니다. 바스코는 연구소의 폭발은 절대로 경찰이 막을 수 없고, 꼭 파괴시킬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더군요." 우리는 거의 동시에 시계를 보았다. 8시 15분, 15분 후에는 테스트가 시작되는 시간이다. 경부는 문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메인랜드 박사에게 가 보자." 우리는 원자로 실에서 테스트를 감독하고 있는 메인랜드 박사를 만나러 갔다. 내 이야기를 듣고 박사는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이상한데, 그 연락은 나도 받지 않았소. 그 때의 교환수에게 물어 봅시다." 그렇게 말하고 박사가 전화를 걸었으나, 그 때 교환수는 퇴근하고 없었다. "내일 출근하면 다시 물어 봅시다." 메인랜드 박사는 이렇게 말하고, "그런데, 그 아레건이라는 사람이 뭔가 자백했습니까?" 하고 물었다.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아요." 나는 메인랜드 박사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박사님, 테스트는 예정대로 하는 것입니까?" "물론이지요. 장치는 전부 점검하여 아무 곳에도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상이 없으면 테스트를 해야지요." "그러나 바스코는 꼭 이것을 파괴시킨다고 하던데요." "이상 없는 것을 내 자신이 확인했으니 틀림이 없을 겁니다." 구레아리 경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우리는 한 번 더 아레건을 심문하겠습니다. 무언가 자백할는지 모르니까요." "나도 따라 가겠습니다" 내가 이렇게 말하자, 메인랜드 박사는, "나는 여기에 있겠습니다. 곧 테스트가 시작될 것이니까요." 하고, 대꾸했다. "네, 그렇게 하십시오." 경부와 나는 아레건이 있는 방으로 갔다. 아레건은 냉랭한 표정으로 의자에 앉아 있었다. "아레건, 만약 바스코가 말한 것이 정말이라면 이 연구소는 10분 후에 핵폭발을 일으킨다. 그로 인하여 연구소는 방사능으로 덮이게 되고 우리들은 형태도 없어질 것이다. 정직하게 말하는 것이 어떨까?" 내가 부드럽게 말했으나, 아레건의 표정은 변화하지 않았다. "도대체 너는 남에게 이용당하고 있는 것을 모르는가? 왜 너만 희생당하려 하는가." "나는 이용당하고 있지 않다. 우리들의 친구는 비겁한 사람이 없다. 생사를 같이 하자고 맹세했다. 만약 이 곳이 폭발되면 그 친구들도 나와 같이 죽을 것이다. 내가 그 친구들을 배반할 줄 아는가?" 아레건은 긴장된 얼굴로 말했다. 그의 얼굴에는 확고한 신념이 깃들여 있었다. 이제는 더 이상 말해 보았자 허사라는 느낌이 들었다. 시계의 분침은 2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메인랜드 박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시 한 번 이상이 없는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전화를 받은 사람은 다른 사나이였다. "메인랜드 박사는 방금 나가셨습니다. 조금 전에 전화가 걸려 와서 부인이 교통 사고를 당했다는 전갈이 왔답니다. 박사는 병원에 가셨습니다. 실험은 계획대로 진행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나는 깜짝 놀랐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구레아리 경부에게 전했다. 구레아리 경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는 전화를 잡고 무엇인가 몇 마디 빠른 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나와 아레건을 번갈아 보면서, "메인랜드 박사의 부인이 교통 사고를 당했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그는 구실을 만들어 연구소를 빠져나갔다." 하고 말했다. "엉터리다. 거짓말이다!" 갑자기 아레건이 미친 사람처럼 외쳤다. "틀림없다. 지금 내가 박사 부인과 직접 대화했다. 부인은 집에 계시더라." "이 놈이 나를 속였구나. 나를 희생시키고 저만 빠져나갔구나!" 아레건은 고함을 지르고는 내 몸을 양손으로 붙들고 부르르 떨었다. "이제 알았겠지! 자, 어디에 폭발 장치를 했는가 말해라!" 아레건은 잠시 동안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바라보더니 괴로운 표정으로 말했다. "원자로 안이다. 제어봉 한 개에 플루토늄을 장전하여 놓았다. 제어봉을 넣으면 핵폭발이 일어나게 되어 있다!" 나는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2분전이었다. 나는 원자로로 달려갔다. 스위치 판 앞에 서있던 계원이 달려오는 나를 보고 놀란 빛으로 돌아보았다. 이 곳 시계는 8시 24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1분전이다. 곧 스위치를 넣으려고 할 때였다. "기다려! 스위치를 넣으면 폭발한다!" 나는 다급히 외쳤다.   모든 일은 끝났다. 바스코와 메인랜드는 상파울로 호에 타고 있는 것을 수상 경찰이 체포했다. 메인랜드는 처음부터 UTC를 중심으로 한 스파이 단의 한 패이고, 원자력 연구소의 비밀에 대해 내통하고 있었다. 그리고 레이너 박사의 로켓 연료의 비밀을 손에 넣을 수 없게 되자, 연구소를 파괴시켜 연구를 허사로 만들려고 계획하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그 폭발을 방지하지 못했더라면 모든 것이 끝장이 났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했다. 정말 위기 일발이었다. 모든 것이 끝난 다음 데이와 내가 연구소를 나오려 할 때, 나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그 전화는 올리베 편집장으로부터 걸려온 것이었다. 그는 여전히 큰 소리로 호령했다. "델라니, 원고는 아직 안 썼나? 왜 꾸물거리는가!" "편집장, 나는 정직 상태가 아니었습니까?" "그렇건 말건 자네는 기자이다. 델라니, 특종 기사가 있는데 정직이 무슨 상관이냐? 기사를 쓰는 것이 기자이다! 지금부터 두 시간 안으로 기사를 써서 가지고 와라! 알겠나?" "알았습니다." 나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데이도 따라 웃고 있었다. 나는 줄곧 호령만 하는 편집장이 어쩐지 좋아졌다.      
3    로봇 머신 X - 아이작 아시모프 지음 댓글:  조회:36  추천:0  2021-03-19
로봇 머신 X  아이작 아시모프 지음   편집 위원 아동문학가 이 원수 박 홍근/문학박사 최 인학 공학박사 양 옥룡/이학박사 김 희규 전교육감 김 성묵     아이 보는 로봇 로비··············· 3 수성 로봇 스피디················ 35 거짓말쟁이 로봇 하비·············· 61 전자 두뇌 머신 X················ 90   작품 해설··················· 119   아이 보는 로봇 로비   아이작 아시모프 지음 정성환 옮김/ 김완기 그림   로비의 우울증   "97, 98, 99, 100.“ 글로리아는 눈을 뜨고 살며시 사방을 둘러보았다. 조용한 정원에서는 윙윙 하는 벌레 소리가 들려 온다. '어디에 숨었을까, 로비는.' 글로리아는 풀숲과 나무 뒤를 찾아보았다. 그러나 로비는 없었다. '틀림없이 집안에 숨었을 거야. 집안에는 숨지 않기로 약속했으면서. ' 글로리아는 심술이 나서 금세 볼이 부었다. 그리고 빨간 지붕의 집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 때, 뒤쪽 풀숲에서 부스럭 소리가 났다. 글로리아가 뒤돌아보자, 시꺼멓고 커다란 것이 뛰어나왔다. "앗, 로비다. 찾았다!“ 글로리아는 소리쳤다. 로비는 휭하니 바람을 일으키며 달리기 시작했다. 정원 끝의 전나무가 결승점이다. 글로리아에게 붙잡히기 전에 전나무에 당도하면 로비의 승리다. "비겁해, 로비. 뛰지 않겠다고 약속했잖아." 글로리아는 숨을 할딱이며 로비를 쫓아갔다. 전나무까지 앞으로 5미터. 그러자 로비는 갑자기 달리기를 그치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글로리아는 힘껏 달렸다. 그리고 마침내 로비를 붙잡았다. "로비는 참 느리구나." 글로리아는 파란 눈을 굴리며 의기 양양해졌다. 그러나 로비는 잠자코 있다. 빨간 유리 눈을 번쩍이며 글로리아를 지켜보고 있다. 로비는 말을 하지 못하는 로봇이었다. 진짜로 달리면 어른도 당할 수 없다. 하지만 글로리아에겐 일부러 져 준다. 글로리아가 기뻐하는 것이 로비에겐 무척 반가운 것이다. "이번엔 로비가 술래야." 글로리아가 말했다. 로비는 전나무 아래에 서서 눈을 감았다. 커다란 원통형 몸뚱이 속에서 째깍째깍 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뱃속에 있는 기계가 시간을 재고 있는 것이다. 째깍째깍 30초, 째깍째깍 60초, 째깍째깍 90초...... 정확히 100초가 지났다. 로비는 눈을 번쩍 떴다. 빨간 눈이 반짝반짝 빛난다. '옳지, 저 나무 그늘에 보이는 빨간 것은 글로리아의 양복이다.’ 로비는 슬며시 떡갈나무로 다가가서 재빨리 빨간 양복 자락을 잡았다. 글로리아가 금세 볼이 퉁퉁 부어 떡갈나무 그늘에서 나왔다. “엉터리야, 로비는. 틀림없이 보고 있었지?” “아냐, 아냐.” “이제 숨바꼭질은 그만 하겠어. 로비가 엉터리 짓만 하니까 재미가 없어. 이번엔 에어코스터(공중 태워주기)놀이야.” 하고 말했다. 글로리아가 너무도 억울한 말만 하니까 착한 로비도 화가 났다. 잔디 위에 주저앉아 모른 체하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글로리아는 당황하여 로비를 달랬다. "미안해, 로비. 이젠 엉터리 짓 했다고 안 할께.“ 그래도 로비는 모른 체하고 있다. 글로리아가 보드라 하 주 운 뺨을 로비의 딱딱한 강철 뺨에 갖다 대고 사과해도 허사였다. 글로리아는 마침내 최후의 수단을 쓰기로 했다. "그럼 좋아. 그 대신 이제부터는 절대로 옛날 이야기는 해 주지 않을 테야." 그 말을 들은 로비는 황급히 일어섰다. '옛날 이야기를 안 해 주면 큰일이다. ' 로비는 그렇게 생각했다. 왜냐 하면 로비는 옛날 이야기를 무척 좋아했기 때문이다. 글로리아는 계획이 들어맞았으므로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 "자, 로비, 너는 에어코스터야." 글로리아는 로비의 어깨 위로 기어올라갔다. "출발! 로비!“ 글로리아는 구령을 내렸다. 로비는 굉장한 힘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글로리아의 귓전에서 휙휙 바람 소리가 일었다. “부릉.” 글로리아는 로비의 어깨를 두들겼다. 그러자 로비 에어코스터는 크게 오른쪽으로 기울어졌다. 푸른 잔디가 휘청하고 흔들렸다. 글로리아는 로비의 목에 꼭 매달렸다. "앗, 해적이다! 와아, 해치워라, 따따따따." 말괄량이 글로리아는 기관총을 쏘는 흉내를 냈다. 로비도 지지 않고 스피드를 내며 잔디 위를 껑충껑충 뛰어다녔다. 글로리아는 우주선을 타고 우주를 달리고 있는 느낌이다. 에어코스터 놀이가 끝나자 이번에는 옛날 이야기 차례였다. 로비와 글로리아는 잔디 위에 누웠다. "무슨 이야기가 듣고 싶지?“ 글로리아가 물었다. 로비는 손가락 한 개를 내밀더니 크게 동그라미를 그렸다. “또 신데렐라야? 용케 질리지도 않는구나." 로비는 신데렐라 아가씨의 이야기를 가장 좋아했다. 그래서 또다시 손가락으로 커다란 동그라미를 그렸다. "할 수 없구나." 글로리아는 그렇게 말하고 푸른 하늘을 쳐다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옛날, 아주 옛날에 신데렐라라는 아름다운 아가씨가 있었습니다. 심술 사나운 계모와 못생긴 두 언니들과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로비의 눈이 저녁놀의 서쪽 하늘처럼 빨갛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 때, "글로리아!“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로비는 흠칫 하고 얼굴을 들었다. 글로리아의 어머니다. 글로리아는 슬픈 듯이 로비를 보았다. "로비, 돌아가자, 엄마한테 꾸중듣기 전에, " 로비는 이야기를 계속 듣지 못하는 것이 무척 안타까웠다. 하지만 곧 일어섰다. 어머니한테 거역하면 안 된다. 로비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글로리아의 어머니는 로비를 싫어했다. 어머니는 현관에 버티고 서 있었다. "도대체 어딜 갔었니? 목이 쉬도록 불렀는데." 어머니는 쨍쨍 소리쳤다. "미안해요, 엄마. 정원에서 로비에게 옛날 이야기를 해 주고 있었어." 글로리아는 솔직하게 사과했다. 어머니는 로비를 노려보고, "안 되겠어, 로비. 너까지 식사시간을 잊어버리면 어떻게 되는 거야. 자, 이젠 됐어. 방으로 들어가 있어요." 글로리아는 당황하여 엄마의 앞치마 자락을 붙잡았다. "부탁이야, 엄마. 로비를 보내지 마. 이야기가 아직 덜 끝났어.“ "아니, 그건 안 돼." "로비는 얌전하게 있을 거야. 의자에 앉아서 가만히 있으라면 가만히 있는단 말야. 그렇지, 로비?“ 로비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러나 어머니는 엄한 얼굴을 하고, "말을 안 들으면 앞으론 로비와 놀지 못하게 할거야." 글로리아의 눈에 어느 새 눈물이 괴었다. “그럼, 할 수 없어, 로비. 네 방으로 가. 이야기는 내일 또 하자." 로비는 고개를 끄덕이고 맥없이 방을 나갔다. 어머니는 정말 미운 듯이 로비의 뒷모습을 한참 동안 노려보았다.   사라진 로봇   그 날 밤, 어머니는 아버지가 일하는 방으로 들어갔다. 과학자인 아버지는 매일 밤늦게까지 글을 쓰고 있었다. 아버지는 마침 금성 여행에 관한 보고서를 읽고 있었다. 어머니는 책상머리에 서서 말을 꺼냈다. "그 로봇은 안 되겠어요. 아침부터 밤까지 글로리아에게만 붙어 있어요." 아버지는 보고서에서 얼굴을 쳐들었다. "아이 보는 로봇이니까 당연하잖소? 그만큼 훌륭한 로봇은 좀처럼 구하기 힘들단 말야." 아버지는 다시 보고서를 읽기 시작했다. "아무리 훌륭해도 우리의 소중한 외동딸을 로봇에게 맡길 수는 없어요. 로봇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알게 뭐여요.“ "로비는 벌써 2년이나 우리 집에서 일하고 있는데, 실수한 일은 없잖소." "그거야 아직까지는 없었죠. 하지만......” 아버지는 천천히 파이프에 불을 당겼다. "잘 들어요, 여보. 로봇은 말야, 인간보다도 훨씬 신뢰할 수 있어. 로비는 아이들의 놀이 상대를 하는 게 그의 일이거든. 친절하고, 싹싹하고, 얌전하고, 그렇게 훌륭한 아이 보는 로봇은 온 세계를 다 뒤져도 찾을 수 없어요.“ "그렇지만 기계니까 고장이 날는지도 모르잖아요. 만일 어딘가 잘못돼서 글로리아를......“ "바보 같은 소린 그만 해요." 아버지는 크게 나무랐다. 그러나 어머니의 근심스러운 얼굴을 보자 마음을 돌리고, 로비가 절대로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다. "로봇은 로봇법 3원칙이라는 세 개의 원칙에 따라 만드는 거야. 첫째 규칙은, 로봇은 인간을 위험에 빠뜨려서는 안 된다는 거야." 아버지는 후유 하고 파이프의 연기를 내뿜었다. “만일 로봇이 이 규칙을 어기려고 하면 몸 속의 기계가 부서져서 움직이지 못하게 되는 거야. 자, 이만하면 안심하겠지?“ 아버지는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보고서를 읽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할 수 없이 방을 나갔다. 그로부터 이틀이 지난 저녁의 일이다. 아버지가 근무처에서 돌아오자 어머니가 창백한 얼굴로 문간에 서 있었다. "여보, 이젠 더 참을 수 없어요. 로비가 위험하다고 이웃 사람들은 아무도 우리 집엘 오지 않아요." 아버지는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이, "남이 뭐라고 하든 상관없잖소. 로비가 글로리아의 뒷바라지만 잘 해 주면 그것으로 그만이야." 어머니는 안타깝다는 듯이, "하지만 글로리아는 로비하고 밖에 놀지를 않아요. 이웃 아이들하고는 통 놀려고 하지를 않아요. 저러다간 장차 아무도 상대를 안 하게 될 거여요. 그런 건 이제 로봇 회사에 돌려 주셔요. 제발 부탁이어요." 어머니는 필사적으로 부탁했다. 어머니가 너무도 필사적이었으므로 아버지는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걱정할 것 없어. 내게 좋은 생각이 있어." 마침내 아버지는 그렇게 말했다. 아버지는 도대체 무엇을 생각한 것일까. 다음 일요일의 일이었다. 아침 식사 때, 테이블 앞에 앉은 아버지는 글로리아에게 말했다. “글로리아, 낮에 시내로 서커스를 구경하러 가자.” 글로리아는 눈을 크게 떴다. “정말? 와아, 신난다.“ 글로리아는 펄쩍 뛰며 기뻐했다. “로비에게 말해 주고 올 테야." 하며 방에서 뛰어나가려고 했다. 아버지는 황급히, “로비는 안돼. 로봇은 넣어 주지 않는단 말야." 글로리아는 약간 실망하는 것 같았으나 곧 체념하는 모습이었다. 어머니의 전송을 받으며 글로리아는 아버지와 함께 힘차게 집을 나섰다. 시내까지는 제트카로 10분이 걸린다. 아버지가 제트카를 운전했다. 하늘을 나는 서커스는 대단한 인기여서 온 시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 중에서도 코끼리의 공중 곡예는 근사했다. 유리로 된 커다란 상자 속에서 코끼리가 둥실둥실 공중을 헤엄치는 것이다. 글로리아는 완전히 흥분했다. 돌아오는 제트카 속에서도 글로리아는 방금 보고 온 공중 서커스에 관한 일만 지껄이고 있었다. 로비 생각 같은 건 완전히 잊고 있었다. 집에 돌아오자 어머니가 생글생글하면서 맞이했다. 어머니 뒤에서 귀여운 콜리가 아장아장 따라왔다. 글로리아는 푸른 눈을 깜박이며, "어머나, 예쁜 강아지다. 어떻게 된 거야?“ "너한테 사 주는 거야. 잘 귀여워해 줘라." 어머니는 콜리를 껴안아 글로리아에게 내밀었다. "아이, 좋아. 앗 그렇지, 로비에게 보여 줘야지." 그 말을 듣자 어머니는 흠칫하면서 아버지의 얼굴을 보았다. 아버지는 난처한 듯이 눈길을 돌렸다. "로비, 로비.“ 글로리아는 큰 소리로 불렀다. 그런데 평소 같으면 곧 달려왔을 로비가 언제까지도 나타나지 않았다. ‘서커스에 데려가지 않았다고 화가 났을까?' 글로리아는 생각했다. ‘하지만 콜리를 보여 주면 틀림없이 화가 풀릴 거야.' 글로리아는 그렇게 생각하고 급히 지하실로 달려갔다. "로비, 이리 나와. 좋은 것 보여 줄게." 글로리아는 똑똑 방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방안은 조용했다. 글로리아는 어쩐지 가슴이 설레었다. 급히 문을 열었다. 방안은 텅 비어 있었다. ‘로비가 없다!' 글로리아의 심장은 멈출 것만 같았다. 글로리아는 황급히 어머니한테로 달려갔다. “로비가 없어, 엄마. 로비가 없어졌어." 글로리아의 눈에는 금세 눈물이 넘쳐흘렀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얼굴을 바라본 채 잠자코 있었다. "엄마, 로비는 어디 있어?“ 글로리아는 어머니에게 매달렸다. 어머니는 천천히 의자에 앉아, 글로리아를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다정하게 이야기했다. “글로리아, 로비는 말없이 집을 나가 버렸다. 여기저기 찾아보았지만 도무지 알 수가 없어. 하지만 언젠가는 꼭 돌아올 게다. 그때까지 이 강아지와 놀아라." 글로리아의 뺨에 구슬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이런 개는 보기도 싫어. 나는 로비하고 놀 테야. 로비, 로비, 돌아와 줘......” 글로리아는 울부짖었다. “울기는 왜 우니. 로비는 한낱 기계가 아니냐. 언젠가는 망가질 텐데." "로비는 기계가 아냐. 내 친구야. 로비, 로비." 글로리아는 엄마의 손을 뿌리치고 이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그리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자 문을 쾅 닫아 버렸다. 글로리아가 우는 소리가 어머니한테까지 들렸다. 어머니는 한숨을 쉬었다. 사실은, 로비는 오늘 로봇 회사로 돌려보낸 것이다. 그러니까 글로리아가 아무리 기다려도 로비는 돌아오지 않는 것이다. 2, 3일이 지나면 씻은 듯이 잊어버리겠지, 하고 어머니는 생각했다. 그러나 그 생각은 잘못이었다. 글로리아는 이제 홀짝홀짝 울지는 않았지만 그 대신 전혀 웃지를 않게 되었다. 하루 종일 방에 틀어박혀 창 밖을 내다보고만 있다. 어머니가 사다 준 강아지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어머니도 그러한 모습을 보자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여름이 되면 틀림없이 원기를 회복할 것이라 생각했다. 이윽고 여름이 왔다. 단풍나무가 잎이 무성해져서 잔디 위에 시원한 그늘을 만들었다. 그러나 글로리아는 여전히 방안에 틀어박혀 있었다. 어머니도 걱정한 나머지 무척 우울해졌다. 어느 날, 어머니는 아버지가 일하는 방으로 들어갔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좋겠어요? 요즘은 밥도 잘 안 먹고 얼굴빛도 나빠지기만 해요." “그럴 거야. 역시 로비를 도로 데려오지 않으면 안 되겠어. 그럼 지금 곧 로봇 회사에 전화를 걸어야겠군.“ 아버지는 원기 있게 일어섰다. 그러자 어머니는 삽시간에 얼굴빛이 변했다. “안 돼요. 모처럼 내쫓은 것을 다시 데려오다니, 당치도 않아요.“ “그럼 어떻게 하자는 말이오?“ 아버지는 불끈해서 내쏘았다. 어머니는 잠시 동안 생각하다가, “어딘가 여행을 데려가면 어떨까요? 집에 있는 것이 나쁠런지도 몰라요. 눈에 보이는 것마다 로비를 생각나게 하는 것뿐일 테니까요." "응, 그건 좋은 생각이군." 아버지도 찬성했다. "어디로 갈까?“ "뉴욕이 좋겠어요.“ 어머니가 말했다. 아버지는 얼굴을 찡그렸다. 여름의 뉴욕이라면 한증막 같은 더위여서 일부러 고생하러 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어머니가 뉴욕에는 글로리아의 마음에 드는 것이 많이 있다고 주장하는 바람에 할 수 없었다. 그 날 밤, 어머니는 글로리아에게 뉴욕으로 여행 간다는 것을 말해 주었다. 글로리아의 눈이 오랜만에 빛났다. 일주일 후, 글로리아 일행은 뉴욕 행 제트기 올라탔다. 글로리아는 초음속 제트기에 타는 것이 처음이었다. 뉴욕까지 3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글로리아는 눈이 휘둥그래졌다. 창문 아래로 보이는 소프트 크림과 같은 뭉실뭉실한 구름도 재미있었다. 어머니는 글로리아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자 매우 반가워서, "뉴욕에 도착하면 매일 밤 공중 서커스를 보러 가자.“ 고 말했다 그러자 글로리아는 뜻밖의 말을 꺼냈다. "엄마, 숨기지 않아도 좋아. 나는 다 알고 있어” 어머니는 처음에 글로리아가 무슨 말을 꺼내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눈을 깜박거렸다. 글로리아는 어머니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사실은 로비를 찾으러 가는 거죠?” 어머니는 말문이 막힐 만큼 놀랐다. 그러나 억지로 웃음을 보이며, "응, 그래. 너를 깜짝 놀라게 해 주려고 아무 말 없이 잠자코 있었단다.“ 하고 말했다. 만일 그렇지 않다고 하면 글로리아는 뉴욕에 가지 않겠다고 떼를 쓸 거라고 어머니는 염려한 것이다. 글로리아는 생긋이 웃고 나서 어머니한테 살짝 키스를 했다.     말하는 로버트   뉴욕은 미국에서 가장 번화한 도시다. 1천 미터 가량의 높은 빌딩이 우뚝우뚝 솟아 있다. 푸른 숲으로 둘러싸인 한가로운 시골 마을에서 자란 글로리아는 눈이 빙빙 돌 만큼 놀라 버렸다. 보는 것, 듣는 것이 모두 신기한 것뿐이었다. 허드슨 강변에 있는 성층권 관측탑과 도시 한복판에 있는 동물원은 글로리아의 마음을 완전히 빼앗았다. 성층권 관측탑에 올라가 하늘을 보니, 대낮인데도 하늘은 밤과 같이 어둡고 별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수평선은 공처럼 둥글게 보였다. 동물원 복판쯤에 있는 커다란 연못에서는 향유고래가 헤엄치고 있었다. 고래가 등으로 물을 뿜어내는 것을 글로리아는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롱아일랜드에서는 유리로 된 해저 유람선을 탔다. 깊은 바다 밑은 꿈나라와도 같았다. 흔들흔들 일렁거리는 유령과 같은 해초 사이를 지나가자, 이상한 모양의 물고기가 떼지어 몰려왔다. 물고기는 모두 파르스름하게 빛나고 있었다. 박물관과 유원지에도 갔다. 어디를 가나 글로리아는 매우 즐거운 모습이었다. 어머니는 그것을 보고 안심했다. 뉴욕에 온 보람이 있다고, 아버지도 무척 기뻐하셨다. 글로리아는 로비를 정말로 잊어버린 것일까? 이윽고 뉴욕에 머물러 있을 날도 며칠 남지 않게 되었다. 어느 날, 글로리아들은 과학공업박물관에 갔다. 거기서 글로리아는 뜻하지 않은 것을 만난 것이다. 박물관에서는 마침 아이들을 위한 전람회가 있었다. 회장에는 이상한 기계가 잔뜩 진열되어 있어, 글로리아는 열심히 보며 다녔다. 일렉트로 매그닛 (전자석) 앞에서는 아버지와 어머니도, 열심히 안내원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어머니가 정신을 차려 보니, 글로리아의 모습이 안 보였다. 어머니는 깜짝 놀라 큰 소리로 불렀다. 그러나 글로리아의 대답은 없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얼굴이 새파랗게 되었다. 글로리아는 엄마에게 말도 안 하고 밖에 나갈 아이가 아니다. '틀림없이 이 건물 안에 있다. ' 아버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안내원과 함께 넓은 건물 안을 찾아 헤맸다. 글로리아는 도대체 어디로 가 버린 것일까? 글로리아는 박물관 구석에 있는 의 방에 몰래 숨어 들어간 것이다. 조금 전, 부모님들과 이 방 앞을 지날 때 의 방이라는 푯말을 발견한 것이다. '어쩌면 말하는 로봇은 로비가 있는 곳을 알고 있을는지도 모른다. 그렇다. 나중에 물어 보자.' 글로리아는 그렇게 생각한 것이다. 글로리아는 부모님들이 일렉트로 매그닛에 정실이 팔려 있는 사이에 의 방으로 달려갔다. 는 로비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전선과 코일과 톱니바퀴가 네모진 커다란 쇠상자에 설치되어 있을 뿐이었다. '이런 것이 말을 할 수 있을까?' 글로리아는 낙심했다. 그러나 결심하고 물어 보았다. "저어, 당신은 말을 하는 로봇인가요?" 그러자 톱니바퀴가 끼익 끼익 돌면서 어디선가 낮은 목소리가 들려 왔다. "나는-- 말을 하는-- 로봇이다.“ '아아, 잘됐다.' 하고 글로리아는 생각했다. "그럼 로비의 일을 알고 계시나요?“ "로비? 누구- 말이야?“ "저의 친구여요. 키는 저의 두 배쯤이고요, 아주 친절하고 싹싹해요. 하지만 가끔 장난도 해요." 글로리아는 열심히 설명했다. 는 로비라는 이름은 들은 일도 없었으므로 몹시 난처했다. "그건 - 로봇인가?“ "예, 로봇여요. 하지만 사람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어요.“ '로봇 - 나와 똑같은 로봇인가?“ "예, 그렇다니까요. 어서 빨리 로비가 있는 곳을 가르쳐 줘요." 그러자 의 톱니바퀴가 와그르르 하고 심한 소리를 냈다. 코일에서 반짝반짝 하고 빨간 불꽃이 튀었다. 글로리아는 깜짝 놀라, "로봇 씨, 로봇 씨, 어떻게 된 거여요?" 그러나 는 아무런 대꾸도 없었다. 너무 열심히 생각했기 때문에 코일이 타 버린 것이다. 그 때, 글로리아의 뒤쪽에서 요란스러운 목소리가 들러 왔다. "있어요! 이런 곳에 있었어!“ 글로리아가 깜짝 놀라 뒤돌아보니 어머니가 달려 들어왔다. "어머나, 이런 곳에서 뭘 하고 있었니? 우린 얼마나 걱정했다고. 나쁜 애 같으니." 어머니는 글로리아를 힘껏 껴안았다. 글로리아는 어머니를 쳐다보며, "난 말하는 로봇에게 물어 보러 왔어. 로비가 있는 곳을 가르쳐 달래려고 말야." 그 말을 들은 어머니의 얼굴은 삽시간에 흐려졌다. '이 아이는 여전히 로비의 일을 잊지 않고 있구나.' 그렇게 생각하자 어머니는 지금까지의 수고가 물거품이 되어 버린 느낌이 들었다. 이 때부터 글로리아는 또다시 그전처럼 침울해졌다. 다음 날도 호텔 방에 틀어박혀서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았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몹시 난처했다. 어떻게 하면 글로리아가 원기를 되찾을까 하고 여러 가지로 생각했으나 좀처럼 좋은 생각은 떠오르지 않았다. 의자에 앉아 머리를 움켜쥐고 있던 아버지가 갑자기 얼굴을 쳐들며 소리쳤다. "좋은 수가 있어." 어머니의 얼굴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글로리아를 로봇 회사로 데려가는 거야. 그리고 로봇을 조립하는 장면을 보여 주는 거지." 로봇 회사라는 말을 듣고, 어머니는 근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글로리아는 로비가 보통 기계라는 걸 잊고 있어. 인간과 똑같다고 생각하는 거지. 그러니까 로비의 몸뚱이는 피와 살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철과 동선으로 되어 있다는 증거를 보여 주면 되는 거야." "효과가 있을까요?“ 어머니는 아직도 근심스러운 것 같았다. "염려 없어. 내게 맡기라고. 지금 곧 로봇 회사에 전화를 걸어 부탁해야지." 아버지는 곧 전화를 걸었다.   로봇 공장   US 로봇 회사는 텍사스의 사막 한복판에 서 있다. 은빛 건물은 햇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키다리 지배인이 글로리아 일행을 반갑게 맞이했다. "잘 오셨습니다. 천천히 견학하고 가십시오. 저희 공장에서는 하루에 1천 대의 로봇을 생산합니다. 아이 보는 로봇, 청소 로봇, 요리하는 로봇, 세탁하는 로봇 등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키다리 지배인은 연방 지껄이며 공장 안을 안내해 주었다. 로봇 조립 공장은 지하 10층에 있었다. 대낮처럼 밝고, 기계 소리가 윙윙거리며 희미하게 들려왔다. 둥근 테이블이나 네모난 테이블을 둘러싸고 로봇들이 부지런히 새로운 로봇을 조립하고 있었다. “로봇을 조립하는 데는 먼저 이것과 이것을--.” 키다리 지배인이 설명을 시작했다. 지배인의 설명은 글로리아에겐 심심하기 짝이 없었다. 게다가 어느 로봇이나 곁눈도 팔지 않고 손을 움직이고 있을 뿐이다. 글로리아 쪽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시시한 로봇이구나.’ 글로리아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이번엔 방 저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방 한구석의 삼각 테이블에서 일하고 있는 로봇이 글로리아의 눈에 띄었다. 그 로봇은 다른 로봇들에 비하면 손의 움직임이 무척 느렸다. 게다가---어딘가 모르게 로비와 비슷하다...... 글로리아의 가슴이 두근두근 방망이질을 했다. '어쩌면 로비일지도 모른다.‘ 글로리아는 아버지들로부터 조금 떨어져 눈을 똑바로 뜨고 보았다. '앗, 그렇다. 역시 로비야! ' "로비!“ 글로리아는 소리 쳤다. 그러자 그 로봇은 흠칫하면서 비틀거렸다. 그리고 손에 들고 있던 도구를 덜커덩 바닥에 떨어뜨렸다. 글로리아는 말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아버지들은 깜짝 놀라 글로리아를 붙잡으려 했으나 이미 늦었다. 그 때다. 무서운 일이 일어난 것은. 방 저 쪽에서 커다란 트랙터가 굉장한 속력으로 달려왔다. 아버지는 미친 사람처럼 튀어 나갔다. "트랙터를 세워!“ 지배인이 소리쳤으나 이미 늦었다. 시꺼먼 트랙터는 우르릉 하고 굉장히 요란한 소리를 내며 아버지의 눈앞을 지나쳤다. 글로리아의 몸이 트랙터에 깔렸다고 생각한 순간, 옆에서 시꺼먼 덩어리가 튀어 나와 글로리아의 몸을 획 잡아챘다. 앗, 하는 순간의 일이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금방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랐다. 정신을 차려 보니, 로봇이 글로리아를 껴안고 서 있었다. 그것은 로비였다. 글로리아의 위험을 깨달은 로비는 용감하게 뛰어들어 글로리아를 구한 것이다. 로비는 글로리아의 집을 나와 로봇 회사로 돌아온 후, 계속해서 이 공장에서 일하고 있었던 것이다. 글로리아는 로비의 목에 꼭 매달렸다. "로비, 이젠 아무 데도 가면 안 돼. 알았지?“ 글로리아는 몇 번이나 되풀이했다. 아버지는 로비의 딱딱한 손을 잡고, "고맙다, 로비. 잘해 주었어. 정말 고맙다.“고 말했다. 그리고 어머니를 향해, "로비는 글로리아의 생명의 은인이야. 역시 집으로 데려 가야겠어.“ 아버지의 그 말씀에 어머니의 완고한 마음도 풀렸다. "예, 그렇게 해요. 역시 로비는 글로리아의 가장 친한 친구였군요.“ 글로리아의 뺨이 오랜만에 장미 빛으로 빛났다. “로비, 이번에 또 말없이 어디로 가면, 신데렐라 아가씨의 이야기는 절대로 해 주지 않을 거야." 로비는 강철 팔로 글로리아를 정답게 껴안았다. 그 빨간 눈은 반짝반짝 빛나, '이젠 절대로 아무 데도 안 가겠어요.' 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   수성 로봇 스피디   아이작 아시모프 지음 정성환 옮김/ 김완기 그림   미아가 된 스피디   여기는 수성의 지하에 있는 광산 스테이션이다. 지금 무전실에서는 텁석부리 그레고리가 무전기의 상태를 살피고 있다. 거기에 우당탕퉁탕 달려온 건 빨간 머리의 마이클 이다. "뭘 그렇게 설치고 있는 거야?“ 텁석부리 그레고리가 태평스럽게 물었다. "큰일났어. 스피디란 놈이 돌아오지 않는 거야." 빨간 머리 마이클의 얼굴은 창백했다. "뭐? 그거 큰일인데." 그레고리도 당황하여 일어섰다. 빨간 머리 마이클과 텁석부리 그레고리는 모두 US 로봇 회사의 기술원들이다. 머리털이 빨갛고 화를 잘 내는 것이 빨간 머리 마이클, 금빛 수염을 기르고 늘 태평스런 것이 텁석부리 그레고리다. 둘이는 늘 싸움만 하고 있지만 사실은 마음 맞는 친구로, 일도 언제나 같이 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이번 제 2차 수성 탐험대의 대원으로 뽑혀 멀리 수성까지 온 것이다. 2005년에 제1차 탐험대가 처음으로 수성에 착륙했다. 그리고 수성에는 소중한 광물이 많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지구정부는 곧 수성에 광산 스테이션을 만들고 로봇을 사용하여 그 광물을 파낼 계획을 진행시켰다. 그러나 데리고 간 로봇은 수성의 지독한 더위에 견디지 못했다. 그래서 제 1차 탐험대는 로봇을 스테이션에 남겨놓고 철수해 버렸다. 그로부터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로봇을 만드는 기술은 급속히 발달되어, 어떠한 더위에도 견디어 낼 로봇이 마침내 완성되었다. 제 2차 탐험대의 임무는 그 로봇을 실제로 써먹을 수 있는지 없는지를 시험하는 일이었다. 제 1차 탐험대가 남겨 놓고 간 스테이션은 무사했다. 발전기와 무전기도 쓸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스테이션의 준비는 하루만에 끝나고 오늘부터 스피디의 일이 시작되었다. 스피디의 최초의 일은 셀렌을 파 오는 일이었다. 빨간 머리 마이클은 스피디에게 이렇게 명령했다. "스피디, 셀렌의 언덕에 가서 셀렌을 파 오너라." 스피디는 차려 자세를 하고, "예, 알겠습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나간 것이었다. 스피디의 걸음이라면 30분만에 돌아올 수 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는다. 빨간 머리 마이클은 연방 시계를 보고 있었다. 두 시간, 세 시간, 네 시간, 마침내 다섯 시간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텁석부리 그레고리가 말했다. "무전으로 조사해서 있는 곳을 알아냈어. 자, 이걸 보라고.“ 빨간 머리 마이클은 한 장의 지도를 내밀었다. "이 빨간 X표는 셀렌의 언덕이야.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까만 점은 스피디가 걸어간 자국이야." "흐음, 그렇다면 스피디는 셀렌 언덕의 주위를 빙빙 돌고 있지 않아?“ "그렇지. 그러나 어째서 돌고 있을까? 내가 무전으로 스피디의 뒤를 쫓고 있는 동안에도 벌써 네 바퀴나 돌았단 말이야.“ "스피디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큰일이다. 우리들의 생명이 위험해.“ 텁석부리 그레고리는 두 손으로 머리를 움켜쥐었다. 스피디가 돌아오지 않으면 어째서 두 사람의 생명이 위험한 것일까? 그 까닭은 이렇다. 수성은 태양에 가장 가까운 행성이다. 표면 온도는 섭씨 340도나 된다. 섭씨 100도라고 하면 물이 끓는 온도다. 340도라는 온도가 얼마나 뜨거운 것인지는 상상이 갈 것이다. 그러니까 지하의 스테이션도 냉방 장치가 없으면 인간은 살 수 없다. 냉방을 하는 데는 태양열을 이용하지만 거기에는 셀렌이 반드시 필요했다. 그래서 셀렌이 없으면 냉방을 못 한다. 냉방을 못 하면 인간은 더위 때문에 죽어 버리는 것이다. "나는 불고기가 되는 건 싫어." 텁석부리 그레고리가 서글픈 목소리를 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그러니까 어떻게 하면 좋은지 생각해야 하는 거야. 너처럼 머리를 움켜쥐고 있어 보았자 스피디는 돌아오지 않아.“ "그럼 어쩌잔 말이야. 로봇은 한 대면 된다고 말한 건 너야. 한 대만 더 가져왔으면 스피디를 대신할 수 있을 텐데.“ 두 사람은 언제나처럼 말다툼을 시작했다. 그러나 머릿속으로는 어떻게 하면 스피디를 데려올 수 있을까 하고 열심히 생각하고 있었다. 잠시 후, 빨간 머리 마이클이 무릎을 탁 쳤다. "그렇지, 창고에 제 1차 탐험대가 두고 간 로봇이 있어. 그 로봇에게 스피디를 데려오도록 하자." "10년 전의 낡은 로봇이야. 쓸 수 있을까?" 그레고리는 의심스러운 듯이 말했다. "쓸 수 있고 말고.“ 빨간 머리 마이클은 자신이 있는 것 같았다.   독가스의 언덕   로봇은 지하 창고에 늘어서 있었다. 높이가 5미터, 허리 둘레가 3미터나 되는 커다란 로봇이다. "와아, 굉장히 큰 로봇이군. 이게 제대로 움직일 수 있을까?“ 텁석부리 그레고리는 근심스러운 것 같았다. "아무튼 옛날의 구식 톱니바퀴가 붙어 있으니까 몸뚱이가 이렇게 큰 거야." 빨간 머리 마이클은 로봇의 앞가슴을 열고, 원자 에너지 상자를 안에 넣었다. "자, 이젠 됐어." 마이클은 로봇을 쳐다보았다. "움직이지 않잖아.“ 그레고리는 그것 보라는 듯이 말했다. "명령을 하기 전엔 움직이지 않는 거야." 마이클은 로봇을 향해, "이봐, 내 말이 들려?“ 그러자 괴물과 같은 큰 로봇의 머리가 느릿느릿 움직이며, "예, 주인님." 이라고 했다. "와아, 지독한 목소리군. 귀가 째질 것 같아." 텁석부리 그레고리가 불평했다. "너는 밖에 나갈 수 있나?“ "예, 주인님.“ "그럼 이제부터 너는 밖으로 나가는 거야. 알겠어?“ "예, 주인님.“ "북쪽을 향해 7킬로미터를 가면, 너보다 작은 로봇이 있어. 발견하면 돌아오라고 명령해. 만일 명령을 듣지 않으면 강제로 끌고 오라고. 알겠나?" "예, 주인님.“ "그럼 내 뒤를 따라와. 출구까지 안내할 테니까." 마이클은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으나, 로봇은 움직이지 않았다. "이봐, 어떻게 된 거야?“ "죄송합니다. 주인님. 당신이 저의 어깨 위에 타시지 않으면 움직이지 못합니다.“ "뭐, 네 어깨에 타라고?“ 마이클은 어이가 없었다. 텁석부리 그레고리는 한숨을 쉬었다. "아아, 내가 말한 대로야. 이런 고물 로봇이 제대로 움직일 리가 없어. 우리들이 이놈을 타고 밖으로 나가면 그 자리에서 불고기가 돼 버릴 거야." "불고기, 불고기 하지 말아." 마이클은 얼굴을 찡그렸다. 두 사람은 낙심하여 창고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러나 잠시 후, 빨간 머리 마이클이 무릎을 탁 쳤다. "그렇지, 지하도로 가면 돼. 그리고 셀렌 언덕에 가장 가까운 출구로 나가는 거야. 이렇게 간단한 일을 어째서 생각하지 못했을까?“ 마이클은 즉시 지도를 펼치고 조사했다. 지도에 의하면 셀렌 언덕에 가장 가까운 출구는 제13호 지하도의 제 25호 출구였다. 거기서부터 셀렌 언덕까지는 약 5킬로미터. 저 로봇까지라면 20분에 왕복할 수 있다. 내열복은 뜨거운 열을 20분간은 막아준다. 두 사람은 방으로 돌아와 곧 내열복을 입었다. 준비가 끝나자 두 사람은 각각 로봇의 어깨로 올라탔다. "25호 출구로 전진!“ 마이클이 소리쳤다. 두 대의 로봇은 성큼성큼 걷기 시작했다. 좁은 지하도는 곧게 뻗어 있어, 저 멀리 25호 출구가 바늘귀만큼 보인다. 출구까지 5분 걸렸다. 빨간 머리 마이클은 로봇의 어깨에서 뛰어내려 출구의 문을 열었다. 눈부신 빛이 확 하고 지하도에 비쳤다. 두 대의 로봇은 성큼성큼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간 순간, 마이클과 그레고리는 앗 하고 놀랐다. 눈앞의 바위들이 온통 눈부신 빛을 내고 있는 것이었다. 자세히 보니 바위 표면에 하얀 결정이 붙어 있어, 그것이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굉장하다, 마치 눈에 덮인 것 같군." 텁석부리 그레고리는 저도 모르게 감탄했다. 내열복의 눈에 해당하는 부분에 필터가 붙어 있지 않았다면, 두 사람은 그 자리에서 눈이 멀었을 것이다. 출구에서 100미터쯤 떨어진 곳에 시꺼멓게 커다란 바위가 솟아 있었다. "이봐, 저 바위 그늘로 가라고. 거기서 정찰한다.“ 마이클이 말했다. 두 대의 로봇은 성큼성큼 바위 그늘로 갔다. 마이클은 팔목에 찬 온도계를 보았다. "이봐, 바위 그늘에서도 100도나 돼!“ "아유, 사람 죽겠네!" 하고 텁석부리 그레고리는 얼빠진 비명을 질렀다. 마이클은 망원경으로 셀렌의 언덕을 정찰하였다. "뭐가 보이나?“ "으음, 저게 셀렌의 언덕이군. 그런데 스피디의 모습이 안 보이는데." 마이클은 좀더 똑똑히 보려고 로봇의 어깨에서 일어섰다. "앗, 저건 뭐야. 어? 스피디 같은데." 마이클이 손가락질하는 쪽을 보니, 아득히 먼 곳에 까만 작은 점이 보였다. "이봐, 저기로 가!“ 마이클은 로봇에게 명령했다. 두 대의 로봇은 침착하게 걷기 시작했다. 바위 그늘에서 나서자 태양 광선이 마치 스콜(남양의 소나기)처럼 내리쬐었다. 두 사람은 무의식중에 목을 움츠렸다. "어쩐지 후끈해지는데.“ 텁석부리 그레고리는 한심스런 목소리를 냈다. "아직 울기는 일러, 그레고리. 이제 점점 더 뜨거워질 거야.“ 마이클은 그레고리를 보고 히쭉 웃었다. 5분이 지났다. 스피디의 모습이 이젠 똑똑히 보인다. 은빛의 날씬한 몸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스피디는 울퉁불퉁한 바위 사이를 누비며 이 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다. 두 사람은 갑자기 힘이 솟아올라 로봇의 어깨를 발로 찼다. "빨리 전진해!“ 그레고리가 소리쳤다. 로봇은 또 성큼성큼 걷기 시작했다. 마이클은 문득 생각난 듯이 손목 시계를 보았다. "이봐, 벌써 10분이 지났어. 이 이상 더 가면 안 돼." "그렇지, 바위 그늘로 돌아가려면 10분이 걸릴 테고, 내열복은 20분밖에 유지하지 못하니, 이크 안되겠다.“ 사람은 로봇에게 멈추라고 명령했다. 스피디는 빨리 다가오고 있다. 앞으로 3백 미터. 그 때, 두 사람은 이상한 것을 눈치챘다. 스피디의 뛰는 모습이 이상했던 것이다. 마치 술에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고 있다. 두 사람이 고개를 갸웃거렸는데, 스피디는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두 사람 쪽을 보았다. 마이클은 이젠 됐다고 생각했다. "자, 스피디. 이리로 와." 마이클이 명령했다. 스피디는 멍청하니 마이클을 보았다. "이봐, 스피디. 돌아오라고." 이번에는 그레고리가 명령했다. 그러자 스피디는 훌쩍 뒤돌아서, 먼저 오던 길로 쏜살같이 달리기 시작했다. "야아, 스피디. 돌아와!“ 두 사람은 목이 터지도록 불렀다. 그러나 스피디는 뒤돌아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셀렌의 언덕을 향해 굉장한 속력으로 달려간다. 두 사람은 낙심하여 로봇의 어깨 위에 주저앉았다. 그러나 이제 꾸물거릴 때가 아니다. 빨리 바위 그늘로 돌아가지 않으면 두 사람은 태양열로 새까맣게 타 버릴 것이다. 두 대의 로봇은 뒤로 돌아 바위 그늘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로봇 법 3대 원칙   바위 그늘로 돌아온 두 사람은 땅 위에 내려앉아 한숨 돌렸다. "스피디란 놈이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마이클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취한 건 아니겠지." "로봇이 어떻게 취하나. 틀림없이 어딘지 기계가 고장이 난 거야.“ "왜 고장이 났을까?" "그걸 알면 걱정을 안 하게." 마이클은 어찌할 바를 몰라 멍하니 바위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바위 너머는 여전히 눈부시게 번쩍이고 있다. 그러자 그 때, 마이클의 눈이 번쩍 빛났다. "이봐, 저 바위에 달라붙어 있는 하얀 결정체가 뭐라고 생각해?“ "글쎄.“ "어쩌면 저것이 해결의 단서가 될는지도 모르겠어." 마이클은 힘차게 일어섰다. 그레고리도 일어섰다. "저 결정체는 무엇일까? 어쩌면 액체가 냉각돼서 된 것인지도 몰라. 수성의 이렇게 뜨거운 온도 속에서 냉각돼서 굳어지는 결정체란 무엇일까?“ "화산의 분화구에서 흘러나오는 용암이야." 텁석부리 그레고리가 즉석에서 대답했다. 마이클은 고개를 끄덕이고, "그렇다. 어쩌면 저 셀렌의 언덕 지하에선 가스가 분출될는지도 몰라.“ "가스라고?“ "응, 이산화유황, 탄산가스, 일산화탄소와 같은 가스가 무진장 분출되는 게 틀림없어." "그건 큰일이다. 그런 가스가 닿으면 스피디의 몸은 썩어 버린단 말야." 그레고리가 말했다. 마이클은 깜짝 놀라며 그레고리를 응시했다. "그거야! 그것이 원인이야. 이젠 알았다!“ 마이클이 큰 소리를 쳐서 그레고리는 깜짝 놀랐다. "자넨 로봇 법 3대 원칙을 알고 있지?“ "그런 건 바보라도 알고 있어." 그레고리는 분개하여 쏘아붙였다. 로봇 법 3대 원칙이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제 1조 로봇은 인간을 위험에 처하게 해서는 안 된다. 제 2조 로봇은 인간의 명령에 복종하여야 한다. 제 3조 로봇은 자신의 몸을 지켜야 한다.   이 3대 원칙을 로봇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그런데, 이 3대 원칙과 스피디가 술에 취한 사람처럼 된 것과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그레고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네는 스피디에게 셀렌을 캐 오라고 명령했지?“ "그렇지.“ "그래서 스피디는 제 2조의 규칙에 따라 셀렌을 캐러 갔어. 그런데 셀렌의 언덕에 가니까, 뭔가 위험한 것이 있다는 걸 알아차렸어. 제 3조의 규칙에는 로봇은 자신의 몸을 지켜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거든. 그러니까 스피디는 언덕에서 도망을 치기 시작했어.“ "위험한 것이란 무엇일까?“ "그러니까 그게 가스란 말이야. 셀렌의 언덕 지하에서 뿜어 대는 일산화탄소야." "으음, 과연......” "언덕에서 도망쳐서 위험한 것으로부터 벗어나면, 이번엔 자네의 명령이 생각나는 거야. 그래서 또다시 셀렌의 언덕으로 다가간다. 다가가면 위험한 가스가 대기하고 있다. 그래서 또 도망친다.“ "과연 그렇군. 그래서 그 곳을 빙빙 돌고 있군." "그렇게 빙빙 돌고 있는 동안에 기계가 고장이 나서, 저렇게 술에 취한 사람처럼 된 거야." 이것으로 원인은 알았다. 그러나 어떻게 하면 스피디를 데려올 수 있을까? 마이클은 다시 로봇의 어깨 위로 올라갔다. 망원경으로 보니 스피디는 여전히 셀렌의 언덕을 휘청거리며 돌고 있었다. "이 로봇들을 이용하여 어떻게든 스피디를 쫓아가 보세.“ 텁석부리 그레고리가 말했다. "이런 느림보 로봇한테 스피디가 붙잡히겠어?“ 마이클은 바보 같은 소리 말라는 표정을 지었다. 내열복 속이 차츰 더워지기 시작했다. 바위 그늘에서도 100도나 되니까 무리도 아니다. 두 사람의 이마에는 비지땀이 흘렀다. 별안간 마이클이 소리쳤다. "이봐, 좋은 생각이 있어." "뭐야?“ "알겠나, 제 1조의 규칙을 인간을 위험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거야. 이것은 세 가지 규칙 중에서 가장 중요한 규칙이야. 로봇은 제 2조, 제 3조의 규칙을 지키기 전에 우선 제 1조의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되는 거지." "맞았어.“ 만일, 마이클이나 그레고리가 위험에 처해 있는 것을 보면 스피디는 어떻게 할까? 즉시 마이클들을 구하러 달려올 것이다. 그 때 붙잡으면 된다고 마이클은 생각한 것이다. "과연, 그것 참 멋진 생각인데, 내가 로봇에 타지 않고 어슬렁어슬렁 걸어간다. 그리고 불고기가 될 지경이면 스피디가 구해 주러 달려온다, 이거지?“ "응, 그렇지만 제대로 안 되면 저승 행이야." "좋아, 그럼 갔다 오겠어." "이봐, 기다려. 자네가 간다고는 정하지 않았어. 제비뽑기로 정하자.“ "제비뽑지 따위는 귀찮아. 68곱하기 95면 얼마야? 먼저 대답하는 사람이 가기로 하자." 텁석부리 그레고리는 그렇게 말하고 마이클이 눈을 끔벅이며 계산하는 것을 곁눈질로 보면서 즉석에서, "6460.“ 하고 말했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바위 그늘에서 튀어 나갔다. "자식, 미리 계산해 두었구나!“ 마이클은 발을 구르며 분해했다. 텁석부리 그레고리는 울퉁불퉁한 바위 위를 조심조심 걸었다. 하얀 결정을 바라보며 걷고 있노라니, 눈이 따끔따끔 아팠다. 발바닥은 프라이팬으로 볶아대는 것 같았다. 5분이 지났다. 셀렌의 언덕 위에 콩알만한 흑점이 보인다. 스피디다. 뒤돌아보니 마이클의 모습이 저 멀리 보였다. 10분 걸었다. 이마에서 구슬땀이 줄줄 흐른다. 숨이 가쁘다. 스피디는 여전히 셀렌의 언덕을 돌고 있다. 뒤돌아보니 마이클은 콩알만해졌다. 15분 지났다. 이젠 자기 혼자서는 저 바위 그늘까지 돌아갈 수 없다. 스피디가 구해 주지 않으면 도중에서 새까맣게 타 버린다. 머리가 타는 듯이 뜨겁다. 눈이 돈다. 가슴이 답답하다. 숨을 쉴 수가 없다. "어어이, 스피디, 살려 줘. 죽을 것 같다.“ 그레고리는 필사적으로 스피디를 불렀다. 스피디는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알아들은 것일까? 20분 지났다. 내열복은 이 이상 더위를 막아 주지 못한다. "스피디, 살려 줘. 빨리, 빨리!“ 그렇게 말하자, 그레고리는 푹 쓰러졌다. 정신을 잃은 것이다. 그 때, 스피디가 화살처럼 달리기 시작했다. 마침내 알아차린 것이다! '인간이 위험에 처해 있다. 빨리 구해야 한다.' 스피디는 그렇게 알아차린 것이다. 순식간에 달려오자 그레고리의 몸을 안아 올렸다. 그리고 바위 그늘을 향해 쏜살같이 달렸다. "이봐, 괜찮겠어?“ 그레고리가 눈을 뜨자 마이클이 근심스러운 듯이 들여다보았다. 어느 새 그레고리는 바위 그늘의 지면 위에 뉘어져 있었다. "위험한 찰나였네. 까딱하면 불고기가 될 뻔했어." 마이클이 웃으며 말했다. "스피디는 어디 있어?“ 그레고리는 머리를 쳐들고 사방을 둘러보았다. "자네한테 혼날 것 같아 숨어 있네." 스피디는 마이클 뒤에서 불쑥 얼굴을 내밀었다. "근심을 끼쳐 드려 죄송합니다.“ 스피디는 뒤통수를 긁었다. 그 모습이 우스워서 두 사람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이렇게 하여 두 사람은 무사히 스피디를 데려올 수 있었다. 다음 날, 스피디는 남쪽 언덕으로 셀렌을 캐러 갔다. 남쪽에는 위험한 가스가 솟아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마이클이 조사한 것이다. 30분이 지나자 스피디는 셀렌을 걸머지고 스테이션으로 돌아왔다. 마이클과 그레고리는 후유 하고 가슴을 쓸어 내렸다. 마이클들은 즉시 이 대성공을 지구에 보고했다.     거짓말쟁이 로봇 하비   아이작 아시모프 지음 정성환 옮김/ 김완기 그림   비밀 회의   "뭐, 하비가 인간의 마음속을 읽을 줄 안다고?“ 하얀 수염을 기른 러닝 박사는 눈을 부릅떴다. "예, 검사실에 가는 도중에 하비는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모두 알아맞혔어요.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아슈 기사는 얼굴이 창백해 있었다. '큰일났구나. 만일 이런 소문이 퍼진다면, 그런 기분 나쁜 로봇을 만드는 회사의 로봇은 사지 않겠다고 고객이 외면을 할지도 모른다. ' 하고 박사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이 일은 절대 비밀로 해 주게. 그리고 보가드 기사장과 캘빈 박사를 불러오게." 박사는 단호하게 말했다. US 로봇 회사의 회의실에서는 즉시 비밀 회의가 시작되었다. 모인 사람은 러닝 박사, 보가드 기사장, 심리학자인 캘빈 박사, 그리고 아슈 기사 등 중요 인물들이었다. 먼저 러닝 박사가 입을 열었다. "아슈로부터 이미 들었으리라 생각합니다만, 실은 하비에게 사람의 마음을 알아내는 묘한 힘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 회사로서는 이런 이상한 로봇이 두 번 다시 만들어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돼서 하비 같은 로봇이 만들어졌는지 여러분의 의견을 들려주십시오." 보가드 기사장이 일어섰다. "조립 방법에서 어딘가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요?“ "그런 일은 절대로 없습니다. 제가 보증합니다.“ 아슈 기사는 얼굴빛이 변하며 말했다. "글쎄, 그럴까? 아무튼 한 대의 로봇을 조립하는 데는 7만 5천 2백 34번의 손질이 필요한데 그 중의 한번이라도 잘못되면 로봇은 제대로 되지 않으니까." 기사장은 눈알을 굴리며 아슈를 노려보았다. "그럼 내 잘못이라는 말씀입니까?“ 아슈가 반박을 하고 맞선다. "자네의 잘못이라곤 말하지 않았어." 기사장은 못마땅한 듯이 입을 비죽이 다물었다. "여러분, 싸움을 하기 위해 모인 건 아닙니다.“ 캘빈 박사가 두 사람을 말렸다. "그렇지, 그 말이 옳아. 모두 힘을 합쳐서 하루라도 빨리 원인을 찾아내야 해." 러닝 박사는 모두의 얼굴을 차례로 둘러보았다. "먼저, 아슈. 자네는 하비를 조립한 순서에 잘못이 없었는지 조사를 하게." 다음은 여성인 캘빈 박사를 향하여, “당신은 하비의 심리 상태를 관찰해 보시오“ 마지막으로 보가드 기사장에게, "자네는 하비를 설계할 때, 계산을 잘못하지 않았나. 조사해 주게. 물론 나도 돕겠어." "그럼 곧 시작합시다.“ 젊은 아슈 기사가 맨 먼저 방을 튀어 나갔다. 러닝 박사와 기사장이 타협을 하는 사이에 캘빈 박사도 일어서서 방을 나갔다. 하비는 지하실에 갇혀 있었다. 문에는 라는 쪽지가 붙어 있다. 캘빈 박사는 주위에 사람이 없는 틈을 타서 문을 열었다. 하비는 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안녕, 하비. 원자력 모터 책을 가져왔어. 읽어봐요.“ 박사는 하비에게 한 권의 책을 내밀었다. 하비는 그것을 받자 페이지를 훌훌 넘겨보고, "예, 알았습니다. 읽어 두겠습니다." 그리고 캘빈 박사의 얼굴을 응시하면서 말했다. "예, 알고 있습니다. 지금 저의 지능을 시험하기 위해서죠?" 캘빈 박사는 한숨을 쉬면서, "그래, 맞았어. 당신은 무엇이나 알아 버리는군요." "저한테는 숨겨도 소용없어요. 저에게는 당신의 마음속이 훤하게 보입니다. 지금 당신이 마음속으로 누구를 생각하고 있는지 말해 볼까요?" 박사는 삽시간에 얼굴이 빨개졌다. "어머나, 알고 있었어요?“ "예. 당신은 언제나 그분 생각만 하고 계시죠. 나는 벌써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한테도 말했어요?“ "아뇨, 그런 말을 왜 합니까." 하비는 단호하게 말했다. 하비는 도대체 누구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일까? 좀 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당신은 고민하고 계시는군요.“ "그래요. 보다시피 내 얼굴은 조금도 예쁘지 않아서." "인간의 가치는 얼굴이 아름답고 미운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이는 나하고는 좀처럼 대화를 하려 하지 않아요.“ 캘빈 박사의 눈에 눈물이 글썽인다. "그분은 너무 바쁩니다.“ 하비는 위로하듯이 말했다. "그분은 틀림없이 예쁜 부인을 맞이하겠지?“ "그렇지 않아요.“ 하비가 큰 소리로 말하자 캘빈 박사는 깜짝 놀랐다. "나는 아슈 씨의 마음을 알고 있어요." 그분이란 아슈 기사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분의 마음 같은 건 알고 싶지도 않아요. 나 같은 건 싫어할 게 뻔하니까." 박사는 모기 소리 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뇨, 숨기셔도 소용없어요. 당신은 알고 싶어하고 있어요. 그럼 가르쳐 드리죠. 아슈 씨는 당신을 아내로 삼으려고 생각하고 있어요." "옛, 뭐라고요?“ 캘빈 박사는 믿어지지 않았다. "정말입니다. 아슈 씨는 당신처럼 마음이 고운 사람을 좋아합니다.“ 캘빈 박사의 얼굴이 환하게 빛났다. "고마와요, 하비. 진심으로 사례하겠어. 하지만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아요." 박사는 그렇게 말하며 하비의 갸름한 손가락을 꼭 쥐었다. 그리고 들뜬 발걸음으로 방을 나갔다.   러닝 박사의 노여움   아슈 기사는 벌써 사홀 동안이나 한잠도 자지 못했다. 7만 5천 2백 34번의 순서 중에서 조사가 끝난 것은 3만 8천 7백 26가지 분이었다. 아직 잘못은 발견되지 않았다. 눈은 빨갛게 충혈 되고, 수염은 터부룩하고, 머리털은 헝클어져 있었다. "아아, 이건 못 할 짓이군." 아슈는 책상에서 얼굴을 들고 크게 하품을 하였다. 거기에 보가드 기사장이 들어왔다. "어떤가? 뭔가 단서를 잡았나?“ "아직 입니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런 일만 해야 합니까? 차라리 하비에게 가르쳐 달라는 것이 빠르지 않을까요?“ "로봇한테 가르쳐 달라고 한단 말야?" 기사장은 못마땅하다는 듯이 입을 다물었다. 보가드 기사장은 수학자인데 매우 자부심이 강한 사람이다. 그러니까 자기가 모르는 문제를 로봇이 알 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슈는 개의치 않고, "캘빈 박사의 말을 들으면 하비는 수학의 천재라던데요.“ "설마 그럴 리가 있어.“ "의심나시면 직접 하비를 시험해 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좋아. 그 로봇이 이렇게 어려운 문제를 풀 리가 없을 거야.“ 보가드 기사장은 어깨를 으쓱하며 나갔다. 하비는 기사장의 발소리를 듣자 뒤돌아보았다. "잘 오셨습니다. 그럼 보여 주십시오, " 하비가 손을 내밀었으므로 보가드 기사장은 완전히 당황했다. 기사장의 양복 주머니에는 한 권의 노트가 들어 있었다. 거기에는 기사장이 조사한 수학 공식이 가득히 기록되어 있다. 기사장은 그것을 하비에게 보여서 시험해 볼 작정이었다. 기사장은 주머니에서 노트를 꺼내 하비에게 건네주고, "이 공식에 잘못이 없나 확인해 보게." 하비는 공식을 차근차근 살폈다.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이 이상의 계산은 저는 못 합니다. 당신과 같이 우수한 분이 모르는 문제를 저 같은 게 알 리가 없잖습니까?“ 기사장은 그 대답을 듣자 만족스러운 듯이 끄덕였다. 그리고 하비에게서 노트를 돌려 받자 곧 나가려 했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난 듯이 하비를 돌아보았다. "잠깐, 자네한테 물어 보고 싶은데." "아, 러닝 박사의 일 말씀이군요. 그거라면 걱정 없습니다.“ "걱정 없다고?“ "예, 다음 소장은 당신입니다.“ 하비는 기사장의 마음을 곧 알아차리고 그렇게 대답했다. "응, 그야 그럴 테지. 나같이 우수한 인간이 소장이 되는 게 당연하니까." 기사장은 하비를 힐끔 노려보고 훌쩍 나가 버렸다. 하비는 다시 조용히 책을 읽기 시작했다. 기사장은 몹시 기분이 좋아져서 자기 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어려운 계산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가끔 책상에서 얼굴을 쳐들고는 싱긋 웃었다. '이 문제가 해결되면 나는 마침내 소장이 된다.' 그렇게 생각하니 계산에도 열성이 생겼다. 그 날 밤은 끝내 자지도 않고 계산을 했다. 이윽고 날이 밝았다. 기사장은 아침 식사도 하지 않고 책상에 앉아 있었다. 오전 9시에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있었다. 러닝 박사였다. 박사는 들어오자 온통 휴지 투성이인 방을 힐끔 둘러보았다. "단서는 발견됐나?“ "아뇨.“ 기사장은 돌아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그리고, "일전에 드린 보고서는 읽으셨습니까?“ 하고 거만스럽게 물었다. "응, 읽었네. 자넨 거기서 미첼의 방정식을 쓰고 있는데, 그건 잘못이야." "그럴 리 없어요. 미첼의 논문을 읽어보면." "내 계산에는 틀림이 없어. 하비도 그렇게 말하고 있어.“ "하비라고? 그런 로봇이 뭘 안단 말이오. 어제 시험해 보았는데, 적분 계산 하나도 제대로 못 해요." 러닝 박사는 주머니에서 한 장의 종이 쪽지를 끄집어냈다. "이걸 보게. 하비가 한 계산일세." 기사장은 흥 하고 코웃음을 치면서 그 종이 쪽지를 밀어 버렸다. "당신은 내가 한 계산보다 로봇이 계산한 걸 더 믿는 겁니까?“ "내 답도 하비의 답과 같으니까." 러닝 박사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기사장은 불끈해서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당신 같은 돌대가리가 뭘 알아. 이 빼빼 마른 미라 같으니!“ 그 말을 들은 러닝 박사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보가드? 상관에게 반항할 작정인가. 그런 놈은 파면이야." 기사장은 히죽이 웃고, "그렇게는 안 될걸요. 당신은 이제 곧 소장을 그만두쟎소?“ 러닝 박사는 멍하니 입을 벌렸다. "뭐, 뭐라고? 누가 그런 말을 하던가?" "자, 자, 침착하시라고요. 노인네가 너무 흥분하면 몸에 해로우니까. 다음 소장은 젊고 씩씩한 바로 나라고 하던데요.“ "누, 누가 그런 말을 했어?“ "하비가 그랬어요. 하비는 당신의 마음을 읽은 겁니다. 내게 분명하게 말했어요." 러닝 박사는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그런 당치도 않은...... 나는 그런 일을 생각한 적이 절대로 없어. 그러니까 하비가 그런 말을 할 턱이 없지." "아니, 확실히 말했어요." 기사장은 큰소리 쳤다. "좋아, 그럼 이제부터 하비한테 가서 확인하자고. 함께 가세. 하비에게 물어 보면 알 테니까." "좋습니다. 하비에게 물어 보면 알 겁니다.“ 둘은 복도를 성큼성큼 걸어서 지하실로 내려갔다.     거짓말쟁이   마침 그 무렵, 캘빈 박사는 아슈 기사의 방에서 재잘거리고 있었다. 요즘 캘빈 박사는 매우 명랑해졌다. 아슈 기사와 대화를 할 때도 매우 즐거운 것 같았다. 아슈는 지금 한 장의 스케치를 캘빈 박사에게 보이고 있는 참이었다. "저는 그림이 서툴러서 부끄럽습니다만, 이것이 이번에 산 저의 집입니다. 어떻습니까?“ 캘빈 박사는 그 스케치를 보자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훌륭한 집이군요." "시내에선 좀 떨어져 있지만 아주 조용한 곳입니다. 언덕 위에 있어 전망도 좋고, 근처에는 깨끗한 냇물도 흐르고 있습니다.“ "근사하군요. 빨리 가보고 싶어요." 그러자 아슈는 부끄러운 듯이 웃고, "예, 꼭 와 주십시오, 여러분에겐 아직 비밀입니다만 단연코 말씀드리겠어요. 실은 저는." 캘빈 박사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틀림없이 내게 결혼 신청을 하는 거야.' 그렇게 생각하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실은 저는 내달에 결혼을 합니다.“ 캘빈 박사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뭐라고요?“ 하고 무의식중에 되물었다. "내달에 결혼합니다. 시골의 이웃집 아가씨죠." 아슈는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캘빈 박사는 앞이 캄캄해졌다. 방금 까지도 하비의 말을 믿고, 아슈의 아내가 될 사람은 자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어디가 아프십니까?“ 아슈는 캘빈 박사가 창백해졌으므로 깜짝 놀랐다. “아뇨, 잠깐 어지러웠어요. 실례하겠어요." 캘빈 박사는 그렇게 말하자 정신없이 방을 뛰어나왔다. 그리고 하비의 방으로 달려갔다. 하비는 박사의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을 보고 놀란 모양이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하비, 당신은 분명히 말했지. 아슈는 나를 아내로 맞이할 작정이라고. 확실히 그랬지?“ “예, 그랬고 말고요. 아슈 씨의 아내는 당신입니다.“ “그런데 아슈 씨는 다른 사람과 결혼한단 말이야." 하비는 흠칫 눈을 내리깔았다. 그러나 다시 생각한 듯이, “그런 말을 믿어서는 안 됩니다. 당신은 지금 꿈을 꾸고 있어요.“ "그렇지만 방금 아슈 씨가 그렇게 말했는데." “그럴 리가 없어요. 그건 꿈이어요. 아슈 씨는 당신을 아내로 삼으려고 생각하고 있어요." "거짓말쟁이!“ 캘빈 박사는 큰 소리쳤다. 하비는 겁을 먹은 듯이 뒤로 물러섰다. "너는 어째서 거짓말을 했어?“ "당신을 구해 주려고.“ "구해 줘? 거짓말을 해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비는 발간 눈을 슬픈 듯이 내리깔았다. "어째서, 어째서 그렇다는 거야? 나는 도무지 알 수가 없어.” 캘빈 박사는 머리를 움켜쥐었다. 그리고 갑자기 얼굴을 들더니, 하비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이윽고 박사의 눈에 놀라는 빛이 떠올랐다. 눈망울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아앗, 알았어! 네가 왜 거짓말을 했는지 이제야 알았어! 심리학자인 내가 어째서 좀더 빨리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하비는 눈을 들어 박사를 보았다. "그렇습니다.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가 바보였어. 네가 말하는 것을 믿었으니.” 박사는 옆의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흐느꼈다. 하비는 어째서 거짓말을 했을까? 그 까닭은 잠시 뒤로 미루고 이야기를 앞으로 진행시키자. 그 때, 문 밖에서 쿵당쿵당 발소리가 들렸다. 박사는 흠칫 하며 일어서자, 급히 커튼 뒤로 숨었다. 들어온 사람은 러닝 박사와 보가드 기사장이었다. 러닝 박사는 번쩍번쩍 빛나는 눈으로 하비를 노려보면서, "알겠나, 하비. 이제부터 사실대로 대답해야 해." 하비는 겁을 먹고 뒤로 물러섰다. "예.“ "너는 보가드에게 내가 소장을 그만둔다고 했나?" "아뇨.“ 하비는 겁에 질려 대답했다. 그 말을 듣자 기사장의 얼굴이 확 달라졌다. "뭐라고. 너는 어저께 분명히 그렇게 말했잖아. 어제 내게 한 말을 다시 한 번 여기서 해 봐." "어제 나는-” 하며 하비는 말을 꺼내다가 러닝 박사 쪽을 힐끔 보더니 입을 다물어 버렸다. 하비의 몸뚱이 속에서 부릉부릉 하고 이상한 소리가 울렸다. "이봐, 어째서 말을 안 하는 거야. 어제 한 말을 해 보라고!“ 기사장은 고함을 지르며 주먹을 휘둘러 하비를 때리려고 했다. 러닝 박사는 황급히 기사장을 말렸다. "그만둬, 그만두라고. 자네는 하비를 위협해서 거짓말을 시킬 작정인가?" "거짓말이 아니오. 사실대로 말하게 하는 거요. 말리지 마시오.“ "좋아, 이번엔 내가 물어 보겠어." 러닝 박사가 하비를 향하여, "알겠나, 하비. 정신 차려서 대답하라고. 내가 소장을 그만둘 생각을 했나?" 하비는 대답하지 않는다. "어떻게 된 거야. 벙어리가 됐나?“ 그 때, 방 한구석에서 요란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두 사람은 깜짝 놀라 뒤돌아보았다. 거기에는 캘빈 박사가 서 있었다. "무엇이 그렇게 우스운가?" 러닝 박사가 물었다. "여러분같이 높은 사람들까지 속은 게 우스워서요." "속았다고?“ 두 사람은 여우한테 흘린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예. 하지만 하비가 나쁜 건 아닙니다. 우리들이 나빴던 거여요. 여러분은 로봇 법 3대 원칙의 제 1조를 알고 계십니까?“ "로봇은 인간을 위험에 빠뜨려서는 안 된다.“ 기사장이 즉시 대답했다. "위험이란 모든 위험을 말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 인간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도 위험입니다. 인간의 희망을 짓밟는 일도 위험입니다. 그렇죠?" “물론 그렇지. 하지만 로봇이 인간의 마음속을 알게 뭐야.“ 하고 러닝 박사는 무심코 말을 꺼내다가, 아차 하고 숨을 죽였다. “하비는 인간의 마음속을 아는 로봇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일이 생긴 거죠. 가령 보가드 씨." 박사는 기사장 쪽을 향했다. “당신이 마음속으로 러닝 박사가 빨리 그만두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합시다. 만일 하비가 러닝 박사는 그만두지 않는다고 하면 당신은 낙담하셨겠죠?" "으음, 글쎄, 그럴지도 모르지." 기사장은 마지못해 대답했다. “하비는 그것을 알고 당신의 마음이 상하지 않도록 거짓말을 한 겁니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물었을 때, 하비는 어째서 잠자코 있었나?“ “그건 옆에 러닝 박사가 계셨기 때문이죠. 만일 지금 하비가 당신에게 러닝 박사는 그만둘 결심을 했다고 거짓말을 하면 러닝 씨는 어떤 기분이 들까요? 매우 언짢은 기분이 들겠죠." “흐음, 그래서 하비는 내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고 잠자코 있었군.“ 러닝 박사가 감탄했다. “하비는 천재입니다. 무엇이든 알고 있습니다. 자기의 조립 방법 중에서 어디가 잘못되어 있는지도 똑똑히 알고 있습니다.“ 캘빈 박사는 하비를 향해 물었다. “당신은 자신의 조립 방법이 잘못되었다는 걸 알고 있나요?“ "예.“ 그럼, 어느 부분이 잘못된 것인지 일러 주셔요." 그러나 하비는 머리를 숙인 채 대답이 없다. "왜 잠자코 있는 거지?“ “대답할 수가 없습니다. 러닝 박사도 기사장도, 나 같은 로봇 따위한테서 배우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런 일은 없어." 러닝 박사가 말했다. “거짓말을 해도 소용없습니다. 내게는 당신의 마음속이 환하게 보입니다. 내가 가르쳐 드리거나 하면 당신 마음이 상할 겁니다.“ 캘빈 박사는 잠시 동안 생각에 잠겨 있었다. 잠시 후 박사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박사는 하비의 어깨에 손을 얹고 빨간 눈을 뚫어지게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주문이라도 외듯이 중얼중얼 지껄이기 시작했다. 박사는 도대체 무엇을 할 작정일까? “하비, 당신은 알고 있으면서도 가르쳐 주지 않는군요. 그렇게 되면 러닝 박사의 마음이 상할 거야.” "예!“ “그렇지만 만일 당신이 가르쳐 주면 역시 마음은 상할 거야." "예, 예!“ 하비는 박사의 손을 뿌리치고 슬슬 뒤로 물러섰다. “그러니까 가르쳐 주어서는 안 되지.가르쳐 주면 러닝 박사의 마음이 상하니까. 그렇지만 가르쳐 주지 않으면 러닝 박사의 마음이 상하지. 그러니까 가르쳐 주지 않으면 안 된다.“ "예, 예, 예!“ 하비는 비틀거렸다. 가슴속에서 부릉부릉 하는 소리가 더 요란하게 들렸다. 그러나 박사는 똑같은 말을 서서히 반복했다. "그렇지만 가르쳐 주면 러닝 씨의 마음을 상하게 한다. 그러니까 가르쳐 주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가르쳐주지 않으면 러닝 씨의 마음은 상한다. 그러니까 가르쳐 주어야 -.“ "아아, 그만, 그만두셔요!“ 하비는 괴로운 듯이 소리쳤다. 부릉부릉, 부릉부릉. "그렇지만 당신이 가르쳐 주면 상처를 입어요. 그러니까 가르쳐 주면 안 돼요. 하지만-." 별안간 탕 하고 피아노 줄이 퉁겨지는 것 같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세 사람은 저도 모르게 귀를 막았다. 정신을 차려 보니, 하비가 바닥 위에 쓰러져 있었다. "죽었다!“ 러닝 박사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아뇨, 로봇은 죽지 않습니다. 전자 두뇌가 고장난 것뿐이어요. 가르쳐 주느냐, 주지 않느냐 하는 두 가지 문제에 걸려서 망가졌어요." 캘빈 박사가 조용히 말했다. "당신은 일부러 고장을 냈군?" "예, 그렇습니다. 로봇이 인간의 마음속을 알아보았자 아무런 소용도 없습니다. 오히려 인간의 마음을 어지럽혀 재난을 불러일으킬 뿐입니다.“ 러닝 박사도 기사장도 얼굴이 붉어졌다. 서로 추잡한 싸움을 한 것이 부끄러웠던 것이다. 캘빈 박사는 무릎을 꿇고 하비의 얼굴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불쌍한 하비. 얼마나 괴로웠어? 이번엔 정상적인 로봇으로 다시 태어나도록 해요." 그 때 문이 요란스럽게 열리며 아슈 기사가 뛰어들어왔다. "마침내 발견했습니다.“ 아슈 기사는 숨을 헐떡이며, "5만 3천 6백 85번째 조립이 잘못되어 있었습니다. 저의 잘못이었습니다. 면목없습니다.“ "잘됐어!“ 세 사람은 이구 동성으로 소리쳤다. 그리고 서로 손을 잡으며 기뻐했다. 어느 얼굴도 지금까지의 고생을 모두 잊은 듯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전자 두뇌 머신 X   아이작 아시모프 지음 정성환 옮김/ 김완기 그림   머신 X를 타도하라!   "별일 없었나?“ 바이어리 지구 대통령은 대통령 실에 들어오자 곧 비서관 로봇에게 물었다. "아아무 것도 다른 일은 어없었습니다.“ 비서관 로봇은 이상하게 억양을 붙여 대답했다. 20년 동안, 매일 아침 똑같은 대답만 되풀이하다 보니 이렇게 되어 버린 것이다. 대통령은 책상 앞에 앉았다. 책상 위에는 번쩍번쩍 빛나는 네 개의 스위치가 나란히 있었다. 이것은 비상 전화의 스위치로, 이것을 누르면 네 개의 지구 지구(Earth Section)의 구장실로 연결된다. 그러나 20년 동안 한 번도 써 본 일이 없었다. 대통령은 파이프에 불을 붙이고 맛있게 빨았다. '오늘 점심은 무엇을 먹을까?' 대통령은 태평스럽게 생각했다. 지구는 평화로와 아무런 분쟁도 없었다. 그러니까 대통령은 한가했다. '이것도 다 머신 X의 덕택이다.' 대통령은 매일 아침 머신 X에게 감사했다. 머신 X는 훌륭한 로봇이다. 머신 X가 풀지 못하는 없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든, 반드시 인간이 행복할 수 있도록 생각하여 대답을 내놓는다. 그러니까 머신 X가 하라는 대로만 하면, 인간은 누구나 반드시 행복하게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온 세계 사람들은 무슨 일이든, 머신 X의 말대로 했다. 덕택으로 지구는 완전히 풍요해졌다. 20세기 무렵, 먹을 것이 없어서 고생하던 지방에도 지금은 남아돌 만큼 먹을 것이 풍부했다. 매년 태풍으로 피해를 입던 지방에서는 태풍을 쫓아 버리는 장치가 이루어졌다. 일거리가 없어서 가난하게 사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게 되었다. 똑같은 인간끼리 피를 흘리는 전쟁도 없어졌다. 대통령은 책상 위의 전송 신문을 펼쳤다. 새빨간 오렌지의 사진이 맨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사하라 사막에서 처음으로 수확한 오렌지였다. 사하라는 옛날에는 풀 한 포기 없는 사막이었으나 지금은 오렌지나무가 무성해 있다. '으음, 맛있어 보이는 오렌지군.' 대통령은 음식에 욕심이 많아, 먹는 거라면 사족을 못쓴다. 당장이라도 군침이 흐를 것 같은 얼굴이었다. 그러나 다음 페이지로 넘긴 순간, 대통령은 얼굴을 찡그렸다.   머신 X를 타도하라! 머신 X는 인간의 적이다! 인간은 머신 X의 노예가 아니다!   커다란 글씨가 페이지를 가득 메우고 있다. 그것은 인간동맹의 광고였다. 인간 동맹이란 머신 X를 미워하는 사람들의 모임이었다. 온 세계 사람들이 머신 X의 말만 듣는 것이 마음에 안 드는 것이다.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이 동지를 모아서 머신 X를 타도할 음모를 꾸미고 있는 모양이다. '얼마나 바보 같은 사람들인가! 지구가 이렇게 평화스러운 것은 모두 머신 X의 덕택인데.' 대통령은 창가로 다가가서 밖을 내다보았다. 무성한 숲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군데군데, 몇천 미터나 되는 하얀 빌딩이 하늘 높이 솟아 있다. 은색의 에어 카가 잠자리 모양으로 날쌔게 푸른 하늘을 날고 있다. 이것이 지구의 수도였다. 뺨이 빨갛게 상기된 아이들이 푸른 숲을 뛰어다니고 있다. 20세기 무렵, 이 부근은 회색 빛 빌딩이 꽉 차 있었다. 어두운 빌딩 골짜기에서 사람들은 창백한 얼굴을 하고 살고 있었다. 스모그 현상으로 하늘은 언제나 검게 흐려 있었다. 무서운 자동차가 땅 위를 달리고 있어 사람들은 언제나 조마조마하며 길을 걸어야 했다. '거기에 비하면 우리들은 얼마나 행복한가! 이것도 다 머신 X의 덕택이다.' 대통령이 가슴을 폈을 때 별안간, "삑삑삑." 하고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다. 대통령은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래졌다. 책상 위의 비상 전화의 부저가 울리고 있는 것이다. '20년 동안 한 번도 울린 일이 없었는데 도대체 무슨 일인가?’ 대통령은 황급히 책상으로 달려왔다. 비서관 로봇은 곧 스위치를 누르고 활발한 목소리로 응답했다. "여기는 지구 대통령실.“ 그러자 벽의 스크린이 밝아지며 검은 얼굴의 사나이가 환하게 나타났다. "여기는 열대 지구의 느고마 구장입니다. 대통령을 시급히 뵙고 싶습니다.“ 뭔가 급한 용건이 있는 모양이다. 대통령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즉시 책상 위의 스위치를 눌렀다. "나, 바이어리요. 무슨 일이죠?“ 대통령은 정중하게 물었다. "아, 대통령 각하.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이상한 일?“ "예, 멕시코 운하의 터널 공사에서 사고가 났습니다.“ "뭐, 사고라고? 그럴 리가 있나!“ 대통령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아니, 정말입니다. 터널이 허물어져 인간이 다섯 명이나 크게 부상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대통령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어쨌든 사고란 20년 동안 일어난 일은 없었던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돼서 터널이 허물어졌나?“ 대통령이 물었다. "터널의 높이를 정하는 계산이 틀려 있었습니다.“ "머신 X가 하라는 대로 했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이상한 일이라고 말씀드린 겁니다.“ 느고마 구장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머신 X도 틀리는 일이 있는 모양이죠." 하고 덧붙였다. 대통령은 그 말을 듣자 얼굴이 빨갛게 되며 소리쳤다. "당치도 않은! 그런 일은 절대로 없어요!“ 느고마 구장은 대통령의 노한 소리에 놀라 급히 스크린에서 사라졌다. 열대 지구는 20세기의 옛날, 아프리카 대륙, 남아메리카 대륙이라고 부르던 지방이다. 정글과 사막뿐이었는데 지금은 거기에 농장과 과수원이 만들어지고, 지구에서도 가장 젊고 활기에 찬 지방이었다. '그것도 모두 머신 X의 덕택이 아닌가. 머신 X가 틀리다니 당치도 않은 소리다. ' 대통령이 혼자서 분개하고 있는데, 또다시 책상의 부저가 울렸다. "여기는 지구 대통령실." 비서관 로봇이 원기 있게 응답했다. 그러자 스크린에 하얀 수염의 사나이가 나타났다. "여기는 아시아 지구의 링 구장입니다. 대통령을 급히 뵙고 싶습니다.“ 링 구장은 똑똑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대통령은 갑자기 불안해졌다. "바이어리입니다. 무슨 일이오?“ "실은 우리 지역에 사고가 일어나서 보고 드립니다.“ 링 구장은 침착하게 말했다. "사고라고요?“ "예, 농장 하나가 망해서 많은 사람이 직업을 잃었습니다.“ 대통령은 깜짝 놀랐다. 그런 일은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왜 망했습니까?“ "예, 근처에 새로운 농장이 생겨서, 그 농장에서 만든 효모가 안 팔리게 된 겁니다.“ "머신 X가 하라는 대로 했겠죠?“ "예, 했습니다. 그러니까 저도 이상해서 보고하는 겁니다.“ 링 구장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머신 X와 같이 훌륭한 로봇도 잘못되는 수가 있군요.“ 하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대통령은 얼굴이 뻘겋게 되며 소리쳤다. "그런 일은 절대로 없어요!“ 링 구장은 기겁을 해서 목을 움츠렸다. 그리고는 공손히 절한 다음 스크린에서 사라졌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20년 동안 아무 일 없이 지내 왔는데 하루에 두 건이나 사고가 나다니.' 대통령은 우울한 듯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그리고 책상 앞 벽에 붙여 놓은 세계 지도를 바라보았다. 아시아 지구에는 옛날에 중국, 한국, 일본, 인디아, 인도네시아, 미얀마 등의 나라가 있었다. 먹을 것이 모자라서 사람들이 배를 굶주리는 나라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효모를 만드는 농장이 여기저기 만들어져, 먹을 것은 부족하지 않았다. 여러 가지 효모에서 비프스테이크도, 아이스크림도, 맛있는 건 무엇이든 다 만들 수 있다. 그러니까 아시아 지구 사람들은 옛날처럼 소를 키우거나 밭을 갈지 않아도 되었다. '일전에 먹은 그 아이스크림은 정말 맛이 있었지.' 대통령은 순간 근심을 잊었다. 그 때, 또 책상 위의 부저가 울렸다. 그러나 대통령은 이제 놀라지 않았다. '두 번 있는 일은 세 번도 있다는 옛말이 있었지.' 대통령은 마음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여기는 지구 대통령실.“ 비서관 로봇이 응답하자 이번엔 푸른 눈의 여성 한 사람이 스크린에 비쳤다. "여기는 유런 지구입니다. 대통령을 급히 만나 뵙고 싶습니다.“ ‘아이고, 이번엔 또 무슨 사고일까?' 대통령은 지겹다는 듯이 책상 위의 스위치를 눌렀다. "예, 바이어리입니다. 무슨 일입니까?“ “안녕하셔요, 대통령 각하. 실은 난처한 일이 생겼습니다.“ "난처한 일이라니?“ "예, 알마덴 수은 광산의 지배인이 그만두었어요." "왜 그만두었습니까?“ "일이 제대로 안 되니까 면직 당한 겁니다.“ "머신 X와 의논했습니까?“ "예, 물론 했죠. 이상한 일도 있군요. 그 머신 X도 틀리는 일이 있는 것일까요?“ 구장은 대통령의 얼굴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그러나 대통령은 잠자코 있었다. ‘어쩌면 머신 X가 고장났는지도 모르겠다. ' 대통령은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만일 머신 X가 고장이라면?' 대통령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만일 머신 X가 고장났다면, 지구는 틀림없이 또 20세기의 옛날로 되돌아갈 것이다. 식량이 부족 되고 실업자가 거리에 넘칠 것이다. 지구의 어디선가 또다시 추악한 싸움이 일어날 것이다. 전쟁이 일어날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이번에야말로 지구는 파멸이다...... 거기까지 생각하자 대통령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건 무슨 수를 쓰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렇지, 캘빈 박사에게 의논해 보자.' 대통령은 즉시 캘빈 박사를 불러냈다.   음 모   캘빈 박사는 세계 제일의 로봇 심리학자이다. 로봇의 일이라면 자기 자식의 일처럼 소상히 알고 있다. 로봇의 신이라고 모두가 일컬을 정도다. 그러니까 대통령도 그녀 앞에선 꼼짝 못 한다. 머리털은 하얗게 세고 허리도 약간 굽었지만 아직 건강해서 US 로봇 회사의 연구소에 다니고 있다. "이 할멈을 일부러 불러내는 걸 보니, 어지간히 큰일인 모양이군요.“ 캘빈 박사는 스스럼없이 말했다. "물론입니다. 제발 놀라지 마십시오. 머신 X가 고장이 난 것 같소." 캘빈 박사는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무슨 잠꼬대 같은 고리를 하는 거요? 머신 X는 절대로 고장나는 일이 없어요. 만일 어딘가가 고장이 나도 머신 X는 자신이 즉시 고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실지로 이상한 일이 일어났어요." 대통령은 자세하게 설명했다. "아무튼 세 개의 지역에서 한꺼번에 사고가 일어났으니까요. 머신 X가 고장난 것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어요.“ 대통령은 캘빈 박사의 얼굴을 똑바로 보았다. 박사는 눈을 감고 있었으나 잠시 후 이렇게 말했다. "여기에는 뭔가 깊은 까닭이 있는 것 같군요." "머신 X가 고장난 거죠?" 대통령은 끈질기게 고장을 주장한다. "아뇨, 머신 X는 절대로 고장이 나지 않도록 만들어 졌습니다.“ 캘빈 박사는 딱 잘라 말했다. 그리고 생각에 잠겨, "이 사고는 머신 X가 일부러 한 짓이라고 생각이 드는군요.“ "일부러 라고요? 당치도 않은! 머신 X는 로봇입니다. 로봇이 인간을 위험에 빠뜨릴 리가 없습니다. 로봇 법 제 1조에는-." 캘빈 박사는 또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기가 막히는군. 당신한테서 로봇 법을 교육받을 줄은 생각도 못 했어요." "아참, 박사는 로봇 심리학자였죠. 로봇 법이라면 누구보다도 잘 아실 테니까." 대통령은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머신 X가 어째서 일부러 이런 짓을 했을까요? 그렇지, 그렇지, 사고를 일으킨 사람의 신상을 조사해 보면 뭔가 알 수 있을지도 몰라요." 캘빈 박사는 대통령에게 부탁했다. "예, 알겠습니다.“ 대통령은 즉시 비서관 로봇에게 조사하도록 명령했다. 비서관 로봇은 곧 방을 나갔다. 캘빈 박사는 눈을 감고 뭔가를 깊이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10분도 채 되기 전에 비서관 로봇이 돌아왔다. 그리고 한 개의 테이프를 대통령에게 내밀었다. 대통령은 테이프를 재빨리 훑어보았다. 그리고 얼굴빛이 변했다. "이건 큰일입니다, 박사님. 사고를 일으킨 세 사람은 모두 인간 동맹의 임원입니다.“ "역시 그랬군요.“ 캘빈 박사는 고개를 무겁게 끄덕였다. 대통령은 박사가 침착하게 앉아 있자 초조했다. 그리고 책상 위의 신문을 가리켰다. "이걸 보십시오, 박사님. 인간 동맹의 인간들은 머신 X를 미워하고 있습니다. 이 세 사람은 틀림없이 머신 X가 지시한 대로 하지 않은 게 분명합니다. 그러니까 사고가 일어난 겁니다.“ 박사는 눈을 뜨고 신문을 힐끔 보았으나 곧 다시 눈을 감았다. 대통령은 안절부절못했다. "박사님, 이건 인간 동맹의 음모가 분명합니다. 자기들이 제멋대로 사고를 일으켜 놓고 그것을 머신 X의 탓으로 몰 작정입니다. 그렇게 해서 머신 X를 쫓아내려는 음모지요. 이거 보세요, 박사님. 듣고 계십니까?“ 박사는 마치 자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사실은 머릿속에서 여러 가지 생각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던 것이다. "이대로 놓아두면 무슨 짓을 할는지 모르겠어요. 곧 인간 동맹의 인간들이 아무 짓도 못 하도록 법률을 만들지 않으면 큰일나겠어." 대통령은 혼자서 중얼거리고 있었다. "좀 조용히 해요. 뭔가 알 것 같으니까." 캘빈 박사가 불쑥 그렇게 말했다. 대통령은 할 수 없이 입을 다물었다. 박사는 눈을 뜨고 일어서자, 방안을 왔다 갔다 하기 시작했다. 그 때, 또 책상 위의 부저가 울렸다. "여기는 지구 대통령실." 비서관 로봇이 곧 응답했다. '여기서 더 이상한 일이 생기면 못 견디겠는데.' 대통령은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벽 스크린에 금발의 사나이가 나타났다. "여기는 미국 지역의 마켄지 구장입니다. 대통령을 급히 뵙고 싶소." 대통령은 스위치를 넣었다. "바이어리입니다. 무슨 일입니까?“ "인간 동맹의 데모대가 이제 곧 구장실로 몰려온다고 합니다. 급히 응원을 부탁합니다.“ 대통령은 캘빈 박사 쪽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것 보세요, 역시 인간 동맹입니다. 이대로 내버려 두었다간 머지 않아 정말로 머신 X를 파괴할 겁니다.“ 캘빈 박사는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두 눈이 반짝 빛났다. "그럴 필요는 없어요." 캘빈 박사는 단호하게 말했다. "어째서 입니까?“ 대통령은 당장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얼굴이었다. "그런 소동은 곧 가라앉을 겁니다. 걱정하지 말고 머신 X에게 맡겨 둡시다. 머신 X가 모든 것을 잘 처리해 줄 겁니다.“ "머신 X가?“ "예, 그래요- 내 말을 잘 들어보십시오." 하며 캘빈 박사는 의자에 앉았다. "머신 X는 로봇입니다. 로봇은 인간이 행복하게 되는 일을 첫째로 생각합니다.“ "그런 건 나도 알고 있어요. 그보다도 인간 동맹의 데모대가 -.“ "좀 잠자코 계셔요." 박사의 핀잔을 받자 대통령은 그만 움찔하며 입을 다물었다. "아시겠어요, 대통령 각하? 만일 머신 X가 없어지면 인간은 어떻게 될 거라고 생각하세요?“ "그야 물론, 인간은 지금처럼 행복하지는 못하겠죠. 틀림없이 또다시 전쟁이 일어나고 불행하게 될 겁니다.“ "그렇습니다. 머신 X는 인간 동맹이 자기를 파괴하려는 것을 알고, 이건 큰일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흐음, 그래서요?“ "그래서 머신 X는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해 그렇게 한 겁니다.“ "그렇게 하다뇨?“ "인간 동맹의 임원들이 사고를 일으키도록 꾸민 겁니다. 그렇게 하면 임원들은 직업을 잃고 활약을 못 하게 되겠죠? 그러다가 인간 동맹도 사라질 것이다. 하고 머신 X는 생각한 거여요." 캘빈 박사는 조용히 대통령의 얼굴을 응시했다. "흐음, 만일 그게 사실이라면 머신 X는 정말 굉장한 로봇인데.“ 대통령은 신음하듯이 말했다. "정말인지 아닌지 이제부터 머신 X한테 가서 물어봅시다.“ 캘빈 박사는 그렇게 말하자 재빨리 일어섰다.   또다시 평화가   머신 X의 방은 정확히 지구 연방 정부 건물의 한복판에 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하얀 벽에 빨간 램프 한 개가 오도카니 켜져 있었다. 로봇 같은 건 없잖아, 하고 누구나 처음에는 생각하지만, 사실은 이 방 전체가 머신 X인 것이다. 머신 X는 생각하는 것이 일이니까 보통 로봇처럼 손과 발이 필요 없다. 캘빈 박사는 안에 들어가자 대통령을 뒤돌아보았다. "자, 물어 보셔요." 대통령이 빨간 램프 앞에 서서 커다란 소리로 물었다. "머신 X, 당신은 인간 동맹을 알고 있습니까?“ "알고 있습니다.“ 어디선가 잘 울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인간 동맹이 당신을 파괴하려고 음모를 꾸미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까?“ "알고 있었습니다.“ 대통령은 꿀꺽 침을 삼켰다. "그럼, 당신은 인간 동맹의 임원을 내쫓기 위해서 일부러 사고를 일으킨 겁니까?" 대통령은 머신 X가 예, 하고 대답하느냐, 아뇨, 하고 대답하느냐, 숨을 죽이고 기다렸다. 그러나 머신 X는 일언반구 아무런 대꾸도 없었다. 빨간 램프가 깜박깜박 깜박였을 뿐이다. 대통령은 캘빈 박사를 돌아보았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머신 X는 대통령의 질문에 대답할 수가 없다는 거여요.“ 캘빈 박사는 갑자기 엄숙한 얼굴로 머신 X에게 물어 보았다. "머신 X, 당신은 대통령의 마음이 상하는 것을 염려하고 있는 거죠?" "그렇습니다.“ 이번엔 머신 X가 즉시 대답했다. "그렇지만 꼭 대답해 주어야 하겠어요. 대통령은 인간동맹의 일을 매우 걱정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당신이 모든 일을 잘 처리하고 있다는 걸 알려 주고 싶어요." 캘빈 박사는 열심히 말했다. "그럼 대답하겠습니다. 나는 인간 동맹의 임원을 내쫓기 위해서 일부러 사고가 일어나도록 한 겁니다.“ 머신 X가 말했다. "흐음, 그럼 역시 박사님이 말씀하신 대로군." 대통령은 머리를 감쌌다. 자기가 아무 것도 모르고 떠들어 댄 것이 부끄러웠던 것이다. 캘빈 박사는 위로하듯이 말했다. "아무 것도 부끄러워하실 건 없어요. 그보다도 이 일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도록 하세요." "어째서입니까?“ "인간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죠. 머신 X와 같은 로봇이 이것저것 알아차려서 인간을 이끌어 간다는 것을 알면, 인간은 틀림없이 자신을 잃게 될 겁니다. 조금 전에 머신 X가 당신의 질문에 대답을 못한 것도 그것을 염려했기 때문입니다." "으음.“ 대통령은 감탄한 듯이 신음 소리를 냈다. "그것뿐이 아닙니다. 머신 X가 일부러 사고를 일으키게 한 데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습니다.“ "또 하나의?“ 대통령은 눈을 크게 떴다. "구장들은 이번 사고가 머신 X의 잘못이라고 말하고 있었죠?“ "예, 정말 괘씸한 말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대통령은 화난 듯이 말했다. "아뇨, 그것으로 만족한 거여요. 머신 X 따위는 보통의 로봇이잖아, 잘못되는 일도 있을 거야, 하고 모두가 생각하게 되면 그것으로 된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모두들 머신 X는 인간의 적이다. 인간은 머신 X의 노예가 아니다. 하고 떠들어대는 일도 없어지겠죠?" "흐음, 과연 그렇군. 하지만 진짜로---” "로봇과 60년이나 함께 살아 온 내가 말하는 겁니다. 틀림없어요.“ 캘빈 박사는 단호하게 말했다. "이 얼마나 무서운 로봇이냐.“ 대통령은 빨간 램프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아뇨, 훌륭한 로봇입니다. 우리들 인간을 영원히 행복하게 만들어 주지 않습니까?“ 캘빈 박사는 주름 투성이의 얼굴을 밝게 폈다. “그러면 대통령 같은 건 아무나 해도 되는 셈이군요." 대통령은 약간 얼굴을 찡그렸다.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났다. 캘빈 박사가 말한 대로 인간 동맹의 소란은 가라앉았다. 그리고 인간 동맹도 임원이 모두 일자리를 잃고 활동하지 못하게 되자 자연 해산해 버렸다. 이제 아무도 머신 X를 내쫓으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대통령은 또 한가해졌다. "뭐 별다른 일은 없나?“ 오늘 아침도 대통령은 비서관 로봇에게 물었다. “아아무것도 다른 일은 어없습니다.“ 비서관 로봇은 여전히 길게 억양을 붙여 대답했다. “그럼 오늘은 사하라의 오렌지 밭이라도 보러 갈까? 그 오렌지를 빨리 먹어 보고 싶은데." 지구의 일은 머신 X에게 맡겨 놓으면 걱정 없다고 대통령은 이제 완전히 안심하고 있는 것이었다.     작품 해설   여러분은 로봇을 본 일이 있습니까? 실물을 보지 못했다 하더라도 사진이나 영화에서는 보았을 줄 압니다. 로봇은 사람이 아닌 기계로서 사람이 할 일을, 더구나 사람이 해 내기에는 힘이 들고 시간이 걸리는 일도 척척 해냅니다. 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이러한 기계가 생겨서 우리들이 하기 힘드는 일을 해 주게 되고, 그래서 사람은 적은 노력으로 편히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로봇은 그 사용 목적에 따라 특별한 기계 장치를 하여 만들어집니다. 요즘 가장 널리 쓰이고 있는 기계로 전자 계산기란 것이 있습니다. 어렵고 복잡한 계산을 이 기계는 당장 정확하게 답을 내 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판이나 필산으로 하기 힘든 복잡한 계산을, 간단히 전자 계산기로서 해 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기계의 힘이 수학적인 계산에 그치지 않고 여러 방면의 일을 해낼 수 있게 됨으로써 로봇이라는 것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집안에서 청소를 하는 일, 부엌에서 음식을 장만하고 설거지를 하는 일, 어려운 공부로서 해낼 수 있는 학문의 문제까지도 해내는 등, 로봇은 참으로 사람을 대신해서 많은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사람은 편한 생활을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사람이 온전히 기계에게 일을 다 맡겨 놓으면 그 때에는 생활에 좋지 않은 일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사람은 만들어 낸 여러 가지 기계로 편리한 생활을 해 오지만, 한편 그 기계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수도 있습니다. 그 많은 자동차 때문에 죽고 다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기계 때문에 생기는 공기의 오염으로 우리들의 건강에 미치는 해가 또 얼마나 큽니까? 이 밖에도 기계에게 일을 맡김으로써 사람의 생활이 편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차츰 불건강한 몸이 되는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로봇이 생겨서 사람들의 생활을 윤택하게 해주는 일에도 어떤 한계가 있어야 하고, 기계만으로 살아가는 데서 받는 불행도 알아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로봇과 인간과의 관계에 대해서 이 책의 이야기들은 적지 않은 깨우침을 주고 있습니다. 이 책의 이야기는 미래의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의 20세기를 옛날로 하는, 미래의 일을 여기서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20 세기의 지구 사람들의 생활이 얼마나 괴로웠던가를, 식량 부족과 전쟁 등으로 얼마나 비참했던가를 생각하는 미래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들이 가진 로봇. 그들이 만든 로봇. 그것은 미래 사람들을 위해, 인간의 생활을 행복하게 해 주기 위해서 노력하고 일합니다. 이렇게 훌륭한 로봇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인간의 지혜와 인간의 바른 정신이 필요한 것입니다. 과학의 힘이 첫째로 필요합니다. 전자 과학의 발달은 지금 이미 오롮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꼭 필요한 것은 인간의 착하고 바른 정신입니다. 이것 없이 만들어진 로봇은 자칫하면 인간에게 화를 입히는 기계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 나오는 로봇들을 보면 로비, 스피디, 하비, 머신X...... 그 모두가 사람을 위하는 일에 열심입니다. 사람에게 해가 미치지 않게 하려고 힘쓰고, 만일에라도 사람이 위험한 지경에 이르면 자기 몸의 위험을 무릅쓰고 사람을 구하려 듭니다. 그것은 여기 나오는 로봇들이 누구나 로봇법의 세 가지 규칙을 절대적으로 지키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곧 인간의 착하고 바른 마음에서 만든 로봇이었기 때문입니다.   로봇법의 3원칙   첫째, 로봇은 사람을 위험한 지경에 있게 해서는 안 된다. 둘째, 로봇은 사람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세째, 로봇은 자기 몸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세 가지 규칙은 로봇의 전자 두뇌의 기억 장치 속에 새겨져 있습니다. 로봇이 만일 이 규칙을 어기게 될 경우에는, 전자 두뇌가 부서져 버립니다. 그렇게 되면 그 로봇은 못쓰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 규칙을 생각해 낸 것은 이 책을 쓴 아이작 아시모프입니다. 이 규칙은 요즈음 나오는 로봇의 이야기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사람보다도 뛰어난 지능을 가지고 있고 힘을 가지고 있는 로봇에게 이 규칙은 절대로 없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만약 이런 규칙이 없게 만들어진 로봇이 있어서, 불시에사람에게 대항하여 덤벼드는 일이 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사람은 그 로봇을 당해내지 못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인간은 자기가 만든 기계 때문에 파멸을 당하고 말 것입니다. 이 3원칙을 내놓기 전에 씌어진 공상 과학 이야기에는 로봇에게 지구가 정복당하는 이야기와, 로봇 때문에 많은 인간이 죽는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 세 가지 규칙이 있는 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첫째 규칙 -- '로봇은 사람을 위험한 지경에 있게 해서는 안 된다'를 지키기 위해, 로봇은 사람에게 뺨 한 대도 때리지 못합니다. 더구나 사람을 죽게 하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것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 규칙을 지키기 위해 로봇들은 엉뚱한 일을 하여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듭니다. 이 책의 이야기들은 로봇이 규칙을 지키기 위해 애쓰다가 일으키는 갖가지 사건들입니다.   작자 아시모프는 미국의 유명한 SF 작가입니다. 대학에서는 생물학을 공부했고, 지금은 보스턴 대학에서 생물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는 소설뿐 아니라, 훌륭한 과학 해설의 책도 많이 쓰고 있습니다.     로봇 머신X 아이디어회관 과학 문고 174p. 19cm (SF 세계명작 7)   인 쇄      1975년 5월 1일 발 행      1975년 5월 5일 삼 판      1978년 7월 5일 역 자      이 원 수 오프셋     장원 정판사 인 쇄      일 신 사 제 본      영지 제책사 발행인     박 훈 발행처     아이디어회관    
2    도망친 로봇 -델 레이 댓글:  조회:41  추천:0  2021-03-19
도망친 로봇 델 레이   지구에서의 뉴스················· 3 아버지와 아들의 다툼·············· 11 팔려간 로봇··················· 18 빼앗긴 바지··················· 26 도망친 로봇··················· 34 사막의 동굴··················· 42 가나폴리스를 향하여··············· 47 화물 우주선 드라베라호············· 56 화성에로의 여행················· 63 밀항 소년···················· 72 선장의 노여움·················· 78 체포된 폴···················· 87 화성 도시···················· 96 모래 폭풍우·················· 104 푸른 지구··················· 112 다시 만나다·················· 120   지구에서의 뉴스   오늘은 아주 기쁜 날이다. 폴의 아버지가 지구에서 우주선으로 돌아온다. 나는 폴을 따라 아침부터 우주 공항으로 갔다. 여기는 목성의 제 3위성 가니메데-. 폴의 아버지 로저 심프슨은 가니메데의 총독이다. 집은 가니메데에서 가장 큰 도시, 산발레이에 있다. 식구들은 아버지, 어머니 16세의 소년 폴과 9세의 누이동생 제인. 그리고 나는 폴을 경호하고 장난 상대를 하는 가정용 로봇이다. 내 몸통은 튼튼한 강철로 만들어져 있다. 얼굴에는 큰 눈이 하나, 머리 위에는 안테나가 있다. 특히 내 자랑은 사람처럼 바지를 입고 있다는 점이다. 나의 정식 이름은 'Q=5=7=356'이라는 번호인데, 보통 '렉스'라는 사람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렉스, 조금 천천히 걸어라." 폴은 마을에서 공항까지 가는 동안, 몇 번이나 쉬었다. 기압복(氣壓服)이 무거운 모양이다. 가니메데는 공기가 희박하다. 그러므로 사람은 밖에 나갈 때, 공기가 들어 있는 기압복을 입지 않으면 죽어버린다. 그러나 로봇인 나는 공기가 없어도 아무렇지 않다. "안아 줄까요?"   하고 내가 말하자, 폴은 화를 냈다. "난 이제 16살이야. 8킬로 정도의 길은 내 힘으로 걸어." 이 대답을 듣고 나는 기뻤다. 폴은 자기의 일은 자기가 할 수 있을 만큼 크게 자랐으므로-. 내가 폴을 처음 만난 것은 지금으로부터 13년 전, 폴이 아직 3살밖에 되지 않았을 때였다. 폴의 아버지가 가니메데 총독이 되어 지구에서 산발레이로 올 때, 폴을 위하여 나를 샀던 것이다. 그 때부터 나는 계속 폴과 함께 살아 왔다. 폴은 해마다 성큼성큼 커 갔어도 나는 달라지지 않는다. "너는 왜 조금도 크지 않고 그대로니?" 하고 폴은 곧잘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다. 나는 폴을 돌보아줄 뿐만이 아니라, 어릴 때는 가정교사의 역할도 했다. 폴에게 옛날 이야기 책을 읽어 준 일도 있다. 자랑은 아니지만, 나는 고급 가정용 로봇이다. 가니메데의 농장이나 산에서 일하는 노동용 로봇과는 다르다. 전자 두뇌의 덕분으로 사람과 말도 할 수 있으며, 글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영리한 로봇이라도 역시 사람에 따를 수는 없다. 요즈음에는 폴이 나보다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자기가 공부한 것을 나에게 여러 가지로 가르쳐도 준다. 우리들이 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마침 우주선이 착륙할 때였다. "봐라, 저기다!" 폴이 상공을 가리켰다. 안개에 쌓인 하늘 한 쪽에 파란 불길이 힘차게 튀어 오르고, 이어서 은빛의 거대한 선체가 그 모습을 나타내었다. 이렇게 말해도 나는 색깔을 모른다. 무엇이든 검거나 흰 색깔로 보인다. 다른 색깔은 폴에게서 배웠던 것이다. "야, 굉장하구나!" 폴은 눈을 빛내면서 우주선의 착륙을 지켜보았다. "나도 언젠가는 아버지처럼 우주선을 타고 지구로 가겠어." 3살 때까지 지구에 있었던 폴은 지구에 대해서 희미하게나마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도 지구의 로봇 제조 공장에서 태어난 모양이지만 전혀 기억이 없다. 그러므로 별로 가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무사히 착륙한 우주선에서, 기압복을 입은 아버지 로저가 맨 먼저 나타났다. "폴, 이쪽이야!" 하고 손을 들고 있는 서류를 흔들면서 외쳤다. "빨리 집으로 가자. 모두에게 알려 줄 뉴스가 있어." "어떤 뉴스, 아버지?" 폴은 아버지에게 매달렸다. "집에 가서 어머니와 함께 듣는 게 좋아요." 아버지는 제트카에 오르며, "너희들도 빨리 타거라." 하고 말했다. "네, 타겠어요." 폴은 힘차게 제트카에 뛰어오른다. 나도 폴의 뒤에 올라탔다. 제트카는 유선형의 오픈카다. 밑바닥은 평평하며, 뒤에 3개의 제트 분사 장치가 달려 있다. 거기서 가스를 내뿜으며, 지면에서 30센티 정도 떠서 굉장히 빠른 속도로 나아간다. 공항에서 마을까지 8킬로의 사막도 눈 깜짝할 사이에 뛰어넘는다. 산발레이의 마을은 플라스틱의 돔으로 완전히 싸여 있다. 돔 안에는 지구와 같은 공기가 넣어져 있다. 그러나 마을에는 그다지 건물이 보이지 않는다. 대부분의 집들이 지하에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었다. 로저와 폴은 큰 아파트의 입구에서 기압복을 벗고, 지하의 방으로 뛰어 내려갔다. "어서 오세요." 어머니와 누이동생 제인이 아버지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아버지의 얼굴은 빨갛고, 몹시 상기되어 있다. 어머니는 걱정스러운 듯, "무슨 일이 있었어요?" 하고 물었다. "우리들은 되돌아가게 됐어. 지구로 돌아간다." 하고 로저는 큰 소리로 외쳤다. 그 순간 모두 말이 없었다. 폴은 눈을 크게 뜨고,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 "아버지, 그게 정말이에요?" "정말이야, 폴. 우리는 지구로 돌아간다." 아버지의 커다란 손이 폴의 어깨를 꽉 쥐었다.   아버지와 아들의 다툼   "언제 여기를 떠납니까?" 어머니는 의자에서 일어섰다. "10일 후." 하며 아버지는 다시 한 번 모두를 둘러보며, 이렇게 말했다. "스타퀸호로 지구로 간다." "뭐, 스타퀸호로? 야, 신난다!" 폴은 자기도 모르게 손뼉을 쳤다. 스타퀸호는 혹성 여행 연맹에서도 가장 큰 최신형의 우주선이다. "안에서 지구의 과일을 먹을 수 있죠. 바나나도 오렌지도……." 제인도 한 마디 거들었다. "어머, 그렇게 먹고 싶은 것이 많니?" 어이가 없다는 듯 어머니가 웃었다. 나도 스타퀸호에 대해서는 그 전부터 폴에게서 들어 알고 있었다. 많은 관광객을 태우고, 금성이며, 화성을 도는 우주선이다. 긴 우주 여행 도중에 손님이 지루하지 않도록, 스포츠나 게임 등의 설비까지 마련되어 있는 호화로운 우주선이다. "굉장하지, 렉스?" 폴은 나의 손을 잡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이제 10일밖에는 여기에 있지 못해. 그 동안에 할 일이 무척 많아. 이리 와라, 렉스." 갑자기 폴은 나를 방에서 끌어내려고 했다. "잠깐만." 아버지가 우리들을 불러 세웠다. "렉스를 버섯 공장에 심부름을 시켜야겠어. 그 동안에 우리들은 앞으로의 일을 의논하자." 이렇게 말하고 나서, 나에게 하얀 봉투를 주었다. "이것을 공장장 카아겐에게 갖다 드려라. 회답은 필요 없어." "네, 알겠습니다." 나는 곧 집을 나와서 공장으로 향했다. 역시 나도 기쁘다. 폴과 함께 훌륭한 우주선을 타고 지구로 돌아가는 것이다. 지구는 어떤 곳일까? 폴의 이야기로 미루어 보면, 가니메데와는 매우 다른 모 양이다. 가니메데의 하루는 100시간인데, 지구의 하루는 겨우 24시간이란다. 더욱이 지구의 밤은 어둡고, 낮 동안은 태양이 비치어 눈부실 만큼 밝은 모양이다. 그 점에서도 좀 다르다. 가니메데에서는 큰 목성이 하늘 가득히 떠서, 언제나 태양의 빛을 반사하고 있으므로 밤도 캄캄해지지는 않는다. 그래서 가니메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시계를 지구의 시간에 맞춰서 생활하고 있다. 밤의 시간이 오면, 밖이 밝아도 모두 침대에 들어간다. 이러한 것들을 생각하는 사이에 나는 벌써 공장에 도착했다. 그러나 공장장은 사무소에 있지 않았다. 나는 한동안 기다리기로 했다. 농장에는 많은 노동 로봇이 일하고 있었다. 농장에서 만든 가니메데 버섯으로 주스를 생산하여 지구로 보낸다. 30분 가량 되었을 때, 겨우 공장장이 나타났다. "심프슨 총독으로부터입니다. 회답은 필요 없습니다." 나는 봉투를 전하고 곧 공장을 나왔다. 붉은 모래 뒤를 나는 크게 발을 떼 놓으며 달렸다. 그래도 마을까지 1시간은 충분히 걸렸다. 지하의 아파트로 들어갔을 때, 방안에서 몹시 다투는 소리가 들려왔다. 폴과 아버지의 목소리였다. 드문 일이다. 아버지는 조용한 사람이어서 절대로 소리 높여 아이들을 나무라지 않는 사람이다. 또 폴도 아버지께 말대꾸를 하는 소년은 아니다. 나는 문 밖에서 귀를 기울였다. "아버지 너무하세요…… 팔아치우다니, 너무해요……." 폴의 흥분한 목소리. "알아듣지 못하는 애구나. 아버지의 말대로 하는 거야." 엄하게 말하는 아버지의 목소리. "싫어, 절대로 싫어요!" 폴의 날카로운 목소리는 나의 귀를 쨍하고 울렸다.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어 궁금했지만, 엿듣는 것은 좋지 않는 일이다. 나는 폴의 방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언제나 폴은 자기가 한 일을 무엇이나 내게 이야기해준다. 이윽고 폴이 방에 돌아왔다. "아니, 너 돌아왔었니?" 이렇게 말했을 뿐, 시무룩한 얼굴로 내 앞을 지나 그대로 침대 있는 데로 갔다. 나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몰라, 말없이 방 한가운데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나에게 무슨 할 말이라도 있어? 그런 곳에 언제까지나 버티고 서서 말야!" 무뚝뚝한 폴의 말이다. 이런 일도 처음이다. "나는 지쳤어. 이제부터 낮잠이나 자겠어." 하고 폴은 침대로 들어갔다. 나는 그저 지켜보고만 있었다. 노동용 로봇은 사용 시간이 끝나면 보통 배터리의 스위치를 끄고 잠재운다. 그렇지 않으면 배터리가 아깝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가정용 로봇이다. 폴은 잠자리에 들 때에도 나의 스위치를 끄지 않고 그대로 둔다. 이윽고 폴은 잠이 들었다. 나는 여전히 서 있었다. 그렇게 폴이 눈을 뜰 때까지 기다렸다. 그러자 나도 차츰 졸음이 왔다. 이 10일 동안 나는 계속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에, 배터리도 거의 없어지고 있다. 몸에서 힘이 빠지며 눈앞이 어두워지고 있다. 그 때이다. 폴이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나의 가슴에 붙어 있는 배터리의 스위치에 손을 내밀었다. 나는 믿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생각하니, 뭐가 뭔지 알 수 없게 되었다.   팔려간 로봇   얼마만큼 잤을까? 나는 폴의 방에서 눈을 떴다. 바로 옆에 폴과 아버지, 또 한 사람 알지 못하는 남자가 희미하게 보인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점점 확실하게 들려왔다. "이 로봇은 지구의 그렌우드 공장에서 만들어진 최고급의 Q=5=7형입니다. 글자도 읽을 수 있고 쓰기도 합니 다. 간단한 수학도 풀며, 노동 로봇이나 기계의 수리도 할 수 있지요……." 상대 쪽의 남자는 농부이다. 농사일로 거칠어진 손이랑 가죽 저고리를 보고서 곧 알 수 있었다. "이 놈은 어떤 말을 할 수 있나요?" 하고 남자는 아버지에게 물었다. 거칠고 차가운 목소리다. "영어만 하지요." 하고 아버지는 이렇게 덧붙였다. "그러나 테이프만 갈아넣으면, 어느 나라의 말도 할 수 있지요. 나는 이 로봇을 아들의 친구로 하기 위해서 샀던 건데, 무엇을 시켜도 하나 나무랄 데가 없어요. 더욱이 성질이 매우 좋습니다." 로봇은 성질이 중요하다. 성질이 나쁜 로봇은 조그마한 일로도 '미치광이 로봇'이 되기 일쑤이고, 미쳐서 물건을 깨뜨리거나 사람을 다치게도 한다. "알겠습니다. 로봇의 운임이 아까워서 팔겠다는 거군요." 하고 농부가 말하자, 아버지는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비싼 운임을 물면서 지구로 운반하는 것보다는, 지구에 가서 다른 로봇을 사는 편이 훨씬 싸게 먹힐 테니까요." "그럼, 이 로봇을 얼마나 팔 생각입니까?" "5천 달러." "그런 좀 비싼데요……." "이건 고급 가정용 로봇입니다. 보통 노동 로봇보다 비싼 것은 당연합니다." "좋습니다. 사지요." 농부는 결심한 모양이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은 나는 모든 것을 확실히 알았다. 그러나 움직이지도, 말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나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렉스, 이 사람이 너의 새로운 주인이 될 헤닝스 씨다. 헤닝스 씨는 가니메데에서 가장 큰 농장의 주인이다." 나는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헤닝스 씨." "안녕, 렉스. 모두가 너에 대해서 머리가 좋은 고급 로봇이라고 칭찬하고 있어." 하고 만족스러운 얼굴로 헤닝스는 나를 보았다. "네, 폴이 모두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러나 네가 배운 것은 그다지 소용이 없을지도 모른다. 나는 너를 농장에서 사용할 작정이니까." 라고 헤닝스는 말했다. "렉스는 노동 로봇의 감독도 할 수 있습니다." 하며 아버지는 나를 위하여 고급적으로 사용해 줄 것을 권했으나, "아니, 농장에는 나의 조수가 둘이나 있어요. 로봇의 감독은 그 둘에게 맡기고 있답니다." 하고 헤닝스는 거절했다. 라고 나는 생각했다. "당신의 아들은 이 로봇을 파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헤닝스는 더욱 다짐하려는 듯 이렇게 물었다. "물론 알고 있지요. 아들과 의논해서 결정했지요." 하고 아버지가 말하자 헤닝스는, "그렇다면 렉스로 하여금 아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게 합시다." 라고 제의했다. 그래서 아버지는 나를 향하여 부드럽게 말했다. "폴은 밖에 제트카에 있을 거야. 작별 인사를 하고 와라." 시키는 대로 나는 밖으로 나왔다. 폴은 제트카 안에 앉아서, 한 걸음 한 걸음 가까이 오는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아버지가 당신에게 작별 인사를 하라고 해서 이렇게……" "렉스, 너는 내가 너를 팔고 싶어했다고 생각하니?" "아니, 이번 일은 아버지의 생각입니다. 할 수 없습니다. 나를 지구에 데리고 가는 데는 많은 돈이 드니까요." "그래, 그러나 나에게서 너를 빼앗다니 정말 너무해!" "아닙니다, 폴. 당신은 컸습니다. 이제 로봇 친구는 필요 없어요." 나는 단념해야 한다. 아무도 원망하고 싶지 않았다. "너는 좋은 놈이야. 너와 같은 훌륭한 로봇에게 농장에 일을 시키다니. 풀을 베게 하거나 버섯을 딸 것을 생각하면 나는 견딜 수가 없어……." "아닙니다. 이번 주인도 상냥한 사람입니다. 당신에게 작별 인사를 하라고 권하기까지 했어요." "나는 너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싶지 않아!" "알아요. 나를 남겨두고 지구로 가는 것을 슬퍼하는 당신의 마음을……." "그러나 너를 두고 가는데도 너는 조금도 슬퍼 보이지 않는다." "나는 로봇이기 때문에 제멋대로는 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하라는 대로 할 뿐입니다." 나는 생각한 그대로 말했다. 그러자 폴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렉스, 여기 타라!" "왜요?" 나는 깜짝 놀랐다. 나는 이미 헤닝스의 로봇이다. 이제부터 헤닝스의 농장으로 가지 않으면 안 된다. "괜찮으니까 올라와라. 잠깐 사막으로 가자." 하면서 폴은 억지로 나를 자리에 앉혔다. 차는 둥둥 떠오르며 놀라운 속력으로 마을을 빠져 나왔다. 폴의 마음을 나는 잘 안다. 폴은 헤어지기 전에, 다시 한 번 나와 함께 사막이 보고 싶은 거다. 사막은 우리들의 즐거운 놀이터였다. 숨바꼭질을 하기도 한…… 가벼운 모래를 휘날리면서 제트카는 달렸다. 폴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도 말하지 않았다. 저 산, 이 골짜기, 캄캄한 동굴……어느 것이나 그리운 것뿐이다. 오늘까지 13년 동안의 일을 나는 하나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 폴은 동굴 앞에서 제트카를 멈추었다. "여기서 나는 길 잃은 아이가 된 일이 있었다." "그래요. 당신은 그 때 6살 2개월이었지요. 정말 그 때는 몹시 찾았어요." 그러면서 우리는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그만 가자. 이젠 이런 곳도 싫어." 일어설 때, 폴의 눈에 반짝 눈물이 빛났다. 다시 제트카는 모래를 날리며 마을로 되돌아왔다. 아파트의 앞에는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제인과 헤닝스네 사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렉스, 이제 떠나도록 하자." 하고 헤닝스는 재촉했다. "여러분, 안녕. 그 동안 많은 신세를 졌습니다." 나는 심프슨 가족에게 인사를 하고, 헤닝스의 제트카에 올라갔다. 제트카는 곧 달리기 시작했다. 마을을 나올 때, 뒤돌아보았더니 아버지, 어머니, 제인 세 사람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러나 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빼앗긴 바지   헤닝스의 농장에서 나의 새로운 생활이 시작되었다. 농장의 감독은 녹색의 몸을 한 화성인이었다. "농장에서 일하는 데 이런 것은 필요 없어." 하면서 화성인은 나의 바지를 벗기고, 방구석으로 집어던졌다. 바지는 가정용 로봇의 표지이다. 그것이 벗겨진 순간부터 나는 노동 로봇의 한 무리가 된 것이다. 일은 농장의 풀을 베어 공장에 운반하는 간단한 것이다. 일이 끝나면 감독은 곧 배터리의 스위치를 끊고, 다음 일이 시작될 때까지 로봇들을 자게 한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이야기할 상대도 없었으며, 책을 읽는 것도 허락되지 않는다. "로봇에게 쓸데없는 일은 시키지 말 것. 배터리가 빨리 닳는다." 하고 헤닝스는 언제나 화성인 감독들에게 엄히 명령했다. 그래도 6대의 노동 로봇은 말없이 일만 했다. 노동 로봇은 처음부터 공장이나 농장용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모두 대형으로 힘도 강하다. 모양은 직사각형의 큰 몸통에다, 긴 강철 손이 2개 붙어 있다. 그 손으로 마구 풀을 베어서는 몸통 속에 가득히 넣어서 운반한다. 그런데 나는 다르다. 나는 가정용 로봇이다. 아주 자질구레한 일을 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손발은 가늘고, 몸통에는 여러 가지 기계가 가득 차 있다. 그러므로 풀을 베는 것이 느리며, 베어놓은 풀도 한 번에 많이 운반하지 못한다. "이 놈은 쓸모가 없는 로봇이야." 감독들은 번갈아 가며 나를 걷어찼다. 다음 날, 나는 헤닝스의 사무실로 찾아갔다. 헤닝스는 적이 놀라며 "아니, 무슨 일이야?" 하고 나를 보았다. "내게 다른 일을 시켜 주십시오…… 말하자면 이 사무소의 청소라든지……." 하며 나는 열심히 부탁했다. "시끄럽다. 나는 너를 농장에서 일을 시키려고 사왔단 말야." "그러나 나는 책을 읽거나 사람과 말할 수도 있습니다." "에이, 말하는 것이 싫다. 특히 로봇과는. 네가 말을 하면 배터리가 빨리 닳아서 그만큼 돈이 든단 말야. 썩 물러가라!" 헤닝스는 무서운 얼굴로 나를 쫓아냈다. "알겠습니다." 나는 얌전히 사무실을 물러 나와, 로봇의 오두막으로 돌아갔다. 오두막에서는 화성인 감독이 로봇들의 배터리를 끄고 있었다. 그 때 나는 갑자기 벗고 있는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로봇이 바지를 벗었다고, 부끄러워하다니, 어리석은 짓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바지는 우리들 가정용 로봇의 자랑이다. 그것을 빼앗긴다는 것은 가정용 로봇의 수치이다.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헤닝스의 농장에서는 좀처럼 행복하게 되기는 틀렸다고 생각했다. 바지뿐만 아니라, 좋아하는 책도 읽지 못한다. 말을 걸어주는 사람도 없었다. 나는 쓸쓸하다. 폴이 없어서 쓸쓸하다. 폴은 나를 버렸다. 아니, 그렇지는 않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폴은 나를 버린 것이 아니다. 나는 심프슨 일가와 함께 지구에는 돌아갈 수가 없다. 나는 어디까지나 로봇이다. 이따금 사람과 같은 기분이 되는 일은 있어도 사람은 아니다. 로봇은 사람의 손으로 사람에게 서비스를 하도록 만들어지고, 사람의 손에 의해 마음대로 부서진다. 본디부터 사람을 원망할 권리 같은 것은 없다. 그러나 나는 쓸쓸하다. 폴이 없어서 쓸쓸하다. 이렇게 생각한 순간, 화성인의 손이 나의 몸에 닿으면서 가슴의 상자에 있는 배터리의 스위치를 껐다. 그리하여 나는 눈앞이 캄캄해지고, 아무 것도 모르게 되었다. 다음날도 폴의 일을 생각하니 쓸쓸했다. 그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쓸쓸했다. 나는 일을 하면서 폴과 함께 지내던 즐거운 날들의 추억에 잠기곤 했다. 사막의 동굴로 가서 하루종일 우주의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던 일, 폴의 제트카로 넓은 땅을 횡단하던 일, 그 때 함께 간 제인이 기뻐서 와와 떠들었기 때문에, 나는 제인이 차에서 떨어지지 않게 잡고 있지 않으면 안되었다. 폴과 지낸 오랜 세월 동안, 나는 폴의 성장을 지켜보았고, 폴이 말하고 싶은지 조용히 있고 싶어하는지 그 기분까지도 알 정도로 되어 있었다. 폴이 없어서 쓸쓸하다. 폴의 일을 생각하고 있는 사이에 1주일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 버렸다. 그 날, 나는 일에 대한 보고를 하기 위하여 화성인의 감독에게로 갔다. 감독은 라디오를 듣고 있었다.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나의 귀에 똑똑히 들렸다. "그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광경입니다. 우주선 스타퀸호는 지금 하늘에서 우주 공항을 향하여 내리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훌륭한 행성간 우주선이 목성의 제3위성 가니메데를 방문한 것은 처음 있는 일입니다. 붉고 은빛으로 빛나는 선체는 가니메데의 사람들에게, 지구에 돌아갈 날의 꿈을 안겨 줄 것입니다. 이 우주선으로 지구에 돌아가는 사람들을 우리들은 부러워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 사람들을 싣고 스타퀸호는 내일 공항을 출발하여, 지구의 푸른 언덕을 향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감독은 내가 간 것을 알아차렸다. "너 뭐하고 있어?" "일에 대해 보고하러 왔습니다." 하고 나는 로봇들의 일의 진행에 대해서 보고를 했다. 감독은 보고만을 듣고는 귀찮은 듯 나를 내쫓아버린다. 나는 로봇의 오두막으로 향하면서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울리고 있음을 느꼈다. 나는 농장에서 도망칠 결심을 하고 있었다.   도망친 로봇   다음날 아침, 나의 가슴에는 새로운 배터리가 넣어졌다. "너는 동쪽 농장으로 가라!" 하며 감독은 나를 발로 찼다. 다행히 동쪽 농장에는 다른 로봇이 아직 오지 않고 있었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고, 몰래 농장을 빠져 나왔다. 나는 뛰었다. 전속력으로 뛰었다. 나는 시속 30킬로의 속력으로, 배터리가 없어질 때까지 계속 달릴 수 있었다. 뒤돌아보니, 이미 농장은 거친 사막의 저쪽에 까마득히 보일 뿐이었다. 마음이 놓이는 동시에 나는 슬퍼졌다. 헤닝스는 틀림없이 나의 전자 두뇌가 고장을 일으켜, 농장에서 도망쳤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하여 새로운 가니메데 총독에게 보고할 것이다. 총독은 나를 '미치광이 로봇'으로 지명 수배를 할 것이 틀림없다.만약 붙잡힌다면 그 즉시로 나는 분해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공항 쪽을 향해 계속 달려갔다. 폴의 모습을 다시 한 번이라도 볼 수 있다면, 분해되어도 두렵지 않다. 이윽고 제트카가 나를 앞질렀다. 몇 대가 지면을 스치면서 날아갔다. 모두 공항으로 스타퀸호의 출발을 보러 가는 것이리라. 차에 타고 있는 사람들은 내가 뛰어가는 것을 보고도 특별히 주의를 돌리지 않았다. 나와 같은 가정용 로봇은 종종 심부름을 가기 때문이다. 4시간 정도 달렸더니 겨우 지평선에 공항이 나타났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이 하늘 높이 솟은 스타퀸호의 선체였다. 그것은 참으로 거대한 것이었다. 공항에서 가장 높은 관제탑도 선체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좀더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그러자 스타퀸호의 주위에 모인 많은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주선의 2개의 문이 열리고, 거기에 로봇들이 짐을 마구 싣고 있었다. 지구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물건일 거다. 나는 우주선의 옆으로 바싹 다가섰다. 아무도 의심하는 사람이 없다. 사람들 사이에는 나 말고도 로봇이 몇이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우주선 주위를 한 바퀴 돌았을 때, 한 군데서 나는 나도 모르게 우뚝 서버렸다. 저쪽에 한 대의 제트카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헤닝스와 농장의 감독이 아닌가! 두 사람 모두 초조한 모습으로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었다. 나는 당황하여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숨었다. 그들은 반대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나는 서둘러서 안전하게 숨을 장소를 찾아보았다. 저쪽에서 3대의 로봇이 우주선을 보면서 무엇인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3대가 모두 나와 같은 모양의 가정용 로봇이다. 나는 로봇들에게로 가까이 가서 몰래 그 뒤에 서 있었다. 이젠 혹시 헤닝스가 나의 모습을 본다 할지라도 구별할 수 없을 것이다. 같은 형의 로봇은 가슴 판에 새겨진 번호를 조사하지 않으면 구별할 수 없다. 3대의 로봇들은 갑자기 헤어져서 걷기 시작했다. 나는 급히 우주선으로 가까이 가는 1대의 로봇의 뒤를 따랐다. 그런데 그 때 나는 깜짝 놀랐다. 나는 알몸이었다. 다른 로봇들은 바지를 입고 있는데, 나만은 벗고 있었다. 그러나 다행하게도 바로 옆에 짐 상자가 많이 쌓여 있었다. 그 뒤로 나는 당황하여 미끄러져 들어갔다. 빈 상자에 강철의 손을 올려놓고 살짝 엿보았더니, 헤닝스와 감독은 여전히 날카로운 눈으로 사람들 속을 둘러보고 있었다. 이윽고 한 대의 제트카가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는 사람은 모두 4명이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부르짖으며, 폴의 모습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러나 어찌된 일일까? 폴은 지구로 돌아간다는 데도 조금도 기뻐하지 않는 것 같았다. 누이동생 제인은 활짝 웃는 얼굴로 어머니의 손을 당기면서 자꾸만 무엇인가 묻고 있다. 아버지 심프슨도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모양으로 우주선을 쳐다보고 있다. 그러나 폴은 웃지 않았다. 홀로 뚝 떨어져서, 공항에 모인 사람들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이 때, 헤닝스와 감독이 다가와서 심프슨씨에게 뭐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얼굴을 붉혀 가지고 자꾸만 손을 내흔들고 있었다. 말소리는 들리지 않았으나, 아마도 내가 농장에서 도망친 것을 말하는 것일 거다. 아버지는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헤닝스는 폴에게 무엇인가 물었다. 내가 폴한테로 도망쳤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폴은 몸을 움츠리며 머리를 내저었다. 헤닝스가 아무리 떠들어보았자 소용이 없을 거다. 나를 도망치도록 소홀히 한 것은 헤닝스의 책임이다. 본래의 주인과 이미 관계가 없는 일이다. 이윽고 출발의 시간이 다가왔다. 승객들은 이동 플랫폼에 올라가 차례로 우주선의 높은 입구로 들어갔다. 폴의 모습도 가족들과 함께 은빛의 선체 속으로 사라졌다. 하는 나는 마음속으로 빌었다. 마침내 입구가 소리도 없이 닫히고, 이동 플랫폼이 우주선에서 떨어져 간다. 드디어 출발이다. 나는 나를 향하여 이렇게 말했다. 로봇의 주제에 너무 사람을 곤란하게 하는 일은 좋지 않은 일이다. 그것이 오히려 폴이 없는 가니메데에서 일하는 것보다 나을지도 모른다. 폴이 있는 우주선을 다시 한번 바라보았을 때였다. 우주선의 화물용 입구에 작은 모습이 나타났다. 그것은 화물용 입구에서 지상에까지 내려온 로프에 매달려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 작은 모습은 사람이었다. 우주선에서 도망치려고 하는 소년이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그러나 전송하는 사람들은 반대편에 모여 있기 때문에 눈치채지 못한다. 이렇게 생각했지만, 상자 뒤에서 나오면 곧 헤닝스에게 발견되고 말 것이다. 내가 망설이고 있는 동안, 폴은 마침내 땅 위에 내려서는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갑자기 전송하는 사람들이 우주선의 옆을 떨어지며 물러섰다. 우르릉 우르릉! 거대한 우주선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분사의 흰 연기를 땅 위에 내뿜었다. 그리고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제는 틀렸다. 만약에 폴을 발견한다 하더라도 이미 늦었다. 지금은 아무도 우주선을 멈출 수는 없는 것이다. 우주선은 상승을 시작했다. 점차로 속력을 내면서 순식간에 하늘 한 구석으로 빨려 들어간다. 전송하는 사람들은 하나, 둘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 속에서 두 사람의 남자가 내가 있는 빈 상자의 산더미로 걸어오고 있다. 헤닝스와 감독이다. 나는 공항 구석에 내밀고 있는 바위 그늘로 달려들어갔다. 위험했다. 헤닝스들은 내가 있던 빈 상자더미를 자꾸만 조사하고 있다. 그러나 이윽고 단념한 모양으로 제트카로 되돌아갔다. 두 사람의 차가 공항으로 떠나는 것을 보고 나서, 나는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폴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 폴은 혼자다. 폴에게는 내가 필요한 것이다.   사막의 동굴   공항에서 10킬로 정도 떨어진 사막에 비상 대피용의 동굴이 있다. 폴과 내가 곧잘 놀러갔던 곳이다. 돌아갈 집이 없는 폴은 아마 그 곳으로 갈지도 모른다. 동굴에는 피난 장소로 되어 있기 때문에 비상용의 식품도 저장되어 있다. 나는 사막을 날 듯이 뛰어가서, 동굴의 어두운 입구로 들어갔다. 여기서 기다리면 반드시 폴이 올 것이다. 마음을 놓은 탓인지 나는 내 몸에서 소리가 나는 것을 깨달았다. 끼끼끼…끼끼……… 가슴의 조종통에서 소리가 나는 것이다. 우리들 로봇에게는 모두 조종통이 붙어 있다. 이것은 로봇이 반드시 사람의 명령에 따르도록 조종하는 기계이다. 만약 명령을 배반해서 행동하면, 조종통이 위험 신호의 소리를 낸다. 그래도 그만두지 않으면 기계가 부서져서, 미치광이 로봇이 되고 만다. 나는 걱정되었다. 그러나 조종통의 소리는 점점 작아져 갔다. 나는 사람의 명령을 반대했으나, 미치광이는 되지 않았다. 무엇 때문일까? 그러나 몸이 노곤했다. 배터리의 에너지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눈도 희미해지고, 귀도 멀어졌다. 예비용의 에너지를 배터리에 넣으면 좋겠으나 그것은 내 스스로는 할 수 없는 장치로 되어 있다. 나는 동굴의 어둠 속에서 몇 시간이나 우두커니 서 있었다. 이 때, 입구에 사람의 모습이 나타났다. 우주복을 입은 소년이다. "폴!" 나는 그 모습을 붙들고 힘껏 껴안고 싶은 것을 겨우 참았다. 나는 강철의 로봇이다. 사람을 힘껏 안으면, 사람의 몸은 터지고 뼈가 부서진다. "오오, 렉스!" 폴 쪽에서 나에게 매달렸다. "어쩌면 여기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너 왜 헤닝스의 농장에서 도망쳤니?" "당신을 만나고 싶어서……" "그래, 나도 너의 일이 걱정되어 스타퀸호에서 도망쳤어." 폴은 기쁜 듯이 주먹으로 나의 단단한 가슴을 쿵쿵 때렸다. "그러나 지금쯤 스타퀸호에서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큰 소동을 벌이고 있을 거여요." 나는 그것이 걱정이 되었다. "나는 이젠 아이가 아니야. 아버지나 어머니도 나를 걱정하지는 않을 거야." 폴은 이렇게 말했지만, 나는 결심했다. 이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당신이 없어진 것을 알고 곧 가니메데의 경찰에 연락을 취했을 거여요. 이미 당신의 수색이 벌어지고 있을 것입니다." 나는 머리에 붙어 있는 무선 수신기의 안테나를 가니메데 방송국의 파장에 맞추었다. 삐삐삐-삐삐. 처음에는 잡음이 들어오더니 그것이 없어지자, 아나운서의 소리가 흘러나왔다.   "……전 가니메데 총독 심프슨의 장남 폴 심프슨이 출발 직전의 스타퀸호를 탈출하여 숨어버렸습니다. 가정용 로봇 '렉스'가 유괴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렉스는 헤닝스 농장을 도망쳐 나온 미치광이 로봇입니다. 렉스를 발견한 분은 즉시로 광선총으로 파괴해 주십시오. 말을 주고받을 필요도 없습니다."   나는 겁이 났다. 광선총은 무섭다! "폴, 나와 함께 있으면 위험합니다. 헤어집시다. 당신은 곧 공항으로 가서 사정을 말해요. 그러면 공항의 사람이 아버지에게 연락해 줄 겁니다. 나는 헤닝스 농장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나는 어떤 곤란을 당해도 좋다. 그러나 폴만은 구해주고 싶다. "렉스, 나는 물론 지구로 돌아가고 싶어. 그러나 너와 함께가 아니면 싫다. 너를 지구에 데리고 가기 위하여 나는 스타퀸호를 도망친 거야. 혼자서 지구로 가기보다는 너와 함께 이 가니메데에서 사는 쪽이 더 좋아." 하며 폴은 나의 말을 도무지 들어줄 것 같지 않았다. "알았습니다. " 그래서 나는 폴의 명령대로 하려고 생각했다. "이제부터의 일을 의논해 봐." 하고 폴은 바위 위에 앉았다. 그러나 나는 진정이 되지 않았다. 만약에 수색대에 발견되면 나는 끝장이다. 번쩍, 광선총이 빛남과 동시에 나의 조종통은 녹은 철의 덩어리가 되고 말리라.   가나폴리스를 향하여   우리는 동굴의 입구를 막았다. 폴은 동굴에 있는 비상용 음료수 탱크에서 물을 먹고, 되살아난 듯 기운을 내었다. 다행히 식료품도 있었다. 쿠키가 3상자, 더욱이 건빵이며 치즈도 발견되었다. 폴은 마구 먹었다. 먹고 난 나머지는 내가 자루에 넣었다. "자, 이제부터 어떻게 할 것인가?" "3일 동안 여기 있자. 3일이 지나면 수색하는 것도 약해진다." 배를 채운 폴은 심각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서 어떻게 합니까?"내가 묻자, 폴은 크게 하품을 하면서 말했다. "졸려서 견딜 수가 없어. 한잠 자고 나서 뒷일을 생각해보기로 하지. 너도 좀 쉬는 게 좋을 거야." 하고 폴은 나의 가슴에 손을 내밀어 번호판 밑에 있는 문을 열고, 배터리의 스위치를 껐다. 그 끄는 방법이 불완전했던 모양이다. 배터리가 약간 작용하여 나로 하여금 꿈을 꾸게 했다. 무서운 꿈이었다. 나는 혼자서 사막을 걷고 있었다. 뒤에서 갑자기 사람이 나타났다. 손에는 광선총을 들고 있었다. "미치광이 로봇이다! 미치광이 로봇이 있다!" 사람은 외치면서 광선총을 발사했다. 슛! 눈부신 빛이 나의 몸을 덮자 조종통이 점점 녹아간다…… 이 때, 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어나라, 렉스!" 어느 사이에 나는 배터리의 스위치가 넣어져 있었다. "얼마만큼 잠잤습니까?" 나는 폴에게 물었다. "12시간 정도야. 나는 배가 고프다." 쿠키 상자를 열면서 폴이 말했다. "우리들은 빨리 여기서 나가는 편이 좋을 거다." "어디로 갑니까?" "가나폴리스다." "거기를 어떻게 갑니까?" 하고 나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가나폴리스는 여기서 160킬로나 떨어진 먼 거리이다. 걸어서 가면 며칠이 걸릴지 모른다. "그것도 그렇구나." 폴은 생각에 잠겼다. 이 때, 갑자기 나의 귀에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동굴의 밖에서다. 몇 사람의 사나이들이 돌아다니고 있다. 둘을 찾아다니는 수색대일 것이다. 폴의 귀에는 들리지 않을 만큼 희미한 소리이다. 나는 듣는 힘을 최대로 발휘하여 사람들의 움직임을 확인했다. 그러나 아직 꽤 멀리 떨어져 있다. 이 동굴로 가까이 올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폴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폴에게 쓸데없이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 제트카로 가나폴리스에 가면 된다!" 하고 폴은 눈을 빛냈다. "제트카는 어디서 구합니까?" "나는 마을을 떠날 때, 이웃 사람에게 제트카를 팔았어. 그것을 몰래 빌리자. 가나폴리스에서 내버리면 누군가가 발견하여 임자에게 되돌려 줄 거다." "그건 도둑질이 아닙니까?" 나는 당황해서 말했다. "빌어 타는 삯을 주면 되잖아?" "그러나 임자는 누가 타고 갔는지를 모릅니다. 역시 도둑질입니다." "그건 너의 지나친 생각이다." "아니, 아버지나 어머니는 그런 방법을 좋아하지 않을 겁니다." 나의 말에 폴은 주춤해진 모양이었으나, 다시 생각하려고는 하지 않았다. "그것 말고는 가나폴리스로 갈 방법은 없다." 하고 나중에는 성난 것처럼 말했다. 할 수 없다. 나는 로봇이다. 아무리 말로 다투어 봤댔자 최후에는 사람의 명령을 듣도록 만들어져 있다. "가나폴리스로 가서 대체 무엇을 합니까?" "먹을 것과 네가 필요한 배터리에 넣을 에너지를 산다. 그리고 바지도……" 폴은 나의 몸을 힐끗힐끗 쳐다보면서 말했다. "가정용 로봇이 벗고 있으면 이상하니까 말야." "나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미 나도 반대하지 않았다. 가나폴리스에는 여러 가지 가게며 식당이 있다. 또 화물 전용의 큰 우주 공항도 있다. 수색대도 가나폴리스까지는 오지 않을 것이다. "렉스, 아버지는 너를 판 돈을 모조리 내게 주었어. 이 돈을 쓰는 것은 내 자유다." 폴은 또 제트카를 손에 넣을 방법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폴, 제트카를 훔치고 돈을 두고 가는 일은 내가 하겠습니다." 하고 말하자 폴은 이상한 얼굴을 했다. "그건 왜?" "당신은 사람입니다. 남의 것을 훔치면 마음이 아프지요. 나는 로봇이기 때문에 마음이 없습니다. 부정직한 일을 해도 괴로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렉스!" 폴은 내 손에 손을 얹고, 나를 지켜보았다. "너는 로봇이지만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사람보다 훌륭한 마음을……" 이렇게 하여 우리들의 의논은 결정되었다. 동굴에서 꼭 3일을 지낸 후, 우리들은 계획대로 산발레이의 마을에서 제트카를 손에 넣었다. 그러자 곧 가나폴리스로 향했다. 운이 좋게 도중에서 수색대를 만나지 않았으며, 무사히 가나폴리스의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은 산발레이를 더 크게 한 것과 같았다. 지상에는 투명한 돔에 덮인 사무소며 가게의 건물이 줄을 이었고, 지하에는 사람들의 주택이 있었다. 폴은 차를 돔의 입구에 세웠다. "이제부터 너의 에너지를 사러 가자." "잘 될 것 같아요?" 나는 걱정이 되어 견딜 수가 없었다. "마을 사람들에게 수상하게 보일지도 모르니까.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틀림없이 광선총을 겨누어 나의 머리를 날려버릴 거예요. 라디오의 뉴스를 들었음에 틀림없을걸요." "그러나 너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여기서 배터리에 에너지를 넣지 않으면 움직이지 못하게 돼." "네. 확실히 나는 에너지 부족으로 몸이 나른해서 어쩔 수가 없어요. 그러나 마을은 위험합니다. 그보다도 공항에 갑시다. 아까 화물 전용의 낡은 우주선이 보였습니다. 3급 화물 우주선입니다." "그거로 어떻게 하지?" "그런 화물 우주선은 마을의 뉴스에 그다지 주의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과연, 화물 우주선의 선장에게 너의 에너지를 얻는다는 거지." "그런 것을 불쑥 부탁하면 의심을 받습니다." 나는 나른해지는 것을 참으며, 폴에게 작전을 이야기했다. "응, 좋은 생각이다." 폴은 제트카를 몰았다. 차가 공항에 도착했을 때, 나의 배터리는 거의 없어지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최후의 힘을 짜내면서 폴과 함께 화물 우주선까지 걸어갔다. 낡은 선체에는 '드라베라호'라는 이름이 똑똑히 보였다.   화물 우주선 드라베라호   "세 놓은 로봇이 있습니다. 필요 없으신지요?" 폴은 '드라베라호'의 승강구에 서 있는 남자에게 말했다. "뭐라고?" 남자는 의아스러운 눈으로 폴을 힐끗 내려다보았다. "아까 짐을 싣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로봇이 더 필요하시지 않을까 해서요. 당신은 선장님이시죠?" 내가 가르쳐 준대로 폴은 말했다. "물론이지. 내 이름은 버커. 혹성 무역에서는 가장 우수한 화물 우주선, 드라베라호의 주인이지. 그리고 파일럿이며 승조원이다. 이 우주선은 어떤 물건이건 보내고 싶은 별에 운반해 준다." 버커 선장은 몸짓은 작았지만, 단단해 보이는 남자였다. 머리칼은 하얗고, 얼굴이나 손에는 깊은 주름살이 가득하다. "선장님, 세 놓는 로봇이 필요 없어요?" 또 다시 폴이 재촉하듯 말했다. "글쎄다." 하며 선장은 손으로 우주복 위의 턱 근처를 쓰다듬었다. 생각할 때의 버릇인 모양이다. 드라베라호의 짐 싣는 문에서는 노동 로봇들이 한창 짐을 싣고 있다. 그것을 바라보면서 선장을 말했다. "나는 짐을 잘 싣는 로봇을 3대나 가지고 있다." "그 정도 갖고는 부족해요. 이만큼 큰 우주선에는 보통 5대는 필요할텐데요." "흥, 넌 꽤 자세하구나." 선장은 놀란 듯이 폴을 보았다. 그러나 놀랄 것까지는 없는 일이다. 폴은 우주선을 몹시 좋아한다. 틈만 있으면 우주선의 모형을 만들기도 하고, 공항에서 진짜를 보기도 했다. "역시 그만두는 게 좋겠다." 선장은 어깨를 으쓱했다. "정 생각이 없으시다면 다른 우주선에 가서 물어 보겠어요." 폴은 실망한 듯 말했다. "딴 데서도 빌릴 사람은 없다고 생각된다. 너는 정말로 이 로봇을 빌려주려고 생각하고 있니?" 그러자 폴은 사실대로 말했다. "실은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나의 로봇의 배터리가 거의 없어지고 있기 때문에……" "에너지가 필요하냐? 그렇다면 처음부터 그렇게 말할 것이지." 하고 선장은 우주선 안으로 들어갔다. 그 사이에 폴이 내게 속삭였다. "이 우주선은 화성에 들렀다가 지구로 가는 모양이다. 좋은 기회다. 우리, 이 우주선으로 밀항하자." 폴은 내 의견은 들어보지도 않고 갑자기 명령했다. "알았습니다." 하고 나는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밀항 계획을 세울 사이도 없이 선장이 되돌아왔다. 충전한 배터리를 나의 가슴에 넣으며 선장은 말했다. "공연히 시간을 보내고 말았구나. 출발까지 이제 몇 시간 안 남았다. 이 로봇이 일을 도와주었으면……" "무엇을 시킬까요?" 폴은 눈을 빛내며 힘차게 물었다. "짐 싣는 일이다. 저 상자를 우주선에 싣도록 해라." "네." 폴은 산더미 같은 짐을 가리키며 딱 하고 손가락으로 소리를 냈다. "렉스, 일을 시작해라!" 에너지가 들어갔으므로 기운을 차린 나는 즉시로 우주선의 뒤로 돌아갔다. 3대의 짐꾼 로봇이 선 내로 짐을 운반하고 있었다. 어느 것이나 짐을 싣는 일밖에 못하는 하급 로봇이다. 드라베라호의 승조원은 선장 한 사람과 로봇들뿐이다. 선체의 크기는 지름이 약 25미터, 높이 30미터의 뚱뚱한 모양이며, 키가 낮은 수직 안정판과 우주 통신용 안테나가 붙어 있다. 나는 다른 짐꾼 로봇들과 함께 짐을 운반하면서, 그것만 생각했다. 폴은 선장과 이야기를 하면서 조종실 입구로 들어갔다. 선 내를 보고, 밀항 계획을 짜고 있는지도 모른다. 짐을 거의 실어가고 있을 때, 조종실 입구에서 폴과 선장이 나왔다. 선장은 공항 사무소 쪽으로 걸어갔고, 폴은 나의 옆으로 왔다. "어떻게 했지요?" 하고 나는 물었다. "배가 고프다고 했더니 선장이 먹을 것을 주었어. 참 좋은 사람이야." "그런데 어떻게 해서 밀항하지요? 좋은 방법을 발견했습니까?" "짐 상자에 숨겠어." "뭐라구요?" 나는 깜짝 놀라며 말했다. "짐을 싣는 곳에는 난방장치가 없습니다. 우주에 나가면 기온이 마구 내려가서 영도 이하가 됩니다. 우주복을 입고 있어도 우선 당신은 얼어죽습니다." 하며 나는 필사적으로 말렸다. 폴이 입고 있는 우주복은 기압복이라고 부르는 그것이다. 사람이 공기가 없는 곳에서 호흡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므로, 추위는 막을 수가 없다. "출발하면 얼어죽기 전에 네가 나를 상자에서 꺼내면 되지 않아." "그건 안됩니다." 할 수만 있다면 나는 말리려고 했다. 너무도 위험한 일이기 때문에. 그러나 폴은 들을 것 같지도 않았다. "렉스, 빨리 나를 상자에 넣어라!" 그것은 명령이다. 나는 상자 하나를 열었다. 안에는 마른풀이 들어 있었다. "빨리, 빨리……" 폴은 마른풀을 부서진 상자에 옮기고, 힘있게 상자 속으로 들어갔다. 나는 재빨리 상자의 뚜껑을 닫고 못을 박았다. 그 때 선장이 왔다. 아슬아슬했다. "빨리 실어라!" "네." 나는 폴이 숨어 있는 상자를 들고 선실로 운반했다. 하며 나는 망설였으나, 폴의 명령을 배반할 수는 없었다. 다른 로봇들은 짐 싣는 일을 거의 끝내고 있었다. "작업이 끝나면 너희들은 선 내로 들어가 있어라. 나는 출항 허가증을 받아 오겠다." 선장은 로봇들에게 명령하고, 공항 사무소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런데 선장은 두세 걸음 걷고 나더니 갑자기 뒤돌아보았다. "렉스, 짐 하나를 잊어버렸다. 공항 사무소에 있다. 나와 함께 가서 운반해 와라." 싫다고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선장과 함께 공항 사무소로 향하면서 내 정신이 아니었다. 만일 내가 드라베라호에 숨어 들어가지 못한다면, 폴은 화물실 상자 속에서 얼어죽고 만다.   화성에로의 여행   나는 버커 선장과 함께 공항 사무소로 들어갔다. 짐은 계원의 책상 위에 있었다. 그것을 나는 단단히 들고 선장의 용무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아무도 나에게 주의를 돌리는 사람은 없었다. 버커 선장과 함께 짐을 가지러 온 로봇이 설마 '헤닝스의 농장에서 도망치고, 전 총독의 장남을 유괴한 로봇'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한 일보다는 나는 폴의 일이 걱정되어 견딜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해서라도 드라베라호에 숨어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겨우 선장은 이야기를 끝내고, 나에게 말했다. "자, 가자." 공항 사무소를 나와 드라베라호의 옆으로 돌아왔을 때, 선장은 폴이 없는 것을 깨달았다. "아마 나를 기다리다 못해 지쳐서 집에 돌아간 모양이야. 너도 돌아가라. 용무는 끝났다." 이렇게 말하면서 선장은 나에게 빌린 값을 내주었다. 여기서 되돌아서면 폴을 살리지 못한다. 나는 얼른 이렇게 말했다. "선장님, 드라베라호는 로봇이 부족하죠?" "그렇지. 2대는 수리 공장에 들어갔기 때문에 이번 여행에는 못 데리고 왔다." "그럼, 그 대신 나를 데리고 가 줄 수 없을까요? 나는 로봇이나 선체의 수리도 할 수 있습니다. 반드시 쓸모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 너는 수리도 할 수 있느냐?" "네, 그리고 나는 로봇의 감독도 할 수 있습니다. 라디오도 갖고 있습니다." "폴은 나에게 전혀 그런 말을 하지 않았는데?" "선장님이 묻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나는 데리고 가 주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본의 아니게 나의 능력을 자랑했다. "그러나 너는 폴에게 말도 하지 않고 우리 우주선을 타도 괜찮으냐? 그 아이를 찾아가는 게 좋을 거다." "아닙니다. 폴은 나를 당신에게 빌려 드렸습니다." "그런데 너는 정말로 폴의 로봇이냐? 그 아이의 아버지 로봇이 아니냐?" 선장은 폴이 아버지의 로봇을 몰래 가지고 나온 것으로 생각한 모양이다. "나는 폴의 로봇입니다. 폴의 아버지는 일 때문에 지구로 갔습니다." "글세, 나중에 시끄러운 일이 생기면 싫은데…… 너 정말로 수리도 할 수 있지?" 한참 동안 망설인 후, 선장은 결심한 듯이 말했다. "좋아, 데리고 가마. 너는 조종실에 타라." 나는 얼른 조종실로 들어가서 선장이 기계 점검을 하는 것을 보았다. 코코코코콩. 드디어 드라베라호는 천천히 상승하기 시작했고, 점점 속력을 더하여 가니메데와 목성의 중력권에서 탈출했다. 선장이 화성으로 향하는 코스를 정하고 기계를 점검하는 사이에, 나는 선 내를 돌아보았다. 조종실 뒤에는 6개의 선실이 있었다. 몇 달 동안이나 사용하지 않은 듯 어느 방이나 먼지투성이였다. "여기는 공기도 있고 난방도 되어 있구나. 폴을 감추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나는 선실에서 복도를 빠져나가 화물실로 들어갔다. 화물실은 짐으로 가득 찼으나, 폴이 들어가 있는 상자는 내가 놓은 장소에 그대로 있었다. 나는 강철의 손으로 상자를 열었다. 끼끼끼낏. 뚜껑이 열리고, 폴의 기압복이 보였다. 폴은 상자 속에서 덜덜 떨고 있었다. 이미 화물실의 온도는 영도 가까이 내려가고 있었다. "기운을 내요." 나는 폴을 안고, 서둘러서 따뜻한 선실로 돌아왔다. "여기는 기밀실로 되어 있습니다. 기압복을 벗어도 괜찮을 겁니다." "고맙다, 렉스" 기압복을 벗고서 겨우 폴은 떨지 않게 되었다. "2,30분만 더 상자 속에 있었으면 얼어죽을 판이었다." 폴은 나의 활약을 칭찬하고 나서 힘없이 말했다. "배가 고프다. 무엇인가 먹을 걸 찾아줄 수 있겠니?" "잠깐만 기다려 줘요." 나는 선실을 나와서, 선장실 옆에 있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거기에는 선장의 식료와 물이 있다. 나는 큰 빵과 치즈와, 컵 가득히 물을 가지고 선실로 돌아왔다. "물은 이뿐이에요. 많이 쓰면 선장이 눈치챌 테니까요." 내가 준 빵을 폴은 마구 먹고, 꿀꺽꿀꺽 물도 마셨다. 목성의 제3위성 가니메데에서 화성까지의 여행은 길다. 이제 며칠이 걸린다. 나는 매일 선장의 눈을 피해서는 폴에게 먹을 것을 운반했다. 선장실에 있는 책도 말하지도 않고 꺼냈다. "밀항도 꽤 좋은 거다. 이대로 화성에서 지구로 가면 더 말할 나위도 없다." 폴은 아주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나는 걱정이었다. 만일 선장에게 발각되면? 아마도 선장은 화성에 도착했을 때, 나와 폴을 화성 경찰에다 인계할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또 헤어지게 된다. 만약에 화성에 폴은 발견되지 않고 지구에 도착한다고 해도, 나는 헤닝스의 농장에서 도망친 미치광이 로봇으로 체포되어 파괴를 당하지 않을지? "시시한 생각은 하지 말아라. 잘 될 거다. 아버지도 내가 잘 말하면 반드시 알아주실 거야. 그리고 이 돈을 헤닝스에 게 보내면, 너는 또 정식으로 나의 것이 된다."하고 폴은 주머니에서 돈 뭉치를 꺼냈다. 그것은 폴의 아버지가 나를 헤닝스에게 팔고 받은 돈이었다. 과연 잘 될지 안 될지는 모르나, 나는 아무리 생각해 보았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 세상일은 모두 사람이 정하기 때문에……. "렉스 커피를 마시고 싶구나. 한 잔 갖다 주지 않겠어?" "좋아요." 나는 선실을 나와서 식당으로 들어갔다. 우주선에 있는 식료 중에서도 커피는 선장이 특히 귀중해하는 물건이다. 너무 적어지면 의심을 받는다. 나는 얼른 커피를 끓였다. 그 때, 운수 나쁘게도 선장이 식당으로 들어왔다. "렉스, 누가 커피를 만들라고 했어?" "아무도 말한 사람은 없습니다. 선장님께 드리려고…… 나는 가정용 로봇이기 때문에 집에 있을 때는 주인에게 커피를 드렸습니다." 하고 나는 거침없이 대답했다. "어디 보자." 선장은 컵을 집어들더니 한 입 맛을 보았다. "음, 이건 맛있구나. 그런데 너는 보통 요리도 만들 수 있느냐?" "네. 요리책을 두 권 읽고 내용을 기억 뱅크에 옮기고 있습니다." "놀랐는데. 네가 요리사까지 할 줄은 몰랐다. 나에게 커피를 한 잔 더 다오."두 잔 째의 커피도 선장은 맛있게 마셨다. 이리하여 이제 폴의 식사는 걱정이 없게 된다. 선장의 식사를 준비할 때, 조금 더 만들어 폴에게 가져가면 된다.   밀항 소년   드라베라호의 주위는 언제나 암흑의 공간이었다. 언제가 낮이고 밤인지, 시간의 흐름을 전혀 알 수 없다. 어느 날, 버커 선장이 나에게 명령했다. "착륙용의 날개가 고장이 나 있어. 수리해라. 할만하냐?" "맡겨 주십시오." 나는 자석 신발을 신고, 우주선 밖으로 나갔다. 이러한 작업은 로봇에게 제격이다. 인간은 우주복을 입기 때문에 몸이 자유롭지 못해 일이 잘 안 된다. 나는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아서 수리를 끝냈다. 이리하여 우주선은 어디에 착륙해도 좋게 되었다. "너는 정말 쓸모가 있구나." 하고 선장은 크게 기뻐했다. 그리하여 나는 선장의 시계며, 선 내의 전기 난방 수리도 맡았다. 그리고 선 내를 깨끗이 청소를 했다. 너무 물을 많이 쓰지 말라고 꾸중을 하기 전까지 어디나 깨끗이 했다. 하루에 3번 식사를 만들어 선장을 기쁘게 했다. 나도 기뻤다. 그 때마다 폴의 것도 함께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틈을 보아 나는 짐꾼 로봇들의 손질도 했다. 좀 더러워진 몸통을 번쩍번쩍 닦기도 하고, 부서진 곳은 모두 수리를 했다. 이러한 일을 하는 동안, 나는 선장과 아주 친하게 되었다. 때때로 선장은 나를 선장실로 불러 말동무도 시켰다. 선장은 음악을 좋아했다. 음악 테이프를 많이 가지고 있었다. 틈만 있으면 몇 시간 동안이나 그것을 듣고 있었다. 그러므로 선장실에는 라디오가 없었다. 나는 식당 구석에 뒹굴고 있는 낡은 라디오를 수리했는데, 그다지 듣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어느 날, 선장은 나를 보고 물었다. "너 음악의 리듬을 알 수 있어?" "아닙니다. 어느 것이나 같은 음의 연속으로 들릴 뿐입니다." "안 되겠는데, 리듬에는 빛깔이 있는 거야. 밝은 색깔의 리듬, 어두운 색깔의 리듬……" "나는 색깔을 모릅니다." "아니, 너의 시력 밸브는 검은 것과 흰 것밖에 느끼지 못하는가?" "그렇습니다." "좀 기다려." 하며 선장은 예비 부속품 상자를 뒤적거리더니 새로운 시력 밸브를 꺼냈다. "이 컬러 밸브를 너에게 끼워 줄게." 낡은 밸브 대신 새로운 밸브를 끼었을 때, 나는 흥분했다. 나의 눈앞에는 갑자기 새로운 세계가 열린 것이다. "모든 것이 달라져 보인다!" 나의 놀라는 모습을 선장은 만족스럽게 바라보면서 말했다. "너는 색깔을 알게 되었다. 나의 셔츠는 파란색, 의자 위는 빨강이야." 선장은 색깔의 이름을 하나씩 내게 가르쳐 주었다. "굉장합니다!" 나는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바깥을 봐라!" 그리하여 나는 우주선의 최전방에 있는 조종실에 들어갔다. 창 너머로 보이는 무수한 별도 전혀 달라져 있다. 암흑의 공간에 떠 있는 노란 별, 푸른 별……모두 살아있는 것처럼 보인다. 색깔, 나는 지금까지 색깔의 뜻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한동안 나는 아름다운 바깥 경치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어느 사이에 선장이 없어졌다. 틀림없이 또 선실에서 음악 테이프를 듣고 있을 것이다. 나는 폴에게 보고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폴이 숨어 있는 선실로 급히 갔다. 폴은 내가 갖다 준 잡지를 읽고 있었다. 나의 모습을 보자 그것을 내던졌다. "이제 우주 무역의 잡지는 싫증이 난다. 선장은 음악이라든지 우주 여행의 책은 갖고 있지 않나?" "찾아보지요. 그건 그렇고, 당신의 셔츠를 세탁하지 않으면 안되겠어요. 빨강 색깔이 꽤 더러워지고 있어요." "뭐라구, 렉스! 지금 뭐라고 했어?" "파랑 침대 커버도 세탁하는 것이 좋겠어요." "렉스, 왜 그래? 너는 색깔을 알지 못할 텐데 말야." "알도록 되었어요. 아까 버커 선장이 컬러의 시력 밸브를 내게 끼워줬어요." 나는 폴을 기쁘게 해주려고 생각했는데, 폴은 시무룩해졌다. "컬러의 시력 밸브라면 내가 사줄 것이었는데 안됐구나." 폴은 다른 사람이 나의 몸을 매만지는 것이 싫은 것이다. "물론 당신이 사준다면, 선장이 준 것은 빼내고 대신 그 밸브를 끼겠어요." 하고 나는 폴의 환심을 사려고 이렇게 말했다. 이 때, 갑자기 선실의 문이 열리면서 버커 선장이 들어왔다. 그리고 멍하니 폴을 지켜보았다.   선장의 노여움   "이건 어떻게 된 일이야? 여기서 뭘 하고 있었니?" 버커 선장은 나와 폴에게 계속 질문을 했다. 움푹 들어간 두 눈이 번쩍번쩍 빛나면서 얼굴은 새빨개졌다. 미칠 듯이 화가 난 모양이었다. "저는 밀항하기 위해서 이 우주선을 탔습니다." 폴은 당당하게 대답했다. "이게 뭐람, 출발 전에 너를 발견하지 못한 내가 큰 바보였어." 선장은 신음 소리를 냈다. "발견될 수 없게 탔습니다." 가슴을 내밀고 폴은 말했다. "흐흥……" 선장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나를 보았다. "너는 대단한 로봇이다. 이 아이보다 머리가 좋다." 이 말을 듣자, 폴은 화를 냈다. "나보다 로봇인 렉스가 머리가 좋다구요?" "아니야. 똑똑히 말하면 어느 쪽이나 잔꾀라는 거다. 밀항 같은 것이 될 수 있어! 덕분에 나는 유괴범이 되었다." "유괴? 그건 무슨 말입니까?" "아직 모르느냐? 혹성 경찰에서는 내가 너를 유괴하여 소행성군에 노예로서 팔려고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선장님은 렉스가 나를 유괴했다는 뉴스를 들었습니까?" 폴은 놀라며 소리쳤다. 나도 물어 보았다. "어디서 들었습니까?" "어디서 들었던지 그건 내 마음대로야!" 선장은 분한 듯이 폴은 노려보았다. 문득 나는 생각이 났다. 며칠 전 나는 선장을 위하여 고장난 라디오를 고쳐 주었다. 나는 라디오를 고친 것을 후회했으나, 이제 와서 어찌할 도리가 없다. "뉴스 방송은 사실인가? 렉스가 너를 유괴했느냐?" 선장의 질문은 계속되었다. "아닙니다. 제가 스스로 스타퀸호에서 빠져 나왔습니다. 그리고 나의 아버지가 가니메데에서 렉스를 판 사람으로부터 도망친 렉스를 훔쳤습니다." 필사적으로 폴은 설명했다. "과연." 선장은 눈을 크게 떴다. "그러나 사실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내가 너를 우주선으로 유괴했다고 생각할거란 말야." 선장의 노여움은 점점 심해 갔다. 이대로 가다가는 폴이 불리해지기만 하겠다. 나는 폴을 돕기 위하여 말했다. "선장님, 행성 경찰에서는 우리들이 이 우주선에 탄 것을 알지 못합니다. 선장님이 말하지 않으면 모릅니다." 그러자 폴은 용기를 되찾았다. "선장님, 우리들을 지구로 데리고 가 주십시오. 지구의 공항에 도착하면, 드라베라호에서 감쪽같이 빠져나겠습니다." "어느 공항이나?" "미국의 캔자스 시입니다." 폴은 이렇게 말하고, 숨을 죽이며 선장의 대답을 기다렸으나 헛일이었다. "안 된다. 혹성 경찰이 너희들을 발견하면 어느 우주선을 타고 가니메데에서 왔느냐고 곧 조사를 한다. 그러면 내가 유괴범으로 체포되고 만다. 내가 경찰의 의심을 받지 않는 길은 단지 하나, 화성 공항에 도착하면 너를 화성 경찰에 넘기고 사실을 이야기하는 일이다." 역시 선장은 시끄러운 일에 말려들고 싶지 않은 것이다. 나는 실망했다. 화성 경찰은 아마 우리들의 이야기를 믿어주지 않을 것이다. 폴은 곧 지구로 보내지고, 나는 또 가니메데의 헤닝스 농장으로- 그것은 폴도 알고 있었다. "선장님, 다시 한 번만 생각해 주십시오. 나와 렉스의 운임을 물 테니까요." 하고 주머니에서 꺼낸 돈 뭉치를 폴은 선장에게 주었다. "5천 달러입니다." "5천 달러? 이렇게 많은 돈이 어디서 났느냐? 로봇을 훔친 것과 같이 은행에서 훔친 돈이 아니냐?" "천만에요!" 폴은 몹시 화를 냈다. "이건 아버지가 내게 준 돈이에요. 이만하면 지구로 가는 일등표를 4장은 살 수 있죠?" "그러나 내가 겪어야 할 위험의 대금으로서는 그렇게 많은 돈도 아냐." "대체 선장님은 얼마면 좋겠습니까? 부족한 것은 지구에 돌아가서 아버지께 물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너의 일로 해서 돈벌이를 하고 싶지는 않다. 모든 것은 화성 경찰이 알아서 잘 해 줄 거다." 완고한 선장은 아무래도 우리들을 경찰에 넘길 작정인 모양이다. "화성 경찰은 반드시 렉스를 파괴해 버리거나, 가니메데의 농장에 되돌려 보낼 겁니다." "그러면 너의 아버지가 또 다른 로봇을 사 줄 것이다." "렉스 같은 로봇이 또 있는 줄 알아요? 선장님, 당신은 렉스를 좋아하죠? 컬러 밸브를 렉스에게 끼워 주었지 않았습니까? 그러면서도 렉스를 산산조각이 나게 하고 싶으신가요?" 나를 구하려고 폴의 열과 성의는 마침내 선장의 마음을 움직이게 했다. "나 역시 렉스를 부서지게 하고는 싶지 않다. 렉스는 훌륭한 로봇이니까." "감사합니다, 선장님!" 하고 나도 모르게 나는 인사를 했다. "렉스도 이렇게 기뻐하고 있습니다. 선장님, 부탁입니다. 우리들을 지구로 데려다 주십시오." 폴은 선장의 손에 억지로 5천 달러의 돈 뭉치를 쥐어 주었다. "너한테는 지고 말았다. 어떻게 해보자." 선장은 쓴웃음을 지으면서 선실을 나갔다. "버커 선장은 좋은 사람이다. 이제 우리도 지구로 갈 수 있다." 안심한 폴은 내게 지구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우리 식구들은 트레드의 집에서 살 예정이다. 캔자스 시에서 꽤 떨어져 있으나 걱정 없어. 지구는 교통 기관이 발달되어 있으니까 말야." "제트카도 많이 있죠?" "물론이지. 그러나 우리들은 콥터로 가는 거다." "콥터라니요?" "여객기의 일종이다. 제트카보다 훨씬 빠르다. 캔자스 시에서 트레드까지 45분이면 날아간다." "지구란 굉장한 곳이구먼요. 컬러 밸브를 끼기를 잘했어요. 아름다운 색깔을 많이 볼 수 있겠어요." "우리들은 모노레일도 탈 수 있어. 모노레일은 공중의 철길에 매달려 있는 제트카의 일종이고, 콥터처럼 빨리 달린다." "로봇도 많이 있습니까?" "있지. 로봇은 모두 지구에서 만드니까. 너 기억하고 있지 않니?" "아니요.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은 당신의 아버지가 당시에게 나를 사주었을 때부터의 일뿐입니다. 나는 여러 가지 모양의 로봇과 함께 가게에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당신의 아버지가 나를 골라서 가니메데로 보냈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추억을 이야기하는 도중 폴은 손뼉을 쳤다. "그렇다!" "뭡니까?" "이 우주선에는 로봇용의 새로운 배터리가 있을 거야." "네, 버커 선장은 혹성 무역으로 긴 우주 여행을 하기 때문에 많이 준비하고 있습니다." "좋아,. 그럼 하나 여분으로 너의 가슴에 넣어 둬." "그러나 그건 도둑이 됩니다." "걱정 말아. 나는 선장에게 네 사람 치의 운임을 지불하고 있어. 네가 배터리를 두 개 사용해도 괜찮아."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러나 선장에게는 절대로 말하지 말아라." 왜 폴은 선장에게는 비밀로 하라는 지 나는 알 수가 없었 다. 그 후 10여일의 여행이 계속된 끝에, 드라베라호는 겨우 화성 공항에 착륙했다. "화성 경찰의 검사가 있을지도 모르니 숨어 있어요." 나는 폴의 선실을 굳게 잠근 다음, 조종실로 들어갔다. 그런데 선장은 나에게 이렇게 명령했다. "렉스, 폴을 불러오너라. 중요한 이야기가 있다." 그래서 나는 또 선실을 열고, 폴과 함께 조종실에 들어갔다. 선장은 갑자기 돈 뭉치를 폴에게 내밀었다. "돌려준다." "예? 선장님은 돈이 필요 없으신 가요?" "응, 잠깐동안 빌었을 뿐이다. 나는 좋지 못한 일로 돈을 벌고 싶지는 않다. 너도 법을 지키고 바르게 사는 것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하며 선장은 폴과 나에게 말할 여유도 주지 않고 우주선의 입구를 열었다. 그러자 녹색의 몸을 한 화성인의 경찰 두 사람이 우주선에 올라왔다.   체포된 폴   화성 경찰은 사무적으로 묻기 시작했다. "당신이 버커 선장입니까?" "그렇습니다." 선장이 대답했다. "우리들은 당신의 연락을 받고, 행방불명의 소년을 인계하러 왔습니다." "이 아이입니다." 선장은 폴을 가리켰다. 그러자 경찰의 한 사람이 폴의 팔을 잡으며 선장에게 가볍게 머리를 숙였다. "당신도 함께 경찰에 가 주셔야 겠습니다. 보고서를 만들어야 하니까요." 선장은 나에게 여기 있으라고 말하고서 경찰들과 함께 우주선을 나갔다. 그러나 폴은 나를 보려고 하지도 않았다. 네 사람이 떠난 후, 나는 조종실에 선 채로 생각했다. 여기까지는 알 수 있다. 알 수가 없다. 나는 또 계속 생각했다. 문득 그 까닭이 머리를 스친다. 이윽고 수수께끼가 풀렸다. 폴이 경찰에 끌려갈 때, 내 쪽은 보지 않은 이유도 알겠다. 다시 말해서 폴은 나를 지켜준 것이다. 1시간도 못 되어, 버커 선장은 우주선으로 되돌아왔다. 나는 물었다. "선장님은 왜 폴을 경찰에 넘겼습니까?" "그것이 폴을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이다. 경찰은 폴을 지구의 아버지에게로 잘 보내준다." "그런데 나에 대해선 왜 경찰에 말하지 않았습니까?" "폴을 로봇의 도둑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알 만하냐?" 선장을 폴을 위하여 나를 경찰의 눈으로부터 숨겼던 것이다. "본디부터 폴은 혼자서 스타퀸호를 도망쳤다. 폴이 로봇하고 함께 있는 것을 보았다는 증인은 한 사람도 없다. 그래서 경찰은 네가 농장에서 도망친 후, 가니메데의 황무지에서 배터리가 모두 닳아버리고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거야." "이제 나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드라베라호에서 일해라. 이 우주선은 지구에 가서 또 가니메데에 돌아온다. 그러면 헤닝스의 농장으로 되돌아가는 거다. 걱정 말아. 내가 헤닝스에게 너를 잘 쓰도록 말해 주겠어." "부탁합니다." 나는 그렇게 밖에 할 말이 없었다. "좋아. 이것으로 밀항 사건은 끝났다. 빨리 짐을 내리자. 너도 도와 줘." 선장은 앞서서 조종실에서 나갔다. 이 때, 나는 선반 위에 놓여 있는 종이를 보았다. 나는 선장의 뒤를 따라가며, 몰래 그 종이를 쥐었다.   - 폴은 마아즈 시의 시장 집에 두기로 하다.   스타퀸호에서 도망친 소년이 왜 이처럼 우대를 받는 것일까? 이유는 곧 알았다. 폴의 아버지가 지구에서 가장 큰 우주 무역 회사의 중역이기 때문이었다. 이미 3대의 로봇들이 짐을 열심히 내리고 있었다. 나도 그 속에 들어가서 상자를 운반했다. 이젠 도망칠 기운도 없다. 모든 것은 끝났다. 나와 폴은 이번만은 정말로 헤어지게 된다. 그것이 폴을 위하여 좋을지도 모른다. 폴은 성장했다. 벌써 16살이다. 로봇과 놀 나이가 아니다. 폴은 지구에서 사람의 친구를 얻어 지낼 것이다. 지구는 가니메데와는 다르다. 가니메데에서는 사람이 적기 때문에 같은 나의 친구는 좀체 없다. 그러나 지구에서라면 얼마든지 있다. 또 가니메데는 황폐한 위험한 위성이다. 아이들은 사고나 다른 재난에서 몸을 지키기 위하여 힘이 강한 로봇이 필요하다. 그러나 지구에서는 그러한 걱정은 없다. 나는 짐을 내려 땅 위에 쌓으면서 계속 생각했다. 그러나 폴이 없으면 역시 쓸쓸하다. 선장이 말한 것처럼 나와 폴은 정말로 헤어지는 편이 좋은 것일까? 의아심이 솟아났다. 선장은 거짓말쟁이다. 폴과 나를 지구로 데려다 준다고 일단 약속하고서도 경찰에 알렸다. 신용이 안 된다! 나는 어느 사이에 드라베라호에서 도망칠 방법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우선 나는 화물실로 들어갔다. 또 내릴 상자가 꽤 남아 있었다.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마침 한 대의 로봇이 짐을 내리려고 들어왔다. 나는 그 놈에게 명령했다. "이 상자는 맨 나중에 내리고, 상자를 쌓은 바깥쪽에 놓아라.": "알았습니다." 노동 로봇은 다른 상자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나는 서둘러서 상자를 비도록 한 후, 상자 속에 들어가서 안으로 뚜껑을 단단히 닫았다. 아무 것도 모르는 노동 로봇은 내가 들어 있는 상자를 들고 명령한대로 그 위치에 운반했다. "그걸로 끝이지?" 선장의 말소리가 들렸다. "아니, 렉스가 없는데. 렉스, 어디로 갔어? 선실이냐, 나와라! 아직 일이 있어." 점점 선장의 소리가 멀어져 갔다. 선 내로 들어간 것일 거다. 어물거리고 있을 수가 없다. 나는 상자의 뚜껑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운 좋게 바로 옆에 공항의 창고가 줄지어 있었다. 나는 짐 뒤로 창고에 다가갔다. 그 뒤쪽으로 하여 공항을 빠져나갔다. 지금쯤 틀림없이 버커 선장은 내가 도망친 것을 깨달았을 거다. 그러나 화성 경찰에 알릴 수는 없다. 나는 드라베라호에는 타고 있지 않는 것으로 되어 있으니까.   화성 도시   나는 퍽 전에 폴의 책에서 화성에 대해 읽었다. 화성 도시는 3개의 부분으로 나눠져 있다. 하나는 드라베라호가 착륙한 화물 전용의 화성 공항, 사막의 한가운데이므로 항상 모래먼지가 날아올라 사람의 옷을 더럽히고, 로봇의 몸에 붙어서 곤란을 받는다. 더욱이 사람은 화성 헬멧을 쓰지 않으면 안 된다. 화성의 대기는 사람이 호흡하기에는 희박하다. 물론 가니메데에서 입는 기압복보다 훨씬 가벼운 것이지만. 화성 공항에서 이어진 고가 도로를 30킬로 나아가니, 마아즈 시로 나간다. 거대한 플라스틱의 공기 돔에 덮인 훌륭한 마을이다. 마지막으로 또 하나의 공항이다. 여기는 여행객 전용으로 '마아즈 포인트'라고 부른다. 매일같이 최신형의 아름다운 우주선이 발착하여 번창한다. '마아즈 시와 2개의 공항을 잇는 삼각형 속에 화성의 인구가 약 절반 살고 있다.' 폴의 책에는 확실히 그같이 씌어 있었다. 나는 화물 전용 공항에서 마아즈 시로 향했다. 넓은 길에는 트럭과 사람과 로봇의 행렬이 길게 계속되었다. 될 수 있는 대로 눈에 띄지 않게 나는 다른 로봇과 보조를 맞추어서 빨리 걸었다. 몇 시간 후에 마아즈 시에 이르렀다. 공기 돔의 에어 로 크를 지나서 마을로 들어섰을 때, 우선 나는 텔레비전 전화통을 발견했다.시장의 주소는 전화번호부에 나와 있었다. 레트와인 81이다. 처음이라 마을의 사정을 전혀 알 수가 없다. 주위에는 나와 같은 형의 가정용 로봇이 몇 대나 걷고 있었다. 나는 그중 한 대를 불러 세웠다. "레트 와인 81은 어디쯤이야?" "몰라." 불친절한 대답이었다. 혼자서 바깥을 걷고 있는 로봇은 모두 주인이 명령한 목적지로 향하고 있다. 그 밖의 장소는 모르는 것이 보통이다. 나는 단념하고 혼자 찾기로 했다. 마을을 빙빙 돌면서 겨우 '레트 와인'이라고 쓴 마을의 표지판을 발견했다. 다음은 간단했다. 시장의 집은 5분도 걸리지 않아서 알았다. 나는 현관 문 앞에 서서 생각했다. 그리하여 나는 숲 속을 빠져나가 집 뒤로 돌아갔다. 초인종을 눌렀더니 로봇이 나오며, "무슨 일이야?" 하고 물었다. "여기 있는 지구의 소년에 대해서 묻고 싶다. 너는 알고 있지?" "알고 있어." 나와 같은 형의 가정용 로봇은 사무적으로 대답했다. "나를 만나게 해 줄 수 없어?" "안 된다. 아무에게도 만나게 하지 말라고 명령되어 있다." 할 수 없이 나는 폴이 어떻게 지내는지를 물어 보았다. "지구의 소년은 잘 있어?" "아주 건강해." "지금 어디 있어?" "방에서 자고 있어." "소년이 이 집에서 잘 대우를 받느냐?" "물론 아주 잘 대우하고 있어." "고맙다. 그것만 알면 되다." 나는 얌전하게 문 앞에서 물러났다. 이제부터 어떻게 하지? 내가 없어도 폴은 행복하게 될 것 같다. 버커 선장의 말대로 나는 가니메데에 돌아가서, 또 헤닝스의 농장에서 일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일까? 그러나 나는 자유로이 돌아다니는 즐거움을 맛보았다. 컬러 밸브를 빼내고, 흑백 밸브로 갈아치울 것이다. 한 번 맛본 자유와 색깔의 세계를 잊는다는 것은 괴로운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한 것을 생각하면서 나는 시장집 모퉁이를 돌아 거리로 되돌아 나왔다. 이 때였다. 나의 눈에 폴의 모습이 비친 것은! 폴은 유리로 둘러싸인 방안에 있었다. 커튼을 열고 유리를 쿵쿵 두들기고 있었다. 나는 유리벽으로 달려가서 듣는 힘을 발휘해서 폴의 소리를 들었다. "이 유리는 너무 두텁다. 렉스, 이걸 깨뜨리고 여기서 나를 꺼내다오!" "알겠습니다." 나는 강철의 주먹을 둘로 모으고 유리벽을 때렸다. 쨍그 랑! 유리는 쉽게 깨졌고, 폴이 빠져 나오기에 안성맞춤인 구멍이 뚫렸다. 폴은 헬멧을 들고 구멍으로 빠져 나왔다. "네가 꼭 와 주리라고 생각했어. 나는 기다리고 있었어!" "그런데 이제부터 어떻게 하겠습니까?" "숨자. 경찰이 곧 뒤쫓아올 거다. 그들로부터 숨을 장소를 찾아야 한다!" "그렇다면 우선 여기서 될 수 있는 한 멀리 도망치는 것이 좋을 겁니다." 우리는 길과는 반대쪽으로 달려갔다. 시장 집의 뒤에는 숲이 있었다. 나무가 우리들을 숨겨줄 거다. 다행히 아무도 우리들의 모습을 눈치챈 사람은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우리는 부주의했다. 시장 집은 마아즈 시를 완전히 덮는 공기 돔의 바로 옆에 있었던 것이다. "앗, 막혔다!" 이윽고 폴은 걸음을 멈추었다. 눈앞에 공기 돔의 거대한 벽이 나타났던 것이다. 공기 돔의 저쪽에 끝없이 펼쳐지는 화성의 사막이 보였다. 순간 나는 생각했다. 나의 힘이라면 공기 돔에 구멍을 뚫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실행하지 못했다. 공기 돔을 부수면 마아즈시의 공기가 마구 밖으로 도망친다. 많은 사람을 죽음의 위험에 부닥치게 하는 중대한 범죄를 나는 저지를 수가 없다. "어떻게 하지?" 하고 폴은 나를 쳐다보았다. "땅을 파고 숨읍시다." 문득 나는 생각했다. 공기 돔의 안쪽도 부드러운 모래땅이다. 나는 두 손으로 모래를 파헤쳐서, 잠깐 동안에 나와 폴이 들어갈 만한 굴을 팠다. "됐어!" 폴은 헬멧을 쓰고 굴로 들어갔다. 이어서 나도 미끄러져 들어가서는 우리들 뒤에 모래를 덮었다. 마지막으로 팔을 내릴 때 모래가 오므라들었다. 틀림없이 위는 울퉁불퉁할 거다. 누군가가 가까이 에서 보면, 아래에 무엇인가 숨어 있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당황하지 않았다. 뒤쫓는 사람들은 분명히 다른 쪽을 찾을 것이다. 우리들이 설마 공기 돔에서 숨이 막힐 장소로 도망을 치고, 굴을 파서 숨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모래 폭풍우   우리는 굴속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네가 반드시 찾으러 올 것이라고 생각했어." "처음에는 당신이 있는 곳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버커 선장이 가지고 온 보고서의 사본을 읽었던 겁니다." "나는 경찰에는 잠시 있었을 뿐이다. 곧 시장 집에 옮겨졌던 거다. 그런데 덥구나. 언제까지 모래 속에 박혀 있어야 하나?" 폴이 불평을 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2,3시간쯤 어두워질 때까지 여기 있는 편이 안전합니다." 하고 나는 달랬다. "곤란한데. 헬멧 속에 모래가 들어와서 껄끔껄끔하구나." "좀 옆으로 해봐요." "응, 이제 됐다." 모래가 나온 모양으로 폴은 또 이야기를 계속했다. "마아즈시의 시장은 될수록 빨리 나를 제1급의 행성간 우주선으로 지구로 보낸다고 했어. 틀림없이 아버지의 회사에 잘 보이려고 하기 때문이야." "그걸 받아들이는 것이 좋았을지도 모릅니다." "너를 여기 둔 채로? 바보 같은! 너하고 함께 돌아가고 싶어서 이런 고생을 하고 있는 게 아니냐?" 폴은 화가 나서 소리쳤다. "알았습니다. 조용히 해주세요. 움직이면 또 헬멧에 모래가 들어갑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나는 기뻤다. 폴은 목숨을 걸고 나를 지구로 데리고 가려고 결심하고 있는 것이다. "폴, 곧 이제부터의 계획을 세우는 것이 좋아요." "나는 돈을 가지고 있다. 굴에서 나가면 마아즈 포인트 공항에 가서 지구 행의 우주선을 타자." "그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것입니다." "당연하다. 내가 나의 돈으로 너를 지구에 데리고 가면, 아버지도 뭐라고 하시지는 않을 거다." "잠깐만, 당신은 중요한 일을 한 가지 잊고 있어요." "어떤 일?" "헤닝스의 일 말입니다. 당신이 지구 행의 표를 사는 돈은 나를 판 대금이죠? 지금 나는 헤닝스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나를 훔친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돈은 표를 사고도 절반이 남는다. 그걸 헤닝스에게 되돌려 보낼까?" "절반 가지고는 헤닝스가 가만있지 않을 것입니다." "나머지는 지구에 가서 아버지에게서 얻으면 돼. 아버지는 아무래도 새로운 로봇을 살 작정으로 있으니까 말야." "그러나 아버지는 당신에게 준 돈으로 새로운 로봇을 살 작정이 아닐까요?" "그것도 그렇겠군." 폴이 대답이 막히자, 나는 다시 말했다. "또 한 가지 걱정되는 일이 있습니다. 지구에 돌아가서 헤닝스에게 돈을 전부 보내도, 경찰은 당신의 아버지에게서 벌금을 받을지도 모릅니다. 당신이 나를 훔쳤다는 이유로……" 질서정연한 이야기는 사람보다 로봇이 낫다. 폴은 나의 말에 대답이 궁해지자, 드디어 화를 냈다. "렉스, 네가 말하는 것 같은 일은 지구에 돌아가서 해결하면 된다. 지금 가장 중요한 일은 지구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걸 심각하게 생각해!" "알았습니다." 결국 나는 사람에게 이길 수 없는 것이다. 드디어 밤이 왔다. 우리들은 모래를 파헤치고 어두운 지상에 섰다. 다행히 주위에는 사람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는다. "렉스, 너 마아즈 포인트 공항으로 가는 길을 알고 있어?" "대강은 압니다. 우리는 여기서 돔 밖으로 나가서 사막을 가로지르는 것이 좋을 겁니다. 마을의 출입구에는 경찰이 틀림없이 있습니다." 나는 어둠 속에서 또 굴을 파기 시작했고, 폴은 감시를 했다. 이윽고 나는 땅 아래로 들어간 공기 돔의 벽 아래를 넘어, 바깥 사막으로 빠지는 터널을 팠다. 우선 폴이 모래를 헤치면서 터널을 지나고, 다음에 내가 나간 다음 곧 터널을 막았다. 이리하여 마아즈시의 공기는 새지 않게 되었다. "멀리 돌아서 마아즈 포인트 공항으로 가는 길로 나갑시다." 나는 앞서서 사막을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았을 때, 굉장한 폭풍이 불고 어두운 하늘에서 모래의 비가 내렸다. "앗, 모래 폭풍우다!" 폴이 비틀거렸다. 화성의 모래 폭풍우는 아무런 징조도 없이 닥쳐온다. 사막의 끝까지 바라볼 수 있는 좋은 날씨에도 안심이 되지 않는다. 1분 후에는 하늘 가득히 날아 올라갔던 모래가 맹렬한 힘으로 내리퍼붓는다. 모래가 헬멧을 날리고, 사람을 질식해서 죽게 하는 일도 있다. "나를 꽉 잡아요!" 나는 두 손으로 폴을 끌어당기려고 했으나, 이미 폴은 거기에는 없었다. 모래 폭풍우가 폴을 어둠 속으로 데리고 간 것이다. "폴, 폴!" 나는 힘껏 외쳤다. 듣는 힘을 최대로 발휘하여 폴의 대답을 들으려고 했다. 그러나 들려오는 것이라고는 어둠 속에서 불어닥치는 바람과 모래의 소리뿐이었다. 어느 사이에 내 몸통도 무릎까지 모래에 파묻히고 있었다. 모래 속에 깊이 파묻히면 다시 찾아낼 수는 없을 것이다. "빨리 발견하지 못하면…… 빨리 발견하지 못하면……" 스스로에게 외치며, 나는 주위에 생긴 모래산을 모조리 팠다. 얼마쯤 파 보았을까, 나의 손에 무엇인가 부딪쳤다. 살그머니 잡고 모래에서 꺼냈더니, 바로 폴이 아닌가. "잘 됐다……" 나는 폴의 헬멧이 무사한 것을 확인하고 안심했다. "이젠 괜찮습니다. 내 몸에 꼭 붙으세요." 나는 폴을 끌어당기며 모래 폭풍으로부터 지켰다. 그러자 폴이 말했다. "큰일났다! 모래 폭풍우 때문에 방향을 알 수 없게 됐다!" "괜찮아요. 나의 안테나는 공항 라디오의 전파를 잡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전파를 의지하고 가면 됩니다." "그렇구나. 나는 아주 잊어버리고 있었어." 폴 뿐만 아니라, 사람은 무서운 일을 당하면 생각하는 힘이 둔해진다. 그러나 로봇은 다르다. 로봇은 어떤 경우에도 최대의 힘을 발휘하여, 기계가 고장날 때까지 자동적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나는 한쪽 손으로 폴을 안고, 다른 한쪽 손으로는 머리 위의 안테나를 공항 방송의 전파에 오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장치했다. 또 바람이 심해져서 폴은 걷지 못할 것 같다. 나는 두 손으로 폴을 가슴에까지 안아 올려 조금씩 전진하기 시작했다. 한 발짝 옮길 때마다 복사뼈까지 푹푹 모래에 빠졌다. "렉스, 네가 움직이는 것은 드라베라호에서 배터리를 두 개 넣었기 때문이다." 폴은 헬멧을 나의 가슴에 대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하나는 다 닳았습니다. 지금은 두 개째 배터리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아, 공항 라디오의 전파를 잡았습니다……" 머리 위의 안테나를 전파로 향하게 하면서, 나는 두 발에 힘을 주어 나아갔다. 모래 폭풍우는 점차로 약해지다가 드디어 그쳤다. 맑게 갠 하늘에는 화성의 위성 데이모스와 포보스가 둥실 떠 있었다.   푸른 지구   전파는 우리들을 무사히 마아즈 포인트 공항으로 이끌어 주었다. 공항의 일부는 마아즈 시와 같이 공기 돔에 덮여 있었다. 공항 앞에서 나는 폴에게 말했다. "나와 당신이 함께 공항에 들어가면 눈에 뜨입니다. 내가 두 사람 치의 표를 사지요. 그 동안에 여기서 기다려 주세요." "부탁해." 폴은 주머니에서 메모 용지와 연필을 꺼냈다. "내가 책상 대신을 하지요." 나는 모래땅에 벌렁 누웠다. "지구행 1등 2장……" 나의 가슴 위에서 폴은 메모를 썼다. 그 메모와 돈을 가지고 나는 공항으로 들어갔다. 여기는 드라베라호가 착륙한 화물 전용의 공항과는 달리 번창했다. 낮과 밤의 구별이 없이 대형 우주선이 발착하고, 많은 승강객이나 로봇으로 언제나 법석거렸다. 녹색의 화성인. 키가 2미터를 넘는 눈이 큰 금성인. 바삭바삭 마른 내화성의 몸을 가진 수성인. 그러나 여행자의 대부분은 지구인이었다. 지구인의 모습이 남자도 여자도 역시 가장 아름다웠다. 나는 표를 파는 창구에서 메모와 돈을 냈다. "오클라호마호에 타십시오. 15분 후에 출발합니다." 화성인의 계원이 1등표를 주면서 말했다. 나는 2장의 표를 꼭 쥐고, 창구 위에 나붙어 있는 시간표를 쳐다보았다. 시간표 옆에 혹성 여행 연맹의 주의서가 나붙어 있었다. -이 공항에서는 당분간 로봇의 승선을 금지함. 로봇은 화물 전용의 화성 공항에서 화물 우주선에 승선할 것.   나는 힘없이 폴에게로 돌아갔다. "잘 됐어. 렉스! 우리들의 계획은 끝내 성공했다!" 뛰어오르며 기뻐하는 폴에게 새삼스럽게 주의서를 말할 수는 없다. 말하면 폴은 오클라호마호에는 타지 않겠다고 말할 것이다. 나는 중대한 결심을 했다. "당신이 먼저 타십시오. 나는 시간이 다 됐을 때 뛰어오르겠습니다." "응, 탈 때까지 따로 있는 편이 좋을 거다." 폴은 기분이 좋았다. "오클라호마호에 승선하실 분은 서둘러 주십시오. 이제 5분 후에 출발합니다."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우리들이 있는 곳까지 들려왔다. "그럼 먼저 타겠어." 폴은 나에게 손을 흔들며 우주선의 입구로 사라졌다. 드디어 출발 시간이다. 그러나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 속에서 승선구의 문이 조용히 닫히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으르릉…… 오클라호마호는 오렌지 색깔의 불길을 내뿜으며 상승하기 시작했다. 지금쯤 폴은 내가 타지 않은 것을 알았을 것이다. 로봇은 승선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폴의 성난 얼굴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나는 마아즈 포인트 공항을 나와서 황폐한 사막을 터벅터벅 걸었다. 어디로 갈 목적지도 없다. 절로 발길이 화성 공항으로 향하고 있었다. 드라베라호는 내가 도망쳤을 때와 같은, 여전한 모습으로 땅 위에 있었다. 나는 조종실의 입구를 똑똑 소리냈다. 문이 열리면서 버커 선장이 얼굴을 내밀었다. "아니, 불량 소년처럼 불쑥 내뺐다가 불쑥 나타났구나, 지금까지 어디를 헤매 다녔어?" "미안합니다. 폴을 찾으러 갔으나 잘 안 되었습니다. 그 전처럼 나를 써주지 않겠습니까?"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처럼 조심해서 말했다. 폴을 시장의 집에서 빼내 왔지만, 폴과 함께 지구로 돌아가는 계획이 잘 되지 않았다고 말해버렸던 거이다. "좋아, 너는 일을 잘 하니까 도움이 돼." 버커 선장은 나의 제멋대로의 행동을 깨끗이 용서해주었다. "그러나 이제 두 번 다시 도망치지 않는다고 약속하겠느냐?" "약속합니다." 나는 똑똑하게 말했다. "자, 출발! 너는 노동 로봇의 손질을 해 줘!" 버커 선장은 나에게 명령하고 조종석에 앉았다. 이렇게 하여 지구에로의 여행은 시작되었다. 나는 매일 열심히 일을 했다. 어느 날, 선장은 나를 선장실로 불렀다. "너는 체스(서양 장기)를 둘 줄 알아?" "네, 합니다." "그럼, 나하고 해 보자." 선장과 나는 체스를 두기 시작했다. 1회전은 내가 이겼다. "너 로봇인 주제에 제법이구나. 다시 한 번 더 해 봐." 선장은 안타까워했으나, 2회전도 내가 이겼다. 3회전, 4회전, 5회전……8회전까지 계속 이기자, 선장은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다. "너 누구에게서 체스를 배웠어?" "체스 책을 읽었을 뿐입니다. 나의 기억 뱅크에는 4백 승부 1만 1천 2백 24수가 정확하게 기억되고 있습니다." "음, 그렇다면 체스의 세계 챔피언도 너를 이길 수는 없지." 선장은 신음 소리를 냈다. 화성을 떠나서 3주만에 선장은 조종실에서 나에게 말했다. "저게 지구다!" 암흑의 공간에 푸른 색깔로 빛나는 천체가 점점 다가왔다. "아름답구나!" 나도 모르게 외쳤다. 지금까지 본 어느 별보다 지구는 아름다웠다. 그러나 난 곧 서글퍼졌다.   다시 만나다   드라베라호는 예정대로 캔자스 시의 공항에 착륙했다. "렉스, 지구를 출발하기까지 너의 배터리를 뽑아 둔다. 또 도망치고 싶어하면 곤란하니까." 선장은 나의 가슴을 열었다. "그 대신 폴에 대해서 조사해 주십시오. 무사히 집에 돌아왔는지, 부탁합니다." 나는 선장에게 부탁했다. 그 때였다. "미치광이 로봇이 미쳐 날뛴다!" 하고 밖에서 외치는 소리가 났다. 선실의 창 너머로 공항 빌딩에서 도망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 뒤로 나보다 훨씬 큰 로봇이 뛰어나왔다. 로봇은 확실히 미쳐 있었다. 미처 도망치지 못한 사람을 닥치는 대로 때려눕히고 밟아 버렸다. "위험하다! 모두 도망쳐라!" 두 명의 경관이 광선총으로 로봇을 겨누었다. 그러나 로봇이 소녀를 옆구리에 끼고 있기 때문에 발사할 수도 없었다. "살려줘요!" 소녀의 비명이 내 귀에 울렸을 때, 나는 선장을 밀치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렉스, 어디로 가냐!" 선장이 불렀으나 뒤돌아보지도 않고 나는 곧바로 미치광이 로봇을 향하여 달려갔다. "이 봐, 그 소녀를 놓아라! 사람을 해치지 말아라!" 그러나 나의 말이 미치광이 로봇에게 통할 리가 없다. 대형 로봇은 소녀를 낀 채로 내게 대들었다. 딱! 강철의 손이 나의 어깨를 쳤을 때 불꽃이 튀겼다. 나는 얻어맞으면서 소녀를 끼고 있는 한쪽 팔을 비틀었다. 이윽고 팔이 늘어지며 겨우 손이 빠질 수 있었다. 이제 안심이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하여 상대방의 팔을 비틀었다. 찌지직!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며 미치광이 로봇의 팔이 어깨에서 떨어졌다. 그 때, 두 사람의 경관이 달려왔다. 광선총의 광선을 받은 미치광이 로봇은 픽하고 땅에 쓰러졌다. 그것을 보고 나자 나의 눈앞은 캄캄해졌다. 배터리가 없어진 것이다. 그로부터 얼마나 잠들었는지 모른다. 나의 눈에 다시 빛이 되돌아왔다. 새로운 배터리가 넣어진 것이다. 처음으로 소년의 얼굴이 어렴풋이 보였다. 그것이 점차로 확실해져 왔다. "렉스, 알 만해? 나야." 소년은 폴이었다. 이젠 만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그 폴이 생글생글 웃으면서 내 앞에 서 있었다. "나는 오늘 아침 지구에 도착하여 모든 것을 아버지에게 말했어. 그리고 뉴스로 네가 미치광이 로봇을 때려눕힌 것을 듣고 달려온 거다." "미안해요. 폴 당신을 속이기도 해서요." "좋아, 나를 위해서 한 것이지? 알고 있어."   폴의 뒤에는 아버지, 어머니, 누이동생 제인, 버커 선장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내가 알지 못하는 남자와 여자도 서 있었다. "렉스, 이 사람들은 너를 만든 그렌우드 로봇 제조 회사의 기사다. 즉 너의 아버지와 어머니다." 하고 폴이 나에게 가르쳐 주었다. "너는 세계 첫째의 로봇이다. 너를 이 세상에 내보낸 우리들은 코가 높아진 느낌이다."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렌우드의 기사들은 번갈아 가며 나의 몸을 쓰다듬어 주었다. 폴의 아버지는 헤닝스의 돈을 보내고 정식으로 다시 사들였다. 경찰에도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제 도망칠 필요는 없게 된 것이다. "너는 이제부터 트레드의 집에서 나와 함께 사는 거다. 이젠 놓치지 않는다. 자, 너의 새로운 바지를 사러 가자." 하고 폴은 나의 팔에 매달렸다. "폴, 폴!" 나는 폴을 끌어안고 실컷 울고 싶었다. 그러나 로봇이기 때문에 눈물이 나오지 않는다. 로봇은 울지 않는다.   --   작품 해설   인간적인 로봇   이 공상과학소설의 작자 래스터 델 레이는 미국 미네소타주에서 출생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여행을 몹시 좋아하여, 대학생이 되고 나서는 여름 휴가나 겨울 휴가에는 미국 국내는 물론 멀리 캐나다나 멕시코까지 갔습니다. 여행이라고 하여 번들번들 놀기나 한 것이 아닙니다. 가는 곳마다에서 일을 했습니다. 목수, 호텔의 종업원, 기자, 잡지의 외교원 등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일을 했습니다. 이것이 소설을 쓰는 데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처음으로 책을 낸 것은 22세 때였습니다. 그 후, 소설의 비평이나 잡지의 편집에 손을 대며 그는 공상과학소설을 계속 써서, 오늘날에는 미국을 대표하는 공상과학 작가의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델 레이는 학생 시대에 원자 물리학, 의학, 전자공항 등을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이 과학적인 지식과 각지에서 일한 경험이 잘 융합되어, 인간미가 가득한 공상과학소설을 쓴 것입니다. 델 레이가 쓰는 로봇은 기계이면서도 모두 인간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도망친 로봇」의 주인공인 렉스는 눈이 하나, 몸도 딱딱한 모습만은 인간을 닮지 않았으나, 사물을 생각하는 것은 인간과 꼭 같습니다. 사물을 바르게 판단하며 언제나 자기를 희생하여, 주인인 폴 소년을 도와주려고 합니다. 그 우정과 용기는 보통 인간보다 훌륭할 정도입니다. 렉스가 주인의 사정으로 팔려 가는 장면은 스토우 부인의 유명한 소설「엉클 톰스 캐빈」을 생각하게 합니다. 새로운 주인에게 학대를 받아도 본래의 주인을 원망하지 않고, 다시 한 번 만나려고 생각하는 렉스의 애처로움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눈물겹게 합니다. 델 레이는 로봇의 모습을 빌려, 우주 시대에 사는 이상적인 인간을 그리려고 했을 것입니다. 로봇을 쓰는 공상과학 작가는 많이 있습니다. 아이작 아시모프, 에드먼드 쿠퍼 등은 유명합니다. 다만 특히 델 레이의 로봇은 인간적인 것이 특징입니다. 공상 과학 소설이라고 하면 우주 시대의 모험이나 과학 만능의 세계를 쓴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인간의 소원이나 기도가 들어 있지 않으면,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감동시키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러한 의미로 보아서 「도망친 로봇」은 단지 우주 모험 소설로 끝나지 않고 문학적인 깊이를 가진, 소년 소녀를 위한 공상과학소설의 명작으로 되어 있습니다. 물론 델 레이는 「사랑하는 헬렌」, 「신경 섬유」 등 어른을 위한 우수한 공상과학소설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작품의 수는 소년 소녀를 위한 것이 훨씬 많습니다. '나는 어른보다 소년 소녀에게 공상과학소설을 읽히기를 바란다. 공상과학소설은 소년 소녀를 즐겁게 해줄 뿐만 아니라, 이제부터 우주 시대에 사는 소년 소녀의 마음에 끝없는 꿈과 희망을 키워주기 때문이다.' 라고 델 레이는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부터도 소년 소녀를 위하여 많은 공상과학소설을 써 주실 것입니다.
1    27세기의 발명왕 / 휴고 건즈백 Hugo Gernsback 지음 댓글:  조회:40  추천:0  2021-03-19
27세기의 발명왕 Ralph 124C41+   휴고 건즈백 Hugo Gernsback 지음   랄프 플러스··················· 3 텔레비전 전화의 혼선··············· 8 눈사태····················· 15 빛으로 된 탑·················· 21 방문객····················· 25 27세기의 뉴욕················· 30 축 제······················ 39 유 괴······················ 46 대추적····················· 54 페르난은 어디로················· 57 함정에 빠지다·················· 65 우주에서···················· 69 악마의 술책··················· 82 아리스, 죽다·················· 97     랄프 플러스   젊고 재기에 넘쳐있는 청년 랄프는 기쁨에 넘친 눈으로 유리 용기 안에 들어있는 한 마리의 모르모트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귀여운 눈을 반짝이면서, 완전히 죽어있던 그 모르모트가 24시간만에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청년 랄프는 실험대 위에 놓여있는 둥근 유리 용기를 바라보면서 기쁨의 함성을 올렸습니다. 놀랄만한 대성공을 이룩한 것입니다. 오늘, 2660년 9월 1일, 달력이 가리키는 이 날은 인류를 위하여 하나의 획기적인 기념일이 될 것입니다. 랄프는 넓은 방의 모퉁이에 있는 대형 텔레비전 전화 앞에 우뚝 멈추었습니다. 복잡한 버튼과 스위치가 빽빽하게 장치되어 있는 텔레비전 전화 앞의 조종대에는 또 미터 자동계기와 신호등이 붙어 있었습니다. 랄프는 재빠른 솜씨로 스위치들을 조작하고는 버튼을 눌렀습니다. 그 순간 벽 중앙에 있는 가로 세로 1미터의 정사각형 모양을 가진 스크린이 환해지면서 밝게 웃는 한 청년이 나타났습니다. 랄프는 명랑하게 그 청년에게 인사를 하였습니다. “잘 있었나? 에드워드.” “물론 잘 있었지. 자네는 어떤가, 랄프.” 랄프는 에드워드라고 불린 청년에게 연구실에 꼭 들러 달라는 부탁을 했습니다. 무슨 일 때문인가 궁금해하는 에드워드에게 랄프는 뒤를 돌아보며 손가락으로 실험대 위의 유리 용기를 가리켰습니다. 입체 텔레비전이기 때문에 몸을 내밀어 용기를 보려고 하는 에드워드의 몸이 스크린 밖으로 튀어나올 것같이 보였습니다. 눈을 가늘게 뜨고 용기를 바라보던 에드워드는 감탄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오오, 랄프! 자네는 기어이 그것을 완성하고 말았군.” “그렇다네.” 랄프는 마음을 가다듬으며 엄숙하게 말했습니다. “난 죽은 것을 다시 살려냈네.” 에드워드는 들뜬 목소리로 축하를 했습니다. “과연 랄프. 자네는 훌륭한 천재야. 아니 어떻게 죽은 것을 다시 살려낼 수 있단 말인가! 그건 아무도 생각할 수 없었을 거야. 자넨 인류를 위해 훌륭한 발명을 했어! 어쨌든 축하하네. 자네야말로 우리들의 랄프 124C41 플러스군 그래.” “고맙네, 에드워드 350B11.” 랄프는 기쁨에 찬 얼굴로 말했습니다. 지구에는 전쟁이 사라진지 오래 되었고, 각국의 국민들은 세계 정부를 세우고, 그 지배하에 세계 전체가 평화스럽게 살고 있는 서기 2600년대는 그 옛날에 상상할 수도 없었던 아주 놀라운 시대로 접어든 것입니다. 전쟁이라는 것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전쟁이 없어지자 어떤 군비도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한 나라 국민처럼 서로를 사랑하며 인류를 위하여 과학을 발달시키고 기술을 연구하여 이용하게 되었습니다. 전쟁이 없어졌으므로 군비에 소요되던 지금까지의 엄청난 돈과 연구, 그것들을 위해 일하고 있던 많은 과학자들이 이제는 평화를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편리해진 사회에서 생활하고 있었지만 단 한 가지의 곤란한 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세계 각국의 언어가 서로 다르다는 점이었습니다. 사람의 이름도 나라마다 달랐습니다. 여러 가지 불편한 점을 없애기 위해 200년 전부터 세계 각국의 언어를 통일하기 위한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어느 나라 사람에게도 알맞은 공통 언어를 만든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실로 오랜 시일을 요구했습니다. 그렇지만 인간의 노력의 힘은 위대했습니다. 어느 나라 사람이라도 한결같이 먼저 ‘랄프’라든가 ‘에드워드’라든가, ‘민수’ ‘영수’라는 이름을 지어놓고 그 밑에 살고 있는 땅이나 자기의 직업 등으로 서로 다른 번호와 기호를 붙였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랄프 C41’이라든가 ‘에드워드 11’이라는 이름이 그것입니다. 그러나 단, 이름 맨 끝에 붙어있는 +(플러스)라는 기호는 아무에게나 붙여지는 것이 아닙니다. 세계에서 + 기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세계 정부의 수상을 비롯하여 단 10명도 채 되지 않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기호는 인류를 위하여 아주 특별히 위대한 공적을 남긴 사람에게만 내리는 영광스러운 기호이기 때문입니다. 랄프는 여러 가지 위대한 발명을 함으로써 인류에게 봉사했으므로 그 명예로운 +기호를 받았던 것입니다.   텔레비전 전화의 혼선   에드워드는 아직 흥분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자네는 정말 훌륭해. 이제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날 수 있는 게 아닌가. 앓고 있는 사람, 그 모든 불행을 겪는 사람들이 구원받을 수 있게 된 거네.” 랄프는 에드워드에게 겸손하게 대답했습니다. “아니, 너무 그러지 말게. 아직은 완전히 성공한 것은 아니야. 이제 겨우 동물을 실험해서 성공한 것 뿐이야. 사람에게 적용시키려면 많은 실험과 연구를 거듭해야 돼.” “난 자네를 믿어. 빠른 시일 내로 성공하고 말 거야.” 대화 도중 갑자기 텔레비전 스크린이 마구 흔들리다가 곧 어두워지면서 꺼져 버렸습니다. 이 텔레비전 전화는 세계 어느 곳이라도 통화할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가끔 혼선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스크린을 바라보면서 랄프는 얼굴을 찡그렸습니다. 고장이 난 것입니다. 랄프는 고장난 곳을 고치기 위해 스위치를 이리 저리로 돌려보기도 하고 버튼을 눌러 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쉽사리 고쳐지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랄프가 중계소의 교환수를 부르기 위해 스위치에 손을 댔을 때였습니다. 갑자기 스크린이 밝아졌습니다. 랄프는 스크린을 바라보았습니다. 순간 랄프는 깜짝 놀랐습니다. 스크린 속에는 에드워드가 아닌 한 아름다운 아가씨가 랄프보다 더 놀란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가씨는 프랑스 투의 말씨로 랄프에게 물었습니다. “누구세요, 당신은……?” 어딘지 알 수 없는 시골의 어느 집에 아가씨는 혼자서 있었습니다. 랄프는 정중하게 그 아가씨에게 사과를 했습니다. “텔레비전 전화가 혼선이 된 모양입니다. 친구와 함께 얘기를 하다 도중에 갑자기 끊어져 버렸어요. 정말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곧 중계소에 연락을 해 고치도록 해야겠어요.” 아가씨는 의외로 상냥하게 질문을 했습니다. “아니에요. 당신은 뭐하는 사람인가요? 당신 방은 온통 기계로 꽉 차 있군요. 무슨 연구실 아니면 우주선의 조종실 같아 보여요. 거기 어디죠?” “아, 여기는 뉴욕입니다. 그쪽은 프랑스인가요?” “아니에요. 여기는 스위스에요. 알프스 산 중턱이랍니다.” 아가씨는 랄프를 자세히 바라보고는 이상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거렸습니다. “그런데 당신의 얼굴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아요. 어디서였을까요?” “텔레비젼에서 보셨겠죠!” 라고 랄프가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아가씨는 손뼉을 쳤습니다. 그 아가씨는 지금 텔레비젼 전화에 비치고 있는 사람이 그 유명한 발명왕 ‘랄프 124C플러스’라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랄프는 그 아가씨를 향해 겸손하게 웃었습니다. 그러자 그 아가씨는 귀여운 눈을 반짝이면서 훌륭한 분과 이야기를 직접 나누게 된 것이 꿈이 아닌지 모르겠다고, 기쁜 얼굴을 하며 자기를 소개하였습니다. “전 아리스 212B423이라고 해요.” “반갑습니다. 만나 뵙게 되어서, 아리스.” 랄프 역시 아가씨와 알게 된 것이 진심으로 기뻤습니다. 아리스는 알프스의 로잔산 중턱에 아버지, 언니와 같이 살고있는 아가씨였습니다. 5일 전에 가족들이 반중력 비행차로 파리에 가고 없었기 때문에 아리스는 5일 만에 처음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을 만난 셈입니다. 아버지와 언니는 곧 돌아오기로 되어 있었는데 심한 눈보라로 인하여 도저히 로잔산 근처까지 오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아리스는 오랜만에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 더군다나 그 유명한 랄프 124C41플러스라는 것에 흥분이 되어 있었습니다. 좀처럼 흥분은 가라앉지 않는 모양이었습니다. 아리스가 있는 곳에는 눈 때문에 텔레비젼 전화 안테나까지 부러질 정도였습니다. 안테나를 간신히 응급 수리하여 파리와 연락을 취하려고 했던 것이었는데, 혼선이 되는 바람에 랄프의 텔레비젼 전화에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아리스는 계속 예쁘게 웃었습니다. 아리스는 의지가 대단히 강한 아가씨였습니다. 알프스 산중에서 5일 동안이나 눈 속에 갇혀 있었으면서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직접 자기 손으로 안테나를 수리할 정도였습니다. 랄프는 조금 화가 났습니다. 이 시대는 세계의 기후도 과학의 힘으로 완전히 조종할 수 있게 되어 있었습니다. 비나 눈을 필요로 할 때는 그것들을 인공적으로 만들어 내리게 할 수 있었고, 필요 이상의 큰 눈, 비는 보통 때에는 내리지 않게 하고 있었는데 아리스가 그런 일을 당하다니. 그럼 스위스의 기상 조정 센터는 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랄프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아니 스위스의 기상 조정 센터는 낮잠을 자고 있는 건가요? 5일 동안이나 눈보라가 계속 되고 있다니 참으로 이상한 일이군요.” “그것은 기상 조정 센터의 기사들이 스위스 지사와의 불화 때문에 파업에 들어갔기 때문이에요.” 아리스가 랄프에게 그 이유를 설명하자 랄프는 몹시 노했습니다. 남들이 당하는 피해를 생각하지 않고 자기들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자를 랄프는 무척 싫어합니다. 사람의 안전을 지켜야 되는 기상 조정 센터의 기사들이 파업을 했다는 것은 이유야 어찌 되었건 간에 괘씸한 일이었습니다. “잠깐 기다려요, 아리스. 제가 파리에 연락하여 눈이 멈출 수 있도록 해보죠.” 랄프가 그렇게 말한 순간이었습니다. ‘리리리리리리. 리리리링. 리리리리링’ 하는 벨 소리가 울렸습니다. 아리스의 얼굴이 창백해졌습니다. 그 벨 소리는 사태를 알리는 경보였던 것입니다.   눈사태   로잔산에서는 무시무시한 눈사태가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아리스, 내 말에 침착하게 대답해요. 안테나를 이동할 수 있겠어요?” “예, 할 수 있어요.” “됐습니다. 그럼 빨리 지붕으로 올라가서 안테나를 정확히 눈사태가 일어난 방향으로 돌려놓아요.” 아리스는 침착한 모습으로 웃음까지 웃어 보였습니다. 아리스는 미소를 머금은 채 방에서 나갔습니다. 아리스의 뒷모습이 텔레비젼 전화에서 사라지자 랄프는 곧 다음 행동에 들어갔습니다. 자기의 책상에 돌아가서 라디오의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긴급 연락, 긴급 연락! 랄프 연구소 부근의 10 킬로미터 안에 있는 사람은 지금 급히 금속성의 물건에서 떨어져 주시기 바랍니다. 3분 후에 약 15분간 강력한 전파가 연구소에서 흘러나갈 것이므로 금속 옆에 있으면 감전될 위험이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랄프는 세 번을 연달아 방송하고 난 후 다시 텔레비젼 전화 옆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리스도 돌아와 있었습니다. 아리스에게도 랄프는 유리로 만든 의자에 앉아 감전을 피하도록 일렀습니다. “감전이라뇨? 그게 무슨 소리죠?” 의아해서 묻는 아리스에게 랄프는 그것을 설명할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습니다. 유리로 만든 의자에 아리스가 앉자 아리스 방 창으로부터 대단한 눈사태가 엄청난 힘으로 내려오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서두르지 않으면 큰일이었습니다. 랄프는 벽에 있는 조정대의 버튼을 재빨리 눌렀습니다. 그리고 핸들을 돌렸습니다. 연구소의 초발전기를 움직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순간에 우레와 같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소리가 울렸습니다. 조종대에서는 번쩍번쩍하는 파란 불꽃들이 튀어 올랐습니다. 연구소 지붕 위의 거대한 원형 로우프 안테나에서 불꽃이 마구 튀어 올랐습니다. 그러다가 달아오른 안테나는 번갯불처럼 빛나기 시작했습니다. 천지가 진동하는 듯한 소리가 났습니다. 그 커다란 소리는 눈 깜짝할 사이에 뚝 그쳐 버렸습니다. 소리에는 사람의 귀에 들리는 것과 들리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천지를 진동하는 듯한 무섭도록 큰 소리라도 사람의 귀에 들릴 수 있는 한도를 넘어서면 초음파가 되기 때문에 들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안테나로부터 파란빛이 도는 흰 번갯불이 스위스의 로잔산 방향으로 소리도 없이 번져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랄프는 잠시도 눈을 떼지 않고 텔레비젼 전화만을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아리스는 파랑게 질린 얼굴로 계속 떨고 있었습니다. “아리스, 나를 믿어요. 안심해요.” 랄프는 아리스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었습니다. 눈사태가 밀어닥치면 집과 아리스는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파묻혀 떠내려갈 것입니다. 그 죽음의 그림자가 바로 눈 앞까지 다가왔습니다. 무서운 진동 소리가 귀를 울렸습니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나려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갑자기 눈사태가 흰김으로 솟아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랄프가 보낸 강한 전파가 열의 파동으로 바뀌어져 눈사태를 녹인 것입니다. 눈은 증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증발하기 시작하자 눈은 뜨거운 물로 변하여 산 아래로 폭포같이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런 잠깐의 시간이 지나자 그 끓는 듯한 물도 눈 깜짝할 사이에 흰 연기로 되어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것으로 그 무서운 눈사태는 씻은 듯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아리스는 일어섰지만 비틀거렸습니다. 아리스는 쓰러질 것 같았습니다. 휘청거리며 창문을 붙잡았습니다. 아리스는 눈사태가 깨끗이 없어진 것을 보고 믿을 수 없다는 듯한 얼굴로 랄프를 바라보았습니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요. 그 눈사태가 깨끗이 없어지다니?” 아리스는 중얼거렸습니다. 랄프는 발전을 정지시키기 위해 스위치에 손을 대며 아리스를 향해 빙그레 웃어 보였습니다. “이제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아리스!” 그때 마침 아리스의 방문이 후닥닥 열렸습니다. 동시에 머리가 하얀 백발 노인이 뛰어들어왔습니다. 노인은 기쁨에 찬 목소리로 아리스를 부르며 아리스를 품에 안았습니다 “아리스, 어디 보자. 네가 살아있다니!” “예, 아버지. 살았어요. 제가 살았어요!” 부녀의 기쁨에 찬 모습을 보고 랄프는 가슴이 뿌듯해 졌습니다. 랄프는 텔레비젼 스위치를 껐습니다. 그는 피로를 느꼈지만 우연히 알게 된 소녀의 생명을 구하게 된 것이 참으로 다행스러웠습니다. 모처럼 즐거운 기분이 되었습니다. 랄프는 쉬기 위해서 연구실에서 나와 계단 바로 밑에 있는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방은 사방이 유리로 되어 있는 곳으로서 밖의 경치를 환하게 바라볼 수가 있었습니다. 밖에는 뉴욕 시가가 펼쳐져 있고, 높고 큰 빌딩들이 바로 눈앞에까지 우뚝우뚝 솟아올라 있었습니다.   빛으로 된 탑   랄프의 집은 지름 10미터, 높이 20미터의 바늘 같은 뾰족한 탑으로서, 수정 유리와 스틸 알루미늄이라는 특수 금속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햇빛을 받으면 번쩍번쩍 눈부시게 빛났습니다. 랄프의 집은 이 도시의 명물로서 뉴욕 사람들은 이 집을 빛의 탑이라고 불렀습니다. 랄프는 미국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의 자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가 몇 년에 걸쳐 완성한 몇 가지 발명들은 모두가 인류를 위한 것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생활을 풍요하게 하고 세계 문명을 빛내는 데 이바지한 것들이었습니다. 물론 전 인류에게 그는 존경을 받았습니다. 돈도 발명의 대가로 받은 것들이 남아 돌만큼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유명한 사람이면 다 그렇듯이 랄프도 너무 유명했기 때문에 조금의 자유도 없었습니다. 자기만의 조용한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거의 생각할 수조차 없는 일이었습니다. 무엇을 하든지 항상 곁에는 누군가가 붙어 있었고, 어디를 가든 사람들이 그를 알아보고 몰려왔습니다. 그래서 그는 항상 연구실에 틀어박혀 일에 몰두했습니다. 오히려 그것이 마음에 편했습니다. 발명왕 랄프! 그것은 언제나 사람들이 랄프 곁에 몰려들 듯이, 항상 랄프에게 붙어 다니는 칭호였습니다. 랄프는 자동조리기의 버튼을 눌러 커피를 받았습니다. 그것도 그가 발명한 것이었습니다. 그가 천천히 커피를 마시고 있을 때였습니다. 심부름하던 피트의 모습이 벽의 텔레비젼이 켜지면서 나타났습니다. “박사님, 텔레비젼국의 직원이 텔레비젼에 좀 나와 주셨으면 하고 부탁해 왔습니다. 어떻게 하죠?” 잠시 동안의 휴식의 즐거움이 또 깨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난 쉬고 싶어, 피트. 도대체 무엇 때문이야?” “전 세계 사람들은 방금 박사님께서 생명을 구하신 훌륭한 일에 대해 감사를 표하고자 박사님을 기다리고 있답니다.” 랄프는 유리 용기 안에 들어있던 한 마리의 모르모트의 귀여운 눈을 생각해냈습니다. 거절하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거렸습니다. 그것은 ‘플러스’라는 명예로운 기호를 받은 사람의 의무이기도 하였습니다. “좋아, 면회실로 가겠어.” 랄프는 커피 잔을 내려놓고 방 모퉁이에 있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탔습니다. 엘리베이터는 잠시 후에 48층에 있는 면회실 앞에서 멈췄습니다. 방에는 사람이라고는 한 사람도 없었지만 랄프가 면회실 문을 열자마자 사람들은 함성을 질렀습니다. 둥근 방에는 사방 벽에 수십 개의 텔레비젼 스크린이 장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세계 각국의 텔레비젼국 스튜디오가 비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랄프의 모습은 그 텔레비젼국의 전파를 타고 전 세계 가정의 텔레비젼에 비쳐질 것입니다. “랄프 124C41플러스. 랄프는 우리들의 발명왕, 발명왕 만세!” 사람들은 함성을 지르며 외쳤습니다. 랄프는 손을 번쩍 들고는 환호에 대답했습니다. 그리고는 겸손하게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 이렇게 찬사를 해주시다니 오히려 부끄럽기까지 합니다. 그저 위험에 직면한 한 사람의 생명을 과학의 힘으로 구조했을 뿐인데 이렇게 환영을 해주시다니……. 그렇지만 여러분의 찬사를 기쁘게 받아들이겠습니다.” 랄프가 이렇게 인사에 답하자 사람들은 일제히 박수로 환영했습니다.   방문객   그러나 이런 랄프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는 그림자가 지구상에 두 곳이 있었습니다. 발명왕 랄프도 그런 그림자가 있다는 것은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랄프와 비슷한 나이에 키가 훤칠하게 큰 청년으로서, 대단히 사치스러운 옷을 입고 있었는데, 컬러 텔레비젼을 보고 있는 그의 눈길은 사나왔습니다. 개다가 그 청년은 야릇한 미소까지 띠고 있었습니다. 그 무렵엔 화성으로부터 지구에 유학 온 화성인이 많았는데, 화성에서 온 유학생 한 사람이 또 랄프를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는 키가 2미터가 넘었고, 얼굴은 초록빛이었습니다. 거기에다 소처럼 커다란 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옛날 이야기에나 나오던 도깨비의 모습과 같았습니다. 이 유학생은 왜 랄프를 미워하는 것일까? 그것은 아무도 알지 못하는 일입니다.   잠시 후에 랄프는 연구실로 되돌아 왔습니다. 이내 랄프는 연구에 열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연구에 열중하고 있을 때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방해받기를 싫어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피트가 연구실의 텔레비젼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랄프 박사님이세요?” “피트, 자넨 잘 알고 있으면서 일 도중에 방해를 하는가? 그래서는 안 된다고 내가 몇 번이나 말하지 않던가.” “그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손님이 찾아오셨어요.” “아니, 그게 무슨 소리인가? 일 도중에는 어떤 손님도 면회 사절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 “하지만 특별한 손님 같아서요.” “괜찮으니까 적당히 돌려보내도록 해요.” 피트는 먼 곳에서 오신 손님을 어떻게 돌려보내냐는 얼굴로 난처한 듯 서 있었습니다. 그러나 랄프는 더 이상 말하는 것이 귀찮아졌으므로 그대로 텔레비젼 스위치를 꺼 버리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피트는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럼 스위스에서 일부러 이곳까지 오신 분들을 돌려보내도록 하지요.” 피트 쪽에서 전화를 끊으려고 했습니다. 랄프는 놀라 벌떡 일어났습니다. 나가려는 피트를 불러 다시 물어 보았습니다. “뭐라고 했지. 피트? 스위스에서 오신 손님이라고?” “그렇다니까요. 이름은 아리스, 아버지와 함께예요. 그러나 박사님 연구에 방해가 될 테니까 되돌려보내도록 하겠습니다.” 피트는 빙긋 웃으며 말했습니다. 피트는 일부러 비꼬듯이 말하고는 또 나가려고 했습니다. “잠깐, 피트!” 랄프는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만약에 그 손님을 돌려보내면 넌 파면이다!” 피트는 빙긋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러실 줄 알았어요. 벌써 짐작을 하고 응접실에 모셔 놓았습니다.” 랄프는 하던 모든 일을 중지하고 급히 응접실로 내려갔습니다. 응접실의 창 옆 의자에 아리스와 그의 아버지가 앉아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랄프를 보자 반가운 얼굴로 의자에서 일어나 랄프를 맞았습니다. 아리스의 아버지는 랄프를 보고 정중하게 인사를 했습니다. “랄프 124C41플러스 씨, 반가워요. 저는 제임스 B42라고 합니다. 제 딸의 생명을 구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무슨 말씀을. 그런데 스위스에서 무척 빨리 오셨는데, 대륙간 로켓으로 오셨나요?” “아니에요. 새로 건설된 대서양 해저 전자 지하철로 왔어요. 실은 제가 그 지하철의 설계 기사랍니다.” 전자 지하철이란 새로운 교통 기관으로, 땅 밑 수백 킬로미터에서 통하고 있습니다. 터널 안은 완전한 진공 상태로 되어 있고, 땅 밑의 높은 열도 통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지하철은 강한 전자석의 힘으로 운전되는데 시속 1000킬로미터 이상의 속력을 냅니다. 따라서 대서양을 횡단하는 데에도 불과 2,3시간밖에 걸리지 않습니다. 그것은 새로운 과학 기술이 낳은 훌륭한 교통 기관인 것입니다. 랄프는 4,5일을 예정하고 모처럼의 미국 여행을 온 아리스와 그 아버지에게 빛의 탑에 머물면서 뉴욕을 구경하도록 권했습니다. 랄프는 그 안내역을 자청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제임스 212B42’는 놀란 듯 눈을 크게 떴습니다. “아니, 그럴 수는 없어요. 박사님처럼 바쁘신 분에게 그런 수고를 끼치다니, 그건 말도 안 됩니다.” 그러나 랄프는 귀한 손님을 다른 사람에게 접대시키는 것이 무척 싫었습니다. 자신이 직접 접대하고 싶은 것이었습니다. 제임스와 아리스 부녀의 기쁨은 더 말할 나위가 없었습니다. 다음날 랄프는 아리스를 데리고 뉴욕을 구경하기로 했습니다. 아리스와 랄프는 빛의 탑을 나섰습니다. 아리스의 아버지는 급한 볼일이 생겨 같이 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랄프는 비서 피트에게 모터코스터를 두 켤레 가져오게 하여 아리스에게도 신겼습니다.   27세기의 뉴욕   모터코스터는 마치 롤러스케이트와 같이 바퀴가 달려있는 신인데, 신의 바닥에는 전기 모터 장치가 되어 있었습니다. 속도도 마음대로 조종하면서 달릴 수 있는 아주 편리한 물건이었습니다. 도로는 절대로 갈라지거나 떨어지지 않는 스틸알루미늄 판으로 되어 있습니다. 두 사람은 뉴욕의 넓고 아름다운 거리를 시속 40킬로미터, 아주 기분 좋은 속력으로 달렸습니다. 길에는 모터코스터로 달리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사람들은 교통 규칙을 잘 지키면서 달리고 있었고, 그 가벼운 소리는 마치 벌들이 윙윙하며 나르는 소리처럼 부드러웠습니다. 시가에는 자동차의 운행을 금하고 있었기 때문에 교통사고 같은 것은 일어날 염려가 없었습니다. 도로를 달리는 차는 전기 에너지로 달리는 버스뿐이었습니다. 아리스는 보는 것마다 신기하여 여러 가지를 랄프에게 물어 왔습니다. 도로 위에는 코일 같은 전선이 있는데, 그것은 야간 조명이었습니다. 밤이 되면 그것은 흰빛을 발해 마치 낮과 같이 거리를 환하게 했습니다. 뉴욕의 기상 조정 센터에서는 하루 한 번씩 공기 중의 먼지를 완전히 빨아들이는 시설이 되어 있어, 뉴욕은 무척 큰 도시인데도 먼지라곤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아리스에게는 모든 것이 놀랍고 신기한 것 투성이었습니다. 랄프는 아리스의 질문에 정성껏, 즐거운 마음으로 설명해 주었습니다. “랄프, 저쪽 둥근 건물은 뭐지요?” “그게 과학 식당이지요, 마침 잘 됐군요. 그리로 가서 점심을 들도록 해요.” 아리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습니다. “저는 아직 배가 고프지 않은 걸요.” “염려 말아요. 곧 배가 고파질 겁니다.” 아리스는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두 사람은 과학 식당으로 들어갔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부드럽고 기분 좋은 공기가 풍겨 나왔습니다. 빈 의자에 두 사람은 앉았습니다. 테이블도 보통 것과는 달라 마치 전자 계산기의 조종대와 같이 앞으로 많은 버튼이 죽 장치되어 있었습니다. 테이블의 중앙에는 미끄럼대 같은 것이 놓여 있었습니다. 두 사람이 앉았을 때, 옆벽에 아름다운 컬러슬라이드 신문이 비치기 시작했습니다. 신문은 전부 읽고 나면 저절로 페이지가 바뀌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신문을 읽고 있는 동안 아리스는 조금씩 배가 고프기 시작했습니다. 잠시 후에는 배가 몹시 고파졌습니다. 아리스는 깜짝 놀랐습니다. “어찌 된 일일까요? 갑자기 배가 몹시 고파졌어요. 조금 전까지는 그렇지 않았는데…….” “아, 그건 들어올 때 마신 공기 때문입니다.” 랄프는 재미있다는 듯이 설명해 주었습니다. “이 식당의 출입문에는 식욕을 북돋우는 특수 가스가 섞여있는 공기가 흐르고 있지요.” “어쩜!” 순간 아리스의 눈이 휘둥그래졌습니다. “그러면 식사도 매우 다르겠군요.” “물론입니다. 그 메뉴라고 쓰여져 있는 것을 눌러 보도록 해요!” 아리스는 랄프가 시키는 대로 메뉴라고 쓰여진 버튼을 눌렀습니다. 그러자 테이블의 일부가 갈라지는 동시에 여러 가지 요리의 입체 사진이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어머, 아주 신기해요!” 아리스는 감탄을 하였지만 요리가 모두 마시는 것뿐이었으므로 곧 눈을 찌푸렸습니다. 과학 식당의 요리는 모두가 액체로 되어 있습니다. 채소, 육류, 비타민, 칼슘 등 여러 가지의 영양소를 파괴하지 않으면서도 맛있고 영양가 있는 액체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또 온도나 분량이나 시간을 맞추어 그 사람의 성미에 따라 버튼으로도 조절할 수 있도록 되어져 있습니다. 그렇지만 액체 식사에 익숙해질 때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립니다. 누구나 액체 식사는 씹을 맛이 없어서 처음에는 싫어했습니다. 식사라고 하기보다는 음료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소화가 잘 되고, 위나 장의 탈이 없을뿐더러, 영양이 잘 흡수된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사람들은 즐겨 액체 식사를 찾곤 했습니다. 아리스는 맛있게 마셨습니다. 즐거운 식사를 마친 두 사람은 모터코스터를 신은 채 거리를 달렸습니다. 여러 곳의 건물과 공원을 두루두루 구경한 다음 거리에 나왔을 때입니다. 키가 대단히 큰 한 청년이 그들의 뒤에 나타나더니 랄프는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아리스 곁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는 비웃는 듯한 냉소를 머금은 얼굴로 아리스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아리스 양, 뉴욕 구경 재미있어요?” 이 사나이는 어제 랄프의 세계 텔레비젼 방송 도중에 사나운 눈초리로 쏘아보던 바로 그 청년이었습니다. 아리스는 그를 돌아보며 침착하게 대답했습니다. “예, 물론이죠 페르난 씨.” 그러자 페르난이라고 불린 청년은 갑자기 사나운 얼굴로 변하였습니다. “물론 재미있었겠지, 아리스. 좋아. 난 끝까지 따라다니며 골탕을 먹여줄 테다.” 말을 마치고도 페르난은 오랫동안 아리스를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랄프는 그 광경을 바라보면서 울컥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랄프는 페르난이라는 사내의 곁으로 다가갔습니다. 순간 아리스는 두 사람 사이를 막아섰습니다. 아리스는 물론 그 사내가 무척 못마땅했지만 랄프를 말렸습니다. 상대할만한 가치를 가진 사내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만둬요, 랄프. 상대할 필요가 없어요!” 이렇게 말하고 돌아서서 걸어갔습니다. “좋아, 어디 두고 보자.” 사나이는 위협적인 목소리로 뒤에서 소리쳤습니다. 그 사람은 전부터 아리스에게 결혼하자고 조르고 있는 프랑스의 과학자 ‘페르난 600D10’이라는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아리스는 그 사람을 무척 싫어하고 있었습니다. 페르난은 아리스가 피하고 있는 줄 알면서도 물러서지 않는 끈질긴 사람이었습니다. 랄프는 아리스가 하는 말을 듣고 몹시 불쾌하였지만, 아리스는 이미 그런 일 따위에는 관심이 없어 보였습니다. 아리스는 랄프를 보며 빙그레 웃었습니다. “그런 일은 잊어 버려요. 뉴욕이나 좀 더 안내해 주세요.” 두 사람은 모터코스터의 속력을 더욱 내면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축 제   이윽고 랄프와 아리스는 반중력 비행차를 타고 국립 스포츠 센터로 갔습니다. 국립 스포츠 센터는 모든 종류의 운동을 할 수 있는 넓고도 훌륭한 곳이었습니다. 남녀노소 누구나 놀 수 있는 스포츠 시설과 도구가 갖추어져 있고, 밤과 낮이 구별되어 있지 않습니다. 밤에 야구나 축구, 그리고 테니스 경기를 할 때는 큰 태양등을 비추었으므로 전혀 그늘이 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낮보다 경기하기가 편할 정도였습니다. 랄프는 아리스에게 국립 스포츠 센터에 대하여 설명하여 주었습니다. “어때요, 아리스. 테니스를 해볼까요?” “좋아요.” 아리스는 원래 테니스를 좋아했고, 스위스에서는 선수였습니다. 두 사람은 테니스 코트로 가서 라켓을 집어들었습니다. 아리스는 랄프에게 2회전을 거뜬히 이겨버렸습니다. 랄프는 유쾌해진 기분으로 아리스를 칭찬했습니다. 테니스를 끝내고 두 사람은 또 다시 반중력 비행차로 뉴욕의 중앙에 위치한 태양 발전소로 갔습니다. 여기는 낮 동안에 태양열을 전기 에너지로 변하게 하는 발전소였습니다. 뉴욕의 동력은 모두 이 발전소가 맡고 있습니다. 그날 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랄프는 아리스의 아버지인 제임스를 빛의 탑 밑에 있는 텔레비젼 극장으로 안내하였습니다. 입체 컬러 텔레비젼의 발달은 일부러 극장까지 가지 않아도 될 만큼 편리했습니다. 다이얼만 돌리면 어떤 극장의 오페라도 집에 앉아서 마음대로 구경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텔레비젼에서는 국립 극장에서 공연하는 오페라를 방송하고 있었습니다. 입체 칼라 텔레비젼은 진짜 사람이 눈앞에서 연극을 하고 노래를 부르는 것같이 생생하게 보였습니다. “정말 굉장해요. 유럽에도 컬러 텔레비젼은 있지만 색깔이 이렇게 아름답지 못할뿐더러 채널도 적어요. 뉴스가 많아서 오페라를 구경하는 것은 힘들지요.” 아리스가 말했습니다. 랄프는 시계를 보며, “뉴욕의 명물인 공중 축제를 보여 드리죠. 그걸 안 본다면 뉴욕에 온 보람이 없어요. 자, 빛의 탑 위로 돌아가시죠.” 아리스 부녀는 랄프의 뒤를 따라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눈 깜짝할 사이에 200미터 높이의 빛의 탑으로 올라갔습니다. 200미터 높이에서 내려다보는 27세기 뉴욕 밤 경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장관이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빛의 홍수와도 같았습니다. 갑자기 그 빛이 서서히 꺼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윽고 뉴욕은 암흑의 도시로 탈바꿈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아리스는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었기 때문에 놀라 소리를 질렀습니다. “정전인가 봐요! 어찌된 일이죠?” 랄프가 대답도 하기 전에 제임스가 멀리 지평선의 하늘을 가리키며 물었습니다. “아니……, 저것은 또 무엇입니까?” 밤하늘에 엄청난 크기의 미국 국기가 펄럭이면서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공중 축제의 시작이었습니다. 그 국기는 600대의 반중력 비행차 편대에 실려오고 있었습니다. 헤아릴 수조차 없는 반중력 비행차의 대집단이었습니다. 반중력 비행차는 각기 동체 밑에서 푸르고 붉은 빛을 내뿜고 있었습니다. 그 빛들이 서로 어울려 멋지고 큰 미국 국기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었습니다. “정말 신기합니다.” 제임스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잠시 후, 미국 국기가 밤하늘에서 한 바퀴 빙글 돌고 난 뒤, 색색으로 바뀌면서 빛의 쇼가 계속 이어져 나갔습니다. 그 빛은 아름다운 오색 빛깔이 아로새겨진 레코드처럼 하늘을 빙빙 돌기도 했습니다. 붉은 빛을 중앙으로 하여 태양의 형태를 취하고 그 둘레에 흰빛의 수성, 금빛의 금성, 초록색의 지구, 오렌지색의 화성, 푸른색의 목성, 보라색의 토성들이 빙글빙글 돌면서 날아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태양계의 형태를 보는 것처럼 실로 놀라운 장면이었습니다. 제임스는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굉장해요, 정말. 이렇게 훌륭한 쇼는 이제까지 본 일이 없어요.”       유 괴   다음날, 또 그 다음날도 랄프는 여러 곳을 안내해 주고 친절하게 설명을 해 주었습니다. 바시토라늄에 관해서도 랄프는 자세한 설명을 했습니다. 바시토라늄이란 25세기에 완성한 일종의 만능치료기입니다. 이것도 또한 전기의 힘으로 움직이는 전자기계인데, 이것으로 치료하면 몸의 안팎에 있는 모든 해로운 박테리아를 송두리째 살균시키는 것입니다. “우리 미국 국민은 반드시 한 달에 한 번씩은 이 바시토라늄 병원에 가기로 되어 있어요. 그 결과 전염병이란 전염병은 모조리 전멸되었지요.” 모든 것이 아리스 부녀에게는 새로운 것이었습니다. 또 랄프는 아리스 부녀를 과학 농원으로 안내했습니다. 과학 농원은 아주 크고 넓은 유리의 온실로 되어 있어 그 내부는 항상 따뜻했습니다. 특별히 만든 과학 비료를 사용하고 있어 채소나 곡식이나 과일 등을 보통 것보다 몇 갑절 빠른 속도로 재배할 수 있습니다. 과학 농원의 혜택으로 식료품을 지금까지의 몇 배로 생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만약 그렇지 못했다면 무섭게 늘어나는 세계 인구 때문에 식료품 부족 현상이 심각했을 것입니다. 그 곳에서는 채소나 밀뿐 아니라 콩, 담배 등의 농산물로 인하여 놀라운 수확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아리스 부녀는 과학 농원에서 금방 익은 포도와 사과를 대접받았습니다. 그것들은 싱싱했고, 대단히 맛이 좋았습니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랄프와 아리스는 빛의 탑 가까운 고속도로로 나가서 모터코스터를 타고 산책을 나갔습니다. 아주 좋은 날씨였습니다. 기분이 상쾌했습니다. 상쾌한 바람이 불었습니다. 두 사람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신나게 달렸습니다. 이때 랄프는 바로 뒤에서 모터코스터로 씽씽 바람소리를 내며 누군가가 따라오는 듯한 소리를 들었습니다. 뒤돌아보았으나 뒤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한낮이었으므로 고속도로에는 사람의 그림자라고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상한데!” 랄프는 문득 불길한 예감이 들었으나 잘못 들은 것이려니 생각하며 계속 달렸습니다. 곧 빛의 탑에 도착했습니다. 배가 고팠으므로 빨리 돌아가 점심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리스의 모터코스터 소리는 바로 뒤에서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랄프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달렸습니다. 고속도로의 갈림길에 도착했을 때였습니다. 랄프는 아리스에게 주의를 주기 위해 뒤돌아본 순간, 너무 놀라 발의 중심을 잃고 길 위에 쓰러질 뻔했습니다. 아리스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뒤에 따라오는 줄 알고 있었는데, 아리스가 행방불명이 된 것입니다. “아리스, 아리스! 어디 있어요?” 외치며 랄프는 사방을 두리번거렸습니다. 고속도로는 텅 비어 있었습니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랄프는 쭈뼛 머리끝이 곤두섰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걸까? 어디로 갑자기 사라졌단 말인가!’ 조금 전까지도 들려 오던 모터코스터 소리는 이미 들려 오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 사이에 아리스는 사람의 힘으로는 이해하지 못할, 악마의 마법에 의하여 납치 당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랄프는 과학자로서, 악마를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냉정한 과학자의 자세로 되돌아왔습니다. 악마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27세기의 뉴욕에 악마라니, 그것은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아리스는 조금 전까지도 랄프의 곁에 있었는데, 돌연 사라져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누군가 사람의 짓이 틀림없어!’ 그는 걸음을 멈추고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증거다. 유리가 그렇지 않는가! 잘 닦은 유리를 통해서 보면, 마치 유리가 없는 것같이 느껴진다. 유리는 빛을 반사하지 않고 모두 통과시키는 성질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보이던 물체를 갑자기 투명하게, 보이지 않게 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어떤 방법을 써서, 그 물체를 유리와 같은 성질의 것으로 바꾼다면, 될 수도 있을 지 모릅니다. 랄프는 그 방법을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전파는 빛과 같으므로,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전파가 무서운 속도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전파와 같이 심하게 진동시키면 어떤 물체도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게 될 것입니다. 아리스는 높은 주파수의 전파를 내는 기계에 의해서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어, 유괴를 당했음이 분명합니다. 그는 조금 전까지 바로 뒤에서 들려오던 씽씽 소리를 다시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착각이 아니었습니다. 특수 전파 발생기로 모습을 감춘 범인이 모터코스터를 타고 뒤따라오던 소리였습니다. 아차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범인은 틀림없이 기회를 노렸을 겁니다. 아리스가 조금 뒤떨어졌을 때, 전파 발생기로써, 아리스의 모습을 투명하게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랄프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범인을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페르난! 페르난 600D10이 아리스를 유괴한 범인일 거라는 판단이 섰습니다. 랄프는 더 이상 머뭇거릴 필요가 없었습니다. 한시가 급했습니다. 전 속력으로 빛의 탑에 돌아왔습니다. 랄프는 범인이 가지고 있는 고주파 전파가 발생한 곳을 찾아내기 위한 연구를 하기 위해, 장치를 조작하기 시작했습니다. 범인의 기계에서 발생하는 전파는 특별히 높은 주파수를 발생시킬 것입니다. 그 주파수의 전파를 발견해서 따라가면, 범인과 아리스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랄프는 전부터 이 ‘투명 이론’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해 왔습니다. 그 연구가 지금에 와서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1시간 가량 걸려서 그 장치를 완성했습니다. 그 장치는 한 개의 로프 안테나와 리시버가 달려있는, 휴대용 무전기 같은 간단한 것이었습니다. 그 안테나를 돌리면 고주파 전파가 발생하는 방향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안테나가 그 전파를 발생하는 장소로 가까이 갈수록 소리는 크게 납니다.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기계가 있는 곳을 알 수 있는 장치가 되어 있습니다. 랄프는 탐지기를 손에 들고 급히 두 조수를 불러 자기를 따르게 하였습니다. 랄프는 달리면서 탐지기의 스위치를 누르고 안테나를 돌렸습니다. 색다른 소리가 리시버를 통하여 들려 왔습니다.   대추적   ‘뿌, 뿌, 뿌뿌, 뿌.’ 세 사람은 들려오는 방향을 쫓아, 바람처럼 거리를 전 속력으로 질주했습니다. 랄프는 계속 리시버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그 소리가 크게 들려오는 방향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사람들은 유명한 과학자가 두 조수를 데리고 무섭게 달리자, 무슨 큰일이 난 것으로 알고 한결같이 길을 비켜주었습니다. 잠시 후, 세 사람은 뉴욕의 시가를 벗어났습니다. 어느 양복점 앞에서 소리가 멈추었습니다. 리시버의 소리는 고막이 터질 정도로 크게 울렸습니다. “여기다! 이 가게가 틀림없어!” 랄프 일행은 가게로 뛰어들어 수색을 시작했습니다. 양복점 주인은 깜짝 놀라 어안이 벙벙해 있었습니다. 랄프 일행은 이유를 설명할 틈도 없이 수색에만 열중했습니다. 양복점 주인은 그대로 멍청하게 서 있었습니다. 랄프가 가게 구석 쪽에 있는 마네킹 인형 뒤를 살폈을 때였습니다. “아앗!” 그는 깜짝 놀라며 가느다란 비명을 질렀습니다. 그의 두 손목이 마치 잘려나간 것처럼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랄프는 떨리는 손을 서서히 끄집어 내 보았습니다. 그러자 손은 눈에 보이지 않는 보자기에서 빠져 나오는 것처럼, 다시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었습니다. 랄프는 짐작할 수가 있었습니다. 랄프는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바로 이것이다. 모든 걸 알게 됐어!” 랄프는 마네킹 인형을 넘어뜨리고 그 뒤를 손으로 더듬었습니다. 눈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히 어떤 부드러운 감촉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랄프는 떨리는 손으로 그것을 더듬었습니다. 그것은 발에서 머리끝까지 보자기를 덮어쓰고 단단한 끈으로 칭칭 감겨져 있었습니다. 끈을 풀기 위해 랄프는 노력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노끈을 풀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때 조수는 기계 같은 것을 발견했습니다. 랄프는 스위치를 끊으려고 손을 더듬어, 보이지 않는 스위치를 돌렸습니다. 그 순간 지금까지 아무 곳에도 없던 사람의 모습이 어렴풋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희미한 모습은 말할 것도 없이, 머리에 보자기를 덮어 쓴 사람의 모습이었습니다. 보자기에서 조금 삐져 나온 발은, 분명 여자의 것이었습니다. 랄프는 끈을 풀고 보자기를 벗겼습니다. 그리고 축 늘어진 아리스의 몸을 가볍게 흔들었습니다. “아리스, 정신 차려요!” 아리스는 겨우 눈을 떴습니다. 랄프는 아리스의 손을 잡았습니다. 아리스는 힘없는 눈으로 어떻게 된 일이냐는 듯이 랄프를 쳐다보았습니다. 랄프는 그 동안의 일을 이야기했습니다. “나쁜 놈에게 유괴 당한 거요. 그렇지만 이제 안심해요. 이대로 갈 수 있겠어요?” 아리스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이었지만, 미소를 지어 보였습니다. 갈 수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랄프는 그제야 마음을 놓고 안도의 숨을 쉬었습니다.   페르난은 어디로   랄프 일행은 빛의 탑으로 돌아왔습니다. 랄프는 오자마자, 그 초고주파 전파 발생기를 조사했습니다. 그것은 놀랄 만한 솜씨로 만들어진, 아주 훌륭한 장치였습니다. “대단합니다. 이렇게 정밀하고 교묘한 기계는 나도 본 적이 없어요. 지구상에 이런 기계를 만들어낼 인간이 있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일이오.” 감탄을 연발하며, 랄프는 아리스에게 물었습니다. “혹, 당신을 유괴한 사람이 페르난이라고 생각하지 않소?” “틀림없어요. 유괴 당할 때, 몸부림치며 보이지 않는 상대방의 가슴을 마구 떠밀었는데, 그때 이 쇠줄이 끊어졌나 봐요. 이 엷은 녹색 메달은 페르난의 가슴에 달려 있는 것이에요. 한 번도 이것을 뗀 적이 없어요. 그땐 정신이 없어서 이것이 손에 왜 있었는지 몰랐지만 나중에야 알았어요.” 랄프는 이상했습니다. 페르난에게 그렇게 훌륭한 기계를 만들어낼 재간이 있을 턱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기계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은 화성인밖에 없습니다. 랄프는 페르난이 지구에 있는 화성인에게서 입수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때까지 가만히 있던 제임스는, 경찰에 신고를 하는 것이 어떠냐고 물었습니다. “증거품이 있잖아요. 이 메달이 훌륭한 증거품이 될 테니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귀중한 기계를 손에 넣은 페르난이, 경찰에 붙잡힐 정도로 허술하진 않을 거예요.” 랄프의 생각은 들어맞았습니다. 미국은 물론 유럽, 아시아까지 동원된 세계의 경찰이 눈을 부릅뜨고 찾았지만 일 주일이 지나도록 페르난의 행방은 묘연했습니다. 그러나 그 동안 랄프와 아리스 두 사람에겐 평화롭고 즐거운 나날이 계속되었습니다. 랄프는 바쁜 중에도 아리스에게 여러 곳을 안내했습니다. 특히 그 중에서도 가장 아리스를 감동시킨 것은 랄프가 건설한 공중 도시였습니다. 사실 이 공중 도시야말로 랄프의 그 많은 발명 중에서도 가장 으뜸가는 것이었습니다. 반중력 장치에 의한, 지상 6,000미터의 하늘에 떠 있는 도시였습니다. 멀리서 보면 그 공중 도시는 푸른 하늘 한가운데 떠 있는 한 톨의 콩알 같았습니다. 그러나 가까이 가서 보면, 2 킬로미터나 되는 거대한 반구형이 하늘에 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그 반구형 밑에는 아담한 집들이 죽 들어서 있는, 아름다운 마을이 있었습니다. 마을 위는 밝고 투명한 특수 유리로 만들어진 반구형의 지붕이 덮여 있었습니다. 반중력 비행차는 이 공중섬의 둘레에 모자의 차양처럼 나와 있는 플랫폼에 착륙했습니다. 사람들은 도움의 여러 곳에 있는 출입문을 통하여 왕래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이윽고 출입문을 통하여 도시의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마을 안에서는 일체 기계 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스위스의 어느 시골 마을에 들어선 것 같은 아늑한 느낌을 주는, 평화롭기가 그지없는 조용한 마을이었습니다. 모터코스터나 비행차의 소리뿐만 아니라, 그 밖의 소음도 거의 들리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마을에서는 걷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의 신바닥은 모두 고무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공중 도시는 사람들의 휴양처로 아주 좋은 곳이었습니다. 현대 사람은 항상 바쁘고, 더구나 어떤 일에도 기계를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늘 신경이 피로해 있었습니다. 안정을 찾기 위해 사람들은 바다나 산을 찾았습니다. 그건 옛사람들이 하는 일이었습니다. 요즈음은 그런 곳도 이미 휴식처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 때문에 구상된 곳이 이 마을입니다. 마을에서는 일체 동력을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몇 천년 전, 옛날의 평화로운 마을처럼 조용합니다. 지상의 대도시 소음도 랄프가 발명한 이 마을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일단 이 마을에 들어오면, 사람들은 기계라는 것을 잊게 됩니다. 여기서는 어디를 가든지 자기 자신의 발로 걷고 있으며, 공기는 말할 수 없이 신선합니다. 며칠 동안만 휴양하면 피로한 신경과 몸은 회복되어 버립니다. 새 힘이 솟아납니다. 랄프는 이러한 공중 도시를 세계의 대도시 상공 여러 곳에 건설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 중입니다. 과연 랄프의 발명은 위대했습니다. 아리스는 지금까지의 피로가 씻은 듯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긴장도 풀려 아주 상쾌한 기분을 갖게 되었습니다. 지상으로 되돌아와, 랄프는 명물 중의 하나로 손꼽히는 무중력 서커스를 구경시켜 주었습니다. 공중도시를 띄울 반중력 장치와 다른 사용 방법이었습니다. 무중력 서커스는 뉴욕 중앙 공원의 특별한 건물 안에서 열립니다. 그 건물의 한가운데 무대 밑에는 무중력 장치가 되어 있어, 스위치를 누르면 무대 위는 완전히 무중력 상태가 되어 버립니다. 물론 무게가 없기 때문에 아주 재미있습니다. 그것은 정말 상상조차 하지 못할 재미있는 서커스였습니다. 서커스의 곡예사는 공중에서 옆으로 드러눕기도 하고, 조금만 뛰어올라도 천장까지 도달하는가 하면, 몸을 돌리면 무대까지 천천히 내려옵니다. 마치 한 마리의 조그만 새처럼, 무대에서 뛰고 놉니다. 맨 밑에 한 사람이 서고, 그 위에 두 사람, 그 위에 세 사람……, 연달아서 거꾸로 된 인간 사다리를 만들기도 합니다. 아리스는 너무 즐거웠습니다. 랄프와 매일매일 재미있고 즐거운 나날을 보냈습니다. 랄프와 아리스는 마치 옛날부터 사귀어온 친구처럼 다정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랄프는 결심했습니다. 아리스와 결혼을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제임스에게 아리스와 결혼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혔습니다. 제임스는 물론 찬성했습니다. “아리스만 좋다면 나는 물론 찬성이지요. 아리스, 네 생각은 어떠냐?” 아리스는 부끄러운 듯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하겠다는 의사 표시를 했습니다. 그 길로 세 사람은 신문사로 찾아가서 약혼을 발표했습니다. 신문사에서는 대소동이 일었습니다. 슬라이드 신문은 제 1면에 가장 큰 활자로 이 사실을 보도했습니다. ‘세계 제일의 발명가 랄프는, 세계 제일의 미녀 아리스와 약혼하다!’ 세계는 이 기사로 떠들썩했습니다. 또한 입체 텔레비젼은 랄프와 아리스가 회견실에서 활짝 웃으며 악수하는 모습을 전 세계에 중계 방송했습니다. 세계 정부의 수상도 몸소 와서 랄프에게 축하 인사를 했습니다. 세계의 모든 사람들은 자기 일처럼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단 두 사람만이 그 뉴스를 듣고 얼굴을 찌푸렸습니다. 그 한 사람은 페르난, 또 한 사람은 지구인이 아닌, 무섭게 큰 키에 눈이 툭 불거진, 녹색의 얼굴을 한 유학생 화성인이었습니다.   함정에 빠지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났습니다. 보름달이 하늘에 걸려 있는 환한 달밤이었습니다. 랄프와 아리스는 공중 택시를 타고, 유쾌한 밤하늘의 드라이브를 하고 있었습니다. 밤하늘에는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별들이 빛나고, 눈 아래에는 끝없는 대서양의 바닷물이 출렁거렸습니다. 랄프와 아리스는 이 세계에 둘만이 있는 것 같이 느껴졌습니다. 두 사람은 정답게 속삭였습니다. 그때 조종석의 운전사가 통화기로 알려 왔습니다. “가까운 하늘에서 고장난 비행차가 구조 신호를 보내고 있습니다. 어떡하죠?‘ 이 말을 듣고 랄프는 라디오를 돌려놓으라고 명령했습니다. 운전사는 라디오를 좌석 쪽으로 돌려놓았습니다. 당황한 남자의 목소리가 라디오를 통해 들려 왔습니다. “엔진이 고장이 났어요. 이대로 가면 바다로 떨어질 것 같습니다. 곧 좀 구조해 주십시오!” 랄프는 마이크를 쥐고 대답했습니다. “알았습니다. 곧 가겠습니다. 고장은 어느 정도입니까?” “예비품만 있으면 고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전지의 고장입니다.” 운전사는 전속력을 내어, 그 쪽으로 갔습니다. 2,3분쯤 후, 한 대의 비행차가 위험하게 바다 위 공중에 떠 있는 것을 발견할 수가 있었습니다. 운전사는 비행차를 향하여 접근하였습니다. “어서 이쪽으로 가까이 오시오!” 운전사는 그쪽 비행차의 남자에게 소리쳤습니다. 그 남자는 비행차를 움직여 다가왔습니다. 두 대의 비행차는 공중에서 나란히 섰습니다.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랄프는 아리스를 바라보았습니다. 마음을 죄며 걱정하고 있던 아리스도, 그제야 안심이 된 듯, 빙긋 웃어 보였습니다. 그 순간, 랄프는 갑자기 가슴이 벅차 오르고, 달콤한 냄새가 강하게 풍겨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몸을 움직이려고 했지만, 현기증이 나고 목이 막혀 오면서, 정신이 희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정신을 잃어 가면서도 함정에 빠졌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랄프는 있는 힘을 다해 아리스 쪽으로 몸을 돌려, 아리스의 손을 잡았습니다. 그러나 아리스의 손은 벌써 얼음처럼 차가워져 있었습니다. 정신을 차리라고 소리치려 했지만, 소리가 되어 나오지 않았습니다. 랄프는 잠시 후에 완전히 정신을 잃고 좌석에 쓰러졌습니다.   우주에서   의식을 잃고서 얼마쯤이나 되었을까? 랄프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달이 벌써 수평선 저 너머로 기울어지고, 사방은 캄캄하였습니다. 몸은 무겁고 손발은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쓰러진 채 창 밖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바다가 보였습니다. 넓은 바다에는 파도가 일렁이고 있었습니다. 랄프는 순간, 아리스가 없어진 것을 알았습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그는 겨우 몸을 일으켜 사방을 둘러보았습니다. 운전사도 핸들 위에 엎드려 있었지만, 비행차는 자동 조정 장치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추락을 면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살펴보아도 아리스의 모습은 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랄프는 창 밖을 내려다보았습니다. 바다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리스는 이미 바다에 떨어져 가라앉았을 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랄프는 절망했습니다. 그러나 그 절망 속에서도 다시 돌이켜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리스는 바다에 떨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아리스는 다시 유괴된 것입니다. 랄프는 꼼짝없이 적의 함정에 빠지고 만 것을 알았습니다. 그 고장난 비행차는 이미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없었습니다. 비행차를 옆에 갖다 대었을 때, 강력한 마취제 같은 것을 던진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의식을 잃었을 때, 페르난은 아리스를 유괴한 것입니다. ‘좋아, 페르난 녀석! 두고 봐라!’ 랄프는 머뭇거리고 있을 시간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한시 빨리 페르난의 뒤를 추격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랄프는 입술을 깨물었습니다. 막상 어디로 추격해야 될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일단 빛의 탑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랄프는 있는 힘을 다해, 마비된 몸을 이끌고 조종석으로 다가갔습니다. 쓰러진 운전사를 조수석으로 옮기고는 핸들을 잡았습니다. 그로부터 약 10분 후, 랄프는 빛의 탑 꼭대기에 비행차를 착륙시켰습니다. 그는 맨 먼저 경찰에 이 사건을 알렸습니다. 경찰은 전력을 다하여 페르난과 아리스의 행방을 찾아내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곧 텔레비젼 방송을 통하여 전 세계의 항공 관제탑으로 하여금, 현재 하늘을 날고 있는 비행차를 조사하라는 지시가 내려졌습니다. 그러나 찾고자 하는 페르난의 비행차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미 지상에 착륙했을 지도 모른다는 판단으로 지상까지 샅샅이 조사해 보았지만, 허사였습니다. 페르난은 아리스를 납치하여 안전한 장소를 향해 가고 있을 것입니다. 랄프는 심각한 얼굴로 생각에 잠겼습니다. 문득 한 생각이 번갯불처럼 머리를 스쳐 갔습니다. 랄프는 이제 무엇인가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곧 우주 교통 관제 본부에 물었습니다. “현재 지구를 떠나 우주 공간을 향해서 날아가고 있는 우주선이 없는지요?” 약 한 시간 전에 ‘리자놀 AK42’라는 이름의 화성인이 우주선을 타고 화성을 향해 날아갔다는 것입니다. 랄프의 추리는 정확하게 맞아 들어갔습니다. 1시간 전이라면 랄프가 그 고장난 비행차를 만나기 30분전이 됩니다. 페르난은 화성인 리자놀 AK42의 우주선을 우주 공간에서 기다리게 하고, 아리스를 유괴한 즉시, 그 우주선으로 달려가서 화성을 향해 날아갔을 것입니다. 랄프는 급히 빛의 탑 천체 관측실로 뛰어들어갔습니다. 이것도 그가 발명한 것 중의 하나였습니다. 랄프는 곧 운석 발견용의 레이더 스위치를 눌렀습니다. 레이더는 우주 공간을 샅샅이 찾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리자놀의 우주선 같은 것을 지구로부터 약 60만 킬로미터 떨어진 우주공간에서 찾아냈습니다. “됐어. 페르난, 기다리고 있거라. 곧 붙들어서 목을 비틀어 주마.” 그는 이렇게 외치고 나서, 빛의 탑을 나와 곧장 뉴욕 우주 공항으로 달려갔습니다. 뉴욕 우주 공항에는 랄프의 전용 우주선 카시오페이아 호가 언제든지 출발할 수 있도록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카시오페이아 호를 발사장으로 옮기게 하였습니다. 랄프가 카시오페이아 호의 조종석에 앉아 조종탑 출발 허가를 기다리고 있을 때, 한 대의 지상차가 질주해 왔습니다. 그것은 세계 정부 수상의 승용차였습니다. 일 초가 아까운 시간이어서, 랄프는 초조해진 눈으로 지상차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랄프는 우주선의 트랩까지 나와, 지상차에서 뛰어내리는 젊은 세계 정부군 장교 한 사람을 맞았습니다. 장교는 랄프에게 경레를 하면서, ‘수상 각하로부터의 연락입니다. 박사님.“ 하면서 한 장의 편지를 건네주었습니다.   친애하는 랄프 124C41플러스씨. 이번 사건은 참으로 불행한 일로써 어떻게 위로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나는 제 6 우주 경비대를 당신의 명령대로 움직일 수 있도록 출동시켰습니다. 뭐든지 명령을 내려 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나는 세계 정보의 수상으로서, 당신이 그런 위험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을 허락하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은 인류를 위하여 꼭 있어야 되는 귀중한 사람입니다. 당신의 신변에 어떤 위험이 생긴다면 큰일입니다. 범인의 추격은 우주 경비대에 맡기십시오. 나는 당신이 지구를 떠나는 것을 막겠습니다.   제 18대 세계 정부 수상 켄트리지 K4플러스   랄프는 그 편지를 계속해서 두 번이나 읽었습니다. 그리고는 장교를 바라보았습니다. 랄프는 생각했습니다. 수상의 명령이라도 어쩔 수 없습니다. 랄프는 장교에게 말했습니다. “수상의 명령이라면 할 수 없지요. 그만두겠습니다.” 그때 갑자기 장교가 랄프 옆으로 쓰러졌습니다. 우주선 옆에 있던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랄프가 눈 깜짝할 사이에 주사를 놓아 잠재웠던 것입니다. 한 15분이 지나면 일어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랄프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자신이 리자놀과 페르난을 추격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염려하지 마시고 이분을 데리고 떠나 주십시오. 잠시 후에는 깨어날 테니까요. 전 지금 출발합니다.” 사람들은 놀라면서 쓰러져 있는 장교를 안아 일으켰습니다. 드디어 랄프는 우주로 향했습니다. 랄프는 사람들이 안전 지대까지 물러서는 것을 본 후에 발사 버튼을 눌렀습니다. 우주선 카시오페이아 호는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우주 공간으로 날아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카시오페이아 호는 시속 12만 킬로미터의 속력으로 지구 대기권을 벗어나서 진공의 우주 공간으로 뛰어 들었습니다. 리자놀과 페르난이 탄 우주선은 이미 70만 킬로미터 저쪽에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우주선의 속력은 카시오페이아 호보다 느렸습니다. 카시오페이아 호는 12시간 정도만 달리면 충분히 그들을 뒤쫓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랄프는 진로를 정한 후 우주선이 낼 수 있는 최고의 속력을 내어 날았습니다. 우주 비행에서 일단 진로만 정해 놓으면 별로 할 일은 없습니다. 랄프는 초조한 마음으로 레이더를 바라보며, 스크린 속에 하얗게 빛나는 리자놀의 우주선 모습만을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랄프는 페르난이 혹시나 아리스를 괴롭히지나 않나 하여 불안과 걱정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페르난을 돕고있는 리자놀이라는 화성인 역시 나쁜 놈임에 틀림없을 것이었습니다. 랄프는 아리스가 무사하기를 빌었습니다. 초조한 가운데 시간은 흘렀습니다. 랄프의 우주선과 리자놀의 우주선과의 거리는 점점 좁혀져 가고 있었습니다. 접근하는 몇 시간 전에 랄프는 라디오로 페르난을 불렀습니다. “페르난, 순순히 항복하는 것이 어떠냐? 나의 뒤에는 우주 경비대의 우주정이 수십 척 따르고 있다는 것을 알아두기 바란다. 도망쳐도 넌 곧 잡히게 될 것이다. 그러니 도망치는 것을 포기하라. 그리고 아리스를 돌려주기 바란다. 그러면 내가 세계 정부 수상에게 부탁해서 처벌은 받지 않도록 해주겠다. 어떠냐? 페르난, 알아들었다면 대꾸를 하라!” 그렇지만 페르난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습니다. 랄프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누르면서 페르난의 우주선을 뒤쫓을 도리 밖에 없었습니다. 카시오페이아 호의 망원경에 페르난이 타고있는 우주선의 모습이 10시간이 흐른 후에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조금 후면 모든 것이 끝나버릴 것입니다. 랄프는 정확하게 우주선을 추격했습니다. 이윽고 페르난의 우주선은 육안으로도 보일 정도로 가까워졌습니다. 랄프는 카시오페이아 호에 장치되어 있는 강력한 자석 장치를 가동시킬 준비를 갖추었습니다. 그리고 아주 기가 막힌 멋진 솜씨로 조종하여 페르난의 우주선 진로를 가로막아 가면서 거리를 좁혀 갔습니다. 마침내 가까워진 적의 우주선 모습을 응시하면서 랄프는 자석 장치의 스위치를 눌렀습니다. 강력한 자석의 힘이 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두 척의 우주선은 서로 당겨져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맞붙어 버렸습니다. 그때 이미 랄프는 우주복을 입고 있었으며, 손에는 권총을 들고 적의 우주선에 뛰어들어갈 태세를 갖추고 난 다음이었습니다. 창문을 통하여 페르난의 떨고있는 모습이 또렷이 보이고 있었습니다. 랄프는 권총을 쏘았습니다. 권총 광선이 그의 얼굴을 향해 날고 있었습니다. 녹색의 광선이 번쩍였습니다. 페르난이 중심을 잃고 쓰러지는 것이 보였습니다. 성공이었습니다. 랄프는 우주모를 쓴 채, 급히 우주선의 문을 열어 젖히고 적의 우주선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적 우주선의 문에 손을 댔을 때, 그것은 이상하게도 잠겨 있지 않았으며, 쉽게 열렸습니다. 이상스럽기까지 하였습니다. 랄프는 긴장을 풀지 않고 권총을 바로 잡았습니다. 그런 다음 랄프는 얼른 안으로 뛰어들어갔습니다. 리자놀이라는 화성인이 우주선의 어딘가에 있으리라. 아마 조종실일지도 모릅니다. 그럼 아리스도 틀림없이 함께 있을 것입니다. 랄프는 발소리를 죽이고 조종실로 다가갔습니다. 와락 문을 열어 젖혔습니다. 페르난이 쓰러져 있었습니다. 인력이 없는 세계이므로 바닥에 쓰러져 있지 않고 공중에 붕 떠 있었습니다. 랄프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는 당황해서 다른 방들을 차례차례 뒤져보았습니다. 오랜 시간을 뒤졌지만 어느 방에서도 화성인과 아리스의 모습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요? 분명 이 우주선 안에는 없는 것이 확실했습니다.   악마의 술책   랄프는 일그러진 얼굴로 페르난을 쏘아보고 있었습니다. 랄프는 의식을 회복할 수 있는 광선이 나오도록 권총을 조절하고 페르난의 얼굴을 쏘아댔습니다. 그러자 페르난은 눈을 뜨고 랄프를 바라보았습니다. 랄프는 페르난의 목덜미를 잡고 아리스는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페르난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나도 모... 모르겠습니다.” 페르난 역시 화성인 리자놀에게 이용당했던 것입니다. 리자놀은 페르난을 기절시킨 다음 아리스를 유괴해 갔습니다. 리자놀도 아리스와 결혼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 화성인은 페르난이 아리스를 우주선으로 데리고 오기 전부터 흉계를 꾸미고 있었던 모양이었습니다. 랄프는 페르난에게 한 치의 거짓이라도 있는 날에는 용서하지 않겠다고 소리쳤습니다. 페르난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의 유괴는 모두 리자놀의 음모로 진행되었던 것입니다. 최초로 행했던 그 초고주파 전파 발생기를 빌려준 것도 리자놀이었습니다. 이번의 유괴 계획도 그가 꾸민 것이었습니다. 페르난이 랄프를 교묘히 속이고 기절시킨 다음, 아리스를 유괴하는데 성공하자 리자놀은 그 정체를 드러낸 것입니다. 그는 페르난을 광선 권총으로 쓰러뜨린 다음 아리스를 납치하여 다른 우주선으로 갈아타고 그대로 달렸던 것입니다. 페르난은 랄프의 우주선이 가까이 다가왔을 때, 비로소 정신을 차린 것입니다. 페르난은 힘없이 고개를 떨어뜨렸습니다. 랄프는 분하여 몸을 떨었습니다. 페르난의 우주선은 속임수였던 것입니다. 이 우주선에 랄프가 신경을 쓰고 있는 동안 리자놀은 아리스를 데리고 여유 있게 도망쳐 버린 것입니다. 랄프는 또다시 불안과 두려움이 밀려왔습니다. 리자놀은 도대체 아리스를 어디로 데려간 것일까? “페르난, 리자놀이라는 놈 아리스를 데리고 어디로 갔을까?” “저어……, 아마 화성일 거예요. 틀림없을 거요. 그가 최후로 중얼거린 말이 희미하게 기억이 나요. 아무리 랄프가 추격해 온다 해도 화성에 먼저 도착해서 아리스와 결혼해 버리면 그만일 거라고요. 잘은 모르지만 아리스는 화성의 시민이 되고 말 거에요.” “뭐? 화성의 시민이? 결혼을 한다고?” 랄프는 노여움에 불타는 눈으로 창 밖을 내다보았습니다. 창밖에는 하나의 별이 특히 깜박이고 있었습니다. 화성은 우주 공간에서 이상한 붉은 빛을 띠고 있는 별이었습니다. 랄프는 리자놀이 화성에 도착하기 전에 추격해서 붙잡아야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랄프는 화성을 뚫어지게 쳐다보았습니다. 랄프가 카시오페이아 호로 되돌아가기 위해 몸을 돌렸을 때, 페르난이 붙잡았습니다. “랄프, 부탁이오. 나를 이대로 두고 간다면 나는 곧장 우주 끝까지 날아가 버릴 것입니다. 리자놀이란 놈은 아리스를 데리고 갈 때, 이 우주선의 조정 장치를 파괴해 버렸어요. 단지 일직선으로 날 수밖에 없습니다. 나를 내버리고 가지 말아요. 제발 살려 주시오.” 페르난은 부들부들 떨며 애원했습니다. 페르난의 괘씸한 소행을 생각하면 용서해 줄 생각이 없지만, 랄프는 그가 다소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랄프는 그를 살려주기로 했습니다. 랄프의 뒤에는 우주 경비대의 우주정이 따라오고 있었으므로 카시오페이아 호로 돌아와 연락을 해주었습니다. 페르난은 곧 체포될 것이지만, 생명은 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화성을 향하여 날아가면서 랄프는 리자놀의 우주선과 카시오페이아 호와의 거리를 계산해 보았습니다. 레이다로 보니 리자놀의 우주선은 10만 킬로미터 정도 앞서 있었는데, 1시간에 13만 6천 킬로미터의 속력으로 날아가고 있었습니다. 랄프의 우주선은 최고 속력을 내면 14만 4천 킬로미터의 속력을 낼 수 있습니다. 즉 1시간에 8천 킬로미터를 더 따라붙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그 결과, 따라붙을 자신이 생겼습니다. 그러면 화성에 도착하기 훨씬 전에 리자놀의 우주선을 붙잡을 수가 있습니다. 랄프는 조금 안심이 되었습니다. 자동 조정 장치를 갖추고 우주 미사일의 발사 준비를 완료했습니다. 물론 적의 우주선에는 아리스가 붙잡혀 있기 때문에 함부로 미사일을 쏠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리자놀을 위협하기 위해서는 쏘지 않으면 안 될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미사일 준비를 끝내고, 랄프는 레이다와 전자 계산기를 사용하여 리자놀의 우주선과 카시오페이아 호의 거리를 측정했습니다. 랄프는 깜짝 놀랐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거리가 좁혀져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랄프는 급히 계산을 다시 해 보았습니다. 그 결과 중요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리자놀의 우주선은 현재 1시간에 14만 킬로미터 이상의 속력으로 달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속력차는 불과 4천 킬로미터도 되지 않았습니다. “이래서는 화성 영공에 들어가기 전까지 추격할 수가 없겠는데…….” 랄프는 혼자 외쳤습니다. 화성의 영공으로 들어서면 랄프는 리자놀의 우주선을 공격할 수 없게 됩니다. 그곳은 화성인의 영토이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화성 정부의 우주경비대에 붙잡히게 됩니다. 랄프는 정신없이 우주선의 엔진을 조절해 보았지만 속력을 더 낸다는 것은 무리였습니다. 랄프는 2,3일 동안 힘없이 조종석에 앉아, 골똘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좋은 생각은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이 절망적이었습니다. 랄프는 힘없이 조종석 옆의 창문을 통하여 우주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반짝이는 별들 사이로 옛날 이야기에 나오는 마녀의 지팡이 같은, 빛나는 긴 꼬리를 가진 천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것은 혜성이었습니다. 그 순간 랄프는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오오, 그렇지!”너무 기뻐 그는 벌떡 일어났습니다. “혜성이다! 카시오페이아 호를 마치 혜성처럼 보이게 하여, 화성을 향하여 날아가는 거다. 화성에 충돌할 것 같은 각도로 날아가는 거다.” 랄프는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리자놀은 화성을 사랑하고 있을 것입니다. 혜성이 화성에 충돌한다고 생각하면 일단 화성으로 가는 것을 중단하고, 혜성의 방향을 돌리려는 노력을 할 게 틀림없습니다. 혜성은 대체로 얼음과 가스로 되어있는 가벼운 기체입니다. 우주미사일을 혜성의 머리부분에 2,3발 쏜다면 산산조각이 나거나, 아니면 진로가 바뀔 것입니다. 틀림없이 리자놀은 그렇게 하려고 할 것입니다. 방법은 단 한 가지일 뿐입니다. 리자놀의 우주선을 붙잡아서 아리스를 구할 수 있는 길은 한 가지 방법뿐이었습니다. “이젠 됐다. 그렇게 하면 되는 걸.” 랄프는 급히 인공 혜성을 만드는 일에 착수했습니다. 곧 카시오페이아 호는 흰 가스로 뒤덮였습니다. 연료 탱크에 가득 차있는 수소를 우주 공간에 조금씩 뿜어냈습니다. 진공의 우주 공간에 내 뿜어진 수소는 즉시 맹렬하게 증발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흰 가스는 카시오페이아 호가 날아가고 있었으므로 그 뒤를 흰 꼬리처럼 되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카시오페이아 호 안에 있는 종이와 다른 재료를 잘게 만들어서 수소와 함께 우주 공간에 뿌렸습니다. 그것들은 태양 광선을 반사하면서 번쩍번쩍 빛이 났습니다. 먼데서 보자면 카시오페이아 호는 진짜 혜성처럼 보일 것입니다. 빛나는 긴 꼬리를 끌고 다니는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그만하면 대 성공이었습니다. 남은 일은 단지 이 인공혜성이 리자놀의 눈에 띄어 자신의 우주선 방향을 돌리도록 하면 되는 것입니다. 랄프는 기다렸습니다. 그는 초조한 마음으로 리자놀의 우주선 모습을 눈여겨보고 있었습니다. 며칠이 지나 랄프의 인공 혜성과 리자놀의 우주선은 서로의 레이다에 나타날 만큼 가까워 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침내 리자놀이 화성을 향해 방송하는 것이 들려 왔습니다. “화성으로 향해 날아가는 혜성 발견. 폭파하겠음.” 여태까지 최고 속력으로 가던 리자놀의 우주선이 속력을 늦추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혜성을 폭파하기 위해 이쪽으로 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혜성처럼 꾸민 랄프의 우주선을 향하여 그 방향을 바꾸어 질주해 오고 있었습니다. 랄프가 파 놓은 함정에 마침내 걸려든 것입니다. 랄프는 뛸 듯이 기뻤습니다. 리자놀의 우주선은 랄프의 우주선 카시오페이아 호로 점점 접근해 오고 있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인공 혜성의 머리 부분을 향하여 미사일을 발사하기 시작했습니다. 혜성은 머리 부분만 폭파시켜 버리면 소멸되어 버립니다. 혜성의 머리 부분은 무겁지만 그 바깥은 대개가 가스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랄프는 재빨리 카시오페이아 호의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맞으면 큰일이기 때문입니다. 미사일이 날아왔습니다. 그러더니 미사일은 저 넓은 우주공간으로 날아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리자놀은 쉬지 않고 계속 미사일을 발사시켰습니다. 랄프는 그때마다 재빨리 피했습니다. 리자놀은 그 순간 문득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 모양이었습니다. 혜성이 스스로의 진로를 바꾸다니……. 리자놀의 미사일을 잘 피하는 것이 너무나 이상했습니다. 아마 중력의 법칙이 잘못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판단을 한 모양입니다. 리자놀은 무엇을 생각하는지, 약간 틈을 두었다가 계속해서 미사일을 쏘아댔습니다. 리자놀의 미사일은 한 발도 적중하지 못했습니다. 리자놀은 미사일을 한 개도 남기지 않고 다 발사시켰습니다. 그러는 사이 혜성은 점점 화성에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리자놀은 혜성을 파괴시키기 전에는 화성에 그대로 돌아갈 수는 없었습니다. 다급해진 리자놀은 전기포를 발사하기 위해 랄프에게로 30킬로미터까지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때를 위해 랄프는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안전거리까지 다가왔을 때, 준비해 두었던 특별 장치의 스위치를 눌렀습니다. 그 순간, 우주 공간은 별빛도 보이지 않고, 마치 빛이 어둠에 삼켜져 버린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니까 카시오페이아 호를 중심으로 지름 60킬로미터의 우주 공간은 완전히 표현할 수 없는 암흑의 세계로 변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 장치는 빛과 같은 주파수의 전파를 내어 빛을 중화시킨 후에, 아무 것도 눈에 보이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랄프가 리자놀의 초고주파 전파 발생기에서 암시를 받아 만들어 낸 것이었습니다. 리자놀은 지금까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일에 기절할 듯이 놀랐습니다. 그러나 랄프에게는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좋은 기회였습니다. 랄프는 날카로운 육감을 발휘하여 리자놀의 우주선으로 접근해 갔습니다. 거의 가까이 까지 다가갔을 때 중화기의 스위치를 끊어 버렸습니다. 그러자 지금까지 깜깜하던 우주 공간은 갑자기 밝은 빛으로 빛나 눈이 부시어 뜨지 못할 정도로 되어 버렸습니다. 조종석의 창을 통하여 무슨 일인가 내다보던 리자놀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랄프는 그 모습을 보고 재빨리 광선총을 겨누어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무서운 보랏빛 광선이 우주 공간을 가로질러 리자놀의 우주선 상으로 스며들어갔습니다. 순간 리자놀의 모습은 창에서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우주선에는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았으므로 아리스는 안전할 것입니다. 리자놀을 기어코 쓰러뜨린 랄프는 기쁨에 들떠 있었습니다.   아리스, 죽다   급히 카시오페이아 호를 리자놀의 우주선에 갖다대었습니다. 랄프는 우주모를 쓰고, 리자놀의 우주선으로 뛰어들어가 조종실 문을 열었습니다. 거기에는 2미터가 넘는 리자놀의 큰 몸집이 그대로 바닥에 넘어져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리자놀은 죽어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랄프는 너무 놀라 기절할 뻔했습니다. 아무 일 없으리라고 믿었던 아리스가 피투성이가 되어, 가슴에는 화성인의 단검이 꽂혀 있는 채 쓰러져 있었습니다. “아리스, 눈을 떠 보아요. 이게 어떻게 된 일이에요. 아리스!” 랄프는 부르짖었습니다. 랄프는 아리스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눈물을 떨구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때는 너무 늦어 있었습니다. 아리스의 얼굴은 창백해져 있었고, 손은 얼음장처럼 차가웠습니다. 아름답던 눈은 다시 뜨지 않겠다는 듯이 꼬옥 감고서 반듯한 자세로 누워 있었습니다. 지금까지의 노력과 고생은 보람도 없이 무너져 내리고 말았습니다. 랄프는 온몸의 힘이 송두리째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리자놀은 무서운 복수를 하고 말았습니다. 자기가 빠져 나올 수 없는 함정에 빠져 들어갔음을 느꼈을 때, 최후의 안간힘을 써서 아리스를 단검으로 찌른 것이 틀림없습니다. 랄프는 절망했습니다. 아무 것도 생각하기 싫어졌습니다. 아무런 희망도 이제 랄프에게는 없습니다. 그 빛나던 희망이 순식간에 물거품이 되어 사라져 버리고 만 것입니다. 발명도, 인간도, 그리고 세계를 위한 봉사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리스가 없는 세상을 살아서 무엇한단 말입니까? 랄프의 눈에는 눈물이 흘렀습니다. 눈물은 뺨을 타고 흘러내렸습니다. 랄프는 눈물을 닦지도 않은 채 아리스를 안았습니다. 아리스의 시체를 안고 카시오페이아 호로 옮겼습니다. 그리고는 아리스를 자기의 침대에 눕혀 놓았습니다. 죽은 사람이 슬퍼한다고 다시 살아날 리는 없습니다. 랄프는 생각했습니다. 아리스는 죽었지만 아직 그렇게 많은 시간이 흐른 것은 아닙니다. 상처는 단지 단검에 의한 것뿐이었습니다. 아리스가 죽은 이유는 단지 그 상처에서 너무 많은 피를 흘렸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에는 모르모트의 실험으로 성공한 그 수술이 효력을 거둘 수 있을 겁니다. 아리스는 살아날지도 모릅니다. 갑자기 랄프는 흥분이 되었습니다. 가슴이 뛰었습니다. 그렇지만 곧 냉정한 상태로 돌아왔습니다. 그것은 단지 실험에 지나지 않습니다. 게다가 첫 실험이었고, 실험 상대는 모르모트였습니다. 사람에게 성공할 수 있는지는 미지수였습니다. 그렇지만 랄프는 실망하지 않기로 마음을 굳게 먹었습니다. 해보는 것이 우선은 제일 좋은 방법이었습니다. 랄프에게는 결코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습니다. 랄프는 모든 슬픔을 뿌리치고 서둘렀습니다. 랄프는 카시오페이아 호를 지구 방향으로 향하도록 자동 조종 장치를 해 두었습니다. 그리고는 아리스의 몸이 부패하지 않도록, 그리고 변화하지 않도록 보존 처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얼음같이 차가와진 아리스의 몸을 전기 보온기로 따뜻하게 했습니다. 그런 후에는 아리스의 대동맥을 끊었습니다. 피를 완전히 뽑아내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왜냐하면 죽은 피가 혈액 안에서 응고되어 버리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대동맥의 피를 완전히 뽑아내고는 방부제가 들어있는 특별한 링겔 액을 혈관 안에 집어넣었습니다. 몸이 썩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허파에는 그가 오랫동안 고심한 끝에 완성한 미르마가톨이라는 가스를 집어넣었습니다. 그 가스는 호흡조직을 파괴시키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 수술은 극히 작은 실패만 따르더라도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므로 아주 조심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많은 시간이 소리 없이 흘러갔지만 랄프는 시간 가는 것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수술을 하고 있는 동안 붉은 화성에서는 점점 멀어지고, 그 대신 녹색의 보석처럼 아름다운 지구에 카시오페이아 호는 점점 다가가고 있었습니다. 3일, 5일, 그리고 일 주일, 또 10일. 날짜는 점점 흘러갔습니다. 랄프의 필사적인 노력으로 아리스의 시체는 썩지도 변화하지도 않았습니다. 일단 거기까지는 성공이었습니다. 그러나 랄프는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불행이란 예고도 없이 뜻밖에 나타나는 것이니까 말입니다. 드디어 2주일 째에 들어섰습니다. 랄프는 현기증을 일으키며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너무나 긴장하고 과로했었기 때문에 우주병에 걸리고 만 것입니다. 그처럼 훌륭한 발명가도 병에는 어쩔 수 없이 쓰러지고 만 것입니다. 그는 아리스의 침대 옆에 쓰러진 채로 깊은 잠에 빠져 들어갔습니다. 며칠이나 시체를 그대로 내버려두었으니 이제는 절망이라고 생각하면서 눈을 뜬 랄프는 그만 아연해지고 말았습니다. 우주선 안에는 많은 의사들이 랄프와 아리스의 시체를 돌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카시오페이아 호가 되돌아오는 것을 본 세계 정부의 우주선이 의사와 약을 가지고 왔던 것입니다. 가벼운 치료로 랄프의 우주병은 곧 완쾌되었습니다. 창밖에는 아름다운 달을 거느린 지구의 모습이 바로 옆 가까이에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지구에 돌아온 것입니다. 랄프는 용기를 되찾았습니다. 잠시 후에 카시오페이아 호는 뉴욕의 빛의 탑 지붕 위에 착륙했습니다. 빛의 탑 수술실에는 이미 수술 준비가 다 되어 있었습니다. 세계의 이름난 의사들이 수없이 랄프의 조수가 되기를 희망하고 달려 왔습니다. 아리스의 시체는 곧 수술대로 옮겨져 수술이 시작되었습니다. 대동맥을 다시 열어서 링겔 액을 뽑아 내고는 따뜻한 증류수로 씻어 냈습니다. 그러자 전국에서는 피를 바치겠다는 지원자가 속출했습니다. 그들이 바친 소중한 피가 곧 아리스의 혈관으로 흘러 들어갔습니다. 그와 동시에 산소 흡입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뇌에는 자극을 주기 위하여 특수 전류를 보내 주었습니다. 수술을 하는 동안 랄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길고 긴 시간이 말없이 흘렀지만 아리스는 다시 살아날 가망을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랄프는 심혈을 기울여 아리스의 생명을 되찾으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징조도 나타나 주지 않았습니다. “아아, 나는 결국 실패하고 마는구나!” 절망감이 랄프의 마음을 괴롭혔습니다. 눈앞이 캄캄해져 옴을 느꼈습니다. 랄프는 그만 어지러움을 느끼고 손에 들고 있던 도구를 떨어뜨렸습니다. 아무것도 랄프는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온몸의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것 같았습니다. 랄프는 힘없이 옆의 조수에게로 쓰러져 버렸습니다. 그때였습니다. 한 조수가 감격에 찬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그 조수의 목소리가 랄프의 귀를 울렸습니다. “랄프, 이것을 봐요. 아리스의 심장이 점차 뛰기 시작했어요.” 쓰러져 있던 랄프는 그 소리에 놀라 눈을 번쩍 떴습니다. 그리고 번쩍 뜬 눈으로 아리스를 바라보았습니다. 기적이 아리스에게 일어난 것입니다. 끝내 움직일 것 같지 않던 아리스의 심장이 가냘프게 뛰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비록 가냘펐지만 아주 규칙적인 소리였습니다. 그리고 예쁜 입술에서는 숨쉬는 소리도 들렸습니다. 랄프는 기쁨에 넘쳐 쓰러졌습니다. 이제 안심해도 좋습니다. 랄프 124C41플러스는 드디어 과학의 힘으로 아리스를 죽음으로부터 구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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