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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장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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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의사 의술과 환자의 눈높이 댓글:  조회:852  추천:0  2022-03-25
의사 의술과 환자의 눈높이 최장춘 고대구라파를 정복한 알렉산더대왕이 림종시 ‘자신이 죽거든 텅 빈 두 손을 관 바깥에 내놓아라.’는 유언과 함께 ‘상여를 어의(御医)들한테 맡기라.’는 부탁을 해서 부하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원인을 물어본즉 어의는 병을 떼지도 못하면서 떼는 척하여 후날 자아반성하도록 책임을 묻는다는 것이였다. 력사상 처음 왕위권세와 더불어 병치료에 대한 환자의 눈높이를 보여준 대목이여서 흥미롭다. 옛날 의학이 종교와 어울려 갈팡질팡하던 데로부터 점차 독립적인 현대과학분야로 인정받고 정상적 의환관계가 성립되기까지 수천년의 무지몽매한 어둠 속을 헤쳐왔다. 의사의 소견 대로 환자의 앓음소리는 병이였으나 무당의 눈에는 귀신의 작간으로 보였다. 의원의 직책은 먼저 전쟁터에 나선 장군을 상대로 했고 평일에는 귀족을 섬겼던 까닭에 편작, 화타가 유명세를 탔어도 백성은 의연히 무당을 청해 굿을 보고 부적을 써붙이는 데 열중했다. 하지만 돌틈에서 샘물이 흐르듯 그 와중에도 거리에서 호리병 속의 약으로 세상을 구한다는 현호제세(悬壶济世)가 류행되여 항간의 의환관계를 맺기 시작했으니 효험을 본 환자는 너무 신기해 허둥거렸고 신빙성을 느끼지 못한 환자는 (저 호리병 속에 대체 무슨 약이 들어있을가?) 하고 의심을 품었다. 약물치료의 불확실성을 알 수 없는 그 당시 사람들은 의원에 대한 인식이 량극단으로 갈라져 때론 신처럼 떠받들다가 때론 돌팔이취급을 해서 억울한 일들이 많았다. 의사가 환자를 위해 봉사하고 환자는 의사를 존중하는 기풍은  인류가 문명사회에 진입하면서 형성되였다. 건국 후 60년대-70년대 신주대륙에 대량의 ‘맨발의사’가 등장했다. 고작 청진기와 혈압기가 의료장비의 전부였던 그들의 대부분은 위생강습소를 마친 서툰 솜씨였으나 환자를 위한 책임감은 대단했다. 한밤중에 달려가 집문을 두드려도 짜증 내는 기색없이 그냥 위생가방을 메고 왕진길에 올랐다. 그리고 허물없이 가마목에 앉아 환자의 손을 잡고 “자꾸 앓지 맙소!”하는 소탈한 롱담반 진담반에 병은 벌써 절반 나았다. 간혹 마을 술판에 앉으면 의사 앞에 술잔이 먼저 가는 것이 동네사람들의 상례였던 것 만큼 의사한테 항상 선망과 감사의 눈빛을 보냈다. 개혁개방을 맞아 외국의 선진설비와 치료법이 륙속 인입되면서 의사의 능력이 현저히 제고되였고 따라서 환자가 병치료에 대한 관념도 새로운 변화를 가져왔다. 과거의 간단한 맹장수술이나 골절수술밖에 못했던 연변지역 병원이 이젠 최소 침습수술로 이왕의 대면적 절개수술을 대체하고 스탠드시술과 혈관개입시술마저 척척 해내는 수준에 이르렀다. 처음엔 환자들은 위험을 느껴 공공연히 거부감을 나타냈다가 시술의 의학적 원리를 깨닿고 적극 받아들이는 자세로 돌아섰다. 의사는 의술을 련마하고 환자는 의학상식을 배우는 고조가 일어남에 따라 집집마다 한두권의 의학서적은 상식적으로 갖춰놓고 있다. 삼년 병원놀음을 하면 의사가 된다는 말처럼 인체의 오장륙부에 생겨난 3만여종의 병명을 얼음에 박 밀듯 술술 외우는 수준급 환자 앞에선 덩치 큰 의사도 가끔 굽석굽석 허리 굽히는 터라 의사에 대한 요구가 전 사회적으로 높아진 상태라 해야겠다. 헌데 아직 허다한 질병은 근치할 수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들은 자꾸 대도시 의사와 비겨 대놓고 폄하하고 헐뜯는가 하면 고가 진료비를 물었으면 의사는 반드시 책임지고 병을 완쾌하게 치료해야 한다는 억지주장을 펼쳐 의환 사이에 좀 어색한 연극이 벌어지군 한다. 림상실천이 증명하다싶이 질병치료는 의사와 환자가 잘 배합해야 소기의 치료효과를 거둔다. 급성질환과 달리 만성질환자는 장기간 의사와 대량의 정보교류를 진행하는 과정을 거쳐야 컨디션조절에 유리한 자률성을 터득한다. 그 때문에 환자는 입을 꾹 다문 채 검사표만 수두룩이 떼는 의사보다 자상한 친화력을 갖춘 의사와 함께 병상의 모니터를 보면서 정황을 상세히 료해하고 다각적인 치료법을 감수하며 궁금한 점은 수시로 문의할 수 있는 봉사시스템을 원한다. 이런 환자들의 눈높이를 감안해 병원측은 의사신분을 소개하는 사진을 붙여놓고 환자의 임의 대로 선택하게 한다. 의사와 환자는 생사를 같이 나누는 길동무이다. 가장 위험한 환자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의사 못잖게 환자는 약물복용량, 식사량, 운동량, 정서파동 등 여러 면을 엄격히 관리하는 것으로 의사와의 두터운 신뢰를 쌓는다. 의환교류를 통해 의사는 의술과 경험이 늘고 환자는 신심과 희망을 얻어 불가분리, 상호부조의 결실을 낳는다.   의학은 과학인 동시에 정감의 온도가 슴배인 인문학이다. 필경 사람이 인간의 병을 치료하는 이상 인간성을 배제할 수 없다. 요즘은 환자중심의 관념을 구체화하여 건강과 질병을 인간의 심리, 생리, 사회관계망과 련결시켜 의사와 환자가 공동히 참여하는 플랫폼을 제창하여 사회의 주목을 끈다. 종합적인 프로젝트로 질병의 근원부터 손을 댄 폭넓은 치료법이여서 의환교류는 이왕에 비해 미래지향적인 차원을 요구한다. 환자의 질 높은 삶에는 의사의 고명한 의술과 환자의 성숙된 인격이 보장되여있다. 질병을 옳바르게 대하는 리성적인 생각이 깊어지는 한 의사를 바라보는 환자의 눈썰미는 더 높아간다. 환자도 건강체질과 똑같이 백년을 살 수 있는 세상은 오직 의환관계의 원활한 소통이 있을 때만이 실현 가능하다. 소통-의료봉사의 영원한 주제이다. 연변일보  
69    중고주택시장 왜 얼어붙었을가 댓글:  조회:679  추천:0  2022-01-12
중고주택시장 왜 얼어붙었을가 최장춘 근년래 연길시중고주택시장이 겨울추위를 만난듯 얼어붙었다. 광고를 내도 물어보는 사람들조차 없다며 중개소마다 울상이다. 이는 비단 연길뿐만 아닌 전성, 나아가 전국전인 현상이기도 하다. 공개된 정부의 부동산거래수치를 봐도 그렇다. 도시기초시설투자액은 늘어난 반면 주택건설투자규모가 몇해째 련속 하강세를 긋는 영향을 받아 과거 호황을 누렸던 중고주택가격이 뚝 떨어져 모두 벙어리 랭가슴 앓는 양상이다. 중고주택판매난을 초래한 원인은 수요와 공급을 둘러싸고 얽힌 여러가지  요소와 다주택보유가 인기를 잃어 서로 앞다퉈 매각을 주도한데 있다. 경제학자들속에서 집값은 단기적으로 금융을 보고 장기적으로는 인구를 본다는 설이 있다. 시중에 잠시 돈이 딸려 집값이 떨어지는 현상은 경제주기를 벗어나는대로 회복이 가능하겠지만 인구류동량이 적어 발생한 부진상태에는 아직 신통한 해결책이 없다. 그만큼 류동성비례가 주택시장활성화에 큰 비중을 차지함을 설명한다. 현재 우리 연길시내의 장기거주인구 68만명가운데 60세 이상 로인비례가 22%를 웃돌고 청장년비례가 65%로 나타났지만 소비층의 활력소인 젊은층들 대부분이 큰도시 아니면 외국에 진출하여 실제 주택구매의 경성수요량을 잃어버린 셈이다. 한 도시에 투자할 가치여부는 인구흡인력에 달려 있다. 인구가 몰려드는 도시와 달리 젊은층들이 흩어진 도시를 말할진대 높은 기회원가를 회피하려는 투자심리때문에 집값이 바닥을 쳐도 흥취를 가지는 사람이 없다. 집값은 주식처럼 올리 솟구칠 땐 몰켜들고 약세를 탈 땐 등 돌리며 량극화로 치닿는 베블런효과가 있다. 살펴보면 연길시중고주택은 지난 90년대 지은 건물들이여서 비록 도심속 위치에 놓여 있으나 태반은 엘리베이터가 없고 인터리어도 구식이며 부가가치를 올려줄만한 주차장, 록화, 휴식터를 비롯한 부대시설물마저 결핍하다. 게다가 은행의 담보대출이 어렵고 집조변경시 토지매각금을 포합한 각종 세금비용부담이 만만찮아 주춤거리는 사례가 많다. 하여 구매자들의 눈길은 자연히 환경도 좋고 물업관리도 깔끔한 신축아빠트시장에 쏠린다. 중고주택시장의 불경기를 만든 또다른 원인의 하나는 적치된 재고주택량이다. 지난 98년도 전국주택제도개혁을 계기로 연길시는 이왕의 집금주택, 경제실용주택을 이어 상품화주택건설에 박차를 가했다. 인구류동량이 적은 산간도시에서 대량의 살림집건설을 단행한 결과 주택공치률이 국가에서 설정한 위험경계선인 21%를 훌쩍 뛰여넘었다. 더우기 정부에서 3년째 불량주거지대개발을 중지하고 대신 5만여호에 달하는 로후주택개조를 대대적으로 실시한 바람에 도심속의 매물이 거래절벽에 부딪혀 재부효과를 극대화하려던 두채이상 주택보유가정마다 적신호가 켜져 워낙 가격인상을 노렸던 사람들이 안절부절하게 되였다. 경제성장방식의 변화로 말미암아 어제날 새집은 매점투기하고 낡은 집은 철거이주로 한몫 벌던 시대는 영영 지나갔다. 얼마전에 진행된 중앙경제사업회의내용에는 보장성주택건설을 다그치며 분양주택시장을 부추킴과 아울러 구매자의 합리한 주택수요를 만족시키기 위해 시장의 건전한 발전과 선순환을 주문했다. 안정유지를 첫자리에 놓고 가격폭등을 억누르는 한편 침체현상도 막는것이 오늘날 정부의 확고한 립장이다. 하다면 앞으로 몇년간 연길시중고주택시장은 어떠할가? 이는 정부의 부동산정책변화와 주민들의 소비관념에 의해 결정된다. 정부차원에서 더 이상 강력한 규제보다 유연한 대책을 강조하면서 고품질발전에 무게를 실어 새로 지을 부르하통하량안 그리고 고속철역방향의 살림집들은 기필코 독특한 새 모습으로 거리의 운치를 돋구게 된다. 소비자들속의 주택개선욕구와 젊은층 신접살이욕구를 바라보고 금년에도 주택건설규모 또한 이왕에 못지 않게 착공을 앞둔 시점이다. 신축규모가 계속 늘어날수록 중고주택의 판로는 점점 어려움을 겪게 된다. 다행히 신로주택가격차이를 줄일수 있는 해법의 하나로 중고아빠트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는 화제가 떠올라 모두 한가닥 희망을 느낀다. 가설비의 원가중 근 절반을 정부에서 책임지고 나머지 비용은 주민호들이 분담하는 방안인데 찬반론란속에 잠시 합의점을 찾지 못했을뿐 가능성은 아직 충분히 남아있다. 중고주택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면 집값의 상승은 물론 사용이 훨씬 편리해져 매각을 포기하고 장기칩거타산을 앞세우는 주민들이 늘어날 전망이여서 중고주택시장의 재고량이 줄어드는 일거량득의 효과를 거둔다.   물건은 희소할 때 값진법이다. 세월따라 값어치를 빛내는 예술품과 달리 주택은 시간이 흐를수록 기존의 가치가 땅값으로 전환돠는 이중성을 갖췄기에 침체와 재활사이를 오르락내리락하는 주기성을 참고 기다리는 인내력만이 나중에 좋은 교환가치를 만들어낸다. 낡은 집일지언정 항상 정성들여 꾸미고 가꿔놓는것, 이를테면 사람은 늙을수록 화려한 의포단장덕에 높은 점수를 따는 도리와 일맥상통하다고 봐야겠다. 도심을 차지한 우세를 빌어 중고주택의 시장위치를 앞으로 무엇으로, 어떻게 지켜낼것인가 하는 포괄적인 문제야 말로 각자의 랭철한 판단력과 능란한 상술발휘에 달려 있지 않을가싶다. 연변일보 
68    동그라미는 왜 그리기 힘들가 댓글:  조회:850  추천:0  2021-11-18
일전 한 녀고생이 칠판에 분필로 원을 그리는 7초짜리 영상이 큰 인기몰이가 됐다. 맨손으로 콤파스를 활용한 것처럼 반듯하게 그려낸 영상을 보고 수많은 네티즌들이 잇달아 도전해봤지만 한낱 패러디영상 수준에 머물고 말았다. 예로부터 동그라미는 완벽한 소원의 상징으로 인간이 가장 선호하는 대상이였다. 얼핏 보매 그리기 쉬운 것 같으나 막상 손을 대보면 껄끄럽게 토라져 실패작을 내놓는 사람들이 수두룩했다. 의 아Q가 수인차에 끌려가면서  금방 이름 우에 친 동그라미가 왜 비뚤었는지 몰라 량미간을 찌프리며 집착한 걸 감안하면 필경 동그라미안에도 판도라상자의 비밀이 숨겨져있는 것 같다. 심미학자들은 자연에서 비롯된 원을 인간의 가장 조화로운 감정표식으로 풀이한다. 평면이든 구형이든 원에는 복판을 기점으로 해살같이 뻗어나간 수많은 반경이 꼭 일치해야 하는 법칙이 있다. 다 빈치의 비례에 따르면 인체가 배꼽을 중심으로 활짝 펼친 팔다리의 정점을 련계할 경우 하나의 원이 형성된다. 그 밖에 인간은 정수리부터 손끝발끝까지 지어 온몸에 뒤덮인 땀구멍마저 모두 작은 원형의 모양새를 갖췄으니 원형이야말로 생명의 근원이 아닌가 싶다. 사회활동에서 사람들은 원을 긍정과 찬성의 부호로 활용하는 한편 이루고 싶은 꿈의 상징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쟁반같이 둥근 보름달과 추석달에 자신들의 간절한 소망을 담아 빌고 또 빌면서 먹는 음식마저 동그란 원소 아니면 월병이다. 그만큼 세상에 흔하디 흔한 동그라미에 차원 높은 이미지를 부여하기까지 넘어야 할 어려운 고비는  물론 육신을 비틀어 짜는 고통도 겪어야 한다. 겉은 동그란 웃음꽃을 피웠어도 속궁리는 앙큼하고 서리발 치는 사람이 있다. 남남으로 태여나 한 교실에서 공부하면 동창생이요, 한 직장에서 근무하면 동료가 되는 건데 늘 주달이 그린 새의 삐딱한 시선으로 배척하고 업신여기는 일을 밥 먹듯 하여 둥그러야 할 인간교제가 이 떨어진 치차처럼 덜컹거린다. 어느 회사의 지도자는 말끝마다 번지르르 화합이요, 단합이요 하지만 회사원들과 눈 한번 마주치지 않고 점심식사도 직원이 따로, 팀장이 따로, 지도자급이 따로 등급을 매겨 워낙 둥근 밥상이 모가 나서 눈살을 찌프리게 만들었다. 너와 나 합쳐 우리가 될 수 있는 전제조건은 곧 평등이다. 평등이 없으면 대화도 없고 소통도 있을 수 없다. 불신과 믿음, 질투와 사랑이 엉켜붙어 물레방아처럼 빙글빙글 돌아가는 삶의 궤적를 어떤 마음가짐으로 다듬어내느냐에 따라 자신을 나타내는 무대공간이 크게 둥글어질 수도 있고 볼썽사납게 찌그러질 수도 있는법이다. 인터넷에서 한 심리학 교원이 강의 도중 커다란 동그라미와 불균형 오각별을 칠판에 붙여놓고 그 안에 각각 ‘단합’과 ‘갈등’이란 단어를 적어넣었다. ‘단합’이 적힌 동그라미는 일월의 정기를 품은 듯 밝고 훤한 데 반해 ‘갈등’이 적힌 불균형 오각별은 무작정 키돋움한 나무처럼 들쑥날쑥했다. 재부와 권력, 명예를 삶의 최고목표로 정하고 유아독존을 일관하는 사람의 족적을 살펴본즉 동화 에서 나오는 욕심쟁이 할망구 같은 궁상맞은 집뜨락의 몰락된 양상을 감추지 못했다. 극단적 자기중심의 욕구가 빚은 결과라고 하겠다. 일본의 요시하라 지로는 일생을 살면서 50년 동안 줄곧 동그라미만 그린 화가이다. 가끔 좁은 생각과 넓은 생각의 차이를 점점이 동그라미로 잘 보여주었는바 원 밖에 다른 원이 겹쳐있고 그외에 또 커다란 원이 감싸안은 그림을 접하는 순간 동그라미마다 하나의 독립적인 세상인 동시에 사슬처럼 련결되여있음을 느낀다. 더우기 첫눈에 안겨오는 동그라미보다 원심력에 의해 형성된 알릴듯 말 듯한 보이드공간을 제꺽 짚는 사람이 대인관계의 전성기를 맞는 확률이 높다. 고대철학자 제논의 말을 빌어 원안의 수치가 고정불변일 때 원 밖의 미지수는 변화무쌍하다. 울타리에 갇혀 살면 고집스워지고 드넓은 세상을 포옹하면 겸허해진다. 비록 왜소한 자신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몸은 부대껴 딩굴고 찢어져도 바깥세상과의 교류를 통해 짧은 건 길게, 긴 것은 짧게 하여 유연하고 깔끔한 원형을 닮은 성숙된 자세로 컴백한다. 지구의 모양새가 둥근 것은 함께 오구구 모여서 재밌게 살라는 뜻이지 쩍하면 빚받이군처럼 낯을 찡그리고 내노라 호통치며 살라는 의미가 아니다. 시계바늘처럼 각자의 본분을 지키며 경쟁과 협력, 소통과 상생을 결부한 공존공생의 파트너로 거듭날 적엔 작은 점 하나도 진짜 엄청난 스펙트럼을 발산한다.   원형은 둘이 손가락 걸면 환상의 짝꿍이 되고 서넛이 모이면 황금마차를 이끄는 수레바퀴가 되며 다섯이 어울리면 올림픽성화마냥 지구촌을 잇는 랜드마크가 된다. 관건은 각자 마음에 간직한 그릇의 크기가 어느 만큼인가에 달려있다. 타인을 살피는 눈은 밝은데 자신을 반추해보는 눈은 어둡다. 평소 타인의 이름 앞에 긍정과 칭찬의 동그라미를 선뜻 쳐줄 수 있는 용기와 아량이 부족한 탓에 오늘까지 어쩐지 동그라미를 긋기 무척 힘들었는지도 모른다. 멀어진 이웃과 덥석 손을 잡고 벙긋 웃는 사이에 동그라미는 벌써 겨우내 얼어붙은 마음의 강판을 쩡쩡 깨뜨리며 훈훈한 봄기운을 선사한다. 동그라미는 진정 손끝을 떠나 마음속으로 그려내는 눈부신 태양이 아닌가 싶다. 연변일보 
67    로인 재혼 문제, 진정어린 관심 시급 댓글:  조회:855  추천:0  2021-10-21
로인 재혼 문제, 진정어린 관심 시급 최장춘 요즘 젊은이들의 류행을 많이 선호하는 로인들 사이에 ‘협의결혼’이란 재혼방식이 슬며시 고개를 쳐들어 인기다. 컨디션이 아직 괜찮을 적에 만났다가 불편할 때 헤여지는 혼인관계라고 해야겠다. 일찍 출국바람과 부동산 구매에 극성을 부리던 ‘협의리혼’이 두 얼굴을 가진 ‘야누스’처럼 어느새 ‘협의결혼’으로 탈바꿈한 느낌을 주어 주변은 갈피를 못 잡은 채 얼떠름한 양상이다.   얼마전에 한 아빠트에서 로인의 재혼문제를 놓고 두 집의 아들딸들이 머리를 맞대고 협의했다. 홀로 지내던 두 로인이 우연히 무도장에서 얼굴을 익혀 결혼까지 약속하게 되였다. 로인들의 재혼에 절대적 권한을 행사하는 자식들이 부모들의 소원도 풀어줄겸 자기들의 부담도 덜기 위해서이다. 한나절 충분한 토의 끝의 합의점이 흥미롭기만 하다. 첫째, 결혼 후 거처는 바깥로인이 제공한다. 둘째, 생활비용은 함께 부담한다. 셋째, 잔병을 앓을 적엔 서로 보살펴줄 수 있지만 중병에 걸리면 서로 돌보지 않으며 혼인관계를 끊는다. 얼핏 보면 ‘딱딱한 백서’같지만 만년의 고독을 달래기 위한 합의는 각자의 의무와 책임은 옛날 관념을 갱신한 시체멋이 풍겼다. 서로 고독을 달래기 위한 신형의 동반자 관계는 건강하고 큰 경제적인 부담이 없는 한 오래 지속될 가능성이 충분했다. 현재 독거로인들의 재결합을 두고 수긍하는 것보다 소극적이거나 한사코 반대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리유인즉 경제상 불필요한 손실이 따르지 않을가 저마끔 의구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여 늘그막에 살림이 궁핍할수록 재혼률이 훨씬 낮다. 최신 통계에 따르면 우리 주변에 60세 이상 독거로인들 가운데 40%가 재혼을 원한 데 비해 달성률은 근근히 7%에 그쳤다. 미래에 대한 생활 계획을 세울 용기와 신심이 결핍한 데다가 자식들의 눈치를 보며 결정 지을 수 밖에 없는 피동적인 처지가 로인들의 의지를 크게 위축시킨 결과이다. 보통 남성측의 혼인 요구는 한낱 마음이 맞고 밥상을 잘 챙기는 수준에 머물러 있는데 반해 녀성측의 조건부는 너무 까다롭다. 매달 양로금은 얼마 쯤 타야 하고 집 한채는 기본으로 갖춰져야 고려해본다는 것이다.   “늘그막에 누굴 위해 밥 짓고 빨래해야 하는가?” 안로인들 끼리 오가는 대화이다. 인간의 됨됨이를 중요시하면서도 일단 재혼의 문턱을 넘어서면 마음 한구석은 늘 재물이 다른 곳으로 혹시 새여나가지 않을가 걱정하며 살핀다. 하여 티각태각 다투는 일이 자주 생긴다. 지어 어느 한 량반은 재혼해서 10여년 함께 살다가 후처 자식의 결혼부조에 부담을 느껴 툭 털고 떠나버렸다. 오로지 나만의 안속만 챙겨 리로우면 붙어서 살고 불리하면 등을 돌리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겨 빚어진 불상사다. 평소에 눈이 맞으면 동거하는 경솔함보다 현실성을 감안해 심사숙고하는 진정성이 로년의 생활품위를 높여준다. 젊어서는 매력에 취해 살고 늙어서는 정에 끌려 산다. 예로부터 “령감 밥은 누워먹고 자식 밥은 서서 먹는다”, “효자가 악처만 못하다”고 했다. 그래서 황혼빛이 짙어갈수록 독거로인들은 이성에 대한 집착과 관심이 더 절실하고 끈끈한듯 싶다. 연길시에 옷가게를 차린 로인 잉꼬부부가 있다. 십년전 우연히 만났을 때 자식들의 거센 반발에 심히 곤혹스러웠다. 하지만 두사람이 굳게 의지하고 받들면서 매 하루를 금싸락같이 소중히 여기며 살았다. 바깥로인이 갑자기 뇌졸증으로 쓰러지자 안로인이 밤을 패며 완쾌해질 때까지 병시중했고 또 자식이 갑자기 앓아눕자 량주가 열성스레 보살펴주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자아희생을 앞세운 두 분의 노력 끝에 자식들도 나중에 감화되여 모두 “아버지”, “어머니”라고 정답게 불러 집안은 사시절 봄기운이 돌아 훈훈했다. 평범한 가정의 러브스토리를 통해 문뜩 정숙하고 이성적인 삶의 자세를 떠올리게 된다. 마음과 생명을 본 따서 만들어진 성(性)이란 상형문자 앞에서 육체는 비록 늙었어도 마음만은 본능적으로 푸르디 푸르다. 오히려 솔직하고 진지한 생활에 대한 태도가 따뜻한 생활의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데 유조하다. 로년기 재결합은 호젓한 길목에서 잠간 만나 심심풀이 삼아 맺은 인연이 아니라 인생의 제2스타트를 다시 떼는 절박하고 소중한 만남이다. 혼약은 지켜야 떳떳하다. 사는 동안 서로에게 버팀목이 될 부부 사이는 어차피 짊어질 책임을 흔쾌히 수용하는 너그러움도 필요하지만 얽힌 매듭을 제때에 풀어가는 지혜 또한 중요하다. 늘그막에 서로 아픈 상처를 감싸주며 정다운 배려와 나눔이 그득한 로년의 생활은 하냥 명랑하다. 로인들 무병장수의 전제조건은 곧 가족들의 화끈한 보살핌과 친화력과 일편단심이다. 오늘날 고독에 지친 로인들의 초췌한 모습이 어쩌면 래일 우리들의 허탈한 일상이 될지도 모른다. 여직껏 그늘에 가려진 로인들의 재혼 문제가 가족을 비롯한 전사회의 진정어린 관심을 받을 때만이 로령화 시대의 석양빛은 더 화려하고 눈부실 것이다. 길림신문
66    임대주택 건설이 도시 중산층을 살린다 댓글:  조회:823  추천:0  2021-07-16
임대주택 건설이 도시 중산층을 살린다 최장춘 도시 중산층은 부동산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지난 90년대초 연길시에서 진행된 대규모 주택제도 개혁을 계기로 국가의 정규직, 공상업체에 종사한 사람들이 당시 쓰고살던 국가 또는 단위의 가옥을 재설정 가격으로 사들여 일약 소유권자가 되였다. 이어 2000년대부터 주택시장화 물결이 터지면서 그들중 일부는 평소 아껴먹고 아껴쓰면서 모은 돈으로 주거환경 개선에 주력했고 다른 일부는 부동산거래에 뛰여들어 이른바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재래식 상술로 재부축적을 극대화하여 소비령역의 가장 활약적인 중산층으로 발돋음했다. 부유계층과 빈곤계층 사이에 놓인 이 군체는 피라미드의 중간위치에서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부자행렬에 발탁할 기회가 있는 반면 자칫 쇠태일로를 걸어 빈곤층에 추락될 불안정한 이중성을 띠고 있다. 근간 중산층의 경제활동이 대부분 투자수익률이 높은 부동산시장에 초점을 맞춘 만큼 한때 집값 상승에 따른 재부효익을 얻어 어깨가 으쓱했지만 '주택노예'란 광채롭지 못한 딱지가 붙어 가끔 생활상, 사업상의 궁색함을 드러내기도 한다. 돈 버는 목적을 획일적으로 내 집 마련에 귀결시킨 까닭에 젊은이가 집이 없으면 장가들기 힘들고 늙은이가 집이 없으면 만년에 편안치 못하다는 생각이 사회의 공통한 인식으로 자리매김했다. 집값과 로임의 비례차이가 엄청남에도 불구하고 중산층이 부동산에 올인하는 데는 그들만의 리유가 따로 있다. 재테크 경로가 다양하고 광범위한 부유층과 달리 중산층의 선택공간은 상대적으로 작고 비좁다. 부동산을 제외하고 다른 령역에 대담히 투자할 자신이 없어 돈 들여 자산을 사는 부자와 달리 중산층의 태반은 돈 팔아 부채를 사들이는 차원에 머문다. 가족재산비례 가운데 근 80%가 부동산의 몫이고 금융자산은 고작 10%밖에 안된다는 국가통계국의 수치를 감안하면 부동산에 짓눌린 중산층의 고충을 어림 짐작할 수 있다. 소비시장을 흐르는 강물에 비유하면 부동산은 물을 에워넣는 커다란 웅뎅이와 같다. 가정마다 아글타글 번 돈을 창업에 유용하게 쓸 대신 그 웅뎅이에 몽땅 처넣고 자금난에 시달리는 외곡된 주택구매열을 두고 연길시 뿐만 아닌 전국적으로 주택공급의 불균형 현상을 막기 위한 일련의 정책과 조치를 륙속 내놓으면서 토지,금융, 세수, 임대를 포함한 장기효용기제에 모를 박고 있다. 더우기 인간의 공공임대주택체계와 분양주택임대시장을 육성함과 아울러 인간의 기존 관념을 돌려세울 법적 보장 제도와 독려 시스템의 마련에  한창 행보를 다그치는중이다. 올해 3월 13기 4차 전국인대회의 ‘정부사업보고’에서 도시의 청년들, 새 주민들의 주택난을 해결하는 관건적 포인트를 보장성 임대주택과 재산권 공유주택 건설에 찍었다. 임대시장을 보편화, 규범화하는 장기적인 발전전략이 도시 주택병행제도를 다양하면서 합리하게 바꾼다. 선진국의 영향을 많이 받은 향항의 경우 임대주택과 분양주택 비례가 50:50에 이른다. 도시 인구의 절반은 보장성 임대주택 생활을 선택하고 다른 절반이 분양주택을 선택한다. 대륙의 상해, 북경을 비롯한 중점도시들에서도 이미 임대주택시장 건설의 정상화에 시동을 걸었다. 무릇 신청내용이 요구에 부합되면 관련 기구의 비준을 맡은 후 50~100평방메터의 집에 수시로 입주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 연길시는 집가격과 임대시장의 불안정성을 감안하여 신축분양주택 면적의 5% 비례로 렴가임대주택을 지었고 지금은 귀향창업청년들을 상대로 신축 주택 규모를 확충하는 과정이다.   문제의 관건은 자금난보다 관념 갱신이다. 현재 연길시의 21만여세대에 가옥 건축면적은 2900만평방에 달하여 매집 평균 80평방짜리 집을 두채씩 갖고 있는 셈이다. 소유권주택을 고집하는 전통관념이 공급측을 자극하여 형성된 결과라고 하겠다. 기실 사람마다 반드시 제 집을 쓰고살아야 한다는 법은 없다. 이웃의 일본은 저소득층을 위한 렴가임대주택외에 중산층들이 주택수의 근 50%를 차지하는 공영임대주택을 선택한다. 대다수가 가난해서가 아니라 어떤 일을 할 것인가에 고심하는편이다. 앞으로 집문화에 대한 인식을 바로잡으려면 사회의 제도적인 장치가 자못 중요하다. 저소득층의 주택난문제가 기본상 해결된 연길시는 지금 중산층을 상대로 임대주택 건설과 시장 질서 정규화에 힘을 집중하는 동시에 개발상인들의 기존 경영방식을 장기투자전략으로 대체해야 할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있다.물론 여직 개발상의 ‘1:9’ 융자방식을 갖고 상업화 임대주택으로 개변하기까지 의연히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정부와 개발상인이 함께 주도하는 ‘판매+경영’ 상업병행제도만이 부동산시장 질서를 건전하고 조화롭게 만드는 유일한 대책이다. 집은 쓰고사는 공간이지 되거리용이거나 신분과시용이 아니다. 중산층이 부동산시장의 괴리를 벗어나 진정 자신들이 하고 싶은 사업에 시름 놓고 정력를 몰부을 때 우리 연길시도 비로소 선진도시 행렬에 들어섰다고 떳떳이 말할 수 있다. 연변일보 
65    고속철이 도시구도를 바꿔놓는다 댓글:  조회:796  추천:0  2021-05-20
고속철이 도시구도를 바꿔놓는다 최장춘 고속철 경적소리가 도시의 고요를 깨는 격정시대에 들어섰다. 전국의 대도시 사이에 선후하여 고속철이 개통되면서 대륙은 쾌속에 열광하는 붐이 일었다. ‘중국속도’란 말이 나올 정도로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고속철이 몰고 온 빠른 절주를 한때 부러움에 찬 눈길로 바라보던 우리에게도 급기야 변화의 동풍이 불어닥쳤다. 드디여 연길과 장춘, 심양, 대련, 북경을 잇는 고속선로가 련결되면서 과거 완행렬차로 하루 지어 이틀씩 허비하던 지루한 거리를 이젠 불과 몇시간내에 도착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이로 말미암아 연길시의 행정구도가 지각변동을 방불케 해 단일중심에서 다중심 형태로 이전하는 큰 변화가 생겨났다. 지난 80년대에 도시구도는 연길백화점과 서시장을 중심으로 형성된 광명거리와 인민로를 빙 둘러싸고 정부기관, 학교, 병원, 주택 등 건물들이 들어앉았다. 한때 택시를 잡아타도 5원이면 어디든 도착할 수 있어 너나없이 흡족한 기분이였다. 헌데 근간 고속철이 통하면서 도시구도의 움직임이 원점에서 서부 신축도시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먼저 부르하통하에 남북을 련결하는 천지교, 신민교, 연천교가 놓여지고 연길서역을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련결하는 연서로 확장공사, 빈하로와 리화로 연장공사를 벌려 드디여 사통팔달의 련계망을 구축했다. 더우기 주정부청사가 도시의 륜곽을 한눈에 굽어볼 수 있는 배산임수 자리에 척 들어앉는 바람에 사유가 민첩한 개발상인들이 너도나도 눈독을 들여 삽시에 서부신축지역이 열점화제로 급부상했다. 전망계획에 따르면 신축도시구역과 국제공항개발구역을 합친 총면적이 30평방킬로메터이다. 전체 도시건설용지의 42%에 달하는 지역이 현재 정무대청, 상무빌딩, 학교, 호텔, 상가들로 보기 좋게 분포되여있고 만달광장, 광택홍부, 세원일품, 상해성의 뒤를 이어  많은 아빠트단지들이 이미 사용에 교부되였거나 준공을 앞둔 시점이다. 게다가 39갈래 시내선로뻐스 가운데 13갈래가 서부 쪽으로 달리고 이른바 땅 우의 지하철로 불리우는 쾌속공공뻐스(BRT)도 검토중이여서 조만간 인구류동량이 늘어나고 전통적인 상업중심권을 벗어난 종합적인 경제활동권이 새 타운으로 업그레이드할 전망이다. 도시경제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념두에 둔 고속철 네트워크가 연길시의 경제벨트, 관광업 더우기 전통관념의 갱신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출행방식이 완전히 바뀌여 과거 사람들이 천천히, 느릿느릿하던 ‘만만디’(慢慢地) 성격이 어디론가 슬며시 자취를 감췄다.  그 바람에 평소 완행렬차를 애용했던 시민들 절대다수가 고속철을 선택하여 원래 붐볐던 기차역은 썰렁해지고 대신 고속철역이 흥성흥성한 분위기로 차넘쳤다. 코로나19 발생 전 통계수치를 살펴보면 일평균 1만 6000명 탑승객을 유지했고 황금련휴 때는 배로 증가했다. 이전에 상상조차 못했던 1일, 2일 관광이 흥해지면서 숙박업, 음식업, 사우나, 상가들이 호황기를 맞아 수입을 톡톡히 올리는 실정이였다. 지난해부터 역병영향을 받아 관광업이 잠시 주춤한 상태지만 이왕 200억원을 넘긴 관광수입의 ‘공신’은 그래도 고속철 몫이 크다. 교통능률이 제고됨에 따라 도시간 거리가 짧아지고 인적, 물적 및 정보 교류가 급격히 빨라진 까닭에 고속철역을 출발점으로 기존 산업 규모와 분포에 대한 재편성이 불가피해져 도시 전체가 부글부글 끓는다. 개발구역은 국가 신도시 개념에 좇아 건설요구가 다른 지역보다 훨씬 높다. 신축건물로 말할진대 청사는 지붕부터 벽체, 창문, 색상에 이르기까지 시대적 감각과 민족특색을 강조함과 아울러 개성이 짙은 창조성 건물들이 거리의 풍경선을 그려내게끔 건설부문의 심사절차가 세밀하고 개발회사끼리 경쟁 또한 치렬하다. 아빠트단지도 례외가 아니다. 용적률이 낮은 것 만큼 록화률이 높고 해빛과 바람이 잘 들며 단지 주변마다 조경시설이나 레저시설이 갖춰져  멀리 나갈 필요없이 휴식과 여가활동을 즐길 수 있는 쾌적한 환경이 시민들의 시선을 끌어당겼다. 그 서슬에 오른 것은 땅값과 집값이다. 동서쪽 집값이 거의 한배 차이가 난데서 후한 대접받는 아빠트단지들이 매물품귀 현상까지 빚어 일면 중하층 시민들의 곤혹을 자아내기도 한다. 장길도개발전략의 핵심역할을 감당한 국제공항개발구역이 앞으로 신축  비행장과 더불어 고속도로, 고속철, 화물기지의 우세로 막강한 저력을 자랑하고 있다. 대건강산업, 첨단제조업과 현대봉사업을 기둥으로 다분야, 다지역의 합작국면을 구축하면서 대외개방의 허들을 뛰여넘기 위한 숨 고르기가 한창이다. 이제 곧 새 공항이 일떠서면 동북아 진출의 실크로드에 또 하나의 금상첨화가 마련되여 연길 서부지역은 말 그대로 륙, 해, 공을 다 틀어쥔 련락요충지, 황금노다지로 각광을 받을 예정이다. 물론 문화력사가 결핍한 단점도 갖고 있지만 사시절 신성한 기운을 뿜어내는 거리의 새 콘텐츠가 미흡한 하자와 부족점을 쓸어안은 듯 건축물의 여기저기서 그 숨은 노력을 엿볼수 있어 흥미롭다. 꿈은 옹골차게 부풀 때 호함진 결실을 맺는 법이다. 청춘의 열띤 맥박이 경제성장의 흐름을 타고 엄청난 시너지효과를 과시한다. 고속철과 더불어 연길시의 미래를 안고 달리는 서부 신축도시가 깃을 편 공작마냥 이제 어떤 화려한 변신으로 깜짝쇼를 할지 무척 궁금해진다. 연변일보
64    청명에 떠올리는 화제 댓글:  조회:888  추천:0  2021-04-09
청명이 가까워져 부모님 산소에 다녀올 이야기를 꺼냈더니 곁에서 만류한다. 올해 새집들이 하기 때문에 금기를 범하지 말란다. 큰 경사인 만큼 워낙 먼저 부모님 산소에 가서 아뢰는 것이 도리가 아닐가 했는데 모두 그런 일이 아니라며 손사래 치는 바람에 결국 필자도 주저앉고 말았다. 우리가 부모님 산소를 찾아 봄에는 가토하고 가을에는 벌초하며 간단히 제단을 갖추는 원인인즉 돌아가신 부모님들의 은덕을 추모하고 자신의 마음을 경건히 추스리기 위해서이다.  성묘가 부모님께 효도하지 못한 죄책감을 반성하는 기회로 삼을 대신 어떤 매듭이나 소원을 풀어보려고 애걸복걸하는 장소로 활용될 경우 효냐 미신이냐 하는 날카로운 질문과 더불어 사회의 따가운 눈총을 피하기 어렵다. 사람들은  이미 풍속처럼 굳어진 틀을 깨기 싫어 남들을 본받는다. 밑져 본전인 걸 괜히 등한시했다가 변을 당할가 봐 자식이 대학시험 치는 날 교문에 찰떡을 갖다 붙이고 집짓기 기초 파기 앞서 폭죽을 터뜨린다. 좋은 일 궂은일 빼놓지 않고 약국에 감초처럼 따라다니는 옛날의 낡은 관습이 그믐날 부르하통하 유보도에 흉측스립게 소지를 올려 소름 끼칠 정도이다. 왜 평소 똑똑한 체하면서 저런 바보짓을 저지르는지 그 행실이 기막혀 할 말을 잃는다. 일찍 '귀신'을 발길로 차버린 로신이 맹목적으로 남을 따르면서 불상을 만나면 머리를 조아리고 절을 만나면 향촉을 올리는 사람을 가리켜 연약한 겁쟁이라고 통렬히 질타했다. 불확실성을 띤 미래를 두고 사람들은 항상 근심과 두려움에 쌓인 공허함을 메우기 위해 개연성이 결핍한 인과관계를 만들어내여 의탁하는 한편 위안을 받고 싶어한다. “사장님의 의자는 창문에 기대지 말고 벽쪽에 붙이세요.” 귀청이 따갑게 들은 말이다. 벽체는 든든하여 의지가 될 터이지만 창문 쪽은 허허벌판을 등지고 있어 사장님의 사업에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다는 리유이다. 어느 사장님은 갑자기 일감이 떨어져 지지부진을 겪던 끝에 풍수사를 불렀다. 역술인이 여기저기 살펴보고 나서 사무실 복판에 놓여진 화분통이 화근이라고 했다. 바깥에서 문(门)을 통해 첫눈에 띄우는 나무 목(木)이 한(闲)자를 형성하여 한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였다. 무사태평을 기원하여 바다로 나갈 때는 한번 절하고 전쟁터에 나갈 때는 두번 절하며 선보러 갈 때는 세번 절한다는 전설이 흥미로울지 몰라도 운명의 주인인 자신을 굳게 믿고 진지한 태도로 사물을 관찰하고 리치를 더듬어내는 습관을 갖는 현명성이 좋은 인연을 맺고 복잡한 대인관계와 생활문제를 해결하는 데 더 큰 현실적인 의미가 있지 않을가 싶다. 얼토당토않은 사이비 행위가 소실되지 않고 유령처럼 우리의 주변을 감도는 까닭은 이룰 수 없는 강렬한 감정욕구와 환상이 현실에 부딪쳐 발생한 차이점을 분명히 까밝힐 줄 모르기 때문이다. 결국 당분간 인간의 능력으로 해석하기 힘든 불가사의한 초자연현상을 제나름의 주관억측과 허위사실이 란무하여 과거 괴벨스의 괴담이 엉뚱하게 탈바꿈했던 웃음거리가 되풀이 되는 셈이다. 력대로 과학자의 태도는 진지하면서도 도전적이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무엇 때문에?’란 엄숙한 물음이 나중에 니체의 ‘신은 죽었다.’라는 리성적 결론을 도출하기까지 수많은 부정과 반증의 력사를 거듭했다. 건강한 인간, 건전한 사회기풍을 수립하고저 정의에 불타오른 시대의 선각자들이 견인불발의 의지로 지어 목숨을 바쳐가면서 묻고 따지며를 반복하는 가운데 인류의 과학이 큰 발전을 이뤄냈다. ‘하늘개가 달을 삼켰다.’ ‘보름날밤 잠자면 눈섭이 희여진다.’ 같은 황당무계한 미신설이 인젠 발붙일 곳마저 없는 시대가 되였음에도 불구하고 사이비 현상이 아직 우리 생활의 구석구석 맴돌며 떠나지 않는 리유를 근간 과학자들이 생리학적 측면에서 분석을 내놓아 화제다. 인간의 뇌 속에는 도파민이란 신경전달을 책임지고 균형을 유지하는 물질이 있다고 한다. 대뇌 전역에서 적정량을 유지할 즈음 반응이 침착하고 리성적인 동시 비상한 판단력과 창의력을 과시하지만 수치가 초과하면 일련의 병적 심리증세를 나타낸단다.  이를테면 초조하고 걱정스럽고 콩이 팥이 돼보이고 언뜰거리는 그림자 뒤에  뭔가 꼭 있을 것 같은 환각에 사로잡힌다. 이런 군체들 속에 각성 못한 무식한 타입은 물론  총명과 문화를 겸비한 이들도 가끔 개입되여 현재 사회의 책임이 더 무거워졌다. 인간은 사고력을 갖춘 생명체이다. 사회생활의 질이 높고 낮음은 사고력의 강약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정확한 사고방식은 개인의 경험이나 풍조를 떠난 과학적인 실험과 검증을 거쳐 얻어낸 소중한 패러다임이다. 반대로 사이비 미신설은 물 우에 뜬 부평초마냥 뿌리도 없고 설득할 만한 과학지식체계도 없다. 그래서 과학은 모름지기 왕성한 생명력 하나로 발전하는 반면 미신은 각일각 쇠퇴일로를 걷는다. 합리적인 생각, 론리적인 추리, 리성적인 판단이 언젠가 우리 몸에서 체질화되여 우리 사회의 새 기상, 새 풍모들이 봄 맞은 들꽃처럼 활짝 피여나기를 이번 청명절 계기로 두 손 모아 간절히 빌어본다. 연변일보 
63    인간 중심에 한점 소홀함 없이 댓글:  조회:608  추천:0  2021-03-26
인간 중심에 한점 소홀함 없이 최장춘 농사는 천하지대본이다. 농업이 든든해야 다른 분야도 배짱이 생긴다. 하여 농업을 춰세우기 위한 인재영입을 두고 전국 각지에서 간담회, 설명회 같은 행사에 열을 올린다. 농업발전에 유조한 인재를 적극 불러들여 생력군을 확보하는 데 그 목적을 둔 전략이다. 우리 연변에서도 근간 인재초빙, 귀향창업 프로젝트를 가동하여 국내외 유명한 대학교졸업생 근 1000명을 영입했고 1만 5000여명의 귀향청년들이 창업길에 나섰다. 앞으로 눈부신 활약을 기대해보는 한편 정부차원에서 더 좋은 우대정책을 베풀어 인재를 많이 발굴하고 초빙하여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사업을 줄곧 ‘인재강주’와 긴밀히 련계시켜 꾸준히 밀고나갈 계획이다. 현재 연변 농촌은 ‘14. 5’계획의 새로운 려정을 시작했다. 빈곤해탈을 이어 초요사회에 진입하는 관건적인 시기로 말할진대 인재가 노는 역할이 사뭇 중요하다. 인재가 있어 일이 성사되고 인재가 있어 사업이 흥한다. 농촌 농민들의 빈곤해탈이 여직 ‘수혈’(输血) 위주의 방식으로 진행되였다면 초요사회 건설은 ‘조혈’(造血) 위주의 형식으로 이뤄져야 지속가능한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 호도거리의 정책으로 말미암아 분산된 경농수단이 단합된 산업화의 모식을 선택하는 과정에 ‘수혈’을 ‘조혈’로 탈바꿈하는 실천적인 사슬고리가 인재들의 손에 쥐여져있다. 과거 농업의 출로를 기계화, 화학화에서 찾았지만 지금은 록색농업을 앞세운 생산, 가공, 판매를 일체화한 산업화 방향이 농촌 경제발전의 확고한 지름길로 자리매김했다. 농촌이 부유해야 도시도 잘산다. 력사를 돌이켜보면 국민경제가 가장 어렵고 힘들 적마다 농촌이 항상 앞장서서 그 매듭을 풀었다. 광복을 맞아 엉망진창이 된 나라의 살림살이를 농촌이 선참 토지개혁을 실행하여 도시의 원기를 회복시켰고 십년 동란으로 황페해진 땅을 농촌 호도거리책임제를 통해 도시의 개혁개방을 이끌었다. 이 와중에 선진생산력을 대표한 긍정에너지는 시종일관 실천경험이 풍부하고 신생사물에 반응이 빠른 우수한 농촌간부들과 젊은 세대들이였다. 개혁개방이 심화되면서 농촌의 인재결핍현상이 인젠 선착순으로 해결할 문제로 대두했다. 이번 빈곤해탈 공략전이 우리에게 새 농촌 마을을 건설한 토대에서 인력, 물력, 기술을 묶어세울 인재가 턱없이 부족함을 시사했다. 대다수 농촌마을은 젊은 축들이 뿔뿔이 흩어져 빈 허울만 남아있을 뿐 농민들은 그럭저럭 되는 대로 농사짓고 나라의 더 큰 혜택을 앉아 기다리는 습관이 체질화됐다. 더우기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피해, 해충피해 같은 엄중한 위기를 대처하는 농가의 능력이 한계에 부딪쳐 단합된 응집력이 절박한 실정이다. 힘을 합치기 위한 농촌마을의 단합은 지난 50년대 소박한 호조조합작방식과 질적으로 전혀 다른 농업 산업화의 기치 밑에 똘똘 뭉친 신형의 생산관계이다. 도시가 포괄적인 결책능력을 수행할 경영자가 수요하듯 농촌마을은 자원우세로 자금과 기술이 결부한 이른바 농촌식 ‘BOT모식’을 과감히 더듬어 실천하는 인재가 수요된다. 한 인재의 두리에 수많은 유능자들이 믿고따르며 열심히 일하는 그루빠가 무궁무진한 추진력을 낳는다. 화룡시 천수촌이나 왕청현고기소사양기지 모두 ‘황소산업 +기지+농호’ 모식을 도출하여 로력을 상실한 농호들이 현금출자, 소유권담보로 주주가 되여 산업의 수입을 늘인 동시에 분배몫을 가질 수 있어 생산 적극성을 크게 불러일으켰다. 농업은 어떤 품목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산업구조의 성질이 변한다. 단순한 농작물의 재배에 중약재배, 쌀가공같은 업종이 겯들 경우 원 1차산업 성질이 제2산업과 손잡게 되고 거기에 관광, 정보, 금융업까지 어울리면 제3산업과 혼연일체를 이룬다. 실천이 증명하다싶이 산업의 분류와 특성에 따라 인재에 대한 요구가 각기 달라진다. 이를테면 우수한 농산물기지를 건설하자면 각종 농업생산, 작물재배, 품종개발, 농산물가공 및 농업과학기술이 뛰여난 인재가 필수이고 따라서 전문기술을 정통함과 아울러 풍부한 관리경험으로 농산물의 부가가치를 창조하여 시장 점유률을 높이는 인재가 각광을 받는다. 농업의 기초는 토지와 수리시설이다. 연변의 경작지를 다루는 기계화, 화학화 수준이 높은편인데 반해 농토개량이 답보상태에 처해있고 허다한 농가들이 한사코 농약과 화학비료에 매달려 농산물의 신뢰도가 떨어지면서 줄곧 경제수입이 상승선을 긋지 못하는 원인이 되였다. 농산물의 브랜드는 생태환경이 보장된 비옥한 땅에서 나온다. 인재를 등용함에 있어서 일방적인 마케팅이나 포장바꾸기에 잔머리 쓰는 타입이 아니라 록색혁명에 통이 크게 공을 들이는 사람에게 높은 점수를 기입해야 획기적인 고품질, 고차원의 농산물로 새 진로를 개척할 수 있다. 농촌 인재정책은 나라의 흥망성쇠와 관계되는 장기적인 전략이다. 독불장군이라고 세상일을 혼자 하는 법이 없다. 인재들이 농촌마을 속에 파묻혀 실용기술을 널리 보급하여 농사군마다 특색산업의 능수, 달인이 되도록 정신령혼의 파종기, 리윤창조의 개척자 역할을 충분히 발휘할 때 비로소 초요사회 건설이 희망이 있다. 시대가 인재를 부르고 인재가 발맞춰 호응하는 연변의 분위기가 멀지 않아 만사형통의 기운을 담아 농업혁신의 힘찬 변주곡으로 이어질 듯싶다. 연변일보 
62    마음가짐은 젊음의 활력소 댓글:  조회:811  추천:0  2021-02-04
[두만강칼럼]마음가짐은 젊음의 활력소 최장춘 언젠가 뻐스 안에서 생긴 일이다. 정류소에서 오른 아주머니 한 분이 로인전용카드를 긁고 나서 안쪽에 막 들어가려던 찰나 운전사의 제지를 받았다. 잠간 신분증을 확인하자고 했다. 65세 이상의 로인들에게만 발급된 카드를 젊은이들이 사용하면 운전사가 탑승거부를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였다. 뜻밖의 일인지라 아주머니가 주춤하더니 드디여 가방 속에서 신분증을 찾아 건넸다.   삽시에 승객들 초점이 그 아주머니한테 쏠렸다. 또 무슨 불미스러운 일을 저지르다가 손목이 잡혀 망신을 당하지 않을가 은근히 걱정하는 사람도 있었고 그까짓 1원을 아껴서 부자가 되느냐 식으로 따갑게 눈총을 쏘는 사람도 있었다. 이윽고 운전사가 신분증과 아주머니의 얼굴을 번갈아보며 어줍게 웃으면서 “정말 젊어보이십니다!” 하고 칭찬했다. 그제야 승객들이 영문을 알아차렸다. 아주머니는 오해를 해명하려는듯 일부러 승객들에게 신분증을 추켜들어보였다. “와― 70세이네요!” 맨 앞자리에 앉은 누군가 탄성을 질렀다. 모두들 두눈이 휘둥그래졌다. 사람마다 얼굴의 생김새가 저마끔이다. 아마 조물주가 그렇게 규정해놓은 것 같아 지구촌의 수십억 인구는 각자를 가려내기 쉽게 너 따로 나 따로이다. 헌데 지꿎은 욕망 하나만 일치한즉 바로 세월이 가든 말든 젊은 모습으로 살고 픈 마음이다. 그 소망의 넌출을 추슬려 《한비자―
61    전기차는 신기건을 이끄는 동력 댓글:  조회:890  추천:0  2021-01-14
근간 신기건(신형기초시설)행렬에 전기차가 열띤 용어로 급부상했다. 기존의 자동차와 달리 록색, 저탄소, 지속발전의 의미를 앞세운 새로운 에너지차가 신기건의 주역을 맡고 5G와 인공지능, 산업네트워크, 빅데이터 등 제반 신형기초시설을 기술창신으로 이끄는 견인역할이 세인들의 주목을 끌고있다. 2030년까지 온 나라가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정점을 찍고 탄소중립을 실현하고저 산업구조와 동력자원구조를 최적화하기 위한 파격적인 행보가 일선 대도시들에서 줄기차게 이어지고있는 가운데 우리 연길시에서도 저탄소기술을 돌파구로 먼저 교통운수에서 신기건의 첫스타트를 떼기 시작했다.이를테면 녕파시의 도움으로 20억원을 투자하여 건설한 년간 생산량이 1만대에 달하는 신에너지자동차건설대상이 순조롭게 정식가동에 들어갔고 연길시공공뻐스그룹에서는 통이 크게 록색운행취지로 방향성 핸들을 돌렸다. 지난해 이 유한회사에서는 자금난을 무릅쓰고 신에너지공공뻐스에 대한 투자를 견지하여 도합 295대를 소유한 뒤를 이어 금년에 또 50여대을 더 사들여 신에너지뻐스의 보급률100%에 도달할 계획이다. 기동차의 수치가 총 20만대를 치닿는 연길에서 선두견인역할을 떠맡은셈이다. 백여년의 력사를 가진 기존의 자동차가 바둑판그리드선처럼 뻗은 수많은 관련업체들의 발전을 추동하면서 사회경제펀더멘텔(基本面)에 중추역할을 감당해왔지만 일면 온실가스를 대량 배출하는 자연환경오염문제때문에 이미 정교하게 다듬어지고 성숙된 엔진을 버리고 배터리와 전기모터를 사용하는 전기차로 바꾸는 전략적조절을 실시하였다. 전기차의 출현은 미증유의 지능화출행방식이며 일종 재래식에너지소비원천에 대한 혁명이다. 전기차가 세인의 관심을 모으고 폭넓은 시장판로를 열수 있는까닭은 단순히 뛰어난 친환경의 우수성만이 아닌 우월한 성능과 유지관리면에서 비용이 거의 없는 높은 가성비를 갖췄기때문이 아닌가싶다. 백문불여일견이라고 전기차에 앉아본 사람들치고 그 우수성에 두손 들어 찬성하지 않는 이가 없다. 연길시에서 모아산으로 향하는 공공뻐스는 몇년전만해도  올리막을 톺을 때면 항상 뒤꽁무니에서 시커먼 연기가 타래쳐나왔고 아츠런 소리는 귀청을 따갑게 두드렸다. 헌데 신에너지뻐스는 소음이 극이 낮은데다 평온하고 정숙하며 안전감이 있어 승객들에게 인성화를 체험하는듯한 기분을 선사한다. 한번 구매하면 십년이상 사용이 가능한 자동차를 한낱 내구재로만 인식했던 기성관념에도 변화의 조짐이 생겨나 자동차의 생산과 소비에서 일대 획기적인 전환을 맞게 된다. 혹자는 경제력이 한참 뒤떨어진 연길시에서 그 실현가능성에 의구심을 품을지 몰라도 긍정적신호를 탑재한 정부의 "14.5"계획에 따라 이뤄낼 변화는 분명하다. 옛날 시중에 핸드폰이 금방  보급될즈음 사용가치를 두고 반신반의하는 부류가 적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급속도로 통신망이 형성되고 파급적효과로 새 생활의 라이프스타일을 도출한 경험을 되새겨보면 신에너지자동차 역시 그와 비슷한 발전그래프를 선보이며 바야흐로 산업사슬을 이어주는 관건 포인트가 되기마련이다. 현재 걸림돌은 전기차사용에 필수인 충전망을 어떻게 빨리 설정하느냐에 달려 있다. 편리한 봉사시스템과 더불어 합리하고 포괄적인 설계가 전기차의 발전미래를 결정한다. 일선 대도시마다 2022년까지 기존 충전기의 수량에서 수만개씩 더 세우는 방안에 비해 우리 연길시는 공공뻐스충전시설외 사회공유화, 통용화한 충전기의 수량은 겨우 60개 정도로 가물에 콩나듯 분포간격이 너무 뜸해 궁핍하고 초라하다. 전기차와 충전기 비례가 국가에서 설정한 1: 1 표준에 도달하려면 가로 막힌 난관이 첩첩한 실정이라 대부분 차구입자들이 병목에 눌리워 주춤거린다. 어느  전기차구입자가 틱톡을 통해 충전시의 애로와 불편함을 하소연한 영상이 보여주듯이 아직 초급단계에 처해있는 우리 시의 충전기건설과업을 다그쳐 완성하려면 정부의 힘과 더불어 전문기업소와 사용호들이 융합된 공생상생의 투자모식을 선택하는것이 자못 중요하다. 길녘의 공공장소거나 아빠트단지내의 충전공간을 적극 활용하는 방식도 훌륭한 선택이겠지만 네트워크 련결망을 갖춘 완벽한 장비와 전기배터리의 기술적한계를 하루빨리 극복하고 충전봉사의 신속성과 안전성을 보장할수 있는 시스템이 전기차의 보급률을 급속도로 높이는 모멘텀이 된다.   전기차가 점차 신에너지네트워크를 형성하면서 신기건구도에 활력의 입김을 불어넣는다. 한손은 충전기와 접속하고 다른 한손은 방대한 신건축령역을 련결시킨 전기차가 화려한 무늬천을 짜내는 실북처럼 앞으로 전반 사회의 물동량을 리드하며 환상의 짜임새를 만들어낼 전망이다. 정지된 물리적인프라에 수많은 정보들이 류입되면서 원래 디지털차원을 소프트 웨어로 한층 승화시키고 더 나아가 빅데이터의 량성순환을 일으켜 신기건의 무궁무진한 창의력을 과시한다. 갈길이 먼것 같지만 시작이 절반이라고 꾸준히 걸으면 금방 도착한다.과학화궤도에 오른 전기차의 동음에서 금시 신기건의 허들을 뛰여넘는 벅찬 숨소리가 들리는것 같다. 연변일보 
60    고독은 소통을 등진 그림자 댓글:  조회:876  추천:0  2021-01-04
고독은 생활의 혹독함에 절어 버캐처럼 시뿌옇게 돋은 좌절감이다. 때론 몸을 웅크리고 이름마저 잃은 채 객기를 부린 코뿔소가 되여 적막에 숨막히는 사막길을 홀로 터벅터벅 걷는 모습이다. 고독은 겪어본 사람만이 안다. 전설 속에 맹강녀(孟姜女)가 신혼의 행복을 빼앗긴 슬픔을 통채로 쏟아내여 만리장성의 한 모퉁이를 무너뜨렸고 죽어서도 맺힌 한을 풀길 없어 망인을 맞는 길목에서 맹파탕(孟婆汤)을 건네주며 세상사를 깨끗이 잊으라고 권장한다니 생전의 고독이야말로 진짜 못할 짓이나보다. 무소유의 고독에는 그런대로 수긍이 가지만 천하를 얻고도 고독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린 호걸들의 불가사이한 행실이 씁쓸하고 허구프기만 하다. 왕관을 쓰고 옥좌에 앉은 명나라 만력(万历) 황제는 고독의 시달림에 지치다 못해 ‘에라, 나도 몰라라’ 식으로 28년 동안 정사와 담을 쌓고 매일 주색에 흠뻑 젖었은즉 고독은 직위가 높든 낮든, 가진 것이 많든 적든, 잘나든 못나든 나이를 불문하고 찾아오는 불청객임이 틀림없다. 고독을 푸는 해법을 인간과의 소통에서 찾지 않고 저급적인 술파티에 의탁하는 것은 고집불통들의 결과라고 하겠다. 인간의 생활은 가끔 고독을 달래려 안깐힘을 쓰는 몸부림이다. 겉은 후더우나 속이 차겁고 믿고 따랐는데 배신당하면 육신은 김빠진 풍선처럼 허무와 고독이 칭칭 감겨들어 괴로움에 시달린다. 그렇다고 알짝지근한 쓴맛을 남들과 대놓고 하소연해봤댔자 별로 귀담아들어줄 사람도 없는 실정이라 요즘은 태반 외로움의 발길은 어정어정 투전판으로 향한다. 넷이 머리를 맞대고 자신의 울타리만 끌어안고 쌓고 허물고를 반복하며 속을 썩이는 게임이 모르고 처음이지 공연히 재미를 얻다가 고독을 풀기는 고사하고 혹 떼러 갔다가 되려 혹을 붙여오는 격이 된다.성격이 활달하고 애호가 다방면인 사람과 속이 비좁고 취향이 단일한 사람의 경우 고독을 경험하는 느낌이 분명 차이가 난다. 심리적 반응을 나타내는 현상이 첫시작은 미세할지라도 대응방식이 단조롭고 더디면 줄곧 흐린 날씨에 진눈까비가 날려서 병이 아닌 데도 곧잘 심한 증후군 취급을 받는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오리니.” 뿌쉬낀의 시를 곱씹어 읽어보노라면 워낙 세상의 문은 우리가 어떤 마음의 키를 갖고 다가서느냐에 따라 활짝 열려져있을 수도 있고 꽁꽁 닫혀져있을 수도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자신을 밀페된 독방에 가둬놓고 세상의 인심이 야박하다 한탄하는 궁냥과 망가진 열쇠를 갖고 소통이 안된다며 지꿎게 원망하는 타입의 그릇은 서로 피장파장, 오십보, 백보와 맞먹는다. 마음이 통하지 않으면 만능열쇠도 무용지물인셈이다. 세상의 흥미로움을 혼자 노력으로 만들 수 없다. 산에 들에 피는 꽃과 열매는 조물주가 인간의 소원 대로 비가 내리고 해볕을 쏟아주며 온갖 곤충떼들 붕붕 날아다니게 한 보람으로 이뤄진 걸작이다. 승리의 과실을 혼자 독점하려고 욕심을 부리다가 게도 잃고 구럭도 잃고 결국 빈털터리 신세로 고독의 포로가 된다. 어쩌면 고독이란 집뜨락에 잠시 비여있는 여백일지도 모른다. 혹자는 그 공간을 가리기에 급급해 꽃나무를 심는다, 놀이터를 만든다, 지어 흔들이의자를 갖다 놓고 셈평 좋은 시간을 보내려 들지만 고독의 심연은 갈수록 깊게 마음복판을 파고든다. 에던동산이 아무리 수려해도 고독을 이기지 못한 아담이 자신의 갈비 두대로 이브를 만들었고 끝내는 금과을 먹어 쫓기운 신세가 된 걸 감안하면 생명의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지 그 무게를 새삼 느끼게 된다. 기실 울긋불긋한 마음의 꽃밭은 홀로 흔상하기보다 이웃과 함께 나누는 즐거움이 인지상정의 의미를 담는다.꽃 한송이 꺾어 이웃에 보내면 그쪽에서도 성의로 보답하여 자연히 오가는 정이 생기게 되여 암울했던 그늘이 훤히 트이면서 고독은 한발 물러선다. 가족의 성원끼리 밥상을 마주하고 대화하기는커녕 제각기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분위기라면 집안은 구석구석 썰렁해 고독은 문고리 잡고 기웃거린다. 한 청년이 취업면담에 련속 실패하여 고독감에 시달렸다. 그러던중 언젠가  면접을 본 사장님의 분부 대로 앓아누운 어머니의 발을 씻어드렸다. 처음엔  이 일이 자신의 취업과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고 어정쩡한 기분이였으나 물속에 잠긴 어머니의 발을 잡는 순간 이상하게 가슴이 뭉클해졌다. 나무껍질처럼 터실터실 갈라지고 군살이 박힌 발바닥이 울퉁불퉁 심히 변형되여 보기 흉했다. 이것이 나를 낳아 키워준 어머니의 발이란 말인가. 문뜩 유복자를 키우느라 홀로 고독의 험한 준령, 가시밭길을 걸어오신 어머니의 로고가 눈앞에 우렷이 떠올라 목이 꺽 메였다. 청년은  몹시 후회하면서 그 후부터 일부러 어머니와 많은 대화를 나누며 기쁨을 드리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정성이 지극한 청년에게 드디여 좋은 일자리가 차례졌고 살림이 쭉쭉 펴지면서 고독의 찬 기운이 서서히 물러갔다. 사사건건 토라져 원망과 저주를 뿜어내기보다 너와 나의 차이를 인정하며 윤활한 소통을 시도하려는 지혜가 고독이 설자리를 말끔히 가셔낸다. 생활의 자각은 고독을 자아성찰, 동산재기의 기회로 만들고 한가닥 빛에서 신심과 용기를 얻어 행운의 변곡점을 이룬다. 오늘날 대통로에서 활개치는 사람의 추억 속엔 어쩌면 과거 소외된 계곡을 벗어나기 위한 환골탈태의 처절했던 흔적이 수레바퀴자국마냥 깊숙이 패여져있지 않을가 하는 생각이 스스로 불쑥 고개를 쳐든다. 연변일보 
59    간편한 취향이 생활을 바꾼다 댓글:  조회:953  추천:0  2020-12-03
요즘 세상은 집집마다 온라인쇼핑으로 화끈 달아오른 기분이다. 옛날처럼 궂이 힘들게 상가를 돌지 않고도 집에 앉아 욕심나는 물건들을 척척 골라 살 수 있다. 자잘한 생활용품부터 큼직큼직한 가장집물에 이르기까지 시세보다 아주 싼값에 해결할 수 있어 스스로 느끼는 성취감이 갈수록 구매욕구를 더 부추겨준다. 어느 량반이 집장식의 대부분 자재를 온라인으로 사들여 애초에 예산을 대폭 줄였다고 입이 함박만했다.정말 그럴가 해서 가보니 타일,벽지, 주방가구 등 거의 온라인을 통해 샀다. 돈을 대폭 절약했다는 생각에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돈을 더 보태서 원래 장식계획을 멋지게 뜯어고쳤다. 인터넷에서 소개한 장식구도를 본따서 결국엔 방마다 죄다 우물천정을 만들고 거실의 조명이며 아트월이 아주 특이하고 복잡하게 꾸며졌다. 소비는 감정으로 이뤄진다. 가격우세로 소비자의 심리를 유혹하는 온라인쇼핑이 집객효과가 무척 파급적이여서 수많은 소비자들은 프라이버시가 유출되는 것마저 개의치 않고 무작정 이것저것 사들이는 랑비현상이 수두룩한 실정이다. 20세기 건축거장 미스 반 데 로에가 ‘적을수록 많다.’는 명언을 남겼다. 바로크, 로코코의 웅장 화려한 건축양상을 간단하고 애플한 현대식 건축패러다임으로 바꾼 경쾌한 리듬이 간편한 생활절주를 치켜세웠다. 여백은 부족함이 아니라 넘쳐남을 선보이는 공간이다. 값진 물건이 많음을 부의 상징과 련결시켜 사적 소유를 최대한 늘이는 것이 삶의 목적이고 행복으로 간주하던 거품시대의 관념이 점차 자리를 드텨앉으며 새로운 미니멀스타일이 움찔움찔 키돋움한다. 푸름한 새벽빛처럼 간편한 생활취향이 오래동안 때묻은 생활의 구석구석을 씻어내며 소비관념의 문턱에 성큼 들어설 즈음 각자 반기는 기색과 시각적 차이가 분명히 다르다. 낡은것에 끈질긴 애착심을 지닌 로년층과 달리 신생사물에 호감을 갖고 빨리 적응하는 젊은층들의 홀가분한 자태가 눈에 띄게 늘어난다. 대도시에서 방을 분할하지 않고 큰 공간 하나로 사용하는 원룸주택이 인기몰이 되는 것이 방증이라겠다. 방 하나에 침실, 거실, 부엌이 달린 설계가 젊은 세대들의 선호를 받는 까닭은 꼭 자신의 취향에 알맞는 옵션의 최적화를 반영했기 때문이다. 사람은 태여날 때부터 정든 물품을 버리기 주저하는 나약성이 있는것 같다. 옛날 어느 마을의 애착심이 유별난 중학생이 가방 속에 소학교부터 배운 교과서를 다 넣고 다녀 학교갈 때 항상 무거워 땀을 뻘뻘 흘려서 어른들로부터 앞으로 큰 사람이 될 거라고 칭찬을 받았다. 반면 옆집 학생은 책과 필기장만 달랑 옆구리에 끼고 다녀 동네에서 건달공부를 한다고 혀를 끌끌 찼다. 헌데 후날 고중시험에 후자가 합격되고 전자는 미역국을 먹어 모두 알 수 없다는 듯 도리머리질했다. 자신이 본 책은 죄다 보물인양 모아둔 것이 장서가를 방불케 벽면 전체를 꽉 메운 서생의 습관이 스마트폰 하나 달랑 들고 세상사를 읽는 변화와 너무 대조적이여서 기성 관념으로 쉽게 믿음이 서지 않는 양상이다. 복잡함을 간편하게, 화려함을 소박하게 바꿔보려는 시도가 일종 관념의 혁신이다. 가진 것 많아 살피고 관리하는 일이 오히려 엄청난 에너지와 시간을 소모하여 좀더 실제적이고 값진 령역에 정력을 몰붓고 싶어하는 스타들이 사회군체 여기저기서 거뜬한 차림새로 선코를 뗀다. 100딸라가 땅에 떨어져도 줏는 시간이 아까워 허리를 굽히지 않을 거라고 비유한 빌 게이츠의 생활은 홀가분한 정서가 다분하다. 하루에 받는 3000통의 이메일을 읽은 다음 일일이 답장을 쓰고 개척한 사업계획을 면밀히 조사연구하고 결책을 내리고 나면 야밤중까지 근무해야 하기에 달팽이처럼 바삐 돌아쳐도 항상 시간의 부족감에 시달렸다. 하여 평상시 복장은 판박이로 흰색 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다녀 매일 같은  습관을 반복하는 느낌이 력력했다. 애플의 창시자 스티브 잡스는 옷을 골라입는데 할애되는 시간이 아까워 늘 검은색 터틀네크에 낡은 청바지를 고집하여 특이한 사업중심의 패션감각을 선보였다. 어쩌면 꼭 자신에게 필요한 물건만 사용하는 원칙이 매일 같은 옷차림의 생활방식을 도출해냈는지도 모른다. 근간 살림살이의 간소화를 목적으로 한가지 제품이 여러가지 성능을 겸비한 혁신과 창조성을 띤 성과작들이 날마다 쏟아져나와 우리 삶의 질을 한껏 높여 자랑스럽다. 이를테면 쏘파가 침대로 쓰이고 테블의 기능까지 구비했는가 하면 이불장이 옷장과 책장, 수납장 역할을 동시에 활용할 수 있는 가구들이 참신한 아이디어로 소비자들의 눈길을 끈다. 일거량득을 초월한 실용가치가 꽁꽁 얽매인 공간을 활짝 열어제껴 생활의 이미지가 넓고 다채로워졌다.   작가 에리카 라인은 《나는 인생에서 중요한 것만 남기기로 했다》란 책에서 집안의 쓸데없는 잡동사니를 버리기 앞서 마음의 무용지물을 처리하는 현명성이 지혜와 슬기로 포만된 새로운 생활의 가치를 낳는다고 했다. 훌륭한 습관은 인생의 소중한 재부이다. 사반공배의 성취감은 뜻밖의 차려진 행운보다 평소 좋은 습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가 싶다. 불필요한 물건은 줄이면서 풍요로움을 누리는 새시대 생활방식이 조만간 우리 주변에서 선호의 열풍을 타고 봄기운처럼 싱싱하게 류행될 것임이 분명하다. 연변일보 
58    로인간호문제 언제면 풀릴가? 댓글:  조회:916  추천:0  2020-11-24
[두만강칼럼] 로인간호문제 언제면 풀릴가?   사람이 오래 사느라면 병마에 시달리기 마련이다. 이순의 나이를 먹으면 병은 스스로 찾아와 로년의 육신을 괴롭힌다. 평소 시름시름 앓는 것 쯤은 가족들의 생활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지만 갑자기 비상사고를 당하거나 질병으로 운신을 못할 때는 문제가 심각해진다.   한 동창생이 뇌경색으로 쓰러졌다. 평생 술과 담을 쌓고 사업에만 열중해온 그한테 무정한 병마가 팔다리의 움직임은 물론 말조차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멍하니 천정만 쳐다보며 생물학적인 반응으로 먹고 자고를 반복하는 환자 앞에서 가족은 가슴에서 억장이 무너져내리는 것 같았다. 불과 반년 사이에 수십만원 치료비가 들었고 앞으로 또 얼마를 써야 할지 미지수였다. 수십년 아글타글 애써 모은 돈을 날려버린 것도 안타까운 일이겠지만 더욱 큰 걱정은 언제 끝날지 모를 병간호이다. 그나마 량주가 서로 의지하여 사는 처지라면 몰라도 짝을 잃은 외기러기 신세가 되였을 경우엔 생활의 어려움은 고스란히 자식들한테 맡겨진다. 그래서 한창 공부하는 어린 자식이 병간호를 맡아하는 기막힌 사연이 있는가 하면 금방 대학을 졸업하고 대도시에 발을 붙인 젊은이가 막무가내로 집에 돌아와 병시중을 드는 안타까운 사연들이 종종 생긴다. 긴병에 효자가 없다고 한창 꿈에 들떠있는 젊은이가 하루이틀도 아닌 지루한 나날을 병시중에 묻혀산다는 자체가 슬픈 고역이 아닐 수 없다. 로인은 병마에 시달려 괴롭고 가족들은 각일각 조여드는 경제난과 불안감에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티며 산다. 이 같이 가족들의 사업과 생활에 자칫 부담거리로 될 로인간호문제가 사회의 시급히 풀어야 할 과제로 떠오른 만큼 인젠 가족의 연약한 힘에 의존하기보다 전사회의 단합된 지원과 제도화된 시스템의 구축으로 부족점을 미봉하는 해결책이 필수이다.   우리 연변도 이미 로령화 시대에 들어선 상황이다. 농촌에서 자식을 따라 도시로 들어온 로인들과 해마다 늘어나는 원도시의 정년퇴직로인까지 합치면 그야말로 골목골목 로인들로 차넘친다. 현재 전 주 약 2백만 인구에 60세 이상 로인수가 근 47만명중 독거로인수가 8만여명, 18%를 차지한다. 그 가운데 자립능력을 절반 또는 전부 상실한 환자수가 상당부분을 차지한다. 연변사회복리원의 경우 해마다 8백명 내지 천명 로인을 수용하는데 로인성 질환으로 인한 반신불수 또는 자립능력을 완전히 상실한 환자수가 20%를 웃돈다. 문제는 이런 특별호리가 수요되는 로인층의 비례가 날따라 증가세를 보이는 점이다. 더우기 이번 코로나19의 영향을 받아 독거로인들에 대한 관리가 여러가지 어려움이 겹쳐 심각해졌다. 이를 감안하여 연변은 정부차원에서 170집 양로원과 1,050여곳 농촌양로봉사망에 대해 응급처리방안을 실시했다. 아울러 양로봉사업의 표준화 건설과 인성화 건설을 의사일정에 올려놓고 상급정부의 보조금을 적극 쟁취하여 현존의 양로원규모를 점차 넓히는 한편 종합정보플래트홈으로 도시와 농촌의 로인봉사정보를 실시간 교환할 계획이다. 로인들의 건강상태에 비추어 앞으로 여러 분류로 나눠 보다 효과적인 관리와 보호대책을 강구함으로써 의료와 호리, 사회적 지원이 결합된 ‘3위1체’의 봉사모식이 로령화 사회의 질적인 변화를 일으켜 가족의 고충과 부담을 크게 덜어줄 전망이다.   효는 인간애의 원천이다. 가정을 아끼고 집단을 사랑하며 사회에 헌신하는 고상한 인격은 먼저 부모에게 향하는 효성의 마음에서 비롯된다. 행복도시창조에는 로인들에게 돌려진 사회의 관심과 배려가 어느 만큼인지 또한 혜택을 입은 로인들의 심리적인 안정감과 만족감이 어느 정도인지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우리 연변은 아직 복지사회를 추진하기 위한 모멘템(힘)이 금방 작동한 초급단계에 처해있다. 불확실성을 띤 한 로인의 래일이 걱정되여 제일처럼 팔을 걷고 나서는 인정미가 온갖 애로와 난관을 극복하며 ‘반포지효’의 인내력을 최대한 발휘한다. 누군가 로인의 존재를 하나의 도서관에 비유했다. 로인을 우선시하여 깍듯이 모시는 집안엔 구수한 이야기가 많고 자손이 번창하며 형제 끼리 서로 돕고 협력하는 량속이 가족의 우애를 돈독히 하여 후대들에게 좋은 본보기를 보여준다. 로령화 사회의 간호는 너 따로 나 따로가 없다. 조화로운 사회는 생명의 권리가 만년에 이르러도 평등하게 향수받을 때만이 가능하다. 어쩌면 석양빛의 황홀함은 창창히 열려진 하늘이 그 존엄을 지켜주어 더 눈부시지 않을가 싶다.   길림신문 
57    교통환경 개선에 너도나도 댓글:  조회:925  추천:0  2020-09-24
얼마 전 연길시 공공기구 에너지절약지도소조판공실에서 ‘록색출행선전주’ 활동을 발기했다. 통지문에 따르면 시 직속 기관의 광범한 간부와 종업원들이 출퇴근시 록색출행방식을 선택하여 솔선수범으로 자가용을 몰지 않고 공공뻐스나 자전거를 리용함과 아울러 주변사람들을 이끌어 도시 교통질서와 공기오염 개선에 앞장설 것을 호소했다. 그리고 향후 비정기적으로 각 부문의 집행실시정황을 조사한다고 밝혔다. 여직껏 있어본 적 없는 시민들의 적극적인 호응을 받을 만한 호소문이다.   현재 연길시는 56만 인구에 17만여대 기동차를 가진 도시이다. 그럼에도 일평균 50대 이상 증가세를 보여 아침저녁 출퇴근 고봉기를 맞을 때는 좁은 길에 온통 차들로 붐빈다. 연길시 거리는 대부분 지난 80년대 자전거를 주요한 교통수단으로 여기던 시기에 설계된 것이여서 류통량이 엄청 많은 오늘날 종적이나 횡적으로 활용공간이 극히 부족하고 제한된 실정이다.   도시화의 진척이 빨라지고 시민들의 생활이 급속도로 개선, 변화되면서 집집마다 거의 자가용을 운전하는 전성기를 미래지향적인 안광으로 일찍 예견 못한 아쉬운 흔적이 곳곳에서 정체를 빚는 요인이 됐다. 게다가 일부 시민들이 극도로 자신만의 편리성을 앞세우다 보니 엎어지면 코 닿을 곳마저 핸들을 잡는 습관이 비좁은 길거리를 항상 복새판으로 만들어놓는다. 거리가 혼잡한 것 만큼 차사고가 빈번하고 공기오염까지 심각하여 대책을 주문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간다.   길은 도시의 혈맥이다. 길의 흐름이 원활하게 소통되여야 도시가 활기를 띠면서 거창한 생명력을 과시한다. 전반 교통망을 초조와 불안감 없이 정상적인 운행을 추진하는 모멘텀에 항상 시민들의 들숨과 날숨이 엉켜붙어 작동한다.  건물이 헐망하면 철거한 후 다시 지으면 되겠지만 길은 한번 닦은 다음 새로 확장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하여 도시 전망계획에서 길을 먼저 닦고 집을 짓는 순서를 원칙으로 삼는다.   시장경제를 맞아 도시 인구가 급증하면서 그에 따른 심각한 교통체증이 도시 발전템포에 장애를 조성하여 정부의 립장에서 해결책 마련에 고심 어린 모습이다. 이를테면 인도를 좁히는 방식으로  4차선도로를 6차선도로로 확장했고 주와 시급 부서의 출퇴근시간을 조절하여 교통압력을 줄이는 데 모를 박았다. 일찍 차량번호가 홀수면 홀수날에 짝수면 짝수날에 운전이 가능하게 만든 제도를 운운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우리 연길시 도시규모와는 잘 어울리지 않아 실행 여부를 포기했고 대신 65세 이상 로인들에게 무료승차 혜택을 제공하고 해마다 공공뻐스의 정상적인 운행을 위해 물심량면으로 지지해주 고있다.   지난 60년대 향항의 경험이 뭇시선을 끌어 살펴볼 필요가 있다. 둥그런 해안선을 빙빙 에돌며 우중충 높이 솟은 건물에 비해 실오리처럼 가느다란  길거리에는 항상 차량들이 막힘없이 씽씽 달린다. 필자가 처음 다녀왔을 때 질서 정연한 거리가 의혹스러운 생각이 들었으나 여러번 다녀오면서 길옆에 잇닿은 수많은 주차장들과 로타리마다 지상지하로 수없이 뻗은 건늠길을 보고 또한 향항시민들의 절대다수가 평소 대중교통을 선호한다는 가이드 소개를 들으면서 깨달은 바가 많았다. 비록 해상, 지하철, 륙지도로 등 다각적이고 립체적인 교통망이 형성되였다고 해도 시민들의  자각성을 안받침한 참여정신이 부족하다면 이렇듯 훌륭한 교통환경을 마련할 수가 없다.   대중교통 리용률은 한 도시 주민들의 문명의식 정도를 나타내는 청우계이다. 시민들의 자각성이 높을수록 대중교통 리용률이 상승선을 긋는 한편 거리의 넉넉한 분위기를 담아낸다. 이에 지난해 귀주성에서 사람, 차량, 도로환경을 둘러싸고 진행된 시뮬레이션이 무척 흥미롭다.  2백명 탐승객을 상대로 3대의 뻐스와 100대의 자가용에 각각 나눠 앉혀 비교했다. 결과 도로의 점용률이 자가용은 약 2500평방메터를 차지했고 뻐스는 150평방메터에 미달했다. 3대의 뻐스가 100대의 자가용 탑승량을 대체한 셈으로써 뻐스의 인당 도로자원 리용률은 자가용의 1/33밖에 되지 않았다. 뻐스는 근근히 40메터 차지한 데 비해 자가용은 700메터 넘게 차지했고 소모되는 시간도 15배 차이를 드러냈다.   모의실험이 보여주다싶이 대중교통수단을 리용하는 방법이 도로시설이 락후한 연길시에서 적용될 즈음 교통체증을 해소하고 전반적 교통환경을 개선하는 데 긍정적인 의미를 갖는다. 세상사 대부분 우가 아니면 좌다. 내가 편리하면 타인이 불편할 것인즉 누군가 자신이 달리던 코스를 선뜻 남한테 양보하는 고상한 도덕적 풍모를 보여주는 자기희생 정신이 ‘고르디아스의 매듭’을 푸는 최상의 선택이 된다. 생활의 풍요로움을 만끽이 아닌 절제하는 리듬에서 인간의 현명성이 키돋움한다. 자신의 립지를 망각한 채 타성의 부유한 도시를 본따서 올해엔 주차장이요, 래년엔 고가도로요 하는 ‘마셜플랜’에 도취되기보다 너도나도 팔을 걷고 직접 나서는 주인공다운 태도가 문명도시 창조와 시민 행복지수를 높이는 데 한몫 크게 담당한다.   이제부터 자신한테 ‘오늘의 출근길은 무엇을 선택할가?’를 던지는 물음이 성숙된 새 도시 이미지의 창출에 좋은 힌트가 될 수 있어 금시 가슴이 높뛴다. 연변일보 
56    대학공부 포인트를 어디에 찍을가 댓글:  조회:1124  추천:0  2020-08-13
[두만강칼럼] 지난 90년대말 청화대학강당에서 하버드대학 교수가 학생들에게 대학에 무엇을 배우러 왔느냐 하는 질문을 던진 적이 있었다. 당시 학생들은 저마다 자신의 관점을 피력했다. 방정식을 익히러 왔다고, 상상력을 키우러 왔다고, 사람 됨됨이를 바꾸러 왔다고 등등 별의별 대답이 련이어 쏟아졌는데 교수는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럼 그 날 교수가 바랐던 정답은 대체 무엇이였을가? 후날 학생들이 사회에 진출하여 성공의 희열과 실패의 쓴맛을 겪고 난 뒤에 철썩 무릎을 치는 깨달음이 있었은즉 바로 ‘정확한 사유방식’을 배우는 것이였다. 세상사가 얽히고 설킨 것 만큼 우리 조선족대학생들의 사유 패턴도 다양하다. 출세를 위해 머리를 싸매는가 하면 재부를 모으기 위해 또는 명성을 얻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학생들이 있다. 어떤 생각을 갖고 공부하느냐에 따라 세상을 보고 읽는 방식이 달라진다. 옛 시인 소동파가 려산의 모습을 두고 가로보면 고개마루, 세로 보면 산봉우리, 멀리서 가까이에서 높낮은 곳에 따라 제각기 달라보였다던 명시 속의 철리를 심사숙고해볼 필요가 있다. 인간의 사유는 때론 모듈(기계 또는 시스템의 구성단위) 생산라인과 흡사하다. 잘못 입력된 수치가 오작동을 반복하면 만들어낸 제품이 불량품인 것처럼 입수된 지식정보가 대뇌에서 차질이 생길 경우 사유가 혼선을 빚어 심한 굴절현상을 일으킨다. 서책지식을 신성시해서 공자 왈 맹자 왈에 흠뻑 빠져 과거급제하고도 비극을 연출한 《유림외사》 속의 범진(范镇)이나 생활의 궁지에 빠져 대충 사는 ‘공을기’(孔乙己)와 같은 인물이 대표적인 실례이다. 그래서 력대의 성인들이 바쁠수록 급해 말고 쉬여가라고 권장했다. 자신이 정한 코스를 따라 정신없이 뛰다가 잠간 멈춰서서 돌아보며 혹시 내가 선택한 삶이 어느 정도 합리하고 실현이 가능한 것인지를 점검하는 지혜가 잘못 채워진 첫 단추를 제때에 바꿔놓아 잇달아 생길 련쇄반응을 미리 차단하고 현혹된 사유를 정상궤도에 올려놓는다. 청년시절 로신은 이른바 ‘동아병부’로 신음하는 국민들이 제국주의 렬강들에게 뜯기우고 짓밟힌 원인이 건장한 체구가 없었기 때문으로 생각하고 의학을 배워 치료하기로 맘먹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일로전쟁을 반영한 기록영화 속의 처참한 정경을 본 후 백성들의 무기력함은 다름 아닌 머리 속이 병들었기 때문임을 간파하고 잠든 령혼을 깨우쳐주고저 의학을 버리고 결연히 문학의 붓을 들었다. 감각차원을 뛰여넘어 명지한 사유로 업그레이드한 위대한 전변이였다. 인생길은 예측하기 어려운 미지수로 가득찬 삼각함수다. 아무리 정보화시대라고 하지만 우리 조선족은 필경 좁디좁은 울타리에서 나서 자란 한계가 있다. 한사코 큰 인재가 되고 싶은 추상적인 욕망보다 책 한페지를 읽어도 투철하게 알고 넘기는 사명감이 남다른 각성을 부른다. 현재 우리 대학생들 속에 두가지 관념이 존재한다. 첫째, 나는 여직껏 학습성적이 우수하고 주변에서 총명하다는 말을 자주 듣는 타입이다. 둘째,나는 머리가 비상한 편이 못되여 노력으로 부족점을 미봉하는 타입이다. 이런 경향을 두고 일찍 스탠포드대학 캐롤 드웩교수가 《마인드셋》이란 저서에서 ‘고정형 사유’와 ‘성장형 사유’란 개념을 거론했다. 가령 두 학생이 박사생 시험을 쳤는데 한사람이 락방되였다고 하자. 그럼 고정형 사유에 물젖은 학생은 학업의 실패를 운명으로 간주하고 이왕의 노력마저 영영 포기한다. 하지만 성장형 사유를 갖춘 사람은 봉착한 어려움을 기회로 삼고 꾸준히 자신을 변화하고 적응하는 방향을 선택하여 나중에 목표를 달성한다. 지식은 힘이고 재부이다. 인간의 총명재질도 정상적인 사유방식에서 발휘될 때만이 무궁무진한 비전을 낳는다. 무작정 책을 읽어서 운명이 개변된다고 믿으면 오산이다. 하버드경영대학원의 통계수치에 따르면 학생들의 지력, 학력, 환경조건이 엇비슷해도 87%가 안광이 짧은 탓에 인생목표을 잃거나 아예 중도반단한다. 나머지 13%중 유독 3%가 장기분투목표를 세우고 발전행보에 맞춰 부단히 새로운 사유방식을 도출해내여 끝내는 성공에 가닿는다. 교육자 주영신(朱永新)이 쓴《미래학교》에서 미래의 대학은 정해진 장소, 시간, 년령에 구애됨이 없이 배우고 싶을 때 수시로 쎈터를 찾아 습득하는 이미지로 탈바꿈되여 독립사고능력이 비상한 수준에 이르러야 적자생존이 가능해진다고 했다. 과거에 일자무식을 문맹이라고 일컬었다면 앞으로는 사고력이 결핍한 사람이 문맹취급을 받기 십상이다. ‘아메바 경영’방식을 창조한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이 내놓은 ‘인생의 성과=사유방식×노력× 능력’이란 공식에 그물이 삼천코라도 벼리가 으뜸인 것처럼 ‘사고방식’이 벼리줄에 맞먹는 핵심이고 근본이였다. 인간이 전지전능한 신선이 아닌 이상 오직 꾸준한 노력을 기울일 때만이 지식과 성공을 련결하는 관건적인 사고방식을 터득하여 보다 높고 넓은 차원의 그라프를 긋는다. 어쩌면 ‘소크라테스의 명제’인 내가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문제가 인생철학의 영원한 미스터리인 것 같다. 바야흐로 배움의 전당에 들어설 우리 조선족대학생들한테서 꼭 훌륭한 답변이 나오리라 믿어마지 않는 한편 힘찬 지지와 성원의 박수를 보낸다. 길림신문
55    우육면집에서 만난 사람들 댓글:  조회:1241  추천:2  2020-07-06
우육면집에서 만난 사람들 최장춘 등산하고 돌아온 나는 갑자기 배가 촐촐해져 집근처의 우육면집을 찾았다. 누굴 부르자니 마땅치 않아 혼자 면구스러운 대로 면 한그릇에 호프 한컵 청했다. 이른 저녁이여서 그런지 옛날처럼 온종일 흥성흥성하던 광경은 오간 데 없고 넓은 대청이 휑뎅그렁하게 비여있었다. 지난 90년대 초반부터 도심 복판의 노란자위를 차지한 궐(阙)씨 성을 가진 이 우육면집만은 유별나게 장사가 잘되여 항상 손님들로 붐볐다. 나도 한때 그 속에 끼여들어 매일이다싶이 드나든 탓에 사장님은 만날 적마다 열정적으로 호프 둬컵씩 들고 와서 알은 체했다. 부드럽고 쫄깃쫄깃한 면발에 얼큰하고 시원한 육수를 둬모금 들이켜고 나면 이마와 코등에서 벌써 땀이 송골송골 내돋는 그 기분에 인이 박혀 왠지 며칠 건너뛰면 썰썰한 감부터 앞섰다. 내가 호프 한모금 마시려고 컵을 들었는데 뜻밖에 눈에 익은 모습이 후들후들 떨리는 걸음으로 들어와 저만치 먼곳에 가서 털썩 앉았다. 마스크를 벗으며 나를 향해 빙그레 웃는 얼굴을 보고 나서야 나는 엉겹결에 일어나 인사 대신 손을 흔들어보였다. 한동네에 사는 선배 김주임이였다. 요즘은 역병 때문에 사람끼리 서로 경계하고 멀리하는 터라  좀 떨어져앉는 것쯤은 당연지사였다. 얼마 전 살짝 풍을 맞아 병원출입이 잦더니만 잘 낫지 않는 모양인지 그사이에 희끗희끗하던 머리가 완전히 하얗게 세였고 어깨는 무거운 짐을 얹어놓은 것처럼 휘우듬해져 완전히 할아버지로 변했다. 내가 김주임을 알게 된 것은 십년 전 어느 날이였다. 중학교 동창생들이 무더운 여름철에 펼쳐진 연변팀 축구시합을 관람하고 컬컬한 김에 우르르 우육면집을 찾았다. 널직한 대청은 벌써 초만원을 이뤄 복무원의 안내를 받아서야 겨우 단칸방이 차려졌다.  헌데 그 방에는 한동네의 풋면목이 있는 분이 먼저 독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불쑥 끼여들어 실례인지 모르겠습니다.” 풋면목이 있는 까닭에 내가 례의를 지켜 깍듯이 인사하자 대방도 아주 소탈하게 자리를 드텨앉는 것이였다. 우리 동창들이 모여앉으면 할말이 기수부지였다. 호프컵이 무드기 쌓일 정도로 쉴새없이 마시며 장편 연설하는 치가 있는가 하면 술은 안 마시고 우육면 한사발에 광천수 한병 놓고 끝까지 말참견하는 치도 있어 파티가 항상 둥글둥글했다. “오늘의 축구는 왜 다 이겨놓고도 진 거야?” “첫 슛이 문대에 맞혀나오면 그날 시합은 운수가 사나운 거지!” 모두 홈장경기에 큰 기대를 안고 갔다가 실망한 나머지 중구난방으로 축구팀에 대한 아쉬움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곁에 앉은 그분한테 다가앉으며 호프 한컵을 권했다. 땅콩과 록두나물무침을 놓고 흰술을 마시던 김주임이 처음엔 사양했지만 강권에 못이겨 나중에 한모금 마시는 척했다. 알고 보니 년세가 나보다 여섯살 이상이였다. 그날따라 마침 그분이 정년퇴직을 한 날이였다. 나는 그가 직장에 다닐 때 주임직을 맡았다는 것을 알고 후에도 계속 ‘김주임’이란 호칭을 쓰기로 했다. 요즘 사람들은 퇴직이라면 대부분 ‘얼씨구절씨구’ 춤출지 몰라도 그 시절에는 정이 들고 때가 묻은 직장을 그만둘 때 모두 아쉬워 눈물이 글썽했다. 더우기 김주임한테서 연해도시에 있는 딸이 해산하여 마누라가 뒤바라지하러 급히 떠났다는 말을 듣고 나는 위로도 해줄 겸 일부러 이것저것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자식들이 결혼하여 애를 낳으면 키우는 일이 자연히 부모의 몫이 되여 김주임은 홀로 집에서 서툴게나마 밥 짓고 청소하고 빨래하며 산다고 했다. 평소 느끼한 음식이 싫어 우육면집을 자주 찾는다면서 자신은 하루 세끼 우육면을 먹어도 새날 것 같지 않다고 했다. 이런 엇비슷한 습성으로 해서 후날 우리 두 사람은  우육면집에서 만나는 일이 잦았다. 내가 료리 한접시에 맥주를 받쳐 갖다드리면 김주임이 나의 친구들이 아무리 북적거려도 개의치 않고 상 우에 꼭 호프를 둬컵 사서 올려놓고 한창 나이에 출근하는 젊은이들이 참 부럽다는 식의 찬사도 빼놓지 않았다. 점잖으면서도 고지식하고 리치가 밝은 량반이였다. 가끔 만나서 대화를 나눠보면 김주임한테서 구수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집체호 시절 논바닥에서 돌피를 가릴 줄 몰라 말짱 벼포기를 뽑아버려 하루 공수를 잘리웠던 일, 도시에 올라오자마자 결혼하여 자식 둘 낳아 키우면서 집이 없어 세방살이하던중  집세를 내지 못해 괴퍅한 주인 령감한테 쫓겨났던 일, 그날 방정맞게 온종일 비가 쏟아져 짐을 꿍져놓은 채 갈곳이 없어 단위 숙직실에서 이틀째 묵다가 남도치 장인한테 제노릇 못하는 놈팽이라고 눈이 쑥 빠지도록 된욕을 먹던 일… 하여튼 온갖 고충을 겪으면서도 꼭 잘살아야겠다는 배심만을 버리지 않고 끈질기게 버텨온 덕에 후날 직장에서 집도 분배받고 지식들도 무럭무럭 컸단다. 김주임은 나와 마주앉으면 어쩐지 이야기보따리가 술술 잘 풀린다면서 번마다 은근히 기뻐했다. 그 와중에 술이 거나해지면 대체로 딸보다 아들의 자랑을 많이 하는편이였다. 딸은 이젠 자식을 둘씩이나 낳고 한족사위와 어울려 잘살고 있다며 여유작작한 표정을 짓는 것과 달리 금방 외국에서 박사공부를 마치고 대도시에 와 자리잡은 아들의 일이 자못 걱정스럽다며 왼심을 쓰군 했다. 아들이 워낙 키가 훤칠하고 이목구비가 준수해서 딸 가진 집들에서 은근히 욕심 부려 자꾸 혼사말을 건넬 때마다 김주임은 “쳇, 내가 누군데 당신하고 사돈 맺을가?” 하고 어깨를 으쓱해보인단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쪽 구석은 어쩐지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꼭 좋은 조선족며느리를 얻어야겠는데…” 김주임이 늘 외우는 말이다. 딸의 혼사는 말리다 못해 두 손을 털고 나앉았지만 이번 아들 혼사만은 반드시 자신의 뜻대로 되였으면 하는 바람이 력력했다. 헌데 손벽도 마주쳐야 소리 난다고 지금 자식들이 외곬으로 삐여지지 않으면 다행이지 곰상곰상 부모의 뜻을 따라주는 일이 드물다. 그저 부모가 부질없이 시름시름 속을 썩일 뿐이지 천하에 자식을 이기는 부모가 어디 있으랴. 아마 이태 전 일로 기억된다. 외국에 돈벌이 떠나는 친구를 위해 우리 대여섯이 환송모임을 가졌다. 앞으로 일고생, 마음고생을 해야 할 친구 처지가 안스러워 낮에 앉았던 김에 너 한턱 나 한턱 하다가 끝날 무렵엔 또 우육면집을 찾았다. 헌데 공교롭게 정전 때문에 넓은 홀은 수많은 초불로 밝혀져있었다. 가물가물 타오르는 초불이 크리스마스를 련상케 하여 특별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누군가 노래를 부르자 어떤 치들은 가사나 곡도 잘 모르면서 톤을 높여 자꾸 만 반복하며 흥얼거렸다. 다행히 식당이 텅 비여서 복무원들도 그저 시무룩이 웃을 뿐 우리의 ‘연출’을 제지하지 않아 잠간이나마 흥겨웠다. 이때 문뜩 앞좌석에 언제 들어와 앉았는지 어둑시그레한 초불 속에서도 대뜸 알아볼 수 있는 익숙한 모습이 눈에 띄였다. 김주임이 언제 들어왔는지 홀로 술잔을 놓고 멀거니 앉아있었다. 나는 이상한 생각이 들어 그리로 다가갔다. 뜻밖에 나타난 나를 보고 김주임은 우울한 기색을 애써 감추며 어색하게 반겼다. “오늘 마누라가 또 아들놈 밥해주러 떠나갔다네.” 김주임은 묻지도 않은 말을 불쑥 내뱉었다. “딸집에서 금방 오신 것 같은데 왜요?” 내가 호프잔을 건네자 김주임은 알 수 없다는 듯 연신 머리를 저으며 맥주를 한모금 쭈욱 들이마셨다. 그리고 나서 표정을 바꿔 정색하며 바투 다가앉았다. “요즘 젊은 녀석들은 왜 저 모양이지?” 밑도 끝도 없이 아리숭한 말에 나는 잠자코 김주임의 하소연을 듣기로 했다. 워낙 김주임의 아들이 좋아하는 처녀가 있었는데 타민족이란 리유로 부모가 반기를 들었다. 그 후부터 곁에서 아무리 좋은 처녀를 소개해도 듣는 둥 마는 둥 응답이 없단다. 인젠 마흔을 넘기는데 꿈쩍 안하고 있으니 도리여 김주임 내외간이 안절부절 못한다. 그래서 세집살이하는 아들이 걱정되여 마누라가 밥도 해줄 겸 떠나갔다는 것이다. “내 팔자가 왜 이런지, 십년째 마누라는 딸의 뒤바라지를 해줄라니 아들 걱정해줄라니 눈코 뜰 새 없이 바삐 돌아치고 나는 나 대로 홀아비신세로 이렇게 살아가야 하니깐. 후유~” 술기운이 올라 불그스름해진 김주임의 얼굴에 서글픔이 짙게 깔려있었다. 내가 친구한테 돌아와 김주임의 안타까운 사연을 이야기하자 끓어번지던 술판이 대뜸 찬물을 끼얹은 듯 후줄근해졌다. 너나없이 다 그런 곤혹을 겪는 판국이라 용빼는 수가 없다고 도리머리질하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지금 청년들이 얼마나 힘들게 산다구. 장가 들기 싫어 안 들가?” 하며 역성 드는 친구도 있었다. 흔히 고생 끝에 락이란 말을 입버릇처럼 자주 쏟아내지만 정작 탈망살이에 빠져 우왕좌왕하게 되면 누구나 신세타령을 앞세우기 마련인가 보다. 나약해서가 아니라 본능인 걸 어쩌랴 싶어 모두 우울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더우기 이때 누군가 “오늘은 친구 한 사람이 고향을 떠나가지만 래일은 또 누가 떠나갈지 모른다니깐.”라고 한 말이 가슴에 찡 하니 맞혀왔다. 아니나다를가 그 후 친구들 속에서 더러는 바깥에서 떠돌이하는 자식이 념려되여 떠났고 더러는 “이 세월에 펀히 앉아있지 말고 돈을 벌어야지!”하며 줄줄이 출국행, 대도시행을 선택했다. 영상통화 덕분에 가끔 얼굴을 볼 수 있으나 친구란 그래도 만나서 어깨를 툭 치며 술 둬잔 나누는 재미가 있어야 노래처럼 보약이 되든 산소가 되든 정이 깊어지는 법이 아니겠는가… ‘헴! 쿨룩쿨룩…’ 갑자기 나의 사색을 깨며 저만치 앉은 김주임이 사레가 들어 세찬 기침을 연거퍼 했다. 어느새 제꺽 달려온 복무원이 잔등을 두드려주었다. ‘쿨룩쿨룩…’ 연신 뱉은 기침에 김주임의 주름진 얼굴이 벌겋게 상기됐고 기침할 때마다 입안의 음식물이 튕겨나와 앞섶이며 식탁에 덕지덕지 붙어 보기 민망스러웠다. 주변의 손님들은 슬밋슬밋 멀찌감치 피해 앉았다. 잠시 숨을 고르고 난 김주임이 후들후들 떨리는 걸음걸이로 출입문을 향했다. 내가 황급히 일어나 바래주려고 했더니 괜찮다는 의미로 가볍게 손을 저었다. 그리고는 얼굴에 희색을 띄우며 어눌한 말투로 래일 마누라가 돌아온다며 나한테 자랑 삼아 소식을 전했다. 순간 얼마나 기다렸으면 저러랴 싶어 가슴이 알짝지근해났다. 휘청휘청 걸어가는 김주임의 뒤모습을 점도록 지켜보다 제자리에 돌아온 나는 김이 물물 나던 우육면이 식어서 꼬들꼬들 말라들 때까지 좀처럼 식욕이 당기지 않아 공연히 맥주잔만 들었다 놨다 했다. 홀 안에 듬성듬성 앉은 손님들도 식사를 끝마치는 대로 하나, 둘 자리를 떠서 인젠 나 혼자 남았다. 마음 한구석에 왠지 허전함이 밀물처럼 그들먹이 차올랐다. 어제날 친구들은 이 시각 어디서 뭘하고 있을가? 문뜩 옛날의 친구들이 더없이 그리워났다. 도대체 자식이 뭐고 돈이 뭔데 이렇게 뿔뿔이 흩어져 사는 건지 고까운 생각까지 치밀어 올랐다. 아니 원망스러움에 마주 앉으면 금시 욕설이라도 실컷 퍼붓고 싶은 착잡한 생각에 나는 발 가는 대로 밤길을 터벅터벅 걸었다.   저 먼발치에 신호등불빛이 반짝이는 로타리가 보였다. 차량이나 사람들이 잠간이나마 멈춰서서 마주 향해 손을 흔들어주는 도로의 교차점이다. 거미줄처럼 뻗은 길도 서로 부딪치는 교차점이 있을라니 산 사람끼리 만날 날이 없을가 봐. 나는 중이 념불 외우듯 연신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연변일보 
54    문화는 민족의 생명선이다 댓글:  조회:1056  추천:1  2020-06-17
중국 력사에는 한때 북방지역을 흑마처럼 휩쓸었던 흉노족과 료나라(辽国)를 세워 2백년 동안 북방지역을 통치한 거란(契丹)족의 그림자가 언뜻거린다. 어디 가나 파죽지세로 당당했던 민족이 왜 력사의 무대에서 영영 사라졌을가? 력사학자들이 피력한 원인인즉 두 민족이 언어만 있을 뿐 문자가 없고 또한 자신들의 문화전통마저 죄다 상실해버린 데 있었다. “당신은 누구인가?” 하는 물음이 한 민족이 다른 한 민족과 구별되는 문화의 속성이다. 우리 나라의 56개 민족 가운데 적잖은 민족이 언어와 문자가 통합을 이루지 못하고 있지만 우리 조선족은 언어와 문자가 구전하여 국가의 5개 민족의 법정문자로 지정된 행운을 누리고 있다.   곡절 많은 조선족문화는 기근을 달래려고 두만강을 건너온 그 날부터 시작되였다. 청나라의 토호렬신들이 경작지를 미끼로 강요한 삭발역복은 물론 일제의 야만적인 민족압살정책도 용감히 물리친 우리의 선각자들은 그 어려운 역경 속에서 서전서숙, 명동중학과 같은 배움의 터전을 세워 피눈물에 절은 민족의 얼을 소중히 안아 키웠다.   해방 후 연변은 나라의 민족정책에 힘 입어 맨 처음 조선족대학을 세웠고 잇달아 우리말로 된 신문, 방송, 출판 등 선전매체를 꾸려 신주대륙에서 명실상부한 교육의 고향으로 거듭났다. 하지만 정부차원의 지지와 혜택을 누림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 조선족문화가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다. 고향을 떠나는 젊은이들의 행렬이 줄을 잇고 희망공정을 대변하는 대학교응시생의 수치가 십년전 4천 5백여명으로부터 작년에는 고작 천 5백여명으로 급락했다. 조선족문화의 교류와 세대교체에 단렬이 생겨 진짜 난항을 겪고 있고 할 일이 태산같아도 헌걸차게 해제낄 탄탄한 전문가대오가 결핍해 궁색한 처지에 놓였다.   력대로 한 민족의 운명이 갈림길에 설 때마다 사느냐 죽느냐는 흔히 문화에서 판가리가 결정된다. 민족의 령혼을 상징하는 문화를 살리기 위한 몸부림이 갈수록 처절해지는 만큼 과거 중국의 ‘피카소’인 한락연, 음악가 정률성 등과 같은 우수한 조선족인재들이 창작한 문화예술의 전통을 계속 개화발전시킬 신성한 책임과 의무는 오직 우리가 살아숨쉴 수 있는 공간과 터전을 튼튼히 유지할 때만이 실현이 가능하다. 마치 문예부흥시기 모짜르트, 베토벤의 음악이 윈에서 따돌림을 당할 적에 40만 인구의 5%에 해당한 극소수 엘리트들이 바친 끈질긴 노력에 의하여 후대에 전수되면서 오늘날 명곡으로 재생된 것처럼 조선족문화도 전문지식을 겸비한 엘리트들의 각별한 노력과 더불어 온 사회의 적극적인 지지와 참여의식이 중요한 의의을 갖는다. 사회적인 문화분위기에 따라 작가들이 배출되듯이 짙은 문화정서가 메말라가는 민족문화의 넋을 윤택하게 살지운다.   일전 《길림신문》에 실린 기사를 읽고 흥분한 적이 있다. 길림지구에서 몇몇 지성인들이 ‘기록’친목회라는 민간 미니협회를 세우고 2년 사이에 백편의 글과 백만자 이상의 문자자료, 수십장의 사진들을 수집, 정리하여 《기록문집》을 출판했다. 앞으로 촌마다 학교마다 ‘기록’하는 사람들로 네트워크를 형성한다는 야심찬 계획까지 있어 해내외 인기를 모았다. 실로 박수갈채를 보낼 만한 일이다.   조선족문화는 협애한 지역문화의 개념을 떠나 전반 중화 민족의 보귀한 정신적인 재부이다. 한 민족이 아무리 물질적 재부가 풍요로워도 문화적인 가치를 잃었을 경우엔 사회무대에서의 존재의미를 상실하고 만다. 단순한 지정학적인 의미를 뛰여넘어 다방면, 다층차의 교류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두가지 이상 언어구상이 가능한 조선족의 뉴대와 교량 역할이 자못 중요하다. 리익공동체내의 물질교환과 더불어 활발히 이뤄질 문화적 교류는 기필코 체계적이고 표준화로 업그레이드된 조선족문화환경을 요구한다.   우리 민족의 삶의 터전은 조선족문화가 곁들어 맥을 이뤄야 ‘전설 속의 봉황새가 오동나무숲을 찾아 날아예는 독특한 비전’이 있게 된다. 희망에는 진통이 따르는 법이다. 우리가 현재 겪고 있는 진통이 어찌 보면 문화의 새 생명을 잉태해낼 시련일지도 모른다. 잉태한 꿈이 크면 클수록 엄청난 아픔과 충격이 따르기 마련이다. 심리학자 칼 구스타브 융의 말을 빌어 ‘문화는 인격’에 해당된다. 조선족문화의 진흥은 곧 조선족사회의 집단적인 인격을 춰세우는 웅위로운 사업이다. 조선족문화가 거세찬 풍랑을 헤쳐나갈 수 있을지 운명의 시험대에 올라섰다고 해야 할 것이다.        길림신문/두만강칼럼 
53    넓혀진 유명지인의 이미지 댓글:  조회:1184  추천:0  2020-05-21
넓혀진 유명지인의 이미지 요즘 세상에 ‘유명하다.’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유명한 연예인, 유명한 변호사, 유명한 공정사…모임장소에서 연설하거나 기자와 인터뷰할 때 종종 출연자를 깍듯이 떠받들기 위해 특별히 정해진 규정어로 쓰는 듯싶다. 옛날에 보통내기가 유명지인을 바라는 꿈은 두꺼비가 고니고기 비위를 쓰는 것과 같았지만 지금은 그럴듯한 옷차림새에 말주변까지 청산류수일 경우 어렵잖게 그 행렬에 끼여들 자격을 갖는다. 책 보는 이가 별로 없는데 말은 모두 얼음에 박 밀듯 술술 잘한다. 약방주인의 연설이 전문의 뺨칠 정도이고 노래연습실 강사의 가르침이 성악 교수님 울고 갈 지경이다 보니 ‘유명하다.’란 수식어가 바늘에 실 따르듯 척척 붙어다니기 일쑤이다. 일전 한 사장님의 초청을 받고 연회석에 참가한 적 있다. 빙 둘러앉은 참석자들을 상대로 일일이 ‘유명하다.’를 붙여가며 소개하던 사장님이 내 차례가 되여 일컫는 내용인즉 “이분은 유명한 부동산전문가입니다.”라고 했다. 갑자기 마른 비행기를 태우니까 호접몽을 꾸듯 긴가민가 혼미해졌다. 집 한채 지어본 일 없이 그냥 국가 부동산 정책을 둬줄 암기내고 집행한 사무원에게  엄청 큰 채불관을 꾹 눌러씌우는 바람에 못난 새끼오리가 하루아침에 백조가 되여 날아오른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필자는 사장님의 수완에 혀를 내둘렀다. 지금 사회교제에서 군인처럼 별 하나면 하나를 다는 사람이 거의 없다. 하다못해 어깨에 줄 하나라도 더 붙여야 힘이 실리며 할 말이 생긴다. 워낙 자존심이 강한 데다가 문뜩 이름 석자에 멋진 수식어로 둘러싸이는 날이면 오기가 번쩍 고개를 쳐들기 마련이다. 참석자의 신분을 치켜세우면 곁사람의 체신이 잇달아 오르는 것은 사실이다. 그 때문에 관직에 있는 사람은 자리에서 물러나서도 직함을 계속 성씨 뒤에 붙여쓰고 빈털터리한테는 림기응변술로 두루 걸맞은 관상용 명칭을 줄곧 사용하는 것이 요즘 상식으로 굳어졌다. 이왕이면 아첨에 이골이 튼 놈이라고 열백번 욕을 보았을 테지만 그 수단이 교제의 예술로 부상해 급물살을 타는 걸 탓할 수가 없는 노릇이다. 극단적인 순수함을 추궁한 디오게네스의 괴짜 철학리론이 그가 주숙한 나무통과 함께 력사의 뒤안길에 영영 사라진 지 오래다. 인간은 무상의 존재이다. 불투명성, 불확실성에 시달리는 인간은  서로 지혜롭게 고무격려를 주고받는 과정이 소중하다. 구수한 랭면 그릇에 고명을 듬뿍 얹어주듯 타인의 장점을 발견하고 인차 부풀려 포장하는 출중한 능력이 대인교제를 한층 흥겹고 활기롭게 만든다. 언젠가 푸접 좋은 량반이 려관집을 꾸린 비결을 살폈다. 량반은 찾아온 손님이 교원인 것 같으면 “교장선생님”이라고 칭했다. 손님이 “아니, 저는 교장이 아닙니다.” 하고 황급히 손사래를 칠 때는 “손님분께서는 오래잖아 꼭 승진할 겁니다.” 하고 힘을 실어주었고 일반 사무원 같으면 “국장어르신” 하고 공손히 허리를 굽혔다. 첫 만남부터 존중하여 우러러 모신다는데 누가 싫어하랴, 밉살스러울 대신 오히려 어깨가 으쓱해지며 기분이 뜬다. 당신이 멋지다고 한사코 치켜세울 즈음 진짜 스타로 뜨는 행운이 칭찬의 힘이다. 마치 피그말리온이가 조각상을 너무 사랑했던 까닭에 진짜 녀자로 변신한 전설처럼 주변으로부터 긍정적인 기대와 성원을 자주 받는 사람은 자신감과 영예감에 이끌려 실현이 가능한 에너지를 발산하게 되는 법이다. 기실 사람의 능력에 대한 평가가 몇몇이 모여서 콩이라면 콩이고 팥이라면 팥일 수는 없다. 일찍 《국부론》, 《도덕감정론》을 써서 고전경제학의 아버지로 세상에 널리 이름을 떨친 애덤 스미스의 무덤가 비석에는 생애와는 별도로 짧게 ‘작가 애덤 스미스 잠든 곳’이라고만 적혀있다. 비록 유명하다는 수식어가 빠졌어도 거물급의 위대함을 의심할 사람이 없다. 오늘날 그저 출중한 유명지인이 사막의 오아시스마냥 희소해져 갑절 그리울 따름이다. 가불간 사회군체에 유명인사가 늘어났다는 것은 그만큼 발전하고 문명해졌음을 의미한다. 쩍하면 “내가 옛날 떵떵 소리칠 때 너는 설설 기였지?”식으로 손아래 취급하기보다 상대방을 극력 높이 칭찬하여 친밀감을 드러내는 사람에게 돌아오는 시선은 항상 부드럽고 따스하다. 혹자는 지나친 표현력에 대해 못마땅히 여겨 고대 허유(许由)가 물녘에 뛰여가 귀를 헹군 소행을 떠올리거나 소란스러운 세상사가 싫어 성장을 멈춰버린 영화 《양철북》의 주인공 오스카에 흥취를 가질지 몰라도 탄성을 잃은 교제방식은 눈 오는 벌판같이 적막하고 허전하고 쓸쓸해질 뿐이다. 더불어 사는 세상이 좀 거품이인들 해가 없으면 그만인데 굳이 산 높이와 물 깊이를 자대로 재여보고야 시름을 놓는 타입의 설자리가 앞으로 구경 어딜지 궁긍해진다. 빈번한 사회활동이 유명인사의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린다. 유머가 흠뻑 묻어나는 재치 있는 찬사가 딱딱하고 경직된 대인관계를 느슨하게 풀어주는 한편 모임장소를 후끈 달아오르게 하는 촉매작용을 일으킨다. 그런 후광효과에 힘입어 눈덩이처럼 부쩍 커가는 ‘유명하다.’의 이미지를 외면하는 고집불통보다는 열린 마음으로 유연하게 받아들이고 음미하는 컨디션이 평소 우리 각자의 거리를 좁혀주어 마음이 훨씬 편하게 만들지 않을가 생각해본다. 연변일보 
52    체면문화의 허와 실 댓글:  조회:1236  추천:0  2020-04-23
[두만강칼럼] “량반은 얼어죽어도 겨불은 안 쬔다”는 말이 있다. 겨불냄새가 싫은 데다 화기마저 신통치 않아 체면이 깎인다고 여겨 동지섣달에 몸이 꽁꽁 얼어도 아예 돌아앉는 고집에서 유래됐을 거라고 믿는다. 여기에 한술 더 떠서 죽으면서도 체면을 챙긴 이야기가 있다. 춘추시기 초성왕(楚成王)이 운명을 눈앞에 두고 태자가 어떤 시호를 줄 것인가에 관심이 끌려 눈을 감지 못했다. 그래서 상주가 끙끙 갑자르다가 겨우 성(成)자를 찾아올리니 속이 내켰던지 제꺽 두눈을 감더란다. 체면문화가 넝쿨처럼 줄기줄기 뻗어내려오면서 오늘날 우리 생활의 구석구석 깊게 투영된 그림자로 언뜻거린다. 복장업을 하는 어느 사장이 80만원짜리 집에 60만원 장식비를 처넣었다. 왜 그리 많은 돈을 허비하는가 하는 물음에 “옆집 량반이 50만원을 들였는데 사장인 내가 체면이 꾸겨져서야 되겠소?” 라고 대답했다. 철두철미 남한테 그럴사하게 보여주려는 과시욕이다. 옷을 입고 차를 몰고 료리집을 드나들어도 늘 남들이 어떻게 볼 것인가를 념두에 두고 있는 터라 폼이 넉넉치 못한 참새가 황새걸음할 때가 많다. 고향에서 천한 일은 체면에 걸려 하기 싫고 기술일은 자격이 모자라 대부분 한국행을 택하는 것이 요즘 추세이다. 욕을 먹으면서 가장 힘들고 어지러운 일을 하고도 돌아와서는 그런 일은 전혀 없었던듯이 입이 벌어지게 돈자랑을 한다. 어쩌면 체면치레에 각별히 민감한 사람일수록 모파쌍의 〈목걸이〉 주인공처럼 허영심이 몰고 온 억울함 때문에 일생이 더 불행해질지도 모른다. 사람의 얼굴은 마음속 복잡한 풍운조화를 청우계마냥 수시로 나타내는 거울이다. 자신의 행동이 남한테 폄하를 당하는 것을 원치 않아 진실이 좀 가리워지고 외곡되더라도 괜찮다고 여긴 심리가 팔소매를 걷어붙이고 체면포장에 극성을 부린다. 분명 자신의 주장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부의 눈길을 의식해 품었던 생각을 바꾸는가 하면 틀린 일인줄 번연히 알면서 그러려니 하고 서로 수긍하며 기만과 거짓 사이를 오락가락한다. 자식이 명문대학에 붙었다고 숱한 청첩장을 돌려 난감할 때가 있다. 거절하자니 후날 대할 면목이 걱정스럽고 참석하자니 특별이 축하해줄 말이 궁핍해 대부분은 그럭저럭 마지 못해 동참할 따름이다. 자신의 삶을 남의 삶에 얹어놓은듯 앉으면 같이 앉고 일어서면 따라서는 습관된 눈치보기에 줄곧 얼떠름한 삶을 허비한다. 평소 부조리에 대해 그토록 미워하면서도 정작 그런 일에 부딪치면 칼로 썩둑 잘라버릴 용기가 없다. 옳고 틀린 것을 분간하기 앞서 한사코 자신의 립장과 체면의 가치를 인정받고 싶은 아집이 하찮은 일에서조차 사사건건 따지고 비기며 스스로 렬등감과 수치감을 만들어낸다. 하여 겉은 의젓한데 반해 속은 취약하고 생각은 깊어보이는 듯한데 일처리가 미숙해 자가당착의 모순이 틈틈이 엿보인다. 지성인들의 경험담을 들어보면 체면문화의 허와 실이 확연히 드러난다. 원 연길시정부 윤희권 국장은 외국에서 공부하는 아들의 학비를 해결하기 위해 퇴직하자 3년 동안 시골에 묻혀 닭치기를 했고 한산한 골목길 식당을 찾아다니며 허드레일까지 수걱수걱 도맡았다. 어떤 사람들은 국장의 체신이 깎이운다면서 혀를 끌끌 차며 나무람했지만 자식을 위한 부성애가 모든 체면과 자존심을 내려놓게 했다. 이렇듯 오늘날 잘된 자식들이 걸어온 성장의 자욱마다에는 남몰래 쏟아부은 부모들의 피땀이 보석처럼 소중히 깔려져있다. 잘난 사람, 못난 사람이 함께 어울려 사는 세상인 만큼 서로 마음을 헤아려 양보하고 용서하며 어깨를 다독여주는 생활의 포옹력이 체면의 이미지를 저급적 취미에서 한층 고상하고 진지한 차원으로 승화시킨다. 세상의 민심은 겉치레를 벗어나 지혜와 능력을 우선시한다. 보름달같이 환한 웃음보다 살갗에 와닿는 따뜻한 해살을 더 반기는 마음이다. 연길시원휘사회구역 림송숙 서기는 당대표의 높은 신분도 마다하고 소박한 차림새로 간소한 사무실에서 근무한다. 핸드폰마저 체면이 떨어질 정도로 아주 구식을 사용한다. 초기에 “일개 아녀자가 무슨 용빼는 재주가 있다고?” 하며 입을 삐쭉거리는 이들도 있었지만 림서기는 개의치 않고 한밤중에도 전화소리가 울리면 달려가 주민호들의 급한 일들을 도와주었다. 자아희생적인 강한 리더십에 오해와 불신은 봄눈 녹듯 자취를 감추고 어느덧 친분이 두터워진 주민들은 평소에 어디 가나 “림서기, 림서기” 하고 기라성처럼 줄줄이 따라나서 부르며 찾으며 미더운 ‘며느리’, ‘딸’, ‘어머니’로 떠받든다. “복숭아꽃 오얏꽃은 말이 없어도 그 아래에는 소로길이 생긴다.(桃李不言,下自成蹊)” 향기 그윽한 덕성과 뜨거운 인간성을 지닌 사람은 자화자찬하지 않아도 체면을 대신한 이름 석자가 항상 행렬의 앞장에서 기발처럼 나붓긴다. 체면은 집착하면 무거운 짐이요, 내려놓으면 가벼운 날개다. 가령 소홀하고 매몰차서 나중에 사과할지언정 할 말을 짯짯이 하는 성미가 오히려 구김살없이 반듯한 믿음의 성역을 쌓는다. 가을 열매처럼 속이 오롯이 꽉 찬 너와 나의 진실한 삶이 건전한 체면문화의 터전에 한줄기 보슬비가 되여주기를 두손 모아 정성껏 빌어본다. 길림신문
51    우환의식이 사명감을 낳는다 댓글:  조회:1530  추천:0  2020-01-14
기원전 10세기 쯤 서주(西周)를 세운 섭정왕 주공이 성대한 제사모임을 가졌다. 주나라 귀족계층들은 물론 패망한 상나라 귀족들도 주나라의 복장을 입고 줄줄이 참석했다. 그들의 일거일동을 살피던 주공이 문뜩 깊은 수심에 빠졌다. ‘먼 후날 혹시 우리의 후대들도 저 사람들처럼 남의 복장을 입고 남의 조상을 기리면 어떡할고?’ 이로부터 력사상 처음 ‘우환의식’이란 개념이 생겨났다. 중국의 문화력사를 살펴보면 우환의식이 갈피마다 슴배여있지 않는 곳이 없다. 우리 조선족사회에도 그 영향을 받아 연막탄에 가려진 우환의식이 현재 초미의 화제로 떠올랐다. 두루 살펴보면 연길비행장입구로부터 호텔, 민속원에 이르기까지 조선족 치마저고리를 걸친 녀성들 대부분이 타민족이다. 그것도 모르고 관광객들은 조선족처녀들이 참 예쁘장하고 한족말을 잘한다고 극구 치하한다. 실로 벙어리 례장감 받아안은듯 겉으론 싱글벙글하면서도 속은 미여지게 쓰리고 아프다. 맑스는 일찍《정치경제학비판》머리말에서 한 민족은 인간처럼 자기의 동년시절, 청년시절, 로년시절이 있다고 했다. 근근히 2백년 이주사를 갖고 있는 조선족이 반만년 력사의 긴 흐름에 비하면 어섯눈을 금방 뜬 동년시절에 불과하다. 갈길이 먼데 발밑은 온통 울퉁불퉁해서 넘어졌다가 또다시 일어나 부지런히 해거름을 쫓아온 순박한 백의민족이다. 때론 가시밭에 살점을 뜯기워 왈칵 눈물이 솟구쳐도 용케 참아내고 거쿨진 맨주먹으로 평강벌, 세전벌의 전설을 엮어냈고 피어린 전쟁의 포연을 헤쳐 “산마다 진달래요, 마을마다 기념비”로 전국에서 한때 소문이 자자했다. 하지만 거둔 성과 앞에서 랭정히 돌이켜보는 우환의식을 가질 대신 자화자찬에 빠졌고 개혁개방의 기회를 근근히 외국행, 대도시행으로 밖에 활용하지 못했던 까닭에 후날 차례진 대가는 터전을 잃은 외기러기의 슬픔과 텅 빈 마을 그리고 썰렁한 학교운동장 뿐이였다. 현재 심각한 문제를 과연 어떤 방식을 통해 풀어야 할지 조선족사회가 서로 갑론을박 의논이 분분한 실정이다. 슬기로운 민족에게는 시련이 있어도 실패는 없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운명의 갈림길에서 탄탄대로를 제쳐놓고 험한 소로길을 택하는 유태인들의 생존전략을 익혀둔 적이 있는가? 없다. 스승부터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성공을 론해도 테두리 안에 갇혀 뱅뱅 돌 뿐 ‘뫼비우스의 띠’ 같이 불쑥 튕겨나간 엉뚱한 비전이 없다. 학생시절에는 문제풀이 고수나 우등생이 되려고 머리를 질끈 동였으며 사회에 진출해서는 로임생활에 체질화되여 한번 우뚝 서보려는 배짱같은 건 몸 속에서 일찍 거세된 지 오래다. 창조성이란 용어는 대체로 연단의 수식어로 활용할 따름이지 실천력은 항상 남들이 챙겨간 뒤 때늦게 철썩 무릎 치는 수준이다. 혹자는 조선족 해외진출수입이 지역사회발전에 큰 보탬이 된다며 자랑할지 몰라도 가슴 한구석은 만선의 고기배가 귀로를 잃어 헤매는 듯한 어설픔이 가슴 그들먹이 차오른다. 우환의식은 배길을 환히 트여주는 등대불과 흡사한 존재이다. 21세기 정보화시대의 경쟁은 갈수록 치렬하다. 쇠소리 나게 땡땡 여문 엘리트와 겨루는 마당에서 독특한 경쟁사유가 없이 각축전의 승자가 되려는 생각은 천방야담에 가까운 일이다. 삐여진 사고력을 강인한 의지로 실천하는 사람이 눈부신 캐리어를 갖는다. 고정된 성공관념을 깨고 나만의 독창성을 주장한 베스트셀러 작가 애덤 그랜트를 떠올려본다. 기류에 순응하지 않고 세상을 움직이는 스타일을 ‘오리지 널스’라고 명칭한 애덤은 도전자의 아이템은 모험을 떠나 충분히 준비하고 노력한 끝에 거머쥔 희망의 씨앗이라고 했다. 다수가 선택하는 순류를 버리고 유독 남들이 엄두를 못내는 역류에 결연히 도전장을 던지는 자신감, 그 독특한 개성이 만난을 물리치고 억척스레 달라붙는 기적의 힘을 낳는다. 화룡 광동촌의 성공비결이 좋은 실례가 된다. 남들은 경작지에 하우스를 만들어 한해에 두벌, 세벌 농사로 돈맛을 톡톡히 보는데 반해 일부러 밭을 3년씩 묵여가면서 풀과 반죽해 숙성시키는 과정을 거쳐 ‘땅힘’을 길렀다. 약삭 빠른 농군들은 비료를 뿌리고 농약을 치면서 얼렁뚱땅 쉽게 농사하지만 20여년전부터 ‘록색혁명’의 꿈을 이루고저 천신만고를 겪어온 보람으로 끝내 세상이 인정하는 ‘무공해 브랜드’를 창출해냈다. 컴백의 기회는 항상 우환의식을 달래며 사명감을 안고 악전고투하는 사람에게 차례진다. 오늘 비록 고향의 모습이 좀 초라해 왼눈 파는 이들도 있겠지만 나라의 빈곤부축정책에 힘 입어 두주먹을 불끈 쥔 귀향청년들 이마에는 비지땀이 뚝뚝 떨어진다. 편히 앉아 꼬챙이로 꿰여먹는 작은 떡에 만족하지 말고 보란듯이 직접 메를 휘둘러 묵직한 떡을 만들어보자. 한사람이 일떠서면 온 마을이 따라서고 잇달아 리익공동체가 형성되는 민족의 전성기를 맞을 즈음이면 “와- 중국 조선족 대단해!” 하고 세상 사람들 만나는 족족 엄지손을 쑥 높이 추켜들 것이다. 길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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