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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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2    (잡문) 과정론초고 댓글:  조회:4732  추천:0  2016-04-10
                                             과정론초고                                                     최 균 선       과정이 중요한가? 결과가 중요한가? 얼핏 보면 분명한것 같지만 기실 복합적이고 상대적인 답이 나올수 있는 문제이다. 례하여 달리기에서는 과정이 요긴한것이 아 니라 우승이라는 결과가 중요시된다. 학생의 주선률인 공부에서도 지리멸렬한 과정이 의미로운것이 아니라 높은 학습성적에서 만끽하는 희열이다.       이러니 인생의 진미는 과정에 있을가? 결과에 있을가? 하는 화제가 주어진다. 비유적으로 담론해보자. 달걀은 병아리로 될수 있는 속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가능성이라 한다. 나아가서 달걀의 자체목적이 병아리로 되는것일진대 모든 달걀이 병아리로 되는것이 아니다. 모든 민들레씨는 새 민들레가 생성할 가능성을 가지고있다. 그러나 바람에 날려간 모든 민들레씨가 다 민들레로 움터나지 못한다. 어떤것은 물에 떨어져 썩고 어떤것은 바위틈에 끼여 말라죽는다. 그것은 조우일수도 있고 숙명일수도 있다.     바람에 실려가는 정처없은 려정에서 운좋게 습기좋은 흙속에 묻히게 되면 새 민들레로 태여날수 있는데 그것이 민들레씨의 현실성이다. 더 부언한다면 모든 달걀이 병아리로 될수 없고 모든 민들레씨가 새 민들레로 거듭날수 없는것처럼 만물이 현실성을 가지고 실제로 존재할수 없다는 설명이다. 가능성이 모두 현실로 이루어지지 않기때문이다. 그래서 희망이 크면 실망이 더 크다는 말도 만들어졌을게다.     인간도 스스로 창조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을 파악하고 과정을 거치면서 다른 사람에게 영향주고 그 사람들이 서로 어울려서 사회라는 인간세상을 이룬다. 인생의 궁극적 목적은 행복하게 사는것인데 보통 행복의 동산에 오르기까지 신고가 중요한게 아니라 행복해진 결과가 중요하다고 여기고 있기에 지칠줄 모르고 분발하는것이다.     주지하다싶이“과부(夸父)가 해를 쫓다”는 신화는 중국고대 선민이 가뭄을 전승하려는 념원을 반영했지만 남겨준 여운을 각자 나름대로 음미할수 있다. 과부는 비록 최후에 목이말라 쓰러졌지만 추구의 길에서 죽었고 마음속은 온통 유감뿐이였지만 지팡이를 던져 울울창창한 복숭아림을 펼쳐놓았다. 비록 아무결과도 이루지 못한 과부이지만 일심불란했던 그의 추구의 과정은 비장함으로 만세에 유전되였다.     태아로부터 유아, 아동, 소년, 청년, 중년, 로년에 이르러 죽음로 끝맺는것을 일생이라 한다면 그 중간과정이 고저장단이 각이한 인생으로서 인간은 과정속에 존재물이다. 과정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것이 우리들의 인생이다. 이것은 매순간 적용되는 인생의 법칙이기도 하다. 성급하게 결과를 탐하기보다는 꾸준하게 과정을 실천해 나가는것이 필요한 리유이다. 그래서 인생은 고달파도 살아가는 과정이 소중하다고 말하는것이다. 결과만을 추구한다면 우리가 살아야 할 리유가 없어질게 아닌가?     누구나 출생한 목적은 모르지만 인생에는 목적이 있다. 부단한 변화과정에서 자기 목적을 가지고 노력하는 와중에 단계적으로만족하며 사는것이 곧 과정의 완성이다. 그러나 인생과 목적은 등호로 되지 않는다. 만족이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현실적인 존재를 초월해야 소위 만족이란게 이루어질수 있다. 즉 사회질서속에 사는 인간이 주어진 질서를 깨야 만족을 얻을수 있다. 그런데 그게 용납되지 않는다.     그러기에 소기의 결과에 이르지 못했더라도 진행과정에서의 진전된 정도만큼에 만족하면서 새로운 만족을 추구하며 사는게 인간이다. 모든것이 변화하는 과정속에 존재하는 인간이기에 철저히 완성된것이란 아무것도 없다.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킬 그 무엇도 없다. 우리가 살아가는 과정에 만족이라는게 온다면 더없이 좋을것이나 이 루지 못한 만족도 있는법이다. 그게 삶의 욕구를 부추기는것이다.     그 어떤 생존방식이든 모두 찾음의 과정이기에 인생은 목적이 아니라 과정이 된다. 인생은 언제나 과정이고 우리들 고통의 원인은 사건이나 상황에 있는것이 아니라 그것을 지각하고 해석하는 우리들의 사유방식에 있듯이 지금 한창 행복의 동산을 향해 간다는 믿음때문에 힘겨워도 견뎌내며 허위단심 걷는게 아니겠는가?     어제는 과정의 한단계이고 오늘은 진행중이며 래일은 과정의 연장선이다. 과정이 없는 결과란 있을수 없는데도 그냥 결과만 목마르게 기다리는것은 환상이며 두고봐야 확인되겠지만 망상일 확률이 더 높다. 물론 결과가 없는 과정은 맹랑하다. 그러니 과정과 결과는 따로 따로가 아니라 공통분모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얻고 차지하는데 관해서는 될수록 과정을 생략하면서라도 결과에만 집착하기에 늘 사달이 생긴다.     인생목적은 거의 동일한바 잘먹고 멋있게 입고 돈을 잘쓰는 행복을 누리는것이다. 그런데 행복에 경계가 있으며 절정이 있을것인가? 이미 가진 행복은 결과이지만 또 다른 상승선을 그으려하기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인생의 목표는 어제의 목표였던 오늘이고 이제 또 얼마나 맞고 보낼지 모르는 래일이다. 어제는 이미 력사로 기록되고 오늘은 차례진 밥상이고 래일은 수수께끼이니 미리 그라프를 그려둘수는 없다.     다사분주한 인생길, 우리는 누가 부르는듯 어디로 바삐 가며 어디로 가는가? 인생현장을 경기장이라 하지만 인생을 경기로 삼으면 힘벅찰뿐이다. 인생을 분투과정이라고도 하는데 무엇을 위해 분투하는가? 희랍의 조르바라는 인생이 “결과지향적인 삶”에서 “과정지향적인 삶”으로 되여야 자유로운 인생이 된다고 하였다.     인간은 이 세상에 와서 잠간 머물다가 가는 과객이라고도 하는데 민초들은 더 말 할것 없고 위인도, 억만갑부도 필경에는 잠깐 포물선을 그리던 별찌에 불과하다. 별똥이라고도 부르는 류성은 하늘에서 떨어져 지평선 저쪽으로 가뭇없이 사라진다. 우리 눈에 보인 류성의 락하는 겨우 몇초에 불과한것 같지만 하나의 류성이 몇시간, 며칠, 심지어 몇년을 날아내렸는지? 락하에 숨은 그 비밀은 아무도 알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것은 이미 땅에 떨어졌고 다시 솟아오를수 없다는 사실이다.     근간에 뢰정 된바람에 추풍락엽이 되여진 일컬어 “락마관”들은 천문수자의 수뢰액수에 매료되여 제정신이 아니면서도 언젠가 오고야말 악과를 예상하고 뢰물을 받는 장소와 때, 형식 등 과정에도 신경을 도사렸지만 사필귀정을 어찌하리오.. 한번 곤두박질에 1만8천리를 날고 일흔두가지 변신술을 가진 손오공도 여래불의 손바닥을 벗어나지 못하여겄늘 탐관들이 영구만찬만을 기도했던들 헛똑똑이들이 아닌가?     정상적인 사람은 무슨 일을 시작할 때 결과를 예상하고 손을 댄다. 잘못 진행된 과정에서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경우란 극히 드물다. 얼렁뚱땅 어떤 결과를 얻었더라도 장구할리가 없다. 과정의 산물인 지혜와 결과의 산물인 희열은 련관된것이건만 우리는 결과주의자들이다. 무릇 인생에 가치를 부여하는것은 종국적 결과가 아니라 열심히 살아가는 과정이다. 인생의 비극은 결과에 급급해 하는데서 빚어진다.     한걸음 물러서서 생각하면 사람은 누구나 자기 인생의 초행길에서 우왕좌왕 헤매는 과정인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완벽한 계획서대로 사는 사람도 드물다. 어쩌면 인생은 시행착오의 과정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신의 본분을 잃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개척하는 보다 완성된 자들도 더러 있다. 그들이야말로 축복받은 사람들이다.      인생려정에 그 어느 한갈래 길도 출로가 될수 있다. 스피노자가 래일 지구의 종말이 오더라도 나는 오늘 나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했다. 그에게는 사과를 따먹는 결과가 아니라 사과나무를 심는 과정이 중요했던것이다. 인생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추구이다. 추구는 과정의 체현이지 결과의 과시가 아니다. 인생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과정이 될수밖에 없다. 생명자체가 본래 미궁이 아니던가?                                                                                2015년 9월 20일
731    살며 느끼며 생각하며 댓글:  조회:4126  추천:0  2016-04-06
                                         살며 느끼며 생각하며          숲그늘 여린 풀우에 큰대자로 누워 나무가지에 의해 찢겨진 하늘을 멀쩡하니 바라보며 떠오르는 상념들을 이리저리 풀에 걸고있다. 내 잔등밑에서 풀들이 무참히 꺽여지며 가냘픈 신음을 내고있는지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나비가 앉든 꿀벌이 앉든 그리고 무거운 베짱이가 뛰여오르든 식을줄 모르는 반가움으로 수없이 허리굽혀 대자연의 구석진곳에서 있었던 얘기를 들려준 풀들이다. 작은 풀은 그렇게 이 호한한 세상을 마주하고 천지간에 대화를 나누며 한철을 살아간다. 바람은 분명 속삭였으리라. 그 아프고 슬프던 모든 일들을 잊으라고. 원래 홍천 세계가 아니던가? 가는 걸음에 한바탕 흑먼지를 날려 그 모든 쓰잘것없는 기억들을 매장해 주겠노라고.     차분히 내리던 봄비도 분명 쏙닥거렸으리라 비는 먼지로 얼룩진 대지에 줄줄이 6월의 련가를 쓰면서 충고했으리. 잊으라! 이 먼지를 씻어내리는것처럼 하늘의 눈물로 너의 치욕을 씻어주련다고. 풀들은 예이제 다소곳이 듣고만 있었으리라. 그래 얼마나 많은 생활의 갈피들이 번져졌던가? 누가 아직까지 그 많은 세절들을 기억 하고있을가? 세월따라 오고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속절없거니 그들은 앞에간 수많은 넋들을, 한과 유감을  아무 생각없이 밟고 지나고 그리고 뒤에는 새 발길이 온다.     오직 작은 풀만이 잊지 않고 이 대천세계에 군림하는 춘하추동에 얽히고 맺힌 사연들을 알고있을것이다. 먼먼 그 옛날 어느 지사가 이 풀숲에 쓰러져 땅을 적시였 던 그 선혈이 풀잎에서 맑은 향기를 풍기는것일가? 오직 작은 풀들만이 그 투사의 마지막 체온을 기억할지 모른다. 그래서 풀들은 잊지 않고 있으리라. 별빛도 없는 캄캄한 밤에는 그처럼 처량하게, 불볕이 쏟아지는 한낮에는 푸른 그늘로 감싸주며 그렇듯 비장하게 노래했을것이다. 바로 양광이 박절히 수요되는 때에는 짙은 그늘도 박절하게 수요하는 인간심사이다.     나는 자신이 이 호한한 대천세계에서 작은 풀 한포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공연히 슬퍼진다. 적어도 저기 우뚝솟은 소나무처럼은 살아야 하였는데…생활이 각축장이고 생활이 고통과 비애의 창고이며 생활이 한여름날 서늘한 그늘이였기에 더구나 의기소침해져서 작은 풀에 매달리는 나인가. 그리고 누구에겐가는 생활이 오락장이고 싶을것이다. 즐겁고 즐겁지 아니하는것은 부동한 시간에 부동한 지점에서 말달리기를 하는것과 같다. 그들은 늘 그것들 사이에서 이리뛰고 저리뛰고있다.     평범한 일상속에서도 늘 행복을 느끼는 인생자세가 바로 일종 행복을 만드는 능력이요 몸가짐임을 모르지는 않는다. 멋스러운 서정시는 꽃피는 아침이나 달빛아래 읊어지지만 일상생활마당에는 오직 밥짓는 연기가 피여오르는 산문이 있을뿐이다.     세상이 어떻게 보일가? 취하면 세계가 자기것이 되고 깨여나면 자기가 곧 세계가 되는멋에 고달픔을 잊어가며 사는 우리 인간들이 아닐가? 인생길의 매 굽이는 물이 흘러가면서 만드는 도래굽이지만 그렇게 흔적을 남기고 흘러가버린 물은 자기가 흘러지난 기슭에 별로 미련이 없다.     어떤 위치에 어떤 자세로든 생활의 배경앞에서 울고웃는다는것은 자기나름의 멋이고 생명운동의 표현이다. 생명이 일단 불타오르면 내심의 도화꽃은 이미 활짝 핀때 이고 아무도 그 찬란함을 빼앗아가지 못한다. 생활의 불꽃은 노상 단번에 튕기는것이 아니라 수없이 명멸하면서 인내로 튕기는것이다. 물론 단번에 성냥을 그어 불길을 일으키는것은 아주 바람직한 삶의 일종 예술이다.     그러나 생활속에는 많은 결함들이 있다. 그것을 담담하게 접수하고 대하는것도 역시 가장 적극적인 일종의 생활태도이다. 그러나 금전욕이 팽창처럼 명예욕이 범람 하는 현시대, 사람들은 명함장을 찍으면 빈자리가 없이 무슨 ×××장이요 무슨 ×××원 하고 꽉 박아야 성차하는것 같다. 자기 이름앞에 규정어를 붙이거나 혹은 이름뒤에 설명이 적을수록 더 개운하게 더 자재적으로 쾌락하게 사는것이련만 왜 나는 그냥 내 이름앞에 무슨무슨 규정어가 붙도록 안달복달했던가?     인생을 거의다 살고나서 그 모든게 우습고 유치하게 느껴질 때 더구나 우습고 유치해진다. 즐겁고 슬프고 고통스러웠고 행복했던 지난날의 뉴앙스에 너무 집착하지 말아라. 피흐르던 상처도 세월따라 그 아프던 기억을 상실하기 마련이다. 바람이 불면 바람의 몸짓에 따라 휘청거리고 비가 오면 비속에서 갈한 목을 추기며 이 지상에 존재한다는 그 한가지 리유만이라도 행운이고 삶에서 소중한것이 아니냐?      그러나 진실한 자기 모습으로 세상을 대하는 사람이 몇몇이나 있을가? 그렇다면 균이여, 너는 무슨 두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느냐? 한 얼굴로는 과거를 마주하여 교훈 을 섭취하고 다른 한얼굴로는 미래를 향하여 희망을 바라본다고 대답한다. 그러면 현재는? 가장 의의있는것은 현재인데 마음에 새겨둔적이 있는가? 나는 오직 과거와 미래를 생각하기에도 바쁜데 어느 겨를애 현재를 생각해본단 말인가?      과거는 이미 죽었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내가 유일하게 틀어쥘수 있는것이 현재뿐인데 너의 현재를 보면 너의 과거나 미래를 예측할수 있는데 과거가 무슨 의의가 있는데 집착하는가? 내가 수없이 놓아버린 현재였기에 나의 덧없는 인생이 사람들의 기억속에 곧 잊혀질 한단락의 생면사로 되였고 나중에 나는 이 풀숲속에 자지러진 풀벌레처럼 7월 한때를 즐기던 목숨이 되리라. 세상은 내 마음 끌리는대로 있다. 창턱에 비닐꽃도 진짜로 생각하면 진짜꽃이다.     세상은 보는대로 있다. 누구나 자기가 보는만큼의 폭도로 세상을 안다. 마치 우물안 개구리가 하늘은 우물아구리만큼 큰줄로 알듯이, 세상은 있다고 다 보이는것도 아니 지 않는가? 너무 많은것이 보인다면 대뇌충추는 너무 많은 자극의 바다에 빠져 익사 할수 있다. 그래서 대뇌는 감수의 선택성기능을 가지게 된다. 옛날 늙은이들이 시끌벅적한 세상을 한눈 감고 한눈 뜨고 보라는 말도 이에서 비롯된것이리라.     세상은 자기가 보는것만 보인다. 나는 농토에서 밭갈고 김맬 때, 붉은 찰흙이 보습날에 검질게 달라붙어 애먹던 안굽의 논빼미가 내게는 곧 세상이였고 모아산아래 사리긴 콩밭사래가 끝이 보이지 않는 세상이였으며 사과배철 숨벅차 헝헝거리며 한 광주리 한광주리 메여나르던 그 비탈밭길이 내 인생길이였다.     그러나 후반생에 접어들어 숙망의 첫교단에 올랐을 때 10년 광란의 시대, 문화의 쑥밭에서 소년시절을 키우다보니 구지욕을 잃어버리고 시들해진 아이들의 그 눈이 내가 보는 새 세상이였고 잡초무성한 심령의 골짜기에 지식의 감로수를 대여주고 그 색바랜 눈동자들에 지식의 들창이 활짝 열려있음을 새겨주는것이 나의 전부의 세상이 고 내 삶의 옹근 마당이였다.       시골학교에 옮겨가 교편을 잡고 있을 때 나에겐 사면을 둘러싼 우중충한 산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느 날 저녁, 문뜩 산마루에 둥실 걸린 밝은 달을 보며 신비로운 산의 높이와 아름다움에 감탄하게 되였다. 조금은 유심론적이긴 하지만 세상은 내가 느끼는것만 이 보이고 또 보이는것만 존재하는것이 아니던가? 존재가 나의 인식대상인것이 아니라 내 인식대상이 곧 존재물이 되는것이다.     우리는 너무 많은것을 그냥 모른채 이 세상을 떠나게 된다. 다 보지 못하고 다 느낄수 없는 너무나 넓은 세상이다. 세상을 다 보고 세상을 다 알고 죽는 사람은 없 다.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한 그것들속에 가장 귀중한것이 있을지도 모른다. 또 그냥 무심하게 지나쳐버리는것들도 있다. 눈에 보이는것은 모든 아름다운것들보다 보다 많은 슬픈것들이다.     세상엔 내가 보는것만이 존재하고 또 보는대로 있기에 내가 보고싶은대로 현연 되는 세상이기에 그래서 사는 맛이 있게 된다. 아침에 뜨는 해, 곱게 물든 저녁노을, 밤하늘을 수놓은 별무리, 둥글고 이즈러지는 달, 부는 바람, 흘러가는 구름…늘 그렇게 찬란하게 펼쳐있건만 눈에 비쳐드는것들것들은 지나쳐버린다. 세상엔 터벅터벅 걸어야만 하는 울퉁불퉁한 길만 있는것도 아니고 꽃마차타고 신나게 달릴수 있는 탄탄대로만이 있는것도 아니다.     세상을 보는 눈은 마음을 먹기에 따라 이렇게 저렇게 초점이 변할수 있건만 너무 눈에 거슬리는것만 마음에 담아둔다. 지겨운 장마철 구질거리는 먹장구름이 한없이 밉다가도 그것을 꿰뚫어보는 마음의 눈을 가진다면 저 구름우에는 눈부시고 따스한 태양이 변함없이 웃고있다는것을 믿게 되고 씻은듯 개인날을 바라며 평온한 마음을 다시 찾게 될수 있건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게 인간이다.     그처럼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해석하는만큼의 인생을 산다. 스스로 약자라고 단정하면 정말 약자에 머믈러있을수밖에 없어진다. 스스로 용기가 없다고 생각하면 매사에서 뒤걸음을 치게 된다. 견뎌내고싶지만 견딜수 없다고 생각하면 십상팔구 이기지 못할것이 확정된다. 질거라고 생각하면 진다. 세상을 헤쳐가노라면 성공은 의지에서부터 시작된다는것을 알게 된다. 모든것은 마음에 달렸다. 스스로 남보다 뛰여났다고 생각하면 남을 앞설수 있다. 인생이란 전쟁은 …언제나 더 강하고 더 빠른 사람이이기는것만은 아니다. 스스로 할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인간이란 누구나 각자의 해석한만큼 생을 살아간다. 해석의 폭을 넓히기 위하여 사전적인 정의에 만족하지 말고 그 반대로 직접 들여다 보고 부닥쳐 볼일이다. 복속에 화가 있고 화속에 복이 있었다. 내가 시골에 가게 된것은 처음엔 돌이킬수 없는 화였지만 몇년간 시골체험이 있었기에 아이들 교육은 도시에서 보다 훌륭하게 완성된다는것을 절감하게 되였고 도시학교에 전근할수 있는 천방백계로 기회를 발굴하며 분발하게 되였다. 그때 그렇게 현재에 만족하고 있었더라면 내 아들은 그저 시골에서 송이버섯이나 따서 치부하는 얼간이 농군이 되였을지 모른다.     풍요로움의 뒤에 반드시 빈곤이 있고 빈곤의 뒤면에는 우리가 찾지 못한 풍요가 숨어있다. 나는 몰락가정에서 인생을 시작하다보니 지지리도 못난 가난속에서 동년이 얼룩졌고 청년시절을 거쳐 전반생을 쭈욱 내리 못생긴 새끼오리처럼 동란의 시대에 소외당하고 뒤몰리며 가난한 농부의 생활에 철저히 속속들이 찌들어버렸다. 그것이 오히려 막연하기 그지없으나 내 운명을 바꾸어보고 내 삶을 윤택하게 하려는 끈덕진 욕망을 불태워주었는지 모른다. 그 정신적빈곤이 나를 역반심리를 가지게 하고 이미 온 세상을 끝까지 가야겠다고 마음을 다져먹게 하였고 몇번이나 구접스러운 생명을 뒤산 참나무가지에 걸려던 비겁한 생각을 꿍져버리게 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살아갈수록 내 마음 밭이 자꾸만 척박해지고 메말라간다는것을 절감하게 되였다. 늘 세상을 탓하고 운명을 탓하고 다른 사람들을 곁눈질하였다. 내 마음밭에 아름다운 꽃이 피지 못하는것이 그들때문이라고 생각했기때문이다. 내 마음이 늘 불안한것도 외로움에 모대기게 되는것도 가슴속에 불평불만이 마른 재무지처럼 풀썩 거릴때도 세상을, 다른 사람들을 원망하였다.     그들이 내 마음밭에 잡초를 심어놓고 그들이 나를 불안하게 만들고 나를 버리고 나를 불평에 애끓게 하는것으로 생각했다. 내가 남들처럼 가지지 못하게 된것도 알지 못하는 그 많은 사람들에게 빼앗긴것으로 알았고 내 기쁨도, 희망도 다 남들때문에 시들해지는것으로 생각하고 좌절감을 가지고 실망하게 되는것도 다 남의 탓으로 돌리 게 되였다. 그러나 그게 아니였다.     그 모든것은 내 마음에 세상을, 다른 사람을 포용할 빈자리가 없이 리기만 가득차있고 세상을 관용할줄 아는 아량과 남을 따스하게 품어줄수 있는 사랑이란것이 없었기때문이였다. 더없이 척박해지고 메말라버린  마음밭을 휘딱 갈아엎고 찰찰히 넘치도록 사랑의 감로수를 관개하고 그 모든것의 상징사인 사랑이라는 이름의 씨앗을 한알 고이심어 향기로운 인생의 꽃이 필수만 있다면 장차 인생록에 흐지부지하게 숨김표를 찍지 않을것이였다.     허나 이런 인생의 지혜를 조금 깨닫게 되고보니 이미 인생의 종점에 와있다. 지금 풀밭에 누워 그래도 전에는 나도 피가 설설 끓던 청춘이였다고 헌헌한 마음으로 말할수 있을것인가?     나는 제딴엔 늦깍이나마 문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진정한 문인은 우선 마땅 히 골기가 있어야 하고 불의에 맞설 용기가 있는 사람이 되여야 한다. 그러나 그게 내게 없으니3류문인에서 종지부를 찍게 되였고 사회의 량심인 지식분자가 되기 열번도 더 틀렸다. 기껏해야 “지분자(知分者)”로 남을지 모른다.     세상은 참으로 느끼고 생각하며 살게 되여있지만 자신이 보는만큼의 세상을 살고 해석하는 만큼의 느끼게 될뿐인줄을…                                                                  2007 년 6 월 23 일  
730    보는 가을, 느끼는 가을 댓글:  조회:3142  추천:0  2016-04-06
                                         보는 가을, 느끼는 가을         이 강산 락화류수 흐르는 물에 계절의 물레방아 돌고돌아…한껏 뜨거워진 여름이 뒹굴던 자리에 어느새 선들바람 앞세우고 가을이 들어선다. 불볕만 쏟아내던 하늘이 훌쩍 높아지고 튕기면 쟁그랑소리가 날듯이 여물어버린 가을해가 축복의 황금해살을 쏟아낸다. (아, 황금계절이 알뜰히도 그려가는 절대풍경이여 ! ) 격정많고 다정다감한 시인 들은 감탄성을 터칠만도 하리라. 그러나 진정 가을의 의미를 읽으려면 밭두렁에 쭈크 리고 앉아 마라초 말아물고 타산을 굴리는 농부의 얼굴에서 읽어야 하리니.     봄은 움트는 꿈으로, 여름은 무성함으로, 가을은 풍성한 결실로, 겨울은 그 랭정함으로 일년사계절을 생동하게 다채롭게 장식하고있다. 가을의 미는 성숙이다. 하지만 봄날처럼 수줍지 않고 여름처럼 드러내지도 않고 겨울처럼 내향적이 아니다. 가을의 미는 리지적이다. 그러나 봄날처럼 화사하지 않고 여름처럼 재글대지 않으며 겨울처럼 함축적이 못된다. 이렇듯 봄, 가을, 여름, 겨울은 제나름의 특색을 갖지만 사람들은 취향에 따라 가을을 더 좋아할수도 있다.     옷차림에 신경쓰는 도회지사람들도 계절의 변화에 민감하지만 사계절의 주인공인 농부들은 그 누구보다 가을의 색채와 무게에 왼심을 쓴다. 가을도 어거리풍작을 고대하는 그 마음들을 헤아려 향촌에 먼저 찾아든다. 가을은 구성진 풍년가로만 엮어지는게 아니다. 당신은 가을의 소리를 마음의 귀로 들어본적이 있는가? 가을은 농부들의 구슬땀을 마시며 성숙을 당겨왔고 황금빛도 푸르던 그 시절부터 땀에젖은 정으로 익혀온것이다. 그래서 가을은 역시 땀으로 대화를 한다.     가을은 아픔도 미소로써 영글게 한다. 농부들의 기억마다 즐거운 사연으로 넘치는것은 가을이 그저 풍성해서만이 아니다. 심은대로 거두겠다는 그 마음들이 겨우내 비였던 땅의 가슴을 끈질긴 사랑으로 채워주었기때문이다. 그러나《모내길세, 모내길 세 성수나는 모내길세...》 라는 노래는 분명 등허리가 휘도록 모내기를 해보지 못한 사람이 성수날 리유가 없는 일을 성수내여 합시사하고 책상앞에서 지어낸 선동이다.     한껏 농익은 산향의 시월은 말그대로 한폭의 수채화이다. 봉마다 골짜기마다 가을빛으로 흥건하게 물들어가면 잎이 작고 얇은 나무들로부터 색갈이를 하는듯 싶다가도 잎이 크고 두꺼운 나무들까지 뒤질세라 가을로 치장한다. 분홍색, 주홍색, 빨강, 노랑나무에 따라 그 색갈은 가지가지로 물들어 산봉을 통채로 불태운다.     겉으로 보는 가을은 울긋불긋한 색채로 말하는듯싶다. 땀동이 쏟으며 살뜰히도 익혀온것이기에 노랗게 익은 가을인듯싶다. 봄날의 파아란 입김으로, 여름의 뜨거운 입김으로 익혔기에 가을은 색채속에 향기로운 냄새를 풍긴다. 아지랑이 꿈길처럼 마실오는 산향의 정취야 누군들 마다하랴만 농부의 마음에는 분주히 가을이 심어지고 가을이 가꾸어지기에 봄에 흥철거릴 흥심이 없다.     가을은 단풍구경에 신명난이들의 눈에 즐거움만을 선물하는게 아니다. 어슬렁 팔월이면 호미도 헛간벽에 걸리지만 풍성한 하늘의 호흡속에 계절의 걸음은 빨라진다. 그만큼 삶에 쫓기는 생명들에게는 가을이 그냥 분주한 계절이다.     9월에 접어들면 가을은 논벌에서부터 차차 농익어가다가 미구에 재등에 오른다. 알알이 통통 배부른 콩꼬투리에 금빛을 올려주고 과원의 주렁진 사과배에도 단즙을 불어넣고…그래서 향촌의 가을은 둥글어지는 임신부의 몸매처럼 탐탁하다.     가을의 의미를 진정 읽을줄아는 사람들은 향촌에 있다. 분주한 꿀벌이 매미의 한가함을 모르듯이, 그들은 이 가을에 땀을 흘릴 필요성과 드바쁜 일손의 까닭은 알아도 단풍고운 계절의 풍경에 찬탄할 여유가 없다. 한가한 사람들은 할일이 없어 산에 오르지만 산에서 잔뼈굳은 산사람들은 일이 없이는 가을산에 오르지 않는다. 시골사람들에게는 산은 풍경으로가 아니라 실용으로 존재할뿐이기때문이다. 소일거리를 찾는 사람들이 가을서정이요 명상이요 하면서 설레발을 놓을뿐이다.     가을은 보이는것만큼 풍성함으로만 안겨질것이다. 저물어가는 이 한계절에 진정 자랑으로 무거운것은 알찬 열매뿐이다. 어느 골짜기에선 가래토시 익어터지는 소리에 깜짞 놀란 까투리가 저장없는 처지에 시린 한숨을 토하지만 다람쥐들은 쓰디쓰고 보잘것없는 도토리의 꿈을 열심히 해몽한다.      매미의 찢어진 울음소리와 풀벌레의 시들해진 울음도 사라지면 한기가 흐르는 청계천에 뻐꾸기가 봄내 흘려버린 속절없음이 락엽에 실려내린다…기러기는 남쪽으로 날아가고 개구리도 모래언덕에 동면을 파건만 잠자리만이 그 가냘픈 날개짓으로 물러가는 영화의 계절을 막아보려고 파닥거린다. 그것들은 만리길 나서야만 하는 철새의 처량한 울음을 읽을줄 모른다.     가을은 미구에 골골마다에 집집마다에 서리지의 명함장을 띄운다. 가을은 삶의 조락을 락엽으로 알린다. 성숙은 왜 조락을 달고 와야하는가? 산꽃들이 씨앗을 잉태 한것은 정녕 태양의 키스자국인가?  락조는 새 아침의 기다림에 얼굴이 붉었지만 가을에는 왜 애수에 젖은 한숨을 날려야 하는가?     고독도 황드는 가을, 만물의 조락에 눈물겨운데 멋내며 찬미시를 읊조릴 사람은 누구일가? 땀에 절어드는 성숙의 계절, 여름찬미시는 왜 드믈가? 죽정이도 여문체 고개를 나불대는 가을의 이률배반을 당신은 어떻게 절감하고있는가? 생각많은 가을과 아롱다롱한 가을을 맞고 보내는 우리의 마음을 어떻게 읊어야 진실다울것이냐?                                                           가벼운 미소로                                                    우리들을 만나                                                           되알지게 뇌까리는 소리                                                               해빛이 차분한 음성으로 속삭이는 말                                             락엽은 색채로가 아니라                                                   그 마음으로 우리에게 보여준다.                                                            락엽은 락과하는 지혜로                                                                    우리에게 긴 철학을 알려준다…       락엽지는 가을의 숲속에서 한숨처럼 새여나오는 철리시를 읋어보면 가을의 애수가 달래질가? 가을의 진실한 의미는 농토에서 구슬땀 흘린 사람의 가슴에 씌여진다. 가을중의 시주바가지 같다는 덕담같은 속담에 흐믓해서 살기에는 세상이 너무나 얼룩덜룩하고 해묵은 풍월로 고달픈 마음들을 보듬기에는 향촌길이 아직도 울퉁불퉁하다.     농토에 묻혀 맞고 보낸 15여성상, 나는 끝끝내 가을의 서정을 느껴보지 못하였다. 누렇게 무르익어 흐드러진 풍년벌을 바라보면 배가 부른듯 싶다가도 량식분배의 산수식을 풀어보면 금새 시무룩해지고 남는 정서는 바삐 돌아쳐야 한다는 고달픔이다. 허리아프게 벼가을하고 묶억질이 끝나면 꼭두새벽 안개속에서 콩걷이하고 다시 싣걱질하고 탈곡하고 밤을 새워 공량수레 몰고다니고…      농사일 끝나 눈바람 불어치는 겨울이 오면 다시 새해의 농사차비로 봄을 앞당 기고 다시 드바쁜 농망기가 돌아온다. 다람쥐 채바퀴돌듯 한 농부의 무한(无闲)한 일생, 봄의 서정이 어데서 새여나오며 풍요로움에 감탄이 어데서 절로 나올수 있었던가? 내가 사상이 락후해서인지 모르겠다. 원래 산향의 봄과 가을은 무한히 좋았건만 즐김이란 생활의 여유, 마음의 여유에서 운운할수 있는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가을이란 보는 가을이 따로 있고 체험하는 가을이 따로 있고 느끼는 가을이 따로 있는법이다. 해마다 산촌에 가을은 풍성함을 안고왔지만 나의 메마른 마음밭에는 곱게 물드는 모아산의 단풍이 생략되고 조락과 서글픔만 남았더이다. 오늘 가을이 어쩌구하는 여유로움도 소풍삼아 나선 강둑에서의 여유로움이거늘…                         2007 년 9 월 21 일        
729    (련시조1-10수) 인생이란 그러려니 하고 댓글:  조회:4186  추천:0  2016-04-03
 (련시조)                     인생이란 그러려니 하고                                                                1.  세상엔 제마음에 꼭 드는이 없거니와                                                               나 또한 뉘마음에 딱 맞을수 없지 않냐                                                                        하다면 그러려니하고 둥글둥글 살아가쟈                                                    2.  내귀에 들리는 말 마디마디 감언이랴                                                               내 말도 앗불싸 남의 심통 뒤집거늘                                                                       서로가 피장파장에 그러려니 생각하쟈                                                       3.  세상사 사사건건 내 마음을 맞춰줄가                                                               호사에 多魔이요 화복 또한 조석이니                                                                       워낙에 그러려니하고 두루두루 몽그리세                                                    4.  인심이 난측이요 정 또한 류수로다                                                               同苦의 옛친구도 등돌릴수 있능기라                                                                       들듯이 떨어지는 정 그러려니 냅두어라.                                                    5.  안되는 일이라도 락심인즉 금물이여                                                                절망도 희망되여 잘 될때도 있지 않냐                                                                        세상사 그러려니 하고 그리그리 헤쳐가세                                                      6.  더불어 살아가야 사는맛이 난다지만                                                                가는이 막지말고 오는이 사절마라                                                                        인심은 쓸탓이여니 너좋으면 나도 좋지                                                     7.  남에게 상처입긴 병가상사 아니던가                                                                 아픔만 주는 세상 다행히도 없으매로                                                                         새옹의 지마인생을 그럭저럭 견뎌보세                                                     8.  비난에 섭섭타고 얼핏 자주 화내지마                                                                부족해도 치켜주는 지기들도 있으매로                                                                        내먼저 남 칭찬하며 두루두루 좋도록이                                                     9.  정든님 먼저갔다 너무 그리 슬퍼마소                                                                인명은 재천이요 생로병사 순리거늘                                                                        인생이 그러려니 하고 명복이나 빌수밖에                                                    10.  비오는 궂은날도 개인듯이 살아가세                                                                  해웃는 밝은 날이 더많은 하늘이요                                                                          깍쟁이 겨울해라도 볕이나마 주는것을
728    (단편소설) 마래곡의 비애 댓글:  조회:5198  추천:0  2016-04-02
                                              마래곡의 비애                                                    최 균 선                               사람은 살다보면 세월따라 많은 사연들이 잊혀지고 제가 한동안 살았던 고장도 기억속에서 차차 멀어지는 법이건만 인생수업을 톡톡이 받으며 살았던 고장때문이여서인지 내게는 산좋고 물맑은 마래곡의 산천과 이왕지사가 종시 잊혀지지 않는다. 더구나 계절의 섬세한 붓끝아래 그려지던 시골의 풍경화가 마냥 동화처럼 떠오른다.     마래곡은 차길에서 백칠십리, 아흔아홉굽이 늘찬 오랑캐령을 넘는 두만강변의 산간벽지다. 옛그날, 쪽박차고 강을 건넌 흰옷입은 서러운 그림자들이 지쳐서 쓰러지던 한많은 고개의 길로 지금은 뻐스며 자동차들이 드문히 넘나들며 문명사회의 냄새가 점점 짙게 실려들지만 아무튼 산골도 심심산골이다.     마래곡은 향이라지만 40여호의 합전촌, 공사소재지인 늪득촌, 60여 호되는 하마래촌, 산비탈에 자리잡은 50여호의 조동촌 네개 자연촌으로 이루어진 연변서도 제일 작은 명동(후에는 부유향)공사이다. 백호의 늪득촌이 공사소재지이다. 그러나 참새는 작아도 오장륙부가 구전하다고 조그마한 공사에 문화소, 농기관리잠, 계획생 육위원회, 과학기술보급소 량식관리소 등 없는 기구가 없다. 그리고 시내나들이를 자주 못하는 시골의 젊은녀인들이 있는껏 차려입고 모여드는 곳인즉 공소사여서 소재지로서의 냄새를 그럴듯이 풍기고있다.     굶어죽어도 자식공부는시킨다는 배달민족의 전통은 이 골령에도 뿌리내려 소학교만이 아니라 산중턱을 까고 절당같은 중학교까지 지어놓아 조그마한 공사소재지에 이체를 돋군다. 만약 강변쪽에 자리잡은 소학교운동장에 오구작작 조무래기들이 뛰노는 모습이 없고 스믈네층으로 된 중학교의 돌층계를 덕지큰 아이들이 오르내리지 않는다면 이 마래곡은 한적하고 스산하기가 말이 아닐것이다.     도시에서는 얼굴을 갖고 산다지만 시골에서는 인심으로 산다. 골사람들은 누구나 다 조그마한 소망을 안고 산다. 도시에는 극적인 맛이 있고 시골에는 그런게 없지만 서정만은 짙게 물들어있다. 도시처럼 시끌벅적한 유혹이 없다보니 시골에서는 누구나 다 착해지고 후덕을 먹고 살게 된다. 더구나 청일색으로 조선족들이 모여사는 이 조그마한 시골향은 인심도 자별나게 풋풋하였다.                            내가 이 마래곡에 간것은 20세기 80년대의 첫해, 문화혁명의 몹쓸 흑풍이 갓지 나가고 십년나마 들볶이던 사람들이 조금 안정을 찾아 천륜지락을 펴기시작한 개혁개방의 전야였다. 팔월의 해가 벼이삭을 어루더듬고 있는 어느날, 두만강기슭을 따라 헐씨근거리며 달리던 뻐스가 마래곡(부유향)에 도작착하자 나는 구식드렁크를 들고 굴러떨어지듯 차문에서 튕겨나갔다. 하루 한번 다니는 뻐스건만 마침 송이버섯철이여선지 차객이 달랑 나하나뿐이였다.     산설고 물설은 고장이지만 산기슭 둔덕위에 질서있게 지은 기와집들이 오붓하게 모여앉은 벽촌의 풍경에 취해버려서 곧추 마을로 올라갈 생각도 잊고 떼목이 떠내리는 두만강가에 퍼더버리고 앉아 담배를 피워물었다. 그 몹쓸 상표때문에 긴긴 십칠년을 모아산아래에서 밭고랑타고 세계를 내다보다가 마침내 밝은 정책이 시달되여서 숙망의 교단에 올랐고 일년만에 국가정식교원이 되여 이 마래곡에 전근되였다. 늦게 핀 나의 꿈이 여기 시골학교에서 이어지게 되였지만 서운한 생각이 별로 없다.     어쩌면 이 심심산촌이 리상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름의 청산과 맑은 골바람에 먼지끼였던 페부를 닦아내고 종을 쳐서 공부철을 놓쳐버린 시골아이들을 불러들여 글을 가르치고 밤이면 유난히 많고 빛나는 별들을 바라보며 산새들이 우는 사연에 귀기울여보는 랑만이 있어 좋을듯싶고 인간의 마음이 진실로 얽히는 보다 원시적인것이 또 하나의 사는 멋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시골에는 한여름 끝자락의 긴긴 해도 지고나면 황혼이 빨리도 기여든다. 야색이 완연해지면 하늘가에 별무리들이 쏟아져내릴듯 흐르고 그런 밤하늘이 더없이 정취를 안겨줄것이다. 석양의 잔광에 물들어있는 두만강건너 변강마을을 얼없이 바라보며 인간의 끓는 정열과 욕망이란 너무도 사소한 생명의 빛에 지나지 않는다는 엉뚱한 생각 이 떠올랐다. 인생의 그 모든 고뇌와 불행은 자기 적성과 능력에 맞는 직업을 찾지 못하고 싫은 일을 하면서 생명을 소모하는데서 비롯되지 않는가?     도시에는 인간들의 서툰 인생만화에 진저리쳐질수밖에 없지만 여기엔 대자연의 걸작을 마음놓고 볼수 있을것이다. 그 소란스러웠던 청춘시절을 아심아심 망각속에 처넣으며 호젓하게 저무는 학교마당에 앉아서 상념을 보듬는것도 일종 향수일수도 있으리라. 나는 그렇게 교원절반, 농민절반의 시골학교 교원이 되였고 세월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르고 소처럼 살게 되였다.     계절은 도르래기돌듯 그렇게 잘만 돌아갔다. 시골에는 봄이 노량으로 찾아들건만 한왕산 백바위굽에 뿌리깊은 진달래는 봄이 깃들기전에 저혼자 련정에 불타는듯 싶다가도 속절없는 설음속에 스러져 락화의 한을 뿌리에 묻어버린다. 때에 여기저기 제멋대로 자란 개살구나무들이 화사한 웃음을 피워놓고 스쳐가는 바람을 휘젓는다.     겨우내 꽁꽁 얼었던 몸을 풀고 주절이주절이 옛이야기를 흘리는 두만강기슭의 버드나무에 통통 살이 오른 버들개지들이 다 뛰여내리면 늙은수양버들도 휘휘 긴 머리를 풀고 고독에 흐느적이고 개나리, 함박꽃 싱그러운 대동골 깊은 숲에 철늦은 뻐꾸기울음소리 애를 끓여준다. 변덕많은 4월을 밀어내고 흐믈거리던 5월도 언뜻 스쳐지나 6월의 진초록속에 슬며시 숨어버린다.     어느새 여름이 지글거린다. 매미가 극성스레 울어댈 때 마을에 개구쟁이들의 발가숭이 몸뚱아리가 두만강가에서 고동색으로 번들거리면 마을앞의 다락논에는 벼이 삭들이 노란물감을 들이기에 서두른다. 뒤미처 더기의 조밭에머리에 헌삿갓을 쓴 허수아비가 헐렁한 팔소매를 펄럭거리며 참새떼의 성화를 말리느라 역사질이다.     가을은 쫓기듯 물러가고 대동골에 새벽어둠을 쫓으며 열을 내던 송이버섯캐기가 끝나고나면 하늘은 건뜻 들리기 시작하고 산을 넘는 선들바람이 아침저녁으로 골골이 단풍을 불태운다. 그랬다. 계절이 멋대로 오고갈뿐 늙지않는 청산은 예이제 말이 없 다. 그러나 세월이 차차 흐르면서 도목나무에 이밥먹던 시골의 멋도 슴슴해지고 번거로운 세상을 멀리하고 청산에 묻혀 살리라던 랑만도 색바래여갔다…     어느 여름밤, 대동골에 고기발을 놓고 골령을 새여나가느냐? 그냥 산골귀신이 되 느냐를 두고 속을 끓여본적이 있다. 한시간남아 낑낑거리며 고기발을 놓고나니 달빛 이 골어귀를 꽉 덮어버렸다. 마라초한대 피워물고 활활 타는 우등불길을 바라보노라니 모기떼에 생각마저 뜯기우면서도 정감만은 연기처럼 타래쳐 오른다.     교교한 달빛에 청산은 말이 없는데 벽계수는 웨 그리 주절거리는지…물흐르는 소리에 황진이의 시조가락도 떠내린다. 청산은 내뜻이요 록수는 님의정/ 록수흘러 간들 청산이야 변할소냐/ 록수도 청산못잊어 울어네여 가는고? 가지말라고 막아선 청바위 옆구리를 내지르며 멈춤없이 내달리는 록수는 오로지 창파만리가 그리워 춤추는것일가? 은은한 달빛의 포옹마저 없다면 청산도 가버리고만 벽계수가 마음속에 응어리로 남아 고독을 울며 몸부림치리라,     활활 타오르는 우등불에 어둠이 조금씩 밀려갔다가 다시 다가오는데 벽계수도 한번쯤 되돌아 봄직도 하련만 가노라 휘젓는 무정함이 차디차다. 벽계수는 좁은 골령에 얽매인 몸이 아니라고 하지만 청산의 청고함이 없다면 벽계수의 맑음도 없을것이요 청산에 반석같은 뜻이 없다면 님의 정같은 록수도 미련이 없으리라.     청산이 하나의 바이올린이라면 록수는 가슴을 후벼내는 기묘한 음을 울릴수 없고 청산이 피아노라면 가노라 춤추는 록수는 아름다운 건반을 두드려댈수 없으리니 청산과 록수는 잘도 어울려서 적막한 무주공산에 청산별곡을 연주하는것이 아니랴, 아하! 조화로운 대자연의 교향악은 여기 명동산골 계곡에서 시작되는것이로다.     달이 휘영청 밝으니 별들도 달그림자속에서 수집음 타는지 마냥 눈을 깜박인다. 별무리의 옹위가 없다면 달은 혼자라도 저렇게 도고할가? 반딧불 꾀여드는 숲속에서 부엉이가 시골의 고독을 운다. 슬픈 그 울음속에 울어서 피가 터진 진두강 가람가의 누나의 한이 얽혀서 청산은 이 밤도 그렇게 숙연해진것일가?     밤이 깊도록 고즈넉이 지켜앉았건만 어서 떠내려와서 걸리라는 산천어는 어느 바위짬에서 새우잠이 들었는지 월색만 은은히 고기발에 넘치는데 어이 감개무량한지  나도 모른다. 만년을 굳어서 침묵을 쌓고있는 청산만큼 록수의 유유함에 정이 실려 내려서인가? 님의 정이야 흐르거나 말거나 어디서 떠왔는지 외로운 밤구름 한송이 격정없이 명월을 희롱하며 떠날줄 모르는 그늘진 달밤이 마음을 한결 처량케 한다.     자정이 되도록 잠들줄 모르는 저 부엉이는 누구를 기다려 두눈을 밝히고 있을가? 빈마음에 졸음만 가득담아 흘리며 산곡간을 걷는 시골선비의 발걸음에 달빛만 휘감기는데 골바람이 밤끄트러기를 내쫓느라 휘휘…새벽휘파람을 나무가지에 걸고있다.   거듭날수 없는 청산아래 삶도 시들해졌건만 심야의 시골서정은 생생하기만 하다. 이 새벽 한많은 두만강의 목멘물소리를 귀전에 걸고 이슬젖은 발길에 하염없는 생각을 즈려밟는다는 자체가 진정 시골의 운치있는 서정임에는 틀림없다.      나는 왜 이 마래곡에 와야 했던가? 간판은 부유향중학이라 하지만 전교학생이 통털어 56명이고 내가 맡은 반에 학생은 달랑 열셋이다. 그동안 버덕에서는 느끼지 못한 시골의 서정과 인심의 풋풋함을 만끽하면서 푸른 꿈이 푸들치는 시골의 가슴들에 래일의 삶을 준비시킨다는 의로움과 랑만도 역시 색바래기 시작함을 부끄럽게 느낀다. 분명 비둘기패라는 아이들의 푸념은 면하지 못할것같다.     자기가 하는 일에서 보람을 캐는 사람은 이 시골에서도 행복한것이리라. 그런데 나는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소를 살찌우려면 골로 들어가고 자식을 사람을 만들려면 버덕으로 나가라던가? 왜지밭으로 나가기 시작한 아들놈의 장래가 걱정되여 리기심이 머리를 들기시작한것이다. 마음이 떳떳하지 못하면 목소리도 맑지 못하며 마음에 꺼림직한게 있으면 눈동자가 맑지 못하며 다른 눈길을 감히 마주하지 못한다. 나는 자기를 숨기지만 아이들 앞에서 목소리가 흐리지 않았으며 눈길이 당당한가? 자신을 이기는 자가 가장 뛰여난 승리자라는데 나는 분명 자신에게 지고있다.     값진 인생이란 무어냐? 반생을 허위허위 걸어온 자신을 돌이켜보면 모든것이 허무하다. 무엇을 찾았고 무엇을 잃어버렸던가? 왜 그렇게 익숙한것같은 세상에서 늘 낯선감을 짓씹어야 했는가? 이 심심산촌에 들어와 귀와 눈을 막으면 시끌벅적한 세상 을 도피할수 있을가? 무엇을 도피할수 있단말인가? 망연자실함속에서 바라보면 모든 것이 다 그것같고 모든것이 그것같지 않기도 한데…     물욕에 매달려 살면서도 자신의 마음도 가꾸는 삶은 더없이 바람직하지만 자기의 마음을 잘 가꾼다는것은 그만큼 어려운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마음만 먹는다면 바른 마음을 지니고 살아갈수는 있다. 사람들은 출세하여 명예와 지위를 다가지고 사는것 만이 행복인줄 알고 “벼슬도 싫다만은 명예도 싫어” 홀가분한 마음으로 사는 무명인 의 즐거움은 알지 못한다.     탐욕에 의지도 물렁물렁해지고 지혜가 녹쓸며 인자하던 마음도 잔악해지고 깨끗하던 마음도 시궁창이 된다. 그러나 탐욕에 매달리지 않고 사는것이 세속에 얽매이지  않는 일종 삶의 방식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내내 마음이 어두운 사람이다. 산다는 즐거움이 먼곳에 있는것은 아니다. 성실하게 사는것이 바로 행복한 삶이다. 하지만 성실하게 산다는게 또 얼마나 어려운가     세상에 불성실한 사람이 많은데도 남을 믿는것은 바로 자기가 성실하기때문이다. 세상에 성실한 사람이 많은데도 남을 의심하는것은 바로 자기가 성실하지 못하기때문이다. 선악의 주인은 마음이다. 모든 등불가운데는 진실의 등불이 제일이며 모든 마음병을 치료하는 약중에는 진실한 말이 제일이다.     사람으로서 진실성이 없다면 허수아비이다. 하는 일마다 헛수고를 하게 될것이다. 또 세상을 살아가는데 원활한 인간관계를 맺지 못하면 세워놓은 장승과 같아서 가는 곳마다 충돌하게 될것이다. 그리고 무위도식은 마음을 검게 하기 쉽다. 허황한 욕망에 얽매이지 말고 하루를 살아도 성실하게 살아가라. 장래의 희망이나 리상도 요긴하 지만 성실하게 사는것이 더욱 중요한 일이다.     나는 자신에게 설교한다. 자신을 억제하고 항상 절제하는 사람이 되라. 백년도 안되는 인생에 세월은 덧없이 빠르기만 하다. 나는 얼마나 많은 어제를 살았던가? 이제 얼마나 많은 래일이 남았는가? 묻고 해답해도 결국 오늘이란 현실 속에서 살아 가고 있을뿐이다. 삶의 과정은 결국 무언가를 구하는 과정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뜻은 참된 자기를 찾는데서 열린다. 자기를 찾는다는것은 뜻을 굽히지 말라는것이지 잔뜩 높게만 걸라는것은 아니다.     나는 자기 허물은 모르고 남만 탓하고있으니 우리안에 돼지같지 아니하며 제입을 잘 가꾸는것은 잊고 석마를 돌리는 나귀를 웃는격이 아닌가? 그렇게 마음이 오락가락 하다가 마침내 5년세월을 몸담그었던 부유중학을 떠나고야 말았다… …그동안 도문5중, 도문시교원연수학교를 거쳐서 연변사범학교에 오기까지 13년 세월이 흘렀지만 마래곡을 잊은적이 없었다. 그래서 기회만 있으면 찾아보려 하였다.     1996년도5월, 두번째 마래곡행차는 룡정시북신소학교의 10여명 글짓기애호가들에게 시골체험을 시키기 위해서였다. 산은 옛산이요 두만강도 그 두만강인데 마래 곡의 변화에는 내심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삼합향과 합병하다보니 호기롭던 향정부 의2층건물도 텅비고 내가 4년을 임대맡아 경영하던 공소부식당, 려관도 문에 널 판지들이 붙어있고 북적이던 공소사앞마당도 한산하였다. 그동안 산기슭에 덩실하게 올라앉아 시골에 문화향기를 풍기던 부유중학은 삼합중학교에 합병되고 얼마남지 않은 소학교꼬맹이들이 높다란 돌층계를 가담가담 오르내리고 있었다.     꽃피는 5월, 인간세상이야 흥망성쇠에 지쳐있든 시골의 봄은 예이제 흥그럽기만 하다. 산기슭에 옹기종기 모여앉은 마을의 빈집도, 아직 시골살림을 걷어내지 않은 집들도 오야꽃, 복숭아꽃, 살구꽃 만발한 그속에서도 한산함을 감추고있다. 도시엔 얼굴이 있지만 시골엔 서정이 짙어서 좋다고 생각했던 나자신도 거짓말쟁이가 되였다. 멋대로 흘린 랑만은 묵은 시줄속에 남아있을뿐 골령에서 사는 사람들에게는 격세지감 과 소외와 적막과 황페와 괴로움만이 진짜여서 울며겨자먹기로 살아가리라.    체육교원이던 최선생은 향교육보도원도 그만두고 그냥 사무한신 월급쟁이로 마래곡에 남아있어서 주숙을 걱정하지 않을수 있었다. 집은 옛날 변방파출소 숙사자리 였다. 저녁을 치르고 마당에 나앉아 옛날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애젊던 최선생도 장년이 되여 있었고 손은 농민들의 손보다 더 투박해졌다.     ㅡ 이 큰집을 혼자 차지하고 사니 괜찮소그려     연길시내에서 산다지만 그냥 집고생을 하는 나로서는 너렁청한 집이면 무작정 부러워했다.    ㅡ 글쎄요, 좋은지 어쩐지…변방파출소가 저아래 소학교를 차지하고 내려가다보니 이 집이 비여있길래 들었습니다만 이 집에서 살고싶은 마음이 싹 없어졌습니다.    ㅡ 왜서? 이런 좋은 집을 두고…    ㅡ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습니다. 번지기도 싫지만…아래쪽 절반은 원래 마선생이 들어살던 집이였는데 작년 여름에 살인사건이 난후 우리 집사람이 딱 질색해 합니다.    ㅡ 아니? 살인사건이 나다니요?    ㅡ 최선생님도 마선생을 잘알지요?    ㅡ 그래 알구말구요, 내가 여기를 떠날 때 대신 사람을 찾아놓고 가라는 바람에 고중을 갓졸업하고 집에서 빈둥거리는 그를 민반교원으로 추천하지 않았소?    ㅡ 그랬었지요, 그런데 그하고 이 마을에 다른 청년이 강건너마을 사람과 금장사 를 하였는데 작년 여름 어느날 밤, 금을 가지고 건너온 그 사람을 죽이고 손잡이 뜨락또르에 싣어다가 두만강여울목에 처넣었답니다. 밤중에 뜨락또르소리가 나길래 이상하다 하면서도 옆집에서 살인만행이 생길줄은 꿈에도 생각못했습니다.    ㅡ 그래 어떻게 되였소?    ㅡ놈들 생각에는 시체가 저쪽 기슭에 떠가려니 했겠지요. 그런데 우리쪽에 떠내려 온것을 방목군이 발견했지요. 혐의범인 그자들을 붙잡으려던 날, 마씨는 버섯캐려 산에갔다 내려오는것을 입빠른 한 아낙네가 귀뜸해서 그길로 내뺀것이 지금 행방불 명이구요 다른 한놈은 납짝 체포되였는데 판결이 났는지 어쩐지 모름니다.    ㅡ 허허 참, 법없이 살수 있을 어진 사람들이였는데…인심이란게 이렇게 각박해질수 있단 말인가? 정말, 믿어지지 않네그려.    ㅡ 글쎄말입니다. 그 새끼도 마음은 어지였는데…차차 돈맛을 들이더니 학교에 안착하지 않고 그냥 겉둥치기 한다했지만 일이 생기기전에는 그렇게 극악해질줄은 몰랐습니다. 들을라니 량심이 없이 강을 건너온 녀자들도 몇번 팔아먹었다더군요.    ㅡ 에이, 인심한번 더럽게도 변했구려, 돈이란게 인성도 비틀어버리긴해도…    ㅡ지금 마을인심도 황황합니다, 인제 뭐 볼게 있어야 이 산골서 살지요? 후유ㅡ    세월이 흘러도 그냥 아름다운 추억속에 새겨져있던 마래곡에 드리운 음영으로 하여 나는 기분이 많이도 찜찜해졌다. 애들을 데리고 한왕산에도 오르고 시골얘기랑 해주면서 며칠 묵으려했는데 다시 생각해봐야 했다. 애들이 알면 기겁초풍할 흉집에서 빨리 떠나야 하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이튿날 이른 아침, 일찍 일어나 마을앞 큰길을 바장이며 정들었던 시골마을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때에 마침 낯선 중년사나이가 소를 몰고나왔다. 아마도 아침 이슬풀을 뜯기려고 나온것같았다. 산골이 쩌렁쩌렁 울리게 영각하는 소가 어찌나 호 함졌던지 저도 모르게 눈길이 박혔다. 원래 반평생 소와 씨름하던 농부였고 부유향에 서 일등둥글이도 사양한 기억이 생생한지라 소라면 그저 스쳐보지 않는 나였다.     그래서 짐짓《참, 소를 잘 키웠습니다그려》하고 감탄에 칭찬을 실었더니 소의 주인은 어리벙벙해서 나를 쳐다보기만 하다가 쓴외보듯 하고는 소궁둥이를 철썩치며 지나쳐버렸다. 내가 무안한김에 게두덜거리는데 마침 담배피우려 나온 최선생이 다가 와서 벌쭉 웃으며 말했다.        ㅡ 저사람이 한족입니다. 조선말 하니 알아들을수 있겠습니까?》     ㅡ 뭐라구요? 아니, 원래 청일색으로 조선족들만 살던 마을이였는데 언제 한족 들이 이사왔단 말이오?     ㅡ이사온것이 아니라 최선생님도 잘 아는 ×××네 “머슴”이지요. 과수원도 도맡고 논밭도 도맡아 대신 농사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집이 한둘이 아닙니다.     ㅡ그 사람은 머슴부리며 뭘하고 살게?     ㅡ한국서 돈을 꽤 벌었다고 연길서 노래방인지 커피숍인지 경영한다던데 자세한 내막을 잘 모르겠습니다. 집과 밭을 다 저사람에게 맡기고 자주 오지 않고요… 나는 더 묻지 않았다. 묻지 않아도 시골의 변천이 어느 정도로 심각한가를 짐작 하고도 남았다…곳곳에 흘러가는 조선족농촌마을. 이 산골이라고 례외일가… …몇년후, 부유중학교에 있었던 동업자들이 오래간만에 명동에서 기념모임을 가지게 되였다. 뻐스에서 내리자 나의 눈길이 찾은 곳은 버릇처럼 산중턱에 덩실하게 앉았던 학교였다. 그런데 이럴줄이야, 시골의 유일한 문화상징물은 온데간데 없었다. 나는 단걸음에 학교의 빈터로 치달아올랐다. 갓허물어갔는지 잡초는 별로 무성하지 않았다. 쓸쓸한 달밤은 아니여도 저도모르게 곡조가 틀리는 노래가락이 새여나왔다.     황성옛터에 밤이되니 월색만 고요해/ 폐허에 서린 회포를 말하여 주노라/ 아 가엾다 이내 몸은 그무엇 찾으려고/ 끝없는 꿈의 거리를 헤메어 왔노라 /성은 허물 어져 빈터인데 방초만 푸르러…옛가락이 아무리 처절하고 보는 이들의 마음이 아무리 아픈들 시대의 조류에 흘러간 시골중학교의 옛모습을 어찌 찾을수 있으랴,     점심을 먹으며 나는 또 최선생에게 몇년전에 내가 보았던 그 황둥글이의 임자에 대한 후일담을 캐물었다. 스토리는 간략하고 결과만 말한다면 그때 그“머슴”이 마침 내는 이 마을에 뿌리박고 꽤 오목하게 살고있다고 하였다. 원래의 주인은? 내가 붓쟁이의 통병인 궁금증에 의문의 갈구리를 연신 걸었더니 생각있으면 직접 ×××를 만나서 소설감이나 얻으라 하였다.     …저녁을 먹고 나는 슬며시 산촌변혁의 주인공이 될수 있을 ×××를 찾아나섰다. 최선생이 가리켜준 헌집을 찾아가니 삽작문은 열려있는데 주인은 없었다. 누군가가 저 서산기슭 소나무아래서 담배를 피우고 있더라고 알려주어서 허위허위 찾아올라가니 정말 기억의 쪽문가에 낮익은 내이야기의 주인공이 눈에 안겨왔다.     내가 옛고장의 산천구경을 나왔다가 우연히 만난듯 알은체하고 담배를 권하며 빙빙 에돌아 이왕지사로 이끌어갔더니 그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사람들은 원래 그리 친근하지 않는 사이에는 자기의 치부를 드러내기 꺼려하는법이다. 하지만 구정 이 신정이라 드디어 곡절많은 사연에 자기의 속심까지 조금씩 털어놓았다…     …마을사람들 앞에서는 잠시적인 귀향이라고 어물어물해 넘기지만 돌아앉아서는 눈물을 삼키며 한탄할수밖에 없는 자신의 여생이 지겹다고했다. 그는 후회하고있었다. 나는 시대의 락오자인가? 아니면 비참한 실패자인가? 하고 부르짖을때마다 그저 주먹 이 쥐여진다. 뜻대로 되여지는 인생이 아닌줄 왜 모르랴만 덕대돈을 버는자도 따로 있는것이다. 아니면 제땅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운명의 낭떠러지는 출국의 길에서 시작되였으니 비참할수밖에 더 있으랴, 시대는 자유경쟁의 살기를 띄고 저만치 훌쩍 훌쩍 뛰여간다. 아픔이 응어리진 가슴속에서 허무, 허무만이 나뒹군다.     당당한 도시민이 되여 떵떵거리며 살줄알았더니 이젠 꿩구워먹은 자리가 되여버린 삶의 터전이요 쪽지떨어진 조롱박신세가 되였으니 앉으나서나 살아갈 근심만 작두질하고있었다. 요모양 요꼴이 될줄 알았더면 차라리 한국돈벌이를 마치고 그길로 귀향이나 했더면 할버지의 피와 아버지의 땀에 절은 가원을 잃지나 않았을것을 이젠 정말 한지에 방아를 걸게 되였고 후회막급도 궁지에 이른셈이다…자칫 도로 그 한족 의 “머슴군”이 되지 않는다고 장담할수도 없는 그의 처지였다.     그는 날마다 해저무는 산기슭에 앉아서 3대째 내려오며 오붓한 시골살림을 꾸리고 시름걱정없이 살던 덩실한 기와집을 굽어보며 오열을 씹고있다. 시골의 서정과 맑은 대기속에서 성스럽기까지 하였던 감각도 일장춘몽이였던가? 밝은 광환속에서 흥청거리며 물질문명을 내세우는 인간들의 내속을 다시금 돌이켜보니 자기 인생이 더없이 슬퍼지고 혼자만이 이 시대에 배반당한듯 싶어져서 가슴이 막 부글거린다.     마치 빛이 잘 새여들지 않은 깊고깊은 해저에서 침몰선의 용골을 붙안고 웅심이 발발하던 출국의 초행길을 돌아보며 한숨만 비틀어야 하는 자신이 얼마나 용렬하고 경멸스러운지 모른다. 생각할수록 분통이 터지고 쓰디쓴 웃음이 실실 새여나오는것을 주체할길 없었다…….     …그가 겪은 이왕지사를 다는 듣지 못했지만 그의 심정만으로도 가히 짐작할수 있었다. 현재의 처지와 스스로 자초한 허무함에 시달리는×××는 물레방아 돌아가 듯 바뀌는 계절에 더구나 심신이 비틀어져있었다. 세상돌아가는 꼴에 환멸을 느끼고 멀직하니 물러나와 인간의 본연대로 시골에 묻혀사는 여유로운 삶이 아니라 완전히 실락자가 되여버린 자신이 바보스러웠다고 허탈감에 후회를 덧쌓있었다.     여름의 푸른 산골짜기와 시원한 저녁바람이 그의 재가 앉은 가슴을 식혀준다. 인간의 락원은 결코 번거로운 도시에만 있는것이 아닌줄 그는 뒤늦게야 깨달았다. 인간 의 마음이 진실을 따라 움직이는 원시상태에 이른바 사는 즐거움이 자라는것이다. 욕망과 경쟁, 유혹과 허영이 꿈틀대지 않는 곳은 아직까지는 심심산골 이 한적한 마래곡에 있다는것을 확신하게 되였을 때 희망의 렬차는 이미 몇굽이를 돌아간 뒤이다.     나는 어떤 련민이 섞인 마음으로 그를 슬며시 지켜보았다. 해가 서산에 지고 어스름이 슬밋슬밋 기여드는 저녁때면 여기에 나와서 아무생각도 앉아있는다는 그는 욕망과 현실사이에 얼마나 현격한 락차가 존재하고 있는것인가를 새삼스러 곱씹지 않을수 없을것이다. 석양의 잔광이 언녕 사라진 하늘아래 침묵으로 푸름을 떨치는 앞남산과 뒤산을 쳐다보며 인간의 끓는 욕망과 정열이 마지막 잔광처럼 덧없다는것을 심심히 느끼였을가? 나는 딱히 그도 아닌 누구와 엉뚱한 무언의 대화를 하고있다.     (그래, 저 말없는 한왕산의 웅좌는 당신의 상처에 참고 견뎌내라는“자성”이라 는 약을 발라주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긴 당신이 욕망의 진의를 깨달았다면 인생은 철저히 끝나지 않았다는 의미이겠지? 나는 당신이 매일 자책하고 가슴을 칠때마다 잃어버린 욕망의 반기를 보고싶다. 그것은 찢어진 희망의 기폭이겠지만 자성한 인생의 기발, 한국의 공사장에서, 그리고 연길의 거리에 흘려버린 가슴아픈 사연들로 얼룩진 그런 감성적인 기발이래도 좋을듯싶다.       그의 이야기와 한탄을 다 들을수는 없고 그 내심세계의 구석구석을 다들여다 볼수는 없었다. 당신은 쓰디쓴 맛에서 단맛을 찾는게 인생이라는 가장 간단한 도리에 말문이 막혀있을것이다. 당신은 욕심껏 단맛만을 보려고 끙끙거렸다. 랭수먹고 된똥 을 누려하듯이…인생의 짜고 단맛을 다 맛보기전에 부평같은 신세가 되였으니 전화 위복이 될것인가? 그러나 그것은 의지를 전제로 하고있다. 인생의 미각의 망각지대가 당신의 새출발점이 되였으면 좀 좋으랴, 당신은 지금 쓴맛을 기껏 맛보고있다고 호소 하고싶을것이다. 그것이 락엽귀근처럼 원초의 마음의 터밭에 밑거름이 될것인가?     저만치 흰색으로 어둠을 내쫓고있는 백바위굽에 눈길을 박고있었다. 백바위너머로는 그저 우중충한 구름과 검푸른 하늘, 그리고 들리느니 부엉이울음뿐인 소외된 고장으로 변화되여버렸음에 한숨을 톱고있을것이다. 우리가 만화를 보며 저도 모르게 킥 웃음이 나오는것은 다리에 대가리가 붙었거나 눈이 이마에 나붙은 등 그런 괴이한 화면에서라기보다 그 숨은 내용에 우습고 그 기발한 착상에 웃는것이 아닌지…     만화속같은 세상, 만화속에 인물같은 우리들이 아니던가? 지금 농민들은 저마끔 자기 인생의 만화를 열심히 그리고있다. 얼마나 많은 농민들이 멍든가슴, 주눅이 든 마음을 희망이라는 다리미로 다리고 있을가? 고향에서는 추접은 막벌이가 출국하면 좋은 돈벌이라고 혹하는 가치취향은 눈물겨웁지 않은가? 오늘 많은 농민들의 인생이 희비극으로 엮어질수밖에 없는것은 일확천금사상이 너무 극대화된 탓이 아닐가싶다. 물론 먹고사는데 만족할 걸인이 없고 만족을 아는 부자는 태여난적이 없다. 비교하지 않으면 실망하지 않을것이요 비교를 모르면 늘 자족하리라.     어느새 날은 완전히 어두워졌다. 산을 내리는 그의 걸음은 몹시 무거워보였다. 그의 뒤모습을 보는 나의 마음도 무거웠다. 일엽지추(一叶知秋)요 한알의 모래 알에서 대천세계를 읽는다했거늘 그의 조우와 처경에서 현재의 우리 조선족농민들의 취향과 행각을 류추할수 있었고 흘러가는 민족군체의 흐름을 공연히 걱정하지 않을수 없었다. 이것은 내가 결코 오지랖이 넓어서만이 아니리라.     도시진출과 외국로무로 인한 농민들의 리농현상은 시대발전의 필연이고 새로운 삶의 터전을 개척하는 장거라고 권장하는 사람들도 있는판에 조선족사회의 위기라고 본다면 근시안적이라고 하리라. 그러나 현실생활이 론리적이 아닌만큼 민족군체의 해체도 공리공담같은 리론으로 해석할 일이 못된다. 말과 소는 거의 같은 고생을 하는 팔자이지만 저마끔 다른 망돌을 끌고있다. 나는 언젠가 읽었던 글귀가 떠올랐다. 륙로가 통하지 않으면 수로로 가야지, 배가 번져졌더라도 구명대가 있기마련, 하다 못해 널판자라도 붙잡고 헤여서 다른 대안에 올라야지…     속담에 역은 토끼가 굴을 세개 판다는 말이 있다. 앞으로 나갈 때 물러설 자리도 보아두는것이 명지한 처사가 아닐가? 땅을 잃고 가원을 잃게 된다는것은 우리 민족이 설자리가 없게 된다는것을 예시한다. 아닌가? 잠시 성공한 사람들의 현재 상태로는 문제시 될것없다고 볼수도 있겠지만 자기 후대들에게 물려줄것이 없게 된다고 한번 생각해봄직도 하지 않을가? 소수의 성공한 자들을 내놓고 막벌이로 돈을 좀 쥐였 다해서 그것이 영구지책이 될리 없지 않는가?     다시 한번 심사숙고해본다. 가령 장차 우리에게 우리의 보습을 대일 땅이 없다면 봄도 영원히 버리는것이 될것이며 흙덩이로 엉켰다가 세기를 넘어 마침내 산지사방에 흩어진 모래알로 된다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할것이 자명하다. 자기의 땅을, 자기의 가원을 버린 농민들에게 미래는 아름다운 새 에덴동산만 안겨줄수 없다. 적자생존의, 엄혹한 현실은 원래는 우리의것이였던 그 땅에서 20세기초 소작농으로 근근득실하던 우리네 선조들의 비극이 재현될지도 모른다. 기나라사람 하늘 근심도 아니고 남다른 일가견도 아니다. 준엄한 현실이 미래지향적으로 시사하고 있는 상황 그대로이다.     …그후 그를 다시 만나지 못하였다. 그러나 어쩐일인지 가끔 그를 생각하게 되였 다. 시골농민치고는 꽤나 지적인 사람이였는데 지금은 어디서 무얼하고 살아가는지… 소설은 생활속에 있는법, 자초에 그의 조우를 소재로“산촌거변”이라는 이야기를 엮으려고 작심했던 나는 소설을 마무리짓기 위해서라도 다시 명동에 가서 그 사람의 거취를 알고싶었다. 그러나 기회가 없어 못가던차 우연히 최선생을 다시 만나서 대략적인 이야기를 들을수는 있었다.     굴러온 돌이 박힌돌을 뺀것인가?아니면 박힌돌이 절로 솟아서 굴러온 돌에 자리를 내준격인가? 그 사람은 마침내 신세가 거꾸로 되여 그 한족집에서 일군으로 있다가 분통이 터진다면서 다시 한국에 나갔단다. 그동안 마음이 변한 안해는 한국사 람에게 시집가서 알콩달콩 잘 살고있지만 끈떨어진 뒤웅박신세가 된 그는 그냥 한국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고 하였다. 아들 하나도 시내에서 굴러먹는다고 했다.     ㅡ 그사람 망해도 참 더럽게 망했지요. 이만하면 소설이 되는겁니까? 사실 그 집만이 아니라 오붓하던 명동은 나날이 황페해지고 있어 걱정입니다….     ……………………………………………………………………………………???                                                           2008년 7월 20일               (2016년 7월 15일ㅡ7월 29일 련재함)
727    (잡문) 가라지 및 돌피론 댓글:  조회:4898  추천:0  2016-03-26
                                        가라지 및 돌피론                                                   진 언        농사일을 해본 사람이면 조밭에 가라지에 대한 인상이 각별할것이다.우리말로 가라지를 중국 성서에는 패자(稗子)라고 번역 되여 돌피로 인식되고있다. 조밭에 가라지는 생장초기에 생김새가 조와 잘 구별되지 않으나 다 자라나서 이삭이 패면 키도 유난히 크고 고개를 빳빳이 들고 미풍에 나불거리기에 식별이 쉬워진다. 조밭에 씨속음을 할때도 가려내려 신경쓰고 두벌김을 맬때도 가려내려 눈살을 꽂지만 후치 질할 때 보면 조와 함께 키다툼하며 싱싱하게 잘도 자란다. 결국 열매로써 구별되니 가짜는 진짜보다 더 그럴듯한 법인지 모른다.     뽑아도 뽑아도 그냥 끈질기게 부활하는 가라지가 어데서 왔는지 종교계에서는 하나님밖에 모른다고 하지만 무슨 씨앗이나 다 품어주는 땅에 물어보고 무슨 씨나 실어나르는 바람에 물어야 할것이다. 애모쁜 조밭김을 잡을때는 그저 미운 가라지, 악착스러운 가라지 정도로 알고있었지만 가라지에도 자신의 생존철학이 있는것이다.     논밭에 “가라지”는 돌피이다. 흔히 돌피라고 총칭하지만 세분하면 피, 물피, 돌피 (밭피), 강피, 개피(개돌피)가 있다. 우리 여기서는 논에 돌피를 참돌피 개돌피로 각각 이름하고있다. 참돌피는 벼와 사촌쯤 되는것같다. 책에서는 똑같은 화본과식물로서 벼의 일종이라고 한다. 어쩌면 돌피가 벼의 형(兄)일지도 모른다. 논밭이 있는곳이면 돌피들이 무성하다. 벼포기속에서 보란듯이 끼여 우썩 자라는 개돌피는 쉽게 가려낼 수 있으나 참돌피는 미풍이 없어도 벼닢보다 좀 투명한 잎을 파르르 나붓거려도 실 농군이 아니고서는 쉬이 가려내지 못한다.     가짜는 언제나 은페적이고 또 호사다마라 귀한 일에는 교묘하게 침투하는 법인가 보다. 지금은 신사농사를 짓기에 자꾸자꾸 기세좋게 올라오는 잡초를 아주 뿌리째 죽이는 살초제를 뿌려서 일망타진하지만 옛날엔 논물에 손발이 퍼지도록 인공멸살 할수밖에 없었다. 잡풀이 생명력이 강하듯 돌피야말로 식물의 강자라 할것이다."그래 인간아! 늬들이 아무리 미워하고 멸종시키려해도 나는 끝까지 살아남아 나름대로 열매를 맺을것이다."하고 도전하는듯싶었다.     벼처럼 돌피도 일년생이지만 때가 되면 처처에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지 못할것이라는 농부의 생각을 처처에서 비웃는다. 간신히 목숨만 살아있던 돌피가 늦게라 도 부득부득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아 생명찬가를 엮어낸다. 식물들이 꽃을 피운다는 것은 씨를 만들었다는것과 다르지 않다. 그것들이 새해에 전부 다시 싹을 틔울수는 없다해도 강인한 생명력으로 벼들과 키돋움하며 공생공존하여왔다.     그렇게 악을 쓰고 살아남은 돌피(가라지)들은 마침내 결실을 맺게 해준 하늘과 땅과 바람과 비에 감사할것이다. 그렇게 모진 가라지들이“너희 농부들이 있기에 싸 울상대가 되였고 너희 농부들이 있기에 우리가 살아갈 의미를 발견하게 되였노라.” 하고 웨치고 있은것을 그저 김매기가 고달파서 못알아들었는지도 모르겠으나 생명력 에 탄복하지만 사랑할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냥 식량난에 허덕이 던 옛날에는 곡식으로 여기고 피밥을 먹기도 했지만 차차 백해무익한 잡초로 전락하여 농부의 천적이 되였다. 돌피가 벼이삭처럼 찰진 쌀밥을 품었다면 그처럼 미움받지 않았을것이다. 가라지는 농부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으면서 곡식인양 더불어 땅의 자양분을 흡수하여 스스로 살고 자랄 궁리만 한다. 돌피, 가라지는 주변의 다른 생명을 위해 전혀 기여하지 않는다.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는 불가역전의 속성때문이다.     가을, 잘 염근 조이삭들이 무게에 겨워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유표하게 고개를 쳐들고 도고하게 서있는 가라지들이나 알알이 통통 여문 벼이삭들은 다소곳해서 금풍에 설렁이는데 용케도 살아남아 제노라 우뚝해 있는 돌피들은 실속이 없으면서도 늘 잘난체 하는 속빈 인간들을 련상시키고도 남는다. 그래서 곡식은 여물수록 고개를 숙 인다는 속담이 만들어졌는지 모른다. 그런데 가라지는 속비고서도 겸손하지 못한 인간을 상징하는 의미외에도 또 다른 의미를 가지고있다.     마태복음(13장)에 “천국은 좋은 씨를 제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쑤가 와서 곡식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싹이 나고 결실하 여 결 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집주인이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면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주인이 가로되 원쑤가 이 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주인이 가로되 가만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가 념려하노라. 두가지가 추수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때에 내가 추수군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를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내 곡간에 넣으라 하리라”     그리고 가라지를 두고 한 비유적 해설이 있는데“씨를 뿌리는이는 인자요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앗은 천국의 아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를 심는 원쑤는 마귀요 추수때는 세상끝이요 추수군은 천사들이니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를것같이 세상끝에도 그러하리라.”고 하였다.     또 해석하여 가로되 “하느님의 말씀을 잘 듣고 실천하는 사람은 좋은 밀알로써 수확이 되여 하늘나라의 곳간에 쌓이게 될것이고, 하느님의 말씀을 듣기보다는 세상의 유혹에 넘어가 악마의 자식으로 자란 사람은 마지막 심판때에 가서는 하느님의 심판을 피할길이 없을것이다…”라고 하였다. 이 말에서 종교성적인 설교를 배제하더라도 우리에게 주는 계시적 의의는 심원하다.     문제는 사회라는 인생마당에서 누가 좋은 열매를 맺는 유익한 인간으로 되고 누가 가라지처럼 배척받는 사람으로 될것인가? 세상 어느 누구도 스스로 밉상의 가라지처럼 되려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내 삶의 터밭을 돌아보게 된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로 하여 곁사람들이 심기불편해지고 사람들의 마음에 증오와 분노를 불러일으킬만큼 인심을 잃어버린적은 없었는가 성찰해 보게 된다. 좋은 열매를 맺는 곡식처럼 충실히 살아갈것인지 아니면 멋대가리없는 가라지같은 삶을 살것인지? 판단은 자명하지만 이제 다 늙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수 없다.     대답이 궁하니 남들과 비교가 생기는지 주위를 둘러보며 자아위안거리를 찾는다. 한창 자라는 조밭에 가라지처럼, 벼포기속에 돌피처럼 선별해낼수 없을만큼 교묘하게 섞여 살면서 말은 번지르르하고 행동거지는 번듯하여 청렴한 군자인듯 행세하다가 마침내 곡식이 결실할 때 표표하게 드러나듯 검은 행각이 들통나서 일락천장하는 부패관리들이 가라지, 돌피같지 않은가? 물론 스스로 사회정영들이라고 표방하지 가라지라고 생각하면서 불의를 저지른 자들은 하나 없을것이니 아이러니가 아닌가?     물론 누구나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되여가는 과정중에 살고있으며 선과 악, 진실과 허위가 함께 하는 인간세상에서 그 누구도 완전한 선도 아니요 완전히 악에서 해방된 존재일수는 없다. 마태복음에서 밀밭의 가라지 비유는 선한 이에게서 선을 배우고 악을 통해 더욱 선을 사랑하는것을 배우라고 설교하듯이 자기 량심을 믿음으로써 청렴한 생활을 배우는것이 밀과 가라지의 존재가치인지 모른다.“호랑이”와 “파리” 를 잡아내도 잡아내도 끝이 보이지 않으니 가라지, 돌피의 생명력에 새삼 경탄을 금할수 없을것같다.                                                    2015년 7월 1일
726    겨울찬가 댓글:  조회:4208  추천:0  2016-03-25
                                                   겨울찬가                                                       최 균 선       겨울은 사계절의 끝자락, 추위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그래서 보편적으로 싫어지는 계절이다. 더구나 거의 모두가 헐벗고 살며 기한에 떨어야 했던 옛날에는 겨울이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고난의 계절이였다. 겨울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휘몰아치는 눈보라, 망망하여 적설이 차가운 기운만 감돌게 하는 겨울이였으니 말이다. 그리하여 겨울철 구두어는 “어어 추워”라는 말이였다.     삭풍이 불어오고 눈발이 날리기 시작하면 마음도 차차 시려든다. 그렇듯 어렵던 나날에 수없이 심어진 앙상한 기억때문인가? 어른들은 겨울이 추워야 다음해 농사도 잘된다는 말은 잠시 미뤄두고 땔나무 걱정과 쌀독걱정을 하며 보리고개가 오는 봄이라도 기다리기에 마음부터 서성거렸다. 그러나 개구장이들은 홋바지에 고추를 얼구고 콧물을 게바르면서도 겨울을 좋아했다. 썰매를 타고 목대기를 타며 추위를 모르던 랑만의 겨울이였다. 그처럼 혹독한 계절도 느끼기 나름이였던지…     내게도 겨울이 좋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구를 수리한다고 기개가 충천하던 그 시대엔 참으로 농부일생이 무한이여서 겨울이 따로 없었다. 그래서 큰눈이 내리거나 적설이 뒤덮혀 일을 쉬게 되는 겨울날이 내게는 반가운 날이 되였다. 그도 그럴것이, 뜨뜻한 가마목에서 등을 지지며 소설책에 빠질수 있어 얼마나 좋았으니 말이다.     어떤 날에는 북국의 설경도 흔상할겸 쇠줄로 엮은 쾅즈를 등에 지고 도끼처럼 벼린 곡괭이를 들고 베여버린 나무그루터기며 가둑나무 등걸을 찾아 해란강변으로, 모아산기슭 골짜기들을 누빈다. 생눈길 헤치며 걸으며 제멋에 겨웁던 그 헌헌함과 내가 땀흘리면 한겨울을 춥지 않게 지낼수 있다는 일념이 혼자서도 자못 의미로웠다. 소박하기 그지없는 농부의 가치기준이지만도 겨울엔 불이 곧 사랑이였다.     지금은 먹고 입을 걱정이 없어서 아무리 혹독한 겨울이라도 셈평좋게 생각한다. 일컬어 사색의 계절이라는 겨울을 두고 각자 나름대로 사색해 보았을것이다. 옛날처럼 그렇게 혹독하게 춥지 않지만 옷깃을 파고드는 한기에 자신을 랭철하게 돌아보게 하는 겨울이다. 그 생각의 첫머리에 겨울은 “랭정함”이라는 글을 쓰게 된다.     겨울은 춥다. 눈이 내린다. 삭막하다. 색조가 단조롭다. 하여 봄내, 여름내 열정적으로 살찌웠던 잎사귀들이 한잎두잎 조락하여 앙상해진 나무들, 화사했던 그 꽃들도 미련없이 겨울잠에 빠지고…그래서 문인들이 꽃피고 산새우는 봄에, 록음으로 우거진 성숙의 계절 여름에, 풍성한 결실과 더불어 조락을 의미하는 단풍이 곱게 물드는 가을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면서 계절찬가를 엮어왔다.     겨울의 의미를 캐노라면 먼저 무엇이 련상될가? 겨울 언덕위에 홀로 눈꽃을 피우며 홀로선 나무의 인고를 새삼스레 해석해본다. 엄동설한속에서도 살아남으려는 생존의 몸부림은 눈물겹도록 아름답지 않은가!피고 스러지는 꽃보다 꿋꿋한 나무들이 더 아름답고 장해 보이는 리유가 바로 그것이 아닐가싶다.     애목으로부터 저렇게 어엿하게 자라난 나무는 얼마나 많은 추위와 아픔을 먹으며 인내로 성장했을가!세상만물이 넘치는 기쁨을 안고 뽀족뽀족 고개를 쳐들 때, 아직은 늦겨울의 찬바람이 뼈속을 파고들 때 나무는 봄날을 기약하고 참고 견딘다는것을, 나무가 겨울 추위를 달갑게 받아들이듯이 아픔을 견뎌내는 의지를 본받을만도 하지 않는가? 겨울의 엄혹한 시련이 없다면 부활의 참된 의미를 알수 없기에…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아름답게, 그럴듯하게 묘사할 방법이 내게 없다. 앙상한 가지. 바람이 불어치면 윙윙 소리만 애처러운 나무, 그래도 넘어지지는 않겠다고 눈보라와 맞서서 몸부림치는 가냘픈 나무를 무슨 언어로 묘사하랴, 또 무슨 말로 노래하랴. 좀 더 가까서 나무들을 살펴본다. 이 나무가 죽었을가? 봄이면 과연 다시 살아날수 있을가? 그리고 또 갖잖은 상상을 날려본다.     우리 모두가 나무와같은 삶을 살아왔고 그렇게 살아간다고 할진대 겨울의 의미를 다시 음미하는것도 나쁘지는 않을것이다. 겨울이 되여야 솔이 푸른줄 알고 겨울을 지내봐야 봄이 그리운줄 안다는 속담의 뜻은 깊다. 겨울처럼 춥고 어두운 배경과 같이 사람은 어려운 시련과 고통을 함께 겪어봐야 삶의 참을 알수 있다는것은 오묘한 진리가 아니라 일반 상식이다.     봄, 여름, 가을과 같이 엇바뀌는 사계절의 끝이면서도 봄이 오는 길목에 들어선 겨울일진대 아무런 의미도 없는 계절이란 없다. 매서운 겨울은 튼실한 생명을 가리기 위해 우주의 섭리가 택한것인지 모른다. 겨울은 만물에 푸른 꿈을 안고 앞날을 기약 하며 고생을 이겨내라고 만물에 설정한 고험기라고 생각할수도 있겠다. 대천세계에 수많은 생명들이 계절에 따라 오고 가는것이 섭리로서 그것에 순응하며 살아야 하는 우리들이다, 싸늘해진 겨울 해를 원망하며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 간절해지는 법이다.     겨울이 깊어가면 한해가 마감에로 치닫는다. 하루하루가 반복되지만 삶의 흔적들은 눈속에 찍힌 발자국처럼 뚜렷하지 않다. 이 하루는 점으로서 각자에게 정해진 인생의 종점에까지 자꾸 찍어야 하는게 우리는 인생이다. 지루한 겨울이라 조급해 할 필요가 없다. 겨울이 이미 왔거늘 봄인들 멀손가!     자연이 륜회할진대 한번 가면 다시 못올 인생이지만 도르래기 돌듯 맴도는 계절 사이로 흐르는것은 무엇일가? 고목봉춘은 내게 인연이 없으니 거듭 깨여나자고 되묻는 물음이다. 마음은 늘 풍성한 가을에 머물고 싶은데 동장군이 추위라는 채찍을 들고 성큼 들어선다. 겨울이 되면 어제런듯 가버린 한해를 돌아보게 되고 세월이 속절없다는걸 느끼는것이 반추일가? 겨울에는 많은 생각이 눈꽃처럼 날리고 그 눈발처럼 간곳이 없지만 사색하기 좋은 계절임에는 틀림없다.     겨울의 색채는 단순히 흰색이 아니고 겨울의 이미지는 그저 굳어진 표정이 아니다. 겨울도 봄, 가을처럼 시적매력이 이채로운 계절이다. 겨울의 내함은 그렇듯 풍부하다. 사계절의 맨 끝이면서도 새 봄의 전주곡을 울려주는 계절, 겨우내 느끼는 강추위이지만 함박눈 소리없이 내리는 풍경은 미묘한 운치를 안겨준다. 그래서 나는 로옹이 다 되여서도 겨울에 각별한 정취를 가지고있다.     그러나 도시에는 진짜 겨울의 매력이 없다. 비록 눈이 내리고 쌓이고 먼산들에 설경이 펼쳐지지만 진정한 겨울의 이미지는 도시인들과 멀리 떨어져있다. 더구나 지금의 겨울은 대지를 호령하던 그젯날의 엄한 기백이 없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이라 하던가, 북국의 풍광 천리에 얼음얼고 만리에 눈날린다는 시구처럼 천지가 아득하게 휘몰아치는 눈보라가 무엇인지 모르는 젊은세대들이 어찌 겨울의 혹독함을 알손가!     차디찬 설경을 겨울의 이미지이다. 발이 시리도록 눈길을 걸어보라. 맵짠 눈독에 한기가 품속으로 기여들지만 또 다른 에너지가 솟아나면서 정신이 맑아지고 포만해 질것이다. 생눈길을 걸으면서 옛노래를 좋도록 고쳐서 부를수도 있으리라.                                                     모아산에 눈내린다.                                                     배낭 메여라. 등산이다.                                                     굽이굽이 고개길 톺아                                                     등산자들 령을 오른다.                                                     설경을 찾아 눈길 헤친다                                                                         2015년 2월 15일 2016년 2월 26일 연변일보
725    맹수들도 서로 정을 주고 사는데 댓글:  조회:5410  추천:3  2016-03-19
  맹수들도 서로 정주고 사는데                                                                          진 언   3월 1일, 영국 “데일리 메일”의 보도에 의하면 미국 조지아의 한 동물수용소 에서 아프리카사자,벵골의 범과 아메리카 곰이 15년이나 함께 있으면서 생각지도 못한 우정을 맺었다. (출처: 2016년 3월 4일 조글로 미디어)     보다싶이 금수대왕 사자와 산중대왕 범과 우직함의 대명사인 곰이 공생공존할뿐만아니라 지극히 돈독한 우애를 보여주고있다. 서로 다른 종류의 동물들간에 어찌 정이 생기고 친구로 될수 있단말인가? 만물의 령장이라는 인간들이 스스로 성찰해야 보아야 할 희귀한 풍경이 아니겠는가?     곰은 곰과에 딸린 포유동물로서 륙지에 사는 동물가운데 코끼리 등과 더불어 몸집이 가장 큰 무리에 속한다. 범ㅡ호랑이는 대형고양이류로서 힘과 포악성에 있어 이 동물에 버금가는것으로는 유일하게 사자가 있을뿐이다. 사자도 고양이과에 속하는 동물이다. 사자는 흔히 백수(百獸)의 왕으로 불리며 한마리의 수컷이 여러 암컷들을 거느리고 다니는 습성으로 인하여 수사자는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고 왕권의 상징으로 사용되여왔다.그런데 다른 과에 속하는 맹수들이 어찌하여 다정한 친구로 될것인가?     아이적에 곰과 범이 싸우면 누가 이길가? 하는 문제를 두고 의론하기도 했다. 어른들은 곰은 힘이 무적이지만 범보다 날렵하지 못하고 범은 흉맹하지만 곰의 힘에 밀린다고 하던 말이 생각난다. 그 말이 정말인지는 몰라도 아무튼 곰과 범은 마주치면 피하는게 보통이란다. 인간들의 표현으로 말하면 경이원지 하는것이다.  호랑이와 사자가 싸우면 과연 누가 이길가? 어른이나 어린이나 항상 궁금해 할 문제이다. 야생에서는 호랑이와 사자가 사는 곳이 각각 밀림(또는 산악)과 초원으로서 절대 겹치지 않기때문에 서로 싸울 일은 없을것이다. 아니 마주쳐도 서로 피한다고 한다. 손실이 너무 크기때문이다. 동물계에선 “팍스 로마나ㅡ로마지배에 의한 평화”같은 욕심은 없는것일지도 모른다.         동물원 사육사들은 사자가 이긴다고들 한다. 결코 사자가 호랑이보다 덩치가 크고 힘이 세서 그런게 아니다. 사자들은 원래 무리지어 살기때문에 사파리같이 든든한 동료들이 버티고 있는 곳에서는 단독행동하는 호랑이 한마리쯤은 가볍게 제압할수 있다는것이다. 하지만 만일 격투장같은 곳에서 1:1로 싸운다면 승패를 장담할수 없다고 한다. 옛날 로마의 콜로세움에서 실제로 싸움을 시켜본 결과란다.     서로 으르렁거리며 정긍법칙을 체현해야 할 사자와 곰과 호랑이는 리성적판단을 할줄 모르는 미물이라도 힘으로 힘을 이길수 없고 미움으로 미움을 해결할수 없고 싸움으로 싸움을 해결할수 없다는것을 경험으로, 체험으로 터득하고 공생공존하려고 작정한것일가? 본성과 본능으로만 행동하는 맹수들간에 무엇으로 소통하고 도타운 우정까지 맺고 15년을 더불어 살게 되였을가?     인간도 동물이다. 다만 고급령장동물이라는 명칭을 가졌을뿐이다. 동물들의 세계는 약육강식의 정글법칙하에 생존을 위해서 살생하면서 진화되였지만 인간들처럼 작정하고 무리싸움ㅡ살륙전을 할줄 모른다. 인간들은 하나님 앞에서 누가 더 크고 힘세냐의 싸움은 최초의 살인으로부터 시작하여 원시사회의 부족간싸움으로부터 종족, 민족들이 서로 끝없이 피비린 참극을 연출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유사이래 민족들간, 국가간의 침략과 살륙전을 어찌 일일이 거론할수 있으랴, 시야를 좁혀서 우리 배달겨레 내부의 불화를 보자. 분단 70여년을 기록하면서 남북간 서로 잡지 못해 티각태각. 으르렁거리는 현실태를 보라. 세계인이 바라보는 가운데 한피줄끼리 싸우는 민족이 되고있으니 백년의 비애가 아닌가? 참으로 세계에 앞에서 너무도 부끄러운 일다. 이는 어느 한쪽 누가 무어라 해도, 어떤 리유를 내대도 매우 부끄러운 일이다. 아마도 세계인 모두는 이 문제를 바라볼 때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 매우 어리석은 조선반도라고 비웃을것이다.     하나의 민족으로서 같은 력사을 기록하며 살아왔고 같은 피가 흐르는 부모형제 일가친척으로 서로 얽혀져있고 오가는 말도 다 같고 살아가는 미풍양속도 다같고 살아가는 방식도 다 같았던 한겨레가 이 무슨 비극인가? 서로 다른 사자, 곰, 호랑이가 15년이란 세월을 누비며 정분을 쌓아왔는데 생각할줄 알고 말할줄 알고 가슴에 더운피 흐르는 인간으로서, 민족인으로서 생각되는바가 없을것인가가?     “북한은 밉지만 우리가 존경할 만한 적(our respectful foe)이다. 그러나 남한은 곱지만 우리가 경멸하는 동맹(our despicable ally)이다”라고 한 미국무부관리의 말은 분명 남한지도자들이 뼈아프게 새겨들어야 할 말일것이다. 세상에 영원한 친구가 없고 영원한 원쑤가 없다하였으니 외세에 대한 사대주의도 만사대길이 아닌듯싶구나.     저 흉맹한 맹수들사이에도 정이란게 통하는데 인간은 왜 그리 돼먹지 못했을가? 인간은 본성적으로 한 공간에 있다보면 의식적으로 피나는 노력을 하지 않더라도 “오해”를 “리해”로 풀고 알륵을 화해로 보듬을수 있는 관용정신이란게 있다. 오해가 리해로 바뀌는 순간 이미 그곳에서는 화합이 이뤄지고있음을 알아야 한다. “왜 저렇게 판단하고 그렇게 생각하고 이렇게 말할가?”라는 인간적인 관심이 생기기때문이다. 역지사지만큼 확실한 리해력과 결자해지의 지혜가 없다.     한 개인도 그저 제리익에 눈이 뒤집혀져서 욱ㅡ하는 감정놀음으로 처사한다면 뒤끝이 좋을리가 없다. 그러니 황차 한 나라의 통수로서 격해진 정서를 이기지 못해 심사숙고도 없이 앞뒤를 가리지 않는다면 그보다 더 큰 랑패가 있을손가? 평화공존의 옥토에 민족단합의 만년송을 심어놓고 가지에 열매 맺혀 그것이 무르익어 따먹기도 전에 뿌리채 뽑아버린다면 얼마나 개탄스러운 일인가? 정치의 속성이 배타성이라도 한겨레 동족에 대해 이를 가는 배타성은 늘어날 느지가 없는 망본이다.     배달민족의 분쟁과 갈등은 력사의 산물이다. 한세기에 육박하는 분쟁과 갈등엔 보이지 않는 검은손이 롱간질하고있다. 분쟁과 갈등을 해소하자면 상대의 처지에서 력사를 되돌아보려는 관념과 태도가 절실하다. 그런데 리념대결로 불공대천의 원쑤가 된 남북, 듣기 좋게 평화요 신뢰요 하고 외우고 다니지만 증오심부터 앞세우고 콩팔칠팔하는 자들이 본다면 얼굴이 붉어질 맹수들의 융합영상이 아닌가?     말못하는 짐승들조차 저리도 감격스러운 장면을 시사하며 화해와 공존의 철학을 실천하고 있는데 소위 내노라 하는 자들, 관념경화가 굳어져서 무작정 적개심을 갈고 있는 무지한 기재들은 위에 사진을 다시 한번 보라,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2016년 2월 6일
724    “망신살”을 소개함 댓글:  조회:5174  추천:1  2016-03-18
                                                   “망신살”을 소개함                                                                   진 언       사람은 자그마한 얼굴때문에 죽음 버금으로 제일 두려워하는게 뜻밖에 원치않은 망신을 당하는것이라 말해도 틀리지 않을게다. 그래서 망신당하면 “제길, 망신살이 뻗쳤나?”하고 두덜거린다. 망신에 왜 살(煞)이 붙는가? 살(煞)은 원래 류성(流星)이란 뜻으로서 미신에서 사람을 해치거나 물건을 깨치는 나쁜 기운을 일컫는다.     이른바 “12신살 (神杀)”에는 겁살(劫煞), 재살(災煞), 천살(天煞), 지살 (地煞), 년살(年煞ㅡ일명 함지살(咸池煞), 도화살(桃花煞)). 월살(月煞), 망신살 (亡身 煞),장성(將星)살, 반안(攀鞍)살, 역마(驛馬)살, 육해(六害)살,화개살(華蓋)있는데 그중 “망신살 (亡身煞), 일명 파군살(破军殺)”은 글자 그대로 망신을 당한다는 살이다.     하지만 망신살은 일반적인 의미로서 망신을 당하는 봉변이나 운수를 뜻하고있다. 즉 몸을 다치거나 체면을 깎일 사나운 운수이다.“뻗치다”는 타력의 작용이 강함을 나타낸다. 조소가 담긴 표현으로서“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등으로 쓴다. 흔히 말하는“망신당했다”를“챙피당하다.”로 쓸수도 있다. 망신살을 소개하려면 그것의 래원, 출산지, 내속 등에 대해 자상히 소개해야 할것이다.     인간은 기쁨, 분노, 탐심, 진심, 악심, 애심 등 마음의 변화에 의하여 자기 속심을 표출한다. 그런데 그것을 드러내는데서 분촌을 모르면 망신당하기는 당연하다. 망신은 앉을자리, 설자리를 모르는 푼수대가리, 칠푼이들은 물론 정상인이라도 스스로 취하는 그릇된 행동(추태)에서도 야기되지만 보다는 성정이 고약하고 충동적이고 치졸하고 무식해서 실수, 실언, 망언, 사기, 협잡하는데서 망신당할 때가 더많다.     사람은 덕망을 쌓기는 어려워도 망신당하기는 여반장이다. 그러므로 돈도 들지 않거니와 별 지력이 수요되지 않는다. 우선, 가장 힘들이지 않고 자초할수 있는 망신살은 잘난 충동성에 힘입어 혀바닥이 돌아가는대로 너스레를 떨거나 얼굴 한번 붉히지 않고 금방 들통이 날 거짓말을 줴치는것이다.     원치않은 망신을 당하게 된 사람에게는 동정이 가지만 자청해서 당하는 망신은 쌍통이다. 만약 어느 집에서 형제간에 두드려박죽 하기를 밥먹듯 한다면 그 집안망신 일뿐만아니라 조상망신이다.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킨다고 마을에 “꼴뚜기”가 있으면 동네까지 망신살이 뻗게 된다.     큰 범위에서 말한다면 령혼이 썩은 “꼴뚜기” 위정자들도 나라망신, 민족망신을 자초한다. 례하여 리완용을 비롯한 “을사오적”이 바로 가증스러운 “꼴뚜기” 들로서 나라를 팔아먹어 세계적인 망신을 당하게 하지 않았던가? 현시대에는 그 의발을 계승하여 나라를 망치고 민족으 망신시키는“꼴뚜기”들이 없는가? 답은 긍정적임!한 국가의 통치집단의 유,무능,도덕성 수준에 따라 국가가 흥하기도 망신당하기도 한다.     제눈으로 본것도 아닌데 마치 본것처럼, 사실인것처럼 제멋대로 떠들어치다가 뒤미처 아닌것으로 드러나면 “아니면 말구, 쳇”하며 똥싼년 두두벌거리듯 뇌까리면 곁에서들 망신살을 거저 안겨준다. 그런 망신살이 호박넝쿨이 뻗듯 기세좋게 뻗어서 국제무대에까지 이를수 있는데 력사와 현실이 이를 증명하고있다.     질투심이 생기면 곧 지는것인줄은 어찌 알아서 남의 약점을 들춰내려고 쌍심지를 켜고 자기의 우점을 내흔들며 비교하는 비틀린 심보도 망신살의 진원지가 된다. 마치 길줄도 모르면서 걷는 아이를 나무리듯. 렬등생이 우등생을 짓씹어대듯 대방을 흠지잡기에 열을 올리면 남들이 제꺽 그 저의를 알아보고 망신살을 한아름 안길수도 있다. 멀지 않은 어느 동네에 그런 영재들이 많이 어정거리고있다. 그네들은 뱁새가 황새따라가다가 가랑이가 찢어진다는 속담도 감감인가?     미우면 밉다하는것이 인지상정이나 잘한것은 잘했다고 하고 자기보다 월등한것은 인정해줘야 정상심리를 가진 인간일텐데 고자쟁이 ×자랑하듯 자랑질에 침을 튕기거나 도토리 키재기로 그냥 거물인듯 으시대면 망신살이 축하의 꽃다발을 들고 왕림할것이다. 그 알량한 자존심때문에 편견과 무지를 앞세우고 보배찾기나 하듯 무슨무슨 어떤어떤 가능성을 찾기에 피눈이 되면 곧 국제적인 망신살이 얼씨구나 좋다하고 방방곡곡에서 내달아올것이다. 그리고 호들갑떨면 그냥 망신살을 업고 살것이고…     남들은 다 인정하는 존재물을 용납하지 않는다는둥 혼자부르고 쓰고 북치고 장구치면서 쇠코도 제코라고 우기듯 부정의 몽둥이를 휘두르며 고집부리지만 고집은 주견이 아니며 더구나 의지가 아니다. 더러운 속창만 드러내는 추태이다. 된장을 똥이라고 할 바보야 있으랴만 자기의 호악에 따라 콩을 팥이라고 우겨대는 도착증환자들은 많다. 이런 팔등신들이 민족의 얼굴에 먹칠한다.     밥먹고 정 할일이 없으면 처가집에 가서 닭모이나 쫗던지 하면 좋을것을 리념상 절치부심하는 대상이라고 사사건건 흠집을 찾아내려 앙탈부리며 콩이야 팥이야 하면서 곁에서 보기에도 너무 치사하게 놀면 그게  돈주고 자초한 망신살이 아니겠냐? 그리고 동네방네 돌아다니며 내편을 찾다가 코방먹으면 국제망신이다.     세상에는 어느 선진국도 하루에 지구를 열다섯고패씩 도는 “미사일”을 발명하지 못하였는데도 그렇게 내리깎다가 결국 최첨단 기술로 광고해버렸다. 500키로그람 내지는 1000키로그람은 돼야 명실상부한 인공위성이라고 고아댔는데 자신들의것은 100키로그람으로서 대방의것에 절반무게이니 어찌 해석해야 하나?     남의 불에 게를 구워놓고 냠냠하면서 뛸데없는 반쪽짜리 “미사일”이였다고 제풀에 폭로했으니 남을 끌어내리느라 제바지가 벗겨지여 밑이 드러난것을 모르는 그런 망신도 또 있냐?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그냥 불륜이라며 남을 헐뜯어도 론리상식은 좀 있어야 한다. 그런데 푼수를 모르면 망신당했는지도 모른다.     잔뜩 격동되여서 입에서 구렝이 나가는지 뱀이 나가는지도 모르다가 “앗차!” 이다 싶으면 그런것이 아니라 원래는 무슨무슨 뜻이였다고 변명에 해석을 덧얹는 언동도 망신살을 절로 업는게다. 호가호위하며 거센체 한 여우는 경이로울진대 한껏 깔보다가 작은 주먹에 너부러진 머리큰 아이처럼 되는것은 참으로 너절한 망신살이다. 세상에서 가장 한심한게 스스로 이길수 없는 상대를 두고 남의 힘을 빌어 이겨보겠다고 날뛰는 짓이다. 체질적으로 남을 깔보고싶다면 망신살이 뻗치기는 다반사이다.     마냥 “옳소국”을 마신것처럼 쫑대없이 남의 말을 곧이곧대로 옮겼다가 말썽이 생길라치면 “내 말한게 아임다. 형니미 먼저 그래 말했슴다 난 그저…”하는 코흘리개로 충당되는 어른이 있다면 특급의 망신을 선사받은 기재이다. 주어가 없이 자기도 무슨 말을 했던지 잊고 변명을 늘여놓으면 제혀를 씹는 아픈 망신살이 되는것이고…     언론이 요란해도 절반을 삭감하고 듣거나 그 반대로 해석하면 스스로도 감촉할 망신살이다. 자신이 분발해서 대방을 따라잡을 궁리는 못내니까 무작정 헐뜯느라고 열을 올리는데 세인들이 “제까닥” 알아맞춘다. 다만 그 본인이 모르니 역시 망신살로는 한심한 망신살이라 할것이다. 사촌이 기외집 짓는다니까 배아파하는 식으로 질투, 편견부터 앞세우고 설쳐대면 망신살은 처처에서 환영리에 마중올것이다.         망신살은 타력이 아니라 자기 마음가짐에 있다. 거짓말을 황통으로 덮으려다가 더구나 개꼴망신당할수도 있다. 한국에 거짓말하다의 뜻으로서“구라친다”는 말이 류행되던데 망신살을 좋아하면 구라를 잘 쳐라. 돌아가며 망신당할 일만 하고 엉터리 잡설을 내뱉아서 줄창 망신살을 등에 업고 살고싶다면 뜨겁게 축하함!!!                                                          2016년 2월 4일
723    가둑나무아래에서 댓글:  조회:4263  추천:0  2016-03-17
                                            가둑나무아래에서                                                          최 균 선       모아산기슭 내가 살던 마을 뒷산에 버릇처럼 눈길이 끌리던 참나무 한그루가 있었다. 해저물도록 덕이밭에서 김을 매고 더덜털 돌아오다가 그 나무아래에 퍼더버리고 앉아 담배연기를 피워올리며 가둑나무라고도 부르는 그 참나무를 볼때마다 못생긴, 늘 아프게 살아야 하는 내 인생이여서 상념도 멋대로 뻗었는지 모른다.     야산에 절로 나서 제가 생긴대로 자라는 가둑나무일지라도 앓음도 있고 아픔도 있고 설음도 있을것이라며 마치 시인이라도 된듯이 스스로 싱거운 애상에 잠기군 하였다. 푸르던 영화의 한시절이 가고 미구에 라목으로 되여 겨우내 차디찬 회초리 찜질을 당하면서도 말없이 새봄을 기다려야 하는 나무들의 지조가 어이 의롭지 않으랴!     어떤 나무이든 지구를 생명의 요람으로 탈바꿈시킨 주인공이다. 그런데 자연에서 멀어진 삶을 사는 동안 인류는 나무의 존재가치를 잊기시작했다. 자연의 만물은 우리 삶을 위해 리용가능한 자원일뿐이라는 사고가 나무에 대한 무분별한 활용으로 이어지면서 나무는 그들이 만든 세상에서 급속도로 사라지고있다. 나무가 없는 자연계를 상상할수 있으며 나무가 없는 인간의 진화가 가능했을가? 파란잎새가 돋는것은 봄소식에 묵은 꿈을 깨는것이다. 연록의 잎이 파르르 흔들리는것은 봄바람을 반기는 나무의 속삭임소리다. 진초록 물드는 나무잎은 엽록소때문 이 아니라 태양에 대한 사랑의 고백이고…추운겨울에 헐벗고 서서도 태양을 원망하지 않고 무더운 여름에 무겁도록 잎이 무성해지면 태양에 감사할것이다.     찬서리내린 가을, 빨갛게 단풍든 나무잎에서 시인 사백은《록색의 생명에도 더운 피가 있었음을 서리맞은 후에야 나는 알았다.》고 읊었다. 그 더운피도 식은듯 마침내 조용히 지는 락엽의 쇠락을 우리는 락엽귀근이라 이름한다. 그러나 그것을 고마운 대지에 분신으로 사랑을 표현하는것이라고 생각하면 안될가? 영화의 시절은 가고 사색의 겨울, 헐벗은 나무는 이제 다시 오려는 봄날의 꿈을 키우며 참고 견디는 인고의 자태라고 생각하면 너무 감상적일가?     나무는 모진바람 휘몰아쳐도 억세게 서있으려 하고 외세의 강타를 이겨내지 못해 쓰러지지 않으면 소신껏 서서 죽는다. 살아도 나무이고 밑둥을 잘리여 오리오리 쪼개져도 나무라는 이름을 잃지 않는다. 넋도 몸도 나무이기때문이다. 겨울나무는 스스로 혹한의 고문을 받는다고 생각하지 않을게다.     밝은 빛으로 가득찬 세상, 푸른하늘과 흰구름, 바람에 흔들거리는 나무가지와 살랑대는 푸른잎들…태고적,아직 어두운 물속에서 살고있던 작고 미약한 생물에게 새로운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욕망을 불러일으킨 존재가 나무였다니 너무나 신선하게 느껴진다. 지금도 나무가 인간을 매혹하며 경이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면 그것은 우 리의 관념속에 깊숙이 새겨진 나무의 미덕때문이 아닐가?     애젊었던 그시절, 고동하림장 잡목속에 유별나게 빼여난 아름드리 가문비나무에 톱을 걸어놓고 아무런 감촉도 없었는데 천생 못생긴 가둑나무에서 자기 모습을 떠올리며 “이게 아닌데…”라는 뇌까림 소리가 절로 새여나왔다. 돌이켜 생각하면 가문비나무에서 아주 숙맥이거나 속물적이지는 않아서 속세에 환멸감을 느낄줄도 아는 사나이다운 사나이의 헌걸찬 모습을 련상하게 된다.     엄동설한풍에 속까지 얼어서 서슬푸른 도끼날의 일격에 쇠소리를 내던 쇄스래라는 나무를 어렵사리 베여눞히고 식은땀을 들이면서 역경속에서도 앙가슴이 뛰는 오돌찬 사람. 돌아가는 세상이 사색의 계절인지 재생을 꿈꾸는 봄날인지 구별할줄 알아서 경우에 따라 버틸줄도 거부할줄도 아는 그런 사람을 련상해 보게도 된다.     나무앞에서 천차만별의 인간상을 읽는것이 무리일가? 이런저런 여러 수종의 나무들을 읽으면 넘어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강경한 사람, 인고의 한을 의지력으로 련마하는 사람, 적자생존의 섭리를 잘 알아서 스스로를 갱신할줄 아는 그런 사람. 불모지에도 바위틈에도 뿌리를 박고 자기 나름의 생명찬가를 엮는 가둑무같이 억척스러운 사람을 동경해보기도 하였다.     비틀어진 참나무가 조상의 산소를 지킨다. 바르게 잘생긴 소나무는 쓸모가 있으니 누가 베어간다지만 실제로는 못쓸것같은 가둑나무가 자기 역할을 다하고있다. 그런 나무에서 사람도 겉만 보고 과소평가하면 안된다는 미쁜 생각을 해보게 된다.     “평생 나서 자란 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그곳이 옹근 세계로 생각하면서 세상에 갈래갈래 길도 많고 보다 더 좋은 곳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마치 우물안의 개구리 의 시각과 별반 차이없는것이다.”라는 말은 맞기도 하지만 달리 생각할수도 있다.     끝까지 산을 지키는 못생긴 나무처럼 거룩한 바보가 자기를 지킨다. 거룩한 바보가 지조를 지킨다. 거룩한 바보가 끝까지 혼잡한 세상에 남는다. 그루터기가 되기를 원치않는다면 못난나무로 거룩한 바보로 되여지라. 스스로 못생긴 자신때문에 기죽지 말고 오히려 못생긴것에 감사하며 행복임을 알수도 있겠다. 못생긴 사람들의 고통을 리해할수 있는 사람이 된것만으로도 자족하면 안되는가? 못난 인생일지라도 량심과 성실을 무기로 세상과 대화해야 자기다운 인생이라 할수 있으리니…      “나무는 그 열매로 아나니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딸수 없고 찔레꽃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 못된 열매를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를 맺는 못된 나무가 없느니라.”는 유럽의 격언이 새삼스럽다. 꽃피는 나무는 자기 몸으로 꽃을 피우는 나무이다. 꽃을 피우지 못하고 떫은 도토리만 가득 맺는 가둑나무는 못생긴 나무이다. 그러나 못생겼다는 거기에 그로서의 매력이 있는것이다.     스스로 못낫다고 자인하면서도 어떤 안위를 찾는다면 자기속임일가? 자신심을 가진다는것은 그만큼 삶의 의욕을 가지고 있다는 표징이다. 인생을 나쁘게 추단하지 말고 밝게 보려는 시선도 가져야 하겠다. 가둑나무는 참나무로서 뿌리는 일편단심 아 래로 아래로 뚫고들어가고 줄기는 전심전의로 향상하여 하늘을 겨누며 치솟는다. 그런 나무를 두고 무방비상태이고 때론 억울함을 당하고 숙명에 매여 일생을 마치는 불우한 사람들을 련상해도 무리는 아닐듯싶다.    스스로 자신을 못난이라고 생각하면서 제 할 일만을 묵묵히 하는 이들이 그들이 다. 오늘도 못난이들은 역경을 겪어도 꾹 참고 제 역할을 다 하고있다. 소리가 커야 하고 힘이 세야 하는 판국에 못난 사람들은 더욱 초라하게 보일지 모른다. 그리고 늘 무시당하기 일쑤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들이 위대한 국민들이며 한나라의 초석들이다. 진정 이 못난이들이 력사를 창조했다는것을 누가 모를가?     스스로 바보이기를 원하는 바보는 없을것이다. 그러나 참으로 어려운것은 스스로 “바보”가 되기를 소원하는것이요 개탄할 일은 세인의 눈에는 그저 어리석은 사람을 생활이 축복한다는 사실이다. 자기 리익을 챙기고 자기 살길을 찾기에 급급한 사람들은 언젠가 골탕을 먹게 되여있다. 자신의 안녕을 위하여 스스로 우자의 길을 선택 하였던 옛시인 원적은 미친 바보인체하였기에 잔명을 보존할수 있었다는 력사사실은 생존지책의 일종임에는 틀림없으나 참으로 슬픈 섭리이다.     무수히 많은 부동한 얼굴들의 뒤에는 제각기 다르고 복잡한 종종의 인생현상이 숨어있다. 마치 울창한 밀림속에 수십백종의 나무들이 서있다는것을 겉으로는 볼수 없듯이, 정체적으로 울울한 인생의 현장에 저저의 생명나무들은 이 땅에 여러수종의 나무들과 흡사하지 않으랴!                                     2006년 5월 10일 ㅡ2015년 12월 흑룡강신문
722    인생의 산수식 댓글:  조회:4373  추천:0  2016-03-12
                              인생의 산수식                                       최 균 선       인생이란 잘 계산된 계산식처럼은 운행되지 않지만 산수식처럼 되여진다. 인생은 자초에 령으로부터 더하기가 시작되지만 결과적으로는 덜고덜어서 령으로 끝난다. 빈주먹을 쥐고 세상밖에 나오기에 인생은 령으로부터 시작되지만 세월의 흐름에 따라 인생은 더하기와 덜기가 동시에 시작된다. 즉 하루를 산다는건 살아온 날에 하루를 더하는것이면서도 살아갈 수명에서 하루를 덜기로 된다. 아이때는 세월이 더해지는 날로 계산되고 로년에 이르러서는 심중에 덜기식만 세워진다.     사람이 갓태여났을 때는 한장의 초고지와 같다. 그러나 차차 크면서 인생의4칙 운산식이 적혀진다. 어섯눈을 뜨면서부터 “내것”을 제일 먼저 알게 되기떄문이다. 젊은시절엔 누구나 더하기 생활을 한다. 지식과 지혜가 더해지고 품격의 력량이 더 해지며 인생경험이 더해지고 재부가 더해진다. 그러다가 일정한 년령단계에 이르러 덜기가 시작된다. 그러나 일정한 층차에 도달한후 덜기식을 배워야 한다. 그냥 더하기 만 하면 생활의 짐이 너무 무거워 지치고 말것이다.     버려야 할것은 버리는가운데서 하나 또 하나의 지혜를 터득한다. 더하기는 성장 이고 덜기는 일종 성숙이 된다. 쓸모없는 물건을 내버리고 허황하고 사치한 욕망을 덜어버리며 심령의 부담을 덜어준다. 덜어내기의 환경에서 인생의 진퇴, 얻고 버리기 를 합리하게 배치하여만 인생의 고달픔이 덜어진다.     매 사람의 인생의 길이는 주어져있지만 생명활동의 광도는 자기손에 장악되여있다. 우리는 인생의 가감법을 잘하여 생명의 넓이를 확대해야 한다. 인생은 무릇 간단 한데로부터 번잡한데로 이르고 다시 번잡한데로부터 간단한데에 이른다.     농부는 인생을 곱하기로 생각한다. 몇알의 종자를 심어 몇백배, 몇천배의 알곡을 얻어야 하기때문이다. 자선가는 인생을 나누기로 생각한다. 사회에서 벌어들인 돈을 사회에 환원하려는 마음에서 어렵게 사는 사람들에게 골고루 나누어주어야 한다고 여 긴다. 덜기는 계산이 명백하다. 덜기를 할 때는 살점이 떨어지는것같기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욕망을 덜어내고 푼푼한 마음으로 자기것을 덜어서 내줄 때 당신은 다시 없는 기쁨을 얻을수 있지만 실천에서는 그게 잘 아니된다. 그래서 정답이 없다. 마음을 비운다는것은 마음을 공백으로 만든다는것이 아니라 덜기로 자리를 낸다는것이다.  더하기는 욕심을 앞세우고 계산하게 된다. 정답은 없다. 더하고 또 더해도 사람의 욕망이 어디까지인지 알수 없기에 정답을 구하기란 죽을때까지 계산해도 불가능하다. 인생은 길기도 하고 짧기도 하다. 범부속자, 포의한사, 민초들의 인생은 고난으로 하 여 지루하고 기구하므로 더하기도 바라는 인간본성을 가지면서도 덜기도 하려는 선량 한 마음도 가지고 있지만 마음같이 되여주지 않는다.      겸손은 더하고 교만은 빼고 사랑은 더하고 미움은 빼고 칭찬은 더하고 꾸중은 빼고 더하고 빼면서 인생을 만들어간다. 잠자리에 눕기전 하루를 계산기위에 올려놔 본다.  청소년기에는 더하고 빼는 인생을 배운다면 장년기, 로년기를 거치면서 나누고 즐기는 인생을 깨닫는다. 비록 인생은 더하고 빼는것을 먼저 배우게 되지만 아름다운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리의 슬픔과 내가 가진 즐거움을 먼저 나눌때 우리의 노여움과 기쁨들은 자연히 해소된다.     인생사칙운산에서 먼저 더하고 빼는 법을 배우고 나중에서야 나누고 곱하는 법을 알게 된다. 그런데 사칙연산에서는 왜 곱하고 나누기부터 먼저 하고 더하고 빼는것을 나중에 할까? 나누기란 역시 덜기처럼 감소이지만 고루나누기가 된다. 나누기는 덜기처럼 잘 안되는 계산이다. 즉 사칙운산에서 더하고 덜어내는것을 먼저 하고 나누고 곱하는것을 나중에 하면 틀린답이 나올수 있지만 곱하고 나누기를 먼저 하고 더하 고 덜기를 나중에 하면 틀린답이 나올수 없는것처럼 나의 기쁨과 노여움을 먼저 생각하지 말고 먼저 나누고 함께 즐기면 아름다운 인생을 살아갈수 있지 않을가?     인생은 곱하기 인생에 속하여 있는가? 아니면 더하기 인생에 속하는가? 더하기 인생을 살것인가? 곱하기 인생을 살것인가 욕심은 빼는만큼 마음이 가벼워진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자고로 덜기와 나누기계산을 하고싶어하는 사람이 많지 않지만 더하기, 곱하기 능수들은 많았다.     곱하기란 가속도적인 증폭을 의미한다. 누구나 자기가 얻는것이 더하기처럼 더디게 증장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물론 곱하기계산이 인생에 나쁘기만 한것은 아니나 나누기를 하는 인생은 가장 고귀한 희생정신을 가진 인생태도이다. 우리가 만약 인생의 가감승제를 령활하게 계산할줄 안다면 속세에서 벗어난 인생을 살것이다.     하긴 처한 위치에서 관념이 다르기도 하다. 부옹은 인생이란 부단한 더하기라고 생각한다. 일원이 열개되면 10원이 되고 10 원짜리를 모아서 100원을 만들려고 로심 초사한다. 아흔아홉섬 가진놈이 한섬 가진자에게 백섬을 채우게 그 하나를 달라한다. 아흔아홉가진 부자가 자기의 아홉을 떼어주면서 하나밖에 못가진 사람더러 열개를 채워 열심히 살아서 부자가 되라고 하는것이 인정상 맞는데 그런 사람이 있던가? 그 하나마저 가져서 이백,삼백,천개를 채우기는 아득할텐데도 말이다.     그러나 인생마당에는 처음부터 틀리는 그런 계산이 구태의연하다. 풍족한 살림을 영위하고 있지만 그만큼 자기중심축과 리기심에 눈이 어두워 덜기계산은 아예 알려 하지 않고 제주머니만 채우려는 더하기만 선호된다. 비록 못먹고 못살았지만 허술한 초가집마다에 인정이 넘치던 그 시절엔 사람들은 누가 배워주지 않아도 더하기를 하 려고 애썼고 어렵게 배워서 안계도 지금처럼 넓게 트이지 못했지만 군체를 위하려는 소박한 포부만은 가지고있었더랬다. 그러나 지금은 가방끈도 저마끔 길어지고 문명해 진탓인지 오히려 사심은 더 무성해져 사람마다 덜기, 나누기는 숫제 제쳐버리고 줄창 더하기, 곱하기에만 열중하고있다.     부정축재는 지옥의 문을 여는것이요 불의로 얻은 부귀는 뜬구름과 같다고 예로 부터 일러왔지만 돌이켜 생각하면 도덕가들의 통용적인 설교요 아무래도 실용철학은 아닌것같다. 성실함으로 안빈락도에 머물고 남에게 베풀어줌으로 적덕하며 비록 가난 할지라도 행복을 만들어가며 사는 사람은 물처럼 취급당하는 속세이다.     제주머니에도 돈이 없고 저축통장에도 돈이 없으나 마음속에는 돈을 가득채우고 있는 사람은 가장 고통스럽고 주머니에도 돈이 있고 은행에도 돈을 세워두었지만 마 음속에는 돈이 없을 때 비로소 가장 큰 복이라는 명구가 있다. 큰복이 무엇인지 잘 아는 사람들은 모두 더하기와 나누기식에 능통한 사람들이 아닐수 없다. 모든 가지 에서 동시에 열매를 맺기 시작하는 과일나무같은 인생을 살수 없는 인간이 아니랴,                                          2012년 5 월 20일 ㅡ     2016년 1월 8일 연변일보      
721    (잡문)거짓말 하곺냐? 믿도록 해라 댓글:  조회:4541  추천:0  2016-03-08
                               거짓말 하곺냐? 믿도록 해라                                                    진 언       거짓말을 하는것은 인간의 자위본능에서 오는 일종 기량이다. 하랄트 바인리히는《거짓말의 언어학을 위한 소고》의 첫머리에서 “거짓말은 세상 어디에나 있다. 우리 안에도 있고 우리 주위에도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고 살수 없다.” 고 책의 첫머리를 장식하고있다. 이 자극적인 정의는 인간의 일상에 편재된 거짓말의 본질과 보편성을 객관적으로 귀납한것이라 하겠다.     아닌게 아니라 말하는 입을 가진 사람으로서 거짓말과 완전히 등진 사람은 없다. 심리학자 벨라 드롤로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이 하루 평균 1.5회 거짓말을 한다고 한다. 인간은 확실히 일상에서 거짓말을 많이 한다. 인간은 과연 어떠한 심리적과정과 지식을 통해, 도대체 어떠한 목적으로 거짓말을 하는것일가? 거짓말은 과거 문화인류학, 사회학, 분석철학 등 실로 다양한 분야에서 저마다 고유의 방식과 관점으로 규정하느라 마니마니 론의되여 왔고 지금도 많이많이 설파하고있다.     강자에게 잘 보이려고 혹은 두려워서 챙김이 없었던 거짓말을 개여올리는것은 약자의 자기보존의 본능이고 비애이지만 강자도 아니면서 무작정 적의를 앞세우고 무시하고 폄훼하고 제구미대로 깎아버리려고 불어대는 황통은 형편없는 인격들이 연출하는 추태들이다. 그 이상도 아니고 그 이하도 아닌 바로 너절함 자체이다.     상황에 따른 선의적인 거짓말이나 약자로서의 자기방어에서 기인된 거짓말은 본능적이지만 타방에 불익을 주려는 거짓말을 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훈련을 거쳐야 한다. 개체로 말한다면 거짓말 할 때 자연히 커지는 동공을 들키지 말아야 하고 피가 거꾸로 흐르면서 식은땀이 나는것을 숨겨야 하며 공연히 근육이 긴장해 나고 호흡이 빨라지고 타액분비가 많아져 자꾸 침을 삼키는 등 증세를 교묘하게 은페시키는 기량…등등, 그래서 “입에 침이나 바르고 거짓말을 해라”는 훈계가 생겨났는지…     완전바보는 거짓말을 할줄 모른다. 외히려 제사 천하 똑똑인체 하는 자들이 거짓말쟁이가 된다. 거짓말을 밥먹듯 하게 된다면 “병적거짓말쟁이”라는 정신과적 증세를 의심해 봐야 한다. 보통의 거짓말을 할 때 당황한 낌새를 내비친다거나 얼굴이 빨개지는 현상을 알아채기 쉽지만 “병적거짓말쟁이”는 속이 음특해서 잘 드러나지 않는다. 정신과에서“공상적허언증 (虛言症)”으로 진단하는 “병적거짓말쟁이”증세는 “경계성인격장애”를 갖고있는 경우에 나타날수 있다고 해석하고있다.     “공상적허언증”은 환경적인 요인에 의해서도 발생할수 있되 독자대중들을 상대로 태연하게 거짓말을 하는 못된 정치인들, 언론인들의 경우처럼 자신의 말과 행동에 무책임한 무치함에서 온다. 정신과전문의들은 량심의 가책은 자기 성찰의 과정으로서 중요한 능력이라고 평가한다. 일상에서 다다소소한 거짓말을 하는것은 방편이 되겠지만 대방을 훼멸시키려고 작정한 거짓말은 빈충맞은 악덕이 아닐수 없다.     무릇 작은 목적을 위해 진실을 숨기거나 거짓말하는 정신상태에서는 현실이 잘못 인식되여 지속적으로 거짓된 언행을 하게 된다. 거짓이 반복되다 보면 합리적 사고가 멈추고 자기중심적으로 세상을 재단하게 되는데 특히 적대방을 훼멸시키기 위해 마구 지어내지만 그런 거짓말로 얻을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아무것도 얻을수 없기에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는 악순환이 지속되는것이다.     물론 모든 거짓말은 무조건 나쁘다고 말하면 편파적일수도 있다.“나”를 위한 것이 아닌“너”를 위한, 정말같은 거짓말로 대방을 기분좋게 하는 등 거짓말은 새로운 정감세계를 펼쳐보일수도 있으니 하는 말이다.  그리하여 속이려는 의도가 거짓말의 본질적 요소라는 주장도 있고 속이려는 의도는 거짓말의 본질에 속하는것이 아니라는 쟁론도 진행형이다. 일컬어 “아름다운 거짓말”이 그런것일가?     어쨌건 거짓말은 부정적인 개념으로서 앞에“아름다운”이란 수식어가  올수는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론리성을 제쳐놓고 이런 모순된 말을 잘 쓴다. 이런 말을 “모순형용”혹은“역설”이라 하는지 모른다. 언뜻 보면 모순되지만 자세히 보면 진리가 숨어있는 말이 역설이다. 그러나 거짓말은 역설도 아니다. 세상에서 “아름다운” 거짓말을 밥먹듯하는 나라는 세계 최대량의 핵무기를 가지고도 핵이 없는 세계를 시부렁거리고 세계 곳곳에서 학살의 포화를 퍼부어대면서 인권과 평화와 질서를 지껄이는 미국이다. 하지만 아무도 아메리카식 황통을 감히 까밝히지 못하고있다.     적대국에서는 인공위성,미사일도 야장간(철공소)에서 마치로 두드려 만든다고 우주공간에 고철덩이를 쏘아올렸다고, 지금껏 떨어지지 않고 하루에 15번씩 지구를 돌수 있는 “미사일”도 있다는식으로 거짓말을 엮어대는것은 무지를 표백하는것이다. 사실 제먼저 코가 실룩거릴 거짓말을 엮는것은 넘 불쌍하다. 코흘리개들은 귀가 솔깃해 할지 모르나 결국 고자가 제발등에 오줌을 갈기는 격이다.     사정이야 여하튼 배반자로서 량심을 짓씹을 대신 일년에 몇백만씩 굶어죽는다고, 일년에 몇백만씩 초형당한다고 나발부는 민족패류들의 황통을 곧이곧대로 받아쓰면 붓당나발이 된다. 그 거짓말이 정말이라면 가장 어렵던 1994년대 초부터 21년 째 일년에 2백만씩만 죽는다해도 4천 2백만명이라는 수치가 나온다. 그런데 최근 통계에 의하면 2500여만백만명이 그 국토에서 숨쉬고 신진대사를 하며 살아가고있다. 거짓말을 하려드니 가감승제도 틀리는 저능아로 되여버리는가?     제멋에 줴치던 거짓말이 들통나면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겠지만 국제적 거짓 말이 탄로나면 망신보따리밖에 안을게 없는데 어디에 풀어놓을것인가? 누가 얼마간 보이지 않는다고 설레발치다가도 신의 환생처럼 나타나면 “제밀헐것, 아니네?” 라고 할 때 스스로 하품이 나겠지만 자신이 바보라고 만천하에 홍보하는 꼴이다. 이런 자기 추태의 홍보는 정말 그냥 아주 광채롭지 못하다.     병서에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백전백승할수 있다고 한다. 대방이 든 총이 녹이 쓸어 총알도 못나간다고 업신보고 작대기를 들고 덤비다가 불시에 불이 번쩍 나면서 가슴패기에 구멍이 펑 뚫려 쓰러질 때 “어? 거지… 총알이 나가는 총도 있었구나, 으윽…녹쓴 총알에도 죽을줄 몰라…”한다면 얼마나 웃기는 비장함일가?     히틀러의 선전부장 괴벨스란자가 거짓말을 천번하면 진리가 된다고 줴쳤다는데 지금도 그 말을 신봉하는 자들이 많다. 사람은 귀구녕이 꽉 막혀도 안되지만 너무 뚫려도 똑똑한 축에 들지 못한다. 곧 들통이 나서 제무안에 취해 쥐구멍을 찾을 일이 없으려면 그럴싸한 황통쟁이가 되여야 한다.     일본에도 거짓말도 계속하면 진실이 된다는 말이 있다지만 거짓말의 부작용만큼 더 큰 부작용은 없다는것을 알아두어야 한다. 정상인들은 이런 말을 얼핏 깨득하지만 거짓말쟁이들은 죽었다 깨여나도 터득하지 못한다. 귀머거리가 영원히 요란한 잡음을 모르고 소경이 대명천지를 알수없듯이 말이다.     거짓말로 밥벌어먹고 살려는가? 거짓말은 기편의 꽃은 피울수 있지만 신뢰의 열매는 맺을줄 모른다. 사람에게 유일한것이여서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경우가 도덕적 문제를 야기하는 거짓말의 본질적인 특성이지만 듣는 사람이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경우도 있더라도 도를 넘지 말자. 거짓말에도 녀자의 거짓말은 돌각담이요 남자의 거짓말은 거적이라 한다. 그래서 제군들!거짓말을 하곺냐? 그래므 믿도록 해라!                                            2016년 1월 8일
720    (진언씨수상록 64 )글농사 어려우이 댓글:  조회:4540  추천:1  2016-03-05
                                               글농사 어려우이                                                          최 균 선       대저, 글짓기 전업인을 치켜세우면 문필가이고 낮춰 말하면 붓쟁이 혹은 글쟁이라 하는데 글짓기를 글농사라고도 한다. 농사는 작황이야 여하튼 뿌린대로 거 두지만 뜻대로 안되는 자식농사처럼 심은대로 거둘 수 없는게 글농사이다. 하얀쌀밥을 뼈밥이라 하듯이 벼농사는 뼈농사인데 글농사도 힘들기로 뼈농사라 할 것이다.     절실한 느낌, 생각들을 토해내고 싶은것은 글농사를 짓고싶은 욕망이요 선재는 종자고르기라 할 것이요 글감에 따라 체재를 바꾸어 쓰는 것은 왕년 콩밭에 조를 심고 조밭에 콩심는 그루바꿈이요 때론 생각이 떠오는대로 써놓는 것은 마치 “대뚜박” 을 두드려 씨를 뿌리는 것과 같음이요 처음부터 또박또박, 단락을 분명하게 나누며 써내려 가면 마치 호미로 폭폭 찎어 콩씨나 감자싹을 묻는 것과 같다고 할 것이다.     다써놓은 글에서 군더더기를 가차없이 지워버리는것은 씨솎음과 같다고 할 것이 요 가담가담 무언가 보충하는 것은 보식하는 것과 같다할 것이요 글을 윤색하는 것은 한포기 한포기 보듬으며 김매고 북을 돋우어주는 것과 같다할 것이요 그래도 시름이 놓이지 않아 여기저기 손을 대는 것은 큰풀잡이와 같다고 하리라. 농사와 글농사는 근원적으로 다른 점도 있다. 농사는 품앗이를 할 수 있지만 글농사는 아니다. 내 글밭은 내 능력껏 가꿔야 한다. 투고한후 편집이 도끼질, 대패질하는것은 딴 문제다.      이러한 글농사일진대 주로 시를 쓰면 시인이요 소설이 전업이면 소설가요, 평론 이 전문이면 평론가요, 수필로 성가하면 수필가라하고 글밭을 많이 가꾸면 다산작가 라 하는데 차차 다종경영을 하는 사람도 많다. 쥐도 한모 뚫어야 성공한다거나 우물 을 파도 한곳을 파라는 속담대로라면 자칫 뛰여난 글농사군이 못될 수도 있다.     아무튼 농사는 나만 먹자고 짓는게 아니듯 내 글농사이지만 혼자 향수하자고 하는 일이 아니니 글밭은 개방하게 되여있다. 공동히 향수하는 글밭이라 아무나 들어 올 수 있다. 그런데 만약 어떤 “달인”이 가라사대 밭을 많이 다루면 쭉정이농사가 되 기십상이니 글을 너무 많이 쓰는게 능사가 아니라 한두편 써도 “예술진품”을 만들 라고 충고한다면 맞는 말일가? “맞구요, 맞습니다”이다.     헌데 맞으면서도 맞지 않기도 하다. 아이들의 글짓기지도를 해본 사람은 먼저 남의 글을 많이 읽게 하면서 많이 써보게 하는 것으로 입문하게 한다. 처음부터 잘 쓰는 아이는 없다. 넘어질가봐 걸으려 하지 않는 아이는 걸음을 배워내지 못하며 넘어져도 자꾸 걷는 아이가 마침내 잘 걷게 되고 나중에 잘 달릴 수 있다는 도리와 같고같다. 어른의 글짓기도 이 도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보습을 쓰지 않고 구석에 팽겨치면 녹이 쓸듯이 필봉도 날마다 수시로 갈고 련 마하지 않으면 무디기마련이다. 기성붓쟁이라도 자꾸 써봐야 붓놀림이 쇠퇴하지 않는 다는것은 상식이다. 글을 많이 짓느라면 어떻게 보다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제나름의 묘리를 깨닫게 된다. 평시에 전혀 달리지 않던 사람을 갑자기 장거리를 달리게 하면 어떨가? 처음엔 기세좋다가 얼마 못가서 헝헝거리며 맥을 못출 것이다.     당초 걷지도, 달리지도 못하는자라도 씨엉씨엉 헌걸차게 걷는 제모습을 상상할수 있다. 마찬가지로 글을 쓰지 않아서 그렇지 일단 손대면 예술진품을 써낼 것이라고 환상하겠지만 실천의 벽을 못넘을 막연한 희망사항이다. “일책명작주의”라는 말을 하는데 “시시한 글”은 쓰지 않다가 일단 써내면 명작이고 다시는 더 쓰지 않는다는 뜻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일생에 처녀작이자 마자막인 명작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사람마다 일책명작주의 작가가 될 수는 없다.     밭을 많이 다루면 죽정이많은 농사가 될가봐 맨날 하나의 밭뙈기에 매달리여서 은나락금나락 많이 수확하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농사군도 아니다. 지금 농촌에는 수 십백쌍을 부치는 전문호들이 많은데 그들에게 밭을 그리 많이 부쳤다가 쭉정이농사를 하면 어쩌는가 물어보는 사람이 있다면 농사를 모르는 사람이라기보다 생각머리가 형 편없는 사람으로 여길것이다. 글농사군도 글밭을 다양하게 가꾸어 다산하려 한다면 그의 취향이니 곁에서 왈가왈부할 일이 못된다.     하긴 말이 많으면 쓸말이 없다는 속담처럼 글을 많이 쓰노라면 죽정이도 많을 수 있다. 그러나 북데기속에 알이 있다고 “너른마당쓸기”이면 얻는 것도 많다는 도리를 모른다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맹꽁이다. 그렇다고 졸작이 될가봐 아시당초 쓰지 않는다면 구더기 무서워 장못담그는 격이랄가? 누구나 혼자 달리면 늘 일등한다, 여 럿속에서 달려봐야 자기 실력이 확인된다. 문단에 필마단창과는 다른 얘기이다.     많은 글밭을 다루기와 말이 많으면 쓸말이 없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사람의 얼굴은 그대로 드러나지만 말하거나 글을 써내지 않으면 속생각이 드러나지 않는다. 말을 많이 하거나 글을 많이 쓰면 이런저런 생각, 지식수준이 드러나고 그와중에 사 고의 미성숙성, 틀린관념, 가치관도 드러나고 사상경향, 주요관심사(주제의식), 등이 여실히 드러난다. 울지 않는 아이와 늘 울어싸는 아이가운데 누가 더 활기찰가?     시종 입다물면 실언이 없고 글을 쓰지 않으면 졸작이니 걸작이니 하는 평판받을 계제도 없다. 남의 말을 그저 듣기만하고 아무런 글도 쓰지 않고 보기만 하면 내속이 드러나지 않아 지자인지 무재(无才)인지 드러나지 않아 좋고 구설수에 오를 념려가 없어서 좋지만 주체적생명활동에 표현능력이 결여되여 있음이 그대로 드러난다.     한걸음 물러나서 말한다면 글짓기가 창조적활동이기전에 취미생활일 수도 있다. 사람은 맹꽁이라도 나름의 취미생활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일터에서 물러나와 석양길 을 걷는 사람은 과거를 돌아보며 만년을 보내기에는 나머지 세월이 너무 길고 무료하 다. 갈길이 촉박해도 생명을 불태워야 한다면 취미생활일 수밖에 없다. 그 취미가 고급스러운 운필이면 금상첨화이다. 잘쓰든 못쓰든 글짓기가 자발적이고 미치도록 몰입가능하다면 그보다 더 의의로운 생명활동이 없을것이다.       벼농사는 뼈농사로되 땀흘린 보람으로 알알이 염근 벼이삭이 무겁게 고개를 숙 일수 있으나 아무도 시작부터 주욱ㅡ풍작만 거둘수 없는 글농사요 장마다 망둥이나 랴, 하듯이 써낸 글마다 말이 쉬운 “진품”이 될수는 없다. 다른 사람의 글을 지나가 는 말로 한두마디 평판하는 일만큼 쉬운 일이 없다. 입가볍게 말하는 사람이라고  명문장가라는 기약은 없다. 혹은 앉음뱅이가 달리기를 론하는격이 될수 있으니말이다.  아니면 자동차는 몰고싶은데 운전기술이 없는격이거나…     글짓기를 좋아한다는것과 글짓기에 몰두한다는것은 별개이다. 좋아하는것은 취향 이고 몰입한다는것은 공공에의 헌신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정신이 쉴줄 모르는 것은 인생의 최후의 정취이다. 청춘이 후회를 모르는 것은 아름다운 생명의 한단계 이기 때문이듯 인생만년에 후회를 안고 조급한 마음을 달리는 것도 아름답지 않으랴,     무릇 글에서 자신에 대해 말하면서 일반에 대하여, 가능껏 많은 사람들의 공통된 감정과 사색에 대하여 말한다면 독자들이 작자의 슬픔에서 자신의 슬픔을 느끼고 작 자의 내심세계에서 자기 정신을 비춰본다면 그보다 더 보람찬 일은 없을게다. 물론 글농사는 다수확농사와 다를수도 있다. 드문히 발표하더라도 읽을 가치있고 깊이와 무게와 감동이 있어야 함은 당연하다. 그러나 모두의 지향에 그칠 수 있다. 글농사는 그만큼 어렵기때문이다. 대충 써레질한 논에 훌훌 산종을 뿌리듯 하는 글농사는 아무 도 짓지 않는다. 뼈무르고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서 한걱정일뿐이지.                                                                         2014년 12월 18일   
719    (창작담) 기행수필의 진미 댓글:  조회:4745  추천:1  2016-03-03
                                                    기행수필의 진미                                                             최 균 선                                               1. 기행수필의 가치함량       현시대 새로운 체험의 방법으로서 려행을 즐긴다. 려행은 미지에 대한 기대와 흥분, 새로운 세계의 발견과 깨달음 등 직접적인 체험을 통해 인생을 총체적으로 생각해 보게하는 좋은 계기를 마련해주기때문이다. 려행은 삶에 새로운 자극과 활력소를 제공하며 안목을 높여준다.     지금은 려행이 시대풍조로 되여졌고 마음만 먹으면 려핼할수 여건이 주어진 사람들이 많기에 자연히 그런 내용의 글이나 자료도 넘쳐난다. 그리하여 이러한 사회적, 시대적 분위기를 어떻게 잘 어우르며 남보다 더 새롭게 보고 특별하게 갈무리하여 기행수필로 문학화 하느냐는 과제가 주어지는것이다.     그곳에 가보지 못한 타자의 삶의 질을 높이고 체험공간의 확대를 위해 기행수필이 등장했다. 려행이야말로 가장 다양한 글감을 얻을수 있고 그렇게 새롭게 보고 만난것들에 대한 감격과 충격은 내면 깊이 잠들어있던 문학의 샘을 깨우기도 하니 글을 쓰는 사람에겐 참으로 필요하고 소중한것이고 그것을 읽는 독자에겐 일종의 간접적정서체험이 된다. 그러나 려행을 했다고 해서 저저 기행수필을 쓸수 없다.     기행수필의 진가는 일과성적 체험을 통하여 영원을 수용하며 동서,문화, 과거와 현재, 삶과 죽음, 찰나와 영원, 인간과 환경을 동시에 살필수 있어 미래의 삶에 큰 도움을 줄수 있다는 점이다. 세계각지를 려행했더라도 그저 사진을 찍어 기념한데 그친다면 개체의 향수일뿐 공유될것은 없다.      그런데 기행수필이란 이름으로 발표되는 려행기들을 보며 가만히 앉아서도 세계를 볼수 있다는 감사함도 있지만 려행안내서 같다면 문학성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기행문을 어떻게 문학화 하는가에 대한 부담은 다른 글감보다 훨씬 더 클것같다. 특히 려행이 일반화 되여버린 요즘엔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한다는것도 크게 차이 나지 않기에 자칫 천편일률적으로 비슷한 내용의 글들이 되여버릴수 있다. 그러므로 내가 가서 보는것보다도 더 실감나게, 가보았음에도 미처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했던 것을 써놓은 글이여야 읽고싶어지고 또 읽어서도 감동을 받게 될것이란 말이다.                                                         2.  기행수필을 어떻게 쓸가?     기행수필은 여러가지 형태로 씌여진다. 일기문이나 편지글처럼 씌여지기도 하며 내용중엔 시나 전설, 유래 등을 넣기도 한다. 옛기행문들을 보면 특별한 상황에서 씌여진것들로 내용상 유람기행(遊覽紀行.또는 관유(觀遊)기행), 사행(使行), 류배 (流配), 피란(避亂), 기행(紀行) 등 몇종류로 나뉘여진다. 절승경개 산수(山水)를 찾는 기행문은 유람기행문으로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     현대에는 보통 ① 일기체기행문 ② 생활문, ③ 편지, ④ 감상문, ⑤ 보고문, ⑥ 안내문, ⑦ 논설문 형식의 기행문 등으로 씌어진 형식에 따라 나누고있다. 그러나 이러한 일반적인 형태보다는 내용 및 글의 성격에 따라 다음과 같이 분류할수도 있다.   우선 일정(路程) 중심의 수필로서 가장 일반적인 형식이다. 기행문은 언제 떠나서 언제 돌아온다는 로정, 무엇때문에 어디로 가는가의 목적과 목적지, 무엇을 보고 듣고 겪었는가의 견문,체험을 통하여 자신이 느낀 감상 등이 내용이 된다.     다음 력사․유래중심의 수필인데 독자의 흥미와 지식을 충족시킬 좋은 읽을거리가 된다. 그러나 전체 내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크다보면 결국 내 글은 없게 된다. 력사나 유래를 통해 역시 나에게 무엇을 말하려 하고 있는가를 잘 포착하고 그걸 주제감 있게 풀어내는 힘이 있을 때 읽을 맛이 나는 기행수필이 된다.     기행수필은 문학수필이다. 단순한 려행, 답사기록을 넘는다. 문학은 창작이다. 얼마큼의 창작력으로 보고 듣고 느낀것을 담아냈느냐에 작가의 력량이 구현된다. 려행을 떠나서 그 지방의 명승고적, 특색, 인정, 풍속, 산업 등에 대하여 보고 들은 사실이나 겪은 일을 느낌을 곁들여서 적되 생활언어가 아닌 문학적 언어를 사용하여 씌여진 기행수필은 문학쟝르에 들어설수 있다.     기행수필에서 려정, 견문, 감상의 내용이 주선률이다. 그러면서 다음의 특성을 고려하여야 한다. ①. 려행하면서 보고 들은것을 글감으로 하되 정말 신선한것, 특별한것을 취한다. ② 글쓴이에게는 려행기요, 읽는 이에게는 안내문이 될수 있지만 작가는 보이지 않는것을 보는 눈, 볼수 없는것을 보는 눈을 가져야 한다.     독일의 현대파시인 노발리스는 이렇게 쓰고있다.《보이는것은 보이지 않는것에 접촉되여 있다. 들리는것은 들리지 않는것에 접촉되여있다. 생각되는것은 생각되지 않는것에 접촉되여있다.》고. 본다는것은 보는 사람의 삶을 통한 총체적경험과 지식 정보를 투과해서 인식하는 행위이다. 대상물은 누구나 다 볼수 있지만, 보이는것과 접촉되여 있는 보이지 않는것을 보는 법을 터득하는것이 세상을 보는 눈으로서 기행 수필창작의 전제이다. 아니면 그저 두루 돌아보고 온것으로 그친다.     기행수필을 쓴다는것은 궁극적으로 세상을 보는 법을 배우는것이다. “본다”는 행위가 오감과 닿아있을뿐아니라 어떤 관점에서 보았는가에 따라 동일사물이라 해도 각자 해석이 달라지게 된다. 본다는것은 촉동, 관찰, 발견, 사색에 이른다. 려행하면서 본다는것은 단순한 목적일수 있지만 생각하는것은 무목적일수 없다. 그리고 그것을 표현하기가 기행수필쓰기이다. 작자는 견문의 내용과 느낌을 전달하지만 독자들은 지방,경물소개와 더불어 그에서 발굴된 체험의 심각성에 매료된다.      직접 가서 본것보다도 더 실감나게 쓰는 글, 실로 글쓰는 이의 부담이 아닐수 없다. 또한 스스로 신선하다는 충동에 의해 씌여진 글이라지만 내가 받은 신선함과 충동 이상으로 독자에게도 같이 느껴질수 있을지 의문이고 그렇지 못하다면 그건 생명력 곧 공감을 얻는 글이 되지 못할수 있다. 그래서 기행수필은 특히 독자를 의식해야 한다. 지기도취로 나만의 독백이 되면 멋이 없다. 읽을 맛은 최소한 지식 제공에서 독자에 대한 서비스로 감동에까지 이어져야 한다는 설명이 되겠다.     ③ 단순한 시간의 경과, 려행한 지역, 명승에 대한 순서적서술이 아니라 5백년, 천년을 거슬러 그 시대에 도달해 보고 그 시대와 현재를 ‘나’라는 가상의 기계와  련결시켜 옛과 지금이 함께 흐르게 해야 한다.  ④ 새로 보고 들은 일에 대한 느낌이 중심이 되지만 그것들이 오늘 이 시대의 나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를 들을수 있어야 한다. ⑤ 나만의 개성이나 독창적 생각이 나의 글쓰기 특성으로 분명히 드러 나는 글이 되여야 명실상부한 기행수필이 된다.     수필이 자기의 체험에 문학적 상상력을 가미하여 발효시키고 려과하고  농축한 문학이라면 기행수필 또한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한것(체험)을 소재로 하여 주제감 있게 재구성해 낸것이라 할수 있다. 조선작가 리태준선생은《문장강화》기행문중) 에서 이렇게 쓰고있다. “멀든, 가깝든, 처음이든, 여러번째든 (1) 떠나는 즐거움이 나와야 한다. (2) 로정(路程)이 보여져야 한다. (3) 객창감(客窓感)과 지방색이 나와야 한다. (4) 그림이나 노래를 넣어도 좋다. (5) 고증을 일삼지 말것이다.”     기행수필이라는 선입견적 제약을 벗는것도 중요하다. 사물을 보는 눈, 그걸 보고 느끼는 감정, 그리고 그것을 표현해 내는 힘, 이 삼박자의 조화가 바로 공감-감동을 여는것이다. 일반 서정수필이건 기행수필이건 먼저 자연을 향하여 열린 마음으로 다가가 스스로 하나가 되어줄수 있을 때 그 글을 읽는 독자도 하나가 되여줄수 있다.     특히 류의할것은 자기가 본것, 아는것에 대해서 너무 미신해서는 안된다는것이다. 다른사람도 이미 그것을 알고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을 하고서 써야 한다.     기행문을 쓸 때 작가들은 거개 출발에서 귀환까지 본대로 느낀대로 쓰겠다는 의도를 앞세운다. 이런 집필태도와 발상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어떤 관점과 시각에서 볼것이며 쩨마가 무엇인가를 분명히 정하여야만 기행수필의 방향과 목표가 뚜렷 해진다. 목표설정이 없으면 안내자의 설명과 려행안내서 내용, 컴퓨터에서 찾아낸 유관재료를 체험한것처럼 조합하면 작가의 주관견해가 결여되여 주체성을 잃는다.     본대로 느낀대로 쓰는것도 나쁘다고 할수는 없지만 자신의 전공분야와 탐구분야를 살려 테마를 설정하는것이 좋을것이며 일관된 시각으로 관찰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전체적으로 살피려다 보면 겉훑기에 그치기 십상이다. 기행수필에서 중요 한것은 남들이 가보지 못한 곳을 소개하는것이 아니라 시각의 참신성이다. 남들이 다 보고 온것이라 해도 자기만의 글로서 작품가치를 얻기 위해서는 시각의 독창성이 있어야 한다. 시각의 독창성이란 말 그대로 주제의식을 지니고 사물을 바라보는것 이다. 주제의식은 평소에 작가가 지니고 있었던 사상과 철학에서 파생된다.     기행수필은 주마간산(走馬看山)식, 말타고 꽃구경식(走马观花)식으로 겉훑기에 불과하여 내면을 투시한 깊이 있는 기행수필이 되지 못했다면 존재리유를 잃는다. 또한 려행안내 수준의 상식성에 그친 기행문이라면 설명문이지 기행수필이 아니다. 이런 기행수필들은 려행안내서나 안내자의 설명에 의존한 부분이 많고 단편적인 감상과 지식을 혼합시킨것이라면 감흥을 일으키가 어렵다.       기행수필은 작가의 세상과 인생을 보는 관점, 발견법 그리고 해석법을 보여주며 적라라하게 자신을 로출시킨다. 기행수필은 인생의 안목과 체험공간을 최대한 확대시켜준다는 점에서 좋은 기행수필은 독자들에게 신선함과 즐거움을 안겨준다. 하다면 어떻게 기행수필을 쓸것인가? 기행수필은 독자들에게 삶의 양식, 방법, 문화, 제도, 풍물에 대한 인식, 다양성, 충동, 창의성을 경험하게 한다. 기행수필은 마음으로 써야 그 맛이 진지해진다.     함께 려행을 하고서 쓴 글인데도 그저 보고 듣고 느낀것을 썼구나 하고 생각되는 글이 있고 반대로 가슴 가득 감동을 안겨주는 글이 있는데 어디서 갈리는가? 바로 예술성 곧 문학성의 차이다. 단순한 려정의 기록이 아니라 주제와 소재 그리고 이것들이 서로 조화의 얼개를 가지면서 가슴으로 파고드는 예술적 감흥․ 동감, 공감 력으로 전달되고 있을 때 문학성(감동)이 느껴지는것이다.     기행문은 기행수필과 무엇이 다른가. 기행문이나 기행수필이 다같이 려행을 통해 보고 듣고 느낀것을 글로 옮긴것이라는 점에는 다름없다. 다만 기행문은 상황 또는 사실․사건의 기록에 좀 더 충실한 편이고, 기행수필은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그걸 문학화한다는 차이이다. 그렇다고 기행문은 문학이 아니냐 하면 그렇지 않다. 좋은 기행문이 좋은 기행수필일수도 있다. 따라서 기행문학은 가장 자연친화적 문학으로 서정수필과 다름없이 가슴으로 파고드는 공감력이 있을 때 좋은 글이라 할수 있겠다. 기행문은 오감을 동원하여 쓰는 글이다.                                                        3. 기행수필의 맛과 멋     기행수필에는 맛과 멋이 있어야 한다. 맛은 읽어서 느껴지는 미적감각 곧 감흥이다. 눈으로 본것처럼 감동으로 펼쳐지면서 시간을 초월하는 생각내기, 그리고 표현력, 문장력이 읽는 이를 현장으로 옮겨놓는다. 나는 보아도 그런 감동을 못느낄 것같고 감동이 일어도 표현할수가 없는데 기행수필을 읽으면서는 오히려 본것보다 더 생생하고 감동적이게 느껴진다면 그게 맛깔스런 수필이 되였다는 얘기다. 보이지 않는것까지 보는 눈, 볼수 없는것을 보는 눈이라는것은 바로 이러한 맛을 끌어내는 작가만이 가질수 있는 힘을 말함이다.     또 하나 멋이란 기행수필엔 품위가 있어야 한다. 곧 글의 분위기와 내 품격이 잘 어울려줘야 한다는 말이다. 그저 감흥에 치우쳐 표현이 글의 품격을 잃게 하거나 겨우 한번 가본것으로 세상에서 가장 잘 아는 사람처럼 폼을 내며 쓴다거나 정확하지 않은 소개로 읽는 이를 혼란스럽게 하면 글의 품위를 잃게 된다. 자기 수준에 맞게 자연스러움을 유지하는 글쓰기가 중요하다.     기행수필은 풍경묘사나 력사탐방 해설처럼 씌여버리면 글의 맛도 멋도 잃게 된다. 무엇보다 남이 보지 못한것도 보고 남이 듣지 못한것도 듣는 눈과 귀를 갖고 그걸 가슴에서 키우거나 려과해 내는 문학적 력량으로 잔잔한 감동을 일으키는 글을 쓸 때 좋은 기행수필이 될것이다.     기행수필은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소재(체험)에 대한 의미화를 하는것이 목적이므로 관찰한것에 대한 함축과 절제가 요청된다. 려정은 있되 과감히 생략해야 하고 체험은 쓰되 주제에서 벗어난 이야기는 절제해야 한다. 기행문은 자료나 메모에 의존하기보다 가슴(느낌)으로 써야 한다는 얘기다. 이러한 요소들이 아주 적절하게 배치되고 있어야 독자들이 기행문의 진미를 느낄수 있다.     려행에서 견문은 전제이지만 작가로서는 그저 보는데 그치지 말고 그 모든것들속에 숨겨진 신선한것들을 읽어내야 한다. 문화기행, 경제기행, 민속기행, 문학기행, 미술기행, 종교기행, 풍물기행 등 전문성과 탐구성이 있는 테마기행수필이 그렇게 분류된다. 례컨대 문화기행이라면 동서양의 비교적 관점에서 볼것인가, 문화사적 관점에서 살필것인가, 문화비평적 관점인가, 혹은 문화양식적 특성을 찾을 것인가 등을  결정하는 일이다. 또한 자신의 관점과 시각을 중시할것인가, 아니면 많은 사람들의 인터뷰나 견해를 넣어 다각적인 시각을 수용할것인가를 선택해야 한다.    기행수필에 있어서 전문적인 탐구에만 몰입했다면 독자들의 안계를 넓혀주고 간접적인 감응을 불러일으키기 어렵다. 인간적인 체취, 뒷골목의 풍경, 잘 드러나지 않는 이색지대, 독특한 풍물, 음식,지역주민과의 친교와 대화, 삶의 양식과 모습 등이 적라라하게 펼쳐지고 려행중에 실수나 사건 등이 삽화처럼 어우러질 때 기행수필의 진미가 우러날것이다.     기행수필쓰기에서 구성짜기가 자못 중요하다. 일기형식의 기행문을 쓸것인가 아니면 소주제별로 쓸것인가, 시간별로 쓸것인가, 장소별로 쓸것인가 하는것을 잘 결정해야 한다. 구성을 생각하면서 전체적인 주제성과 조화성을 도모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개성적인 문장의 구사가 중요하다. 기행수필에 있어서 작가 특유의 개성적문장이 빛 을 발해야만 생동감을 얻게 된다.     작가 자신의 느낌과 사물에 대한 해석, 그리고 인생의 총체적 체험의 산물로서 얻어지는 정감으로 흠뻑 적셔놓아야만 읽을맛이 나 는 기행수필이다. 그런데 흔히 기행수필의 단점, 취약점은 작가의 통찰력과 느낌, 견해, 정감, 발견의 세계가 적다는것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취약성은 체험의 폭이 좁고 옅은것과 전문성결여, 문장력의 부족에서 나타난다.      사실(본대로)과 감상(느낌)을 물과 젖처럼 융화시켜야 한다. 기행수필엔 기록성 이 바탕이 되지만, 작가의 느낌과 견해가 중요하며 기록과 감상이 적절히 안배되여 조화를 얻어야 한다. 본대로(사실)에 치우치면 기록문에 가까워지고 느낀대로(감상)에 치우치면 감상문이 되기 쉽다. 기행문은 새로운 대상과 경험을 쓴 글이므로 사실성과 감상을 조화시키고 여기에 인생에 대한 해석을 가미시켜야 한다.     관찰관찰력이 남달라야 하고 탐구력이 발휘되야 하며 해석이 흥미진지하고 심오해야 한다. 개바위에 갔다온 격이라면 좋은 기행수필이 씌여지지 못한다. 순간적이고 일과성적 살핌으론 한계가 있다. 대상을 완전히 리해하기 위해서는 내면투시가 있어야 하며 관찰과 관조가 뒤따라야 한다. 여기에 탐구와 명상이 곁들여져야 하며 인생과 결부된 작가의 해석이 요구된다. 일과성적인 살핌속에 깊이있는 관찰과 해석을 요구한다는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작가의 전문적인 안목과 통찰력에 따라 바람직하게 이루어질수 있다.                                    2016년 2월 25일   
718    민들레만가 댓글:  조회:3874  추천:1  2016-02-27
                                                    민들레만가           꽃피는 봄 화사하던 그 웃음도 여름의 따끈한 입김에 속절없이 녹아버리고 진초록 바람이 산야를 애무하는 계절, 할일없는 시정배처럼 강기슭을 바장이다가 잡초가 무성해지는 내둑에 호을로 꽃을 피우고 고즈넉하게 선 한송이 민들레앞에서 나ㅡ칠척로옹이 센티멘탈하게 애상에 잠기다.       나물캐는 아낙네들의 무정한 칼끝에서 용케도 비운을 면하고 살아남아 자기 생명의 권리를 지켜가는 민들레, 어느새 그 가녀린 노란꽃을  피우고 깃털을 단 여린 씨앗을 맺았을가? 새 봄에 잠시 잠간 피였다가 금방 시들어버리는 속절없는 작은 꽃, 굵다란 줄기에 넓고도 호함진 잎사귀를 키워보지도 못하건만 숙명의 생존권에서 끈덕지게 자라는 여린풀이여!       그러나 오히려 그 어려움을 자양분으로 깊이 뿌리내리는 생명, 일단 꿈을 틔우면 어데로 옮겨앉을 궁리도 없이 그냥 그 자리에서 움트고 줄기를 뻗고 잎을 펼지고 제나름의 꽃을 피우는 봄의 어붓딸!역시 대자연의 섭리이거늘 뉘라서 생명의 본능을 압살하랴?!       민들레는 보잘것 없어도 정다운 애명들이 많다. 몀들레, 뫼음들레, 문들레무, 둘레, 씀바귀, 안질뱅이꽃…그리고 약재로 명명될때는 금잠초, 지정, 포공영, 포공초…등 이름이야 어찌 불리든간에 이 땅에 모든 생물이 자기의 생명권과 존재의 리유가 있듯 민들레도 자기 씨앗의 힘을 과시한다.       민들레는 연한 목숨이지만 연한 자태로 비바람을 이겨내며 이 세상과 대화할줄 아는 착하디 착한 꽃이다. 모든 적자들이 모두 환경을 전승한 강자일진대 적자생존의 무자비한 법칙하에서도 봄이면 봄마다 자기의 권리를 찾아 이 땅 한구석을 수놓아가는 민들레도 강자가 아니랴!       민들레는 풀로서는 너무 여린풀이며 꽃으로서도 하잘것 없는 앉을뱅이꽃이다. 그래도 우리 단군님 후손들의 꺼끌꺼끌한 보리밥에 제격으로 식탁에 올랐고 병든 몸에 약재로도 쓰이는 대지의 효녀로서 제멋에 자라다가 시멋없이 시들어버리는 무명초와도 다르다.       말없이 고이 자기의 설음을 삼키고있는 민들레꽃씨가 지금 막 스쳐가는 한오리 푸른 바람에 포르르 날아가버린다. 고이 키워놓으면 떠나가는 자식들인줄 너는 숙명으로 알고있느냐? 자기의 아들딸을 먼곳에 시집보내는 민들레엄마야! 말없는 너의 설음을 알것같구나…       지금은 아무도 민들레꽃이기를 원하지 않는다, 도시의 화분통에 꽂힌 호화로운 꽃이고 싶어서 미련없이 천애이역에 날아간다. 호화차안에서 울지언정 자전거뒤에 앉아 웃고싶지 않다며 날로 나날히 욕심을 부풀리는 준도시아가씨들 저 민들레처럼 날아가버린 딸을 그리는 시골의 엄마생각에 눈물을 지을 때 있을가?        민들레꽃의 외로움을 보듬노라니 내 상념도 민들레씨처럼 바람따라 정처없이 날려간다. 한때는 다감한 향토시인들이 순박하고 맘씨고운 시골큰애기들을 민들레 꽃에 비유해 찬미시도 많이 읊조렸거니… 민들레야 너는 지금 무엇을 속삭이느냐?                                           발길 무정한 논둑길에                           거친 들풀속에 자라나서                                해마다 오는 봄날이면                                     노란 꽃잎 곱게 펼쳐들고                                             미소를 보낼 때                          그때도 당신이 모른척하시면                              그리움으로 맺힌                                  씨앗 하나 하나에                                            은빛날개 달아서                          당신의 창가에 날려보내려니                              어느것은 바람에 방향을 잃고                                  어느것은 봄비에 쓰러지고…                      간절한 그리움의 씨앗 하나                          당신의 창가에 닿거든                              무심히 버려둬                                  척박한 어느 돌틈에                      자라게 하지말고                          당신의 품같이 따스한                              해살이 잘 드는 뜨락에 심어서                                  오는 봄에 화사하게 피여나면                                      내 행복의 미소인양 아소서.             민들레는 분명 나에게 속삭이고 있었다…그러나 그것은 눈물젖은 속삭임이였다.                                    2007 년 5 월 20 일    
717    두 엄마 댓글:  조회:5408  추천:1  2016-02-27
                                                                  두 엄마       보통 경우 누구에게나 엄마는 한분이 계신다. 만약 한 사람의 인생에 엄마가 한분 이상 있게 된다면 그것을 벌써 정상을 벗어난 어떤 사연이 얽혀있음을 말해준다. 엄마를 가리키는 말로는 자기를 낳은 친엄마, 길러준 양엄마, 젖을 먹여준 젖엄마 그리고 이붓엄마, 숙모 등을 들수 있다.     나에게는 두 엄마가 계셨다. 큰엄마로 모신 아버지의 본댁 정금순과 작은댁으로 들어와 우리 오남매를 낳으신 작은엄마 리성화였다. 나를 낳아주신 친엄마는 혈육의 정으로 얽혀있기에 영원히 기리여도 백번 지당하지만 자신이 배아프게 낳은 친아들처럼 추울세라 더울세라 키워주시고 성가시켜주신 큰엄마도 나에게는 친엄마 못지 않게 귀중하고 존경스러운 분이다.         나의 큰엄마는 열아홉살에 두살 아래인 나의 아버지 최정묵에게 시집와서 딸을 하나 낳고 그만 어찌해서 단산하게 되였다. 맏며느리로 최씨가문에 들어와 대를 끊게 한다는것은 녀자로서 용서못받을 죄라고 생각한 큰엄마는 남편도 모르게 사람을 내세워 아들딸을 주렁주렁 낳아줄 녀자를 물색해 새댁을 맞아주리라 은근히 왼심을 썼다. 사람을 내세워 알맞춤한 녀자를 물색하던중 룡정시내에서 홀몸으로 하숙집을 꾸려 연명하던 녀자가 재가할 의향이 있다고 해서 몸소 찾아가 선을 보았다.     달덩이같이 환한 얼굴에 두눈은 더없이 착해보였고 몸집은 암팡지게 생겼지만 서른살을 갓넘긴 젊은 녀자여서 아이낳이는 무척 잘할것 같아 대번에 마음이 들더란다. 아들하나늘 믿고 살다가 얼마전에 불치병으로 먼저 보내고나서 눈물로 지내는 모습을 보니 더구나 측은히 생각되여 빌듯히 해서 집으로 데려오게 되였다고 자주 옛말삼아 들려주시던 큰엄마를 나는 몇번이고 다시 바라보았다.     가세가 넉넉하면 축첩도 가당한 일로 여긴 구사회였지만 큰엄마는 녀자의 본성인 투기도 없이 자청해서 작은댁을 맞아왔다니 알고도 모를 일이다. 대를 이어주지 못해 죄송한 마음이 있었더라도 혈기방장한 녀자로서 남편의 사랑을 송두리째 빼앗길수도 있는데 그렇게 한다는것은 조련찮은 일이다. 나는 그것이 관용인지 포용력인지 알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큰엄마에게 꼬치꼬치 캐물을수도 없었다.     아무튼 그렇게 젊은 두 녀인이 한남편을 섬기며 시앗싸움도 없이 오손도손 화목하게 살아오셨단다. 낮이면 한뉘 농군인 남편을 거들어 밭일도 하고 온 집안의 궂은일 마른일을 도맡아하시면서 마치 새며느리가 아이를 가지기를 학수고대하듯이 새댁이 소식이 있기를 기다리면서 밤이면 남편을 가운데 눕히고 아무 말썽도 없이 살았다는 실로 우습기도 하고 천방야담 같기도 한 일이였다.     새댁이 이듬해 남자쌍둥이를 낳자 큰엄마는 마치 자신의 일이라도 되듯이 그렇게 즐거워하셨단다. 그후 엄마는 련이어 내 누이를 낳고 셋째인 나를 낳고 아래로 또 녀동생까지 낳으셨다. 큰엄마는 새댁은 아이들만 잘 기르라면서 집안에 눌러앉혀두고 궂은일은 혼자 도맡아하시며 억척같이 일하셨다. 원래 서울에서 태여나 힘든 일은 손에 대보지도 못한 나의 생모는 그렇게 호강하며 살았다.     옛날엔 고부가 앞뒤방에서 한날한시에 몸을 풀었다더니 아닌게 아니라 생모가 쌍둥이를 낳은 그해 시집간 큰누님도 첫아들을 낳았다.     새댁이 아들딸 다섯이나 가지런히 낳아서 온 집안이 시끌벅적하게 살아가다가 토지개혁이 터지면서 우리 가정은 일조에 몰락하게 되였다. 설상가상으로 나의 아버지가 50대에 전염병으로 돌아가다보니 두 청상과부가 한구들이나 되는 아이들을 키워갈 일이 얼마나 막막했으랴,     두 엄마는 분공을 하여 각자 책임을 다하기로 약조하였단다. 그래서 약삭빠르고 작식솜씨가 있고 장사머리도 좋은 작은엄마는 남자들처럼 밖에서 나돌고 워낙 현처량모인 큰엄마는 가정일을 하며 우리 오남매를 키우셨다. 그러다보니 나는 어려서부터 누가 생모인지 모르고 또 알려고도 하지 않고 큰엄마의 손에서 자라게 되였다. 새로 분배받은 서덜밭 서너짐을 혼자몸으로 부치노라니 고생인들 얼마였고 남편없는 설음인들 얼마였으랴!     그렇게 집을 나선 엄마는 장춘이요, 할빈이요 하는 큰도시로 전전하면서 세상을 하직할 때까지 다시 돌아오지 못하였다. 내가 열네살 잡던 해 우리는 정든 고향 룡강촌에서 쫓겨나 모아산아래 모아툰에서 살게 되였다. 이미 청년이 된 쌍둥이형제는 제가끔 앞날을 개척한다고 나가고 누이와 나, 녀동생이 큰엄마의 곁에서 잔뼈를 굳히게 되였다.     그러나 큰엄마의 고생은 여전했다. 더구나 문화대혁명때 이미 해골이 된 남편의“덕”을 보느라 쩍하면 투쟁대회에 나서게 되여 정신적인 고생도 얼마였는지 모른다. 나는 큰엄마가 사망할 때까지 생모처럼 여기면서 달리 대하지 않았지만 별로 효도를 하지는 못하였다.      곁에 하나 남은 아들이라고 그렇게 마음을 써주시며 나를 장가보내고 손주를 안으면 죽어도 원이 없으시겠다던 큰엄마는 내가 늦게야 장가들어 겨우 생긴 첫애가 태여나기 얼마전에 지병으로 돌아가셨다. 사람이 늙으면 세상과 고별하는것은 섭리이건만 나는 해마다 큰엄마이 묘지앞에서 참회를 한다.     큰엄마가 그렇게 병에 시달리다가 운명하실 때 내가 집에서 지켜드리지 못하고 홀로 내이름을 부르며 돌아가셨을것을 생각하면 나는 스스로 불효를 울고운다. 더구나 큰엄마는 폭설이 내리던 날 사망하여 장례도 겨우 치렀다. 총각의 몸으로 상두를 메는 법이 없다지만 나는 내엄마가 사망하면 동네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야 할것이라고 생각하고 평소 초상집을 쫓아다니며 굴혈을 하고 시체를 들어내고 상두를 메며 왼심을 썼건만 결국 내집에 초상이 나니 들여다보는 사람 하나 없었다.     마을 어른들이 초상집에 와서 혼을 불러주는 법인데 모두 오기를 꺼렸다. 상두도 못쓰게 하여 소수레에 실어서 마을에서 멀지 않은 산기슭에 자리를 잡고 안치할수밖에 없었다. 소수레를 몰고 허리를 치는 눈길을 헤칠 때 나는 울음도 나지 않았고 또 눈물로 나약함을 보이고싶지도 않았다. 그리고 속으로 별렀다. 이제부터 다시는 어느 집 초상에도 얼씬하지 않을것이고 상두같은건 더구나 메지 않겠다고 이발을 뿌드득 갈았다. 사실 그후 남의 죽음에 가슴 한번 쓸지 않았다.      한평생 허리 펼 사이도 없이 일만 하시며 고생고생하시다가 한많은 세상을 등진 큰엄마는 죽어서도 그렇게 어렵게 저승길을 떠나셨다. 그래서 나는 생전에 다하지 못한 인륜지정을 미봉이나 하듯이 한번도 거르지 않고 인정많은 안해와 함께 봄가을로 큰엄마의 묘소를 찾아 엎드려 절을 하며 후반생에 운이 트인 셋째아들ㅡ이미 로옹이 된 이 불효자를 보아달라고 빌어본다.그리고 나어린 손자를 묘소앞에 세워놓고 큰 소리로 되뇌인다.     “큰엄마, 이 셋째가, 이와조가 왔수꾸마. 크게 성공한 당신의 손자의 아들ㅡ 증손자놈도 데리고 왔수꾸마, 구천에서 한을 푸시고 안식합소이, 엄마 명복을 비나이다…”       불효자인 나에게는 나를 낳아주신 친엄마의 유체를 모신 묘소가 없다. 그래서 늘 비명에 가신 엄마를 기리는 글토막이나 지어서 구천에 보내려고 하다가 마침내 자신도 북망산을 저만치 바라보는 때에 그 심정을 담아“내 마음속의 빈 무덤”이라는 글제를 떠올리게 되였다.     국말국초에 삶을 영위한 엄마는 째진 가난에 부대껴도 말 한마디 틀릴세라 조심하며 눈물에 옷고름이 썩어도 앞날을 바라고 한숨을 죽이며 살아오셨다. 친엄마의 일생은 참으로 가혹한 운명속에 피멍이 들고 짓찢긴 일생이였다. 나의 생모은 원래 서울내기였는데 무슨 운동을 한다며 집을 뛰쳐나간 남편이 중국 간도에 있다는 소문을 듣고 세살내기 아들애를 업고 두만강을 건너 사처로 찾아다니다가 남편이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것을 알게 된후 다시 고향 서울에 가지 못하고 룡정에서 삶의 보따리를 풀었단다.     엄마는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이승살이가 그렇게 기구하였던가? 아들 하나를 태산같이 믿고 살다가 아홉살나던 해에 이름모를 급병으로 잃고 서른한살 청상과부의 설음에 하늘땅이 그대로 무너져내렸을것이다. 그러다가 큰엄마의 알선으로 해주최씨네 가문에 들어오게 되였던것이다. 엄격한 의미에서 말하면 나는 서자인 셈이다.     아버지는 두 형이 아홉살 나던 해 청산투쟁을 맞고 그 미열로 50대초반에 젊은두 안해와 다섯이나 되는 자식을 남겨놓고 황천길을 가셨다. 몰락세가의 살림을 어찌 한두입으로 서술하랴. 녀동생이 젖을 떼고 혼자 놀수 있게 되지 생모는 우리들을 공부시키려고 룡정의 “백만려관”에 들어가서 식모살이를 했다. 내가 여덟살때 엄마는 장춘으로 가셨고 거기서 다시 할빈으로 들어가 흑룡강성민족간부학교식당의 종업원으로 일하다가 퇴직한후 이집저집 식모살이로 전전하셨다. 그러다가 할빈사법학원 총무주임의 집에서 환갑을 앞두고 한많은 수난의 인생을 마치시였다.      아마 친엄마가 사망한 이튿날 밤이였을것이다. 그날 저녁을 먹는데 큰엄마가 말씀하셨다.       “큰것들은 다 집을 떠나고 너만 남았지만 십여년을 객지에서 고생한 네어미를 인젠 모셔오너라. 명년이 환갑인데 늘그막까지 고생시켜서야 쓰겠냐? 환갑상이나 받게 하고 한집에서 죽이면 죽, 밥이면 밥을 먹으며 함께 살아야지.”     그전에도 그런 생각이 없은것은 아니였지만 환갑을 쇠여드릴 생각은 미처 못했던 나인지라 얼굴이 뜨거워났다. 그래서 작은엄마의 얘기를 하며 환갑쇨 일을 의논하는데 뒤집 친구가 느닷없이 문을 떼고 들어와서 전보를 불쑥 내밀었다. 등잔불밑에서 읽어보니 이게 무슨 청천벽력인가? 어머니께서 전날 저녁무렵에 뇌익혈로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부고였다. 나와 녀동생은 대성통곡하고 큰어머니는 돌아앉아 눈물을 훔치시다가 울고만 있을게 아니라 부채골에 큰매부에게 알리고 얼른 할빈에 가서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알아보는게 급하다고 일깨우셨다. 사실 너무나 뜻밖의 비보를 받고보니 내 사유도 멈추고 시간도 정지되고 하늘땅이 꺼져내리는듯싶어 무엇이 무엇인지 그저 얼이 쑥 빠져있었던것이다.     그런데 거북한 놈이 가루팔러 가면 바람이 분다더니 그날따라 큰눈이 펑펑 쏟아졌다. 부채골로 가려면 룡정을 거쳐 40리 밤길을 걸어야 했다. 나는 눈물을 짓씹으며 무거운 발길을 재우쳤다. 눈은 하염없이 내리고 내 눈물도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한밤중에 매부네 집에 들어섰을 때 나는 눈사람이 되였고 귀뿌리가 작열하고있었다. 더운 집에 한참 앉았노라니 두귀가 말귀처럼 되였다. 중의를 아는 매부가 귀를 얼궜다며 어린조카들을 깨워 헛간에 가서 찬 콩을 퍼온다 앞내가에서 얼음을 꺼오게 한다 하며 야단법석을 했다.     귀에서 진물이 줄줄 흘러도 그것을 아랑곳할 새가 없었다. 눈한번 붙이지 못하고 앉았다가 매부와 함께 녀동생을 데리고 할빈행 렬차에 몸을 실었다. 할빈에 도착하여 주인집에 들어서니 저녁때였다. 퇴근하고 돌아온 주인집 나그네가 엄마의 사망경위를 이야기해줄 때 나와 녀동생은 그저 소리없이 울었다. 울지 않고 무엇을 더 할수 있단말인가?     그날 해질무렵 주인량반이 학교에서 돌아와보니 엄마는 창턱아래 쓰러져있었는데 숨이 경각에 달려있더란다. 엄마는 철창속에 있는 둘째와 조선으로 건너간 맏아들과 큰딸, 그리고 모아산밑에 있는 막내아들과 막내딸을 생각하며 홀로 서럽게 울고계셨을것이다. 그리고 너무 상심한 나머지 혈압이 높아지면서 뇌익혈이 왔을것이다. 엄마는 힘겨운 식모살이에 육체상으로 지쳤다기보다 정신상에서더 지쳐서 병든 마음을 버텨주던 마음의 기둥마저 철저히 무너졌을것이다.     이튿날 주인량반의 인도를 받으며 병원의 사체실에 들어서니 20여구의 시체가 맨봉당에 줄느런히 놓여있었다. 가슴이 섬뜩해났다. 죽음의 문턱이 그렇게 몸서리쳐질줄은 몰랐다. 스믈한살, 아직 죽음에 대해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나인지라 친엄마가 누워있는 사체실이였건만 가슴이 싸늘하게 식어들었다. 그많은 시체들속에서 어머니의 유체를 찾기까지는 한참 걸렸다. 백포를 덮어놓아서 누가 누군지 알수 없었던것이다. 마침내 백포를 하나하나 제끼고 엄마의 얼굴을 확인했을 때 나는 또 한번 몸서리를 쳤다. 엄마의 얼굴을 밀랍처럼 창백했고 사지는 차디차게 굳어져있었다.     나는 인간의 죽음이란 얼마나 랭혹하고 허무한것인가를 절감했다. 아직 응석을 부릴 나이에 내곁을 떠나서 청년이 되도록 애절한 모자의 정을 나누지도 못하고있다가 마지막 만남으로 사체를 마주했으니 그때 나의 심정을 표달하기엔 나의 언어가 너무나 창백하였다. 비록 남들처럼 생모의 사랑을 넘치게 받아보지 못했지만 필경은 열달을 배속에서 키워주시고 인간으로 태여나게 해주신 생명의 모체이니 억장이 무너지였다. 그러면서도 엄마의 유체를 부등켜안고 울지 못했다. 울려고 결심했더라도 눈물이 나오지 않았을것이다. 나는 이미 오는 길에 눈물이 다 말라버렸 억지로 짜낸다면 피눈물이였을것이다.     할빈서북쪽에 있는 금산포공동묘지에 엄마를 묻고돌아설 때 나는 너무 억이막혀 다하지 못한 불효를 두고 하늘을 우러러 통탄할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통탄이 아직 가벼운 통탄이였음을 그때는 미처 몰랐다. 3년후 금산포의 공동묘지에 주택구가 들어서고 임자없는 묘소를 그대로 밀어버렸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너무 늦었다. 그저 마른 가슴만 뜯었다. 그렇게 엄마의 한이 말라붙은 해골이 어디로 실려가 산산히 부서져버렸는지도 모르게 되였으니 이 아니 통탄할 일인가?        그렇게 나는 생전에 나를 낳아준 엄마를 곁에 모시지 못하였고 사후에도 모실수 없게 되였다. 해마다 청명이 돌아오 큰엄마의 묘소게 가토를 하고 술석잔을 붓고 절을 할 때면 생모의 묘소를 앉히지 못한것이 한이 되고 부끄러움이 되여 더구나 가슴이 알찌근해남을 어쩔수 없다. 내 마음속에 분묘가 커질수록 불효막심한 자신이 미워진다. 지금 엄마의 령혼은 황천에서 안식할 곳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리라.         사람이 자식으로 태여나 불효가 따로 있는가? 효도함에는 시기가 따로 없다지만 사후효도는 빈집에 불때기와 같은 부질없는 짓이다. 오늘 백골이 진토가 되고 넋은 천애이역에서 안식을 모르고 떠도실 엄마를 생각하매 그 명복을 빌 명분마저 서지 않으니 더구나 구곡간장에 회한만 서리고 얽힐뿐이다.         아, 서러운 원혼이여!나의 어머님이여!                                   2007년 10월 26일
716    (잡문) 소리의 미학초고 댓글:  조회:4681  추천:0  2016-02-22
                                                         소리의 미학초고                                                                    최 균 선       사전적으로는 소리란 물체의 진동에 의하여 사람이나 동물의 귀에 전달되여 청각 작용을 일으키는 공기의 파동이고 소음은 시끄러운 소리이고 음향은 물체의 소리와 그 울림이라 각각 해석되고있다. 음향이나 소리나 소음이나 다 귀에 들리지만 갈수록 잡음을 제조하지 말고 소음(骚音)을 소음(消音)시키는 제도적장치가 요청된다. 무슨 소리, 무슨 소음해도 고막을 찢는 폭발소리에 마음이 편해진다는 바보는 없으리라.     섣달 그믐날밤, 예이제 폭죽소리 요란한 축복의 밤이 돌아왔다. 감각시대여서인가? 폭죽소리도 음속, 음도가 갈수록 극치에 이르러 딱총소리같던 데로부터 벼라별 소리가 다있다. 타당타당 투닥투닥 귀청을 찢는 “기관총소리” 딱 꿍딱꿍 고막을 막치는 “보총소리”, 쿵ㅡ챵 오발된 “소총소리” 꿍ㅡ꽝 “수류탄 터지는 소리”,귀가 멍멍하도록 엄청난 “대포소리”등 폭죽소리가 난당이다…     온갖 총포성이 울부짖는듯 하여 자극이 극하겠이지만 정작 생명을 훼멸시키려 총탄이 빗발치고 공포의 폭탄,포탄소리에 간담이 다 튕겨나올 전투장에서 보총소리, 돌격총소리, 기관총소리, 박격포소리, 대포소리를 가늠하며 어떤 쾌감을 찾으려는 허겁 뜬 사람이 있을가? 헌데 왜 폭죽소리는 그리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간혹 인명사고도 나지만 총체적으로 생명위험이 없으니까 “총포소리”도 오락처럼 들으려는게다.     돈팔고 소음을 사고 시끌한 소음속에서 즐기려는 사람들의 음향취미를 왈가왈부 할수 없다면, 꼭 떠들썩함속에서 축복해야 한다면 반드시 굉음속에서 할것까지는 없지 않을가? 참으로 현시대는 소란의 시대, 귀와 마음이 요란한 소음으로 가득 채워 진다. 고요함을 이상하게 하는 시대, 마치 폭음에 귀멍멍한 전쟁터처럼 소음과 소란 속에서 살아야 하나? 쓸데없는 잡소리가 귀찮은데 소음이 있어야 다른 소리가 들린다는 나같은 음맹으로서는 "소음공명"이라는 새로운 해석이 생경할뿐이다.     산업화사회가 만들어내는 온갖 소리는 생태교란, 스트레스, 만성질환, 정서파괴 등 시대적질환을 만들고있다. 소음으로 가득찬 문명시대에 습관되여 작은 소리에는 오히려 청각이 무디여지고 더 이상 원래의 강도를 느끼기 힘들어지고 큰소리에 귀가 멍멍해져 청력의 저하와 손상만이 아니라 심리소란까지도 생긴다. 조용한 숲속에 아무데나 벌렁 드러누워 귀를 쉬우고 싶은 마음이 무시로 생기는 판이다.     현재 우리가 안고있는 심각한 환경오염문제와 생태계의 파괴에는 소음도 포괄되고있다. 소음이 인체와 생태계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모르는 사람이 별로 없을게다. 맑은 공기, 깨끗한 물을 지향하는만큼 소음문제의 심각성을 력설하는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날로 높아가고있다. 사람은 이따금은 고도의 문명시대가 토해내는 소음이 아니라 마음의 소리에 심취하는것도 좋거니와 속깊은 곳에서 우러나 용솟는 순수 생명의 소리를 들으면서 삶을 음미해보는것도 역시 고상한 심취이리라.     아무튼 아니듣고는 못사는 소리지만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 풀벌레소리, 미풍에 나뭇잎이 떨리는 소리, 한겨울 시골집에 문풍지마저 울리는 눈보라소리도 인위적으로 만들어지고 분식된 도시의 고음선률보다는 귀가 더 편안해 할것이다.     자연소리를 들으며 자란 시골애들은 정나미도는 자연의 소리속에서 쌓은 정을 차분히 주고받는 습관을 몸에 익히게 되였고 그 반대로 도회지의 소음속에서 자라는 애들은 떠들썩한 환경에서 자라나 그게 더 좋은줄로 안다. 아이들은 자연의 숨결속에서 조화된 심신을 키우는게 좋으련만 지금은 도시애들은 물론 농촌애들도 날새도록 개골개골하는 개구리합창의 의미를 잘 모르는 현실이 되였다.     음향전문가의 말에 의하면 목적과 구조적 특성의 여부에 따라 같은 소리라도 음향과 소음으로 구별되는데 소음에도 좋은 소음이 있단다. 특정된 음높이를 유지 하는‘칼라소음 (color noise)’과 비교적 넓은 음폭의‘백색소음(white noise)’이 그것이다. 백색소음이란 백색광에서 유래되엿는데 백색광을 프리즘에 통과시키면 7색 무지개 빛깔로 나눠지듯, 다양한 음높이의 소리를 합하면 넓은 음폭의 백색소음이 된단다. 백색소음은 우리 주변의 자연생활환경에서 쉽게 접할수 있다. 생활환경에 따라 주변소리가 다르듯이 백색잡음도 다양한 음높이와 음폭을 갖는다.     백색음으로 비오는 소리, 폭포소리, 파도소리, 시냇물소리, 나뭇가지가 바람에 스치는 소리 등이 있는데 소음에 해당되지만 음향심리적으로는 별로 의식하지 않으면서 듣고 또 항상 들어왔던 자연음이기때문에 그 소리에 안정감을 느끼게 된다. 게다가 자연의 백색음을 통해 우리가 우주의 한 구성원으로서 주변환경에 둘러싸여 있다는 보호감을 느끼게 되여 듣는 사람은 청각적으로 적막감을 해소할수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는 세상의 소리를 들으면서 자신이 살아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그래서 인간 세상의 소리도 꼭 필요한 소리이다. 련며칠 작달비 내린뒤 산골짜기를 메우며 쏟아지는 홍수의 소용돌이치는 소리는 대자연의 관현학이라 할것이요 고요한 새벽을 깨 치는 수탉의“꼬끼오”소리는 려명의 종소리라 할것이다.     연암은 귀울림의 비유를 들어 자기가 혼자만 아는것을 남이 몰라주어 걱정이라고 하였다,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귀울림을 즐기고 또 남들도 그 소리를 똑같이 들어주기 를 강요한다면 그것은 병이다. “하루밤에 아홉번 강을 건너다”라는 기행문에서 같은 소리도 듣는이의 마음에 달렸다고 쓰고있다.      …나는 예전에 문을 닫고누워 그 시냇물소리를 다른 소리와 서로 비교해서 들은 적이 있다. 청아하다고 생각하고 들으면 깊은 소나무숲에서 바람이 불때 나는것 같은 소리로 들린다. 몹시 흥분했다고 생각하고 들으면 산이 갈라지고 언덕이 무너지는것 같은 소리로 들린다. 교만한것 같다고 생각하고 들으면 뭇개구리들이 다투어우는듯 한 소리로 들린다. 성나있는듯 하다고 생각하고 들으면 수많은 축이 번갈아가며 울리 는것 같은 소리로 들린다….     소리에는 생태적인 소리와 인공적인 소리가 있고 세상의 소리와 마음의 소리가 있다. 누구나 이따끔은 세상의 소리가 아니라 마음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깊은속에서 우러나는 생명의 소리를 들으면서 살아야 하는것도 우리의 삶의 일상이다.  하지만 잡다한 온갖 소음속에서 자신의 심연의 소리를 듣기어렵다. 그래서 소리ㅡ잡음들이 넘쳐나 그 소리를 피해 조용한 곳으로 달려가는 사람들이 날이 갈수록 늘고있다. 가끔씩 세상의 소리에서 벗어나려는것이다.     산에 가면 마음의 소리를 찾아가는 셈이다. 산행을 통해 소리의 미학을 즐기는것도 산을 찾는 중요한 리유이기도 한것이다. 산행을 하다보면 고요속에 제마음을 더 깊이 들여다 보게 되면서 무언가를 얻었음에 무한한 기쁨을 누리게 된다. 세상의 소리에서 벗어난 자재적인 즐거움이다. 이처럼 마음에 닿아오느 소리, 즉 듣고싶은 소리와 듣기싫은 소리는 각자의 심상에 달렸다.     하지만 아무리 듣기나름인 소리라해도 소음만은 아니다. 하늘엔 구름을 찢는 비행기소리, 거리에 나서면 섬뜩하고 아츠러운 경적소리, 길옆상가에 음악소리, “싸구 려소리”, 집에 들어오면 텔레비죤소리…붐비는 인촌에 무풍지대가 있으랴만 잡소리가 싫어지는 문명시대인것은 사실이다. 섣달그믐날밤, 예이제 폭죽소리 요란떨며 축복의 밤을 새운다. 너무 들어서 습관되였으련만 많이, 쉽게 들으라고 나붙은 두귀는 무방비상태이다 보니 나날이 높아지는 도시의 소음속에 지쳐버린 탓일수도 있다.                                          2013년 2월 9일  (섣달그믐날밤 소감 )
715    (진언수상록 47) 감정과 리성의 대결 댓글:  조회:4469  추천:0  2016-02-19
                                   감정과 리성의 대결                                              최 균 선       감정은 모종 상황에서 팽창되다가 폭발하는 분노, 불안, 자책감, 수치심, 실망, 질투심, 안도감, 희망, 슬픔, 쾌감, 긍지감, 사랑, 감사, 동정심, 그리고 미학적경험으로 일어나는 그 모든 심리,정서적파동이라 개괄할수 있다. 감정과 리성이 적절하게 조화된 시점이 최적인데 리성만 내세운다만 로보트같은 랭혈인간이 될것이고 감정지배만 내세운다면 동물수준으로 전락할뿐이다.    플라톤은 인간의 심령을 리성, 의지, 정감 세개 부분으로 나누어보고 다시 그것들의 지위의 고저로부터 완연히 구별된다고 단정하면서 일종의 등급관계를 드러낸다고 역설하였다. 이에 따르면 인생도 저급적인 부분과 고급적인 부분으로 나눌수 있다. 말하자면 생물의지, 일상정감과 과학리성이 저급에 속하고 도덕의지, 종교정감, 철학 리성은 고급적인것이라 할수 있다.     인간은 우선 정감동물이면서 리지적동물로서 인간의 일체 사업에서 정감은 원동력이 되고 리지는 때따라 제동장치로 되고 때론 집행자가 된다. 그러나 감정이 인간의 행동에 미치는 악영향의 의미는 심리학계에서 오래동안 과소평가 되여왔다. 리성 과 지능이 인간발달의 최고수준으로 여겨진 반면 감정은 불확실하고 측정할수 없는것으로 인정되였다. 드디어 감정이 인간의 본성을 확실하게 결정한다는것, 감정은 감성지능이라는것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학자들이 뒤늦게 밝혀냈다.     리성이 고귀한것이고 감정은 저급적이라던 묵은관념이 도전을 받았다. 연구결과, 인간의 의사결정정에서 감정은 무척 중요하며 세상을 지배한 합리성이란 개념조차도 객관성에 의거한 옳고그름이 아니라 감정에 기초하여 자신이 좋아하고 원하는것을 극대화하고 싫어하는것을 최소화하는 지혜를 터득한것이다. 감정은 결정하고 리성은 그 결정을 합리화한다. 그러나 좋은것을 극대화하고 싫은것을 최소화하는 합리성사유는 저도모르게 뒤로 밀리는게 보통이다.     감정과 리성은 인간생명마차의 하나의 축을 따라 굴러가는 두바퀴와 같다. 그런데 이른바 랭철한 리성적판단과 종잡을길이 없고 제어불능의 감정을 공존한다는것은 인간의 원초적인 불행이고 비애로 지속되고있다. 디자인이 서로 다른 개체감정이라는 무모한 충동이 종횡무진하는 인간의 감정세계에서 자기 감정만이 자연스럽고 정당한듯 착각도 아닌 오만성을 내대기에 리성과 불가공존의 맹목적인 감정이 된다.     인간의 모든 감정의 바탕은 개인적의미 내지는 리해득실이다. 이런 바탕에서 감정이 형성된다. 자고로 감정과 리성을 대립시켜왔지만 기실 량자는 불가분리적으로서 리성과 전혀 무관한 감정이란 있을수 없다. 감정은 신호이다. 그러나 감정은 리성으로는 알수 없는 감각적진실을 체현한다. 감정은 때로는 문제의 본질을 깨닫게 하는 특이한 기능을 고유하고있다. 하다면 결정적순간에 어느것을 따라야 할가?     인간은 문명시대에도 원시시적감정론리의 지배를 받는다. 두려움, 환상, 착각…이런 원시감정들은 전부 진화과정에서 대부분 인간의 몸에 배인 습성이 되였다. 깊은 밤, 산속길을 혼자 걷다가 숲속에서 부시럭소리가 났을 때 도망치려고 발이 먼저 나가면 감정지배를 받은것이고“무엇일가? 무서운 맹수일가? ”잠시 랭철한 정황판단에 발목이 잡히면 리성사유의 고삐를 잡은 표징이다.     인간의 감정세계에 끈질기게 유전된 원시적감정은 미확증적인 편향이다. 그것을 진실의 계시로 착각하게 된다. 감정분출의 화구에 리성이 서성거리고 있지만 인간은 그 원시적감정을 확인한후 대부분은 그런 확증편향에 매달려서 시행착오를 범하게 된다. 감정은 가슴에서 나오고 리성은 머리에 잠재해있기에 공존하고있지만 동상이몽도 아니고 사실 그대로 수화상극이다.       인간감정의 변덕스러움과 무절제가 두드러지면서 리성만세가 고양되였다. 리성에는 합리성과 론리,지성과 랭정이 주요가치로 되였다. 감성축에는 감정과 직관, 격정과 탈론리가 주류이다. 감정활동이 극렬하게 되면 리성이 주춤주춤 뒤로 물러서고 리성이 랭철할수록 열기올랐던 감정도 식어버릴때가 있지만 보통 감정이란 미쳐난 토끼처럼 리성이 치는 그물따위는 냉큼 뛰여넘어 멋대로 광분한다.     사람은 보통 생면부지의 사람과 모순충돌이 생기여 피터지게 싸우는 경우도 있지만 공연히 걸구드는것은 정신이상자만 할수 있는 맹동이다. 무지자이든 자칭 문화인이든 아무 연고없이 남을 해하려든다면 역시 정상인의 감정이라 할수 없다. 인간은 젠체할수록 감정지배의 블랙홀(黑洞)에 빠져든다. 감정폭발에는 론리적체계나 리성의 충고가 대수롭지 않기에 자신이 기꺼이 감정의 하녀로 충당된다. 그래서 감정이란 리성보다 더 무서운것으로서 비참한 결과를 기약할뿐이다.      리성의 힘을 입은 합리성, 론리성, 객관성 등을 선행시킨 랭철한 사유능력이 인류사회를 발전시키고 인류를 현대문명인으로 진화시키는 동력이 된것은 사실이지만 감정의 충동앞에서 리성이 무기력함으로써 수천년을 두고 인류자신이 자초한 온갖 불 행과 비극을 말려내지 못한것은 자업자득으로서 눈물겨운 아이러니이다.     이미 력사의 락엽무지에 처박힌 이야기이지만 독일인들이 히틀러의 미친 선동에서 게르만족의 우월감에 도취되였고 그로부터 인기된 애국심이란 감정을 의심하지 않았기때문에 마침내 대도살전에서 소위“성전용사”로 자처하게 된것이 아니랴, 일본침략군들이 저지른 인간이하의 만행도 그렇다. 저그들의 날창받이가 된 약세군체들도 같은 인류유전자를 가지고 있고 죽음을 두려워한다는 명백한 감정세계를 동정했다면 만행은 그렇게 비인간적이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야차였다.     하긴 그런 짐승보다 못한자들에게 당시에 리성이 감정을 지배했느냐? 감정이 리성을 말아먹었느냐? 묻는것도 무의미하다. 지각이 없는 개념은 괴리이고 개념이 없는 지각은 맹목성이라 한다. 고귀하다는 인간의 감정이 광란에 걸리면 인류에 끼치 는 참화는 그처첨 형언할길 없다. 이 시각도 인류는 감정충동에 구사(驱使) 되여 곳곳에서 피비린 자멸의 참극을 연출하고 있지 않는가?     인간의 감정이 왜 부드러움과 따스함으로 충만되지 않고 갈등과 폭력과같은 파괴적인 감정도 섞이게 되였을가? 그리고 감정과 리성사이에 괴리가 생기는것일가?  감정이란“울컥”이라는 짐승의 우리에 서식하는것인가? 증오와 분노를 비롯해 인류의 평화를 파괴하는 모든 격렬한 감정들의 원천은 어디에 있는가? 인간이 동물들과 구별되는 지능이 오히려 역작용을 놀았다면 박애정신, 동정심, 사랑, 정의감…등 다양한 감정의 뉴앙스들은 안중에도 없게 된다.     물론 인간답게, 자기답게 산다는것은 자신의 고유한 감정에 충실한 삶을 사는것이지만 많은 경우, 인간의 감정은 본능적이고 원시적인 상태에서 확증편향으로 기울어지고 인간의 지능이 원시적감정에 지배되는 경우가 많기때문이다. 이런 상태에서 인간이 자기감정을 관리못하거나 자신의“감정유희”에 도취된 경우 인촌에 희비극은 끝날수 없을것이다. 종교에도, 전쟁에서도 원시감정론리가 작용하기때문이다.     인류력사상 모든 전쟁은 각기 원인이 있지만 결국은 모든 욕망의 추동하에 발동되였다. 집정자의 온갖 욕망이 꿈틀거리는 한 지구촌에 진정한 평화란 깃들일 자리가 없다는 설명이 된다. 생존욕망이든, 패권욕망이든, 령토욕망이든, 자원독점욕망이든, 종교리념갈등이든 결국 욕망ㅡ리익실현을 위한 쟁탈에 귀결된다. 그 모든 욕망은 곧 인간의 감정문제이기도 한것이다.                                                2013년 3월 15일
714    《메밀꽃 필 무렵》의 예술매력 댓글:  조회:4600  추천:1  2016-02-13
                         《메밀꽃 필 무렵》의 예술매력                                          최 균 선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은 한국 현대 단편소설의 대표작이다.〈메밀꽃 필 무렵〉(조광, 1936. 10)은 그의 산문적 서정성이 가장 빼어난 작품이다. 작품의 배경인 메밀꽃 핀 개울가는 단순히 정경에 그치는것이 아니라 주체와 객체를 하나로 포함하며 인연의 매체로 나타나 있다. 소설은 우선 소설적인 취미성보다 시적정서가 다분하여 이색적이다. 소설은 언제 읽어보아도 매번 애틋한 감상에 잠기게 한다. 그만큼 소설은 분위기와 서정성을 중시한 시적 수필의 소설로서 평가받고있다.    소설의 주제를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한 장돌뱅이의 떠돌이 인생의 비애를 그려내였다. 하면서도 소설은 현실조명에 초점을 두지 않았고 장돌뱅이라는 특정한 계층의 현실적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았기에 전형형상부각은 의식적으로 소외되여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장돌뱅이 허생원이 동이라는 청년이 자기 아들임을 알게 되는 암시적인 과정을 통하여 애욕과 혈육의 정에 가슴태우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을 짙은 향토색을 바탕으로 메밀꽃 피는 달밤의 정경을 풍경화처럼 그려보이면서 19세기 30년대 조선사회에서 밑바닥인생을 사는 약세군체들의 눈물겨운 삶을 관조하고있다.    하얀 달빛아래 메밀꽃 핀 산기슭을 굽이도는 기구한 밤길, 그런 밤길을 걷는 남다른 정취가 있기에 허생원은 그날 밤의 인연을 평생 잊지 못하고 살아가는것인지 모른다. 이 소설에서 길은 지리적공간만이 아니라 소설의 플롯을 한줄에 꿰여가는 기본선으로 장치되여 있는바 허생원의 떠돌이 삶의 현장은 그야말로 구배많은 산길처럼 굴곡적이고 말하기조차 숨가쁜 가파로운 언덕길처럼 힘겨운 인생길이다.      이 길을 따라 허생원의 인생마당에 만남과 리별이 있게 되고 이 길에서 자기의 아들 동이와의 우연한 만남이 주어지게 된다. 이처럼 소설에서 길은 만남과 헤여짐, 그리고 또 다른 만남이라는 작품 전체의 구조와 밀접한 관련을 갖는 소설적 배경이자 기본장치이기도 하다. 귀속을 모르는 떠돌이 삶을 운명처럼 수용하는 허생원의 삶의 방식을 조명하는 길은 허생원의 숙명적인 삶을 표상하는 자연적 배경이고 달은 성서방네 처녀와의 아름다운 인연을 이끌어내는 매체가 된다. 그만큼 메밀꽃 필 무렵의 달밤은 이 소설에서 전형환경으로 펼쳐지고있다.    메밀꽃이 피였던 달밤. 한 녀인과 맺은 단 한번의 인연에서 삶의 보람을 느끼는, 그러나 다시 만날수 없는 아픔을 안고 여기 저기 떠도는 한 장돌뱅이 애환을 통해 삶의 한 단면을 시사하면서 만남과 헤여짐의 구도를 갖춘 이 소설은 류랑인의 정처없는 길이 곧 삶의 현장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인물의 미묘한 운명을 드러내며 랑만적 정취를 안겨주는 달밤의 산길은 허생원 일행에게는 생업의 길이자 곧 고달픈 인생길이지만 소설에서는 삶과 자연이 어우러진 환상적인 세계로 펼쳐진다. 시끌벅적한 현실과는 격세적인《짐승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듯이 들리는》 몽환세계이다. 여기에 한 늙은 장돌뱅이의 사랑의 추억과 인연이 끈질기게 이어지고 애환이 얼기설기 얽히고 거기에다가 운명적으로 결합된 나귀를 등장시킴으로서 인간과 동물의 본능적 애욕을 교묘하게 병행시키고 있다. 이런 구성방식은  여느 소설과 달리 이채로운 소설적 묘미를 안겨주고있다.    소설을 언어예술의 가장 다채로운 화랑이라 할수 있는바 이효석 소설의 또 다른 예술매력은 언어예술의 특색이다. 특히 여느 소설보다 세련된 고유언어구사로서 심목속에 깊이 새겨진다. 례하여 궁싯거리다, 칩칩스럽다, 농탕치다 등, 허생원 일행이 달밤에 걸어가는 장면은 묘사를 위한 묘사가 아닌 진실한 생활정경을 그리고있다. 작가는 허생원이나 동이의 인생의 실상보다 숨막힐듯한 메밀꽃이 피는 달밤의 정경을 나타내려는데 력점을 찍고있다. 조선달, 허생원, 동이 등은 인격체로서의 소설적 인물이 아니라 나귀와 같은 자연속의 일부로서의 사물의 차원에 해당되는 눈물겨운 존재들로서 인생현장의 하바닥을 헤매이는 민초들이다.    소설은 주로 세사람의 인물로 스토리(이야기)를 전개시켜 나가지만 허생원의 생애나 동이의 기구한 운명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있다. 그러나 소설을 다 읽고나면 등장인물들이 생생하게 살아남는다. 중심인물인 허생원은 숫기가 없이 외곬으로 살아온 소박한 자연인이란 점에서 전통적 토속적인 한국사회의 인물이라고 자리매김 한 평론가도 있는데 세사람 모두 하나같이 세상에서 소외된 가난하고 고독한 떠돌이 약자들이고 생활의 소용돌이속에서 밀려나있는 변연인들이다.    어찌보면 소설의 모티브(중심사상)는 작품의 배경속에 녹아있는바 궁극적으로는 “혈육찾기”에 귀결된다. 봉평장터와 봉평에서 대화로 가는 길에 달빛과 메밀꽃 그리고 개울은 하나의 산수화를 련상시킨다. 따라서 이런 자연환경은 자연과 인간의 친화 또는 조화를 의미하는 랑만적공간이다. 이런 랑만적이면서도 가슴이 쓰리게 하는 배경은 작품의 정서를 애수에 찬 그리움으로 이끌어 간다.    소설에 나귀가 가지는 상징성의 부여도 특색있다. 나귀에 대한 외모묘사와 행동묘사에서 나귀는 허생원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진 존재로서 본질적인 허생원의 형상이라고 볼수 있다. 허생원과 함께 운명적으로, 정감적으로 융합된 나귀가 가지는 상징성은 소설의 예술성을  특이하게 살리는 구실을 하고있다. 즉 주인공 허생원의 성격창조나 예술상의 효과를 위해서 나귀의 래력이나 인간적인 운명과 함께 그 외모나 행동의 양상까지도 류사하게 묘사된것이 바로 목적의도적임을 시사한다.    허생원과 나귀의 관계가 단순한 소설장치에 머물지 않고 대등관계로 주제와 결합시킨것은 확실히 이효석작가만의 창작기교이다. 즉 원초적인 삶과 본능의 세계를 추구함으로써 자연과 인간의 합일을 노린듯한 작가의 주제의식에서 인간의 참된 모습을 찾으려는 작가의 기본관념이 이 이채로운 소설을 낳은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소설의 알심들인 정서적분위기의 조성과 더불러 이점이 소설의 가장 주요한 성공점이라고 할수도 있겠다.    사실 소설은 이야기로서는 별로 정채롭지 않고 구두로 전달하려면 줄거리가 굵직하지도 않다. 비록 얘기거리가 있지만 특별히 흥미를 유발하는 요소도 긴장감도 없다. 개연성은 있지만 막연하고 오히려 수필같은 서정의 흐름이 독자를 더 매료시킬뿐이다. 그럼에도 끝까지 읽어 갈수 있는것은 작품속에 숨어있는 성서방네 처녀의 구체적인 생활상과 운명이 떨어버릴수 없는 관심때문이다. 동이의 어머니일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만 넌지시 암시할뿐이지만 관심이 쏠리고 하회를 기다리게 하는 인물이다. 직접 등장시키지 않고 간접묘사로 전달하는 서술기법이 소설장치에서 작가가 재능이 빛발치게 한 창작기교라 할수 있다    과연 성서방네 처녀는 어찌하여 조선달에게 몸을 바쳤고 씨까지 받게 되였가? 라는 의문이 먼저 나서고 역시 피치못할 연분이 아니면 숙성한 처녀의 심신상의 오묘한 변화와 충동이였나? 하고 나름대로 류추하게 되고 어쩌면 해마다 메밀꽃 필 무 렵이 되면 순정을 앗아간 조선달을 다시 만날수 있을가 해서 속절없이 물레방아간을 지켜보는 애절한 모습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막연한 그리움속에 조선달을 감싸안고 어려운 삶을 영위하는 한 앳된 녀자의 슬픈 조우가 가슴을 아릿하게 한다.    소설은 예술수법상 대화에 의한 서사의 진행, 궁금증을 꼬드기는 은근한 암시, 봉평과 제천 등의 지명의 반복, 의식과 감정을 고조시키는 기법 등으로 소설의 형식적 아름다움을 남다르게 안겨준다.    소설“메밀꽃 필 무렵”은 엄밀한 의미에서 분명한 스토리를 가진 소설이다. 그러나 그보다도 메밀꽃 필 무렵의 달밤의 산길을 허위허위 걸으며 감동할줄도 아는 허생원의 자연에 자기 인생을 기탁한 원시적인 인간으로서의 그 막연한 인생자세가 더 감상적이다. 목적의도적인것은 아니지만 자연의 일부가 되여 살아가는 그의 삶을 평론가의 시각에서 반사회적이고 반문명적인 정서라고 분석하지만  그것이 이색적으로 랑만적색채를 띠고있다는 점에서 또한 경이로운것이다.    소설에서 유명한 메밀꽃 핀 달밤의 꿈속같이 몽롱한 환상적 세계에 대한 섬세한 묘사는 주인공과 그들 일행의 일상과 투박한 어투와  묘한 대조를 이룬다. 이 시적인 묘사부분이 소설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바 그속에 주제가 융화되여 있다고 생각할만도 하다. 어찌보면 소설가로서의 이효석의 순수 인간적인 지향이 작품에 침투되여 다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게 함으로써 명소설로 거듭나게 했다고 생각하게 된다.                               2008년 6 월 10 일  
  (독후감)                                  우리 민족의 얼과 력사의 화랑                                                     ㅡ《태백산맥》을 읽고서ㅡ     “소설은 한개 민족의 비밀사이다. (발자크), 소설은 인류정신의 최고의 종합이다 (미란 콘드라),소설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는 도구이다. (프루스트).”라는 말처럼 한부 의 훌륭한 소설이 내포하고있는 그 함의와 의의는 거대하다. 내가 읽은 명작가운데서 근저로부터 민족적인 감정을 앞세우고 우리 민족의 한시기 재난사를 읽게 소설은 바 로 한국 조정래선생의 대작 “태백산맥”이였다.    소설은80년대 분단문학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려순반란사건을 축으로 한과 이데올로기의 세계를 형상화한 대하소설에서는 상놈출신의 주인공 염상진과 무당 소화, 하대치, 김범우 등 등장인물들의 사랑과 갈등이 어우러져 펼쳐진다. 이른 바“반공이데올로기”에 의해 일방적으로 외곡되여왔던 해방직후 조선남반부의 력사적 진실을 현미경을 들이대고 파헤치고 있으면서도 작품 전체에서 작가의 객관적 관조와 균형감각을 잃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대작이기에 손색이 없다.    제1,2부는 려순사건의 실패와 그로 인한 입산(入山), 빨치산의 유격전과 군경의 토벌작전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제3부는 “6.25 전쟁”의 발발과 빨치산의 하산, 미군의 참전과 빨치산의 재입산, 그리고 좌우익의 극한투쟁을 다루고있다. 제4부는 휴전협정이 배경이며, 투쟁의 방향을 ‘입산투쟁’에서‘력사투쟁’으로 바꾼후(1952년 남로당의 5.25 지령) 중심인물인 렴상진의 죽음으로 이 대하소설은 막을 내린다.     전 10권으로 된 이 방대한 소설은 1948년에서 1953년까지 5년 동안의 시간적 흐름을 담고있는데, 이 5년 동안은 오늘 우리민족의 분단현실에 가장 깊게 영향을 끼친 력사공간이였다는 점에서 문학적만이 아니라 사회력사적, 문화적인 가치를 가지 고있다고 보아야 할것이다. 분단의 원인을 고찰한다는것은 분단극복을 위해서 심원한 의의가 있는 작업이다. 그리고 그 력사공간에서 다양하게 전개된 인물군체의 삶의 려 정은 바로 오늘의 분단현실을 되짚어 볼수 있는 력사적거울이 될수 있기때문이다.    따라서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바로 당대의 계층을 대변하는 전형성을 지닌다고 할수 있다. 주요인물들로는 염상진, 안창민, 하대치, 정하섭, 이지숙 등의 빨찌 산계렬과 백남식으로 대변되는 토벌군, 염상진의 친동생인 악질인간 염상구의 대동 청년단, 최익승 윤영춘 양병갑, 송기욱, 정현동 등의 친일지주군체, 김사용이라는 량 심적지주형, 김범우, 서민영, 심재모, 손승호, 이학송 등의 량심적지식인그룹 등으로 이루어진 이들 인물군들은 바로 당대의 현실을 대변하는 전형적인 성격들이다.       그리고 염상진의 처 죽산댁, 강동식의처 와서댁, 하대치의 처 들몰댁 등의 인물군과 력사의 리면에 존재하는 농민들을 비롯한 인물군은 처절한 삶의 진실을 시사한 당대민중들을 대변한다고 단정할수 있다. 따라서《태백산맥》은 그들과 배달민족사회가 처해있는 민족통일의 진로를 가로막는 이데올로기적대립의 력사적뿌리를 파헤치면서 이를 거시적시각으로 그려내고있다.    력사적흐름을 개괄하면서도 등장인물들의 개성적인 삶의 숨결까지도 진지하게 바라보고 있는 력사적시각이 작품속에 하나의 큰줄기로 관통되고 있다고 하겠다. 또 한 이 소설은“여순사건”이후로부터 농지개혁에 대한 저항뿐만 아니라 “6.25 전 쟁”에 이르기까지 근대사의 가장 중요한 공간을 본격적으로 다루었다는 점에서 분단문학의 새로운 세계와 경지를 개척한 작품이라고 긍정하고도 남는다.    《태백산맥》은 소설이라기보다는 력사서같은 느낌이 짙다. 군데군데 민족주의자, 주로 극좌나 극우가 아닌 중도로선을 걷는 인물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력사적개관 은 작가 조정래 자신이 독자들에게 들려주고싶은 분단의 전후배경인듯하다. 물론 작가의 주관이 투영되여있는 한계도 없지 않으나 우리 민족이 왜 아직도 극좌나 극우니하는 녹쓴 리념의 틀에 사람들을 몰아넣으며 편짜기를 하는지를 적어도 우리 민족 의 측면에서 리성적으로 살펴볼수 있게 제시하고있다.    소설에서 시사하다싶이 친일파의 청산에 관련된 문제는 오늘날까지 제기되고 있는바 자초에 친일파는 청산되지 않았다. 미군정의 편의하에 그들은 다시 각종 관직에 등용되였고 그들의 콤플렉스는 리념문제를 리용하여 반대파를 처단하는 피비린 악행을 기탄없이 감행하게 된다.  조정래는 리념 그 자체에 대한 회의속에서 인간 그 자체에 대한 애정, 민중에 대한 경의를 은근히 내비치고있다.    공산주의도 또 그것의 반대개념으로 차용되고 리용되여 온 민주주의도 그 리념만으로 인간세계를 재편하고 행복이라는 지향을 실현할수 없다는것을 작가는 극명하게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이데올로기를 초월한 희귀의 혜지의 작가로 빛난다. 가장 중요한것은 인간 그 자체에 대한 존중과 사랑, 신뢰이다. 그 본질에 대한 간과가 치달은 결과가 반대파에 대한 극도의 증오와 살륙으로 체현된다는것은 민족의 비극이다.    언어구사가 화려하지 않지만 토속적방언이 그대로 구사됨으로써 향토적색채가 짙게 하였고 또 그리함으로서 인물들의 형상이 립체감이 나게 하였다. 작가가 목적의도적으로 그리하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소설에는 사실주의와 랑만주의가 잘 결합되여있다. 특히 매우 인상적인 소설의 결말에서 비장한 랑만색채가 눈물속에 비낀다.    “그는 가슴을 펴고 숨을 들이켰다. 그와 함께 밤하늘이 그의 시야를 채웠다. 그 는 문득 숨을 멈추었다. 그는 눈앞이 환하게 열리는것을 느꼈다. 그가 본것은 넓게 펼쳐진 광대한 어둠이 아니였다. 그가 본것은 어둠속에서 수없이 빛나고있는 별들이 었다. 그는 멀리 깊은 어둠 저편에서 명멸하고있는 무수하게 많은 별들을 우러러 보았다. 가을별들이라서 그 초롱초롱함과 맑은 반짝거림이 유난스러웠다. 그 살아서 숨쉬고있는 별들이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그 별들이 모두 대원들의 얼굴로 보였던것 이다. 먼저 떠나간 대원들은 죽은것이 아니였다. 그들은 모두 혁명의 별이 되여 어둠속에서 저리도 또렷또렷한 모습으로 빛나고있었던것이다.    그는 봉화가 타오르고, 함성이 울리고있는 가슴에다 그 별들을 옮겨심고 있었다. 끝간데없이 펼쳐진 어둠속에서 적막은 깊고, 무수한 별들의 반짝거리는 소리인듯 바람소리가 멀리 스쳐흐르고있었다. 그림자들은 무덤가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광막한 어둠속으로 사라져가고있었다…”    이 결말은 소설에서 다루고있던 무겁고 장엄한 제재에 걸맞는 결말수법이다. 서두와 결말은 플롯이 일관성을 유지하고있다는 느낌을 부여하고 작가의 생각이나 세계 관을 표현하는 장치역할 뿐만아니라 소설의 주제를 재치있게 심화시키고있다.     색갈론으로부터 출발하여 리념의 색안경을 쓰고보면 대하소설《태백산맥》에는 당연히 나름대로의 문제가 있다고 볼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작가는 이 소설을 내놓은후 그저 구설수에 오른정도가 아니라 곤욕을 치렀다. 1992년 이른바 대검수사결과가 나 왔는데 이미 350만부이상 팔린 책을 법으로 문제삼는것은 과히 적절하지 않기때문 에 문제삼지 않기로 하였단다.    단“일반인이 교양으로 읽으면 괜찮지만 대학생이나 로동자가 읽으면 이적표현물 탐독죄로 의법 조처한다." 이에 대한 조정래의 론평이 아니러니적이다. "안방에서 어머니가 읽으면 교양물이고, 건넌방에서 대학생 아들이 읽으면 이적표현물이다." 작가가 어떤 죄를 썼든, 어떻게 자평했든 이 소설은 한국소설발전사에서 한 획을 크게 그어놓았다는것을 무시할수 없을것이다. 국내외를 통털어 이데올로기를 그렇게 바라볼 수 있다는것 자체가 대단하다.  그래서 조정래는 탁월한 소설가임에 틀림없다.                                              2003년 4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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