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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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2    돼지를 평함 댓글:  조회:4838  추천:0  2015-09-25
                                 돼지를 평함                                        최 균 선      농촌서 살면서 내가 길러 팔고 잡은 돼지가 저그만치 수십마리는 될게다. 기를 때는 그리도 정떨어지던 돼지를 말하자니 자가당착인듯 하지만 아무튼 돼지를 말하고 싶어진다. 돼지는 원만하고 풍요로움을 상징한다. 돼지가 어떻게 되여 사람의 출생의 띠로 되였는가? 당승이 서천으로 불경을 취하게 되여 옥황상제를 감동되였다. 하여 천지의 정신을 계승시키기 위하여 당승의 세제자를 사람의 띠에 속하게 하려고 내정 하였단다. 사승은 원래 물귀신이여서 동물권에 넣기 불편해서 제외했다고 한다.    그런데 다른 얘기도 있다. 하나님이 닭과 개와 돼지에게 인간세상에 내려가 좋은 일을 하고 오라고 했다. 모두 일을 마치고 하나님앞에 섰을 때 하나님이 닭에게 먼저 물었다. "닭아! 너는 세상에 나가 사람들을 위해 무슨 일을 하고 왔느냐?" "예, 제가 세상에 내려가보니 사람들이 아침에 늑장을 부려 일어나지 못하길래 아침에 해가 뜨 기전에 일밭에 나가라고 새벽같이 고고성으로 깨워주었습니다." "오냐,그래 잘하였도다. 내가 너에게 상으로 벼슬을 하사하노라!" 그래서 그때부터 닭에게 닭벼슬이 있게 되였다고 한다.    그다음 개에게 물었다. "개야! 너는 세상에 나가 인간들을 위해 무슨 좋은 일을 하였느냐?" "예, 저는 세상에 내려가서 주인집에 드는 도적을 말려냈고 평시에는 주인을 따라다니며 충정으로 보필하였나이다." "허, 그래, 잘하였도다. 내가 너에게 상으로 다리 하나를 더 하사하노라!" 개는 원래 다리가 3개였는데 하나님이 상으로 다리하나를 더 주어서 지금처럼 다리가 4개가 되였고 그래서 지금도 오줌을 눌때는 상받은 다리에 오줌이 묻지 않게 한다리를 드는 버릇이 생겼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돼지에게 물었다. "돼지야! 너는 세상에 나가 인간들을 위해 무슨 좋은 일을 하였느냐?" "예, 인간들이 잘 먹고 잘 살고 있었고 내 할일이 없어서 그냥 먹고자며 세월을 보냈습죠. 하오나 먹는것은 찌꺼기고 자는 곳은 측간옆이였나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이놈 탐욕스럽고 게으른 돼지야!" 하고 진노하시며 돼지의 코를 썩뚝 잘라버려 뭉툭코를 가지게 되였다 한다. 믿거나 말거나 지어낸 이야기라해도 작자의 착상만은 너무너무 기특하다 하겠다.    학술적으로 따지면 돼지가 인류문명에 동참한것은 4천 만년전으로서 중국에서는 야생돼지가 가축화된것을 6천년에서 1만년 사이로 보고있다. 아무튼 돼지는 인류의 식문화창조에 한몫을 담당하면서 희생의 력사를 기록하였다. 돼지가 없었더라면 사람들의 생활은 어떠했을가? 돼지는 고기외에도 인간의 삶에 도움이 되는 많은것을 헌신한다. 우선, 돼지가죽은 가죽제품, 실내장식품 등에 많이 쓰이며 돼지피는 합판점착 제와 단백질사료, 직물의 날염 및 염색용 착색제를 만드는데 쓰인다. 그리고 제약에 서도 한몫 단단히 한다고 한다. 돼지는 버릴것이 하나도 없는 보배덩인셈이다.    알고보면 정말로 총명한 가축이다 . 돼지를 충분한 공간에서 키우면 애완견이나 고양이와는 달리 훈련시키지 않아도 화장실을 가릴정도로 지능과 청결함을 가진 동물이며 더위에 약하기때문에 목욕을 굉장히 좋아한다는 연구결론도 나와있다. 돼지가 더러운 동물이 아니라 돼지가 다른 동물에 비해 더러운것을 잘 참고 견뎌내며 내병성이 강한데 사람이 돼지를 더럽게 기르기때문이다.    우리는 언필칭, 탐욕스러운것을 돼지에 비유하기 좋아한다, 돼지가 탐욕스러운가? 돼지가 탐식가이지만 생리수요에서 그런것이지 인간처럼 리성사유의 결과는 아닌것이다. 재미있는것은 돼지의 습성이다. 새끼돼지가 자기에게 할당된 어미의 어미의 여러개의 젖꼭지중에서 자기에게 할당된것을 정확하게 알고 형제들의것을 넘보지도 훔쳐먹지도 않는다. 또 어미는 새끼들 모두가 젖을 물었다는것을 확인한 다음에야 젖을 흘려내보낸다고 한다. 돼지에게도 돈독한 모성애가 있는것이다.    보통 돼지는 아둔하다고 한다. 돼지대가리는 현대바보의 대명사로 되였고 돼지코에 파꽂기, 저팔계가 거울보기라는 등 말은 다 돼지를 비하여 사람을 풍자하는 말들이다. 그런데 연구결과에 의하면 개의 IQ가 30인데 반해 돼지의 IQ는 50으로 오히려 개보다 영리한 동물이며 감각이 예민해서 소음 등의 스트레스에 약하며 다른 동물에 비해서 수영실력이 뛰어나고 최고 시속 48㎞로 뛸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유독 돼지는 높이 쳐다볼줄 모른다. 돼지의 목뼈가 아래쪽으로 굽어있어서 아무리 고개를 바짝 쳐들어도 수평이상은 올릴수 없게 되여있다. 그래서 돼지는 평생 땅바닥만 뚜지며 먹고살게 되였고 하늘이 어떻게 푸른지도 모를것이다. 어쩌다 배때기를 위로 뒤집어졌을 때 하늘을 보지만 세상에 땅만 있는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하늘도 있다는것을 보며 신세계가 열린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것이다.    이러한 모순된 존재인 돼지를 인간이 상하5천년 하느님의 허락을 받고 이잡듯이 했는데 인간은 돼지보다 낫게 자각하고 살았는가? 유감스럽게도  현재도 자각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깨우치고 살아가는 인간은 그리 많지 않다. 돼지를 욕하면서 자신은 “탐욕스러운 돼지”보다 더 탐욕스럽게 살아가는 인간의 가치취향은 무엇인가? 타생명에 대한 도살이라는 의미에서 인간은 악랄한것임에 틀림없다. 누가 인간의 본성은 날때부터 선하다고 하는가? 인류는 발생초기부터 오직 자신의 생존과 리익을 위해선 타자의 생명을 아무 꺼리낌없이 살륙한 지극히 리기적이라 해야 할것이다.    배부른 돼지보다는 배고픈 소크라테크가 낫다는 말이 있다. 이 말속에 진짜 돼지는 없고 돼지마냥 살아가는 인간들을 빗대고 훈계하고 있을뿐이다. 인간과 돼지를 구분하는 분수령이 어디에 있을가? 그것은 잘난 인성과 자각에 있다. 인간들은 모두 자신만의 인생이 있고 가치가 있다. 자신의 가치가 물질적인 쾌락을 추구하는것일진대 그 가치실현에는 타자의 희생이 필요한것이다. 동상에 로대가 필요하듯이.    인간을 만물의 령장이라 내세운것도 바로 인간이고 신의 걸작이라고 자칭한것도 인간이다. 그래서 천하지만물지중에 유인이 최귀이고 유일한 존엄의 생명이라고 자화자찬, 다른 생물들을 하등생물로 격하시켜 소유물인양 함부로 도살할수 있는 정당성을 분식했다. 동물세계에서 어떻게들 평판하는지 몰라서 그렇지 분명 죽일놈, 살릴놈하고 의분으로 들끓고 있을지 모른다.    서유기에서 당승은 저팔계에게 오능(悟能)이라는 법호를 내주었는데 뜻인즉 사람을 감오시키는 에너지와 능력, 인내성을 키우도록 노력하라는것이다. 그러나 그는 사람들이 오히려 돼지몸에서 더 많은 감오를 받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신의 모든 아이들중에서 돼지는 가장 순수한 마음을 지녔다고 한다. 천진함과 믿음으로 사랑의 신의 보호속에서 거닌다. 자기 자신을 남에게 줌으로써 그 자신은 더 풍부해 지고 두배의 축복을 받는단다. 공동의 우애로 모든 인류와 련결되는 돼지의 선의는 우주적이여서 끝이 없다고 하니 돼지해는 사람에게 있어서 호의적인 해라고 한다.    돼지고기를 마다하지 않는 나로서도 자가당착이지만 다른 생물의 도살은 정당하다는 오만한 사고방식을 랭정하게 반성해 볼 필요가 있고 먹으면서도 비하하지는 말아야겠다고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그러다가 한번에 하나둘도 아니고 수백수천명 씩 살육하는 고급령장동물인데 무엇을 더 말하랴 싶어지면서 할말을 잃는다.                                                              2007년 1월 5 일    2014년 9월 26일(흑룡강신문)
651    (칼럼) 뿌리깊은 노예근성 댓글:  조회:6054  추천:0  2015-09-23
                          뿌리깊은 노예근성                                      진 언      자고로 강자에게는 해석도 변명도 필요없다. 그러나 약자의 변명은 비리기만하다. 요즘 한일관계가 껄끄러운 때 다음이라는 사이트에 이런 댓글을 올린 사람도 있었다.   “무식한 반일감정 자제해라, 무식한 인간들아, 일본만 나오면 피해 의식, 식민지 노예근성이 너무 보기 딱하구나!! 무식한 반일감정을 드러내면 다 지들이 애국자들로 보이는갑지? 세계가 손가락질한다. 그래도 수많은 사람 생사가 달린 일인데 일본분들 방사능, 후지산폭파 어쩌고 목숨 가지고 드립치지마라. 비록 일본이 우리나라를 식민 지배한 역사를 가지고있지만, 그렇게치면 미국도 제국주의 행각 벌인 적 있었어, 과 거의 일본은 일제고 지금 일본은 일본이야, ㅉㅉ무조건 무식하게 우긴다고 나아질건 없다고 봄...” 누가 노예근성을 가지고있는지가 자명해지는 자가당착이다.    이런 제목의 글도 보았다. ([한일합방] 일본과 통일하자)    세상만사 돌고 도는것 지구역사만 보더라도 이 대륙이 저 대륙과 맞닿았었고 이 대륙과 저 대륙이 또다시 떨어져 다른 대륙과 맞닿는등 대륙간의 이동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고 인류역사에서도 마찬가지로 이 나라와 저 나라가 합쳐졌다 갈라지기를 반복 했었던 것도 사실이고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요 오늘의 동지가 내일의 적이 되는 세상사의 엄연한 현실 속에서 일본과의 과거 문제를 가지고 너무 속좁은 편향된 발상을 가진다는 것은 21세기 글로벌한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라 본다.(중략)     …일본도 드디어 독도를 일본것으로 교과서에 실어서 일본 전체의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앞으로 20년후가 되면 일본에서는 모든 국민들이 당연히 독도는 일본 것으로 알게 될것이며 국제사회 역시도 독도를 일본땅으로 인식하게 된다는 것인데 그럴경우 한일관계는 독도를 놓고 전쟁을 치룰일 밖에 없다고 한다. 미래의 후손들에게 전쟁을 물려줘서야 되겠는가    차라리 한국과 일본은 단계적으로 통일을 준비하는 것이 좋을것 같다. 일본과 한국이 통일을 할수가 있다면 독도문제를 가지고 싸울일이 없지 않는가, 바야흐로 나라간 FTA니 뭐니 또는 대륙내 유럽연합이니 뭐니 벌써부터 나라들 간에 보이지 않는 단일시장 개념이니 단일통화 개념이니 단일화페 개념이니 하면서 넓은 의미의 통일이 시작되었다고 본다     한국은 일본과의 통일을 착실하게 준비해 나가는 발상을 가져야 될것이다 부산 일본간 해저터널을 비롯해서 한일 단일시장 단일화폐 개념등과 한일간 통신개방, 방송개방 (자막처리-성우더빙) 무비자 등을 통해서 한국과 일본이 더욱 친밀해 질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고 또한 한국내 일본 타운을 대거 건설해서 일본사람들과 일본 기업들을 대거 유치해야 될 것이다…아래 결말부분은 어처구니 없어 략하기로 하고,    일본에서 석·박사과정을 거친 고려대 교수라는 자도 “위안부는 성노예가 아니다”,“그 시대(일제강점기)엔 모두 친일파였다,야스쿠니신사가 왜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다” 는 등의 망언을 해 비난이 빗발치고있다.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정안기(51세)는 지난 15일 ‘동아시아 경제사’ 수업시간에 “위안부는 성노예가 아니다. 어마어마한 돈을 벌고 있었고 몇달만 일하면 고국으로 돌아갈 비행기삯을 구할 수 있었지만 (돈을 벌기 위해) 남은 것” “그 시대엔 모두가 친일파였다.”는 등의 발언을 했다고 당시 수업을 들은 고려대 학생 관계자 등이 18일 밝혔다.    정안기는 18일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현재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본 문제와 관련해) 지나치게 도덕적인 잣대를 들이대고 있어 실체적이고 논리적인 접근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며“당시 (일제에 저항한) 독립운동가 1명 때문에 99명의 ‘보통’사 람들이 모두 죄인 취급을 받는 것은 불합리하다”면서 “자라나는 학생들에게‘올바른 역 사관’을 심어주기 위해 역사교과서 개혁, 국정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런 망발을 하는 자들이 주류는 아니니까 나무를 한두그루를 보고 수림을 보았다고 말할 계제는 아니지만 한알의 모래알에서 대천세계를 보고 한송이 꽃에서 지옥을 볼수 있다고 어떤 심각한 문제를 단적으로 시사하기도 한다. 말하자면 뿌리깊은 친일노예근성이다. 이런 자들에게는“반일”이란 개념이 아예 없을게다.     아베 노부유키가 조선사람들에게 총칼보다 더 무서운것을 심어놓고 간다는 말이 결코 헛소리로 메아리치는게 아니라는 징표가 아닌지, 한두그루나무가 수림을 이룰수 없지만 "친일파"라고 하면 멋모르는 후세들은 그저 일본과 친했던 사람들 정도로 착 각할지도 모른다. 이로써 배달족의 민족정기는 흐려지고 무엇이 수치이고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옳바른 가치관을 가질수 없게 되였는지 모른다.     일제놈들이 민족동화정책이 우심해질때, 조선의 열혈건아들은 반일구국의 기발을 날리며 가렬처절한 육박전을 벌리였다. 일본군과 싸워이길거라는 신심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래도 혈전만리를 달렸다! 잡혀서 고문에 죽고 총살당하고…칼물고 뜀뛰기인줄 알면서도 일제에 절치부심하여 더운피를 휘뿌려 민족의 기개를 떨친 윤봉길, 안중근의사의 거사를 테러행위라고 비난하던 엉터리가 권력을 잡은후 친일로 부를 쌓고 호의호식했던 친일매족무리들을 단죄하기는커녕 친신으로 끌어모았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내 나라를 찾으려고 선혈을 흘린 투사들이 완전배제된 사이비세상이 되였고 그 후대들은 생활고에 시달린다. 지사들이 지금도 구천에서 통곡하리라. 그렇게 되여진 세상이 오늘에 이르렀던것이다.    미군은 “해방자”의 자세로 친일파를 껴안았다. 가재가 게편이면 게도 가재편인가, 그러나 가재는 게를 똑바로 걷게 할수는 없다. 미군정은 조선총독부 체제를 그대로 인수, 답습하여 일제관료, 경찰들을 그대로 등용했다. 미군은 조선반도에서도 일본앞잡이질 하던 놈들이 민중의 배척을 받아 자신들이 보호하지 않으면 설 땅이 없다는 약점을 리용하여 그들을 그냥 개다리로 써먹었는데 항일애국지사들이 ‘똥’이라고 부르는 그들에게 무기를 내주고 미국의 분단정책을 반대하고 항거하는 민족지성인들을 잡아죽이도록 하였다. 민족을 배반하고 일제의 앞잡이가 되여 항일투사들을 팔아서 특권을 누리던 민족의 패류들에게 부귀영화의 길을 열어주었던것이다.    도금이 순금처럼 보이듯이 혈채가 루루한 자들의 족속이 지금도 강자로 군림하고있다. 석탄을 씻은들 희여질가? 력사는 패류들을 새기고있다. 금덩이에 검은 물감이 들가? 력사는 민중과 함께 민족독립 해방을 위해 목숨을 바친 선렬들을 길이 기리고있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만 달성하면 그만이라는,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범죄같은 가치관, 곤두선 도덕률, 출세의 길만 살길이라는 관념에 절어있기에 곡학아세, 외곡이 능사인 언론, 어용지식인들이 어깨를 살리고있는 세상인것이다.    사람들은 력사의 전환점에서 어쩔수없이 어떤 길로 갈수밖에 없었던 저간의 사정을 리해할줄 모르는게 아니다. 그러나 친일하며 매국매족, 반민중의 길에서 잔악하게 굴었던 과거를 미화하는것은 불가사의한것이다. 그에 대한 반성이 없을수록 후유증이 심각해지고 잃어버린 호시절에 미련을 가지고 친일을 세습하게 된다.      노예근성은 렬근성중에 저질의 렬근성이라면 력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구시대에 대한 미련은 불치의 괴질이다. “누가 친일분자가 되고 싶어 됐냐? 친일을 하고서라도 내나라 내땅에서 조국을 지키고자 한것이 아니더냐? ”이런 편의주의적 사고방식을 가진자가 소위 국부가 되였으니 친일사상의 혼탁한 근원을 알수 있지 않는가?                                                2012년 3.1일ㅡ2015년 9월 23일
650    (에세이) 나발불기와 으시대기 댓글:  조회:5466  추천:0  2015-09-21
                       나발불기와 으시대기                                  최 균 선          중국의 허풍의 력사는 정리발굴이 기대되고 있으나 근래에 허풍대가들이 게을러 아직까지 학술성적인 저작이 선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보니 허풍에 대해 보다 완미한 정의를 내릴수 없다. 한국 엣센스 “국어사전”에서는 허풍을 해석하기를 실상보다 너무 과장하여 믿음성이 적은 말이라고 하면서 례문으로 ‘허풍을 떨다, 허풍치다’를 들고있고 허풍을 잘치는 사람을 일러 허풍선이라 한다고 하였다.    하지만 우리 연변의 농촌들에서는“나발 (을)분다” 혹은 더 심하면 “개나발 불고 돌아다닌다”라는 사전해석보다 더 자극적이고 실감나는 방언이 널리 통용되고있다. 그러나 글제만 “나발불기”로 달고 본문은 점잖은 문화어로 표술하려고 한다.   “나발을 불다”는 사전에서 “나팔을 불다”를 가볍게 이르는 말이라고 하지만 여기 서 나발불다란 말은 실속없는 말, 거짓말따위를 빗대여 하는 말이라는것을 우선 설명 해 둔다. 나발불기ㅡ허풍떨기는 자신의 실체에 비해 초객관적인 자아팽창으로서 어떤 허풍악성적이다. 이런 자아팽창은 계획경제시대에는 그래도 소수 혹은 개별적인 언행으로서 별로 사회위해성까지 띠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런 자아팽창은 전국성적인 류독이 되어 만연되여 재난성정도에 이르고있다. 례컨대 리력서나 명함장이나 직함평정에 교부하는 술직보서고서 같은데 가능껏 거품을 불어넣는데서 도드라지게 표현된다. 허풍치기에도 두부류가 있는데 한가지는 원발성허풍으로서 국민의 렬근성에까지는 소급되는것이 아니라 태생병처럼 허풍쳐대 는 습성이라고 진단할수 있다. 이런 습성은 가능하게 정신승리법에서 비롯된것으로서 아Q가 남에게 얻어맞고는 아들에게 맞은셈친다고 자아위안하는 그런 정신 승리법과 류사한 심리일게다. 이런 허풍쟁이는 홍모처럼 가볍고 보잘것없는 경력이나 실적을 태산보다 더 무겁게 과장함으로써 뭇사람들의 총애를 노리거나 사람들을 잠시 웃기여 주목받으려 하는 얄팍한 언동에 속한다.    다른 한종류는 계발(继发)성 허풍치기로서 원발성허풍치기의 직접적영향을 입어 생성하는것으로서 위법은 아니기에 범죄라고 할수는 없으나 그 자신에게는 종종 크낙한 효익을 안겨주기 십상이다. 이를테면 자신의 명예나 신임성에 관계된 내용들을 불 어대여 원래 하잘것없는 자아형상을 가능껏 윤색하려 한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왕  소기의 목적과는 상반대로 역효과를 낳기 일쑤이다.    허풍에는 남녀유별이 없다. 허풍치기는 때로 장엄한 거짓말로 승격하기도 한다. 가장 전형적인 실례로 위대한 령수의 전우였던 림부통수가 “모주석의 말은 마디마다 진리이고 한마디가 만마디를 담당한다”고 한 말은 기실 허풍으로서 자신도 믿지 않은 장엄한 거짓말이였다. 물론 어떤 허풍은 근거가 있어 가장 효용적인 과장수법을 애용하는데 허풍치기예술의 한개 특점으로 부상하였다.     허풍치기의 표현형식에는 직접적 혹은 간접적 등 형식이 다양하다. 직접 자신을 불어대면 호방하고 강개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흔히 신임도에 거대한 반차를 조성 한다. 하여 다른 사람을 마른 비행기를 태우는 교묘한 술책을 쓰기도 한다. 속내는 자기를 내세우려는 완곡수법이다. 바로 림부통수가 위대한 령수의 사상을 “고봉” 이라고 하면서 자신은 이 “고봉”을 계속 발전시키는데 가장 훌륭한 “조수”라고 은근 슬쩍 자기를 불어댔다. 그 내속을 훌떡 뒤집어보면 결국 위대한 령수를 자기가 딛고 오를 층계로 삼았다는 내심이 드러난다.      《웃음사(笑史)》라는 책에 이런 이야가 있다. 세늙은이가 만나 허풍을 떨기시작 했다 《이거 참 오래사는것도 지겹다구, 글쎄 제나이가 몇살인지 다 까먹구 그저 반고씨와 벗하고 지냈던 일만 기억되니 원》     다른 늙은이가 뒤질세라 허풍쳤다.    《그렇구먼, 그만하면 오래 산셈이네, 헌데 난말이야 상전벽해가 마흔번이나 되도 록 살고있으니 정말 죽을맛이라구》     세번째 늙은이가 히죽거리며 뒤를 달았다.    《좋아좋아, 모두 장수하구먼, 나 말이야 내가 왕모랑랑의 반도회에 가서 먹은 복숭아씨를 곤륜산아래에 뱉아버렸는데 인제 그 씨가 곤륜산만큼 쌓이게 되였다지 뭔가, 활불이 따로 없다니까, 허허허》     역시 아희들이나 할 언어유희로서 별로 웃기지도 않는 무료한 허풍이라 할것이다. 이런 허풍은 미국인들의 허풍에 비하면 한참 어린것에 실소가 나온다. 미국 테사스주 의 미국인들은 세계에서 알아주는 허풍치기 능수들이란다. 텍사스주는 석유산지이다. 그래서 석유를 가지고 허풍떨기를 자주 한단다. 한 사람이 허풍을 떨었다.  《자네들도 소문 들었지? 우리 뒤울안에 유정이 여덟개나 된다구, 나 원참》 한사람이 한술 더 떳다.  《거 대단하군, 우리 집엔 당신네처럼 유정이 많진 않지만 화식칸에 유정이 하나 있는데 라이타만 켜면 곧 밥을 지을수 있어 얼마나 편리한지 모른다구 헝,》    세번째 사람이 질세라 더 한심한 허풍을 떨었다.  《그게 뭘 대단하다구 수다를 떠는가? 내 자동차뒤좌석에 면바로 유정이 있어서 종래로 주유소로 갈 걱정이 없다네. 하하하…》   여럿은 앙천대소하고 헤여졌다.    한 불란서사람이 미국친구와 담소하였다.  《어이, 친구 우린 말이야, 통졸임을 만들때 기계에 산소를 몰아넣으면 한쪽으로 통졸임이 련달아 나오는 흐름식기계를 발명했다구. 당신네 나라에 아직 이런 최신생산흐름선이 없을테지?》    프랑스친구가 시들하게 대꾸했다.  《당신 말이 맞네 우린 확실히 미국보다 기술이 높지 못하지, 하지만 우리는 당신네 그 흐름식생산선을 개진했다네. 말하자면 말이야 톨졸임이 맛이 없으면 즉시 통졸임통들을 도로넣고 기계를 거꾸로 돌리지, 그러면 이쪽을 금방 들어갔던 소들이 음머ㅡ하고 뛰여나오게 되였다네. 어떤가? 별로 놀랄일은 아니구…》    이런 허풍은《민간유모아대회》여서 꼭 믿어야 할 리유도 없고 그저 한방탕 웃고나면 되는것이다. 역시 황당하지만 그래도 기발하고 유모아적이여서 취할점이 있어 기특하다고 해야 할것이다.    중국대지에 허풍치기의 력사는 유구하여 력력한 발자국을 찍어왔다. 새중국력사에서 허풍치기가 가장 심했던 시기는 지난세기 50년대 대약진운동시기였는데 주요하게 정치령역에서 우심했다. 무당 몇백근이 나고도 10여만근씩 났다고 상부에 보고하기가 례상사였다. 만약 누가 믿지 않으면 곧 아주좋은 형세에 침뱉는 백기로 되여 뽑혀나갔다. 국민경제가 거의 붕괴의 변두리에 이르렀는데도 곳곳에《꾀꼴새 노래하고 제비가 춤추는》는 《아주좋은 형세》라고 하였더랬다.    그때 인이 박힌 허풍치기 전통은 지금도 성행되고있다. 정계에서《관리가 수자를 낳고 수자가 관리를 낳는다 》는 뒤골목의 류행어가 허풍치기작법이 우심함을 단적으로 시사하고있다. 상계에서의 허풍치기사조는 더구나 울지도 웃지도 못하게 한다. 피부보호진품을 생산했는데《살아갈수록 젊어진다》고 하면서《뇌황금》인지하는 광고에서 가로사대《학생들의 성적을 제고시킬수 있다. 몇십곽만 먹으면 소학생이 초중에 승학할수 있는데 그러지 못하면 돈을 돌려준다》고 허풍쳤다.     서양약광고도 허풍치기는 마찬가지다. 어떤 피부보호용 크림을 파는 상점주인이 한 녀고객이 반신반의하자 매대에 선 판매원아가씨의 손을 와락 잡으며 짐짓 정색 해서 말했다. 《엄마, 이 손님에게 엄마의 손을 한번 보여주세요. 이래도 믿지 못하면 별수 없지만 말입니다.》역시 황당하지만 그래도 기발하고 유모아적이여서 취할점이 있어 기특하다고 해야 할것이다.      이런 인문환경에서 살면서 허풍한번 쳐보지못한 인생은 유감스러운 인생이 아닐수 없고 가볍게 허풍한번 떨고는 곧 얼굴을 붉히는 사람은 맹랑한 사람이 아닐 수 없지만 일종 악덕임에는 틀림없다. 미덕은 수천백종인데 많은 사람들이 유독 이런 악덕을 버리지 못하고 연연해 하고있다는것은 곤혹스러운이 일이 아닐수 없다.                                2009년 2월 5 일
649    염라국탐방실록 댓글:  조회:5042  추천:0  2015-09-21
                              염라국탐방실록           아직 퍼렇게 살아서 지옥얘기를 한다는것은 너무나 격에 맞지 않는줄 알면서도 상념이 자꾸 음계쪽으로 흐르는것을 어쩔수 없다. 단떼의《지옥편》을 다시 읽으면서 잡생각이 무성해져서일가 ? 나는 세상에 공덕을 쌓은것이 없으니 천당에 가기는 만번 틀린 일이고 연옥쯤에라도 가면 다행일테인데 음으로 양으로 그리도 많은 죄를 짓고 저승길 앞당긴 악인들의 넋이 어찌 고통받는지 궁금해진다.    나는 환상의 조랑말을 타고 지옥입구에 들어선다. 거기엔 살아서 너무 게을렀던 자들이 벌과 말파리에 쏘여 알몸으로 뛰여 다니고있었다. 그들의 발치에는 연충이 기여다며 그들의 상처에서 흐른 피와 눈에서 흐른 눈물을 빨아먹고 있었다. 탄식과 울음소리와 비통한 웨침소리가 별도 없는 하늘에 메아리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눈꼽만치도 동정심이 솟지 않았다.    다만 단떼의 안내를 맡았던 베르길리우스가 한 말이 들리는듯싶었다. 저들의 어두운생활은 사람에게서 버림받았으므로 그밖의것이라면 어떤 운명이라도 부러워한 다고, 나는 안해가 외국에서 벌어보낸 돈으로 게으른 신사질하며 살다가 너무 편안 해서 죽은 배달족의 사내들이 있을수도 있겠다는 싱거운 생각을 남기고 돌아섰다.    다음은 제1옥 림보(Limbo)라는 곳이다. 단떼가 영세를 받지 못한 상태에서 죽은 천진무구한 어린이들의 령혼과 공덕이 훌륭하여 존경받던 철인들과 시인들의 령혼이 있는곳이라고 했다. 내가 대철인들이나 명시인들은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으니 그냥 지나치면서 아프리카나 다른 지구들의 아이들이 기아선상에서 헤메다가 죽어서 이곳에 오지나 않았는지 해서 마음이 쓰이였다. 그리고 야차같은 이스라엘놈들의 무차별 폭격에 처참하게 죽은 레바논의 아이들이나 팔레스티나 아이들도 있겠지 하면서 차마 발걸음을 옮길수 없었다.    애욕의 죄를 범한 령혼들이 지옥의 폭풍에 시달리고있다는 제 2옥을 지나면서 일별하니 살아서 육욕의 향연에 제노라 했겠지만 너무나 너절한 넋들이여서 재판관 미노스가 죄를 가려내 형을 판정하여 아래로 떨어뜨리고 있어도 왼눈 한번 팔고싶지 않아서 얼른 외면해버렸다.     저주받고 차겁고 무거운 영원한 비가 내리는 3옥, 탐욕의 죄를 범한 사람들의 령혼이 새로운 가책으로 고통받는다는 곳이다. 다음은 제4옥이였는데 돈을 웬만큼 벌었다고 황금연이나 벌리고 몇십백만금을 퍼주고 묘지를 만들었다는 중국특색의 랑비자들이나 고리오나 뿔류쉬낀 같은 린색한들이 벌을 받고있었다. 이런 자들은 가슴으로 무거운 짐을 밀면서 끊임없이 빙빙 돌아다였다. 인간의 허무한 추구와 최후 운명에 대해 너무나 잘 말해주고있었다.    제5옥에서는 화를 지나치게 많이 내는 자들의 령혼이 스틱스강의 흙탕물속에서 벌을 받고 있다자만 별로 흥심이 없었다. 상급앞에서는 허리뼈가 부러지기나 한듯이 굽신거리다가도 하급들에게는 걸핏하면 화를 내는 우리 거기의 관료배들이 생각나서 쓰거운 웃음이 나올뿐이였다    소위 이단자들이 불에 그을린 묘안에서 벌을 받고있다는 제6옥도 스쳐지났다. 단떼는 착실한 신자여서 여기가 감명깊었는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별로였다. 타오르는 불길속에서《지구는 의연히 돌것이다.》라고 납함한 브루노같은 이단자나 장개석 국민당에 의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구추백이나 채화삼, 방지민 같은 선각자들을 뵙고싶었지만 언감생심인듯싶어 욕심을 접었다.    그리고 민주공화국의 원혼이 된 팽덕회장군이나 류소기님, 장지신이나 우라극 같은 《이단자》들은 꼭 배알하고 싶어도 눈물 한동이 쏟고도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으면 어쩌랴 싶기도 하고 이번에 모쪼록 탐방하려는 상대자들이 아니기에 아쉬워도 자리를 슬며시 뜨고 말았다.    제7옥은 이웃에 대한 폭력, 자신에 대한 폭력, 하느님에 대한 폭력으로 인해 죄를 지은 령혼들이 벌을 받고있다는 곳이였다. 인간세상엔 폭력으로 자기 한생을 장식한 인간들이 얼마인지 모른다. 력대의 그 모든 극악한 형리들, 회자수들, 살인자, 강도들이야 지옥불에 타죽든 껍질을 벗기든 내가 아랑곳할것 없다. 다만 이라크에서 만행을 저지른 악마미국병졸이나 그짓을 알고도 모르는체 자전거나 타고 휘파람이나 불면서 군자연한 부시같은 국제폭력배들은 어째 앞당겨 끌어오지 않나 하는 궁금증이 나서 한참 바장이다가 떠났다.      제8옥에는 유혹자, 아첨꾼, 고성죄인 점성술가, 마술가, 탐관오리, 사기군, 화페위조자, 위선자, 도둑, 사기군집정관, 모략가, 불화와 분렬의 씨를 뿌린자, 등 사기와 기만으로 죄를 지은 령혼들이 벌을 받고있었는데 바위구멍속에 거꾸로 처박혀 서로 부딪치면서 불안, 오뇌의 한탄이 넘치고있엇다. 놀랍게도 누구라 할것없이 모두 목과 턱이 몸통위에서 반대로 달려있었다.    제8옥 의 제5구렁에는 탐관오리들이 끓는 력청(沥青)속에 잠겨있고 갈퀴로 무장한 악마에게 감시받고 있었다. 죄인들은 력청속에 잠겼으나 이내 머리부터 다시 떠올랐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낯짝들마다 제딴에 군자연한 웃음을 띠려고 애썼으나 살았을 때 주석단에서 저런 너저분한 웃음을 게바르고 백성을 미혹시켰겠거니 하는 생각이 들면서 속이 메스꺼웏다. 그러자 다리밑에 있던 마귀들이《여기서는 성스러운 얼굴》도 소용없다고 흉악하게 호령질했다. 나는 악귀들도 몸서리쳐졌지만 악관들이 역겨워서 돌아서서 허구픈 웃음을 씹었다.    제9원에는 친족을 배반한 령혼들, 조국과 자기 당을 배반한 자들, 배은망덕한 령혼들이 네개의 령역으로 구분된 코키토스의 얼음속에 갇혀있다, 지옥의 한가운데 지옥의 마왕인 루치페르가 있었는데 그는 세개의 입에 유다, 브루투스, 카시우스를 물고있었다. 여기서는 사랑과 권능, 지혜에 대응되는 증오, 무력, 무지를 표상하고 있다고 한다. 다른 물건짝들을 알고싶지 않아도 붉은 당기앞에세 맹세한 자들이 개도  안먹는 그 돈때문에 배반자의 말로를 걸을수 있다는것이 너무도 불가사의했다. 내친김에 련옥이나 들려보고 싶었지만 연줄이 닿지 않아서 곧추 염라대왕전 으로  향했다. 염라전대문가에서 작은 귀신이 두눈을 딱 부릅뜨고 막아나섰다.《이런놈 보았나? 여기가 어디라고 귀신도 아닌 잡놈이 기신기신 기여드는거여?》소졸이라지만 역시 아귀는 아귀여서 등곬이 선뜩했지만 물러설수는 없었다. 내가 특별취재차로 온 탐방기자이라고 하니 마지못해 안에 전갈해주었다.    내가 주저주저하며 염라대왕이 군림하고있을법한 대궐을 찾아들었다. 가는날이 장날이라더니 마침 염라전에서 어전회의가 열리고있었다. 특별취재를 왔노라고 크게 아룄더니 염라왕이 히쭉웃고는 자기 옆자리를 내주었다. 이승에서는 녕악하고 차디찬 마왕이라고 생각하였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은데 몹시 놀랐다.   《마침 잘 왔다. 양계에서 한번도 여기 음계의 소식을 전하려고 찾아온 이승인이 없었는데 네놈은 꽤나 담대한 자이구나. 늬들 인간촌에서는 염라대왕에게로 가는 길에 로소가 따로 없다고 한다지. 맞는 말이다. 오면서 보았겠지? 신주대지에 인구가 하도 많아서 잡아오는 탐관오리들만해도 꼬리에 꼬리를 물고있지. 세계각국에서 오는 자들은 아직 보지 못했겠지만, 이 몇년래 어찌나 바쁜지 련휴일제를 실시해놓고도 나 이 대왕도 제대로 휴식해보지 못하고 있구나, 으허허허…》    보아하니 염라왕이 18장관들의 확대회를 소집하고 탐관오리들에 대한 심사와 처리문제를 회보받을 작정인듯 하였다. 염라대왕이 나직하게 알려주었다.《요 근년래 중국에 탐관오리들이 갈수록 늘고있어 그것들을 처치하는 일이 얼마나 번중해졌는지 모른다. 할수없이 여기 지부(地府)에서도 이승처럼 편제를 확대하고 판관들을 대거 초빙했다. 이제 들어보면 알것아다.》  《여봐라, 어전회의를 시작하도록 하라. 오늘 정황회보를 하되 누구들처럼 틀에 박힌 빈말이나 거짓말, 큰소리를 줴치지 말고 근엄하게 하도록 하라.》    염라대왕의 호령은 추상같았다. 나는 얼른 가지고 간 소형록음기를 틀어놓았다. 아마 새로 부임한듯한 판관이 회보를 시작하였다.   《예ㅡ에 이번 어전회의는 제때에 열린 매우 중요한 회의올시다. 지부령도에서 친히 틀어쥐는데 대해 소관은 적극 지지하는바입니다. 본론에 들어가렵니다. 몇해전 이 염라전에 줄을 지어 대령한 탐관오리들로 말하면 과급이 많고 처급들은 별로 많지 않았습니다. 례하여 귀주의 염건굉이나 광동의 왕충, 하남의 중화같은 몇몇 물건짝들 이지요. 잠간, 제가 차물을 한모금 마시고요, 헴,헴…    그런데 요근년에는 과급, 처급들이 줄쳐서 들어왔고 청급인물도 적지 않습니다. 우리는 일은 많고 일손은 적어서 거의 매일 초과근무를 해야 했습니다.》   《그게 바로 쓸데없는 빈소리고 관료작풍이라는거야. 실제문제를 말하거라.》   《예ㅡ황공하옵니다. 에, 말하자면 전 한계단에 과급이하 탐관오리들은 기본상 다 징치하였습니다. 그런데 처급이상 탐관들 특별히는 청급이나 성급탐관들의 안건이 워낙 복잡하고 많아서 아직 처리하지 못하고있습니다. 대왕께서 몸소 결재하시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요.》   《그게 어떤 자들인지 일일히 거명하도록 하라.》   《예ㅡ성, 부장급으로 한 성장의 천년 로임에 해당하는 4000만원을 후무린 성극걸이나 루만금을 탕진한 호장청따위들이지요. 청급으로 림국제, 리승룡이라든가 원화밀수사건에 걸려든 한무리 탐관 등, 기지부수입니다. 립공속죄하느라 자기 패당 을 물어먹은 검은세력두목들도 있습니다. 례하여 광동성상업검찰국 당조서기 리군 이나 진황도시재정국장 희향오따위들이 넌출을 당기니 감자가 묻어나온것처럼 들통이 난놈들입니다.》   《오냐, 알겠다. 오늘 회보회의는 이만하고 아래에 상술한 현안들에 대한 처리 원칙을 말하겠다. 처급이상 탐관악관들은 중벌로 호되게 다스려라. 백성의 세금으로 배불리고 향락하면서 백성을 위해 좋은 일을 한것이 아니라 오히려 탐오수뢰하고 또 정부를 감춰두고 축첩하면서 나라와 백성을 해친 못된자들이니 끓는 기름가마에 앉혔다가 칼산에 오르게 하라.    탐관들속에서 장물을 즉시 국고에 바치고 립공속죄표현이 뚜렷한 자들은 혹형을 가하지 말고 련옥에 보내여라. 그리고 우수한 자를 선발해서 작은 귀신으로 쓸수도 있다. 겸하여 말하거니와 지금은 음계나 양계나 정토가 없게 되였다. 아마도 이승에서 잡혀온 자들이 나쁜 물을 먹인것같은데 여기 지부에서도 반부패력도를 가강하여 렴정건설을 잘 틀어쥐여야 하겠다. 늬들속에서 어느 놈이 감히 부패분자들의 꾀임에 빠져서 수뢰하고 탐오하는 현상이 발견되면 껍질을 벗기고 기름가마에 앉힐것이니 알고 서둘러라. 알겠느냐?》    십팔라한들과 소졸들이 일제히 엎드려 칙지를 받들어 모시였다.   《예ㅡ어느 존전이라고 일호차착인들 있으리까. 대왕마마의 금과옥조를 률법으로 삼아 절대절대 렴결봉공하오리다. 전하!그러하오나 이 근년에 탐관들이 무리지어 잡히는 바람에 일은 많고 일손이 딸려 정히 고달프나이다. 양계에서는 할일 없는 관리들에도 로임을 부단히 올려주는데 우리 지부에서도 대우를 높여주시옵소.》   《음ㅡ듣고 보니 근사한 의견들이다. 이승에서 로임을 크게 올려 관리들의 탐욕을 무마하고 청렴을 도모하려 한다는 소식을 들어서 알고있다. 그게 워낙 우스운 짓거리이지만 우리도 한번 시험해보도록 하자. 황차 새천년도 벌써 몇해 지났으니 개혁을 할때도 된것같다. 재정부장은 듣거라. 십팔장관들은 곱배로 올려주고 8만 소졸들에게도 적당히 대우를 해주라.    그리고 여기 일이 점점 더 분망해질것인즉 래년엔 기구개혁을 해야겠다. 편제를 두배로 늘이되 로동자, 농민출신으로 죽은자들속에서 판관들을 더 초빙하고 어중이 떠중이 잡놈들속에서도 쓸만한 놈들이 있거든 소졸로 충당할수 있다. 에ㅡ또 비록 천국에 있고 나이가 너무 많긴 하지만 포공어른을 모셔다가 고문으로 앉힐터인즉 그의 법치태도를 잘 모색해 배우도록 하라.》    말을 마친 염라왕은 나에게 얼굴을 돌리며 당부했다.   《경계가 달라서 접대할 방법이 없으니 그리 알고 돌아거라. 너도 보았겠지만 여기서는 늬들처럼 형상수립이니 뭐니하면서 아래위가 짜고들어 죄행을 덮어감추거나 자리를 옮겨놓아 뒤길을 마련해주고 큰문제는 작게 하고 작은 문제는 없애버리는 작법이 용허되지 않느니라. 탐방을 왔으면 음간의 소식을 대천세계에 진실하게 보도하도록 하여라. 본대로 들은대로, 있은 사실 그대로 쓰란말이다.    구로씨아의 문호 고리끼가 지옥같은 어느 섬도의 수용소를 탐방하고 인도주의가 제대로 관철되는 곳이고 죄수들의 락원이라고  보도하여 작가적인생에 패필을 쓴것을 너도 들어서 잘 알것이다. 그랬다간 장차 너를 18층지옥에 처넣을것이다. 붓쟁이가 량심을 버리면 제아무리 미사려구를 늘여놓아도 결국 당나발에 불과한것이니라.》    내가 꼭 당부를 저버리지 않을것이라고 미처 대답하기전에 염라대왕은 안개같이 사라져버렸다. 볼일을 다보았으니 구태어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는 곳에 더 머물을 마음이 없었다.    염라전을 나서 다시 이승의 본연에로 돌아와 보니 나는 그냥 강기슭 백양나무 아래에 있었다. 조락을 알리는 가을엽서인가 병든 나무잎들이 하나둘 떨어져 처연한 느낌을 더해주었다. 밤하늘을 쳐다보니 멀리 별이 총총한데 천상에 있다는 극치의 절경이 보고싶었다. 지옥을 거쳐왔으니 스스로 천국을 꿈꾸는것이리라.                                       2006년 9월 2 일  
648    의덕을 말하다 댓글:  조회:4330  추천:0  2015-09-21
                                의덕을 말하다      글줄이나 읽은 사람치고 고대중국의 명의 편작을 모르는 사람이 없겠지만 덕성도 더없이 고매하였다는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것이다.      위나라 왕이 편작에게 물었다.    ㅡ그대 삼형제가 모두 명의들인데 누가 병을 제일로 잘 고치는고?    ㅡ예, 큰 형님이 제일 병을 잘 고치옵나이다. 버금으로 차형이고 저의 의술이 가장 미천하나이다.    ㅡ어찌하여 그렇다 하는고?    ㅡ예, 저의 큰형님은 기색을 보고 사전에 병근을 알기에 환자가 아프기전에 치료해주나이다. 그것을 우리 가족들만 알고있나이다.    둘째형님은 초기에 병근을 뽑아버리기에 향내사람들만 알고있나이다. 그러나 저는 병이 심해져 신음할 때에야 비로소 맥을 짚어보고 진귀한 약을 먹이거나 수술을 하나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내가 자기의 큰 병을 떼주었다고 소문을 내게 된것이 옵니다. 그것이 소인이 명의로 받들리는 까닭이옵나이다.    편작의 말을 들은 위왕은 크게 치하하였다.    ㅡ천하명의로서 겸허한 그 덕성은 실로 길이 칭송할바이노라. 죽을 사람도 살려 냈다는 천고명의 편작의 겸손은 우리에게 많은 계시를 주고있지 않는가? 편작의 겸양은 인격력량의 발산이라 해야 하리라.    편작은 겸허했을뿐더러 의덕도 그렇듯 고매하였다. 한번은 괵(虢)나라에 갔다가 신묘한 침구료법으로 다 죽은 태자를 살려냈는데 왕이 하사한 금품은 물론 상으로 내린 벼슬자리마저 사절하였다. 아마 현대인들속에 그를 굴러들어온 복도 차던진 머저리라고 비웃을 사람이 많을것이다.    3국시대 명의 화타도 그랬고 생명의 위험도 무릅쓰고 온갖 풀을 먹어보고《본초강목》을 쓴 리시진도 그랬다.명망으로 문진비를 값매기는 지금 같으면 돈없고 권리없는 로백성들이 병을 보일 엄두도 내지 못할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부자나 가난 뱅이나 가리지 않고 평등하게 병을 치료해주었으니 세세대대로 칭송하지 않을수 있겠는가?    한 고장에 덕망이 높은 중의가 있었는데 날씨가 추워지면 주머니에 늘 뜨거운 물주머니를 넣고다녔다. 자신이 남보다 더 추위를 타서가 아니라 찾아오는 환자들을 언제나 따스한 손으로 진맥하기 위해서란다. 따스한 손으로 진맥하면 병자들은 마음부터 따스해지고 일종의 신뢰감을 가지고 병치료에 신심이 생기게 된다고 한다.    이런 따스한 풍경을 접할 때면 우리는 감동하지만 또 다른 경치는 섬찍해 난다    상술한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어떤 사색을 자아내지 않는가? 현대중의학은 그들로부터 발전해왔다. 그러나 그들의 의술은 계승받으려 하지만 그들의 고매한 의덕은 구중천에 날아가버린지 오래다. 지금 소문난 의사를 한번 보이자면 연줄에 연줄을 달아야 하고 두툼한 돈봉투를 넣어주어야 좀 어떨가 한 세상이다.    중국의 모든 병원들이《인민병원》이라고 성스럽게 불리우던 그 시절, 흰옷 입은 의사나 간호원은 모두 가장 숭고한 칭호인《백의천사》로 통했고 명실상부한 인류생명의 기사였다. 병원에서는 지금처럼 돈을 번다는 생각을 앞세우지 않았다. 의사와 간호원들은 애오라지 환자의 병을 고칠 일념뿐이였다.    그러나 상품경제시대의 도래와 함께 의료륜리가 망가지기 시작하여 더는 겉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여북하면 국민들이 뒤에서 의사를 두고《하얀 ××》라고 모독하랴, 물론 사회적으로 그런 계제가 주어진데도 원인이 없지 않다.  떼돈을 번 벼략부자들이 많아지자 의사들은 서양의 의사들과 비교하게 되였고 마침내 비정으로 나가게 되였던것이다.    더구나 정부에서 병원기업화를 권장하자 병원당국에서는 의사들에게 실적지표를 요구하게 되였고 환자는 이제 더는 환자가 아니라 돈나무일뿐이였다. 벌어들인 돈에 따라 장금까지 타게 되였으니 속담 그대로 꿩먹고 알먹기가 된것이다.    그러다 보니 황당하기 그지없는 의료부패사건들이 련속부절히 일어나 국민들의 분노를 자아내게 되였고 온 사회적으로 원성이 높아졌다. 한낱 감기따위에 수백원을 써야 하고 쓰지도 않은 약을 진료비청구서에 올리는 경우가 비일비재이다. 한 환자가 하루에 수십병의 링겔주사를 맞은것으로 된 천하기문도 한두가지 아니다.    수술의사에게 돈을 찔러줘야 한다는것은 이미 관례로 되였다. 의사가 약방이나 제약회사들에서 사례비를 받는 등 회색수입이 가관이라는것도 인젠 공개된 비밀이다. 중국에 《도리가 있어도 돈이 없으면 관청에 들어가지 말라》는 전고가 있는데 지금 은《돈이 없으면 병원에 들어가지 말라.》는 말로 바뀌였다. 당장 죽어가는 환자를 두고 예약금이 없으면 문전박대하는 명실공히 《인민페병원》이 되고만것이다.    국민들이《의사와 교원의 직업륜리가 망가지면 사회전체가 망가진다”고 말하는데 도리가 없지 않다. 사실 모든 직종에서 한번씩 망가진 경험을 갖고있다. 의사와 교사 는 그 중 제일 늦게 망가진 직종이지만 제일 광기스럽고 실망스럽다. 병원이 사기군의 대명사로 되여진다는것은 얼마나 통탄할 일인가?    가장 먼저 망태기를 캤던 상인들이 뒤늦게나마 다시 직업륜리를 되찾기 시작한 징표가 보지만 새로운 도덕질서가 세워지고 있다고 락관하기는 시기상조이다. 아닌가 보라. 현재 광고중에서도 제일 요란스러운것이 명의광고, 명약광고이다. 약광고마다 령단묘약이요 만병통치다. 동네방네 홍보하는 의사들도 저저히 편작이나 화타도 무색해 할《명의》들이고 조상밀방이나 궁정밀방을 가지고 있어서 저승사자를 아예 우습게 보아도 될것같은 기분이 부쩍 들기도 한다.    하기야 의사마다 명의여서 환자들에게 재생을 안겨주어 세상을 널리 리롭게 한 다면야 그보다 반가운 복음이 또 있으랴!  의사를 인간생명의 기사라고 칭하고있다. 의사로서 무소부지(无所不知)한다거나 백병이 즉효를 본다고 장담한다면 인간의 생명을 걸고 승낙하는것과 같은것인데 어떤 일에서든 보증을 내세운다면 언젠가 파멸을 자초할수도 있음을 명기할 필요가 있다.    곰보자국을 보조개로 과장해 자랑하는식의 광고는 좀 자제하자.《대저 겸손해서 스스로를 적게 나타내며 크다고 스스로 내세우지 않으면서 오히려 큰 사업을 이루게 되느니 이를 대도(大道)라 하니라.》도덕과 량심이 미끄럼타는 시대라 해도 제발 허명으로 돈낟가리에 앉으려고 하지들 마시라. 업보라는 말은 심심해서 전해내려온 말이 아닌것이다.    겸허는 우리 모두가 갖추어야 할 덕목이다. 무릇 그가 누구든 무슨 직업인이든 진정 겸손해질 때 가장 인간다와지는것이 아니랴!인간의 온갖 미덕중에서 겸손이야 말로 으뜸가는 덕성이라 할것이다. 기실 모두 알고있는 상식이긴 하지만.                                                                                        2005 년 5 월 12 일      
647    “모자” 댓글:  조회:4423  추천:0  2015-09-21
                                     “모자”    모자란 자초에 추위나 더위, 해볕이나 먼지 등을 막기위해 만들어졌는데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멋과 행세로 쓰게도 되였다. 수십백종 형형색색의 모든 모자들은 다 저마끔의 용도가 있지만 세상엔 별로 쓸모없는 모자들도 있다.     그게 무슨 모자냐? 바로 집권자의 목적과 의도에 따라 시기시기 만들어진 변상적인 온갖 정치모자들이다. 이를테면《우파모자》를 비롯해서 문화대혁명시기에 대량 생산해 낸《주자파》,《반혁명분자》,《××특무》,《민족주의자》등《모자》들인데 억지로 마구 씌운 것들이여서 후에는 거의다 벗겨버렸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명예스럽고 쓸모없는 모자들이였던것이다.     그때 받은 의발인지는 몰라도 그후에도 모자들이 많이도 만들어졌다. 물론 선의적의 립장에서 만들었기에 상기한 모자들과는 질적으로 다르긴 하다. 례컨대 각이한 직업인들의 존호로 상징되고 있는 눈부신 모자들이다. 백성들에게 하사된 나라의《주인공》이라는 모자이다. 이런 모자를 쓰면 모두 순간적으로 나마 국민적 지위와 인격가치에 대한 긍지감과 자호감에 가슴이 뿌듯해질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기실 지배받고 흔히 굴욕당하는 사람들이 바로 이《주인공》들일 때가 많으니 곤혹스럽지 아니한가? 이 사회에서 강도, 도적, 류망, 사기군, 투기모리분자, 살인악마…모든 용속하고 비루한자들은 이 주인공의 모자를 쓸 자격이 없다. 자기에게 맞지 않는 모자를 쓴다는 것은 너무 부끄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관리들에게는《인민의 공복》이라는 그럴듯한 모자를 부여했다. 이말의 진정한 의미를 음미할 때 사람들은 설중송탄에서 오는 따스한 감각이 아니면 오유월 염천에 랭장고에서 방금 꺼낸 얼음과자를 먹은듯이 속이 개운해지고 느긋해질 것이다. 그러나 이런 숭엄한 모자를 써야 할 사람이 누구누구일가? 나로서는 초유록이나 공번삼같은 지사들은 명실공히 이런 계관을 쓸만하다는 것만 명기할 뿐이다.      나라의 어엿한《주인공》들을 백안시하는《나으리》들이나 가증스러운 관료주의자들, 념불에는 맘이 없고 제밥에만 맘이 있는 허명무실한 위군자자들은 스스로를 알고 자기가 쓰고 있는 그 어마어마한 모자를 벗어야 할것이다. 아닌 보살이란 말이 있기는 해도 말이다.       의료일군들은 인류생명의 기사들이라 하고《백의천사》라고도 한다. 이런 백의천사들이 있기에 사람들은 아픔도 지레 낫는것 같고 마음에 믿음이 생기면서 저승사자를 겁내지 않을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담방 죽어가는데도 돈부터 앞세우거나 수술환자의 배속에 가제나 핀센트나 붕대따위를 넣은채 봉합해버리는 엉터리《백의천사》들이나 자격미달의《기사》들에게는 영예의 계관이 격에 맞지 않는다.     인민군중의 생명안전을 지키기 위해 목숨걸고 헌신하는 인민경찰들에게 우리는《인민의 수호신》이라는 존호를 선사하고있다. 이런 참된 수호신들이 있기에 우리는 한밤중에도 시름놓고 어두운 골목길을 걸을수 있고 캄캄한 층집의 복도를 오를수 있는게 아니랴!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런 숭고한 사람들속에는 장엄한 국장이 박힌 모자를 당장 벗어야 할 사람도 적지 않으니 유감이다.     교원들에게 씌운 모자는 더구나 많고 요란하다. 듣기에도《인류령혼의 공정사》라는 계관은 곧 교원의 대명사로 되였는데 기실 이 존호는 쓰딸린이 작가들에게 하사한 아름다운 작은 모자였던것이다. 그것이 50년대 중국대륙에서 류행되다가 교원들에게 씌워놓았던 것이다. 곰곰히 살펴보면 이 모자가 교원들에게 너무 크지 않으면 교원들의 머리가 너무 작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내가 쓸 모자가 아니면 원임자에게 돌려주어야 맞다. 약간한 바람에도 후딱 벗겨져 땅에 떨어질수 있으니까 하는 말이다   《태양아래 가장 신성한 직업》이라는 모자도 안성맞춤이 아니다. 교직이란 사실 가장 평범하고 사람들이 그리 존귀하게 보지않는 한갖 직종일뿐이다. 지금 가장 숭고한 직업으로 꼽자면 그래도 먼저 공무원이고 다음 공장장, 동사장, 경리, 기업가, 증권교역소의 책임자, 그리고 명가수, 명배우, 명사회자 등등이 아니던가? 그러니 어마어마하고 요란한 모자를 벗을 때도 된것같다. 꽃종이로 만든 모자를 쓰고 어릿광대질을 하는건 명지한 일이 아니다.     현시대에 와서는 이런 모자들을 쓰고 제얼굴에 먹칠하는이들이 새록새록 생성해서 교육부패라는 현대개념까지 만들어졌다. 모자는 하늘에 걸리고 명예는 땅에 떨어진것이다. 수업효률은 뒤전이고 지하 교수에만 정신이 팔려있는 독직자나 아이자지에 붙은밥알마저 뜯어 먹으려 호시탐탐하는 실직자들은 더구나 이런 모자들마저 쓸 자격이 없다. 남이 툭 쳐서 벗겨버리기전에 절로 벗어버리고 진짜 제모습을 하고 사는게 인간다운 처사일것이다.   《봄누에》나《초불》같은 이름으로 된 모자는 직업적 특성을 말해주는것 같지만 보기에 민망할 정도로 처량한 느낌이 든다. 옛날의 로교원들속에는 확실히 뽕잎을 먹고 비단실을 토한《봄누에》들이 많았고 초불처럼 자기를 불태워 무지의 세계에 한가닥 광명을 안겨준 재사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누에나 초불이 되기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누에는 뽕잎대신 돈잎을 먹어야 고치실을 뽑으려하고 초불이 타는 비례에 따른 손해비가 있어야 업여로 타오른다고나 할가?     매사에 적임자라는 말이 있듯이 자가가 쓴 모자에 적성의 임자가 되기에 손색이 없어야 한다. 로자가 가로사대 지극한 영예는 영예롭지 않은데 있고 평범한 구슬이나 딱딱한 돌멩이처럼 돋보이지 않으려는것이다.  덕이 높은자는 스스로의 덕성을 의식하지않는바 얼핏 보면 그의 행동이 부도덕한 듯 하다. 이럴수록 그의 덕성은 돋보인다. 덕성이 낮은자는 애써 자기 덕성을 나타내려 하나 위선이 풍겨 오히려 그 덕성을잃게 되느니라 했다.     빛은 언제까지나 빛대로 남는다. 장님이 그것을 보지 못한다해도 마찬가지이다.빛이 당신과 함께 있는 한 빛을 믿으라. 그때 그대는 빛의 아들이 되는것이다. (성경전서) 물각유주(物角有主)라는 말이 있다. 자기에게 맞건 안맞건간에 더 큰 모자, 더 요란한 모자를 쓰려 하고 세상의 모든 월계관을 제 머리에 올리고 싶어하는 사람들은지금 쓰고 있는 모자가 알맞는가를 다시 한번 자기 량심의 거울에 비춰보시라, 맞지 않으면 미련없이 벗어 버리라. 그냥 쓰고 있다간 언젠가 벽에 코가 부딪쳐 깨질수 있다.                                      2006년 1월 15일
646    (잡문) 딱따구리례찬 댓글:  조회:4576  추천:0  2015-09-15
                              딱따구리례찬                                     최 균 선      딱따구리는 주로 탁목조(啄木鳥), 렬조(列鳥)라고도 하고 아호는 지목(志木) 이라 하며 현대적으로 삼림의 의사, 삼림의 초병이라는 미칭도 지니고있다.    만약 사람들더러 까치, 까마귀, 딱따구리 세가지중에서 감정적인 선택을 하라면 응당 까치가 첫손에 꼽힐것이고 다음 딱따구리일것이며 까마귀는 아무도 알은체하지 않는 딱한 처지에 처할것이다. 한것은 전통적인 가치판단과 가치취향으로부터 까치는“기쁜소식”을 전하는데다가 체형도 우아하고 우짓는 소리도 길하다고 생각하기때문일것이다. 하지만 나는 타고난 기질때문인지 빈소식만 전하고 허명을 얻은 까치보다 행동적이고 실무적인 딱따구리를 더 좋아한다.    딱따구리는 화려함의 상징인 공작새처럼 명성이 뜨르르하지도 않고 신비의 대명사인 상상속의 봉황처럼 동경하는 새도 아니지만 나무벌레의 천적으로서 명실상부하게 과감하게 사랑하고 과감하게 증오하여 눈에 띄이는 해충을 제거하는 수림속 투사이다. 딱따구리가 나무를 사랑하는 마음은 일편단심이여서 해충에 절치부심하며 나무의 병을 치료하는것을 사명으로 삼고 자각적으로 삼림의 의사로 충당되여왔다.    딱따구리는 나무줄기에 수직으로 붙어서 라선형으로 올라가면서 구멍을 뚫고 가시가 달린 긴 혀를 넣어 딱정벌레의 유충따위를 잡아먹는다. 딱따구리는 추호의 사심도 없기에 해충이 무슨 색갈이든, 어떤 신분이든, 무슨 명분을 가졌든간에 가리지 않고 사정을 두지 않고 그 자리에서 처치해버린다. 이 시점에서 삼림동물계에서 원칙을 견지하는 공정한 법관이라고 하는것이다.    딱따구리는 아주 부지런하고 고생을 두려워하지 않는 익조이다. 매일 혜안을 밝히여 병든나무를 찾아내고 해충이 숨어있는 곳을 쪼아댄다. 과학가들의 관찰에 의하면 딱따구리는 매일 오백번이상 나무를 쪼아댄다고 한다. 그 의력이야말로 우리 사람들로 하여금 혀를 내두를만도 하다.    나무의 겉면에서도 얼마든지 벌레를 잡아먹을수 있는데 왜 하필이면 부리가 닳도록 나무를 쪼아 숨은 벌레들만 잡아먹을가? 자신의 신근한 로동으로 얻은것이 여야 진정 입에 맛는 진미라고 여기는것일가? 아무튼 고상한 품덕을 지닌 새라고 해야 할것이다. 삼림속에 공훈자이지만 종래로 꾀꼬리처럼 간드러진 노래로 자신을 자랑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해충잡이에만 로심초사하며 일사불란이다. 나무를 쪼아대는 절주있는 “딱딱딱…”하는 소리가 딱따구리의 삶의 노래라고 할수 있다.    그런데 유감스러운것은 나무들이 딱따구리의 신근한 복무에 감사할줄 모르고 오히려 미워한다는것이다. 자기의 먹거리를 위해서 껍질에 손상을 주고 쉴새없이 쪼아대는 소리가 자신의 안녕을 깨뜨린다고 생각하는것이다. 더구나 딱따구리의 광림 은 자신이 병든 나무라는것을 세상에 알리는격이여서 자기 체면을 구긴다는것이다. 게다가 제먹이를 위해서 한짓에 삼림의사라는 미명을 얻기까지 하였으니 결국 일거 량득하는것이 딱따구리라며 미워한다.    그러나 딱따구리는 나무가 어떻게 고깝게 생각하고 원망하고 미워하든 아랑곳없이 자기의 천직에 충실할뿐이다. 까치는 꽁지를 달싹거리며 이 나무 저 나무 옮겨앉아 찬가를 부르며 나무들의 환심을 산다. 아닌게 아니라 나무들은 까치가 자기와 마음이 통하는 벗이라고 반가워하며 늘 우듬지를 내준다.   어느 날 까치와 까마귀가 한담하였다.    “까치언니, 어떤 일은 정말 알고도 모르겠어요. 사람들은 어째서 언니에게는 그렇게 호의적인데 그들에게 득죄한일도 없는 나를 보기만하면 저주를 퍼붓는지? 정말 억울해 죽겠어요.”    까치가 여유작작하게 대답했다.      “까마귀동생, 네가 아직 사회경험이 많이 부족하구나. 생각해봐, 현재 인류가 세계를 주재하는데 인류와 관계를 잘 처리하지 않고서야 살아남겠느냐? 나는 곡식밭에 벌레도 잡아주거니와 주동적으로 인심을 얻으려고 늘 희소식도 전해주지 않나? 그러니…”    까마귀가 까치의 말을 중둥무이했다.  “그래도 사람들은 너무나 불가사의해요. ”이때 딱따구리가 그들의 대화를 듣다못해 한마디 하였다.  “너희들은 생각하는게 왜 그 정도냐? 너, 까치는 그냥 좋은 소식만 전하려하고 너, 까마귀는 우울한 소리만 뇌까리지. 그러면 안돼, 좋은 소식만 듣기 좋아하고 나쁜 소식은 싫어하는 사람들의 태도에 놀아나는게 아니라는 말이야…”      아닌게 아니라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찬양소리만 좋아하는데 물론 인간상정이다. 그러나 그냥 칭찬소리에만 귀익어있다면 정상적인 량지가 마비되고 비진실의 우월감이 기고만장해질것이며 그런 용속한 심리상태는 응유의 위기감과 진취심을 상실하게 할것이다. 칭찬앞에서 어떤 몸가짐을 가지냐에 따라 그 인격이 가늠되기도 한다.    딱따구리가 비록 사람들의 정감선택에서 미칭을 얻었지만 어떤 방면에서는 모종 사람들의 심미정취에 맞지 않을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딱따구리는 나무의 숨은 병집을 딱딱 짚어내고 치료해주어 나무의 건강장수를 도모해준다. 딱따구리가 굳 센 부리로 나무를 쪼아댈때 아프기는 하겠지만 병을 치료하는대 전혀 아프지 않은 침이나 주사바늘이 있던가?   이 세 종류의 새들에 대한 선호도로 문필사업을 비유할수 있다. 문인은“까치”노릇을 하는데 만족하지 말고 “딱따구리” 가 되여야 바람직하다. 그러나 “까치”가 되기는 쉬워도 “딱따구리”가 되기어렵다고 말한다. 문인으로서의 골기가 있어야 하기에 “까치”는 하늘에 분분히 날고 딱따구리는 점점 더 보기 희소하다.    한가지 단조로운 곡조로는 화해로운 악장을 엮을수 없다. 영광은 잠시적으로 눈부실수 있지만 영원한 속박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글을 씀에서 음영이 드리운 소식도 전하는 까마뀌도 되여야 하거니와 사정없이 해충을 쪼아대는 딱따구리로도 되여야 한다. 문필계에서 아마도 명실상부한 잡문가를 “딱따구리”에 비유해야 할것이다. 물론 량자의 품행과 처경의 각도에서 하는 말이다. 기실 잡문가는 다만 불굴의 붓쟁이에 불과한바 사회상의 불공평한 일.인간의 추태, 비리, 부패 등 사회악과 온갖 인성악에 대하여 납함하는데 그친다. 이 점에서 딱따구리에 비길바가 못된다.    잡문가도 사회해충을 누구보다 빠르게 보아내지만 불평불만에 애끓을뿐 속수무책이다. 잡문가의 붓끝이 아무리 날카롭다 하여도 땅땅한 나무껍질을 쪼아 깊이 숨은 해충을 제거하는 딱따구리의 본능에 미치지 못한다. 잡문가의 붓은 법률을 대표하는것도 아니기에 막무가내하다. 하지만 잡문가가 딱따구리의 기개와 정의를 신장하는 정신을 가졌다면 그것만으로도 문단에서 자호할만하다.    딱따구리가 익조이나 너무 간단화한다고 생각할수도 있다. 하지만 딱따구리처럼 해충을 제거하는 정의감과 불굴의 기개로 붓을 벼리고 고상한 품덕으로 글밭을 걸구며 사회해충을 질타하는 투지를 가진다는것은 생각뿐, 쉽지는 않은 일이다. 어떻게 쓸가는 기교문제이지만 무엇을 쓸것인가는 작가의 사상과 기개에서 비롯되는 문제이다. 그래서 딱따구리가 돋보이고 찬양하게 되는것이다.                                                                    2012년 1월 12일
645    모기를 읊노라 댓글:  조회:4176  추천:0  2015-09-13
                           모기를 읊노라      어느덧 하지도 지나서 모기떼가 성화를 부릴 계절이 되였다 도시문명도 말리지 못하는 모기떼는 아츨하게 높은 아빠트창문가에서도 란무한다. 물론 시골의 모기처럼 떼거리로 달려들지는 않고 몰래 새여들어 물지만 악착하기는 마찬가지다.       우리 말로는 모기이나 중국어의 문자(蚊子)에서 문(蚊)이란 원래 옛날 초나라 말이라 한다.《설문(說文》에 의하면 진(秦)나라와 진(晉) 나라에서는《蚋(매)》라고 불렀다 한다.    모기는 하잘것 없는 미물이지만 그 위해성이 얼마나 큰지 모른다. 현대문명인들이 벼라별 방법을 다 고안해냈지만 모기는 절멸되지 않았다. 해마다 모기의 성화를 받을 때면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저주를 퍼붓는지 모른다. 아마 네발가진 동물중 에서 제일 가증스러운 놈이 쥐라면 나는것들 중에서 모기만큼 역증나게 밉광스러운것은 더 없으리라.    하지만 모기라해서 다 동물의 피를 빨아먹는것은 아니다. 숫놈은 입침이 퇴화되여 동물의 피부를 꿰뚫을 능력이 없다보니 꽃즙 등을 빨아먹고 사는데 암모기에 비해 체구도 작고 그만큼 단명하며 용맹성도 없어 혼자서는 암컷을 유혹할 능력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수백 또는 수천마리씩 떼를 지어 앵앵거리며 암놈을 유인하는데 그 앵앵거리는 소리를 듣고 암놈은 수놈들 무리속에 자진해서 뛰여든단다. 그러면 수놈 들은 더구나 어지럽게 란무하면서 서로 차지하려고 필사적으로 덤벼친다. 암모기는    언제 어느 놈에게 얼마나 당했는지도 모른채 빠져달아난다.    그런데 교미가 끝난 암모기가 수정란을 키워서 알을 낳으려면 반드시 동물의 피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래서《짝!》소리와 함께 비명횡사할줄 알면서도 사람들에게도 한사코 달려든다. 그러니까 피를 빨아먹는 모기는 처녀모기가 아닌것이다.    암모기는 동성련애자인지 아동편집광인지 부녀와 아동들에게 각별히 감겨돌면서 있는 례의를 다 베푼다. 특히 배란기의 녀성들을 좋아하는데 일반 사람들의 피보다 더 향기롭기때문이라고 한다. 혹자는 모기가 어떤 사람들에게 특별히 잘 달려드는것은 혈형과 관계되는데 A형을 좋아하고 B형이나 O형은 싫어한다고 한다    당조때 시인 류우석은《취문요(聚蚊谣)》에서《침침한 여름밤, 빈 초당문을 여니 기다린듯 모기떼 날치며 우는소리 뢰성같네(沉沉夏夜闲堂开, 飞蚊伺暗声如雷) 》라고 읊었는데 기실은 당시 창궐하게 날뛰던 탐관,악관들을 모기에 비유한것이였다. 저 유명한 시경의《위풍. 석서(魏風碩鼠》에서는《큰쥐놈아 큰쥐놈아/ 나의 기장  먹지 말아》 하고  탐관오리들을 석서에 비유하고있다. 하지만 나는 모기라하면 즉시 기녀, 매음녀, 현대류행어로서 멋스러운《정부》들이 떠올려진다. 내가 너무 상상력이 풍부한지 모르겠지만 권세자. 갑부에게 들어붙어 향락을 누리는 소위 정부라들이 라던가 첩들이라든가 외국인의 현지처… 등등이 다 모기떼와 다를바없다고 생각된다.    중세기 기사시대의 정부란 렵기성과 랑만성을 담고있지만 지금의 정부라는것은 십중팔구가 돈을 전제로 하는 육체교역자이기에《전부(钱妇》라고 하는것이 더 사개 맞을것이다. 아무튼 지금은 정부인지 전부인지를 둔 풍류인물들이 무지 많아서 일종 사회류행으로 되였다. 신분도 있고 몸값도 비싸고 한껏 향락하는 이런 녀자들을 작은 꿀벌(小蜜)라고 하는데 결국은 상등모기들이라고 할수 있겠다.    보통사람들에게도 정부라는게 있고 서로 정에 주려서 맺은 인연들도 혹 있겠지만 세상에는 피에 주린 모기는 있어도 정에 주린 모기는 없듯이 현시대에 떵떵 거리며 사는 석서들의 피를 빨아먹는 상등모기이든 하등모기이든 다 기생충들임에 틀림없다.    종이로 불을 쌀수 없다고 마침내 더러운 행각이 들통나서 선선한 강철팔찌개를 끼게 된 탐관오리들은 100%가 정부를 두었고 그 보배로운 이쁜 정부들때문에 영광의 재판석에 서게 되였다는것이 밝혀지고있다. 그런 상등모기들의 양상은 실로 천층만층 구만층이고 각양각색이지만 마치 결약이냐 한듯이 공통점을 가지고있다.    첫째 공통점은 모두 천연자원ㅡ미색을 가지고있다. 녀자로서는 둘도없이 귀중한 자원이 아닐수 없다. 부모들에게 물려받은 우질피부에 일정한 자색을 갖추게 되였지 만 험난한 인생길을 헤쳐나갈 첨단무기로 휘두르는것은 각자 나름의 가치관과 추구, 인생태도에 달려있다.    걔중에는 확실히 달도 부끄러워 구름속에 숨고 꽃도 무색해 할만큼의 경국지색의 인모기들이 많다고 한다. 혹간 미모의 늙은 인모기들도 있는데 례하면 진희동의 정부였던 하평은 불혹을 넘겼건만 천생려질이여서 진동지가 그처럼 지랄발광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대자연속에 암모기들은 배터지게 피를 빨아먹고나면 어두운 구석에 숨어서 소화공정을 하지만 탐관오리들의 모기들은 일매지게 금전을 목숨처럼 여기기에 그게 늙었든 추물이든 돈만 두둑히 내주면 옥체를 내맡긴다. 그리고 한번 들어붙었다 하면 끝없이 석서들의 피를 빨아댄다. 석서들이 피를 빨려 말라죽든 미이라가 되든 백성이 알바가 아니지만 문제는 그 피가 바로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여 저축되였다는것이다.    탐관오리들에게 붙어사는 암모기들은 한결같이 무지경의 향수를 추구하는게 두번째 공통성이다. 례하면 원호북성부성장 맹경평의 정부였던 림심람은 일심불란 상등인의 생활을 추구하다가 맹선생의 품에 날아들었는데 이튿날에 얼씨구 별장이 생기고 지화쟈 고급하이야가 굴러들고 금은장식품, 돈보따리, 보모 등 부족한것 없이 안겨졌으니 한번 내번질만도 하다고 쾌지나 칭칭을 불렀을것이다.    상등모기들은 모두 인격이 발바닥이다. 비록 용모가 천선녀같은 미녀들이지만 령혼은 악착스러운것이 세번째 공통성이다. 그녀들은 탐관들의 노리개로 충당되기를 바라고 탐관들이 배구공처럼 서로 주고 받아도 된다. 진희동의 정부 하평은 자초에는 왕보삼씨의 모기였는데 진희동어른에게 잘 보이려고 선선히 내주었다고 한다.    이런 모기들은 간상배들의 육탄이 되는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들로 말하면 도덕, 인격, 량지, 품격 같은것들이 오히려 거치장스러운것들로서 언녕 진구렁창에 처넣어버리고 천마처럼 색계를 종횡무진한다.    상등인모기들은 저저히 흡혈수단도 비범하다. 그들은 단일하게 미색으로만 생존할뿐만아니라 다른 생존기량도 구비하고있다. 원강서성부성장 호장청의 인모기였던 호려연은 원래 강서성의 모호텔의 복무원이였는데 생김새는 수수했건만 웅성모기들을 꼬시는 뛰여난 특장을 가지고있었다. 그래서 호씨라는 석서를 만나마자 추파를 던지며 이 강서의 큰쥐에게 찰싹 들어붙어 무한정으로 피를 빨아냈던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공통점이라면 미녀모기들은 모두 끝장이 좋지 않았다는것이다. 비록 한때 눈부시게 자기 인생마당을 장식했지만 불에 날아드는 부나비의 정사가 시작이자 곧 끝장이듯이 기다리고있던 치욕의 기둥에 매달리지 않을수 없었다.    왕보삼이 스스로 따가운 노란 콩알을 삼키고 염라왕전에 대령한후 그의 모기였던 조려강은 심수에 날아갔으나 결국은 일세영달하려던 꿈은 남천방이 되고 철창속에서 눈물코물을 마시게 되였다. 그녀의 운명인즉 모든 상등모기들의 운명이 아니겠는가?    암모기들중에는 하등모기들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있다. 누군가 어둠침침한 사우나나. 다방, 안마원같은데서 육시장을 벌리는 모기들은 하등모기라고 등급을 나누고 뒤골목의 가로등밑에서 웅성을 꼬시느라 앵앵거리는 모기들은 비천하나 불쌍하기 그지없는 잡모기들이라고 개탄한바 있다.    낮이면 다방의 구석에서 늘어지게 자고 밤이면 뭇웅성들의 무릎을 아무 꺼리낌 없이 타고앉아 애교를 부리며 어떡하면 더 많은 피를 빨아먹을가 고심하는 그 양자야말로 가관이라 할것이다. 잔뜩 취하여 찰나적인 용기를 뽐내며 통이 크게 놀아대는 남자들이 내주는 팁에 매달려 웃음을 흘리는 모기들, 그런 축축한 돈으로 미용하고 고급옷 사입고 택시불러타고 내왔노라고향마을 찾아가는 그 심정은 어떠할가?    절로 병들어 때아니게 떨어지는 시든 백양나무잎같은 신세, 잘 이겨지지 못한 질나쁜 가죽을 련상시키는 살갗, 빛을 잃은 흐리멍텅한 눈동자, 다시 수습할수 없이 무너지고 흐트러진 자세, 그 비뚤어진 령혼과 아무에게나 헤프게 쏟아내는 웃음과 시들어버린 육체…암모기는 그래도 수놈들속에 란무하다가 잉태하지만 그 모기들은?    녀자는 필경 암모기가 아니다. 그러나 하수도같은 그 곳이연만 좋아라 달려드는 웅성들, 그들이 있기에 자기네 같은 모기들이 생겨났다고 하지 말라, 가지 않으면 오지 않을것이요 주지 않으면 가지지 못할것이다. 이미 스러진 꽃은 다시 피여날 새 봄을 기다릴수 있지만 이미 돌이킬수 없이 이그러진 자신의 삶에서 남을것이란 땀때묻은 지페쪼각밖에 더 있을거냐? 정말 불쌍한 생령들이라 말하면 오히려 그렇게 개탄하는 사람이 더 우스운 맹꽁이가 될지도 모를일이다.    미모를 가지고 태여났다는것은 녀자로서는 다시없는 행운으로서 미자체에는 아무 잘못이 없다. 파란만장한 진화과정에 인류는 줄곧 아름다움을 창조해왔던것이여늘 미는 인간의 향상심의 체현이였을뿐만아니라 인간의 령혼과 육체의 수요이기도 하였다. 아름다움을 떠나서는 살아도 죽은것과 같고 인간사회는 빛을 잃을것이다.    아름다움은 어떤 녀인에게는 령혼의 불꽃이 되고 어떤 녀인에게는 꺼질줄 모르는 심정이 된다. 그보다 인류가 창조한 일체 정신적미는 인류자신의 힘으로서 그것이 가볍든 무겁든 일종 보충이 된다. 녀자들의 미모는 사람들의 심령에 충격적인 가장 본질적인 인소이다.    얼굴이 고운가 미운가는 개체적 인간의 인생행로와 운명을 결정할수 있다. 미운 모습은 밝은 등불앞에 나서기 꺼려할것이며 노한 모습은 거울을 마주하여 우울한 모습을 숨기지 못할것이다.서구의 철학자 쇼펜하우엘은《미모는 의연히 인간의 정욕 속에 존재한다》고 하였다. 이 말은 한바늘에 인간의 약점을 꿰였고 털이 없고 두발 가진 동물인 인간의 근성을 도출해냈다. 미모는 한 녀자의 몸값, 지위, 재력, 취향을 결정한다. 한 녀자의 인생의 전절점이 될수 있고 우연한 만남에 감탄부호를 찍을수 있지만 필연의 왕국에서 비참하게 그지없이 종지부를 찍을수도 있다.    미모는 일종 자원이지만 영원히 채굴할수 있는 자원은 아니다. 열흘 붉은 꽃이 없고 늙지 않는 미색이란 없다. 《사람의 얼굴은 어데로 갔는지 모르는데 도화꽃은 예이제 봄바람에 웃는구나 》라는 옛시구도 있듯이 만약 하늘도 정이 있다면 하늘도 쉬이 늙으리라.    녀자는 필경 모기는 아니다. 그런데 미모의 녀자는 꼭 모기로 되여야 할 까닭은 무엇인가? 뉘라서 이 아리숭한 사회난제를 풀것인가? 글은 거의 마무리되여 가는데 창가에 모기떼는 물러갈줄 모르고 그냥 애앵거리는구나.                              2007년 6 월 30  
644    정치건달 댓글:  조회:4523  추천:0  2015-09-13
                                   정치건달      조선말에 건달, 부랑자, 불량배. 무뢰한을 한어에서는 류망이라 하는데 원래는 무직업유민을 가리키켰다. 후에 놀고먹기를 좋아하고 란동을 피우고 비렬한 행세를 하는 사람을 이르게 되였는바 사람마다 고개를 탈아버리는 성가신 사회존재이다.    그런데 건달중에도 가장 위험천만한 건달은 곧《정치건달》이다. 중국은 기나긴 노예사회와 봉건사회를 경과하다보니 2천년이나 제왕술이 통치하였다. 제왕술 (帝王术)을 “장독문화”라고 하는데 정치건달이 건달정치로 백성들을 압박, 착취하고 우롱한 력사문화를 의미한다.    제왕과 그의 추종자들은 거개 정치류망들이였다. 한고조 류방을 비롯해서 려후, 수양제, 송휘종, 무측천, 그리고 만고악녀 자희태후…그 새끼건달들로서는 전국시기의 소진, 장의, 진조의 조고, 북송의 진회, 청조의 리홍장, 증국번, 군벌시대의 단기서, 원세개, 왕정위따위들을 들수 있다.    특히 개국제왕들속에 정치건달들이 많다. 그자들은 강산을 다툴때는 근로대중의 인심을 롱락하는 구호를 내걸고 무수한 “공백지”표를 떼주었다. 그러나 일단 보좌에 앉으면 환난을 같이한 일체 동맹자들을 한켠에 밀어내였고 심지어 개국공신들마저 9족을 멸하였다. 그 전형인물로는 지식인들을 골수에 사무치게 미워하고 살육한 황소, 횡포무도한 주원장,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을 못하는격이 된 홍수전 등이다.    이런 건달통치자들이 강도법칙을 내리먹여 인민들은 의연히 공포속에서 살아야 했다. 그자들은 일인천하를 유지하기 위해 절대적순종을 강요했으며 신하와 백성들은 머리를 조아리며 만세를 입에 달고다녀야 했다. 이런 정치건달들의 두목인 황제는 건달통치체계를 세우우고 백성을 초개같이 보면서 무조건 압제했다.    간혹씩 나타난 이른바 “명군”도 기실 허위적이였다.《명군》들은 민정에 주의를 돌려야 하고 신하들의 충언을 잘 받아들여야 한다고 가장한다. 황제는 영원히 착오를 범하지 않는 초인간인듯이 자처하였으며 크고 작은 관리나부랭이들도 성인인듯이 충언을 귀밖으로 흘리기가 상례였다.    정치건달은 건달정치를 펼칠수밖에 없다: 정치건달의 본질은 곧 인민을 기편하고 천방백계로 인민의 의지를 꺾어버린 횡포무도였다. 제왕과 그 추종자들은 일계렬의 건달정치사상체계를 확립하였는바 그 핵심인즉 숙명론과 복종론이다. 제왕의 통치는 천명이므로 백성은 무조건 순종해야 한다는것이다. 유명한 “3강5륜, 3종4덕”은 아무도 벗어날수 없다는것을 강조한 통치리론이다.    건달정치는 정치건달을 배출한다. 제왕과 그 수호자들은 더없이 잔폭하고 간사하며 탐욕스럽고 기만적이며 허위적이다. 건달정치를 강행하여 부단히 정치건달들을 배태하였기에 사회적악순환을 조성하였다. 건달정체제하에서는 원래 좋던 사람도 곧 나쁘게 변하고 원래 심기불순했던 나쁜자들은 더구나 나빠지기마련이다.    가장 슬픈것은 그런 건달정치인줄 번연히 알면서도 벼슬하기 위해 선비들이 골기를 꺾어버리고 아부하고 회뢰하면서 천방백계로 그 무리에 가담하려했기에 노예 근성이 골수에 깊이 박혀버렸고 량지와 정조를 구천에 날려보냈다는것이다.     옛날만을 타매할 일이 아니다. 현대사회에도 내세울만한 정치건달들이 있었다. 진정한 지식분자들을 잡기 위한 이른바의 반우파투쟁에서 한몫 보려고 날친 정치건달들이 그 얼마였던가? 자고로 비평은 금물이였다. 경하면 우파감투를 썼고 중하면 장지신처럼 머리를 떼워야 했다. 반우파투쟁은 지식인들과 정직한 사람들의 량심의 척추를 부셔버렸으며 백성들은 입에 자물쇠를 잠그도록 강요당했다. 그리하여 현실에 참지 못하고 진실을 말한 팽덕회장군같은 지성인들은 계하수가 되였다.    란세에 득세하여 일세영달한 정치건달은 또 얼마였던가? 녀야심가 강청, 음모가 강생, “천재적리론가”진백달, “개대가리군사”로 악명높은 장춘교. 비렬한 어용문인 요문원, 평지돌출로 승천했다가 일패도지한 멋모른 왕홍문, 그아래 새끼무당들이였던 왕력, 관봉, 척본우…그런 정치건달들의 마수아래 얼마나 많은 개국공신들과 인의 지사들이 생죽음을 당하였던가?    반봉건기발을 들고 봉건제도를 뒤엎어버렸지만 결국 저도모르게 봉건주의를 포옹한것이다. 정치건달들은 입에 실사구시를 걸고 관료주의, 형식주의 허위와 음모 와 투기로 이 사회를 충전시켰다. 그자들은 생각하는것과 말하는것이 다르고 말하는 것과 행동하는것이 달랐다. 그자들은 도덕은 령점이나 권모술수에는 우수생이였다.    현시대 탐오부패는 이미 불치의 정계병으로 되였다. 그들로 말하면 실사구시는 가장 큰 거짓말이다. 그런자들은 사회의 검은세력과 한바지가달속에서 놀아대면서 민중의 리익을 해치고있다.거짓보고로  정치“업적”을 마련하고 도금하기 위해 소위“형상공정”을 대대적으로 벌리는 등 관리풍은 미풍량속을 해치고있다. 현사회에 도덕과 성실과 인성과 인애가 결여되여 있는 원인의 한가지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는 음으로 양으로 득세하고 있는 정치건달들이 많다는 말이 되겠다. 현실생활과 민중속에 깊이 들어가지도 않고 실사구시하지도 않으며 관리틀을 피우고 떠벌리기 좋아하며 위풍을 부리기 좋아하면서 바람따라 돛을 달아 일세영달 하려 하면서 실제 유익한 일을 하려하지 않는것도 다 정치건달행위에 속한다.    봉건관리풍의 의발을 답습하면서 독단독행하고 작풍이 거칠고 일처리에 공정하지 않으며 강박명령을 잘 내리며 백성을 억누르기 좋아하는것도 정치건달습성이다. 맥도 모르면서 침통부터 빼든다는 속담처럼 실정을 모르고 망탕결책을 내리여 거대한 경제손실을 빚고도 후안무치하게 학비를 낸셈친다고 하는것도 정치건달의 공통한 언동이다. 별로 해놓은 일이 없지만 문자회보에 알심을 들이여 좋은 일만 회보하고 걱정거리는 적게 회보하는것도 건달작풍이다.     이런 류형의 건달작풍에는 아래 실정도 모르면서 기계적으로 상급의 명령을 옮겨놓으며 앵무새질을 하는것, 겉보기엔 상급에 책임지는것 같지만 기실 얼렁뚱땅 얼려넘기고 겉보기엔 하급에 정이 있는것 같지만 실제상에는 도의가 없는것, 권세로 법을 대체하며 말로 법을 대체하는 등 관료주의작풍은 다 정치건달작풍인것이다.  이런 관료건달들이 생성되는데는 개인주의사상에 근원이 있다.    다행히 중앙에서 렴정건설을 억세게 틀어쥐고 당풍,령동풍을 바로잡기에 정치건달들이 륙속 들통나서 제갈길을 가고있어 사회해충들이 부단히 제거되고있지만 어디에 썩은 구덩이가 있으면 모기와 파리가 생성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반부패, 렴정 건설은 장기적이고 간거한 사업이라 하는것이다.                                  2006 년 2 월 5 일     
643    권력잡설 댓글:  조회:4252  추천:0  2015-09-13
                    권력잡설              정치는 권술이 정치는 예술이라 하더니 요즘은 학계에서 권력은“필요악”이라는 명제가 널리 류용되되고있다. 그러나 사회성원들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권력을 그렇게 간단하게 획분하는  완전하지 않다. 왜냐 하면 권력행사에서 반드시 호상감독과 제약이라는 두개 방면의 필수적인 전제가 제기 되기때문이다.     권력이란 무엇인가? 흔히 권(权)를 보면 대뜸 권력, 권세, 집권자 등을 떠올리게 된다. 그런데 중국 고대한어에서 “권(权)”자는 저울추를 가리켰다. “권(权)(한서. 률력지상(汉书律历志上)”에서는 “권자...경중을 알도다.(权者 知轻重也)”라 고 해석하고있다. 권자의 다른 중요한 함의는 바로 평균 혹은 평형의 의미이다.  권자의 세번째 함의가 곧 우리가 흔히 말하는 권력이다. 권자뒤에 언제 힘력(力)자가 붙었는지 고증할수 없으나 현대의의에서 권세와 세력, 정치상에서의 강제력략, 일정 한 범위내에서 지배력량이라는 세개의 의미를 가진다.    권력에서 력자에 력점이 찍힌다. 그만큼 권력은 일종 강제성공제이며 그 주요한 표현도 물질적력량이다. 또한 질서와 효률 을 위한 필요수단으로서의 권력은 전제와 폭정의 중요한 도구로 되기도 한다. 무릇 어떤 경우이든 권력은 하나의 힘의 문제 이고 강조되는것도 바로 공제성이다. 권력이“필요악”이 된다고 하는것은 그것이 평등을 파괴하고 타인의 자유를 박탈하 기에 비롯된것이다. 그래서 반드시 제약이 선행되여야 한다고 말한다.    권력은 필요악이지만 권력의 원형은 무엇인가? 권력의 원형과 표현형식이 그렇게도 천양지차이다.  권력은 그렇듯 방대하 고 복잡하여 삼라만상을 포갈하며 모든 존재방식이 그속에 들어가있다. 이 시점에서 권력을 우주의 의지라고 하며 인간정신 우주(내심)속에 존재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국가적측면에서의 권력이 정의적인가 비정이적인가? 군체적측면에서의 권력이 고 귀한가 저속한가? 하는 일련의 문제는 우리앞에 별도로 제기된다.      모든 철학적탐구는 실제상 권력문제에 대한 탐구였으며 인류문명사에서 권력만큼 옹근 정신성장과정에 쭉 관통되고있는 것이 없다. 하여 서방에서는 권력이라는 말이 문화의 핵심어로 되여졌다. 고대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플라톤, 로크, 니체, 루쏘 등 거의 모든 철학가들이 일심불란으로 권력문제연구에 종사했다.     특히 루쏘는 인류의 평등과 자유문제에 대해 계통적이고 천면적이며 심각하게 천술했는데 그의 “천부인권(天赋人权)”은 봉건전제세력과의 투쟁의 선언서였다. 루쏘에게 있어서 국가의 의지는 공민의지의 총화였는데 후에 국가를 절대적의지 로 상승시키는데 한갈래 통로를 열어주었다.    권력이 “필요악”이라는 관점은 유래가 오래다. 한비자의 “실도(心度)편”에서 벌써 그 관점이 세워졌다.  “성인(圣人)이 민(民)을 다스림에 있어 근본을 헤아려 그 욕망대로 하지 못하게 함은 민에게 리득을 기할뿐이다. 그러므로 형벌 을 가함은 민을 미워하기 위함이 아니고 사랑의 근본이 된다.  형벌을 우위로 하면 민이 안정되고 포상을 번번히 하면 간악 이 생긴다.     민의 심성은 혼란을 좋아하고 법에 친숙하지 않다. 그러므로 현명한 군주가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 포상을 분명히 하면 민 이 공을 세우려고 힘쓰며 형벌을 엄격히 하면 민이 법에 친숙해진다. 때문에 현명한 군주는 권력을 잡고서 위(威)를 중히 하 며 정책을 일관되게 하여 나라를 다스린다. 이처럼 법은 왕이 되는 근본이며 형벌은 민에 대한 사랑이다. 대저 민의 본성은 로고를 싫어하고 안일을 좋아한다. 안일하면 거칠어지고 거칠면 다스려지지 않고 다스리지 못하면 어지러워진다. 그러면서 상벌이 아래에 행해지지 못할 경우 반드시 막혀버린다. 그러므로 법을 다스리려 하여도 그 옛법 바꾸기를 망설일 경우 민의 어 지러움이 다스려지기를 기대할수 없다. 민을 다스림에 일정한 법이 없으며 오직 다스리기만 하면 법이 된다.    법이 때와 함께 바뀌면 다스려지고 다스림이 세상과 들어맞으면 공이 있다. 그러므로 민이 순박하였던 때는 이름으로써 금하면 다스려졌으나 세상의 지혜가 늘었을 때는 형벌로써 다잡아야 따르게 된다. 때문에 나라를 세워 민을 쓰는 길에 능히 밖 닫고 사사로움을 막아서 스스로 자신을 믿는 경우에는 왕도(王度)를 가히 이르게 할것이다.”라고 하였다.    권력의 기원과 진화가 인류의 선택의 결과이긴 하지만 인류의 본질적속성은 아닌것이다. 인류사회가 계급사회에 진입하면 서부터 어쩔수 없는 상황에서 존재하게 된것으로서 법이 없어도 살 순민들에게는 하나의 인위적인 강박기제로 되였다. 집권 자로 말하면 권력은 막강한 자원이다. 한편 타인과 자원을 지배하는 일종 능력이기도 하다. 권력은 집중성, 확장성, 지속성, 은 페성 등 네가지 속성을 고유하게 되였다. 따라서 권력계층이 생기면서 가장 분식되고 신성화된것이 권력이였다.    “리상론”을 쓴 플라톤,“사회계약설”을 내세운 루쏘, “절대의지”를 주장한 헤겔 등 위대한 사상가들은 이구동성으로 가장 사악한“권력”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았는데 그것은 인간을 궈력(국가의지)의 중압아래 놓이게 하였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영국의 사상학가인 아크톤훈작은 “권력은 그것이 종교적이든 세속적이든 모두 타락했고 무치하며 부패한 력량”이고, “권력은 부패를 야기시키는바 절대적권력은 절대적부패를 자조한다”고 역설했다.    사실“필요악”인 권력에는 적극적인 일면과 소극적일면이 있다. 적극적인 면에서는 그것이 사회를 조직하고 질서를 유지 하며 공공의 정책목표를 실현하는데 불가결의 수단이 된다. 소극적면에서는 그것이 부정당한 사리를 도모하고 전제와 폭정 을 실시하여 전쟁과 같은 최대의 죄악마저 유발하는 도구로 되기도 한다. 특히 권력이 법률우에서 횡포를 부리면 악질의 표 본이 되기도 한다.    봉건사회는 두말할것 없고 현대문명사회에서도 일단“권력”이란 말이 제기되면 사람들에게는 그 필요성에 앞서 두려움과 거부심리가 얽힌 정서가 생기는데 이것을 학술상에서“권력정서”라고 한다. 정치수단을 가히 국가폭력수단이라 칭할수 있는바 권력원형이 비틀어지게된 관건적환절이다       권력은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최후엔 무력을 선택한다. 권력주체가 부단히 량호한 결책을 내리고 덕정을 베풀면 사회가 안정되고 집권자의 권위가 자연히 수립된다. 그런데 권력과 권위 사이에  무조건 등호가 쳐는것이 아니다. 권력은 결국 하나의 힘의 문제이고 권위는 하나의 신념문제이다.    권위에는 그 자체의 명암이 고유되여있다.  공(公)에서 밝음이 생기고 엄(严)에서 위엄이 과시된다. 위엄은 권위수립의 전제조건이다.  필요조건이다. 엄정에는 사적인것과 공적인것이 있다. 사적인것과 엄정이 야합하면 그 위엄은  “음위(淫威)”가 된 다. 자기 혹은 소집단의 리익을 위해 타인을 강박하여 복종하게 한다면 그것은 “필요악”이 아니라 극악무도가 된다      공권력의 형성은  자아리익을 위한 인류의 타협에서 산생되였는바 전체 사회성원들의 공동결약의 산물이다. 개인은 권력의 본원이며 공권력은 개인권을 양도한 결과이다. 그만큼 공공권력의 기본원칙은 매개 가입자들이 결약을 지키는것이다.  결약 자체의 착안점은 매개인의 절실한 리익이다. 사람들은 자기 리익을 위해 단합하는바 이로부터 공약이란것이 있게 되였다.    사회결약의 형성은 역시 일종 리성의 표현이다. 공민들은 결약을 맺으면서부 터 천연적인 자유를 상실하며 결약으로 사회적자유를 보장하는데로 전화한다. 바로 법률이 공공의지의 표달로서 공권력은 곧 공공의지의 반영이고 집행인것이다.     어떠한 개인과 단체이든 공공권력을 자기의 사유권력으로 악용하는것을 용허하지 않는다. 만약 이 결약이 일부 사람들만 의 약속이고 다른 일부 사람들이 방임하는것이라면 결약 자체는 존재리유를 상실한다. 그러나 이것은 리론상에서의 준칙일 뿐 사회실제운행가운데서는 별개의 문제로 된다. “필요악”의 적극적일면이 무시되고 자사자리의 수단으로 타락한다면 그 런 권력은 인간의 원죄로 되고만다.     인류의 권력쟁탈사와 권력구조를 일별하면 집권자의 권력이 백성을 위한 공공권력이 되였던 일이 별로 없었다. 집정자가권력이란 자원을 람용하여 물질상에서 리득을 보았다면 탐오수뢰이고 매관매직따위의 행각은 인간의 리기적본성고 권력의 본성이 이중으로 결정된 악과이다. 이런 권력은 “필요악”이 아니라 패덕이다.    우리는 현실생활에서 “필요악”이 어떻게 변태적으로 시행되고 있는가를 많이 보고있다. 위군자들의 권력과시욕의 근원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장기적으로 평등한 인권사상과 신분관념이 결핍한 인문환경에 있는바 중국식봉건통치사상의 현대판으 로서 중국백성들이 무분별한 성실성과 굴종의식이 그런 권력자들의 악습을 키워준탓이기도 하다.     권력을 단순히“필요악”이라는 측면에서 피상적으로 인식하고 그것을 긍정한다면 권력람용과 권력이 사악화에 리론근거를 제공하는셈이 된다. 중국인민은 이미 각성하였으며 더는 순복공구론의 신봉자들이 아니란것을 권세가들은 알아야 한다.   “관리는 고귀하고 백성은 천하다”는 관념은 지금까지 가지고 있다면 락후이고 무지이다. 권력이“필요악”이라는것을 리론상으로 다시 해명하는것은 별로 의미도 없는 일이거니와 민중은 잘 알수도 없다. 소위“필요악”을 단면적으로 긍정한다면 결국 권력람용, 권력사인화에 사이비한 리론근거를 제공하는 셈으로 된다.                                                                   2008 년  3 월 15 일                   
642    (진언씨수상록 91)긍께 너모 그랑말랑께 댓글:  조회:4857  추천:1  2015-09-10
                      긍께 너모 그랑말랑께                                     진 언      “중국인민 항일전쟁승리 및 세계 반파시즘 전쟁승리 70주년열병식” 은 경천동지 할 대사로서 세계의 이목을 끌었고 그만큼 감수도 다양할것이다. 그런데 각국 정상들, 대표단속에서 혼자 각광을 받은듯 자화자찬하는 한국의 언론은 가관이였다. 선위치를 놓고 “멀어진 조중, 가까워진 한중관계를 상징적으로 과시한 획기적인 대목”이라고 제좋을대로 해석하는데 이구동성임에도 중구난방이여서 경탄이 절로 나온다.   “…오늘(3일) 기념식에서 가장 두드러진 장면은 뭐니뭐니해도 한·중·러의 정상이 나란히 선 모습이었다고 할 것 같습니다. 동북아 정세가 변화하고 있다는 것 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입니다.”라는“찬양 멘트(방송이나 례식 등에서 진행자나 사회자가 상황에 맞게 하는 말)”까지 날리는데“중국발 모덴텀”이라도 됐단말인가?    한술 더 떠서 “신질서의 중심에 선것”이란다. 중국은 확실히 세계“신질서”의 중심에 우뚝 섰다. 그렇다고 대국의 수뇌자옆에 선것도 곧바로“신질서의 중심에 우뚝 선”것이 되는가? 아전인수도 유분수다. 자아팽창도 류만부동이다. 남의 논이 페답되더라도 내논에만 물을 대겠다는 욕심은 갸륵하지만 상식적으로 이웃간에 통할수 없다.    자아도취에 들떠있으나 복합적으로 벌어지고있는 동북아의 정치형세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것같다. 이런 경우에는 모르는게 절대 약이 아니다. 선 위치가 어디이든 손님의 신분이요 실은“둘러리”뿐이다. 누가 누구를 왕따시킨게라고 제멋대로 해석하 며 김치국부터 마시는데 하늘에 별따기와같이 허황하거니와 타력에 힘입으려는 얄팍한 발상은 시작부터 껄끄러운 냄새를 물씬 풍긴다.    그러구야 신뢰인지 프로세스인지가 옳게 빚어지겠는가? 누구는 주인공의 옆에서 각별한 배려를 받았다는둥 누구는 맨 끝자락에서“찬밥신세”가 되였다는둥 별해괴한 분석에 풀이를 하느라고 애쓰는데 자리란 수시로 바뀌는법, 제섰던 자리라해서 금을 그어놓고 나온다면 흘러가는 배전에 금을 그어놓은 고대의 우자와 다를배없다.    중국의 이번 행사가 무슨 행사인가? 한마디로 일제를 패망시킨 전승절행사이다.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일제와 혈전을 벌렸던 투사의 후대와 그런 인의지사들을 때려잡는데 혈안이였던 자의 후대의 대결은 아이러니컬하지 않은가? 공연한 비교에 흥분하여 더 친밀하느니 홀대하였다느니 하는 너스레는 확실히 특종이 될만하다.    그런데 역설적인 분석도 있으니 기분잡칠 일이 아닌가? 말하자면“김동길 중국 베이징(北京)대 역사학과 교수(한반도연구센터부소장)는 3일 전승절 열병식에서 박대통령이 습근평주석과 나란히 천안문성루에 오른것과 관련하여 중국이 북한을 버 리고 한국을 택했다고 본다면 큰 오산이다. 한국인이 중국에 가서 같은 동포인 북한을 깎아내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평가절하 하였다.   “남북한이 중국의 속국인가. 중국이 옆자리에 세워주면 어느 한 쪽을 버린건가. 북한을 언젠간 통일로 하나가 돼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한다면 시주석 옆에 한번 선 것을 갖고 마치 중국이 북한을 버리고 남한을 택한 것이라고 떠벌릴 일은 결코 아니 라고 본다. 이게 과연 경축할 일인가. 중국 사람들이 보면 얼마나 한민족을 무시하겠는가. 부끄러운 일이다. ”참으로 선견지명이요 지당해도 백번 지당한 일침이다. 형제간인데 정히 타력으로 제압하려는 심사라면 고약하지 않은가?    그런데 뒤미처 무참하고 무안해지고 더 창피해질 경세지언이 주최국에서 나왔다. 즉《환구시보》에“조중우호관계를 떼어놓으려는 외부의 생각을 주의하고있다”는 제하의 론평을 게재했으니 중국말로 이 무슨“泼冷水”인가? 요란스러운 호들갑이 불러온 푸짐한 선물이라고나 할가? 아무튼 랑패도 이만저만한 랑패가 아닐듯싶다.    환구시보는 "중국이 개최하는 열병식과 관련해 조선에서 어느급의 지도자가 북경을 방문하냐는 주요이슈중 하나로 꼽혀왔다"며 "최종적으로 최룡해 조선로동당 비서가 참석했는데 이는 사람들이 예측 가능한 범위내였다."고 해석하면서 "현재 북중 관계는 비교적 미묘한 단계에 있다고 할수 있다." "그러나 이같은 미묘함 역시 현재 량국이 통제할수 있는 범위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서방, 한국, 일본 등 여론이 시시각각 중조관계의 갈등이 가중되고 있다는 흔적만을 찾고있으며 중조갈등이 확대되기를 바라고있다"고 꼬집고 “최근 중국이 열병식에 참석한 북한의 최룡해 로동당 비서를 랭대했다며 북-중관계를 리간질하고있다."고 까밝혔다. 신문은 "우호는 중조관계의 주요경향"이며 "조선과 다른 국가와의 관계를 비교했을 때 이같은 관계는 매우 분명하다"고 딱 소리나게 언명했다.    이어 "동북아지역에서 일부세력들이 중조관계가 엎어지기를 바라고 있는데 아마도 이렇게 됐을 경우 자신들의 지리적, 정치적리익에 부합할것이라고 생각하는듯 하다"고 꼬집었다. 론평은 "량국은 갈등이 있음을 인정하고 있지만 이 갈등이 량국 관계 전체에 영향을 미치게 할수는 없다. 량국 우호관계의 기초는 매우 강하고 핵문제가 오늘날 량국관계의 전부가 아니다"라고 천명했다. 또 "많은 문제들이 얽혀 미묘함을 형성하고 있으나 량국은 이에 대응할 능력이 있기때문에 량국관계가 더욱 훼손되지 않을것"이라고 단언했다. 이것은 섣부른 발설을 경계한것이 아닌가?    환구시보는 조선과의 관계가“누가 누구를 떠나고 말고하는 문제가 아니다.그러나 중조량국은  헤여지면 누가 더 아쉬우냐를 따지는 그런 관계가 아니다. 굳건한 우호의 기초는 흔들리지 않는다.”고 금을 그어놓고 "한국과 중국과의 관계가 개선되는것이 한국과 미국과 관계에 영향을 주느냐"고 반문했다. 신문은 "일각에서 중조갈등이 더 커지기를 바라는것은 중조량국에 깨우침을 주고있다. 량국은 이에 충분히 각성하고 지혜를 발휘해 대응해 나가야 한다"고 제시했다. 마지막으로 "량국이 각국의 견제속에서도 우호협력관계를 강화해 나가야 한다. 이는 장기적인 임무가 될것이다."라고 그루를 박아두었다.     이보다 더 락담실망할 일이 또 생겼다.    습근평주석이 조선의 67주년 건국절에 즈음하여 축전을 보낸것이다. 축전은 특히“중조두 나라는 산과 강이 잇닿아있으며 전통적인 중조친선은 두 나라 로세대 령도자들께서 친히 마련하고 키워주신 쌍방의 공동의 귀중한 재부”라며 중조관계의 전통적 우의관계가 선대지도자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 “새로운 정세하에서 우리들은 조선측과 함께 중조관계의 장기적이며 건전하고 안정적인 발전을 추동하고 두 나라 사이의 친선협조관계를 끊임없이 공고히 함으로써 지역의 평화와 안정, 발전에 적극 이바지할것”이라고 밝혔다. “한중관계가 뜨거워진다고 한미관계에 영향을 주지 않는것처럼 중국이 한국과의 관계를 발전시킨다고 조선을 랭대할 리유가 없다.”고 단언했다. 여기에 더 토를 달 건덕지가 있을것인가?    이미 빗나간 발설에 대한 현답이 아닌가? 대저, 부정확한 해석의 출발점은 보고싶은 방향으로만 보려는 욕심이다. 떡줄놈은 생각하지 않는데 혼자 김치국을 마신격, 이쯤하면 자신은 무엇이 되는가? 무릇 보이는것만 보려는것은 아이들의 시각이다. 그런 시각으로는 분석마다 오판을 낳을수밖에 없다. 행사에서 받은 환대를 두고 외교적승리라고 비약시키는것은 기실 자신의 취약성의 자백이다. 그렇게 사대주의가 깊이 뿌리박혔다면 빈충맞을 일이다. 피는 언제나, 어디에서나 물보다 진하지 않던가? 개체라도 서로 보듬어야 신임도 생기고 좋은 감정도 생기는데 하믈며…    자신을 한껏 올리추고 대방을 깎아내리려고 대서특필하는 어용문인들을 보며 비애가 흐느낀다. 콩밭에 서슬쳐놓고 간장종지를 찾는 모습은 참 안쓰럽거니와 빈수레 덜커덩거리는 소리 또한 듣그럽다. 이미 내뱉은 횡설수설이  말그대로 허풍이 되였으니 인제 어찌할끼고??? 국외인인 촌로옹의 말이 “긍께 언론아, 너모 그랑말랑께!”                                                 2015년 9월 8일
641    로백성과《부모관》 댓글:  조회:4876  추천:1  2015-09-08
                              로백성과《부모관》       백성이란 봉건시대에 황권관위(皇权官位)에 상응한 일종 칭호로서 인민을 이르던 말이다. 백성은 민중, 민서(民庶), 서민과도 통한다. 서민이란 백성의 무리라는 말이 된다. 서민은 평민, 보통사람, 일반백성, 일반대중, 서인, 하민, 범민 (凡民) 등으로도 해석되고있다.     고증에 따르면 고대에는 “로백성”이라는 기록이 없고 다만《백성》이라는 말이 있었다. 전국시대전에는“백성”이란 성씨가 있는 사람을 가리켰다고 한다. 그때 성씨가 있는 사람은 모두 왕공귀족들로서“백성”이란 곧“백관”을 가리켰던것이다. 일반 평민은 려민(黎民) 혹은 서민(庶民)이라 할수 있었다. 전국시기후 귀족과 노예계급 사이에 성씨를 가진 귀족도 아니고 노예도 아닌 계급이 출현되였고 수자가 귀족 계급보다 더 많아지면서 스스로 백성이라 자칭하게 되였다고 한다.      고서에는 백성앞에 “로”자를 달아서 이른적이 없었다. 1963년판 “사해”에도 로백성이란 단어가 없다. 해석을 보면 고대에는 귀족에 대한 총칭이고 전국시기이후 평민들을 이르는 통칭이라고 하였다. 보다싶이 로백성이란 말은 봉건시대로부터 류전되여 온것이다. 따지고 보면 “로백성”이란 말에는 관본위사상 냄새가 짙게 풍기고있다.    원래 중국에는 존중하는 의미에서 로예(老爺), 로자(老子), 로조종(老祖宗), 로반(老板)》등이 앞에 늙을“로(老)”자를 붙이기 좋아하는 고루한 문화관념이 있었는데 상층계층들앞에서는 늘 소인을 개여올리며 죽어지내야 하였던 백성들도“로백성”이라 자칭함으로써 자기 위안을 찾은것이라 할런지, 그나마 백성들 사이에서만 구김없이 말할수 있었다고 한다.    약세군체인 백성앞에“로”자를 붙이면 마치 기세를 돋구어주는것 같다. 하여 평민들은 자아도취에 빠져 루루천년을 살아왔다. 비록 로자가 붙었지만 력사상 무권 리한 약자들로서 사회저급서렬의 범주이다. 개성이 없고 아무 사회지위가 없다는 특점을 현대문명에 대비하면 한참 비틀려진 개념이다.    더 부언한다면 내함과 외연이 뒤죽박죽이 된 칭호이다. 로백성이란 말은 관위에 있는 인사들이 입말이기도 하고 서면어이기도 한바 로백성의 근심을 덜어주고 곤난을 해결해 준다는 말을 곧 잘 하는데 많은 경우 귀맛을 돋굴뿐이다. 수천년 중용지도에 매여 개성이 상실되여버린 중국문화배경에서 백성들도 자칭 “우리 로백성”은 어쩌고 하는것은 자아를 가련하게 여기는 자비심리로서 자기 인격에 대한 폄하이다. 이런 집체무의식은 백성들의 심미관의 무서운 침몰이다.    한때 중국에서 인기를 끌었던 영화《재상류뤄궈 (宰相 刘罗锅)》의 주제가 에《천지간에는 저울대 있다네. 저울추는 로백성, 저울대는 강산을 뜬다네》 라는 구절이 있는데 로동인민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의식이 체현되고있다.    현재 혹은 건국후 모든 사람들을 백성이라 해야 마땅할것이다. 그러나 지금도 특권사상, 관본위사상이 존재하고 있기에 기업관리층, 상업계의 정영들, 문예체육계의 명인 등등은 마치 이미 백성이 아니고 신분이 특수한 계층으로 자인하면서 백성과는 차원이 다른 사람으로 자처하고있다. 이런 시점에서 백성이란 말에는 지위의 함의도 담겨있다고 할수 있다. 어떤 관원들이 로백성이라는  개념을 사용할 때 자각 적 혹은 비자각적으로 로백성에 속하지 않는것으로 자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서방자산계급혁명중에서 “천부적인권”이 강조되여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게 “공민”권을 향수하도록 되였다. 그러나 중국, 조선반도에서 백성이란 곧 권세도 없고 돈도 없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것을 문화적으로 인민이라고 할뿐이다. 또한 일종 무력함에서 기인된 자기원망과 자아위안심리도 반사되여있고 강권과 등급제도의 현실에 대한 도피심리도 슴배여있다. 이것은 심미취미의 타락이고 일종 병태적이고 비틀어진 미학현상이다. 즉 원망하면서도 감히 노하지 못하는 전형적인 자기련민, 자고자대, 자비가 얽힌 잡심리이다.    “로백성”이란 말에는 몇가지 숨은 가치가 있다. 위정자들이 로백성이라고 불러주면 달콤하게 들릴것이고 예술상에서 분식하고 심리상에서 마취되고 생활상에서 도피하는 등등이다. 로백성이란 말에는 몇가지 공능도 있다. 때론 호신부가 되고 때론 수치심을 감추는 낯가리개가 되며 때론 광영방이 되고 때론 면전패(免战牌)가 된다.    관리층의 위치에서 국민, 공민, 시민, 촌민, 납세인 등 칭호를 쓰지 않고 기어이 로백성이라고 호칭하는것은 회색유모아이다. 관리들속에는 백성들속에서 나온 사람이 대부분이기에 스스로 로백성이라고 말하기 좋아한다. 그러나 그런 말을 할 때 일종 우월감을 느끼기도 했을것이다. 듣기엔 그럴듯한 로백성이라는 이 말의 뒤에는 막무가내함, 굴욕감, 개탄이 숨겨져있는지 모른다.    일언이페지하고, 어떤 사람들이 백성들의 질고를 잘 아는가? 관직을 잃고 실세한 사람들이 가장 백성의 질고를 잘 안다. 높이 앉아 내려다 보고 체험한것이 아니라 백성들속에 깊이 침투하게 되면서부터 백성의 이루형언할길 없는 백성의 질고를 가장 일찍 체험한 사람은 아마 굴원일것이다.《리소》에는《긴 한숨에 눈물 훔치며/백성의 간난질고 슬퍼하노라》는 시구가 있는데 초회왕에게 내침을 당하여 울분을 품고 류랑하면서부터 절실히 느낀것이 도탄속에 빠진 백성들의 처절한 인생고였던것이다.    이런 현상은 동서고금의 력사에 적지 않다. 쉐익스피어의 비극《리어왕》에 리어왕도 광야를 헤매며서 비로소 자기 통치하던 국도에서 백성들이 얼마나 힘들고 비참 하게 사는가를 뒤늦게 알게 되였다. 하여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광야에서 홍수에 궁전 이 있는 성곽이 잠기고 훼멸되라고 저주를 퍼붓었던것이다.    봉건관리들은 재직에 있을 때 백성이야 죽든말든 아랑곳없었다. 민생고를 헤아리려 한것이 아니라 황권을 위해 량지를 버리고 눈을 감아버리가 일쑤였다. 원나라 때 장양생이란 고관대작이 있었는데 관직을 떼우고 사회저층에서 전전긍긍하여서야 백성의 질고를 똑똑히 보아냈다. 뜻을 잃고 우사모를 벗고나서 갑자기 백성의 질고에 눈을 뜨게 되였고 마음상에서 심절히 동정하게 되였다고 한다. 속담에 제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따가운줄 안다고 했던가,    언제부터인가 “인민의 공복”이라는 말과 상대되는 “부모관”이라는 관방적인 통용어가 생겨나서 민중의 귀맛을 돋구어주었다. 관원이 백성들에게는 진정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같이 친밀한 존재가 된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있으랴만 부모관이란 제기법도 우습거니와 그나마도 잘 안되기에 진정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고 렴결봉공을 제창하게 되였으니 앞뒤가 전혀 들어맞지 않는것이다.    과거에 지방관원들이 “부모관(父母官)”자칭한것은 대개 송조초였다고 한다. 이 말은 관리가 백성을 위해 전심하지 않을게면 집에 돌아가 고구마를 구워팔기보다 못하다는 의미의 “민주”관념이 담겨있다. 관원이 부모처럼 된다면 당연히 백성을 아들딸로 여기고 멸사봉공해야 할것이다. 물론 그것은 봉건시대의 관민관계를 말하 고 당시 관원들에게 보편적으로 존재한 벼슬의식이라 할수 있다.    자유민주를 제창하는 현시대에도 기어이“부모관”이라는 칭호를 선호한다면 응당 “부모의 관리”로 해석되여야 도리에 맞을것이다. 말하자면 백성을 부모처럼 여기면서 백성을 위해 권리를 행사해야 할것이다. 신식말로 인민을 위해 복무해야 한다는 말이 되겠다.    더 부연한다면 마땅히 인민군중이 관원의 부모와 같아야 한다. 자본주의 나라인 일본에서 공무원이나 공공복무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자기 불찰로 시민에게 어떤  불편을 조성했다면 고두백배하며“죄송”을 개여올린다는데 이들의 의식은 우리들이 반드시 좌표로 삼아야 할것이다. 헌데 우리 여기서는 무엇을 좀 한다하는 사람들이 인민군중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권좌에 앉아있으니 당연히 틀을 피워도 무관하다는 의식이 골똑 찼음을 알수 있다. 기실 그들 자신도 웃을 유치한 의식이 아닐수 없다.    한국에서나 일본에서 공무원들은 자신들이 인민군중의 세금으로 먹고 산다는것을 상식으로 알고있다. 그런데 여기서는 오히려 관리가 백성을 먹여살리고 선덕을 하사 하는 구세주인가 착각하는 관념이 굳어져있으니 우습지 아니한가? 시대는 평등과 민주화에로 발전하고있는데 그냥 관본위를 고집한다면 자타를 위해서 참으로 답답한 일이 아닐수 었다.    일찍136년전《빠리공사》의 성원들은 자신을 인민의 공복으로 자처했다. 건국후 중국백성들도 관원을 인민의 공복이라고 부르는데 습관되였다. 그런데 봉건냄새가 물씬 풍기는 부모관이라는 칭호가 류행되였으니 력사적인 유모아라 할수밖에, 하긴 선전매체에서 관원들을 홍보할 때 부모관이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사용하자 유관부문에서 공중보도에“부모관”이라는 칭호를 쓰지 말라고 명문으로 규정했다.    그런데도 보도매체나 당사자가 “부모관”이라는 칭호에 애착을 가지고 의연히 쓰고있다. 매체측으로 말하면 아첨끼가 흐르는 언동이고 당사자로 말하면 아닌보살을 하는것이다. 세계적인 위인 등소평도 자신을 인민의 아들이라고 말하였지 부모관 이라고 하지 않았다. 전 중국의 만백성을 가난속에서 헤여나오게 한 력사적업적으로 말하면 그야말로 명실공히 백성의“부모관”이라 칭송할수 있다.     백성을 등급관념으로 상대하여 “부모관”이 어쩌고 하는것은 시대에 떨어져도 한참 떨어진 봉건사회의 잠꼬대이다. 민주의식이 날로 신장되고있는 국민들은 무슨 부모관이니 공복이니 하는 말에 대해 너무나 잘 분석하고 있으며 정영이니 초민이니 하는 량극분화현상을 곱지 않게 보기에 다만 신성한 공민이 되기를 원할뿐이다.    공민이라는 칭호에는 근근히 국민이라는 의미만 내포하고 있는것이 아니라 평등 의식과 독립의식, 참여의식이 담겨있고 초민이니, 신민이니 천민이니 하는 봉건적인 노복의식을 배제한 근대국민의식이 체현되여있기때문이다. 하기에 이른바 민초들이나 정영들이나 오직 “공민”이라는 하나의 평등한 명칭만이 가당할뿐이다.                                              2007 년 11 월 20 일    
640    약속력을 상실한 시대 댓글:  조회:5167  추천:0  2015-09-08
        약속력을 상실한 시대         우리가 비리앞에서 기죽어있고 진실이 허위의 도포자락밑에서 숨이 넘어가고있고 성실이 어리숙함의 대명사로 되는 페단의 근원은 약속력의 결핍에서 온것이라고 생각하고싶다.     인간은 자신의 능력증장과 더불어 상대적으로 자연적자유를 얻는다. 원시인들이 거대한 자연의 힘과 각 방면에서 오는 생존압력을 물리친 력사가 바로 인류의 진화과 정이였다. 바꾸어말하면 대자연의 약속력을 타파하고 자유행위를 획득한것이다. 그러 나 인간은 자연과의 약속에서 해탈됨과 동시에 사회군체를 조성했고 정체능력을 제고 함과 동시에 스스로 매우 많은 사회약속이라는 올가미를 쓰게 되였다.     자연의 약속은 자연이 인류의 행위에 준 약속으로서 인류는 영원히 자연의 일부 분이 되였으며 영원히 자연의 존재임을 초월할수 없게 되였다. 그러나 약속을 어긴것은 사악한 인간이였다.인류의 지극히 리기적이고 거리낌 없는 불량한 행위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철저히 파괴해버렸다. 새롭게 맺은 자연과의 약속은 인류발전을 저애 하였으며 심지어 자기가 생존할 조건마저 여지없이 파괴하였다.     리성약속은 인류의 인식수준이 우리에게 가져다준 약속이다. 리성사유는 인류가 어떻게 기타 생물과 다른가를 알게 하였는바 리성사유가 있었기에 다른 생물보다 더 자유로울수 있었다. 리성사유는 인간으로 하여금 더욱 가급적인 발전을 가져오게 하 였을뿐만아니라 재난도 자초하게 하였다.     인류의 리성약속은 인류 자신의 력사의 필연성이다. 우리가 희망하는 리성사회의 기초는 정당과 비정당한 약속을 구별하는 사회기초이다. 리성약속이 없다면 사람은 흔히 극단에로 나갈수 있다. 사회약속은 우리가 가장 관심하는 인소이자 역시 변수가 가장 큰 인소로서 그는 완전히 우리 자신의 리념, 제도와 행위가 조성한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쟁취하려는 자유란 곧 사회약속에 대한 상대적자유이다. 사회약속에는 정당한 약속과 부정당한 약속이 있다.     자유란 개인이 자기 의지에 의해 행상할수 있는것를 가리킨다. 자유와 약속은 상대적개념이다. 약속은 개인에 대한 자연, 자기 혹은 사회의 제한과 제약을 가리킨다. 약속된 자유는 장상상태로서 약속없는 자유란 세상에 없다. 자유와 약속은 상대적이 다. 약속이 적으면 자유가 많아지고 자유가 많아지면 약속이 적어진다. 환경의 부동한 변화에 따라 약속도 달라진다.     만약 자유를 분류한다면 사상적자유, 언론자유, 행위자유로 나눌수 있다. 사람마 다 법을 준수하고 사회질서에 책임을 앞세울것을 약속하는것은 정당한 약속이고 언론, 출판자유가 가혹하게 탄압된다면 부정당한 약속이 된다. 행위자유에는 사상과 언어행 위 등 많은 자유가 포괄된다. 인간행위의 자유는 제도와 법률과 도덕의 약속력을 법서나면 곧 비인간적행위가 된다.     한때 사람들은 “계급투쟁”을 인류사회발전의 근본동력이고 혁명은 손님을 청하는 일이 아니다.”, “계급의 적은 타도하지 않으면 거꾸러지지 않는다. 하늘과 투쟁하 고 땅과 투쟁하고 사람과 투쟁하는 즐거움은 무궁하다.”라는 구호들을 추호의 의심 도 없이 신봉하였다. 결과 안해가 남편을 팔아먹고 아들이 아버지를 때리는 패륜의 동란세월이 십년을 헤아리였다.     이렇게 투쟁론을 믿던데로부터 오늘(화해론)이 고창되는 시대에 들어섰다. 사람도 그 사람이고 나라도 그 나라로서 아무것도 근본적으로 변한것이 없다. 다만 사 람들의 관념이 변했을뿐이다. 화해라는 말은 아름다운 단어이고 또한 아름다운 념원 이다. 사람들은 어디까지나 바람새 부드럽고 따스한 환경을 바라지 폭풍취우를 바라 지 않는다.     물론 고대에도 화해사회에 대한 념원이 있었다. 공자의 “인서화위귀(仁恕 和为贵)”라든가 맹자의 “후덕재물, 왕도(厚德载物王道)”은 모두 마음속에 리상적인문환경 을 표현한것인데 이것이 바로 “화해”이다. 력사상 진영정이나 수양제같은 폭군들이 화해와 반대곡조를 불렀지만 대다수 황제들은 “천도화해, 인서충용(天道和谐 仁恕忠勇)”을 표방하였다.      근대사회가 추구하는것은 민주사회이다. 루쏘의《참회록》에는 평민계층을 위하는 사상이 관통되고있는데 경원파 (经院派)들에 의해 이단으로 명명되였다. 루쏘는 프랑스의 철학가이다. 그는 탁월한 계몽학자였고 민족주의자였으며 사상가였다. 로작 “사람들의 불평등의 기원 및 근거에 관한 보고”에서 루쏘는 봉건신분제적인 제관계를 날카롭게 비판하하고 나섰으며 사적소유의 출현과 발전을 불평등의 원인이라고 언명 하였다.      루쏘는 “사회계약”에서 사람들간의 협약의 결과로 국가가 창건되였다는 사상을 전개하여 인민이 국가권력을 장악할수 있다고 인정하였다.“인민들이 국왕을 옹립한것은 자기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서이지 자유를 훼멸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것은 쟁론할 여지가 없는 사실로서 이는 국가의 기본원칙 이다.”루쏘는 사람은 날때부터 자유롭다고 인정하였던것이다.     그러나 문명이 진보함에 따라 사유제가 산생되여 소수인이 다수인을 부려먹으며 이런 제도를 합법적행위로 정당화하기 위해 다수인을 강박하는 “법률과 법규”를 세웠는바 그에 따라 산생된것은 인민들의 목에 걸린 쇠사슬이였다. 그리하여 낡은 정권을 뒤엎는 폭동이 무수히 일어났는바 최종목적은 자유와 평등이였다. 그러나 현재도 불평등은 날로 확연하게 드러나 사람들을 실망시킨다.     인생철리속에는 왕왕 상대론의 그림자가 비껴있다. 이 시점에서 보면 세상에는 절대적평등이 있을수 없다. 아인슈타인의 세계를 진감시킨 상대론은 과학발전의 리정 비였다. 인생에도 상대론이 존재하기때문이다. 인생도 역시 상대론이라 할수 있다. 인생은 절대적이 아니다.     무릇 모든 사물은 량면성을 가지고있다. 이를테면 높은 담장은 겨울에 방풍이 되고 여름엔 그늘을 지울수 있으며 외부적침입을 막을수도 있고 자기를 격리시킬수도 있다. 복잡다단한 인성에도 정면은 고상하여 남을 리롭게 할수 있고 반면은 죄악적이 여서 남을 해치고 자기 리익만을 챙길수 있다.     어떤 사람이면 절대적성인인가? 누가 18층지옥에 처넣을 극악무도한자인가? 아무도 한두마디로 단언을 내릴수 없을것이다. 아무리 간교하고 음험한 인간이라도, 아무리 음험한 인간이라도, 아무리 비렬하고 악착한 인간이라도 자기 상대에 따라 인성적적으로 사랑스러운 점이 있기마련이다.     백사람이면 백사람 다 손가락질하고 저주하는 인간이라도 그에게 량지를 압살할 수는 없다. 범도 제새끼를 잡아먹지 않는다거늘 세상에 절대적으로 좋은것도 없고 절대적으로 나쁜것도 없다. 선량함에 선생이 따르지 않으면 근근히 명사로만 남고만다. 어떤 약속이든 성실을 전제로 한다.      신의를 기저에 깔지 않은 약속은 약속이 아니다.                            2007년 4월 10일  
639    회의학서론 댓글:  조회:4229  추천:0  2015-09-08
                                        회의학서론      인류사회에 첫회의가 력사무대에 등단한것은 과연 언제였을가? 모르긴 해도 아 마 유사이전이였을것이다다. 원시민주가 있었던 그 때 씨족회의, 부족회의 등이 있 었고 회의 취지는 민주를 발휘한 모임임에 틀림없는것 같다,    인류가 문명개화하면서 회의는 일종이 문화가 되였고 가정회의로부터 시작해서  최고급의 국제수뇌자회의에 이르기까지 수천수백종의 회의와 온갖 형태의 회의가 있게 되였다. 가사로부터 집단의 일, 국사로부터 국제문제회의에 이르기까지 회의자체 는 인류사회발전에 없지 못할 문화현상인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회의라는 “문화”가  범람하여 바다처럼 위세를 떨치고 있어 회의기관《会议奇观》이라는 표현이 류행되였다. '문산회해(文山會海)' 라는 함 축성있는 문구도 만들어졌는데 불필요한 문건이 많고 회의가 번다한 공직사회의 비효율성을 비꼬는 말이다. 문제는 회의가 민생을 위한 봉사를 바탕에 둔 본연의 의미가 퇴색해버리고 크고 작은 많은 회의들이 관광성격이 짙은 “유람성회의”로 변질였다는 그 점이다.    “회의바다”를 관망하면 그야말로 놀라울지경이여서 마치도 기세찬 밀물과 같다. 중앙에서 회의를 하면 파도는 성으로부터 지구, 현, 향진, 가두, 부동한 급별의 청, 국, 등 행정부문, 군중단체, 기업, 사업단위까지 층층이 회의관철로 다사분주하다. 조수가 기슭을 치며 물보라로 부서지듯 헤아릴수 없다. 전국 각지에서 하루동안에 열리는 온갖 회의를 누가 다 통계할수 있을것인가? 신문, 텔레비, 라지오방송에서 보도하는 것은 회의소식이고 고급호텔에서 접대하는것은 회의군이요 렬차, 비행기에 오르는 승객도 회의군들이다.    해마다 다과회로부터 시작하여 년말총화회에 이르기까지 회자가 붙은 모임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정신전달회, 연구회, 학술토론회, 사업회, 제품감정회, 경험교류 회, 친목회, 표창대회, 소식공개회, 기자초대회 등등. 이리하여 관원들의 생활은 회의 생활이라 할수 있고 회의바다에서 자맥질하고있다고 말할수 있다.    회의도 규모를 크게 할수록 좋고 위망을 세우기 위해 꼭 가능한껏 높은 령도분을 모셔다가 회의에 성세를 돋구려한다. 만약 매번의 회의가 일종의 고역이고 회의가 재난이라면 이렇게까지 범람할수 없을것이다. 그러나 회의는 말로 다 이를수 없는 좋은 점들이 많다. 이를테면 회의장소도 거개 명승지에 정하고 뽕도 딸겸 님도 볼겸 으로 산천경개도 구경하니 그 아니 좋을손가?    첫째. 먹지 않는 회의가 없다. 한 운전사는 령도를 모시고 10여일 회의를 돌아다니고 와서는 《전중국을 먹었다.》고 롱담했단다. 하긴 사천, 산동, 광동, 호남 료리에다 신강양고기구이까지 먹었으니 호언장담할만도 하다. 둘째. 회의기념품이 갈수록 많아지고 가치도 높아지고있다. 80년대에는 재료를 가득넣은 세멘지봉투를 주었지만 지금은 려행용기념품을 준단다.    셋째. 유람인데 반날 회의하고 반날 논다, 어떤 회의이든 개막식과 페막식을 내놓고는 기실 기분이 버쩍 들리게 노는것이다. 전국적으로 소모되는 회의경비는 천 문수자를 기록한다. 십몇년전 섬서성의 한해 회의경비가 1억원이 되였다니 지금이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해마다 정부공가차에 드는 돈이 3천억원으로서 군비지출을 초과한다는데 회의경비도 교육비를 초과한다는 통계가 나와있다.    높은 산아래 창해가 펼쳐지듯이 회의문건도 한데 쌓아놓으면 산을 이룰것이다. 그래서 “문건산”이란 말이 나왔을게다. 예전엔 타자원들이 문건산이 얼마나 높아 지는가를 알았고 “붓대”들이 잘 알고있다지만 지금은 컴퓨터가 잘 저장하고 있을것 이다. 모선전부의 일군이 말하였는데 당년에 쓴 통지, 간보, 연설고, 학습재료, 총화 보고 등 문건을 한데 쌓아놓으면 반메터가 넘을것이라고 했다.    비서들의 각고는 그들만이 안다. 상급정신이 바뀌면 주제도 바뀌고 어조도 바뀌고 문투도 바뀌여야 하므로 그냥 새로운것을 써야 한다. 그래서 그들은 스스로 《종이 쓰레기를 제조하는 도구》라고 개탄한다. 아무튼 문화용품장사군들이 살판을 만났고 자동화사무용품장사군들이 돈낟가리에 앉게 되였다.    아마 회의바다는 전세계를 휩쓸고있는것 같다. 미국련방정부에서는 1980년에 벌써 문건란발을 제한하고 인력, 재력, 물력과 시간랑비를 방비하고저 국회을 거쳐《문건삭감법》을 발표하였다. 이런 법적제재로 하여 문건반포량이 이전의 1만 200건으로부터 200건으로 줄어들었다고 했다. 우리 중국에서도 비록 늦었지만 이런 현대적이고 유효한 법을 낼필요가 있지 않을?     회의란 워낙 함께 모여서 의논하다이다. 회의에서 관건은 어떤 문제의 해결을 위해 의논하는것이다. 그런데 지금 회의에서 의논하지 않고 한사람이 말하면 만사대 길이다. 여러 사람들이 의론해도 잘 듣지 않는다. 때론 의논하기는 하지만 하나마나 한것이다. 회의전에 미리 정해논 문제를 두고 머리를 끄덕거리거나 손을 들어 동의를 표시하면 되여있기에 의논은 그저 형식에 불과하다.    어떤 회의는 미리 비서가 써준 발언고를 읽고 아래에서 듣기만하는것으로 의논이 대체된다. 회의에서 의논이 허용되지 않는것은 사상작풍문제이다. 짧게 열어야 할 회 의를 길게 하고 하지 않아도 좋을 회의를 즐겨 열고 간소하게 열어도 될 회의를 성대하게 열어 기세를 돋구려 고심한다. 어느 단위에서 회의참가인원수를 채우지 못하면 령도가 책임지어야 한다고 압력을 넣는다. “회의바다”와 “문건산”은 관료주의 죄상과 나란히 세울수 있다.    1992년 등소평은 남방강화에서 단도직입적으로 지적하였다.《현재 하나의 문제가 있는데 바로 형식주의가 많다는것이다. 텔레비를 켜면 전부 회의다.  회의가 많고 또 길고 문장도 길고 강화도 너무 길다. 내용도 중복되고 새로운 말이 많지 않다. 중복해야 할 말은 말하되 간결해야 한다. 형식주의도 역시 관료주의이다.》    회의뉴스가 환영받지 못하는 주요한 원인은 차수가 너무 많은것 외에도 내용이 군중과 관계가 별로 없기에 흡인력이 결핍한것이다. 보도수단이 단조롭고 딱딱하며 형식도 틀에 박힌것처럼 공식화되여 거의 천편일률적이다. 회의명칭, 어느때 어디서 열리고 누구누구 참석하고 회의에서 지적한 문제, 회의인식, 회의요구, 거기에 누가 말하였고 누가 강조하였으며 누가 호소하고 마지막에 《회의가 원만하게 승리적으로 페막되 였다.》는 등 거의 천편일률의 류형이다.    광주시는 근간에 '공직사회의 불필요한 회의와 문건개선에 대한 의견'을 규정 하고  지도자 동정소개 2~3분으로 통제, 회의간소화, 발언은 짧게,당서기 및 시 장 등 공무원 보고서는 1000자 이내로, 고위간부 회의참석 횟수 제한,각 시정부 지도자, 회의 및 판촉활동 등에 축하카드 발송금지 등 갖가지 묘안을 내놨다. 특히 관광지서 회의개최 금지,휴가기간 회의개최 금지라는 조항은 그동안 중국사회에서 '유람성 회의'가 성행해 왔다는것을 보여준다. 회의는 민주사회발전의 근본이다. 회의는 정해진 순서와 규칙에 따라 현안문제에 대해 토론하고 다수 좋다고 생각하는것 방향으로 결정하는 과정인만큼 건설적이고 발전적인 방향을 모색하는데 있다. 현재 우리의 회의문화의 현실을 되돌아 보고 급속 하게 변화하는 조직문화의 형태속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우리에게 맞는 회의 혁신의 대안을 찾아볼 필요가 있다.    일본에서 회의혁명이 있었는데 그 혁명을 주도한 인물은 1999년 캐논전자상무 에서 최고경영자에 취임한 사가마기 히사시 사장이다. 그는 모든 회의를 일어선채 진행하게 했으며 이를 위해 회의테이블의 다리길이를 30cm씩 높여버렸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서서 회의를 하면 회의시간도 짧아지고 집중력이 높아지며 다리에 자극을 받으면 두뇌회전도 빨라지며 또한 회의시간에 조으는 일도 줄어드는 등 여러모로 좋다고 설명했다.    회의 시간은 짧으면 짧을수록 좋다. 강한 회의문화의 첫걸음은‘ 정말 필요한 회의를 하고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보는데서 시작된다. 단순히 계획이 잡혀 있으니 명확한 주제나 안건도 없이 수동적으로 회의를 진행한 경우는 없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회의혁신의 핵심은 목적과 결론이다.    민주주의적회의라면 반드시 다른 사람의 인격과 생각을 존중해야 하며 다수 결의, 원칙을 지키고 소수의 의견을 존중하며 자유의 권리, 그리고 책임과 의무가 동반되여야 하며 법과 질서, 대화와 토론, 협동, 양보와 관용, 공과 사를 구분하고 나혼자만 이 아닌 전체로 먼저 생각해야 할것이다.    보다 중요한것은 회의에서 얼마나 알찬 대화와 활발한 론의가 이루어지는가 하는 점이다. 단지 시간을 떼우거나 상급에 보고하기 위한 형식적인 회의가 아니라 건강한 회의문화를 통해 최상의 회의성과를 거두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제 우리의 회의문화도 단순한 발언자의 발언을 듣고 거수동의하는것이 아닌 열의있는 토론과 분석을 통해 결과를 제시하고 이를 실행에 옮기는 력동적인 경쟁력을 갖추어 창조적 이고 활발한 조직문화가 정착되여야 한다.    구쏘련의 시인 마야꼽쓰끼가 《회의꾸러기》라는 풍자시에서 회의범람과 그 범람에 습관된 사회현상에 대해 편달한 그때로부터도 세월은 몇십년이 흘렀다. 사회가 발전 할수록 회의가 수반되여야 하는지 알수 없지만 회의문화도 시대적안목에서 먼저 개혁 되여야 할 사항이 아닐수 없다, 회의를 근절시킬수 없지만 많은 회의바다는 절제할 필요가 있고 문건산은 줄일 필요가 있다. 하긴 싱거운 걱정이지만도.                                      2007년 9 월 27 일    
638    (칼럼) 싱거운 부탁 댓글:  조회:5177  추천:1  2015-09-07
                                싱거운 부탁                                        야 조       예전에 우리 마을에 남들처럼 집체일에 부지런히 참가하여 공수도 괜찮게 올리고 있는것 같은데 살림이 펴이기는커녕 년년히 오보호로 보내는 집이 한호가 있었댔다. 그래서 오고가는 말들이 중구난방이였다. 걔중에도 어떤 지자가 “그집과 허물없는 사이인 누가 좀 살림을 잘하도록 이깨워주었으면 좋겠는데…”하고 말하기도 했다.    가난구제는 나라님도 못한다는데 옆에서 걱정해준다고 갑자기 잘살아지기라도 한단말인가? 물론 식은걱정이 아니라 보기에 너무 안쓰러워서 하는 진심들인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싱거운 부탁이다. 남의 제상에 감노라 배놔라 하는격으로 제 더운밥 먹고 동네집 살림살이에 걱정도감이 된단말인가? 가난하다고 자존심 마저 주눅이 든줄로 알고 훈계하려는것은 그저 우둔한 짓거리 정도가 아니다.    향촌의 인심에서 나온 관심이든 배려이든, 고양이 쥐 생각하는 격이든 문제의 핵심을 모르고 하는 공연한 부탁이다. 말하자면 내인과 외인의 관계와 같은 변증법원리를 고려하지 못한것이다. 나도 그때는 아는게 없어서 심오한 변증원리는 떠올리지 못하고 그저 막연하게 원인과 결과문제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다가 한국의 언론에서 엇비슷한 걱정을 하는것을 보면서 문득 그때 그 일이 떠올랐다. 후더운 동네인심과 같은 그런 걱정이 아니다. 얼핏 보아도 악어의 눈물같은데 게다가 남에게 남더러 변화하도록 부탁한다는 얄팍한 저의가 되우 웃긴다고 생각한다. 변증법적유물론의 목차만 훓어본 사람이라도 얼핏 알수 있는 변화의 기본원리조차 모르고 하는 언동같으니 말이다.    사물의 변화에서 내인이 주요원인이고 외인은 내인을 통하여서만 작용한다. 리념대결상태에 남북이 처한 력사적,지리적환경과 외세의 이런저런 조작은 외인에 속한다. 어느 나라의 경제발전이든 누구의 의지에 의하여, 타인을 통한 부탁으로 실현되 는것이 아니라 인류경제사발전의 필연성을 따라 실천하기 마련이다.    그러면 변화의 진정한 근원 혹은 원동력은 무엇인가? 헤겔은 "모순은 모든 운동과 생명력의 근원이다. 사물은 그 자체에 모순이 내포되여 있기때문에 운동할수 있으며 추향과 운동이 있게 된다. 제한있는 물체는 어느것이나 다 자체모순이며 자체 모순으로 하여 자기가 자기를 지양한다." 고 주장한바있다. 레닌은 헤겔의 이 사상을 매우 중시하고 긍정하였다.     레닌은 "운동과 자기운동, 모든 자기운동의 원칙, 이것이 바로 헤겔주의의 본질, 즉 합리적 알맹이다."라고 론단하였다. 그렇다, 운동자체가 곧 모순이다. 엥겔스님도 "생명도 역시 사물 및 과정 자체내에 존재하면서 부단히 자기 자신을 만들어내며 또 자기자신을 해결하는 모순이다. 이 모순이 정지되면 생명도 정지되여 죽음이 닥쳐온 다."고 하였는데 사회적원리도 이 규률로 해석할수 있다.    사회가 부단히 발전하는것은 사회내부에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이 존재하고 있기때문이라는것은 책에서 읽을수 있는 기성도리이다. 생산력의 발전이 때가 지난 낡은생산관계를 타파하게 되면 사회는 새로운 발전단계에 들어서게 된다. 자본주의 가 필연적으로 멸망하게 되는것은 어느 누구의 주관적념원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제도자체의 극복할수 없는 내적모순, 즉 생산의 사회화와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점유와의 모순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한다. 이는 우리가 배운 전통적정치경제학리론이다.    유물론적변증법도 사물발전에서의 외인의 중요한 작용을 승인하는이상 그것이 형이상학의 외인론과는 원칙적구별이 있다. 첫째, 전반 물질세계를 놓고 말할 때 유물론적변증법은 내인론을 견지하면서 물질은 그 자체의 내적모순에 의하여 운동하며 물질과 운동은 갈라놓을수 없으며 운동은 물질자체에 고유속성이며 물질밖의 정신의 첫충격이란 근본 존재하지 않는다고 인정한다. 이는 변증법의 기초상식이다.    둘째, 구체적 사물을 놓고말하면 내인은 변화의 근거이고 외인은 변화의 조건이며 외인은 내인을 통하여야 작용할수 있다. 이를테면 해묵은 련꽃씨가 적당한 인공처리를 거친후 꽃이 피고 열매가 열렸다는것은 외적조건도 물론 중요한것이지만 그러나 그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그 련꽃씨에 이런 발아의 가능성이 내포되여 있기때문이다. 즉 이런 변화의 근거가 존재하고 있기때문이여서 누구의 기대도 소용없다.    만약 그 련꽃씨가 썩었다면 우리가 그것에 여러가지 외적조건을 마련해주어도 결코 꽃이 피지 않을것이며 열매가 열리지 않을것이다. 우리가 달걀같은 아란석에다 여러가지 외적조건을 마련해준다해도 그것은 결코 병아리로 깨날수 없는것과 같다. 대체로 비슷한 환경에서 발전이 빠르고 늦은것은 주로 내인에 의해 결정된다.    일찍 한 어른이 "일관적으로 강조한 바와같이 우리의 방침은 자기력량의 기점위에 세워져야 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으로 우리 실정에 맞는 전진의 길을 찾아내야 한다." 고 말했다. 자주적경제발전은 누구의 권고로 각성하고 말고로서 시작되는 문제가 아닌것이다. 그리고 누가 입으로 경제를 살리겠다고 장담한다해서 경제가 곧 춰세워지는것이 아니다. 우리가 보고있는 현실이 증명하고 있지 않는가?    사물의 내적모순은 사물발전의 근본적원인이며 사물의 발전은 사물자체의 필연적운동이며 이 사물과 저 사물의 상호영향과 상호작용은 사물발전의 부차적원인이라고 인정하는 변증법적인 발전관은 형이상학적외인론의 발전관과는 근본적으로 다른것이다. 그런데 정작 대방이 바야흐로 향상의 조짐을 보이고있으니 이번엔 또“왜 변화를 택했나?”하며 문장을 짓는 작자도 있다. 이는 왜 좋은음식을 먹어야 하나? 하는 물음처럼 무지하고 맹랑하다. 게다가 “흥, 우리가 아니고 되기나 하겠군?”한다.    조금 명철하다면 우선 모든 사물, 사회(경제도 포함)은 내인-외인의 관계로부터 대립물통일과 투쟁의 문제를 해명하는 바탕위에 균등-불균등의 근본적원인을 내놓고 고찰하는게 순리이다. 준비된 사람에게는 우연한 기회란것이 없고 남의 부탁으로 시작하는 변혁이란 더욱 없다. 그리고 준비된 사람에게는 우연한 성공이란것도 없다.    앞에서 말한 빈곤호에 대한“치부대책마련”은 허접스러운 걱정이다. 타방의“변화”는 누가 유도해서 유도되는것도 아닌데 3자를 통한 권고인지 충고인지가 가당한가? 모든것은 변하기 마련이다. 아들딸이 넷이던 그 집에 로동력이 불어나면서 가 난티를 차차 벗더니 둘째가 장춘전력학교를 졸업하고 도문전업국에서 월급쟁이로 된 후에는 누구네보다 소비돈을 잘 쓰는 집이 되였다. 거기에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사람은 보통 자기만 능력있다는 거룩한 확신에 사로잡혀있다. 다른 사람이 자기를 어떻게 보는지 모르고 제 잘났다고 우쭐거리면 성숙한 인간이 되기에는 자격 미달이다. 무릇 발전적시각이란 성숙한 사람에게만 가능한것이다. 그런데 사람이 나이도 제법 들었고 세상풍상을 다 겪었다는 한가정의 가장이 자기를 제대로 살필줄 모르면 그것은 자기반성 결핍증에 걸린 령적지진아가 되였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부탁해 올때까지 충고하지 마라. 원하지 않는 도움은 다른이의 목적과 그자신의 결심을 해칠수 있다.(인디안인격언” 싱거운 부탁이 진심일수 없기에 정작 남이 더 잘 살게 되면 도리어 사촌이 기와집 지어도 배아파나는 그런 심사가 드러날것이다. 자기만 옳고 잘났다는 편향적고집은 심리병이다. 훈계하는 자태란 겸손할수 없다. 현인이“유리하다고 교만하지 말아야 하듯이 불리하다고 비굴하지 말라”고 했다. 정상인으로서 제하는 일의 목적과 진행상황을 모를것인가? 그래서 싱거운 부탁은 응기할 가치도 없는것이다.                                  2013년 11월 12일
637    잊으라 ? 기억하라! 댓글:  조회:4713  추천:0  2015-09-03
                            잊으라 ? 기억하라!      인생은 유감이다. 많은것이 기억되고 또 많은것이 잊혀지고…그래서 한스럽기도 한 우리네 삶이다. 찬란한 해빛과 령롱한 이슬보다는 궂은비 내리는 날이 더 많은 법이라 기억의 보따리에 마음 짓눌려 일어설수도 분발할수도 전진할수도 없는 경우가 많거니 그 시고 쓰고 매운것을 짓씹어야 하는 고충을 누구에게 하소연하랴.    그럴때 망각제일주의자들이 설교한다. 망각술을 터득하라. 누군가 당신을 해쳤던 기억도 사람들의 비방도 벗의 배반도 잊으라. 언젠가 치솟은 분노도 증오도 치욕의 순간도 잊으라. 기억은 늘 추억의 꽃을 심어놓지만 망각의 언덕에 이르면 색바래고 시들기마련이다. 잊어야 할것은 빨리, 그리고 깨끗이 잊으라.   “잔들어 수심을 달래려하니 수심은 더욱 깊어지고 칼을 들어 물을 베니 물은 더구나 줄기차더라”, 아픈 기억의 늪에서 헤여나지 못하면 약자이고 그보다 슬픈 일이 없으리. 긴긴 밤 가위에 눌리지 말고 힘껏 태질하라. 악몽에서 깨여나면 의연히 맑은 새 아침, 태양은 예이제 눈부시고 작은 풀잎에 진주이슬 아롱지리라. 굳어져버린 과거에만 매달리는 사람은 오늘마저 잃어버릴수 있다.    망각은 단순히 기억의 말살이 아니다. 망각은 일종의 떨침이고 어젯날 자신과의 겨룸이고 의지의 련마이기도 하다. 모든 고통을 잊는 령단묘약은 세월이라 하지만 기실 망각의 공로이다. 망각은 도전자만이 가질수 있는 기백이고 비장한 결의로서 인생고와 우수에 대한 오연한 무시이고 조소이다.    그러면 생활의 주재자로 될것이요 더욱 자신있게 새롭게 도전할수 있을것이여니 망각술을 배우라. 기억이 지겨워지면 힘겨울뿐이다. 속절없는 기억의 노예에게는 오직 자학의 채찍뿐이다. 잊으라!침묵이 금이라지만 망각도 금이다. 그대 망각을 앞세우면 희망의 새 언덕에 훨훨 날아오를수 있다. 그리고 또……    이렇듯 기억은 표상저장에 일심불란인데 망각은 늘“잊어보세타령”이다. 망각의 심연속에 묻혔던 표상들이 때로 회억의 덕에 재생되기도 하지만 보다 많은것이 일단 망각에 묻혀버리면 다시 불귀가 되고만다.    망각이 정말 만사대길인가? 아니다. 지어먹은 망각이란 어디까지나 희망사항에 속할뿐이다. 과거는 이미 우리들의 의식의 통제밖에 있는 세월의 언덕 저편에 굳어진 실재이다. 우리 능력으로 어찌해 볼수 없는것은 표상안의 과거이다. 세월의 류수가 기억의 언덕을 씻어내려 형성된 자연적망각의 퇴적은 가능하지만 이른바 기억의 청산(淸算)이란 심리조작이다. 과거로부터 형성된 우리가 과거의 기억을 임의대로 무찔러버린다는것은 자기모순이 아닐수 없다. 흔히 잊어버리고 싶다는것은 기실 잘 잊혀지지 않는다는 반증이다. 아픈 과거를 망각의 언덕에 파묻으려 할수록 봄싹처럼 돋아날수 있다.    기억에는 력사적인것도 있고 은사권에 속한것도 있다. 력사적이고 공유된 기억은 인류문화보물고의 고지기다. 개체생명으로 말할 때 아무런 기억도 없는 대뇌는 텅빈 창고와 같다. 당신이 실로 만나기 어려웠던 사람의 이름마저 기억해내지 못한다면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들의 이름도 까맣게 잊고 있을것이다.    이는 확실히 재미있는 심리숨박곡질이다. 만약 당신이 인류력사상의 그 파란만장했던 도경을 기억하지 못했다면 당신은 미군들의 폭격에 무고한 팔루자시민들이 당한 참상도 레바논의 페허로 된 도시도 기억하지 못했을것이며 자유평화의“구세군 들”이 비인간적으로 포로를 학대하는 만행들도 기억하지 못했을것이다.    망각에 자족하는 사람들의 사상은 샘물과 같아서 영원히 맑게 흐를것이요 해마다 올해가 더 의미있다고 느낄것이다. 한것은 본질상 대동소이한 지난해가 이미 그들의 대뇌에서 모호해졌기때문이다. 기억력이 차한 사람들은 생활은 영원히 의의롭다고 느낄것이며 밝아오는 새 아침처럼 청신하다고 말할것이다. 이것은 생활의 잠규칙인지 반드시 껴안아야 할 행복의 일종인지 모르겠다.    환득환실이라는 인생유희규칙으로 볼때 기억과 망각에 들어맞으며 더 유익하다고 말할수 있겠다. 오지 않으면 가지 않을것이요 새겨두지 않으면 모호해질 일도 결코 없을것이다. 그러나 현대 우리 겨레들에게는 기억이 너무 생생한것이 문제가 아니라 집체무의식의 병페가 너무 홀가분하게 망각의 품에서 자족하는것이 문제이다.    너무 멀리 간 기억을 불러올것도 없다. 36년간 일제의 군화에 짓밟힌 망국노의 원한도 세 강대국 수뇌자의 악랄한 롱간질로 빚어진 민족분단의 시말도 악명이 자자한 일제731부대의 생체해부 등 악마의 향연도 망각의 좀먹은 도포자락에 감싸여 영영 력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 한단말인가?    력사에 대해 두가지 관점이 있을수 있다. 전자는 비참하고 고통스러웠던 력사로서 늘 상기해야 두뇌가 명석해지고 교훈을 섭취할수 있다고 한다. 후자는 이미 과거로 굳어져버린것으로서 잊어버려야 사상보따리를 벗어던지고 가벼운 마음으로 새 기계를 잘 돌릴수 있다고 한다. 지금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이런 사람들은 피의 력사도 호랑이 담배피운던 얘기를 하듯 담소속에서 흘려버리려 한다.    기실 이런 사람들도 오직 력사적기억을 고수해야만 력사비극이 재연되지 않을수 있다는것을 알고있다. 참으로 대중성실책과 사회성망각이 형성된다면 누가 장담할것인가? 력사에는 만약이란 단어가 용납되지 않는다. 력사는 그 누가 제구미에 어떻게 수식하든 그저 존재했던 그대로다.   프랑스의 첼스라는 녀기자가 제2차대전의 포화속에 침중한 재난을 입은 일본의 히로시마와 중국의 남경을 탐방하고 대비적으로 쓴 기사가 있다.     히로시마: 원자탄의 세례속에 남은 고색창연한 페허를 고스란히 보존하고있다. 일본정부는 2040년까지 보존하려고 타산하고 있다고 외신이 전하고있다.     남경: 당년의 피해흔적을 어데서나 찾아볼수 없이 멋지게 꾸며놓았다. 피해자는 36만 이상이지만 기념관《울음벽》에 새겨진 수난자 이름은 3000개뿐이였다.   히로시마: 2001년 공포한데 의하면 원자탄에 죽은 사람이 221893명인데 빠진 사람이 하나 없이 준확하게 기록되여있었다.     남경: 남경대도살기념대회는 1985년부터 열었는데 1997년에 기적소리를 울렸고 대회참가자는 2천명좌우밖에 안되였으며 가장 많아서 만명이 안되는데 전시 인구의 1/2800내지 1/500이였다.    히로시마: 대회참가자가 5만명도 넘는데 전시인구의 1/21였다. 가해자이기는 하지만 피해자이기도 한 일본과 중국사람들의 력사기억은 어찌하여 이렇듯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가? 그래 우리가 망각을 사절하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의학상 건망증은 대뇌가 쇠망에로 나가는 징조이다. 인간의 생명운동에서 이보다 더 엄중한 문제가 있겠는가? 만약 민족군체에 건망증이 보편화된다면 그보다 더 큰 비애가 있을것인가? 도덕가는 은혜를 잊은 자는 배은망덕한자요 백성의 질고를 잊은 관리는 반역자라고 한다. 이보다 더한 수치스러운 타매가 있는가? 래세를 설교하는 불학자(佛学者)는 모든 근심과 기쁨을 도외시하는 자는 큰 자유를 얻는다고 말하지만 혁명자는 망국사와 민족수난사와 더불어 선혈로 쓴 항쟁사를 잊은 자들은 배반자를 의미한다고 하였다. 누구든 피로써 쓴 력사를 먹으로, 망각으로 지워버릴수 없다.    물론 자기 영광의 발족사만을 기억하는자, 자기의 근심걱정만을 안고도는 자들의 용속한 기억을 찬미할 필요는 없다. 자기의 불행했던 기억에만 짓눌려 신음하고있는 사람들을  비겁한자로 락인찍을 때 성공한 기억을 멀리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돋보이 는가? 망각의 역설은 개체생명의 일종 잔꾀일뿐이지 홍익인간의 비장한 심리자세가 아니다.    자기 안일을 위한 망각은 현실도피자의 통행증이 될수 있겠지만 잊지 말아야 할것을 잊음으로써 자기의 안위를 찾으려 한다면 아Q식 정신승리법에 불과한것이요 살아서 세우는 묘지명일뿐이다. 망각은 죽음보다 더 강하다고도 한다. 아니, 망각은 결코 만능이 아니다. 망각도 어쩔수 없는것이 있다. 한 철학자는 자기가 지은 죄악적행각은 기억속에서 지울래야 지울수 없다고 하였다. 그것은 맑은 날에 길을 가면서 자기 그림자를 떼여버릴수 없는것과 같은 도리이다. 기억이 두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기때문이다. 일본군국주의자들은 그 무서운 기억의 징벌을 참을수 없어 그냥 덮어감추려고 하는것이지 관대한 중국《보살님》들처럼 잊어서가 아니다.    망각주의자들은 기억은 흐르는 물과 같아서 사품치며 흘러왔지만 곧 지평선밖으로 흘러가버릴것이라고 한다. 그렇다. 흘러오고 흘러가도 끝없이 흘러오는 도도한 강을 장하라고 부른다. 그 기억의 장하도 세월의 먼 흐름따라 증발한다. 그러나 그것 을 미봉하기 위해 력사기재가 시작되였고 문명시대에 와서는 박물관, 도서관, 기념비, 예술작품 등 “매체”로 다시 과거를 경험하고 재현시키면서 스러지려는 기억의 꽃에 자양분을 공급해준다.    망각은 조물주가 선물한 절묘한 공능이고 “정신적신진대사”라는 일면에서는 중요하고 긍정적이다. 기억에 장기적기억과 단기적기억이 있는데 후자가 흔히 망각의 로획물이 된다. 그러나 기억에는 페허가 없지만 망각에는 필경 빈터가 있을수 있다.    기억과 망각의 변증관계를 어떻게 대해야 할가? 우리가 흔히 잊었다고 하는것은 이미 기억했던 정보들이다. 그러므로 기억성찰을 앞세우고 기억공능의 영구적발전을 도모함으로써 력사적인것, 민족적인것, 그리고 모든 의로운 기억들을 망각의 백사장에 널어놓아 세월의 썰물에 훌훌 씻겨가지 않도록 해야겠다. 그리하여 재연될수도 있는 력사의 우롱을 당하는 비극도 자초하지 말아야겠다.    개인적으로도 관용의 대문을 두드리는 지팽이로 되는 일상의 잊음은 선호할지언정 말을 타면 소수레를 타던 일을 말짱 잊어버리는것 같은 주관건망증과 개구리 올챙이 때 생각을 못하는 그런 망본은 없어야겠다. 나는 기억만능주의를 선호한다.                                   2006년 8월 15 일
636    력사의 “화석”에 새긴 감회 댓글:  조회:4987  추천:0  2015-09-03
                           력사의 “화석”에 새긴 감회      “장성에 오르지 못하면 대장부가 아니여라!” 그 누구의 호연지기인지 몰라도 가슴에 새긴지는 오래다. 하지만 나는 대장부가 못되여 북경에 두세번 다녀오면서도 장성에 올라 충천하는 의기를 뽐내볼 생각을 가지지 못하고있었다.     이번에 어쩌다 만리장성에서 가장 정화이고 대표작이라는 팔달령에 올라서 감개무량함에 젖어보게 되였다. 1억2천만을 헤아리는 유람객들을 맞고 보낸 명승지이니 장성에 관한 미문과 송가인들 얼마이랴,    장성에 대한 찬가에서 주선률은 우선 인류의 걸작으로서 고대중국인민들의 땀과 지혜의 결정이고 중화민족의 넋이며 상징이고 교오라는것이다. 정말이지 허위단심 장 성에 올라서 처음 느껴진 감각은 력사적실재감과 질감이였다.    장성은 력사적유적이라고 하지만 일종 력사의 “화석”이기도 하다. 력사란 별로 믿을것이 못된다. 종이에 기록한것이든 그려놓은것이든 반신반의하게 될뿐이다. 특히 정사(正史)라는것은 승리자가 쓴것으로서 거기에 소위 3휘(三讳)라는것이 붙어서 력사의 진실이 많이도 배제되여있는것이다.   “야사”라는것도 오늘날 영화들에서 무슨 “희설(戏说)”이라는것의 선조에 불과한것이여서 믿을바가 못된다. 무릇 어느 민족으로 말하든 력사적인 건축물이야말로 력사의 진실한 기록으로서 그 민족이 생활한 시대적특징을 시사해준다.    이를테면 애급의 금자탑은 당시 애급인들이 얼마나 정밀한 기하학을 장악하고있 었는가를 알려주고 중국의 만리장성은 진시황의 그 강포와 전횡속에 숨겨진 허약성과 잔포성을 잘 알려주며 이미 력사의 페허로 된 원명원이 락후한 민족의 필연적인 운명을 말해주듯이 말이다.    정말이지 험산준령을 한줄에 꿰여 연연 만리를 뻗어나간 장성의 경관에서 주요한 미는 숭고의 미 즉 장려함이다. 이미 퇴색하고 현대인들의 손길에 다듬어진 장성이지만 자체의 건축미와 자연미의 고도의 융합으로서 심미형식과 비극정신의 내함의 통일 체라고 말할수 있겠다. 장성의 미의 래원은 무엇보다 2천년을 내리 간직해온 깊은 정신적내함으로서 이런 정신의 내함을 누군가 “비극정신”이라고 개괄하고있다.    장성은 력사가 후세에 남긴 감탄표로서 강렬한 생명의 절주감을 느끼게 했다. 이런 절주감은 자연에서 오는것 같았다. 높은것은 련산련봉의 릉선우에 길게 드러누웠고 낮은것은 아찔하게 깊은 계곡을 꿰여들었다. 장성의 절주감은 횡적인 기복운동에 만 있는것이 아니라 종적인 연신과 확장에도 있었다. 그야말로 여기 장성에서 하늘 높고 땅이 두터운줄을 더욱 실감하게 되였다.   그러나 흥분을 가라앉히고 붐비는 유람객들에게 부대끼며 천하운관을 바라보노라니 실용성공능을 상실한후 일종 거대한 심미공능만을 고스란히 남겨놓고있다는 실락감이 가슴 그들먹하게 괴여올랐다. 과연 만리장성이 기적인가, 아니면 치욕인가? 중화민족 의 문명을 대표하는가, 아니면 락후함을 대표하는가? 보수의 상징인가, 아니면 불요불굴의 상징인가? 나약함의 상징인가? 아니면 용감함의 상징인가?    장성에 오른 사람이라면 우선 그 장엄함에 숙연해지고 뒤이어 찬탄이 흘러나올것이며 고대민족의 지혜로움과 용기에 탄복할것이다. 그러나 현시점에서 랭정히 반성해 보면 결과적으로 력사의 기적으로 남았지만 외세의 침입을 막아보려 한 무용(无用)의 군사방어공사이다. 사실 만리장성은 오늘까지 하나의 외적도 막아낸적이 없었고 한촌의 국토도 지켜낸적이 없었다. 대신 시야를 막은 엉성한 울타리로 되여 오가는 락타떼의 방울소리를 끊어버렸다. 만리장성은 모욕당한자자가 사후에 찬 쓸모없는 정조대이고 유약한자의 정신적 지팽이이다.    어찌 생각하면 비장한 생명을 쌓아 연연 만리를 뻗어간 묘지같기도 한 장성, 매 하나의 검은 별돌장마다에서 원혼이 신음하는듯싶었고 매 하나의 틈서리에서 낮사흘, 밤사흘 대성통곡한 렬녀 맹강녀의 피울음소리가 새여나오는듯싶었다.    비바람 사나운 밤이나 설한풍에 돌뿌리마저 얼어튀는 그런 밤이면 만리에 쌓여진 혼백들이 천고의 한을 공소하는지 누가 알랴!영원히 흐르는 강하의 모래알같은 생명, 바다같은 피와 눈물은 단지 황제가 만리강산을 베고 편안히 자게 하기 위해 황궁의 담장으로 쌓아진것이라고 하면 력사유물의 가치를 너무 폄하하는것일가?    통치자들은 천백년래 허황한 신화로, 제국을 지키는 문신으로 삼아왔고 무당의 주문을 요귀를 굴복시키는 령험한 부절로 삼았지만 금군의 창끝이 너무나 가볍게 찌르고 들어와 누르하치의 들뛰던 말발굽아래 장성이 소스라쳐 전률했으리라. 군기는 찢기고 시체들은 장성아래 즐비하게 널렸는데 눈이 빨개진 들개들이 려염집“처녀들의 꿈속의 사람”을 물어뜯고 있었으리라!    장성에 깃든 공과 죄를 그 누가 한마디로 저울질할수 있으랴, 장성에 대한 찬가속에서 맹강녀의 통곡소리를 방불히 듣는듯하다면 너무 감상적일가? 장생불사하며 부화사치한 생활을 누리고 진왕조를 만년대계로 이어가려던 진시황의 사나운 욕심은 타매받아야 하는가, 공덕을 기려야 하는가? 석양이 끝없이 뻗어간 장성을 묵묵히 굽어보고있다. 련봉마다 푸름이 우거지고 풀벌레의 울음소리에 귀가 따가운 시절이면 해묵은 력사의 견증자, 장성도 생기를 띠려는가?    장성은 우주공간에서 볼수 있는 지구촌의 유일한 흔적이라지만 물리광학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연구가 나와있다. 장성은 위대한 지혜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한편 우매의 표징이기도 하다. 장성은 가슴을 열지 않아 마침내 허물어지고 그 허물어진 틈서리로 들어온 동서방의 유람객들이 웃고 떠들어친다. 그들도 수십만 로동인민의 해골을 밟고 선듯한 느낌을 물리칠수 없으리라.    이른봄 2월, 서산에 기운 해는 랭랭하고 서북풍에 나무가지들만 몸부림치는데 상념만은 오히리려 무성해진다. 장성이 깊이 뿌리내린 험봉들도 말이 없고 우러러보아 피빛하늘도 무심하다만 한소리 불러보고싶었다. 불우했던 미인 왕소군이 눈물을 삼키며 새외로 나가던 기구한 길은 어디서부터 사라졌는고?    유구한 력사를 전진도상의 보따리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고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다. 력사유적을 잘 보존하면 선인들의 덕을 계승하여 전철을 밟지 않을수 있다. 력사를 잊은 민족은 력사의 음영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물론 위대한 력사유적을 화석으로 만들거나 인위적으로 페허로 만든다면 역시 력사 자체를 페허로 만드느 극히 무지하고 몽매한 짓인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과거에만 도취되여있다면 돌이켜보는 그 눈은 자호감을 가지더라도 노루친 막대 삼년 우려먹듯이 그 시각은 너무나 근시안적이다. 력사의 페허에서 래일을 내다볼줄 알아야 진정 전진의 동력을 얻을것이다.                            2006년 4월 6일
635    그리고 또 다른것도 댓글:  조회:4361  추천:0  2015-09-03
                          그리고 또 다른것도      중국이《경제현대화》에서 미국 등 선진국가들보다 109년이나 뒤떨어졌다는 중국 과학원 연구쎈터의 보고서가 나왔다.    2001년을 기준으로 중국의 1일당 국민총생액(GDP)이 3583딸라였는데 미국은 109년전인 1892년에 벌써 이 수준에 도달했다. 또 2001년 중국의 농업로동력 비중은 50%인데 미국은 131년전인 1870년에 이 수준에 이르렀다. 마지막으로 2001년 중국국내총생산에서 농업분야가 생산한 부가치총액은 15%애 이르는데 미국은 87년전인 1914년에 진작 이 수준에 도달했다.    이 세 수치를 평균했을 때 중국이 미국보다 경제현대화측면에서 109년을 뒤떨어졌고 2002년 종합경제 현대화지수를 볼 때 중국은 108개 국가가운데서 69위에 처해 있다. 이는 우국우민정신이 남다른 국민이 아니라도 심히 우려되는 무거운 수자이다.     그러나 이것은 경제측면에서의 락후이다. 이와 함께 심사숙고할 문제가 또 있다. 말하자면 사회의식면에서의 현격한 락후이다. 세계력사를 좀 아는 워싱톤, 프랭클린 과 더불어 미국의“개국3걸”로 불리는 제3대 대통령 토마스 제퍼슨을 기억할것이다.    일찍 독립선언서를 기초했으며 “민주주의 아버지”로 불린 그에게는 두번째 임기가 결속되던 1809년 당시 16개 주에서10개주의 의회가 세번째로 련임해달라고 (당시 미국법률에는 대통령이 두기 이상 련임할수 없다는 명확한 규정이 없었다.) 박절히 요청했으나 제퍼슨은 심사숙고한 끝에 마침내 조용히 백궁을 떠나갔다.    그가 이렇게 결정한것은 고도의 책임감외에도 사람들이 잘아는 빈곤때문이였다. 그가 백궁에 오래 머물면 머물수록 교제가 많아지고 각종 지출도 자연히 많아질것이였다. 그는 겁이 났다. 아닌게 아니라 총통임기 첫해에 자기 주머니에서 나간 돈만해 도 32634딸라나 되였는데 물과 술값만도 2천8백딸라가 되였다. 그런데 당시 그의 로 임은 2만5천딸라밖에 안되였던것이다.    그는 빚을 갚기 위해 자기가 그렇게 아끼던 수많은 장서를 전부 국회도서관에 넘겨야 했고 많은 면적의 삼림과 땅을 팔았다. 중국사람들로 말하면 제퍼슨이 련임을 사절한것은 불가사의한 20세기 아라비안나이트라고 할수 있다. 대통령이 빈곤때문에 제일보좌를 내치다니 말이냐 되는 일이냐고? 그러나 사실 당시의 미국은 현실적이였다. 미국법률에는 총통을 포괄하여 공무원들의 렴결자률에 대한 법조목이 엄격하게 규정되여 있었던것이다.    공무활동외에 손님접대나 교제비는 모두 자기 돈지갑을 열어야 했다. 만약 공가의 돈으로 사욕을 채우면 가벼워서 여론견책을 받고 중하면 벼슬을 떼울수 있었다. 이 역시 아라비안나이트이다.    서구의 어떤 사상가가 “만약 한 나라의 관리들마다 권력을 락과 재미로 삼는다면 그 나라는 멸망기가 멀지 않고 만약 관리마다 자기 권력을 책임으로 삼는다면 그 민족은 꼭 중흥할것이다.”라고 했다.        제퍼슨이 그렇게 떠맡기는 총통보좌를 마다하고 백궁을 떠나야 했던 표면원인은 빈곤이였지만 내재적원인은 권력과 책임성에 대한 명철한 판단이였다. 기실 직무의 속성에는 권력과 책임이라는 두개의 측면이 내포되여있다. 권력은 나라와 민중에 대한 책임을 실현하는 수단일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겠지만도.    미국보다 경제상 100여년 뒤처졌다는것은 국운에 달린 사활적문제려니와 관리계층의 치국의식(治国意识)도 경제에 못지 않게 당과 국가의 존망에 관계되는 초미의 문제이다. 중국관리층에서  허구많은 사람들의 치국관념, 책임심은 미국의 제퍼슨에 비해 얼마나 뒤지고 있을가? 2004년 한해만도 성급이상의 고위급부패분자가 16명이나 색출되였다는 사실이 무엇을 설명해주는가?     목전 세계상 유일한 초대패권국가로서 처처에서 중국에 시비를 걸면서 호시탐탐하는 때에 경제도 가급적으로 성장시켜야 하거니와 나라의 중추신경인 관리층의 치국의식구조도 현대화해야 한다는것은 자명한것이다.    력래로 충신은 멸사봉공(灭私奉功)하는 청관들속에서 나왔고 반대로 사리사욕에 눈이 어두운 탐관오리들속에 진충보국(尽忠 报国) 한 충신이 나온적이 없었다. 일신의 명리와 부정축재에 눈이 어두운 자들이 과연 금전앞에서 무릎꿇지 않으리라고 누가 장담할수 있을것인가?    또 다른 비교가 떠오른다. 부쉬가 등단한후 10년내에 유산세를 취소하련다고 선포했다. 부자들로 말하면 더없이 좋은 일이였건만 감지덕지해 할 대신 2001년 2월 금융거두 록크펠로를 비롯한 가장 부유한 120명 부옹들이 주동적으로 유산세를 내야 한다는 청원서를 국회에 제기했다. 그들은 재산상속세를 받아서 가난한 사람의 복리에 써야 한다는것이였다.    일찍 1589년 화란에서 맨처음 유산세법을 내온후 이미 50여개 나라에서 유산세제도를 시행하고있다. 물론 미국같은 나라에서 유산세도피현상을 두절시키기 위해 20 여조목의 법규를 내왔지만 거액의 돈을 자선사업에 투자하는것으로 유산세를 남기는 합법적인 행각들이 있긴하다. 허나 가령 유산세를 취소한다 하더라도 미국의 50% 이상의 부자들이 자기 재산의 절반을 사회에 환원시켜 공헌하려 타산하고있다. 유산세에 대한 미국부옹들의 태도는 그들의 재부문화의식의 독특성을 말해줄뿐만아니라 고도의 문화의식을 증명해준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거의 모든 청년들이 부모의 유산에 흥미를 가지지 않고 “독립성”과 “창조성”을 숭상하면서 저마다 자수성가하여 이른바“미국꿈”을 이루려 하고있다. 고기를 잡는 방법을 배워줄 대신 수많은 고기를 잡아다 쌓아놓고 자기 자 식들이 평생 복을 누리며 살게 하는것이 최대의 소망인 중국의 부모들과 또 그것을 바라고 고군분투하기 싫어하는 중국의 현대“귀공자, 공주”와 대비할 때 그야말로 21세기 천방야담이 새롭게 엮어진다고 해야 하리라.    중국사람들의 사인재산과 사회재부에 대한 관념도 서구라파에 비해 얼마나 뒤지  고있는지 알수 없다. 근일에“유산세잠행조례(초안)”가 국무원에 교부되였다는 소식 이 전해지자 국내 적지 않은 부자들이 분분히 자기의 미성년자녀에게 재산을 전이시 키고 심지어는 아직 강보에 싸여있는 피덩이의 명모으로 부동산을 사놓으며 유산세를 절약하려고 머리를 짜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하여 “어린애업주(娃娃业主)”라는 중 국특색의 현상이 생겨난것이다.   “억만재산속에서 죽는것은 일종 수치”라는 카네기의 명언이 있는데 수많은 미국사람들이 그의 관점에 동조하고있다. 이네들의 사상경계는 중국의 부자들의 의식에 비하면 얼만 경이로운가? 관리들의 렴결봉공의식도, 치국의식도, 그리고 재부의 사회 환원의식이 수립되려면 세월이 얼마나 흘러야 할지?    미국사람들이 느질느질 기여오는 거부기를 기다리다가 낮잠에 빠진 바보토끼가 아닌이사 결코 제자리 답보를 하거나 퇴보할리 없으니 량자가 등속운동으로 뛰여야 할것은 자명한 일이다.“대궐속에 높이 앉아 얼어주고 굶어죽는다는 소리를 들은적 없고 돈과 주색과 안일속에 죽는”봉건관리식의 의식구조가 잠시하여 있는 한 그냥 아득히 뒤떨어져 있으면서도 말가는데 소도 가니라 하고 큰소리 칠것이다.                                   2005년 3월 13일
634    몇개의 얼굴을 가지고 살아야 할가? 댓글:  조회:5160  추천:0  2015-09-02
        몇개의 얼굴을 가지고 살아야 할가?                                          진 언      사람은 누구나 표정관리를 하며 처세에 림하기 마련이다. 말하자면 두세가지 얼굴, 혹은 그보다 더많은 얼굴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말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영원히 알수 없는 나만의 비밀이 있게 되는데 이런 량면성은 실제적인 생존수단인만큼 정상적이라 아니할수 없다. 리해득실을 따지며 살아야 하는 인간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하나의 얼굴만으로는 안된다는것을 아무도 부인하지 못한다.    심리학자들은 이런 이중성을 가끔 방편으로 삼는것이 정신건강에도 좋다고 한다. 하지만 시종일관 진실된 인간이기를 지향하는 관념상 보편적으로 이중성격으로 인지되기에 부정적이기도 하다. 인간의 량면성을 좋게 말하면 자아보호의식의 본성이고 처세의 예술성으로서 사람으로 거듭나는 근본이라 한다. 그래서 누구나“변형금강”이 되는게 아니랴싶다. 그러한 여러개 얼굴가운데서 오직 하나의 얼굴만 진실한 자기 얼굴이고 나머지 얼굴들을 가면이라 이름하지만 그런 얼굴도 제얼굴이고 저런 얼굴도 다 제얼굴로서 어느 얼굴이 진정한 자기것인지 모른다.    동방인들의 경우, 유교적인 체면문화가 뼈속 깊숙히 박혀있어 겉다르고 속다른 처세술을 익혔는지도 모른다. 밑구녕으로 호박씨를 깐다고 욕하지만 투명인간이 어디에 있으랴, 이처럼 이중적이라고 하면 비렬하다고 힐난할수도 없는 나와 너 그리고 우리들인 인간군이다. 그러니 복잡다단한 인간관계, 변화부단한 현실생활에서 진정 하나의 얼굴을 가지고 살수 있을것인가는 인생에 또 하나의 난제이다.    부부나 자식들 앞에서나 친구간에도 진실한 제얼굴로 마주하기 어려운 때가 많기때문에 처세의 방편으로 두세개 “얼굴”을 가지지 않을수 없다. 때로는 자신조차 생각치도 못한 다른 모습을 보고 끔찍해 할 때도 있으니 인간이란 얼마나 딱한 체면동물인가? 그것을 사람의 속은 깊고 오묘하기때문이라고 할것인가? 리득을 볼 친구앞에서는 신의가 넘치는 얼굴, 련인앞에서는 가장 완미한 얼굴, 낯선사람 앞에서의 정인군자의 얼굴, 그리고 혼자 있을 때 초라하고 취약한 본연의 얼굴 등등.    바꾸어 말하면 단면적인 인성관이란 당초 있을수 없다.“성선론(性善论)이든 “성악론(性恶论)”이든, 자사론(自私论)이든 “리타론(利他论)”이든, 리성주의든, 공리주의든 영원히 상대적일뿐이다. 천연적이고 보편적인 인성이란 없다는 설명이 되겠다. 열길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속은 모른다는 속담은 가장 터득하기 어려운 관계학의 시점에서 보면 가장 실용적이고 또한 섬뜩해지는 인생철학이기도 하다.    인간의 이중성은 인간이 동물들에게 없는 리성때문일가? 동물적본능이 유전자 깊숙히 자리잡혀 있는데 그것을 리성으로 자꾸 억제하고 사회적통념으로서 자유로울수 없으니까 남들 앞에서 자신을 감출수밖에 없는걸가? 아무튼 속으로는 그러지 말자 고 자기단속을 하면서도 내심의 생각과 처세에서의 표상은 언제나 일치하지 않는다. 한것은 노하면 으르렁거리는 짐승과도 전혀 다르게 사람은 교묘하게 본연을 숨길줄 아는 본능을 가지고 있기에 겉이자 속인 사람이 된다는것은 어려운 일이다.    한어에 “어떤 때는 고양이 면상을 하고 어떤때는 개면상(一时猫脸,一时狗脸)”을 하고 다른 사람의 체면을 고려하면서도 자기체면도 세워야 하는 경우“무슨 사람을 보면 무슨 말을 하고 무슨 보살을 만나면 무슨 향불을 피운다 (见什么人说什么话,见什么菩萨烧什么香)”거나 “사람을 만나면 사람말을 하고 귀신을 보면 귀신말을 한다거나 선생을 만나면 책이야기를 하고 도부수를 만나면 돼지이야기를 한다(见人说人话,见鬼说鬼话”、“见着先生说书,见着屠夫说猪)”는 등 말은 참으로 실용적이다.    인간의 추상적심리에서 보더라도 가면구는 인간교제의 수요에서 제조되는것이다. 서로간의 진정한 내속을 알수 없는 상황속에서 행동거지에 조심해야 한다는 경계심은 표면적인 례절 내지는 바람직한 이미지를 추구할수밖에 없기때문이다. 더 부언한다면 모종의미에서 인간은 개개가 곧 자신이 쓰고있는 가면구의 총화일수밖에 없다.    가면구를 쓰더라도 철면피를 공중에 내댈 머저리가 있을가? 있다. 있어도 너무 많이 나돈다. 진면모가 드러나지 않았을뿐이다. 그러나 그들은 내심으로 “지금 내가 떨고있니?”하고 자문하였을것이다. 일단“락마관”이 되고나서야 사람들은 경악한다. 락마관들은 형형색색이지만 그네들의 통용적인 얼굴은 크게 “부모관의 얼굴”, “렴결봉공의 얼굴”, “애국애민의 얼굴”세가지로 개괄할수 있다.    이런 세가지 면상으로 개혁개방의 기치를 내들고 열변을 토하면서 한편으로 염낭이 아니라 거대한 금고를 메우고 사상을 해방한다는 미명하에 온갖 루추한 행각을 벌리며 자신을 개혁개방의 선두주자로, 사상해방의 용사로 분장한다. 그리고 그 뒤에서는 저저 색마의 얼굴이고, 그러니 비록 현대에 살지만 봉건시대 부패관리들의 본성과 행각과 전혀 다를게 없다.    쩍하면 반부패연설을 하기 좋아해서“인민들이 우리에게 준 권력을 잘 써야 한다. 권력이란 쌍날검으로서 잘쓰면 사업에 리기(利器)로 될수 있지만 일단 잘못쓰면 자신을 상하게 할수도 있다.”“돈이란 날때부터 가지고 온것이 아니고 죽어도 가지고 갈수 없는데 그리 많은 돈을 해서는 뭘하겠는가?”“나는 광서에 아직도 몇백만 군중이 가난때를 씻지 못하고있는데 주석으로 된 나는 정말 밤잠도 제대로 잘수 없다.”고 말할때 어떤 얼굴이였을가? 그런데 4000만원을 후무린 대탐관이였음이 만천하에 드러났을 때 어떤 얼굴이였을가? 그런데 근간에 락마한 “호랑이”들에 비하면 성(成) 씨도 새끼무당의 푸닥거리에 불과하니 염라전을 들부실 원귀가 될지도 모른다.    하긴 목까지 물에 잠그고 있을 때는 잘 모르지만 일단 물밖으로 나오게 해서야 누가 발가벗고 물장구를 쳤는가가 드러러나는 판이니 이런 위군자가 어찌 개인 일탈이고 극소수이겠는가? 그의 뒤를 잇는 부지기수의 위군자들은 앞에서는 좋은 말 이란 좋은 말을 다 엮어대고 뒤에 가서는 나쁜일이란 돌아가며 하다가 마지막에 가지게 되는 진면모는 처참하다. 계하수로 되여 눈물코물을 쥐여짤 때 도무지 체통이 없으니 인간의 원래의 얼굴이란 얼마나 보잘것없는가? 국외에도 입에 민생을 걸고다니면서 제옆채기는 톡톡히 챙기는 두얼굴의 정인군자들이 많던데 모두들 심보은페술, 표정관리의 대사들이라 하겠다.     결국 자리ㅡ권좌가 얼굴을 거듭나게 하고 자리가 일락천장하게 하여 랑패상을 짓게 하는것이다. 과시 착한 얼굴로 떠올라서 악한 면상으로 무너지는격이 아니겠는가? 락마관들의 두세개 얼굴은 탐욕스러운 마음의 외재적“형상”과 보충설명이 되지만도 이건 참으로 너무 별로인 얼굴들이다. 이렇듯 세로보든 가로보든 인간의 량면성이란 리성과 감성에서 비롯된다. 인간의 량면성과 자연계의 량면성 물과 불의 관계와 같은 그런 량면성이 문제시되는것은 아니다.    어찌되였든간에 “가면구”는 어디까지나 가면구속에 그 사람을 증명하기 위해서라고 말할수도 있겠다. 다들 인간이니까 그럴수도 있겠지만도 “가면무도”에 날이 새는줄 모르다가 백일천하에 맨얼굴이 드러나게 되면 그 랑패상은 참으로 앙증스럽다 하리라. 다만 쪽제비도 낯짝이 있다는데 그럴수가…!물론 보통사람들도 생존수요로 “변형금강”이 되지 않을수 없지만 아닌보살도 유분수라고 형편없는 파렴치한, 후안무치라도 한두해도 아니게 정인군자로 분식하고 백성을 우롱하는것은 량면성문제만이 아니다. 하다면 우리는 대체 몇개 얼굴을 가지고 살아야 할가?                                          2014년 11월 21일
633    가장 위대한 사랑 댓글:  조회:4776  추천:0  2015-08-28
                         가장 위대한 사랑                                      최 균 선      흔히 아버지의 사랑은 산같고 어머니의 사랑은 강물같다고 비유한다. 맞다, 산과 물이 생명을 련속시키지 않는가? 그러나 생명은 취약하고 창백하다. 그런 생명의 력량, 생명의 색채가 교원의 사랑에서 가공된다. 교원의 사랑은 그처럼 위대한것이다. 위대한 사랑만큼 교원은 제아이를 사랑하는만큼 자기 학생을 사랑하게 되여야 참된 교원이다. 그래서 “사랑이 없으면 교육도 없다.(마까렌꼬)”고 하는것이다.    그러나 다함없는 교원의 사랑은 치약처럼 짜내지는것이 아니라 옹달샘처럼 마를줄 모르는 사랑이다. 그러한 사랑의 원천은 그 교원의 인격됨됨이에 있다. 왜 교원의 사랑에 참된 인격이 전제되는걸가? 인격자로서의 교원의 기본과업이 미성숙한 인간을 인간다운 인간으로 거듭나도록 이끌어주기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교원은 학생들에게 우선 인간적인 면에서 본보기가 되지 않을수 없다.    교원은 우선 인간으로서 인격적인 존재이여야 하기에 스스로 인성, 주체성, 풍부한 내면세계를 가진 인격체, 조화된 인격자로서 위인사표로서의 품성과 자질을 구비한 사람이여야 함은 두말할것없다. 교육이란 인간형성을 도모하는 지적활동이므로 교사의 인격적감화를 전제조건으로 내세우지 않을수 없기때문이다.    그러기 교원으로 인생마당에 나섰다면 뚜렷하고 건전한 가치의식과 륜리의식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자연인을 사회인으로 육성하는 교육자에게서 우선시되는 륜리 의식은 바로 도덕적자질이다. 이런 륜리의식에 수반되는것은 바람직한 교육관과 교직관이다. 교육이 바로 합격된 인격자들을 키우는 전문직이므로 교육에 림하는 자세가 가장 기본적인 덕목이 된다.    상술한 모든것은 교원의 마를줄 모르는 사랑에서 기원된다. 교육애는 인간애를 토대로 한다. 바람직한 교사는 교육애에 불타는 사람으로서 교직을 성직으로 여기고 모든 정력과 정열을 교육에 바치는 사람, 학생의 성장과 발전에 기쁨과 만족을 느끼 며 자신이 하는 일에 생애를 거는 사람이다. 이처럼 교육은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것이므로 사람을 사랑하고 중히여기는 마음 이 없으면 교육자가 될수 없다. 따라서 천직의식을 가진 교육자, 사명감이 투철한 교육자는 바로 교육애가 있는 교육자를 말하는것이다. 교원의 사랑은 사람을 키우는 무한한 축복이다. 교원의 사랑은 간단하고 소박하다. 애들을 차별없이 대하고 향상의 동력인 고무격려하는데서 구현된다. 교원의 사랑에 학생들은 감동으로 화답한다.    교원의 사랑은 왕왕 헌신으로 체현된다. 이런 대비를 해보자, 당신의 첫아들 (딸)이 처음으로 당신을 아버지(엄마)라고 불렀을 때의 환희를 무엇으로 표현할수 있을가? 그 어떤 말도 적절하지 않을것이다. 거기에는 아버지(엄마)로 되였다는 그 성숙 된 자호감과 함께 그보다도 자기의 첫희망이, 인류문명의 횃불이라 할수 있는 말을 배웠다고, 자기 아이의 성장의 표현에 대한 감격과 기쁨이 더 강렬할것이다. 하지만 부모의 사랑에는 사심이 주류로 되여 흐른다.    아이가 앳된 목소리로 엄마(아버지)라고 부를 때 받아안는 감수와 자기 학생이 첫글자를 써놓고 스스로 장한듯 웃을 때 기특하다고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교원의 심정 이 량자중에서 우리는 어느 사랑이 더 고결하다고 금을 그어야 할가? 생명을 낳 아준 어버이의 사랑에 비하면 사회인으로 부상시키는 교원의 사랑이 그 버금으로 놓일수밖에 없지만 교원의 사랑은 사심이 없다. 이 하나의 대비에서 우리는 교원의 사랑이야말로 더없이 위대하다고 수긍하게 될것이다.    자고로 사제간에 사랑으로 엮은 미담들이 많고 많다. 물에 빠진 자기 자식을 건져내기 위해 물에 뛰여들지 않을 부모가 없고 자식과 함께 익사한 불행한 사건들이 부지기수이지만 피한방울 섞이지 않고 오로지 스승으로서 다해야 할 사랑때문에 목 숨을 대내는 교원의 사랑은 아무도 강요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교원은 자각한 사랑으로 비장한 교육서사시를 엮는다.    물론 세상 모든 교원들이 다 이런 사랑에 립각하여 자기를 헌신하는것은 아니다. 너무 알차서 고개숙인 조이삭들 사이사이에 가라지들이 듬성듬성 끼여서서 나붓대는것은 상대성원리로 운행되는 이 지구촌의 섭리이듯이 교원이라는 미명은 가졌으되 명실상부하지 못한 교원이 많은것도 인간촌에 섭리라 할것이니 세상은 그렇게 상대성과 모순과 알륵으로 범벅이 되며 둥글어지기도 하는것이다.    항간에 훈장의 똥은 개도 안먹는다는 속어가 류전되고있다. 아이들이 배움에서 달콤함을 느끼게 하려면 교원자신이 먼저 황련을 씹는듯한 쓴맛을 보아야 한다. 알심들인 배양하에 못생긴 새끼오리로부터 백학으로 거듭나게 될 때 보람을 느끼는것은 교원만이 받아안는 아름찬 보수이고 정신향수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량심적으로 림해야 할 사업이 교육사업이라는 직업특성때문만은 아니다.    교원사업을 시작할 때 우선 해야 할 일이 바로 학생들에게 사랑을 안겨주는 일이다. 녀교원이라면 누나(어머니)같은 사랑을, 남교원이라면 형님(아버지)같은 사랑의 마음을 안고 가르침에 림해야 하지 불원이라면 한어에서 말하듯 집에 돌아가 고구마나 구워팔며 생계를 영위하는것이 자타를 위해서 더 좋을것이다.    사랑이란 개념의 외연은 무한히 확대될수 있고 그 내함에는 층차성이 많은만큼 풍부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인간의 그 모든 다양한 사랑의 감정에서 가장 숭고한 감정은 바로 교원의 사랑이라 할것이다. 물론 교원도 칠정륙욕이 있는 인간으로서 돈을 싫어할리 없지만 공방형ㅡ돈에 인격까지 말아먹는 사람이라면 당초 자격부재이다.    상품경제시대 도처에서 풍기는 돈내에 교직관이 변질되여 교원의 사랑의 천평이 오르내리는 현상들이 이젠 비밀이 아니다. 성스러운 교육현장에 이런 현상은 참으로 비애가 아닐수 없다. 인간의 애증이 공방형의 손에서 끓고 식는다면 숭고한 교원의 사랑이란 운운할수도 없는데도 말이다. 돈이 사회의 대변자로 된 현실이라도 교원의 성결무비한 사랑에는 돈냄새가 풍길수 없다. 또 풍겨서는 안될 일이다.    교육의 마차에서 중심축은 학교교육이고 학교교육의 주된 마당은 교실이며 교실은 교원의 가르침과 학생들의 접수활동이,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교실은 수많은 생명체가 미래의 꿈을 향해 꿈틀거리는 곳이고 교원들의 지도에 의해 각자의 지능과 적성, 잠재력을 키워가는 곳이다. 학교에서 학생들의 바람직한 성장을 이끄는 요인은 수없이 많으나 학생에 대한 교원들의 사랑이 맨 앞자리에 놓인다.    사랑이 없는 천국이라면 아무도 가려하지 않을것이다. 인간세상에 사랑이 있기에 일체가 있듯이 인류문명의 첫아침을 맞아온 교육을 담당해온 교원의 다함없는 사랑이 없다면 교육자는 지식을 전수하는 만능기계가 될것이고 학생은 지식저장기로만 될것 이다. 교육자에게 있어서 “사랑”과 “책임”은 불가분리적이다. 사랑이 없으면 교육도 없는것처럼 책임감이 없다면 바람직한 교육도 없다.    학교가 학생들을 가정 다음으로 행복하게 해주는곳, 눈만 뜨면 달려가고 싶어지는 곳으로 만드는 일은 교원들이 학생들을 끝날줄 모르는 사랑으로 가르치는데서 확보된다. 학생들에 대한 사랑, 헌신, 축복이 제자라는 나무들이 동량지재로 커가게 하 는 밑거름, 다시없는 영양소가 된다. 그 모든 요소들은 교원의 사랑에서 마련된다.                          2015년 7월 17일 (연변일보 8월 2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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