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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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2    고맙습니다. 지각한 동장군님이시여! 댓글:  조회:8615  추천:2  2013-11-04
                                         고맙습니다. 지각한 동장군님이시여                                                                  진 언                                                           북국의 풍광                                                               천리에 얼음 얼고                                                                   만리에 눈날리네         이 시구에서처럼 내가 사는 여기 북국땅, 장백산아래 인촌의 겨울은 엄혹한 동장군의 일언지하에 만물이 꽁꽁 얼어붙는게 정상적인 풍경이다. 그런데 올해는 유달리 동장군의 왕림이 늦는지? 이젠 황하이남처럼 가을과 겨울의 계선이 모호해지는 가? 11월 7일이 립동이고 22일이면 소설인데 전혀 겨울맛이 나지않으니 이래저래 곤혹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현대문명에 계절의 순환마저 흐지부지해는가?     썰렁한 초겨울같지 않게 한낮이면 해볕이 마치 늦가을해처럼 자비를 베풀어 주어서 드러내기로 멋을 내는 류행아가씨들은 신이날지 몰라도 실용적으로 살려는 사람들은 일면 즐기면서도 일종 불안을 보듬고있다. 전국적으로 겨울이 늦어진다고 의론 들이 분분하는차 여기 북방마저 올해들어 동장군이 유별나게 늑장부리니…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고보면 하늘은 의연히 만리벽공이고 오싹한 랭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미구에 해살이 쭉 퍼지면 따스해지고 한낮이면 껴입은 옷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호듯거리는 양광이 다정한 어머니의 손길처럼 얼굴을 쓰다듬어준다. 길옆, 강기슭에 백양나무들은 마침내 락엽귀근을 마쳤는데 버드나무의 늘어진 가지들에는 아직도 록색이 아니놓지를 못하겠다고 여름철에 련련하고있다. 지각하는 동장군은 언제 위풍을 떨치려 하는지 겨울이 아니와도 이상기후라 불안이다.     엄동설한에 파리가 얼어죽는것은 이상할것 없는데 악착한 모기네는 검질기게 살아서 낮이면 남쪽유리창문에 매달려있다가 날쌘놈은 어느결에 집안에 들어와 구석에 숨었다가 밤이면 피를 빨아대니 모기마저 지각한 동장군의 은혜에 감지덕지하지 않겠는가? 겨울은 만물이 잠속에 곯아떨어진듯 재생의 꿈을 보듬는 계절이라 혹독한 설한풍의 세례가 없어도 정상은 아니다.     지각하는 동장군님, 당신의 엄엄한 위풍은 언제 떨치려 하나이까? 철따라 따스함과 서늘함을 좋아하는 도시민들이래도 겨울이면 등뜨신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우선 관심사가 난방설비 점검과 집안 온도계의 오르내림이 되는것은 당연지사이다. 눅거리 겨울서정따위는 집어치고, 직언하고싶은 화제는 원래부터 말썽많은 취난문제에 꼴똑 담긴 걱정거리이다. 그러께 해에는 집안이 령상 15도 좌우여서 밤에 솜바지저고리를 입고 자도 꿈마저 꼬브라들었더랬다.     그래서 마을에 할머니들을 휘동하여 가도정부도 찾아다녔고 시정부에도 찾아다니며 말썽을 일구었더랬다. 하여 해당부문에서 일정한 조치를 취해서 조금 나아지긴 하였고 온도미달로 1300여원을 운좋게 되찾았지만 그래도 옹송그린 마음으로 간신히 넘긴 그해 겨울은 참으로 돈주고도 겪어야만 했던 고난의 겨울이였다.     이듬해인 작년에는 시열공급공사에서“원동천열공급공사”를 대신하여 열공급을 하기에 이르렀는데 최고 령상23도까지 오를 때가 있어서 더는 솜바지저고리를 입고 등걸잠을 자지않아도 되였다. 참으로 행복해서“谢天谢地”였다. 그러면서도 앞일을 두고 근심을 싹 털어버리지는 못하였다. 혹시나가 역시나가 된것인가? 간판이“东晨”으로부터“荣德”으로 바뀌여 희출망외였는데 약탕관은 바꾸고 약은 바꾸지 않은격인가?     말은 번듯하게11월15일부터 보냈다는 열공급이 내가 사는 삼화가 민화사회구역 강녕골목에 낡은 아빠트들에는 오는 길이 멀어서인지 열공님이 한번도 오시는 기미가 없었다. 민심이 화해로울수 없고 골목이름처럼 강녕할수 없으니 아이러니가 아닌가? 아침저녁으로 스팀을 만져보지만 그야말로(冷冰冰)이였다. 스팀안에 공기를 빼야한다기에 몇번이고 틀었다 닫았다 하였지만 그냥 랭수만 새여나올뿐이다. 그야말로 열공급소가 아니라 랭수공급소라 해야 걸맞을게다.     꿈에 색시를 얻듯이 한두어번 차가운 기운이 없기에 오는갑다하고 은근히 기뻐해도 잠시잠간이였다. 농촌말로 금방 맞아죽은 사람의 볼기짝의 온기만도 못하다고 해야 할것이다. 그래도 국가규정일이 20일이니 차분히 기다렸는데 이날 이때까지도 감감무속이다. 누구마따나 참을성에도 한계가 있다던가?     목마른 놈이 우물파기라 할가, 아니면 발등에 불이 떨어진놈 펄쩍 뛴다고할가? 할수없이 또 사회구역사무실에 찾아가 해결해달라고 징징거렸다. 책임자가 그러지않아도 주민들이 의견이 많고해서“궈루팡”에 문의하면 궈루가 고장나서 수리중이라고 하더란다. 이 몇해 그냥 내뱉는 듣기만해도 역증이 나는 구실이다. 그냥 이런 정도로 주민을 우습게 보면 정부기관에 몰려갈수도 있다고 했더니 새로온 로반인지하는 사람과 통화하는듯 싶었다. 그리고 즉시 해결하도록 답복하였다고 하였다. 그래서 해결이 되는가싶어서 기다려보기로 하였다. 웬걸, 사투리로 그 도래미 그 도래미이다.       마을에 한 주민이 12319에 전화하면 전문 취난상에 발생한 문제를 해결해준다고 하여서 헛일삼아 전화해보았더니 아주 성근하게 정황을 료해하며 해경방도를 찾겠다고 하였다. 그러고 또 몇며칠이 지났다. 물론 천덕꾸러기 낡은아빠트구역이니 기다려봐야 하겠지만 두루 알아보니 도시화원이라는 아빠트구역에서도 띠띠부레하게 온다는 말을 듣고 나혼자 풀풀거리는게 아니라고 자위했다. 참으로 남들도 고생하니 내 고생이 덜어지는듯 여기는 고약한 심보라고나 할가,     문제는 시내 다른데서는 너무 더워서 문을 열고지낸다는데 “太不像话인지 太不公平”라 해야 하는지 한어말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아무튼 이놈의 열공급소는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었길래 간판도 바꾸고나서도 그나물에 그밥인가 하는것이다. 전국적 으로 석탄값은 내렸다는데 취난비는 껑충 오르고 취난비수금은 성화같이 하면서 열공급에는 노량이니 참으로 뚫린입을 가지고도 실어증이 생긴다.     지금은 열(热)이 향수품이 아니라 상품이 되였다. 취난비를 냈으니 상품권이 있는것이다. 돈은 받고 상품(그게 저질이라도)을 내주지 않으면 사기도 하닌 협잡이요 불법이다. 초겨울날씨가 하도 잘해주어서 밤에 집안 온도계가(정확하지 않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20도 쯤은 가리키고있으니 어디가 무슨 말을 할수 있을것인가?     그러나 이런 온도는 낮에 태양님이 넓은 류리창으로 볕을 들이밀어준덕이지 결코 열공급소의 자비심때문이 아니다 내가 사는 아빠트에 24 호집에서 빈집이 많고 농촌말로 로약호가 많고해서 속에 불만이 끓어도 어디가서 볼부은 소리를 할 사람도 별로 없고 지금 세월에 누구나 혼자나서서 인심잃을 말을 하려하지 않으니 더구나 참고견디며 지각한 동장군님께 고마움을 가지는것밖에 더 할일이 있으랴!     열불이 나는대로 하면 불때는 온돌집에라도 이사가고 싶지만 그저 마음뿐이다. 그래서 매일아침 일어나면 혼자하는 말이 “오늘 날씨가 따스하겠군,”이다. 그러면서 공정한 태양님께 더 “마니마니” 볕을 줍사하고 빌고 늑장부리는 동장군님이 못내 고마워서 길가에 황들었거나 아직도 푸른빛을 잃지않은 버드나무 가지들을 쳐다보며 은근히 기뻐한다. 힘이 없는 초민백성이야 지각한 동장군을 붙안을 수밖에 다른 도리가 있겠는가? 절로 “아멘!” 이 나온다. 잔혹한 동장군님, 지각한바에 그냥 거기서 얼어붙어 계시고 새 봄만 날래날래 혼져 옵셔예!!!                                                                                                                  2013년 11월 3일   
351    드라마에서 인물처리 댓글:  조회:7653  추천:0  2013-11-02
                                      드라마에서 인물처리                                                            ㅡ “오로라공주”를 둘러싸고 ㅡ                                                   야 조         드라마에서 인물처리란 인물의 필연적인 등장계기와 사건전개와 결말에 따른 각 인물들의 운명적인 귀속을 어떻게 설정하는가 하는 작품의 구성문제이면서도 궁극적으로 인물형상 내지는 인물군상의 창조적인 기교문제이다. 만약 한부의 드라마에서 스토리와 별로 요긴치 않은 인물들을 마구 등장시킨다면 뒤처리가 난감할것이다.     한 작가가 편폭이 길지않은 자기소설에 인물들을 마구 등장시켰다. 이야기는 끝나가는데 인물들의 운명적귀속을 어떻게 처리할줄 몰라서 전전긍긍하다가 마침내 기발한 착상이 떠올랐다. 처리하고싶은 인물들을 일거에 제거해버리는것이였다. 즉 때에 마침 전 도시에 전염병이 돌았는데 퇴장시키고싶은 인물들이 하나하나 죽어버렸다. 이런 처리는 유치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인물처리예술에서 반면적인 귀감이 되였는 모른다.      드라마도 례외가 아니다. 무작정 인물을 등장시켜놓고 뒤처리를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서 그 드라마의 진실한 귀속이 결정된다. 례를 들어 요즘 방영하는“오로라 공주”에서 인물처리가 분분한 의론을 자초하고있다. 이 드라마는 분명 애정문제를 둘 러싸고 스토리가 전개되는 거의 도식화된 드라마이다. 그러나 드라마작가가 원래 가지고있다는 “이단작가”라는 명칭에 부합되게 하느라 그랬는지 이단적인 요소들이 너무 많다. 이상하다못해 기괴한것은 이쯤해서 인물성격의 변화라든가 결과가 있음직도 한데 그냥 단념하지 못하고 이어가면서 도무지 진전을 보여주지 못하는것이다.     황마마의 누이들은 남동생에 대한 변태적집착에서 벗어나 오로라의 관대한 용서를 받으며 정상인으로 거듭나야 마땅했다. 그리고 이쯤해서 설설희는 녀주인공에 대한 미련을 사나이답게 씻어버리고 새로운 애정극을 엮어야 남자의 감정론리에 접 근한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설설희의 사랑은 현재진행형이다. 심지어 깨를 볶아주어 야 할 오로라의 어머니조차 이따금 설설희를 떠올리며 아쉬워하고 있으니 도대체 주인공들의 감정의 교차선에서 벗어나 어디까지 평행선을 그어나갈 작정인지…?       그리고 황마마의 두누이들의 성격발전도 비론리적이라 느껴진다. 어리지도 않은 남동생을 련인이나 소유물로 생각하는 모양새다. 나이먹은 미혼의 누나 둘이서 결혼 한 남동생의 처를 그토록 시기하며 저주를 퍼붓는 광경을 도대체 무엇으로 설명해야 하며 도달점은 어디이며 관객들에게 무엇을 시사하려는것인가? 한국녀인들속에는 불가사의하리만큼 녕악한 두얼굴의. 할일없어 동생의 녀자를 헐뜯는일로 인생을 경영하는 녀자들이 많다는것을 폭로하려는것인가? 오로라와 같은 아픔을 겪은 조카가 수모를 당하자 쫓아가 싸워줬던 그런 녀자들의 이중성격이 리해되지만 이건 아니다.     여전히 오로라외의 운명을 찾지 못한 설설희. 그리고 아직도 황마마를 온전히 갖지 못한 오로라. 마치 비극의 신호탄처럼 같은날 두사람이 나누어진 고통이도 무지 감동적이지 않고 드라마틱하지도 않다. 작가의 인연을 향한 집착과 운명에 대한 소원은 너무 지대한것이라서 어쩌면 이제껏 껄끄럽기만 한 시집살이와 설설희의 방 황은 모두가 서로의 인연을 찾지 못한데서 오는 징벌이라는것을 시사하려는것인가? 어찌보면 오로라의 시집살이는 천생의 인연을 내팽개치고 돌아선 인과보응식의 자업 자득이긴 하지만도 무엇이나 너무 비틀어짜면 변형되거나 끊어진다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 스토리의 전개, 다 큰 남동생을 눕힌 침대를 세 누이가 둘러싸고 밤새도록 기도를 외우는것이 정상적인 인간상정인가? 물론 작가가 생각한 녀주인공의 진짜 인연이 황마마라면, 역으로 서로를 잊지못한 두 사람에게 전하는 엄중한 경고의 메시지일 가능성을 암시한다고 넘겨짚을수 있으나 오로라의 진짜 인연은 황마마일가, 아니면 설설희일가? 긴가민가 하는 어떤 궁금증도 억지감으로 해서 밀려나고만다. 역시 인물성격부각, 인물처리의 합리적이고 합목적인 처리에서 우왕좌왕하고 있다거 빤히 들여다보인다.     각설하고, 드라마의 진행에 따라 처리되여야 할 인물들의 귀속문제이다.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등장인물들이 부단히 “하차ㅡ퇴장”하는 처리절차이다. 드라마가 애초의 기획방향과 달리 불가피면적으로 오로라의 세 오빠와 황마마의 세 누나간의 얽히고 설킨 관계를 진지하게 시사하려다가 엉뚱하게 중겹사돈으로 흘러가자 극의 전개에 방향감을 잃은것인가? “오로라공주”’에서 극의 중심이 오로라와 황마마, 설설희의 삼각관계로 그 축이 옮겨지자 이들이 각색하는 인물의 존재리유가 궁해진것인가?     이에 대한 온갖 론평대로 120부작으로 된 대형드라마라 제작비부담을 고려해서 사건전개를 중단시키고 인물들을 중도하차시키는것이라면 여기서 드라마의 조작성이 완전히 드러나는것이다. 인물들 중도하차가 작가의 스타일이라는 말도 하더라만 아주 바람직하지 못한 창작스타일이다. 다른 론평에 의하면 본작가(임성한?)의 다른 작품들“하늘이시여”’와 “보석비빔밥”,“보석비빔밥”“신기생뎐”에서도 미리 짜놓은듯이 등장인물들이 교통사고나 심장미비 등의 돌연사로 자취를 감췄다고 한다.     보통 드라마에서 등장인물의 죽음이나 사고는 또 다른 스토리를 예고하는 중요한 관건어인데 본작가의 드라마에선 특별한 련결고리나 개연성을 찾기힘든 예측불가의 처리방법이 강행된다고들 말한다. 본 드라마에서 설설희의 병원에서의 정밀검사도 “일괄하차”방법의 예고인가? “오로라공주”는 첫방송이후 지금까지 모두9명의 등장인물이 하차했다.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은 변희봉, 숱한 루머를 남긴채 돌연 종적을 감춰버린 박영규 손창민 오대규, 동성련인과 리별에 힘들어하다 떠나버리는 송원근 등(한국사회에서 동성련이 괴상하기 그지없었지만도)이 그것이다.     임작가의 전작들에도 돌연 사망해버리는 인물들의 수는 타드라마보다 월등히 많다고 한다.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며 너무 웃다가 심장마비로 사망한 이숙(하늘이시여), 딸결혼식장에서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진 김병기(아현동마님) 등이 있다. 사람의 목숨이 아무리 파리목숨같다고 하지만 드라마에서 작가가 임의대로 죽이는것은 좀 그렇다. 말하자면 인물처리기교의 부재라고나 할가? 기괴한 인물퇴장이 그것을 증명한다.     전하는바엔 드라마에 줄거리가 없거나 인물의 실종이 잦은 기괴한 상황에서도 시청률은 치솟고있다니 시청률의 위주의 드라마짜기인가? 오로라에 대한 사랑을 인정받지못하자 갑자기 감행된 황마마의“출가”도 시청자들을 의아하게 만들었다. 나타 샤의 불분명한 각색, 그리고 퇴장, 재등장도 그렇다. 전통적으로 작가가 작품속에 인물을 등장시킨후에는 작가가 살생권을 가지는것이 아니라 엄연히 살아있는 객관존재로 되고있다는것은 문학리론에서 상식문제이다.     작가나름의 수의적인물처리에서 극정이 비틀어지는것은 둘째치고 그 역을 맡은 실재인물 배우들이 캐릭터를 잡고 드라마에 몰입해야 하는데 언제 퇴장령이 내릴지 모르는 판이라 캐릭터를 도저히 종잡을수 없어 황당해 할 일이 야단이다. 기괴한것은 이러한 무상한 캐릭터변화가 시청자들의 뒤통수를 치지만 오히려 신선감은커녕 지리멸렬하기만하다. 시청률이 오른다해도 그것은 현상일뿐 작품질의 상승은 아니다.     본작가의 드라마구상에 핵심요소는 정해진 스토리가 없다는것이라던가? 하기사 작가의 자유적구상이지만 발더듬이로 강을 건너듯하는 림기응변적인 드라마구상에서 성공작이 나오기는 근저로부터 불가능을 깔고나선것이라 사료된다. “오로라공주”에서 초반부터 중요한 사건에 련관된 인물들이 네다섯이나 특별한 리유없이 줄줄이 중도하차한다는것은 어떤 드라마에서도 찾아볼수 없는 초유의 쾌거라는 평가이다.     중요 캐릭터가 빠졌는데도 드라마가 잘만 굴러가는것이 성공의 표징인지 모르나 스토리의 변경에 따라 수시로 다른 인물을 투입하면 되고 정 이야기할게 없으면 상상신이나 노래방신, 꿈을 꾸는신 등을 지리멸렬 늘여놓으면 될수는 있겠다. 소설, 드라마들에서의 등장인물들은 작가의 가치관의 대변자이다. 등장인물들을 죽이고 살 리는 변화다단에서 작가의 가치관도 종잡을수 없는것이라고 하면 비론리적이겠지만도 결코 있음직한 창작기법은 아니다.     작가와 작품속의 인물은 종속관계가 아니다. 이점을 대가들의 걸작들에서 잘 증명하고있다. 례하면 뿌쉬낀은 자기의《예브게니 오네긴》에서 따찌야나가 늙은귀족에게 시집을 갈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고 하면서 자기 작품의 주인공의 객관적인 존재성을 승인하였고 레브 똘쓰또이도 유명한《안나까레니나》에서 안나가 종당에는 기차에 뛰여들어 자살하게 된 운명적인 귀속을 두고 억지로 살려낸것이 아니라 주인공 안나의 귀속을 울면서 썼다고 한다. 이 모든것이 무엇을 설명하는가?   “오로라공주”의 작가만이 아니라 모든 드라마작가들은 등장인물설정과 그들의 후사에 대해 사전에 예상하고 생활의 론리에 맞게. 인간의 감정발전의 규률과 론리에 맞게 구사해야 한다는것은 작가 자신을 위해서, 흔상자들을 위해서 유익한 작업이 될것임은 자명하다. 가담가담 눈썰미로 보는 드라마이지만 감수되는것이 있어서 끄적거려보았다. 천명의 관객들속에 천명의 햄리트가 있다는것을 알면서도….                                                  2013년 10월 30일
350    드라마에서 대사의 매력 댓글:  조회:9532  추천:1  2013-10-29
                                               드라마에서 대사의 매력                                                             최 균 선       흔히 드라마의 스토리는 별로인데 인물들의 대화ㅡ대사가 귀에 쏙 들어올 때가 많다. 바꾸어말하면 장면의 흐름은 지리멸렬한데 가담가담 대사가 재미있고 의미가 있어 그 드라마의 존재리유를 조금 보충해보게도 된다는 설명이 되겠다.    주지하다싶이 대사는 드라마에서 주요한 표현수단이다. 우선 주제와 내용을 확실히 알수 있도록 해주고 스토리의 진행을 이끌어주고 련결하며 인물의 성격을 구체적이고 형상적으로 드러나도록 하고 사건전후의 상황들을 자세히 교대해준다. 그리고 그 드라마의 시대적인 배경과 여러가지 정보들을 제공하며 해당 드라마의 고유특색과 드라마속에 융화되여있는 작가의 사상감정과 배경을 흔상자가 알수 있도록 확실하게 드러내는 수단으로 쓰인다. 대사란 원래 설명인것이다. 하지만 설명하는것으로 끝내 지말고 어떻게 설명다운 설명을 할수 있을것인가에 예술적탐구문제가 있다. 즉 피가 통하는 대사를 만들어야 한다는 고도의 예술작업이 되기때문이다.     이처럼 드라마의 대사는 작가가 알심을 들이여 자연스러우면서도 명확하고 가장 경제적으로 재치있게 짜놓은 입말이다. 대사의 경제성이란 작품의 흐름, 등장인물의 특징과 배경, 그 밖의것들을 짜임새있게 제시함을 의미한다. 그래서 대사는 그 자체가 문학성과 예술성,오락성, 스토리를 특별히 갖추게 된 입말이자 예술언어로 된것이다.     그러나 대사의 작용은 근근히 관중들에게 교대하는데서 그치는것이 아니라 이야기 서술수단이기도 하다. 관중이 보려는것은 “극”이기때문이다. 하기에 드라마작자는 관중의 마음을 사로잡을수 있는 희극성대사를 조직해야 한다. 여기서 “희극성”적인 대화가 되여야 한다는것은 오직 동작성의 기초상에서 주고받는 대화로 되여야만 희극성적인 매너가 있는 대화가 된다는 말이다.     대화의 동작성이란 바로 인물들의 대화속에서 각자의 성격특징, 품성, 정감과 해당사건에 대한 관점, 견해 등의 표현으로서 호상영향주는 촉매제로 된다. 인물성격과 인물관계를 둘러싸고 조직되는 풍부한 동작성적인 언어는 정절의 발전에 복무해야지 한집의 분량을 채우기 위한 얄팍한 기량이 되여서는 아니 될일이다. 특히 실내드라마에서 주고받는 일상적대화의 련속은 자칫 이런 우를 범할수 있다.     사실상 한국의 많은 가정드라마들에서 지리멸렬한 대화의 련속으로 별다른 사건이 없이 흐지부지해지는것들이 많다. 만약 인물들이 관중을 대하여 완연하고 듣그러운 말로 이야기의 진전을 이끌어가지만 극중의 인물과 관중사이에 내재적정감교류가 잘 안된다면 대사의 희극성이란 론할나위가 없어진다. 대사는 동작의 동기 혹은 진행과정의 내용을 설명하는데 그치는 일이 아니다. 드라마에서 대사자체가 동작이며 아울러 인물의 형체와 동작의 융합이 바로 그속에 있는것이다.       영상예술인 드라마에서 대사를 등장인물들의 심리나 감정의 흐름,의식의 흐름을 묘사하는 수단이기도한바 시간과 공간을 비약시키는 비약적대사도 있고 독특한 예술형식에 걸맞는 사실적인 대사가 있으며 일상회화가 아닌 정화된 대사로 나누어 볼수 있다. 그러나 무릇 대사조직에는 불가피면적인 조건부가 붙는다. 즉 이야기정절을 한방향으로 줄기차제 끌고가면서 현실적인 살아움직이는 인간의 말이여야 하며 간단명료하면서도 매력적이여야 한다. 대사의 일종으로서 독백, 방백도 마찬가지다.     통칭하여 드라마는 감정극으로서 감정이 맥맥히 흐르는 대사로 엮어져야 함은 두말할것없는바“인간은 감정동물이란 말이야”,“하늘이 활짝 개인 상쾌한 아침이군”, “그렇게 말하면 내 감정이 상하지않아?”와같은 대화에서 구태어 말하지 않아도 그런 기분을 지니고있음은 자명한것이다. 이처럼 자기의 기분을 독백이나 방백으로 말해버려서는 아무런 맛도, 재미도 없다. 리듬과 템포가 있는 신축자재의 대사, 춤과같은 아름다운 동작이 만들어내는 정서가 다분한 대사조직에 뇌즙을 짜야 한다.     례컨대 “밥먹었니?” ㅡ“안먹었어”ㅡ“왜 안먹었는데?”ㅡ“맛이 없어”ㅡ“그래서 왜 맛이 없다는건데…”ㅡ“맛없으니 맛없는거지”ㅡ“그래도 먹어야 쓸거아냐?”ㅡ“그러게 맛있게 하란말야…”이런 끝간데없는 일상대화는 간추릴수도 있다. 좋은 대사란 그 드라마에서 구체장면이 진행되는 시점에서 가장 정확한 대사여야 한다. 스케치할 때 가장 알맞는 선은 하나밖에 없다고하듯 그 상황에 맞는 대사는 하나밖에 없기때문이다.     상식적이기는 하지만 드라마가 현실자체는 아니므로 대사도 현실의 대화와는 달라져야 한다. 드라마는 현실의 생활처럼 보이지만 우리의 실생활과는 아무래도 다르기때문이다. 대사는 등장인물지간의 대화지이지만 관객에게 들려주기 위한것으로서 관객이 이미 알고있는것이라면 다시 말해줄 필요가 없다.     한국드라마들에서“내 이름은 김삼순”, “굳세여라 금순아”,“사랑이 무엇이길래”, “장미빛인생”등 시청자들과 호흡하며 시청자의 사랑을 받은 드라마들이 많기는 하지만 반면에 정절발전과 무관한듯싶은 지리멸렬한 일상의 대사로 연장되는 드라마들도 많고많다. “배추머리 금순이” 에서 한혜진은 “나 잘업는데, 아저씨가 키가 조금만 작으면 내가 업어줄수 있었을텐데”라는 금순이식 사랑표현으로 잘생긴 총각의사를 남편으로 맞게 되는 스토리와 긴밀히 련계된 대사가 인상적이다.    “내 이름은 김삼순”이 현실적인 대사로 시청자들에게 많은 웃음을 줬다면 슬퍼서 아름답기까지도 한“장밋및 인생”은 현실적인 대사로 시청자들에게 많은 눈물을 선물했다. 즉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은 드라마들속 명대사는 아름다운 미사려구 가 아닌 드라마와 시청자들의 공감대가 만들어낸것이다. 드라마의 표현중에서 80- 90%는 대사가 차지하므로 재미있는 드라마는 곧 대사의 재미에 그 성패가 달려있다고 한다. 드라마도 재미있고 재치있게 표현된 대사들로 이루어진것이 있는가하면 그저 대사이기에 대사로서 말을 하는것처럼 보이는 드라마가 있다.     작가가 일상에서 말을 잘하든 못하든 문제되지 않지만 그의 작품에서는 분명 잘 표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인물의 성격화랑이 미리 잘 그려져있어야 하고 생활에 대한 투철한 리해가 선행되여야 한다. 례하면 역설적인 대사를 쓸수 있는데 가령 "나는 네가 좋아"라고 하기보다 어떤 때는 "너같은거 정말 싫어해!"라고 하는것이 좋아한다는 표현으로서는 더 자극적이고 감동적이 될지도 모른다.     직설보다 우회적인 이른바 숨기는 대사가 있다. 례를 들어 현재는 무일푼이지만 20일이 월급날인 남편이 있다.     남편 " 여보, 당신은 얼마나 가지고있어?"     안해 " 월급전인데 무슨 돈이 있어요?"     남편 " 아, 아직도 닷새나 남았는데..."     이것은 매너가 없는 너무 일반적인 대사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숨기는 대사로 표현을 한다면 아마 아래와 같을것이다.    안해 "우리가 연극을 보기로 했었죠? 아니면 영화.. "    남편 "여보, 지금 돈 가진거 있어?"    안해 "누가 지금 당장이래요? (손가락 꼽으며) 오늘이 17일, 내일은 18일...."    이것은 “종이풍선”이라는 드라마에서의 대사로서 직방배기로 모든것을 말하지 않고 간접적으로 다가올 월급날을 이야기하지만 그래도 확실하게 상황을 나타내면서 단순히 알려주는 대사에서 느끼는바가 있게 하는 대사로 승화시킨것이다. 대사는 비약시키는 대사, 력점을 찍는 강조적인 대사, 대립성이 강하게 풍기는 대사 등이 있다      아무튼 무릇 드라마의 대사에는 감정이 쭉 깔려있어야 하거니와 정서성이 짙게 엮어져야 함은 주지하는바이다. 대사에 감정이 있어야 된다고 하지만 이 말은 언제나 우습게만 들린다. 하지만 한국의 많은 드라마들에서 감정이 결여하거나 없는 대사를 아주 흔히 만날수 있다. 감정이 없는 대사는 안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왜 자꾸 그런대로 도배질 되는걸까? 요즈음 방영되는 “오로라공주”가 매우 인상적인 귀감이 될것이다.     그 원인을 나름대로 찾아보면 첫째는 주제와 스토리에 집착하기때문일수 있고 둘째의 원인으로는 추상적으로 말하는 버릇때문일수도 있다. 그것은 사물을 생각할 때 관념만으로 발표하는 버릇이 있기때문에 살아숨쉬는 인물들의 감정교류에도 추상 성이 선행되기때문이다. 사랑이니 희망이니 하는 추상에 우리는 얼마나 습관되여 있는가? 기실 복잡다단한 현실을 보면 설명이나 추상의 말을 할 때에도 감정은 움직이고있다. 그저 원고에 쓰고마는 당연한 대사가 아닌 살아있는 인물의 가슴에서 나오는 대사가 절실하게 필요하고 실천으로 체현되여야만 점입가경으로 한계를 드러내고있는 한국드라마들이 또 다른 돌파구를 찾을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2013년 10월 10일
349    불후의 악명 댓글:  조회:8554  추천:1  2013-10-26
                                                     불후의 악명                                                             진 언       호랑이는 죽으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으면 이름을 남긴다지만 미명도 있고 악명도 있다. 악명도 미명처럼 만세불후할수 있다. 악명으로 말하면 근대조선 사람들 속에서 매국역적이라 각인된 리완용에 미칠자가 별로 없을것이다. 자신의 일세영달을 위해 반만년의 조선을 팔아먹은 만고의 죄인 “…그도 갔다. 팔지 못할 것을 팔아서 누리지 못할 것을 누린 자. 이제부터는 천벌을 영원히 받아 야지.- 1926년 동아일보)     조선의 문신이자 대한제국 내각총리대신으로, 친청, 친미, 친로, 친일코스를 차례로 밟다가 결국 친일파로 둔갑해 한일병합조약체결을 주도한 매국노의 끝판왕이자 희대의 간신. 을사오적의 두목으로 앞장서서“대한제국”을 일본에 팔아넘긴 최악, 최 고의 매국매족의 죄인이 리완용이다. 게다가 대세에 대한 감각은 뛰여나서 죽기전에 아들에게 "내가 보니까 앞으로 미국이 득세할 것같으니 너는 친미파가 되거라."는 “불세출의 명언” 을 남겼다고한다.     리완용이란 자는 어이하여 치욕의 기둥에 매달려 량지가 있는 모든 배달민족의 영원한 저주를 받게되였은가? 그는 제8대조에 이르러 가세가 기울기시작한 몰락량반의 가정에서 태여나서 리호준의 양자로 성장하면서 출세욕이 강해졌다. 리조의 순종과 사제관계를 맺어 출세의 길에 올랐고 그후 미국에서 2년 5개월간 외교관으로 근무한 경력도 있다. 그로부터 친미파관료로 변신했다.     그후 미국정권에 달라붙기 어려워지자 진로파로 변신하였다. 하지만 친로파내에서도 활동이 어려워졌고 “독립협회”위원장, 부회장과 회장을 지냈으며 나름대로는 친일이전의 경력으로는 전형적인 엘리트라고 할수 있는데…이후의 추악한 행적으로 말짱 부질없는 략력이 되고말았다. 제국주의의 집잃은 여윈 주구로 된셈이다.     그런데도 리완용을 옹호하는 야비한 자들은 그가 초창기 애국계몽운동가로서 활동하면서 조선의 개화와 독립을 추진하던중 돌아가는 국제형세에 스스로 자포자기하여 매국노의 길을 걷기시작했다고 말한다. 특히 매국노로 전락된것은 초반의 애국 개화 사상가로서 배신감을 느껴서라고도 한다. 어쨌거나 인생말년에 천하의 매국노가 된것은 스스로의 선택이며 그이전 활동이야 여하튼 결국 그는 자신의 리익과 영달을 위해 임금을 기만한 간신이자 맥국역적이다.     천성적으로 권력과 돈에 민감한 성격이였기때문에 로일전쟁을 계기로 친미주의 자에서 친일파로 변신하게 된다. 역시 최강의 매국노답게, 일본군을 등에업고 어전회의를 열고 고종을 협박하여 을사조약을 체결하하여 을사오적의 두목으로 부상된다. 그런데 웃기는것은 "나라를 위해서 이 조약을 체결한다"였다고 나발분것이다. 철면피의 극치이다. 당시 애국인사들은 리완용을 처벌할것을 강력하게 호소했다. 리완용은 오히려“시국은 어쩔수 없는 선택으로 종묘사직을 지키고자…” 하는 내용의 개소리만 람발했다. 을사조약에서 보인 적극성으로 이또 히로부미의 관심을 받고 그의 추천으로 내각총리대신, 참정대신이 되였다.     그리고 변변치못한 조선군대마저 해산시키였고 정미의병이 한창 일어났을 때 의병토벌을 주창했고 거기서“조선인 현병보조원제도”를 계획하는데 크게 일조했으며 의병장 허위가 체포되였을 때 순종에게 엄벌할것을 상소한것도 리완용이였다. 이 시기, 총리대신을 해먹으면서 형 리윤용을 궁내부대신으로, 사돈임선준은 탁지부대신으로, 승녕부총관(고종의 비서실장은 처남 조민희, 아들 리항구는 승녕부의 시종을 시키는 등 인척내각을 이룩했고 황태자책봉문제에도 참여하여 콩고물을 챙겼다.     이런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이완용의 집은 민중들에 의해 불타버렸고 자신 또한 12월 22일 명동성당앞에서 당시 현역군인이였던 리재명의 습격을 받는다. 그러나 우연히 인력거꾼 박원문이 앞을 막아서는 바람에 목숨을 건진다. 불행히도 박원문은 대신 부상을 당해 절명하고만다. 이재명 열사는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그 자리에서 재차 이완용을 저격했지만 치명상을 입히지못하고 체포된다. 리재명렬사는 합병후 박원문을 살해한 죄로 1910년 9월 교수형에 처해졌다.     리완용이 물러난후 고종은 "신은 죽는한이 있더라도 그런 매국의 거사는 하지 않겠다고 한자는 바로 리완용 아니던가! 그가 무슨 낯으로 짐을 본단말인가!"라고 통곡했다. 그리고 8월 22일, 리완용은 최후의 내각회의를 열고는 한일합병조약을 통과시켰다. 이후 1주일 동안은 숨겼다가 8월 29일자로 순종의 이름으로 발표된다.    그때 나이 52세, 그는 그렇게 나라를 팔아먹었다. 강제병탄이 이루어지자 일본으로부터 훈1등 백작작위를 받았다. 조선인이 조선 을 감시하는 "조선인 헌병제"도 이자의 아이디어였으니, 1910~1919년사이의 헌병 경찰제도제도는 사실상 이자가 만든것이였다. “3.1 운동”직후엔 "어리석은 조선인들" 이란 내용으로 시작되는 경고문을 세번이나 발표했다. 내용도 가관인데 1차는 4월 5일 "황당한 유언에 속지마라."였고, 4월 7일에 "돌이켜 자신을 구하라."라는 협박 성글을 다시썼다. 5월 29일, 3.1 운동이 가라앉자 조선은 일본의 통치아래 복지가 증가했으며, 실력양성에 힘써야 한다는 최종글을 썼다.      당연하게도 다시 집이 불탔다. 이글의 발표로 다음해 후작으로 승급하였고 팔아먹을 나라도, 국민도 없어지자 조용히 살다가 1926년, 68세의 나이에 페염으로 죄많은 목숨을 마쳤다. 최후의 왕인 순종이 죽기 4개월전이었다. 인간의 오복에 하나가 고종명인데 다른 친일파와는 다르게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편안하게 죽었다. 다만 리재명의사가 찌른 칼날이 평생 그의 더러운 심령을 옥죄였을것이다.     그의 무덤은 전라북도익산군(現익산시) 랑산면에 있었는데 매국노이다보니 지속적인 훼묘사건이 일어났다. 그나마 일제강점기때는 그래도 량반이였고 광복이후에는 매우 심하게 훼손되였다고 한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훼묘사건이 발생하여 1978년 에 리완용의 증손자 리석형이 파묘를 하고 유골을 화장했단다.     처세엔 뛰여나고 령민것은 확실한것같다. 초기에는 그의 령민함을 감탄했던  당시 교사겸 의사인 알렌이란 사람이 "이완용? 그는 한마디로 기계같은 사람이다."라는 평가를 내렸다한다. 머리는 잘돌았으나 줏대는 없는 인간 즉 령혼이없는 벌레같은 인간이란 소리였다. 알렌은 또 "내가 구만리에 사천년력사를 봤지만 조선황제같은 인종은 처음보는 인종이였다."고 평가하였는데 역시 그나물에 그밥이랄가,     개체형상으로 보기에는 '매국노'의 이미지와는 대조적이다. 집에서는 항상 한복을 입고 부정축재에는 애썼지만 첩하나 두지않다. 하지만 이런 개인적인 도덕성 등이 결코 그를 정당화할수 없었다. 사이비한것은 창씨개명한 이름은 리노이에 칸요우(李家完用). 그냥 리씨가문의 완용인데 죽을때까지 일본말 한마디도 할줄 몰랐다는것이다. 이런자가 1906년 학부대신시기에 공교육의 일본어 시간도입을 추진하고 교수 시수가 가장 많은 과목으로 만들어버렸다. 일본에서는 리완용이 아니면 할수 없었던 일이라며 칭찬했다고 한다.     당시 한국최초의 민간신문인 “독립신문”은 그를 가리켜 “마음이 바르고 나라를 자기목숨보다 중히여기는 정치가', '대한(大韓)의 몇째안가는 재상”, '황상폐하를 보호하여 우리나라의 자주독립의 권리를 튼튼케 한 인물”이라고 칭송했다니 얼마나 아이러니칼한가? 신문도 썩었거니와 그당시 조선땅에 령혼을 팔아먹은 인간들이 얼마나 득시글거렸을가 짐작이 가지않는가?     매국노 리완용이 남긴 언론에 “명언”이 많다. “우리는 미국 같은 부강한 근대적 국가를 건설해야지, 남의 나라 노예가 되는 폴란드 같은 나라가 돼서는 안 된다.” - 1896년 7월, 이완용 중 발언, “해가 아직 바다속을 떠나지 않았을 땐 온산이 어둡더니, 하늘로 떠오르니 온 세상이 밝아지는구나.(未離海底千山暗及到天中萬國明)”- (이완용이 일장기에 써넣은글)    1905년 “을사늑약”당시 리완용은 “일시적으로 외교권을 일본에 잠시 맡긴것뿐이다. 나라의 힘을 키워 다시 찾아오면 되는것이다.”라고 했다는데 참으로 승냥이에게 양을 맡기고 족제비에게 닭을 맡기면 안심된다는 한심하기 짝이없는 무뇌가 아닌가? 한나라의 국권이 무슨 이웃집에 맡겨두었던 보리자루인가?1926년 숨질당시 “힘없는 다리를 부축해달라고 남에게 부탁한것이 어떻게 나라를 팔아먹은 일이라고 매도당해야 하는가?” 라고 뇌까렸다고 한다. 이런 민족패류임에도 그를 위해 찬송가를 부르는 사람들이 지금도 있다는것은 참으로 배달족의 수치가 아닐수 없다.     2011년 5월 20일 리완용에 대한 평전이 나왔다.(김윤희의 ) 저자에 따르면 “이완용은 “합리적인 근대인”이었기에 ‘충군(忠君)’과 애국이라는 이데올로기적 가치를 위해 용기를 내거나 제국주의의 폭력에 분노하기보다는 자신을 포함한 다수가 문명화의 혜택을 누리기 위해 절대로 분노하지 않는 이성적 인간이었다.” 참으로 알량한 리성이다 소위 '이성'라 할진대 근대적리성, 성찰이 결여된 도구적리성, 급공근리의 리성이라해야 해야 사개가 맞지않을가?     또 어떤 글에서 지껄이되 “…고매한 학식과 인품으로 조선과 일본정치인은 물론 일반백성들에게도 존경을 받은 인물이였다.…리완용은 알려진것과는 다르게 고독하게 애국의 길을 걸어왔던 인물이였다…”이게 머리를 하늘을 향하고 사는 사람의 머리에서 나올법한 언설인가? 인자견인 지자견지(仁者見仁 智者見智) 라는 말이 있지만도 이건 아니다. 그저 가재는 게편이라 역시 한바지가달안에서 노는 얼간이들이라 할가?     소위 국회의원이라는 사람도 “가쓰라·태프트 밀약 혹은 협약 같은 것은 애초부터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것은) 기존의 미국 입장을 담은 미·일 간 의견 교환의 대화일 뿐이다. 따라서 있지도 않은 밀약에 근거해 일제 식민지화· 분단. 한국 전쟁 발발의 책임을 미국에 돌리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이처럼 친일매국에 대한 한국인들의 판단은 늘 극과 극을 달리하니 무지인가? 아니면 천진란만인가?친일친미 사대주의가 삼백륙심사절골 마디마다에, 혈관속에 속속들이 슴배였는가?     1905년 러일전쟁이 끝났을 때 이 전쟁의 종결을 위한 평화조약 체결을 중재했던 당시 미국의 대통령 루주벨트는“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적에게 주먹한방 제대로 휘두를줄 모르는 국가”라고 하였는데 당시 조선으로 말하면 비하인것이 아니라 정통을 찌른 말이 아닐수 없다. 리완용같은 천인공노하는 매국노를 기리는 사람들이 지금도 많은데 그때야 여북했겠는가? 천고에 명성을 날리지 못하면 만세에 악명이라도 남기라는 말이 있지만도 리완용같이 추악한 악명만은 남기지 말아야 할것이다.     력사는 승리자가 쓴다지만 최종의 승리자는 현세의 승리자가 아니다. 력사는 진실만을 기록하지 않는다. 그러나 력사는 시간앞에 무릎을 꿇는다. 시간이 지나면 력사의 진실이 드러나고만다. 개체로 말하면 인생은 길고 짧음이 있을뿐 사필귀정이요 인과보응이라 그가 생전에 선행이 아니였다면 한짓은 죽어서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하는법이다. 이른바 력사에 남는다는것은 재래로 그러한것이다. 하긴 악명도 명성이니까 남겨져있는데 천추에 용납못받으니 어찌하리요.                                                         2012년 8월 15일
348    가변속에 불변 댓글:  조회:7750  추천:4  2013-10-21
                                                          가변속에 불변                                                                 야 조     모든것이 변한다는 론리는 범세계적철학이요  절대진리이다. 불가에서 설파하는 삼법인(三法印)에서 법(法)이란 확실하고 절대 변경할수 없다는 뜻의 진리를 주장한다. 삼법인의 첫번째가 제행무상(諸行無常)이다. 현상계(現象界)에서 인간이 경험하는것 (자연,물질,마음)은 시간의 흐름속에 항상 끊임없이 변한다는 뜻이다.     흔히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했는데 근세기에 모든것의 변화속도가 가속화되고있다. 우리는 그런 진실속에서 살아간다. 다윈은 모든 생물도 생존경쟁의 결과적자생존에 의하여 변한다고했다. 그속에 만물의 령장인 인간의 무형의 마음마저 시시각각으로 변하여 인생무상이라 하는지 모른다. 변화다단한 이 세상의 개인, 가정, 사회,국가 나아가서 지구촌 전체가 유형무형의 변화속에서 운행되고있다.     영원한것, 보이지않고 변하는 힘은 불가항력적이다. 히말라야설산의 만년설과 북극해의 억년빙산마저 녹아서 해수면이 높아지고…이 모든것이 변한다는 진리만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는 립증이다. 그러나 변화를 원치않는 관념이 있다. 그런 관념을 가진 사람들을 보수라한다던가, 관념갱신이란 습관세력과 주관편견의 속박에서 벗어나 새로운 문제는 새롭게 해결방법을 구사하는것이라 개괄한다.     어떤 리념의 틀속에 있는 사상관념으로 하여금 구습관세력들의 금고(禁锢)와 속박을 타파하고 주관세계의 사유의식을 부단히 변화하는 객관실제에 걸맞게 결합시킴으로써 동탕하는 현실에 어긋나는“사유습관”과“주관편견”을 가차없이 버리고 발전변화하는 관점, 일컬어 미래지향적인 관점으로 개체의 삶이든 국가이든 경영해야 꽉 막혔던 앞길이 바람직하게 열릴것은 론증도 필요없는 정답이다.     경화된 관념에서의 해탈인즉 행동의 선도자이고 백사를 처리함에서 전제라고 한다. 동서남북, 사면팔방을 보아야 하거니와 세로도 보고 가로도 보면서 처사해야 사유가 사통팔달이 될것이 자명한데…돌고도는 세상에 적응하려면 관념갱신부터 앞세워야 한다는것은 기성도리인바 관념경화에 사유의 활약성은 운운할수 없기때문이다.     유명짜한 처칠이 말했던가? “영원한 친구가 없고 영원한 적이 없다”고, 이 말은 지금 리념세계 여하를 불문하고 즐겨 인용하는 지구촌의 통용어로 되여있다. 지금은 실용주의시대라고 한다. 그래서 적으로부터 벗이 되고 벗으로부터 적이 되여지는데 지레대는 손익이다. 말하자면 리익앞에서는 적대감도 엿가락이 되고 상호리익충돌앞에서는 벗이고 우정이고“퉁퉁디(统统地)”네미덜머리가 되여지는 손익계산시대다.     몇십년, 몇백년 식민통치자로 군림했던 나라들과 벗이 되여지고 총칼을 마주하고 사투를 벌리던 나라들도 친하게 된다. 례하면 미영과 독일, 이딸리아, 미국과 월남, 미국과 일본, 한국과 일본, 동유럽의 원사회주의권과 서구라파국가들…뒤를 받쳐주며 발바리질을 시키던자를“토사구팽”할수도 있는 리익천하인지라 누구와도 친할수 있고 누구와도 잠시 친한체 할수도 있다. 관념의 갱신인가? 리해득실로 야합된것인가?     그런데 나라를 빼앗고 3천만 조선인민을 도탄에 몰아넣었던 식민지배자와는 동맹을 맺을수는 있어도 리념이 다르다는 리유로 동족이라도“융합불가”라는 관념이라면 얼마나 허황한 고정관념인가? 이런 불변의 편견이 만연되고 고질이 되였다면 단군족의 불행이 아닐수 없다. 영원한 친구는 없어도 영원한 주적만은 있는가? 변화속에 불변이란 말인가? 우습게 비틀려진 편견과 고정관념 그리고 선입견…그것이 핏줄이 같은 동족에게 무슨의미가 있을가? 이불안에 활개짓밖에 더 될것인가?     민족이란 하나의 단일한 생명군체이다. 민족은 저절로 나온 생명군체이며 누가 만든것이 아니다. 스스로 형성된 생명군체이기에 누가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지시할수도 없고 강자의 용납이고 불용납이고가 없다. “나”는 “나”이기에!민족이란 스스로 만들어진 집단체이기에 스스로 생존한다. 이것이 한참된 민족의 자주의 길이다.     민족이 강성해지는 제1보는 하나로 뭉쳐야 한다는 민족심에서 비롯된다. 사람은 혼자이면 약하다. 약하기때문에 기시당하고 롱락당한다. 민족은 하나의 생명체인 동시에 또 하나의 인격체이다. 인격이란 단순한 생명체가 아니라 보다높은 정신적생명체이다. 이 정신적생명력은 민족이 하나의 철옹성으로 솟아나게 하는 원동력이며 세기적숙망인 민족진흥, 민족강성의 탄탄한 담보이다.     한집안식구끼리 싸우려는것은 기실 일방적승리주의를 고집하는것으로서 그집은 패가망신한다. 한민족사이에 일방승리주의를 주장하면 그 민족은 반드시 자멸한다. 남북분단은 단순한“지리적분단”이 아니라 세계적으로는 정치리념대립이다. 민족분단 68년, 부끄럽고 분노에 가득찬 비극을 해결하는 방도에 공동대책은 묘망한데 날이갈수록 평백성들마저 불공대천의 적대감만 키우고있으니 슬픈일이 아닌가?!     바다의 밀물처럼 하늘의 구름처럼 통일의 광장에서 자연스럽게 만나기 위한 길은 영영 막혔는가? 그러지 않아도 민족통일의 길은 멀고멀다. 한것은 미국을 위수로 한 주변강국들이 저애하기때문이다. 그러나 민족세계의 저류는 민족융합이다. 하나가 되면 살고 흩어지면 자멸뿐이다. 민족을 살리는것은 그 누구가 아니라 옹근 배달민중이다. 제민족끼리 싸우면 민족정기를 상실하고 력사의 비운을 껴안을 일밖에 없다.     생각하면 단군의 후예들은 불쌍한 민족으로 거듭나고있다. 조선반도에 고조선이 생긴이후로 끊임없이 외세의 침략에 시달리면서도 근근히 생명줄을 이어왔지만 수난많은 민족이다. 삼국시대부터 오늘날 남북으로 나뉘기까지 한민족이지만 손바닥만한 땅덩이를 가지고 천년이 되도록 끊임없이 동족상잔의 비극을 연출해왔고 외세의 힘을 빌어서라도 일방적으로 승리하려고 민족의 정체성을 말아먹은 민족이기도하다.    력사가 증명하다싶이 명명백백한 사실은 그 누구도 배달민족의 운명을 배달민족의 리익에서 념려해주지 않는다는것이다. 관련있든 없든, 대국이든 소국이든 자국의 리익을 중심으로 조선반도문제를 대한다. 그런데 자국의 리익은 내팽개치고 타국을 위하는데 열중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들인가? 통일이란 선물은 하늘에서 뚝떨어지는 호떡이 아니듯이 아무도 팔을걷고 민족통일의 광장을 닦아주지 않는다.     아득한 옛날 신라가 당군을 업고 고구려를 멸망시켰다. 신라의 왕족인 궁예가“내가 그 원쑤를 갚으리라”하고 선언하여 민심을 얻었고 후고구려를 세웠다. 견훤도 이민족인 당나라의 힘을 빌어 백제를 명망시킨 원한을 갚겠다며 후백제를 세웠다. 그리하여 후삼국시대가 열리였다. 당시에 벌써 삼국에 끈끈한 동족의식이 있었다는 력사적고증이 아닌가? 이 점에서는 문명하다는 현대인들이 도저히 미치지 못한다.     지금 단군의 후예들은 진정 한민족인가? 극과 극에서 장단점을 가진 조선반도, 진정 선진민족으로 거듭날수 있는 기질적우수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멸하려고 절치부심하는 민족, 작디작은 땅덩이를 둘로 나눠놓고 아웅다웅하는 양상이 세계인들의 눈에는 얼마나 웃음거리일가? 세월이 좀먹지 않고 모래가 싹트지 않지만 언필칭 변화속에 있다. 그래서 변화하는 대방의 립장에서 문제를 봐야 한다.     리념만 배배꼬는것은 현대사유방식이 아니다. 련합국에도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주권국을 제멋대로“반국가단체”라고 우기니 국가와 단체의 개념조차 모르는 답답한 사람들이 아닌가? 국가대 라 스스로 제혀씹기가 아닌가? 동족에 대한 적대감만은 불문률이라는 관념은 21세기 관념치고는 제로이다. 곰팡이낀 그런 관념을 고집하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 각축장같은 인간세상에서 일방적승리주의가 통할것인가? 오직 공생할수 있는 민족융합의 길로 나아가는 길외에 민족이 부흥하고 강성해질 길이 또 있는가?!   말하자면 자구지책말고 기댈곳이 나변에 있는가 하는 말이다.                                                                                         2013년 8월 20일
347    애정시조 (100수)-70-100 댓글:  조회:8471  추천:0  2013-10-18
                     1. 사랑의 신비함은 放电이 아니여늘                          열광아 태질한들 그뉘가 말릴소냐                          사랑이 비극이됨은 겪어봐야 알리니                        2. 황홀한 불행이란 사랑에 미치는것                          불행한 황홀이란 학문에 미치는것                          사랑에 감사한 마음 인생을 풍미해                        3. 참사랑 깊이로 진정을 숨겨두고                          욕정은 미친듯 허위를 불태우네                          사랑의 긴련속극은 결말을 봐야하리                      4. 가신님 무덤가에 묘비를 세워놓고                          묘지명 쓴다할제 내사랑 세글자라                          금방에 잊혀진다면 두번다시 죽인격이                        5. 미모의 작은 꿀벌 시간을 지워가고                          현숙한 마누라는 세월을 잊게 하네                          세상을 하직할 때에 어느뉘가 우실가                        6. 쾌락은 마취제라 육신이 깨여나면                          아픈건 마음이라 공허가 흐느끼리                          사랑이 전재산이면 심령세계 부자라                        7. 이른봄 꽃이피여 여름에 무성하고                          가을에 열매맺아 겨울에 향수하네                          사랑의 춘하추동을 알뜰살뜰 가꾸세                        8. 봄날에 꽃핀듯이 화사하게 만나더니                          여름날 재글재글 늦가을에 된서린가                          겨울엔 빙설세계에 얼음되니 변덕일다                        9. 밀월은 단꿈처럼 한달에 끝나지만                          인생은 그 한달에 끝나지 않으매로                          사랑의 깊은 뿌리를 미래에로 뻗거라                      10. 진실에 아름다운 모든것 스며있고                          사랑엔 진실함과 미쁨이 함께있네                          사랑꽃 만개하기에 인생마당 됴오타                       1. 수집은 첫키스는 랑만의 첫서정시                          사랑한 두령혼이 하나로 녹여붙어                          달콤한 입술로 맺는 성스러운 묵결이요                       2. 녀인의 눈물줄기 숨김없는 마음의 글                         감동된 마음만이 숨겨진뜻 읽으리라                         진실한 두마음에는 리별이란 없노라                       3. 사랑은 미묘하고 감동스런 선률이라                          풋사랑은 경음악, 불붙으면 쟈즈곡이                          결혼은 통속음악요 리혼이란 류행곡                                    4. 눈에서 생긴사랑 눈에서 스러지고                          입으로 하는사랑 침처럼 내밷으리                          시종이 일관하여야 사랑이라 할건듸                       5. 사랑의 여린나무 뭇손에 잘꺾이고                          그언제 꺾였냐며 새움도 잘트더라                          아서라 자주꺾이고 결실인들 이시랴                       6. 공방형 만들기전 사랑이 있었니라                          천금을 벌기전에 사랑을 잃었니라                          죽어서 가져갈것이 사랑밖에 없고녀                       7. 련민은 숭고하고 성결한 감정이라                         동정의 닭알에서 사랑의 암탉들이                         여러번 까나왔거니 녀인들의 미덕인가                                        8.  만나자 뼈물러도 만날수 없는것이                                    피하려 애를써도 피할수 없는것이                          얄밉다 사랑신이여 네없이는 못살아                            9. 태울듯 타올라도 심장은 고동치니                           애욕의 불길속에 타죽어도 좋다하네                           사랑이 죽음보다도 더 강하단 말인가                        10. 어쩌냐 죽자살자 지은맹세 곧잊으니                           분노한 가슴들에 저주가 태질하리                           사랑은 그렇게 죽고 산사람은 남는거여                          1. 거절에 우는사랑 손수건 찾아들고                           배반한 사랑에는 복수의 칼을갈리                           사랑의 인수분해엔 눈물만이 남느니                       2. 련애는 처녀총각 함께한 가속운동                         결혼은 애정속에 치렬한 화합반응                         눈뜨고 하던 애정극 한눈감고 보더라                       3. 배반의 부두가에 슬픔을 부리우고                         망각을 조개처럼 모래에 묻으렴아                         저보아 밀물을 따라 새출발선 떠오네                                   4. 사랑은 미몽이라 저저히 꾸더라만                         아무나 꾸는꿈이 아닌줄을 모르나냐                         애정의 실제용량은 네심령의 용량이여                       5. 제때에 도착하는 사랑의 급행렬차                         아무도 제시각에 타보지 못했다네                         아희야 네올랐다면 종착역을 묻지마                     6. 사랑의 만리성이 울어서 무너졌냐                        운다고 옛사랑을 불러올수 있으리요                        눈물의 골물터져도 익사자는 너희뿐                     7. 따스한 사랑이란 정으로 나눌때요                       아름다운 사랑이란 두령혼이 하나일때                       황홀한 사랑의 순간은 불타는 몸 다녹을때                                                            8. 사랑이 맹목이면 순수하다 하리라                               합리성 따져가면 무미건조 슴슴타                       사랑은 막무가내한 이률배반 그뿐임,                     9. 두눈을 감을때도 떠오르는 사람은                       못잊을 그리움을 남기고 간 님이요                       눈뜨고 생각는 사람 아픔을 준 미운이                        10. 사랑은 그대를 초라하게 만들더라                        사랑은 당신을 눈부시게 만들더라                        천사도 사랑에 빠져 천국을 잊더라                                                     1. 사랑은 감미로운 한잔의 술이여라                          리성과 비리성의 누룩으로 빚은밀주                          마시고 혼곤해지면 사랑의 시작이라                       2.  사랑을 하려거든 생활을 사랑하라                           생활을 사랑하면 로동을 열애하리                           애욕의 시정배들은 어느것도 못하리라                       3.  사랑이 풍경이면 절대경 아니리요                          자고로 문인들이 사랑가에 목쉬였ㄴ[                          두어라 결말없는 시 감탄표는 있더냐                       4.  사랑을 하노라면 바보가 되느니라                          사랑에 미쳐나고 현명할수 없는것을                           허무한 음유시인이 랑만을 읊을뿐                        5.  사랑은 성숙도를 재이는 눈금자여                          각자를 값매기는 저울추가 되더라만                             분별이 너무심하면 사랑이 도망가네                       6.  위인도 권력자도 미인앞에 웅성일뿐                          가인도 침대에서 녀자로만 남을뿐이                          세상에 공평한것이란 애욕뿐이 아니랴                                          7. 인간은 사랑에서 완성되여 가거늘                         남자가 녀자보다 지력으로 우월하면                         녀성은 희생으로써 웅성보다 위대해라                       8.  사랑의 절정위에 행복의 문이있네                          초련엔 랑만적인 서정을 읊조리고                          결혼은 끓는 여름과 가을정취 즐기라                       9. 인생이 억수로 퍼붓는 폭우라면                         운명은 구멍이 숭숭한 우산이요                         사랑은 알뜰살뜰히 그것을 깁니라                      10.  사랑은 흡인력을. 결혼은 약속력을                           전자는 정의 힘이요 후자는 리성의 힘                           아무도 이 인력에서 벗어날수 없더라
346    애정시조 (100수)-40ㅡ60 댓글:  조회:8202  추천:0  2013-10-14
                    1. 련정은 잘 모를때 불길로 치솟거늘                         몰랐다 후회마라 알고나면 더 알리니                         그래서 동네혼사가 어렵다고 했니라                      2. 사랑은 지력으로 하는것 아니여라                          초련이 열련되고 련애학교 졸업하면                           미구에 결혼이라는 사랑학교 첫개학                      3.  사랑이 사탕이냐 씹다가만 껌이더냐                           서로가 잊지못할 사람으로 남았다면                            아파도 너의 사랑이 진심인줄 알거라                      4.  서로가 지은빚을 갚는듯이 살아가며                            화내고 풀어주고 불평하고 동그리는                            끈질긴 찰떡궁합은 가난해도 살만해                         5. 잔들어 마시기전 벌써부터 취해오고                            마시면 알딸딸한 만취되는 술이있어                            爱情酒 건배한다면 취생몽사 되리라                         6. 사랑은 황금욕의 함수가 아니더라                            사랑은 루만금의 자변량 못되더라                            사랑의 가감승제에 정답이란 미지수                                       7. 사랑아 명함장에 뭐라고 쓴것이냐                            예술의 주제라고, 인생의 주제라고                            뭐이든 그게 대수냐 좋으면 다인것을                         8.  사랑과 인생이란 동의어 아니던가                            사랑의 비밀인즉 인생의 비밀되고                             7정에 희로애락이 사랑책의 내용되고                         9. 젊어선 무지개꿈 늙어선 추억이요                           사랑이 자성하면 인생의 자성이라                              인생은 유희라지만 사랑만은 아니여                      10. 사랑은 한권의 책 영원히 미완성고                           젊어선 랑판파요 중년엔 황당파극                           늙어서 가을산문에 에필로그 쓰리라                                          1.  연습도 할새없이 등장하자 막열리니                         실패작 되더라도 둘이만의 금서인걸                         읽을때 감추어둘 때 뚜껑을랑 씌우소                                       2. 사랑은 꽃구름이 비구름이 될때 있고                         잔잔한 우물되고 천리장강 격랑되고                         지심속 광맥같아여 캐고캐도 못캐리                      3. 랑만에 넘친사랑 련환화가 될터이요                        파란이 만장하면 초사본이 될것이되                        부디나 리혼이라는 절판서는 내지마                        4. 아담과 이브씨가 금단이라 욕심냈듯                        련애에 방애자는 붙는불에 키질하네                        아서라 들뛰는 사랑 고삐인들 있을고                      5.  얼굴에 꽃노을은 爱情树에 첫꽃이요                         이브가 금단먹고 깨우친 지혜랑께                         부끄럼 모르는 처녀 운치인들 이시랴                      6. 세상에 아름답고 멋진말은 사랑이여                        사랑이 없는세상 엉겅퀴만 무성하리                        사랑의 한갈래길은 绿洲가는 길이여                      7. 사랑은 리해이고 승화된 배려이요                        증오란 찌꺼기요 싸늘히 식은재여                        사랑의 금빛궁전은 지성으로 열어야                        8. 사랑신 찾지마라 공방형 토템되니                         쥬피터 화살촉도 지페로 만드노라                         사랑이 팔리던 시각 눈물먹고 죽었지                      9. 사랑도 기술이여 진솔하면 웃기니라                        사랑은 팽이여라 칠수록이 팽팽돌고                        생명의 불꽃인 사랑 정염을랑 불살라                     10. 사랑해! 처음하면 천사의 선언이라                          사랑해! 두번째면 달콤한 황통이여                          부부간 사랑해요는 타협조의 구두어                                       1. 사랑은 오해이요 착각의 미학이여                        이루지 못했기에 첫사랑 되여지고                        애달픈 짝사랑이라 평생토록 못잊지                     2. 자연의 대걸작은 노을과 미인인데                        아쉽네 좋은것과 고운것이 순간이라                        단촉한 아름다움이 소중한줄 알괘라                     4. 사랑은 눈이부신 마음의 빛이되고                        인생에 수를놓는 지혜가 되더란다                       사랑의 실책인즉 곧 인생사에 败笔이여                     5. 사랑의 바다에는 꽃물결도 있거니와                       사나운 폭풍있어 파선될수 있더니라                       항구는 멀고멀거니 열심히들 노저어라                      6. 불타지 않는다면 사랑이 못되여도                        보르르 잘끓어도 참사랑 아닐터이                        녹일듯 거찬 불길에 지혜랑도 증발돼                      7. 시작과 대단원이 그렇게 다른것은                        아마도 전쟁과 사랑이란 두가지리                        사랑의 유적지에는 비애가 누워있다                     8. 어젯날 사랑했던 사람은 새겨두라                       오늘은 네사랑을 가슴에 세워두라                       사랑은 애를 쓴다고 얻어지지 않나니                     9. 사랑의 늪이좋냐 폭포가 더좋으냐                        련정의 물속에는 해와달 없거니와                        좋아서 빠진것이니 익사해도 가만둬                   10. 현대의 애정신도 로출증에 걸렸도다                        키스도 공중앞에 전시하고 자랑하네                        아서라 최다정인양 남을위한 련애냐
345    대학살만행은 잊혀지지 않는다 댓글:  조회:8971  추천:0  2013-10-11
                                         대학살만행은 잊혀지지 않는다                                                            발취문       조선민족의 백년숙적 일제가 지난날 우리 민족에게 감행한 미증유의 죄악은 결코 세월의 물결에 씻겨지지 않는다. 쌓이고 쌓인 민족의 원한은 날이 갈수록 더 생생히 살아날뿐이다. 력사는 똑똑히 기억하고있다. 조선“로동신문”에서 발표한 재료를 여기에 발취하여 인용한다.    “지금으로부터 90년 전인 1923년 9월 1일 간토지방에서 일본역사상 최대의 지진이 일어나 막대한 인적, 물적피해가 났다.”며 “이 지진으로 인하여 수많은 사 망자와 행방불명자가 났으며 10여개 도시와 마을들이 불바다로 변하여 120 여 만명의 주민들이 한지에 나앉았으나 그러나 일본반동정부는 사상자들과 리재민들에 대한 아무런 구제대책도 취하지 않았다. 일본인들속에서는 자기들을 돌보아주지않는 정부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였고 민심이 소란해졌다. 일본반동정부는 폭동에로 넘어갈 기세까지 보이고 있는 인민들의 반정부적 감정을 딴데로 돌리기 위하여 혼란이 일어난 책임을 조선사람들에게 넘겨씌우기 위한 무서운 음모를 꾸몄다. 일제는 심각한 사회정치적위기를 모면하는 동시에 합법적으로 재일조선인들을 탄압하고 학살할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발악하였다.”     “조선인집단학살은 참으로 상상을 초월하는 만행이었다. 일제는 조선사람들을 10여명씩 묶어 제방에 세워놓고 새로 만든 기관총의 성능검사대상으로 삼아 죽였고 해탄로에 집어던져 불태워죽였고. 임신부의 배를 가르고 태아를 꺼내여 밟아죽였고 음부에 참대창을 박아죽였다.”    “당시 조선인학살에 직접 참가하였던 한 일본인경찰은 참살정형은 도저히 입으로 표현할수 없었다.…어린아이들을 줄을 세워놓고 부모들이 보는 앞에서 목을 잘랐으며 그다음 그 부모들도 찔러죽였다. 살아남은 조선사람들의 팔을 톱으로 켜는자도 있었다. 그것도 도중에서 팽개치고 또 다른 조선사람들을 톱질하는 모습은 보기도 끔찍하였다. 죽은사람들의 눈을 식칼로 도려내는것도 보였다. “… 경찰서구내는 피바다를 이루었으며 장화를 신지않으면 걸을수 없는 형편이였다. ” 라고 실토하였다.”     이 신문은 “실로 일제야수들의 만행은 말과 글로써는 다 표현할수 없는 전 대미문의 야만행위였다. 이때 일제야수들이 무참히 학살한 조선사람의 수는 무려 2만 3000여명이나 되였다. 재일조선인들에 대한 일제의 귀축같은 살륙만행은 그들이야말로 인간증오와 민족배타주의사상, 야수성이 골수에 꽉배인 천인공노 할 야만들이고 사람잡이를 유희, 도락으로 삼는 살인마, 조선인민의 철천지원쑤 라는것을 똑똑히 보여주었다.”며 “조선사람들의 피로 얼룩진 간토대지진을 계기로 한 조선인살육만행은 조선민족을 말살하기 위하여 일제가 감행한 죄악의 일부이며 침략과 략탈, 파괴와 피비린내 나는 살륙만행으로 얼룩진 일제의 범죄행위 의 한토막에 지나지 않는다.”…     또 다른 글에서 퍼온 글을 간략해 서술보자. “북한에서 조사한 정신대 보고서”        일제가 감행한 "종군위안부" 범죄사건에 대한 진상조사 보고서     ㅡ1993. 8. 평양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일제의 조선강점피해조사위원회ㅡ     …이기간 일본이 감행한 수다한 잔악한 행위로 말미암아 조선에서 징용, 징병, "정신대" 등의 명목으로 600여 만명이 강제련행되고 "종군위안부"으로 근 20만명이 끌려갔다. …일본군은 성봉사를 거절하는 여자들에게 갖은 폭행을 다 하였다. 그래도 말을 듣지않을 때에는 "종군위안부"들을 다 모아놓고 그들이 보는앞에서 가장 완강히 반항하는 여자들을 군도로 목을 베거나 생식기에 대고 총을 난사하는것과 같은 잔인 한 방법으로 처형함으로써 다른 "종군위안부"들을 순종하게 하였다.     일본자민당 전 중의원 의원이며 자민당의 장로이며 중의원 부의장인 아라후네가 1965년 11월 20일 선거구민들앞에서 강연하였는데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조선인 위안부 14만 2,000명이 죽었다. 일본군인이 죽여버렸던것이다. " 일부 일본군부대는 전황이 위급하게 되자 "종군위안부"들을 그냥 내버리고 저들만이 도망쳤다. 그리하여 나이어린 "종군위안부"들은 말도 모르고 지형도 모르는 이국땅 무인 지경의 정글속에서 행방없이 헤매지 않으면 안되었다. 방치된 "종군위안부"들 가운데서 대다수가 낯설은 이국땅의 이름모를 고장에서 마을을 찾지못하여 굶어죽거나 폭격에 희생된것으로 보인다. 일부만이 갖은 고생을 다하다가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돌아올수 있었다.…     지금까지 "종군위안부"들의 명단이나 총수자를 확인하는 공적자료가 발견된것은 없다. 그러나 "종군위안부"들의 총수를 20여만명으로 추산할수 있는 근거자료는 얼마든지 있다. 당시 일본군내에는 "니꾸이찌"라는 일본말이 광범히 유통되었는데 이는 "일본사병 29명에게 1명의 위안부가 당대되었거나 필요하였다"라는 뜻이다. 이상의 사실자료를 가지고 "종군위안부" 피해자수를 추산해보면 대략적인 수자가 나온다.     300만명 ÷ 29명 =10만 3,448. 3명,12년동안 성봉사 강요를 견디어낸 "종군위안부"은 아직 확인된것이 없으므로 병, 사망, 도주 등으로 발생한 결원을 부단히 보충하였다는 제반사정을 고려하여 유지하고 있던 "종군위안부"들의 총수자를 적게 잡아서 1.5~2.0배로 환산하면 10만 3,448.3명 × 1.5명 (2.0명) =15만 5,173~ 20만 6,896명이 된다. 1941년이후 여성들을 대대적으로 더많이 련행하였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종군위안부"의 총수를 20여만을 훨씬 넘는 것으로 추정할수 있다.     일본 정부와 군부는 조선녀성들을 "종군위안부"으로 끌어갈 당시 차후에는 그들을 소멸할것을 전제로 하였다. 일본군부는 "종군위안부"들의 생명과 건강 그리고 그들의 생식능력을 보존하기 위한 그 어떤 법률이나 규정을 제정함이 없이 소모품처 럼 마구 취급하였다. 일본병사들이 "종군위안부"들에게 마음대로 폭행하거나 살해한 자료는 수없이 많으나 그러나 행위를 감행한 일본병사의 죄행이 일본군대의 법정에서 취급되었다는 자료는 아직 발견되지 않고있다. 즉 일본은 조선민족 자체를 말살 하려 하였기때문에 근 20만명에 달하는 방대한 규모의 젊은조선녀성들의 존재자체와 그 생식능력을 소멸하여도 일본의 법률에 저촉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당시 실시 되고있던 조선민족 말살정책에 부합되였던것이다.     이외600여만에 달하는 조선의 청장년들이 징용, 징병, "정신대" 등 각종 명목으로 국내와 일본의 탄광, 광산 그리고 공사장들에 끌려가 노예노동을 강요당하였으며 전쟁마당에 내몰려 대포밥이 되거나 불구가 되었다. 일제의 조선강점기간 100여 만명의 무고한 조선사람들이 희생되었다. 로동신문은 끝으로 “일본당국자들이 정의와 량심에 도전하면서 과거청산을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것처럼 여기며 요리조리 회피해보려 하다가는 언제가도 국제사회의 저주와 규탄을 면치못할것”이라고 경고했다.     ㅡ전쟁은 인간들이 인성을 내치고 벌린 살인광대극이다. 네죽고 내가 사는 전쟁마 당에서 인도주의, 인간의 선량지심이 설자리가 없다. 결국 전쟁당사국 사이는 피장파 장인것이다. 그러나 일본이 무고한 조선인민을 학살한것은 결코 전쟁행위가 아니다. 일제의 살륙만행은 많은 잊어야 하는 사실들에 속할수 없다.(작성자)                                                     2013년 9월 3일 ( 발취)            
344    미국은 사실상 제3차 세계대전중 (펌글) 댓글:  조회:9853  추천:1  2013-10-10
                                                                                             미국은 사실상 제3차 세계대전중 (펌글)                             등록 : 2013.08.09 19:03 수정 : 2013.08.09 22:10 (자주민보)        1945년 2월23일 일본 도쿄 남쪽 해상의 화산섬 이오지마의 스리바치산 정상에 미국 성조기를 게양하는 미 해병 4사단28연대 군인들. 제2차대전 중 미국이 일본 본토 공습의 전략적 요충지였던 이 작은 섬을 탈환하는 과정에서도 일본군 2만여명 과 미군 6000여명이 전사했다. 노스캐롤라인 디지털역사관 제공                                  [토요판] 정문태의 제3의 눈 2차대전 종전 68주년     제1, 2차 이라크 침공에 이어 아프간 침공과 코소보전쟁, 파키스탄·팔레스타인 낀 중동 묶으면 상시전쟁 체제 이름만 안 붙였을뿐 3차대전 지구상에 사는 인간들 이 내부충돌로 3~4%나 사라진 최고 악질전쟁 2차대전 이를 포함해 미국 개입한 전 쟁 희생자 최대 3천만명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세상 곳곳에서 제2차 세계대전 종전을 기려왔다. 올해 8월15일 로 68번째다. 주로 승자들의 회상으로 메워왔지만, 이따금 패자들의 회한도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승자도 패자도 그 전쟁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죽임을 당했는지, 아무도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    연구자들에 따라 시민 3천만~5천만명을 포함해 5천만~8천만명이 희생당했다는 추측만 나돌 뿐이다. 하여 기껏 68년 전 역사가 아직도 공백으로 남아 있다. 두가지 는 분명하다. 하나는 현대사에서 연구자에 따라 이처럼 엄청난 셈값 차이를 보인 경 우가 없었다는 사실이고, 다른 하나는 어떤 셈값을 따르든 제2차 세계대전은 인류사에서 최대 희생자를 낸 최고 악질 전쟁이었다는 사실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터졌다는 1939년 세계 인구가 약 20억명이었던 것을 놓고 보면 지구상에 존재하는 한 종의 생명체가 내부 충돌로 6년 만에 3~4%나 사라진 꼴이다.     생물학적으로도 충격적인 일이다. 이때쯤 떠오르는 말이 하나 있다. “한 사람 죽음은 비극이지만 수백만명 죽음은 통계다.”러시아 정치인 스탈린이 미국 대사 윌리엄 에이브럴 해리먼에게 했다는 말이다. 냉전기간 내내 스탈린의 대량 숙청을 비난할 때 미국 언론과 학자들이 즐겨 써먹는 유명한 문구가 됐다.     물론 러시아 정치 사료에서는 그런 문맥을 찾을 수 없어, 요즘도 심심찮게 연구자들끼리 부딪치는 논쟁거리다. 누가 옳은지는 연구자들 몫으로 남겨두고 오늘은 제 2차 세계대전 최대 승자였던 미국식‘수백만명 죽음은 통계다’를 이야기해 보자. 아주 특별한 전쟁 전문 국가의 탄생 미국은 237년이라는 짧은 역사를 거치는 동안 시시콜콜 모든 기록을 남겼지만 유독 전쟁 기록만은 부실하기 짝이 없다.    미국은 거의 모든 전쟁에서 교전 상대국 희생자뿐 아니라 자국 희생자 수도 정확한 기록으로 남기지 않았다. 미국 역사는 승리만 기록할 뿐이었고, 미국 정부는 국 가의 이름으로 저질러온 가장 야만적인 정치 행위인 전쟁을 감춰왔다는 뜻이다.    그들은 베트남전쟁에서 적군 희생자 숫자를 매일 밝히는 이른바 ‘보디 카운트’(bod y count)를 했지만, 부풀려졌다는 의혹에 직면한다. 전쟁에서까지 패하면서 호된 비난 을 받자 그뒤의 전쟁에선 공식적인 집계를 포기했 다고 한다.    1991년 제1차 이라크 침공에서 국방장관 도널드 럼스펠드가“우리는 다른 사람들 (이라크인)의 보디 카운트를 하지 않는다”고 밝혔듯이 말이다. 하지만 237년 미국 역사를 훑어보면 그 보디 카운트를 하지 않은 건 최근 일이 아니었다. 심지어 미국 안에서 자신들이 학살한 인디언 원주민 수마저도 자료나 통계가 없을 정도니.     그동안 미국의 전쟁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지 어림잡아 보자. 1776년 독립을 선언한 미국은 8년에 걸친 독립전쟁(1775~1783년)에서 미군 5만여명과 영 국군 5만여명을 합해 10만명 웃도는 희생자를 냈다. 이어 19세기 말까지 단 한해 도 쉬지않고 영토확장 전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인디언 원주민 300여만명을 학살했다. 그사이 남북전쟁(1861~1865년)이란 내전에서는 60만명 웃도는 희생자를 냈다.     그러면서 미국은 독립전쟁 때 프랑스로부터 빌린 전비를 갚지 않겠다고 우기며 도미니카에 해병대를 파견해 프랑스 전함을 나포했던 이른바 준전쟁(Quasi-War 179 8~ 1800년) 을 시작으로 온 세상에 군대를 파견해 공격적인 국제정치의 발판을 깔 았다. 미국은 지중해의 트리폴리 왕국을 공격한 제1차 바버리전쟁(1801~1805년), 제2차 브 리티시-아메리카전쟁인 1812년전쟁(1812~1815년), 국경선 분쟁인 멕시코-아메리카 전쟁 (1846~1848년) 같은 굵직굵직한 전쟁을 벌이더니 1898년 스페인-아메리카전쟁을 통해 쿠바, 푸에르토리코, 필리핀, 괌에서 스페인군과 충돌해 10만여명 희생자를 냈다.     이어 미국은 필리핀 독립전쟁이었던 필리핀-아메리카전쟁(1899~1902년)에서 100만명 웃도는 필리핀 시민을 학살했다. 그렇게 20세기 초까지 미국은 내전과 국제전을 동시에 치르면서 아주 특별한 전쟁 전문 국가로 성장했다.     미국의 무력 도발은 사연도 가지가지였다. 쿠바(1822년), 푸에르토리코(1824년), 그리스 (1827년)를 해적 소탕 빌미로 공격했고, 수마트라(1832년), 일본 (1853~ 1854년), 조선(1871년)엔 개방을 요구하며 쳐들어갔다. 그런가 하면 미국 탐험대나 선원, 외교관 공격에 대한 보복으로 피지(1840년), 사모아(1841년), 포모사(1867년), 중국 (1866년)을 침략했다.     또 아르헨티나(1852~1853년), 우루과이(1855년), 파나마(1856년), 앙골라 (1860년), 이집트(1882년), 하와이(1889년), 칠레(1891년), 니카라과(1896년), 콜롬 비아(1901년), 온두라스(1903년), 시리아(1903년), 터키(1912년)엔 정치적 혼란 으로부터 미국 시민과 재산을 보호한다며 군대를 파견했다. 이렇듯 몇몇 본보기만 늘어놓았지만 미국은 제1차 세계대전 전까지 이미 전쟁의 이름으로 최소 500만명 웃도는 희생자를 냈다. 미국이란 나라가 태어나면서부터 전쟁을 먹고 자랐다는 사실이 드러난 셈이다.     테러와의 전쟁, 왜 희생자 수 밝히지 않나? 제2차 세계대전 뒤부터는 미국이 개입한 전쟁에서 희생자 수가 치명적으로 늘어났다. 제2차 세계대전 뒤 미군이 개입한 첫 대규모 국제전인 한국전쟁에서 민간인 250만명과 군인 55만명을 포함 최소 300 만명이 사망했다. 이어진 베트남전쟁(1955~1975년)에선, 미국이 본격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한 1965년 부터 1975년 사이에만도 340만명(로버트 맥나마라 미국 전국 방장관 추산)에서 510만명(베트남 정부 발표, 1995년)에 이르는 희생자가 발생했다.     그 베트남전쟁 기간 미국은 라오스를 인도차이나반도의 공산화를 막는 방파제라 부르며 1964년부터 1973년까지 50만톤 웃도는 각종 폭탄을 라오스에 쏟 아부어 20만 명에 이르는 시민을 학살했다. 이른바 비밀전쟁이라 불렀던 그 라오스 공습이 끝나고도 지난 40년 동안 2만여명이 집속탄을 비롯한 온갖 불발탄에 목숨을 잃었다.     마찬가지로 미군은 베트콩을 잡겠다며 1969~1973년 사이에 이웃 중립국 캄보디 아에 폭탄 54만톤을 퍼부어 30만~80만명에 이르는 시민을 학살했다. 그 50만톤 폭탄이란 건 미군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에 투하했던 16만톤을 3배나 웃도는 양이었다. 그 뒤로도 미국은 1980년대 소비에트가 점령한 아프가니스탄의 무자히딘 지원을 비롯해 이란-이라크전쟁(1980~1988년), 엘살바도르(1981년), 레바논(1982~ 1983년) 전쟁에 개입, 그레나다(1983년)와 파나마(1989~1990년)를 무력침공 했다.     이어 미국은 1991년 제1차 이라크 침공으로 군인과 민간인 포함 약 20만 명을 살해했고, 대이라크 경제제재로 최소 56만명에 이르는 어린이를 의약품 부족과 기아로 숨지게 했다.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2001년부터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해 12년째, 그리고 2003년 이라크를 제2차 침공해 10년째 전쟁을 벌이고 있다.     앞선 전쟁들과 마찬가지로 미국 정부는 이 두 전쟁에서도 희생자수를 밝힌적이 없다. 최근 브라운대학의 민간인 희생자 조사보고서가 아프가니스탄 1만6천~1만 9천명, 이라크 13만4천명을 추산한 적이 있을 뿐이다. 미국이 개입한 전쟁의 희생 자는 이렇게 제한적인 지면을 통해 어림잡아 보아도 1500만명을 웃돈다. 이건 미국의 중앙정보국을 비롯한 각종 스파이 조직들이 온 세상을 대상으로 벌여온 국지전 이나 지역분쟁의 희생자를 제외한 수다. 참고로 전쟁사 연구자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을 포함해 그동안 미국이 전쟁에서 죽인 사람 수를 2천만~3천만명으로 꼽아왔다.     타이 1년 예산보다 많았던 아프간전쟁 비용: 현대사를 들춰보면 제2차 세계대전 뒤 지구상에서 벌어진 거의 모든 전쟁을 미국이 주도했거나 직간접적으로 개입했음이 드러난다. --이건 태생적으로 전쟁을 먹고 살아온 미국의 생존방식에서 비롯되 었다.--미국경제 60~70%가 군산복합체와 연동된 상태에서 미국식 자본주의는 군사비 지출을 계속 늘리지 않고는 경제성장이 불가능한 이른바 군사케인스주의에 매몰 당해 결국 전쟁 없인 굴러갈 수 없는 체제를 구축해 왔기 때문이다. 미국의 군사비 가 좋은 본보기 거리다. 예컨대 테러와 전쟁을 벌이기 전인 2000년 2890억 달러였던 미국의 군사비가 2013회계연도(2012년 10월~2013년 9월)에 이르면 6330억 달러(약 681조원)로 2배 이상 늘어난다.     -이건 세계 경제 지표에서 10위권을 오르내리는 한국의 2012년 정부 총예산 325조의 2배를 웃도는 엄청난 돈이다. 같은 기간 세계 군사비 총액이 1조 7560억 달러임을 놓고 보면 미국이라는 한 나라가 쏟아부은 군사비가 세계 전체 군사비의 40%에 이른다. 같은 기간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투입한 전비만도 885억달 러였다. 미국이 전쟁 하나에 투입한 비용이 타이, 말레이시아, 대만 같은 아시아 주요 국가 정부들의 1년 총예산을 웃돈다.     그렇게 미국은 12년째 전쟁을 벌여온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이미 약 6500억 달러를 썼다. 10년째 전쟁을 벌이고 있는 이라크 침공에서는 그보다 많은 8천억 달러를 썼다.그런 막대한 군사비 지출을 통해 현재 미국은 독일, 일본, 한국을 비롯한 63개국에 737개 해외 군사기지(펜타곤 발표로는 865개)를 두고156개국에 25만명 웃도는 군인을 파견해 국제사회를 통합전쟁시스템 아래 주무르며 전쟁과 경제라는 떨어질 수 없는 미국식 쌍발엔진을 돌리고 있다.     실제로 미국은 이미 상시전쟁 체제에 들어선 상태다. 미국은 제1차 이라크 침공(1991년)에 이어 코소보전쟁(1999년), 아프가니스탄 침공 (2001년~오늘), 제2차 이라크 침공(2003년~오늘) 같은 전지구적 규모의 전쟁을 줄줄이 벌여왔다. 이 전쟁들의 전비와 파괴력 그리고 동맹군 수는 제2차 세계대전 규모를 웃돈다. 여기에 파키스탄을 비롯해 팔레스타인과 시리아를 낀 중동전쟁을 묶으면 이름만 붙이지 않았을 뿐, 우리가 인지하지 못했을 뿐, 미국은 이미 새로운 형태의 제3차 세계대전 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그 미국의 전쟁 제물이 바로 세계 시민사회였고 그 희생자가 바로 세계시민이었다. 미국식 전쟁의 통계에 마저 잡히지 못하는 존재들이었다.        우리는 미국의 살림 살이를 위해 오늘도 이 세상 어디에선가는 반드시 전쟁판이 벌어져야 한다는 참혹한 시대를 살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즈음에 미국을 다시 보면서, 그 미국의 전쟁을 반대하는 까닭이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에 부쳐 아인슈타인이 미래의 전쟁을 예언하며 즐겨 썼던 말을 올린다. “제3차 세계대전에는 어떤 무기들로 싸울지 알 수 없지만, 제4차 세계대전에는 몽둥이와 돌을 들고 싸울 것이다.”                                                          2013년 6월 10일 (인용ㅡ작성자)                  
343    력사의 카메라 댓글:  조회:7860  추천:0  2013-10-10
                                                    력사의 카메라                                                          작성자 진언                                                             “왜 친미에서 반미로?” (펌글)                         출처: 시사평론 : 정론직필을 찾아서 (생명사랑) 2013.5.9. 18:45                       글쓴이: 그사랑, 이슈속의 진실찾기     (상략) 미국은 일본과 1905년 가스라 테프트(미국27대 대통령)밀약을 맺아 조선을 일본식민화시킨 당사자이다. 밀약의 내용은 한국에 대한 일본의 지배권을 미국이 인정하고 일본은 미국의 필리핀 지배를 인정하는것이였다.    (참고문헌) 한일합방과정 일본에 천문학적인 재정지원한 미국(현재가치로 14조원 상당)ㅡ《외세에 의한 한국독립의 과정에서》발췌, 서울대출판부,    미국은 비밀조약을 통해 일본에 조선을 넘긴 장본임에도 불구하고 해방과 동시에 남한에 해방군인체 점령군으로 들어와서… (하략)                         미국의 추악한 침략 살인 역사   1. 인디언 7천만 대량살상(인종청소) 2. 1801ㅡ1806년 트리폴리와 모로코전쟁 3. 1803ㅡ1806년 스페인과 전쟁 4. 1812ㅡ1814년 스페인 령 서부 플로리다 강탈 5. 1812ㅡ1815년 캐나다와 플로리다를 빼앗기 위해 영국에 선전포고 6. 1813년 말카스제도 누크히 섬 상륙 침공 7. 1816ㅡ1818년 알제리 전쟁 8. 1819ㅡ1825년 쿠바 푸에토리코 산토밍고, 멕시코의 유가탄 반도 침략 9. 1819ㅡ1829년 옐로우스톤 원정 10. 1826년 하와이제도 침공 11. 1826년 그리스 미코노스 섬, 앤드로스 섬 침공 12. 1831ㅡ1832년 포클랜드 군도 침공 13. 1832년 스마트라섬 쿠알라토르침략 14. 1833년 아르젠티나의 부어노스 아이레스 침공 15. 1835년 사모아제도 침공 16. 1838년 수마트라 침공 17. 1840년 피지군도 침략 18. 1841년 길버트 군도의 드레몬드 제도 침공 19. 1843년 리베리아 침공 20. 1847년20. 1847ㅡ1848년 멕시코와 전쟁 21. 1847년 아이티의 사마나 만 점령 22. 1852ㅡ1853년 부에노스 아이레스 침공 23. 1853ㅡ1854년 니카라과 침공 24. 1854ㅡ1856년 중국 상해, 광동 침공 25. 1858년 피지군도 침략 26. 1855ㅡ1858년 우르과이의 몬테바데오 침공 27. 1858년 뉴 그레네이더 하나마 침공 28. 1857년 니카라과 침공 29. 1858년 유이하 제도 침공 30. 1858ㅡ1859년 파라과이 침략 31. 1857년 중국 상해 침공 32. 1859년 판 데트카 해협의 산판섬 침공 33. 1859년 멕시코 침범 34. 1860년 포르투갈 령 서아프리카 키센보 침략 35. 1963ㅡ1864년 일본 시모노세키 침공 36. 1863ㅡ1864년 중국 침공 37. 1865년 콜롬비아 침공 38. 1866년 멕시코 침략 39. 1865년 파나마 침공 40. 1867년 대만 침략 41. 1867ㅡ1872년 조선 침략 42. 1868년 우르과이의 몬테바데오 침공 43. 1868년 일본 침공 44. 1868년 콜롬비아 침공 45. 1870ㅡ1873년 멕시코침략 46. 1870년 콜롬비아 침략 47. 1870ㅡ1873년 파나마 침략 48. 1874년 하와이 호놀룰루 침략 49. 1876년 멕시코 침략 50. 1882년 이집트 침공 51. 1885년 파나마 침략 52. 1888년 아이티 침공 53. 1888년 조선 상륙 54. 1890년 아르젠티나의 부에노스 아이레스 상륙 55. 1891년 아이티 침공 56. 1891년 칠레 침공 57. 1893년 호놀룰루에 상륙 하와이 제도 점령 58. 1894년 브라질의 리오데자이네이로 침공 59. 1894년 니카라과 상륙 60. 1894ㅡ1896년 조선과 중국에 상륙 61. 1895년 콜롬비아에 상륙 62. 1896 니카라과에 상륙 63. 1898년 하와이제도 병합 64. 1898년 니카라과에 상륙 65. 1898ㅡ1899년 미서전쟁 66. 1898ㅡ1899년 쿠바 점령 67. 1898ㅡ1899년 필리핀 점령 68. 1898ㅡ1899년 괌 점령 69. 1898ㅡ1899년 푸에르토리코 점령 70. 1899년 니카라과에 상륙 71. 1899년 피지제도 군사원정 사모아 침략 72. 1899년 추추리이 섬 점령 73. 1899ㅡ1*02년 필리핀과 전쟁 74. 1900ㅡ19*02년 파나마 상륙 75. 1900ㅡ1902년 중국 의화단진압 군사원정 76. 1900ㅡ1902년 파나마 상륙 77. 1903ㅡ1904년 사마르 섬, 필리핀 섬의 이슬람교도에 대한 군사작전 78. 1903년 파나마운하 영구 점령 79. 1903ㅡ1904년 산토도밍고 침공 80. 1904년 파나마 상륙 81. 1904년 조선상륙 82. 1906ㅡ1909년 쿠바 점령 83. 1910년 니카라과 침공 84. 1910ㅡ1911년 온두라스침공 85. 1911ㅡ1912년 중국 상해, 북경 침공 86. 1912년 파나마 침략 87. 1912년 쿠바 상륙 88. 1912년 터키 상륙 89. 1912ㅡ1915년 니카라과 침공 90. 1913년 멕시코 상륙 91. 1914년 아이티 상륙 92.1915ㅡ1916년 멕시코 침략 93. 1916ㅡ1925년 산토 도밍고 점령 94. 1917ㅡ1918년 제1차세계대전에 참전 95. 1918ㅡ1920년 파나마 치리키 점령 96. 1918ㅡ1926년 신생국 쏘련을 침공 97. 1919년 온두라스 상륙 98. 1919년 코스타리카 침공 99. 1920년 괴타말라 침략 100. 1921년 파나마 침공 101. 1921년 코스타리카 침공 102. 1922ㅡ1941년 중국에 무력개입 103. 1924ㅡ1925년 온두라스 침공 104. 1925년 파나마 침략 105. 1926ㅡ1933년 니카라과 침공 106. 1936년 온두라스 침공 107. 1933년 쿠바연안 정찰 108. 1937년 중국 양자강연안 점령 109. 1938년 중국 광동, 태평양의 엔더베리 점령 110. 1941년 그린란드 항구 점령 111. 1941년 아이슬란드 점령 112. 1950ㅡ1953년 한국침략전쟁 113. 1953년 이란의 모다디그정권 정복 114. 1954년 괴테말라 군사개입 115. 1958년 중동위기 선동 116. 1958년 케므이 섬, 마쓰섬 주변에서 무력시위 117. 1960년 Uㅡ2 첩보기 쏘련 영공 정찰 118. 1960년 콩고에서 유엔 군사작전 선동 119. 1961년 파그만 침공 120. 1961년 베를린 위기 선동 121. 1964년 통킹만 무력 도발 122. 1964ㅡ1972년 베트남전쟁 123. 1965년 도미키카공화국 내정 개입 124. 1966년 엔쿠루마정권 정복 125. 1970년 라오스 무력 개입 126. 1970년 캄보디아 무력 개입 127. 1973년 칠레 아안데 정권 전복 128. 1974ㅡ1975년 포르투갈에서 파괴활동 129. 1975년 케냐의 무왕기 카리운기 암살 130. 1975년 오르트렐리아 노동당정권 전복 131. 1977년 콩고인민공화국정권 전복 132. 1979ㅡ1981년 이란에 대한 군사행동 133. 1960ㅡ1981년 카스트로암살 기도 134. 1981년 카다피암살 계획 135. 1981년 파나마의 트리호스 암살 136. 1981년 인디라 간디에 대한 음모 137. 1981년 잠비아 대통령 암살 계획 138. 1980ㅡ1984년 폴란드내정 간섭 139. 1980ㅡ1984년 아프카니스탄 군사 개입 140. 1981ㅡ1983년 엘바도르 내란 군사 개입 141. 1981ㅡ1983년 니카라과에서 군사 도발 142. 1982년 시드라 만에서 리비아에 대한 도발 143. 1983년 그레네아더 침공 144. 1990ㅡ1991년 페스시아만 전쟁 145. 1992ㅡ1995년 소말리아  무력 개입 146. 1994년 6월 조선민주주의공화국 침략기도 무산 147. 1998년 수단 공격 148. 1998년 아프카니스탄 미사일공격 149. 1998년 이라크 침공 150. 1999년 유고연방 침공 151. 2001년 아프카니스탄 침공, 탈레반정권 붕괴시킴 152. 2003년 이라크 침략 ※ 이라크 침공, 싸담 후세인 제거 ※ 리바아 침공으로 카다피 제거    ※※※※※※※※※※※※※※※※※※※    우에 통계에서 볼 때1776년을 아메리카합중국의 건국년으로 잡아서237년 기간 거의 평균 해마다 침략전쟁과 음모로 령토를 확대하고 치가한 철두철미 전쟁장사군들 이였다는것을 읽을수 있다. 세계의 악의축이 누구인가? 물음속에 정답이 있다. 미국 이 엎지른 피물은 미국이 담아 마시면 되는것이다. 그런날이 언젠가 있을게다 (편자) “첫단추를 잘못 꿴 미국은 나중에 꿴 단추 모두를 스스로 풀고 첫단추부터 다시 꿰어야 한다.” (거짓말 협상으로 침략본성 드러낸 미국, 한반도에서 꺼져라| 자유론 광장 팔달 ”  조회 44 |추천 1 | 2013.04.14. 01:15) (본문에서 인용함 )                             2013년 4월 15일 (작성)
342    애정시조 (100수)-1ㅡ30 댓글:  조회:8215  추천:1  2013-10-07
                                                애정시조 (100수)                                        1.  病魔가 좋으랴만 사랑병은 유독좋아                                         령약이 따로없어 앓을수록 신명나오                                         홍역을 앓아야 하듯 사람되는 앎음이라                                      2.  사랑에 눈뜨매로 인생아침 열리는가                                         연출이 없더라도 련애극은 제법이라                                         둘이서 주역이 되고 관중되니 자극적                                     3.  원숭이 사람될제 사랑도 진화했노                                        우자는 약아지고 현자는 눈이멀고                                        지혜에 사랑이 죽어 희비극을 엮니라                                   4.  사랑에 론점있냐 론거도 집어쳐라                                        인생의 주제여도 론증이 불필요해                                        서로의 됨됨이만이 확실한줄 알리라                                                     5.  마가을 궂은비는 하늘의 눈물인가                                        줄줄이 하염없이어 그칠줄 모르는데                                        외국간 로친생각에 령감님이 우시네                                     6.  사랑이 병이되야 질정을 못하는데                                         마음도 간질간질 긁은들 말려내랴                                           시작이 따로 없으매 말자해도 안되네                                     7.  온다는 소식없이 남몰래 왔다가도                                         한바탕 수선떨다 나는간다 잡아봐라                                         둘이서 하는 련애가 웨그리도 힘든고                                     8. 맹목인 련정인데 목적되면 교역이제                                        뜨거워 진정인가 담담함이 기본이라                                       사랑은 짜는것이냐 두심장이 녹여진것                                   9.  사랑이 더하기면 치렬함에 빠지리라                                                 사랑이 덜기라면 기점이 되리로다                                        사랑에 곱하기하면 유일한것 되리라                                                   10. 눈에서 생긴사랑 눈으로 나가거늘                                        리성아 비키거라 뵈는것 없노매라                                        가슴에 치솟는 애욕 물불을 가릴손가                                                           1. 사랑이 격류라면 장쾌해 좋으리라                                        잔잔한 호수라면 익사도 좋으리라                                        실개천 옅은사랑은 곧 바닥이 나리라                                     2. 체할때 있으랴만 싫증은 잘오더라                                       줄때는 아낌없고 받아서 만족없는                                       사랑은 천당과 련옥 그사이에 있어라                                     3. 사랑에 슬퍼해도 사치한 비애이요                                        깊어도 좋은것은 사랑의 고뇌여라                                        환희와 비애와 후회 애석함이 주제여니                                     4. 사랑의 핵분렬은 자기의 헌신이다                                          희생이 없다면야 눈감은 감정유희                                        준다고 말하지말고 바친다고 하거라                                     5. 사랑의 비밀이란 초련의 그한때라                                        초야가 새고나면 비밀아닌 은사일뿐                                        애정엔 답이 없더라 2×2=5가 나오니                                    6.  영원한 사랑이라 입가볍게 외우지마                                       다함도 없거니와 수명도 있음에랴                                       즐김은 가담가담에 번뇌랑은 无时라                                      7.  사랑신 아모르는 난공불락 없노란다                                       철옹성 무너지고 철석간장 엿이되네                                       삼자야 끼여들지마 일대일의 유희니                                    8. 사랑에 시기질투 약국에 감초인가                                       퇴직을 모르나니 백년가지 하리라                                       정이란 수은같아여 움켜쥐면 새니라                                    9. 초련이 돌풍이면 티끌만 자욱하리                                       사랑의 급행렬차 시간표교 따로있냐                                       늦바람 곱새를 벗겨 날새는줄 모르듸                                  10. 사랑은 만질수도 볼수도 없는것을                                       가진다 말을말고 포기한다 선언마라                                       저좋아 찾아오다가 나는간다 하느니                                     1. 사랑에 눈을떳냐 사회인이 되는도다                                      행복의 역참으로 금마차를 달려보렴                                      인생에 사랑없이야 불모지라 못살제                                    2. 한손에 축배들고 한손에 고배들고                                      얄궂은 아모르는 번갈아 권하누나                                      취하고 또 깨고나서 네리성에 물어라                                    3. 사랑은 후회해도 뉘우침 모르네라                                      치렬의 문을나서 증오가 득달해도                                      좋다만 추억뿐이여 사랑한죄 무죄더라                                   4.  사랑에 배부르면 가난해도 행복한가                                      지금은 랑만이라 코방귀도 아니뀌리                                      사랑이 밥을 주느냐 자가용을 굴리냐                                    5.  사랑과 증오에는 선후가 있더라만                                      싫은데 질투하랴 미운데 감화되랴                                      묻지마, 리유가 뭔지 정답이란 없거늘                                   6. 유인이 최귀하야 정으로 사자는데                                     사랑탑 꼭대기에 재물신 호통치네                                     조건부 붙은 사랑은 현대인의 특허라                                     7. 사랑이 진정이면 사해도 헤여가고                                     칼산도 절벽도 필사코 오르리라                                     사랑산 절승경개를 그무엇에 비하리오                                                                        8. 애정의 비극이란 실련이 아니여라                                     괴로워 가슴쳐도 추억은 소중커니                                      사랑할 권리마저도 없는것이 가련타                                  9.  좋아서 하는사랑 리유는 왜캐는고                                       말로야 태산인들 지고오지 못할소냐                                     얽혀서 사는 까닭을 세월만이 아니라                                10. 련애는 탐사과정 결혼은 채광일세                                    광맥이 바닥나면 리혼에 페광되고                                    사랑의 등불꺼지면 추억의 긴 갱도뿐
341    “아베 노부유키”가 돌아오려 하는도다? 댓글:  조회:9187  추천:3  2013-10-05
                                 “아베 노부유키”가 돌아오려 하는도다?                                                                야 조       마침내 일본이 “집단적자위권”을 명문화하였다. 즉 이 명분으로 어떤 전쟁에든 투입할수 있는 상태로 전환한것이다. 미국도 속심이 따로있어 일본의 야망을 지지한다고 공공연히 밝혔다. 아메리카사자가 섬도의 이리의 뒤에서서 추기고있는 형국이 되였다. 혹시나가 역시나로 된 사실은 우리에게 무엇을 상기시키는가?     일찍, 만악의 조선총독부 최후총독이이였던 아베 노부유키란자가 패전의 치욕을 짓씹으며 쫓겨가는 며느리 두두벌거리듯 씨벌인 말이있다. 침략자의 최대역설은 패배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오는 경우가 거의없다는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아베 노부유키의 그말은 망발이지만 끔찍한 예언이기도 하여 포의한사의 심사숙고를 불러온다.     "우리는 패했지만 조선은 승리한것이 아니다. 내 장담하건대 조선국민이 제정신을 차려 찬란하고 위대했던 옛조선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년이란 세월이 훨씬 더걸릴것이다. 우리 일본은 조선국민에게 총과 대포보다 무서운 식민교육을 심어놓았기때문이다. 결국 조선국민은 서로 리간질하며 노예적삶을 살것이다. 보라! 실로 조선은 위대했고 찬란했지만 현재 조선은 결국 일본식민교육의 노예로 전락했다. 그리고 나 아베 노부유키는 다시 돌아올것이다! "  [출처]     노부유키의 말의 可不可보다 선행되는 사색은 그후 우리 민족들의 문화심리에 그가 한 말의 독소가 침투되였는가?독소가 골수에 퍼져있지는 않는가? 하는것이다. 이른바 일제가 심어놓았다는 그 식민교육의 독소가 오늘날에도 자기의 혈관속에서 흐르고있지 않는가는 배달민족의 구성원으로서의 각자가 스스로 알수 있을뿐이다.          니체가 “혼혈아들은 어쩔수 없이 뒤섞인 도덕심을 만들어가게 된다. 일반적으로 혼혈아들은 순수한 우리들에 비해서 더 심술궂고 더 잔인하고 정서적으로 더 불안하다.” 라는 말을 하였는데 혈형에 의한 인간의 이질성을 두고한 말이지만 이 말을 본따서 정신적, 사상적으로 식민지교육의 괴태인 사대주의로 혼합된 사람들이라면 그 괴질은 격세유전의 불치증으로 유전될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곰곰히 따져보면 아베 노부유키의 말이 맞아떨어지는듯해서 등곬이 섬뜩해지도록 끔찍한 “예언”이 되고있지 않는가? 하는 의혹을 짓씹게 된다. 아닌가? 일찍. 열혈의 투사들은30여년간 피어린 항일투쟁을 벌려왔다. 결과적으로 자체의 힘으로 광복을 맞은것이 아니니 민족자체의 힘으로 왜적을 물리친 승리의 과실은 아님은 사실이다.      침략자의 녕악한 몰골을 하고 3천만 배달민족의 머리위에 군림한 일제였지만 어망결에“찬란하고 위대했던 옛조선의 영광”만은 탄복하고있다는 속심을 토로하고 말았다. “조선국민이 제정신을 차려을 되찾으려면 100년이란 세월이 훨씬 더걸릴 것이다”라는 말처럼 광복되여 60여년동안 과연 민족정신을 제대로 살려왔는가?    “…결국 조선국민은 서로 리간질하며 노예적삶을 살것이다. 보라! 실로 조선은 위대했고 찬란했지만 현재 조선은 결국 일본식민교육의 노예로 전락했다. 그리고 나 아베 노부유키는 다시 돌아올것이다! "라는 노부유키의 말에서 어느 점이 당나발이고 어느 말은 정곡을 찌른것이라고 할것인가? 모종 의미에서“예언”은 아닌가?     아닌게아니라 반도남부에서는 식민지교육의 독소가 반세기를 넘었어도 해독되지 않았고 그 독성이 골수에까지 슴배인 친일매국노들은 물론 그 후대들이“영광스러운”의발을 계승해가고있는 현실이 음으로 양으로 드러나 있지않은가? 리념으로 분단되여 이제는 민족정체성마저 접어두고 반목대결에로 치달아올라 외세와 한바지가달안에서 민족분렬의 곡조에 맞추어 디스코를 추고있는 패류들은 과연 없는가?     68번째로 맞는 8.15 광복일, 광복일이란 5천년의 유구한 력사를 가진 우리 민족이 90여년전에 일본제국주의에 나라를 빼앗겨 36년 망국노의 피젖은 설음을 안고 살아오다가 마침내 치욕적인 식민지굴레를 벗게 되고 배달민족의 빛을 회복하던 일희일비의 날이다. 식민지로서의 36년이라는 세월은 억겁의 우주운행에서 순간이지만 결코 잊을수 없는 처절한 시련과 수모를 겪은 민족수난의 100년과도 맞먹는다.     우리 민족은 반만년의 찬란한 문화를 창조한 자랑스러운 배달민족이다. 그러나 그것도 나라를 빼앗긴 동안은 아무것도 아니였다. 36년이라는 식민통치하에 민족의 주체성이 송두리채 말살되여 자랑찬 5천년력사가 세계사에서 깨끗하게 지워질뻔했 던 끔찍한 악몽이였다. 누구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UN을 통해 빼앗긴 주권을 회복 하게 된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이었는지 모른다고 감지덕지하고있다만 역시나 사대주의관념에서 나오는 자조적인 희열이 아닌가?      올해가 나라를 빼앗기는 치욕을 당한지 한세기가 넘는다. 이제는 더이상 그런 치욕을 당해서는 안된다고 납함하면 자다가 봉창을 두드리는격이지만 지난날 일제에 의해 저질러진 만악의 식민통치잔재를 사상적으로 청산하였는가? 흩어졌던 민족의 정기를 바로 세우 고있는가? 아직도 단연코 청산해야 할것을 청산하지 못한채 그 후유증으로 몸살을 앓고있지는 않은가? 그 몸살을 영광의 전통으로는 여기지는 않는가? 수많은 질의들이 련달아 뛰여나오는것은 배달민족의 보통성원이라도 당연한것이 아니겠는가?     아직도 력사적심판을 달가워하지 않고 “대동아공영”이라는 승냥이꿈을 버리지못하고 준동하는 일본정권을 직시하고 있다면 그에 상응하는 대책은 있는건가? 그들은 조선강제병합, 식민지배의 마수를 정당화하려고 력사사실을 부정하며 력사교재까지 고치고 또 고친다. 그게 과거의 잘못을 합리화하고 미화하는 틀린 력사인식에 그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유의 빈곤인가? 민족기개의 부재는 아닌가? 가렵지도 아프지도 않게 유감이나 좀 더나아가서 입으로 “항의”하면 만사대길인가?     자기들의 침략죄악사를 공공연히 정당화하는 작태는 아직도 자기들의 노예였던 “죠센징”으로밖에 보지않고 두번 릉멸하는 악랄한 행위이다. 반성을 모르는 민족에게 미래가 없고 거짓말하는 민족에게는 현재가 없다는식의 경고에 눈한번이나 깜짝할 족속들이 아니다. 요즘 아베의 로골적인 동산재기의 망동을 보라 력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려는 그들에게 침략당한 피해자들에게 다시 상처를 주는것이라고 비난한들 결국은 구두신고 발바닥을 긁기밖에 더 될것인가?     동아시아의 평화와 공존을 위해 미래지향적으로 공동히 노력하자고 청들면 그들은 속으로“빠가야로”를 복창할게 분명하다. 미래와 화합이라는 사탕을 주면서 부디 그러시지 말라고 기대하는것은 승냥이더러 양을 잡아드시지 말라는것과 뭐가 다른가? 그들이 건전한 력사인식을 형성하지 못해서라고 생각한다면 그들이 오판하는게 아니라 그러지 말아달라고 청드는 사람이 오판하고있는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의“빛나는” 력사를 너무도 잘 기억하고 있고 죄악적력사의 과실을 다시 맛보려 윽벼를뿐이다.     자세가 비뚤면 그림자도 비뚜는법이다. 일제가 조선사람들의 자주성과 주체성을 말살하기 위한 명제인 “반도적성격론”을 거부하기전에 우리의 력사가 타률(他律)성과 사대(事大)주의로 점철됨으로써 그 성격이 우유부단하고 부화뢰동적이며 주변성에다 의뢰성과 같은 민족적렬근성이 형성된것이 아닌가를 반성해야 한다. 조선민족의 뿌리깊은 력사와 독특한 정신문화는 일제식민사학과 중화사대에 의해 사지가 찢기고 몸통마저 잘리여 세계민족지림에 미아로 되였는데, 그 후유증으로 오늘날까지도 민족의 정체성을 수립하지 못하고 력사의 천덕꾸러기로 우왕좌왕하고 있지않은가? 저 야심찬 “아베 노부히키”네들이 이제 돌아오려는데, 망발같은 “예언”이 정언이 될듯싶은데…                                          2013년 8월 15일 초고 ㅡ2013년 10월 4일 수정
340    사랑의 만가 댓글:  조회:8053  추천:0  2013-10-02
                                                           사랑의 만가                                                                         최 균 선     마음마저 시들어가는 로옹이 사랑을 들먹거린다는것은 우스운 일이지만 지나간 인생행로에 분명히 씌여졌던 일이니 차마 잊힐리야, 내 그때 세속사정을 잘 몰랐어도 사랑의 탑만은 충심으로 쌓으려했는데 어이 그리도 아픈사연만 남게 되였던가? 이제 인생도 다 저물어 황이든 인생의 가을날 불우하여 잃어야만 했던 그 사랑을 다시금  새김질하게 되는것도 피치못할 인간상정이리라.     누군들 다르랴만은 내 정신적진화는 사랑으로부터 시작되였다. 사랑은 내문학의 주제이기전에 먼저 내삶의 주제이다. 사랑이란 워낙 국계도 없고 피부색도 가리지 않는다지만 그 살벌하던 시절, 나에게는 출신이 불가침범의《3.8선》이였다. 사랑은 예이제 흔하기도 하고 희귀하기도 하다. 사랑은 형체가 없다. 정의할수도 없고 잡아 둘수도 없다. 사랑은 무엇이고 사랑은 도대체 누구인가? 나는 그 모든 닿을수 없는것들을, 모든 품을수 없는것들을, 모든 만져지지 않는것들과 불러지지 않는것들을 사랑이라 불렀고 모든 건널수 없는것들과 다가서지 않는것들을 인생이라 불렀다.     사랑의 비극은 인류의 모든 비극에서 가장 정채로운 장절이다. 사랑극은 시작이 필연적이 아니기에 극정도 론리적으로 발전하지 않는다. 극에 갈등이 없으면 단둘이 노는 유희처럼 재미없다. 이루지 못한 사랑이 사랑의 전형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그래서 애정극은 대개 모종의 장애, 좌절, 집착, 고조, 대단원…의 모식을 벗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내 애정드라마에는 있어야만 하는 대단원이 없었다.     련애는 뒤숭숭한 초행길이고 결혼은 행선지가 주어진 익숙한 길이다. 사랑이란 시로써도 해석할수 없다, 어떠한 리유도 수요되지 않는 감정이 있다면 바로 사랑의 감정이리라. 행위만이 가장 좋은 설명서이다. 사랑의 상록수는 두마음속에 뿌리박 았지만 향락의 가지는 하늘로 뻗어오른다. 철새들은 사랑의 상록수에 깃들수 없다. 하지만 나는 남의 둥지에 알을 낳는 뻐꾸기마저 될수 없었다.     이 세상에서 자진하여 되는 포로는 사랑의 포로일게다. 게다가 명예롭다고 여기면서, 사랑때문에 받는 고통은 즐거운 고통이라고 종래로 불평을 부린 사람이 없었다. 사랑은 인생의 아름다운 꿈이다. 그러나 누구나 다 아름다운 꿈을 꾸는것은 아니다. 사랑할 대상이 없다는것도 불행이지만 사랑할 권리가 없다는것은 더구나 참을수 없이 모멸적인 불행이다. 나는 그것을 절실하게 체험하였다. 사랑에 최초로 탄식한 사람이 누군지 몰라도 참으로 위대한 선각자라고 해야 하리라.     사랑할 권리도 자유도 없었던 젊은시절 아무리 성심이여도 닿을수 없는것들과 불러도 대답이 없는것들을 눈물을 머금고 보듬어보던 어느 가을날이 추억의 언덕에 사랑의 변주곡으로 이어진다. 광란의 10년, 모든것이 뒤죽박죽이 된 그 시절에 소외당한 인간에게만 있을법한 내 심령의 골짜기에는 상념의 길이 없어 끝간데없이 헤매기만했다. 생각은 생각되지 않았고 생각되지않는 생각들은 그저 아프고 슬프고 오리오리 찢기기만 하였더랬다.     거절당한 사랑이 엮은 애잡짤한 애정드라마가 아니였다. 울분에 가슴이 파도치는 황혼녘이면 의례히 뒤산의 소나무숲에 퍼더버리였다. 황이 드는 가을의 숲이 사랑은 모든 닿을수 없는것들의 이름이라고 가르쳐주었기때문이다. 나의 가망없고 령세한 사랑에도 언젠가 풍경이 있게 된다면 아마도 황든 가을의 숲일것이라고. 나의 사랑은 황혼의 숲에 주저앉은 속수무책이고 막무가내함이라고, 한창나이, 뜨거운 심장으로 살던 시절이였건만 사랑이 없는, 아니, 다할수 없었던 사랑에 내가슴은 란장판처럼 심란하고 멍든자리처럼 오래오래 아팠다.     나는 사랑과 결혼의 경계를 수백번이고 긋고있었다. 사랑이 결혼으로 이어질수는 있어도 결혼이 곧 사랑으로 꽃핀다는 법은 없다. 그때 내게는 사랑이 정신병적인 징후였다. 몸이 없는 마음의 질주가 련애인가? 몸을 가질수 없어 상대방의 몸에만 마음이 집중되였을가? 먼먼 후날에 몹시 유치하게 느꼈지만 그때는 확실히 그랬다.     상대방의 몸을 광적으로 겨냥할 때 상대방은 줄수 없는 몸이였다. 몸이 없는 마음과 줄수 없는 몸은 결코 만날수 없는것이다. 그것은 3류애정극도 아니다. 사랑은 떠나는것, 증오는 항상 곁에 있는것, 원하는것은 오히려 우리 곁에 머물지 않는다. 이것이 인생의 법칙이고 사랑의 잠규칙이다.     그때 나의 련정은 사랑의 왕국에서 가장 척박한 변방에 추방당했다. 변방이 아니라면 백년고독이 통곡하는 절해고도였던가? 련애소설속에서처럼 환상과 랑만을 꿈구던 내가 련애와 결혼을 혼동한것은 100메터달리기와 마라손과의 차이를 인정하 지 않는것과 마찬가지였다. 사랑은 따스한 몸과 끓는 마음이 서로 만나는것이다. 사랑하게 된 리유를 조목조목 말할수 없어도 그냥 좋은것이 사랑이다. 어느 한쪽이 그러지 아니하면 사랑이 아니라 타산이거나 헌신이거나 희생일수밖에 없는것이였다.     사랑은 인간고를 즐거이 감당하게 하고 이겨내게 하는 원동력이라지만 그때에 내게는 사랑이 괴로움, 분노 그 자체였다. 하여 사랑이란 고명한 기술인것도 몰랐다.     사랑은 눈물일수는 있어도 어떤 교역일수는 없다. 사랑은 량지에서 자라나서 충성을 먹으며 늙어가야 할것이다. 그런데 그런 간단하고 명백한 도리가 왜 나에게는 통하지 않았던가? 모든것이 상품화된 현시대처럼 돈을 주고《사랑》을 팔고사는 시절도 아니 거니와 가진것없는 나에게 있어서 교역이란것이 꿈에도 있을수 없는 일이였다.     내게는 첩첩준령을 넘는 사랑의 길이여서 거의 체념에 가까운 환멸을 짓씹기까지 하였다. 그저 녀자면 된다는 욕념으로 장가들려했다면 운명이 달라졌을지 모르나 내인생사는 필경 다르게 씌여졌을것이다. 인명과 취처는 운수관이라 하였지만 사랑의 신성함이 치마끈을 풀어내린데서 끝난다면 신비감도 쾌락도 그 시각에 마침표를 찍는다. 그 다음은 사랑이 아니라 습관과 어떤 의무감에 생활의 점선을 찍을것이고…     사랑의 내함은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세상에 돈이 있기전에 사랑이 있었지만 돈을 만들어내고 사랑을 저당잡혔다. 인류사에서 맨 처음으로 녀자가 팔릴때 사랑은 죽었다. 하건만 사람들은 그냥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있다. 지금은 사랑사전을 해석하기 쉬워졌다.   권세와 재부앞에 기꺼이 석류치마가 벗겨진다. 그리고 호들갑을 떨기시작한다. 미모로써 남자들에게 황후로 받들리고 녀자로써 남자의 노리개로 되는 사이비랑만의 시대가 된것이다. 오늘 돈다발에 앉아 천애지각으로 날아가는 수천 수만의 처녀들이 사랑에 새긴 의미는 과연 무었일가?     지금은 인격력량이 사랑의 초석이 아니다. 하루밤 풋사랑도 만리성을 쌓는다지만 돈주고 산 육체에 십리성인들 가당하랴, 사랑은 인성에 속하는것이고 섹스는 동물성에 속하는것이다. 사랑이 가난을 꺼리지 않던 시대는 색바랜 페지로 남았다. 인간이 경제동물로 진화되였으니 기형화된 사랑에 만족할수밖에 더 있으랴,     《사랑은 아무나 하나? 눈이래도 마주쳐야지/ 만남의 기쁨도 리별의 아픔도 두사람이 만드는걸/ 어느 세월에 너와 내가 만나 점 하나를 찍을가?/ 사랑은 아무나 하나. 어느 누가 쉽다고 했나?》태진아의 노래가 노래로만 떠오르지 않는구나.
339    사계절의 사색 댓글:  조회:8819  추천:0  2013-10-02
                                                      사계절의 사색                                                                                                최 균 선       조화많은 대자연의 변화를 뚜렷이 보여주는 사계절, 계절은 계절마다 제나름의 멋과 운치와 매력을 가지고 있고 그에 따라 아롱다롱한 사색을 선물한다.     누구는 꽃피고 산새 우짓는 봄날의 랑만에 물든 사색을, 누구는 또 천고마비의 호시절-오곡백과 무르익고 단풍이 피빛서정을 시사하는 가을의 사색을 즐길 것이다. 그러나 나는 자기의 권리를 찾아 어김없이 군림하는 매 계절의 정취에 매혹되어 사색을 익혀가기를 즐긴다.     흔히들 꿈많은 봄날이란다. 그래서 봄을 청춘의 계절이라고도 한다. 그렇다. 봄은 얼마나 기다려지는 계절인가. 단비로 실실이 일곱빛 무지개 수놓아서 그렇듯 청신하 고 활발하고 오색찬란한 봄! 봄은 희망의 씨앗을 뿌리는 계절이다..    이제 인생의 봄언덕에 살며시 올라선 우리 청춘들도 남몰래 고운꿈을 마음의 뜨락에 심어놓고 성숙의 계절을 당겨본다. 그래서 봄은 좋은것이고 그래서 봄날의 사색은 예쁜 초록이다. 여름이야말로 성숙을 기약하는 계절, 태양처럼 뜨거운 열정의 계절이다. 딸흘려 풍년을 가꾸는 농민아저씨들의 가슴에서 뛰는 심장의 박동을 가늠해 보라. 나는 땀속에서 우썩우썩 커가는 곡식을 그려본다. 그러다가도 우리의 학습 생활에서이 여름은 확실히 피곤한 계절이라는 생각이 구름처럼 몰려와 마음의 하늘에 그늘을 덮는다. “흑색의 6월”은 얼마나 많은 좁고 여린 가슴들을 지지리 끓게 하는가?    하지만 조을 수 없지 않으냐?! 이 여름 질풍을 불러다 게으른 졸음 쫓아버리고 땀흘려 내꿈을 가꾸는 보람에 여름의 매력이 있다고 금시 무너져버릴 듯한 내 마음을 다잡아본다.    분망한 가을날은 황금의 계절, 단풍잎 정깊은 그 모습 내가슴도 불태운다. 풍작을 안아온 외할아버지의 고동색얼굴에 웃음이 주렁지는 가을이다. 내인생의 가을에도 생활은 보람으로 주렁질가? 오곡의 설레이듯 그 가을을 믿어 내마음 한껏 설레인다     나는 겨울도 좋아한다. 더구나 첫겨울 반가운 첫눈이 내리는 날은 고마움에 젖는 날이다. 은빛세계의 그 짜릿한 정취에 내 더운 피 더욱 설설 끓는게 아닌지…누군가 겨울을 사색의 계절이라 했다. 동장군의 모진 채찍질에도 말없이 버텨서서 새 봄의 꿈을 꾸며 고요히 숨쉬고있는 저 겨울나무를 무심히 보지않는다. 겨울이 없다면 봄날의 따스한 태양의 은혜를 사람들은 절감하지 못할 것이다. 겨울의 사색은 냉정하다. 그 냉정함 속에 오히려 뜨거운 꿈이 익고 있는것이 아니랴!     따지고 보면 어느 한계절 나무랄것 없다. 다만 잡아둘수 없는 계절의 엇바뀜 때 문에 아타까울 때가 많다. 오고 또 가는 계절, 그 계절은 하루도 게을러서는 안될 나날로 이루어졌다는것을 절감한다는것은 성숙의 표징일까? 촌음을 아끼면 세월령감도 나를 락오자로 만들지는 않겠지? 내인생의 춘하추동도 적, 등, 황, 녹, 청, 남, 자-칠색으로 아롱지게 가꾸어질것을 가만히 기도하며 나는 미래 세계에 주소없는 편지를 쓰고 또 쓴다.                
338    웃음의 이미지 댓글:  조회:6731  추천:1  2013-10-02
                                                 웃음의 이미지                                                         최 균 선         조화옹이 천지간에 중생을 내실제 유일하게 7정6욕을 가진 인간을 내시고 또 웃을줄 아는 기특한 본성까지 하사하시니 그때로부터 인류의 정감사전에 웃음이라는 당혹스러운 현상이 기록되여왔다. 하여 인류의 력사는 웃음으로 수놓아진 력사이기도 하였다.     옛사람이《질풍노우(疾风怒雨)위에는 금수도 근심하고 청풍명월에는 초목도 즐거 워하나니 인심에 한시라도 화기가 없어서야 되리오》라고 이른것을 본다거나 현대문 명인들이 저마다《웃으며 살자!》는 생활신조를 내세우고 웃음거리를 찾아내고 웃음 꽃을 피워가며 인생을 풍요롭게 영위하고있는것을 보면 확실히 울면서 이 세상에 온 인간들에게 즐거움과 웃음이 없이는 그 존재의 가치마저 운운할수 없음을 잘 알겠다.     그렇지 않으랴! 괴롭고 즐겁고 밉고 고운것이 뒤얽힌 인생살이일지라도 마음가짐에 있다 하거늘 밉게 보면 모두가 화날일이요, 명랑하게 웃으며 바라보면 모두가 기뻐할 일인바하고는 웃으며 살줄아는 마음가짐부터 기르는것이 현명한 처사로다.     철학자 베르그송은 자유로와야 할 인간이 부자유한 기계와같은 운동을 할때에도 웃음이 나온다고 희극적인것을 의미론적으로 해석하면서 웃음의 사회성에 대해서도 깊이 연구하였다.아닌게 아니라 웃음에는 웃는리유, 웃음의 의미, 웃음의 색채, 웃는 양태… 등등 깊고 오묘한 학문이 깃들어있음은 사실이다.     또 능글능글 웃으면 어떤 비밀을 감추고있는듯한 인상을 줄수 있고 히죽히죽 웃으면 그 의미를 가늠하기 어려운 우음이 되고《하하하…》하고 크게 소리내여 웃으면 포복절도할 웃음거리에서 기인된 심벽의 세찬파동일수도 있거니와 반대로 어떤 악의 의 표현인 앙천대소일수도 있다.    보통 우리가 말하는 웃음은 쾌적한 정신활동에 동반하는 감정반응의 일종으로서 비교적 지적인 생활이거나 사회생활에 대응하는 현상을 말한다. 웃음은 눈물과 같이 다 감각의 수레바퀴를 굴리는바 전자는 바람의 힘이요, 후자는 물의 힘이라 할것이다     그러나 잘웃는다 해서 곧 웃을줄 안다는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허다한 웃음은 고통스러운 웃음이라 해야 할것이다. 어떤 웃음이 고통스러운 웃음인가?자기 마음에 어긋나는 그러한《웃음》이다. 바로 그래서 거짓웃음이요, 비굴한 웃음이요, 허구픈 웃음이요, 이지러진 웃음이요 하는 말들이 생겼거니와 소위《웃음속에 칼이 있다.》는 그런 웃음은 오싹 소름이 끼치게 한다.    물론 사회인으로서 우리는 일생동안 자기마음에 사전의 챙김이 없는 그러한《웃음》을 얼마나 웃어야 할지 아무도 모른다. 마음차림이 없는 허다한 웃음은 스스로도 감내키 어려운 고통스러운《웃음》이며 지어는 막무가내한 굴욕이라 할수도 있 다. 그러한《웃음》들은 자기 심령의 기꺼운 해방이 아니라 일종의 사회종합증이 사람들에게서의 병적반응이라 말해야 할것이다. 이는 우리 인간이 또 하나의 영원한 비애를 안고사는 보잘것 없는 동물로 되게 하는 슬픈 궤적이라 하겠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웃음은 어리석은자, 표히부동한자, 주견이 없는자들의 처세술이 아니라 대바르고 성실하고 자아를 나름껏 실현해가는 그런 지성인들의 내심의 반영인것이다. 또 그러한 진짜웃음이야말로 그 나라의 국민성과 그 사회의 화목정도 를 가늠하는 시금석으로 되는것이다.    《웃으며 살자!》아무렴 웃으며 살아야지, 울음으로 시작한 힘겨운 인생이지만 웃음으로 주욱 가꾸어간다면 그보다 더 큰 행복이 또 어데 있으랴!그러나 웃음이 자발적인것이 아니고 그 어떤 처세수단으로 된다고 생각하는 갈대들, 돈에 웃음을 파는 그러 가련충들에게는 저 열혈의 반역작가 최서해처럼 남이 웃을 때 혼자 울줄도 알고 의에 울지언정 아첨에 웃으려 하지 않는 그러한 마음가짐이 필요하리라.     묵시할수 없는 부패분자가 상급이라 해서《웃음》으로 굴종하는데 반해 차라리 굳어진 얼굴로 맞서나가는 그러한 사람이 얼마나 우러러보이는가?!《매서운 눈초리로 천부의 손가락질에 대하고 머리숙여 유자의 소가 되리라》는 로신선생의 말씀을 우리 모두가 명기할바라고 생각한다.                                                            1995년 8월 9 일  
337    세상을 사는 맛 댓글:  조회:8368  추천:1  2013-10-02
                                                   세상을 사는 맛                                                          최 균 선       인생이란 무엇이냐? 하고 묻는다면 자다가 봉창두드리는 격일것이고 한걸음 물러나서 대관절 세상을 사는 맛이란 뭐길래?하고 묻는다면 또 너무 심각할텐데…     득의한자는 인생을 향그러운 술이라 할것이며 부귀공명한자는 인생을 무지개라 할것이며 누구누구는 또 어쩌구저쩌구 할것이다. 나로 말하면 후반생은 그래도 운이 튼 셈이지만 전반생은 하도 험악한 민초인생을 살아서인지 세상사는 맛이 쓰다고 해야 할지 달다고 해야 할지 답이 막연한 인생숙제이다.     불가에서는 인생을 망망고해라고 한다. 누구의 약속을 받고 온 이 세상이 아니라 아무 준비도없이 빈주먹을 쥐고 우연히 온 이 세상이다. 그러나 이미 온바하고는 사는맛이 깨소금같이 오래오래 살았으면 좀좋으랴만 억겁으로 헤아리는 무한세월에 비하면 풀잎에 아침이슬같은 짧은 인생이여서 두고두고 무슨맛을 느껴볼수도 없게 되였다. 이래저래 허무하기만 한 인생이다.     누군가 노래에서《인생은 무지개란다. 아, 무지개란다》라고 했더라만 느끼는 인생은 희극이요, 체험하는 인생은 비극이란 말이 있지 않던가? 젊은이의 상상속에는《즐거워라》가 씌여있지만 살고보면 체험속에는《괴로워라》가 씌여있음을 지성인은 공통하게 절감하고있다. 그러니 무지개같다는 인생타령은 수박겉핥기로 세상을 알고 하는 뜬 소리요, 희망에 속한 기대라고나 할가?     세월이, 네월이 가는가? 우리 인간들이 이 세상에 총망히 왔다가 가는 과객들인가? 우리가 잠간 머물러있는 이승에서 시간은 어데서 오고 어데로 가는지 누구도 모른다. 그나마도 우리 생활의 시계는 무미하고 단조롭고 텅 비고 메마른 시계이다. 우리는 다 이 텅빈 시간의 노예로 어떤 삶의 의미를 만들어가며 산다.     발길이 가는대로 걷고걷는 인생길에 고달픈 길손들인 우리의 인생락은 무엇일가? 서유럽의 한 철인은 인생마당에 세가지 락이 있다고 했다. 그것인즉 녀인의 가슴과 말잔등과 책이란다. 3천궁녀를 거느린 력대의 제왕들이나 탕아들은 녀인의 가슴 우에서 발설의 쾌락을 느끼며 살았을것이고 일대천교 칭키스칸같은 영웅들은 들뛰는 말발굽으로 천하를 주름잡는 정복욕으로 인생을 장식했는지 모른다. 책속에서 문명의 들창을 하나 또 하나 열어온 인류의 선구자들은 창조의 희열로 살았을것이지만 그것은 선택된 선지선각자들만이 느낄수 있는 락일뿐이다.     그랑데같은 황금미치광이들은 재부를 축적하는 재미로 살고 한여름 서늘한 그늘 밑에서 노래만 부르는 매미처럼 한가로운 사람은 여유로운 재미에 살고 무거운 수레를 끌고 비탈길 오르는 황소처럼 한생을 구슬땀으로 목욕하는 사람도 일하는 그 멋에 살지모른다. 이렇게 살든 저렇게 세상사는 맛 ㅡ단맛, 쓴맛은 다 살아가는 과정에 있음은 자명하다.     복속에 화가 화속에 복이 있는 인생이지만 살아가는 사람들 거의 모두가 이런저 런 불행을 안고 산다. 그중에서 제일 불행한자들은 제 할 일 찾지 못하고 무위도식 하며 몽유병처럼 인생마당을 맴도는자들이리라. 인간은 리상의 화신이 아니라 조건속의 존재물이니 말이다.     두주먹 불끈 부르쥐고 숨차게 뛰여도 자칫 뒤처질수 있는 우승렬패, 적자생존의 세상인데도 술 잘마시고 춤 잘추고 노래 잘부르는 자랑스러운 전통을 안고 사는 우리 배달족속들 가운데 날이감에 따라 격에 맞지않는《매미》들이 늘어가고 있음 을 어떻게 보아야 할가? 아직도 《아니놀지 못하리라《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를 부르기 좋아하는 민족은 이 땅에서 우리 민족밖에 없을것이다.《게으름병》이라는 몹 쓸병이 마을마을에, 도시의 골목골목에 만연되기 시작한것은 언제부터였던가? 인간의 어떠한 결함이든 다 고쳐줄수 있지만 유독 무직업자 ㅡ유민에 대해서는 교육해낼수 없다고 대성인 공자님이 말씀했다.     불볕 쏟아지는 건축공사장에서 동이땀 쏟으며 생활의 벽돌을 열심히 쌓아가는 관내사나이들의 구리빛 얼굴에서 우리는 무엇을 읽어야 하는가? 그들의 땀에 절은 가 슴들에 사는 맛이 깃들어있는지 않다고 말할수는 없으리라. 그러나 우리네 난부자 든 거지ㅡ신사님네들은 진잎 먹고 잣죽트림을 하려 할뿐 인생의 쓴맛을 보려하지 않는다. 저 유명한 만리장성은 몽골인들의 말발굽을 막지못하였지만 눈에 흔하게 띄우는 마작청마다에서 쌓아가는《장성》은 남녀로소를 가두어놓고 라태를 부화시키고있다.     바로 이렇게 사는 멋때문에 할아버지가 심은 사과나무에서 손자가 사과를 따먹게 된다는 과정과 인내의 철학을 진저리나 하며 그 옛날 우리 할배들이 망국의 한을 짓 씹어 삼키며 무딘 괭이로 일구고 우리네 아버지들이 피로 지켜 땀으로 걸구어 온 자 신들이 보금터마저 헌신짝 내버리듯하고 부평초같은 삶을 안일고 행운에 기탁하는 사 람들이 얼마던가? 이 산에 앉아 저 산이 높은것만 바라보며 공연히 팔소매만 걷어올 리고있는 사람들의 인생이야말로 싱거운 인생이 아닐수 없다.     어떻게 대운이 튼다해도 인생은 단것과 신것을 함께 먹도록 주어졌다. 인생살이를 한송이 포도를 먹는방식에 비유한 재미있는 서술이 있다. 어떤 사람은 먼저 신것을 좋아한다. 그들은 신것을 먹은 연후에 가슴설레이는 희망을 안고 단것을 먹으려 한다. 반대로 어떤 사람들은 먼저 단것을 먹은후 아름다운 추억속에서 신것을 먹는다. 첫부류의 사람들이 포도를 먹는방식은 고전적이다.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젊어서 한 고생은 은을 주고도 못산다는 인생철리를 깨닫고있는 사람들이다. 현대인들속에는 먼 저 단것을 먹어치우고 그다음은 어떻게 될지 관계치않는 사람들이 더많다. 이런 사람들은 급공근리(急功近利)적이요 목이 마르면 소발자국에 고인물도 약수라고 마실수 있는 사람들이다.     어떤 사람들은 금세에 신것만 먹으려 하면서 단것은 두었다가 래세에 먹으려한다. 이런 사람들은 굳은 땅에 물이 고인다는 근검정신은 잘알고있다. 비록 물을 가두기만 하는 저수지와 같은 삶을 살지만 곰이 옥수수따기식으로 무모하게 사는 사람들보다는 퍽 사랑스러운 사람들이다.     또 내내 단것만 먹으려 하는 맹랑한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신것을 먹어야 할 때 아예 살고싶은 마음이 없어한다. 안해나 남편이 외국에 로무일군으로 나가 서 기시받고 눈물 흘리며 땀에 절은 돈을 벌어들이건만 그야말로 유한계급으로 호강 하기 일쑤이다. 특히 집에 두고 간《귀공자》,《공주님》들이 이류의 단맛보기에 더 열중하고있다.     또 다른 부류의 사람들은 단것, 신것 다 맛보았지만 어떤 맛인지 모르거니와 원래의 맛마저 잊고만다. 이런 사람들은 늘 희망에만 매달려있다가 실망의 쓴 술잔을 들게 된다. 행운은 언제나 달에 걸려있는것이 아니던가? 어떤 사람들은 신것을 먹어 보고는 나머지 포도알은 죄다 달콤할것이라고 단정해버린다. 그러나 흔히 헛다리짚기 식으로 너무 일찍 좋아한 셈이다. 마지막 포도알마저 신것일수 있기때문이다. 오늘의 맑은 하늘만 쳐다보며 언제 밀려올지 모르는 비구름은 예상하지 못하는 단순한 사람 들이다.     포도가 수백종이듯이 한송이 포도송이도 그맛이 꼭같은것은 아닌지라 사람에 따라 느끼는 맛이 각양각색일수밖에 없다. 례컨대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의 포도는 꼭 신것일것이라고 선험적으로 판단하는데 자신이 쥔 포도가 달것이라고 믿고있기에 나중에 예상과 다르게 되면 자신의 포도가 세상에서 제일 신것이라고 운명을 원망한 다.     철학적사유를 하는 사람들은 신것도 단것도 먹을수만 있다면 곧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예술형사유방식을 가진 사람들은 포도가 좋읁 술로 빚어지기를 기다렸다가 먹으면 더 취할것이라고 믿는다. 아니면 건포도가 된 다음 먹으려한다. 메마른 인생을 있는 그대로 살아가려 하지않고 가능한한 가미하고 가꾸어가면서 사는 운치있는 사람들이다.     매우 많은 다른 부류의 사람들은 리해득실부터 앞세우면서 자신이 남보다 손해볼가봐 안달하고 량껏 먹지못할가봐 속을 썩인다. 이런 사람들은 경쟁의식이 있고 생활의 강자로 될 기질이 있는지 모르나 자칫 참새 방앗간 지나는격이 될수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어둠속에서만 포도를 먹게 되는데 선택의 여지가 없으므로 운수에 맡기지 않으면 손더듬으로 고를수밖에 없다. 만약 신것을 골랐다면 자신이 불우하다 고 한탄하고 혹 단것을 먹었다 해도 아름다운 포도의 색갈은 볼수 없다. 생활의 장님들이라 할수 있다. 그들은 주어진 운명에 순종하며 인생의 긴 턴넬속을 무작정 걷고 걷는 타입들이다. 이런 사람들 가운데 요행심리가 곧잘 나온다. 이를테면 달나 라 광한궁에서 절구질하는 옥토끼가 은절구공이를 든채 제집 가마안에 떨어져 삶기 지나 않을가 하는 환상속에서 늘 요행을 바라고 긴목을 빼든다.     어떤 사람들읁 신포도 몇알을 먹고 포도는 죄다 신것이라고 단정해버리고 어떤 사람들은 단 한알의 단것을 떼먹고는 미만한 인생에 감격하고만다. 이들은 다 코끼리 다리를 만져보고 코끼리는 기둥같다고 하고 배를 만져보고 코끼리는 바람벽같다고들 말하는 장님들과 같다. 이런 사람들은 흔히 한차례 좌절에 눈물코물 쥐여짜는 약지자 (弱智者)들이다.     혹 어떤 사람들은 신것과 단것을 통채로 삼켰으나 미각이 마비되여서 시고 단맛을 분별하지 못하거나 시든달든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은 눈물젖은 빵을 먹어보지 못했거나 하루밤 통곡해보지 못하고 그저 살아있음을 느끼면서 도일 (度日)할수 있다. 세상에 완전완미하거나 맛이 똑 같은 포도송이는 없다. 오직 최적 의 먹는 방식만이 있을뿐이다.     한 사람의 인생을 에필로그가 없는 길고 짧은 소설에 비유할수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별생각이 없이 훌훌 넘겨버린다. 그러나 명지한 사람들은 한페지 한페지 알심들여 읽으면서 사고하고 음미한다. 그들은 두번다시 읽을수 없는 생활의 책이라는것을 잘알고있기때문이다. 남이 써가는 인생노트를 어깨너머로 보면서 장훈이야, 멍훈이야 하면서 혼자 흥분해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제 목숨을 제가 산단는것을 잊고 있는 격이다.     이렇듯 생명은 하나의 발견과정이 아니라 창조과정이다. 환언한다면 당신은 자신을 발견하는것이 아니라 자신을 다시 창조하는것이다. 그속에서 사는 맛이 느껴 진다. 그러므로 내가 누구인가 하는 발견에 급급해 하지말고 누구를 만들것인가에 급급해해야 할것이다.      아무튼 세상을 사는 맛은 당신이 빚고있는 지금의 생활, 그  자체일뿐이다.                                            2003 년  7 월 5 일    
336    문인의 비애 댓글:  조회:7708  추천:0  2013-10-02
                                            문인의 비애                                                  최 균 선       철없는 시절의 야망은 이름짜한 작가 아니면 무슨 학자나 되는것이였는데 워낙 그렇게 생겨먹은 놈이여서인지 아무것도 성사하지 못하고 조촐하게《서당훈장》으로 주저앉고말았다. 그래서 느껴지는 실망감에서일가? 아니면 해놓은 일은 없이 나이테만 자꾸 둘러지는 허무함에서일가? 오락가락하는 비애의 낭떠러지에 해답이 묘연한 의문의 갈구리들만 잔뜩 걸려서 절그럭거린다.     글이란 뭐냐? 글을 써서 무엇해? 하다가도 여우가 포도를 먹을수 없으니깐 포도는 시다고 하는 말같아서 얼굴이 간지러운데 환상의 다락방에서 낮꿈을 꾸면서 지구를 달속으로 쏘아올리면 시라는것이 튀여나올가? 큰길을 어정어정 걷다가 누구에게 밀리워 하수도구멍에 빠지듯 아슬아슬하고 기이한 우연을 잡아쥐면 소설이 이루어질가? 하는 생각이 지꿎기만 하다.     아무튼 자고로 어떤 형태의 글이든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로 선(善)을 권도함으로써 인간을 향상시키는것이 목적이였지만 맑스님이 말한《비판의 무기》도《무기의 비판》이 되여진적은 없으니 이 아니 비애냐? !     옛날옛적에 공자님이《춘추》를 지으시자 란신적자(乱臣贼子)들이 모두 두려워했다하고 근대에 누군가《문자성공(文字成功)》이자 자발적인 세계혁명의 고조의 날이라고 말했지만 결국 문인의 아름다운 념원에 불과한것이 아니였던가? 그래서 조선 조시기의 백호 림제가《말하면 미치광이라고 하는 세상/ 입다물고있으면 어리석다하는 세상/ 절레절레 머리젓고 가는 까닭/ 아는이 어이없으랴 》라고 읊었는지도 모른다.     로신선생의 동생이자 문호였던 주작인도 붓을 희롱하던 끝에《문자는 민속상에서는 아주 신비한 위력이 있지만 실제상에서는 교훈적인 효력이 조금도 없다. 비록 력대의 많은 문인들이 문장을 지어 나라를 다스리고 세상을 바로잡으려고 희망해왔 지만 종당에는 자기위안에 그치고말았다.》고 개탄했다.     그럼 오늘을 살펴보자.《탐관오리》들이나 부정부패를 탄핵하는 도덕성토의 글들 이 여러 신문들에 심심찮게 실리지만《춘추》를 두려워한 《란신적자》들을 당신은 보았는가? 예로부터 문인정신의 핵은 우국우민정신이였던것만은 사실이다. 사회정수 로서 이런저런 나라일을 관심하고 이끌려는것이 나쁜일은 아니였것만 그들이 아무 실권이 없는데다 사대부들이 심히 아니꼽게 보아왔으니 딱지투성이머리가 빗을 꺼려하는것과 같은 도리이다. 그러니 옛성현들의 기개를 본받아 격앙문장이나 써내여  선비의 오기를 뽐낼수밖에 없었다.     구사회에서 문인이란 정권이라는 가죽우에 난 털에 지나지 않았으니 무엇을 어쩐단말인가?《죽림칠현》도 좋고 당조《4걸》도 좋고 청조의《무술6군자》도 좋고 모두 어쩌지 못했으니 아마도 이것이 문인의 비애이리라.옛날은 옛날이려니와 지금도 만약 현대 중국문인들이 로신선생처럼 담량이 있어서 날이 선 문장들을 쓰려고 마음먹는다면 소재의 결핍은 느끼지 않을것이다. 선지선각자가 아니래도 말이다.     하긴 시대적추이에서 감안한다면 로신선생의《비수》도 시대성의 제약성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할수도 있겠다. 한때 얼마나 많은 문인들이 배부른후 식은 차물을 마실 때의 그런 싱거운 심정으로《제비가 춤추고 꾀꼴새 노래하는》아주 좋은 형세에 감탄부호를 찍기에 열중했던가? 지금도 신을 신고 발바닥을 긁는식의 글들을 드믄히 볼때면 문인의 행렬에 들어서지 못한 내 주제에도 비애에 빠져들지 않을수 없다.     하기사 어떤 권세가들에게는 당규률과 국법마저 보통 문건에 지나지 않는데 문인들이 시야비야하는 글들이 다 무엇이랴싶어지면서 더구나 막무가내한 허탈감에 빠져 들기 일쑤이다. 수천년의 문화사에서《문자옥》은 수많은 문인들을 압살하였으니 릉 연각상(凌烟阁上)에 뉘 얼골 그렸던고? 문인은 종래로 세상을 놀래울 일을 한적이 없었고 또 해낼수도 없었다는것을 뒤늦게야 깨달았을 때 실로 굳잠에 빠졌다가 귀찮게 깨여난 때처럼 짜증이 나고 재수없음을 느끼지 않을수 없다.     그런데 어찌보면 좋은 글을 써내지 못하면서도 여윈 코등에 250도짜리 돋보기를 연신 추슬러가며 문인말석에라도 앉아볼가 하여 모지름을 쓰는 나자신도 되게 딱한 놈이다. 그도 그럴것이, 《지호자야》하고 뇌까리던 저 공을기처럼《회자도 쓰는 법이 네가지인데 너 아니?》하는식으로 자신도 잘알지 못하는 무슨 창작지식 같은것을 청년학생들에게 되풀이하느라 머리가 다 세였으니 실로 가련도 하다.     자신이 문인으로 거의 숙성되였다고 착각될 때는 열정의 밤을 달구다가도 밝는 날에는 풀이죽어버린다. 별로 먹물이 들지 못한 사람들도《바다》에 뛰여들어 고래서껀 잘만 건져내여 벼락부자가 되는판에 차라리 남는 정력이면 조류에 따라 미역을 건져내든 새끼조개를 줏든지 하는게 명지했을거라고 생각이 들때면 무슨 조처를 낼듯이 서둘다가도《군자는 리익을 말하지 않고 선비는 가난을 꺼리지 않거니…》하는 곰팽이낀 옛계률에 주저앉아 청고함이나 론하면서 안빈락도(安贫乐道)에 만족해야 하니 한심하지 않으랴!     분노가 시인을 낳고 불행이 작가를 낳는다고 누가 말했던지. 아무튼 문인들은 진리에 매달려 자기생명의 가치를 확신해보려 한다. 인간이 하느님앞에서 진리를 말하면 씩 웃어버리고 너무 진리에 가까운 질문을 들이대면 그만 노여워하는데도 말이 다. 이래저래 고통과 유감은 문인의 숙명이라 하겠다. 그런대로 고통을 짓씹어삼키고 한과 울분을 토해낼 용기라도 있으면 대문인이 되는것이고 내심상 고통스럽지 않거나 덜 고통스럽다면 평범한 문인으로 만족해야 할것이다. 그래서 문학은 더구나 고민의 상징체요, 문학은 생명력의 직접적인 웨침이 되는것이다. 진실한 인생에 유감이 있기마련일 때 문학도 유감의 문학이 되여질수밖에 없다.     허나 문인의 고통은 지혜로운 고통이다. 헤겔도 하나의 심각한 령혼속에서의 고통은 어디까지나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 고통이라 말했거늘 문인은 비판적생명체일 수밖에 없는것이다. 자결로 자기생명에 종지부를 찍은 모파쌍이나 헤밍웨이, 쟈크 론돈  또는 마야꼽쓰기 등 문호들도 고통과 비애속에서 해탈하기 위한 다른 길이 없었던 모양이다.     거짓이 판을치며 돌아다니는 비정한 현실속에서 찬가만을 엮기에는 벌써전에 목이 쉬여버린 문인들이고 너무 지쳐버린 문인들이다. 물론 생활은 거짓때문에 훼멸 되지않을것이며 문인의 량지는 진리와 함께 영생할것이다. 문인의 감정표달에 예술 화의 기교가 수요되는것은 사실이지만 자기의 정감, 사상을 위장해서는 안될 일이다.     그러나 아직 넘지 못한 높은 문턱앞에서《들깨!문열어》하고 가냘프게 웨쳐볼수밖에 없는 나ㅡ되다가만 문인의 비애는 더구나 처절할수밖에 없다.                                             1999년 3 월 9 일                                             《길림신문》      
335    제 잘난 멋 댓글:  조회:8463  추천:0  2013-10-02
                                                       제 잘난 멋                                                             최 균 선       《장자. 추수편》에 《한단학보(邯郸学步)》라는 전고가 있는데 얘기인즉 걷는 맵시가 각별히 우아하고 대범해보이는 조나라 사람들의 걸음새를 배우러 간 연나라 사람이 결국은 그 걸음새도 배워내지 못했을뿐만아니라 자기의 걷는능력마저 잃어버리고  나중엔 벌벌 기여서 귀국했다는것이다.     현대문명인들에게는 한낱 웃음거리로밖에 안되는 얘기이지만 우리 말 속담에 《재내비잔치》라는 말이 있는것처럼 이 이야기도 남을 흉내만 내는것을 예로부터 경계하고 꺼려했음을 알려준다. 흉내를 내는데는 원숭이를 으뜸으로 꼽아야 할것이고 버금으로는 앵무새를 추천해야 할것이다. 그것들이 어찌하여 그토록 신통히도 얄망궂게 사람흉내를 잘내느냐 하는것은 동물학자들에게 맡겨둘 일이고 아무툰 흉내쟁이 원숭이가 구경군들의 흥심을 자아내기 안성맞춤이나 아무리해도 사람으로 될수는 없는것이요. 앵무새가 총명하고 령리하여 주인의 애완용으로 귀여움을 받겠지만 역시 그런 숙명에서 해탈될수는 없는지라 이 역시 그것들의 멋일는지…     하긴 인간도 선천적으로 모방이라는 기특한 심리를 고유하고있는데 자기보다 월등하거나 돋보이면 그저 닮아보고싶어하는것은 인간의 주체정신의 결여라고 하겠다. 예로부터 항간에 사람은 제 잘난 멋에 산다는 말이 있는데 지지리 못난이라도 제나름 대로 마음의 기둥을 세우고 남에게 끌림이 없이 스스로를 영위한다는것이 삶의 멋일게다. 시체말로 하면 생명본체의 본위성에서 오는 자립, 자존, 자강, 자애같은 이른바 주체의식을 권장하는 의미도 다분한것이다.     아닌게아니라 사람에게 이런 오기마저 없다면 살맛이 다 없어져 자기존재마저 귀찮아질테니까. 그래서 조금만 패기있는 사람이면《까짓걸, 나는 나지》하며 오기를 가지고 세상을 열심히 살아가고 지성인들은 자기 생활의 궤적우에 너절한 흉내따위는 아예 멀리하고 창조ㅡ자기가치의 발현에서 삶을 빛내는것이다.     그런데 이 몇년래. 박래품의 밀물과 더불어 많은 사람들이 가져오기주의로부터 아예 닮아가기, 험하게 말해서 흉내내기에 열을 올리고있는데 그야말로 단번에 환골 탈태라도 할듯이 서두르는 품이 정말 왼고개가 탈릴 일이다. 그래서《가시내가 오랍 아 하면 머시매도 오랍아 한다》는 속담이 생겼는지 모르겠다. 재주껏 열심히 제낚시 로 큰 고기든 붕어든 미꾸라지든 낚아보려 노력해야지 남의 다래끼에 넘치는 물고기 를 꺼내들고 붕어니 잉어니 하면 너스레를 떤다면 보는이가 먼저 얼굴이 화끈해질 일 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우리 주위에는 그 옛날의《연나라사람》이 너무도 흔하다. 무슨 옷차림새요, 말씨요, 노래창법이요 지어는 감정세계까지 본따려는듯 무병신음같 은 노래를 부르며 득의양양해하는 그런 뼈대없는 사람들을 보면 다시 쳐다보이게 된다. 따라배운다는것과 흉내낸다는것은 인격적으로 다른 몸가짐이다. 우리의 생활권 내에서 자신의 산을 조금씩이라도 쌓아볼 마음을 가져보자. 그저 모래바람이 불어치 면 모래언덕이 되고 홍수가 들이닥치면 구지레한 소택지가 되는 평지로만 한생을 자 족하지 말고 우리도 자기의 자랑거리를 만들어보자는 절규이다.     잘살고 못살고가 량심과 얼까지 빼앗길 일이라면 그 사람에게 남을것은 허울밖에 더 있을가? 개방의 창문이 열린것은 좋다. 그런데 신선한 공기와 향기뿐만아니라 구리내도 페부에 스며들고 똥파리도 날아들수도 있다.     무작정 남의 흉내만 내고 다닌다면 뼈대없는 맹종자가 될것이요, 마침내는 굴종 이 되고 그 뒤에 오는것은 자아상실과 허무감뿐일것이다.    아하, 사람들은 제 잘난 멋에 산다는데 우리 연변의 겨레들도 오기를 부리며 좀 제 잘난 멋에 세상을 활개쳐가는것이 어떠할가?                                   1994 년 7 월 9 일     
334    《정치방귀》와 그 위해성 및 기타 댓글:  조회:7990  추천:0  2013-10-02
                        《정치방귀》와 그 위해성 및 기타                                                       최 균 선       항간에서는 터무니없는 거짓말이나 허튼소리를 속된 말로 개방귀같은 소리를 한다고 욕하거나 개나발을 분다고 타매한다. 개란 워낙 똥을 먹고살고 또 그래서 여느 짐슴보다 방귀가 특별히 구려서 이렇게 비유했는지 알수없으나 개방귀든 개나발 이든 아무튼 인명사고와는 관계없으니 그저 구린대로 코를 싸쥐고 돌아서며《에익, 망할것!》하는수밖에 없다.     세상에는 구리기로 유취만년하고 또 지구적으로 인류에게 위해로운《방귀》가 있으니 그것을 필자는《정치방귀》라고 불러둔다.《정치방귀》란 곧 어느 나라의 정부수뇌자나 정치거두들이 자국의 정치수요에 따라 허튼소리로 자기를 분장하거나 죄악 을 덮어감추는것을 이르는 말이다. 이런《정치방귀》를 뀌는 나라가 세계에 어찌 한두개 나라뿐이랴만 고금동서에 일본을 첫손가락으로 꼽아야 할것이다.     필자가 공연히 일본을 미워해서가 아니라 계제가 그렇게 되였으니까 하는 말이다. 《인민일보》만화증간인《풍자와 유모아》에 화군무선생의 만화 한편이 실렸는데 작자는 항일전쟁시기에《상해보》에서 일본사회에서 방귀뀌기시합을 한다는 소식 한 편을 본적이 있다고 주석을 달았다. 작자의 말에 의하면 방귀시합이 민간풍속인것이 아니면 어느 미친놈이 우연하게 발기한것인지 잘 모르겠으나 이것으로 보아도 일본에서는 워낙 방귀에 각별한 흥취를 가지고있지 않느냐고 하였다.     그건그렇다치고 일본사람들이 확실히《정치방귀》도 썩잘 뀐다는 사실은 대서 특필할만하다.《정치방귀》가족의 족보를 들추어낸다면 70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당시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악마의 화신인 도죠 히데끼를 선조로 모셔야 할것이다. 도죠 히데끼는《사흘내에 지나를 멸망시킨다》는《정치방귀》를 요란하게 뀐후 발톱까지 무장한 이른바 무사도 졸개들을 내몰았다. 그런데 그번《정치방귀》는 대단히 잘못 뀌였다. 사흘이 아니라 8년항전끝에 결국 골탕을 먹고 나중엔 원자탄의 세례까지 받아서 무조건투항을 선포하지 않을수 없었던것이다.     물론 그번《정치방귀》는 중국, 조선 나아가서 아시아 여러 나라에 참혹한 재난을 가져다준 지독한것이였다. 따라서 일본 자신도 자아훼멸의 재난을 자국인민들에게 덮씌웠다. 도죠 히데끼의 충실한 후손중 둘째로 손꼽을수 있는자는 원일본법무대신 이였고 현임중의원 의원인 오끼노이다. 세인이 치를 떨고있는 《위안부》 문제를 《영업주가 경영한《상업행위》라느니《일본정부는 그런 일을 저지른적이 없다》느니 하고 나발분 이자는 일본군국주의죄행을 공공연히 덮어감추는 후안무치하기 짝이 없는《정치방귀》선수라 하겠다.     그의 뒤를 바싹 따라 방귀시합에 뛰여든자는 현임 일본수상 하시모도이다. 이자는 7월초에 금년《8.15》일본전패기념일에는  야스쿠니신쟈를 참배하지 않겠노라고 전 세계를 향해《정취방귀》를 팡 뀌였다. 야스쿠니신쟈란 세상이 공인하는 력차의 침략전쟁에서 죽은 자들을 제사지내는 곳으로서 도죠히데끼 등 14명 갑급전쟁범들 을《소화순국자》로 삼아 봉사한 악명높은 장소이다. 일찍 여러가지 신분으로 신쟈를 참배해오다가 1985년에는 수상의 신분으로 버젓이 신쟈를 참배하여 세계적인 물의를 일으켰던 나까소네도 한바지가랭이안에서 《정치방귀》를 뀐 선수라 할것이다.     근간에 일본 나까사끼시의 한 자민당의원단에서도 이따위《정치방귀》를 요란하게 뀌고있다. 이른바《원자탄폭발자료관》에 진렬된 2차대전에 관한 자료를 그들은 38개곳이나 뜯어고쳤는데 아시아 각국에 대한 침략을 그 무슨《세력확장》이요 《군사행동》이라고 불어댔는가 하면 더구나 한심한것은 남경대도살자료를 고의적으 로 빼버린것이다. 리유라면《일본군대의 잔혹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인과보응으 로 잘못 인식하게 할수 있다.》는것이다.     이런《정치방귀》는 마치 일본이 전쟁도발자가 아니라 피해자인것처럼 가상을 지어 자국인민을 기만하기 위해 알심넣어 뀐것이다. 아무튼 일본에서는 이런저런 《정치방귀》소리가 요란하기 그지없다. 이를테면《대동아공영권론》,《아시아식민 지해방론》,《원동군사법정비법론》,《남경대도살사건날조론》등 많고 많다.     대저 소리가 요란하게 방귀를 뀌는자들은 후안무치하다고 한다면 그것을 잘한다고 응원하고 선동하는자들도 또한 가증스럽기 그지없다. 그게 어떤자들이냐?《일본 유족회》전무리사 모리따는 하시모도가 참배가《계속되여 자연스러운 행위로 될수 있기를 바란다.》고 손벽치며 응원했고 일본여론계의 적지않은 사람들도 하시모도의《정치방귀》를 칭찬하면서《정정당당하게 신쟈를 참배하라》고 선동하고있다.    일본의 내속을 알수 없는 나라이고 일본사람은 내속을 알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세계적평판이 딱맞는것 같다. 일본인은 사람과의 관계에서나 국제래왕에서 극구례 절을 차리는 인상을 주고있고 또 스스로《유술로 왕도》를 실행한다고 자칭하고있다. 하지만 인정을 절멸시킨 남겨대도살을 감행한것도 일본인이요, 중조인민을 세균실험 용으로 삼은것도 일본인이며 이른바《선풍식자살공격기》로 자국쳥년들을 가차없이 대포아구리로 밀어넣은것도 일본이다.     무엇때문에 한개 민족이 그렇듯 모순된 이중성격을 가지고있는가? 이 역시 하나의 수수께끼가 아닐수 없다. 그러나《알수 없다》는것은《알필요가 없다》는 말이 아니다. 우리는 사람마다《일본학》을 참답게 연구해야 할것이다. 왜냐하면 내속을 알수 없게 하는 작법에 위험천만한《정치방귀》가 들어있기때문이다.     제2차대전후의 일본의 국민성에 대해 한 미국학자가 심각하게 개괄한바 있다. 일본민족은 국화와 군도의 도안으로 이루어진 민족으로서 그들은 국화를 재배하면서 예술의 꽃을 피우는 동시에 또 군도를 숭배함으로써 무사도를 숭배한다. 그 국민성으 로 보면 싸우기 좋아하면서도 회해롭고 착하며 무(武)를 숭상하면서도 또 미를 사랑하고 지극히 야만적이면서도 고상하고 우아하며 각박하기 짝이 없으면서도 적응성 또한 강하다. 상급에게 귀뺨을 얻어맞으면서도《하잇, 하잇》하는 순종형이면서도 의리를 지키지 않고 배신을 잘하며 책임을 회피하는 등등이다.     미국학자의 관찰과 연구는 확실히 독특하면서도 또 흥미를 끈다. 또 일부 면에서 확실히 일본국민성의 심층을 파헤쳤고 요해를 찔렀다고 할수 있다. 그러나 다른 견해를 세울수도 있다. 이런 분석, 개괄은 표면현상의 퇴적이라 할수도 있다. 왜냐하면 어떤 민족의 국민성이든 하나로 통일된 조화로운 정체일수 없으며 하나가 둘 혹은 셋으로 나뉘듯이 이중, 삼중의 성격일수도 있으며 좌중우익의 여러 류파로 구분되기도 하니 말이다.     하기는 제2차세계대전후 일본민족가운데에 국화숭배자와 군도숭배자들간에 모순이 지금까지 일본국내모순의 초점으로 되고있다는것이다. 어떤 일본정객들이 우익분 자들의 수요에 발맞추어 제2차대전에 대해 심각하게 반성하려 하지 않고 력사를 뜯어고치는 등 추태극을 벌려 자기들의 력사적죄악을 덮어감추면서 부단히《정치방 귀》를 뀌고 야스쿠니신쟈따위를 참배하는 등 활극을 놀고있다.     이 모든 사실과 경향들을 일본의《군도숭배자》들의 력량을 가볍게 볼것이 아니며 그들의 대변인들이 계속《정치방귀》를 뀌고있다는것을 우습게 보아서는 아니된다 는 계시로 되고있다. 이런자들이 일단 득세하여 다시 력사무대에 등장하게 되면 일본은 기필코 피비린 전철을 무시해버리고 군국주의전차에 뛰여올라 아시아 각국 인민들에게 재난을 들씌울수 있다는것은 뻔하다.     한국소설《무궁화꽃이 피였습니다》에서는 이런 비밀적대화묘사가 있다.《저 망망한 태평양과 풍요한 씨비리를 돈주머니로 다스릴수 있는가? 없다. 오직 군력에 의거해야 한다.》이것은 비록 소설에 나오는 검은 세력의 두목들간에 주고받은 말이 지만 악마가 잠시 칼을 놓았다 해서 결코 부처님으로 될수는 없다는 단적인 증명이기도 한것이다. 일본은 이미 자위대의 범위를 훨씬 벗어나 국방력을 가강하고있으며 세상에 다 알려진바 7000여개의 핵폭탄을 만들수 있는 핵재료구입을 다하고있다. 근년에는 또 외국에 파병하는데 흥취를 가지고있으며 실제로 파병을 하고있다.     일본은 1960년대에 이미 국민경제를 회복하였으나 의연히 어떻게 가난하다고 우는 소리를 하면서 3등국가로 보이기에 애썼으며 1970년대에 공농업현대화를 완수하여 국력이 넘쳐났으나 여전히 자기들의 참모습을 숨겨왔던것이다. 1980-1900녀대에 와서야 비로소 경제면에서 출격하여 자동차, 전자공업에서 미국을 꺼꾸러뜨리렸다. 이러한 이웃을 둔것이 우리 중국사람들에게 행운인지 불행인지는 력사가 증명할것이다. 물론 일본국내에서《국화숭배자,《군도숭배자》간의 투쟁은 치렬한것도 사실이 다. 일본 와세다대학의 한 교수는 중국에 방문왔을 때 다음과 같이 솔직하게 고백한바있다.   《지금 일본통치자들이 이따금씩 제2차세계대전시기에 중국을 침략한것을 사죄한다지만 그것을 결코 믿지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근근히 정치수요에서 하는 겉치례로서 총체상에서 말하면 일본민족에게는 중국에서 저지른 침략죄행에 대한 참회의 식이 없습니다. 중국의 지나친 관대는 오히려 그들의 기염을 돋구어줄뿐입니다.》     이에 수반하여 노벨문학상수상자인 일본작가 오에 겐신로도 중국작가들에게 건의한바 있다.《제2차세계대전에 관한 력사문학작품을 잘 써서 일본인민들로 하여금 당년 일본군국주의자들의 침략만행을 잘 인식하도로 해야 합니다.》     이런 우방인사들의 충언은 참으로 심사숙고할바이며 젊은세대들에 대한 경종이 아닐수 없다. 사실상 새 일대들은 력사를 좀 배워서《7.7로구교사변》이나《9.18사 변》,《8년항전》같은 력사개념들을 두루 기억하고있으나 우리가 지불한 참혹한 대가와 혈채에 대해서는 절감하지 못하고있으며 오히려 일본이 중국보다 더 잘산다는 데 대한 호감이 더 강하고 일본상품에 군침을 흘리고있는 형편이다.     하긴 우리 나라에서《갱도전》이나《지뢰전》,《철도유격대》같은 전통교육영화를 때때로 돌리나 예술작품속의 오락성에 의해 자칫 일본군대를《소일본》의 허수아 비로 인식하기 쉬우며 그나마 우리의 중소학교 학생들은《시시하다》고 여기고있다.     되돌아와 부언하거니와 오끼노와 같은자들의《정치방귀》하시모도같은 혀가 두가닥인《군도숭배자》들의 선동이야말로 군국주의를 부활시키고《대동아공영권》의 옛꿈을 꾸고있다는 징표라는것을 국민이 다 알아야 한다. 우리 중국에는《족제비가 방귀를 뀌여서 자기를 보호한다.》는 말이 전해내려오고있다. 오끼노나 하시모도가 바로 이런《족제비》들로서 아무리《정치방귀》로 자기들의 원형을 덮어감추고 력사를 외곡하여도 각성한 전 세계인민은 절대 용납하지 않을것이다.                               1996년 9월 21 일                                       《흑룡강신문》           
333    사회의난잡증을 전문 치료함 댓글:  조회:8570  추천:0  2013-10-02
                                  사회의난잡증을 전문 치료함                                                      최 균 선       버릇처럼 무딘 붓끝을 꼬나봤대야《비수》나《투창》이 될리만무하고 혹 꼬나봤댔자 해도 제자신이나 상하기 십상이니《식자우환》이라 할가? 그렇다고 사사건건 신변잡사를 늘여놓거나 화조월석을 뇌까리면서 까다로운 문구를 치약 짜내듯 하며 오기를 피우는것도 싱거운 짓이라 그저 붓방아만 찧다가 담배연기 굴뚝같이 토해봐도《령감》은커녕 상사병에 죽은처녀귀신도 접어들지 않는다.     청조때 장조란 선비가 《로년의 독서는 대에 올라 달을 희롱하는것과 같을진 저…》하였으니 초당의 학구나 되여본다? 낡은 책을 얻어내여 도깨비 기와장 번지듯 하다가 문득 붓놀림이 귀신같이 될만큼 만권서를 독파하기전에 늙은 책귀신밖에 더 되랴싶어서 빈 하늘만 막연히 바라보고 앉아도《동쪽 울타리밑에 심은 국화꽃 따다가 / 유연히 남산을 바라보노라》하고 읊었던 도연명같은 초탈함도 가질수 없으니 내가 무슨 의난잡증에나 걸린게 아닌지…     그래서 맨머리 샤쯔바람으로 거리에 나섰지만 오라는 곳이 없고 나 또한 가보고 싶은 곳이 없는지라 이 골목 저 골목 기웃거리다가 한 우중충한 4층집앞에서 발길을 멈추었다.《사회의난잡증을 전문 치료함》이라는 생경스러운 글이 내발길을 잡은것이다.     호기심에 끌려 찾아들어가니 4층 맨 구석방에 로선생이 근엄하게 앉아있었다. 선풍도골은 아니였으되 도고한 그 모습은 옛날 덕망높은 은자를 련상시키기에 족했다. 게다가 눈까지 형형했고 석쉼한 목소리에 저력까지 있어 위엄스러웠다.     《선생은 무슨 의난잡증에 걸렸기에 여기로 오셨소?》     《예, 다른게 아니고 로선생께서 유별난 행업을 택하신게 궁금해서 얼핏 들려보 았았습니다.》     《이 로옹을 공연히 난처하게 굴려는게 아니라면 지인지감으로 받아들이겠소. 서구의 한 사회학자가 마음이 밝은 사람에게는 사회가 하나의 큰 병원으로 보이고 인간은 곧 병자라고 하였소. 문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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