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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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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미친 사람의 이야기 댓글:  조회:3481  추천:0  2013-12-01
단편소설   미친 사람의 이야기 김희수     그 당시 그 미치광이는 머리가 피투성이 되여 쓰러져있었는데 주위에는 거울쪼각들이 어지럽게 널려있었고 곁에선 한 젊은 녀인이 목놓아울고있었습니다. -목격자의 말     1   《저인 요즘 영 이상해요. 자꾸만 노란 웃음이요, 노란 행복이요 하며 정신없이 중얼거리는게 그저 일 같잖아요.》 나를 억지로 병원에 끌고 온 안해는 최박사앞에서 자못 근심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노란 웃음, 노란 행복이라...거참 재미있는 말인데요.》 최박사는 무슨 괴물이라도 보듯 안경너머로 나를 건너다보았다. 최박사를 마주하고 환자의자에 앉은 나는 졸리는듯 하여 눈을 감아버렸다. 《오늘 아침에도 조밥을 했더니 글쎄 조밥을 멍하니 바라보더니 또 노란 웃음이요, 노란 행복이요 하며 중얼거리는게 정상적이 아니였어요.》 《아, 그런 일이였군요. 작가들은 가끔 작품을 창작할 때면 반상적인 때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령감이 떠오르거나 구상에 사로잡혔거나 또는 작중인물에게 큰 사건이 발생했을 때엔 미친 사람처럼 중얼거리기도 하고 고래고래 소리지르기도 하고 울고불고 야단치기도 하는데 이런 증상은 정상적인것이니 부인께서 안심하십시오.》 《절때 그런게 아니예요. 이전에도 숱한 작품을 써냈지만 한번도 그런 증세가 없었어요.》 《그렇다면 좀 다른 경우로 봐야겠습니다.》 제길, 너희들이 잘도 찧고 까분다. 뭐, 내가 정상이 아니라고? 나는 대작가야. 내 작품이 영문으로 번역되지 않아서 그렇지. 영문으로 번역되였더라면 10년전에 노벨문학상을 받았을거야. 이런 위인을 함부로 정상이 아니라고 주둥일 놀리는 너희들이야말로 진짜 미친놈이지. 《저…김작가님께 가르침을 좀 받읍시다. 노란 행복이란 어떤것입니까?》 최박사의 조소하는듯한 물음에 나는 눈을 번쩍 떴다. 《네?》 《노란 행복말입니다.》 나는 안해를 바라보았다. 안해는 무표정하다. 왜 웃지 않을가? 이때 창으로 비쳐든 노란 해살이 안해의 얼굴을 노랗게 물들인다. 안해는 웃었다. 안해는 언제나 노랗게 웃는다. 안해가 노란 웃음을 머금고 나한테 시집왔을 때 나의 가슴엔 노란 행복이 물결쳤다. 나에게 노란 행복을 안겨준 안해는 시집 온 이듬해에 노랑머리 계집애를 낳았다. 맙시사! 노랑머리라니…이게 무슨 변고인고? 안해와 나의 머리는 그믐밤같이 까만데… 《노란 행복의 씨앗을 뿌렸기에 노란 열매가 달린겁니다!》 나는 큰 소리로 웨쳤다. 그러자 최박사는 안해와 놀란 눈길를 교환하더니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김작가님의 말씀이 너무 심오하여 리해하기 힘듭니다. 자세히 말씀해주십시오.》 나는 갑자기 흥분되여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부르짖었다. 《은주가 바로 노란 행복입니다!》 《은주는 누굽니까?》 최박사가 안해를 보자 《우리 딸년이예요.》 한다. 《집의 따님이라구요? 그런데 따님이 어째서 노-오-란 행복입니까? 행복은 어째서 노란 색갈입니까?》 최박사의 물음에 나도 어리둥절해났다. 행복은 왜 노란 색갈일가? 분명 다른 색갈이였을텐데… 《행복은 원래 노란 색갈이 아닙니다.》 《그럼 무슨 색갈입니까?》 무슨 색갈이였던가? 행복은 원래 무슨 색갈이였던가? 안해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무리 머리를 쥐여짜도 도무지 생각나지 않는다.   2   《아빠, 해해 나 곱지?》 보던 신문을 내려놓으니 노란 행복이 내앞에서 생글생글 웃고있었다. 책가방을 멘 채로인걸 보아 방금 학교에서 돌아온 모양이다. 《그래 응, 곱다곱다.》 나는 건성으로 대답하고 다시 신문을 들여다보았다. 그러자 노란 행복이 신문을 홱 나꿔채며 응석을 부린다. 《응응…아빠 나 좀 봐. 뭐, 달라진게 있지?》 《그제야 찬찬히 여겨보니 노란 행복의 앞가슴에서 빨간 물체가 불타고있었다. 《오, 우리 은준 홍소병…》 《소년선봉대야.》 창으로 비쳐드는 해빛을 받아 그 빨간 물체는 더욱 눈부시게 빛나고있었다. 《아빠, 나 행복해!》 노란 행복이 깡충깡충 제 어미가 밥을 짓고있는 주방으로 뛰여간다. 아, 갑자기 생각났다. 빨간것! 행복은 원래 빨간 색갈이였지. 동년시절 그렇게도 동경하던 빨간 행복, 왜서 나에겐 빨간 행복이 없었을가? 동학들의 앞가슴마다에 빨갛게 불타는 그것을 부러운 눈길로 바라보던 가슴 아픈 추억. 새끼부농이라는게 무엇인지, 어째서 새끼부농은 빨간 행복을 향수할수 없어야 하는지 리해할수 없었던 불운의 그 시절… 밤에 자리에 누워서도 빨간 물체가 그냥 눈앞에서 불타오른다. 손으로 내 물건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던 안해는 정겨운 눈길로 나를 바라본다. 《자기 병원에 갔다온후 많이 나아졌지?》 《빨간 행복이야!》 문뜩 내가 이렇게 부르짖자 안해는 덴겁한듯 내 물건을 놓아버리고 홱 돌아눕는다. 순간 내 물건이 이상한 충동을 일으킨다. 나는 번개같이 안해의 몸우에 올라탔다. 그리고 적진을 향해 돌진해들어가는 용사마냥 안해의 몸속을 뚫고 들어가 총을 쏘고 나왔다. 그런데…매양 일을 끝낸후이면 뭔가 모자라는것 같은 느낌이다. 무엇일가? 문뜩 눈앞에서 빨간 물체가 불타오른다. 바로 그거야. 빨간것! 나에겐 빨간 행복이 없었지. 모두들 신혼의 첫날밤엔 빨간 행복이 꽃핀다고 했다. 그런데 나에겐 첫날밤 시트 우에 꽃펴야 할 빨간 행복이 없었다. 다른 사내에게 빨간 행복을 던져준 안해는 노란 행복만 갖고 왔다. 순이가 떠오른다. 번마다 안해와의 정사가 있은후에는 꼭꼭 순이가 떠오른다. 순이의 얼굴엔 언제나 진달래가 꽃핀다. 부끄럼을 잘 타는 순결하고 수집은 순이는 손목을 쥐여도 빨갛게, 입술을 빨아도 빨갛게, 그저 빨갛게 웃는다. 순이는…그래 순이는 빨간 행복이였지. 그런데 순이는 어데로 갔을가? 나의 빨간 행복은…   3 봄은 미치는 계질이다. 농사군은 밭갈이에 미치고 련인은 사랑에 미치고 시인은 령감에 미친다. 시인 박군은 봄언덕에서 시 한바구니를 주어가지고 우리 집을 방문했다. 박군은 해마다 한번씩 봄철이면 시채집을 나갔다가 우리 집에 들리군 하는데 나는 그를 썩 좋아하지 않는다. 그저 그렇다할 리유도 없이 그를 좋아하지 않는다. 박군의 세귀눈은 언제나 내 딸년을 잡고 놓지 않는다. 요모조모 찬찬히 여겨보는 품이 마치 로버트구조를 뜯어보는듯 했다. 그것이 역겨워 나는 딸년을 밖으로 내보내며 역정을 냈다. 《왜 그래, 걔 몸에 뭐 시라도 숨어있나?》 《허허, 시?…시는 몰라도 소설은 있을것 같네.》 《그런가? 그럼 자네 써보게.》 《나야 뭘. 소설가인 자네가 써내야지. 흐흐…쟤 노랑머린…》 《노랑머리가 어쨌다는겐가?》 《헤헤, 참 예쁘단 말일세. 서양계집애처럼.》 사실 내 딸년은 무사람들에게 미인이라고 불리우는 안해보다 더 예뻤다. 나는 박군을 흘겨봤다. 이새끼 내 딸년에게 반한게 아니야. 미친 새끼, 성변태가 아니야. 전문 유녀만 탐내는… 《쟨 팔삭둥이지?》 박군이 세귀눈을 꺼벅거리며 신비하게 웃는다. 행동마저 밉살스럽다. 이 녀석은. 《아…저…의사가 조산이라던가?》 《그랬어》 《거참. 허어…쟨 아주 건강하고 총명하던데…》 나쁜 새끼! 내 딸년이 무슨 병집이 있기를 바랐던가. 순이를 잃은 나는 한평생 결혼을 하지 않기로 맹세했다. 그러다가 5년후에 지금의 안해와 번개식결혼을 했고 그래서 태여난것이 때이르게 해빛을 본 지금의 딸년이다. 오늘따라 어쩐지 박군의 웃음이 의심스럽다. 그 신비한 웃음속에 무슨 비밀이 숨어있는듯 싶다. 딸년의 비밀? 그렇지! 그와 동시에 나는 경악으로 몸을 떨었다. 박군은 슬그머니 내 딸년이 팔삭둥이가 아니라는것을 암시해주었다. 조산이라고 한건 안해와 의사가 짜고든 거짓말일게고 그러니깐 건강하고 총명한 딸년은 기필코 정상적인 산아이다. 딸년이 정상적으로 열달배기라면 시간적으로 도저히 내 아이가 될수 없다. 그렇다면 안해가 나한테 시집올 때 벌써 배속에 다른 사내의 씨를 품고 왔다는 론리가 선다. 박군은 내 딸년의 노랑머리에 흥미를 갖고있었다. 이러고보면 딸녀은 분명 안해와 노랑머리사내(?)의 창작품으로서 내 새끼가 아니다. 은주가 내 딸이 아니라니? 이게 무슨 마른하늘에 생벼락인가! 《아빠, 이 문젤 어떻게 풀어?》 딸년이, 아니 안해의 딸년이 산수숙제 책을 내 앞에 들이민다. 나는 박군이 하던것처럼 눈에 쌍심지를 켜들고 아이의 얼굴을 뜯어보았다. 짧게 땋아 어깨에 드리운 노랑머리, 옥으로 다듬은듯 보동보동한 얼굴, 크고도 맑은 머루알같은 눈, 오똑하면서도 동그스럼한 코, 모란꽃판 같은 빨간 입술, 아무리 여겨봐도 어디 한곳도 나를 닮은데라곤 없다. 《아니다. 내 씨가 아니다!》 내 가슴이 터지는 소리! 그 날밤, 나는 안해의 눈을 피해 살금살금 안해의 딸년의 방으로 기여들었다. 노란 행복은 침대머리등을 켜놓은채 단잠이 들어있었다. 나는 잠든 아이의 이마에 덮인 노랑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어주었다. 그러던 내 손이 차츰차츰 아이의 목으로 옮겨졌다. 온몸에 피가 역류하는듯 전률을 느꼈다. 나는 두 눈을 꼭 감고 두손에 힘을 주어 아이의 목을 꾹 눌렀다. 목을 조이던 손을 풀고 눈을 떴을 때 아이는 두눈이 말똥말똥하여 나를 빤히 쳐다보고있었다. 《아빠, 왜 그래?》 어느새 깨여났는지 아이는 인형아기를 꼭 끌어안고 의아한 눈길로 나를 바라본다. 내가 방금 학대한건 아이가 밤마다 껴안고 자는 노랑머리 서양아기였다. 《넌 왜 아니지? 넌 왜 아니지?》   4   언제부터였는지 안해에게서 노란 웃음이 사라져버렸다. 내가 월급봉투를 던져줄 때마다 떠오르던 민들레 같이 노란 웃음이, 내가 원고료를 넘겨줄 때마다 반색하여 량볼에 노란 샘을 파던 볼우물이 사라져버렸다. 내 밥통을 지켜주던 사에서 석달째 로임을 못내주고 밀린 원고료도 언제 받을지 미결이다. 아마도 이때문에 안해의 얼굴에 노란 웃음이 사라지고 그대신 얼음장같이 싸늘한 기운이 서리발친것이다. 그밖에… 안해는 내 작품이 발표되면 첫마디에 《원고료는 얼마나 돼요?》하고 반색하지만 내 글을 읽어본적이 없다. 그랬다. 결혼하여 지금까지 8년을 줄곧 그랬다. 순이가 그립다. 내 첫사랑 순이가 그립다. 순이는 내 작품의 첫 독자이다. 초고로부터 읽어보고도 발표된 작품을 몇번이나 거듭 읽는 순이, 순이의 예쁜 얼굴에 빨간 진달래꽃이 핀다. 내가 원고료를 쥐여줄 때마다 《책이나 사세요!》 하며 꼭꼭 되돌려주군 하던 순이, 원고료대신 키스를 해주면 만족스레 달콤한 웃음 짓던 사랑스런 순이가 그립다! 나는 순이를 가지고싶었다. 그래서 용기를 내여 순이에게 빨간 행복을 요구했다. 그러자 순이는 지금은 아니라면서 결혼식을 올리는 첫날밤 그 귀중한 순결을 꼭 바치겠으니 그날까지 기다려달라고 했다. 그런데 순이는 약속을 어기고 어느날 갑자기 내곁을 떠나버렸다. 나는 5년동안이나 순이를 목메여 부르며 찾았다. 꿈결에도 순이를 부르며 살아온 눈물겨운 5년! 하느님도 감동했는지 5년만에 마침내 순이를 찾았다. 기쁨에 겨워 만난지 사흘만에 동거하고 곧 결혼하고보니 나의 순이가 아니였다. 생김생김은 순이와 비슷했으나 순이가 아니였다. 빨간 웃음이 없었다. 노랗게 웃는 그 얼굴엔 처녀의 수집음이 없었다. 경험 많은 녀인처럼 침대에서도 능란했다. 그녀는 서투른 나를 그 신비의 세계에로 인도해주었다. 스승이 제자를 가르치듯. 《순이!》 나는 안타깝게 웨쳤다. 《자기 왜 허공중에 대고 순이를 부르지? 자기 순인 여기 있어!》 안해가 차디찬 눈길로 나를 쏘아본다. 그렇지. 안해의 이름도 순이지. 그런데 내 첫사랑 순이는 어디로 갔을가?   5 《어, 세상에!》 신문을 보던 나는 놀라서 부르짖었다. 《무서운 녀자야!》 나는 몸을 떨었다. 남편을 독살하다니! 음식에 독약을 넣어 남편을 죽인 녀자는 안해와 동갑나이! 어쩌면 살을 섞고 피덩이까지 키우며 살아온 제 남편을 살해할수 있단말인가. 아아, 무서운 세상이다! 《진지 드세요.》 밥상을 차려놓은 안해는 오늘따라 웬일인지 노란 웃음을 생긋 떠올린다. 말씨도 여느때와 달리 부드럽다. 신문을 놓고 다가간 나는 상우에 차려진 진수성찬을 놀란 눈길로 바라본다. 《아빠, 오늘은 내 생일이야.》 노란 행복이 생글생글 웃는다. 나는 안해의 딸년이라는것을 잠시 잊고 아이의 볼에 축하의 뽀뽀를 해준다. 《어서 드세요.》 안해가 재차 권하자 나는 숟가락을 들다 말고 맛나게 먹어대는 아이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본다. 아이는 완자를 특별히 즐겼다. 완자는 우리 세 사람 앞에 한그릇씩 놓여있었다. 자기 몫을 다 먹어버린 아이는 내 앞으로 저가락을 뻗쳐왔다. 《례모없이 어른들걸 다치면 못써!》 안해가 꽥 소리를 지른다, 《오늘은 걔 생일인데 놔두오.》 나는 웃으며 완자그릇을 아이의 앞에 놓아주었다. 그러자 안해는 홱 나꿔채서 내 턱밑에 받쳐들고 애교를 부리며 노란 웃음을 떠올린다. 《어서 드세요.》 안해의 거동이 내 의심을 자아냈다. 왜서 아이에게 내 그릇의 완자를 못먹게 할가? 불쑥 방금전에 신문에서 보았던 살인사건이 떠올랐다. 혹시 안해가 나를…머리부터 발끝까지 소름이 끼친다. 《어서요!》 안해가 또 들라고 재촉한다. 피할래야 피할수 없다. 이제 나는 꼼짝 못하고 죽을것이다. 나는 손이 떨려 완자를 집을수 없었다. 이때 상밑으로 기여들어온 발바리가 나를 구해주었다. 발바리를 끌어안은 나는 완자를 집어 발바리의 입에 넣어주었다. 그런데 발바리는 한동안 지나도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내가 공연히 안해를 의심한게 아닐가? 아니야, 안해는 틀림없이 나를 독살하려고 시도했다. 완자에 뿌린 독약이 가짜여서 효력을 상실했을뿐. 나는 끼니마다 발바리를 안고 밥상에 마주앉았다. 밥과 반찬을 발바리에게 먹여 안전을 확인한후에야 숟가락을 들었다. 내가 발바리의 입에 음식을 넣어줄 때마다 안해는 한숨을 지었다. 나는 안해의 랑패상이 된 얼굴을 바라보며 흐뭇해났다. 내가 발바리를 방패로 삼으리라곤 생가도 못했겠지? 배불리 먹은 나는 텔레비죤앞에 마주앉았다. 뒤따라 온 안해도 말없이 내곁에 앉았다. 한창 드라마가 진행되고 있었다. 련인에게 퇴박맞은 남주인공이 술에 취하여 억망이 되여있다. 빈술병이 여기저기 놔뒹구는데도 남주인공은 련속 술을 병째로 들어 입속에 부어넣고있다. 나는 그만 구역질이 났다. 이런 장면을 벌써 몇십번이나 봤는지 모른다. 대륙이나 홍콩, 대만, 싱가포르의 드라마들은 모두가 천편일률적으로 이 모양 이 꼴이다. 오, 인간의 고통과 절망을 술이라는 이 한가지 수법으로 밖에 표현할줄 모르는 감독제씨들이 불쌍하다! 나는 리모콘의 단추를 눌러 채널을 바꾸었다. 이번에는 우리 말 뉴스다. 회의소식, 파산소식, 화재소식…그런데 저건 뭐야? 피, 피투성이가 되여 쓰러져있는 시체! 아, 끔직해라, 안해가 남편을 죽인 살인사건이다! 경찰에게 신문을 받고있는 녀살인범, 저렇게 음전한 녀자가 살인을 해? 그것도 잠든 제 남편을 도끼로 찍어죽이다니? 한번도 아니고 세번이나! 아아, 녀자가 무서워! 《얼마나 애가 났으면 제 남정을 죽였을가, 쯧쯧…》 안해의 탄식에 나는 가슴이 섬뜩했다. 살인범을 동정하다니? 아직도 안해는 암암리에 나를 살해하려고 벼르고있다. 이튿날, 그것이 실증되였다. 안해는 어디서 얻어왔는지 도끼를 벼르고있었다. 시퍼렇게 날이 선 도끼를 손으로 쓰다듬던 안해는 문뜩 나타난 나를 보고 흠칫 놀라더니 《쓸모없는 낡은 궤를 패때야겠어요.》하고 살짝 노란 미소를 짓는것이였다. 안해가 웃는다고 해서 내 눈을 속일수는 없다. 안해는 지금 살인음모를 꾸미고있다. TV에서 보도된 살인사건에서 계발을 받고 나를 도끼산장 해치우려고 암암리에 도끼를 벼르고있는것이다. 웃음속에 도끼를 품고있는 안해, 아아, 안해가 무섭다! 나는 잠을 자서는 안된다. 내가 잠든 사이에 안해가 도끼로 내 머리를 내리찍을것이다. 나는 날마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시시각각 안해의 일거일동을 주시했다. 《좀 주무세요. 그러다 허약한 신체에 병나겠어요.》 안해는 몇번이나 권하다가 안되니 수면제까지 사다주었다. 나를 관심하는척 하면서 잠들게 한후 도끼산장 하려는 수작을 누가 모를가봐. 나는 그런 꾀임에 들지 않을것이다. 그렇다. 나는 자지 않을것이다. 영원히!   6 최박사라고 하는 저 놈이 밉살스럽다. 안해는 또 나를 저놈앞에 끌고왔다. 최박사는 안해가 뭐라고 주절대는 말을 열심히 귀담아듣고있다가 안경너머로 나를 건너다보았다. 《김작가님은 왜서 안해와 아이를 죽이려고 했습니까?》 재미있는 말이다. 내가 안해와 아이를 죽이려고 했다구? 정말 그랬던가? 오, 생각난다. 그랬다. 나는 넥타이로 잠들어있는 안해의 목을 조이려다가 그만 안해의 딸년에게 발각됐지. 아이의 고함소리에 안해가 깨여났고 나는 다시 아이에게 덮쳐들었지. 아이의 목을 조이려던 나는 안해가 뒤에서 내리치는 어떤 물체에 뒤통수를 맞고 쓰러졌지… 《그렇습니다. 난 확실히 안해와 아이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어째서 그랬습니까?》 《어째선가구요? 압박이 있는 곳에는 반항이 있기때문이지요. 어느 어른의 말씀인데요.》 《누가 김작가님을 압박했습니까?》 《저 사람입니다!》 나는 안해를 가리켰다. 《저 사람이 나를 살해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음식에 독약을 넣어 죽이려다가 성사하지 못하니 또 내가 잠든후에 도끼로 찍어죽이려고 했습니다. 나는 련며칠째 자지 못해 미칠지경이 되였습니다. 그래서 반항한거지요.》 《안해가 왜서 김작가님을 죽이려고 했습니까?》 《그건…》 나는 안해의 살인동기에 대해 해석할수 없었다. 나는 안해를 바라보았다. 헝클어진 머리, 파리하고 해쓱한 얼굴…갑자기 안해가 낯설어 보였다. 《저 사람은 내 안해가 아닙니다!》 최박사는 머리를 절레절레 젓더니 안해인지 아닌지 모를 녀인에게 안경을 돌려댔다. 《작가들은 괴상하게 미치는 사례가 많지요. 고골리나 쟈크 런던은 하마트면 미칠번 했으며 플로베르나 모파쌍은 진짜로 정신병에 걸렸댔지요. 김작가님도 아까운 사람이…내 동생이 정신병원 원장인데 내 전화로 련계할테니 부인께서 김작가님을 그리로 모셔가십시오.》 내가 미쳤다구? 정신병원…아, 무서워! 나는 최박사가 전화를 거는 기회를 타서 정신없이 밖으로 뛰쳐나갔다. 안해인지 모를 녀인이 나를 부르며 쫓아온다. 나는 고양이에게 쫓기는 쥐처럼 허둥지둥 정신없이 내뛰였다. 어느 굴속이든 들어가 숨어야 했다.나는 술집인지 가라오케인지 하는 곳의 화장실로 뛰여들어갔다. 화장실엔 나 말고 또 한 사내가 있었다. 그 사내는 내가 헐레벌떡거리면 자기도 헐레벌떡거리고 내가 땀을 씻으면 자기도 땀을 씻는것이 똑 마치 미치광이같았다. 그 미치광이는 어디서 본것 같기도 했고 낯선 사내 같기도 했다. 이때 나는 문이 열리는 기척을 들은것 같았다. 그와 때를 같이하여 미치광이의 곁에는 웬 녀인이 나타났다. 그 녀인이 두손으로 헐클어진 머리를 잡아얹자 나는 환성을 질렀다. 《아, 순이!》 내 첫사랑 순이였다. 순이가 내 앞에 나타난것이다. 나는 연신 순이, 순이! 하고 목메여 불렀다. 순이가 내 부름소리를 들었는지 뭐라고 말하는것 같았다. 《자기 순인 여기 있어. 정신 좀 차려. 자기 안해가 바로 자기 순이야! 자기는 모를거야. 그때 순이가 어째 자기곁을 떠났는지를. 순이는…순이는 그때 건달놈에게 정조를 빼앗겼던거야. 절망에 빠진 순이는 죽으려고 하다가 죽지 못하고 5년동안이나 방황했던거야. 그러다가 결국엔 자기곁에 돌아오고. 순이는 확실히 변했지. 하지만 그건 순이 탓이 아니야. 그 5년이란 세월이 순이를 변하게 한거야.》 나는 그 말을 알아들을수 없었다. 순이는 왜 미치광이의 곁에 서있을가? 아니, 순이가 울고있지 않는가. 애잔한 빛을 담은 순이의 눈에서 눈물이 방울져 떨어지고있었다. 순이는 왜 울고있을가? 저 미치광이가 순이를 괴롭힌거야. 그래서 순이는 나보고 구해달라고 우는거겠지. 순이, 울지 마, 내가 구해줄게. 《순이!》 나는 정신없이 부르짖으며 순이한테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1992년)  
15    메아리는 없다 댓글:  조회:3691  추천:1  2013-11-24
단편소설 메아리는 없다 김희수     만약 이 세상에 녀자가 없다면 얼마나 좋을가. 그러면 내 혼사때문에 우리 집 령감 로친이 근심걱정하지 않아도 될것이고 싱거운 사람들에게서 너 올해 서른하고도 몇살이지? 하는 귀찮은 질문을 듣지 않아도 될것이고 나 자신도 장가갈 생각으로 오장륙부를 새까맣게 태우지 않아도 될것이니 말이다. 녀자 없는 세상, 생각만 해도 신난다! 발가벗고 다녀도 무방할것이니 천쪼박도 절약하게 될것이고 따라서 배설을 할 때 바지를 벗고 입는 번거로움도 덜수 있을것이다. 강간도 없고 매음도 없고 결혼도 없고 리혼도 없을것이니 얼씨구 좋을시구. 그런데 가석하게도 하느님은 아담의 갈비를 취하여 녀자를 만들었으니 그때로부터 세상은 란장판이 되였다. 바로 이 세상에 녀자가 있기에 나 백인철이란 인간이 살고있는 편벽한 산골마을에 구슬픈 이야기가 생긴것이다. 나는 찌그러져가는 초가집에서 날마다 땅을 뚜지며 버러지같은 생활을 하고있는 서른네살이나 먹은 로총각이다. 녀자 있는 세상에서 녀자가 없어서 장가를 못가는 가련한 로총각이다. 만약 나 백인철이가 돈이 무지무지하게 많아서 별장을 짓고 자가용을 굴리고 다닌다면 녀자가 절로 찾아올것이다. 그것도 한둘이 아니라 수십명 수백병씩 줄쳐 달려올것이다. 그러나 가석하게도 나는 털면 문지뿐인 가난한 시골총각이다. 그렇다. 바로 농민이기때문이다. 농촌처녀들마저 우리 농촌총각들을 버리고 도시인들의 품에 안겨버렸다. 우리는 응당 우리의 안해가 돼야 할 처녀들이 하나, 둘씩 우리의 눈앞에서 떠나는것을 눈을 펀히 뜨고 보면서도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지어 우리의 처녀들을 빼앗아간 그 도시인들의 배를 불리기 위해 묵묵히 농사나 짓지 않으면 안될 가련한 운명이였다. 왜서 어떤 인간들은 안해를 두고도 모자라서 정부, 첩, 창녀 따위를 수두룩 안고 즐기는데 우리 농촌총각들은 자기의 뼈중의 뼈고 살중의 살인 안해마저 찾을수 없는가?! 우리의 마을엔 자기의 자기의 갈비뼈를 찾지 못해 울고있는 서른살 넘은 로총각들이 많기도 하다. 정씨네 5형제, 오씨네 3형제, 곽씨네 쌍둥이, 그리고 달수, 민호, 범철이 …이런 로총각위원회에서 힘이 세고 지휘능력이 강한 내가 위원장인 셈이다. 우리 위원회에서는 한가한 겨울철이면 모여들어 트럼프, 마작놀이도 잘하지만 봄, 여름, 가을, 겨울 할것없이 술판도 자주 벌린다. 술이 건강에 해롭다고 하지만 이 삭막한 세상에 술도 안마시고 어떻게 사는가. 도시인들은 고급양주에 이쁜 계집을 끌어안고 스트레스를 해소한다지만 우리 로총각들은 김치쪼각에 《똥빼주》로 마음속 울분을 토로할수밖에 없다. 《제길할, 등어른의 개혁개방정책이 좋긴 다 좋은데 딱 하나 우리 로총각들이 장가 못드는게 나쁘거덩!》 불평가라고 불리우는 민호가 세번째 잔을 굽내면서 불평을 부리자 언제나 그와 맞서기를 좋아하는 범철이가 즉시 반박했다. 《야, 임마! 등어른이 뭐 우리를 장가 들지 말라고 했니? 우리 머리가 장사골이 트지 못해 돈을 못번 탓이지.》 《그러찭구.》 내가 끼여들었다. 《이전엔 모어른, 화어른의 이름뒤엔 만세를 붙이지 않으면 안됐지. 어지 그뿐이야. 그 어른들의 이름 앞엔 꼭꼭 위대한 령수이니 영명한 령수이니 하고 규정해놓았지. 그런데 등얼른의 이름뒤에 언제 만세를 붙여봤니? 그때로부터 호어른, 조어른, 강어른에 이르기까지 만세를 붙이지 않았지. 물론 그 어른들의 이름 앞에 위대한 령수이니 영명한 령수이니 하는것도 규정해놓지 않았지. 바로 만세를 웨치지 않으면서부터 그 어른들과 우리는 동지사이로 가까워졌고 중국은 발전하기 시작했어. 그리고…》 《야, 그 만세소리를 좀 작작해라. 그 만세소리가 무슨 우리와 상관이야. 술이나 들자.》 민호가 내 말허리를 자르며 술잔을 부딪치자 나는 잔을 비우고 다시 말을 이었다. 《왜 우리하고 상관없겠니? 너 로총각뒤에 만세를 붙여봐라, 어떻게 되는가.》 《로총각만세! 히히, 그거 참, 그럼 우린 영원히 로총각으로 끝장나는게 아니야. 빌어먹을 야, 썩 물러가라!》 민호가 툳덜거리자 우리는 일제히 《물러가라! 》하고 웨치면서 술잔을 들었다. 《제길할, 이러다가 40이 되고 50이 되고 60이 되고 늙어 죽을 때까지 장가 못들고 총각귀신으로 죽게 되겠다. 그것도 숫총각귀신으로 말이야. 흐흐흐.》 《그래, 우리 이러다가 섹스 한번 못해보고 죽겠다.》 민호가 다섯번째 잔을 비우며 또 불평을 토하자 범철이가 《야, 그렇게 몸살이 나면 어디 아무 녀자나 붙잡구 해봐라!》 하고 빈정거려서 성난 민호가 범철이의 멱살을 잡았다. 《야, 이 새끼! 마을에 처녀 하나 없는거 누구하구 하라니? 니 에미하구 하라니?》 《임마, 한족들처럼 미개하게 그런 쌍욕을 다 하기야?》 범철이도 노하여 맞받아 민호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둘이는 밀치고 닥치고 하며 곧 싸울 태세였다. 《너들이 왜 이래?! 당장 손을 놔!》 내가 꽥 고함을 지르며 제지시키자 둘은 즘즉해졌다. 좀 지나 둘은 언제 다퉜나싶게 다시 웃으며 잔을 부딪쳤다. 《봉구한 그 나그네 사람질을 못하겠더라.》 한켠에서 묵묵히 술만 마시던 달수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봉구는 매일 술에 취하여 녀편에한테 손찌검을 들이대는 위인이다. 봉구의 녀편네가 또 맞아서 면상이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면서 달수는 그 아낙네들 동정하여 한숨을 지었다. 그러자 민호가 《야, 임마, 남의 녀편네가 맞은게 뭐 그리 가슴이 아파서 그러니? 이제보니 니 봉구 녀편네한테 뜻이 있는게 아니야?》하고 능글능글 웃으며 달수를 골려주고 범철이도 덩달아 《달수, 니 늘 봉구네 밭일을 도와주던게 뢰봉을 따라배워 좋은 일을 하는가 했더니 원래는 엉큼하게 다른 뜻이 있었구나!》 하고 비웃으니 달수는 얼굴이 홍당무우처럼 빨개서 변명했다. 《너들이 무슨 말을 그렇게 하니? 그 아줌마 나보다 다섯살이나 이상인데.》 《나이 좀 많은게 어떻니? 그 아줌마 그래도 아직까지 싱싱한 멋이 남아있는게 농촌안까이치구 괜찮더라!》 《그렇찮구. 그만하면 안구 잘만하지믄. 달수야, 그 주정뱅이 봉구를 리혼시키구 니 그 자리를 차지해라!》 민호가 범철이가 다시 입을 모아 골려주자 달수는 《그런게 아니라는데 너들이 왜 자꾸 이러니?》 하면서 무안하여 한쪽 구석에 피하여 얼굴도 들지 못했다. 술판이 끝나서 헤여질 때는 밤이 깊었다. 달빛을 밟으며 나하고 나란히 걸어가던 민호가 걸음을 멈추고 바지춤을 내리우기 바쁘게 쏴-하고 줄기차게 배설했다. 나도 반사적으로 그와 같은 동작을 되풀이했다. 장난군처럼 제 물건을 쥐고 《물줄기》를 멀리 뿜어대던 민호가 갑자기 《제길할, 이 놈도 불쌍한 놈이지. 주인을 잘못 만나 30여년을 오줌누는 구실밖에 못하고있으니까 말이야!》하고 탄식했다. 그 말에 나도 동변상련으로 가슴이 저려났다. 집에 돌아와 자리에 누웠으나 이리뒤척 저리뒤척하며 잠이 오지 않는다. 밤마다 이렇게 자리에 누으면 녀자생각에 그리움만 사무친다. 내 갈비뼈며 살점인 해옥이도 나를 버리고 도시인의 품에 안겼다. 아, 야속한 해옥이 … 마을에서 일등미인이라고 불리우는 해옥이는 내가 이성에 갓 눈을 뜨기 시작했을 때부터 사랑하던 녀자였다. 그녀도 나를 사랑하고 그래서 남몰래 속삭이던 사랑이 결혼을 약속하는 사랑으로 무르익기까지 얼마나 많은 달콤하고 행복한 나날들이 흘렀던가. 그러나 해옥이가 시집가던 날, 신랑은 내가 아니라 도시총각이였다. 꽃을 단 신랑의 차가 마을에 들어서자 몽둥이를 들고 대기하고있던 나는 풍차를 향해 돌격하는 돈끼호떼처럼 용감하게 달려나갔다. 노기충천한 내가 몽둥이로 차유리를 막 짓부시려는데 어느새 모여들었는지 잔치에 온 신부의 친척들이 내 손에서 몽둥이를 앗아내고 미치광이처럼 길길이 날뛰는 나를 동구밖 버드나무에 꽁꽁 묶어놓았다. 그들은 신랑의 차가 해옥이를 싣고 멀리 사라진 뒤에야 나의 결박을 풀어주었다. 민호랑 범철이랑 하는 말이 해옥이는 울면서 신랑의 차에 올랐다고 한다. 울면서 시집간 해옥이는 지금 잘 살고있는지? 나를 배반하고 간 해옥이지만 나는 그 녀자를 돈끼호떼가 둘시네아 델 토보소 공주를 그리듯이 그렇게 바보처럼 그리고있다. 해옥이가 도시로 시집을 간 그해 나도 도시가 도대체 무슨 매력이 있는가를 알고싶어 도시로 들어갔다. 삼륜차도 끌어보고 외자기업에 들어가 막벌이도 해보았지만 도시에 발을 붙일수 없어 고향마을로 도로 돌아오고말았다. 농촌에 돌아와 땅을 뚜지면서도 밤마다 해옥의 생각뿐이였다. 해옥의 생각에 잠이 오지 않으면 나는 베개를 끌어안는다. 그러면 베개가 소곤소곤 자장가를 불러준다. 꿈속에서 선녀가 너울쓰고 나를 찾아온다. 내 색시로 되겠다며 하늘에서 내려왔단다. 그 선녀를 다시 보니 이상하게도 해옥이였다. 해옥이와 나는 신랑신부가 되여 오붓한 신혼살림을 꾸려간다. 아들 딸을 낳고 아기자기 재미있게 살아간다. 이것이 꿈 아닌 현실이라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깨고 나면 아쉽게도 꿈이였다. 그런데 어느날 해옥이가 정말로 뜻밖에도 내 앞에 나타났다. 아이의 손목을 쥐고 내 앞에 나타난 해옥이는 여전히 처녀시절처럼 아름다웠다. 《이 앤 정말 귀엽구만.》 나는 그 녀자의 《복제품》인 아이를 안아주었다. 《넌 외가집에 놀러왔겠구나. 아빠는 안 왔니?》 《아니야, 엄마와 아빤 리혼했어.》 아이의 말에 가슴이 선뜩해난 나는 얼른 해옥이의 기색을 살폈다. 《정말이오?》 《얘가, 무슨 허튼소릴…》 해옥이는 낯색이 파랗게 질려서 아이를 끌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 이튿날 내가 거듭 따져서야 그 녀자는 진실을 말해주었다. 잔치날 나의 추태를 목격한 신랑은 해옥이와 나 사이의 관계를 따져 물으며 매일마다 해옥이를 매질했다고 한다. 아이가 태여나서 네살이 되였으나 신랑의 의처증은 점점 더 심해갔단다. 더는 참을수 없어 해옥이는 리혼하고 아이를 데리고 친청집으로 온거란다. 《내가 해옥이를 해쳤구만. 그날 그런 광기를 부리지 않았더라면 해옥인 행복하게 살았을텐데.》 《인철씨 잘못이 아니예요.》 나의 참회에 해옥이가 도리머리질했다. 《모두 제 잘못이예요. 제가 …》 말을 주고 받는 사이에 어느덧 옥수수밭머리에 이르렀다. 《인철씨도 색시를 얻어야죠. 》 《색시…》 소슬한 가을바람에 옥수수들이 설레이고 곱게 풀어헤친 그 녀자의 머리카락도 흩날린다. 《해옥이…》 나는 그 녀자를 와락 끌어안았다. 그 녀자는 《이러지 마세요.》하면서도 몸을 빼려고 하지 않았다. 내가 입술을 찾을 때 그 녀자는 두팔로 내 목을 끌어안고 응해오기 시작했다. 순간 나는 눈앞이 캄캄해나고 숨이 딱 멎는듯 했다. 《아, 해옥이…》 나는 그 녀자를 끌어안고 옥수수밭속으로 들어갔다. 내 서투른 공격에 그녀는 능란한 동작으로 배합해주었다. 나는 그 녀자가 인도해주는 동굴속으로 깊숙이 빠져들어갔다. 그 깊고깊은 동굴은 들어가고 들어가도 끝이 없을상싶었다. 드디여 화려한 폭발이 있었다. 아, 서른 네살이 첫 폭발! 그 사람을 죽여주고 미치게 하는 폭발속에서 나는 사람이 사는 희열을 느꼈다. 《이것이 녀자다!》하고 알려주고 나를 진정한 남자로 만들어준 해옥이! 나는 너를 영원토록 사랑하리라! 어느날 해옥이와 함께 옥수수밭에서 나오다가 뜻밖에 민호와 마주쳤다. 그때 해옥이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민호의 눈에 이상한 빛이 번뜩이는것을 나는 보았다. 하지만 내가 쏘아보자 그는 기가 죽어 시선을 피해버렸다. 어쩐지 불쾌했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던것인데 아니나다를까 이튿날 밤중에 해옥이가 울면서 우리 집에 뛰여들었다. 옷은 볼품없이 찢어졌고 머리는 삼검불처럼 헝클어져 있었다. 《도대체 웬 일이요?》 나는 울기만 하는 그 녀자를 달래면서 영문을 물었다. 《흑흑 …민호가 …》 민호가 내가 부른다고 해옥이를 꼬셔가지고 밭에 나가 겁탈했단는것이다. 《개자식, 감히 내 녀자를 다쳐?!》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민 나는 주먹을 불끈 틀어쥐고 민호네 집으로 달려갔다. 달짜고짜로 녀석을 끌고나와 반죽음이 되도록 두들겨팼다. 《인철아, 내가 잘못했다. 난 사람이 아니다! 난 참을수 없어 그런거야.》 《짐승같은 새끼! 그것도 말이라구 하니? 》 《그래 난 사람이 아니야, 난 짐승이야. 한번만 용서해줘! 》 민호는 내 발아래 무릎을 꿇고 손이야 발이야 빌었지만 나는 또 한번 발길로 녀석을 걷어찼다. 《개자식, 넌 강간범이야! 강간범은 감옥이란걸 몰라?》 《제발 용서해줘!》 《난 널 법에 걸테다!》 《제발 빈다. 날 용서해줘. 난 죽어두 감옥엔 못가.》 《너같은건 용서없다. 감옥에 들어가 콩밥이나 먹어!》 나는 애걸복걸하는 민호를 거들떠도 보지 않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까지도 해옥이는 울고있었다. 《내 그 녀석을 혼내줬소. 래일 파출소에 가서 고발하기오.》 《인철씨…》 해옥이가 울음을 그치고 애절한 눈길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를 용서해주자요. 》 《뭐라오? 》 《소문이 나면 저도 좋을것 없고 그리고…》 애원에 찬 그 녀자의 시선과 마주친 나는 머리를 끄덕여 용서해주는것에 동의를 표시했다. 그런데 누가 알았으랴, 이튿날 한낮에 뒤산에서 목매 죽은 민호의 시체를 발견할줄ㅇ리야! 녀석의 호주머니엔 이런 유서가 들어있었다. 《…나는 죄를 지었으니 벌을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나는 감옥에 갈수 없다. 감옥이란 말만 들어도 소름이 끼친다. 감옥에 가느니 차라리 목숨을 끊는 편이 나으리라. 하지만 녀자를 알고 죽으니 죽어도 원이 없다! …》 《이 못난 녀석아, 죽긴 왜 죽어? 널 용서해줄 참인데 죽긴 왜 죽느냐말이야! 》 나는 민호의 시체앞에서 가슴을 치며 통곡했다. 민호가 죽은 며칠뒤 나는 달수의 면상이 퉁퉁 부은것을 발견했다. 《너 웬 일이야?》 《저 …넘어져서 …》 나의 물음에 달수가 얼버무렸다. 어느새 왔는지 범철이가 코방귀를 뀌였다. 《흥! 넘어져도 떡함지에 넘어졌겠지.》 알고보니 달수는 봉구의 녀편네와 뒹굴다가 봉구에게 현장을 잡혀 두들겨맞은것이였다. 아, 또 하나의 불쌍한 로총각이여! 사흘후, 우리 마을에 특대 경사가 생겼다. 로총각들중에서 나이가 제일 많은 정씨네 5형제의 맏이- 명호형님이 결혼잔치를 하게 된것이다. 잔치는 아주 간단했다. 명호형님이 녀자쪽으로 《시집》을 가는것이여서 스산한 잔치상이였다. 《명호형님은 기쁘겠소.》 나는 술을 부으러 온 명호형님을 보고 말을 걸었다. 《뭐, 기쁜지 어쩐지 모르겠다.》 새 신랑의 쓸쓸한 표정에 나는 가슴이 쓰렸다. 《명호형님은 장가들자마자 할아버지 소릴 듣겠소.》 범철이가 주새없이 끼여들었다. 명호형님은 아이 둘 달린 다리 저는 과부와 결혼하는데 그 과부에게 금방 외손자가 생겼던것이다. 《하기사 마흔다섯인 내가 할아버지 소릴 들을 때도 됐지.》 사람 좋은 명호형님은 탓할 대신 그저 허허 웃어주었다. 그 서글픈 웃음에 로총각들은 저마다 탄식했다. 오락판이 시작되였다. 나는 부엌간에서 일손을 돕고있는 해옥이를 불러다 내곁에 앉혔다. 《해옥이, 우리도 빨리 결혼을 서둘기오. 나도 나이가 …》 《뭘 급해서 …》 내가 가만히 속삭이자 해옥이는 심드럴하게 대꾸하면서 《저 노래나 좀 듣자요.》하고는 내 입에서 나오려는 다음 말을 막아버렸다. 신랑의 노래에 이어 범철이가 일어나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그는 연극 《사랑의 품》의 주제가의 가사를 바꾸어 한곡 넘겼다. 서른살이 넘도록 장가를 못간 수많은 시골총각 눈물이 난다 이 세상의 선량한 처녀들이여 불쌍한 총각에게 시집을 가자 랄라라 …   노래를 부르는 사람도 노래를 듣는 사람도 모두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나는 해옥이가 머리를 돌리고 눈굽을 찍는것을 보았다. 록음기에 곡이 울리고 춤판이 시작되자 해옥이가 내 손을 잡았다. 춤출줄 모르는 나는 해옥이가 끄는대로 따라갔다. 그러자 그 녀자는 내 목에 두팔을 꼭 걸었다. 나는 그 녀자의 가는 허리를 꼭 껴안고 한덩어리가 되여 빙글빙글 돌아갔다. 그러자 로총각들의 부러운 눈길들이 일제히 우리한테로 쏠렸다. 나는 로총각들의 앞에서 내 행운을 시위하듯 뽐내면서 해옥이를 안고 돌고 또 돌았다. 한곡이 끝나자 로총각들이 앞다투어 해옥에게 춤을 청했다. 해옥이는 그러는 로총각들을 거절하지 않고 매 사람과 한차례씩 번갈아 춤을 추었다. 그런데 그 춤추는 꼴이 눈꼴이 사나웠다. 그 녀자는 나하고 춤추던것처럼 모든 로총각들과 목을 꼭 껴안고 허리걸이를 하고 동동 매달려서 한덩어리가 되여 빙글빙글 돌아갔다. 그 녀자의 가슴은 로총각들의 가슴과 딱 붙어있었다. 로총각들은 좋다고 해옥이의 허리를 힘껏 조여안고 흡족하여 바보처럼 웃는다. 저 녀자가 왜 저럴가? 도대체 오늘은 무슨 영문이람? 도시물을 먹어 바람난 녀자인가? 《더러운 …그러나…》 나는 분노가 치밀었으나 꾹 참았다. 나에게만 속해야 할 녀자가 왜 저런 행동을 한단말인가. 보다못해 나는 자리를 피해 집으로 돌아왔다. 잠이 오지 않았다. 뜬 눈으로 밤을 새운 나는 그 녀자가 찾아와서 잘못을 빌기만 기다렸다. 내가 찾아가지 않으면 그 녀자가 안달아나서 찾아오겠지. 찾아와서 잘못을 빌며 다시는 안그러겠다고 맹세할 때까지 외면해버리자. 그런데 그 녀자는 이틀이 지나고 사흘이 지나도 찾아오지 않았다. 안달아난 쪽은 내였다. 체면을 차릴것없이 내가 먼저 찾아가야 했다. 그 녀자의 본가 집에 들어서니 그 녀자는 없었다. 련며칠 찾아갔지만 그 녀자는 번번히 집에 없었다. 기분이 나빴다. 민호한테 당한후 그 녀자는 한번도 나한테 몸을 주지 않았다. 명호형님의 결혼식에 그 녀자는 무엇때문에 《우리도 결혼하기오》하는 내 말을 귀밖으로 들었을가? 어쨌든 그 녀자를 만나야 했다. 만나서 결판을 내야 한다.단단히 벼르고 이른 아침 그 녀자를 찾아갔을 때 그 녀자는 … 그 녀자는 어디론가 멀리 떠났던것이다. 작별인사도 없이 떠나버린 그 녀자, 나의 첫사랑이며 마지막 사랑일지도 모르는 그 녀자! 그 녀자는 그렇게 떠나갔다. 그 녀자가 남긴 편지 한통을 들고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문을 걷어닫고 부랴부랴 겉봉을 뜯고 속지를 뽑았다.   인철씨: 미안해요. 전 인철씨의 가슴에 너무나도 많은 상처를 남겨준 나쁜 녀자예요. 사랑의 맹세를 저버리고 도시로 시집을 간 배신자인 저를, 이미 애어머니가 된 저를 여전히 변함없이 사랑해준 맘씨고운 인철씨와 백년가약을 맺지 못하고 이렇게 떠난는것도 운명인가봐요. 민호에게 당한후 저는 많은것을 생각했어요. 특히 민호의 죽음이 저에게 준 충격은 너무나 컸어요. 《녀자를 알고 죽으니 죽어도 원이 없다》는 유언이 제 가슴에 아프게 맞혀왔어요. 그것은 모든 로총각들의 절규처럼 들려왔어요. 그리고 명호오빠의 잔치날에 범철이가 부른 노래 또한 아프게 아프게 제 가슴을 찢어놨어요. 농촌의 로총각들이 참으로 불쌍해요. 전 이미 버린 몸이나 마찬가지예요. 제가 이제 바랄게 무엇이 있겠어요. 전 정말 마음같아선 이 세상 모든 로총각들에게 녀자의 사랑을 주고싶어요. 하지만 제 혼자의 힘으론 어쩔수 없어요. 이제 더럽혀진 몸으로 다시 인철씨를 섬길수 없음을 통탄할뿐이예요. 절 잊어줘요. 전 떠나가요. 또 다시 도시로. 해옥이로부터.   편지가 맥없이 땅바닥에 떨어진다. 나는 집을 뛰쳐나갔다. 허둥지둥 한달음에 동구밖까지 달려나간 나는 그 녀자가 떠나간 도시 쪽을 향해 목청껏 웨쳤다. 《해옥이!》 그러나 메아리는 없었다. 1997. 8.  
14    H과실의 하루 댓글:  조회:3380  추천:0  2013-11-24
단편소설         김희수   H과실의 하루는 언제나 한가하였다. 출근해서는 온종일 신문이나 보며 잡담이나 하다가 퇴근하는것이 업이였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H과실만은 크게 변한것이 없었다. 과장도 10년전의 그 허과장이고 10년전에 부과장 2명에 과원 2명이던것이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달라진것이라면 두 사람이 나가고 두 사람이 새로 들어온것이다. 원래 H과실에는 허씨, 송씨, 하씨, 여씨, 라씨 다섯 사람이 있었는데 이 다섯 사람의 성씨를 배렬하면 묘하게도 《허송하여라》는 문구가 되였다. 그러다가 여씨가 퇴직하고 라씨가 《바다에 뛰여드는(下海)》바람에 아쉽게도 그 절묘한 문구가 망그러지고말았다. 흥미있는것은 그후 지씨와 마씨가 선후로 여씨와 라씨 대신 자리를 채우는바람에 과실은 《허송하지마》로 탈바꿈하게 되였다. 했건만 과실은 여전히 신문이나 보다가 쑥덕쑥덕 잡담하는것이 업이였다. 늘 그러하듯이 잡담은 신문을 보다가 시작된다. 《야, 백인수가 주S국 국장으로 됐군요!》 지방신문의 간부임명 명단을 들여다보던 마씨 총각이 놀란 소리를 지르자 네 사람이 모두 자기가 보던 신문을 놓고 다투어 마씨가 보던 신문을 가로챈다. 그들의 상급이였던 백인수가 큰 인물로 되였다는 사실이 그들 모두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던것이다. 《허허, 기쁜 일이군. 축하할 일이군! 그분처럼 능력있는 사람은 마땅히 그 자리에 앉아야지!》 성이 허씨여서 허과장이라기보다 《허허》 잘 웃는다고 허과장이라고 함이 더 타당할 허씨가 자신이 승급이나 한것처럼 기뻐 어쩔줄을 모르자 과실에서 나이가 제일 많은 번대머리 송부과장이 빈정대는 투로 말했다. 《과연 축하할만한 일이지요. 그분은 허과장의 은인이니까 허과장께서 축하신을 보내든지 축하술을 사던지 해야겠군요.》 H과실에서 10년전에 과장자리가 비여있을 때 모두 5년동안이나 부과장으로 있었던 송씨를 당연 적임자로 여겼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일반과원이였던 허씨가 과장으로 임명될줄이야. 그때 허씨가 백인수국장댁으로 묵직한 가방을 들고 들어갔다는 소문이 있었으나 허씨가 누구하고도 《허허》하며 관계가 좋은데다가 송씨보다 능력이 있었기때문에 말썽이 오래가지 않았다. 하지만 이 일때문에 송씨는 허씨와 백씨를 눈에 든 가시처럼 여기고있었다. (15년이나 《부》자에 머물다니?! 물러나기전에 《정》자나 달아야 체면이 서겠는데) 하고 생각하며 송씨는 번대머리를 긁적거리며 승급할 꿈을 꾼다. 《급을 추려면 저렇게 춰야 합니다. 여드레 80리 걸음을 하며 앉은자리에 그냥 있는다면야 멋이 없지요.》 과실에서 유일한 총각인 미스터 마가 송씨를 빗대고 하는 말이다. 《그분은 총명한 분이야. 총명해야 승급하는 법이지.》 승급에 대해서는 하부과장이 제일 생각이 올똘했다. 언제나 출근종소리와 함께 들어섰다가 퇴근종소리와 함께 나선다고 해서 《손목시계》하고 불리는 하부과장은 허과장이 오래잖아 자리를 낸다는것과 그 자리를 자신이 차지한다는 확신을 가지고있었다. 그만큼 뒤에서 여차여차하게 활동했던것이다. 《그래요. 그분이야말로 더 이를데없이 총명하지요. 저한테 사탕을 주며 숙제를 해달라고 얼리는 제 조카애처럼 총명해요.》 과실에서 유일한 녀성인 지씨 처녀가 마지막으로 신문을 보며 야유적으로 말하자 허과장의 기색이 대뜸 달라졌다. 《허허, 그분을 어린애에 비기다니? 미스 지는 롱담도 잘하는데.》 욕을 해도 웃으며 말하는 허과장, 미스 지 같은 미녀앞에서는 더욱 부드럽게 타이르는 허과장이다. 《제 말을 롱담으로 들어도 좋고 진담으로 들어도 좋아요. 여러분은 〈번영회사〉의 백총경리를 알겠죠. 신문과 방송에 늘 보도되는 대부호니까 모르는 분이 없겠죠. 그런데 이 대부호가 백인수의 친동생이란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거예요. 물론 허과장님은 알고 계셨겠지만요.》 미스 지의 말을 허과장은 못들은 척하고 얼굴을 돌리는데 미스터 마가 무릎을 탁 치며 감탄한다. 《옳아, 그러니까 백인수가 동생을 치부의 길로 밀어주고 다시 동생이 형에게 승급의 사다리를 놓아준게로군.》 《 백총경리가 백인수의 친동생이란 말이 정말 사실이요?》 반신반의하는 눈길들이 자기한테 집중되자 미스 지는 가볍게 웃었다. 《여러분들이 믿어도 좋고 믿지 않아도 좋아요. 아무튼 백인수는 총명하고 전도유망한 분인것만은 틀림없어요.》 미스 지도 진작 벼슬을 원하고있었다. 그녀는 친구의 오빠를 통해 백인수를 알게 되였는데 백인수는 그녀를 전근시켜주고 여차여차한 벼슬까지 주겠노라고 달콤하게 구슬리다가 그녀가 과분한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니 약속이고 래왕이고 딱 끊어버렸던것이다. 《뭐니뭐니 해도 벼슬이 좋지!》 번대머리 송부과장이 방금 깨달은듯이 흥분하자 《손목시계》 하부과장이 동감인듯 머리를 끄덕인다. 《그래. 권력이 첫째지! 권력만큼 기분좋은것은 없으니깐!》 《그렇구말구요. 누구나 모두 권력앞에서 아첨하고 또 권세 있는 자는 모든것을 지배할수 있으니깐요!》 미스터 마씨가 감탄하듯 웨치자 허과장이 허허 웃고 미스 지도 키드득 웃었다. 오전해는 거의 벼슬에 대한 한담으로 지났다. 그런데 오후에는 그 화제가 돌연히 돈으로 바뀌였다. 《라동무가 이번에 큰돈을 벌었다오.》 《번대머리》가 새 소식을 가지고 왔다. 《내 점심에 라동무의 큰형을 만났는데 그치가 말하기를 라동무가 글쎄 호화별장을 사고 수입제 자가용을 2대나 샀다오. 참 난 놈이지!》 《허허, 내 그 사람이 쌰하이(下海)할때부터 그럴줄 알았다니깐. 얼마나 약다구. 끝내 큰일을 해냈지!》 《허허》과장이 사람좋게 웃자 미스 지가 번대머리를 보고 물었다. 《라선배가 위해에 있는 합자기업에서 나와 심수로 들어갔다는데 그게 사실인가요?》 《심수는 무슨 심수? 주해로 갔다던데...》 미스터 마가 아는체 하자 《손목시계》가 《주해가 아니라 해구라던데!》 하고 시정해서 심수니 주해니 해구니 하며 《하지마》가 서로 주견을 세우는 바람에 《허송》은 곁에서 웃기만 했다. 《허허, 심수면 어떻고 주해면 어떻고 해구면 뭐라나? 자네들도 재간 있으면 쌰하이 해보게!》 허과장이 허허 웃자 셋은 쟁론을 그만두고 약속이나 한듯이 《쌰하이!》하고 외워본다. 《자네들만치 젊었으면 나도 한번 쌰하이 해보겠네. 젠장!》 번대머리가 처녀총각을 바라보며 손바닥으로 책상을 탁 쳤다. 그러자 미스터 마가 머리를 가로젖는다. 《헤염도 칠줄 모르면서 어떻게 바다에 뛰여든단 말입니까?》 《아따, 누군 처음부터 헤염칠줄 아는가? 배우면 되지. 처음에는 옅은데서 구명대를 안고 치다가 익숙하면 점차 깊은데로 들어가면 될게 아니요!》 《그게 말처럼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래요. 시장경제라는 바다는 자연의 바다와 마찬가지로 파도가 세차고 돌변하는 풍운조화를 예측하기 어렵대요. 자칫하다간 바다밑에 가라앉을수도 있대요.》 미스 지가 바다에 가라앉는 시늉까지 하며 말하자 《손목시계》가 팔을 휘둘러댔다. 《돈을 벌자면 모험정신이 있어야지. 부자가 된 라영웅이 부럽지 않소?!》 누가 부럽지 않으랴? 모두가 부자꿈에 취하여 한동안 침묵이 흐른다. 하씨가 갑갑한듯 담배불을 비벼끄며 침묵을 깨뜨린다. 《거, 여선배가 꾸린 노래방도 경기가 좋다던데.》 《허허, 그 사람이 퇴직하는 해부터 꾸렸으니까 지금은 부자가 됐을거요!》 《노래방보다 사우나가 더 잘 된대요.》 《사우나도 너무 많아서 이젠 잘 안되는 모양입데. 우리 처남은 몇년동안 꾸리던 사우나를 안마방으로 고쳤다오. 그 안마방이 수입이 짭짤한 모양입데.》 그러자 안마방을 둘러대고 진지한 이야기가 계속되였다. 과실에는 비록 안마방에 출입한 사람이 없었지만 얻어들은 풍문만으로도 얼마든지 엮어댈수 있었다. 누구나 직접 체험하기라도 한것처럼 어떻게 호화스럽고 어떻게 거뿐하다는둥 안마사아가씨가 어떻게 서비스가 세심하다는둥 하며 생동하고도 형상적으로 표현하였다. 그들의 신나는 이야기는 웬 중년사나이가 허과장을 찾아오는 바람에 중단되고말았다. 그 사람은 옷차림은 신사였으나 작달막한 키에 생김생김이 추하여 누구의 눈에나 하찮게 보였다. 그 사람이 눈짓으로 허과장을 불러내가자 미스 터 마가 빈정거렸다. 《저 사람은 낯판대기가 똑마치 설삶은 말대가리 같아요》 《흥, 그 주제에 옷은 그래도 고급이더군. 제아무리 잘 차려입어도 생앙쥐같은게 어디 볼데 있나!》 송씨가 맞장구를 치자 하씨도 덩달아 끼여들었다. 《에익, 얼음판에 자빠진 소눈깔같은 그 눈만 봐두 아침에 먹은 음식을 막 토하고싶다니까!》 세 남자의 평판을 들으며 미스 지가 혼자 한켠에서 킥킥 웃고있었다. 그러자 송이 핀잔을 주었다. 《웃긴? 미스 지의 눈엔 그래 그 남자가 미남자로 돼보이오?》 《미남자? 아이참, 우스워요. 그 남자가 딱 무엇같은지 아세요?》 《무엇같소?》 《동물원의 원숭이!》 《원숭이?!》 미스 지를 마주보며 이구동성으로 따라 외우던 세 남자는 그만 《하하하!》하고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왜들 웃는거요?》 이때 허과장이 싱글벙글 웃으며 들어서자 그들은 웃음을 딱 그쳤다. 미스 터 마가 시침을 떼고 물었다. 《허과장, 방금 왔던 그 사람이 누굽니까?》 《허허, 대단한 사람이요. 모두들 〈번영회사〉의 백총경리를 알고있겠지?》 《거 백인수국장의 동생이 된다는 대부호를 그럽니까?》 《허허, 방금 왔던 그분이 바로 그 백총경리님이야!》 《네?!》 넷의 눈길이 일제히 허씨한테로 집중된다. 미스터 마가 그래도 머리가 빨리 돌았다. 《오, 그러길래 어디서 본것같은 분이다 했지요. 이제보니 TV에서 본 기억이 납니다. 참, 그분은 정말로 름름하게 생겼습니다.》 《허, 사람이 원래 잘났으니 옷을 입어도 어울린다니까!》 송부과장이 올리추는것이 풍자로밖에 안들린다. 하부과장도 뒤질세라 맞장구쳤다. 《그렇잖구. 그분의 눈도 어글어글한게 얼마나 정신이 나오!》 세 남자의 짓거리를 지켜보고있던 미스 지도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한마디했다. 《그분은 똑 마치 별나라에서 온 외계인 같아요!》 잘났다는 말인지 못났다는 말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하여튼 불과 몇분사이에 추남이 미남으로 변해버렸다. 그건 그렇고 이런 거부가 친히 자기들의 과장을 찾아왔다는 사실이 넷의 궁금증을 더욱 야기시켰다. 《허과장님은 그분과 언제부터 교분이 있었습니까?》 《백국장을 통해서 알게 되였습니까?》 《그분은 무슨 일로 찾아왔는지요?》 부하들이 련속 들이대는 질문에 허과장은 어깨가 으쓱해났다. 《허허, 내가 그분더러 우리 집 사람의 출국수속을 좀 도와달라고 청든적이 있지. 그래 오늘 그분이 자가용을 타고 여기를 지나는 걸음에 피뜩 나한테 들렸던거네.》 《그래 해결됐나요?》 《허허, 그분이 나서서 못 해결하는 일이 있나?!》 《아이, 허과장 부인님이 또 출국하세요? 그래 이번엔 어딜 가세요?》 《일본.》 《야아!》 네 부하는 이구동성으로 감탄했다. 허과장부인은 이미 한국에 두번이나 갔다오고 로씨야에 세번이나 드나들며 큰돈을 벌었던것이다. 이제 일본까지 갔다오면 엄청난 대부자가 될판이니 어찌 감탄하지 않으랴! 《일본에 가면 번답데.》 《벌기만 하겠어요. 한번만 갔다오면 일생동안 놀고먹어도 남는대요.》 《허과장넨 이젠 몇만원은 벌었을겁니다.》 《몇만원이 다 뭡니까? 몇십만원은 될겁니다.》 《알기도 잘 안다. 허과장네 재산이 기실 몇백만원은 될거요.》 《그렇게 많아요?》 《얼핏 따져봐도 모르겠소. 허과장 부인이 10년전부터 조선을 드나들며 전문 마른명태, 낙지, 해삼따위를 날라들이며 목돈을 벌었지. 한국길이 열리자마자 약장사를 하여 숱한 돈을 끌어들였지. 그후 또 한번 서울가서 3년이나 있으면서 벌었지. 게다가 로씨야에 세번이나 드나들며 노다지를 캤겠다, 돈이 돈을 번다고 그 돈이 새끼치면 또 얼마요? 어디 그뿐이요. 서시장에 매대 열개나 사서 임대를 주고있다지, 이렇게 계산하면 그 재산이 얼마요?》 《아이, 그럼 우리 과장님이 백만장자였군요! 옳은가요, 허과장님?》 《아니, 무슨…허허…》 기분좋게 허허 웃던 허과장이 전화가 와서 밖으로 나가자 하부과장이 부러운 어조로 말했다. 《허과장이 언제나 배를 쑥 내밀고 허허 웃으며 다니는걸 보오. 돈이 많으니깐 웃음이 절로 나오지. 우리 같은건 늘 돈 근심만 하다나니 언제 웃음이 나올새 있겠소. 제길할, 지금 세월엔 돈이 첫째라니까!》 《첫째도 돈이구 둘째도 돈이지요! 돈만 있으면 뭐나 척척 풀린답니다. 우리 뒤집 로친이 짠지장사를 하여 돈을 벌었다니까 글쎄 곱추아들에게 꽃같은 색시가 들어왔답니다.》 《우리 웃집 처년 옷장사를 하여 부자가 되더니 쌍지팽이신세에 글쎄 건강한 총각과 잔치를 했다오.》 《우리 사촌언니는 대학졸업생인데 글쎄 남새장사 총각한테 시집갔대요.》 《돈, 돈, 그것 참 좋은 물건이다! 허과장은 부자가 돼서 얼마나 좋을가!》 《흥, 좋기도 하겠지. 돈이 춤을 추니까 못할 짓도 하고…방금 전화가 온것도 녀자목소리야. 허과장의 정부인지 애인인지 하는 년이지.》 번대머리 송이 주먹을 불끈 쥐고 격분해서 말하자 미스 터 마가 신비하게 웃으며 송의 비밀을 까밝힌다. 《송부과장은 점잖은체 마십시오. 언제 보니까 송부과장도 장미다방의 단간방에서 딸같은 아가씨와…》 《그…그만하게! 그날 술김에 좀…그러나 아무 일도 없었네.》 《뭐, 변명할게 있습니까? 어느 남자가 녀자를 좋아하지 않겠습니까? 재간이 있으면 마음대로 하라지요.》 《손목시계》가 개방적으로 나오자 모두들 입을 싸쥐고 웃었다. 안해한테 폭 빠져 꼼짝달싹 못하는 하씨지만 입으로 오입질하는데는 언제나 제격이다. 《난 딱 미스 지처럼 예쁜 아가씰 정부로 삼았으면 좋겠는걸.》 《호호호, 부인한테 얻어맞자구요? 하부과장께서 부인님이 두렵지 않다면 오늘밤 만나자요.》 미스 지가 해쭉 웃으며 추파를 보내자 하씨는 얼굴이 지지벌개났다. 《누가 그까짓 녀편네가 겁나서! 만나자면 만나지! 몇시에 만나겠소?》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던 하씨가 갑자기 벌떡 일어서며 부랴부랴 퇴근준비를 한다. 묘하게도 퇴근종소리가 울리자 하씨가 문을 나선다. 《제길할, 저 사람은 한평생 녀편네 궁둥이만 만질 신세야!》 번대머리가 욕질하며 일어서 나가고 마지막으로 처녀총각이 싱숭생숭한 마음으로 문을 나선다. 또 하루해를 보낸것이다. 1994년 9월.        
13    B녀사의 운명 댓글:  조회:2873  추천:0  2013-11-17
B녀사의 운명   소설   김희수   사람들이 그녀를 B녀사라고 부르는것은 그녀가 시병원의 B형초음파현상계기의 조작일군이기때문이다. B녀사는 B형초음파현상계기앞에 선 임신부들에게 범관마냥 단마디명창으로 “좋아요” 또는 “그저 그래요”하고 딱딱하게 내뱉는다. 속이 조마조마하여 자기의 운명을 기다리던 임신부들은 “좋아요”하는 말을 들으면 “남자애이니 밝은 세상을 보게 하라”는 뜻인줄 알고 기쁨에 겨워 어깨춤을 춘다. 그러나 “그저 그래요”하는 말을 들으면 “녀자애이니 출생금지”라는 뜻인줄 알고 락태한 고양이상이 되여 인공류산하러 산부인과로 달려간다. 얼마나 많은 녀태아들이 B녀사의 “그저 그래요”하는 한마디 말에 밝은 세상을 보지 못하고 무고하게 “살해”됐는지 모른다. B녀사는 백메터밖의 미인이다. 먼발치에서 보면 몸매가 균형이 잡히고 쪽 빠져서 보는 남자들마다 “와!”하는 소리와 함께 침을 한발씩이나 흘릴 지경이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으악”하는 소리와 함께 3년전에 먹었던 떡이 목구멍까지 올라올 지경이다.  여드름투성이 얼굴에 빈대코가 납작하게 붙어있고 감았는지 떴는지 알수 없는 새우눈이 실룩거린다. 게다가 입은 또 이 세상의 물건을 혼자서 다 먹을듯이 짝 벌어진것이 하마입이 신통하다. 그래서인지 그녀에게 청혼하는 남자가 하나도 없다. 그래서 그녀는 처녀를 30년이나 묵여두었다. 아까운 처녀를… 그래도 아들을 낳은 집들에서는 B녀사를 구성으로 생각한다. 아들을 보기 위해 조총경리의 안해는 세번이나 녀태아를 떨궈버리느라고 갖은 고생을 다했다. 하지만 마침내 생남하여 소원성취한 그녀는 입이 합박만해졌다. 시립병원 오박사의 며느리도 두번이나 녀태아를 지워버린 덕분에 삼태자를 보게 되여 B녀사를 은인으로 생각하고있다. 아들을 낳은 집들에서 례물꾸러미를 들고올 때마다 B녀사는 어깨를 저절로 으쓱거리군 한다. 그런데 재앙은 눈섭에서 떨어진다고 B녀사는 가엾게도 간암이란 진단을 받고 수술대에 오르게 되였다. “암세포가 이미 확산되여 현대의학으로는…” 시병원 오박사는 머리를 가로저었다. 국내외적으로 암연구에서 권위적인 오박사마저 손을 드는것을 본 B녀사는 눈앞이 캄캄해났다. “오박사님, 절 살려주세요. 전 아직 젊어요. 시집도 못갔는데… 시집이 다 뭔가요. 남자와 키스도 못해봤는데… 오박사님, 제발 절 살려주세요. 저는 오박사의 며느리가 삼태자를 낳도록 해줬잖아요? 제발 절…흑, 흐흑…” “그거야 그렇잖구. 내 어찌 B녀사의 은혜를 잊을수 있겠소. 한가지 방법이 있긴 한데…” 한가지 방법이 있다는 말에 B녀사는 귀가 번쩍 뜨이면서 “이젠 살았구나”하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어떤 방법인데요? 제가 살수만 있다면 어떤 방법이든지 다 하겠어요!” 오박사는 눈을 감았다가 뜨면서 말했다. “지금 B녀사를 랭동해두었다가 의학이 발전한 30년후에 가서 다시 수술하는것이요!” 오박사의 말에 B녀사는 흥분되여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무렇게나 살고 볼 판이였다. “그런데…” 오박사는 미안한 눈길로 B녀사를 바라보면서 말을 이었다. “산 사람을 30년동안이나 랭동하려면 거액의 자금이 수요됩니다.” B녀사는 천당으로 오르다가 다시 지옥에 떨어지는 기분이였다. 그때 하늘에서 들려오는듯한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금은 제가 대드리겠으니 오박사님께서 마음놓고 B녀사를 랭동해주십시오!” 그 목소리의 임자는 조총경리였다. B녀사는 너무도 기뻐서 조총경리의 손을 꼭 잡았다. “조총경리님, 정말 감사합니다!” “B녀사께서 저의 대를 잇게 해주었는데 어찌 이만한 일도 못해드리겠습니까? B녀사께서 30년후에 수술에 성공하여 다시 소생한다면 그보다 기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리하여 B녀사는 동태처럼 랭동되여 병원의 랭동실에 보관되였다.… …B녀사는 달콤한 잠에서 깨여난듯 눈을 떴다. 오박사와 몇몇 사람들이 자신을 바라보고있는것을 본 B녀사는 이상하여 물었다. “오박사님, 왜 절 랭동시킨다고 하구선 잠을 자게 내버려뒀어요? 그래 절 죽게 할 작정인가요?” “하하하, B녀사, 당신은 이미 30년동안이나 잠을 잤습니다. 지금 수술에 성공하여 당신의 암증은 완치되였고 당신은 30년전의 청춘을 다시 찾았습니다!” “그럼 제가 한잠을 자고난 사이에 30년이란 세월이 흘렀단 말입니까? 그래 제가 지금도 여전히 서른살이란 말입니까? 그런데 오박사님이랑 조경리님이랑은 왜서 그냥 그 년세대로 있어요?” “하하하…오해입니다. 저는 오박사가 아니라 오박사의 아들이고 이분은 그때 B녀사의 덕분에 태여난 조경리의 아들이지요.” 그러자 이번에는 조경리의 아들이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이분은 오박사의 아드님이시고 병원의 원장님이신데 이번에 B녀사의 수술을 책임졌습니다. 저는 조경리의 아들인데 텔레비죤방송국의 기자이지요. 오늘 B녀사의 재생장면을 찍어서 보도할 책임을 지고왔습니다.” 조기자는 갑자기 얼굴을 붉히면서 말을 더듬거렸다. “B녀사께서 처…처녀란 말을 들어오신지 오…오랩니다. 지금은 처…처녀 하나 보기가 실로 조련찮습니다. 저…전 가장 절절한 마음으로 B… B녀사께…청…청혼하는바입니다!” “아니, 제가 어떻게 조기자같은분과 다…” 난생 처음, 그것도 미남자한테서 청혼을 받아보는 B녀사는 얼굴이 단통 익은 도마도처럼 새빨개졌다. 동시에 가슴도 세차게 쿵쿵 뛰였다. 30년만에, 아니 60년만에 처음으로 그렇게 뛰여보는 로처녀의 가슴이였다. 그때 오원장도 두손을 모아쥐고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존경하는 B녀사, 저도 저의 삼태자아들을 대표하여 녀사께 정중히 청혼합니다. 저의 세 아들의 안해가 되여주십시오!” 오원장의 생뚱같은 말에 B녀사의 눈이 튀여나올듯이 커다래졌다. B녀사는 홱 돌아누우면서 화약같은 분노를 터뜨렸다. “당신들이 사람을 깔보아도 분수가 있지 어찌 이토록 모욕하는가요?” “우린 B녀사를 모욕한적이 없는데요.” “세 남자가 어떻게 한 녀자한테 장가를 들수 있어요? 전 못생겨도 자존심은 있어요. 흑, 흐흑…” “우리가 어찌 B녀사를 업신여기고 모욕할수 있겠습니까? 금은보화보다도 더 귀중한 B녀사님을 말입니다. 제발 저의 세 아들을 받아주십시오. 그리고 장가못간 친척친구 다섯을 녀사께 더 소개해드릴수 있도록 허락해주십시오!” “저도 장가못간 친척친구 다섯을 더 소개해드립니다!” B녀사는 너무도 기가막혀 버럭 소리질렀다. “당신들은 미치지 않았어요? 제가 그래 더러운 기생년인줄 아세요?!” B녀사가 화를 내자 오원장이 조용한 목소리로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했다. “B녀사께서는 30년전의 사람이니 지금의 사정을 모르고 화를 낼겁니다. 지금 남녀비례가 현저하게 차이가 있어 장가못간 총각들이 기수부지입니다. 그래서 나라에서는 새혼인법을 내와 일처다부제를 실시하고있습니다. 한 녀성이 최저로 15명의 남편을 맞아야 한다고 규정을 지었습니다.” 조기자가 동을 달았다. “하지만 사실은 한 녀성이 100명의 남편을 거느려도 로총각들의 혼인문제를 제대로 해결할수 없는 형편입니다. 이럴 때 로처녀인 B녀사께서 이 세상에 새로 오셨으니 어지 우리 로총각들의 복음이 아니라 할수 있겠습니까?” “아이구머니! 이게 무슨 세상이란 말인가? 내가 어떻게 남편을 15명이나 거느린담?” B녀사는 너무 기가막혀 침대에 머리를 틀어박았다. 그때 갑자기 밖이 소란해지면서 왁작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오원장이 B녀사를 바퀴달린 의자에 앉혀가지고 창밖을 내다보게 했다. 창밖에서는 수만명의 남자들이 시위를 벌리고있었다. B녀사는 이상하여 물었다. “저 사람들이 왜서 저럽니까?” “로총각들이 소식을 듣고 B녀사께 청혼하러 달려온것이 틀림없습니다.” 조기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이, 이걸 어쩌면 좋아요?” “될수만 있으면 저 사람들의 청혼을 꼭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물러가지 않을것입니다!” 조기자의 말에 이어 오원장이 자세하게 설명했다. “이번에도 지난번에 살려낸 30년전의 그 젊은 과부처럼 혼인을 정해야 할것입니다. 즉 로동자, 농민, 개체호, 지식인의 비례를 평등하게 배치하고 나이 많은 차례로 순서를 정해야 할것입니다.” 핸드폰으로 계산해보던 조기자가 말했다. “이번에 B녀사께서는 150명의 로총각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B녀사는 눈앞이 캄캄해나면서 하마트면 뒤로 나자빠질번 했다. “뭐라구요? 제가 남편을 150명이나 섬겨야 한다구요? 맙시사! 이런 법이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 이건 방법이 없습니다. 30년전부터 모두 남자애들만 낳는 바람에…” “그렇습니다. B녀사께서는 현실을 정시하고 150명의 남편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오원장과 조기자는 B녀사의 두팔을 꼭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B녀사는 눈물범벅이 되여 발버둥치며 넉두리를 했다. “하느님, 30년전에 제가 녀태아들에게 ‘출생금지령’을 내렸다고 이런 천벌을 주시는겁니까?” B녀사는 온몸을 사시나무떨듯 부들부들 떨었다. (1992년 )  
12    중편소설 악마의 무덤 (6) 댓글:  조회:3082  추천:1  2013-11-10
  중편소설 악마의 무덤 김희수 6. 마지막 대결. 정신병원을 애처가 처가집 드나들듯했던 리광인에게 있어서 정신병원이야말로 가장 평화로운 곳이 아닐수 없었다 .여기는 요시다로를 대체할 방법을 연구하기 가장 합당한 장소였다. 하지만 민호에겐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할아버지를 입원시켜면서 몇번, 그리고 이 병원의 의사인 안해를 찾아 몇번. 그렇게 원내에 발길을 들여놓았었으나 그때는 정신병환자들과 직접 접촉하지 않아 별로 무서운줄 몰랐다. 그러나 온종일 해괴망측한 정신병환자들속에 파묻혀 있는 지금은 모골이 송연하여 사지가 자꾸만 떨렸다. 그러나 기억력을 잃어버린 아버지를 생각할 때 이런 자신의 처지가 아무것도 아니였다. 민호는 놈들을 대체할 방법이 없을가고 생각해보았다. 공안국에 이 정황을 보고하여 놈들을 체포? 그건 될수 없는 일이다. 공안국에서 믿지 않을건 물론 믿는다고 해도 놈들이 빨간 단추를 눌러대면 무슨 방법이 있겠는가? 무장부대를 동원하여 놈들의 소굴을 폭파? 그것도 안될 일이다. 놈들이 아버지를 비롯한 숱한 일질을 잡아두고있는데 어떻게…전세계를 구하기 위해서 그들을 희생시키면서 폭파할수도 있겠지. 하지만 놈들이 낌새를 채고 빨간색, 파란색 단추를 눌러대면 아무리 신식무기로 무장한 백만대군이 포위해 들어간다 해도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어쩌면 좋을가? 어쩌면… 《할아버지. 아버지를 어떻게 합니까? 네?》 민수가 안타깝게 되뇌였으나 광인은 들었는지 말았는지 미동도 하지 않고 멍하니 앉아있었다. 《할아버지, 이러고있으면 어떻게 합니까? 요시다로놈이 할아버지의 발명을 리용해 숱한 사람들을 해치고있는데 방법을 대야지 않겠습니까?》 《….》 《할아버, 무슨 방법이 없겠습니까?》 《…》 《할아버지!》 민호가 큰 소리로 웨쳐서야 광인은 잠에서 깨여난듯 멍한 눈길로 민호를 바라본다. 《할아버지, 그 평화광선시계 만든게 더 없습니까?》 《왜 그래?》 《그걸 가지고 살그머니 그놈들한테 접근하여 그놈들의 기억력을 지워버리면 될게 아닙니까?》 《허지만 그 시계는 놈들이 훔쳐간 그 하나밖에 만들지 않았다. 이제 또 새로 만들자면 아무리 빨라도 3개월은 걸려야돼.》 《그럼 어떻게 합니까? 그동안 놈들이 손을 쓰는 날엔 끝장이 아닙니까?》 민호가 절망에 차서 부르짖었으나 리광인은 평온한 어조로 말한다. 《얘야, 손자며느리를 만나야겠다.》 이 병원의 의사인 민호의 안해가 그들을 보살펴주면서 바깥정보도 전해주군했다. 민호가 안해에게 일의 자초지종을 상세하게 알려줬던것이다.   후지꼬는 요즘 기다야마를 해치울 기회만 노리고있었다. 허지만 교활한 기다야마가 어찌나 경계하는지 손을 쓸수가 없었다. 한번은 커피에 몽혼약을 타서 권했더니 기다야마는 실수한체 하면서 커피잔을 땅바닥에 떨어뜨리는것이였다. 다른 방법은 없다고 생각한 후지꼬는 자기의 우세인 육탄공격을 들이대기로 작심했다. 어느날 밤, 여느 때보다 섹시한 몸차림으로 기다야마의 앞에선 후지꼬는 온갖 교태를 다 부리며 섹시한 몸짓을 해보였다. 그 요염한 자태에 몸이 달아오를대로 달아오른 기다야마는 성급히 후지꼬를 끌어안고 침대에 쓰러졌다. 후지꼬는 있는 재주를 다 부려 기다야마를 몇번이나 황홀한 쾌락의 극치로 치달아 오르게 했다. 만족의 미소를 짓던 기다야마는 지친듯 한옆에 쓰러져서 쿨쿨 코를 골아댔다. 《아버지!》 한참후 낮은 소리로 몇번 불렀으나 세상모르고 자고있는 기다야마는 대답이 없다. 몇번 건드려 보아도 반응이 없다. 그제야 후지꼬는 기다야마가 차고있는 평화광선시계에 손을 댔다. 가슴이 두근두근 뛰였다. 재빨리 벗겨내 손목에 차자 가슴이 든든해졌다. 이제는 기다야마를 깨워서 복수해야 했다. 그녀는 기다야마를 발길로 사정없이 걷어찼다. 기다야마가 눈을 떴다. 잠이 설깬 눈으로 후지꼬를 바라본다. 《일어나, 이 자식!》 후지꼬가 매섭게 호령하자 기다야는 얼떨떨해서 몸을 일으킨다. 《왜 이래? 후지꼬…》 《왜 그러냐고? 이 개종자야! 넌 내 순결을 짓밟고 날 노리개로 만들었지. 난 복수할테다! 난 널 나의 노예로 만들테다!》 《노예로 만들겠다고? 네가 어떻게 날 노예로 만들수 있니?》 《밥통같은 자식, 이걸로 말이다!》 후지꼬는 손목에 찬 시계를 가리켰다. 《널 잠들게 한후 벗겨낸거다. 이젠 알만하지? 이 멍청아!》 《으하하하!》 기다야마가 갑자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네가 나하고 겨뤄보겠다고? 어림도 없다. 후지꼬 이년!》 《이 개자식아! 이제 곧 내 노예로 될텐데 아직도 악다구니질이야!》 《흐흐, 이 년아. 네가 어디 재간이 있으면 날 노예로 만들어봐! 어서!》 《개자식!》 성난 후지꼬가 시게의 암호수자를 눌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무런 신호도 없었다. 급히 빨간 버튼을 눌렀으나 아무런 빛도 나가지 않았다. 후지꼬는 당황해났다. 《아니? 이건?》 《으흐흐. 이년, 그건 가짜야! 난 언녕 네년이 딴 심보를 품을줄 알고 몰래 가짜를 만들어 밤에 잘 때 차군했어. 이 기다야마가 아무리 녀색에 미쳤다해도 녀자와 한 잠자리에 들 때까지 시계를 차고있을 바보는 아니야. 난 워낙 네년을 해치지 않으려고 했는데 안되겠어. 널 죽이긴 아까우니 내 성노예로 만들어야겠어!》 《아! 난 왜 가짜란걸 생각 못했을가? 왜…》 랑패상이 된 후지꼬가 절망에 차서 부르짖자 기다야마가 득의양양하게 웃어댔다. 《넌 나하고 겨루려면 멀었어. 아직 50년은 배워야해.!》 《으하하하!》 그때 난데없는 웃음소리가 나더니 침대밑에서 웬 늙은이가 기여나왔다. 《아, 귀신!》 그 늙은이를 본 기다야마와 후지꼬는 모골이 송연하여 온몸을 떨어댔다. 《아버지, 제가 아버지를 죽인건 고이적이 아니니 용서해주십시오! 아버지의 시체를 다시 잘 묻어주겠으니 제발 돌아가주십시요!》 기다야마가 무릎을 꿇고 애걸하자 후지꼬도 두 손을 맞잡고 빌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를 살해한건 아버지니깐 저하곤 상관없어요. 절 해치지 마세요!》 《으하하하!》 요시다로가 음산하게 웃으며 후지꼬 앞으로 한발작한발작 다가갔다. 혼비백산한 후지꼬는 비실비실 뒤걸음쳤다. 후지꼬를 벽 가까이 밀고간 요시다로는 홱 몸을 돌리더니 독기어린 눈길로 기다야마를 노려보았다. 《이 배은망덕한 자식! 길러준 제 애비를 죽인단 말이야!》 《잘못했습니다. 아버님! 제가 아버님 제사를 정성껏 지내드리겠습니다.!》 《꿈 깨라, 이 자식아! 이 세상에 귀신이 어디 있다고 그래. 난 죽지 않았다!》 《네?》 그때까지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고있던 기다야마가 벌떡 몸을 일으키며 머리를 쳐들었다. 그리고 혼자말처럼 중얼거렸다. 《난 분명 칼로 찔렀는데…》 《이놈! 난 네가 조만간에 나쁜 심보를 품고 날 해칠줄 알았어. 그래서 미리 방비하고있었지. 넌 영화에서 칼로 가슴을 찌를 때 피 흘리던 장면을 구경한적 있지? 난 바로 그렇게 영화에서처럼 가짜로 죽은체 했을뿐이야》 《아! 그때 죽음을 확인해야 되는건데…》 《네 실수는 그것뿐이 아니다. 호텔의 노예들은 워낙 나의 노예였다. 널 작은 주인쯤으로 알고있었지. 그 때문에 난 쉽게 이 방에 기여들수가 있었다. 난 네가 잠든 기회에 그 평화광선시계를 빼내려고 몰래 침대밑에 기여든거야. 그런데 넌 후지꼬를 방비하기 위해 진짜 평화광선시계는 침대밑에 감추었지. 난 그걸 더듬어 내여 손목에 찬거야.》 《아, 난 왜 그런 실수를 했을가?》 《이놈아, 너야말로 나하고 겨루려면 멀었어. 5백년은 더 배워야돼!》 《잘못했습니다! 아버지, 한번만 용서해주십시오!》 《으하하하! 이 못난 놈아. 난 너같은 바보가 아니야. 널 노예로 만들어 후환을 없애야지!》 요시다로는 기다야마를 향해 빨간 단추를 눌렀다. 기다야마가 비툴거리다가 쓰러지는것을 보고 후지꼬가 부들부들 떨며 애원했다. 《할아버지 절 해치지 마세요. 전…》 《으흐흐. 요 귀염둥이! 널 해치지 않을테니 안심해라.》 《할아버지, 저놈을 저의 노예로 만들어주세요.》 《응 그래 너의 노예로 만들어줄테니 싫컷 분풀이해라.》 《고마워요!》 《으흐흐. 고마우면 태도표시가 있어야지?》 요시다로는 음험하게 웃으며 후지꼬를 끌어안았다. 후지꼬는 싫은대로 늙다리의 품에 안기지 않을수 없었다. 승냥이를 제거하니 늑대를 만난 셈이다. 기다야마를 노예로 만든후 요시다로는 후지꼬를 안고 침대에 쓰러졌다. 요시다로는 99세의 늙은이답지 않게 후지꼬를 완벽하게 다루었다. 요시다로의 드센 공격에 후지꼬는 깜짝 놀랐다 .후지꼬는 요시다로가 사내구실을 못하는줄 알고있었다. 그녀가 양아버지 기다야마에게 정조를 빼앗긴지 얼마 안되는 어느날, 요시다로가 그녀를 불러들었다. 방에 들어서자 요시다로는 다짜고짜로 옷을 벗으라고 호령했다. 그녀는 와들와들 떨며 옷을 벗었다. 그런데 그녀가 몸에 실한오리 남기지 않고 홀딱 벗었지만 요시다로는 그녀몸에 손을 대지 않았다. 그저 퀭한 눈으로 그녀의 알몸을 바라볼뿐이였다. 그후부터 요시다로는 짬만 있으면 그녀의 라체를 감상하군 했다. 《한번만 더…》 요시다로는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후지꼬를 몇번이나 못살게 굴었다. 요시다로는 말한대로 기다야마를 후지꼬의 노에로 선물했다. 후지꼬는 날마다 채찍질로 노예인 기다야마를 학대했다. 그리고도 분이 풀리지 않은 후지꼬는 끝내 기다야마를 칼로 찔러 죽이고야 말앗다. 《너 정말 독하구나.》 요시다로가 후지꼬를 흘겨보며 말했으나 그건 책망하는 말투는 아니였다. 《할아버지를 살해하려고 한 이런 망나닌 죽어 마땅해요!》 《이제부터 날 할아버지라고 부르지마.》 요시다로가 갑자기 눈을 부라리며 소리쳤다. 그러자 후지꼬는 요시다로의 목을 끌어안고 애교를 떨어댔다. 《아이참. 그럼 서방님이라구 불러요?》 《이년! 난 세상의 통치자야! 이제부터 날 천황님이라고 불러야한다 알겠니?》 《알았어요. 천황페하!》 《으흐흐. 그래, 그래야 하지! 난 지구상의 60억인구를 모두 내 노예로 만들테야!》 요시다로는 지구의를 빙빙 돌려대며 계속 지껄였다. 《히틀러가 통일하지 못한 천하, 우리 천황님이 이룩하지 못한 위업을 내가 총 한방 쏘지 않고 통차지하게 되였지! 이제 내 한마디 호령이면 이 지구덩이가 벌벌 떨거란 말이다! 으하하하!》 《할아버지…아니, 천화페하! 천하를 통일하는 행동을 언제부터 시작 하겠어요? 말로만 해서야 무슨 쓸데 있어요. 빨리 손을 써야지요!》 《으흐흐. 요년! 내게 생각이 다 있다. 난 성탄절을 맞으며 행동을 시작하겠다. 크리스마스 전날밤, 이 호텔의 옥상에서 동서남북을 향해 빨간 단추와 파란 단추를 누룰거야. 그 다음 화려한 연회를 베푼뒤 비행기를 타고 지구를 한바퀴 돌면서 두개의 단추를 눌러 댈거야! 아, 그때면 이 천하가 통째로 내것이 될거야! 으하하하!》 《축하해요. 천황페하!》 《으흐흐. 날 축하해줄 놈이 또 있지. 난 그날 리광인과 그의 손자녀석을 옥상에 청해놓고 내가 천화를 통일하는 행동을 직접 구경하게 할테야! 그 다음 그놈들을 몽땅 죽여버릴테야! 그리고 한 놈이 있지. 시계요꼬의 아들-그 평화녀석도 함께 없애버릴거야! 아아! 얼마나 통쾌한 일이냐!》 민호는 놀랍고도 신기한 눈길로 리광인이 만들어낸 물건을 바라보았다. 물건의 모양은 손전등과 흡사한데 반사경이 적, 황, 남 3색으로 되여있었다. 리광인이 버튼을 누르자 3색의 령롱한 빛이 번쩍번쩍 빛났다. 《할아버지, 성공입니까?》 《그래, 성공이다!》 《야! 인젠 됐군요!》 민호는 너무도 기뻐 손벽을 쳤다. 모든게 끝장난줄 알았는데 할아버지가 그동안 정신병원의 특수한 방에서 제4대 P․C평화광선반사경을 발명했던것이다. 할아버지는 제4대가 능히 제3대를 제압할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이제 세계는 구원된것이다. 민호는 뜨거운 눈물로 흘리며 한스럽다는듯 말했다. 《할아버지, 왜 좀 더 일찍 만들어서 그 놈들이 죄행을 저지르지 못하게 막지 못했습니까?》 《제4대는 연구한지 오래나 관건적인 문제가 걸려서 여태까지 만들어 내지 못했다. 그런데 놈들의 만행이 나의 령감을 촉발했지! 손자며늘아기의 도움이 컸지. 그애가 내 요구하는 재료를 가져다주고 이 특수한 방에 안배해줬기에 성공이 가능했지!》 《할아버지, 이젠 일본놈들을 처단하러 갑시다!》 《급해말고 기다려라.》 《뭘 더 기다린단 말입니까?》 《그놈들이 행동을 시작할 때 꼭 우리를 불러 구경시키려 할것이다. 그때까지 기다리자.》 《그때까지 기다릴게 뭡니까? 지금 당장…》 《얘야, 가장 관건적인 때일수록 인내력이 있어야한다. 내심하게 기다리자.》 《에이, 할아버지두!》 한시 급히 놈들을 족쳐버리고싶었던 민호는 황소같이 늘어진 할아버지의 성미를 리해할수 없었다. 마침내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가 닥쳐왔다. 후지꼬가 노예들을 거느리고 와서 아주 례절스럽게 리광인과 리민호를 초청했다. 요시다로는 전등불로 옥상을 대낮같이 밝혀놓고 있었다. 리광인네가 오는것을 보고 요시다로는 껄껄 웃었다. 《안녕하우? 리박사! 난 당신이 날 축하하러 온것을 환영하오!》 그들은 몇보를 사이두고 두편으로 갈라져 있었다. 이쪽은 리광인을 모시고 리민호가 서있었고 저쪽은 요시다로를 위시하여 후지꼬와 평화가 기립해있었다. 때는 24일 24시 10분전이였다. 《리박사! 크리스마스가 밝아오고있소. 이제 10분만 있으면 당신은 당신이 발명한 평화광선이 어떻게 나의 노예들을 만들어내는가를 보게 될것이오. 난 여기서부터 시작해서 이 세상 60억인구를 모두 나의 노예로 만들것이요. 이 지구덩이는 통째로 내것이 될거란말이요! 하하하!》 《요시다로 이놈! 너무 일찍 기뻐하지 마! 네 음모는 달성될수 없어!》 민호가 손가락질로 득의양양하여 웃어대는 요시다로를 꾸짖었다. 그러자 요시다로는 대노하여 고아댔다. 《이 이마에 피도 안마른 녀석아, 누구앞에서 큰소릴 치는거야! 난 하느님이야! 내 한마디 호령이면 60억이 벌벌 떨거란말이다! 네놈이 내 만세를 부르면 목숨을 살려줄수 있어!》 《이 미친놈아! 넌 우리 할아버지께서 손에 들고 계시는것이 무었인가 똑똑히 보기나하고 큰소리쳐라!》 민호의 그 한마디에 요시다로는 훔칫 놀라며 광인의 손에 들린 물건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이제 곧 천하를 손안에 넣게 된다는 지나친 흥분때문에 광인의 손에 들린 물건 따위는 주의도 돌리지 않았던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여겨봐도 그저 손전등과 흡사할뿐이다. 《그건 손전등이 아니냐?》 《눈깔을 좀 똑바로 뜨고 봐라! 이건 제3대 평화광선손목시계를 제압할수 있는 제4대 P․C평화광선반사경이다! 제3대의 공능을 갖고있는 외에 제3대 평화광선을 반사하여 되돌려보내 네놈의 기억력까지 지워버릴수 있단 말이다.》 《뭣이?!》 요시다로는 크게 놀랐다. 하지만 겉으론 천연한체 씨벌였다. 《한낱 장난감같은 물건을 가지고 날 놀래워 보려구? 그런 속임수엔 안 넘어가!》 《요시다로!》 그때까지 침묵을 지키고있던 리광인이 비로소 입을 열었다 《넌 날 축하하러 오라고 초청했지만 난 네놈을 징벌하러 왔다!》 《날 징벌하겠다구? 그 장난감으로?》 《이놈, 이건 제4대야!》 《큰소리치지마! 그런 제4대가 있었다면 왜 여태껏 내 앞에서 꼼짝 못하고있었니?》 《난 제4대를 연구한지 오래나 관건적인 문제가 걸려서 그때까지 만들어내지 못하고있었던거야. 그런데 네놈들의 만행이 나의 령감을 촉구했지. 다행히 네놈이 행동하기전에 만들어냈지!》 《허튼 소리! 널 정신병원에 가뒀는데 그걸 어떻게 만들수 있어?》 《요시다로! 넌 내가 60년동안 미쳐온걸 알겠지? 그 제3대도 정신병원에서 발명한거야!》 《허지만 정신병원에 실험도구도 없는데 어떻게…》 《제4대는 90프로가 이미 만들어진거야. 게다가 정신병원의사인 내 손자며느리가 요구되는 실험재료들을 가져다준 덕이지!》 《뭐? 손자며느리?》 《옳아요. 민호의 안해가 정신병원의사라고 들은 생각이 나요!》 후지꼬가 곁에서 끼여들자 요시다로는 후지꼬의 귀쌈을 후려쳤다. 《바가야로! 왜 그런 정황을 내게 보고 안했어? 나쁜 년!》 《요시다로! 군소리 말고 어서 그 손목시계를 이리 바쳐라!》 《장난감을 가지고 날 위협하려구?》 요시다로는 속은 벌써 얼어들었으나 태연한체 허장성세했다. 《이놈! 네놈 눈엔 이것이 장난감으로 보이니? 그럼 좋다! 어디 장난감을 실험해볼가?》 리광인은 손전등의 버튼을 눌렀다. 적, 남, 황, 3색의 빛이 찬란하게 빛뿌렸다. 아, 저것이 신비한 평화광선이 틀림없구나! 요시다로는 속이 떨렸다, 《제길할! 내 놈과 결판을 낼테다!》 요시다로는 최후발악하듯 손목시계의 암호수자를 돌렸다. 신호등이 번쩍했다. 《꼼짝 말앗! 요시다로, 네놈이 까딱 움직이면 난 네놈의 기억력을 지워버릴테다!》 리광인은 3색의 빛이 번쩍거리는 반사경으로 요시다로를 겨누며 호령했다. 요시다로는 머뭇거렸다. 저것이 진짜일가? 아무리 생각해도 가짜같지 않았다. 요시다로는 사람의 표정을 보고 그 사람의 내심을 꿰뚫어보는 능력이 있었다. 그는 광인과 민호의 표정변화를 놓치지 않고 관찰했으나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한세기의 창상지변속에서, 더구나 60년의 미치광이 생활에서 굳어진 광인의 표정에선 그 진가를 가려낼수 없었으나 햇내기 민호의 표정에선 쉽게 보아낼수 있었다. 그것이 가짜라면 민호의 표정이 시종 변함없이 그렇게 까지 자신만만할수가 없을것이였다. 저것이 진짜라면 경거망동해선 안된다. 까딱하면 내 기억이 지워질것인데 죽을지언정 그런 치욕을 당할수는 없다. 아, 슬프구나, 세계를 통치하려던 내 야심이 그저 이렇게 물거품이 된단말인가. 《요시다로!》 리광인이 재차 큰소리로 호령했다. 《어서 그 시계를 바쳐라! 내가 셋을 셀때까지 바치지 않으면 너의 기억력을 지워버릴테다! 하나, 둘…》 《잠깐만!》 요시다로는 온몸에 식은땀이 쫙 솟았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시계를 벗겨 광인한테 던졌다. 그 시계를 주어든 리광인이 갑자기 앙천대소했다. 《아하하하! 요시다로 이놈! 난 이 제3대를 발명하는데도 60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그런데 넌 이렇게 짧은 시일내에 내가 제4대를 발명해낼수 있다고 믿었단 말이냐?》 《뭐라구? 그럼…》 《이건 확실히 장난감이야!》 《그게 정말이냐?!》 요시다로는 아연실색했다. 민호도 화뜰 놀랐다. 《믿지 못하겠으면 어디 실험해보렴!》 광인이 손전등을 요시다로한테 던져주었다. 황망히 그걸 주어들고 온갖 단추를 다 눌러대던 요시다로가 주먹으로 제 가슴을 치며 통탄했다. 《아이구. 원통해라! 내가 깜빡 속았구나! 난 정말 바보야!》 《요시다로 이놈! 넌 인민의 심판을 받아야한다!》 《으하하하! 난 정말 바보야! 으하하하! 난 정말바보야!》 미친듯이 웃어대던 요시다로는 갑자기 몸을 날려 옥상에서 뛰여내렸다. 《할아버지!》 자기의 끝장도 멀지 않았음을 직감한 후지꼬도 뒤따라 아래로 뛰여내렸다. 평화가 홀로 머뭇거리며 서있었다. 《아버지!》 민호가 평화한테로 달려간다. 교회당에서 성탄절을 맞는 종소리가 땡땡 울려온다. 《할아버진 어떻게 가짜로 그놈을 전승했어요?》 《난 그놈과 심리전을 벌린거다. 우선 정신상에서 그놈을 눌러버렸지. 물론 네 공로가 크지.》 《제게 무슨 공로가 있습니까?》 《그놈은 자신만만한 네 표정에서 그걸 진짜로 오인한거지.》 《할아버지가 절 속인 의도가 거기에 있었군요. 그런데 할아버지, 아버지는 어떻게 합니까? 잃었던 기억력을 되살리는 평화광선은 발명할수 없나요?》 《될수있지. 세상엔 불가능이란 없으니깐.》 《그럼 할아버지께서 빨리 그걸 발명해내세요.》 《이 녀석아, 언제까지 할아버지를 믿겠느냐?》 리광인은 못마땅한듯 손자에게 눈을 흘긴다. 그제야 민호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내가 해내야 한다. 아버지의 기억력을 되살리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세계의 평화를 위해! 민호는 할아버지의 뒤를 따라 성큼성큼 걸어갔다. 1995년 9월      
11    중편소설 악마의 무덤 (5) 댓글:  조회:2569  추천:0  2013-11-10
중편소설 악마의 무덤 김희수 5. 악마의 행동. 기다야마는 아무리 애를 써도 암호문을 해독할수 없었다. 그는 요시다로한테 전화를 걸어 상세한 정황을 알렸다. 《그게 바로…제3대야!》 요시다로의 경악에 찬 떨리는 목소리가 바다 저 쪽에서 울려 왔다. 《기다려. 내 곧 중국으로 갈거야.!》 그 말에 기다야마는 깜짝 놀랐다. 운신도 변변찮은 령감이 동네 나들이도 아니고… 그런데 이튿날 섬나라에서 날아온 요시다로는 뜻밖에도 젊은이들처럼 기력이 왕성했고 걸음걸이마저 날렵했다. 《아니, 아버진 다시 젊어지셨군요!》 《에그마, 할아버진 아버지보다 더 기력이 정정하시네요!》 공항에 마중 나간 기다야마와 후지꼬가 제가끔 감탄을 련발했다. 《하하하! 난 60년동안 연구끝에 비밀리에 제조한 불로약을 먹고 회춘한거야! 하지만 이 보다 더 기쁜 일은 리광인의 제3대를 손에 넣은거지! 빨리 그 보물을 가보자!》 평화광선의 신비한 위력을 알고있는 요시다로는 한시 급히 그 보물을 보고싶었다. 요시다로는 암호해독전문가였다. 기다야마의 방에 들어박혀서 며칠동안 암호문을 연구하던 요시다로는 끝끝내 그 오묘한 암호수자를 풀어내고야 말았다. 요시다로가 제3대 평화광선손목시계를 차고 암호수자를 누르자 신호등이 밝아지며 두겹의 시계판이 서로 반대방향으로 회전했다. 다시 암호를 닫아버리자 신호등이 꺼지며 시계가 작동을 멈추었다. 《빨리 밖에 나가 아무 놈이나 불러와. 이 보물의 성능을 실험해봐야겠어!》 요시다로는 곁에서 신비한 눈길로 지켜보고있는 기다야마와 후지꼬에게 명령했다. 후지꼬가 나가더니 보이 한명을 데리고 왔다. 멋도 모르고 불리워 온 보이는 무슨 분부가 있는가고 물었다. 요시다로는 보이의 이름이며 나이 같을 물어본 다음 평화광선시계의 암호수자를 눌렀다. 설계도를 연구한 그는 시계의 사용방법도 장악하고있었다. 그는 기다야마와 후지꼬를 자기의 뒤에 서있게 한 다음 시계로 보이를 겨냥하여 빨간색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순식간에 빨간빛 줄기들이 부채살처럼 퍼지며 보이한테로 쭉쭉 뻗어갔다. 빛줄기가 몸에 와닿자 보이는 몽혼약을 먹은듯이 비틀거리다가 맥없이 넘어졌다. 셋은 긴장한 눈길로 보이를 지켜보고 1분도 안되여 보이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더니 멍한 눈길로 주위를 둘러본다. 《너 이름이 뭐냐?》 요시다로가 물었다. 《….》 《너 집은 어디 있니?》 《….》 《내 알려주지. 넌 나의 노예란 말이다! 이제부터 넌 나를 주인으로 섬기면서 내가 시키는 대로 해야한다. 알겠니?》 《네.》 《이놈, 어서 와서 내 등을 주물러라!》 《네, 네!》 보이는 군소리 한마디 없이 고분고분 요시다로의 등을 안마한다. 《이놈, 어서 내 발을 씻어라!》 요시다로가 다시 호통치자 보이는 요시다로의 발을 씻어준다. 잘 길들인 사냥개처럼 주인의 명령에 척척 잘도 따른다. 《하하하!》 요시다로가 미친듯이 웃어댄다. 《아버지, 이게 정말이란 말입니까?》 《할아버지, 정말 꿈만 같아요!》 곁에서 촌닭 관청구경하듯 지켜보고있던 기다야마와 후지꼬는 눈앞에서 벌어진 신기하고도 놀라운 현실에 어리벙벙하여 머리를 흔든다. 요시다로가 득의양양하여 선심이나 쓰듯 뇌까린다. 《너들도 부러우면 한놈씩 끌고 오너라 내 노예로 만들어줄테니!》   리광인은 뒤늦게야 검은 함이 잃어진걸 발견하고 아연실색했다. 어찌 이런 일이 생길수 있단 말인가! 어찌… 광인의 부름을 받고 달려온 평화와 민호도 깜짝 놀란다. 평화가 부인에게 누가 왔다간적없는가고 물어보자 부인이 민수가 요 며칠째 놀러오군했다고 실토한다. 혹시 민수가?…. 그들은 호텔에 달려가고 민수의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민수를 찾을수 없었다. 사흘동안 사처로 뛰여다니며 찾았으나 민수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날, 종적을 감췄던 민수의 시체가 강가에서 발견되였다. 그들은 민수가 일본호시회사의 후지꼬아가씨와 접촉이 잦은것을 조사한다. 호시회사가 민수를 시켜 검은 함을 훔치게하고 나중에 민수를 살해한건 아닐가? 리광인과 평화, 민호는 호시회사 손님들이 들어있는 평화호텔로 찾아간다. 낯익은 종업원들도 있었으나 그들은 이상하게도 리광인 일행을 몰라본다. 리광인네가 20층에 올라갔을 때 마침 복도에서 요시다로네와 마주쳤다. 《내 동생 민수를 못봤습니까?》 민호가 기다야마와 후지꼬를 번갈아보며 묻자 요시다로가 위엄스레 틀거지를 차리며 씨벌인다. 《저 젊은인 누구냐?》 《저분은 평화회사의 총경리 리민호예요. 그리고 저분들은…》 후지꼬가 한발 나서며 소개하자 민호가 이어댄다. 《이분들은 나의 할아버지와 아버지입니다.》 《그러니까…》 요시다로가 놀란 눈길로 리광인을 바라보다가 반갑다는듯 지껄인다. 《안녕하우? 리박사!》 《당신은…》 번개같이 스치는 예감에 리광인은 가슴이 선뜩했다. 《리광인! 난 60년전에 네가 정말 미친줄 알았지.》 《네놈은 요시다로…》 리광인은 눈에서 증오의 불길이 타올랐다 요시다로가 득의에 차 웃어댔다. 《으흐흐. 그래 난 요시다로야. 광인아, 난 네가 지금까지 살아서 제 3대를 발명해낼줄은 꿈에도 몰랐어!》 《그 검은 함은 네놈이 훔친거지?》 묵은 원한과 새 원한이 겹치며 리광인은 주먹을 떨었다. 《으하하하! 그래 내가 훔쳤다! 너의 손자 놈 민수를 리용해서 훔쳐낸거야. 넌 네가 발명한 제3대의 위력을 실험하고싶니?》 요시다로가 너털웃음을 치며 손목에 찬 신비한 시계의 암호수자를 눌렀다. 그러자 리광인이 뒤주춤했다. 《이놈아, 그걸 돌려줘!》 성난 평화가 고함지르며 한걸음 앞으로 나섰다. 평화를 보는 요시다로의 눈이 번쩍 빛났다. 《으흐흐, 네가 그 시계요꼬의 피덩이겠구나!》 《이놈아, 그걸 돌려줘!》 평화가 요시다로에게 달려들었다. 교활한 요시다로는 몇걸음 뒤걸음치다가 평화를 부여잡고 홱 돌아섰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은 요시다로를 등지고 서게 되였고 평화만이 홀로 요시다로와 마주서게 되였다. 《평화야, 조심해!》 리광인의 울부짖음이 멎기도전에 평화는 고목 쓰러지듯 땅바닥에 넘어졌다. 요시다로가 빨간 버튼을 눌렀던것이다. 《얘야!》 《아버지!》 리광인과 민호가 부르짖으며 달려오는것을 기다야마와 후지꼬가 비수를 가로막았다. 한참후 정신이 들어 일어나는 평화를 붙잡고 요시다로가 구슬렸다. 《넌 나의 아들이다. 난 너의 아버지구! 알겠니?》 평화가 멍한 눈길로 요시다로를 바라보다가 머리를 끄덕였다. 《얘야, 그건 허튼소리다. 내가 진짜 너의 아버지야!》 《아버지, 그놈은 거짓말로 아버지를 속이고있습니다!》 리광인과 민호가 안타깝게 웨치자 평화가 이상하다는듯이 그들을 가리키며 요시다로에게 물었다. 《저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저 사람들은 미치광이야. 너 어서 저 미치광이들을 쫓아버려라!》 요시다로가 명령하자 평화가 리광인과 민호를 보고 소리쳤다. 《이 미친것들아, 빨리 가거라! 우리 아버지가 너들을 쫓아버리란다.》 《아버지!》 민호가 목멘 소리로 부르짖었다. 요시다로가 시게를 흔들며 으름장을 놓았다. 《어째 너들도 내 아들이 되고싶니?》 《이 개같은 놈아!》 격분에 찬 민호가 막 달려들려는것을 리광인이 막아섰다. 요시다로가 능글능글 웃었다. 《흐흐, 나이 백살을 넘긴 놈이 다르긴 다르군! 세상물정을 아는걸 보니. 그래야 하지. 너들은 내게 고분고분 순종하는 길밖에 없어. 난 아직 너들의 기억력을 지우지 않을테다. 그 대신 너들을…흐흐!》 요시다로는 그동안 평화광선시계를 리용해 노예로 만든 호텔일군들에게 리광인과 민호를 정신병원에 데려가라고 명령했다. 사람들의 눈에 리광인은 워낙 미치광이고 민호 또한 신비한 시계요. 일본놈들이 그걸 빼앗아 기억력을 지웠소, 하는 따위의 엉터리없는 말을 줴치는 지라 정신병원에선은 그들을 정신병자로 단정하고 즉시로 입원시켰다. 요시다로는 문지기 여럿을 노예로 만들어 리광인과 민호를 빠져나가지 못하게 감시하도록 했다. 《왜서 후환이 없게 저놈들을 마저 노예로 만들지 않습니까?》 기다야마가 의아한듯이 묻자 후지꼬도 안타깝다는듯 한마디했다. 《아버지 말씀이 옳아요. 할아버지, 그리고 민호녀석을 저의 노예로 만들어 주세요!》 《요 앙큼한것! 너 민호라는 미남잘 노예로 만들려는것이 아니라 신랑으로 만들고싶어 그러지?》 요시다로가 음탕한 눈길로 바라보자 후지꼬는 얼굴이 익은 꽈리같이 새빨개졌다. 《너들은 뭘 몰라도 한참은 몰라. 난 곧 세상사람들을 모두 나의 노에로 만들겠단 말이다. 그런데 내 승리를 축하해줄 사람이 있어야지. 리광인, 그자더러 그자가 손수 만든 제3대가 어떻게 세계평화를 위해 복무하는가를 직접 보게 할거야! 난 기억력이 생생이 살아있는 그자들에게 내가 이 세상의 통치자로 되는 름름한 모습을 직접 보여줄테야! 하하하!》 요시다로의 미친듯한 웃음에 기다야마는 오싹 소름이 끼쳤다. 기다야마는 생각했다. (저 늙다리가 나중에 나도 노예로 만들지 몰라. 내가 왜 저 늙다리 밑에서 종노롯을 한단 말인가? 내 친아비도 아닌데 차라리 죽여버리고 내가 이 세상의 통치자로 돼야지!) 그후부터 기다야마는 요시다로앞에서 비굴하게 허리를 굽실거리며 요시다로를 하늘처럼 떠받들었다. 그러다가 기회를 엿본 그는 요시다로가 주의하지 않는 틈을 타서 번개같이 비수로 요시다로의 가슴을 들이찔렀다. 요시다로가 피투성이 되여 쓰러지자 기다야마는 재빨리 요시다로의 손목에서 그 신비한 손목시계를 벗겨냈다. 《아버지…왜 이러세요?》 그 끔직한 광경을 보고있던 후지꼬가 온몸을 바들바들 떨어댔다. 《요 귀염둥이야. 너를 해치지 않을테니 무서워 마라!》 기다야마가 후지꼬를 위안하고나서 요시다로의 시체를 잘 위장하여 강가에 던져 버렸다. 신비한 제 3대를 손에 넣은 기다야마는 어찌나 신나고 기쁜지 미칠지경이였다. 그 신비한 위력을 실험하기 위해 기다야마는 거리에 나섰다. 기다야마는 지나가는 낯선 사람을 불러놓고 귀빰을 후려쳤다. 까닭없이 얻어맞은 그 사람이 대들자 기다야마는 시계의 빨간 버튼을 눌렀다. 그 사람이 넘어지자 구경군들이 모여들었다. 이윽고 그 사람이 일어나서 아무일도 없는 듯이 서있자 구경군들이 흩어졌다. 신난 기다야마는 난전앞을 지나면서 장사군들의 돈을 맘대로 빼앗았다. 장사군들이 시비를 걸며 달려들자 그는 빨간 버튼을 눌러댔다. 기다야마는 또 은행에 들어가 빨간 버튼을 눌러댔다. 그리고 노예로 만든 은행직원들더러 돈자루를 자동차에 싣게 했다. 그는 거리에서 예쁜 녀자만 보이면 첩으로 만들어 데리고 놀았다. 그는 미스 김을 잊지 않았다. 선참으로 첩으로 만든건 미스 김이였다. 이전엔 완강하게 거절하던 미스 김이 언제 그랬나싶이 고분고분 몸을 맡긴다. 얼마나 가지고싶었던 미스 김의 몸이였던가! 미스 김의 그 아름답고도 매력적인 몸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며 기다야마는 너무도 황홀하여 미스 김의 만세를 불렀다. 기다야마는 더 큰 자극을 추구하고싶었다. 그는 시퍼런 대낮에 거리에 나가서 공공연히 녀성을 강간하고 아무나 칼로 찔러 죽였다. 한명, 또 한명… 경찰이 와서 체포할 때까지 강간하고 죽이고 하며 온갖 만행을 서슴없이 저질렀다. 사람들은 공포에 질려 벌벌 떨었다. B시의 치안은 진작 엉망이 된 터였다. 은행이 털린 사건, 강간사건. 살인사건… 기다야마는 이 모든 사건의 조직자가 내노라고 대담하게 승인했다. 사형판결이 내리자 강간, 살인, 강탈범 기다야마를 사형장에 압송했다. 사형장은 살인악당을 총살하는것을 구경하려온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집행관이 마지막으로 할말이 없는가고 물었다. 그러자 기다야마는 더 많은 사람을 죽이고싶다고 하며 너털웃음을 웃어댔다. 두 자루의 총구멍이 기다야마의 대갈통을 겨누고 집행관이 손을 쳐들었다. 집행관이 손을 내리는 순간이면 기다야마는 황천객이 될 판이였다. 그 아슬아슬한 순간 기다야마는 번개같이 신비한 시계의 파란버튼을 눌렀다.《땅!》총소리가 나기전에 사형집행인원들과 구경군들이 쑥대 넘어가듯 일제히 무리로 쓰러졌다. 한참후 일어난 구경군들은 무슨 영문인지 몰라 어리둥절해 서있었고 사형집행 인원들도 총을 버린채 멍해서있었다. 그 꼴을 보고 기다야마는 너무도 통쾌하여 미친듯이 웃어댔다. 《으하하하! 너들은 모두 나의 노예야!》 기다야마는 물론 이런《유희》에만 만족되지 않았다. 그는 지구의를 돌려대며 세계통치자가 되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난 머지 않아 이 지구상의 유일한 통치자기 될거야. 이 천하는 내 혼자의 세상이 될거란 말이야.!》 기다야마는 유일하게 대화가 통할수 있는 후지꼬를 불러놓고 말했다. 《이 세상은 통째로 내거란 말이야. 먹고싶은것, 입고싶은것, 가지고싶은것 모두 내 맘대로 할수있어. 이 세상의 예쁜 녀자들도 모두 내거란 말이야!》 《아이, 아버진 그저 녀자밖에 모르네!》 《녀자가 좋지! 흐흐… 세계각지에 궁전을 짓고 가는 곳마다 미인을 모집해 들일테야! 옛날 중국의 황제처럼 3천명의 궁녀를 데리고 놀가? 아니 그건 너무 적어. 3만명? 그것도 적지. 3백만명? 그것도 성차지 않아. 3천만명은 돼야지! 아, 3천만의 미인들을 한품에 안고 즐겨야지! 아아, 그 재미 기막힐거야. 그렇지, 후지꼬?》 《어마나, 욕심도! 3천만명을 다 안아주자면 하루에 백명씩 안아줘도 8백년동안 안아줘야 되겠어요! 그래도 채 못안아줄건데요. 호호호!》 《으흐흐 그럼 888년을 안아주면 다 안아줄수 있겠지? 다른 녀자들은 채 못안아줘두 너만은 안아줄 시간이 있을거야!》 그러면서 기다야마는 후지꼬를 부등켜안고 입술을 덮쳤다. 후지꼬는 기다렸다는듯 기다야마의 목에 두팔을 걸고 혀바닥을 꼿꼿이 세워가지고 기다야마의 입속에 집어넣었다. 《내게 숱한 미인들이 있지만 너만은 못잊겠어. 넌 불덩이 같은 녀자야!》 기다야마는 어느새 바지를 벗어 던지고 후지꼬의 몸속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후지꼬의 가슴속에선 증오의 불길이 이글이글 타오르고있었다. 후지꼬는 이를 뿌드득 갈았다. 네가 할아버지를 죽였는데 난 왜 널 죽이지 못한단 말이냐? 넌 내 순결을 짓밟고 날 노리개로 만 여겨왔지. 내가 잘 생긴 남자 노예를 요구해도 넌 주지 않았지. 내가 왜 너따위 늙다리만 섬겨야해? 난 널 죽여버리고 내가 이 세상을 통치할테야! 아니, 널 내 노예로 만들어 실컷 부려먹다가 죽여버릴테야! 그리고 민호 그 녀석도 잡아들여 내 성노예로 만들어야지. 씨발, 나도 세계각지에 궁전을 짓고 3천만명의 미남자들을 모집해 들일거야. 후지꼬는 이런 야심을 품고 호시탐탐 기회만 노리고있었다. 그런데…      
10    중편소설 악마의 무덤 (4) 댓글:  조회:3355  추천:0  2013-11-10
중편소설 악마의 무덤 김희수 4. 죄악의 손길   요시다로는 60년후에야 리광인이 미치지 않았다는것을 간파했다. 그는 기다야마와 후지꼬에게 민수를 돌파구로 더 큰 내막을 파내라고 지시했다. 더욱이 평화광선모자의 리면에 더 무섭고도 놀라운 제2대 혹은 제 3대P․C광선이 숨겨져 있을것이니 천방백계로 그 비밀을 뚫어내라고 지령을 내렸다. 후지꼬는 칸막이가 된 조용한 다방에서 민수와 두번째로 만났다. 후지꼬의 부름에 모든것을 제쳐놓고 달려온 민수는 이미 다 써넣은 조사표를 꺼내 놓았다. 《이것이 후지꼬양의 론문집필에 도움된다면 대단히 기쁘겠습니다.》 《호호호, 도움이 되고말고요.》 후지꼬는 반색을 하며 조사표를 들여다보았다. 건강상황에 리광인은 수십차나 병이 도져 정신 병원에 입원했다고 적혀있었다. 후지꼬는 의문을 느꼈다. 민수의 말투를 봐선 리광인이 미친게 틀림없었다. 그가 연극을 꾸미고있거나 가짜정보를 제공하는것일수는 절대 없다. 민호라면 그것이 가능하나 민수는 처음부터 경계심을 품고있지 않았으며 또 그 만큼 두뇌가 명석하지도 못하다. 그렇다면 요시다로의 판단이 틀렸을가? 그런것같지도 않았다. 요시다로는 평화광선모자의 발명자는 리사장인 평화가 아니라 그 배후에 숨어있는 신비한 인물 리광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비범한 로인은 60여년동안 미치광이로 가장하고 암암리에 평화광선연구에 몰두한것이라고 단정했다. 후지꼬는 생각했다. 민수는 자기의 할아버지가 가짜로 미쳤다는것을 근본 모르고있을거야. 광인로인은 가족들에게 마저 자기의 정체를 숨겨오며 철저하게 자신을 위장한거겠지 .허지만 광인로인이 가족모두에게 비밀을 숨기고있진 않았을거야. 적어도 평화와 민호에게만은 그 비밀을 알려줬겠지. 아마도 민수에게 비밀로 붙인것은 그의 위인이 믿음직하지 못한 탓일거야. 할아버지 내막을 모르고있는 민수한테서 이제 무엇을 더 파낸다것은 공연한 노릇이 아닐가? 이제 민수를 리용하는 방법은 그를 우리편으로 끌어와서 자기 가족을 배반하게 하는것이다. 그리하여 평화가족내부에 민수라는 스파이를 침투시켜 그 신비한 P․C평화광선을 훔쳐내게 해야한다. 후지꼬가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민수는 줄곧 음탕한 눈길로 그녀의 젖가슴을 노려보고있었다. 그러다가 후지꼬가 조사표를 한켠에 밀어놓자 참을수 없어 그녀를 끌어안고 풍만한고 탱탱한 젖통을 손으로 톡톡 건드렸다. 《이 보배덩이가 정말 크기도 하네요. 가짜는 아니겠지요?》 그러면서 블라우스를 헤치며 브래지어속에 손을 집어넣는다. 《아, 진짜였군요.!》 민수는 거칠게 후지꼬의 젖통을 주물러댔다. 후지꼬는 민수가 하는대로 내버려두었다. 어쩐지 민수가 하는 짓이 싫지 않았다. 민수는 민호에 비해 손색이 있긴 하지만 오늘 다시 보니 어딘가 사내다운 매력이 있었다. 후지꼬가 저항이 없자 더 대담해진 민수는 브래지어를 벗겨냈다. 크고도 아름다운 젖무덤이 눈앞에 안겨오자 민수는 환성을 질렀다. 《아! 참 멋진데요. 아가씨의 이 보배덩이가 무엇 같은지 압니까?》 《무엇 같아요?》 《똑 마치 수박같습니다!》 《어머머!》 후지꼬의 예쁜 눈이 동그래졌다. 기다야마는 후지꼬의 젖통을 롱구공같다고 했다. 확실히 후지꼬의 젖가슴은 특별하게 컸다. 《그럼 어서 수박을 맛보세요!》 후지꼬가 유혹의 미소를 보내자 민수는 정신없이 엎어지며 후지꼬의 수박을 파먹기 시작했다. 쪼개지는 못하고 안타깝게 허둥거리며 속의 단즙을 빨아댔다. 《아!》 후지꼬는 저도 몰래 욕정에 몸이 달아오름을 느꼈다 그러나 민수의 손이 아래도리를 더듬자 벌떡 몸을 일으켰다. 《아! 안돼요》 《후지꼬양, 여기서 불편하면 편한 곳으로 자리를 옮깁시다.》 민수가 욕정에 벌겋게 달아오른 눈을 번뜩이며 급하다는듯 졸라댔다. 《미안해요. 오늘은 우리 아버지의 생신인데 아버지께서 절 기다릴거예요!》 후지꼬는 또 핑계를 댔다. 한편 기다야마도 미스 김에게 데이트를 요청했다. 미스 김은 외빈에 대한 례절 때문에 응해왔지만 기다야마의 그 음탕한 눈길이 싫었다. 기다야마는 미스 김을 첨 보는 순간부터 참을수 없는 충동을 느꼈다. 후지꼬처럼 요염하진 못해도 섹시한 자태가 남자들을 취하게 할만큼 매력적이였다. 먼저번에 고스란히 놓아보낸것이 후회되였다. 오늘 꼭 료리해 먹으리라고 벼른 기다야마는 몇마디 말을 주고받기 바쁘게 미스 김을 와락 끌어안고 입술을 덮쳤다. 그런데 미스 김은 호락호락한 녀자가 아니였다.어느새 기다야마의 품에서 빠져 나오며 매섭게 쏘아붙였다. 《이러지 마세요. 전 아무렇게나 막 다뤄도 되는 기생년이 아니예요!》 《허허참. 내가 어찌 아가씰 그런 년으로 대하겠소. 아가씨가 나의 현지처로 돼주던지 정부로 돼주던지 마음대로 하오. 그럼 아빠트도 사주고 승용차도 선물하겠소. 그뿐인줄 아오. 일본류학도 시켜준다니깐. 헤헤헤.》 기다야마는 상해, 북경 등지로 다니면서 중국아가씨들을 구슬리던 무기를 사용했다. 그런데 미스 김은 그런 유혹에도 걸려들지 않는다. 《아가씨, 나 한번만 살려주오!》 기다야마는 참을수 없다는듯 강박적으로 미스 김의 옷을 벗기고 봉긋하고 몽글몽글한 젖가슴을 주물러댔다. 만지기도 좋은 가슴이였다. 후지꼬의 젖가슴은 너무도 커서 다루기에 벅차다는 감을 주는데 미스김의 젖가슴은 맞춤한것이 가지고 놀기에 좋았다. 《비켜나요!》 미스 김이 힘껏 저항하며 기다야마의 귀쌈을 찰싹 후려친다. 《쌍년》 일본같으면 당장에서 미스 김을 요정내겠는데 중국땅에서 기다야마는 참을 수밖에 없었다. 미스 김은 특별한 녀자였다 그녀가 기다야마를 거절한것은 민수에게 미안한 일이라고 생각해서가 아니였다. 그녀는 민수를 특별히 좋아했지만 민수를 위해 정조를 지키고싶은 생각같은건 없었다. 미스 김은 자기 마음에 드는 남자라면 아무때라도 몸을 맡길 준비가 되여있었다. 그녀가 기다야마를 거절한 리유는 간단했다. 기다야마가 싫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기가 싫은 남자라면 만금을 준대도 몸을 허락하고싶지 않았다. 반면에 자기가 마음에 드는 남자라면 알거지, 알건달이라도 서슴없이 안기고싶었다. 기다야마는 두번째도 미스 김을 정복하지 못하고 호텔의 자기방으로 돌아갔다. 때마침 후지꼬도 돌아와서 둘은 함께 민수를 함정에 빠뜨릴 방안을 모색했다. 요지음 민수는 후지꼬의 요염한 얼굴이 자꾸만 눈앞에 삼삼거리며 도무지 일에 정신을 집중시킬수가 없었다. 가슴에 불만 질러놓고 살짝 몸을 뺀 앙큼한 일본계집, 고년을 작살내야 하는건데… 《리경리, 무슨 생각을 하나요?》 그가 몸살날 때 꿈이런듯 후지꼬가 경리실로 찾아왔다. 그는 너무도 반가와 후지꼬를 의자에 권했다. 후지꼬는 의자에 엉덩이를 살짝 붙이며 생긋 웃었다. 《요지음 호텔경기는 어때요?》 《경기야 항상 호황이지요.》 민수는 웃으며 둘러대기는 했어도 속으로는 사뭇 뒤가 켕기였다. 《남은 관심해서 묻는데 숨기고있군요. 제가 알기엔 경기가 대단히 좋지 않은것같은데요. 이건 물론 리경리가 호텔 자금을 흥청망청 써버린 탓이겠지요.》 《아니, 이건…》 민수는 놀란 눈길로 후지꼬를 바라본다. 후지꼬는 한술 더 뜬다. 《그것도 엄청난 자금이던데요.》 《후지꼬양이 어떻게 그걸….》 《소문을 들었어요. 누군가 당신을 민호총경리께 적발한대요.》 《그게 정말입니까?》 민수는 가슴이 철렁했다. 이 일을 민호형님이 아는 날엔 곧 아버지의 귀에 들어갈것이고 아버지는 즉시 장부검사를 할것이다. 그러면 모든게 끝장이야. 그때 공교롭게도《따르릉》하고 민호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민호는 불같이 화를 내면서 호텔 자금을 람용한 그를 대성질타하는것이였다. 민수가 어쩔바를 몰라 쩔쩔 맬 때 곁에서 엿듣던 후지꼬가 송화기를 막고 나직이 속삭이였다. 《그건 누가 리경릴 모해한거라고 대답하세요. 믿지 못하겠으면 와서 장부검사를 하라고 하세요.》 《형님이 내 말을 믿을것 같습니까? 정말 와서 장부 검사를 하는 날엔…..》 《제게 좋은 방법이 있으니 시키는 대로 어서 하세요. 어서요!》 《아니…저…》 민수는 얼떨떨한김에 송화기에 대고 후지꼬가 시키는 대로 말했다. 그러나 전화기를 놓자 이내 후회되였다. 《이젠 어떻게 하지요? 후지꼬양….》 민수는 안절부절못하며 구원의 눈길로 후지꼬를 바라본다. 후지꼬는 선심이나 쓰듯 자기앞수표를 내민다. 《자금은 제가 선대해줄게요.》 《호의는 고맙습니다만 그걸 어떻게…》 민수는 어쩔바를 몰랐다. 이번 일이 들통나면 아버지는 무조건 날 철직시킬거야. 자가용도 빼앗고 그러면 난 알짜상거지가 돼. 그때면 사교계에서나 상업계에서나 내 지위는 일락천장이 될것이고 술집계집들마저 본체 만체 할것이니 맹랑하게 녀편네 궁둥이만 만지면서 살아야할거야. 그렇게 사는건 정말 멋이 없어. 죽어도 그렇게 살수 없어! 《아무때나 갚아도 되니 어서 받으세요.》 후지꼬가 재차 권하자 민수는 생각 끝에 바쁜 대목부터 열고 보자고 마음먹었다.그래서 보증서를 쓰고 후지꼬가 넘겨주는 자기앞수표를 받았다. 《먼저번에 미안했는데 오늘밤 10시에 저의 방으로 찾아오세요.》 후지꼬가 살짝 추파를 보내자 민수는 미칠듯한 기쁨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날밤 10시에 몸이 잔뜩 달아오른 민수는 슬금슬금 후지꼬의 침실로 기여들었다. 그런데 후지꼬는 옹송거리고 앉아 벌벌 떨고있고 그 앞에서 기다야마가 성난 눈길로 쏘아보고있는것이 아닌가. 《방금 아버지께서 경쳤어요.》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후지꼬가 민수한테 다가와서 소곤거렸다. 《제가 사사로이 리경리께 자금을 빌려줬다고 성난거예요.》 민수는 가슴이 섬뜩했다. 기다야마가 민수를 노려본다. 《젊은인 왜 철없는 내 딸을 꾀여서 내 돈을 후려냈나? 엉? 그 돈을 당장 돌려주게!》 《저…그건…》 민수는 어쩔바를 몰랐다. 후지꼬가 기다야마한테 매달리며 애걸했다. 《아버지, 그건 제가 주동적으로 꿔준거예요. 전 리경릴 사랑해요. 저일 도와주는 셈치고…》 《뭐?! 일본의 숱한 명문자제들을 제쳐놓고 이따위 촌녀석과…》 《아버지, 리경린 총명하고 능력있는 분이예요. 전 저일 일본에 데리고 가서 살겠어요.》 《너 환장했구나! 이 녀석이 진심인줄 아니? 네게 돈이 많고 출국시켜주겠다니깐…》 《아…아닙니다. 전 진심으로 후지꼬양을 사랑합니다!》 민수는 그들이 연극을 놀고있는것도 모르고 후지꼬의 진지한 사랑에 감동되여 목소리마저 떨렸다. 그제야 기다야마의 태도가 좀 누그러진다. 《자네가 진심이란걸 뭘로 보여주지?》 《저의 행동으로 보여주겠습니다. 전…》 《좋네! 우리를 위해 일 좀 해줄수 있나?》 《무슨 일이든지 분부만 내리십시요. 후지꼬양을 위한 일이라면 이 몸이 분신쇄골이 되더라도 견마지성을 다하겠습니다!》 《허허허, 좋아! 자넨 평화광선 설계도를 훔쳐 내오게.》 《우리 아버지가 발명한 평화광선을 그럽니까?》 민수는 등골이 서늘해났다. 《정확히 말하면 자네의 할아버지가 발명한거겠지?》 《우리 할아버진 미치광인데요.》 《으흐흐! 자네 할아버진 미친게 아니야. 미친체 가장한거지》 기다야마가 크게 웃었다. 할아버지가 미치지 않았다니?! 민수는 꿈을 꾸고있는것같앗다. 《내 추측하건대 자네 할아버지의 거실에 꼭 밀실이 있을거야. 자네의 임무는 그 밀실을 찾아내여 그안에 있을 평화광선 설계도를 훔쳐내는거네. 깜쪽같이 해내야하네.》 《제가 어떻게 그걸…》 민수가 머뭇거리자 후지꼬가 달콤한 말로 달랜다. 《빨리 대답하세요. 그건만 훔쳐오면 우린 함께 일본에 가서 살수 있어요.》 《으….》 깊숙한 함정에 빠져들어가는 감을 느끼며 민수는 신음했다. 리광인의 저택. 밖에 나갔던 리광인이 거실로 들어가자 사업을 토로하던 평화와 민호도 뒤따라 들어간다. 사방을 조심스레 둘러보던 리광인이 원격조종기의 버튼을 누르자 거실 한쪽 벽이 갈라지면서 밀실이 드러난다. 셋은 조용히 밀실로 사라지고 거실 벽이 다시 닫긴다. 민수는 옷장속에 숨어서 놀란 눈길로 이 모든것을 엿보고있다. 허지만 그는 밀실안에서 할아버지와 아버지, 형님이 뭘 하고있는지 알수 없었다. 말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밀실안은 사실상 리광인의 실험실이다. 방안에는 각양각색의 실험기계들과 도구들로 가득 차있다. 《아버지, 연구진척이 어떻습니까?》 평화가 조심스레 묻는다. 리광인은 사색 깊은 눈길로 아들과 손자를 바라본다. 이 세상에서 그들만이 리광인의 비밀을 알고있다. 리광인은 천천히 검은 함을 열어 보인다. 그 속엔 설계도와 시계판이 두겹으로 된 바늘이 없는 특수한 손목시계가 들어있다. 《이것이 제 3대 P․C평화광선 손목시계입니까?》 이야기는 들었으나 실물은 처음 보는 민호가 신기한듯 물었다. 리광인은 깊은 생각에 잠겨있고 평화가 대신 이야기한다. 《바로 제 3대야. 그런데 아직 시게바늘을 맞추지 못했다는구나.》 《제2대는 모자인데 왜서 제3대는 시게로 바꿨어요?》 《그건 모자에만 국한된 제약성에서 벗어나 자유자재로 평화광선을 발사할수 있게 하기 위해서지.》 《할아버지께서 우리 회사를 위해 발명하신 그 P․C평화광선모자와 제2대는 모두 모자인데 어째서 하나는 외계의 온도가 인체에 침입할수 없게 하고 다른 하나는 인간의 기억력을 지울수 있게 하는 서로 다른 작용을 합니까?》 《허허허, 그건 네 할아버지만이 알수 있는거지.》 평화가 낮은 소리로 웃자 이번에 민호는 할아버지를 마주보며 조심조심 묻는다. 《할아버지, 이제 시침, 분침, 초침을 맞추면 됩니까?》 《시침, 분침, 초침뿐만 아니라 일침, 월침, 년침까지 맞춰야 된다. 물론 직접 시계바늘을 맞추는건 아니고 컴퓨터를 리용하면 되긴 하지만 관건적인 문제가 아직…》 《이대로 사용하면 안됩니까?》 《되긴 되지만 그건 완전한 제3대가 아니지.》 리광인은 함속의 손목시계를 가리키며 설명했다. 《이걸 사용하자면 우선 암호문을 열어야 시계가 작동하지. 그 다음 여기 시계판에 세가지 단추가 있는데 빨간색 단추를 누르면 10보안에 있는 사람의 기억력을 지울수 있고 파란색 단추를 누르면 1000보안에 든 사람들의 기억력을 모두 지울수 있지. 그리고 빨간색과 파란색 단추를 각기 세번 누르면 다시 두개의 단추를 동시에 누르면 천리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기억력을 단번에 지울수 있는데 이는 20층이상되는 고층 건물이나 그만큼 높은 곳에서 발사할때만이 가능하지. 평화광선은 바늘구멍의 만분의 1되는 구멍까지 뚫고 들어갈수 있으나 사용하는 자의 뒤에 서면 안전할수 있지. 그건 평화광선이 부채살처럼 반원을 지으며 발사되기때문이지.》 《야, 대단해여 !그런데 세번째의 노란색 단추는요?》 《노란색 단추는 시계바늘이 없으니 아직 쓸수 없단다. 그건 시간과 결합해서 국부의 기억력을 지우는 작용을 하는건데 기실 그것이 가장 중요한거지.》 《왜서요?》 《너 생각해봐라. 인간의 기억력을 모두 지워버리면 그 사람은 갓 태여난 영아처럼 이 세상일을 아무것도 모르게 되지. 그러니 최대의 악인을 내놓고는 그 누구의 기억력도 함부로 지워버려서는 안되는거야. 하지만 한사람이 마음의 상처를 입고 괴로움에 모대길 때 그 부분의 기억력을 지워버린다면 그 사람은 고통속에서 헤여나올수 있지. 물론 더 중요한건 전쟁과 범죄를 막는거지. 전쟁을 꿈꾸는 자들과 죄를 저지르려는 자들의 그 근원이 되는 부분의 기억력을 지워버리면 이 세상은 영원히 평화로운 세상이 되는거지.》 《이름 그대로 진짜 평화광선의 위력이겠습니다요!》 《허지만 관건적인 노란 단추의 바늘을 아직…》 리광인은 한숨을 지었다. 민호는 그런 할아버지를 권고했다. 《할아버진 너무나 오랜 세월 미치광이 세계에 파묻혀서 갖은 고생을 다 하셨는데 이젠 좀 휴식하십시오. 그러면 문제가 절로 풀릴지도 모릅니다.》 《난 아직 휴식할때가 아니다. 잭슨박사는 과학의 최고경지는 미치는거라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정상인들을 연구하는 한편 일부러 정신병원에 드나들며 미치광이들을 연구한거다. 진짜 미치광이의 세계속에 들어가 이 세상을 관찰하면 새로운것, 특별한것을 보아낼수 있는거야. 그런데 시계바늘을 아직…》 근심에 쌓여 검은 함을 들여다보던 리광인은 아들과 손자에게 당부한다. 《이것이 만약 나쁜 놈들의 손에 들어가는 날엔 이 세상은 혼란에 빠질것이니 절대 비밀을 루설해서는 안된다.》 그런데 그 검은 함을 집안 도적 민수가 훔쳐갈줄을 리광인이 어찌 알았으랴? 민수는 며칠동안 기회를 엿보다가 리광인이 집에 없는 틈을 타서 밀실로 들어가 그 검은 함을 훔쳐냈던것이다. 민수가 훔쳐온 그 검은 함을 받아든 기다야마는 너무나 기뻐서 온종일 방안에 들어박혀 암호문을 연구했다. 한편 민수는 그날 밤, 10시에 후지꼬의 침실로 기여들었다. 후지꼬가 가만히 오라고 유혹했던것이다. 민수가 들어서자 방금 목욕을 끝냈는지 후지꼬는 몸에 타월만 걸치고있었다. 민수는 군침을 꿀꺽 삼켰다. 《오늘은 정말 주는겁니까?》 《호호호, 리경리께서 큰공을 세웠는데 요까짓 몸이 다 뭐겠어요? 어서 가지세요!》 《아, 이거 미치겠는데요.》 민수는 정신없이 달려들어 타월을 벗겼다. 그리고 경탄할만큼 아름다운 후지꼬의 라체를 감상할 겨를도 없이 그녀를 번쩍 안아 침대에 눕혔다. 다음 서두러 옷을 벗고 그녀의 몸우에 덮쳐 오르면서 격렬하게 밀어붙였다. 후지꼬도 기다렸다는듯 몸을 활짝 열어 민수를 받아들였다. 민수가 죽을 힘을 다해 짓눌러 대자 후지꼬는 민수의 엉뎅이를 꽉 움켜잡는다. 끝내 아름다운 일본녀인을 정복한다는 황홀감과 육체적 마찰의 쾌감에 넋을 잃은 민수는 극치의 절정을 향해 혼신의 힘을 쏟아 내고있었다. 《아!》 짧게 신음하는 후지꼬, 그녀의 손이 베개 밑을 더듬는다. 《아, 일본녀자가 좋아!》 탄성을 지르며 세차게 짓눌러대던 민수는 갑자기 앗!…비명을 지르더니 그대로 굳어져버린다. 후지꼬가 민수를 밀치면서 그의 잔등에서 칼을 뽑자 시뻘건 피가 시트를 물들인다….
9    중편소설 악마의 무덤 (3) 댓글:  조회:2870  추천:0  2013-11-10
중편소설 악마의 무덤 김희수 3. 피맺힌 원한   20세기 30년대 미국 뉴욕의 모 실험실에서 저명한 대뇌생리학연구전문가인 잭슨박사와 그의 수제자이며 유능한 조수인 리광인박사가 제1대 P․C평화광선실험에 성공한 뒤를 이어 세상을 놀래우는 제2대 P․C평화광선 실험을 진행하고있었다. 제1대 P․C평화광선모자를 사람에게 씌우면 그 사람은 체면술에 걸린듯 묻는 말에 실속대로 탄백하게 된다. 그렇다면 제2대 P․C평화광선모자는 어떤 신비한 위력을 가지고있는가? 이번 실험을 위해 잭슨과 리광인은 살인악마로 소문난 코미라는 흑인을 비밀리에 감옥에서 빼내왔다. 실험은 극비밀리에 진행되고있었기에 잭슨과 리광인 그리고 결혼한지 넉달밖에 안되는 리광인의 안해 오미자외엔 아무도 몰랐다. 안전을 고려하여 수갑과 족쇄를 채운채로 흑인 코미를 의자에 꽁꽁 묶어놓았다. 코미는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윽윽 발악하며 두눈을 사납게 부릅뜨고 뭐라고 줄욕을 퍼붓고있었다. 그런 코미에게 잭슨과 리광인은 제2대 P․C평화광선모자를 씌운후 원격조종기 버튼을 누르고 긴장한 눈길로 코미의 반응을 지켜보고있었다. 제2대 P․C평화광선이 대뇌를 자극하자 야수처럼 으르렁대던 코미는 인차 혼수상태에 빠졌다. 시간이 한초한초 흘러갔다. 1분도 안돼 의식을 회복한 코미는 멍한 눈길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당신의 이름이 뭔지 알만하오?》 잭슨이 모자를 벗기면서 이렇게 묻자 코미는 머리를 가로 저었다. 《누가 당신을 여기에 묶어놓았는지 알만하오?》 리광인이 이렇게 물어도 코미는 역시 도리머리를 했다. 잭슨이 다시 코미의 안해와 아들의 사진을 꺼내 보여도 코미는 알아보지 못하는것이였다. 코미는 완전히 기억력을 상실했던것이다 제2대 P․C평화광선은 코미의 기억을 지워버리는데 성공한것이다. 사자처럼 사납던 코미가 묶은것을 풀어주고 수갑과 족쇄를 벗겨줘도 온순한 양처럼 고분고분 서잇는것이였다. 사회에 해만 끼치던 악인이 순식간에 선량한 인간으로 되여버린것이다. 《성공이요!》 잭슨과 리광인은 희열에 못이겨 서로 얼싸 안았다. 이 실험을 위해 그들이 흘린 땀은 얼마였으며 지새운 밤은 또 얼마였던가! 기쁨에 겨워 환호하던 잭슨은 갑자기 몸을 비틀거렸다. 이번 실험을 위해 밤낮 정력을 물붓다보니 70의 로인은 그만 지쳤던것이다. 《선생님, 제가 뒤수습을 하겠으니 돌아가 쉬십시오!》 《그럼 수고하게!》 잭슨은 비틀거리며 실험실을 나왔다. 잭슨과 리광인의 침실은 모두 실험의 편리를 위하여 실험실 복도로 통하는 건너방에 있었다. 실험실에 나와 몇발자국 가다가 굽이를 돌아 백보쯤가면 리광인의 침실이고 그 다음 칸이 잭슨의 침실이다. 잭슨이 피로한 다리를 끌고 리광인의 침실문앞에 이르렀을 때 안에서 남녀가 주고받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이 이상하게도 일본말이였는데 잭슨은 문에 귀를 바싹대고 엿들었다. 《아….이러지 마세요! 그이가 올거에요!》 애원에 찬 음성은 분명 리광인의 안해 오미자의 목소리였다. 《이히히! 실험에 미친 그자가 언제 온다구 그래. 빨리 거치장스런 옷을 벗고 우리 통쾌하게 놀아보자!》 음탕하게 웃는 남자의 목소리도 귀에 익었다. 오미자를 가끔 찾아오던 오미자의 오빠 오철수였다. 잭슨은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들이 하는 수작을 봐선 가짜 오랍누이가 틀림없었다.그런데 그들이 왜 일본말을 할가? 《요시다로오빠, 전 그이와 결혼했으니 그의 사람이에요. 제발 이젠 이러지 마세요. 녜?》 《시께요꼬! 넌 내 첩이야! 조직에서 잭슨령감의 과학기술성과를 훔치기 위해 널 리광인에게 붙여줬을뿐이야. 내숭 떨지말구 빨리 옷을 벗으란 말이야!》 아, 그들은 원래 일본첩자였구나! 잭슨은 입귀가 푸들푸들 떨렸다. 《아….이러지 마세요. 전 그이한테 미안한 일을 할수 없어요! 제발…》 《꼼짝말구 고분고분 말들어! 넌 이미 리광인에게 미안한 짓을 했어. 넌 미니카메라로 제1대P․C 평화광선모자의 기술자료와 설계도를 찍어내지 않았니? 우리군은 그 모자덕에 숱한 항일분자를 잡아냈다. 이건 너의 공로야.》 《아니예요. 오빤 그 모잘 범인을 잡는데 쓴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래, 범인을 잡는데 썻지. 우리 대일본제국과 대항하는 놈들은 죄다 범인이지. 시께요꼬야, 넌 잭슨령감과 리광인이 인간의 기억력을 지울수 있는 제2대 P․C평화광선모자를 곧 만들어낼거라고 했지? 넌 우리 대일본제국을 위해 그걸 꼭 훔쳐내야 한다! 알았어?》 《아…싫어요. 더는 그런 일을 할수 없어요!》 《이건 조직의 명령이야. 명령을 어기면 넌 끝장이야! 이제 그 모자를 훔쳐내는 날엔 우리 대일본제국과 맞서는 자들의 기억력을 몽땅 지워버릴테야! 그러면 총 한방 쏘지 않고 그들을 노예로 만들수 있지! 으하하하!》 아! 이자들이 내 광학기술성과를 절도하여 전쟁에 사용했단 말인가! 잭슨은 온몸에 소름이 끼치며 전룰을 느꼇다. 그는 인류의 평화를 위해 평생 과학연구에 심혈을 몰부었던것이다. 그래서 연구해낸 새로운 광선이름을 평화라고 달았던것이다. 제1대 P․C평화광선은 범죄자들을 잡아내기 위해, 제2대 P․C평화광선은 이 세상 전쟁미치광이들과 악인들을 새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연구해냈던것이다. 그런데 자신의 연구성과가 전쟁에 리용되다니? 주먹이 경련하듯 부들부들 떨렸다. 안된다, 어서 리광인에게 이 정황을 알려주고 즉시 모든 연구자료와 설계도를 감추어야 한다! 황망히 뒤걸음질로 돌아서던 잭슨은 그만 빈 통졸임통이 가득 찬 상자를 발길로 걷어찼다. 상자가 탁 넘어갔고 잇달아 빈 통졸임통들이 콩크리트바닥에 떼구루루 굴러가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누구얏?!》 안에서 요시다로의 놀란 고함소리가 울리지 잭슨은 황급히 달음박질쳤다. 요시다로가 달려나와 총을 빼들었을 때는 잭슨이 복도 굽인돌이에 이르렀을 때였다. 《땅! 땅!》 야무진 총소리가 울렸다. 뒤잔등에 총을 맞는 잭슨은 통증을 참으며 결사적으로 달음질쳤다. 때마침 총소리를 듣고 달려나온 리광인이 잭슨을 부축하여 실험실로 들어갔다. 실험실에 홀로 앉아있던 흑인 코미가 멍한 눈길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빨리…빨리…비밀갱도…》 리광인이 문을 걸기 바쁘게 잭슨이 숨가쁜 소리로 웨쳤다. 리광인이 다급히 비밀 암호를 눌러 갱도문을 열었다. 《빨리! 코미…》 리광인은 코미가 먼저 내려가 잭슨을 받아안게 했다. 그때 요시다로가 문을 탕탕 걷어차는 소리가 들렸다. 《빨리 …자료…설계도…》 잭슨이 밑에서 황급히 웨치자 리광인은 황망히 중요한 자료와 설계도를 걷어가지구 갱도속으로 들어갔다. 갱도문을 닫았다. 《선생님, 웬일이십니까?》 너무나도 급작스레 당한 일이라 영문을 물을 새도 없이 기계적으로 행동하던 리광인이 코미의 무릎에 기대여 피흘리며 신음하는 잭슨을 부여잡고 눈물이 글썽해서 물었다. 《누가 선생님을 쏘았습니까?》 《일본첩자…》 《누가 일본첩자란 말입니까》 《자네 안해 오미자와 그…오철수…》 《네?! 그게 정말입니까?》 리광인은 몽둥이에 머리를 얻어맞은듯 뗑해났다. 《그들은…가짜 오누이고…가짜 조선인이야. 진짜이름은 시께요꼬 …요시다로…그들은 원래 부부간이였어….》 《아!》 리광인은 신음했다. 잭슨은 힘겹게 말을 이어갔다. 《그들은…제1대 평화광선을 훔치고…또 제2대 ….훔치려고…》 《선생님, 제가 선생님을 해쳤습니다! 제가 눈이 멀어 일본첩자를 안해로 맞아 그만…》 리광인은 너무도 통분하여 가슴을 치며 울먹거렸다. 잭슨이 괴롭게 신음했다. 《광인이 …내 부탁이 있네.》 《선생님, 부탁하십시오.》 《평화광선을…전쟁에 써서는….안되네. 위급할 때…없애버리게.》 《선생님, 명심하겠습니다.》 《자넨 스승인 나를 초과할 …과학천재야. 제2대 평화광선은…약점이 많네…자네는 꼭 제3대를…》 잭슨의 목소리는 점점 낮아졌다. 그는 최후의 힘을 다 내여 마지막 부탁을 했다. 《과학의 최고경지는…미치는거네. 온전한 정신으로는…과학의 최고봉에…오를수 없네. 으으…난…인젠…틀렸네.》 잭슨은 맥없이 사지를 뻗어버렸다. 가석하게도 세계과학계의 위대한 거성은 이렇게 꺼져버렸다. 리광인은 너무도 애통하여 가슴을 치며 통곡했다.   망망한 바다우에 배 한척이 기우뚱거리며 떠내려가고 있었다. 리광인과 흑인 코미가 갑판우에 우두커니 서서 망망대해를 노려본다. 검푸른 파도가 철썩 쏴아-갑판을 덮친다. 《형님, 만주가 먼가유?》 코미가 묵묵히 바다만 바라보고 있는 리광인을 건드렸다. 그들은 의형제를 맺었던것이다. 《멀고도 멀지. 이 태평양을 날아 넘으면 크나큰 대륙이 있는데 거기에 만주가 있지. 만주엔 또 우리 어머님이 계시지!》 《어머니…어머닌 좋은 분이지유?》 《그래 좋은분이시지.아, 보고싶은 어머니! 어머닌 지금 무사히 계시는지…》 어머니품을 떠난지 어언 2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학문을 닦고 과학연구를 하느라고 거의 잊다싶이 했던 어머니였다. 이제는 연구이고 실험이고 다 제쳐놓고 일편단심 어머님께 효성해 드리리라. 《형님…》 코미가 또 물었다. 《만주엔 사람을 죽이는 나쁜놈이 없는가유? 난 잭슨박사를 죽인 그런 나쁜 놈이 무서워유.》 《사람을 죽이는 나쁜 놈들은 이 세상 어디에나 다 있지!》 과거 사람의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죽여왔던 코미가 지금은 리해할수 없다는듯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다가 천진하게 물었다 《나쁜 놈들이 사람을 죽이지 못하게 할순 없을가유?》 《있지. 잭슨박사가 그걸 연구하다가 나쁜놈들에게 죽은거야. 그 트렁크안의 물건이 바로 사람을 죽이지 못하게 하는 그런 거야.》 리광인이 코미의 손에 들린 트렁크를 가리키며 말하자 코미는 신기한듯 트렁크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우리 이제부터 나쁜 놈들이 사람을 죽이지 못하게 하자유!》 바로 그때였다. 《그 트렁크를 인줘!》 요시다로와 시께요꼬가 어느새 그들앞에 서있었는데 요시다로의 손에서 권총이 번쩍거렸다. 코미가 공포에 질려 뒤걸음질쳤다. 《다…..당신은 누구요?》 《저놈이 바로 잭슨 박사를 살해한 놈이야!》 리광인이 증오로 불타는 눈길로 요시다로를 노려보며 웨쳤다. 《아, 나쁜놈…》 코미가 몸을 떨었다. 《그 트렁크를 이리 줘! 주지 않으면 죽여버릴테다!》 요시다로가 총으로 위협했다. 《나쁜 놈, 또 사람을 죽이려고 안돼!》 코미가 트렁크를 꽉 틀어쥐였다. 《바가야로! 까불지 말고 빨리 줘!》 요시다로가 악에 받쳐 고래고래 소리질렀다. 《내가 셋을 셀 때까지 안주면 총을 쏠테다! 하나…둘…》 하지만 코미는 태연하게 맞받아 소리쳤다. 《이건 사람을 죽이지 못하게 방지하는 기계야! 내가 이 트렁크를 들고있으면 넌 나를 죽이지…으악!》 순간 땅! 하는 총소리와 함께 코미가 비명을 지르며 리광인의 품에 쓰러졌다. 요시다로의 총구멍이 불을 토한것이였다. 《코미! 코미!》 리광인이 처철한 목소리로 코미를 불렀다. 《형님…저 놈이…사람을 죽이지…못하게…》 말을 채 마치지 못하고 코미는 영영 눈을 감았다. 《나쁜 놈!》 코미의 손에서 트렁크를 빼내며 리광인은 분노에 찬 눈길로 요시다로를 쏘아보았다. 《그 트렁크를 이리줘! 주지 않으면 너도 같은 끝장이야!》 요시다로가 음험하게 웃으며 한발작한발작 다가섰다. 《옛다! 콱 가져라!》 리광인은 갑자기 트렁크를 번쩍 들어 바다에 처넣었다. 그리고는 《으하하!》하고 크게 웃어댔다. 《이 자식이…죽여버릴테다!》 화가 치민 요시다로는 리광인의 가슴에 총을 겨누었다. 《안돼요!》 어느새 리광인의 앞으로 달려온 시께요꼬가 총구를 막아섰다. 요시다로는 분하여 씩씩거리며 총을 거두었다. 잭슨을 죽인것은 크나큰 실책이였다. 상급의 채근이 무서워 요시다로는 잭슨이 심장병으로 죽었다고 거짓 보고를 올렸던것이다. 리광인은 잭슨에 못지 않은 과학천재이다. 이제 그마저 죽여버린다며 상급에서 어떤 책벌이 내릴지 상상할수조차 없다. 연구자료따위가 없어져도 리광인이 살아있으면 실험은 계속 할수 있는것이다. 문제는 어떻게 그를 얼리고 닥치고 구슬리겠는가 하는것이다. 《리광인, 오지마의 낯을 봐서 너를 살려준다!》 요시다로는 시께요꼬를 세객으로 내세울 속셈으로 이렇게 뇌까렸다   《어머님, 그동안 무고하셨습니까?》 리광인이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로모께 절을 올린다. 마당에 나와있던 로모는 넋잃은 사람처럼 멍하니 아들을 바라보기만 한다. 《불초자식 광인이 이제야 어머님 뵈러 왔습니다.》 몸을 일으켜 로모의 쪼글쪼글한 얼굴을 바라보는 리광인의 눈에서 눈물이 비오듯 흘러내린다. 그제야 로모는 아들을 와락 얼싸안으며 목메여 락루한다. 《광인아! 네가…정말 왔느냐?》 《제가 왔습니다. 어머님!》 《이게 꿈은 아니겠지?》 《꿈이 아닙니다. 어머님!》 한동안 회포의 정을 풀고 난 모자는 집으로 들어간다. 시께요꼬가 몰래 모자간의 눈물겨운 상봉을 지켜본다. 요시다로와 시께요꼬도 리광인의 뒤를 따라 만주로 왔던것이다. 이튿날 시께요꼬가 요시다로의 부추김을 받고 리광인을 찾아갔다. 부추김을 받았다고는 하나 그녀자신이 리광인의 품에 다시 안기고싶은 마음이 앞섰던것이다. 그녀는 진심으로 리광인을 사랑하고있었다. 더구나 그녀의 배속에선 리광인과의 사랑의 결정체인 새 생명이 꼼틀꼼틀 자라고있었던것이다. 《여보세요. 전…》 《넌 왜 따라 왔느냐? 냉큼 꺼져라!》 시께요꼬를 쏘아보는 리광인의 눈에서 증오의 불길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시께요꼬는 그 눈길에 질겁하면서도 물러설 념이 없다. 《전 당신과 함께 어머님을 모시면서 살고싶어요!》 《시께요꼬! 허튼 수작 하지마!》 《전 시께요꼬가 아니라 오미자예요. 당신의 안해 오미자예요!》 《뭐? 내 안해라고? 으하하하! 요시다로 그 깨똥같은 놈의 안해는 아니구?》 《아니예요. 요시다로놈은 저의 양오빠인데 그놈이 절 억지로 범했을뿐이예요. 전 진심으로 당신을 사랑해요!》 《듣기 싫다. 썩 물러가!》 리광인은 다짜고짜로 시께요꼬를 대문밖에 밀어냈다. 그러자 시께요꼬가 무릎을 꿇고 애원했다. 《전 당신의 아기를 뱄어요. 제발 절…》 《뭐야?》 일시 놀라서 멍해졌던 리광인은 급기야 폭소를 터뜨린다. 《으하하! 이 능청스런 년, 요시다로의 씨를 배고도 내 아기라고 빌어먹을 년!》 《아니예요. 전 당신과 결혼해서부터 요시다로에게 한번도 몸을 주지 않았어요!》 《귀신이나 믿겠지. 잭슨박사님이 살해되던 날도 넌 그놈과 한 이불속에 들지 않았니?》 《그놈이 억지로 요구했지만 전 끝까지 거절했어요》 《이년! 세살짜리 애나 곧이 들을 말로 날 감쪽같이 속여넘기려구? 어림도 없다!》 《제 말은 모두 사실이예요 어떻게 말해도 제 결백은 증명할 방법이 없군요. 허지만 애만은 진짜 당신의 씨인줄 아셔야해요. 요시다로는 생식불능이니깐요. 그놈은 처첩이 여럿이나 되나 모두 애가 없어요》 《개나발 불지 말고 냉큼 물러가라!》 《정말이예요. 이제 애가 태여나면 보세요. 보증코 당신을 똑 떼 닮았을거예요!》 《개수작하지마. 이 일본 색정간첩 년아! 나한테서 또 뭘 훔쳐내려구? 요시다로놈이 널 시켰지?》 《전 일본인이 아니예요. 조신인 오미자예요. 당신을 사랑하는 오미자예요. 절 당신곁에 있게 해주세요!》 《닥쳐!》 시께요꼬가 아무리 애걸복걸하며 매달려도 리광인은 막무가내 듣지 않고 쫓아낸다. 요시다로는 날마다 시께요꼬를 보내 리광인을 구슬리려 했다. 련며칠 시께요꼬가 달라붙었으나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닷새째 되는 날 요시다로는 끝내 검은 마수를 뻗쳐왔다. 리광인의 로모를 랍치했던것이다. 《리광인! 너는 우리 대일본제국을 위해 다시 제2대 평화광선 실험을 해야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너의 어미를 강에 처넣어 죽일테다!》 요시다로가 로모를 다리까지 끌고 가서 살기등등하여 을러멨다. 《이놈아, 우리 어머님께 손대지 말라!》 뒤따라온 리광인이 분노에 치를 떨며 웨쳐댔다. 《으흐흐. 네가 우리 말만 들으면 네 어미를 털끝하나 다치지 않을거다!》 요시다로가 음험하게 웃으며 구슬려댔다. 리광인이 어찌할바를 몰라 놈에게 잡혀 괴로움을 받고있는 로모를 애처롭게 바라보았다. 《어머니!》 《광인아!》 《으흐흐. 로친! 어서 아들더러 우리말을 들으라고 해. 그럼 어미아들이 다 살수 있어!》 요시다로가 총구멍을 로모의 옆구리에 들이대고 윽박질렀다. 로모는 증오에 불타는 눈길로 요시다로를 쏘아보며 아들에게 당부했다. 《광인아, 절대 왜놈들의 말을 들어선 안된다!》 《바가야로! 늙다리같은게 죽고싶어!》 대역무도한 요시다로는 화가 나서 로모를 발길로 걷어찼다. 로약한 로모는 나무토막 넘어지듯 맥없이 쓰러졌다. 《앗! 어머니…》 분노한 리광인은《이 짐승같은 놈아, 내 너하고 결판을 낼테다!》하고 벽력같이 고함치며 요시다로에게 달려들어 주먹을 안겼다. 화가 난 놈이 막 리광인에게 발길을 날리려는 때였다. 《이놈아, 내 아들을 건드리지마.》 로모의 추상같은 호령이였다. 로모는 자기가 살아있는 한 놈이 자기를 인질로 끝없이 아들을 괴롭힐것이며 아들은 모자간의 정때문에 놈의 간계에 넘어갈수도 있으리란걸 잘 알고있었다. 그래서 이 시각 비장한 결심을 내린다. 《광인아, 넌 꿋꿋이 살아야 한다.!》 말을 마치기 바쁘게 로모는 순식간에 몸을 날려 다리아래로 뛰여내렸다! 검푸른 강물이 삽시간에 로모를 삼켜버렸다. 《어머니!》 리광인이 가슴을 쥐여 뜯으며 피타게 웨친다. 그러던 리광인이 정신없이 다리를 내려 강뚝을 따라 뛰여가며 비통하게 부르짖는다. 《어--머--니--!》 리광인은 강물에 풍덩 뛰여든다. 허지만 헤엄에 능하지 못한 그는 얼마 헤여가지 못하고 허우적거린다. 뒤따라 온 시께요꼬가 리광인을 건져낸다. 시께요꼬는 수영능수였다. 허지만 리광인이 또다시 뛰여들고 시께요꼬는 구해내고…그렇게 거듭 몇번이던가. 리광인도 지치고 시께요꼬도 지치고…그러나 리광인은 련사흘이나 계속 물에 뛰여든다. 사흘째 되는 날 누군가 로모의 시체를 건져냈다. 고기잡이군에 의해 발견된것이다. 《어머니!》 리광인은 가슴을 치며 통곡했다. 《어머니!》 로모를 묻었으나 리광인은 무덤곁을 떠나려하지 않았다. 시께요꼬가 달랬으나 리광인 막무가내였다. 밤낮 사흘동안 무덤곁을 지켰던것이다. 《여보세요.》 사흘째되던 날 음식을 갖고 온 시께요꼬가 안타깝게 부르며 달래려 할 때였다. 《으하하하!》 갑자기 리광인이 크게 웃었다. 깜짝 놀란 시께요꼬가 뒤주춤했다. 시께요꼬를 바라보는 리광인의 눈이 이상했다. 《히히, 좋아!》 리광인이 소리내여 웃으며 마을 쪽으로 달려갔다. 시께요꼬도 따라갔고 숨어서 살펴보던 요시다로도 뒤따랐다. 《히히, 좋아!》 리광인이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괴상하게 웃어댔다. 광인(光仁)은 광인(狂人)이 되였던것이다. 《저 자식이 미쳤잖아! 왜 저래?》 요시다로가 의아한 눈길로 리광인의 거동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시께요꼬는 리광인이 미쳤다고 믿지 않았으나 요시다로가 단념하도록 하기 위해 그럴듯하게 꾸며댔다. 《왜 미치지 않겠어요. 잭슨박사의 죽음, 안해의 배반, 코미의 죽음, 어머니의 원통한 최후…저이가 받은 타격은 너무도 컸어요. 그 엄청한 타격을 받아내지 못해 저이는 정신이 잘못된거예요.》 《저 자식이 정말 미쳤을가?》 요시다로는 반신반의했다. 그는 시께요꼬를 천방백계로 리광인에게 접근시켜 미친 진가를 알아내게 했다. 련며칠 관찰해도 가짜라는걸 알아볼수 없었다. 요시다로는 시께요꼬더러 발가벗고 리광인을 유혹하게 하고 자기는 몰래 숨어서 엿보았다. 시께요꼬는 너울거리며 춤을 추는 젖통을 드러내놓고 리광인의 앞에 다가섰다. 《히히…히히… 좋아!》 리광인은 괴상야릇하게 웃으며 포도알같은 젖꼭지를 손으로 흔들어보더니 성냥불로 유두에 불을 붙이려고 했다. 《아…앗!》 시께요꼬는 황급히 물러나 주섬주섬 옷을 주어 입었다. 《저인 정말로 미친거예요!》 시께요꼬가 그렇게 말했지만 요시다로는 단념하지 않았다. 시간이 오래되면 꼬리가 잡힐거라고 믿었다. 시께요꼬의 배는 점점 커져갔다. 저 아이가 태여나면 리광인의 정체를 알아낼수 있고 또 인질로 삼을수도 있을걸. 시께요꼬는 해산했는데 남자애를 낳았다. 아기는 신통히도 리광인을 빼여닮았다. 《여보세요. 이 앤 당신의 아들이예요. 당신을 닮은걸 봐요.》 시께요꼬가 날마다 리광인에게 애를 보이며 그렇게 말했으나 광인은 거들떠도 보지 않고 괴상하게 웃을뿐이였다. 《이 애 이름을 평화라고 짓는게 어때요? 당신의 연구주제가 평화이고 희망도 평화가 아니던가요?…평화야, 아빠하고 안아 달랄가?》 시께요꼬가 평화를 안겨주자 리광인은 아이를 받아안고 괴상하게 웃다가 쓰레기통에 던져버리는것이였다. 《저 자식이 정말로 미쳤단 말인가?》 요시다로는 믿지 않을수 없었다. 그의 회보를 들은 상급에선 시꺼요꼬만 남겨두어 광인을 관찰하게 하고 요시다로를 본국으로 소환했다. 요시다로가 떠나자 시께요꼬는 리광인과 함께 거주하며 그를 보살폈다. 《여보세요. 요시다로놈이 가버렸으니 이젠 정신 차리고 깨나세요. 보세요, 평화가 얼마나 귀여워요? 우리 아기가 웃어요. 아빠를 보고 웃어요.》 시께요꼬가 진정을 담아 그렇게 말했으나 리광인의 미친 증세는 점점 더 심해가는것 같았다. 리광인은 늘 똥오줌을 바지에 싸서 아무렇게나 팽개쳤다. 시께요꼬는 한마디 짜증도 없이 아이와 어른의 똥빨래를 빨아댔다. 산후 몸조리를 제대로 못한 시께요꼬는 정신적 육체적 시달림으로 몸이 점점 쇠약해졌다. 평화는 무럭무럭 자라서 리광인을 아버지라 불렀지만 그 아버지는 여전히 미친 웃음을 웃었다. 시께요꼬는 끝내 깊은 병이 들었다. 어느날 똥빨래를 씻던 시께요꼬는 맥없이 그자리에 쓰러졌다. 《아버지, 어머니, 일본이 투항했대요!》 그때 밖에 나갔던 평화가 쏜살같이 뛰여들어오며 환희에 차서 소리쳤다. 아이가 전하는 희소식에 리광인이 방에서 뛰쳐나왔고 시께요꼬도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들었어요? 일본이 망했대요!》 힘없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고는 시께요꼬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썩 후에야 리광인은 시께요꼬, 아니, 오미자가 남긴 유서를 발견했다. 애아버지: 전 애아버지가 미치지 않았다는걸 알고있어요. 저의 앞날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이 글을 남겨둬요. 전 애아버지앞에 영원히 용서받을수 없는 죄인이라는것을 알고있요. 전 요시다로의 핍박으로 애아버지의 연구성과를 훔쳐냈으니깐요. 전 조선사람 오미자예요. 제가 아홉살나던 때에 요시다로의 어머니가 부모를 잃은 저를 키워줬어요. 그들은 저에게 일본이름을 지어주었고 일본글을 가르쳤어요. 제가 나이 들자 이미 장가들었으나 아이가 없는 요시다로는 억지로 저를 첩으로 삶았어요. 일본첩자였던 요시다로는 제가 조선사람인걸 리용해서 애아버지한테 접근하게 했어요. 허지만 저는 애아버지와 결혼하는 날부터 지금껏 애아버지를 진심으로 사랑했어요! 애아버지, 평화를 잘 키워주세요! 오미자 절필 오미자의 유서를 읽은 리광인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린다. 그러나 그것은 잠간이였다. 리광인은 주먹으로 눈물을 훔친다. 그는 계속 미쳐야했던것이다.  
8    중편소설 악마의 무덤 (2) 댓글:  조회:2976  추천:0  2013-11-10
중편소설 악마의 무덤 김희수 2. 평화가족   《아버님의 탄신 102돐을 축하합니다!》 가족만이 다란히 모여앉은 생일잔치에서 평화실업유한회사 리사장 평화와 그의 부인이 리광인로인님께 공손히 절을 올린다. 장장 한세기를 넘어 살아온 범상하지 않는 미치광이 리광인로인은 생일상에 마주앉아 자손들을 바라보며《히히, 좋아》하고 중얼거리며 밝은 미소를 짓는다. 축복받은 이 순간 정신이 맑아졌는지 몸가짐이 여느때없이 안존하다. 《할아버지께서 이제 한세기를 더 앉으시길 빕니다!》 이번엔 장손 민호와 맏손자며느리가 절을 올린다. 리광인로인은《히히, 좋아》하고 또 한번 밝은 미소를 짓는다. 마지막으로 둘째손자 민수가 참석하지 않았기에 둘째손자며느리가 증손들과 함께 절을 올린다. 《히히. 좋아》 금시 밝은 미소를 짓던 리광인로인은 가라앉았던 광기가 또 머리를 쳐드는지 생일케이크를 손으로 콱콱 찔러서 입에다 쑥쑥 집어넣는다. 《히히, 로할아버지 우쁘다. 애기같다.》 막내 증손자가 손벽을 치며 종알거린다. 《히히, 좋아》 리광인로인이 얼굴을 쓱쓱 문지른다. 하얀 단백이 얼룩얼룩 칠을 하여 얼굴은 범벅이다.평화가 손수건을 꺼내여 로인님의 얼굴을 닦아주며 손군에게 말한다. 《로할아버지께서 기뻐서 저러신다. 너희들도 먹고싶은걸 먹어라!》 이윽고 생일상을 물리자 평화와 민호는 로인님을 방으로 모시고 들어갔다가 약 10분후에 다시나온다. 《민수녀석은 말이 아니야. 할아버지 생신에 얼굴도 내밀지 않구!》 평화가 화가 나서 둘째아들을 욕하자 평화댁이 아들의 편을 든다. 《그애가 사업이 바빠서 잊었겠지유.》 《사업이 바쁘면 나보다 더 바쁘단 말이요?》 《그앤 젊은이가 아니세유? 젊은이들의 일이 따로 있지유.》 《민호는 젊은이가 아니우? 민호는 일이 없고 그애만 일이 있소? 그리고 아무리 중요한 일이 있대두 그렇지. 할아버지 생신인데 만사를 제쳐놓구 와야지 않겠소?》 《아버님은 멀쩡한 분도 아니신데 뭘 그러세유.》 《그럴수록 할아버지를 더욱 존경해야지. 할아버지가 없으면 그애가 있을수 있소? 사람은 근본을 몰라선 안되오. 그리구 당신두 말이요. 그앨 너무 어루만져놨기에 그애가 점점 잘못 번진단 말이우.》 그때 민수의 아들놈이 종알거렸다. 《아버진 증조할아버지를 정신병자라 했어요. 정신병자가 빨리 죽지 않고 무슨 생일을 쇠는가고 했어요.》 《후레자식!》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평화는 민수녀석을 단단히 혼내주리라고 별렸다. 얼마후 평화와 민호는 객실로 들어가서 사업을 담론했다. 《기다야마가 아버지를 만나겠다고 합디다.》 《난 회피하겠으니 네가 그들을 접대하거라. 그들이 그 모자의 설계와 우리 가족의 내막을 물으면 적당히 둘러대거라.》 기다야마와 후지꼬는 각기 평화호텔 20층 1호특별실과 2호특별실에 짐을 풀었다. 길에서 무더위에 시달린 후지꼬는 자기방에 짐을 풀기 바쁘게 민호가 주던 모자를 쓰고 빨간색 P라고 쓴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기적이 나타났다. 삽시에 온몸이 시원하고 거뿐해나며 마음까지 상쾌했다. 후지꼬는 너무도 신기하여 모자밑에 손을 대보았으나 바람기라곤 없었다. 이상한데…찬기운이 어디서 올가? 모자를 벗으니 또다시 더워났다. 모자안에 손을 넣어보았으나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다시 모자를 쓰니 랭수를 들이켠듯 온몸이 시원해났다. 후지꼬는 가슴의 흥분을 억제할수 없어 기다야마의 방으로 뛰쳐들어가며 소리질렀다. 《아버지, 모자를 써봤나요?》 《오냐. 정말 신비하구나!》 기다야마도 모자를 썼다 벗었다하며 놀란 눈길로 살펴보는 중이였다. 《제 눈으로 보지 않앗다면 믿지 않을번했어. 령감한테 보고해야지.》 기다야마는 국제전화로 요시다로에게 정황을 보고했다. 요시다로는 모자를 무역한다는 구실로 눌러앉아있으면서 빠른 시일내에 모자의 설계자와 평화가족의 내막을 알아내라고 지시했다. 기다야마는 후지꼬에게도 요시다로의 지시를 전달했다. 《지금 곧 손을 쓸가요? 평화회사 종업원들을 매수한다던지…》 《래일 천천히 해도 돼!》 기다야마가 서두르는 후찌고를 말렸다. 《그럼 전 제방으로 돌아가 휴식해야겠어요.》 《돌아갈 필요가 뭐야. 여기서 휴식해도 마찬가진데. 으흐흐.》 기다야마가 갑자기 음탕하게 웃으며 후지꼬의 젖가슴을 노려본다. 후지꼬가 짐짓 부끄러운듯 얼굴을 붉힌다. 《아이참 아버지두…》 《우리둘만 있을땐 아버지라고 부르지 말랬잖아.》 《아이참, 서방님두…》 《요 귀염둥이, 어서 이리와!》 기다야마가 두팔을 벌리자 후찌고는 안기는체 하다가 홱 돌아선다. 《제가 옷을 갈아입고 오겠어요. 그새 목욕을 하며 기다리세요.》 《빨리 갔다와!》 욕정에 떨리는 기다야마의 다급한 목소리를 귀등으로 들으며 후지꼬는 자기방으로 돌아왔다. 후지꼬는 기다야마를 증오하면서도 무서워했다. 그녀는 천둥이 울고 소낙비가 퍼붓던 그날밤을 잊을수 없었다. 그녀가 첫달거리가 오던 열두살나던 해의 어느날 밤이였다. 그녀는 천둥소리에 놀라 잠에서 깨여났다. 동시에 육중한 사내가 자기의 몸을 타고있는것을 보고 오싹 몸을 떨었다. 《흐흐흐. 무서워마. 요 귀염둥이야!》 징그럽게 웃으며 몸을 눌러대고있는것은 양아버지 기다야마였다. 후지꼬는 고아인 자기를 여덟살 때부터 키워준 양아버지가 이런 마귀일줄은 몰랐다. 그녀는 무시한 공포에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으흐흐, 무서워 마. 내가 오늘 널 진정한 녀자로 만들어 주는거야.》 기다야마는 나어린 숫처녀를 사정없이 짓밟아댔다. 《아!》 후지꼬가 무서워 비명을 질러댔고 그와 때를 같이 하여 쏴쏴 소낙비가 억수로 퍼부었다… 목욕실에 들어간 후지꼬는 그때의 치욕을 씻으려는듯이 쉴새없이 자기의 알몸에 물을 끼얹었다. 후지꼬의 처녀성을 허물어버린후에도 기다야마는 사흘이 멀다하게 후지꼬의 방으로 기여들었다. 후지꼬는 두렵던데로부터 점차 기다야마가 찾아오는것이 싫지 않았고 때론 기다야마가 기다려지기도 했다. 시간이 꽤 흐른후에는 주동적으로 기다야마를 찾아가기도 했다. 후지꼬가 열여섯살나던 해 기다야마는 후지꼬를 색정상업간첩으로 만들었다. 여러남자들과 관계를 하면서부터 후지꼬는 점점 늙어가는 기다야마가 싫어졌다. 목욕을 끝낸 후지꼬는 옷을 갈아입고 화장을 한 다음 문을 나섰다. 그때 후지꼬는 복도를 걸어오는 한 젊은이를 보았다. 그 젊은이의 탐욕스런 눈길에서 후지꼬는 그 젊은이가 자기한테 홀딱 반했다는것을 알았다. 하지만 아랑곳없이 기다야마가 든 1호특별실의 초인종을 눌렀다. 후지꼬는 싫은대로 기다야마의 품에 안겼다. 홀딱벗고 기다리던 기다야마는 후지꼬의 옷을 벗기기 바쁘게 후지꼬의 몸속을 돌진해 들어간다. 후지꼬는 자기의 몸속으로 미끌어져 들어오는것이 공항에서 만났던 미남자 민호라고 상상해본다. 민호와 같은 미남자에게 숫처녀를 맡기지 못하는것이 한스럽다. 원통하게 짓밟힌 순결을 생각할때면 기다야마를 죽여버리고싶도록 증오가 불탄다. 이튿날 평화회사 총경리 리민호는 리사장 평화를 대표하여 정식으로 호시회사 기다야마 총경리를 회견했다. 회견시 어여쁜 후지꼬아가씨도 자리를 같이했다. 후지꼬는 민호의 준수한 모습을 다시 보면서 형제간이 어쩌면 저리도 다를가고 생각했다. 어제 후지꼬가 저녁식사를 마치고 호텔 일군을 매수하려고 살피고있는데 웬 젊은이가 다가오며 서투른 일본말로 인사하는것이였다. 《아가씨가 호시회사에서 오신 후지꼬양입니까?》 어디서 본것같은 얼굴이여서 생각을 더듬으니 20층복도에서 자기를 탐욕스런 눈길로 바라보던 그 젊은이가 아닌가. 후지꼬는 달갑지 않았으나 례의상 외면할수 없어 인사를 받았다 《네, 그런데 선생님은요?》 《전 이 호텔의 경리 리민수입니다. 아가씨께서 불편한 점이나 어려운 일이 있으면 서슴없이 제기하십시요. 우린 견마지성을 다해 복무해드리겠습니다.》 《감사해요!》 후지꼬는 허리를 굽석거렸다. 그리고 돌아서려는데 민수가 또 불렀다. 《후지꼬 아가씨!》 《무슨일이세요?》 후지꼬가 머리를 돌리자 민수의 눈에 탐욕의 빛이 번뜩이고있었다. 《저….후지꼬아가씨는 정말 이쁩니다!》 《고마워요!》 후지꼬는 다시 허리를 굽석거려 인사를 하고는 돌아섰다. 후에 호텔일군과 물어서야 민수가 민호의 동생이며 평화회사 리사장어른의 둘째 귀공자라는것을 알았다. 후지꼬는 민수가 민호의 동생이라는 말에 어쩌면 형제간이 생김생김도 성격도 저렇게 다를가고 놀랐다. 한마디로 말해서 민호의 세련된 매너에 홀딱 반한 후지꼬는 민수같은건 안중에도 없었다. 《귀 회사의 평화광선모자는 아주 신비합니다. 시장에 내놓았습니까?》 기다야마가 평화광선모자를 벗어쥐고 엄지손가락을 내밀자 민호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아직 정식생산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삼복중이라 수요가 가장 많을 때인데 금년엔 시기가 늦지 않았습니까?》 《이 모자는 최첨단과학기술상품으로서 사시절 사용할수 있습니다. 이 모자를 쓰면 춘하추동 외계의 기온이 어떻게 변하든지 항상 봄날의 온도를 보장받게 되지요. 이제 정식생산에 들어갈 땐 모자의 양식도 다양하고 다채롭게 설계할것입니다.》 《정말로 오묘합니다! 이처럼 놀라운 모자를 설게해내신 령존님을 뵙고싶은데요.》 《우리 아버님은 몸이 편찮으십니다. 그리고 이 모자는 우리 아버님 한분이 설계해낸게 아닙니다. 전체 종업원들의 공동의 힘과 지혜를 합쳐 설계해낸것이지요》 민호가 조금도 빈틈을 주지 않으니 기다야마는 더 탐문하지 않았다. 민호가 만만찮은 인물이란걸 보아낸 그는 천천히 다른 방법을 써보리라 작심했다. 그날 저녁 민호는 손님들을 귀빈루술집으로 모시고 갔다 조용한 귀빈방에 자리잡고 앉아 민호는 손님들에게 모태주를 부었다. 《모처럼 먼곳에서 우리 회사를 찾아주신 기다야마총경리님과 아름다운 후지꼬양을 환영하는 의미에서 제가 먼전 한잔 권하니 사양말고 받아주십시오!》 《감사합니다.》 《감사해요.》 셋은 술잔을 마주쳤다 두번째 잔은 후지꼬가 부었다 《리총경리님, 우리 기다야마총경리님은 귀회사에 대한 아주 큰 흥취를 갖고 있어요. 앞으로 우리 합작을 위해서 이 잔을 들자요!》 손님과 주인은 서로 권하면서 술이 몇순배 돌았다. 후지꼬는 취한척하며 민호의 손을 슬쩍잡고 물었다. 《리총경리님의 부인님은 어디서 사업하십니까?》 《정신병원에서 의사질합니다.》 민호가 점잖게 후지꼬의 손을 물리치며 말하자 후지꼬는 소름이 끼친다는듯 몸을 흠칫 떨었다. 《어마나 정신병자들이 무서워 어떻게….》 《허허, 정신병자들이 도리여 우리 집사람을 무서워한답니다!》 《하하하! 미치광이들도 주사바늘이 무서운 모양입니다그려!》 기다야마가 한바탕 통쾌하게 웃고나서 정색하여 말했다. 《리총경리께서 장가들지 않았다면 사위로 삼으려고했는데…》 후지꼬가 짐짓 수집은듯 눈을 곱게 흘겼다. 그러면서도 민호에게 살짝 추파를 던졌다. 술상을 물린후 셋이 웃층의 나이트클럽으로 올라갔다. 쌍쌍의 남녀들이 녀가수의 노래에 맞추어 뒤엉켜 돌아가고있었다. 민호와 후지꼬도 그속에 끼여들었고 기다야마도 춤짝을 찾아 성수나게 돌아갔다. 기다야마가 찾은 춤짝은 공교롭게도 미스 김이였다. 미스 김은 민수와 함게 왔는데 민수는 지금 구석쪽자리에 몸을 숨기다싶이하고 앉아서 얼싸안고 돌아가는 민호와 후지꼬를 질투에 찬 눈길로 쏘아보고있었다. 흥, 나를 계집질만한다구 훈계하더니 자기는 멋스레 일본계집을 다 사냥하고… 민호에게 안겨 빙글빙글 돌아가는 후지꼬는 기쁨으로 가슴이 설레이며 자신의 모든것을 민호에게 맡기고싶어진다. 《리총경리님은 정말로 멋진 남자예요. 전 리총경님의 사랑받는 녀자가 되고싶어요!》 후지꼬는 민호의 품에 찰싹 달라붙어 정답게 속삭인다. 유달리 풍만한 젖가슴의 유혹을 느끼며 민호는 일본녀인의 나슬나슬한 머리카락에서 풍기는 냄새가 퍽 향기롭다고 생각한다. 허지만 이 향기는 독향기일지도 모르니 맡을수 없으며 또 맡아서는 절대 안된다고 자각한다. 《우리 조용한곳에 자리를 옮길가요? 리총경리님이 원하는곳이면 전 어디든지 따라 갈래요!》 후지꼬의 로골적인 유혹에 민호는 몸뺄 핑게를 생각한다. 때마침 바지춤에서 핸드폰이 울어서 민호는 앓는 아버지가 부른다는 핑게를 대고 유혹의 함정에서 훌쩍 빠져나간다. 민호가 가버리자 후지꼬는 흥이 꺼져버렸다. 돌아가려고 기다야마를 찾아 두리번거리고있는데 웬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후지꼬아가씨, 실례합니다!》 싱글벙글 웃으며 춤을 청하는 사내는 평화호텔 경리 민수였다. 그는 민호가 떠나는것을 보고 너무도 기뻐 번개같이 달려왔던것이다. 후지꼬는 썩 달갑지 않았으나 민수의 춤에 응해 나섰다. 평화가족의 내막을 파자면 민호보다는 민수를 뚫기가 더 쉬울것 같았기때문이다. 《아름다운 후지꼬아가씨와 춤을 추게 된것을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민수는 첨부터 후지꼬를 숨막히도록 꽉 부둥켜앉고 석마돌리듯 제자리걸음을 하고있었다. 후지꼬는 자기가 쓴 모자를 가리키며 탐문을 하듯 넌지시 허두를 떼였다 《귀회사의 이 모잔 정말 신비해요. 이처럼 신비한 모자를 설계해낸 령존님은 정말 대단하십니다요.》 《글쎄말입니다. 우리 아버진 박사 칭호를 받긴 했으나 국내에서도 크게 이름이 없는데 그런걸 설계해낸걸 보면 천재임에 틀림없습니다》 《듣자니 경리님의 할아버지께서 옛날에 과학천재였다던데요?》 《그 미친 령감을 그럽니까? 그 령감이 염라대왕한테 뒤문치기를 했는지 저승갈 때가 지나도 한참은 지났는데 죽지 않는단 말입니다》 《할아버지께서 아직두 살아계신단 말인가요?》 《오래 살아도 제정신에 오래 살면 좋겠는데 이건 무슨 멋에 백세도 넘어 사는지…》 민수는 후지꼬가 왜서 자기 가족내막에 흥취를 갖고 잇는지 의심한번 해보지 않고 곧이곧대로 털어놓는다. 후지꼬는 요시다로에게서 들은대로 그 미치광이 령감을 넘겨짚어 물어봤는데 놀랍게도 일치했던것이다.이제 그 이름이 리광인이 옳은지 알아봐야 했다. 《할아버지께서 백세를 넘기셨다구요? 마침 잘됐어요. 전 백세로인들을 조사하여 자료를 수집하는중인데 할아버지의 성함은…》 《미치광이의 자료를 수집해서 뭘 합니까?》 《미치광이도 사람이 아닌가요? 전 벌써 세계각지 백세로인 49명을 취재했어요. 이제 50명이 차면 론문을 집필하려 하는데요.》 《허허. 우리 미치광이 할아버지가 아가씨의 론문을 빛내는데 그런 가치가 있다니 정말 기쁜일입니다. 할아버지 이름은 리광인이고. 그 다음…》 《아, 됐어요. 조사표를 줄테니 상세한건 거기에 적어주세요.》 후지꼬는 겉으론 천연한체 했지만 속으론 몹시 놀랐고있었다. 이름까지도 리광인이 맞아떨어진다. 그렇다면… 《아름다운 후지꼬아가씨. 우리 조용한 곳으로 자리를 옮길가요?》 앞으로 더 큰고기를 낚기 위해선 미끼를 남겨둬야 한다고 생각한 후지꼬는 생긋 웃으면서 민호를 유혹했다. 《아, 물론!》 민호는 너무도 아름찬 기쁨에 숨이 콱 막혔다. 이제 곧 아름다운 일본여인을 맛보게 된다고 생각하니 넋은 벌써 하늘높이 날아가고있었다. 《후지꼬아가씨, 어서 침대가 있는 곳으로 갑시다!》 《리경리, 잠간만! 미안하지만 오늘은 리경릴 따라갈수 없어요.》 《왜서요?》 실망한 민호의 물음에 후지꼬는 얼굴을 살짝 붉히며 속사였다. 《달마다 오는 그 손님이 와서요》 그런데 세상에는 정말로 공교로운 일도 있었다. 그 시각 미스김도 같은 요구를 들이대는 기다야마를 똑같은 말로 떼버렸으니 말이다. 결과 민수는 미스김과 함께, 기다야마는 후지꼬와 함께 각기 자기의 거처로 돌아갔다. 기다야마와 후지꼬는 얻은 정보를 종합하여 요시다로에게 날려보냈다. 미치광이 리광인이 아직까지 살아있다는 소식에 요시다로는 경악했다. 60여전의 그 놀라운 일들이 늙은 요시다로의 눈앞에 어제일처럼 삼삼히 떠올랐다…
7    중편소설 악마의 무덤 (1) 댓글:  조회:3572  추천:1  2013-11-10
중편소설 악마의 무덤   김희수   1. 우연한 일치일가?   대련에서 리륙한 비행기는 어느새 A시 상공을 날고있었다. 리민호는 무시로 추파를 보내오는 건너편의 이쁘장한 아가씨와 그 곁에 앉은 60대의 번대머리신사를 주의깊게 살피고있었다. 그들의 대화를 엿듣고 민호는 그들이 부녀간이며 일본상인이라는것을 알수 있었고 그 신비한 모자에 대해 주고받는 말을 통해 그들이 곧 자기와 어떤 관계를 맺게 될 인물이란것을 짐작했다. 《바다건너 호시회사가 벌써 우리 회사의 정보를 탐지해낸걸 보면 례사회사가 아닐꺼다. 그들이 오면 정중하게 맞이하되 십분 경계해야 한다.》 아버지의 말씀을 되새기는 민호는 팽팽히 조여드는 마음을 걷잡을수 없었다. 비행기가 착륙하자 민호는 그들의 뒤를 바싹 따라 A시공항 출구를 나섰다. 두 일본인은 사방을 두리번거리는것이 마중나온 사람을 찾는것 같았다. 민호는 자기를 마중나온 운전사가 언녕 짐을 받아졌지만 자리를 뜨지 않고 두 일본인을 지켜봤다. 한동안 지나도 얼씬하는 사람이 없자 60대의 신사가 불쾌한듯 투덜거렸다. 《이게 어떻게 된셈이야? 중국놈들 서비스가 말이 아니군!》 민호도 안달아났다. 호시회사는 비록 경계해야 했지만 평화계렬제품이 세계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선 외상을 끄는 일이 중요하다고 여긴 민호는 공항에서 호시회사 일행을 맞이하는 중임을 직접 평화호텔 경리인 동생 민수한테 맡겼는데 웬 영문인지 민수는커녕 그의 수하일군마저 보이지 않았다. 이제 그가 림기응변하지 않는다면 회사의 명예는 여지없이 손상을 받을것이다. 《당신들은 일본에서 오신분들이죠?》 민호는 빙그레 웃으며 그들앞에 나섰다. 민호의 류창한 일본말에 60대의 신사는 놀라운 눈길로 바라본다. 《그렇소. 그런데 당신은…》 《우리와 같은 비행기편으로 동행한 분이예요!》 예쁘장한 일본아가씨가 민호를 알아보고 반가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건너쪽에 앉았던 하얀모자를 쓴 미남자, 그 준수한 미모에 반한 그녀는 저도몰래 그 젊은에게 눈길이 쏠렸고 여러번이나 그 젊은이와 뜨거운 시선이 마주쳤던것이다. 민호가 명함장을 꺼내자 60대의 신사는 례모있게 자기의 명함장을 교환했다. 이쪽은 평화실업유한회사 리민호총경리였고 저쪽은 호시국제무역회사 기다야마총경리였다. 《환영합니다. 기다야마총경리님!》 《하하하! 이거 정말 교묘한 상봉입니다. 그런데 당신들 회사에선 어째서 먼곳에서 온 귀빈들을 이렇게 랭대합니까? 》 《제가 이렇게 마중나오지 않았습니까? 전 회사의 일로 대련에 출장갔댔지만 같은 비행기편으로 당신들이 도착한다는것을 알고 일부러 회사일군들에게 마중나오지 말라고 전화로 일렀습니다. 제가 직접 당신들을 호텔로 모셔다드릴것입니다.》 민호가 기다야마와 악수를 마치고 일본아가씨의 손을 잡자 기다야마가 빙긋이 읏으며 소개했다. 《이 앤 나의 애꾸러기 딸 후지꼬입니다.》 《아이참, 아버지두! 누가 애꾸러긴가요?》 후지꼬가 눈을 곱게 흘겼다. 공항대합실을 나오니 불볕이 찌글찌글 내리쬐는 날씨는 찌는듯 무더웠다. 기다야마와 후지꼬는 더위를 견딜수 없어 쉴새없이 부채질을 하며 손수건으로 연신 흐르는 땀을 훔쳤으나 흰모자를 쓰고있는 민호와 그의 운전수는 이상하게도 땀을 한방울도 흘리지 않고있었다. 《젠장, 차에 에어콘도 없나? 락후한 중국…》 기다야마가 땀으로 흠뻑 젖은 손수건을 쥐여짜며 두덜거릴 때 후지꼬의 시선은 줄곧 민호가 쓴 모자를 주시하고있었다. 혹시 저 모자가?…달리는 차속에서 의혹에 잠긴 후지꼬는 기다야마에게 눈짓했다. 눈치빠른 기다야마는 민호에게 탐문의 미끼를 던졌다. 《리총경리님의 그 모자가 아주 멋져 보입니다그려.》 《허허, 그저 수수한 보통모자인데 뭘 그리 멋지겠습니까?》 민호는 일본사람들이 모자에 대해 흥미를 가지는걸 보고 짐짓 시치미를 떼고 대꾸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후지꼬가 바짝 들이댔다. 《제가 보기엔 어딘가 특수해 보이는데요.》 《아,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제가 변변찮은 모자지만 두분께 선물하지요.》 민호는 가방에서 흰모자 두개를 꺼내 기다야마와 후지꼬에게 넘겨주었다. 그들이 이 모자때문에 온 이상 어차피 조만간에 견본을 보여줘야 할거니깐 닥친김에 순서를 앞당겼던것이다. 기다야마와 후지꼬는 모자를 받아 쥐고 호기심에 찬 눈길로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아무리 눈여겨보아도 모자차양에 빨간색과 파란색으로 P․C라고 쓴 엽전만한 모표가 붙어있을뿐 보통모자와 별 다른데가 없었다. 대방의 성의를 무시할수 없어 모자를 써보긴 했으나 에어콘같은 장치도 없고 누름단추같은것도 없어서 기대와는 너무나도 어긋났다. 호시국제무역회사는 실상 전문 남의 상업기밀정보와 과학기술성과를 절도하는 국제상업간첩조직이였다. 그들은 간첩망을 통하여 최근에 중국《만주》의 소도시인 B시에 자리잡은 평화실업유한회사에서 여름엔 더위를 모르고 겨울엔 추위를 모른다는 신비한 평화광선모자를 설계해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처음《평화광선》이란 말을 들었을 때 99세나는 호시회사의 요시다로리사장은 하마터면 졸도할번했다. 60여년전에 천재적 과학가 잭슨은 죽고 그의 제자 리광인도 미쳐버리지 않았는가! 그와 함께 그 신비한 평화광선도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진줄 알았는데 오늘날 유령처럼 또 다시 나타나다니! 《으음…》 얼마후 요시다로는 놀란 가슴을 진정했다. 지금의 평화광선이 설마 리광인의 그 평화광선이야 아니겠지. 전혀 다른 사람이 설계해낸건데 우연하게 이름이 일치하게 된걸거야. 그런데…요시다로는 이내 밀려오는 의혹에 잠겼다. 회사의 이름도《평화》이고 고장도 만주의 연변이니 정말 우연한 일치일가? 요시다로는 진상을 알아보지 않고서는 미칠것만 같았다. 마음같아선 자신이 직접 바다를 건너 날아가고싶었지만 운신을 겨우하는 몸인지라 양아들이며 총경리인 기다야마를 출마시킨것이다. 기다야마는 양딸이며 비서인 후지꼬를 데리고 떠나면서도 속으로 그것이 거짓정보가 아니면 평화광선이라건 엉터릴거라고 코웃음을 쳤다. 심지어 친히 그 회사와 전화련계를 짓는 요시다로의 전에없이 진지한 거동을 보고 늙은이가 인젠 로망을 부린다고 생각했다. 《으흐흐, 내 추축이 맞았지. 그 무슨 평화광선모자라는건 이런 엉터리모자를 가지고 중국촌놈들이 떠들어댄 헛소문이였구나!》 기다야마는 흰모자를 벗어쥐고 속으로 촌놈인 민호와 로망든 요시다로로인을 비웃었다. 후지꼬만은 그래도 미남자가 선물한 모자를 꼭 눌러쓰고 달콤한 미소를 짓고있었다. 차는 평화회사소속인 평화호텔앞에 와서 멈춰섰다. 손님과 주인은 차에서 내렸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작별인사를 하면서 민호는 빙그레 웃었다. 《기다야마총경리님과 후지꼬양은 그 좋은 모자를 쓰고도 무더위에 시달리니 참으로 유감스럽군요. 제가 그 모자의 사용법을 가르쳐드리지요. 모자차양의 빨간색과 파란색의 P․C모표가 버튼역활을 하지요. 파란색 C는 겨울에 사용하고 지금은 빨간색 P를 누르면 됩니다. 한번 누르면 밝아지고 다시 한번 누르면 꺼집니다. 그 모자가 두분의 려로의 피로를 푸는데 도움이 될겁니다.》 그말에 기다야마와 후지꼬는 면구스러워 몸둘바를 몰랐다. 촌놈은 결국 자기네가 아닌가! 《귀회사의 리사장님을 만나야겠는데요.》 기다야마는 낯간지러운대로 화제를 돌렸다. 《래일 다시 봅시다.》 두 일본인은 엘리베이터로 들어가고 민호는 호텔을 나와 사무청사로 향했다. 총경리실에 들어서자마자 민호는 평화호텔경리실에 전화를 걸었다. 민수의 녀비서 미스 김이 전화를 받고있었다. 《리경린 안 계신데요.》 《나 민호인데 민순 어딜 갔소?》 《저…그인…》 《바른대로 말하오. 급한 일이 있소.》 《저…옥루술집…》 《밤낮 무슨 술집이야!》 화가 치밀어오른 민호는 전화기를 탕 내려놓았다. 민수 그 녀석이 또 술집아가씨의 사타구니를 쑤시러간것이 틀림없었다. 아닌게 아니라 그 시각 민수는 옥루술집 귀빈방에서 묘령의 묘족아가씨를 발가벗겨놓고있었다. 희고 잘 발달된 젖가슴도 멋졌고 탄력있는 엉덩이도 일품이였다. 탐욕스런 눈길로 아름다운 녀체를 노려보던 민수는 맥주를 병나발로 꿀떡꿀떡 들이키더니 반쯤 남은 맥주를 그녀의 머리우에 주르륵 쏟아부었다. 허연 맥주거품이 그녀의 몸을 뒤덮으며 아래로 흘러내렸다. 민수는 맹수처럼 그녀에게 덮치며 그녀 몸의 맥주거품을 게걸스레 핥아먹기 시작했다. 민수의 혀바닥이 그녀의 입술에서 날름거리다가 목을 타고 젖가슴으로 미끌어져 내려간다. 민수가 포도알같은 젖꼭지를 들이빨자 묘족아가씨는 몸을 배틀며 후후 웃어댔다. 그러다가 민수가 젖꼭지를 깨물은 모양인지 그녀는《아야, 아파요!》하고 숨넘어가는 소리를 질러댔다. 민수의 혀바닥이 계속 아래로 미끌어져 그녀의 두 다리사이로 내려간다. 《아!》 묘족아가씨가 신음하며 그의 머리를 꽉 움켜잡는다. 그때 문뜩 벗어놓은 민수의 바지에서 핸드폰이 울렸다. 《제길할, 어떤 놈이 요때 딱…》 민수가 두덜거리며 바지를 당겨보니 형님 민호의 호출인지라 아쉬운대로 묘족아가씨에게 팁을 뿌려주고 황망히 옥루술집을 나섰다. 고속으로 자가용을 달리며 민수는 일본손님을 맞으러 공항으로 나가라던 형님의 당부가 떠올랐다. 옥루술집에 섹시한 묘족아가씨들을 새로 모집해왔다는 소식을 듣고 정신없이 그리로 뛰여가다보니 일본손님 마중을 새까맣게 잊어버렸던것이다. 닦달을 당할 각오를 하고 총경리실에 들어서니 예견대로 민호가 눈을 부릅뜨고 쏘아보는것이였다. 《너 밤마다 술집을 싸다니고도 모자라서 대낮에도 술집이야?!》 《형님, 옥루술집에 묘족아가씨들이 새로 왔는데 정말 죽여줍데. 형님도 오늘 저녁 가보오. 끝내줄꺼요!》 《야, 임마! 너 언제 사람질을 하겠니?》 민호는 어이없고도 화가 나서 목소리마저 떨었다. 《너 어째 일본손님 마중을 안갔니?》 《아차, 깜빡 잊었소!》 《잊다니? 어찌 그렇게 중요한 일도 잊을수 있단 말이냐? 명색이 호텔경리란 놈이 밤낮 계집질만 하구 그 형상이 뭐야! 그렇게 하구 어떻게 아래 사람들을 다스릴수 있겠니?》 《…》 《계집질에 열중하는것만큼 호텔경영에 좀 신경을 써라!》 《알았소! 내 녀자도 탐구하고 호텔경영도 탐구하고 동시에 탐구하면 되잖소?》 처음부터 귀밖으로 듣고있던 민수는 민호를 엇먹였다. 《형님, 다른 일이 없으면 난 가봐야겠소.》 《가만, 오늘저녁엔 아무데도 가지 말고 곧추 엄마집으로 와. 할아버지 생신이야!》 《미친 령감이 생일은 무슨 생일이요.》 《이새끼! 그것도 말이라구 하니?》 민호가 꽥 소리질렀지만 민수는 아랑곳도 하지 않고 문밖으로 뛰쳐나갔다. 생각할수록 묘족아가씨를 재껴버리지 못한것이 못내 아쉬웠다. 그대신 녀비서 미스 김을 료리해먹으리라 맘먹으면서 민수는 평화호텔로 차를 달렸다. 무더운 날씨였으나 그 신비한 모자를 쓰고 다니니 더운줄을 몰랐다. 아버지에게 이토록 놀라운 초능력이 있을줄은 꿈에도 생각못했다. 비록 미국 하버드대학에 가서 박사학위를 땄다고는 하지만 연구성과는 보잘것없어 학계에서 밀려나 상업에 종사했던 아버지, 미치광이할아버지를 돌보느라 회사마저 민호에게 떠맡기다싶이했던 아버지가 그 신비한 모자를 설계하고있다는 말을 어머니한테서 들었을 때 민수는 근본 믿지 않았댔다. 그러면서도 워낙 허풍치기를 좋아하는 그는 술집들을 싸다니며 이 아가씨, 저 아가씨에게 그 신비한 모자에 대해 떠벌려댔다. 어머니가 집안비밀이니 정식생산에 들어가기전에 바깥사람에게 루설해서는 안된다고 신신당부했지만 그런 말이 귀에 들어갈리 없었다. 호시회사에서 얻은 정보도 실상 그의 입을 통해 어떤 술집녀자가 바다건너에 전했던것이다. 차는 어느덧 평화호텔문앞에 멈춰섰다. 차에서 내린 민수는 곧추 엘리베이터를 타고 20층에 올랐다. 그의 사무실은 20층 동쪽의 맨 마지막칸에 자리잡고있었다. 그가 복도를 걸어가고있는데 2호귀빈실문이 열리더니 20대의 아가씨가 나왔다. 그는 온몸에서 눈부신 빛이 뿜어져나오는 그 아가씨의 현란한 모습에 그만 넋을 잃고말았다. 별빛같은 눈에서 이글이글 불타는 색기는 사내들의 애간장을 단번에 녹일듯 했고 거대한 산처럼 높이 솟은 젖가슴에서 번쩍번쩍 빛발치는 육기는 사내들의 욕정을 삽시에 불태울듯 했으며 탄력있는 히프에서 섬뜩섬뜩 발산하는 요사스런 기운은 사내들의 음심을 절정에로 치닫게 할듯싶었다. 《아! 꼴딱 삼켜버리고싶은데…》 민수가 군침을 꼴까닥 삼키는데 아가씨는 1호귀빈실 초인종을 누르더니 안으로 들어가버린다. 아가씨가 사라져버린 뒤에도 민수는 한동안 넋을 잃고 서있다가 사무실로 걸어간다. 《2호귀빈실에 든 아가씬 어디서 온 아가씨요? 대단히 육감적이던데…》 민수는 들어서자마자 녀비서 미스 김에게 물었다. 그러자 미스 김은 눈을 곱게 흘겼다. 《아유, 경리님은 녀자를 밝히는덴 이름이 있군요! 어느새 그 아가씰 봤어요? 그 아가씬 일본 호시회사에서 온 아가씬데 방금 들었어요.》 《아참, 예쁜 아가씨가 오는줄 알았더면 내가 마중나가는건데…》 《아이, 경리님은 고운 아가씨라면 오금을 못쓰네요!》 미스 김이 뾰로통해서 곱게 눈을 흘기자 민수는 미스 김을 와락 끌어안았다. 《어째 질투나오?》 《질투나긴요. 전 괜찮아요. 그렇게 밤낮 남의 녀자들에게 정을 쏟느라고 언제 집의 부인님을 돌볼새 있겠어요. 부인님이 밤마다 얼마나 외롭고 쓸쓸하겠어요.》 미스 김은 미꾸라지처럼 민수의 품에서 살짝 빠져나간다. 민수는 미스 김을 붙잡겠다고 이리 쫓고 저리 쫓고, 미스 김은 사무상을 빙빙 돌면서 요리 살짝 조리 살짝 피한다. 그러다가 민수가 손을 잡아채자 미스 김은 민수의 품에 찰싹 달라붙는다. 민수는 데리고 노는 녀자들중에서 미스 김을 제일 좋아한다. 미스 김은 그의 정부로 된 날부터 질투라는걸 몰랐다. 그가 아무리 다른 녀자들과 붙어다녀도 원망 한마디 없었다. 몇번은 미스 김과 즐기다가 전화가 와서 다른 녀자를 찾아간적이 있었는데 그때에도 그를 탓하는 말을 하지 않았다. 다른 녀자를 찾아갔다가 헛탕을 치고와도 미스 김은 기꺼이 그를 받아주군했다. 미스 김은 그가 아무때나 몸을 요구해도 거절하지 않을뿐만아니라 언제나 열정적으로 반겨 맞아준다. 한마디로 미스 김은 끝내주는 녀자였다. 민수는 언제 안아도 싫증이 안나는 미스 김을 꼭 껴안고 입술을 덮쳤다. 그러자 미스 김은 두팔을 벌려 그의 목을 꼭 끌어안고 꼿꼿하게 날세운 자기의 혀바닥을 민수의 입속에 집어넣었다. 민수는 미스 김의 혀를 빨아대는 동시에 그녀의 가슴에 손을 집어넣었다. 미스 김이 기다렸다는듯 응해나섰다. 미스 김은 어느새 불끈 솟아오른 민수의 연장을 움켜쥐고있었다. 민수가 젖가슴을 슬슬 만져대자 미스 김은 바르르 몸을 떨며 열뜬 신음을 토해냈다. 민수는 팬티를 벗겨내려고 스커트밑으로 손을 뻗었다. 그는 미스 김이 치마따위를 입었을 때는 팬티만 슬쩍 벗겨내고 즐기는 습관이 있었다. 그런데 이때 팬티 대신 손에 닿는건 보드라운 허벅지 맨살이다. 《에그그! 팬티를 안 입었잖아?》 《너무 더워서 벗었어요.》 《벗을바엔 아예 몽땅 벗지 그래? ㅋㅋㅋ 이대로 밖으로 나다니진 않았겠지?》 《서시장까지 갔다 왔어요.》 《미니스커트에 노팬티로 서시장까지 갔다 왔다구? 이것참 미치겠어. 그러다가 바람이 불어 치마가 날리면 기막히겠는데.》 《요즘 날씨가 어디 바람 한점 있던가요? 그러잖아도 바람이 불었으면싶었어요. 거리에서 남자들을 만날때마다 〈제가 팬티를 입지 않았어요!〉하고 속으로 웨쳐댔어요!》 《미쳤군! 우리 형수가 정신병원 의사인데 전화 한통이면 침대를 마련할수 있소. 전화로 련락할가?》 《경리님이나 정신병원에 입원하세요.》 《내가 왜…》 《경리님은 여기에 미치지 않았어요?》 미스 김은 스커트를 살짝 들고 자기의 그곳을 손으로 가리켰다. 《아, 그래. 난 거기에 미쳤지!》 민수는 미스 김을 번쩍 들어 쏘파에 던져놓고 스커트를 걷어올렸다. 그다음 미스 김의 다리를 벌려 어깨우에 올려놓고 자신의 심벌을 중심부에다 밀어붙이더니 결사적으로 찍어대기 시작했다…  
6    새되여 나는 처녀 (마지막) 댓글:  조회:2951  추천:1  2013-10-29
중편소설 새되여 나는 처녀 (마지막) 김희수 6. 자유의 하늘   오토바이는 달린다. 도심을 벗어져 남산쪽으로 나는듯이 달린다. 귀녀는 자유를 위해 탈출했을 때의 그 남산으로 가고싶었다. 그래서 그 방향을 가리켰고 한주먹은 오토바이를 그 쪽으로 몰았다. 한주먹의 등에 얼굴을 바싹 기대인 귀녀는 귀뿌리를 쌩쌩 스치는 바람소리도 느껴지지 않았다. 머리속에 꽉 찬 의혹과 복잡한 사유가 뒤엉켜 돌아가면서 아버지의 말소리만 귀전을 울릴뿐이다. 이건 네 운명이다. 받아들여라! 받아들여라! 받아들여라… 아니, 안돼요! 귀녀는 저도 모르게 꽥 소리질렀다. 귀녀야, 왜 그래? 한주먹이 오토바이를 급정거시키면서 놀란 눈길로 귀녀를 바라본다. 마침 그들은 남산아래에 도착했다. 오토바이에서 내린 귀녀는 말없이 산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한주먹이 귀녀야, 귀녀야! 하며 뒤따라 오는것도 아랑곳없이 귀녀는 잡초를 헤치며 산으로 올랐다. 오르고 오르다 숨이 차고 지쳐서야 주저앉았다. 한주먹이 따라 와서 귀녀야, 무슨 일이 생겼어? 하고 물었지만 귀녀는 아무 대답도 없이 멍하니 산아래만 내려다보았다. 군데군데 성냥갑을 쌓아올린듯한 도시… 눈앞의 정경을 가리며 아버지와 그분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분이 나랑 결혼하려고 한다니? 이게 도대체 무슨 영문이란 말인가? 아버지가 그분이랑 결혼하라고 하다니? 이게 정말 사실이란 말인가? 머리속에 사유가 복잡하게 뒤엉키며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아버지처럼 자애롭던 그분이 어찌 내게 이럴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은혜를 입혔다고 친구의 딸에게 눈독을 들이다니? 그리고 아버지는…나를 그토록 사랑하는 아버지는 어찌 또 내게 이럴수 있단 말인가? 그분의 은혜에 보답하라고? 은혜…귀녀는 그분이 물질적으로 엄청나게 많은 지원을 해준것을 알고있다. 하지만 그것은 그분이 자기의 생명을 구해준 아버지의 은혜를 갚는것이라만 생각했었다. 그 은혜가 너무나 엄청나고 과분하다고 생각되면서도 아버지와 그분의 깊은 우정에 감동되였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 은혜의 배후엔 다른 목적이 있은것이 아닌가? 귀녀는 눈을 꼭 감았다. 눈앞에 얼른거리는 아버지와 그분의 모습을 보고싶지 않았다. 하지만 눈을 감아도 아버지와 그분의 모습은 자꾸만 눈앞에 나타난다. 해마다 귀녀의 생일에 어김없이 선물을 들고 찾아오던 그분이 원래는 가슴에 딴 마음을 품고있었다니? 숫처녀와 결혼하겠다? 숫처녀…귀녀는 뭔가 의혹의 실마리가 서서히 풀리는것 같았다. 그분이 귀녀네 집에 나타난 이듬해부터 귀녀는 자유를 잃은 몸이 되였다. 그러니 한주먹과 만사통은 그분이 안배한것이 분명하다. 그러니까…그러니까…귀녀는 가슴이 섬뜩했다. 오싹 소름이 끼치면서 이름할수 없는 공포가 엄습해왔다. 그러니까 이 모든것은 그분이 오래전부터 계획적으로 획책한 음모였던것이다. 그분은 이 세상에 숫처녀가 없다고 생각하고, 또 있다해도 믿을수 없다고 생각하고 직접 숫처녀를 만들려고…그랬을것이다. 그분은 귀녀의 순결을 보전할수 있도록 하기 위해, 다시 말해서 귀녀를 숫처녀로 만들기 위해 한주먹이란 감시병을 파견하여 귀녀의 자유를 빼앗은것이다. 귀녀는 오싹 소름이 끼치며 전신이 파르르 떨렸다. 귀녀는 눈을 감았다가 뜨면서 곁에 지켜서 있는 한주먹을 뚫어지게 쏘아보았다. 오빤 알고있었죠? 뭘? 처음부터 알고있었죠? 뭘 알고있었다는거야? 한주먹이 의아한 눈길로 바라본다. 귀녀는 범인을 신문하듯 따져 묻는다. 그분이 오빠를 우리집에 보내지 않았어요? 그건…그래. 오빤 그분과 어떤 사이세요? 그분과 한동아리죠? 무슨 말을 하는거냐? 한주먹은 어리둥절하여 귀녀를 바라본다. 귀녀는 증오에 찬 눈길로 한주먹을 쏘아보며 소리지른다. 오빤 그분이 나랑 결혼하려는걸 처음부터 알고있지 않았어요? 그분이 너랑 결혼하려하다니? 그게 사실이냐? 한주먹은 놀란 눈길로 귀녀를 바라본다. 귀녀는 계속 화를 낸다. 시치미를 떼지 말아요. 오빤 그분과 짜고들어 내 자유를 빼앗지 않았어요? 날 련애도 못하게 하고 다른 남자들과 접촉 못하게 한건 그분의 지시였지요? 그건…그래. 그분이 널 지켜주라고 했어. 넌 하늘이 낳은 천사이기에 결혼하기전까지 깨끗한 처녀로 있도록 지켜줘야 한다고 했어. 그리고 그분은 나더러 너의 아버지의 지시를 따르라고 했어. 그분이나 너의 아버지의 지시가 아니더라도 난 널 지켜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어. 넌 천사이니까. 하지만 그분이 너랑 결혼하려고 생각하고 계신 줄은 정말 몰랐어. 정말이야, 난…아니, 귀녀야, 너 울고있잖아? 귀녀는 갑자기 설음이 북받치며 흑흑 흐느껴 울었다. 오빠가 미워요! 그분이 미워요! 이 세상이 미워요! 귀녀는 서럽게 울음을 터뜨렸고 한주먹은 어떻게 달래야 할지 몰라 곁에서 쩔쩔 매고있었다. 얼마후 한주먹은 겨우 귀녀를 달래서 오토바이에 싣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가 귀녀를 보고 말했다. 그분이 다음주에 너하고 약혼식을 하러 온다. 귀녀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귀녀는 아버지를 외면하면서 자기의 방으로 들어가 문을 꽉 닫았다. 만사통도 무슨 낌새를 챘는지 영어공부를 하라고 닦달하지 않았다. 귀녀는 침대에 벌렁 드러누웠다. 오직 하나의 생각뿐이였다. 어떻게 그분의 손아귀에서 벗어날것인가? 귀녀는 남산에서 내려올 때 벌써 결심했던것이다. 주어진 운명을 그대로 받아들일수 없다! 이제 더는 그분의 굴레에 얽매여 살아갈수 없다. 내 운명은 내가 좌우지 해야 한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이 운명의 굴레를 벗어버려야 한다. 자유를 위해 싸우자. 귀녀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자유를 쟁취하기 위하여 아버지와 싸우고 그분과 싸우자. 귀녀는 마음을 단단히 다지고 아버지의 방으로 들어갔다. 아버지는 딸이 들어온것을 보고 말했다. 거기 앉아라. 귀녀는 선채로 입을 열었다. 아버지, 난… 귀녀는 아버지, 난 그분과 결혼할수 없어요! 하고 말하려 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그녀의 말허리를 잘라버렸다. 귀녀야, 아버진 네가 일시 이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는걸 알고있다. 하지만 너도 알아라. 아버진 널 사랑한다. 아버진 사랑하는 딸을 절대 구렁텅이에 밀어넣지 않을거다. 부모는 다 자식이 행복하기를 바라고 자식이 잘되기를 바란다. 아버지… 애초에 그분이 네게 그런 마음을 털어놓을 때 난 충분히 고려하고 동의한거다. 그분이 아무리 큰 재벌이라 해도 그분의 됨됨이가 글러먹었다면 난 동의하지 않았을거다. 너도 알다싶이 그분은 해박하고 인간성이 좋고 아주 훌륭한 분이시다. 아버지… 게다가 그분은 용모가 준수하고 사나이답고 의젓하지. 비록 나이 차가 있지만 그분이 이제 40대 중반이니 남자로서 한창 나이가 아니겠니? 아버지… 두말말고 아버지의 안배대로 해라. 아버지는 딸에게 말할 기회를 주지 않고 자기의 말만 계속했다. 귀녀는 이런 아버지에게 아무런 말도 귀에 들어가지 않을거라고 생각했다. 귀녀는 하려던 말을 도로 삼켜버리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다시 침대에 벌렁 누워버렸다. 어떻게 할것인가? 어떻게 하면 이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날수 있을가? 탈출? 아니, 아버지가 탈출하도록 가만 놔두지 않을것이다. 거절? 거절한다고 될 일도 아니다. 그럼 무슨 다른 방법이 없을가? 이 생각 저 생각 굴리던 귀녀는 갑자기 눈앞이 번쩍 밝아졌다. 그분이 왜서 나랑 결혼하려고 하는가? 바로 그것이다. 숫처녀! 내가 숫처녀이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숫처녀가 아니라면…그거다. 그것만이 운명의 굴레를 벗어버리고 자유를 쟁취할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귀녀는 밥을 먹으면서도 그 생각, 자리에 누워서도 그 생각뿐이였다. 하지만…당장 어느 남자를 찾아서 처녀를 버린단 말인가? 여태껏 따르는 남자는 많았지만 귀녀는 련애 한번도 못했다. 그리고 사실 마음을 준 남자도 없었다. 그렇다고 무작정 아무 남자나 만나 귀중한 처녀를 헌신짝 버리듯 버릴수는 없지 않는가. 귀녀는 가슴이 답답하여 밖으로 나갔다. 정원을 산책하는데 어느새 한주먹이 그림자처럼 따라왔다. 귀녀는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한주먹을 바라보았다. 언제나 무뚝뚝하던 한주먹은 근심스런 눈길로 귀녀를 바라보고있었다. 바로 이 남자다! 순간 귀녀의 가슴이 울렁거렸다. 그래, 이 남자라면 처녀의 순결을 맡겨도 후회하지 않을것이다. 오빠! 귀녀는 조금은 떨리는 따뜻한 목소리로 한주먹을 불렀다. 한주먹은 고개를 끄덕이며 눈짓으로 말해봐 하는 뜻을 전했다. 한주먹의 시선엔 따뜻한 관심과 애틋한 정이 깃들이고있었다. 귀녀는 와락 한주먹의 품에 안겨버렸다. 귀녀가 두 팔로 목을 꼭 끌어안고 가슴에 얼굴을 묻자 한주먹은 당황하여 어쩔줄을 몰랐다. 오빠, 오빤 날 좋아해요? 그래, 난 널 제일 귀여워하고 제일 이뻐해. 넌 이 세상에서 제일 이쁜 천사니까! 나도 오빨 제일 좋아해요! 귀녀는 련인에게 속삭이듯 그렇게 달콤하게 속삭였다. 그것은 진심이였다. 사실 귀녀는 마음속으로 한주먹을 제일 좋아하고있었다. 영웅호걸이라고 존경하고 숭배하던데로부터 친오빠와 같은 따뜻한 정을 느끼고있었다. 그저 무뚝뚝하다고 생각되던 한주먹에게도 따뜻한 구석이 있었고 인간성이 있었다. 특히 깡패에게 랍치당할 때 목숨으로 자신을 보호하던 한주먹에게서 귀녀는 감동뿐만아니라 친오빠와 같은 정을 느꼈었다. 자신에게 절대 충성하고 자신을 위해 목숨까지 서슴없이 바칠수 있는 남자! 이런 남자에게 순결을 바쳐도 아깝지 않으리라. 그리고 이런 남자에겐 후회없이 달갑게 처녀를 바칠수 있으리라. 한주먹은 천천히 귀녀를 자신의 품에서 떼여놓았다. 그리고 애틋한 눈길로 귀녀를 바라보면서 물었다. 귀녀야, 그분을 받아들이기 그렇게 힘드냐? 힘든게 아니라 그건 절대 불가능해요. 난 네가 그분과 결혼하면 행복할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아니예요. 그분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 내 자유를 빼앗았어요. 내 인생을 망쳐놓았어요. 한주먹오빠도 그분의 도구였고 그분의 괴뢰였어요. 그래 나도 본의 아니게 네 자유를 박탈한걸 사과한다. 그러나 네 마음을 이토록 상하게 할줄은 몰랐구나. 어릴 때는 네가 달가워하지 않더라도 네가 크면 리해하고 감사하게 여기리라고 생각했는데…지금 와서 생각하니 정말 후회되는구나. 후회되면 날 도와줘요. 내가 뭘 어떻게 도와줄수 있겠니? 날 도망치게 도와줘요. 그건 안돼. 그건 널 해치는 길이야. 네가 도망쳐서 혼자서 어딜 가며 또 어디까지 갈수 있겠니? 우리 함께 도망치자요. 오빠와 함께라면 어디든지 두렵지 않을거예요. 아니, 그건 안돼. 난 널 불행하게 숨어살게 할수 없어. 귀녀는 절망했다. 다시 한주먹의 품에 얼굴을 묻고 흐느꼈다. 한주먹은 가슴 아픈듯 무능한 자신을 탓하면서 한숨을 내쉬였다. 그날밤 귀녀는 잠들수 없었다. 이리뒤척 저리뒤척하던 그녀는 결심한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새벽 2시였다. 그녀는 살금살금 계단을 밟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서쪽 방엔 가정부가 들고 동쪽 방엔 한주먹이 홀로 자고있었다. 귀녀는 동쪽 방으로 살그머니 다가가 가볍게 문을 노크했다. 한주먹이 잠들어 듣지 못했는지 한동안 기다렸으나 잠잠했다. 아무런 동정도 없자 귀녀는 문을 살며시 밀어보았다. 문이 열렸다. 워낙 한주먹은 문을 잠그지 않고 자는 버릇이 있었던것이다. 방안으로 들어간 귀녀는 문을 잠그고 손을 더듬어 전등을 켰다. 한주먹이 코를 드렁드렁 골며 자고있었다. 귀녀는 침대로 다가가 자고있는 한주먹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입술을 꼭 깨물었다. 그리고는 손으로 한주먹의 어깨를 흔들며 나직이 불렀다. 오빠. 한주먹은 반응이 없었다. 귀녀는 더 힘있게 흔들었다. 오빠. 마침내 잠에서 깨여난 한주먹은 눈앞에 귀녀가 서있는것을 보고 눈이 휘둥그래졌다. 아니, 네가 웬일이냐?! 귀녀는 웃옷을 벗고 가슴을 헤치면서 말했다. 오빠, 날 가지세요! 아니, 너 이게 무슨 짓이냐? 미쳤느냐? 오빠가 날 가지면 그분과의 혼사도 깨여질거고 나도 자유의 몸이 될거예요. 귀녀야, 너 이러면 안돼. 어서 옷을 입어! 한주먹은 어쩔바를 몰라 쩔쩔 매다가 황급히 다가와 귀녀의 옷을 도로 입혀주고 단추를 채워주었다. 귀녀는 한주먹을 와락 껴안고 입술을 덮쳤다. 한주먹은 급히 귀녀를 떠밀었다. 귀녀야, 이러면 안돼! 오빤 절 좋아하지 않아요? 좋아하는것과 그건 다른 문제야. 오빤 철이가 나하고 약혼하자고 할 때 철이를 사정없이 때려놓던 일이 생각나요? 그땐 오빠가 절 사랑해서 질투때문에 그랬지요? 아니야. 그저 널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그랬을 뿐이야. 물론 그분의 당부도 있었고…하지만 내가 어떻게 감히 두꺼비가 고니 고기를 먹을 생각을 할수 있었겠니. 넌 천사야! 나는 천사를 지키는 보호자일 뿐이야… 오빠는 충분히 날 사랑할 자격이 있는 남자예요. 저도 오빨 사랑해요! 어서 날 가지세요. 아니야, 난…난…그분을 배반할수 없어. 그분은 내 목숨을 구해준 은인이야. 이건 배반이 아내예요. 사실 저도 그분의 은혜를 많이 입었잖아요? 하지만 은혜는 그런 방식으로 값는게 아니예요. 그분과 나 사이엔 사랑이 없어요. 난 그분을 아버지벌 되는 선배로 존경해 왔을뿐인데…그분이 일방적으로 내 자유를 박탈하면서…이 얼마나 황당한 혼인이예요. 난 이 혼인을 접수할수 없어요! 귀녀야, 진정해라. 그분은 훌륭한 분이셔. 그분이랑 결혼해. 아니, 난 죽어도 그분과 결혼할수 없어요! 오빤 내가 그분이랑 결혼하면 행복할거라고 생각해요? 그분은 모든 방면에서 우월한 조건을 갖춘 분이셔. 비록 년령 차이가 있지만 함께 살아가노라면 꼭 행복할거야. 오빠, 오빤 경제적으로 부러운게 없이 호화로운 생활을 하는게 행복이라고 생각하세요? 난 지금껏 그분의 덕분으로 호화로은 생활을 해왔어요. 옥이를 비롯한 동학들이 모두 날 몹시 부러워해왔지만 난 어느 한순간도 행복하다고 생각된 적이 없어요. 나에겐 자유가 없기 때문이죠. 오히려 난 뭐나 자기 하고싶은대로 할수 있는 옥이랑 철이랑 부러웠어요. 그애들은 모를거예요. 난 조롱속에 갇힌 한마리의 새였다는것을. 귀녀의 눈에서는 어느새 이슬이 맺혀 떨어졌다. 난 그분의 조롱속에 갇힌 한마리 새였어요. 아버진 그분의 눈이였고 만사통과 오빠는 그분의 손이였어요. 이 새가 밖으로 나갈 땐 오빠가 새의 다리에 끈을 매여 쥐고 다니며 새가 멀리 날지 못하게 했지요. 귀녀는 억울한 심정을 걷잡지 못하여 마침내 흐느끼였다. 귀녀가 울자 한주먹도 감염되여 눈물을 흘렸다. 귀녀야, 미안하다. 난 그분의 명령대로, 그분의 부탁을 받은 너의 아버지의 명령대로 했지만 그렇게 하는것이 널 위하는것이라고만 생각했댔어. 난 오빨 원망하지 않아요. 모두 그분의 음모지요. 난 이제부터 그분의 손에서 벗어나야겠어요. 귀녀는 다시 옷을 벗어던졌다. 브래지어도 벗고 팬티마저 벗어던졌다. 이게 무슨 짓이냐? 이러면 안돼! 오빠도 남자겠죠. 남자라면 어서 날 가지세요. 귀녀야, 난 남자가 아니야! 한주먹은 고통스러운듯 손으로 머리를 잡아당기면서 말했다. 난 남자구실을 할수 없단 말이야. 그게 무슨 말이예요? 난 《태감》이란 말이야! 한주먹은 머리를 틀어박고 흐느꼈다. 귀녀는 옷을 주어 입고 놀라움과 의혹에 찬 눈길로 한주먹을 바라보았다. 한주먹은 주먹으로 눈물을 훔치며 여태껏 누구한테도 말하지 않고있던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았다. 한주먹은 친부모한테서 버림받은 아이였다. 무술을 가르치던 스승이 사망하자 그는 학교를 그만두고 생계를 위해 막벌이 일을 찾아하기 시작했다. 처음에 그는 건축공사에서 막벌이로동을 하다가 부두에 나가 운반로동을 했다. 힘들었지만 그는 억척스럽게 일했다. 그런데 그는 다른 사람들과 같은 로동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나이 어리다는 리유로 절반 월급을 받았다. 그가 보스를 찾아가 도리를 따지니 보스는 입에 담지 못할 말로 상스러운 욕설을 퍼부으며 일하기 싫으면 나가라고 했다. 화가 발끈 치민 한주먹은 더는 참을수 없어 보스의 면상에 주먹을 안겼다. 그러자 주위에 있던 보스의 부하들이 우르르 몰려와 일제히 한주먹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한주먹은 반사적으로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가 제일 먼저 달려드는 놈을 향해 재빨리 몸을 달렸다. 한주먹에 놈을 거꾸러뜨리고 허공으로 몸을 솟구치며 다른 놈에게 오른쪽구두발을 깨끗하게 꽂았다. 또 두놈이 달려들었다. 한주먹은 량발차기로 두놈을 날려버렸다. 그러자 두놈은 비명소리를 지르며 꼬꾸라졌다. 순식간에 부하들이 나뒹굴자 보스는 얼굴이 흙빛이 되였다. 한주먹이 멀리 사라지는것을 보며 그는 부하더러 한주먹의 뒤를 미행하도록 눈짓한후 재빨리 누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주먹은 울적하여 바다가를 거닐다가 멍하니 서서 망망대해를 바라보았다. 아득한 수평선우에 떨기떨기 햇솜같은 흰구름이 뭉게뭉게 피여오르고있었다. 하늘나라의 선경같은 구름중에는 사람모양의 구름도 있었는데 그것은 얼굴도 못본 친부모같기도 했고 기억에 어렴풋이 남아있는 수양부모같기도 했다. 아, 어머니! 비감에 쌓여 부르짖고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어지러운 발걸음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다보니 두억시니같은 사내들이 벌떼처럼 몰려들고있었다. 잠간사이에 백여명의 괴한들이 한주먹을 포위했다. 한주먹에게 얻어맞았던 보스가 불러온 지원병이였다. 큰 형님, 바로 저놈입니다! 보스가 선글라스를 낀 사내에게 한주먹을 가리키며 말했다. 보아하니 선글라스를 낀 사내가 큰 보스인듯 했다. 그가 손을 휙 젓자 이리떼같은 사내들이 일시에 한주먹을 향해 덮쳐들었다. 한주먹은 형세가 위태롭게 된것을 깨달았다. 자신이 혼자서는 이렇게 많은 사내들을 당해낼수 없다는것을 알았다. 하지만 승부가 빤한 싸움임을 알면서도 한주먹은 싸웠다. 얻어맞아 죽더라도 포위를 뚫고 나가자는 일념뿐이였다. 그 많은 사내들을 상대로 싸우면서도 한주먹은 조금도 겁나거나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그는 잽사게 몸을 솟구치며 막아서는 사내들을 하나 둘씩 쓰러뜨렸다. 막아서는 상대 하나, 하나가 련속 아이쿠, 아이쿠! 비명을 지르며 나뒹굴었다. 사내들이 몽둥이를 휘둘러댔다. 한주먹은 허공으로 몸을 솟구친 뒤에 전광석화처럼 돌려차기로 두 사내의 턱을 걷어찼다. 하지만 상대의 수가 너무 많았다. 한주먹은 어느 순간 날아오는 몽둥이에 머리를 맞고 휘청거렸다. 이어 숱한 구두발들이 그의 몸에 꽂혔다… 놈을 재워라! 사내들이 몽둥이를 높이 쳐드는 순간 큰 보스가 멈춰라! 하고 급히 소리쳤다. 그리고 한주먹을 병원에 업고 가서 치료해주게 했다. 주먹 솜씨가 대단한데…내 밑에서 일해보지 않겠니? 큰 보스가 한주먹의 어깨를 툭툭 치며 유혹했다. 한주먹은 도리머리질 했다. 난 당신들같은 깡패들과 한 바지를 입을수 없소. 우린 서로 길이 다른 사람이요. 허허, 우린 그 무슨 깡패가 아니야. 정당한 사업을 하고있지. 내 술집의 보안대장으로 있어 달란 말이야. 보수는 톡톡히 드릴께. 큰 보스는 설산파란 깡패조직의 두목인데 술집을 경영하면서 부두에 조직원들을 깔아놓고 《요두환》밀매도 하고있었다. 그런데 한주먹은 그런 내막을 모르고 큰 보스의 술집에 들어가 보안대장이 되였다. 큰 보스의 마누라는 30대중반의 요염한 녀인인데 큰 보스가 외지로 나갈 때마다 큰 보스의 부하인 한 미남과 붙어 그 짓을 해댔다. 한번은 미남과 붙어 즐거운 비명을 질러대다가 한주먹에게 현장을 잡히게 되였다. 당황해난 녀인은 한주먹의 입을 막기 위해 한주먹을 유혹했다. 녀인은 한주먹을 안고 침대로 끌었지만 한주먹은 단마디로 거절하면서 녀인을 밀치고 방을 뛰쳐나갔다. 간통한 사실이 들통날까봐 겁난 녀인은 먼저 선손을 써서 한주먹이 자신을 강간하려 했다고 남편한테 고자질했다. 마누라의 말을 그대로 믿은 큰 보스는 한주먹의 해석도 들어보려고 하지 않고 다짜고짜로 한주먹을 묶어놓고 물매를 안겼다. 이 새끼야, 네가 감히 내 마누라를 욕보여? 네 새끼가 다시는 그런 짓을 못하도록 네 놈을 《태감》으로 만들어 놓을 테다! 큰 보스는 악이 나서 소리를 지르더니 흉악무도하게도 칼을 한주먹의 사타구니에 갖다댔다. 한주먹의 입에서 처참한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귀녀는 한주먹의 어두운 과거이야기를 들으며 깜짝 놀랐다.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수 있다니?! 그리고 잔인한 큰 보스의 행위에 치가 떨렸다. 인간성이란 조금도 없는 놈들! 어찌 그럴수 있어요?! 귀녀는 주먹을 불끈 틀어쥐였다. 한주먹의 눈엔 아직도 눈물이 맺혀있었다. 귀녀는 한주먹이 한없이 가엾어 보였다. 오빠! 귀녀는 한주먹을 꼭 감싸안았다. 이렇게 아픈 상처를 품고있었기에 오빠는 웃음이 없었구나. 불쌍한 오빠…이윽고 귀녀가 물었다. 그후에는… 큰 보스는 내 목숨같은 남자를 앗아가고도 성이 풀리지 않아 날 죽이려고 했어. 그때 한 부하가 달려와서 그분이 큰 보스를 부른다고 했어. 바로 그분이였어. 너랑 결혼하려는 그분. 그분이 술집에 식사하러 왔다가 큰 보스를 불러간거야. 큰 보스는 재록신이나 다름없는 그분 앞에서는 설설 기는 놈이였어. 큰 보스가 나를 징벌한 이야기를 그분 앞에서 자랑삼아 한 모양이야. 나에 대해 상세히 묻던 그분이 큰 보스에게 말했어. 그 아이를 그만큼 처벌했으면 앙갚음은 다 한 셈이 아닌가? 목숨만은 살려주게. 네, 네! 그 아이가 천하의 주먹이라는데 내가 경호원으로 쓰려고 하는데 나한테 주는게 어때? 네, 네! 이렇게 되여 나는 그분의 경호를 맡아보다가 곧 그분의 지시를 받고 너의 집으로 오게 된거야. 아, 워낙은 그랬었구나! 귀녀는 뭔가 갑자기 깨달은 느낌였다. 그분은 오늘 있게 될 일까지 미리 예견하고있었구나. 한주먹도 남자인데 귀녀곁에 남겨놓고 그분이 어떻게 안심할수 있었겠는가. 그분의 계획은 정말로 주도면밀했구나. 귀녀의 순결을 지키는데 한주먹이야말로 얼마나 합당한 인선인가. 귀녀는 자신이 아무리 손오공을 꿈꾸어도 여래의 손아귀에서 벗어날수 없음을 깨달았다. 이튿날, 귀녀는 아무도 몰래 옥상에 올랐다. 머리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니 기화요초같고 기암괴석같고 가지가지 산악같고 온갖 동물같은 천태만상의 휜구름이 멍울멍울 피여있었다. 귀녀는 구름들 속에서 사람모양의 구름을 찾았다. 손오공같기도 하고 자신의 모습같기도 한 구름이 푸른 하늘을 자유로이 헤염쳐가고있었다. 그런데 여래같기도 하고 그분의 모습같기도 한 구름이 앞을 막고있었다. 안돼! 여래에게 잡혀서는 안돼! 귀녀는 눈을 꼭 감았다가 다시 떴다. 하늘엔 손오공도 없고 여래도 없었다. 이름 모를 새 몇마리가 자유롭게 날아다니고있었다. 아아, 새되여 저 끝없이 넓고 푸른 하늘을 맘껏 날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가! 그랬다. 귀녀는 자신이 능히 새로 될수 있다고 생각했다. 간밤을 뜬눈으로 지새며 귀녀는 단단히 결심했다. 옥상에서 새되여 날리라고…귀녀는 푸른 하늘을 바라보다가 두 팔을 날개처럼 쭉 폈다. 귀녀야, 안돼! 아래에서 한주먹이 손을 흔들며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러댔다. 귀녀는 미소했다. 그리고 두팔을 날개처럼 저으며 날았다. 자유의 하늘로…  
5    새되여 나는 처녀 (5) 댓글:  조회:2556  추천:0  2013-10-29
중편소설 새되여 나는 처녀 (5) 김희수 5. 그분의 정체     그분은 해마다 꼭꼭 한번씩 찾아왔다. 그것도 귀녀의 생일날에 어김없이 찾아와서 귀녀에게 생일선물을 주고는 그날 밤차로 총망히 가버렸다. 대그룹의 총재로 사업이 그만큼 바빴을것이다. 그렇게 분망한 가운데서도 꼭꼭 시간을 짜내여 해마다 어김없이 찾아온다는것은 아버지에 대한 우정이 그만큼 두텁고 귀녀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크다는것을 말해줄것이다. 귀녀는 해마다 생일이 가까워오면 그분이 기다려진다. 이번엔 그분이 무슨 선물을 갖고 올가? 어릴 때는 그랬지만 자라면서 귀녀는 생일선물보다 그분이 보고싶어졌다. 그분은 아버지처럼 엄하지도 않고 만사통이나 한주먹처럼 귀녀의 자유를 박탈하지도 않았다. 그분은 종래로 귀녀에게 공부 잘 하느냐? 선생님 말 잘 듣느냐? 하는 따위의 말을 묻지 않았다. 그분은 귀녀와 마주 앉으면 자기가 다녀온 세계각지의 재미나는 이야기를 해주었고 시간이 있으면 귀녀와 함께 게임을 하기도 했다. 귀녀는 그분이 오는 날만은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되였다. 그분이 있을 때면 아버지도 만사통도 공부하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귀녀는 해마다 생일이 기다려진다. 귀녀가 대학시험에서 떨어진 해의 생일에는 그분이 노트북과 금목걸이를 가지고 와서 귀녀를 위로해주었다. 그분은 귀녀의 목에 금목걸이를 걸어주면서 호탕하게 웃었다. 허허, 우리 귀녀가 제법 숙녀가 됐구나! 시집가도 되겠는데… 아이… 귀녀는 부끄러워 얼굴이 익은 꽈리 같이 빨개졌다. 허허, 부끄러워 할줄 다 알구. 처녀는 처녀구나. 그분이 껄껄 웃다가 웃음을 거두고 물었다. 그래 공부를 더 해볼 생각이냐? 다음해에 대학시험에 한번 더 도전해보겠느냐? 아니, 전 자신이 없어요. 공부에 흥치도 없구요. 그렇다면 공부 그만두는것도 좋지. 딱 대학에 가야만 희망이 있는것도 아니다. 그럼 네가 해보고싶은 일을 해봐라. 그러나 뭘 하든지 영어와 컴퓨터를 알아야 한다. 알겠어요. 귀녀는 하루 빨리 자유를 찾기 위해 암암리에 싸웠다. 자신의 자유를 가로막는 아버지, 만사통, 한주먹과 말없이 싸웠다. 영어도 열심히 배우고 컴퓨터도 부지런히 배웠다. 배우는것이 곧 싸움이고 배워서 직업을 찾는것이 바로 싸움의 승리였다. 직업을 찾으면 아버지와 만사통이 감시하는 《감옥》에서 벗어나고 한주먹이 통제하는 고삐를 끊어버릴수 있을것이다. 아, 넌 자유의 하늘로 마음껏 날아라! 귀녀는 어느날 조롱속에 갇힌 새를 놓아주었다. 아, 자유! 귀녀는 정말로 자유를 갈망했다. 만사통과 한주먹이 오던 그날부터 귀녀는 옥이랑 철이랑 다른 동학들처럼 자유롭게 뛰놀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몹시 갈망했었다. 하지만 그 자유는 묘연한것이였다. 아득한 저 밤하늘의 별처럼 눈앞에 보이면서도 만질수도 딸수도 없는 그런것이였다. 그런데 그 자유가 이제는 고층건물의 옥상에 있는것이다. 계단만 부지런히 오르면 따올수 있는것이다. 그랬다. 귀녀는 23세가 되는 해에 마침내 직업을 찾았다. 어느 회사에 정식 취직한것이다. 귀녀는 자유만세! 하고 소리높이 웨쳤다. 하지만 귀녀는 모르고있었다. 자신은 조롱속에 갇힌 새처럼 이미 운명이 그렇게 인위적으로 주어져 있다는것을. 새의 주인이 문을 열어주지 않는 한 자신의 힘으로는 조롱속에서 빠져나가기 어렵다는 사실을. 회사에선 사흘후에 출근하라고 했다. 마침 이튿날은 귀녀의 23세 생일이다. 그래서 귀녀는 자신과 한주먹밖에 모르고있는 이 기쁜소식을 생일상에서 선포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면 아버지도 기뻐하고 그분도 기뻐하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 생일에 그분이 오지 않았다. 왜 그분이 오지 않았어요? 귀녀는 해마다 어김없이 찾아오던 그분이 오지 않으니 서운해서 물었다. 아버지가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분은 사업이 바빠서 오지 못하고 생일선물만 보내왔다. 선물? 무슨 선물을 보내왔어요? 그 선물을 보여주기전에 내가 너에게 할 이야기가 있다. 아버지는 엄숙한 어조로 말하면서 귀녀를 자신의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문을 닫았다. 귀녀는 아버지의 전에 없던 행동이 놀랍기도 하고 의아하기도 했다. 아버지가 여태껏 이렇게 은밀하게 딸과 담화하기는 처음이였던것이다. 아버지는 평소에는 피우지 않던 담배를 꺼내 불을 붙여 뻑뻑 빨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어라. 그리고 놀라지도 말고 이 아버지를 원망하지도 말아라. 아버지가 이렇게 허두를 떼자 귀녀는 더욱 이상한 눈길로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먼저 그분에 대한 이야기를 할테니 잘 들어라. 아버지는 귀녀가 여태껏 모르고있던 그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분은 사회에서 명망이 높은 기업가이지만 혼인생활은 불행하였다. 그분이 처음 결혼할 때는 지금처럼 대부호는 아니였지만 자그마한 부자는 되였다. 다른 사람의 소개로 한 녀자와 마음이 맞아 결혼했는데 첫날밤을 지내고 나서 그분은 몹시 실망했다. 색시는 처녀가 아니였던것이다. 그분이 영문을 묻자 신부는 자신은 운동을 많이 해서 처녀막이 일찍 파렬된 모양이라고 변명했다. 그분은 미심쩍어하면서도 그렇게 믿었는데 그후 그분은 안해가 처녀때 두번이나 류산까지 한 적이 있다는것을 발견했다. 그분은 자신을 속인 안해를 용서할수 없었다. 즉시 리혼한 그분은 꼭 숫처녀를 얻고야 말리라 마음먹었다. 그분의 장사는 갈수록 잘되여서 그분에게 시집오겠다는 처녀는 줄을 섰다. 하지만 그분의 조건에 합격되는 숫처녀는 없었던것이다. 사처에 수소문했으나 숫처녀는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분은 생각다못해 나이 어린 처녀를 선택하기로 마음먹고 18세의 처녀와 결혼을 약속하고 3년후에 결혼식을 올렸다. 그런데 그 처녀도 숫처녀가 아닐줄이야. 그분은 화가 났다. 화가 나도 여간 난것이 아니여서 가장집물을 마구 짓부시고 두번째로 리혼했다. 그때로부터 그분은 이 세상 처녀들을 믿을수 없었다. 숫처녀는 없다! 숫처녀는 없다! 그분은 그렇게 웨치며 괴로워했고 분노했다. 그러면서도 그분은 꼭 숫처녀와 결혼하고야 말리라 맹세했다. 아버지는 말을 잠시 끊고 다시 담배불을 붙여 물었다. 귀녀는 그분의 혼인상황에 대해 간단히는 알고있었다. 그분이 해마다 자기의 생일에 혼자 오는것을 보고 귀녀는 아버지에게 그분은 왜 동부인하지 않고 언제나 혼자 오느냐고 물은적이 있었다. 그때 아버지는 그분은 부인과 헤여진후로 혼자 살고있다고 간단하게 말했었다. 그래서 더 묻지 않았는데 오늘 와서 알고 보니 이런 사연이 있었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귀녀는 그분의 불행한 혼인에 동정은 되면서도 끝까지 숫처녀를 얻으려는 행위에 대해서는 리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아버지가 왜서 자신에게 엄숙한 표정으로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는지 아리송했다. 아버지가 담배한대를 다 피우고 나서 서랍에서 정교하게 포장한 물건을 꺼내서 귀녀에게 건네주었다. 이건 그분이 너에게 주는 생일선물이다. 이건 비단 생일선물일뿐만아니라 특별한 의미가 있는 선물이란다. 어서 풀어보아라. 귀녀는 천천히 포장을 풀었다. 귀녀의 손끝에서 포장이 한꺼풀 한꺼풀 벗겨지면서 자그마하고 정교한 함이 나타났다. 함을 열자 안에는 붉은빛과 푸른빛을 뿜는 보석반지가 들어있었다. 아니, 이건?! 귀녀가 놀라서 눈이 동그래지자 아버지가 설명했다. 그건 약혼반지다. 웬 약혼반지?! 그분이 너에게 청혼하는 반지다. 그분은 너와 즉시 결혼하려고 한다. 그분이?! 나랑… 귀녀는 깜짝 놀랐다. 그리고 이건 분명 잘못 들은거라고 자기의 귀를 의심했다. 아버진 지금 무슨 말을 하고있는거예요? 그분이 나랑 결혼하려하다니?! 이건 말도 안되는 소리예요. 뭐가 말도 안되는 소리야? 그분이 어떤 분이시냐? 성장어른도 그분의 앞에서는 허리를 굽실거린다. 알겠니? 네가 그분의 부인으로 되는건 영광이란 말이다. 네?! 귀녀는 너무도 놀라서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초롱초롱하게 빛나던 두눈이 초점을 잃었다. 아버지가 어찌 이럴수 있단 말인가? 아버지가?! 갑자기 아버지가 낯설어 보였다. 아버지! 그분은 아버지의 친구이고 또 나랑은 아버지벌이 되는 분인데 어찌… 아버지의 친구인데는 어때서? 송경령도 아버지의 친구 손중산에게 시집가지 않았느냐? 아버지! 저는 송경령이 아니고 그분도 손중산이 아니예요! 그분께 전해주세요. 전 그분이랑 결혼할수 없다구요! 귀녀야, 이건 네 운명이다. 받아들여라! 너에겐 받아들일 의무만 있을뿐 거절할 권리는 없다. 왜요? 왜?! 우리는 그분의 은혜를 너무 많이 입었다. 갚을 방법이 없다. 그래서 딸을 파나요? 너…너…왜 그렇게만 생각하느냐? 그분은 아주 훌륭한 분이시다. 그리고 너를 몹시 사랑하고. 너도 그분을 좋아하지 않느냐? 그분이 훌륭한 분이란걸 알아요. 그리고 저도 그분을 좋아해요. 하지만 이건 사랑이 아니예요! 사랑이 별거냐? 서로 마음을 맞춰가며 살아가면 그게 사랑이지. 아니, 전 그럴수 없어요! 귀녀는 보석반지를 아버지한테 던지고는 아버지의 방을 뛰쳐나왔다. 그분이 어찌 내게 이럴수 있단 말인가?! 아버지가 어찌 이럴수 있단 말인가?!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있을수 있단 말인가?! 귀녀는 믿을수가 없었다. 의혹을 품고 밖으로 달려나왔다. 무작정 뛰고싶었다. 귀녀는 오토바이를 잡아탔다. 어느새 한주먹이 따라왔다. 어딜 가려고? 귀찮았다. 속상해죽겠는데 감시병까지 따라오다니… 상관하지 말아요! 안돼! 내가 몰께. 싫어요. 비켜요! 하지만 한주먹을 떼여버릴 힘이 없었다.   �날�����cp:a��스했다. 그분의 자애로운 미소를 대할 때면 귀녀는 그분이 진짜 아버지인듯한 착각에 빠지곤 했다.   너무나 일찍 어머니를 잃은 귀녀에게 아버지는 전부의 믿음이였다. 어머니가 생전일 때 아버지는 출퇴근할 때마다 꼭꼭 어머니한테 키스하곤 했다. 그리고 곁에서 눈이 동그래서 지켜보는 귀녀에게 뻑 소리나게 뽀뽀해주는것도 잊지 않았다. 그런데 그분이 나타나면서부터 아버지는 귀녀에게 뽀뽀를 해주지 않았다. 어머니노릇과 아버지노릇을 함께 해오던 아버지한테서 자애로운 어머니의 모습이 사라지고 엄한 아버지의 의무만이 남은것 같았다. 얘야, 그분이 너한테 컴퓨터까지 사주었는데 잘 배워야 하지 않겠느냐. 만사통선생님을 애먹이지 말고 고부고분 잘 배우거라. 아버지의 따뜻한 손이 귀녀의 어깨를 다독인다. 오래간만에 《모성애》를 느끼며 귀녀는 가슴이 뭉클해졌다. 당장 아버지의 품에 안겨 막 어리광을 부리고싶었고 어릴 때 경험했던 수염에 찔리는 얼얼한 뽀뽀를 받아보고싶었다. 하지만 아버진 이내 손을 걷어들이고 거실로 들어간다. 순간 귀녀는 억울함과 안타까움이 뒤범벅이 되면서 저도몰래 눈물이 샘솟는다. 아버지! 속으로 아버지를 부르는 순간 그분의 얼굴이 불쑥 떠오른다. 이마에 살짝 키스를 해주던 자애로운 그분의 얼굴이 아버지의 뒤모습을 지우며 또렷이 떠오른다. 귀녀, 빨리 와서 공부해요! 그때 짜증 섞이고 신경질적인 째지는듯한 왜가리소리가 들려온다.    
4    새되여 나는 처녀 (4) 댓글:  조회:2476  추천:0  2013-10-29
중편소설 새되여 나는 처녀 (4) 김희수 4. 한주먹과 만사통   귀녀가 제일 미워하는 사람은 만사통이고 다음은 한죽먹이였다. 귀녀는 정말로 만사통이 미웠다. 그렇다고 이가 갈리도록 증오하는것은 아니였다. 귀녀는 지금까지 누구를 이가 갈리도록 증오한적이 없었다. 그저 자신에게 공부를 강요하는 만사통이 싫었을뿐이다. 만사통과 한주먹이 온날은 귀녀의 일생에서 제일 비참한 날이였다. 그들이 오면서부터 귀녀는 자유를 잃었기때문이다. 10년전 비가 구질구질 내리던 날이였다. 귀녀가 하교하여 집에서 노는데 아버지가 안경을 낀 30대의 녀인과 씩씩해 보이는 18~19살 되는 소년을 데리고 왔다. 아버지는 먼저 안경을 낀 녀인을 가리키며 귀녀에게 말했다. 인사해라. 이분은 세상에 모르는것이 없다고 해서 《만사통》이라고 불리는 녀박사선생님이다. 이제부터 네가 학교에 갔다오면 이 선생님한테서 공부를 배워야 한다. 싫어요! 학교에 선생님이 있으면 됐지 왜 집에 또 선생님이 있어야 해요? 전 싫어요! 싫어도 배워야 하고 좋아도 배워야 해! 그리고 여기 이 청년은 성이 한씨인데다가 벽돌장도 한주먹에 쳐서 깬다고 《한주먹》이라 불리는 무술고수인데 이제부터 너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데려오고 할것이니 그리 알아라. 학교엔 철이랑 옥이랑 함께 가면 될텐데 뭘…싫어요! 싫든 좋든 아버지 말대로 해야 한다. 알겠니? 아버지는 무조건 귀녀에게 그렇게 하도록 강요했다. 귀녀는 그것이 싫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이튿날부터 한주먹이 귀녀를 학교에 데려다주었다. 한주먹은 말수가 적었다. 그저 필요한 말만 했다. 또한 한주먹은 한족 말은 잘 했지만 조선말은 잘 번지지 못했다. 귀녀는 한주먹이 방금 말을 배우기 시작한 아이처럼 떠듬거리면서 하는 조선말이 우습고도 재미있었다. 한주먹오빠, 오빠는 정말 한주먹에 벽돌을 깰수 있어? 귀녀는 한주먹이 주먹이 강하다는데 호기심을 가지고 학교 가는 길에서 벽돌을 하나 주어들고 한주먹에게 주면서 깨여보라고 요구했다. 한주먹은 말없이 벽돌을 왼손에 받아들고 오른손바닥을 칼날처럼 세워 탁! 하고 내리쳤다. 그러자 벽돌절반이 착 잘라져 나가며 땅바닥에 뚝 떨어졌다. 와, 오빠 대단해! 귀녀는 엄지손가락을 내밀면서 탄복했다. 아버지는 한주먹을 아저씨라 부르라고 했지만 귀녀는 오빠라고 불렀다. 귀녀에게는 한주먹보다 더 큰 외사촌오빠가 있었기때문이다. 잘라져나가고 남은 벽돌을 던지며 손을 탁탁 터는 한주먹을 놀란 눈길로 바라보면서 귀녀는 외사촌오빠랑 아버지보다 주먹이 더 센 한주먹을 숭배했다. 귀녀야, 이제부터 이 한주먹이 널 보호한다! 누가 널 조금이라도 건드리는 놈이 있다면 그놈의 대갈통을 이 주먹으로 그냥! 한주먹은 무쇠같이 드센 주먹을 흔들어댔다. 그러자 귀녀는 깔깔 웃었다. 오빠가 보호하지 않아도 누가 날 건드리는 사람이 없어요. 옥이랑 철이랑 놀면서 우린 종래 싸운 적이 없어요. 지금은 그래도 앞으로는 그런 놈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 세상엔 나쁜 놈들이 적지 않단 말이다. 귀녀는 나쁜 놈들이 있다는것은 믿고싶지 않았지만 영웅호걸같은 한주먹이 곁에서 지켜주는것이 싫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하교할 때부터 귀녀는 한주먹이 싫어졌다. 그날 한주먹은 귀녀를 학교문앞까지 데려다 주었으며 귀녀가 교실로 들어가는것을 먼발치에서 지켜보고서야 물러갔다. 그런데 귀녀가 하교하여 옥이랑 철이랑 함께 학교문을 나서는데 기다리고있던 한주먹이 귀녀의 손을 꼭 잡았다. 오빠, 이걸 놔요. 난 저절로 갈수 있어요. 옥이랑 철이랑 함께 갈래요. 그애들은 우리랑 한마을에서 살아요. 안된다. 사장님이 널 놀음에 탐한다고 곧 집으로 데리고 오라고 하셨다. 한주먹은 귀녀의 아버지를 사장님이라고 불렀다. 그녀는 싫어요! 하고 항의했지만 한주먹은 그런 귀녀를 억지로 끌고 갔다. 그때로부터 귀녀가 밖으로 나오기만 하면 한주먹이 그림자처럼 붙어 다녔다. 1년 365일을 한시도 귀녀곁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처음에는 걸어서 호송했지만 그분이 오토바이와 승용차를 사보낸 후에는 한주먹이 직접 운전하면서 오토바이와 승용차에 번갈아가며 귀녀를 태워서 학교에 데려다주고 데려오고 했다. 귀녀는 다른 애들은 혼자서 자유롭게 학교로 오가는데 왜서 자기만은 특수보호를 받아야 하는지 리해할수 없었다. 내가 아버지에게 하나밖에 없는 천금 보배딸이기에? 아니, 그건 리유가 될수 없어. 옥이도 그 집의 무남독녀 외동딸이 아닌가. 하지만…우리 집이 남보다 부유해서? 아무리 부유한 집도 가정부나 가정교사가 있는 집은 있어도 학생의 경호원을 둔 집은 없지 않은가. 귀녀는 아버지에게 이런 《과보호》가 싫다고 몇번이나 항의했지만 소용없었다. 아버지는 싫어도 안돼! 하고 한마디로 귀녀의 항의를 눌러버렸다. 귀녀는 한주먹이 무작정 싫은것만은 아니였다. 학급의 아이들은 귀녀에게 한주먹같은 영웅호걸다운 보호자가 있는것을 몹시 부러워했다. 소학교졸업학년 때였다. 한번은 하교하는 길에서 옥이와 철이는 앞서가고 귀녀는 소시지를 사먹느라고 한주먹과 함께 뒤떨어져 걸었다. 그런데 앞서가던 옥이와 철이가 3명의 소년강도들에게 돈을 빼앗기고 울고있었다. 그자들은 길목을 지키고있다가 전문 학생들의 돈을 빼앗는 건달패거리였다. 귀녀네가 다가갔을 때까지도 그자들은 그 자리에 서서 빼앗은 돈을 세고있었다. 한주먹은 울고있는 옥이와 철이에게 저 애들이냐? 하고 묻더니 곧장 건달패거리에게 다가가 호령했다. 야, 이 새끼들아! 어서 저 애들에게 그 돈을 돌려줘! 건달패거리들은 한주먹보다 몇살 더 어렸지만 키는 한주먹보다 머리하나는 더 컸다. 그들은 한주먹이 혼자인것을 보고 어이없다는듯 웃으며 말했다. 야, 임마! 죽고싶지 않으면 상관하지 말고 꺼져라! 한주먹도 그자들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야, 이 새끼들아! 날 화나게 하지 말고 돈을 내놓고 어서 썩 물러가라! 공연히 날 화나게 했다간 뼈다귀도 못 추릴 줄 알아라! 아니, 이 싸가지없는 새끼 좀 봐라. 살기가 싫어졌나 보다! 건달패거리들은 칼을 빼들고 달려들었다. 귀녀는 무섭고 오싹 소름이 끼쳐 한주먹오빠, 어서 도망쳐요! 하고 소리쳤다. 하지만 한주먹은 세 놈이 련속 찔러오는 칼을 살짝살짝 피하면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더니 잠깐사이에 세 놈을 보기 좋게 때려눕혔다. 그리고 그놈들이 빼앗은 돈을 도로 찾아서 옥이와 철이에게 돌려주었다. 그 일이 있은후 옥이와 철이의 입에서 건달패거리를 일거에 때려눕힌 《영웅》 한주먹의 이야기를 얻어들은 학급아이들은 모두 그런 《영웅》보호자를 둔 귀녀를 몹시 부러워했다. 어깨가 으쓱해진 귀녀는 한주먹을 청해 애들앞에서 벽돌장을 한주먹에 깨는 표현을 보여주게 했다. 한주먹은 밖에서 귀녀를 자신의 시선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외에는 귀녀의 청을 뭐든지 다 들어주었다. 그리고 한주먹은 귀녀에게 조금이라도 집적거리는 자에 대해선 용서가 없었다. 귀녀가 고급중학교를 나닐 때였다. 한주먹은 하교한 귀녀를 승용차에 태우고 집으로 향했다. 귀녀의 별장식 저택은 교외에 있었다. 차가 금방 교외에 들어섰을 때 귀녀는 차를 세우라고 했다. 집으로 곧장 들어가기 싫었다. 집으로 들어가면 만사통이 또 붙잡고 공부해라고 성가시게 닦달할것이다. 귀녀는 정말로 감옥같은 집이 싫었다. 그래서 귀녀는 차에서 내려서 좀 바람이나 쏘이다가 들어가자고 했다. 벌써 해가 서산마루에 꼴깍 넘어가려고 얼굴을 절반나마 감추고있었다. 차에서 내린 귀녀는 길옆 둔덕에 올라서서 두 팔을 벌리고 곱게 불타는 석양빛을 바라보았다. 옥수수대가 우수수 설레며 선들선들한 가을바람이 불어온다. 귀녀는 심호흡을 하며 시원한 바람을 마음껏 들이마셨다. 귀녀야, 빨리 들어가자. 사장님에게 곧 들어간다고 전화했는데 늦었다간 욕먹을라! 한주먹이 아래에서 재촉했다. 귀녀는 석양에 곱게 물든 하늘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좀 더 놀자요! 오빠도 올라와 구경하세요. 너무 멋져요! 사장님이 욕할텐데…귀녀야, 너 어디도 가지말고 거기서 기다려라. 내 저 쪽에 가서 일 좀 보고 와야겠다. 어디도 가지 말고 거기 있어야 한다! 알았어요! 귀녀는 황홀한 석양빛에 도취되여 얼굴도 돌리지 않고 대답했다. 한주먹은 소변보러 옥수수밭 쪽으로 달려갔다. 귀녀는 혼자서 빨갛게 타오르는 석양빛을 감상하고있었다. 그때 귀녀의 시선에 자전거대오가 잡혀왔다. 4명의 청년이 탄 자전거는 점점 귀녀 쪽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자전거대오는 귀녀의 발아래까지 다가와서 갑자기 멈춰섰다. 그리고 자전거에서 내린 청년들은 넋을 잃고 귀녀를 쳐다보았다. 와, 글래머 팔등신 미녀다!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야! 저런 절세가인을 한번만 맛볼수 있다면 당장 감옥에 가도 좋아! 그래, 래일 감옥에 가더라도 오늘 저 아가씨랑 놀아보자! 마른침을 꼴깍 삼키던 패거리중에서 한자가 언덕으로 뛰여올라 귀녀한테로 다가오며 지껄였다. 어이, 아가씨 나랑 친하자! 귀녀는 놀라고 긴장했지만 한주먹이 있기에 두렵지 않았다. 귀녀는 주위를 살펴보았다. 그런데 한주먹이 보이지 않았다. 언덕으로 올라온 자는 귀녀를 끌고 아래로 내려갔다. 다른 자들도 기다렸다는듯이 서로 귀녀를 안아보려고 날쳐댔다. 그제야 귀녀는 사지를 떨면서 소리쳤다. 한주먹오빠! 한주먹오빠! 마침 일을 다 보고 옥수수밭에서 나오던 한주먹은 귀녀의 부름소리를 듣고 쏜살같이 달려왔다. 그는 어중이떠중이패거리들이 귀녀를 희롱하는것을 보고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곧장 그들한테 다가가서 호령했다. 이 새끼들아! 당장 손을 떼라! 4명의 건달패거리들은 자기들보다 키가 작은 한주먹이 혼자서 호통치자 얕잡아보고 소리쳤다. 아, 이 간 큰 놈 봐라. 어디라고 감히 어른들한테 덤벼드는거야! 살기가 싫어졌나 보다. 그러잖아도 요즘 주먹이 근질거리던 참인데 저놈부터 늘씬하게 패주고 보자! 두 놈이 먼저 주먹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한주먹의 적수가 아니였다. 한주먹은 삽시간에 4명의 건달들을 모두 때려눕혔다. 그리고 한주먹은 귀녀한테 다가와 관심조로 물었다. 어디 다친데 없어? 아니. 없어요. 귀녀야, 미안하다. 네가 몹시 놀랐겠구나! 괜찮아요. 내가 자리를 떴기에 네가 하마터면 욕을 볼번했구나. 다음부턴 내가 네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겠다. 감사해요. 오빠! 오빠가 있기에 난 아무일도 없었잖아요. 이 일이 있은후 귀녀는 한주먹을 더 좋아하게 되였다. 그녀는 한주먹에게서 녀자호신술을 배우기도 했다. 하지만 주먹을 마구 휘두르는 한주먹때문에 다툰적도 있었다. 고3일 때 철이가 귀녀에게 사랑을 고백했다. 귀녀는 옥이가 오래전부터 몰래 철이를 좋아한다는것을 알고있었다. 귀녀는 아직은 련애를 하고싶지 않았고 또 철이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옥이가 철이를 좋아하고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마음에 누구도 받아들이고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철이는 집요했다. 하교할 때 학교대문을 나서는 귀녀의 손을 잡아끌며 데이트를 하자고 졸라댔다. 그런데 이 장면을 학교대문어구에서 귀녀가 하교하기를 기다리고있던 한주먹이 목격하게 되였다. 한주먹은 다짜고짜로 달려가서 철이를 반죽음이 되도록 때려주고 나서 으름장을 놓았다. 야, 이 새끼야! 네가 이후 다시 한번 귀녀에게 집적거렸다간 없을 줄 알아라. 내가 귀녀와 련애하는데는 어쨌다는 말이요. 철이는 그래도 입은 살아서 주먹으로 코피를 닦으며 대답질했다. 이 새끼야! 네가 다른 녀자애들이랑 련애한다면 난 상관하지 않는다. 하지만 귀녀하고만은 련애해선 안된다! 절대 안된단 말이다! 네 새끼가 이후에 귀녀의 손을 다시 한번 잡았다간 네 놈의 손모가지를 끊어놓을 줄 알아라! 그리고 다시 한번 입으로 귀녀와 집적거리는 말을 한마디로도 번지기만 하면 네 놈의 혀바닥을 잘라버릴테다! 난 당신을 영웅호걸로 알고 숭배했는데 오늘 보니…당신 깡패요? 뭐요? 법제국가에서 누굴 위협하는거요? 야, 이 새끼야, 난 깡패보다도 더 무서운 사람이다. 귀녀는 내 친동생이나 다름없다. 난 귀녀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감옥도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리고 다시 한번 경고하지만 난 말하면 말한대로 하는 사람이다. 네 새끼가 혀바닥이나 손모가지가 잘려나가지 않겠으면 귀녀를 멀리해라! 그후 철이는 정말로 겁을 먹었는지 귀녀한테 더 집적거리지 않았다. 하지만 한주먹이 철이를 때리던 그날 귀녀는 한주먹과 한바탕 다투었다. 왜 철이를 때려요? 철이에게 무슨 잘못이 있다고 매를 대요? 그 새끼가 감히 네 손목을 잡았잖아. 널 건드리는 자는 누구든 가만두지 않겠어! 그앤 날 무례하게 대하지도 않았어요. 그저 데이트하자고 손목한번 잡은것 뿐이예요. 난 련애할 자유도 없나요? 사장님이 말했잖아? 넌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련애해선 안된다구. 난 대학 안 가요! 내가 련애하든 뭐든 모두 내 자유니깐 오빠는 상관하지 말아요! 난 끝까지 상관할꺼다! 네 안전을 책임지는건 내 직책이니까. 이후 어떤 놈이든 네 털끝 하나 건드리면 가만두지 않을테다! 이건 사장님의 분부이기도 하다. 오빤 왜 이래요? 난 아빠도 밉고 오빠도 미워요. 미워! 앵돌아진 귀녀는 한동안 한주먹과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반감이 생긴 귀녀는 정말로 아무 남자애하고나 련애하고싶었다. 아니, 련애하는것처럼 흉내라도 내보이고싶었다. 하지만 그랬다간 그 남자애가 철이처럼 한주먹의 주먹세례를 받을까봐 그런 생각을 일단 접어두었다. 귀녀는 정말로 아빠나 한주먹이 자신의 일에 지나치게 간섭하는게 리해되지 않았다. 귀녀가 한주먹과 말을 다시 하게 된것은 그로부터 2주일후였다. 그날 하교하여 차가 교외에 들어섰을 때는 해가 지고 어둑어둑할 때였다. 헤드라이트불빛에 앞에 누군가 쓰러져 있는 사람이 보여서 한주먹은 브레이크를 밟으며 차를 급정거했다. 한주먹과 귀녀가 차에서 내려 웬일인가 살피려는데 쓰러져있던 자가 벌떡 일어났고 난데없는 몽둥이를 든 괴한들이 10여명이나 나타나서 그들을 에워쌌다. 모두가 복면강도였다. 후에 안 일이지만 이자들은 귀녀네가 부자집이란 정보를 입수하고 귀녀를 랍치하려고 며칠간의 정찰을 거쳐 귀녀가 제일 늦게 하교하는 기회에 행동했던것이다. 한자가 학교대문어구에서 기다리고있다가 귀녀가 하교하는것을 보고 전화로 알리고 다른 14명의 강도가 교외에서 준비하고있다가 덮쳤던것이다. 귀녀는 온몸이 오싹하여 뒤걸음치고 한주먹이 예리한 눈길로 그자들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너희들은 웬 놈들이냐? 무슨 목적으로 우리 앞을 가로막는거냐? 으하하! 하하! 넌 이 아가씨를 우리한테 맡겨놓고 집에 가서 현금 100만원을 준비해 놓고있거라! 이 새끼들아! 너희들이 내 동생을 랍치하려구? 어림도 없다! 흥! 네 놈이 주먹 좀 쓴다는걸 알고있다. 하지만 네 놈이 혼자서 우릴 당할 줄 아느냐? 자, 형제들, 저 놈을 족쳐라! 강도들이 일제히 몽둥이를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한주먹은 귀녀를 보호하면서 강도들과 맞서 싸웠다. 한주먹은 비발치는 몽둥이속에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며 날아오는 몽둥이를 피했다. 그러다가 한 놈의 몽둥이를 빼앗는 순간 다른 놈의 몽둥이에 어깨를 얻어맞았다. 그는 통증도 느낄 겨를이 없었다. 그는 즉시 몽둥이를 휘두르며 반격했다. 강도들은 무협영화에 나오는 리련걸을 만난듯 어안이 벙벙하여 자기들이 어떻게 몽둥이에 맞아 쓰러졌는지도 몰랐다. 삽시간에 12명의 강도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사태가 글러지자 마지막 남은 2명의 강도가 귀녀를 붙잡고 비수로 위협했다. 야, 임마! 너 어서 몽둥이를 놓고 꿇어앉아라! 그렇지 않으면 이 아가씨를 죽여버릴테다! 한주먹은 강도가 비수를 귀녀의 목에 대고 위협하자 즉시 몽둥이를 놓고 꿇어앉았다. 제발 내 동생을 다치지 말아! 너희들이 날 죽일테면 죽여라! 그러나 내 동생한테는 손을 대면 안된다! 으흐흐! 네 놈이 의리는 있구나! 한 강도가 귀녀를 붙잡은 채 그녀의 목에 칼을 대고있고 다른 한 강도가 다가와 몽둥이를 주어들고 한주먹을 사정없이 내리쳤다. 귀녀는 한주먹이 얻어맞는것을 보자 공포가 사라지고 놈들에 대한 증오가 불타올랐다. 그녀는 자기를 붙잡은 자가 한주먹이 얻어맞는것을 구경하면서 경계를 늦추는 순간 한주먹에게서 배운 녀자호신술로 그자의 요해처를 힘껏 걷어찼다. 그리고 비명을 지르는 그자에게 재차 일격을 가해 완전히 쓰러뜨렸다. 그와 함께 쓰러졌던 한주먹이 번개같이 몸을 일으키며 다른 한자를 쓰러뜨렸다. 그리고 자기도 쓰러졌다.… 입원했던 한주먹이 정신차리자 곁에서 지키고있던 귀녀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한주먹오빠, 정신차렸군요! 귀녀야, 넌 다친데 없냐? 전 괜찮아요. 오빤 나 때문에 하마터면… 허허, 넌 내 친동생과 같은데 난 널 위해선 목슴까지 바칠수 있어. 그 말에 귀녀는 가슴에 찡한 감동을 받았다. 자신의 자유를 제한하는 한주먹이지만 자신에겐 또 절대 충성하는 한주먹이 아닌가. 귀녀는 아버지의 분부에 절대 복종하는 한주먹이 미웠지만 한주먹에게도 무슨 말못할 고충이 있을거라고 생각되였다. 그때로부터 귀녀는 한주먹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신상에 대해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한주먹은 버림받은 아이인데 어릴 때부터 무술을 배웠다고했다. 워낙 말수가 적은 한주먹은 자신의 과게에 대해 물으면 간단하게 한마디 말로 난 친부모가 누구인지도 몰라. 어릴 때부터 한 스승에게서 무술을 배웠지. 하고 말할 뿐이다. 귀녀는 그럴수록 한주먹의 과거에 대해 몹시 궁금했다. 오빤 고아원에서 자랐어요? 학교는 어디까지 다녔어요? 난 버림받은 아이야. 생모는 날 싸서 버린 포대기에 내가 조선족이라는것과 출생일을 적어놓았을 뿐이야. 아이없는 부부가 날 입양했는데 불행하게도 그들은 내가 어릴 때 선후로 사망했어. 7살때부터 난 산재지구에서 빌어먹으며 살았어. 그러다가 스승을 만났는데 그는 나를 양자로 삼고 무술을 가르쳤어. 그리고 학교에도 다니게 했어. 내가 중학교에 갓 들어갔을 때 스승이 교통사고로 돌아갔어. 난 또다시 의지가지 없는 고아로 되였지. 그후엔? 한주먹은 그후의 일에 대해선 더 이야기하지 않았다. 귀녀가 아무리 따져 물어도 입을 열지 않았다. 한주먹오빠가 어떻게 되여 우리 집에 오게 되였을까? 그에겐 꼭 가슴아픈 사연이 있을거야. 정말 불쌍한 사람이구나. 한주먹은 미우면서도 동정되고 또 호감이 가는 면도 있었지만 만사통은 어쩐지 밉기만 했다. 만사통은 세상에 모르는것이 없을 정도로 아는것이 많았지만 신경질 또한 많았다. 하교하여 집에 돌아오면 꼼짝달싹 못하게 붙잡고 공부시키는것만도 얄미운데 조금만 정신을 딴데 팔아도 욕설을 퍼붓는 왜가리소리가 몹시 귀에 거슬렸다. 귀녀는 커가면서 만사통이 로처녀여서 신경질이 많은것이 아닐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한번 아버지와 그분이 주고받는 대화를 엿듣고 귀녀는 만사통이 첫사랑에서 실패한 이후로 마음의 문을 꽁꽁 닫고 여태껏 로처녀로 시집도 가지 않고있다는걸 알았다. 귀녀는 언제부터였는지 만사통이 아버지를 좋아하고있다는걸 눈치챘다. 대학시험에서 락방된후 귀녀는 컴퓨터를 배우면서 만사통이 메일 편지함을 열때 몰래 비밀번호를 기억했다. 그리고 한밤중에 몰래 만사통의 편지함을 열어보았다. 편지함에는 만사통이 자기절로 자기한테 보낸 편지가 그득했다. 대부분이 아버지에 대한 사모의 마음을 토로한 편지였다. 세상에 모르는것이 없다고 만사통이라 불리는 넌 남녀간의 감정문제에선 정말 바보인가봐. 첫사랑에 실패하고 또 자신한테 곁눈 한번 팔지 않는 사람때문에 매일매일 밤잠도 설치고 밥맛도 잃어가다니. 첫사랑을 할 때처럼 그 사람을 뜨겁게 뜨겁게 사랑하면서 그 사람앞에서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을 위해서라면 이 심장을 꺼내 바칠수도 있습니다! 하고 고백하는 꿈까지 꾸다니. 그 사람이 고인이 된 부인만 마음에 꼭 새겨두고 잊지 못하고있다는것을 알면서도 그 사람의 부인이 되고싶어 미칠지경이 되다니! 넌 정말 바보야. 그 사람은 그저 네가 가르치는 학생의 아빠일뿐인데, 그 사람이 널 마음에 두지도 않고있는데 혼자서 짝사랑에 빠져 헤여나오지 못하고있다니. 그리고 그 사람을 사랑하면서 그 사람의 딸에겐 신경질만 쓰고 욕설만 퍼붓다니. 넌 기실 그앨 미워하지 않는데도 그 아일 가르치면서 왜 자꾸 신경질이 나는지 너로서도 모르겠지. 하지만 그 아이 방에 가서 그 아이가 자는 모습을 몰래 훔쳐보면서 너는 그 아이가 네 딸처럼 착각되기도 했지. 요 귀여운 내 딸아! 날 한번만 엄마라고 불러주렴. 하고 속으로 중얼거리기도 했지. 아, 너는 정말 바보중의 바보야…이런 내용의 편지가 수십통이나 되였다. 귀녀는 만사통이 측은하게 생각되였다. 워낙 이 신경질 많은 로처녀의 가슴에도 뜨거운 사랑이 있었구나.   
3    새되여 나는 처녀 (3) 댓글:  조회:2783  추천:0  2013-10-29
중편소설 새되여 나는 처녀 김희수   3. 아버지와 그분     화내지 마세요, 아버지… 락서한 《반성문》을 내흔들며 날벼락을 내리려는 아버지앞에서 귀녀는 선손을 썼다. 이제부터 도망치지 않겠어요. 그리고 아버지 말씀대로 영어랑 컴퓨터랑 착실히 배우겠어요! 그렇게 새로운 결심을 다지는 귀녀의 표정은 진지했다. 여태껏 귀녀는 아버지, 만사통, 한주먹에게 맘속으로 항의해 왔고 반역해 왔던것이다. 학급에서 줄곧 첫손에 꼽히던 귀녀의 학습성적이 만사통과 한주먹이 오면서부터 점점 내려가기 시작했는데 초중에 올라가선 중등에 머물렀고 고중에 진학해선 말등으로 하강선을 그었다. 만사통이 틀어쥘수록 귀녀는 공부에 점점 흥미를 잃어갔다. 아예 일부러 공부를 하려고 들지 않았다. 만사통이 시키는 공부엔 기계적으로 대처했고 학교에선 수업시간에 남몰래 《서유기》를 읽으며 손오공처럼 구름을 타고 자유롭게 하늘로 날아다니는 환상에 잠기곤 했다. 귀녀는 락서한 《반성문》을 만사통에게 넘겨주면서 문뜩 이러한 반항이 너무나 무력하고 또 자신에게 아무런 리득도 없다는것을 느꼈다. 동시에 이 《감옥》에서 완전히 뛰쳐나가는 유일한 길은 자립의 길이라는 도리를 번개같이 깨달았다. 어서 마음을 고쳐먹고 영어도 배우고 컴퓨터도 익혀 직업을 찾자. 그러면 아무도 간섭하는 사람이 없을것이다. 손오공처럼 자유롭게 하늘을 날수 있을것이다. 그래. 그래! 귀녀의 전변에 처음엔 어리둥절해하던 아버지가 빙그레 웃으며 귀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귀녀는 아버지의 웃음에 놀랐다. 어머니가 돌아간후로 아버지의 얼굴엔 웃음이 사라졌었다. 그분이 올 때마다 한두번씩 웃는 때도 있었지만 그건 마음속으로 탁 터뜨리는 진짜 웃음이 아니였다. 그 웃음이 사라지는것과 동시에 자애롭던 아버지의 용안은 엄한 모습으로 변해버렸다. 귀녀가 《감옥》이라고 생각하는 이 집은 웃음이 없는 집이였다. 아버지뿐만아니라 만사통과 한주먹도 웃을줄을 몰랐다. 언제나 신경질적인 만사통은 좀체로 웃는법이 없었다. 그런데 아버지앞에서만은 례외였다. 이상하게도 만사통은 아버지를 대할 때마다 씽긋 웃는다. 제딴에는 달콤하게 웃느라 포즈를 취했겠지만 귀녀가 보기엔 어쩐지 바보스럽다. 그 웃음을 받는 아버지의 태도가 언제나 무감각한것도 모르고… 한주먹은 더구나 웃음을 몰랐다. 언제나 무뚝뚝한 한주먹의 얼굴에서 웃음을 찾는다는것은 하늘의 별 따기라고 할가. 아무튼 한주먹이 웃는것을 귀녀는 한번도 보지 못했다. 웃음이 없는 이 집은 《감옥》냄새를 더욱 짙게했다. 웃음이 그리웠던 귀녀는 집안에서 가끔 홀로 거울을 마주하고 호호 웃어도 보고 바깥출입을 할 때면 일부러 한주먹앞에서 깔깔 웃어대기도 했다. 오래간만에 보는 아버지의 웃음, 그 웃음을 다시 한번 더 보고싶었지만 가석하게도 그 웃음은 너무나 짧은 순간에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그대신 귀녀의 어깨에 놓인 아버지의 손길은 뜨거웠다. 그것은 아버지의 애정의 표시였다. 귀녀는 오래간만에 부성애를 느끼면서 가슴이 뜨거워진다. 너무나 일찍 어머니를 잃은 귀녀는 모성애를 잘 모르고 자랐다. 귀녀가 다섯살이 되였을 때 어머니가 간암으로 돌아갔다. 어머니가 어떻게 생겼던지 귀녀는 별로 기억에 없다. 어머니의 사진을 보고 어머닌 절세가인이였고 자신은 어머니를 똑 닮았다는것을 알았다. 하지만 어머니의 목소리만은 기억에 생생했다. 귀녀야, 혹은 여보 하는 어머니의 목소리는 언제나 졸졸 흐르는 시내물처럼 온화하고 부드러웠다. 어머니는 종래로 큰소리칠줄도 몰랐고 성낼줄도 몰랐다. 집에서나 직장에서나 소곤소곤 이야기했고 행동거지는 언제나 조용조용했다. 심지어 사발 씻을 때마저 그릇 부딪치는 소리 한번 내지 않았다. 그렇게 조용했던 어머니는 갈 때에도 앓음소리 한번 내지 않고 조용히 떠나갔다. 처가집 말뚝에도 절할만큼 소문난 애처가였던 아버지에게 어머니의 죽음은 너무나도 큰 타격이였다. 의기소침하여 날마다 한숨으로 나날을 보내다나니 회사도 제대로 돌보지 못하게 되였다. 한해 두해 지나면서 회사는 빚을 잔뜩 걸머지게 되였다. 그런 와중에도 엄마를 부르며 울어대는 무남독녀 천금보배딸을 달래느라 아버지는 기진맥진했다. 그때부터 담배와는 인연이 없던 아버지가 기침을 캑캑하면서도 입에 줄담배를 물고있는것을 귀녀는 보았다. 아버지는 회사에 나가선 빚쟁이들에게 시달렸고 집에 돌아와선 엄마를 찾는 보배딸의 어머니노릇까지 하느라 진땀을 뺐다. 마침내 빚쟁이들은 집에까지 들이닥쳐 집을 내놓으라고 닥달질했다. 당장 밖에 나앉을 신세가 되였다. 그때 하늘에서 내려온듯 구세주처럼 아버지 앞에 나타난 이가 바로 그분이였다. 어느날 아버지는 싱글벙글 웃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밥술도 드는둥 마는둥 하던 아버지가 저녁밥을 두그릇째 비우고나서 귀녀를 안아 공중에 번쩍 들어올렸다. 귀녀야, 이젠 살았다. 아버진 이젠 살았단 말이다. 허허허! 아이참, 아버진 언제 죽었어요? . 에끼, 요것아! 아버지 회사가 이젠 살았단 말이다. 그럼 이젠 집을 뺏기지 않게 됐어요? 귀녀가 제일 관심하는건 아버지의 회사보다도 집이였다. 아버지는 빙그레 웃으며 귀녀를 안고 빙빙 돌았다. 그래. 회사도 안 망하고 집도 안 뺏기게 됐다. 하하하! 귀녀는 어머니가 세상뜬후로 아버지가 그렇게 기뻐하는것을 처음 보았다. 오늘이 무슨 날이길래 이렇게 기쁘지? 어디 력서나 보자. 귀녀를 안고 달력을 살펴보던 아버지가 갑자기 귀녀의 엉덩이를 탁 쳤다. 아차! 깜빡 잊을번했구나. 래일은 우리 보배딸의 생일이구나! 아버지는 귀녀를 번쩍 안아올리며 귀녀의 볼에 뻑 소리나게 뽀뽀를 해주었다. 아버지는 이 몇해째 네 생일도 잊고 살았구나. 래일이면 넌 아홉살이 되지. 마침 래일 그분이 우리집에 오게 되는데 한상 푸짐하게 차려놓고 그분을 맞이해야지! 그분이란 누군가요? 그분은 아버지의 옛친구인데 아버지에겐 예수나 석가모니같은 구세주이지. 이튿날 아버지는 회사의 몇몇 아줌마들을 청해 귀녀의 생일상을 차리게 했다. 그리고 그분을 모시러 간다고 나갔던 아버진 점심때가 거의 되여서 키 크고 의젓하게 생긴 30대중반의 신사분을 모시고 와서 귀녀에게 인사시켰다. 귀녀야, 인사해라. 이분이 바로 아버지의 옛친구라고 하던 그분이시다! 안녕하세요? 큰아버지! 귀녀는 아버지보다 키가 더 큰 그분을 큰아버지라고 불렀다. 그분은 자애롭게 웃으며 귀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허허, 아저씨라고 불러라. 난 너의 아버지보다 한살 아래니까. 아저씨! 오, 그래. 그래. 정말 예쁘게 생긴 애구나! 너의 생일을 축하한다! 그분은 깜찍한 손목시계를 선물로 안겨주며 무릎을 꺾고 귀녀의 이마에 살짝 입을 맞춰주었다. 귀녀는 생일축하해요란 노래소리속에서 생일케이크의 초불을 불어껐다. 귀녀의 집엔 오래간만에 웃음과 노래가 차고넘쳤다. 귀녀야, 넌 내가 본 애들중에서 제일 예쁘게 생긴 아이구나! 거나하게 취한 그분이 귀녀의 손목을 잡고 말했다. 나와 너의 아버진 생사를 함께 해온 옛친구란다. 너의 아버진 나의 생명의 은인이란다. 너의 아버지가 아니였다면 난… 아버지와 그분은 죽마고우였다. 아래웃집에서 술래잡이도 함께 하고 딱지치기도 함께 하면서 자랐다. 강변마을에서 자란 아버지와 그분은 여름에는 헤엄재주를 자랑했고 겨울엔 썰매타기에 열을 올렸다. 그분은 외다리썰매타기에서는 아버지보다 훨씬 더 빨랐으나 헤엄에선 늘 아버지에게 뒤지였다. 어느해 여름, 20m쯤 앞서 강물을 헤엄쳐나가던 아버지가 갑자기 사람 살려요! 하는 소리에 뒤돌아보니 그분이 허우적거리며 구원을 청하는것이였다. 그분은 갑자기 다리에 경련이 일며 깊은 물속에 잠겨들었다. 아버지는 치체없이 그분의 머리가 떴다가라앉았다하는 방향으로 헤엄쳐나갔다. 그런데 그리로 다가갔을 때는 그분의 머리가 더는 보이지 않았다. 몇번이나 물속을 더듬었으나 그분을 찾을수 없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단념하지 않고 계속 물속을 더듬어갔다…이윽고 그분을 안고 강가로 나왔을 때는 기진맥진한 아버지도 쓰러졌다. 다행히 마을 사람들이 발견하고 두 아이를 구해냈다. 이런 일도 있었지. 그분은 추억을 더듬으며 계속 이야기했다. 한번은 우리 마을 애들과 건너 마을 애들이 무리싸움을 하게 되였지. 그때 행동대장이였던 나는 선봉이 되여 비발치는 몽둥이세례 속으로 돌진했단다. 그러다가 상대방쪽에서 찌르는 칼에 가슴을 상했단다. 상대방이 재차 찌르려는 순간 너의 아버지가 번개같이 나의 앞을 막아섰단다…결국 나와 너의 아버지는 모두 병원신세와 파출소신세를 지게 되였지. 이렇게 나는 너의 아버지가 구해주었기에 두번이나 죽음에서 구원되였단다. 그러다가 그분은 전근하는 그분의 아버지를 따라 멀리 떠나게 되였고 그후 그분의 아버지가 죽고 그분이 출국하게 되면서 아버지와의 련계가 끊어지게 되였다. 어느날 갑자기 미국에 계신 그분의 할아버지가 사망했다는 비보가 날아왔고 얼마후 그분은 태평양을 건너가서 할아버지의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았다. 그리하여 그분은 귀국하여 남방의 어느 해변도시에 큰 회사를 일떠세웠고 요즘 연변에 나와 아버지의 행방을 수소문하던중 기적같이 어제 아버지와 다시 상봉하게 된것이다. 그날밤, 아버지와 그분은 날새도록 무슨 이야긴가 끝없이 주고받았다. 얼마후 그분의 경제적 후원을 받아 아버지의 회사는 다시 부활하였다. 그분은 해마다 한번씩 귀녀의 생일에 찾아와서 선물을 안겨주곤 했다. 처음엔 책보나 옷따위 가벼운 선물을 안겨주던 그분이 귀녀의 16세 생일에는 전국에서도 다섯손가락안에 꼽힌다는 저명한 미술가선생을 모시고 와서 실물크기와 똑같은 귀녀의 전신상을 그리게 했다. 숱한 미인들이 저의 모델을 섰지만 이렇게 예쁘게 생긴 녀자앤 여태껏 처음 봅네다. 실로 천년에 한번 날가말가한 절세가인이웨다! 귀녀의 미태를 바라보며 화가선생은 찬탄을 금치 못했고 아버지와 그분의 얼굴에도 자랑스런 미소가 떠올랐다. 그날 화상을 침실에 걸어놓고 바라보던 귀녀는 처음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에 매혹되였다. 그해 귀녀네는 그분의 덕분으로 축구장 두개의 크기만한 정원이 있는 호화로운 3층저택으로 이사했다. 그후 그분은 귀녀의 생일에 오토바이, 승용차, 피아노, 컴퓨터 등을 선물했는데 모두 고급, 호화, 명표였다. 아버지는 늘 그분의 은혜에 송그스러워했고 감격했다. 그러면서 귀녀에게 그분의 은혜를 잊지 말고 공부를 잘 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타일렀다. 비록 한해에 한번씩밖에 만나지 못하는 그분이였지만 귀녀의 심목중에 그분은 언제나 자애롭고 인자한 분이였다. 어버이같은 미소로 귀녀의 어깨를 다독여주는 그분의 손길은 봄날의 태양처럼 따스했다. 그분의 자애로운 미소를 대할 때면 귀녀는 그분이 진짜 아버지인듯한 착각에 빠지곤 했다. 너무나 일찍 어머니를 잃은 귀녀에게 아버지는 전부의 믿음이였다. 어머니가 생전일 때 아버지는 출퇴근할 때마다 꼭꼭 어머니한테 키스하곤 했다. 그리고 곁에서 눈이 동그래서 지켜보는 귀녀에게 뻑 소리나게 뽀뽀해주는것도 잊지 않았다. 그런데 그분이 나타나면서부터 아버지는 귀녀에게 뽀뽀를 해주지 않았다. 어머니노릇과 아버지노릇을 함께 해오던 아버지한테서 자애로운 어머니의 모습이 사라지고 엄한 아버지의 의무만이 남은것 같았다. 얘야, 그분이 너한테 컴퓨터까지 사주었는데 잘 배워야 하지 않겠느냐. 만사통선생님을 애먹이지 말고 고부고분 잘 배우거라. 아버지의 따뜻한 손이 귀녀의 어깨를 다독인다. 오래간만에 《모성애》를 느끼며 귀녀는 가슴이 뭉클해졌다. 당장 아버지의 품에 안겨 막 어리광을 부리고싶었고 어릴 때 경험했던 수염에 찔리는 얼얼한 뽀뽀를 받아보고싶었다. 하지만 아버진 이내 손을 걷어들이고 거실로 들어간다. 순간 귀녀는 억울함과 안타까움이 뒤범벅이 되면서 저도몰래 눈물이 샘솟는다. 아버지! 속으로 아버지를 부르는 순간 그분의 얼굴이 불쑥 떠오른다. 이마에 살짝 키스를 해주던 자애로운 그분의 얼굴이 아버지의 뒤모습을 지우며 또렷이 떠오른다. 귀녀, 빨리 와서 공부해요! 그때 짜증 섞이고 신경질적인 째지는듯한 왜가리소리가 들려온다.    
2    새되여 나는 처녀 (2) 댓글:  조회:2877  추천:0  2013-10-29
중편소설  새되여 나는 처녀 (2) 김희수   2. 괴상한 반성문     백지우에 《반성문》이란 세글자를 커다랗게 써놓고 귀녀는 머리를 들어 커튼을 반쯤 드린 창문쪽을 바라본다. 창밖의 손바닥만한 하늘엔 송이송이 흰 구름이 피여있다. 나비같은 예쁜 구름이 창가에 매달렸다가 잠깐사이에 귀녀의 시선을 벗어난다. 오늘 창밖의 하늘은 참 멋질거야. 귀녀는 그 《예쁜 나비》를 시선에 꼭 잡아두지 못하는것이 못내 안타까웠다. 나비뿐이 아닐것이다. 창밖의 하늘엔 잠자리, 갈매기, 코끼리, 원숭이…별의별 애물단지들이 다 있을것이다. 쓰라는 글은 쓰지 않고 어디다 정신을 팔아요? 왜가리소리에 펄쩍 놀라 머리를 되돌리니 《만사통》이 안경너머로 눈살이 꼿꼿해서 쏘아보고있었다. 귀녀는 그 목소리가 듣기 싫었고 그 눈길이 보기 싫었다. 녀간수! 귀녀는 반성문 첫줄에 녀간수란 세글자를 쓰고 감탄표를 찍었다. 언제부터인지 귀녀는 자기가 살고있는 3층저택이 감옥으로 느껴졌다. 정원을 둘러싼 높은 담장, 꼭 닫긴 철대문…이 《감방》에 갇힌 귀녀자신은 《죄수》이고 언제나 꽥꽥 왜가리소리로 귀녀를 책상에 꼼짝달싹 못하게 얽매여 놓는 만사통은 명실공히 《녀간수》이다. 처음부터 귀녀는 만사통이 싫었다. 학교에 선생님이 있으면 됐지 왜 집에 또 선생님이 있어야 하나요? 전 싫어요! 10년전 귀녀는 그렇게 아버지한테 항의했다. 그러나 아버진 싫긴 왜 싫어! 하고 단마디로 그 항의를 눌러버렸다. 오늘부터 난 귀녀의 선생님이예요. 이제부터 귀녀는 선생님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해요. 알겠어요? 10녀전 귀녀를 앉혀놓고 하는 만사통의 첫 훈시였다. 이제부터 귀년 학교에서 돌아오면 이 선생님한테서 배워야 해요! 아지미가 안 배워줘도 돼요. 학교선생님이 다 배워주는데 뭘요. 아지미가 아니라 선생님이예요. 선생님! 아지미예요. 아지미, 아지미, 아지미! 귀녀는 끝내 만사통을 선생님이라 부르지 않았지만 그때로부터 귀녀의 《감옥》생활은 시작되였다. 학교에서 돌아와 책가방을 벗어놓기 바쁘게 또 책상에 책을 펼쳐놓고 만사통의 가르침을 받아야 했다. 만사통은 손색없는 《녀간수》였다. 조금만 눈길을 딴데 팔아도 왜가리소리, 화장실에 가서 조금만 지체해도 왜가리소리…게다가 꼿꼿이 쏘아보는 송곳눈! 이제부터 공부 시작해볼가요? 이렇게 가르쳐 될가요? 피로해요? 그럼 좀 쉬세요…만사통이 이쯤만 상냥하고 부드럽고 친절했더라면 귀녀는 과외공부에 그다지는 싫증을 느끼지 않았을것이다. 그런데 옥이랑 철이랑 함께 뛰놀고싶어 죽을 지경인 귀녀를 책상에 꼼짝 못하게 붙잡아 놓고 읽어요! 풀어요! 써요! 하는 왜가리소리밖에 없었다. 짜증 섞이고 신경질적인 째지는 왜가리소리… 잡생각 말고 빨리 반성문을 써요! 저쪽 쏘파에 앉아 영문화보를 뒤적거리던 만사통이 또 왜가리소리를 질러댄다. 손은 책을 번지고 눈은 귀녀의 일거일동을 지켜본다. 귀녀는 다시 만년필을 거머쥐였다. 그러나 눈길은 저도몰래 또다시 창밖으로 쏠린다. 귀녀는 남달리 하늘을 좋아한다. 눈 내리는 하늘, 비오는 하늘, 무지개 걸린 하늘, 노을 비낀 하늘, 달밝은 하늘, 별이 총총한 하늘, 구름 핀 하늘…이런 하늘을 바라보면 답답하던 가슴이 열리며 마음이 상쾌해진다. 아까 예쁜 나비같은 구름이 매달렸던 창가에 이번엔 손오공같은 구름이 나타났다. 손오공은 석가여래에게 오행산에 눌리어 꼼짝달싹 못하고있는듯 했다. 그 손오공은 자유를 잃고 조롱속에 갇혀있는 귀녀자신같기도 했고 문밖에 꿇어앉아 벌을 받고있는 한주먹오빠같기도 했다. 감시병…귀녀는 반성문의 두번째 줄에 감시병이란 세글자를 적고 줄임표를 찍는다. 이 감방엔 녀간수가 있고 문밖엔 또 감시병이 있다. 귀녀가 어디로 가면 어디로 따라 가며 그림자처럼 붙어다니며 감시하는 감시병 한주먹은 10년전 녀간수 만사통과 함께 귀녀의 집으로 왔다. 그때 한주먹은 18세의 나어린 총각이였다. 키는 작은 편이였으나 박달나무처럼 단단하고 건장한 몸매에선 사내다운 기품이 드러나고있었다. 한주먹에 대한 첫인상은 만사통처럼 그렇게 나쁘진 않았으나 귀녀는 한주먹을 썩 좋아하지 않았다. 옥이랑 철이랑 함께 학교로 가고싶은데 억지로 오토바이나 승용차에 태워 학교에 데려다주는 한주먹, 하교하여 옥이랑 철이랑 함께 뛰놀고싶은데 다짜고짜로 몰고가는 한주먹이 그때는 정말로 미웠다. 어느새 창밖의 손오공이 사라졌다. 당승을 만나 오행산에서 해방받았을가? 귀녀는 멀고도 험난한 서천길을 떠난 손오공을 따라 가고싶었다. 하지만 벽과 천정이 시선을 가로막아 귀녀는 도무지 손오공을 따라 갈수 없었다. 귀녀는 창밖으로 보이는 손바닥만한 하늘이 싫었다. 밖으로 막 뛰쳐나가고싶었다. 바깥도 역시 《감옥》이지만 그래도 집안 《감옥》보다는 퍽 자유스럽다. 적어도 밖에선 집안보다 넓은 하늘을 볼수 있다. 하늘을 볼수 있다는 그 하나만으로도 당장 뛰쳐나가고싶다. 귀녀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쏜살같이 문을 박차고 뛰쳐나갔다. 문밖에서 무릎을 꿇고 벌을 받고있던 한주먹이 몸을 솟구치며 앞을 막아선다. 또 어딜 가려고? 하늘을 보러가요. 하늘? 웬 얼빠진 소릴…못간다, 못가! 비켜요. 난 하늘을 꼭 봐야해요! 안돼! 널 지켜내지 못했다고 또 날벼락이 내리라고? 가겠으면 함께 가. 꾀부리지 말고. 한주먹은 귀녀를 끌고 벤츠앞으로 간다. 귀녀는 조롱속같이 꽉 막힌 승용차가 싫었다. 언제나 확 트인 오토바이가 좋았다. 귀녀는 한주먹을 뿌리치고 오토바이 쪽으로 걸어간다. 그러자 한주먹이 날렵하게 오토바이에 뛰여올라 시동을 건다. 귀녀는 오토바이 뒤에 훌쩍 뛰여올라 두팔을 벌려 한주먹의 허리를 꼭 끌어안는다. 오토바이는 나는듯이 철대문을 벗어나 거리로 질주한다. 귀녀는 감옥에서 빠져나온듯 기분이 상쾌하여 코노래를 흥얼거린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달리는 자동차의 행렬속을 요리조리 비집으며 오토바이는 쏜살같이 달린다. 귀녀는 한주먹의 바위같은 잔등에 얼굴을 묻는다. 귀녀는 이 《바위》가 좋았다. 바위에 기대여 끝없이 끝없이 자꾸만 가고싶었다. 정말로 멋진 하늘이구나! 한주먹이 구름이 쌩쌩 스쳐지나는 하늘을 바라보며 감탄한다. 그러나 귀녀는 눈 한번 팔지 않고 심드렁하게 대꾸한다. 길바닥만한 하늘이 뭐 볼멋이 있다고 그래요? 길바닥만하다니? 길량쪽에 줄비하게 일떠선 고층건물사이로 보이는 하늘이 그래 길바닥만하지 않아요? 허허참, 그렇다고 보니 정말 그런것 같기도 하다. 난 좁은 하늘이 싫어요. 우리 끝없이 넓디넓은 하늘을 보러 가자요! 그래 우리 하늘을 날아보자! 한주먹이 액셀러레이터를 힘껏 밟는다. 갑자기 오토바이가 헬리콥터처럼 땅을 차고 창공을 날아옌다. 아아! 귀녀는 너무도 기뻐 연신 환성을 지른다. 저 멀리 손오공같은 구름이 떠있다. 저 손오공을 따라 잡아요! 귀녀가 손짓하자 한주먹은 마력을 다내여 《손오공》을 쫓아간다. 손오공의 곁에는 당승도 있고 오정도 있고 저팔계도 있고 백골정도 있다. 손오공이 여의금고봉을 들어 백골정을 친다… 또 창밖에 정신을 팔아요?! 만사통이 무작정 창가로 다가가 커튼 줄을 잡아당긴다. 그러자 손오공도 당승도 오정도 저팔계도 백골정도 가뭇없이 사라진다. 싫어요!!! 귀녀는 반성문의 세번째 줄에 싫어요란 세글자를 쓰고 세개의 느낌표를 찍는다. 감옥이 싫다! 만사통이 싫다! 한주먹이 싫다! 그래서 귀녀는 어제 집을 뛰쳐나갔던것이다. 그런데 한스럽게도 도로 잡혀와 다시 감옥에 갇힌 신세가 되고 말았다. 어제밤 귀녀와 한주먹을 앞에 세워놓고 아버지는 노한 사자마냥 집이 떠나갈듯 줄욕을 퍼부었다. 왜 집을 뛰쳐나갔어? 엉? 뛰쳐나간게 아니예요. 저도 남들처럼 혼자 다녀보고싶었어요. 혼자 다니다가 일이라도 생기면 어떻게 해?! 아무일도 없었잖아요? 어떻게 그냥 일이 생기지 않는다고 장담할수 있느냐? 전 스무살이예요. 얼마든지 저절로 자기를 보호할수 있어요! 닥쳐! 두번 다시 이런 일이 있으면 절대 안된단 말이다! 그리고 너도… 천둥같이 버럭버럭 화를 내던 아버지는 이번에는 한주먹을 닥아세웠다. 넌 도대체 호위를 어떻게 했길래 눈앞에서 귀녀를 놓쳐버린단 말이냐? 엉?! 사장님, 입이 열개라도 할말이 없습니다. 한주먹은 일본놈의 앞에선 한간처럼 부동의 자세로 서있다가 아버지의 훈계에 고개를 푹 숙이고 연신 허리만 굽실거렸다. 귀녀는 그런 한주먹이 얄미웠다. 영웅호걸같은 그 기개는 어디로 가고 저리도 비굴할가? 아버지의 꾸중은 계속되였다. 넌 엄중한 실책을 범했단 말이다! 귀녀의 신상에 털끝만한 일이 생겨도 안된단 말이다! 절대! 이 절대한걸 잊지 말아라! 알겠습니다. 사장님, 앞으로 두번 다시 이런 일이 없도록 명심하겠습니다! 한주먹은 진심으로 뉘우치는 태도였으나 귀녀는 마음속으로 불복이였다. 아버지는 온밤 욕사발을 퍼붓고도 부족하여 아침엔 귀녀에게 반성문을 쓰게하고 만사통더러 귀녀가 반성문을 쓰는걸 감시하게 했다. 그리고 한주먹에게는 문밖에 꿇어앉아 있는 책벌을 내렸다. 반성문을 쓰라지만 잘못이 없는데 무었을 반성한단 말인가? 귀녀는 석줄로 내리 쓴 《반성문》을 바라보며 저도몰래 킥 웃었다. 웃다가 졸음이 몰려와 책상에 엎드렸다. 또 다시 하늘을 보고싶었다. 손바닥만한 하늘, 길바닥만한 하늘은 이젠 싫었다. 끝없이 끝없이 넓고 푸른 하늘의 전경을 보고싶었다. 그런 하늘을 보려면 옥상에 올라가야 한다. 옥상에서 바라보는 하늘이야말로 시원하게 탁 트여있는 정말 하늘이다. 넓디넓고 푸르디푸른 하늘! 귀녀는 그런 하늘을 보고싶었다. 귀녀는 만사통의 눈을 피해 살금살금 빠져나가 옥상으로 올라갔다. 와아! 머리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던 귀녀는 한눈에 안겨오는 멋진 정경에 환성을 질렀다. 온 하늘에 떨기떨기 햇솜같은 흰구름이 멍울멍울 피여있지 않는가! 기화요초같고 기암괴석같고 가지가지 산악같고 온갖 동물같은 천태만상의 선경에 그만 넋을 잃을 지경이였다. 귀녀는 그 구름천지속에서 《손오공》을 찾았다. 여의금고봉을 들고 자유로이 날아다니는 손오공이 마침내 시야에 잡혀왔다. 손오공의 곁에는 이상하게도 당승과 오정, 저팔계대신 아버지와 만사통과 한주먹이 나란히 서있었다. 싫어요! 귀녀가 그렇게 소리치자 손오공이 털 한대를 뽑아 휙- 하고 불었다. 그러자 아버지와 만사통과 한주먹이 하나로 합쳐서 그분의 얼굴로 변했다. 그분이 자애롭게 웃으며 귀녀를 오라고 손짓한다. 귀녀는 그분을 따라가고싶었다. 그러나 그분은 아득한 하늘에 계신다. 날개없는 귀녀는 안타까웠다. 그때 손오공이 구름을 타고 옥상에 내려오더니 귀녀를 태우고 순식간에 하늘로 올라간다. 그분은 지척에 있었다. 그러나 그분을 따라 잡자고 아무리 애를 써도 그분과의 거리는 도무지 줄어들지 않는다. 빨리! 빨리! 손오공을 향해 소리지르던 귀녀는 그만 비틀거리다가 구름에서 떨어져내렸다. 앗! 아… 아이, 한심해라! 대낮에 자면서 잠꼬대까지 하다니?! 깜짝 놀라 깨여나보니 만사통이 왜가리소리로 성화같이 독촉한다. 반성문을 빨리 쓰세요. 벌써 다 썼는데요. 귀녀는 길게 하품을 하며 석자씩 석줄로 쓴 《반성문》을 만사통에게 바친다.    
1    새되여 나는 처녀 (1) 댓글:  조회:3245  추천:1  2013-10-29
중편소설 새되여 나는 처녀 (1) 김희수   1. 탈출     쇼핑을 핑계로 백화청사의 승강기계단을 오르내리며 귀녀는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는 《한주먹》을 떼여버릴 기회만 노리고있었다. 한걸음도 뒤질세라 바싹 따라붙는 《한주먹》을 떼여놓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였다. 존슨의 다리를 가진 그 앞에서 달음박질로 도망친다는건 어림도 없는 일이고 타이슨의 주먹을 가진 그를 완력으로 밀어낸다는것은 더구나 엄두도 못낼 일이였다. 이제 전 어린애가 아니예요. 제발 절 혼자 다니게 놔주세요. 이런 사정도 목석같은 그 앞에선 전혀 먹혀 들어가지 않았다. 귀녀는 영웅호걸이라고 숭배해오던 《한주먹》이 이때처럼 미워본적이 없었다. 이《한주먹》과 《만사통》이 오기전엔 얼마나 자유로웠던가. 마음껏 뛰놀아도 간섭하는 사람이 없었지. 하지만 《한주먹》과 《만사통》이 오면서부터 귀녀는 지금까지 10년동안 조롱속에 갇힌 새로, 고삐 매인 송아지로 되였다. 지긋지긋한 10년이 지나고 귀녀는 고급중학교를 졸업했다. 아버지의 기대엔 어긋났지만 대학시험에서 락방된 귀녀는 날뜻이 기뻤다. 이제부터 해방됐다싶었다.《한주먹》과 《만사통》의 력사적 사명도 끝났으니 그들이 곧 돌아가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였다. 컴퓨터를 몰라선 안된다, 영어를 배워야 한다하며 그냥 귀녀를 조롱속에 가둬둘 심산이였다. 정말 지겨워. 이젠 이 굴레와 고삐를 벗어던져야지! 탈출을 작심한 귀녀는 친구 옥이와 짜고 든 계획대로 아버지한테서 쇼핑을 허락받았다. 한주먹이 직접 운전하는 호화로운 벤츠에 앉아 가면서 귀녀는 머리속에 탈출방안을 다시 한번 검토해 보았다. 빈틈이 없을것 같았다. 승용차에서 내린 귀녀는 백화청사로 바싹 따라오는 한주먹을 곁눈질하며 가슴이 도근도근 뛰기도 했다. 패션진열대에 가서 이옷저옷 입어보며 시기를 기다리는데 마침 건너쪽에서 옥이가 눈짓하는것이 보였다. 귀녀가 고개를 까땍하자 옥이가 인차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한주먹이 등지고있어 옥이를 볼수 없는것이 다행이였다. 오빠, 나 좀 화장실 다녀와야겠어요. 귀녀는 고르던 옷을 놓고 화장실로 사뿐사뿐 걸어갔다. 한주먹이 화장실 출입구까지 따라와 버티고 서있는것을 보며 귀녀는 잰걸음으로 안으로 들어갔다. 옥이가 벌써 와서 기다리고있었다. 계획대로 옥이는 준비해온 가발과 선글라스를 꺼내 놓고있었다. 둘은 재빨리 옷을 바꿔 입었다. 그들은 머리양식이 같고 몸매가 비슷해서 학교때 교복을 입고 나란히 선 뒤모습을 얼핏 보고는 누가 누군지 가리기 힘들었다. 옥이의 옷을 입고 가발을 쓰고 선글라스를 낀 귀녀는 낯선 모습이였고 귀녀의 옷을 입은 옥이는 뒤모습, 옆모습이 귀녀와 너무나 닮았다. 귀녀가 고개를 숙이고 나가자 출입구에서 지키고있던 한주먹은 아무런 반응도 없이 화장실쪽만 응시하고있었다. 귀녀는 부리나케 백화청사를 빠져나왔다. 옥이의 정체를 발견한 한주먹이 곧 쫓아올것 같아 귀녀는 황급히 택시를 잡아탔다. 아가씨, 어디로 모실가요? 저, 아무데나… 네?! 택시기사가 이상하다는듯 힐끗 돌아다본다. 그제야 귀녀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탈출계획을 세울 때 탈출후의 목적지까지 생각지 않았던것이다. 그저 한주먹의 손에 잡힌 고삐를 끊어버리고 자유의 세계를 갖고싶었을뿐이다. 남산까지 실어다 주세요. 귀녀는 얼떨결에 그렇게 말했다. 한주먹으로부터 멀리 빠져 달아나고싶은 심정이 그런 행선지를 생각해냈을것이다. 택시는 어느새 도심을 벗어나 교외에 들어섰다. 포장도로도 끝나고 울퉁불퉁한 흙길이 시작된다. 차가 더 갈수없는 남산아래 발치에서 택시는 멈춰섰다. 택시에서 내린 귀녀는 굴레 벗은 망아지마냥 오솔길로 깡충깡충 뛰여갔다. 만세라도 부르고싶었다. 그토록 갈망하던 자유의 품에 안긴것이다. 자유의 품은 끝없이 넓고 포근했다. 귀녀는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산중턱까지 오른 귀녀는 할래발딱거리며 풀숲에 주저앉았다. 타고 왔던 택시는 어느새 돌아가고 눈에 보이지 않았다. 군데군데 성냥갑을 쌓아놓은듯한 도시가 한눈에 안겨왔다. 여태껏 저 《성냥갑》속에 갇혀 살았다고 생각하니 갑갑하고 지긋지긋했다. 산바람이 살랑살랑 귀뿌리를 어루만지며 지나간다. 주위의 소나무들도 하늘하늘 춤을 춘다. 귀녀는 가슴이 열리며 마음이 상쾌했다. 산아래 가없는 옥야가 파릇파릇 물결치며 흘러간다. 옥야속에 묻힌 오붓한 초가마을이 그림같이 아름답다. 아, 저것이 이 도시교외의 마지막 초가집이란것이겠구나. 귀녀는 마음이 설레였다. 정든 님과 둘이 살짝 살아가는 초가삼간…문뜩 《초가삼간》이란 노래가 떠오르며 가슴이 울렁울렁 설레인다. 노래처럼 저기 저 초가집에서 살고싶다. 정든 님도 필요없이 홀로 자유롭게 밭을 갈며 살고싶다. 귀녀는 천천히 산에서 내렸다. 지금쯤은 한주먹이 귀녀를 찾아 헤맬것이다. 옥이의 정체를 발견한 한주먹이 깜짝 놀라 귀녀는?! 하고 미친듯이 뛰여다니며 찾는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듯 했다. 귀녀의 호위를 잘못했다고 아버지로부터 벼락이 떨어질것은 뻔했다. 한주먹은 아버지의 명령이라면 절대 복종이였고 또 그 명령을 에누리없이 집행했다. 귀녀는 걸어서 시내에 들어섰다. 한주먹을 만날가봐 골목길에 접어들었다. 지금쯤은 한주먹이 전화로 아버지한테 알렸을지도 모른다. 귀녀의 탈출소식을 접한 아버지의 얼굴표정은 어떤 모습일가? 바다의 폭풍? 하늘의 천둥? 생각만해도 가슴이 떨린다. 와, 세상에! 이렇게 예쁜 아가씬 처음 보는데… 마주오던 세 청년이 감탄을 련발하며 음탕한 눈길로 귀녀를 노려본다. 귀녀는 못본체하고 그냥 지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녀석들은 의도적으로 귀녀의 앞을 막아선다. 우아! 죽인다! 죽여주는 기집이다. 이런 기집 맛보면 죽어도 좋아! 마른침을 꼴깍 삼키는 녀석들, 귀녀의 몸을 노리는 색마의 눈길들…위험한 순간이였지만 이 시각 건달들이 조금도 두렵지 않은게 이상했다. 비록 한주먹에게서 녀자호신술을 배웠다지만 세녀석이 한꺼번에 덮치면 당해낼 자신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녀는 건달들이 조금도 두렵지 않다. 치근거리는 건달들의 그 역겨운 행위마저 너그럽게 용서해주고싶다. 용서할수 없어! 한주먹이 곁에 있었다면 저 세녀석은 눈깜짝할 사이에 피투성이 되여 쓰러졌을것이다. 귀녀를 모욕하는 자에게 한주먹은 조금도 사정이 없었다. 예쁜 아가씨, 우리와 함께 조용한 곳에 가서 놀지 않겠소? 세 녀석이 지나가려는 귀녀의 앞을 막아선다. 이때에야 귀녀는 저으기 긴장했다. 소리쳐 구원을 청할가, 앞선 놈을 쓰러뜨리고 냅다 뛸가? 예쁜 아가씨, 말을 듣지 않으면 우린 억지로라도 아가씰 모시고 갈거요! 녀석들이 징글스럽게 웃으며 당장 덮쳐들 태세다. 그때 마침 두 순라경찰이 이쪽으로 걸어오고있는것이 보였다. 귀녀는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저 경찰아저씨도 함께 모시고 가는게 어때요? 엉?! 경찰… 깜짝 놀라 뒤돌아보던 녀석들이 에씨, 재수없어! 하고 투덜거리며 꼬리 빳빳이 달아났다. 귀녀는 재빨리 골목을 벗어나 큰길에 들어섰다. 어느덧 해가 서산에 떨어졌으나 귀녀는 갈곳을 몰랐다. 십자로에 멈춰서서 어디로 갈가? 생각을 굴렸다. 친척이나 친구의 집엔 이미 전화련락이 오갔을 테니깐 그리로는 갈수없고…어디로 갈것인가? 엇바뀌는 붉은 신호등과 푸른 신호등을 멍하니 바라보며 궁리하다가 문뜩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다. 어버이처럼 자애로운 얼굴! 상냥하고 친절하며 언제나 뜨거운 그분! 그분은 꼭 귀녀가 왔냐? 하며 반겨줄것이다. 그리고 이마에 키스도 해줄것이다. 그분은 해마다 한번씩 찾아올 때면 언제나 영화에서 나오는 서양신사처럼 귀녀의 이마에 살짝 키스를 해주곤했다. 그때마다 귀녀는 행복에 겨워 방긋 웃었다. 그래…그분을 찾아가자. 그런데…귀녀는 여태껏 그분의 주소를 똑똑히 모르고있었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그분은 어느 해변도시에서 엄청나게 큰 회사를 경영하고있다고 했다. 가자. 확실한 주소를 모르면 뭐라나. 가는데까지 가보는거다. 그분을 못 찾아도 별문제다. 난생처음 나홀로 세상을 돌아본다는것만으로도 가슴이 후련할거야. 귀녀는 정거장으로 가서 남방으로 가는 기차표를 끊었다. 출구에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마침내 기차가 왔다. 막 검표를 하려는데 누군가 뒤에서 옷을 잡아당긴다. 뒤돌아보니 귀녀의 옷을 그대로 입고있는 옥이였다. 옥이는 풀이 죽어 고개짓으로 저쪽을 가리켰다. 옥이가 가리킨 쪽을 바라본 귀녀는 그만 날아가던 잠자리가 거미줄에 걸린듯 그 자리에 폴싹 주저앉았다. 거기엔 울상이 된 한주먹과 서리발치는 두눈을 뚝 부릅뜬 아버지가 맹수처럼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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