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행성의 반란
REVOLT ON ALPHA. C
로버트 실버버그 R. SILVERBERG 지음
로버트 실버버그
1905년 미국 태생. 콜롬비아 대학 재학 중 SF를 쓰기 시작하여, SF작가 휴고를 기념하는 휴고상 수상. “가시 밭길의 여로", "유리탑", "한번 다시 태어나", "살아 있는 화성인", "대빙하의 생존자" 등
편집위원
아동문학 감수 ․박 홍근/문학박사 최 인학
공학박사 양 옥룡/이학박사 김 희규
전교육감 김 성묵
알파 C로의 출발················· 4
공간 도약법··················· 9
우주의 노래·················· 15
결사적인 우주선 밖의 활동··········· 23
목성 식민지의 반란··············· 35
우주 통신의 수수께끼·············· 44
공룡의 요리·················· 52
우리에게 자유를················ 63
반란의 청년 지도자··············· 73
전기 기타의 수수께끼·············· 85
제 2의 배반자················· 96
밀림에 불시착················· 101
지하의 감방·················· 112
혁명과 우정·················· 120
탈 옥····················· 130
집으로 돌아가라, 지구인들아!········· 143
진공 작전··················· 154
대 행 진··················· 163
작품 해설··················· 171
등장 인물
랠리 스타크 : 이 책의 주인공. 지구의 우주 정찰 사관 학교 졸업생, 실습 훈련차 제 4행성에 간다.
하르 엘리슨 : 화성의 사관 학교 졸업생. 제 4 행성의 반란에 참가한다.
오헤어 : 하급 우주 선원이지만, 랠리와 우정이 깊다. 반란에 참가하지만, 랠리를 탈출하게 해 준다.
라인하르트 선장 : 카르텐호의 선장, 아주 냉철한 성격이다.
해리슨 : 지구에서 임명한 제 4행성의 대통령 .
하이틀 : 카르텐호의 연습생. 랠리와 함께 반란군에 붙잡힌다.
존 브라운 :시카고 식민지의 혁명 운동 지도자.
커터 :알파 C 제 4행성 자유세계 평의회 대표. 혁명의 최고 지도자.
알파 C로의 출발
우주 연습선 카르텐호는 명왕성의 우주 공항에 그 거대한 몸체를 쉬고 있었다. 1주일의 기항(항해 중에 들름)이 랠리 스타크에게는 무척 길게 느껴졌다.
(이런 곳은 이미 싫증이 난다. 빨리 알파 켄타우루스의 제 4 행성으로 가고 싶다.)라고 생각하며, 랠리는 선실의 창을 통하여 밖을 내다보았다.
태양계의 가장 바깥쪽을 돌고 있는 명왕성은, 태양의 빛을 적게 받으며 만물이 차갑게 얼어붙어 있는 죽음의 세계이다.
공항의 주위에 줄지어 있는 산들도 얼음에 덮여 있고, 그 얼음의 산 위에는 검은 하늘이 차갑게 펼쳐져 있다.
그러나 명왕성은 행성간 여행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중계 기지이다. 지구를 출발한 카르텐호는 일단 명왕성에 기항해서, 여기서 행성간 여행으로 4, 5광년 걸리는 알파 C를 향해서 가는 것이다. 은하계 여행의 경우 카르텐호의 최대 속도는 초속 16만 km이다. 그런데 이 속도라도 알파 C까지 8, 9년이라는 긴 세월이 걸린다. 그러므로 카르텐호는 명왕성에 기항해서 행성간 여행용으로 장비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공간 도약법으로 행성간 여행을 하면, 15일만에 알파 C까지 갈 수 있다. )
처음으로 행성간 여행에 참가하게 된 랠리는 마음이 조급했다. 빨리 출발하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랠리는 지구의 우주 정찰 사관 학교를 이제 막 졸업한 사관 후보생이다. 졸업 후의 실습 훈련을 받기 위하여 연습생으로서 카르텐호에 타게 된 것이다. 이 실습 훈련을 마치면 한 사람의 훌륭한 우주 정찰 사관이 된다. 연습생은 4명이다. 4명 중 랠리를 포함한 3명은 지구의 사관 학교를 졸업했는데, 하르 엘리슨만은 화성의 사관 학교를 졸업했다. 그래서 카르텐호는 명왕성에 오는 도중 일부러 화성에 기항하여 하르를 태웠다. 지금까지의 실습 훈련은 은하계 여행으로 제한되어 있었다. 우주 정찰 사관 학교의 졸업생은 명왕성까지밖에 오지 못한다. 그러나 이번의 실습 훈련은 사관 학교 창립이래 최초로 행성간 여행을 하게 되었다.
"목적지는 알파 C의 제 4행성이다."
이 같은 발표를 듣고, 재학 중이었던 랠리의 가슴은 설레었다. 알파 C의 제 4행성은 지구를 닮은 별로서, 기후도 따뜻하고 공기도 있다. 그러나 지구보다 1억 년 정도 역사가 느렸고, 따라서 공룡의 전성 시대이다. 그 곳에는 작은 식민지가 개척되어, 개척자의 자손들이 살고 있다. 항성간 여행으로 공룡이 있는 행성에 가게 된다면, 얼마나 자랑스럽고 멋진 일일까.
랠리는 어떻게든 알파 C의 제 4행성에 가고 싶었다.
[단, 행성간 여행에 참가하는 연습생은 사관 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사람이어야 한다.]
라는 규칙이므로 1, 2등의 성적으로 졸업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우주 정찰 사관 학교는 지구와 화성에 각각 하나씩 있다. 모두 우수한 학생들만 있기 때문에 그 중에서 1, 2등을 하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버지에게 부탁해 볼까?)
하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랠리의 아버지는 우주 정찰 사관의 사령관이다. 아버지가 사관 학교 교장에게 부탁하면 아마 졸업 성적과 관계 없이도 행성간 여행의 연습생으로 선발해 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런 부탁을 할 분이 아니야.)
아버지는 부정한 일을 누구보다 싫어하는 사람이다. 만약 랠리가 아버지의 힘으로 행성간 여행에 참가시켜 달라고 부탁을 한다면,
"그 따위 정신으로 어떻게 훌륭한 군인이 되겠다고 마음먹었나? 지금 당장 우주 정찰 사관학교를 그만둬라"
라고 호령하실 것임에 틀림없다.
(어떻게든 내 자신의 실력으로 해 볼 수밖에 없다.)
이렇게 결정한 랠리는 있는 힘을 다해 열심히 공부했다.
드디어 노력한 보람이 열매를 맺었다. 랠리는 졸업 시험을 1등의 성적으로 통과했고, 바라던 행성간 여행에 보기 좋게 선발되었다.
"과연 나의 아들답게 잘해 주었어. 너는 이제 우주로 나가게 되었다. 그러나 급할 때일수록 믿을 것은 자기 자신뿐이다. 중대한 일은 자기 자신이 결정하는 거다."
하고 스타크 사령관은 지구를 출발할 랠리에게 격려해 주었다.
화성까지의 여행은 선 내의 생활이 처음인 랠리에게는 하나같이 신기하고 나날이 즐거웠다.
그러나 화성에서 명왕성까지 올 동안은 벌써 싫증이 나고 말았다. 하물며 명왕성에서 카르텐호의 선체를 다시 개조하는 작업을 우두커니 바라보고만 있는 것은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화성은 온통 벽돌 색의 사막이다. 푸른 것이라고는 지면에 붙어 있는 이끼 종류뿐이다. 명왕성은 산도 평야와 바다도 꽁꽁 얼어붙어 있다. 두 곳은 보호 돔(반원형의 지붕) 안에서 생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정말 대단한 일이다. 그러나 알파 C의 제 4행성은 지구와 같이 신선한 공기가 있고 도처에 푸른 숲이 있다. 돔이나 우주복 없이도 자유로이 생활할 수가 있다.) 랠리가 한시라도 빨리 알파 C의 제 4행성에 가고 싶어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드디어 카르텐호의 개조도 끝나고 출발할 날이 왔다. 승무원들은 돔 안에 살고 있는 명왕성 식민지의 사람들과 작별을 고하고 선 내로 돌아왔다.
"출발 5분 전, 모두는 가속 제어 좌석에 앉을 것!"
선 내의 아나운서가 알렸다. 랠리는 가속 제어 좌석의 쿠션에 몸을 고정시켰다. 그리고서 5분 후, 카르텐호는 거대한 몸체를 떨면서 천천히 떠올랐다. 차츰 속도를 내면서 암흑의 우주 공간을 알파 C를 향해 나아갔다.
공간 도약법
[태양계에 가장 가까운 행성은 알파 C가 아니고 프록시마 C이다.]랠리는 항성간 여행의 역사를 생각한다.
[그러나 프록시마는 행성을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 행성간 여행의 목적지가 될 수 없다. 알파 C는 11개의 행성을 가지고 있다. 그 중의 제 4행성은 지구와 비슷해서 사람이 살기에 알맞다. 지금부터 125년 전, 알파 C 제 4행성과 더욱 먼 시리우스의 행성을 개척하기 시작하여 식민지가 개척되고 있다.]
20세기 초, 위대한 과학자 아인슈타인 박사는,
[이동하는 물체는 1초간에 약 30만 KM 되는 빛의 속도를 넘어설 수는 없다.]
라는 이론을 세웠다.
[그러나 2183년 헉슬리 박사가 발표한 새 이론에 의하여 행성간 여행의 길이 열렸다. 우주선은 광속을 넘어서서 날 수는 없으며, 광속에 가까운 우주선을 만들어도 4. 5광년 떨어져 있는 알파 C까지 가는데 5년 정도 걸리며, 왕복에는 9년 이상이 걸린다. 그러나 헉슬리 이론을 응용하면 15일만에 갈 수 있다. 이것을 공간 도약법이라고 부른다. 우주연습선 카르텐호도 명왕성을 출발하여, 이틀째에는 공간 도약법으로 들어갈 예정이다.
랠리가 맡은 일은 우주 통신이다. 라인하르트 선장이 쓰는 항행일지를 매일 지구 우주국에 보내며, 여행 중의 다른 우주선과 연락을 취하는 일이다. 당번이 아닐 때는 자기 선실에서 자유로이 지낼 수 있다. 같은 방에 동료 연습생 하르 엘리슨이 있다. 하르는 화성의 정찰 사관 학교에서 수석으로 졸업한 수재이다. 랠리보다 키는 작으나 가슴은 떡 벌어지고 튼튼한 체격이다. 그리고 얼굴은 햇볕에 까맣게 그을려 있다.
"하르, 우리들은 내일 공간도약법으로 들어가. 라인하르트 선장이 오늘 항행일지에 그렇게 써놓았더군." 하고 선실에 들어서면서 랠리가 말했다.
"쉬잇!"
하르는 둘째손가락을 입에다 대면서 말했다.
"항행일지의 내용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건 규칙위반이야. 랠리, 선 내에는 도처에 도청 마이크가 장치되어 있을지도 몰라. 말을 조심하라고."
"설마… 선장이 왜 우리들의 이야기를 도청하겠어? 우리를 신용하지 않는단 말인가?"
랠리는 라인하르트 선장을 존경하고 있었다. 흰 머리카락이 드문드문 보이고, 엄격한 얼굴 표정은 랠리의 아버지와 닮았다. 가끔 카르텐호에서 항선 여행 중이라는 것을 잊고 '아버지'라고 부를 뻔할 때가 있을 정도였다.
하르는 자리를 고쳐 앉으며 읽고 있던 책을 접고는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선장은 지금 우리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
그 때 누군가가 선실의 문을 노크했다. 랠리는 하르와 얼굴을 마주 쳐다보고 대답했다.
"예 , 들어오십시오."
문이 열리고 고참자인 우주 파일럿 올코트가 들어왔다.
"랠리, 자네의 쪽지를 보았네. 내게 뭘 묻고 싶은가?"
"이것입니다."
하고 랠리는 책상 위에 있는 행성간 여행의 교과서를 집어들었다.
"이 교과서에는 제가 가장 알고 싶어하는 것이 쓰여 있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서 공간 축지 항법을 할 수 있습니까? "
"그렇게 물으면 곤란한데… 아무도 모른다. 헉슬리 박사도 모른다. 전기의 작용인지 자기의 작용인지… 아무튼 축지 장치를 가동시키면 공간 도약법을 할 수 있을 뿐이야."
"사관 학교에서는 공간 도약법에 대하여 그리 많이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라고 랠리가 말하자, 하르도 고개를 끄덕였다.
"화성의 사관 학교도 마찬가지였어."
"간단하지. 축지 장치의 작용은 정확하게 모르더라도 축지 장치의 사용법만 알면 공간 도약법을 할 수가 있는 거지."
이렇게 말하면서 올코트는 책상 위의 메모 용지를 한 장 집어들었다.
“이 종이를 우주라고 가정하고, 종이의 위쪽 끝에서 반대쪽 끝까지 우주 여행을 한다고 하자. 거리는 10cm이다. 그런데
이렇게 종이를 둥글게 말면 양끝이 가까워져서 거리는 1m로 된다. 즉 공간 도약법은 제 4차원의 공간을 이용하여, 굉장히 먼 우주의 2점 사이의 거리를 좁혀 단시간에 여행할 수 있는 방법이다."
하고 올코트는 메모 용지를 책상 위에 놓으면서,
"내일이면 이 우주선이 공간 도약법으로 들어갈 테니까, 어떤 것인가 자네들이 직접 경험해 보라고. 백 번 말로만 들어봤자 한 번 눈으로 보는 것만 못하니까."
"그런데 그렇게 편리한 공간 도약법을 왜 행성간 여행에는 쓰지 않나요?" 하고 랠리가 묻자, 하르는 웃었다.
"너는 지구의 우주 정찰 사관 학교를 나온 연습생이 아닌가? 머리를 쓰라고, 랠리. 지구에서 화성까지 가는데 공간 도약법을 사용하는 것은 수소폭탄으로 토끼를 잡으려는 거나 마찬가지야."
"그래, 하르가 말한 대로야. 수백만 km나 되는 먼 거리는 공간 도약법으로도 핀으로 찌르듯 가벼운 정도이지만, 만약 지구에서 화성까지, 아니 목성까지라도 공간 도약법으로 날면 태양계 내의 전 행성이 파괴되고 만다."
라고 올코트가 설명했다.
"네에…그래서 행성간 여행을 하는 우주선이 명왕성에 일단 기항하는 것이군요."
하고 랠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명왕성이 태양의 가장 밖에 있다. 그 곳에서 우주선은 추진 장치 등을 보통 은하계간 여행의 것에서 행성간 여행의 공간 도약법용으로 바꾼다. 그리고 되돌아갈 때는 또 여기에서 본래의 행성간 여행용으로 바꾸어서 지구로 가는 거다."
"그럼, 공간 도약법을 사용하는 동안, 우주 공간의 상태에는 아무 변동이 없나요?"
"특별히 변동되는 것을 보지 못했어. 우주 공간은 어디든지 텅텅 비어 있으니까 말야. 비어 있고 캄캄하고, 그리고 추운 곳- 그것이 우주이다. 랠리, 우주는 쓸쓸한 곳이다."
"알고 있습니다."
우주 파일럿의 피로한 얼굴을 바라보면서 대답했다. 명왕성에서 알파 C까지 15일이 걸린다. 그 중에서 보통의 은하계 여행으로 명왕성을 떠나오고, 7일은 알파 C의 제 4행성에 가깝게 가는 행성간 여행으로 소비한다. 그리고 그 중의 2일간만 공간 도약법을 사용하여 4.5광년, 즉 4천만 km의 100만 배라는 상상도 못할 먼 거리의 대부분을 날아간다. 랠리는 우주 비행사의 쓸쓸함을 이미 들어 알고 있다. 우주선은 그 자체가 하나의 세계이다. 별의 사이에 떠 있는 작은 금속에 싸여 있는 세계이다. 이 곳은 구멍가게도 없고, 신문도 배달되지 않으며, 길 위에서 캐치볼도 할 수 없다. 날이면 날마다 우주 공간의 암흑을 바라다보며 자기의 맡은 일을 하고, 공부를 하고, 저녁때가 되면 그룹끼리 모여 식사를 한다. 그룹이라고 해도 승무원이 5, 6명에서 12, 13명이 보통이고, 많아 보았자 20~30명 정도이다. 이런 적은 수이므로 서로가 상대방을 너무나 잘 알아서 얼마 안 가 지루하게 된다.
(우주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단조로운 생활과 쓸쓸함을 이겨내는 정신력이다.)
라고 생각하며, 랠리는 선실 창가에서 암흑의 밖을 내다보았다.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다. 그러나 그 속에서 어떤 것이 알파 C인지 알 수가 없었다.
6월 7일-명왕성을 출발하여 6일째인 날, 선실의 텔레비전 전화의 스크린이 환하게 밝아지고, 라인하르트 선장의 얼굴이 나타났다.
"모두에게 전달한다. 공간 도약법에 대비하라. 본선은 10초 후에 공간 도약법으로 들어간다."
랠리와 하르는 급히 가속 제어 좌석에 앉아 벨트로 몸을 고정시켰다. 그밖에는 어떤 준비를 해야 좋을지 몰랐다.
"9, 8……"
텔레비전 전화에서 초를 읽는 소리가 흘러 나왔다.
"7, 6, 5……"
아무 것도 모른다고 올코트는 말했는데, 랠리는 처음으로 당하는 공간 도약법에 기대와 불안에 꽉 차 있었다.
"4, 3……"
랠리는 하르를 보았다. 하르도 이쪽을 살펴보고 있었다. 둘은 그만 빙긋 웃고 말았다.
"2, 1……"
갑자기 선체가 비틀리는 것 같고, 선실 전체가 무너져 랠리 머리의 주위에서 빙글빙글 도는 것처럼 느껴졌다. 현기증은 1분쯤 지나니 멎었다. 카이텔호는 드디어 공간 도약법으로 들어간 것이다.
우주의 노래
잠시 동안 비틀리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으나, 곧 선실은 보통 때와 같은 상태로 돌아왔다.
올코트가 말한 것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공간 도약법으로 비행하는 동안에는 우주통신을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랠리는 이틀간은 아무 할 일이 없었다.
(오헤어가 있는 곳으로나 가볼까.)
라고 랠리는 생각했다.
바트 오헤어는 기관부와 잡역부 일을 겸하고 있는 하급 선원이다. 랠리 등이 모이는 곳에는 잘 나오지 않고, 여가만 있으면 뒤에 있는 기관실에서 전기 기타를 치며 우주의 노래를 부른다. 세상에는 굉장히 큰 키를 가진 사람도 많았지만, 오헤어처럼 큰 사람도 그리 흔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헤어는 놀랍게도 키가 3m이고, 머리카락은 붉은 색, 수염은 푸른색, 음성은 힘찬 저음이다. 다른 연습생과 사관들은 그를 경멸했지만, 랠리는 지구를 출발하기 전부터 오헤어와 사이가 좋았다.
(하급 선원과 사귀는 것이 무엇이 나쁜가? 하급 선원도 같은 승무원이 아닌가.)
라는 생각으로, 사관들의 특권 의식이 오히려 못마땅했다.
"난 뒤의 기관실에 갔다 오겠어."
랠리는 하르에게 말하고, 선실을 나왔다. 하르는 교과서를 들여다보는 그 자세대로 고개만 끄덕이고 아무 말이 없었다.
복도를 뚜벅뚜벅 걸어서 기관실로 들어섰다. 그 곳에서는 오헤어가 두 조수와 더불어 작업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바트! "
하고 랠리는 미소를 지으며 불렀다.
"오, 랠리! 자네는 공간 도약법 동안에는 여가가 있겠구나. 우주 통신사는 멋쟁이야."
오헤어는 무거운 연료를 옮겨놓으며 반갑게 랠리를 맞이했다. 윗통을 벗고 있는 상반신은 온통 땀에 젖어 있었다.
"우리는 보는 바와 같이 기관에 특수원료를 사용하고 있다. "
라고 말하고, 양손을 입에 대더니 메가폰처럼 만들어 아직 작업을 계속하고 있는 두 조수를 불렀다.
"포크스! 크란넬! 일은 좀 있다가 하고 이쪽으로 와라. "
조수들이 왔다. 오헤어에는 못 미치지만, 랠리에 비하면 큰 사나이들이다.
크란넬은 어깨가 떡 벌어진 건장한 체격인데, 얼굴 한쪽에 보기 흉한 흉터가 있었다. 포크스는 크란넬보다 키가 훤칠하게 크고, 머리는 빡빡 깎고, 팔뚝에는 혈관이 밖으로 불거져 나와 있다. 오헤어는 마루에 주저앉아 납으로 된 벽에 기대고 있었다.
"라인하르트 선장은 왜 자네를 이틀이나 할일 없이 놀려 두고 있지? 승무원이 빈둥빈둥 놀고 있는 것을 가장 싫어하는 사람인데…"
"정말이야, 랠리. 쓰러질 때까지 일을 시키는 것이 선장의 성격이라고." 하고 크란넬도 한 마디 한다.
랠리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선장을 험구하는 오헤어를 찬성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군인인 아버지에게 교육을 받고 우주 정찰 사관 학교를 졸업한 랠리는 '항상 상관을 존경하라'는 교육을 받아왔었다.
"아마 선장은 나에 대하여 깜박 잊고 있는 모양이야. 선장은…"
하고 선장을 두둔하려 했으나, 아무도 들어주려고 하지 않았다. 오헤어는 혈관이 튀어나온 큰손으로 기타를 끌어안고 음을 맞추기 시작했다.
이윽고 눈으로 먼 곳으로 바라보며 기타를 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깊숙한 저음으로 슬프게 노래하기 시작했다.
오오, 화성이여, 메마른 죽음의 세계
개척민은 이제는 없어라.
전쟁은 끝나고 평화는 돌아왔으나
개척민은 이제는 없어라.
크란넬은 조금 높은 목소리로 합창하여 오헤어의 노래를 한층 더 북돋아 주었다.
사막에 즐비한 탑의 무리
쓰러져서 모래알이 되고
탑을 세운 개척민도
사막에서 사라지고 이제는 없어라.
갑자기 텔레비전 전화의 벨 소리가 울리더니, "모두 자기 자리로 가라!"
라는 라인하르트 선장의 소리가 흘러나왔다.
랠리는 불안해하며 주위를 돌아다보았다. 곧 자기 선실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나 오헤어들은 한 사람도 움직이지 않는다. 선장의 명령을 들은 척도 않는다. 그래서 랠리도 오헤어들과 같이 선장의 명령을 무시해 버리기로 했다.
"모두 자기 자리로 가라!"
두 번째 명령이 흘러나왔다.
그래도 오헤어들은 노래를 그만두려고 하지 않는다.
(이 사나이들은 선장을 무시하고 있는 것일까?)
랠리는 어이가 없었으나, 여기서 공연한 말을 하여 오헤어 등의 기분을 상하게 하기 싫었다.
"가슴에 깊이 파고드는 곡이다."
포크스가 감동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 말에 대답도 않고, 오헤어는 더욱 빠르게 줄이 끊어질 정도로 심하게 기타를 치면서, 머리를 뒤로 젖히고 높은 소리를 내었다.
우주선을 타는 이는 슈퍼맨(초인)
불덩이나 바위라도 날아오려마
별을 향해서 똑바로 가리
광막한 우주는 우리들의 집이어라.
이 노래는 옛날부터 우주 승무원들이 불러오던 노래의 하나이다. 랠리도 매력적인 중간 음으로 같이 부르기 시작했다. 포크스와 크란넬도 합창한다.
하이 호오, 분사의 소리를 들어라
발진이다. 상승이다. 하이 호오, 하이 호오!
발진이다!
상승이다!
오오, 하이 호오.
오헤어가 또 혼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오오, 우리는 알파 C에서 났어라
공룡이 있는 행성에서 자랐어라
3m의 큰 사나이
자유를 사랑하는 큰 사나이
이때 텔레비전 전화에서 라인하르트 선장의 큰 소리가 흘러나와 기관부 전체에 울려 퍼졌다.
"모두 자기 자리로 가라! 긴급 사태 발생! 긴급 사태 발생!"
태연하던 오헤어도 노래를 그치고 기타를 놓고서 벌떡 일어나서는 기관 쪽으로 달려갔다. 포크스와 크란넬도 뒤따랐다.
"나도 선실로 가야지!"
랠리도 정신을 차리고 복도로 뛰어 나갔다. 아무도 없는 복도를 달리는데 손도 발도 뜻대로 움직여 주지를 않는다.
갑자기 충격을 받았다. 카르텐호가 공간 도약법에서 보통 항법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랠리는 심한 현기증을 느끼며 마루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복도의 벽이 빙글빙글 돌면서 가까이 온다. 천장이 내려앉아 머리를 누르는 것 같았다. 랠리는 마루바닥에서 선실 쪽을 향해 엉금엉금 기어가려고 했다. 문득 우주 정찰군 사령관 제복을 입은 아버지의 모습이 머리에 떠올랐다. 그 얼굴은 복도 바닥에서 기고 있는 아들의 꼴을 보고,
"선장의 명령을 무시했기 때문이다. 바보 같은 녀석!"
라고 호령하시는 것 같았다.
더 심한 충격이 왔다. 랠리는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결사적인 우주선 밖의 활동
누군가가 뺨을 쳤다.
(아프다.)
랠리는 손으로 얼굴을 비비면서 차츰 의식을 되찾기 시작했다. 뺨을 한 대 더 맞고 완전히 정신을 차렸다.
"그만!"
하고 랠리가 눈을 떠보니, 오헤어가 손을 들고 한번 더 뺨을 치려는 기세였다.
"됐어… 정신 차렸군."
랠리는 일어나면서 빨개진 뺨을 비볐다.
"일이 일어났나? 왜 보통 항법으로 돌아갔지?"
"나도 모르겠어, 랠리. 라인하르트 선장은 모두를 통제실로 집합시켜 사태를 설명하려고 해.
우린 지각이야. 빨리 가자."
"선실로 돌아가려고 복도로 나오자, 갑자기 위가 빙글빙글 돌더니… 그리곤 마루에 넘어져 머리를 벽에 부딪친 모양이야."
하고 랠리는 오헤어와 같이 통제실로 급히 달려가면서 말했다. 머리에 난 큰 혹이 점점 아파 오기 시작했다.
(첫 명령을 들었을 때 바로 선실로 돌아갔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이다…)
랠리는 금모올(mogol)이 번쩍이는 아버지의 제복 모습이 머리에 떠오르고, 자기의 부주의한 행동이 후회되었다. 두 사람이 통제실에 발을 들여놓자, 이미 모든 승무원은 벽 쪽으로 둥그렇게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중앙에 라인하르트 선장이 서 있었다. 선장은 날카로운 눈초리로 집합에 늦은 두 사람을 쏘아보았다.
"이제 모두 집합했구나. 너희들 두 사람은 나중에 시말서를 제출하라."
랠리는 아버지에게 꾸중을 듣는 것 같아서 오헤어의 큰 체구 뒤에라도 숨고 싶었다.
"자, 이제 이번 사고에 대해서 설명하겠다."
선장의 엄하면서도 분명한 목소리가 통제실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원인은 엔진의 분사구에 무언가가 막혔기 때문이다. 유성의 파편인지 우주진이… 그러한 것이 분사구에 날아들어 공간 도약법 장치에 고장을 일으켜, 갑자기 보통 항행으로 되돌아 온 것이다."
하고는 승무원을 한 바퀴 빙 돌아본 다음, 선장은 다시 말을 이었다.
"만약 본선이 이대로 보통 항법으로 알파 C에 가면 4년쯤 걸려, 그쪽에 도착하는 해는 2367년이 된다. 그런데 본선에는 4주일간 분의 식량밖에 없다. 4년 분이 아니고 단 4주간 분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사히 알파 C의 제 4행성에 도착하는 단 한 가지 방법은 우주선 밖으로 나가서 고장을 수리하는 일이다. 오헤어, 고장은 자네의 담당이네. 곧 우주복을 입고 밖으로 나가 수리하라."
오헤어는 아무 대답 없이 경례를 하고는 통제실을 나갔다. 그가 나가는 것을 보면서 랠리는 불안했다.
(우주선 밖은 춥다. 얇은 우주복으로는 우주 공간의 추위를 긴 시간 동안 완전히 막을 수 없다. 더욱이 우주선 밖의 활동은 위험하다.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는지 모른다.)
그러나 오헤어는 우주선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만약 이 우주선이 공간 도약법으로 되돌아가지 못하면, 알파 C에 도착하기 전에 모두는 굶어죽는다. 설령 다른 우주선에 연락하여 구조를 부탁한다 해도 광대한 우주 속에서 우리 우주선을 발견하기란 망망대해에 떨어진 바늘을 찾아내는 일보다 더 어렵다. 구조의 가망은 거의 없다.
라인하르트 선장은 다시 계속했다.
"승무원 한 사람만 우주선 밖으로 내보내는 것은 우주법의 위반이다. 연습생 랠리 스타크, 전원 집합에 늦은 벌로서 오헤어의 우주선 밖의 수리를 도와라. 우주복을 입고 빨리 가라!"잠시 동안 랠리는 멍하니 선장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곧 정신을 차려 경례를 하고는 아무 말 없이 복도로 나왔다.
우주 공간에서 실제로 우주선 밖의 활동을 하는 것은 처음이다. 랠리는 우주복을 입고 우주 헬멧을 썼다. 그리고는 몇 번 점검한 후, 에어록을 통하여 우주선 밖으로 기어 나왔다.
우주복과 헬멧은 공기가 통하지 못하게 되어 있고, 자동 공기 정화장치가 달려 있다. 헬멧의 내부에 있는 무선 전화가 동료와 연락을 취하는 수단이다. 우주 장갑을 낀 손에는 우주총을 한 자루 들고, 또 한 자루는 우주복 뒤쪽에 달아매어져 있다. 그리고 양발에는 자석 구두를 신고 있다. 이미 오헤어는 우주선 위를 뒤쪽의 분사구를 향해 천천히 걷고 있었다. 랠리도 뒤따라 강철이 잘려 있는 강철 보행 트랙을 한 발짝 한 발짝 주의 깊게 오헤어의 뒤를 따라갔다. 강철 보행 트랙에서 벗어나면 안 된다. 자석 구두가 말을 듣지 않게 되어 몸이 허공에 뜨고 만다. 오헤어의 걸음걸이는 아주 빠르다. 랠리는 턱으로 무선 전화의 스위치를 넣었다.
"바트, 기다려 주게."
그러자 오헤어는 걸음을 멈추더니 뒤를 돌아보았다. 헬멧 속의 랠리 얼굴을 보고 오헤어가 말했다.
"랠리! 자네도 왔나?"
"라인하르트 선장의 명령이야. 한 사람만이 우주선 밖에서 활동하는 것은 우주법 위반이라 하더군."
"흥! "
하고 오헤어는 코방귀를 치면서 말했다.
"항상 나 혼자 우주선 밖의 활동을 시켜 놓고서 그런 말을 해. 아마 자네가 집합에 늦었기 때문에 벌을 준 모양이지."
하고는 다시 앞으로 걸어나가면서, 오헤어는 이렇게 말했다.
"너는 우리 선장을 어떻게 생각하지? 우주 정찰군의 고참 사관이라고 생각하나? 그렇지 않아. 그는 피도 눈물도 없는 금속으로 만든 로봇이야."
하며 오헤어는 손으로 보행 트랙을 가리켰다.
"주의해서 오게. 랠리, 여기에서 발을 잘못 디디면 위험해. 그러나 그 선장의 얼굴 가죽을 뒤집어 놓고 싶다!"
"그런 말을 하는 법이 아니야, 오헤어. 내 마음에 들든 안 들든 그는 이 우주선의 선장이 아닌가."
하고 랠리는 주의를 시켰다.
"이거 잘못했군, 랠리. 네가 우주 정찰 사관 학교 출신이라는 것을 깜박 잊고 있었군. 그러나 언젠가는 알 날이 올 것이다. "
오헤어의 말을 랠리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언젠가는 알 날이 올 것이다.)
라는 것은 어떤 뜻일까? 무엇이 잘못 되었을까? 선장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아도 좋단 말인가? 그것은 불가능하다. 선장의 명령은 절대적인 것이다. 선장의 명령을 위반하면 우주선을 탈 수 없다. 만약 승무원이 선장을 무시하기 시작하면, 우주선은 제대로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
랠리는 사방을 돌아다보았다. 지금 우주 공간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랠리의 눈앞에 펼쳐져 있다. 우주선은 움직이고 있는 것같이 보이지 않는다. 아무 것도 없는 공간에 그대로 떠 있는 것같이 보인다. 어떤 곳을 보아도 끝없이 펼쳐져 있는 암흑과, 무수한 별빛의 점들만이 빛나고 있을 뿐이었다. 여기에서는 아래로 떨어질 위험은 전혀 없다. 그러나 랠리는 어쩐지 불안했다. 만약 자석 구두가 보행 트랙을 잘못 디디면 랠리의 몸은 우주선에서 떠오를 것이며, 뉴턴의 법칙에 따라 우주선과 같은 방향, 같은 속도로 날아갈 것이다.
(아무튼 우주 여행을 하려면, 우주선 안이 좋구나.)
라고 랠리는 생각했다.
가지고 있는 두 자루의 우주총은 무기가 아니다. 랠리 자신을 소형 로켓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다. 우주선은 로켓의 분사로 움직인다. 분사의 반동으로 분사와 정반대의 방향으로 전진한다. 이와 마찬가지 이론으로 무중력의 우주 공간에서 권총을 발사하면 발사한 사람은 권총의 탄환이 날아가는 방향과 정반대 방향으로 이동한다. 그러므로 만약 랠리가 우주선에서 발이 떨어져 떠오르려고 하면, 우주선과 반대 방향을 향해서 우주총을 발사한다. 그러면 그 반동으로 우주선으로 돌아갈 수가 있는 것이다.
"랠리, 일을 시작하자! "
오헤어의 소리가 헬멧 속의 무선 전화를 통하여 들려왔다. 차가운 금속적인 울림이다. 랠리는 여러 가지 생각을 떨쳐버리고, 보행 트랙을 나아갔다. 자신이 20살의 청년이 아닌, 그리스 신화의 신이 되어 하늘을 산책하고 있는 기분이다. 이 때 갑자기 앞쪽에서 밝은 불이 번쩍했다.
"아니?"
놀라고 있는 랠리의 헬멧 속으로 오헤어의 외치는 소리가 들려 왔다.
"어이쿠! 우주총이 폭발했다! 랠리, 구해 줘! "
라는 소리와 함께, 오헤어의 몸이 우주선에서 붕 떠오르며 천천히 멀어져 간다. 비로소 랠리는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헤어의 손에 쥐고 있던 우주총이 저절로 발사되었다. 그 때문에 반동으로 오헤어의 몸이 보행 트랙에서 떨어져 나와 공중에 떠오른 것이다.
"큰일났다! "
랠리는 두서너 발 나아가 머리 위에 떠 있는 오헤어의 자석구두를 붙잡으려 했다. 그러나 조금 모자라 손이 닿지 않는다.
"그런 짓 하지 말아! "
오헤어의 고함 소리에 랠리는 정신을 차렸다. 만약 오헤어의 발을 붙잡으면 랠리의 몸도 우주선에서 떨어져 나가 우주공간에 떠오르고, 오헤어와 같은 방향으로 날아가고 말 것이다.
"바트, 우주총을 사용해! "
"안 돼. 떨어뜨리고 말았어! "
오헤어는 갑자기 우주총이 오발되는 바람에 정신없이 손에서 떨어뜨리고 만 것이다. 그 때문에 우주총의 폭발 반동으로, 오헤어는 꽤 떨어진 우주공간으로 가고 있는 중이었다.
"예비 우주총이 또 하나 있지 않아?"
하고 랠리는 초조하게 소리쳤다.
"없어! 나의 우주복은 네가 입고 있는 것보다 구식이라서 예비 우주총이 없어, 랠리." 이미 오헤어는 우주선에서 3m나 멀어졌다. 그리고는 계속 무수한 별을 향해서 멀어져 가고 있다.
"나는 죽어서 저 별들의 친구가 될 것이다. 헌 침대 위에서 죽어 가는 것보다 훨씬 좋다.
랠리,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
울부짖는 오헤어의 목소리가 랠리의 헬멧 속에서 메아리친다.
"절망하기에는 아직 일러, 바트. 나의 우주총을 한번 써 보자."
"너의 것을? 좋은 생각이야. 부탁해. 이쪽으로 정확하게 던질 수 있겠어? 정확하게 던지지 않으면 안돼!"
"해 보자, 바트."
라고는 했지만, 그것이 얼마나 어렵다는 것을 랠리는 잘 알고 있었다. 우주총을 오헤어에게 정확하게 던지기만 해서도 안 된다. 속도가 문제인 것이다. 늦으면 오헤어까지 닿지 않을 것이며, 빠르면 오헤어가 받지 못하여 그대로 무수한 별 쪽을 향해서 날아가 버릴 것이다. 그러나 랠리는 사관 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학생 야구부의 투수였었다.
"어느 정도는 자신 있어.“
랠리는 한 손에 우주총을 들었다. 오헤어의 위치를 똑똑히 겨누어 가며 우주총을 던졌다.
작은 회색의 총은 우주 공간을 떠서 오헤어 쪽으로 날아갔다. 아아, 그러나 실패였다. 정확하게 조정은 했지만 목표가 움직이기 때문에 아슬아슬하게 빗나가고 만 것이다. 우주총은 오헤어가 뻗친 양손 끝에서 5, 6cm 멀어진 곳을 통과하고 말았다. 오헤어는 떨어져 나가는 우주총을 물끄러미 바라다보며, 포기했다는 듯 시원스러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랠리, 아마 나는 우주선에는 되돌아가지 못할 것 같아. 그러니 크란넬에게 얘기하여, 나의 전기 기타를 자네가 가져 주게. 자네는 칠 수 있겠지. 그리고 크란넬들과는 트럼프를 하지 말라구. 돈이 있는 것이 한정일 테니까. 언젠가는 자네도 선장이 되어 승무원들에게 명령을 내릴 때가 오겠지. 그 때는 기관실에서 일하고 있는 하급 선원들을 좀 잘 돌봐 주게. 그리고 이 오헤어, 몸통이 너무 커서 머리가 잘 돌지 않는 붉은 머리의 사나이가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다오…"
"시시한 소리하지 말아. 아직 자네를 구조할 방법이 남아 있어."
하며 랠리는 예비 우주총을 빼들었다.
그것을 오헤어의 반대 방향으로 발사했다. 빨간 불이 총구에서 튀어나오고, 동시에 랠리의 몸은 우주선에서 떨어져 나와 오헤어 쪽으로 향했다.
"미쳤어! 너마저 별이 되고 말아! "
오헤어가 놀라면서 외쳤지만, 랠리는 듣지 않았다.
이미 우주선에서 100m쯤 떨어져 나온 것일까. 암흑 속에서 은색의 선체가 희미하게 빛나고 있다. 오헤어 쪽으로 상당히 가까이 다가갔을 때, 랠리는 느꼈다.
(진로가 10도쯤 틀린다.)
랠리는 다시 우주총을 발사하여 진로를 수정했다. 음파를 전하는 공기가 없기 때문에 발사음은 들리지 않으나, 총구에서 뿜어 나오는 불은 한때 하늘의 별빛보다도 더욱 밝다. 두 번째의 발사는 정확했다. 똑바로 가까이 다가온 랠리의 몸을, 오헤어는 양손을 펴고서 힘차게 끌어안았다.
"랠리, 우주총을 두 번 발사했지?"
"그래."
"아직 두 발은 발사할 수 있겠구나. 신중하게 사용하지 않으면 안돼. 우주총을 내게 맡겨 줘."
"부탁해."
하며 랠리는 우주총을 내밀었다. 오헤어는 커다란 손으로 힘차게 그것을 쥐었다. 총구에서 불이 튀어나오고, 두 사람의 몸은 카르텐호를 향해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천천히 카르텐호에 접근했다. 선체까지 5m 남았을 때, 두 사람의 움직임이 중지되었다. 아무리 몸을 휘저어도 선체에 내릴 수가 없다.
"잘 안돼. 이대로 우주선과 같이 날아갈 수밖에 없게 됐어."
하면서 오헤어는 랠리의 양손을 목에 감고 랠리의 발을 우주선으로 향하도록 돌렸다. 그리고는 반대방향으로 우주총을 발사했다. 그것이 최후의 발사였다. 그리하여 두 사람의 몸은 같이 움직여 랠리의 발이 선체에 5, 6cm까지 닿게되었다. 그러자 랠리는 발을 쭉 뻗었다.
자석 구두가 보행 트랙의 강철판에 딱 들어 붙었다. 발판을 확보한 랠리는 슬슬 오헤어의 큰 몸을 당겼다. 흡사 천천히 도는 영화의 움직임과 같았다. 이렇게 하여 두 사람은 선체에 양발을 디디고,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다. 항상 혈색이 좋은 오헤어의 얼굴도 창백해져 있고, 거친 숨소리가 랠리의 무선 전화를 타고 흘러왔다. 랠리도 갑자기 마음을 놓은 때문인지 피로함을 느끼고 우주선 안으로 돌아가서 쉬고 싶었다. 오헤어는 랠리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고맙다, 랠리."
짧은 이 말 속에 큰 사나이의 감사의 뜻이 넘쳐 있었다. 흥분이 가라앉자 두 사람은 다시 자기들의 임무를 생각했다. 승무원의 운명은 지금 오헤어의 손에 달려 있다. 만약 오헤어가 분사구를 수리 못하면 모든 것이 끝장이다. 모두는 굶어죽을 수밖에 없다. 해골이 된 사람들을 태우고, 카르텐호는 암흑의 우주 공간을 영구히 헤맬 것이다. 두 사람은 분사구의 입구에 다다랐다.
"랠리, 여기서 기다리라구. 나 혼자 할 수 있어."
하고 오헤어의 큰 몸이 분사구로 기어 들어갔다. 랠리도 분사구를 들여다보았지만, 캄캄하여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우주선을 둘러싸고 있는 무수한 별은 차가운 빛의 점이었다.
공기와 먼지가 없으므로 지구에서 보는 것처럼 반짝이지 않는다. 랠리는 무수한 별을 향해서 가슴을 쭉 폈다. 우주의 정복자가 된 기분으로-. 10분쯤 지났을 때, 오헤어의 헬멧이 분사구에서 나오더니, 곧 전신이 나타났다.
"됐어. 고장의 원인을 제거했어.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는데 대단치 않은 고장이야. 자, 우주선 안으로 돌아가자. 우주 비행사, 랠리."
오헤어는 랠리를 지금 처음으로 우주 비행사로 인정해 준 것이다.
목성 식민지의 반란
(나는 오헤어와 협력하여 카르텐호의 승무원의 생명을 구했다.)
랠리는 영웅이 된 기분으로 우주선 안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라인하르트 선장은 고장을 고쳤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수고했다" 라고 말할 뿐이었다. 다른 사관들도 모른 척 말 한 마디 없이 모두 자기가 맡은 장소로 흩어질 뿐이었다.
우주 정찰군에는 영웅이란 없다. 오헤어와 랠리가 생명을 걸고 작업을 한 것도 일상 생활의 한 임무에 지나지 않는다. 드러낼 화젯거리도 되지 않는다. 랠리는 자기의 활약을 자랑할 수 없게 된 것이 서운했지만, 오헤어만은 잘 알아주리라고
생각했다. 카르텐호는 다시 공간 도약법으로 들어가 알파 C로 향했다. 랠리는 여가가 있으면 하르와 토론도 하고, 기관실의 오헤어를 찾아가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오헤어는 랠리에게 전기 기타를 퉁기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두 사람은 과거 250년 동안에 우주 여행에서 생겨 나온 여러 종류의 우주 노래를 같이 불렀다. 때로는 오헤어도 우울한 기분이 되어, 지구의 언덕과 호수와 고층 건물과, 그 곳에 살고 있는 아름다운 소녀들을 주제로 한 오래 된 노래를 조용히 불렀다. 그러나 지구의 노래는 아주 적고, 대부분이 20세기에 시체를 달의 바다와 분화구에 남긴 용감한 우주 개척자에 대한 노래였다. 랠리도 점점 지구의 일을 잊고, 우주의 생활에 익숙하게 되었다. 그러나 가끔 자기가 태어난 지구의 고향과 친구들이 문득문득 생각나기도 했다. 그리고 지구에서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는 것에 새삼 놀라기도 하였다.(그러나 지금 이것이 나의 생활이다. 다음의 행성을 향해서 나는 것이 우주 비행사의 생활이다.)
라고 랠리는 생각했다.
다음날, 카르텐호는 예정대로 공간 도약법에서 보통 항법으로 돌아왔다.
"자, 이제 감시 정거장과 연락을 할 때가 되지 않았나?"
하고 하르가 물었다.
"아니, 아직 1시간 이상 더 지나야 해. 그 때까지 통신 가능 구역에 들어가지 못하거든."랠리는 손목의 우주 시계를 들여다보면서 말했다. 감시 정거장은 알파 C의 주위를 돌고 있는 인공 위성이다. 알파 C의 행성에 착륙할 우주선은 반드시 감시 정거장의 허가를 얻지 않으면 안 된다. 하르는 손을 뻗어 레코드의 스위치를 켰다. 어둡고 슬픈 곡조가 선실에 흘러나왔다. 엘스베리 작곡 '화성의 바다에서 춤을 추면'이다.
"이건 화성의 곡이지?"
하고 랠리가 물었다.
"그래, 귀에 거슬리니 ?"
"아니, 지금 공부에 싫증이 나는 참이었어."
하며 랠리는 읽고 있던 교과서를 덮고서는 책상 위에 놓았다.
"랠리, 넌 이런 곡은 그리 좋아하지 않지?“
"옛날 곡이지. 처음 들어보지만 좋은 것 같아."
"그럼 잘 됐네. 화성의 음악은 화성 땅에서 생겨난 거야. 모두가 처음에는 싫어하지만, 차츰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그런 음악이지."
"그러나 너처럼 화성에서 태어난 사람이 아니면 그렇게까지…"
"아니, 누가 내가 화성에서 태어났다고 그래? 나는 목성에서 태어났어."
하며 하르는 랠리의 말을 가로막았다.
(그러면 그렇지…)
하고 랠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르를 처음 보았을 때부터, 랠리는 이상하게 여겼다. 화성에서 태어난 사람은, 화성의 중력이 지구보다 작기 때문에 몸이 넓고 길게 성장한다. 그런데 하르는 키가 작고 굵직한 몸이다. 그러나 목성 태생이라면 당연하다. 목성은 중력이 크기 때문에 키가 크지 못하고 옆으로 벌어지는 튼튼한 체격이 된다.
"나는 목성 식민지에서 태어났어. 4살까지 거기서 살았지. 그래서 나의 골격과 근육은 지금과 같은 형태로 성장할 수밖에 없었어. 너도 지구의 3배 가까운 중력 속에서 산다면 나같이 될 거야."
하고 하르는 자기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럼, 식민지가 망했을 때 화성으로 이사했니?"
하고 랠리는 물었다.
"그래, 나의 양친은 반란 소동으로 피살되었어. 그래서 나는 화성 식민지에 있는 형님 집으로 오게 된 거지."
이 얘기를 듣고, 랠리는 자기가 알고 있는 목성 식민지의 역사와 비교하여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이상하게 생각했다.
목성 태생의 하르 엘리슨이 왜 우주 정찰 사관 학교에 입학했을까? 우주 정찰군과 사관은 지구 정부에 충성을 맹세하는 것을 자랑으로 삼고 있다. 그런데 하르 엘리슨은 지구와 지구의 식민지 정책을 싫어하는 환경에서 자란 것이다.
20년 전 목성 식민지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지구 정부는 목성 식민지에 제대로 원조를 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그들은 자력으로 목성에서 광산을 개발했다. 그런데 지구 정부에서는 광산에서 캐내는 천연자원을 계속해서 운반해 갈 뿐더러, 그들에게 많은 세금을 내게 했다. 그래서 참을 수가 없었다.
(우리는 그들의 노예가 아니다. 지구의 손을 벗어나 독립해야 한다.)
하며 식민지에서는 지구가 천연자원을 가지고 가는 것을 거부했다. 지구는 곤란하게 되었다.
식민지 쪽에서는 개발 원조를 제대로 해 주지 않았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지구의 경제가 위태로울 정도로 많은 개발 자금을 목성에 투자했던 것이다. 지구의 경제를 회복시키기 위하여 목성에서 나오는 천연자원을 지구에 운반하고, 식민지에는 세금을 부과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다. 지구와 식민지 사이의 생각은 서로 엇갈려, 대화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게 되었다. 마침내 식민지의 사람들은 무기를 잡고 일어나 지구정부의 행정관들을 추방했다. 지구 정부는 목성 식민지의 반란을 진정시키기 위해 강력한 군대를 보냈다. 치열한 전투가 되풀이되어 많은 사람이 생명을 잃게 되고, 식민지는 지구군의 손에 잡히게 되었다. 그리하여 반란으로 살아 남은 식민지의 사람들은 죄수가 되어, 지금도 목성의 광산에서 강제 노동을 하고 있다. 만약 하르의 양친도 살아 남았다면 비참한 죄수가 되었을 것이다.
"화성의 집에서 떠나온 지 한 달 가까이 되었어. 2. 3개월 후에 이 행성간 여행을 마치면 우리도 이제 우주 정찰군의 사관이 돼."
하고 하르가 말한다.
"그렇고 말고."
랠리도 고개를 끄덕이며, 우주 정찰군 사령관의 제복을 입은 아버지의 모습을 생각했다. 할아버지도 생각했다. 사진으로만 본 증조 할아버지도 생각했다. 스타크 집안의 장남은 대대로 우주 정찰군에 들어가 지구를 위하여 일하여 왔다.
"나는 어릴 때부터 우주 비행사가 꿈이었어. 그래서 우주 정찰군에 입대했지. 우주 정찰군의 사관이 되면, 아직 한 번도 보지 못한 지구에 갈 수 있게 될는지?"
하고 하르는 열을 올리며 말했다.
"그렇고 말고, 하르. 우리는 알파 C에서 바로 지구로 향해.“
"알파 C에 가는 것도 나의 목적의 하나야, 랠리."
“나는 살아 있는 공룡과 식민지가 보고 싶어. 우주 식민지에서 태어나 우주 식민지에서 자라난 내가 알파 C 식민지에 대한 기분이 어떤지 너는 모를 거야.“
"알파 C 식민지에 대해서는 나도 소문을 듣고 있어. 어떤 친구가 이야기하여 주어서 말야.
“알파 C의 제 4행성에 있는 식민지는 지구의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해야 한다-라는 책을 읽었다고 하더군."
"혹시 「우주 노예는 싫다!」라는 책이 아냐?"
이렇게 말하면서, 하르는 자기 가방에서 푸른 표지의 책을 꺼냈다.
"이것 말인가? 매우 좋은 책이지."
그러나 랠리는 하르를 차가운 눈으로 쏘아보면서 말했다.
"그래, 그 책이야. 그러나 우주 정찰 사관 학교 출신의 연습생이 이런 책을 읽는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어. 넌 우주군에게 망한 식민지의 출신일지는 모르지만, 사관 학교에 입학할 때에는 지구에 충성을 맹세했을 텐데."
랠리의 음성이 높아졌으므로, 하르는 입에 손을 갖다댔다.
"좀 작은 소리로 말하라고. 마치 우리가 싸우는 것처럼 보이잖아. 확실히 나는 지구에 충성을 맹세했지. 그러나 알파 C의 실정을 알고서는, 그 곳 사람들이 지구의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하고 싶은 것도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어."
"그렇다면 지구에 대한 충성에 위배되지 않아?"
라고 말했지만, 랠리의 심중은 혼란스러웠다. 한 달 가까이 같은 선실에서 생활하는 동안에, 하르의 사리 판단과 많은 지식에는 종종 감탄한 바 있었다. 그 하르가 지금 지구의 정책을 공격하고 있다.
(이것만은 하르의 의견을 인정할 수가 없다.)
랠리는 어릴 때부터 교육받아 온 지구에 대하여 충성을 다하리라고 결심했다.
"이 책을 읽으면 너도 생각을 달리할 거야. 지구가 항상 옳다고만 생각할 수는 없어. 랠리, 아무튼 이 책을 읽어보라구. 읽어보고 나서 토론하자."
하며 하르는 책을 랠리의 쪽으로 내밀었다. 책으로 손을 뻗으려 하다가 랠리는 단념했다.
"아니, 나는 읽고 싶지 않아. 지구는 항상 정당한 일을 하고 있을 거야. 알파 C 제 4행성의 식민지에서도 틀린 짓을 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고. 지구를 비난하는 책을 읽고 마음을 동요시키기 싫어. 너는 나와 달라, 하르. 너의 부모는 목성 반란 때 지구군에게 피살되었지. 그 후부터 너의 마음 한 구석에 지구를 원망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지구의 정책을 공격하는 책에 관심이 있는 거야."
하고 랠리는 열을 내어 말했으나, 하르는 미소를 머금고 있을 뿐이었다. 문득 손목 시계를 보고, 랠리는 깜짝 놀랐다.
"아니, 1분 후에 통신 시간이다."
복장을 단정히 하고 하르의 방을 나오면서 한마디 덧붙였다.
"지금의 토론은 없었던 것으로 하자, 하르?"
"좋지, 랠리. 책은 치워 두겠다. 만약 네가 읽고 싶거든 읽어보라고. 자네의 눈도 조금은 열릴 거야."
"내 눈은 이렇게 떠 있다. 눈이 좀 희미해진 것은 너라고."
이렇게 말하고 랠리는 방을 나왔다. 통신실로 가는 복도를 걷고 있는 동안 어쩐지 마음이 어두웠다.
(뒤에 그 책을 한 번 읽어볼까?)
별로 해로울 것은 없다고 생각되나, 그런 것에 마음이 켕긴 것을 안다면, 아버지 스타크 사령관은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읽을 필요 없어.)
하고 자기 자신에게 말하고, 랠리는 힘차게 통신실로 들어갔다. 이미 라인하르트 선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주 통신의 수수께끼
"정확하게 시간을 맞추어 왔군."
하며 라인하르트 선장은 분명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통신하기 위하여 왔다. 본선은 이미 알파 C와의 통신 가능 구역에 들어와 있다."
랠리는 행성간 통신용의 거대한 장치 앞에 아무 말 없이 가 앉았다. 어깨 너머로 선장이 들여다보고 있는 속에 다이얼을 돌렸다. 장치에서는 가늘긴 하나 잘 들리는 잡음이 들려왔다.
잡음은 계속되었다.
(고장일까?)
당황하여 조사하여 보았으나, 장치는 정상이었다. 장치를 잘못 취급한 것도 아니다. 아직 연습생이지만 랠리는 우수한 통신사이다. 갑자기 잡음 소리가 그치며, 깔깔한 금속 적인 소리가 들려 왔다.
"여기는 알파 C의 감시 정거장. 그쪽은?"
랠리는 규칙대로 응답했다.
"우주 연습선 카르텐호. 지구시간 6월 1일에 명왕성을 출발, 알파 C 제 4행성의 런던 식민지를 향해서 항행 중. 착륙 허가를 부탁함."
상대의 금속적인 음성이 부드러운 사람의 음성으로 변했다.
"너는 매릴로인가?"
감시 정거장에서는 처음 질문은 로봇이 하고, 그 다음에 인간통신사에게 인계하게 되어 있다.
"아니, 랠리 스타크 연습생이다."
"최초의 행성간 여행인가? 나는 헨리이다. 미안하지만 너에게 착륙 허가를 내릴 수 없다. 제 4행성에 직접 연락해 보라. 런던 식민지 공항은 폐쇄 상태인 모양이다."
이 말을 듣고, 랠리는 라인하르트 선장을 쳐다보았다.
"누구의 명령인가 물어 보아라."
하고 선장은 말했다.
랠리는 헨리에게 물었다.
"본선의 라인하르트 선장은 공항을 누가 명령하여 폐쇄시켰는가 묻고 계신다.“
"식민지 사람들이 폐쇄시켰다. 그들은 런던 식민지 공항의 폐쇄를 행성간 여행 위원회에 신청했다. 그러나 그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자기들 멋대로 폐쇄시키고 말았다."
"그러면 본선은 제 4행성에 착륙할 수 없는가?"
"그들이 우주 정찰군의 우주선을 환영할는지… 아무튼 직접 물어 보라, 지금 런던 식민지 공항에 연결하여 주겠다."
하고 감시 정거장의 통신사는 말을 끊었다. 그리고서 2,3분 지 나자, 새로운 음성이 통신 장치에서 흘러 나왔다.
"이 곳은 알파 C 제 4행성 자유 세계의 통신사 밀러. 그쪽의 용건을 말하라!"
랠리는 놀라면서 선장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알파 C 제 4행성 자유 세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쪽의 용건을 말하라!"
하고 제 4행성 의 통신사는 재촉했다. 그러자 라인하르트 선장은 랠리에게 자리를 비키게 하고, 자신이 직접 통신 장치 앞에 앉았다.
"이쪽은 지구의 우주 연습선 카르텐호의 라인하르트 선장이다. 런던 식민지 공항에 착륙하는 허가를 얻고싶다."
"제 4행성은 지금 외부와의 접촉을 끊고 있습니다, 선장. 런던 식민지 공항은 폐쇄 중이라서…"
"폐쇄라고? 누구의 명령으로 폐쇄하였는가?"
라인하르트 선장의 얼굴은 상기되었으나 상대의 목소리는 조용했다.
"알파 C 제 4행성 자유 세계 평의회의 명령입니다. 당신의 우주선은 수리가 필요합니까7"
"아니다. 이쪽은 우주 연습선이다. 해리슨 대통령의 관저에 연결해 주기 바란다."
"대통령도 평의원도 지금 이 런던 식민지에는 없습니다."
그러자 라인하르트 선장은 분노에 찬 얼굴로 한참 통신 장치를 쏘아보더니, 갑자기 큰 소리로 외쳤다.
"너희들은 반란을 일으켰는가?"
그러나 그 답변은 피하고, 런던 식민지의 통신사는 다른 말로 말했다.
"알파 C 제 4행성 자유 세계에 착륙하는 것은 당분간 금지되어 있습니다…"
이 때, 다른 소리가 튀어나왔다.
"라인하르트 선장, 시카고 식민지에 착륙하여 주십시오."
"무슨 소리를 하고 있나? 들어가라!"
하고 런던 식민지의 통신사는 화가 나서 방해를 하기 시작했다.
랠리는 라인하르트 선장 옆에서 손을 뻗쳐 다이얼을 돌려서는 방해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했다.
"그쪽은?"
하고 라인하르트 선장은 다른 소리에 물었다.
"시카고 식민지에 있는 해리슨 대통령의 임시행정본부입니다. 이 곳에 착륙해 주십시오."
선장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랠리는 하르가 보여 주던 푸른 표지의 책과 목성 식민지의 일들이 머리에 떠올랐다.
"그러면 그쪽에 착륙하겠습니다.“
"그러십시오. 해리슨 대통령은 당신들의 착륙을 환영하실 것입니다."
통신은 끊어졌다.
라인하르트 선장은 장치 앞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굳어진 얼굴로 랠리를 쳐다보더니, 말 한 마디 없이 뚜벅뚜벅 통신실을 걸어나갔다. 랠리도 선실로 돌아왔다. 하르는 지구의 음악을 들어가면서 열심히 책을 읽고 있었다. 랠리를 보더니 레코드를 끄고 물었다.
"통신 연락은 잘 되었어?"
"우리가 착륙하는 곳은 런던 식민지가 아니고, 시카고 식민지로 변경되었어."
하고는 랠리는 통신의 내용을 하르에게 알리지 않을 결심을 했다.
"자네가 없을 동안에 나는 궤도 계산을 해 보았어. 랠리, 이 우주선은 내일, 알파 C 제 4행성에 착륙하지 않으면 안돼. 이미 우리는 제 1 행성과 제 2 행성의 궤도를 통과했어 지금 제 3행성의 궤도에 가까이 가는 중이야."
"알파 C 계통의 행성 무리들은 조금 달라. 제 1 행성은 우리 태양계의 수성 정도의 크기로 이상은 없으나, 제 2 행성과 제 3 행성은 무언가 모르게 이상하다고."
알파 C의 천체에 대해서는 랠리가 더 잘 알고 있다.
"쌍둥이 행성인가? 흥미가 있군."
"그래. 제 2 행성과 제 3 행성은 서로 상대의 주위를 돌고 있어. 크기는 두 개 다 화성 정도인데, 사람이 살 만한 곳은 못 돼."
"왜?"
"두 행성은 거리가 가까워서 조수의 간만이 심해. 만조가 될 때마다 대홍수가 일어나, 행성의 표면 전부가 물에 잠기지. 그래서야 식민지를 만들 수 없지."
"그렇겠지. 농장물의 수확이 적어서는 식민지는 자급자족할 수가 없을 테니까."
하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하르는 모든 식민지가 지구의 원조를 받지 않고 자급 자족하기를 원하고 있는 것 같다.
랠리는 의심스러웠다. 하르는 지구와 우주 정찰군에 충성을 맹세하긴 했어도 지금은 마음이 동요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자칫 잘못하면 맹세를 잊어버리고 충성심을 버릴는지도 모르겠다.
"다른 행성은 어때, 랠리?“
"제 4행성은 공기가 있으니까 사람이 생활하는 데는 가장 적당하지. 지구와 닮았어."
하며 랠리는 한 교과서를 집어들고는 책장을 빠르게 넘겼다.
"봐, 하르. 이것이 제 5행성이야. 크기는 지구 정도인데, 유독 가스의 대기에 덮여 있어. 제 6행성은 대단히 춥지만, 작은 식민지가 하나 있어."
"식민지라고? 나는 몰랐는데. 자네의 교과서에는 어떻게 씌어 있나?"
"가장 최근의 보고에는 압력 돔(반원형의 지붕)안에 12명의 개척자가 살고 있다고 하는군."
"식민지의 시작이구나.“
하르는 웃으면서 말했다.
"제 7행성과 제 8행성은 거대한 행성이야. 중력이 너무 강하여 사람은 움직일 수도 없지. 그러므로 우주선을 착륙시키기 곤란해. 즉 목성보다 더 강한 중력의 지옥이야."
"그래, 나도 책에서 읽은 일이 있어, 랠리. 20년 전에 우주 정찰군의 우주 조사선이 제 7 행성에 갔었지. 다행히 착륙은 성공하였으나, 굉장한 중력 때문에 이륙이 불가능했어. 승무원은 굶어 죽을 때까지 땅에 들러붙어서 움직일 수도 없었어. 그것은 큰 실수였었어. 우주 정찰군은 뒷일은 생각하지도 않고 용기만 믿고 행동하는 일이 간혹 있어."
"자네는!"
하며 랠리는 얼굴을 바로 하며 하르를 쏘아보았다.
"자네는 자네가 우주 정찰군의 한 사람이라는 것을 잊고 있는가? 자네의 말버릇은…"
"그렇게 화내지 말아, 랠리. 우주 정찰 사관이 유머정도도 이해할 수 있는 교양이 없다면 곤란해."
"미안, 하르. 내가 너무 신경질적이었어."
"괜찮네. 자네의 교과서에는 알파 C 계통의 생물에 대하여 어떻게 씌어 있던가?"
"거의 없어. 물론 제 7 행성, 제 8 행성은 중력이 너무 강하여 생물이 성장할 수 없어. 하지만 해파리 같은 것은 다소 있는 모양이야. 제 9, 제 10, 제 11 행성은 생명이 싹트기에는 온도가 너무 낮지. 제 2, 제 3 행성에는 원시적인 생물이 있어. 제 6 행성에는 원시적인 냉한대 생물이 있다. 제 1 행성은 너무 덥고 제 5행성도 알파 C의 태양에서 너무 멀리 위치하고 있어 이렇다 할 생물이 없는 것 같아. 제 4행성에 대해서는 자네도 잘 알고 있을 거고."
"글쎄."
하며 하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랠리는 교과서를 덮고, 알파 C 제 4행성의 모습을 머리 속으로 그려보았다. 내일이면 착륙한다. 꿈속에서 그리는 것은 오늘 저녁뿐이다. 제 4행성은 열대의 세계이다. 곳곳의 무성한 밀림에는 지구의 식민지가 흩어져 있다. 그러나 행성의 연령은 지구보다 1억 년 젊어서, 큰 나무가 빽빽이 들어선 원시림에는 무서운 공룡이 어슬렁거리고있다.
(공룡이 가까이 오면 땅이 울렁거릴까? )
라는 생각만 해도 랠리는 몸이 오싹해졌다.
공룡의 요리
6월 16일 정오, 카르텐호는 제 4행성을 감싸고 있는 대기권 근처에 도착했다. 그 곳에서 지상의 유도에 따라 착륙 궤도에 들어섰다. 지상에서 3만m 되는 곳까지 내려갔을 때, 시카고 식민지에서 소형 우주선으로 마중을 왔다. 4척의 우주선은 시카고 식민지의 바깥쪽에 있는 초원에 착륙했다. 그 곳까지 식민지 사람들은 환영을 하려고 나와 있었다.
(드디어 공룡이 있는 행성에 도착했다!)
랠리는 기운차게 제 4행성의 땅을 밟았으며, 처음으로 놀란 것은 중력이 큰 것이었다. 몸이 무거워져 발을 들어올리는 데에도 힘이 들었다. 알파 C 제 4행성은 지름이 1만 6천 km나 되어 지구의 1만 2천 7백km에 비하면 상당히 커서, 그만큼 중력도 강하다. 그러므로 이 행성에서 태어난 식민지의 사람들은 큰 중력과 싸워 가며 살기 때문에, 근육과 골격이 발달하여 오헤어와 같은 큰 사나이가 된다. 이 중력도 목성만큼 강대하게 되면 생물에 대해 반대 작용을 한다. 목성 태생의 사람은 하르와 같이 키가 작고 뚱뚱한 체격이 된다. 같은 사람이라도 중력의 크고 작음에 따라 체격이 달라지는 것이다. 다음으로 랠리가 놀란 것은 제 4행성의 공기였다. 맑은 공기를 힘차게 들이마시고 천천히 토하면서 생각했다.
(맛있구나.)
하르도 다른 승무원도 정신없이 깊숙이 공기를 들어 마셨다. 무리도 아니다. 지구를 출발하여 자연의 공기를 마셔 본 일이 없다. 화성에서는 돔의 안에서 인공 공기를 호흡했다. 돔밖에도 대기는 있지만 산소가 적기 때문에 호흡할 수가 없다. 명왕성에는 돔의 밖에는 대기가 전혀 없다. 대기는 바위에 얼어붙어 있다. 카르텐호의 선 내에서는 화성과 명왕성에서처럼 인공적으로 재생한 공기를 호흡하여 왔다. 그래서 랠리는 자연의 공기 맛을 거의 잊어버릴 정도였다.
(알파 C제 4행성에는 돔이 없다. 자연의 공기 속에서 살 수 있다!)
랠리는 다시 한 번 심호흡을 했다. 우주 여행에서 자연의 공기를 마음껏 호흡할 수 있는 것은 드물다. 제 4행성의 공기는 달고 머리가 멍할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산소가 풍부하다.)
랠리는 교과서의 한 구절을 생각해 내었다.
(제 4행성의 공기는 지구의 공기에 비하여 산소의 비율이 높다. 그러므로 한층 더 신선하게 느껴지겠지.)
랠리 등은 우주선보다 30m나 공중 높이 솟아 있는 거대한 성벽을 향해서 걸어갔다.
사방에는 윤이 나고 싱싱한 초록색의 식물이 무성하고, 처음 보는 수목이 머리 위에 높이 솟아 있다.
"이 성벽은 공룡을 막기 위하여 만든 것입니다. 이 행성에 있는 4개의 식민지는 전부 이러한 성벽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하고 근육이 튼튼한 한 식민지의 사람이 설명했다. 랠리는 사방을 돌아보았다. 이 세계는 아직 지구의 중생대와 같은 시기이다. 동물이나 식물이나 1억 년 전의 지구와 닮은 거대한 것이 많다. 벽 밑에는 높이 2m쯤 되는 작은 문이 있었다. 큰 야수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만든 것이다. 그 문을 통하여 랠리 등은 시카고 식민지 안으로 들어갔다. 번화한 곳이었다. 작은 가게와 시장, 주택 등이 늘어서 있다. 그러나 지구의 도시처럼 번쩍번쩍 빛나는 금속의 건물은 하나도 없었다. 흡사 미국의 서부 개척 시대에 건설한 빈약한 시가지 같았다. 승무원일행은 식민지 사람에게 안내를 받으며 시가지의 길을 걸었다. 라인하르트 선장은 안내역과 나란히 걸어가며 무언가 속삭였다. 양쪽의 가게와 주택에서 사람들이 나와서는 신기한 듯이 랠리 등을 구경하고 있었다.
"똑똑히 봐. 도로가 모두 콘크리트로 만들어져 있어."
하고 랠리는 키가 작은 연습생 하이틀 ․반 ․하렌에게 속삭였다.
"플라스틱은 비용이 많이 드니까 사용하지 않은 모양이야"
하이틀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이 곳 사람들은 플라스틱을 사용할 기분이 안 날거야. 콘크리트가 튼튼하고 실용적이야."
하고 하르가 말했다. 하이틀도 하르의 의견에 찬성했다. 이윽고 랠리 등은 건물로 들어가 긴 계단을 올라갔다. 엘리베이터에 익숙한 랠리 등에게는 긴 계단이 신기하게 여겨졌다. 계단을 다 올라가자, 넓은 방이 있었다. 방 한가운데에서 구식의 옷을 입은 백발의 노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노인은 일어서서 랠리 등에게로 다가왔다. 나이는 많으나 잘생긴 얼굴이고, 걸음걸이도 당당하였다.
"나는 알파 C 제 4행성 식민지 정부의 해리슨 대통령입니다."
하고 자기 소개를 하고 난 해리슨 대통령은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망명 중입니다만…"
라인하르트 선장도 자기 소개를 했다. 그리고 승무원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 소개하고, 다시 무언가 얘기하려고 하자, 해리슨 대통령이 가로막으며 말했다.
"시장하시겠죠?"
랠리는 선장을 대신하여, '예'라고 대답하고 싶었다. 오래간만에 신선한 공기를 많이 마셔서인지 대단히 배가 고팠다.
그러나 라인하르트 선장은 용건을 먼저 처리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사나이였다.
"식사보다 먼저 이 곳의 정세를…"
"아니, 식사부터 먼저 하는 것이 좋겠어요. 그리고 나서 천천히 얘기하는 것이 좋겠어요."하며 해리슨 대통령은 랠리 등을 식당에 안내하고는 테이블에 앉게 했다. 랠리 등은 아무 말 없이 식사를 시작했다. 해리슨 대통령 외에도 몇 사람의 식민지 사람도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인조 식품의 틀에 박힌 요리만 먹고 있던 랠리는 식민지의 음식이 신기했다. 최고 요리는 스테이크인데, 조금 딱딱하였으나 맛은 좋았다. 랠리가 접시의 스테이크를 깨끗하게 먹고 나자, 갑자기 해리슨 대통령이 말했다.
"이 고기, 맛이 있어요?"
"예… 대단히 맛있습니다."
하고 랠리는 가슴을 두근거리면서 대답했다.
"그것 참 잘 되었소. 이 곳에 오는 손님들은 공룡 스테이크를 그리 좋아하지 않아요."
"공룡 스테이크!"
랠리가 깜짝 놀라면서 빈 접시를 내려다보자, 다른 승무원들이 씨익 웃었다.
"공룡 스테이크는 이 곳의 주식이오. 시카고 식민지의 인구는 약 1천명, 1주일에 두세 마리의 공룡을 잡으면 모두의 식량이 마련되오. 또 공룡의 뼈를 가지고 조각을 많이 만드는데, 그건 나중에 구경하시오."
하고 말을 마치더니, 해리슨 대통령은 묵묵히 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치고, 랠리 등은 넓은 방으로 되돌아왔다. 해리슨 대통령이 이야기를 꺼냈다.
"라인하르트 선장, 참 잘 오셨습니다. 이미 아시겠지만, 지금 제 4행성에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나는 우주 정찰군에게 원조를 청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내 자신이 문제를 평화롭게 해결하고 싶습니다.“
"당신이 말씀하시는 것을 전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대통령. 나는 자세한 것은 모릅니다만 당신은 왜 런던 식민지에서 시카고 식민지로 오셨습니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라고 말하면서, 라인하르트 선장은 이맛살을 찌푸리며 랠리 등을 힐끔 쳐다보았다. 필경 해리슨 대통령과 단 둘이서 비밀로 얘기하고 싶은 모양이다. 그러나 해리슨 대통령은 의자에 앉으면서, 모두의 앞에서 입을 열었다.
"당신들도 아시는 바와 같이 행성간 평의회는 알파 C 제 4행성에 대하여 앞으로 25년 내에 독립을 인정할 것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 4행성의 각 식민지에서도 이미 독립의 준비를 하고 있지요.
"그 일은 알고 있습니다."
하고 라인하르트 선장은 말했다. 랠리와 하르는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다. 다른 승무원들은 묵묵히 듣고만 있다.
"그런데 알파 C 제 4행성의 사람들은-물론 당신들은 제외하고 왜 지구인을 차갑게 대하고 있습니까?"
선장은 착륙전의 교신으로 생각한 바가 있는 모양이다.
"런던 식민지에 있는 혈기 왕성한 많은 모임들은 행성간 평의회의 약속은 제 4행성의 독립을 연기시키고 우물쭈물하고 말려는 음모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리하여 런던 식민지에 알파 C 제 4행성 자유 세계 평의회를 새로 만들어서는 대통령인 나를 이곳으로 추방시킨 것입니다."
"헨리크스 마을과 봄베이 식민지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역시 반란에 참가하였습니까?"
"아마도… 지금 이 행성에서 지구에 충성을 바치고 있는 것은 시카고 식민지뿐입니다."
해리슨 대통령의 말이 끝나자, 라인하르트 선장은 의자에서 일어서더니 화가 난 붉은 얼굴로 외쳤다.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행정관은 어디 있습니까? 지구에서 파견되어 있는 행정관은 반란에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할 여유가 없었지요.
"왜죠?"
"런던 식민지의 무리는 행정관을 지구로 강제로 보내고 말았습니다, 선장."
하더니 해리슨 대통령의 음성은 갑자기 작아졌다.
"더욱이 은하계 여행용의 우주선에 5년 분의 식량을 싣고."
카르텐호의 승무원들은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하르는 빙긋이 웃고 있었다. 행정관을 몇 년간이나 우주선에 가두어 두는 것은 잘한 방법이다. 그러나 그것은 해리슨 대통령을 런던 식민지에서 추방하는 것보다 더 중대한 일인 것이다.
"이 사건을 대통령인 당신께서는 바로 우주 정찰군에 알렸어야 할 일이 아닙니까?"
하고 라인하르트 선장이 비난하자 해리슨 대통령은 몸둘 바를 몰라하며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
"알리려고 생각했습니다만 마침 카르텐호가 접근중이라는 이야기를 듣고서 당신들을 맞이하기로 한 것입니다."
이야기를 듣고 있는 동안에 랠리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식민지의 사람은, 지구에 충성을 맹세하고 있는 해리슨 대통령 같은 사람도 지구를 우습게 보고 있다. 그래서 앞으로 25년 뒤에 독립시켜 주겠다는 지구의 의견을 무시하고 반란을 일으키는구나. 그러나 지구에서 강력한 우주 정찰군이 도착하면 반란은 곧 진압될 것이라고 랠리는 생각했다.
"그래서 시카고 식민지도 다른 세 식민지의 반란에 참가할 작정입니까?"
라인하르트 선장은 신중한 질문을 했다.
"지금 형편으로는 뭐라고 말 할 수 없습니다. 내일 저녁 시카고 식민지의 전 주민이 모여 회의를 열어 지금처럼 충성을 다할 것인지를 결정합니다."
라고 해리슨 대통령은 엄숙한 태도로 대답했다.
주저할 수가 없다. 만약 시카고 식민지가 반란에 참가한다면 카르텐호의 승무원들은 적지에서 고립하게 되고 만다.
"곧 손을 써서 반란의 확대를 막자. 올코트, 자네는 시카고 식민지의 반란파 지도자에게 연락을 취하라. 시카고 식민지는 우주 정찰군의 계엄령 하에 있다고 통고하라!"
하고 라인하르트 선장은 카르텐호의 부관인 올코트 우주비행사에게 명령했다. 그리고는 랠리 등을 날카로운 눈으로 돌아보았다.
"다른 사람들은 비상사태에 대비하라! 나는 해리슨 대통령과 더 이야기를 하겠다."
랠리 등은 시가지의 변두리에 있는 가까운 건물로 들어갔다. 텅 빈 넓은 방이 세 사람의 연습생 - 랠리, 하르, 하이틀에게 할당된 곳이다.
방의 한쪽 창으로 거대한 성벽이 보였다. 또 한쪽 창에서는 끝없는 밀림을 바라볼 수가 있었다.
"랠리, 전투가 시작될까?"
하이틀이 불만스럽게 물었다
"글쎄…"
랠리는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사관 학교에 있을 때부터 하이틀은 과학교수들을 당황하게 만들 정도로 수재였으나, 동작이 느리고 군사 교련과 체육은 잘 하지 못했다. 그래서 가능한 한 싸우지 않고 해결하였으면 하는 생각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이제부터 돌아가는 형편을 난들 알 수 있나. 그러나 전투가 시작되면, 우주 정찰군의 공격용 우주선이 와서 우리들을 구출하여 줄거야."
"아니, 그 전에 집단 학살을 할거야. 랠리, 요전에 내가 너에게 얘기한 목성 식민지의 반란 때와 같이 처음에는 소규모 반란에서 대규모 전쟁이 된다. 정말 그 때와 똑같은 과정이야." 하고 하르가 참견했다.
"목성 식민지와 같은 실패를 되풀이하는 것은 싫어. 제 4행성의 사람들은 힘이 무척 세고 일을 잘 해. 그러한 상대를 적으로 해서 싸우는 것은 불리해."
하고 랠리는 솔직하게 말했다.
"그래."
하르는 빙긋이 웃으며, 창가로 걸어가서 말을 계속했다.
"정직하게 열심히 일하는 식민지 사람에게 목에 형틀을 걸고, 노예같이 혹사하려는 지구 사람의 생각은 잘못되었다고 생각되지 않나, 랠리? 목성에서도 화성에서도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났어."
"그만해! 지구 사람이 식민지 사람들에게 목에 형틀을 건다는 것은 어떤 뜻이지? 너는 비뚤어져 있어, 하르. 지구는 식민지의 개척을 원조하고 그 자금을 회수하고 있을 뿐이야. 지구의 원조가 없었더라면 어떤 식민지도 발전하지 못했을 거야."
랠리는 격한 어조로 말했다.
"그야 그렇지. 그러나 지구를 의지하지 않았더라면 어떤 식민지도 풍요한 독립 국가가 되었을 거야. 이 시가의 도로도 구멍 투성이가 되지 않았을 것이고. 랠리, 자네는 대대로 우주 정찰군에서 일하고 있는 가문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만사를 바보같이 지구만 믿으려 하고 있어. 그렇게 생각해 본 일은 없어?"
"우리 스타크 가문을 모욕하나?"
하며 랠리는 주먹을 불끈 쥐고, 부르르 떨면서 하르 쪽으로 다가갔다. 하르는 꼼짝도 않았다. 키는 작으나 튼튼한 몸을 굽혀서 대항할 자세를 취했다. 그 때, 둘의 사이를 하이틀이 가로막았다.
"진정하라고. 싸우려면 밖에 나가서 해. 힘이 남아돌거든 공룡 사냥이나 가시지. 나는 피곤하여 자고 싶다고."
"하이틀의 말이 옳아. 시원찮은 짓은 하지 말자."
먼저 랠리가 손을 내밀었다. 하르도 랠리의 손을 잡고 말했다.
"이 문제는 언젠가 다시 조용히 얘기하자. 우리들도 좀 자야지."
우리에게 자유를
이튿날 아침 일찍 랠리는 눈을 떴다. 어제 저녁 열어 두었던 창에서 따스하고 달콤한 공기가 흘러 들어와, 향수처럼 방안을 가득 채우고 있다. 하르와 하이틀은 아직 정신없이 자고 있었다. 두 사람에게 방해가 되지 않게 랠리는 살며시 침대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
성벽 저쪽의 초원에는 카르텐호가 착륙한 그 때의 모습대로 서 있었다. 초원의 주위는 30m가 넘는 거목의 숲이다. 수목은 밑에서 쳐다보았을 때는 소나무 같다고 여겼었는데, 위에서 내려다보니 단풍과 떡갈나무, 야자 같은 잎도 눈에 띄었다. 갑자기 수목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꽉 어울려 있는 가지가 앞뒤로 흔들리고 좌우로도 흔들렸다.
"무엇일까?"
랠리는 발돋움하여 창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아침해는 이미 성벽 위에 올라와 있는데, 아직 사방은 조용하며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나무들의 흔들림은 점점 심해지고, 별안간 밀림이 둘로 갈라지더니 큰 바위 같은 것이 초원에 나타났다.
"앗!"
랠리는 갑자기 숨을 삼켰다. 그것은 지금까지 보지 못한 거대한 동물이었다.
"공룡이다!"
랠리는 뒷걸음질치면서 침대에서 자고 있는 하르의 발을 잡고 흔들었다.
"왜 이러는 거야?"
잠이 덜 깬 하르는 입안에서 중얼거렸다.
"일어나! 창 밖을 봐!"
다시 한 번 랠리는 흔들었다.
"왜 이래?“
하르는 크게 하품을 하면서 몸을 일으켰다.
"이쪽으로 와서 밖을 내다보라고."
아직도 잠이 들깬 하르를 랠리는 창가까지 끌어 당겼다.
"뭐야?"
눈을 비비며 하르는 1분간쯤 아무 말이 없었다.
"나를 꼬집어 봐. 아직 잠이 들깬 모양이야.
"자네는 깨어 있어."
하고 랠리는 피식 웃었다.
"저것이 이 행성의 공룡이야. 하르, 자네가 키우면 어때?"
두 사람은 눈을 깜박이지도 않고 자세히 내려다보았다. 초원에 모습을 나타낸 거대한 파충류는 검은 잿빛인데, 4개의 굵은 발을 가지고 있고, 긴 목 끝에 작은 머리가 달랑 얹혀 있었다. 몸통의 크기에 비하면 이상할 정도로 작은 머리이다. 뚱뚱한 몸통 뒤에는 허리뼈가 통해 있는 꼬리가 길게 뻗쳐 있고, 그 끝은 밀림 속에 있어서 보이지 않는다.
"저놈이 우주선으로 다가간다!"
하고 하르가 말했다. 괴물은 아침 햇살을 받아 번쩍이고 있는 우주선에 주의 깊게 다가가려 하고 있다. 한 발자국을 뗄 때마다 쿵, 쿵, 쿵하는 소리가 나는데 건물 안에 있는 랠리 등에게까지 땅의 울림이 전해 오고 있었다. 두 사람의 대화로 잠을 깼는지 하이틀도 창가로 왔다. 세 사람은 정신없이 공룡의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공룡은 아무도 없는 우주선 가까이까지 다가가서는 거대한 목을 치켜들고, 콧등으로 차가운 선체의 냄새를 맡았다. 푸른 하늘에 똑바로 서 있는 우주선 머리에서, 지상 30m 높이에 있는 승강구의 출입문 근처까지 자세히 살펴보고는 콧등으로 출입문을 밀었다. 출입문이 열리자 큰 한쪽 눈으로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 곳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을 것이다. 공룡은 머리를 낮추고
우주선의 주위를 한 바퀴 돌고는 다시 밀림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얼마 안 되어, 카르텐호의 승무원들은 아래층에 모여 시끄럽게 떠들기 시작했다."만약 다시 공룡이 카르텐호에 가까이 오면 어떻게 하지? 그 놈이 우주선을 넘어뜨리지는 않을까?"
라는 불안을 품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우주선을 움직일 수도 없고, 우주선의 주위에 높은 성벽을 쌓아올리는 것도 무리야."
이야기가 채 끝나기 전에 라인하르트 선장이 방안으로 들어왔다. 곧이어 해리슨 대통령 이 제 4행성의 자위대 병사 두 사람을 데리고 나타났다. 병사들은 햇볕에 검게 그을린 식민지의 젊은 사나이들이었다.
"이 사람은 존 브라운-시카고 식민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혁명 운동의 지도자입니다."
하고 해리슨 대통령이 소개했다.
라인하르트 선장은 햇볕에 그을린 사나이를 보고 냉정하게 말했다.
"이쪽으로 오게, 브라운. 자네에게 묻고 싶은 말이 있다.“
훤칠하게 키가 큰 브라운은 태연스럽게 라인하르트 선장 앞으로 나아가서 질문을 기다렸다.
"자네들은 오늘 저녁 여기에서 회의를 한다지, 존?"
다짜고짜로 라인하르트 선장은 질문했다.
"나를 체포할 작정입니까, 선장?"
"걱정하지 말게. 어떤 목적으로 회의를 하는가 알고 싶을 뿐이니까."
"그러면 이야기하지요. 다른 3 개의 식민지 일은 알고 계시겠지요? 우리는 오늘 저녁 회의를 열어, 시카고 식민지가 3개 식민지의 반란에 참가할 것인가를 주민 투표로써 결정할 작정입니다. 만약 내가 출석을 못하면 동료가 대신하여 회의의 사회를 맡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생활을 외면하고, 자유도 주지 않으며, 거기에다 무거운 세금까지 가혹하게 받아 가는 지구로부터 독립을 쟁취하는 길은 단 하나, 4개의 식민지가 단결하여…"
"이제 알겠다. 브라운."
하고 라인하르트 선장은 상대방의 말을 중지시키며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현재 시카고 식민지는 계엄령 하에 있다. 그러니 내게는 오늘 저녁의 회합을 금지시킬 권한이 있다는 것을 물론 알고 있겠지?“
"저건 언론통제인데."
하고 랠리는 놀라면서 하르에게 속삭였다.
"쉬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보자고."
하르가 주의를 주었다.
"알고 있고 말고요.“
하며 브라운은 능글맞게 웃었다.
"그러나 선장, 시카고 식민지의 반란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럴까… 그런데 왜 알파 C 제 4행성이 갑자기 독립을 원했는가?"
이 말을 듣고, 브라운의 눈은 이글이글 빛나기 시작했다.
"갑자기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신장. 우리는-우리의 조상이 이 곳에서 살기 시작한 이후, 오랫동안 독립을 원해 왔습니다. 지금은 이미 지구를 의지할 시대는 끝났습니다. 우리는 자급자족할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의 힘으로 훌륭하게 이룩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지구는 필요 없으며, 지구 역시 우리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지구는 우리에게 세금을 거둬들이기 위해서 독립허가를 내주려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바치는 세금이 지구의 거대한 경제에 얼마쯤 보탬이 될까요? 지구가 이렇게 빈약한 식민지를 괴롭히려는 것은 비겁한 행동이 아니겠습니까."
"그 말은 옳지 않다. 무역으로 서로가…"
"무역? 4, 5광년이나 떨어져 있는데도요? 무역의 상대로서는 너무나 멀지요. 우리가 지구에서 공급받는 것은 책과 도구 종류뿐입니다."
"너희들이 반역자가 되면 그 책과 도구도 지구에서 오지 않는다. 그래도 좋은가?"
하고 해리슨 대통령이 말했다.
"우리들 힘으로 어떻게 해 보겠습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자유를 원하고 있습니다. 지구에서 보낸 행정관에게 감시당하지 않으며, 우리의 모든 행동을 일일이 지구에 보고하지도 않으며, 지구에서 부과한 세금을 바칠 필요도 없으며, 우리 자신의 정부를 세울 자유를 찾아야 하겠습니다."
라는 브라운의 소리는 차츰 커져서 넓은 방안을 쩌렁쩌렁 울렸다.
"지금 하고 있는 저 말들은 내가 가지고 있는 책에서 인용한 말이야. 거의가 책에 써놓은 그대로군."
하고 하르는 랠리에게 속삭였다. 랠리는 잠자코 생각에 잠겼다. 지금까지 지구는 명예스러우며, 정당하며, 식민지의 수호자 즉 약한 사람의 편-이라는 교육을 받아왔고 그대로 믿어왔었다. 그런데 지금 어쩐지 그 신뢰감이 흔들리는 것 같다. 라인하르트 선장도 아무 말이 없고, 브라운의 열띤 말만이 울려 퍼질 뿐이었다.
"지구는 모든 면에서 우리의 머리를 누르는 정책을 취하고 있습니다. 세금도 이렇게까지 바칠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이상합니다. 또 행성간 평의회에는 아직까지 우리의 대표를 보낼 수가 없습니다. 라인하르트 선장, 당신은 지구의 역사를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지금부터 6백년 전, 지구의 곳곳에 있었던 식민지는 흡사 지금의 우리와 같은 상태였습니다. 당시의 식민지는 지배자에게 어떻게 말하였던가요? '선거권이 없으면 세금도 못 내겠다.' 이 말을 기억하고 계시겠지요, 선장?"
"알고 있다."
"그 뜻을 잘 아십니까? 이 식민지는 이미 독립 국가로서 자립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행성간 평의회는 우리에게 독립을 주겠다고 확실히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그 시기는 지구의 형편이 좋을 때, 지구의 준비가 다 되었을 때가 아닙니까?"
라는 브라운의 소리는 랠리의 귀에도 크게 울려 퍼지며 들려 왔다.
"행성간 평의회가 쉽게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어떻게 해서 브라운이 알까?"
하고 랠리는 하르에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브라운은 너보다 지구의 역사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야. 행성간 평의회는 어쩔 도리가 없어야만…"
하고 하르도 속삭였다.
"브라운, 기다려라. 그러는 동안에 꼭…"
하고 해리슨 대통령이 말을 꺼내려는데, 브라운은 큰소리로 가로막았다.
"언제까지 기다립니까? 당신은 런던 식민지에서도 기다리라고 말하다가 추방되었습니다. 그래도 정신을 못 차리고 똑같은 말을 되풀이할 작정입니까? 우리가 행동하는 대신, 당신이 행성간 평의회과 담판하여 독립 허가라도 빨리 얻을 자신이 있습니까? 당신은 잘못 생각하고 있습니다. 독립을 얻기 위하여 일어선 런던 식민지 쪽이 정당합니다. 우리는 4개 식민지가 한 덩어리가 되어, 알파 C 제 4행성의 독립을 선언하지 않으면 안되겠습니다!"
"알았다."
하며 라인하르트 선장은 일어섰다. 그리고는 눈을 브라운에서 해리슨 대통령 쪽으로 돌렸다.
"나로서는 될 수 있는 대로 사태를 조용히 수습하고 싶습니다. 즉 반란을 진압하기 위하여, 우주 정찰군의 무장 우주선을 부르기 전에 어떻게든 수습하고 싶습니다. 나의 의사를 시카고 식민지 사람들에게 전달해 주지 않겠습니까, 해리슨 대통령? 그리고 이 브라운 씨는 구속하는 것이 좋겠지요."
그러자 출입문 쪽에 있던 몇몇 식민지 사람들이 라인하르트 선장을 위협하는 것처럼 다가왔다.
그것을 본 해리슨 대통령은 말했다.
"선장, 브라운을 체포하면 사태가 더 악화됩니다. 이대로 보내 주면 브라운은 우리의 각오를 혁명 측 사람들에게 말하겠지요."
"그러지요. 브라운을 내보내고 싶진 않지만 할 수 없겠군요. 그러나 오늘 저녁의 집회 문제는 어떻게 하지요?"
"예정대로 하도록 맡겨둡시다. 집회는 이미 허가가 나와 있거든요. 지금 와서 권력으로 금지시키면 복잡해집니다."
"알았습니다. 브라운을 석방하여 주십시오."
라인하르트 선장은 키가 큰 브라운이 태연하게 방을 나서는 것을 보고
"해리슨 대통령, 나와 함께 가 주십시오. 이 행성에서 반란이 일어나게 된 동기를 처음부터 자세히 알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방에서 나갔다.
뒤에 남은 승무원들은 한참동안 속삭였으나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라인하르트 선장은 아무런 명령도 내리지 않은 것이다. 승무원에게 아무 일도 시키지 않고 그대로 놀게 하는 것을 가장 싫어하는 선장으로서는 드문 일이다. 하르가 빠른 걸음으로 출입문으로 향했다. 그의 소매를 잡으며 랠리는 말했다.
"잠깐 기다려 주게, 하르. 같이 방으로 가지. 나는 자네가 가지고 있는 그 푸른 표지의 책을 읽고 싶어."
하르는 눈을 휘둥그래 뜨고 랠리를 가로막았다.
"다음으로 미루게, 랠리. 나는 브라운에게 이야기할 것이 있네."
하고 말하고는, 랠리를 남겨놓은 채 넓은 방에서 힘차게 뛰어 나갔다.
반란의 청년 지도자
멍하니 서 있는 랠리에게 하이틀이 뒤에서 말을 걸었다.
"랠리, 모처럼 얻은 자유시간을 뜻 있게 보내자. 시가지 구경은 어때?“
"좋지."
하고 랠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 연습생은 큰길로 나왔다. 이 부근은 상업 지역인 모양이다. 양 길가에 점포가 늘어서 있다.
"브라운을 어떻게 생각해?"
한 점포를 향해 걸어가면서 하이틀이 물었다.
"글쎄, 곤란한데. 브라운이 말하는 것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되는군. 또한 지구에는 지구 입장도 있겠고… 그걸 확실하게 알지 않고는 뭐라고 말할 수가 없지."
"그래. 나는 지구가 왜 식민지를 냉대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 그 이유를 알고 싶네."
두 사람은 제일 첫 상점으로 들어갔다. 상점 안에는 공룡의 뼈로 만든 조각이 많이 진열되어 있었다. 상점 주인이 나오며 두 사람을 맞이했다. 상당히 나이가 많은 노인인데, 근육이 튼튼하여 노인 같은 느낌이 들지 않았다.
"어서들 오십시오. 지구에서 오신 손님!"
발음이 이상한 것은, 지구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지구 사람들과 대화할 기회가 없기 때문이리라. 랠리는 멋진 공룡의 조각을 손에 들고 물었다.
"이것도 파는 겁니까?“
"그럼요, 팔고 말고요. 공룡 뼈의 조각은 이 행성의 명물이죠. 시카고 식민지에서는 우리 상점이 총판을 맡고 있습니다."
"이것 좀 보게, 랠리!"
하이틀은 10cm 가량 꼬리를 든 공룡 조각품을 손에 들고 감탄의 소리를 질렀다.
"진짜 같구나."
"공룡 스테이크를 먹어 보신 지는 모르지만, 진짜 공룡은 몸길이 27m, 키는 10m나 되지요. 젊은 녀석의 고기를 당신들이 먹는 거요."
하고 상점 주인은 식민지 사투리로 설명했다.
"이 공룡의 이름은 무엇인가요?"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공룡은 많은 종류가 있고, 식민지에 따라 이름이 다르니까요. 거기에다 지구에서 온 사람들은 마음대로 우리가 발음할 수 없는 이름을 붙이기 때문에…"
"이것은 얼마입니까?"
하고 하이틀이 물었다.
"정가는 3우주달러지요. 당신들은 아마 이 행성의 돈을 가지고 있지 않을 겁니다. 나도 돈은 그리 필요 없습니다. 물물 교환을 하면 어떨까요?"
"물물 교환?"
"예, 당신이 팔에 끼고 있는 그 책이 좋겠습니다. 이 식민지에는 책이 귀하니까요."
"이 책은 곤란한데요. 이건 나의 교과서입니다."
라고 말하면서 하이틀은 책을 펴서 내용을 보였다.
"지금부터 공부하는 데 필요한 책이지요…."
곁에서 랠리는 미소를 머금었다. 갑자기 하이틀이 좋아졌다. 이 며칠간 하르와의 사이가 그렇게 좋지 못했던 까닭인지도 모른다. 하이틀은 식사 때에도 우주 여행의 교과서를 가지지 않을 때가 없을 정도로 책벌레이다. 공룡의 조각품이 아무리 좋다 해도 책과 바꿀 리는 만무하다. 노인은 한숨을 쉬었다.
"하는 수 없지요. 이걸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내가-아니 시카고 식민지에서 당신에게…"
”괜찮을까요? …감사합니다."
하이틀은 미안한 표정으로 공룡의 조각품을 손으로 어루만졌다.
랠리도 조각품의 아름다움에 마음이 끌렸다. 서재의 책상 위에 놓아두면 좋으리라고 생각했다. 집, 우주 여행을 출발하고서 처음으로 집의 일이 문득 머리를 스쳐온다. 집이 있는 지구는 지금은 우주의 멀고 먼 곳에 있다. 거리를 숫자로 나타내어 보아도 실감이 안 날 정도로 멀리 떨어져 있다. 무려 4000만 km의 100만 배이다. 두 연습생은 2m 이상이나 되는 공룡 조각품이 서있는 입구로 다가갔다. 문을 열고 랠리는 상점 주인을 돌아다보았다.
"오늘 저녁의 집회에 지구인도 출석할 수 있습니까? 저도 가고 싶군요."
그러자 주인은 웃으면서 천천히 대답했다.
"당신들에게는 관계가 없는 일입니다. 마음을 쓰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옆 상점에서는 신기한 야채류를 팔고 있었다. 그 상점 주인은 지구의 사과 비슷한 둥글고 빨간 과일 한 개를 랠리에게 주었다. 입에 넣고 씹어 보니 신맛이 많고, 입에 맞지 않는 기묘한 맛이었다.
알파 C 제 4행성은 걷는 데 힘이 든다. 둘이는 한 발짝 한 발짝마다 저항을 느끼고 열 걸음 정도 걷고서는 깊은 호흡을
했다. 공기는 산소가 많아서 가슴으로 힘껏 들이마시면 이상한 활력이 나오는 것 같다. 거대한 성벽에 둘러싸인 식민지 내부는 집뿐만 아니라 큰 농원이 있으며, 군데군데 높게 서 있는 나무만이 성벽 밖의 야만스러운 밀림에 모습을 나타내고 있었다. 중력만 강하지 않으면 지구에 돌아온 기분이 난다. 그러나 파랗게 맑게 갠 하늘을 쳐다보면 그러한 착각은 당장에 사라진다. 알파 C의 태양은 중천에 걸려 황색으로 빛나고 있다. 그리고 지구에서 보는 태양보다는 약간 크다. 더욱이 하늘 한 모서리에는 푸르스름한 베타 C가 작은 빛의 테가 되어 떠 있고 반대쪽과 수평선 가까이에는 프록시마 C가 조그맣고 붉게 빛나고 있다. 이곳에는 태양이 3개 있다. 빛은 지구와 같이 황색이었으나, 베타 C의 희미한 빛과 프록시마 C에서의 붉은 빛도 섞여 있다. 이것이 알파 C 제 4행성에 지구와 다른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두 연습생은 강한 중력 때문에 걷는 데에 힘이 들어 벤치에 걸터앉아 쉬었다. 무심코 눈을 들어보니 바로 옆에 존 브라운이 서 있는 것이 아닌가. 랠리는 얼굴이 붉어졌다. 브라운으로서는 지구에서 온 우주 정찰군의 인간은 미운 적으로 여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브라운은 적의를 나타내지 않고 밝은 미소를 지었다."별로 소개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아침에 당신들은 나를 보았을 것이다. 나는 브라운-존 브라운이다."
식민지 사투리이기는 하지만, 활발하고 인간미가 넘치는 음성이었다.
"나도 당신을 알고 있다."
하고 랠리는 말했다.
"나도."
하이틀도 고개를 끄덕이며 끼여들었다.
"오늘 저녁 집회에 참가하지 않겠는가? 지구인도 환영한다. 그러나 당신들은 새삼스럽게 출석할 기분이 나지 않을지도 모르지, 내가 선장에게 이야기한 것을 다 들었으니까."
"가겠다. 나는 출석할 작정이다."
라고 랠리는 대답했다.
"나도 가지, 브라운. 너와 같은 이름의 사나이를 노래한 것이 기억 난다. 옛날 지구의 노래지."
하이틀의 말에 랠리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지나간 어느 날 밤에 오헤어가 가르쳐 준 것이었다.
"서정적인 노래이지. 첫 구절이 아마 「존 브라운의 몸은 묘비 아래에 잠들고」 였다."
하고 하이틀은 곡조를 붙여 가며 외었다.
"그 브라운은 나의 선조이다."
브라운은 솔직히 말했다. 2320년에, 브라운의 아버지는 지구에서 알파 C 제 4행성에 이주해 왔다. 그리하여 지금의 브라운이 태어났다. 그러므로 브라운은 알파 C 제 4행성 식민지의 2세대이다.
"지금 조금 시간이 있다. 어때, 나와 같이 성벽에 올라가 보지 않겠는가? 이 행성의 중력에 익숙해지는 훈련도 되고, 밖의 밀림도 구경할 수가 있다. 너희들은 오늘 아침에 우주선의 냄새를 맡고 있던 공룡을 보았겠지. 기분이 어떻던가?"
"무섭게 크더군."
랠리는 거대한 공룡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대답했다.
"그렇지."
하고 브라운은 웃으면서 말했다.
"자네가 본 것은 가장 큰놈이다. 이 식민지에서는 그 공룡을 '두 꼬리'라고 부르고 있다. 목과 꼬리가 거의 같을 만큼 길어서 꼬리가 두 개처럼 보이기 때문이지."
브라운은 양손을 펴들고 공룡의 형태를 그려 가며 설명했다. 그리고 또 같이 가기를 권했다.
"나와 같이 성벽에 가지 않겠는가?"
"가지. 하이틀, 자넨 어떻게 할건가?"
하고 랠리가 물었다.
하이틀은 머리를 가로 저었다
"나는 안 가겠어. 자네들 둘이 가게. 나는 본부에 되돌아가서 그 후의 상황을 알아보겠어."
"그럼, 그렇게 하게."
랠리와 브라운은 성벽을 향해서 걷기 시작했다. 랠리는 브라운이라는 사나이에게 이상한 친밀감을 느꼈다. 같이 걷고 있는 사나이가 반란의 지도자라는 것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랠리, 자네는 이 행성에 대하여 어느 정도 알고 있지?"
"글세… 여기에는 런던 식민지, 봄베이 식민지, 헨리크스 식민지, 시카고 식민지라는 4개의 식민지가 있지. 총 인구는 5천명으로서, 그 반은 런던 식민지에 살고 있지."
"아니야, 정확하게 말하면 반이 아니야. 런던 식민지에 2천명, 다른 세 곳에 천명씩 있다."
둘은 성벽 가까이 갈 때까지 대화를 계속했다. 랠리는 마음이 풀리며 친숙한 기분으로 질문했다.
"식민지가 개척되고 몇 해나 되지?"
"100년쯤-정확히 말하면 125년 전에 개척되었지. 최초의 개척자는 중력이 커서 상당히 고생한 모양이나, 여기서 태어난 우리들은 아무렇지도 않아. 식량 문제는 이 행성에 있는 공룡을 주식으로 하여 해결했지. 만약 공룡을 식량이 되도록 관리하지 못했다면, 식민지는 현재의 상태로 발전하지 못했을 거야. 물론 부식도 필요하지. 그것도 곡식과, 야채의 재배로 걱정 없게 됐네."
성벽의 밑에 계단을 만들어 놓아, 구불구불하게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브라운이 앞서고, 랠리는 뒤따라 올라가기 시작했다.
"공룡은 항상 성벽 밖의 빈터에서 어슬렁거리고 있나?"
하고 랠리는 숨찬 목소리로 물었다.
"이른 아침 뿐이야. '두 꼬리'는 대단히 겁쟁이지. 날이 밝고 시가가 시끄러워지면 밀림 속으로 숨고 만다. 이 행성에 오자마자 그놈을 보게 된 것은 자네가 운이 좋은 거야."
"공룡이 겁쟁이라니?"
"그럼. 그놈은 초식 동물이야. 그 작은 입으로 배가 부르도록 풀을 뜯어먹자면 하루에 10시간이나 12간은 걸릴걸."
"자네들은 공룡이 무섭지 않은가?"
"아무렇지도 않아."
하고 말하면서 브라운은 웃었다.
"만약 그놈이 우리를 해롭게 하려고 하면 이런 성벽은 쉽게 넘어오고, 우리를 잡아먹을 수 있어. 그런 일이 자네가 여기 있을 동안에 일어날지도 모르지, 랠리."
둘은 성벽 꼭대기에 섰다. 30m 밑의 식민지를 바라보니, 먼 곳과 한길에 왕래하는 사람들이 조그맣게 보였다. 랠리는 성벽 꼭대기를 거닐다가 반대쪽으로 눈을 돌렸다. 순간 숨이 막힐 만한 광경이 펼쳐졌다. 광대한 푸른 숲은 큰 바다처럼 심한 기복으로 끝없이 펼쳐지고, 그 위에는 기묘한 모습의 새들이 날고 있었다. 성벽의 바로 밑은 카르텐호가 우뚝 서 있는 초원이고, 바로 옆에까지 밀림의 나무들이 성벽 높이만큼 높이 솟아 있었다.
"저 새는?"
랠리는 나무 꼭대기 위에서 천천히 날고 있는 거대한 새를 손가락질하면서 물었다.
"익수룡이야. 앞발의 넷째 발가락이 길고, 거기에 얇은 막이 덮여 있어 2m에서 3m나 되는 큰 날개로 변화해서 하늘을 나는 공룡이지. 학자들은 '프테라노돈'이라고 부르고 있어. 옛날에 지구에 있었던 것과 같은 종류라고 하더군."
"그 새는 시가지에 날아오지 않는가?"
"예전에는 잘 날아온 모양이야. 식민지 아이들을 채 가지고 간 이야기도 있어. 그래서 그놈이 시가지 상공에 나타나면 총으로 쏘아 떨어뜨렸지. 그놈들도 위험한 것을 알고는 지금은 절대로 시가지 가까이 오지 않게 되었어."
익수룡은 나무 가지 끝을 빙빙 돌고 있다가, 갑자기 긴 부리를 가지에 힘차게 내밀더니, 한 마리의 뱀을 입에 물었다. 날뛰는 뱀을 머리로부터 말끔히 삼키고 말았다. 랠리는 등이 오싹했다. 그러나 브라운은 태연하다.
"저것이 밀림의 법칙이네. 익수룡은 항상 나무에 올라오는 뱀을 기다려서 잡아. 그러나 익수룡도 호수 위를 낮게 날면, 물에 살고 있는 공룡이 수면으로 긴 팔을 뻗어 익수룡을 잡아서는 물 속으로 끌고 들어가지.“
초원 끝에서 많은 이빨을 가진 공룡의 머리가 쑤욱 나타났다.
"아, 나타났다! 오늘 아침의 그놈인지도 모르겠군."
하고 랠리는 손가락질하며 외쳤으나, 브라운은 손목 시계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이제 시간이 됐어. 슬슬 돌아가서 집회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안되겠군. 자네는 여기서 공룡의 구경을 더 할 작정인가?"
오후의 태양이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머리 위에는 익수룡이 기분 나쁜 소리를 질러가며 날아다니고 있었다. 성벽 위에 자기 혼자 서있는 모습을 상상한 랠리는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나도 같이 내려가지."
"그러는 것이 좋을 거야. 오늘 저녁 집회에서 만날 수 있을까?"
"물론."
하고 대답하고, 랠리는 브라운의 뒤를 따라 아무 말 없이 계단을 내려왔다.
(브라운 같은 친밀감을 주는 좋은 사나이가 반란을 지도한다면…)
숙소로 돌아가면 하르의 책을 빌려서 읽어 보리라고 랠리는 생각했다.
전기 기타의 수수께끼
숙소에 돌아오니, 건물의 주위는 큰 혼잡을 이루고 있었다. 식민지 사람들이 건물을 둘러싸고, 라인하르트 선장을 만나도록 해 달라고 소리소리 외치고 있었다. 랠리는 선장의 방으로 들어갔다. 선장은 테이블을 끼고 앉아서는 해리슨 대통령과 두 식민지 사람과 더불어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랠리가 보고를 하려고 하자, 선장은 손을 흔들며 나가 달라는 손짓을 했다. 자기 혼자만 남아 있는 쓸쓸함을 느끼며, 랠리는 계단을 올라가 자기 방으로 향했다.
방안에서는 하이틀이 공부를 하고 있었다. 하르도 반대쪽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둘은 랠리가 방안으로 들어서자 고개를 들었다.
"조금 전에 오헤어가 너를 찾아왔길래, 하이틀이 브라운과 산책하고 있다고 말했어. 그게 정말인가?"
하고 하르가 물었다.
"정말이야. 브라운은 우리들을 오늘 저녁 집회에 초대하더군."
라고 랠리는 대답했다.
"자넨 갈 건가, 랠리?"
"선장이 내게 일을 맡기지 않으면 가겠다. 그러나 선장은 이 우주 여행을 마칠 때까지 항상 우리에게 작은 일거리들을 맡길 것이니 어떨는지…"
"집회를 그렇게 중대하게 생각할 건 없어."
"왜? 나는 집회에서 이 식민지의 운명이 어떻게 결정되는가를 보고 싶어. 우리 눈앞에서 지금 역사가 만들어지려 하고 있어."
"그 말은 옳아. 그러나 이 식민지 사람들이 주민 투표에서 반란을 찬성했을 경우, 맨 먼저 가장 가까이 있는 지구인을 사형시킬 것이 아닌가."
"설마!"
랠리는 깜짝 놀라면서 하르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나는 오후부터 지금까지 브라운과 같이 있었어. 그는 정말 좋은 사람이었지. 그 사나이가 우리를 사형하리라고는 믿어지지 않아."
"배반자!"
하고 하르는 웅변조로 크게 외쳤다.
"나는 너를 배반자로 고발한다, 랠리 스타크 연습생! 네가 반란 지도자를 두둔하는 것은 어떤 이유야? 지구가 생명을 걸고 정한 식민지 법을 위반할 작정인가? 악마에 홀린 것이 아닌가? 나는 너를 믿고 있었다."
"믿고 있었다고?"
하며 랠리는 빙긋이 웃었다. 하르가 비꼬는 말에도 아무렇지 않다. 의자에 걸터앉아 생각해 보았다. 하르가 말하는 것은 정당하다. 브라운과 다른 시가지의 사람들을 만나기 전까지 랠리는 혁명가라는 자를 보통의 범죄자 이상으로 나쁜 자라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 적이 친구처럼 보이고, 친구가 적처럼 보이게 된 것이다. 랠리는 아버지의 말을 기억했다.
(잊어서는 안 된다, 랠리. 지구는 항상 정당하다. 식민지에서 속지 마라.)
그러나 이 시카고 식민지의 사람들이 자기를 속이고 있을까? 지구인은 모두 영리하고, 식민지의 사람들은 야만일까? 어떤 경우에도 식민지의 사람들은 자기의 권리를 얻기 위하여 싸우는 정직한 사람이며, 지구인은 피도 눈물도 없는 지배자일까? 랠리는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랠리는 일어서서 문 쪽으로 다가갔다. 손님은 오헤어였다. 랠리는 이번 우주 여행에서 처음으로 친구가 된 큰 사나이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큰 사나이는 겨드랑이에 자기가 가장 아끼고 있는 전기 기타를 끼고 있었다. 그것을 조용히 랠리에게 넘겨주면서 말했다.
"이것을 네게 줄 때가 왔어, 랠리."
오헤어의 얼굴은 창백해서 붉은 머리카락이 더욱 돋보였다. 눈은 보통 때보다 험상궂고, 얼굴전체가 고민하는 것처럼 보였다.
"왜, 바트?"
랠리는 번쩍번쩍 빛나는 전기 기타와 오헤어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그것은 보통 전기 기타가 아니고, 훌륭한 소리를 내는 고급품이다. 그것은 오헤어가 지금까지 수많은 우주 여행에 한시도 놓지 않고 귀중하게 보관하고 있던 것이 아닌가.
"이 기타는 자네가 가지는 것이 좋다고 생각되어, 자네에게 줄 뿐이야, 랠리."
하며 오헤어는 갑자기 빠르게 지껄였다.
"나는 이제 가지 않으면 안 돼.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어. 그러나 곧 돌아와서 자네의 연주를 들어볼 거야. 자네에게는 기타의 명수가 될 소질이 있어. 랠리, 자네는 기관부가 아니고 우주 정찰군의 사관이 될 사람이기에 나는 섭섭해. 기타의 재능 같은 것은 우주 정찰군 사관에게는 필요 없는 것이니까. 그러나 이 기타를 소중히 간직해 주게, 랠리. 음을 맞추는 방법은 알지?"
"알고 있고 말고, 오헤어.""만약 고장이 나거든 그것을 가지고… 나를 만나러 오게나. 자, 그러면 안녕, 랠리."
하고는 문을 열고 오헤어는 빠른 걸음으로 나갔다.
"고맙네, 바트."
이렇게 말하고 문을 닫았다. 다시 의자에 앉으며 랠리를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무래도 이상하군. 왜 오헤어는 자기가 그처럼 아끼던 물건을 내게 주는 걸까?"
"아마 기타를 간수할 곳이 없어서겠지."
라고 하이틀이 그렇게 말하자 랠리는 머리를 가로 저었다.
"오헤어는 비록 자기가 앉을 장소가 없어도 기타를 놓아둘 곳은 꼭 찾는 사나이야.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을 거야."
"그런 것은 오헤어가 다시 오면 물어 보면 되잖아. 그것보다 이 근사한 기타로 한 곡 들려주게나. 나는 기타 연주를 자주 듣고 있지. 한데 그것보다 더 잘 칠 수가 있을까?"
하르의 말이었다.
"한번 쳐보지."
랠리는 기타의 코드를 전원에 연결시키고 음을 맞추기 시작했다.
낮고 김빠진 소리가 났다. 하르와 하이틀은 껄껄 웃었다.
"굉장하다, 랠리! 재창이다, 재창!"
하고 하르가 놀렸다.
"이상하다."
하며 랠리는 기타를 들여다보았다. 자기도 이렇게 낮은 음을 들어 본 적이 없다. 한 번 더 랠리는 켜 보았으나, 여전히 낮은 소리이다.
"자네가 이 기타를 켜는 것은 무리야. 그렇지 않으면 오헤어가 어떤 장난을 쳤는지 몰라."
라고 하르가 말했다.
"아니야. 오헤어는 누굴 놀리는 사람이 아냐."
하며 랠리는 음을 맞추려고 애를 썼지만, 여전히 맞출 수가 없었다.
"음을 잘못 맞춘 것이 아니라, 다른 데 원인이 있는 것 같아, 랠리"
"나도 그렇게 생각해. 사운드 박스가 이상해."
하고 랠리는 기타의 심장부에 손을 집어넣고 찾아보았다.
"이상한 곳은 없는 것 같은데…아니?“
랠리의 손가락은 더욱 깊숙이 들어갔다.
"이놈이구나! 여기에 이상한 것이 꽂혀 있어. 이것 때문에 소리가 제대로 나지 않았어. 오헤어는 내게 기타를 주기 전에 왜 이것을 빼놓지 않았을까?"
랠리는 조그맣게 똘똘 접은 쪽지를 꺼냈다. 그리고서 기타를 다시 치니 아름다운 소리가 사방에 퍼졌다.
"이제 됐다."
랠리는 만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조그맣게 접은 쪽지를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이건 못쓰는 종이가 아닌 것 같은데…"
하며 기타를 손에서 놓고, 쪽지를 펴서는 주의 깊게 보기 시작했다.
"편지다."
그것은 힘차게 갈겨 쓴 글씨로 꽉 차 있는 편지였다. 랠리는 말없이 읽어보고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러면서 편지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설마… 믿을 수가 없어."
하고 중얼거리면서 다시 한 번 편지를 읽었다.
"뭐라고 씌어 있지, 랠리?"
하고 하르가 물었다.
"뭔가 이상한 일이라도?"
하이틀도 궁금해서 물었다.
"내가 읽어 줄께."
하고 랠리는 흥분된 목소리로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랠리, 내가 한 짓에 화내지 말기를 바란다. 아마 내가 없어졌다는 것을 아직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을 거야. 그러나 얼마 안 있어 내가 실종되었다는 것을 알고 놀랄 것이다. 내가 없어지고 난 다음에 자네는 이 편지를 모두에게 보이겠지. 나는 반란에 참가한다. 랠리, 이 일을 네가 선장과 사관들에게 똑똑하게 알려다오. 이번 우주 여행에 출발하기 전에 나는 계획을 세웠었다. 나는 알파 C 제 4행성의 혁명에 참가해서, 독립을 위하여 싸우는 동료를 도우려고 남모르게 결심을 했던 것이다."
여기에서 랠리는 잠시 멈추었다. 하르는 진지한 얼굴빛이었고, 하이틀은 화가 나는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랠리는 계속 읽기 시작했다.
"나의 행동을 네가 어떻게 생각할 것인지 잘 알고 있다. 아마 너는 나를 지구에 대한 반역자라고 생각할 거야. 너의 친구 오헤어가 왜 이런 짓을 하는가 이상하게 여길 것이다. 나를 반역자라고 불러서 마음이 시원하거든 그렇게 불러다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뿐이다. 언젠가는 자네도 각자는 각자의 할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 때 자네의 눈도 넓어질 거야."
이 구절을 랠리는 몇 번이나 읽어보았지만 뜻을 잘 알 수가 없었다.
"어떤 뜻일까?"
하고 하르에게 물어 보았다.
"끝까지 읽어보라고."
하르는 재촉했다.
"오헤어 가문의 사람은 대대로 반역자였었다. 자네와 마찬가지로 나도 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릴 수는 없다. 자네가 아버지처럼 훌륭한 군인이 되려는 것처럼, 나도 아버지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훌륭한 반역자가 되고 싶다. 식민지의 독립을 위하여 일할 뿐이다. 지구 같은 곳은 두 번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 나에 대하여 화를 내지 말아주게, 랠리. 우리는 제각기 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이 있어. 그것을 나는 했을 뿐이네. 자네가 우주선을 타고 우주 정찰군에 일생을 바치는 것과 마찬가지야. 열심히 근무하여 훌륭하게 되길 바란다, 랠리. 그리고 기타의 음을 맞추는 것을 잊지 말아다오. 지금도 너의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는 바트 오헤어."
편지는 여기서 끝을 맺었다. 랠리는 편지를 놓으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오헤어가 이런 짓을 할 줄이야,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어."
"나는 예상하고 있었지. 꽤 오래 전에 오헤어는 내게 말했었어."
하며 하르는 지금에 와서야 처음으로 오헤어와 교제하고 있었다는 것을 털어놓았다. 이 말은 랠리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내게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어."
편지를 내려다보며 랠리는 중얼거렸다.
오헤어가 갑자기 반란 편으로 끼게 될 것이, 브라운이 라인하르트 선장 앞에서 알파 C 제 4행성의 자유와 독립에 대하여 웅변을 토할 때보다도 더욱 랠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다. 지구에 돌아가면 랠리는 아버지에게 오헤어를 소개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엄청난 경우에, 어찌 아버지는 랠리와 오헤어와의 우정을 용서하실 것인가. 오헤어는 우주 정찰군의 사관이 아니고, 우주선의 잡일을 하는 사나이다. 기관을 손보는 크고 큰 황소에 지나지 않는다. 더욱이 지금은 지구에 대하여 싸움을 걸어오는 반역자이다. 갑자기 랠리의 눈에 눈물이 흘러내리며,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오헤어 바보 녀석!)
랠리의 온 몸은 분노와 슬픔으로 떨렸다.
(오헤어는 아무 짓도 못할 거야!)
(반란에 참가시킬 수는 없어!)
(런던 식민지로 도망가도록 해서는 안돼!)
오헤어의 돌연한 행동은 랠리의 마음을 너무나도 뒤흔들어 놓고 말았다. 두 동료는 말없이 서서 랠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누구도 랠리의 마음은 볼 수가 없었다.
(아직 늦지 않을지도 모른다…)
랠리는 갑자기 문으로 향했다.
제 2의 배반자
"어디로 가는 거야?"
하고 하르가 물었다.
"라인하르트 선장에게 보고하러 간다. 그러면 오헤어가 콥터(공중차)에 타기 전에 붙잡을 수 있을는지도 몰라."
라고 랠리가 대답하자마자, 하르는 재빨리 문과 랠리 사이를 막아섰다.
"자네는 오헤어를 선장에게 밀고할 작정인가? 오헤어는 자네의 친구야!"
강한 체격의 하르가 문을 막고 있다. 약하고 작은 사나이인 하이틀은 옆에서 어쩔 줄 모르고 서있다.
"비켜다오, 하르."
랠리는 부탁했다. 그러나 하르는 움직이지 않았다.
"비켜라."
하며 랠리는 하르를 밀치며 돌진했다. 그러나 간단하게 밀려 나왔다. 하르의 몸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너도 반역자의 한 패구나!"
화가 치밀 대로 치민 랠리는 판단력을 잃었다. 오직 문에서 나가는 것만을 생각할 뿐이다. 다시 돌진했다. 하르를 끌어안고 필사적으로 문을 열려고 했다. 하르의 키는 165센티, 랠리의 키는 180센티, 물론 랠리가 훨씬 크다. 그러나 하르는 중력이 큰 목성에서 태어난 사나이다. 지구 태생인 랠리보다 체중도 무겁고 근육도 발달되어 있다.
"이 녀석, 비키지 못하겠어!"
랠리는 있는 힘을 다해 밀고 당겼다. 그러나 하르의 몸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계속 밀치락달치락했다. 그러는 동안 하르는 문 쪽을 벗어나 방 모서리로 밀리고 말았다.
(이때다!)
랠리는 결사적으로 하르의 무거운 몸을 밀어버리고 문 쪽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하르의 동작은 재빨랐다. 뒤에서 목을 잡고 놓지 않았다. 랠리의 힘으로는 상대를 마음대로 할 수가 없었다. 몸을 비틀며 주먹으로 하르의 가슴을 힘차게 쳤다. 그렇게 강한 하르도 멈칫하며 뒤로 물러섰다. 랠리는 자유로운 몸이 되었다. 두 사람은 서로 쏘아보았다. 거칠게 숨을 쉬면서 방안을 맴돌았다. 랠리는 하르의 햇볕에 그을린 얼굴이 마치 철가면을 덮어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하르에게 유리하다. 하르는 랠리를 될 수 있는 대로 시간을 끌어 방안에서 못나가게 하면 되는 것이다. 랠리의 얼굴은 분노에 이글이글 타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토론에서도 지고만 있었다. 그런데 지금 또다시 체력으로도 지고 있는 것이다. 드디어 랠리는 마지막으로 허리를 굽히고 마루바닥을 차며 어깨로 상대의 몸을 향해 돌진했다. 돌진한 순간 팔에 고통을 느꼈으나, 이 돌격은 성공한 모양이다. 하르는 균형을 잃고 뒤로 밀려났다. 그가 벽에 부딪친 틈을 타서 랠리는 문 쪽으로 달렸다. 문 옆에는 하이틀이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서 당황하고 있었다.
"비켜라, 하이틀!"
랠리는 약하고 작은 연습생을 옆으로 밀치고 문을 열었다. 그러나 하르는 돌격을 당한 충격에서 회복되어 양손을 벌리며 달려들었다. 붙들리면 큰일이다. 목성 태생의 굳센 사나이에게 다시 붙들리면 큰일이다. 랠리는 복도로 뛰어나가려다가 무언가에 부딪쳤다. 그것은 사람이었다. 때마침 누군가가 방안으로 들어오려고 했던 것이다.
"비켜…"
말을 끝맺기도 전에 랠리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상대는 바로 라인하르트 선장이 아닌가. 랠리는 당황해 하며 피했다. 호흡을 가다듬으려고 애썼다. 라인하르트 선장은 한참동안 아무 말없이 랠리를 바라본 후, 방안을 휘돌아보았다.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었나?"
랠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르도 아무 말이 없다. 하이틀도 무언이다. 세 연습생은 서로 눈을 마주치고 나서 선장 쪽을 보았다.
"어찌 된 거야?"
선장이 독촉했다. 랠리는 할 수 없이 입을 열려고 했다.
"실은…"
이 때, 밖에서 콥터의 이륙하는 폭음이 들려왔다. 라인하르트 선장은 재빨리 창가로 다가갔다.
이미 콥터는 식민지를 둘러싸고 있는 높은 성벽 위를 날아올라가, 밀림 상공으로 날아가는 것이 보였다.
"누가 조정하고 있는가?"
선장이 급히 물었다.
"오헤어입니다. 오헤어는 혁명 운동에 참가하기 위하여 런던 식민지로 간 것입니다!"
하고 랠리는 외쳤다.
"그게 정말인가?"
"정말입니다."
랠리는 똑똑히 대답했다.
"너희들은 왜 싸우고 있었나?"
"별일 아닙니다. 그것보다 선장님, 오헤어가 이런 편지를 제게 써 놓고 갔습니다. 반란에 참가한다는 결심을 써 놓고 있습니다."
"음, 오헤어는 언제 이것을 남겨놓았지?"
"방금 입니다.“
"그것을 왜 바로 내게 보고하지 않았나, 스타크 연습생?"
"그건 저…"
랠리 스타크는 망설였다.
하르 엘리슨에 대하여 될 수 있는 대로 감싸주고 싶었다. 그러나 갑자기 잘 설명할 방법이 없다. 더욱이 하르의 지구에 대한 충성심이 어느 정도인지도 의심스러웠다. 그런 사나이를 친구로서 어디까지나 감싸줄 필요가 있을까 라는 생각이 문득 머리를 스쳐갔다.
"실은… 엘리슨 연습생이 저를 말렸습니다. 그래서 즉시 선장님께 가지 못했습니다."
라고 말해 버렸다. 그러자 랠리는 친구를 판 기분이 들었다. 이 때, 문이 와락 열리더니 올코트가 방으로 뛰어들어왔다.
"선장님! 오헤어 놈이 콥터를 훔쳐 도망갔습니다!"
"알고 있다."
선장은 고개를 끄덕이고 랠리를 쳐다보았다.
"오헤어가 반란에 참가했다고 했지, 스타크 연습생?"
"그렇습니다. 제가 오헤어의 편지를 보고 선장님께 보고하러 가겠다고 말하자, 하르가 방해했습니다. 그래서 싸우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는데 때마침 선장님께서 오신 겁니다."
"어떻게 싸웠나?"
"처음에는 토론을 했습니다만, 결국에는 서로 붙들고 싸우게 됐습니다."
"그런데 하르는 어디 있나?"
"여기에…"
하며 랠리는 방안을 획 한 바퀴 돌아보았다.
"선장님께서 왔을 때엔 틀림없이 여기에 있었는데…"
"조금 전에 나갔습니다."
하이틀이 대답했다.
"찾아와라. 이건 중대한 문제다."
하고 선장은 명령했다. 또 다시 폭음이 들려왔다. 랠리들은 일제히 창 밖을 내다보았다. 또 한 대의 콥터가 성벽 위를 날아오르더니, 밀림을 향해 멀어져 가고 있었다.
"이제 잡을 수가 없습니다."
하고 랠리는 말했다.
밀림에 불시착
"하르도 반역자였던가? 지구에 충성을 맹세한 우주 정찰군의 연습생이?"
라인하르트 선장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랠리도 견딜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오헤어, 그 다음은 하르, 동료 중에서 두 반역자가 생겼다.
"오헤어는 콥터를 훔쳐서 런던 식민지로 도주했다. 그 사실을 자네가 먼저 알고 나에게 보고하려다 하르 엘리슨 연습생과 다투었다. 그 엘리슨 연습생도 콥터를 훔쳐 런던 식민지로 도주했다. 그렇지?"
라인하르트 선장은 사건의 경위를 되풀이했다.
"그렇습니다."
하고 랠리는 분명히 대답했다.
"이렇게 되면 이쪽에서도 작전을 세우지 않으면 안되겠군. 너희들 두 사람-랠리 연습생과 하이틀 연습생은 콥터로 도망친 두 사람의 뒤를 쫓아라. 런던 식민지로 가는 거다. 그리고
그놈들을 만나게 되거든 자네들도 혁명에 가담하겠다고 말하라. 그리하여 놈들의 반란 계획을 조사하라. 그놈들이 무기를 가지고 폭동을 일으킬 기세면 즉시 이쪽으로 돌아와라. 그러면 우리는 우주 정찰군의 군용 우주선을 불러서 반란을 진압시키겠다. 그리고 도주한 두 사람은 반역죄로 체포한다. 올코트, 두 연습생에게 곧 콥터를 준비해 주게."
라는 라인하르트 선장의 목소리는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차가웠다. 올코트는 랠리와 하이틀을 데리고 건물 밖으로 나갔다. 대로에 콥터가 한 대 서 있었다.
(2, 30년 전의 구식이다.)
하고 랠리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알파 C 제 4행성의 공장에서는 제트콥터를 만들 수가 없다. 전부 지구에서 가지고 와서 사용하고 있다. 콥터뿐만 아니라 식민지인의 생활은
아직 지구를 의존하지 않으면 안 될 것들이 많다. 랠리와 하이틀은 콥터를 탔다. 구식이지만 기계 설비는 표준의 것이었다. 랠리는 조종석에 앉고, 그 옆에 하이틀이 앉았다. 랠리는 기기를 점검하고, 엔진을 걸었다. 콥터는 부웅 떠올랐다. 런던 식민지는 이 곳에서 서쪽으로 1600km 떨어져 있다. 4개 식민지는 기하학적 형태로 위치하고 있었다. 콥터는 높은 성벽을 넘고, 빈터 위를 지나서 두 식민지 사이에 펼쳐져 있는 밀림의 상공으로 나왔다. 좌석을 동그랗게 덮은 투명창 너머로 내다보니, 수십 m 밑에 나무의 꼭대기에 익수룡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아래 지상에는 밀림의 큰 야수들이 먹이를 찾아 헤매며 서로 싸우는 것이 보였다. 랠리는 기분이 나빠서 콥터의 고도를 20m 더 올렸다.
"그쪽에 가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
하고 하이틀이 말을 꺼냈다.
"나도 모르겠어. 아무튼 반란의 정보를 알고 돌아오는 거지. 일이 잘 되면 하르와 오헤어를 데리고 올는지도 몰라."
"그렇게 될까?"
하이틀은 코방귀를 뀌었다. 콥터는 밀림 위를 계속 날아갔다. 그러는 동안에 랠리는 연료 계기의 램프가 꺼지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연료가 거의 떨어졌음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출발 할 때 너무 서둘러서 연료 계기의 점검은 하지 않았던 것이다. 나침반은 콥터가 서쪽으로 똑바로 가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었다. 랠리는 콥터의 속도를 떨어뜨렸다. 만약 연료가 떨어지면, 콥터를 밀림의 밖에 착륙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한 시간이 지났다.
"다행히 런던 식민지 가까이 갔으면 좋겠는데…"
하며 랠리는 식민지의 건물을 찾으려고 애를 썼다. 하이틀은 입술을 깨물고 잠자코 앉아 있었다. 랠리는 굳어진 얼굴로 콥터의 조종에 모든 정신을 집중시켰다. 연료 계기는 드디어 0을 가리켰다. 그러나 연료는 아직 탱크 속에 얼마 정도는 남아 있을 것이다. 랠리는 눈을 부릅뜨고 밀림의 먼 쪽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저 걸 봐."
하고 외치며 팔꿈치로 하이틀을 쳤다.
"성벽이다!"
하이틀도 몸을 앞으로 내밀면서 창에 얼굴을 갖다 대었다. 앞쪽의 먼 밀림 너머에 푸른 초원이 펼쳐져 있고 그 전방에 식민지의 성벽이 우뚝 서 있었다.
"시카고 식민지의 성벽 같다."
순간 랠리는 방향을 잘못 잡아 시카고 식민지로 되돌아 온 것이라고 느꼈다. 그러나 성벽은 시카고 식민지의 것보다 좌우로 길게 퍼져 있다. 나침반도 여전히 서쪽을 가리키고 있다.
"틀림없이 런던 식민지다."
랠리는 안심했다. 그 순간
"연료가 떨어졌다!"
하고 하이틀이 처음으로 계기를 보고는 외쳤다.
"알고 있네."
랠리는 일부러 하이틀에게 알려주지 않고 있었다. 둘이서 걱정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콥터의 연료탱크는 계기가 0을 가리켜도 어느 정도 여유가 있어. 그것을 의지할 수밖에 없지."
드디어 연료도 이제 바닥이 나고 엔진은 이상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런던 식민지까지는 15~6km 정도 남아있다. 도저히 그곳까지 갈 수는 없다. 둘은 1분 정도 아무 말 없이 날아갔다. 마침내 엔진이 정지되었다.
"여기서 착륙해야겠어. 그리고 걸어야겠다."
랠리는 콥터의 고도를 낮추고 활공시켰다. 그러면서 착륙할 장소를 찾았다. 훌륭한 조종이었다. 콥터는 용하게 거대한 나무 사이를 빠져나가 소리 없이 착륙했다. 둘은 땅에 내렸다. 랠리는 우선 나침반으로 방향을 확인하고서, 하이틀을 재촉하여 서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런던 식민지의 성벽까지는 1760m, 그 중의 1600m가 밀림이야."
랠리는 앞에서 길을 찾았다. 밀림은 열대성의 거대한 수목이 빽빽이 들어차 있고 습기 찬 강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가지들은 서로 얽히고 설켜서 수십 m의 상공까지 뻗치고 있었다.
그러한 식물의 험한 생명력에 랠리는 새삼 놀랄 지경이었다. 낮인데도 어두컴컴한 밀림 속을 조심하면서 둘은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걸었다. 밀림은 살아 있다. 도처에서 수없이 울어대는 곤충의 소리, 익수룡이 날개 치는 소리, 개구리 같은 작은 동물이 시내에 뛰어드는 소리, 그리고 멀리서 공룡의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먼 공룡의 우는 소리 보다도 가까이 있는 곤충이 더 곤란했다. 크고 작은 갖가지 곤충이 끊임없이 두 사람 얼굴에 달려들어 깨물고 할퀴고, 귀 안에까지 들어가기도 한다. 때로는 칠면조만큼이나 커다란 잠자리가 힘찬 날개 소리를 내며 머리 위를 날아간다. 랠리는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걸었다. 하이틀은 숨찬 소리를 내어가며 따라왔다. 15분 정도 걸었을 때,
"이제 5분쯤 지나던 밀림에서 벗어날 수 있어. 초원으로 나갈 수 있다고."
라고 말하고 랠리가 뒤돌아보니, 하이틀은 넘어져 있는 나무에 걸터앉아 있었다.
"1분간만 쉬었다 가자, 랠리."
체력이 약한 하이틀은 피로를 이기지 못해서 이마의 땀을 닦고 있다.
"가자, 하이틀. 조금만 힘을 더 내. 그러면 식민지의 성벽 안에서 푹 쉴 수가 있어."
어깨에 내려앉는 곤충을 쫓으면서 랠리는 말했다.
"자아, 조금만 힘을 더 내서 가자." -
그러나 하이틀은 일어나려고 하지 않았다. 계속 땀을 닦고 있었다.
"너무 무리야, 랠리. 나는 자네보다 약해."
"그러나 이런 곳에서 주저하면 위험해, 하이틀. 가자, 자네와 발맞추며 천천히 걸을 테니."
"알았어, 랠리."
하면서 하이틀은 찡그린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
"공룡이라도 나오면 좋겠다. 그놈을 잡아서 등에 올라타고 가면 되겠는데."
그 때, 숲 속에서 한 동물이 뛰어나와 놀란 눈으로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길이는 1m 정도, 두 발로 캥거루처럼 꼬리로 균형을 잡고 있었다.
"공룡의 새끼가 아닐까? 나를 태우고 가기에는 무리군."
이렇게 말하면서 하이틀은 겨우 일어섰다. 둘은 천천히 걸어 2, 3분쯤 나아갔다. 굉장히 큰 나비가 옆을 스치며 지나갔다. 아름다운 여러 가지 빛깔로 된 날개는 접시만큼이나 크다. 캥거루와 비슷한 순한 작은 공룡이 또 두 마리, 조금 큰 것 한 마리가 맹렬한 속도로 두 사람 앞을 달려갔다.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다른 종류의 작은 동물 두서너 마리가 입에서 침방울을 튀기면서 랠리의 뒤쪽으로 달려갔다. 머리 위에는 익수룡이 높은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심상치 않아. 밀림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모양이야."
하며 랠리는 걸음을 멈추었다. 하이틀도 발걸음을 멈추고, 겁에 질린 얼굴로 사방을 돌아보았다. 왼쪽에서 수목이 부러져 나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뭘까?"
랠리는 놀라면서 소리난 쪽을 돌아다보았다. 어두컴컴한 수목 사이에 거대한 괴물이 보였다.
그것은 커다란 나무를 좌우로 쓰러뜨려 가며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두 꼬리다!"
이 행성의 밀림에 살고 있는 가장 거대한 공룡이다. 브라운은 사람을 해치지는 않는다고 말했지만 이런 밀림 속에서 이처럼 거대한 파충류를 만나면 태연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우리를 잡아먹지 않는다 하더라도 녀석이 지나가는 통로 길에 있다가는 밟혀 죽겠다."
랠리는 거대한 괴물의 움직임을 눈여겨보며, 그가 오고 있는 수목 뒤에 조그만 시내가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지, 놈은 물을 마시려 가는 길이구나.)
라고 생각하고 안심이 되었다. 랠리의 발 근처에서 녹색의 작은 동물이 나무줄기를 타고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나무 꼭대기로 달아나려고 하는구나."
다람쥐 같은 동물이 놀라 달아나는 것을 정신없이 구경하던 랠리는 갑자기 공포를 느꼈다. 물을 마시고 돌아가는 공룡이 온순하게만 가리라고 믿을 수 없다. 우리가 있는 곳을 지나가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옆에서 쓰러지는 나무가 랠리들의 머리 위에 넘어질지도 모른다. 밀림 속에 있을 동안은 언제나 위험한 것이다. 하이틀은 아직껏 앉아서 이마의 땀을 닦고 있었다.
"일어나, 하이틀. 가자, 저쪽에 환한 것이 보이지, 그 곳이 초원이야."
하고 하이틀을 손으로 끌어당기면서 랠리는 걷기 시작했다. 이제 2백 m만 나아가면 밀림을 벗어날 수 있다고 느꼈다.
"조금밖에 안 남았어, 하이틀."
"안 되겠어, 랠리, 이제는 한 발자국도 걸을 수가 없어."
또다시 하이틀은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랠리가 아무리 손으로 당겨도 일어나려고 하지 않았다. 곤충과 열기로 말미암아 하이틀은 강행군에 완전히 지치고 말았다. 할 수 없이 랠리는 조금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밀림의 소란은 더 심해져 갔다. 공룡의 외치는 소리가 나무 가지를 흔들었다. 그 공룡이 어느 쪽에 있는지 분간할 수가 없다. 상당히 먼 거리 같기도 하고, 바로 옆인 것 같기도 했다. 작은 공룡 두 마리가 랠리 뒤쪽을 스쳐 지나갔다. 작은 동물들이 전부 같은 방향으로 달리고 있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랠리는 이상했다. 뭔가 무서운 것이 작은 동물들을 쫓고 있는 것일까?
"출발하자, 하이틀 일어서…"
하고 랠리가 말할 때였다.
까르륵 !
갑자기 머리 위에서 굉장한 소리가 나면서 밀림을 진동시켰다. 다음엔 찌지직 나무 부러지는 소리가 들려 오고, 대지는 지진처럼 흔들렸다. 랠리는 머리 위를 쳐다보고 숨을 삼켰다.
공룡의 굵은 목이 나무 끝에서 하이틀을 노리고 있지 않은가! 톱니 같은 흰 이빨을 드러낸 아가리까지는 지상에서 30m 쯤 되어 보였다.
"하이틀, 빨리 나를 따라와!"
라고 외치며, 랠리는 정신없이 달려나갔다.
지하의 감방
공룡의 울부짖는 소리는 끊임없이 밀림 속에 메아리쳤다. 랠리는 정신없이 뛰었다. 160m쯤 가면 밀림에서 초원으로 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초원을 100m 쯤 가면 런던 식민지의 성벽에 도착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너무나 가까워서 꿈이 아닌가 느껴졌다.
"이제 살았다!"
한숨을 돌리면서 랠리는 뒤를 돌아보았다. 2, 3m 뒤떨어져서 하이틀이 숨을 헐떡이며 창백한 얼굴로 필사적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순간 두 사람 뒤에는 공룡이 작은 산만큼이나 거대한 몸을 나타냈다. 그 머리는 나무 꼭대기 만한 높이로 랠리들을 노리고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뭔가 먹을 것을 찾고 있는 것 같았다. 하이틀은 나무뿌리를 차고 그 자리에 넘어졌다.
"정신 차려!"
하고 급히 뒤돌아가서 하이틀의 손을 잡고 일으켰다.
"가… 나는 상관 말고… 달려라!"
하이틀은 땅바닥에 딱 들러붙은 채 허덕거렸다. 그러한 광경을 공룡의 머리는 나무 꼭대기에서 잠자코 내려다보고만 있었다. 공중에서 내려온 담쟁이덩굴이 랠리의 얼굴에 부딪혔다.
"따라와!"
하고는 랠리는 덩굴을 젖히면서 달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눈앞이 훤해졌다. 풀밭으로 나온 것이다. 100m 저쪽에 런던 식민지의 성벽이 높이 솟아 있는 것이 보였다. 허덕이는 숨소리가 들려왔다. 하이틀이었다. 이제는 한 발자국도 걸을 수 없다던 하이틀이 역시 공룡은 무서운 모양이었다. 자기 힘으로 밀림을 빠져 나온 것이었다. 대지가 지진처럼 흔들렸다. 밀림에서 공룡이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랠리는 겨우 성벽 문에 도착했다. 가쁜 숨을 내쉬면서 하이틀을 뒤돌아보았다. 하이틀은 드디어 기운이 다해 땅에 넘어졌다. 그것을 공룡이 이상스럽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떻게 할까…)
하고 랠리는 망설였다. 하이틀에게 달려가 일으켜 세우고 문까지 데리고 오고 싶다. 그러나 무리한 일이다. 하이틀이 있는 곳까지는 30m 이상의 거리이다. 설령 간다고 해도 데리고 돌아오기 전에, 두 사람 모두 공룡의 밥이 되고 말지도 모른다. 공룡은 하이틀의 몸 위에 거대한 몸통을 구부리
고, 캥거루 같은 작은 앞발을 하이틀의 몸에 갖다댔다. 땅에 살짝 엎드리고 있는 살아 있는 것을 자세히 보려고 큰 눈을 가까이 대었다. 하이틀은 살아 있다. 기어서라도 도망치고 싶으리라. 그러나 힘이 빠진데다가 너무 무서워서 생각대로 움직일 수가 없을 것이다.
"그렇지."
문득 랠리의 머릿속에 한 계획이 떠올랐다. 사람의 머리 만한 돌을 주워서 문을 나왔다. 대담하게 공룡에게서 3, 4m 가까운 곳까지 다가갔다. 거기서 공룡의 추한 머리를 향해서 힘껏 돌을 던졌다. 공룡은 신음 소리를 내었다. 때를 놓치지 않고 또 한 개의 돌을 찾아서 던졌다. 뇌가 작고 지혜가 모자라는 큰 야수는 랠리에게 마음을 빼앗겨 하이틀은 잊어버렸다. 기회는 이 때다. 하이틀은 랠리의 작전을 알아차리고 몸을 일으켰다. 기어서 문으로 향했다.
공룡은 좌우로 머리를 돌려가며, 랠리와 하이틀을 번갈아 가며 보았다.
"야아, 이쪽이다!"
랠리는 이쪽저쪽으로 눈이 돌아갈 정도로 장소를 옮겨가면서 돌을 주워서는 계속 던졌다.
공룡의 머리를 점점 혼란시켰다. 그 동안에 하이틀은 문까지 올 수가 있었다. 그러자 랠리도 문으로 달려 들어왔다. 랠리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공룡은 다시 하이틀을 생각해 내었는지 큰 몸통을 흔들며 머리를 움직여 가면서 냄새를 맡고 있었다. 이렇게 해서 둘은 겨우 안전한 식민지의 안으로 도망쳐 올 수 있었다.
공룡은 두 개의 먹이가 성벽 안으로 달아난 것을 알고, 긴 꼬리로 성벽을 치면서 작은 앞발로 문을 끌어 당겼다. 그러나 공룡을 대비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성벽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공룡이 자기 몸통으로 치면 칠수록 아프기만 할뿐이다. 마침내 공룡은 포기하였는지, 성벽을 떠나 천천히 밀림 속으로 사라져 갔다. 랠리와 하이틀은 문 안쪽에서 공룡이 돌아가는 것을 보고 있다가, 뒤를 돌아다보았다. 이미 녹색의 제복을 입은 사나이가 무기를 손에 들고 랠리들을 둘러싸고 있었다. 그들 중에는 하르도 껴 있었다.
"왜 왔나?"
하며 하르가 물었다. 랠리는 차갑게 동료를 쳐다보았으나, 반역자 행세를 할 임무를 생각하고 일부러 부드럽게 말했다.
"우리들도… 혁명에 가담하기 위해서 왔다. 그런데… 밀림 속에서 너희들의 큰 파수병의… 심한 환영을 받았다네."
아직도 랠리의 호흡은 고르지 못했다.
"알고 있다. 공룡이 성벽 가까이까지 온 것을 우리도 보았다."
키가 큰 한 식민지 사람이 이렇게 말하고는 하르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르 엘리슨? 자네는 이 두 사람을 알고 있겠지?"
"나는 의심한다. 특히 이 사나이를."
하고 하르는 랠리를 손으로 가리키면서 말을 이었다.
"이 사나이는 지금까지 지구에 충성을 맹세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너는 우리 혁명에 참가하고 싶은가?"
하며 키 큰 사나이가 물었다.
"그렇다."
하고 랠리가 태연스럽게 대답하자, 키가 작은 하르 정도는 아니지만 식민지 사람은 날카로운 눈초리로 랠리를 쏘아보았다.
"이 사나이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스파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다른 한 사람이 외쳤다. 키가 큰 사나이는 지도자인 모양이었다. 모두의 의견을 듣고 나더니 침착하게 말했다.
"이 두 사람을 잠시 동안 가두어 두지. 그러면 우리편인가 적인가 알 수 있겠지."
혁명군 사나이들은 랠리들을 이끌고 식민지의 시가지로 들어갔다. 시가지의 모습은 시카고 식민지와 꼭 닮았는데, 다른 것은 도로에 슬로건을 쓴 커다란 깃발이 죽 늘어서서 바람에 나부끼고 있는 것이다.
알파 C 에 자유를!
선거권이 없으면 세금도 못 내겠다!
우리는 독립을 요구한다!
지구의 쇠사슬을 끊어라!
그밖에도 푸르고 붉은 깃발이 높은 나무에 걸려 있었다. 사나이들은 랠리와 하이틀을 구식차에 밀어 넣고, 식민지의 반대쪽에 있는 큰 건물로 향했다. 키 큰 사나이는,
"나는 런던 식민지에 있는 지방 정부의 대표다."
라고 자기 소개를 했다. 일행은 건물의 계단을 올라갔다.
"이 곳이 알파 C 제 4행성 자유 세계의 중심이다."
하고 커터 대표는 말했다. 건물 내부는 텅텅 비어 있었다.
"우리는 지금 제대로 가구를 갖출 수 없다. 전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 쓸 만한 가구를 모조리 시카고 식민지로 가져가고 말았다. 그 때문에 우리 손으로 응접용 가구를 만들어야 한다."
하며 커터는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을 손가락질했다. 랠리와 하이틀은 묵묵히 계단을 내려갔다.
"다음 층엔 너희들이 있을 방이 있다.“
이렇게 말하면서 커터는 계속 계단을 내려가고 있다. 그 곳은 어둡고 습기 찬 지하였다.
"이 복도의 문을 좀 열어 주게."
커터가 앞서 걷고, 그 뒤를 랠리와 하이틀이 따르고 또 혁명군의 병사 두 사람이 뒤를 딱 붙어서 따라왔다.
(처음부터 붙잡혀서 감방으로 들어갈 줄은 몰랐다.)
랠리는 런던 식민지에 온 것을 후회했다.
"너희들에게 특별히 따로따로 방을 준비했다."
라고 말하고, 커터는 한 혁명군 병사를 돌아다보며 열쇠를 넘겨주었다.
"한 사람은 여기, 또 한 사람은 A블록에 집어넣어라."
"죄도 없는데 감금시키는가?"
하고 랠리는 항의했다.
"자네의 충성심을 시험하기 위해서다. 자네가 하르 엘리슨처럼 진심으로 우리에게 가담해 주면 고맙겠다. 그러나 우리를 속이려고 온 것이라면, 한 번 더 위험한 밀림을 헤매어야 될 것이다."
혁명군의 병사는 하이틀을 데리고 구부러진 복도로 사라졌다. 감방의 문이 열리고 병사가 뭐라고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하이틀이 뭐라고 항의 하는 것 같은데 잘 들리지 않았다. 얼마 안 되어 철컥 하고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려 왔다.
"이리 따라와라. 네가 있을 방으로 간다."
커터는 랠리를 데리고 다른 복도로 들어갔다. 자기 자신이 의심할 정도로 랠리는 냉정했다.
자기도 커터의 입장에 서면 역시 이렇게 하리라고 느껴진다. 그리고 공룡에게 쫓기다가 가까스로 생명을 구해서인지, 감옥쯤은 그렇게 무섭지 않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여기다."
감방의 문을 열면서 커터는 말했다. 랠리는 태연하게 걸어 들어가서 벽 쪽에 놓여 있는 단단한 침대로 가서 걸터앉았다.
"이런 잠자리는 마음에 안 들겠지만, 일시적이니 참아 주게."
하고 커터가 말했다.
"상쾌하고 좋은 밤일세, 커터."
랠리는 침대에 드러누우면서 비꼬았다.
"도둑이나 들지 않게 문단속을 잘 하고 가게."
"알았습니다, 손님."
하고 대답하며 커터는 히죽히죽 웃어가며 감방 문을 닫고 열쇠를 채운 후 곧 사라졌다. 캄캄한 방에 혼자 남은 랠리는 생각했다.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 몇 주일 전에 우주 정찰 사관 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사나이가, 지금은 혁명군에게 붙잡혀 지하 감방에 갇혀 있다. 랠리는 문득 쓴웃음을 지었다. 이것이 실제로 일어난 사건처럼 실감이 나지 않는다. 한숨 푹 자고 눈을 뜨면, 지구의 집에 돌아가 있는 것이나 아닐까. 그러나 꿈이 아니고 현실이었다. 랠리는 하르를 생각했다. 화성의 우주 정찰 사관 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그가, 우주 정찰군의 회색 제복을 벗어 던지고 혁명군의 녹색 제복을 입고 있다니. 오헤어도 그렇다. 식민지 인은 모두 키가 크지만, 오헤어처럼 3m나 되는 사나이는 드물다. 그 몸에 맞는 제복이 혁명군에 있었던가. 랠리는 갑자기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서 문 쪽으로 달려갔다. 철창 사이로 복도의 어둠을 노려보았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으나 어둠 속에서 이쪽으로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린 것이다.
혁명과 우정
어둠 때문에 랠리에게는 희미한 그림자가 가까이 오는 것을 느낄 뿐이었다. 발자국 소리는 감방 앞에 와서 멎었다. 금속 문을 두들기더니 누군가가 속삭였다.
"랠리!"
"나는 아무 데도 달아나지 않는다."
랠리는 불만에 차서 아무렇게나 대답했다.
"나야, 하르다."
하고 문 밖에서 성냥을 켜는 소리가 났다. 불빛에 하르의 얼굴이 드러났다.
"이 반역자."
랠리는 얼굴을 돌리며 말했다.
"자넨 죄수야."
하르도 지지 않고 응수했다. 성냥불이 꺼지자, 두 사람의 모습은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커터가 너와 얘기하라고 나를 보냈다."
"무슨 얘기를?"
랠리는 독촉했다.
"커터는 너와 하이틀을 스파이라고 단정했다. 그래서 너희들을 계속 가두어둘 생각이다."
"나는 진심으로 혁명에 가담하고 싶은 거다. 왜 그것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지?"
"무리이니까."
하고 하르는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커터들은 나에게 어떠냐고 물었다. 그래서 나는 정직하게 대답했어. 너희들은 아직 라인하르트 선장의 명령에 따라 일하고 있다고…"
랠리는 그만 대답이 막혔다. 어둠 속으로 하르의 모습을 보려고 했다. 이제 와서는 하르를 미워하고 싶지 않다.
"자네는 아직 라인하르트 선장의 편이지?“
라는 하르의 목소리는 날카로웠다.
"그래. 선장은 나와 하이틀을 스파이로 여기에 보낸 거야. 솔직하게 말한다. 거짓말을 한다고 해도 속지 않을 것이니."
"물론이지. 우리는 속지 않아."
하르가 말하는 '우리'라는 것은 혁명 측의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둘은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랠리는 하르가 어둠 속에서 사라지고 없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하르는 이윽고 입을 열었다.
"얘기해 보게, 랠리. 자네는 왜 라인하르트 선장 같은 그런 윗사람에게 충성을 지키고 있는가? 분명하게 대답해 보게. 자네는 곰곰이 생각해 본 일이 있는가? 그렇지 않으면 생각할 필요도 없이 지구 쪽이 정당하다고 맹목적으로 믿고 있는가?"
"모르겠어."
"자네는 지구의 어디에서 태어났나?"
"애팔래치아야. 서반구 북아메리카 애팔래치아의 뉴욕시야."
"나도 알고 있어. 지리에서 배웠어. 합병 전에는 아메리카 합중국이라고 불렸던 곳이지?"
"그래."
하고 랠리는 인정한다.
이제 어둠에 다소 익숙해져서 하르의 얼굴이 희미하게 보았다.
"랠리, 자네가 아메리카 태생이라면 이 반란의 의의를 모를 리 없잖아?"
라는 하르의 음성은 높았다.
"자네는 자기 나라가 애초에 어떻게 출발했는가를 모르는가? 지금 이 알파 C 제 4행성에서 하고 있는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독립했다. 너는 아메리카 혁명의 표어를 알고 있는가?"
랠리는 갸웃거리며 생각해 보았다. 역사를 배운 것은 상당해 오래 전의 일이다.
"아마, 선거권이 없으면… 없으면…"
랠리가 말이 막히자, 하르가 대신했다.
"선거권이 없으면 세금을 못 내겠다."
"그래, 생각이 난다."
"옳은 말이야. 그 표어를 자네는 오늘 보지 못했는가? 잘 생각해 보게."
하르는 비꼬듯 말했다.
"런던 식민지에 서 있는 깃발에 그 말이 씌어 있더군."
"그래. 우리는 독립을 얻기 위하여 싸우던 아메리카의 입장과 같다. 그런데 자네는 식민지의 독립을 막으려는 대영 제국 패거리의 입장에 처해 있다는 것을 잘 알겠지. 어느 쪽이 옳은가는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그런데도 자네는 아직 라인하르트 선장에게 충성을 바칠 작정인가?"
"뭐가 뭔지 모르겠군."
랠리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마음이 혼란하여 제대로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확실히 하르의 말에는 반박할 틈이 없었다. 하르가 옳고 자기가 틀렸다고 인정할 도리밖에 없는 것 같다.
"랠리, 자네는 자네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들이 대대로 충성을 바쳤다는 이유 때문에 지구에 매달려 있을 뿐이야. 남자는 18, 19세가 되면, 스스로 사리를 판단하고 태도를 분명히 밝히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닌가? 그렇지 못하면 시대에 뒤떨어진 노인이다.“
"하르… 하르… 어떻게 하면 나는 혁명을 도와 줄 수 있나? 내가 어떻게 하란 말인가?"
"자네가 진심으로 우리 혁명에 참가할 마음이 있는가? 만약 그랬을 때, 너의 아버지인 우주 정찰군 스타크 사령관이 안다면 어떻게 생각할까?"
"물론 지구를 배반할 가치가 있는가 라고 말씀하시겠지."
하고 랠리는 조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면 나도 진심을 털어놓겠다. 커터 대표는 이미 혁명 계획을 착착 진행 중이다. 여기에 네가 할 일이 한 가지 있다."
"무슨 일?"
랠리는 하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우리는 자네를 못 본 척하고 시카고 식민지로 되돌아가도록 해 준다. 그러면 너는 카르텐호의 우주 통신 장치를 파괴해 주는 것이다. 그래야만 라인하르트 선장이 우리가 무력으로 일어설 때까지 우주 정찰군의 응원 부대를 요청할 수 없게 된다. 그것이 우리에게는 무엇보다 중대한 문제다."
이 말을 듣고 랠리는 온 몸이 떨렸다. 우주선의 통신 장치를 파괴하다니! 랠리는 자기가 얼마나 중대한 입장에 서 있는가를 느꼈다. 비록 혁명은 찬성한다 할지라도 우주선을 손상시키는 파괴 행동은 도저히 할 수가 없다. 그러나 하르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보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통신 장치를 파괴한 다음에는 어떻게 되나?"
"그럼, 우주 정찰군에 공격당할 염려 없이 혁명을 진행할 수 있어. 우리는 라인하르트 선장을 인질로 잡아둘 거야. 다른 지구인도, 지구인을 동정하는 눈치인 식민지 사람들도 한 사람 남기지 않고 체포하지. 그리고 방위 태세를 완벽하게 한다. 우리 식민지는 밀림 한가운데 있고, 공룡을 방비하기 위한 높은 성벽으로 요새화 되어 있어. 그렇게 간단하게 함락되지 않아.
또 한편에서는, 지구에 있는 제 4행성인이 우리가 지구로부터의 수출로 얻은 이익으로 군용 우주선을 사서는 이리로 가지고 오지. 그렇게 되면 이 행성의 방위도 완벽해져. 우주 정찰군의 공격 우주선이 쳐들어와도 지지 않아. 지구에서는 아마 알파 C 까지 공격 우주선을 보내는 막대한 비용과, 또 여기서 장시간 걸리는 게릴라전에 휘말려들 것을 생각하고, 원정을 포기하고 우리의 요구를 인정하여 줄지도 몰라. 그러나 아무튼 혁명이 성공하고 못하냐는, 우리의 준비가 완전히 정비될 때까지 라인하르트 선장의 통신 장치를 침묵시킬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있어."
"알았어. 내가 혁명을 좌우하는 중대한 열쇠를 쥐고 있다는 말이군."
하며 랠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 점이야. 커터는 나에게 자네가 우주선의 통신사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굉장히 기뻐했어. 통신 장치를 파괴하는 데 가장 알맞은 사람이라고 말야. 어떤가, 랠리?"
"3분간만 생각할 여유를 주게."
하고 랠리는 감방의 침대에 걸터앉아 괴롭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혁명 측이 정당한 것도 같고 지구가 못된 것도 같다. 양쪽이 모두 완전히 정당하지 못하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지구 측 방법이 더 공정하지 못한 것도 사실인 것 같다. 랠리는 지구가 나쁘다고 믿고 싶지는 않지만 하르에게 끈기 있게 설복 당하여 그 말을 인정하지 않을 수도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설령 혁명이 정당하다고 치더라도, 왜 자기가 말려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되는가? 혁명에 참가하지 않는다면 소원대로 우주 정찰군의 사관이 되어, 장차 언젠가는 알파 C 제 4행성인을 구조해 줄 때가 있을 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우주 정찰 사관을 꿈꾸며 열심히 노력해 온 보람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일평생 원시적인 행성에 살며 지구와 싸우게 될지도 모른다.
혁명은 정당하다고 하자. 그렇다고 해서 우주 정찰군의 견습 우주선 통신 장치까지 파괴하는 것은? 만약 혁명이 실패한다면 반역자의 누명을 쓰고 지구로 송환되리라. 그러면 군법 회의에 걸려 아버지의 명예까지 더럽히리라. 우주 정찰군의 사령관인 아버지는 아들이 왜 지구를 배반하고 혁명에 참가했는지 고통스러워하리라. 그리고 살아 계실 동안 반역자가 된 아들 때문에 괴로워하리라.
"안되겠다."
하고 랠리는 말했다.
"그게 대답인가? 커터는 너의 대답을 가슴 죄며 기다리고 있어."
"안되겠어. 나로서는 할 수가 없어."
하고 랠리는 되풀이했다. 하르는 지난날의 동료를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최후에는 그렇게 말하리라고 생각했었어. 자네는 혁명을 이해하지 못해. 혁명을 이해는 한다 치더라도 혁명에 발을 들여놓는 것은 무리야."
"나는 우주 정찰군을 포기할 수 없어, 하르. 나의 아버지와 지구의 일들이 머릿속에 맴돌아 어쩔 수가 없어. 자네들의 혁명은 정당하겠지만, 그러나…"
랠리는 여기서 말을 중단하고 말았다.
"좋아, 자네가 거절했다고 커터에게 보고하지."
하고 하르는 냉정한 태도로 말하고는 등을 돌리고 문에서 멀어져 갔다. 랠리는 그를 불렀다.
"하르!"
"왜 그래?"
하르는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보았다.
"나와 하이틀은 언제까지 감금시킬 작정이지?"
"커터는 자네를 즉시 내보내 줄 작정이었어. 나는 열쇠를 가지고 왔었고. 그러나 이렇게 된 이상, 재판이 끝날 때까지 거기에 있지 않으면 안돼. 나는 자네가 내 부탁을 들어줄 줄 알았어. 그러나 실패야. 자네는 할 수 없는 놈이군."
"재판이라니?"
"스파이 행위에 대한 재판이야. 적의 땅에서 잡힌 스파이는 알고 있겠지?"
”나는 우주 정찰군의 제복을 입고 있어. 제복을 입고 있으면 스파이로 취급할 수 없지 않은가?"
화를 내면서 항의하자, 하르는 웃었다.
"그만두게, 랠리. 이 혁명에 지구의 오래 된 국제법 같은 것을 적용시키려는 것은 웃음거리밖에 되지 않아. 우리의 생명은 오로지 이 혁명에 걸려 있어. 자네는 그것을 방해하려는 스파이야."
"형은 어느 정도인가?"
"만약 유죄로 결정되면, 지구와 같이 사형이야."
"사형?"
랠리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어두운 주위가 한층 더 어두워진 것 같다.
"그러니까 내 말을 들었어야 했어. 미안하게 생각해. 나는 옛날의 친구였다는 점 때문에 자네가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었었다. 그러나 자네는 거절했지. 나쁘게 생각하지 말게."
"나를 도망시켜 주게. 자네는 열쇠를 가지고 있지 않은가?"
"무리한 소리를 하는군. 우리는 카르텐호에서는 친구였지만, 지금에 와서는 적이야. 이 이상 자네를 살릴 방법은 없어. 달아나려면 자신의 힘으로 도망쳐."
하르는 등을 돌리고 걷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어둠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랠리는 꼼짝도 않고 바라보았다. 별로 하르를 원망할 마음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르에게는 혁명이 전부가 아닌가. 혁명 앞에는 지난날의 우정 같은 것이 무슨 가치가 있단 말인가.
탈 옥
랠리는 어둠 속에서 오랫동안 묵묵히 앉아 있었다. 지금의 랠리는 순교자인지도 모른다. 지구를 배반하면 목숨을 건질 기회도 있었는데, 그것을 거절하고 죽음을 선택한 것이다. 그러나 어쩐지 고귀한 행위라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바보 같은 짓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지구에 충성을 바쳐도, 지구는 나의 생명을 구해 주지 못한다. 모든 것이 꿈이다.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랠리는 또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알파 C 제 4행성의 지하 감방에 앉아서, 사형 판결을 받기 위한 재판을 기다린다는 것이 아무래도 믿어지지 않는다. 랠리는 손을 뻗쳐 벽에다 갖다대어 보았다. 축축하고 싸늘한 벽이다. 결코 꿈은 아니었다. 랠리는 순간 또다시 발자국 소리가 가까이 오는 것을 들었다.
"하르인가?"
대답은 없었다.
자물쇠가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쇠문이 소리를 내며 천천히 열렸다. 커다란 그림자가 아무 말 없이 방안으로 들어 왔다.
(재판을 기다리지 않고 나를 죽이려 온 것일까?)
하고 생각하며, 랠리는 긴장된 얼굴로 상대를 살폈다. 그림자는 낮으면서도 분명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소리내지 말고 조용해, 랠리. 난 오헤어야."
랠리는 깜짝 놀랐다. 반가움에 눈물이 핑 돌았다.
"바트!"
"그래. 이런 곳에서 자네를 만날 줄은 몰랐군. 하르는 자네를 분별없는 놈이라고 말했어. 그러나 자네는 꾀를 부릴 만큼 영리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
"그럼, 하르는 모든 것을 얘기했나?"
"그래. 그러나 나는 자네를 설득시키려고 온 것이 아니야. 만약 자네가 여전히 지구에 충성을 바치겠다면 그것도 좋아. 나는 아무 할 말이 없다. 비록 정치에 대한 사상은 다르다고 할지라도 우리의 우정은 변함없는 것이 아닐까."
"나는 스파이로서 재판을 받게 되어 있어, 바트."
"알고 있어. 나도 자네만큼이나 괴롭다."
"어떻게 해서 이 감방에 들어왔지, 바트?"
"나는 이 감방의 간수야. 자네가 있는 방의 열쇠도 가지고 있어."
"그랬던가…"
생각하고 나서 랠리는 말했다.
"오헤어!"
"왜, 랠리?"
"나는 카르텐호로 돌아가고 싶어. 자네는 어떻게 할 수 있지 않나?"
그러자 오헤어는 고개를 돌렸다. 그것을 어둠 속에서도 똑똑히 알 수 있었다.
"나로서는 할 수 없어, 랠리. 나는 혁명 측의 사람이야. 내 편지를 읽어. 적이면서도 친구이고, 친구이면서도 적이야. 만약 내가 너를 카르텐호로 돌려보내 준다면, 나의 입장은 어떻게 되지? 랠리, 안돼."
"자네도 영리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 바트, 자넨 언제나 그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랠리는 얼굴이 따가웠다. 정당하지 못한 행위는 하기 싫었지만, '살아나는 것이 제일이다'라고 아버지에게 배웠다.
"바트, 우주선 밖에서 고장 수리를 할 때의 일을 벌써 잊어버렸나!"
라고 말하는 랠리의 얼굴은 수치심으로 해서 붉어졌다. 그러나 살기 위해서는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잊고 있다고 생각하나, 랠리?"
"바트, 스파이는 사형이야."
오헤어는 잠자코 랠리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이제는 적으로 갈라져 있다. 그러나 랠리에게 생명을 구조 받은 빚은 그대로 남아 있다.
"알았다, 랠리. 너의 부탁을 거절할 수가 없구나. 인간의 사회에는 정치 사상보다도 중요한 것이 있으니까."
오헤어는 문을 열었다.
"가게, 나가게."
고통스러운 오헤어의 목소리.
"내 마음이 변하기 전에 어서 가게. 하이틀은 아직 여기에 있지만, 그 사람까지 내줄 수는 없어. 이 건물을 잘 빠져나가 뒤로 돌아가면 콥터가 있어. 시카고 식민지의 방향은 알고 있겠지, 동쪽으로 1600km야. 자, 나가게. 잘 가라, 랠리."
순간 랠리는 주저하였으나.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고마워, 오헤어. 그럼, 잘 있게."
이렇게 말하고 문을 나왔다. 살금살금 대여섯 걸음을 간 후 뒤돌아보았다. 오헤어는 텅 빈 감방 앞에 꼼짝도 하지 않고 그대로 서 있었다. 건물 밖으로 빠져 나오는 것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지만, 다행히 이 곳으로 올 때 기억해 두었기 때문에 구불구불한 복도까지는 쉽게 빠져 나왔다. 계단을 올라 1층 홀로 나올 수 있었다. 홀의 문은 열려 있었다. 혁명의 최고 지도자인 커터의 모습이 보였다. 책상에서 보고서 같은 것을 읽고 있었다. 그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홀을 빠져나가지 않으면 건물 밖으로 나갈 수 없다. 단숨에 달려서 빠져나가려고 생각했으나, 그렇게 하면 오히려 눈에 띄기 쉽다. 차라리 천천히 걷는 것이 좋겠다. 그러면 커터는 동료가 건물 안에서 걷고 있다고 생각하고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랠리는 애써 태연하게 천천히 홀로 들어섰다. 똑바로 앞을 향해 될 수 있는 대로 발소리를 죽여 가며 걸었다.
l보, 2보, …, 5보, 6보…
갑자기 커터가 얼굴을 들었다.
(아차!)
순간 랠리는 심장의 고동이 멎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다행히 커터는 곧 보고서에 눈을 돌렸다. 설마 지하 감방에 갇혀 있는 포로가 홀을 빠져나가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으리라. 랠리는 숨을 죽였다. 단숨에 달리고 싶은 충동을 겨우 참으면서 가까스로 출입문에 다다랐다.
뒤돌아보니 커터는 여전히 보고서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누가 지나갔는지 느끼지 못한 모양이다.
밖의 신선한 공기를 마시게 되자, 랠리는 이제 살 것 같았다. 알파 C가 바로 머리 위에서 노랗게 빛나고 있다. 저 아래쪽에는 푸르스름한 베타 C가 희미하게 떠 있다. 제 3의 태양 프록시마 C는 보이지 않았다. 그 붉고 작은 태양은 수평선 밑에 지고 있겠지.
(콥터를 찾아야지.)
랠리는 오헤어가 가르쳐 준 대로 빠른 걸음으로 행정 건물의 뒤쪽으로 걸었다. 거기에 콥터는 보이지 않았다.
"이거 야단났다!"
랠리는 입술을 깨물었다. 큰일이다. 콥터가 없으면 지하 감방에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시카고 식민지까지는 1600km의 밀림이 계속되어 있다. 그 곳을 무기 하나 없이 걸어서 되돌아갈 수는 없다. 여기에 올 때만 해도 밀림을 조금밖에 걷지 않았는데도 죽을 고생을 하지 않았는가. 머리 위에서 노리는 거대한 공룡의 머리와 무서운 익수종의 모습을 기억하자, 랠리는 절로 등골이 오싹해졌다. 어떻게 하든지 콥터가 있어야 한다. 랠리는 머리를 들고 100m 가량 되는 곳에 성벽이 우뚝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아니!"
랠리는 눈이 번쩍 뜨였다. 성벽 위에 콥터가 한 대 앉아 있지 않은가. 랠리는 성벽을 향해서 급히 걸었다. 장화의 밑바닥이 콘크리트의 길바닥을 걸을 때마다 덜컥덜컥 소리가 났다. 곧 성벽에 이르렀다. 돌계단이 구불구불 성벽 위에까지 연이어 있었다. 계단을 오르기 전에 랠리는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사방을 살폈다. 행정 건물에서 세 사람의 그림자가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나를 쫓아오는 사람이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랠리는 계단을 달려 올라갔다. 발의 무게와 싸우면서 콥터가 있는 꼭대기를 향해서 필사적으로 올라갔다. 아아, 성벽 위에는 뜻밖에도 사람이 있었다. 콥터의 프로펠러를 닦고 있다. 그 사람은 존 브라운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 놀라며 한참 동안 잠자코 바라보기만 했다.
"여기는 무엇 하러 왔는가?"
하고 브라운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나도 그렇게 묻고 싶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 나는 자네의 콥터를 빌리고 싶다."
"콥터를?"
브라운은 성벽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랠리도 같이 내려다보았다. 세 사람의 사나이가 계단을 올라오고 있다. 시간이 없다.
"내 자네의 도주를 도와주리라 생각하나? 변명해도 소용없어. 저 세 사람은 너를 잡으려고 오는 사람이야."
브라운은 랠리의 입장을 환히 알고 있었다.
"나는 콥터가 필요할 뿐이야."
랠리는 다시 한 번 말했다.
"이것을 빌려줄 수는 없어.“
브라운은 뒤따라오는 사람이 성벽 위에 올 때까지 랠리를 붙잡아 둘 작정이다.
(전쟁에 수단 방법을 가릴 수 없다.)
랠리는 이렇게 마음먹고, 번개같이 브라운의 턱을 갈겼다. 상대가 넘어지는 것을 보면서 날쌔게 콥터로 뛰어 올랐다. 콥터는 구식이라서 엔진을 발동시키는 방법을 몰랐다. 랠리는 조종반을 재빨리 살펴보았다. 조금 시간이 걸렸으나, 가까스로 출발의 버튼을 눌릴 수가 있었다. 콥터는 큰 소리를 내면서 3m 공중으로 날아오르며 천천히 상승하기 시작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세 사나이가 성벽 위를 뛰어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브라운은 겨우 일어서서 콥터를 손가락질하며 뭐라고 떠들고 있었다. 시간이 없다… 랠리는 다른 버튼을 눌렀다. 그 순간 콥터는 수평 비행으로 바꿔지며, 굉장한 속도로 밀림 위로 나왔다. 다시 뒤돌아보니, 성벽 위에서는 네 사나이가 손을 흔들며 마구 외치고 있는 것 같았다.
(저들이 콥터로 추적할 때까지 얼마나 걸릴까?)
그 때까지 될 수 있는 대로 멀리 날아가지 않으면 안되겠다고 랠리는 생각했다. 5분쯤 지났을까, 두 대의 콥터가 뒤쪽에서 나타났다.
"좋아, 올 테면 와라."
랠리는 자신이 있었다. 브라운에게 빼앗은 콥터는 구식이지만 굉장한 속도를 낼 수 있었다.
일단 가까이 따라온 콥터는 차츰 같게 보였다. 드디어는 포기해 버렸는지 두 대 모두 되돌아가고 말았다.
"이젠 안심이다."
랠리는 시카고 식민지를 찾아내는 데 모든 신경을 쏟았다. 동쪽으로 1600km 가면 된다고 오헤어는 말했다. 그런데 어디가 동쪽인가? 랠리는 나침반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런던 식민지의 성벽을 떠나올 때 방향을 확인할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그대로 곧장 계속 날아왔으니까, 이 방향이 동쪽이 아닐까? 주저도 되지만 하는 수 없다. 진로를 변경시키지 않고 그대로 날아야겠다고 랠리는 결심했다. 콥터는 순조롭게 계속 날았다. 밀림의 나무들이 신나게 뒤로 흘러가고 있다. 런던 식민지를 떠난 후부터 전후 좌우가 온통 밀림뿐이다. 다른 것은 아무 것도 눈에 뜨이지 않는다. 때때로 수목 사이에 거대한 공룡의 모습이 보였다. 이 밀림의 왕자들은, 다른 행성에서 침입해 온 밉상스러운 작은 동물이 두 패로 나뉘어져 싸우고 있다는 것에는 전혀 관심 밖이란 듯이 유유히 날고 있다. 익수룡이 밀림 위를 날아다니고 있다.
랠리는 1, 2분 정도 콥터의 속도를 떨어뜨리고 하늘을 나는 파충류의 생태를 관찰했다. 익수룡은 거의 날개와 긴 부리로 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날개는 얇고 부드러우며, 길게 뻗은 앞발의 넷째 발가락에서 박쥐같이 펼쳐져 있다. 겉보기에는 콥터같이 상당한 속도로 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나무 끝에서 둥둥 떠서 상하로 오르내리고 있어 속도는 그리 빠르지 못했다.
콥터는 순조롭게 날아가고 있었다. 단조로운 녹색의 세계를 내려다보고 있는 동안에 랠리는 시간가는 줄 몰랐다. 앞쪽에 회색의 점이 나타나더니 점점 커져 갔다.
"시카고 식민지의 성벽이다."
방향은 틀리지 않았던 것이다. 랠리는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식민지의 위에 오자, 랠리는 착륙을 망설였다. 착륙시키는 버튼이 어떤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머리를 짜내어 생각한 끝에 좋은 방법을 생각해 내었다. 성벽 위의 공중에서 정지시키고, 줄사다리로 내려오면 되겠다. 한시라도 빨리 카르텐호로 되돌아가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러나 랠리는 여기서 또 망설였다. 라인하르트 선장에게 사실 그대로 보고하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하르 등이 원하는 대로 통신 장치를 파괴하는 것이 좋을 것인가? 아무튼 지구인의 동료를 만나는 것이 우선 급하다.
랠리는 무사히 콥터에서 탈출하여 성벽으로 내려왔다. 그러나 최초로 만난 식민지 사람에게 붙들리고 말았다. 햇볕으로 그을린 얼굴에 턱수염이 달려 있는 사나이다.
"지구인이 있는 곳이 어디입니까? 나는 길을 잃었습니다."
식민지 사람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다.
"지구인이 있는 곳? 당신은 혹시 돌지 않았나요?"
랠리는 놀랐다. 아직까지 악몽 속에서 헤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자기 머리를 의심했다.
"우주 연습선 카르텐호로 온 지구인 말입니다. 확실히 시카고 호텔에 있을 겁니다. 나는 그만 길을 잃어서…"
"당신, 여기서 시카고 호텔을 찾다니? 여기는 봄베이 식민지라오."
"설마…"
하고 말을 계속하려다가 랠리는 입을 다물었다. 동쪽으로 날아간다는 것이 그만 서쪽으로 날아온 모양이다. 그래서 봄베이 식민지에 착륙한 것을 알게 되었다. 런던 식민지의 콥터가 추적을 그만두고 되돌아간 것은 아마 랠리가 방향을 잘못 잡고 가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리라. 잘못된 이상 이제 와서 하는 수 없다. 문제는 봄베이 식민지가 랠리를 잘 봐 주든지, 아니면 다시 감금될 뿐이다. 랠리는 큰맘먹고 말을 꺼냈다.
"나는 곧 시카고 식민지로 돌아가야 합니다. 여기가 시카고 식민지인 줄 알고 잘못 착륙했어요."
"그것 참 안됐는데…"
하며 턱수염이 난 사나이는 랠리를 봄베이 식민지 행정 본부에 안내 해 주었다. 봄베이 식민지 대표는 훤칠한 키에 얼굴이 잘생긴 사나이였는데, 랠리에게는 매우 발음하기가 어려운 이름이었다. 랠리는 봄베이 식민지에 그만 실수하여 날아왔다는 이야기를 했다. 물론 혁명 소동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말하지 않았다. 다만 콥터로 관광 여행을 하던 중 방향을 잘못 알고 이렇게 되었다고 얘기했다. 만약 런던 식민지에서 연락이 오면 만사는 끝난다. 도망자라는 것이 탄로 나기 전에 이 봄베이 식민지에서 빠져나가야 한다. 대표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카고 식민지의 방향을 가르쳐 드리지요. 콥터는 어디에 두었나요?"
"성벽 위에 떠 있습니다."
하고 랠리는 대답했다.
"호, 그래요. 왜 착륙시키지 않고요?"
하면서 대표는 육군 제복을 입고 출입문 곁에 서 있는 사나이를 손짓했다. 그러면서 랠리를 보고 웃었다.
"익수룡에게 채여 어디로 날아가기 전에 착륙시켜 놓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리고는 제복의 군인에게 명령했다.
"챈들러, 북쪽 140 지구 성벽 위에 콥터가 떠 있다. 그것을 착륙시켜라. 그러고 나침반을 준비하여 이분에게 시카고 식민지의 방향을 잘 가르쳐 드리고, 출발하도록 해 드려라."
랠리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이 식민지에는 아직 반란의 소동이 일어나고 있지 않은 것 같다.
"급하시지 않으면 오늘 저녁 여기서 쉬고 가시지 않겠습니까? 손님으로서 대접하겠습니다."대표는 친절하게 말하였으나, 랠리는 그럴 겨를이 없었다.
"아닙니다. 돌아가는 것이 늦어지면 동료들이 걱정할 테니까요."
"그도 그렇겠습니다."
하면서 봄베이 식민지 대표는 랠리를 전송해 주었다. 챈들러에게 나침반을 빌리고, 조종법을 잘 배웠기 때문에 이젠 안심이다. 봄베이 식민지의 성벽을 출발하여, 시카고 식민지까지 랠리는 가장 가까운 거리를 날 수 있었다. 이번에는 틀림없는 시카고 식민지였다. 눈여겨본 건물들이 늘어서 있었다. 랠리는 성벽 위에 콥터를 착륙시키고, 호텔로 향했다. 혁명 측 사람에게 붙들리지 않을까 걱정되었으나, 거리에는 사람의 그림자도 없고 조용했다. 드디어 시카고 호텔을 찾았다. 시카고 식민지를 출발해서부터 얼마나 시간이 걸렸을까? 밀림 속을 헤매며 지하 감방으로 붙들려 들어가고, 봄베이 식민지까지 헛 비행을 하고 난 다음, 지금 겨우 도착한 것이다. 랠리는 피로에 지쳐 있었다. 우주 정찰군의 제복은 여러 군데 찢어지고 엉망이 되어 있었다. 얼굴도 땀과 먼지로 시커멓게 변해 있었다. 우선 목욕부터 하고 싶었으나. 라인하르트 선장에게 먼저 보고를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집으로 돌아가라, 지구인들아!
라인하르트 선장은 반란 소동으로 말미암아 그 동안 얼굴이 많이 여위어 있었다.
"랠리 스타크 연습생, 지금 돌아왔습니다!"
랠리는 절도 있게 경례를 하려 했으나, 너무나 피로에 지쳐 있었으므로 몸이 마음대로 잘 움직여 주지 않았다. 선장은 성급하게 말했다.
"때마침 잘 왔다. 어제 저녁의 집회 결과, 우리는 곤란한 입장에 처하게 되었다."
어제 저녁의 집회! 그러면 랠리의 모험은 24시간 이상 걸렸단 말인가! 피로에 지쳐 멍한 랠리는 생각을 정리했다.
"자네가 이곳을 떠나고 없을 동안에, 시카고 식민지는 주민 투표로 혁명에 참가하기로 결정했다. 헨리크스 마을도 같은 주민 투표로 혁명에 가담하게 되었다. 봄베이 식민지만은 다시 지구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그러니 우리는 현재 혁명 소동 속에 처해 있다고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네는 런던 식민지에서 어떤 정보를 얻었는가?"
순간 랠리는 통신 장비를 파괴하는 계획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않기로 결심했다.
"런던 식민지는 혁명의 중심지입니다. 혁명의 최고지도자는 커터라는 사람입니다. 이미 런던 식민지를 알파 C 제 4행성 자유 세계라고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커터는 혁명 정부의 지방 대표로 선출되었습니다."
이 때 노크 소리가 나더니, 지구 체제 밑에 있는 알파 C 제 4행성 식민지 정부 대통령 해리슨이 들어왔다.
"대통령, 커터라는 사람을 알고 있습니까?"
하고 라인하르트 선장은 물었다.
"런던 식민지의 혁명 지도자입니다. 반란을 일으킨 주모자의 한 사람이지요. 런던 식민지에서는 모두가 커터 밑에 단결하여, 만약 필요하다면 혁명 전쟁을 일으킬 작정입니다."
"다른 식민지는? 싸울 태세입니까?"
"시카고 식민지는 싸울 것입니다. 헨리크스 마을에 대해서는 자세히 모르겠습니다. 봄베이 식민지는 지구 체제파와 혁명파의 반반이지만, 유력한 자가 지구 체제 쪽이 많아 과격한 반란은 일으키지 않겠지요. 그러나 다른 식민지가 런던 식민지를 지지하면 동조할 것입니다."
"하이틀 ․반 ․하렌 후보생은 어디에 있나?"
라인하르트 선장은 다시 랠리에게 질문했다.
"저와 하이틀 연습생은 런던 식민지에서 체포되었습니다. 다행히 저는 탈옥에 성공했습니다만, 하이틀은 아직 감방에 있습니다. 저는 혁명군의 콥터를 훔쳐서 달아났습니다. 그러나 방향을 잘못 알고 봄베이 식민지에 도착하였습니다. 그 식민지 사람이 저를 이 곳으로 오도록 해 주었습니다."
"런던 식민지에서 어떤 모습을 보고 왔는가?"
"모두 반란 계획을 진행 중에 있었습니다."
"좀더 자세히 보고하라! 그놈들이 무장하여 일어서는 장소와 때는?"
하고 라인하르트 선장은 언성을 높였다.
"예, 그것은…"
랠리는 그만 말문이 막혔다.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자신도 느꼈다.
"그 곳의 정보는 지구에 대하여 중대하다, 스타크 연습생. 알겠지? 자, 그러면 무엇을 탐지하고 왔는가?"
"아무 것도 탐지하지 못했습니다."
선장의 눈은 분노에 이글이글 타고 있었다.
"뭐, 아무 것도 탐지하지 못하고 돌아왔단 말인가? 자네는 정신이 있는가 없는가, 스타크 연습생?"
해리슨 대통령이 보기가 딱해서 뭐라고 말을 하려고 했으나, 라인하르트 선장은 눈 한 번 깜박이지 않고 소리쳤다.
"스타크 연습생, 선장으로서 명령한다. 혁명에 대하여 듣고 본 것을 자세히 보고하라!"
랠리는 선장의 얼굴을 쳐다보고 이를 꽉 깨물었다. 명령은 명령이다.
"혁명파는… 우리 모두를-물론 선장도 붙들어서 인질로 만들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하며 랠리는 하르와 오헤어, 커트, 그리고 혁명에 몸을 바치고 있는 사람들을 고발했다. 이 일을 아버지가 아신다면 뭐라고 말씀하실까? 지구에 충성을 바쳤다고 칭찬해 주실까, 아니면 친구를 팔았다고 노하실까? 랠리는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아무튼 동료를 밀고하고 배반한 것이다. 그러자 해리슨 대통령이 열의 있게 말했다.
"만약 인질을 잡아 두면 투쟁은 오래 가고, 피가 피를 부르는 비참한 일이 일어납니다. 덕을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지금 평화적 수단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평화적 해결이라는 것은 일시적 방편에 지나지 않습니다. 혁명 운동을 완전히 타도하는 것, 해결 방법은 그것뿐입니다."
라인하르트 선장은 냉정하게 말하고, 책상에서 뭔가 쓰기 시작했다.
"런던 식민지의 인구는 얼마지요, 해리슨 대통령?"
"2천명 조금 넘을 것입니다."
"음, 모조리 없애는 것은 마음에 걸리지만…"
라고 말하면서, 선장은 다시 일어섰다.
"해리슨 대통령, 급한 용무가 있어서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랠리, 나를 따라오게."
"어디로요?"
"우주선이다. 해리슨 대통령, 대단히 죄송하지만 카르텐호의 승무원 전원을 급히 우주선으로 돌아오도록 전달하여 주실 수 없겠습니까?"
"좋습니다. 그런데 당신들은 이 행성을 떠날 작정입니까?"
하고 대통령은 물었다.
"아직 떠나지는 않겠습니다만, 우리는 성벽 안에서 너무 오래 머물고 있은 것 같습니다."
하고 선장은 비꼬듯 말했다. 랠리들이 카르텐호로 돌아오는 도중, 도로에 군중이 웅성대고 있었다. 지구인들이 통과할 때마다 그들은 더러운 말로 욕설을 퍼부었다. 중앙 대로에는 표어를 써 붙인 깃발이 곳곳에 나부끼고 있었다. 표어는 랠리가 런던 식민지에서 이미 본 것이 많았으나, 새로운 것들도 눈에 띄었다.
집으로 돌아가라, 지구인들아!
너희들은 보기도 싫다!
해리슨을 데리고 가라!
랠리는 도로에서 혹시 폭도들이 습격할까 걱정하였으나, 식민지인 군중은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욕할 뿐이었다. 성벽 출입문을 나와 풀밭을 지나고, 사다리를 올라 우주선에 들어가자, 겨우 마음이 놓였다. 랠리의 침실은 텅텅 비어 있었다. 마음이 허전했다. 문득 혁명군의 녹색 제복을 입은 하르와, 또 런던 식민지의 어두운 감방에 잡혀 홀로 있을 하이틀의 생각이 났다. 다른 승무원들도 속속 우주선으로 모여들었다.
"이 구역 어딘가에 제 3우주 정찰 선단이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곧 이 공문을 보내라."
라인하르트 선장은 조금 전에 호텔에서 쓴 공문을 내밀었다.
"예, 즉시 보내겠습니다."
하고 랠리는 경례를 하고, 통신실로 향했다. 장치가 통신이 가능할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에 공문을 읽었다.
라인하르트 선장이 우주 정찰 사령관 카아 장군에게 긴급보고 X4. 알파 C 제 4행성에서 혁명이 진행 중. 혁명군은 지구인과 지구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인질로 붙잡을 계획을 세우고 있음. 폭동을 진압하기 위한 군용 우주선을 빨리 보내 주십시오, 벌주기 위하여 폭도의 근거지 런던 식민지를 부분적 또는 전면적으로 파괴시켜야 하겠음.
랠리는 몇 번인가 되풀이하여 읽었다.
(벌주기 위하여 런던 식민지를 부분적 또는 전면적으로 파괴해야 하겠음.)
부분적, 또는 전면적 파괴.
부분적, 또는 전면적 파괴.
랠리는 이럴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 우주 정찰군의 우주 선단을 부르면 오헤어와 하르는 물론, 아무 죄도 없는 가련한 하이틀까지 죽고 만다. 그리고 알파 C 제 4행성은 목성의 식민지 반란 때와 같은 길을 걷고 만다. 수백 명, 수천 명의 식민지 사람들은 죽임을 당하고 혹시 살아남은 사람은 반역죄로 죄인 노동자가 되어 일평생을 혹사당한다. 랠리가 공문을 보낸다면, 자유를 원하는 알파 C 제 4행성의 희망은 일순간에 물거품이 되고 만다. 통신 장치에 통신을 할 수 있다는 불이 들어왔다. 랠리의 손가락은 자동적으로 우주 통신 장치의 조종반 위로 미끄러져 갔다. 그리하여 우주 정찰군의 군용 우주선단을 불러내는 전파를 우주 공간에 보내기 시작했다.
"이쪽은 센타우리 구역, 군용선단 X16532이다. 그쪽은?"
랠리의 귀에 빠른 군용 우주선단의 통신사의 소리가 들려 왔다.
랠리는 공문을 내려다보았다.
[부분적 또는 전면적 파괴]
공문 용지를 손으로 구겨 보았으나, 그것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그쪽은?"
하는 금속적 소리는 다시 들려왔다. 랠리는 구겨진 용지를 펴들고 선장의 필적을 들여다보았다. 아무래도 안되겠다. 도저히 보낼 수가 없다.
"그쪽은?"
하고 또 군용 선단에서 부르는 소리가 났다. 랠리는 스위치를 꺼버리고 통신실을 나오고 말았다.
"공문은 보냈는가?"
저쪽 복도에서 라인하르트 선장이 물었다.
"아직 보내지 못했습니다, 선장."
랠리는 떨리는 음성을 억누르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기계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1, 2분 후에 다시 해보겠습니다."
"빨리 해라. 폭동이 일어나기 전에 군용 우주선단을 부르지 않으면 늦는다."
"알겠습니다, 선장"
하고 랠리는 통신실로 다시 돌아가, 또다시 통신 장치를 켰다. 명령이기 때문에 통신을 중지할 수는 없다. 그러나 랠리는 런던 식민지를 전멸시키는 것을 도울 마음이 나지 않았다.
"이쪽은 우주선단 X16532. 그쪽은?"
같은 소리가 또 들려왔다.
"라인하르트 선장으로부터 제 3 우주 정찰 사령관 카아 장군에게."
랠리는 힘없는 목소리로 통신을 시작했다.
"사령관에 연결시키겠다."
군용 우주선의 통신사가 대답했다. 랠리는 자기 앞에 복잡하게 늘어서 있는 통신 장치들을 우두커니 바라보았다. 몇 초, 아니 길어도 수십 초안에 카아 장군의 목소리가 들려오겠지.
그리하여 랠리가 공문을 보내면, 알파 C 제 4행성은 완전히 파괴되고 만다. 싫다! 그런 엄청난 일을… 랠리는 통신실의 출입문을 열고 복도를 살펴보았다. 때마침 키가 큰 연습생 폴 켄벨이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이쪽은 카아 사령관."
통신 장치에서 굵은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폴."
하고 랠리는 동료를 불렀다.
"왜 그래, 랠리?"
"이리 좀 들어와."
랠리는 손에 들고 있던 공문을 바라보았다.
"보내라. 그쪽 공문을 기다리고 있다."
하고 카아 사령관은 되풀이했다.
"이 공문을 자네가 좀 보내다오, 폴."
"왜 자네가 보내지 않지? 자네가 할 일 아닌가?"
"접속이 나쁜가? 이쪽 소리가 들려는가? 어서 대답하라."
카아 사령관은 계속 응답을 재촉하고 있다. 땀방울이 랠리의 이마와 얼굴에서 흘러내렸다.
라인하르트 선장만 지금 여기에 오지 않으면 잘 되어 가겠지-
"부탁한다, 폴. 나는 급한 용무가 있어."
"무리야. 나는 통신 방법을 모르잖아."
"간단해. 이 용지에 씌어 있는 공문을 읽으면 되는 거야. 할 수 있겠지?"
"그렇다면 해 볼게. 공문을 이리 줘."
폴은 억지로 고개로 끄덕였다. 이 때, 찰칵 하는 소리가 났다. 카아 사령관이 너무 기다리다가 지쳐서 통신을 끊은 것이리라.
"괜찮아, 곧 불러줄 테니까."
며 랠리는 다이얼을 돌렸다. 군용 우주선의 통신사는 또 나오며 투덜댔다.
"왜 이래 ? 우리를 놀릴 작정인가?"
몹시 화가 난 모양이다. 통신사답지 않은 말투이다.
"여기에 앉아서…"
고 랠리는 폴을 억지로 의자에 앉혔다.
"이것을 읽으면 돼."
고 말하며, 형편없이 구겨진 공문 용지를 넘겨주었다. 폴은 용지를 펴들었다. 그러자 랠리는 통신실을 나왔다. 통신을 보내는 것을 듣고 있을 수가 없을 것 같아서다.
진공 작전
랠리는 문 밖에서 잠시 머뭇거리다가 돌아섰다. 다시 통신 장치가 있는 곳으로 되돌아갔다.
폴이 막 공문을 읽으려는 순간이었다.
"잠깐, 그것을 내게 줘, 폴. 아무래도 내가 해야겠어."
"도대체 뭐 하는 거야, 랠리! 장난하고 있나?"
순한 폴도 벌컥 화를 냈다.
"미안하다. 내가 보내겠어."
랠리의 얼굴에서는 또다시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폴이 자기의 이상한 행동을 선장에게 보고할지도 모르겠다.
"자네가 보낸다면 그만이지 뭐. 왜 기분이 나쁜가?"
마음씨가 좋은 폴은 랠리의 이상한 행동이 기분이 나빠서 그러는 줄 아는 모양이었다.
"공문을 보내라."
통신 장치에서 독촉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폴은 방에서 나갔다. 랠리는 통신 장치 앞에 앉으며 공문을 들여다보았다.
"공문을 보내라. 왜 꾸물거리는가?"
상대방은 화가 난 목소리로 재촉했다. 랠리는 대답하려고 입을 열려다 그만 입을 다물어 버렸다. 그리고 손을 뻗어 스위치를 꺼버렸다. 그대로 조용히 앉아 통신 장치를 한참 동안이나 바라보고 있었다. 랠리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운명의 공문은 결국 보내지 못하고 말았다. 오헤어, 하르, 하이틀-그리고 혁명에 참가한 모든 식민지 사람들을 랠리 스타크가 구한 것이다. 그러나 자기가 영웅적 행위를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랠리는 공문을 찢었다. 갈가리 찢어진 종이 조각이 바닥에 흩어졌다. 그리고 다음에 통신 장치의 냉각 회로에 손을 집어넣어, 조심스럽게 회로기판을 빼냈다. 이것은 예비 부속품이 없는 중요한 회로기판이다. 한참 동안 그것을 들여다보고는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아버지 스타크 사령관은 이 행위를 인정해 주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랠리로서는 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었다. 랠리는 장치 속을 손으로 더듬어서 회로의 배선을 끊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우주 통신 장치를 파괴하고 만 것이다.
"이제 이 장치는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랠리는 주머니에 집어넣은 회로기판 손으로 만지면서, 마루바닥에 흩어져 있는 공문 조각들을 힐끗 돌아보고 통신실을 나왔다.
"공문은 보냈는가?"
하고 라인하르트 선장이 물었다.
"보냈습니다."
라고 랠리는 조용하게 대답했다. 경례를 하고 복도를 빠져 나와, 승강 계단을 지나 지상으로 나왔다. 아버지에 대한, 우주 정찰군에 대한, 지구에 대한, 하르에 대한, 오헤어에 대한, 혁명에 대한 것 등을 차례차례 생각하면서 풀밭을 지나 시카고 식민지의 성벽으로 향했다. 지금 랠리가 만나고자 하는 사람은 존 브라운이다. 시카고 호텔은 이미 지구인이 거주할 곳이 못되었다. 젊은 식민지 사람들이 차지하여 혁명 본부가 되어 있었다.
"존 브라운이 여기에 있는가? 있으면 곧 만나자고 전해 다오."
랠리는 정면 입구에 서 있는 식민지 병사에게 부탁했다.
"브라운에게 무슨 용무가 있는가?"
문지기는 랠리의 제복을 차가운 눈초리로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꼭 만나야 할 일이 있다."
"글쎄, 브라운이 당신을 만나 주실까?"
"급한 용무다. 꾸물거릴 시간이 없다."
랠리는 문지기가 거절하는 것을 뿌리치고 억지로 호텔 안으로 들어섰다.
"저 놈을 붙잡아라!"
문지기가 소리치자, 식민치 병사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소동이 일어났다.
"이런 곳에서 왜 이리 야단들이야?"
귀에 익은 음성이 들렸다. 소동은 멈추었다. 랠리는 두 식민지 사람에게 팔을 붙들린 채 얼굴을 들었다. 눈앞에 존 브라운이 서 있었다.
"자네는 대단히 강하군. 우주 비행사가 되기보다 레슬링 선수가 되는 것이 좋을 뻔했어. 나는 자네가 봄베이 식민지를 비행했다는 것도 들었다."
"소동을 일으켜 미안하군, 브라운. 나는 꼭 콥터가 필요해서…"
"콥터는 회수했다. 그런데 여기는 왜 왔는가?"
"나는 런던 식민지에 가야겠어. 그 곳 사람들에게 경고할 일이 있다. 나를 런던 식민지에 데리고 가 주지 않겠는가?"
"무엇을 경고한다는 거지? 자네는 거기에 한 번 가보아서 몸서리가 쳐질텐데, 그래도 또 가고 싶은가?"
"그 때는 명령으로 갔었다. 이번에는 나의 뜻으로 가고 싶다. 가도록 해 주겠는가?"
하며 랠리는 식민지 사람에게 붙들린 팔을 뿌리쳤다.
"그렇다면 자네는 또 혁명 측에 가담하겠다는 건가? 너처럼 지조가 없는 사나이는 처음 본다. 그러나 마침 내가 런던 식민지에 갈 용무가 있으니 자네를 손님으로 대접하여 데리고 가 주지. 그쪽에 가거든 자네가 좋을 대로 경고를 하든지, 마음대로 해라. 이 사나이를 묶어라."
하고 브라운은 말했다. 식민지의 사나이들은 다시 랠리에게 덤벼들었다. 이번에는 반항하지 않고 묶였다. 그리고 콥터 뒤에 실렸다. 브라운은 조종석에 앉자, 곧 콥터를 이륙시켰다. 시카고 식민지에서 런던 식민지까지 순식간에 날아갔다. 콥터는 런던 식민지의 중심부에 있는 넓은 광장에 착륙했다. 브라운이 콥터에서 내리자 먼 곳에 있던 군중들이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곧 커터와 녹색의 제복을 입은 혁명군 사나이들이 나타났다.
"자네들의 손님을 다시 데리고 왔다."
하며 브라운은 콥터의 안을 가리켰다. 제복의 사나이들이 달려들어 랠리의 묶은 것을 풀어 주었다.
"자네는 이 녀석을 어떻게 체포했나, 브라운?"
하고 커터가 물었다.
"체포한 것이 아니야. 스스로 우리 본부에 찾아와서 여기에 오겠다고 원하길래 끌고 왔을 뿐이다."
브라운은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내 말을 들어주게…"
하고 랠리는 말했지만, 아무도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없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 오헤어가 서 있었다. 랠리를 보더니 놀란 얼굴로 눈을 깜박거렸다.
"이 지구인을 다시 독방에 처넣어라."
하고 커터는 제복의 사나이에게 명령했다.
"당신들은 예정대로 출발할 것인가?"
하고 브라운은 물었다.
"그렇다.“
커터는 크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을 이었다.
"모든 혁명군은 30분내에 런던 식민지를 출발한다. 한밤중까지 가서 제 1캠프를 치고, 날이 밝을 무렵에는 제 2캠프를 친다. 즉 내일 저녁에 시카고 식민지에 들어가서, 지구인들을 체포하고, 또다시 우리들이 숨을 장소를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
두 혁명군의 병사는 랠리를 끌고 가려 했다. 때마침 거기에 하르가 나타났다.
"랠리, 왜 되돌아왔는가?"
"하르, 내 말을 듣게."
랠리는 병사들에게 팔을 붙들리면서, 필사적으로 말을 꺼냈다.
"라인하르트 선장은 나에게 공문을 전송하라고 명령했어. 그는 우주 정찰군의 제 3우주 정찰 선단을 불러서 혁명을 지지한 벌로서 런던 식민지를 파괴하려고 해."
"그건 큰일이군! 카터에게 이야기해야겠어! 곧 진공 작전에 들어가지 않으면 늦어."
"서두를 것은 없어, 하르 그것보다 이 병사들에게 내 팔을 놓아주도록 말해 주게. 이상한 것을 보여 주겠네."
"손을 놓아. 그러나 경계해라."
하고 하르는 병사들에게 명령했다.
병사들은 랠리의 손을 놓고, 대신 총을 겨누었다.
"하르, 내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어 주게. 내가 내 손으로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으면 총을 든 병사가 쏠지도 모르니까. 그 주머니에 들어 있는 것을 꺼내 주게."하며 랠리는 부탁했다.
"주의해, 하르."
한 병사가 말했다. 하르는 랠리의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통신 장치의 부품을 꺼냈다.
"통신 장치의 부품 아닌가?"
"그래. 카르텐호의 우주 통신 장치에서 가장 중요한 회로기판이야."
"진짜인가?"
"보면 알 거야."
"랠리?"
갑자기 하르는 랠리 가까이 다가섰다. 그리고 랠리의 눈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랠리 네가 이것을 통신 장치에서 떼어낸 것이 먼저인가 나중인가? 즉 라인하르트 선장의 공문을 전송하기 전인가, 후인가?"
“나는 전송하지 않았다. 전송하는 대신에… 장치의 회로를 파괴시키고 이 전자관을 떼어내 가지고 왔다.”
"랠리!"
햇볕에 그을린 하르의 얼굴은 상기되었다. 그 때 커터가 가까이 다가왔다.
"이 지구인을 왜 데리고 가지 않지? 무슨 일이 있었나, 하르?"
"그렇다. 라인하르트는 우주 정찰군에 부탁하여, 런던 식민지를 완전히 파괴시키려 하고 있다. 그런데, 그 공문을 보내기 전에 랠리가 통신 장치를 파괴시키고 여기로 왔다고 한다."
기쁨에 떨리는 목소리로 하르는 보고했다.
"정말인가?"
"이 회로기판이 확실한 증거다."
라고 말하면서, 랠리는 손을 뻗어 하르가 가지고 있는 회로기판을 도로 빼앗았다.
"우주선에서는 통신 장치의 회로를 수리할 수 없어. 이 부품은 다시 구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시카고 식민지로 쳐들어가면 선장을 쉽게 체포할 수 있겠군. 그런데 선장은 네가 통신장치를 파괴한 것을 알고 있는가?"
"통신 장치를 사용하지 않는 한 폭로되지 않는다. 내가 선장에게 공문을 보냈다고 보고해 두었으니까."
갑자기 커터는 힘차게 달리기 시작했다. 하르도 랠리의 팔을 가볍게 치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커터의 뒤를 따라갔다.
대 행 진
랠리는 밀려드는 석양의 그림자가 길게 뻗어 있는 도로에 홀로 서서, 알파 C 제 4행성의 맛있는 공기를 힘껏 마시고 있었다. 지금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있었다. 지구도, 아버지도, 우주 정찰군도, 모든 것이 과거의 꿈이었다. 그리고 지금 랠리는 홀로 조용한 거리에 서 있다.
"하이틀은?"
문득 생각이 났다. 약하고 키 작은 연습생은 아직도 지하 감방 어느 곳에 갇혀 있을까? 커터들은 런던 식민지를 한 사람도 없게 하여 텅 빈 진공 지대로 만들 계획이다. 그러나 스파이 혐의로 체포된 하이틀은 홀로 그 어둡고 습기 찬 지하 독방에 팽개쳐져 있을 것이 아닌가.
랠리는 지하 감방이 있는 건물을 찾으리라고 결심했다. 그러나 성벽 가까이에 있었다는 것 외에는 모른다. 랠리는 조용한 거리를 급히 걸어갔다. 10분쯤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다가, 벤치에 앉아 있는 한 노인을 발견했다.
"행정 건물은 어디입니까? 지하 감방이 있는 건물인데요."
"자네는 왜 이런 곳에 남아 있나? 다른 사람들은 모두 시가에서 나가고 말았는데."
"부탁합니다. 가르쳐 주십시오!"
그러자 노인은 왼쪽을 가리켰다. 랠리는 미친 사람같이 달렸다. 그리고 눈에 익은 건물을 찾아내어, 돌계단을 올라갔다. 열려 있는 출입문으로 뛰어들며 외쳤다.
"하이틀, 하이틀!"
하고 부르며 지하 감방으로 통하는 출입문에 이르렀다.
"하이틀!"
"그렇게 소리 지르지 않아도 좋아, 랠리!"
문득 뒤에서 누군가가 말했다.
"하이틀은 커터들이 데리고 갔어."
"오헤어!"
랠리는 기쁨의 소리를 지르면서, 큰 사나이에게 달려들었다.
"지금 문단속을 하고 있는 중이야. 이렇게 해 두면 건물을 잘 지킬 수 있다고 커터가 생각했어. 자, 밖으로 나가자."
큰 사나이 오헤어는 정면의 출입문을 닫았다. 그리고 밖에서 자물쇠를 잠갔다.
"자, 이만하면 안전하겠지."
"기다려 주게, 오헤어."
"미안하지만 지금은 안돼. 커터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어. 아무튼 캠프에서 자네를 만나게 될 거야."
하며 오헤어는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어둠이 짙어 가는 중앙 대로를 성큼성큼 걸어갔다. 먼 곳에서 집합 나팔 소리가 들려왔다. 랠리는 어둠 속에서 믿음직한 큰 사나이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고 있었다. 다시 집합 나팔 소리가 조금 전보다 크고 길게 울려 퍼졌다.
"런던 식민지의 동지 여러분에게 고한다!"
커터의 목소리가 곳곳에 있는 확성기에서 흘러나왔다.
"여러분, 우리는 지금 진공 작전에 들어가고 있다. 잘 들어라. 다음 집회 나팔이 불던 우리는 동쪽 문에 집합한다. 다시 한 번 말한다. 동쪽 문이다. 거기에서 우리는 미리 계획을 세운 대로 대행진을 한다. 우리는 무장하고 밀림으로 나아간다. 공룡을 겁낼 필요는 없다. 그놈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강력한 조명으로 겁을 먹고 달아날 것이다. 런던 식민지에서 30km 되는 곳에 제 1캠프를 설치한다. 거기에는 5백 명의 동지가 남아서 계획대로 캠프를 요새화 한다. 다른 사람은 날이 밝을 때까지 런던 식민지에서 80km 떨어진 곳까지 나아가서 제 2캠프를 친다. 여기에서도 500명이 남는다. 다른 사람은 시카고 식민지에서 10km 떨어진 제 3캠프에 공중 수송된다. 그리고 헨리크스 마을의 대원들과 합류하여 시카고 식민지에 돌입하여 지구의 우주선을 탈취한다! 자, 그러면 각자 출발 준비를 서둘러, 다음 집회의 나팔 소리가 날 때까지 대기하라."
밤의 어둠은 만물을 감싸고, 차가운 공기가 몸에 스며드는 밤이었다. 랠리는 며칠 동안에 일어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쳐 갔다. 알파 C 제 4행성에 대하며, 랠리는 중대한 역할을 담당했다. 그리고 랠리는 크게 깨달았다. 자기가 보는 입장에서뿐만 아니라, 아버지가 보는 입장에서도 설 수 있었다. 아버지는 언제나 입버릇처럼 나에게 가르쳐 주시지 않았던가.
(우주 정찰군 사관은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이 판단하고, 자신이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 랠리는 아버지를 배반한 것 같았으나, 사실은 아버지의 가르침을 지킨 것이다. 랠리는 도로를 천천히 걸었다. 콥터가 지상에 앉아 있었다. 그것을 보고 랠리는 주머니에서 회로기판을 꺼냈다. 아직 랠리는 알파 C 제 4행성의 운명을 손안에 쥐고 있다. 만약 지금 콥터를 타고, 시카고 식민지에 날아가서, 카르텐호에 되돌아가, 회로기판을 우주 통신 장치에 도로 끼어 넣으면 혁명은 궤도에 오르기 전에 끝이 나고 말 것이다. 랠리는 회로기판을 들여다보며 미소를 띠었다
"우주 정찰군 사관은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이 판단하고, 자신이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고 랠리는 큰 소리로 외쳤다. 어두운 하늘에 별들이 총총 빛나기 시작했다. 알파 C와 베타 C는 지평선 밑에 지고, 프록시마 C만이 아직 하늘 한 모퉁이에 진홍색의 빛을 내면서 도로를 불그스름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랠리는 포기한 심정으로 별하늘을 우러러보았다. 우주 정찰 사관이 되어, 별에서 별로 우주를 날아다니는 것이 소원이었던 소년 시절의 꿈이 지금 사라져가고 있다. 데네브와 리겔과 프로키온 등의 별에도 갈 기회가 영원히 사라져 가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지구에도 돌아가는 것을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구-랠리 가 태어난 행성. 랠리가 사랑한 행성, 집에도 두 번 다시 되돌아갈 수가 없게 된다. 랠리는 그리운 태양과 아홉 개의 행성을 찾아보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암흑의 하늘에 빛나고 있는 무구한 별들의 사이에 가려서 찾아낼 수가 없었다. 아니, 찾아내지 못하는 것이 더 좋겠지. 최후의 집합 나팔이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 다시 한 번 랠리는 별하늘을 쳐다보았다.
"우주 정찰군 사관은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이 판단하고, 자신이 행동하지 않으면 안된다."
하고 랠리는 입안에서 중얼거렸다. 언젠가는 아버지는 랠리가 취한 길이 정당했다고 인정 해 주시겠지. 지구를 위해서만이 아니고, 자기 자신을 위해서도 아니었다. 진실을 위하여 랠리는 혁명에 참가했던 것이다. 그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다. 랠리는 통신 장치에서 빼 낸 회로기판을 조용히 들여다보았다. 별빛으로 희미하게 비치는 면을 손가락으로 쓰다듬었다. 그리고는 머리 위로 높이 쳐들어 힘차게 대지 위에 내리쳤다. 회로기판은 산산조각으로 깨어져 콘크리트 위에 흩어졌다. 그 조각 하나하나가 프록시마 C의 빛을 받아 붉은 색으로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갑자기 랠리는 달리기 시작했다. 이미 시카고 식민지를 목표로 한 혁명의 대행진은 시작되고 있었다. 노여움과 희망을 안고 전진하고 있는 사람들의 물결을 향해, 랠리는 달리고 또 달렸다.
(끝)
작품 해설
공룡에 대하여
공룡은 지금부터 2억 년 전에서 7천만 년 전까지 약 1억 3천만 년 동안 지구의 여러 곳에 살고 있었습니다. 공룡은 도마뱀의 친구인 파충류이고, 공룡이 번성하여 살고 있던 때를 파충류 시대라고 부르는 학자도 있습니다. 공룡은 작은 산만큼 큰 것도 있으리라고 상상됩니다만, 이 소설에는 자세히 나오고 있지 않습니다. 다음과 같이 설명을 하겠습니다.
1. 프테라노돈
보통 익수룡이라고 말하고, 하늘을 나는 공룡입니다. 큰 것은 날개를 펴면 9m에 가깝습니다.
2. 스테고사우루스
검룡이라고 말하고, 기묘한 갑옷 같은 것으로 온 몸을 덮고 있습니다. 머리에서 꼬리까지 약 6m의 길이, 전투기의 수직 꼬리 날개와 같은 골판이 두 줄 등에 있습니다. 꽁지에 4개의 날카로운 침 같은 깃이 있어서, 강적이 습격해 오면 이것으로 자신의 몸을 지킵니다. 식물을 먹고삽니다.
3. 티라노사우르스
이것이 공룡의 주인공입니다. 다른 초식 공룡을 잡아먹고 삽니다. 그 이빨은 악어의 이빨보다 수십 배 날카롭고, 다른 공룡의 등뼈를 용이하게 깨물어 박살냅니다. 길이 15m, 높이 6m, 몸무게 10톤 이상입니다.
4. 이구아노돈
이구아나라는 도마뱀을 닮았으므로 이구아노돈이라고 불리었습니다. 길이는 9m, 나무의 새싹들을 대단히 좋아합니다. 고기는 맛이 있으므로 티라노사우루스 등이 가장 즐겨 잡아먹었습니다.
공룡은 왜 멸망했을까?
공룡은 몸집도 큰데 왜 사멸되었을까요. 그 까닭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첫째로 두뇌가 둔한 것입니다. 사람은 몸무게의 50분의 1 무게의 뇌를 가지고 있는데, 공룡은 2만 5천분의 1밖에 가지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그 두뇌로서는 온 몸을 마음먹은 대로 활동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다음은 대식이라는 것입니다. 코끼리는 하루에 50~60Kg의 나뭇잎과 식물이면 살 수 있으나, 브론토사우루스는 450킬로그램을 먹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한파나 산불에 의해서 식물과 나뭇잎이 줄어들면 굶어죽을 수밖에 도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외의 강적, 그것은 작은 포유류 동물입니다. 지혜가 발달한 이 작은 포유류들이 집단적으로 공룡의 알을 깨먹기도 하고, 새끼들을 잡아먹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지구에서는 공룡이 한 마리도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영국의 네스호에서 실제로 공룡을 보았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만일 공룡이 나타난다면 그것이야말로 세계의 일대 뉴스가 되고도 남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