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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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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푸른 호랑이 이야기 / 이경림 댓글:  조회:643  추천:0  2018-12-25
푸른 호랑이 이야기     이경림     설렁탕과 곰탕 사이에는 푸른 호랑이 한 마리가 산다     어떤 생의 무릎과 혓바닥 사이에는 어떤 생의 머리뼈와 어떤 생의 허벅지 살 사이에는 형언할 수 없이 슬픈 눈과 사나운 관능을 가진 푸른 호랑이 한 마리가 산다     저 높은 굴뚝을 천천히 빠져 나가는 푸른 연기와 사라지는 뼈 사라지는 살들 사이에는     낡은 의자에 앉아 곰탕을 먹는 노신사와 그 앞에서 설렁탕을 먹는 시든 다알리아 같은 아내 사이에는     그것들의 배경인 더러운 유리창과 산발을 하고 흔들리는 수양버들 사이에는     날개를 빳빳이 펴고 태양 속으로 질주하는 새 반원을 그리며 느리게 불려가는 바람 사이에는, 그래!     미친 듯 포효하는 푸른 호랑이 한 마리가 산다             위의 시는 시창작 기법에서 조건절을 사용하였다. 다의적이고 함축적이며 이경림의 시각으로 재해석된 조건절인 ‘푸른 호랑이’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푸른 호랑이’라는 시어에 시의 애매성과 모호성의 원리와 상징과 생략, 삭제의 원리를 적용해 보자. 3연에서 이경림은 ‘슬픈 눈’과 ‘사나운 관능’으로 바로 답변하고 있다. ‘슬픈’과 ‘사나운’은 분명 이질적이고 반대적 개념과 이미지다. 그런데 한 문장, 한 공간에서 같이 사용함으로써 언어충돌, 이미지 충돌을 하고 있다. 이처럼 ‘낯설게하기’ 기법을 적용한 새로운 해석적 용어는 독자에게 흥미와 궁금증을 유발시킨다. 독자는 추리소설을 읽듯, 한편의 시에 집중하게 된다. 작가의 답이 궁금하다. 독자를 끝까지 집중하게 만드는 것, 이경림 시가 갖는 힘이다.     그런데 ‘푸른 호랑이’ 한 마리 때문에 시가 사는 것일까? 아니다, 이경림은 삶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진지하게 조망한다. 언제나 이경림의 시는 거짓이 없다. 생경하게 뛰어든 거짓인 조건절인 ‘푸른 호랑이’를 참으로 만드는 재주가 있다. 분명 푸른 호랑이는 가설인데도, 거짓으로 만들지 않는다. 이경림은 생을 단순하거나 하찮은 놀음으로 놀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이경림의 시는 무게감이 있으며 늘 진중하고 진실하다. 그것은 관통의 힘이다. 생을 진지하게 절단하여 단면을 들여다본다. 그 진실에는 늘 중생을 애정과 가여워하는 마음으로 감싸는 이경림의 넉넉한 마음스케일이 있다. 1-8연의 기법과 내용을 살펴보자. 이경림 시가 미꾸라지처럼 힘있게 치고 올라가는 시 기법을 발견할 것이다.     1연- 설렁탕과 곰탕을 먹는 노신사와 아내가 있다. ‘먹는다’는 단순한 사실에서 ‘푸른 호랑이’라는 조건을 줌으로써, 시는 갑자기 ‘형이상학적’ 의미를 가지며 비약하고 확장된다. 사물인 설렁탕과 곰탕은 ‘푸른 호랑이 한 마리가 산다’라고 생생한 진행형 삶과 생존을 획득.   2연- 1행의, ‘무릎뼈’는 남자의 섹스도구로 발군의 힘을 과시하며, ‘혀’는 여자의 콧소리와 함께 유혹과 애교라는 섹스의 중요한 소품이다. 2행의 머리뼈는 남자가 아내를 얻기 위한 설득작업과 생계수단인 직업에 지략이 사용된다. 허벅지살은 여자의 중요한 섹스심볼을 감싸고 있는 관능적인 몸의 일부분.   3연- ‘푸른 호랑이’라는 조건절을 다시 강조.   4연- 곰탕과 설렁탕의 조리과정이다. 불을 때고 연기가 나며 살, 뼈들이 녹아난다. 이경림은 사라진다는 슬픈 사실로 인식.   5연- 낡은 의자에서 곰탕을 먹는 노신사와 늙은 아내를 클로즈업. 사라지는 시간이 주는 슬픈 이미지.   6연- ‘더러운 유리창’과 ‘산발하고 흔들리는 수양버들’은 노신사와 아내의 삶의 역경과 고난으로 대비된다. 일반적 인간과 짐승들의 삶의 모습일 터.   7연- 7연 1행 ‘태양 속으로 질주하는 새’와, 2행 ‘느리게 불려가는 바람’은 이상과 괴리, 노신사와 아내의 삶을 유추적으로 본 작가적 시점. 그러나 또한 일반적인 사람이 사는 생의 한 풍경화. 질풍노도의 청춘이 저지르는 외도일 것.   8연- ‘미친 듯 포효하는 푸른 호랑이 한 마리가 산다’ 부분에 집중을 하여 보자. 노신사와 늙은 아내는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갈등하며 미친 듯 싸울 것. 또한 생을 놓는 순간까지 치열하게 살게끔 생은 고난을 준비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   요약하면 다음의 패턴을 그린다. 1연 설렁탕과 곰탕 먹는 인물, 푸른 호랑이 조전 제시- 2연 상징적 조건제시- 3연 조건 강조- 4연 사라지는 슬픈 것들- 5연 노신사와 아내 사실 규명- 6연 배경 설정- 7연 배경의 내용, 질주하는 새와 바람- 8연 푸른 호랑이 강조.       이경림의 시 한편을 분석하여 보면 그 안에는 삶이라는 과제가 치열하게전개되고 있다. 1연과 8연까지 긴장의 끈이 흐르고 있다. 이경림이 본 생의 뜨거움이다. 또한 슬픔이다. 척박한 조건에서도 치열하게 맞받아치는 생을 향한 의지와 힘이 느껴진다. 그것은 시에 대한 그의 사랑이기도 하다.   한 그릇 설렁탕과 곰탕을 먹으면서 옆 자리 손님을 물끄러미 관찰하였을 것. 마음속으로 그들 모습에서 또 다른 생의 그림을 유추하였을 것. 곰탕을 먹으면서 이렇듯 치열하게 삶의 곡선을 찾아낸다. 객관화된 상징화는 강하고 적나라하다.   이경림의 시에는 뜨거운 삶의 집착과 뜨거운 삶의 향기가 있다. 용트림하는 생을 맞받아치는 삶의 치열한 경쟁력이 있다.  
73    봄의 완성 / 정용화 댓글:  조회:693  추천:0  2018-12-25
봄의 완성     정용화       향기를 반으로 접으면 나비가 된다 바람은 오래된 권력처럼 나태해지고 나무마다 온통 초록 연기를 뿜어낼 때 우리는 귀가 큰 구름을 쓰고 우기 속으로 저물어간 꽃 속에 당도한다     쉽게 부서지는 입술을 가진 당신 아직 꽃으로 피지 못한 것들이 한 줄의 비밀로 환원될 때 단단한 혀로 만져지는 침묵 나비는 정오 근처를 날고 봄은 수평선으로 확대된다     햇빛을 녹여 꽃으로 돌아가는 시간 나비 만으로는 봄을 다 말할 수 없기에 시드는 꽃을 바라보는 일은 늘 위태롭다 그것은 얼룩을 더듬어 일구어낸 몇 개의 발자국을 잃어버리는 일이다     나비의 문장은 설익은 고백이라서 향기라는 욕망을 갖고서야 봄을 견디는 법을 배웠다 계절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한 묶음의 봄으로 압축되면 투명을 향한 좌표 하나 지니게 될까 나비가 꽃 속에서 접고 있던 날개를 펼 때 비로소 절반의 봄이 완성된다          정용화 시의 압축파일을 풀면 몇 가지로 요약되는 은유적 이미지와 연결고리를 만난다.       첫째, 물질이미지를 형상 이미지로 환원하여 감각적 표현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 이름을 ‘나비’이미지라고 명명하여 보자.   나비 이미지는 로 대별할 수 있다.  나비효과 등, 나비는 욕망의 또 다른 매개체다. 나비가 날개를 펼쳤다 접는 이 분화된 모습에서 시는 시작된다. 역으로 향기와 꿀을 얻는 나비의 모습을 치환하여 나비를 향기로 언급하고 있다. 무형태의 물질을 나비라는 현실의 물상으로 표현하여 선명한 이미지를 만들고 있다.       둘째, 또 다른 기법은 사동을 피동으로 바꾸어 감각적 신선함을 얻고자 하였다. 1연 4행 ‘우기 속으로 저물어간 꽃 속에 당도한다’ 구절과 2연 2행 ‘아직 꽃으로 피지 못한 것들이 한 줄의 비밀로 환원될 때’ 구절과 3연 ‘햇빛을 녹여 꽃으로 돌아가는 시간’에서 보여진다.       셋째, 또 다른 기법은 해석적 문장과 단어의 치환과 피동으로 생겨나는 이미지의 ‘낯설게하기’다. 생경한 언어의 충돌로 만들어내는 집합적 이미지가 신선함을 준다. 1연 ‘바람은 오래된 권력처럼 나태해지고’ 구절에서 ‘바람’의 속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낯선 문장이지만 사실적 문장이다. 객관화된 이미지다. 멋을 낸다고 감정에 치우친 문장을 마구 투척하면 객관화를 간과하게 된다. 모든 시어와 생각들이 ‘새로움’이라는 옷을 입었다.   2연 ‘단단한 혀로 만져지는 침묵’을 들여다보자. 평서체 문장은 ‘침묵하는 혀’다. 그러나 ‘단단한 혀로 만져지는 침묵’이라고 표현함으로써 더 구체성을 갖는다. 사실 혀로 침묵은 만질 수 없다. 그러나 데칼코마니처럼 표현기법의 묘미다. 똑같은 앞면과 뒷면이 뒤집어 찍으면 멋스럽다. 둘러치나 매치나 시어는 같다고 생각하지만 전혀 같지 않다.   2연 4행 ‘봄은 수평선으로 확대된다’ 부분을 들여다보자. 평서체는 ‘수평선으로 해가 진다’가 맞다. 그러나 문장을 한번 흔들어주었다. ‘진다’라는 이미지를 ‘확대된다’고 돌연변이적 표현을 함으로써 신선함을 준다. 확대 이미지는 감각적 미의식을 갖는다.   3연 1행 ‘햇빛을 녹여 꽃으로 돌아가는 시간’을 들여다보자. 시간의 경과과정이 구체성을 가지고 직접적으로 체감된다. 사실은 ‘꽃이 햇빛을 받아들이는 시간’이 맞다. 그러나 피동형으로 문장을 도취시켰다. 다른 사람이 사용하지 않은 단어와 문장 스타일 기법은 정용화의 상표다.   3연 4행 ‘그것은 얼룩을 더듬어 일구어낸 몇 개의 발자국을 잃어버리는 일이다’ 이 구절도 도치와 치환적 문장이다. 또한 피동적 표현이다. ‘잃어버린 발자국’은 상징적으로 떠나간 사람과 떠나보낸 인연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설명적이거나 구태의연하지 않다. 다의적 해석이 가능한 문장이다.       넷째, 특징은 기승전결 4연의 시 구절에서 보여주는 나비 이미지의 공통성이다. 1연에서는 향기와 나비를 연결하였다. 2연에서는 팔랑팔랑 날아다니는 나비의 날개짓과 입소문을 연결시키고 있다. 가볍다라는 이미지를 연결시켰다. 3연에서는 나비와 꽃의 상관관계다. 시드는 꽃을 여성성으로 매치시켜 잃어버린 인간관계로 설정하였다. 4연은 나비의 ‘날다’라는 이미지를 상승욕망으로 연결시켰다. 또한 ‘꽃’의 ‘여성성’에 탐닉하는 ‘나비’라는 ‘남성성’을 넘을 때 인간관계의 완성된 이상이 실현된다는 메시지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정용화 시의 매력은 단단한 내용을 가벼운 기교로 설교하지 않는 데 있다. 정용화 시의 모든 문장은 참이라는 설정이 가능하다. 그 이유는 가볍게 시어에 접근하지 않고 객관적 사물과 객관적 행위를 제시하기 때문이다.       다섯째, 사유의 신선함이다. 1연 ‘향기는 반으로 접으면 나비가 된다’ 2연 ‘봄은 수평선으로 확대된다’ 3연 ‘시드는 꽃을 바라보는 일은 늘 위태롭다/... 그것은 얼룩을 더듬어 일구어낸 몇 개의 발자국을 잃어버리는 일이다’ 4연 ‘나비의 문장은 설익은 고백이라서 향기라는 욕망을 갖고서야 봄을 견디는 법을 배웠다/ 나비가 꽃 속에서 접고 있던 날개를 펼 때 비로소 절반의 봄이 완성된다’ 부분을 살펴보자. 단답형 결어는 심심하지 않다. 싱겁지도 않다. 무게감과 형태미를 은유적으로 내포하고 있다.       정용화의 시를 읽으면 박하향 가득 머릿속에 피어난다. 문장마다 새로움으로 환하다. 뇌가 덤블링을 한 듯 먹먹하다. 예술이 도달할 종착역은 유미주의다. ‘무엇을’이 아니라 ‘어떻게’가 중요한 시적 과제이다.
72    백치시인 / 이영식 댓글:  조회:643  추천:0  2018-12-25
백치시인           이영식             내 머리맡에 놓인 시인이라는 이름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불알 두 쪽은 달렸는데 남자가 없다, 대쪽 같은 기개가 없다     한 때는 사상이니 이념이니 더운피 개천에 풀어 저자거리에 이름값이라도 한 모양인데, 요즈음은 신변잡기 파리채 놀음이나 다름 아니다     作爲만 있고 行爲가 없다, 活語(?)라면 살 저며 등뼈 내놓고 초고추장이라도 튀어야할 게 아닌가     가끔 언어를 비틀어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로 성찬을 베풀기도 하지만 돌아서면 어느새 개다리소반에 찬밥이다     시인의 모자를 쓰고 보니 어깨가 자꾸 움츠러든다, 걸음걸음이 조심스럽고 그림자조차 낮은 곳으로 눕는다     언제부턴가 나는 한 마리 풍뎅이가 되어간다, 목 비틀린 채 땅바닥에 헛바퀴를 돌고 있는 외뿔풍뎅이다     세상의 저녁, 어느 한 불빛이 내 시를 읽고 있는가? 우리가 상한 날개 껴입고 헛춤을 추는 것은 아직도 추락할 꿈이 남아있음이라.             이영식의「백치시인」을 읽으면 시인이라는 이름에 대하여, 시인이라는 직업에 대하여 자괴감이 든다. 어느 집단이나 직업군이나 나름의 애환이 없겠는가? 그러나 정신과 정서가 예민한 시인은 늘 오감이 깨어 있다. 같은 상황이라도 더 아프게, 더 슬프게, 더 절절하게 느낀다. 시인은 유난히 자의식과 피해의식이 강하다. 그 자의식은 불편한 마음을 갖게 하는데, 이 심기불편함이 또한 시를 밀어붙이는 힘으로 작용한다. 시의 아이러니다.     이영식이 자평한 시인론을 살펴보자. 7연의 짧은 문장들로 재해석하여 요약적 보여주기를 하고 있다. 시인으로서의 불만족과 불편한 심정을 토로하고 있다.     1연- 남자다운 기개가 없다. 2연- 내용이 사상이나 이념이 없다. 신변잡기를 쓴다. 3연- 생각만 많고 추진력이나 행동력이 없다. 4연- 언어유희로 성찬을 베풀지만 내용은 빈약하다. 5연- 시인은 위축되고 소심해진다. 6연- 목이 비틀린 채 누워있는 풍뎅이처럼 같은 자리를 맴돈다. 7연- 상처로 쓰는 시는 추락하는 꿈을 향하여 춤을 춘다.     이영식의 7가지 시인론을 읽으면 콧등이 시큰해지고 머리가 멍멍해진다. 구구절절 맞는 말이기 때문이다. 시인과 시에게 냉정하게 다음의 질문을 던진다. 시인이여, 10가지 질문에 정직하고 솔직하게 맘속으로 대답하여 보라.     나는 매너리즘에 빠진 시에서 비상할 돌파구를 찾고 있는가? 내 시는 나를 구원하는가? 내 시는 독자를 구원하는가? 내 시에는 새로운 철학이 있는가? 내 시는 새로운 표현기법을 사용하고 있는가? 내 시는 지루하지 않은가? 나는 시를 쓰는 작업이 재미있고 행복한가? 내 시는 역사를 바꿀 힘이 있는가? 내 시는 나만의 상표로 분류할 수 있는가? 내 시는 후대에 새로운 이즘으로 탄생할 수 있는가?     시인이여, 늘 속이 답답한 시인이여, 뒤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달리기만 하는 시인이여, 그대는 영원히 꿈꾸는 이상주의자다. 현재의 자신의 등급보다 늘 자신을 더 높게 평가하고 있다.  
71    나와 나 / 김남조 댓글:  조회:720  추천:0  2018-12-25
나와 나               김남조             범선을 타고   내가 저만치 사라진 후   부두에 서서   수평선을 바라보는   내가 또 있다   더 이상한 건   떠나간 나와 남아 있는 나를   흐린 필름을 통해   무슨 세균검사처럼 점검하는   세 번째의 나   이를 진단할 의사   혹은 판결할 법관은   어느 방향에서   언제 도착할는지             시는 시인의 감정에서 출발한다. 시가 메시지를 갖는 이유다. 물론 미술이나 음악도 창작자의 감정이 feel을 받고, 아이디어를 찾을 것이다. 시인은 삼 일 동안 거울을 들여다보는 자라고 한다. 거울은‘객관화’를 의미한다. 자신을 객관화하여 관찰한다는 뜻이다. 거울 이미지는 시에서 객관화 영역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시창작 과정에서 는 시인의 감정을 절제하고 사물의 관점에서 출발한다. 사실에 기초하여 시가 더욱 객관화된다. 위의 시는 사물시의 관점과 같이 객관화되어 있다.     위의 시는‘라깡 이론’에서 ‘자아의 타자화’로 명명할 수 있다. 1-3연은 감정을 배제하고 제삼자의 입장에서‘나’를 분석한다. 자아를 시적거리가 먼 시점에서 객관적으로 관찰한다.     1연을 살펴보자. 1-2행‘범선을 타고/ 내가 저만치 사라진 후’부분에 라깡이론을 대입하면, 자아를 객관화하여 감정을 배제하고 멀리보고자 한다. 그러나 이 부분은 다른 표현기법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먼 과거의 시점에서 현재까지 살아온 사실적인‘나’를 감각적 표현기법 미의식을 주었다. 2가지 요소가 모두 있다. 3-5행‘부두에 서서/ 수평선을 바라보는/ 내가 또 있다’부분을 살펴보자. 라깡의 자아의 타자화를 가장 잘 나타낸 표현이다. ‘부두’라는 한 공간과 시점에서 2가지 사건이 실행된다. 중첩 이미지다. 피카소의 그림처럼. 두 얼굴의 나를 또 다른 내가 관찰한다. 사물인‘나’를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있는 또 다른 타자인‘나’다.     2연은 라깡 이론과 프로이드 정신분석 비평 방법을 대입하여 보자. ‘그때 거기’라는 시점은 프로이드 정신분석 비평의 핵심 포인트다. 프로이드는 시를 사회부적응자인 시인이, 그 부적응을 작품으로 승화시켜 발표하고, 독자가 공감하여 감동하게 하는 과정이라고 정의하였다. 3행‘흐린 필름을 통해’부분은 오래 전 잊어버린 상처의 기억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시는 상처로부터 시작한다. 시는 상처에서 피는 꽃이기 때문이다. 4-5행 ‘무슨 세균검사처럼 점검하는/ 세 번째의 나’는 라깡의 자아의 타자화 이론과 프로이드 이론이 중첩된다. 프로이드 이론은 과거를 현재의 시점으로 불러와서 그때의 사건과 사실을 재정리한다. 각각의 상처와 기억에 이름표를 붙여야 시인은 직성이 풀린다. 그 이유는 먼 과거시점에서 일어난 큰 사건은 어린나이에 감당하기에는 버거웠다. 힘 있는 어른이 되어 뇌 깊숙이 숨겨왔던 상처를 꺼내 현재에 재현한다. 다시 예리하게 슬픔의 이유와 근원을 분석하고 이해하고 싶어한다. 시는 시가치유의 과정이다.     3연은 시창작 과정에 비유한다면 비평과 평론이다. 1-4행‘이를 진단할 의사/ 혹은 판결할 법관은/ 어느 방향에서/ 언제 도착할는지 ’부분을 살펴보자. 시인의 무의식은 자신의 감정을 분석평가해 줄 타자를 기다린다. 또 다른 타자의 객관적인 인정이 필요하다. 작가는 과거의 먼 사건을 현재의 시점에서 공감해 주기를 원한다. 그 공감은 독자와 비평가의 몫이다. 혹 직접 상처를 입힌 당사자인 형제나 어머니의 사과가 보다 빠른 감정치료제일지 모르는데 시가 너무 우회하는 건 아닐까?     김남조의 시를 라깡이론과 프로이드 심리비평 방법을 적용하여 분석하여 보았다. 그러나 거울은 사실이 아니다.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은 실상을 허상으로 반사하여‘보여주기’한다. 작가는 무의식으로 시를 쓰고 자신을 반영한다. 비평가는 창작된 작품에서, 작가의 무의식과 심리를 캐치하고 이름을 명명한다. 시는 선택받고 비평과 분석을 거쳐야 시의 가치를 인정받는다. 비평이 활성화되어 새로운 문예사조가 탄생되기를 기대한다.
70    옛날 영화 제목 같은 / 이 승 하 댓글:  조회:701  추천:0  2018-12-25
옛날 영화 제목 같은                                                      이 승 하           화려한 영상매체의 시대에 나 참 무미건조하게 살고 있다네   파격을 모르고 파국을 모르고 파탄을 모르고   어제는 무사분주 오늘은 무사안일 내일은 무사태평     그 시절에는 영화 수입 업체의 직원도 시인이었다   ‘수영장’(La Piscine)을 ‘태양은 알고 있다’로 바꿀 줄 아는 감각을(태양이 알기는 뭘 아는가!)   ‘여상속인’(The Heiress)을 ‘사랑아 나는 통곡한다’로 바꿀 줄 아는 상상력을(신파의 극치가 사람을 울려!)   소설가도 소설의 제목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로 붙이거늘     나 어느새 산문의 시대에 산문 같은 시를 쓰고 있다네   운율을 잃고서 좌충우돌   압축미를 잊고서 횡설수설   때로는 주저리주저리 설명을 일삼았네   시란 결국 말을 갖고 노는 말놀음인데   나, 말을 학대하고 있었네 매질하고 있었네   먹을 것 제대로 주지도 않고 잘 달리기만 바랐던 것     ‘보니 앤 클라이드’를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로   ‘푸치 캐시디 앤 더 선댄스 키드’를 ‘내일을 향해 쏴라’로 바꿔 붙이는 실력   나 이제부터라도 역설과 상징을, 아이러니와 알레고리를, 다의성과 모호성을!   말을 잘 부릴 줄 모른다면 시는 이제 그만 쓸 것!!             위의 시는 짐짓 시치미를 떼고 말한다. 짐짓 농담처럼 이야기를 하듯이, 말을 걸듯이, 내레이션을 하듯. 그러나 진지하게 정신 바짝 차리고 들어야 한다. 반어적이고 역설적이며 아이러니한 기법이 이 시의 기교다.   먼저 제목을 살펴보자. 제목은 2음절로 된 4개의 단어로 조합되어 있다. 전혀 멋을 부리지 않은 무미건조한 옛날영화처럼 말이다. 그것이 숨은 기교다.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을 제목에서 다 보여준다. 시에 대하여 역설적으로 경고하고 있다.   이승하의 시「옛날 영화 제목 같은」은 네 가지 관점으로 분류하여 볼 수 있다. 1연은 현재적 관점, 잘 먹고 잘 사는 안일주의에 빠진 시인을 고발한다. 2연은 ‘옛날 영화 제목’을 내세운 사회적 관점, 시를 허투루 다루는 사회분위기를 고발한다. 3연은 ‘나’를 내세운 작가적 관점, 시창작과정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4연은 역설과 아이러니의 미래적 관점이다. 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이승하의 시는 시에 대한 반성적 국면을 갖게 한다. 시에 대한 자학적이고 니힐하며 시니컬한 접근법이, 반어적으로 시에 대하여 숙연함을 갖게 한다. 시를 가벼이 여겨온 것에 대한 미안함에 부끄러워진다.   처음 시를 쓸 때 ‘대중이 좋아하는 시를 쓸 것인지, 시인들이 좋아할 시를 쓸 것인지 결정하라’ 는 말을 선배 시인들에게서 듣는다. 마음속으로 시인도 좋아하고 대중도 좋아할 두 마리 토끼를 꼭 잡고야 말겠다고 다짐할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뒤돌아보면, 두 가지 다 놓쳐 버린 어정쩡한 시인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것이다. 이승하가 시인으로서 이 시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다만 수입영화의 제목을 원어와 달리 번안한 것에 대한 불평일까? 흥행을 앞세워 무지한 대중의 입맛에 맞춘 것에 대하여? 아니다. ‘기승전결’ 중 시의 ‘결’에 해당하는 부분은 4연이다. 결론적으로 ‘말을 잘 부릴 줄 모른다면 시는 이제 그만 쓸 것!!’ 이라고 시인들에게 경고한다. 3연을 살펴보자. ‘산문시, 운율을 무시한 시, 압축이 안 된 시, 설명 시, 내용과 알맹이가 없는 말놀음 시’를 고발하고 있다. 4연을 살펴보자. ‘역설과 상징, 아이러니와 알레고리, 다의성과 모호성’의 시를 이승하는 찬양하는 것일까? 진지하게 질문하여 볼 일이다.   21세기 한국은 시의 춘추전국시대다. 시의 범람과 시인의 범람시대에 살고 있다. 좋게 말하면 문화혁명이요, 나쁘게 말하면 시의 비전문가가 전문가 행세를 하고 있다. 다음 질문을 시인 자신에게 하여 보자.   나는 멜로영화 같은 시를 쓰는가? 나는 연애편지 같은 시를 쓰는가? 나는 일기 같은 시를 쓰는가? 나는 기록문이나 신문기사 같은 시를 쓰는가? 나는 연설문이나 논문 같은 시를 쓰는가? 나는 나르시시즘에 빠져 먼저 자족하는가?   자기가 쓴 시에 감동해서 먼저 울고 있는 시인을 자주 만난다 자기감정을 독자에게 강요하거나 설득하는 시인을 자주 만난다 동물, 꽃, 새, 물고기들의 생각을 다 아는 척하는 시인을 자주 만난다. 시인은 공감과 감동의 천재인가, 엄살꾸러기 거짓말쟁이인가? 시인은 순수한 영혼을 지닌 지고지순한 존재인가, 객관성을 잃은 변덕쟁이인가?   이승하 시인은 오늘의 시인들에게 질문한다. 정직하게 객관화된 대답을 하여야 할 때가 되었다.  
69    나는 물고기에게 말한다 / 정 호 승 댓글:  조회:662  추천:0  2018-12-25
나는 물고기에게 말한다              정 호 승             그래도 너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을 때   그래도 너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을 때   그래도 떠날 때는 내 돈을 모두 너에게 주고 싶다고 말하고 싶을 때   그래도 너에게 단 한 푼도 줄 수 없다고 말하고 싶을 때   나는 촛불을 들고 강가로 나가 물고기에게 말한다   물고기는  조용히  지느러미를  흔들며 내 말을 듣고만 있을 뿐   아무에게도 아무 말도 하지 않으므로      내 산을 모두 밭으로 만들어 너에게 주고 싶다고 말하고 싶을 때   네 밭을 모두 산으로 만들어 내가 가지고 싶다고 말하고 싶을 때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이제는 인간이 되고 싶지 않을 때   기어이 인간을 버리고 혼자 울고 싶을 때   나는 강가로 나가 물고기의 허리를 껴안고 운다   침묵만이 그들의 언어이므로   침묵 외에는 그 어떠한 말도 하지 않으므로             대중이 좋아하는 시의 조건은 무엇인가? 아래와 같이 몇 가지로 요약해 본다.   첫째,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말로 쓴다.   둘째, 대중이 좋아하는 연애시와 사랑시를 쓴다.   셋째, 감각적 미의식을 가진 표현을 한다.   넷째, 자연, 생물, 사물에서 얻은 직관과 사유로 시의 품격을 높인다.   다섯째, 작가의 해석적 깨달음과 재해석이 있다.   여섯째, 약자가 되어 진정성과 애환적 어조로 독자의 동정심을 자극한다.       위의 시를 살펴보고, 대중들이 사랑할 만한 요소를 찾아보자.   첫째, 제목이 짧고, 직접적. 내용도 진정성이 있으며 감각적이다. 바쁜 현대인도 한번쯤은 ‘나무, 풀, 별’에게 말을 건 적이 있다.      둘째, 대중이 좋아하는 ‘사랑시’. 1-2행 ‘그래도 너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을 때 / 그래도 너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을 때’ 는 정서적, 정신적, 감정적 사랑 모두를 포함한 사랑의 일반화다. 대중적 사랑이다. 그러나 3-4행 ‘그래도 떠날 때는 내 돈을 모두 너에게 주고 싶다고 말하고 싶을 때/ 그래도 너에게 단 한푼도 줄 수 없다고 말하고 싶을 때’ 는 현재적, 현실적 적나라한 사랑의 현재감정이다. 사랑은 원래 ‘통속적’이며 육체적이다. 1-4행은 솔직하다. 직접적이다. 감각적이다. 에로스적 사랑은 대중의 원초적 욕구를 자극한다.       셋째, 시의 품격. 5행 ‘나는 촛불을 들고 강가로 나가 물고기에게 말한다 ’ 부분을 살펴보자. 미완의 사랑은 번뇌와 번민을 가져온다. 아마도 신라시대 여인들은 촛불을 바위 위에 켜 놓고, 남자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서 주술적 기원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촛불을 들고 강가에서 기도를 하지는 않는다. 속도화 시대에 별을 쳐다볼 여유도 없는 현대인의 사랑방법은 아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5행은 아름답다. 기원하는 한 남자의 간절함과 진정성이 있다. 또한 사랑을 통속적으로 전락시키지 않고 ‘승화’하였다.     넷째, 사유와 감각적 미의식. 2연 1-2행 ‘내 산을 모두 밭으로 만들어 너에게 주고 싶다고 말하고 싶을 때/ 네 밭을 모두 산으로 만들어 내가 가지고 싶다고 말하고 싶을 때’ 를 살펴보자. ‘산’을 남성성으로 ‘밭’을 여성성으로 치환하여 보자. 애로티시즘과 섹슈얼리즘의 극치다.     다섯째, 솔직함과 진정성. 2연 3-4행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이제는 인간이 되고 싶지 않을 때/ 기어이 인간을 버리고 혼자 울고 싶을 때’ 부분에서는 ‘진정성’이 강하게 느껴진다. ‘그래, 사랑의 감정은 이런 거야’ 라고 독자는 절절하게 공감한다. 만약 그 사랑이 나는 유일한 진정성을 가진 우주적 사랑인데, 세상은 부정과 불륜이라고 지탄한다면? 불같은 연애를 해본 사람은 알 것. 금지된 사랑일수록 뜨겁게 불탄다.     여섯째, 상상력과 동정심 유발. 2연 5행 ‘나는 강가로 나가 물고기의 허리를 껴안고 운다’ 면, 독자는 영화처럼 무조건 주인공편이다. 물고기의 허리를 껴안고 우는 비현실적 진실에 독자의 상상력은 심미적 자극을 받는다. 동정과 공감 100%.     일곱째, 객관화와 사실적 표현, 재해석. 2연 6-7행 ‘침묵만이 그들의 언어이므로/ 침묵 외에는 그 어떠한 말도 하지 않으므로’ 처럼. ‘침묵’은 사실적인 표현인 동시에 객관화, 재해석을 내포한다. 침묵하는 사랑은 더 아파서, 독자의 공감까지 이끌어낸다.       초월적 사랑은 어느 시대에나 예술의 주제였다. 갈등과 극적 요소가 강한 내용은 지금도 우리의 안방극장을 독점하고 있다. 연예인이라면 가십거리가 되지만. 평범한 옆집 중년부부의 사랑에 누가 돈을 지불하고 영화관에서 구경할까? 불안정하고 쇼킹한 내용에 대중은 돈을 지불하고, 실 컷 울고 카타르시스를 한다.       한 편의 짧은 시 속에는 10권의 대하드라마가 숨어 있다. 위의 시는 필자가 제시한 여섯 가지 요소를 함의하고 있다. 진정성을 가진 시인의 숨은 사랑 이야기는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품격을 떨어뜨리지 않으면서, 독자를 공범자로 흡입한다. ‘시는 소설이다, 영화다’, 정호승은 흥행을 아는 시인이다.  
68    사랑할 때와 죽을 때 / 황 학 주 댓글:  조회:672  추천:0  2018-12-25
사랑할 때와 죽을 때             황 학 주           나는 겨울을 춥게 배우지 못하고    겨울이 모일 때까지 기다리지도 못 했지만       누가 있다 방금 자리를 뜨자마자   누가 있다 깍지 속에서 풀려나와 눈보라 들판 속으로 들어가는        사랑이란    매번 고드름이 달리려는 순간이나 녹으려는 순간을 훔치던 마음이었다    또한 당신의 그림자와 마주 보고 달려 있었다         이제 들음들음 나도 갈 테고   언젠가 빈집에선   일생 녹은 자국이 남긴 빛들만 열리고 닫힐 것이다        그때에도 겨울은 더 있어서   누가 또 팽팽하게 매달리는 것이다   자유를 춥게 배우며   그 몸 얼음 난간이 되어                    시에서 제목은 반 이상 중요한 역할을 한다. 황학주의「사랑할 때와 죽을 때」는 멜로 영화처럼 달콤한 제목이다.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매력을 가진 제목이다.   ‘사랑’과 ‘죽음’이라는 단어 속에는 ‘아이러니’가 숨어 있다. 사랑하면 살아야 하는데, 사랑하기 때문에 죽는다(?) ‘사랑’과 ‘죽음’은 반어적이고 상대적인 언어조합이다. 두 단어는 불안전하고 미지정적인 위기감이 충돌하고 있다. 또한 극적 요소를 잉태하고 있는 사건을 유발시키는 갈등요소를 함의하고 있다.        예술은 자유를 추구한다. 시인은 무의식의 자유까지 확인하려 한다. 황학주의「사랑할 때와 죽을 때」는 어떤 시점과 관점의 자유를 추구하는 지 살펴보자. 시는 확대해석이 가능하고, 그 확대의 범주가 넓을수록 좋은 시다. 그러나 독자와 평자는 무한대적 범위를 가진 확대경으로 작품을 감상하지는 않는다. 자유를 위하여 죽은 6월의 젊은 피가 아직도 마르지 않은 이 땅, ‘자유’와 ‘죽음’은 엄숙히 검토되어야 할 주제다.        위의 시를 1980년대 ‘자유’를 위하여 희생된 젊은이들 목숨에 바치는 추모시로 해석하여 보자. 온 몸에 신나를 끼얹고 자살한 서울대 어린 대학생들. 학업을 중단하고 3D 산업 노동자로 숨어든 대학생들. 그 시대 자유를 위하여 데모 한 번 하지 못하고, 도서관에 숨어 공부만 하던 젊은이는 아마 죽을 때까지 친구를 향한 죄책감을 지니고 살 것이다.       오늘의 풍요와 자유는 80년대에 빚진 자유다.   매일 매일 ‘당신의 그림자와 마주 보고 달려 있’(3연 3행)는 이 땅의 양심과 지식은 고뇌한다. ‘나는 겨울을 춥게 배우지 못하고/ 겨울이 모일 때까지 기다리지도 못 했지만’(1연 1-3행) 그 겨울을 기억하는 것으로 사랑을 표현한다. ‘이제 들음들음 나도 갈 테고’(4연 1행) 너도 갈 것이다. 그러나 그날을 잊지는 않는다. 뇌와 눈과 손과 발에, 온 몸에 가 각인되어 있으므로.       그 은 자유와 목숨을 맞바꾸었다. 잘 먹고 잘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하여 젊은 목숨을 고드름처럼 매달고 위험하게 떨어지거나 녹았다. 음식문화와 명품백과 아이돌에 열광하는 오늘날의 젊은 자유를 위하여 그들은 겨울을 춥게 보냈다. 건국대 높은 창가에서 꽃잎처럼 젊은 목숨들이 낙화하였다.       선각적 지식인은 예지한다. ‘누가 또 매달리는 것이다/ 자유를 춥게 배우며’ (5연 2-3행). 방만한 자유의 시대에 시인은 긴장감을 느낀다. 게으른 시대에서.  
67    시간은 / 김 규 화 댓글:  조회:591  추천:0  2018-12-25
시간은      김 규 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일직선을 그으며 간다   나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글을 쓴다   왼쪽은 과거이고 지금 쓰고 있는 쪽은 현재이고 아직 안 쓴 오른쪽은 미래이다   지금 쓰고 있는 내 손은 계속하여 오른쪽인 미래로 자리를 바꾸어 간다   현재는 활발하게 움직이면서 바로 이 자리라고 펜 끝으로 말한다   과거는 그대로 기억의 창고에 머물러 있다가 꺼내면 희미 하게 나타난다   미래는 아무도 모르는 캄캄한 밤을 헤쳐 나가기 위해 현재 를 만들고   드디어는 과거와도 한통속이다   현재 과거 미래가 하나로 뭉쳐 오늘은 밍밍한 펜 끝이다           * 김규화 신작시집 『햇빛과 연애하네』중에서                     ‘심심하지 않은 시’는 좋은 시다   지금까지 한번도 들어본 적 없고, 다른 시인이 쓰지 않은 ‘표현’은 좋은 시다   끝까지 읽고 몇 더 생각하며 ‘정독’하게 하는 시는 좋은 시다   제목과 내용이 따로따로인데, 한 맥을 가지고 제목과 각 연들이 힘차게 ‘관통’하는 시는 좋은 시다.   설명적이지 않은데, ‘철학’이 있는 시는 좋은 시다.     김규화의 「시간은」은 위의 여러 요소를 함의하고 있다. 쉬운 말로 이해되지 않는 문장은 없다. 그런데 여러 번 읽었다.   위의 시의 매력은 14행의 짧은 시가 갖는 힘이다. 1연 1행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일직선을 그으며 간다’라는 문장을 살펴보자.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글자를 쓴다’라는 사실에서 출발했다. 글을 쓰는 행위를 ‘객관적으로 사물화’하였다. 인생은 직선이다. 물론 왼손잡이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갈 수도 있다. 포물선이나 꺾은선 그래프를 그리거나 원으로 순환하는 디자인적인 인생도 있다. 그러나 위의 문장은 시를 향하여 직선의 일념으로 시를 쓴 시인이라면 그 의미를 안다.   2행을 살펴보자. ‘나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글을 쓴다’라고 단순하고 명료하게 글쓰기 행위 자체에 대하여 사실적으로 적고 있다.   위의 1, 2행의 문장은 모두 사실적인 문장이다. 그런데 인생에 대한 상징과 함축을 담고 있다. 시간과 공간을 내포하고 있는 확장된 문장이다. 그 문장에는 재해석과 직관이 있다.   1연 마지막 행의 ‘드디어는 과거와도 한통속이다’라는 반짝이는 문장을 들여다보자. 이 한 개의 결론적 문장을 도출하기까지, 시인의 체험과 체득과 여과의 긴 인생여정 과정의 희노애락이 생략되어 있다. 그 숨겨져 있는 ‘의미’를 찾는 것이 독자의 즐거움이다. 평생을 시에 바친 시인이 남기는 한 문장이다. 인생은 펜끝 하나다. 촌철살인의 명징한 문장이다.   시간에 대하여 쓴 시는 많다. 그러나 김규화의 「시간은」은 다른 시와 변별력을 갖는다. 14행의 짧은 문장은 모두 객관화되어 있다. 직관과 재해석이 빛난다. 집중하게 한다.  
66    꽃들 / 김 명 인 댓글:  조회:608  추천:0  2018-12-25
꽃들     김 명 인     낮잠에서 깨니 머리맡에 꽃소식이 당도해 있다 만선에 실려 오는 꽃나무 한 시절들 그대가 약속을 지키려 근근하듯이 꽃은 제철의 두근거림으로 한 해를 갱신한다 상청 이불 덮고 누웠으니 어디서 산비둘기 구구거리는 한낮 꽃 타래들, 다비에 든 듯 화염 사르는구나! 공손한 꽃아, 피고 지는 건 네 일이지만 나는 너를 빌려 쓰고 내일로 간다 연년세세로 물든 분홍 새 날개 펴니 거처 없이도 견디는 깃발처럼 혼곤한 신생의 새봄 안간힘으로 울뚝하다 오늘은 오늘 꽃, 수만 송이로 허무는 탑 버림받을 사랑이니 돌보라고 이 환(幻), 나에게 흘려보내는 건 아니겠지?           꽃은 ‘여성성’과 ‘미’의 상징으로 대표되며 시와 노래, 무용, 영화의 표상이 되어왔다. 김춘수의「꽃」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어느 시대에나 시인들은 꽃에 대한 이미지를 부둥켜안고, 새로운 표현을 고민하였다. 지금까지 발표된 시보다, 더 좋은 시를 쓰지 않으려면 ‘꽃시’는 이제 그만 쓰라고 선배시인들이 권고할 정도다. 그러나 아이러닉하게도 지금도 시인들은 여전히 ‘꽃시’를 쓰고, 독자들은 ‘꽃시’를 사랑한다.   김명인의 「꽃들」은 어떤 새로움을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자. 첫째, 표현기법을 살펴보자. 1행 ‘낮잠에서 깨니 머리맡에 꽃소식이 당도해 있다 ’ 부분을 주목하여 보자. 피동형 표현기법이 감각적이며 젊고 신선하다.   둘째, 구조를 살펴보자. ‘꽃 이미지’를 상상력을 확장하여 < 낮잠- 개화- 꽃소식- 화염- 낙화(버림받은 사랑)- 환(幻) >이라는 ‘시 구조’를 전개한다. ‘꽃’이라는 사물을 인간의 ‘사랑’으로 치환하였다.   셋째, 사유와 철학, 직관을 살펴보자. 꽃을 환(幻)으로 해석하였다. 젊은 시절 불타는 ‘화염의 사랑’을 ‘다비식’으로 은유하고 있다. 오랜 직관과 사유로 얻은 철학이다.   넷째, 현재진행형 시 구조에 주목하여 보자. ‘혼곤한 신생의 새봄 안간힘으로 울뚝하다/ 오늘은 오늘 꽃, 수만 송이로 허무는 탑/ 버림받을 사랑이니 돌보라고/ 이 환(幻), 나에게 흘려보내는 건 아니겠지?’(12-15행) 부분이다. 대화와 질문 형식의 사실적 표현은 진정성을 갖는다. 시인과 시적화자의 사랑에 대하여 독자들은 궁금증을 갖게 된다. 시가 작가의 무의식의 발현이라면 시인의 사랑은 진행형이다.     15행의 짧은 시가 갖고 있는 확장된 공간이 넓다. 감각적 표현기법과 미의식. 철학과 사유. 진정성까지. ‘사랑은 환(幻)이다’라는 깨달음에 젖어― 뿌리는 줄기를 그리워하고, 꽃은 나뭇잎을 그리워한다. 나무테처럼, 반지의 둥근 원처럼. 어렵거나 재주를 부리지 않은 단어와 문장. 지하철에서 만나 하루 종일 가슴에 담고 싶은 시. 생각과 사념에 젖어 지혜를 얻는 시. 사람들이 사랑하는 시. 그 넓은 시 공간과 만난다.  
65    두꺼비 육아법 ​ ​​​ / 김 석 환 댓글:  조회:650  추천:0  2018-12-25
두꺼비 육아법 ​ ​​​     김 석 환 ​    1.   두꺼비 중에는 돌연변이 암컷 두꺼비가 있다는데 물 속에 알을 낳아 두면 천적들에게 먹힐 까 봐 제 배 안에 품고 있다가 부화기가 가까워지면 구렁이 굴을 찾아가서 스스로 잡혀 먹혀 구렁이 몸 속 무덤으로 들어간다. 부화된 두꺼비 새끼들은 구렁이 배 속 요람에서 죽은 제 어미 몸은 물론 고단백질 구렁이 몸을 먹고 자라다가 구렁이가 껍질만 남으면 드디어 세상으로 나온다.     2.   남은 생보다 더 무거운 짐을 실은 리어카 구렁이처럼 구불구불 휘어진 가파른 골목길 끝 고물상으로 들어간다   -요 며칠 새엔 너무 짐을 많이 실어 타이어 터지겠슈 -내일 모레가 장가 못 간 막내아들 생일인디 ...미역 한 꼭지 쇠고기 한 근 값... 채울라고 꼭두새벽부터 나와 뒤지다 보니 ...   일찍 뜬 별 하나 두꺼비 걸음새로 노파의 발자국을 헤아리다 은빛 다림줄을 내린다   어느 이교도들의 사원 돔형 지붕 같이 둥글게 휜 노파의 등 한가운데 추를 맞추려 초롱초롱 눈을 닦으며         김석환의『두꺼비 육아법』은 이야기 구조의 ‘옴니버스 소설 기법’의 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뱀에게 자신의 몸을 투척하여 새끼가 파먹게 하여 살리는 어미 두꺼비의 ‘살신성인’의 정신과 파지를 줍는 노파의 생을 ‘두꺼비’의 생애에 비유하였다. 위의 시는 하이퍼시 기법과 일반시의 ‘사유’구조를 합성한 2개의 시 구조를 가지고 있다. 하이퍼시의 ‘링크’와 ‘모듈’ 구조와 ‘리좀’적 ‘사유의 확장’으로 분류할 수 있다.   위의 시를 하이퍼시의 ‘링크’기능에 대입하여 살펴보자. 하이퍼시의 ‘링크’기능을 적용하여 ‘1, 2’의 두 가지 이야기를 병렬기법으로 합성하였다. 2개의 독립된 ‘이야기’들은 독립적이고 등가적이다.     또한 ‘길다’라는 이미지를 ‘길’에 비유하여 ‘인생의 길’과 ‘링크’한다. 5개로 이루어진 각 연은 각각 ‘개별적’이고 ‘독립적’이다. ‘뱀의 긴 몸-구불구불 휘어진 가파른 골목길-두꺼비 걸음새의 별- 노파의 발자국-은빛 다림줄-돔형 지붕-노파의 휘어진 등- 추’ 등 ‘길 이미지’로 ‘링크’된다.     또한 ‘구렁이’를 중심어로 ‘둥글다’는 중심 이미지를 갖고 있다. ‘둥글다- 뱀의 길고 둥근 몸- 돔형 이교도 사원- 할머니 등’은 서로 이미지가 ‘링크’된다.     ‘링크’ 기능은 하이퍼시의 ‘모듈’구조를 적용할 수 있다. ‘모듈’기능은 각각의 독립된 다른 이야기의 합성이기 때문이다.     또한 위의 시에서 보여주는 스토리와 이미지의 복잡하고 다양한 ‘확장성’은 하이퍼시의 ‘리좀’ 구조의 확장성으로 분석이 가능하다.     위의 시는 하이퍼성을 배제하더라도 스토리의 ‘다양성’과 사유의 ‘확장성’이라는 매력과 깊이를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매력적인 시의 정의는 길어도 설명적이지 않다. 스토리는 압축된 소설구조를 가지고 있다. 진부하지 않고, 반전과 역설이 있다. 사건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시키며 빨리 읽힌다. 표현은 상투적이지 않으며 신선하다. 중심어들은 어디서 들어본 단어와 이미지가 아니다. 시인이 처음으로 개발한 단어의 합성과 개성적인 문장표현을 갖고 있다. 스토리는 길어도 지루하지 않으며 탄력적이다. 특히 시는 재미있어야 한다. 좋은 시는 계속 읽고 싶고, 외우고 싶어진다는 특징을 갖는다.
64    번지 점프 / 김기덕 댓글:  조회:655  추천:0  2018-12-25
번지 점프     김기덕       추락하는 몸엔 끈이 있다 심연에 떨어졌다가도 솟구치는 용수철의 힘 부도 맞은 아버지와 낙엽 사이엔 상대성 끈이론이 작용한다 버티던 줄을 놓아버린 여자는 아파트 옥상에서 화 단으로 떨어졌고 화살들은 돌아올 수 없는 숲으로 날아갔다 놓아버림과 매달림 사이에서 열매들은 방황한다 성년의 통과의례처럼 추락하는 하루의 절벽, 꽃잎들도 비명을 지른다 줄을 매는 하늘과 줄을 푸는 땅 사이에 비처럼 금 을 긋는 유성들 별들은 날기 위해 벽을 넘어 사다리를 오른다 먹이를 움켜쥐려 급하강하는 독수리 낚시에 꿰어 요동하는 물고기 끈에 매달려 붕붕 울고 있는 요요 팽팽히 나를 잡은 끈들의 매듭은 굳게 손가락을 걸 고 있다 탯줄의 숨소리 흐르는 양수의 강물로 낙하하는 씨 앗들 끈이 풀린다           “하이퍼시란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에게서 질문을 받아왔다. 김기덕의 「번지 점프」는 하이퍼시론에 입각하여 쓴 대표적인 작품이다. 하이퍼시의 중심 이론은 ‘모듈’과 ‘링크’와 ‘리좀’ 구조로 대표된다.   김기덕은 ‘끈’이라는 ‘사물’을 8연으로 이루어진 시에서, 각각의 다른 연과 ‘링크’시켰다. 그러나 각 연은 개별적이며 독립적인 ‘모듈’이라는 ‘소단위’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확산적 ‘리좀’ 구조를 갖추고 있다.   김기덕이 발의한 을 주목하여 보자. 1연: 번지 점프 끈- 용수철 끈- 아버지 추락의 끈 2연: 추락의 끈- 화살의 끈 3연: 열매의 끈 4연: 청춘의 끈, 낙화의 끈 5연: 유성우 끈 6연: 사냥으로 낙하하는 독수리 끈- 낚시에 매달린 물고기 끈- 끈에 매달린 요요 7연: 인생의 끈- 손가락 끈 8연: 탯줄 끈- 탄생 끈   위의 시는 8연으로 구성되어 있다. 인간생활과 동물, 식물의 여러 극한 생존과 소멸의 상황을 각 연은 독립적으로 주장한다. 작은 ‘단위조직’인 ‘모듈’은 서로 ‘링크’하며 ‘리좀’으로 확산된다. 소단위를 모아서 전체의 끈으로 묶는 방법이다.   각 연은 소단위 ‘모듈’인 각각 다른 ‘끈 이야기’를 나열형으로 평등하게 독립적으로 배치하였다. 그러나 각 연들은 독립적이며 개별적이지만, ‘끈’이라는 중심축을 중심으로 ‘제목’과 유기적 관계를 맺고 있다. 여러 상황의 각각 다른 이미지를 나열하며, 평행적이고 독립적인 전체를 이루고 있다. ‘리좀’ 그물망으로 확산시켜, 한 초점을 향하여 집합적으로 모여 있다.   위의 시 쓰기 방법론은 하이퍼 시론에서 주장하는 을 증거하고 있다. 1연을 빼버려도 시가 구성된다. 2연을 빼도 시가 구성된다. 3연을 빼도 시가 구성된다. 각각의 연들은, 내용이 독립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이퍼시는 ‘사물’과 ‘객관화’에 초점을 맞추면서, 자칫 감성과 정서, 감동을 무시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건조한 과학적인 미의식을 배제하여 문장이 시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삶과 죽음, 생성과 소멸은 인간이 영원히 궁금해 하는 탐구의 과제다. 김기덕은 위의 시에서, 냉철한 과학적 시선으로 시를 분석적으로 제작하였지만 ‘생’과 ‘사’의 문제를 직시하며 직관적 사유로 하이퍼시의 단점을 장점으로 전환시켰다.  
63    은빛 멸치 / 우 애 자 댓글:  조회:682  추천:0  2018-12-25
은빛 멸치   우 애 자   제 속에 바다를 가둔 은빛 멸치 바다의 비린 정을 놓지 못해 몸을 안으로 구부린다   잊히지 않는 깊은 생을 끌어안고 등 굽어지고 은빛 비늘이 벗겨져도 감지 못한 눈은 푸른 바다를 향해 달리고 있다   은빛 멸치는 어두운 상자 안에서 오래도록 아픈 꿈을 꾼다 길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데 끊임없이 길을 만들었던 찬란했던 시절만큼 가슴 시린 시간,   소금기에 하얗게 굳은 멸치 아픈 그림자를 지우며 은빛 비늘로 푸른 바다를 부른다         시는 ‘반어’와 ‘역설’로 만든 ‘구조물’이다. 거기에 ‘비유’의 꽃을 매달아 독자를 구인한다. 수필보다 솔직하지 못한 시는 ‘은유’로 병풍을 치고 시인의 감정을 숨긴다. 독자들은 그 위장술을 해독하며 즐거워한다.   우애자의 시에는 반어와 역설이 있다. 부정과 긍정의 미학이 실재한다.   아래 두 그룹의 시어들을 비교하여 보자. 첫 그룹의 시어들은 ‘절망’의 단어로 구조되어 있다. 삶은 ‘멸치’나 화자인 시인에게 모두 버겁고 어두운 절망이다.       등 굽어지고 (2연 2행)    비늘이 벗겨져도 (2연 2행)    감지 못한 눈 (2연 3행)    어두운 상자 안에서 (3연 1행)    아픈 꿈 (3연 2행)    길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데 (3연 3행)    소금기에 하얗게 굳은 (4연 2행)    아픈 그림자 (4연 2행)    저 은빛의 아득함 (4연 4행)     그러나 다음 시구에서는, ‘반어와 역설’로  ‘희망’을 이야기한다.    생을 끌어안고 (2연 1행)    푸른 바다를 향해 달리고 (2연 3행)      끊임없이 길을 만들었던 (3연 4행)    찬란했던 시절(3연 5행)    아픈 그림자를 지우며 (4연 2행)    은빛 비늘로 푸른 바다를 부른다 ( 4연 3행)    내 안의 푸른바다 (5연 1행)     시인은 작은 것, 슬픈 것에 자신의 감정을 덧씌운다. 프로이드는 시인의 무의식을 읽는다. 시인은 사물의 무의식을 읽는다. 독자는 사물을 통하여 시인의 무의식을 읽는다.   먹이사슬구도에서 희생된, 멸치가 먹은 미미한 사물― 멸치 뱃속에서 소화를 기다리는 음식찌꺼기들의 무의식도 읽어낸다. 소화불량을 앓는 바다와 어부의 24시간도 읽어낸다. 그물에 걸리는 순간부터-건조되기까지.   우애자의 시에는 ‘멸치’라는, 자신이 새벽경매에서 매일 만나는 건어물에, 자신의 생을 위장하여 반어적으로 숨겨 놓았다. 멸치는 시인 자신의 인생이다. 건조되어 가는 과정에서 등이 굽고, 은빛 비늘이 벗겨지고, 눈을 감지 못하고 죽어가는 부정의 순간. 그러나 그 눈은 푸른 바다를 향하고 있다.   시인을 아는 지인들은 비유를 확장하여 그 행간에 숨은 인내와 눈물을 해독해 낼 것이다. 현대인에게 요구되는 창의성은 문제해결력이다. 우애자의 시는 배반적 감정을 긍정적으로 재결합하여 ‘문제해결’을 하고 있다. ‘첫 부정’과 ‘끝 긍정’이 조화하여 ‘승화’를 이루었다. 인내하며 용기있게 사는 것은 창의적인 일이다. 삶에서 ‘부정’을 ‘긍정’으로 바꾸는 것은 힘이다. 시창작은 창조행위다. 시인은 에너지를 소모하며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62    봄소식 / 최창순 댓글:  조회:623  추천:0  2018-12-25
봄소식                                   최창순       한겨울 밭에서   숨 쉬는 소리가 들린다     귀 기울이면   개구리의 겨울잠 자는 소리   쑥 달래 냉이 다리 뻗는 소리     그뿐이랴   땅속에 움츠린 풀씨들   봄을 기다리는 소리     자연의 소리는   시기하지도 미워하지도 않고   공생하며 살아간다     사람들 사는 세상에는   언제쯤 봄이 올까?       * 최창순 시집, 『아내와 그네』 중에서               시는 한 뿌리에서 두 개의 나뭇가지를 뻗는 신기한 나무다. 그 뿌리의 속성은 둥글다. 그 줄기의 속성도 둥글다. 자양분을 전달하기 위하여. 둥근 원통 기둥에 물과 햇빛과 맑은 공기를 품고 산다.   그러나 모든 詩의 뿌리와 줄기가 둥근 것은 아니다. 가시를 가진 시의 줄기는 더러 납작하거나 뾰족하기도 하다.   모든 나뭇가지는 뾰족하다. 詩 나뭇가지의 끝도 뾰족하다. 앞으로, 위로, 옆으로, 더 뻗어나가 더 좋은 열매를 만들기 위하여.     최창순의 시는 둥글고 부드러운 줄기를 가지고 있다. 그 시에는 ‘시기’와 ‘미움’이 없다. 위의 시와 대조하기 위하여 다른 시를 한편 소개한다. 필자가 급히 쓴 봄소식을 기다리고 있는 ‘겨울 뿌리’에 대한 시다. ‘봄 원형’의, 봄소식을 기다리는 시점은 같다. 그러나 시의 관점이 다를 때, 절망과 희망은 다른 시 이미지를 만든다.  ‘시’라는 한 뿌리에서 뻗은 다른 ‘줄기’를 비교하여 보자.      바람 불고    눈 내리고    생장점까지 얼어붙을 것 같은 추운, 겨울밤    줄기, 잎새, 온몸 추위에 버리고    ―누워있는 자리    발목만 댕강, 캄캄한 땅에 갇혀 있다      눈을 꼭 감고    귀를 막고    숨도 쉬지 않고      혼자 애타게 기다리는, 봄얼굴    어디쯤, 봄 꽃바람 불어오고 있는가?     늦가을부터 봄까지 한 계절을 숨죽이고 기다리며 시는 성장한다. 더러는 다시 몇 계절을 순환하며 기다리기도 한다. 그래도 먹을 만한 열매를 맺지 못하여 주인에게 밑동이 잘려나가기도 하고. 어떤 시작 과정과 역경을 견딘 ‘시 나무’든, 시는 희망을 주는 ‘밝은 시’와 부조리를 고발하고 ‘지성’과 ‘이성’에 호소하는 ‘어두운 시’로 나눌 수 있다. 즉 ‘슬픈 시’와 ‘아름다운 시’가 존재한다.   최창순의 시를 읽으면 행복하다. 부드럽고 감동적이며 희망적이다. 필자의 시를 읽으면 자연의 이치를 파헤쳐 근원에 대한 궁금증을 갖게 하지만 그 ‘톤’은 슬프다. 항거와 억압이 있다. 같은 내용을 이야기하지만 이렇게 다른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다른 사유를 이끌어낸다.   ‘공생’과 공감을 이끌어내는 최창순의 ‘봄소식’은 세상에게 주는 선물이다. 독자에게 주는 행복이다. 지하철역에서 자주 만나고 싶은 시 얼굴이다.   
61    나무 속을 들여다보다 / 김필영 댓글:  조회:679  추천:0  2018-12-25
나무 속을 들여다보다   김필영   나무도 종을 친다 누가 뿌리 끝 물줄기를 따라 빈 방 한가운데에 들어가 종을 치는지 덩덩, 울리는 종소리 갈라진 껍질 사이로 어둠이 밀려온다 그 중심에서 울리는 종소리를 이파리들이 받아 적는다 어깨 위에 새들이 보금자리를 틀고 여린 손에 달빛이 쉬어가는 건 깊은 고요에서 울리는 종소리의 여운 때문이다 그 공명이 그리운 잎사귀들 아우성치며 울림의 진원지를 향해 달려온다 서로를 버리고 떠났던 이들 다시 돌아와 기대어 흐느낄 때 나무도 덩덩, 울음을 터트린다 어둠을 뚫고 붉은 해가 떠오르는 한 나무속에 타종소리 그치지 않는다       생명이 있는 것들은 죽을 때와 살아날 때를 안다. 나무는 제 뿌리와 줄기의 수분을 모두 말려 추위에 얼지 않고 겨울을 견딘다. 생명력은 절망의 암흑기에 휴식을 취하며, 다시 살아날 봄을 위하여 새로운 힘을 휴지기에 저장한다.   김필영의 시는 봄을 알리는 타종소리처럼 명쾌하다. ‘종소리’는 상징과 ‘비유’다. 종소리는 ‘시작’과 끝을 알린다. 또한 다음 시간에 시작할 새 수업에 대한 ‘기대와 설레임’을 갖게 한다.   김필영이 ‘직관’한 ‘나무의 종소리’는 나무의 ‘뿌리- 줄기- 잎사귀’를 흔들어 깨운다. 곧 ‘새’와 ‘벌’들이 날아오고, 그 나무는 열매를 준비하며 꽃을 피울 것이다.   잎사귀들이 떨어져 거름을 만들고, 제 뿌리에 자양분을 공급하듯, 사랑했던 사람들, 떠났던 이별이 다시 돌아와 줄 것을 예견하는 종소리다.   위의 시의 구조를 나무에 비유하여 보자.   ‘나무’라는 소재를 줄기로 세우고, 그 줄기에 사유의 뿌리를 뻗어간다. 나뭇가지마다 상징과 비유의 꽃을 피워보자. 새들은 저녁에 모였다가 아침에 먼 산으로 날아간다. 낙엽이 떨어진다. 연인들은 낙엽을 밟으며 사랑을 속삭인다. 연인들은 싸우고 이별을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일은 다시 해가 떠오른다. 태양이 존재하는 한, 나무는 엽록소를 생성하며 희망을 잉태한다.      어둠을 뚫고 붉은 해가 떠오르는 한   나무속에 타종소리 그치지 않는다(16-17행)     위의 시는 ‘공명’을 통한 ‘사회화’를 염원한다. 그 중심어는 ‘위로와 희망’이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올지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 사과나무를 삼겠다’는 스피노자의 말이 생각난다.  봄과 여름과 가을을 견디고, 겨울을 이겨낸 시간은 위대하다. 나무의 계절은 ‘타자’를 위한 ‘배려’다. ‘산수화’와 ‘풍경화’가 되어 뇌의 피로를 씻어주고, 기대어 울 수 있는 ‘어깨(8행)’가 되어주고, 그늘과 열매를 제공한다. 또한 죽어서는 가구가 되어 준다. 그 가구는 버려지지 않고 난롯불에서 제 몸에 불을 붙여, 가난한 사람의 추운 몸을 따뜻하게 해 준다.      시는 한 그루 나무다. 시의 구조를 들여다보면, 여러 정황들이 겹겹이 드라마처럼 새롭게 전개된다. 향기와 열매를 맛있게 하는 것은 시인의 재주다.
60    白南準 2 / 양준호 댓글:  조회:710  추천:0  2018-12-24
白南準 2       양준호       내 눈에선가   먹TV에선가   소녀는 전단을 뿌리고 갔다       너는 꽃의 뿌리줄기에 대해서 사색해 보았니       사각형 속에선가   원주율 속에선가   어머니의 눈물 빨갛게 빛나는데……       아,   이 허무한   낮술 도미 안주라도 씹을까       내 눈에선가   먹TV에선가   소녀는 전단을 뿌리고 갔다                   엘리어트의 ‘잔인한 4월’은 한국 땅에 황사바람을 몰고 왔다. 대지는 4월의 젊은 피를 먹고 새로워져 간다. 어머니는 황폐한 대지를 눈물로 적신다. 땅은 새 기운을 얻어 식물을 키운다. 4월의 함성도 무성하게 자란다. 가을이 되어 쇠퇴하기 전에.     자유와 희망을 위한 진혼곡은 독재에 항거한 젊은이들만의 특권이 아니다. 어머니라는 이름은 늘 자녀의 ‘독립’과 ‘자유’와 ‘희망’을 위하여 기꺼이 눈물이 되었다. 시는 어머니의 눈물에서 발아한다. 양준호의 시에서 ‘어머니’를 자주 만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부재는 욕구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사각형 속에선가/ 원주율 속에선가/ 어머니의 눈물 빨갛게 빛나는데……(3연 1-3행)         위의 시가 현재를 부정하며 시니컬한 분위기를 풍기는 것은  1연과 3연, 5연에서 반복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에선가’라는 표현 때문이다. 미지정적이고 부정적인 이미지로 화자의 심리상태의 복잡한 심경을 표출시킨다. 미래적이지만 확정적이지 않은 ‘―에선가’라는 중심어가 위의 시의 중심이 되고 있다.     ‘내 눈이 찍은 영상과 TV가 찍어서 내 보내는 영상이 모두 참인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 ‘내 눈에선가/ 먹TV에선가/ 소녀는 전단을 뿌리고 갔다(1연 1-3행)’을 살펴보자.    양준호의 시에서 암묵적으로 등장하는 ‘소녀’는 누구인가? 양준호는 여동생이 없다. 그가 내면으로 초대하는 ‘소녀’는 시인이 사랑하는 여자다. 영혼으로 초대하여 대화하고 싶은 여자일 것이다. 어머니의 부재 후 그의 시에는 ‘소녀’와 같은 비중으로 ‘어머니’가 등장한다. 어머니는 나를 사랑하는 여자다. 인간관계를 분석하여 보면 두 가지로 분류된다. 내가 더 사랑하는 사람과 나를 더 사랑하는 사람으로.     양준호의 시에서 보여주는 ‘소녀’가 뿌리는 ‘전단지’는 어떤 의미일까?  ‘―에선가’라는 1-2행은 전제부분이다.  미확정적이고 부정적이고 실제적이지 않다. 불확실의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에 ‘백남준’이라는 아티스트가 보여준 퍼포먼스는 강렬하였다. 백남준의 시적 영상은 양준호의 시와 닮아 있다. ‘단어던지기’와 ‘이질적 단어의 결합’과 낯선 이미지들을 통합한 ‘낯설게하기’를 실현하며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한다. 현재형으로 보여주는 영상은 현재가 아니다. 과거도 과거 그대로의 과거가 아니다. 미래도 미래 그대로의 미래가 아니다. 백남준이 보여주는 영상처럼 영준호의 시도 포스트모더니즘을 실현시켰다.     위의 시에서 양준호는 ‘원주율’처럼 반복적 이미지를 재현하고 있다. 어머니의 삶과 소녀의 전단지는 낯설면서도 친밀하다. 또한 확장적 해석이 가능하다. 4월에 읽으면 독재에 항거한 젊은이의 주검의 절규로, 가을에 읽으면 자연의 절규로.         ‘뿌리줄기’처럼 강렬하게 전달되는 ‘낯선 이미지’에 독자들은 즐겁다. 니힐한 철학자의 독백처럼. 이미지들이 ‘어머니의 눈물’처럼 ‘빨갛게 빛(3행 3연)난다. 매마른 영혼들에게 피의 제전의식을 하는 대지처럼.  
59    폐선(廢船) / 차윤옥 댓글:  조회:695  추천:0  2018-12-24
폐선(廢船)       차윤옥     아우성치는 격랑의 파도, 때때로 철썩철썩 울음 울 때 상처투성이의 이력(履歷)을 드러낸 채 밧줄에 결박되어 귀의(歸依)한 목선 한 척 출항을 못하는 그물에 얽힌 사연, 슬픈 조각들이 주름진 시간 속에 녹아 있다 얽히고 얽힌 그물처럼 얽히고 얽힌 우리의 삶 일출과 일몰을 투망질하는 남루한 하루 구석진 곳까지 찾아주는 밀물과 썰물 오늘도 먼 바다를 꿈꾸고 있다.         강하고 아름다운 것은 저리 가라, 부자와 행복도 물러가라.   시가 실현하고 있는 소재는 상처와 상실이다. 차윤옥의 「폐선(廢船)」은 시의 필요충분조건인 ‘상처와 울음’ 조각들의 ‘색채 구성화’다. ‘파도, 격랑, 버려진 것, 슬픈 조각, 일출, 일몰, 구석진 곳(1-2연)’ 등 소외되고 약한 부분을 통체적으로 드러낸 고백적 그림이다.   플라톤은 시인은 사회에서 쓸모없는 몽상가라고 비웃으며 추방론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플라톤은 반만 진실을 말하였다. 시니컬하게 자신을 고발하고, 비웃음으로써 스스로 정서치유를 하고 독자를 힐링한다는 시의 효용성을 무시하였다. 시는 슬픔에서 출발하지만, 이상과 희망을 꿈꾼다. 위의 시에서처럼. 버림받은 사물이 된 「폐선」은 ‘상처투성이의 이력(1연 3행)’을 와신상담하며 또 다른 꿈을 찾고 있다.   차윤옥의 시는 ‘격랑의 파도’가 ‘폐선’을 위무하듯 따듯한 위로가 있다. 또한 ‘밧줄에 결박되어(1연 4행)’ 있어도 희망을 버리지 않는 이상주의가 있다. ‘구석진 곳까지 찾아주는 밀물과 썰물/ 오늘도 먼 바다를 꿈꾸고 있다. (2연 1-2행)’을 살펴보자. 어머니의 자궁을 닮은 바다에, 마치 양수에서 조용히 움직이는 태아처럼. 밀물과 썰물에 폐선은 몸을 맡기고, 바다에 귀의하고 있다.   차윤옥의 시는 표현의 기교에 의지하지 않는다. 튼튼하고 굳건한 생활의지와 삶의 본질을 굵은 선으로 처리한다. 슬픔을 부드럽게 감싸지만, 나약하지 않다. 그 이유는 사족을 붙이지 않은 간략하고 짧은 문장. 행의 명사형 끝처리가 선명하기 때문이다. 또한 내용에서도 군더더기가 없다. 줄일 수 있는 마지막까지 압축하여 내용을 선명히 부각시켰다.   ‘밀물’과 ‘썰물’처럼 시어들을 구석구석 음미하여 보라, 알맞게 발효한 김치처럼 맛있게 익은 시어가 삶의 의미화를 증폭시킨다. 어떤 기교보다 멋스러운 진정성이라는 기교와 만나는 시간이다.  
58    곤드레 / 정연석 댓글:  조회:729  추천:0  2018-12-24
곤드레   정연석     해거름에 시장기가 돌아서 초지리草芝里 곤드레 밥집에 갔습니다. '시장 갔습니다'란 쪽지 붙은 유리문에 꽃잎 오므린 매화마름 꽃을 닮은 해쓱한 두 얼굴이 얼비쳤습니다. 양념장에 쓱쓱 비빈 곤드레 밥그릇이 헛보였습니다. 곤드레만드레하였습니다.  홍골레망골레하였습니다.  마주 헛웃음을 지었습니다. 허기에 취한 저녁이 깊어갔습니다.     * 홍골레망골레; 술이나 잠에 취하여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 하는      "곤드레만드레"의 경상도 사투리.          꿈이 어린 시절에 뿌리를 둔 것은 ‘가난’이라는 씨앗에서 자라는 풀꽃 생명이기 때문이다. 어린 가난은 새싹과 같아서 꿈속에서도 자란다.   정연석의 「곤드레」는  ‘시장기- 곤드레 밥집- 유리문쪽지- 핼쓱한 두 얼굴- 헛보임- 곤드레만드레 취함- 헛웃음’이라는 무의식의 흐름을 의식이 좇고 있다.   시는 비유다. 하지만 그 비유는 연상작용에서 발아된다.   위의 시의 중심 행은 2-5행이다. ‘곤드레 밥집에 갔습니다./ '시장 갔습니다'란 쪽지 붙은 유리문에/ 꽃잎 오므린 매화마름 꽃을 닮은/ 해쓱한 두 얼굴이 얼비쳤습니다. ’ 부분이다.   시는 지워지지 않는 인물, 사건, 사물들의 풍경에서 발아된다. ‘매화마름꽃을 닮은 해쓱한 두 얼굴’은 시인의 기억 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그림’이다. ‘해쓱한 그 얼굴’은 시인의 심상에서 시심을 자극하는 원동력이 되는 사람이다.    프로이드는 무의식 속에 깊이 숨어 있던 기억의 덩어리들이, 꿈을 꾸거나 술을 먹었을 때, 의식의 통제가 풀려 무의식이 의식 밖으로 드러나는 것이라고 하였다. 시를 쓰는 행위는, 무의식의 흐름에 의식을 맡기는 일이다. 언어들이 마음껏 취하여 연상작용을 하도록 의식을 해제시킨다.   5행의 ‘두 얼굴’을 ‘그’와 화자인 ‘나’의 과거 추억을 객관화한 장면으로 해석하여 보자. 사람이 쉰 살이 되면 인생의 분기점에 서게 된다. 살아온 날과 살 날이 선명하게 갈린다. 또한 원망하던 부모를 이해하게 되는 나이다. ‘두 얼굴’ 중 한 얼굴에 ‘아버지’를 대입하여 보자. 독자는 ‘어머니, 형제, 첫사랑’을 대입하여도 좋다. 문득 옛날을 현재에 불러오고 싶은 사람. 누구나 있다. 그 사람이 모질게 보고 싶어, 그가 좋아하던 음식을 먹으며 ‘그’를 식탁에 초대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 곤드레만드레 옛 추억과 감정에 취하여.   11행의 짧은 시가 독자의 무의식을 자극한다. 그리움이라는 이름으로 감정을 흔든다. 짧지만 강한 여운으로 과거회귀를 종용한다. 이 시를 읽으면.   프로이드는 무의식 이론을 학계에 발표하였지만, 시는 무의식을 객관화하여 펼쳐 보인다. 이 시는 무의식을 현재에 실현시키는 강렬한 힘을 갖고 있다.   그리움처럼 ‘꽃잎 오므린 매화마름 꽃’ (4행) 한 송이 맘속에 피어올리고 싶어질 것.   이 시를 읽으면 누구나.  
57    일곱 겹의 입술 / 정지우鄭誌友 댓글:  조회:672  추천:0  2018-12-24
일곱 겹의 입술       정지우鄭誌友        입술이 취하는 양파주점* 눈이 매운 술안주가 있다.        부딪치지 않고 탁자 사이를 지나다니는 것으로 주량을 잰다.        흐린 음주엔 옆 좌석이 슬쩍 끼어드는 술병도 있지만 아주 얇은 껍질 몇 개만 있어도 감흥에 젖을 수 있다.        외투를 벗거나 안경을 한 꺼풀 벗어놓은 빈자리들    손등으로 땀을 닦는 일은 주정酒精의 관계여서 때로는 모르는 인상.        홍당무가 되어도 흉이 없는 당신은 그저 옆자리일 뿐이다.        한 잔에 얼굴 속으로 털어 넣는 얼굴    절망은 분노의 옆얼굴이다.         끝이 없는 계단과 모서리를 돌아가는 시간.        술잔에 찍힌 입술이 눈물을 흘린다.    일곱 겹 입술의 말에는 눈물이 있다.        눈이 매운 건 좌석 배치도 때문일까 입술이 벗겨낸 표정 때문일까.          둥근 접시의 요일엔 빨간 망에 든 양파가 배달된다.    흰 거품의 당신을 흔들면    술과 양파를 곁들인 오늘이 접시 위에서 붉다.               * 양철북                           위의 시는 ‘낯설게하기’의 정수를 보여준다. ‘제목, 연, 행, 낱말’들이 각각 모en 낯설게하기를 실현하고 있다. 요즘 새롭게 시도되고 있는, 젊은 감각의 포스트모더니즘 기법이다.‘낯설게하기’를 통하여 시적 정서가 환기되고 지루한 시 쓰기 방법론에서 탈피하고 있다.     ‘한 컵의 맥주잔에 찍힌 입술자국’에서 출발한 단순한 발상이, 연마다 새로운 구도를 갖고 의식을 만들고 있다.‘피동적 기법’의 시 쓰기 기법이다.     빨간 루즈를 칠한 입술이 200cc 맨주잔에 찍어놓은 일곱 개의 립스틱자국. 지성과 야성. 취기와 호기심. 술주정과 눈물. 평이한 주점의 풍경화가 포스트모더니즘적 기법의 시의 옷을 입고, 일상과 상식의 옷을 벗고 하이퍼적이다. 요염하고 감각적이다.      피동적 사물은 주장을 할 수 없다. 그러나 정지우의 시에서는 풍경이 감정을 나타내고, 피동적 동사가 의식을 주장한다. ‘둥근 접시의 요일엔 빨간 망에 든 양파가 배달된다.(10연 1행)’을 살펴보자.     ‘요일’이라는 시간의 개념에 ‘둥근 접시’라는 이미지의 옷을 입혔다. 또한 ‘빨간 망에 든 양파’라는 선명한 색채이미지는 ‘둥근 접시’와 상대적 조화를 이루며 선명한 구조의 이미지를 돕는다.  ‘둥근 접시’와 ‘빨간 양파’는 구체적인 사물이다. 구체적인 사물이 불명확한 시간의 개념인 ‘요일’을 선명한 사물이미지로 꾸며준다. 여러 개의 중첩된 이미지가 구체성과 객관성을 돕고 있다. ‘요일’이라는 시간의 개념이 선명하고 구체적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흰 거품의 당신을 흔들면/ 술과 양파를 곁들인 오늘이 접시 위에서 붉다.(10연 2-3행)’부분을 눈 여겨 보자. ‘이상 시인’이 말하던 속을 까도 알 수 없는‘양파’의 이미지는, 제목인 ‘일곱 겹의 입술’과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다. 시의 애매성과 모호성의 원리를 살린 ‘흰 거품의 당신을 흔들면’이라는 표현에는 ‘흰 거품’이 주는 ‘가벼운 이미지’와 ‘사라지는 것들’이라는 이미지가 합쳐 ‘당신’을 수식한다. 취기에 농과 연애를 자극하는 술집의 풍경화가 농염하다. 그러나 철학이 있는 것은 ‘한 잔에 얼굴 속으로 털어 넣는 얼굴/ 절망은 분노의 옆얼굴이다.(6연 1-2행)같은 구절이 보여주는 사유의 힘이다. 억울하고 분한 심정을 억누르며 술을 마시는 범인들의 모습에 애정을 가지고 있다.     ‘끝이 없는 계단과 모서리를 돌아가는 시간.(7연)’ 처럼, 술집에서는 모든 것이 슬로우 비디오처럼 반복적이다. 말, 술잔, 시간이 천천히 돈다. 과거가 현재에 와 있고, 현재가 내일이면 과거가 된다.         위의 시는 피동과 사동으로 표현주의적 현란한 기교를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위의 시는 진정성을 가지며 중심이 든든하다. 8연 1-2행‘술잔에 찍힌 입술이 눈물을 흘린다./ 일곱 겹 입술의 말에는 눈물이 있다.(8연 1-2행)’부분은 화자가 시를 쓰게 된 근본이유일 것이다. 술은 기분을 풀려고 먹지만 이상하게 술은 먹을수록 슬퍼진다는 걸 깨달을 것이다. 심미적 미의식을 추구하며, 객관화와 진정성 추구는 앞으로 표현주의 시가 추구할 과제다.
56    물렁한 추억 / 정 연 덕 댓글:  조회:711  추천:0  2018-12-24
물렁한 추억         정 연 덕     종일토록 기다리다 돌아섰던 바닷가 나뭇가지에 당신을 묶어 놓습니다   암벽을 기어오르는 도요새처럼 휘잡던 날개를 접습니다   불쑥불쑥 솟아나는 그리움 가시처럼 꽂힌다 해도 더는 주저할 수가 없습니다   턱을 괴고 수평선을 보며 멈춰 섰던 오랜 날들 가슴속에 묻고 하나씩 하나씩 숨겨두고 가렵니다   아파하던 4월의 바람이 문득 떠오를 때쯤 흔들리던 나무도 키가 크고 숲을 이루겠지요                  정연덕의 「물렁한 추억」은, 잘 익은 홍시처럼 맛있게 숙성하였다. 관념을 완벽하게 배제한 시적 완성도를 본다. 위의 시에서 기승전결을 살펴보자. ‘당신을 기다리던 나무(1연)- 날개를 접는다(2연)- 가시처럼 돋는 그리움(3연)-가슴속에 숨겨둔다(4연)- 나무가 숲을 이룬다(5연)’는 공식이 만들어진다. 그 시적 정서는 그리움과 아픔이다. 그렇다면 1연의 ‘당신’은 ‘그리움’과 ‘아픔’이다. 그리움과 아픔은 ‘나무’와 ‘숲’을 이루도록 키워온 시인의 내면의 고뇌다. 고뇌와 불행감도 밖으로 꺼집어내서 분류하고 분석하면 모두 ‘이유’가 있다. 시인은 프로이드를 공부하지 않아도 프로이드적 정신기법의 시를 쓴다. 자신의 무의식에 숨어 있는 ‘그때 거기’의 과거상처를 자가치료한다. 전 과정의 과업을 완수한 시인과 화자에게 주는 수료증은 독자의 감동과 카타르시스다.    위의 시를 내용 중심으로 네 가지 방향에서 해석하여 본다. 1연 3행의 ‘당신’을 ‘어떤 대상’으로 치환하느냐에 따라, 여러 종류의 시로 분류된다. 목적시, 연애시, 자유시, 성장시 등. 무한한 공간적, 시간적, 관념적 해석이 가능하다. 시가 확장되어 열린다.   첫째, 1연의 ‘당신’에 ‘이데올로기’를 대입하여 보자. 그 대상이 이데올로기라면, 관념을 모두 익힌 목적시의 정수를 보여준다. ‘이상’과 ‘상실한 꿈’을 이야기하면서 전혀 관념적이지 않다. 실망과 배반을 먹고 성장하는 나무와 숲.   둘째, 1연의 ‘당신’을 ‘학생 운동의 희생자’라고 생각하여 보자. 만약 그 대상이 장렬하게 전사한 학우라면. 그 잔인한 4월을 배경으로 하였다면 이보다 완성도 있는 참여시를 볼 수 없다. 비련의 젊은 학생들의 피 한 방울, 한 방울로 만든 오늘날 민주주의의 나무와 숲.   셋째, 1연의 ‘당신’을 연애의 대상인 ‘연인’으로 해석하여 보자. 성장시기에 통과의례처럼 겪던 사춘기, 청년기, 장년기를 벗어나서 성숙한 사랑의 완성과 미완의 사랑을 품는 40대 중년을 본다. 아픔과 슬픔도 승화시킨 사랑.   넷째, 1연의 ‘당신’을 ‘정신적 숭배대상’으로 해석하여 보자. ‘사르트르’나 ‘니이체’ 등 인물을 대입하여 보자. 인격체를 향한 니이체적 고뇌의 시작이다. 초인을 꿈꾸던 짜라투스트라의 꿈이 녹아내리는 과정을 직시하는 지식인의 고민이 시작된다. 정신의 선봉에서 지휘하던 ‘이데아’와 ‘이데올로기’들의 혼합체가 허물어진다.   위의 시에서 1연의 ‘나무’와 ‘당신’은 묶어버린 하나다. 혼연일체다.   위의 시에서 5연의 ‘바람’과 ‘나무’와 ‘숲’은 하나다. 혼연일체다.  
55    골목 / 권혁수 댓글:  조회:637  추천:0  2018-12-24
골목   권혁수     똑바로 걸어도 휘어지는 골목이 있다   아이들의 벽화가 몇 개 벙어리처럼 웃는   아침에 골목을 빠져나간 별들이 저녁에 마을 밖 멀리 머물러 답답한 하늘 아래 흐린 창문을 열고 어제 떠난 사람을 기다린다   떠나지 못해, 기다리지 못할 골목은 없다   술 취한 발자국 소리 끌고 벽화를 더듬어 추억 속으로 들어가는 밤, 떠나온 집과 찾아갈 집 사이로 걸어 들어온 만큼 다시 걸어 나가야 하는   골목은 끊어진 직선이 아니다          위의 시 1-6연은 권혁수 시의 특징을 잘 표현하고 있다. 그 특징을 그 살펴보자.   첫째, 짧고 간결한 문장. 1연의 단 2행의 시를 완성본이라고 가정해 보자. 아래 2-5연을 모두 버리더라도 완전한 시의 요소를 갖고 있다. ‘똑바로 걸어도 휘어지는/ 골목이 있다(1-2행)’ 로써 더 이상 붙일 사족이 없다. 길에 대한 많은 시들이 발표되고 변화무쌍한 양상을 보이며 진화하고 있지만, 이보다 더 짧은 언어 속에, 많은 사유를 간직한 시를 만나보지 못했다. 2행의 ‘골목’은 ‘타인, 회사, 이데올로기, 사회풍자’일 수도 있다. 다각도로 해석이 되는 좋은 시의 표본이다. 눈에 그림처럼 시가 그려진다. 이미지와 사유의 만남이 촌철살인의 시구다.  둘째, 각 연의 ‘낯설게하기’.   2연은 단 한 행의 문장으로 하이퍼적이다. 의도적으로 새로운 분위기를 환기시키며 삽입된 연이다. 그러나 다른 연과 생경하지 않다. 2연이 들어감으로써, 생활적 요소가 들어가 시에 사람냄새가 난다. 가족과 아이에 대한 부양의 책임을 진 가장의 애환이 느껴진다.  ‘아이들의 벽화가 몇 개 벙어리처럼 웃는’은 표현주의 예술인 시의 심미적 미의식을 감각적으로 표현하였다. 사진은 말하지 못한다. 그러나 늦게 귀가를 기다리다 잠든 아이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상상의 공간을 독자에게 제공하며 여백의 미를 살렸다. 단 한 줄의 시가 갖는 파장이 크다.   셋째, 서정성.  3연은 ‘골목, 하늘, 기다림’ 모두 독자들이 좋아하는 ‘슬픈 이별의 이미지’가 있다. 김소월부터 현대까지 시의 단골소재다. 한의 성서를 감각적이며 서정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넷째, 사유의 힘.  4연 ‘떠나지 못해, 기다리지 못할 골목은 없다’ 부분을 살펴보자. 이 연에서 ‘골목’이라는 단어를 ‘인간’으로 치환하여 보자. 유행가의 한 구절처럼 애절한 사연이 장편소설 분량으로 증폭한다.  ‘골목’ 이라는 사물의 시각으로 쓴 사물시다. 사물의 독백이다. 객관화된 사유가 깔끔하다.   다섯째, 감각적이고 현대적인 표현.  5연은 1, 2, 3, 4행 모두 감각적 미의식을 가진 문장들이다.  1행- ‘술 취한 발자국 소리 끌고’라고 피동형 문장으로 현대적 멋을 살렸다. 2행- ‘벽화를 더듬어 추억 속으로 들어가는 밤,’은 아이를 ‘벽화’로 은유하였다. 3행- ‘떠나온 집과 찾아갈 집 사이로’는 상황제시 부분이다.  ‘집’은 ‘모임, 애인’ 등 어떤 단어로도 치환이 가능하다. 권혁수 시가 보여주는 사물시의 요소들은 하이퍼적 요소를 함의하고 있다.   여섯째, 탄탄한 구성.  6연 ‘걸어 들어온 만큼 다시 걸어 나가야 하는’ 단 1행의 문장이 갖는 힘은 1-6년의 시가 갖는 탄탄한 구성력에 있다. 어떤 길도 갔다고 돌아서 나와야 한다.   권혁수의 「골목」을 읽으면, 이미지와 사유의 객관화가 가지런히 정리된 필통처럼 단정하다. 모자람이나 치우침이 없고, 억지스러움이나 생뚱맞음도 없다. 현대시의 단점인 난해한 은유로 독자를 미혹에 빠뜨리지도 않는다. 좋은 시는, 시 스스로 평론을 쓸 ‘거리’를 제공해 준다. 표현주의 예술이 추구하는 목표를 달성한 시는, 독자에게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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