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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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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0    청소년 위한 SF세계명작소설 원문 사이트주소 댓글:  조회:348  추천:0  2023-08-23
아래 주소는 청소년 위한  SF세계명작소설 원문 사이트입니다 . 방화벽 뛰여넘지않아도 열립니다  사이트 열고  그림옆에 첫번째  PDF 보기 를릭해 보면 됩니다 https://sf.jikji.org/book/index.html
1199    해저 지진 도시 F. 폴 . J. 윌리암슨 작 이 인석 역 댓글:  조회:282  추천:0  2023-08-23
해저 지진 도시   F. 폴 . J. 윌리암슨 작 이 인석 역   프레더릭 폴 1920년 미국 태생 . 20샅 때부터 SF를 쓰기 시작하여 작가 활동을 하계 되었다. '우주 살인" "해저 정보" "해저 함대" 등.   J. 윌리암슨 1908년 미국 태생. "우주 군단" "휴머노이드" 등.   편집 위원 아동문학가 이 원수․박 홍근 / 문학박사 최 인학 공학박사 양 옥룡 / 이학박사 김 희규 전교육감 김 성묵   정 보······················ 4 타이드 신부·················· 13 해저 박물관·················· 22 해저 지진 도시················· 28 지진 예지··················· 37 지오존데···················· 50 미 행····················· 61 백만 불 짜리 지진··············· 72 이든 기업··················· 84 노인끼리의 대결················ 95 구정물 처리장에 잠수선!············ 105 진도 +(플러스) -(마이너스)·········· 114 10억 불의 공황················ 125 연판으로 둘러싼 금고············· 137 스튜어트 이든의 범죄············· 149 지저 기지에의 침입자············· 161 지진 박사··················· 176 지저에의 여행················· 189 바위의 바다·················· 200 이든나이트의 빛················ 212   작품 해설··················· 219   등장 인물   스튜어트 이든 : 이든 나이트를 발명한 위대한 발명가이며, 바다 밑에서 일어날 지진을 미리 알아내는 권위자이다. 이든은 수소폭탄을 사용하여 인공 지진을 일으켜 해저 도시 그라카타우를 지진의 위기에서 구출한다. 존 고에쓰 박사 :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지진학자. 지오존데(Geosonde. 지하 기상 측정 기계)를 개발하여 바다 밑에서 일어나는 지진 예지에 크게 공헌한다. 짐 이든 : 해저 함대기지 사관생도. 인공 지진으로 숙부인 스튜어트 박사가 살인자의 오해를 받게 되자 고민한다. 기데온 파크: 스튜어트 이든의 충실한 조수. 수소폭탄으로 일으키는 인공 지진에 가담한다. 다나까 중위 :해저 함대 사관 후보생의 일본인 지휘관. 인공 지진을 일으키는 스튜어트 이든을 추적한다. 밥 에스코 : 해저 함대 사관 후보생. 인공 지진을 일으키는 데에 가담하여 친구인 이든에게 미행 당한다. 벤 단소프: 해저 도시 그라카타우에 주식 거래소를 창설하여 개인적인 돈벌이 이외에는 아무 것도 생각지 않는 비인간적인 사나이. 할리 단소프 : 아버지 벤 단소프의 비정을 목격하고, 여러 사람들 앞에서 아버지의 비인간적임과 자기의 괴로움을 고백한다. 타이드 신부 : 지진학자 정 보   토요일 오후는 자유시간이다. "수중 테니스라도 하지 않겠나?" 나는 동급생인 밥 에스코를 꼬셔서 해중(바닷속) 풀장으로 갔다. 우리들 잠수 사관 후보생에게는 자유시간 중의 스포츠도 훈련에 든다.... 이곳은 미국 뉴욕에서 1천 2떠 킬로미터 동남쪽 대서양에 있는 버뮤다 섬이다. 이전부터 이곳에는 영국과 미국의 해군 기지와 공군 기지가 있었다. 지금은 국제 연합의 해저 함대 기지가 되어 그 한쪽에 잠수 사관 학교가 설치되어 있다. “짐 빨리 오게." 밥 에스코는 풀 속에 뛰어들어 발로 물을 차면서 잠수하기 시작하였다. "서둘 것 없네." 나는 수영장 가에서 신중히 산소 봄베(압축된 고압 상태의 기체를 넣어 두는 두꺼운 강철로 만든 용기)를 조절하며 말했다. "이든 후보생!" 갑자기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불렀다. 얼굴을 들어보니 두 명의 해군 사관이었다. 우리의 교관하고 사령부의 당직 장교가 풀에 다가 오고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부동 자세를 취했다. "이든 후보생. 1300시(오후 1시)에 사령관실로 출두할 것." 당직 장교가 씩씩한 목소리로 말했다. "넷, 알겠습니다." 나는 경례를 했다. 당직 장교는 답례를 하고 교관과 함께 사라져 갔다. 풀 수면에 밥의 얼굴이 나타나 수중 마스크를 들썩하고 외쳤다. "빨리 오게, 짐. 무얼 하고 있나?" 그러나 교관하고 당직 장교의 뒷모습을 보자 휘파람을 불었다. "저 두 사람은 뭣하러 왔었나?" "1300시에 사령관실로 출두하라는 걸세. 나 혼자서 말일세.“ "흐음, 어쩌면 단소프가 얘기하던 건지도 모르겠군." 그러면서 밥은 물에서 올라왔다. "어떤 얘긴가?“ 내가 이렇게 묻자 밥은 머리를 가로 저었다.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자네하고 나 그리고 단소프, 이렇게 세 사람에 관계되는 일인 모양일세." "알 수 없는 일에 신경을 써도 할 수 없잖은가." 나는 봄베에서 마스크를 떼어 내고, 공기를 공급하는 밸브를 점검하였다. 수중 테니스는 중지하지만 다음 할 때에 대비해서 점검해 두는 것이다. (조심하고 더욱 조심을 해라. 수중 장비는 모두 두 번씩 점검하여라.) 이것이 해저 함대의 습관이다. 해저에서는 다시 할 수가 없다. 장비의 고장이 그대로 죽음에 연결되는 것이다. 나는 밥하고 어깨를 나란히 하고 교사로 향했다. 버뮤다의 태양이 벌거벗은 등에 뜨겁다. 요새 해저에서의 훈련이 많았던 탓이다. 과학의 진보가 여러 가지 발명을 낳게 해서 마침내 인류는 해저를 정복했다. 암흑의 해저에는 거대한 돔(둥근 지붕)에 싸인 해저 도시가 차례차례로 건설되고 있었다. 그렇지만 어떠한 발명도 자연의 공기의 싱그러운 내음과, 수평선이나 지평선의 망망함을 해저 생활에서 맛 볼 수는 없었다. 밥은 멈춰 서서 푸른 숲과 해변가 백사장에 가지런히 늘어서 있는 빨간 지붕들과, 해면이 빛나는 하얀 물거품들을 바라보았다. "통가 해구에 있는 자연 진주를 몽땅 합친다 해도 이 아름다운 경치를 따를 수는 없지." 확실히 밥이 말하는 게 옳다. 심해의 엄격함과 무서움이란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해저 도시와 돔은 모두 이든나이트라는 특수 금속의 얇은 피막으로 둘러싸여 굉장한 수압(물의 압력)에서 안전하게 보호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든나이트 피막 밖에는 언제나 검은 사신(재앙을 내리는 요사스러운 귀신)이 기다리고 있었다. 만약에 누가 버튼을 잘못 눌러 파이프의 열고 닫는 장치가 틀리면, 사신은 당장에 이든나이트를 파괴하고 도움 안으로 침입한다. 그리고 해저 도시는 트럭의 타이어에 짓눌린 땅콩처럼 납작해지고, 시민들은 산산조각이 될 것이다. "자네들 대낮부터 좋은 꿈이라도 꾸고 있나?" 돌연 말소리가 들려 그쪽을 돌아보니 또 한 사람의 사관 후보생이 옆에 와 있었다. 아까 밥이 말하던 할리 단소프였다. 나에게는 초면이지만 이름만은 듣고 있었다. 할리는 날씬한 체격에 밥보다 약간 키가 작았다. 줄이 선 진홍색의 제복을 입고 머리를 단정하게 빗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사람을 무시하는 듯한 표정을 하고 있어서 싫은 인상이었다. 밥이 초면인 우리들을 소개했다. "짐, 할리 단소프는 심해 기지에서 온 학생일세." "그리고 또 다시 심해로 돌아가는 걸세. 자네들과 함께 말이네." 소매에서 조그만 산호 파편을 털어 내면서 할리는 말했다. 나와 밥은 서로 얼굴을 마주보았다. 두 사람 다 할리하고 함께 심해로 간다는 명령을 들은 일이 없었다. "명령은 오늘 오후 나기로 되어 있단 말일세." 할리가 이렇게 자신만만하게 말했기 때문에 나는 그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자네는 그런 걸 알고 정보를 입수했지." 할리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 정보로는 우리가 가는 행선지가 어디로 되어 있나?" "해저 도시 그라카타우일세." "그라카타우라고?" 밥이 날카롭게 되물었다. "그렇네." 하고, 대답하며 할리는 밥의 얼굴을 이상한 듯이 바라보았다. 어쩐 셈인지 밥의 얼굴은 몹시 창백했다. "그라카타우로 무얼 하러 간단 말인가?" 내가 거듭 물었다. "내가 입수한 정보는 그곳으로 간다는 것뿐이네. 그 이상의 것은 아직 모르네." 할리는 또 어깨를 으쓱했다. 해저 도시 그라카타우! 나는 할리의 정보를 믿고 싶었다. 만약에 지금 가장 가고 싶은 곳이 어디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서슴없이 '그라카타우'라고 대답할 것이다. 수많은 해저 도시 중에서 그라카타우는 가장 새롭고 가장 큰 해저 도시였다. 장소는 순다 해협(자바 섬과 수마트라 섬의 중간)에 있는 유명한 화산섬 그라카타우 섬의 남쪽에 가로놓인 자바 해구의 언저리이며, 수심 5천 미터의 해저다. 나의 숙부 스튜어트 이든이 즐겨 이야기해 준 해저 도시 그라카타우 섬 주변의 해저는 석유와 우라늄과 주석의 보물고이다. 그러나 그곳에 해저 함대의 훈련 기지가 있다는 이야기는 들은 일이 없다. 대체 무슨 훈련 때문에 세 명의 잠수 사관 후보생이 그곳에 파견되는 것일까? 할리는 경멸하는 투로 밥에게 말했다. "왜 그러나, 밥. 안색이 나쁜걸, 무섭나?" "무서울 것까지는 없지만 지진이 약간 마음에 걸린다네." 밥은 조금 불안한 듯 하였다. "그렇다면 그라카타우 섬의 해저 도시는 자네에겐 맞지 않는 곳이군. 백년 전에 일어난 그라카타우 화산의 대폭발 얘기는 들었겠지? 그 때 해상에서는 높이가 30미터나 되는 큰 물결이 일어났다는군! 그 주위의 해저는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지진이 많이 발생하는 지대란 말일세." 할리가 눈을 빛내며 기쁜 듯이 말했기 때문에 나는 비꼬아 말할 수밖에 없었다. "해저 지진이 많으면 무슨 좋은 수라도 있나?" 지진은 물론 지상에서도 무서운 재해를 가져온다. 그러나 해저의 경우는 더욱 커 천 배나 되는 굉장한 파괴력을 휘두른다. 극히 작은 지진일지라도 수송관을 절단하고 밀어닥치는 바닷물이 광구의 갱 속을 막아 버린다. 또한 강한 지진이라면 일순간에 이든나이트의 얇은 피막을 찢어 버리고, 해저 도시를 둘러싼 거대한 돔을 박살내 버린다. 심도(깊은 정도, 깊이) 1만 미터의 수압을 견디어 내는 이든나이트도 대지진에 대해서는 별로 저항력이 없는 것이다. "보통의 해저 생활자는 지진을 두려워할 뿐이지." 할리는 빙그레 웃고는 말을 계속했다. "그렇지만 해저 지진이 이익을 가져다주는 강우도 있단 말일세. 말하자면 우리 아버지 같은 경우 말이네. 우리 아버지는 해저 도시 그라카라우에서 큰 사업을 하고 있네. 정보를 잘 입수하면 지진 때마다 돈을 한탕씩 벌어들인다네!" 이 때 내 머리 속에 하나의 이름이 떠올랐다. "할리, 자네 아버지가 실업가인 벤 단소프 씨인가?" "그렇네. 우리 아버지는 해저 도시 그라카타우가 완성되기 전에 장래를 내다보고 그 한 쪽을 사서 장사를 시작했지. 지진 때마다 해저 산업 관계의 주식이 대폭 떨어지네. 그 때 그것을 몽땅 사서 재산을 불리었다네. 지금 아버지는 해저 도시 그라카타우의 주식 거래소 회장이며 해저 도시를 운영하는 시의회의 의원직도 갖고 있네. 아버지는 모든 시민으로부터 '따개비 벤'이라고 불릴 정도로 오래 해저에서 살고 있어......" 이 자랑 얘기를 밥이 막았다. "'따개비 벤'이라고? 그건 기생동물이란 뜻이 아닌가? 적어도 자네 아버지는 해저 도시 개발의 선구자는 아닐세. 육상의 인구 증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 해저 도시의 개발에 도전한 진정한 탐험가나 발명가라면 짐에게 물어보는 편이 좋을걸. 짐의 숙부인 스튜어트 이든은 이든나이트의 발명가일세!" 할리는 입을 다물고 나를 날카롭게 쳐다보면서 물었다. "스튜어트 이든은 자네와 숙부인가?" "그렇네." 하고, 나는 가볍게 대답했다. 가족이나 친척은 정신적인 뒷받침이 되어 주느냐 아니냐가 중대한 문제이지, 육친이나 친족 중에 유명한 사람이 있느냐 없느냐는 문제가 아니라고 항상 숙부에게 훈계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해저 도시의 건설을 가능케 한 이든나이트의 발명가를 숙부로 두고 있다는 것은 역시 나의 자랑이었다. "나와 아버지는 자네 숙부의 발명을 몽땅 살수도 있었을 걸세." 할리는 도전하듯이 말했다. 하지만 나는 숙부의 가르침을 지켜 상대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할리는 밥에게 질문의 방향을 돌렸다. "자네의 가족은 어떤가?" "어떠냐고?" 밥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리는 계속했다. "자네도 가족은 있겠지? 얘기해 주게나. 어떤 사람들인지? 무슨 일을 하고 있나? 어디에 살고 있지? 자네 아버지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지극히 평범한 시민일세. 아버지는 일가를 이루고 있지." "해저에 간 일이 있나? 해저 생활자인가?" 할리가 너무나 짓궂어서 내가 끼어 들었다. "가족 같은 건 아무래도 좋잖은가. 우리들이 이제부터 세 사람 함께 해저로 간다면 그것이 어떤 일이든 간에 팀웍을 짜는 게 중요한 일이란 말일세." "잘 될까? 해저 도시 그라카타우는 적어도 지진이 두려운 사나이에게는 맞는 장소가 아닌걸." 한 마디 뱉듯이 말하고 할리는 총총히 사라졌다. "호감이 안 가는 녀석이군. 될 수 있는 한 저 녀석을 상대 않는 게 좋겠네. 밥, 저놈하고 함께 해저로 간다는 명령이 아직 나온 것은 아니지 않나." 나는 걸어가면서 밥을 위로했다. 밥은 결코 겁쟁이가 아니다. 해저 지진을 두려워 할 그런 사나이가 아니다. 통가 지구에서 거행한 지난번의 심해 훈련에서 우리는 때때로 사신하고 대결했다. 그 충격에서 아직 완전히 헤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기숙사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까, 당번 후보생이 게시판에 사령부에서 온 명령서를 붙이고 있는 중이었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글씨가 쓰여 있었다. 밥과 나는 게시판 앞에 멈춰 섰다.   다음의 후보생은 금일 1700시(오후 5시)에 사령관실로 출두할 것.)   할리 단소프. 짐 이든. 밥 에스코.   밥과 나는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이상한데, 당직 사관은 아까 풀장에서 분명히 1300시에 출두하라고 말했었는데......" 내가 중얼거리자 당번 후보생이 뒤돌아보았다. "아아, 짐인가. 자네는 두 번 출두하기로 되어 있네. 1300시의 출두는 자네의 숙부이신 스튜어트 이든의 사망설에 관한 거라네."     타이드 신부   사령부 정문 입구에 잠수 사관 학교의 상징이 조각되어 있다. 라고. 나는 약속 시간보다 10분 빨리 사령관실에 출두했다. 사령관의 모습은 아직 보이지 않았다. 1300시에 어김없이 나타날 모양이다. 나는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심정이었다. 이미 양친을 잃어버린 나는 숙부인 스튜어트 이든이 단 한 사람의 육친이었다. 숙부의 집은 여기서 1만 6천 킬로미터 떨어진 해저 도시 마리니아에 있다. 얼마 동안 만나지 못했지만 최근 건강이 좋지 않다고 듣고 있었다. 나는 불길한 생각을 쫓아 버린다. 분명히 당번 후보생은 사망설이라고 말했다. 죽었는지 아닌지 아직 확실하지 않은 것이다. 1300시 정각에 사령관이 나타났다. 검은 수단을 입은 사나이와 함께였다. 턱 벌어진 체격의 사령관 옆에 서니까 마치 어린애처럼 보일 정도로 작은 몸집의 사나이다. "이든 후보생, 이분은 이에즈스회(기독교 중의 일파)의 타이드 신부다. 자네를 만나 꼭 얘기하고 싶은 일이 있으시단다." 신중한 목소리로 사령관은 말한다. 나는 신부의 손을 잡고 문득 불안을 느꼈다. 신부의 눈이 날카롭게 나를 보고 있었다. 사령관의 눈도 엄격하게 나에게 쏠리고 있었다. 신부가 입을 열었다. "나는 자네 숙부님의 친지일세. 짐, 아마 자네는 숙부에게서 내 얘기를 들었을 테지?" 따뜻하고 부드러운 목소리였으나 파란 눈은 여전히 날카로웠다. "아뇨, 모르겠습니다. 저는, 숙부하고 자주 만나는 일이 없었으니까요." 라고, 나는 대답했다. "그럴테지." 타이드 신부는 고개를 끄덕였다. 둥근 얼굴의 볼이 붉고 반들반들했다. 연령은 잘 알 수 없지만 이미 젊지 않은 나이인 것만은 확실하다. "짐, 자네를 만나는 것은 오늘이 처음이지만, 자네 일은 잘 알고 있네. 통가 해구에선 큰 공을 세웠다더군. 나도 언젠가 그 해구에 들어가 보고 싶지만 매우 힘이 들 걸세........" 타이드 신부의 말을 듣고 있으려니까, 나는 상대방의 정체를 더욱 알 수 없게 되었다. 신부치고는 바다 밑의 일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너무 잘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바다 밑에 들어가 활약하고 있는 듯한 말투다. "그건 그렇고 짐, 이것들을 본 기억이 있나?" 그러면서 타이드 신부는 상자를 열고 플라스틱 주머니를 끄집어내어서 그 속에 들어 있는 것들을 책상 위에 진열해 놓았다. 멋진 통가 진주를 박은 은반지며 스텐레스 케이스에 들어 있는 정밀 손목 시계, 얼마간의 화폐와 소액 지폐, 미국과 마리니아의 달러, 그리고 찢어진 봉투가 한 통, 손에 들고 볼 필요도 없었다. 모두 내가 잘 알고 있는 것들 분이다. 반지는 숙부의 것이며 거기에 박혀 있는 진주는 쟈슨 그레이켄이라는 오랜 친구에게서 선물 받은 것이다. 시계는 우리 아버지가 옛날에 숙부에게 물려 준 것이다. 그리고 찢어진 봉투의 표면에 씌어 있는 주소하고 이름은 내 필적이다. 내가 숙부에게 보낸 편지인 것이다. 나는 될 수 있는 대로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전부 숙부님 것입니다." "역시, 그랬군......" 타이드 신부는 위로하는 눈초리로 나를 보면서 숙부의 물건들을 또다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숙부님의 신상에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물어 보았다. "나는 알 수 없네. 짐, 그래서 자네에게 물어 보고 싶어 찾아온 걸세." "제가 당신에게 얘기를 해요? 무슨 말을 했으면 좋겠습니까? 그것보다도 신부님은 그 물건들을 어디서 손에 넣었습니까?" "수중차 안에서네. 이 설명을 하자면 시간이 꽤 걸릴 텐데 참고 들어주게나." 타이드 신부는 플라스틱 주머니를 상자에 넣고 방안을 빙빙 돌면서 말하기 시작했다. "우리들의 교단(종교 단체)은 화산학과 지진학 개발에 공헌하고 있네. 나도 신부이면서 해저 화산과 해저 지진의 연구 방면에는 전문가인 셈이네. 그런데 2주일 전......" 잠깐 말을 끊고 타이드 신부는 창 너머로 밝게 빛나는 버뮤다의 바다에 눈길을 보냈다. "인도양의 바다 밑에서 돌연 분화가 일어났지. 그건 참으로 전연 예상 밖의 분화였네." "예상 밖? 정말로 미리 알 수 없었습니까?" "그렇다네, 짐. 자네도 잘 알다시피 오늘날의 과학은 지진이나 화산의 분화를 거의 100퍼센트 예지(미리 앎)할 수 있는 데까지 진보되어 있네. 그러나 인도양의 분화는 전혀 예지 할 수 없었다네. 그 부근의 바다 밑에는 분화를 일으킬 만한 활동이 전연 없었는데 분화가 일어난 걸세. 그 때 나는 해저 도시 그라카타우에 있었지. 그곳 지진계의 기록에 의해 진원지(지진이 일어난 곳)는 약 3천 킬로미터 떨어진 인도양의 바다 밑이라는 것을 알았네. 나는 진원지를 조사하기 위해서 곧 수중차로 출발했네. 그래서 다음날 밤 진원지에 도착했지. 해상은 분화 때문에 아직 거칠었네." 그는 말을 이었다. "해저에서는 새로 분출한 용암과 진흙이 3킬로 사방에 퍼져 있었네. 이곳저곳에서는 아직 조그만 폭발이 계속되고, 용암은 뜨겁고 바닷물은 펄펄 끓고 있었지. 나의 수중차는 해저 지진 관측용으로 만들어진 내진(지진을 견뎌 냄), 내열(높은 열에서 질이 변하지 않고 견딤)용이기 때문에 간신히 가까이 갈 수가 있었네. 만약에 그곳에 해저 도시의 도움이 있었다면 많은 인명 피해가 있었을 걸세. 설령 해저 도시가 없었다 해도 때마침 탐광(땅 속에 있는 각종의 광맥이나 광산을 찾아내는 일) 기술자가 있었을지도 알 수 없지." "신부님.“ 나는 상자를 가리키며 물었다. "저의 숙부님의 물건들은 그곳에서 발견했습니까?" "그렇다네. 그렇지만 짐, 순서를 따라 설명할 테니까 조금만 더 참고 들어주게. 나는 뜨거운 용암 언저리를 따라 과학적인 관측을 계속하는 것과 동시에 불행한 조난자를 찾으려고 했지. 물론 바닷물은 흙탕이어서 수중차의 불빛이 통하지 않더군. 더군다나 분화 때문에 활동이 둔해져 매우 힘이 드는 일이었네. 이윽고 거의 망가져 가던 음파 탐지기가 구조 신호를 잡았네. 그것이 자동 긴급 발신기에서 나오고 있다는 것을 금방 알았네. 나는 구조 신호의 음파를 따라 용암원의 언저리를 전전했네. 간신히 상대방의 위치를 찾아 냈지. 그것은 수중차였네. 진흙과 암석에 절반이 묻혀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지. 나는 신호를 보냈으나 대답이 없었네. 그렇지만 생존자가 있을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에 나는 이든나이트 잠수복을 입자마자 바다로 나가 상대방 수중차에 옮겨 탔네." "저런! 모르셨습니까? 그건 자살 행위입니다!" 나는 그만 부지중에 외쳤으나 사령관이 흘기는 바람에 입을 다물고 말았다. "사람을 구하려면 위험을 무릅써야 할 때도 있지. 짐, 그러나 수중차에는 아무도 없었네. 필경 그 수중차는 폭발로 휘날려 바윗더미에 덮여서 움직이지 못하게 됐던 거겠지. 로커는 열린 채였고 이든나이트 잠수복은 없었네." "그렇다면 탔던 사람들은 모두 탈출했던 겁니까?" "그럼. 하지만 안전한 장소까지 피신했는지 어쨌는지는 알 수 없지. 나는 아무도 없는 수중차 안에서 자네에게 보여 준 물건들을 발견했네만, 곧 그것을 가지고 되돌아오지 않으면 안 되었네. 가까이서 또 폭발이 일어나 하마터면 뜨거운 흙탕물에 휘말릴 뻔 했기 때문일세." "그래서...... 신부님은...... 우리 숙부님이 어떻게 되었다고 생각하십니까?" 나는 더듬거리면서 물었다. 나는 타이드 신부가 동정이나 위로의 말을 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타이드 신부의 파란 눈은 날카롭고 차갑게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아까의 물건들이 스튜어트 이든 것이 아니라고 자네가 그래 주길 바랐던 걸세." "아뇨, 분명히 숙부님의 물건들입니다. 그래도 나는 숙부님이 죽었으리라고는 믿을 수 없습니다." "나도 스튜어트 이든이 무사하기를 빌겠네." 타이드 신부는 또다시 밝게 빛나는 바다에 눈길을 돌리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짐, 문제는 자네 숙부님의 생사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는 끝나지 않게 되어 있네." "그밖에 무슨 일이 있습니까?" "나는 직업상 인간의 죽음에는 익숙하네. 가령 누가 죽는데도 놀라거나 다급해 하거나 하지를 않지. 그런데 이번 해저 화산 폭발은 내게 또 다른 문제를 제기해 주었다네." 타이드 신부는 무엇인가 알아내려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짐, 자네 숙부님은 어째서 인도양에 계셨을까?" "알 수 없습니다. 요전에 제가 연락을 했을 때는 해저 도시 마리니아의 집에 계셨습니다." "요전이라니, 언제쯤?" "분명히 두 달 전이었습니다." "거기서 숙부님은 무얼 하고 계셨나?" "앓고 계셨습니다. 일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편치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그랬었군, 즉 말하자면 자네 숙부님은 자기 병에 절망하고 있었어. 그래서 결정적인 일을 할 생각이 들었을는지도 모르겠군." "결정적인 일이란 무엇입니까?" 내가 물어 봐도 타이드 신부는 곧 대답해 주지를 않았다. 신부는 30초 가량 슬픈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간신히 말했다. "인도양의 해저 지진은 예지 할 수 없었네. 그것은 인공적인 것이었다는 증거일세. 가장 훈련을 쌓은 최상급의 지진학자들 밖에 모르는 일이지만, 현재 온 지구 전역에 지진 예지망이 쳐 있어서 어떠한 지진이라도 일어나기 전에 반드시 미리 알 수 있게 되어 있네. 그런데 이상한 일은 요즈음 예지 되지 않은 지진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네. 인도양의 해저 폭발도 그 중의 하나일세. 이 지진들은 모두가 해저 도시에서 떨어진 바다 밑에서 일어나고 있네." "지금까지 몇 차례입니까?" "여섯 번일세. 그것도 회를 거듭할수록 강하게 되고 진원지도 해저 깊이 되어 있다네. 말하자면 누군가가 인공 지진의 기술을 완성시키기 위해서 실험을 하고 있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단 말일세." "설마 제 숙부가......" 나는 망연해졌다. "그렇다네, 짐...... 만약에 스튜어트 이든이 살아 있다면 어떠한 관계든 있을 것일세." 타이드 신부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해저 박물관   인공 지진의 실험! 그 장본인이 나의 숙부라고 타이드 신부는 말한다. 놀라움을 넘어서 나는 몹시 화가 치밀어왔다. 타이드 신부는 사령관에게 인사를 하고 방을 나가려고 하였다. 그것을 내가 불러 세웠다. "숙부님의 소지품을 놓아두고 가실 수 없습니까?" 타이드 신부는 사령관을 힐끗 쳐다보더니 머리를 가로 저었다. "언젠가는 자네에게 건네줄 작정이지만 당분간 내가 맡아 두겠네. 이것들은 아주 소중한 증거품들이니까. 지금은 나 혼자서 조사하고 있지만, 그 중 해저 함대의 조사국이 나서게 되면 역시 증거품으로 필요하게 될 테니까." 그 이상 타이드 신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필경 사령관이 나에게 그만 물러가라고 명령을 내렸으리라고 생각하지만 전연 기억에 없다. 어느 새엔가 나는 공중 전화 박스 속에 들어가서 해저 도시 마리니아에 있는 숙부님의 집을 호출하고 있었다. 대답이 없었다. 사무실도 비어 있었다. 계속해서 호텔, 수중차 발전소에 전화를 걸었지만 숙부는 물론 숙부의 충실한 조수 기데온 파크도 없었다. 타이드 신부의 이야기는 정말인 것 같았다. 숙부는 완전히 모습을 감춰 버린 것이다. 다시 내 정신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교내의 해저 박물관 홀에서 커다란 세계 지도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은 메르카토르(네덜란드 지리학자)식 투영 도법으로 그려진 것이지만 육상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에게는 전연 소용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왜냐 하면 육지의 부분은 강과 큰 도시를 빼고는 새까맣게 칠해 버렸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바다의 부분은 아름다운 색깔로 밝게 빛나고 있었다. 청색과 녹색은 바다 밑의 깊이를 나타내고 있다. 진홍빛과 오렌지색은 바다 밑의 산악지대를 나타내고 있다. 황금색은 해저 도시, 거미줄처럼 둘러친 은빛 선은 파이프 선이나 진공 튜브 길, 어둡게 흐린 부분은 바다 밑의 광물 자원을 나타내고 있다. 해저에는 무한한 부(쌓은 재화)가 있다. 억만장자를 백만 명 만든다 해도 아직 남을 정도다. 그러나 나의 아버지나 숙부처럼 해저 개발자들이 목숨을 걸고 쌓아 올린 것을 때려부수려는 사람들도 있다. 부정한 수단으로 사복을 채우려는 야심가도 있다. 타이드 신부의 말에 따르면 위대한 해저 개발자의 한 사람인 스튜어트 이든이 용서할 수 없는 악당이 된다. 그런 바보 같은 일이 있을 수 있는가! 나는 나 자신에게 타이르며 지도 앞을 떠났다. 이 해저 박물관에는 해저 개발의 역사를 말하는 여러 가지 물건이 전시되어 있었다. 어떻게 해서 여기에 오게 됐는지 나는 전연 생각나지 않았다.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불렀다. 어느 사이엔가 밥과 할리가 박물관에 와 있었다. "좋은 꿈이라도 꾸고 있나? 아까부터 밥하고 내가 과 있는데도 알지 못하니 어이가 없네그려." 할리가 일부러 과장해서 말했다. "잠깐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 나는 얼버무렸다. "이것 좀 보게!" 밥이 유리로 된 전시 케이스를 가리켰다. 그 안에는 가느다란 금속이 들어 있었다. 직경 10cm, 길이 90cm의 끝이 뾰족한 원통이다. 표면에는 무수한 발화점이 즐비하여 마치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것이다. "지저 굴진(땅 속을 파 들어감)카의 모형일세. 밥은 케이스 안에 있는 카드를 가리켰다. "어럽쇼! 이 기계로 인간이 해저 지하에 자유로이 파들어 갈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놀라 외쳤다. 그러자 할리가 득의양양하게 말했다. "지저 굴진 카 얘기라면 내게 물어 보게. 우리 아버지는 이 기계의 드릴을 몇 개인가 사들였다네. 아버지 말로는 이 드릴은 해저의 굳은 바위를 버터처럼 깎아 낸다는 거야. 이 드릴을 구비한 지저 굴진 카는 인간이 타고서 바다 속을 전진하는 잠수함처럼 바다 밑 아래 바위 속을 거칠 것 없이 전진하는 걸세. 그래서 드릴을 가진 인간에게 막대한 이익을 가져다주는 거라네." "한심한 놈이야! 자넨 언제나 돈벌이 생각밖엔 할 수 없나?" 라고, 밥은 싸울 듯이 말했다. "돈벌이가 나쁜가? 돈이 없으면 아무 일도 못하네......" 할리도 맞서며 밥을 쏘아보았다. "잠깐만.“ 나는 싸움을 말리기 위해서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확실히 이 모형은 훌륭하지만 실물의 경우는 어려운 문제가 있네." "사실은 그렇다네." 하고, 할리가 비로소 털어놓았다. "지저 굴진 카의 동력은 원자력이니까, 고열을 방출하네. 거기다가 드릴이 고속으로 암석을 깎기 때문에 마찰열이 생기네. 더욱이 해저 밑의 땅 속으로 수 km를 파 들어가면 무서운 지열이 있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타기 위해서는 강력한 냉방 장치의 개발이 필요하다네." 할리가 말을 마치자, "여보게." 하고, 밥이 탁상시계를 가리키며 외쳤다. "1700시까지 이제 5분밖에 안 남았어. 빨리, 사령관실로 가세." 잠시 후 우리들 세 사람은 사령관실의 커다란 책상 앞에 서 있었다. 사령관은 북극의 바다처럼 차가운 눈초리로 우리를 둘러보았다. "여러분, 자네들은 잠수 사관 후보생으로서 마침내 최후의 실지 훈련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이제 온 세계에는 전쟁이라는 것이 없다. 그러나 우리 해저 함대에는 여전히 중대한 임무가 부과되어 있다. 갖가지 해저의 위협으로부터 인명과 재산을 지키고, 나아가서는 해저 개발의 추진력이 되는 것이다. 해저 개발에는 각국의 협력 태세가 필요한 것이다. 이든나이트는 미국에서 발명되었으나, 해저 농원의 기술은 영국에서 개발되었다. 지저 굴진 카는 독일의 착상이다. 지진 예지의 기술은 일본인의 손으로 개발되었다. 바다의 위험에 대해서도 온 세계가 합심해서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 해저 함대는 과거의 빛나는 영광에 언제 까지나 취하고 있을 수는 없다. 세계 정세와 변화를 인정하고 새로운 해저 개발 기술의 진보에 이바지해야 할 것이다. 시간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사령관은 잠수사관 학교의 표어를 입에 올려 또 한번 우리를 돌아보았다. "여러분은 우리 잠수 사관 학교의 학술, 훈련, 더욱이 심리 테스트에 있어서 모두가 우수한 성적을 올리고 있다. 그래서 특히 새로운 과학 기술의 특별 훈련생으로 발탁된 것이다. 여러분은 오늘 밤 2100시(밤 9시)에 출발하여 뉴욕과 싱가폴을 경유해서 해저 도시 그라카타우로 향하는 것이다. 임무에 대해서는 해저 함대 그라카타우 기지에서 지시를 받도록. 이상 끝. 해산!" 우리는 재빠르게 경례를 하고 뒤로 돌아서 사령관 실을 나왔다. "내가 말한 대로지. 정보를 입수하고 있었거든." 할리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렇지만 특별 훈련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알지 못한다.     해저 지진 도시   우리들의 제트기는 속도를 늦추면서 해상에 떠 있는 엑스(X)형의 비행장을 향해 고도를 내렸다. "저 5천 미터 바로 아래에 해저 도시 그라카타우가 있다네." 할리는 그 해저 도시가 자기 집이나 되는 것처럼 자랑하는 것이었다. 활주로에 착륙한 제트기는 곧 굵은 로프로 칭칭 묶였다. 항공 모함의 경우와 같았다. 우리는 제트기에서 열대의 태양이 내리쪼이는 활주로에 내려섰다. 비행장은 3백 미터의 활주로가 두 줄기 직각으로 교차한 곳이다. 주위의 해면은 꽤 파도가 세었다. 그렇지만 해면에서 활주로까지는 약 70미터 가량 되기 때문에, 어떠한 높은 파도가 밀어닥쳐도 안전한 것이다. 떠 있는 비행장은 해저 도시의 현관인 동시에 배기(공기를 밖으로 뽑아 냄)장치의 역할도 하고 있었다. 이든나이트로 덮인 유달리 특별한 관이 신선한 공기를 해저 도시로 보내고, 더럽혀진 공기를 해상으로 토해 내는 것이다. 낡은 형의 해저 도시는 더러워진 공기를 정화(더러운 것 없애고 깨끗하게 함)해서 다시 사용하는 장치를 구비하고 있지만, 최신식의 해저 도시 그라카타우에서는 해상에서 직접 신선한 공기를 끌어들이는 방식을 사용한 것이다. 우리들은 5천 미터의 바다 밑 공기를 뱉어 내는 배기통 옆을 지나칠 때, 차고 축축한 공기의 냄새며, 염수(소금물) 냄새며, 사람들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그것은 그리운 냄새였다. 할리의 안내로 우리들은 바다 밑으로 향하는 승강기에 올라탔다. 문이 닫히자 승강기는 무서운 속력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나와 밥은 저도 모르게 잡을 것을 찾으려고 허둥대었다. 이것을 보고 할리가 낄낄 소리 내어 웃었다. "자네들은 무엇인가 꽉 잡지 않으면 서 있을 수 없나? 승강기가 무서워서야 어디 지진이라도 일어났을 땐 어떡할 건가?" 그러자 밥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면서도 마주 대답을 했다. "승강기 속도에 놀랐을 뿐이네. 자네가 서 있을 수 있다면 나와 짐도 서 있을 수 있지." 승강기는 4천 미터의 바다 밑까지 단숨에 내려갔다. 문이 열리자, 나는 무릎이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로 별세계에 첫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이곳에는 눈부신 푸른 하늘도, 상쾌한 바닷바람도 없었다. 머리 위에 있는 것은 오직 깊이 5천 미터의 인도양 뿐인 것이다! 해상으로 통하는 승강기의 발착소는 해저 도시의 최상층에 있었다. 할리의 안내로 우리는 다른 승강기에 갈아타고 중간에서 긴 통로를 걸어 최하층부 부근에 있는 해저 함대 기지로 향했다. 넓은 녹지 내에서는 땅 위에 나무와 풀이 밝은 태양등 밑에 자라고 있었다. 바다 밑에 사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 이상의 사치는 없을 것이다. 두터운 현창(뱃전에 댄 창문)으로 도움 밖에 펼쳐지는 해저 농원이 보였다. 청백색의 해저 식물의 숲이 흔들흔들 흔들리고 있다. 우리는 상업 지구를 지나갔다. 이곳에는 많은 상사가 모여 해산물의 매매와, 주식이나 투기의 거래가 번창하게 행하여지고 있었다. "저것을 보게. 우리 아버지의 착안일세!" 할리가 외쳤다. 그것은 '그라카타우 수속 거래소'의 출입구였다. 기둥과 벽이 잠수함을 본따서 녹색으로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우리 아버지는 주식 거래소 창립 멤버의 한 사람으로 설계를 맡았었지." "어럽쇼, 그건 또 아주 훌륭하신데......." 밥은 칭찬인지 빈정대는 것인지 잘 분간할 수 없는 묘한 말을 했다. 이것이 할리의 비위를 거슬린 모양이다. "밥, 자넨 그라카타우가 마음에 안 드나?" "아니, 그렇지 않네. 떠 있는 비행장에 깜짝 놀랐네. 딴 해저 도시에선 보지 못했으니까." "다른 구식 해저 도시를 그라카타우하고 같이 취급하지 말아주게. 해상에 떠있는 비행장 건설비는 자그마치 5억 불이네! 완성하기까지 3년의 세월이 걸렸지. 그렇지만 투자 대상으로서는 확실한 걸세." 할리는 목소리를 낮추고 계속하였다. "우리 아버지는 해상에 뜨는 비행장 건설의 정보를 입수하자 재빨리 투자했었네. 어떻든 그 통풍관은 해저 도시의 생명줄이니까 말일세. "통풍관이 끊어질 염려는 없나?" "어떨 때 끊어지리라고 생각하나?" "폭풍우 때지.“ "걱정 말게 .통풍관은 절대로 끊어지지 않는 구조이네. 그리고 해상은 아무리 폭풍우가 휘몰아쳐도 비행장 주위에는 전자 방파 장치의 부이(부표)가 떠 있으니까 직접 피해를 받는 일은 없네." "이 지방은 지진이 많이 발생하는 지대인데, 지진 때 굉장히 높은 물결이 휘몰아치면?" "해일 말인가? 지진으로 일어나는 높은 물결은 정확하게 말하면 해일이라고 그런다네. 해일은 분명히 해안에서는 속도가 빠르고 무서운 파괴력을 가지고 있지. 그렇지만 해저에서는 그처럼 무서운 건 아닐세. 해일이 지나간 것이 측량기에는 나타나도, 우리들은 느끼지 못할 정도니까." 밥이 잠잠해졌기 때문에 할리는 부드러운 목소리 가 되었다. "밥, 지진을 무서워하지 말게. 이곳 주민들은 모두 지진쯤은 아무렇지도 않다네. 자기들 스스로가 이곳을 '해저 지진 도시'라고 부를 정도니까. 그렇지만 이 해저 도시는 진도(지진이 일어났을 때의 지면의 진동의 세기) 9의 지진에도 이겨낼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단 말일세. 진도 9도 이상의 지진 같은 건 좀처럼 일어나는 게 아닐세. 그래서 우리 아버지는 안심하고 장사를 할 수 있는 걸세." 확실히 할리는 해저 도시 그라카타우의 생활이나 지진에 대해서 상세하였다. 그렇지만 친구에 대한 동정심이 하나도 없었다. 가장 싫어하는 지진 이야기를 듣고, 밥의 얼굴이 창백해지고 굳어졌어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했다. 다행히 해저 함대 기지 정문 앞에 이르러 간신히 할리의 이야기는 끝났다. 우리는 진홍빛 제복을 입은 위병에게 신분증명서를 보이고 본부로 들어갔다. 본부에서는 깨끗이 면도를 한 부관이 우리를 맞았다. "여러분은 오늘로써 당 기지에 배속된다. 해리스 준위가 제군을 기숙사로 안내한다. 그리고 1600시에 스테이션(장소) 케이(K)에서 다나까 중위를 만난다. 여러분들은 다나까 중위 지휘하에 들어간다. 이상." "스테이션 케이(K)는 어디 있습니까?" 할리가 불안스럽게 물었다. "이곳에서부터 3천 미터의 지하다." "3천......." 할리는 숨을 삼켰다. 정보통인 할리도 해저 도시의 지하에 관한 정보까지는 입수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나와 밥도 질문하고 싶었는데, 그러기 전에 부관이 말했다. "그러면 해리스 준위가 기숙사에 안내한다. 임무에 관해서는 다나까 중위에게 물어라." 부관이 '해산'이라고 하기 전에 할리가 외쳤다. "부관님, 이 해저 도시에 나의 가족이 있습니다. 아마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만, 나의 아버지는 이 곳에 주식 거래소를 창설한 벤 단소프입니다. 아버지를 방문할 수 있는 허가를 받을 수 있습니까?" 부관은 잠자코 할리를 바라보았다. "괜찮을까요?" 할리가 재촉하자 부관은 냉정하게 말했다. "안된다." "어째서입니까? 할리는 불만스럽게 되물었다. "아까 말한 바와 같이 자네 직속 상관은 다나까 중위다. 다나까 중위에게 허가를 받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필경 안되리라고 생각한다. 그라카타우 기지의 훈련을 위해 배속 받은 사관 후보생은 최초의 두 주일은 외출할 수 없는 것이 규칙이니까." "두 주일이나?" 할리는 다시 불만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그러나 부관님, 나의 아버지는 해저 도시 그라카타우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며......." "알고 있다. 그러나 군은 한낱 사관 후보생이다!" "알겠습니다." "비로소 할리의 목소리는 자신을 잃었다. 우리는 경례를 했다. 이 때 밥이 말했다. "또 하나 질문이 있습니다." "무엇인가?" "우리는 아직 자기 임무에 대해 아무 것도 아는 바가 없습니다. 말씀해 주실 수 없습니까?" "좋다!" 부관은 갑자기 인간적인 표정이 되었다. "나는 자네들이 부럽다." "부럽다고요?" "그렇지. 자네들의 임무는 우리 해저 함대의 역사에 새로운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것이다. 자네들 세 사람은 해양 지진학, 즉 해저 지진의 과학을 습득하기 위해서 파견되어 온 것이다. 해양뿐만 아니라 해저의 지하까지 과학적 조사를 하는 것이다." 바다 밑의 또 그 지하의 과학 조사!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 것 같은 임무가 아닌가! 우리들은 해리스 준위에게 안내되어 기지 안의 기숙사로 향했다. 거대한 수리 독(뱃도랑)에는 이든나이트로 뒤덮인 잠수함의 웅장한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독에서 울려오는 금속성이 더 한층 기지다운 활기를 느끼게 하였다. 나는 걸으면서 부관의 말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번의 훈련 장소는 해저의 지하 3천 미터다. 3천 미터의 해저조차 무서운 수압을 받고 있는데, 또다시 3천 미터나 굳은 바위 아래로 들어간다면 위험은 몇 배 아니 몇 십 배나 될 것이다. 해저 조사는 나의 숙부 스튜어트 이든이 발명한 이든나이트 포장에 의해 가능해진다. 그렇지만 해저 밑바닥의 땅 속 조사는 아직 미지수다. 지금 원자력 지저 굴진 카가 실험 단계에 들어가 있지만 실제로 사람이 올라타고 땅 속을 안전하게 항행하기까지는 많은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첫째로 기체 내의 냉방이 문제다. 둘째가 기체의 강도다. 이든나이트 강철판(장갑)은 3천 미터까지의 수압에는 견디어 낼 수 있지만, 3천 미터나 더한 암석의 무게를 지탱할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이다. 셋째로 방사능에 따른 오염 문제다. 최초의 원자력 드릴은 네바다 산맥 전체를 방사능으로 오염시켜 버려서 100년 동안이나 인간이 가까이 가지 못했다고 한다. 나는 밥과 할리를 힐끗 쳐다보았다. 지금은 밥보다도 할리 쪽이 맥이 빠져 힘이 없었다. 자랑한 정보에는 스테이션 케이(K)에 관한 것이 빠져 있었으며, 해저 도시 그라카타우의 중요 인물인 아버지의 권위도 해저 함대의 규칙을 꺾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할리가 불쌍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지진 예지   심해(깊은 바다)에는 태양 광선이 미치지 않기 때문에 육상과 같은 낮이 없다. 바다가 생긴 이래로 심해는 줄곧 밤만이 계속되고 있다. 때문에 시간이 지나는 것을 잘 알 수가 없다. 그래서 버뮤다에 있는 해저 함대 관측소는 하루를 스물 넷으로 나눈 '해저 시간'을 정하여, 이것이 온 세계의 해저 도시에서 쓰여지게 되었다. 1515시에 해리스 준위가 우리들을 스테이션 케이(K)로 안내하기 위해서 기숙사까지 마중을 나왔다. 우리들은 승강기로 해저 도시의 맨 하층부에 내렸다. 그렇지만 우리들이 향하는 곳은 여기보다 훨씬 지하에 있었다. 최하층부의 음침한 창고 지구를 지나치자 통풍관이 가득찬 어두운 터널이며, 해저 도시의 활동을 지탱하고 있는 각종의 파이프가 보였다. 또한 펌프의 돌아가는 소리가 쉴 새 없이 들렸다. 해저 도시에서 사용한 더러운 물을 모두 이곳에 모아 굉장한 압력으로 도움 밖의 바다로 배출하고 있는 것이다. 터널 안의 통로로 들어서자 머리 위에서 물방울이 떨어졌다. 아치형의 친정은 검은 현무암(검은 잿빛의 화산암)으로, 해저 도시를 만들 때 해저의 암반(고르지 않은 큰 바위로 된 땅)을 파던 드릴 자국이 아직 남아 있었다. 이윽고 우리들은 금속 문에 부딪쳤다. 그 속에서 제복의 위병이 나와서 외친다. "정지!" 해리스 준위는 우리들의 배속 명령서의 사본을 보였다. 위병은 엄격한 눈초리로 명령서의 문자를 한 자 한 자 확인하듯이 읽고 나서야 돌려주었다. 기지보다 경계가 엄중하다. 스테이션 케이(K)는 아주 중요한 장소인가 보다. "가세." 해리스 준위는 문을 들어서자 우리들을 다른 승강기로 안내했다. 그것은 내가 아직까지 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조그만 원형의 승강기의 바구니가 원통형의 틀 속에 매달려 있는 것이었다. 바위를 파낸 틀에는 아름답게 빛나는 이든나이트의 엷은 막이 직접 둘러쳐져 있었다. 그것도 그럴 만하다. 회전축(긴 손잡이)에는 바닷물과 암석의 무서운 압력이 걸려 있는 것이다. 우리들이 올라타자 승강기는 내려가기 시작한다. 주위의 이든나이트가 푸른색, 흰색, 초록색 등 가지 각각으로 변화한다. 그 아름다운 빛이 나를 격려해 주는 것 같았다. 숙부가 발명한 이든나이트는 우리 이든 집안의 자랑인 것이다. 언뜻 보니 할리의 얼굴은 백묵처럼 새하얗다. 밥은 굳어진 얼굴을 돌리고 있었다. 수 분 사이에 승강기는 3천 미터의 굴대를 내려갔다. 지금 우리들의 머리 위에는 두께 3천 미터의 암석층과, 거대한 해저 도시와, 그 위에 또 깊이 3천 미터의 인도양이 있는 것이다. 우리들은 승강기를 나와 이든나이트 로커를 지나 아치형 천장의 터널 안으로 들어갔다. 이미 이곳에는 이든나이트가 둘러 처져 있지 않았다. 필경 압력 콘크리트로 보강했을 뿐일 것이다. 몹시 습하고 어둡다. 해저에서 3천 미터나 견고한 바위로 차단되어 있다고 하는데도, 천장이며 벽에서 물이 스며든 자리가 많았다. 그것을 보고 있는 사이에도 불어서 조그만 물방울이 되어 벽을 타고 흘러내려서 현무암 바닥에 새겨진 가느다란 도랑으로 들어갔다. "여기에는 이든나이트가 씌워 있지 않다네. 사용하면 곤란하지. 지저 굴진 카가 출입할 수 없게 되니까 말이네." 하고, 해리스 준위가 말했다. 이 말을 듣고 나는 아연해졌다. 마치 꿈 같은 계획이 아닌가. 지저 굴진 카가 굳은 현무암 속을 자유롭게 달리며 암벽을 뚫고 이 지저 기지로 출입한다는 것이다. 잠시 후 우리들은 스테이션 케이(K)의 본부에 닿았다. 본부라고는 하나 인공조명이 붙은 자그만 사무실이다. 우리들의 새 지휘관인 다나까 중위는 여위긴 했지만, 정력적인 느낌이 드는 일본인이었다. "세 사람 모두 잘 왔네.“ 중위는 우리들의 손을 잡고 말했다. "나는 군의 숙부, 스튜어트 이든 씨의 일을 잘 알고 있다네. 훌륭한 인물일세. 일부 사람들이 하는 말에 신경 쓸 필요 없네. 모두가 시기하고 있단 말이네." "고맙습니다." 하고, 나는 말했지만 별로 반갑지가 않았다. 숙부의 나쁜 소문이 이런 곳까지 퍼져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않았었다. 우리들은 의자에 앉았다. 추운 방이다. 조명이 있는데도 어쩐지 컴컴한 느낌이 든다. 그것은 필경 축축이 젖은 검은 현무암의 벽 때문일 것이다. 더욱이 머리 위에 8천 미터에 달하는 암흑의 물과 바위가 있다는 것을 우리들이 알고 있는 탓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추운 것은 어째서일까? 다나까 중위는 우리들의 의문을 미리 알아차리고 말했다. "군들은 여기가 어째서 덥지 않은지 이상하게 생각하겠지?" 옳은 생각이다. 이만큼 깊이 땅 속으로 들어왔으면 지구 내부의 열로 온도가 꽤 있을 터이다. 그런데도 추울 정도로 서늘하다는 것은 강력한 냉방 장치가 가동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곳이 서늘한 것은 심리적인 문제, 즉 해저에서 3천 미터 지하에 있다는 공포심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가장 큰 원인은 주위의 바위에 해저로부터 찬물이 스며들어 지열을 막고 있기 때문이다. 머지 않아 지오존데를 사용하기 시작하면 원하는 대로 더워질 테니 걱정할 것 없네." 다나까 중위는 우리들처럼 가느다란 얼굴에 미소를 띄었다. "지오존데......." 들어 본 일은 있어도 본 일은 없다. 거기 대해 내가 질문하려고 하는 순간 할리가 초조한 목소리로 물었다. "중위님, 지금 곧 24시간의 외출 허가를 주실 수 없습니까. 가족들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습니다." "가족?" "아버지입니다." 할리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저의 아버지는 벤 단소프입니다. 해저 도시 그라카타우의 중요 인물로서......." "알고 있네." 다나까 중위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그렇지만 외출 허가는 안 된다. 금일부터 2주일간 자네들 세 사람은 매일 16시간 여기 있지 않으면 안되네. 즉 하루 24시간 중에서, 쉬는 시간인 8시간을 제하고는 나머지 전부가 근무 시간이라는 것일세. 알겠나?" 그렇게 말하고 다나까 중위는 의자에 앉아 책상 위에 있는 다이얼을 돌렸다. 그러자 뒤 벽면에 지도가 나타났다. 내가 본 일도 없는 이상한 지도다. 그것은 해저의 지형을 나타내고 있는 것 같았으나, 그 위에 쓰여진 무수한 선과 그림자의 부분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자네들은 사관 후보생으로서 지금까지 예가 없을 만큼 어려운 훈련을 받기 위해 이 스테이션 케이(K)에 배속된 것이다. 훈련의 내용은 지금 우리들의 주위를 둘러 싼 바위, 해면 밑 8천 미터, 해저 밑 3천 미터의 암반의 조사다.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는 말로써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다." 일단 말을 끊었다가 다나까 중위는 계속했다. "자네들이 이곳에 온 목적은 해저 지진 예지 과학을 습득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우리들의 훈련은 시작되었다. 그것은 굉장한 특별 훈련이었다. 잠수 사관 학교에 처음 들어갔을 무렵, 훈련이 힘들어서 비명을 올렸지만, 이번의 특별 훈련은 그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는 매일 해저 아래 무서운 바위 속에 쳐 넣어져서 쉬는 시간도 없고, 숨 쉴 새도 없이 몽땅 쥐어짜졌다. 학습 때나 실습 때나 다나까 중위의 독설이 계속해서 우리들을 채찍질했다. 다나까 중위는 부하를 아끼는 훌륭한 군인이었으나, 겨우 2주일 동안만으로 우리들의 머릿속에 해저 지진학의 대강을 집어넣기 위해서는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들은 다나까 중위에게 살해당하는 것이나 아닌가 하고 불안해질 때도 있었다. 우리들의 실수를 발견하고 다가온 때의 얼굴은 마치 사람을 죽이려고 하는 만큼 무서운 모습이었다. 최초의 공부는 지진의 이론이었다. 장시간의 수업과 실험이 반복되었다. "지각(지구의 겉껍데기)이란 무엇인가? 암석은 튼튼한가? 아니 압력에 대해서는 약하다. 쉽게 어긋나거나 움직이거나 한다. 평균해서 이동하는가? 그렇지는 않다. 부분적으로 융기하지나 함몰하거나 옆으로 밀려 어긋나거나 뒤틀리거나 한다. 그리고 지진이 일어나는 것은 바위에 가소성 (고체가 힘을 받아 형체가 바뀐 것이, 그 힘이 없어져도 처음 모양으로 바뀌지 않는 현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뒤틀리는 게 축적된다. 그것이 점점 증대해져서 마침내 폭발한다. 한 마디로 말하면 지진은 돌연 풀어놔 준 뒤틀림의 에너지를 소산(흩어지고 사라지고 하여 없어짐)하기 위한 진동이다.“ 라고, 다나까 중위는 설명했다. 또한 우리들은 지진파(지진으로 인하여 사방으로 퍼지는 여러 가지 파동)의 주요한 형에 대해서도 배워야 했다. 최초로 지진 관측기에 잡히는 것이 피(P)파(종파)다. 이것은 가장 빠른 것으로서 지저의 하층을 초속 8킬로의 속도로 전달되고, 그 진행 방향하고 수직의 진동, 즉 세로로 흔들림을 일으킨다. 다음에 에스(S)파(횡파가 온다. 이것은 초속 5킬로로 전달되며, 진행 방향과 수평 진동, 즉 옆으로 흔들린다. 그리고 가장 길고 강력한 엘(L)파가 온다. 이 엘( L)파가 무서운 파괴력을 뒤흔드는 것이다. 따라서 피(P)파하고 에스(S)파를 관측하면 파괴적인 엘(L)파를 예지 할 수 있다. 이러한 기술을 우리들은 배운 것이다. 우리들은 다나까 중위의 뒤에 걸려 있는 것 같은 관측 지도를 한 사람씩 작성해야 했다. 그것은 스테이션 케이(K)에서 160킬로 이내의 지각에 축적되어 있는 뒤틀림, 단층, 열 에너지, 아주 약한 지각 진동, 암반의 이동 등 지진에 관련이 있는 모든 자료를 나타낸 것이다. 우리들의 지도를 하나씩 비평하자, 간신히 다나까 중위는 한숨 돌렸다. 우리도 휴식 시간을 얻어 의자에 걸터앉아 콘크리트 벽에 생긴 소금 부스러기와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돌연 밥이 중위를 보고 물었다. "중위님, 해리스 중위는 여기는 장래 지저 굴진 카가 출입하기 위해 이든나이트를 둘러칠 수 없다고 했습니다만 사실입니까?" "아니, 예지의 문제일세." 다나까 중위는 미소를 띠면서 일어서서 우리들이 만든 지도를 만졌다. "여기에 쓰여 있는 자료는 모두 관측 기계로 입수한 것일세. 기계는 모두가 대단히 민감해. 만약에 해저 도시 옆에 놓아둔다면 교통 기관의 진동은 물론 펌프의 진동마저 기록해 버릴 걸세. 그래서 스테이션 케이(K)는 해저 도시로부터 3천 미터나 지하에 설치되어 있다네. 자네들도 여기서는 조용히 걸어다녀야 하네. 무거운 것을 바닥에 떨어뜨리거나 하면 안 되네. 이든나이트의 보호막을 둘러치지 않은 것도 관측 기계 때문일세. 지진의 진동은 바위로 전달되어 오네. 만일에 이 스테이션 안에 이든나이트를 둘러쳐 버리면 지진의 진동을 막아서 관측 기계가 소용이 닿지 않게 되네." 여기서 다나까 중위는 말에 힘을 주었다. "우리들의 하는 일은 극비일세. 이 스테이션 밖에서는 우리 일에 관해서 절대로 말을 해선 안 되네." "어째서입니까?" 내가 물었다. 그러자 다나까 중위의 길다란 얼굴이 갑자기 일그러졌다. "해저 지진 예지 기술에는 비참한 과거가 있기 때문이네. 초기의 해저 지진 예지 기술 개발자들은 지나치게 자신을 가졌었지. 그것이 생각지도 않은 과오를 범했네. 물론 당시는 오늘날 우리들이 사용하고 있는 것 같은 우수한 관측 기계가 없었으며, 우리들이 손에 넣고 있는 것 같은 자료도 없었네. 그러나 과오가 너무나 많았네. 그들은 때때로 부정확한 예지 정보를 발표했었지. 그 최악의 예가 일본의 해저 도시 난세이 나하 경우였네." 다나까 중위는 한 손을 들어서 저주스러운 기억을 떨어버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창백한 이마를 문질렀다. "나는 해저 도시 난세이 나하의 비극을 너무나 잘 알고 있네. 그 때의 생존자의 한 사람이기 때문이지. 해저 도시는 완전히 파괴되었네 " 우리들을 둘러보면서 다나까 중위는 계속하였다. "나는 아직 어린애였지. 우리 가족은 해저 도시 난세이 나하가 생겼을 때 요꼬하마에서 이주했었네. 그해 여름 지진이 계속해서 일어났지만 해저 도시의 사람들은 아무도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네. 나는 아주 잘 기억하고 있지. 어머니가 지진이 두려워서 해저 도시에서 떠나고 싶다고 애원했어도 아버지는 상대하지 않았었네. 한편으론 돈 관계도 있었지. 요꼬하마에서 해저 도시에 이주하느라고 아버지는 저금을 거의 다 써 버렸기 때문이었네. 그렇지만 결국은 돈 문제보다도 용기의 문제였겠지. 아버지는 지진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네. 당시 거기에는 해저 지진의 세계적인 권위자라고 불린 지진학자가 있었지. 자네들도 이름쯤은 알고 있을 테지." "존 고에쓰 박사 말일세. 고에쓰 박사는 해저 도시의 지진 예보 스테이션의 주임이었지. 그래서 텔레비전을 통해서 지진 예보를 하였네. 일련의 지진은 작은 것 뿐으로서 해저 도시 난세이 나하를 파괴할만한 큰 지진이 일어날 염려는 전연 없다고 잘라 말했네. 해저 지도를 보이면서 난세이 나하 위치 해구에는 앞으로 1년간 대지진이 일어날 위험이 전연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피난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이야기했네. 해저 지도는 설득력이 있었지. 그러나 고에쓰 박사의 예보는 틀린 것이었네." 다나까 중위는 검은 머리를 흔들며 갸름한 얼굴을 괴로운 듯이 찡그렸다. "그것은 금요일 날 점심 전이었지. 내가 학교에서 돌아오니까 양친이 나를 본토의 학교로 도로 보낼 얘기를 하고 있었네. 마침 학기가 끝날 때여서 때가 좋았었지. 전학 얘기를 끄집어낸 분은 어머니였어. 이 때 어머니는 고에쓰 박사의 텔레비전 방송을 듣고 그렇게 지진을 두려워하지 않았지만, 어쩐지 예감이라고 할까, 마음에 짚이는 것이 있었던 지도 알 수 없지. 그날밤 양친은 나를 요꼬하마로 보냈었네. 그리고 다음날 오후 대지진이 일어난 걸세. 해저 도시 난세이 나하는 순식간에 파괴되었으며, 생존자는 단 한 사람도 없었네.“ 입을 다물고 다나까 중위는 그냥 선 채로 있었다. 그 검은 눈은 콘크리트 벽에서 스며 나와 방바닥의 가느다란 도랑으로 소리도 없이 흘러 들어가는 작은 물줄기를 쫓고 있었다. 할리는 무엇인가 정보라도 끌어내려는 눈초리로 다나까 중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밥은 젖은 콘크리트 벽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이것이 우리들의 일을 극비에 붙여두는 이유이네." 또다시 다나까 중위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지진 예보는 신용이 없다. 해저 도시 난세이 나하의 시민들을 피난시키지 않고 모조리 죽여버린 것이다. 물론 나의 부모님도 희생자네. 따라서 해저 함대가 이 스테이션에서 지진 예지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어도 공적으로 예보를 하는 것을 삼가고 있네. 지금 우리들이 하는 일은 고에쓰 박사의 실패로 죽은 사람들의 수 이상의 사람들을 지진에서 구할 수가 있네. 그렇지만 우리들은 우선 지진 예지를 정확한 것으로 하는 방법을 확립하지 않으면 안된다. 따라서 시기가 올 때까지는, 우리들이 여기서 진행시키고 있는 일에 관해서 누구에게도 얘기해서는 안된다. 이건 명령이다."     지오존데   어느 날 다나까 중위는 우리들이 작성 중인 지진파 측정도를 들여다보고 아주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음, 아주 좋았어. 이제야 자네들도 일이 익숙해진 모양이군. 이쯤에서 자네들에게 새로운 걸 하나 보여 주기로 하지." 그러면서 다나까 중위는 원통형의 노란 플라스틱 용기를 끄집어냈다. "지진 예지의 열쇠는 관측이야. 만약에 해저 밑 100 킬로의 지진파를 관측할 수 있다면 해저 도시에 어느 정도의 지진이 올지 정확히 예측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것은 오랫동안 우리들 지진학자의 꿈이었지만 지금 간신히 실현한 것이다." 다나까 중위는 용기를 열었다. 그 안에는 길이 60센티, 직경 5센티의 원통형인 기계가 들어 있었다. 우리들이 잠수 사관 학교 박물관에서 본 지저 굴진 카의 모형을 소형으로 만든 것 같은 모양이었다. "지오존데네. 자네들도 알고 있듯이 지오존데는 고공(높은 공중)의 기온, 습도, 기압 등을 측정하지. 그런데 이 지오존데는 지각 속의 깊은 곳을 조사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관측 기계일세. 이 머리 부분에 원자력 드릴이 붙어 있네. 그리고 주위는 이든나이트 막으로 포장하고 내부에 감도가 좋은 관측 기계와 음파 발신기가 조립되어 있네. 이든나이트 막은 땅 속의 굉장한 압력으로부터 지오존데를 보호하지만 동시에 관측 기계의 기능을 막아 버리네. 그래서 1분간에 한 번, 10분의 1초 동안만 자동적으로 이든나이트 막이 열리도록 고안되었네. 이것이라면 땅 속의 압력에도 견뎌 내며, 또한 땅 속 상태를 관측할 수도 있지. 가장 깊은 진원(지진이 일어난 곳)까지 조사할 수가 있는 것이네. 이 새 무기로 인해 우리들은 해저 도시 난세이 나하의 비극을 두 번 다시 되풀이하지 않아도 될 걸세." 다나까 중위는 얼굴에 웃음을 띠고 덧붙였다. "두 주일의 훈련기간은 끝났으니 내일 자네들에게 외출 허가를 주겠네." 당장 할리가 생기가 도는 목소리로 외쳤다. "중위님, 그 말씀을 저는 고대했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자네 아버님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네. 나는 내일 1200시부터의 외출 허가증을 준비할 작정이네. 오전 중에는 현재의 자료를 근거로 해서 실재로 지진 예지를 하기로 하세. 그것을 하고 나면 외출해도 좋아. 이 2주일 동안 자네들은 참으로 잘 참았네." 다나까 중위는 우리들이 작성한 지진파 측정도를 보고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말했다. "해산!" 곧 우리들은 3천 미터 위의 기지로 돌아가 식당에 들어갔다. 이 때 밥이 잠깐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돌아왔을 때에는 안색이 좋지 않았지만 나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식사하는 동안 할리는 줄곧 자기 아버지의 자랑을 늘어놓았다. 자기 아버지가 통치하는 해저 왕국에 돌아온 황태자처럼 득의양양 했다. 그리나 밥은 고개를 숙이고 묵묵히 식사를 계속했다. 기숙사에 돌아가서 나는 내일의 실습에 대비해서 준비를 했다. 할리는 자기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밥의 모습은 또다시 보이지 않았다. 나는 나의 극미소 지진계 (극히 미소한 지진동을 자동적으로 기록하게 된 계기)를 조사하다가 고장난 것을 알았다. 이것으로는 내일 실습에 사용할 수 없다. 나는 정확하게 움직이는 것하고 교환하기 위해서 비품 창고로 향했다. 기숙사를 나가 조금 걸어가니까 밥이 있었다. 지금까지 한번도 본 일이 없는 사나이하고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필경 중국이나 말레이지아 사람일 것이다. 갈색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조그만 사나이였으며, 수위 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밥은 무엇인가를 건네주는 모양으로 상대방에게 손을 내밀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있는 것을 알아차리자 갑자기 태도를 바꾸고 외쳤다. "여보게, 자네는 어떻게 할 셈인가? 내 책을 어떻게 했나?" 작은 사나이는 나를 힐끗 보고서 가슴이 철렁한 모양이었다. 그는 곧 쇳소리로 외쳤다. "아아뇨, 그런! 당신의 책 같은 것은 훔친 일이 없어요!" "무슨 일인가?" 하고, 내가 물었다. "이 녀석이 내 고에쓰 박사의 책을 훔쳤단 말일세." "고에쓰 박사의 책?" 그것은 고에쓰 박사 저술의 해저 지진학 원론으로 우리들이 교과서로 쓰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밥, 그 책은 할리에게 빌려주지 않았나? 분명히 할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나는 보았는 걸.“"할리에게? 참 그랬었지......." 밥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그 작은 사나이를 보고 고함친다. "좋아, 알았다. 빨리 꺼져 버려!" 작은 사나이는 밥에게 맞지나 않을까 두려워하는 기색으로, 한쪽 손을 머리에 올려놓고 통로를 달려서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나는 숙사로 돌아왔다. 역시 밥의 책은 할리의 침대 위 선반에 반듯하게 올려져 있었다. "이것 보게!" 내가 가리키자 밥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생각났네." 그렇게 말은 했지만 어쩐지 침착하지 못한 모양으로, "좀 자겠네." 하고는, 자기 침대에 기어들고 말았다. 대체 어떻게 된 영문일까? 나는 밥의 일을 걱정하면서 비품 창고로 갔다. 거기서 극미소 지진계를 찾고, 그리고 찾는 김에 지오존데를 점검해 두려고 생각했다. 지오존데는 방습 케이스에 들어 있었다. 그 케이스를 보자 나는 어쩐지 밥의 수상한 행동을 머리에 떠올리면서 뚜껑을 열었다. "없다!" 나는 망연해졌다. 어느 틈엔가 지오존데가 없어져 버린 것이 아닌가! 다음날 아침. 나는 지오존데의 분실에 관하여 스테이션 케이(K)에서 다나까 중위에게 보고했다. "그렇게 중대한 일을 왜 곧 보고하러 오지 않았나? 책상을 두드리면서 다나까 중위는 고함쳤다. "그게, 글쎄......." 나는 말문이 막혔다. 어제 중으로 보고하지 않은 것은 밥의 일로 머리가 가득 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밥의 수상한 행동을 다나까 중위에게 알리고 싶지는 않았다. "이유는 별로 없단 말인가? 좋아, 자네들 세 사람은 여기서 지진 예지 작업을 시작하게. 나는 기지의 수사본부에 갔다오겠다. 해저 함대의 소중한 재산이 도둑 맞았대서야 되나?" 다나까 중위는 떠났다. 분명히 큰 사건이었다. 지오존데의 도난으로 말미암아 극비에 붙이고 있는 지진 예보에 관한 일이 일반에게 새어 나가면 귀찮게된다. 스테이션 케이(K)로 돌아왔을 때 다나까 중위의 표정은 어두웠다. 그는 날카로운 눈초리로 우리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자네들은 누군가가 지오존데 같은 것을 집어내는 것을 보지 못했나?" 나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렇지만 밥과 작은 수위의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밥은 그 사나이에게 무엇인가를 건네주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렇게 보였다. 그러나 분명하지가 않다. "좋다. 수사는 기지의 수사 본부에 맡기기로 하자. 그건 그렇고 자네들의 지진 예지는 다 되었나? 보여 주게.“ 다나까 중위는 우리들의 지진파 측정도를 모아 한 장씩 주의 깊게 점검하였다. 다나까 중위 앞에는 공식 지진파 측정도가 있었다. 스테이션 케이(K)에서는 최신식 관측 기계에 의해서 해저 도시 그라카타우의 지하의 움직임을 항상 24시간 앞까지 예지하고 있다. 우리들의 측정도를 공식 측정도하고 비교하고서 다나까 중위는, "정확한 예지는 정확한 관측에서 생긴다. 대단히 훌륭하다." 이렇게 말하고, 할리와 나에게 측정도를 돌려주었다. 그리고 밥에게 얼굴을 돌렸다. "나는 자네 계산에는 동의할 수 없네. 자네는 오늘 2100시에 진도 2의 지진이 해저 도시 그라카타우를 습격한다고 예고하고 있어. 이건 정확한가?" "네." 하고 밥은 표정도 바꾸지 않고 대답했다. "그렇지만 스테이션 케이(K)의 공식 측정에도 그러한 지진은 예지 되어 있지 않아. 단소프나 이든의 측정에도 없네. 어떻게 해서 자네는 이러한 예지를 하였나?" "관측 기계가 표시한 숫자에서입니다. 진원은 해저 도시 그라카타우의 북북동 31킬로 지점입니다. 열류(열의 흐름)가......." "그렇다. 열류를 판독(뜻을 헤아려 읽음)하는 방법이 다른 사람하고 틀리는 거다. 애석하지만 이 지진 예지로는 자네에게 외출 허가증을 줄 수 없군." "그렇지만 중위님......." "완전한 지진 예지를 하는 것이 자네들의 임무일세.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는 자는 외출 허가증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해산......." 다나까 중위는 차갑게 맡했다. 기지로 돌아온 나와 할리는 샤워를 했다. 그리고 진홍빛 제복을 입고 외출 허가증을 받기 위해서 해리스 준위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밥은 나와 할리가 샤워를 하고 있는 사이에 어디론가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 쪽이 내게 있어서는 고마왔다. 외출 허가가 취소된 밥에게 외출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할리는 기쁨에 들떠서 이제부터의 예정을 지껄이기 시작했다. "짐, 나하고 함께 가세. 우리 아버지하고 같이 식사를 하세. 아버지는 아주 최고급의 해저 요리를 자네에게 한턱 낼 걸세. 아버지는 일류 요리사를 쓰고 있단 말이네. 자, 같이 가세 짐!" 해리스 준위는 책상에서 전화 중이었다. "네, 그렇습니다. 잘 알았습니다!" 하고, 수화기를 놓고는 해리스 준위는 흥분한 목소리로 우리들에게 말했다. "자네들 밥이 어디 있는지 모르나?" "기숙사에 있으리라고 생각하네. 자, 해리스, 우리들의 외출 허가증을 주게." 하고, 할리가 말했다. "잠깐만 기다려 주게. 지금 다나까 중위에게서 전화가 왔었는데, 다나까 중위는 밥에게 특별 근무를 시킬 테니까 2000시에 스테이션 케이(K)로 오도록 연락하라고 말하고 있어. 그런데 밥은 기숙사에 없거든......." "이상한데......." 할리와 나는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우리들은 밥의 특별 근무가 어떤 것인지 곧 알아차렸다. 2000시는 밥이 예지 한 진도 2의 지진이 일어나는 1 시간 전이다. 필경 다나까 중위는 밥이 예지 한 지진이 일어나는 시각에 밥을 스테이션 케이(K)에 있게 해서 예지가 틀렸다는 것을 체험시킬 심산인 것이다. 그러나 밥은 없어졌다. "밥의 외출 허가증도 없어졌네." 그렇게 말하면서 해리스 준위는 책상 서랍을 열어 우리들에게 보였다. "자네들 것과 함께 여기 넣어 두었었네. 그런데 다나까 중위한테서 밥의 외출은 취소하라고 연락이 왔기에 밥의 외출 허가증을 폐기하려고 했지. 그런데 벌써 없어진 후였어." 나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마음으로 서랍 속을 들여 다 보았다. 참으로 밥은 수상한 행동만 한다. 내가 지오존데의 분실을 알기 직전에 밥은 수상한 중국인 수위하고 함께 있었다. 그 때의 행동도 납득이 안 간다. 그렇지만 밥은 나의 친구다. 좋지 않은 일은 딱 질색으로 생각하는 사나이다. 내게는 밥이 해저 함대의 규율을 무시하고 무단 외출을 했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가 없었다. "자네들은 외출하기 전에 밥을 찾는 것이 좋을걸. 다나까 중위는 자네들이 임무를 완수하는 한, 부하를 극진히 사랑하는 훌륭한 상관이지. 그렇지만 자네들이 임무를 소홀히 하게 되면 어떤 태도로 나올지 모르겠네.“ 그렇게 말하고 해리스 준위는 할리와 나의 외출 허가증을 내 주었다. 우리들은 서둘러 기숙사로 돌아왔다. 그러나 밥은 없었다. 그리고 밥의 제복도 없었다. "그 자식은 무단 외출한 거야! 자넨 알고 있었지?" 하고, 할리가 외쳤다. 나도 화가 나서 고함쳤다. "한 대 갈길 테다! 밥은 훌륭한 사관 후보생이야. 그 따위 짓을 할 리 없어!" "그럼 밥은 어디 있나?" 할리가 추궁해 왔다. 나는 대답할 말이 없었다.     미 행   할리는 나를 동정하는 듯이 말했다. "밥은 지금쯤 시내에 있어. 틀림없어." "그렇게는 생각할 수 없네." 나는 이렇게 말은 했지만, 속으로는 할리의 말이 옳은 것 같이 생각되었다. 위병은 우리들의 허가증을 조사했다. 우리들은 기지를 나오자 승강기로 시내로 올라갔다. 펌프실과 공기 순환 제어실 옆을 지나, 잠수 화물선이 이든나이트 포장의 압력실에 코를 박고 있는 로커를 지나쳤다. 나는 돌연 말했다. "밥을 찾자." "흥, 자네도 그 자식의 무단외출을 인정했구먼......." 할리는 멈춰 서서 내 얼굴을 보았다. 그리고 손목 시계에 눈길을 주고 약간 망설이면서 말했다. "어떻게 하지....... 1300시에 아버지하고 식사를 하기로 약속했거든. 같이 가지 않겠나?" "난 밥을 찾겠네. 제발 부탁이니 도와주게." "도와주지. 그렇지만 식사를 안 할 순 없잖나? 나는 오랫만에 아버지의 요리사가 만든 요리를 먹고 싶어 견딜 수 없단 말일세. 식사가 먼저야. 밥은 1900시까지만 찾아내면 될 게 아닌가?" 우리들은 환상 자동 주로에 올라타고 또 시의 중앙으로 향하는 방사상 자동 주로로 갈아탔다. "상부 동남구로 가는 사람은 대개 비번(당번이 아닌 사람들)이라네. 거기에는 각종의 상점과 극장, 레스토랑(서양 요리점)이 모여 있지. 여보게 자동 주로를 타고 있을 땐 몸의 중심을 잘 잡도록 하게. 자, 나처럼 주로의 전방을 보게, 짐." 하고, 할리가 말했다. "그 따위쯤, 이미 알고 있네." 내가 대답하니까 할리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자네는 이 해저 도시에 온 지 아직 2주밖에 되지 않았네. 하지만 난 태어나면서부터 죽 여기서 살아왔단 말야. 선배의 충고는 고분고분 듣는 법이지." 다른 승강기로 나를 안내하면서 할리는 계속 얘기했다. "이 해저 도시는 꼭대기에서 해상에 떠 있는 비행장으로 연결된 튜브만 빼놓으면 완전한 반구형일세. 직경은 6백 미터, 높이가 3백 미터니까. 물론 해저 밑에 있는 배수 펌프와 창고 지구, 스테이션 케이(K)는 포함시키지 않고 말이네......." "그렇군."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거의 듣고 있지 않았다. 밥이 있지 않을까 해서 승강구 안의 사람들과 통행인들을 눈여겨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진이 해저 도시를 파괴할 염려는 거의 없지. 공식으로는 진도 8, 실제로는 진도 9의 지진에도 이겨낼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으니까. 그러나 아무리 작은 지진일지라도 이든나이트로 포장되지 않은 지하에 틈이 생기면 큰일이지. 거기서부터 해수가 침입해 올 테니까. 그런 경우에 대비해서 해저 도시는 8개 구로 나누어져 있네. 만약에 해수 침입의 위험이 생기면 순간적으로 각 구가 셔터를 내리고 독립한다네. 이렇게 하면 가령 몇 개 구가 침수 당한다 해도 나머지 구에 있는 사람들은 구조되거든. 물론 그런 일이 없기를 신께 기도하지만, 만약에 동력 공급 장치가 고장난다면 각 구의 자동 셔터가 가동하지 못할 테니까 말일세." 할리는 계속 지껄여 댔다. 그 동안 나는 밥의 모습을 계속 찾았다. 어느 샌가 우리들은 인파 속을 걸어가고 있었다. "여기는 12층일세. 가장 번잡한 상점 거리지." 라고, 할리가 설명했다. 머리 위 12미터의 금속 천장에 조명등이 가지런히 달려 있는 외에는 지상 도시의 상점 거리하고 거의 다른 것이 없었다. 입체 영화 극장과 레스토랑을 에워싸는 인파 속을 밀어 헤치듯이 걸어갔다. 일반 시민, 잠수 화물선의 승무원, 잠수 객선의 승객, 거기에다 해저 함대의 제복을 입은 사나이들도 있었다. 빨간 제복의 사관 후보생도 몇 사람인가 눈에 띄었으나 모두 다 밥이 아니었다. 할리가 말했다. "시내의 도로는 장장 180킬로나 되네. 시속 6.5킬로의 자동 주로를 써도 전부 돌려면 며칠은 걸릴 걸세. 거기에 만일 밥이 있다 해도 빌딩 안에 있다면 발견될 리 만무하지. 단념하는 편이 좋을 걸세. 우리 집으로나 가세." "한번 더 찾아보세." 나는 할리에게 부탁했다. 13층은 사격장, 당구장, 플라스틱 모델점들이 즐비해 있었다. 거기에도 빨간 제복의 사관후보생들이 있었지만 밥의 모습은 없었다. "가망은 없으리라고 생각하네만 한번만 더 같이 찾지. 이 위층엔 우리 집이 있네." 할리는 나를 데리고 또 한 층 위로 올라갔다. 방사상 자동 도로에 따라 고급 레스토랑들이 즐비해 있었다. 우리는 단소프 일가가 살고 있는 거주 구역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주로가 넓었으며 양쪽에는 손질이 잘 되어 있는 잔디가 파랗게 계속되고 있었다. 아파트의 건물도 호화로운 것뿐으로서 출입구는 로봇 수위가 지키고 있었다. "잠깐 들려서 식사를 하지 않겠나? 부친의 요리사가......." 할리는 자꾸만 권했으나, 나는 밥의 일로 머리가 가득 차 있었다. "고맙네, 요담에 먹기로 하겠네." 나는 할리하고 헤어져서 혼자서 밥을 찾기로 했다. 자동 주로로 다음 구로 들어섰다. 오피스(회사 . 관청 . 사무소) 거리였다. 근무 시간이 끝난 때문인지 사람의 그림자가 뜸했다. 그곳을 지나치자 또 다시 주택가가 되었다. 일반 월급 생활자와, 공장 노동자와, 해저 함대의 군인과, 민간 화물선 승무원의 가족들이 사는 장소다. 빌딩도 단소프 가가 있는 고급 주택지처럼 훌륭한 것이 아니었다. 발코니(서양식 건축에서 방밖으로 나온 지붕이 없는 전망대)에서는 사나이들이 셔츠만 입은 편안한 모습으로 신문을 읽고 있다. 도로에서는 어린애들이 공놀이를 하고 있고, 그 애들을 부르러 온 여인들도 평상복 차림이었다. 이런 곳에 밥이 오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나는 상점거리로 되돌아가려고 하였다. 그 때다. 내가 밥을 본 것은! 밥은 주름 투성이의 자그마한 중국인하고 얘기하고 있었다. 기지의 기숙사 앞에 있었던 수상한 사나이다! 나는 두 사람 옆으로 달려가려다가 그만 두었다. 나는 스파이도 사립 탐정도 아니다. 분명한 증거가 없는 한 친구인 밥을 나쁜 놈으로 취급하고 싶지 않았다. 그건 차치하고 밥과 중국인의 행동은 수상했다. 두 사람은 짧은 말을 주고받고는 빠르게 헤어졌다. 그리고 밥은 장화 소리를 울리고 돌아가며 주위를 살폈다. 자그마한 중국인은 10미터 가량 천천히 걸어가자 껌 자동 판매기에 돈을 넣고는 밥처럼 또 주위를 둘러보았다. 나는 두 사람에게서는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서 그들을 살펴보고 있었다. 두 사람은 떨어진 채로 자동 주로에 올라탔다. 승강기로 향하는 모양이었다. 나도 자동 주로에 뛰어올라 미행하기 시작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내 빨간 제복은 눈에 띄기 쉽다. 거기다 마침 통행인도 적은 것이다. 얼마 안 되어서 밥은 자동 주로에서 내려서 승강기 앞에 섰다. 그 앞에는 잠수선의 선원이 세 사람 있었다. 자그마한 중국인도 자동 주로에서 내리자, 자동 뉴스 속보기에 돈을 넣고 챙이 달린 조그만 창문에 얼굴을 대고 뉴스를 보기 시작했다. 이 때 빨간 제복의 잠수 사관 후보생이 두 사람 나타나 전시창 앞이 섰다. 깃의 배지가 낯익다. 그렇다, 지금 기지에 입항하고 있는 잠수 연습선 시몬 레크 호의 승무원들이다. 전시창 속에는 민간용의 얕은 바다의 잠수 장구가 전시되고 있었다. 그것을 바라보면서 연습선의 후보생들은 무엇인가 지껄이기 시작하였다. 나는 후보생들의 열에 서서 전시창을 들여다보는 척 하였다. 제복이 같으니까 안성맞춤으로 컴플라치(변장, 위장)가 되었다. 거기다 또 고맙게도 전시창의 유리가 거울 대신이 되어서 밥과 중국인의 모습을 비치고 있었다. 승강구의 문이 열렸다. 밥은 세 명의 선원과 함께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그러자 자그마한 중국 사람도 자동 뉴스 속보기에서 멀어져서 다음 엘리베이터(승강기)를 기다리기 위해 승강대 앞에 섰다. 나도 두 사관 후보생과 같이 승강기 앞으로 걸어가서 그 앞에 섰다. 다음 엘리베이터가 왔다. 제일 먼저 중국인이 타고, 두 후보생이 뒤따르고, 마지막으로 내가 올라탔다. 나의 등뒤에서 자동문이 닫힌다. 중국인은 어린애처럼 껌 포장지를 벗기고 있었으나, 문득 뒤돌아보고 나를 쳐다보았다. 주름 투성이의 얼굴에 놀라움이 지나갔다. 내가 누군 지를 알아 본 것이다. 그러나 말없이 곧 얼굴을 돌리고, 껌을 입에 넣고 오물오물 씹기 시작하였다. 이 중국인은 도대체 어떠한 사람인가? 꽤 늙은 노인이지만 움푹 패인 눈은 예리한 이치(사물을 분별하는 슬기)로 빛나고 있었다. 수위나 문지기 같은 옷을 입고 있지만 결코 늙어빠진 노동자는 아닌 것 같았다. 엘리베이터는 맨 아래 충에 닿았다. 문이 열렸다. 나는 밖으로 나오자 서둘러 밥을 찾았다. 밥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중국인이 걷기 시작하였다. 나는 뒤따랐다. 두 사람은 몇 시간이나 시내를 빙빙 돌았다. 우스운 미행이었다. 중국인은 내가 누군지 알고 있었으며, 또 내가 미행하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미행을 계속한다. 그밖에 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2000시가 다가왔다. 이 시간에 밥은 스테이션 케이(K)에서 특별 근무에 들어가기로 되어 있었다. 거기서 다나까 중위는 밥의 지진 예지가 틀려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할 작정인 것이다. 아까의 승강기로 밥이 곧 바로 기지로 돌아가, 다나까 중위의 명령을 알았다면 예정 시간대로 스테이션 케이(K)로 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의문은 하나도 풀리지 않았다 어째서 밥은 무단 외출을 하였을까? 지금 내가 미행하고 있는 늙은 사나이하고는 어떠한 관계인가? 2000시를 지나자 중국인의 태도가 침착성을 잃었다. 때때로 나를 돌아다보았다. 그것뿐이 아니었다. 천장과 벽을 둘러보기도 하고 건물과 통행인에게까지 불안스런 눈초리를 돌렸다. 나의 미행 말고도 무엇인가 커다란 걱정거리가 있는 것 같았다. 갑자기 불안스러운 기운이 해저 도시 그라카타우 전체에 넘쳐흐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것은 땅 속 깊은 곳으로부터 울려 퍼져 오는 굉장한 에너지였다. 나의 발 아래에서 땅바닥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차차 심해졌다. "해저 지진이다!" 밥의 예지가 옳았던 것이다! 나는 사람들의 비명을 들었다. 그리고 중국인이 내 쪽으로 되돌아 달려오는 것을 보았다. 계속해서 천장에서 삐죽삐죽한 어떤 커다란 물체가 떨어져 왔다. 나는 재빨리 물러섰다. 그러나 때는 늦었다. 내 몸은 2미터 가량 퉁겨져 나가고,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 졌다.     백만 불 짜리 지진   귓속에서 커다란 북소리가 울렸다. 나는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누군가가 내 머리를 안고 있었다. 나는 눈을 떴다. 중국인의 주름 투성이의 얼굴이 보였다. 그 눈에 악의는 없었다. 슬픈 듯이 젖은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내가 의식을 되돌린 것을 확인하자 중국인은 내 머리를 부드럽게 땅바닥에 내려놓았다. 나는 몸의 통증과 싸우며 내 힘으로 다시 일어났지만, 이미 중국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해저 함대의 간호병이 달려왔다. "괜찮나?" "대수롭지 않네." 간호병이 내 몸을 조사하고 있는 사이에 스피커에서 긴장한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지진 경보 발령! 지진 경보 발령! 안전 벽, 안전 문, 안전 셔터는 모두 폐쇄됩니다. 다튼 구역으로 이동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렇지도 않은 모양일세." 그렇게 말하고 간호병은 일어나서 다른 부상자를 찾기 위해 사라졌다. 나는 비틀거리며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았다. 바로 옆에 천장의 조명등이 떨어져 엉망으로 찌그러져 있었다. 그 끄트머리가 내 몸을 스친 모양이다. 하마터면 큰일날 뻔했다. 또 다시 스피커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위험은 없습니다. 해저 도시의 손해는 극히 경미합니다. 부상자도 극히 가벼운 사건이 두 셋 정도 보고되었을 뿐입니다. 모든 안전 장치는 정상으로 가동되고 있습니다. 경보가 해제될 때까지 옥내에 머물러 계십시오! 되풀이 말씀드리겠습니다. 경보가 해제될 때까지 옥내에 머물러 계십시오! 공공 통로는 일반 시민의 통행이 금지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구의 경계인 안전 셔터가 내려져 있었다. 나는 현재 지점에 있을 수밖에, 어디에도 갈 수가 없었다. 2시간 가까이 지나서야 간신히 지진 경보가 해제되었다. 이미 내 외출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그 중국인을 찾아 낼 수도 없었다. 사람들이 자동 주로나 보도에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아무도 지진을 두려워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그것도 그럴 만 하다. 아까 정도의 지진은 별로 진기한 것도 없다. 해저 도시 그라카타우는 멕시코에서 서인도제도, 남유럽, 소아시아를 지나 동인도에 이르는 대지진대 위에 있다. 지진이 많은 것을 각오하고 건설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 지진은 특별한 것이다. 이 지진은 밥 에스코 외에는 아무도 예지 할 수가 없었다. 수많은 의문으로 터질 것 같은 마음을 안고 나는 기지의 기숙사로 돌아왔다. 나는 밥을 만나고 싶었다. 밥이 스테이션 케이(K)에서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머리가 아프고 시내를 돌아다닌 피로 때문에 곧 잠들어 버렸다. 내가 눈을 떴을 때 여전히 밥의 침대는 비어 있었다. 밥은 내가 잠든 뒤에 돌아와 한잠 자고 나보다 먼저 일어나 나갔던 것이다. 반대편 침대에 할리가 앉아 기묘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짐, 자네에겐 멋지게 한 방 얻어맞았네. "무엇 말인가?" 내가 되묻자 할리는 '흐흐흐'하고 웃었다. 그 눈은 샘이 솟아나는 것처럼 빛나고 있었다. "정보를 가르쳐 주게, 짐. 자네하고 자네의 숙부님은 우리들을 완전히 선수치지 않았나?" "무슨 얘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네." 나는 침대에서 내의와 옷을 입고 혼자서 식당으로 갔다. 식사를 끝내고 기숙사로 돌아오니 밥이 와 있었다. 그리로 할리는 아까 나를 보았을 때와 같은 눈초리로 밥을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할리 앞에서 말라빠진 중국인의 일들을 밥에게 물어 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자네가 돌아와서 참 다행이네, 밥." "내 일을 그렇게 걱정 안 해도 좋았을걸, 짐." 밥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떻게 걱정 안 할 수 있겠나? 만약에 다나까 중위가, 자네가 무단 외출한 것을 눈치 챘으면 어떻게 됐다고 생각하나?" 내가 강하게 말하자 할리가 끼어 들었다. "여보게들, 쓸데없는 얘긴 말게. 그것보다도 자네들은 어째서 날 따돌렸나?" 멀뚱해져 있는 밥에게 할리는 거듭 물었다. "자네는 어젯밤 지진 정보를 어떻게 손에 넣었는지 왜 내게 얘기해 주지 않나?" "나는 예지 했을 뿐일세. 그것뿐이네." "거짓말 말게. 다나까 중위도 짐도 나도 예지하지 못한걸.“ "정보 같은 게 있을 수 없지. 나는 관측기가 나타낸 자료를 읽고 그것을 예지 지진학의 원리에 맞췄을 뿐일세. 나의 예지대로 지진이 일어날지 어떨지 전연 자신은 없었네." 밥은 완고하게 버텼다. "그렇지만 꼭 적중하지 않았나 말이야! 그래 좋아. 일단 자네 얘기를 믿어 두지. 그런데 짐......." 할리는 내 쪽으로 얼굴을 돌리고 계속했다. "나는 어젯밤, 그 지진 뒤에 아버지하고 지진 예지에 관해서 얘기를 했단 말일세. 아버지는 정확한 지진 예지를 할 수 있다면, 수백만 불의 돈을 벌 수 있다고 말씀하셨어......." "그건 그렇지. 그러나 지진 예지의 목적은 돈벌이보다는 인명 구조에 있네. 해저 도시 난세이 나하 같은 비극을 예방하기 위해서 정확한 지진 예보가 필요한 걸세." "알고 있네. 그렇지만 나는 지금 특별히 돈벌이에 관해서 얘기하고 있단 말이네. 어떤 사람이 정확한 지진 예지의 정보를 손에 넣고 주식을 조작한다면 큰 돈을 벌 수 있단 말일세. 그리고 실제로 어젯밤 지진으로 큰 돈을 벌어들인 사나이가 있다고 아버진 말씀하셨다네." 이렇게 말하고 할리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자네 얘기는 통 알 수 없군, 할리." 밥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리자 할리는 빙긋이 웃고 나를 손가락질했다. "똑똑히 알고 싶으면 짐에게 물어 보게나. 짐에게 숙부님 일을 물어 보란 말일세." 나는 더욱 무슨 영문인지 몰라 확인하기 위해서 물어 보았다. "우리 숙부님이라니, 스튜어트 이든 말인가? 그렇지만 나는 오랫동안 숙부하고 만난 일이 없네. 자네는 설마 우리 숙부가 이 해저 도시 그라카타우에 있다고 말하진 않겠지?" "나는 자네 숙부가 어디 있는지는 알 수 없네. 그렇지만 자네 숙부님과 관계 있는 정보를 아버지로부터 듣고 있네. 사실은 어제 자네 숙부님의 대리인이 주식 거래소에서 대량의 주를 투매(손해를 무릅쓰고 팔아버림)했네. 자네 숙부님은, 오늘은 주가가 대폭락 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세. 즉, 어젯밤 지진이 온다는 정보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란 말이네. 자네의 숙부님에게 있어서는 백만 불의 지진이었단 말일세!" 할리의 얘기는 너무나 뜻밖의 것이었다. 나는 숙부인 스튜어트가 심해 기업의 모든 분야에 투자하고 있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 때문에 어떨 때는 큰 부자가 됐다가, 또 어떤 때는 파산 직전으로 몰리기도 하면서 사업을 계속해왔다. 이든나이트를 발명하기 훨씬 전부터 숙부는 두뇌와 돈과 때때로 목숨조차 걸고, 바다의 위험을 상대로 싸웠었다. 물론 여러 번 승리를 거두었다. 심해 해저에 해저 도시를 건설하게 된 것이 무엇보다도 그 증거다. 또한 무서운 심해가 숙부를 때려부순 일도 적지 않다. 그런데 숙부는 정말 재해를 이용해서 돈벌이를 계획한 것인가? 그러한 일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 "가르쳐 주게, 짐. 자네 숙부님은 어디에 계신가? 해저 도시 그라카타우에 계시나?" 할리는 악착같이 물었지만 나는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대답할 뿐이었다. "해저 도시 마리니아에 계셨을 텐데...... 지금은 어디 계신지 알 수 없네." "그런가...... 이건 낭패군. 우리 아버지는 자네 숙부를 만날 수 없을 것 같네......." 맥이 빠진 듯이 할리가 말했다. 밥은 조소를 띠고 한 마디 했다. "자네 아버지라면 지진 때마다 수백만 불씩 돈벌이를 하고 싶어서 못 견딜걸세." 비꼬는 말인데도 할리는 화를 내지 않고 힘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짐네 숙부님하고 우리 아버지가 손을 잡으면 굉장한 돈벌이가 되지!" 그렇지만 숙부가 벤 단소프 같은 인물하고 함께 일하고 싶어할지 어떨지 나는 의심스럽다. 그러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할 시간이 없었다. 해리스 준위가 기숙사로 들어온 것이다. "이든 후보생, 다나까 중위의 명령이다. 0800시에 스테이션 케이(K)로 가게." 해리스 준위가 갑자기 말했다. 나는 손목 시계를 보았다. 0800시까지는 거의 시간이 없다. "뛰어 갓!" 해리스 준위가 외쳤다. 그러나 나는 순순히 기숙사를 나올 수가 없었다. 다나까 중위는 내게 무엇을 하라는 것일까. 해리스 준위의 해풍에 탄 얼굴에서는 아무 것도 알아 낼 수 없었다. "지금은 자유시간인걸. 그걸 알면서 끌어낸단 말인가?" 나는 뒤통수를 두드리며 말했다. "끌어낸다고? 자네들 후보생은 자기 권리를 주장할 만한 일을 분명히 하고 있나?" 해리스 준위는 밥에게 눈을 돌렸다. "어제 자네의 외출 허가증이 없어졌네. 거기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그 외출 허가증은 찾았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밥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대답했다. . "발견했지! 그렇지만 외출 허가증이 분실된 사이에 자네는 어디 있었나? 외출 허가증을 끄집어내어 그것을 사용하고, 아무도 몰래 다시 갖다 놓은 게 아닌가?" 해리스 준위가 아무리 날카롭게 물어도 밥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나는 밥이 어떤 식의 거짓말을 해서 이 자리를 빠져나갈 것인가 끝까지 보고 싶었지만, 그럴 시간이 없었다. "빨리 가보게, 짐! 시간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해리스 준위에게 호령을 받고 나는 스테이션 케이 (K)를 향해 달렸다. 해저 3천 미터의 지진 관측소에서는 다나까 중위가 벽지도를 들여다보면서 입 속으로 무엇인가 중얼중얼 중얼거리고 있었다. 필경 밤새도록 지키고 있었던 모양이다. 가름한 얼굴은 해쓱해져 있었지만 눈만은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얼마 후 인기척을 느꼈는지 돌아보았다. "자넨 어제 지진으로 상처를 입었다면서?" "대수롭지 않습니다. 약간 스쳤을 뿐입니다." "다행이군." 다나까 중위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뒤로 젖히고 천장을 쳐다보았다. "해저 도시 그라카타우는 행운이었네. 만약에 해저 도시 난세이 나하를 습격한 것 같은 대지진이었다면......." 그렇게 말하고 중위는 머리를 흔들고 눈을 감았다. "자네는 어제 지진을 예지하지 못했지. 물론 부끄러워 할 것은 없다. 나도 예지 할 수 없었으니까. 그렇지만 밥 에스코는 예지 했네." "그렇습니다." "자네는 밥 에스코라는 인간을 잘 알고 있나?" "네, 잠수 사관 학교 입학 이래의 친구입니다." "그러면 자네는 밥이 어떻게 해서 어젯밤 지진을 예지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나?“ "모르겠습니다." 라고, 나는 대답했다. "그럴까...... 자네는 예지 할 수 있었지 않나?" 다나까 중위는 살피듯이 나를 보았다. 대체 어찌된 셈인가? 다나까 중위까지 할리와 같이 어젯밤 지진에 관한 정보를 미리 입수하고 있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인가? 갑자기 다나까 중위는 화제를 바꿨다. "자네는 이에즈스회의 지진학자 타이드 신부를 알고 있지." "네, 잠수 사관 학교에서 만났습니다." "그리고 최근 이 부근에서 일어난 몇 개의 지진에 관한 타이드 신부의 학설도 알고 있겠지?" "네 , 그렇지만......." 하고, 나는 어물거렸다. "타이드 신부는 일련의 지진이 인공적으로 일으킨 것이라고 믿고 있네. 누군가가...... 필경 주식 거래에서 이익을 얻기 위해서 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단 말일세! 거기에 대해서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그러한 일이 일어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나는 완고하게 말했다. 그제야 다나까 중위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생각할 수 없네. 하지만 어떤 사나이가 하려고 생각하기만 한다면 불가능하지는 않을는지도 알수 없네. 타이드 신부가 말하듯이 자네의 숙부에게는 의문스러운 데가 있네. 물론 나는 우리 해저 함대에 대한 자네의 충성심을 믿고 있네. 그래서...... 만약에 자네가 시내에서 어제처럼 스파이 놀이를 금후에도 계속할 마음이라면 나는 기꺼이 원조하겠네. 언제든지 자네가 좋을 때에 특별 외출 허가증을 내주지. 용건은 그것뿐일세. 돌아가도 좋아!" 기숙사를 향하면서 내 마음은 산란하였다. 다나까 중위는 어젯밤 밥이 기지에서 나간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밥의 지진 예지가 적중한 것은 과연 우연의 일치냐 아니냐 하고 내가 의심하기 시작한 것까지 꿰뚫고 있는 것이다. 나는 밥이 중국인에게 지오존데 같은 것을 건네주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할리가 숙부의 대리인에 대해서 얘기한 것도, 타이드 신부가 숙부의 조난에 대해서 말한 것도 믿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숙부는 내게 있어 단 한 사람뿐인 친척이며, 밥은 생사를 같이 해 온 친구이다. 이 두 사람을 의심하게 되면 나는 마지막이다. 나는 다나까 중위에게서 특별 외출 허가증을 받지 않으리라고 마음먹었다. 스파이 흉내 같은 짓도 안 할 것이다. 반드시 밥은 내가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을 기다리는 것이다. 숙부의 문제도 그렇다. 행방불명이기 때문에 당치도 않는 오해를 받은 채로 있기 때문인 것뿐이다. 기숙사에서는 할리하고 밥이 장비의 점검을 하고 있었다. 나도 내 로커를 열었다. 숙부의 사진이 방바닥에 떨어졌다. 할리가 그것을 집어들어 사인을 보았다 "아아? 이분이 자네 숙부님인가. 자네가 생각을 다시 해서 숙부님을 우리 아버지한테 모시고 와 주었으면 고맙겠지만." "하지만 어디 계신지 모른단 말이네, 할리. 남극일지도 알 수 없고 또 카일루아 만인지도 모르겠단 말일세......." 라고, 나는 말했다. 이 때 밥이 무심코 중얼거렸다. "이 해저 도시에 계실지도 모르지......." "뭐라고?“ 나는 나도 모르게 밥의 얼굴을 쳐다봤다. "아니, 사실은......." 하고, 밥은 황급히 변명을 했다. "난 스튜어트 이든을 어디선가 본 듯 하단 말이네. 아마 딴 사람일 거야. 자네 숙부를 많이 닮은 사나이를 보았을 뿐이란 말이네." "나는 또......." 나도 할리도 똑같이 낙담했다. 그러나 나는 밥이 숙부에 대해서 무엇인가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숨기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느꼈다. 그리고 다나까 중위에게 특별 외출 허가증을 받으리라고 다시 고쳐 생각하였다.     이든 기업     나는 군모가 비뚤어진 것을 고치고 제복의 단추가 제대로 채워졌는지 어떤지를 확인하고 나서, 벤 단소프의 사무실에 들어갔다. 그 출입구는 현무암의 높은 기둥이 즐비하고, 웅장한 느낌이었다. 수부에는 거만하고 새침한 금발의 여인이 있었다. 나를 보고도 모른 척 한다. "벤 단소프 씨를 만나고 싶습니다. 나는 단소프 씨의 자제분인 할리 단소프의 친구입니다." 나는 용건을 말하였다. 그러자 여인은 의심스럽다는 듯이 나를 자세히 뜯어보며,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하고는, 귀찮은 듯이 수화기를 집어들었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기다렸다. 인상이 나쁜 안내인이다. 나는 그냥 돌아가 버릴까 하고 생각했으나, 단 하나의 단서를 잃어버리고 싶지 않았다. 만약에 숙부가 해저 도시 그라카타우에 있다면 찾지 못할 리가 없다. 나는 사업 조합이며 호텔 등에 모조리 전화를 걸어봤지만, 숙부의 모습을 보았다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남은 것은 벤 단소프를 만나는 것뿐이다. 벤은 아들인 할리에게 숙부의 소문을 얘기하고 있다. 그 소문의 출처를 나는 알고 싶은 것이다. 수부의 여인이 흰색이 도는 금빛 눈썹을 들고 수화기를 놓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자아, 이든 씨. 사장님은 에이 (A)층에 계십니다." 나는 작은 엘리베이터로 에이 (A)층으로 올라갔다. 그곳에 린 단소프가 기다리고 있었다.     린은 외무 판매원 같은 태도로 정중히 나의 손목을 잡았다."짐 이든 군, 어서 오게! 자네 얘기는 할리에게서 자세히 듣고 있네. 그리고 자네 숙부에 관해서도 옛날부터 잘 알고 있지!" 나는 벤이 숙부의 친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오히려 적인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벤이 숙부의 행방을 찾는 유일한 단서인 것이다. 벤은 나를 방음 장치가 된 넓은 방으로 안내했다. "그런데, 짐. 어떻게 된 일인가? 내가 무엇인가 해 줄 일이라도 생겼나?" 마치 자기 아들을 대하는 것처럼 부드러운 말씨였다. "나는 숙부를 찾고 있습니다. 도와주십시오." 라고, 나는 정중히 말했다. 벤은 웃으며, "자넨 숙부님이 있는 곳을 알지 못하나?" "네, 해저 도시 그라카타우에 있는 것 같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당신이라면 숙부가 있는 곳을 아시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건 무리일세, 짐." 벤은 머리를 흔들며 방안을 걸어다녔다. "자네 숙부님은 수중 카로 조난된 뒤로는 행방불명이라고들 하지 않던가. 옛날부터 자네 숙부님은 '바다에 사는 사람을 위해'라고 하면서 무모한 모험만 해왔지. 그래서 '그런 바보 같은 짓은 그만 두라'고 나는 몇 번씩 충고했었네. 그랬더니 마침내 영리해진 모양일세." "무슨 맡씀이신지요?" "정보를 잡았단 말일세." 벤은 싱긋 웃었다. "그 일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네. 자네 숙부님의 대리인이 어제 수백만 불의 주식을 전부 깨끗이 팔아 버렸다네. 지진에 의한 주가의 폭락을 겨냥해서 돈을 벌어들이기 위해서이지. 자네 숙부뿐만이 아닐세. 할리 이야기로는 자네 친구도 지진이 일어날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면서? 그 친구도 혹시 자네 숙부님하고 같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저는 지진 예지에 관한 얘기를 금지 당하고 있습니다. 할리도 같습니다." 나는 표정을 굳히고 말했다. "알고 있네. 그렇지만 그 친구를 만나면 나한테 놀러 오라고 전해 주게나. 내가 그 친구를 부자로 만들어 주지!" "단소프씨! 전 정말 숙부님을 찾고 있답니다. 도와주실 수 없으실까요?" "그래 그래, 나는 적어도 자네 숙부님의 대리인을 알고 있으니까." 벤은 수화기를 들고 얘기하기 시작했다. 속삭이듯 작은 목소리였기 때문에 나는 말의 내용을 잘 알아들을 수 없었다. 이윽고 수화기를 놓자 벤은 눈썹을 모았다. "숙부님의 대리인의 주소를 알았네. 제 7구 4층 88번지야. 나는 일이 있어서 이것으로 실례하겠네." 단소프는 그렇게 말하고는 서둘러 방을 나갔다. 왜 벤의 태도가 갑자기 차갑게 변해 버렸을까?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으로 내려왔다. 4층은 상업 지구와 민간 잠수선 독 지구하고의 사이에 낀 장소로서 빌딩의 태반이 창고나 해운업자의 사무실이었다. 이곳에는 보행자용 자동 주로가 없었다. 거리는 해산물을 실은 화물 운반차로 붐볐다. 오래간만에 나는 바다의 냄새를 맡았다. 차를 비키며 나는 88번지로 향했다. 두 개의 창고에 낀 문이 88번지 입구였다. 문을 들어서자 어두운 제단이 위로 뻗쳐 있었다. 나는 계단을 올라가서 창고 뒤에 있는 기다란 복도로 나갔다. 그곳에는 몇 개의 사무실이 잇달아 있었다. 복도가 마주치는 곳에는 상하가 달린 작업복을 입은 사나이가 금속 도어에 페인트로 글을 쓰고 있었다. ......이든 기업. 나는 울렁거리는 가슴을 누르며 사나이에게 말을 걸었다. "스튜어트 이든 씨는 이곳에 계십니까?" 그 사나이는 돌아다보았으나 굉장히 놀란 모양으로 페인트 깡통을 손에서 떨어뜨릴 뻔 하면서 외쳤다. "짐 ! 짐 아닌가!" 그것은 기데온 파크였다. "기데온!“ 나는 나도 모르게 사나이의 손을 잡고 그 검은 얼굴을 바라보았다. 기데온 파크는 흑인이었지만 숙부의 친구이자 충실한 조수였다. 바다빛 같은 초록색 페인트가 묻은 검은 얼굴에 흰 이를 보이며 웃고 있었다. "짐! 짐은 버뮤다에 돌아가 있는 줄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악수를 했기 때문에 내 손에도 페인트가 묻었다. "난 아무래도 일류 페인트장이가 못 돼 놔서, 원!" 하면서, 기데온은 내게 걸레 조각을 건네주고 자기도 다른 걸레로 손을 문지르며 또 웃었다. "괜찮아, 기데온. 그렇지만 이런 데서 뭘 하고 있나? 마리니아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내가 말하자 기데온은 문을 열었다. "자, 안으로 들어오게, 짐. 좁고 지저분한 곳이지만 손질을 하면 이럭저럭 사무실로 쓸만해서......." "그런데, 숙부님은 어떻게 하고 계시나?" 내가 이렇게 묻자 기데온은 발을 멈추고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 "제일 먼저 그걸 물으리라고 생각했었지. 짐, 숙부님은 건강이 몹시 나쁘셔. 하지만 절망할 정도는 아니지. 스튜어트 이든을 녹 아웃 시킬 수 있는 것은 없을 거야!" 그 말이 옳다고 나도 믿고 있다. 그렇지만 타이드 신부 생각이 나서 나는 물었다. "기데온, 나는 숙부의 수중 카가 인도양의 해저에서 조난됐다고 들었는데 정말인가?" 이 질문으로 기데온은 더욱 심각한 표정이 되어서 페인트 통을 덜컹덜컹 하면서 내게서 떨어졌다. "안으로 들어가서 자네가 알고있는 걸 이야기해 주게나, 짐." 이든 기업의 사무실은 썰렁한 작은 방이 두 개 뿐인 조그만 것이었다. 벽은 선명한 바닷빛으로 칠해져 있었다. 가구는 책상이 하나, 망가진 의자가 두 개 놓여 있지만 먼저 쓰던 사람들이 남겨 놓고 간 물건인 것이다. 세간은 무거워 보이는 강철제 금고 뿐이었다. 그 문짝에도 역시 페인트로 '이든 기업'이라는 글씨가 쓰여져 있었지만, 그것은 진짜 페인트장이가 쓴 것 같았다. 기데온은 의자에 앉으며 의자 하나를 내게 권했다. 나는 타이드 신부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하였다. 기데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조그만 사고가 있었던 것은 사실일세. 하지만 우리들은 그 일을 세상에 알리고 싶지 않았네. 장사 신용에 영향이 미치거든." 기데온은 앞으로 몸을 구부리고 방바닥에 말라붙은 페인트를 긁고 있었다. "타이드 신부가 우리들의 수중 카를 발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네. 무엇인가 사고가 날 때마다 그 현장엔 반드시 타이드 신부가 나타나거든, 이든나이트를 둘러친 자가용 수중 카로 말이네." 키득키득 웃고 나서 기데온은 또 다시 심각한 얼굴로 돌아갔다. "그러나 타이드 신부는 때때로 우리를 곤란하게 만든단 말야. 짐, 그 신부는 짐 보고 누군가가 인공지진을 일으키고 있다고 말했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누군가란 자네 숙부님일지도 모른다고 했을테지?" "맞았네, 기데온. 하지만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없지. 숙부님은 절대로 그 따위 일을 할 사람이 아냐!" "물론이지, 짐." 기데온은 의자에서 일어나 방 안을 거닐기 시작했다. "짐, 숙부님은 몸이 좋지 않아. 우리들은 인도양 해저에서 지진에 부딪쳤네. 수중 카는 망가져서 못쓰게 됐지. 할 수 없이 우리들은 수중 카를 버리고 생명 유지 장치 속에서 60시간을 지낸 뒤에 긴급 전파 신호를 알아채고 달려온 잠수선에게 구조 되었다네. 60시간이란 말일세! 말이 60시간이지. 짐처럼 혈기 왕성한 청년이라도 60시간이나 생명 유지 장치 속에 있었다면 뻗어버릴 걸. 짐의 숙부님은 이미 청년이 아닐세. 거의 다 죽다시피 했던 몸이 좀처럼 회복되지 못하는 건 당연한 거야. 지금 숙부님은 해저 도시 그라카타우에 계시네. 오늘 아침은 차분히 쉬실 수 있게 호텔에 남겨 두고 왔네." "난 숙부님을 만나 보고 싶단 말야, 기데온!" "잘 알겠네, 짐. 만날 수 있고 말고. 하지만 숙부님이 오실 때까지 기다리게." 기데온은 금방 페인트를 바른 벽을 불안스럽게 바라보면서 다시 의자에 앉았다. "짐, 자네는 숙부님을 잘 알고 있지. 숙부님은 긴 생애의 전부를 바다의 정복을 위해서 봉사해 왔어. 짐에게는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지만 숙부님은 이든나이트를 비롯해서 백 가지가 넘는 발명을 이룩한 위대한 발명가시지. 그렇지만 연구실에만 틀어박혀 있을 사나이가 아닐세. 해저 산맥에 오르고 해구를 탐험했지. 해저에 광구를 가지고 해상에 해양 농장을 개척했네. 그리고 항상 해양 개발을 위해 일하려는 사람들을 원조해 왔네. 숙부님의 덕분에 성공해서 큰 이익을 얻은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나는 도저히 헤아릴 수 없어. 또한 새로운 발명이며 무서운 탐험의 기획을 숙부님한테 가져오는 사람들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지. 짐! 바다에 관한 일이라면 처음부터 끝까지 숙부님은 흥미를 갖고 계셨네." 기데온의 얘기를 들으며 나는 초라한 의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을 눈치챘는지 기데온은 말한다. "분명히 숙부님의 사업은 요새 잘 안 되고 있지. 좀 너무 광범위하게 손을 뻗친 감이 없지는 않아. 꽤 오랜 동안 수입보다는 지출 쪽이 많거든, 짐." "하지만." 하고, 나는 말했다. "어젯밤은 어땠지? 숙부님을 위해 주식을 조작했지 않나? 그래서 수백만 불의 돈을......." "그 얘기는 자네 숙부님 자신이 아니면 대답할 수 없네, 짐. 그렇지만 이 말 만은 할 수 있지. 짐의 숙부님은 절대로 사리사욕(개인의 이익과 욕심)을 위해서 돈을 벌 사람이 아니다, 라고!" 확실히 그렇다. 기데온이 말하는 대로다. 나는 참을 수 없는 심정이었다. 어째서 나는 친구인 밥만이 아니라 숙부인 스튜어트 이든의 행동까지 감시 할 임무를 맡지 않으면 안 될 지경이 되었나? "짐!" 뒤에서 누군가가 외쳤다. 나는 뒤돌아보았다. 문이 열려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 나의 숙부 스튜어트 이든이 서 있었다.     노인끼리의 대결   일순 나는 숨이 딱 멎어버릴 것 같았다. 숙부의 변한 모습은 너무나 놀라왔다. 넓은 어깨가 축 쳐지고 몸 전체가 바싹 줄어 있었다. 피부는 노랗고 건강하지 않은 느낌이었다. 총기가 있던 푸른 눈은 흐려지고 바쁜 듯이 깜빡거리고 있다. 걷는 모습도 발이 헝클어져 위험스러웠다. "스튜어트 숙부님!" 나는 간신히 외쳤다. 숙부는 매달리는 듯한 모습으로 내 손을 힘있게 잡고 의자에 털씩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코를 풀고, 눈을 닦더니 근심스럽게 말했다. "무슨 일이 있었냐, 짐? 나는 네가 버뮤다에 있는 줄로만 알고 있었구나." "계속 버뮤다에 있었답니다. 숙부님 특별 훈련을 받기 위해서 여기 오게 됐습니다." 기밀 안보의 입장에서 나는 훈련의 내용을 말할 수는 없었다. "건강은 좀 어떠신가요, 숙부님." "보기보다는 건강하단다." 하며, 숙부는 갑자기 일어섰다. "나는 거친 바다를 헤쳐온 사나이다!" 나는 숙부의 이 말에 조금은 마음이 편해져서 묻고 싶은 것을 당장에 물었다. "스튜어트 숙부님, 제가 듣기엔 어젯밤의 해저 지진으로 숙부님이 백만 불을 벌었다고들 하던데요." 스튜어트 이든은 훑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그 눈에서 아무 것도 읽어 낼 수가 없었다. 숙부는 한숨을 내쉬었다. "분명히 벌었지. 하지만 그쯤으로는 새발에 피란다. 짐, 오랜만에 만났는데 돈 이야기는 그만 두자. 그것보다도 네 모습을 잘 보여다오. 오오, 이젠 아주 어른이 다 되었구나, 짐. 훌륭한 사관이 될 거다!" 숙부는 기쁜 듯이 웃으면서 내 빨간 제복을 쓰다듬었다. "너의 아버지가 살아 있어서 이 모습을 보았으면 얼마나 기뻐하겠니!" 숙부의 눈은 생기 있게 빛나기 시작했다. "아무 것도 두려워 할 것 없다, 짐. 너는 해저 함대 사관이 되고 나는 잃어버린 것을 다시 찾는다. 돈도 건강도 말이다." 그렇게 말하고 숙부는 '이든 기업'이라고 쓰여진 강철 금고를 바라보았다. 기데온이 기침을 하고 조용히 말했다. "스튜어트, 당신은 면회 약속을 잊으시지는 않으셨겠죠?"     "약속?"숙부는 손목 시계를 바라보았다. "저런, 벌써 시간이 되었구나. 짐, 나는 아직 너하고 얘기하고 싶은데, 딴 사람하고 약속이 있단다. 네가 모르는 사나이하고 점심을 하기로 되어 있어. 애석하지만......." "나는 기지로 돌아가겠습니다. 그리고 또 외출 허가가 나오면 전화 드리지요. 그 때 함께 식사를 하고 싶어요." 나는 일어섰다. 그 때 숙부하고 점심을 함께 하기로 되러 있다는 손님이 들어왔다. 그 손님은 내가 알고 있는 사나이였다. 숙부는 내가 알지 못하는 줄로 생각했던 것일까? 아니면 서로 만나게 하는 것을 꺼렸던 것일까? 그 사나이는 신부 옷을 입은 타이드 신부였다. 나와 타이드 신부가 서로 인사를 하는 것을 보더니 숙부는 마음을 달리했다. 잠시 후 숙부는 나와 타이드 신부를 데리고 부근의 레스토랑으로 간 것이다. 번잡한 거리를 걸으면서 타이드 신부는 혈색이 좋은 얼굴에 미소를 지으면서 또렷하고 따뜻한 목소리로 말했다. "건강한 것 같군, 짐. 이런 데서 자네를 만나다니 정말 반갑네. 뜻하지 않은 기쁨이군 그래." 레스토랑에서 식사가 시작되었다. 나는 숙부와 타이드 신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화제는 주로 해산물에서 만드는 식량 이야기였다. 식사가 끝날 무렵 타이드 신부는 지진 연구의 이야기를 하였다. 그러자 숙부는 말했다. "미안하네만 신부님, 지금의 나로서는 당신 계획을 원조해 줄 수 없네." "돈이 전부가 아닐세, 스튜어트." 타이드 신부는 숙부를 설득할 듯 말했다. "그렇지만 지진 연구도 하기에 따라서는 돈벌이도 될지 모른단 말일세. 만약에 누군가가 해저 지진을 예지 하는 방법을 안다면 그 인간은 상당한 이익을 취할 수 있겠지. 아니, 해저 지진을 인공적으로 일으킨다는 이야기까지 들은 일이 있네." 뜨거운 커피가 컵에서 숙부의 손에 흘렀다. 숙부는 냅킨(식사할 때 옷에 음식이 묻지 않도록 가슴이나 무릎 위에 펴놓는 수건)으로 손가락을 훔치면서 작은 테이블 너머로 타이드 신부를 바라보았다. "신부님, 당신은 직업상 인간의 죄를 추궁하는 버릇이 있군. 그래서 인간이라는 걸 나쁘게만 보게 되지." 이 비꼬임에 타이드 신부는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럴지도 모르지. 나는 인간의 결점에 대해선 엄격하네. 그렇지만 아무리 결점이 많은 인간이라도 반드시 구제된다고 생각하고 있다네." 커피를 다 마시고 나서 타이드 신부는 의자 등에 기대어 앉았다. "나는 신부가 될 공부를 시작했을 무렵 화산 활동과 지진에 대해서 마음이 끌렸었네. 어째서냐고? 화산 활동이나 지진의 재해가 신의 의지의 표현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네. 그 때부터 지금까지 긴 인생을 나는 지진 연구를 위해 바쳐왔지만, 신에 대한 두려움은 더해 갈 뿐이라네. 인간이 신의 의지를 막을 수 있을 것인가? 물론 불가능하지.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좋을 것인가? 일기를 예지 하듯이 지진을 정확히 예지하면 된다. 그렇게 하면 인간은 신의 뜻을 거스르지 않고 재해에서 구원될 수가 있네." 타이드 신부는 날카로운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타이드 신부가 다나까 중위 밑에서 하고 있는 극비의 작업을 꿰뚫고 있는 것 같아서 등골이 오싹했다. "그런데 지진 예지하고는 정반대인 연구 분야가 있네. 그것은 대단히 위험한 것이지. 사람들의 생존뿐만 아니라 영혼에까지 화를 미치는 것일세. 스튜어트, 자네는 내가 말하는 뜻을 알 수 있을 걸세. 나는 누구인가 그 인간의 이름은 모르지만, 인공적으로 지진을 일으키고 있다는 증거를 잡았단 말이네. 만약에 그러한 기술이 있다면 인간의 생명을 구하는데 써야만 하네. 특정한 인간들의 이익을 위해서만 써서는 안 된단 말이네!" 끝으로 타이드 신부는 격렬한 어조로 외쳤다. 이 말을 하고 싶어서 숙부를 만나러 왔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숙부는 물러서지 않았다. 타는 듯한 눈으로 타이드 신부를 쏘아보고 있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공중에서 서로 부딪쳐, 보이지 않는 불꽃을 퉁기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타이드 신부의 말이 옳다고 생각되었다. 한편 숙부가 해저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안전을 위협하면서까지 돈벌이를 하는 인간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그러나 왜 숙부는 자기에게 씌워진 의심을 풀려고 하지 않을까? 또한 타이드 신부도 인공 지진의 범인이 숙부라는 증거를 가지고 있다면 어째서 더욱 분명히 추궁하지 않는 것일까?) 숨막히는 듯한 대결은 중도에서 흐지부지 끝났다. 타이드 신부는 또다시 온화한 얼굴로 돌아가서 해산 스틱(막대기 모양의 과자) 요리며, 디저트(식사 후에 먹는 과자나 과일)로 나온 해산 과일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숙부는 고개를 끄덕일 뿐 거의 대답하지 않았다. 점심이 끝났을 때 나는 안도의 숨을 쉬었다. "몸조심 하십시오." 타이드 신부는 인사를 하고 떠났다. 나는 숙부하고 같이 시끄러운 거리를 지나서 약간 지저분한 사무실로 향했다. 숙부는 아직 입을 다문 채 괴로운 모양인지 비칠비칠 걸었다. 그러나 88번지 입구에 오자 갑자기 내 손을 잡고 강한 말투로 말했다. "짐, 너하고 아직 이야기하고 싶은데, 또 한 사람 손님이 있다." "네, 다음에 또 오겠어요." 나는 숙부에게 인사를 하고 곧 거리로 되돌아왔다. 왜 숙부가 갑자기 나를 쫓아 버렸는지 그 이유를 알았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88번지에 다가갔을 때 한 사나이가 깨끗하지 못한 입구에서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내가 알고 있는 인간이었다. 몇 번이나 전에 본 일이 있는 그 사나이는 늙어빠진 중국인이었다. 중국인은 조그맣지만 무거워 보이는 꾸러미를 갖고 있었다. 그것이 내게는 도둑맞은 지오존데하고 꼭 같은 크기로 자꾸만 생각되었다. 나는 어디를 어떻게 지나서 기지로 돌아왔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기숙사에 들어가니까 밥 에스코하고 할리 단소프가 이상한 눈초리로 나를 쳐다보았다. "운이 좋은 녀석이야! 다나까 준위는 어째서 자네에게만 외출 허가증을 내 주었을까?" 할리는 부러운 듯이 큰 소리로 말했다. "짐, 곧 스테이션 케이(K)로 가게. 다나까 중위가 기다리고 있네 " 밥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밥이나 할리와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안성맞춤이었다. 땅 밑의 지진 관측소는 기분 나쁠 정도로 조용했다. 그 사무실 책상에서 다나까 중위가 지각(지구의 외각) 심도도(깊은 정도를 그린 지도)에 관측 데이터 (사항 자료)를 써넣고 있었다. "자넨가. 무엇인가 보고할 만한 일이 있었나?" 다나까 중위는 피로해 보였으나 날카로웠다. "아무 것도 없습니다!" 라고, 나는 답했다. 숙부를 찾은 것은 비밀로 해 두었다. 별로 새로운 사실도 없는데 숙부의 일을 보고해서 다나까 중위의 의혹을 더욱 깊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네.“ 다나까 중위는 빨간 연필로 지각 심도도에 그림자를 그려 넣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얼굴을 들자 움푹 패인 눈을 내게 돌렸다. "나는 에스코 후보생에게 외출 허가를 해주었다. 에스코 후보생이 청구해 왔고 그것을 물리칠 아무런 이유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밥은 기숙사에 있었습니다." 내가 그렇게 대답하자 다나까 중위는, "그야 그렇지. 나는 해리스 준위더러 자네가 돌아올 때까지 외출시키지 말라고 일러두었네. 말하자면 자네에게 에스코 후보생을 미행해 달래기 위해서였지." "밥을 미행한다? 그런 일은 할 수 없습니다. 밥은 내 친구입니다!" 나는 얼굴이 빨갛게 되도록 열을 내어 항의했다. "침착하게, 이든 후보생. 자네가 에스코 후보생의 친구라는 건 나도 잘 알고 있네. 그렇기 때문에 자네에게 미행을 부탁하는 걸세. 자네가 싫다면 해저 함대 보안국에 모든 것을 맡기지 않으면 안 되는 걸세. 지금 같아서는 나는 밥 문제를 내 손으로 해결했으면 하고 생각하네. 만약에 밥이 명령 위반의 행위를 했더라도 내가 꾸짖기만 하면 되니까 말일세. 그러나 수사를 보안국으로 넘기면 밥은 군규 위반으로 문책 받아 처분될지도 알 수 없단 말일세. 알겠나, 이든 후보생?" 다나까 중위는 입을 다물고 나의 대답을 기다렸다. "할 수 없군요." 나는 한숨을 뿜어냈다.     구정물 처리장에 잠수선!   한 시간 후 나는 시내에서 밥 에스코의 행동을 비밀리에 감시하고 있었다. 미행은 간단했다. 나는 제복 위에 코트를 입고 기지의 정문 옆에 숨어 있었다. 그런 일이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모르는 밥은 정문을 나서자 곧바로 엘리베이터로 걸어갔다 나는 뒤를 밟았다. 밥은 한 사나이를 만났다. 늙어빠진 중국인이었다. 아까 들고 있던 무거워 보이는 꾸러미는 이미 가지고 있지 않았다. 어딘가에 놓고 온 모양이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되었다. 밥하고 중국인이 서로 만난 것은 지하 1층으로 바로 기지의 정문 위에 해당되는 곳이다. 거기에서 두 사람은 엘리베이터로 기지보다 아래에 있는 구정물 처리 구역으로 내려갔다. 해저 도시 그라카타우 전체의 구정물이 이곳에 모여져서 강력한 펌프 작용으로 5천 미터의 해저로 배출되고 있는 것이다.. 돔을 둘러싼 무서운 수압과 싸우는 배수 펌프의 고동이 발 밑에서 전해져 온다. 두 사람은 배수 터널의 한 곳으로 들어갔다. 바닥은 가운데가 통로이고 양쪽 벽에 붙은 쪽이 배수구로 되어 있었다. 벽의 조명으로 두 사람의 모습이 또렷이 보였다. 또한 편리한 것은 배수구를 흐르는 물소리가 내 발자국 소리를 지워 주는 것이었다. 긴 터널이었다. 대체 어디까지 계속되는 것일까? 이미 해저 도시를 둘러싼 돔 안은 아니다. 해저 밑에 나와 있다. 내 머리 위에는 100미터의 바위와 4천 미터의 해수가 있는 것이다. 터널의 벽과 천장은 바위가 직접 노출되어 있는 부분이 많았다. 그곳에 해수가 스며 나와 바위를 흘러내리고, 혹은 커다란 물방울이 되어서 철썩철썩 하고 방바닥과 배수구에 떨어진다. 그 해수는 심해의 냉기와 소금 냄새를 터널 안으로 끌어 들였다. 갑자기 전방에 두 사람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터널이 구부러진 것이다. 나는 걸음을 빨리 해서 구부러진 곳으로 가 보았다. 거기서부터 앞은 암흑이었다. 일순 위축되는 마음을 북돋워 나는 귀를 기울였다. 들려 오는 것은 터널 안에 울려 퍼지는 물소리뿐이다. 그러는 사이에 새파란 불빛이 보였다. 그것은 어둠 속을 둥실둥실 헤엄치듯이 움직이고 있다. 나는 청백색 등을 목표로 걷기 시작하였다. 터널이 끝나고 홀 같은 조금 넓은 곳으로 나갔다. 거기서 갑자기 걷는 것이 힘들었다. 땅바닥 전체에 물이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점점 깊어져서 복사뼈 위까지 찼다. 얼음처럼 차다. 발뿐만이 아니다. 친정에서 떨어지는 바닷물이 코트를 통해 제복으로 스며들었다. 덜덜 떨면서 나는 철벅철벅 물을 차며 걸었다. 물은 더욱 깊어지고 흐르는 속도도 빨라졌다. 50미터쯤 앞으로 가자 전방의 등불이 멎었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잠시 동안 기다렸으나 등불은 움직이지 않았다. 겨우 나는 생각이 미쳤다. 그 불빛은 등불 그 자체가 아니다. 젖은 바위가 빛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 빛은 광장에 입을 벌린 또 다른 터널에서 새어 나오는 것이었다. 나는 또다시 걸음을 빨리 하여 그 터널로 들어갔다. 등불과 함께 두 사람의 그림자가 보였다. 터널은 앞으로 고꾸라질 만큼이나 가파른 내림세였다. 그렇기 때문에 물의 흐름도 그만큼 빨라서 발이 떠내려갈 것만 같았다. 나는 한 발짝씩 발 밑을 더듬으며 걸었다. 물은 양쪽 벽에 가까워질수록 깊어졌다. 중앙은 간신히 발을 덮을 정도여서 걸어가기가 좋았다. 그러나 천장에서 찬물이 쉴 새 없이 떨어져 내 제복은 흠뻑 젖었다. 마침내 나는 터널을 나왔다. 그곳은 원형의 넓은 방이었다. 중앙에 거대한 구정물이 모이는 탱크가 있어서 6개의 터널에서 흘러나오는 더러운 물이 굉장한 물소리를 내면서 떨어지고 있었다. 방의 천장은 콘크리트로 굳혔으나 주위의 벽은 착암기 자리가 보일 정도로 노출된 현무암이었다. 내 발 밑에서 암반이 흔들거렸다. 구정물 탱크의 물을 해저로 배출하는 펌프의 진동이다. 청백색 빛이 커다란 방안을 어슴푸레 비치고 있었다. 그렇지만 천장에도 벽에도 조명등은 없었다. 그 빛은 구정물 탱크 속에서 나오고 있는 것 같았다.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나는 거대한 탱크 옆으로 다가갔다. 물의 흐름이 내 발 주변에서 소용돌이치며 거품을 내고, 나를 탱크 속으로 떠밀어 넣으려고 한다. 나는 양손을 짚고 네 발이 되어 흐름에 저항하면서 탱크 속을 들여다보았다. 나는 청백색 빛의 정체를 알았다. 그것은 이든나이트 막의 발광이었다. 구정물 탱크에 떠 있는 잠수선을 덮은 이든나이트 막은 청백색 빛을 방출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렇게 이상한 풍경을 나는 본 일이 없다. (구정물 탱크 속의 잠수선!) 나는 전신이 물에 빠진 생쥐처럼 되어 있는 것도 잊어버리고 잠수선을 지켜보았다. 그것은 수중 카였다. (이렇게 큰 것이 어떻게 해서 바다로 나가는 것일까?) 구정물 탱크에 워터(물) 로커 같은 것이 있을 리 없다. 구정물 탱크의 수면은 가장자리에서 4미터 가량 아래였다. 터널에서 나온 더러운 물이 폭포처럼 흘러 떨어져 물거품을 튀기고 있었다. 수중 카의 긴 선체는 물거품이 퉁기는 수면 높이에 떠서 뭉툭한 전망대가 1미터 가량 위로 솟아 있었다 늙어빠진 중국인이 전망탑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교대로 다른 사나이가 좁은 갑판으로 나왔다. 그 사나이는 손잡이를 잡고 검은 수면을 들여다보았다. 사나이는 기다렸다. 그 수 미터 위에서 나도 기다렸다. 돌연 둥근 헬멧(위험을 피하기 위하여 쓰는 서양식 투구형 모자)이 수면을 가르고 나타났다. 온도 조절 장치가 달린 잠수복을 입고 있다. 그것은 당연한 것이다. 보통 잠수복 정도로는 얼음처럼 찬 물 속에서 1분간도 살아 있을 수 없다. 잠수복의 사나이는 수면에 드리워진 로프의 끝을 잡고 갑판에 있는 사나이에게 신호를 하고는, 또다시 물 속으로 들어갔다. 갑판의 사나이가 로프를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몹시 무거운 모양이었다. 사나이는 숨이 차서 때때로 몸을 펴서 위를 보았다. 내 모습은 어둠에 싸이고 물거품에 가려서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아래 사나이의 얼굴이 똑똑히 보였다. 그것은 밥 에스코였다. 갑자기 나는 추워졌다. 온 몸이 얼어붙는 것 같은 추위다.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실이 꿈이기를 나는 바랐다. 그렇지만 모두가 현실인 것이다. 또다시 잠수복의 다이버가 떠올랐다. 무엇인가를 안고 있었다. 밥하고 둘이서 살금살금 신중히 수중 카의 갑판에 끌어올렸다. 그것은 직경 15센티 가량의 금빛으로 빛나는 금속으로 된 공이었다. 주위에는 스텐레스의 밴드가 둘러져 있고 둥근 동그라미가 달려 있었다. 그 동그라미에 로프가 튼튼하게 매어져 있었다. 나는 흠칫 놀랐다. 그것은 핵폭발 장치였다. 일반적인 말로 하자면 '수폭' 이었다. 물론 핵무기를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엄금되어 있다. 나는 추위도 잊어버리고 핵 해적들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다. 밥은 금색의 금속구(금속으로 된 공)를 해치(갑판의 승강구)에 넣었다. 그것을 선내에서 중국인이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밥은 로프 끝을 수면의 잠수부에게 던졌다. 잠수부가 물 속으로 들어갔다 다시 떠올랐다. 로프 끝에는 또 하나의 금속구가 매어져 있었다. 2개, 3개, 4개...... 합계 8개의 금속구가 해치에서 배 안으로 옮겨져 들어갔다. 8발의 수폭 ! 그 1발만으로도 해저 도시 그라카타우를 날려보낼 위력이 있는 것이다. 어떠한 목적이 있다하더라도 밥들의 행동은 위험 천만인 것이다. 잠수부가 무서운 작업을 완료하고 수중 카의 갑판에 기어올라 잠수복과 헬멧을 벗었다. 나는 어느새 몸을 앞으로 내밀어 하마터면 탱크 속에 떨어질 뻔했다. 헬멧을 벗고 나타난 새까만 얼굴, 그것은 숙부의 오른팔 기데온 파크가 아닌가! 기데온은 잠수복의 손질이 끝나자, 로프를 끌어올리며 밥에게 무슨 말인가를 했는데, 물소리에 지워져 내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두 사람은 해치로 들어갔다. 수중 카의 내부에서 모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해치가 닫혔다. 전망탑이 들어가고 선체를 덮은 이든나이트가 숨을 쉬는 듯이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이 때 내 마음속에서 수수께끼가 풀렸다. 구정물 탱크에는 잠수선이 바다로 출입하는 워터 로커가 있을 리 없다. 이 배는 로커가 필요 없는 것이다. 이 배는 바닷속을 항해하기만 하는 수중 카가 아니다. 보다 더 강력한 성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 배는 지저 굴진 카이다. 굳은 암반을 버터처럼 긁어내며 전진하는 원자력 드릴을 장비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전망탑을 들여놓아 전체가 원추형의 원자력 드릴 그 자체처럼 보인다. 내게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지저 굴진 카는 해저 함대가 극비로 시험중인 것이다. 그것을 어떻게 민간인이 손에 넣었단 말인가? 지저 굴진 카는 잠수를 시작했다. 검은 뿔이 선체를 덮고 이든나이트가 압력의 변화에 반응해서 빛나기 시작했다. 검은 수면은 곧 빛을 막았다. 선체가 구정물 탱크를 둘러싼 암반 속으로 파고 들어간 모양이다. 암흑이 주위를 둘러쌌다. 나는 몸을 떨면서 저린 발로 일어나 터널을 향했다. 주위는 숨이 막힐 듯한 어둠이다. 발 밑에서 암반이 흔들리고 있다. 구정물 배출 펌프의 고동인가? 아니면 지저 굴진 카의 원자력 드릴의 진동인가? 언 발을 끌면서 나는 축축이 젖은 터널을 되돌아 나왔다. 이 바다 밑을 지저 굴진 카가 나의 두 친구와 8발의 수폭을 싣고서 어딘가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진도 +(플러스) -(마이너스)   내가 기지로 돌아온 것은 2400시가 지난 시간이었다. 뜨거운 샤워를 하고 말쑥한 제복으로 갈아입고 싶었다. 그것보다도 '내 눈이 어떻게 된 모양이다. 내가 지금 보고 온 것은 현실이 아니다' 라고 누구에게 호소하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젖은 옷인 채로 스테이션 케이(K)로 향했다. 다나까 중위는 이미 일을 시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곧 보고를 요구했다. 책상 위에는 해저 도시 그라카타우를 중심으로 2천 킬로 사방의 지진 에너지의 축적도가 펼쳐져 있었다. 나는 내가 보고 온 것을 상세히 얘기했다. 그렇지만 어떻게 된 탓인지 다나까 중위는 놀라지 않았다. 때때로 지진파 그래프에 눈을 주기도 하며, 끝까지 시큰둥하게 듣고 있었다. 나는 이야기의 요점을 되풀이했다. "그자들은 지저 굴진 카를 갖고 있습니다. 더욱이 거기에 수소폭탄을 여러 개 싣고 있었단 말입니다." "그 점을 나는 믿을 수 없네. 마치 옛날 이야기 같군 그래. 지저 굴진 카는 지금 온 세상을 통틀어 6대밖에 없단 말이네. 그걸 민간인이 가지고 있으리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네. 거기에 밥 에스코가 타고 있었다는 이야기는 아무래도 난센스(무의미, 엉터리)란 말이네!" 다나까 중위는 고개를 가로젓고는 태도를 바꿔 물었다. "자네는 지금 얘기한 사실을 증명할 수 있겠나?" "네. 이게 무엇보다도 확실한 증거입니다. 자, 보십시오!" 나는 흠뻑 젖은 제복을 가리켰다. 내 구두에서는 찬물이 아직 스며 나오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다나까 중위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분명히 자네는 젖어 있네. 하지만 좀더 확실한 증거는 없나?" "없습니다. 다만 밥 에스코는 지저 굴진 카로 지하에서 돌아오지 않으면, 기지에 돌아오지 않을 것이 확실합니다." "그것도 증거는 될 수 없단 말일세. 밥 에스코는 다른 장소에 있을지도 알 수 없지. 오히려 다른 장소에 있다고 생각하는 쪽이 옳을 걸세. 역시 자네 이야기는 믿을 수 없네. 어쩌면 자네는 자기 숙부를 옹호하기 위해서 적당히 이야기를 꾸며 대고 있는 게 아닌가?" 당치도 않은 소리다. 나는 화가 벌컥 치밀었다. "중위님!" "아니 내가 틀렸으면 사과하네. 그렇지만......." 이 때 빨간 불이 켜지고 벨이 올렸다. 송신관으로 통신이 온 신호다. 다나까 중위는 수신구에서 캡슐을 끄집어내어 통신문을 꺼내어 펼쳤다. 거기에는 '컴퓨터과'라는 글자가 인쇄되어 있었다. 그것을 본 순간 나는 왜 다나까 중위가 내 말을 건성으로 들었으며 핀트가 맞지 않은 반응을 나타냈는가를 알아챘다. 무슨 일인가가 일어난 것이다. 밥 에스코의 일과 분실한 지오존데를 생각할 여유가 없을 정도로 중대한 일인 모양이다. 배수 처리의 구정물 탱크에 있었던 지저 굴진 카와, 민간에서는 사용 금지의 수소 폭탄의 사건까지 옛날 얘기라고 처리해 버릴 정도로 무엇인가 중대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이 글이 나에게 여러 가지 일을 말해 주었다. 지진 예지에는 여러 가지 데이터가 필요하지만, 그 데이터를 사용하기 전에 하나씩 신중하게 검토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컴퓨터는 거의 소용이 닿지 않는다. 컴퓨터라는 것은 확실히 많은 양의 복잡한 계산을 순간적으로 처리할 수가 있다. 그러나 데이터에 대한 판단력이 없다. 따라서 지진 예지에서는 단 하나의 경우를 빼고는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는다. 단 하나의 경우란 누군가가 자기가 계산한 지진 예지의 결과에 자신이 없을 때다. 그 때는 자신의 계산에 수학적인 실수가 있는지 어떤지를 컴퓨터를 써서 확인해 보는 것이다. 그러나 다나까 중위는 컴퓨터의 회답을 보고 자기 계산의 실수를 알아 챈 것도 아닌 모양이다. 통신문을 아래로 떨어뜨리고 의자에 앉아 허공을 응시했다. "무슨 좋지 못한 일이 생겼습니까?" 나는 이렇게 물었다. "좋지 않은 일?" 다나까 중위는 입을 일그러뜨리고 찡그리며 웃었다. "그렇게 말할 수 있겠지. 지하 심부의 지진 에너지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네." "그렇지만 오늘 관측으로는......." 내 말을 다나까 중위가 막았다. "오늘밤 관측 결과로 나타났단 말일세. 지진 에너지가 대단히 빠른 속도 증가율을 나타내고 있네. 무슨 일인가가 지하 심부에서 일어나려 하고 있는 증거일세." 비로소 나는 관측실을 둘러보고 각종 관측 지도와 측심도에 눈을 돌렸다. 어느 관측 지도도 이상을 나타내고 있었다. 지하 에너지의 증가는 0900시에서2300시에 사이에 현저했다. 다나까 중위가 내 뒤에서 진지하게 말했다 "나는 특별 지오존데 관측을 명령하려고 한다. 지하 2백 킬로에 지오존데를 내려놓는다면 정확한 지진 예지 데이터를 얻을 수 있겠지. 그러나......." 왜 마지막까지 말 할 수 없는가. 나는 잘 알고 있다. 지오존데를 그 정도로 지하 깊이 내려도 성공할 기회는 극히 드물다. 지중의 압력이 너무나 강한 것이다. 10개중에 9개의 지오존데는 2백 킬로까지 내려가기도 전에 그 압력에 파괴되고 말 것이다. "해 보기로 하세. 지하 20킬로 정도나 될지 모르지만......." 다나까 중위는 혼자서 중얼거리더니 내게 얼굴을 돌렸다. "지금의 내게는 구정물 탱크에 있던 지저 굴진 카 얘기도 확실한 증거가 없으면 제대로 들을 여유가 없네." "증거가 필요하다면 구정물 탱크를 다 비워 놓고 주위의 암벽을 조사해 보면 좋겠죠." 라고 나는 제의했다. "오늘밤은 구정물 탱크의 배수를 하고 있을 여유가 없네. 특별 지오존데 관측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 말이야. 자네는 이제 돌아가도 좋아. 기숙사에 가서 잠이나 자게." 다나까 중위는 내가 방을 나오기도 전에 빨갛게 충혈 된 눈으로 관측 지도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기숙사에 돌아오자 나는 뜨거운 샤워 아래 서서 얼어 버릴 뻔한 발의 감각이 돌아올 때까지 열심히 주물렀다. 그리고 침대에 기어들었지만 눈이 말똥말똥해져서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내가 숙부의 일을 옹호하기 위해서 있지도 않은 일을 만들어 냈으리라고 말한 다나까 중위를 원망할 마음은 없었다. 나 자신조차도 내가 목격한 일을 믿을 수 없는 것이다. 어떻게 밥 에스코와, 늙어빠진 중국인과, 숙부의 친구인 기데온 파크가 지저 굴진 카에 올라타고 있었는지 내게는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 그 세 사람이 어디서 수폭을 손에 넣은 건지 영 짐작도 안 간다. 그 수폭을 대체 어떠한 목적으로 사용하려고 했을까? 나는 찔끔해서 후닥닥 침대 위에 일어나 앉았다. 다나까 중위가 지금 애태우고 있는 지진 에너지가 증가하고 있는 것과 관계가 있는 것이나 아닐까? 나는 타이드 신부의 말을 생각해 냈다. 누군가가 인공 지진을 일으키고 있다. 주가(주식의 값)를 조작하기 위해서 인공 지진을 일으키고 있다. 그렇지만 밥들이 지저 굴진 카로 땅 밑으로 운반해 간 수폭이, 현재의 지진 에너지가 격증하고 있는 것과 직접 관계가 있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만약에 수중에서 수폭이 폭발한다면 축적되어 있는 지진 에너지를 해방시켜 실제로 지진을      일으킬 것이다.나는 가슴을 쓰다듬고 곧 깊은 잠에 빠졌다. 그리고 나쁜 꿈을 꾸었다.나는 해저 도시 그라카타우를 에워싸고 있는 돔의 균열(갈라져 나누어짐)을 발견했다. 거기로 차가운 바닷물이 스며들어 바닥에 떨어져 작은 흐름이 되고, 또 소용돌이치는 강이 되어 좌악좌악 시내로 침입했다. 나는 이든나이트 막이 찢어진 곳을 수리하기 위해 숙부를 부르러 가려고 했으나, 금방 찬물을 뒤집어쓰고 몸이 얼어서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는 것이다. 물은 내 턱까지 찼다. 누군가가 나를 잡아 물에서 건져 주었다. 나는 눈을 떴다. 나를 흔들어 깨운 것은 할리 단소프였다. "가위에 몹시 눌린 모양이군, 짐, 저녁에 오징어를 먹었나?" 잠수부 사이에선 오징어를 먹으면 나쁜 꿈을 꾼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었다. 그러나 그 이야기를 하면서도 할리의 얼굴은 무표정했다. "우리들은 전원 30분 이내에 스테이션 케이(K)에 출근하도록 명령이 내렸네. 짐." 나는 졸린 눈을 비비며 손목 시계를 찾았다. "지금 몇 시인가? ......." "0500시네, 짐." 할리가 말했다. 나는 몸을 일으켰다. 다나까 중위는 우리들을 보통 때보다 3시간이나 일찍 근무하도록 하고 있다. 무슨 일이 생긴 것이다. 지하 심부에 고여 있는 지진 에너지에 관한 문제인 것일까? 우리들이 스테이션 케이(K)에 도착했을 때 케로우 중위가 근무하고 있었다. 그는 다나까 중위의 신고장을 받아 지오존데를 지하로 내리는 작업을 지휘하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작업을 거들어 주라고 명령하였다. 케로우 중위는 언짢은 기색으로 초조해 하고 있었다. 밥 에스코는 스테이션 케이(K)에 없었다. 기숙사에도 있지 않았다. 그러나 다나까 중위는 전혀 신경을 쓰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우리들이 지오존데를 지하로 내리는 작업을 하고 있는 동안, 다나까 중위는 스테이션 케이(K)의 한 구석에 있는 어느 조그만 관측 지도실 침대에서 큰 대자로 누워 자고 있었다. 작업은 잘 진행되지 않았다. 지오존데는 역시 스테이션 케이(K)의 지하실에서 겨우 21킬로 내려가서 망가져 버린 것이다. 그러나 망가지기 전에 수초 동안 귀중한 관측 데이터를 음파로 보내왔다. 그것은 굉장히 높은 온도와 이상한 중력 변화였다. 이 2개의 데이터는 스테이션 케이(K)의 지하에 고온이며, 밀도가 짙은 암석의 흐름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나타냈다. 고온이며 밀도가 짙은 작은 암석의 흐름, 그것은 흐물흐물하게 용해된 마그마(땅 속의 깊은 곳에 뜨겁고 녹은 상태로 있는 바위를 만드는 물질. 바윗물)가 틀림없었다. 케로우 중위는 지각 구분도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다나까 중위가 예측하고 있던 대로다. 이든, 단소프, 자네들 두 사람은 곧 지오존데의 관측 데이터를 분석하게. 한 사람씩 분석해서 같은 결과가 나왔으면 좋겠네. 자네들이 습득한 지진 예지 기술을 과시할 절호의 기회다. 열심히 하게." 그래서 할리와 나는 분석 데스크(책상)에 나란히 앉았다. 우선 나는 지하의 등압선(기압이 같은 지점을 서로 이어 맺은 곡선)과 등온선(온도가 같은 지점을 이어서 그린 선)의 중력 변화 지수 등을 지각 구분도에 써넣었다. 그리고 과거의 분석 결과하고 대조해 봐서 장래의 변화를 예지 했다. 다음으로 타이드 신부가 발견한 지진 역학의 법칙을 사용해서 지진 에너지의 축적량을 계산하고, 그 에너지의 방출 범위와 진동 규모 등을 계산했다. 마지막으로 내가 계산해 낸 지진 예지의 수치에 시간과 진도의 확립 오차의 법칙을 적용해서 수정했다. 나는 내 분석 결과에 깜짝 놀라서 할리의 데스크를 들여다보았다. 할리의 계산도 이럭저럭 나하고 같은 결과가 된 것 같았다. 할리의 얼굴은 창백했다. 핏발이 선 눈으로 계산을 다시 하고 있었다. 잠시 후 할리는 얼굴을 들고 불안스럽게 나를 보았다. "짐 , 끝났나?" "응. 끝났네." "자네의 예지는 어떤가?" 할리의 입술은 마르고,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한숨을 들이쉬고 나는 잘라서 말했다. "예측 진도, 10 플러스(+) 마이너스(-) 2. 예측 시간, 36시간 플러스(+) 마이너스(-) 24시간." 그러자 할리는 지우개를 놓고 안심한 듯이 속삭였다. "나는 내 능력에 자신을 잃을 뻔했지만....... 좋았어. 내 해답도 자네하고 같아." 그리고 우리는 입을 다물었다. 굴속 같은 정적이 우리를 휩쌌다. 주위의 벽에서 물이 스며 나왔다. 그것이 소리도 없이 벽을 타고 땅바닥 한쪽에 있는 도랑에 흘러내리고 있었다. 우리들의 머리 위에는 3천 미터의 암석과 4천 미터의 바다가 있는 것이다. "우리들의 예지로는 지진은 빠르면 지금부터 12시간 후에 일어난다. 그리고 그것은 진도 12의 초대형 지진이 될 가능성이 있네." 할리는 의자를 돌려 관측실의 시계를 쳐다보고 큰 목소리로 계속했다. "진도 12의 지진이 일어나면 살아 남을 사람은 하나도 없지."     10억 불의 공황   우리들은 지진 예지의 결과를 케로우 중위에게 제출했다. "일어나게, 다나까 중위!" 케로우 중위는 날카롭게 외치고는 우리들의 지진 예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거기에 잠이 깬 다나까 중위가 비칠비칠하면서 다가왔다. 두 중위는 각기 우리들의 지진 예지를 검토했다. 이윽고 다나까 중위는 한숨을 쉬고, 예지의 계산서를 책상 위에 놓고 케로우 중위를 돌아보았다. "우리들의 계산과 같군. 다나까 중위." 라고, 케로우 중위가 말했다. "음, 마침내 출동할 때가 되었군. 뒤를 부탁하네. 케로우 중위.“ 다나까 중위는 황급히 방을 나갔다. 대체 어디로 가는 것일까? 케로우 중위가 우리하고 마주 앉아 뱉듯이 말했다. "축하하네. 자네들의 지진 예지의 결과는 나나 중위의 예지하고 꼭 일치했네. 이것으로 우리들은 60시간 이내에 대지진의 습격을 받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예언할 수 있네." 우리는 잠시 동안 말없이 앉아 있었다. 지저의 관측소는 기분 나쁜 정적에 싸였다. 바닥에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만 울려 퍼지고 극미소 지진계가 우리들의 마음의 동요까지 기록하는 것처럼 바늘이 흔들거렸다. "대지진에 대해서 우리들은 무엇을 하면 좋습니까?" 할리가 헐떡이면서 말했다. "지진을 기다릴 뿐일세. 무슨 좋은 생각이라도 있나?" 케로우 중위는 그렇게 말하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표정을 굳히면서 말했다. "지진 얘기를 누구에게도 해선 안 되네. 알겠나? 우리들의 일은 극비일세. 개인적으로는 절대로 지진 예지의 결과를 말해선 안 된단 말일세. 상대가 누가 됐던지 말이네." 나는 한 마디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중위님. 해저 도시 그라카타우가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면 시민들은 그것을 알 권리가 있습니다!" "이 해저 도시는 항상 위험에 싸여 있다네." "하지만 이러한 위기는 좀처럼 없습니다. 진도 12의 대지진이 온다면 많은 시민들의 생명을 잃어버린다는 것을 중위님은 생각지 않습니까? 적어도 시민들의 대피 수단을......." "그것은 우리들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걸세. 그것 때문에 다나까 중위가 달려갔지만 말이네." 케로우 중위는 지진 예지 용지를 초조하게 들여다보았다 "스테이션 케이(K)는 해저 함대에 시 당국이 협력해서 설치되었네. 그래서 시 당국의 허가 없이는 우리들은 지진 예지의 결과를 발표할 수가 없다는 규칙을 정했다네. 어젯밤 다나까 중위는 시장에게 전화를 걸었네. 그리고 지급 긴급 회의를 열도록 시장에게 요청하러 간 걸세. 시의회의 승인을 얻지 않으면 지진 예지의 결과를 발표할 수 없기 때문이네." "그렇지만 우리들은 이렇게 가만있을 수만은 없지 않습니까?" 라고, 나는 외쳤다. "가만있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단 말인가?" 화가 난 듯한 목소리로 케로우 중위는 고함친다. 그로부터 2시간 동안 우리들은 새로운 데이터를 보충해서 지진 예보를 검토해 보았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다나까 중위가 스테이션 케이(K)로 돌아왔다. 깨끗이 면도를 하고 새로운 제복을 입고 있었지만, 그 얼굴은 오랫동안 서리 속에 내버려둬서 시들어져 가는 작두콩처럼 쪼그라들어 생기가 없었다. 우리들에게는 말도 하지 않고 서둘러 각종 계기를 읽고, 극미소 지진 그래프를 따라 조사하고는, 천천히 책상으로 뒤돌아갔다. 케로우 중위는 예지가 혹시나 틀리지나 않았나 해서 역(반대)계산을 하고 있었다. "변화가 있나?“ 다나까 중위가 묻자 케로우 중위는 고개를 저었다. "변화는 없네. 시의회 쪽은 어떻게 됐나?" "모두 다 바빠서 회의에 출석하지 못한다는군! 의원들은     거의가 실업가니까 말이네. 그리고 어쩌면 지진 예지를 발표해서 시내에 패닉(경제계가 혼란에 빠지는 상태. 즉 경제 공황)을 일으키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모양일세. 하지만 패닉은 벌써 일어나고 있는걸.""패닉이?" 케로우 중위는 할리하고 나를 쏘아보았다. "지진 예보를 누가 알렸지?" "그런 게 아닐세. 먼젓번 지진의 영향이 꼬리를 끌어 주식이 쏟아져 나와서 주가는 대폭락일세. 오늘도 시장에게 가는 도중에 주식 거래소가 열려 있었는데, 꼭 정신 병원 같은 소동이었네. 나는 단소프 씨하고 전화조차 못했다니까. 긴급한 경우에 대비해서 전화 회선을 확보해 두지 않으면 안 되겠더군. 하여튼 시장은 주식 거래소의 종업(업무를 마침) 후가 아니면, 의결에 필요한 의원의 정수를 모이게 하는 것은 도저히 무리라는 걸세. 이제 3시간만 참으면 되네." 그렇게 말하고 다나까 중위는 손목 시계를 보았다. "우리들이 어떻게 할 수 없습니까?" 나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떻게든 한다?" 다나까 중위는 나를 지그시 바라보고 타이르듯이 말했다. "우리들이 우리 마음대로 지진 예측의 결과를 발표했을 경우를 생각해 보게. 해저 도시 그라카타우 경찰의 협력이 전혀 없다고 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는지 상상할 수 있나? 믿을 수 없는 무서운 혼란이 일어나겠지. 자네가 상상할 수 없는 폭동이 일어날 걸세! 그렇게 되었을 때 과연 시민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을까? 그러나 자네 자신의 일을 걱정하고 있다면 그럴 필요는 없네. 해저 함대는 내가 기지 사령부에 보고한 지진 예지의 결과에 따라 이미 피난 계획을 세우고 있네. 물론 이 스테이션 케이(K)는 가능한 한 활동을 계속하겠지만 만약에 자네가 빨리 피난할 수 있게 다른 근무로 바꾸고 싶다면......." "다나까 중위님, 너무합니다!" 나는 날카롭게 부르짖었다. "아니, 미안하네." 다나까 중위는 웃으며 말했다. "그러면 지오존데를 또 하나 망가뜨려 보게! 새 데이터가 필요해.“ 또다시 지오존데가 21킬로의 지중으로 내려졌다. 그것이 망가지기 전에 보내온 데이터에도 특히 문제가 될 만한 변화는 없었다. 나는 새 데이터를 근본으로 해서 진도와 시간을 다시 계산했다. 해답은 '진도, 11 플러스(+) 마이너스(-) 2도','시간, 30시간 플러스(+) 마이너스(-) 12시간'으로 나왔다. 다나까 중위는 내 해답을 자기 해답하고 비교해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또 일치했군. 먼젓번하고 틀리는 건 지진이 약간 대형이 되고, 지진이 일어나는 시간이 조금 가까워진 것뿐이네." 다나까 중위의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입 언저리가 굳어 있었다. "시장에게 또 전화를 걸고 오겠네." 다나까 중위가 자기 방으로 사라졌을 때 할리가 들어 왔다. 식당에서 횐 뚜껑이 달린 커피 잔을 여러 개 날라왔다. 그 중 1개를 내게 주며 할리는 물었다. "샌드위치 먹을래?" 나는 할리가 내미는 쟁반을 보고 머리를 가로 저었다. 스테이션 케이(K)의 시계는 점심 시간을 훨씬 지나있었지만 별로 식욕이 없었다. "나도 먹고 싶지 않아." 할리도 우울한 얼굴로 말했다. "다나까 중위는 무엇을 하고 있나?" "시장에게 전화를 걸고 있다네." "다나까 중위는 나에게 아버지한테 전화를 걸게 해주지 않을까? 만약에 내가 지진 예지 정보를 알리면 우리 아버지는 10분 안으로 의회를 열게 할걸세." 그 때 다나까 중위가 자기 방에서 나와 조용히 다가왔다. "단소프 후보생, 자네가 부친에게 전화할 필요는없네. 의회는 지금 열렸네." 그리고 케로우 중위에게 얼굴을 돌렸다. "나는 이제부터 시의회에 지진 예지의 결과를 보고하러 가네. 스테이션 케이(K)에 관해서는 자네에게 전 책임을 맡기겠네. 케로우 중위, 시의회는 굉장한 소동이 일어날 걸세. 일부 의원들은 지진 예지 발표를 반대하고 있으니까." "저를 함께 데리고 가 주실 수 없습니까? 제 모습을 보면 부친은 지진 예지 발표에 힘을 빌려 주실 지도 모르는데......." 할리는 열심히 부탁했다. "음, 나는 자네하고 짐 이든을 같이 데리고 갈 작정이네. 단 자네들이 할 일은 관측 지도를 펼쳐 놓는 것뿐일세. 이야기는 내가 하겠네. 잘 알아두게." 해저 도시 그라카타우의 시의회 의사당은 금융 지구와 해상에 떠 있는 비행장 윗 부분의 발착장 사이에 있었다. 시장과 의원들은 해저 생활의 벽화가 그려져 있는 대회의장에서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소란스러운 회의였다. 의원들은 제멋대로 자기 생각을 서로 주장하고 여기저기서 논쟁을 시작하고 있었다. 시장은 10번 이상이나 '정숙'이라고 외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다나까 중위가 연단에 섰어도 아직 떠들썩한 것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러나 다나까 중위의 한 마디로 소란은 딱 그쳤다. "진도 11도의 해저 지진이 얼마 안 있어 일어납니다." "진도 11도라고?“ 시장은 놀라서 되물었다. "예측 진도 11도 입니다." 다나까 중위는 되풀이한다. "예측 진도 11도라?" "예측이라면 진도가 그대로 11도가 될 수도 있겠지?" 벤 단소프가 말참견을 하였다. "그렇습니다." "혹은 진도가 9도, 8도 아니 7도 일는지도 알 수 없지." "아뇨. 그것은 너무 낮게 보시는 겁니다." 다나까 중위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하지만 가능성은 있을 테지?" "가능성은 있습니다만 확률로 보아 대단히 희박합니다." "알았소, 중위. 당신은 확률의 문제를 근거로 해서 우리들 보고 이 해저 도시에서 피난하라는 말이군. 그것을 실행하려면 얼마마한 비용이 들 것이라고 생각하오?" 이 말을 듣자 다나까 중위의 다갈색 눈동자가 분노로 이글거렸다. "돈 문제가 아닙니다. 단소프 씨!" "아니, 문제지요 중위. 우리들은 돈을 위해서 일하고 있는 거요. 그리고 우리들이 거액의 세금을 내지 않으면 사회 그 자체가 성립될 수 없지. 물론 당신네들 과학자가 소용이 되는 정보를 우리에게 제공해 주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내 아들도 당신의 부하로 일하고 있소. 내 아들은 아주 우수한 놈입니다. 하지만 아직 어린애요. 우리들은 어린애들에게 이 해저 도시 그라카타우를 이래라 저래라 할 수는 없습니다! 중위, 당신은 지금 우리에게 지진의 위험에 직면해 있다고 가르쳐 주었소. 이야기는 잘 알아들었소. 그래서 당신은 우리에게 어쩌라는거요?" "대지진은 48시간 이내에 일어납니다. 전 시민은 곧 피난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다나까 중위는 고집스럽게 주장했다. "하지 않으면 안된다, 라는 말은 너무 지나쳤네, 중위!" 단소프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서 고함친다. "당신이 할 일은 지진 예지를 하는 것뿐일세! 거기에 따라 어떠한 방법을 쓰느냐 하는 것은 우리들이 결정할 것이네. 나로서는 피난은 절대 반댈세!" 순간 넓은 의장 안이 조용해졌다. 다나까 중위는 가방에서 노트를 끄집어내어 의원들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나는 시 당국의 건설 기사들의 의견을 들었습니다. 이것이 그 보고입니다. 기사들의 말에 따르면 해저 도시 그라카타우는 진도 9도까지의 지진에는 견디어 낼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이든 나이트의 안전 셔터가 완전히 가동하면 대부분의 시민은 살아 남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도 10도가 되면 이겨 낼 수가 없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우리들의 지진 예지로는 지금부터 일어날 지진이 진도 11도나 아니면 12도가 될 우려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중위, 나는 나의 주장을 반복할 수밖에 없군. 해저 도시 그라카타우 시민은 피난할 필요가 없소." 여기서 벤 단소프는 시장 쪽을 향했다. "시장, 그 이유를 중위에게 설명해 주시오." 시장은 혈색이 좋은 큰 사나이였지만 단소프가 갑자기 발언하라는 바람에 놀란 모양이어서 이마의 땀을 씻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시 당국에서는 만일의 경우를 생각해서 특별 직원들이 수년간이 걸쳐 피난 문제를 연구해 왔습니다. 오늘 아침, 제가 직원들에게 현재 전 시민이 당장에 피난할 방법을 물었던 바 불가능이란 대답을 들었습니다. 현재의 전 인구는 75만 명입니다. 사용이 가능한 모든 선박을 동원해 본대도 5만 명 이상은 운반할 수 없습니다. 만약에 이틀간의 여유가 있다면 육상이나 해상에 피난길을 설치해서 10만 명쯤은 피난시킬 수 있습니다. 떠 있는 비행장을 사용해서 5만 명에서 10만 명을 피난시킬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해저 도시에는 50만 명이나 되는 어른과 아이들이 남아서 해신(바다를 다스리는 신령)의 저주가 다가오는 것을 기다리지 않으면 안됩니다." "어째서 당신은 평상시부터 좀 더 좋은 계획을 세워 두지 않았습니까? 언젠가 이러한 위기가 오리라는 것을 당신은 생각하지 않았습니까?" 다나까 중위는 홧김에 외쳤다. "중위! 말이 지나치군!" 시장 역시 얼굴을 벌겋게 물들이고 같이 외쳤다. 그러나 벤 단소프는 시장을 말리고는 대신 자기가 말하기 시작했다. "중위, 물리적인 이유만이 아니라 심리적인 문제도 있소. 대부분의 시민은 가령 피난할 수 있다 쳐도 여기서 떠나는 것을 원하지 않을 거요. 여기는 우리들의 집이오. 우리들에게 피난을 명령하는 지진 예지는 고맙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요." 그리고 시장을 돌아다보며 말했다. "시장, 나는 중위에게 감사하고, 지하의 보금자리로 돌아가 주기를 제안하는 바요." 의원들 사이에서 또다시 의논이 시작되었지만, 회의를 지도하고 있는 것은 벤 단소프였다. 시장조차도 단소프에게 조종당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우리들은 힘없이 회의장에서 나와 지하의 보금자리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연판으로 둘러싼 금고   다나까 중위는 노여움을 감추려고 했으나 감출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시의회 의사당을 나온 우리들은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걸어가면서 할리가 입을 열었다. "다나까 중위님, 부친의 일을 나쁘게 생각지 마십시오. 아버지는......." "괜찮아! 핑계 따윈 듣고 싶지 않네!" 하고, 다나까 중위는 고함쳤다. "핑계를 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부친은 실업가입니다. 중위님이 그 점을 이해해 주시기 바라는 겁니다." "알고 있네. 자네 아버지는 살인자라는 걸 말이네." 다나까 중위는 끝까지 냉담했다. "그렇지만 저에게는 아버지는 어떻든 아버지입니다." "미안하네, 이 일로 인해서 나는 신경이 너무 날카로워진 모양이네." 다나까 중위의 마음속을 우리들은 알 것 같았다. 이곳에는 거대한 현무암의 기둥이 즐비하고, 호화스러운 사무실과 시 건물 빌딩이 나란히 서고, 그 사이를 시민들이 바쁜 듯이 왕래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들의 지진 예지가 옳은 것이라면 이틀 동안에 모두 죽어 버리게 된다. 해저 도시      밑에 있는 암반 그 자체가 허물어져서 빌딩이 무너지고 도움의 이든나이트 막을 찢어 버리고 5천 미터의 수압이 시 전체를 납작하게 눌러버린다. 그리고 다음 주에는 해저 도시 그라카타우의 폐허는 심해의 낙지와 오징어의 집으로 되어 있을 것이다. 그것을 막을 방법은 아무 것도 없다.시 자체가 시민들의 생명을 구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단소프 후보생!" 돌연 다나까 중위가 입을 열었다. 할리는 부동 자세를 취했다. "단소프, 전화를 걸어 주게. 나 대신 기지 사령관을 불러내어 시의회가 내 권고를 거부한 것을 보고하게. 해저 함대가 독립 행동을 취하는 편이 좋겠다고 전하게." "네, 중위님!" 할리는 서둘러서 전화 박스로 향했다. 그것을 바라보면서 다나까 중위는 중얼거렸다. "해저 함대는 피난해도 자기만은 피난하진 않겠지. 시민의 일부를 구하려고 할 게 틀림없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까?" 하고, 나는 물었다. "있고 말고! 할리 단소프가 전화를 하고 돌아오면, 우리들은 즉시 최근 연거푸 일어나는 지진이 인공적인 것인지 어떤지, 그것을 조사하러 가는 것일세!" 다나까 중위는 힘차게 대답했다. "그렇다면 제가 지저 굴진 카를 본 구정물 탱크로 안내하겠습니다. 물을 뿜어 내지 않더라도 잠수복을 입고 들어가면......." 나는 기운이 나서 말했지만, 다나까 중위는 웃으면서 말하는 것이었다. "서둘지 말게. 나는 구정물 탱크를 조사하러 갈 마음은 없네. 자네 숙부님의 사무실을 조사하는 걸세." 할리가 돌아오자 우리들 세 사람은 곧 4층으로 향했다. 우리들은 잠자코 있었다. 할 말이 없었던 것이다. 시내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서는 공황 같은 것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제 7구의 거리에는 무거운 전기 트랙이 여전히 시끄럽게 달리고 있었다. 공장이나 창고에서는 노동자들이 바쁜 듯이 일하고, 주변에는 해산물의 냄새가 진하게 떠돌고 있었다. 나는 다나까 중위와 할리를 안내해서 88번지의 창고 사이에 있는 어두컴컴한 계단을 올라가 복도를 지나서 '이든 기업'의 문 앞에 섰다. 역시 나는 망설였다. "열어!" 다나까 중위는 명령했다. 나는 문을 열고 사무실에 들어갔다. 기데온 파크가 지저분한 책상에서 낡은 타이프를 치고 있었다. 얼굴을 들어 나를 보자 타이프에서 손을 떼면서 외쳤다. "짐! 잘 왔네!" 그러나 내가 혼자가 아닌 것을 알자 웃음이 사라졌다. 붙임성 있는 검은 얼굴이 쌀쌀해졌다. 낡은 타이프 라이터에 플라스틱 커버를 하고, 치다만 타이프 용지를 감추고 천천히 일어섰다. 나는 망설이면서 말했다. "이 쪽은 다나까 중위라네, 기데온." "만나 뵙게 되어서 대단히 반갑습니다. 중위." 기데온은 정중히 인사를 했다. 그러나 다나까 중위는 사무적으로 말했다. "스튜어트 이든을 만나고 싶소. 여기에 안 계신가?" "계십니다. 구석방입니다." "그런가." 다나까 중위는 구석방을 향해 곧바로 걸어갔다. 그러나 기데온이 재빨리 가로막았다. "미안하지만 스튜어트는 지금 취침중이라서......." "깨워 주게!" "그게 곤란합니다, 중위. 스튜어트는 건강이 좋지 않습니다. 의사의 지시에 따라 매일 이 시간은 휴식을 위해 낮잠을 자게 되어 있습니다. 한 시간쯤 후에 다시 오실 수 없을까요?" 기데온은 정중히 설명을 했다. "자네는 무엇인가 숨기고 있군, 파크! 저리 비키게!" 다나까 중위는 외쳤으나 기데온은 움직이지 않았다. 커다란 검은 얼굴에 아무런 표정도 없이 문 앞에 버티고 서 있었다. 다나까 중위의 얼굴은 창백해지고 흥분한 나머지 떨고 있었다. 순간 나는 맞붙잡고 싸우는 것이나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나까 중위는 자기 감정을 누르고 한 발 물러섰다. "미안하네, 파크. 내 태도가 좀 예의에 어긋났던 모양일세. 그렇지만 나는 역시 해저 함대 일로 여기에 왔네." "해저 함대의?" 기데온의 표정이 미미하게 움직였다. "중요한 조사를 하기 위해서네. 파크, 만약에 스튜어트 이든이 사실상 있는 것 같으면 깨우는 편이 좋을 걸세. 스튜어트 이든은 대단히 복잡한 입장이 되어 있네. 그것은 자네도 마찬가지일세. 파크, 짐 이든 후보생의 보고에 의하면 자네는 지저 굴진 카의 사용 및 금지된 핵 폭발물 소유라는 불법 행위를 하고 있더군." 기데온 파크는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천천히 얼굴을 돌려 나를 보았다. "짐, 자네는 우리하고 같이 가세." 다나까 중위는 부드럽게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나까 중위가 말하는 대로네. 기데온, 내 생각으로서도 스튜어트 숙부님을 깨우는 편이 좋을 것 같네." "그렇겠지요, 도련님." 기데온은 한숨을 쉬고 빙그르 방향을 돌려 초록색 문을 두드렸다. 대답이 없었다. 잠깐 사이를 두고 기데온은 손잡이를 잡고 문을 열었다. 우선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방 한구석에 있는 강철제 대금고와 그 옆에 있는 좁은 침대였다. 침대 옆에는 숙부의 장화가 벗겨져 있었다. 침대 위에서 숙부가 한 팔꿈치를 세우고 몸을 일으키며 나를 보았다. 축 늘어진 숙부의 새파란 눈은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것 같았다. "짐, 만나고 싶었다!" 나를 보고 숙부는 밝게 웃었으나, 기데온처럼 내가 혼자가 아닌 것을 알자 갑자기 웃음이 사라지고 무표정한 얼굴이 되었다. 그것은 자기 마음의 동요를 감추는 베일과 같은 것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니?" 숙부의 목소리는 침착성을 되찾고 있었다. "있고 말고요." 다나까 중위가 숙부의 말을 받아서 말했다. "이든 후보생, 이분이 자네 숙부님이신가?" "그렇습니다." "그러면 제 소개를 하겠습니다. 저는 해저 함대의 다나까 중위입니다. 공적인 용무로 찾아뵈었습니다." 다나까 중위는 방안을 둘러보고, 큰 금고에 눈길을 멈추고 말을 계속했다. "이든 씨, 해저 함대는 당신이 경제적인 이익을 얻기 위해서 인공 지진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먼저 말씀드리지만 당신의 발언은 증거가 될 것이니 그리 아시고 말씀하십시오." "알았소." 숙부는 침대 위에 일어나 불상처럼 책상다리를 하고 앉았다. 놀란 기색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훨씬 전부터 이렇게 되리라는 것을 예상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숙부는 이윽고 침대에서 일어나 망가진 책상 앞까지 천천히 걸어와 의자에 깊숙이 앉아서 다나까 중위를 쳐다보았다. "당신은 무엇을 알고 싶소?" "여러 가지입니다. 우선 지저 굴진 카하고 금지된 수폭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시치미를 뗄 수는 없습니다. 당신 조수가 수폭을 굴진 카에 실어 나르는 현장을 목격 당했으니까요." 숙부는 나를 힐끗 쳐다보고 기데온에게로 눈을 옮겼다. 기데온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렇군. 그러나 그것은 내게는 상관없는 일이 아니오?" 이 말을 듣고 나는 깜짝 놀랐다. 어떠한 경우일지라도 기데온에게 책임을 밀어붙이는 따위의 짓은 절대로 한 일이 없는 숙부인 것이다. 그러나 다나까 중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이든 씨, 당신에게 직접 관계가 있는 일을 몇 가지 물어 보기로 하겠습니다. 첫째는...." 다나까 중위는 손가락을 하나 꼽고, "당신이 캘커타 해산(깊은 바다에서 1천 미터 이상의 높이로 고립되어 있는 봉우리) 부근의 해저(바다의 밑바닥)에서 분화 때문에 수중 카를 잃었을 때, 대체 무슨 일을 하고 계셨는가라는 것입니다." 하고, 숙부를 쳐다보았다. "심해(깊은 바다) 살베이지(Salvage. 해난 구조, 침몰선 인양 등)는 내가 가장 힘을 쏟고 있는 일이라오. 중위, 우리들은 해저 산맥 계곡에서 침몰선을 발견했기 때문에 그것을 인양하려고 하였소." 숙부는 거침없이 대답했다. 다나까 중위는 가늘고 새까만 눈썹을 한쪽만 꿈틀하고 움직였다. "나는 인도양의 역사 지식에 좨 깊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과거 25년 동안에 캘커타 해산 부근에서 대형선이 침몰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그것은 좀 더 옛 시대의 침몰선이라오." "알겠습니다." 다나까 중위는 대답은 했지만 의심스럽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했다. "심해 살베이지가 당신의 사업이라면 어째서 해저 도시 그라카타우에 사무실을 두었습니까?" "나의 일은 살베이지뿐만이 아니오. 나는 옛날부터 바다에 관한 모든 사물을 사업의 대상으로 해온 것이오." "주식 투기도 말입니까? 나는 당신이 먼젓번 지진으로 백만 불의 이익을 얻었다고 듣고 있습니다." "때로는 주식 투기도 사업의 하나입니다. 나는 과거 30년 동안 바다의 부를 취급해서 장사를 해 왔습니다. 캘커타 해산에서 수중 카를 잃어버리고 이 곳으로 왔을 때 주식이 과열해서 이상 고가(높은 값)를 나타내고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지진이 한 번 오면 그것이 작은 것이라도 대폭락할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소. 여기서는 빠르건 늦건 간에 언젠가는 지진이 일어나니까 말이오. 그래서 투매에 나섰던 거요. 이만하면 대답으로서 충분하겠소?" "질문은 또 한 가지 있습니다. 저 금고의 내용물은 무엇입니까?" "다나까 중위, 그 질문은 월권이오! 나는 마리니아의 시민이오. 나는 이곳에서도 법률적인 보호를 받을 자격이 있소. 만약에 당신이 금고 속을 보고 싶다면 수사 영장을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단 말이오!" "그럴 여유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열 수 없습니다!" 숙부는 강하게 거절했다. 그러나 다나까 중위는 물고 늘어졌다. "당신은 금고를 열지 않으면 안 될 이유가 몇 가지 있습니다. 이든 씨, 첫째 이유는 먼젓번 지진을 밥 에스코 후보생이 틀림없이 예지 한 사실입니다. 둘째는 에스코하고 여기      있는 당신 조수가 지저 굴진 카를 숨겨둔 구정물 탱크까지 갈 때 미행 당한 일입니다. 셋째는 에스코와 당신 조수가 지저 굴진 카에 수폭을 싣고 있는 현장을 목격 당한 사실입니다. 넷째는 에스코와 파크를 미행해서 지저 굴진 카를 발견하고, 그 일을 증언한 사람이 당신의 조카인 이든 후보생이란 사실입니다."숙부는 책상 뒤에 털썩 주저앉아 다나까 중위가 커다란 목소리로 하나하나 이유를 열거할 때마다 마치 매맞고 있는 것처럼 몸을 움츠렸다. 그리고 주름 투성이의 얼굴이 격한 분노로 해서 시뻘겋게 물들었다. 굳게 마주잡은 두 주먹이 공중에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렇지만 최후에 다나까 중위가 내 이름을 대자, 숙부는 양손을 무릎 위에 내려놓았다. "그래 알았네. 자네의 승리일세. 중위, 그럼 금고를 열겠네." 숙부는 일어섰으나 어지러운 듯 의자를 잡고 잠깐 쉬었다. 그리고 금고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시력이 약한 눈을 다이얼에 갖다 댔다. 곧 찰카닥 하고 볼트가 벗겨졌다. 숙부는 괴로운 듯이 일어서서 금고 문을 열었다. 나는 다나까 중위의 뒤에서 안을 들여다보았다. 금고 내부는 두께 10센티의 연판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거기에 광선이 들어가서 스텐레스 스틸의 밴드를 감은 황금색 공이 몇 개나 찬연히 빛나고 있었다. "수폭이다!" 다나까 중위는 승리감에 외쳤다. 그리고 분노에 타는 얼굴을 숙부에게 돌리고 말했다. "설명해 주십시오, 이든 씨. 금고 안에 왜 수폭을 넣어둔 거죠?"     스튜어트 이든의 범죄   다나까 중위는 연판으로 둘러싼 금고 문을 닫았다. 그리고 수폭의 방사능을 두려워하는 듯 뒷걸음질쳤다. 그 얼굴에는 근심, 놀라움, 슬픔 등이 뒤섞인 승리감 이 나타나고 있었다. "자아, 이든 씨! 어떤 변명을 하실 셈이오?" "나는, 나는......." 숙부는 말을 더듬었다. 금고에서 떨어져 비칠비칠하며 겨우 침대까지 걸어간 숙부는 그 끝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정신을 가다듬으려는 듯 머리를 흔들며 벽에 털썩 기대앉았다. 숙부의 그런 모양을 보고 있던 다나까 중위가, "저것은 핵폭탄이란 말이오!" 하고, 외쳤다. "민간인이 가지는 것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분명히 해저 함대에서 홈친 것이 틀림없소. 해저 도시 그라카타우에서도 민간의 핵 폭발물 제조 및 사용을 금지하는 국제법이 적용됩니다. 당신은 금지품을 소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부정하지 않소." 숙부는 거의 들릴까 말까 하는 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는 당신이 수소폭탄으로 인공 해저 지진을 일으킨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당신은 부정합니까?" 다나까 중위는 꿰뚫는 것 같은 기세로 숙부를 손가락질했다. 숙부는 괴로운 듯이 머리를 끄덕였다. 다나까 중위는 놀란 모양이었다. 중위는 나를 힐끗 보고 나서 숙부에게로 눈을 돌리고, 반신반의하는 듯 다시 물었다. "당신은 인정하는 것입니까? 인공 지진으로 인해 죽음과 파괴를 가져온다는 무서운 범죄를 인정하는 것입니까?" "죽음이라고? 아무도 죽지 않아......." 말하다 말고 숙부는 긴 숨을 몰아쉬더니 바닷바람에 그을린 얼굴이 창백해지고 돌연 얻어맞은 것처럼 털썩하고 침대 위에 쓰러졌다. 숙부는 머리를 침대 밖으로 내밀고 누워서 괴로운 듯이 헐떡거렸다. "스튜어트 숙부님?" 나는 외치면서 달려갔다. 기데온도 숙부를 도우러 달려왔다. 그러나 다나까 중위는 우리들을 막았다. "안 돼! 그 사나이에게 손대지 마라! 그놈은 범죄자다!" "그렇지만 환자입니다." 기데온이 정중히 항의하였다. "약이 필요합니다. 나를 밀어내 버리면 당신은 환자를 죽이는 것이 된단 말이오!" "그 책임은 물론 내가 지지. 그 사나이는 내가 체포한 용의자요." 다나까 중위는 의식을 잃고 침대에 누워 있는 숙부를 향해 점잖을 부리며 선고했다. "스튜어트 이든, 나는 해저 함대 사관의 권한에 따라 핵무기의 불법 제조 사용 방지령을 적용해서 당신을 체포한다!" 이 말이 숙부에게 들렸는지 어쨌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기데온에게는 들렸을 텐데, 항의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그 대신 침대에 다가가 재빨리 숙부의 머리 밑에 베개를 받치고, 발을 침대 위에 올려놓고 가만히 담요를 덮어 주면서 속삭였다. "괜찮아, 스튜어트. 지금 주사를 놔 줄 테니까." "아무 것도 하면 안 돼! 그 사나이는 범죄자다!" 다나까 중위는 다시 고함쳤다. 기데온은 일어서서 다나까 중위에게 얼굴을 돌렸다. 굉장한 형상이었다. 이렇게 화가 난 기데온의 얼굴을 나는 아직까지 본 일이 없었다. 기데온은 웬만해서는 자제력을 잃어버리는 사나이가 아닌 것이다. 다행히 다나까 중위의 얼굴이 내가 있는 쪽을 향하고 있기를 잘 했다. 기데온은 고대 아프리카의 거인 전사처럼 다리를 벌리고 서서 심해의 밑바닥을 생각나게 하는 기분 나쁜 검은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낮지만 뚜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스튜어트 이든은 심장이 나쁘단 말이오. 중위, 나는 스튜어트에게 주사를 놔주려고 하오. 그것을 막으려거든 나를 죽일 수밖에 없을 것이오!" 다나까 중위가 숙부의 괴로워하는 숨소릴 듣고 있는 동안, 기데온은 책상 속에서 조그만 피하(살가죽의 밑) 주사기를 꺼내어 숙부의 셔츠 소매를 걷어 올렸다. "좋아, 주사를 놓아주게." 이렇게 말하고 다나까 중위는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이 때 기데온은 이미 주사를 놓고 있었다. 기데온의 검은 손가락이 작은 주사바늘을 숙부의 가는 팔에 꽂고 피스톤을 조용히 눌렀다. 이윽고 바늘을 빼고 바늘구멍에 동그랗게 맺힌 피를 닦아냈다. 주사의 효과가 나타날 때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우리들은 모두들 침대를 둘러싸고 담요 밑에서 허덕이는 숙부를 지켜보았다. 기데온이 무릎을 꿇고 숙부에게 무엇인가 속삭였다. 숙부의 여윈 얼굴은 핏기가 없어지고 흠뻑 땀에 젖어 있었다. "이든을 살펴 두게. 묻고 싶은 일이 너무나 많네. 훔친 수폭으로 개인적인 이익을 얻기 위해서 인공지진을 일으키다니.... 이 이상의 범죄는 도저히 생각할 수도 없다! 더욱이 영웅적인 발명가로서 온 세계에 알려진 사나이가 이런 범죄를 범하다니! 이 사나이를 살려 두게, 파크!" 흥분하는 중위를 쳐다보고 기데온은 부드럽게 대답했다. "물론이죠." 그리고 일어나서 덧붙였다. "인제 2분만 있으면 되지요. 하지만 이제는 걱정 없습니다. 스튜어트가 눈을 떴을 때 뭐라고 할지 기다려집니다." "새삼 거짓말은 용서할 수 없어." 다나까 중위는 여유를 두지 않고 고함쳤다. 그렇지만 나는 아직 숙부가 범죄자라고는 믿을 수 없었다. 스튜어트 이든은 온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나이다! 내가 소년 시대에 숙부에 대해서 품고 있던 감정은 지금껏 변하지 않았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다나까 중위님, 숙부님에게 기회를 주십시오! 당신은 우리 숙부님을 잘 모릅니다. 숙부님은 지금 중위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그런 무서운 범죄를 저지를 만한 인간이 아닙니다. 그렇게 보였다면 거기엔 무엇인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숙부에게 설명할 기회를 주어야 옳습니다. 그렇게 일방적으로 범죄자라고 몰아치지 마십시오! 숙부님이 눈을 뜨고 설명할 때까지 기다려 주십시오!" 다나까 중위는 나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그 얼굴은 지쳐 있었다. 그것도 그럴 만 했다. 이 수일 동안 다나까 중위는 스테이션 케이(K)의 침대에서 잠깐씩 졸았을 뿐으로,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던 것이다. 심신이 모두 지칠 대로 지쳐 있으면서 내 상상 이상으로 숙부 문제를 생각해 왔던 것이다. 낮고 단조로운 목소리로 다나까 중위는 말했다. "이든 후보생, 자네는 육친의 정에 너무 약해. 하기는 나도 과거에는 자네 숙부님이 존경할만한 위대한 인물이라는 건 지나칠 정도로 인정하고 있었단 말일세. 그러나 지금은 그 때 하고는 상황이 달라졌네. 자네는 자네 숙부님이 스스로 죄를 인정하는 것을 듣지 않았나?“ 나는 대답할 말이 없었다. 그러나 기데온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는 입을 열었으나 끝까지 말할 수가 없었다. 뜻밖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나는 갑자기 발 밑이 흔들흔들 흔들리는 것을 느끼고 의자를 붙잡으면서 다른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어느 얼굴에도 놀라움의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그리고 제각기 비틀거리고 있었다. 착각이 아니었다. 해저 도시 밑에 있는 암반 깊은 곳에서 와르르 하는 기분 나쁜 소리가 울려왔다. 거인인 저음 가수의 신음 소리 같았다. 대금고가 나를 향해서 천천히 미끄러져왔다. 진동이 거세어지고 내 발바닥이 흔들렸다. 숙부의 낡은 책상 위에서 잉크병이 춤을 추다 방바닥에 떨어져서 박살이 났다. 검푸른 잉크가 내 빨간 바짓가랑이 끝에 튀었다. 할리는 서둘러 발을 내디뎠지만 균형이 잡히지 않아서 방바닥에 넘어졌다. "지진이다!" 라고, 나는 외쳤다. "예상보다 빨리 일어났군!" 심한 지진은 혼수 상태에 빠져 있던 숙부까지 깨워 놓았다. 스튜어트 이든은 지금까지도 몇 번씩이나 죽음의 문을 들어가려다가는 살아난 사나이인 것이다. 한쪽 팔꿈치를 짚고 몸을 일으키면서 숙부는 속삭였다. "지진일세 .기데온......." 기데온은 숙부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스튜어트, 예정 대로네. 우리들은 밖으로 나가는 게 좋을 걸세!“ "잠깐만!" 책상을 붙잡은 채 다나까 중위가 물었다. "자네들은 무슨 말을 하고 있나?" "이 건물은 지진에 견딜 수 없습니다! 만약에 당신이 포로를 살려 두고 싶거든 밖으로 데리고 나가는 편이 좋습니다. 중위." 기데온이 냉랭하게 말했다. 우리들의 발 밑에서 방바닥이 미친 듯이 날뛰었다. 지진은 그렇게 큰 것은 아니다. 기껏해야 3도에서 5도 가량이리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렇지만 이 정도로 끝날 리가 없다. 우리들이 예지 한 지진은 진도가 10도에서 12도인 것이다. 벽의 긴급 방송용 스피커가 왕왕 소리를 냈다.   전 시민 여러분에게 ! 전 시민 여러분에게 ! 지진 경보 발령 ! 전시의 내진 장치가 가동을 시작합니다 전시의 안전 셔터가 내려집니다. 전시의 주로가 정지됩니다. 전시의 공공 통로는 공용 이외에는 사용할 수 없게 됩니다.   기침을 들여 마시는 것 같은 소리를 남기고 스피커는 침묵했다. "지금 방송을 들으셨죠? 자 중위, 이곳에서 나갑시다." 기데온이 재촉했다. 그러나 밖으로 나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또다시 방바닥 전체가 흔들렸다. 방 한가운데까지 움직여 온 대금고가 벽을 향해 도로 가려고 했다. 바닥에 붙은 4개의 차바퀴로 방바닥의 약간의 경사를 천천히 미끄러지듯 움직여 무거운 강철의 큰 몸뚱이를 바람벽에 부딪쳤다. 벽의 석고가 부서져 날았다. 금고 속에서 절그렁 절그렁, 잘그럭 잘그럭 하는 소리가 어울려 났다. 연판으로 된 내부에서 황금색 공 모양인 수소폭탄이 구르며 서로 부딪치고 있는 것이다. 결코 유쾌한 소리는 못 되었다. 이론상으로는 이들 수폭은 특별한 신관(화약에 점화하여 탄환을 터뜨리기 위하여, 탄환에 장치한 도화관)을 장치하지 않으면 절대로 폭발하지 않는 장치로 되어 있으나, 만일이라는 일도 있다. 우리들은 이론보다는 만일의 경우를 두려워한다. 지금 이 순간은 우리들이 예지한 진도 12도의 대지진조차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핵폭발은 순간적으로 이 거대한 해저 도시를 폐허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짐, 금고를 붙들어라!" 기데온이 외쳤다. 우리들은 금고에 달라붙었다. 심장 발작으로 죽어가던 숙부조차도 비틀거리며 금고를 붙잡았다. 기데온의 주사는 놀랄 만한 효과를 나타내었다. 숙부의 얼굴에 혈색이 돌고 그 눈이 생기 있게 빛나기 시작했다. 더욱이 숙부는 나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금고의 한 쪽을 힘있게 붙들은 것이다. 할리하고 다나까 중위가 반대편에서 붙잡았다. 그 동안에 기데온은 금고 바퀴 밑에 전화책이며 침대의 매트리스 같은 것을 있는 대로 집어넣어 움직이지 않도록 했다. 그리고 외쳤다. "자, 밖으로 나가자!" 다나까 중위는 흔들흔들 흔들리는 건을 벽을 둘러보았다. 건물 자체는 강철이기 때문에 무너질 염려는 없었다. 그러나 벽은 달랐다. 회벽은 금이 가고 친정에서도 석회 부스러기가 우리들 머리 위에 떨어졌다. 기데온의 말 그대로다. 해저 도시 자체는 안전해도 이 방 안에 있으면 위험한 것이다. 벽의 스피커가 또다시 외쳐대기 시작했다.   전 시민 여러분에게! 전 시민 여러분에게! 시장의 성명을 전달해 드립니다. 현재 상황 아래에서는 위험은 없습니다. 전혀 위험은 없습니다. 전시의 내진 장치가 유효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지진에 따른 사상자나 설비의 피해는 전혀 없을 것 같습니다. 지진 경보는 얼마 안 가 해제될 것입니다. 되풀이 말씀드리겠습니다. 위험은 전혀 없습니다.   우리들은 복도를 지나 층계를 내려와 거리로 나가는 출입구까지 왔다. 거리는 피난처를 찾거나, 자기 집이나 재산을 지키려고 우왕좌왕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그러나 지진으로 인해 피해를 본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다나까 중위는 기도하듯이 중얼거렸다. "이것으로 지진이 끝나 주었으면......." 그러자 숙부가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진은 앞으로 일곱 번 일어날 걸세." "일곱 번요?" 다나까 중위는 굳어진 얼굴로 숙부를 쏘아보았다. "역시, 당신은......." 끌까지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낡은 건물은 지진의 진동에 따라 내벽 벽뿐만 아니라 밖의 벽도 무너졌던 것이다. 출입구 위에 뻗어 나왔던 석회 추녀가 돌연히 무너져 내렸다. "비켜라, 짐!" 기데온의 목소리가 채찍처럼 울려왔다. 나는 황급히 물러섰으나 한 발 늦었다. 석회 추녀는 나와 다나까 중위와 할리의 세 사람 위에 떨어졌다. 나는 어깨에 심한 충격을 받고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꼈다. 얼마 동안이나 정신을 잃었었는지 알 수 없다. 문득 눈을 뜨니 내 옆에 다나까 중위가 넘어져 있었다. 발이 추녀에 깔려서 움직일 수 없었으나, 미친 사람 모냥 큰 소리로 외쳐 대고 있었다. "놈들은 도망쳐 버렸다. 살인자! 반역자!" 혼란을 틈타 기데온과 스튜어트 숙부는 유유히 도망쳐 버린 것이다. 나는 추녀 부스러기들을 헤치고 다나까 중위와 할리를 구출했다. 다행스럽게도 세 사람 모두 상처는 없었다. 다나까 중위는 마침 지나가는 경찰관을 붙잡고 숙부와 기데온의 체포를 부탁했다. 그러나 아무 것도 모르는 경찰관에게는 대금고 속의 수폭이며 인공 지진 이야기는 너무나 황당무계(허황하고 터무니없음)했다. 필경 해저 함대 사관인 주제에 지진 때문에 정신이 나가 당치도 않는 소리를 지껄이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위험은 없습니다. 침착하십시오!" 그처럼 경관은 지진 경보의 말을 되풀이 할 뿐이었다. 다나까 중위는 화가 나서 못 견디겠다는 얼굴을 내게로 돌리며 외쳤다. "이든 후보생, 이래도 자네는 숙부를 옹호할 텐가? 그 사내는 도망쳤어. 내가 그 사나이의 유죄를 증명했기 때문이다!" 나는 대답할 말이 없었다.     지저 기지에의 침입자   해저 도시는 지진에 지지 않았다. 얼마 후에 진동이 멎고 주위가 조용해졌다. 우리들은 해저 함대 기지에서 잠수병의 일부를 불러다 대금고 쪽 처리를 부탁하고, 방금 있었던 지진의 기록을 조사하기 위하여 서둘러 스테이션 케이(K)로돌아왔다. "진도가 4도다. 우리들의 지진 예지가 이렇게 틀린다는 것은 이상하군!" 다나까 중위는 이렇게 말하면서 눈썹을 찌푸렸다. 케로우 중위는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서 빨간 눈을 하고 있었다. 그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우리가 나간 뒤 혼자서 스테이션 케이(K)를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다나까 중위, 우리들의 예지가 틀렸던 걸세!" 케로우 중위가 눈을 깜박이며 말했다. "그럴 리가 없어. 또다시 지오존데를 지중에 내려보기로 하세. 새로운 데이터가 필요하네. 그리고 관측 기계를 점검해서 처음부터 예지의 계산을 다시 하는 거다. 30분 안으로 완성시켰으면 하네. 아까의 지진이 우리가 예지한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아!" 다나까 중위는 큰 목소리로 말했다. 졸린다. 지금 내가 원하는 것은 자는 것뿐이다. 그렇지만 그럴 시간은 없었다. 아무리 피로하더라도 다나까 중위에게 전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들은 다음에 어떠한 일이 일어날 것인지 알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만약에 아까의 지진이 인공 지진이라고 한다면 우리들이 예지한 진도 12도의 대지진은 예정대로 일어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잠이 부족하다고 괴로워할 필요는 없다. 우리들은 영원한 잠을 자게 될 것이다. 우리들이 지오존데의 데이터를 분석하고 있을 때, 해저 함대 잠수병들이 들어왔다. 지휘관인 대위가 구두의 뒤축을 딱 마주치며 부동자세를 취하고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다나까 중위, 우리는 자네가 발견한 핵 폭발물을 여기에 넣어 두려고 운반해 왔다. 이것은 기지 사령관의 명령이다." "여기에?" 다나까 중위는 벌컥 성을 내어 쨍 하는 소리로 크게 외쳤다. "그런 것은 도로 가져가십시오! 우리들은 지진 관측만으로도 벅찹니다. 핵폭탄의 수비까지는 할 수 없습니다!" "미안하지만 중위, 사령관의 명령이오. 자네는 지진이 계속되고 있는 이 시기에 핵폭탄을 시내 어딘가에 놓아두라고 하나?" 대위는 강경했다. 이미 잠수병이 무거운 황금빛 공 모양의 수폭을 창고실에 계속 나르고 있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대위의 말이 옳다. 적어도 스테이션 케이(K)는 해저 아래의 굳은 암반에 에워싸여 있다. 그렇지만 돔에 둘러싸인 시내는 강렬한 진동만이 아니라 홍수로 인해 파괴될 우려도 있으니까, 핵폭탄을 놓아두는 것은 지극히 위험하다. 우리들은 일을 계속했다. 그리고 마지막 잠수병이 무거운 짐을 가지고 들어 왔을 때, 그 등뒤에 검은 신부 옷을 입은 사나이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일어나서 외쳤다. "타이드 신부!" "오오, 짐. 안녕하시오 다나까 중위. 나의 무례한 방문을 용서해 주십시오." 다나까 중위는 예지 테이블의 의자에서 일어서며 타이드 신부의 손을 잡았다. "당신이라면 대환영입니다. 우리들의 지진 예보를 보시겠습니까?" "이미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진도 12의 지진을 예지했는데 진도 4의 지진이 일어났소. 그래서 진도 4의 지진이 당신이 예지했던 지진인지 아닌지 의심하고 있소. 당신의 생각은 옳다고 생각하오. 그래서 만약에 지장만 없다면 단신의 예지 재점검을 돕고 싶은데요." "그건 참 고마운 일입니다. 아무쪼록 부탁 드리겠습니다." 다나까 중위는 선선히 대답했다. 2명의 중위, 타이드 신부, 할리, 그리고 나, 다섯 사람은 각기 지진 예지의 계산에 들어갔다. 그것은 별로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모두가 시작하기 전부터 해답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타이드 신부가 제일 먼저 계산을 끝내고 연필을 놓았다. 다음에 다나까 중위가 얼굴을 들었다. "진도 10이다." "진도 11 도입니다." 할리가 중위의 뒤를 이어 말했다.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한 가지 점에 있어서는 전원이 일치하고 있지 않습니까? 12시간에서 24시간 이내에 또 다시 대지진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타이드 신부는 우리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 계속했다. "이 사실은 아까 일어난 지진이 우리들이 예지한 것이 아니었다는 증명이 됩니다. 더 나아가서 그것이 인공으로 인한 지진, 즉 스튜어트 이든 및 그 협력자들에 의해 감행된 인공 지진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나까 중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케로우 중위도 고개를 끄덕였다. 할리는 나를 힐끗 바라보면서 거의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나는......." 무어라고 말해서 좋을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말할 필요가 없었다. 이 때 아무런 예고도 없이 두 번째 지진이 일어난 것이다. 첫 번째보다는 조금 약한 느낌이었다. 지진계는 간신히 진도를 나타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필경 장소의 문제일 것이다. 스테이션 케이(K)는 굳은 암반 속에 있지만 시내에 있는 건물에서는 지진의 진도가 커져서 더욱 흔들릴 것이 분명하다. 주위의 바위가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며 흔들렸으나, 서 있을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다. 다나까 중위는 침착성을 도로 찾았다. "그 미친놈들은 앞으로도 몇 번이나 뒤흔들 작정인가! 타이드 신부, 나는 시의회에 즉시 피난을 권고하러 가겠습니다. 함께 가 주실 수 없을까요?" "기꺼이!" 하고, 타이드 신부는 고개를 끄덕였다. 또다시 눈이 충혈된 케로우 중위가 혼자서 관측 기지의 책임을 지게 되었다. 다나까 중위, 타이드 신부, 할리, 나까지 네 사람은 시의회 의사당으로 서둘러 갔다. 지금이야말로 해저 도시의 거리 거리는 험악한 공기가 가득 차 있었다. 대수로운 피해는 눈에 뜨이지 않지만 길을 가는 사람들은 사회 도덕을 잃어버린 얼굴들이었다. 우리들은 폭도들에게 방해를 받게 되어 몇 번인가 길을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의사당 회의실에 모인 의원들은 반수 이하였다. 필경 일반 시민들에게는 용감한 것처럼 행세해 놓고서 개인적으로 피난해 버린 모양이다. 의사당에 머물러 있는 의원들도 완전히 침착성을 잃고 있었다. 서로 고함치며 마주잡고, 마치 도둑고양이들의 모임 같은 집합이었다. 벤 단소프는 의장석을 향해 외쳤다. "당신은 시장이오! 저 바보 같은 것들을 잠자코 있게 하시오. 해저 함대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지 조금도 들리지 않는구만!" 심해 생물을 그린 아름다운 벽화 밑에서 시장은 핑크색 얼굴에 땀을 홀리며 모기 소리 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러분, 여러분! 우리는 위기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조용히......." 의원끼리의 격렬한 논쟁은 전혀 조용해질 것 같지 않았다. 타이드 신부가 저벅저벅 위원석 앞으로 나갔다. 방바닥에서 시장의 망치를 집어들고 시장에게 절을 하고는 벽을 두들겼다. 그리고 잘 들리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시작했다. "조용히 하십시오!" 이상하게도 소란이 일시에 멎었다. 의원들은 입을 다물고 일제히 타이드 신부를 보았다. 타이드 신부는 정중하게 머리를 숙이고 나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계속하였다. "다나까 중위가 어떤 일이 있어도 여러분께 말씀드려야 할 일이 있답니다. 아무쪼록 끝까지 조용히 들어주십시오." 다나까 중위는 큰 소리를 낼 필요도 없었다. 짧은 말로 현재의 상황을 분명하게 설명했다. "인공 지진이 몇 번 일어날는지 잘 알 수는 없지만 앞으로도 6번은 일어날 겁니다. 그러나 잊어서는 안 될 일은 우리가 예지한 진도 10도에서 12도의 대지진이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일어나면 해저 도시 그라카타우는 마지막입니다." 다나까 중위가 강단을 내려서자 타이드 신부는 또다시 시장에게 절을 하고 의원들에게 호소하였다. "자, 여러분. 현 시점에서 우리들이 할 일은 단 한 가지뿐입니다. 피난할 수 있는 사람은 곧 해저 도시 그라카타우에서      피난한다는 안건을 표결하고 싶습니다. 찬성하시는 분은 손을 들어주십시오."마치 최면술에라도 걸린 것처럼 의원들은 거의 다 손을 들었다. 시장도 들고 있었다. 우리 두 사람에게는 투표권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할리와 나도 손을 높이 들었다. 그러나 거친 목소리가 최면술을 깨웠다. "잠깐만!" 그것은 벤 단소프였다. "타이드 신부, 여기는 당신이 오실 곳이 아니오! 쓸데없는 일일랑 그만 둬 주십시오!" "실례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해서라도 표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표결? 아아, 좋습니다. 아무쪼록 그렇게 하십시오. 그래서 해저 도시 그라카타우를 포기하는 결정을 해 주십시오. 그 대신 이 해저 도시는 이 후 50년 동안은 단 100원 어치의 값어치도 없어집니다. 모든 투자가가 겁을 내기 때문입니다. '그곳은 시민들이 도망쳐 버린 해저 도시'라고 생각하고 다른 해저 도시의 주를 사게 되겠지요. 그만 두십시오, 타이드 신부. 가령 어떠한 인물일지라도 해저 도시 그라카타우에 쏟아 넣은 나의 투자를 무효로 하는 짓은 할 수 없을 겁니다! 여러분, 아무쪼록 표결을 계속하십시오! 단지 피난하는 쪽에 찬성하시는 분들은 나하고 대립한다는 사실을 기억해 두십시오!" 의장 안은 순간 조용해졌다. 그러나 반대 의견도 나오지 않기 때문에 타이드 신부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계속했다. "피난에 찬성하시는 분은 손을 들어주십시오." 두 개의 손이 천천히 오르고 또 하나가 따랐다. 그러더니, 그 중의 하나가 내리고 계속해서 또 하나가, 또 나머지의 하나마저 보이지 않게 되었다. 마침내 피난에 찬성하는 의원은 한 사람도 없게 되었다. 타이드 신부는 한숨을 쉬었다. 망치를 시장 앞에 살그머니 놓고 인사를 하고 나서 타이드 신부는 말하였다. "당신들 영혼에게 신의 자비가 깃들기를......." 세 번째 지진은 우리들이 해저 함대 기지 가까이까지 돌아왔을 때 일어났다. "진도 4도군.“ 타이드 신부는 한 손으로 보도의 손잡이를 잡고 또 한 손으로는 다나까 중위의 손을 잡으면서 속삭였다. "진도 4, 언제나 진도 4도일세! 놈들은 우리들의 숨통을 끊을 만한 큰 지진을 일으킬 수 없는 것일까?" 다나까 중위의 목소리에는 신경질적인 울림이 섞여있었다. "침착하시오, 중위." 타이드 신부는 중위에게 충고하고는 손잡이에서 손을 놓고 곧바로 서 보았다. "이제 괜찮겠지. 나는 가 보겠소." "어디로 가십니까?" "수중 카로 진원지를 알아내고 오겠소. 현재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지진 측정뿐이오. 물론 피난할 사람을 수중 카로 탈 수 있는 데까지 태우고 실어 나르는 일도 생각해 보았소. 그러나 내 수중 카는 많은 사람을 수송하기엔 맞지 않소. 그런 짓을 하면 오히려 사람들을 위험한 곳으로 몰아넣을 지도 알 수 없소." "잘 알았습니다." 다나까 중위는 일어섰다. "단소프 후보생 , 자네는 신부님을 수중 카까지 모시고 가게. 그럼 안녕히 가십시오, 신부님." "안녕히." 타이드 신부는 다나까 중위의 손을 잡고 그리고 내 손을 잡았다. "진심을 가져라." 그것은 특히 지금의 경우 뜻이 깊은 말이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되풀이하면서 걸었다. 기지 정문 가까이 갔을 때 다나까 중위는 나의 어깨를 잡았다. "저걸 봐라!" 전망창 너머로 해저 군항이 내다 보였다. 거기에는 수많은 잠수 함선이 집합해 있었다. 순항(배를 타고 돌아다님)중에 무선 전신이며 음파 통신으로 기지로 돌아오라는 명령을 받고 속속(자꾸 잇달아서) 돌아오는 함정의 모습이 보였다. 시장이나 시의회의 표결에 관계없이 해저 함대는 전 함선을 통틀어서 독자적으로 시민 구출 작업을 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렇지만 전 시민을 구출하기에는 힘이 미치지 못할 것이다. 나는 시장의 발표를 생각했다. 해저 도시 그라카타우의 전 기능을 통틀어 피난 활동을 한다고 해도 대지진이 올 때는 50만 이상의 시민이 시내에 남게 되는 것이다. 설령 전 시민의 피난은 무리하다고 하더라도 될 수 있는 한 보다 많은 생명을 구출하는 것이 해저 함대의 사명이었다. 이든나이트에 둘러싸인 어뢰형(물고기 모양의 공격용 수뢰) 선체를 청백색으로 빛내며 해저 군함을 향해서 오는 해저 함대의 모습에는 비장한 각오와 아름다움이 있었다. 우리들은 언제까지나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해저 함대의 활약을 기원하면서, 지진 예지를 계속하기 위해서 스테이션 케이(K)로 돌아왔다 긴급 방송용 스피커에서 시끄러운 재즈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시의회가 시민들의 불안을 얼버무리려고 방송하고 있는 것이다. 다나까 중위는 얼굴을 찌푸리고 스피커의 스위치를 꺼 버렸다. 우리들은 몇 번이나 예지의 계산을 되풀이했다. 해답은 여전했다.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지진이 일어날 예정 시간이 조금씩 앞 당겨지는 것뿐이었다. 몇 번의 지진에 의해 이미 우리들의 관측 기계는 피해를 받고 있었다. 모두가 암반의 약하디 약한 진동이라도 기록되는 정밀한 기계이기 때문에 진도가 4도 가량의 지진에 흔들려도 고장이 나 버리는 것이다. 해리스 준위는 계기의 전문 기술자들을 집합시켜서 관측 기계를 조정하기 시작했다. "어때, 해리스? 이제 전부 고쳤나?" 다나까 중위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는지 물었다. "전부 점검은 했습니다만.... 자신이 없습니다. 확인해 보십시오."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해리스 준위가 대답했다. "좋아!" 다나까 중위는 극미소 지진계의 그래프로 다가가 들여다보았으나 금방 고함쳐 댔다. "바보 같으니라고! 자네는 이 기계를 더욱 나쁘게 망가뜨렸구만? 이건 또 뭐야......." 중위는 입을 다물고 그래프의 진동 기록을 잠시 들여다보더니 우리들을 불렀다. "케로우, 이든, 이리로 오게. 그리고 좀 보게!" 나는 케로우 중위하고 같이 그래프를 들여다보았다. 그래프는 이상한 진도를 나타내고 있었다. 암반의 진동으로 치면 강하고, 그리고 규칙적이다. 마치 어떤 강력한 기계의 진동 같았다. 적어도 지진에는 이러한 진동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또한 그 진원이 스테이션 케이(K)보다도 높은 곳에 위치해 있지 않은가! 케로우 중위는 망연자실해서 외쳤다. "기계가 고장났네. 해리스, 서둘러 조정하게. 자넨 기계를 아주 잡쳐놓고 말았군." "잠깐만, 진원을 자세히 보게. 위치가 자꾸 바뀌고 있군 그래!" 라고, 다나까 중위가 말했다. 우리들은 그냥 관측을 계속했다. 사실이었다. 이상한 진원은 한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그것은 느리기는 하나 분명히 알 수 있는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은 조금씩 고도(높은 정도)를 낮추면서 스테이션 케이(K)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믿을 수 없다! 다나까중위, 자네는 저 귀여운 소지진을 이곳으로 초대했나?" 케로우 중위가 외쳤다. "아니, 나는 이놈의 정체를 알고 있다네. 이놈은 지저 굴진 카일세. 지중 여행에서 돌아온 걸세. 그리고 지금 해저 도시 그라카타우 아래로 다가와 있는 것이네." 다나까 중위는 자신 있게 말했다. 수분 동안 우리들은 그 자리에 못이 박힌 채로 그래프를 바라보고 있었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론으로는 알고 있지만 인간이 만든 승용차가 굳은 암반 사이를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으리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그러나 현재 나는 믿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들이 현재 관측 기계에 의해 보고 있는 것을 설명할 방법이 따로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 수중 카에는 필경 내 숙부인 스튜어트 이든과 내 친구 밥 에스코가 함께 타고 있을 것이 확실했다. 문이 열리고 할리가 관측실로 들어왔다. 몹시 창백하고 기운이 없어 보였다. "단소프 후보생 지금 돌아왔습니다." "그래, 수고했다." 다나까 중위는 할리를 힐끗 쳐다보고는 무엇인가 심상치 않은 태도를 눈치챘다. 할리의 눈은 얼굴에서 튀어나을 것처럼 커다랗게 벌려져서 우리들의 머리 너머로 현무암의 벽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할리, 무슨 일인가7" "바위.... 바위가!" 할리는 벽을 가리키며 맡을 더듬었다. 우리들은 일제히 돌아다보았다. 그 순간 극미소 지진계의 바늘이 좌우로 크게 흔들리고, 그래프에는 모두 기록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진동을 기록했다. 암벽에는 긴 균열이 생기고 거기서 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떨어졌다. 지진인가? 아기, 그렇지는 않았다. 지진보다도 훨씬 기묘한 것이었다. 격렬하게 진동하는 균열에서 고속 엔진의 소리가 들려왔다. 잇달아 눈이 부실 정도로 빛나는 이든나이트의 머리 부분이 나타났다. 원추형의 굴착 드릴(땅을 파서 뚫는 송곳)이다. 바위가 흔들리고 부서지며, 뻥하니 구멍이 뚫렸다. 거기서 지저 굴진 카의 기다란 차체가 진동하면서 관측소에 침입해 왔다. 그것은 내가 배수 처리 지구의 구정물 탱크 속에서 목격한 지저 굴진 카에 틀림없었다.     지진 박사   여위고 작은 몸뚱이여서 인지 다나까 중위는 재빨랐다. 획 자기 방으로 뛰어들어 우리 둘이 아직 충격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권총을 들고 뛰어나왔다. "모두 뒤로 물러나라! 길을 비켜라!" 지저 굴진 카는 거대한 몸뚱이를 흔들어 대면서 지진 예지실로 2미터 가량 코를 들이박았다. 벽의 지도를 찢고 선반을 전부 망가뜨리고 책상을 부셔 버렸다. 그리고 간신히 굴착 드릴의 회전이 약해지고 천천히 멎었다. 지저 굴질 카의 등에서 수중 카와 같은 전망탑이 조용히 솟아올랐다. 손 하나가 해치를 들어올렸지만 바위 끝에 부딪쳐 절반 밖에 열 수가 없었다. 세 번, 네 번 해 보니까 간신히 바위 끄트머리가 부서지며 뻥하니 뚫렸다. 그곳에서 비틀비틀하고 나온 것은 놀랍게도 밥 에스코였다. "정지!" 다나까 중위는 권총을 겨누고 말했다. "에스코, 움직이지 마라!" 밥은 다나까 중위가 권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현기증을 일으키고 있는 모양이었다. 차체에 사다리를 걸치고 내려오기 시작했으나 휘청하고 떨어질 뻔하였다. 밥은 차체의 이든나이트를 잡았다. 이것이 잘못이었다. 원자력 드릴로 굳은 바위를 깎아낸 마찰로 인하여 차체에서 연기가 날 지경으로 뜨거워졌던 것이다. 밥은 비명을 지르며 손을 떼었다. 그렇지만 데인 아픔 때문에 정신을 되찾았다. 밥은 데인 쪽 손을 다른 쪽 손으로 어루만지면서 다나까 중위에게 말했다. "미안합니다. 스테이션 케이(K)를 온통 엉망으로 해 버렸으니......." "자네는 더 엉망진창인 일을 저질렀어. 에스코!" 다나까 중위가 고함친다.     "나는......."밥은 말이 막히는지 잠시 숨을 돌리고 다시 말했다. "지저 굴진 카에서 다른 사람들이 나와도 괜찮습니까?" "다른 사람들?" 다나까 중위는 눈썹을 모았으나 곧 머리를 끄덕였다. "좋고 말고." 이번에는 밥도 순조롭게 사다리를 올라 해치 안을 향해 말했다. 맨 처음 숙부 스튜어트 이든이 나타났다. 그 얼굴은 여위고 흠뻑 땀에 젖어 있었으나, 요전번 헤어졌을 때보다 훨씬 건강해 보였다. "오오, 짐." 숙부는 큰 소리로 나를 불렀으나 권총을 겨누고 있는 다나까 중위를 보자 입을 다물어 버렸다. 숙부 뒤를 이어 기데온 파크의 모습이 나타났다. 기데온은 해치에 서서 우리들에게 웃어 보였다. 그리고 해치 속에 팔을 걸쳐 마지막 사람을 끌어 올렸다. 그것은 밥하고 같이 있던 늙은 중국 사람이었다. 내 옆에서 숨을 들여 마시는 기척이 났다. 다나까 중위였다. "고에쓰 박사!" 권총의 총구가 흔들려서 방바닥을 향했다. "박사님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중국인? 천만에! 늙어빠진 이 중국인이야말로 이 기지의 책장에 꽂힌 대부분의 책을 저술한 일본인 지진학자 존 고에쓰 박사 바로 그 사람이었다. 다나까 중위는 평소부터 가장 존경하는 지진학자가 도망친 범죄자인 나의 숙부하고 한속이 되어 있는 것을 목격하고 또다시 권총을 겨누었다. "고에쓰 박사님, 까닭을 들려주십시오." "아, 좋고 말고." 그러면서 고에쓰 박사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지칠 대로 지쳐서 앉을 곳을 찾고 있는 것이다. 곧 할리가 접는 의자를 가져와 권했다. "고맙네." 고에쓰 박사는 미소지으며 의자에 앉자 불쑥 이렇게 말했다. "자네는 해저 도시 난세이 나하에서 일어난 일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물론입니다." 다나까 중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들도 모두 고개를 끄덕거렸다. 해저 도시 난세이 나하의 참사는 해저 거주 사상 최대의 비극이었다. 이것은 고에쓰 박사가 지진 예보를 잘못하고 시민의 피난을 막은 데서 일어난 일이었다. "나는 난세이 나하에서 과오를 범했네. 그런데도 지진이 일어났을 때 마침 요꼬하마에 있어서 살아 남았지. 그래서 나는 나의 여생을 과오를 보상하는 일에 바치리라고 결심했네. 우선 나는 타이드 신부하고 협동으로 지오존데를 개발했네. 그리고 이 지저 굴진 카를 설계했지." 고에쓰 박사는 열이 식은 차체를 철썩철썩 손으로 두드리면서 이야기를 계속해 나갔다. "지네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지오존데의 존재에 의해 우리들은 이전보다도 훨씬 정확한 지진 예지가 가능해졌네." "그렇지도 않습니다." 그만 나는 덜컥 말을 해버렸다. 그러나 고에쓰 박사는 미소지었다. "자네들의 예지가 틀린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걸세. 짐, 우리들 때문이라네. 자, 들어보게. 단순한 지진 예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 그래서 나는 지진을 예지해서 재해를 최소한으로 막을 뿐만 아니라 지진 그 자체를 막는 방법을 발견하리라고 결심했네. 그 방법이란 인공 지진을 일으키는 일이었네. 지하 심부에 지진 에너지가 축적되어 그것이 대지진을 일으킬 징후가 보이면, 그 직전에 파괴력이 작은 조그만 인공 지진을 몇 번씩이나 일으켜서 위험한 지진 에너지를 발산시켜 버리는 것이네. 이러한 인공 지진을 자네들은 이미 몇 번인가 체험하였네. 모두가 다 우리들 네 사람이 일으킨 거란 말일세.“ 이 이야기는 어떠한 큰 지진보다도 우리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다나까 중위의 얼굴은 복잡한 표정이 되었다. 할리는 꼼짝도 않고 눈을 커다랗게 뜨고 있었다. 케로우 중위는 연방 머리를 젓고 있었다. 그리나 나는 승리감에 젖어 있었다. "그래서 제가 말했잖습니까! 나는 우리 숙부님이 돈을 벌기 위해서 더러운 짓을 할리가 없다고 그토록 말을 하지 않았습니까!" 나는 다나까 중위를 향해 외쳤으나, 중위도 지지 않고 말했다. "잠깐만, 짐! 인공 지진의 진상은 고에쓰 박사의 얘기로 대충 알았지만, 아직 내게는 몇 가지인가 의문이 남아 있네. 자네는 검은 걸 희다고 우기지는 못할 걸세. 자네 숙부님은 이미 몇 가지의 범죄 행위를 인정하고 있네. 가령 먼젓번 인공 지진으로 공황을 일으켜서 백만 불의 이익을 얻은 일 같은 것 말이네. 또한 핵 폭발물의 불법 소지에 대해서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았네." "저에게 설명시켜 주십시오, 중위님! 백만 불쯤의 이익은 숙부가 지금까지 잃어버린 금액에 비하면 극히 적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더욱이 그 백만 불은 해저 도시 그라카타우를 구출할 계획에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숙부 사무실 금고 안에 있던 수폭은 인공 지진을 일으키기 위한 것임이 틀림없습니다!" 나는 나도 모르게 흥분해 있었다, 숙부가 나를 보고 웃음을 띄었다. 기데온은 나에게 윙크를 한다. 그리고 고에쓰 박사는 주름 투성이 얼굴에 미소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든 후보생이 말한 대로네. 핵폭발로 인해 일으키는 소지진의 연속으로 지각에 축적된 지진 에너지를 조금씩 안전하게 발산시킬 수 있네." 그러나 다나까 중위는 아직도 납득이 가지 않는 모양이었다. 어디까지나 해저 함대의 사관으로서 사건을 규명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아직 3가지 질문이 남아 있습니다. 당신네들은 지저 굴진 카를 어디에서 손에 넣었습니까? 대량의 수폭은 어디에서 입수하셨습니까? 그리고 왜 모든 것을 비밀리에 해야할 필요가 있었습니까?" 다나까 중위의 날카로운 질문을 숙부가 빙그레 웃으며 받아들였다. 그 얼굴에는 혈색이 돌고 움푹 틀어간 파란 눈에는 바다에 모든 것을 건 사나이의 정열이 불타고 있었다. "마지막 질문에 대답하기로 하지. 어째서 비밀로 했는가? 이 계획은 아무래도 비밀리에 실행하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이네. 만약에 우리가 시의회에 나가 설명했다고 치세. '여러분, 우리는 해저 도시 그라카타우에 가공할 피해를 가져오는 대지진을 막을 수 있는 아이디어가 있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몇 번인가 소지진을 일으키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 말에 대해서 의원들이 허가를 할 것 같은가? 돈벌이에 미친 벤 단소프에게 이끌리는 시의회가 어떠한 것인가는 자네 자신도 경험했으리라고 알고 있는데?" 할리는 얼굴이 빨개졌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나까 중위는 천천히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았습니다. 나머지 두 개의 질문에도 대답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모두가 해저 도시 그라카타우의 전 시민 750만 명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만부득이한 것이었네. 이번 계획은 10년 전 고에쓰 박사가 마리니아에 있는 나의 집을 방문하셨을 때 시작한 걸세. 박사는 이전부터 그라카타우 단층을 근심하고 계셨네. 해저 도시 그라카타우가 조만간에 진도 10도인가 또는 그 이상의 대지진에 습격을 당해 폐허로 돌아갈 위험이 있다는 사실을 안 것일세. 그리고 해저 도시의 파괴에 의해 많은 인명이 없어진다는 비극의 재발은 어떤 일이 있어도 방지하자고 결심했네." 숙부는 고에쓰 박사를 힐끗 쳐다보고 다나까 중위에게 눈을 돌렸다. "당신은 박사를 책망 할 수 있나?“ "그렇지만 어째서 박사는 당신에게 가셨습니까? 왜 이 해저 도시에 사는 사람에게 안 가셨나요?" "가셨다네. 박사는 맨 처음 벤 단소프를 만나러 가셨지. 그 때 단소프가 뭐라고 했는지 자네는 짐작이 갈 걸세. 벤 단소프는 '우리는 그런 미친 짓에 거액을 던져서 이 해저 도시의 번영을 망치는 일을 할 수는 없다.' 그렇게 말했다네." 숙부는 숨을 한번 들이쉬고 말을 이었다. "단소프는 고에쓰 박사가 해저 도시 난세이 나하에서 저지른 과실을 상기했음이 분명하네. 그리고 '해저 도시 그라카타우에서 나가 달라, 이번에 다시 나타나면 경찰에 체포시키겠다'고 협박했다네." "단소프는 내가 어떤 조건만 승낙한다면 여기서 살아도 괜찮다고 제안했지. 스튜어트." 하고, 고에쓰 박사가 덧붙여 말한다. "참, 그랬었지." 숙부는 고개를 끄덕였다. "단소프는 박사에게 지진 예지를 하지 않겠느냐고 제안해 왔네. 지진 예지의 정보를 독점해서 주식을 움직이면 큰 돈벌이가 된다고 생각한 걸세. 이 아이디어가 우리들에게 큰 소용이 된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을 테지. 하여튼 고에쓰 박사는 단소프에게 쫓겨나서 내게로 오셨던 걸세." "박사는 해저 도시 그라카타우에 다가올 공포에 대해, 그리고 또 박사의 새로운 기술을 응용한다면 이곳뿐만 아니라 어느 곳에서나 대지진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을 내게 말씀하셨네. 처음에 나는 반신반의했지. 그렇다고 나를 책하진 말게. 타이드 신부조차도 고개를 갸웃거렸으니까." "그러나 고에쓰 박사는 나를 설득했네. 그래서 나는 단안을 내려 한번 해 보기로 했네. 그 당시 나는 건강이 좋지     않았네. 지금도 별로 좋지는 못하지만 움직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또한 당시 내게는 별로 돈이 없었네. 고에쓰 박사의 계획은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네. 지저 굴진 카 한 대를 만든다 해도 1천만 불이 들어야 했으니까. 그리고 가장 필요한 핵 폭발물도 없었네. 돈을 만들었지. 자네가 알고 있는 방법으로 말이네. 고에쓰 박사의 지진 예지를 이용해서 주식을 매매했던 것일세. 핵폭발물 쪽은.... 중위, 자네는 하미칼 파르카호의 조난을 기억하고 있나?""하미칼 파르카호?“ 다나까 중위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자신 없게 대답했다. "그건.... 훨씬 전에, 그러니까 내가 아직 어린 아이였을 무렵, 조난한 배 말이죠. 당신이 아직 이든나이트를 발견하기 전의 이야기 말입니다. 그 배의 화물이 분명히......." "수폭이지! 자네는 굉장한 기억력을 갖고 있군, 중위. 하미칼 파르카호는 지금부터 31년 전 인도양의 캘커타 해산 부근에서 침몰했네. 어느 배거나 침몰해서 28년이 경과하면 그 화물은 인양한 사람의 소유가 되네. 이것은 국제 해양법에 명기되어 있지. 장황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을 걸세. 나는 그 화물의 소유자가 되었네. 마침 그 무렵 고에쓰 박사는 캘커타 해산 부근에 꽤 큰 지진이 일어나리라는 걸 예지했네. 그래서 나는 금방 입수한 수폭을 써서 당장에 박사의 이론을 테스트하기로 했네. 시험은 성공했지. 그렇지만 우리들의 수중 카는 그만 미처 도망치지도 못하고 조난하고 말았네. 거기에 박사의 지저 굴진 카가 나타나서 나하고 기데온을 구출하고, 나머지 수폭들을 실었었네. 그리고 우리들은 해저 도시 그라카타우로 왔네. 지저 굴진 카는 배수 설비의 구정물 탱크 속에 감추고, 수폭은 구정물 탱크하고 사무실 금고 속에 감춰 놓고 고에쓰 박사의 이론을 실행으로 옳기는 '때'를 기다렸네. 그 때가 4일 전일세. 그 다음부터는 자네가 알고 있는 대로일세." "스튜어트! 시간일세......." 돌연 박사가 말했다. 숙부는 벽의 시계를 쳐다보고 머리를 끄덕이면서 신중하게 말했다. "모두 조심하게!"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것이 1분쯤 계속되자 다나까 중위가 입을 열었다. "무엇을 기다리는 겁니까?" "조용히!" 숙부가 빠른 어조로 말했다. 이 순간 우리들은 느꼈다. 발 밑에서 바위가 흔들렸다. 기분 나쁜 땅울림이 주위의 공기를 흔들었다. 이미 우리들은 각기 무엇인가를 붙잡고 몸을 지탱하고 있었다. "네 번째 지진일세!" 숙부는 땅울림에 지지 않을 만큼 큰 소리로 외쳤다. 방바닥의 흔들림이 점차 거세어졌다. 지저 굴진 카의 콧등에도 진동이 전달되어서 흔들거리기 시작했다. 자기가 일으킨 지진에 흔들리고 있는 지저 굴진 카의 차체가 어쩐지 우스꽝스럽게 보였다. 천장 바위틈이 갈라졌다. 거기서 차가운 바닷물이 왈칵 쏟아져 내렸다.     지저에의 여행   돌연 관측실 바로 밖에서 새로운 소음이 들려왔다. 다음 지진이 곧 뒤이어 일어났나 하고 생각하는 순간 나는 놀랐다. 그러나 그렇지는 않았다. 스테이션 케이(K)가 홍수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자동적으로 가동하기 시작한 배수 펌프 소리였다. 펌프의 속도는 빨랐다. 천장뿐이 아니라 벽이 갈라진 기다란 틈 사이로 검은 물이 바위부스러기와 함께 흘러 들어온다. 다나까 중위는 거친 목소리로 물었다. "지금 것도 당신네들이 계획한 인공 지진의 하나입니까?"" "아암, 그렇다네." 숙부는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다시 말했다. "고에쓰 박사의 계획은 단층면에 대한 대각선상에 여덟 번의 인공 지진을 일으키는 것이네. 우리는 그중 네 곳에 수폭을 장치했네. 이번 것이 네 번째네." "나머지 네 번은?" "지금부터 수폭을 장치하러 가야지." 숙부는 태연하게 말했다. 주위가 조용해지고 배수 펌프와 바닥을 흐르는 물소리만이 울렸다. 고에쓰 박사가 일어섰다. "난파선의 핵폭탄은 오랫동안 바닷속에 있었기 때문에 꽤 상한 것이었네. 우리들은 8회분의 수폭을 지저 굴진 카에 싣고 출발했지만 절반 밖에 쓰지 못했네. 그래서 예비 수폭을 가지러 오지 않으면 안되었네. 우리들은 구정물 탱크로 들어오고, 기데온하고 밥 에스코가 스튜어트의 사무실에 가 보았으나 금고 속에 넣어 두었던 수폭이 없어졌겠지. 그래서 우리들은 그것이 해저 함대 기지로 운반되어서 이리로 옮겨진 사실을 알았네. 그래서 이리로 왔다네. 우리들은 수폭이 필요하네!" 고에쓰 박사가 힘차게 외쳤다. "나머지 수폭이 없으면 지금까지의 고생이 수포로 돌아가네. 대지진의 진도는 1, 2도쯤 내리겠지만 반드시 일어나네. 그리고 해저 도시 그라카타우는 전멸할 걸세." 사건의 진상을 알자 다나까 중위의 결단은 빠르고 정확했다. "대지진은 어떤 일이 있어도 막지 않으면 안 되지요. 고에쓰 박사, 수폭은 이 지하 관측소 창고에 있습니다. 지저 굴진 카에 싣는 일을 도와 드리죠!" 수폭을 싣는 데는 그렇게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우리들은 두 사람이 한 조가 되어서 황금빛으로 빛나는 금속구를 가죽끈으로 매달아 창고에서 관측소까지 바위 터널 통로를 지나 지저 굴진 카 위에 있는 기데온에게 건네주었다. "어이차!" 기데온은 배짱 좋게 웃으면서 무거운 금속구를 받아 들어 해치 속에 내려놓았다. 선 내에서는 다나까 중위와 할리가 숙부의 지시에 따라 금속구를 가지런히 놓고 있었다. 고에쓰 박사도 케로우 중위와 한 조가 되어 일하고, 밥 에스코와 나도 질세라 금속구의 운반을 서둘렀다. 수폭을 전부 나르는 일이 끝났을 때, 밥과 나는 한숨 쉬고 서로 얼굴을 마주보았다. 수수께끼에 싸인 사건이 시작되면서부터 어둡게 가라앉았던 밥의 얼굴이 오래간만에 활짝 웃음이 떠올라 있었다. "짐, 자네는 명탐정이야. 난 미행 당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했는데도 안 되었었네. 정직히 말해서 자네에게 그러한 명탐정의 재능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았었네." "미안하네, 밥." 나도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렇지만 나는 마음속에서는 자네를 믿고 있었네. 숙부나 기데온도 믿고 있었지. 사복을 채우기 위해서 해저 도시 그라카타우를 위험 속에 빠뜨리는 것 같은 일을 할 리가 만무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단 말일세. 하지만 아직 내가 모를 일이 한 가지 있네." "어떤 일 말인가, 짐7" "이번 계획을 모두 비밀리에 한 것은 당연하네. 그러나 어째서 내게도 숨겼었나? 스테이션 케이(K)의 협력을 필요로 했다면 숙부는 왜 자네 대신에 나를 끼워 주지 않았을까?“ "자네를 동지로 삼으면 자네와 숙부하고의 인연을 알기 때문에 곧 비밀이 탄로 난다는 판단이었네. 모르겠나, 짐? 비밀을 간직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네에게 우리들의 행동을 숨겨 두는 것이었네. 우리들이 스테이션 케이(K)에 배속된 직후 자네 숙부님이 몰래 나를 찾아오셔서 모든 것을 털어놓고 내게 협조를 부탁하셨다네, 숙부님은 자네를 빼 버려도 계획이 성공된 후에 잘 설명하면, 자네가 이해해 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네. 그 말씀대로 아닌가 짐!" "그랬었나. 그렇지만 나도 고에쓰 박사와 숙부의 계획을 도와드렸으면 좋았을 걸." 나를 빼 버린 데 대한 불만은 역시 마음속에 남았다. 이 때 다나까 중위가 지저 굴진 카의 사다리에서 내려와 밥에게 물었다. "나도 아직 모를 것이 한 가지 있다. 자네는 먼저 번에 우리들이 아무도 예지하지 못했던 지진을 정확히 예지했는데, 그것은 말하자면 스튜어트 이든이 인공 지진을 일으킬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인가?" "네, 그렇습니다. 그리고 제가 뽐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만....... 그리나 계획의 기밀을 지키는 걸 잊어버린 경솔한 행동이었습니다......." "그런 건 아무래도 종아. 문제는 기지에서 도둑 맞은 지오존데에 관한 것이다!" 다나까 중위는 큰 소리로 외쳤지만 밥은 멍청한 얼굴이었다. "지오존데는 귀중한 관측 기계일세, 그것이 어떻게 되었는가 추궁하는 것이 나의 책임이다!" "그 일에 관해선 아무 것도 모릅니다." 밥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지저 굴진 카의 해치에서 할리가 머리를 내밀고 소리쳤다. "전부 실었습니다! 언제라도 출발할 수 있습니다." 이 때 다섯 번째의 지진이 시작되었다. 먼젓번에 비해서 결코 센 것이 아니었다. 아직 작동(기계의 운동, 움직임)을 계속하고 있는 지진계가 그 지진파를 정확히 포착하고 있었다. 그러나 주위의 바위가 축축한 탓인지 또는 주위가 너무 조용한 탓인지 땅울림은 먼젓번 보다 크고 진동도 심한 것 같았다. 거기다 더욱 중대한 문제가 있었다. 이 지질은 고에쓰 박사의 계획 이외의 것이었던 것이다. 숙부가 창백한 얼굴로 외쳤다. "나머지 수폭을 장치하러 가세! 시작한 일은 끝까지 해야지!" 이 때 천장에서 바위부스러기가 숙부의 머리 위에 후드득 떨어졌다. 숙부는 그만 방바닥에 넘어졌다. 붉은 피가 머리와 어깨에서 흘러내렸다. 바위부스러기는 지저 굴진 카의 몸체에도 떨어져 내려서 마치 기관총 같은 소리를 냈다. 나도 고에쓰 박사도 바위부스러기를 맞았다. 기데온은 방바닥에 쓰러졌지만 곧 벌떡 일어섰다. 그러나 고에쓰 박사하고 숙부는 나이를 먹은 탓인지 일어나지 못하고 버둥거리고 있었다. 그 위로 또 바위부스러기가 더욱 쏟아져 내렸다. "저 두 사람을 구출해라!" 다나까 중위가 말했다. 밥과 나는 두 노인을 부스러기가 비처럼 쏟아지는 곳에서 커다란 제도 책상 위로 옮겼다. 불쑥 밥이 고함쳤다. "짐, 자네도 피를 홀리고 있네!" 분명히 나도 부상을 입고 있었다. 그러나 약간의 찰과상에 지나지 않았다. 바위의 뾰족한 끝이 목에서 어깨에 이르는 곳을 그어댔으나 별로 대수롭지 않았다. 우리들이 부상자들을 돌보고 있는 동안 다나까 중위는 분주하게 계산을 하고 있었다. 이미 관측 기계의 대부분은 거듭된 지진의 충격 때문에 거의 망가져서 불충분한 데이터는 최고의 육감으로 보충할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다나까 중위는 연필을 내동댕이치고 우리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이걸 좀 보게!“ 다른 색연필을 잡자 다나까 중위는 지도 위에 5개의 지진의 진원에 두 十(십)자 표시를 써넣었다. 네 번은 인공 지진이고 한 번은 자연으로 일어난 지진이다. "자, 보게." 빨간 십자 표식을 붉은 연필로 이어가면서 다나까 중위는 설명했다. "다섯 번째의 자연 지진도 결코 나쁜 것은 아니군. 축적된 지진 에너지를 방출하는 데 공이 컸네. 즉 인공 지진 1회분의 대신이 되었단 말일세. 지저 굴진 카는 곧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되네. 한 시간 내에 또다시 다음 자연 지진이 일어날 걸세. 진원은 여기쯤일세." 숙부는 힘들게 몸을 일으키고 책상에서 일어나 의자를 붙잡고 몸을 지탱하면서 고함쳤다. "자, 출발이다! 고에쓰 박사, 기데온, 가세!" 그러나 다나까 중위는 숙부를 의자에 다 눌러 앉혔다. "당신이 가실 필요가 없습니다. 나머지는 우리들이 하겠습니다!" "자네가?" 숙부는 다나까 중위를 쳐다보고 눈을 깜빡거렸다. "하지만 자넨 장치하는 방법을 알고 있나? 고에쓰 박사하고 나는 이제 이 일에 익숙해졌으니까 괜찮아도 다른 사람들은 위험하네!" "지금 당신께서는 위험한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 상처로 출발하시면 죽는단 말입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다나까 중위는 숙부 앞에 지도를 내밀었다. "여기하고 여기하고 이곳입니다! 이 세 군데에서 나머지 인공 지진을 일으키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 밖에 우리들에게 필요한 무슨 지식이 없습니까? 나는 밥하고 기데온을 함께 데리고 가겠습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필요하군요." "제가 가겠습니다!" 나는 외쳤다. 그러나 거의 동시에 내 옆에서 할리가 외치고 있었다. "제가 가겠습니다!" 그리고 할리는 내게 얼굴을 돌리고 분명히 말했다. "나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가야하네, 짐!" 주위에 정적이 돌았다. 배수 펌프와 바위틈에서 흘러내리는 바닷물 소리만이 차고 습한 공기를 흔들고 있었다. 우리들은 모두 지금부터 출발할 지저 여행을 생각하고 있었다. 해저 밑 3킬로의 스테이션 케이(K)보다 수 킬로나 더 아래까지 굳은 지각 속을 진행하는 것이다. 아래로 내려감에 따라 열과 압력이 더해 가는 공포의 여행이다. 그래도 떠나지 않으면 안 된다. 지진은 다섯 번 일어났지만 아직 세 번 남아 있는 것이다. 이제부터 나머지 세 번의 인공 지진은 먼젓번 다섯 번 것보다 깊은 곳에서 일으키지 않으면 안 된다. 지저 굴진 카가 단층에 눌려 짜부라지거나 뜨거운 마그마 속에 떨어져서 흐물흐물하게 녹아 버릴 위험이 있다. 나는 지오존데가 2킬로의 장소에서 몇 개가 망가졌는가를 생각했다. 지금, 우리들은 그것보다도 훨씬 깊은 땅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다나까 중위가 말했다. "좋아, 이든 후보생, 단소프 후보생, 자네들을 둘 다 데리고 가기로 하지. 케로우 중위, 자네에게 스테이션 케이(K)와 두 노신사를 맡길 테니, 잘 부탁하네.“ "왜, 지저 굴진 카의 승무원이 한 사람 더 붙어서는 안 되나? 노인네들에겐 간호원 따위는 필요 없겠는데." 케로우 중위는 지저 여행에 참가하고 싶어서 불만을 토로했다. "이것은 명령일세. 여기서 할 일이 많이 있으리라고 생각하네. 부탁하네. 케로우 중위." 케로우 중위는 할 수 없는 듯 입을 다물었다. 다나까 중위는 지저 굴진 카를 돌아보며 큰 소리로 말했다. "자아, 출발이다!" 우리들이 지저 굴진 카에 올라타고 있을 때 긴급 방송이 시작됐다. 지진의 피해에 관한 뉴스와 경고였다. 뉴스에 의하면 배수 펌프가 파열해서 더러운 물이 배수 펌프의 처리 능력을 넘는 속도로 구정물 탱크에 모이기 시작했다. 완강한 배수 펌프가 파열했다고 한다면 동력 관계에 고장이 생길 우려도 있다. 늦게나마 시민들의 피난 계획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위험을 느낀 시민들은 해상에 떠 있는 비행장으로 통하는 승강기에 한꺼번에 몰려들어서 이미 발포(총탄을 내 쏨)하는 소란까지 빚어냈다. 총화(총을 쏠 때 총구에서 번쩍이는 불)로 동력 장치가 파괴된다면 큰 일이다. 어물어물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우리들은 고에쓰 박사와 숙부에게 손을 흔들어 작별 인사를 하고 지저 굴진 카의 해치를 닫았다. 밖의 소음이 전혀 들리지 않게 되었다. 좁은 선실 앞부분에 장치된 조종석에 기데온이 앉았다. 우리들은 명멸하는 조그만 불빛 속에서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원자 드릴이 막대한 동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선실의 조명은 최소한으로 절약하고 있는 것이다. "출발!" 다나까 중위가 명령했다. 기데온이 끄덕이고 출발 버튼에 손을 뻗쳤다. 동력이 들어오자 지저 굴진 카의 몸체를 뒤덮은 이든 나이트가 숨쉬듯 빛나고, 원자력 드릴이 회전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지저 굴진 카는 진동하면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굉음은 마치 미친 공룡이 바위를 발로 밟아 부수며 짖어 대는 것 같았다. 선실 안에 있어도 귀머거리가 될 것처럼 굉장한 소음이었다. 지저 굴진 카는 뒷걸음질쳐서 자기가 뚫고 나온 벽의 구멍 속으로 천천히 들어갔다. 우리들은 지저의 여행길에 오른 것이다.     바위의 바다   다나까 중위는 소음 못지 않게 고함쳐 댔다. "좀더 속력을 내게, 파크! 50분 이내에 목적한 장소까지 내려가야 하는 것이네!" "예, 중위님!" 기데온은 위세 좋게 대답하면서 눈을 질끈 감아 윙크를 해 보였다. 나는 기데온하고 같이 있었기 때문에 땅 속을 전진하는 두려움을 잊을 수가 있었다. 할리만은 몹시 우울해서 아무에게도 말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 나는 할리가 타이드 신부를 수중 카의 발착소까지 전송하고 나서 스테이션 케이(K)로 돌아왔을 때의 일을 문득 생각해냈다. 그 때 할리는 전에 없이 기운이 없어 보였으며, 울고 싶은 것을 억지로 참고 있는 듯한 얼굴이었다. 때마침 지저 굴진 카가 침입해 왔기 때문에 할리의 일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지만, 무엇인가 좋지 않은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지금도 고민하고 있는 것일까? 강철같이 굳은 바위를 깎으며 고속으로 진행하는 지저 굴진 카의 움직임에 몸을 맡기면서 나는 할리에게 말을 걸어 볼까 하고 생각했다. 그 때 기데온이 돌아다보며 고함쳤다. "수폭 발사의 준비를 부탁하네!" 우리들은 황금빛의 무거운 금속구를 주의 깊게 발사관에 박았다. 그것은 구식 잠수함에 달려 있던 어뢰 발사관 같은 것이지만 어뢰 대신에 핵폭탄을 수중이 아니라 땅 속에 쏘아 박는다. 그러기 위해 발사관의 첫머리에는 굳은 바위를 깎는 특수한 장치가 달려 있다. 발사관의 조작은 해저 함대에서 특별 훈련을 받은 승무원의 일이지만, 지금은 경험이 없는 우리들의 손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황금빛 수폭은 스텐레스 스틸 밴드의 위치를 움직이면 안전 장치가 빠지게 되어 있다. 그렇지만 오랫동안 바다 밑에 방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안전 장치나 시한 장치가 고장났을 우려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수폭은 일단 안전 장치를 빼기만 하면 돌연 우리들의 얼굴 알에서 폭발한지도 모른다. 또는 뜨거운 바위 속에 발사한 순간에 폭발할지도 알 수 없는 것이다. 우리들은 묵묵히 작업을 계속했다. 어느 얼굴도 공포로 일그러져 있었다. 다행히 안전 장치는 무사히 빠졌다. "발사!" 기데온이 외쳤다. 발사관의 첫머리가 자동적으로 바위를 파고 수폭을 틀어박았다. 발사가 완료되자 지저 굴진 카는 몸체를 뒤틀면서 전속력으로 그곳을 떠났다. 14분 후 예정대로 주위의 바위가 신음 소리를 내며 진동하여 지저 굴진 카에 대들었다. 작은 몸체는 마치 거대한 동물이 이빨로 물고 흔들어대는 것처럼 흔들렸다. 선실의 명멸등(자동적으로 꺼졌단 켜졌다 하는 전등)이 순간 꺼졌다 다시 명멸하기 시작했으나, 먼저보다 빛이 약해졌다. 원자력 드릴도 멎었다. 내 마음속에 체념이 스쳤다.     그러나 원자력 드릴의 바위를 깎는 힘찬 음향이 또다시 울려 왔다.지저 굴진 카는 스스로 일으킨 인공 지진을 참고 살아 남은 것이다. "폭발 지점이 너무 가까웠군! 이번에는 폭발 시간을 좀 더 길게 해서 멀리까지 도망치도록 하지!" 기데온은 안심한 듯이 웃는 것이었다. 내 옆에서 밥이 손잡이를 잡으면서 불안스럽게 말했다. "드릴 소리가 이상하다! 어느 것인가 하나 회전이 둔해졌어!" 지금 충격으로 고장난 것일까? 지저 굴진 카의 원자력 드릴 장치는 몇 개인가의 드릴이 동시에 움직여서 바위를 파고 들어간다. 1개라도 고장이 나면 바위를 고르게 부술 수 없는 것이다. 나도 귀를 기울여 보았으나 소리만 듣고 고장을 알아차릴 만큼 전문가는 아니었다. 가령 고장이 일어났다고 해도 지금은 어쩔 도리가 없을 것이다. 두 번째 수폭이 예정 지점에 발사되었다. 그라고 예정대로 인공 지진이 일어났다. 우리들이 받은 충격은 먼젓번과 같은 굉장한 것이었지만, 어떻든 살아날 수 있었다. 다나까 중위는 연필을 들어 깜박거리는 희미한 불빛 속에서 계산을 계속하며 그 해답을 보면서 말했다. "이제 한 번으로 충분할 것 같네. 정확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그러자 기데온이 돌아보며 말했다. "고에쓰 박사를 믿읍시다, 중위님! 고에쓰 박사는 여덟 번의 인공 지진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들은 예정대로 할 뿐 입니다." "그렇군." 다나까 중위는 갸름한 얼굴에 분노의 빛을 띄고 외쳤다. "만약에 우리들의 손으로 대지진을 막아냈다고 해도 그건 절대로 시의회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야! 물욕(재물을 욕심 내는 마음)에 눈이 먼 비인간적인 그 자들에게 보복을 받게 할 방법은 없을까?" "이미 보복을 받고 있답니다!" 할리가 우는 것 같은 소리로 말했다. "그건 또 무는 뜻인가?" 할리를 똑바로 보며 중위가 물었다. "우리 아버지와 시장, 그리고 3, 4명의 시의회 의원은 이미 이 세상에 안 계시답니다, 중위님!" 할리는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격한 감정을 누르며 말했다. "중위님은 저에게 타이드 신부를 부두까지 전송하라고 하셨죠? 그 때 나는 부두에서 아버지의 잠수 요트를 보았습니다. 50만 불이나 들여서 만든 호화선입니다. 그것은 아버지의 살아가는 보람이었습니다. 마침 선체(배의 몸체) 검사를 받기 위해서 입항하고 있었답니다. 나는 잠수 요트를 바라보면서 부친이 시민의 피난용으로 제공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요트에는 8명밖에 타고 있지 않았습니다. 정원 50명이 탈 수 있는 선실에 단 8명뿐이었습니다! 나머지 공간에는 종이 같은 것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주권에다 채권 그리고 돈뭉치들....... 부친은 전 재산을 요트에 싣고 도망치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할리는 절망적인 얼굴로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자기와 몇 사람의 친구만을 태우고 시민들을 내버려두고 피난하려고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부친은 저보고도 함께 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나의 임무를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보고 있는 앞에서 요트는 해치를 닫고 워터 로커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바깥쪽의 로커 도어가 열렸을 때 무서운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어찌된 영문인지 잠수 요트를 둘러싸고 있는 이든나이트가 제 구실을 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바닷물와 그 무서운 수압은 눈 깜짝할 사이에 잠수 요트를 납작하게 뭉개 버렸습니다. 물론 요트에 탔던 사람들은 전부 죽었습니다. 우리 아버지도......." 할리의 목이 경련을 일으켜 꿈틀 꿈틀거렸다. 잠시 동안 아무도 입을 열려고 하지 않았다. 이윽고 다나까 중위가 상냥하게 말하였다. "미안하네, 단소프 후보생. 자네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줄은 모르고 있었네......." "아닙니다. 아버지는 중위님에게 조상(남의 죽음에 대하여 슬픈 뜻을 표시함)을 받을 만한 인간이 못 됩니다. 뿐만 아니라 저는 또 한 가지 중위님께 말씀드려야 할 것이 있습니다. 분실된 지오존데에 대한 것을 기억하고 계십니까?" "물론이지." "사실은....... 그것을 훔친 것은 접니다. 부친의 부탁으로 훔쳤던 것입니다. 저는 지오존데의 기밀을 누설하고 더욱이 그것을 훔쳤으며, 해저 함대의 규율을 이중으로 깨뜨렸습니다. 이렇게 된 마당에 새삼스럽게 변명 하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다만 사건을 분명히 해두기 위해서 고백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할리는 진지한 표정이 되어 계속하였다. "부친은 훔친 지오존데를 견본으로 해서 같은 것을 많이 만들어 개인적으로 지진 예지의 정보를 손에 넣으려고 했습니다. 예전에 고에쓰 박사에게도 같은 일을 제안했었습니다. 물론 주식으로 돈을 벌려고 했던 것이죠. 저는 변명은 않겠습니다. 순순히 군사 재판을 받을 각오입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기회를 준다면 이번에야말로 훌륭한 해저 함대의 사관 후보생이 되리라고 결심합니다.“ 모든 것을 고백하고 마음속의 무거운 짐을 벗은 탓인지 할리의 얼굴은 밝았다. 다나까 중위는 꼿꼿이 일어서서 머리를 선실 천장에 대고 신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단소프 후보생! 자네는 이미 재판을 받고 있네. 이 문제는 이것으로 끝을 맺는다!" 참으로 극적인 순간이었다. 조종석에서 기데온이 돌아다보고 감동적인 공기를 깨뜨렸다. "시간을 봐라! 마지막 수폭을 발사할 장소에 와있다." 우리들은 분주히 수폭을 발사하고 그 자리에서 멀리 가려고 했다. 그러나 시간이 조금 모자랐다. 지진의 공격으로 선실의 명멸등이 꺼지고 그대로 다시는 켜지지 않았다. 차체도 몹시 삐걱거리고 뒤틀렸지만 박살이 나는 것만은 면했다. "잘됐어! 이렇게 순조롭게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어!" 밥은 내 등을 힘껏 두들기면서 외쳤다. "아직 끝나지 않았어! 밥, 이리로 와서 좀 도와주게. 원자력 드릴이 움직이지 않는단 말일세!" 기데온이 불렀다. 마지막 지진의 충격으로 조종장치의 누르는 단추가 아주 못 쓰게 되어 버렸다. 할 수 없이 기데온은 수동레버(지렛대)로 조종 장치를 움직이려고 필사적으로 애썼지만, 혼자의 힘으로는 어쩔 수가 없었다. 밥과 기데온은 손끝에 혼신의 힘을 다해서 레버를 당겨 간신히 2, 3센티 움직였다. 동력이 들어와 또다시 원자력 드릴은 굳은 바위를 깎기 시작했다. 명멸등에도 전등불이 들어왔으나 선실 안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분별할 수 없을 정도로 희미했다. 선실 안의 온도가 상승하기 시작했다. 기데온이 원자력 드릴에 될 수 있는 한 많은 동력을 돌리기 위해서 냉방 장치를 꺼버린 것이다. 몇 분이 지났다. 조종석의 계기는 지저 굴진 카가 스테이션 케이(K)의 바로 옆에 와 있는 것을 나타냈다. 원자력 드릴의 진동이 갑자기 약해졌다. "바위 밖으로 나왔네!" 기데온이 기쁜 듯이 외쳤다. 우리들도 마음을 놓았다. 우리들은 훌륭히 임무를 마치고 스테이션 케이(K)로 돌아온 것이다. 그러나 기뻐하기에는 너무 일렀다. 돌연 금속이 터지는 것 같은 소리가 선실에 들려온 것이다. 기데온은 굳은 표정을 하고 혀를 찼다. "이든나이트가 터졌다!" 계기를 힐끗 쳐다보고서 우리들을 돌아다보았다. "우리들은 물 속으로 나왔는데 말일세, 불이 붙을 정도로 뜨거워진 이든나이트가 갑자기 찬 물 속에 휩싸이니 급격한 온도 변화에 의해 깨지고 만걸세. 그렇지만 상관없어. 계기는 정상이니까. 그렇다면 우리들은 지금 확실히 스테이션 케이(K) 안에 있는 걸세. 즉 스테이션 케이(K)는 물 천지란 말이네." 우리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보았다. 숙부와 고에쓰 박사는 어떻게 됐을까? 아니, 어쩌면 해저 도시 그라카타우 그 자체가 전멸해 버렸는지도 알 수 없다. 우리들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단 말인가? 해저 도시의 큰 돔이 쫙 갈라져서 5천 미터의 수압에 눌려 짜부라졌단 말인가? "여기서 나가자!" 다나까 중위가 외쳤다. 그러나 꽉 입술을 깨물고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그렇지만 이든나이트가 망가져 버렸다면......." 이든나이트가 소용이 없다면 우리들은 해저에 나가는 순간 5천 미터의 수압을 받아 큰 망치로 두들겨 맞은 곤충처럼 납작해질 것이다. "좀 도와주게 ! 공기를 주우러 가야지. 바위 속에 박힌 공기를 찾는 거야!" 기데온이 말했다. 목숨을 연장하기 위해서 우선 공기가 필요하다.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지만 죽을 때까지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거듭되는 인공 지진의 충격으로 만신창이가 된 지저 굴진 카는 또다시 바위 속으로 들어갔다. 선실 안의 온도가 자꾸만 올라가 눈이 현기증이 날 정도로 뜨거워졌다. 원자력 드릴의 회전이 불규칙적으로 되어 그 소음이 더 한층 우리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또한 선실 안 공기가 더러워지고 기계가 타는 냄새가 자욱해 숨이 막힐 정도였다. 맨 먼저 다나까 중위가 쓰러지듯 넘어졌다. 잇달아 단소프가 긴급용 레버 앞에서 방바닥으로 굴러 떨어 졌다. 나는 두 사람 곁으로 다가가려고 했다. 어느 틈엔가 밥도 방바닥에 길게 뻗어 있었다. "일어나, 밥! 어떻게 됐나?" 나는 큰 소리로 외쳤다. 그러자 기데온의 괴로운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짐 ! 좀 도와주게. 혼자선 도저히......." 그러나 그 목소리도 점차로 작아지더니 완전히 사라졌다. 나는 기데온이 있는 쪽으로 향했으나 발이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지저 굴진 카가 돌연 핑그르르 방향을 바꿔 나는 그만 방바닥에 동댕이쳐졌다. 지저 굴진 카가 돌은 것인가, 아니면 내가 정신을 잃은 것인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좋다. 나는 뜨겁고 딱딱한 금속 바닥 위에 넘어져 있었다. 나는 어떻게 해서든 일어나서 미쳐 날뛰는 지저 굴진 카를 붙잡지 않으면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힘이 거의 빠져 버렸다. 마지막 명멸등이 꺼졌다. 그리고 나는 정신을 잃었다.     이든나이트의 빛   검은 신부복을 입은 자그마한 몸집의 산타클로스가 나를 보고 말하고 있었다. "짐! 짐! 이걸 좀 마셔 봐라." 무엇인지 쓰고 혀가 찌잉 하는 것이 내 입에 쑤셔 박혀 왔다. 나는 숨이 막힐 것 같았다. 그리고 몸을 일으켜 타이드 신부의 파란 눈을 똑똑히 볼 수가 있었다. "여기는.... 대 체......." "가만히 있는 것이 좋아." 타이드 신부는 듣기 좋은 따뜻한 목소리로 말했다. 혈색이 좋은 뺨에 상냥한 미소를 띄고 있었다. "이제는 괜찮아, 짐. 자네는 지금 내 수중 카에 타고 있는 거야. 우리들은 해저 도시 그라카타우로 돌아가는 길이라네." "그라카타우?" "하지만 해저 도시 그라카타우는 물 천지가 되었는데요, 신부님! 우리들은 거기 있었습니다. 스테이션 케이(K)는 물 속에 잠겨서 사람이 살아 있는 기색이 없었습니다!" 타이드 신부는 근심스럽게 눈썹을 모았으나 분명히 말했다. "돌아가 보기로 하지. 생존자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렇지만 타이드 신부는 나와 눈이 마주치는 것을 피했다. 나는 일어섰다. 내가 있는 곳은 선실이었다. 벽에는 가지각색의 최신 지진 관측 기계와, 지도와 자료 등이 꽉 차 있었다. 수중 카 전체가 움직이는 지질 관측 연구소였다. 여기에서 행하여진 관측이며, 연구는 고에쓰 박사의 지진 이론에도 많이 인용되어 있다. 나는 이전부터 이 수중 카에 대해서 이야기는 듣고 있었지만 실제로 탈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었다. 더욱이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기데온 파크가 나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 검은 얼굴에 환하게 빛나는 듯한 웃음을 떠올리고 있었다. "짐, 다행이네! 모두 걱정했었네. 다른 사람들은 벌써 한 시간 전에 일어났는데, 자네만이 좀처럼 눈을 뜨지 않았으니......." "다른 사람들은?" 나는 염려가 되어 물었다. "전원 무사하네. 타이드 신부님이 구해 준걸세. 우리들이 마침 진원 위에 있을 때 신부님이 해저를 지나다가 지저 굴진 카의 진동을 찾아낸 거지. 지저 굴진 카는 조종 장치는 고장났지만, 원자력 드릴은 움직이고 있었지. 정신을 잃은 승무원들을 태운 채로 해저의 이토(진흙)충을 휘저으면서 상승하고 있었다네. 신부님은 참으로 훌륭하신 분일세. 이 조그만 수중 카는 이미 피난민과 관측 기계로 가득 찼었는데 우리들을 구조해 주셨네. 더욱이 해저도시 그라카타우에 돌아가자고 말씀하시는 걸세. 자네 숙부님과 고에쓰 박사를 구출하기 위해서......." 기데온은 끝까지 말을 마치지 못했다. 숙부와 고에쓰 박사의 일을 생각하면 나는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 그러나 가령 해저 도시 그라카타우 시민들과 함께 숙부나 고에쓰 박사가 희생이 되었다고 해도 우리들은 승리를 거둔 것이다. 고에쓰 박사의 새로운 이론과 새로운 기술에 의해 대지진을 막아내는 방법이 확립된 것이다. 그것이 조금쯤은 위로가 된 것이다. 우리들은 타이드 신부의 관측 설비를 써서 각기 지진 예지의 계산을 하기 시작했다. "대성공이다!" 할리가 계산 용지를 흔들면서 외쳤다. "이것 좀 보세요! 예측 진도 제로(0), 예측 시간 무한, 그리고 예측 오차는 계산할 수 없을 만큼 극히 적습니다." "내 결과도 같다. 이든, 에스코, 자네들은 어떤가?" 이 며칠 내 처음으로 다나까 중위의 얼굴이 밝았다. 중위의 목소리는 들떠 있었다. "똑같습니다." 밥과 나는 동시에 머리를 끄덕였다. 대지진을 일으키는 지각 내의 지진 에너지는 완전히 발산해 버린 것이다. 해저 도시 그라카타우에 무슨 일이 일어났다고 해도 대지진을 예방한다는 우리들의 계획 그 자체는 성공한 것이다. 우리들은 지진이 반드시 예지할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나아가서는 지진을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이제는 해저 도시 난세이 나하의 비극을 두 번 다시 되풀이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육상에 있는 도시들도 지진에 대해서 안전해졌다. 리스본이나 샌프란시스코의 대지진 같은 비극은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해저 도시 그라카타우를 구출치 못했던가? 슬픔과 애석함이 한층 우리들의 마음을 조이는 것이었다. 수중 카는 무거운 짐에 허덕이면서 해저 도시 그라카타우를 향해 서둘렀다. 선실에는 피난민들이 참을성 있게 앉아 있었다. 우리들에게서 스테이션 케이(K)가 물 천지였다는 소리를 듣고, 해저 도시에는 이미 생존자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모두들 육친이나 친구들을 해저 도시에 남겨 놓고 이 수중 카에 올라탔을 것이다. 어느 얼굴도 어둡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러나 이 시민들은 해저 개발자들이다. 하나의 해저 도시가 전멸하면 또다시 새로운 해저 도시를 건설할 것이 틀림없다. 침울한 시간이 흘러갔다. "해저에 빛이 보인다. 저건 이든나이트의 빛이다!" 돌연 타이드 신부가 외쳤다. 우리들은 일제히 현창에 달라붙었다. 분명히 보인다. 전방 바다 밑에 청백색 빛이 거대한 발광 생물(빛을 뿜어내는 생물)처럼 숨쉬고 있었다. "해저 도시 그라카타우의 돔이다! 이든나이트가 정상적으로 가동하고 있다!" 우리들은 어린애들처럼 환성을 지르고 서로 어깨를 두드려 댔다. 고에쓰 박사의 인공 지진 기술은 장래에 필요할 뿐만 아니라 해저 도시 그라카타우 그 자체를 구출한 것이다. 수중 함선이며 수중 카들이 속속 돌아오기 때문에 워터 로커의 앞은 굉장히 혼잡하였다. 우리들의 수중 카는 한 시간이나 기다리고 나서야 간신히 로커를 지나 부두에 매어져 해치를 열었다. 또다시 우리들은 따뜻한 활기에 찬 해저 도시 그라카타우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숙부와 고에쓰 박사는 병원에 있었다. "별로 대수롭지는 않다. 조금 피로했을 뿐이야! 자네들이 지저 굴진 카로 떠나간 뒤 스테이션 케이(K)에 바닷물이 자꾸만 흘러 들어와서 할 수 없이 위로 피난했지. 해저 함대의 기지도 위층으로 옮겼다네. 역시 이든나이트야. 돔은 고에쓰 박사의 연속 인공 지진에도 까딱도 안 했거든." 숙부는 옆 침대에 있는 고에쓰 박사에게 웃어 보였다. 기데온이 내 어깨를 꽉 붙들고 말했다. "스튜어트, 우리 둘은 당신네들을 조금도 걱정 안 했었지. 그렇지, 짐?" "그렇고 말고요. 우리들은 숙부님이 어떠한 일이 있어도 반드시 이겨내리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요." 나도 맞장구를 쳐서 아주 그럴 듯이 말했다. 그러나 숙부와 할리가 껄껄 웃어 버렸기 때문에 효과가 없어졌다. 숙부는 빙그레 웃었다. "자, 일에 착수하기로 할까? 바다에는 아직도 도전할 것이 많이 남아 있지. 병원 침대에서 뒹굴고 있으면 바다를 정복할 수는 없지. 여보 간호원 아가씨!" 시트를 걷어차고 회고 짧은 가운에서 맨발을 삐죽 내밀며 방바닥에 내려선 숙부는 큰 소리로 고함쳤다. "여보세요 간호원, 나는 곧 퇴원할 테니까 옷을 갖다 주지 않겠소? 시간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작품 해설   지진은 왜 일어나는가?   '해저 지진 도시"는 미국 SF작가 프레더릭 폴과 잭 윌리암슨이 함께 쓴 소년 소녀용 SF이다. 미국의 추리 소설과 SF중엔 이 작품 외에도 두 작가의 재능을 합쳐 공동으로 쓴 작품이 많다. 1958년에 발표된 해저를 주제로 한 "해저 정복" "해저 함대" "해저 지진 도시"등이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 "해저 지진 도시"에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것은 지진을 미리 알게 되는 것이다. 작품 속에 일본인 지진학자가 등장하는 것은 일본이 세계 제 1의 지진국이며, 또한 지진으로 인하여 많은 고통을 받고, 지진 연구가 가장 발달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해저의 미래 도시 그라카타우에서는 이미 지진 관측망이 육상과 해저에 설치되어 있어서 며칠 후에 일어 날 지진까지 미리 알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들이 현재 살고 있는 20세기 시대에서는 지진이 일어날 것을 미리 알 수 있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미리 알 수 있다 해도 그 기술이 어느 정도일까? 미래의 "해저 지진 도시" 같이 지진을 백발백중 미리 알 수 있을까? 그러면 지진은 왜 일어나는가를 생각해 보자. 우리들이 살고 있는 대지는 지각이라고 불리는 부분인데, 그 두께는 대륙 부분에서는 평균 350km, 해저 부분에서는 평균 5Km밖에 되지 않는다. 이 지각 밑에는 두께가 2900km되는 맨틀이라는 암층이 있다. 이 맨틀 밑에는 뜨거운 열이 있어 위로 올라가는데, 이것이 지각에 부딪히면 열이 식어져 아래쪽으로 내려가는 운동을 일으킨다. 이것을 '맨틀 열 대류'라고 한다. 즉 암석이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느린 속도로 움직이는 것이다. 이 맨틀 열 대류로 인하여 오랫동안 지각과 맨틀 상층(깊이 약 700km)사이에 뒤틀리는 변화가 생긴다. 이것이 어느 한계점을 넘으면 주위의 암석을 파괴시킨다. 그리고 이 충격이 지진파가 되어 전달되는데, 이것을 지진이라고 하는 것이다. 또 맨틀 열이 녹아서 유동체가 된 암석, 즉 마그마가 지각이 갈라진 통 사이에 스며들어 암석을 파괴하고, 지진을 일으킨다고도 한다. 그러나 지진은 세계 각처에서 똑같이 일어나는 법은 없다. 지진이 일어나기 쉬운 조건을 가진 지대를 지진대라고 하는데, 지진대에는 사람이 느낄 수 없는 진도 영(0)의 무감각 지진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해저 지진 도시 아이디어 회관 과학 문고 232p. 19cm (SF 세계 명작 34)   인 쇄      1978년 8월 20일 발 행      1978년 8월 33칠 역 자      이 인 석 조 판      크리스찬 신문사 오프셋 인쇄 장원 정판사 활판 인쇄   삼정 인쇄소 제 본      영지 제책사 발행인     박 훈 발행처     아이디어 회관         서울특별시 중구 을지로 5가 19-29       등 록 제 2-213호       전 화 (266) 1975 . (266)798    
제 4 행성의 반란 REVOLT ON ALPHA. C   로버트 실버버그 R. SILVERBERG 지음     로버트 실버버그 1905년 미국 태생. 콜롬비아 대학 재학 중 SF를 쓰기 시작하여, SF작가 휴고를 기념하는 휴고상 수상. “가시 밭길의 여로", "유리탑", "한번 다시 태어나", "살아 있는 화성인", "대빙하의 생존자" 등   편집위원 아동문학 감수 ․박 홍근/문학박사 최 인학 공학박사 양 옥룡/이학박사 김 희규 전교육감 김 성묵     알파 C로의 출발················· 4 공간 도약법··················· 9 우주의 노래·················· 15 결사적인 우주선 밖의 활동··········· 23 목성 식민지의 반란··············· 35 우주 통신의 수수께끼·············· 44 공룡의 요리·················· 52 우리에게 자유를················ 63 반란의 청년 지도자··············· 73 전기 기타의 수수께끼·············· 85 제 2의 배반자················· 96 밀림에 불시착················· 101 지하의 감방·················· 112 혁명과 우정·················· 120 탈 옥····················· 130 집으로 돌아가라, 지구인들아!········· 143 진공 작전··················· 154 대 행 진··················· 163   작품 해설··················· 171   등장 인물   랠리 스타크 : 이 책의 주인공. 지구의 우주 정찰 사관 학교 졸업생, 실습 훈련차 제 4행성에 간다. 하르 엘리슨 : 화성의 사관 학교 졸업생. 제 4 행성의 반란에 참가한다. 오헤어 : 하급 우주 선원이지만, 랠리와 우정이 깊다. 반란에 참가하지만, 랠리를 탈출하게 해 준다. 라인하르트 선장 : 카르텐호의 선장, 아주 냉철한 성격이다. 해리슨 : 지구에서 임명한 제 4행성의 대통령 . 하이틀 : 카르텐호의 연습생. 랠리와 함께 반란군에 붙잡힌다. 존 브라운 :시카고 식민지의 혁명 운동 지도자. 커터 :알파 C 제 4행성 자유세계 평의회 대표. 혁명의 최고 지도자.   알파 C로의 출발   우주 연습선 카르텐호는 명왕성의 우주 공항에 그 거대한 몸체를 쉬고 있었다. 1주일의 기항(항해 중에 들름)이 랠리 스타크에게는 무척 길게 느껴졌다. (이런 곳은 이미 싫증이 난다. 빨리 알파 켄타우루스의 제 4 행성으로 가고 싶다.)라고 생각하며, 랠리는 선실의 창을 통하여 밖을 내다보았다. 태양계의 가장 바깥쪽을 돌고 있는 명왕성은, 태양의 빛을 적게 받으며 만물이 차갑게 얼어붙어 있는 죽음의 세계이다. 공항의 주위에 줄지어 있는 산들도 얼음에 덮여 있고, 그 얼음의 산 위에는 검은 하늘이 차갑게 펼쳐져 있다. 그러나 명왕성은 행성간 여행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중계 기지이다. 지구를 출발한 카르텐호는 일단 명왕성에 기항해서, 여기서 행성간 여행으로 4, 5광년 걸리는 알파 C를 향해서 가는 것이다. 은하계 여행의 경우 카르텐호의 최대 속도는 초속 16만 km이다. 그런데 이 속도라도 알파 C까지 8, 9년이라는 긴 세월이 걸린다. 그러므로 카르텐호는 명왕성에 기항해서 행성간 여행용으로 장비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공간 도약법으로 행성간 여행을 하면, 15일만에 알파 C까지 갈 수 있다. ) 처음으로 행성간 여행에 참가하게 된 랠리는 마음이 조급했다. 빨리 출발하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랠리는 지구의 우주 정찰 사관 학교를 이제 막 졸업한 사관 후보생이다. 졸업 후의 실습 훈련을 받기 위하여 연습생으로서 카르텐호에 타게 된 것이다. 이 실습 훈련을 마치면 한 사람의 훌륭한 우주 정찰 사관이 된다. 연습생은 4명이다. 4명 중 랠리를 포함한 3명은 지구의 사관 학교를 졸업했는데, 하르 엘리슨만은 화성의 사관 학교를 졸업했다. 그래서 카르텐호는 명왕성에 오는 도중 일부러 화성에 기항하여 하르를 태웠다. 지금까지의 실습 훈련은 은하계 여행으로 제한되어 있었다. 우주 정찰 사관 학교의 졸업생은 명왕성까지밖에 오지 못한다. 그러나 이번의 실습 훈련은 사관 학교 창립이래 최초로 행성간 여행을 하게 되었다. "목적지는 알파 C의 제 4행성이다." 이 같은 발표를 듣고, 재학 중이었던 랠리의 가슴은 설레었다. 알파 C의 제 4행성은 지구를 닮은 별로서, 기후도 따뜻하고 공기도 있다. 그러나 지구보다 1억 년 정도 역사가 느렸고, 따라서 공룡의 전성 시대이다. 그 곳에는 작은 식민지가 개척되어, 개척자의 자손들이 살고 있다. 항성간 여행으로 공룡이 있는 행성에 가게 된다면, 얼마나 자랑스럽고 멋진 일일까. 랠리는 어떻게든 알파 C의 제 4행성에 가고 싶었다. [단, 행성간 여행에 참가하는 연습생은 사관 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사람이어야 한다.] 라는 규칙이므로 1, 2등의 성적으로 졸업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우주 정찰 사관 학교는 지구와 화성에 각각 하나씩 있다. 모두 우수한 학생들만 있기 때문에 그 중에서 1, 2등을 하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버지에게 부탁해 볼까?) 하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랠리의 아버지는 우주 정찰 사관의 사령관이다. 아버지가 사관 학교 교장에게 부탁하면 아마 졸업 성적과 관계 없이도 행성간 여행의 연습생으로 선발해 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런 부탁을 할 분이 아니야.) 아버지는 부정한 일을 누구보다 싫어하는 사람이다. 만약 랠리가 아버지의 힘으로 행성간 여행에 참가시켜 달라고 부탁을 한다면, "그 따위 정신으로 어떻게 훌륭한 군인이 되겠다고 마음먹었나? 지금 당장 우주 정찰 사관학교를 그만둬라" 라고 호령하실 것임에 틀림없다. (어떻게든 내 자신의 실력으로 해 볼 수밖에 없다.) 이렇게 결정한 랠리는 있는 힘을 다해 열심히 공부했다. 드디어 노력한 보람이 열매를 맺었다. 랠리는 졸업 시험을 1등의 성적으로 통과했고, 바라던 행성간 여행에 보기 좋게 선발되었다. "과연 나의 아들답게 잘해 주었어. 너는 이제 우주로 나가게 되었다. 그러나 급할 때일수록 믿을 것은 자기 자신뿐이다. 중대한 일은 자기 자신이 결정하는 거다." 하고 스타크 사령관은 지구를 출발할 랠리에게 격려해 주었다. 화성까지의 여행은 선 내의 생활이 처음인 랠리에게는 하나같이 신기하고 나날이 즐거웠다. 그러나 화성에서 명왕성까지 올 동안은 벌써 싫증이 나고 말았다. 하물며 명왕성에서 카르텐호의 선체를 다시 개조하는 작업을 우두커니 바라보고만 있는 것은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화성은 온통 벽돌 색의 사막이다. 푸른 것이라고는 지면에 붙어 있는 이끼 종류뿐이다. 명왕성은 산도 평야와 바다도 꽁꽁 얼어붙어 있다. 두 곳은 보호 돔(반원형의 지붕) 안에서 생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정말 대단한 일이다. 그러나 알파 C의 제 4행성은 지구와 같이 신선한 공기가 있고 도처에 푸른 숲이 있다. 돔이나 우주복 없이도 자유로이 생활할 수가 있다.) 랠리가 한시라도 빨리 알파 C의 제 4행성에 가고 싶어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드디어 카르텐호의 개조도 끝나고 출발할 날이 왔다. 승무원들은 돔 안에 살고 있는 명왕성 식민지의 사람들과 작별을 고하고 선 내로 돌아왔다. "출발 5분 전, 모두는 가속 제어 좌석에 앉을 것!" 선 내의 아나운서가 알렸다. 랠리는 가속 제어 좌석의 쿠션에 몸을 고정시켰다. 그리고서 5분 후, 카르텐호는 거대한 몸체를 떨면서 천천히 떠올랐다. 차츰 속도를 내면서 암흑의 우주 공간을 알파 C를 향해 나아갔다.       공간 도약법   [태양계에 가장 가까운 행성은 알파 C가 아니고 프록시마 C이다.]랠리는 항성간 여행의 역사를 생각한다. [그러나 프록시마는 행성을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 행성간 여행의 목적지가 될 수 없다. 알파 C는 11개의 행성을 가지고 있다. 그 중의 제 4행성은 지구와 비슷해서 사람이 살기에 알맞다. 지금부터 125년 전, 알파 C 제 4행성과 더욱 먼 시리우스의 행성을 개척하기 시작하여 식민지가 개척되고 있다.] 20세기 초, 위대한 과학자 아인슈타인 박사는, [이동하는 물체는 1초간에 약 30만 KM 되는 빛의 속도를 넘어설 수는 없다.] 라는 이론을 세웠다. [그러나 2183년 헉슬리 박사가 발표한 새 이론에 의하여 행성간 여행의 길이 열렸다. 우주선은 광속을 넘어서서 날 수는 없으며, 광속에 가까운 우주선을 만들어도 4. 5광년 떨어져 있는 알파 C까지 가는데 5년 정도 걸리며, 왕복에는 9년 이상이 걸린다. 그러나 헉슬리 이론을 응용하면 15일만에 갈 수 있다. 이것을 공간 도약법이라고 부른다. 우주연습선 카르텐호도 명왕성을 출발하여, 이틀째에는 공간 도약법으로 들어갈 예정이다. 랠리가 맡은 일은 우주 통신이다. 라인하르트 선장이 쓰는 항행일지를 매일 지구 우주국에 보내며, 여행 중의 다른 우주선과 연락을 취하는 일이다. 당번이 아닐 때는 자기 선실에서 자유로이 지낼 수 있다. 같은 방에 동료 연습생 하르 엘리슨이 있다. 하르는 화성의 정찰 사관 학교에서 수석으로 졸업한 수재이다. 랠리보다 키는 작으나 가슴은 떡 벌어지고 튼튼한 체격이다. 그리고 얼굴은 햇볕에 까맣게 그을려 있다. "하르, 우리들은 내일 공간도약법으로 들어가. 라인하르트 선장이 오늘 항행일지에 그렇게 써놓았더군." 하고 선실에 들어서면서 랠리가 말했다. "쉬잇!" 하르는 둘째손가락을 입에다 대면서 말했다. "항행일지의 내용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건 규칙위반이야. 랠리, 선 내에는 도처에 도청 마이크가 장치되어 있을지도 몰라. 말을 조심하라고." "설마… 선장이 왜 우리들의 이야기를 도청하겠어? 우리를 신용하지 않는단 말인가?" 랠리는 라인하르트 선장을 존경하고 있었다. 흰 머리카락이 드문드문 보이고, 엄격한 얼굴 표정은 랠리의 아버지와 닮았다. 가끔 카르텐호에서 항선 여행 중이라는 것을 잊고 '아버지'라고 부를 뻔할 때가 있을 정도였다. 하르는 자리를 고쳐 앉으며 읽고 있던 책을 접고는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선장은 지금 우리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 그 때 누군가가 선실의 문을 노크했다. 랠리는 하르와 얼굴을 마주 쳐다보고 대답했다. "예 , 들어오십시오." 문이 열리고 고참자인 우주 파일럿 올코트가 들어왔다. "랠리, 자네의 쪽지를 보았네. 내게 뭘 묻고 싶은가?" "이것입니다." 하고 랠리는 책상 위에 있는 행성간 여행의 교과서를 집어들었다. "이 교과서에는 제가 가장 알고 싶어하는 것이 쓰여 있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서 공간 축지 항법을 할 수 있습니까? " "그렇게 물으면 곤란한데… 아무도 모른다. 헉슬리 박사도 모른다. 전기의 작용인지 자기의 작용인지… 아무튼 축지 장치를 가동시키면 공간 도약법을 할 수 있을 뿐이야." "사관 학교에서는 공간 도약법에 대하여 그리 많이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라고 랠리가 말하자, 하르도 고개를 끄덕였다. "화성의 사관 학교도 마찬가지였어." "간단하지. 축지 장치의 작용은 정확하게 모르더라도 축지 장치의 사용법만 알면 공간 도약법을 할 수가 있는 거지." 이렇게 말하면서 올코트는 책상 위의 메모 용지를 한 장 집어들었다. “이 종이를 우주라고 가정하고, 종이의 위쪽 끝에서 반대쪽 끝까지 우주 여행을 한다고 하자. 거리는 10cm이다. 그런데  이렇게 종이를 둥글게 말면 양끝이 가까워져서 거리는 1m로 된다. 즉 공간 도약법은 제 4차원의 공간을 이용하여, 굉장히 먼 우주의 2점 사이의 거리를 좁혀 단시간에 여행할 수 있는 방법이다." 하고 올코트는 메모 용지를 책상 위에 놓으면서, "내일이면 이 우주선이 공간 도약법으로 들어갈 테니까, 어떤 것인가 자네들이 직접 경험해 보라고. 백 번 말로만 들어봤자 한 번 눈으로 보는 것만 못하니까." "그런데 그렇게 편리한 공간 도약법을 왜 행성간 여행에는 쓰지 않나요?" 하고 랠리가 묻자, 하르는 웃었다. "너는 지구의 우주 정찰 사관 학교를 나온 연습생이 아닌가? 머리를 쓰라고, 랠리. 지구에서 화성까지 가는데 공간 도약법을 사용하는 것은 수소폭탄으로 토끼를 잡으려는 거나 마찬가지야." "그래, 하르가 말한 대로야. 수백만 km나 되는 먼 거리는 공간 도약법으로도 핀으로 찌르듯 가벼운 정도이지만, 만약 지구에서 화성까지, 아니 목성까지라도 공간 도약법으로 날면 태양계 내의 전 행성이 파괴되고 만다." 라고 올코트가 설명했다. "네에…그래서 행성간 여행을 하는 우주선이 명왕성에 일단 기항하는 것이군요." 하고 랠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명왕성이 태양의 가장 밖에 있다. 그 곳에서 우주선은 추진 장치 등을 보통 은하계간 여행의 것에서 행성간 여행의 공간 도약법용으로 바꾼다. 그리고 되돌아갈 때는 또 여기에서 본래의 행성간 여행용으로 바꾸어서 지구로 가는 거다." "그럼, 공간 도약법을 사용하는 동안, 우주 공간의 상태에는 아무 변동이 없나요?" "특별히 변동되는 것을 보지 못했어. 우주 공간은 어디든지 텅텅 비어 있으니까 말야. 비어 있고 캄캄하고, 그리고 추운 곳- 그것이 우주이다. 랠리, 우주는 쓸쓸한 곳이다." "알고 있습니다." 우주 파일럿의 피로한 얼굴을 바라보면서 대답했다. 명왕성에서 알파 C까지 15일이 걸린다. 그 중에서 보통의 은하계 여행으로 명왕성을 떠나오고, 7일은 알파 C의 제 4행성에 가깝게 가는 행성간 여행으로 소비한다. 그리고 그 중의 2일간만 공간 도약법을 사용하여 4.5광년, 즉 4천만 km의 100만 배라는 상상도 못할 먼 거리의 대부분을 날아간다. 랠리는 우주 비행사의 쓸쓸함을 이미 들어 알고 있다. 우주선은 그 자체가 하나의 세계이다. 별의 사이에 떠 있는 작은 금속에 싸여 있는 세계이다. 이 곳은 구멍가게도 없고, 신문도 배달되지 않으며, 길 위에서 캐치볼도 할 수 없다. 날이면 날마다 우주 공간의 암흑을 바라다보며 자기의 맡은 일을 하고, 공부를 하고, 저녁때가 되면 그룹끼리 모여 식사를 한다. 그룹이라고 해도 승무원이 5, 6명에서 12, 13명이 보통이고, 많아 보았자 20~30명 정도이다. 이런 적은 수이므로 서로가 상대방을 너무나 잘 알아서 얼마 안 가 지루하게 된다. (우주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단조로운 생활과 쓸쓸함을 이겨내는 정신력이다.) 라고 생각하며, 랠리는 선실 창가에서 암흑의 밖을 내다보았다.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다. 그러나 그 속에서 어떤 것이 알파 C인지 알 수가 없었다. 6월 7일-명왕성을 출발하여 6일째인 날, 선실의 텔레비전 전화의 스크린이 환하게 밝아지고, 라인하르트 선장의 얼굴이 나타났다. "모두에게 전달한다. 공간 도약법에 대비하라. 본선은 10초 후에 공간 도약법으로 들어간다." 랠리와 하르는 급히 가속 제어 좌석에 앉아 벨트로 몸을 고정시켰다. 그밖에는 어떤 준비를 해야 좋을지 몰랐다. "9, 8……" 텔레비전 전화에서 초를 읽는 소리가 흘러 나왔다. "7, 6, 5……" 아무 것도 모른다고 올코트는 말했는데, 랠리는 처음으로 당하는 공간 도약법에 기대와 불안에 꽉 차 있었다. "4, 3……" 랠리는 하르를 보았다. 하르도 이쪽을 살펴보고 있었다. 둘은 그만 빙긋 웃고 말았다. "2, 1……" 갑자기 선체가 비틀리는 것 같고, 선실 전체가 무너져 랠리 머리의 주위에서 빙글빙글 도는 것처럼 느껴졌다. 현기증은 1분쯤 지나니 멎었다. 카이텔호는 드디어 공간 도약법으로 들어간 것이다.     우주의 노래   잠시 동안 비틀리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으나, 곧 선실은 보통 때와 같은 상태로 돌아왔다. 올코트가 말한 것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공간 도약법으로 비행하는 동안에는 우주통신을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랠리는 이틀간은 아무 할 일이 없었다. (오헤어가 있는 곳으로나 가볼까.) 라고 랠리는 생각했다. 바트 오헤어는 기관부와 잡역부 일을 겸하고 있는 하급 선원이다. 랠리 등이 모이는 곳에는 잘 나오지 않고, 여가만 있으면 뒤에 있는 기관실에서 전기 기타를 치며 우주의 노래를 부른다. 세상에는 굉장히 큰 키를 가진 사람도 많았지만, 오헤어처럼 큰 사람도 그리 흔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헤어는 놀랍게도 키가 3m이고, 머리카락은 붉은 색, 수염은 푸른색, 음성은 힘찬 저음이다. 다른 연습생과 사관들은 그를 경멸했지만, 랠리는 지구를 출발하기 전부터 오헤어와 사이가 좋았다. (하급 선원과 사귀는 것이 무엇이 나쁜가? 하급 선원도 같은 승무원이 아닌가.) 라는 생각으로, 사관들의 특권 의식이 오히려 못마땅했다. "난 뒤의 기관실에 갔다 오겠어." 랠리는 하르에게 말하고, 선실을 나왔다. 하르는 교과서를 들여다보는 그 자세대로 고개만 끄덕이고 아무 말이 없었다. 복도를 뚜벅뚜벅 걸어서 기관실로 들어섰다. 그 곳에서는 오헤어가 두 조수와 더불어 작업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바트! " 하고 랠리는 미소를 지으며 불렀다. "오, 랠리! 자네는 공간 도약법 동안에는 여가가 있겠구나. 우주 통신사는 멋쟁이야." 오헤어는 무거운 연료를 옮겨놓으며 반갑게 랠리를 맞이했다. 윗통을 벗고 있는 상반신은 온통 땀에 젖어 있었다. "우리는 보는 바와 같이 기관에 특수원료를 사용하고 있다. " 라고 말하고, 양손을 입에 대더니 메가폰처럼 만들어 아직 작업을 계속하고 있는 두 조수를 불렀다. "포크스! 크란넬! 일은 좀 있다가 하고 이쪽으로 와라. " 조수들이 왔다. 오헤어에는 못 미치지만, 랠리에 비하면 큰 사나이들이다. 크란넬은 어깨가 떡 벌어진 건장한 체격인데, 얼굴 한쪽에 보기 흉한 흉터가 있었다. 포크스는 크란넬보다 키가 훤칠하게 크고, 머리는 빡빡 깎고, 팔뚝에는 혈관이 밖으로 불거져 나와 있다. 오헤어는 마루에 주저앉아 납으로 된 벽에 기대고 있었다. "라인하르트 선장은 왜 자네를 이틀이나 할일 없이 놀려 두고 있지? 승무원이 빈둥빈둥 놀고 있는 것을 가장 싫어하는 사람인데…" "정말이야, 랠리. 쓰러질 때까지 일을 시키는 것이 선장의 성격이라고." 하고 크란넬도 한 마디 한다. 랠리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선장을 험구하는 오헤어를 찬성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군인인 아버지에게 교육을 받고 우주 정찰 사관 학교를 졸업한 랠리는 '항상 상관을 존경하라'는 교육을 받아왔었다. "아마 선장은 나에 대하여 깜박 잊고 있는 모양이야. 선장은…" 하고 선장을 두둔하려 했으나, 아무도 들어주려고 하지 않았다. 오헤어는 혈관이 튀어나온 큰손으로 기타를 끌어안고 음을 맞추기 시작했다. 이윽고 눈으로 먼 곳으로 바라보며 기타를 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깊숙한 저음으로 슬프게 노래하기 시작했다.   오오, 화성이여, 메마른 죽음의 세계 개척민은 이제는 없어라. 전쟁은 끝나고 평화는 돌아왔으나 개척민은 이제는 없어라.   크란넬은 조금 높은 목소리로 합창하여 오헤어의 노래를 한층 더 북돋아 주었다.   사막에 즐비한 탑의 무리 쓰러져서 모래알이 되고 탑을 세운 개척민도 사막에서 사라지고 이제는 없어라.   갑자기 텔레비전 전화의 벨 소리가 울리더니, "모두 자기 자리로 가라!" 라는 라인하르트 선장의 소리가 흘러나왔다. 랠리는 불안해하며 주위를 돌아다보았다. 곧 자기 선실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나 오헤어들은 한 사람도 움직이지 않는다. 선장의 명령을 들은 척도 않는다. 그래서 랠리도 오헤어들과 같이 선장의 명령을 무시해 버리기로 했다. "모두 자기 자리로 가라!" 두 번째 명령이 흘러나왔다. 그래도 오헤어들은 노래를 그만두려고 하지 않는다. (이 사나이들은 선장을 무시하고 있는 것일까?) 랠리는 어이가 없었으나, 여기서 공연한 말을 하여 오헤어 등의 기분을 상하게 하기 싫었다. "가슴에 깊이 파고드는 곡이다." 포크스가 감동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 말에 대답도 않고, 오헤어는 더욱 빠르게 줄이 끊어질 정도로 심하게 기타를 치면서, 머리를 뒤로 젖히고 높은 소리를 내었다.   우주선을 타는 이는 슈퍼맨(초인) 불덩이나 바위라도 날아오려마 별을 향해서 똑바로 가리 광막한 우주는 우리들의 집이어라.   이 노래는 옛날부터 우주 승무원들이 불러오던 노래의 하나이다. 랠리도 매력적인 중간 음으로 같이 부르기 시작했다. 포크스와 크란넬도 합창한다.   하이 호오, 분사의 소리를 들어라 발진이다. 상승이다. 하이 호오, 하이 호오! 발진이다! 상승이다! 오오, 하이 호오.   오헤어가 또 혼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오오, 우리는 알파 C에서 났어라 공룡이 있는 행성에서 자랐어라 3m의 큰 사나이 자유를 사랑하는 큰 사나이   이때 텔레비전 전화에서 라인하르트 선장의 큰 소리가 흘러나와 기관부 전체에 울려 퍼졌다. "모두 자기 자리로 가라! 긴급 사태 발생! 긴급 사태 발생!" 태연하던 오헤어도 노래를 그치고 기타를 놓고서 벌떡 일어나서는 기관 쪽으로 달려갔다. 포크스와 크란넬도 뒤따랐다. "나도 선실로 가야지!" 랠리도 정신을 차리고 복도로 뛰어 나갔다. 아무도 없는 복도를 달리는데 손도 발도 뜻대로 움직여 주지를 않는다. 갑자기 충격을 받았다. 카르텐호가 공간 도약법에서 보통 항법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랠리는 심한 현기증을 느끼며 마루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복도의 벽이 빙글빙글 돌면서 가까이 온다. 천장이 내려앉아 머리를 누르는 것 같았다. 랠리는 마루바닥에서 선실 쪽을 향해 엉금엉금 기어가려고 했다. 문득 우주 정찰군 사령관 제복을 입은 아버지의 모습이 머리에 떠올랐다. 그 얼굴은 복도 바닥에서 기고 있는 아들의 꼴을 보고, "선장의 명령을 무시했기 때문이다. 바보 같은 녀석!" 라고 호령하시는 것 같았다. 더 심한 충격이 왔다. 랠리는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결사적인 우주선 밖의 활동   누군가가 뺨을 쳤다. (아프다.) 랠리는 손으로 얼굴을 비비면서 차츰 의식을 되찾기 시작했다. 뺨을 한 대 더 맞고 완전히 정신을 차렸다. "그만!" 하고 랠리가 눈을 떠보니, 오헤어가 손을 들고 한번 더 뺨을 치려는 기세였다. "됐어… 정신 차렸군." 랠리는 일어나면서 빨개진 뺨을 비볐다. "일이 일어났나? 왜 보통 항법으로 돌아갔지?" "나도 모르겠어, 랠리. 라인하르트 선장은 모두를 통제실로 집합시켜 사태를 설명하려고 해. 우린 지각이야. 빨리 가자." "선실로 돌아가려고 복도로 나오자, 갑자기 위가 빙글빙글 돌더니… 그리곤 마루에 넘어져 머리를 벽에 부딪친 모양이야." 하고 랠리는 오헤어와 같이 통제실로 급히 달려가면서 말했다. 머리에 난 큰 혹이 점점 아파 오기 시작했다. (첫 명령을 들었을 때 바로 선실로 돌아갔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이다…) 랠리는 금모올(mogol)이 번쩍이는 아버지의 제복 모습이 머리에 떠오르고, 자기의 부주의한 행동이 후회되었다. 두 사람이 통제실에 발을 들여놓자, 이미 모든 승무원은 벽 쪽으로 둥그렇게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중앙에 라인하르트 선장이 서 있었다. 선장은 날카로운 눈초리로 집합에 늦은 두 사람을 쏘아보았다. "이제 모두 집합했구나. 너희들 두 사람은 나중에 시말서를 제출하라." 랠리는 아버지에게 꾸중을 듣는 것 같아서 오헤어의 큰 체구 뒤에라도 숨고 싶었다. "자, 이제 이번 사고에 대해서 설명하겠다." 선장의 엄하면서도 분명한 목소리가 통제실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원인은 엔진의 분사구에 무언가가 막혔기 때문이다. 유성의 파편인지 우주진이… 그러한 것이 분사구에 날아들어 공간 도약법 장치에 고장을 일으켜, 갑자기 보통 항행으로 되돌아 온 것이다." 하고는 승무원을 한 바퀴 빙 돌아본 다음, 선장은 다시 말을 이었다. "만약 본선이 이대로 보통 항법으로 알파 C에 가면 4년쯤 걸려, 그쪽에 도착하는 해는 2367년이 된다. 그런데 본선에는 4주일간 분의 식량밖에 없다. 4년 분이 아니고 단 4주간 분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사히 알파 C의 제 4행성에 도착하는 단 한 가지 방법은 우주선 밖으로 나가서 고장을 수리하는 일이다. 오헤어, 고장은 자네의 담당이네. 곧 우주복을 입고 밖으로 나가 수리하라." 오헤어는 아무 대답 없이 경례를 하고는 통제실을 나갔다. 그가 나가는 것을 보면서 랠리는 불안했다. (우주선 밖은 춥다. 얇은 우주복으로는 우주 공간의 추위를 긴 시간 동안 완전히 막을 수 없다. 더욱이 우주선 밖의 활동은 위험하다.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는지 모른다.) 그러나 오헤어는 우주선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만약 이 우주선이 공간 도약법으로 되돌아가지 못하면, 알파 C에 도착하기 전에 모두는 굶어죽는다. 설령 다른 우주선에 연락하여 구조를 부탁한다 해도 광대한 우주 속에서 우리 우주선을 발견하기란 망망대해에 떨어진 바늘을 찾아내는 일보다 더 어렵다. 구조의 가망은 거의 없다. 라인하르트 선장은 다시 계속했다. "승무원 한 사람만 우주선 밖으로 내보내는 것은 우주법의 위반이다. 연습생 랠리 스타크, 전원 집합에 늦은 벌로서 오헤어의 우주선 밖의 수리를 도와라. 우주복을 입고 빨리 가라!"잠시 동안 랠리는 멍하니 선장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곧 정신을 차려 경례를 하고는 아무 말 없이 복도로 나왔다. 우주 공간에서 실제로 우주선 밖의 활동을 하는 것은 처음이다. 랠리는 우주복을 입고 우주 헬멧을 썼다. 그리고는 몇 번 점검한 후, 에어록을 통하여 우주선 밖으로 기어 나왔다. 우주복과 헬멧은 공기가 통하지 못하게 되어 있고, 자동 공기 정화장치가 달려 있다. 헬멧의 내부에 있는 무선 전화가 동료와 연락을 취하는 수단이다. 우주 장갑을 낀 손에는 우주총을 한 자루 들고, 또 한 자루는 우주복 뒤쪽에 달아매어져 있다. 그리고 양발에는 자석 구두를 신고 있다. 이미 오헤어는 우주선 위를 뒤쪽의 분사구를 향해 천천히 걷고 있었다. 랠리도 뒤따라 강철이 잘려 있는 강철 보행 트랙을 한 발짝 한 발짝 주의 깊게 오헤어의 뒤를 따라갔다. 강철 보행 트랙에서 벗어나면 안 된다. 자석 구두가 말을 듣지 않게 되어 몸이 허공에 뜨고 만다. 오헤어의 걸음걸이는 아주 빠르다. 랠리는 턱으로 무선 전화의 스위치를 넣었다. "바트, 기다려 주게." 그러자 오헤어는 걸음을 멈추더니 뒤를 돌아보았다. 헬멧 속의 랠리 얼굴을 보고 오헤어가 말했다. "랠리! 자네도 왔나?" "라인하르트 선장의 명령이야. 한 사람만이 우주선 밖에서 활동하는 것은 우주법 위반이라 하더군." "흥! " 하고 오헤어는 코방귀를 치면서 말했다. "항상 나 혼자 우주선 밖의 활동을 시켜 놓고서 그런 말을 해. 아마 자네가 집합에 늦었기 때문에 벌을 준 모양이지." 하고는 다시 앞으로 걸어나가면서, 오헤어는 이렇게 말했다. "너는 우리 선장을 어떻게 생각하지? 우주 정찰군의 고참 사관이라고 생각하나? 그렇지 않아. 그는 피도 눈물도 없는 금속으로 만든 로봇이야." 하며 오헤어는 손으로 보행 트랙을 가리켰다. "주의해서 오게. 랠리, 여기에서 발을 잘못 디디면 위험해. 그러나 그 선장의 얼굴 가죽을 뒤집어 놓고 싶다!" "그런 말을 하는 법이 아니야, 오헤어. 내 마음에 들든 안 들든 그는 이 우주선의 선장이 아닌가." 하고 랠리는 주의를 시켰다. "이거 잘못했군, 랠리. 네가 우주 정찰 사관 학교 출신이라는 것을 깜박 잊고 있었군. 그러나 언젠가는 알 날이 올 것이다. " 오헤어의 말을 랠리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언젠가는 알 날이 올 것이다.) 라는 것은 어떤 뜻일까? 무엇이 잘못 되었을까? 선장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아도 좋단 말인가? 그것은 불가능하다. 선장의 명령은 절대적인 것이다. 선장의 명령을 위반하면 우주선을 탈 수 없다. 만약 승무원이 선장을 무시하기 시작하면, 우주선은 제대로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 랠리는 사방을 돌아다보았다. 지금 우주 공간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랠리의 눈앞에 펼쳐져 있다. 우주선은 움직이고 있는 것같이 보이지 않는다. 아무 것도 없는 공간에 그대로 떠 있는 것같이 보인다. 어떤 곳을 보아도 끝없이 펼쳐져 있는 암흑과, 무수한 별빛의 점들만이 빛나고 있을 뿐이었다. 여기에서는 아래로 떨어질 위험은 전혀 없다. 그러나 랠리는 어쩐지 불안했다. 만약 자석 구두가 보행 트랙을 잘못 디디면 랠리의 몸은 우주선에서 떠오를 것이며, 뉴턴의 법칙에 따라 우주선과 같은 방향, 같은 속도로 날아갈 것이다. (아무튼 우주 여행을 하려면, 우주선 안이 좋구나.) 라고 랠리는 생각했다. 가지고 있는 두 자루의 우주총은 무기가 아니다. 랠리 자신을 소형 로켓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다. 우주선은 로켓의 분사로 움직인다. 분사의 반동으로 분사와 정반대의 방향으로 전진한다. 이와 마찬가지 이론으로 무중력의 우주 공간에서 권총을 발사하면 발사한 사람은 권총의 탄환이 날아가는 방향과 정반대 방향으로 이동한다. 그러므로 만약 랠리가 우주선에서 발이 떨어져 떠오르려고 하면, 우주선과 반대 방향을 향해서 우주총을 발사한다. 그러면 그 반동으로 우주선으로 돌아갈 수가 있는 것이다. "랠리, 일을 시작하자! " 오헤어의 소리가 헬멧 속의 무선 전화를 통하여 들려왔다. 차가운 금속적인 울림이다. 랠리는 여러 가지 생각을 떨쳐버리고, 보행 트랙을 나아갔다. 자신이 20살의 청년이 아닌, 그리스 신화의 신이 되어 하늘을 산책하고 있는 기분이다. 이 때 갑자기 앞쪽에서 밝은 불이 번쩍했다. "아니?" 놀라고 있는 랠리의 헬멧 속으로 오헤어의 외치는 소리가 들려 왔다. "어이쿠! 우주총이 폭발했다! 랠리, 구해 줘! " 라는 소리와 함께, 오헤어의 몸이 우주선에서 붕 떠오르며 천천히 멀어져 간다. 비로소 랠리는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헤어의 손에 쥐고 있던 우주총이 저절로 발사되었다. 그 때문에 반동으로 오헤어의 몸이 보행 트랙에서 떨어져 나와 공중에 떠오른 것이다. "큰일났다! " 랠리는 두서너 발 나아가 머리 위에 떠 있는 오헤어의 자석구두를 붙잡으려 했다. 그러나 조금 모자라 손이 닿지 않는다. "그런 짓 하지 말아! " 오헤어의 고함 소리에 랠리는 정신을 차렸다. 만약 오헤어의 발을 붙잡으면 랠리의 몸도 우주선에서 떨어져 나가 우주공간에 떠오르고, 오헤어와 같은 방향으로 날아가고 말 것이다. "바트, 우주총을 사용해! " "안 돼. 떨어뜨리고 말았어! " 오헤어는 갑자기 우주총이 오발되는 바람에 정신없이 손에서 떨어뜨리고 만 것이다. 그 때문에 우주총의 폭발 반동으로, 오헤어는 꽤 떨어진 우주공간으로 가고 있는 중이었다. "예비 우주총이 또 하나 있지 않아?" 하고 랠리는 초조하게 소리쳤다. "없어! 나의 우주복은 네가 입고 있는 것보다 구식이라서 예비 우주총이 없어, 랠리." 이미 오헤어는 우주선에서 3m나 멀어졌다. 그리고는 계속 무수한 별을 향해서 멀어져 가고 있다. "나는 죽어서 저 별들의 친구가 될 것이다. 헌 침대 위에서 죽어 가는 것보다 훨씬 좋다. 랠리,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 울부짖는 오헤어의 목소리가 랠리의 헬멧 속에서 메아리친다. "절망하기에는 아직 일러, 바트. 나의 우주총을 한번 써 보자." "너의 것을? 좋은 생각이야. 부탁해. 이쪽으로 정확하게 던질 수 있겠어? 정확하게 던지지 않으면 안돼!" "해 보자, 바트." 라고는 했지만, 그것이 얼마나 어렵다는 것을 랠리는 잘 알고 있었다. 우주총을 오헤어에게 정확하게 던지기만 해서도 안 된다. 속도가 문제인 것이다. 늦으면 오헤어까지 닿지 않을 것이며, 빠르면 오헤어가 받지 못하여 그대로 무수한 별 쪽을 향해서 날아가 버릴 것이다. 그러나 랠리는 사관 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학생 야구부의 투수였었다. "어느 정도는 자신 있어.“ 랠리는 한 손에 우주총을 들었다. 오헤어의 위치를 똑똑히 겨누어 가며 우주총을 던졌다. 작은 회색의 총은 우주 공간을 떠서 오헤어 쪽으로 날아갔다. 아아, 그러나 실패였다. 정확하게 조정은 했지만 목표가 움직이기 때문에 아슬아슬하게 빗나가고 만 것이다. 우주총은 오헤어가 뻗친 양손 끝에서 5, 6cm 멀어진 곳을 통과하고 말았다. 오헤어는 떨어져 나가는 우주총을 물끄러미 바라다보며, 포기했다는 듯 시원스러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랠리, 아마 나는 우주선에는 되돌아가지 못할 것 같아. 그러니 크란넬에게 얘기하여, 나의 전기 기타를 자네가 가져 주게. 자네는 칠 수 있겠지. 그리고 크란넬들과는 트럼프를 하지 말라구. 돈이 있는 것이 한정일 테니까. 언젠가는 자네도 선장이 되어 승무원들에게 명령을 내릴 때가 오겠지. 그 때는 기관실에서 일하고 있는 하급 선원들을 좀 잘 돌봐 주게. 그리고 이 오헤어, 몸통이 너무 커서 머리가 잘 돌지 않는 붉은 머리의 사나이가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다오…" "시시한 소리하지 말아. 아직 자네를 구조할 방법이 남아 있어." 하며 랠리는 예비 우주총을 빼들었다. 그것을 오헤어의 반대 방향으로 발사했다. 빨간 불이 총구에서 튀어나오고, 동시에 랠리의 몸은 우주선에서 떨어져 나와 오헤어 쪽으로 향했다. "미쳤어! 너마저 별이 되고 말아! " 오헤어가 놀라면서 외쳤지만, 랠리는 듣지 않았다. 이미 우주선에서 100m쯤 떨어져 나온 것일까. 암흑 속에서 은색의 선체가 희미하게 빛나고 있다. 오헤어 쪽으로 상당히 가까이 다가갔을 때, 랠리는 느꼈다. (진로가 10도쯤 틀린다.) 랠리는 다시 우주총을 발사하여 진로를 수정했다. 음파를 전하는 공기가 없기 때문에 발사음은 들리지 않으나, 총구에서 뿜어 나오는 불은 한때 하늘의 별빛보다도 더욱 밝다. 두 번째의 발사는 정확했다. 똑바로 가까이 다가온 랠리의 몸을, 오헤어는 양손을 펴고서 힘차게 끌어안았다. "랠리, 우주총을 두 번 발사했지?" "그래." "아직 두 발은 발사할 수 있겠구나. 신중하게 사용하지 않으면 안돼. 우주총을 내게 맡겨 줘." "부탁해." 하며 랠리는 우주총을 내밀었다. 오헤어는 커다란 손으로 힘차게 그것을 쥐었다. 총구에서 불이 튀어나오고, 두 사람의 몸은 카르텐호를 향해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천천히 카르텐호에 접근했다. 선체까지 5m 남았을 때, 두 사람의 움직임이 중지되었다. 아무리 몸을 휘저어도 선체에 내릴 수가 없다. "잘 안돼. 이대로 우주선과 같이 날아갈 수밖에 없게 됐어." 하면서 오헤어는 랠리의 양손을 목에 감고 랠리의 발을 우주선으로 향하도록 돌렸다. 그리고는 반대방향으로 우주총을 발사했다. 그것이 최후의 발사였다. 그리하여 두 사람의 몸은 같이 움직여 랠리의 발이 선체에 5, 6cm까지 닿게되었다. 그러자 랠리는 발을 쭉 뻗었다. 자석 구두가 보행 트랙의 강철판에 딱 들어 붙었다. 발판을 확보한 랠리는 슬슬 오헤어의 큰 몸을 당겼다. 흡사 천천히 도는 영화의 움직임과 같았다. 이렇게 하여 두 사람은 선체에 양발을 디디고,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다. 항상 혈색이 좋은 오헤어의 얼굴도 창백해져 있고, 거친 숨소리가 랠리의 무선 전화를 타고 흘러왔다. 랠리도 갑자기 마음을 놓은 때문인지 피로함을 느끼고 우주선 안으로 돌아가서 쉬고 싶었다. 오헤어는 랠리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고맙다, 랠리." 짧은 이 말 속에 큰 사나이의 감사의 뜻이 넘쳐 있었다. 흥분이 가라앉자 두 사람은 다시 자기들의 임무를 생각했다. 승무원의 운명은 지금 오헤어의 손에 달려 있다. 만약 오헤어가 분사구를 수리 못하면 모든 것이 끝장이다. 모두는 굶어죽을 수밖에 없다. 해골이 된 사람들을 태우고, 카르텐호는 암흑의 우주 공간을 영구히 헤맬 것이다. 두 사람은 분사구의 입구에 다다랐다. "랠리, 여기서 기다리라구. 나 혼자 할 수 있어." 하고 오헤어의 큰 몸이 분사구로 기어 들어갔다. 랠리도 분사구를 들여다보았지만, 캄캄하여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우주선을 둘러싸고 있는 무수한 별은 차가운 빛의 점이었다. 공기와 먼지가 없으므로 지구에서 보는 것처럼 반짝이지 않는다. 랠리는 무수한 별을 향해서 가슴을 쭉 폈다. 우주의 정복자가 된 기분으로-. 10분쯤 지났을 때, 오헤어의 헬멧이 분사구에서 나오더니, 곧 전신이 나타났다. "됐어. 고장의 원인을 제거했어.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는데 대단치 않은 고장이야. 자, 우주선 안으로 돌아가자. 우주 비행사, 랠리." 오헤어는 랠리를 지금 처음으로 우주 비행사로 인정해 준 것이다.     목성 식민지의 반란   (나는 오헤어와 협력하여 카르텐호의 승무원의 생명을 구했다.) 랠리는 영웅이 된 기분으로 우주선 안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라인하르트 선장은 고장을 고쳤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수고했다" 라고 말할 뿐이었다. 다른 사관들도 모른 척 말 한 마디 없이 모두 자기가 맡은 장소로 흩어질 뿐이었다. 우주 정찰군에는 영웅이란 없다. 오헤어와 랠리가 생명을 걸고 작업을 한 것도 일상 생활의 한 임무에 지나지 않는다. 드러낼 화젯거리도 되지 않는다. 랠리는 자기의 활약을 자랑할 수 없게 된 것이 서운했지만, 오헤어만은 잘 알아주리라고  생각했다. 카르텐호는 다시 공간 도약법으로 들어가 알파 C로 향했다. 랠리는 여가가 있으면 하르와 토론도 하고, 기관실의 오헤어를 찾아가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오헤어는 랠리에게 전기 기타를 퉁기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두 사람은 과거 250년 동안에 우주 여행에서 생겨 나온 여러 종류의 우주 노래를 같이 불렀다. 때로는 오헤어도 우울한 기분이 되어, 지구의 언덕과 호수와 고층 건물과, 그 곳에 살고 있는 아름다운 소녀들을 주제로 한 오래 된 노래를 조용히 불렀다. 그러나 지구의 노래는 아주 적고, 대부분이 20세기에 시체를 달의 바다와 분화구에 남긴 용감한 우주 개척자에 대한 노래였다. 랠리도 점점 지구의 일을 잊고, 우주의 생활에 익숙하게 되었다. 그러나 가끔 자기가 태어난 지구의 고향과 친구들이 문득문득 생각나기도 했다. 그리고 지구에서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는 것에 새삼 놀라기도 하였다.(그러나 지금 이것이 나의 생활이다. 다음의 행성을 향해서 나는 것이 우주 비행사의 생활이다.) 라고 랠리는 생각했다. 다음날, 카르텐호는 예정대로 공간 도약법에서 보통 항법으로 돌아왔다. "자, 이제 감시 정거장과 연락을 할 때가 되지 않았나?" 하고 하르가 물었다. "아니, 아직 1시간 이상 더 지나야 해. 그 때까지 통신 가능 구역에 들어가지 못하거든."랠리는 손목의 우주 시계를 들여다보면서 말했다. 감시 정거장은 알파 C의 주위를 돌고 있는 인공 위성이다. 알파 C의 행성에 착륙할 우주선은 반드시 감시 정거장의 허가를 얻지 않으면 안 된다. 하르는 손을 뻗어 레코드의 스위치를 켰다. 어둡고 슬픈 곡조가 선실에 흘러나왔다. 엘스베리 작곡 '화성의 바다에서 춤을 추면'이다. "이건 화성의 곡이지?" 하고 랠리가 물었다. "그래, 귀에 거슬리니 ?" "아니, 지금 공부에 싫증이 나는 참이었어." 하며 랠리는 읽고 있던 교과서를 덮고서는 책상 위에 놓았다. "랠리, 넌 이런 곡은 그리 좋아하지 않지?“ "옛날 곡이지. 처음 들어보지만 좋은 것 같아." "그럼 잘 됐네. 화성의 음악은 화성 땅에서 생겨난 거야. 모두가 처음에는 싫어하지만, 차츰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그런 음악이지." "그러나 너처럼 화성에서 태어난 사람이 아니면 그렇게까지…" "아니, 누가 내가 화성에서 태어났다고 그래? 나는 목성에서 태어났어." 하며 하르는 랠리의 말을 가로막았다. (그러면 그렇지…) 하고 랠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르를 처음 보았을 때부터, 랠리는 이상하게 여겼다. 화성에서 태어난 사람은, 화성의 중력이 지구보다 작기 때문에 몸이 넓고 길게 성장한다. 그런데 하르는 키가 작고 굵직한 몸이다. 그러나 목성 태생이라면 당연하다. 목성은 중력이 크기 때문에 키가 크지 못하고 옆으로 벌어지는 튼튼한 체격이 된다. "나는 목성 식민지에서 태어났어. 4살까지 거기서 살았지. 그래서 나의 골격과 근육은 지금과 같은 형태로 성장할 수밖에 없었어. 너도 지구의 3배 가까운 중력 속에서 산다면 나같이 될 거야." 하고 하르는 자기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럼, 식민지가 망했을 때 화성으로 이사했니?" 하고 랠리는 물었다. "그래, 나의 양친은 반란 소동으로 피살되었어. 그래서 나는 화성 식민지에 있는 형님 집으로 오게 된 거지." 이 얘기를 듣고, 랠리는 자기가 알고 있는 목성 식민지의 역사와 비교하여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이상하게 생각했다. 목성 태생의 하르 엘리슨이 왜 우주 정찰 사관 학교에 입학했을까? 우주 정찰군과 사관은 지구 정부에 충성을 맹세하는 것을 자랑으로 삼고 있다. 그런데 하르 엘리슨은 지구와 지구의 식민지 정책을 싫어하는 환경에서 자란 것이다. 20년 전 목성 식민지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지구 정부는 목성 식민지에 제대로 원조를 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그들은 자력으로 목성에서 광산을 개발했다. 그런데 지구 정부에서는 광산에서 캐내는 천연자원을 계속해서 운반해 갈 뿐더러, 그들에게 많은 세금을 내게 했다. 그래서 참을 수가 없었다. (우리는 그들의 노예가 아니다. 지구의 손을 벗어나 독립해야 한다.) 하며 식민지에서는 지구가 천연자원을 가지고 가는 것을 거부했다. 지구는 곤란하게 되었다. 식민지 쪽에서는 개발 원조를 제대로 해 주지 않았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지구의 경제가 위태로울 정도로 많은 개발 자금을 목성에 투자했던 것이다. 지구의 경제를 회복시키기 위하여 목성에서 나오는 천연자원을 지구에 운반하고, 식민지에는 세금을 부과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다. 지구와 식민지 사이의 생각은 서로 엇갈려, 대화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게 되었다. 마침내 식민지의 사람들은 무기를 잡고 일어나 지구정부의 행정관들을 추방했다. 지구 정부는 목성 식민지의 반란을 진정시키기 위해 강력한 군대를 보냈다. 치열한 전투가 되풀이되어 많은 사람이 생명을 잃게 되고, 식민지는 지구군의 손에 잡히게 되었다. 그리하여 반란으로 살아 남은 식민지의 사람들은 죄수가 되어, 지금도 목성의 광산에서 강제 노동을 하고 있다. 만약 하르의 양친도 살아 남았다면 비참한 죄수가 되었을 것이다. "화성의 집에서 떠나온 지 한 달 가까이 되었어. 2. 3개월 후에 이 행성간 여행을 마치면 우리도 이제 우주 정찰군의 사관이 돼." 하고 하르가 말한다. "그렇고 말고." 랠리도 고개를 끄덕이며, 우주 정찰군 사령관의 제복을 입은 아버지의 모습을 생각했다. 할아버지도 생각했다. 사진으로만 본 증조 할아버지도 생각했다. 스타크 집안의 장남은 대대로 우주 정찰군에 들어가 지구를 위하여 일하여 왔다. "나는 어릴 때부터 우주 비행사가 꿈이었어. 그래서 우주 정찰군에 입대했지. 우주 정찰군의 사관이 되면, 아직 한 번도 보지 못한 지구에 갈 수 있게 될는지?" 하고 하르는 열을 올리며 말했다. "그렇고 말고, 하르. 우리는 알파 C에서 바로 지구로 향해.“ "알파 C에 가는 것도 나의 목적의 하나야, 랠리." “나는 살아 있는 공룡과 식민지가 보고 싶어. 우주 식민지에서 태어나 우주 식민지에서 자라난 내가 알파 C 식민지에 대한 기분이 어떤지 너는 모를 거야.“ "알파 C 식민지에 대해서는 나도 소문을 듣고 있어. 어떤 친구가 이야기하여 주어서 말야. “알파 C의 제 4행성에 있는 식민지는 지구의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해야 한다-라는 책을 읽었다고 하더군." "혹시 「우주 노예는 싫다!」라는 책이 아냐?" 이렇게 말하면서, 하르는 자기 가방에서 푸른 표지의 책을 꺼냈다. "이것 말인가? 매우 좋은 책이지." 그러나 랠리는 하르를 차가운 눈으로 쏘아보면서 말했다. "그래, 그 책이야. 그러나 우주 정찰 사관 학교 출신의 연습생이 이런 책을 읽는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어. 넌 우주군에게 망한 식민지의 출신일지는 모르지만, 사관 학교에 입학할 때에는 지구에 충성을 맹세했을 텐데." 랠리의 음성이 높아졌으므로, 하르는 입에 손을 갖다댔다. "좀 작은 소리로 말하라고. 마치 우리가 싸우는 것처럼 보이잖아. 확실히 나는 지구에 충성을 맹세했지. 그러나 알파 C의 실정을 알고서는, 그 곳 사람들이 지구의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하고 싶은 것도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어." "그렇다면 지구에 대한 충성에 위배되지 않아?" 라고 말했지만, 랠리의 심중은 혼란스러웠다. 한 달 가까이 같은 선실에서 생활하는 동안에, 하르의 사리 판단과 많은 지식에는 종종 감탄한 바 있었다. 그 하르가 지금 지구의 정책을 공격하고 있다. (이것만은 하르의 의견을 인정할 수가 없다.) 랠리는 어릴 때부터 교육받아 온 지구에 대하여 충성을 다하리라고 결심했다. "이 책을 읽으면 너도 생각을 달리할 거야. 지구가 항상 옳다고만 생각할 수는 없어. 랠리, 아무튼 이 책을 읽어보라구. 읽어보고 나서 토론하자." 하며 하르는 책을 랠리의 쪽으로 내밀었다. 책으로 손을 뻗으려 하다가 랠리는 단념했다. "아니, 나는 읽고 싶지 않아. 지구는 항상 정당한 일을 하고 있을 거야. 알파 C 제 4행성의 식민지에서도 틀린 짓을 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고. 지구를 비난하는 책을 읽고 마음을 동요시키기 싫어. 너는 나와 달라, 하르. 너의 부모는 목성 반란 때 지구군에게 피살되었지. 그 후부터 너의 마음 한 구석에 지구를 원망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지구의 정책을 공격하는 책에 관심이 있는 거야." 하고 랠리는 열을 내어 말했으나, 하르는 미소를 머금고 있을 뿐이었다. 문득 손목 시계를 보고, 랠리는 깜짝 놀랐다. "아니, 1분 후에 통신 시간이다." 복장을 단정히 하고 하르의 방을 나오면서 한마디 덧붙였다. "지금의 토론은 없었던 것으로 하자, 하르?" "좋지, 랠리. 책은 치워 두겠다. 만약 네가 읽고 싶거든 읽어보라고. 자네의 눈도 조금은 열릴 거야." "내 눈은 이렇게 떠 있다. 눈이 좀 희미해진 것은 너라고." 이렇게 말하고 랠리는 방을 나왔다. 통신실로 가는 복도를 걷고 있는 동안 어쩐지 마음이 어두웠다. (뒤에 그 책을 한 번 읽어볼까?) 별로 해로울 것은 없다고 생각되나, 그런 것에 마음이 켕긴 것을 안다면, 아버지 스타크 사령관은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읽을 필요 없어.) 하고 자기 자신에게 말하고, 랠리는 힘차게 통신실로 들어갔다. 이미 라인하르트 선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주 통신의 수수께끼   "정확하게 시간을 맞추어 왔군." 하며 라인하르트 선장은 분명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통신하기 위하여 왔다. 본선은 이미 알파 C와의 통신 가능 구역에 들어와 있다." 랠리는 행성간 통신용의 거대한 장치 앞에 아무 말 없이 가 앉았다. 어깨 너머로 선장이 들여다보고 있는 속에 다이얼을 돌렸다. 장치에서는 가늘긴 하나 잘 들리는 잡음이 들려왔다. 잡음은 계속되었다. (고장일까?) 당황하여 조사하여 보았으나, 장치는 정상이었다. 장치를 잘못 취급한 것도 아니다. 아직 연습생이지만 랠리는 우수한 통신사이다. 갑자기 잡음 소리가 그치며, 깔깔한 금속 적인 소리가 들려 왔다. "여기는 알파 C의 감시 정거장. 그쪽은?" 랠리는 규칙대로 응답했다. "우주 연습선 카르텐호. 지구시간 6월 1일에 명왕성을 출발, 알파 C 제 4행성의 런던 식민지를 향해서 항행 중. 착륙 허가를 부탁함." 상대의 금속적인 음성이 부드러운 사람의 음성으로 변했다. "너는 매릴로인가?" 감시 정거장에서는 처음 질문은 로봇이 하고, 그 다음에 인간통신사에게 인계하게 되어 있다. "아니, 랠리 스타크 연습생이다." "최초의 행성간 여행인가? 나는 헨리이다. 미안하지만 너에게 착륙 허가를 내릴 수 없다. 제 4행성에 직접 연락해 보라. 런던 식민지 공항은 폐쇄 상태인 모양이다." 이 말을 듣고, 랠리는 라인하르트 선장을 쳐다보았다. "누구의 명령인가 물어 보아라." 하고 선장은 말했다. 랠리는 헨리에게 물었다. "본선의 라인하르트 선장은 공항을 누가 명령하여 폐쇄시켰는가 묻고 계신다.“ "식민지 사람들이 폐쇄시켰다. 그들은 런던 식민지 공항의 폐쇄를 행성간 여행 위원회에 신청했다. 그러나 그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자기들 멋대로 폐쇄시키고 말았다." "그러면 본선은 제 4행성에 착륙할 수 없는가?" "그들이 우주 정찰군의 우주선을 환영할는지… 아무튼 직접 물어 보라, 지금 런던 식민지 공항에 연결하여 주겠다." 하고 감시 정거장의 통신사는 말을 끊었다. 그리고서 2,3분 지 나자, 새로운 음성이 통신 장치에서 흘러 나왔다. "이 곳은 알파 C 제 4행성 자유 세계의 통신사 밀러. 그쪽의 용건을 말하라!" 랠리는 놀라면서 선장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알파 C 제 4행성 자유 세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쪽의 용건을 말하라!" 하고 제 4행성 의 통신사는 재촉했다. 그러자 라인하르트 선장은 랠리에게 자리를 비키게 하고, 자신이 직접 통신 장치 앞에 앉았다. "이쪽은 지구의 우주 연습선 카르텐호의 라인하르트 선장이다. 런던 식민지 공항에 착륙하는 허가를 얻고싶다." "제 4행성은 지금 외부와의 접촉을 끊고 있습니다, 선장. 런던 식민지 공항은 폐쇄 중이라서…" "폐쇄라고? 누구의 명령으로 폐쇄하였는가?" 라인하르트 선장의 얼굴은 상기되었으나 상대의 목소리는 조용했다. "알파 C 제 4행성 자유 세계 평의회의 명령입니다. 당신의 우주선은 수리가 필요합니까7" "아니다. 이쪽은 우주 연습선이다. 해리슨 대통령의 관저에 연결해 주기 바란다." "대통령도 평의원도 지금 이 런던 식민지에는 없습니다." 그러자 라인하르트 선장은 분노에 찬 얼굴로 한참 통신 장치를 쏘아보더니, 갑자기 큰 소리로 외쳤다. "너희들은 반란을 일으켰는가?" 그러나 그 답변은 피하고, 런던 식민지의 통신사는 다른 말로 말했다. "알파 C 제 4행성 자유 세계에 착륙하는 것은 당분간 금지되어 있습니다…" 이 때, 다른 소리가 튀어나왔다. "라인하르트 선장, 시카고 식민지에 착륙하여 주십시오." "무슨 소리를 하고 있나? 들어가라!" 하고 런던 식민지의 통신사는 화가 나서 방해를 하기 시작했다. 랠리는 라인하르트 선장 옆에서 손을 뻗쳐 다이얼을 돌려서는 방해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했다. "그쪽은?" 하고 라인하르트 선장은 다른 소리에 물었다. "시카고 식민지에 있는 해리슨 대통령의 임시행정본부입니다. 이 곳에 착륙해 주십시오." 선장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랠리는 하르가 보여 주던 푸른 표지의 책과 목성 식민지의 일들이 머리에 떠올랐다. "그러면 그쪽에 착륙하겠습니다.“ "그러십시오. 해리슨 대통령은 당신들의 착륙을 환영하실 것입니다." 통신은 끊어졌다. 라인하르트 선장은 장치 앞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굳어진 얼굴로 랠리를 쳐다보더니, 말 한 마디 없이 뚜벅뚜벅 통신실을 걸어나갔다. 랠리도 선실로 돌아왔다. 하르는 지구의 음악을 들어가면서 열심히 책을 읽고 있었다. 랠리를 보더니 레코드를 끄고 물었다. "통신 연락은 잘 되었어?" "우리가 착륙하는 곳은 런던 식민지가 아니고, 시카고 식민지로 변경되었어." 하고는 랠리는 통신의 내용을 하르에게 알리지 않을 결심을 했다. "자네가 없을 동안에 나는 궤도 계산을 해 보았어. 랠리, 이 우주선은 내일, 알파 C 제 4행성에 착륙하지 않으면 안돼. 이미 우리는 제 1 행성과 제 2 행성의 궤도를 통과했어 지금 제 3행성의 궤도에 가까이 가는 중이야." "알파 C 계통의 행성 무리들은 조금 달라. 제 1 행성은 우리 태양계의 수성 정도의 크기로 이상은 없으나, 제 2 행성과 제 3 행성은 무언가 모르게 이상하다고." 알파 C의 천체에 대해서는 랠리가 더 잘 알고 있다. "쌍둥이 행성인가? 흥미가 있군." "그래. 제 2 행성과 제 3 행성은 서로 상대의 주위를 돌고 있어. 크기는 두 개 다 화성 정도인데, 사람이 살 만한 곳은 못 돼." "왜?" "두 행성은 거리가 가까워서 조수의 간만이 심해. 만조가 될 때마다 대홍수가 일어나, 행성의 표면 전부가 물에 잠기지. 그래서야 식민지를 만들 수 없지." "그렇겠지. 농장물의 수확이 적어서는 식민지는 자급자족할 수가 없을 테니까." 하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하르는 모든 식민지가 지구의 원조를 받지 않고 자급 자족하기를 원하고 있는 것 같다. 랠리는 의심스러웠다. 하르는 지구와 우주 정찰군에 충성을 맹세하긴 했어도 지금은 마음이 동요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자칫 잘못하면 맹세를 잊어버리고 충성심을 버릴는지도 모르겠다. "다른 행성은 어때, 랠리?“ "제 4행성은 공기가 있으니까 사람이 생활하는 데는 가장 적당하지. 지구와 닮았어." 하며 랠리는 한 교과서를 집어들고는 책장을 빠르게 넘겼다. "봐, 하르. 이것이 제 5행성이야. 크기는 지구 정도인데, 유독 가스의 대기에 덮여 있어. 제 6행성은 대단히 춥지만, 작은 식민지가 하나 있어." "식민지라고? 나는 몰랐는데. 자네의 교과서에는 어떻게 씌어 있나?" "가장 최근의 보고에는 압력 돔(반원형의 지붕)안에 12명의 개척자가 살고 있다고 하는군." "식민지의 시작이구나.“ 하르는 웃으면서 말했다. "제 7행성과 제 8행성은 거대한 행성이야. 중력이 너무 강하여 사람은 움직일 수도 없지. 그러므로 우주선을 착륙시키기 곤란해. 즉 목성보다 더 강한 중력의 지옥이야." "그래, 나도 책에서 읽은 일이 있어, 랠리. 20년 전에 우주 정찰군의 우주 조사선이 제 7 행성에 갔었지. 다행히 착륙은 성공하였으나, 굉장한 중력 때문에 이륙이 불가능했어. 승무원은 굶어 죽을 때까지 땅에 들러붙어서 움직일 수도 없었어. 그것은 큰 실수였었어. 우주 정찰군은 뒷일은 생각하지도 않고 용기만 믿고 행동하는 일이 간혹 있어." "자네는!" 하며 랠리는 얼굴을 바로 하며 하르를 쏘아보았다. "자네는 자네가 우주 정찰군의 한 사람이라는 것을 잊고 있는가? 자네의 말버릇은…" "그렇게 화내지 말아, 랠리. 우주 정찰 사관이 유머정도도 이해할 수 있는 교양이 없다면 곤란해." "미안, 하르. 내가 너무 신경질적이었어." "괜찮네. 자네의 교과서에는 알파 C 계통의 생물에 대하여 어떻게 씌어 있던가?" "거의 없어. 물론 제 7 행성, 제 8 행성은 중력이 너무 강하여 생물이 성장할 수 없어. 하지만 해파리 같은 것은 다소 있는 모양이야. 제 9, 제 10, 제 11 행성은 생명이 싹트기에는 온도가 너무 낮지. 제 2, 제 3 행성에는 원시적인 생물이 있어. 제 6 행성에는 원시적인 냉한대 생물이 있다. 제 1 행성은 너무 덥고 제 5행성도 알파 C의 태양에서 너무 멀리 위치하고 있어 이렇다 할 생물이 없는 것 같아. 제 4행성에 대해서는 자네도 잘 알고 있을 거고." "글쎄." 하며 하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랠리는 교과서를 덮고, 알파 C 제 4행성의 모습을 머리 속으로 그려보았다. 내일이면 착륙한다. 꿈속에서 그리는 것은 오늘 저녁뿐이다. 제 4행성은 열대의 세계이다. 곳곳의 무성한 밀림에는 지구의 식민지가 흩어져 있다. 그러나 행성의 연령은 지구보다 1억 년 젊어서, 큰 나무가 빽빽이 들어선 원시림에는 무서운 공룡이 어슬렁거리고있다. (공룡이 가까이 오면 땅이 울렁거릴까? ) 라는 생각만 해도 랠리는 몸이 오싹해졌다.     공룡의 요리   6월 16일 정오, 카르텐호는 제 4행성을 감싸고 있는 대기권 근처에 도착했다. 그 곳에서 지상의 유도에 따라 착륙 궤도에 들어섰다. 지상에서 3만m 되는 곳까지 내려갔을 때, 시카고 식민지에서 소형 우주선으로 마중을 왔다. 4척의 우주선은 시카고 식민지의 바깥쪽에 있는 초원에 착륙했다. 그 곳까지 식민지 사람들은 환영을 하려고 나와 있었다. (드디어 공룡이 있는 행성에 도착했다!) 랠리는 기운차게 제 4행성의 땅을 밟았으며, 처음으로 놀란 것은 중력이 큰 것이었다. 몸이 무거워져 발을 들어올리는 데에도 힘이 들었다. 알파 C 제 4행성은 지름이 1만 6천 km나 되어 지구의 1만 2천 7백km에 비하면 상당히 커서, 그만큼 중력도 강하다. 그러므로 이 행성에서 태어난 식민지의 사람들은 큰 중력과 싸워 가며 살기 때문에, 근육과 골격이 발달하여 오헤어와 같은 큰 사나이가 된다. 이 중력도 목성만큼 강대하게 되면 생물에 대해 반대 작용을 한다. 목성 태생의 사람은 하르와 같이 키가 작고 뚱뚱한 체격이 된다. 같은 사람이라도 중력의 크고 작음에 따라 체격이 달라지는 것이다. 다음으로 랠리가 놀란 것은 제 4행성의 공기였다. 맑은 공기를 힘차게 들이마시고 천천히 토하면서 생각했다. (맛있구나.) 하르도 다른 승무원도 정신없이 깊숙이 공기를 들어 마셨다. 무리도 아니다. 지구를 출발하여 자연의 공기를 마셔 본 일이 없다. 화성에서는 돔의 안에서 인공 공기를 호흡했다. 돔밖에도 대기는 있지만 산소가 적기 때문에 호흡할 수가 없다. 명왕성에는 돔의 밖에는 대기가 전혀 없다. 대기는 바위에 얼어붙어 있다. 카르텐호의 선 내에서는 화성과 명왕성에서처럼 인공적으로 재생한 공기를 호흡하여 왔다. 그래서 랠리는 자연의 공기 맛을 거의 잊어버릴 정도였다. (알파 C제 4행성에는 돔이 없다. 자연의 공기 속에서 살 수 있다!) 랠리는 다시 한 번 심호흡을 했다. 우주 여행에서 자연의 공기를 마음껏 호흡할 수 있는 것은 드물다. 제 4행성의 공기는 달고 머리가 멍할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산소가 풍부하다.) 랠리는 교과서의 한 구절을 생각해 내었다. (제 4행성의 공기는 지구의 공기에 비하여 산소의 비율이 높다. 그러므로 한층 더 신선하게 느껴지겠지.) 랠리 등은 우주선보다 30m나 공중 높이 솟아 있는 거대한 성벽을 향해서 걸어갔다. 사방에는 윤이 나고 싱싱한 초록색의 식물이 무성하고, 처음 보는 수목이 머리 위에 높이 솟아 있다. "이 성벽은 공룡을 막기 위하여 만든 것입니다. 이 행성에 있는 4개의 식민지는 전부 이러한 성벽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하고 근육이 튼튼한 한 식민지의 사람이 설명했다. 랠리는 사방을 돌아보았다. 이 세계는 아직 지구의 중생대와 같은 시기이다. 동물이나 식물이나 1억 년 전의 지구와 닮은 거대한 것이 많다. 벽 밑에는 높이 2m쯤 되는 작은 문이 있었다. 큰 야수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만든 것이다. 그 문을 통하여 랠리 등은 시카고 식민지 안으로 들어갔다. 번화한 곳이었다. 작은 가게와 시장, 주택 등이 늘어서 있다. 그러나 지구의 도시처럼 번쩍번쩍 빛나는 금속의 건물은 하나도 없었다. 흡사 미국의 서부 개척 시대에 건설한 빈약한 시가지 같았다. 승무원일행은 식민지 사람에게 안내를 받으며 시가지의 길을 걸었다. 라인하르트 선장은 안내역과 나란히 걸어가며 무언가 속삭였다. 양쪽의 가게와 주택에서 사람들이 나와서는 신기한 듯이 랠리 등을 구경하고 있었다. "똑똑히 봐. 도로가 모두 콘크리트로 만들어져 있어." 하고 랠리는 키가 작은 연습생 하이틀 ․반 ․하렌에게 속삭였다. "플라스틱은 비용이 많이 드니까 사용하지 않은 모양이야" 하이틀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이 곳 사람들은 플라스틱을 사용할 기분이 안 날거야. 콘크리트가 튼튼하고 실용적이야." 하고 하르가 말했다. 하이틀도 하르의 의견에 찬성했다. 이윽고 랠리 등은 건물로 들어가 긴 계단을 올라갔다. 엘리베이터에 익숙한 랠리 등에게는 긴 계단이 신기하게 여겨졌다. 계단을 다 올라가자, 넓은 방이 있었다. 방 한가운데에서 구식의 옷을 입은 백발의 노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노인은 일어서서 랠리 등에게로 다가왔다. 나이는 많으나 잘생긴 얼굴이고, 걸음걸이도 당당하였다. "나는 알파 C 제 4행성 식민지 정부의 해리슨 대통령입니다." 하고 자기 소개를 하고 난 해리슨 대통령은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망명 중입니다만…" 라인하르트 선장도 자기 소개를 했다. 그리고 승무원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 소개하고, 다시 무언가 얘기하려고 하자, 해리슨 대통령이 가로막으며 말했다. "시장하시겠죠?" 랠리는 선장을 대신하여, '예'라고 대답하고 싶었다. 오래간만에 신선한 공기를 많이 마셔서인지 대단히 배가 고팠다. 그러나 라인하르트 선장은 용건을 먼저 처리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사나이였다. "식사보다 먼저 이 곳의 정세를…" "아니, 식사부터 먼저 하는 것이 좋겠어요. 그리고 나서 천천히 얘기하는 것이 좋겠어요."하며 해리슨 대통령은 랠리 등을 식당에 안내하고는 테이블에 앉게 했다. 랠리 등은 아무 말 없이 식사를 시작했다. 해리슨 대통령 외에도 몇 사람의 식민지 사람도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인조 식품의 틀에 박힌 요리만 먹고 있던 랠리는 식민지의 음식이 신기했다. 최고 요리는 스테이크인데, 조금 딱딱하였으나 맛은 좋았다. 랠리가 접시의 스테이크를 깨끗하게 먹고 나자, 갑자기 해리슨 대통령이 말했다. "이 고기, 맛이 있어요?" "예… 대단히 맛있습니다." 하고 랠리는 가슴을 두근거리면서 대답했다. "그것 참 잘 되었소. 이 곳에 오는 손님들은 공룡 스테이크를 그리 좋아하지 않아요." "공룡 스테이크!" 랠리가 깜짝 놀라면서 빈 접시를 내려다보자, 다른 승무원들이 씨익 웃었다. "공룡 스테이크는 이 곳의 주식이오. 시카고 식민지의 인구는 약 1천명, 1주일에 두세 마리의 공룡을 잡으면 모두의 식량이 마련되오. 또 공룡의 뼈를 가지고 조각을 많이 만드는데, 그건 나중에 구경하시오." 하고 말을 마치더니, 해리슨 대통령은 묵묵히 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치고, 랠리 등은 넓은 방으로 되돌아왔다. 해리슨 대통령이 이야기를 꺼냈다. "라인하르트 선장, 참 잘 오셨습니다. 이미 아시겠지만, 지금 제 4행성에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나는 우주 정찰군에게 원조를 청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내 자신이 문제를 평화롭게 해결하고 싶습니다.“ "당신이 말씀하시는 것을 전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대통령. 나는 자세한 것은 모릅니다만 당신은 왜 런던 식민지에서 시카고 식민지로 오셨습니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라고 말하면서, 라인하르트 선장은 이맛살을 찌푸리며 랠리 등을 힐끔 쳐다보았다. 필경 해리슨 대통령과 단 둘이서 비밀로 얘기하고 싶은 모양이다. 그러나 해리슨 대통령은 의자에 앉으면서, 모두의 앞에서 입을 열었다. "당신들도 아시는 바와 같이 행성간 평의회는 알파 C 제 4행성에 대하여 앞으로 25년 내에 독립을 인정할 것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 4행성의 각 식민지에서도 이미 독립의 준비를 하고 있지요. "그 일은 알고 있습니다." 하고 라인하르트 선장은 말했다. 랠리와 하르는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다. 다른 승무원들은 묵묵히 듣고만 있다. "그런데 알파 C 제 4행성의 사람들은-물론 당신들은 제외하고 왜 지구인을 차갑게 대하고 있습니까?" 선장은 착륙전의 교신으로 생각한 바가 있는 모양이다. "런던 식민지에 있는 혈기 왕성한 많은 모임들은 행성간 평의회의 약속은 제 4행성의 독립을 연기시키고 우물쭈물하고 말려는 음모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리하여 런던 식민지에 알파 C 제 4행성 자유 세계 평의회를 새로 만들어서는 대통령인 나를 이곳으로 추방시킨 것입니다." "헨리크스 마을과 봄베이 식민지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역시 반란에 참가하였습니까?" "아마도… 지금 이 행성에서 지구에 충성을 바치고 있는 것은 시카고 식민지뿐입니다." 해리슨 대통령의 말이 끝나자, 라인하르트 선장은 의자에서 일어서더니 화가 난 붉은 얼굴로 외쳤다.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행정관은 어디 있습니까? 지구에서 파견되어 있는 행정관은 반란에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할 여유가 없었지요. "왜죠?" "런던 식민지의 무리는 행정관을 지구로 강제로 보내고 말았습니다, 선장." 하더니 해리슨 대통령의 음성은 갑자기 작아졌다. "더욱이 은하계 여행용의 우주선에 5년 분의 식량을 싣고." 카르텐호의 승무원들은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하르는 빙긋이 웃고 있었다. 행정관을 몇 년간이나 우주선에 가두어 두는 것은 잘한 방법이다. 그러나 그것은 해리슨 대통령을 런던 식민지에서 추방하는 것보다 더 중대한 일인 것이다. "이 사건을 대통령인 당신께서는 바로 우주 정찰군에 알렸어야 할 일이 아닙니까?" 하고 라인하르트 선장이 비난하자 해리슨 대통령은 몸둘 바를 몰라하며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 "알리려고 생각했습니다만 마침 카르텐호가 접근중이라는 이야기를 듣고서 당신들을 맞이하기로 한 것입니다." 이야기를 듣고 있는 동안에 랠리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식민지의 사람은, 지구에 충성을 맹세하고 있는 해리슨 대통령 같은 사람도 지구를 우습게 보고 있다. 그래서 앞으로 25년 뒤에 독립시켜 주겠다는 지구의 의견을 무시하고 반란을 일으키는구나. 그러나 지구에서 강력한 우주 정찰군이 도착하면 반란은 곧 진압될 것이라고 랠리는 생각했다. "그래서 시카고 식민지도 다른 세 식민지의 반란에 참가할 작정입니까?" 라인하르트 선장은 신중한 질문을 했다. "지금 형편으로는 뭐라고 말 할 수 없습니다. 내일 저녁 시카고 식민지의 전 주민이 모여 회의를 열어 지금처럼 충성을 다할 것인지를 결정합니다." 라고 해리슨 대통령은 엄숙한 태도로 대답했다. 주저할 수가 없다. 만약 시카고 식민지가 반란에 참가한다면 카르텐호의 승무원들은 적지에서 고립하게 되고 만다. "곧 손을 써서 반란의 확대를 막자. 올코트, 자네는 시카고 식민지의 반란파 지도자에게 연락을 취하라. 시카고 식민지는 우주 정찰군의 계엄령 하에 있다고 통고하라!" 하고 라인하르트 선장은 카르텐호의 부관인 올코트 우주비행사에게 명령했다. 그리고는 랠리 등을 날카로운 눈으로 돌아보았다. "다른 사람들은 비상사태에 대비하라! 나는 해리슨 대통령과 더 이야기를 하겠다." 랠리 등은 시가지의 변두리에 있는 가까운 건물로 들어갔다. 텅 빈 넓은 방이 세 사람의 연습생 - 랠리, 하르, 하이틀에게 할당된 곳이다. 방의 한쪽 창으로 거대한 성벽이 보였다. 또 한쪽 창에서는 끝없는 밀림을 바라볼 수가 있었다. "랠리, 전투가 시작될까?" 하이틀이 불만스럽게 물었다 "글쎄…" 랠리는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사관 학교에 있을 때부터 하이틀은 과학교수들을 당황하게 만들 정도로 수재였으나, 동작이 느리고 군사 교련과 체육은 잘 하지 못했다. 그래서 가능한 한 싸우지 않고 해결하였으면 하는 생각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이제부터 돌아가는 형편을 난들 알 수 있나. 그러나 전투가 시작되면, 우주 정찰군의 공격용 우주선이 와서 우리들을 구출하여 줄거야." "아니, 그 전에 집단 학살을 할거야. 랠리, 요전에 내가 너에게 얘기한 목성 식민지의 반란 때와 같이 처음에는 소규모 반란에서 대규모 전쟁이 된다. 정말 그 때와 똑같은 과정이야." 하고 하르가 참견했다. "목성 식민지와 같은 실패를 되풀이하는 것은 싫어. 제 4행성의 사람들은 힘이 무척 세고 일을 잘 해. 그러한 상대를 적으로 해서 싸우는 것은 불리해." 하고 랠리는 솔직하게 말했다. "그래." 하르는 빙긋이 웃으며, 창가로 걸어가서 말을 계속했다. "정직하게 열심히 일하는 식민지 사람에게 목에 형틀을 걸고, 노예같이 혹사하려는 지구 사람의 생각은 잘못되었다고 생각되지 않나, 랠리? 목성에서도 화성에서도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났어." "그만해! 지구 사람이 식민지 사람들에게 목에 형틀을 건다는 것은 어떤 뜻이지? 너는 비뚤어져 있어, 하르. 지구는 식민지의 개척을 원조하고 그 자금을 회수하고 있을 뿐이야. 지구의 원조가 없었더라면 어떤 식민지도 발전하지 못했을 거야." 랠리는 격한 어조로 말했다. "그야 그렇지. 그러나 지구를 의지하지 않았더라면 어떤 식민지도 풍요한 독립 국가가 되었을 거야. 이 시가의 도로도 구멍 투성이가 되지 않았을 것이고. 랠리, 자네는 대대로 우주 정찰군에서 일하고 있는 가문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만사를 바보같이 지구만 믿으려 하고 있어. 그렇게 생각해 본 일은 없어?" "우리 스타크 가문을 모욕하나?" 하며 랠리는 주먹을 불끈 쥐고, 부르르 떨면서 하르 쪽으로 다가갔다. 하르는 꼼짝도 않았다. 키는 작으나 튼튼한 몸을 굽혀서 대항할 자세를 취했다. 그 때, 둘의 사이를 하이틀이 가로막았다. "진정하라고. 싸우려면 밖에 나가서 해. 힘이 남아돌거든 공룡 사냥이나 가시지. 나는 피곤하여 자고 싶다고." "하이틀의 말이 옳아. 시원찮은 짓은 하지 말자." 먼저 랠리가 손을 내밀었다. 하르도 랠리의 손을 잡고 말했다. "이 문제는 언젠가 다시 조용히 얘기하자. 우리들도 좀 자야지."     우리에게 자유를   이튿날 아침 일찍 랠리는 눈을 떴다. 어제 저녁 열어 두었던 창에서 따스하고 달콤한 공기가 흘러 들어와, 향수처럼 방안을 가득 채우고 있다. 하르와 하이틀은 아직 정신없이 자고 있었다. 두 사람에게 방해가 되지 않게 랠리는 살며시 침대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 성벽 저쪽의 초원에는 카르텐호가 착륙한 그 때의 모습대로 서 있었다. 초원의 주위는 30m가 넘는 거목의 숲이다. 수목은 밑에서 쳐다보았을 때는 소나무 같다고 여겼었는데, 위에서 내려다보니 단풍과 떡갈나무, 야자 같은 잎도 눈에 띄었다. 갑자기 수목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꽉 어울려 있는 가지가 앞뒤로 흔들리고 좌우로도 흔들렸다. "무엇일까?" 랠리는 발돋움하여 창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아침해는 이미 성벽 위에 올라와 있는데, 아직 사방은 조용하며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나무들의 흔들림은 점점 심해지고, 별안간 밀림이 둘로 갈라지더니 큰 바위 같은 것이 초원에 나타났다. "앗!" 랠리는 갑자기 숨을 삼켰다. 그것은 지금까지 보지 못한 거대한 동물이었다. "공룡이다!" 랠리는 뒷걸음질치면서 침대에서 자고 있는 하르의 발을 잡고 흔들었다. "왜 이러는 거야?" 잠이 덜 깬 하르는 입안에서 중얼거렸다. "일어나! 창 밖을 봐!" 다시 한 번 랠리는 흔들었다. "왜 이래?“ 하르는 크게 하품을 하면서 몸을 일으켰다. "이쪽으로 와서 밖을 내다보라고." 아직도 잠이 들깬 하르를 랠리는 창가까지 끌어 당겼다. "뭐야?" 눈을 비비며 하르는 1분간쯤 아무 말이 없었다. "나를 꼬집어 봐. 아직 잠이 들깬 모양이야. "자네는 깨어 있어." 하고 랠리는 피식 웃었다. "저것이 이 행성의 공룡이야. 하르, 자네가 키우면 어때?" 두 사람은 눈을 깜박이지도 않고 자세히 내려다보았다. 초원에 모습을 나타낸 거대한 파충류는 검은 잿빛인데, 4개의 굵은 발을 가지고 있고, 긴 목 끝에 작은 머리가 달랑 얹혀 있었다. 몸통의 크기에 비하면 이상할 정도로 작은 머리이다. 뚱뚱한 몸통 뒤에는 허리뼈가 통해 있는 꼬리가 길게 뻗쳐 있고, 그 끝은 밀림 속에 있어서 보이지 않는다. "저놈이 우주선으로 다가간다!" 하고 하르가 말했다. 괴물은 아침 햇살을 받아 번쩍이고 있는 우주선에 주의 깊게 다가가려 하고 있다. 한 발자국을 뗄 때마다 쿵, 쿵, 쿵하는 소리가 나는데 건물 안에 있는 랠리 등에게까지 땅의 울림이 전해 오고 있었다. 두 사람의 대화로 잠을 깼는지 하이틀도 창가로 왔다. 세 사람은 정신없이 공룡의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공룡은 아무도 없는 우주선 가까이까지 다가가서는 거대한 목을 치켜들고, 콧등으로 차가운 선체의 냄새를 맡았다. 푸른 하늘에 똑바로 서 있는 우주선 머리에서, 지상 30m 높이에 있는 승강구의 출입문 근처까지 자세히 살펴보고는 콧등으로 출입문을 밀었다. 출입문이 열리자 큰 한쪽 눈으로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 곳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을 것이다. 공룡은 머리를 낮추고  우주선의 주위를 한 바퀴 돌고는 다시 밀림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얼마 안 되어, 카르텐호의 승무원들은 아래층에 모여 시끄럽게 떠들기 시작했다."만약 다시 공룡이 카르텐호에 가까이 오면 어떻게 하지? 그 놈이 우주선을 넘어뜨리지는 않을까?" 라는 불안을 품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우주선을 움직일 수도 없고, 우주선의 주위에 높은 성벽을 쌓아올리는 것도 무리야." 이야기가 채 끝나기 전에 라인하르트 선장이 방안으로 들어왔다. 곧이어 해리슨 대통령 이 제 4행성의 자위대 병사 두 사람을 데리고 나타났다. 병사들은 햇볕에 검게 그을린 식민지의 젊은 사나이들이었다. "이 사람은 존 브라운-시카고 식민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혁명 운동의 지도자입니다." 하고 해리슨 대통령이 소개했다. 라인하르트 선장은 햇볕에 그을린 사나이를 보고 냉정하게 말했다. "이쪽으로 오게, 브라운. 자네에게 묻고 싶은 말이 있다.“ 훤칠하게 키가 큰 브라운은 태연스럽게 라인하르트 선장 앞으로 나아가서 질문을 기다렸다. "자네들은 오늘 저녁 여기에서 회의를 한다지, 존?" 다짜고짜로 라인하르트 선장은 질문했다. "나를 체포할 작정입니까, 선장?" "걱정하지 말게. 어떤 목적으로 회의를 하는가 알고 싶을 뿐이니까." "그러면 이야기하지요. 다른 3 개의 식민지 일은 알고 계시겠지요? 우리는 오늘 저녁 회의를 열어, 시카고 식민지가 3개 식민지의 반란에 참가할 것인가를 주민 투표로써 결정할 작정입니다. 만약 내가 출석을 못하면 동료가 대신하여 회의의 사회를 맡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생활을 외면하고, 자유도 주지 않으며, 거기에다 무거운 세금까지 가혹하게 받아 가는 지구로부터 독립을 쟁취하는 길은 단 하나, 4개의 식민지가 단결하여…" "이제 알겠다. 브라운." 하고 라인하르트 선장은 상대방의 말을 중지시키며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현재 시카고 식민지는 계엄령 하에 있다. 그러니 내게는 오늘 저녁의 회합을 금지시킬 권한이 있다는 것을 물론 알고 있겠지?“ "저건 언론통제인데." 하고 랠리는 놀라면서 하르에게 속삭였다. "쉬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보자고." 하르가 주의를 주었다. "알고 있고 말고요.“ 하며 브라운은 능글맞게 웃었다. "그러나 선장, 시카고 식민지의 반란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럴까… 그런데 왜 알파 C 제 4행성이 갑자기 독립을 원했는가?" 이 말을 듣고, 브라운의 눈은 이글이글 빛나기 시작했다. "갑자기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신장. 우리는-우리의 조상이 이 곳에서 살기 시작한 이후, 오랫동안 독립을 원해 왔습니다. 지금은 이미 지구를 의지할 시대는 끝났습니다. 우리는 자급자족할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의 힘으로 훌륭하게 이룩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지구는 필요 없으며, 지구 역시 우리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지구는 우리에게 세금을 거둬들이기 위해서 독립허가를 내주려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바치는 세금이 지구의 거대한 경제에 얼마쯤 보탬이 될까요? 지구가 이렇게 빈약한 식민지를 괴롭히려는 것은 비겁한 행동이 아니겠습니까." "그 말은 옳지 않다. 무역으로 서로가…" "무역? 4, 5광년이나 떨어져 있는데도요? 무역의 상대로서는 너무나 멀지요. 우리가 지구에서 공급받는 것은 책과 도구 종류뿐입니다." "너희들이 반역자가 되면 그 책과 도구도 지구에서 오지 않는다. 그래도 좋은가?" 하고 해리슨 대통령이 말했다. "우리들 힘으로 어떻게 해 보겠습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자유를 원하고 있습니다. 지구에서 보낸 행정관에게 감시당하지 않으며, 우리의 모든 행동을 일일이 지구에 보고하지도 않으며, 지구에서 부과한 세금을 바칠 필요도 없으며, 우리 자신의 정부를 세울 자유를 찾아야 하겠습니다." 라는 브라운의 소리는 차츰 커져서 넓은 방안을 쩌렁쩌렁 울렸다. "지금 하고 있는 저 말들은 내가 가지고 있는 책에서 인용한 말이야. 거의가 책에 써놓은 그대로군." 하고 하르는 랠리에게 속삭였다. 랠리는 잠자코 생각에 잠겼다. 지금까지 지구는 명예스러우며, 정당하며, 식민지의 수호자 즉 약한 사람의 편-이라는 교육을 받아왔고 그대로 믿어왔었다. 그런데 지금 어쩐지 그 신뢰감이 흔들리는 것 같다. 라인하르트 선장도 아무 말이 없고, 브라운의 열띤 말만이 울려 퍼질 뿐이었다. "지구는 모든 면에서 우리의 머리를 누르는 정책을 취하고 있습니다. 세금도 이렇게까지 바칠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이상합니다. 또 행성간 평의회에는 아직까지 우리의 대표를 보낼 수가 없습니다. 라인하르트 선장, 당신은 지구의 역사를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지금부터 6백년 전, 지구의 곳곳에 있었던 식민지는 흡사 지금의 우리와 같은 상태였습니다. 당시의 식민지는 지배자에게 어떻게 말하였던가요? '선거권이 없으면 세금도 못 내겠다.' 이 말을 기억하고 계시겠지요, 선장?" "알고 있다." "그 뜻을 잘 아십니까? 이 식민지는 이미 독립 국가로서 자립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행성간 평의회는 우리에게 독립을 주겠다고 확실히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그 시기는 지구의 형편이 좋을 때, 지구의 준비가 다 되었을 때가 아닙니까?" 라는 브라운의 소리는 랠리의 귀에도 크게 울려 퍼지며 들려 왔다. "행성간 평의회가 쉽게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어떻게 해서 브라운이 알까?" 하고 랠리는 하르에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브라운은 너보다 지구의 역사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야. 행성간 평의회는 어쩔 도리가 없어야만…" 하고 하르도 속삭였다. "브라운, 기다려라. 그러는 동안에 꼭…" 하고 해리슨 대통령이 말을 꺼내려는데, 브라운은 큰소리로 가로막았다. "언제까지 기다립니까? 당신은 런던 식민지에서도 기다리라고 말하다가 추방되었습니다. 그래도 정신을 못 차리고 똑같은 말을 되풀이할 작정입니까? 우리가 행동하는 대신, 당신이 행성간 평의회과 담판하여 독립 허가라도 빨리 얻을 자신이 있습니까? 당신은 잘못 생각하고 있습니다. 독립을 얻기 위하여 일어선 런던 식민지 쪽이 정당합니다. 우리는 4개 식민지가 한 덩어리가 되어, 알파 C 제 4행성의 독립을 선언하지 않으면 안되겠습니다!" "알았다." 하며 라인하르트 선장은 일어섰다. 그리고는 눈을 브라운에서 해리슨 대통령 쪽으로 돌렸다. "나로서는 될 수 있는 대로 사태를 조용히 수습하고 싶습니다. 즉 반란을 진압하기 위하여, 우주 정찰군의 무장 우주선을 부르기 전에 어떻게든 수습하고 싶습니다. 나의 의사를 시카고 식민지 사람들에게 전달해 주지 않겠습니까, 해리슨 대통령? 그리고 이 브라운 씨는 구속하는 것이 좋겠지요." 그러자 출입문 쪽에 있던 몇몇 식민지 사람들이 라인하르트 선장을 위협하는 것처럼 다가왔다. 그것을 본 해리슨 대통령은 말했다. "선장, 브라운을 체포하면 사태가 더 악화됩니다. 이대로 보내 주면 브라운은 우리의 각오를 혁명 측 사람들에게 말하겠지요." "그러지요. 브라운을 내보내고 싶진 않지만 할 수 없겠군요. 그러나 오늘 저녁의 집회 문제는 어떻게 하지요?" "예정대로 하도록 맡겨둡시다. 집회는 이미 허가가 나와 있거든요. 지금 와서 권력으로 금지시키면 복잡해집니다." "알았습니다. 브라운을 석방하여 주십시오." 라인하르트 선장은 키가 큰 브라운이 태연하게 방을 나서는 것을 보고 "해리슨 대통령, 나와 함께 가 주십시오. 이 행성에서 반란이 일어나게 된 동기를 처음부터 자세히 알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방에서 나갔다. 뒤에 남은 승무원들은 한참동안 속삭였으나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라인하르트 선장은 아무런 명령도 내리지 않은 것이다. 승무원에게 아무 일도 시키지 않고 그대로 놀게 하는 것을 가장 싫어하는 선장으로서는 드문 일이다. 하르가 빠른 걸음으로 출입문으로 향했다. 그의 소매를 잡으며 랠리는 말했다. "잠깐 기다려 주게, 하르. 같이 방으로 가지. 나는 자네가 가지고 있는 그 푸른 표지의 책을 읽고 싶어." 하르는 눈을 휘둥그래 뜨고 랠리를 가로막았다. "다음으로 미루게, 랠리. 나는 브라운에게 이야기할 것이 있네." 하고 말하고는, 랠리를 남겨놓은 채 넓은 방에서 힘차게 뛰어 나갔다.     반란의 청년 지도자   멍하니 서 있는 랠리에게 하이틀이 뒤에서 말을 걸었다. "랠리, 모처럼 얻은 자유시간을 뜻 있게 보내자. 시가지 구경은 어때?“ "좋지." 하고 랠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 연습생은 큰길로 나왔다. 이 부근은 상업 지역인 모양이다. 양 길가에 점포가 늘어서 있다. "브라운을 어떻게 생각해?" 한 점포를 향해 걸어가면서 하이틀이 물었다. "글쎄, 곤란한데. 브라운이 말하는 것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되는군. 또한 지구에는 지구 입장도 있겠고… 그걸 확실하게 알지 않고는 뭐라고 말할 수가 없지." "그래. 나는 지구가 왜 식민지를 냉대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 그 이유를 알고 싶네." 두 사람은 제일 첫 상점으로 들어갔다. 상점 안에는 공룡의 뼈로 만든 조각이 많이 진열되어 있었다. 상점 주인이 나오며 두 사람을 맞이했다. 상당히 나이가 많은 노인인데, 근육이 튼튼하여 노인 같은 느낌이 들지 않았다. "어서들 오십시오. 지구에서 오신 손님!" 발음이 이상한 것은, 지구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지구 사람들과 대화할 기회가 없기 때문이리라. 랠리는 멋진 공룡의 조각을 손에 들고 물었다. "이것도 파는 겁니까?“ "그럼요, 팔고 말고요. 공룡 뼈의 조각은 이 행성의 명물이죠. 시카고 식민지에서는 우리 상점이 총판을 맡고 있습니다." "이것 좀 보게, 랠리!" 하이틀은 10cm 가량 꼬리를 든 공룡 조각품을 손에 들고 감탄의 소리를 질렀다. "진짜 같구나." "공룡 스테이크를 먹어 보신 지는 모르지만, 진짜 공룡은 몸길이 27m, 키는 10m나 되지요. 젊은 녀석의 고기를 당신들이 먹는 거요." 하고 상점 주인은 식민지 사투리로 설명했다. "이 공룡의 이름은 무엇인가요?"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공룡은 많은 종류가 있고, 식민지에 따라 이름이 다르니까요. 거기에다 지구에서 온 사람들은 마음대로 우리가 발음할 수 없는 이름을 붙이기 때문에…" "이것은 얼마입니까?" 하고 하이틀이 물었다. "정가는 3우주달러지요. 당신들은 아마 이 행성의 돈을 가지고 있지 않을 겁니다. 나도 돈은 그리 필요 없습니다. 물물 교환을 하면 어떨까요?" "물물 교환?" "예, 당신이 팔에 끼고 있는 그 책이 좋겠습니다. 이 식민지에는 책이 귀하니까요." "이 책은 곤란한데요. 이건 나의 교과서입니다." 라고 말하면서 하이틀은 책을 펴서 내용을 보였다. "지금부터 공부하는 데 필요한 책이지요…." 곁에서 랠리는 미소를 머금었다. 갑자기 하이틀이 좋아졌다. 이 며칠간 하르와의 사이가 그렇게 좋지 못했던 까닭인지도 모른다. 하이틀은 식사 때에도 우주 여행의 교과서를 가지지 않을 때가 없을 정도로 책벌레이다. 공룡의 조각품이 아무리 좋다 해도 책과 바꿀 리는 만무하다. 노인은 한숨을 쉬었다. "하는 수 없지요. 이걸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내가-아니 시카고 식민지에서 당신에게…" ”괜찮을까요? …감사합니다." 하이틀은 미안한 표정으로 공룡의 조각품을 손으로 어루만졌다. 랠리도 조각품의 아름다움에 마음이 끌렸다. 서재의 책상 위에 놓아두면 좋으리라고 생각했다. 집, 우주 여행을 출발하고서 처음으로 집의 일이 문득 머리를 스쳐온다. 집이 있는 지구는 지금은 우주의 멀고 먼 곳에 있다. 거리를 숫자로 나타내어 보아도 실감이 안 날 정도로 멀리 떨어져 있다. 무려 4000만 km의 100만 배이다. 두 연습생은 2m 이상이나 되는 공룡 조각품이 서있는 입구로 다가갔다. 문을 열고 랠리는 상점 주인을 돌아다보았다. "오늘 저녁의 집회에 지구인도 출석할 수 있습니까? 저도 가고 싶군요." 그러자 주인은 웃으면서 천천히 대답했다. "당신들에게는 관계가 없는 일입니다. 마음을 쓰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옆 상점에서는 신기한 야채류를 팔고 있었다. 그 상점 주인은 지구의 사과 비슷한 둥글고 빨간 과일 한 개를 랠리에게 주었다. 입에 넣고 씹어 보니 신맛이 많고, 입에 맞지 않는 기묘한 맛이었다. 알파 C 제 4행성은 걷는 데 힘이 든다. 둘이는 한 발짝 한 발짝마다 저항을 느끼고 열 걸음 정도 걷고서는 깊은 호흡을  했다. 공기는 산소가 많아서 가슴으로 힘껏 들이마시면 이상한 활력이 나오는 것 같다. 거대한 성벽에 둘러싸인 식민지 내부는 집뿐만 아니라 큰 농원이 있으며, 군데군데 높게 서 있는 나무만이 성벽 밖의 야만스러운 밀림에 모습을 나타내고 있었다. 중력만 강하지 않으면 지구에 돌아온 기분이 난다. 그러나 파랗게 맑게 갠 하늘을 쳐다보면 그러한 착각은 당장에 사라진다. 알파 C의 태양은 중천에 걸려 황색으로 빛나고 있다. 그리고 지구에서 보는 태양보다는 약간 크다. 더욱이 하늘 한 모서리에는 푸르스름한 베타 C가 작은 빛의 테가 되어 떠 있고 반대쪽과 수평선 가까이에는 프록시마 C가 조그맣고 붉게 빛나고 있다. 이곳에는 태양이 3개 있다. 빛은 지구와 같이 황색이었으나, 베타 C의 희미한 빛과 프록시마 C에서의 붉은 빛도 섞여 있다. 이것이 알파 C 제 4행성에 지구와 다른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두 연습생은 강한 중력 때문에 걷는 데에 힘이 들어 벤치에 걸터앉아 쉬었다. 무심코 눈을 들어보니 바로 옆에 존 브라운이 서 있는 것이 아닌가. 랠리는 얼굴이 붉어졌다. 브라운으로서는 지구에서 온 우주 정찰군의 인간은 미운 적으로 여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브라운은 적의를 나타내지 않고 밝은 미소를 지었다."별로 소개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아침에 당신들은 나를 보았을 것이다. 나는 브라운-존 브라운이다." 식민지 사투리이기는 하지만, 활발하고 인간미가 넘치는 음성이었다. "나도 당신을 알고 있다." 하고 랠리는 말했다. "나도." 하이틀도 고개를 끄덕이며 끼여들었다. "오늘 저녁 집회에 참가하지 않겠는가? 지구인도 환영한다. 그러나 당신들은 새삼스럽게 출석할 기분이 나지 않을지도 모르지, 내가 선장에게 이야기한 것을 다 들었으니까." "가겠다. 나는 출석할 작정이다." 라고 랠리는 대답했다. "나도 가지, 브라운. 너와 같은 이름의 사나이를 노래한 것이 기억 난다. 옛날 지구의 노래지." 하이틀의 말에 랠리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지나간 어느 날 밤에 오헤어가 가르쳐 준 것이었다. "서정적인 노래이지. 첫 구절이 아마 「존 브라운의 몸은 묘비 아래에 잠들고」 였다." 하고 하이틀은 곡조를 붙여 가며 외었다. "그 브라운은 나의 선조이다." 브라운은 솔직히 말했다. 2320년에, 브라운의 아버지는 지구에서 알파 C 제 4행성에 이주해 왔다. 그리하여 지금의 브라운이 태어났다. 그러므로 브라운은 알파 C 제 4행성 식민지의 2세대이다. "지금 조금 시간이 있다. 어때, 나와 같이 성벽에 올라가 보지 않겠는가? 이 행성의 중력에 익숙해지는 훈련도 되고, 밖의 밀림도 구경할 수가 있다. 너희들은 오늘 아침에 우주선의 냄새를 맡고 있던 공룡을 보았겠지. 기분이 어떻던가?" "무섭게 크더군." 랠리는 거대한 공룡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대답했다. "그렇지." 하고 브라운은 웃으면서 말했다. "자네가 본 것은 가장 큰놈이다. 이 식민지에서는 그 공룡을 '두 꼬리'라고 부르고 있다. 목과 꼬리가 거의 같을 만큼 길어서 꼬리가 두 개처럼 보이기 때문이지." 브라운은 양손을 펴들고 공룡의 형태를 그려 가며 설명했다. 그리고 또 같이 가기를 권했다. "나와 같이 성벽에 가지 않겠는가?" "가지. 하이틀, 자넨 어떻게 할건가?" 하고 랠리가 물었다. 하이틀은 머리를 가로 저었다 "나는 안 가겠어. 자네들 둘이 가게. 나는 본부에 되돌아가서 그 후의 상황을 알아보겠어." "그럼, 그렇게 하게." 랠리와 브라운은 성벽을 향해서 걷기 시작했다. 랠리는 브라운이라는 사나이에게 이상한 친밀감을 느꼈다. 같이 걷고 있는 사나이가 반란의 지도자라는 것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랠리, 자네는 이 행성에 대하여 어느 정도 알고 있지?" "글세… 여기에는 런던 식민지, 봄베이 식민지, 헨리크스 식민지, 시카고 식민지라는 4개의 식민지가 있지. 총 인구는 5천명으로서, 그 반은 런던 식민지에 살고 있지." "아니야, 정확하게 말하면 반이 아니야. 런던 식민지에 2천명, 다른 세 곳에 천명씩 있다." 둘은 성벽 가까이 갈 때까지 대화를 계속했다. 랠리는 마음이 풀리며 친숙한 기분으로 질문했다. "식민지가 개척되고 몇 해나 되지?" "100년쯤-정확히 말하면 125년 전에 개척되었지. 최초의 개척자는 중력이 커서 상당히 고생한 모양이나, 여기서 태어난 우리들은 아무렇지도 않아. 식량 문제는 이 행성에 있는 공룡을 주식으로 하여 해결했지. 만약 공룡을 식량이 되도록 관리하지 못했다면, 식민지는 현재의 상태로 발전하지 못했을 거야. 물론 부식도 필요하지. 그것도 곡식과, 야채의 재배로 걱정 없게 됐네." 성벽의 밑에 계단을 만들어 놓아, 구불구불하게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브라운이 앞서고, 랠리는 뒤따라 올라가기 시작했다. "공룡은 항상 성벽 밖의 빈터에서 어슬렁거리고 있나?" 하고 랠리는 숨찬 목소리로 물었다. "이른 아침 뿐이야. '두 꼬리'는 대단히 겁쟁이지. 날이 밝고 시가가 시끄러워지면 밀림 속으로 숨고 만다. 이 행성에 오자마자 그놈을 보게 된 것은 자네가 운이 좋은 거야." "공룡이 겁쟁이라니?" "그럼. 그놈은 초식 동물이야. 그 작은 입으로 배가 부르도록 풀을 뜯어먹자면 하루에 10시간이나 12간은 걸릴걸." "자네들은 공룡이 무섭지 않은가?" "아무렇지도 않아." 하고 말하면서 브라운은 웃었다. "만약 그놈이 우리를 해롭게 하려고 하면 이런 성벽은 쉽게 넘어오고, 우리를 잡아먹을 수 있어. 그런 일이 자네가 여기 있을 동안에 일어날지도 모르지, 랠리." 둘은 성벽 꼭대기에 섰다. 30m 밑의 식민지를 바라보니, 먼 곳과 한길에 왕래하는 사람들이 조그맣게 보였다. 랠리는 성벽 꼭대기를 거닐다가 반대쪽으로 눈을 돌렸다. 순간 숨이 막힐 만한 광경이 펼쳐졌다. 광대한 푸른 숲은 큰 바다처럼 심한 기복으로 끝없이 펼쳐지고, 그 위에는 기묘한 모습의 새들이 날고 있었다. 성벽의 바로 밑은 카르텐호가 우뚝 서 있는 초원이고, 바로 옆에까지 밀림의 나무들이 성벽 높이만큼 높이 솟아 있었다. "저 새는?" 랠리는 나무 꼭대기 위에서 천천히 날고 있는 거대한 새를 손가락질하면서 물었다. "익수룡이야. 앞발의 넷째 발가락이 길고, 거기에 얇은 막이 덮여 있어 2m에서 3m나 되는 큰 날개로 변화해서 하늘을 나는 공룡이지. 학자들은 '프테라노돈'이라고 부르고 있어. 옛날에 지구에 있었던 것과 같은 종류라고 하더군." "그 새는 시가지에 날아오지 않는가?" "예전에는 잘 날아온 모양이야. 식민지 아이들을 채 가지고 간 이야기도 있어. 그래서 그놈이 시가지 상공에 나타나면 총으로 쏘아 떨어뜨렸지. 그놈들도 위험한 것을 알고는 지금은 절대로 시가지 가까이 오지 않게 되었어." 익수룡은 나무 가지 끝을 빙빙 돌고 있다가, 갑자기 긴 부리를 가지에 힘차게 내밀더니, 한 마리의 뱀을 입에 물었다. 날뛰는 뱀을 머리로부터 말끔히 삼키고 말았다. 랠리는 등이 오싹했다. 그러나 브라운은 태연하다. "저것이 밀림의 법칙이네. 익수룡은 항상 나무에 올라오는 뱀을 기다려서 잡아. 그러나 익수룡도 호수 위를 낮게 날면, 물에 살고 있는 공룡이 수면으로 긴 팔을 뻗어 익수룡을 잡아서는 물 속으로 끌고 들어가지.“ 초원 끝에서 많은 이빨을 가진 공룡의 머리가 쑤욱 나타났다. "아, 나타났다! 오늘 아침의 그놈인지도 모르겠군." 하고 랠리는 손가락질하며 외쳤으나, 브라운은 손목 시계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이제 시간이 됐어. 슬슬 돌아가서 집회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안되겠군. 자네는 여기서 공룡의 구경을 더 할 작정인가?" 오후의 태양이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머리 위에는 익수룡이 기분 나쁜 소리를 질러가며 날아다니고 있었다. 성벽 위에 자기 혼자 서있는 모습을 상상한 랠리는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나도 같이 내려가지." "그러는 것이 좋을 거야. 오늘 저녁 집회에서 만날 수 있을까?" "물론." 하고 대답하고, 랠리는 브라운의 뒤를 따라 아무 말 없이 계단을 내려왔다. (브라운 같은 친밀감을 주는 좋은 사나이가 반란을 지도한다면…) 숙소로 돌아가면 하르의 책을 빌려서 읽어 보리라고 랠리는 생각했다.     전기 기타의 수수께끼   숙소에 돌아오니, 건물의 주위는 큰 혼잡을 이루고 있었다. 식민지 사람들이 건물을 둘러싸고, 라인하르트 선장을 만나도록 해 달라고 소리소리 외치고 있었다. 랠리는 선장의 방으로 들어갔다. 선장은 테이블을 끼고 앉아서는 해리슨 대통령과 두 식민지 사람과 더불어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랠리가 보고를 하려고 하자, 선장은 손을 흔들며 나가 달라는 손짓을 했다. 자기 혼자만 남아 있는 쓸쓸함을 느끼며, 랠리는 계단을 올라가 자기 방으로 향했다. 방안에서는 하이틀이 공부를 하고 있었다. 하르도 반대쪽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둘은 랠리가 방안으로 들어서자 고개를 들었다. "조금 전에 오헤어가 너를 찾아왔길래, 하이틀이 브라운과 산책하고 있다고 말했어. 그게 정말인가?" 하고 하르가 물었다. "정말이야. 브라운은 우리들을 오늘 저녁 집회에 초대하더군." 라고 랠리는 대답했다. "자넨 갈 건가, 랠리?" "선장이 내게 일을 맡기지 않으면 가겠다. 그러나 선장은 이 우주 여행을 마칠 때까지 항상 우리에게 작은 일거리들을 맡길 것이니 어떨는지…" "집회를 그렇게 중대하게 생각할 건 없어." "왜? 나는 집회에서 이 식민지의 운명이 어떻게 결정되는가를 보고 싶어. 우리 눈앞에서 지금 역사가 만들어지려 하고 있어." "그 말은 옳아. 그러나 이 식민지 사람들이 주민 투표에서 반란을 찬성했을 경우, 맨 먼저 가장 가까이 있는 지구인을 사형시킬 것이 아닌가." "설마!" 랠리는 깜짝 놀라면서 하르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나는 오후부터 지금까지 브라운과 같이 있었어. 그는 정말 좋은 사람이었지. 그 사나이가 우리를 사형하리라고는 믿어지지 않아." "배반자!" 하고 하르는 웅변조로 크게 외쳤다. "나는 너를 배반자로 고발한다, 랠리 스타크 연습생! 네가 반란 지도자를 두둔하는 것은 어떤 이유야? 지구가 생명을 걸고 정한 식민지 법을 위반할 작정인가? 악마에 홀린 것이 아닌가? 나는 너를 믿고 있었다." "믿고 있었다고?" 하며 랠리는 빙긋이 웃었다. 하르가 비꼬는 말에도 아무렇지 않다. 의자에 걸터앉아 생각해 보았다. 하르가 말하는 것은 정당하다. 브라운과 다른 시가지의 사람들을 만나기 전까지 랠리는 혁명가라는 자를 보통의 범죄자 이상으로 나쁜 자라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 적이 친구처럼 보이고, 친구가 적처럼 보이게 된 것이다. 랠리는 아버지의 말을 기억했다. (잊어서는 안 된다, 랠리. 지구는 항상 정당하다. 식민지에서 속지 마라.) 그러나 이 시카고 식민지의 사람들이 자기를 속이고 있을까? 지구인은 모두 영리하고, 식민지의 사람들은 야만일까? 어떤 경우에도 식민지의 사람들은 자기의 권리를 얻기 위하여 싸우는 정직한 사람이며, 지구인은 피도 눈물도 없는 지배자일까? 랠리는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랠리는 일어서서 문 쪽으로 다가갔다. 손님은 오헤어였다. 랠리는 이번 우주 여행에서 처음으로 친구가 된 큰 사나이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큰 사나이는 겨드랑이에 자기가 가장 아끼고 있는 전기 기타를 끼고 있었다. 그것을 조용히 랠리에게 넘겨주면서 말했다. "이것을 네게 줄 때가 왔어, 랠리." 오헤어의 얼굴은 창백해서 붉은 머리카락이 더욱 돋보였다. 눈은 보통 때보다 험상궂고, 얼굴전체가 고민하는 것처럼 보였다. "왜, 바트?" 랠리는 번쩍번쩍 빛나는 전기 기타와 오헤어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그것은 보통 전기 기타가 아니고, 훌륭한 소리를 내는 고급품이다. 그것은 오헤어가 지금까지 수많은 우주 여행에 한시도 놓지 않고 귀중하게 보관하고 있던 것이 아닌가. "이 기타는 자네가 가지는 것이 좋다고 생각되어, 자네에게 줄 뿐이야, 랠리." 하며 오헤어는 갑자기 빠르게 지껄였다. "나는 이제 가지 않으면 안 돼.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어. 그러나 곧 돌아와서 자네의 연주를 들어볼 거야. 자네에게는 기타의 명수가 될 소질이 있어. 랠리, 자네는 기관부가 아니고 우주 정찰군의 사관이 될 사람이기에 나는 섭섭해. 기타의 재능 같은 것은 우주 정찰군 사관에게는 필요 없는 것이니까. 그러나 이 기타를 소중히 간직해 주게, 랠리. 음을 맞추는 방법은 알지?"     "알고 있고 말고, 오헤어.""만약 고장이 나거든 그것을 가지고… 나를 만나러 오게나. 자, 그러면 안녕, 랠리." 하고는 문을 열고 오헤어는 빠른 걸음으로 나갔다. "고맙네, 바트." 이렇게 말하고 문을 닫았다. 다시 의자에 앉으며 랠리를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무래도 이상하군. 왜 오헤어는 자기가 그처럼 아끼던 물건을 내게 주는 걸까?" "아마 기타를 간수할 곳이 없어서겠지." 라고 하이틀이 그렇게 말하자 랠리는 머리를 가로 저었다. "오헤어는 비록 자기가 앉을 장소가 없어도 기타를 놓아둘 곳은 꼭 찾는 사나이야.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을 거야." "그런 것은 오헤어가 다시 오면 물어 보면 되잖아. 그것보다 이 근사한 기타로 한 곡 들려주게나. 나는 기타 연주를 자주 듣고 있지. 한데 그것보다 더 잘 칠 수가 있을까?" 하르의 말이었다. "한번 쳐보지." 랠리는 기타의 코드를 전원에 연결시키고 음을 맞추기 시작했다. 낮고 김빠진 소리가 났다. 하르와 하이틀은 껄껄 웃었다. "굉장하다, 랠리! 재창이다, 재창!" 하고 하르가 놀렸다. "이상하다." 하며 랠리는 기타를 들여다보았다. 자기도 이렇게 낮은 음을 들어 본 적이 없다. 한 번 더 랠리는 켜 보았으나, 여전히 낮은 소리이다. "자네가 이 기타를 켜는 것은 무리야. 그렇지 않으면 오헤어가 어떤 장난을 쳤는지 몰라." 라고 하르가 말했다. "아니야. 오헤어는 누굴 놀리는 사람이 아냐." 하며 랠리는 음을 맞추려고 애를 썼지만, 여전히 맞출 수가 없었다. "음을 잘못 맞춘 것이 아니라, 다른 데 원인이 있는 것 같아, 랠리" "나도 그렇게 생각해. 사운드 박스가 이상해." 하고 랠리는 기타의 심장부에 손을 집어넣고 찾아보았다. "이상한 곳은 없는 것 같은데…아니?“ 랠리의 손가락은 더욱 깊숙이 들어갔다. "이놈이구나! 여기에 이상한 것이 꽂혀 있어. 이것 때문에 소리가 제대로 나지 않았어. 오헤어는 내게 기타를 주기 전에 왜 이것을 빼놓지 않았을까?" 랠리는 조그맣게 똘똘 접은 쪽지를 꺼냈다. 그리고서 기타를 다시 치니 아름다운 소리가 사방에 퍼졌다. "이제 됐다." 랠리는 만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조그맣게 접은 쪽지를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이건 못쓰는 종이가 아닌 것 같은데…" 하며 기타를 손에서 놓고, 쪽지를 펴서는 주의 깊게 보기 시작했다. "편지다." 그것은 힘차게 갈겨 쓴 글씨로 꽉 차 있는 편지였다. 랠리는 말없이 읽어보고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러면서 편지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설마… 믿을 수가 없어." 하고 중얼거리면서 다시 한 번 편지를 읽었다. "뭐라고 씌어 있지, 랠리?" 하고 하르가 물었다. "뭔가 이상한 일이라도?" 하이틀도 궁금해서 물었다. "내가 읽어 줄께." 하고 랠리는 흥분된 목소리로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랠리, 내가 한 짓에 화내지 말기를 바란다. 아마 내가 없어졌다는 것을 아직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을 거야. 그러나 얼마 안 있어 내가 실종되었다는 것을 알고 놀랄 것이다. 내가 없어지고 난 다음에 자네는 이 편지를 모두에게 보이겠지. 나는 반란에 참가한다. 랠리, 이 일을 네가 선장과 사관들에게 똑똑하게 알려다오. 이번 우주 여행에 출발하기 전에 나는 계획을 세웠었다. 나는 알파 C 제 4행성의 혁명에 참가해서, 독립을 위하여 싸우는 동료를 도우려고 남모르게 결심을 했던 것이다." 여기에서 랠리는 잠시 멈추었다. 하르는 진지한 얼굴빛이었고, 하이틀은 화가 나는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랠리는 계속 읽기 시작했다. "나의 행동을 네가 어떻게 생각할 것인지 잘 알고 있다. 아마 너는 나를 지구에 대한 반역자라고 생각할 거야. 너의 친구 오헤어가 왜 이런 짓을 하는가 이상하게 여길 것이다. 나를 반역자라고 불러서 마음이 시원하거든 그렇게 불러다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뿐이다. 언젠가는 자네도 각자는 각자의 할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 때 자네의 눈도 넓어질 거야." 이 구절을 랠리는 몇 번이나 읽어보았지만 뜻을 잘 알 수가 없었다. "어떤 뜻일까?" 하고 하르에게 물어 보았다. "끝까지 읽어보라고." 하르는 재촉했다. "오헤어 가문의 사람은 대대로 반역자였었다. 자네와 마찬가지로 나도 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릴 수는 없다. 자네가 아버지처럼 훌륭한 군인이 되려는 것처럼, 나도 아버지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훌륭한 반역자가 되고 싶다. 식민지의 독립을 위하여 일할 뿐이다. 지구 같은 곳은 두 번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 나에 대하여 화를 내지 말아주게, 랠리. 우리는 제각기 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이 있어. 그것을 나는 했을 뿐이네. 자네가 우주선을 타고 우주 정찰군에 일생을 바치는 것과 마찬가지야. 열심히 근무하여 훌륭하게 되길 바란다, 랠리. 그리고 기타의 음을 맞추는 것을 잊지 말아다오. 지금도 너의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는 바트 오헤어." 편지는 여기서 끝을 맺었다. 랠리는 편지를 놓으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오헤어가 이런 짓을 할 줄이야,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어." "나는 예상하고 있었지. 꽤 오래 전에 오헤어는 내게 말했었어." 하며 하르는 지금에 와서야 처음으로 오헤어와 교제하고 있었다는 것을 털어놓았다. 이 말은 랠리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내게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어." 편지를 내려다보며 랠리는 중얼거렸다. 오헤어가 갑자기 반란 편으로 끼게 될 것이, 브라운이 라인하르트 선장 앞에서 알파 C 제 4행성의 자유와 독립에 대하여 웅변을 토할 때보다도 더욱 랠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다. 지구에 돌아가면 랠리는 아버지에게 오헤어를 소개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엄청난 경우에, 어찌 아버지는 랠리와 오헤어와의 우정을 용서하실 것인가. 오헤어는 우주 정찰군의 사관이 아니고, 우주선의 잡일을 하는 사나이다. 기관을 손보는 크고 큰 황소에 지나지 않는다. 더욱이 지금은 지구에 대하여 싸움을 걸어오는 반역자이다. 갑자기 랠리의 눈에 눈물이 흘러내리며,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오헤어 바보 녀석!) 랠리의 온 몸은 분노와 슬픔으로 떨렸다. (오헤어는 아무 짓도 못할 거야!) (반란에 참가시킬 수는 없어!) (런던 식민지로 도망가도록 해서는 안돼!) 오헤어의 돌연한 행동은 랠리의 마음을 너무나도 뒤흔들어 놓고 말았다. 두 동료는 말없이 서서 랠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누구도 랠리의 마음은 볼 수가 없었다. (아직 늦지 않을지도 모른다…) 랠리는 갑자기 문으로 향했다.     제 2의 배반자   "어디로 가는 거야?" 하고 하르가 물었다. "라인하르트 선장에게 보고하러 간다. 그러면 오헤어가 콥터(공중차)에 타기 전에 붙잡을 수 있을는지도 몰라." 라고 랠리가 대답하자마자, 하르는 재빨리 문과 랠리 사이를 막아섰다. "자네는 오헤어를 선장에게 밀고할 작정인가? 오헤어는 자네의 친구야!" 강한 체격의 하르가 문을 막고 있다. 약하고 작은 사나이인 하이틀은 옆에서 어쩔 줄 모르고 서있다. "비켜다오, 하르." 랠리는 부탁했다. 그러나 하르는 움직이지 않았다. "비켜라." 하며 랠리는 하르를 밀치며 돌진했다. 그러나 간단하게 밀려 나왔다. 하르의 몸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너도 반역자의 한 패구나!" 화가 치밀 대로 치민 랠리는 판단력을 잃었다. 오직 문에서 나가는 것만을 생각할 뿐이다. 다시 돌진했다. 하르를 끌어안고 필사적으로 문을 열려고 했다. 하르의 키는 165센티, 랠리의 키는 180센티, 물론 랠리가 훨씬 크다. 그러나 하르는 중력이 큰 목성에서 태어난 사나이다. 지구 태생인 랠리보다 체중도 무겁고 근육도 발달되어 있다. "이 녀석, 비키지 못하겠어!" 랠리는 있는 힘을 다해 밀고 당겼다. 그러나 하르의 몸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계속 밀치락달치락했다. 그러는 동안 하르는 문 쪽을 벗어나 방 모서리로 밀리고 말았다. (이때다!) 랠리는 결사적으로 하르의 무거운 몸을 밀어버리고 문 쪽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하르의 동작은 재빨랐다. 뒤에서 목을 잡고 놓지 않았다. 랠리의 힘으로는 상대를 마음대로 할 수가 없었다. 몸을 비틀며 주먹으로 하르의 가슴을 힘차게 쳤다. 그렇게 강한 하르도 멈칫하며 뒤로 물러섰다. 랠리는 자유로운 몸이 되었다. 두 사람은 서로 쏘아보았다. 거칠게 숨을 쉬면서 방안을 맴돌았다. 랠리는 하르의 햇볕에 그을린 얼굴이 마치 철가면을 덮어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하르에게 유리하다. 하르는 랠리를 될 수 있는 대로 시간을 끌어 방안에서 못나가게 하면 되는 것이다. 랠리의 얼굴은 분노에 이글이글 타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토론에서도 지고만 있었다. 그런데 지금 또다시 체력으로도 지고 있는 것이다. 드디어 랠리는 마지막으로 허리를 굽히고 마루바닥을 차며 어깨로 상대의 몸을 향해 돌진했다. 돌진한 순간 팔에 고통을 느꼈으나, 이 돌격은 성공한 모양이다. 하르는 균형을 잃고 뒤로 밀려났다. 그가 벽에 부딪친 틈을 타서 랠리는 문 쪽으로 달렸다. 문 옆에는 하이틀이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서 당황하고 있었다. "비켜라, 하이틀!" 랠리는 약하고 작은 연습생을 옆으로 밀치고 문을 열었다. 그러나 하르는 돌격을 당한 충격에서 회복되어 양손을 벌리며 달려들었다. 붙들리면 큰일이다. 목성 태생의 굳센 사나이에게 다시 붙들리면 큰일이다. 랠리는 복도로 뛰어나가려다가 무언가에 부딪쳤다. 그것은 사람이었다. 때마침 누군가가 방안으로 들어오려고 했던 것이다. "비켜…" 말을 끝맺기도 전에 랠리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상대는 바로 라인하르트 선장이 아닌가. 랠리는 당황해 하며 피했다. 호흡을 가다듬으려고 애썼다. 라인하르트 선장은 한참동안 아무 말없이 랠리를 바라본 후, 방안을 휘돌아보았다.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었나?" 랠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르도 아무 말이 없다. 하이틀도 무언이다. 세 연습생은 서로 눈을 마주치고 나서 선장 쪽을 보았다. "어찌 된 거야?" 선장이 독촉했다. 랠리는 할 수 없이 입을 열려고 했다. "실은…" 이 때, 밖에서 콥터의 이륙하는 폭음이 들려왔다. 라인하르트 선장은 재빨리 창가로 다가갔다. 이미 콥터는 식민지를 둘러싸고 있는 높은 성벽 위를 날아올라가, 밀림 상공으로 날아가는 것이 보였다. "누가 조정하고 있는가?" 선장이 급히 물었다. "오헤어입니다. 오헤어는 혁명 운동에 참가하기 위하여 런던 식민지로 간 것입니다!" 하고 랠리는 외쳤다. "그게 정말인가?" "정말입니다." 랠리는 똑똑히 대답했다. "너희들은 왜 싸우고 있었나?" "별일 아닙니다. 그것보다 선장님, 오헤어가 이런 편지를 제게 써 놓고 갔습니다. 반란에 참가한다는 결심을 써 놓고 있습니다." "음, 오헤어는 언제 이것을 남겨놓았지?" "방금 입니다.“ "그것을 왜 바로 내게 보고하지 않았나, 스타크 연습생?" "그건 저…" 랠리 스타크는 망설였다. 하르 엘리슨에 대하여 될 수 있는 대로 감싸주고 싶었다. 그러나 갑자기 잘 설명할 방법이 없다. 더욱이 하르의 지구에 대한 충성심이 어느 정도인지도 의심스러웠다. 그런 사나이를 친구로서 어디까지나 감싸줄 필요가 있을까 라는 생각이 문득 머리를 스쳐갔다. "실은… 엘리슨 연습생이 저를 말렸습니다. 그래서 즉시 선장님께 가지 못했습니다." 라고 말해 버렸다. 그러자 랠리는 친구를 판 기분이 들었다. 이 때, 문이 와락 열리더니 올코트가 방으로 뛰어들어왔다. "선장님! 오헤어 놈이 콥터를 훔쳐 도망갔습니다!" "알고 있다." 선장은 고개를 끄덕이고 랠리를 쳐다보았다. "오헤어가 반란에 참가했다고 했지, 스타크 연습생?" "그렇습니다. 제가 오헤어의 편지를 보고 선장님께 보고하러 가겠다고 말하자, 하르가 방해했습니다. 그래서 싸우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는데 때마침 선장님께서 오신 겁니다." "어떻게 싸웠나?" "처음에는 토론을 했습니다만, 결국에는 서로 붙들고 싸우게 됐습니다." "그런데 하르는 어디 있나?" "여기에…" 하며 랠리는 방안을 획 한 바퀴 돌아보았다. "선장님께서 왔을 때엔 틀림없이 여기에 있었는데…" "조금 전에 나갔습니다." 하이틀이 대답했다. "찾아와라. 이건 중대한 문제다." 하고 선장은 명령했다. 또 다시 폭음이 들려왔다. 랠리들은 일제히 창 밖을 내다보았다. 또 한 대의 콥터가 성벽 위를 날아오르더니, 밀림을 향해 멀어져 가고 있었다. "이제 잡을 수가 없습니다." 하고 랠리는 말했다.     밀림에 불시착   "하르도 반역자였던가? 지구에 충성을 맹세한 우주 정찰군의 연습생이?" 라인하르트 선장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랠리도 견딜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오헤어, 그 다음은 하르, 동료 중에서 두 반역자가 생겼다. "오헤어는 콥터를 훔쳐서 런던 식민지로 도주했다. 그 사실을 자네가 먼저 알고 나에게 보고하려다 하르 엘리슨 연습생과 다투었다. 그 엘리슨 연습생도 콥터를 훔쳐 런던 식민지로 도주했다. 그렇지?" 라인하르트 선장은 사건의 경위를 되풀이했다. "그렇습니다." 하고 랠리는 분명히 대답했다. "이렇게 되면 이쪽에서도 작전을 세우지 않으면 안되겠군. 너희들 두 사람-랠리 연습생과 하이틀 연습생은 콥터로 도망친 두 사람의 뒤를 쫓아라. 런던 식민지로 가는 거다. 그리고 그놈들을 만나게 되거든 자네들도 혁명에 가담하겠다고 말하라. 그리하여 놈들의 반란 계획을 조사하라. 그놈들이 무기를 가지고 폭동을 일으킬 기세면 즉시 이쪽으로 돌아와라. 그러면 우리는 우주 정찰군의 군용 우주선을 불러서 반란을 진압시키겠다. 그리고 도주한 두 사람은 반역죄로 체포한다. 올코트, 두 연습생에게 곧 콥터를 준비해 주게." 라는 라인하르트 선장의 목소리는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차가웠다. 올코트는 랠리와 하이틀을 데리고 건물 밖으로 나갔다. 대로에 콥터가 한 대 서 있었다. (2, 30년 전의 구식이다.) 하고 랠리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알파 C 제 4행성의 공장에서는 제트콥터를 만들 수가 없다. 전부 지구에서 가지고 와서 사용하고 있다. 콥터뿐만 아니라 식민지인의 생활은  아직 지구를 의존하지 않으면 안 될 것들이 많다. 랠리와 하이틀은 콥터를 탔다. 구식이지만 기계 설비는 표준의 것이었다. 랠리는 조종석에 앉고, 그 옆에 하이틀이 앉았다. 랠리는 기기를 점검하고, 엔진을 걸었다. 콥터는 부웅 떠올랐다. 런던 식민지는 이 곳에서 서쪽으로 1600km 떨어져 있다. 4개 식민지는 기하학적 형태로 위치하고 있었다. 콥터는 높은 성벽을 넘고, 빈터 위를 지나서 두 식민지 사이에 펼쳐져 있는 밀림의 상공으로 나왔다. 좌석을 동그랗게 덮은 투명창 너머로 내다보니, 수십 m 밑에 나무의 꼭대기에 익수룡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아래 지상에는 밀림의 큰 야수들이 먹이를 찾아 헤매며 서로 싸우는 것이 보였다. 랠리는 기분이 나빠서 콥터의 고도를 20m 더 올렸다. "그쪽에 가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 하고 하이틀이 말을 꺼냈다. "나도 모르겠어. 아무튼 반란의 정보를 알고 돌아오는 거지. 일이 잘 되면 하르와 오헤어를 데리고 올는지도 몰라." "그렇게 될까?" 하이틀은 코방귀를 뀌었다. 콥터는 밀림 위를 계속 날아갔다. 그러는 동안에 랠리는 연료 계기의 램프가 꺼지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연료가 거의 떨어졌음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출발 할 때 너무 서둘러서 연료 계기의 점검은 하지 않았던 것이다. 나침반은 콥터가 서쪽으로 똑바로 가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었다. 랠리는 콥터의 속도를 떨어뜨렸다. 만약 연료가 떨어지면, 콥터를 밀림의 밖에 착륙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한 시간이 지났다. "다행히 런던 식민지 가까이 갔으면 좋겠는데…" 하며 랠리는 식민지의 건물을 찾으려고 애를 썼다. 하이틀은 입술을 깨물고 잠자코 앉아 있었다. 랠리는 굳어진 얼굴로 콥터의 조종에 모든 정신을 집중시켰다. 연료 계기는 드디어 0을 가리켰다. 그러나 연료는 아직 탱크 속에 얼마 정도는 남아 있을 것이다. 랠리는 눈을 부릅뜨고 밀림의 먼 쪽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저 걸 봐." 하고 외치며 팔꿈치로 하이틀을 쳤다. "성벽이다!" 하이틀도 몸을 앞으로 내밀면서 창에 얼굴을 갖다 대었다. 앞쪽의 먼 밀림 너머에 푸른 초원이 펼쳐져 있고 그 전방에 식민지의 성벽이 우뚝 서 있었다. "시카고 식민지의 성벽 같다." 순간 랠리는 방향을 잘못 잡아 시카고 식민지로 되돌아 온 것이라고 느꼈다. 그러나 성벽은 시카고 식민지의 것보다 좌우로 길게 퍼져 있다. 나침반도 여전히 서쪽을 가리키고 있다. "틀림없이 런던 식민지다." 랠리는 안심했다. 그 순간 "연료가 떨어졌다!" 하고 하이틀이 처음으로 계기를 보고는 외쳤다. "알고 있네." 랠리는 일부러 하이틀에게 알려주지 않고 있었다. 둘이서 걱정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콥터의 연료탱크는 계기가 0을 가리켜도 어느 정도 여유가 있어. 그것을 의지할 수밖에 없지." 드디어 연료도 이제 바닥이 나고 엔진은 이상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런던 식민지까지는 15~6km 정도 남아있다. 도저히 그곳까지 갈 수는 없다. 둘은 1분 정도 아무 말 없이 날아갔다. 마침내 엔진이 정지되었다. "여기서 착륙해야겠어. 그리고 걸어야겠다." 랠리는 콥터의 고도를 낮추고 활공시켰다. 그러면서 착륙할 장소를 찾았다. 훌륭한 조종이었다. 콥터는 용하게 거대한 나무 사이를 빠져나가 소리 없이 착륙했다. 둘은 땅에 내렸다. 랠리는 우선 나침반으로 방향을 확인하고서, 하이틀을 재촉하여 서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런던 식민지의 성벽까지는 1760m, 그 중의 1600m가 밀림이야." 랠리는 앞에서 길을 찾았다. 밀림은 열대성의 거대한 수목이 빽빽이 들어차 있고 습기 찬 강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가지들은 서로 얽히고 설켜서 수십 m의 상공까지 뻗치고 있었다. 그러한 식물의 험한 생명력에 랠리는 새삼 놀랄 지경이었다. 낮인데도 어두컴컴한 밀림 속을 조심하면서 둘은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걸었다. 밀림은 살아 있다. 도처에서 수없이 울어대는 곤충의 소리, 익수룡이 날개 치는 소리, 개구리 같은 작은 동물이 시내에 뛰어드는 소리, 그리고 멀리서 공룡의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먼 공룡의 우는 소리 보다도 가까이 있는 곤충이 더 곤란했다. 크고 작은 갖가지 곤충이 끊임없이 두 사람 얼굴에 달려들어 깨물고 할퀴고, 귀 안에까지 들어가기도 한다. 때로는 칠면조만큼이나 커다란 잠자리가 힘찬 날개 소리를 내며 머리 위를 날아간다. 랠리는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걸었다. 하이틀은 숨찬 소리를 내어가며 따라왔다. 15분 정도 걸었을 때, "이제 5분쯤 지나던 밀림에서 벗어날 수 있어. 초원으로 나갈 수 있다고." 라고 말하고 랠리가 뒤돌아보니, 하이틀은 넘어져 있는 나무에 걸터앉아 있었다. "1분간만 쉬었다 가자, 랠리." 체력이 약한 하이틀은 피로를 이기지 못해서 이마의 땀을 닦고 있다. "가자, 하이틀. 조금만 힘을 더 내. 그러면 식민지의 성벽 안에서 푹 쉴 수가 있어." 어깨에 내려앉는 곤충을 쫓으면서 랠리는 말했다. "자아, 조금만 힘을 더 내서 가자." - 그러나 하이틀은 일어나려고 하지 않았다. 계속 땀을 닦고 있었다. "너무 무리야, 랠리. 나는 자네보다 약해." "그러나 이런 곳에서 주저하면 위험해, 하이틀. 가자, 자네와 발맞추며 천천히 걸을 테니." "알았어, 랠리." 하면서 하이틀은 찡그린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 "공룡이라도 나오면 좋겠다. 그놈을 잡아서 등에 올라타고 가면 되겠는데." 그 때, 숲 속에서 한 동물이 뛰어나와 놀란 눈으로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길이는 1m 정도, 두 발로 캥거루처럼 꼬리로 균형을 잡고 있었다. "공룡의 새끼가 아닐까? 나를 태우고 가기에는 무리군." 이렇게 말하면서 하이틀은 겨우 일어섰다. 둘은 천천히 걸어 2, 3분쯤 나아갔다. 굉장히 큰 나비가 옆을 스치며 지나갔다. 아름다운 여러 가지 빛깔로 된 날개는 접시만큼이나 크다. 캥거루와 비슷한 순한 작은 공룡이 또 두 마리, 조금 큰 것 한 마리가 맹렬한 속도로 두 사람 앞을 달려갔다.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다른 종류의 작은 동물 두서너 마리가 입에서 침방울을 튀기면서 랠리의 뒤쪽으로 달려갔다. 머리 위에는 익수룡이 높은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심상치 않아. 밀림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모양이야." 하며 랠리는 걸음을 멈추었다. 하이틀도 발걸음을 멈추고, 겁에 질린 얼굴로 사방을 돌아보았다. 왼쪽에서 수목이 부러져 나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뭘까?" 랠리는 놀라면서 소리난 쪽을 돌아다보았다. 어두컴컴한 수목 사이에 거대한 괴물이 보였다. 그것은 커다란 나무를 좌우로 쓰러뜨려 가며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두 꼬리다!" 이 행성의 밀림에 살고 있는 가장 거대한 공룡이다. 브라운은 사람을 해치지는 않는다고 말했지만 이런 밀림 속에서 이처럼 거대한 파충류를 만나면 태연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우리를 잡아먹지 않는다 하더라도 녀석이 지나가는 통로 길에 있다가는 밟혀 죽겠다." 랠리는 거대한 괴물의 움직임을 눈여겨보며, 그가 오고 있는 수목 뒤에 조그만 시내가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지, 놈은 물을 마시려 가는 길이구나.) 라고 생각하고 안심이 되었다. 랠리의 발 근처에서 녹색의 작은 동물이 나무줄기를 타고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나무 꼭대기로 달아나려고 하는구나." 다람쥐 같은 동물이 놀라 달아나는 것을 정신없이 구경하던 랠리는 갑자기 공포를 느꼈다. 물을 마시고 돌아가는 공룡이 온순하게만 가리라고 믿을 수 없다. 우리가 있는 곳을 지나가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옆에서 쓰러지는 나무가 랠리들의 머리 위에 넘어질지도 모른다. 밀림 속에 있을 동안은 언제나 위험한 것이다. 하이틀은 아직껏 앉아서 이마의 땀을 닦고 있었다. "일어나, 하이틀. 가자, 저쪽에 환한 것이 보이지, 그 곳이 초원이야." 하고 하이틀을 손으로 끌어당기면서 랠리는 걷기 시작했다. 이제 2백 m만 나아가면 밀림을 벗어날 수 있다고 느꼈다. "조금밖에 안 남았어, 하이틀." "안 되겠어, 랠리, 이제는 한 발자국도 걸을 수가 없어." 또다시 하이틀은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랠리가 아무리 손으로 당겨도 일어나려고 하지 않았다. 곤충과 열기로 말미암아 하이틀은 강행군에 완전히 지치고 말았다. 할 수 없이 랠리는 조금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밀림의 소란은 더 심해져 갔다. 공룡의 외치는 소리가 나무 가지를 흔들었다. 그 공룡이 어느 쪽에 있는지 분간할 수가 없다. 상당히 먼 거리 같기도 하고, 바로 옆인 것 같기도 했다. 작은 공룡 두 마리가 랠리 뒤쪽을 스쳐 지나갔다. 작은 동물들이 전부 같은 방향으로 달리고 있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랠리는 이상했다. 뭔가 무서운 것이 작은 동물들을 쫓고 있는 것일까? "출발하자, 하이틀 일어서…" 하고 랠리가 말할 때였다. 까르륵 ! 갑자기 머리 위에서 굉장한 소리가 나면서 밀림을 진동시켰다. 다음엔 찌지직 나무 부러지는 소리가 들려 오고, 대지는 지진처럼 흔들렸다. 랠리는 머리 위를 쳐다보고 숨을 삼켰다. 공룡의 굵은 목이 나무 끝에서 하이틀을 노리고 있지 않은가! 톱니 같은 흰 이빨을 드러낸 아가리까지는 지상에서 30m 쯤 되어 보였다. "하이틀, 빨리 나를 따라와!" 라고 외치며, 랠리는 정신없이 달려나갔다.     지하의 감방   공룡의 울부짖는 소리는 끊임없이 밀림 속에 메아리쳤다. 랠리는 정신없이 뛰었다. 160m쯤 가면 밀림에서 초원으로 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초원을 100m 쯤 가면 런던 식민지의 성벽에 도착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너무나 가까워서 꿈이 아닌가 느껴졌다. "이제 살았다!" 한숨을 돌리면서 랠리는 뒤를 돌아보았다. 2, 3m 뒤떨어져서 하이틀이 숨을 헐떡이며 창백한 얼굴로 필사적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순간 두 사람 뒤에는 공룡이 작은 산만큼이나 거대한 몸을 나타냈다. 그 머리는 나무 꼭대기 만한 높이로 랠리들을 노리고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뭔가 먹을 것을 찾고 있는 것 같았다. 하이틀은 나무뿌리를 차고 그 자리에 넘어졌다. "정신 차려!" 하고 급히 뒤돌아가서 하이틀의 손을 잡고 일으켰다. "가… 나는 상관 말고… 달려라!" 하이틀은 땅바닥에 딱 들러붙은 채 허덕거렸다. 그러한 광경을 공룡의 머리는 나무 꼭대기에서 잠자코 내려다보고만 있었다. 공중에서 내려온 담쟁이덩굴이 랠리의 얼굴에 부딪혔다. "따라와!" 하고는 랠리는 덩굴을 젖히면서 달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눈앞이 훤해졌다. 풀밭으로 나온 것이다. 100m 저쪽에 런던 식민지의 성벽이 높이 솟아 있는 것이 보였다. 허덕이는 숨소리가 들려왔다. 하이틀이었다. 이제는 한 발자국도 걸을 수 없다던 하이틀이 역시 공룡은 무서운 모양이었다. 자기 힘으로 밀림을 빠져 나온 것이었다. 대지가 지진처럼 흔들렸다. 밀림에서 공룡이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랠리는 겨우 성벽 문에 도착했다. 가쁜 숨을 내쉬면서 하이틀을 뒤돌아보았다. 하이틀은 드디어 기운이 다해 땅에 넘어졌다. 그것을 공룡이 이상스럽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떻게 할까…) 하고 랠리는 망설였다. 하이틀에게 달려가 일으켜 세우고 문까지 데리고 오고 싶다. 그러나 무리한 일이다. 하이틀이 있는 곳까지는 30m 이상의 거리이다. 설령 간다고 해도 데리고 돌아오기 전에, 두 사람 모두 공룡의 밥이 되고 말지도 모른다. 공룡은 하이틀의 몸 위에 거대한 몸통을 구부리  고, 캥거루 같은 작은 앞발을 하이틀의 몸에 갖다댔다. 땅에 살짝 엎드리고 있는 살아 있는 것을 자세히 보려고 큰 눈을 가까이 대었다. 하이틀은 살아 있다. 기어서라도 도망치고 싶으리라. 그러나 힘이 빠진데다가 너무 무서워서 생각대로 움직일 수가 없을 것이다. "그렇지." 문득 랠리의 머릿속에 한 계획이 떠올랐다. 사람의 머리 만한 돌을 주워서 문을 나왔다. 대담하게 공룡에게서 3, 4m 가까운 곳까지 다가갔다. 거기서 공룡의 추한 머리를 향해서 힘껏 돌을 던졌다. 공룡은 신음 소리를 내었다. 때를 놓치지 않고 또 한 개의 돌을 찾아서 던졌다. 뇌가 작고 지혜가 모자라는 큰 야수는 랠리에게 마음을 빼앗겨 하이틀은 잊어버렸다. 기회는 이 때다. 하이틀은 랠리의 작전을 알아차리고 몸을 일으켰다. 기어서 문으로 향했다. 공룡은 좌우로 머리를 돌려가며, 랠리와 하이틀을 번갈아 가며 보았다. "야아, 이쪽이다!" 랠리는 이쪽저쪽으로 눈이 돌아갈 정도로 장소를 옮겨가면서 돌을 주워서는 계속 던졌다. 공룡의 머리를 점점 혼란시켰다. 그 동안에 하이틀은 문까지 올 수가 있었다. 그러자 랠리도 문으로 달려 들어왔다. 랠리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공룡은 다시 하이틀을 생각해 내었는지 큰 몸통을 흔들며 머리를 움직여 가면서 냄새를 맡고 있었다. 이렇게 해서 둘은 겨우 안전한 식민지의 안으로 도망쳐 올 수 있었다. 공룡은 두 개의 먹이가 성벽 안으로 달아난 것을 알고, 긴 꼬리로 성벽을 치면서 작은 앞발로 문을 끌어 당겼다. 그러나 공룡을 대비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성벽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공룡이 자기 몸통으로 치면 칠수록 아프기만 할뿐이다. 마침내 공룡은 포기하였는지, 성벽을 떠나 천천히 밀림 속으로 사라져 갔다. 랠리와 하이틀은 문 안쪽에서 공룡이 돌아가는 것을 보고 있다가, 뒤를 돌아다보았다. 이미 녹색의 제복을 입은 사나이가 무기를 손에 들고 랠리들을 둘러싸고 있었다. 그들 중에는 하르도 껴 있었다. "왜 왔나?" 하며 하르가 물었다. 랠리는 차갑게 동료를 쳐다보았으나, 반역자 행세를 할 임무를 생각하고 일부러 부드럽게 말했다. "우리들도… 혁명에 가담하기 위해서 왔다. 그런데… 밀림 속에서 너희들의 큰 파수병의… 심한 환영을 받았다네." 아직도 랠리의 호흡은 고르지 못했다. "알고 있다. 공룡이 성벽 가까이까지 온 것을 우리도 보았다." 키가 큰 한 식민지 사람이 이렇게 말하고는 하르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르 엘리슨? 자네는 이 두 사람을 알고 있겠지?" "나는 의심한다. 특히 이 사나이를." 하고 하르는 랠리를 손으로 가리키면서 말을 이었다. "이 사나이는 지금까지 지구에 충성을 맹세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너는 우리 혁명에 참가하고 싶은가?" 하며 키 큰 사나이가 물었다. "그렇다." 하고 랠리가 태연스럽게 대답하자, 키가 작은 하르 정도는 아니지만 식민지 사람은 날카로운 눈초리로 랠리를 쏘아보았다. "이 사나이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스파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다른 한 사람이 외쳤다. 키가 큰 사나이는 지도자인 모양이었다. 모두의 의견을 듣고 나더니 침착하게 말했다. "이 두 사람을 잠시 동안 가두어 두지. 그러면 우리편인가 적인가 알 수 있겠지." 혁명군 사나이들은 랠리들을 이끌고 식민지의 시가지로 들어갔다. 시가지의 모습은 시카고 식민지와 꼭 닮았는데, 다른 것은 도로에 슬로건을 쓴 커다란 깃발이 죽 늘어서서 바람에 나부끼고 있는 것이다.   알파 C 에 자유를! 선거권이 없으면 세금도 못 내겠다! 우리는 독립을 요구한다! 지구의 쇠사슬을 끊어라!   그밖에도 푸르고 붉은 깃발이 높은 나무에 걸려 있었다. 사나이들은 랠리와 하이틀을 구식차에 밀어 넣고, 식민지의 반대쪽에 있는 큰 건물로 향했다. 키 큰 사나이는, "나는 런던 식민지에 있는 지방 정부의 대표다." 라고 자기 소개를 했다. 일행은 건물의 계단을 올라갔다. "이 곳이 알파 C 제 4행성 자유 세계의 중심이다." 하고 커터 대표는 말했다. 건물 내부는 텅텅 비어 있었다. "우리는 지금 제대로 가구를 갖출 수 없다. 전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 쓸 만한 가구를 모조리 시카고 식민지로 가져가고 말았다. 그 때문에 우리 손으로 응접용 가구를 만들어야 한다." 하며 커터는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을 손가락질했다. 랠리와 하이틀은 묵묵히 계단을 내려갔다. "다음 층엔 너희들이 있을 방이 있다.“ 이렇게 말하면서 커터는 계속 계단을 내려가고 있다. 그 곳은 어둡고 습기 찬 지하였다. "이 복도의 문을 좀 열어 주게." 커터가 앞서 걷고, 그 뒤를 랠리와 하이틀이 따르고 또 혁명군의 병사 두 사람이 뒤를 딱 붙어서 따라왔다. (처음부터 붙잡혀서 감방으로 들어갈 줄은 몰랐다.) 랠리는 런던 식민지에 온 것을 후회했다. "너희들에게 특별히 따로따로 방을 준비했다." 라고 말하고, 커터는 한 혁명군 병사를 돌아다보며 열쇠를 넘겨주었다. "한 사람은 여기, 또 한 사람은 A블록에 집어넣어라." "죄도 없는데 감금시키는가?" 하고 랠리는 항의했다. "자네의 충성심을 시험하기 위해서다. 자네가 하르 엘리슨처럼 진심으로 우리에게 가담해 주면 고맙겠다. 그러나 우리를 속이려고 온 것이라면, 한 번 더 위험한 밀림을 헤매어야 될 것이다." 혁명군의 병사는 하이틀을 데리고 구부러진 복도로 사라졌다. 감방의 문이 열리고 병사가 뭐라고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하이틀이 뭐라고 항의 하는 것 같은데 잘 들리지 않았다. 얼마 안 되어 철컥 하고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려 왔다. "이리 따라와라. 네가 있을 방으로 간다." 커터는 랠리를 데리고 다른 복도로 들어갔다. 자기 자신이 의심할 정도로 랠리는 냉정했다. 자기도 커터의 입장에 서면 역시 이렇게 하리라고 느껴진다. 그리고 공룡에게 쫓기다가 가까스로 생명을 구해서인지, 감옥쯤은 그렇게 무섭지 않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여기다." 감방의 문을 열면서 커터는 말했다. 랠리는 태연하게 걸어 들어가서 벽 쪽에 놓여 있는 단단한 침대로 가서 걸터앉았다. "이런 잠자리는 마음에 안 들겠지만, 일시적이니 참아 주게." 하고 커터가 말했다. "상쾌하고 좋은 밤일세, 커터." 랠리는 침대에 드러누우면서 비꼬았다. "도둑이나 들지 않게 문단속을 잘 하고 가게." "알았습니다, 손님." 하고 대답하며 커터는 히죽히죽 웃어가며 감방 문을 닫고 열쇠를 채운 후 곧 사라졌다. 캄캄한 방에 혼자 남은 랠리는 생각했다.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 몇 주일 전에 우주 정찰 사관 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사나이가, 지금은 혁명군에게 붙잡혀 지하 감방에 갇혀 있다. 랠리는 문득 쓴웃음을 지었다. 이것이 실제로 일어난 사건처럼 실감이 나지 않는다. 한숨 푹 자고 눈을 뜨면, 지구의 집에 돌아가 있는 것이나 아닐까. 그러나 꿈이 아니고 현실이었다. 랠리는 하르를 생각했다. 화성의 우주 정찰 사관 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그가, 우주 정찰군의 회색 제복을 벗어 던지고 혁명군의 녹색 제복을 입고 있다니. 오헤어도 그렇다. 식민지 인은 모두 키가 크지만, 오헤어처럼 3m나 되는 사나이는 드물다. 그 몸에 맞는 제복이 혁명군에 있었던가. 랠리는 갑자기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서 문 쪽으로 달려갔다. 철창 사이로 복도의 어둠을 노려보았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으나 어둠 속에서 이쪽으로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린 것이다.     혁명과 우정   어둠 때문에 랠리에게는 희미한 그림자가 가까이 오는 것을 느낄 뿐이었다. 발자국 소리는 감방 앞에 와서 멎었다. 금속 문을 두들기더니 누군가가 속삭였다. "랠리!" "나는 아무 데도 달아나지 않는다." 랠리는 불만에 차서 아무렇게나 대답했다. "나야, 하르다." 하고 문 밖에서 성냥을 켜는 소리가 났다. 불빛에 하르의 얼굴이 드러났다. "이 반역자." 랠리는 얼굴을 돌리며 말했다. "자넨 죄수야." 하르도 지지 않고 응수했다. 성냥불이 꺼지자, 두 사람의 모습은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커터가 너와 얘기하라고 나를 보냈다." "무슨 얘기를?" 랠리는 독촉했다. "커터는 너와 하이틀을 스파이라고 단정했다. 그래서 너희들을 계속 가두어둘 생각이다." "나는 진심으로 혁명에 가담하고 싶은 거다. 왜 그것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지?" "무리이니까." 하고 하르는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커터들은 나에게 어떠냐고 물었다. 그래서 나는 정직하게 대답했어. 너희들은 아직 라인하르트 선장의 명령에 따라 일하고 있다고…" 랠리는 그만 대답이 막혔다. 어둠 속으로 하르의 모습을 보려고 했다. 이제 와서는 하르를 미워하고 싶지 않다. "자네는 아직 라인하르트 선장의 편이지?“ 라는 하르의 목소리는 날카로웠다. "그래. 선장은 나와 하이틀을 스파이로 여기에 보낸 거야. 솔직하게 말한다. 거짓말을 한다고 해도 속지 않을 것이니." "물론이지. 우리는 속지 않아." 하르가 말하는 '우리'라는 것은 혁명 측의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둘은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랠리는 하르가 어둠 속에서 사라지고 없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하르는 이윽고 입을 열었다. "얘기해 보게, 랠리. 자네는 왜 라인하르트 선장 같은 그런 윗사람에게 충성을 지키고 있는가? 분명하게 대답해 보게. 자네는 곰곰이 생각해 본 일이 있는가? 그렇지 않으면 생각할 필요도 없이 지구 쪽이 정당하다고 맹목적으로 믿고 있는가?" "모르겠어." "자네는 지구의 어디에서 태어났나?" "애팔래치아야. 서반구 북아메리카 애팔래치아의 뉴욕시야." "나도 알고 있어. 지리에서 배웠어. 합병 전에는 아메리카 합중국이라고 불렸던 곳이지?" "그래." 하고 랠리는 인정한다. 이제 어둠에 다소 익숙해져서 하르의 얼굴이 희미하게 보았다. "랠리, 자네가 아메리카 태생이라면 이 반란의 의의를 모를 리 없잖아?" 라는 하르의 음성은 높았다. "자네는 자기 나라가 애초에 어떻게 출발했는가를 모르는가? 지금 이 알파 C 제 4행성에서 하고 있는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독립했다. 너는 아메리카 혁명의 표어를 알고 있는가?" 랠리는 갸웃거리며 생각해 보았다. 역사를 배운 것은 상당해 오래 전의 일이다. "아마, 선거권이 없으면… 없으면…" 랠리가 말이 막히자, 하르가 대신했다. "선거권이 없으면 세금을 못 내겠다." "그래, 생각이 난다." "옳은 말이야. 그 표어를 자네는 오늘 보지 못했는가? 잘 생각해 보게." 하르는 비꼬듯 말했다. "런던 식민지에 서 있는 깃발에 그 말이 씌어 있더군." "그래. 우리는 독립을 얻기 위하여 싸우던 아메리카의 입장과 같다. 그런데 자네는 식민지의 독립을 막으려는 대영 제국 패거리의 입장에 처해 있다는 것을 잘 알겠지. 어느 쪽이 옳은가는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그런데도 자네는 아직 라인하르트 선장에게 충성을 바칠 작정인가?" "뭐가 뭔지 모르겠군." 랠리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마음이 혼란하여 제대로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확실히 하르의 말에는 반박할 틈이 없었다. 하르가 옳고 자기가 틀렸다고 인정할 도리밖에 없는 것 같다. "랠리, 자네는 자네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들이 대대로 충성을 바쳤다는 이유 때문에 지구에 매달려 있을 뿐이야. 남자는 18, 19세가 되면, 스스로 사리를 판단하고 태도를 분명히 밝히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닌가? 그렇지 못하면 시대에 뒤떨어진 노인이다.“ "하르… 하르… 어떻게 하면 나는 혁명을 도와 줄 수 있나? 내가 어떻게 하란 말인가?" "자네가 진심으로 우리 혁명에 참가할 마음이 있는가? 만약 그랬을 때, 너의 아버지인 우주 정찰군 스타크 사령관이 안다면 어떻게 생각할까?" "물론 지구를 배반할 가치가 있는가 라고 말씀하시겠지." 하고 랠리는 조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면 나도 진심을 털어놓겠다. 커터 대표는 이미 혁명 계획을 착착 진행 중이다. 여기에 네가 할 일이 한 가지 있다." "무슨 일?" 랠리는 하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우리는 자네를 못 본 척하고 시카고 식민지로 되돌아가도록 해 준다. 그러면 너는 카르텐호의 우주 통신 장치를 파괴해 주는 것이다. 그래야만 라인하르트 선장이 우리가 무력으로 일어설 때까지 우주 정찰군의 응원 부대를 요청할 수 없게 된다. 그것이 우리에게는 무엇보다 중대한 문제다." 이 말을 듣고 랠리는 온 몸이 떨렸다. 우주선의 통신 장치를 파괴하다니! 랠리는 자기가 얼마나 중대한 입장에 서 있는가를 느꼈다. 비록 혁명은 찬성한다 할지라도 우주선을 손상시키는 파괴 행동은 도저히 할 수가 없다. 그러나 하르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보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통신 장치를 파괴한 다음에는 어떻게 되나?" "그럼, 우주 정찰군에 공격당할 염려 없이 혁명을 진행할 수 있어. 우리는 라인하르트 선장을 인질로 잡아둘 거야. 다른 지구인도, 지구인을 동정하는 눈치인 식민지 사람들도 한 사람 남기지 않고 체포하지. 그리고 방위 태세를 완벽하게 한다. 우리 식민지는 밀림 한가운데 있고, 공룡을 방비하기 위한 높은 성벽으로 요새화 되어 있어. 그렇게 간단하게 함락되지 않아. 또 한편에서는, 지구에 있는 제 4행성인이 우리가 지구로부터의 수출로 얻은 이익으로 군용 우주선을 사서는 이리로 가지고 오지. 그렇게 되면 이 행성의 방위도 완벽해져. 우주 정찰군의 공격 우주선이 쳐들어와도 지지 않아. 지구에서는 아마 알파 C 까지 공격 우주선을 보내는 막대한 비용과, 또 여기서 장시간 걸리는 게릴라전에 휘말려들 것을 생각하고, 원정을 포기하고 우리의 요구를 인정하여 줄지도 몰라. 그러나 아무튼 혁명이 성공하고 못하냐는, 우리의 준비가 완전히 정비될 때까지 라인하르트 선장의 통신 장치를 침묵시킬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있어." "알았어. 내가 혁명을 좌우하는 중대한 열쇠를 쥐고 있다는 말이군." 하며 랠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 점이야. 커터는 나에게 자네가 우주선의 통신사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굉장히 기뻐했어. 통신 장치를 파괴하는 데 가장 알맞은 사람이라고 말야. 어떤가, 랠리?" "3분간만 생각할 여유를 주게." 하고 랠리는 감방의 침대에 걸터앉아 괴롭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혁명 측이 정당한 것도 같고 지구가 못된 것도 같다. 양쪽이 모두 완전히 정당하지 못하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지구 측 방법이 더 공정하지 못한 것도 사실인 것 같다. 랠리는 지구가 나쁘다고 믿고 싶지는 않지만 하르에게 끈기 있게 설복 당하여 그 말을 인정하지 않을 수도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설령 혁명이 정당하다고 치더라도, 왜 자기가 말려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되는가? 혁명에 참가하지 않는다면 소원대로 우주 정찰군의 사관이 되어, 장차 언젠가는 알파 C 제 4행성인을 구조해 줄 때가 있을 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우주 정찰 사관을 꿈꾸며 열심히 노력해 온 보람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일평생 원시적인 행성에 살며 지구와 싸우게 될지도 모른다. 혁명은 정당하다고 하자. 그렇다고 해서 우주 정찰군의 견습 우주선 통신 장치까지 파괴하는 것은? 만약 혁명이 실패한다면 반역자의 누명을 쓰고 지구로 송환되리라. 그러면 군법 회의에 걸려 아버지의 명예까지 더럽히리라. 우주 정찰군의 사령관인 아버지는 아들이 왜 지구를 배반하고 혁명에 참가했는지 고통스러워하리라. 그리고 살아 계실 동안 반역자가 된 아들 때문에 괴로워하리라. "안되겠다." 하고 랠리는 말했다. "그게 대답인가? 커터는 너의 대답을 가슴 죄며 기다리고 있어." "안되겠어. 나로서는 할 수가 없어." 하고 랠리는 되풀이했다. 하르는 지난날의 동료를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최후에는 그렇게 말하리라고 생각했었어. 자네는 혁명을 이해하지 못해. 혁명을 이해는 한다 치더라도 혁명에 발을 들여놓는 것은 무리야." "나는 우주 정찰군을 포기할 수 없어, 하르. 나의 아버지와 지구의 일들이 머릿속에 맴돌아 어쩔 수가 없어. 자네들의 혁명은 정당하겠지만, 그러나…" 랠리는 여기서 말을 중단하고 말았다. "좋아, 자네가 거절했다고 커터에게 보고하지." 하고 하르는 냉정한 태도로 말하고는 등을 돌리고 문에서 멀어져 갔다. 랠리는 그를 불렀다. "하르!" "왜 그래?" 하르는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보았다. "나와 하이틀은 언제까지 감금시킬 작정이지?" "커터는 자네를 즉시 내보내 줄 작정이었어. 나는 열쇠를 가지고 왔었고. 그러나 이렇게 된 이상, 재판이 끝날 때까지 거기에 있지 않으면 안돼. 나는 자네가 내 부탁을 들어줄 줄 알았어. 그러나 실패야. 자네는 할 수 없는 놈이군." "재판이라니?" "스파이 행위에 대한 재판이야. 적의 땅에서 잡힌 스파이는 알고 있겠지?" ”나는 우주 정찰군의 제복을 입고 있어. 제복을 입고 있으면 스파이로 취급할 수 없지 않은가?" 화를 내면서 항의하자, 하르는 웃었다. "그만두게, 랠리. 이 혁명에 지구의 오래 된 국제법 같은 것을 적용시키려는 것은 웃음거리밖에 되지 않아. 우리의 생명은 오로지 이 혁명에 걸려 있어. 자네는 그것을 방해하려는 스파이야." "형은 어느 정도인가?" "만약 유죄로 결정되면, 지구와 같이 사형이야." "사형?" 랠리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어두운 주위가 한층 더 어두워진 것 같다. "그러니까 내 말을 들었어야 했어. 미안하게 생각해. 나는 옛날의 친구였다는 점 때문에 자네가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었었다. 그러나 자네는 거절했지. 나쁘게 생각하지 말게." "나를 도망시켜 주게. 자네는 열쇠를 가지고 있지 않은가?" "무리한 소리를 하는군. 우리는 카르텐호에서는 친구였지만, 지금에 와서는 적이야. 이 이상 자네를 살릴 방법은 없어. 달아나려면 자신의 힘으로 도망쳐." 하르는 등을 돌리고 걷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어둠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랠리는 꼼짝도 않고 바라보았다. 별로 하르를 원망할 마음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르에게는 혁명이 전부가 아닌가. 혁명 앞에는 지난날의 우정 같은 것이 무슨 가치가 있단 말인가.     탈 옥   랠리는 어둠 속에서 오랫동안 묵묵히 앉아 있었다. 지금의 랠리는 순교자인지도 모른다. 지구를 배반하면 목숨을 건질 기회도 있었는데, 그것을 거절하고 죽음을 선택한 것이다. 그러나 어쩐지 고귀한 행위라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바보 같은 짓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지구에 충성을 바쳐도, 지구는 나의 생명을 구해 주지 못한다. 모든 것이 꿈이다.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랠리는 또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알파 C 제 4행성의 지하 감방에 앉아서, 사형 판결을 받기 위한 재판을 기다린다는 것이 아무래도 믿어지지 않는다. 랠리는 손을 뻗쳐 벽에다 갖다대어 보았다. 축축하고 싸늘한 벽이다. 결코 꿈은 아니었다. 랠리는 순간 또다시 발자국 소리가 가까이 오는 것을 들었다. "하르인가?" 대답은 없었다. 자물쇠가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쇠문이 소리를 내며 천천히 열렸다. 커다란 그림자가 아무 말 없이 방안으로 들어 왔다. (재판을 기다리지 않고 나를 죽이려 온 것일까?) 하고 생각하며, 랠리는 긴장된 얼굴로 상대를 살폈다. 그림자는 낮으면서도 분명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소리내지 말고 조용해, 랠리. 난 오헤어야." 랠리는 깜짝 놀랐다. 반가움에 눈물이 핑 돌았다. "바트!" "그래. 이런 곳에서 자네를 만날 줄은 몰랐군. 하르는 자네를 분별없는 놈이라고 말했어. 그러나 자네는 꾀를 부릴 만큼 영리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 "그럼, 하르는 모든 것을 얘기했나?" "그래. 그러나 나는 자네를 설득시키려고 온 것이 아니야. 만약 자네가 여전히 지구에 충성을 바치겠다면 그것도 좋아. 나는 아무 할 말이 없다. 비록 정치에 대한 사상은 다르다고 할지라도 우리의 우정은 변함없는 것이 아닐까." "나는 스파이로서 재판을 받게 되어 있어, 바트." "알고 있어. 나도 자네만큼이나 괴롭다." "어떻게 해서 이 감방에 들어왔지, 바트?" "나는 이 감방의 간수야. 자네가 있는 방의 열쇠도 가지고 있어." "그랬던가…" 생각하고 나서 랠리는 말했다. "오헤어!" "왜, 랠리?" "나는 카르텐호로 돌아가고 싶어. 자네는 어떻게 할 수 있지 않나?" 그러자 오헤어는 고개를 돌렸다. 그것을 어둠 속에서도 똑똑히 알 수 있었다. "나로서는 할 수 없어, 랠리. 나는 혁명 측의 사람이야. 내 편지를 읽어. 적이면서도 친구이고, 친구이면서도 적이야. 만약 내가 너를 카르텐호로 돌려보내 준다면, 나의 입장은 어떻게 되지? 랠리, 안돼." "자네도 영리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 바트, 자넨 언제나 그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랠리는 얼굴이 따가웠다. 정당하지 못한 행위는 하기 싫었지만, '살아나는 것이 제일이다'라고 아버지에게 배웠다. "바트, 우주선 밖에서 고장 수리를 할 때의 일을 벌써 잊어버렸나!" 라고 말하는 랠리의 얼굴은 수치심으로 해서 붉어졌다. 그러나 살기 위해서는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잊고 있다고 생각하나, 랠리?" "바트, 스파이는 사형이야." 오헤어는 잠자코 랠리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이제는 적으로 갈라져 있다. 그러나 랠리에게 생명을 구조 받은 빚은 그대로 남아 있다. "알았다, 랠리. 너의 부탁을 거절할 수가 없구나. 인간의 사회에는 정치 사상보다도 중요한 것이 있으니까." 오헤어는 문을 열었다. "가게, 나가게." 고통스러운 오헤어의 목소리. "내 마음이 변하기 전에 어서 가게. 하이틀은 아직 여기에 있지만, 그 사람까지 내줄 수는 없어. 이 건물을 잘 빠져나가 뒤로 돌아가면 콥터가 있어. 시카고 식민지의 방향은 알고 있겠지, 동쪽으로 1600km야. 자, 나가게. 잘 가라, 랠리." 순간 랠리는 주저하였으나.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고마워, 오헤어. 그럼, 잘 있게." 이렇게 말하고 문을 나왔다. 살금살금 대여섯 걸음을 간 후 뒤돌아보았다. 오헤어는 텅 빈 감방 앞에 꼼짝도 하지 않고 그대로 서 있었다. 건물 밖으로 빠져 나오는 것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지만, 다행히 이 곳으로 올 때 기억해 두었기 때문에 구불구불한 복도까지는 쉽게 빠져 나왔다. 계단을 올라 1층 홀로 나올 수 있었다. 홀의 문은 열려 있었다. 혁명의 최고 지도자인 커터의 모습이 보였다. 책상에서 보고서 같은 것을 읽고 있었다. 그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홀을 빠져나가지 않으면 건물 밖으로 나갈 수 없다. 단숨에 달려서 빠져나가려고 생각했으나, 그렇게 하면 오히려 눈에 띄기 쉽다. 차라리 천천히 걷는 것이 좋겠다. 그러면 커터는 동료가 건물 안에서 걷고 있다고 생각하고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랠리는 애써 태연하게 천천히 홀로 들어섰다. 똑바로 앞을 향해 될 수 있는 대로 발소리를 죽여 가며 걸었다. l보, 2보, …, 5보, 6보… 갑자기 커터가 얼굴을 들었다. (아차!) 순간 랠리는 심장의 고동이 멎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다행히 커터는 곧 보고서에 눈을 돌렸다. 설마 지하 감방에 갇혀 있는 포로가 홀을 빠져나가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으리라. 랠리는 숨을 죽였다. 단숨에 달리고 싶은 충동을 겨우 참으면서 가까스로 출입문에 다다랐다. 뒤돌아보니 커터는 여전히 보고서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누가 지나갔는지 느끼지 못한 모양이다. 밖의 신선한 공기를 마시게 되자, 랠리는 이제 살 것 같았다. 알파 C가 바로 머리 위에서 노랗게 빛나고 있다. 저 아래쪽에는 푸르스름한 베타 C가 희미하게 떠 있다. 제 3의 태양 프록시마 C는 보이지 않았다. 그 붉고 작은 태양은 수평선 밑에 지고 있겠지. (콥터를 찾아야지.) 랠리는 오헤어가 가르쳐 준 대로 빠른 걸음으로 행정 건물의 뒤쪽으로 걸었다. 거기에 콥터는 보이지 않았다. "이거 야단났다!" 랠리는 입술을 깨물었다. 큰일이다. 콥터가 없으면 지하 감방에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시카고 식민지까지는 1600km의 밀림이 계속되어 있다. 그 곳을 무기 하나 없이 걸어서 되돌아갈 수는 없다. 여기에 올 때만 해도 밀림을 조금밖에 걷지 않았는데도 죽을 고생을 하지 않았는가. 머리 위에서 노리는 거대한 공룡의 머리와 무서운 익수종의 모습을 기억하자, 랠리는 절로 등골이 오싹해졌다. 어떻게 하든지 콥터가 있어야 한다. 랠리는 머리를 들고 100m 가량 되는 곳에 성벽이 우뚝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아니!" 랠리는 눈이 번쩍 뜨였다. 성벽 위에 콥터가 한 대 앉아 있지 않은가. 랠리는 성벽을 향해서 급히 걸었다. 장화의 밑바닥이 콘크리트의 길바닥을 걸을 때마다 덜컥덜컥 소리가 났다. 곧 성벽에 이르렀다. 돌계단이 구불구불 성벽 위에까지 연이어 있었다. 계단을 오르기 전에 랠리는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사방을 살폈다. 행정 건물에서 세 사람의 그림자가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나를 쫓아오는 사람이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랠리는 계단을 달려 올라갔다. 발의 무게와 싸우면서 콥터가 있는 꼭대기를 향해서 필사적으로 올라갔다. 아아, 성벽 위에는 뜻밖에도 사람이 있었다. 콥터의 프로펠러를 닦고 있다. 그 사람은 존 브라운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 놀라며 한참 동안 잠자코 바라보기만 했다. "여기는 무엇 하러 왔는가?" 하고 브라운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나도 그렇게 묻고 싶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 나는 자네의 콥터를 빌리고 싶다." "콥터를?" 브라운은 성벽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랠리도 같이 내려다보았다. 세 사람의 사나이가 계단을 올라오고 있다. 시간이 없다. "내 자네의 도주를 도와주리라 생각하나? 변명해도 소용없어. 저 세 사람은 너를 잡으려고 오는 사람이야." 브라운은 랠리의 입장을 환히 알고 있었다. "나는 콥터가 필요할 뿐이야." 랠리는 다시 한 번 말했다. "이것을 빌려줄 수는 없어.“ 브라운은 뒤따라오는 사람이 성벽 위에 올 때까지 랠리를 붙잡아 둘 작정이다. (전쟁에 수단 방법을 가릴 수 없다.) 랠리는 이렇게 마음먹고, 번개같이 브라운의 턱을 갈겼다. 상대가 넘어지는 것을 보면서 날쌔게 콥터로 뛰어 올랐다. 콥터는 구식이라서 엔진을 발동시키는 방법을 몰랐다. 랠리는 조종반을 재빨리 살펴보았다. 조금 시간이 걸렸으나, 가까스로 출발의 버튼을 눌릴 수가 있었다. 콥터는 큰 소리를 내면서 3m 공중으로 날아오르며 천천히 상승하기 시작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세 사나이가 성벽 위를 뛰어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브라운은 겨우 일어서서 콥터를 손가락질하며 뭐라고 떠들고 있었다. 시간이 없다… 랠리는 다른 버튼을 눌렀다. 그 순간 콥터는 수평 비행으로 바꿔지며, 굉장한 속도로 밀림 위로 나왔다. 다시 뒤돌아보니, 성벽 위에서는 네 사나이가 손을 흔들며 마구 외치고 있는 것 같았다. (저들이 콥터로 추적할 때까지 얼마나 걸릴까?) 그 때까지 될 수 있는 대로 멀리 날아가지 않으면 안되겠다고 랠리는 생각했다. 5분쯤 지났을까, 두 대의 콥터가 뒤쪽에서 나타났다. "좋아, 올 테면 와라." 랠리는 자신이 있었다. 브라운에게 빼앗은 콥터는 구식이지만 굉장한 속도를 낼 수 있었다. 일단 가까이 따라온 콥터는 차츰 같게 보였다. 드디어는 포기해 버렸는지 두 대 모두 되돌아가고 말았다. "이젠 안심이다." 랠리는 시카고 식민지를 찾아내는 데 모든 신경을 쏟았다. 동쪽으로 1600km 가면 된다고 오헤어는 말했다. 그런데 어디가 동쪽인가? 랠리는 나침반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런던 식민지의 성벽을 떠나올 때 방향을 확인할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그대로 곧장 계속 날아왔으니까, 이 방향이 동쪽이 아닐까? 주저도 되지만 하는 수 없다. 진로를 변경시키지 않고 그대로 날아야겠다고 랠리는 결심했다. 콥터는 순조롭게 계속 날았다. 밀림의 나무들이 신나게 뒤로 흘러가고 있다. 런던 식민지를 떠난 후부터 전후 좌우가 온통 밀림뿐이다. 다른 것은 아무 것도 눈에 뜨이지 않는다. 때때로 수목 사이에 거대한 공룡의 모습이 보였다. 이 밀림의 왕자들은, 다른 행성에서 침입해 온 밉상스러운 작은 동물이 두 패로 나뉘어져 싸우고 있다는 것에는 전혀 관심 밖이란 듯이 유유히 날고 있다. 익수룡이 밀림 위를 날아다니고 있다. 랠리는 1, 2분 정도 콥터의 속도를 떨어뜨리고 하늘을 나는 파충류의 생태를 관찰했다. 익수룡은 거의 날개와 긴 부리로 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날개는 얇고 부드러우며, 길게 뻗은 앞발의 넷째 발가락에서 박쥐같이 펼쳐져 있다. 겉보기에는 콥터같이 상당한 속도로 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나무 끝에서 둥둥 떠서 상하로 오르내리고 있어 속도는 그리 빠르지 못했다. 콥터는 순조롭게 날아가고 있었다. 단조로운 녹색의 세계를 내려다보고 있는 동안에 랠리는 시간가는 줄 몰랐다. 앞쪽에 회색의 점이 나타나더니 점점 커져 갔다. "시카고 식민지의 성벽이다." 방향은 틀리지 않았던 것이다. 랠리는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식민지의 위에 오자, 랠리는 착륙을 망설였다. 착륙시키는 버튼이 어떤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머리를 짜내어 생각한 끝에 좋은 방법을 생각해 내었다. 성벽 위의 공중에서 정지시키고, 줄사다리로 내려오면 되겠다. 한시라도 빨리 카르텐호로 되돌아가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러나 랠리는 여기서 또 망설였다. 라인하르트 선장에게 사실 그대로 보고하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하르 등이 원하는 대로 통신 장치를 파괴하는 것이 좋을 것인가? 아무튼 지구인의 동료를 만나는 것이 우선 급하다. 랠리는 무사히 콥터에서 탈출하여 성벽으로 내려왔다. 그러나 최초로 만난 식민지 사람에게 붙들리고 말았다. 햇볕으로 그을린 얼굴에 턱수염이 달려 있는 사나이다. "지구인이 있는 곳이 어디입니까? 나는 길을 잃었습니다." 식민지 사람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다. "지구인이 있는 곳? 당신은 혹시 돌지 않았나요?" 랠리는 놀랐다. 아직까지 악몽 속에서 헤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자기 머리를 의심했다. "우주 연습선 카르텐호로 온 지구인 말입니다. 확실히 시카고 호텔에 있을 겁니다. 나는 그만 길을 잃어서…" "당신, 여기서 시카고 호텔을 찾다니? 여기는 봄베이 식민지라오." "설마…" 하고 말을 계속하려다가 랠리는 입을 다물었다. 동쪽으로 날아간다는 것이 그만 서쪽으로 날아온 모양이다. 그래서 봄베이 식민지에 착륙한 것을 알게 되었다. 런던 식민지의 콥터가 추적을 그만두고 되돌아간 것은 아마 랠리가 방향을 잘못 잡고 가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리라. 잘못된 이상 이제 와서 하는 수 없다. 문제는 봄베이 식민지가 랠리를 잘 봐 주든지, 아니면 다시 감금될 뿐이다. 랠리는 큰맘먹고 말을 꺼냈다. "나는 곧 시카고 식민지로 돌아가야 합니다. 여기가 시카고 식민지인 줄 알고 잘못 착륙했어요." "그것 참 안됐는데…" 하며 턱수염이 난 사나이는 랠리를 봄베이 식민지 행정 본부에 안내 해 주었다. 봄베이 식민지 대표는 훤칠한 키에 얼굴이 잘생긴 사나이였는데, 랠리에게는 매우 발음하기가 어려운 이름이었다. 랠리는 봄베이 식민지에 그만 실수하여 날아왔다는 이야기를 했다. 물론 혁명 소동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말하지 않았다. 다만 콥터로 관광 여행을 하던 중 방향을 잘못 알고 이렇게 되었다고 얘기했다. 만약 런던 식민지에서 연락이 오면 만사는 끝난다. 도망자라는 것이 탄로 나기 전에 이 봄베이 식민지에서 빠져나가야 한다. 대표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카고 식민지의 방향을 가르쳐 드리지요. 콥터는 어디에 두었나요?" "성벽 위에 떠 있습니다." 하고 랠리는 대답했다. "호, 그래요. 왜 착륙시키지 않고요?" 하면서 대표는 육군 제복을 입고 출입문 곁에 서 있는 사나이를 손짓했다. 그러면서 랠리를 보고 웃었다. "익수룡에게 채여 어디로 날아가기 전에 착륙시켜 놓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리고는 제복의 군인에게 명령했다. "챈들러, 북쪽 140 지구 성벽 위에 콥터가 떠 있다. 그것을 착륙시켜라. 그러고 나침반을 준비하여 이분에게 시카고 식민지의 방향을 잘 가르쳐 드리고, 출발하도록 해 드려라." 랠리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이 식민지에는 아직 반란의 소동이 일어나고 있지 않은 것 같다. "급하시지 않으면 오늘 저녁 여기서 쉬고 가시지 않겠습니까? 손님으로서 대접하겠습니다."대표는 친절하게 말하였으나, 랠리는 그럴 겨를이 없었다. "아닙니다. 돌아가는 것이 늦어지면 동료들이 걱정할 테니까요." "그도 그렇겠습니다." 하면서 봄베이 식민지 대표는 랠리를 전송해 주었다. 챈들러에게 나침반을 빌리고, 조종법을 잘 배웠기 때문에 이젠 안심이다. 봄베이 식민지의 성벽을 출발하여, 시카고 식민지까지 랠리는 가장 가까운 거리를 날 수 있었다. 이번에는 틀림없는 시카고 식민지였다. 눈여겨본 건물들이 늘어서 있었다. 랠리는 성벽 위에 콥터를 착륙시키고, 호텔로 향했다. 혁명 측 사람에게 붙들리지 않을까 걱정되었으나, 거리에는 사람의 그림자도 없고 조용했다. 드디어 시카고 호텔을 찾았다. 시카고 식민지를 출발해서부터 얼마나 시간이 걸렸을까? 밀림 속을 헤매며 지하 감방으로 붙들려 들어가고, 봄베이 식민지까지 헛 비행을 하고 난 다음, 지금 겨우 도착한 것이다. 랠리는 피로에 지쳐 있었다. 우주 정찰군의 제복은 여러 군데 찢어지고 엉망이 되어 있었다. 얼굴도 땀과 먼지로 시커멓게 변해 있었다. 우선 목욕부터 하고 싶었으나. 라인하르트 선장에게 먼저 보고를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집으로 돌아가라, 지구인들아!   라인하르트 선장은 반란 소동으로 말미암아 그 동안 얼굴이 많이 여위어 있었다. "랠리 스타크 연습생, 지금 돌아왔습니다!" 랠리는 절도 있게 경례를 하려 했으나, 너무나 피로에 지쳐 있었으므로 몸이 마음대로 잘 움직여 주지 않았다. 선장은 성급하게 말했다. "때마침 잘 왔다. 어제 저녁의 집회 결과, 우리는 곤란한 입장에 처하게 되었다." 어제 저녁의 집회! 그러면 랠리의 모험은 24시간 이상 걸렸단 말인가! 피로에 지쳐 멍한 랠리는 생각을 정리했다. "자네가 이곳을 떠나고 없을 동안에, 시카고 식민지는 주민 투표로 혁명에 참가하기로 결정했다. 헨리크스 마을도 같은 주민 투표로 혁명에 가담하게 되었다. 봄베이 식민지만은 다시 지구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그러니 우리는 현재 혁명 소동 속에 처해 있다고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네는 런던 식민지에서 어떤 정보를 얻었는가?" 순간 랠리는 통신 장비를 파괴하는 계획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않기로 결심했다. "런던 식민지는 혁명의 중심지입니다. 혁명의 최고지도자는 커터라는 사람입니다. 이미 런던 식민지를 알파 C 제 4행성 자유 세계라고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커터는 혁명 정부의 지방 대표로 선출되었습니다." 이 때 노크 소리가 나더니, 지구 체제 밑에 있는 알파 C 제 4행성 식민지 정부 대통령 해리슨이 들어왔다. "대통령, 커터라는 사람을 알고 있습니까?" 하고 라인하르트 선장은 물었다. "런던 식민지의 혁명 지도자입니다. 반란을 일으킨 주모자의 한 사람이지요. 런던 식민지에서는 모두가 커터 밑에 단결하여, 만약 필요하다면 혁명 전쟁을 일으킬 작정입니다." "다른 식민지는? 싸울 태세입니까?" "시카고 식민지는 싸울 것입니다. 헨리크스 마을에 대해서는 자세히 모르겠습니다. 봄베이 식민지는 지구 체제파와 혁명파의 반반이지만, 유력한 자가 지구 체제 쪽이 많아 과격한 반란은 일으키지 않겠지요. 그러나 다른 식민지가 런던 식민지를 지지하면 동조할 것입니다." "하이틀 ․반 ․하렌 후보생은 어디에 있나?" 라인하르트 선장은 다시 랠리에게 질문했다. "저와 하이틀 연습생은 런던 식민지에서 체포되었습니다. 다행히 저는 탈옥에 성공했습니다만, 하이틀은 아직 감방에 있습니다. 저는 혁명군의 콥터를 훔쳐서 달아났습니다. 그러나 방향을 잘못 알고 봄베이 식민지에 도착하였습니다. 그 식민지 사람이 저를 이 곳으로 오도록 해 주었습니다." "런던 식민지에서 어떤 모습을 보고 왔는가?" "모두 반란 계획을 진행 중에 있었습니다." "좀더 자세히 보고하라! 그놈들이 무장하여 일어서는 장소와 때는?" 하고 라인하르트 선장은 언성을 높였다. "예, 그것은…" 랠리는 그만 말문이 막혔다.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자신도 느꼈다. "그 곳의 정보는 지구에 대하여 중대하다, 스타크 연습생. 알겠지? 자, 그러면 무엇을 탐지하고 왔는가?" "아무 것도 탐지하지 못했습니다." 선장의 눈은 분노에 이글이글 타고 있었다. "뭐, 아무 것도 탐지하지 못하고 돌아왔단 말인가? 자네는 정신이 있는가 없는가, 스타크 연습생?" 해리슨 대통령이 보기가 딱해서 뭐라고 말을 하려고 했으나, 라인하르트 선장은 눈 한 번 깜박이지 않고 소리쳤다. "스타크 연습생, 선장으로서 명령한다. 혁명에 대하여 듣고 본 것을 자세히 보고하라!" 랠리는 선장의 얼굴을 쳐다보고 이를 꽉 깨물었다. 명령은 명령이다. "혁명파는… 우리 모두를-물론 선장도 붙들어서 인질로 만들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하며 랠리는 하르와 오헤어, 커트, 그리고 혁명에 몸을 바치고 있는 사람들을 고발했다. 이 일을 아버지가 아신다면 뭐라고 말씀하실까? 지구에 충성을 바쳤다고 칭찬해 주실까, 아니면 친구를 팔았다고 노하실까? 랠리는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아무튼 동료를 밀고하고 배반한 것이다. 그러자 해리슨 대통령이 열의 있게 말했다. "만약 인질을 잡아 두면 투쟁은 오래 가고, 피가 피를 부르는 비참한 일이 일어납니다. 덕을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지금 평화적 수단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평화적 해결이라는 것은 일시적 방편에 지나지 않습니다. 혁명 운동을 완전히 타도하는 것, 해결 방법은 그것뿐입니다." 라인하르트 선장은 냉정하게 말하고, 책상에서 뭔가 쓰기 시작했다. "런던 식민지의 인구는 얼마지요, 해리슨 대통령?" "2천명 조금 넘을 것입니다." "음, 모조리 없애는 것은 마음에 걸리지만…" 라고 말하면서, 선장은 다시 일어섰다. "해리슨 대통령, 급한 용무가 있어서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랠리, 나를 따라오게." "어디로요?" "우주선이다. 해리슨 대통령, 대단히 죄송하지만 카르텐호의 승무원 전원을 급히 우주선으로 돌아오도록 전달하여 주실 수 없겠습니까?" "좋습니다. 그런데 당신들은 이 행성을 떠날 작정입니까?" 하고 대통령은 물었다. "아직 떠나지는 않겠습니다만, 우리는 성벽 안에서 너무 오래 머물고 있은 것 같습니다." 하고 선장은 비꼬듯 말했다. 랠리들이 카르텐호로 돌아오는 도중, 도로에 군중이 웅성대고 있었다. 지구인들이 통과할 때마다 그들은 더러운 말로 욕설을 퍼부었다. 중앙 대로에는 표어를 써 붙인 깃발이 곳곳에 나부끼고 있었다. 표어는 랠리가 런던 식민지에서 이미 본 것이 많았으나, 새로운 것들도 눈에 띄었다.   집으로 돌아가라, 지구인들아! 너희들은 보기도 싫다! 해리슨을 데리고 가라!   랠리는 도로에서 혹시 폭도들이 습격할까 걱정하였으나, 식민지인 군중은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욕할 뿐이었다. 성벽 출입문을 나와 풀밭을 지나고, 사다리를 올라 우주선에 들어가자, 겨우 마음이 놓였다. 랠리의 침실은 텅텅 비어 있었다. 마음이 허전했다. 문득 혁명군의 녹색 제복을 입은 하르와, 또 런던 식민지의 어두운 감방에 잡혀 홀로 있을 하이틀의 생각이 났다. 다른 승무원들도 속속 우주선으로 모여들었다. "이 구역 어딘가에 제 3우주 정찰 선단이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곧 이 공문을 보내라." 라인하르트 선장은 조금 전에 호텔에서 쓴 공문을 내밀었다. "예, 즉시 보내겠습니다." 하고 랠리는 경례를 하고, 통신실로 향했다. 장치가 통신이 가능할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에 공문을 읽었다.   라인하르트 선장이 우주 정찰 사령관 카아 장군에게 긴급보고 X4. 알파 C 제 4행성에서 혁명이 진행 중. 혁명군은 지구인과 지구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인질로 붙잡을 계획을 세우고 있음. 폭동을 진압하기 위한 군용 우주선을 빨리 보내 주십시오, 벌주기 위하여 폭도의 근거지 런던 식민지를 부분적 또는 전면적으로 파괴시켜야 하겠음.   랠리는 몇 번인가 되풀이하여 읽었다.   (벌주기 위하여 런던 식민지를 부분적 또는 전면적으로 파괴해야 하겠음.) 부분적, 또는 전면적 파괴. 부분적, 또는 전면적 파괴.   랠리는 이럴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 우주 정찰군의 우주 선단을 부르면 오헤어와 하르는 물론, 아무 죄도 없는 가련한 하이틀까지 죽고 만다. 그리고 알파 C 제 4행성은 목성의 식민지 반란 때와 같은 길을 걷고 만다. 수백 명, 수천 명의 식민지 사람들은 죽임을 당하고 혹시 살아남은 사람은 반역죄로 죄인 노동자가 되어 일평생을 혹사당한다. 랠리가 공문을 보낸다면, 자유를 원하는 알파 C 제 4행성의 희망은 일순간에 물거품이 되고 만다. 통신 장치에 통신을 할 수 있다는 불이 들어왔다. 랠리의 손가락은 자동적으로 우주 통신 장치의 조종반 위로 미끄러져 갔다. 그리하여 우주 정찰군의 군용 우주선단을 불러내는 전파를 우주 공간에 보내기 시작했다. "이쪽은 센타우리 구역, 군용선단 X16532이다. 그쪽은?" 랠리의 귀에 빠른 군용 우주선단의 통신사의 소리가 들려 왔다. 랠리는 공문을 내려다보았다. [부분적 또는 전면적 파괴] 공문 용지를 손으로 구겨 보았으나, 그것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그쪽은?" 하는 금속적 소리는 다시 들려왔다. 랠리는 구겨진 용지를 펴들고 선장의 필적을 들여다보았다. 아무래도 안되겠다. 도저히 보낼 수가 없다. "그쪽은?" 하고 또 군용 선단에서 부르는 소리가 났다. 랠리는 스위치를 꺼버리고 통신실을 나오고 말았다. "공문은 보냈는가?" 저쪽 복도에서 라인하르트 선장이 물었다. "아직 보내지 못했습니다, 선장." 랠리는 떨리는 음성을 억누르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기계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1, 2분 후에 다시 해보겠습니다." "빨리 해라. 폭동이 일어나기 전에 군용 우주선단을 부르지 않으면 늦는다." "알겠습니다, 선장" 하고 랠리는 통신실로 다시 돌아가, 또다시 통신 장치를 켰다. 명령이기 때문에 통신을 중지할 수는 없다. 그러나 랠리는 런던 식민지를 전멸시키는 것을 도울 마음이 나지 않았다. "이쪽은 우주선단 X16532. 그쪽은?" 같은 소리가 또 들려왔다. "라인하르트 선장으로부터 제 3 우주 정찰 사령관 카아 장군에게." 랠리는 힘없는 목소리로 통신을 시작했다. "사령관에 연결시키겠다." 군용 우주선의 통신사가 대답했다. 랠리는 자기 앞에 복잡하게 늘어서 있는 통신 장치들을 우두커니 바라보았다. 몇 초, 아니 길어도 수십 초안에 카아 장군의 목소리가 들려오겠지. 그리하여 랠리가 공문을 보내면, 알파 C 제 4행성은 완전히 파괴되고 만다. 싫다! 그런 엄청난 일을… 랠리는 통신실의 출입문을 열고 복도를 살펴보았다. 때마침 키가 큰 연습생 폴 켄벨이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이쪽은 카아 사령관." 통신 장치에서 굵은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폴." 하고 랠리는 동료를 불렀다. "왜 그래, 랠리?" "이리 좀 들어와." 랠리는 손에 들고 있던 공문을 바라보았다. "보내라. 그쪽 공문을 기다리고 있다." 하고 카아 사령관은 되풀이했다. "이 공문을 자네가 좀 보내다오, 폴." "왜 자네가 보내지 않지? 자네가 할 일 아닌가?" "접속이 나쁜가? 이쪽 소리가 들려는가? 어서 대답하라." 카아 사령관은 계속 응답을 재촉하고 있다. 땀방울이 랠리의 이마와 얼굴에서 흘러내렸다. 라인하르트 선장만 지금 여기에 오지 않으면 잘 되어 가겠지- "부탁한다, 폴. 나는 급한 용무가 있어." "무리야. 나는 통신 방법을 모르잖아." "간단해. 이 용지에 씌어 있는 공문을 읽으면 되는 거야. 할 수 있겠지?" "그렇다면 해 볼게. 공문을 이리 줘." 폴은 억지로 고개로 끄덕였다. 이 때, 찰칵 하는 소리가 났다. 카아 사령관이 너무 기다리다가 지쳐서 통신을 끊은 것이리라. "괜찮아, 곧 불러줄 테니까." 며 랠리는 다이얼을 돌렸다. 군용 우주선의 통신사는 또 나오며 투덜댔다. "왜 이래 ? 우리를 놀릴 작정인가?" 몹시 화가 난 모양이다. 통신사답지 않은 말투이다. "여기에 앉아서…" 고 랠리는 폴을 억지로 의자에 앉혔다. "이것을 읽으면 돼." 고 말하며, 형편없이 구겨진 공문 용지를 넘겨주었다. 폴은 용지를 펴들었다. 그러자 랠리는 통신실을 나왔다. 통신을 보내는 것을 듣고 있을 수가 없을 것 같아서다.     진공 작전   랠리는 문 밖에서 잠시 머뭇거리다가 돌아섰다. 다시 통신 장치가 있는 곳으로 되돌아갔다. 폴이 막 공문을 읽으려는 순간이었다. "잠깐, 그것을 내게 줘, 폴. 아무래도 내가 해야겠어." "도대체 뭐 하는 거야, 랠리! 장난하고 있나?" 순한 폴도 벌컥 화를 냈다. "미안하다. 내가 보내겠어." 랠리의 얼굴에서는 또다시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폴이 자기의 이상한 행동을 선장에게 보고할지도 모르겠다. "자네가 보낸다면 그만이지 뭐. 왜 기분이 나쁜가?" 마음씨가 좋은 폴은 랠리의 이상한 행동이 기분이 나빠서 그러는 줄 아는 모양이었다. "공문을 보내라." 통신 장치에서 독촉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폴은 방에서 나갔다. 랠리는 통신 장치 앞에 앉으며 공문을 들여다보았다. "공문을 보내라. 왜 꾸물거리는가?" 상대방은 화가 난 목소리로 재촉했다. 랠리는 대답하려고 입을 열려다 그만 입을 다물어 버렸다. 그리고 손을 뻗어 스위치를 꺼버렸다. 그대로 조용히 앉아 통신 장치를 한참 동안이나 바라보고 있었다. 랠리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운명의 공문은 결국 보내지 못하고 말았다. 오헤어, 하르, 하이틀-그리고 혁명에 참가한 모든 식민지 사람들을 랠리 스타크가 구한 것이다. 그러나 자기가 영웅적 행위를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랠리는 공문을 찢었다. 갈가리 찢어진 종이 조각이 바닥에 흩어졌다. 그리고 다음에 통신 장치의 냉각 회로에 손을 집어넣어, 조심스럽게 회로기판을 빼냈다. 이것은 예비 부속품이 없는 중요한 회로기판이다. 한참 동안 그것을 들여다보고는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아버지 스타크 사령관은 이 행위를 인정해 주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랠리로서는 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었다. 랠리는 장치 속을 손으로 더듬어서 회로의 배선을 끊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우주 통신 장치를 파괴하고 만 것이다. "이제 이 장치는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랠리는 주머니에 집어넣은 회로기판 손으로 만지면서, 마루바닥에 흩어져 있는 공문 조각들을 힐끗 돌아보고 통신실을 나왔다. "공문은 보냈는가?" 하고 라인하르트 선장이 물었다. "보냈습니다." 라고 랠리는 조용하게 대답했다. 경례를 하고 복도를 빠져 나와, 승강 계단을 지나 지상으로 나왔다. 아버지에 대한, 우주 정찰군에 대한, 지구에 대한, 하르에 대한, 오헤어에 대한, 혁명에 대한 것 등을 차례차례 생각하면서 풀밭을 지나 시카고 식민지의 성벽으로 향했다. 지금 랠리가 만나고자 하는 사람은 존 브라운이다. 시카고 호텔은 이미 지구인이 거주할 곳이 못되었다. 젊은 식민지 사람들이 차지하여 혁명 본부가 되어 있었다. "존 브라운이 여기에 있는가? 있으면 곧 만나자고 전해 다오." 랠리는 정면 입구에 서 있는 식민지 병사에게 부탁했다. "브라운에게 무슨 용무가 있는가?" 문지기는 랠리의 제복을 차가운 눈초리로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꼭 만나야 할 일이 있다." "글쎄, 브라운이 당신을 만나 주실까?" "급한 용무다. 꾸물거릴 시간이 없다." 랠리는 문지기가 거절하는 것을 뿌리치고 억지로 호텔 안으로 들어섰다. "저 놈을 붙잡아라!" 문지기가 소리치자, 식민치 병사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소동이 일어났다. "이런 곳에서 왜 이리 야단들이야?" 귀에 익은 음성이 들렸다. 소동은 멈추었다. 랠리는 두 식민지 사람에게 팔을 붙들린 채 얼굴을 들었다. 눈앞에 존 브라운이 서 있었다. "자네는 대단히 강하군. 우주 비행사가 되기보다 레슬링 선수가 되는 것이 좋을 뻔했어. 나는 자네가 봄베이 식민지를 비행했다는 것도 들었다." "소동을 일으켜 미안하군, 브라운. 나는 꼭 콥터가 필요해서…" "콥터는 회수했다. 그런데 여기는 왜 왔는가?" "나는 런던 식민지에 가야겠어. 그 곳 사람들에게 경고할 일이 있다. 나를 런던 식민지에 데리고 가 주지 않겠는가?" "무엇을 경고한다는 거지? 자네는 거기에 한 번 가보아서 몸서리가 쳐질텐데, 그래도 또 가고 싶은가?" "그 때는 명령으로 갔었다. 이번에는 나의 뜻으로 가고 싶다. 가도록 해 주겠는가?" 하며 랠리는 식민지 사람에게 붙들린 팔을 뿌리쳤다. "그렇다면 자네는 또 혁명 측에 가담하겠다는 건가? 너처럼 지조가 없는 사나이는 처음 본다. 그러나 마침 내가 런던 식민지에 갈 용무가 있으니 자네를 손님으로 대접하여 데리고 가 주지. 그쪽에 가거든 자네가 좋을 대로 경고를 하든지, 마음대로 해라. 이 사나이를 묶어라." 하고 브라운은 말했다. 식민지의 사나이들은 다시 랠리에게 덤벼들었다. 이번에는 반항하지 않고 묶였다. 그리고 콥터 뒤에 실렸다. 브라운은 조종석에 앉자, 곧 콥터를 이륙시켰다. 시카고 식민지에서 런던 식민지까지 순식간에 날아갔다. 콥터는 런던 식민지의 중심부에 있는 넓은 광장에 착륙했다. 브라운이 콥터에서 내리자 먼 곳에 있던 군중들이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곧 커터와 녹색의 제복을 입은 혁명군 사나이들이 나타났다. "자네들의 손님을 다시 데리고 왔다." 하며 브라운은 콥터의 안을 가리켰다. 제복의 사나이들이 달려들어 랠리의 묶은 것을 풀어 주었다. "자네는 이 녀석을 어떻게 체포했나, 브라운?" 하고 커터가 물었다. "체포한 것이 아니야. 스스로 우리 본부에 찾아와서 여기에 오겠다고 원하길래 끌고 왔을 뿐이다." 브라운은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내 말을 들어주게…" 하고 랠리는 말했지만, 아무도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없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 오헤어가 서 있었다. 랠리를 보더니 놀란 얼굴로 눈을 깜박거렸다. "이 지구인을 다시 독방에 처넣어라." 하고 커터는 제복의 사나이에게 명령했다. "당신들은 예정대로 출발할 것인가?" 하고 브라운은 물었다. "그렇다.“ 커터는 크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을 이었다. "모든 혁명군은 30분내에 런던 식민지를 출발한다. 한밤중까지 가서 제 1캠프를 치고, 날이 밝을 무렵에는 제 2캠프를 친다. 즉 내일 저녁에 시카고 식민지에 들어가서, 지구인들을 체포하고, 또다시 우리들이 숨을 장소를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 두 혁명군의 병사는 랠리를 끌고 가려 했다. 때마침 거기에 하르가 나타났다. "랠리, 왜 되돌아왔는가?" "하르, 내 말을 듣게." 랠리는 병사들에게 팔을 붙들리면서, 필사적으로 말을 꺼냈다. "라인하르트 선장은 나에게 공문을 전송하라고 명령했어. 그는 우주 정찰군의 제 3우주 정찰 선단을 불러서 혁명을 지지한 벌로서 런던 식민지를 파괴하려고 해." "그건 큰일이군! 카터에게 이야기해야겠어! 곧 진공 작전에 들어가지 않으면 늦어." "서두를 것은 없어, 하르 그것보다 이 병사들에게 내 팔을 놓아주도록 말해 주게. 이상한 것을 보여 주겠네." "손을 놓아. 그러나 경계해라." 하고 하르는 병사들에게 명령했다. 병사들은 랠리의 손을 놓고, 대신 총을 겨누었다. "하르, 내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어 주게. 내가 내 손으로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으면 총을 든 병사가 쏠지도 모르니까. 그 주머니에 들어 있는 것을 꺼내 주게."하며 랠리는 부탁했다. "주의해, 하르." 한 병사가 말했다. 하르는 랠리의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통신 장치의 부품을 꺼냈다. "통신 장치의 부품 아닌가?" "그래. 카르텐호의 우주 통신 장치에서 가장 중요한 회로기판이야." "진짜인가?" "보면 알 거야." "랠리?" 갑자기 하르는 랠리 가까이 다가섰다. 그리고 랠리의 눈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랠리 네가 이것을 통신 장치에서 떼어낸 것이 먼저인가 나중인가? 즉 라인하르트 선장의 공문을 전송하기 전인가, 후인가?" “나는 전송하지 않았다. 전송하는 대신에… 장치의 회로를 파괴시키고 이 전자관을 떼어내 가지고 왔다.” "랠리!" 햇볕에 그을린 하르의 얼굴은 상기되었다. 그 때 커터가 가까이 다가왔다. "이 지구인을 왜 데리고 가지 않지? 무슨 일이 있었나, 하르?" "그렇다. 라인하르트는 우주 정찰군에 부탁하여, 런던 식민지를 완전히 파괴시키려 하고 있다. 그런데, 그 공문을 보내기 전에 랠리가 통신 장치를 파괴시키고 여기로 왔다고 한다." 기쁨에 떨리는 목소리로 하르는 보고했다. "정말인가?" "이 회로기판이 확실한 증거다." 라고 말하면서, 랠리는 손을 뻗어 하르가 가지고 있는 회로기판을 도로 빼앗았다. "우주선에서는 통신 장치의 회로를 수리할 수 없어. 이 부품은 다시 구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시카고 식민지로 쳐들어가면 선장을 쉽게 체포할 수 있겠군. 그런데 선장은 네가 통신장치를 파괴한 것을 알고 있는가?" "통신 장치를 사용하지 않는 한 폭로되지 않는다. 내가 선장에게 공문을 보냈다고 보고해 두었으니까." 갑자기 커터는 힘차게 달리기 시작했다. 하르도 랠리의 팔을 가볍게 치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커터의 뒤를 따라갔다.     대 행 진   랠리는 밀려드는 석양의 그림자가 길게 뻗어 있는 도로에 홀로 서서, 알파 C 제 4행성의 맛있는 공기를 힘껏 마시고 있었다. 지금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있었다. 지구도, 아버지도, 우주 정찰군도, 모든 것이 과거의 꿈이었다. 그리고 지금 랠리는 홀로 조용한 거리에 서 있다. "하이틀은?" 문득 생각이 났다. 약하고 키 작은 연습생은 아직도 지하 감방 어느 곳에 갇혀 있을까? 커터들은 런던 식민지를 한 사람도 없게 하여 텅 빈 진공 지대로 만들 계획이다. 그러나 스파이 혐의로 체포된 하이틀은 홀로 그 어둡고 습기 찬 지하 독방에 팽개쳐져 있을 것이 아닌가. 랠리는 지하 감방이 있는 건물을 찾으리라고 결심했다. 그러나 성벽 가까이에 있었다는 것 외에는 모른다. 랠리는 조용한 거리를 급히 걸어갔다. 10분쯤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다가, 벤치에 앉아 있는 한 노인을 발견했다. "행정 건물은 어디입니까? 지하 감방이 있는 건물인데요." "자네는 왜 이런 곳에 남아 있나? 다른 사람들은 모두 시가에서 나가고 말았는데." "부탁합니다. 가르쳐 주십시오!" 그러자 노인은 왼쪽을 가리켰다. 랠리는 미친 사람같이 달렸다. 그리고 눈에 익은 건물을 찾아내어, 돌계단을 올라갔다. 열려 있는 출입문으로 뛰어들며 외쳤다. "하이틀, 하이틀!" 하고 부르며 지하 감방으로 통하는 출입문에 이르렀다. "하이틀!" "그렇게 소리 지르지 않아도 좋아, 랠리!" 문득 뒤에서 누군가가 말했다. "하이틀은 커터들이 데리고 갔어." "오헤어!" 랠리는 기쁨의 소리를 지르면서, 큰 사나이에게 달려들었다. "지금 문단속을 하고 있는 중이야. 이렇게 해 두면 건물을 잘 지킬 수 있다고 커터가 생각했어. 자, 밖으로 나가자." 큰 사나이 오헤어는 정면의 출입문을 닫았다. 그리고 밖에서 자물쇠를 잠갔다. "자, 이만하면 안전하겠지." "기다려 주게, 오헤어." "미안하지만 지금은 안돼. 커터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어. 아무튼 캠프에서 자네를 만나게 될 거야." 하며 오헤어는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어둠이 짙어 가는 중앙 대로를 성큼성큼 걸어갔다. 먼 곳에서 집합 나팔 소리가 들려왔다. 랠리는 어둠 속에서 믿음직한 큰 사나이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고 있었다. 다시 집합 나팔 소리가 조금 전보다 크고 길게 울려 퍼졌다. "런던 식민지의 동지 여러분에게 고한다!" 커터의 목소리가 곳곳에 있는 확성기에서 흘러나왔다. "여러분, 우리는 지금 진공 작전에 들어가고 있다. 잘 들어라. 다음 집회 나팔이 불던 우리는 동쪽 문에 집합한다. 다시 한 번 말한다. 동쪽 문이다. 거기에서 우리는 미리 계획을 세운 대로 대행진을 한다. 우리는 무장하고 밀림으로 나아간다. 공룡을 겁낼 필요는 없다. 그놈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강력한 조명으로 겁을 먹고 달아날 것이다. 런던 식민지에서 30km 되는 곳에 제 1캠프를 설치한다. 거기에는 5백 명의 동지가 남아서 계획대로 캠프를 요새화 한다. 다른 사람은 날이 밝을 때까지 런던 식민지에서 80km 떨어진 곳까지 나아가서 제 2캠프를 친다. 여기에서도 500명이 남는다. 다른 사람은 시카고 식민지에서 10km 떨어진 제 3캠프에 공중 수송된다. 그리고 헨리크스 마을의 대원들과 합류하여 시카고 식민지에 돌입하여 지구의 우주선을 탈취한다! 자, 그러면 각자 출발 준비를 서둘러, 다음 집회의 나팔 소리가 날 때까지 대기하라." 밤의 어둠은 만물을 감싸고, 차가운 공기가 몸에 스며드는 밤이었다. 랠리는 며칠 동안에 일어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쳐 갔다. 알파 C 제 4행성에 대하며, 랠리는 중대한 역할을 담당했다. 그리고 랠리는 크게 깨달았다. 자기가 보는 입장에서뿐만 아니라, 아버지가 보는 입장에서도 설 수 있었다. 아버지는 언제나 입버릇처럼 나에게 가르쳐 주시지 않았던가. (우주 정찰군 사관은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이 판단하고, 자신이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 랠리는 아버지를 배반한 것 같았으나, 사실은 아버지의 가르침을 지킨 것이다. 랠리는 도로를 천천히 걸었다. 콥터가 지상에 앉아 있었다. 그것을 보고 랠리는 주머니에서 회로기판을 꺼냈다. 아직 랠리는 알파 C 제 4행성의 운명을 손안에 쥐고 있다. 만약 지금 콥터를 타고, 시카고 식민지에 날아가서, 카르텐호에 되돌아가, 회로기판을 우주 통신 장치에 도로 끼어 넣으면 혁명은 궤도에 오르기 전에 끝이 나고 말 것이다. 랠리는 회로기판을 들여다보며 미소를 띠었다 "우주 정찰군 사관은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이 판단하고, 자신이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고 랠리는 큰 소리로 외쳤다. 어두운 하늘에 별들이 총총 빛나기 시작했다. 알파 C와 베타 C는 지평선 밑에 지고, 프록시마 C만이 아직 하늘 한 모퉁이에 진홍색의 빛을 내면서 도로를 불그스름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랠리는 포기한 심정으로 별하늘을 우러러보았다. 우주 정찰 사관이 되어, 별에서 별로 우주를 날아다니는 것이 소원이었던 소년 시절의 꿈이 지금 사라져가고 있다. 데네브와 리겔과 프로키온 등의 별에도 갈 기회가 영원히 사라져 가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지구에도 돌아가는 것을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구-랠리 가 태어난 행성. 랠리가 사랑한 행성, 집에도 두 번 다시 되돌아갈 수가 없게 된다. 랠리는 그리운 태양과 아홉 개의 행성을 찾아보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암흑의 하늘에 빛나고 있는 무구한 별들의 사이에 가려서 찾아낼 수가 없었다. 아니, 찾아내지 못하는 것이 더 좋겠지. 최후의 집합 나팔이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 다시 한 번 랠리는 별하늘을 쳐다보았다. "우주 정찰군 사관은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이 판단하고, 자신이 행동하지 않으면 안된다." 하고 랠리는 입안에서 중얼거렸다. 언젠가는 아버지는 랠리가 취한 길이 정당했다고 인정 해 주시겠지. 지구를 위해서만이 아니고, 자기 자신을 위해서도 아니었다. 진실을 위하여 랠리는 혁명에 참가했던 것이다. 그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다. 랠리는 통신 장치에서 빼 낸 회로기판을 조용히 들여다보았다. 별빛으로 희미하게 비치는 면을 손가락으로 쓰다듬었다. 그리고는 머리 위로 높이 쳐들어 힘차게 대지 위에 내리쳤다. 회로기판은 산산조각으로 깨어져 콘크리트 위에 흩어졌다. 그 조각 하나하나가 프록시마 C의 빛을 받아 붉은 색으로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갑자기 랠리는 달리기 시작했다. 이미 시카고 식민지를 목표로 한 혁명의 대행진은 시작되고 있었다. 노여움과 희망을 안고 전진하고 있는 사람들의 물결을 향해, 랠리는 달리고 또 달렸다.   (끝)     작품 해설   공룡에 대하여   공룡은 지금부터 2억 년 전에서 7천만 년 전까지 약 1억 3천만 년 동안 지구의 여러 곳에 살고 있었습니다. 공룡은 도마뱀의 친구인 파충류이고, 공룡이 번성하여 살고 있던 때를 파충류 시대라고 부르는 학자도 있습니다. 공룡은 작은 산만큼 큰 것도 있으리라고 상상됩니다만, 이 소설에는 자세히 나오고 있지 않습니다. 다음과 같이 설명을 하겠습니다.   1. 프테라노돈 보통 익수룡이라고 말하고, 하늘을 나는 공룡입니다. 큰 것은 날개를 펴면 9m에 가깝습니다.   2. 스테고사우루스 검룡이라고 말하고, 기묘한 갑옷 같은 것으로 온 몸을 덮고 있습니다. 머리에서 꼬리까지 약 6m의 길이, 전투기의 수직 꼬리 날개와 같은 골판이 두 줄 등에 있습니다. 꽁지에 4개의 날카로운 침 같은 깃이 있어서, 강적이 습격해 오면 이것으로 자신의 몸을 지킵니다. 식물을 먹고삽니다.   3. 티라노사우르스 이것이 공룡의 주인공입니다. 다른 초식 공룡을 잡아먹고 삽니다. 그 이빨은 악어의 이빨보다 수십 배 날카롭고, 다른 공룡의 등뼈를 용이하게 깨물어 박살냅니다. 길이 15m, 높이 6m, 몸무게 10톤 이상입니다.   4. 이구아노돈 이구아나라는 도마뱀을 닮았으므로 이구아노돈이라고 불리었습니다. 길이는 9m, 나무의 새싹들을 대단히 좋아합니다. 고기는 맛이 있으므로 티라노사우루스 등이 가장 즐겨 잡아먹었습니다.   공룡은 왜 멸망했을까?   공룡은 몸집도 큰데 왜 사멸되었을까요. 그 까닭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첫째로 두뇌가 둔한 것입니다. 사람은 몸무게의 50분의 1 무게의 뇌를 가지고 있는데, 공룡은 2만 5천분의 1밖에 가지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그 두뇌로서는 온 몸을 마음먹은 대로 활동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다음은 대식이라는 것입니다. 코끼리는 하루에 50~60Kg의 나뭇잎과 식물이면 살 수 있으나, 브론토사우루스는 450킬로그램을 먹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한파나 산불에 의해서 식물과 나뭇잎이 줄어들면 굶어죽을 수밖에 도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외의 강적, 그것은 작은 포유류 동물입니다. 지혜가 발달한 이 작은 포유류들이 집단적으로 공룡의 알을 깨먹기도 하고, 새끼들을 잡아먹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지구에서는 공룡이 한 마리도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영국의 네스호에서 실제로 공룡을 보았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만일 공룡이 나타난다면 그것이야말로 세계의 일대 뉴스가 되고도 남을 것입니다.  
1197    절대 0도의 수수께끼 ♣ E. S. 가드너 지음 댓글:  조회:279  추천:0  2023-08-23
절대 0도의 수수께끼 ♣ E. S. 가드너 지음   액체 침략자 ♣ R. M. 파뤼 지음     절대 0도의 수수께끼   괴이한 유괴 사건················ 6 대답은 '아니오'················ 10 총경 허풍 떨다················· 15 투명 인간이란 말인가·············· 19 그랜트 가의 창고················ 23 범인은 이미 사라지고·············· 26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32 얼어 버린 잉크················· 36 미치광이 과학자················ 39 울려 퍼지는 총 소리·············· 42 절대 0도···················· 51 은행장도 사라지다··············· 56 루비도 사라졌다················ 60 또 다시 옷만이················· 65 밀퍼스 가 6372번지··············· 70 악마가 모습을 드러냈다············· 72 악마의 최후·················· 77   액체 침략자   검은 호수··················· 84 화상 입히는 물················· 87 3명의 청년 과학자··············· 90 여과성 바이러스················ 94 인간 쪽이 더 하등 동물이다·········· 100 말하는 액체·················· 102 두려운 액체 생물··············· 107 소금에 취한 액체 생물············· 111 대성공···················· 117 나를 다시 호수로··············· 120 금을 만들자·················· 125 교환조건··················· 130 슈미트도, 액체 생물도············· 136 배반자의 최후················· 141 포위되었다·················· 147 군대 출동··················· 149 상대하기 벅찬 적··············· 151 최후의 수단·················· 154 데이의 결의·················· 158   작가와 작품에 대하여············· 163   절대 0도의 수수께끼   ♣ E. S. 가드너 지음 등장 인물   ● 덴저 필더 : 유괴된 억만 장자. 몸값을 지불해 주도록 경찰에 편지를 보냈지만…. ● 핸더 총경 : 로스앤젤레스 경찰 본부의 수사 부장. 협박장을 받고는 24시간 이내에 범인을 체포하겠다고 큰소리를 치지만……. ● 샘즈 : 덴저 필더의 비서. 덴저 필더의 행방을 혈안이 되어 찾고 있다. ● 앨버트 크롬 : 천재 과학자. 그러나 자기의 발명을 정부에 팔려다가 실패하고 지금은 약간 정신이 돈 상태다. ● 알리 기자 : 루비 기자와 경쟁 관계에 있는 '스타'신문의 유능한 기자. 이번 사건에서도 루비 기자와 서로 특종 기사를 얻기 위하여 경쟁을 벌인다. ● 시드 로드니 : 유명한 핑커튼 탐정소의 뛰어난 탐정. 은행으로부터 사건 수사를 의뢰 받는다. 언제나 침착하며 머리가 명석하다. ● 솔로몬 : 덴저 필더가 거래하는 은행의 은행장. 지독하게 꼼꼼하며 유괴범이 요구하는 몸값을 지불하지 않는다. ● 루비 기자 : '크랠리온' 신문의 여기자이며 로드니의 친구. 맡은 일에 매우 충실하며 어디라도 용감하게 달려간다.   괴이한 유괴 사건   로스앤젤레스 경찰 본부 핸더 총경의 방에는 한밤중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나이들이 모여들었다. 신문 기자들이다. 그 기자들의 시선이 지금 한 사나이를 응시하고 있었다. 억만 장자인 덴저 필더 씨의 비서 샘즈를……. 자고 있는 것을 흔들어 깨워 황급히 달려나온 듯했다. 셔츠의 칼라는 때에 찌들어 있고 넥타이는 비뚤어져 있으며 눈은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그는 지금 한 통의 편지를 받아든 참이었다. 읽기 시작하는 그의 눈은 긴장한 탓인지 더욱 가늘어졌다. "아니, 이건." 하고 그가 말했다. "어떻소? 그 편지의 글씨가 덴저 필더 씨의 필체가 확실합니까?" 핸더 총경이 초조한 목소리로 물었다. 샘즈는 고개를 끄덕였다. "틀림없습니다. 분명히 협박을 받고 어쩔 수 없이 쓴 것입니다." "뭐라고 써 있습니까? 핸더 총경, 내용을 밝혀 주실 수 없습니까?" 한 신문 기자가 핸더 총경에게 부탁하듯이 말했다. 핸더 총경은 아무 말 없이 샘즈의 손에서 그 편지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큰 소리로 읽기 시작했다.   핸더 총경님께. 저는 덴저 필더입니다. 지금 어떤 사람에게 유괴되어 어딘지 모르는 곳에 감금되어 있습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저의 목숨을 구하고자 하신다면 지금 즉시 이 사건에 대한 수사를 중단해 주십시오. 그리고 저의 몸값으로 50만 달러를 빨리 그들에게 지불해 주십시오. 저의 은행 예금은 현재 20만 달러밖에 없습니다만, 제가 거래하는 은행의 솔로몬 은행장에게 부탁하면 부족한 돈을 곧 빌려 줄 것입니다. 총경님께서 솔로몬 은행장에게 그렇게 해 달라고 부탁해 주십시오. 몸값을 지불하는 방법은 50만 달러를 007가방에 넣어 제 비서인 밥 샘즈에게 시켜 차이나타운에 있는 마우라는 중화 요리집 뒷문에 있는 쓰레기통에 넣게 하고 샘즈는 자동차를 타고 왔다가 다시 자동차로 되돌아가도록 하십시오. 단, 샘즈는 반드시 혼자 오지 않으면 안 됩니다. 경찰이 따라오거나 지폐의 일련 번호를 적어놓거나 하면 나는 곧 살해될 것입니다. 이 사실을 꼭 지켜 주십시오. 믿겠습니다. 나를 잡아 두고 있는 사람은 굉장한 천재 과학자이며 두뇌가 명석한 무시무시한 사나이입니다. 저는 무서워 죽을 지경입니다. 아무쪼록 급히 서둘러 주시기 바랍니다. 덴저 필더.   "이런 편지요." 핸더 총경은 매듭짓듯이 말했다. "나에게 직접 배달된 것이오." "그렇지만 아주 이상한 협박 사건이군요. 보통 협박 사건이라고 하면 범인은 경찰에 알리면 죽이겠다고 하는 것이 상식인데 오히려 경찰 본부의 핸더 총경에게 편지를 보내다니……." 스타 신문의 알리 기자가 말했다. "즉, 범인은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것일까요?" 여기자인 루비가 덧붙여 말했다. "아니면 미치광이겠지. 이런 일은 범죄자가 생각해 낼 수 있는 일은 아니야. 요구를 들어 주지 않으면 보내 줄 테지." 핸더 총경이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두 가지 모두이거나. 매우 자신만만한 사람 아니면 미치광이일 거요." 이렇게 말한 사람은 지금까지 잠자코 있었던 한 사나이였다. 바로 시드 로드니. 유명한 핑커튼 탐정소의 명탐정이었다. 사건이 발생한 다음 은행이 특별 수사 요원으로 선정한 인물이다. 샘즈가 로드니에게 한 발자국 다가섰다. "로드니 씨, 당신은 은행이 어떻게 할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덴저 필더 씨를 구해 내기 위해서 모자라는 30만 달러를 빌려 줄까요?" 모든 사람의 시선이 이번에는 로드니에게 쏠렸다. 로드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덴저 필더 씨의 필적이 틀림없음을 이미 샘즈 당신이 확인했고 또 핸더 총경도 덴저 필더 씨의 목숨이 위험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은행에 돈을 지불하는 편이 나을 것이라는 나의 견해를 전할 생각입니다." 모두가 안심하는 표정이었다. 그 때, 쿵쿵 하고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대답은 '아니오'   핸더 총경이 방문을 열었다. 문 밖에 서 있는 사람은 은행장 아서 솔로몬 씨였다. 무표정하게 차가운 눈초리로 방안의 사람들을 빙 둘러보았다. 여느 사람과는 달리 옷차림도 깔끔했으며 수염도 깨끗이 면도한 침착하기 그지없는 모습이다. "나오라는 연락 받고 왔소, 핸더 총경." 말투도 마치 돌덩이처럼 딱딱하다. "꽤 늦으셨군요, 솔로몬 씨. 저는 수염도 깍지 못하고 옷도 갈아입지 못한 채 집에서 달려나왔습니다만." 샘즈가 못마땅한 듯 말했다. "사람이 죽느냐 사느냐 하는 생사의 갈림길 아닙니까?" "그렇다고 해서 굳이 흉한 몰골을 하고 나와야 할 까닭은 없지 않소?" 은행장은 싸늘하게 한 마디 내뱉고는 핸더 총경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총경, 용건이 뭔가요?" 핸더 총경은 편지를 건네 주었다. 은행장은 의자에 걸터앉아 주머니 속에서 안경을 꺼내더니 먼저 손수건으로 안경알을 닦았다. 그리고는 불빛에 안경을 비추어 깨끗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비로소 편지를 펼쳤다. 그리고 읽기 시작했다. "그럴 듯하군."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말했다.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은 은행이 몸값을 지불할 것인지의 여부입니다. 솔로몬 씨,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방안은 쥐죽은듯이 조용했으며 모든 사람의 시선이 솔로몬을 응시하고 있었다. 로드니가 입을 열었다. "핑커튼 탐정소로서도 덴저 필더 씨의 목숨을 위험으로부터 구해 내기 위해서는 일단 돈을 지불해 줄 것을 권하는 바입니다." 은행장은 힐끗 로드니를 쳐다보았다. "이 사건에 대해 뭔가 알아 냈소?" "아직 없습니다." "음." 은행장은 뭔가 생각하는 듯 고개를 끄덕거리기만 하고 있었다. "솔로몬 씨! '스타' 신문으로서는 빨리 당신의 대답을 듣고 싶습니다. 아니 아마도 이것은 전 시민이 바라는 바일 것입니다." 알리 기자가 다그치며 말했다. 은행장은 천천히 안경을 벗었다. "그렇다면 대답하겠소. 대답은 '아니오'입니다!" 그 순간 방안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비서인 샘즈가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다. 당장에라도 그에게 덤벼들 것 같은 태도였다. 그런 감정을 그는 용케도 꾹 참고 있는 것이다. "덴저 필더 씨가 돌아오기만 한다면 그까짓 30만 달러 정도는 바로 갚을 수 있소! 그 정도는 당신이 더 잘 알고 있는 사실 아닙니까!" "그건 인정합니다." 은행장은 여전히 냉정하게 말했다. "그리고 이건 그의 글씨임이 분명해요." "그것도 인정합니다." "그런데, 도대체 당신은 어째서 돈을 내 주지 못하겠다는 겁니까?" 비서인 샘즈는 마치 잡아먹기라도 할 듯이 말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은행은 50만 달러를 지불해야 할 의무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의 예금은 20만 달러입니다. 그러니 20만 달러까지라면 언제든지 지불할 용의가 있습니다." "20만 달러만 갖고는 반액도 되지 않으니까 이렇게 당신에게 부탁하는 것 아닙니까!" "그건 곤란합니다. 그렇게 되면 유괴범은 우리를 깔보고 더욱 더 날뛰게 될 것입니다. 또한 다른 범죄자들도 이런 범죄를 흉내내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입니다. 그래서 나는 지불할 수 없다는 결론을 얻었고 그 결론을 이미 여러분께 말씀드린 것입니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일단 덴저 필더 씨의 생명이 안전하게만 된다면 경찰은 전력을 기울여 범인을 체포할 것입니다." 핸더 총경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나 은행장은 경멸하듯이 피식 웃어 버렸다. "지금까지 성공한 예가 없습니다. 앞으로도 실패만 하게 될 것이 뻔합니다." 은행장은 이렇게 말하고는 일어섰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뿐입니다. 그럼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샘즈 비서가 은행장 앞을 가로막았다. "솔로몬 씨, 잠깐! 이건 한 인간의 목숨이 걸린 문제요!" "은행의 안전도 걸려 있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샘즈 씨!" 은행장은 이렇게 말하고 샘즈를 밀어젖히더니 부랴부랴 방에서 나가 버렸다.   총경 허풍 떨다   문이 꽝 닫혔다. 모두가 서로 얼굴만 바라볼 뿐이다. 헨더 총경은 땅이 꺼져라 하고 길게 한숨을 쉬었다. "나쁜 놈! 돈에 눈이 먼 지독한 수전노!" 샘즈 비서가 외쳐댔다. "그 놈은 지금까지 덴저 필더의 덕을 본 주제에 이제 와서 배신을 하고 이렇게 냉정하게 거절하다니!" 샘즈가 모자를 움켜쥐었다. "여기 있다간 미쳐 버릴 것만 같습니다. 나에게 더 이상 볼일이 없으면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핸더 총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샘즈는 나갔다. "가엾어요. 너무 흥분해 있어요." 하고 '크랠리온' 신문의 루비 기자가 말했다. "무리도 아니지. 지금 자기 회사 사장이 살해될 지경에 처해 있으니 말이오." 또 다른 기자가 말했다. 그리고 나서 핸더 총경을 뒤돌아보았다. "그런데 총경님! 이 사건에 대해 경찰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듣고 싶군요. 신문에 기사를 써야겠습니다." "좋소. 그럼, 이렇게 쓰시오. '경찰은 지금 매우 유력한 새 단서를 잡았다. 24시간 이내에 반드시 범인은 체포될 것이다.' 하고 말이오." 핸더 총경이 자신만만하다는 듯이 가슴을 펴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 새로운 단서라는 게 뭡니까?" "그것은 아직 발표할 수 없소!" 핸더 총경이 벌컥 화를 내자 신문기자들은 황급히 방을 나가 버렸다. 이제 방안에는 핸더 총경과 로드니 탐정만 남았다. "총경……. 아무래도 당신은 허풍을 떤 것 같군요. 새 단서란 건 거짓이었죠?" 로드니가 조용하게 다 안다는 듯이 말했다. 총경은 로드니를 한 번 힐끗 쳐다보더니 이내 자기 자신이 한심스럽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실은 말일세……. 이렇게 라도 하지 않으면 경찰의 명예가 완전히 땅에 떨어질 텐데 어쩌겠나?" "하지만 그랬다가 만약 범인이 잡히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명예고 뭐고 체면이 땅에 떨어질 것 아니겠소?" "그러니 대체 어쩌면 좋겠나? 자네에게 뭐 좋은 생각이라도 있으면 좀 들려 주지 않겠나?" "음, 뭐 없는 건 아니지만……." 로드니가 담배를 피우면서 무심코 말하자 총경은 정신이 번쩍 드는지 벌떡 일어섰다. "정말인가?" "음, 믿지도 않을 테지만." 바로 그 때 방문이 빠끔히 열리더니 두 사람의 남녀가 뛰어 들어왔다. "그게 뭡니까? 말씀해 주십시오!" 그들은 루비 기자와 알리 기자였다. "당신들은 뭐요? 아직 신문사로 돌아가지 않았소?" "로드니 씨가 뭔가 열쇠를 쥐고 있을 것 같아 문 옆에서 엿듣고 있었죠. 어서 그걸 말씀해 주십시오!" "끈질긴 사람들이군." 로드니는 쓴웃음을 지었다. "할 수 없군. 그러면 당신들 두 사람만 특별 케이스요. 그 대신 내가 허락할 때까지는 절대로 발표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시오. 어떻겠소, 총경. 괜찮겠죠?" "어쩔 수 없지." 핸더 총경도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로드니는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꺼 버렸다. "지금까지 나는 이 사건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소. 할 말이 없어서 그랬던 것은 아니었소. 내가 생각할 때 이 사건은 겉보기보다는 훨씬 심각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오." "음." 하고 총경이 침을 꿀꺽 삼켰다. "이건 내 육감이지만 이 사건의 범인은 보통 유괴 사건의 범인보다는 몇 배나 머리가 뛰어난 것 같소. 경찰에게 직접 편지를 보냈다는 점이 바로 그 증거요. 그래서 나는 덴저 필더를 유괴할 만한 동기를 가진 사람의 기록을 닥치는 대로 모조리 조사해 보았소." "하지만 그 정도는 경찰에서도 조사해 보았소." 핸더 총경이 중간에 끼여들어 말참견을 했다. "맞아요. 하지만 경찰은 전에 덴저 필더에게 돈을 요구했다가 실패한 일당을 면밀하게 조사하지 않은 것 같더군요." "음……. 그건 그랬지. 하지만 이해 관계가 없는 일이오." "그렇지만 나는 오히려 거기에 흥미를 느꼈던 겁니다. 즉, 돈을 요구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자 앙심을 품고 있는 놈이 틀림없이 있을 거라고 말입니다. 나는 그런 짓을 할 만한 녀석을 찾아내었습니다." "그게 누군가?" "앨버트 크롬이라고 하는 남자죠. 그런 이름 들어본 적 없습니까?" 핸더 총경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루비 기자가 말했다. "저……, 그 사람 얼마 전에 새로운 발명을 했느니 어쨌느니 하며 문제를 불러일으킨 그 과학자 아닌가요?" "맞았소. 바로 그 사람 말이오." 하고 로드니가 말했다. 알리 기자도 무릎을 탁 쳤다. "아아, 그 남자라면 기억하고 있어요! 정부에 속임수 발명을 팔려다가 거절당하자 정부를 제소하겠다던 그 허풍선이 말이죠?" "그 사내가 어쨌다는 거야?" "아니, 증거는 없습니다. 단지 내가 그 사내를 만났을 때 뭔가 좀 이상한…… 어쩐지 기분이 나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사내는 곧잘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당치도 않은 짓을 하곤 했거든요." "그 따위 느낌은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어. 싱거운 사람 같으니……." 핸더 총경이 흥 하고 코웃음을 쳤다. 바로 그 때 누군가가 갑자기 밖에서 문을 열었다. 깜짝 놀라 뒤돌아보았더니 방금 나갔던 샘즈가 새파랗게 질려서 들어오는 것이었다. 뭔가 사건이 터지기라도 한 듯이!   투명 인간이란 말인가   "어찌 된 일이오?" 샘즈는 비틀거리며 들어오더니 의자에 풀썩 주저앉았다. "무슨 일이 있었소?" "예……. 있었습니다." "기운 내서 말을 해 보시오." 샘즈는 입술이 타는지 혀로 입술을 핥으며 말했다. "나는 집에 돌아갈 생각으로 차를 몰고 클레몬트 가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워싱턴 가 방향으로 가려고 마음먹었을 때 갑자기 검은 대형 트럭 한 대가 나타나 내 차에 바짝 달라붙어 나란히 달리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추월하려나 보다 생각하고 앞서 보내려고 속도를 줄였는데 그 녀석도 덩달아 속도를 늦추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그 거대한 트럭으로 차츰 내 차를 인도 쪽으로 몰아붙이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나!" 여기자 루비가 소리를 질렀다. "나는 문득 유괴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브레이크를 막 밟았더니 그 차는 느닷없이 내 차 앞에 멈추어 섰습니다. 그리고 운전석에 앉아 있던 남자가 갑자기 내 차를 향해 무언가를 내던지더니 그대로 쏜살같이 도망쳐 버리는 것이었어요." "허어……." 핸더 총경이 마치 더 잘 들으려고 하는 듯이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처음에는 폭탄이 아닌가 했는데, 터지지 않길래 겁이 났지만 가만가만 살펴보니……, 새까만 종이 뭉치였습니다. 이것입니다. 읽어 보십시오." 샘즈는 그렇게 말하고는 한 장의 타이프 용지를 내밀었다.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샘즈. 네 녀석은 멍청한 바보다! 은행장이 안 된다고 한 것은 네 놈이 너무 무례하게 대들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너희들이 하고 있는 짓은 덴저 필더를 위해서는 좋지 않다는 것을 명심해라. 너희들이 취한 행동을 그에게 알려 줬더니 '아무도 내 일에 대해 진지하게 걱정하지 앉는군.' 하며 버럭 화를 냈다. 이제 앞으로 은행장과 협상할 단 한 번의 기회를 주겠다. 12시간 이내에 돈을 가지고 와라. 만약 이번에도 내 말을 듣지 않으면 덴저 필더의 목숨을 없애 버릴 테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그를 죽이고 나면 다음은 샘즈, 네 녀석을 잡아들일 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은행장 솔로몬도 말이다. 솔로몬을 잡아들이면 그 때는 몸값이 1백만 달러가 될 것이다. 그러니 지금 돈을 내 놓는 것이 몸에 이로울 것이라고 그에게 말해라. 이것이 최후 통첩이다.   모두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볼 뿐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해서 여기서 있었던 일이 그렇게 빨리 새어나갔을까?" 핸더 총경이 제일 먼저 말했다. "이 방에 도청 장치라도 설치해 둔 것이 아닐까요?" 알리 기자가 말했다. "바보 같은 소리 마시오. 여기는 경찰 본부란 말이오. 아무리 영리한 범인이라 해도 그런 일을 할 수는 없소." "투명 인간이라면 할 수 있겠죠." 로드니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당치 않은 소리요. 과학 소설이 아닌 다음에야 어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이오." "하지만,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우리들이 한 이야기를 알고 있겠소? 범인이 천리안이라도 갖고 있단 말인가요?"   그랜트 가의 창고   다섯 사람은 잠시 동안 아무 말 없이 생각에 잠겼다. 정적을 깨고 마침내 알리 기자가 말했다. "여기 이렇게 죽치고 있는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될까요? 이제 곧 새벽닭이 울 시간입니다. 배라도 채우러 갑시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이 일은 나중에 생각합시다." "그것이 좋겠소." 로드니가 찬성했다. "그전에 총경, 일단 솔로몬씨에게 전화라도 걸어서 몸조심하라고 일러두는 것이 좋지 않겠소? 또한 경호원을 붙여 두는 것이 어떨까요? 그리고 아까 말했던 크롬이란 자에 대해서도 좀 더 조사해 두도록 하십시오." 핸더 총경은 로드니가 말한 대로 순순히 응했다. 그의 충고는 언제나 유익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다섯 사람은 야간 영업을 하고 있는 레스토랑으로 갔다. 식사를 마치고 돌아와 보니 수사계의 그린 경감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상합니다, 총경님. 솔로몬씨는 아직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고 하는군요." "그것 참 이상하군. 여기서 솔로몬씨의 자택까지는 불과 4~5분밖에 안 되는 거리인데……." 핸더 총경은 눈살을 찌푸렸다. "크롬에 대해서는 뭔가 알아 냈소?" 이번에는 로드니가 물었다. "예, 좀 재미있는 사실을 알아 냈습니다. 그는 그랜트 가의 633번지에 있는 한 창고에 실험실을 만들기 위해 그 창고를 빌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실험은 화재를 불러일으킬 위험이 있다 하여 허가를 내 주지 않자 구청에 찾아와 담당자와 한바탕 싸움을 벌였다는 기록이 컴퓨터 조회 결과 나타났습니다." "뭐라구? 아니, 그까짓 일이 뭐 그리 재미있단 말인가? 그 따위는 알아 내 보았자 이 사건과는 아무 관계도 없어." 핸더 총경이 화가 나서 쏘아붙였다. 그 때, 갑자기 로드니가 말했다. "그렇게 화낼 필요 없어요, 총경. 그 녀석이 실험실을 만들 생각이었다면 필시 그 창고에 방을 꾸몄을 것이오. 만일, 그가 범인이라면 덴저 필더 씨를 가둬 두기에 가장 어울리는 장소가 아니겠어요?" "아!" 핸더 총경은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더군다나 크롬은 과학자이고 덴저 필더 씨의 편지에도 범인은 과학자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게다가 크롬은 덴저 필더 씨에게 앙심을 품고 있으니 말입니다. 총경, 이건 틀림없소." "좋다, 아무튼 가 보자!" 핸더 총경은 벌떡 일어났다. 신문 기자들도 따라가겠다고 했다. 샘즈 비서는 너무 지쳐서 더 이상 움직일 수가 없다고 하여 집으로 돌려보냈다. 핸더 총경과 로드니는 여러 명의 경찰과 함께 2대의 차에 나누어 타고 그랜트 가 633번지의 창고로 들이닥쳤다. 바로 그 때 아침해가 고개를 내밀었다. 해맑은 아침해가 높은 빌딩 숲 사이로 내리비치기 시작했다. 핸더 총경이 4층 짜리 건물을 가리켰다. "여기다. 원칙적으로는 수속을 밟아 수색 영장을 갖고 와야 하지만 잠깐 들여다보기만 하면 되니까 상관없다." 열쇠로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곰팡이 냄새가 확 코를 찔렀다. 텅 빈 널찍한 건물 안에는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군. 아무리 허가를 내 주지 않았다고 해도 이렇게 넓은 건물을 빌려 놓고 그대로 썩이다니." 총경은 이렇게 투덜투덜 혼자 지껄이면서 엘리베이터 문을 열었다. 그 순간 모두 깜짝 놀라서 엘리베이터 안을 바라보았다. "저게 뭐야?" 한쪽 구석에 의자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고 그 위에는 커피 잔과 먹다 만 샌드위치가 쟁반에 담겨져 있는 것이 아닌가? 핸더 총경이 그 샌드위치에 손을 대 보았다. 커피 잔에도 코를 대고 벌름벌름 냄새를 맡아 보았다. "음, 이건 그다지 오래 된 것이 아니군. 아마도 어제쯤 먹다가 남긴 것일 거야. 그렇다면, 최근까지도 누군가가 여기에 있었군!" 핸더 총경은 갑자기 먹이를 발견한 독수리처럼 재빠르게 행동을 개시했다. 그는 함께 온 그린 경감을 뒤돌아보았다. "어이, 자네는 아무나 한 사람 데리고 가서 계단을 지켜. 그리고 자네와 자네는 비상 계단과 뒷문을 지키고. 나머지는 나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한 층 한 층 수색한다. 만일, 누군가 나타나면 체포하라, 만약 반항하거나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사살해도 좋다! 모두 알았나?" 경찰들은 바짝 긴장되었는지 고개만 끄덕였다.   범인은 이미 사라지고   엘리베이터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층에 다다르자 탁 하고 멈췄다. 총경을 앞세우고 모두 민첩하게 뛰어 내렸다. 복도에는 2개의 문이 있었다. 2개의 방이 모두 잠겨 있지는 않았다. 문을 열자 안에는 휴지 조각 따위만이 너저분하게 흩어져 있을 뿐 사람이라곤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여기는 아냐. 위로 올라가 보자!" 모두 다시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3층으로 올라가 방문을 열고나서야 비로소 로드니의 느낌이 옳았다는 것을 확실히 알았다. 방 안에는 기다란 실험용 테이블이 있고 그 위에는 시험관과 어디에 쓰이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유리로 만든 기구들이 복잡하게 널려 있었다. 화학 약품 병과 먹다 남은 음식 찌꺼기도 있었다. "누군가가 이곳에 머물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군!" 총경은 방 안을 둘러보다가 눈을 멈추었다. 그의 눈은 옆방과 연결된 샛문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권총을 빼어 들었다. 그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낮은 자세를 취하고는 손잡이를 돌리려고 했다. 그러나 열리지 않았다. "낭패야! 문이 잠겨 있어서 꼼짝달싹하지 않아!" 바로 그 때였다. 그 문을 통해 실오라기같이 가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마치 아득히 먼 곳에서 들려오는 것 같은 소리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살려 주시오! 나는 덴저 필더요!" "역시!" 핸더 총경은 문을 열려고 어깨춤으로 쾅쾅 문을 부딪쳐 보았다. 그러나 두껍기만 한 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총경은 큰소리로 그 쪽을 향해 외쳤다. "어이, 덴저 필더요? 경찰이오. 당신을 구하려고 왔소!" "고맙소! 빨리 여기서 꺼내 줘요." 덴저 필더가 미친 듯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확실히 들렸다. "열쇠는 없나?" "없소. 잘 보시오 총경. 그 문에는 열쇠 구멍이 없지 않소?" 지금까지 잠자코 있던 로드니가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렇다면 정말 이상한 문이다. 쓸데없이 크기만 한 손잡이가 달려 있을 뿐 열쇠를 꽂을 구멍이 없는 것이다. "빨리! 빨리!" 하고 문 저 쪽에서는 덴저 필더가 난리를 치고 있었다. 그 소리는 어찌된 까닭인지 무엇인가에 쫓기는 듯한 절박한 느낌을 주는 목소리였다. "때려 부숴라! 한꺼번에 몸으로 부딪쳐!" 핸더 총경이 명령했다. 전부 한 몸이 되어 쾅쾅 어깨로 문을 부딪쳐 보았으나 문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어깨만 아프고, 픽픽 튕겨 나가 넘어질 뿐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문 저 쪽에서 덴저 필더가 비명을 질렀다. "아이쿠, 그 놈이 온다. 안 돼! 여보게, 그만두라니까. 아아! 저 쪽으로 가! 그만둬, 그만두라니까, 악! 으윽! 사, 살려 줘!" 그것은 너무나도 소름 끼치는 오싹한 목소리였다. "어이, 덴저 필더! 괜찮소? 기운을 내요, 이제 곧 구해 줄 테니." 경찰관 하나가 어디서 찾아냈는지 공사장에서 쓰는 기다란 쇠 지렛대를 갖고 왔다. "좋았어, 그것을 문틈에 끼워 넣어라!" 그러나 문이 딱 들러붙어 틈이 없어서 좀처럼 들어가지 않았다. 한참 후에야 겨우 지렛대가 들어갔다. "하나, 둘, 셋!" 세 사람이 덤벼들어 힘껏 힘을 모아 잡아당기자 튼튼한 문이었지만 마침내 삐꺽삐꺽 거리며 흔들렸다. 핸더 총경은 비 오듯 흐르는 땀을 닦지도 못한 채, "자, 한 번만 더 해 보자!" 다시 한 번 온 힘을 다해 잡아당기자 결국에는 문이 삐거덕 소리를 내며 열렸다. "자!" 모두 권총을 겨누고 방으로 우르르 밀어닥쳤다. 아니……. 모두가 멍청히 멈춰 버렸다. 방은 텅 비어 있었던 것이다! 그 방은 문도 창도 없다. 천장에 창문이 하나 있긴 했지만 그것은 너무 높기 때문에 사람이 드나들 수는 없었다. 방안에는 탁자와 의자, 그리고 침대가 있고 탁자에는 먹다 만 밥그릇이 놓여 있다. 틀림없이 사람이 있었던 증거다. 그런데 덴저 필더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사람들은 여우에 홀린 듯 서로 얼굴만 바라볼 뿐이었다. 한 사람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저게, 저게 뭐야?" 모두 뒤돌아보았다. 방금 부숴 버린 문 바로 옆 마루 위에 양복이 한 벌 놓여져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좀 이상했다. 사람이 입고 있는 채로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 옷을 입은 사람은 증발해 버리고 옷만이 덩그러니 남겨진 것이다!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핸더 총경이 허리를 굽혀 양복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주머니에서 시계를 꺼냈다. 그것은 5분 전에 멈춰 있었다. 5분 전이라면 경찰들이 이 문 앞에 와 있을 때다. 양복 안쪽에는 실크 와이셔츠가 단추가 하나 풀리지 않은 채 소매 또한 양복저고리의 소매를 따라 그 속에 가지런히 넣어진 채로 있고 목에는 넥타이도 아주 단정하게 매어져 있었다. 바지 자락 밑에는 구두가 놓여 있고 그 구두 속에는 양말이 들어 있었다. 아무도 숨소리 하나 내는 사람이 없었다. 이 얼마나 기묘한 일인가! 모두가 몸통 없는 양복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알리 기자가 느닷없이 소리쳤다. "마치 회오리바람이 몸통만을 쏙 빨아내 삼켜 버린 것 같잖아!" "그러나 이런 터무니없는 일이 있을 리가 없어! 틀림없이 함정이야. 함정일 거야." 핸더 총경이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으면서 말했다. "하지만 핸더 총경, 한 번 생각해 보셔요. 구두를 신고 있다가 구두끈을 묶은 채로 벗어 보십시오. 그건 불가능합니다." 루비 기자가 구두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그가 어디로 갔다고 생각하십니까? 빠져나갈 구멍이라곤 하나도 없질 않소. 저 꼭대기에 매달린 통풍용 둥근 격자 창문 사이로 연기처럼 사라지기라도 했다는 말입니까?" 확실히 그 따위 터무니없는 일이 일어날 리는 없다. 모두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꼭 다문 채 생각에 잠겨 있었다. 핸더 총경이 말을 이었다. "자, 거기서부터 다시 생각해 보지 않겠소? 여기에 있던 사람은 덴저 필더였어. 그건 확실해.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은 그의 양복이야. 이 양복점의 상표가 바로 그 증거지. 게다가 이것은 그가 항상 갖고 다니는 금딱지 만년필이고 시계에는 그의 이름의 머리 글자가 새겨져 있으며 명함 꽂이도 있으니 말야." 핸더 총경은 그것들을 하나하나 꺼내 보이면서 말했다. "그러니까 덴저 필더는 여기에 갇혀 있었던 것이 분명해. 그리고 그를 가둔 것은 틀림없이 그 크롬이라는 발명가야." "그러면 가장 중요한 수수께끼는 덴저 필더가 사라졌다는 그 사실입니까?" 하고 알리 기자가 끼어들었다. "그럼 설명하겠소. 이 양복은 우리들의 눈을 속이기 위해 여기에 놓아 둔 것이오. 자, 양복 안쪽을 만져 보시오. 차갑지 않습니까? 이것이 그 증거입니다." 한 경찰이 만져 보았다. "맞습니다 ! 얼음 덩어리처럼 찹니다!" "사람이 이것을 입고 있었다면 조금이라도 온기가 남아 있어야 당연한 것이오." 핸더 총경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렇다면 아까 문 안쪽에서 비명을 질렀던 사람은 누굽니까?" "그것은 카세트 녹음기요. 틀림없이 이 방 어딘가에 설치되어 있을 것이오. 크롬은 과학자이기 때문에 그 정도는 얼마든지 해 낼 수 있소." "글쎄요, 총경." 하고 이번에는 로드니가 말했다. "아까 안에서 들렸던 소리는 비명 소리뿐만이 아니었소. 안쪽에서도 문을 쾅쾅 두드렸소. 카세트 녹음기였다면 문을 걷어 찰 리는 없지 않소?" "그건……." 총경은 말문이 막혔다. 로드니는 문을 가리켰다. "보시오. 문 아래쪽에 구두로 걷어 찬 자국이 있지 않소?" 모두가 문을 들여다보았다. "그렇군! 구두에도 문에 칠해져 있는 것과 같은 페인트와 나무 부스러기가 붙어 있어." 알리 기자가 구두를 집어 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 방에는 덴저 필더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누군가 사람이 있었다는 건 사실이군." "좋아, 그럼 이 방의 벽을 철저히 살펴서 비밀의 통로가 있는가 없는가 조사해 봐!" 총경은 경찰들에게 명령했다. "그 벽을 부숴라!"   얼어 버린 잉크   경찰들은 재빨리 각목과 지렛대로 닥치는 대로 모조리 때려부수기 시작했다. 어느 새 온 방 안의 벽들이 너덜너덜 걸레 조각처럼 뜯겨져 버렸다. "허어, 이 벽은 이상한데." 로드니가 벽으로 다가가 보더니 말했다. 정말로 이상한 벽이었다. 맨 바깥쪽에는 나무 판자가 붙어 있었지만 그 안쪽에는 두꺼운 석면이 붙어 있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석면 뒤에는 철판이 있고 또 그 뒤에는 1미터가 넘는 콘크리트 벽이 막혀 있는 것이다. "무엇 때문에 이런 짓을 했을까?" 루비 기자가 말했다. "응, 방음 장치를 할 때는 대개 이런 방법이 동원되긴 하지만……. 그렇다고는 하더라도 좀 지나치군." 이야기하고 있는 동안 벽이란 벽은 모조리 벗겨져 버렸지만 끝내 비밀의 통로는 발견되지 않았다. "보라구! 역시, 내가 말한 대로야. 여기서 나간 사람은 아무도 없어." 핸더 총경이 크게 외쳤다. 그리고 로드니가 아까부터 덴저 필더의 만년필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어이, 로드니! 뭘 가지고 애들처럼 그렇게 장난을 치고 있나?" "장난이 아니오. 이 만년필이 써지나 안 써지나 시험해 보고 있는 중이오." "그게 장난이지 뭔가?" "장난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럴지도 모르지만요." 로드니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만년필을 열어 보았다. 그 순간, 그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그러더니 주머니에서 칼을 꺼내 잉크가 들어 있는 고무 튜브를 싹둑 잘라 버렸다. "어이 이봐, 뭐 하는 짓이야!" 핸더 총경이 보다 못해 주의를 주었다. 그러나 로드니는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잘라 낸 튜브를 손바닥 위에 거꾸로 세우자 그 속에서 작은 대롱 같은 것이 나왔다. 보고 있던 사람이, '저건?' 하고 이상하게 생각했다. 잉크가 나온 것이 아니라 괴상한 것이……. "뭡니까, 그게?" 누군가가 물었다. "잉크요." "고체 잉크인가요?" "아니오. 얼어 버린 것이오." "그런 이상한 일이 있을 수 있나요?" 루비 기자가 이상하다는 듯이 옆으로 다가왔다. "이 방은 이렇게 숨이 탁탁 막힐 정도로 더운데 말예요. 잉크가 얼어 버릴 까닭이 없쟎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어 있으니까 이상한 거죠. 어쩌면……." "어쩌면, 뭡니까?" "여기에 덴저 필더가 실종된 비밀이 감춰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오." "어이 어이! 여보게들!" 핸더 총경이 옆에서 소리쳤다. "그 따위 쓸 데 없는 소리만 하고 있으면 자네들을 여기에 내버려두고 갈 테야. 우리들은 지금부터 크롬의 집을 완전 포위하고 체포하러 갈 참인데 가고 싶지 않은 모양이지!" "갑니다, 가요!" 알리와 루비 두 사람은 허둥지둥 총경의 뒤를 따라갔다. 하지만 로드니는 여전히 그 언 잉크 대롱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미치광이 과학자   이윽고 핸더 총경 일행이 발명가 앨버트 크롬의 아파트에 당도했다. 총경의 연락을 받은 무장 경찰들이 이미 아파트 주위를 이중 삼중으로 에워싸고 있었다. 이제 크롬은 독 안에 든 쥐나 다름없다. 핸더 총경이 노크를 했다. 자세히 보았더니 이 문도 역시 아까 그 실험실의 문과 똑같은 두껍고 열쇠 구멍이 없는 그런 문이었다.   "누구요?" 억지로 목소리를 죽인 듯한 낮은 소리가 들렸다. 총경은 미리 준비한 각본대로 거짓 대답을 했다. "육군 본부에서 온 하더 대위입니다. 당신의 발명을 기필코 사들이라는 상부의 지시로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문 안쪽에서 껄껄대는 괴상한 웃음소리가 났다. "그것 참 고마운 얘기군. 곧 열어 드리지." 핸더 총경은 뒤에서 명령이 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부하들에게 눈짓을 했다. 문이 열리면 일제히 들이닥치라는 뜻이다. 그러나 크롬은 그런 수작에 넘어갈 멍청이가 아니었다. 갑자기 문에 붙은 좁다랗고 기다란 창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 곳을 통해 매서운 눈초리를 한 남자가 밖을 내다보았다. 언저리가 짓물러 터진 왠지 기분 나쁜 그런 눈이! "경찰, 이런 나쁜 놈들 같으니라구!" 남자는 소리쳤다. 그와 동시에 창문으로 뭔가 새하얀 연기를 내뿜는 물건을 내던졌다. 총경은 창문을 향해 권총을 쏘아댔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창문이 콱 닫혀 버린 지 오래다. 총알은 탕탕 튕겨 버렸다. 그 순간 핸더 총경이 콜록콜록 기침을 해댔다. 그 하얀 연기를 들이마신 순간 숨이 막히고 눈이 따끔따끔 아파 온 것이었다. 가스다. 최루탄 가스다! "조심해, 모두! 가스니까!" 그는 소리치며 뒤로 물러섰다. 뒤에 있던 부하들도 우르르 후퇴했다. 그러나 최루탄 가스는 삽시간에 퍼져 나갔다. 어느 새 그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최루탄 가스 때문에 큰 난리가 났다. 눈물을 흘리는가 하면 콜록콜록 기침을 하느라고 온통 수라장이 되었다. 알리 기자도, 루비 기자도 눈을 가리고 도망가기 바빴다. 단지 로드니 탐정만은 처음부터 손수건으로 코를 막고 있었기 때문에 고통을 피할 수가 있었다. 잠시 물러날 수밖에 별 도리가 없었다. 과학자 크롬의 첫 번째 작전은 멋들어지게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경찰은 다시 전열을 가다듬었다. 소방차가 왱왱 사이렌을 울리며 달려왔다. 커다란 대형 선풍기를 꺼내더니 독가스를 바람이 부는 쪽으로 날려 보냈다. 그리고 가스 마스크가 경찰들에게 지급되었다. 지렛대와 긴 각목을 든 1개 중대의 경찰들이 다시 문으로 접근했고 그 옆에는 카빈총으로 무장한 2~3명의 경찰들이 따랐다. 만약 크롬이 또 다시 독가스를 던지려고 하면 한 방 먹여 버릴 심산이었다. 그러나 크롬은 다시는 나오지 않았다. 마침내 문이 우지직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 저마다 손에 권총을 치켜들고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없잖아!" 누군가가 소리쳤다. 넓은 실험실은 뒤죽박죽 엉망이 되어 있었다. 약품 병이 깨지고 여러 가지 장치와 기구가 여기저기 마룻바닥 위에 흩어져 있었다. 그러나 크롬의 모습은 아무 데서도 보이지 않았다. 창문도 문도 하나 없는데 또 다시 어디로 사라져 버렸단 말인가!   울려 퍼지는 총 소리   "또 없다구! 그 따위 당치 않은 일이 있나! 이번에는 내가 이 두 눈으로 크롬을 똑똑히 보았단 말이야!" 핸더 총경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몹시 화가 나서 고함을 쳐댔다. "반드시 이 방 어딘가에 도망칠 만한 곳이 있을 것이다. 생쥐 구멍 하나 빠뜨리지 말고 모두 분담해서 찾아라. 알았나!" 경찰들은 벽이며 마룻바닥이며 할 것 없이 각목으로 쿡쿡 찌르기도 하고 지렛대로 때려부수기도 하며 비밀 통로를 찾기 시작했다. "어머, 저런 곳에 모르모트(실험용 흰 쥐)가 있다니." 루비 기자가 손으로 가리켰다. 현관문 바로 옆에 새장이 있고 그 안에는 3마리의 모르모트가 찍찍 울어대며 야단을 떨고 있었다. "무엇 때문일까?" 로드니 탐정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물론, 실험용이겠죠?" "그렇긴 하지만, 무슨 실험일 것 같소?" 그 때 실험실 한쪽 구석에 있던 전화가 따르릉 하고 울리기 시작했다. 옆에 있던 경찰이 수화기를 들어 귀에 갖다대더니 곧, "총경님, 전화입니다." 하고 말했다. "내 전화? 어디서 왔을까?" 핸더 총경은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수화기를 들었다. 수화기 속에서 쉰 목소리가 괴상하게 들려왔다 "고생이 많군. 당신들이 거기서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나는 밖으로 나와 다방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지. 이 다방 참 멋진 곳이군." "앗! 당신은 크롬!" "그렇소. 이제 일러 주지. 그 방 북쪽 구석에 비밀 지하도가 있네. 나는 그 곳을 통해 빠져 나왔지." 그리고 전화가 딱 끊겨져 버렸다. 핸더 총경은 수화기를 마룻바닥 위에 내동댕이쳤다. "저 쪽 구석이다! 저기 지하도가 있어. 그 놈은 그 곳으로 살짝 도망쳐 버린 거야!" 경찰들이 달려들어 쇠지레대로 때려 부쉈다. 그러자 벽이 빠끔히 열리고 비밀 통로가 나타났다. "따라와!" 핸더 총경이 앞장서서 어두컴컴한 비밀 통로로 내려갔다. 뒤따라서 경찰들이 뛰어들었다. 로드니와 알리 기자도 그 뒤를 따랐다. 비밀 통로는 바로 넓은 지하실과 연결되어 있었다. 거기는 커다란 차고였다. 네댓 대의 차가 언제라도 출동할 수 있도록 죽 늘어서 있고 출구에는 커다란 셔터가 내려져 있었다. "나쁜 놈! 크롬 이 자식, 이런 곳에 이렇게 거대한 차고를 갖고 있다니!" 핸더 총경은 놀라서 혀를 찼다. "어딘가에 출입문을 열 수 있는 단추가 있을 거다. 찾아봐라!" "있습니다. 여깁니다!" 한 경찰이, 한쪽 귀퉁이에 붙어 있는 단추를 눌렀다. 하지만 셔터는 꼼짝도 않았다. "거 참 이상하네. 고장났나?" 바로 그 때였다. 갑자기 로드니가 소리쳤다. "아무래도 이상하오! 이건 함정이오, 총경. 놈은 아직 이 집 어딘가에 있소. 우리들을 이 차고에 몰아 넣고 몽땅 죽여 버리려고 하는 것이오." 경찰들은 오싹 소름이 끼쳐 꼼짝 않고 있었다. "돌아가자!" 핸더 총경의 말이 채 떨어지기도 전이었다. 바람 하나 들어올 틈새도 없을 정도로 꼭 닫혀 있던 셔터 문이 소리 없이 약간 열리더니 갑자기 걷잡을 수 없는 불길과 함께 총성이 울려 퍼졌다. 따다다닷! 따다다닷! 기관총이다! "윽!" 한 명의 경찰이 몸을 뒤로 젖히며 풀썩 쓰러져 버렸다. "윽!" 핸더 총경도 비틀거리며 오른손으로 감쌌다. 총탄에 맞은 것이다. 그러나 총경은 팔을 감싸면서 명령했다. "모두 바닥에 엎드려. 반격해라!" 계속 쏘아대는 총성이 지하실 천장에 울려 퍼져 흡사 지옥을 방불케 하는 대소동이었다. "안 되겠다. 기관총을 당해 낼 수가 없으니 지원병을 불러라!" 한 경찰이 벌떡 일어나더니 통로를 향해 달려갔다. 그러자 그 뒤를 향해 기관총의 총탄이 비 오듯이 퍼부어 댔다. "아악!" 경찰은 통로 바로 앞에서 튀어 오르더니 풀썩 나뒹굴었다. 그리고는 움직이지 않았다. 이번에는 로드니 탐정이 일어섰다. 그리고 여전히 비 오듯이 퍼붓는 기관총 세례 속을 쏜살같이 돌진하며 통로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2분 후에 그는 수류탄 상자를 들고 다시 돌아왔다. 뒤집혀 있는 자동차 뒤쪽으로 뛰어가더니 수류탄을 한 개 집어 들었다. 안전핀을 빼더니 맹렬하게 불길을 내뿜는 비밀 출입문을 향해 내던졌다. 로드니는 전에 프로 야구에서 투수로 활약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수류탄은 정확히 통로 속으로 떨어졌다. 꽈, 꽝! 통로 입구에서 오렌지 색 불길이 솟아올랐다. "아-악!" 고통스러워하는 비명 소리가 총성 소리와 함께 울려 퍼졌다. "해치워라!" "좋았어, 그렇다면 나도……." 다른 경찰들도 너나 할 것 없이 크롬을 향해 수류탄을 던지려고 했다. 아까부터 기관총 세례를 받은 것에 대한 앙갚음이었던 것이다. "앗, 그렇게 하면 안 돼! 될 수 있으면 크롬을 생포해야 한단 말이오." 로드니가 말리려고 했지만 소용 없었다. 꽈-과-꽝! 꽝! 꽝! 출입구는 시뻘건 불길에 휩싸였다. 그리고 어느새 다 타 버렸다. 연기가 점점 사라지자 조금 전까지만 해도 기관총 소리가 울려대던 출입문은 엉망진창 말이 아니었다. 기관총은 더 이상 불을 뿜지 않았다. "이젠 괜찮겠지." 경찰들은 권총을 거머쥐고 앞으로 나갔다. 출입문 바로 안쪽에 시체 하나가 무참하게 나뒹굴고 있었다. 미치광이 과학자 앨버트 크롬의 처참한 최후였다.   사라진 모르모트   싸움은 끝났다. 부상자가 급히 병원으로 실려갔다. 중상을 입은 핸더 총경 대신에 그린 경감이 경찰 기동대를 지휘하며 크롬의 실험실 안을 구석구석까지 조사했다. 덴저 필더가 어딘가에 감금되어 있을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로드니는 실험실 구석에 이상한 상자 모양의 기계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상자와 그 옆에 있는 변압기가 서로 코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또한 기계 속에서는 윙윙거리는 소리가 가느다랗게 흘러나왔다. "이게 뭘까?" "폭탄일지도 몰라. 조심해. 폭발물 처리반이 올 때까지 건드리지 않는 게 좋아." "그렇지만, 전선을 끊어 놓는 게 좋지 않습니까? 언제 폭발할지 모릅니다." 한 경찰이 말했다. 그린 경감이 고개를 끄덕였다. 경찰이 전선을 끊어 버릴 참이었다. 바로 그 때 로드니는 우연히 모르모트가 들어 있던 새장을 보고 있었다. 경찰이 전선을 끊어 버리자 갑자기 그 기계에 치직하며 불이 붙었다. "앗! 위험해!" 누군가가 소리쳤다. 모두 그 기계 곁에서 도망쳤다. 그러나 기계는 폭발하지 않았고 윙윙 소리만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로드니는 문득 새장 속에 있는 모르모트들의 모습이 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지금까지 히스테리를 일으킨 듯이 새장 속을 맴돌고 있던 모르모트들이 갑자기 딱 멈춰 섰다. 그러는가 했더니 순식간에 작아지기 시작했다. 로드니는 잘못 보지나 않았나 하고 자기 눈을 의심했다. 눈을 비벼 보았다. 그러나 틀림없다. 모르모트는 점점 작아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어이, 여보게들 이것 좀 봐!" 로드니가 외치는 소리에 경찰들이 우르르 달려왔다. 알리 기자와 루비 기자도 어느 틈에 달려와 새장을 에워싸고 있었다. "모르모트가……." 하고 말하던 로드니는 말문이 막혀 버렸다. 모르모트들이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것이다! "모르모트가 도망쳤잖아. 아까 서로 총질할 때 파편이라도 날아와 새장의 창살을 망가뜨려 도망 쳤겠지 뭐." 알리 기자가 말했다. "그게 아냐! 모르모트는 마치 얼음덩어리가 녹듯이 작아지더니 마침내는 사라져 버렸단 말이오!" "말도 안 되는 소리!" 경찰들이 웃었다. "미치광이 과학자의 실험실에 있더니 핑커튼 탐정소의 명탐정까지도 이상해져 버린다면 곤란하지." 그린 경감이 빈정댔다. "아무튼, 우리들은 그 따위 잠꼬대 같은 소리에 귀를 기울일 여유가 없어. 덴저 필더의 행방을 찾아 내는 것이 급선무이니 말일세. 자, 모두 제자리로 돌아가 일해!" 경찰들은 다시 흩어졌다. 로드니 혼자만이 새장 앞에 남았다. 그는 살짝 새장의 창살에 손을 대 보았다. 지독하게 차가웠다. 그리고, 마치 냉동실에서 막 꺼낸 차디찬 얼음 덩어리에 손을 대면 척 달라붙듯이 손이 창살에 달라붙어 버렸다. "에잇!" 억지로 손을 떼려고 하다가 손가락 끝의 살갗이 약간 벗겨져 피가 맺혔다. 그리고 난 다음 로드니는 새장 속에 들어 있는 물통에 관심을 가졌다. 물통 속에 들어 있는 물은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더군다나 새장의 창살에는 어디 한 군데고 모르모트가 도망칠 만한 구멍이 없었다. 그런데도 모르모트들은 사라져 버린 것이다. 어떻게 된 노릇일까? 그 때 멋진 생각이 로드니의 뇌리를 스쳤다. 그렇다! 바로 그거다!   절대 0도   "로드니 탐정님! 왜 그렇게 멍하니 서 계십니까!" 뒤에서 상냥하게 말을 걸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뒤돌아보니 거기에는 루비 기자가 서 있었다. "아아, 루비 기자로군. 당신은 절대 0도란 것을 알고 있소?" "절대 0도라구요!" 루비 기자는 물끄러미 로드니를 마주 쳐다보았다. 언제나 침착하며 머리도 좋고 남자다운 로드니인데…… 루비 기자는 갑자기 걱정이 되어 로드니 탐정의 안색을 살폈다. "로드니 탐정님, 당신 괜찮아요!" "아무렇지도 않소. 나는 미친 게 아니오. 단지 과학에 대해 이야기하는 거요. 당신도 학교에서 배웠을 거요!" "그 정도는 배웠죠. 마이너스 273도 아니에요? 하지만 그게 사건과 무슨 관계가 있기라도 한가요?" "있지!" 로드니는 갑자기 힘 주어 말했다. "이야기해 줄 테니 잘 생각해 봐요. 덴저 필더는 분명히 출구가 없는 방 안에 있었소. 그런데 방문을 열었을 땐 그림자 하나 없었소. 그렇지요?" "예, 그래요. 그리고 양복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어요." "그 옷은 얼음덩이처럼 차가웠었소. 만년필 속에든 잉크마저 얼어붙을 정도로 말이오. 시계도 태엽이 얼어붙었기 때문에 멈췄던 거요." 로드니는 눈을 반짝이며 눈앞에 텅 빈 채로 매달려 있는 새장을 가리켰다. "그리고 이 속에 있던 모르모트는 실제로 내 눈 앞에서 사라져 버렸소. 잘 봐요, 저 물통 속을. 얼음이 얼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오! 또한 내가 이 새장을 만졌을 때 얼마나 차가운지 손가락이 들러붙어서 상처가 나 버렸을 정도였소. 자, 보라구요."로드니는 피맺힌 손가락을 루비 기자에게 보였다. "즉, 이 새장 속도, 덴저 필더 씨가 있었던 그 방 안도 모두 절대 0도가 되어 버렸었다는 겁니까?" "맞았소!" "하지만 덴저 필더 씨나 모르모트가 없어진 것과 그것과는 어떤 관계가 있단 말이에요!" "잘 들어봐요." 로드니는 마치 학교 선생이 학생에게 가르치듯 천천히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루비 기자는 모든 물질은 분자라고 하는 작은 알갱이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겠지요?" "예, 알고 있어요." "그리고 열이라고 하는 것은 그 분자가 운동하기 때문에 발생한다는 것도 또한 알고 있을 테지요!" "예." "즉, 온도가 높다는 것은 분자의 운동이 매우 활발하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운동이 활발하면 활발할수록 부피가 커지게 되지요. 반대로 분자의 운동이 느려지면, 즉 온도가 내려가면 물질은 작아지게 됩니다. 절대 0도라고 하는 것은 분자가 전혀 운동을 하지 못하게 되어 버린 상태를 말하는 것이죠. 그리고, 분자는 전혀 움직이지 못하게 되면 사라져 버리고……, 즉 지금 본 것처럼 말이오!" 루비 기자는 로드니가 하는 이야기가 아직 잘 이해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 이론은 이상해요. 여기 존재하고 있던 물질이 사라져 버리다니……." "이해를 못 하는군요! 우리들이 물질이라고 알고 있는 것은 사실은 원자와 전자 그리고 분자의 운동이란 말이오. 그 운동을 멈추게 할 수만 있다면 물질은 사라져 버리는 것이오. 이것은 이미 사실로 인정된 이론인 거요." "그렇다면 결국 크롬은……." "크롬은 그 운동을 멈추게 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한 거요! 덴저 필더도 모르모트도 그 방법으로 없애 버린 거지요. 그래서 잉크나 물이 얼어 있었던 거요!" 루비 기자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하지만 잠시 후 미안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로드니에게 말했다. "미안합니다만 로드니 탐정님. 나는 그런 괴상한 이야기를 신문에 실을 수는 없어요. 그렇게 이상한 기사를 쓴다면 신문은 팔리지도 않을 것이고 나는 편집국장에게 야단만 맞을 거예요. 아마 신문사에서 쫓겨날지도……." 로드니는 울화통이 터져 고래고래 한바탕 난리를 치르더니 도중에 그만둬 버렸다. 그리고 옆에 있던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로드니 탐정님, 너무 지치셨나 봐요. 댁에 돌아가셔서 좀 쉬셔요, 네!" 로드니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자, 루비 기자는 '더 야단 맞기 전에 가 버리는 게 좋겠어.'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슬슬 꽁지가 빠지라고 도망쳐 버렸다. 잠시 시간이 흘렀다. 로드니는 맥없이 꾸물꾸물 일어났다. 그리고는 천천히 실험실을 나왔다.   은행장도 사라지다   로드니는 핸더 총경이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갔다. 총경은 침대 위에 누워 눈만 깜박거리고 있었다. 어깨부터 팔까지 새하얀 붕대가 칭칭 감겨 있었다. 그러나 그까짓 정도의 상처 때문에 주저앉을 총경이 아니었다. 침대 옆에 전화통을 갖다 놓고 계속 명령을 내리기도 하고 부하를 야단치기도 했다. 로드니가 들어서자 눈으로만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사람 몸통은 없고 양복만 달랑 발견된 그 방을 철저히 조사하도록 시켰지만 비밀 통로는 결국 찾아내지 못했어. 정말 이상한 사건이야." 그 때 또 전화가 울렸다. 핸더 총경이 수화기를 들었다. 무슨 말을 들었는지 그 순간 버럭 소리를 질렀다. "뭐라구!" 총경이 호통을 쳤다. "좋아. 먼지 하나 건드리지 말고 사진으로 찍어 둬라. 감식과에 있는 사람을 빨리 보내고 지문을 채취해. 시계를 잘 조사해 보고 몇 시에 멈춰 있는가 즉각 보고해라!" 총경은 후- 하며 한숨을 쉬더니 로드니를 뒤돌아보았다. 그 눈에는 뭔가 무서운 광경을 목격한 것처럼 놀란 빛이 역력히 나타나 있었다. "솔로몬의 옷이 발견됐어." "옷이!" 로드니는 양미간이 찌그러졌다. "그렇다네." 총경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옷만 말이야. 솔로몬의 옷이 자기 승용차의 운전석에 앉아 있다고 하는군. 마치 여태껏 옷을 입고 있던 사람이 갑자기 녹아 버리고 옷만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 같다고 하며 구두도 브레이크 위에 놓여 있다고 하는군." "즉, 덴저 필더 씨와 처음부터 끝까지 어느 것 하나 다른 것 없이 그대로란 말이군요!" "그렇지." 그 때 또 전화가 울렸다. 핸더 총경은 전화를 받더니 다시 말했다. "좋아, 알았어." 그리고 로드니를 뒤돌아보았다. "시계는 10시 13분에 멈춰 있다고 하는군. 너무나 차가워서 시계가 얼어붙어 멈춘 것 같다는 거야." 로드니는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한결같이 똑같군요. 총경, 내 생각을 듣고 싶지 않으신가요." 핸더 총경은 피식 웃었다. "절대 0도가 어쩌고 분자가 어쩌고 그런 이야기라면 벌써 루비 기자에게 들었네." "당신도 믿지 않는 건가요!" "다른 때 같았으면 물론 믿겠지만, 이번만은 자네의 의견을 전혀 믿고 싶은 생각이 없네. 아무리 대 발명가라고는 하지만 한 인간을 바람처럼 사라져 버리게 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으니까." "그렇지만 나는 이 두 눈으로 모르모트가 사라져 버리는 것을 똑똑히 보았단 말입니다." "그런 거라면 나도 마술사가 하는 것을 보았지. 그와 비슷한 것을 말이야. 분명히 거기에 있던 사람이 사라지기도 하고 또한 사람을 톱으로 두동강 내기도 하는 것을. 하지만 모두 속임수를 쓰는 것이야." 로드니는 어깨를 움츠리며 형사 콜롬보의 흉내를 냈다. 그것은 별 수 없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일어났다. "알았소, 총경. 그런데 그 솔로몬의 옷은 어디서 발견됐다고 합니까?" "71번 가와 보일 가가 만나는 로터리라는군." "아직 그대로 두었겠죠!" "그대로일 걸세. 이번에야말로 철저히 조사하기 위해 감식과 사람이 갈 때까지는 절대로 그 주위에 얼씬거리지 말라고 명령해 두었으니까. 자네가 그 곳으로 간다면 그린 경감에게 내가 전화를 해 주지." "고맙습니다, 부탁합니다 " 로드니는 빠른 걸음으로 병원을 나와 곧바로 자동차를 그 쪽으로 몰았다. 현장 근처에는 사람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경찰이 줄을 쳐 놓았다. 하지만 로드니는 쉽게 통과할 수가 있었다. 그의 얼굴은 모두들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린 경감이 현장에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인가?" "그게 참 묘합니다. 솔로몬씨가 집에 돌아오자 마자 어딘가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솔로몬씨는 전화를 받았고 통화를 마치자마자 부인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시 밖으로 나가 버렸다는 겁니다." "그 전화는 어디서?" "그걸 알 수가 없습니다." "솔로몬의 태도는?" "왠지 매우 흥분되어 있는 것 같았다고 합니다. 현관문이 부서지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할 정도로 말입니다." 그 이상은 아직 경찰도 모르고 있었다. 로드니는 그린 경감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곧 솔로몬의 집으로 차를 몰았다.   루비도 사라졌다   솔로몬 씨의 저택은 은행장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마치 성과 같이 으리으리했다. 그렇지만 저택 안은 신문 기자, 카메라 맨, 형사들로 북적거렸다. 로드니는 솔로몬씨의 부인을 만나보았다. 그러나 그녀도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아 의식이 흐려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실망한 나머지 되돌아가려는 순간이었다. '어엇, 이상하네!' 신문 기자들 가운데 당연히 있어야 할 루비 기자가 안 보이는 것이었다. 비록 여자이긴 하지만 그토록 취재에 열을 올리는 루비 기자가 여기에 오지 않았다는 것은 아무래도 좀 이상했다. 로드니는 갑자기 걱정이 되었다. 어쩌면 루비 기자마저도……. 뭔가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지나 않은 것일까? 기자들을 붙들고, "루비 기자 못 봤나?" 하고 물어보았다. 하지만 대답은 못 봤다는 말뿐이었다. 루비를 본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 때 한 경찰이 그를 발견하고는 다가왔다. "로드니 씨, 전화 받으셔요." 로드니는 수화기를 귀에 갖다댔다. "여보세요, 로드니 탐정님!" "야, 이거! 루비 기자!" 로드니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하지만 루비의 목소리가 이상했다. 평상시는 훨씬 침착했는데 전화 속에서 들려오는 그 목소리는 뭔가에 쫓기는 듯 다급해 하는 것 같았으며 매우 빠르게 말했다. "그런데 말이죠, 로드니 씨. 제 말 잘 들으셔요. 이건 굉장히 중요한 일이에요. 제가 솔로몬 씨 집에 가지 못한 것도 그 쪽을 조사하고 있었기 때문인 거예요." "대체, 뭘 조사하고 있었다는 거요!" 로드니는 안달이 나서 물었다. "대단히 중요한 단서를 발견했어요. 로드니 씨, 당신이 말한 것처럼 만약 절대 0도로 인간을 녹여 버리려면……. 머리카락에 뭔가 가루를 뿌립니까?" 이렇게 횡설수설하는 것이었다. "이봐요, 루비 기자, 당신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오!" "아니에요! 빨리 가르쳐 주셔요. 목숨이 걸린 중대한 문제 예요." "그렇긴 하지만 나도 역시 알지 못해요. 대체 무엇 때문에 그런 것을 생각하는 거죠?" "왜냐 하면 말이에요, 제가 보았어요. 솔로몬 씨의 머리에 그런 가루가 묻어 있었던 것을. 그리고 잠시 후에 솔로몬 씨가 몸부림치며 머리를 쥐어뜯었어요." "하지만 그것과 사건이 어떤 관계가 있단 말이지요?" "그런데 실은 제 머리카락에도 저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가루가 묻어 있지 뭐예요. 머리를 깨끗이 감긴 했지만 아까부터 점점 몸이 차가와 지기 시작했기 때문이에요." "뭐, 뭐라구!" 로드니는 펄쩍 뛰었다. "지금 있는 곳이 어디죠?" "제 아파트예요. 아아…… 역시 당신 생각이 맞았어요. 절대 0도예요. 아아, 로드니 씨, 이제 말이 잘 안 나와요. 추워요. 너무 추워요. 너무……." 루비 기자의 목소리는 거기서 뚝 끊어졌다. "이봐요, 루비 기자! 루비 기자! 어떻게 된 거야!" 로드니는 큰 소리로 외쳤다. 그러나 전화에서는, 톡, 톡. 하는 가느다란 소리뿐이었다. 그것은 코드에 대롱대롱 매달린 수화기가 흔들려 벽에 부딪치는 소리였다! 로드니는 수화기를 내팽개치고는 마치 불도저처럼 사람들을 밀쳐 버리고 달리기 시작했다. 어느 새 그 넓은 저택을 뛰쳐나와 차에 올라타고는 핸들을 잡았다. 액셀레이터를 밟자 차는 로켓처럼 굉음을 내며 질주했다. 커브 길에서 전봇대에 부딪칠 뻔했으나 용케도 빠져나갔다. 그리고 똑바른 길을 쏜살같이 달리기 시작했다. "서둘러야 해!" 차는 4~5분만에 루비 기자가 살고 있는 아파트 앞에 도착했다. 로드니는 아파트로 뛰어들어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으로 가 문이 열리기가 무섭게 복도로 뛰어 내렸다. 루비 기자의 방 앞에 오자마자 두 주먹으로 문을 마구 두드려 댔다. "이봐요, 루비 기자! 루비 기자! 나야, 로드니야. 괜찮아?" 대답이 없었다. 로드니는 문에 달린 손잡이를 잡고서 돌려보았다.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그는 안으로 들어갔다. 작은 거실을 지나 식당으로 들어갔다. 그 곳에 전화가 놓여 있었다. "아니?" 전화의 수화기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다음 순간 로드니는 자신도 모르게 휘청거렸다. 그 전화 바로 밑에 한 벌의 여자 옷이 헝클어져서 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전에 본 적이 있는 루비 기자의 옷이었다!   또 다시 옷만이   이게 웬일인가? 루비 기자마저 사라져 버렸단 말인가? 로드니는 마룻바닥에 무릎을 꿇고 루비 기자의 옷을 조사해 보았다. 틀림없었다. 그는 비틀거리며 일어나서 담뱃불을 붙였다. 도대체 어찌된 영문인가? 덴저 필더를 절대 0도를 만드는 장치로 사라지게 한 것은 틀림없이 그 미치광이 크롬이다. 하지만 크롬은 죽어 버렸는데, 오늘 아침에는 솔로몬 씨 그리고 루비 기자마저도 똑같은 꼴로 사라져 버렸다. 그렇다면 악마와 같은 범인이 아직 어딘가에 살아 있다는 증거인 것이다. 그것이 과연 누굴까? 로드니의 머리는 컴퓨터처럼 회전이 빨랐다. 아까 루비 기자는 솔로몬 씨의 머리에 뭔가 가루 같은 것이 묻어 있었다고 했다. 루비 기자는 그것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했다. 덧붙여서 그녀는 이런 말도 했던 것이다. 틀림없이 아까 내가 말했던 절대 0도로 인간을 없애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이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루비 기자의 머리에도 그 가루가 묻어 있었다. 그리고 점점 차가워져 갔다. 그리고 로드니에게 전화하고 있는 동안에 사라져 버렸던 것이다! 도대체 루비 기자와 말을 나눈 상대는 누군가? "아! 그렇지!" 로드니는 갑자기 벌떡 일어섰다. 무엇인가가 그의 머리를 스쳤던 것이다. 그는 미친 듯이 오른쪽으로 돌아서더니 루비 기자의 방을 뛰쳐나와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여유마저 없다는 듯 계단을 달려 순식간에 일층까지 내려왔다. 단 세 걸음에 밖으로 뛰어나와 차에 오르는가 싶더니 벌써 차는 달려나가는 것이었다. "앗, 위험해! 이봐, 빨간 불이란 말야!" 교통 순경이 로드니의 차를 보더니 놀라서 소리를 질러댔다. 신호등에 빨간 불이 켜졌는데도 불구하고 로드니는 전 속력으로 맹렬하게 차를 몰아 질주했기 때문이었다. 반대편 쪽에서 오던 차들이 질겁을 하고 핸들을 꺾어 피했다. 로드니의 차는 마치 회오리바람을 방불케 하듯 쌩 하고 교통 순경 앞을 지나치더니 그 다음 로터리에서도 또 그 다음 로터리에서도 신호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더욱 더 날쌔게 달려갔다. 마침내 진범을 알았던 것이다. 모든 사람, 그 중에서도 특히 절친한 친구였던 루비 기자의 원수를 때려잡는 거야! 로드니의 얼굴은 마치 도깨비 얼굴같이 붉게 상기되었다. 마침내 차가 주택가에 들어섰다. 그라고 어떤 커다란 저택 앞에 끼익 하고 급정거를 했다. 그 곳은 덴저 필더 씨의 저택이었다. 로드니가 초인종을 마구 눌러대자 가정부가 문을 열었다. "누구세요?" "샘즈 비서 있소?" "계시긴 합니다만 무슨 일로!" "만나고 나서 이야기하죠." 로드니는 가정부를 밀치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가정부가 정색을 하며 로드니 앞을 가로막았다. "이러시면 안 돼요, 손님. 제가 먼저 손님이 오신 사실을 샘즈 씨에게 전한 다음 그분의 승낙이 있어야만……." 로드니는 가정부 따위에게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막무가내로 이층에 있는 샘즈의 방으로 올라갔다. "기, 기다리세요!" "시끄럽소!" 로드니는 가정부를 확 밀쳐 버렸다. 가정부는 안간힘을 다해 로드니를 붙잡으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으며 결국 마음을 바꿔 먹은 것 같았다. 휙 뒤를 돌아보니 그녀는 안쪽으로 가 버리는 것이었다. 로드니는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샘즈 방 앞에 이르자 온 집 안이 쩡쩡 울릴 정도의 고함을 질렀다. "나와라, 샘즈!" 그러나 아무 대답이 없었다. 로드니는 문을 열었다. 없는 것 같았다. 침실을 나와 욕실을 지나서 그의 사무실로 들어서는 순간, 그는 깜짝 놀라 발걸음을 멈췄다. 책상 앞에 있는 긴 의자 위에 한 벌의 양복만이 길게 엎드려 누운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는 가까이 다가갔다. 그것은 샘즈가 입고 있던 옷이었다. 역시 거기 누워 있던 사람의 몸통만이 사라진 것 같은 상태였다. 샘즈까지도……. 로드니는 맥이 탁 풀렸다. 그는 아까 샘즈가 범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곳으로 달려왔던 것이었다. 하지만 샘즈마저 이 꼴이 되었으니 그의 생각은 빗나가고 만 것이었다. 설마 범인이 자기 자신을 사라지게 할 리는 없다. 진범은 따로 있는 것이다. 그 놈이 루비를 없애고 나서 샘즈를 덮친 것이다. 그리고 샘즈도 사라져 버린 것이다.   밀퍼스 가 6372번지   로드니는 샘즈의 양복을 조사하기 위해 허리를 굽혔다. 그리고 양복 안쪽 주머니에 메모지가 들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메모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시드 로드니, 루비 오만, 밥 샘즈. 이 세 사람은 기어코 이 세상에서 없애 버릴 것이다. 우리를 방해하는 놈들은 모두 이렇게 될 것이다. 덴저 필더도, 솔로몬도 물론 우리가 죽였다.   형체 없는 악마의 도전장이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내 차례다. 로드니는 주위를 빙 둘러보았다. 방심해서는 안 된다. 그는 샘즈의 양복 주머니를 하나하나 조사하기 시작했다. 시계, 담배 케이스, 라이터, 만년필, 열쇠, 지갑. 지금까지와 좀 색다른 것은 이것들이 차갑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지갑을 열어보았다. 지폐 외에 여러 가지 서류 같은 것이 나왔다. 로드니는 그 중 한 장을 눈여겨 보았다. 그것은 운송 회사의 영수증이었다. 읽어 보았더니 거기에는 워싱턴 블루바드 753번지에 사는 앨버트 크롬이 밀퍼스가 6372번지에 사는 사무엘 글로브라고 하는 사람에게 기계 한 대를 보내 주었다고 쓰여 있었다. 로드니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크롬이 보낸 기계의 영수증을 어째서 샘즈가 갖고 있는 것일까? 사무엘 글로브라는 사람은 또 누군가? 그 다음에 로드니는 담배 케이스를 열어 보았다. 담배가 들어 있었다. 뭔지 모르지만 좀 이상한 냄새가 나는 담배였다. 그는 한 개피를 집어 부러뜨려 보았다. 담배 가루가 마룻바닥에 쏟아졌다. 바로 이거다! 담배처럼 보이게 만들었지만 이것이 루비가 말한 그 가루인 것이다. 그 담배 케이스를 주머니에 넣은 로드니는 일어섰다. 그리고 문으로 나오려는 순간, 갑자기 문이 열렸다. 거기에는 아까 그 가정부가 큰 권총을 움켜쥐고 서 있었다. "물러섯! 두 손을 머리에 올려! 허튼 수작 부리면 머리통에 바람 구멍을 내 버릴 거야." 가정부는 기분 나쁜 눈초리로 로드니를 노려보며 말했다. 하지만 로드니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어 젖혔다. "아, 하하핫! 이봐, 농담은 이제 그만 집어치우시지." "입 닥쳐! 손 들라는 말, 안 들려!" 로드니는 한 발 뒤로 물러섰다. 거기에 의자가 있었다. 그리고 가죽으로 만든 쿠션이 하나 그 위에 놓여 있었다. 그는 그 위에 주저앉았다. "자아, 어서 나를 여기서 나가게 해 줘." "안 돼! 셋 셀 동안 손을 들지 않으면 진짜 쏘겠다!" "하지만 나는 권총도 아무것도 없지 않소. 그런데 뭐 그렇게까지……." "하나, 둘." "이봐, 시키는 대로 할 테니……." "셋." 로드니는 일어나 손을 드는 척하다 갑자기 쿠션을 집어 들고는 그녀를 향해 내던졌다. 탕! 푹! 총알이 로드니의 귀를 스쳤다. 그리고 두 번째 총알은 쿠션에 날아가 박혔다. 세 번째 총을 쏘기 전에 로드니가 달려들었다. 가정부는 엉덩방아를 찧었다. 로드니는 주먹을 움켜쥐고 있는 힘을 다해 그녀의 아랫배에 한 방 먹였다. 가정부는 깩하는 소리를 내며 마룻바닥에 쓰러졌다. 로드니는 권총을 창 밖으로 내던져 버렸다. 그리고 가정부를 그대로 둔 채 집에서 뛰쳐나왔다. 차에 올라타자마자 밀퍼스 가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 곳에 있는 사무엘 글로브라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것이다!   악마가 모습을 드러냈다   로드니는 전속력으로 차를 몰았다. 그리고 순식간에 밀퍼스가 6372번지에 도착했다. 그 곳은 조용하고 낡은 주택가였다. 그는 돌층계를 단숨에 달려 올라가 초인종을 눌렀다. 대답이 없다. 비었나? 그 때 후닥닥 달려가는 가벼운 발자국 소리가 집 안에서 들렸다. 다음에는 쿵쿵쿵 하며 큰 발자국 소리가 그 뒤를 쫓아가는 듯했다. 그러더니 "까악!" 하는 비명 소리가 들렸다. 로드니는 재빨리 좌우를 살펴보았다. 문 옆에 창문이 있었다! 달려가 쓱 열어봤더니 하늘이 도왔는지 다행히도 스르륵 열렸다. 그는 창문을 기어올라가 방 안으로 뛰어 내렸다. 귀를 기울여 들어보았더니 이층에서 이야기하는 소리가 가늘게 들려왔다. 그 소리를 따라 그는 계단을 올라가 살금살금 다가갔다.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은 남자와 여자였다. 뭔가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그 때, 남자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왔다. "아주 조금만 머리에 뿌리기만 하면 되는 거야, 아가씨. 아프지도 않고 아무렇지도 않아. 먼젓번에는 이 가루를 씻어내 버렸지만 이번에는 그렇게는 안 될걸." 여자가 뭐라고 대꾸했다. "응 그래 맞아. 이 발명을 한 사람은 크롬이지. 나는 크롬에게 이 발명품을 완성하게 했지. 물론 덴저 필더를 유괴한 것도 모두 내가 방법을 일러 준 거라구." 남자는 거기서 후후 하고 기분 나쁜 소리로 웃었다. "크롬이 죽기 전에 나는 물질을 절대 0도가 되게 하는 가루를 만드는 기계 한 대를 훔쳐내 여기에 갖다 놓았던 거야. 솔로몬을 죽인 것이 나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지." 로드니는 발자국 소리가 나지 않도록 살금살금 방 쪽으로 다가갔다. "아마도 지금쯤 로드니 씨가 이리로 오고 있을 거예요!" 그렇게 말하는 저 목소리는……. 루비 기자가 아닌가! 그러자 남자가 다시 웃었다. "그럴 리가 있나. 나는 당신과 로드니 그리고 나 자신을 죽일 것이라는 협박장을 내 양복 주머니에 넣어 두고 왔거든. 그리고 마치 나도 사라져 버린 것처럼 해 놓고 왔단 말씀이야. 로드니는 내가 이미 녹아서 사라져 버렸다고 생각하고 있을 테지. 이제 당신만 죽여 버리면 나는 자유야. 이제부터는 부자들을 닥치는 대로 없애 버릴 테야. 그래도 나는 의심받지 않겠지. 나는 이미 이 세상에서 사라진 인간이니까 말야." 샘즈다! 역시 샘즈가 범인이었던 것이다! 샘즈는 계속해서 말했다. "자, 자, 고통은 없을 거야. 춥다는 생각이 들자 마자 죽을 꺼야. 그리고 몸의 세포가 녹기 시작하고 사라져 버릴 테니까. 이 가루를 당신 머리카락에 뿌리면……." 로드니는 쓰윽 문을 열었다. 샘즈가 뒤돌아보았다. 로드니는 일부러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야아, 샘즈 아닌가! 아니, 이게 웬일인가!" 샘즈는 섬뜩하면서도 겉으로는 어느새 태연한 모습을 하고 머릿속으로는 잔꾀를 꾸미고 있었다. 활짝 웃음을 짓고는, "그럴 만한 깊은 사정이 있어서요, 로드니 씨. 그게 말이죠……." 하고 말을 하더니 갑자기 로드니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로드니도 방심하고 있지는 않았다. 슬쩍 몸을 피하면서 샘즈에게 강펀치를 한 방 먹였다. "윽!" 어느 틈에 주머니 속에서 꺼냈던 권총이 탁 소리를 내며 마룻바닥 위에 떨어졌다. 그러나 샘즈도 결코 만만치가 않았다. 어느 새 몸을 일으켜 세우더니 로드니를 한 방 걷어찼다. 그리고 로드니가 깜빡 의식을 잃고 있는 사이에 옆방으로 뛰어 들어가 문을 잠가 버렸다. "로드니 씨!" 그 문을 박차고 들어가려는 순간, 루비 기자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로드니는 뒤돌아보았다. "루비! 당신 무사했군요!" "로드니 씨, 머리 좀 이렇게 해 보세요! 가루 묻지 않았어요? 근질근질하지 않아요?" "괜찮아요, 가렵지도 않구요." 로드니가 물었다. "하지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죠?" 로드니는 마룻바닥에 떨어져 있던 권총을 집어들고 문으로 다가섰다. "항복해라, 샘즈! 이젠 도망칠 수 없다!" 대답 대신에 문 안쪽에서 굉장한 총 소리가 울려 퍼졌다. 당황해서 홱 물러서자 기관총 총알이 우박처럼 쏟아졌다. "곧 경찰이 올 거예요. 그 때까지 기다려요." 루비가 말했다. 두 사람은 두텁고 긴 의자를 쓰러뜨려 바리케이드를 치고는 그 뒤로 숨었다.   악마의 최후   "고마와요, 로드니 탐정님. 당신 덕분에 목숨을 건졌어요." 로드니는 그녀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말했다. "역시, 루비 기자답군요. 그러면 당신 방에 있던 그 옷은 뭐지요?" "이제, 말씀드리죠." 루비 기자가 말했다. "로드니 씨가 생각하고 계셨던 그대로였어요. 크롬은 생물을 녹여 버리는 방법을 발견한 거예요. 어떤 특수한 전류를 통하게 하면 사람 몸의 분자는 절대 0도가 되며 그 전류 속으로 녹아 들어가 버리는 거죠. 하지만 녹여 버리려면 화학 약품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안 돼요. 크롬은 그 가루를 발명한 것입니다." "가루……. 아아, 당신이 조금 전에도 걱정했던 그 가루 말인가요?" "맞아요. 그 가루를 머리에 뿌리면 그것이 피부를 뚫고 들어가 신경에 영향을 끼쳐 전류가 잘 흐르도록 하는 것이죠. 샘즈는 그 가루를 담배 속에 넣어 항상 갖고 다녔죠. 그리고 재를 터는 척하면서 없애 버리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의 머리에 묻히는 것이죠." "그랬었군!" 로드니는 그 담배 케이스를 떠올리며 말했다 "제가 당신이 해 준 이야기를 샘즈에게 했거든요. 그랬더니 샘즈가 담뱃재를 터는 척하면서 내 머리에 묻혔던 거예요. 그 순간 퍼뜩 솔로몬 씨의 모습이 떠올랐어요. 그도 머리에 재 같은 것이 떨어진 다음 잠시 후에 사라져 버렸거든요." "음! 샘즈는 당신이 완전히 알아차리기 전에 죽이려고 생각했던 거요. 그래서 당신은 샘즈가 진범이란 것을 알게 되었군요!" 루비 기자는 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처음에는 왠지 머리가 자꾸 가려웠어요. 그래서 깜짝 놀라 머리를 감고 또 감고 해서 깨끗이 씻어 냈어요. 그리고 계략을 꾸몄죠. 옷만 남겨 두면 샘즈는 나를 없애 버리는 데 성공했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그래서 먼저 옷을 그런 식으로 놓아두고 나서 당신에게 전화를 걸었던 거죠." "과연." "그런데 깨끗이 씻어냈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약간 묻어 있었던 모양이에요. 전화를 걸고 있는 동안에 몸이 차가워지더니 결국은 의식을 잃고 말았어요. 이젠 죽는구나 하고 생각했었는데 정신을 차려 보니 샘즈의 차 안에 있지 뭐에요. 샘즈는 성공했는지 어떤지를 알아보기 위해 제 아파트에 왔던 것이죠." "아, 그랬군요 ! 이제 모든 걸 알겠소. 그래서 그 다음 샘즈는 자기도 당한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그런 잔꾀를 부린 것이군요." 로드니는 굳게 닫힌 방문을 계속 지켜보면서 말했다. "그런데 왜 여태 샘즈가 진범이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을까요? 참 이상하죠? 제일 처음, 우리들이 덴저 필더 협박장 때문에 모였을 때 누군가가 우리가 한 이야기를 도청하지나 않았나 하고 생각했던 일이 있었지요. 그것도 역시 생각 해 보면 샘즈가 가장 수상했다는 사실은 애초부터 알고 있었던 거요. 왜냐 하면 그 때 모였던 다섯 사람 중에서 그런 편지를 쓸 수 있었던 것은 샘즈 뿐이었기 때문이죠." "그 말도 그럴 듯하네요……." 루비 기자가 혀를 낼름 내밀면서 말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우리들은 범인과 미주알고주알 의논하면서 그 범인을 잡으려 했으니 우습군요." 두 사람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웃었다. "그 범인이 이번에야말로 잡히겠지." 로드니가 말했다. 그 순간 샘즈가 있는 방에서 윙 하고 전기가 흐르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저 소리는 뭐지요?" "앗! 어쩌면……" 루비 기자가 벌떡 일어났다. "위험해요. 나오면 당해요!" "하지만……. 틀림없이 샘즈는……." 두 사람이 말을 주고받으며 실랑이를 벌일 때 복도에서 우르르 몰려오는 발자국 소리가 났다. 무장을 한 경찰이 들이닥친 것이다. "샘즈는 저 문 안에 있소. 하지만 기관총으로 무장하고 있소." "좋아, 총을 쏴서 부숴라!" 지휘자가 명령했다. 경찰들은 총구를 문에 겨냥하더니 일제히 발사했다. 따, 따, 따, 따, 땅! 천지를 울리는 총성과 함께 빛이 번쩍거리더니 문은 산산조각이 나면서 쿵하고 안쪽으로 넘어졌다. 틀림없이 반격해 오리라고 여겼으나 그대로 조용할 뿐이었다. "방심하지 말아. 어딘가에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경찰들은 총을 겨누고 살금살금 방으로 다가갔다. 방 한가운데에는 언젠가 크롬의 실험실 안에 있었던 것과 똑같은 기계가 놓여 있었다. 기계는 경찰들이 문을 부수기 위해 쏘아댄 총알에 맞아 수많은 구멍이 뚫려 있었다. "없잖아!" 경찰이 외쳤다. "아녜요, 있어요. 이거요." 루비 기자가 그 기계 바로 옆에 있는 긴 의자 위를 가리 켰다. 거기에는 한 벌의 주인 없는 옷이 길게 가로누워 있었다. 그리고 옷 주위에는 새하얀 가루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그렇군……. 도망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자신도 사라져 버렸군." 로드니가 맥없이 말했다. 미치광이 과학자를 이용해 천인공노할 완전 범죄를 저지르려고 했던 악마 같은 샘즈도 이렇게 해서 스스로 미세한 분자가 되어 공기 속으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액체 침략자   ♣ R. M. 파뤼 지음   등장 인물   ● 액체 생물 : 검은 호수에서 발생한 여과성 바이러스. 소나 고양이를 잇달아 녹여 버릴 정도로 생명력이 왕성하다. 또한 고도의 지능을 지니고 있다. ● 데이 : 메트칼프 생물 과학 연구소 소장으로, 냉정한 화학자. 액체 생물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동안에 점차 액체 생물에 대한 일종의 우정을 느끼게 된다. ● 한스 슈미트 : 메트칼프 생물 과학 연구소의 세균학자. 멋진 발견을 하여 큰 부자가 되려고 액체 생물 연구에 몰두한다. ● 이반 지노프 : 항상 인류에 도움이 되는 연구를 하려고 하는, 메트칼프 연구소의 생물학자. 데이와 슈미트와 더불어 액체 생물의 수수께끼에 도전한다. ● 메트랄프 사장 : 데이 일행에게 자유롭게 연구를 하도록 밀어 주는 후원자. 최초로 호수의 이변을 알아차려 데이를 비롯한 세 사람에게 조사를 의뢰한다. ● 피어슨 소장 : 메트칼프 사장과 잘 아는 사이로, 주둔 사령관. 병사들을 지휘하여 닥쳐오는 액체 생물을 전멸시키라고 명령하지만……. 검은 호수   "저것이 바로 그 호수다." 메트칼프 사장이 소나무 숲의 건너편에 보이는 작은 호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따뜻한 6월인데도 불구하고 손가락은 딱딱하게 굳어져 가늘게 떨리고 있는 듯했다. "저것이?" 일행 중 키가 크며 어깨가 딱 벌어진 청년이 말했다. 그리고 그 호수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둘레는 그다지 높지는 않으나 병풍같이 깎은 암석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호수 가장자리에는 풀 한 포기도 없다. 거무칙칙한 수면에는 맑게 개인 하늘에 두둥실 떠 있는 하얀 구름이 선명히 비쳐지고 있었다. 어쩐지 기분 나쁜 호수다. 하지만 특별히 색다른 점은 없어 보였다. 넓이를 보아서는 호수라기보다 자그마한 연못이라든가 웅덩이라고 하는 편이 좋을 듯했다. "이 호수가 어떻다는 말입니까, 사장님? 어쩐지 괴물이라도 살고 있는 듯한 호수이기는 하지만 설마 20세기에 공룡이라도 나오려고요? 아무래도 우리 메트칼프 생물 과학 연구소 팀이 나설 필요까지는 없는 것 같은데요?" 청년은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그러나 사장은 머리를 저었다. "자네는 아직 아무런 점도 발견하지 못했나, 데이군? 저 호수의 수면을 잘 보게나! 수초가 전혀 눈에 띄지 않지? 대개의 호수에는 반드시 있는 갈대조차 없지 않나? 물고기도 없네. 아니, 수생 곤충조차 없을 걸세." 데이라고 불린 청년이 대꾸했다. "그런 점들은 과학적으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사장님. 이 호수는 염분이 매우 많이 함유된 호수겠지요. 그러므로 담수어나 보통의 수생 곤충과 갈대 등은 살아갈 수 없지요. 아, 사해라고 있지요? 그 곳과 마찬가지인 셈이지요." "하지만 이런 산 속에 어떻게 짠 물 호수가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산 속이기는 하지만 이곳은 바다와 가까운 곳이었을 겁니다. 잘 조사해 보지 않아서 확실한 것은 모르겠지만 아마 이곳은 몇만 년 전까지는 바다 속이었겠지요. 그것이 솟아올라 움푹 패인 곳에 바닷물이 흘러 들어와 이런 짠 물 호수가 생겨난 것이겠지요." 데이는 침착한 어조로 답변했다. 그는 항상 냉정한 성격의 과학자로, 메트칼프 생물 과학 연구 소장직을 맡고 있다. 그러나,메트칼프 사장은 아직도 납득할 수 없는 듯이 말했다. "그렇게 간단한 것 같지는 않네. 나는 아무래도 이 호수가……." 데이는 사장의 염려를 일축해 버리려고, 다시 말을 하려다가 흠칫했다. 어쩐지 이 호수는 이상해 보였다. 바람도 없는데 수면이 희미하게 물결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마치 그것은 거무칙칙한 물 속에서 어떤 거대한 생물이 몸을 감추고 꿈틀거리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어쩌면 공룡이 이 호수의 바닥에 있을지도 모른다.' 데이는 마음 속에 끓어오르는 생각을 부인했다. '내가 이런 바보 같은 생각을 하다니…….' 메트칼프 사장은 그러한 데이의 마음 속을 꿰뚫어 보기라도 한 듯이 끄덕였다.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네. 하지만 그 무시무시한 증거를 보고부터 의혹이 생기기 시작한 걸세." "무시무시한 증거라니요?" 데이는 사장의 얼굴을 돌아다보았다. 사장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쪽으로 와 보게나." 라고 말하고 소나무 숲을 벗어나 걷기 시작했다. 소나무 숲 건너편에는 푸른 풀이 난 목초지가 호수 가장자리까지 펼쳐져 있었다. 메트칼프 사장은 앞장서서 그 목초지를 가로질러 물가 쪽으로 걸어갔다. 호숫가에서 20미터쯤 떨어진 곳에, 커다란 검은 바위 같은 물체가 가로 놓여져 있었다. 그 곳으로부터 지독한 냄새가 풍겨와 코를 찔렀다. '무엇일까?' 데이가 생각에 잠겼을 때, 사장이 검은 바위를 가리켰다. "잘 보게나!" "아니!" 데이는 자신도 모르게 큰 소리를 질렀다. 이럴 수가 검은 바위로 보인 것은 몸의 절반이 참혹하게 물어 뜯겨져 있는 커다란 검은 소의 시체였던 것이다!   화상 입히는 물   "이, 이것은……." 데이는 썩어가기 시작한 소의 시체에서 풍기는 지독한 냄새 때문에 코를 움켜쥐면서 말했다. "우리 목장의 소지. 그렇지 않아도 한 마리가 없어져서 조사해 보았더니 글쎄 이 모양이……." "사장님!" 데이가 말을 가로막았다. "이 소의 시체는 아무래도 이상한데요. 뒷부분 절반이 물어 뜯겨진 것이……. 마치 뱀에게 먹히다 만 개구리처럼 절반이 녹아 없어졌으며 앞부분으로 갈수록 점차 가늘어지고 있단 말입니다." "그래, 그렇다네!" 메트칼프 사장은 팔짱을 끼며 말했다. "그래서 나는 이 호수 속에 무언가 거대한 뱀 같은 괴물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하지만 설마 소를 한 입에 삼킬 정도의 뱀이 있을라구요? 몇 만 년 전의 괴물이라도 그것은 불가능해요."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네. 그러나 조사해 보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어서 보트를 가져다가 서너 명의 어부에게 이 호수 밑바닥을 깡그리 훑어보라고 했지." "그래서요?" "그런데 생물이라고는 흔적조차 없다는 걸세.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분명히 뱀장어나 게 등이 있었다는데, 그런 것들이 한 마리도 없다지 뭔가?" "흠……." "그것뿐이 아닐세." 메트칼프 사장은 한층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어부들이 늘어뜨린 그물이 얼마 안 있어 너덜너덜 끊어져 버렸다네. 게다가 어부들이 튀어오른 물로 인해서 지독한 화상을 입었지 뭔가!" "물로 화상을 입었어요?" 데이가 믿어지지 않는 듯한 얼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주저 없이 호숫가로 다가섰다. 그러자 메트칼프 사장이 당황해 하며 뒤에서 소리쳤다. "정신 차려, 데이 군 ! 물보라가 몸에 닿으면 화상을 입는단 말일세. 그 물은 마치 염산과 같아서 몸에 닿기만 해도 타 버린단 말이야." 데이는 이내 멈춰 섰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어 활짝 펼친 다음 수면을 향해 던졌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손수건은 마치 얼음이 열탕 속에서 녹아 없어지듯이 순식간에 녹아 버리는 것이 아닌가! "흠……." 데이는 재차 신음 소리를 냈다. 그리고 이번에는 주의 깊게 호숫가로 다가가 무릎을 꿇고 준비해 온 유리병에 가만히 물을 담았다. "잘 알았습니다, 사장님. 어쨌든 이 샘플을 갖고 돌아가서 면밀하게 검사해 본 후에 보고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3명의 청년 과학자   데이는 메트칼프 생물 과학 연구소에 돌아오자마자 즉시 실험실로 들어갔다. 뒤죽박죽 어지러운 실험실이었다. 한가운데에는 갖가지 화학 실험 도구를 늘어놓은 좁고 긴 테이블이 놓여져 있었다. 오른쪽 벽가에는 수신기가 한 대, 테이블이 한 대 있었으며, 그 위에는 해부용 고양이가 한 마리 놓여져 있었다. 고양이 앞에는 한 사람의 흰 가운을 걸친 피부색이 검은 청년이 지금 막 고양이에게서 끄집어 낸 내장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고 있는 참이었다. 그 반대쪽의 왼쪽 벽 가에는 단단한 몸집의 청년이 흰 가운을 걸치고 역시 시험관을 흔들어 보기도 하고 비커에 물을 넣기도 하며 열심히 연구에 몰두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데이가 들어서자 돌아보더니 데이가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유리병을 의아한 듯이 쳐다보았다. "그게 도대체 뭔가, 데이?" "이건 보통 물 같은데?" 고양이 해부를 하고 있던 청년이 유리병을 손으로 잡으려고 했다. "기다리게 지노프, 그것을 만지기 전에 우선 내 이야기 좀 듣게나." 데이는 오늘 메트칼프 사장과 함께 겪은 이상한 체험을 두 사람에게 들려 주었다. 두 사람은 처음에는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으나 몸의 절반이나 녹아 버린 소 이야기와 데이의 손수건이 녹은 이야기를 듣자 점차 진지한 표정을 띠며 말했다. "흠……. 그것 참 이상한 이야기군." 하고 지노프가 말했다. "자네 이야기가 진짜라면 이 짠물은 지독히 강한 산성을 띠고 있다는 말인데, 조금 닿기만 해도 화상을 입는다든지, 소를 녹여 버린다든지 하는 강한 약품은 산 이외에는 생각해 볼 수도 없지. 그렇지 않나, 슈미트?" "하지만 그러한 산성이 도대체 어디로부터 그 호수로 들어갔단 말인가?" "그것을 이제부터 우리 셋이서 연구해야 한다구." 하고 데이가 말했다. "이 물이 지니고 있는, 사물을 태운다든지, 녹인다든지 하는 작용은 화학 분야이므로 화학자인 내가 연구하기로 하지. 그리고 생물과 물의 관계에 대해서는 생물학자인 이반 지노프가, 또한 물 속의 생물학적 문제는 세균 학자인 한스 슈미트가 조사하기로 하지." "좋았어, 합시다." 라고 지노프가 싱긋이 웃으며 말했다. "요즈음, 신통한 연구 결과가 나오지 않아서 짜증이 나던 참인데, 이 물의 수수께끼를 풀어서 인간 사회에 도움이 되는 원리를 이끌어내도록 해야지." "암, 그래야지. 그리고 우리에게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도록 후원해 주고 있는 메트칼프 사장에게도 기쁨을 안겨 주어야 하지 않겠나?" 데이도 얼굴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세균 학자인 한스 슈미트는 건장한 몸집을 흔들며, "흠!" 하며 코를 벌름거렸다. "자네들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까 꼭 아이들 같구먼. 데이는 항상 메트칼프 사장에게 은혜를 갚을 것만 생각하고 있고, 지노프는 오로지 인류를 위한 것만 생각하고 있지 뭔가? 하지만 나는 달라. 언젠가 멋진 발명을 해서 큰 부자가 되는 것이 내 꿈이지. 이번 이 연구는 어쩐지 내 꿈을 이루게 해 줄 듯한 기분이 드는군." "자, 그것도 좋겠지. 그렇게 될지 어떨지는 앞으로의 연구 여하에 따라서 결정될 걸세. 그럼 속히 착수하도록 하지." 데이는 말을 마치자 이내 횐 가운을 머리로부터 뒤집어쓰고 자신의 실험 테이블 앞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유리병 마개를 열고 그 물을 극히 소량 시험관 속에 따르려고 했다. 바로 그 순간, 물이 튀어서 손가락에 닿았다. "앗! 손가락을 데었어." 데이는 손가락을 누르며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며 무언가 바를 만한 약을 찾았다. 슈미트가 무언가 작은 병을 갖고 달려와서 그 속에 담긴 액체를 데이의 손에 발라 주었다. "아, 고마워. 제법 효과가 있는데 그래?" 라고 데이가 말하며 한숨 돌렸다. "그런데 지금 무엇을 사용한 거지?" "석탄산을 엷게 한 것이야." "뭐라구!" 데이는 깜짝 놀랐다. "산을 중화시키는 데 산을 사용했단 말인가? 뭔가 잘못 되었는걸!" "응. 그렇지만 효과가 있다고 하지 않았나?" "하긴 그런 것 같긴 하지만." 데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산을 중화시키는 데는 알칼리성이어야 하지 않는가?" "그런데 어째서 석탄산을 가져왔지?" "세균학자란 갑자기 어떤 급한 일이 벌어졌을 때는 본능적으로 가까운 곳에 있는 석탄산을 거머쥐는 버릇이 있다네. 그런데 산으로 중화된 것을 보니 데이, 아무래도 이 물은 알칼리성인 것 같은데?" "리트머스 시험지로 반응을 조사해 보면 알겠지." 라고 지노프가 옆에서 끼어들었다. "그렇지. 어째서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처음부터 산이라고 단정지었기 때문이지." 데이는 이내 빨간 리트머스 시험지를 갖고 와서 물 속에 집어넣어 보았다. 그러자 리트머스 시험지는 즉시 파란색으로 바뀌었다. "흠……. 확실히 알칼리성인 것 같아. 그래서 석탄산으로 중화시킬 수 있었지 뭔가." 그러자 슈미트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잠깐.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조금 이른 것 같군. 내게도 생각이 있으니 그 물의 샘플을 주게나. 조사해 보고 싶은 점이 있네."   여과성 바이러스   그리고 4~5일 동안 세 사람은 한눈도 팔지 않고 연구를 거듭했다. 그러나 결국 데이가 먼저 실험에서 손을 들고 말았다. "아니, 이건 아무리 조사해 보아도 단지 바닷물이야. 나는 그 이상의 어떤 것도 알아 낼 수가 없네." 그러자 슈미트가 파란 눈을 물끄러미 데이에게 향하며 말했다. "그래?" "그렇다네. 아무리 분석해 봐도 바닷물 분자밖에는 나오지 않는걸." "화학적으로는 그럴지도 모르지. 그러나 세균학적으로 볼 경우에는 그렇지 않은걸." 슈미트는 무언가 비밀이라도 움켜쥐고 있는 듯 단호히 말했다. 데이와 지노프는 그를 향해 돌아앉았다. "그래? 어떤 점이 다른가?" "요컨대, 이 물에는 일종의 여과성 바이러스가 들어가 있단 말일세." "여과성 바이러스라니?" 데이가 눈썹을 찡그리며 물었다. 화학자이므로 생물에 관한 일은 잘 모르고 있는 것이다. "바이러스란 물론 세균의 일종이지. 보통의 바이러스는 여과기를 사용하여 거르면 아주 조그만 것이라도 대개는 걸리고 말지. 그런데, 이 여과성 바이러스는 아무리 미세한 여과기에도 채취되지 않으므로 정말이지 아주 작은 바이러스라고 할 수 있네. 그래서 여과성 바이러스라는 이름이 붙여 진 것이지." "음, 그런가?" "그러나 최근 연구에서 그렇지 않다는 점이 밝혀졌네. 즉, 여과성 바이러스란 보통의 세균과 같이 작은 생물이 있는 것이 아니고. 액체 그 자체가 살아 있는 세균인 것이라는 점이 밝혀졌어." "살아 있는 물이라고?" 라고 생물학자인 지노프가 말했다. "물이 생물이라니, 처음 들어 보는걸?" "그렇다면 생물이란 무엇일까?" 라고 슈미트가 거꾸로 되물었다. "먹을 것을 섭취하고 성장하며 번식해 가는 것이 생물이겠지?" "그건 그렇겠지." "그렇다면 여과성 바이러스 역시 말할 나위 없이 생물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나? 몸 형태는 물이기는 하지만 먹기도 하고 성장도 하며 번식해 가기 때문이지." "음……. 그러면 자네는 결국 그 호수에 여과성 바이러스인지 뭔지 하는 놈이 살고 있다는 말이지?" 라고 데이가 말을 꺼낸 순간이었다. 쨍그랑!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났다. 깜짝 놀라서 돌아다보니 지노프가 해부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실험실에 갖다 둔 고양이 한 마리가 바구니에서 빠져 나와 호수 물을 담은 시험관을 넘어뜨리고 말았다. "저, 저런!" 지노프가 소리지르고 미처 달려갈 틈도 없이 고양이는 엎어진 물을 날름날름 핥기 시작했다. 그러자……. "캬옥! 캬옥!" 무시무시한 비명을 지르고 고양이는 테이블 위에 엎어졌다. 그러더니 온 몸을 비비꼬며 발작을 하는 것이 아닌가! "끔찍한 독이군. 가엾게도." 데이가 고양이를 집어 들어 옆에 있는 싱크대 속으로 집어 던졌다. 고양이는 꿈틀꿈틀 몇 번인가 버둥대더니 이윽고 움직임을 멈추었다. "죽었군……." 지노프가 고양이 몸뚱이를 쿡쿡 찌르며 말했다. 세 사람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그 순간 데이가, "어 ! 저것 좀 보게." 라고 소리쳤다. 지노프와 슈미트가 일제히 쳐다보니, 고양이의 배 부분에 어느 사이엔가 커다란 구멍이 뻥 하니 뚫리고 그 곳에서 투명하고 끈적끈적한 액체가 조금씩 배어 나오고 있는 게 아닌가! "빨리, 싱크대 마개를!" 데이가 외쳤다. 슈미트가 재빨리 달려가서 마개를 틀어막았다. 세 사람은 싱크대 앞에 서서, 물끄러미 고양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고양이는 마치 얼음이 녹듯이 순식간에 녹아 없어지고 있었다. 배, 가슴, 발, 머리……. 그리고 흰 빛을 띤 액체로 변해 가고 있는 것이었다. 잠시 동안에 싱크대는 부쩍 늘어난 횐 빛의 액체로 가득 차게 되었다. 그리고 그 액체의 표면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실룩실룩 움직이며 파도같이 넘실대고 있었다. "액체 생물이다!" 데이가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 호수의 물도 꼭 이런 식으로 움직이고 있었어. 그 호수 전체가 이 액체 생물이 되어 버린 거야! 그 소도, 이 물에 먹혀 버린 것이지!" "그러나 소의 경우는 머리와 상반신이 남아 있었다고 하지 않았나?" "아, 그것은 그 곳이 모래땅이었기 때문이지. 소의 배 쪽에서 배어 나온 액체 생물은 이내 지면 속으로 스며들어가 버린 것이네. 그래서 상반신이 남았던 것이지. 만일 모래땅이 아니고 딱딱한 바위땅이었다면, 상반신마저 액체 생물로 변해 버렸을 테지." 슈미트가 끼어들었다. "무서운 생물이군……." "만일 이 생물이, 호수에서 넘쳐 나게 되면 인간이나 동물이나 모두 녹여 버릴 것이 아닌가!" "그렇지. 대단히 위험한 생물이야. 이 녀석을 죽일 방법을 생각해 보도록 하세!" 슈미트도 안색을 바꾸어 말했다. 바로 그 때, 지금까지 묵묵히 지켜보고 있던 지노프가 손을 내저었다. "잠깐, 그전에, 내가 한 가지 실험해 볼 것이 있네." "무슨 실험인가?" "이 액체 생물에게 과연 지능이 있는가 없는가를 조사해 보는 실험이네."   인간 쪽이 더 하등 동물이다   "뭐라고?" 데이가 깜짝 놀라서 되물었다. 지노프는 상체를 쑥 내밀며 말했다. "내가, 동물의 뇌를 내가 발명한 장치에 연결하여 뇌파를 파악해 내는 연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네들도 잘 알고 있겠지?"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을 이 액체 생물에게 응용해 볼 생각이야. 이 생물은 이토록 생명력이 왕성한 생물이니 틀림없이 지능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거든. 지능이 있다면 반드시 무언가 들려올 것이네. 자, 그럼 즉시 시험해 볼까?" 지노프는 재빨리 커다란 유리 용기를 가지고 와서 국자로 조심스럽게 액체 생물을 담아 넣었다. 액체 생물은 여전히 부글부글 움직이고 있었다. 지노프는 유리 용기를 자신의 실험 테이블까지 가져가 수신기 옆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수신기의 스위치를 올리고, 길고 가느다란 검은 고무 막대기를 손에 쥐었다. 막대기 끝에는 금속 침이 연결되어 있으며, 한쪽은 수신기에 이어져 있다. 이것이 전극인 것이다. 지노프는 가만히 그 금속 침 쪽을 액체 생물 속에 찔러 넣고 스피커의 다이얼을 조절했다. 그러나 스피커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여보세요!" 지노프는 가만히 불러보았다. 하지만 스피커는 여전히 아무런 답변도 없었다. "하하하!" 갑자기 슈미트가 웃음을 터뜨렸다. "모처럼의 실험이 아무래도 실패한 것 같군. 도대체 이런 여과성 바이러스가 지능을 가지고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 자체가 터무니없는 생각 아닌가?"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돌연 스피커에서, "여보세요!" 라고 지노프의 음성과 꼭 닮은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지노프는 깜짝 놀라서 하마터면 2개의 전극을 액체 속에 빠뜨릴 뻔했다. "하하하!" 이어서 스피커에서는 슈미트의 음성과 꼭 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모처럼의 실험이 아무래도 실패한 것 같군. 도대체 이런 여과성 바이러스가 지능을 가지고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 자체가 터무니없는 생각 아닌가?" 세 사람은, 잠시 말문이 막힌 채 눈을 크게 뜨고 서로 쳐다보았다. "이것 참 놀랄 만한 일이군!" 데이가 잠시 후 소리쳤다. "이 녀석은 우리가 한 말을 그대로 흉내내고 있군!" "그러니 역시 이 녀석은 어떤 종류의 낮은 지능을 갖고 있다는 말이군!" 지노프의 말이 떨어지는 순간, 스피커에서는 다시금 똑똑한 말소리가 들려왔다. "이것 보게. 낮은 지능을 갖고 있는 쪽은 바로 자네들 인간 쪽이네!"   말하는 액체   세 사람은 거듭 입을 딱 벌리고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바이러스는 이번에는 흉내가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좀 더 뭔가를 물어보게." 데이가 흥분해서 말했다. 지노프는 침을 한 번 꿀꺽 삼키고 질문을 생각했다. "자네는 우리가 말하고 있는 것을 모두 알아듣는가?" 세 사람은 스피커 쪽을 지켜보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질문 방법이 서투른 모양이야. 좋아, 내가 한 번 물어보지!" 슈미트가 지노프를 밀어 내며 앞으로 나섰다. "자네는 사실은 고양이 뇌일 것이므로 고양이 뇌를 이용하여 떠들고 있는 것이지?" 그러나 스피커에서는 역시 반응이 없었다. 다음에는 데이가 물었다. 그러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액체 생물은 아까의 말을 마지막으로 무엇을 물어보아도 일언반구 대꾸가 없는 것이다. "어떻게 된 것이지?" 지노프가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뇌까렸다. "아까 그 말을 마지막으로 지능을 모두 써 버린 것이 아닐까?" "아니, 도대체 그것으로 지능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 역시 어리석었던 것 같네. 과학자 세 사람이 모여 고양이가 녹은 물을 상대로 이러쿵저러쿵 진지하게 이야기를 시키고 있다니! 말도 안 되는 짓이라구!" 슈미트가 벌컥 화를 내며 말했다.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고. 이 녀석은 아까 우리가 한 이야기를 듣고 그에 걸맞은 대답을 했단 말이야. 즉, 조금 더 지식을 넣어 준다면 대답을 끌어 낼 수 있을지도 모르지." 데이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 틀림없이 그렇다구. 데이, 이 녀석에게 어떤 책이든 읽어 주자구. 그렇게 하면 틀림없이 효과가 있을 걸세." 지노프가 즉시 찬성했다. 그리고 재빨리 연구실 책꽂이에 꽂혀 있던 생물학 책을 가지고 왔다. "바보 같은 짓을 하는군. 나는 그만두겠네. 그런 시시한 짓을 하고 있느니 차라리 집에 가서 낮잠을 자는 편이 낫겠네." 슈미트가 머리를 옆으로 흔들며 연구실 문을 열고 나가 버렸다. 그 후, 몇 시간에 걸쳐 지노프와 데이가 교대로 스피커를 향해 책을 계속 읽어 주었다. 가끔씩 질문을 해 보았으나 여전히 액체 생물은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밤이 깊자 두 사람은 결국 낭독을 중단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음 날의 일이다. 지노프가 재차 액체 생물을 향해 물었다. "어떤가? 어제 읽어 준 책은 재미있었나? 오늘도 무언가 읽어 줄까? 대답해 보게나." 지노프의 말이 끝나자마자, 액체 생물은 마치 그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이 술렁술렁 움직이면서, "그렇게 해 주게. 어젯밤의 생물학 책은 대단히 재미있었네. 이번에는 여과성 바이러스에 관한 책을 읽어 주었으면 하네." 라고 똑똑히 대답하지 않는가! 지노프는 깜짝 놀랐다. "어이! 모두 지금 한 말을 들었지? 이 거품 도깨비가 말을 했다네." 말이 떨어지자마자, 액체 생물의 단호한 목소리가 뒤를 이었다. "나를 거품 도깨비라고 부르지 말아! 여과성 바이러스라든가, 액체 생물이라든가, 정확한 이름으로 불러달라고." "미, 미안하네." 지노프는 자신도 모르게 사과했다. 마치 학교 선생님에게 잘못을 들켰을 때와 같은 기분이었다. "어이, 우리 세 사람 모두 정신이 돌아 버린 것이 아닐까?" 슈미트가 아직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겁내면서 말했다. 그러자 액체 생물이 다시 또렷이 대꾸했다. "그렇지 않네. 자네들은 중대한 발견을 한 것이지. 여과성 바이러스가 액체 생물이라는 점을 발견한 과학자보다도 훨씬 중대한 발견이지. 자네들은 새로운, 더욱이 자네들보다도 훨씬 뛰어난 지능을 가진 생물을 발견한 것이란 말이야. 자, 알았으면 여과성 바이러스에 관한 책을 가져와서 어제처럼 또 읽어 주게!"   두려운 액체 생물   세 사람은 온순하게 액체 생물의 요구를 들어 주었다. 그리고 세 사람은 하루 종일 교대로 무색 투명의 유리병을 향해 책을 낭독해 주었다. 한 권을 다 읽자 액체 생물은 이어서 관심 있는 책을 명령했다. 그리고 조금도 쉬지 않고 넘실넘실 흔들거리면서 세 사람의 낭독을 듣고 있는 것이었다. 저녁 5시가 되자, 세 사람 모두 녹초가 되어 버렸다. "잠시 쉬었다 하세." 지노프가 손을 뻗어 전극 막대기를 뽑으려고 하자 스피커에서 몹시 거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무슨 짓이야! 전류를 끊으면 안 돼. 아직 낭독이 끝나지 않았잖아!" "그렇지만 우리들은 좀 쉬어야겠네." 지노프가 겁먹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쉰다구? 쉰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뜻인가?" 그래서 데이가 연구소 도서실에서 커다란 백과 사전을 가지고 와서 '피로'라든가 '수면' 등의 낱말을 읽어 주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휴식이 필요한 것이라네." "과연 그렇군. 인간이란 존재는 성가신 것이군. 우리에게는 피로 따위라든가 싫증이란 것이 없지. 오늘은 도리 없군. 그만두기로 하세. 그 대신 내일 아침이 되면 오늘처럼 낭독을 계속해 주게나." 겨우 허락을 받은 세 사람은 전극을 뽑아 낸 뒤 집으로 향했다. 돌아가는 도중에 세 사람은 아무도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아침이 되자 세 사람은 다시 모여서 어제와 마찬가지로 액체 생물이 명령하는 책을 닥치는 대로 읽어 주었다. 그러나 액체 생물의 지식욕은 점차 심해질 뿐이었다. 세 사람 모두 그날 저녁에는 목소리가 완전히 잠겨 버렸으며 어리석은 짓에 점차 화가 치밀어 올랐다. "도대체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거지? 아무리 실험을 위해서 라고는 하지만 이 따위 물에게 혹사당하고 있다니 바보 같은 짓도 유분수지!" 슈미트가 투덜투덜 불평을 늘어놓았다. 그러자 액체 생물은 즉시 그 말에 대해서 따지고 들었다. "뭐라고? 하등 동물인 주제에, 건방진 말을 하지 말게나. 자네들은 태어날 때부터 우리와 같은 고등 생물을 위해 일하게끔 되어 있었단 말일세."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슈미트는 화가 치밀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물이 담긴 병을 집어 들려고 했다. 데이와 지노프가 당황하여 앞을 가로막았다. "참게나, 슈미트." 지노프가 말리며 액체 생물 쪽을 돌아보았다. "자네가 대단히 뛰어난 지능의 소유자란 점은 잘 알고 있네, 액체 생물 군. 그러나 우리 또한 이 지구상에서의 생물 중의 왕자지. 즉, 고등 생물이란 말이지. 그리고 고등 생물이란, 호기심을 갖고 있는 법이네. 우리는 자네가 어떤 생물인가를 알고 싶어. 그런데도 자네는 책만 읽어달라고 하니, 짜증이 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라고 타이르듯이 말했다. "시끄러워, 그런 말은 듣고 싶지도 않아." "그렇게 제멋대로 지껄인다면, 전극을 뽑아 버려 더 이상 지껄일 수 없게 만들어 버리겠네. 아무리 지능이 발달해 있더라도, 그 곳에 들어 있는 한 자네는 별 도리가 없을 걸세." 액체 생물은 잠시 듣고 있더니,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로 투덜거렸다. "흠……. 아무래도, 내가 좀 신경질적이 된 듯하네. 잠깐 기다려 주게나. 그 원인을 생각해 볼테니." 액체 생물은 잠시 묵묵히 있었다. 그리고 5분 정도쯤 지나자 전보다 훨씬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 "이제 원인을 알았네. 내게 염분이 부족해진 거야. 그래서 괜스레 신경질적이 되어 버린 것 같아. 소금을 조금만 넣어 주지 않겠나?" 슈미트가 약품 선반에서 식염을 가지고 와서 조금 집어넣고 유리 막대기로 휘저었다. 액체 생물은 마치 인간이 하듯이 "휴……."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아, 이제 기분이 좋아졌어. 자, 다시 낭독을 시작해 주게." "잠깐 기다리게." 데이가 끼어들었다. "이제 슬슬, 우리 질문에 대답해 주어도 될 것 같군. 도대체 자네 정체는 무엇인가?" 액체 생물은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싶더니 이윽고 말을 꺼냈다. "자네들이 액체 생물이라고 말한 그대로일세. 하지만 나는 자네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도, 훨씬 지능이 높은 뛰어난 생물이지." "그렇다면 그 호수 전체가 자네처럼 지능이 높은 액체 생물이란 말인가?" "물론이지. 그러나 나는 이곳에 와서 제법 공부를 했으므로, 호수에 있는 나와는 상당히 차이가 나지. 그러나 다시 호수에 돌아가게 해 준다면 호수의 전체가 나와 똑같은 지식을 가지게 된단 말씀이야." "잠깐, 나도 한 가지 물어보겠네. 이번에는 지노프가 끼어들었다. "지금 '나'와 '호수의 나'라고 했는데,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액체 생물은 킥킥대며 웃었다. "인간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나는 원래 하나의 나인 셈이지. 그러나 나눈다면 몇 개의 나로 나뉘어진다네. 지금은 호수의 나와, 병 속의 나이지만, 호수에 가서 합쳐지면 다시 하나의 나로 바뀐다는 말이야. 이 병 속의 나도 만일 2개의 병에 나누어 적당한 음식과 물과 소금을 준다면 2개의 나가 된다네. 즉, 우리는 끝없이 번식해 갈 수 있단 말이지." 세 사람은 모두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꼈다. "그래, 그렇단 말이다." 라고 액체 생물은 세 사람의 마음 속을 읽기라도 하는 듯이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언젠가는 우리가 이 지구를 점령할 때가 올 것이다. 능률이 낮은 당신들 인류를 대신하여 우리 액체 생물이 지구상의 주인공이 될 날이 말이야. 만일, 우리가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기술을 익힌다면……."   소금에 취한 액체 생물   "어쨌든 정신 차려야겠네. 저 액체 생물에게 당하지 않도록 말일세." 데이가 말했다. "그래. 저 놈이 무턱대고 불어난다면,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말 걸세." 그런데 그 염려가 머지 않아 현실이 되어 나타난 것이었다. 다음 날 아침의 일이다. 여느 때와 같이 슈미트가 여과성 바이러스가 담긴 병에 소금을 넣어 주고 있을 때의 일이었다. 어젯밤, 잠을 제대로 못 잤기 때문에 멍해 있던 슈미트는 그만 소금 병을 손에서 놓쳐 절반이나 담겨져 있는 소금 병이 액체 생물 속에 빠져 버리고 만 것이다. "앗!" 슈미트는 당황하여 병을 집어내려고 손을 뻗쳤다. "위험해! 손이 녹는단 말이야!"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지노프가 외쳤으므로 슈미트는 순간적으로 손을 거두어 들였다. 유리병 속의 액체는 이내 부글부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마치, 끓는 물처럼 수면으로부터 거품이 튀어 올랐다. "어떻게 된 일이지?" 슈미트가 안색을 바꾸며 소리쳤다. "스위치를 넣어 보자!" 데이가 재빨리 전극을 용기 속으로 집어넣고 수신기의 스위치를 올렸다. 그러자마자 갈라진 목소리가 다급하게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좀 더 소금을 주게! 조금만 더! 고양이 시체를 조금 더 주게! 나는 성장하고 싶단 말이야. 좀 더 분열하고 번식하여 이 지구상에 넘쳐흐르고 싶단 말이야." 세 사람은 얼굴을 마주 보았다. 거품은 한층 발작하고 있었다. "넘쳐흐른다! 강으로, 바다로! 지구는, 4분의 3이 물이지. 바다로 들어간다면 지구는 이제 우리 것이 된다! 이 지구상의 생물을 모두 먹어 치우면 지구는 우리 것이다." 뒤이어 의미를 알 수 없는, "우와와와……. 이이이이……. 오오오오오……." 하는 비명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것은 마치, 당장이라도 지구를 점령하고자 덤벼드는 액체 침입자의 싸움의 외침 같았다. 지노프가 수신기의 스위치를 껐다. "이 녀석은, 소금에 취했군. 굉장히 난폭해졌어." "응, 난처해졌군." 데이가 팔짱을 끼고 여전히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는 액체 생물을 응시하면서 말했다. "이 녀석이, 정신이 들려면 며칠 걸릴 것 같군." "질산을 넣어서, 소금의 화합물을 만들면 어떨까?" 라고 슈미트가 말했다. "안 돼, 질산 나트륨에는 살균성이 있기 때문에 이 액체가 죽어 버릴지도 몰라." "그렇지! 무언가를 혼합해서 엷게 하면 어떨까?" 라고 데이가 손바닥을 치면서 말했다. "물이다. 물로 20~30배 정도 묽게 해 보지!" 세 사람은 급히 끓고 있는 액체를 커다란 물통에 쏟아 넣고 끓음이 멈출 때까지 물을 쏟아 넣었다. 이윽고 진정되었다. 대신에 액체 생물은 커다란 물통 가득히 불어나 버렸다. "자, 그럼 이제부터 어떻게 한다?" 하고 지노프가 말했다. "이렇게 불어나 버리다간 큰일나겠는걸." "그래, 위험하고 말고. 그럼 불어난 만큼 싱크대에다 쏟아 버리면 어떨까? 하지만 원래 지능은 그대로 남아 있겠지. 아까 액체 생물이 일부나 전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지 않나?" "그 말은 맞지만 싱크대에 버리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지." "어째서?" "싱크대에 이렇게 많은 액체 생물을 버리면 강으로 흘러 들어가 그대로 바다로 들어가게 되지. 바닷물에는 소금기가 있으니까 액체 생물은 맹렬한 속도로 번식하여 눈 깜짝할 사이에 바다 속의 생물을 전멸시키고 바다 전체로 퍼져 나가게 된다고. 아까, 소금에 취한 액체가 그렇게 말하지 않았나? 그렇게 된다면 정말 큰 일이지!" 데이가 말했다. "그렇군. 하마터면 멍청한 짓을 할 뻔했군." 슈미트가 동의했다. "그렇다면, 어쩌면 좋을까?" "내게 좋은 생각이 있어!" 데이가 손바닥을 치며 말했다. "내가 손가락에 화상을 입었을 때, 석탄산을 발라서 중화시키지 않았나? 그러니 원래 있었던 만큼의 액체만 퍼내고, 이 통 속에다 석탄산을 넣는다면 중화되어 죽어 버릴 것이네." "그것 좋겠군. 자, 빨리 해 보세." 세 사람은 이내 전과 똑같은 분량만큼을 원래의 유리 용기에 집어넣고 물통 속에다 석탄산을 퍼 넣었다. 액체는 즉시 탁하게 변하여 잠잠하게 되었다. "잘 되었군." 세 사람은 유리 용기 쪽으로 돌아가, 전극을 찔러 넣고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그러자 스피커에서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먹을 것을! 먹을 것 좀 줘!" "아직 살아 있군!" 데이가 기뻐서 소리쳤다. "지금은 취해 있지 않군 그래." 지노프가 중얼거리며 해부대 위에 남아 있던 고양이 시체의 일부분을 용기 속에 집어넣었다. 시체는 즉시, 슈……, 슈……, 소리를 내며 녹아들기 시작하더니 2~3분이 지나자 완전히 녹아 없어져 버렸다. 이것으로 겨우 액체 생물은 기운을 차린 듯했다. 목소리도 전보다 훨씬 커졌다. "아, 고맙네. 그런데 도대체 내가 어떻게 된 건가?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이 아무것도 생각이 안 난단 말씀이야.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말해 주지 않겠나?" 데이가 지금까지의 일을 설명해 주었다. 그러나 통 속의 액체 생물을 죽여 버린 것은 일부러 말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 이외의 부분은 어떻게 되었나?" "아, 그것은 저……, 싱크대 속에 버렸지." 데이가 거짓말을 했다. 그러자 일순간 용기 속의 액체는 무서운 기세로 거품을 일으키며 거친 소리로 말했다. "아아! 그런 짓을 하다니! 그런 짓을 하면 그 부분은 죽어 버린단 말이야! 보통의 물로 지나치게 묽어지면, 우리는 죽어 버린다고!" 세 사람은 의미심장하게 얼굴을 마주 보았다. 생각지도 않게, 액체 생물을 죽이는 방법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대성공   하루, 이틀 지나는 동안에 액체 생물은 다시 원래대로 기운을 차리게 되었다. 그리고 전처럼 갖가지 책을 읽어달라고 지시했다. 세 사람의 과학자는 액체 생물의 요구를 들어 주었으나 그동안 곤란한 일이 벌어졌다. 메트칼프 사장이 짠 물 호수의 수수께끼는 어떻게 되었는지 연구 결과를 빨리 보고하라고 성가시게 재촉하는 것이었다. "이것 참 난처하군." 데이가 말했다. "사실대로 그 짠 물 호수의 물은 굉장한 지능을 가진 생물이라고 이야기를 해야만 하나……. 그러나 사장이 믿지 않겠지." "믿지 않으면 증거를 보여 주면 되지 않나?" 라고 슈미트가 말했다. 데이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것은 무리야. 증거를 보여 주면 사장은 틀림없이 그런 위험한 생물은 문제를 일으키기 전에 죽여 없애라고 말할 걸세. 나는 모처럼의 귀중한 연구 재료를 그런 식으로 없애 버릴 수는 없다네." "그것도 그럴 법하네." 라고 지노프가 말했다. "설령 죽이라고 말하지 않더라도, 그 이야기를 들으면 메트칼프 사장은 즉시 세상에 그것을 발표할 거야. 그렇게 되면 온 나라 사람들이 진귀한 액체 생물의 견본을 얻고자 그 호수로 몰려들 걸세. 그리고, 필시 어떤 사소한 실수에서 액체 생물은 난폭하게 날뛰게 될 것이란 말이야." 그러자 슈미트가 손뼉을 딱 치며 말했다. "그렇지! 이런 때야말로 액체 생물에게 어떻게 하면 좋을까 물어보면 어떨까? 그 녀석은 항상 자기가 인간보다도 훨씬 머리가 좋다고 말하지 않았나? 아마 그 녀석이 무언가 멋진 지혜를 가르쳐 줄지도 모르지." 과연 좋은 제안이었다. 그래서 세 사람은 액체 생물에게 곤란한 일에 대해서 털어놓았다. 액체 생물은 잠시 묵묵히 있더니 이내 대답해 주었다. "그렇다면 내게 좋은 생각이 있지. 내가 자네들에게 내가 가지고 있는 지혜를 빌려 줄 테니 자네들 연구소가 의뢰 받은 문제를 내게 들려주게나. 내 우수한 두뇌라면 어떠한 문제라도 즉시 해결할 수 있을 걸세. 그렇게 되면 자네들 연구소는 점차 번창하여 사장도 불평을 늘어놓지 않을 걸세." "진짜로 그렇게 할 수 있겠나?" "할 수 있는지 없는지 시험해 보면 알 것 아닌가?" 그래서 세 사람은 마침 당면해 있는 발명에 관한 사항을 액체 생물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그 발명은 무척이나 까다롭고 어려워서 거의 체념하고 있던 것이었다. 그런데 액체 생물은 그 발명에 관한 이야기를 듣더니 단 한 시간 정도만에 대수롭지 않게 해결해 버렸다. 세 사람이 몇 개월에 걸쳐서도 풀 수 없었던 문제가 액체 생물에게는 간단한 문제였던 것이다. "이것 참 굉장하군!" 세 사람은 액체 생물의 충고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 발명에 관한 일이 세상에 알려지자, 메트칼프 과학 연구소의 명성은 즉시 굉장한 기세로 치솟았다. 일의 주문이 점차 늘어났다. 그 주문을 액체 생물은 간단하게 해결했고 그로 인해서 성공의 사례금이 점차 불어나게 되었다. 연구소 일은 갑자기 늘어나 바쁘게 돌아갔다. 연구소를 증축한다든지 조수나 사무원을 몇 사람 새로 고용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생각지도 않은 성공에 가장 깜짝 놀라서 기뻐한 것은 물론 메트칼프 사장이었다. 그리고 짠 물 호수의 수수께끼 쪽은 완전히 잊어버리게 되었다. 모두가 액체 생물이 말한 대로 된 것이다.   나를 다시 호수로   세 사람도 역시 바쁘게 지냈다 산처럼 쌓인 주문을 차례차례 액체 생물과 상담하여 해결해야만 했다. 액체 생물은 엄중한 방음 장치가 된 깊숙한 방에 두었고, 그 방에는 데이와 슈미트, 그리고 지노프의 세 사람 이외에는 절대로 들어갈 수 없었다. 액체 생물의 비밀이 바깥으로 흘러나가면 곤란하기 때문이었다. 옆방은 낭독실이었다. 액체 생물에게 갖가지 문제를 해결시키기 위해서는 많은 양의 책을 읽어 주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서 새로 고용한 사람에게 책을 읽게 하여 그 소리를 마이크로폰과 스피커에 연결시켜 방음실 속에 있는 액체 생물에게 들려 주는 것이다. 이리하여, 몇 주 동안은 마치 화살과 같이 지나갔다. 연구는 아무런 장애 없이 잘 풀려갔으며, 사례금은 산더미처럼 쌓여갔다. 그런 만큼, 세 사람 모두 즐거운 마음으로 작업에 임하고 있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자 액체 생물이 점차 불쾌한 듯이 보여 졌다. 세 사람은 깜짝 놀라서 액체의 염분이나 영양분을 조사해 보았으나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그러나 액체 생물의 불쾌함은 점차 도를 더해 갈 뿐이었다. 결국에는 아무리 물어도 대답해 주지 않는 적이 몇 차례나 계속됐다. 세 사람은 방음실에 모여 그에 대한 일을 의논했다. "결국, 액체 생물에게 물어보는 것이 좋겠군." 슈미트의 제안에 모두가 찬성했다. 그래서 스위치를 넣고 지노프가 대표로 물어보았다. "액체 생물 군. 도대체 어찌 된 일인가? 무언가 불만이 있으면 말해 보게나. 무엇이라도 원하는 대로 해 주겠네. 자네가 우리에게 협력해 주지 않으면 우리 입장이 퍽 난처해진다네." 그러자 액체 생물은 여전히 불쾌한 어조로 대꾸했다. "불만투성이일세! 도대체, 이런 일만 하고 있다니, 나는 무엇이란 말인가!" "그게 무슨……?" "자네들 세 사람은 내 두뇌 덕택에 점차 유명하게 되어 돈까지 벌게 되었지만 내게는 돈 따위는 아무런 소용도 없다네. 그런데 나는 매일같이 수고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얻는 것은 고작해야 그날 그날의 양식인 죽은 물고기나 고기 덩어리뿐이지. 나는 이제 이런 생활에 싫증이 났단 말일세." "그러나 우리가 돈을 버는 데 있어서 전혀 비용이 안 드는 것은 아니네. 설비를 늘리기도 하고, 책을 다량 구입해서 자네에게 갖가지 지식을 알려 주는 것도 돈이 필요한 것 아닌가?" 데이가 어린아이를 타이르듯이 말했다. 그러나 액체 생물은 불만 어린 어조로 대꾸했다. "단지, 사물을 생각하고 있는 것만으로는 싫증이 났단 말이야. 자네들 역시 그렇겠지. 나도 책에서 익힌 지식을 무언가 중요한 일에 사용하고 싶다구!" "그래서 매일 갖가지 연구를 들려 주지 않는가?" 지노프가 말하자 액체 생물은 경멸한다는 듯한 어조로 대꾸했다. "흥, 그런 어리석은 문제를 생각하는 것 따위를 갖고 나는 내 지식을 유용하게 사용한다고는 생각지 않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하면 좋을지 말해 보게나!" 성질 급한 슈미트가 소리쳤다. "나를 다시 호수에 데려다 주게. 나는 남은 부분의 나에게 지금까지의 내가 공부한 것을 가르쳐 주고 싶단 말이야. 자네들은 다시 별개의 나를 이곳에 데리고 와서 가르치면 될 것 아닌가?" "그럴 수는 없어." 데이가 강경하게 말했다. "분명히 말해 두겠네. 자네가 이곳에 있는 한, 자네는 우리들의 선생이네. 인류에게 새로운 지혜를 전수해 주는 은인이지. 그러나 만일 자네를 다시 호수로 돌려보내 그 호수 전체가 자네와 똑같이 갖가지 지식을 익히게 된다면, 무서운 인류의 적이 될지도 모르지 않는가? 그것만큼은 어떤 일이 있어도 승낙할 수 없다네." "뭐라고! 이 은혜도 모르는 인간 같으니. 하등 동물인 주제에 건방진 소리를 지껄이는구나! 그렇게 말한다면 이제 두 번 다시 지혜 따위는 빌려 주지 않을 테니까 그리 알라고!" 액체 생물은 화를 벌컥 내며 입을 다물었다. 이리하여 2~3일 동안 액체 생물은 입도 벙긋하지 않았다. 세 사람은 난처하게 되었다. 어쨌든 액체 생물이 협력해 주지 않으면 일은 밀리기 마련이고, 그렇다고 해서 액체 생물의 요구를 들어 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묵묵히 액체 생물의 하는 태도를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또 하루, 이틀이 지났다. 다투고부터 5일째 되던 날, 세 사람은 함께 방음실로 향했다. "오늘쯤은 기분이 풀려 있을지도 모르지." 이런 말을 주고받으며 방음실 문을 열고 책상 위의 용기를 본 순간 어찌 된 일인지 액체 생물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세 사람은 가슴이 철렁하여 얼굴을 마주 보았다. "어, 어찌 된 셈이지?" "아니! 어떻게 빠져나갔지?" "도망칠 수가 없지 않은가!" 세 사람은 제각기 엉겁결에 한 마디씩 내뱉었다. "그렇다면 도둑이 들어와서 훔쳐간 것이겠지. 아아, 이제 액체 생물이 없어졌으니 이 메트칼프 연구소도 끝장이야. 모처럼 부자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왔었는데, 이제 다 수포로 돌아갔군. 역시, 녀석이 한 말을 들어 줄 걸 그랬나봐……." 이렇게 말한 것은 슈미트였다. 지노프가 슈미트의 얼굴을 흘겨보며 말했다.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슈미트! 이런 때에 돈 벌 궁리를 하고 있다니! 도대체 그 생물이 이 곳을 빠져나가 이 세상에서 번식해 간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생각해 보게나. 인류가 놈들에게 깡그리 먹혀 버릴지도 모른단 말일세!" 데이는 묵묵히 팔짱을 끼고 있었으나 그의 마음속은 액체 생물에 대한 미안함과 연민의 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데이는 오랫동안 액체 생물과 함께 일해 오면서 마치 친구에 대한 우정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틀림없이 액체 생물은 포로 신세인 자신이 싫어져서 스스로 자신의 몸을 먹어 사라져 버렸는지도 몰라. 아, 우리가 너무 심한 짓을 한 것이 아닐까?' 이렇게 생각하면서 책상 밑바닥을 살펴보았다. 어쩌면 어딘가에 액체 생물이 흘러 넘친 자국이라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 것이다. 순간 그는 깜짝 놀랐다. 방구석에, 해파리 같은 모습의 반원 물체가 꿈틀대며 떠돌아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앗!" 데이는 자신도 모르게 외쳤다.   금을 만들자   "저, 저것 좀 보게!" 데이의 외침에 슈미트와 지노프가 깜짝 놀라서 쳐다보았다. "앗! 액체 생물이다!" 그러자 그 반원 모양의 액체 생물이 마치 세 사람의 소리를 듣고 있었다는 듯이 주르륵 주르륵 세 사람을 향하여 다가왔다. 그리고 갑자기 그 일부분이 스르륵 일어서는 듯싶더니 기다란 팔과 같은 모습이 되어 세 사람 쪽으로 스르륵 뻗었다. "으앗!" 세 사람은 엉겁결에 뒷걸음질쳤다. 그러나 액체 생물이 있는 곳에서 세 사람이 있는 곳까지는 거리가 너무 멀었다. 팔은 도중에서 맥없이 구부러져 바닥에 떨어졌다. 그리고 다시 원래의 반원 모습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액체 생물이 변화한 것이다! 스스로 몸의 성질을 바꾸어 움직인다든지 손을 뻗칠 수 있다든지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제일 먼저 제 정신을 찾은 사람은 데이였다. 그는 테이블 위의 빈 유리 용기를 쥐자, 흐느적대며 움직이고 있는 액체 생물의 옆으로 달려가 병의 입 쪽을 벌렸다. 그러자 액체 생물은 마치 보금자리 속으로 들어가는 문어처럼 미끄러지듯이 스스로 용기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데이는 유리 용기를 가슴에 안고 재빨리 테이블 쪽으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급히 전극을 꽂고, 수신기 스위치를 넣었다. 그러자 대단히 흥분한 목소리가 스피커에서 흘러 나왔다. "인간들이여! 나는 이제 막 스스로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정신력으로 내 몸을 바꾸어, 어디에든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단 말이다!" "정신력이라고?" "그렇다. 역시 내 뛰어난 두뇌가 해 낸 것이다. 이것으로 지금까지 두뇌는 인간의 몇 십 배나 뛰어나면서, 스스로는 움직일 수 없는 하등 동물과 같은 신세에서 해방되었단 말이다!" 액체 생물은 너무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세 사람은 할 말을 잊은 채 서 있었다. 굉장한 일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이 머리가 뛰어나며, 무서운 액체 생물이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게 된다면 순식간에 인류나 모든 생물을 먹어 치울 것이다. 세 사람은 힐끗 눈을 마주쳤다. '이 방에서 절대로 빠져나가게 해서는 안 된다.' 라고 세 사람의 눈은 말하고 있었다. 지노프가 한발 한발 석탄산이 있는 선반 쪽으로 다가서고 있었다. 그러자 액체 생물이 기묘한 말을 끄집어냈다. "인간들이여, 나는 매우 기쁘네. 그래서 지금까지 자네들을 괴롭힌 것 같아서 자네들을 위해 무언가 해 주고 싶네." 액체 생물의 예외적인 발언에 세 사람은 깜짝 놀랐다. "무엇을 해 준다는 말인가?" "음, 우리는 이 2개월 동안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었어. 그러나 그것으로는 서로 공부할 시간이 없어진다네. 그래서 일을 해서 돈을 버는 것보다도 돈 그 자체를 만들면 어떨까 생각했다네." "돈을 만든다고?" 슈미트가 한 걸음 몸을 내밀며 물었다. "어, 어떻게 만든단 말이지?" "기다리게." 데이가 슈미트를 말리면서 말했다. "위조 지폐를 만든다니, 당치도 않네." "위조 지폐를 만든다는 말이 아닐세.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황금을 만들자는 것이네. 아무 곳이나 널려 있는 하잘것없는 금속을 황금으로 바꾼다는 말이지." "그런 일을 할 수 있단 말이지?" 슈미트가 다시 몸을 내밀며 물었다. "아직은 할 수 없네. 그러나 그런 것쯤은 문제가 아니지. 지금까지 낭독해 준 책에서 보면, 모든 금속은 원소로 되어 있으며, 그 원소를 바꾼다면 구리를 금으로 바꾸는 일도, 철을 금으로 바꾸는 일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세." "그 원소를 바꾼다는 일이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닐 텐데." "그렇지 않아. 라듐이라든가 우라늄이라고 하는 방사능을 지닌 금속은, 저절로 방사능을 내뿜어 납으로 변해 가지 않는가? 그 원리를 응용한다면, 분명히 해 낼 수 있을 걸세." "그것 참 멋지군! 구리나 철을 금으로 바꾸는 것은 우리 인류의 꿈이었네. 우리가 그것을 해 낸다면 그야말로 굉장한 일이라네. 그렇게만 해 준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없지." 슈미트가 굉장히 흥분하여 말했다. "나는 역시 안 될 거라고 생각하네. 멋대로 금을 만들어 낸다면 이 세상에 혼란이 일어날 것이 틀림없으니까." 데이가 고개를 저었다. 지노프도 끼어들었다. "맞아. 우리는 인류를 위해 도움이 되는 과학만을 연구해야 해. 보통 금속을 금으로 바꾸는 것은 연구로서는 좋지만 진짜로 금을 만들어 낸다면 인류를 위해서 안 된다고 생각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너희들은!" 슈미트는 맹렬히 덤벼들었다. "데이, 자네는 항상 세상이 이러쿵저러쿵 된다느니, 시끄럽게 떠들어대지. 그리고 지노프, 자네는 일 년 내내 인류를 위한다느니 하면서 이루지도 못할 이상만을 내세우고 있고 말이야. 그러나 나는 달라. 나는 부자가 될 이런 멋진 기회를 놓칠 바보가 아니란 말이야!" 슈미트는 말을 마치자 액체 생물 쪽으로 돌아섰다. "그들은 반대일지 모르지만 나는 대찬성일세. 나는 자네 편이란 말이야. 자, 어떻게 하면 금을 만들 비법을 고안해 낼 수 있겠나? 무엇이라도 좋으니 명령만 내려 주게!" 액체 생물은 잠시 대답이 없었다. 그러나 이윽고 입을 열었다. "좋아. 그러면 시작하도록 하지. 우선 원자, 물리학 관계 책을 남김 없이 갖고 와서 낭독자에게 읽히도록 하고 다음은 광물학의 책을 가져다가 낮이나 밤이나 계속해서 읽어달란 말이야!"   교환 조건   이리하여 액체 생물은 금을 만드는 비법 연구를 시작했다. 매일매일, 낭독하는 사람은 산처럼 쌓인 책을 닥치는 대로 읽어 주었다. 액체 생물은 그 내용들을 묵묵히 듣고 있었다. 사흘째가 되어 슈미트가 아직 안 되겠느냐고 묻자, "아직 알 수 없는 점이 있어. 전기에 관한 책을 20권 정도 가져다가 다시 읽어 주게." 라고 말했다. 닷새 째에는 다시 30권에 달하는 갖가지 책들을 요구해 왔다. 세 사람은 이제는 다른 연구에 관한 일은 내팽개치고, 매일같이 액체 생물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무언가 다른 일을 하려고 해도 그 일이 마음에 걸려 아무것도 할 수가 업었다. 슈미트는 특히 초조해 있었다. 그리고 하루에도 몇 차례씩 방음실에 들어가서는 액체 생물을 재촉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슈미트는 그 일로 인하여 잠도 못 이루고 식사도 제대로 못하였으므로 이내 여위게 되어 마치 병자같이 되어 버렸다. 열흘째의 일이었다. 그 날 아침, 세 사람이 방음실에 들어가 수신기 스위치를 넣자, 이내 스피커에서 쾌활한 액체 생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러분! 나는 드디어 문제를 해결했소!" "해, 해 냈다고?" 슈미트가 스피커 쪽으로 몸을 바싹 당기며 물었다. "이론은 완성되었지. 실은 너무나 간단한 일이어서 빠뜨린 것이 있었네." "그렇다면?" "금을 만들려면 극히 간단한 장치가 필요해. 지금부터 내가 말하는 화학 약품과 전기 기구를 메모해서 이 곳에 갖다 주게나." 세 사람은 떨리는 손으로 액체 생물이 부르는 물품의 이름을 메모하여 앞을 다투어 바깥으로 뛰어 나갔다. 잠시 후, 세 사람은 각자가 맡은 물품을 갖고 방음실로 향했다. 문을 열려고 할 때 슈미트가 말했다. "그런데 데이, 이런 것으로 정말 금을 만들 수 있을까? 액체 생물 녀석, 무슨 꿍꿍이속이 있어서 우리에게 엉터리로 말한 것이 아닐까?" "그럴 리가 없어." 데이는 강경히 잘라 말했다. "지금까지 액체 생물은 우리에게 엉터리로 가르쳐 준 적은 한 번도 없지 않은가? 게다가 나는 점차 저 액체 생물 녀석이 좋아진단 말씀이야. 저 녀석이 바깥으로 나가면 위험한 존재일지도 모르지만 그 대신에 결코 인간처럼 거짓말을 한다든지, 속인다든지 하지는 않는단 말일세. 그러므로 틀림없이 이번에도 거짓말은 아닐 것이야."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녀석은 혼자 돌아다닐 수 있게 된 기쁨에 겨워 진짜로 금을 제조하는 방법을 우리에게 가르쳐 줄 것이라는 기분이 드네." 슈미트가 빙긋이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나 역시 지혜는 인간 쪽이 한 수 위지. 나는 녀석에게서 금 제조법을 익힌 뒤, 이내 그 용기 속에다 석탄산을 집어넣어 죽여 버릴 작정이네. 어때, 좋은 생각이지? 그렇게 하면 이제 위험도 사라질 것이고, 게다가 금 제조법이 다른 사람에게 유출될 염려도 없어지지 않겠나?" "자, 자네! 무슨 소릴 하는가!" 데이는 발끈 화를 내며 슈미트를 노려보았다. "자네는 액체 생물을 속이자고 말하는 건가? 나는 그런 비겁한 짓은 할 수 없네." "무슨 소릴 하는 건가, 데이?" 슈미트가 다시 비웃으며 응수했다. "상대는 사람이 아니라구. 단지 세균이란 말이야. 속이고 뭐고가 없지 않아?" "아니, 그렇지 않아. 설령 상대가 인간이 아니더라도 약속을 어긴다든지 속인다든지 하는 짓은 용서할 수 없어. 나는 절대로 그런 짓을 허락할 수 없다구!" 세 사람은 언쟁을 벌이면서 방음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가지고 온 화학 약품과 코일, 전기 기구 등을 액체 생물의 용기 곁의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전부 준비되었네." 라고 데이가 말했다. "다음은 어떻게 하면 되지?" 그러자 액체 생물은 전연 의외의 제안을 해 오는 것이었다. "다음은 금 제조법을 가르쳐 주는 대신에, 나에 대한 사례를 정할 차례야." "뭐, 뭐라고?" 세 사람은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 "사례를 원하는가?" "당연하지 않나? 나는 자네들을 세계 제일의 부자로 만들어 주는 비결을 가르쳐 주는 거야. 그 대신에 내가 조그만 사례를 바란다고 해서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지 않는가?" "도대체 어떤 사례를 바라는가?" 지노프가 액체 생물에게 따지고 들었다. "극히 간단한 일이지. 금 제조법의 대가로 나를 원래의 호수로 데려다 주면 되는 걸세." 액체 생물이 차분히 대꾸했다. 세 사람은 잠시 할 말을 잊었다. 갑자기 슈미트가 큰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그 정도쯤이라면 기꺼이 책임지지." "무슨 소릴 하는 건가, 슈미트!" 지노프가 큰소리로 가로막았다. "그 일만큼은 절대로 안 되네! 이 액체 생물이 호수로 되돌아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자네가 잘 알고 있지 않나! 액체 생물은 이제 스스로 걸어다닐 수도 있단 말이야. 호수 안의 물이 모두 기어 나와서 우리를 습격할 거란 말이야!" "그런 일이 가능하다고 생각해?" "암, 가능하고 말고." "자네, 정말 내 일을 방해할 셈인가, 지노프!" 슈미트와 지노프는 한 걸음도 양보하지 않고 언쟁을 벌였다. 두 사람의 얼굴은 증오와 노여움으로 보기 흉하게 일그러지고 있었다.   슈미트도, 액체 생물도   "두 사람 모두 이제 그만 두게나!" 데이의 딱 벌어진 몸집이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았다. 두 사람은 마지못해 물러섰으나 아직까지도 씨근거리고 있었다. "자, 이제 그만 진정들 하게. 우리 모두가 지나치게 신경을 써서 그런 것 같구먼.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근차근 이야기해 보세." "이런 녀석과는 더 이상 이야기할 필요도 없어! 인류의 운명보다도, 돈벌이를 앞세우는 이런 비열한 녀석은 이제 볼도 보기 싫다고!" 지노프가 입술을 떨면서 소리쳤다. 슈미트가 이내 응수를 하려다 말고 무슨 생각에선지 몸을 돌려 휙 하니 방음실에서 나가 버렸다. 나머지 두 사람은 어안이 벙벙해졌으나 할 수 없이 뒤를 따라 방을 나섰다. 복도에 나서자 슈미트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이 좋겠군. 액체 생물이 듣지 못할 테니까 말이야." 슈미트는 이렇게 말하더니 빙긋이 웃었다. "지노프의 완고함에는 내가 두 손 들었네. 그렇다고 나라고 해서 인류의 운명과 돈벌이를 바꿀 수야 있겠나? 무엇보다도 전 세계가 액체 생물의 손아귀에 들어가 버린다면 금 따위가 무슨 소용이 있겠나?" "그렇다면 어째서 자네는 그런 말을 했나?" 지노프가 따지고 들었다. "이해 못 하겠나? 나는 녀석에게서 금 제조법만 배우면, 즉시 녀석 속에다 석탄산을 뿌려 넣어 죽여 버릴 작정이란 말이야. 금 제조법의 비결이 목적이쟎나? 그래서 거짓말을 한 거라고." "자네는 그렇게 항상 거짓말만 늘어놓는군!" 지노프가 분통을 터뜨렸다. "알아듣게 이야기하면 수긍할 줄 알아야지! 더 이상 건방진 소릴 지껄이면 목을 분질러 버리겠어!" "어럽쇼! 할 수 있으면 해 보게!" 지노프가 주먹을 움켜쥐고 대들었다. 두 사람은 금방이라도 주먹질을 하려는 듯이 씩씩댔다. 데이가 다시 두 사람을 메어 놓았다. "이제 그만하게나! 오늘 더 이상 논쟁을 벌이다가는 싸움이 벌어질 것 같으니 오늘밤은 푹 쉬고 내일 다시 만나서 의논해 보기로 하세." 데이가 타이르듯이 말했다. 두 사람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세 사람은 제각기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 날 아침, 데이는 어젯밤 늦게까지 일을 했던 탓에 늦게 눈을 떴다. 이미 한낮이 가까워진 시각이었다. "이것 참, 늦잠을 잤군." 데이는 세수도 하는둥 마는둥하고 급히 연구실로 향했다. 연구실에 들어서자, 여느 때와 같이 화학자와 물리학자, 생물학자와 수학자들이 자기의 책상에서 이미 업무를 시작하고 있었다. 낭독하는 사람도, 평소처럼 마이크를 향해 무미 건조한 목소리로 어려운 전문 서적을 소리내어 읽고 있었다. 데이는 방음실 앞에 서서 열쇠로 문을 열었다. 그리고 한 걸음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앗!" 하고 소리를 지르며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멈춰 섰다. 액체 생물을 넣어 둔 용기가 없어졌다! 아니, 그뿐이 아니다. 금 제조를 하기 위한 도구나 약품류도 그리고 액체 생물과 이야기하기 위한 수신기까지 자취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액체 생물만 없어졌다면 다시 그 정신력을 이용해 걸어서 빠져나갔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용기째 없어진 것이나 도구와 수신기까지 없어진 것으로 짐작해 보건대 의심할 나위 없이 인간의 소행인 것이다. 그렇다고 하면 누가? 물론 슈미트 아니면 지노프다. 이 방음실 열쇠는 그들 세 사람밖에는 갖고 있지 않으므로 다른 사람이 빼내 갈 리는 만무하다. 슈미트일까? 그렇지 않으면 지노프일까? 데이가 잠시 생각에 잠겨 있을 때였다. 열려 있는 문으로 지노프가 불쑥 들어왔다. 그리고 얼이 빠져 있는 데이를 보고 멈춰 섰다. "무슨 일인가, 데이?" "지노프? 그렇다면 역시 슈미트. 여보게, 저길 보게나! 누군가가 액체 생물을 훔쳐 갔어." "슈미트 녀석 짓이군!" 지노프는 방안을 둘러보면서 외쳤다. "그렇다면 그 녀석! 역시 금 제조법 때문에 액체 생물을 빼돌렸구나!" "하지만 어디로 갖고 갔을까?" "그 짠 물 호수로 갔을 거야. 틀림없이 액체 생물이 금 제조법의 비법과 교환 조건으로 내걸었을 테지." "큰일났군!" 데이는 얼굴빛이 새파랗게 질려 소리쳤다. "짠 물 호수에 그 액체 생물을 놓아 주면, 녀석은 호수의 동료들에게 걷는 방법을 가르쳐 줄 걸세. 그렇게 된다면 세계는 파멸일세!" "빨리 가 보세, 데이!" 지노프가 데이의 손을 낚아채며 외쳤다. "지금이라도 빨리만 가면 희망이 있을지도 몰라. 자, 빨리 가 보세!""잠깐만 기다려!" 데이는 연구실의 자신의 책상 서랍에서 45구경 자동 권총을 끄집어내어 포켓에 쑤셔 넣었다. "만의 하나 사고에 대비하기 위해서네. 자, 가지." 두 사람은 연구소 밖으로 뛰쳐나와 속력이 빠른 지노프의 2인승 차에 올라탔다. 차는 이내 엔진 소리를 내며 짠 물 호수 쪽으로 내닫기 시작했다.   배반자의 최후   차는 조금도 쉬지 않고 내달렸다. 그러나 짠 물 호수 근처에 도착한 것은 이미 해가 진 뒤였다. "차로 가면 눈치 챌 테니 여기서부터는 걷기로 하지." 두 사람은 차를 도로 모퉁이에 세워 놓고 어둠 속을 걸어갔다. 그러자 호숫가 쪽에서 회중전등 불빛이 보였다. 그 불빛 속으로 호수 바로 곁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한 남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남자의 둘레에는 유리 기구와 수신기 같은 것이 놓여져 있었다. "저기 있다! 간신히 늦지 않은 것 같군." 지노프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슈미트 녀석은 액체 생물을 속이려고 했지만 액체 생물도 역시 슈미트를 믿지 않은 것이 틀림없어." 데이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슈미트는 금 제조법을 배우기까지는 액체 생물을 호수에 데려다 주지 않겠다고 말했을 것이고, 액체 생물은 호수에 가기 전까지는 제조법을 가르쳐 주지 않겠다고 말했겠지." 두 사람은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하면서도 가능한 한 빨리 슈미트 곁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슈미트는 지금 액체 생물에게 가르침을 받아가면서 금을 제조하는 실험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하는 거지?" "이렇게 하면 되나?" 열심히 질문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그 목소리가 갑자기 환희의 외침으로 바뀌었다. "오, 금이다! 진짜 금이 되었다! 얼마나 멋진 일인가!" 슈미트는 손에 번쩍번쩍 빛나는 조그만 것을 받쳐들고 바라보고 있었다. 드디어 금을 만들어 낸 것 같았다! "저것 좀 보게나!" 갑자기 지노프가 데이의 팔뚝을 움켜쥐면서 공포에 떠는 목소리로 말했다. 슈미트가 금을 바라보면서 한쪽 손을 포켓 속에 찔러 넣고 무언가 조그만 약병을 끄집어내는 것이 보였다. "아, 저것은 석탄산이다! 놈은 액체 생물을 죽일 작정이다." "안 돼! 뛰어가자!" 지노프와 데이는 급히 내닫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슈미트는 병마개를 열자 재빨리 그것을 액체 생물의 용기 속으로 부으려고 하는 참이었다. 그러나 바로 그 때 무서운 일이 벌어졌다. 액체 생물이 들어 있는 유리 용기 속으로부터 회중전등 빛을 받아 번쩍번쩍 빛나는 문어발과 같은 것이 휙 하니 튀어나오는 듯싶더니, 막 약품을 쏟으려고 하는 슈미트의 손목을 눈 깜짝할 새에 휘감아 버린 것이다. "아, 앗!" 슈미트의 입에서 외마디 비명 소리가 났다. 그와 동시에 약품 병이 공중으로 날아가 버렸다. "아! 이 손 좀 풀어 줘!" 슈미트는 비명을 지르며 손목에 휘감긴 문어발 같은 것을 떼려고 애를 썼다. 그 순간 갑자기 슈미트의 커다란 몸집이 획 하고 한 바퀴 도는 것 같더니 땅 위로 곤두박질치는 것이었다. "으악!" "죽은 것 같아! 빨리 가 보세!" 데이가 외쳤다. 두 사람은 더욱 빨리 뛰어갔다. 회중전등이 꺼져 버렸다. 첨벙 소리가 났다. 호수 속에 빠져 버린 것 같았다. 갑자기 호수 주위는 어둠 속에 빠져 버렸다. 그 어둠 속으로부터 슈미트의 필사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액체 생물, 용, 용서해 주게, 그것은 농담이었어. 아니, 진담이라네. 제발 부탁이니 나 좀 풀어 주게! 이제 그런 비겁한 짓은 다신 하지 않을 테니 용서해 주게!" 필사적으로 매달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슈미트의 목소리가 바뀌었다. "으, 윽! 죽는 것은 싫어. 나 좀 구해 주게, 아앗, 누군가 나 좀 구해 주게!" 이어서 첨벙! 하는 세찬 물소리가 났다. 그리고 부글부글하는 거품이 끓는 소리와 물 속에서 허우적대는 소리가 잇달아서 들려왔다. 듣기에도 끔찍스러운 짐승의 울부짖음 같은 소리가 어둠 속으로부터 울려 퍼졌다. 슈미트의 최후의 목소리였다! 데이와 지노프가 권총을 한쪽 손에 쥐고 그 곳으로 달려갔을 때에는 이미 모든 것이 끝나 버린 뒤였다. 주위는 다시 조용히 가라앉았으며 수면에는 이미 슈미트의 자취는 찾아볼 수 없었다. 두 사람은 가지고 온 회중전등을 켜서 주위를 비추었다. "슈미트!" 하고 큰 소리로 불러보았다. 그러나 대답이 없다. 지면에는 전선과 코일, 그리고 금을 제조하기 위한 도구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조금 전에 만든 금 덩어리도 있었다. 슈미트와 액체 생물이 다투었을 때 뒤죽박죽이 되어 유리 기구가 뒤엎어져 있었다. 그러나 액체 생물의 모습은 어느 곳에도 있지 않았다. "슈미트를 죽여 버리고 호수로 도망쳐 버린 것 같군." 지노프가 공포에 질려 말했다. "우물쭈물하다가는 큰일나겠네, 데이. 액체 생물은 이제 동료 액체 생물들에게 걷는 방법을 가르쳐 줄 것이 틀림없어. 빨리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큰일이 벌어지겠네!" "슈미트 녀석이 나빠. 액체 생물은 약속을 지켜 금 제조법을 가르쳐 주었음에도 녀석은 액체 생물을 죽이려고 했으니." "누가 아나? 액체 생물이야말로 슈미트를 속여서 이곳까지 데려왔는지 말이야. 제조법을 가르쳐 준다고 말하여 이 곳 호수까지 데려와 죽일 작정이었는지." "글쎄, 어쩐지 나는 그렇게 생각이 들지 않지만……." 데이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적어도 그 액체 생물만큼은 인간 편이 되어 줄 것이 라는……." 진짜로 그는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무슨 잠꼬대 같은 말을 하고 있나, 데이!" 지노프가 초조해 하며 말했다. "녀석은 슈미트 몸을 잔혹하게 녹여 없애지 않았나? 더욱이 그 액체 생물 역시 이 호수 전체의 액체 생물과 마찬가지야. 액체 생물은 하나라고 언젠가 녀석이 말하지 않았나?" "하긴 그렇지만……." "자, 빨리 이 곳을 빠져나가세. 그리고 메트칼프 사장에게 가서 자초지종을 이야기한 뒤 무엇이든 액체 생물들의 습격에 대비할 방법을 강구해 보세." "그렇게 하세."   포위되었다   두 사람은 서둘러 자동차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데이가 운전했다. 메트칼프 사장의 저택에 가려면, 이 호수의 가장자리를 따라서 달려야만 한다. 달리기 시작해서 얼마 안 돼 갑자기 세찬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그러자 홀연히 호수 일대에 커다란 물결이 일더니 도로에까지 물보라가 휘몰아쳤다. 물보라는 유리창에 닿자 기분 나쁜 벌레처럼 꿈틀꿈틀 돌아다녔다. 데이는 급히 브레이크를 밟아 차를 세웠다. "이대로 나가다가는 위험해. 일단 마을로 돌아가서 사장에게는 전화로 사정을 털어놓도록 하세." 이렇게 말하고 핸들을 꺾는데, 그 때 뒤를 돌아본 지노프가 목구멍이 조이는 듯한 공포의 소리를 지르며 손가락질했다. "아, 안 돼. 데이! 저것을 보게!" "이런!" 호수의 물이 도로 쪽으로 미끄러지듯이 올라오는 것이었다! 바람에 밀린 물결이 호숫가에 밀어닥치자 그대로 뒤로 물러나지 않고 조금씩 호숫가 위로 올라오는 것이었다! 물결은 호숫가에서 부서지자 순식간에 거대한 물의 덩어리가 되어 그것이 서로서로 부딪쳐 다시 눈 깜짝할 사이에 부풀어올라 직경 50센티미터 정도의 무시무시한 해파리와 같은 모습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몸의 밑 부분에서 문어발 같은 것이 쓱 하고 튀어나와 도로 쪽으로 기어 나오는 것이었다! "놈이 가르쳐 주었구나! 호수 안의 액체 생물이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고!" "그것뿐만이 아니야. 녀석은 두 달 사이에 인류가 5천 년에 걸쳐 이룩해 놓은 문명을 터득했단 말일세. 그 지식이 지금 호수 전체에 퍼졌단 말이야. 이 놈들은 정말 무서운 적이군." 두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에도 해파리 군대와 같은 액체 생물의 무리는 서서히 전진해 오고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차 위로 기어올라 운전대 유리창으로 올라왔다. "제기랄!" 지노프가 와이퍼 스위치를 틀었다. 액체 생물은 불시의 공격을 받고 창으로부터 떨어졌다. "달아나자!" 데이는 액셀레이터를 밟고 차를 출발시켰다. 그러나 이미 앞쪽 도로에도 액체 생물이 슬금슬금 다가오고 있었다. "끝장이야! 포위 당했어" "젠장! 이렇게 된 바에는 강행 돌파다. 가자!" 데이가 외쳤다. 차는 맹렬한 속도로 전방의 액체 생물 무리 속으로 헤집고 들어갔다. 앞에도, 뒤에도, 거대한 해파리 괴물과 같은 액체 생물이 득실거리고 있었다. 차바퀴가 녀석들에게 부딪쳐 헛돌았다. 지노프가 문을 열고 둘레의 땅 위를 향해 자동 권총을 발사했다. 그러자 액체 생물은 조금 놀란 것 같았다. 정신력으로 지탱하고 있는 움직이는 원동력이 부서져 액체 생물은 갑자기 물의 형태로 바뀌어 다시 흘러 내렸다. "지금이다!" 차는 전속력으로 내닫기 시작했다. 그리고 2분 후에는 액체 생물 무리의 한가운데를 벗어나 산 맞은편의 메트칼프 사장의 저택을 목표로 일직선으로 달리고 있었다.   군대 출동   메트칼프 사장은 두 사람의 이야기가 처음에는 믿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윽고 그것이 호수의 수수께끼 정체에 관한 것임을 알자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이것참 큰일이군!" "두말할 나위도 없지요." "도대체 그들은 무엇을 할 심산일까?" "모르지요. 어쨌든 녀석들의 지능은 우리 인간보다 몇십 배나 높단 말예요. 게다가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지요. 총을 쏘아도 폭파시켜도 죽지 않는단 말입니다. 더욱이 그 녀석들은 지금도 점점 불어나고 있어요!" "음! 도대체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메트칼프 사장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지노프가 입을 열었다. "사장님께서 아시는 분 중에 누군가 고위층에 있는 분이 안 계십니까? 이 이야기를 하더라도 곧이들을 사람 말입니다." "게다가 이 이야기를 듣고 조사에만 몇 주일씩 걸리게 하는 사람말고 즉시 행동에 옳길 사람이어야만 합니다. 여하튼 1분이라도 지체 없이 대책을 강구해야만 합니다." 하고 옆에서 데이가 거들었다. "있네. 그런 사람이라면 주둔 사령관인 피어슨 소장이 적격이지. 그라면 내가 하는 말을 전적으로 믿어 줄 거야." "그것 참 다행이군요! 그렇다면 즉시 전화를 걸어 보시죠." "알았네." 메트칼프 사장은 즉시 수화기를 들어 군사령부를 불렀다. 피어슨 소장이 나오자 사건 경위를 간단하게 설명한 후 수화기를 지노프에게 넘겨줬다. 지노프는 재빨리 이야기했다. "이 지방에 있는 주둔 부대를 즉시 전원 집결시켜 그 짠 물 호수로 보내 주기 바랍니다. 그런데 나무 소독에 쓰이는 분무기를 전원에게 지참시켜야만 합니다." "잘 알았네. 두 시간 이내에 최초의 부대가 그곳에 도착할 걸세." 피어슨 소장은 군인답게 즉시 답변해 주었다. 지노프는 이어서 보스턴과 뉴욕에 있는 굴지의 약품 회사에 닥치는 대로 전화를 걸었다. "지금 창고에 있는 석탄산을 전부 이곳으로 갖다 주기 바랍니다. 대사건입니다. 서둘지 않으면 인류가 멸망하고 맙니다."   상대하기 벅찬 적   그 날, 밤이 깊었을 무렵 주둔 부대를 태운 트럭이 잇달아 도착하기 시작했다. 지노프와 데이는 병사들을 지휘하여 석탄산을 분무기에 채워 넣도록 하여 즉시 호수로 출동시켰다. 병사들은 물가에서 꿈틀대고 있는 액체 생물에게 분무기를 일제히 퍼부었다. 액체 생물들은 이내 흰 빛을 띤 물이 되어 땅 위로 흘렀다. 한편 공병 부대는 호수 위에 철제 보트를 띄워 가지고 있던 석탄산을 무차별로 호수 속에 털어 넣었다. 뉴욕에서는 석탄산을 가득 실은 헬리콥터가 잇달아 날아와 호수 위를 날면서 석탄산을 마구 뿌려댔다. 짠 물 호수는 이내 굉장한 기세로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동틀 무렵이 되어서야 별 수 없이 액체 생물도 전멸한 듯이 보였다. "됐다. 이젠 안심이다." 지노프와 데이는 피어슨 소장과 메트칼프 사장과 함께 호수 근처에 마련된 사령부에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안심하기에는 아직 너무 일렀다. 당황하여 그 곳으로 달려온 장교 한 사람이 창백한 얼굴로 피어슨 사령관에게 보고했다. "큰일났습니다, 사령관님! 액체 생물은 아직 전멸되지 않았습니다! 호수에서 흐르고 있는 작은 강 주위 일대로 액체 생물이 넘쳐흘러 그 근방에 있던 마을 사람이 10명 정도 죽었습니다!" "저런! 지금 즉시 부대의 일부를 그 곳으로 파견하게!" 분무기에 새롭게 석탄산을 집어넣은 부대가 황급히 강 쪽을 향해 떠났을 때, 다시 전령이 사령부로 뛰어 들어왔다. "보고합니다! 액체 생물의 일부분이 물줄기를 타고 하류에 있는 목장으로 내려가 소 몇십 마리인가를 녹여 없앴을 뿐더러 여전히 전진 중입니다!" 사령관이 분통을 터뜨렸다. "당했군! 우리가 호수에만 신경을 쓰고 있는 사이에 놈들은 뿔뿔이 흩어져 이곳 저곳으로 도망쳐 버렸단 말일세!" 지노프도 발을 구르며 어쩔 줄 몰라 했다. 그 후로도 보고는 잇달아 날아왔다. 액체 생물은 교묘하게 인간의 눈을 속여 물줄기를 타고 물과 먹을 것이 있는 곳으로 도망친 것이다. 사령부 벽에 걸린 지도에는 액체 생물이 발견된 장소가 차례차례 표시되었다. 그것을 보고 있던 데이는 깜짝 놀랐다. "앗, 이것을 보셔요! 그들은 바다 쪽으로 가고 있어요! 바다에 도착하기만 하면 그들은 몇천 배로 불어날 수 있습니다!" "큰일이군! 그렇게 되면 끝장일세. 한 방울이라도 바다로 들어간다면 승산은 없어져 버리네!" "이렇게 되면 미국 전역의 군대를 동원해서라도 비상선을 긋고 그들을 절대로 통과시키지 않도록 해야만 하겠어요." "그러나 이곳은 커다란 강이 있지 않는가? 강으로 들어선다면 군대의 힘이라도 어쩔 수 없지 않는가." 피어슨 소장이 절망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데이는 갑자기 액체 생물의 말을 생각해 냈다. "아니, 강은 괜찮습니다. 액체 생물은 보통의 물에 엷어지면 죽어 버린답니다. 그러므로 강으로는 절대로 접근하지 않을 것입니다." "좋아! 그렇다면 안심이네. 즉시 명령을 내려 액체 생물을 저지할 비상선을 치도록 하지!" 피어슨 소장이 힘있게 대꾸했다. 바다와 강 사이에는 개미 한 마리도 빠져나갈 수 없도록 비상선이 쳐졌다. 물이나 풀이 있는 곳에는, 한 군데도 남김 없이 석탄산을 뿌려 절대로 액체 생물이 기어들지 못하도록 했다. 그러나 결국 액체 생물 쪽이 인간보다도 지능이 높았다. 거의 대부분의 액체 생물은 비상선에 걸려 죽음을 당했으나 극히 소수의 액체 생물은 인간의 눈이 미치지 않는 곳을 통하여 비상선을 돌파해 버린 것이다. 게다가 아무리 조금이라도 먹을 것과 물이 있다면 액체 생물은 순식간에 천 배나 만 배로 불어나는 것이다. 비상선은 서서히 뒤로 물러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결국 바다로 한 걸음씩 다가가는 꼴이었다. "이제 틀렸군." 사람들은 절망했다. 온 세계가 액체 생물, 수수께끼의 액체 침입자의 세상이 되어 버리는 것은 이제 시간 문제인 것이다.   최후의 수단   '무언가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 데이는 호수를 바라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이미 그 곳에는 대부분의 액체 생물은 남아 있지 않은 듯했으나 데이는 어쩐지 그 곳에 실험실의 유리 용기 속에 들어 있던 그 액체 생물이 숨어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내게 책임이 있다. 우리가 액체 생물에게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힘을 부여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 순간 돌연 데이의 머릿속에 한 가지 방안이 떠올랐다 '그렇다! 어쩌면 성공할지도 모르겠다!' 그는 황급히 사령부로 돌아가 소형 수신기를 한대 빌려서 호숫가로 향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가만히 2개의 전극을 물 속에 넣고 스위치를 넣었다. 그는 최후의 수단으로써 액체 생물과 이야기를 해 보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자 스피커에서 아주 가냘픈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었다! "아아, 자네는 데이가 아닌가?" "그렇다네. 그런데 내가 어째서 이곳에 왔는지 그 이유를 알고 있나?" 데이는 재빨리 물었다. 액체 생물은 마치 인간의 한숨과 똑같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알고 있네. 내 일부분이 자네들에게 지독한 피해를 입히고 있지." "자네 말대로 우리 인간의 운명은 실로 급박한 처지에 도달해 있네. 액체 생물 군, 아직 자네에게 생각할 수 있는 힘이 있다면, 내 부탁 좀 들어 주게. 우리 인류를 멸망시키지 말아달란 말이네. 지구의 문명은 인류가 오랜 세월에 걸쳐 피땀 흘려 이룩해 놓은 것이네. 그것을 멸망시킬 수는 없지 않는가?" 데이는 필사적으로 하소연했다. 그러자 액체 생물은 다시 가냘프게 한숨을 내쉬었다. "잘 알았네, 데이 군. 진심으로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네. 하지만……." 액체 생물은 흐느끼는 듯한 목소리를 냈다. "유감스럽게도 내게는 이미 난폭하게 날뛰는 내 일부분들을 만류할 힘이 남아 있지 않다네. 나는 석탄산으로 인해 완전히 기운이 빠져 버렸단 말일세." 데이가 즉시 되물었다. "어째서 자신의 일부분을 자신의 의사대로 할 수 없단 말인가?" "그것은 설명하기가 매우 어려운 문제야. 즉, 나는 호수의 나와 분리되어 자네들 인간의 지혜를 배워, 자네들 인간과 교제했단 말이네. 그로 인해 호수의 나와 연구소에 있던 나 사이에는 완전히 틈이 벌어졌던 것이지. 이번에도 나는 호수의 나에게 그런 짓을 해서는 안 된다고 타일렀지. 그러나 호수의 나는 내 말을 듣지 않고 튀어나간 것이네." "그, 그렇다면 자네의 힘으로도 이미 어쩔 수 없단 말인가?" 데이의 가슴 속에 절망감이 밀어닥쳤다. 액체 생물은 헐떡이면서 드문드문 말을 이어나갔다. "아니, 방법은 있지. 데이 군. 자네는 인간이 아닌 나를 위하여 여러 가지 친절을 베풀어주었네. 내 생명은 이제 얼마 안 남았다네. 그러므로 자네의 친절에 대한 보답으로 내 일부분이 바다에 도착하기 전에 없애 버리는 방법을 가르쳐 주겠네." "제발 부탁이네!" 데이는 다급하게 외쳤다. "좋아. 간단한 일이지. 자네는 연구소에서 슈미트가 나에게 소금을 너무 많이 뿌렸던 것을 기억하고 있겠지? 바로 그것이 방법일세." "그렇다면……." "바다를 향해 가고 있는 내 일부의 가장 선두에 소금을 뿌리면 되네. 그렇게 하면 내 일부는 취하여 의식을 잃어버린다네. 그밖에 흩어져 있는 동료들도 그 소금에 끌려 모두 그 곳으로 모일 것이란 말이네." "고, 고맙네!" 데이는 소리쳤다. "정말 고맙네. 그 대신 나도 약속하겠네. 자네의 일부를 모두 처치하더라도 자네만큼은 결코 죽이지 않기로 말일세. 그리고 먹을 것과 책의 낭독을 거르지 않도록 하겠네." "아아, 고맙네." 데이는 액체 생물의 목소리를 뒤에 남긴 채 사령부로 급히 달려갔다. 그리고 피어슨 소장에게 지금의 이야기를 상세하게 들려 줬다. "알았네. 즉시 조치를 취하도록 하지!" 피어슨 소장은 매우 기러하며 전화기 쪽으로 달려갔다.   데이의 결의   10분 후에는 소금을 실은 트럭이 열을 지어 최전선으로 향했다. 그리고 데이의 지시대로 소금 둑을 쌓았다. 효과는 1백 퍼센트였다. 액체 생물들은 이내 꾸역꾸역 모여들었다. 그리고 소금에 잔뜩 취해 있을 때 석탄산을 퍼부어 순식간에 전멸시켜 버렸다. 인류의 위기는 마침내 구제되었다. 그 보고를 접한 사령부는 온통 기쁨에 술렁였다. 데이는 기뻐서 환호하는 사령부를 살짝 빠져 나와 호수로 갔다. 작전이 뜻대로 끝났다는 것을 액체 생물에게 알리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호숫가에 도착한 데이는 깜짝 놀랐다. 그곳에는 지노프가 병사들을 지휘하여 지금 막 석탄산을 호수 속으로 부어 넣으려고 준비 중이었던 것이다. "기다려, 지노프!" 데이는 큰소리로 외쳤다. "무슨 짓이야! 나는 그 작전을 액체 생물이 가르쳐 주었을 때 그만은 살려 주기로 약속했단 말일세. 이에 대해서는 아까 그만큼 다짐해 두지 않았었나!" "듣기는 들었네! 하지만 그것은 어리석은 약속이야." 라고 지노프가 대꾸했다. "상대는 위험한 액체 생물일세. 언제 다시 난폭하게 굴지 알 수 없단 말야. 지금 죽여 버리는 것이 세계의 안전을 위하는 길일세." "아니, 안 되네. 약속은 약속인 법이야. 나는 내 목숨을 걸고서라도 내가 한 약속은 지키겠네!" 데이는 병사들 앞을 가로막았다. 그러자 지노프가 병사들에게 눈짓을 했다. 병사들은 느닷없이 데이에게 총을 겨누었다. "무, 무슨 짓인가!" "순순히 말을 듣게나. 나는 자네를 죽이고 싶지 않네. 그러나 액체 생물은 어떻게 해서든지 지금 모두 전멸시켜야만 한다네." 지노프가 강경히 말했다. 그리고 다른 병사들에게 석탄산을 집어넣으라고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돌연 데이가 굉장히 빠른 속도로 호숫가를 향해 달려갔다. "무, 무슨 짓인가 데이. 호수에 빠지면 죽어!" 지노프가 얼굴빛이 새파랗게 질려 소리치자 데이는 몸을 빙글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그래, 나는 호수에 몸을 던져 죽을 작정이야. 약속을 지키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액체 생물에게 내 목숨을 주어 버리겠네!" "바보 같은 짓을!" 지노프가 달려나갔다. 그러나 때는 늦었다. 데이의 몸이 호수 속으로 풍덩 하고 빠진 뒤였다. "아앗!" 모두들 자기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연기를 내면서 녹아가는 데이의 참혹한 모습을 상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가? 데이의 몸은 한참이 지나도 녹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고통스러워 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데이도 깜짝 놀랐다. 손도 발도 어느 곳도 고통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호수의 물 속 깊은 곳으로부터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데이 군. 자네는 좋은 친구일세." 액체 생물의 목소리였다. "자네는 죽지 않아. 왜냐 하면 나는 이미 죽음 앞에 와 있기 때문일세. 바이러스란 이미 왕성하게 번식한 후에는 돌연 살아가는 힘을 잃게 되어 죽어 버리는 것이네. 나도 역시 마찬가지지. 석탄산은 필요 없네." "오오……." 데이는 물 속에서 신음했다. "그러나 나는 자네의 우정을 죽어서도 잊지 않겠네. 고맙네. 고마워. 고마……." 돌연 액체 생물의 목소리가 뚝 끊겼다. 호수 속의 데이도, 호숫가에 서 있던 지노프도, 지금은 아무런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평화로운 호수를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이내 호수 위에는 두세 마리의 곤충이 퍼덕거리며 헤엄치기 시작했다.   작가와 작품에 대하여   ♣ 절대 0도의 수수께끼   이 소설은 텔레비전 연속 드라마로 방영된 '페리 메이슨'이란 변호사가 차례로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것으로 유명한 미스터리 시리즈를 집필한 얼 스탠리 가드너의 작품으로, 그에게 있어서는 흔치 않은 에스에프라 할 수 있습니다. 이미 이 소설을 읽은 독자 가운데는 어째서 이것이 미스터리(추리 소설)가 아니라 에스에프(SF, 과학 소설)로 취급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미스터리에서는 수수께끼를 풀어 가는 데 있어서 현대 과학에서 알려진 사실을 초월한, 즉 현대 과학으로 풀 수 없는 것을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예를 들어, 나올 곳도 없고 들어갈 곳도 없는 밀실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고 합시다. 이 때 새로운 발명이라든가 초능력, 또는 타임 트래블(시간을 초월해서 여행하는 것) 따위의 속임수를 사용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그런 것을 사용하게 되면 독자는 추리하는 즐거움이 없어지게 되고 맙니다. 그러나 이러한 틀을 과감하게 벗어나서 작가가 자유로이 공상의 나래를 펼쳐 나가는 것이 에스에프이며, 넓은 의미의 모험 소설인 것입니다. 따라서, 이 2가지 소설 (미스터리와 SF)은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오락물인 점에서는 똑같지만 분명히 다른 것입니다. 가드너는 에스에프라고 확실히 명명할 수 있는 작품을 쓰지 않았던 작가입니다. 그러나 이 소설은 그가 젊었을 때 쓴 작품으로, 미스터리와 에스에프의 구별을 무시하고 범인을 추적해 나가는, 소위 추리 소설을 성공시킨 흔치 않은 작품 중 하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지금은 훌륭한 에스에프 작품이 많이 나와서 그 자체가 하나의 문학 형태를 이루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에스에프가 하나의 문학 장르를 확립하지 못한 탓도 있습니다. 가드너는 1백 권 이상의 미스터리를 썼으며, 팔린 책만도 1억 수천만 권에 달하고 있는 것을 보면, 미국에서의 그의 인기는 가히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가드너가 작품을 쓰는 속도가 매우 빨랐으므로, 대부분의 작품은 구술로 이루어졌을 거라고들 합니다. 어쨌든 그는 미국 유행 작가의 전형적인 시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가드너는 본래의 자기 직업인 변호사 사업에도 충실했던 사람으로, 개인 재산을 다 털어 억울한 누명을 쓴 사람을 돕는 '최후의 법정'이라는 위원회를 만들어 활약했던 일로도 유명합니다. 가드너는 1970년에 사망했습니다만, 사망하던 그 해까지 계속 발표한 '페리 메이슨'의 후속 작품을 이제는 더 이상 접할 수 없게 되어 수많은 애독자들은 애석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액체 침략자   지금까지 지구에는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초미생물이 인류의 우주로 향한 진출과 더불어 지구상에 침입하여 저항력이 없는 우리에게 무서운 힘을 발휘한다는 이야기는 에스에프의 일반적인 주제였습니다.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으며, 지금도 때때로 재방영되고 있는 마이클 클라이튼의 '안드로메다 병원체' 등은 최근의 대표작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도 원인을 알 수 없는 질병이 만연한다고 알려지면, 혹시 다른 우주에서의 병원체가 우주 공간을 날아와 귀환한 우주선이나 인공 위성에 달라붙어서 지구에 침입한 결과가 아닐까 하고 연상되어질 정도로 그 영화는 흥미진진했으며 박력이 있었습니다. 사실, 생명체라고는 살아 있을 수 없다고 생각되어지고 있던 굉장한 고온과 저온이 동시에 존재하는 진공의 우주 공간 속에 미생물이 살아 있다는 것은 최근의 과학에서 증명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미국인에 의한 달 착륙 계획에서도 나사(NASA ,미항공우주국)는 아폴로 우주 비행사를 맞이하는 데 있어서 엄중한 격리 검역을 실시했던 것입니다. 우주 초미생물의 공포는 에스에프만의 것이 아닌, 현실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이와 같이 극히 과학적인 자료에서 묘사된 에스에프와는 별도로 이 소설과 같이 우주의 어딘가에는 수백, 수천만의 집단이 되어 인간과 같은 혹은 그 이상의 지능을 가진 미생물이 있어, 지구를 정복한다고 하는 에스에프도 지금까지 많이 묘사되어 왔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미생물인 이티(ET)를 예로 들 수 있겠습니다만, 그 대부분은 우주로부터 되돌아 온 조종사에 달라붙어 지구로 침입한다고 하는 인류의 우주 진출에 따르는 침입이라는 점에서 '안드로메다 병원체'와 아주 흡사합니다. 다만, 이들 미생물이 지구의 생물에 발붙인다든지 그것을 습격하여 성장하며 괴물화되어간다는 점에서 앞의 내용과 다른 의미이며, 에스에프를 일종의 탐험 소설이라고 생각한다면 이쪽이 훨씬 재미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앞으로도 계속 이런 종류 주제의 에스에프는 많이 쓰여질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 책을 쓴 랄프 밀런 파뤼라는 작가에 대하여는 그다지 잘 알지 못합니다만, 1930년대 미국에 에스에프가 퍼지기 시작했을 무렵의 유행 작가 중 한 사람입니다. 이 소설은 40년 이상이나 전의 것입니다만, 주제도 좋으며, 그 이야기의 재미 또한 만점이어서 현재까지도 읽힐 수 있는 에스에프라고 말해도 좋을 것입니다.   정성호 미스터리 SF 문고 10 절대 0도의 수수께끼   초판인쇄 ● 1987년 8월 5일 초판발행 ● 1987년 8월 15일 지 은 이 ● E. S. 가드너 옮 긴 이 ● 정 성 호 펴 낸 이 ● 김 성 근 펴 낸 곳 ● 성정출판사 서울특별시 동작구 대방동 407-24 전화 832-9151~2, 833-0547 등록일자 ● 1980년 3월 12일 등록번호 ● 제 11-95호 값 ● 1,500원  
에스에프 세계 명작 한국SF작가협회 편   텔레파시의 비밀   김학수 지음     김학수 부산대학교 문리과 대학 교수 한국 SF 작가협회 회원 연구 논문, 번역물 다수   편집 위원 아동문학가 이원수, 박흥근 / 문학박사 최안학 공학박사 양옥룡/이학박사 김회규 전교육감 김성북 표지그림 신동우/속그림 ․최충훈       해상우주연구소(海上宇宙硏究所) K기지(基地)··· 4 우주에서 온 소녀의 실종············ 13 일본인 사사키················· 21 배터리 상점·················· 32 산록산장(山麓山莊)··············· 35 사사키의 부하 야마모도············· 39 전기 충격··················· 43 아사의 텔레파시················ 50 아사의 예감·················· 60 드디어 출발·················· 62 첫번째 위기·················· 66 연달아 닥치는 위기··············· 72 자장(磁場) 함정················ 73 눈이 먼 우주선················· 75 우주선이 뜨거워진다·············· 75 결단······················ 78 논쟁······················ 79 10분 안에 들어와요··············· 81 이수미 아줌마의 활약·············· 83 사사키가 온다················· 88 텔레파시 치료················· 92 착륙······················ 99 여기는 사사키················· 101 사사키의 최후 통첩·············· 103 뇌파 증폭기·················· 111 격론(激論)·················· 114 야간 순찰··················· 119 긴 낭떠러지·················· 121 적선····················· 122 서치라이트·················· 126 추격····················· 128 새떼····················· 133 항복이냐 ! 항전이냐 !············· 136 핵융합 총··················· 141 비상 수단··················· 144 텔레파시의 비밀················ 153   SF 단편 : 우주 도난·············· 162   작품 해설··················· 195   해상우주연구소(海上宇宙硏究所) K기지(基地)   8시 5분 전에 우리는 전부 도서실에 모였다. 오늘 따라 재빨리 저녁 설거지를 해치운 아줌마가 기대에 찬 얼굴을 빛내면서 TV를 향해 앉았고, 스파이크 씨와 아저씨는 원자력 엔진 도면을 가운데 놓고 캐도늄 제어봉(制御棒)의 설치 위치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었는데, 화면 쪽을 간혹 힐끔거리는 폼이 그래도 궁금한 모양이다. 실은 어제 아침에 KBS-TV 녹화(錄畵)반이 이 연구소에 갑자기 나타났었다. 매주 일요일 저녁 8시에 방송되는 우주 시간에 이 베이스 K 연구소를 소개하고 싶다고 2주 전부터 아저씨에게 수차 전화 연락이 왔었는데, 바쁘다는 이유로 - 사실 헤시코스행 이륙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 번번이 퇴짜를 놓았던 것이다. 가만히 앉아서 전화만 빈번히 해 보았자 소용이 없겠음을 깨달았는지 이제는 아예 아무런 사전 연락도 없이 그렇게 불쑥 나타났던 것이다. 별 수 없게 됐다. 아저씨와 기사 주임 스파이크 씨는 심히 못마땅한 눈치였으나, 할 수 없이 베이스 K의 녹화를 허용했었다. KBS에서 구태여 이 연구소의 녹화를 고집하고 있는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기지의 녹화도 녹화지만 그보다 - 그들은 「아사」에 더 관심이 있었던 것이다. 녹화반은 기지의 촬영에 50분 남짓 걸렸지만 아사와의 대담은 2시간이나 걸렸다. 그들은 또 오늘 저녁 녹화 방송에 아사와의 대담(對談)을 생방송으로 꼭 보내고 싶다고 방송국으로 왕림해 줄 것을 간곡히 청했다. 물론 아사는 쾌히 응했다. 그녀의 이런 흔쾌한 수락은 이유가 있었다. 녹화반이 떠난 이튿날, 그러니까 오늘 오후 6시경 아사는 방송에 출연하기 위해 제송라(諸松羅)양을 따라 헬리콥터 편으로 KBS를 향해 떠났다. 우리는 지금 그 방송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아사가 생전 처음 그런 곳엘 가서 무사히 방송을 끝낼 수 있을까?" 무료하게 기다리고 있던 아줌마가 벽시계를 쳐다보며 하는 말이다. "그럼! 미스 제보단 훨씬 잘 해낼 거야. 어쩌면 스튜디오에 모인 사람 중에 제일 침착한 사람이 「아사」일지 몰라." 도면에만 열중해 있는 줄 알았더니 스파이크 씨도 관심을 보인다. "동감이야. 그녀처럼 자신감에 차 있는 여자는 못 봤으니까. 헤시코스에서는 다 그런 훈련을 받으며 자라는 모양이지?" 역시 엔진 도면에만 관심이 있는 줄 알았더니 자기 턱을 슬슬 문지르면서 아저씨가 한 마디 거든다. 아저씨의 턱 문지르는 습관이 나왔으니까 말이지 좀 별난 버릇이다. 성났을 때도 턱, 기분 좋을 때도 턱, 곤란한 문제에 부딪쳤을 때도 턱…… 걸핏하면 턱을 문질렀다. 그러나 같은 턱을 문지르는 데에도 형편에 따라 다르다. 화가 나거나 어려운 일에 부딪쳤을 때는 급하게, 기분 좋을 때나 일이 잘 되어 갈 때는 슬슬…… 지금 턱을 슬슬 문지르는 걸로 보아 아무리 방송에 관심이 없는 체해도 화면에 나타날 광경을 속으로는 은근히 기분 좋게 기다리는 게 분명하다. 9시 2분 전에 내가 입체 천연색 TV에 전원 스위치를 넣었다. 8시 차임벨 소리가 사라짐과 동시에 '우주로'라는 시그널 뮤직과 함께 입체 TV화면 가득히 우리 베이스 K의 조감도가 나타났다. 아나운서의 해설이 흘러나온다. "여러분이 기다리시던 우주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김영준 박사의 책임하에 있는 총․채의 해상우주연구소 베이스 K와 1개월 전에 김 박사와 함께 지구에 도착한 헤시코스의 공주 아사 양을 여러분께 소개하겠습니다." 나는 아저씨의 옆얼굴을 슬쩍 훔쳐보았다. 묘한 웃음이랄까, 입 언저리가 기다랗게 이지러지는 은근한 미소가 화면에서 나오는 빛 속에 드러났다. 그러면 그렇지! 보름 안으로 아사를 헤시코스로 돌려보내기 위해 K우주선에 원자력 엔진을 장비하는 일이 급하다는 이유로 기지의 내방(來訪)을 끝까지 못마땅해 왔던 아저씨였더라도, 막상 우리 연구소와 아저씨를 필두로 한 연구소 전 종사원이 전국에 소개되고 있는 화면에 그렇게 관심이 없을라구! 아나운서의 유창한 이야기가 계속 흘러나온다. "베이스 K! 한국인으로서는 두 번째의 노벨상 수상자이자 유일한 우주 물리학자인 김영준 박사가 몸소 건설했고, 또 현재 그의 책임하에 운영되고 있는 베이스 K 연구소! 한국에서는 그 처음으로 실현을 본 해상 연구소 베이스 K의 규모는 과연 어떠하며, 그간 어떤 학술적 성과를 올렸으며…… 등등이 우리에게는 궁금한 바 있는 것입니다." "울릉도 비행장을 출발한 헬리콥터가 서남쪽으로 바다 위를 한 시간쯤 날자 망망한 대해 위에 한 작은 점이 나타났습니다." "점을 향해 계속 접근함에 따라 그것은 급속도로 확대되어서 화면에 보시는 바와 같은 웅장한 자태를 나타냈습니다." "그 기묘한 연구소의 모양, 그것은 '장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먼저 박사님께 카메라의 초점을 맞추고 베이스 K의 하는 일을 알아봤습니다." 화면에 아저씨의 얼굴이 나타났다. 아저씨의 얼굴을 처음 대하는 사람은, 그의 모습에서 노벨상 수상자다운 대가의 풍모를 찾지 못해 실망하리라. 짧게 깎은 머리, 매섭게 빛나는 눈, 미 우주항공국(NASA)에서 놓치기 아까워했던 학자였다는 것을 느끼기보다는 차라리 운동장에 선 축구 코치를 먼저 연상하리라. 그러나 좀 더 주의 깊은 사람이라면 풍부한 양 볼에서 학자의 고집스런 인상도 함께 느꼈으리라. "우리 연구소는 행성간의 항해에 큰 문제가 되어 있는 태양의 방사능비(放射能雨)와 우주 먼지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외계(外界)에서는 우주선(宇宙線)이라고 해서 막대한 양의 고속 입자가 비처럼 쏟아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묘한 것은 이들 고속 입자는 방사능 주머니라고 해서 일정한 지역 밖으로 벗어나지 못하고 그 안에서만 나선 운동을 하며 돌고 있습니다. 태양의 활동이 활발할 때는 이 방사능 주머니가 커져서 태양계 구석구석에까지 그 효과가 미칩니다. 이 주머니가 태양계의 곳곳에 도깨비처럼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중차폐(重遮蔽)가 되어 있지 않은 우주선이 그 안에 빠지면 승무원은 치명상을 받습니다. 우리 연구소는 이 주머니의 소재지를 조사하고 그 안의 방사능 강도를 측정하여, 주머니의 변화하는 모양을 예측하는 자료를 만들어서 주로 미 우주항공국에 정보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또 한가지 중요 임무는 우주 먼지라는 것에 대한 것으로서 여기에는 직경 수 밀리미터로부터 크게는 산같이 큰 것도 있습니다. 태양계 자체가 고속 운동을 하는 만큼 이 우주 먼지, 흑은 운석(隕石)은 상대 속도가 엄청나게 커서 이 역시 항해하는 우주 차량에 상당한 위험이 되고 있습니다. 이 운석이 태양계 내의 항로에 나타날 확률을 수학적으로 엄밀히 정립시키는 것이 우리가 맡고 있는 크게 어려운 문제 중의 하나입니다." 아저씨의 긴 설명이 끝나고 아나운서의 말이 다시 흘러 나왔다. "이런 문제를 취급하고 있다는 베이스 K 연구소에 대해 그 동안의 연구 실적을 물어 보았습니다." 다시 아저씨의 프로필이 화면에 클로즈업 됐다. "업적이라고는 아직 그렇게 자랑할 만한 것은 없습니다만 간단히 두 가지만 들면, 먼저 말한 운석에 대한 문젠데 금성에서 화성 사이의 전 외계에 나타날 우주 먼지와 운석에 대해서는 90%까지는 예측할 수 있는 자료를 모아서 정리했습니다. 그래서, 이 공간을 비행하는 우주선은 저희가 제공한 자료만 컴퓨터에 입력하면 그 우주선이 운석의 장애를 받지 않고 항해할 수 있는 항로가 저절로 컴퓨터에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확실치는 않습니다. 나머지 10%가 불확실하니까요. 이 10%도 쉬 해결될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또 한 가지는 헤시코스라는 하나의 새로운 행성을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이미 신문으로 보도된 일이 있습니다만, 지난 해 12월이었습니다. 화성 근방을 자료수집차 비행하던 우리들은 우연히 - 사실은 우연이라기보다는 헤시코스인의 텔레파시에 유도된 것이 나중에 판명됐습니다만 - 여하튼 예기치 않게 한 작은 행성을 -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작은 행성 - 사실 좀 큰 운석이라고 할 정도입니다 - 우리와 완전히 동일한 인간이 존재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여기에 살고 있는 인간 헤시코스인의 생태에 대해서는 이미 지상으로 발표된 깃과 같습니다." 다시 아나운서의 내레이션이 계속된다. "헤시코스! 인간이 살고 있다! 누구도 짐작 못했던 사실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 방송국에서는 헤시코스의 공주 아사 양을 여러분에게 직접 생방송으로 소개할 예정으로 있는 것입니다." "그럼 거기에 앞서서, 박사의 기사 주임 스파이크 씨에게 초점을 돌려 연구소 내부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스파이크 씨의 모습이 나타났다. 전형적인 서양 미남이다. 좁고 우뚝한 코, 깊고 파란 눈, 얇은 입술, 바쁘다고 투덜대면서도 녹화할 때에는 부랴부랴 작업복을 벗어 던지고 저고리 왼쪽 주머니에 흰 손수건까지 얌전히 꽂고 카메라 앞에 선 신사다. 스파이크 씨의 한국어는 완벽하다. 우리와 함께 생활한 지가 벌써 만 2년이 넘었으니까 '와' 자나 '왜' 자 같은 중모음이나 'ㄴ'과 'ㄹ'을 확실하게 구분하지는 못하지만 그만하면 어디 갔다 놓더라도 손색없는 한국어다. 하기야 엑센트가 약간 문제이지만. "해상 기지를 제일 처음 생각해 낸 사람은 우리 미국 사람이었습니다. 이름은 리차드 B. 플러입니다." 쳇! 역시 자기 나라 자랑부터 먼저 시작이군. "플러씨의 아이디어에 의해 세계 여러 곳에 해상 도시와 해상 연구소가 생겼습니다. 우리 베이스 K 연구소는 세계적으로 한 30번째 될 겁니다. 베이스 K 연구소는 김영준 박사님과 제가 같이 설계한 것입니다." 스파이크 씨의 말은 어떻게 들으면 단조로운 것 같지만 체계는 뚜렷하고 논리적이다. 사실, 이런 논리가 그들의 생활에 파고들고 나아가서는 저희들의 찬연한 기계 문명의 바탕이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스파이크 씨의 설명에 따라․연구소 내부가 하나하나 화면에 나타났다. "연구소는 크게 두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한 부분은 직경이 210미터, 다른 한 부분은 직경이 50미터인데, 두 부분은 45O미터 되는 다리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큰 부분은 연구실, 도서실, 기계 공작실, 거실, 우주선 조립실, 배(船)대는 부두 등이고 작은 부분은 우주선 발사장입니다." "기지는 파도를 막기 위해 실리콘 수지 유리로 완전히 막혀져 있습니다. 또 파도에 흔들리지 않도록 10톤짜리 닻 4개가 물 속에 드리워져 있습니다." "해상 연구소가 움직일 때는 2천 5백만 마력의 플루토늄 원자력 엔진이 가동됩니다. 시속 20노트를 낼 수 있습니다. 해상 연구소의 장점은 이 기동성입니다.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이동할 수 있습니다." 아나운서가 다시 나왔다. "다음에는 김 박사님의 조카 김태진 군에게 녹음 마이크를 돌려 다른 여러 가지를 알아보겠습니다. 먼저 김 박사와 스파이크 씨의 관계." 내 차례다. 내 얼굴이 나타났다. 내 얼굴을 내가 보고 앉았으니 기묘한 생각이 든다. "아저씨는 미국 프린스턴 대학 아인슈타인 연구소에 계실 때 노벨상을 받으셨어요. 그 연구소에서 오랫동안 숙제로 되어 오던 통일장(統一場)이론을 완성시켰기 때문이에요. 그러나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잘 몰라요 - 그 후에 아저씨는 미 우주항공국에 초빙되어 가셨는데, 스파이크 씨는 그 때부터 아저씨 밑에서 일하게 됐대요. 후에 아저씨가 귀국하시려 하자 항공국에서는 여러 가지 좋은 조건을 내놓으면서 만류했대요. 아저씨께서 기어코 귀국하시려 하자 항공 당국에서는 이 베이스 K 기지를 설치하고 항공국에서 하시던 일을 계속해 달라고 부탁했답니다. 아저씨께서는 이것까지는 차마 거절하시지 못하고 이 일을 맡았답니다. 그러나 미 우주항공국의 자본으로 건설된 연구소이기는 하지만 NASA 소속은 아닙니다. 일종의 물자 차관으로서 돈으로 갚는 게 아니라 연구 보고로서 빚을 갚고 있습니다. 앞으로 논문 5개만 더 내면 연구소는 완전히 우리 것이 되는 셈입니다." 다시 아나운서가 나왔다. "베이스 K의 빼놓을 수 없는 또 한 사람 - 가정부 이소미(李素美) 여사를 만났습니다. 항시 검푸른 바다만을 보며 살고 있는 베이스 K에서 살림을 도맡아 보면서 끓임 없는 유머로서 기지에서의 단조로운 생활에 항상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여사의 역할 - 또한 작다 할 수 없다는 박사의 말이었습니다." 아나운서의 말이 흘러나오는 도중에 아줌마의 얼굴이 잠시 나타났다 사라졌다. 내가 곁눈으로 아줌마의 얼굴을 슬쩍 쳐다보았더니 약간 실쭉한 표정이다. 자기 얼굴이 너무 짧게 나타났다 사라진 게 불만인 모양이다. 이 때, 스테미너를 불어넣는 드링크제라도 마신 듯한 힘찬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아줌마의 시선을 화면 쪽으로 다시 끌어 들였다.   우주에서 온 소녀의 실종   "그러면 여러분이 보고 싶어하시던 아사 양을 카메라 앞으로 모시겠습니다!" 운동 선수라도 소개하듯, 열띤 아나운서의 목소리다 아사와 제양이 다소곳이 나타났단. 스파이크 씨 말이 맞았다. 아사는 담담하고 의젓한 티를 그대로 간직한 채지만 얼굴은 상기되어 있다. "아사는 우리말을 못합니다. 아니 아예 말 같은 것은 하지 않습니다. 텔레파시란 기상천외의 방식으로 생각을 그대로 전합니다. 그녀 텔레파시의 위력은 상대편과 정확하게 뇌파가 동조만 된다면 수십 킬로미터 떨어져 있어도 생각을 송수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처음 보는 사람과는 이 동조(同調)가 어렵답니다. 그래서 오늘은 김 박사의 여비서 제송나 양으로 하여금 아사 양의 텔레파시를 수신해서 제양의 입을 통해 아사 양과의 대담을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먼저 아사 양 - 처음 지구에 오신 소감을 말씀해 주십시오." 화면에는 아사 양만 나타났다. 먼저 1미터 90이 넘는 늘씬한 몸매 전체가 나타났다가 황금빛 머리칼 아래의 둥근 얼굴이 화면을 채웠다. 누나(제송나 양을 나는 이렇게 부른다)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지만 화면에는 아사 양뿐이기 때문에 그녀가 직접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다른 이야기를 하기 전에 먼저 말씀드릴 게 있어요. 그것은 우리 헤시코스에 있는 지하 도시를 새로 발굴해 낸 사람이 김영준 박사님 일행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철학과 예술 - 특히 전기 분야의 과학에서는 고도로 발달된 문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만 박사님이 오시기 15년 전에 갑작스런 대 화산 폭발로 헤시코스의 공전 궤도가 태양에서 멀어지면서 모든 것을 얼려(氷) 버리는 무서운 한파가 몰려왔습니다. 그 동안에 인구의 5분의 3이 죽어 갔습니다. 물이 얼어 버리는 바람에 수력 발전도 불가능해서 단 하나의 연료인 전기도 끓어졌습니다. 우리는 나무란 나무는 모조리 긁어모아서 불을 때면서 죽을 날을 기다리고 있는 형편이었습니다. 그 때 마침 저의 땅에 오신 박사님께서는 우리가 그 때까지 찾지 못하고 있었던 지하 도시를 찾아 냈습니다. 실은 수천 년 전에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서 우리의 선조들이 땅 속으로 들어가서 지하 도시를 건설했던 것인데, 정확한 문헌이 없어서 그 장소를 확실히 몰랐던 것입니다. 지하 도시를 찾아 낸 박사님께서는 또 다른 광명의 실마리를 저희들에게 제시했습니다. 그것은 원자력입니다. 사실은 벌써 2만 년 전에 저희 조상들이 원자력의 비밀을 알아 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원자력을 동원한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결과는 황폐를 가져왔을 뿐입니다. 모든 문명이 송두리째 파괴된 것은 물론이고 하늘과 땅에 가득한 방사능은 인간을 서서히 죽게 했습니다. 간신히 살아남은 선조들은 대 결단(大決斷)을 내렸던 모양입니다. 원자력의 개발을 불법화(不法化)시키고 그와 관련되는 문헌은 깡그리 없애 버렸습니다. 이 지독한 경험을 가졌던 우리 종족은 나중에는 원자력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그것을 마귀처럼 두려워하고 입에 올리기조차 꺼려했습니다. 이런 우리들에게 박사님은 원자력의 도입을 제의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펄쩍 뛰었지요. 연방 죽어 가면서도 말입니다. 그러나 박사님은 굴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설득했습니다. 원자력은 자제(自制)를 가지고 적절히 통제만 한다면 아무런 위험이 없다는 것을 설득하고 또 설득했습니다. 결과는 박사님 측의 승리였습니다. 이건 정말 엄청난 변화였습니다. 사고 방식의 완전한 변화, 철학의 완전한 변화였으니까요. 저는 이번에 박사님을 따라 여기까지 왔습니다. 물론 유람온 셈입니다. 그러나 원자력의 이용 방법을 보러 오기도 한 겁니다. 두 주일 후에 저는 저희 나라로 돌아갑니다. 그 때에는 원자로를 건설할 자재를 가져갑니다. 지금도 흐르노프 교수는 헤시코스에 남아 계시면서 새 자재가 도착하는 즉시로 원자로를 건설하고 운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기술자를 훈련하고 계십니다." "그러면 헤시코스로서는 지구로부터 톡톡한 은혜를 입고 있는 셈이군요." 아나운서가 웃으면서 한 말이다. "진정으로! 진정으로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박사님께서 저와 같이 가시면 저희의 뇌파 증폭기의 사용법을 배우시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 기계는 오래 전에 선조가 만들어 여태까지 사용하여 오고 있는 것인데 멀리까지 생각을 전달할 수 있습니다." "그럼, 제가 처음에 여쭈어 본 지구에 대한 인상은 어떻습니까?" "우선 중력이 커서 걸어다니기가 힘들어요. 센 중력에 끌어당겨서 그런지 지구인들은 키가 작은 것 같아요. 헤시코스에서는 완전히 성장하면 남녀가 다 보통 2미터 10은 되어요. 그리고 또 하나 인상 깊은 것은 - 지구인들은 미래에 대해서 확고한 신념들을 가지고 과감하게들 일하고 계세요. 또 여기에는 헤시코스에 없는 음악이라는 것도 있고요." "또 색다르다고 생각되는 것은 없었나요?" "예 있어요 - 여러분들은 입으로는 저마다 평화와 정의를 사랑하신다고 하지만 실제는 어디 그래요. 저마다 서로 시기하고 다투고 있잖아요? 더욱이 사람을 살상시키는 무기를 생산해서 돈을 번다는 사실이 얼마나 그릇된 것인가를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지 않는 것 같아요. 놀랄 일입니다. 헤시코스에서는 아무도 돈을 가지고 있지 않고, 따라서 아무도 가난하지 않습니다. 부자니 가난뱅이니 하는 것은 오로지 그 사람이 가진 지식으로만 판단되니까요." 이것이다. 아사가 방송에 출연하기를 기꺼이 승낙한 것은 이 말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동안 많은 신문기자들과의 대담에서도 항시 이 말을 덧붙이기를 잊지 않았던 그녀인 것이다.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생각나는데 그 곳에서는 수천 년 동안 전쟁이란 없었다지요?" "예, 그렇습니다. 그 원자전 이후에는 전쟁이란 말(생각)도 잘 쓰지 않는 형편이 됐으니까요. 아무쪼록 여기서도 우리의 예를 본받으시길 진심으로 빕니다." 1, 2초 동안 아나운서의 말이 끊어진다. 아사의 말에 감명을 받은 모양이다. "매우 고마우신 충고라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오늘 본 방송국에 출연한 것이 즐거우십니까?" "예! 즐겁고 보람이 있어요. 제 말을 들으신 많은 분들이 더 한층 큰 우정과 사랑을 저에게 보내 주시는 것을 느낍니다. 그러나……" 아사가 무척 어려운 말을 할 때처럼 잠시 머뭇거린다. 아나운서, 미소로서 아사를 재촉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분도 간혹 계시는 것 같아요.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함으로써 오히려 저에게 강렬한 증오감을 보내 오고 있는 사람이 있어요. 저는 그걸 느끼고 있어요. 무서워요!" 도서실에 있던 우리들은 눈을 둥그렇게 뜨고 서로 마주 보았다. 아사의 팔은 그만큼 신중하고 불길한 예감을 우리에게 주었던 것이다. 아나운서도 잠시 당황해 하는 표정이었으나 곧 밝아지며 원기 있게 말한다. "그럴 리가 있습니까? 그 점에 대해서는 아사 양께선 너무 지나치시게 생각하시는 듯 합니다." 아나운서가 얼굴을 화면 쪽으로 향했다. "오늘 아사 양을 본 방송국에 모신 것을 다 같이 기뻐하는 바입니다. 오랫동안 훌륭한 말씀 감사합니다. 아무쪼록 헤시코스까지 즐거운 여행이 되기를 빕니다." 곧이어 '우주로‘라는 음악이 울려 나오면서 대담은 끝났다. 이 '우주로'라는 시그널은 아사가 제일 좋아하는 곡이다. 내가 스위치를 끈다. 잠시 침묵이 흐른다. "아사의 말을 듣고 아사를 미워할 사람이 있다니 그게 무슨 뜻일까?" 하고, 내가 먼저 고즈넉한 침묵을 깬다. "아사는 남이 가진 생각에 얼마나 민감한지 너도 알지. 우리가 추위를 타듯이 그녀는 감정을 느낀단다." 아저씨의 대꾸다. 턱을 쓰다듬는 손길이 약간 바빠진다. "그러나 누가 아사를 미워한단 말입니까?" 하고, 스파이크 씨가 파란 눈을 아저씨 쪽으로 돌렸다. 아저씨의 손길이 더욱 바빠진다. "아사를 미워한다기보다 그녀의 생각을 꺼릴 가능성은 있어. 아사는 여기 온 후, 헤시코스에서 이룩된 평화의 복음을 기회 있는 대로 세상에 얘기해 왔거든. 그 복음이 사람들에게 끼칠 영향을 두려워 할 사람이 있어." "원 박사님도. 아무리-그런 수도 있을라구요." 아줌마가 이의를 제기한 소리다. "아줌마! 예수는 추종자도 많았지만 적도 많았다는 걸 아셔야 합니다." 갑자기 요란한 마이크로 웨이브의 전화 벨 소리가 대화를 중단시켰다. 육감이란 이상한 것이다. 항상 듣던 벨 소리지만 지금은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머리 뒤가 서늘하다. 아저씨가 수화기를 들었다. "예, 김영준 입니다. 무엇이라고? 수상한 차가 있었다고요? 예! 예! 경찰에 벌써 연락했습니까?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여섯 개의 눈은 아저씨가 들고 있는 전화기에 못 박혔다. 수화기를 놓는 아저씨의 손이 가늘게 떨고 있다. 아저씨의 왼손은 물고 늘어지듯이 턱을 움켜잡고 있다. 최악의 사태를 뜻하는 것이다. "무슨 일입니까?" 내가 다급하게 물었다. "방송국에서 온 전화야 " 아저씨의 목소리는 경황이 없다. "2분 전에 방송국을 나온 아사와 제양이 괴한에게 유괴 당했어!"   일본인 사사키   아저씨와 내가 KBS의 옥상 헬리포트에 도착했을 때는 자정이 조금 넘었다. 스파이크 씨는 원자력 엔진을 조립하고 있는 60명이 넘는 기술자를 감독해야 하기 때문에 연구소에 남았다. 눈이 자라는 데까지 불꽃의 바다를 이루고 있는 서울의 야경(夜景)은 망막한 바다 위에 툭 있는 좁은 연구소에서 파도 소리를 유일한 벗으로 하며 오랫동안 살아온 나에게는 새삼스럽게 왈칵 고독을 느끼게 했다. 그러나 이렇게 감상에 오랫동안 잠겨 있을 새는 없었다. 수은등 아래 참새처럼 웅크리고 있는 주인 잃은 누나의 빨간색 헬리콥터를 보았을 때 다시 마음이 찡해 왔다. 도대체, 누가 무슨 이유로 누나와 아사를 납치해 갔을까? 지금쯤 무슨 고초를 당하고 있을까? 몇 시간 전에 TV 화면에 다소곳하게 나타났던 그들의 얼굴이 눈에 선하다. 방송국에서 얻은 정보로는 사건의 실마리를 찾는데 아무런 도움도 안됐다. 방송을 마친 누나와 아사는 시내 구경을 간다면서 방송국을 나오다가,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던 최신형 폭스바겐 속으로 갑자기 끌려 들어갔다는 것이고, 이를 목격한 수위가 그 차번호를 즉각 경찰에 신고했지만, 번호는 가짜라는 것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방송국에만 오면 설마 무슨 단서가 잡히겠지 하던 희망도 사라졌다. 오직 하나의 위안이라야 모든 항구와 비행장에 납치된 지 10분 후부터 엄격한 감시망이 펴져 있었기 때문에 누나와 아사가 아직도 국내 어딘가에 머물고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가정뿐이었다. 밤이 깊어서야 아저씨와 나는 근방 호텔에 들었다. 그러나 밤새 잠을 이룰 수는 없었다. 다음 날 오전 중에는 줄곧 호텔 방에 머물러 있었다. 간간이 경찰을 불러 상황을 알아보고 신경을 곤두세우고 소식을 기다리고…… 달리 뾰족한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사건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경찰에서는 사건의 윤곽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에 갇힌 맹수 신세가 된 아저씨는 신경질만 늘어간다. 하잘 것 없는 일에도 벌컥벌컥 화를 낸다. 잠시도 쉬지 않고 방 안을 서성거린다. 껍질이 벗겨지라고 턱을 문지르면서……. 아저씨의 성미를 잘 아는 나는 묻고 싶은 일이 있어도 아예 침묵을 지키기로 했다. 오후 세 시경에야 늦은 점심을 먹고 휴게실에서 잠시 쉬며 커피를 마셨다. 휴게실에는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다. 우리는 그저 묵묵히 앉아 있다. 흡사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이 때, 어떤 사람이 휴게실에 나타났다. 그 사람이 들어섰을 때 우연히 나와 눈이 마주쳤는데, 나는 얼른 외면해 버렸다. 쏘는 듯한 매서운 눈초리를 오래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저씨와 눈 씨름이라도 붙여 놓으면 재미 있겠다는 실없는 생각을 하고 픽 웃었다. 그 사람은 우리 뒤쪽 자리에 앉는다. 나는 그 사람을 다시 몰래 훑어보았다. 눈은 실같이 가늘다. 키는 1미터 60쯤 될까? 작은 키다. 그러나 어깨는 딱 벌어졌다. 한 마디로 강철처럼 단단해 보이는 체격이다. 그런데 어딘지 모르게 한국인은 아닌 것 같은 인상이다 일본 사람? 중국 사람? 그런데 이 사람은 간혹 이 쪽 - 우리 쪽을 힐끔거린다. 내가 자기를 보고 있는 것을 느끼기 때문에 자기도 이상 한 생각이 들어서 우리편을 보는 건가? 아닌 것 같다. 아무래도 무슨 할 이야기라도 있는 모양이다. 아니나 다를까, 갑자기 말을 걸어왔다. "안녕 하싱니까?(안녕하십니까?) 박사님." 발음이 형편없는 우리 말이다. 독특한 비음이 없는 걸 보니 중국인은 아니다. "네, 안녕하십니다." 혼자 깊은 생각에 잠겨 있던 아저씨간 얼떨결에 건성으로 대꾸한 말이다. 전국에 명성이 자자한 아저씨가 낯모르는 사람으로부터 이런 인사를 듣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그 때마다, 아저씨는 모르는 사람이긴 하지만 역시 반갑게 마주 대꾸해 줘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형편이 다르다. 아사와 누나 일로 머리가 꽉 차 있기 때문에 누가 무슨 말을 해도 아저씨의 흥미를 끌 수 없는 상태다. 그 사람이 다시 말을 걸어왔다. "이 소넹(년)은 박사님 조카 깅대징 꿍(김태진 군)이궁(군)요. 우주 여행에 노렝(련)한 경험을 가진 소넹(년)찌 (치)고는 아직 영(연)소하므니다." "……" 나는 그에게 아는 체를 했다. 이런 자리가 아니고 혼자서 이런 서투른 발음을 듣는다면 나는 틀림없이 웃음을 참지 못했을 것이다. 그건 그렇고, 내가 아저씨에게 이런 쓸데없는 이야기를 늘어놓았더라면 벌써 벼락이 떨어지고도 남을 일이다. "잉(인)사성도 발꿍요(밝군요)." 하고 그는, 아저씨의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제법 붙임성 있게 계속 지껄이기 시작한다. 발음은 돼 먹지 못했지만 말의 순서만은 제법 훌륭했다. "요새 젊응 애들은 버릇이 정차 엄어져 가능 것 같아요. 어릉을 몰라보고 항부로 대들려는 경향이 있거등요." 무슨 쓸데없는 얘기야? 아저씨가 은근히 화가 동하는 모양이다. "요점을 빨리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실례지만 저는 지금 좀 바빠서. 헌데, 우리는 전에 어디서 만난 적이 있었던가요?" 아저씨의 약간 모난 소리다. "아닝(닙)니다. 만난 일이 없었으므니다. 그래서 제 이릉(름)을 대보아야 별 도움이 안되겠으므니다만…… 저는 사사키라고 하므니다." 분명히 아저씨의 기분 따위는 아랑곳 않는다는 태도 같다. 말을 해 가는 동안에 발음은 많이 나아졌다. "아-그렇습니까? 나는 김영준입니다. 차라도 한 잔 드시지요." "감사하므니다. 저능(는) 다른데서 벌써 마셨으므니다. 용서한신다(면) 담배를 한 대 피우겠으므니다." 스므니다는 잘 안 되는 모양이다. "물론 피우시죠. 보아하니 일본서 오신 것 같은데 우리말을 잘 하시는 군요." 아저씨의 마지못한 대꾸다. 사사키는 담배를 꺼냈다. 그 때 얇은 종이 한 장이 떨어졌다. 성냥을 그어 담뱃불을 붙인다. 그의 태도는 첫인상과는 달리 상냥했다. 연방 생글거리면서 가는 눈을 더욱 가늘게 뜨고 눈웃음을 치며 말을 이어간다. 아저씨가 마지못한 듯 하면서도 여태까지 그의 상대가 피어 준 것도 이런 그의 태도 때문인지도 모른다. "저능(는) 약감(간) 국제적이죠."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거야! 남의 태도와 형편이야 어찌됐던 말을 빙빙 돌려가면서 시간이 가거나 말거나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 하고 말겠다는 배짱인가? "여러 나라 큼(큰) 회사에(의) 대행 업자 노릇을 하느라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보니 약감(간) 외국어를 지껄일 줄 알게 됐으므니다." 정말 이따위가 있어? 그럼 제 자랑이나 하려고 그렇게 말을 질질 끌었나? "그래요? 그럼 좀더 정확하게 용건을 말씀해 주실까요?" 기분과는 달리 억지로 말만은 용하게도 신사의 체모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아줌마가 보면 웃음을 참느라고 틀림없이 쩔쩔맬 것이다. 사사키는 다시 한번 싱그레 웃었다. "나를 고용하고 있능(는) 사라믄(람은). 일본의 항(한) 무기 생상(산) 업자이므니다." "그래서 저와 얘기하고 싶은 것은 그것 때문인가요? 댁의 대행 사무에 관계되는 일 때문에?" 아, 알겠오. 그러면 더 이야기할 필요가 없으니 이제 그만 합시다 하는 투다. "그렁(런) 명(면)도 있지요. 그런데 그 보다 나는 유괴 당한 박꾸사님에(의) 두 소녀를 찾는데 도움이 되기 위해 찾아 왔으므니다." 나른하게 의자에 깊숙이 앉아 있던 아저씨가 스프링에 퉁긴 듯이 사사키 앞으로 다가앉는다. 창 밖은 자동차 소음이 한창이지만 방 안에는 한참 동안 무거운 침묵이 흐른다. 소리가 꺼진 무성 영화처럼. "누나와 아사 말씀인가요?" 침묵을 견디다 못해. 내가 급하게 끼여들었다. "그래, 깅꿍(김군)."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저씨는 빛나는 눈으로 사사키를 똑바로 쳐다본다. "선생께서는 어떻게 우리를 도와주겠다는 겁니까? 그 얘들이 있는 곳을 알고 계신단 말씀이신가요?" 사사키는 창 쪽으로 시선을 보낸 채 말이 없다. 우리의 조바심을 일깨우려는 태도일까? "깅 박꾸사! 나는 그들이 있능(는) 곳을 알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소. 그것은 오로지 박꾸사에(의) 태도 여하에 달려 있소." 시선을 돌려 입을 연 그의 태도에는 여태까지의 상냥함은 간 곳이 없다. 가는 눈을 똑바로 뜨고 아저씨의 눈을 마주 쳐다본다. 조그맣고 새까만 눈동자가 무섭도록 빛을 낸다. "내게 달렸다니? 그게 무슨 말이요? "서르맹(설명)하지요." 그는 담배 한 모금을 길게 내뿜는다. 여유 작작하다. 위압적인 태도다. "나를 고용하고 계신 분께서는 헤시코스인이 가지고 있다능 그 경이적인 물건을 소유하고 싶어하시므니다. 뇌파 증폭기라던가요? 그래서 나의 제앙(안)은 현재 건조 중인 우주선으로 당장 헤시코스에 가서 그 물건을 가져다가 우리에게 넘겨 주면 아사와 제송나를 돌려보내 주죠. 짐작컨대 헤시코스 국왕의 딸의 안전을 위해서 그 뇌파 증폭기와 운전 방법을 순순히 내어놓을 거요." "알겠소." 물어뜯는 듯한 아저씨의 대꾸다. 아저씨는 화산처럼 터지려는 분노를 억지로 참고 있는 것이 역력하다. "당신 같은 악당을 적절하게 묘사할 말을 찾을 수가 없군요. 사사키상." 사사키는 서양 사람처럼 어깨를 으쓱하며 재미있다는 듯이 낄낄댄다. 소름이 쭉 끼친다. "하하…… 제바르(발) 제바르(발) 고정해요. 바꾸사! 바꾸사는 여태까지 만도 그럴 수 없이 무례하고 기분 나쁠 정도로 거망(만)했소." 아저씨를 아예 아이 취급하듯 한다. 말은 부드러웠으나 상대를 위압하는 힘이 있다. 사사키의 태도는 불꽃 꼬리를 길게 그으며 떨어지는 운석을 연상시킨다. 표범 같은 자세라고나 할까? "나의 고용주는 일본 모처에서 현재 우주선을 건조 중에 계시므니다. 무장한 사람을 헤시코스에 보내서 그 기계를 탈취해 올 수 있는 망방(만반)의 중(준)비가 되어 있단 말씀이므니다. 그러나! 이것보다 아까 제의항(한) 방법이 훨씬 강당(간단)하고 또 그것이 일층 진보한 문멩(명)인에 태도이기 때문에……" "만약 우리가 그 잘난 당신의 간단하고 문명인다운 안을 거절한다면?" "하하- 그망항 건 알 덴데. 그들에게 더할 나위 엄능(없는) 불행이 오겠지요. 그리고 결국에는 아까 말항 것처럼 무장 우주선을 보내서 그 기계를 탈취해 오겠죠." "도대체 당신들은 그 기계를 어디다 쓸 작정이요?" "솔직히 말하시오." 사사키는 음흉한 미소를 짖는다. "박꾸사와 같은 어리섞은 이상가들이 잠꼬대 같은 평화르(를) 떠들어대면, 우리가 만든 무기는 쓸모 엄(없)게 되고 폐물이 되고 말 것이 아니겠소까? 그러나 원래 인간은 경쟁과 투쟁을 좋아하니까 전쟁을 선동할 수 있도록 새롭고 기발한 생각을 그 기계를 통하여 세상에 끊임없이 퍼트리면 투쟁을 좋아하는 인간들에게는 적선을 베푸는 셈이고, 또 우리의 무기도 폐물이 되기는커녕 자꾸자꾸 더 필요해 질 것이 아니겠오?" 기가 막힌 아저씨는 한참 동안 말을 못한다. 일본인의 상혼(商魂)이 어떻다는 것은 전 세대들로부터 익히 들어오던 바지만 이렇게 악랄한 사사키 같은 자가 있는 줄은 정말 미처 몰랐다. "참으로 솔직하군요 사사키상 ! 정말이지 내가 아는 한 당신은 최고의 악마요!" 사사키가 또 낄낄댄다. "하하-. 연설은 필요 없어 박꾸사. 그러나 나의 제안 이 박사에게 큰 충격을 준 것은 인정하오. 그래서 이 문제를 좀더 신중히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주겠오. 내일 정오에 전화를 거르(걸)겠오. 그 때 답해 주시요." 사사키는 일어섰다. "또, 그 동안에 경찰에 연락하지 말 것을 엄숙히 경고하오. 예를 들어 레가 이 호테루(호텔)를 나간 후 미행당하는 흔적이 발견될 때는 여자들에게 지체없이 큰 재남(난)이 닥칠 거요." 그는 문간에 버티고 서서 친근한 미소를 던졌다. "박사가 알아듣도록 잘 말하게, 깅꿍." 아저씨가 벌떡 일어나면서 소리쳤다. "한 대 치기 전에 빨리 나가." 천장이 쩡 울린다. "그건 좋은 방법이 아니오. 박꾸사 몸에 해로울 뿐이오. 그럼 사요나라." 배터리 상점 문이 닫혔다. 기가 막히는 순간이다. 사사키는 우리를 철저히 우롱하고 유유히 사라졌다. 기분 같아서는 당장 쫓아나가서 놈을 때려 눕혔으면, 그리고 경찰서까지 질질 끌고 갔으면 싶은 심정이지만 그러나 그렇게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물론 아사와 누나 때문이다. 사사키는 그 점을 정확하게 계산하고 한 행동임은 물론이다. 한참 동안 우리는 그대로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 때, 나는 갑자기 생각나는 계 있어서 의자 밑으로 엎드렸다. "그자가 담배를 꺼낼 때 의자 아래로 무엇이 떨어지는 걸 보았어요? 아저씨?" "못 봤는데." 평소의 아저씨답지 않은 힘없는 대답이다. "종인 것 같던데요. 아- 여기 있어요." 나는 무릎을 털고 종이를 펴 들었다. 의정부의 어떤 배터리 상점에서 발행한 영수증이다. "의정부라-. 어디 보자." 아저씨는 눈이 번쩍 뜨이는 모양이다. "형제 동력 배터리 상사, 의정부시 낙선동 5가 120번지 동력 배터리 A형 교환. 245원. 흠~ 날짜는 오늘이구나!" 영수증을 움켜 쥔 아저씨는 원기를 되찾았다. "사사키 놈은 여기에 오기 두어 시간 전에 배터리를 교환한 모양이구나." "그럼, 누나와 아사도 의정부 어디에 잡혀 있겠군요." "확실히는 모르지만 그럴 것 같구나. 자, 가자. 1시간 반 남짓하면 갈 수 있다. 배터리 상점에 가서 우선 알아보아야겠다." "경찰에 연락하면 안되나요?" "아직은 안돼. 사사키의 경고를 함부로 무시할 수는 없지. 우리끼리만 놈을 기습하자!" 우리는 구르듯이 카운터로 달려가서 지프 한 대를 빌렸다. 일부러 삼분의 일쯤 방전이 된 동력 배터리로 교환해서 출발했다. 형제 배터리에 가서 교환하기 위해서다. 요즘은 공기 오염 때문에 고출력을 요하는 특수 차량 외는 내연 기관의 장비를 법률로써 금하고 있다. 내연 기관 대신에 전부 동력 배터리로 대치된 배터리 카가 등장한 것이다. 그래서, 전 세대에 흔했다는 주유소가 자취를 감춘 지 이미 오래다. 배터리 카는 48시간 계속해서 굴리고도 2시간이면 거뜬히 재충전이 끝난다. 충전할 틈이 없는 경우에는 도로 양편에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배터리 상점에서 쓰던 것과 바꾸면 된다. 사사키도 무슨 급한 일이 있었던지 밤사이에 집에서 충전하지 않고 형제 배터리에서 동력 배터리를 교환한 모양이다. 고가 도로로 서울 시내를 벗어난 우리들은 한적한 시골길로 접어들자 풀 스피드로 차를 몰았다. 누나와 아사가 당하고 있을 고통을 생각하면 한시가 급한 것이다. 길옆에는 추수를 마친 빈 논밭이 쓸쓸하게 펼쳐져 있다. 누나와 아사를 잃은 우리 마음처럼……   배터리 상점   6시 반경, 의정부에 도착했다. 행인이 일러준 대로 의정부 시내에서 서북으로 뚫린 길을 30분쯤 달리니까 낙선동이 나타났고 5분도 더 채 못 가서 우리는 쉽게 간판을 찾았다. 형제 동력 배터리 상사. 새로 생긴 배터리 진열대에 차를 세웠다. 뒤편 사무실에서 푸른 유니폼을 입은 나와 비슷한 또래의 소년이 뛰어 나왔다. 해맑은 얼굴이 좋은 인상을 준다. 아저씨의 주문을 받은 소년은 능숙한 솜씨로 차체 밑에 있는 얇고 넓은 배터리를 꺼내서 양극에 계기를 대 본다. "극판 용량은 새 것과 마찬가진데요. 50시간 사용하셨군요." 충전과 방전이 반복됨에 따라 극판이 전해액에 녹아 들어가서 극판의 작용 물질이 점차 감소된다. 소년의 말은 배터리의 사용 시간이 얼마 안돼서 극판이 아직 멀쩡하다는 뜻이다. 소년은 진열대에서 전지 하나를 꺼내 왔다 "같은 B형인데 사용 시간도 50시간입니다. 보시죠." "됐네, 그 걸로 빨리 해 주게." 소년은 차체 밑으로 배터리를 밀어 넣으면서 말했다. "급하신가요?" "뭐 별로…… 이 근방에 살고 있는 친구 한 사람을 찾아보려고 그래. 아참, 그 친구도 여길 자주 들른다던데, 자네 혹시 기억에 없나. 귀가 작고 눈이 좀 가는 편인데……" 소년은 전극을 연결하고 있다. "눈이 가늘어요? 일본 사람 말인가요?"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래, 일본 사람이야. 어디 살고 있는 지 아나?" 흥분을 감춘 아저씨의 말이다. 소년은 차체에 기대서서 영수증을 쓰고 있다. "아저씨 친구 분은 말씨가 참 재미있던데요." 영수증을 쓰면서 혼자 씨익 웃는다. 사사키의 우스꽝스런 발음이 생각난 모양이다. "산록산장에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저씨가 나를 돌아보면서 눈을 껌벅한다. 걷잡을 수 없는 흥분이 등어리를 타고 슬금슬금 올라온다. 소년이 영수증을 내밀었다. "190원입니다." 아저씨가 200원을 꺼내 주었다. "거스름은 필요 없네." 제법 큰 팁이다. 볼펜 하나가 1원밖에 안 하니까. "산록산장이 어디 있지?" 소년은 지폐를 만지작거리며 말한다. "오시다가 전철(電鐵) 정거장을 보셨죠. (아저씨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 정거장에서 오른 편으로 꺾어서 한 40분쯤 달리면 채석장이 나와요. 바로 채석장에서 산 쪽으로 200미터만 가면 울창한 숲이 나오는데, 그 숲 속에 있어요." "고맙네, 덕택에 친구를 빨리 만나 보게 됐군. 산장에는 다른 사람도 많이 살고 있나?" "예, 많이 있어도 맨 일본 사람인 모양입디다. 일주일 전에 세 들어 온 모양인데, 그 분 말씨가 하도 재밌어서 이렇게 잘 알고 있는 거예요. 아저씨 친구 분은 참 부자인 모양이죠. 차도 맨 폭스바겐이고 헬리콥터도 세 대나 있대요." "틀림없군. 자…… 일 잘하게. 고맙네." 우리는 차에 올랐다. "안녕히 가세요." 우리는 소년의 인사를 등뒤에 받으며 힘차게 가속 페달을 밟았다.   산록산장(山麓山莊)   형제 배터리의 해맑은 그 소년이 일러준 대로 우리는 전철(電鐵)정거장 맞은 편에서 오른 쪽으로 핸들을 꺾었다. 산허리에서 한 뼘쯤 높게 걸린 해가 제법 눈부신 초가을의 햇살을 보내 온다. 시계를 보니 6시 50분이다. 전철에서 정확하게 35분 달렸다. 벌써 땅거미가 지기 시작한다. 길 왼편에 널찍한 채석장이 희뿌연 어둠 속에 드러났다. 드디어 나타났다! 채석장 입구와는 반대편으로 측백나무 울타리를 한 넓은 길이 산 쪽으로 길게 뻗어 있고, 길이 끝나는 성싶은 곳에 검은 숲이 나타났다. 저 숲 속이다. 아사와 누나가 저 숲 속에 갇혀 있는 것이다. 전철에서 여기까지의 거리부터 가늠해 본다. 4km를 6분에 주파한다고 하면 의정부에서 24km 쯤 달려온 셈이다. 차부터 적당한 곳에 숨겨야 한다. 채석장에는 아무도 없는 것 같다. 안으로 차를 몰고 들어갔다. 산더미 같은 원석(元石) 사이에 지프차를 숨겼다. 시계는 7시 10분을 가리키고 있다. 아저씨는 어둠이 더 짙어질 때까지 20분쯤 더 기다리자고 했다. 원석에 걸터앉았다. 으스스한 한기가 스며든다. 주위는 쥐 죽은 듯 고요하다. 아저씨와 나는 서로 별 말이 없었다. 지금부터 어떻게 해야 하나? 별 뾰족한 수가 없다. 무조건 숲 속으로 들어가 보는 게다. 들어가서 그때 그때의 상황에 적절히 대처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서로 의논할 말이 없는 것이다. 나는 아까부터 이상한 것을 느끼고 있다. 아사가 우리에게 무슨 말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이제야 그 느낌이라는 것이 아사의 텔레파시 통신일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이 떠오른다. 나는 애써 정신을 모아 아사의 생각을 수신해 보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는데, 간절하게 구원을 청하는 생각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아저씨도 같은 생각을 수신했는지. "태진아, 가 보자. 아사와 제양은 틀림없이 저 숲 속에 있는 것 같다. 숲 속으로 우리를 오라고 하는 것 같구나." 우리는 측백나무 울타리 길을 조심스럽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10월 상순의 이른 가을이라 길 주위에서는 아직 밤벌레 소리가 한창이다. 우리가 한 걸음 한 걸음 지나갈 때마다 약속이나 한 듯 한꺼번에 소리가 뚝 그쳤다가 몇 발자국 지나가면 또 일제히 울어댄다. 벌레 소리까지 신경이 쓰인다. 주위는 완전히 어두워졌다. 울타리 길 끝에 이르렀다. 별장은 아직 보이지 않고 울창한 숲 속으로 넓은 차도가 뚫려 있고 100와트가 넘는 휘황한 수은 가로등이 켜져 있다. 길가 숲 속의 어둠 속으로 얼른 피하는데, 입구에 서 있는 작은 간판의 글씨가 눈에 띈다. 「산녹산장 입구」 우리는 길을 따라 숲 속을 전진했다. 20분쯤 나아갔을까 갑자기 시커먼 집 그림자가 눈앞에 다가선다. 마(魔)의 집처럼 시커멓게 길게 누운 건물에서는 빛이라곤 없다. 그래서 마지막 가로등 다음의 컴컴한 어둠 저쪽에 집이 도사리고 있는 줄은 몰랐던 것이다. 아저씨와 어둠 속에 숨은 채 건물 주위를 살펴보았다. 학교 건물처럼 엄청나게 큰 집이다. 건물 정면에 큰 철문이 있고 문 옆에 수위실 같은 것이 있다. 수위실 양 옆으로 울창한 정원수가 검게 보이고 밖은 한길이 넘는 담이 둘러 쌓여 있다. 집 뒤쪽은 어두워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시꺼먼 숲 외는 불빛이라곤 없으니 더 기괴하다. 아저씨가 소곤거린다. "태진아, 집 뒤로 돌아가 보자." 아저씨가 몇 걸음 앞서고 내가 뒤에 서서 주위를 조심스럽게 살피며 집 뒤로 돌아가서 건물을 내려다 볼 수 있는 담 밖의 언덕 위까지 갔다. 불빛이 보인다. 두 군데다. 둘 다 건물 중간쯤에서 새 나오는 빛인데, 하나는 일층이고 다른 하나는 이층이다. 일층에서 새 나오는 빛으로 건물 뒤편의 잔디밭이 보인다. 그러나 빛이 비추는 범위는 극히 좁다. 또 아저씨가 낮은 소리로 말한다. "아래 층 빛이 새 나오는 곳까지 가 보자. 어두워서 들킬 염려는 없는 것 같다." 우리는 한길이 넘는 담을 넘어 정원수를 빠져 나왔다. 그리고는 빛이 새 나오는 사이를 피해서 재빨리 잔디밭을 가로질렀다. 불빛이 새 나오는 창 앞에 바짝 엎드렸다. 1, 2분을 그런 자세로 기다려 보았다. 아무 기척이 없다. 내가 살그머니 고개를 들고 창문에 눈을 바짝 들이댔다. 있다! 사사키가 있다. 큰 방에 혼자 있다. 방 가운데 있는 엄청나게 큰 테이블 앞에 앉아서 턱을 한 손으로 괸 채 무엇을 골똘히 생각하고 있다. 나는 아저씨도 가까이 와서 보라고 손짓을 했다. 아저씨도 방 안을 한참 들여다본다. 우리는 다시 창에서 떨어져서 어둠 속에 몸을 숨겼다. "아사와 누나가 어디 있을까요?" 내가 속삭인 말이다. 아저씨는 말없이 불켜진 2층을 쳐다본다. 나도 그 방을 올려다보았다. 이상한 일이다. 아사와 누나를 생각할 때마다 아사의 생각이 전달되는 것 같다. 아저씨와 내가 거의 동시에 이층을 쳐다본 것도 그 때문인지 모른다. 틀림없이 이층에 있는 것 같다. 아사가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때 아닌 피아노 소리가 들린다. 부루호라는 아사가 제일 좋아하는 곡이다. 아사도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을 알고 있을까? 그래서 저 소리를 일부러 우리에게 들려 준 걸까? 피아노 소리는 곧 그쳤다. 우리는 다시 창가로 다가갔다. 이층은 까마득하게 높게 보인다. 다시 사사키가 있는 방을 기웃거린다.   사사키의 부하 야마모도   이 때, 아저씨는 기절할 듯이 놀랐다. 바로 우리 등 뒤에서 낯선 소리가 들려 왔기 때문이다. "그대로 조용히 손을 들어! 서툰 짓 하면 용서 없어." 얼떨결에 나와 아저씨는 두 손을 번쩍 쳐들었다. 그 침착한 목소리는 다시 명령했다. "손을 든 채로 돌아서요." 우리는 바보처럼 손을 든 채 돌아선다. 처음에는 잘 보이지 않았으나 어둠에 눈이 익음에 따라 사람 형체가 나타났다. 아저씨만큼이나 키가 크다. 얼굴은 잘 보이지 않으나 아주 말라깽이 같다. "당신들은 김영준 박사와 김태진 군?"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었군. 수위실에 사람이 있는 것도 몰랐나?"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나쁜 놈들! 나쁜 짓을 하다가 보니 수위실에 불도 켜지 않은 채 망을 보고 있었구나. 그는 들고 있는 권총 끝으로 우리를 사사키의 방으로 몰고 들어갔다. 책상에 앉아 있던 사사키도 우리를 보더니 우리가 놀랐던 만큼이나 놀라는 눈치다. 우리를 방 안으로 몰고 온 자가 몸수색을 했다. 무기라곤 있을 리가 없다. 아예 그런 것을 생각도 안해 본 우리였으니까. 그자가 사사키 앞으로 나아가서 귀에다가 무어라고 한참 쑥덕거렸다. 사사키나 그 자나 조금도 서두르지 않고 조용조용히 얘기하는 품으로 보아 상당히 훈련된 범죄 집단에 틀림없다. 귓속말로 보고를 받은 사사키가 입을 열었다. "오 ! 깅 박꾸사(김 박사), 어떻게 여기까지 왔소?" "……" 아저씨는 사사키를 노려보면서 말이 없다. 사사키는 혼자 낄낄대더니 아무래도 궁금한 모양이다. "태진군, 우리가 여기 있는지 어떻게 알았지." 나는 거짓말을 했다. 아니 반은 진실인지 모른다. "사사키씨, 우리는 아사의 텔레파시가 시키는 대로 왔을 뿐이에요. 미리 알려 드립니다만, 당신들이 어디를 가던지 아사가 옆에 있는 한 우리는 당신 있는 곳을 알 수 있어요." 사사키는 눈을 둥그렇게 떴다. "그게 정말인가, 깅꾼?" "정말입니다. 아사와 우리와의 텔레파시 통화거리는 수십 킬로미터는 됩니다." "그럼 왜 경찰을 데려 오지 않았어?" "당신과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지요." 그 말에 사사키는 넓은 어깨를 들썩거리며 웃어제꼈다 "하하하…… 고맙군 깅꾼, 그러나 내가 경찰에 연락하지 말라고 했을 뿐이지, 서로 약속한 건 아니잖아……" "그러나 잠깐, 사사키 씨" 나는 그의 말을 막았다. "사사키 씨, 당신은 알아 둬야 할 일이 있어요. 연구에는 스파이크 씨가 있어요. 스파이크 씨도 우리와 같이 살아왔기 때문에 미국에 아사의 텔레파시를 수신하고 경찰을 데리고 이리로 올 거예요." 나는 실수를 했다. 사사키에게 겁을 주어 보려는 뜻이 오히려 아주 나쁜 결과를 가져왔다. 왜냐 하면 내 말을 듣고 나를 한참이나 빤히 쳐다보던 사사키가 불쑥, "그래? 좋아 그럼, 내일 아침 일찍 우리는 당신들을 데리고 일본으로 떠난다!" 라고, 했기 때문이다. 방 안에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사사키상, 당신은 우리를 일본으로 데려다가 어떻게 할 참이요?" 하고, 아저씨가 조용히 입을 연다. "박꾸사, 아주 안성맞춤이 되었소이다. 당신들을 일본에 억류해 놓고 내가 몸소 헤시코스에 가서 아사를 미끼로 뇌파 증폭기를 뺏어 오겠소." 내가 그의 말을 받았다. "사사키 씨, 당신은 노벨상 수상자 한 사람을 납치함으로써 생길 국제적인 분규를 생각해 보셨나요? 우리 정부에서는 일본에 즉각 항의를 제기할 거고, 세계 여론도 가만히 있지 않을 거요. 그렇게 되면 일본 경찰도 당신을 체포하지 않고는 못 배기겠지요." "하하…… 깅꾼, 이론이 제법이군. 그런데 이거 봐." 그는 자기가 앉았던 책상 위에서 종이 한 장을 들고 왔다. "이게 무언지 아나? 이스라엘과 아랍 양국이 어제 무기 수출 계약이 체결됐다는 내 부하의 전보(電報)야. 금액은 자그마치 10억 불? 그뿐인가, 곧 북평정권에도 무기 수출 계약이 다 되어가고 있어. 나의 정부가 나를 체포하면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 이젠 알겠지? 연간 수억 만 불의 외화 손실이야 알아듣겠나? 깅꾼." 아저씨가 끼여들었다. "이스라엘과 아랍 제국에 같이 무기를 판단 말이죠?" "하하 그렇소. 박꾸사, 그들 양국은 거의 20년 간이나 나의 변함없는 고객이었소." "무기를 팔아서 서로 싸우게 하고 당신은 돈을 번다는 말이죠. 사탄은 딴 데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여기 이 방에 있구려." 사사키는 예의 그 낄낄거리는 웃음으로 혼잔 히히덕 거리다가 갑자기 웃음을 뚝 그치고 금방 험악한 눈초리로 아저씨를 잠시 노려보더니, 부하를 불러 뭐라고 지시했다. 눈치로 보아 우리를 이층 방에 가두고 내일 아침 4시에 일본으로 떠날 준비를 하라는 모양이다. 그리고 사사키 입에서 야마모도라는 이름이 나오는 걸로 보아 우리를 잡아온 자의 이름이 야마모도인 모양이다.   전기 충격   아저씨와 나는 이층으로 끌려 올라갔다. 방 안에 들어서니 피아노 앞에서 울고 있던 누나가 쓰러질 듯이 달려와서 아저씨 품에 안긴다. 아사는 표정 하나 흐트러트리지 않고 우리 쪽을 쳐다보고 서 있다. 나는 속으로 감탄했다. 이런 절대절명의 위기에서도 저렇게 침착하다니. 등뒤에서 문이 잠겼다. 아사의 침착한 태도를 보니 나도 새삼 정신이 드는 것 같다. 그렇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을 차리라고 했지. 아사가 생각을 전해 왔다. "나는 박사님과 태진이가 잡힌 것을 벌써 알고 있었어요." 역시 그랬었구나. 아사가 우리의 뇌파를 벌써부터 수신하고 누나를 시켜 우리에게 피아노까지 쳐주었구나. 그 동안에 일어났던 일을 다 듣고 난 누나는 더 서럽게 울었다. 속수무책이다. 열쇠 구멍으로 내다보니 야마모도가 아닌 다른 자가 문 앞에 보초를 서 있다. 나는 탈출 방법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으나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는다. 아저씨도 무엇을 깊이 생각하고 있다. 누나는 한쪽 구석에서 여전히 훌쩍이고…… 태연한 사람은 아사뿐이다. 조바심이 나는 시간은 자꾸 흘러간다. 벽시계가 1시 50분을 가리키고 있다. 4시 전까지는 무슨 수를 쓰더라도 이 곳을 빠져나가야 한다. 창 밖으로 내다보니, 아래층에 불이 꺼졌다. 언제 떴는지 축구공 같은 달이 공중에 매달려 있고, 뜰 안에 가득한 달빛 속에 쥐 죽은 듯한 정적만이 깃들어 있다. 이따금 누나의 훌쩍이는 소리가 적막을 깰 뿐. 나는 창가에 서서 달빛 속에 누워 있는 검은 숲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 때, 나의 눈길이 내가 서 있는 창가에 미쳤다. 지붕에서 내려오는 물을 받아 흘려보내는 물받이 관에 눈이 미쳤다. 합성 수지로 된 튼튼한 파이프다. 한참 동안 나는 멍하니 그것을 보고 있었다.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아저씨에게 창 아래를 가리켰다. 아저씨가 다가왔다. "아저씨! 이 물받이 관을 보세요. 충분히 타고 내려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아저씨의 눈에 별이 번쩍하면서 관을 한참 동안 내려다본다. 이윽고 고개를 든 아저씨가 힘없이 말했다. "이걸 타고 내려갈 수는 있겠는데…… 그러나 밖에 서 있는 보초가 알 것 아냐." 모처럼 생각해 전 책략이 허사가 되었다. 한참 말없이 서 있던 아저씨가 새삼스럽게 눈을 빛내면서 내 귀에 바짝 입을 가까이 댔다. "보초에 전기 충격(電氣衝擊)을 주자." 내가 무슨 말인가 싶어 멍하고 쳐다보니 "문가에 전기 콘센트가 보이지. 기기서 전기를 끌어내어 보초 몸에다가 220V를 바로 가하는 거야." 전주(電柱) 변압기를 생략함으로써, 변압(變壓) 과정을 한 단계 줄여, 송전 비용을 절하하기 위해 220V가 일반 수용가에 바로 들어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보초 몸에다 갔다 대나요?" "수가 생길 거야." 아저씨와 나는 문제를 오랫동안 의논했다. 결국 이렇게 하기로 합의했다. 실내 전화선을 끊어서, 콘센트에 연결하고, 아저씨와 내가 한선 씩 손가락에 감고 있다가, 보초를 유인한 후에 보초의 양손을 아저씨와 내가 하나씩 잡아서 보초에게 전기 충격을 준다는 것이다. 아저씨 계산에 의하면 220볼트 전선을 가하면 인체 저항이 100킬로옴쯤 되기 때문에 전류는 2밀리암페어를 넘지 않지만 보초는 양손에서 내장을 통해 다른 곳으로 전류가 흘러가기 때문에, 1, 2초만 전류를 통해 주면 일시적으로 실신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전선을 잡은 끈으로 보초의 손을 잡기 때문에 일종의 점접촉(點接觸)이 되어 우리 몸에는 전류가 전연 흐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악의 경우라도 손바닥이 약간 찌릿한 정도라는 것이다. 시간을 보니 2시 20분이다. 아저씨와 나는 바쁘게 작업을 시작했다. 누나는 이젠 지쳐서 피아노 앞에 엎드려 있고, 아사는 눈을 말똥말똥 뜨고 앉았다가, 아저씨와 나 있는 쪽으로 걸어와서, 우리의 말을 다 알아들었는지 그녀의 생각을 보내왔다. "박사님, 설사 우리가 잡혀가는 한이 있더라도 사람을 죽이지는 마세요." 그녀의 평화 신봉, 박애 정신을 익히 알고 있다. 아저씨가 그녀를 무마시킨다. "아사, 보초를 죽이지는 않아. 잠시 실신 상태를 만들뿐이야. 염려 말아." 아저씨의 말에 안심을 했는지 아사는 우리가 일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전화선을 3미터쯤 끊어 냈다. 두 선을 콘센트에 끼웠다. 이제는 보초를 유인할 일이 남았다. 아저씨가 누나에게 우리 계획의 대략을 설명하고 보초를 꾀도록 했다. 설명을 들은 누나는 약간 생기가 도는 눈으로 방 안을 둘러보더니 물주전자를 들고 문 앞으로 갔다. "아저씨! 보초 아저씨!" 여태 훌쩍이던 끝이라, 일부러 과장하지 않아도 울음 섞인 누나 목소리는 애절하게 들린다. "왜 그러십니까? 아가씨." 문 밖에서 들려오는 보초 소리다. 제법 정중하다. "물 좀 주세요. 목이 타 죽겠어요." 보초는 한참 말이 없더니 "아가씨 안됩니다. 물은 아래층에 있습니다. 떠오려면 시간이 걸립니다." 누나가 우리 쪽을 쳐다본다. 아저씨가 자꾸 조르라는 손짓을 했다. "목이 타 죽겠어요. 물도 안 주시려고 그래요? 수도까지 1, 2분이면 되잖아요." 보초는 한참이나 말이 없다. 실패인가 하고 우리는 바짝 긴장했다. "그릇 있어요?" 누나의 가냘픈 말에 넘어간 모양이다. 누나가 얼른 말한다. "여기 주전자 있어요." "주전자 이리 주세요." 문이 열린다. 보초는 바짝 경계하는 태도로 옆구리에 찬 권총을 시위하면서 손을 내민다. 우리는 얼른 딴청을 부린다. 다시 문이 잠기고 보초의 발자국 소리가 멀어진다. 나와 아저씨가 문 앞에 붙어 선다. 심장이 소리가 나도록 쿵쿵거린다. 1분쯤 지났을까? 보초의 바쁜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점점 가까이 온다. 문 앞에 선다. 열쇠를 꽂는다. 찰가닥 소리가 나면서 열쇠가 열린다. 문이 열린다. 앞에 서 있는 누나에게 주전자를 내밀던 보초가 문 옆에 붙어선 우리를 보고 약간 놀라면서 손이 허리로 간다. 이 때다. 나와 아저씨는 번개처럼 달려들어 그자의 손을 움켜쥐었다. "으으……윽." 졸지에 당하는 심한 전기 충격이라 고함도 지르지 못하고 털썩 주저앉는다. 나는 그자의 총을 재빨리 빼앗았다. 그자는 반항할 기운을 잃었는지 그대로 멍하니 앉아 있다. 아저씨가 커튼을 찢어다가 자갈을 물리고 그자를 침대 다리에다가 꽁꽁 묶어 버린다. 순식간의 일이다. 벽시계는 3시 5분이다. 우리는 서둘렀다. 창문을 소리 안 나게 열고 아저씨가 먼저 내려갔다. 그 다음이 누나인데 애를 먹었다. 겨우 땅까지 내려가긴 내려간 모양인데 중간쯤에서 주르륵 미끄러져 땅에 떨어졌다. 쿵 소리가 없는 걸 보니 아저씨가 무사히 누나를 받은 모양이다. 그러나 이 때 미끄러지는 소리가 고요한 밤의 정적을 뚫고 크게 들려왔다. 내가 부축하면서 함께 내려가던 아사 양이 미끄러진 것이다. '쿵'하는 소리가 크게 나자, 건물 뒤쪽에서 요란한 벨 소리가 울리면서 강한 서치라이트가 이 쪽을 향하여 훑어온다. "방금 누가 담을 뛰어넘는 소리가 들렸다. 저 숲 속을 샅샅이 뒤져라!" 외치면서 뛰어나온 사람의 손에는 늑대처럼 사나운 개가 으르렁거린다. 우리는 반사적으로 땅에 납작 엎드렸다. 그러나 그 곳은 사나운 개가 으르렁거리는 곳에서 지척간이다. 개의 이빨이 불빛을 받아 번쩍 한다. 금방이라도 목덜미를 물고 늘어지는 것 같아서 전신에 식은땀이 쭉 흐른다. 우리는 꼼짝 못하고 엎드려 있다. 개를 주시하면서. 개를 붙들고 있는 자가 사사키가 분명하다. 작은 키, 넓은 어깨, 사사키가 무어라고 외친다. 나는 무슨 소린 지 모르겠는데 숲으로 나가는 길을 막으라는  소리라고 아저씨가 귀뜸 한다. 사사키와 몇 명은 개를 따라 잔디밭을 왔다갔다한다. 우리는 숨을 죽이고 눈으로 개의 동작을 좇았다. 개는 거의 10여 분이나 사사키를 끌고 잔디밭을 우왕좌왕 한다. 코를 땅에 끌며 우리와 반대편으로 가다가는 다시 우리 쪽으로 오고, 그러다가는 다시 옆으로 움직이고…… 잔디밭이라서 우리의 냄새를 쉽게 찾아 내지 못하는 모양이다. 나는 약간 안심이 되었다. "결국 저 놈이 냄새를 찾지 못한 모양이지." 이렇게 혼자 생각했을 때다. 개는 우리가 조금 전에 내려온, 물받이 관에 코를 대고 한참 있더니 고개를 번쩍 쳐들고 우리 쪽을 쳐다본다. 입을 떡 벌리고 산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짖어댄다. 사사키 손에서 풀려 나오려고 발광을 하고 있다. 사사키가 개의 끈을 풀어 준다. 개는 쏜살같이 우리 쪽을 향해 달려온다. 푸른 달빛 속에 검붉은 입과 송곳 같은 이빨이 생생하게 드러났다. "아이구머니!" 기어 들어가는 소리를 지른 누나가 내 팔을 움켜잡고 와들와들 떤다.   아사의 텔레파시   개는 이미 눈앞에 다다랐다. 날카로운 이빨이 금방이라도 목덜미를 물고 늘어지는 것 같아서, 나는 무의식 중에 눈을 딱 갚았다. "제양! 겁내지 마. 내가 개하고 친해 볼께." 이 때, 절대절명의 위기에 처해 있으면서도 추호도 당황한 흔적이 없는 아사의 침착한 생각이 전해 왔다. 헤시코스 인들은 새나 짐승의 생각을 수신할 수 있는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 침착한 아사의 텔레파시 통신에, 이런 일이 번개처럼 내 머리에 떠올랐지만, 오래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성난 개의 뜨거운 콧김이 이미 코 앞에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사가 겁도 없이 한 팔을 내밀어 개의 머리에 손을 얹는다. "쉬! 조용히! 너는 우리를 해치지 않겠지! 그지?" 혼신의 힘으로 개를 향해 복사(輻射)되는 아사의 텔레파시 에너지다. 실로! 기적이 일어났다. 그렇게 무섭게 짖어대던 개가 단박 조용해지면서 주인을 만난 듯 킁킁거리며 아사의 손등을 핥는다. 텔레파시가 계속 복사된다. "넌 우리하고 친구가 된 거야!" 개가 알아들은 듯이 꼬리를 흔들며 킹킹댄다. 사사키 일당은 벌써 십 미터 이내의 거리까지 다가왔다. 아사는 개의 머리를 두 손으로 쥐고, 개의 큰 코에 다시 정신 감응력을 집중시킨다. "이제 저리 가! 빠져 나갈 때까지 딴 곳을 보고 짖고 있어!"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아사는 그녀의 생각을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듯이 동물에게까지도 자기의 의사를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개는 마지막 이별이라는 듯이, 크게 한번 짖고 사사키 일당을 끌고 반대편으로 달린다. 나는 전신이 식은땀으로 후줄근하다. 누나와 아저씨가 긴 한숨을 토하는 소리가 들린다. "사실 지구에 있는 짐승에까지도 생각을 전할 수 있을는지는 의문이었어요." 하고, 아사가 생각을 보내온다. 누나는 몇 초 사이에 일어난 이 기적 같은 일에 멍한 표정으로 아사를 쳐다보고만 있다. 누나 뿐 아니라, 아저씨도 나도 한참 동안은 정신 나간 사람처럼 그냥 엎드려만 있었다. "아사! 넌 참 멋지게 해 치웠어!" "가자." 한참 만에야 겨우 정신을 수습한 아저씨가 엎드렸던 자리에서 일어선다. "자! 가자! 정문에서 될 수 있는 대로 멀리 떨어진 담을 넘어 가자.“ "차가 그대로 있는지 모르겠어요." 우리는 아저씨가 이끄는 대로 풀 속을 헤치며 나아갔다. "아사는 우리의 마스코트야. 아사가 같이 있는 한 아무 일 없을 거야." 아저씨 말대로 우리는 더 이상 사사키 일당의 방해를 받지 않고 채석장의 차 있는 곳에 이르렀다. 채석장을 빠져 나와 의정부를 향해 힘차게 차를 몰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안도의 숨을 가슴이 후련하도록 후- 내쉬었다. 우리는 다시 해상 기지로 돌아왔다. 궁금해 하는 스파이크 씨와 아줌마를 위해 그 동안에 일어난 일을 아저씨가 간단히 말해 주었다. 우리가 채석장을 떠난 후, 약 1시간 후에 우리의 전화 신고를 받은 경찰이 산장을 습격했지만, 사사키 일당은 이미 헬리콥터로 국외로 탈출하고 난 뒤였다는 사실은 우리가 해상기지로 비행해 오는 도중에 서울 시경에서 마이크로 웨이브 전화로 우리에게 연락해 주어서 비로소 알았다. 아사의 텔레파시 통신으로 개를 다른 곳으로 돌려 보냈다는 이야기를 들은 아줌마는 새삼 경탄했다. 마침내 스파이크 씨가 우리 모두가 은연 중에 걱정하던 일을 끄집어낸다. "아사를 놓쳤으니 이젠 사사키는 우리보다 먼저 헤시코스에 갈려고 하지 않을까?" 아저씨도 스파이크 씨의 의견에 동조한다. "틀림없이 그렇게 할 꺼야." 침착한 아사도 얼굴이 파랗게 질린다. "그렇게 되면 정말 큰 일이에요. 헤시코스에서는 아무도 사사키와 맞싸울 정도로 마음이 악하지 못해요." "나도 그 점을 알고 있어." 중대 결정을 내릴 듯한 표정을 하며, 아저씨가 천천히 입을 연다. "우리는 그자들이 기계를 뺏어오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어! 헤시코스에서 충분한 응전 태세를 갖추도록 사전에 일러 주어야 해!" "그럼 예정보다 일찍 출발하신단 말인가요. 아저씨?" "그래, 태진아. 내가 수집한 정보에 의하면 사사키의 우주선이 지금 당장 출발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닌 것 같아. 그러나 일을 틀림없이 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7일……" "그래, 그건 나도 알아. 그런데 이 친구는 사사키를 아는 모양이야." 사사키! 전기가 통하듯이 정신이 찌르르하다. 나는 사나이를 새삼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런데! 아니! 이자는 야마모도가 아닌가! 산록산장에서 우리를 붙들었던 사사키의 부하 야마모도란 자가 아닌가? 나는 정신없이 외쳤다. "아니 사사키의 부하 야마모도가 아니요!" 사나이는 벌써부터 나를 알아보고 있었는지 새삼 고개를 끄덕한다. "그래, 맞았다. 나는 사사키의 부하였었지. 그러나 지금은 형편이 달라. 나는 너의 아저씨에게 미리 일러 줄 이야기가 있어 일부러 온 거야. 너의 아저씨는 지금 위기에 처해 있어!" 나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잠시 생각해 보았다. 야마모도! 무슨 이유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이 자가 일부러 여기까지 나타났는데, 보통 방문객처럼 무작정 쫓아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더구나 그의 말이 좀 이상하지 않은가? 사사키의 부하였었지만 지금은 형편이 달라? 나는 야마모도를 아저씨의 서재로 안내했다. 한참 동안 야마모도를 묵묵히 쳐다보고 있던 아저씨가 입을 연다. "당신이 하고 싶다는 말이 뭐요?" 야마모도는 볼품 없는 수염을 만지작거린다. "나는 사사키의 일 때문에 박사님에게 급하게 알려 줄 일이 있어서 왔습니다." 이자는 일본인인데도 우리 말이 아주 유창하다. "급하게? 사사키 일 때문에?" "예, 사사키는 지금 박사님의 우주선을 파괴할 계획을 하고 있어요." 아저씨는 갈피를 잡지 못하겠다는 표정이다. "그런데 당신은 내게 왜 그런 걸 일러 주는 거요? "당신이 스파이가 아닌 것을 어떻게 안단 말이요?" "말씀드리죠. 사사키는 한 때 나의 친구였습니다. 그의 우주선에 원자력 엔진을 설계한 것도 접니다. 그러나 놈은 나의 설계도만 뺏고 약속한 돈은 주지 않았습니다. 나는 본의 아니게 그자의 부하 노릇을 하면서 돈을 받아내려 애썼습니다. 기회 있을 때마다 약속한 돈을 독촉했죠. 귀찮아진 놈은…… 이 손 좀 보십시오." 야마모도는 밝은 곳으로 두 손을 내밀었다. 차마 바로 쳐다볼 수 없는 꼴이다. 손은 으깨어지고 살점이 떨어져 나간 상처가 커다란 입을 벌리고 있다. "그 놈은 동경에 있는 그의 집 지하실에 나를 감금시켰소. 나는 수갑을 돌멩이로 쳐서 손을 빼고 가까스로 탈출했죠." 산록산장에서 우리를 붙잡아 사사키에게 넘긴 것이 불과 일 주일 전이다. 그런데 그 동안에 그런 일이 벌어졌었단 말인가? 다시 아저씨의 질문. "알겠소. 그런데 한국엔 언제 왔소?" "오늘 왔습니다. 도착하자마자 보트 한 척을 빌려 여기 까지 달려왔죠." 아저씨는 한참 동안 말이 없다. 야마모도의 말을 생각해 보는 모양이다. "무슨 댓가를 요구하는 거요?" 야마모도는 서양 사람처럼 어깨를 으쓱한다. "내가 사사키의 계획을 자세히 일러 주면 얼마를 주겠소? 박사님 " "공갈로 재물을 취득할 참이요?" "아니, 아니, 천만에!" 그는 두 손을 야단스럽게 내젓는다. "그럴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단지 나는 지금 무일푼의 상태입니다. 돈도 집도 없습니다!" 드디어 아저씨가 협상 안을 내놓는다. "좋소! 그럼 당신이 한달 동안 서울에서 살만한 돈을 주리다." 야마모도는 얼굴이 훤해지면서 입이 떡 벌어진다. "아이구 박사님 ! 고맙습니다. 역시 박사님은 인심이 후하십니다." "자 그만, 그럼 사사키의 계획이란 걸 빨리 말하시오." 야마모도는 메마른 입술을 축인다. "사사키의 우주선은 큰 결함이 하나 있어요. 이 결함은 앞으로 일 주일 안으로는 해결이 안 됩니다. 그런데 박사님의 우주선은 지금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놈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나는 놈의 지하실을 탈출하기 전에 놈이 부하들에게 지시하는 말을 엿들었어요. 오늘 밤중으로 사사키의 부하 몇 놈이 여기에 잠입합니다. 우주선을 파괴하려고요. 소형 잠수정을 이용할 겁니다!" "오늘 저녁!" 나는 무의식 중에 큰 소리를 질렀다. "박사님이 내일 출발하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아저씨는 야마모도의 말을 음미하듯 또 한참 무얼 생각하더니 서랍에서 수표책을 꺼낸다. "야마모도씨, 당신의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당신은 이 돈을 받을 자격이 있소!" 아저씨가 내민 수표를 받아 든 야마모도는 수표를 잠시 쳐다보더니 보기에 민망할 정도로 허리를 굽신거린다. "자 그만 해 둬요. 그런데 당신이 동경에서 여기까지 일부러 허겁지겁 달려와서 구태여 이런 정보를 제공해 주는 이유를 나는 아직도 잘 납득할 수 없는데-" "그러실지 모릅니다." 그는 여윈 몸에서 어디에 그런 힘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주먹을 쥔 오른 팔을 높이 흔들어 댄다. "박사님! 이거 보세요! 저는 죽도록 그 놈을 미워합니다. 놈에게 손해를 줄만한 일이라면 무슨 일이라도 서슴지 않을 작정입니다. 저는 이 손에 대한 원한을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겁니다." 지금 야마모도가 연극을 하고 있다면 그는 천부(天賦)의 배우 소질을 타고 났다고나 할까? 방 안에 있던 우리들은 그가 펄펄 뛰고 있는 모양을 보고 야마모도가 사사키에 대해 품은 원한이 정말 골수에까지 사무친 것처럼 느껴진다. "흠- 이제 당신의 행동을 약간은 이해하겠오." 야마모도가 하는 짓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아저씨가 한 말이다. 아주 어려운 일을 부탁할 때처럼 야마모도는 다시 난처한 웃음을 띄운다. "한 가지 더 요청이 있습니다. 저는 과학자입니다. 아까 말씀드린 대로 사사키에게 원자력 엔진을 설계한 것도 바로 접니다. 저의 일생의 관심사는 기계입니다. 죄송합니다만 박사님의 원자력 엔진을 한번 구경할 수 없을까요?" "아니, 그건 왜 또?" 아저씨의 얼굴 표정이 흐려진다. "우리의 설계는 스파이크 군이 이미 논문으로 발표한 건데요. 우리의 엔진은 그 설계에 따라 제작한 것일 뿐인데요." "예 저도 그건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박사님!" 야마모도는 애원한다. "단지 기계를 보는 것, 그것을 만져보는 것, 이것이 제 소원입니다. 화가가 다른 사람의 작품을 보고 싶어하듯 여하튼 나도 뚜렷하게 설명할 수 없는 그런 기분입니다." 아저씨는 잠시 머뭇거린다. 과학자가 다른 과학자의 작품을 보고 싶다는 심정에 공감이 가는 모양이다. 갑자기 결심한 듯, "한번 보는 정도로는 상관없겠지. 태진아! 전자실장에게 방금 들은 이야기를 전하고, 소너로 바다 밑을 감시하고 동해의 기동함대에 연락해서 만약의 사태에 응원을 부탁토록 해라. 그리고 스파이크 군을 이리 오라고 전해라. 스파이크 군과 나는 야마모도씨를 안내해서 엔진을 구경시키겠다." 내가 방을 나올 때 그 수상한 사나이는 다시 기분이 회복되어 지껄이기 시작한다. "고맙습니다. 박사님은 같은 과학자로서 저의 심정을 이해하신 모양입니다. 그저 기계를 구경하는 것뿐입니다. 번쩍번쩍하는 금속을 만져 보고, 알큰한 기계유의 냄새를 맡아보고…… 그것뿐입니다. 또 제가 설계한 엔진과 비교해서 말씀드리면 차후에라도 박사님에게 어떤 도움이 될지 누가 압니까? 헤헤……" 나는 부리나케 전자실로 달려가서, 실장에게 아저씨의 명령을 전달하고 스파이크 씨와 함께 아저씨의 서재로 돌아왔다. 아저씨와 스파이크 씨는 우주선으로 야마모도를 안내했다. 물론 나도 따라갔다. 야마모도는 엔진을 보자 예상 외로 별 말이 없다. 흡사 꿈꾸는 사람처럼 엔진의 외피를 어루만지며 혼자 무어라고 중얼거리곤 한다. 계기의 배선 상태를 보고 싶다기에 조정판을 뜯고 안을 보여주었다. 그 때, 야마모도가 발을 잘못 디뎌서 조정판 위에 쓰러졌다. 스파이크 씨가 그를 도와 일으켜 준다. 쓰러질 때 오른 팔을 호되게 다친 모양으로 그는 연신 팔을 주무른다. 우주선 안을 한 바퀴 쭉 둘러 본 야마모도는, 고맙다면서 연방 허리를 굽신거리며, 바짝 마른 그림자를 끌고, 올 때 탔던 보트로 어둠이 덮인 바다 위로 총총히 사라졌다.   아사의 예감   야마모도가 떠나자, 우리는 저녁에 닥칠 일이 걱정이 되어 그에 대한 생각을 말끔히 잊어버렸다. 밤새 우리는 전자실에서 소너가 그리는 브라운관의 반점을 주시했다. 그러나 브라운관에는 밤새 이상이 없었다. 새벽 4시경에야 잠자리에 든 나는 정신없이 골아 떨어져서 9시가 훨씬 지나서야 눈을 떴다. 충분한 휴식은 아니었지만 기분은 상쾌하다. 식탁에 둘러앉았으나 여행 때문에 맘이 들떠서 별로 식욕이 없다. 역시 재잘거리는 측은 이수미 아줌마다. "밤에 우주선을 폭파하러 온다더니 아무 일 없이 지나갔어. 이상하잖아!" "글쎄, 어떻게 된 셈일까? 야마모도가 탈출한 걸 보고, 그가 벌써 여기를 다녀간 걸 알고, 안 온 것이 아닐까?" 누나가 한 말이다. "아마 틀림없이 그럴 거야. 이 쪽에서도 미리 준비가 되어 있을 테니 와 봐야 헛일이라고 생각했겠지. 아사 네 생각은 어때?" 아줌마가 스스로 편리하게 결론을 내려놓고, 그래도 불안했던지 아사에게 묻는다. "난 그렇게 생각 안 해. 우리를 습격한다는 것은 야마모도의 거짓말인 것 같아.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큰 위험에 처해 있는 것 같은 느낌이야." "위험에?" 누나가 불안한 표정으로 묻는다. 왜냐 하면 아사의 예감은 항상 적중했으니까. "그래, 나는 뭐라고 설명할 수는 없지만 큰 사고가 일어날 것 같은 예감이 들어." "아사, 제발 그런 기분 나쁜 생각은 말어. 꼭 비관론자처럼 말이야." 항상 낙천적인 아줌마가 아사의 어깨를 두드리며 아사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기분을 - 돌리려고 애쓴다. 이 때, 아저씨가 식당에 들어선다. 아저씨와 스파이크 씨가 우주선을 최종 점검했을 때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고 한다. "회전 분사기의 회로에 한 군데가 단락되어 있었는데 스파이크 군이 금방 수리했다. 너희들은 11시 30분에 승선한다. 무슨 물어 볼 것 있나?" 아줌마가 질겁을 한다. "물어 볼 건 없어도 야단 났어요. 나는 아직 백 한 가지나 할 일이 남았어요. 아침 설거지하고……" 아사와 누나가 도와주겠다고 해서, 아줌마의 호들갑을 겨우 멈추게 했다. 승선할 때까지 아직 시간 여유가 있어서 나는 스파이크 씨가 일광욕을 즐기고 있는 곳엘 갔다. "이상한 일이야. 아사도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고 했는데, 나도 그래." 스파이크 씨가 나를 보고 한 말이다. "스파이크 씨답지 않은 소리군요. 도대체 무슨 사고가 난단 말입니까? 최종 점검 때 아무 이상이 없었다면서요. 이륙이 위험한 건 사실이지만, 우리가 뭐 한두 번 타 본 건가요?" "그건 그래. 그러나 무어라고 설명할 수는 없지만 어려운 일을 할 때처럼 가슴이 두근거리고 불안해." 아사와 누나가 아줌마의 설거지를 다 거들어주고 우리 있는 곳으로 온다. "여기를 떠나는 것이 장말 섭섭해." 아사의 머리칼이 햇빛에 유난히 반짝거려서 아름다운 황금빛 머리칼이 올올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정말 이 곳은 아름다워. 넓은 바다, 시원한 공기, 푸른 나무, 끝없이 피어오르는 구름, 모두가 정말 좋아. 다만 걱정되는 건, 사사키가 헤시코스에 오면, 사람들을 악에 물들게 할까봐 겁이 나." 누나가 아사를 위로한다. "박사님과 너의 아버지가 사사키를 격퇴시킬 묘안을 짜낼 거야. 걱정 마." 그러나 아사의 표정은 여전히 어둡다.   드디어 출발   11시 반. 우리들 6명은 전원 승선했다. 아저씨와 스파이크 씨는 컨트롤 패널 앞에 앉고, 나와 나머지 세 사람은 조정실 귀퉁이에 준비된 의자에 비스듬히 누워 안전벨트를 묶었다. 아저씨는 인터폰을 잡고 우주선 밖과 연락한다. "전자 조정실장 나와주게, 오버." "예, 전자실장입니다. 오버." "지금부터 내가 하는 이야기를 잘 듣고 내 말대로 시행 해주기 바라네. 첫째, 출발 후 항상 본선과 교신이 가능하도록 레이저 빔으로 쭉 본선을 추적해 주게. 둘째, 화성 방면으로 항진하는 다른 우주선이 있거든 즉시 본선에 연락해 주게. 셋째, 헤시코스로 가는 도중이거나 돌아오는 길엔 의외의 사고가 본선에 생기거든 나를 대신해서 사사키 일당의 만행을 세상에 공포하고 그들 일당의 발호를 세계의 여론으로 막도록 노력하고, 내 이름으로 한국은행에 예치된 전 연구 자금을 인출해서 기지 종사원의 퇴직금을 지불하도록 하게 알았나? 오버." "알았습니다. 그러나 박사님 일행은 무사히 돌아오실 겁니다. 행운을 빕니다. 통화 끝." 아저씨의 비장한 말에 나와 누나는 눈을 둥그렇게 뜨고 서로 마주보았다. "발사대 나와라. 오버." "발사대 나왔음. 오버." "애드벌룬(풍선)에. 가스를 충전하라. 오버." "발사대 알았음. 오버." 대원들은, 조정실 벽에 붙어 있는 텔레 스캐닝 TV화면을 응시한다. 지름 50미터의 풍선 위에 우리가 탄 작은 우주선이 얹혀 있다. 지름 7미터의 우주선을 중심에 올려놓은 채 윗 부분을 조금 잘라 낸 거대한 반구(半球)같이 생긴 풍선은 지금 수소 가스로 급속히 팽창하고 있다. 풍선 위를 잘라 내어 평평하게 된 곳에는 두 겹으로 된 초전도체 물질이 깔려 있고, 그 위에 덩그러니 올려진 우주선은 컴퓨터로 자세 제어를 받으며 풍선과 함께 공중으로 천천히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TV 화면에는 베이스 K 기지가 점점 작아져가고, 고도계의 지시는 100미터, 500미터 차츰 오른쪽으로 기울고 있다. 20분 후 고도계의 눈금은 5000미터. 아저씨가 체크 버튼을 누르자 버튼 옆에 붙어 있는 두개의 전구 중 푸른 전등이 반짝 빛을 켠다. 모든 계기는 정상이라는 신호다. 20세기 말엽까지도 계기 점검을 하려면 카운트다운이라고 해서 며칠씩 걸린 모양인데, 지금은 방금 아저씨가 한 대로 버튼 하나로 확인할 수 있다. 몇 분의 1초 밖에 걸리지 않는다. 기계 중 어느 한 부분이라도 이상이 있으면 푸른 등 대신 붉은 등이 커지고, 그 부분을 맡고 있는 컴퓨터에도 붉은 등과 부저가 울리게 되어 있다. 계기가 이상 없음을 확인한 아저씨가 "3초 후에 도약, 2초 후에 점화한다." 대원들은 전부 의자를 수평으로 눕히고 천장을 향해 누운 자세를 취한다. "3초, 2초, 1초, 영, 도약!" 아저씨의 말이 떨어지자 스파이크 씨의 오른 손에 쥐어진 두개의 리모콘(원격 조정) 중 한 개의 스위치가 눌려짐과 동시에, 우주선은 공중으로 도약한다. 처음에는 점점 멀어져 가는 풍선의 윗 부분이 보인다. "2초, 1초, 영, 주엔진 점화!" 나는 무의식 중에 눈을 딱 감았다. 동시에 몸 전체를 잡아 누르는 듯한 중압감을 느낀다. 중력권 탈출은 언제나 고통스럽다. 잠잠하던 우주선은, 원자력 엔진의 울부짖는 소리와 진동으로 마치 생명을 되찾는 것 같다. 15초 후, 대기권을 어지간히 벗어난 모양이다. 우주선의 진동은 여전하지만 선체와 공기와의 마찰음은 거의 사라졌다. "이온 엔진으로 전환!" 아저씨의 말이 떨어지자, 스파이크 씨의 오른손이 짧은 레버를 젖힌다. 선체의 진동이 뚝 그쳤다. 삼중 수소를 내뿜던 주 엔진이 정지하고 출력이 작은 수은증기의 이온 엔진이 가동된 것이다. 1960년대, 인간들인 처음으로 외계에의 비행을 시도할 때는 지구 표면에서부터 출발하는 방법 밖에 몰랐기 때문에, 막중한 우주차륜의 무게를 중력권 밖으로 끌고 나오기 위해서는 우주선 전체의 길이가 100미터가 넘고 무게도 3-4천 톤이나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요즈음은 우주차륜을 지구 표면이 아닐 6, 7km 상공까지 풍선으로 끌어 올려서, 그리고 메뚜기가 날 때 깡충 뛰어서 날 듯, 풍선 꼭대기에 붙은 두 겹의 초전도체물질에 거의 무한대의 전류를 흘려 풍선과 우주차륜이 같은 극의 수억 가우스의 자석이 되게 함으로써 풍선과 우주차륜은 서로 반발하여 메뚜기가 뛰듯 차륜이 공중으로 치솟게 되어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선 연료가 옛날보다 80% 이상이 절약되었고, 또 이것은 불과 5mm 정도의 두께로서도 모든 방사선을 충분히 차폐할 수 있는 변성 실리콘 수지가 발명됨으로써 옛날 사람들은 상상도 못할 만큼의 가벼운 원자력 엔진의 설계가 가능해진 때문이다. 이륙 후 꼭 35분 경과. 진공의 우주 공간으로 나왔다. 창 밖은 칠흑같이 어둡고 군데군데 반짝이지도 않는 별이 박혀 있다. 텔레 스캐닝 TV에는 공처럼 생긴 지구가 화면 전체를 메우고 있다. 저 공 속에 40억 가까운 인구가 득실대고 있는 것이다. 그 중에는 사사키도 야마모도도 물론 있겠지. 주위는 쥐 죽은 듯 조용하다. 이온 엔진의 약한 진동음 뿐 죽음의 세계에 들어선 것이다. 2억 2천만 킬로미터의 긴 여행을 시작한 것이다.   첫번째 위기   컨트롤 패널 앞에는 스파이크 씨만 앉아 있고, 아저씨는 옆방의 연구실로 가버렸다. 아줌마와 아사도 취사실에서 무슨 별다른 요리를 만든다고 나오지를 않는다. 나와 누나는 레이저 펄스로서 항속과 항로를 체크하고 있다. 이온 엔진의 가속으로 우주선은 점점 가속되고 있다. 현재의 속력은 0.3 광속도에 접근하고 있다. '태진아! 이리와!" 기절할 듯이 놀란 스파이크 씨의 목소리다. 깜짝 놀라 스파이크 씨 쪽을 쳐다본 나는 순간 절망감 같은 것에 의해 전신의 힘이 쭉 빠진다. 스파이크 씨의 눈알은 똑바로 박혀 있고, 자세는 엉거주춤 굳어 있다. 회복할 수 없는 위험에 직면한 표정이다. "빨리, 박사님을 오라고 해라." 수 초 동안 얼빠진 듯이 멍하니 쳐다보고 있던 스파이크 씨가 겨우 한 말이다. 나는 부리나케 아저씨를 모셔왔다. 스파이크 씨의 표정으로부터 벌써 절박한 사태를 짐작한 아저씨지만 기장답게 침착하게 말한다. "스파이크 군, 무슨 일인가?" "여기 패널 이 쪽에 귀를 대 보십시오!" 나와 아저씨는 거의 동시에 스파이크 씨가 가리킨 부분에 귀를 대어본다. 그런데 약한 이온 엔진의 진동음에 섞여 때아닌 시계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아니, 시계 소리 아닌가!" 귀를 댄채 아저씨가 스파이크 씨를 쳐다보며 한 말이다. "그렇습니다. 시계 소립니다. 시한 폭탄 소리입니다." 메마른 입술을 축이며, 스파이크 씨가 겨우 뱉은 소리다. "시한 폭탄!" 성대가 조여지듯 들려오는 아저씨의 신음. "야마모도가 시한 폭탄을 처넣은 겁니다. 어제 그 놈이 엔진을 보고 싶다고 할 때, 이 패널을 열어 보여 주었거든요. 그 때, 그 놈이 쓰러진 걸 기억합니까? 일부러 쓰러지면서 우리의 주의를 딴 곳에 모아 놓고 그 틈에 폭탄을 집어넣은 겁니다." 뼈를 깎는 듯한 후회와 저주를 담은 스파이크 씨의 넋두리다. "자! 빨리 패널을 열어 보자." 애써 침착을 되찾으며 아저씨가 재촉한다. 아저씨와 스파이크 씨가 떨리는 손으로 후크를 벗기고 패널을 열었다. 이온 엔진의 약한 진동음과 시계 소리가 더 크게 들려온다. 그러나 어두워서 어디에 있는 건지 보이지는 않는다. "태진아, 아토믹 토치(원자력 등불)를 가져오너라." 나는 기기실로 달려가서 토치를 가져다 주었다. 서치라이트 같이 센 토치의 불빛은 어두운 곳을 비추었다. 불빛을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한 군데 멈추었다. 있다! 엔진 시동용 배터리 옆에 초록색을 띤 물체가 붙어 있다. "들어가 봐야지." 하고, 혼자말로 중얼거리며 아저씨가 패널 속으로 고개를 밀어 넣고 어깨를 집어넣으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어림없다. 구멍이 너무 좁은 거다. "아저씨 비키세요. 제가 해 보겠어요." 아저씨가 무어라고 말릴 기회를 주지 않고, 나는 잽싸게 머리와 몸뚱이를 구멍 속으로 밀어 넣었다. 아저씨의 목소리가 등뒤에서 들린다. "그래 용타. 최선을 다 해 보아라. 스파이크 군, 방사능이 오염될 지 모르니 엔진을 끄게." 엔진의 진동음이 그쳐 버리니 시계 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나는 엔진을 지지하고 있는 철봉을 따라 한치 한치씩 접근해 갔다. 목이 탄다. 어깨가 후들후들 떨린다. 나는 혼자 스스로를 타이른다. "태진아, 기운을 내라. 기운을 내. 네 한 손에 전 대원의 생명이 달려 있다. 아니, 그 뿐 아니라 전 인류의 장래가 네 손에 달려 있다. 우리가 여기서 죽으면 뇌파 증폭기는 틀림없이 사사키 손에 들어갈 거고 그렇게 되면……" 사사키와 뇌파 증폭기의 생각이 떠오르니 한결 진정되는 것 같다. 시한 폭탄은 이제 바로 코 앞으로 다가왔다. 오른 손을 내밀었다. 아직 좀 모자란다. 조금 더 전진한다. 손을 뻗으면 잡을 수 있는 거리가 된다. 나는 손을 뻗어 그 놈을 잡으려고 하지만, 신들린 사람처럼 팔이 떨려서 잘 되지 않는다. 폭탄에 손을 대자마자 그놈이 꽝 터질 것 같다. 그렇게 되면 우주선도 없어지겠지만 나, 태진이는 갈기갈기 찢어져서 무한한 우주 공간을 떠돌아다니다 우주 먼지가 되겠지. 자식아! 우주 먼지가 되는 것은 너뿐이 아니다. 아저씨도 아사도 누나도 스파이크 씨도 마찬가지다. 기운을 내라. 기운을 내 마지막 순간에 이렇게 시간을 지체하면 어떡하니. 나는 독사라도 잡는 기분으로 눈을 꽉 감고 폭탄을 덥석 잡았다. 꽝! 터지지는 않는다. 대신 차가운 감촉과 시계의 진동이 더 크게 느껴진다. 힘을 주어 폭탄을 떼어 내려 한다. 그러나 잘 안 떨어진다. 센 영구 자석이 금속제 배터리 케이스에 꽉 달라붙어 있다. 두 손으로 거머쥔다. 다시 당겨 본다. 역시 안 떨어진다. 토치를 비추어 주며, 초조하게 지켜보던 아저씨의 목소리가 굴속에서처럼 우렁우렁 들려온다. "태진아, 떼라 떼! 어떡하든지 떼어 내라. 힘을 내라." 두 손으로 잡은 채 안간힘을 써 보지만 옴짝달싹도 않는다. 이젠, 두 손이 땀으로 범벅이 되어 폭탄이 미끄러지기만 한다. 30초뿐이다! 이럴 때, 망치라도 있으면 옆으로 두들겨서 떼어 보기라도 하겠는데, 그러나 지금은 도로 기어 나가서 망치를 가져올 여유가 없다. 아저씨가 던져주더라도 좁은 틈 사이로 여기까지 용케 닿을 수도 없다. 나는 러닝 셔츠를 뜯어서 붕대처럼 손에 감았다. 셔츠도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다. 붕대를 감은 손으로 폭탄을 힘껏 내리쳤다. 뒷골이 찡하도록 통증이 온다. 그러나! 약간 움직인다. 나는 이를 악물고 계속해서 내리친다. 이 놈!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 또 내리친다. 폭탄은 배터리 케이스의 가장자리로 조금씩 미끄러져 나간다. 이놈! 이놈! 나는 악을 쓰며, 내리치고 또 내리친다. 주먹이 불덩이 같이 뜨겁다. 폭탄이 이제는 배터리 가장자리에 반쯤 물렸다. 두 손으로 잡고 혼신의 힘으로 잡아당긴다. 딱 떨어진다. 덕택에 뒷 꼭지가 철봉에 호되게 부딪혔다. 그러나 그런 건 문제가 아니다. 이제 이 놈을 빨리 들고 나가야 한다. 앗! 그런데! 시계 소리가 뚝 그쳤다. "아저씨, 시계 소리가 안 들려요!" "빨리 갖고 나오너라. 30초 후에 폭발한다." 나는 폭탄을 든 채 결사적인 포복을 감행한다. 하나 둘 셋…… 벌써 20초도 넘은 것 같다. 이를 악물고 입구, 입구만을 향해 기어나간다. 손과 얼굴이 부딪히고 긁히는 것은 이젠 문제가 아니다. 30초, 30초 이내에 입구까지 끌고 나가야 한다. 아저씨의 손이 이만큼 들어와 있다. 나도 폭탄 든 손을 내민다. 그러나 아직 안 미친다. 조금씩 기어나가면서 손을 다시 내밀어 본다. 아직 안 자란다. 기어나가며 또 내민다. 아! 드디어 아저씨의 손이 폭탄에 닿았다. 폭탄이 아저씨의 손에 잡혀서 굴 속을 빠져나갔다. "빨리 쓰레기 총을……" 다급하게 외치는 아저씨의 소리가 들린다. 우주 공간에서 만 부득이 버릴 쓰레기나 물체가 있으면 소독해서 공간으로 쏘아 낸다. 지금 아저씨는 그 쓰레기 버리는 총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폭탄을 밖으로 쏘아 버리려는 것이다.   연달아 닥치는 위기   쓰레기 총이 장전되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쿵' 둔탁한 진동음이 들린다. 폭탄을 밖으로 쏜 것이다. 아니 쿵하는 쓰레기 총의 진동음과 거의 동시에 그보다 몇 배나 더 큰 진동이 그 뒤를 따랐다. 동시에 우주선 외피에 무엇이 부딪히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온다. 폭탄이 바로 밖에서 폭발한 것이다. 그래서 그 파편이 우주선 외피에 날아들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위기일발의 시간. 주위는 다시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나는 패널 입구에 얼굴을 내민 채 땀으로 완전히 목욕을 한 상태로 조정실 안을 물끄러미 들여다본다. 완전한 침묵과 고요가 무의미하게 계속된다. 폭탄이 외피에서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터졌다면 우주선에 구멍이 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대원들은 이제 다음에 올 우주선의 반응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완전한 침묵이 5분 간 계속되었다. 그 침묵을 아저씨가 깼다. "자, 태진아 이제 나오너라. 정말 수고했다. 현재로서는 별 이상이 없다. 이리 나와서 항로를 계속 체크해 보아라. 몇 분 동안 엔진을 껐기 때문에 항로가 태양 쪽으로 많이 기울어졌을 거다. 자, 그리고 스파이크 군, 주 엔진을 점화해서 항로를 수정해야 될 것 같네." 아저씨의 말이 떨어짐과 거의 동시였다. 갑자기 선 내의 전등이 모조리 꺼져버렸다. 불이 꺼지는 것과 함께 찌…… 찌…… 괴상한 음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아니 이건 또 무슨 벼락인가. 우주선 전체가 불에라도 타고 있는 것 같다. 찌……찌…… 칠흑 같은 어두움 속에서 들리는 괴상한 소리, 찌……찌……   자장(磁場) 함정   찍찌……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상한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 온다. 그것도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반도체 태양 전지 패널에 이상이 생긴 것 같다. 스파이크 군, 전력을 원자력으로 대치하게."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아저씨의 목소리다. 그제야 멍한 상태에서 깨어난 듯, 스파이크 씨가 아토믹 토치를 비추면서 동력 전환 스위치를 잡아 젖힌다. 조정실이 환하게 밟아졌다. 우선은 살 것 같다. 그러나! 더 기막힌 사실이 조정실이 밝아지면서 밝혀졌다. 조정석 앞에 있는 패널에는 모조리 붉은 불이 켜 있지 않은가! 우주선의 각 부분이 전부 고장이란 뜻이다. 그 붉은 등 중에서 우리들의 시선이 못 박힌 곳은, 외부의 방사능 강도를 측정하는 방사능 강도 기록기이다. 기록지 위를 움직이게 되어 있는 핀이 휘어져 있지 않은가! 기록 용량을 넘어선 센 방사능이 닿아서 계기를 망쳐버린 것이다. "무서운 방사능 대에 들어선 것 같다. 태진이가 폭탄을 꺼내려고 패널 안으로 들어갈 때, 10여 분 간 엔진을 껐기 때문이다. 추진력이 없었기 때문에 컴퓨터 항로 추적기도 우주선 외피 밖으로 나온 렌즈 시스템이 시한 폭탄의 파편에 맞아 고장인 것 같다. 하여튼, 이런 상태에서 2시간 이상 지나면 우리 모두는 치사량의 방사능에 오염된다." 온통 붉은 전등으로 수 놓여진 조정석 패널을 쳐다보며 아저씨가 한 말이다. "박사님, 이 자이로 진자가 이상한 운동을 해요." 등 뒤에서 누나가 갑자기 한 말이다. "어디 보자." 깜짝 놀란 듯이 아저씨가 누나 곁으로 달려간다. 누나가 가리키고 있는 자이로 진자의 운동을 아저씨가 세밀히 관찰하고 있다. "음! 돌고 있구나. 이거 야단났구나. 자장 트랩 (함정)에 빠졌다. 찌찌하는 소리는 고속의 대전 입자가 지나가면서 우주선에 고압의 전류를 유기시켜서 방전하는 소리고, 우주선 외피에 유기된 전류 때문에 고속의 대전 입자의 자장 때문에 나선 운동을 하면서 이 방사능대 속을 돌고 있는 것이다." 자이로 진자는 우주선의 가속 방향을 보기 쉽게 하기 위해 만든 간단한 진자(흔들이)이다. 이것이 약 2분에 한번쯤 돌고 있는 것으로 보아 우주선이 주기가 2분인 나선 운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 아저씨의 말인 것이다.   눈이 먼 우주선   "에그머니! 그림 박사님 우리는 이 자석띠 속에서 빠져나갈 수 없다는 말씀이세요?" 아저씨의 설명을 듣고 있던 누나가, 울상이 되면서 물은 말이다. "제양! 염려마라. 방법이 있을 것이다. 침착하게 앉아 있거라." 하고,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누나를 레이저 펄서 옆에 있는 의자에 살그머니 앉힌다. 굳은 얼굴을 하고 조정석에 앉아 있는 스파이크 씨 옆으로 아저씨가 돌아왔다. "스파이크 군! 할 수 없네. 장님 흉내를 내야겠네." 스파이크 씨가 말뜻을 몰라 아저씨를 올려다본다. "이것 보게. 레이저 펄서까지 붉은 등이네. 우주선은 장님이 된 거야. 지팡이 없이는 오도가도 못하는 장님 말일세. 방안에 있다가 갑자기 불이 나갔네. 그러면 싫어도 장님 행세를 하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문을 찾는 유일한 방법은 팔을 뻗어 더듬을 수밖에 없지. 이 쪽으로 더듬다가 안되면 다른 쪽을 더듬고…… 그런 식 말고는 문을 찾는 방법이 없지. 우주선이 눈이 멀었으니까, 아무 방향으로도 우선 달려봐야지. 그래서 용케 자장을 벗어나면 레이저 펄서를 수리하세. 지금 같은 방사능 강도에서는 우주선 밖에 10분 이상 나가 있을 수 없어. 자! 주 엔진을 점화해서 우주선의 속력을 0.4 광속도로 해서 이리저리 달려보세."   우주선이 뜨거워진다   자조 섞인 아저씨의 긴 설명을 듣고 있던 스파이크 씨가 간단히 대꾸한다. "그렇게 해 봅시다. 박사님." 스파이크 씨가 캐도늄 제어봉을 앞으로 쑥 뽑았다. 갑자기 우주선에 맹렬한 진동이 온다. 노즐에서 뿜어 나가는 삼중수소가 우주선에 진동을 주는 것이다. 우선 살 것 같은 기분이다. 무의미한 침묵과 뇌신경을 자극하는 찌…… 하는 소리뿐이던 우주선에 가스 분출의 반동으로 생기는 맹렬한 진동은 우주선이 아직 건재 하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워주는 것이다. 우주선의 생명은 뭐니 뭐니해도 추진력이다. 추진 장치에 고장이 있으면 고칠 방법이 없지만, 우선 이 추진 장치가 완전하고 보면, 아직 절망할 필요는 없다. 우주선이 날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신경을 찌르는 찌찌…… 하는 방전음은 여전히 들려오고 있지만 추진력 반동에 의한 진동으로 확실히 우리도 약간의 생기를 되찾았다. 부엌에 있던 아사와 아줌마까지 나와서 스파이크 씨를 쭉 에워쌌다. 스파이크 씨는 정확하게 20분 간격으로 우주선의 진행 방향을 45도씩 바꾸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360도의 방향 전환에 140분, 약 2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계산하고 있는 것이다. 0.4광속도, 즉 광속도의 10분의 4의 속도로서 45도의 방향전환을 한다는 것은, 지상에서 시속 100마일로 하이웨이를 달리던 차가 180도의 방향 전환을 할 때에 차에 닥칠 위험과 같은 정도의 위험이 우주선에 생긴다. 시속 100마일의 자동차가 갑자기 180도의 회전을 하면 10중 8, 9 자동차는 전복한다. 큰 운동량의 갑작스런 변동으로 차에 타고 있는 사람은 앉은 자리에서 튕겨져 나와 유리를 깨고 차 밖으로 내동댕이쳐질 가능성이 큰 것이다. 우주선은 방향을 바꿀 때마다 선체에 생기는 큰 스트레스로 끼-ㄱ-, 긴 금속성의 비명을 지른다. 우주선체 바로 밖에서 터진 폭탄 때문에 선체에 어떤 흠이 생겨 있을지도 모르는 이 판국에 이렇게 심한 스트레스를 계속 우주선에 준다는 것은 말할 수 없이 위험하다. 그러나 이런 위험을 너무나 잘 알고 있으면서도 아저씨와 스파이크 씨가 이렇게 위험스럽게 우주선을 운전하고 있는 것은 물론 제한된 시간 때문이다. 2시간! 2시간 내에 우리는 이 자장의 함정을 벗어나야 한다. 2시간이 지나면 대원 전원에게는 치사량의 방사능이 온 몸에 쏘이게 된다고 했다. 45분이 지났다. 그러나 여전히 찌찌…… 하는 무서운 방전음 속을 빠져 나가지 못하고 있다. "박사님 ! 선실의 온도가 자꾸 올라가요!" 갑자기 누나가 한 말이다. "응?" 계속되는 위험에 신경이 둔해졌는지 무슨 뜻인지 몰라 아저씨가 누나를 멍하니 쳐다본다. "저 온도계 좀 보세요. 25도에요. 아까부터 자꾸 더운 것 같아서 온도계를 보았더니 글쎄……" 누나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울먹인다. 침통하게 온도계를 응시하며 아저씨는 말이 없다. "센 자장 속에서 우주선이 맹렬한 속도로 움직이니까 선체에 큰 소용돌이 전류가 흘러서 우주선이 가열되는구나. 발생 열량이 너무 많아서 반도체 온도 조절기가 제대로 동작을 못하는구나. 하여튼 좀 두고 보자." 힘없이 말을 마친 아저씨는 조정석의 스파이크 씨 옆에 털썩 주저앉아, 고개를 숙이고 무엇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눈치다. 다시 15분이 지났다. 자장 함정을 벗어나지 못한 건 물론이고 선실의 온도가 올라가서 대원들의 얼굴에는 땀방울이 송글송글 돋아나 있다. 35도. 15분 동안에 10도가 올라간 것이다. 계속 이런 비율로 온도가 올라간다면 30분 후에는 55도가 될 것이다. 그 동안에 우주선이 주파한 거리는 대략 계산해 보아도 실로 4억 킬로미터에 접근하고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이 마의 함정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추측컨대, 우주선은 직선 거리를 비행하지 못하고 자장 때문에 진로가 휘어져서 뺑뺑 도는 나선 운동을 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결 단   65분 경과. 땀에 얼룩진 얼굴을 빛내면서 아저씨가 조종석에서 마침내 천천히 일어선다․. "스파이크 군, 속도를 0.1광속도로 줄이게. 함정을 벗어나지 못하면서 고속을 계속 유지하는 것은 발생하는 맴돌이 전류를 크게 해서 우주선의 온도만 올려주는 효과밖에 없겠네. 할 수 없네. 레이저 펄서의 렌즈 시스템을 고쳐서, 베이스 K의 방향 지시를 받을 수밖에 없겠네. 아까도 말했지만 이런 방사능 강도에서는 우주선 밖에서 10분 이상 있을 수 없네. 다시 말하면, 10분 내에 렌즈 시스템을 수리해야 해." 말을 잠시 중단하고 아저씨는 대원들을 새삼스럽게 쭉 둘러보다가 침을 꿀꺽 삼키면서 결연히 말한다. "내가 나가서 렌즈 시스템을 수리한다." 잠시 동안 선실에는 침묵이 흐른다. 다만 기분 나쁜 방전음 만이 선실을 채울 뿐. 마침내 아저씨가 수리함에서 여분의 렌즈 시스템과 연장을 꺼낸다.   논쟁   꺼낸 렌즈 시스템을 재빠른 솜씨로 하나 하나 점검하고 나서, 밖에 입고 나갈 우주복을 챙기고 있다. 우리는 아저씨가 하는 양을 물끄러미 보고만 있다. 이 때, "박사님, 제가 나가겠어요. 박사님이 나가신다면 고장난 우주선의 여러 가지 증세에 누가 적당한 지시를 내리겠어요. 제가 나가겠어요." 하고, 갑자기 나선 사람은 뜻밖에도 이수미 아줌마가 아닌가! 말을 마친 아줌마가 아저씨의 손에서 우주복을 뺏어 든다. "아니- 아줌마가- " 너무나 뜻밖이라는 듯이, 아저씨는 아줌마를 한참 쳐다보다가, 다시 우리를 쭉 둘러본다.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우주복을 이리 주어요. 여자가 나설 곳이 아니에요." 하고, 아저씨가 다시 우주복을 뺏으려 든다. 아줌마는 재빨리 우주복을 뒤로 감추면서 야무지게 항변한다. "박사님, 무어라구요. 여자가 나설 곳이 아니라구요? 그게 무슨 케케묵은 소리에요. 어째서 제가 나가면 안 되지요?" 조금도 양보할 수 없다는 듯이 서슬이 시퍼래서 달려드는 아줌마에게 아저씨는 별로 반박할 이론적 근거가 없는지, "하여튼 안 된다면 안 되는 줄 알아요! 어서 그 우주복 이리 내요. 아줌마는 이 어려운 일을 해 낼 수 없어요." "뭐라구요. 해 낼 수 없다구요. 제가 기계 공학을 전공했다는 사실을 박사님은 잊고 계시는군요. 저도 베이스 K에 들어갈 때, 어려운 시험을 다 거쳐서, 박사님 자신에게서 엔지니어의 자격을 인정받았던 거예요. 그 사실을 잊지는 않았겠지요?" 하도 야무지게 공박해오는 바람에 아저씨도 말을 잇지 못한다. 참다못해 내가 나선다. "아줌마 이리 주세요. 제가 나가겠어요." "여긴 또 뭐야, 네가 나가?" 아줌마는 눈을 똑바로 뜨고 나를 노려본다. "안 돼. 이런 일에 어린애가 나서는 게 아니야. 너는 잠자코 있어." 나는 오랫동안 같이 생활해 오면서 아줌마의 이런 면은 한 번도 본 일이 없다. 그는 우스개 소리만 잘 하는 아줌마, 조금만 우스운 일이 있어도 참지 못하고 깔깔대는 아줌마, 태산이 무너져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태평스런 아줌마. 이런 것이 아줌마에 대한 나의 인식의 전부였다. 아니 비단 나뿐이 아니다. 아저씨도 누나도 스파이크 씨도 나와 같이 느껴왔으리라. 그런데! 지금의 아줌마는-. 조금 전에 나를 쳐다보던 아줌마의 표정은 추상같았다. 감히 무어라고 다른 소리를 끄집어 내지 못하게 하는 위엄이 있었다. 나는 잠자코 있을 수밖에 없다. 무어라고 대들었다가는 뺨이라도 한대 얻어맞을 형편이다.   10분 안에 들어와요   아저씨가 이제는 사정을 한다. "아줌마, 이리 주어요. 아줌마의 뜻은 알겠지만 지금 우리는 위험에 처해 있어요. 이럴 때, 책임자인 내가 모든 것을 처리해야 될 것 아닙니까?" 그러나 아줌마의 태도는 어림없다. "맞습니다. 박사님, 말씀 잘 하셨어요. 박사님은 책임자이십니다. 책임자 되시는 분이 어떻게 그런 곳에 생각이 미치지 못하십니까? 박사님은 책임자이기 때문에 경솔하게 행동하실 수 없는 것입니다. 책임자에게 만일의 일이라도 생긴다면 나머지 대원은 어떻게 되라는 것입니까? 전쟁터에서 장군은 항상 후방에 있으면서 최고의 작전 지시를 내려야 합니다. 박사님은 최고 책임자이기 때문에 최후의 순간까지도 냉정을 잃지 말고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베스트의 상태에 있으면서 명석한 판단으로 대원에게 지시를 내려야 합니다. 자, 더 이상 논쟁을 벌릴 시간이 없습니다. 렌즈 시스템을 수리하는 데 필요한 이야기가 있으면 들려 주세요." 아줌마의 논리에 아저씨도 이젠 할 말이 없는 모양이다. "아줌마,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하고 겨우 말을 꺼낸 아저씨는 종이를 펴놓고 렌즈 시스템 수리에 필요한 이야기를 그림을 그려 가면서 설명한다. 아저씨의 간단한 설명을 듣고 난 후, 아줌마는 우리의 도움으로 우주복을 입고, 공구 세트와 렌즈 시스템을 허리에 매어 달고 에어 록이 있는 곳으로 간다. 스파이크 씨가 스위치를 돌리자 에어 록의 문이 소리 없이 열린다. 아줌마는 거리낌없이 에어 록 안으로 걸어 들어간다. 에어 록 문 앞에서 아저씨가 다시 아줌마에게 확인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10분 안에는 우주선 안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설사 수리가 덜 되었더라도 그대로 들어와야 합니다. 다시 말하거니와 10분 안으로 꼭 들어와야 합니다." 아줌마는 간단히 "알겠어요. 박사님" 하고는 대원들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고 에어 록을 닫아버린다. "아줌마-" 하고, 가늘게 외친 누나는 아사의 어깨를 부둥켜안고 울고 있다.   이수미 아줌마의 활약   이수미 아줌마가 사라진 에어 록에는 기압이 급격히 하강하고 있다. 기압 상태에서 밖과 통하는 문을 그대로 열어 버리면 선 내의 공기가 진공의 우주로 분출해 나가면서 수십 톤의 힘으로 사람을 밖으로 내동댕이 쳐버린다. 그래서 우주선 밖으로 나갈 때는 먼저 에어 록 내의 공기를 진공 펌프로 뽑고 난 뒤에 문을 열어야 한다. 진공 펌프 돌아가는 소리가 그쳤다. 에어 록의 공기가 거의 다 빠진 것이다. 아저씨는 목석처럼 제자리에 굳어 있다. 아사와 누나는 서로 얼싸안고 의자에 쓰러져 버린다. 스파이크 씨만이 콘트롤 패널의 각종 계기를 부지런히 점검하고 있다. 에어 록에 빨간 불이 켜졌다. 밖으로 통하는 문이 열렸다는 신호다. 나는 반사적으로 손목 시계를 쳐다본다. 큰 바늘이 3을 가리키고 있다. 이 바늘이 5를 가리키기 전에, 즉 10분이 지나기 전에 아줌마가 선 내로 들어와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아줌마는 치명적인 방사능에 오염될 것이다. 2분이 지났다. 텔레 스캐닝 TV도 고장이기 때문에 선체 밖에 나가 있는 아줌마를 볼 수가 없다. 선 내의 공기는 호흡이 곤란할 정도로 뜨겁다. "레이저 펄서를 동작시켜 보아라." 하는 아저씨의 말에 나는 급히 펄서의 전원 스위치를 넣었다. 펄서는 잘 동작하고 있다. 그러나 반사광을 포착하는 스코프에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 레이저 빔이 선체 밖으로 빠져 나가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폭탄이 터질 때, 선체 밖으로 나와 있는 렌즈 시스템을 부수면서 경통을 막아버린 것이 분명하다. "아줌마, 들려요?" 아저씨가 인터폰에 대고 한 말이다. "잘 들립니다. 박사님." 인터폰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카랑카랑한 아줌마의 소리. 아줌마의 목소리라도 들으니 한결 마음이 놓인다. "렌즈 시스템의 고장 상태는 어때요?" "염려할 정도는 아닙니다. 경통이 꾸부러져 있습니다만 새 것과 금방 교환할 수 있겠습니다." 하는 아줌마의 대답. 경통이 휘어졌어? 염려할 정도가 아니라고? 천만에 말씀! 아줌마는 우리를 안심시키려고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말하고 있는 모양이지만 경통이 휘어질 정도면 일은 커졌다. 왜냐 하면 움푹하게 들어간 곳에 있는 경통이 폭탄의 열 때문에 휘어질 정도면 경통 부근의 파괴상은 간단히 수리할 정도가 아닌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쉽게 교환되겠어요? 쉽게 고쳐질 것 같지 않거든 다시 들어와서 의논하도록 합시다." 이마에 송송히 돋은 땀방울을 훔치며, 아저씨가 인터폰에 대고 한 말. "염려 마세요. 고장은 대수롭지 않습니다. 다시 연락할 때까지 기다리세요. 통화 끝." 역시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카랑카랑한 소리. 이어 선체 외피를 깎는 전기톱의 소리가 들려온다. 갑자기 들려오는 전기톱의 진동음에 아저씨와 나는 기약 않고 서로 눈이 마주쳤다. 톱소리! 심상찮다. 톱으로 외피를 잘라 내야 될 형편이라면 일은 분명코 간단치가 않다. 톱소리는 그치지 않고 들려온다. 상상해 보라. 초속 12만 킬로미터로 날으는 로케트의 껍데기(외피)에, 연약한 여자가 달라붙어서 필사적으로 전기톱을 휘두르고 있는 광경을. 나는 메마른 입술을 축이며, 손목 시계를 들여다본다. 바늘은 벌써 4를 넘어서고 있다. 이 바늘이 5까지 가기 전에, 즉 5분이 지나기 전에 렌즈 시스템이 수리되어야 한다. 조바심 나는 마음을 달랠 길이 없어, 펄서의 스위치를 또 넣어 본다. 스코프에는 여전히 깜깜 무소식. 아저씨는 벌겋게 충혈되도록 턱을 문지르고 있다. 손목 시계를 초조하게 들여다보면서, 아사와 누나도 의자에 한 덩어리가 된 채로 시계를 부지런히 들여다보고 있다. 시계를 보기가 겁이 나서 시계 찬 손을 되도록 외면하려 하지만 눈은 저절로 시계 찬 손으로 간다. 아줌마가 에어 록 밖으로 나간지 꼭 8분이 되었다. 9분. 1분밖에 남지 않았다. 마침내 아저씨가 인터폰의 수화기를 집어든다. "아줌마, 이제 그만하고 들어오세요.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 "아줌마 안 들려요. 그대로 들어와요!" 카랑카랑한 아줌마 소리가 스피커를 울린다. "박사님, 염려 마세요. 염려하는 것만큼 방사능 강도가 크지 않습니다. 그리고 작업이 거의 다 마쳐 갑니다." "안돼요! 아주머니! 그대로 들어오시오. 명령이요." "다시 명령하거니와, 지금 곧 선 내로 들어와요." "박사님 조금만 기다리세요." 아저씨는 송화기를 든 채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스피커만 들여다보고 있다. 다시 시간은 2분이 초과되었다. 여전히 톱 소리가 들려 오고. 다시 더 2분. 아줌마가 나간지 꼭 14분이 되었다. 갑자기 톱 소리가 멈추었다. 아저씨가 인터폰에 대고 큰 소리로 말한다. "아주머니 14분이어요. 그대로 들어오시오!" "안 들려요? 들어와요. 이제 더 이상 기장의 명령에 불복종하면, 다른 여행 때는 아주머니를 제외하겠오." "……" 여전히 스피커는 침묵이다. 선실에는 숨막힐 듯한 침묵이 흐른다. 톱 소리까지 그쳤으니 밖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불안해지지 않을 수 없다. 누나는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아저씨가 다시 송화기를 끌어당긴다. "아주머니, 내 말이 들립니까? 들리거든 대답하세요. 오버" "……" "아! 박사님. 펄서 스코프에 반사 반점이 나타났어요." 이 때,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면서 누나가 외치는 소리에 아저씨와 나는 반사적으로 펄서 스코프로 고개를 돌렸다. 스코프에는 바라고 바라던 푸른 반점이 나타나지 않는가! 레이저 빔이 우주선체를 빠져 나가 다른 물체에 부딪쳤다가 다시 펄서에 수신되었다는 표시인 것이다. "레이저 빔이 수신됩니까? 박사님." 스코프를 들여다보며 감격에 차 있는 우리들은 순간적이나마 방사능 빗속에 있을 아줌마를 잠시 잊고 있었다. 이 때, 우리의 정신을 일깨우듯이 카랑카랑한 아줌마의 소리가 들려 왔던 것이다. "예, 수신 상태 양호합니다. 빨리 들어오세요. 아주머니." 감격에 찬 아저씨의 대꾸였다. 아줌마가 나간지 19분이 넘고 있다. 에어 록에 푸른 불이 켜졌다. 아줌마가 에어 록 안으로 들어와서 외피의 문을 닫았다는 표시다. 이어, 에어 록 안으로 공기가 들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문이 열린다. 아주머니가 우주복 차림으로 걸어 나온다. 얼굴은 백짓장처럼 창백하다. 그런데! 가금에 꽂힌 도시메터(방사능 감지기)는 꼭대기까지 빨갛게 물들어 있지 않은가. 허용량 이상의 방사능 오염을 뜻하는 것이다. "빨리 방사능 클리닝 룸(소제하는 방)으로." 하는, 아저씨의 말에 스파이크 씨가 달려들어 아줌마를 덥썩 안고 클리닝 룸으로 종종걸음을 친다.   사사키가 온다   아주머니를 클리닝 룸에 갖다 누이고 클리너(소제하는 약품)의 스위치를 넣고 난 뒤, 스파이크 씨가 조종실로 다시 달려왔다. "아사와 제양은 클리닝 룸에서 아주머니를 간호해라. 자, 스파이크 군, 로케트를 1마이크로 광속도로 떨어뜨리게. 베이스 K와 연락해서 방향 지시를 받아야겠네. 아사 양과 제 양은 지금부터 정각 2분 후에 심한 감속을 하게 될테니 그 때까지는 안전 벨트를 잡아매도록." 아저씨의 지시와 설명이 끝나자 아사와 누나는 클리닝 룸으로 가고 조정석 안의 우리들은 로케트의 진행 방향에 90도가 되도록 의자를 회전시켜 벨트로 묶었다. "1초 후에 역추진, 4초, 3초, 2초, 1초, 영 분사!" 아저씨의 카운트다운이 끝나자, 수십 메가와트의 역추진 에너지 분사로 로케트는 격렬하게 진동하기 시작한다. 선체의 맹렬한 진동음 때문에 그렇게 극성스럽던 이온의 방전음도 일순 들리지 않는다. 0.4광속도로 비행하는 로켓이 베이스 K의 진행 방향 지시를 받으려 해야 헛일이다. 왜냐 하면, 로켓의 레이저 펄서에서 복사되는 레이저 빔을 베이스 K가 수신하여 방향 지시를 보내올 때는 로켓의 속도가 너무 엄청나기 때문에(광속도 10분의 4) 이미 로케트는 최초의 신호를 보내고 난 위치에서 벌써 수십만 킬로미터나 위치를 바꾸고 난 뒤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득이 로켓이 제자리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데, 작은 속도(1마이크로 광속도 음속)로 비행하는 것은 오차가 거의 없기 때문에, 아저씨는 로켓의 속도를 1마이크로 광속도로 줄일 것을 지시한 것이다. 0.4광속도로 비행하던 로켓을 1마이크로 광속도로 떨어뜨리는 것은 재래식의 화학 연료 로켓으로서는 어림없는 일이다. 이렇게 하는데는 중력권 탈출에 필요한 연료의 수천 배가 들기 때문이다. 다행히 우리 우주선은 삼중 수소를 추진제로 하는 원자력 로켓이기 때문에 적은 연료로서도 그만한 효과를 낼 수 있다. 역추진 분사가 시작되고 20분이 지났다. 펄서 스코프의 스케일에는 우주선의 속력이 초속 0.3km가 된 것을 가리키고 있다. "역추진 분사 끝." 하는 아저씨의 명령에 스파이크 씨의 조종으로 맹렬한 분사 진동이 끝났다. 다시 방전음이 극성을 떨기 시작한다. 선실의 온도는 섭씨 56도. 찌는 듯한 더위다. 조종실 패널에 달려 있는 방사능 누적 강도기에도 벌써 붉은 표시를 한 위험 영역에 육박하고 있다. "태진아, 베이스 K와 교신해 보아라." 하는 아저씨 말에 벌써 부터 펄서 앞에 앉아서 지시만 기다리고 있던 나는 마이크를 당겨 베이스 K를 흐출한다. "베이스 K, 베이스 K, 여기는 K-3 우주선, 여기는 K-3 우주선, 대답하라. 오버." "……" 30초를 기다려 보았으나 응답이 없다. 나는 다시 처음과 똑같은 순서로 반복하고 수신 위치로 바꾸고 기다렸다. "여기는 베이스 K, 여기는 베이스 K, 수신 상태 양호, 오버." 귀를 기울이고 있던 아저씨의 표정이 밝아지면서 마이크를 끌어당긴다. "여기는 K-3 우주선. 본선의 자동 항로 추적기 고장. 기지의 방향 지시를 바람. 본선의 현재 위치와 진행 방향을 알려달라, 오버." "K-3 우주선은 감마-13 방사능 함정에 빠져 있음. 현재 진행 방향에서 시계 방향으로 15도 방향으로 항진하면서 계속 본 기지의 유도를 받으라, 오버." "알았다. 계속 유도 바란다. 통화 끝." 스파이크 씨가 벌써 방향 수정을 하고 있다. 5분 후에 2도 수정, 다시 5분 후에 3도 수정하라는 베이스 K의 연속적인 유도로 20분 후에는 그 극성스럽던 방전음의 소용돌이 속에서 빠져 나왔다. 우주선 외피에 쏟아지는 벼락치는 듯한 방전음의 틈바구니를 벗어났을 때 조정실의 우리들은 일순 허탈감에 빠져 한참 동안 서로 말이 없다. "감마-13 함정은 1분 전에 완전히 벗어났다. 현재 진행 방향으로 항진하라. 사사키의 우주선은 30분 전에 중력권을 벗어나서 헤시코스로 항진 중에 있음." 허탈감에 빠져 있던 우리들은 사사키가 지구를 출발했다는 베이스 K의 연락을 받자 악몽을 되새길 때 모양 몸서리가 쳐진다. 우주선에 시한 폭탄을 장치하여 세상 사람들의 이목이 미치지 않는 먼 우주 공간에서 우리들을 폭살 시키려던 잔인한 사사키. 그 사사키 때문에 우주선의 자동 항로추적기가 고장을 일으켜 무서운 방사능 함정에 빠져 오도 가도 못할 지경에 이르렀고, 아줌마의 여자답지 않은 거사로 우리는 겨우 함정을 벗어났지만, 그러나 아줌마는 지금 생사의 기로에 있지 않은가! 그 사사키가 우리 뒤를 따라 지구를 떠났다는 것이다. 그 음흉하고 잔인 무도한 사사키 일당이 헤시코스에 오면 장차 헤시코스인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헤시코스 인들은 전쟁과 같은 폭력 행위하고는 담을 쌓은 지 오래 라지 않는가. 양떼를 향해 이리가 달려드는 모양이 되지 않겠는가?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오싹해 진다.   텔레파시 치료   "스파이크 군, 방사능 함정을 벗어났으니까 이제부터 자네가 나가서 항로 추적기와 텔레 스캐닝 TV를 수리하도록 하게. 나는 조종실이 남겠네. 태진이 너는 아줌마에게 가서 증세가 어떤가를 보고 오너라. 사사키의 우주선은 본선과 성능이 같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그는 우리보다 3시간 정도 뒤떨어져 있다. 되도록 빨리 본선을 수리해서 한 시간이라도 빨리 우리가 헤시코스에 가서 무슨 방비를 해야겠다." 사사키의 추격 소식을 듣고 잠시 침울한 생각에 빠져 있던 아저씨가 스파이크 씨와 내게 내린 지시다. 스파이크 씨는 우주복을 갈아입고 우주선 밖으로 나가고 나는 아줌마가 누워 있는 클리닝 룸으로 달려간다. 아줌마는 혼수 상태에 빠져 있다. 전신 샤워를 하고 난 뒤 비타민과 필수 아미노산을 주사했을 뿐이라고 한다. 별다른 치료법이 없기 때문이다. 인체(人體)라는 소우주. 신비하고 신비한 것이 인체라는 유기 물질의 집합이다. 인간은 그 동안 태양의 상당한 부분에까지 탐색선을 보낼 정도로 지혜로워졌지만, 인체에 대한 비밀의 베일은 손도 못 대고 있는 형편이다. 거대한 우주선은 조립할 수 있지만 스스로 생명력을 가지고 인체 환경에 적응해 가는 가장 간단한 유기체, 박테리아 하나도 합성해 내지 못하고 있다. 방사능 오염이라는 병도 그렇다. 1억분의 1밀리미터 이하의 작은 알맹이가 인체 속을 지나가면서 닥치는 대로 세포를 파괴하여 세포의 기능을 마비시킨다. 파괴되는 세포가 심장이라든가, 호르몬 생산 기관이라든가, 뇌와 같은 중요 기관의 것인 경우는, 그 치명상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만일 파괴된 세포의 기능을 즉시 원상으로 회복시킬 수 있는 약품이나 새로운 세포로 대치시킬 수 있는 물질이 발명되지 않고는 방사능 오염이라는 무서운 병은 역시 영원한 불치(不治)의 병으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 지금도 그렇다. 아주머니가 받은 치명상에 대해 뾰족한 방법이 없다. 그저 인체 표면에 묻은 방사능을 씻어 내고 흡수가 빠른 양질의 단백질을 주사하는 길 밖에는. 그만큼 인체라는 유기질은 현재의 인간의 지혜가 미치지 못하는 신묘한 원리에 의해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원자핵의 구성까지도 하나 남기지 않고 낱낱이 파헤쳐 온 인간이 아직 그 정체를 가늠할 수 없는 유기체(有機體)라는 것의 비밀은 오직 신만이 알고 있고 인간의 접근을 영원히 허용치 않는 신만의 독점물이란 말인가? 새하얗다 못해 푸른기 마저 띄우고 죽은 듯이 누워 있는 아줌마를 보았을 때, 나는 인간의 능력 한계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추연하게 서 있는 나를 향해 아사가 이런 말을 해 왔을 때, 나는 과학이 무엇인지 비과학이 무엇인지를 구별할 수 없는 혼란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태진아, 그다지 염려하지 마. 고향이 가까워지니까 아버지의 텔레파시가 명확히 수신되는데 아줌마의 병은 내 힘으로 고칠 수 있을 것이래. 나의 의지를 한번 불어넣어 보라는 거야." 나는 무슨 뜻인지를 몰라 그저 멍하니 아사를 쳐다보고 있을 수밖에 없다. 의지를 불어넣어? 무슨 뜻일까? "인간의 능력은 묘한 거야. 인체는 근본적으로 정신력, 즉 의지(意志)의 지배를 받거든. 병이 들었을 때 병자 자신이 자기의 병에 대해 체념해 버리면 인체는 체념해 버린 정신력을 따라 행동하여 결국 병자를 죽이고 마는 거야. 반대로 병자 자신이 자신을 가지고 병을 이긴다고 생각하면 인체는 무서운 잠재력을 발휘하여 병을 치료하여 때때로 인간들이 말하는 기적을 만드는 거야, 믿음, 신념이라고도 하지. 지구인들이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기적 같은 것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 예수님은 내 병을 틀림없이 고쳐주실 거다. 그분의 옷이라도 만지면 그분의 능력이 나의 병을 좇아 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다시 말하면 자기의 병에 대한 신념을 갖기 때문에 사람이 가진 잠재력으로 병은 고쳐지는 거야. 아까도 말했지만 이 때, 중요한 것은 병자가 갖는 믿음, 신념인 거야. 나는 꼭 병이 나을 수 있다는 신념 말이야." 아사의 긴 설교조의 설명을 듣고 나는 어이가 없다. 하기야 고도의 형이상학적인 문명을 이룩한 헤시코스 인들인지라, 그래서 텔레파시라든가 기상천외한 정신 감응이란 수단으로 의사 소통을 하는 방법까지 개척한 그들인지라 나는 정확히 판단할 수는 없지만 그러나 아사의 설명이 도저히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아사는 이런 나의 마음의 움직임을 벌써 알아 냈는지, "좀 건방진 말이지만 지구인들이 여태까지 쌓아온 과학은 절름발이 과학이야. 기계를 만들고 그래서 인간의 물질 생활을 풍요하게 하고 기껏 그런 정도야. 그러나 물질 과학보다 몇백 배 더 중요한 정신 과학을 아주 등한시하여 왔거나 혹은 전연 모르고 있어. 앞으로 너는 헤시코스에 가서 나의 이런 말을 이해할 때가 올거야." 아사의 말은, 반박하고 싶은 구석이 너무도 많지만 지금은 그런 논쟁으로 시간을 허비할 때가 아니다. 무엇보다 아줌마가 위독하지 않은가? "그럼 아사 너는, 네가 말하는 그 정신 과학으로서 아줌마를 치료할 수 있단 말이지?" "물론 장담은 못해. 그러나 해볼 테야, 될 거야." 황금빛의 금발을 양어깨에 치렁치렁 늘어뜨리고 옥처럼 티 하나 없는 얼굴을 한 아사가 결의에 찬 표정으로 이런 말을 할 때는 성녀(聖女), 바로 그것 같이 착각된다. 코웃음으로 날려 버리기에는 너무나 숙연한 그 무엇이 서려 있다. "그럼 아사, 최선을 다 해 주어."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튀어나온다. "나는 지금부터 무의식 상태에 있는 아줌마의 의식 속에 나의 정신력을 집어넣을 거야. 아주 조심해 줘. 나의 텔레파시가 방해받지 않도록 말이야." 이렇게 말한 아사는 죽은 듯이 누워 있는 아줌마의 이마에 한 손을 얹고 눈을 감는다. "아줌마 당신은 방사능 때문에 약간 병이 생겼어요. 그러나 그 병은 겁날게 조금도 없는 것입니다. 방사능 때문에 파괴된 당신 몸의 세포는 지금 조금씩 조금씩 나아지고 있어요…….." 물론, 아사가 소리를 내어 말하는 것이 아니다. 텔레파시 통신으로 아줌마의 뇌파에 동조(同調)시키고 있는 것이다. 아사와 오래 같이 있었기 때문에 누나와 내가 그녀의 통신을 수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방사능이 지나간 세포의 원형질이 약간 파괴되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 원형질이 점차 회복되고 있어요." 아사의 최면술을 거는 것과 같은 텔레파시 치료가 죽은 듯한 적막 속에 진행되고 있다. 이 때, 누나가 나의 소매를 슬그머니 끌어당기며 밖으로 나가자는 눈짓을 한다. 조용히 문을 닫고 나와 누나는 밖으로 나왔다. "태진이, 너는 아사의 말을 신용 안 하는 것 같지만, 나는 달라. 나는 아사의 뜻을 믿어. 우선 아사의 놀랄만한 예언을 생각해 봐. 아사는 우리가 위험에 놓여 있다는 것을 미리 예언했잖아. 아사 말대로 헤시코스 인들은 지구인이 전혀 모르고 있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 한 거야. 나는 그 새로운 과학이 점점 사실인 것으로 느껴지기 시작해." 나의 태도는 여전히 부정적이다. "도대체 과학이란 객관적인 증거가 있어야 하고, 재현성(再現性)이 있어야 하는 거야. 그런데 그런 종류의 과학은 우리가 지각할 수 있는 증거가 없는 거 아냐?" "태진아, 네 말은 지구인들의 사고 방식으로는 틀림없는 말이야. 그러나 전연 증거가 없는 것도 아니야. 벌써 20세기 후반에 와서 알려진 사실이기는 하지만 우리 피부에는 60 킬로사이클의 교류가 흐르고 있다는 것이 발견되었잖아. 60킬로 싸이클이면 공간으로 복사될 수 있는 전자 에네르기야. 하기야 이 60킬로싸이클이 인체의 어떤 정보를 가지고 있는지는 몰라. 그러나 인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뇌 아니야. 그러니까, 이 대뇌의 명령이 이 주파수 속에 들어 있을 가능성이 있어. 그러니까 대뇌의 명령, 즉 우리의 사고 작용(思考作用)이 고주파에 실려 공간으로 복사된다고 생각해 봐. 참 재밌잖아. 사람들 중에 극히 감각이 예민한 사람은 이 60킬로싸이클을 수신할 수 있을지 몰라.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겠니, 그런 사람은 다른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다는 얘기가 되는 거야." 나는 누나의 아주 그럴 듯한 이론에 반신반의한다. '그럴 수가 있을까?' 이 때, 아저씨가 수심에 쌓인 표정으로 이쪽으로 걸어온다. "어떻게 되었니, 아주머니의 증세는 어때" 하는, 아저씨의 물음에 누나가 아사의 텔레파시 치료에 대해 그 동안의 경과를 간단히 보고한다. 아저씨도 나와 마찬가지로 그럴싸하다는 표정은 아니다. "할 수 없지. 물에 빠지면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니까. 그리고 항로 추적기가 수리되었다. 벌써 헤시코스가 TV 스크린에 나타나고 있어. 45분 후에 도착할 것 같다. 현재 속력은 1대시 광속도."   착 륙   나와 누나는 조종실로 돌아와서, 레이저 스코프 앞에 앉았다. 스파이크 씨와 아저씨는 아줌마의 병세(病勢)를 보기 위해 간호실에 가 있다. 우주선은 완전히 정상(定常)을 회복했다. 선실 내의 온도계도 섭씨 17도를 가리키고, 자동항로 추적기도 파란 불을 켠 채로 정확하게 1초 간격으로 레이저 빔을 복사(輻射)하고 있다. 폭풍 후의 고요, 눈이 스스로 감겨지는 기분 좋은 상태다. 이런 중에서도 사사키 생각이 후딱 떠오르면 무의식 중에 오금이 조여들고 심장이 소리내어 쿵쿵거린다. 사사키! 그 매서운 눈, 딱 벌어진 어깨, 능글맞은 웃음, 생각만 해도 진저리가 난다. 더구나 그 사사키가 30분 전에 지구를 출발했다니까 불과 2시간 간격을 두고 우리를 추격하고 있지 않은가? 그 무섭고 잔인한 놈이 헤시코스에 가면 선량하기만 한 헤시코스 인들은 어떻게 될까? 놈은 뇌파 증폭기를 뺐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라도 사양하지 않겠지. 양떼 속에 뛰어든 이리가 흰 양떼를 피로 물들이며 처참한 살육을 저지르는 광경이 벌어지겠지. 그러나 전연 그렇지 않을 지도 몰라. 왜냐 하면, 뭐니뭐니 해도 아저씨와 흐르노프 교수가 있으니까. 교수는 지금 헤시코스에 있으면서 헤시코스 인들에게 원자력 이용의 방법을 가르치고 있지만 위험이 닥치면 아저씨와 의논해서 무슨 기상천외의 묘책(妙策)을 강구할런지 모르지. 또 아사의 아버지인 솔베즈 추장이 있지 않은가? 수만 년 간이나 정신 감응술을 연마해 온 종족의 후예니까 지금 내가 상상도 못하고 있는 비책(秘策)을 알고 있을 지도 몰라. "태진아,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하게 하고있어? 자, 20분 후에는 착륙이다. 레이저 스코프(Laser scope)를 가동시켜 보아라." 하는 아저씨 말에 나는 꿈에서 깨어난 듯 새삼 주위를 돌아보았다. 어느새 아저씨, 스파이크 씨, 아사가 조종실에 들어와 있다. 사사키 생각에 골몰해서 사람이 들러오는 것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아사는 언제나 처럼 그림자 같이 조용히 서 있다. 나는 얼른 그녀의 표정부터 살펴본다. 원래, 좀체로 표정을 드러내지 않는 아사니까 표정을 보아서는 그녀의 감정을 짐작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지금은 표정이 무척 밝다. 아사의 텔레파시 치료에 의해 효과가 나타난 것일까? "아줌마의 병은 상당히 회복됐다. 이제 원기만 회복하면 돼. 2, 3일 후에는 완전히 회복할 것 같다." 아저씨가 나의 궁금증을 풀어준 말이다. 아사도 아저씨의 말을 긍정하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레이저 스코프에 스위치를 넣었다. 스코프에는 동전 만한 크기의 헤시코스가 나타난다. 정확하게 거리를 측정해 보니까 15분 후에는 대기권에 돌입하게 될 것 같다. 조종실은 다시 활기를 찾았다. 역추진 분사기가 점검되고 우주선 자세 제어용 로켓이 시험되고 우주선의 진행 속도를 줄이는 역추진 분사가 1분 동안 계속되었다. 숨 돌릴 새도 없이 아저씨의 명령이 떨어지고 그 때마다 스파이크 씨의 손이 콘트롤 패널 위를 바쁘게 움직인다. 레이저 스코프에는 헤시코스의 육지 모양이 가득차 있다. 다시 역추진 로켓이 분사하고 우주선 외피를 스치는 헤시코스의 대기(大氣)와의 마찰음이 점점 크게 들려 온다. 대원 전부가 의자 위에 누운 채 벨트로 몸을 묶고 있다. 드디어 심한 감속이 시작되고 역추진 분사음이 크게 들려오기 시작한다. 대기와의 마찰음은 점점 커져서 이제는 우주선이 격렬하게 진동하기 시작한다. 동시에 레이저 스코프에 나타난 헤시코스가 급격하게 확대되고 있다. 쿵-하는 둔탁한 소리에 이어 우주선이 크게 기우뚱거리다가 조용해 졌다. 드디어 2억 5천 킬로미터의 긴 여정을 무사히 끝내고 헤시코스에 도착한 것이다. 우주선의 해치를 열고 아저씨를 선두로 우리는 바쁘게 밖으로 나왔다. 아직 핼쑥한 낯빛을 한 아줌마도 누나의 부축을 받아 밖으로 나왔다.   여기는 사사키   생소한 총경이다. 태양은 지구에서처럼 바로 쳐다보지 못할 정도로 눈이 부시게 빛나지를 않는다. 그저 검붉기만 하다. 산과 들은 서로 구별이 어려울 정도로 뚜렷한 차이가 없이 평평하기만 하다. 우주선 밖으로 나오자 한기(寒氣)가 단숨에 몸을 엄습한다. 바람도 별로 없다. 공기의 성분은 지구에서와 비슷해서 산소통이 없어도 불편은 없다. 기온은 섭씨 3도. 그늘진 곳에는 고드름까지 달려 있다. 500여 일의 긴 겨울이 시작되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식물은 시들어져 맥이 없고, 키가 큰 놈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잔디같이 낮게 깔린 이름 모를 식물이 있어 거기에는 흰 꽃이 한창이다. 흡사 눈(雪)과 같다. 산과 들을 구별할 수 없는 땅에 눈 가는 데까지 깔려있다. 좁은 선실에 갇혀 있던 대원들은 땅 위를 뛰어다니며 가벼운 운동을 하고 있다. 1000미터쯤 떨어진 곳에 커다란 굴이 입을 벌리고 있다. 헤시코스의 지하 도시로 들어가는 입구다. 굴 속의 지하 도시는 원래 헤시코스 조상들이 벌써 몇천 년 전에 건설해 놓은 것인데,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에 심한 풍화 작용(風化作用)으로 굴 입구가 폐쇄되어 나중에는 지하 도시의 위치 조차 모르게 되었다. 그러다가 헤시코스에 다시 한파가 몰려와서 헤시코스 인들이 전멸할 위기에 처했을 때, 우리 베이스 K 조사팀이 우연히 이곳에 와서(사실은 우연이라기보다 헤시코스 인들의 텔레파시 통신에 유도되어 화성 근방을 탐험하던 우리가 헤시코스에 착륙하게 되었던 것이다) 지하 도시를 찾아 냈던 것이다. 섭씨 마이너스 50도의 혹한 속에서 나와 스파이크 씨가 다이나마이트를 안고 저 굴 속을 한 발짝 한 발짝 폭파해 들어갔던 것이다. 오래된 굴이 다이나마이트 폭발음에 무너져서, 나와 스파이크 씨는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깜깜한 굴 속에서 만 72시간을 견뎌 냈었다. 그러니까 나와 스파이크 씨에게는 헤시코스가 새삼스런 감회를 안겨 주고 있다. 자칫했으면 목숨까지 버릴 뻔했던 저 굴! 꼭 열흘 동안 부지런히 굴을 뚫은 보람이 있어서 지하 도시를 발견하게 되었고, 그래서 추위에 떨던 헤시코스 인들에게 안식처를 제공하였을 때, 헤시코스 인들의 그 기뻐하던 모습. 그리고 우리들을 위해 벌어졌던 그 호화찬란하던 축제(祝祭). 나는 그 때 얼마나 어깨가 으쓱했는지, 죽어 가던 5000명의 헤시코스 인들을 구했다는 자부심으로. 그런데 목숨을 걸고 구해 낸 그 헤시코스 인들에게 다시 검은 구름이 닥쳐오고 있지 않은가?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검은 구름은 나와 같은 지구인인 사사키가 아닌가? 헤시코스 인들은 은인으로서의 지구인도 가졌지만, 또한 영원한 원수의 관계를 가질 지구인도 생기려고 하고 있지 않은가?   사사키의 최후 통첩   굴 쪽에서 지프차 한 대가 급히 달려오고 있다. 우리를 마중 나오는 모양이다. 지프차는 지난번 여행 때 우리가 남겨놓고 간 것이다. 인력이 작은 이 곳에 맞게 차체가 무겁도록 개조한 배터리 카(Battery Car)다. 아사가 차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차에 탄 사람은 페트라다. 솔베즈 추장의 부관이다. 차에서 내린 페트라가 아사 앞에 잠시 무릎을 꿇고 공주에게 예를 드린 후 아저씨 앞으로 걸어왔다. 페트라의 표정은 어딘지 모르게 침울해 보인다. 자기들에게 사사키의 위험이 닥쳐오고 있는 것을 감지(感知)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조금도 겁내거나 당황해 하는 거동은 아니다. 이 점 아사와 다를 바 없는 헤시코스인의 기질이다. 페트라가 아저씨에게 생각을 전해온다. "먼 여로에 수고하셨다고 추장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김영준 박사와 의논할 것이 있다고 하십니다. 같이 가십시다." 말을 마친 페트라는 스파이크 씨와 나를 차례로 껴안는다. 비록 지구인들처럼 말로써 환영의 뜻을 나타내지 않지만 진심으로 환영하는 그의 텔레파시를 우리들은 충분히 느끼고 있다. 아줌마는 처음 여행이기 때문에 아저씨가 페트라에게 아줌마를 소개했다. 아줌마는 창백한 안색으로나마 기쁜 듯이 손을 내민다. 페트라도 지구인의 인사 방법에 익숙했는지라 마주 손을 내밀어 아줌마의 손을 잡는다. 페트라가 생각을 전한다. "아줌마가 여행 도중에 겪은 재난(災難)에 대해 추장께서는 진심으로 위로의 뜻을 가지고 계십니다." 아줌마가 얼굴을 붉힌다. 나이가 40이 다 된 아줌마가 새삼스레 얼굴을 붉히는 건 격에 맞지 않는 것 같지만, 그러나 저렇게 잘 생긴 남자에게 손을 잡힌 채 위로의 말을 들을 때, 얼굴에 홍조를 띠는 건 무리가 아니라고 생각된다. 그만큼 페트라는 미남이다. 눈처럼 흰 피부, 2미터가 넘는 키, 굽이치는 금발, 거기에 정신 감응술로 단련된 지혜로운 표정과 태도, 과연 같은 남자인 나도 반할 형편이다. "스파이크 군! 태진이와 여기 남아서 사사키의 우주선을 감시해 주게. 사사키의 우주선이 보이거든 무전으로 연락해 주게. 나머지는 이 차로 지하 도시로 가자." 일행이 지하 도시로 떠나자 나와 스파이크는 우주선으로 다시 들어왔다. 사사키의 우주선이 레이저 스코프에 나타나려면 아직 1시간 반은 기다려야 한다. 레이저 빔(Laser Beam)에 의한 탐지 방법이 마이크로 웨이브(Micro wave) 탐지법보다 그 성능이 수백 배 우수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몇천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우주선 같은 작은 물체를 포착해 내지는 못한다. 그래서 사사키의 우주선이 레이저빔의 탐지 거리에 들어올 때까지 우리는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깜깜한 스코프를 들여다보고 있으려니 심신이 나른한 것이 금방이라도 잠에 떨어질 것 같다. 베이스 K를 출발하고 난 뒤, 겹치는 사고 때문에 잠시도 눈을 붙이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졸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썼으나 어느새 나도 모르게 깊은 잠에 빠졌던 모양이다. 어깨를 흔드는 바람에 눈을 번쩍 떴다. 스파이크 씨의 웃고 있는 얼굴이 바로 얼굴 앞에 있다. "태진 군, 무척 졸렸던 모양이군. 그런데 이거 봐." 하는 스파이크 씨 말에 겨우 눈을 비비고 스코프를 쳐다보았다. 아- 거기에는 어느새 콩알만한 크기의 반점이 나타나 있지 않는가. "사사키야. 5밀리 광속도로 접근하고 있어. 사사키도 원자력 엔진을 장비한 모양이야." 스파이크 씨의 말이다. 너무나 여유만만하다. 이 서양 신사에게는 다가올 모험이 즐거운 모양인가? 이것이 소위 말하는 개척 정신이라는 건가? 여유 만만한 스파이크 씨와는 반대로 나는 심장이 조여오는 듯한 긴장을 느끼면 스코프를 계속 응시한다. 반점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커지고 있다. 우주선의 속도가 빠르다는 뜻이다. 보고 있는 동안에 반점은 우주선의 모양을 갖추며 벌써 손목 시계만 해졌다. "사사키가 틀림없는 모양이다. 박사님께 네가 연락해라." 하는 스파이크 씨 말에 출발할 때의 아저씨의 말이 생각나서 얼른 단파 무전기의 마이크를 끌어당겼다. "여기는 우주선, 여기는 우주선, 아저씨 나와 주세요, 오버." 아무 반응이 없다. 지프차에 장치된 무전기에 스위치를 넣지 않고 있는 건가? 나는 다시 아저씨를 부른다. "여기는 우주선, 여기는 우주선, 아저씨 나와 주세요. 오버." 이번에는 반응이 있다. "여기는 지하 도시. 무슨 일이냐? 오버." "사사키의 우주선이 나타났습니다. 현재 5000킬로미터 지점에서 계속 접근 중임, 20분 후에는 착륙할 것 같습니다. 오버." "알았다. 계속 감시해라. 곧 그 곳으로 가겠다. 통화 끝." 단파 무전기의 전원 스위치를 끊고 나는 다시 스코프를 응시한다. 우주선은 화면을 가득 채우며 접근해 오다가 사라졌다. "착륙한 모양이다. 여기서 200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이다." 우주선이 화면에서 사라지자 스파이크 씨가 한 말이다. 이 때, 지프차 오는 소리가 나더니 곧 이어 아저씨가 우주선 안으로 들어섰다. 사사키가 200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 착륙했다고 보고한다. "200킬로미터쯤이라. 음, 태진아, 단파 무전기를 이동시켜 놓아라. 사사키가 행동하기 전에 우리에게 무어라고 할 꺼다. 3, 4시간 지나면 해도 질 테니까 오늘밤은 행동을 못하겠지. 놈은 이 쪽의 동정을 알아볼 꺼야. 그리고 사사키는 지하 도시의 위치를 정확하게 몰라. 그래서, 우리와 더 연락을 하고 싶을 거야." 하는 아저씨 말에 나는 다시 무전기에 전원 스위치를 넣자마자 음산한 사사키의 소리가 들려온다. "여기는 사사키, 여기는 사사키. 김영준 박사에게 말한다. 당신은 내가 시한 폭탄이 실패한 것을 모르고 있는 줄로 알지 모른다. 그러나 시한 폭탄이 실패한 것을 알고 있다. 박사의 우주선이 폭발하는 광경이 레이저에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여기에 도착했다. 무기와 군인을 싣고. 그래서 박사는 다음과 같이 행동할 것을 요구한다. 앞으로 12시간 내에 뇌파 증폭기와 그것을 운전할 줄 아는 헤시코스 인을 내게 인도하라. 시한을 넘길 때는 가차없이 공격한다. 오버." 사사키의 말이 끝나자 아저씨가 스위치를 꺼버린다. "저건 사사키가 녹음해 둔 걸 꺼야. 2, 3분마다 저걸 반복하겠지. 그러나 응답해서는 안돼. 우리의 위치를 쉽게 알아낼 테니까." 아저씨의 말이었다. 나는 여태까지 궁금해하던 일을 조심스럽게 물어 본다. "아저씨, 그런데 어떻게 하실 작정입니까, 이쪽에는 아무런 무기도 없잖아요?" "그래, 우리에게 무기가 없는 것은 사실이야. 그렇다고 전연 승산이 없는 것은 아니야. 우선 사사키는 우리의 정확한 위치를 모르고 있어. 그리고 인원도 이쪽이 월등하게 많고. 그런데 문제는 추장이 분란을 피하기 위해 기계를 사사키에게 순순히 내어 주려 하고 있는 점이야.“ 아저씨 말에 나는 놀랐다. "그 기계가 사사키 손에 넘어가면 지구는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추장에게 말씀드렸나요? 아저씨." "물론 이야기했다. 그러나 추장은 자기 종족의 안전만 생각하고 있어." 잠시 말을 끊고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겨 있던 아저씨가 결연히 말한다. "사사키는 우리에게 12시간의 시간을 주었다. 그 안에 우리는 기어코 추장을 설득하여 사사키를 방어할 계획을 세우도록 해야 한다. 12시간 안에 말이다……" 해치를 닫고 우주선 주위를 정돈한 후 우리는 지하 도시를 향했다. 헤드라이트를 켜고 긴 터널(Tunnel)을 한참 달렸다. 어마어마하게 두꺼운 철문을 지나 아름다운 도시 입구에 들어섰다. 평평한 지붕을 한 집이 질서 있게 늘어서 있고 집집마다 온갖 꽃이 만발한 정원이 보인다. 위기가 닥친 것을 느끼고 있을 터인데도 통행인의 몸가짐은 동요되는 법이 없이 침착하다. 지하 도시 전체를 덮고 잇는 거대한 돔(Dome) 가운데에 장치된 통풍관을 이용한 환기 시설은 완벽하다. 5천의 인구가 살고 있는데도 공기의 신선도는 도시 밖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 집집마다 꽃나무와 수목이 울창한 것도 주민이 내뿜는 막대한 양의 탄산가스를 제거하는 한 가지 방법이다. 이곳의 수목은 독특해서 태양 광선이 없는 밤에는 일시적으로 가사 상태(假死狀態)가 되는 것이다. 지하에서만 수만 년 간 살아오는 동안 신진 대사량이 점점 줄어들어 이제는 아예 밤에는 생명 활동이 중단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낮에는 탄소 동화 작용으로 주민이 쏟아놓는 탄산가스를 흡수하고 밤에는 가사 상태가 되어 도시 내의 산소를 소모하지 않게 되어 있다. 식물도 인간의 요구에 순응한 것이다. 이것은 근래 새삼스럽게 다시 말썽이 일기 시작한 다윈의 진화론을 보완(補完)하는 하나의 새로운 증거가 된 것인데, 지난 번에 흐르노프 교수가 이 사실을 세상에 발표했을 때, 생물학계가 잠시 떠들썩했었다. 차가 지나갈 때, 키가 크고 혈색이 좋은 시민들이 인사의 생각을 보내온다. 사사키가 최후 통첩을 보내온 것은 아직 모르고 있는 것 같다.   뇌파 증폭기   시 중앙에 있는 광장에서 아사와 아줌마를 만나 나는 차에서 내리고 스파이크 씨와 아저씨는 추장의 집으로 계속 차를 몰았다. 조용한 방에 누워서 정양을 취하라는 주위 사람들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아줌마가 기어이 뇌파 증폭기를 보기로 했다고 한다. 나와 아줌마는 아사를 따라 작은 빌딩 안으로 들어섰다. 아저씨들은 추장 집에서 사사키 문제를 토론하고 있으리라. 롤러 위에 얹힌 문이 소리 없이 열린다. 갑자기 실내에 들어온 우리들은 처음에는 아무 것도 잘 볼 수가 없다. 실내 벽에서 반사되어 오는 우리의 발자국 소리가 기괴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한참 그대로 서 있으려니까, 방 가운데에 둥그런 울타리가 보인다. 울타리 안에는 희미한 불이 켜져 있고 가운데에 투명한 운모상자가 있다. 상자 안에는 수만 개의 번쩍이는 철사가 서로 엉켜서 맥박처럼 뛰고 있다. 가까이 다가감에 따라 기계가 스르륵 스르륵하며 우주 공간을 향해 텔레파시 에너지를 복사하는 약한 소리가 들린다. 우리는 숨을 죽이고 쳐다본다. 이것이 사사키 일당을 유혹하여 헤시코스에 때아닌 유혈의 참극을 불러일으키려고 하고 있는 뇌파 증폭기인 것이다. 한참만에 아줌마가 입을 연다. "이것은 정말 상상도 못할 기계야 ! 유리로 된 핏줄 속으로 피를 들여보내고 있는 것처럼 철사가 꿈틀거리고 있잖아?" "좋은 비교예요. 철사는 생물체의 뇌세포의 역할을 하거든요." 하는 아사의 대답이다. "기계를 운전할 때는 어떻게 하면 되니?" 역시 아줌마의 물음이다. "기계가 적당한 송신 파장으로 조정되면 기계 운전자가 이 극판 두 개를 꼭 붙잡아요. 그러면 운전자의 뇌파가 증폭되어 복사되지요." "그럼 우리도 사용할 수 있을까? 태진이나 나나 말이야." "그럼요. 할 수 있고 말고요. 훈련만 받으면 말예요. 기계운전자는 생각을 송신하는 방법을 알아야 하거든요. 이것은 일종의 복사 에너지가 공간을 누비며 주사(走査)되고 있어요. 이 에너지는 훈련을 받지 않는 마음에는 치명상을 입혀요." 나는 아사의 말에 그 에너지라는 것에 대해 더 상세한 설명을 요구했다. "간단히 말하면, 이 뇌파 증폭기의 운전 동력은 지구에서와 같은 전기임에는 틀림없어. 그러나 주요 부분품은 이리도늄인데 이 금속에 대해서는 태진이 너도 알고 있지? 헤시코스에만 있는 거야. 흐르노프 교수께서 지난 번에 분석한 바에 의하면 원자 번호 111.5라는 기묘한 원소야. 이 이리도늄은 충전되면 감마선과 같은 일종의 센 방사능을 내뿜게 되는데, 이 방사능에 견디도록 훈련을 받지 않은 마음은 마비되고 마는 거야." 감마선이라는 바람에 약간 찔끔하는 눈치지만, 그래도 아줌마의 호기심은 그칠 줄 모른다. "그럼, 그렇게 위험하면 사사키가 쉽게 이용할 수 있을까?" "쉽게 이용할 수 있을 거예요. 우리 국민 중의 누구에게서나 일주일 이내에 조정 방법을 배울 수 있거든요. 그의 정신은 단단하고 강력하기 때문에 아주 쉽게 배울 거예요." 방 안에는 잠시동안 침묵이 흐른다. 스르륵 스르륵 하는 기계 소리가 음산하게 들려올 뿐, 소리가 날 때마다 에너지가 충전되느라고 철사가 맥박처럼 뛰고 있다. "꼭 살아 있는 짐승을 묶어 놓은 것 같구나" 한참만에 아줌마간 내뱉듯 한 말이다. 징그러운 물건을 대할 때처럼 상을 찡그리며, "우리 국민들이 다른 세계에 우리의 생각을 보내온 수천 년 동안 기계는 이렇게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대요. 지난번에 우리가 절멸의 위기에 처했을 때도 필사적인 구원의 호소를 외계를 향해 보냈어요. 그 때마침 화성 근방을 지나가던 박사님 일행이 우리의 정신을 수신하고 여기로 오신 거예요." 아사가 말하는 동안 기계를 보고 있던 아줌마는 "알겠어 아사. 헤시코스는 이 기계 때문에 살아났단 말이지. 그러나 나는 너의 기계가 싫다. 겁이 난다." 사실 아줌마가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이 무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흡사 간교한 짐승을 울타리에 놓아둔 것처럼 요기 같은 것을 풍기고 있기 때문이다. 실은 나도 뇌파 증폭기에 대해서는 호감이 가지 않는다. 기계라고는 하지만 우리 지구인이 여태까지 생각하고 있던 기계의 개념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그런 것이다. 아사는 나와 아줌마의 그런 기분을 금방 느꼈음인지 밖으로 나가자고 한다. 추장 집에서 헤시코스의 명물인 순 과일로만 된 저녁을 먹고 아사와 아줌마는 동물원 구경을 가고 나는 응접실로 갔다. 응접실에서는 추장, 아저씨, 흐르노프 교수, 스파이크 씨가 둥근 테이블에 앉아서 논쟁을 하고 있다. 그러나 논쟁은 예상 외의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추장은 사사키의 최후 통첩에 겁을 먹고 뇌파 증폭기를 순순히 내어주려 하고 있는 것이다. 드디어 급하디 급한 아저씨의 성미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격론(激論)   아저씨가 탁자를 탕 내리치며 소리친다. "분명코! 이런 말은 일국의 통치자가 할 소리가 아니오. 줏대 없는 협상이며 너무나 유약한 사실상의 항복이요!" 솔베즈 추장은 희랍 신화에 나오는 신처럼 키가 크고 귀공자 같은 얼굴에 범하지 못할 위엄을 갖춘 사람이다. 그러나 지금 그의 말은 눈동자에는 고뇌와 초조감이 안개처럼 서려 있다. "김영준 박사! 나는 귀하의 용기를 칭찬합니다. 그러나 내 마음은 이미 결정되었소이다. 박사의 말과 같이 나는 많은 사람의 운명을 결정해야 하는 통치자이오. 그렇기 때문에 그와 같은 결심을 하지 않을 수 없소이다. 백성에게는 투쟁과 유혈의 모험이 결단코 있어서는 안되겠소이다. 수천 년 동안 우리 국민은 평화 속에 살아 왔소이다. 그리고 나는 이 평화의 철학을 자손만대에 영구히 계승시킬 의무가 있소! 전쟁에 휘말려 드는 것은 생각할 여지조차 없소이다." 추장의 태도는 확고하다. 일순 방 안에는 긴박한 침묵이 흐른다. 여태까지 두 사람의 논쟁을 묵묵히 지켜보고만 있던 흐르노프 교수가 천천히 일어서면서 정중하게 입을 연다. "솔베즈 추장! 나는 당신 국민들과 수 개월 동안 같이 생활해 왔소. 그 동안에 나도 당신들의 그 평화를 신봉하는 철학을 숭상하기에 이르렀오. 그러나 생각해 보시오. 나는 50억의 지구인의 한 사람으로서 당신의 과학자에게 원자력의 원리를 가르치기 위해 그간 무던히도 애써왔소. 이제 김 박사가 천신만고 끝에 원자재와 기계까지 운반해 오지 않았소이까? 그래서 당신들에게는 추위의 공포로부터 벗어날 새로운 도시를 건설할 기회가 주어진 게 아닙니까? 이 점 우리들에게, 아니 전 지구인에게 당신들은 은혜를 입고 있는 것입니다." "나도 그 점은 무어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고맙게 생각합니다." 추장의 태도가 약간 수그러지는 듯하자, 교수의 웅변이 계속된다. "생존의 기본은 협조입니다. 이것은 행성 간이라고 예외가 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 지구인은 당신들을 도와왔습니다. 이제 당신들이 우리를 도울 차례입니다. 사사키에게 뇌파 증폭기를 허용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당신들은 평화와 사랑을 퍼트리는 데 사용해 왔지만 사사키는 적의와 전쟁을 도발시키는 데 사용할 것입니다." 추장은 괴로운 듯이 고개를 가로젓는다. "흐르노프 교수, 배은망덕한 것 같아서 나의 마음은 괴롭습니다만 어쩔 수 없소이다." "한 마디만 더 하겠습니다." 하고, 흐르노프 교수가 다시 추장의 말을 가로챘다. 숨가쁜 열변이다. "다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고, 자기에게 비록 약간의 이롭지 못한 일이 일어날 위험이 있더라도 진정으로 그들을 협조한 수 있는 태세를 갖추지 못한 종족은 진보할 자격이 없습니다. 또 위험이 바로 코앞에 닥친 이런 결정적인 위기에서도 자기 몸만 도사리고 위험에 적극적으로 부닥치는 일말의 용기도 없는 비겁하고 피동적인 종족은 영원히 고립되고 기필코 멸망합니다." 격앙된 모욕조의 열변이 끝났다. 순간 추장은 큰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한대 얻어맞은 사람처럼 한참 동안이나 마룻바닥을 응시하며 넓은 이마에 한 손을 얹고 침묵을 지킨다. 이윽고 고즈넉이 고개를 든 추장은, "나의 친구여! 당신의 논리는 무어라고 대답하기 심히 어려운 비약이요. 그런데 설사 나와 국민들이 당신들을 기꺼이 도와 줄 생각이 있더라도 사사키에게 대항할 방법이 있소? 우리에게는 무기라고는 없지 않소?" "추장의 말은 일리가 있습니다." 하고, 아저씨가 다시 대화에 끼여든다. "무기와 같은 물리적인 면에서는 불리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추장, 당신과 흐르노프 교수와 나는 일종의 방어계획을 수립할 수 있는 충분한 지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 추장은 대답하지 않는다. 아저씨의 말을 수긍한다는 것인가? 한참만에 흐르노프 교수가 다시 입을 연다.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기계는 바로 여기 도시의 중심에 있소. 그리고 여기로 들어오는 길은 철문이 막고 있는 터널 뿐이요. 그럼 추장! 당신 국민들이 흙 한 포대씩만 운반해다가 철문 뒤에 쌓아놓으면 어떨까요? 사사키가 특별한 무기와 장비를 준비해 오지 안았다면 두꺼운 철문과 흙 포대를 뚫지는 못할 겁니다. 그렇게 되면 열흘 후에 닥쳐 올 맹추위 때문에 쫓겨가게 될 겁니다." "오라, 그것 참 멋진 생각이오." 아저씨가 기쁨의 환성을 지른다. "그러나 다른 입구가 없는 것이 아니오." 하고, 추장이 무겁게 입을 연다. "통풍구와 지하로 흐르는 수로 입구로도 침투할 수 있습니다." "거기는 수비하거나 처단하기가 간단하지 않습니까?“ 하고, 아저씨가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또 나선다. "추장! 흐르노프 교수의 뜻을 내가 다시 한번 말하리다. 우리는 필요한 인력만 확보하면 사사키를 막아 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사키가 우리에게 허용한 시간은 불과 24시간입니다. 쓸데없이 논란으로 허비할 시간이 없습니다." "지금 나는 참으로 어려운 입장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말은 알아듣겠습니다." "그럼, 우리를 도와 주겠다는 겁니까?" 아저씨가 표범처럼 눈을 빛내며 다그쳐 묻는다. "철문 앞에 바리케이드를 치도록, 사람을 동원하겠습니다." "만세! 훌륭하신 용단입니다!" 다혈질인 아저씨가 어린애처럼 두 손을 번쩍 들고 외친 말이다. "그러나 여러분에게 다시 알려 둘 것은, 이 모든 조치는 우리 국민이 여태까지 신봉해 온 원리와는 완전히 어긋난다는 사실입니다." "이해합니다. 그래서, 추장의 영단(英斷)을 거듭 칭찬합니다. 그런데 그 동안에 사사키 일당의 무장 상태와 동태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정찰대를 파견해야겠습니다. 추장, 지원자를 선발해 주시오." 아저씨가 추장에게 부탁한다. "그럴 필요 없어요. 스파이크 씨와 제가 지프차를 타고 갔다 오겠어요." 하고, 내가 재빨리 나섰다.   야간 순찰   적선이 착륙한 근방의 지도와 약간의 C-레이션, 열 개의 다이너마이트와 나침반을 준비하고, 광장의 중앙에 대기하고 있는 지프에 올랐다. 스파이크 씨가 운전대에, 나는 그 옆에 앉아서 나침반으로 방향을 지시하기로 한 것이다. 차에 시동이 걸리자, 아저씨가 스파이크 씨에게 "되도록 모험은 피하게, 지금 출발하면 어두워지기 시작할 때쯤에는 적의 2, 3km까지 접근할 수 있을 거야. 거기서 부터는 도보로 정찰을 행하도록. 어둡다고 함부로 행동해서는 안돼. 사사키가 서치라이트 같은 것을 가지고 있을지 모르니까. 정찰 목적은 3가지 - 첫째 적의 병력 수, 둘째 적의 무장 상태, 셋째 적의 기동 수단, 이상. 그러면 잘 갔다오게!" 흡사 야전군 사령관처럼 엄숙하게 다짐하는 아저씨에게, 미국인 특유의 우스꽝스런 거수경례를 척 갖다 붙이고 난 스파이크 씨가 차의 클러치를 밟는다. 이 때, 우리의 야간 순찰을 전송하러 나온 추장과 함께 서 있던 아사가 갑자기 우리 차 뒤에 뛰어오른다. "나도 같이 갈래요." 질겁을 한 추장이 딸의 어깨를 잡는다. "아니- 얘가? 네가 정신이 있니? 없니?" "아니에요, 아버지. 저는 정신이 멀쩡해요. 저는 스파이크 씨와 태진이만 그런 위험한 곳에 가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어요. 저는 이분들보다 이 땅을 더 잘 알고 있지 않아요?" "그러나 사사키에게 다시 붙들리면…….. "염려 마세요, 아버지. 저는 이제 어린애가 아니에요." 그려는 아버지의 손을 뿌리치고 어서 가자고 스파이크 씨에게 재촉이다. 추장이 다시 딸의 팔을 잡는다. "아사-" "전 꼭 같이 가겠어요. 박사님 일행이 지난 번에 여기 오신 이후로 저는 그분들과 같이 있기를 바랬어요. 그분들처럼 용감하고 대담하게 되려고요. 우리는 매사에 너무 소극적이에요." "가게 내버려 두시죠. 추장." 아저씨가 아사 편을 들고나선다. "나 같으면 이런 딸을 둔 것을 큰 자랑으로 알겠습니다. 당신의 국민들이 이제 도시 밖으로 용감히 뛰어나가서 새로운 생활을 개척하려는 이 때, 아사는 그들을 이끌어갈 사람이 되려고 합니다." 늙은 추장은 머뭇거리다가 딸을 잡고 있던 손을 힘없이 놓는다. "그렇군요, 박사. 헤시코스에는 이제 나 같은 늙은이가 아닌 적극적인 생각을 가진 젊은 사람이 필요하겠군요." 스파이크 씨가 액셀러레이터를 힘차게 밟는다. 초록색의 이끼가 끝 없이 뻗어 있는 평원에 군데군데 솟아 있는 핑크 색의 바위를 피해가면서 차를 몬다. 북쪽으로 160km 정도 떨어져 있는 적선에 이르는 진로를 그르치지 않으려고 나는 시종 나침반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다. 물론 헤시코스에서는 지구에서처럼 나침반이 자기상의 북극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고, 뇌파 증폭기에서 발생하는 강력한 방사능 에너지 때문에 지하 도시를 향하고 있다.   긴 낭떠러지   두 시간쯤 달렸을 때, 동서로 한없이 길게 펼쳐져 있는 큰 낭떠러지에 도달했다. 처음 착륙했을 때부터 이미 우리는 이 벼랑을 알고 있었다. 그 때는 반대편에서 오다가 이 낭떠러지를 만나 더 이상 탐험을 계속할 수 없게 되어 있었다. 그 때, 우리는 낭떠러지를 올라가는 대각선의 좁은 길을 발견했었는데, 긴 양옆에는 녹슨 금속제의 울타리가 쳐져 있었다. 이것으로 우리는 헤시코스에 고대 문명이 존재했었  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지금 같은 길을 달려 내려가다가 그 가파른 경사와 깊은 계곡에 사지가 오그라드는 것 같다. 그러나 스파이크 씨는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계속 차를 몬다. 돌멩이에 타이어가 몇 번 미끄러진 것 외는 무사히 계곡 아래까지 내려갔다. 다음에는 가끔 말라붙은 강바닥의 푸석푸석한 땅 위를 지나가게 되었는데, 지구에서만큼 중력이 크지 않아서 여기도 사고 없이 통과했다.   적 선   남쪽에 뾰족하게 솟은 언덕으로부터 어둠이 갑자기 몰려온다. 그러나 그 어둠이 미쳐 다가오기 전에 돌로 된 벼랑을 옆에 낀 계곡을 볼 수 있었고,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차에서 내렸을 때, 저절로 기운이 번쩍 날만한 광경을 그 계곡에서 발견했다. "불빛이다!" 무의식 중에 튀어나온 나의 부르짖음에 "적선의 해치에서 나오는 불빛 같다." 하고, 스파이크 씨가 흥분을 감추고 침착하게 말한다. "놈들이 우리를 못 봤어야 하는데 …….." 하는, 나의 걱정에 아사는 "우리는 사사키들의 시야가 미치지 않는 곳에서 달려 왔으니까 우리를 알아봤을 리가 없어." 출발할 때, 아저씨가 일러 준 대로 여기서부터는 도보로 정찰을 하기로 하고, 우리는 군데군데 솟은 바위 사이로 경사진 언덕을 내려가기 시작한다. 20분쯤 조심스럽게 걸어 내려가다 보니 이젠 완전히 어두워졌다. 돌멩이에 채이고 바위에 미끄러져서 몇 번인가 넘어질 뻔했지만, 그 때마다 서로 잡아 주어서 넘어지지는 않았다. 크리스마스 트리에 달린 전구처럼 별이 반짝이고 있지만, 계곡에는 전혀 빛이 와 닿지 못한다. 적이 눈치채지 못하게 접근해서 정찰하기에는 오히려 안성맞춤이다. 계속 접근함에 따라 어둠 속에서나마 하늘을 향하고 우뚝 서 있는 형체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사사키의 우주선이다. 눈짐작으로도 우리 것보다 더 큰 것 같다. 가까이 감에 따라 약한 기계 음이 들려온다. 배터리를 충전하고 있는 원자력 엔진 소리라고 스파이크 씨가 귀뜸 해 준다. 추측했던 대로 지상에서 6m쯤의 높이에 있는 해치에서 불빛이 새 나오고 있다. 아사가 생각을 보내 온다. "그들의 생각을 이제 느낄 수가 있어요.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굳은 생각이에요. 우리가 여기 있는 줄은 아직도 모르고 있어요.", 우주선 안을 들여다보기 위해서 오른쪽으로 돌아서 적선에 바짝 가까이 다가갔다. 입체 사진 같은 광경이 나타났다. 선실 한 가운데에 놓인 탁자 주위에 15명의 대원이 식사 중이다. 검은 상의에 푸른 바지를 입고 긴 가죽 장화를 신고 있다. 선실 귀퉁이의 수신기 옆에서 무엇인가를 쓰고 있는 사사키도 보인다. 사사키 옆에는 어깨에 금색 견장을 달고 지휘봉 같은 것을 들고 있는 깡마르고 키가 큰 사람이 왔다 갔다 하고 있다. 15명의 대원을 통솔하는 장교 신분 같다. "사사키, 장교 1사람, 군인 15명, 도합 17명입니다. 그런데 무기는?" 하는, 나의 귓속말에 스파이크 씨가 "소총은 다 가지고 있는 것 같군. 선실 뒷벽을 보아. 나란히 세워 둔 개인 화기가 보이지. 무슨 총인지는 모르지만." 스파이크 씨 말에 아사가 와들와들 떤다. "큰일났어요. 저들이 도시 안으로만 들어오면 우리는 대항할 방법이 없어요. 아이구 무서워." 스파이크 씨가 아사를 진정시킨다. "나도 그렇게 생각은 하지만, 그러나 아직 놈들은 도시 밖에 있어. 놈들은 너의 국민들이 쌓고 있는 굴을 뚫지 못할 거야." 우주선에 더 가까이 다가갔다. 놈들이 차를 가져온 흔적은 안 보인다. 그러나 화물을 풀어서 우주선 아래 어디엔 가에 내려놓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둠 때문에 우주선 아랫부분은 보이지 않는다. 이 때, 갑자기 아사가 생각난 듯이 "얼마 안 있으면 화성이 떠오를 거예요. 그 때는 땅이 대낮처럼 밝아져요." 아사의 말에 새삼스럽게 지평선 쪽을 보았다. 벌써 희끄무레한 빛이 북쪽 산봉우리 근방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돌아가야 할 것 같아요. 더 있으면 밝아져서 적이 우리를 발견할지 몰라요." 하고, 내가 조바심이 나서 움직일 생각을 않고 있는 스파이크 씨를 재촉한다. "태진이! 놈들에게 차가 있는지 알아보아야 해. 그런데 저게 뭐야. 군인들이 움직이고 있잖아." 정말 군인들이 부산하게 움직인다. 바짝 긴장된다. 서치라이트가 켜지면서 우주선 아랫부분을 비춘다. 네 명의 군인이 사다리를 타고 땅으로 내려온다. 동시에 여태까지 들리던 기계 음이 훨씬 더 커지면서 기중기의 긴 팔이 우주선 안에서 나타난다. 그런데 그 기중기의 팔 끝에는 대형 장갑차 같은 것이 달려 있지 않은가? 먼저 내려온 군인들이 바쁘게 설치더니, 그들 머리 위로 내려오는 장갑차 같은 것을 땅에 풀어놓는다. 거의 30분간 지켜보고 있는 동안에 적은 장갑차 4대와 무언지 알 수 없는 화물을 땅에 내려놓는다. 무기, 탄약, 음식물인 모양이다. 화물 중에는 별로 크지는 않지만 대포 같은 것도 있다. 벌써 지평선에 둥근 화성이 반쯤 고개를 내밀고 있다. "저봐요! 화성이 떠오르고 있어요. 빨리 가요." 아사의 재촉이다. "가자!" 스파이크 씨가 일어선다. "박사님이 지시한 사항은 다 체크했다. 인원, 무기, 차. 자, 소리 안 나게 빨리!" 아사와 내가 앞에 서고 스파이크 씨가 뒤에 서서 우리는 급하게 귀로(歸路)에 오른다. 적선에서 나는 기계 음이 점점 멀어진다. 벌써 화성이 높이 떠올라서 사방으로 찬연한 빛을 보내고 있다. 3개의 긴 그림자가 길게 앞장선다. 나는 점점 불안해진다. 대낮 같은 빛 속에 우리는 완전히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적 쪽에서 우리 쪽을 보기만 하면 우리의 긴 그림자가 금방이라도 발견될 형편이다.   서치라이트   언덕을 반쯤 올라왔을 때, 기어코 일은 터졌다. 내가 큰 바위 위를 지나가는데 갑자기 바위가 흔들거려서 나는 몸의 균형을 잔지 못하고 바위와 함께 언덕 아래로 미끄러지기 시작한다. 이 때, 잽싸게 달려든 스파이크 씨의 손을 잡고 나는 겨우 돌에 치이는 것을 면했지만 큰 바위가 굴러 내려가면서 와당탕 하는 돌 사태를 막을 수는 없다. 다행히도 돌 사태가 크게 일어나지 않고 중간에서 멎었지만 그 소리는 적선에까지 충분히 들렸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약하게나마 들리던 기중기 소리가 뚝 그치더니 센 서치라이트 빛이 우리 쪽을 향해 날아온다. 숨을 죽이고 서 있는 곳에서 50m쯤 떨어진 바위 위에 날아온 둥근 불빛이 마의 함정처럼 흔들거리며 우리 쪽을 향해 슬금슬금 다가온다. "가자. 20m만 달려가서 저 바위 뒤에 숨자!" 스파이크 씨의 다급한 부르짖음에 놀란 토끼처럼 우리는 언덕을 오르기 시작한다. 둥근 서치라이트 빛이 야금야금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 바위 있는 곳에서 15m쯤 떨어진 곳에 이르렀을 때, 서치라이트가 우리 머리 위로 휙 다가온다. 곤두박질하듯이 우리는 땅에 엎드린다. 숨을 죽인다. 서치라이트 함정 속에 우리를 가둔 채 불빛은 잠시 그대로 있다. 심장이 얼어붙는 것 같다. 그런데! 불빛이 다시 오른쪽으로 움직여 간다. 그럼 적은 아직 우리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단 말인가? 나는 벌떡 일어난다. 스파이크 씨가 내 팔을 낚아채면서 외친다. "꼼짝 말고 있어!" 이유는 금방 명백해졌다. 1, 2m쯤 떨어진 곳에 잠시 멈춘 불빛이 다시 우리에게로 덮쳐온다. 우리는 다시 마귀의 손에 잡혔다. 내가 다시 엎드리기 전에 나의 어른거리는 그림자를 눈치 챘으리라. 두려움에 떨면서도 행여나 하고 잠시 그대로 엎드려 있다. 갑자기 2, 3m 떨어진 곳에서 불꽃같은 먼지를 내면서 금속성의 비명을 지르며 총알이 떨어진다. "바위 있는 곳으로 달려라." 스파이크 씨의 숨가쁜 부르짖음과 함께 우리는 쏘는 듯한 불빛을 등 뒤에 받으며 필사적으로 언덕을 기어오르기 시작한다. 앞에, 옆에, 빗발처럼 총알이 날아와 박힌다. 바로 내 머리 위에 있던 바위가 산산조각이 나서 내 입술을 때린다. 짭짤한 피가 입 속으로 흘러 들어오지만 이런데 신경 쓸 새가 없다. 총알을 맞기 전에 어떻게 하든지 한시 바삐 저 바위 뒤로 숨어야 한다. 9m……, 5m……, 총탄이 쏟아진다. 소낙비처럼.   추 격   우리 발꿈치 바로 뒤에 총알이 비명을 지르며 따라와 먼지를 풀썩일 때, 우리는 꼭대기에 이르렀다. 구르듯이 바위 뒤로 몸을 숨긴다. 불빛이 이곳까지는 못 미친다. 우리는 새삼 각자의 몸을 살펴본다. 총알을 맞은 흔적은 없다. 총알이 사람을 피해 간다더니, 빗속을 뛰어 다니면서도 비 한방울 안 맞은 격이라 할까? 총소리가 그치고 급히 시동이 걸리는 차 엔진 소리가 들린다. 살그머니 내다보니, 몇 사람이 총을 든 채 장갑차 속으로 급히 뛰어들고 있다. "언덕을 빙 돌아서 앞길을 차단할 모양이다. 빨리 빠져 나가자." 하는, 스파이크 씨의 말과 함께 우리는 또 다시 죽자고 달리기 시작한다. 언덕을 다 내려와서 평원을 달릴 때는 이제는 제법 높게 뜬 화성(火星)의 반사광 때문에 세 사람의 긴 그림자가 우스꽝스럽게 춤을 추며 우리를 끌고 간다. 지프차가 숨겨져 있는 바위 뒤를 돌아서 우리는 한 덩어리가 된 채 차에 오른다. 스파이크 씨가 황급하게 엔진을 넣어 막 움직이려 하자 오른쪽 언덕 아래서 적의 장갑차의 머리가 나타난다. 장갑차와의 거리는 800미터 정도. 다른 사고만 없다면 장갑차가 우리를 따라 잡기 전에 벼랑까지 우리가 먼저 도착할 수 있는 충분한 거리다. 스파이크 씨가 잡고 있는 핸들 앞에 붙어 있는 속도계가 60을 가리키고 있다. 현재 상태로 달리면 벼랑까지 45분 정도 걸릴 것 같다. 곳곳에 솟아 있는 바위와 작은 나무의 긴 그림자가 차의 운전을 어렵게 한다. 그림자 때문에 눈이 현혹되어 헤드라이트를 켜고서도 자칫하면 바위를 향해 돌진할 가능성이 있다. 설사 큰 바위와 정면 충돌은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주먹만한 돌멩이가 타이어에 깔리기만 해도 큰일난다. 중력이 작기 때문에 차가 공중으로 튕기기 쉽고 그러면 자연 전복될 위험이 있다. 적의 사정도 우리와 마찬가지인지 우리와의 간격을 조금도 좁히지 못하고 있다. 20분쯤 달리자 밤하늘에 까맣게 솟은 벼랑이 보이기 시작한다. 차 뒷자리에서 아사가 생각은 전한다. "벼랑 위에까지 우리를 쫓아오면 어떻게 하지?" 스파이크 씨가 안심하라는 듯이 말한다. "다이너마이트가 있잖아? 꼭대기에 먼저 올라가서 길을 폭파시켜 버리면 그만이야." 멋진 계획이다. 급한 중에서도 이 코 큰 신사의 머리가 이렇게 빨리 돌아가는 것이 놀랍다. 우리가 사사키 일당을 벼랑에서 저지시키면 놈들은 640킬로미터 이상을 돌아야만 지하 도시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현재 상태로만 달린다면 아무 일 없겠구나 하고 혼자 속으로 안도의 숨을 내쉴 때다. 바로 이 때 피- 웅 하고 공기를 찢으며 날아온 총알이 바로 귓전을 스친다. "앗! 스파이크 씨! 적이 다시 쏘기 시작해요." 하고, 다급한 비명을 지르며 아사가 자라처럼 목을 움츠리고 차 속에 납작 엎드린다. 차 뒤에는 그녀의 황금빛 머리칼만이 국화꽃잎처럼 휘날린다. "난 벌써 그럴 줄 알았어!" 스파이크 씨가 침착하게 뇌인 말이다. "그러나 과히 염려할 것 없다. 멀리 떨어진 차 속에서 정확하게 조준할 수는 없어." 총알이 또 날아온다. 그러나 우리에게서 20미터나 떨어진 곳에 먼지를 일으킬 뿐이다. 현재의 차의 속력은 65마일. 이제 땅은 그렇게 울퉁불퉁 하지는 않다. 그런데! 적의 속력이 빨라진 것처럼 보인다. 그 동안에 눈에 띄도록 거리가 좁혀지고 있다. "점점 가까워지고 있어요!" 눈만 내밀고 뒤를 쳐다보고 있던 아사가 부르짖는다. "얼마나 가까워졌니?" 스파이크 씨가 물은 말이다. "전 잘 모르겠어요. 태진이, 넌 알겠나?" 나의 추측으로는 우리와의 거리가 540미터쯤 된다고 했다. 적은 바위와 나무 사이를 요리조리 피해가면서 산새 처럼 잘도 달려온다. 이렇게 가다가는 10분 안에 우리를 따라잡을 것 같다. 적은 장갑차이기 때문에 차체가 육중해서 웬만한 속력을 내더라도 돌멩이에 튕겨서 전복될 염려가 없다. 그래서 속력을 증가시킨 모양이다. 또, 총알이 날아와서 앞 타이어에서 불과 10센티 정도 떨어진 곳에 풀썩 먼지를 일으킨다. 스파이크 씨와 나는 앞에서, 아사는 뒤에서 되도록 자세를 낮춘다. 그러나 가장 걱정되는 것은 타이어다. 타이어에 총알이라도 맞는 날이면 만사가 끝난다. "지금 거리는 어떠냐?" 앞을 노려본 채 스파이크 씨가 물은 말. "더 가까워 오고 있어요." "할 수 없다. 속력을 더 내자." 전복을 각오하고 속도계가 70을 가리키도록 속력을 올린다. 적도 눈치를 챘는지 더 요란한 엔진음을 내면서 적의 속력도 더 빨라진다. 이제는 벼랑을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뻗어 있는 울타리 길이 보인다. 공중에 높이 뜬 화성의 반사광으로 은실처럼 반짝이는 작은 길! 그러나 그 길은 아직도 멀다. 그런데 사사키 일당은 미친개처럼 악착같이 달려오고 있다. 스파이크 씨가 액셀러레이터 밟은 발에 힘을 준다. 속도계가 90을 가리킨다. 조금만 잘못되어도 차는 전복한다. 적이 400미터로 접근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총알에 맞는 것을 겁내기보다는 폭풍을 만난 배처럼 제멋대로 흔들리는 지프차에서 떨어져 나갈까봐 더 겁이 난다. "스파이크 씨! 큰일 났어요. 점점 더 가까워져요!" 하고, 뒷자리에 엎드려 있는 아사가 발을 동동 구른다. "사격도 점점 정확해지고 있습니다." 하고, 나는 조바심이 나서 스파이크 씨를 재촉한다. 총알이 지프차의 본넷에 맞아서 삐웅하는 날카로운 금속성을 낼 때, 스파이크 씨가 체념한 어조로 중얼거린다. "이제는 기적을 믿을 수밖에 없다."   새 떼   놈들의 차의 엔진소리가 점점 높게 그리고 점점 가까이 들려온다. 이제는 금시라도 우리 뒷덜미를 낚아채는 것 같다. 이 때,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무의식 중에 하늘을 쳐다보았다. 하늘을 새까맣게 덮은 새떼가 우리 머리 위를 지나가고 있다. 아사도 고개를 들어 새떼를 쳐다본다. "아버지가 보내신 거야. 아버지는 벌써부터 나의 생각을 수신하고 계셨어. 새떼를 보내 우리를 도우려는 거야." "그러나 새 따위가 무슨 도움이 돼?" “이해 못하겠니, 태진아? 새떼가 차 주위를 둘러싸면 운전사가 앞을 못 보아서 운전을 못할 것 아냐!" 그 동안에도 스파이크 씨는 묵묵히 차만 몰고 있다. 나는 일이 어떻게 되나 하고 뒤를 돌아다본다. 정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벌어지고 있다. 새떼가 장갑차를 덮었다. 벌떼 처럼 겹겹이 둘러싼 새의 날갯짓이 장갑차의 헤드라이트 빛 사이로 어른거린다. 새 날개로 된 담요를 뒤집어 쓴 꼴이 되었다. "스파이크 씨, 저걸 한 번 보세요!" 하고, 아사가 기쁨의 환성을 지른다. "적은 완전히 포위 당했어요. 아- 지금 차가 섰어요. 스파이크 씨 , 차가 섰어요." 하고, 나도 덩달아 부르짖었다. 차는 새와 구름 같은 먼지에 둘러 쌓여 정지해버린 것이다. 스파이크 씨는 돌아볼 념도 내지 않고 여전히 최고 속력으로 차를 물고 있다. 그러나 말만은 천연덕스럽다. "거봐! 기적이 필요하다고 했잖아. 이제 기적이 일어난 거야!" 이 때, 자지러질 듯한 기관총 소리가 밤하늘을 찢는다. 그와 함께 애처로운 새 울음이 가슴을 뭉클하게 찬다. 놈들이 새 떼를 향해 무차별 사격을 가한 것이다. 콩튀듯하는 총소리와 함께 공중으로 풍지박산하는 새떼의 날개소리가 바람소리처럼 들려온다. 공중으로 솟아오른 새 떼는 검은 담요처럼 뭉쳐서 대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 적은 새떼의 포위를 벗어났다. 그러나 이 때 쯤에 우리는 1600미터나 그들 보다 앞 서 있다. 스파이크 씨의 계산으로는 이제는 적보다 먼저 벼랑까지 도달할 수 있다고 한다. 새들은 그들의 임무를 훌륭하게 수행했다. 아사는 새떼에게 생각을 보내어 위험을 피해 공중 높이 솟아오르도록 한다. 드디어 벼랑까지 도달했다. 급커브를 틀어 울타리 길을 달려 오르기 시작한다. 중력이 작아서 험한 길에 타이어가 잘못 반동을 일으키면 차는 나르듯이 해서 계곡 사이에 떨어지기 쉽다. 그러나 스파이크 씨의 운전 솜씨는 가히 일품이다. 반동이 일어날 만한 바위를 용케 피해서 잘도 달려 올라간다. 벼랑 꼭대기에 무사히 도착한다. 나와 스파이크 씨는 차 뒤에서 다이너마이트를 꺼내어 급히 오던 길로 도로 달려 내려간다. 적은 이제 벼랑길로 접어드는 참이다. 우리는 녹슨 울타리 쇠 하나를 빼버리고 폭약 2개를 묻었다. 이 정도면 지름 2미터쯤의 함정을 만들기에는 충분하리라. 스파이크 씨가 퓨즈에 불을 붙이고 우리는 놀란 토끼처럼 꼭대기로 다시 뛰어 올라갔다. 뛰면서 힐끗 쳐다보니 적의 장갑차가 마지막 커브를 돌고 있는 중이다. 아사를 태운 채 약간 움푹 들어간 곳에 세워둔 지프차 아래로 곤두박질해 들어갔다. 이 때, 천지를 뒤흔드는 폭음이 들려온다. 뒤이어, 폭파 찌꺼기가 비처럼 쏟아져서 지프차의 본넷을 두드린다. 다시 조용해진다. 우리는 벼랑 꼭대기로 다시 올라갔다. 길 가운데 커다란 웅덩이가 입을 벌리고 있다. 탱크라도 통과하지 못할 장애물이 생긴 것이다. 멀리 벼랑 중간쯤에 장갑차가 정지해 있고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그들 중에는 팔짱을 끼고 올려다보고 있는 사사키도 알아볼 수 있다. "이젠 숨쉴 시간이 생겼다. 그러나 사사키는 계곡을 빙 돌아서 결국은 지하 도시로 오고 말 것이다." 스파이크 씨가 숨을 헐떡이며 한 말이다. 우리는 다시 지프차에 올랐다. 머리 위로 돌아가는 새떼의 울음소리가 공중에 가득하다.   항복이냐 ! 항전이냐 !   야간 정찰에서 돌아왔을 때는 수백 명의 헤시코스 인들이 흙 포대를 산더미처럼 준비해 두고 있었다. 책임자인 추장의 부관 페트라는 우리가 들어서자 무거운 철문을 잠그고 굴 안쪽에서부터 흙 포대를 쌓기 시작한다. 추장 집에서 늦은 저녁을 먹으면서 그간의 정찰 결과를 스파이크가 보고했다. "적은 전부 20명 정도이고, 장갑차가 3, 4 대, 개인 자동화기에다가 포 같은 것도 있단 말이지. 그리고 벼랑의 길이 폭파되었기 때문에 빙 돌아와야 한단 말이지." 하고 혼잣말처럼 뇌인 아저씨가 "추장, 벼랑은 동서로 얼마나 뻗어 있습니까?" "약 640킬로미터 됩니다." "그럼 여기까지 오는데 줄잡아도 6시간은 되겠지." 하고, 또 한참 무얼 생각하는 눈치더니 "나는 사사키가 공격을 개시하기 전에 먼저 무선 접촉을 해올 것 같아.“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흐른다. 추장은 눈을 내리 감고 그린 듯이 앉아 있다. 무기력한 침묵을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이 흐르노프 교수가, "그럼, 김 박사! 우리는 그 동안에 어떤 대비책을 강구해야겠오? 터널에 흙 포대만 쌓아 놓으면 그만이겠오?" 아저씨가 대답한다. "잘 알다시피 터널 말고도 도시로 잠입하는 길이 2개 또 있소. 사사키도 그걸 다 알고 있을 겁니다. 그도 흐르노프 교수께서 집필한 저서와 신문 보도를 읽었을 테니까. 놈들은 우선 지하 강으로 들어올 수 있어요. 이렇게 하자면 배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럴 시간은 없을 것 같소. 또 한 가지는 통풍관을 이용하는 건데, 이건 수km나 되는 줄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사사키가 이 방법을 쓸 가능성도 희박합니다. 그러나 나는 이 두 곳에 만일을 위해 보초를 세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거야 어렵지 않습니다. 그대로 지시하겠습니다." 그린 듯이 앉아있던 추장의 말이다. "예, 고맙습니다. 그러면 그 동안에 되도록 충분한 휴식을 취하도록 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사사키가 보내올 무선 연락을 기다려야하는데. 놈의 동태를 알 필요가 있으니까 교대로 잡시다. 처음에는 흐르노프 교수와 내가 맡고, 다음에는 태진이와 스파이크 군이 맡게." 나는 아줌마가 휴양하고 있는 방으로 갈려고 나서다가 갑자기 생각이 나서 아저씨에게 물었다. "아저씨, 우리 우주선은 어떡합니까? 터널 입구에 그대로 놓아둔 걸 보면 사사키가 폭파하려 들텐데요?" "그는 우주선을 폭파하기가 어려울 거야. 해치의 개폐 주파수(開閉周波數)를 모를 테니깐. 해치는 열지 못할 거고, 유압 착륙 장치는 폭파하려면 폭약이 많이 들텐데, 모르긴 해도 터널 폭파에도 폭약이 모자랄 걸." 이 때, 추장의 부관 페트라가 들어선다. "터널 입구를 잠그고 흙 포대를 다 쌓았습니다." "수고했네. 사람들을 쉬게 하게." 하는, 추장의 말에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고는 곤란해하는 표정을 짓는다. "그런데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시민들은 현재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정확히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추장이 대답한다. "알겠네, 기계를 통해 내 생각을 전하겠네. 내 생각을 수신할 때까지 시민들은 집에 머물러 있도록 하게. 그리고 또 한 가지 지하 강 입구나 통풍갱에도 보초를 세우도록 하게." 추장의 지시를 받고 페트라가 물러나자 "박사, 나는 불안하오, 정찰 결과로는 저들은 많은 장비를 갖추고 있는 것 같지 않소?" 하는, 추장의 조심스런 말에 "이해합니다. 불안하고 두려운 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아무 일 없을지도 모릅니다. 사사키가 굴을 통과하지 못할지도 모르니까요." 하고, 아저씨가 위로한다. "당신의 판단이 정확하기를 바랍니다." 하는 비꼬는 듯한 여운 있는 말을 남기고 추장은 기계실로 가버린다. 나와 스파이크 씨는 아줌마의 병실에 들렸다가 다시 돌아와서 긴 의자에 누웠다. 아줌마는 많이 회복되어 있었으나 아직도 파리한 얼굴은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이런 것이 다 사사키 놈의 소행이라 생각하니 새삼 속에서 불같은 것이 울컥 치밀어 오른다. 야간 정찰에서의 흥분 때문에 졸리는 줄은 몰랐으나 이내 깜박 잠이 깨었다. 추장의 텔레파시가 산울림처럼 우렁우렁 크게 들려왔기 때문이다. 추장이 시민들에게 생각을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친애하는 시민 여러분! 지금은 위기입니다. 수천 년 동안 우리는 평화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지금 적이 침투해 왔습니다. 지구로부터 어떤 파렴치한 적이 몰려온 것입니다. 그들은 나쁜 목적에 사용하기 위해 우리의 뇌파 증폭기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복이냐 항전이냐 하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습니다. 만약 항복하면 우리에게 육체적 고통은 없습니다. 그러나 적은 뇌파 증폭기를 이용하여 우리의 지구 동지들에게 처절한 죽음과 살육을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항전을 시도한다면 우리는 우리 일신의 위험은 각오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지구인 친구 김영준 박사의 말은 겨울이 닥쳐올 며칠 간만 터널을 봉쇄하면 적은 저절로 물러가지 않을 수 없답니다. 우리는 헤시코스의 새로운 역사의 문턱에 서 있습니다. 김 박사는 연장과 기계와 지식을 우리에게 가져 왔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게 하고 우리의 찬란했던 옛 문명을 되살리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럼 여러분의 답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항복하여 우리의 친구를 배반하겠습니까? 아니면 항전하여 우리는 우리뿐 아니라 위험에 놓인 이웃까지도 도울 수 있는 용기의 소유자라는 것을 증명해야 하겠습니까?" 그 이상의 생각은 내 머리에 들려오지 않는다. "스파이크 씨 들립니까?" "그래, 들려." 그는 일어나 앉아서 팔을 베고 옆으로 비스듬하게 눕는다. 낙천적인 이 카우보이의 후예도 표정이 침울하다. "추장은 훌륭한 사람이야. 그러나 시민들은 그를 배반할 거야." 라는, 스파이크 씨 말에 내가 발끈하여 "그걸 어떻게 압니까? 국민들의 대답이 들립니까?" "아니, 지금은 안 들지만 그렇게 생각될 뿐이야." 우리는 기다렸다. 도시가 한꺼번에 숨을 죽인 것 같다. 미동도 없는 고요가 도시를 무겁게 싸고 있다. 추장의 텔레파시가 다시 들려온다. "여러분의 답은 무엇입니까? 항복입니까? 항전입니까?" 나는 정신을 집중하려고 애를 쓴다. 갑자기 침묵을 깨고 터진 봇물처럼 헤시코스 인들의 대답이 들려온다. "우리는 항전한다. 우리는 항전한다. 우리는 항전한다…" 평화만 알고 평화 속에서만 살아오던 헤시코스 인들이 드디어 궐기한 것이다.   핵융합 총   나는 4시간 동안 잤다. 그 때 아저씨가 어깨를 흔들어서 깨었다. "자, 일어나. 이제는 네 차례다. 옆방에 수신기를 갖다 놓았다. 스파이크 군은 먼저 가 있다." "사사키에게선 무슨 연락이 있었나요?" "아니, 숨소리도 없었다." 스파이크 씨와 나는 90분이나 묵묵히 앉아 기다린다. 맡은 시간이 거의 다 되도록 수신기에는 아무 반응이 없다. 아저씨의 말로는 사사키가 무선통화로서 사람들을 겁내게 하려는 일종의 심리전을 펴려고 꼭 연락을 할거라는 것이다. 그러나 저러나 처량한 생각이 든다. 헤시코스 인들을 돕는 것은 좋지만, 그리고 뇌파 증폭기를 보초 함으로써 지구 도처에서 일어날 분쟁을 막는다는 대의 명분이 좋기는 하지만, 이러다가는 동해의 베이스 K기지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여기서 영영 불귀의 객이 되고 말 것이나 아닌지? 이런 하염없는 생각에 잠겨 있던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수신기에 반응이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가 수신기의 볼륨을 올렸다. 그러자 소름끼치는 사사키의 탁한 음이 들려 온다. "여기는 사사키, 내 말이 들려요? 오버." 내가 옆방으로 달려가서 아저씨를 불러왔다. "여기는 사사키, 내 말이 들려요? 오버." 또다시 들려온다. 수신 상태가 양호하다. 그가 가까이 있다는 증거다. 아저씨가 송화기를 끌어당긴다. "김명준이가 사사키에게 말함. 수신감도 양호." 사사키 소리가 뒤따른다. "사사키가 말함. 터널 앞에 있는 철문을 발견했음. 철문 뒤에 바리케이드를 쳐둔 것도 알았음. 그러나 당신들은 바보. 당신들은 우리를 못 들어가게 하지 못함. 우리는 어떤 장애물도 제거할 수 있는 핵융합 층을 갖고 있음. 폭력을 피하고 뇌파 증폭기를 순순히 내어줌이 좋을 것임. 오버."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하는, 나의 안타까운 물음에 아저씨가 고개를 젓는다. "모르겠어. 모르겠어." 아저씨가 다시 송신기를 누른다. "김영준이가 사사키에게 말함. 뚫을 수 있으면 뚫어보기 바람. 당신들은 앞으로 열흘 밖에 시간이 없음. 그 다음은 무서운 혹한 때문에 견디지 못함. 오버." "여기는 사사키!" 사사키의 소리가 일층 날카로워 진다. "당신은 바보, 김 박사. 바보에게는 행동으로 일깨워 주겠음. 오버." 무서운 협박과 함께 통화는 끝났다. 우리들은 망연자실, 그대로 한참이나 서 있다. "핵융합 총? 핵융합 총이 뭡니까? 아저씨." 아저씨의 손가락을 무릎 사이에서 폈다, 오므렸다 하고 있다. 초조하다는 뜻이다. "그게 바로 수소탄이야! 다만 대포에 장비해서 쏠 수 있을 정도로 위력이 좀 적을 뿐이야, 총알을 맞는 부분에는 순간적으로 100만도 가까이 온도가 올라서 모든 물질을 순식간에 증발시킬 수 있어." 이 어마어마한 말에 우리는 그저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그럼 철문과 흙 포대는 별 소용이 없겠군요?" "그것도 경우에 따라서겠지. 그가 정말 핵융합 총을 가지고 있다면 허세 부린다고는 말할 수 없어. 그러나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쉽게 부서지지 않을 가능성은 있어. 철문은 두꺼워. 철문 뒤에는 흙 포대가 또 있고 그가 뚫는다고 하더라도 그가 뚫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우리 쪽에서 흙 포대를 쌓을 수도 있고." 하고, 아저씨가 일어선다. "추장에게 이 사실을 보고해야겠다. 그후에 터널로 가서 철문 저쪽에서 사사키가 정말 작업을 하고 있는지를 알아보아야겠다." 아저씨는 서둘러 밖으로 나간다. 나는 헤시코스를 처음 방문했던 때를 기억하고 있다. 그 때는 상쾌하고, 평화로운 가운데 행복한 기분이 충만했었다. 그래서 우리도 덩달아 같은 기분에 젖을 수 있었다. 그런데 현재는 헤시코스 인들의 가슴속에는 공포와 전율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우리에게까지 전달되어 우리의 마음을 더 한층 무겁게 한다. 아저씨가 추장 일행과 함께 들어선다. 추장과 무슨 일 때문에 다툰 모양이다. 아저씨는 지구에서 종종 그랬던 것처럼 더 한층 성미가 급해 졌다. "여기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안돼! 나는 터널에 가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를 알아봐야겠어! 누구 같이 안가겠어?" 바로 이 때다. 쿵-그르르-쿵. 둔탁한 음이 방안을 흔든다. 흡사 지진을 만난 것 같다. "드디어 시작이군!" 아저씨의 자조적인 말이 공허하게 들린다.   비상 수단   쿵-구르르-쿵. 둔탁한 진동음이 숨을 죽이고 기다리고 있는 우리들의 귓전을 계속해서 두들긴다. "자- 모두들 터널로 가보자." 하는, 아저씨 말에 우리는 허둥거리는 걸음으로 아저씨를 따라 나선다. 그러나 추장은 앉은 자리에서 미동도 하지 않는다. "추장께서는 안 가보시겠습니까?" 추장이 조용한 소리로 말한다. "갑자기 생각나는 게 있어요." 추장의 표정은 잔잔하게 흐르는 물과 같다. "몇 세기 전에 헤시코스가 다른 행성인으로부터 침공을 받았다는 기록이 갑자기 생각납니다. 그 때, 당시의 추장이 어떤 엄청난 조치를 취해서 침공한 외적을 물리쳤습니다. 도서관 어디엔 가는 당시의 추장이 썼던 그 비상 수단에 대해 상세히 기록해 둔 것이 있을 겁니다. 나는 지금 그 기록을 찾아 보아야 하겠습니다. 현재의 우리 입장에 어떤 도움이 될 일이 있을지 모르니까요." 아저씨는 아까보다 더 기분이 언짢아진 것 같다.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든, 그게 현재의 우리에게 무슨 도움이 된단 말이요. 과거의 일이 아니오. 융합탄이 계속 터지고 있소. 현재의 일을 걱정해야 할 때요. 지금은." "과거란 미래를 구축하는 기반이요." 추장은 아저씨를 타이르듯이 조용하게 말한다. "역사와 과학은 순서 있게 짜여져야 비로소 발견이 있는 거요, 김 박사." "쳇, 쓸데없는 이론이요. 차라리 흙 포대 쌓는 시민들을 거들어 주는 것이 나을 거요." "거긴 페트라가 돌보고 있어요. 김 박사." 추장의 시종 침착한 태도에는 아저씨의 급한 성미로도 어쩔 수 없는 위엄이 도사리고 있다. 아저씨의 성미가 수그러진다. "미안하오, 추장. 당신의 일을 비방하려는 뜻이 아니었오. 단지 지금 신경이 팽팽해져 이제는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요." 하는 아저씨의 사과에, 추장은 "그 심정은 알겠소! 그러나 박사! 침착해서만 새로운 계획을 도모할 수 있소. 침착하시오." 하고는 다시 눈을 감고 그린 듯한 자세로 돌아간다. 우리는 아저씨를 따라 터널을 향했다. 추장 집에서 빤히 바라다 보이는 곳이긴 하지만 거리로서는 꽤 멀다. 수 km는 실히 된다. 굴에 가까워질수록 둔탁한 진동음은 커진다. 굴에 도달했을 때는 바로 서 있으면 발이 저려올 정도로 땅의 진동이 심하다. 골굴 근처의 흙에는 여기저기 박혀 있는 이리도늄이 고양이 눈처럼 반짝이고 있다. 뇌파 증폭기의 주요 원료 금속인 것이다. 흐르노프 교수가 이리도늄과 납을 반응시키면 금이 된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때, 그리고 그 때의 촉매로서는 단지 식염이 쓰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아 냈을 때, 우리가 탄성을 올렸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이리도늄은 공간을 지나는 동안에 소멸되어 버린다는 어이없는 사실을 발견했을 때 가졌던 실망감도 지금의 급박한 사정에 이르러서는 아무 의미가 없어진다. 그 후에도 여러 가지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었지만, 그러나 그 발견들이 융합탄이 터지고 있는 현실을 타개하는데 어떤 도움이 된단 말인가? 굴 입구에는 큰 혼란이 일어나고 있었다. 흙 포대를 더 쌓기 위해 동원된 사람들이 융합탄의 진동 때문에 새파랗게 질려서 우왕좌왕 하고 있다. 페트라가 시민들 사이로 돌아다니면서 그들을 타이르고 있지만, 아무도 흙 포대를 메고 굴 속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없다. 이런 혼란 상태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던 아저씨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저고리를 벗어 던지고 흙 한 포대를 들러 메고 굴 속으로 들어간다. 나와 스파이크 씨도 아저씨의 뜻을 눈치채고 각기 흙 포대를 짊어지고 아저씨의 뒤를 따랐다. 아저씨는 몸소 흙 포대를 지고 굴 속에 들어가 보임으로써 융합탄이 터질 때, 나는 진동음으로는 굴이 무너질 정도로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시민들에게 보이고자 하는 것이다. 아저씨의 의도는 맞아 들어갔다. 우리가 세 포대째의 흙 포대를 짊어지자 시민들도 각기 흙 포대를 지고 굴 속으로 따라 들어오는 것이다. 이제 시민들은 진동음 때문에 겁을 내지는 않는다. 페트라의 지시에 따라 부지런히 굴 속으로 흙 포대를 운반한다. 시민들과 함께 땀을 뻘뻘 흘리며, 흙 포대를 운반하던 아저씨가 또 무슨 생각이 났는지 흐르노프 교수와 함께 시내로 들어가 버린다. 아저씨의 다른 명령이 없었기 때문에 나와 스파이크 씨는 계속해서 시민들과 함께 흙 포대를 운반하고 있다. 세 시간쯤 지났을 때, 아저씨와 흐르노프 교수가 다시 굴에 나타났다. 교수의 손에는 이상하게 생긴 전자 기기와 같은 휴대용 컴퓨터가 들려 있다. 전자 지진계다. 아저씨와 교수는 굴 입구에서 땅을 50cm쯤 파고 지진계를 묻고 전선을 끌어 내어 컴퓨터에 연결한다. 그 동안에도 시민들의 작업은 계속된다. 아저씨와 교수는 컴퓨터를 심각하게 들여다보며 낮은 소리로 무슨 의논들을 하고 있다. 1시간쯤 컴퓨터를 관찰하고 있던 아저씨와 교수는 다시 시내로 들어간다. 페트라는 시민들을 바꾸어 가면서 부지런히 굴을 막고 있다. 우리는 다시 추장 댁의 응접실에 모였다. 추장과 아사는 아직 도서관에서 돌아오지 않고 있다. 응접실에 모인 사람들은 한결같이 침묵을 지키고 있다. 저마다 깊은 감회에 젖어 있는가 보다. 나에게 여러 가지 생각이 끊일 사이 없이 떠오른다. 사사키가 굴을 뚫을 것인가? 못 뚫을 것인가? 만약 뚫는다면? 우리도 이제는 마지막이겠지! 아저씨도, 스파이크 씨도, 추장도, 아사도, 시민들도, 그리고 나도. 그럼, 우리는 동해의 베이스 K에는 영영 다시 돌아가지 못한단 말인가? 아니 이 무슨 이기적인 생각이야! 헤시코스 인들이 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판에 베이스에 돌아가느냐 못 돌아가느냐를 걱정하게 되어 있어? 나는 아직 19살밖에 안되었지만, 그래서 앞으로 할 일이 태산 같이 많지만 옳은 일을 위해서라면 죽는 것쯤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누구나 한 번은 다 죽는 게 아닌가? 옳지 못한 일을 쫓다가 욕된 삶을 길게 이어가는 것보다 차라리 옳은 일을 일해 끝까지 싸우다가 깨끗이 죽는 것이 실로 장한 일이 아니겠는가? 하물며 아저씨와 같은 세계적인 학자도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있는데.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나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오냐! 올 테면 와라 너 사사키! 굴이 꿇린다면 내겐 쇠붙이 한 조각도 없는 상태지만 내 목숨이 붙어 있는 한 너와 싸우리라. 이 때, 아사와 추장이 응접실에 나타났다. 좀체 표정을 나타내지 않는 아사도 수심에 가득 찬 얼굴이다. 그러나 추장은 그대로다. 아무런 표정의 변화가 없다. 융합탄이 터질 때마다 머리에서 금방이라도 불이 쏟아져 내릴 것 같지만 추장의 태도는 실로 의연, 바로 그것이다. 전장에 임한 야전군 사령관의 태도도 저럴 수가 있을까 ? 안온한 품위를 잃지 않고, 조금도 동요의 기색이 없는 추장의 태도를 보니 나는 한결 기운이 솟는 것 같다. 저런 사람이라면, 이런 절대절망의 한계 상황 속에서도 저렇게 침착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무슨 비책을 가슴속에 묻어 놓고 있을지도 몰라 -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 "박사, 터널이 며칠이나 견딜 것 같소." 추장이 아저씨에게 조용히 묻는다. "조금 전에 나와 흐르노프 교수가 급하게 만든 지진계로 융합탄의 폭발 진원을 조사해 보았더니 한시간에 약 1.4m쯤 전진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터널 l00m를 완전히 막아 놓는다면, 사사키가 터널을 통과하는데 3일 내지 4일이 걸리는 셈입니다." 3일 내지 4일. 그럼 3, 4일 후면 결국 굴을 돌파한단 말인가? 행여나 하고 기대를 걸고 있던 마지막 희망이 무참하게 깨어지자 나는 순간 정신이 아찔해진다. 혈색 좋은 스파이크 씨의 얼굴에도 핏기가 싹 가신다. 겨울이 오려면 아직 7일을 더 기다려야 한다는데 굴을 뚫는데 3, 4일밖에 걸리지 않는다면, 아- 생각만 해도 눈앞이 캄캄하다. 아저씨의 대답을 들은 추장도 더는 말이 없다. 흡사 묵도를 드리는 신자처럼 눈을 지그시 내리 감고 입가에 야릇한 미소를 띤 채로. "추장, 놈들이 터널을 돌파하면 어떻게 할 작정이오?" 한결 기가 죽은 아저씨가 조심스럽게 묻는 말에 추장은 미소를 머금은 채 아저씨를 묵묵히 쳐다보고 있다가 한참 만에야 입을 연다. "박사, 박사는 시민들만 동원하면 사사키를 막을 수 있다고 하지 않았소? 그런데 이제 와서 터널이 돌파당하면 어떻게 되겠느냐고 되려 내게 묻는군요?" 잔잔하게 흘러나온 추장의 텔레파시는 아저씨를 가볍게 힐책하고 있다. 추장의 태도에, 아저씨도 다시 발끈한다. "추장, 내게 방법이 전연 없다는 말은 아니오. 단지 추장에게 어떤 묘안이 없는가를 물어 본 것 뿐이요. 나와 흐르노프 교수는 이렇게 의견을 모았어요. 즉, 터널 바로 앞에 폭약을 묻는 것입니다. 그랬다가 적이 나타날 때, 그것을 터뜨리는 겁니다. 그러면……" "잠깐 박사, 그것은 안됩니다. 첫째, 사사키의 장갑차를 부수려면 상당한 폭약을 묻어야 하는데 적이 그것을 눈치채지 못 할 리가 없고, 둘째 설사 적이 통과할 때 요행히 폭약을 터뜨린다 하더라도 특수강으로 된 장갑차 4대를 부수려면 장갑차는 그만 두고라도 굴이 무너집니다. 외부로 통하는 유일한 통로인 굴을 무너뜨리면 지하 도시에 갇힌 우리는 어떻게 하라는 말입니까? 보시다시피 굴은 특수하게 설계 시공된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과 같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겠다는 겁니까? 뇌파 증폭기를 내어 주고 항복하겠다는 겁니까?" 추장은 다시 아저씨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아저씨도 이글거리는 눈으로 추장을 마주 대하고 있다. "박사, 그건 아니오. 뇌파 증폭기를 내어 주지 않기 위해서 우리 헤시코스 인은 적들과 싸우겠다고 총의로 결정하지 않았소이까? 일단 일어선 우리는 물러서지 않습니다." "아니, 그럼 무기도 없는 시민들로 하여금 사사키의 장갑차로 돌격이라도 하게 할 셈입니까?" 아저씨의 말에 추장이 실소를 금치 못한다. "아하, 그건 당치도 않는 생각이요." "그럼 어떻게 하겠다는 겁니까?" 추장은 다시 말문을 닫는다. 한참 동안 묵묵히 앉아 있던 추장은 방 안을 왔다 갔다 한다. 방안에 있는 사람의 눈길은 자석에 끌린 듯이 추장의 뒷모습을 쫓는다. 서성거리던 추장은 굴 쪽을 한참동안 응시한다. 그리고는 우리를 향해 돌아선다. "여러분,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내게도 생각이 있습니다." 하고는 다시 추장은 등을 돌리고 굴 쪽을 쳐다본다. 웬일인지 추장의 뒷모습은 고뇌와 슬픔에 젖어 있는 사람의 그것처럼 쓸쓸해 보인다. 그럴싸해서 그렇게 보이는 건지 아사의 눈동자도 슬픔에 젖어 있다. "추장. 어떻게 하실 건지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 추장은 돌아서서 다시 아사 옆에 앉는다. "그럼 간단히 말하리다. 지금부터 2000년 전에 우리 조상들은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것과 같은 곤란에 부딪혔습니다. 그 때, 추장은 뇌파 증폭기에서 나오는 텔레파시 에너지를 써서 적을 무찔렀습니다. 그래서 나도 똑같은 방법을 쓰려고 합니다." 말을 마친 추장은 아사의 팔을 꼬옥 쥔다. 무슨 일일까? 아사도 추장도 깊은 슬픔에 잠겨 있는 것 같다. "아니, 그게 가능할까요? 무기를 가진 적을 텔레파시로 쫓아낼 수 있을까요?" 하는, 아저씨의 거듭되는 질문. "도서관에 비치된 서류에 적을 무찌르는 방법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도 오늘 그 서류를 보고서야 뇌파 증폭기의 진정한 비밀이 무엇인지를 깨달았습니다. 더 이상 묻지 마십시오. 이제 다 알게 될 겁니다. 그리고 흙 포대를 쌓는다고 적을 막을 수 없는 이상 더 이상 쓸 데 없는 노력을 들일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시민들을 다 집으로 돌아가게 했습니다." 추장은 새삼 우리들을 주욱 훑어 본 뒤에 "현재 쌓아 놓은 흙 포대는 내일 낮쯤에는 적에게 돌파됩니다. 그 때, 다시 만나기로 합시다. 그럼 다들 편히 쉬기를." 추장은 더 이상 질문할 기회를 주지 않고 아사와 함께 방을 나가 버린다.   텔레파시의 비밀   우리는 갖은 억측을 하면서 밤새 뜬눈으로 지새웠다. 밤새 추장과 아사는 응접실에 나타나지 않았다. 쿵 그르르 쿵 그르르……. 융합탄의 폭발음은 바로 굴 앞에서 들려오는 것 같고 그 때마다 창이 깨어질 듯이 흔들린다. 굴 속에는 금방이라도 사사키 일당이 나타날 것 같다. 아저씨와 흐르노프 교수는 밤새 무슨 의논을 하는 모양이었지만 신통한 방법을 찾지 못한 모양이었다. 완전히 날이 밝았다. 굴 입구에서는 폭발음이 들릴 때마다 먼지가 구름같이 인다. 아저씨의 지진계에 의하면 늦어도 한 시간 후에는 사사키가 지하 도시로 들어 올 것이라 한다. 응접실에 있는 사람은 전부 창가에 붙어 서서 폭발음이 날 때마다 연기를 뿜고 있는 굴 입구를 응시하고 있었다. 다시 초조하게 기다리길 40분. 추장의 부관 페트라가 소리 없이 방안에 들어선다. "여러분, 뇌파 증폭기실로 모이시랍니다." 웬일인지 페트라도 심한 슬픔에 젖은 눈동자를 하고 있다. 헤시코스의 멸망이 눈앞에 닥쳐왔다고 생각하기 때문인가? 우리는 뇌파 증폭기실로 갔다. 아사와 추장이 증폭기 옆에 조용히 앉아 있다. 추장을 보자, 아저씨가 다시 급하게 묻는다. "도대체 어떡하실 작정입니까?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추장은 미소를 잃지 않은 얼굴을 조용히 들고 "그러리다. 증폭기를 통해 나의 정신력을 적을 향해 집중시키는 겁니다. 이 증폭된 텔레파시 에너지는 그 위력이 실로 무시무시합니다. 사사키의 핵융합 총도 여기에는 어림도 없습니다." 이 때 추장 옆에 조용히 앉아 있던 아사가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추장의 품에 와락 쓰러지며, 울음을 터뜨린다. 품 안에 안긴 딸의 등을 어루만지고 있는 추장의 손길도 가늘게 떨리고 있다. 이 때, 우리들의 머리에는 의혹의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나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아사가 울고 있고. 페트라도 슬픔에 젖어 있고, 추장의 눈길도 어쩐지 쓸쓸해 보인다. 무슨 일인가? 단지 사사키의 다가오는 공격이 무서워서일까?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 거기에는 그 무엇인가 숨겨진 비밀이 있는 것 같다. 우리에겐 알리고 싶지 않은 비밀이. 아저씨도 이런 사태를 짐작했는지 추장에게 다가가서 무엇인가를 물으려고 할 때였다. 쿵구르 쿵. 쿵구르 쿵. 도시 전체가 날아갈 듯한 요란한 폭발음이 들리면서 굴은 시커먼 연기를 무럭무럭 토해 놓는다. 숨을 죽이고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아- 드디어 사사키의 장갑차가 연기를 헤치고 삐죽이 나타난다. 이 때, 추장은 증폭기에 다가가서 레버를 두 손으로 잡으면서 페트라에게 명령한다. "최대 입력(入力)을…….. 페트라는 증폭기에 들어가는 전원의 메인 스위치를 넣는다. 추장은 레버를 잡은 채 두 눈을 감고 정신을 모은다. 사사키의 장갑차 4대가 전부 나타났다. 핵융합 총처럼 보이는 길다란 대포를 장갑차에 장비하고 시내를 향해 천천히 들어온다. 이 때. “사사키! 그 자리에 서라!" 하는 소리가 어디선가 우뢰처럼 들려온다. 아니, 우뢰란 말은 적합하지 않다. 도시 전체가, 공간 전체가 소리로 꽉 찬다. 거대한 소리의 바다 속에 있는 것 같다. 나는 그 소리가 추장의 텔레파시인 것을 한참 만에야 깨달았다. 추장이 잡고 있는 뇌파 증폭기의 이리도늄이 새빨갛게 달아올라서 성난 뱀처럼 꿈틀거린다. 거대한 소리, 아니 나는 텔레파시로 정신이 몽롱해진다. 그 몽롱한 정신 속에 사사키 일당의 당황해 하는 생각이 전해 온다. "무슨 소리야, 어디서 나는 소리야!" "누구야?" "하느님 소리다아." 적들의 생각이 텔레파시 에너지에 흡수되어 흡사 눈에 보이는 것처럼 내 정신 속에 들어 온 것이다. "사사키! 서라! 그 자리에 멈추어라." 다시 추장의 텔레파시가 성난 파도처럼 밀려온다. "뭐야? 어디서 나는 소리야!" "유령이다아-" 적은 대 혼란에 빠진다. 이미 장갑차 2대는 제자리에 서 버린다. 그러나 사사키의 지능과 생각은 아직도 강하다. 그는 부하들에게 호령호령한다. "아니다. 아무 것도 아니다. 텔레파시일 뿐이다. 텔레파시로는 우리에게 해를 주지 못한다. 전진하라! 전진하라!" 적은 다시 대열을 가다듬어 다가오기 시작한다. 그러나 장갑차 한 대는 움직이지 않는다. 사사키는 움직이지 않는 차를 향해 다시 악을 쓴다. "2번 차, 따라 오라. 겁낼 건 없다. 적은 우리에게 해를 주지 못한다. 우리에겐 핵융합 총이 있다." 강력한 사사키의 정신력이 추장의 텔레파시를 위압한 건가? 움직이지 않던 장갑차 한 대마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사사키 들어라! 텔레파시는 너희들에게 해를 주지 못한다고 생각하느냐? 그럼 본보기를 보이겠다. 2번 차! 2번 차! 2번 차 승무원은 15초 이내에 전부 밖으로 나오너라. 텔레파시 에너지로 장갑차를 녹여버리겠다." 다시 귓전이 우렁우렁하는 산울림 같이 울려 퍼지는 추장의 텔레파시다. 2번 차의 승무원 사이에는 다시 대 혼란이 일어났다. 내리자거니 그대로 전진하자거니 저희들끼리 실랑이를 벌이는 마음들이 환하게 들린다. 다시 추장의 텔레파시가 울려 퍼진다. "10초 남았다. 10초 내에 내리지 않으면 인명을 살상하는 것이 우리의 평화 신봉 정신에 어긋나는 것이기는 하지만 할 수 없이 승무원과 함께 장갑차를 녹여 버리는 수밖에 없다. 8초 남았다. 죽지 않으려면 빨리 장갑차 밖으로 나오너라." 추장의 텔레파시가 승무원의 정신력을 완전히 위압했다. 장갑차의 뚜껑이 열리면서 4명의 승무원이 구르듯이 밖으로 뛰어 나온다. "자-그럼 사사키 보아라. 텔레파시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보여 주마." 하는, 공간을 가득 채우며 울려 퍼지는 텔레파시와 함께 앗! 자- 보라!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공간에서 칼날 같이 날카로운 불이 장갑차를 향해 쏟아지지 않는가? 세계의 종말! 아니 하느님의 심판이랄까?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서운 섬광이 장갑차에 날아들어 작렬하는 소리와 함께 장갑차를 시뻘겋게 달구고 있다. 수십만 개의 불화살이 날고 있는 광경과 같다고나 할까? 참으로 몸서리쳐지는 광경이 아닐 수 없다. 시뻘겋게 달구어진 장갑차는 다음 순간 형체도 비참한 쇳덩어리가 되어 버린다. 실로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사사키! 보았느냐? 돌아가라! 돌아가지 않으면 너희들도 저 장갑차 같이 된다." 다시 대뇌를 파고드는 추장의 텔레파시. 적은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졌다. 승무원의 무서운 공포감이 그대로 전부 들려온다. 전차 1대는 슬금슬금 방향을 돌려 달아나기 시작한다. 사사키의 발악적인 호령이 다시 들린다. "3번 차! 3번 차! 돌아서라! 돌아서서 저 안테나를 쏘아라! 핵융합 총으로 텔레파시를 복사하고 있는 저 안테나를 쏘아라!" 아- 드디어 사사키가 에너지가 복사되고 있는 증폭기실 지붕에 달려 있는 안테나를 발견한 것이다. 핵융합 총으로 안테나를 부수어 버리면 추장의 텔레파시도 맥을 추지 못할 것이 아닌가! 달아나던 차도 멈추어서 3대의 장갑차에서 순식간에 시뻘건 화염이 우리를 향해 날아온다. 그런데! 핵융합 총의 총구를 떠난 화염은 공간 속에서 어디로 빨려 들어간 듯이 사라져 버린다. 이럴 수가 있을까? 수소탄이 날아오다가 고차원의 공간으로 흡수되듯이 소리 없이 사라지다니! 사사키도 잠시 동안은 믿어지지 않는 듯이 화염이 빨려 들어간 공간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더니 다시 악을 쓴다. "다시 쏘아라 ! 계속 해서 마구 쏘아라." 쿵구르르 쿵. 쿵구르르 쿵. 쿵구르르 쿵. 계속해서 총구를 떠나는 핵융합 총. 그러나 그들은 하나같이 중도에서 사라져 버린다. 그러나 적들은 악착같이 쏘아댄다. 그럴 때마다 융합탄은 미지의 공간 함정에 빠지듯이 사라져버린다. 다시 추장의 텔레파시 통신이 흘러나온다. "사사키! 소용없는 짓이다. 융합탄으로도 뇌파 증폭기에서 복사되는 강력한 텔레파시 탄막은 뚫지 못한다. 사사키! 돌아가라. 정 말을 듣지 않을 때는 조금 전의 장갑차 꼴이 된다. 자 돌아가라." 이 때, 사사키가 탄 장갑차의 뚜껑이 열리면서 사사키가 뛰어나온다. 손에는 번쩍이는 긴 일본도가 들려 있다. "자 ! 전원 돌격- ---돌겨어ㄱ…….." 사사키는 미친 듯이 일본도를 휘두르며 단신 시내를 향해 달려온다. 아무도 사사키를 뒤따르는 자는 없다. "돌격- 돌격-" 사사키는 제 정신이 아니다. 미쳐버린 것일까? 가공할 집념의 화신, 증폭기를 소유하고 싶은 무서운 욕망이 사사키를 저렇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칼을 휘두르며 20m쯤 달려오던 사사키는 힘없이 칼을 떨어뜨리고 그 자리에서 비틀거리더니 이윽고 땅에 픽 쓰러진다. 텔레파시 에너지 탄막을 뚫느라고 드디어 기력이 다한 것이다. "사사키를 데려가라! 단지 기절했을 뿐이다." 다시 울려오는 추장의 텔레파시에 사사키의 장갑차에서 승무원 2명이 달려와서 그를 안고 장갑차에 태운다. 이윽고 장갑차 3대는 방향을 바꾸어 굴 안으로 사라졌다. 사사키의 더러운 욕심은 정의 앞에 산산이 깨어진 것이다. 사방은 쥐죽은듯이 조용해졌다. 아직도 주위에 팽배한 뇌파 증폭기에서 나오는 에너지로 우리 모두는 그저 멍한 의식에 놓여 있다. 꿈속을 헤매는 것 같은 나의 뇌리에 어디선가 가슴을 파고드는 오열이 들려온다. 나는 끌리듯이 울음소리가 나는 쪽을 쳐다본다. 울고 있는 것은 아사다. 그런데 아사의 무릎을 베고 길게 누워 있는 사람은? 아니 추장 아닌가? 그제야 정신이 든 우리들은 추장의 주위로 달려갔다. 아니! 저 추장의 모습은! 우리가 다가온 것을 안 추장이 힘없이 눈을 뜬다. "여러분, 지구 친구 여러분, 나는 드디어 그대들의 은혜를 갚았소. 나는 나의 전 체력을 뇌파 증폭기에 쏟아 넣었오. 그래서 지금 보다시피 뼈만 남은 흉측한 몰골이 되었오." 추장은 한참 숨을 헐떡이다가 통신을 이어 갔다. "2000년 전에도 이렇게 해서 추장은 자기의 목숨을 바쳤오. 그런데 박사, 지구 친구들은 빨리 이 곳을 떠나 주시오. 아까의 막대한 텔레파시 에너지 때문에 헤시코스는 태양의 궤도를 이탈했소. 이제 본래의 우리의 고향, 오메가 항성을 향해 가속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영원히 태양계를 이별하고 있습니다. 다시는 여러분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은혜, 여러분의 용기를 우리는 영원히 잊지 못할 것입니다. 박사 출발해 주시오. 늦으면 박사가 가진 연료로서는 헤시코스가 가속되고 있는 궤도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빨리! 그리고 안녕히." 아사와 페트라가 슬픔에 젖어 있었던 이유가 저절로 밝혀졌다. 추장은 사사키와의 대전에서 그 자신 생명을 잃을 것을 아사와 페트라에게만 알려 놓았던 것이다. 화약 냄새가 짙게 풍기는 터널을 빠져 나오면서 양 볼을 타고 내리는 눈물을 닦을 염도 내지 않고 나는 속으로 뇌까린다. "아사여! 헤시코스여! 영원히 안녕."     우주 도난   뜻밖의 사고   먹물 같은 어두움 속에 군데군데 박혀 있는 별, 별, 별. 사방 어느 쪽으로 보나 죽고 싶도록 단조로운 광경 뿐. 완전한 진공 - 그러니까 빛을 산란시켜 줄 공기가 있을 리 없고, 따라서 별이 있다고 하지만 인류의 눈에 익어온 찬연하게 반짝이는, 그래서 우리에게 미지의 세계에의 꿈을 키워준 별은 아니다. 안간힘을 다해서 마지막으로 한줄기의 남은 빛을 발하고 그대로 폭삭 꺼져버리려고 하는, 임종 직전에서 허덕이는 것 같은 별 - 그런 별이다. 그런 별을 겹겹이 싸고 있는 지옥 같은 칠흑의 심연. 생명의 꼬투리도 없는 세계. 숨막히는 죽음의 세계. 만일 독자들이, 푸른 하늘과 신선한 공기와 짙푸른 바다가 있는 지구상의 풍경에 익숙해온 독자들이, 여기에 선다면 그대들은 아마 십중팔구는 1분 이내에 정신 착란의 징조를 나타내고 말리라. 완전한 정지의 세계 - 수없이 널려 있는 별은 제자리에서 꼼짝도 않는다. 훈련된 사람이면 지구도 금성도 화성도 쉽게 찾아볼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들도 제자리에서 꼼짝도 않는다. 행성은 태양의 둘레를 공전하고 있다고? 누가 그런 얼빠진 소리를 했나? 보라! 지구도 화성도 금성도, 그 어느 것이나 미동(微動)이나 하고 있나? 행성들의 공전 궤도가 너무 커서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일 뿐이라고? 그럴지도 모르지! 그러나 이 완전한 절대정지의 세계에서 과연 어느 누가 그런 말을 곧이 들을 것인가? 앗! 그런데 움직이는 것이 있기는 있다. 아니 어디에! 저기 저 별들 사이를 보라고! 반짝 반짝 마치 거울같이 빛나고 있지 않어? 빛나는 게 있기는 있는데 - 그런데 그놈도 움직이는 것 같지는 않은데. 아니야, 난 아까부터 저놈을 보고 있었어. 주위에 있는 별을 기준해서 보면 저놈과 다른 별 사이의 간격이 확실히 변하고 있어. 그래? 그럼 좀더 가까이 가볼까? 아니! 이건 우주 화물선이 아닌가? 아마 그런가봐. 우선 덩치가 크고 또 저놈의 진행 방향으로 보아 금성행(金星行)이 분명한데 - 먼 포물선 궤도에 진입되어 있지 않어? 여객선 같으면 여객을 태운 채로 145일이나 걸리는 저 먼 궤도를 날고 있지는 않겠지. 응, 지구에서 금성으로 곧바로 가려면 태양의 인력을 이기기 위해서 막대한 연료를 소모해야 하는데, 연료가 소모되지 않는 포물선의 자유궤도를 택한 모양이야. 좀 더 가까이 가볼까. 아이구 이건 너무 크다. 앞뒤 길이가 500미터는 될 것 같은데. 저 뒤가 동력실이고 저 앞 대가리가 조종실인 모양이다. 그럼 어디 조종실 안을 한번 들여다볼까? 40대로 보이는 혈색 좋은 사나이가 자이로 위에 얹힌 의자에 파묻혀서 멍청하게 계기판을 쳐다보고 있다. 창 밖으로 밀려가는 별 떼들의 풍경이 황홀할 지경이지만 이 사나이에게는 그런 광경도 이젠 넌덜머리가 난다는 표정이다. 그것도 그럴 것이 이 사나이는 이미 109일이나 우주선에 갇혀 있는 것이다. 갑자기 조종실 문이 열리면서 이건 흡사 대낮에 도깨비라도 본 것 같이 눈을 흡뜬 깡마른 사내가 나타난다. 용하게 조종실 문까지는 열고는 기력이 다 된 모양이다. 그대로 문밖에서 털썩 주저앉는다. 아니 무중력 상태에서는 마음대로 주저앉지도 못한다. 고속 필름에서처럼 공중에 뜬 채 바람이 새는 풍선같이 몸이 천천히 꼬일 뿐이다. 문이 열리는 순간에 선장처럼 보이는 자이로에 앉은 사내의 멍청한 표정에 약한 변화가 있는 것으로 보아, 문소리를 들은 게 분명하다. 그러나 돌아다보지는 않는다. 여전히 허탈 상태의 멍한 표정이 된 채. 3~4분이 그대로 지난다. 처마에 달아놓은 낙지꼴이 된 가시처럼 보이는 사내는 여전히 눈이 까뒤집힌 채, 그래도 생명이 있다는 증거라도 보이려는 듯, 어깨로 숨을 쉬고 있다. 다시 3~4 분. "뭔가?" 마지못해 터져나온 선장의 말. "……" "뭔가 말이야." 뭐야? 용건이 있으면 빨리 말해 치우고 사라지지 않고 - 하는 듯 짜증이 나서 못 견디겠다는 투다. "……" 여전히 대답할 염을 내지 못한 채 기사는 숨만 헐떡인다. 선장이 빙 돌아앉는다. 얼굴 전체가 짜증이다. 살이 통통하게 찐 양 볼이 솜에 물이 배이듯 짜증으로 배어있다. 선장은 말없이 기사를 쳐다보고 있다. 표정이 천천히 변한다. 물을 짠 빨래같이 늘어져 떠있는 기사의 몰골에서 어떤 중대한 사태를 점차 깨닫고 있는 것이다. 이젠 선장도 입을 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기사를 쏘아보기나 할 뿐. "터졌어요!" 가까스로 기사의 입에서 기어 나온 말. "무엇이 터졌단 말인가?" 반사적으로 기사의 말을 뒤이은 선장의 물음. "아니 무엇이 어떻게 되었다는 거야?" "예비 산소 탱크가 터졌어요." 순간 선장의 표정은 경악으로 변한다. "이젠 우리는 다 틀렸어요." 말끝은 왁 터뜨리는 울음 속에 묻혀버린다. 선장은 어깨를 들먹이며 흐느끼는 기사를 말없이 내려다보고 있다. 얼굴이 점차 일그러진다. 눈길이 싸늘해지면서 그럴 수 없는 절망감으로 차여진다. "여봐, 그렇게 다 죽어 가는 모양이 된다고 해서 터진 놈이 저절로 때워질 수는 없어." 선장은 자리를 박차고 더러운 것이라도 치워버리듯 기사를 옆으로 밀어붙이면서 화물실로 둥둥 떠간다. 화물은 초현실적으로 싸여 있다. 공중에 떠 있는 것이다. 중력이 있는 곳에서처럼 마룻바닥에서부터 차곡차곡 쌓아 올려놓을 필요가 없다. 그저 공중에 띄워놓고, 우주선이 방향을 바꾸거나 속도를 가감할 때 벽에 날아와서 부딪히지만 않도록 잡아매어 놓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화물이 몽땅 없어졌다 하더라도 선장은 그것을 눈치 채지 못했으리라. 에어록의 안쪽 벽에 볼트로 조여져 있는 산소탱크에 그의 눈은 화석처럼 굳어 있다. 탱크는 먼저 번 보았을 때와 조금이고 달라진 게 없다. 알루미늄 페인트는 여전히 번쩍이고, 금속 통은 얼음같이 차가워서 무엇이 들어 있었던가를 알려 주고 있다. 무엇이 크게 잘못되어 있다는 표시는 없다. 다만 탱크 안의 산소 압력을 말해 주는 압력계의 바늘이 0에 머물러 있다는 것 말고는. 전쟁 중에, 아내의 다정한 미소를 등 뒤에 받으며 출근한 남편이, 저녁에 집에 돌아 왔을 때 아내도 집도 무참히 폭격에 날아간 어이없는 광경을 목격하고 있는 것처럼 선장은 압력계를 쳐다보고 있다. 계기 자체가 고장이 나서 압력을 잘못 나타내고 있는 것인가 하는 쓸 데 없는 희망으로 계기를 입김으로 닦아도 보고 유리판을 두들겨 보기도 한다. 바늘은 0을 가리킨 채 꼼짝도 않는다. 선장이 다시 조종실에 돌아왔을 때 기사는 놀랄 만큼 원기를 회복하고 있다. 벌써 미쳐버리기라도 했는지 히죽 히죽 웃기까지 하면서 농담을 하려든다. "운석(雲石)에 맞았어요. 이 정도로 큰 화물선은 일세기에 한 번쯤 맞는다는 통계가 있어요. 그러니까 앞으로 90 몇 년 간은 염려 없게 된 셈이죠." "경보(警報)도 안 울렸잖아? 실내 기압도 변화 없고, 그런데 어떻게 탱크에 구멍이 뚫렸단 말인가?" "구멍이 뚫린 게 아니에요." 기사는 흡사 남의 일을 얘기하는 것처럼 아까와는 딴판으로 덤덤하게 지껄인다. "탱크 안에 있는 산소는 냉각 코일을 통해서 햇빛이 안 쪼이는 쪽으로 돌면서 액화되잖아요? 운석이 그 냉각 코일을 부숴 버린 거예요. 그래서 탱크 안의 산소가 끊어져 버린 거예요." 선장은 생각을 정리하면서 잠자코 있다. 사태는 위험하다. 그러나 치명적인 것은 아닌 수도 있다. 벌써 항해의 4분의 3을 마쳤으니까. 그리고 산소가 비등해 버리기는 했지만 우주선 밖으로 새어 나가지만 않으면 선 내에 그대로 있을 테니까. "냉각 코일에서는 산소가 계속 흘러나오기는 하겠지. 꽤 탁해지기는 하겠지만." 한 가닥 희망을 건 선장의 말에 기사가 고개를 가로젓는다. "자세히는 설명할 수 없어요. 그러나 답은 압니다. 우리가 내뿜는 탄산가스에 분해되어 다시 냉각기에 들어갈 때 10%의 손실이 생깁니다. 그래서 그 모자라는 만큼의 산소를 보충하기 위해 예비 탱크를 가지고 다니는 겁니다." "우주복! 우주복 탱크는 어때?" 하고 갑자기 살 길이라도 발견한 듯이 선장이 흥분해서 외친다. "거기에는 산소가 30분밖에 쓸게 없어요. 비상시에 주 탱크까지 가는 동안에 쓸 정도만요." 깊이 생각해 보지도 않고 흥분해서 외쳤다가 금세 그 착오를 깨닫자, 기사에게 자기의 경솔을 보인 것 같아서 선장은 더 기분이 나빠진다. "방법이 있을 꺼야. 화물을 버리고 빨리 간다든지……" 얼른 한다는 이야기가 또 실수를 한다. 선장은 이렇게 당황하고 있는 자신에 대해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또 금방 죽어갈듯이 빌빌거리던 기사는 저렇게 조리 있게 상황을 이야기하는 것을 보니, 지금은 자기가 더 당황하고 있는 것 같아서 자기에게 또 성이 난다. 1세기에 한 번쯤 이라는 운석과의 충돌을 미리 예측해서 설계하지 않은 화물선 설계도에 대해서도 화가 무럭무럭 치밀어 오른다. 그러나 기한은 2, 3주일 남았다. 그 동안에 여러 가지 방법이 생길 수도 있다 - 라는 생각으로 선장은 자꾸만 엄습해오는 공포감을 떼어 놓으려고 애를 쓴다. 말할 것도 없이 비상 사태다. 우주 공간에서 만 일어날 수 있는, 그러니까 죽음이 바로 코앞에 닿는 그런 비상 사태가 아니라, 기일이 2, 3주일이나 남은 기묘한 비상 사태다. 생각할 시간은 충분하다. 어쩌면 너무 많은 시간이다. 선장은 자이로에 앉으면서 메모지를 꺼낸다. "사태를 정확하게 정리해 보세." 아까 자기가 턱없이 흥분해서 외쳤던 위신을 되찾으려는 듯이 일부러 침착을 꾸미며 기사를 가까이 부른다. "선 내에는 아직 공기가 대류하고 있어. 그런데 그것이 냉각기에 들어갈 때마다 10%씩 없어지고 있어. 거기 산소 소모표를 이리 주게. 나는 우리가 하루에 몇 입방 미터씩이나 소모하고 있는지 기억에 없거든. 어디 얼마나 견디겠는가 계산해 보세."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문제가 따르는 때는 단순한 덧셈과 나눗셈에도 무척이나 긴 시간이 걸리는가 보다. 선장은 자기가 방금 한 계산이 엄청나게 틀렸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여섯 번이나 셈을 반복했다. 이윽고 선장은 더 이상의 계산을 포기하고 의자에 몸을 던진다. "최대로 절약하면 20일 간은 견딜 수 있겠는데 - 그러니까 금성까지 10일 간이 모자라는 셈이군."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면서 긴 여운을 남기고 침묵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10일! 10일만 넘기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산소 없이 단 5분을 견디지 못하는 인간이 10일이라니! 10일! 그것은 죽음과 삶과의 거리만큼이나 실로 까마득한 시간 간격이다. 공상 과학 소설의 내용이 선장 머리에 얼른 떠오른다. 지금과 같은 경우를 취급한 소설은 여러 개 있다. 그 소설에서는 보통 3가지 해결 방법이 등장한다. 그 중 가장 흔한 방법은 우주선에 식물을 재배하여 식물의 탄소 동화 작용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우주 비행사가 화학 공학이나 원자력 공학에 대한 천부의 재질을 발휘해서 산소 제조 방법을 고안하여 비행사의 목숨을 건지는 것은 물론이고 엄청난 금액의 특허권을 얻어 거액의 부자가 되는 것이다. 이 방법들은 수식(數式)과 분자식까지 동원해서 진저리가 날 정도로 상세히 써 놓았기 때문에 과학적으로도 그럴싸하게 느껴지도록 되어 있다. 마지막 한 가지 방법은, 비행 속도와 비행 진로가 완전히 일치하는 제 3의 우주선이 찬연히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모든 방법들은 어디까지나 소설 속에서의 이야기이고 현실적으로 실현이 가능한 것이 아니다. 첫번째 방법이 그럴 듯하게 보이지만 화물선에는 한줌의 풀씨도 없는 것이다. 설사 있다 하더라도 불과 20일 사이에 완전히 자라서 산소를 공급해 줄 것 같지는 않다. 산소를 제조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두 사람이 아무리 뛰어난 재주가 있고 또 아무리 필사적으로 덤빈다 하더라도, 수세기 동안이나 해결하지 못한 일을 단 20일 안에 해결할 것 같지도 않다. 우연히 주위를 지나는 화물선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설사 우연히 같은 궤도를 지나가는 화물선이 있다 하더라도 - 실제는 그런 것이 없다는 것을 선장은 너무도 잘 알고 있지만 - 그쪽 형편도 이쪽과 마찬가지여서 서로 한 발자국도 가까워질 수는 없는 것이다. "만약 화물을 버리면 어떨까요. 질량이 작아질 테니까 궤도를 변경할 수 있지 않을까요?" 기사의 말에 선장은 깊은 생각에서 깨어난다. 힘없이 고개를 가로젓는다. "아까는 나도 얼른 그렇게 생각했지만 헛 일이야. 하기야 하려고만 하면 1주일 내에 금성에 도착할 수는 있어. 그러나 그 때는 화물선에 브레이크를 걸 연료가 없어져서 금성에서는 예인선이 우리를 붙잡을 수가 없게 돼." "쾌속정도 우리를 잡을 수 없지요?" "선적표에 보면 그 시간에는 금성에 쾌속정이 한 대도 없어. 설마 그런 것이 우리를 따라 잡는다 하더라도 쾌속정은 금성에 다시 돌아가지는 못해. 그렇게 하려면 자그마치 초속 50km가 필요해." "우리가 적당한 방법을 생각해 내지 못하면 금성에 연락해 봅시다. 거기서는 어떤 방법을 생각해 낼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해보세. 나도 그럴 생각이었으니까. 가서 송신 안테나를 조종해 주게." 기사가 둥둥 떠서 밖으로 나간다. 선장은 침울한 표정으로 기사의 뒷모습을 좇는다. 선장은 혼자 생각한다. 꽤 말썽을 부릴 거야. 처음에는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가는 것 같이 야단이더니만 지금은 완전히 정반대가 되어 있어. 금방 침울하다가 또 금방 히죽거리는 품이 아무래도 심상치 않아. 금방 죽을 상을 하고 있던 기사가 최초의 심한 충격이 가시자 재빨리 원기를 회복해서 이제는 선장 자신보다 오히려 더 침착하게 행동하고 있는 것에 선장은 강한 시샘을 갖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처음처럼 죽을 상이 되어 허덕이면 그 때는 그런 기사를 얼마든지 멸시해 주고 죽음을 목전에 두고도 태연한 태도를 잃지 않는 자신에 대해 얼마나 긍지를 가질 것인가 - 하는 선장 자신의 무의식적인 욕구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기사의 갑작스런 회복을 정신이 좀 이상해진 때문이라고 단정하는 것이다. 송신기에 부저가 울린다. 안테나의 조정이 끝났다는 기사의 연락이다. 신체에 붙어 있는 포물형 안테나가, 겨우 1천만 km 떨어진 곳에서 화물선과 거의 나란한 궤도를 달리고 있는 금성을 향했다. 안테나에서 나오는 3밀리 전파는 30초도 안되어 금성에 도착할 것이다. 가혹하게도 그들의 운명이 30초 내에 결정되는 것이다. 금성의 자동 모니터가 3미리 파장을 수신하고 내용을 보내라는 신호가 왔다. 선장은 되도록 침착하게 현 사태를 조심스럽게 분석하여 설명하고 조언(助言)을 구했다. 기사의 정신 상태가 좀 이상하다는 것은 말하지 않았다. 자기 방에서 이어폰으로 듣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송신이 끝나기는 했지만, 금성에서는 이 돌발 사태를 금방은 알지 못할 것이다. 송신 내용이 테이프에 우선 녹음이 되고 있을 테니까. 그러다가 기사가 송신 내용을 알기 위해 늘 하는 대로 별 생각 없이 테이프를 틀어 보게 된다. 그래서 너무나 뜻밖의 사태에 한참은 벙벙하게 된다. 이윽고 정신을 차린 기사의 입을 통해 금성과 지구에 이 극적인 뉴스가 전해지게 된다. 신문에는 대문짝 만한 활자가 등장하게 되고 TV는 다른 프로그램을 제쳐놓고 해설이다, 구조 방법이다, 해서 연일 떠들썩하게 될 것이다. 사무실, 길 가, 차 안, 어디서나 이 문제가 화제가 되리라. 선장은 서가에서 책을 하나 빼들었다. 운석에 대한 것이다. 기사는 1세기에 한 번쯤 운석에 맞는다고 했는데, 실은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운석과 우주선이 충돌할 확률은 여러 가지 복잡한 요소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복잡한 계산을 단숨에 해치워 버리는 컴퓨터로도 어쩌지 못하고 있다. 그 동안에 통계수학자들이 한 일이란 고작 몇 가지 모호한 규칙을 세워 놓았을 뿐이다. 그래서 운석이 회오리바람처럼 태양계를 휩쓸 때는 우주선의 보험을 맡고 있는 보험 회사들이 전전긍긍하는 것이다. 운석의 대부분은 지구의 대기권에 돌입할 때 타 없어져서 지구 표면까지 도달하는 것은 거의 없다. 이것이 별똥별이다. 크기는 대부분 머리핀보다 작다. 대체로 100년만에 한 번쯤 떨어지는 산 같이 큰 놈도 간혹 있긴 하지만. 또 우주 공간을 굉장한 속도로 날아다니는 먼지 같이 작은 놈도 있다. 이런 것이 전부 운석인데, 우주 비행 중에는 운석이 선체에 맞아서 구멍을 낼 만한 놈만 문제가 된다. 운석의 위험은 크기 뿐 아니라 속도도 문제가 된다. 크기가 적더라도 속도가 크면 역시 선체에 구멍을 뚫을 수가 있으니까. 지금 선장이 들고 있는 책에는 태양계 도처에서 일어난 운석과의 충돌 사고가 대략 나와 있다. 그것에 의하면 이번에 사고를 낸 운석의 크기는 지름이 1cm, 질량이 10g쯤 되는 큰 놈 같이 생각되는데, 이런 놈과 만날 확률은 10일, 즉 300만 년만에 한 번이라고 한다. 300만 년만에 한번 만날까 말까 한 놈이 하필이면 우리에게 맞다니 - 선장은 생각할수록 꼭 죽을 운수인 것 갈다. 화물선은 너무 크다. 너무 크기 때문에 괴물과 만날 기회도 많아진다. 또 너무 커서 지구 표면에서 떠오르지도 못한다. 그래서 아예 기구의 밖을 돌고 있는 우주 정거장에서 조립되었다. 화물은 지구 표면에서 연락선 로켓으로 우주 정거장까지 운반해 온다. 금성에 가서도 금성 표면에 내려가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자기 연료 만으로서는 금성의 바깥 궤도에 진입하지도 못한다. 금성 근방에 도착하면 예인선이 기다리고 있다가 화물선과 도킹해서 궤도에 들여놓게 되는 것이다. 물론 화물은 공간에서 풀어 금성으로 운반된다. 선장은 자기들의 안전 문제에만 너무 골똘한 나머지 화물에 대한 생각을 깜박 잊고 있었다. 옛날의 선장들은, 배가 난파했을 때 자기는 배와 함께 운명을 같이 하면서도 여객과 화물을 구하기 위해서는 온갖 노력을 다하지 않았던가? 여기에 비하면 지금의 선장의 태도는? 그러나 선장은 선장대로 생각하는 바가 있다. 우주 화물선은 옛날 배처럼 일단 사고가 나면 영구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승무원에게는 어떤 운명이 떨어지더라도 화물선은 정밀하게 그 궤도를 따라가게 마련이다. 승무원이 없기 때문에 중간에 약간의 궤도 수정이 이루어지지 않아 금성을 약간 빗나가더라도 5개월 후에는 다시 지구로 돌아오는 것이다. 화물을 맡긴 화주는 화물선에 사고가 생겼다 하더라도 캘린더만 뒤적이고 있으면 된다. 이런 생각 때문에 선장은 화물에는 별 신경을 쓰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화물 생각이 나자, 화물 중에는 막대한 보험금이 걸려 있는 것이 있다는 생각이 떠오른다. 무엇일까? 행여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닐까? 이렇게 생각하니까 화물실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 중에는 어쩌면 도움이 될 것도 있을 것 같다. 선장은 새로운 기운이 번쩍 나서 선적표를 훑어보기 시작한다.   선장과 기사   이 때 기사가 조종실에 들어선다. "기압을 조금 줄였습니다. 선체에 약간 누출(漏出)이 있어서요." 선장은, 일부러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종이뭉치를 기사에게 내밀었다. "적재 일람표야. 도움이 될 화물이 있을지 모르니까, 같이 훑어보지." 기사는 말없이 일람표를 받아들고 썩 내키지는 않는 태도로 품목에 눈길을 준다. 아무 소용이 없어도 좋다. 단 몇 분간이라도 죽음을 잊고 몰두할 수만 있으면 좋다. 품목 하나하나에 표시를 해 가면서 되도록 천천히 읽어 내려갔지만 30분도 안되어서 끝났다. 고개를 든 두 사람은 눈길이 마주치자 뜻하지 않게 공허한 웃음을 터뜨렸다. 10만 달러의 보험금이 걸려 있는 품목이 포도주였기 때문이다. "포도주! 당치도 않게 포도주에 10만 달러라니!" 선장은 일람표를 획 집어던져 버렸다. 마침내 금성에서 연락이 왔다. 연락문을 녹음하는데 거의 1시간이나 걸렸다. 내용은 전부 우주선의 기술적인 문제에 대한 자세한 질문서였다. 너무나 꼼꼼하고 세세한 질문서여서 전부 조사해서 질문에 답할 때까지 살아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연락문을 어떻게 생각하나?" 선장이 침울한 소리로 물었다. 그리고는 기사의 표정을 조심스럽게 살핀다. 기사는 잠잠하다. 한참 있다가 불쑥 한다는 말이, “우리를 바쁘게 하려는 속임수겠죠. 자세히 조사해서 보고하면 우리를 구할 수 있는 무슨 뾰족한 수라도 있는 것처럼 보여서 우리를 바쁘게 하려는 겁니다. 바쁘게 움직이는 동안에는 죽음을 잊어버릴 수 있을테니까요." 선장은 속으로 혀를 찼다. 자신의 생각과 똑같았던 것이다. 선장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기사는 산소 탱크가 터진 것을 알았을 때, 처음에는 정신 착란 증세와 비슷한 무기력함을 나타냈었다. 그러다가 불과 몇 분이 지나지 않아서 또 금방 원기를 회복하는 것처럼 보이더니, 이제는 추리하는 방식도 정상인 선장 자신과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가? 그래서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선장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는 문자 그대로 고지식한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은 예외 없이 자기가 종사하는 업무 이외에는 관심을 갖지 않고, 따라서 교우 관계도, 독서의 방향도 한정되어 있다. 또 예외 없이 상상력이 부족하다. 자기를 기준해서 모든 사태를 판단하려고 하며 융통성이 없다. 융통성이란 창조력과 상상력이 풍부한 자만이 향유한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고지식한 사람이 의외로 음흉하고 때로는 어이없게 비겁해질 수 있다. 선장은 그런 부류의 사람이다. 엄격하게 기술 교육을 받고, 또 순조롭고 기술계의 좋은 직장을 얻었다. 10년 간이나 이 직(織) - 선장 - 에 종사하고 있다. 상사로부터의 신임도 두텁다. 무엇하나 아쉬운 것이 없다. 적어도 선장 자신의 관점으로 보아서는 마음에 드는 직업과 월등히 많은 보수에 - 선장의 인생은 순탄, 바로 그것이었다. 쭉 곧은 길을 달려오면서 한눈을 팔 사이가 없었다. 아니 그럴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항상 뒤적이고 있는 책은 복잡한 수식이 잔뜩 들어 있는 공학 관계 서적이다. 석달이 넘는 외로운 우주 항해에서도 소설책 하나 보는 법이 없다. 도대체 소설 따위가 세상에 필요할까 하는 생각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항해에서 기사라는 자가 갖가지 책을 한 아름 안고 나타났을 때부터 선장은 못마땅했다. 기사가 자기 방에 꽃아 두고 있는 책은 제목조차 보기 싫은 것들이었다. 윈스턴 처칠의 2차 대전 회고록이니, 무슨 미신 책과 같은 텔레파시니, 독심술이니, 황순원의 카인의 후예니…… 또 기사의 경력도 선장의 비위를 거슬렀다. 전공을 세 번이나 바꾸었다는 것이다. 의학을 공부하다가 싫어서 역사를 전공하고 나중에는 그것도 싫어서 기계 공학으로. 가장 어울리기 어려운 사람이, 또 가장 협동을 요구하는 좁은 우주선에 같이 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저러나 여행이 순조로웠으면 한 사람은 고지식하고 융통성이 없든, 다른 사람은 복잡한 경력과 성격을 갖고 있든 없든, 특별한 문제가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여행이 순조롭지 못한 것이다. 못한 정도가 아니라 최악의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다. 20일 후에 죽기 위해서 산소를 야금야금 먹어 치우고 있는 최악의 비상 상태인 것이다.   포도주   융통성이 있는 자는 심한 충격을 받았을 때, 최초에는 큰 좌절감에 빠진다. 그러나 최초의 심한 좌절은 휘어진 용수철이 곧 제자리에 돌아가듯, 곧 원상으로 복귀될 수 있다. 기사는 그런 사람이다. 검은 놈 아니면 흰 놈, 흰 놈 아니면 검은 놈 식으로, 매사가 확연하게 구분되어 있는 고지식한 선장에게는 이런 기사의 속성이 이해될 리가 없다. 시간은 자꾸 흘러간다. 시간이라야 벽에 걸린 크로노미터(정확한 시계)를 보고서야 몇 분 몇 시간이 지나간 것을 알 수 있다. 지구에서는 해가 지고 뜬다. 해의 위치에 따라 그림자가 길어졌다 짧아졌다, 서늘했다 더웠다 한다. 우주 여행에는 이런 것이 전연 없다. 창문으로 들어온 햇살이 만드는 그림자는 몇날 며칠이고 변화가 없다. 정확하게는 왜 변화가 없을까마는 시계 시침의 움직임을 얼른 알아볼 수 없듯이 그림자의 미미한 움직임을 알 수 없다. 언제 보아도 같은 자리에 같은 크기의 그림자에, 언제 보아도 한 곳에 고정되어 있는 태양 - 하여튼 변화가 없는 세계인 것이다. 사실상의 사형 선고를 받은 선장과 기사는 적어도 겉으로는 항상 하는 대로 행동했다. 선장은 항해 일지를 쓰고, 항로를 점검하고 기사는 기계를 조사하고. 운석에 맞은지 사흘이 지났다. 그 동안에 금성과 지구에서는 우주선을 구할 회담이 열렸다. 그러나 아직 그 회담 결과는 이들에게 알려지지 않고 있다. 연락이 늦어지는 걸로 보아 희망이 없는 것 같이 생각되었다. 그러나 선 내의 모든 것은 정상적인 것처럼 보인다. 공기는 여전히 깨끗하여 호흡에 아무런 불편이 없다. 이런 상태에서 쉽게 생을 포기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나흘째 되는 날, 금성에서 연락이 왔다. 전문적인 술어를 빼면 죽은 사람에게 주는 조사(弔辭) 외에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런 중에도 화물의 안전에 대해서는 지겹도록 상세한 지시를 받았다. 또 지구에서는 천문학자들이 화물선과 접촉할 수 있다는 것인데 결과는 7개월 후에 화물선이 원일점에 돌아갈 때라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보름 후에는 죽어 있을텐데 6~7개월 후라니! 연락문은 너무나 잔인했다. 연락문을 읽고나자 기사는 말없이 자기 방으로 가버렸다. 선장은 초점 없는 눈길을 창 밖에 던진 체 우두커니 서 있다. 생각난 듯이 자이로 의자에 쓰러져서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쓰고 또 썼다. 아내에게, 친구에게, 회사에, 유언도 썼다. 유언장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있는 동안에 죽음이란 것이 절실한 현실감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몸부림치도록 두려워진다. 벌떡 일어나서 방 을 서성대기 시작했다. 때 아니게 배가 고프다. 걷잡을 수 없는 불안에 빠지면 사람은 때로는 턱도 없는 이상 망이 나타나는 법이다. 자신을 학대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선장은 배가 몹시 고프다. 음식물을 위 안에 때려 넣어서 위를 심하게 학대하고 싶은 일종의 이상 본능의 발로인 것이다. 그러고 보니 저녁 사 때가 되었는 데도 기사가 부르러 오질 않는다. 오늘 저녁은 기사가 식사 준비를 할 차례인 것이다. 기사를 부르러 쫓아나갔다. 노크도 없이 기사의 방문을 벌컥 열어제쳤다. 기사는 침대에 태평스럽게 누워 있다. 뚜껑이 열린 화물 상자가 방 가운데에 떠 있다. 상자를 들여다볼 필요까지는 없다. 기사는 충혈된 눈을 게슴츠레 하게 뜨고 선장을 올려다본다. 10만 달러의 보험이 붙은 포도주를 마신 것이다. "관으로 빨아 마시려니 무척 힘든데요." 기사가 태연하게 지껄이기 시작한다. "제대로 기분을 내어 마실 수 있도록 선장은 인공 력이라도 좀 만들어 주시지 않을래요?" 선장은 기사를 노려보면서 어깨로 숨을 쉬고 있다. "늘상 그렇게 상만 찌푸리지 말고 한잔 마셔 보세요. 이판에 어때요?" 기사가 포도주 병을 선장에게로 밀었다. 선장이 되밀어 던졌다. "개돼지처럼 멋대로 행동한다 하더라도 도움이 될게 뭐야!" 기사는 아무렇지 않은 듯이 진홍색의 포도주를 입 안으로 쏟아 넣는다. "장하십니다. 선장님, 임무 제일이군요." 이죽거리고는 플라스틱 통을 눌러서 포도주를 또 들이킨다. 선장은 말없이 상자를 문 밖으로 밀어 넣고 문을 깨어져라 닫아 버리고 나가 버린다. 상자를 화물실로 둥둥 띄운 채 밀고 가서 화물실을 잠궈 버리고 방 앞을 지날 때 기사의 취한 노래 소리가 들려 온다. 선장은 갑자기 몸이 부르르 떨린다. 무서운 유혹을 떨어버리기라도 하려는 듯이 세차게 고개를 젓고는 허겁지겁 조종실로 향한다.   무서운 유혹   무서운 유혹! 그렇다 무서운 유혹인 것이다. 남은 산소량을 계산할 때, 계산이 다 끝난 것은 아니었다. 선장과 기사가 말없이 계산한 새로운 산법이 있었던 것이다. 두 사람이 마시면 20일 간 견딜 수 있다. 그런데 남은 여행은 30일. 열흘이 모자란다. 그러나 한 사람만이 마실 수만 있다면 두말할 것도 없이 살아서 금성 땅을 밟을 수 있는 것이다 한 사람만이 마실 수 있는 방법은? 역시 두말 할 것도 없이 한 사람은 못 마시게 하는 것이다. 죽게 하는 것이다. 기사의 방 앞을 지나가면서 선장이 몸서리친 것은 기사를 죽여 버리고 싶은 충동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사와 문명인을 자처하는 선장은 그런 야만적인 생각에 일시나마 자기 마음이 사로잡힌 것을 부끄럽게 생각했다. 그래서 생각을 떨어버리기 위해 몸을 떨었던 것이다. 사흘만 굶으면 문명인도 야만인이 되고 만다는 그 잘난 문명인의 긍지 때문에. 선장은 곰곰이 생각했다.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죽어야 한다. 그러나 누가 죽어야 할 것인가는 공평무사하게 결정되어야 한다. 명인인 자기로서는 어떤 한계 상황에 놓이더라도 신사답게 행동해야 하기 때문에, 기사를 죽여 버리고 싶다는 등의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그럼 우선 기사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 아니 그도 이미 깨닫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명백하게 밝혀야 한다. 어떻게 밝힐까? 그렇지! 편지로 알리자. 선장은 새로운 구제 방법이나 발견한 것처럼 책상에 앉아서 쓰기 시작했다. 쓰다가 말고 하다가 가까스로 편지 한 장을 만들었다. 지금 전할까? 아니야, 지금은 그가 취해 있어. 다음날 전하지. 편지를 금고 속에 보관했다. 편지를 지금 당장 전하지 못하는 진정한 이유는 선장 자신의 무의식 속에 깊이 감추어진 보다 중요한 다른 이유 때문이란 것을 깨닫지 못하고서. 이틀 후에 편지를 줄 작정이었지만 이럭저럭 다시 연기했다. 자주 연기만 하는 것이 선장답지 않았지만 자기대로의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즉,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기사도 알고 있을 테니까, 기사가 이 문제를 먼저 끄집어 내어 자신이 겁쟁이가 아니란 것을 증명할 기회를 주겠다는 것이다. 기사도 선장과 똑같은 생각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선장은 생각한다. 기사란 무슨 소용이 있나? 그는 가족도 없다. 화물선에 있어서도 특별한 책임을 부여받은 위치도 아니다. 그가 죽는다 하더라도 그 때문에 세상이 더 나빠진다든지 더 좋아한다든지 할 일이 없다. 그러니까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것이다. 그러나 자기는 어떤가? 우선 아내와 아이가 있다. 또 화물선을 책임지고 있는 책임자다. 기사는 없어도 그뿐일지 모르지만 자기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이렇게 보면 누가 보든지 선장과 기사 중 어느 쪽이 죽어 주어야 될지가 확실해진다. 기사가 조금이라도 인격이 있는 문명인이라면 이 문제를 먼저 끄집어 내어 자기가 죽어 주겠노라고 했어야 옳은 것이다. 그러다가 선장은 또 깜짝 놀라는 것이다. 자기가 언제부터 남을 이렇게 과소평가해서 죽음의 문제에서까지 자기에게만 유리하게 생각하려 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편지를 전하지 않은 것은 이런 자기 자신의 무의식의 발로인 것이다. 아무리 다르게 생각하려 해도 기사가 죽어 주어야 마땅하다는 생각이 끊임없이 그를 괴롭혔다. 이제는 공기가 표가 날 만큼 탁해졌다. 그렇다고 아직 호흡하기에 불편할 정도는 아니다. 선장은 잠 못 이루는 밤이 많아졌다. 산소가 점점 없어져서 질식하는 꿈을 수 없이 되풀이했다. 그 때부터 전신은 멱을 감은 듯이 식은 땀 투성이가 되었다. 점점 몸이 쇠약해 가고 있는 것이다. 기사의 침착한 태도가 못 견디게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선장과 기사가 만날 수 있는 시간은 식사 때뿐이었는데 그 때마다 기사는 말없이 식사를 마치고는 말없이 자기 방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죽음을 앞에 둔 사람의 표정 같지가 않았다. 선장이 죽음의 생각으로 끊임없이 자기를 괴롭히고 있는 동안에 기사는 책에 열중해 있었던 것이다. 복잡한 생각을 잊기 위해서는 책이 제일이었다. 그러나 이 역시 누구나 흉내낼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죽음을 앞에 둔 자가 웬만큼 정신적 바탕이 탄탄하지 않고서는 책을 읽을 엄두도 못낼테니까. 선장은 육체적으로 쇠약해지면서 정신적으로도 더 이상 지탱하기가 곤란해 졌다. 기사가 아니라 자기 쪽이 정신 착란을 일으킬 것 같은 생각이 드는 때가 자주 생기기 시작했다. 기사에게 줄 편지를 더 이상 지체했다가는 큰일 나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선장은 확고한 태도로 편지를 꺼내 들고 기사의 방을 찾았다. 세상에는 하잘 것 없는 일이 도화선이 되어서 엄청난 일이 벌어지는 수가 많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그 엄청난 일이란 것이 그 하잘 것 없는 것 때문에 순간적으로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엄청난 일이 미리 준비되었다가 작은 미끼를 출구로 해서 터진다는 편이 더 옳을 것이다. 선장이 기사의 방문 앞에 나타났을 때, 선장은 기사의 방에서 새어 나오는 담배 연기를 맡았던 것이다. 선장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 귀중한 산소를 쓸 데 없이 담배를 피워 소비하다니! 이래도 그는 사람 대접을 받을만한 인간인가? 선장은 기사에게 줄 편지를 구겨버렸다. 기사에게는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주어졌다. 화주가 맡긴 주요한 화물에 서슴지 않고 손해를 입히는 태도를 보였을 때도 꾹 참고 공정한 인간의 대우를 해 왔다. 그리하여 기사 자신이 죽음의 문제를 먼저 꺼낼 기회도 충분히 주었다. 그런데 이젠 더 이상 그에게 공정한 기회를 줄 필요는 없다. 기사가 피우는 담배 냄새를 맡았을 때, 순간적으로 살인을 계획한 사람치고는 선장의 행동이 이상하게 조직적이었다. 곧장 조종실로 돌아온 선장은 작은 약상자를 열고 해골 표시가 붙어 있는 약병 하나를 끄집어 내었다. 그리고는 병에 붙어 있는 레테르를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1g이면 무통 즉사. 레테르에는 쓰여 있지 않았지만 이 독약은 또한 무미인 것을 선장은 알고 있었다. 일은 결국 갈 데까지 가고 만 셈이다. 기사는 애연가였다. 담배 한 가치도 건강을 생각하면서 조심스럽게 피우다가 말다가 하는 선장으로서는 기사의 태도가 납득될 리 없다. 기사는 피우고 싶으면 목이 따갑건, 기침이 나건 심지어 감기에 걸려 있을 때도 피우지 않고는 못 견디는 사람이었다. 물론 산소가 소중한 건 기사라고 모를 리 없다. 또 담배가 탈 때 산소가 소모된다는 것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하루 4가치 정도는 산소 소모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을 기사는 계산하고 있었다. 담배 몇 개피가 소모하는 산소가 무시할 정도의 양이라는 것을 선장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산소에 신경과 민의 상태에 있는 선장에게 담배를 피워도 되느냐고 물어 보았더라면, 담배 몇 가치가 산소의 공급에 전연 지장을 주지 않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담배 피우는 것을 단호히 금지했을 것이 틀림없었다. 그래서 기사는 차라리 선장 몰래 하루 4가치씩만 피우기로 했었다. 운 나쁘게도 그중 한 개피가 선장에게 들키고 단 것이다. 어차피 한 사람은 죽어야 할 운명이다. 단지 죽어야 할 사람이 기사가 선택된 것뿐이다. 또 누가 죽어야 될 것인가를 두 사람이 공평하게 제비 같은 것을 뽑아서 결정하지 않는 것이 틀릴 뿐이다.   독 살   플라스틱 컵 두개와 빨대를 들고 식당 안으로 들어오면서 적어도 겉으로는 태연하다고 선장은 생각했다. 옛날에 본 희극 영화 생각이 갑자기 떠올라서 선장은 쓴웃음을 지었다. 영화의 내용인 즉, 독약을 탄 그릇이 잘못되어서 죽이려던 자가 되려 독약을 마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경우에는 독약이 든 그릇을 혼동할 염려는 없다. 컵에 각자의 이름이 쓰여 있기 때문이다. 기사는 컵을 받아들고 공간을 우울하게 응시하고 있다. 선장의 심장은 금방이라도 얼어붙을 것 같다. 컵을 입에 가져다 대려다 말고 기사는 입맛을 다신다. "전에는 마시기 좋게 만드시더니 오늘은 약간 뜨겁군요." 선장의 멈추었던 심장이 다시 쿵쿵 뛰기 시작한다. 빌어먹을! 내가 왜 그걸 그렇게 뜨겁게 만들었담! 이런 사소한 실수야말로 살인범이 교수대에 가는 이유가 아닌가? 기사는 컵을 든 채 흡사 공중에 떠 있는 사람에게라도 말하듯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산소를 혼자서만 사용할 수 있다면 금성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진 않습니까?" 선장은 입술을 떨며 시선을 땅에 떨군 채 가까스로 대답한다. "그 그건 그래. 혼자서만 쓴다면 금성까지 충분하겠지." 기사는 눈을 지긋이 감고 묵념이라도 하는 듯한 자세로 다시 말한다. "그럼 우리 둘 중에 누가 에어 록 밖으로 나가느냐, 혹은 독약을 마시느냐 하는 것을 정하는 것이, 두 사람이 다 죽기를 무턱대고 기다리는 것보다 훨씬 분별 있는 일이 아니겠어요?" 순간, 선장은 어이가 없었다. 기사가 감히 그런 생각까지를 하다니. 그럼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은 어차피 죽어야만 된다는 생각을 벌써부터 하고 있었단 말인가? 단지 자기에게 이야기할 기회가 적당하지 않았었단 말인가? "옳아, 자네 말이 옳아. 그렇게 하는 것이 문명인다운 태도지." 기사는 선장 쪽을 힐끗 쳐다보면서, 컵을 끌어 들여 빨대로 천천히 빨아 당긴다. 빨대를 따라 기사의 입 속으로 빨려 올라가는 갈색 액체를 선장은 넋을 잃고 쳐다본다. 선장은 눈을 감았다. 이제 기사는 죽고 나는 살았다는 안도감보다 죄책감과 외로움이 전신을 떨게 한다. 선장은 눈을 감은 채 일어선다. 기사의 죽어 가는 모양을 보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유난히 반짝이는 화물선이 멀리 보인다. 화물선의 에어록이 열리면서 선 내의 밝은 전등불이 우주 공간으로 왈칵 쏟아져 나온다. 불빛을 등지고 두 개의 그림자가 망망한 공간을 향해서 있다. 수 분 동안 꼼짝 않던 두 개의 그림자 중 한 개의 그림자가 공간 밖으로 몸을 던진다. 등에는 산소통 같은 것을 지고 있는데, 통 꽁무니에서는 가는 연기 같은 산소 추진제가 쏟아져 나온다. 산소 탱크가 로켓 구실을 하고 있는 것이다. 공간 밖으로 나온 그림자는 처음에는 천천히 다음에는 상당히 빠른 속도로 화물선에서 멀어지고 있다. 15분 후에는 그림자가 캄캄한 공간 속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이 정도면 화물선의 만유 인력에 끌려 시체가 다시 돌아올 염려는 없게 되었다. 그림자가 사라지는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에어 록의 다른 그림자는 이윽고 발걸음을 돌려 에어록을 닫아 버린다. 공간으로 쏟아져 나오던 불빛도 사라졌다. 큰 풍선 같은 금성이 멀리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   역전 (逆轉)   다가오는 화물선을 금성 궤도로 끌어넣을 예인선 안에서 승무원 두 사람이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다. "화물선과의 거리는 3700입니다. 30분 후에는 도킹하게 될 것 같습니다." "그래?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사의하단 말이야. 누가 죽어야 할 것인가를 화투로서 결정짓고, 그리고서는 진자는 미련 없이 에어 록 밖으로 나가 버렸다니…… 보통 사람이라면 흉내낼 수 없는 일이야." "그래요.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죠. 우리 예인선에 그런 경우가 닥쳤다면 화투고 뭐고 할 것 없이 당신은 나를 밖으로 내던져 버리겠죠." "하하…… 그건 아마 반대일 걸. 자네야말로 내겐 기도를 드릴 시간도 주지 않고 나를 내쫓을 거야." "그건 그렇고. 기사는 지금 어떤 기분일까? 혼자서 외롭게 수십만km를 달려왔으니까. 죽었다가 다시 깨어나는 기분일까?" "기분 따위는 나중에 찾세. 도킹 준비나 하세." 두 사람은 부산하게 선 내를 돌아다니던 도킹 시설을 점검하고 있다. 두 개의 우주선이 초속 2km로 서로 접근하고 있다. 예인선의 꼬리 부분에는 강철제의 올가미가 곤충의 촉수처럼 빛나고 있다. 화물선의 배 부분에는 예인선의 올가미를 걸 낚시처럼 생긴 강철봉이 수없이 뻗어있다. 두 우주선은 반대편에서 서로 날아들면서 카우보이가 로프를 던져 말의 머리를 멋있게 낚아채듯 예인선의 강철 로프가 화물선의 낚시바늘을 후려 꿰어야 하는 것이다. 두 우주선이 서로 스치는 시간은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다. 그러나 컴퓨터의 제어를 받는 고리와 낚시 바늘은 서로 얽히는데 실수가 없다. 두 우주선이 서로 스치는가 싶더니 고리와 낚시 바늘로 연결된 두 우주선은 한 덩어리가 되어 버렸다. 그러나 덩치가 큰 화물선 쪽이 운동량이 작은 예인선을 끌고 원래의 진행 방향으로 맹렬하게 돌진하고 있다. 다음 순간, 예인선의 옆구리 방향에서 수 초 간의 방향 전환 분사가 있은 후 두 우주선은 금성의 인공 위성 궤도에 진입한다. 같은 궤도에 진입한 두 우주선의 고리가 벗겨지고 예인선의 도킹 터널이 화물선과 연결되었다. 에어록의 압력 조절의 시간이 지난 다음 드디어 우주선의 문이 열렸다. 창백한 얼굴을 한 기사가 눈앞에 나타났다. 예인선의 승무원과 기사는 흡사 다른 생물을 쳐다보듯 서로 멍하니 쳐다보고 있다. 한참 만에야 정신을 차린 듯 구급약과 산소통을 짊어진 예인선의 승무원이 기사를 영접하러 터널 속을 기어간다. 수척할 대로 수척한 기사가 예인선의 승무원 두 사람을 상대로 지난 일을 이야기한다. 독약을 탄 커피를 마신 기사가 죽어 가는 모양을 보지 않기 위해 조종실로 나가던 선장은 등 뒤에서 기사가 부르는 소리에 멈칫했다. "선장님, 그렇게 바쁘세요? 의논할 일이 있는데……" 선장은 전신을 떨며 천천히 돌아서서 믿어지지 않는 듯 기사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본다. "앉아요!" 기사의 엄숙한 명령이다. 선장은 몽유병자처럼 기사가 가리키는 쪽에 앉았다. 기사가 엄숙한 소리로 말한다. "선장님, 당신은 더 좋은 사람인 줄 알았어요." 기사의 말에 끌리듯 선장은 반사적으로 되뇌었다. "무슨 뜻이야?" "무슨 뜻이긴 무슨 뜻이요? 도대체 언제부터 선장님은 나를 독살시키려고 마음먹었소?" 선장은 할 말을 잃었다. 한참이나 멍하게 앉아 있다가 가까스로 대답한다. "오늘 아침이야." 어린아이를 나무라듯 기사는 선장을 질책한다. "독약을 탄 건 오늘 아침이지만 죽이려고 마음먹은 것은 벌써 오래 됐어요. 나는 선장님의 행동을 보고 눈치챘어요. 나는 당연히 금성 본부를 불러내어 선장님을 고발했어야 할겁니다. 그러나 참았어요. 어차피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은 죽어야 할 마당에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이 불미스런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았어요. 그대신 선장님이 나를 죽이지 못하도록 세밀한 주의를 기울여 왔어요." 바보처럼 기사의 꾸지람을 받고 있던 선장이 물었다. "그럼 어떻게 독약을 마시고도 죽지 않았나?" 기사가 실소를 한다. "후후…… 그건 독약이 아니고 소금이요!" 선장은 질겁을 한다. "무어야?" "선장님이 나를 죽이려고 마음먹은 이상 나는 죽지 않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해야 옳지 않겠어요? 나는 그 동안에 선실을 면밀히 조사한 결과 선장님이 나를 감쪽같이 살해할 방법이 32가지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일일이 방어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두었지요. 독약도 그 중 한 가지 방법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독약을 비우고 거기에 소금을 채워 두었지요." 선장은 묵묵히 앉아 있었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이제는 결판을 내야겠습니다. 이제야 말로 선장님이 죽느냐 내가 죽느냐를 결정해야 할 때입니다." 선장은 홀린 듯 고개만 끄덕인다. "먼저 우리들은 죽기 전에 가족과 경찰 당국에 대해 유언을 녹음해 둡시다. 그래야만 나중에 이러쿵저러쿵 말썽이 없을 것 아닙니까? 화투 한 장씩을 집어서 큰 숫자가 이기는 겁니다." 선장은 긴 한숨을 토하면서 기사의 말에 동의했다. 선장과 기사는 각자 자기 방으로 흩어져서 한참 만에야 다시 식당에 모였다. 유언을 녹음하고 나온 것이다. 기사는 포장을 벗기지 않은 새 화투 한 벌을 내놓았다. 먼저 선장이 한 장을 집었다. 기사도 한 장을 집었다. 선장은 집은 화투를 책상 위에 바로 놓았나. 기사도 그 옆에 자기 화투를 놓았다. 선장 것은 난초, 기사 것은 공산. 말없이 일어선 두 사람은 악수를 교환했다. 선장은 산소통 로켓을 지고 기사는 빈 몸으로 에어 록에 나갔다. 말없이 선장은 공간으로 몸을 던졌다. 산소 분사를 가는 연기 같이 남기면서 선장은 캄캄한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갔다. 작품 해설   SF에 관심을 가지다보니 필자도 한편쯤 써보고 싶었다. 그러나 막상 시작해 보려고 하니 이야기를 꾸며 본 경험이 없는 필자로서는 우선 스토리 텔링에 자신이 안 생겼다. 그래서 구성 면에서 우선 남의 것을 참고하기로 작정했는데 그 결과가 에 연재되었던 이 SF이다. 처음에는 필자의 원안에 기초한 창의적인 작품을 꾸며 볼 욕심으로 여러 가지 메모도 해 두었지만, 형편은 애초의 생각대로 되지 못했다. 남의 것을 참고한다는 것은 필자의 의욕이 용서치 않았지만 상당한 열심으로 정리해 두었던 그 동안의 메모가 언젠가는 빛을 보게 되길 바랄 뿐이다. 이 작품을 쓰면서 참고한 작품은 영국 작가 Angus, Mecvicar의 'Secret of the Lost Plant'과 역시 영국 작가 Arthur C. Clarke의 'Breaking Strain'이다. 필자는 유감스럽게도 'Secret of the Lost Plant'의 작가 Mecvicar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 그러나 'Breaking Strain'의 작가인 Clarke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작가이다. 그는 현재 70세의 고령인데도 그의 창작욕과 아이디어는 고갈할 줄 몰라서 연전에는 일본의 미래학회에서 초청 연사로 연설한 일도 있고 또 일본의 모 영화사의 요청으로 '서기 2001년'을 집필한 일도 있다. 이 작가의 배경을 보면 그의 작품이 평판을 받는 이유의 약간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즉, 그는 영국 Kings College에서 수학과 공학을 전공해서 각기 학사 학위를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마이크로웨이브 통신에 대한 전문가이며 특히 통신 위성의 아이디어를 처음 창안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것으로 그는 벤자민 프랭클린 재단에서 금메달을 수상하였는데, 아인슈타인 등이 이 상을 수상한 것으로 보아 무게 있는 상인 것 같다. 그의 SF 중 'Possibillity'라는 단편은 미국의 MIT(매사추세츠 공대)에서 필독서로 추천되어 있고, 'Childhood's end'라는 장편 SF는 문학 작품으로까지 평가받고 있는 것이다. '텔레파시의 비밀'에 소개되는 해상도시 베이스 K의 건설을 창안한 리처드 B. 플러씨는 실명이다. 이 분은 라디오 정류 회로의 전해 콘덴서, 2극 진공관 대신에 사용하는 셀렌 정류기, 이 밖에 수은전지 등의 발명자인데 일본 도쿄의 해상 도시화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출해서 화제가 되었던 사람이다. 또한 작품 속에 소개되는 배터리 카는 세계 각국이 경쟁적으로 개발을 서두르고 있는 중이다. 공해 없는 자동차로는 적격이지만 전지의 용량이 작기 때문에 아직 숙제로 남아있다. 결국 전지차의 개발은 용량이 큰 전지의 개발로 낙착이 되는 셈이다. 자동차에 장비할 동력용 소형 모터가 거의 완성되어가고 있다는 외지의 보도이고 보면 배터리 카의 실현도 시간 문제인 것이다. 우주선이 지구의 대기권을 탈출하는 방법으로 시도해 본 자석식 우주선 출발 방식은 (자석의 같은 극은 서로 반발한다. 자극이 셀수록 반발력이 클 것은 물론이다. 도로에 자석의 한 극을 포장하고 차체 밑에 다른 극을 붙이면 차는 땅에 닿지 않고 떠다닌다)는 꿈과 같은 이야기인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강력한 자석을 얻는 방법이다. 강력한 영구 자석을 만들려면 무한히 센 전류를 흘려주어야 하는데, 이 때는 도선의 저항 때문에 도선이 견디지 못한다. 이 때문에 얻을 수 있는 자석의 세기는 제한을 받는다. 물론 자석의 세기도 극한치가 있어서 무한대의 세기를 갖는 자석을 만들 수는 없다. 다만 전류의 제한 때문에 이론적인 극한치의 1/100 정도의 세기를 가진 자석밖에 현재로선 얻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이 전류 문제가 해결되고 있다고 한다. 초전도라는 현상 덕택이다. 어떤 종류의 물질은 절대 영도(섭씨 -273도) 근방이 되면 전기 저항이 없어진다. 이렇게 되면 이론상 무한히 센 전류가 흘러도 열이 나지 않고 따라서 극한치에 가까운 자석을 얻을 수 있다. 물론 자성체의 재료가 문제가 된다. 이렇게 얻은 강력한 자석을 이용하여 우주선이 튀어 오르도록 하고 이 초기의 에너지에 의해 우주선의 지구 탈출에 필요한 많은 화학 연료가 절약되게 했다. 이것은 필자의 공상적인 아이디어이기 때문에 그 실현성 여부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다. 텔레파시(Telepathic Wave)란 말도 필자가 마음대로 각색한 것이다. 미국에서 노틸러스 호(이것은 쥴 베르느의 소설 '바다밑 2만리'에 나오는 세계 최초의 잠수함 이름이라는 것을 웬만한 독자들은 알고 있으리라)란 원자력 잠수함을 건조하여 그 시험 항해로서 북극의 빙하 밑을 통과한 일이 있다. 이 때, 잠수함 안의 한 방과 워싱턴 사이에는 정신감응력에 대한 실험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즉 잠수함에 타고 있는 한 실험자가 자기 앞에 몇 장의 카드를 놓고 멀리 워싱턴에 있는 다른 실험자에게 자기의 생각을 송신한다. 송신한다고 하지만 자기 앞에 벌려놓은 카드 중의 어떤 카드를 워싱턴의 실험자가 집도록 마음속으로 미는 것이다. 같은 시간에 워싱턴에 있는 실험자는 잠수함의 실험자의 것과 같은 종류의 카드를 앞에 놓고 잠수함의 실험자가 보내는 메시지를 받으려고 애를 써서(물론 마음속으로) 그럴싸한 카드를 집어내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생각을 송수신해서 나중에 그 결과를 대조하여 보니 놀랍게도 약 80%(이 숫자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다)가 적중했다고 한다. 이것이 필자의 아이디어를 자극하여 인간의 생각, 즉 대뇌의 신호로 변조된 일종의 파동인 정신감응력의 파를 만들어 내게 했다. 인체에 60 사이클의 교류가 흐른다는 내용도 사실에 입각한 것이다. 이번에 아이디어회관의 호의로, 그리고 SF를 사랑하는 분들의 주선으로 나의 시험작이 뜻밖에 단행본으로 출판되는 영광을 입는다. 이런 종류의 책이 청소년들에게 많이 읽혀져서 그들의 분방한 상상력을 자극하고 또 모처럼 용감하게 시도하는 건설적인 이색 출판사업에 격려의 기회가 되기를 빈다. 텔레파시의 비밀 김학수 작   아이디어회관 과학문고 224p. 19cm   인 쇄      1978년 4월 25일 발 행      1978년 5월 5일 작 자      김학수 옵셋 인쇄   삼정인쇄소 활판 인쇄   삼정 인쇄소 제 본      시문제책사 발행인     박훈 발행처     아이디어회관         서울특별시 중구 을지로 5가 19-29       등록 제 2-213호       전화 (25)1975, (25)1970   값 450원  
에스에프 세계 명작 한국편 한국 SF 작가 협회편   북극성의 증언   서광운 지음     서광운 동경대학 수학과 수료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강사 한국일보 초대 과학부장, 외신부장, 대우 서울신문 문화부장 현 한국일보 과학부장 한국SF작가 협회회장 번역한 책: 버로우즈 작 「화성의 미녀」 지은 책: 항공 기상의 과학, 세계를 움직인다 등   편집 위원 아동 문학가 이 원수 ․박 홍근/문학 박사 최 일학 철학 박사 양 옥용/이학 박사 김 희규 전 교육감 김 성묵   태풍 경보···················· 4 과학 논쟁··················· 11 괴물의 출현·················· 22 괴물의 정체·················· 35 우주선의 출현················· 44 납 치····················· 53 화성의 지하 기지················ 61 프록시마의 비행 대장실············· 68 작업 예정표·················· 75 에덴 동산··················· 85 박 진나의 노랫소리··············· 90 노이로제의 치료················ 98 운하 지대의 휴양소·············· 102 사무한과의 협상················ 111 은하계 탐험·················· 121 오메가 9호 성에 착륙············· 129 학술 탐험··················· 132 뜻밖의 소식·················· 137 반란 진압 작전················ 143 드디어 지구로················· 156   SF 단편: 달로켓 실종 사건··········· 170   작품 해설··················· 185     태풍 경보   거센 바람이 창 밖을 휘몰아치고 있었다. 기상대의 태풍경보가 들어맞은 듯 뚝 위의 수양버들들은 어쩔 줄을 모르고 어둠 속에서 엎치락 뒤치락인다. "김군, 태풍이 대단한데." "996밀리바의 태풍치라는 예보였습니다." 권 박사는 이 말을 들은 것인지 안 들은 것인지 전자 계산기의 조작 석에서 일어서서 창문 가까이 걸어갔다. 그리고선 창 밖의 나무들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그는 나즈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김군, 나 임업 실험지까지 다녀오겠네." "박사님, 이 태풍 속을 무리하시면……" "능금나무가 아무래도 걱정거리야." 권 박사는 연구소 로크를 열고 비옷으로 갈아입고 문 밖을 나섰다. 조수 김 철수는 박사가 어둠 속으로 사라지자, 시선을 돌려 다시 책상 위의 그래프 작업을 계속했다. 임업 실험지는 분지에 자리 잡은 50만 평의 넓이로 무수한 나무들의 생명을 태풍의 희롱에 맡긴 채였다. 연구소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사과나무 밭 언덕 위에 선 권 박사의 눈에는 50만 평의 대지와 20만 주의 나무들이 대낮처럼 똑똑히 보였다. 그 한 그루 한 그루엔 20년이라는 긴 세월을 두고 쏟았던 정성이 이제 마지막 그 결실을 보려는 즈음 996밀리바의 태풍 15호는 어려운 고비를 몇 차례고 넘어온 권 박사의 마음 속에 또 한번 형언할 수 없는 근심의 그림자를 얼룩 지우는 것이었다. 태풍과 태풍이 연결하는 인연이란 이렇게 시공을 초월할 수도 있는 것일까. 권 박사는 찬바람에 도리어 생명력을 느끼면서 홀로 회상에 잠겼다. 20년 전의 가을에도 심한 태풍이 분 적이 있었다. 물리학을 전공하고 있던 그는 기독교 신도인 애인과 어쩐지 서먹서먹해진 끝에 서로 이별하기로 선언하고 집으로 되돌아오는 길에 갑작스럽게 태풍을 만났었다. 마음의 공허 때문이었을까. 강풍에 못 이겨 오들오들 떠는 나뭇가지를 바라보고 문득 느낀 일이 있었다. 저렇게 모진 바람에 휩쓸려 지면서도 왜 나무의 가지들은 어지간히 그 잎사귀까지 나무 줄기로부터 떨어져 나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바람의 강약에 따라 몹시 시달리면서도 되돌아오는 나뭇가지의 유연성을 다만 생물학적인 세포 섬유의 탓으로 돌려야 옳을 것인가. 그는 더 강한 생명력이 나무줄기와 나뭇가지를 굳게 연결하고 있는 것만 같은 상상에 사로잡혔다. 사과나무 가지를 배나무에 접목해서 새로운 품종의 과일을 얻는 궁극의 비밀은 무엇일까? 거기에는 씨앗의 문제를 넘은 더 강력한 생명력이 분명히 작용하고 있을 것 같다. 그는 이런 생각 끝에 보통 때의 나무줄기와 가지 사이의 모양이 마치 자석의 자력선의 모양과 비슷하다는 유사성을 발견해 냈다. 나무줄기가 자석이고, 나무의 뿌리나 가지와 잎은 뿔뿔이 발산하는 자력선과 방향과 흡사하다는 것이다. 나중에 남들은 이런 착상을 영감이라고 했지만 당시 비바람에 흠뻑 젖으면서 되돌아가는 그의 가슴은 뜻밖의 발상에 오히려 침울할 따름이었다. 그로부터 20년의 세월이 어느덧 흘러 권일송 박사의 나이도 52세를 새겨 놓았다. "자력이란 과연 무엇일까?" 권 박사는 오랜 수수께끼를 또 한 번 자문해 보았다. 언덕 위엔 동남풍이 여전히 휘몰아치고 있는데, 어둠 속을 때아닌 그림자 하나가 접근해 온다. 알고 보니 바로 그의 부인 문 여사였다. 권 박사는 밤늦게 자기를 찾아 나온 아내를 도리어 나무라면서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 그는 집으로 돌아왔다는 통보를 연구소에 연락하는 말을 잊지 않았다. 다음다음 날이었던가, 연구소의 제 1 차 종합 브리핑이 권 소장실에서 열렸다. 18명의 각 부 반장이 옵서버로 참석한 가운데, 자력선 부장이 맨 먼저 보고했다. "구체적인 데이터는 상부에서 정리 중이므로 연말의 제 3 차 브리핑 때까지는 완결된 보고서를 제출하겠습니다. 오늘 브리핑의 요점을 말씀드린다면 식물의 자력선이 하늘과 땅의 상하 방향에서 수평축에 대하여 160도의 자유 방위를 갖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그런데 지구의 광물성 자장이 남극의 직선 방위 외에는 작용하지 못하는 까닭에 식물 자력선 발전을 여간 저해해 오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당 부는 지구 자장의 방향을 없애고 식물 자력선만에 의한 식물의 생장 과정을 실험해 본즉 식물의 재래식 자력선의 강도는 나뭇가지의 생장 비율인 황금률의 자승의 대수에 정비례한다는 법칙을 발견했습니다." 이 말을 듣자 옵서버들은 서로 소곤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당부는 이 법칙에 따라 식물의 재래식 자력선을 약 12배 강화할 수 있는 실험을 계속 중에 있습니다." 자력선 부장의 설명은 차츰 학술적인 문제를 다루더니 한 시간 남짓 표정 하나 움직이지 않은 채, 달의 중력이 식물의 뿌리에 대해 밤중에 미치는 영향까지 브리핑했다. 차례에 따라 원예 부장이 일어섰다. "원예부로선 토마토 재배를 위해 자석을 뿌리에 함께 심어 줌으로써 재래종보다 5배의 다수확을 올렸고 수박은 과일이 익기 시작한 일정한 기간 자력선을 보강함으로써 일 년 내내 맛이 변하지 않는 특수 품종을 개량해 냈습니다. 당부가 결론을 얻으려는 것은 일년생 식물을 그 특징을 변경함이 없이 다년생 식물로 성전환을 시키려는데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과나 귤의 경우도 재래식 방법은 종이로 과일을 싸서 보호하는 방식인데, 이를 지양하여 100분의 1밀리의 플라스틱 막을 과일 표면에 액체로서 살포하면 자력선과의 균형 하에서 반드시 구형이 아닌 4면체 또는 3면체 등의 이른바 임의의 다면체 재배에 착수했습니다." 이 날 아침 회의는 두 부장의 보고로서 끝나고, 하오에는 임업 부장이 브리핑에 나서 참나무 등의 가지에 전기 코일을 감아서 전자기 유도에 인한 수목의 생장 시험 결과 약 5배의 생장 성과를 보았으며, 지금 실험 중인 데이터가 완결되면 뜻밖의 새로운 성과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보고했다. 해양 생물학 부장은 미역과 전복 등에 자석의 힘을 적용한 결과, 바다 속의 유기물의 소화도가 훨씬 높아져서 미역은 종래의 5배의 영양가를 갖게 됐고, 진주의 크기는 조건에 따라 자두 만한 것이 생산되었다고 실물을 제시하면서 보고했다. 예정한 시간이 넘은 까닭에 이론부의 보고는 후일로 미루고 이 날의 브리핑은 끝났다. 권 소장은 처음부터 끝까지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소장실의 벽에 이런 액자가 걸려 있었다.     권 박사의 관심이 바다로 향한 것은 4년 전부터였다. 땅 위에서의 자력선 연구는 어지간할 때까지 해 보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자력선의 근원에 대한 수수께끼가 풀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3년 전에 남쪽 바다의 고도인 우도에 해양 생물학 분실을 만들어 놓고 바다 속의 식물 연구를 계속해 온 것이다. 내년 4월로 예정된 종합 기술학 외에 식물 자력선의 입체적 활용과 그 근원에 관한 보고를 내놓으려면 연말까지 모든 결론을 지워 놓아야만 한다. 10월 6일 권 박사는 단신 비행기편으로 우도로 떠났다. 예정은 20일간이었다. 비록, 소장이 출장 중일 망정 브리핑을 계속하는 것은 자력선 연구소의 관례이다. 10월 8일, 전날의 브리핑이 속개되어 이론 부장이 보고를 했다. 키가 후리후리한 그는 이 날 따라 보우 타이를 매고 설명하기 시작했다. "온갖 나무들이 저마다의 자력을 갖고 있는 사실을 좀 더 살펴 볼 때, 개개의 나무가 생장하는 과정에 따라 자력도 커지느냐, 또는 본래 일정한 자력이 식물의 성장 운동에 따라 발전할 따름이냐 하는 문제에 부딪힙니다. 이론부로서는 후자의 경우를 중시할 때, 그렇게 되면 개개의 자력의 상한을 규정해야 되며, 거기서 인공적으로 보강할 수 있는 최대치를 구해야 될 것입니다." "원예적 실험에 의한 이런 관계의 본질은 중수소가 뚜렷이 작용하고 있는 듯한 예증을 주고 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가설에 지나지 않습니다. 만일 중수소에 의해 자력의 역량이 설명된다면 지구상의 식물 자력의 총화는 간단히 밝혀질 것이나, 북극과 남극에 있는 자장과의 관련을 어떻게 해결해야 될 것인지 애매하기 때문입니다." "최근 이집트로부터 도착한 문헌에 의하면, 모타칸 박사는 지구의 자장이 옛부터 매몰된 큰 나무들의 자력이 지구 자전의 영향으로 각각 적도를 한계로 해서 남북으로 집결한다는 믿을만한 근거가 있다는 새 학설을 발표했습니다. 이 학설을 믿는다면 중수소와 지구 자장의 구성 분자 사이에 어떠한 치환이 있었을 법도 한 연구의 실마리가 나타날 것입니다만……" 이론 부장의 표정은 더욱 심각해졌다, 이론부 소속으로 있는 조수 김 철수가 일어서서 자기의 상정이라고 하며 대략 이렇게 말했다. "우리 자력선 센터는 모든 간접적인 것을 배격하고 직접적인 원인 규명에 나서고 있습니다. 지구 자장의 자력과 식물 자력 사이의 관계는 다만 음양의 그것에 지나지 않으리라고 봅니다. 마치 전극을 플러스 방향으로 작용시키면 전열기가 되고 마이너스 방향으로 작용시키면 냉장기가 될 수 있는 원리처럼 지구 자장의 자력은 생명력이 가사 상태에 놓인 식물 자력의 반면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유기물이 무기물로 치환된 것을 화석이라고 하지만, 화석에도 생명체가 깃들여 있듯이 지구 자력과 식물 자력을 단순한 공존 상태로부터 통합 상태로 끌어올린다면, 그 에너지야말로 무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겠습니다. 왜냐하면, 식물 자력은 재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슨 서정시라도 읊는 듯한 철수의 보충 설명도 45분으로 끝났다. "'이로써 제 1 차 종합 브리핑을 일단락 짓겠습니다." 부소장을 겸하고 있는 자력선 부장의 인사가 끝나자 모두들 서류철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기침 소리 마저 없는 회의란 여간 심각하지 않은 법이다. 허나 시계의 두 바늘은 말없이 12시 2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과학 논쟁   전화가 걸려 왔다. "자력선 연구소입니다." 철수는 수화기를 손에 쥐자 먼저 대답했다. 전력 회사에 있는 떠버리 친구로부터 걸려온 것이었다. "자네 오늘 토요일인데 약속이 있나? 없겠지. 점심을 같이 하기로 했으니 1시 반까지 제 3 영양 센터에서." "글쎄, 일이 남아 있는데……" "쌍둥이 호박 만드는 일 말이야. 하하, 결혼한 친구들에게 맡겨 놓으면 되지 않아."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나? 그렇다면 가급적……" "가급적이 뭐야. 꼭 기다리고 있겠네." 미스터 강은 학생 시절부터 일방 통행처럼 말해버리는 버릇이 있다. 철수는 전투 중에 잠깐 쉬는 기분이었으나 떠버리와 만나면 기분 전환도 되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흥 가까이 자리잡고 있는 3층 건물의 제 3 영양 센터는 여전히 만원이었다. "전력 회사의 미스터 강이 와 있을 텐데, 어디 있습니까?" "네, 2층 26호실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고맙소이다." 안내계의 젊은 여자가 무척 친절하게 일러 준다. 층계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벌써 26호실로 연락이 된 듯 미스터 강이 문을 열고 나와서 있었다. "넥타이나 좀 매고 다니지 않고……" 강윤식은 대뜸 따지기 시작한다.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소녀들이 음식을 날라왔다. 방은 시간제로 예약되어 있기 때문에 만사가 기계적이었으며, 제 3 영양 센터의 자랑은 닭볶음이었다. 술은 없었다. "강, 일부러 할 말이 있어 오늘 불렀는가?" "이 사람아, 할 말은 무슨 말이 있겠나. 그저 친목을 도모하자는 것뿐이지." 그는 자기가 맡고 있는 전력 회사의 발전국 일에 관한 고충을 털어놓았다. 열다섯 군데나 되는 조수 발전소의 건설이 날씨의 탓으로 예정보다 좀 늦어지고 있다는 둥, 유성에 처음으로 만든 지열 발전소의 성적이 역시 예상대로 잘 되나간다는 둥, 그대로 두면 말문이 언제 닫힐는지 한이 없을 것 같았다. "잘 알겠네. 그건 그렇다고 하고 결혼 날짜를 언제로 잡았는가?" 신나게 말하던 윤식의 말문이 급정거했다. "아직은 모르겠어. 아마도 내년 봄쯤일 거야, 신부 왈 국가 시험을 치른 다음으로 하겠다나." "그 여의사의 주장 대로군." 철수는 얘기 끝에 요즘 자력선 연구소에서 새로운 법칙이 발견된 경위와 식물 자력선이 완전히 규명되면 그렇게 속썩이던 로켓 연료를 어느 정도 공급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했다. 윤식은 그 얘기를 무심히 듣지 않았던 모양인지 그렇게 훌륭한 일을 왜 국민에게 안 알리느냐고 눈을 흘긴다. "아직 발표할 시기가 아니야." 하고 철수는 가볍게 응수했는데, 이 짧은 얘기가 온 세상에 파문을 일으키게 되리라고는 철수도 윤식이도 미쳐 몰랐다. 윤식이가 이 날의 철수 얘기를 지나가는 말로 대륙 신문에 있는 자기 친구에게 귀띔해 준 것이 화근이 됐다. 며칠 후, 신문이 배달되자 자력선 연구소는 발칵 뒤집어졌다. '자력 혁명! 자력선 연구소에서 무한 동력을 발견! 과일의 다면체 재배도 대성공!' 이라는 큰 제목 아래 과학 면의 톱기사로 대략 다음과 같이 보도 됐기 때문이다.   "식물 자력선 연구소의 기술진은 13년의 연구 끝에 자력선을 해방시킴으로써 자력 혁명의 제 1 차 작업을 완성했다. 식물의 열매를 이루는 궁극적인 힘을 중수소라고 생각하는 동 연구소의 보고에 의하면 이 에너지를 재생산함으로써 장차는 우주 로켓의 추진력까지도 생산해 낼 가능성을 검토 중에 있다고 한다. 동 연구소의 기본 방침은 식물의 생장과 결실을 광선의 합성에 의한 간접적인 신진 대사를 초월하며, 식물 생명체의 직접적인 궁극의 효소를 찾아 내서 이것을 유도하려는 데 있다. 옛날, 고 우장춘 박사에 의하여 육종된 이른바 씨앗 없는 수박은 단순히 씨앗의 교배로서 이루어진 것인데, 자력선 연구소가 그 동안 식물 자력선의 적절한 적용으로 맛이 변치 않는 수박을 만들어 낸 것은 널리 보도된 바 있다. 이런 연구를 기초로 해서 엷은 플라스틱 막을 과일에 살포함으로써 세모꼴, 네모꼴의 사과, 배, 포도 등의 과일 생산이 가능해 진 것은 우리 나라의 기후 풍토와 아울러 과학진의 커다란 승리라고 아니 할 수 없다. 순장 김 일송 박사는 출장 중인 우도의 해양 생물학 본실에서 이번 연구의 결론은 아직도 종합된 것이 아니라고 겸손하게 말하면서 그러나 식물 자력의 완전 해방은 동 연구소의 사명이라고 강조했다……"   원예 부장이 가져 온 신문을 읽고 난 자력선 부장은 실망의 빛을 감추지 못했다. "이렇게까지 세상에 알려 주는 것은 고마운데, 내용을 똑바로 써줘야지, 원……" "난 아무래도 과학원에 제출한 제 1 차 종합 브리핑의 보고서를 읽고 적당히 쓴 것 같은데요?" 원예 부장 추측은 옳은 것이었다. 그러나 철수는 혹 윤식이가 남에게 발설하지는 않았나 하고 혼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발설에 있는 것은 아니었다. 신문 보도가 상세하지 못하고 요령부득이었기 때문에 빗발처럼 연구소에 조회해 오는 문의 때문에 연구 계획이 지연되었다는 데 있다. 그 날 저녁, 당장에 외국 신문의 특파원이 소장을 찾아서 회견을 청했다. 나이 50세가 넘어 보이는 외국 기자는 특히 해양 생물부에서 양식한 자두 만한 진주에 더 관심을 갖고 사진까지 찍어갔다. 국내 학회에 보고한 다음 해외의 관계 학회 회의에서 발표할 예정이었던 자력선의 종합 보고였던 만큼 그렇다면 ①식물 자력선의 발생을 태양력 이외의 '자료'에서 찾고 있느냐 ②자력선에 의한 로켓의 연구는 어느 정도의 진전을 보고 있느냐 하고 꼬치꼬치 캐묻는 바람에 부소장이 진땀을 뺐다. 과학청에서도 이튿날 보고서를 일곱 통 더 작성해 달라는 지시였고, 우주 물리 연구소에서도 조회가 오고 엽록소 연구소에서는 일부러 사람을 보내왔다. 회색 양복을 입은 서른 대여섯 살로 보이는 청년의 명함에는 '국립 엽록소 연구소 식물 화학 반장 박한수'라고 적혀 있었다. 용건은 임업 실험지에 있는 여러 가지 나무의 잎을 백장쯤 얻을 수 없느냐는 것이었다. 박한수는 철수의 안내로 분지의 넓은 실험지를 거의 하루종일 돌아다니면서 토마토, 사과, 배, 수박, 오동나무, 삼나무 등의 잎과 과일 백여 개를 골라 모았다. "미스터 김, 고맙습니다. 우리 연구소에선 다배체 연구가 한창이어서 자력선의 영향을 비교 아니할 수 없게 됐어요." "아무튼 나라를 위해서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서로 힘을 모을 날이 오지 않겠어요." 철수와 박한수는 전공 분야는 다르지만 학구심은 서로 통하는 바가 있었다. 그러나 이번 일은 엽록소 연구소에서 분명히 도전해 온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엽록소 연구소 측은 공문으로서 필요한 협조를 청하면 되는 것이었다. "엽록소 연구소 놈들이 당황했군." 한수가 돌아가자 철수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부장님, 이번 테마는 화학반의 책임 아래 결론을 내려 보겠습니다." "좋소, 그러나 너무 서두르진 마시오." 식물 화학 부장은 평소에 박한수가 덤비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하는 말이었다. 한수는 당장에 7명의 임원들과 회의를 열고 식물 자력선의 모순점을 찾아 내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만일 자력선에 의해서 식물이 생장이 5배 늘어날 수 있다면, 그 나무의 잎사귀의 세포들은 그 만큼 빛의 합성 작용을 활발히 해야될 겁니다. 우리는 자력선 연구소의 잎의 세포 구조를 분석해서 염색체를 분류해야 겠습니다. 국립 연구소의 권위와 전통을 위해서 여러분의 분발을 기대하겠습니다……" 계획에 따라서 10여 년 전에 미국이 월남의 게릴라전 때 사용한 적이 있는 '호지돌'과 인(P) 화합물을 선정된 잎에 붙여 놓았다. 이 약은 낙엽제 또는 고초제로 알려진 것이다. 화학반은 그럼으로써 수분이 없어질 때의 인 형질의 상태를 우선 파악해 보는 것이었다. 그들은 또한 수박의 염색체가 2배체와 4배체를 교배시켜서 씨 없는 수박과 똑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음을 발견하고 1주일 동안에 상당한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부장님, 실험 결과를 보니까 자력 연구소의 잎이나 과일들의 염색체는 차원이 낮아서 말이 아니군요. 지금 우리 연구소에서 착수 중인 밀농사의 경우, 밀의 염색체가 56쌍과 70쌍에 달한 것을 실용화하려는 단계인데, 이 비율로 따지자면 자력선 연구소의 것은 평균 40쌍의 염색체를 갖고 있다고나 할까요……" 화학 부장은 한수의 보고서를 들여다보면서 가끔 고개를 끄덕거린다. 납득이 가는 그 무슨 새로운 사실이 반증된 셈일까? 이런 일이 있은 며칠 후, 엽록소 연구소 소장 이갑노 박사는 기자 회견을 자청했다. 화학 반장 한수가 권한 것이다. 프레스 인터뷰는 30여 명의 기자들이 모인 가운데 연구소 강당에서 열렸다. "먼저 개략을 설명하겠습니다. 지구상의 온갖 생명은 태양의 에너지를 근원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식물이 섭취하고 있는 에너지와 총량은 전 세계의 하늘에서 날려오는 것의 불과 2.5% 밖에 안됩니다. 이렇게 미미한 양입니다만, 그 중에 농토가 섭취하는 에너지의 양은 겨우 3%에 지나지 않으며, 나머지 97%가 이용되지 않은 채 입니다. 까닭에 본 연구소의 사명은 이렇게 남아 돌아가는 태양 에너지를 더 많이 빨아들이기 위해서 잎이 넓은 식물을 만들어 효율을 높이는데 있는 것입니다." 이 박사는 근엄한 어조로 문제점을 지적해 나갔다. 씨앗의 교배로서 염색체를 다배체로 만들기 위해 저온 작용 외에 초음파를 이용하고 있다던가 벼의 알이 재래종의 2배나 되는 씨앗을 개량 해냈다던가 하는 설명이었다. 회견이 근 한 시간 계속 되는 동안 기자 중에는 자력선 연구소의 업적을 어떻게 보느냐고 질문한 사람도 있었다. "본 연구소는 식물 증식의 문제를 화학적인 면에서 탐구하고 있고, 자력선 연구소는 물리학적 면에선 접근하고 있는 까닭에 서로 분야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이날의 회견 내용은 다음 날 조간마다 대서특필되어 '국립 엽록소 연구소에서 쌀과 밀의 다배체 재배에 성공'이라는 내용으로 보도되었다. 그 중에서도 유독 반도 일보만은 식물 자력선 연구소와 엽록소 연구소가 내년 봄 학회를 앞두고 시소 게임을 벌리고 있다는 단평까지 실어 관계자들의 이목을 끌었다. 찬바람이 일기 시작하자 뜻밖에 벌어진 과학 논쟁을 세상 사람들은 먼 산의 산불 구경처럼 대했을 뿐이다. 한동안 자력선 연구소의 권일송 박사가 노벨 물리학상의 수상자 후보에 올랐다는 외국 통신의 보도도 있어 떠들썩했지만 호수에 던진 돌의 여파가 가시듯이 세상은 다시 잔잔해졌다. 12월로 접어든 어느 날 하오, 권 박사와 자력선 부장은 소장실의 소파에 기대어 보기 드물게 환담하고 있었다. "이번에 들은 얘기인데, 우도의 섬 사람들이 요즘 과일은 그전 것보다 맛이나 향기가 덜하다고 불평해요. 이론상이나 실제로 지금 것이 더 맛이 있을 텐데. 역시 사람이란 소년 시절이나 자기 과거를 사치스럽게 생각하는 면이 반드시 있는가 봐." "너무나 자기 중심이니까 그렇지 않을까요. 인구가 천 만을 넘어섰는데 과일의 크기나 수량을 대량 생산하지 않으면 요즘 꼬마들은 사과 맛도 알지 못하게요. 옛날 옛날 하지만 그 때의 재래종으론 어디 차례가 돌아올 것 같습니까?" "그 이치를 이해한다는 것은 쉽고도 어려운 일이란 말이야. 이론부의 조수를 하고 있는 철수 군만 해도 정열만으로 독주하고 있는 것 같아요." 소장이 평소에 철수를 아끼고 있는 것은 연구소 직원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철수는 철수대로 나이는 젊지만 식물 자력선에 의한 우주선의 추진력을 꼭 해결하려는 목표를 세우고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중이다. "김군을 장차 나이로비에 있는 원시 식물 연구소에 유학시켜 보면 도움이 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자력선 부장도 김철수를 아끼고 있는 눈치였다. 철수는 이날 밤 숙직에 걸려 있었다. 차를 타고 신공덕리의 연구소까지 오는 연도의 가로수들은 벌써 나뭇잎이 낙엽을 지우고 있고 밤하늘에 총총한 별들을 지켜보는 듯이 북두칠성의 어미별인 북극성은 36도의 높이에서 변함 없이 깜박거리고 있었다. "오늘은 유난히 유성이 많은 밤이군." 저도 모르게 유성 수를 손꼽고 있던 철수는 다섯 개나 목격한 일을 이상스럽게 여겼다. 임업 실험지의 나무들만이 초겨울에도 푸릇푸릇한 잎사귀를 자랑하는 듯 푸른 바다를 이루고 있는 사실이 마음 든든했다. 철수는 숙직 요령대로 이날 밤은 소나무 잎의 총수와 자력의 평균치를 전자 계산기로 처리하고 있었다. 밤은 깊어지고 이웃 마을의 멍멍개 소리 마저 멈춘 새벽 3시쯤이었다. 마치 번개가 반짝이는 듯 야광탄을 터뜨리는 듯 창 밖이 순식간에 대낮처럼 환해졌다. 그러나, 바깥 세상은 고요 그대로였다. "이게 웬일일까? 소리도 없는 야광!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철수는 연구실 밖으로 뛰어나갔다. 이상한 빛의 정체는 아무리 돌아다보아도 찾아 낼 수 없었다. 유독 밝아야 할 광원이 어디 있는지 짐작할 수가 없다. 철수가 어리둥절하고 있는 동안 약 3분이 지났을까. 야광은 천천히 꺼지기 시작하여 분지의 남쪽에서 마지막 불이 모습을 감추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