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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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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    별빛 흐르는 언덕 댓글:  조회:1260  추천:0  2017-06-11
아동수필  별빛 흐르는 언덕 / 강려   심심한 날, 나지막한 언덕에서 저무는 하늘을 올려다본다. 하나 둘 저녁별이 늘어나고 있었다. “얘, 혼자인 언덕을 동무해주려고 나왔니?” 먼저 나온 저녁별 하나가 나한테 말을 걸어오는 것만 같다. (그럼 언덕의 친구도 전학을 갔는감?) 찰나 소학교 고급학년을 올라갈 무렵에 전학 간 친구의 사과알 같은 이쁘장한 얼굴이 스크랩되여 눈앞에 펼쳐진다. 한동네에서 함께 자랐고 한학급에서 같이 공부를 해서일가? 한학급에서 개구쟁이 남자애들의 놀림은 둘째치고 얌전한 녀자애들마저 “저리 가!” 혹은 “비켜 !” 하며 어느 별에서 온 외계인 만난 듯 나와 거리를 두었건만 유독 그 친구만이 유일하게 나를 싫어하지 않았던 같다. 어쩌면 뇌성마비인 나와 결코 거리를 두지 않았던 까닭에 그 친구가 편했는지도 모른다. 학교로 가는 날의 아침이다. 아파트의 2층에서 조금 일찌기 밖에 나와 친구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5층을 올려다보며 ‘용기를 내서 이름을 한번 불러볼가 어쩔가?’ 하고 망설임을 요리조리 굴려본다. 종당엔 괜히 친구의 이름을 불렀다가 어눌한 나의 말소리가 5층까지 올라같 것만 같아 나도 모르게 얼굴이 홍당무가 되여가는데 어느결에 쫑드르 층계를 내려왔는지 친구가 내 어깨를 톡 치며 방그레 웃어준다. 한편 내 손목을 잡아준 친구의 손은 따뜻했다. 문득 거꾸로 나라면 뇌성마비인 친구와 같은 동네에서 지내는 것이 무척 신경이 쓰일 것만 같다는 생각이 고개를 쳐든다. 그 리유로 많은 친구들을 잃을가봐 너무도 화가 치밀어 그 친구를 못살게 굴 것 같고 같이 놀림의 대상이 된다면 속상해서 눈물샘이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나는 그렇게 잠간 어리석은 상상을 하곤 피식 웃었다. 둘이서 학교로 발걸음을 옮겨가면서 나는 어눌한 말투로 친구한테 물었다. “넌 왜 나를 싫어하지 않니?” “친구잖아!” 친구가 미소 꽃망울을 톡 터뜨리며 내 물음에 대답해주었다. 그때 친구가 나한테 했던 그 한마디가 지금 나의 귀전을 맴도는 건 언덕을 동무해주라는 친구의 속삭임소리인지도 모른다. (그래, 하나의 별이 되여 언덕을 동무해줘야지. 언덕도 친구가 전학을 가버려서 참 외로울 거야.) 한발자국도 걸을 수 없고 찍 소리도 낼 수 없는 언덕이지만 나의 이런 속심을 읽는다면 꽤 신나할 것만 같다. “히히, 별 하나에 친구하나…” 하고 언덕은 초록 눈빛으로 나한테 말을 걸어올 것만 같다. 우린 새로운 어깨동무이니깐. 2017년 6월 9일 연변일보 해란강문학면 연변작가협회 아동분과 6.1 아동절 특집 (2)에 나간 발표작
199    강소천 동화 묶음 [한국] 댓글:  조회:1461  추천:0  2017-06-07
꽃신 강 소 천   1.   아기 아버지께!   세상에 나서 처음으로 당신을 이렇게 불러 봅니다. 당신이 아기 아버지가 된 것같이 나도 이젠 아기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난이 엄마는 난이 아버지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난이 아버지는 지금 일선에서 싸우고 있는 군인입니다. 난이 엄마가 난이 아버지와 결혼한 것은 재작년 겨울―일년이 지난 요즘 첫아기를 낳았습니다.   난이를 낳기 한 달 전, 난이 아버지는 휴가를 얻어 잠깐 다녀갔었습니다. 그 때 난이 엄마에게, 아들을 낳으면 준이라고 하고, 딸을 낳으면 이름을 난이라 지으라고 했습니다. 난이 엄마는 아기의 난 날과 시간과 그리고 아기의 모습을 낱낱이 아기 아버지께 보고하는 긴 편지를 썼습니다. 백일이 되면 사진도 찍어 보낸다고 썼습니다.   난이 아버지한테서 답장이 오기도 전, 난이 엄마는 한 주일이 되기도 전에 또 편지를 썼습니다.   갓 나서는 젖만 빨면 밤낮 없이 쌔근쌔근 잠만 자던 것이, 차차 두 눈을 또록거린다는 둥, 조금만 큰 소리가 나도 제법 귀가 틔어 깜짝깜짝 놀란다는 둥, 아기의 재주가 한 가지 늘 적마다 엄마는 아빠한테 편지를 쓰는 것이었습니다. 아기가 엄마를 쳐다보고 빵긋빵긋 웃기 시작한 날, 엄마는 또 부랴부랴 편지지와 봉투를 찾았습니다.   백일이 되는 날을 손꼽아 기다려, 엄마는 사진사를 불러 백일 사진을 찍었습니다.   일선이 분주해서인지, '군사우편'이 잘 연락되지 않아서인지, 난이 아빠의 답장이 좀처럼 빠르지 못했습니다. 아기가 빵긋빵긋 웃는다는 편지를 받았다는 답장이 왔습니다. 그러고는 아기의 돌이 거의 되어도 아빠에게서는 아무 소식도 없습니다.   지난 해 같으면 휴가를 얻어 거의 돌아올 무렵이 되었으나, 역시 아무 소식도 없었습니다.   엄마는 아기가 따로 서는 재주를 배운 날, 편지지와 봉투를 찾아 들었으나, 어쩐 일인지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밤낮 편지만으로 말고, 아기 아빠에게 난이의 재롱을 그냥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못 견디게 따스한 봄날―바로 난이 엄마가 처음으로 어머니가 되던 날이 바로 내일 모레―그러니까 난이 돌이 내일 모레입니다.   단 세 식구―일선에 가 계신 아버지를 빼면 단 두 식구―엄마와 난이뿐. 이웃에 일가도 친척도 없는 난이 엄마는, 아기의 첫돌이 내일 모레라고 생각하니 그만 마구 울고만 싶어졌습니다. 그러나, 바로 난이의 첫돌 바로 전날 우체부가 일선에 계신 아빠를 대신하여 찾아왔습니다.   한 장의 편지와 조그만 소포 꾸러미 한 개를 두고 갔습니다.   엄마는 얼른 편지 봉투를 떼어 읽었습니다.   내가 이 편지를 쓰는 지금은, 아직 난이의 돌이 멀었지만 이 편지를 받을 때면 난이의 첫돌 날이 거의 될 거라고, 그래서 일선 가까운 곳에 공무로 잠깐 나왔던 길에 아기 신발을 한 켤레 사 보낸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빠가 보던 중 제일 작은 것으로 샀다는 것과, 이 꽃신을 사기 위하여 그 거리의 상점을 샅샅이 뒤졌는 이야기가 씌어 있었습니다.   난이가 인제 걸음마를 타서 걷기 시작할 때까지엔 한 번 휴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씌어 있었습니다.   아빠의 편지는 퍽도 길었습니다. 아빠가 곁에 안 계시는 것이 한없이 쓸쓸하기도 하였지만, 오래간만에 아빠의 소식을 들은 엄마는 무척 반갑기도 하였습니다. 이만하면 난이의 첫돌 기념도 아주 뜻 없이 지내 버리지는 않는 거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이튿날 아침, 엄마는 학교 시절의 몇몇 친구들을 초대하여 돌상을 난이에게 차려 주었습니다.   누구나 하는 버릇대로 돌상에는 책과 연필과 돈과 과자와 그 밖의 밥과 반찬을 늘어놓고 난이에게 집게 하였습니다.   난이는 제일 먼저 책을 쥐었습니다. 모여온 어머니들은, 난이는 커서 공부를 잘할 거라고 칭찬이 자자했습니다.   난이 엄마도 숟가락을 들어 걸신스럽게 제일 먼저 밥만 퍼먹는 아이들이 많던 것을 생각하면 난이가 무척 귀여워 보였습니다.   또 하나 일선 아빠에게 보고할 자랑이 늘었습니다.   2.   아빠가 보내 준 난이의 꽃신은 퍽 컸습니다. 꽃신이 큰 게 아니라, 난이의 발이 작지요. 난이가 정말 신발이 필요하도록 잘 걷게 될 무렵이 되면 난이의 발도 훨씬 더 커질 거예요. 그 때면 오히려 신발이 작아서 걱정이 될는지도 모릅니다.   돌이 지난 난이는 제법 아장아장 걷기를 시작했습니다.   엄마는 아빠가 보내 준 꽃신을 난이에게 신겨 줍니다. 신발이 커서 걸음발을 옮겨 놓을 때마다 신발이 벗겨졌습니다.   엄마는 신 앞에 헝겊을 틀어막아 주었습니다. 그래도 신발은 잘 벗겨졌습니다. 이번엔 들메끈(신발이 벗어지지 않게 매는 끈)을 하여 주었습니다. 그러나, 난이는 그게 갑갑한지 곧잘 그 끈을 풀어 버렸습니다.   난이에게는 그 꽃신이 신는 것보다 가지고 노는 편이 훨씬 더 재미가 있었습니다.   늦은 봄이 되어, 앞뜰 길섶에는 커다란 금단추 같은 민들레가 막 피었습니다. 엄마는 민들레꽃을 사랑해서인지 아기에게 민들레꽃 빛 노란 저고리를 해 입혔습니다. 그리고는 늘 이런 노래를 불렀습니다.     길가에 민들레도 노랑 저고리     첫돌맞이 우리 아기도 노랑 저고리     민들레야 방실방실 웃어 보아라.     아가야 방실방실 웃어 보아라.     길가에 민들레도 노랑 저고리,     첫돌맞이 우리 아기도 노랑 저고리,     아가야 아장아장 걸어 보아라,     민들레야 아장아장 걸어 보아라.   첫여름이 되면서부터 난이는 민들레를 닮아 그 노랑 저고리가 필요없게 되었습니다.   엄마는 난이를 발가벗겨 밖에 데리고 나왔습니다. 햇볕이 오히려 옷보다 더 따가웠습니다. 눈같이 희던 난이의 몸뚱이가 볕에 그을었습니다. 엄마는 그게 난이의 건강에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삼복 더위가 심해짐에 따라 난이의 장난도 한층 더 심해졌습니다.   난이는 엄마 없이도 제법 밖에서 혼자 놉니다. 하루 종일 가야 트럭 하나 다니지 않는 고요한 마을이니까 아무 걱정할 까닭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집 앞이 빈터 잔디밭이니까 난이의 놀이터로는 훌륭했습니다.   난이에게는 새로 정다운 친구가 하나 생겼습니다. 난이 외가에서 데려온 바둑이입니다.   난이는 바둑이가 좋았습니다. 바둑이도 난이가 좋은 모양입니다. 그런데 이 바둑이는 난이보다도 더 장난이 심했습니다. 서로 무척 정답게 놀다가도 바둑이는 곧잘 난이를 울려 놓는 것이었습니다.   그 까닭은 난이의 꽃신을 빼앗아 가지고 달아나는 것이었습니다. 바둑이는 민민하게 생긴 제 발에 몇 번이고 발을 들여밀어봤자, 어디 걸려 있지 않는 신발을 발에 신을 수는 없으니까, 심술이 났는지도 모릅니다. 걸핏하면 난이의 꽃신을 입에 물고는 달아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난이는 '으아아'하고 급한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습니다.   난이의 꽃신은 곧잘 난이의 꽃바구니도 되고 물동이도 되었습니다.   잔디밭에 핀 제비꽃 같은 것을 따 담아 가지고는 머리에 이고 다니기를 즐기었습니다. 때로는 모래를 가득 담아 가지고 방안까지 들어오곤 하였습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아빠가 사다 준 꽃신을 아껴 신어야지 이렇게 더럽혀서는 못 쓴다고 꾸중을 하시었습니다.   앞밭의 홍옥(사과)이 제법 빨갛게 익을 무렵, 그러니까 그게 초가을 아니겠어요.   엄마가 마당에 빨래를 널고 저녁을 짓고 나니, 늦은 저녁이 되었습니다. 난이는 꽃신 한 짝만을 머리에 이고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한 짝은 어쨌느냐고 아무리 물어봐야 아직 말을 못하는 난이가 그런 걸 알 리가 있겠습니까? 말할 줄 아는 서너 살 먹은 아이라도 자기 장난에 팔리다보면 언제 어디서 잃었는지 모를 텐데. 아직 두 돌도 안 지난 난이가 그런 걸 알 리가 없습니다.   엄마는 얼른 밖에 나가 난이가 놀던 뜰과 풀밭을 찾아보았으나 난이의 꽃신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엄마는 밤새 잠이 오지 않으리만큼 서운했습니다. 어쩐지 마음 한 구석이 텅 빈 것 같이 서운했습니다.   이튿날 아침, 엄마는 다시 여기저기 찾아보았으나 난이의 꽃신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조반(아침밥)을 끝내고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오래간만에 난이 아빠에게서 편지가 왔습니다.   어서 휴가를 얻어, 아빠가 사 보낸 준 꽃신을 신고 아장아장 걸어다니는 난이가 보고 싶다는 편지였습니다.   편지를 읽고 나니, 엄마는 한층 더 서운해졌습니다. 아빠가 돌아오면 무어라 말할까 생각하니 부끄럽기도 하였습니다.   엄마는 곁에 앉아 있는 난이에게 눈을 돌렸습니다. 엄마는 아직 한 번도 그런 눈초리로 아가를 바라본 적이 없었습니다. 바라본다기보다 매섭게 쏘아보았습니다. 처음엔 난이도 그건 엄마가 자기가 귀여워서 그러는 줄만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엄마는 한 짝만 남은 신발을 손에 쥐기가 바쁘게 난이의 엉덩짝을 후려갈겼습니다.   이게 난이가 처음 어머니에게 맞은 매였습니다. 난이는 그만 서러워서 까무러치다시피 울기를 시작했습니다.   엄마는 악을 쓰는 난이가 이날 따라 몹시 못마땅하게 생각되었습니다.   엄마는 다시 한 번 난이의 궁둥이를 꽃신으로 때렸습니다. 난이는 좀더 크게 울었습니다.   볼기짝 두 대 - 그것뿐이었습니다. 그러나 난이는 흑흑 느껴 울며 좀처럼 울음을 그치지 않았습니다. 울음이 더 늦게 멎은 것은 난이가 아니라 사실은 난이 엄마였습니다.   엄마는 난이를 등에 업고 울음 섞인 목소리로 자장가를 불러 난이를 재웠습니다.   칭얼칭얼하다가 난이는 잠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잠결에도 때때로 흑흑 느끼는 것이었습니다.   그 날 밤부터 난이는 깊은 잠을 들지 못하고 깜짝깜짝 놀라 소스라쳐 깨어서는 기절이라도 할 듯이 '으앙으앙' 울어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난이의 머리는 더웠습니다. 몸도 더웠습니다. 그렇게 잘 놀던 난이는 그만 핼쓱해졌고, 일어나 앉으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엄마는 난이를 업고 병원에 가서 주사도 맞히고 약도 먹였으나 난이의 병은 낫지 않았습니다. 벌써 난이에게 중대한 사건이 연달아 생겼습니다. 그러나 난이 엄마는 아빠에게 편지를 쓰지 못합니다. 여지껏 보낸 편지는 모두 반가운 자랑뿐이었으나, 이런 걱정스럽고 서글픈 소식을 일선에까지 차마 보내기는 싫었습니다.   3.   난이는 벌써 이 세상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한 짝의 꽃신을 잃었기 때문에 생긴 일로 세상을 떠난 난이에겐 벌써 그 한짝마저가 쓸데없는 것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엄마는 울며 울며 한 짝만인 신발을 난이의 품에 넣어 무덤에 보냈습니다.   4.   엄마는 어젯밤에도 또 난이를 꿈에 만났습니다. 꿈나라에 간 난이는 생전과 똑같이 언제나 꽃신 한 짝을 신고 있었습니다. 이런 꿈을 꾸고 난 아침마다, 난이 엄마는 가슴이 미어지는 듯 서러웠습니다.   찬 서리가 몇 번이고 내려, 뜰에 풀들이 다 말라 버린 어느 날 아침, 밖에서 혼자 돌아다니던 바둑이가 무얼 물고 부엌으로 달려 들어왔습니다.   난이 엄마는 기절이라도 할 듯 얼른 바둑이의 입에서 그것을 빼앗았습니다.   그것은 꿈나라에 가버린 난이의 꽃신이었습니다.   얼마나 반가웠겠습니까? 그러나 그것은 난이가 살아 있어서야겠지요.   엄마는 꽃신 한 짝을 뺨에 대고, 네가 어디 갔다 인제 왔느냐고 흑흑 느껴 울었습니다.   설움은 눈물이 되어 흘러나와도 샘물 같아서 그칠 줄 몰랐습니다.   엄마는 눈물 젖은 눈으로 꽃신을 가지고 난이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5.   그 날 밤 꿈에, 난이는 반가운 듯이 엄마 앞에 나타났습니다.   두 발에 꽃신을 신고 민들레 핀 길섶을 아장아장 걷고 있었습니다.   엄마는 옛날의 노래를 되풀이해 불러 주었습니다.     아가야 아장아장 걸어 보아라,     민들레야 아장아장 걸어 보아라.   이튿날 아침   엄마는 큰 맘 먹고 난이 아버지에게 이런 뜻의 편지를 썼습니다.   난이는 우리 집에 왔다 두 돌도 못 되어 돌아갔습니다.   이 엄마가, 너무 푸대접한 까닭이에요.   아니, 아기가 집에 찾아와도 한 번도 와 주지 않는 아빠가 더 나빴는지도 몰라요.   아기가 영영 아버지 얼굴을 모르고 꿈나라에서 살 것을 생각하면 서글퍼져요. 그보다 당신이 때때로 꿈나라에 찾아가도 난이를 못 찾을 것을 생각하면 한층 더 서글퍼져요.   모처럼 사 보낸 꽃신이―아니, 꽃신 때문이 아니었어요. 이 엄마 때문이었어요.   처음 당신이 꽃신을 사 보냈을 때, 그 꽃신은 퍽 컸어요. 그러나 난이가 꽃신을 신고 다니기 시작한 때에는 거의 맞았어요.   엄마는 그 꽃신이 작아질까봐 걱정까지 했었어요. 그러나 그 꽃신은 영영 작아지지 않을 거예요.   엄마는 그 꽃신이 해질까 봐도 걱정을 했어요. 그러나 인제는 그런 걱정은 모두 쓸데없는 걱정이에요. 난이에겐 그 꽃신 한 켤레 이상 더 필요하지는 않아요.   꿈나라에선 영원히 신고 다닐 수 있는 꽃신이어요.   그러나 여보!   당신이나 나나 이젠 아버지도 어머니도 아니에요.   우리가 난이 아빠와 난이 엄마의 자격을 가지는 것은 오직 꿈나라에 갔을 적만이에요.   '난이 아버지―'   난이를 안고 섰던 당신 뒤에 서서 이렇게 한 번 불러 보지 못한 채 난이를 보낸 것은 못 견디게 슬픈 일이에요.   편지를 다 써서 봉투에 넣고 봉한 뒤 힘없이 붓을 놓은 엄마는 남편의 사진 앞에 서서   "난이 아빠!"   이렇게 가만히 불러 보았습니다.   아마 이게 정말, 난이 엄마가 자기 남편을 아빠라는 이름을 붙여서 불러 보는 마지막일는지도 모릅니다.      '꽃신'은 6·25전쟁이 배경이 되는 동화입니다. 6·25전쟁은 온 국민 한 사람 한 사람마다 슬프고 가슴 아픈 사연을 남겼습니다.   전쟁터로 나간 아버지에게, 새로 태어난 아기에 대한 소식을 적어서 편지를 보내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어느 날, 아기가 그 꽃신 한 짝을 잃어버립니다. 그래서 말도 아직 할 줄 모르는 아기의 엉덩이를 나머지 한 짝의 꽃신으로 때렸습니다. 아기는 까무러치고 열병을 앓게 됩니다. 그런데 그 열병으로 아기가 일어나지 못하고 기어코 저 세상으로 가버립니다.   그 아기도 본 적이 없는 전쟁터의 아빠를 생각하는 엄마의 마음은 얼마나 아플까요?(최지훈)       꾸러기와 몽당연필 강 소 천   내 동생 이름은 영식이입니다. 그러나 우리 언니와 나는 내 동생 이름을 영식이라고 부르지 않아요. 이름 대신에 별명을 부릅니다.   여러분은 내 동생의 별명이 무엇인지 알고 싶지요? 아주 재미있는 별명이에요. 내 동생의 별명은 '꾸러기'랍니다.   '꾸러기'라는 게 무엇인지 아시겠어요? 장난꾸러기, 잠꾸러기, 말썽꾸러기, 욕심꾸러기, 하는 꾸러기 말입니다. 참말 내 동생은 무척 장난꾸러기고, 또 지독한 잠꾸러기랍니다. 내 말이 거짓말인가 아닌가 조오기 조기, 우리 어머니가 와 앉아 계실 테니 물어봐 주세요. 아마 낮에 장난을 너무 하니까 고단해서 그런지도 모르지요. 벌써 국민학교(초등학교) 2학년인데도 아침마다 어머니께서,   "얘 영식아! 이제 그만 자구 어서 일어나, 세수하구 옷 갈아입구 학교에 가야 하지 않니? 학교 시간 늦을라." 하셔도 꾸러기는 쿠울쿨 잠만 잔답니다.   우리들이 조반(아침밥)을 다 먹고 학교를 갈 준비를 할 때에야, 꾸러기는 부스스 일어나서 걸신들린 사람처럼 밥을 푹푹 퍼먹고는,   "나 책가방 줘! 하고는 학교로 내빼는 것입니다.   "영식아! 아무리 바빠도 '학교에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인사는 하고 가야 하지 않니?" 하고 어머니가 웃으시면   "어머니, 학교에…… " 하고 말을 채 끝마치지도 않고 대문 밖으로 내빼는 꾸러기입니다.   그러나 대문을 나서 한 골목을 돌면 그저 그만, 아무 바쁜 일이 없는 것 같은 꾸러기입니다.   길가 집 울타리에 개나리가 봄볕에 활짝 폈습니다.   꾸러기는 걸음을 멈추고 서서, 정신 없이 개나리 울타리를 바라봅니다.   "저 꽃 한 가지만 줬으면……. "   그렇지만 하는 수가 없어서 또 걸어가지요. 빈터가 있는 길가 풀밭을 그냥 지나쳐 버리지 못하는 꾸러기입니다.   "앉은뱅이꽃이 아직도 안 폈나?"   무얼 잃어버린 사람처럼 두리번두리번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러니까 지각이라는 것은 예사예요. 그래서 학교에서는 한 반 친무들이 '대장'이라고 부른다나요. 얼른 들으면 훌륭한 이름 같지요? 그렇지만 대장 위에 '지각'이란 말이 붙는답니다. 그러니까 '지각 대장'이 아니겠어요? 어떤 애들은 '빵꾸차'라고까지 부른다나요. 그건 좀 안 됐지요?   그런데 오늘 아침, '꾸러기', '지각대장', '빵꾸차'라는 별명 부자 내 동생 영식은, 학교 가는 길가 풀밭에서 노오란 민들레꽃 한 송이를 따 들었습니다.   "길가에 민들레도 노랑 저고리   첫 돌맞이 울 아기도 노랑 저고리"   내가 국어책 읽는 흉내를 내며, 너무 좋아서 깡충깡충 앙감질(한 발을 들고 한 발로만 뛰어가는 짓)을 하며 학교로 갔다는 것입니다.   영식이가 토끼처럼 깡충깡충 뛸 때마다, 영식이 책가방에서는 짤랑짤랑 소리가 났을 게 아니에요?   영식이는 신이 나서 한층 더 깡충깡충 뛰었을 거예요.   그 바람에 필통 속에 들었던 조그만 몽당연필이, 필통 구멍을 쏘옥 빠져 나와 담장을 훌쩍 뛰어넘어 풀밭에 살짝 숨어 버렸대요.   영식이가 그런 걸 알 까닭이 있겠어요? 필통에는 지우개와 칼과 크레용 부스러기가 남아 있으니까, 그대로 짤랑짤랑 소리는 날 테니까요.   필통에서 빠져 나온 몽당연필은 너무 시원해서,   "아이 시원해! 이젠 갑갑하지도 않구, 그 장난꾸러기 손에서 빠져 나왔으니 속이 시원하다. 글쎄 내 키가 요게 뭐람?   꼭 난쟁이야. 딴 친구들은 아직 다 키가 큼직들 할 텐데……. 이틀 동안에 이 모양이 됐으니……. 그놈의 꾸러기라는 자식, 어머니가 공부하라면 공부는 하지 않고, 그저 칼을 가지고 나만 못살게 굴지 않아! 글쎄, 아무 죄도 없는 필통은 왜 입으로 물어뜯느냐 말이야. 그 덕분에 내가 빠져 나올 수는 있었지만…… "   몽당연필이 혼자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매애해해…… 매애해해…… " 하는 염소 소리가 들려 왔대요. 몽당연필은 그만 소름이 좌악 끼쳤을 게 아니에요? 고개를 가만히 쳐들고 있으려니까, 염소 한 마리가 점점 자기 있는 데로 다가오고 있었대요.   "아유! 이걸 어쩌나? 염소는 종이를 잘 먹는다는데, 나두 통째로 삼켜 버리지나 않을까?"   울상이 된 몽당연필은 몸을 웅크리고 풀잎 아래 꼭 숨어 버렸대요. 다행히 염소가 딴 데로 지나가 버리니까 그제야 몽땅연필은,   "휴우…… " 하고 길게 숨을 내뿜었을 테지요.   몽당연필을 갑자기 영식이가 그리워졌답니다.   '필통엔 연필이라곤 나밖에 없었는데, 오늘은 연필이 없어서 어떻게 공부를 할까? 선생님께 꾸중이나 안 들을까?'   온종일 몽당연필은 영식이 생각만 했대요.   그러나 봄볕에 몸이 노곤해서 그만 깜박 잠이 들어 버렸대요.   "야아, 여기 내 몽당연필이 떨어졌었구나!"   몽당연필이 깜짝 놀라 깨어 봤더니, 벌써 자기는 어느새 영식이 손에 쥐어져 있었답니다.   "연필아! 내가 잘못했어! 죄 없는 너만 자꾸 깎아 버렸기 때문에 이렇게 작아졌어! 오늘은 연필이 없어서 아주 혼이 났단다. 내 옆에 앉은 웅길이에게 연필을 빌려 달랬더니, '자아식! 연필도 안 가지고 공부하는 자식이 어디 있어?', 하면서 너보다 더 작은 연필을 빌려 주잖아. 그래도 손에 잘 쥐어 지지도 않는 그 연필 때문에 선생님께 꾸중을 안 들은 거야. 너는 아직 쓸 날이 멀었어. 인제부턴 참말 아껴 쓸래…… "   잃어버렸던 연필을 다시 찾은 영식이는 얼마나 기뻤겠어요? 아니, 그보다 영식이를 다시 만난 몽당연필이 한층 더 기뻤는지도 모르지요.      '꾸러기와 몽당연필'의 몽당연필은 꾸러기에게 몹시 시달렸기 때문에 가방에서 튕겨나와 풀밭에 떨어진 것이 시원합니다.   그러나 그런 마음도 오래가지 않습니다. 꾸러기가 걱정되고 그립습니다.   아마 꾸러기가 몽당연필의 임자이면서 친구인 탓이겠지요?   그래서 서로 다시 만나게 되자 둘이 모두 아주 기쁘고 행복해집니다. (최지훈)     꿈을 찍는 사진관 강 소 천   I.   따사한 봄볕은 나를 자꾸 밖으로 꾀어내는 것이었습니다.   어젯밤만 해도, 내일은 일요일이니 어디 나가지 말고, 방에 꾹 틀어박혀 책이라도 읽으리라 생각했던 것이, 정작 조반을 먹고 나니 오늘은 유달리 날씨가 따뜻했습니다.   나는 스케치북과 그림물감을 가지고 뒷산을 향해 올라갔습니다.   그렇다고 나는 굉장히 그림을 잘 그리거나, 그림에 취미를 가진 것도 아닙니다.   그저 빈손으로 가기는 싫었기 때문입니다.   책을 들고 앉아 그 따사한 봄볕에 읽는 것은 한층 더 싱거울 것 같았습니다.   봄을 그리려고 산에 오른 이 서투른 화가는, 좀처럼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그리는 것보다 가만히 앉아 바라보는 것이 더 좋았습니다.   그리하여, 내 눈이 맞은편 산허리에 갔을 때, 나는 내 눈을 의심하리만큼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거기에는 활짝 핀 꽃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직 살구꽃이 피려면 한 달은 더 있어야 할텐데, 저렇게 연분홍 꽃이 전등이라도 켠 듯이 환히 피어 있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나는 그 꽃나무 있는 데로 쏜살같이 달려갔습니다.   골짜기를 내려 다시 산으로 기어올라, 그 꽃나무 아래까지 갔습니다.   단숨에 달린 나는 숨이 차서 그만 땅에 주저앉았습니다.   숨을 돌리며 내가 꽃나무를 자세히 바라보았더니, 나무 밑줄기에 이런 간판이 붙어 있었습니다.   ★ 꿈을 찍는 사진관으로 가는 길 - 동쪽으로 5리 ★    나는 그 연분홍 꽃나무에 핀 꽃 같은 건 생각할 사이도 없이, 곧 이 꿈을 찍는 사진관을 찾아 떠났습니다.   동쪽으로 사뭇 좁다란 산길을 걸어가느라니까, 정말 조그만 집 한 채가 보였습니다.   그러나, 내가 그 집 문 앞에 다다랐을 때는 약간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집 문 앞엔 또 이런 것이 씌어 있었습니다.   ★ 꿈을 찍는 사진관은 여기서 남쪽으로 5리 되는 곳으로 옮겼습니다. ★   나는 남쪽을 향해 또 걸었습니다.   지금 온 만큼 가니까, 정말 또 한 채가 보였습니다.   나는 참 잘 왔다고 좋아라 집 문 앞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나는 아까보다 좀더 크게 실망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까와 똑같은 글이 문 앞에 붙어 있었습니다.   아니 꼭 한 자만 틀립니다.   그것은 남쪽으로 5리가 아니라, 서쪽으로 5리라고 씌어 있었습니다.   나는 조금 주저하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한 번만 더 속아 보자 하고 또 서쪽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마침내 나는 꿈을 찍는 사진관을 찾은 것입니다.   이런 산중엔 어울리지 않으리만큼 커다랗고 훌륭한 양옥집이었습니다.   벽과 창문만이 아니라 지붕까지 새하얀 집 - 다만 정문에 커다랗게 써 붙인,「꿈을 찍는 사진관」이라는 일곱 글자만이 파아란 하늘빛이었습니다.   나는 문을 두드렸습니다.   "누구시오? 들어오시죠!"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안에서 들려왔습니다.   나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하늘빛 파란 가운을 입은 점잖은 신사 한 분이, 하늘빛 파아란 안경을 벗어 테이블 위에 놓으며, 회전 의자에서 일어났습니다.   "어떻게 오셨지요?"   "저어 … 여기가 꿈을 찍어주는 사진관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어떻게 찍지요?" 하고, 나는 찍는 방법을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는 내게 조그맣고 얄팍한 책 한 권을 주며, 저 쪽 7호실에 가 앉아 소리 내지 말고 읽어보라고 했습니다.   나는 7호실을 찾아갔습니다.   1호실 다음엔 3호실, 그 다음이 5호실, 바로 그 다음이 7호실입니다.   어쩌면 사진관이 꼭 여관집과도 같습니까?   나는 그제야 이 집의 방 번호는 모두 홀수만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벽과 천장까지 새하얀 방 -   들어가는 문외에는 들창 하나도 없는 방입니다.   나는 그 방에 앉아, 지금 받은 얄팍한 책을 펴 들었습니다.   불도 안 켠 방이, 왜, 이리 화안한지 모르겠습니다.   어디서 빛이라곤 들어올 곳이 조금도 없습니다.   9포 활자만큼 작은 하늘빛 글씨가, 어쩌면 그리도 잘 보입니까.   꿈을 찍으시려는 분들에게!   이렇게 멀리서 찾아오신 손님에게 먼저 뜨거운 감사를 드립니다.   당신께서 이 곳까지 찾아온 데는 두 가지 뜻이 있을 줄 압니다.   그 하나는 신기한 것을 즐기는 마음이요,   또 하나는 무척 그립고 보고 싶은 사람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실 당신이니 말이지만, 오늘 저 세상 사람들은 오늘의 문명을 자랑해서 '텔레비전 시대'라고 합니다.   그러나, 지금 내가 새로운 실험을 하고 있는 이 일에 비하면, 그까짓 게 다 무엇입니까? 문제도 안되는 것입니다.   오늘 - 더우기 6.25 사변을 치루고 난 우리들에겐, 많은 잃은 것 대신에 가진 것은 안타깝게 보고 싶고 그리운 얼굴들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중에 우리에게 없지 못할 가장 귀한 것의 하나는 과거를 다시 생각할 수 있는 '추억'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옛날을 다시 생각하기 위해서 묵은 앨범을 꺼내어 사진 위에 머물러 있는 지난날의 모습들을 바라봅니다.   그러나, 사진이란 다만 추억의 그 어느 한 순간이요, 그 전부는 아닙니다.   정말 아름다운 추억이란 흔히 사진첩 속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불완전한 것이나마 사변으로 인하여 거의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요행히 우리에겐 '꿈'이란 게 있습니다.   이미, 저 세상에 가 버리고 없는 그리운 얼굴들도 꿈에서는 서로 만날 수 있습니다.   남북으로 갈리어 서로 만나지 못하는 사이라도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꿈길에는 38선이 없습니다.   정말 꿈을 꿀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입니까?   그러나, 이 꿈이란 사람의 마음대로 꿀 수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그립고 보고 싶은 얼굴이 있어, 꿈에 보려고 애를 써도 뜻대로 잘 안 되는 수가 많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해서 잠깐 꿈을 꾸게 된다 해도, 그 꿈이 곧 깨면 한층 더 안타까운 것뿐입니다.   여기에 생각을 둔 나는, 이번 꿈을 찍는 사진기를 하나 발명했습니다.   이는 결코 거리의 사진사들처럼 영업을 목적한 건 아닙니다.   내게는 안타깝게 그리운 아기가 있습니다.   나는 그 아기의 사진까지 송두리째 잃어 버렸습니다.   내가 이 사진기를 만들게 된 게, 그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자아, 쓸데없는 이야기가 길어졌습니다.   그럼, 인제 꿈을 찍는 방법을 설명해 드려야죠.   무엇보다 그게 더 궁금하실 테니까요.   지금 당신이 앉아 있는 방에서 나오는 한 줄기 빛이 있습니다.   그 빛은 바로 사진기가 놓여 있는 곳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꿈을 꾸기만 하면 그 꿈은 곧 사진기 렌즈에 비치게 됩니다.   꿈이 비치기만 하면, 사진기가 저절로 '쩔꺼덕'하고 사진을 찍어 버리는 것입니다.   필름에 사진이 찍히면 곧 현상하여 손님의 요구대로 크게 또는 작게 인화지(사진종이)에 옮겨 드립니다.   그런데, 문제되는 것은, 꿈을 꾸는 일입니다.   어떻게 짧은 시간에 꿈을 꿀 수 있으며, 또 꿈을 꾼다 해도 그게 정말 자기가 사진에 옮기고 싶은 꿈을 꾸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실로 내가 제일 오랫동안 연구에 고심을 한 것이 이것입니다.   꿈을 찍는 것쯤은 이것에 비하면 식은 죽 먹기였습니다.   그 문제를 풀기 위해서, 나는 잠 못 이루는 밤을 오래 가졌었고, 무수한 실패를 거듭하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나는 마음대로 꿈을 꿀 수 있는 방법을 발견했습니다.   실로 이것은 세계적인 아니 세기적인 발명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 그럼 당신도 곧 그리운 이를 만나는 꿈을 꾸십시오.   그리운 이의 꿈을 사진 찍어 드릴 테니.   그 방법 - 당신이 있는 방 한구석에 흰 종이와 한 장과 만년필 한 개가 놓여 있습니다.   당신은 그 종이에 그 파란 잉크로 당신이 만나고 싶은 이와 지난날의 추억의 한 토막을 써서, 그걸 가슴속에 넣고 오늘밤을 주무시오.   내일 날이 밝으면, 당신은 지난밤에 본 꿈과 꼭 같은 사진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갈 수가 있을 겁니다.   한 가지 미안한 것은, 이 곳은 산중이어서 손님들에게 대접할 음식이 준비되어 있지 못합니다.   미안하지만 하룻밤 그냥 주무셔 주십시오.   꿈을 찍는 사진관 아룀.     II.   나는 종이쪽에 이렇게 썼습니다.   살구꽃 활짝 핀 내 고향 뒷산 - 따사한 봄볕을 쪼이며, 잔디 위에서 같이 놀던 순이, 노랑 저고리에 하늘빛 치마 - 할미꽃을 꺾어 들고 봄 노래를 부르던 순이 - 오늘 밤 정말 우리는 만날 수 있을까?   아직 해가 지기엔 시간이 좀 남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내가 글 쓴 종이를 가슴에 품고 방바닥에 눕자, 방은 그만 캄캄해졌습니다.   참말 신기한 일입니다.   그러나, 나는 잠이 오질 않았습니다.   샘처럼 솟아오르는 지난날의 추억들.   정말 내가 민들레와 할미꽃을 좋아하는 까닭은 순이 때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순이의 그 노랑 저고리가 어쩌면 그 때 내 마음에 그렇게도 예뻐 보였을까요?   III.   "순아! 오늘은 정말 네게 꼭 해야 할 말이 있어. 감추려고 했지만 역시 알려 주는 게 좋을 거야. 그렇지만 순아, 울어서는 안 돼! 응?"   "무슨 얘기냐? 어서 말해 줘!"   "정말 안 울 테냐?"   "울긴 왜 우니? 못나게 …"   "그래! 픽하면 우는 건 바보야, 울지 말아 응?"   "그래! 어서 말해!"   "저어 …"   "참, 네가 바보구나, 왜 재깍 말을 못하니? 아이 갑갑해 - 어서 말해 봐!"   "저어, 말이지, 이건 정말 비밀이야, 우리 아버지도 어머니도 그랬어. 아무에게도 얘기해서는 안 된다고. 그렇지만 난 네게 숨길 수 없어. 우리는 며칠 있으면 38선을 넘어 서울로 이사를 간단다. 여기서야 살 수가 있어야지. 지난 해 8월 해방이 되었다구 미칠 듯 즐거워했지만, 우리는 토지와 집까지 다 빼앗기지 않았어? 지주라구. 그리구, 우리를 딴 데로 옮겨가 살라구 그러지 않아. 빈손이라도 좋아. 우리는 마음놓고 살 수 있는 자유로운 곳을 찾아가야 해 …"   "얘, 나보고 울지 말라더니, 제가 먼저 울지 않아?"   소학교를 졸업하면 중학교는 원산이나 함흥에 같이 가자던 순이, 너와 내가 헤어진 것은 겨우 소학교 5학년 때 …   IV.   이 얼마나 위대한 발명입니까?   생각한 대로 곧 꿈꿀 수 있고 그 장면을 곧 사진에 옮길 수 있다는 것은 …   잠을 깬 것은, 아니 꿈을 깬 것은 아침이었나 봅니다.   전혀 밖의 빛이 방안에 비치지 않아 때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내겐 시계도 없었습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문을 열고 사진사가 있는 방으로 가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문을 밀었으나, 문은 밖으로 잠겨져 있었습니다.   내가 손잡이를 돌리자 내 앞에는 한 장의 종이쪽이 날아 떨어졌습니다.   아직, 시간이 이릅니다.   그냥 거기서 2시간만 더 기다려 주십시오.   그러면 사진을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꿈을 찍는 사진관 주인 아룀. ]   "옳아, 아직 두 시간 더 있어야 된단다.   내가 너무 일찍 일어났는지도 몰라.   날이 아직 밝지 않았을까?   그 동안, 나는 어제 저녁 순이와 고향 뒷산에서 꽃을 따며 놀던 꿈을 다시 되풀이해 보자.   얼마나 아름답고 즐거운 꿈이었나!   사진은 어느 장면을 찍었을까?   나와 순이가 나란히 살구나무 그늘에 앉은 장면일까?   그렇지 않으면 순이가 노래를 부르는 장면일까?   그렇지도 않으면 순이가 내게 할미꽃을 꺾어 주는 장면일까?”   V.   내가 사진관 주인에게서 아직 채 마르지도 않은 사진 한 장을 받아 들었을 때, 나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순이와 나의 나이의 차이었습니다.   실지 나이로는 순이와 나는 동갑입니다.   그런데 사진에는 여덟 해나 차이가 있는 게 아닙니까?   순이의 나이는 열 두 살 그냥 그대로인데, 나는 지금 나이 스무 살이니까요.   그 동안 나만 여덟 해 나이를 먹은 것입니다.   생각하면,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사실 순이도 북한 땅 어디에 그냥 살아 있다면 꼭 내 나이를 똑같을 게 아닙니까.   그러나, 나는 그 뒤의 순이를 본 적이 없었습니다.   내 마음 속에 살아 있는 순이는 언제나 열 두 살 그대로입니다.   스무 살 - 스무 살이면, 제법 처녀가 되었을 순이, 머리채를 치렁치렁 땋았을까?   제법 얼굴에 분을 발랐을지도 몰라.   지금은 노랑 저고리와 하늘빛 치마가 어울리지 않을 꺼야.   모처럼 찍어 준 꿈 사진도 그런 걸 생각하니 우습기 짝이 없습니다.   그러나, 내게 있어서는 이게 제일 귀한 보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진을 가슴에 품은 채, 사진관 주인에게 몇 번이나 감사를 드리고 나는 그 곳을 나왔습니다.   벌써, 아침해가 하늘 높이 올랐습니다.   하루를 꼬박 굶었으나 나는 배고픈 생각이라곤 전혀 없었습니다.   내가 처음 앉았던 뒷동산에 와 앉아 다리를 쉬며 가슴속에 간직했던 사진을 꺼냈을 때, 나는 또 한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분명히 내가 넣었던 곳에서 꺼냈는데, 내가 사진관에서 받아 든 순희와 같이 찍은 사진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좋아하는 동화집 갈피 속에 끼어 있던 노란 민들레 카드였습니다.      꿈을 찍는 사진관   6·25 전쟁은 수많은 사람들에게서 사랑하는 가족과 고향 그리고 정다운 동무를 빼앗아 갔습니다.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기고 살아 남은 사람들은 모두들 가슴 속에 꿈에도 잊지 못할 사연과 그리운 얼굴들을 간직하고 살아가야 했습니다.   이 작품은 6·25 전쟁 이후, 모든 것이 파괴되고 그리운 추억만 남은 시대에 씌어진 작품입니다.   추억은 아름답고 소중한 것입니다.   오늘의 일이 언젠가는 꿈에만 나오는 그리운 추억이 될 것입니다.   그 때 꿈을 찍는 사진관이 있다면 정말 좋겠지요?   남쪽으로 내려온 주인공(나)은 어릴 때 같이 놀던 북쪽의 순이를 그리워합니다.   그 그리움이 꿈을 찍는 사진관으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주인공은 스무 살인데 사진 속의 순이는 아직도 열두 살 그대로라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추억 속의 모습은 언제나 마지막 본 그 때 모습으로 남아 있는 법이지요.      강소천   1915년, 함경남도 고원에서 태어났습니다.   1931년에 《아이생활》에 동화 를 발표하고, 1936년에 《소년》에 동시 을 발표하여 등단하였습니다.   주요 작품으로는 나 혼자 부른 합창> 등이 있습니다.   ■ 꿈을 찍는 사진관 - 동화 해설   '꿈, 고향, 그리움'은 강소천 아동문학의 키워드입니다.   강소천 아동문학 전집(배영사 간행) 총 6권에 실린 111편의 동화 중에 이 세 단어가 들어있지 않은 동화는 거의 없습니다.   강소천 동화는 이 세 단어를 넣어 각각 다른 방법으로 짠 비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시대의 문학은 그 시대인들의 삶을 표현합니다.    문학은 작가가 생존했던 동시대인들의 슬픔과 기쁨과 소망을 반영합니다.   그러나 어떤 문학은 동시대인들의 슬픔과 기쁨과 소망을 충실하게 반영하는 데 그치지만, 어떤 문학은 그들의 슬픔과 기쁨과 소망을 쟁취하는 방법을 제시해 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문학연구에서 이런 종류의 문학을 열쇠의 문학(이재선, 한국문학사)이라고 부릅니다.   한국문학사에서 볼 때 은 조선조 서얼차대의 불합리한 사회적 관습을 해결할 방법을 제시했고, 은 여성이 자기 존엄성을 지키는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영국의 는 영국 여성이 세계 최초로 참정권을 얻는 데 기여했으며, 미국의 은 흑인노예 해방을 여는 데 기여했습니다.   이렇게 인류 역사에서 볼 때, 문학작품은 새로운 사회 지평을 여는 열쇠의 역할을 해오고 있습니다.    문학은 사회적인 제도 뿐 아니라 과학과 발명의 문을 여는 열쇠의 역할도 해왔습니다.   는 잠수함을 만드는 열쇠가 되었고, 은 비행기 발명에 공헌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학의 열쇠의 기능은 더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습니다.   가 비행기 발명의 열쇠가 되었고, 은 자동문의 열쇠가 되었으며, 의 수직 상승의 모티브가 엘리베이터의 열쇠가 되지 않았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시각을 중심으로 하여 저는 오늘 강소천의 을 ‘열쇠의 문학’이라고 명명하고자 합니다.    ■ 해설 : 문학박사 남미영     꿈을 파는 집 강 소 천   지난 겨울 크리스마스 때, 나는 어느 친구로부터 한 쌍의 작은 새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언제나 부모도 처자도 없이 사는 외로운 신세라서 새에게라도 마음을 붙이고 살라고 가져다 준 건지도 모릅니다   참새보다도 훨씬 작은 새인데, 그보다도 더 검은 빛이 많아 보기에는 그다지 예쁘지 않았으나, 카나리아의 일종이어서 퍽 잘 운다고 하였습니다.   새장을 받아든 나는 무척 기뻤습니다.   그 날 밤엔 새 때문에 잠도 잘 오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자, 나는 새장 앞으로 갔습니다. 모이가 떨어지지나 않았나, 물이 더럽혀지지나 않았나, 추워하지나 않았나, 늘 이런 걱정을 하였습니다.   밖에 나갔다 집에 돌아와도 먼저 새장 있는 데부터 들여다보곤 하였습니다. 방 안에서 책을 읽다가도 새들이 우는 소리를 들으면 글을 읽던 눈은 어느 새 새장 있는 데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새는 정말 아름다운 목소리로 울었습니다. 그 소리는 마치 묘사음악에서 듣던 새 소리 같았습니다.   어렸을 때, 나는 묘사음악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숲속의 대장간'이니, '새 우는 하와이'니 하는 음악 소리 속에 섞여 들리는 새 소리는 어쩌면 그리도 신기했던지 모릅니다.   그런 새 소리를 가만히 듣고 앉았노라면, 어느 새 나는 '숲속의 대장간'을 좋아하던 그런 소년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그 때 내가 악기 소리로 흉내 내는 새 소리를 그다지도 좋아한 까닭은, 진짜 새 소리를 듣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릅니다.   농촌에서 나서, 농촌에서 자란 나는 눈 내리는 겨울만 되면, 추운 줄도 모르고 맷새잡이를 다니느라고 야단이었습니다.   사랑방 아저씨더러 새덫을 만들어 달라고 울며 조르던 일이 지금도 잊혀지질 않습니다.   지금도 내 기억에 뚜렷이 남아 있는 새 가운데, '콩새'라고 우리 마을 아이들이 부르던 새가 있었는데, 참새보다는 훨씬 큰 새였습니다. 다른 아이들이 그 새를 잡아가지고 다니는 것을 보면, 어찌도 부럽던지 모르겠습니다.   그게 바로 '꽃과 소녀'라는 책의 출판 기념회를 끝마치고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게 된 날이었습니다.    나는 집으로 돌아오면서, 내 곁에 앉았던 여류 소설가 김 여사가 '꽃과 소녀'의 사인첩에 쓰던 글귀를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내가 죽어 꽃이 된다면, 나는 지금이라도 죽고 싶다.'   나는 문득 별을 쳐다보며,   '꽃보다도 별이 더 아름답지, 나는 죽어 별이 되리라.'   그러나, 나는 문득 다시 집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내 한 쌍의 작은 새를 생각하며,   "별보다 더 아름다운 새다. 나는 죽어 새가 되리라." 라고 중얼거렸습니다.   벌써 효자동 전차는 끊어졌습니다.   나는 천천히 걸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오면서도 나는 꽃과 별, 별과 새, 이런 것을 생각해 봤습니다.   대문을 열기가 바쁘게, 나는 새장 앞으로 갔습니다.   나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철사로 꼭 동여맨 새장 문이 열렸고 새장 속에 들어 있어야 할 한 쌍의 새가 어디로 날아갔는지 없고, 빈 새장만 달려 있었던 것입니다. 그 때, 내 감정을 어떻게 말하면 좋을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얼마나 잤는지, 내가 잠을 깬 것은 벌써 아침 해가 중천에 떠오른 뒤였습니다.   잠을 깨자, 먼저 눈이 가는 것은 새장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일어나 새장 앞으로 걸어가지는 않았습니다.   전 같으면 얼른 일어나 새장 앞에 가서,   "밤새 잘들 잤니? 내 귀여운 아기들!"   하였을 것이나, 나는 자리에 누운 채 멍하니 새장 있는 곳을 바라보고만 있었습니다.   '텅 빈 새장…….'   이렇게 생각하니 내 마음까지 텅 빈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나는 벌떡 일어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어젯밤 나가버린 한 쌍의 내 새가 창가에 다시 날아왔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새들이 얼른 날아 들어오라고 유리창 문을 열었습니다. 그러나 새들은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나는 잠옷을 입은 채, 새들이 날아와 앉은 창가 나무 있는 데로 갔습니다. 그랬더니 새들은 나를 보자, 곧 날아서 길가 전선줄에 올라가 앉았습니다.   나는 대문 밖으로 나갔습니다. 새는 또다시 날아 딴 데 가 앉았습니다. 그러니까 새와 나의 거리는 언제나 비슷했습니다. 따라가면 날아가고, 날아가면 또 따라가고…….    그러는 사이 나는 새를 따라 한길을 지나, 골목길을 돌아서 어딘지 알 수도 없는 산 속에 들어와 버렸습니다.   새를 잃은 것만도 슬프고 안타까운 일인데, 새가 어디로 영영 날아가버려 다시 찾을 길이 없다고 단념했을 땐, 나는 벌써 내가 돌아가야 할 길까지를 잃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갑자기 나는 내가 기르던 한 쌍의 새가 원망스러졌습니다.    '그렇게 끔찍이 귀여워했는데, 왜 나를 이런 알지 못할 산 속에 꾀어다 놓았다는 말인가.' 하는 생각밖엔 나지 않았습니다.   하루 종일, 그러니까 조반도 점심도, 벌써 해가 뉘엿뉘엿 져가는 저녁인데도 빵 한 조각 먹지도 못하고 그저 산 속을 헤매 다녔으나, 길이라곤 나서지 않았고, 사람의 흔적도 전혀 없었습니다.   나는 비로소 배가 고픈 생각이 났고, 목이 마른 것을 느꼈습니다.   나는 어느 골짜구니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두 손으로 움켜 마시고, 바윗돌 위에 주저앉아, 뉘엿뉘엿 넘어가는 저녁해를 얼빠진 사람 모양으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해가 넘어가고, 저녁놀이 사라지고, 그리고 푸욱 내려 덮이는 어둠의 장막. 나는 이제 더 어디로 갈 곳도 없고, 갈 힘도 없었습니다.   바위 위에 앉은 바위 같은 나……. 그러나 나는 곧 다시 벌떡 일어났습니다. 불빛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 불빛이 어떤 종류의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한 나는, 그 불빛이 반짝이는 저쪽 편을 향하여 달음질쳐 갔습니다.    이런 산 속에 있는 집은 낮보다 도리어 밤에 더 찾기가 쉬울는지 모릅니다. 집 앞에 갔을 때, 나는 그게 사람이 사는 집인 것을 알고 몹시 기뻤습니다.   "계십니까?"   나는 이제 살았다는 듯이 대문을 두드렸습니다.   "누구요?"   "접니다. 대문을 좀 열어 주시오."   "저라는 게 누구요?"  하고, 대답하는 목소리는 퍽 늙은 할머니의 목소리였습니다.   "지나가다 길을 잃고 헤매던, 거리에 사는 젊은 사람입니다. 어서 대문을 좀 열어 주셔요. 들어가서 자세한 이야기를 할 테니까요."   그제야, 할머니는 문을 열고 나와 나를 맞아들였습니다.   이튿날 아침 날이 밝은 뒤, 밖에 나와서 처음으로 나는 이 집 문앞에 푸른 글씨로 써붙인 자그마한 간판을 보고 안 것이지만 그 간판엔, '꿈을 파는 집' 이라는 다섯 글자가 적혀 있었습니다. 그 밖엔 딴 글자도, 그림도,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물론 어젯밤 나를 맞아 주시던 할머니가 이 집 주인인 꿈을 파는 할머니라는 것도 곧 알았습니다.   할머니는 먼저, 내가 이 꿈을 파는 집에 찾아 온 까닭을 물었습니다. 나는 조금도 숨김 없이 죄다 이야기했더니, 할머니는 껄껄 웃으시면서,   "그럼 온 김에 꿈이나 하나 사가지고 가지."   하셨습니다.   "하나에 얼마씩인데요?"   "하나에 한 장이지."   "한 장이라니요? 백원입니까? 천원입니까?"   "돈 한 장이란 말이 아니고, 사진 한 장이란 말이야."   "예, 사진이요? 어떤 사진입니까?"   "사고 싶은 꿈의 사진이지." 하며, 할머니는 내게 자세히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내 지갑 속에는 주민등록증과 신분증명서, 그 밖에 몇 장의 증명서가 들어 있고, 그리고 이북에 두고 온 내 아이들의 사진이 석 장 들어 있었습니다.   나는 얼른 지갑 속에서 한 장의 사진을 꺼내 들었습니다. 순이와 웅이와 영이가 함께 찍은 사진입니다.   사진 한 장에 꿈을 한 번 보여 준다고 하니, 이 사진 한 장이면 나는 보고 싶은 세 아이를 한 꿈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었습니다. 내가 내 놓은 세 아이의 사진을 받아든 할머니는,   "벌써 4년 전 사진이로구먼, 지금 애들을 만나면, 아무리 아버지라도 잘 모르겠는데? 멀리들 버려 두고 왔군! 애들의 어머니는 보고 싶지 않소?"   "보고 싶지만, 사진이 있어야죠."   "음, 그거 안 됐는데……" 하고 할머니는 내 아이들의 사진을 자기 가방 속에 집어 넣더니, 콩알 만한 푸른 알약 한 개를 내게 내어 주면서,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 이 집을 나가서 당신이 어제 저녁 물을 마시던 곳에 가서 해가 뜨기를 기다렸다가 이 약을 잡수시오. 긴 설명은 필요 없으니……. 자 그럼 밤도 깊고 고단도 할 테니 그만 주무시오."   그러더니 할머니는 등불을 껐습니다.   그 뒤, 나는 어찌 되었는지 전혀 모릅니다. 잠이 깬 것은 날이 밝은 뒤였습니다.   나는 곧 어제 저녁 앉았던 바위 있는 데를 다시 찾아가, 두 손으로 물을 움켜 입에 문 뒤, 그 알약을 입에 넣고 물과 함께 꿀꺽 삼켜 버렸습니다.   약을 먹은 나는 금방 한 마리의 새가 되었습니다. 그러자, 내가 앉은 바위 앞 나무에 우리 집 새장에 들어 있던, 바로 어제 나를 여기까지 끌고 온 한 쌍의 새가 다시 나타났습니다.   "잘 잤소? 짹짹!"   "그래, 잘 잤다. 쫑쫑쫑."   "그럼, 곧 떠납시다."   한 쌍의 새는 내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떠나다니, 어디로 떠난다는 말이냐?"   "콩새의 고향! 세 아이를 만나러 가야지 않아요? 짹짹!"   나는 그제서야, 이 한 쌍의 새가 나를 데리고 고향 집으로 가려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 그럼 곧 떠나자. 쫑쫑쫑."   우리 세 마리 새는 하늘 높이 날아올라 북쪽으로 날아갔습니다.   한나절이 되어 우리는 내 어릴 때 고향에 다다랐습니다.   "아, 반가운 내 고향 하늘이여! 산과 강물이여! 그리고 나무와 숲이여! 그러나, 있어야 할 내 집과 내 꽃밭은 없구나!"   나는 나뭇가지에 앉아, 이렇게 탄식하며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그러자 산으로부터 내려오는 세 아이, 그것은 틀림없는 어젯밤 꿈할머니에게 준 사진에 있는 내 아이들이었습니다.   누더기를 입고, 맨발에 파리해진 세 얼굴!   나는 나뭇가지에 앉아 그만 목놓아 울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얘, 저게 콩새가 아니냐?"   "응, 그래, 저게 콩새야. 우리 아버지가 늘 좋아하시던 콩새야."   "참 지금 우리 아버지는 어디 계실까?"   세 아이는 가던 걸음을 멈추고 앉아, 나를 쳐다보며 눈물이 글썽글썽하였습니다.   "내가 너희들의 아버지란다, 쫑쫑쫑."   그러나, 새가 된 내 말을 내 아이들이 알아들을 리 없습니다.   "누나, 어서 내려가! 배 고파! 나 밥 줘!"   제일 나이 어린 것이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나는 더 이상 내 아이들의 얼굴을 보고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훨훨 날아 마을을 떠났습니다.   "고향아! 잘 있거라. 내 아이들아! 잘 있거라.   내 이제 곧 다시 오리라.   새가 아니라 버젓이 너희들의 아비가 되어,   이 고향의 새로운 임자가 되어, 태극기 앞세우고 찾아오리라.   그 때까지만 참아다오. 고향아! 그리고 내 아이들아!"   한 쌍의 작은 새들도 내 뒤를 따라 날아왔습니다.   나와 새들이 38선을 넘어 서울 거리에 날아든 것은 어스름 저녁 때였습니다.   약 기운이 풀리기 시작했는지, 그 가볍던 내 날개는 점점 무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그만 더 날지 못하고, 어느 전신줄 위에 날아 앉았습니다. 앉기가 무섭게 막 졸음이 오는 것이었습니다.   "꼬박!"   나는 전신주에서 졸다가 그만 땅에 떨어졌습니다.   퍼뜩 잠이 깨어 정신을 차렸을 때, 나와 함께 날아오던 한 쌍의 새는 어디 갔는지 없고, 나만 혼자 길가에 우두커니 서 있었습니다.   '여기가 어딜까?' 하고 멍하니 서서 사방을 휘휘 둘러보았더니, 바로 세종로 네거리였습니다. 내 앞에는 효자동 가는 전차가 와 섰습니다. 나는 얼른 전차에 올라탔습니다.   "여어! 강 선생님! 어디 갔다 오는 길이오?" 하고 날 아는 사람이 인사를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예, 예! 좀……."   나는 그 이상 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작선동에서 전차를 내려, 골목길을 걸어 집으로 들어오며, 나는 여지껏 일어난 일을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나는 집 대문을 열자, 얼른 새장 있는 데로 가 보았습니다.   새장 문은 여전히 닫혀 있고, 그 속에는 한 쌍의 새가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벌써 오랫동안 단잠을 자고 있다가 내가 들어오니까 놀라 깬 것 같았습니다.   조용히 앉아 있는 것을 보면 38선을 나와 함께 넘은 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나는 얼른 주머니 속에서 지갑을 꺼내 보았습니다. 세 아이가 가지런히 서서 찍은 사진도 그냥 그대로 있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어찌 된 영문인지 알 길이 없었습니다.   '옳아, 꿈 할머니는 내가 불쌍하니까, 그 사진을 내가 자는 동안 다시 또 지갑 속에 넣어 주셨는지도 몰라. 이 사진만 있으면 나는 다시 그 애들을 만나러 갈 수가 있으니까.'   나는 이렇게 생각했으나, '꿈을 파는 집'이 어느 산에 있는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알 길이 없고, 설사 안다 하여도 새가 되어 다시 고향 집에 가 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전쟁으로 인한 고통과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   이 동화를 읽다 보면, 북쪽 고향 땅에 삼 남매를 두고 온 주인공의 자식을 그리워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느껴져서 가슴이 저절로 찡해 옵니다.   작품 속에서 주인공은 가슴 속 상처와 외로움에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아마 그 상처는 전쟁을 겪고 난 후의 아픔일 것입니다. 우리 나라는 1950년 한국전쟁 때 한민족끼리 서로 반대편이 되어 총과 칼을 겨누었고, 또한 그로 인해 한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런 전쟁의 상처와 아픔은 민족의 가슴 속 깊이깊이 박혔고, 남과 북으로 나뉜 채 생이별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가슴에는 치료할 수 없는 고통이 뿌리 깊게 박혀 버렸습니다.   주인공은 전쟁 중에 가족과 떨어져 홀로 남쪽에 남게 되었습니다. 반대로 가족들은 북쪽에서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겠지요. 수많은 슬픔 중에서도 부모와 자식 간 이별이 주는 슬픔이 가장 큽니다. 주인공은 '꿈을 파는 집' 할머니를 만나면서 자신의 가슴 속 꿈을 사게 됩니다. 그리고 그 대가로 한 마리의 새가 되어 자유롭게 훨훨 날아서 보고 싶어 하던 아이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날아갑니다. 꿈을 판다는 환상적인 공간은 주인공으로 하여금 현실에서 느끼는 고통과 슬픔을 잊게 해 주었습니다. 새가 되어 자유롭게 날아간 주인공은 그토록 애타게 그리워하던 가족들을 만났습니다. 비록 새의 모습으로나마 보고 싶었던 아이들을 만나 가슴 속 응어리를 풀게 됩니다.   비록 꿈을 꾼 것이라 하더라도, 현실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라 해도, 간절하게 바라던 소망을 이루게 해 준 그 꿈은 아주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마음 속을 가득 채운 희망과 소망의 샘을 퍼올린다면 현실 속의 두려움과 외로움, 절망감도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동화는 전쟁의 아픔과 자식에 대한 끝없는 그리움과 소망을 절실하게 보여 줍니다. 또한 이런 주제를 뒷받침하기 위해서 환상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꿈을 파는 집'과 그 주인인 '할머니',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새'로 변하는 장치들은 환상 그 이상의 아름다움일 것입니다.   현실의 어려움과 고통에서 벗어나 환상이라는 편안하고 안락한 세계로 이끌고 들어감으로써, 글을 읽는 독자들의 마음 속에 잠들어 있던 꿈과 환상, 그리움과 희망을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환상 속 여행을 함께 하며, 가족과 헤어져 혼자 사는 주인공의 안타까움을 나눠 가지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돌멩이 강 소 천 돌멩이 (1)   ■ 경구의 혼자 생각 돌멩이 - 큰 돌멩이, 작은 돌멩이, 둥근 돌멩이, 넓적한 돌멩이, 흰 돌멩이, 검은 돌멩이, 노란 돌멩이,알록달록한 돌멩이. 돌멩이 - 돌멩이는 어디든지 있다. 산에도 있고 들에도 있다. 길바닥에도 있고 냇가에도 있다. 땅 위에도 있고, 땅 속에도 있다. 돌멩이 - 둥근 돌멩이, 새알 같은 돌멩이, 새하얀 돌멩이, 달걀 같은 돌멩이, 달걀에 귀가 없는 것같이, 돌멩이에도 귀는 없다. 달걀에 눈이 없는 것같이, 돌멩이에도 눈은 없다. 달걀에 입이 없는 것같이 돌멩이에도 입은 없다. 달걀에 발이 없는 것같이 돌멩이에도 손과 발은 없다. 달걀 - 달걀은 움직이지는 않아도 죽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돌멩이 - 돌멩이는 달걀처럼 산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죽은 것도 같지 않다. 여름 날 나는 냇가에 나가 돌멩이를 하나하나 만져 본다. 돌멩이는 따뜻하다. 금방 낳은 달걀처럼 따뜻하다. 돌멩이도 산 것인지 모른다. 돌멩이도 마음을 가졌는지 모른다. 돌멩이도 생각할 줄 아는지 모른다. 나는 돌멩이를 볼 때마다 여러 가지 생각을 하여 본다. 커다란 돌멩이 옆에 놓여 있는 조그만 돌멩이를 볼때, 나는 그 커다란 돌멩이가 어쩐지 아빠 돌멩이나 엄마 돌멩이 같아 보이고, 조그만 돌멩이가 어쩐지 아기 돌멩이들만 같아 보인다. 여름날이면 냇가에 수많은 아이들이 나와 돌멩이를 주워 가지고 놀지만 나처럼 돌멩이에 대하여 생각해 보는 아이들이 몇이나 될까? 언제인가 나는 냇가에 빨래하러 나온 귀순이에게 이런 말을 물어본 일이 있었다. "귀순아! 너 이 큰 돌멩이 옆에 있는 작은 돌멩이를 보면 어떤 생각이 나니?" "어떤 생각이라니?" "그래, 아무런 생각도 안 난단 말이야?" "글세 어떤 생각이 날까? 내 이제 생각해 봐서 생각이 나면 말하지, 아직 아무런 생각도 안 나니까, 호호호 …" "아, 무얼 생각해 볼 게 있담? 얼른 보자, 생각나는 게 없단 말이냐?" "없어, 없어. 몰라, 몰라. 난 빨래할 테야 …" 이런 대답은 귀순이만이 아닐는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도 냇가에 나와 앉아 수많은 돌멩이를 만져 보기도 하고 한 개 한 개 돌멩이에 대하여 생각해 보기도 한다. 돌멩이 - 나는 돌멩이와 친하고 싶다. 나는 돌멩이와 얘기하고 싶다. ■ 돌멩이의 이야기 나는 냇가의 한 개의 커다란 돌멩이다. 들은 이야기, 본 이야기,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고 많지만, 내게는 입이 없다. 내게 만일 입이 있다면, 나는 늘 나에게 이야기를 들려 달라는 경구라는 아이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을 게다. 그저 나는 언제나 이렇게 속으로 생각하고만 있다. 언제 내가 말할 수 있게 된다면, 한 번 이렇게 말해 보련만 - 우리들이 살아간다는 것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과는 아주 딴판이다. 물론 짐승이나 새들과도 같지 않다. 첫째로 우리는 사람들처럼 옷을 입지 않는다. 둘째로 우리는 사람들처럼 밥이나 떡이나 과자나 과일 같은 것을 먹지도 않는다. 셋째로 우리에게는 집이 없다. 우리는 그저 이 곳서 저 곳으로 옮겨지는 대로 가서 산다. 여기저기 걸어다니지도 않는다. 우리는 열이나 스물 이상, 더 많은 셈을 셀 줄 모르니까, 이 냇가에 우리의 일가 친척이 얼마나 되는지 모른다. 우리뿐만 아니라, 이 마을에 사는 사람들도 아마 모르리라. 더구나, 한 해 여름 장마를 한 번 치르고 난 뒤에는, 우리의 동무들이 수없이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고, 그 대신 또 다른 동무들이 우리 곁에 와 살게 된다. 내가 이 냇가에 온 지도 벌써 여러 해 되지만, 나도 본시 여기서 나지는 않았다. 내 고향은 본시 깊은 산골이다. 고향 - 사람들은 한 해 , 두 해만 다른 곳에 가 살아도 고향이 그립다고들 하더라. 그러나 한 번 떠난 후 다시 고향에 가 보지 못한 나야, 고향이 그리우면 얼마나 그리울 것이냐. 아아, 지금 내 고향은 몰라보게 변하였으리라. 나는 벌써 고향으로 가는 길을 잊은 지 오래다. 그러나 나는 아직 내 부모 동생들의 얼굴을 잊지 않았다. 언제 어디서 어떠한 인연으로 다시 만나게 될는지.  그렇지만 그걸 누가 알 수 있으랴? 꼭 만나리라 믿을 수도 없는 일이다. 지금 나는 단 홀몸이다. 단 하나밖에 없던 내 아들 차돌이까지도 얼마전에 잃어버렸다. 나는 내 나이 지금 몇 살인지 모른다. 그러나, 이 냇가에서 내가 제일 나이 많으리라. 내 나이 어렸을 때 - 그 때는 참 옛날이다. 우리 할머니는 어린 나를 안고 늘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나는 지금도 그 이야기를 잊지 않는다. 가을 볕이 따스하다. 졸음이 온다. 곁에 있는 아이 놈들은 다 자나 보다.  오늘은 아무도 냇가에 나오지 않는구나. 사방이 조용하다. 이 날이면 나는 곧잘 차돌이 꿈을 꾼다. 차돌이 - 나는 차돌이가 몹시 그립다. "사랑하는 내 아들 차돌아!" 불러 보고 싶은 날이다. 그러나, 차돌이는 내가 부른대도 듣지 못하리라. 차돌이는 앞마을 영이네 집에 가 살고 있다. 영이 할아버지 쌈지 속에 들어가 살고 있는 내 아들 차돌이가 나는 그립다. 지난 여름, 나는 차돌이를 만났었다. 차돌이 - 내가 지금 내 아들을 차돌이라고 부르지만, 지금 내 아들 이름은 차돌이가 아니다. 지금 내 아들 이름은 부싯돌이다. 사람들이 부르는 내 아들의 이름이다. 부싯돌 - 그러나, 내 아들의 이름을 이렇게 부르고 싶지는 않는다. 차돌이 - 내 아들의 이름은 언제나 차돌이다. 벌써 오래 전 일이다. 어느 여름 날 이 마을에 사는 남이하고 영이가 이 냇가에 와서 돌멩이를 주워가지고 놀다가, 영이가 그 만 내 아들 차돌이를 쥐더니, "남이야! 이 돌멩이 참 예쁘지?" "참!" "이거 우리 할아버지 갖다 드릴까?" "할아버지가 돌멩이는 해서 뭘하게?" "부싯돌 하지, 부싯돌 …" "참, 그거 부싯돌 했으면 좋겠다." 이리하여 내 아들 차돌이는 그만 영이의 손에 잡혀 영이네 집에 가게 되었다. 여름마다 나는 영이 할아버지가 이 냇가에 나오기만 눈이 빠지도록 기다린다. 지난 여름, 영이 할아버지가 기다란 담뱃대를 가지고 이 강변에 왔을 때, 나는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쌈지 속에서 영이 할아버지가 내 아들을 꺼내었을 때, 나는 얼른 아들의 얼굴을 바라봤다. 차돌이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글썽했던 것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아아, 또 눈물이 난다. 그 때 차돌이와 나는 오래간만에 만났지만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울기만 했다. 영이 할아버지는 차돌이와 나 사이를 영 모르는 모양이었다. 담뱃불을 붙이자 영이 할아버지는 내 아들 차돌이를 다시 쌈지 속에 넣어 버리고 말았다. 아아, 벌써 해가 지나 보다. 벌써 어둠이 오나 보다. 벌써 하늘에는 별들이 하나 둘 반짝이기 시작하나 보다. 오늘 밤도 어젯밤처럼 달이 밝으리라. 오늘 밤은 차돌이가 그리워서 어떻게 잠이 드나? 귀뚜라미는 왜 저리도 몹시 우느냐. "내 아들 차돌아, 쌈지 속에서나마 편히 잠들거라." 날씨가 이리 따뜻한 것을 보니 아마 또 봄이 왔나 보다. 음산하던 가을이 간 후에, 춥던 겨울이 간 후에 오는 것은 언제나 봄인가 보다. 다 죽은 줄 알았던 나뭇가지에 눈이 트나 보다. 다 죽은 줄 알았던 금잔디가 다시 파래지기 시작하나 보다. 싹이 트나 보다. 눈이 트나 보다. 잎이 피나 보다. 지금은 싹트는 때, 지금은 눈트는 때, 지금은 잎 피는 때 … 아아, 나는 갑갑하다. 아아, 나는 답답하다. 나는 왜 돌멩이가 되었나? 돌멩이는 왜 싹트지 못하나? 돌멩이는 왜 눈트지 못하나? 돌멩이는 왜 잎 피지 못하나? 돌멩이 - 몇 백 년 봄을 맞이해도 싹 나지 않고, 눈 트지 않고, 잎 피지 않는 돌멩이. 나 - 나는 이런 커다란 돌멩이가 되기보다 조그만 한 개의 밀알이 되고 싶다. 한 개의 달걀이나 새알이 되고 싶다. 한 개의 옥수수알이나, 감자알이 되어 보고 싶다. 아무래도 나는 이 냇가에 굴러 다니는 아무 쓸데없는 물건인가 보다. 누가 나를 들어다 영이네 집 토방돌을 만들어 주었으면 좋으련만 …  는 한 개의 쓸 수 있는 물건이 되어 보고 싶다. 벌써 버들가지에 물이 오른가 보다. 아이들의 버들피리 소리가 들려 온다. 확실히 봄이 왔구나, 봄이. 아아, 나는 한 가지의 버들이라도 되었으면 얼마나 좋았겠느냐? 나는 노래할 수 있으리라. 나는 경구와 친할 수 있으리라. 봄이다. 나도 눈 트고 싶다. 나도 자라고 싶다. 아아, 갑갑하다. 아아 답답하다. 나는 돌멩이다. ■ 돌멩이의 이야기 오늘은 경구가 오는 날이라고 계성이와 진수, 영이는 몇 차례나 이 냇가에 나와 앉아 경구를 기다렸는지 모른다. 그러나 경구는 오지 않는다. 나는 어쩐지 서운한 생각이 난다. 영영 못 만나 볼 내 아들 차돌이 생각도 난다. 강을 건너가고 건너오는 사람이 왜 이리 많을까? 옳아! 낼모레가 희성이와 귀순이의 결혼식 날이라지? 벌써 해가 서산으로 꼴깍 숨어 버렸다. 가을 바람이 시원스레 불어온다. 아마도 경구가 오늘은 못 오나 보다. 아이들이 지껄이며 또 나온다. 계성이와 진수와 영이로구나. "우리 이 강을 건너 웃마을까지 마중을 갈까? 안 올리가 없는데 …" "그래, 가 보자." 계성이와 진수와 영이는 강을 건너간다. 어디까지 경구의 마중을 가려느냐? 어둠이 점점 깊어 간다.  하늘에는 별의 수가 점점 많아진다. 풀벌레의 울음소리가 점점 높아진다. 경구는 안 오나 보다. 계성이와 진수아 영이는 왜 돌아오지 않느냐? "어어이, 어어이." 사람들 부르는 소리가 난다. 아이들이 돌아오나 보다. "경구가 왔다." 기쁨에 넘치는 계성이의 목소리로구나. 경구가 왔구나, 정말 온다는 날 왔구나. 경구야, 어서 건너 오너라, 더 어둡기 전에 네 얼굴이나 좀 보자. 경구가 강을 건너왔다. 진수와 계성이와 영이와 경구, 얼마나 너희들은 친한 친구들이냐? 그들은 웃으며 지껄이며 내 앞으로 온다.  "얘들아! 우리 여기서 잠깐 쉬어 가자!" 아아 낯익은 경구의 목소리로구나, 반가운 경구의 목소리로구나. "경구야! 그 동안 잘 있었니?"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경구는 몰라보게 컸다. 삼 년 동안에 아주 어른이 된 셈이다. 경구는 내 앞에 오더니 아무 말 없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다. 말문이 막혔나 보다. 경구의 손이 눈가로 가는 것을 보아 나는 경구가 우는 줄을 알았다. 경구의 부드러운 손이 나의 등을 어루만져 준다. 나도 따라 울었다. "내일 다시 만나자, 돌멩이야." "잘 가거라. 경구야!" 경구는 친구를 따라 천천히 마을로 들어간다. 아! 경구는 만났거만 내 아들 차돌이는?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아들이라면 이다지 슬프지는 않았으리라. 휴우, 이젠 차돌이 생각을 하지 말리라. "경구, 경구, 경구, 경구가 왔다." 내일은 경구가 친구를 데리고 이 냇가에 나오리라.  그러나, 희성이와 귀순이 만은 이 냇가에 나오지 못하리라. 생각하면 우습고도 재미있는 일이 아니냐? 한 마을에서 나서 같이 놀고 싸우고 자라던 아이들이 벌써 저렇게 커서 장가를 가느니 시집을 가느니 야단이니 아무도 희성이와 귀순이가 어려서 이런 우스운 일이 있었다는 것을 모르리라. 그게 아마 희성이와 귀순이의 나이가 열 살 하고 겨우 한두 살 먹었을 때였으리라. 한창 추워지는 초겨울 어느 날 귀순이가 냇가에서 빨래를 하느랍시고 또닥거리는데 희성이가 마침 징검다리를 건너오다가, 이걸 보고 장난 잘 하는 아이인지라 슬그머니 돌멩이 하나를 들어 귀순이가 있는 앞에 퉁 하고 던지는 바람에 그만 물이 튀어서 귀순이가 옷을 함빡 적셨다. 이걸 본 희성이는 너무 우습고도 고소해서 징검다리 중간에 선채 깔깔깔 웃다가 그만 고무신 한 짝을 물에 떨어뜨렸다. 그러나, 귀순이는 이걸 보고 고거 싸다고 가만히 흘러가는 고무신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던 모양인지, 제 앞으로 흘러가는 고무신을 빨래 방망이로 끌어 내어 희성이에게 주었더니, 희성이는 그만 얼굴이 빨개서 고무신을 받아 신고는 뺑소니를 쳤다. 희성이도 컸다. 귀순이도 컸다. 아니 경구는 더 컸다. 세월이 잠깐이다. 빠알간 아침해가 떠오른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희성이와 귀순이의 결혼식이 지나니 이 냇가는 전같이 조용하다. 경구는 몇 날이나 더 이 곳에 머무를는지 모르겠다.  이건 또 누구의 휘파람이냐, 경구로구나. 이 쪽 건 누구냐? 영일 테지, 옳아 영이다. 경구와 영인 무슨 이야기가 그리 많으냐? 그럴 테지, 삼 년이나 모아 두었던 하고 싶은 얘기가 많을 테지. 경구와 영인 내 옆에 와 앉아 별별 이야기를 다 한다. 그러다가 그들은 돌아간 영이 할아버지 이야기를 또 시작한다. 경구는 웬일인지 얼른 호주머니에 손을 넣는다. "나는 이 부싯돌을 볼 때마다 너의 할아버지 생각이 나더라." 부싯돌이라니? 그게 사람이 부르는 내 아들 차돌이의 이름이 아니냐? 내 마음은 몹시도 두근거렸다. 나는 그만 정신이 아득하였다. 경구는 정말 내 아들을 호주머니 속에서 꺼내었다. "경구야! 그게 바로 내가 여기에서 주운 것이란다. 남이하고 놀다가 주운 건데 할아버지 부싯돌 하라고 그런 거야." "그래 나두 안다, 그런 줄을. 너의 할아버지가 그런 이야기를 하시며 주시더라." "그게 바로 이 큰 돌멩이 곁에 있었어." "어디 이 돌멩이 곁에?" "응." 경구는 갑자기 무엇을 깨달은 모양이다. 차돌이와 내가 아버지와 아들인 것을 알아냈는지도 모른다.  나는 차돌이를 알아봤다. 차돌이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린다. "아버지!" "차돌아!" 그러나, 영이나 경구 귀에 이런 말이 들릴 리 없다. "영이야! 너 이런 큰 돌멩이 곁에 조그만 돌멩이가 있는 것을 보면 어떤 생각이 나니?" 바로 이건 시집간 귀순이에게 묻던 말이다. 오래 전부터 경구가 이 곳을 떠나기 전 귀순이의 나이 아직 영이 같을 때에 묻던 말이다. 귀순이는 그 말 대답을 못한 채 나이 먹어 시집을 갔다. "큰 돌멩이는 아빠나 엄마 돌멩이 같고, 작은 돌멩이는 아가 돌멩이들 같애 … 호호호 …" "영이야? 너두 그렇게 생각되니?" 경구는 너무도 기쁘고 좋은 모양이다. "영이야? 그럼 이 차돌은 이 커단란 돌멩이의 아들일지도 모른다. 아니 아들일 게다. 그러니 우리 이걸 옆에 놓아 주자!" "참말, 그랬으면 좋겠어." 경구와 영이는 나와 차돌이를 번갈아 바라보더니 빙긋이 웃는다. "차돌아 - 그 동안 잘 있었니?" "예, 아버지도 잘 계셨어요?" "응, 난 잘 있었다. 정말 나는 내가 경구를 따라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난 꼭 네가 영이 할아버지 무덤 속에 들어가 있을 줄만 알았다." "나는 그 동안 경구의 호주머니 속에 들어가 잘 있었어요. 내 인제 천천히 그 곳 이야기를 아버지께 해 드리지요." "그래!" "그 곳서 나는 늘 이 곳이 그립고 아버지가 그리워서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나두 늘 네가 그리워서 울었단다." "정말, 아버지 - 내일 모레나 글피는 경구가 또 이곳을 떠나간대요." "경구가 떠나가?" 나는 얼른 머리를 들어 경구와 영이가 있었던 자리를 바라봤으나 그들은 무슨 이야기를 하면서 벌써 저 쪽 버들 있는 곳으로 사라져 버렸다. "경구는 착한 아이다. 좋은 아이다. 우리에게 제일 고마운 아이다. 우리는 경구의 앞날이 복되기를, 그리고 빛나기를 아침마다 밤마다 하늘을 우러러 빌자!"  "그럽시다, 아버지." 오오, 하늘이여! 경구의 앞길에 밝은 빛을 비추어 주옵소서 돌멩이(2) ■ 경구의 혼자 생각 내가 고향을 떠나 이 곳에 온 지도 벌써 석 달이 지났다. 내 머리에는 아직도 그 때 그 일이 잊혀지지 않는다. 세상에 나서 열 두 해를 자란 정든 내 고향, 내 마을, 내 집, 내 동무들을 두고 떠나던 내 슬픔이란 말할 수 없이 컸었다. - 경구야! 잘 가거라. 가거든 곧 편지해라! 하던 귀순이의 목소리라든지, - 그 곳 가도 학교에는 계속하여 다녀라! 하던 남이의 목소리라든지, - 언제 한번 올 테냐? 하던 영이의 목소리가 아직도 내 귀에 들리는 듯 쟁쟁하다. - 귀순아! 영이야! 남이야! 보고 싶구나! 내가 지금 여기서 소리질러 그 애들을 불러 본대도 그 애들은 내가 부르는 줄을 알 리 없으리라. 아직도 나는 그 때 그 일을 잊어 본 적이 없다. 바로 내가 집을 떠나던 전날이다. 나는 진수와 계성이를 데리고 냇가에 나와 앉아,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계성아! 난 내일 떠난다.” “벌써 영이에게서 들었다.” “그럼 진수도 아니?” “..............” 진수는 말문이 막혔는지, 고개만 아래위로 약간 끄덕거릴 뿐, 말이 없다. - 진수야! 계성아! 너희들은 지금 무엇하고 있느냐?  제일 보고 싶은 내 동무들아! “경구아!” 진수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나를 부르더니 이런 말을 물어 본다. “너 그 곳 가면 우리들은 아예 잊어버리고 말 테지? 그 곳 가면 또 다른 친구가 많이 생길 테니.” 나는 진수가 왜 이런 말을 묻는지를 알았다. 그 곳 가도 이 곳에 남아 있는 우리들을 잊지 말라는 뜻이리라. “몇 해만 지나면 경구도 나이 먹고 키가 크면 아무리 먼 곳에 가 있을지라도 고향에 찾아올 수 있을 테지. 경구야! 어서 커라.” 계성이가 이런 말을 하며 하하하......하고 웃었으나, 계성이도 사실은 나처럼 흠뻑 마음이 슬펐으리라. “경구야! 네가 좋아하는 버들피리나 좀 불어 보렴.” 나는 진수의 말에 못 이겨서가 아니라, 내일이면 이 정든 고향과 사랑하는 동무들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진수의 말과 같이 버들피리라도 힘껏 불어보고 떠나고 싶은 생각이 났다. 우리 세 동무는 아무 말 없이 버들피리를 만들었다.  사실 버들피리는 나보다 계성이가 훨씬 더 잘 부는 편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내가 먼저 부는 것이 순서일는지도 모른다. 나는 피리를 입에 물었다. 전 같으면 아주 흥이 나서 잘 불었을 버들피리지만, 이것이 떠나는 마지막 피리라고 생각하니, 그만 목이 메고 숨이 가빠서 좀처럼 불수가 없다. 나는 마디마디 끊어지는 힘없고 흥 안 나는 피리를 조금 불었으나, 너무 싱거운 피리였다. “나는 못 불겠다. 너희들이나 좀 잘 불어 봐라. 내일 떠나는 나를 위하여 실컷 들려 다오.” 진수가 피리를 물고 불기 시작했다. 그러나 진수는 불다 말았다. 그 잘 부는 계성이도 역시 조금 불다 말았다. “자아, 그럼 우리 다 함께 불어 보자. 내일 서로 이별한다는 생각일랑 아예 말고, 기쁘게 흥이 나게 불어 보자.” 그 날 나는 있는 힘을 다 내어 이렇게 즐거운 듯이 말을 했다. 우리는 잠깐 동안 모든 생각을 잊어버린 듯이 피리를 불었다. “경구야! 이러고 보니 오늘이 학교 졸업식날 같구나.” “참, 재학생들이 졸업 노래를 한 절 부르고 졸업생들이 한 절 부르고, 마지막엔 다같이 부르고......” “하하하......참 그래......그런데 오늘 우리는 순서가 조금 바뀌었어......” “정말......우리가 먼저 불고 경구가 두 번째로 불어야겠던 걸.” 눈을 감으니 계성이의 웃는 낯이 눈앞에 또 나타난다. 나는 이 이상 더 생각하지 않는 것이 옳으리라. 더 생각한대야 눈물나는 기억밖엔 더 없을 터이니, 나는 또 냇가로 가리라. 돌멩이나 주우며 내 마음을 달래 보리라. ■ 돌멩이의 이야기 또 여름이 왔다. 여름처럼 우리 돌멩이들에게 답답한 때는 없다. 냇가에 있으면서도 목욕 한 번 해보지 못하는 우리들이기 때문이다. 그저 우리는 눈이 빠지게 하늘만 바라볼 뿐이다. 검은 구름이 뜨기만 바라고 소나기가 오기만 바랄 뿐이다. 날씨가 점점 더워 갈수록 이 냇가는 점점 더 분주해 간다. 오늘도 이 마을 아이들이 많이 나와 목욕을 하며 놀았다. 진수, 계성이, 태유, 상덕이, 계림이, 선우, 귀봉이 … 아무리 보아야 경구는 없다. 경구가 있을 리 없다. 그러나, 나는 행여나 경구나 나오지나 않았나 하고 경구를 찾아본다. 그렇다. 경구는 갔다. 머얼리 멀리 알지 못하는 곳으로 이사를 갔다. 나는 경구가 정말 좋았다. 경구도 나를 퍽 좋아했다. 경구는 곧잘 다른 아이들 몰래 이 냇가에 나와, 내 등에 걸터앉아 무얼 자꾸만 생각하며 먼 산을 바라보았다. 경구네가 이 마을에서 살 수가 없어, 외삼촌네가 있는 어느 먼 곳으로 이사를 간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얼마나 가슴이 뜨금하고 서글펐는지 모른다. 경구가 이 마을을 떠나던 전 날, 경구는 나의 몸을 어루만지며,  "아아, 사랑하는 돌멩이야, 내가 네 위에 앉아 보기도 오늘이 마지막이로구나!  돌멩이야! 너도 잘 있거라 널랑은 부디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지 말로, 이 냇가에서 오래오래 살아라. 아마 이 마을에서 지낸 모든 일을 네가 제일 잘 알리라 언제나 무얼 생각하고 혼자 슬퍼하던 나를 잘 아는 것도 너밖엔 없으리라. 나는 갑갑할 때마다 너를 찾았고, 마음이 슬플 때마다 너를 찾아 나와,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졸랐었지 돌멩이야, 부디 잘 있거라. 나는 내일이면 영영 마을을 떠난다." 나는 경구가 그립다. 내 아들 차돌이 만큼이나 그립다. 경구는 올는지 모른다. 그러나, 차돌이는 영영 다시 만나지 못할 것 같다.  내 아들 차돌이를 부시 쌈지 속에 넣어 가지고 다니던 영이 할아버지가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났으니, 내 아들 차돌이도 같이 파묻혀 버렸을 것이다. 차돌이가 내 아들인 줄을 영이가 알았다면, 그리고 차돌이가 그리워 내가 밤마다 남 몰래 우는 줄을 영이가 알았다면, 영이는 할아버지 쌈지 속에서 내 아들 차돌이를 꺼내어 내 곁에 갖다 놓아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영이는 그런 것을 전혀 모르는 모양이다. 경구라면, 혹시 그런 생각을 할른지 모르지만, 영이나 계성이나 진수나 귀순이가 그런 생각을 하지는 못하리라. 아이들의 지껄이는 소리가 나는 것을 보니 또 누가 나오는가 보다. 누구냐? 어디 보자? 귀순이, 서분이, 이 쪽은 누구냐? 영이다, 영이다. 나는 말하고 싶다. 나는 말하고 싶다. 영이에게 할 말이 있다. 물어볼 말이 있다. 아이 갑갑해. 내게는 왜 입이 없나? 나는 왜 말할 수 없나? "영이야, 너 내 아들 차돌이를 어쨌니? 너의 할아버지 부싯돌 하겠다고 주워 간 내 아들 차돌이를 어쨌느냐 말이다. 너의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날 때 쌈지 속에 넣은 채, 그냥 넣어 할아버지와 함께 내 아들을 관속에 넣어 보냈느냐?" 말하고 싶다. 이렇게 물어보고 싶다. 말할 수 있게 만들어진 사람은 얼마나 좋겠느냐? 부럽다. 사람이 되어 보고 싶다. 나는 사람이 되어 봤으면 … 사람은 못 되나마, 새처럼 노래할 수나 있었으면 하다 못해 조그만 벌레같이 소리내어 울어 볼 수나 있어도 좋지 않겠느냐? 나는 말할 줄도, 노래할 줄도, 울 줄도 모르는 돌멩이구나. 나는 내가 얼마나 갑갑한 물건인가를 생각해 보기는 이것이 처음이 아니지만 오늘처럼 갑갑해 본 적이 없다. "귀순아! 목욕하지 않겠니?" "이런 곳에서 어떻게 대낮에 목욕을 한담!" "왜 못해?" "사람들이 지나가다가 보면 어쩌니?" "보면 뭣하니?" 서분이가 영이 대신 대답한다. "그럼, 너희들이나 하렴 … 난 세수나 할 테다." 세월이 빠르구나, 참 빠르구나. 엊그저께 코를 줄줄 흘리며 발가벗고 엄마를 따라 이 냇가에 나와 물장난을 치던 귀순이가 벌써 제법 부끄러워할 줄 아는 색시가 되었으니. ■ 차돌이의 이야기 내가 경구의 호주머니에 들어서 이 산골에 온 지도 벌써 삼 년이 지났다. 경구는 벌써 지난 봄에 이 곳 소학교를 졸업했다. 그렇게 공부 잘하는 경구가 중학교에 못 가게 된 것은 참으로 아까운 일이라고 떠드는 소리를 들을 때, 어쩐지 조그만 나이지만 몹시도 슬펐다. 경구는 오늘도 아버지를 도와 밭으로 나갔었다. 지금은 점심 시간이 되어 경구는 집에 들어와 점심을 먹고 쉬는 시간에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경구는 흰 종이쪽에 연필로 무어라 벅벅 자꾸만 쓰는 모양이다. "누구에게 보낼 편지일까?" 나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고 있느라니까, 경구는 편지를 다 써 놓고 한번 주욱 내려 읽는다. 나는 그때서야 경구가 무어라 썼는지 알 수 있었다.  계성이와 진수에게 하는 편지였다. 아마 전번 계성이에게 온 편지에, 귀순이가 이번 가을에 시집을 간다는 말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 때를 이용하여서 이번 가을에는 고향에 한번 갈 터이라는 편지였다. 나는 경구의 호주머니 속에서 이런 말을 듣고 여간 기뻐하지 않았다. 그러나, 경구가 나를 데리고 가지 않으면 내게는 기쁠 것도 아무것도 없지 않나? "경구야, 나를 데리고 갈 테냐?" 고 물어보고 싶지만 말할 수 없는 몸이라 생각하니 서글픈 생각이 문득 났다. 돌멩이는 얼마나 불쌍한 물건이냐? 입이 없으니 말할 수도 없고 발이 없으니 걸을 수도 없고 …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를 경구의 손이 덥석 호주머니 속으로 들어오더니 나를 집어낸다. "차돌아! 부싯돌아! 너도 나와 같이 갈 테냐?" 나는, "응!" 이 간단한 한 마디의 대답을 하기에 무척 애를 써 보았으나, 대답은 종시 나오지 않는다. 경구는 내 속을 알 리 없다. 내가 얼마나 고향에 가고 싶어하는지를 ... "차돌아! 부싯돌아! 우리가 고향을 떠난 지도 벌써 삼 년이 지났구나. 너는 아직도 모르리라만, 영이 할아버지는 우리가 이 곳으로 이사를 온 후 얼마 안 되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더라. 부싯돌아! 나는 지금 영이 할아버지가 너를 내게 주며 하던 말씀을 그냥 그대로 따로 외울 수도 있다. '경구야! 네가 이 차돌을 늘 곱다고 했기에, 이걸 네게 준다. 이 돌멩이를 볼 때마다 나를 생각하고 내가 들려주던 옛날 이야기, 또 타일러 주던 말을 잘 지켜라. 응? 그러면 너는 장래에 훌륭한 사람이 될 터이니.' 차돌아! 그게 바로 내가 고향을 떠난다고 그러던 몇날 전 일이었다. 참으로 영이 할아버지는 훌륭하신 분이다. 내가 너를 곱다는 말을 언제 꼭 한 번 밖에는 하지 않은 듯한데, 그 말을 잊으시지 않고 내게 너를 주셨다. 차돌아! 너는 고향이 그립지 않느냐? 보고 싶은 친구는 없니?" 나는 그만 울어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경구는 내가 우는 줄을 모를 것이다. 눈에 눈물이 없고, 흐느껴 우는 소리가 안 나니 어떻게 알 수 있으랴! 경구도 고향이 그리운 모양이다. 친구가 그리운 모양이다. 돌아가신 영이 할아버지의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느새 경구의 눈에서는 눈물이 나는구나. 경구도 나처럼 우는구나. 경구가 만일 경구네 고향 앞 시냇가에 있는 커다란 돌멩이가 내 아버지라는 것을 안다면 나는 데리고 가리라. 그리하여 나와 아버지가 만날 기회를 주리라. 어떻게 하면 경구에게 내 아버지를 알려 줄 수 있을까? 아아, 나는 아버지가 보고 싶다. 내 아버지는 내가 여기 온 줄 꿈에도 모르리라. 나는 다시 경구의 호주머니 속에 들어갔다. 경구는 편지를 부치러 가는 모양이다. 편지를 부치고 난 경구는 약간 마음이 가벼워진 모양이다. 경구는 휘파람을 불며 집으로 돌아온다. 나도 경구의 호주머니 속에서 마음이 즐거워 집으로 돌아온다. ■ 돌멩이의 이야기 오늘은 경구가 오는 날이라고 계성이와 진수, 영이는 몇 차례나 이 냇가에 나와 앉아 경구를 기다렸는지 모른다. 그러나 경구는 오지 않는다. 나는 어쩐지 서운한 생각이 난다. 영영 못 만나 볼 내 아들 차돌이 생각도 난다. 강을 건너가고 건너오는 사람이 왜 이리 많을까? 옳아! 낼모레가 희성이와 귀순이의 결혼식 날이라지? 벌써 해가 서산으로 꼴깍 숨어 버렸다. 가을 바람이 시원스레 불어온다. 아마도 경구가 오늘은 못 오나 보다. 아이들이 지껄이며 또 나온다. 계성이와 진수와 영이로구나. "우리 이 강을 건너 웃마을까지 마중을 갈까? 안 올리가 없는데 …" "그래, 가 보자." 계성이와 진수와 영이는 강을 건너간다. 어디까지 경구의 마중을 가려느냐? 어둠이 점점 깊어 간다.  하늘에는 별의 수가 점점 많아진다. 풀벌레의 울음소리가 점점 높아진다. 경구는 안 오나 보다. 계성이와 진수아 영이는 왜 돌아오지 않느냐? "어어이, 어어이." 사람들 부르는 소리가 난다. 아이들이 돌아오나 보다. "경구가 왔다." 기쁨에 넘치는 계성이의 목소리로구나. 경구가 왔구나, 정말 온다는 날 왔구나. 경구야, 어서 건너 오너라, 더 어둡기 전에 네 얼굴이나 좀 보자. 경구가 강을 건너왔다. 진수와 계성이와 영이와 경구, 얼마나 너희들은 친한 친구들이냐? 그들은 웃으며 지껄이며 내 앞으로 온다.  "얘들아! 우리 여기서 잠깐 쉬어 가자!" 아아 낯익은 경구의 목소리로구나, 반가운 경구의 목소리로구나. "경구야! 그 동안 잘 있었니?"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경구는 몰라보게 컸다. 삼 년 동안에 아주 어른이 된 셈이다. 경구는 내 앞에 오더니 아무 말 없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다. 말문이 막혔나 보다. 경구의 손이 눈가로 가는 것을 보아 나는 경구가 우는 줄을 알았다. 경구의 부드러운 손이 나의 등을 어루만져 준다. 나도 따라 울었다. "내일 다시 만나자, 돌멩이야." "잘 가거라. 경구야!" 경구는 친구를 따라 천천히 마을로 들어간다. 아! 경구는 만났거만 내 아들 차돌이는?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아들이라면 이다지 슬프지는 않았으리라. 휴우, 이젠 차돌이 생각을 하지 말리라. "경구, 경구, 경구, 경구가 왔다." 내일은 경구가 친구를 데리고 이 냇가에 나오리라.  그러나, 희성이와 귀순이 만은 이 냇가에 나오지 못하리라. 생각하면 우습고도 재미있는 일이 아니냐? 한 마을에서 나서 같이 놀고 싸우고 자라던 아이들이 벌써 저렇게 커서 장가를 가느니 시집을 가느니 야단이니 아무도 희성이와 귀순이가 어려서 이런 우스운 일이 있었다는 것을 모르리라. 그게 아마 희성이와 귀순이의 나이가 열 살 하고 겨우 한두 살 먹었을 때였으리라. 한창 추워지는 초겨울 어느 날 귀순이가 냇가에서 빨래를 하느랍시고 또닥거리는데 희성이가 마침 징검다리를 건너오다가, 이걸 보고 장난 잘 하는 아이인지라 슬그머니 돌멩이 하나를 들어 귀순이가 있는 앞에 퉁 하고 던지는 바람에 그만 물이 튀어서 귀순이가 옷을 함빡 적셨다. 이걸 본 희성이는 너무 우습고도 고소해서 징검다리 중간에 선채 깔깔깔 웃다가 그만 고무신 한 짝을 물에 떨어뜨렸다. 그러나, 귀순이는 이걸 보고 고거 싸다고 가만히 흘러가는 고무신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던 모양인지, 제 앞으로 흘러가는 고무신을 빨래 방망이로 끌어 내어 희성이에게 주었더니, 희성이는 그만 얼굴이 빨개서 고무신을 받아 신고는 뺑소니를 쳤다. 희성이도 컸다. 귀순이도 컸다. 아니 경구는 더 컸다. 세월이 잠깐이다. 빠알간 아침해가 떠오른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희성이와 귀순이의 결혼식이 지나니 이 냇가는 전같이 조용하다. 경구는 몇 날이나 더 이 곳에 머무를는지 모르겠다.  이건 또 누구의 휘파람이냐, 경구로구나. 이 쪽 건 누구냐? 영일 테지, 옳아 영이다. 경구와 영인 무슨 이야기가 그리 많으냐? 그럴 테지, 삼 년이나 모아 두었던 하고 싶은 얘기가 많을 테지. 경구와 영인 내 옆에 와 앉아 별별 이야기를 다 한다. 그러다가 그들은 돌아간 영이 할아버지 이야기를 또 시작한다. 경구는 웬일인지 얼른 호주머니에 손을 넣는다. "나는 이 부싯돌을 볼 때마다 너의 할아버지 생각이 나더라." 부싯돌이라니? 그게 사람이 부르는 내 아들 차돌이의 이름이 아니냐? 내 마음은 몹시도 두근거렸다. 나는 그만 정신이 아득하였다. 경구는 정말 내 아들을 호주머니 속에서 꺼내었다. "경구야! 그게 바로 내가 여기에서 주운 것이란다. 남이하고 놀다가 주운 건데 할아버지 부싯돌 하라고 그런 거야." "그래 나두 안다, 그런 줄을. 너의 할아버지가 그런 이야기를 하시며 주시더라." "그게 바로 이 큰 돌멩이 곁에 있었어." "어디 이 돌멩이 곁에?" "응." 경구는 갑자기 무엇을 깨달은 모양이다. 차돌이와 내가 아버지와 아들인 것을 알아냈는지도 모른다.  나는 차돌이를 알아봤다. 차돌이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린다. "아버지!" "차돌아!" 그러나, 영이나 경구 귀에 이런 말이 들릴 리 없다. "영이야! 너 이런 큰 돌멩이 곁에 조그만 돌멩이가 있는 것을 보면 어떤 생각이 나니?" 바로 이건 시집간 귀순이에게 묻던 말이다. 오래 전부터 경구가 이 곳을 떠나기 전 귀순이의 나이 아직 영이 같을 때에 묻던 말이다. 귀순이는 그 말 대답을 못한 채 나이 먹어 시집을 갔다. "큰 돌멩이는 아빠나 엄마 돌멩이 같고, 작은 돌멩이는 아가 돌멩이들 같애 … 호호호 …" "영이야? 너두 그렇게 생각되니?" 경구는 너무도 기쁘고 좋은 모양이다. "영이야? 그럼 이 차돌은 이 커단란 돌멩이의 아들일지도 모른다. 아니 아들일 게다. 그러니 우리 이걸 옆에 놓아 주자!" "참말, 그랬으면 좋겠어." 경구와 영이는 나와 차돌이를 번갈아 바라보더니 빙긋이 웃는다. "차돌아 - 그 동안 잘 있었니?" "예, 아버지도 잘 계셨어요?" "응, 난 잘 있었다. 정말 나는 내가 경구를 따라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난 꼭 네가 영이 할아버지 무덤 속에 들어가 있을 줄만 알았다." "나는 그 동안 경구의 호주머니 속에 들어가 잘 있었어요. 내 인제 천천히 그 곳 이야기를 아버지께 해 드리지요." "그래!" "그 곳서 나는 늘 이 곳이 그립고 아버지가 그리워서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나두 늘 네가 그리워서 울었단다." "정말, 아버지 - 내일 모레나 글피는 경구가 또 이곳을 떠나간대요." "경구가 떠나가?" 나는 얼른 머리를 들어 경구와 영이가 있었던 자리를 바라봤으나 그들은 무슨 이야기를 하면서 벌써 저 쪽 버들 있는 곳으로 사라져 버렸다. "경구는 착한 아이다. 좋은 아이다. 우리에게 제일 고마운 아이다. 우리는 경구의 앞날이 복되기를, 그리고 빛나기를 아침마다 밤마다 하늘을 우러러 빌자!"  "그럽시다, 아버지." 오오, 하늘이여! 경구의 앞길에 밝은 빛을 비추어 주옵소서!     맨발 강 소 천   소풍날 아침 학교 운동장입니다.   철이는 새 구두를 신고 왔습니다.   남이는 새 운동화를 신고 왔습니다.   그러나, 식이만은 오늘도 다 떨어진 고무신 그대로입니다.   이 질질 끌리는 고무신을 신고 어떻게 먼 소풍 길을 가느냐고, 몇 번이나 할머니를 졸라 보았으나, 새 고무신은 종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일 년에 한두 번밖에 없는 소풍을 안 갈 수는 없는 일입니다.   학교 운동장에 모인 애들은 마치 먼 여행이나 떠나는 사람들 같았습니다.   그 많은 것을 어떻게 하루 동안에 다 먹을 수 있을까 할 정도로 무얼 많이들 가지고 갑니다.   호루라기 소리에 아이들의 행렬은 교문을 나섭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아이들의 입에선 저절로 노래가 나옵니다.   "산에 산에 산으로 우리 우리 가보자."   그러나, 식이는 노래는 커녕 한 반 애들 속에 섞여 따라가기도 힘이 듭니다.   해어진 고무신이 질질 끌리기 때문입니다.   거리를 지나, 아이들의 행렬이 조용한 들길로 나왔을 때, 아이들의 걸음은 한층 더 가벼워졌습니다.   그러니까 식이는 정말 더 따라갈 수가 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식이는 행렬에서 떨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멈춰 선 채 식이는 다시 한 번 제 헌 고무신을 내려다보았습니다.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식이는 고무신 한 짝을 벗어 들어 높이 내동댕이쳤습니다.   그랬더니 고무신은 금방 가벼운 나비 날개가 되는 것이 아닙니까?   이상하다고 생각한 식이는 나머지 한 짝을 마저 던졌습니다.   그랬더니, 그 고무신도 또 나비 날개가 되었습니다.   식이는 그 날개를 하나씩 양손에 집어 들었습니다.   그러자 식이의 몸은 그만 가벼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손을 조금 움직여 보았더니 두웅둥 하늘로 떠오르는 것이었습니다.   "야아, 이것 멋진데 … "   식이는 훨훨 날아 아이들의 행렬을 따라갔습니다.   아이들의 머리 이를 스칠락말락하며 식이는 아이들의 행렬을 따라갑니다.   "야아 - 이것 봐라. 호랑나비가 우리들과 함께 소풍을 간다."   아이들은 제각기 한 마디씩 지껄였습니다.   "나비야 나비야, 이리 날아오너라 … "   노래까지 나왔습니다.   아이들의 행렬은 어느 새 산모퉁이를 돌았습니다.   "아이, 다리 아파! 왜 이렇게 먼 곳으로 갈까?"   벌써부터 쩔쩔매는 애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도 나비처럼 날아다닐 수가 있으면 좋을 텐데 … "   이렇게 생각한 아이 하나가 자기 머리 위로 날아가는 호랑나비를 '탁'하고 손으로 때렸습니다.   "아이, 난 새 구두를 신었더니 발이 아파서 못 걷겠어."   그러나, 식이는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한 손에 한 짝씩 헌 고무신을 들고 가니까 아플 리가 없습니다.   맨발이 한결 가볍고 시원했습니다.       조그만 사진첩 강 소 천   "그리운 동생, 영식아, 순이야! 지금 너희들은 저 멀리 후방에 있다. 그러나, 또 언제나 나와 함께도 있다. 밤을 새워 가며 앞으로 앞으로 진격을 계속하다가도, 이렇게 조용한 시간이 있을 때마다, 다른 동지들은 곧 담배를 피우며, 신문과 잡지를 펴 들고 웃고 떠들어대지만, 네 형은 또 이렇게 너희들이 만들어 준 사진첩을 꺼내들고, 한 장 한 장 넘겨본다. 그러면 어느새, 너희들은 새들처럼, 내 곁에 날아와 앉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리고, 우리들 사이엔 정다운 이야기가 시작된다.    영식아, 순이야!    너희들이 만들어 준 이 조그만 사진첩 하나가, 얼마나 이 형을 기쁘게 하여 주는지 모른다. 이 사진첩은 내게 새로운 힘을 북돋아 주는, 이상한 힘을 가졌다……."    순이는 오빠의 편지를 다시 읽다가 살며시 두 눈을 감고, 오빠가 집에 돌아왔다 가던 일과, 사진첩을 만들어 드리던 일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봅니다.    벌써 두 달 전이었습니다. 순이 오빠는 일 년 반만에 처음으로 휴가를 얻어 그리운 고향에 돌아왔습니다. 순이 오빠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동네 사람들은 물론, 이웃 어른들까지 모여들어, 순이 오빠에게 여러 가지 일선의 이야기를 물었습니다. 순이 오빠는 일선에서 싸우던 아슬아슬한 이야기며, 또 통쾌했던 이야기를 밤이 새는 줄도 모르고 열심히 들려드렸습니다. 오랜만에 돌아온 아들을 위하여, 순이 아버지와 어머니는 물론 순이와 순이 언니도 오빠를 위하여 있는 정성을 다하였습니다. 어린 영식이도 형의 뒤를 졸졸 따라다녔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웃 어머니들은, 달걀을 가져온다, 떡을 가져온다 하여, 순이 오빠는 그만 배탈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며칠이 지나, 순이 오빠는 다시 일선으로 갔습니다.    오빠가 떠날 때, 집안 식구들은 제각기 오빠에게 선물을 드렸습니다. 순이와 영식이도 무얼 종이에 곱게 싸서 오빠에게 드렸습니다.    오빠는 선물을 받아 들고,    "너희들까지 선물을 주니? 주는 것이니 받아 가지고는 가겠다만…… 어떻든 고맙고 기쁘다."    오빠는 몇 번이나 고맙다는 인사를 하였습니다.    일선에 돌아온 순이 오빠는, 조용한 틈을 타서 영식이와 순이가 준 선물을 끌러 보았습니다. 너무 정성스럽게 싼 것이어서, 함부로 종이를 뜯기도 조마조마할 지경이었습니다. 겉종이를 벗겼더니, 그 속에는 봉투 편지 한 장 과, 또 한 번 곱게 싼 물건이 있었습니다. 선물의 종이를 뜯기 전, 오빠는 봉투를 뜯어 먼저 편지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편지는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영식이의 형, 순이의 오빠, 그리고 대한민국의 씩씩한 군인께!"    순이 오빠의 얼굴엔 빙그레 웃음이 떠돌았습니다.    오빠는 한 자 한 자 편지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편지의 사연은 대강 이러했습니다.    "영식이와 나는, 오빠에게 드릴 선물에 대하여 여러 가지로 의논한 끝에, 여기 드리는 것 같은 조그만 가족 사진첩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재료는 아버지 어머니께서 주셨고, 푸른 리본은 큰언니가 주신 것입니다. 가족 사진을 찍은 것은, 아니, 그림을 그린 것은, 영식이 솜씨입니다. 아직 서투른 사진사가 되어서 시원치는 못합니다. 사진 설명은 순이가 썼어요. 일선에서 싸우시다 피곤하실 때마다 보시고 웃어주셔요……."    그리고 맨 마지막에는, 영식이와 순이의 이름이 나란히 적혀 있었습니다.   오빠는 선물의 종이를 정성스럽게 벗겼습니다. 정말, 그 속에는 푸른 리본으로 정성스럽게 맨, 조그만 그림 사진첩이 들어 있었습니다. 겉 뚜껑에는 '승리 사진첩'이라고 씌어 있었습니다. 오빠는 사진첩 첫 장을 열었습니다. 거기에는 이런 글씨가 씌어 있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누나, 동생들은 밤낮으로 아들, 오빠, 형님의 승리를 빌고 있습니다. 어서 이기고 돌아와 주십시오."    그 다음 장을 넘겼습니다. 왼쪽 페이지에 점잖게 앉아 계신 아버지의 얼굴 ―머리카락이 벌써 절반도 더 희셨습니다. 사진 밑에는 잔글씨로 이런 설명이 씌어 있었습니다.    "우리들을 좋은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하여 밤낮 없이 애쓰시는 우리 아버지, 우리들의 걱정 한 번에 머리카락 하나씩 세셨는지도 모릅니다. 이제부터는 아버지 걱정을 시키지 않을게요"    오른쪽 페이지에는 어머니의 얼굴. 옛날 사진에, 주름살 하나 없으시던 어머니의 얼굴에 굵다란 주름살이 많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오빠는 자기도 모르게,    ―어머니!  하고 불렸습니다. 갑자기 눈앞이 뜨거워졌습니다. 눈물이 어려 사진 설명이 보이질 않습니다. 오빠는 또 페이지를 넘깁니다. 왼쪽 페이지엔, 세일러복을 입은 순이 언니의 얼굴, 아주 얌전을 빼고 있는 사진입니다. 사진 설명엔, 이렇게 씌어 있었습니다.    "얌전한 우리 언니, 요즈음에는 더 말이 적어졌습니다. 국군 오빠들에게 보낼 손수건을 정성스럽게 만드느라고 꼬옥 다문 작은 입이, 한층 더 작아졌습니다."    오른쪽이 순이. 무슨 우스운 이야기를 하고, 웃지 않으려고 애쓰는 얼굴. 조금만 건드리면 금방 웃음이 탁 터질 듯한 얼굴입니다. 순이 오빠 얼굴에도 빙그레 웃음이 떠돌았습니다. 설명을 읽을 사이도 없이 얼른 다음 페이지를 넘겼습니다. 영식이 얼굴이 보고 싶어서였습니다.   다음이 영식이. 5월 하늘같이 맑은 눈을 가진 영식이. 장래에 훌륭한 미술가가 된답니다. 지금도 자기 반에서는, 아니 전교에서 그림을 제일 잘 그린답니다.    그 다음이 윤이. 한 손에 장난감을 쥐고 재롱을 부리는 귀여운 얼굴.    오빠는 속으로 가만히 ―윤아! 윤아! 하고 불러봅니다.    그 다음이 바둑이와 나비로 사진첩은 끝입니다. 마지막이길래 사진 설명을 읽어 보았더니, 이렇게 씌어 있었습니다.    "나는 바둑이입니다. 정신 차려 집을 잘 지키겠습니다. 영식이 언니도 자 싸워 주셔요. 멍멍."    나비(고양이) 아래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습니다.    "나도 영식이 언니가 이기고 돌아올 때까지 부지런히 쥐를 잡으렵니다. 야옹 야옹"    순이 오빠는 사진첩을 덮고, 가만히 두 눈을 감아봅니다. 오빠는 어느새, 고향집에 가 있습니다. 지금 온 식구들과 한자리에 앉아 즐겁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곧    "집합!"  하는 호령과 함께 순이 오빠는 다시 싸움터에 섰습니다.   순이는 밤늦도록 오빠에게 답장을 썼습니다. 그 사연은 대강 이러했습니다.    "엊그제 언니가 보내드린 편지를 보면, 집안 소식을 잘 알 줄 믿습니다. 오랜만에 오빠의 편지를 받은 온 식구는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릅니다. 우리들은 책상 앞에 걸려 있는 오빠의 사진을 바라보며, 날마다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참, 어제 영식이와 나는 이런 약속을 하였답니다. 이제 겨울 방학이 되어, 통지표를 받게 되면, 우리 세 사람(언니까지 합해서)의 성적을 오빠에게 보고하자고요."    "그래, 그 성적 보고서는 내가 쓸게!"  하고 언니가 말했습니다.    "누나 혼자 쓰면, 엉터리 보고서를 꾸밀는지 모르니까, 그건 안 돼!"  하고 영식이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럼 감시단을 만들지!"  하고 곁에서 아버지께서 웃으시며 말씀하셨답니다. 우리는 아버지의 말씀에 한바탕 크게 웃었답니다.    정말 우리 언니는 요즈음 오빠와, 다른 국군 오빠들에게 보낼 선물을 만드느라고 무척 분주하답니다. 우리는 그림과, 위문편지를 써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벌써 크리스마스 선물에 대한 의논을 하고 있답니다.   편지 쓰기를 끝마친 순이는 오빠 사진을 쳐다보며 "그럼, 오빠, 밤 안녕!" 하고 자리에 누웠습니다. 오늘 밤, 순이는 편지 먼저, 꿈속에 오빠를 찾아가는지도 모릅니다.          아래 동화는 《강소천 동화집》에는 실려 있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저에겐 과거 일간 신문이나 교육지에 발표된 아동문학 작품을 스크랲해 둔 노트가 있는데, 거기에서 최근에 새로이 발견하여 뽑아올린 것들입니다.    발표 지면은 확실치 않으며 발표 연대도 1960년대, 아니면 1970년대일 거라고 짐작할 따름입니다.   문학적 가치를 따지기 전에, 발굴 작품으로서의 자료적 가치를 더 중히 여겨 여기에 공개하는 바입니다. (허동인) 꾸러기의 일요일 강 소 천     오늘은 꾸러기네 이웃 마을 학교의 운동회날입니다. 새로 학교를 지은 기념으로 인제서야 운동회를 하는 것입니다. 많은 구경꾼들 속에 꾸러기와 그의 친구들도 앉아 있습니다.   여러 가지 순서가 지난 뒤 아이들만이 아니라 아버지 어머니들의 경기도 있었습니다. 눈을 싸고 깡통을 때리기, 사과를 머리에 이고 달리기……. 사람들은 즐겁게 웃었습니다.   그 다음이 이웃 학교 어린이들의 순서였습니다. 많은 아이들 속에 끼여 꾸러기도 나갔습니다.「탕!」하는 총소리와 함께 맨 먼저 달리리 시작한 게 꾸러기였습니다.   그러나 웬일인지 뒤밀려오는 많은 아이들에 섞여 꾸러기는 넘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등수에 들지 못한 것은 물론 겨우 꼴찌를 면했습니다.   꾸러기는 무척 분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또 한번 다른 학교 아이들의 순서가 있었습니다.「속셈 경기」였습니다. 누구보다 먼저 꾸러기가 나섰습니다.   다른 애들보다 속셈을 잘해서가 아닙니다. 아까 뛰다가 넘어진 게 분해서 또 나온 것입니다.   「탕!」 그러나 웬일인지 꾸러기는 딴 애들보다 늦게서야 문제를 쳐들고 선 곳까지 왔습니다.   달리던 아이들은 모두 여기 와서 발이 땅에 붙기나 한 듯 서서 종이에 쓴 숫자만을 쳐다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웬 아이 하나가 빠르르 앞서 달려가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박수를 보냅니다. 그러나 꾸러기 동무들은 속으로   '저 자식이 왜 저렇게 먼저 달릴까? 먼저 가면 뭘해? 답을 맞춰야지. 또 틀렸어!' 하고 생각햇습니다.   그 다음 아이들이 하나둘 달려갔습니다. 꾸러기를 처음에 앉히고 뒤이어 오는 아이들을 차례로 앉혀 놓았습니다.   이제 한 사람씩 가만가만 답을 물어보는 것입니다.   속셈 경기를 맡은 선생님이 꾸러기를 불러 일으키더니 자기 귀에 대고 가만히 답을 말하라고 했습니다.   꾸러기가 뭐라고 했는지 선생님은   "오―케! 일등!" 하며 꾸러기의 등을 두드려 주었습니다. 꾸러기 손에 1등 기가 쥐어졌습니다. 꾸러기 친구들은 서로 마주보고 놀랐습니다.   꾸러기는 빨래비누 석 장을 상으로 받아가지고 친구들이 앉아 있는 자리로 왔습니다.   '오늘은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려야지.'   꾸러기 가슴엔 이런 생각이 꽉 찼습니다.   "얘, 창덕아! 너 어떻게 그렇게 빨리 속셈을 했니? 틀리지 않구……."   "문제가 쉬웠어. 숫자 넷을 더하는데, 4·5·6·7이 아냐? 넷, 다섯, 여섯, 일곱……. 문제가 쉬우니까 달려가면서 답을 생각해 냈지.   "참, 그렇구나!"   "오늘은 장난꾸러기가 꾀꾸러기가 됐구나!"   아이들이 즐겁게 웃었습니다. 암소와 돼지 강 소 천   미야가 집으로 막 달려 들어오려는데 어디서 하모니카 부는 소리가 뿡빠뿡빠 들려왔습니다.   미야는 소리나는 쪽을 바라봤으나, 아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마당에 앉아 있는 암소가 옥수수 속을 물고 하모니카 부는 시늉을 하고 있었습니다.   "응? 네가 하모니카를 불고 있니?"   "그래! 이리와. 이 하모니카 네게 주려구 내가 만든 거야."   "뭐? 네가 하모니카를 만들어?"   "자, 이거 불어보면 알 게 아냐?"   암소가 주는 하모니카를 받아들고 미야는 깔깔대며 웃었습니다. 옥수수 알맹이를 다 뜯어먹고 두 줄만 남겨 논 옥수수 속입니다.   "이게 하모니카야?"   "글쎄, 어서 불어 봐. 멋진 소리가 날 테니. 미야는 여름내 내게 풀도 뜯어다 주고 물도 길어다 주지 않았어? 그래서 내가 새해 선물로 주는 거야."   미야는 입을 얼른 대고 불어봤습니다. 정말 뿡빠뿡빠 멋진 소리가 났습니다.   "미야는 올해가 우리들의 해라는 것을 알 테지?"   "그럼 알고 말고."   "미야는 왜 해마다 짐승의 해가 있는지 아나?"   "그건 나도 잘 몰라."   "그건 말이야, 짐승에게두 좋은 점과 나쁜 점이 있거던. 그래서 좋은 점은 배우고 나쁜 점은 버리라고 있는 거야."   "그래? 그렇지만 소에게야 좋은 점이 없지 않아?"   "미야야, 너 그게 무슨 소리니?"   "사람들은 너희들을 가리켜 이라지 않아?"   "그런 사람은 우리들보다 열 곱 더 미련한 사람이야. 우리들처럼 부지런하고 참으성 있고 끈기 있는 짐승이 어디 또 있을까?"   "나두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어서 추운데 가지고 들어가 봐."   "고맙다, 암소야!"   미야는 대문을 향해 막 달려갑니다. 바로 그 때 저쪽 돼지 우리에서 돼지가 꾸울꿀 울고 있었습니다.   "이놈의 돼지야, 미련한 건 너다!"   "뭐? 내가 미련해? 미련한 건 소지, 짚만 얻어먹고도 일만 하는 게……."   "뭐? 일만 하는 게 미련해? 넌 놀고 먹다가 고기를 선사하는 거야."   "나쁜 기집애 같으니……. 조그만 기집애가 고런 암통스러운 소리를 한담."   "너 하모니카 만들 줄 알아? 모르지? 그러니까 네가 미련한 놈이란 말이야."   "뭐? 하모니카? 어디 보자!"   "자, 이거 봐! 어디 한 번 불어봐."   돼지는 하모니카를 받아들더니 낮은 소리서부터 차례로 하나씩 불어 올라갑니다.   "하하하……, 하모니카도 불 줄 모르는 바보! 미련한 자식!"   돼지는 화가 나서 하모니카를 마당에 던져 버렸습니다.   미야는 얼른 하모니카를 집어들었습니다.   미야는 깜짝 놀랐습니다. 글쎄 돼지는 차례로 하모니카를 불어 올라가며 옥수수알 두 줄을 몽땅 뜯어 먹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니 하모니카에서 소리가 날 까닭이 있습니까? 미야는 큰 소리로 울어버렸습니다.   미야는 문을 열고 앞마당 암소 있는 데로 갑니다.   "암소야, 내 꿈이야기 할까?"   그러나 암소는 모른 척합니다.   '하모니카를 못 쓰게 만들었다고 화가 났구나!'   미야는 댓바람에 돼지 있는 데로 달려갔습니다.   "이놈의 돼지! 내 하모니카 내 놔!"   그렇지만 돼지는 들은 척도 안하고 꿀꿀꿀 먹을 것만 달라고 야단입니다.   짱구와 왕눈이 강 소 천   "짱구! 짱구!"   "짱구야!"   아이들마다 뒤에서 이렇게 놀려대도 인호는 못 들은 척했습니다.   "짱구야!" 하고 마주 서서 부르면 인호는 대답 대신 빙그레 웃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키도 크고 몸도 튼튼해 보이는 인호가 왜 저렇게 바보 노릇을 하는지 아이들의 눈엔 이상할 정도이었습니다.   "이제 전학해 온 지 얼마 안 되니까 그렇지! 조금 더 있으면 인호는 우리 반에서 제일 힘센 아이가 될 거야!"   어떤 아이가 이런 말을 했더니,   "인호가 제일 힘센 아이가 돼? 넌 도무지 사람을 볼 줄 모르는구나! 인호의 머리에 힘이 들어 있단 말이야! 크기만 했지, 그건 호박장군이야!" 옛날 이야기에 나오는 호박정군을 넌 모르니?"   그 말이 옳을는지도 몰랐습니다. 키가 크고 아주 힘이 없는 애가 '짱구'라고 놀려줘도 인호는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한번이라도 동무들이 인호를 '인호'라고 부르는 아이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저 '짱구'로 통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상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인호네 반에서 제일 싸움을 잘 하는 명덕이란 애가 저보다 약한 애와 싸우고 있는 것을 인호가 보았습니다.   싸움이라기보다 명덕이가 영구를 그저 까닭없이 못 견디게 구는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누구 하나 명덕이를 나무라지는 않았습니다. 나무라는 게 다 무엇입니까. 명덕이가 하는 짓이면 다 잘한다 했고 옳다 했습니다.   그러나 인호는 명덕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명덕아! 왜 남의 구슬을 빼앗니?"   물론 이것은 명덕이더러 야단을 치거나 따지려드는 말투는 아니었습니다. 그러지 말라고 부드럽게 사정하는 말투였습니다.   "뭐가 어째? 이 짱구 자식아! 네게 무슨 상관이 있어? 건방지게. 저리 가!"   그러나 인호는 다시 한번 정다운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명덕아! 줘라! 영구는 너보다 어리고 힘도 약하지 않아?"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명덕이는 인호를 한 대 후려 갈기려고 주먹을 들어 인호의 얼굴을 향해 내밀었습니다.   그러나 인호는 언제 그걸 알았는지 곧 명덕이의 내민 손목을 꼭 잡았습니다.   "아야얏!"   손목을 꼭 잡힌 명덕이는 금시 죽어가는 소리를 질렀습니다.   어떻게나 꼭 잡았던지 인호의 손아귀에 손목을 잡힌 명덕이는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어느새 아이들이 죽 둘러섰습니다.   "어서 영구에게 빼앗은 구슬을 돌려 줘."   아이들은 처음 이런 인호의 묵직한 말소리를 들었습니다.   손목을 놓아준 인호는 명덕이가 이제 어쩌나 하고 가만히 선 채 쏘아보고 있습니다.   명덕이는 얼른 포케트에서 구슬 다섯 개를 꺼내어 영구에게 주었습니다.   "왜 다섯 개야? 열 개지!"    그러니까 명덕이는 다시 다섯 개를 더 꺼내어 영구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명덕이는 비실비실 그 곳을 피해 달아났습니다.   아이들이 인호 둘레에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명덕이를 졸졸 따라다니던 아이들도 이젠 명덕이 뒤를 따라가지 않았습니다.   "내 말이 맞았어! 인호는 힘이 세지만 뽐내지 않은 거야! 그렇지만 약한 애를 못 살게 구니까 화가 난 거야!"   "그래! 이젠 아무도 명덕이 부하가 되진 않을 거야!"   이 일이 있은 뒤로부터는 아무도 인호를 '짱구'라고 부르는 애는 없었습니다.   그 대신 아이들은 명덕이를 '왕눈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눈이 커서만이 아니라 겁이 많다는 뜻으로 '왕눈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198    <바다에 관한 동시 모음> 오선자의 '바다를 보며' 외 댓글:  조회:1941  추천:0  2017-06-05
오선자의 '바다를 보며' 외 + 바다를 보며 네 마음 나처럼 고요해졌니? 네 눈빛 나처럼 맑아졌니? 바다는 그렇게 물으며 날마다 창문 열고 들어온다. (오선자·아동문학가) + 파도 동글동글 예쁜 돌 하나 주워 살짝, 주머니에 넣었어요. 멀리서 그것을 어떻게 보았을까요. 솨- 허연 거품 물고 와서는 내놓으라고 야단입니다. (우남희·아동문학가) + 섬은 파란 들판에 홀로 핀 한 송이 꽃 꽃 꽃 파도 소리 그리운 작은 귀 귀 귀 (선용·아동문학가, 1942-) + 하나 바다에 다다르면 한강도 바다로 낙동강도 바다로 섬진강도 바다로 압록강도 바다로 두만강도 바다로 이름을 바다로 바꾼다. 몸짓도 목소리도 바꾼다. (박두순·아동문학가) + 걸어다니는 바다 꽃게가 한 덩이 바다를 물고 왔습니다. 집게발가락에 꼭 물려 있는 조각난 푸른 파도 생선 가게는 이른 아침 꽃게들이 물고 온 바다로 출렁입니다. 장바구니마다 갈매기 소리가 넘쳐납니다. 쏴아쏴아 흑산도 앞 바다가 부서집니다. 꽃게는 눈이 달린 파도입니다. 걸어다니는 바다입니다. (이상현·아동문학가) + 바다 교통사고 달리는 배로 뛰어오른 숭어는 숭어잡이 가던 어부들도 잡지 않고 살려 준대 그러면서 뭐라고 하는지 알아? 어허, 교통사고 나셨군 다음부터 잘 보고 뛰세요 텀벙! (함민복·시인, 1962-) + 바닷물은 우리 엄마와 같습니다 달려왔다 달려갔다 늘 바쁩니다. 전복 해삼 물고기 돌보느라 할 일이 많아요. 파래에게도 일렁, 바위에도 철썩, 모래사장에도 쏴아. 잠시라도 쉬면 큰일납니다. (김마리아·아동문학가) + 파도는                        파도는 100미터 달리기 선수 세차게 달려와 바위벽 결승선을 튕겨 나간다. 숨도 차지 않은가 보다. 잠시 바위에 주저앉았다가 벌떡 일어나 되돌아간다. 파도는 마라톤  선수. 먼길 달려서 지쳤을까? 모래밭 결승선을 밟고 쓰러진다. 숨이 몹시도 가쁜가 보다. 한참 모래밭에 뒹굴다 가까스로 일어난다. (이상문·아동문학가) + 바다를 담은 일기장 지난 여름 해변을 다녀온 일기장에 동해의 퍼런 바다가 누워 있다. 깨알같은 글씨 바다를 읽으면 골골이 담겨진 바다의 비린내 한 잎 갈피를 넘기면 확, 치미는 파도 소리 갈매빛 바위 위에서 울어대는 물새 소리 바다가 들어와 누운 그 자리 눈을 감아도 팽팽히 일어서는 파도 소리 우루루― 장마다 미친 듯 신이 들려 파랗게 넘치는 바다의 살점들 이제는 바다를 멀리 두고서도 바다를 껴안은 듯 일기장 구석구석 줄줄이 읽으면 바닷물이 어느새 몸에 와 찰싹인다. (노원호·아동문학가) + 바닷가 마을 누워 있는 어미 개의 젖꼭지에 매달려 젖을 빠는 새끼 강아지들처럼 작은 배들이 나란히 바닷가에 매달려 있다 어떤 배는 젖을 다 먹은 강아지처럼 꾸물꾸물 몸을 돌려 다시 바다로 나가고 젖을 먹는 새끼들 사이로 다른 새끼가 끼여들 듯 어떤 배는 배와 배 사이로 파고 들어와 몸이 편하게 누울 수 있을 때까지 꿈틀거린다 (오규원·시인, 1941-2007) + 아버지의 바다 아버지가 바다에 일 나간 밤 잠자리에 누우면 천장은 온통 바닷물결로 출렁거리고 뱃머리에 부딪치는 물소리, 물소리는 내 베갯머리에 와 찰싹인다. 식구들의 무게를 지고 바닷일을 하시는 아버지의 어깨에는 찬바람, 파도 소리 쏴! 쏴! 물이랑에서 힘겹게 건져 올리는 그물에는 퍼덕, 퍼덕거리는 은빛 무게들. 아버지가 일 나간 밤에는 내 방 안은 물결이 일렁이는 아버지의 바다가 된다. (권오훈·아동문학가) + 바다를 담은 일기장 지난 여름 해변을 다녀온 일기장에 동해의 퍼런 바다가 누워 있다. 깨알 같은 글씨 바다를 읽으면 골골이 담겨진 바다의 비린내 한 잎 갈피를 넘기면 확, 치미는 파도 소리 갈매빛 바위 위에서 울어대는 물새 소리 바다가 들어와 누운 그 자리 눈을 감아도 팽팽히 일어서는 파도 소리 우루루― 장마다 미친 듯 신이 들려 파랗게 넘치는 바다의 살점들 이제는 바다를 멀리 두고서도 바다를 껴안은 듯 일기장 구석구석 줄줄이 읽으면 바닷물이 어느새 몸에 와 찰싹인다. (노원호·아동문학가) + 강물은 바다로 나가기 싫어서 일부러 구불구불 산을 돌아서 들을 돌아서 천천히 천천히 흐른다. 댐을 만나면 다이빙도 해보고 나룻배를 만나면 찰싹찰싹 나룻배 꽁무니도 밀어 주고 강물은 학교 가기 싫은 내 동생하고 똑같다. (전영관·아동문학가)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197    2014년 한국 우수동시 30편 댓글:  조회:2297  추천:0  2017-06-02
◎2014년 대한민국 우수동시 30편◎   노루   김종상   노루가 벼이삭을 뜯어 먹고 갔어요   뱃속에서 싹이 트면 몸뚱이가 벼싹으로 파랗게 덮이겠네요   파란 숲에 파란 노루 사냥꾼도 못 찾겠어요. -김종상 동시집 『강아지 호랑이』에서   새들도 번지점프 한다   추필숙   째 애 액!   참새들 번지점프 한다.   날개는 작아도 겁쟁이는 아냐, 외치면서. -추필숙 동시집 『새들도 번지점프 한다』에서   철이네 우편함   김영두   철이네 우편함은 강 이편에 있습니다. 집배원 아저씨가 강 건너 오시는 게 미안해 이 편 강가 숲속 소나무에 우편함을 달아 놓았습니다 며칠에 한번씩 배를 타고 건어 와 편지를 찾아 가는 철이 아빠   그런데 우편함 속에 할미새 부부가 보금자리를 만들기 시작하더니 알록달록 귀여운 새알을 낳았답니다   철이 아빠는 옆 소나무에 바구니를 하나 달아 놓고 다음과 같은 글을 써 달았습니다 “집배원 아저씨, 편지는 여기에 넣어주셔요.” “우편함에는 산새가 새끼를 치고 있어요.”   호기심에 살금살금 다가가 우편함을 가만히 들여다 보니 솜털 보송한 새 새끼들이 어미가 온 줄 알고 노란 입을 짝짝 벌립니다 나는 나쁜 짓을 하다 들킨 아이처럼 가슴이 콩닥콩닥 얼른 뒷걸음쳐 도망쳤습니다   새끼들이 다 자라 날개가 돋치면 철이 아빠의 고마움을 부리에 물고 저 파란 하늘로 날아오를 것만 같습니다. -김영두 동시집『철이네 우편함』에서   받아쓰기   이재순   하얀 공책 네모 칸 속에 삐뚤삐뚤 글자가 들어앉는다.   선생님이 불러 주는 대로   새가 들어앉는다. 나무가 들어앉는다.    모르는 글자가 나오자 끙, 끙, 아이가 들어가 앉는다. -이재순 동시집『큰일 날 뻔했다』에서   울타리 없는 집   서상만   언덕 위 너와집*은 하늘이 지붕이고 산이 울타리, 들은 마당이다.   산새 들새 노래에 할배 잔기침 소리는 흥겨운 장단이다.   구름도 스르르르 그냥 지나고 깊은 밤, 고라니도, 너구리도 제 맘대로 드나든다.   자물쇠 없는 방문, 삐걱-열면 푸른 들판이 한눈에 들어오고 저녁노을이 바알갛게 문풍지에 번진다. -서상만 동시집 『꼬마 파도의 외출』에서   이팝나무   김갑제   쏟아지는 햇살이 너무 뜨거워   이팝나무 꽃 이삭도 참을 수 없나 봐요.   -팝! -팝! -팝!   가지마다 팝콘을 튀겨요. -김갑제 동시집 『날고 싶은 꽃』에서   졸음의 무게   박방희   뭐라 뭐라 해 쌓아도 세상에 무거운 건   눈 위로 쏟아지는 졸음의 무게지요.   스르르 눈꺼풀을 닫치며   목까지 툭! 툭! -박방희 동시집 『바다를 끌고 온 정어리』에서   죽순   이오자    쉿∼ 도깨비 소탕작전 준비완료   뽀족뽀족한 뿔 때문에   대나무 숲에서 모두 발각 -이오자 동시집 『도깨비 소탕작전 준비완료』에서   사람 우산   박두순   집에 오는 길 소낙비가 와르르 쏟아졌다   형이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그때 형이 우산이었다.   들에서 일하는데 소낙비가 두두두 쏟아졌다   할머니가 나를 얼른 감싸 안았다 그때 할머니가 우산이었다.   따뜻한 사람 우산이었다. -박두순 동시집『사람 우산』에서   ㄱ(기역)   서향숙   친구 집 담장에 팔 걸치고 마당에서 놀고 있는 친구를 훔쳐보고 있다   담에 붙은 몸 낑낑대지만 떨어지지 않는다   쪼올깃 쪼올깃 찰떡같은 몸   쿵닥쿵 쿵다쿵 좋아하는 맘. -서향숙의 동시집 『자음 모음 놀이』에서   뚝심   김종헌   꽃샘바람엔 입 꼭 다물고   황사바람엔 눈 꼭 감고   다부진 뚝심 하나로   잎으로 자란 연둣빛 새순   땡볕엔 온몸을 뒤척인다   초록바람 일렁이며.   -김종헌 동시조집 『뚝심』에서   다리   우남희   쩌-억 갈라진 논바닥 단비가 아물게 하고   쭈-욱 터진 솔기 바늘이 기워 주고   금이 간 너와 나 사인 웃음이면 되겠지? -우남희 동시집『너라면 가만있겠니?』에서   생각하는 감자1   박승우   감자가 무슨 생각이 있냐고?   그럼 생각도 없이 때가 되면 싹 틔우고 때가 되면 꽃 피우나   생각도 없이 씨감자는 썩으면서 아기 감자 키우나   생각도 없이 다시 싹 틔우라고 씨눈을 만들어 놓나   감자도 생각이 많답니다 -박승우 동시집 『생각하는 감자』에서   콩 총알   김현숙   꼬투리 속에 장전된 콩알   가을 햇살이 방아쇠를 당긴다   타당! 타당! 탕! -김현숙 동시집 『특별한 숙제』에서   햇살을 인터뷰하다   추필숙   수국이 마이크처럼 피면 누구라도 붙잡고 인터뷰하고 싶다   아아아, 지금부터 햇살과 인터뷰를 해 보겠습니다 좋아하는 게 뭐죠?   음, 밖을 아주 좋아해요 낮고 높고 좁고 넓고 가깝고 멀고 가리지 않고 쏘다니는 걸 좋아해요   아주 분주하시군요, 해야 하는데 아, 나는 실컷 쏘다녀 본 적이 있었느냐? 집 안, 차 안, 교실 안 그늘만 기웃거리기도 바쁜 나   그래도 오늘처럼 수국이 핀 날 꽃 뭉치만 한 햇살과 인터뷰하다 문득 깨닫는다   우리 집 햇살은 나! -추필숙 청소년 시집 『햇살을 인터뷰하다』에서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다   오순택   바퀴에 감긴 실을 동그란 실뭉치 풀 듯 풀어보고 싶다.   추운 겨울 누나 목에 두른 목도리 같은 고속도로도 감겨 있고 고운 햇살 머금고 발그레 웃고 있는 코스모스 길도 감겨 있겠지.   바퀴를 뒤로 굴리면 동글동글한 실뭉치가 둘둘둘둘 풀리듯 고속도로 옆 그림처럼 펼쳐진 산과 들도 손잡고 따라 나오고 코스모스 발그레한 웃음도 향내 머금고 따라 나오겠지.   동그란 실뭉치 풀듯 바퀴에 감긴 길을 둘둘둘둘 풀어보고 싶다. -오순택 동시집『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다』에서   고등어야, 미안해   신복순   식탁에 오른 등 푸른 고등어   불쌍하다.   고등어는 바다에서 나오고 싶었을까?   친구들과 놀다가 붙들린 건 아닐까?   왠지 미안해, 고등어에게 사과했다. -신복순 동시집 『고등어야, 미안해』에서   수박냄새   유은경   은어 몸에선 향긋한 수박냄새가 난다.   바다에서 겨울 난 새끼 은어 봄에 떼 지어 강으로 갈 때 편식해서 그렇단다. 물풀만 먹어서 그렇단다.   이것저것 잘 먹던 내가 채소만 먹는다면 내게서도 상큼한 수박냄새 날까? -유은경 동시집 『물고기 병정』』에서   꽃집에 가면   윤이현   장미, 백합, 프리지어 꽃마다 예쁜 이름   꽃들은 다들 웃고 있다 나도 꽃처럼 웃고 싶다   꽃들은 상큼한 향이 난다 나도 누구에게나 기분 좋은 향 상냥스러움의 향 그런 향이 났으면 좋겠다   꽃집에 가면 나도 꽃처럼 되고 싶다. -윤이현 동시집『꽃집에 가면』에서   바람의 맛   장승련   만나는 것들마다 가장 먼저 맛보는 바람.   과일을 만나 먼저 맛보더니 “맛있다, 맛있다!” 여기저기 과일 향기 내뿜고   꽃을 만나 꽃잎 하나 따 먹고는 “향긋해, 향긋해!” 꽃 향기 솔솔 피워 내지.   세상 모든 향기와 맛을 품고 품었다가 온 세상 푸짐하게 뿌려 놓은 바람의 맛. -장승련 동시집『바람의 맛』에서   나는 왜 이럴까?   박예자   동화책을 재미있게 읽고 있는데 “영민아 밥 먹어라, 그만 읽고.” 엄마가 부르지만 난 동화책 한 줄, 꼭 한 줄 더 읽다 혼나지.   고기가 맛있어 자꾸 먹는데 “영민아, 채소도 먹어라.” 난 들은 척 않고 고기 한 젓가락, 꼭 한 젓가락 더 집다 혼나지.   난 늘 왜 이럴까? 엄마 말씀 그때, 멈췄으면 좋았을 걸. -박예자 동시집『나는 왜 이럴까?』에서   옹달샘   조명제   꼬부랑 산기슭 홀로 솟는 옹달샘   방울방울 퐁 퐁 퐁 음표 찍어내고 있다.   마침표 없는 되돌림 노래 부르고 있다.   휘영청 보름달 산노루 한 마리   온쉼표 하나 그리고 갔다. -조명제 동시집『해맑은 동심세계에서』에서   궁둥잇바람 -우리나라 지도의 경고   김미영   가시철사 허리띠   확 풀리는 날   내 궁둥잇바람 조심해라.   일본 너희 나라 지도   우주로 날아갈라. -김미영 동시집 『궁둥잇바람』에서   가을 하늘   윤희순   메뚜기가 뛰고 잠자리가 날고 바람도 높이 분다고 하늘도 뛰었다   높아진 가을 하늘 -2014년 『대구아동문학』 56집에서   이슬비   남석우   소리 없이 내려온다고 누가 모를 줄 아나 봐   발자국이 연못에   동그랗게 동그랗게 찍히는 줄도 모르고 -2014년 『대구아동문학』 56집에서   빗방울의 난타공연   최신영   -푱푱! 찰방찰방! -또드락! 또드락!   물웅덩이 두드리고 마른 나뭇잎 두드리고   내 우산 두드리는 빗방울들의 신나는 난타.   혼자 집으로 가는 길 심심하지 않아요. -최신영 동시집『빗방울의 난타공연』에서   울고 있는 가마솥   김동억   할머니 돌아가시고 비어 있는 시골집   부뚜막에 걸터앉아 집을 보던 가마솥   얼마나 외로웠으면 피눈물을 흘렀을까   솥뚜껑 열어 보니 붉게 번진 눈물자국 -2014년 『열린아동문학』』63집에서   밥 속의 까만 콩   이옥근   살짝 빼낼까? 그냥 먹을까?   까만 머릿결 예쁜 살결 된다며 엄마는 눈 딱 감고 먹으라지만,   비릿하게 씹히는 게 싫어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린다   밥그릇 한쪽에 오종종 모아놓은 까만 콩.   띠룩띠룩 째려보는 까만 눈알들. -별밭동인 제28집 『난 네가 좋다』에서   민들레꽃   김관식   차도와 인도 사이 빨간 소화전 그 옆   보도불럭 길섶 노란 민들레꽃 활짝 피었다.   지나가는 행인이 발로 밟고 지나갔다.   노노노 노랑 벨소리 울렸다.   랑랑랑 다시 일어나 활짝 웃었다. -별밭동인 제28집 『난 네가 좋다』에서   저녁 식사 시간   고영미   꽁치구이 냄새가 온 집안을 돌아다닌다   푸른 바다 헤엄치던 몸짓으로 날렵하게   이 방 저 방 들어가 냄새를 풀어 놓고   문 탁 닫고 들어간 사춘기 언니도 물러낸다   저녁식사 시간 우리 가족 다 꾀어낸 꽁치 한 접시 -『참여문학』 60호 2014년 겨울호에서  
196    김종상의 곤충과 동물을 소재로 쓴 동시조 묶음 외 댓글:  조회:2697  추천:0  2017-05-31
김종상의 곤충과 동물을 소재로 쓴 동시조 묶음 [한국]   개미   잔디밭 땅속에도 나라가 있습니다 모두가 까만 옷에 나라위해 일만 해도 절대로 데모가 없는 평화로운 개미국   거미   뒤란 쪽 추녀 끝에 그물을 걸어놓고 하늘을 헤엄치는 파리, 나비, 잠자리를 한 번에 다 잡겠다고 기다리는 거미님.   귀뚜라미   깊어가는 가을밤에 휘영청 달이 밝아 잠이 오지 않는데다 친구도 하나 없어 밤새워 노래부르지, 귀뚤귀뚤 귀뚜리.   기러기   기러기가 날아가요 나란히 줄맞추어 앞에서 기럭 하면 뒤에서도 기럭기럭 하늘길 멀고 멀지만 노래하며 갑니다.   나비   꽃만 찾아 다니다가 꽃을 닮은 나비들은 바람 타고 팔랑팔랑 꽃잎처럼 날아가다 꽃 지고 허전한 자리 제가 앉아 꽃이 된다   누에나방   뽕잎만을 먹으면서 배밀이로 기더니만 입으로 실을 뽑아 새하얀 고치 짓고 그 속에 몸을 숨기고 들어앉은 누에들   문도 없는 단간방에 며칠을 지내다가 스스로 집을 헐고 밖으로 나와서는 날개옷 활짝 펼치고 훨훨 날아갑니다.   달팽이   채소밭 상추 잎에 달팽이 한 마리가 동그란 자기 집을 통째로 짊어지고 어디로 이사를 하나 쉬지 않고 갑니다.   대벌레   벌레는 벌레이지 제가 무슨 나무라고 대나무 줄기에서 나무인 척 하고 있네 누구를 속이려 하나 대나무의 대벌레.   두루미   두루미 한 마리가 노을 속을 날아가네 모가지를 길게 빼고 발걸음을 서두르네 어둠이 짙어지면은 어디에서 쉴려나.   매   새매는 공중에서 한가롭게 맴돌지만 숲속의 들쥐들은 깜짝 놀라 달아나고 닭어리 병아리들도 엄마 품에 숨어요   모기   침으로 콕 찌르고 애앵 애앵! 달아나고, 창으로 콱 찌르고 왜앵 왜앵! 울고 가네 네가 왜 그 야단이냐? 찔린 것은 나인데   물자라   연못 마을 물자라네 엄마는 어디 가고, 아빠가 저 혼자서 아기 업고 다니네요, 아기들 배고파 울면 젖은 누가 주나요.   바퀴벌레   얼굴도 새까맣고 손발도 새까매서, 징그럽고 더럽다고 미움받는 바퀴벌레, 다리에 바퀴를 달았나 빠르기도 합니다.   부엉이   벼랑위 바위틈에 살고 있는 부엉이는 낮에는 꼼작 않고 집안에 있더니만 밤되니 놀러다니네 안경잡이 부엉이.   비이버   물을 너무 좋아해서 물에 사는 비이버는 나무로 둑을 쌓아 저수지를 만들고는 아무도 알지 못하게 물속 집을 지어요.   사자   사자네 가족들이 하는 일을 보셨나요 엄마는 사냥가고 아빠는 잠만 자고 귀여운 아기사자는 저희끼리 놀아요.   소쩍새   솥이 작다 소쩍소쩍 소쩍새가 울고 있네 솔바람에 실려 오는 구슬픈 그 소리는 나까지 잠을 못 자고 밤을 새게 합니다.   쇠똥굴이   젖소들이 살고 있는 목장의 풀밭에서 쇠똥굴이 아기들이 소똥을 뭉칩니다 소들의 발에 밟히면 어쩌려고 저러나.   소금쟁이   물위를 땅위처럼 걸어가는 소금쟁이 우리가 학교에서 체육을 할 때처럼 친구를 등에 업고도 쏜살같이 달려요.   잠자리   메밀밭에 잠자리는 메밀색 옷을 입고 고추밭에 잠자리는 익은 고추 색깔이지 저마다 사는 곳 따라 몸 색깔이 달라요.   캥거루   어머니 캥거루가 아기를 낳았는데 업을 줄도 모르지만 안는 것도 알지 못해 배꼽에 주머니 달고 거기 넣고 다녀요.   코끼리   코가 너무 길다 해서 코끼리라 부르는가 이빨도 길고 큰데 이끼리라 하면 어때 두 귀도 방석만 하니 귀끼리도 되겠네   타조   날지도 못 하면서 날개는 왜 가졌니 덩치는 커다란게 왜 그렇게 겁이 많니 아기가 놀자고 해도 달아나는 겁쟁이   파리   두 손을 싹싹 빌며 조금만 먹자해요 두 발을 싹싹 빌며 마실 것 좀 달래요 그러다 살충제 맞고 쓰러지는 파리들   갈매기   새하얀 고운 날개 갈매기가 없고 보면 머나먼 바닷길이 얼마나 지겨울까 갈매기 네가 있어서 파도마저 정겹다   뱃길을 앞서가는 갈매기가 아니라면 아득한 수평선이 얼마나 막막할까 갈매기 네가 있어서 바닷길이 즐겁다   개미와 새우   하늘은 가이없이 멀고도 높은데도 개미는 그 하늘이 낮다고 생각하나 땅속을 파고들어가 몸을 낮춰 삽니다.   바다는 끝도 없이 넓고도 깊다는데 새우는 그 바다가 좁다고 생각하나 언제나 작은 허리를 꼬부리고 삽니다.   거북이   세상구경 하고 싶어 땅으로 나왔지만 등딱지가 무거워서 걷기가 힘들겠다 그렇게 고생하면서 무슨 구경 하겠나   네가 살던 고향으로 서둘러 돌아가라 바다까지 가는 길은 아득히 멀고멀다 해지고 날이 저물면 어쩌려고 그러나   까치   마당 앞 팽나무에 집을 짓고 사는 까치 아침마다 나만 보면 제 이름을 불러줘요 자기가 까치란 것을 알려주려 하나 봐   흰 저고리 까만 조끼 단정한 차림으로 꼬랑지를 흔들면서 제 이름을 말해줘요 우리가 자기 이름을 모르는 줄 아나 봐   까치네 오두막   미루나무 꼭대기에 까치네 오두막집 바람이 오고가며 자꾸만 흔드니까 가만히 앉아있어도 흔들흔들 좋겠다   미루나무 꼭대기에 까치네 초가삼간 하늘이 가까워서 아기별이 놀러오니 등불을 켜지 않아도 초롱초롱 밝겠다.   까치집   나뭇가지 물어다가 벽을 쌓고 지붕 덮고 엄마까치 아빠까치 부지런히 집을 짓네 두 부부 새살림 차릴 조그마한 오두막   아빠는 방 한쪽에 침대를 들여놓고 엄마는 깃털 모아 이부자리 마련하고 태어날 아기를 위해 정성스레 꾸미네.   따개비   하늘과 마주닿은 수평선을 멀리 두고 파도가 비질하여 씻어주는 갯바위에 따개비 오두막들이 올망졸망 있어요 들고나는 뱃고동에 잠이 들고 잠을 깨는 단간방 작은 집은 울도 담도 없지만은 끝없이 넓은 바다를 뜰로 하고 살아요   매미   조용한 시골에는 매미들도 조용하지 소리가 작더라도 모두가 잘 들으니 정답게 속삭이듯이 미음미음 울어요   시끄러운 도시에는 매미들도 시끄럽지 큰 소리가 아니면은 아무도 못 들으니 목청껏 악을 쓰면서 매암매암 울어요.   메뚜기   벼논에 메뚜기는 벼를 닮은 벼메뚜기 노릇노릇 물이 들며 벼이삭이 익어가면 파랗던 벼메뚜기도 노란몸이 되지요   콩밭에 메뚜기는 콩을 닮은 콩메뚜기 콩꼬투리 알이 들어 통통하게 굵어가면 조그만 콩메뚜기도 토실토실 살쪄요.   반딧불이   손톱만한 초승달도 서산으로 넘어가고 초가집 추녀 끝에 참새도 잠든 시간 깜박이 등불 하나가 동구 밖을 나서네   집나간 아들 생각 밤이면 더 간절해 혹시나 하는 마음 반딧불로 살아나서 밤길을 밝히고 있네. 반딧불이 초롱불.   버들붕어   하느님 궁궐 안에 한 그루 버드나무 어느 날 그 잎들이 바람에 휘날려서 우수수 땅을 향해서 떨어지게 됐대요   버들잎이 흙에 닿아 썩을 것을 걱정해서 하느님이 비로 쓸어 냇물에 넣었는데 그것이 모두 살아서 버들붕어 됐대요   소라게   소라껍질 단간 집에 주인이 바뀌었네 누구가 이사왔나. 전세냐 사글세냐 외짝문 살며시 열고 내다보는 소라게   끝없이 넓은 갯벌 아무데나 살 것이지 집이 무슨 봇짐이냐? 통째로 끌고 가게 단간집 좁은 방에서 혼자 사는 소라게 매미 / 김양수 숨죽여 살금살금  나무에 다가가서  한 손을 쭈욱 뻗어  잽싸게 덮쳤는데  손 안에 남아 있는 건  매암매암 울음뿐.  메아리 / 서 재 환  산 속에는 '야호!'라는 아이가 숨어 사나 봐. 그래서 사람들은 산에만 올라서면 두 손을 입에 모으고 야호! 야호! 부르나 봐. '야호'는 무슨 일로 얼굴을 숨겨 두고 '야호!'라고 소리치면 목소리만 나타나서 그 목청 골 안 가득히 쩌렁쩌렁 우는 걸까. --------------------- 새싹/김 창 현 파아란 새싹들이 땅 속 뚫고 나오면 밟혀도 일어서는 푸른 꿈 간직하고 달콤한 봄비 마시며 어린이처럼 자라요. ----------------- 다람쥐/김 창 현 알밤만 한아름씩 대궐만큼 쌓아 놓고 달구랑 쓰구랑 쓰구랑 달구랑 올해도 햇밤 맛자랑 새벽까지 떠들어요. ......................... 시계는/ 김 용 희  아무리 먼 길이라도 황소를 닮은 걸음. 밤새워 째각째각 느긋한 되새김질. 아침해 띄우는 걸 좀 봐. 힘만은 무척 세지. --------------- 낮달/김용희 달인가 하고 보면 흰 구름 조각이었죠. 하얀 달은 구름 속에 살짝꿍 숨어 다녀요. 온종일 심심하다며 숨바꼭질하겠대요. ------------ 저녁노을/김용희 서산 마을이 다투어 하얀 쌀밥 짓다가 구름을 숯불덩이로 화끈 달궈 놓았어요. 하늘이 너무 뜨거워 해를 덜컥 떨어뜨렸죠 ------------------- 밤 구름/김용희 달 가는 길을 구름이 징검다리 놓았어요. 폴짝폴짝 건너뛰며 재미 삼아 밤길 가라고 구름이 아파할까 봐 달님 살짝 밟고 가요. ------------------ 김치/ 김 몽 선  숨죽은 배추 속살 빨간 고추 매콤한 맛 엄마 손 닿고 나면 침 고이는 저녁 밥상 김치가 휘돌아간 자리 빈 그릇만 얌전하다. -------------------- 운동회/ 김 몽 선  들뜬 마음 푸른 하늘 만국기로 걸어놓고 힘찬 응원 등에 업고 바람 갈라 내달으면 결승선 아득한 흰 줄 내 가슴에 와 안긴다. -------------------- 방울토마토/ 진 복 희  도톰한 방울토마토 한 입에 넣고 굴리다가 아작 깨물면 싱그럽게 터지는 폭죽 단숨에 목젖을 적시는 새콤한 방울 폭죽 ----------------- 채송화/진 복 희  오종종 모여 앉아 무슨 생각을 엮는 걸까. 그 누가 숨어 설레는 해맑은 입김일까. 샛노랑 노랑 하양 빨강 온통 보조개밭이네. ...................................... 할머니-홍시 / 진 복 희  할머니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게 드시는 것 잇몸으로 호물호물 잘도 잘도 잡수신다 먼 발치 바라만 보아도 군침 도는 가을 한때. ----------------- 고추 말리는 날/신 현 배  우리 집 앞마당이 빨간 고추로 덮였다. 눈이 따끔 코가 간질 연방 터지는 재채기 바람도 견디다 못해 주춤주춤 물러난다. 구급차 신 현 배  풍뎅이 한 마리가 방 안에 뛰어든 듯 구급차 한 대가 거리를 휘젓는다. 요란한 사이렌 소리에 차들도 귀가 멍멍. 녹십자 마크를 한눈에 알아본 듯 사거리 신호등이 빨간불을 더디 켠다. 구급차 숨가쁜 목숨에 파란불이 켜진다. 우산 신 현 배  햇빛을 베개 삼아 잠만 자던 헌 우산이 후드득 빗소리에 반가워 눈을 뜬다. 오늘은 철이 손 잡고 학원에 가겠구나. 기지개를 활짝 켜고 거리로 나선 우산이 목말 탄 아이처럼 우쭐우쭐 길을 간다. 접었다 펼친 마음이 무지개를 그린다. 태풍 신 현 배  실바람도 태풍 되면 씨름꾼이 되나 보다 아름드리 나무쯤 딴죽 걸어 넘어뜨리고 덩치 큰 힘센 바다를 번쩍 들어올린다. ---------- 노 루 김 양 수 흰눈 위 아기노루 먼 산을 바라본다 엄마를 새겨보는 해맑은 눈동자 또르륵 이슬 같은 그리움 새봄이 뽑아낸다. 개나리 김 상 형 앞산 양지쪽의 갓 피어난 개나리가 노오란 오운 빛으로 새 봄을 즐기면서 호호호 웃는 소리가 마을까지 들리네. 엄마의 손 김 사 균 이마를 짚어주면 두통이 금세 낫고 배꼽을 쓸어주면 배앓이가 멎는 약손 엄마의 커다란 손은 우리들의 병원이다. 봄 편지 김 몽 선 지난 흰눈 덮고 꼭꼭 숨어 기다리던 모란 가지 그 끝에는 바알갛게 꽃망울이 날마다 더 큰 몸짓으로 봄을 일러주고 있다. 언 바람 온몸으로 받아 내던 개나리도 실실이 풀린 기운 엄마 같은 환한 미소 반가운 봄소식 한 줌 한 겹 벗는 이 세상. 할머니 얼굴 경 철 밤 하늘  멀리 멀리 아련한 저 별자리 무릎 위 앉아 듣던 구수한 이야기들, 어느새 나도 별 되어 외손녀를 안고 있다. 섬노을 바람빛 고 응 삼 푸른 섬 흰구름이 돌 가슴 귀를 열고 숱한 세월 일렁인 삶 못다 섬긴 사랑 노래 노을빛  붉게 타는 섬은 아롱지는 무지개다. 겨울 종소리 박 필 상 1  겨울의 종소리는  흰 눈으로 내립니다  퍼얼펄 쏟아져서  온 세상을 덮습니다  땅위의  온갖 어둠을  새하얗게 씻습니다  2  겨울의 종소리는  눈부시게 푸릅니다  햇살처럼 따스하게  온 세상을 비춥니다  가슴속  온갖 그늘도  새하얗게 지웁니다  눈썹달 2  윤 삼 현 사알짝 돋아난 막내 동생 젖니 같은  흙 틈새 뚫고 나온 봄나물 새촉 같은  가느단  새 순 한 가닥  하늘밭에 솟아났다.  꽃 꿈 이 명 길 내가 만든 꽃밭에  꽃씨 뿌렸다  언제만 새싹이   돋아날까 움틀까  날마다 지켜보면 아직도  추워설까 소식없네.  가만히 생각하니  꿈을 꾸는 게지  파란 하늘 마주 설  파란 꿈꾸고  봄볕에 방실거려 놀  빨간 노란 아기 꿈 봄바람 송 명 호 고양이 발걸음처럼 살금살금 온다고 누가 모를 줄 아나? 처마 끝을 지날 때 똑똑 낙숫물을 밟고 가면서. 금잔디에 숨어서 숨바꼭질한다고 누가 모를 줄 아나? 새싹들이 파릇파릇 알려 주는걸. 사르르 얼음 위로 미끄럼 친다고 누가 모를 줄 아나? 풀리는 강물이 짝짜꿍 손뼉 치며 좋아라 하는데. (7차 교육과정 4학년 1학기『읽기』 p.15  엄마의 손 장 용 복  엄마의 고운 손이 머리맡에 만져져서  눈감고 아픈 듯이 꿍꿍꿍 앓아보니  엄마는 걱정이 되어 살며시 안으시네  우리 맛 정 표 년 참기름 간장 깨소금에  흰쌀밥을 비벼봤나  엄마가 떠 먹여주던  그 사랑을 먹어 봤나  소세지 햄 피자하고는  아주 다른 우리 맛  넷째 시간 서 벌 초침은  달리는 말  분침은  달팽이 발.  가는 건지  마는 건지  시침은  부처님 손.  손 얼른  움직이셔야  도시락  먹을 텐데…….  어머님의 젖꼭지 박 양 권 잎 지고 다 시들은 감자포기 뽑아들면  뿌리 가득 올망졸망 매달린 감자알들  한 줄기 젖줄을 빨며 탐스럽게 자랐네  한 조각 씨감자가 땅 속에서 썩으며  감자알 키워놓고 뿌리 끝에 매달린  까맣게 썩은 씨감자 어머님의 젖꼭지  목 련 신 현 배 꽃샘바람보다 먼저  눈을 뜬 망울들이  겨우내 끼고 있던  벙어리 장갑 벗고  다 같이 가위바위보  하얀 손을 내민다 솔방울 신 현 득 구슬을 갖고 싶은 어린 아기 소나무  손끝에 한두 개씩 솔방울을 들었네.  동그란 솔방울들은 소나무의 노리개.  새벽 숲에서 김 영 수 선잠 깬 어린 새들이 칭얼칭얼 우는 소리  -아가 왜 그래? 찌찌 줄까? 맘마 줄까?  애타는 엄마새들이 달래며 우짖는 소리  느티나무 이사 가던 날 손 상 철 먼 곳의 산들이 와 손잡고 잘 가란다  계곡물 산을 내려와 잘 가라 마당에서 울고  동구 밖 느티나무는 노을 붉게 손 흔든다  입학식 추 창 호 까치가 뱉어놓은  새파란 하늘 아래  햇살 이름표로  반짝이는 아이들  발걸음  종종거리며  초록 꿈을 틔운다  나무는 나무는 김 호 길 나무는 나무는   땅이 엄마인가 봐  엄마 품에 새록새록  안겨 잠든 아가처럼  뿌리를 땅의 가슴에  깊이깊이 내리나봐.       나무는 나무는   하늘이 아빠인가 봐  아빠 손잡고 나선   아장아장 아가처럼  가지를 하늘에 올려  손 흔들고 있는가봐.  물총새 조 주 환 쫑쫑 물 쫑쫑 조약돌에 떨군 울음이 소금쟁이 살여울에 물무늬로 가 앉다가 풋잠 든 아가의 눈에 방울방울 벙근다. 소금쟁이 허 일 소록소록 실비 끝에 동그라미 송송송송 개구쟁이 소금쟁이 불신 신고 쏘다니며 엄마가 부르는 소리 귓등으로 듣는다. 가을 하늘 조 규 영 가을  하늘은  독수리도 탐이 나서 먼 산 위에서 뱅 뱅 맴을 돌며 며칠 째 파란 하늘을  도려낸다 자꾸만. 들길 산길 진 복 희 들길을 가면 나는 한 송이 작은 들꽃. 눈여겨 주지 않아도 외롭지 않은 들길. 가다가 풀섶에 앉아 듣는 싱그러운 풀잎 얘기. 산길을 가면 나는 한 자락 푸른 산바람. 굽굽이 오솔길 따라 마냥 걸어가는 내 생각. 새소리 바람 소리 어디쯤 숨어 있을 내 소리. 요리 갔다 조리 갔다 전 의 홍 깎을까, 깎지 말까 더부룩히 자란 머리. 사지 말까, 살까 신나게 쏠 고 고무총. 절러렁 동전 다섯이 이발소를 지나서....... 살까, 사지 말까 장독 다칠 조 고무총. 깎지 말까, 깎을까 소풍 하루 앞둔 머리. 쥐었다 동전을 꼬옥, 가게 앞을 지나며 어머니 김 종 상 때 절은 이불 속 아기는 잠이 들고 졸음 맺는 등잔불 밤도 깊어 으슥한데 세월을 돌리시듯이 물레 잣는 어머니 의상대 해돋이 조 종 현 천지 개벽이야! 눈이 번쩍 뜨인다. 불덩이가 솟는구나. 가슴이 용솟음친다. 여보게, 저것 좀 보아! 후끈하지 않은가. 받아 든 엽서 정 완 영 네가 보낸 한 장 엽서는 네가 보낸 한 장 바다. 꽃게 같은 이야기들이 곰실곰실 기어 나온다. 썰물에 나갔던 바다가 밀물 타고 들어온다. 봉숭아 김 상 옥 비 오자 장독간에 봉숭아 반만 벌어, 해마다 피는 꽃을 나만 두고 볼 것인가. 세세한 사연을 적어 누님께도 보내자. 누님이 편지 보며 하마 울까 웃으실까. 눈앞에 삼삼이는 고향집을 그리시고, 손톱에 꽃물 들이던 그날 생각하시리. 양지에 마주앉아 실로 찬찬 매어주던 하얀 손 가락가락이 연붉은 그 손톱은, 지금은 꿈 속에 본 듯 힘줄만이 서누나. 산길에서 이 호 우 진달래 사태진 골에 돌 돌 돌, 물 흐르는 소리. 제법 귀를 쫑긋 듣고 섰던 노루란 놈, 열적게 껑청 뛰달아 봄이 깜짝 놀란다. 나도 같이 시를 쓴다 이 은 상 아득한 바다 위에 갈매기 두엇 날아 돈다. 너훌너훌 시를 쓴다. 모르는 나라 글자다. 널따란 하늘 복판에 나도 같이 시를 쓴다. 별 이 병 기 바람이 서늘도 하여 뜰 앞에 나섰더니, 서산 머리에 하늘은 구름을 벗어나고 산뜻한 초사흘 달이 별과 함께 나오더라. 달은 넘어가고 별만 서로 반짝인다. 저 별은 귀 별이며 내 별 또한 어느 게오. 잠자코 호올로 서서 별을 헤어 보노라. 산딸기 이 태 극 골짝 바위 서리에 빨가장이 여문 딸기 까마귀 먹게 두고 산이 좋아 사는 것을 아이들 종종쳐 뛰며 숲을 헤쳐 덤비네. 봄 산  장 순 하 가지에선 새싹들이 눈 비벼 깜박이고 땅 속에선 벌레들이 기지개를 길게 켠다. 봄 산은 간지럼쟁이, 까르르르 몸을 꼰다. 딸기밭 박 경 용 높은 산 메아리도 꼬리만이 잦아들고, 강의 먼 노랫가락도 끝자락만 닿아오는 딸기밭 꼬맹이 풀섶에 잔조로운 불씨들. 뜨겁게 머무르는 태양의 가쁜 숨결 째한 한낮을 질러 은밀히 다녀가는 바람도 난쟁이 바람 어디 어디? 저기 저기! 개구쟁이 아랫동생 킥킥대는 웃음이랑 새큼한 여린 맛의 막냇동생 웃음이랑 함께 와 열려서 익네, 설레이는 내 눈길도. 구 두 유 성 규 도툼한 사연이다, 시집 간 누나 마음. 볼에다 비벼대고 바둑이도 불러 놓고 속갈피 비집고 보니 내 구두가 한 켤레. 내 마음 들머리에 달이 둥실 오른다. 추석날 성묘길에서 구두타령 했더니, 누나는 그날의 응석을 가슴 아파했던 게다 채송화 밭에서 이 상 범 다섯 식구가 모여 다섯 가지 보람을 가꾸면 색동인 양 오색 무지개 비 개면 오를 거다. 꽃 지운 자리엔 오소소 다섯 식구 꿈의 씨앗. 민들레 꽃씨 윤 현 조 우리는 낙하산 형제 하늘 높이 날아라 풍선처럼 손오공처럼 춤을 추며 날아라 온 식구 소풍가는 날 바람도 함께 가요. 일학년 임 금 자 1 '여러분은 몇 학년' '우리들은 일학년' '천재들만 모였구나' 선생님 말씀에 종합장 별 세 개까지 반짝반짝 웃는다. 2 새 가방 메고서 으스대고 싶었는데 학교가 코앞이라 아파트 한번 돌고 또 안녕 경비 아저씨 오냐오냐 두 번 웃고. 3 가족수 세던 날 식구 셋이 많았는데 할머니 할아버지 내 동생까지 여섯 식구 제일로 내가 부자야 두 어깨가 춤을 춘다. 해 정 순 량 해를 밀어 올리는 동해(東海)는 힘이 세다 동쪽에서 서쪽 끝까지 무엇이 끌고 가나 서해(西海)는 해를 삼키고 붉은 피를 토해낸다.  
195    한용운 시인의 시 모음 댓글:  조회:3177  추천:0  2017-05-29
한용운 시인의 시 모음     [목차] 님의 침묵 이별은 미의 창조 알 수 없어요 나는 잊고저 나의 길 꿈 깨고서 길이 막혀 나룻배와 행인 차라리 꿈과 근심 비 꽃이 먼저 알어 사랑하는 까닭 달을 보며 여름밤이 길어요 떠날때 님의 얼골 두견새 우는 때 수의 비밀 당신 가신때 꽃싸움 거문고 탈 때 알 수 없어요 고적한 밤 예술가 하나가 되야주서요 당신이 아니더면 잠 없는 꿈 생명 당신은 행복 밤은 고요하고 포도주[葡萄酒] 해당화 복종[服從] 情天恨海[정천한해] 그를 보내며 ~~~~~~~~~~~~~~~~~~~~~~~ 님의 침묵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야 난 적은 길을 걸어서 참어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는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야서 한숨의 미풍에 날어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쓰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러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골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노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 부었습니다. 우리는 말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얐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 이별은 미의 창조 이별은 미의 창조입니다. 이별의 미는 아침의 바탕[質]없는 황금과 밤의 올[絲]없는 검은 비단과 죽음 없는 영원의 생명과 시들지 않는 하늘의 푸른 꽃에도 없습니다. 님이여 이별이 아니면 나는 눈물에서 죽었다가 웃음에서 다시 살어날 수가 없습니다. 오오 이별이여 美는 이별의 創造입니다. ~~~~~~~~~~~~~~~~~~~~~~~~~~~~~~~~~~~~~~~~~~~~~~~~~~~~~~~~~~~~~~~~ 알 수 없어요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의 파문을 내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최입니까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골입니까 꽃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옛 탑 위의 고요한 하늘을 슬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근원은 알지도 못할 곳에서 나서 돍부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적은 시내는 굽이굽이 누구의 노래입니까 연꽃 같은 발꿈치로 갓이 없는 바다를 밟고 옥 같은 손으로 끝 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날을 곱게 단장하는 저녁놀은 누구의 詩입니까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 나는 잊고저 남들은 님을 생각한다지만 나는 님을 잊고저 하야요 잊고저 할수록 생각히기로 행혀 잊힐까 하고 생각하야 보았습니다. 잊으랴면 생각하고 생각하면 잊히지 아니하니 잊도 말고 생각도 말어 볼까요 잊든지 생각든지 내버려두어 볼까요 그러나 그리도 아니되고 끊임없는 생각생각에 님뿐인데 어찌하야요 귀태여 잊으랴면 잊을 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잠과 죽음뿐이기로 님 두고는 못하야요 아아 잊히지 않는 생각보다 잊고저 하는 그것이 더욱 괴롭습니다. ~~~~~~~~~~~~~~~~~~~~~~~~~~~~~~~~~~~~~~~~~~~~~~~~~~~~~~~~~~~~~ 나의 길 이 세상에는 길도 많기도 합니다. 산에는 돍길이 있습니다 바다에는 뱃길이 있습니다. 공중에는 달과 별의 길이 있습니다. 강가에서 낚시질하는 사람은 모래위에 발자최를 니입니다. 들에서 나물캐는 여자는 방초를 밟습니다. 악한 사람은 죄의 길을 좇어갑니다. 의있는 사람은 옳은 일을 위하야는 칼날을 밟습니다. 서산에 지는 해는 붉은 놀을 밟습니다. 봄 아츰의 맑은 이슬은 꽃머리에서 미끄름 탑니다. 그러나 나의 길은 이 세상에 둘밖에 없습니다. 하나는 님의 품에 안기는 길입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죽음의 품에 안기는 길입니다. 그것은 만일 님의 품에 안기지 못하면 다근 길은 죽음의 길보다 험하고 괴로운 까닭입니다. 아아 나의 길은 누가 내였습니까 아아 이 세상에는 님이 아니고는 나의 길을 내일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나의 길을 님이 내였으면 죽음의 길은 웨 내섰을까요 ~~~~~~~~~~~~~~~~~~~~~~~~~~~~~~~~~~~~~~~~~~~~~~~~~~~~~~~~~~~~~ 꿈 깨고서 님이며는 나를 사랑하련마는 밤마다 문 밖에 와서 발자최 소리만 니이고 한 번도 들어오지 아니하고 도로 가니 그것이 사랑인가요 그러나 나는 발자최나마 님의 문 밖에 가본 적이 없습니다. 아아 사랑은 님에게만 있나버요 아아 발자최 소리나 아니더면 꿈이나 아니 깨였으련마는 꿈은 님을 찾어가라고 구름을 탔었어요. ~~~~~~~~~~~~~~~~~~~~~~~~~~~~~~~~~~~~~~~~~~~~~~~~~~~~~~~~~~~~~~ 길이 막혀 당신의 얼골은 달도 아니언만 산 넘고 물 넘어 나의 마음을 비칩니다 나의 손길은 웨 그리 쩔러서 눈앞에 보이는 당신의 가슴을 못 만지나요 당신이 오기로 못 올 것이 무엇이며 내가 가기로 못 갈 것이 없지마는 산에는 사다리가 없고 물에는 배가 없어요 뉘라서 사다리를 떼고 배를 깨트렸습니까 나는 보석으로 사다리 놓고 진주로 배 모아요 오시랴도 길이 막혀서 못 오시는 당신이 기루어요 ~~~~~~~~~~~~~~~~~~~~~~~~~~~~~~~~~~~~~~~~~~~~~~~~~~~~~~~~~~~~~~ 나룻배와 행인 나는 나룻배 당신은 行人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옅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갑니다. 만일 당신이 아니 오시면 나는 바람을 쐬고 눈비를 맞이며 밤에서 낮까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은 물만 건느면 나를 돌어보지도 않고 가십니다그려 그러나 당신이 언제든지 오실 줄만은 알어요 나는 당신을 기다리면서 날마다 날마다 낡어갑니다 나는 나룻배 당신은 行人 ~~~~~~~~~~~~~~~~~~~~~~~~~~~~~~~~~~~~~~~~~~~~~~~~~~~~~~~~~~~~~~ 차라리 님이여 오서요 오시지 아니하랴면 차라리 가서요 가랴다 오고 오랴다 가는 것은 나에게 목숨을 빼앗고 죽음도 주지 않는 것입니다. 님이여 나를 책망하랴거든 차라리 큰소리로 말씀하야 주서요 침묵으로 책망하지 말고 침묵으로 책망하는 것은 아픈 마음을 얼음바늘로 찌르는 것입니다. 님이여 나를 아니 보랴거든 차라리 눈을 돌려서 감으서요 흐르는 곁눈으로 흘겨보지 마서요 곁눈으로 흘겨보는 것은 사랑의 보에 가시의 선물을 싸서 주는 것입니다. ~~~~~~~~~~~~~~~~~~~~~~~~~~~~~~~~~~~~~~~~~~~~~~~~~~~~~~~~~~~~~ 꿈과 근심 밤근심이 하 길기에 꿈도 길 줄 알었더니 님을 보러 가는 길에 반도 못 가서 깨었고나 새벽 꿈이 하 쩌르기에 근심도 쩌를 줄 알었더니 근심에서 근심으로 끝 간 데를 모르겠다 만일 님에게도 꿈과 근심이 있거든 차라리 근심이 꿈 되고 꿈이 근심 되여라 ~~~~~~~~~~~~~~~~~~~~~~~~~~~~~~~~~~~~~~~~~~~~~~~~~~~~~~~~~~~ 비 비는 가장 큰 權威를 가지고 가장 좋은 機會를 줍니다 비는 해를 가리고 하늘을 가리고 세상사람의 눈을 가립니다 그러나 비는 번개와 무지개를 가리지 않습니다. 나는 번개가 되야 무지개를 타고 당신에게 가서 사랑의 팔에 감기고자 합니다 비 오는 날 가만히 가서 당신의 침묵을 가져온대도 당신의 주인은 알 수가 없습니다. 만일 당신이 비 오는 날에 오신다면 나는 연잎으로 윗옷을 지어서 보내겄습니다. 당신이 비 오는 날에 연잎 옷을 입고 오시면 이 세상에는 알 사람이 없습니다. 당신이 비 가온데로 가만히 오서서 나의 눈물을 가져가신대도 영원한 비밀이 될 것입니다. 비는 가장 큰 권위를 가지고 가장 좋은 기회를 줍니다. ~~~~~~~~~~~~~~~~~~~~~~~~~~~~~~~~~~~~~~~~~~~~~~~~~~~~~~~~~~~~ 꽃이 먼저 알어 옛집을 떠나서 다른 시골에 봄을 만났습니다 꿈은 이따금 봄바람을 따러서 아득한 옛터에 이릅니다 지팽이는 푸르고 풀빛에 묻혀서 그림자와 서로 따릅니다. 길가에서 이름도 모른 꽃을 보고서 행혀 근심을 잊일까 하고 앉었습니다. 꽃송이에는 아츰 이슬이 아즉 마르지 아닌한가 하얐더니 아아 나의 눈물이 떨어진 줄이야 꽃이 먼저 알었습니다. ~~~~~~~~~~~~~~~~~~~~~~~~~~~~~~~~~~~~~~~~~~~~~~~~~~~~~~~~~~~~~~~ 사랑하는 까닭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홍안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백발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기루어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미소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눈물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기다리는 것은 까닭이 없는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건강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죽음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 달을 보며 달은 밝고 당신이 하도 기루었습니다. 자던 옷을 고쳐입고 뜰에 나와 퍼지르고 앉아서 달을 한참 보았습니다. 달은 차차차 당신의 얼골이 되더니 넓은 이마,둥근 코 아름다운 수염이 역역히 보입니다. 간 해에는 당신의 얼골이 달로 보이더니 오늘밤에는 달이 당신의 얼골이 됩니다. 당신의 얼골이 달이기에 나의 얼골도 달이 되얐습니다. 나의 얼골은 그믐달이 된 줄을 당신이 아십니까 아아 당신의 얼골이 달이기에 나의 얼골도 달이 되얐습니다. ~~~~~~~~~~~~~~~~~~~~~~~~~~~~~~~~~~~~~~~~~~~~~~~~~~~~~~~~~~~~~~ 여름밤이 길어요 당신이 기실 때에는 겨울밤이 쩌르더니 당신이 가신 뒤에는 여름밤이 길어요 책력의 內容이 그릇되얏나 하얐더니 개똥불이 흐르고 버러지가 웁니다 긴 밤은 어데서 오고 어데로 가는 줄을 분명히 알었습니다. 긴 밤은 근심바다의 첫 물결에서 나와서 슬픈 音樂이 되고 아득한 沙漠이 되더니 필경 絶望의 성너머로 가서 惡魔의 웃음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나 당신이 오시면 나는 사랑의 칼을 가지고 긴 밤을 베혀서 一千도막을 내겄습니다 당신이 기실 때는 겨울밤이 쩌르더니 당신이 가신 뒤는 여름밤이 길어요 ~~~~~~~~~~~~~~~~~~~~~~~~~~~~~~~~~~~~~~~~~~~~~~~~~~~~~~~~~~ 떠날 때의 님의 얼골 꽃은 떨어지는 향기가 아름답습니다 해는 지는 빛이 곱습니다 노래는 목마친 가락이 묘합니다 님은 떠날 때의 얼골이 더욱 어여쁩니다. 떠난신 뒤에 나의 幻想의 눈에 비치는 님의 얼골은 눈물이 없는 눈으로는 바로 볼 수가 없을 만치 어여쁠 것입니다. 님의 떠날 때의 어여쁜 얼골을 나의 눈에 새기겄습니다. 님의 얼골은 나를 울리기에는 너머도 야속한 듯하지마는 님을 사랑하기 위하야는 나의 마음을 질거웁게 할 수가 없습니다. 만일 그 어여쁜 얼골이 영원히 나의 눈을 떠난다면 그때의 슬픔은 우는 것보다도 아프겄습니다. ~~~~~~~~~~~~~~~~~~~~~~~~~~~~~~~~~~~~~~~~~~~~~~~~~~~~~~~~~~~~~ 두견새 두견새는 실컷 운다 울다가 못 다 울면 피를 흘려 운다 이별한 한이야 너 뿐이랴마는 울래야 울지도 못하는 나는 두견새 못 된 恨을 또다시 어찌하리 야속한 두견새는 돌어갈 곳도 없는 나를 보고도 [不如歸不如歸] ~~~~~~~~~~~~~~~~~~~~~~~~~~~~~~~~~~~~~~~~~~~~~~~~~~~~~~~~~~~~~ 우는 때 꽃 핀 아츰 달 밝은 저녁 비 오는 밤 그때가 가장 님 기루운 때라고 남들은 말합니다. 나도 같은 고요한 때로는 그때에 많이 울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여러 사람이 모혀서 말하고 노는 때에 더 울게 됩니다. 님 있는 여러 사람들은 나를 위로하야 좋은 말을 합니다마는 나는 그들의 위로하는 말을 조소로 듣습니다. 그때에는 울음을 삼켜서 눈물을 속으로 창자를 향햐야 흘립니다. ~~~~~~~~~~~~~~~~~~~~~~~~~~~~~~~~~~~~~~~~~~~~~~~~~~~~~~~~~~~~~~ 繡의 秘密 나는 당신의 옷을 다 지어놓았습니다 심의도 짓고 도포도 짓고 자리옷도 지었습니다 짓지 아니한 것은 적은 주머니에 수놓는 것뿐입니다 그 주머니는 나의 손때가 많이 묻었습니다 짓다가 놓아두고 짓다가 놓아두고 한 까닭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바느질 솜씨가 없는 줄로 알지마는 그러한 비밀은 나밖에는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나는 마음이 아프고 쓰린 때에 주머니에 수를 놓으랴면 나의 마음은 수놓는 금실을 따러서 바늘 구녕으로 들어가고 주머니 속에서 맑은 노래가 나와서 나의 마음이 됩니다. 그러고 아즉 이 세상에는 그 주머니에 널 만한 무슨 보물이 없습니다. 이 적은 주머니는 짓기 싫여서 짓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짓고 싶어서 다 짓지 않는 것입니다. ~~~~~~~~~~~~~~~~~~~~~~~~~~~~~~~~~~~~~~~~~~~~~~~~~~~~~~~~~~~~~~~~~ 당신 가신 때 당신이 가실 때에 나는 시골에 병들어 누워서 이별의 키쓰도 못하얐습니다 그때는 가을바람이 츰으로 나서 단풍이 한 가지에 두서너 잎이 붉었습니다 나는 永遠의 時間에서 당신 가신 때를 끊어내겄습니다 그러면 시간은 두 도막이 납니다 시간의 한 끝은 당신이 가지고 한끝은 내가 가졌다가 당신의 손과 나의 손과 마조 잡을 때에 가만히 이어놓겄습니다. 그러면 붓대를 잡고 남의 불행한 일만을 쓰랴고 기다리는 사람들도 당신의 가신 때는 쓰지 못할 것입니다. 나는 영원의 시간에서 당신 가신 때를 끊어내겄습니다. ~~~~~~~~~~~~~~~~~~~~~~~~~~~~~~~~~~~~~~~~~~~~~~~~~~~~~~~~~~~~~~~~ 꽃싸움 당신은 두견화를 심으실 때에 [꽃이 피거든 꽃싸움하자]고 나에게 말하얐습니다. 꽃은 피어서 시들어가는데 당신은 옛 맹서를 잊으시고 아니 오십니다 나는 한 손에 붉은 꽃수염을 가지고 한 손에 흰 꽃수염을 가지고 꽃싸움을 하야서 이기는 것은 당신이라 하고 지는것은 내가 됩니다 그러나 정말로 당신을 만나서 꽃싸움을 하게 되면 나는 붉은 꽃수엄을 가지고 당신은 흰 꽃수염을 가지게 합니다. 그러면 당신은 나에게 번번히 지십니다 그것은 내가 이기기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나에게 지기를 기뻐하는 까닭입니다. 번번히 이긴 나는 당신에게 우승의 상을 달라고 조르겄습니다 그러면 당신은 빙긋이 웃으며 나의 뺨에 입맞추겄습니다 꽃은 피어서 시들어가는데 당신은 옛 맹서를 잊이시고 아니 오십니다. ~~~~~~~~~~~~~~~~~~~~~~~~~~~~~~~~~~~~~~~~~~~~~~~~~~~~~~~~~~~~~~~~ 거문고 탈 때 달 아래에서 거문고를 타기는 근심을 잊을까 함이러니 츰곡조가 끝나기 전에 눈물이 앞을 가려서 밤은 바다가 되고 거문고 줄은 무지개가 됩니다 거문고 소리가 높었다가 가늘고 가늘다가 높을 때에 당신은 거문고 줄에서 그늬를 뜁니다. 마즈막 소리가 바람을 따러서 느투나무 그늘로 사러질 때에 당신은 나를 힘없이 보면서 아득한 눈을 감습니다 아아 당신은 사러지는 거문고 소리를 따러서 아득한 눈을 감습니다. ~~~~~~~~~~~~~~~~~~~~~~~~~~~~~~~~~~~~~~~~~~~~~~~~~~~~~~~~~~~~~~~~~ 알 수 없어요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의 파문을 내이며 고요이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최입니까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골입니까 꽃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옛 탑 위의 고요한 하늘을 슬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근원은 알지도 못할 곳에서 나어 돍부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적은 시내는 굽이굽이 누구의 노래입니까 연꽃 같은 발꿈치로 갓이 없는 바다를 밟고, 옥 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날을 곱게 단장하는 저녁놀은 누구의 詩입니까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 고적한 밤 하늘에는 달이 없고 따에는 바람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소리가 없고, 나는 마음이 없습니다. 우주는 죽음인가요 인생은 잠인가요 한 가닭은 눈썹에 걸치고 한 가닭은 적은 별에 걸쳤든 님생각의 금실은 살살살 걷힙니다. 한 손에는 황금의 칼을 들고 한 손으로 천국의 꽃을 꺽든 환상의 여왕도 그림자를 감추었습니다. 아아 님 생각의 금실과 환상의 여왕이 두 손을 마조 잡고 눈물의 속에서 정사한 줄이야 누가 알어요 宇宙는 죽음인가요 人生은 눈물인가요 人生이 눈물이면 죽음은 사랑인가요 ~~~~~~~~~~~~~~~~~~~~~~~~~~~~~~~~~~~~~~~~~~~~~~~~~~~~~~~~~~~~~~~~~~ 예술가 나는 서투른 화가여요 잠 아니 오는 잠자리에 누어서 손가락을 가슴에 대히고 당신의 코와 입과 두 볼에 새암 파지는 것까지 그렸습니다 그러나 언제든지 적은 웃음이 떠도는 당신의 눈자위는 그리다가 백 번이나 지었습니다. 나는 파겁 못한 성악가요 이웃사람도 돌어가고 버러지 소리도 끊쳤는데 당신의 가리쳐 주시는 노래를 부르랴다가 조는 고양이가 부끄러워서 부르지 못하얐습니다 그래서 가는 바람이 문풍지를 슬칠 때에 가만이 합창하얐습니다. 나는 敍情詩人이 되기에는 너머도 소질이 없나버요 질거움이니 슬픔이니 사랑이니 그런 것은 쓰기 싫어요 당신의 얼골과 소리와 걸음걸이와를 그대로 쓰고 싶습니다 그러고 당신의 집과 寢臺[침대]와 꽃밭에 있는 적은 돍도 쓰겄습니다 ~~~~~~~~~~~~~~~~~~~~~~~~~~~~~~~~~~~~~~~~~~~~~~~~~~~~~~~~~~~~~~~~ 하나가 되야주서요 님이여 나의 마음을 가져가랴거든 마음을 가진 나한지[나와함께]가져 가서요 그리하야 나로 하야금 님에게서 하나가 되게 하서요 그렇지 아니하거든 나에게 고통만을 주지 마시고 님의 마음을 다 주서요 그리고 마음을 가진 님한지 나에게 주서요 그래서 님으로 하야금 나에게서 하나가 되게 하서요 그렇지 아니하거든 나의 마음을 돌려 보내 주서요 그러고 나에게 고통을 주서요 그러면 나는 나의 마음을 가지고 님의 주시는 고통을 사랑하겄습니다. ~~~~~~~~~~~~~~~~~~~~~~~~~~~~~~~~~~~~~~~~~~~~~~~~~~~~~~~~~~~~~~~~~~ 당신이 아니더면 당신이 아니더면 포시럽고 매끄럽든 얼골이 웨 주름살이 잡혀요 당신이 기룹지만 않더면 언제까지라도 나는 늙지 아니할테여요 맨 츰에 당신에게 안기든 그때대로 있을 테여요 그러나 늙고 병들고 죽기까지라도 당신 때문이라면 나는 싫지 안하여요 나에게 생명을 주던지 죽음을 주던지 당신의 뜻대로만 하서요 나는 곧 당신이여요 ~~~~~~~~~~~~~~~~~~~~~~~~~~~~~~~~~~~~~~~~~~~~~~~~~~~~~~~~~~~~~~~~~ 잠 없는 꿈 나는 어늬 날 밤에 잠 없는 꿈을 꾸었습니다 [나의 님은 어데 있어요 나는 님을 보러 가겄습니다. 님에게 가는 길을 가져다가 나에게 주서요 검이여] [너의 가랴는 길은 너의 님의 오랴는 길이다. 그 길을 가져다 너에게 주면, 너의 님은 올 수가 없다] [내가 가기만 하면 님은 아니 와도 관계가 없습니다.] [너의 님의 오랴는 길을 너에게 갖다 주면 너의 님은 다른 길로 오게 된다. 네가 간대도 너의 님을 만날 수가 없다] [그러면 그 길을 가져다가 나의 님에게 주서요] [너의 님에게 주는 것이 너에게 주는 것과 같다. 사람마다 저의 길이 각각 있는 것이다] [그러면 어찌하여야 이별한 님을 만나보겄습니까] [네가 너를 가져다가 너의 가랴는 길에 주어라. 그리하고 쉬지 말고 가거라] [그리할 마음은 있지마는 그 길에는 고개도 많고 물도 많습니다.갈 수가 없습니다] 곰운 [그러면 너의 님을 너의 가슴에 안겨주마]하고 나의 님을 나에게 안겨주었습니다 나는 나의 님을 힘껏 껴안었습니다 나의 팔이 나의 가슴을 아프도록 다칠 때에 나의 두 팔에 베혀진 虛空은 나의 팔을 뒤에 두고 이어졌습니다. ~~~~~~~~~~~~~~~~~~~~~~~~~~~~~~~~~~~~~~~~~~~~~~~~~~~~~~~~~~~~~~~~ 生命 닻과 치를 잃고 거친 바다에 표류된 작은 생명의 배는 아즉 발견도 아니된 황금의 나라를 꿈꾸는 한 줄기 희망이 나침반이 되고 항로가 되고 순풍이 되야서 물결의 한 끝은 하늘을 치고 다른 물결의 한 끝은 땅을 치는 무서운 바다에 배질합니다 님이여 님에게 바치는 이 적은 생명을 힘껏 껴안어 주서요 이 적은 생명이 님의 품에서 으서진다 하야도 환희의 영지에서 순정한 생명의 파편은 最貴한 보석이 되야서 쪽각쪼각이 적당이 이어져서 님의 가슴에 사랑의 훈장을 걸겄습니다. 님이여 끝없는 사막에 한 가지의 깃딜일 나무도 없는 적은 새인 나의 생명을 님의 가슴에 으서지도록 껴안어주서요 그러고 부서진 생명의 쪼각쪼각에 입맞춰 주서요 ~~~~~~~~~~~~~~~~~~~~~~~~~~~~~~~~~~~~~~~~~~~~~~~~~~~~~~~~~~~~~~~~~ 당신은 당신은 나를 보면 웨 늘 웃기만 하서요 당신의 찡그리는 얼골을 좀 보고 싶은데 나는 당신을 보고 찡그리기는 싫어요 당신은 찡그리는 얼골을 보기 싫어하실 줄을 압니다. 그러나 떨어진 도화가 날어서 당신의 입설을 슬칠 때에 나는 이마가 찡그려지는 줄도 모르고 울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금실로 수놓은 수건으로 얼골을 가렸습니다. ~~~~~~~~~~~~~~~~~~~~~~~~~~~~~~~~~~~~~~~~~~~~~~~~~~~~~~~~~~~~~~ 幸福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의 행복을 사랑합니다 나는 왼세상 사람이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의 행복을 사랑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정말로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 사람을 미워하겄습니다. 그 사람을 미워하는 것은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의 한 부분입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을 미워하는 고통도 나에게는 행복입니다. 만일 왼 세상 사람이 당신을 미워한다면 나는 그 사람을 얼마나 미워하겄습니까 만일 왼 세상 사람이 당신을 사랑하지도 않고 미워하지도 않는다면 그것은 나의 일생에 견딜 수 없는 불행입니다. 만일 왼 세상 사람이 당신을 사랑하고자 하야 나를 미워 한다면 나의 행복은 더 클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의 나를 미워하는 怨恨의 두만강이 깊을수록 나의 당신을 사랑하는 행복의 백두산이 높어지는 까닭입니다 ~~~~~~~~~~~~~~~~~~~~~~~~~~~~~~~~~~~~~~~~~~~~~~~~~~~~~~~~~~~~~~~~ 밤은 고요하고 바은 고요하고 밤은 물로 시친 듯합니다 이불은 개인 채로 옆에 놓아두고 화롯불을 다듬거리고 앉었습니다 밤은 얼마나 되얐는지 화롯불은 꺼져서 찬 재가 되얐습니다 그러나 그를 사랑하는 나의 마음은 오히려 식지 아니하얐습니다 닭의 소리가 채 나기 전에 그를 만나서 무슨 말을 하얐는데 꿈조처 분명치 않습니다그려 ~~~~~~~~~~~~~~~~~~~~~~~~~~~~~~~~~~~~~~~~~~~~~~~~~~~~~~~~~~~~~~~~~~ 葡萄酒 가을바람과 아츰볕에 마치맞게 익은 향기로운 포도를 따서 술을 빚었습니다 그 술 고이는 향기는 가을하늘을 물들입니다 님이여 그 술을 연잎잔에 가득히 부어서 님에게 드리겄습니다. 님이여 떨리는 손을 거쳐서 타오르는 입설을 취기서요 님이여 그 술은 한 밤을 지나면 눈물이 됩니다 아아 한 밤을 지나면 포도주가 눈물이 되지마는 또 한 밤을 지나면 나의 눈물이 다른 포도주가 됩니다 오오 님이여 ~~~~~~~~~~~~~~~~~~~~~~~~~~~~~~~~~~~~~~~~~~~~~~~~~~~~~~~~~~~~~~~ 해당화 당신은 해당화 피기 전에 오신다고 하얐습니다 봄은 벌써 늦었습니다 봄이 오기 전에는 어서 오기를 바랐더니 봄이 오고 보니 너머 일즉 왔나 두려합니다 철모르는 아해들은 뒤동산에 해당화가 피었다고 다투어 말하기로 듣고도 못 들은 체 하얐더니 야속한 봄바람은 나는 꽃을 불어서 경대위에 노입니다그려 시름없이 꽃을 주어서 입설에 대히고 [너는 언제 피였니] 하고 물었습니다 꽃은 말도 없이 나의 눈물에 비쳐서 둘도 되고 셋도 됩니다 ~~~~~~~~~~~~~~~~~~~~~~~~~~~~~~~~~~~~~~~~~~~~~~~~~~~~~~~~~~~~~~~~ 服從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마는 나는 복종을 좋아하야요 자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에게서는 복종만 하고 싶어요 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도 달콤합니다.그것이 나의 행복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나더러 다른 사람을 복종하라면 그것만은 복종할 수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복종하랴면 당신에게 복종할 수가 없는 까닭입니다. ~~~~~~~~~~~~~~~~~~~~~~~~~~~~~~~~~~~~~~~~~~~~~~~~~~~~~~~~~~~~~~~~~ 情天恨海 가을하늘이 높다기로 情하늘을 따를소냐 봄바다가 깊다기로 恨바다만 못하리라 높고 높은 情하늘이 싫은 것은 아니지만 손이 낮어서 오르지 못한고 깊고 깊은 恨바다가 병 될 것은 없지마는 다리가 쩔러서 건느지 못한다 손이 자래서 오를 수만 있으면 情하늘은 높을수록 아름답고 다리가 길어서 건늘 수만 있으면 恨바다는 깊을수록 묘하니라 만일 情하늘이 무너지고 恨바다가 마른다면 차라리 情天에 떨어지고 恨海에 빠지리라 아아 情하늘이 높은 줄만 알었더니 님의 이마보다는 낮다 아아 恨바다가 깊은 줄만 알었더니 님의 무릎보다는 옅다 손이야 낮든지 다리야 쩌르든지 情하늘에 오르고 恨바다를 건느랴면 님에게만 안기리라 ~~~~~~~~~~~~~~~~~~~~~~~~~~~~~~~~~~~~~~~~~~~~~~~~~~~~~~~~~~~~~~~~~ 그를 보내며 그는 간다 그가 가고 싶어서 가는 것도 아니오 내가 보내고 싶어서 보내는 것도 아니지만 그는 간다 그의 붉은 입설 흰 이 가는 눈썹이 어여쁜 줄만 알었더니 구름 같은 뒷머리 실버들 같은 허리 구슬같은 발꿈치가 보다도 아름답습니다 걸음이 걸음보다 멀어지더니 보이랴다 말고 말랴다 보인다 사람이 멀어질수록 마음을 가까워지고 마음이 가까워질수록 사람은 멀어진다 보이는 듯한 것이 그의 흔드는 수건인가 하얐더니 갈마기 보다도 적은 쪽각구름이 난다   만해(萬海 ·卍海) 한용운韓龍雲 (1879. 8. 29 - 1944. 6. 29)            별칭  속명 유천(裕天), 자 정옥(貞玉), 계명 봉완(奉玩) 충남 홍성 출생.  본관 청주(淸州). 호 만해(萬海·卍海). 속명 유천(裕天). 자 정옥(貞玉). 계명 봉완(奉玩). 1879년 8월 29일 충청남도 홍성에서 출생하였다. 서당에서 한학을 배우다가 동학농민운동에 가담했으나 실패하자 1896년(건양 1) 설악산 오세암(五歲庵)에 들어갔다가, 1905년(광무 9) 인제의 백담사(百潭寺)에 가서 연곡(連谷)을 스승으로 승려가 되고 만화(萬化)에게서 법을 받았다. 1908년(융희 2) 전국 사찰대표 52인의 한 사람으로 원흥사(元興寺)에서 원종종무원(圓宗宗務院)을 설립한 후 일본에 가서 신문명을 시찰했다. 1910년 국권이 피탈되자 중국에 가서 독립군 군관학교를 방문, 이를 격려하고 만주·시베리아 등지를 방랑하다가 1913년 귀국, 불교학원에서 교편을 잡았다. 이해 범어사에 들어가 《불교대전(佛敎大典)》을 저술, 대승불교의 반야사상(般若思想)에 입각하여 종래의 무능한 불교를 개혁하고 불교의 현실참여를 주장하였다.   1916년 서울 계동(桂洞)에서 월간지 《유심(唯心)》을 발간, 1919년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서 독립선언서에 서명, 체포되어 3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1926년 시집 《님의 침묵(沈默)》을 출판하여 저항문학에 앞장섰고, 이듬해 신간회(新幹會)에 가입하여 중앙집행위원이 되어 경성지회장(京城支會長)의 일을 맡았다. 1931년 조선불교청년회를 조선불교청년동맹으로 개칭, 불교를 통한 청년운동을 강화하고 이해 월간지 《불교(佛敎)》를 인수, 이후 많은 논문을 발표하여 불교의 대중화와 독립사상 고취에 힘썼다. 1935년 첫 장편소설 《흑풍(黑風)》을 《조선일보》에 연재하였고, 1937년 불교관계 항일단체인 만당사건(卍黨事件)의 배후자로 검거되었다. 그 후에도 불교의 혁신과 작품활동을 계속하다가 서울 성북동(城北洞)에서 중풍으로 사망하였다.  출처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http://www.seelotus.com/gojeon/hyeon-dae/si/man-hae/ma-hae-si.htm
194    권영상 동시바구니 댓글:  조회:2097  추천:0  2017-05-27
강아지와 도랑 권 영 상        강아지가    도랑을    껑충 건너뛴다.      도랑이    옴쭉 작아진다.      강아지가    도랑을 건너뛰었다.      도랑이    휴, 한다.     고추잠자리  권 영 상        제트기가 금을 긋고    사라진 하늘에      씨이잉 날아 온    고추잠자리      마당가를 빙빙 돌다    앉은 빨랫줄      꽃손님을 하나 둘    내려 놓고는      어디론가 씨잉잉    날아 간 뜰에      채송화가 하나 둘    피어 나왔다.    마당가를 빙빙 돌다가 날아간 고추잠자리.   제트기가 손님을 실어 나르듯이, 고추잠자리는 꽃손님을 실어다 주는가 봅니다.    고추잠자리 날아간 뜰에 채송화가 하나 둘 피어납니다.   피어나는 채송화는 곧 새로 열리는 계절의 눈동자일 수도 있습니다. (신현득 김종상)       나무 권 영 상        나무가    한 잎 한 잎 날개를 단다.    가지마다 파랗게 단    나무의 날개.    그 많은 날개를 달고도    나무는 날지 않는다.    직박구리며 꿈이 많은 휘파람새.    푸른 하늘을 그리는 솔개.    그리고 어린 박새와 솔잣새들…….    나무는 오히려    푸근히 쉴 수 있는    새들의 집이 되었다.     누렁소는 말이 없다  권 영 상     오동나무 그늘에 엎드린 누렁소 잔등에 콩닥, 할미새가 날아 내려 까불댄다. 엉덩짝이며 잔등이며 목덜미며 까불까불 짓뛰다간 폴짝 날아간다. 봄날 참새란 놈은 또 어떻구. 누렁소 엉덩짝에 깡총 내려 뛰어선 제집 따뜻이 지으려고 쏙쏙쏙 볼이 터지도록 쇠털을 뽑는다. 그것도 모자라 똥 한 줄기 찔금 싸고 호로록 날아간다. 그런데도 누렁소는 아무 말이 없다. 까치가 날아와 콕콕콕 잔등을 쪼아도 암탉이 뱃구레 밑을 후벼 파도 누렁소는 말이 없다. 가끔씩 엉덩이를 덜썩, 들었다 놓을 뿐 그만한 일엔 관심이 없다.     담요 한 장 속에  권 영 상     담요 한 장 속에 아버지와 함께 나란히 누웠다. 한참 만에 아버지가 꿈쩍이며 뒤척이신다. 혼자 잠드는 게 미안해 나도 꼼지락 돌아눕는다. 밤이 깊어 가는데 아버지는 가만히 일어나 내 발을 덮어 주시고 다시 조용히 누우신다. 그냥 누워 있는 게 뭣해 나는 다리를 오므렸다. 아버지- 하고 부르고 싶었다. 그 순간 자냐? 하는 아버지의 쉰 듯한 목소리 -네. 나는 속으로만 대답했다.    우리는 시를 읽으면서, 짧은 한 편의 시에서 여러 이야기를 그려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시를 읽는 독자가 갖는 즐거움이고 시를 쓰는 시인의 보람입니다.   이 시도 그런 정겹고 따스한 그림과 이야기가 되어 독자에게 다가왔습니다. 시는 아득한 곳에서 혹은 특별한 것에서 글감을 얻게 되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주변의 곳곳에서 아주 평범한 것들이 시가 되기 위해 감동의 씨앗을 품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자, 이 시의 그림이 펼쳐집니다. 담요 한 장을 덮고 나란히 누운 아버지와 아들. 두 사람은 누구도 먼저 잠들지 못합니다. 서로를 생각해 주는 마음이 깊기 때문이지요.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담요 한 장이 중심이 된 이 동시는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훈훈한 그림과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시인은 아버지와 아들의 마음을 어렵게 표현하거나 멋을 내지 않았습니다. 아들의 발을 덮어주고 아들이 깰까봐 다시 조용히 누우시는 아버지. 그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아버지를 부르거나 대답하지 못하는 아들.   '자냐? 하는 아버지의 쉰 듯한 목소리'. 이 아버지도 우리들 아버지와 같이 손과 발이 조금은 거친 아버지일 것입니다. 이 시에는 말 수 적은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오고가는 도타운 마음이 정겹습니다. 그래서 담요 한 장은 세상을 따스하게 감싸줍니다. (정두리)           한밤중에 내 발을 덮어주시던 아버지…   아버지에게 아들은 '타자화된 자기"라는 말이 있다.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라느 뜻이겠다. 아버지가 묵은 가지라면 아들은 거기에서 뻗은 새 가지다. 아들은 침몰하는 배에 탄 아버지를 구하는 구조선이라고 생물학자는 말한다. 아들은 아버지의 유전자를 제 생명으로 이음으로써 아버지를 구한다. 그 아버지와 아들이 한 담요 속에 누웠다. 한 담요를 덮고 나란히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 아버지가 몸을 뒤척이고, 이들은 돌아누워 다리를 오므렸다. 아버지는 가만히 일어나 담요 바깥으로 빠져나온 아들의 발을 덮는다. "자냐? 하는 아버지의 쉰 듯한 목소리"에는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곡진한 사랑이 듬뿍 묻어 있다.   내 아버지는 1929년생이다. 전쟁 통에 양친을 다 잃었다. 그 뒤론 신산스런 삶이었다. 부모 잃고 가진 것 없이 험한 세파에 시달리며 산다는 것이 얼마나 큰 외로움인지를 나는 알지 못했다. 그 아버지의 장남인 나는 일하는 날보다 노는 날이 더 많은 아버지를 존경하지 않았다. 천하의 정약용도 아버지 노릇은 쉽지 않았다. 끼닛거리가 떨어지자 옆집 호박을 따다 죽을 끓인 여종을 닥달하는 아내를 말리며, "아서라, 그 아이 죄 없다. 꾸짖지 마라" 했다. 식솔을 가난에 방치하고 책이나 읽고 벗들과 어울린 것을 크게 부끄러워하며, "나도 출세하는 날이 있겠지. 하다못해 안 되면 금광이라도 캐러 가리라" 했다. 뒷날 정약용은 "내가 남의 아비가 되어서 너희들에게 이처럼 누를 끼치는 것이 부끄럽다"라고 썼다.   권영상(55)은 한 담요를 덮고 누운 아버지가 한밤중에 "가만히 일어나/ 내 발을 덮어주시고" 다시 잠드는 광경을 그려낸다. 이렇듯 아버지는 평생을 아들의 필요를 채워주려고 남몰래 애를 쓴다. 아버지는 아들을 가슴에 품고 거두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들들은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눈물이 절반"(김현승의 )인 것을 모른다. 그 진실을 모르니, 늘 아버지에게 불만을 갖고 툴툴거린다. 나 역시 뒤늦게 깨닫는다. 내 불만이 터무니없는 것임을, 아버지는 세상에서 이룬 것과 상관없이 존경받아야 할 영웅인 것을. (장석주 시인)     들풀  권 영 상    방금    손수레가    지나간 자리.      바퀴에 밟힌 들풀이    파득파득    구겨진 잎을 편다.    길바닥에 돋아난 들풀의 운명은 참 기구하지요. 그 많은 삶의 터전을 놔두고 어쩌다 이런 곳에 보금자리를 마련하게 되었는지요.   손수레가 무심히 들풀을 밟고 지나갑니다. 그 때마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구겨진 잎을 펴며 피득피득 몸을 일으키는 들풀의 모습에서 권영상 시인은 생명의 모짊을 읽어냅니다. (김용희)     민들레  권 영 상         해님이 주시는     빛살 중에서도     민들레는 노란 빛깔만 골라     옷을 지어 입는다.       담녘 따스한 곳에     물레를 걸어두고     노오란 실파람만 뽑아     옷을 지어 입는다.         바람이 피우는 꽃 권 영 상       산새가   지나가다 쉬어간   풀섶에     바람은   예쁜 표를 해 두었다.     길 잃은   산새가 오거든   보고 가라고 그랬겠지.     고운 꽃으로   표를 해 두었다.     반쪽  권 영 상             네가 주는         밤 한 톨의         반쪽           네 마음의 절반이         내게로 온다.           네게로 건네는         사과 한 알의          반쪽           내 마음의 절반이         네게로 간다. (초등학교 5학년 교과서에 실린 작품)    무엇을 나눠 갖는 일은 곧 마음을 나눠 갖는 일입니다. 모든 행동은 마음이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가진 한 개의 과일을 동무와 절반씩 나누어 먹는 일은 마음의 절반씩을 나눠 갖는 깊은 우정의 표현입니다.    이러한 우정(사랑)의 나눔은 세상을 평화롭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김종상)   사과 깎기  권 영 상          엄마가      돌돌돌      사과를 깎는다.        사과 속에      감아 둔      사과 단내가        돌돌돌돌      풀려 나온다.       실 끝을 따라가면  권 영 상   실 끝을 따라가면 뭐가 나오나?   실을 파는 실가게.   나무 의자에 앉아 낮잠 자는 곱슬머리,   곱슬머리 아저씨가 나올 테지.   아저씨네 가게 진열대에 놓인 그 많은 실뭉치들,   그 실뭉치를 풀어 실 끝을 찾아가면 뭐가 나오나?   실을 만드는 실공장.   챙이 긴 모자를 쓰고 일하는 실공장 아줌마,   아줌마가 나올 테지.   그 아줌마에게 물어 실 끝을 찾아가면 뭐가 나오나?   뽕나무 밭 사이로 오리를 키우는 집,   그 집 방안에서 실을 뽑는 누에들,   누에들이 나올 테지.   입으로 실을 뽑는 누에.   지금 내가 단추를 다는 실 끝을 따라가면 뭐가 나오나?   착한 누에.   뽕나무 밭 사이로 오리를 키우는 집,   그 집 방안에서 실을 뽑는 누에가 나오겠다,   고마운.    마치 스무고개 넘는 식의 시적 진술 방식이 우선 어린이들의 흥미를 끌기에 족하다.   연쇄적으로 등장하는 사물들은 실이라는 매체를 통해 새로운 의미망으로 연결되면서 정감어린 상관물로 재창조되고 있다.    새로움에의 도전은 아동문학의 영원한 화두이다. (문삼석)     종달새 권 영 상                    맑은 하늘 층계에서                    악기 소리가 난다.                      요란히                     건반을 두드리며                    하늘 층계를                    올라가는,                      종다리,                    그것은 네 가볍고도 빛나는                    발자국의 무게이려니                      발목을 놓을 때마다                    건반 가득히 고인 음표들은 쏟아져                    온통 보리밭 들판을                     취하게 한다.    종달새 소리는 우리들 귀를 즐겁게 합니다. 보리밭 위에서 아무리 크게 지껄여대도 시끄럽지 않으며 똑같은 소리를 오래오래 내질러도 싫증이 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종달새 소리를 악기 소리라 했습니다. 아니, 일반 악기보다도 한층 더 아름다운 소리를 연주해 내는 살아 움직이는 악기로 본 것입니다. (허동인)       쪼금만 권 영 상        햇살이 숲 위로 쏟아집니다.    쏟아지는 햇살이 아까워    참나무들이 잎을 펼쳐 햇살을 받습니다.    그러고도 남은 햇살이    참나무 아래로 떨어집니다.    ―쪼금만.    거미줄에서 기다리고 있던 거미가    꼭 필요한 만큼 햇살 조각을 떼어 냅니다.    거미가 떼어 내고 남은 햇살이    숲 아래 어린 풀잎 위에 내려앉습니다.    쪼금만, 이번엔 꼭 필요한 만큼    풀잎이 햇살을 덜어 냅니다.    ―나도 쪼금만.    개미가 있군요, 풀잎 밑을 기는 개미.    개미까지 받을 수 있도록    숲은 꼭 맞게 햇살을 나눕니다.     해바라기와 아가  권 영 상          내 그늘 속에      들어오지 않을래?        해바라기가      동그란 그늘을 내밉니다.        아기가      해바라기 그늘 속에      콩 들어섭니다.        내 이파리로      모자를 만들어 쓰지 않을래?        아기가      깡충 뛰어      초록 모자를 만듭니다.         호박밭의 생쥐  권 영 상        호박밭에    호박이 큰다.    자꾸 자꾸 자꾸……      ―정말    비좁아 못 살겠네!      생쥐가    이부자릴 싸들고    또 집을 옮긴다.     생쥐가 게으름을 피웠을 리는 없을 테지. 게다가 먹음직스러운 호박이 눈앞에 집채만하게 커졌는데.    그런데도 우리의 생쥐들은 살 땅이 없다. 먹어도 먹어도 나의 집. 내 몸집이 남을 위협할 정도가 못 되는구나.   그렇다면 남의 풍요를 인정하는 것도 살아가는 지혜가 되지. 나는 날렵해서 좁혀 사는 데는 이골이 나 있잖아.   그래도 가끔은 저 풍만한 호박들 귀를 깨물어 줘야지. 그렇게 불리는 데만 골몰하다가 제 몸 망치지 말고. 미리 좀 나눠주렴. (박덕규)     "호박이 크자 작은 생쥐가 비좁아서 이사를 간다고요? 거짓말이에요. 호박밭에서 호박이 크게 자란다 해도 생쥐 자리가 비좁아진다는 건 말도 안 돼요. 그리고 생쥐가 무슨 이사를 다 해요?"   시는 이렇게 사실을 따지면서 감상하는 게 아니예요.   한번 생각해 보세요. 옛날 할아버지의 아버지 때 아버지, 어머니, 형, 누나가 단간방에서 사는 집이 많았어요. 아기가 자라면 방이 비좁아서 걱정했고요. 그러고 보니 호박과 생쥐 관계와 비슷해요.   거짓말 같았는데, 그럴 듯한 거짓말이지요. 시는 사실을 따져서 짓는 게 아니랍니다. (박두순)     풀들은 권 영 상       흙바람이    풀들의 머리채를 쥐어 흔든다.      사납게    휘몰아칠 때도    풀들은 바람과 맞서지 않았다.      바람이 가면     가는 대로    허리를 낮추며 흔들렸다.      그런 때에도    가만히 풀섶을 뒤지면    풀섶 밑은 고요했다.      그 고요한 자리에    숨겨 놓은    풀종다리의 귀여운 알들      오, 고놈들을    감추어 내려고    풀들은 바람에 순종했다.     표현이 직선적이고 굵으면서 서정성이 풍부한 이 작품은 자연의 오묘한 조화를 표현하고 있지만,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이나 희생을 주로 그렸다고 할 수 있다. '흙바람'으로 상징되는 반사랑적 존재와 '풀들'로 나타난 부모들과 '풀종다리의 알'로 표현된 어린이가 이 작품의 중요한 세 축을 이루고 있다. 이 작품에서 가장 의미심장한 시어는 바람과도 대결하지 않는 '순종'이라고 할 수 있다. 시적 화자의 눈이 앞부분에서는 주어로 쓰인 '흙바람'에게 있다가 뒷부분에서는 '풀들'이나 '귀여운 알들'로 옮겨지고 있다. 이 작품과 김수영의 '풀'을 대비하여 동시도 일반적인 시 수준을 능가할 수 있다는 사실과 아울러 이 작품이 동시적 특성을 일목요연하게 잘 보여주고 있음을 알아야 하겠다. (이정석)          권 영 상(權寧相) 1953년 3월 1일 ∼ 강원도 강릉시 초당에서 태어남. 관동대학 국어교육과 졸업. 1979년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이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함. 1982년 소년중앙문학상 수상. 한국동시문학상, 세종아동문학상, 새싹문학상, MBC동화대상 수상. 동시집 : 단풍을 몰고 오는 바람(창조의 샘, 1980)             햇살에서 나오는 아이들(아동문예사, 1985)              벙어리 장갑(계몽사, 1992)             밥풀             버려진 땅의 가시나무             신발코 속에는 새앙쥐가 산다             실끝을 따라가면 뭐가 나오지(국민서관, 2004)    
193    <바람에 관한 동시 모음> 이혜영의 '바람의 고민' 외 댓글:  조회:1787  추천:0  2017-05-27
이혜영의 '바람의 고민' 외  + 바람의 고민  어떡하지?  바람이 풀숲에 주저앉아  고민합니다.  아무리  살금살금 걸어도  꽃잎이 흔들립니다.  어떡하지?  (이혜영·아동문학가)  + 바람이 길을 묻나 봐요  꽃들이 살래살래  고개를 흔듭니다.  바람이 길을 묻나 봅니다.  나뭇잎이 살랑살랑  손을 휘젓습니다.  나뭇잎도 모르나 봅니다.  해는 지고 어둠은 몰려오는데  넓은 들녘 저 끝에서  바람이 길을 잃어 걱정인가 봅니다.  (공재동·아동문학가)  + 같은 바람 중에도  풍력발전소에 가면  땀 흘려 일하는  바람이 있다.  풍차 날개를 돌려  열심히 전기를 만드는  기특한 바람이 있다.  같은 바람 중에도  어떤 바람은  넘쳐나는 힘 다스리지 못해  무서운 태풍이 되고  어떤 바람은  작은 힘 서로 모아  방아를 찧고  풍력발전소를 돌린다.  (민현숙·아동문학가)  + 양달과 응달  겨울에는  양달에서 응달로  따뜻한 바람을 보내준다.  여름에는  응달에서 양달로  시원한 바람을 보내준다.  제가 받은 것이라고  저 혼자만 갖지는 않는다.  제가 만든 것이라고  저 혼자만 갖지는 않는다.  바람은  핏줄이다.  가진 것을 함께 나누는  이 세상의 핏줄이다.  단지 며칠 늦어서 그렇지  응달에도 꽃이 핀다.  양달에도  낙엽이 진다.  (이무일·아동문학가)  + 보이지 않아도  바람  보이지 않아도  풀잎을 흔들고  태풍  보이지 않아도  나무를 흔들고  너  보이지 않아도  나를 흔들고  보이지 않은 게  보이는 것보다  힘이 더 세다.  (정갑숙·아동문학가)  + 바람 - 2  실바람으로  나무둥치 간질일 순 있어도  구름자락 불러다  해와 달과 별들 가릴 순 있어도  땅덩이 뒤덮는  태풍이 될 순 있어도  들어가 잠잘  제 집은 없다.  (신새별·아동문학가, 1969-)  + 바람 떠안기  거센 바람이  강을 건너 달려옵니다.  나무들이 제일 먼저  그 바람의 무게를  온 몸으로 떠안습니다.  다음으로  키 큰 수수밭의 수수들이,  그 다음으론 수수이랑 곁의  푸른 쑥대들이  바람의 무게를 조금씩 조금씩  떠안습니다.  그리곤 메밀밭을 돌아  담장 밑의 작은 풀꽃,  그 위에 앉았을 땐  바람은 멧새 깃털처럼 작아졌습니다.  (권영상·아동문학가)  + 꽃과 바람  바람은  꽃을 몹시 부러워한다.  꽃은,  파랑  노랑  빨강  어느 빛깔 부러울 것 없을 만큼  온갖 빛깔 다 있는데  바람은  그 고운 빛깔이 없다.  그래서  바람은 심술을 낸다.  꽃필 무렵이면  꽃샘을 하고,  잎 필 무렵이면  잎샘을 해도  착한 꽃들은  바람을 미워하지 않는다.  얼마나 부럽기에  저렇게 심술이 났나 하고…  언제나  웃는 얼굴로  꽃은  바람을 맞이하고  바람을 배웅하고.  (김월준·아동문학가)   + 여름  숲에 가면  바람이 많이 이는 건  햇볕이 뜨거워  바람도  몸을 식히러 온 때문이다.  때론  소풍 가듯  바람도 쉬고 싶은 것이다.  계곡 물에  찰방찰방 발 담그고 있다가  마냥 놀아선 안 되지  바람은  마을로 내려간다.  (정세기·아동문학가, 1961-2006)  + 게으름뱅이  부지런한 햇살이  젖은 빨래 찾아다니며  단물을 쪼옥  빨아먹고 간 뒤  뒤늦게 달려온  목마른 바람이  물기 없는  빨래를 만져보고  이마를 탁탁 치며 돌아갑니다  (신천희·승려이며 아동문학가)  + 친해지고 싶어  바람은  친해지고 싶은지  나에게 자꾸  말을 건네요.  슬며시 머리카락도  쓰다듬어 보고  볼도 사알짝 어루만지고  옷깃도 자꾸 잡아당기고  내가 모른 척하면  몸을 세게 흔들기도 하지요.  나도 바람을 느끼고 싶어  깊게 숨을 들이마셨습니다  친해지고 싶어서  양팔을 활짝 벌렸습니다.  바람이 내 가슴속으로 쑤욱 들어왔습니다.  (오지연·아동문학가, 제주도 출생)  + 우리 동네 문제아  골목대장이 된 바람을 따라  온 동네를 휩쓸고 다니는  우리 동네 문제아  비닐봉지  신문지  음료수 캔  (김혜경·아동문학가)  + 바람이 자라나 봐  잔디밭에서  앙금앙금  기어다니던  봄바람이  나뭇가지에 매달려  푸름푸름  그네를 타던  여름 바람이.  낙엽을 몰고  골목골목  쏘다니던  가을 바람이  어느새  매끄러운 얼음판을  씽씽 내닫는 걸 보면  바람도 우리들처럼  무럭무럭 자라나 봐.  (김지도·아동문학가)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192    시간에 관한 동시 모음> 공재동의 '고 짧은 동안에' 외 댓글:  조회:1562  추천:0  2017-05-27
공재동의 '고 짧은 동안에' 외 + 고 짧은 동안에  장맛비 그치고  잠시  햇살이 빛나는 동안  바람은  나뭇가지를 흔들어  잎사귀에 고인  빗물을 쓸어내리고  새들은   포르르 몸을 떨며  젖은 날개를 말린다.  해님이   구름 사이로  반짝 얼굴 내민  고 짧은 동안에.  (공재동·아동문학가, 1949-) + 시간의 탑  할머니,  세월이 흘러  어디로  훌쩍 가 버렸는지 모른다 하셨지요?  차곡차곡  쌓여서  이모도 되고  고모도 되고  작은엄마도 되고,  차곡차곡  쌓여서  엄마도 되고  며느리도 되고  외할머니도 되었잖아요.  우리 곁에  주춧돌처럼 앉아 계신  할머니가 그 시간의 탑이지요.  (유미희·아동문학가, 충남 서산 출생) + 참 오래 걸렸다  가던 길  잠시 멈추는 것  어려운 일 아닌데  잠시   발 밑을 보는 것  시간 걸리는 게 아닌데  우리 집  마당에 자라는  애기똥풀 알아보는데  아홉 해 걸렸다.  (박희순·아동문학가) + 병 속에 시간을 담을 수 있다면  작은 병 속에  시간을 담을 수만 있다면  예쁜 병 속에  한 시간만 담아서  아빠 가방 속에  살며시 넣어 드리고 싶다.  아무리 바쁘신 아빠도  그걸 꺼내 보시면  잠시라도 편히 쉴 수 있으시겠지?  하루에 단 한 시간만이라도  그런 시간 만들어  아빠 가방 속에 몰래  넣어 드리고 싶다.  (정구성·아동문학가) + 탁상 시계 딸깍 딸깍 딸깍 탁상 시계가 책상 위에 앉아 밤새도록 시간의 손톱을 깎고 있다 딸깍 딸깍 딸깍 (신형건·아동문학가, 1965-) + 시계의 초침 소리  톡, 톡, 톡 초침은  시간을  잘라 줍니다 톡, 톡, 톡 쬐끔씩 쬐끔씩 아껴 쓰라고 금싸라기만 하게 잘라 줍니다 톡, 톡, 톡 토막난 시간들이 뛰어다니며 ㅡ얘, 너 지금 뭐 하니? 자꾸만 자꾸만 물어봅니다. (윤미라·아동문학가) + 아빠 시계  시계를  볼 때마다  아빠는  ―시간이 없어.  시간이 없어.  아빠 시계엔  왜  시간이  없는 거지?  (문삼석·아동문학가, 1941-) + 시계꽃  지난 밤  별들이   몰래 내려 와  풀밭 위에  한 뜸 한 뜸  수를 놓았나  초록 풀밭 가득  하얀 시계꽃  어쩜  째각째각  시계 바늘 소리까지  낭랑히 낭랑히  수놓고 갔을까  (김종순·아동문학가) + 시계가 셈을 세면  아이들이 잠든 밤에도  셈을 셉니다.  똑딱똑딱  똑딱이는 수만큼  키가 자라고  꿈이 자라납니다.  지구가 돌지 않곤  배겨나질 못합니다.  씨앗도 땅 속에서  꿈을 꾸어야 합니다.  매운 추위에 떠는 나무도  잎 피고 꽃필, 그리고 열매 맺을  꿈을 꾸어야 합니다.  시계가 셈을 세면  구름도 냇물도  흘러갑니다.  가만히 앉아 있는 바위도  자리를 뜰 꿈을 꿉니다.  시계가 셈을 세면  모두모두  움직이고  자라납니다.  (최춘해·아동문학가) + 엄마의 시간   우리 집에서  시간 나누기를 제일 잘 하는  엄마.  다림질 반듯한  우리 형 교복 바지에도  햇볕에 널어놓은  뽀오얀 내 운동화에도  쬐끔씩 나누어 준  엄마의 시간.  우리집 저녁상에도  베란다에 앉아있는  난초 화분에도  촉촉이 배어있는  엄마의 시간.  잠잘 때도 엄만  내 손 꼬옥 잡고,  엄마 시간  다 내어 준다.  (한상순·아동문학가) + 하루 어머니가  품앗이  가실 때는 해가 참 길다 하시고 우리 밭 김 매실 때는 해가  너무 짧다  하신다 내가 보기엔 그냥  하루인데 (김은영·아동문학가) + 무렵  아버지는 무렵이란 말을 참 좋아한다  무렵이라는 말을 할 때  아버지의 두 눈은 꿈꾸는 듯하다.  감꽃이 필 무렵  보리가 익을 무렵  네 엄마를 처음 만날 무렵  그 뿐 아니다  네가 말을 할 무렵  네가 학교에 갈 무렵  아버지의 무렵이란 말 속에는  그리움과 아쉬움이 묻어 있다.  나도 유치원 무렵의 친구들이 생각난다  나에게도 아버지처럼  무렵이란 말 속에는 그리움이 배어 있다  가만히 눈을 감고 무렵이란 말을 떠올리면  그리운 사람이 어느새 내게 와 있다.  (하청호·아동문학가) + 열차  열차를 탔다.  빈 자리를 찾아 앉는다.  그것이 내 자리다.  타고 온 사람들의 자리가  비워지기를 기다리는  새 얼굴의 사람들.  눈을 감고 창에 기대면  열차는 멈춘 듯 달려간다.  흐르는 세월처럼  언젠가는 나도 내리고  나의 빈 자리에는 또  다른 누구가 와서 앉겠지.  세월이란 열차  참 빠르기도 하다.  (김종상·아동문학가)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191    마라르메 / 작품 댓글:  조회:2033  추천:0  2017-05-25
마라르메 / 작품   스테판 말라르메(Stephane Mallarmé ; 1842년 ~ 1898년)는 프랑스의 시인이다. 폴 베를렌, 아르튀르 랭보와 더불어 19세기 후반 프랑스 시단을 주도했다. 시인의 인상과 시적 언어 고유의 상징에 주목한 상징주의의 창시자로 간주된다. 고등학교 영어 교사 출신으로 에드거 앨런 포의 《갈가마귀》를 불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당대 파리의 문인들을 비롯 인상주의 화가들과 활발히 교류했으며, 폴 발레리, 앙드레 지드, 폴 클로델 등 20세기 전반 프랑스 문학계에 큰 영향을 주었다. 대표 시집으로는 《목신의 오후 (L'après-midi d'un faune)》(1877), 《주사위 던지기 (Un coup de dès)》(1897) 등이 있다.           종치는 수사 순수하고 청명하고 그윽한 새벽 하늘에 종은 그 맑은 목소리를 깨워 일으켜, 라벤더와 백리향 풀숲에 안젤루스를 던지는 저 아이를 밝고 가며 기쁨은 안겨주건만, 종치는 수사는 제가 눈뜨게 하는 새의 깃털에 스치며, 백년 묵은 밧줄 팽팽하게 당기는 돌덩이를 올라타고 구르며 처량하게 라틴어를 웅얼거려도 들리는 것은 그에게 아련히 떨어져내리는 땡그랑 소리뿐. 내가 바로 그 사람. 슬프구나! 갈망의 밤으로부터, 내 아무리 동아줄을 잡아당겨 이상의 종소릴 울려본들, 차가운 죄의 충실한 깃털 하나가 장난을 치고, 소리는 부스러기로만 내게 떨어져 허망하게 울리는구나! 그러나, 어느 날, 헛된 줄다리기에도 끝내 지쳐빠지면, 오 사탄이여, 나는 돌덩이를 풀어내고 내 목을 매리라. 여름날의 슬픔 태양이, 모래 위에서, 오 잠든 女戰士여, 네 머리칼의 황금 속에 나른한 목욕물을 덥히고, 적의에 찬 그대의 뺨 위에 향불을 사르며, 사랑의 음료에 눈물을 섞는다. 이 백열의 타오름이 잠시 요지부동으로 멈추는 틈에 너는 말하였지, 구슬프게, 오 내 겁먹은 입맞춤들, “우리는 결코 단 하나의 미라로 되진 않으리라 이 고대의 사막과 행복한 종려수 아래!“ 그러나 너의 머리칼은 따뜻한 강, 우리에게 들린 혼이 떨림도 없기 어기 잠겨들어 그대가 알지 못하는 저 허무를 만나리. 나는 네 눈꺼풀에서 눈물 젖은 분을 맛보며, 너에게 상처 입은 이 심장이 얻을 수 있을지 알아보련다, 저 창공과 돌의 무감각함을. 창공 영원한 창공의 초연한 빈정거림은 꽃들처럼 무심하게 아름다워서, 고통의 메마른 사막을 헤매며 제 재능을 저주하는 무기력한 시인을 짓누르네. 도망가며, 두 눈을 감아도, 나는 내 비어 있는 영혼을 응시하는 그 눈길이 따가워 강렬한 회한에 억장이 무너지네. 어디로 달아나랴? 어느 흉물스런 밤을 갈가리 찢어 집어던져, 저 가슴 아픈 멸시를 가리랴? 농무들아, 피어올라라! 너희 단조로운 재들을 안개의 긴 넝마들에 실어날라, 가을의 납빛 늪에 익사할 하늘에 쏟아부어 거대하고 적막한 천장을 지어라. 그리고 나, 망각의 못에서 기어나오라, 친애하는 권태야, 진흙과 창백한 갈대를 주워와서, 새들이 방정맞게 뚫어놓는 저 거대한 푸른 구멍들을 결코 지치지 않는 손으로 틀어막아라. 아직도 남았다! 처량한 굴뚝들아 쉬지 말고 연기를 뿜어내라, 떠다니는 그을음의 감옥들아 지평선에 노랗게 죽어가는 태양을 그 시커먼 옷자락의 공포로 덮어 꺼버려라! -하늘은 죽었다.-너를 향해 달려가노니, 오 물질이여, 잔인한 이상도 죄도 잊어버릴 망각을 달라, 행복한 人間畜生들이 누워 있는 그 잠자리를 함께 나누려는 이 순교자들에게. 담장 밑에 뒹구는 연지분 단지처럼, 내 뇌수 마침내 텅텅 비어, 흐느껴 우는 생각을 울긋불긋 치장할 기술 이제 더는 없는지라, 비천한 죽음을 향해 내 침울하게 하품하고만 싶기에······ 헛일이로다! 창공이 승리한다, 종소리 타고 울리는 그의 노래 들린다. 내 마음이여, 그는 목소리 되어 그 심술궂은 승리로 우리를 더욱 으르대며, 살아 있는 금속에서 푸른 안젤루스로 솟아나는구나! 그는 안개를 타고 구르며, 노회하도록, 너의 타고난 고뇌를 꿰뚫으니, 실수를 모르는 칼날 같구나, 소용도 없이 악랄한 반항을 둘러쓰고 어디로 도망갈거나? 나는 들려 있다. 창공! 창공! 창공! 창공! 바다의 미풍 육체는 슬프다, 아아! 그리고 나는 모든 책을 다 읽었구나. 달아나리! 저곳으로 달아나리! 미지의 거품과 하늘 가운데서 새들 도취하여 있음을 내 느끼겠구나! 어느 것도, 눈에 비치는 낡은 정원도, 바다에 젖어드는 이 마음 붙잡을 수 없으리, 오 밤이여! 백색이 지키는 빈 종이 위 내 등잔의 황량한 불빛도, 제 아이를 젖먹이는 젊은 아내도. 나는 떠나리라! 그대 돛대를 흔드는 기선이여 이국의 자연을 향해 닻을 올려라! 한 권태 있어, 잔인한 희망에 시달리고도, 손수건들의 마지막 이별을 아직 믿는구나! 그리고, 필경, 돛대들은, 폭풍우를 불어들이니, 바람이 난파에 넘어뜨리는 그런 돛대들인가 종적을 잃고, 돛대도 없이, 돛대도 없이, 풍요로운 섬도 없이······ 그러나, 오 내 마음이여, 저 수부들의 노래를 들어라! 탄식 내 마음은, 오 조용한 누이여, 어느 가을이 주근깨를 둘러쓰고 꿈꾸는 그대의 이마를 향하여, 그대의 천사 같은 눈에 떠도는 하늘을 향하여, 어느 우수 어린 정원에서 하얀 분수 하나, 열심히, 창공을 향하여 탄식하듯, 솟아오른다오! -넓은 연못에 그 끝없는 우울을 비추고, 잎새들의 황갈색 단말마가 바람 따라 떠돌며 차가운 물이랑을 내는 죽은 물 위에 노란 태양이 한 가닥 긴 빛살에 끌려가게 놓아두는, 창백하고 청순한 시월 그 온화한 창공을 향하여. 적선 이 돈자루를 집어들게, 걸인이여! 인색한 유방의 늙다리 젖먹이라도 되는 양, 한 푼 한 푼 방울져 그대의 弔鐘이나 울리게 하자고 이 자루에 알랑댄 건 아니겠지. 이 귀중한 금속에서 어디 야릇한 죄를 짜내보게, 그리곤, 마치 우리들이 두 주먹 가득 쥐고 거기 입을 맞추듯 듬뿍 그게 비틀어져라 불어제치게나! 뜨거움 팡파르를. 이 집들이 모두 향 연기 피어오르는 교회가 아니겠나, 담벼락에, 잠시 푸르게 갠 하늘을 흔들어 재우는 담배가 말도 없이 기도를 굴릴 때 또한 강한 아편이 약상자를 깨뜨리고 나올 때 말씀이야! 그대는, 드레스이자 피부인, 그 비단을 찢고프며, 행복한 무기력을 침 흘리며 마시려는가, 왕후의 카페에 앉아 아침을 기다리고 싶은가? 천장에는 님프와 베일이 푸짐하기도 한데, 창문의 거지에게도 饗宴을 던지지. 그래서 늙다리 하느님아, 그대가 외출할 때는, 부대자루를 둘러쓰고 덜덜 떨면서도, 새벽 하늘이 금빛 술의 호수인지라 그대는 목구멍으로 별들을 마신다 큰소리치지! 그대 보물의 광채를 헤아릴 순 없더라도, 적으나마 그대는 깃털 하나로 멋을 낼 순 있지, 저녁기도를 드릴 때 그대 아직 믿고 있는 성자에게 촛불 하나를 바칠 순 있지. 내 터무니없는 말을 한다 생각지 말게. 大地는 굶어죽는 자에게 늙어빠져서야 열리는 법. 나는 또 하나의 적선을 증오하며 그대가 날 잊길 바란다네. 그리고 무엇보다도, 형제여, 빵을 사러 가진 말게. 獻詩 당신에게 이 아기를 이뒤메의 밤으로부터 데려왔구려! 깜깜하게, 핏빛 어린 희미한 날개를 달고, 깃털을 벗고, 香油와 황금으로 태운 유리를 통하여, 얼어붙은, 오호라! 또다시 음울한 窓을 통하여, 저 새벽빛이 천사 같은 램프에게 덤벼들었소. 종려나무들이여! 敵意에 찬 미소를 시험하는 이 아버지에게 새벽빛이 이 유물을 보여주었을 때, 푸르고 삭막한 고독이 전율하였다오. 오 아기를 어르는 여자는, 당신의 딸과 함께, 당신들의 차가운 발의 그 천진함으로, 이 끔찍한 탄생을 맞아들이시라. 당신의 목소리가 비올라와 클라브생을 생각나게 하는 동안, 순결한 창공의 大氣에 배고픈 입술을 위해 여인이 巫女의 백색으로 흘러내리는 그 젖가슴을 당신은 시든 손가락으로 누르련가? 에로디아드 장경 유모-에로디아드 유 살아 있구나! 아니면 내 여기서 한 王女의 망령을 보는 것인가? 그 손가락과 반지에 이 입술로 입맞추게 하고, 이제 그만 미지의 시대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일일랑은······ 에 물러서시오. 무결한 내 머리칼의 금빛 격류가, 내 고독한 몸을 멱 감기며 공폴 얼어붙게 하니, 빛이 감아도는 내 머리칼은 不威하다. 오 여인아, 한 번의 입맞춤으로도 나는 죽으리라, 美가 곧 죽음이 아니라면······ 어떠한 매혹에 내 이끌렸는지, 선지자들도 잊어버린 어떠한 아침이 죽어가는 저 먼 땅에 그 슬픈 축제를 퍼붓는지 낸들 알겠는가? 오 겨울의 유모여, 그대는 내가 늙은 내 사자들 그 야수의 世紀가 어슬렁거리는 돌담과 쇠창살의 육중한 감옥 속에 들었음을 보았으니, 숙명의 여자, 나는 무사한 손으로 저 옛날 왕들의 황량한 냄새 속으로 걸어갔지. 그러나 또한 그대는 보았는가 내 공포가 무엇이었는지를? 나는 망명지에 꿈꾸며 멈춰 서서, 분수를 뿜어 나를 맞이하는 못가에라도 서 있는 양, 내 안에 피어 있는 창백한 백합의 꽃잎을 따는데, 내 몽상을 가로질러, 적막 속으로 내려가는 그 가녀린 꽃 이파리들을 시선으로 뒤쫓느라 얼이 빠진 사자들은 내 옷자락의 나른함을 헤치고, 바다라도 가랑힐 내 발을 바라보았지. 그대는 그 늙은 육체의 전율을 가라앉히고, 이리 와서, 내 머리칼이 너희들을 두렵게 하는 저 사자 갈기의 너무나 사나운 꼴을 닮았으니, 나를 도와라, 이대로는 거울 속에서 하염없이 빗질하는 내 모습을 그대는 감히 쳐다볼 수도 없을 것인즉. 유 마개 덮인 병 속의 상쾌한 몰약은 아니라도, 장미의 노쇠에서 뽑아낸 향유의 불길한 효험을, 아기씨여, 시험해보심이 어떨지? 에 그런 향수 따윈 치워라! 그게 내가 혐오하는 것임을 모르는가, 그래 내 머리에 나른하게 적셔드는 그 도취의 냄새를 맡으라는 말인가? 내가 바라는 바는, 인간적인 고뇌의 망각을 퍼뜨리는 꽃이 아니라, 향료로부터 영원히 순결한 황금인 내 머리칼이, 잔혹한 광채를 띨 때도, 윤기 없이 하얗게 바랠 때도, 금속의 그 삭막한 차가움을 끝내 간직하는 것이니, 내 고독한 어린 날부터, 고향 성벽의 보석들아, 무기들아, 화병들아, 너희들을 그렇게 비추어왔듯이. 유 용서하소서! 여왕 마마, 나이가 드닌 낡은 책처럼 희미해진 아니 까매진 쇤네의 정신에게 아기씨의 금지령이 지워져서······ 에 그만 됐다! 내 앞에 이 거울을 들고 있어라. 오 거울이여! 네 틀 속에 권태로 얼어붙은 차가운 물이여 얼마나 여러 번을, 그것도 몇 시간씩, 꿈에 시달리며, 네 얼음 밑 그 깊은 구멍 속에서 나뭇잎과도 같은 내 추억을 찾으며 나는 네 안에 먼 그림자처럼 나타났던가. 그러나, 무서워라! 저녁이면, 네 엄혹한 우물 속에서, 나는 내 흩어진 꿈의 裸身을 알아버렸다! 유모, 내가 아름다운가? 유 한 개 별이지요, 진실로 그런데 이 머리타래가 흘러내려서······ 에 멈춰라, 내 피를 그 근원에서 다시 얼어붙게 하는 그대의 범죄를, 그리고 그 거동, 그 지독한 不敬을 응징하라 : 아! 이야기해보라 어느 든든한 마귀가 그대를 그 을씨년스런 흥분 속에 빠뜨리는지, 내게 제안한 그 입맞춤, 그 향수, 그리고, 내가 그 말을 할까? 오 내 가슴이여, 그대가 필경 날 만지려 하였으니 또한 불경한 그 손, 그것들은 망루 위에서 불행 없이는 끝나지 않을 어느 날······ 오 에로디아드가 두려운 눈으로 바라보는 날이여! 유 괴이한 시간으로부터, 진정, 하늘이 그대를 보호하시옵길! 그대는 고독한 그림자가 되고 새로운 분노가 되어 배회하며, 그 마음속을 때 이르게 공포에 떨며 바라보시지만, 하오나 불사의 여신에 버금하리만큼 경애로우시며, 오 나의 아기씨, 끔찍하도록 그렇게도 아름다우셔서······ 에 그러나 나를 만지려 하지 않았더냐? 유 저는 운명의 신이 아가씨의 비밀을 맡기는 그 사람이고 싶습니다. 에 오! 닥치거라! 유 때로는 그분이 오실까요? 에 순결한 별들이요, 듣지 말아다오! 유 음침한 공포들 속에 빠져든 것이 아니라면 어찌 갈수록 더 요지부동으로 꿈꿀 수 있으랴 저 어여쁨의 보석더미가 기다리는 그 神에게 간청이라도 하시는가! 그런데 누구를 위해 고뇌로 애를 태우며 지키시는가요, 그대 존재의 남모르는 광채와 헛된 신비를? 에 나를 위함이다. 유 슬픈 꽃이여, 홀로 자라며 마음 설레게 하는 상대라곤 오직 물속에 무력하게 보이는 제 그림자뿐. 에 가거라, 그대의 연민과 빈정거림을 흘리지 말라. 유 하오나 가르쳐주소서 : 오! 아닙니다, 순긴한 아기씨여, 어느 날엔가는, 그 기고만장한 멸시도 수그러들겠지요······ 에 그러나 누가 날 건드릴 것이냐, 사자들도 범접하지 못하는 나를? 그뿐이랴, 난 인간적인 것은 아무것도 원치 않으며, 조각상이 되어, 낙원에 시선을 파묻고 있는 내 모습이 그대 눈에 비친다면, 그것은 내가 옛날에 빨았던 그대의 젖을 회상하는 때. 유 제 자신의 운명에 바쳐진 애절한 희생이여! 에 그렇다, 나를, 나를 위함이다, 내가 꽃피는 것은, 고독하게! 너희들은 알겠지, 난해하게 지은 눈부신 심연 속에 끝없이 파묻히는 자수정의 정원들이여, 태고의 빛을 간직한 채, 알려지지 않은 황금들이여, 始原의 대지 그 어두운 잠 아래 묻힌 너희들, 맑은 보석 같은 내 눈에 그 선율도 아름다운 광택을 빌려주는 돌들이여, 그리고 너희들, 내 젊은 머리칼에 숙명의 광채와 순일한 자태를 가져오는 금속들이여! 그대를 말한다면, 巫女들의 소굴에서 벌어지는 악행에나 어울리게 못된 世紀에 태어난 여인이여, 죽게 마련인 한 인간을 이야기하다니! 그자를 위해 내 옷자락의 꽃시울에서, 사나운 환락에 젖은 향기처럼, 내 裸身의 하얀 떨림이 솟아나와야 한다는 말인가, 예언하라, 여름날의 따뜻한 창공이, 여자는 천성적으로 하늘을 향해 저를 드러내지, 별처럼 벌벌 떨며 부끄러워하는 나를 본다면, 나는 죽으리라고! 나는 사랑한다 처녀로 삶의 끔찍함을, 나는 바란다 내 머리칼이 내게 안겨주는 공포 속에 살기를, 밤이면, 내 잠자리로 물러나, 아무도 범하지 않는 파충류, 쓸모없는 내 육체 속에서, 네 창백한 빛의 그 차가운 반짝거림을 느끼기 위해, 스러지는 너, 정결함으로 타오르는 너, 얼음과 잔인한 눈의 하얀 밤이여! 그리고 네 고독한 누이는, 오 내 영원한 누이여, 내 꿈은 너를 향해 솟아오르리라 : 벌써 그렇노라고, 그것을 꿈꾸는 한 마음의 희귀한 맑음인 나는 내 단조로운 조국에 나 홀로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모두가, 내 주위에서, 우러러 받들며 산다, 다이아몬드 맑은 시선의 에로디아드가 그 잠든 정적 속에 비쳐 있는 거울 하나를······오 마지막 매혹이여, 그렇다! 나는 그것을 느낀다, 나는 고독하다. 유 마님, 그렇다면 죽으려 하십니까? 에 아니다, 가련한 할머니여 조용하라, 그리고 물러가며, 이 냉혹한 마음을 용서하라, 그러나 먼저, 괜찮다면, 덧문을 닫아라 : 세라핀 같은 창공이 그윽한 유리창에서 미소짓는데, 나는 증오한다, 나는, 저, 아름다운 창공을! 물결들은 흔들리고, 저기, 한 나라를 그대는 알지 못하는가, 저녁마다 우거진 나뭇가지에서 타오르는 비너스의 미움을 받는 시선들이 불길한 하늘에 박혀 있는 나라를 : 나는 그리 떠나리라. 다시 불을 켜라, 어린애 같다고 그대는 말하는가, 불꽃 가볍게 타오르는 밀랍이 빈 황금 속에서 무언가 낯선 눈물을 흘리는 저 촛대에······ 유 지금? 에 안녕히 그대는 거짓말을 하는구나, 내 입술의 벌거벗은 꽃이여! 나는 알지 못하는 것을 기다리고 있다, 아니 어쩌면, 신비와 그대의 외침을 알지 못한 채, 그대는 터뜨리는가 드높고 상처 입은 오열을, 몽상에 잠겨 있다가 제 차가운 보석들이 마침내 흩어지는 것을 느끼는 한 아이처럼. 목신의 오후 -전원시 목신 이 님프들, 나는 그네들을 길이길이 살리고 싶구나. 이리도 선연하니, 그네들의 아련한 살빛, 무성한 잠으로 졸고 있는 대기 속에 하늘거린다. 내가 꿈을 사랑하였던가? 두텁게 쌓인 태고의 밤, 내 의혹은 무수한 실가지로 완성되어, 생시의 숲 그대로 남았으니, 아아! 나 홀로 의기양양 생각으로만 장미 밭의 유린을 즐겼더란 증거로구나- 어듬어 생각해보자······ 혹여, 그대가 떠벌리는 여자들은 그대의 전설적인 육욕의 소망을 그림 그리는가! 목신이여, 환각은 더 정숙한 여자의, 눈물 젖은 샘처럼, 푸르고 차가운 눈에서 솟아나온다. 그러나, 온통 숨결 가쁜 다른 여자는 그대 털 속의 뜨거운 대낮 바람처럼 대조적이라 말할 것인가? 아니다! 요지부동의 지친 失神으로 더위에 목이 졸려, 서늘한 아침은 발버둥치면서도, 화음으로 축여지는 숲에 내 피리가 퍼붓는 물이 아니면 어느 물로도 속삭이지 않고, 메마른 빗속에 소리를 흩날리기 전에 두 대롱 밖으로 서둘러 빠져나가려는 유일한 바람은, 주름 한 자락 움직이지 않는 지평선에서, 하늘로 되돌아가는 저 영감의 가시적이고 진정되고 인위적인 숨결이로다. 태양들에게 질세라 내 허영이 분탕질하는, 오 조용한 늪의 시칠리아 기슭, 명멸하는 불티들의 꽃 아래 말없는 沿岸이여, 이야기하라. “재능으로 길들이는 속빈 갈대를 내 여기서 꺾었을 때, 샘에 포도넝쿨을 바치는 먼 초원의 청록색 황금 위로, 휴식하는 짐승들의 하얀 빛이 물결을 이룬다고, 피리 소리 태어나는 느린 전주에 저 날아가는 백조의 떼들, 아니다! 水精의 떼들 도망친다고, 또는 물에 잠긴다고······” 나른하게, 황갈색 시간에 만상이 타오르고 라音을 찾는 자가 소망하는 너무 많은 혼례가 무슨 재주로 한꺼번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까. 그때 나는 첫 열기에 깨어 일어나, 太古적 빛의 물결 아래, 우뚝 홀로 서며, 백합꽃들이여! 이 순진함으로 그대들 가운데 하나가 되련가. 아주 나직하게 믿을 수 없는 여자들을 믿게 하는 입맞춤, 그네들의 입술이 누설한 그 부드러운 공허와는 달리, 증거의 허물이 없는 내 순결한 가슴은 어느 고귀한 이빨에 말미암은 신비로운 상처를 증언한다. 그러나, 아서라! 이런 秘義는 은밀한 이야기 상대로 속 너른 쌍둥이 갈대를 골랐으니 푸른 하늘 아래서 부는 갈대 피리는 뺨의 혼란을 저 자신에게 돌려, 한 자락 긴 독주 속에 꿈을 꾼다, 우리가 주변의 아름다움을, 바로 그것과 우리의 순박한 노래 사이 감쪽같은 혼동으로, 기쁘게 하는 꿈을, 내 감은 눈길로 따라가던 그 순결한 등이나 허리의 흔해빠진 몽상으로부터, 한 줄기 낭랑하고 헛되고 단조로운 선을 사랑이 변조되는 것만큼 높이 사라지게 하는 꿈을. 그러하니, 도피의 악기여, 오 얄궂은 피리 시링크스여, 부디 호수에 다시 꽃피어나, 날 기다려라! 나는, 내 소문을 뽐내며, 오랫동안 여신들을 말하련다, 우상 숭배의 그림을 그려, 그네들의 그림자에서 다시 허리띠를 벗기련다. 이렇게, 포도 알알에서 그 빛을 빨고 나서, 내 거짓 시늉으로 회한을 흩뜨려 쫓아버리려고, 웃으며, 나는 빈 열매를 여름 하늘에 들어올리고, 그 빛 밝은 껍질에 숨결 불어넣으며, 도취를 갈망하여, 저녁이 올 때까지 비쳐보노라. 오 님프들이여, 가지가지 추억으로 부풀어오르자. “내 눈이, 골풀들을 뚫고 나가, 불후의 목덜미를 하나하나 쏘았더니, 제각기 숲의 하늘에 광란의 비명을 울리며, 그 타오르는 상처를 물결 속에 잠그는구나, 머리칼의 눈부신 목욕이 빛과 잔물결 속에 사라지는구나, 오 보석들이여! 나는 내닫는다, 내 발치에 잠자는 여자들이(둘이라는 그 고통에서 맛본 나른함으로 기진하여) 나는 그네들을 덮쳐, 떼놓지도 않은 채, 후려안고, 변덕스런 그늘도 머물기를 마다하여 태양에 향기 모두 날려버리는 저 장미 덤불로 날아드니, 거기 우리의 장난은 불타버리는 대낮과 같을시고.” 내 너를 찬미하노라, 오 처녀들의 분노여, 내 불의 입술을 피하여 미끄러지는 裸身 그 성스런 짐의 오 사나운 환락이여, 한 줄기 번개가 전율하는가! 육체의 은밀한 공포를 내 입술은 마시니, 무정한 여자의 발끝부터 수줍은 여자의 가슴까지, 순결이 단 한 번에 단념하여, 미친 눈물에, 아니 덜 처량한 입김에 젖어드는구나. “내 죄는 그 믿지 못할 공포를 깨뜨리는 것이 즐거워, 신들이 그리 잘 얽어놓은 포옹의 저 헝클어진 숲을 갈랐다는 것. 그건 내가 단 한 여자의 행복한 굴곡 아래 타오르는 웃음을 감추려 하자마자 (단순한 손가락 하나로는, 얼굴도 붉히지 않는 순지한 동생을 붙들어 그 깃털 같은 순백이 불붙는 제 언니의 흥분에 물들게 하고,) 어렴풋한 죽음으로 헐거워지는 내 팔에서, 여전히 나를 취하게 하던 울음도 아랑곳없이, 이 포로는 영영 보람도 없이 풀려나갔기 때문.” 어쩔 것인가! 다른 여자들이 내 이마의 뿔에 그네들의 머리타래를 묶어 나를 행복으로 이끌리라. 너는 알리라, 내 정념이여, 진홍빛으로 벌써 무르익은, 석류는 알알이 터져 꿀벌들로 윙윙거리고, 그리고 우리의 피는, 저를 붙잡으려는 것에 반해, 욕망의 영원한 벌떼를 향해 흐른다. 이 숲이 황금빛으로 잿빛으로 물드는 시간에 불 꺼지는 나뭇잎들 속에서는 축제가 열광한다. 에트나 火山이여! 그대 안에 비너스가 찾아와 그대의 용암 위에 순박한 발꿈치를 옮겨놓을 때, 슬픈 잠이 벼락 치거나 불꽃이 사위어간다. 여왕을 내 끌어안노라! 오 피할 수 없는 징벌······ 아니다, 그러나 말이 비어 있는 마음과 무거워지는 이 육체는 대낮의 오만한 침묵에 뒤늦게 굴복한다. 단지 그것뿐, 독성의 말을 잊고 모래밭에 목말라 누워 잠들어야 할 것이며, 포도주의 효험을 지닌 태양을 향해 나는 얼마나 입 벌리고 싶은가! 한 쌍이여, 잘 있어라, 그림자 된 너의 그림자를 내 보러 가리라. [머리칼 極에 이른 한 불꽃의 비상······] 머리칼 極에 이른 한 불꽃의 비상 그 타래 활짝 펼치려는 욕망의 서쪽이 관을 썼던 이마 제 옛 아궁이를 향해 (왕관이 스러지듯) 내려앉네 그러나 이 생기에 찬 구름밖에 다른 황금 불어넣지 않아도 항상 내부적인 불의 연소 애초부터 하나뿐인 그것은 지속되네 진정하거나 웃음짓는 눈의 보석 속에 손가락에 별도 불꽃도 놀리지 않고 영예로운 광채로 여자를 단순화하는 것밖에 없이 눈부신 그 머리로 공훈을 완수하여 즐겁고 수호하는 횃불처럼 루비의 의혹을 채집하여 뿌리는 그녀를 다정한 한 주인공의 裸身은 더럽히네 성녀 플루트나 만돌린과 더불어 옛날 반짝이던 그녀의 비올라의 금박이 벗겨지는 낡은 백단목을 감추고 있는 유리창에, 저녁 성무와 밤 기도에 맞추어 옛날 넘쳐흐르던 성모 찬가의 책장이 풀려나가는 낡은 책을 열어놓고, 창백한 성녀가 있다. 섬세한 손가락뼈를 위해 천사가 제 저녁 비상으로 만드는 하프에 스쳐 星光처럼 빛나는 그 창유리에, 낡은 백단목도 없이, 낡은 책도 없이, 악기의 날개 위로, 그녀가 손가락을 넘놀린다 침묵의 악사. 葬送의 건배 오 우리네 행복의, 그대, 치명적 표상이여! 착란의 인사이자 창백한 헌주련가, 황금빛 괴수가 몸부림하는 이 내 빈 술잔을 회랑의 마술 같은 희망에 바친다고는 생각지 마시라! 그대가 나타난다 한들 나를 흡족하게 하지는 않으리. 내 그대를 손수 반암의 자리에 모시지 않았던가. 儀式이란 무덤의 문들 그 육중한 무쇠에 두 손으로 횃불을 비벼 끄는 것. 그렇거니 시인의 부재를 노래하는 너무나 단순한 우리네 축제를 위해 선택한 이 아름다운 기념물에 그대 고스란히 담겨 있음을 모르기는 어렵도다. 다만 남는 것, 누구나 맞이할 그 저열한 재의 시간까지, 어느 저녁이 우쭐거리며 내려와 불태우는 그 창문으로, 죽음의 순결한 태양 그 불꽃을 향해, 직분의 타오르는 영광이야 되솟아오름이 없으랴만! 장엄하게, 총체적이고도 고독하게, 그렇게 산화될 것이 두려워 인간들의 거짓 긍지는 떠는도다. 저 험상궂은 군중! 그들은 고하노니 : 우리는 우리 미래 망령들의 슬픈 암흑이로다. 그러나 헛된 담벼락에 애도의 紋章들 흩어져 있어도 나는 눈물의 냉철한 공포를 무시하였으니, 내 성스런 시에조차 귀먹어 소스라치지 않는, 뽐내는, 눈멀고 벙어리인, 저 행인들 가운데 어느 한 사람, 제 아련한 壽衣의 손님된 자가 死後 기다리기의 순결한 영웅으로 변하고 있을 때였더라. 그가 말하지 않은 말들의 성마른 바람을 타고 안개 더미에 싸여 실려오는 막막한 나락, 無가 옛날의 폐기된 그 인간에게 : “지평선의 기억들이란, 오 그대여, 대지란 무엇이냐?” 이 꿈을 울부짖는데, 청아함이 변질되는 목소리로, 허공은 이 외침을 장난감 삼는도다 : “나는 알지 못하노라!” 스승은, 그윽한 눈으로, 걸음걸음, 에덴의 불안한 경이를 진압하였으니, 그 마지막 떨림은, 당신의 목소리만으로도, 장미와 백합을 위해 한 이름의 신비를 깨우도다. 그래 이 운명에서 아무것도 남는 것은 없는가, 그런가? 오 그대들 모두여, 어두운 믿음을 잊어버리시라. 찬란하고 영원한 재능은 그림자를 남기지 않는 법. 내, 그대들의 욕망을 염려하여, 내 보고자 하는바, 어제, 당신이 사라진 뒤에도, 이 별의 정원들이 우리에게 지정하는 이상의 숙제 속엔, 평온한 재난의 영예를 위해, 도취한 주홍이자 크고 선연한 꽃송이, 말들의 그 장엄한 공기 진동은 살아남으리라, 빗방울이며 금강석, 그 어른거리는 시선이 거기 어느 것 하나 시들지 않는 그 꽃들 위에 남아 시간과 햇살 가운데 꽃송이 따로 떼어놓는지라! 이곳이 진즉에 우리네 진정한 숲들의 모든 거처일진대, 순수 시인은 여기서 겸허하고도 너그러운 행적으로, 당신의 직분의 적, 꿈에게 이 거처를 금지하는 바이니, 이는 그 당당한 휴식의 아침에, 저 오래된 죽음이란 것이 고티에에게도 다름없이 신성한 두 눈을 열지 않는다는 것이며 입을 다문다는 것일 때에, 해를 입히는 모든 것이랑 인색한 침묵이랑 오솔길에 딸린 장식으로 솟아오르게 하기 위함이라.             스테판 말라르메의 「바다의 미풍」을 배달하며 살갗을 말갛게 씻어주는 바람이 열린 창마다 불어오고 불어온다. 기분 좋은 바람이다만 가뭄이 극심하다니 마냥 반길 수 없는 노릇이다. 비 기운을 한 점 남김없이, 멀리 멀리 쓸어가 버릴 바람 속에서 「바다의 미풍」을 읽는다. 말라르메가 23세 된 해 5월에 썼다는 시다. “나는 모든 책을 다 읽었구나.”! 젊으나 젊은 나이에 미리 모든 생을 포식한 듯한 이 권태! 지긋지긋한 권태를 앓으며, “바다에 젖어드는 이 마음”이라느니, “이국의 자연을 향해 돛을 올려라!”느니, 마음을 부추기지만 “손수건들의 마지막 이별을 아직 믿는구나!”, 다 부질없는 짓이라고 넌더리낸다. 여긴들 저긴들……. “그러나, 오 내 마음이여/저 수부들의 노래를 들어라!” 이 사이키델릭한 비명! 「바다의 미풍」은 나른하고 우아한 시인으로 알고 있던 말라르메의 신경증적인 청년기 모습을 엿보는 재미가 있다. 여기까지 썼는데, 명랑이(우리 집 막내 고양이)가 옆 의자에서 징징거린다. “어……” 나는 명랑이를 흘깃 보면서 멍하니 일어나 “어, 그래, 우리 말라르메야” 중얼거리다 킬킬 웃었다. 우리 말라르메~ 명랑이 이름을 말라르메라 지어도 좋았겠다. 의자에서 뛰어내린 말라르메, 아니 명랑이가 간식 캔을 가지러 가는 내 뒤를 좋아라 쫓아온다. 이국에의 향수, 바다, 청춘, 말라르메…….    
190    일본 명시모음 댓글:  조회:18406  추천:1  2017-05-22
일본 명시 모음 머리말    일본 근대시 이후 현대시의 실질적인 역사는 100년 미만이다. 그 짧은 역사 동안에 그들은 수많은 명시를 창작하였다. 그 명시들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그 마음의 눈을 뜨게 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한없는 감동의 세계로 인도한다.  이 책에서는 일본의 근대시와 현대시의 역사에서 대표 시인이라 할 수 있는 58명을 가려, 그들의 작품 124편을 옮기고 감상하였다. 시의 배열은 가능한 한 연대순으로 하여 시의 역사와 흐름을 알 수 있게 하였다.  시인의 대표작을 고르되 가능하면 서정적인 것을 택하였고, 시로서의 예술성은 훌륭하더라도 지나치게 어렵거나 또 지나치게 서정을 무시한 시들은 제외하였다.  내용은 4부로 나누었다.  1)낭만파와 상징파는 메이지(明治) 시대의 시  2)민중시파와 다다이즘은 다이쇼(大正) 시대를 중심으로 한 시.  3)초현실주의와 역정파(歷程派)는 쇼오와(昭和) 전기의 시  4)황지파(荒地派) 이후 현대는 쇼오와 후기의 시이다.  124편 의 시가 숫자로서는 별로 대단치 못할지는 모른다. 그러나, 이 정도의 시만 이해하여도 시에 대해서는 일가견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약간의 "오만"으로 이 책을 내놓는다.                                                1884년 11월                                                       김 희보: 목사, 문학비평가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국어국문학과,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수학                                                            저서: 등 다수                                                          편저서:  등 다수   1 사라(沙羅)의 나무 / 모리 오우가이     갈색의 네부(根府) 강 돌에 하얀 꽃은 뚝 떨어지나니, 안 뵈게 푸른 잎 사이에 숨어 몰래 떨어지는 사라나무 꽃   * 동양미의 세계를 노래하고 있다. 돌은 "갈색"이고, 그 위에 떨어진 꽃은 "흰색"이며   제 3행에 " 푸른 잎"이 나와 색채가 아름답다. 어느 날 정원을 보고 있는 시인의 눈에    하얀 꽃이 "뚝"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고요함 속에 뚝 떨어진 꽃이기 때문에 주위는    한층 더 고요하다. 그 낙화를 보는 순간의 느낌을 시인은 기품 있게 표현하면서, 모든 군    더더기의 말은 생략하고 색채감 선명하게 묘사하고 있다. 모리 오구가이(1862~(1992): 본명은 모리 린타로우. 육군 군의감으로 있으면서 많은 작품을 발표하였다.                                     서구시를 번역한 등.     생활 / 이시가키 린     먹지 않고 살아갈 수 없다. 밥을 야채를 고기를 공기를 빛을 물을 부모를 형제를 스승을 돈도 마음도 먹지 않고는 살아올 수 없었다. 부른 배를 부축하고 입을 닦으면 부엌에 흩어져 있는 홍당무 꼬리 새 뼈다귀 아버지의 창자 사십이 저물면서 내 눈에 비로소 넘치는 짐승의 눈물.   *이시가키 린(1920~?): 여성만의 시잡지 을 발간, 잡지에 "내 앞에 있는 남비와                                       가마와 타오르는 불"을 발표하면서 격찬을 받았다. 체험과 생활                                       에 근거하여 사회성 있는 시를 썼다.                  시집: 등     바지락 / 이시가키 린     밤중에 눈을 떴다. 어제 사온 바지락들이 부엌 구석에서 입 벌리고 살아 있었다.   "날이 새면 이것 저것 모조리 요리해 먹겠다"   마귀 할멈의 웃음을 나는 웃었다. 그리고 나서는 입을 헤 벌리고 자는 것밖에 나의 밤은 없었다.   *목숨 있는 것을 죽여서까지 먹고 살아야 하는 인간 내지 생물의 잔혹성을 노래하고 있다. 특히 2연의 따옴표로 되어 있는 독백체는 비인간적인 면을 여실하게 드러내어 노래하고 있다. 인간성에 잠재되어 있는 잔혹함,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누구인가를 희 생시키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구조, 그리고 어느 때의 피해자가 언제든지 가해자로 변할 수 있는 현대 사회의 메커니즘, 그 잔혹함을 노래하고 있다.   죽은 사나이 / 이유카와 노부오     이를테면 안개나 온갖 계단의 발자취 소리 속에서 유언 집행인이 흐릿하게 모습을 나타낸다. - 이것이 모든 것의 시작이다 먼 어제--- M이여, 너는 어두운 술집 의자 위에서 찡그리는 얼굴을 짓기도 하고 편지 봉투를 뒤집는 일도 있었다 "실제는 그림자도 형체도 없는가?" - 정녕 죽음에 접하면 그러하였다 어제의 싸늘한 푸른 하늘이 면도날에 언제까지나 남아 있다 하지만 나는 때의 흐름의 어느 곳에서 너를 잃게 되었는지 잊고 말았다. 황금 시대 - 활자의 바뀜과 신들의 높이 "그것이 우리의 낡은 처방전이었다"고 중얼거리며---   언제나 계절은 가을이었다, 어제도 오늘도 "쓸쓸함 속에 낙엽이 진다" 그 소리는 사람 그림자로 그리고 거리로 검은 납덩어리의 길을 계속 걸어온 것이었다.   매장의 날에는 언어도 없고 입회인도 없었다 분격도 비애도 불평의 유약한 의자도 없었다 너는 그저 무거운 구두 속에 발을 넣고 고요히 누웠었다. "안녕, 태양도 바다도 믿을 것이 못 된다" M이여, 지하에 잠든 M이여! 네 가슴의 상처는 아직도 아픈가.   *전쟁 체험자의 회복하기 어려운 "생의 의식"의 상실을 다루어, 한스러움과 우수(憂愁)를 풍기며 노래한 시이다. *아우카와 노부오(1920~?): 주로 등을 통해 활동.                               그룹의 주요 멤버의 한 사람,     시집: 등.     환상의 집 / 키요오카 타카유키     꿈속에서만 때로 생각해 내는 20년이나 전에 세운 작고 밝은 집. 전쟁 뒤의 불타진 들판 잡초 구석에 세워진 채 그대로 잊은 알뜰한 행복.   아니, 그런 것은 현실에는 없었다 한없이 어리석은 젊은이가 그때 임신한 젊은 아내와 둘이서 살기 위하여 독립된 보금자리를 갈망했다 하더라도.   그런 가공의 집이 어떻게 이제 새삼 자택에서 자는 내 가슴을 설레게 하는 것인가 가난한 청춘에의 향수를 일깨우듯이?   꿈속에서 그 집은 언제나 방바닥이 푸르렀고 담장에는 제비, 마당에는 금잔화 아아 아무도 모르게 서 있다.   *키요오카 타카유키(1922~): 쉬르리얼리즘 재평가 운동을 통하여 후배 시인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시집: 등        소설집: 등   북국 / 아키야 유타카     우수수거리는 바람막이 숲 깊숙한 곳 총에 맞아 떨어진 들오리의 양눈에 하얀 안개가 얼어 있었다   램프의 차가운 흐름에 젖어 나는 침울한 내력 쓰기를 끝냈다   밤새껏 마른 풀 속에서 죽지 못하는 들오리가 날개를 치고 나는 잠자리에서 뒤척거리기만 했다   *이 시에서 "램프"나 "들오리"는 여행의 이미지를 짙게 해주고, 여정의 주선율을 연주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총에 맞아 떨어진 들오리""죽지 못하는 들오리"등 빈사(瀕死)의 이미지이다. 이것은 "나"의 죽음에 대한 불안과 이중 이미지를 형성하고 있다. 청춘의 불안과 상처와 더불어 시대의 공포와 전율이 잠복해 있다고 볼 수 있다. *아키타 유타카(1922~?): 서정시의 전통을 근원적인 의미로 포착하여 깊이 추구하는 있는 일본                              현대 서정파의 대표적 시인. 를 통해 활동했고, 의                              발행인이기도 하다.      시집: 등.   내가 가장 예뻤을 때 / 이바라기 노리코     내가 가장 예뻤을 때 거리는 와르르 무너지고 뜻하지 않은 곳에서 푸른 하늘과 같은 것이 보이기도 하였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주위의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 공장에서 바다에서 이름도 없는 섬에서 나는 멋을 부릴 수 있는 구실을 잃었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아무도 정다운 선물을 주지 않았다 남자들은 거수 경례밖에 몰랐고 깨끗한 눈짓만 남기고 모두 가버렸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내 머리는 텅 빈 상태였고 내 마음은 무디었으며 손발만 밤색으로 빛났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내 조국은 전쟁에서 패전하였다 그런 어이없는 일이 있을까 하며 부라우스 팔을 걷고 비굴의 거리를 쏘다녔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라디오에서는 재즈가 넘쳐 흘렀다 금연을 깨뜨렸을 때처럼 현기증이 나서 나는 낯선 나라의 달콤한 음악을 마음껏 즐겼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나는 몹시 불행하였고 나는 몹시 얼빠져 있었으며 나는 몹시 외로왔다   그래서 결심했다 가능한  한 오래   살아야만 한다고 나이 늙어 아주 아름다운 그림을 그린 프랑스의 저 루오 할아버지처럼     나의 카메라 / 이바라기 노리코     눈 그것은 렌즈   깜박거림 그것은 나의 셔터   머리칼로 에워싸인 작고 작은 암실도 있어   그래서 나는 카메라 따위는 메고 다니지 않는다   아시는가? 내 속에 당신의 필름이 많이 간직되어 있음을   나무 틈 햇빛 아래서 웃음 짓는 당신 물결치는 밤색의 눈부신 몸뚱이   담배에 불을 붙인다 아이처럼 잔다 난초처럼 향기롭다 숲에서는 사자라   세계에서 단 하나 아무도 모른다 나의 필름 라이브러리     * 작자는 평론집에서 "언제까지나 잊혀지지 않는 언어는 아름다운 언어이다. 그   두 가지는 거의 동의어처럼 나는 느껴진다" 말한 바 있는데 이 시는 바로 그런   성질의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바라기 노리코(1926~?): 전후의 해방된 일본 여성의 꿈과 희망을 노래하고 날카로운                                                현실 비판을 하고 있다.                시집: 등     겨울의 벚꽃 / 신카와 카즈에     사나이와 계집이 깨진 남비 뚜껑처럼 결합하여 다음날부터 벌써 된장 냄새 배듯 그렇게 되는 것은 싫습니다 당신이 종각의 종이라면 나는 그 소리이기를 원합니다. 당신이 노래의 한 가락이면 나는 드 댓구이기를 원합니다. 당신이 한 개의 레몬이라면 나는 거울 속의 레몬 그와 같이 당신과 고요히 마주 있고 싶습니다 영혼의 세계에서는 나도 당신도 영원한 어린이기에 그러한 고집도 용서될 것입니다 습기찬 이불 냄새가 나는 눈꺼풀처럼 무거이 차양이 드리워진 한 지붕 아래 살 수 없다고 해서 슬퍼할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 보셔요 천황과 황후의 인형과도 같이 우리가 나란히 앉아 있는 돗자리 위 거기에만 밝게 햇빛 비치고 끊임없이 벚꽃 꽃잎이 떨어집니다   *신카와 카즈에(1929~): 일상생활에서 소재를 취해 인간에 대한 사랑, 남녀 사이의 사랑,                                          인간애의 근원의 모습을 탐구하는 시를 썼다           시집: 등     백조 / 카와사키 히로시     날개가 젖는다 백조 바라보면 찢길 듯 하면서 희미하게 날개 소리가   꿈에 젖는다 백조 누구의 꿈에 나타나고 있는가?   그리고 밀려 와서는 방울져 떨어지고 그 그림자가 날개에 꽂히듯이 여러 가지로 이야기를 걸어오는 별   그림자는 푸른 하늘에 비치면 하얀 색깔이 되는가?   태어날 때부터 비밀을 알고 있는 백조는 이윽고 빛의 모양 속에 향기로운 아침 해가 물드는 가운데 하늘로   이미 형체가 주어지고 그것은 수줍음으로 해서 하얀 백조 좀더 있으면 빛깔이 되어 버릴 듯하여   백조여   *카와사키 희로시(1930~)      시집:   등   봄을 위하여 / 오오오카 마코토     모래밭에 조는 봄을 캐어 일으켜 너는 그것으로 머리를 장식한다 너는 웃는다 파문처럼 하늘에 흩어지는 웃음의 거품 바다는 고요히 풀빛 햇빛을 따뜻하게 하고 있다   네 손을 내 손에 네 팔매질을 내 하늘에 아아 오늘의 하늘 밑을 흐르는 꽃잎 그림자   우리의 팔에 움트는 새싹 우리의 시야 중심에 물거품을 날리며 회전하는 황금 태양 우리들, 호수이며 나무이며 잔디 위 나무 사이로 스미는 햇빛이며 나무 사이로 스미는 햇빛 출렁이는 네 머리카락의 언덕인 우리들   새로운 바람 속에서 문이 열리고 초록색 그림자와 우리를 부르는 수많은 손 길은 부드러운 땅의 살갗 위에 생생하고 샘 속에서 네 팔은 빛나고 있다 그리고 우리의 눈썹 아래는 햇빛을 받아 고요히 성숙하기 시작하는 바다와 열매   *오오오카 마코토(1931~): "쉬르리얼리즘 연구회" 회원으로 활동. 요미우리 신문 기자를 거쳐                                              메이지 대학 교수를 지냈다.             시집: 등           평론집: 등 다수     아르와 호른 / 시라이시 카즈코     흑인인 덩치 큰 사나이 아르는 호른 속에서 자고 있었다   바람은 숲에 없다 이 방에 꽃이 없다 여자에게 입술이 없다 흑인인 덩치 큰 사나이 아르는 호른 속에서 이제 눈뜰 수는 없다   아르의 팔은 호른의 형체로 뻗어 갔다 아르의 발은 호른밖에 보이지 않는 소리의    리본이 되었다 그리고 정말로 흑인인 덩치 큰 사나이 아르의 가슴은 호른 속의 진공(眞空) 벽이 되고 말았다   *시라이시 카즈코의 시는 모더니즘의 방법으로 쓰여져 있다. 때문에 이 시 역시 사실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시인은 회화적으로 이미지를 부각시켜 쓰 고 있다.  작자는 이 시를 쓸 무렵 "시라이시 카즈코의 앨범'이란 글에서 다음과 같 이 회상하고 있다. "나는 참담했던 일상의 현실과는 다르게 아홉 해 만에, 마치 암내가 난 것처럼 그리고 발광한 나이아가라처럼 호연(豪然)하게 시를 쓰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미칠 듯이 해피하고 미칠 듯이 엉망진창으로 얻어 맞은 기분인 것이다." 이렇듯 신들린 듯한 상태에서 씌어진 작품 가운데 하나가 이다. *시라이시 카츠코(1931~): 동인지 에 속하며 모더니즘-쉬르리얼리즘의                                               시풍으로 시단에 나왔다. 시 낭독 분야에서도 활동하였다.        시집: < 그 이상 더 늦게 와서는 안된다> 등     . Kiss / 타니카와 순타로오     눈을 감으면 세계가 멀어지고 알뜰함의 무게만이 언제까지나 나를 확인하고 있다---   침묵은 고요한 밤이 되어 약속처럼 우리를 에운다 그것은 지금 거리짓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를 에워싸는 정겨운 거리감이다 때문에 우리는 문득 혼자처럼 된다---   우리들은 서로 찾는다 말하는 것보다도 보는 것보다도 확실한 방법으로 그리고 우리는 서로 찾게 된다 스스로를 상실했을 때에 -   나는 무엇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일까 아련하게 돌아온 정겨움이여 언어를 잃고 정결된 침묵 속에서 너는 지금 그저 숨쉬고 있을 뿐이다   너야말로 지금 삶 그 자체이다--- 하지만 그 언어조차 죄가 된다 이윽고 정겨움이 세계를 충만하게 하고 내가 그 속에서 살기 위하여 쓰러질 때에   *키스라는 주제를 암시적으로 표현하여 "알뜰함의 무게"를 그렸다. *타니카와 순타로오(1931~): 처음에는 새로운 서정시로 출발했으나 반서정적인                                                  세계에 대해서도 의식적으로 노래하고 있다.                                                  21세 때 처녀시집 을 출간하여                                                  갈채를 받았다.                시집: 등   팔월 / 타니카와 순타로오     왕의 왕 그는 없다 아아 아름다운 여름이여   피의 피 누구를 위해서도 흘리지 않는 아아 아름다움 여름이여   아가씨는 벌거숭이 말은 장미를 뛰어넘는다 아아 아름다운 여름이여   누구? 누구? 죽음을 위해 우는 강의 소리라 아아 아름다운 여름이여   *지배와 복종이 없는 곳, 진정하게 민주적이요 전쟁과 희생이 없는 진정한 평화의 세계, 그리고 사람들은 발랄하여 각자의 생을 즐기는 세상을 공상케 하는 계절로써의 8월을 아름다운 여름으로 묘사하고 있다. 일본 명시선 / 김희보 번역 (끝)  
189    파울체란 시모음 댓글:  조회:4246  추천:0  2017-05-20
파울체란 시모음     눈 하나, 열린 / 파울 첼란     오월의 빛깔, 서늘한, 시간 이제는 부를 수 없는 것, 뜨겁게 입안에서 들린다.   다시금, 그 누구의 목소리도 없고,   아파 오는 안구의 밑바닥. 눈꺼풀은 가로막지 않고, 속눈썹은 들어오는 것을 헤아리지 않는다.   눈물 반 방울, 한층 도수 높은 렌즈, 흔들리며, 너에게 모습들을 전해 준다.   *눈 하나: Ein Auge. 첼란의 시에서 빈번히 나오는 고통의 심상이다. 외눈, 감기지 못한 눈, 뜬 채로 굳어진 눈, 생명의 물기를 잃어버린 눈, 본 것이 준 고통이 각막에 지워지지 않는 상흔으로 남아 지층에 총총히 박혀 있는 눈 등.  이 시는 에 수록되어 있다. / 전영애 번역     꽃 / 파울 첼란     돌. 내가 따라갔던 공중의 돌. 돌처럼 멀어 버린 너의 눈.   우리는 손이었다, 어둠을 남김없이 퍼냈다, 찾았다 여름을 타고 올라온 단어. 꽃.   꽃 - 맹인의 단어. 너의 눈과 나의 눈이 물을 마련한다.   성장(成長). 마음의 벽이 한 꺼풀 한 꺼풀 떨어져 내린다.   이런 단어 하나 더, 그러면 종추(鐘錘)들이 트인 곳에서 흔들린다.   *꽃: 경직된 이미지로 가득한 시집 에 수록된 시다. 서정시의 대표적인 대상, 혹은 시 자체의 은유로서의 꽃의 이미지는 시의 역사만큼이나 많은 굴곡을 겪어 왔지만 이 시에서 그려지는 꽃은 시사(詩史)에서 또 하나의 이정표가 될 것이다. 경직된 의식에는 역사의 고통이 서려 있고("돌처럼 멀어 버린 너의 눈"). 그 가운데 인식된 사물은 활성화된 언어(꽃=말)로 전이되어 있다. 그러면서도 눈물로 키운 꽃, 어렵게 찾은 소중한 언어, 허물어지는 마음의 벽, 울려퍼지는 종소리에의 꿈 역시 이 시에 담겨 있다. *종추들이 트인 곳에서 흔들린다: 얽매임 없이 울리는 여러 개의 종소리를 나타낸 표현이다. / 전영애 번역   파울 첼란(Paul Celan) 1920년 루마니아 북부 부코비냐의 체르노비츠에서 유대인 부모의 아들로 태어난다,(체르노비츠는 옛 합스부르크 왕가의 변방으로 독일어를 쓰는 지역이었다.) 그의 나이 21세 때,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체르노비츠는 유대인 거주 지역(게토)으로 확정된다. 독일군이 도시를 점령한 후 유대인들은 강제수용소로 끌려가고, 첼란의 가족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그렇게 끌려가 강제 노역을 하던 그는 부모의 처참한 죽음에 관한 소식을 전해 듣는다. 그 또한 가스실 처형 직전까지 갔다가 가까스로 살아남지만, 이후 끔찍한 기억에 고통스러워하며, 삶을 이어 간다. 종전 후 그는 루마니아의 수도 브쿠레슈티에서 번역 및 출간 일을 하다가 이후 오스트리아 빈으로 건너가 첫 시집 (1948)를 발표한다. 그리고 1948년 프랑스 파리에 정착하여 센강에 몸을 던져 1970년 자살하기까지 꾸준히 시작(詩作) 활동을 해, 모두 7권의 독일어 시집을 남겼다. 1958년 부레덴 시 문학상을, 1960년 베오르크 뷔히너 상을 수상한다.   전영애 서울대학교 독문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한국괴테학회 회장을 역임했고 현재 서울대 독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교 고등연구원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 , , 등이 있다. 2011년  괴테 연구에 기여한 사람들에게 수여하는 상 중 최고의 영예로 상으로 꼽히는 괴테 금메달을 동양인 최초로 수상했다.   언어창살 / 파울 첼란     창살 사이의 안구(眼球)   섬모충 눈꺼풀이 위로 노 저어 가 시선 하나를 틔워 준다   유영하는 아이리스, 꿈 없이 우울하게, 심회색(心灰色) 하늘이 가깝구나.   갸름한 쇠 등잔 속, 비스듬히 천천히 타는 희미한 관솔 등화(登火). 빛 감각에서 너는 영혼을 알아본다.   (내가 너 같았으면. 네가 나 같았으면. 우리 한 무역풍 아래 서 있지 않았던가? 지금은 낯선 이들인 우리.)   타일들. 그 위에 바싹 붙어 있다. 두 개의 심회색 물줄기. 두 개의 입안 가득한 침묵.   *언어창살 원래 중세 수도원 면회실의 창살문을 가리키며 이것을 사이에 두고 수도 중인 사람과 외부 면회자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이를 '언어창살'로 직역한 것은 그 창살문의 이미지가 여기서는 소통과 단절의 기능을 동시에 가지는 언어와 접목되었기 때문이다. 가까우면서도 ("타일들, 그 위에/바싹 붙어 있다. 두 개의/심회색 물줄기.") 낯설고 단절된("두 개의/ 입안 가득한 침묵.") 인간관계가 현미경적 이미지들로 포착되어 있다. 이 시는 에 수록되어 있다. *아이리스 무지개의 여신. 눈의 홍채를 뜻하기도 한다. 여기서는 안구의 홍채와 안구의 홍채 속을 헤엄치는 아이리스를 동시에 보여 준다.     무덤근처 / 파울 첼란     남녘 만(灣)의 물은 아직 알고 있을까요, 어머니, 당신에게 상처를 남긴 파도를?   한가운데 물방아들이 있는 벌판은 알까요,  얼마나 나직하게 당신의 가슴이 당신의 천사들을 견뎠는지?   어떤 은(銀)포플러도 어떤 수양버들도, 이제는, 당신의 근심을 거둬 가지 못하지요, 위안을 드리지 못하지요?   그런데 신은, 꽃봉오리 피어나는 지팡이를 짚고 언덕으로, 언덕 아래로, 가지 않나요?   그런데 견디시겠어요, 어머니, 아 언젠가, 집에서처럼, 이 나직한, 이 독일어의, 이 고통스러운 운(韻)을?   *독일어 첼란은 복합적인 이유로 여러 언어를 뛰어나게 구사하였다. 그러나 극한의 체험 이후 모든 사람을 잃고 홀로 살아남은 첼란은, 독일어로 시를 쓰기로 결심한다. 독일어는 그에게 오로지 고통만을 가져다준 나라의 언어. '살인자들의 언어'였지만, 동시에 모국어이자 무엇보다 비명에 간 어머니와 어린 시절 함게 읽었던 문학의 언어였던 것이다. 어머니의 사망시기나 장소는 불명이지만, 유대인들이 송치되었던 흑해변 드네프르 강 연안("남녘 만")으로 추정된다. 이 시는 첼란이 한정판으로 냈다가 회수한 첫 시집 에 수록되어 있다.   /번역및 해설 전영애    포도주와 상실 곁에서, 그 두 잔이 다 기울었을 때 / 파울 첼란   나는 눈 속을 달렸어, 당신, 듣고 있지, 내가 신(神)을 타고 달렸어, 먼 곳으로-가까운 곳으로, 그가 노래했어, 그건 인간-장애물을 넘던 우리의 마지막 승부였어.   그들은 무릎을 꺾었어, 우리가 그들을 넘어가는 소리를 들으면, 그들은 썼어, 그들은 우리의 말 울음소리를 거짓말로 바꿔 적었어 그림 그려진 그들의 언어 하나로.     목각별 하나, 파란, / 파울 첼란 조그만 마름모꼴들을 모아 맞춘 것, 오늘, 우리 손들 중 가장 어린 손이.   그 말, 어둠으로부터 네가 소금을 떨어뜨리는 동안, 시선이 다시 햇무리를 찾는 동안,   -별 하나, 그걸, 그 별을 어둠 안에 넣어 다오.   (-내 어둠 안에, 내  어둠 안에.)       ---좔좔 샘물이 흐른다 / 파울 첼란   너희, 기도로-, 너희, 독신(瀆神)으로-, 너희 기도로 날 선 나의 침묵의 칼.   너희 나의 나와 더불어 불(不) 구(具)된 말들, 너희 나의 똑바른 말들.   그리고 너, 너, 너, 너 나의 날마다 진실하게, 더욱 진실하게 껍질 벗겨지는 장미의 훗날-   얼마나 많은, 오 얼마나 많은 세상인가. 얼마나 많은 길인가. 목발인 너, 날개들, 우리-   우리 동요를 부르리, 그걸 네가 듣고 있어, 그 동요 인(人)들과 간(間)들이 있는, 인간들이 함께 있는, 그래, 그 뒤엉킨 덤불과 눈 한 쌍이 거기 함께 눈물-또- 눈물로 함께 있는 그 동요를.     *포도주와 상실 곁에서 이 시는 에 수록되어 있다. *목각별 하나 이 시는 에 수록되어 있다.   *불구 한 단어를 나눠 행을 바꿈으로써 '불구' 상태를 언어 형태로도 나타내고 있다. 뒤엉킨 덤불과 눈 한쌍 눈썹과 눈의 이미지를 드러낸다. 앞 행에서 인간의 고통을 토막 낸 불구의 언어로 나태내고("인(人)들과 간(間)들") 그것을 다시 온전하게 합침으로써 ("인간들") 그렇게 했듯, 이제 제자리에 모여 울 수 있게 된 눈("눈물-또-/눈물")의 이미지를 통해 동요에 등장할 만한 작은 유토피아를 꿈꾸고 있다. 좔좔 흘러, 생명의 언어를 꿈꾸게 하는 샘물 앞에서. 이 시는 에 수록되어 있다. / 전영애   찬미가 / 파울 첼란   아무도 흙으로 진흙으로 우리를 다시 빚어 주지 않는다. 아무도 우리의 티끌에 혼을 불어넣어 주지 않는다. 아무도.   찬양하세, 그 누구도 아닌 이. 당신을 위하여 우리가 꽃피려 하노니 당신을 바라보며.   우리가 하나의 무(無) 였고, 무이며, 언제까지이고 무일지니, 꽃피며 무의- 그 누구도 아닌 이의 장미여라   그 암술대, 혼(魂)처럼 밝고 꽃실, 하늘처럼 황폐하고 그 화관(花冠) 붉어라 가시 너머, 오 너머로 우리가 노래 불렀던 그 자식(紫色)의 말로   *그 누구도 아닌 이 독신(瀆神)과 경건이 교차된 신(神)의 이미지이다. *장미 사랑, 신과의 신비적 합일. 유대 민족 등 다양한 표상을 지닌다. 이 시는  에 수록되었다. /전영애     만돌라 / 파울 첼란     만델 안에-만델 안에 서 있는 게 무얼까? 무(無)이지 만델 안에 무가 있지 거기 서 있고 또 서 있지.   무 안에-서 있는 게 누굴까? 왕(王)이지. 거기, 왕이, 왕이 서 있지 거기 서 있고 또 서 있지.   유대인의 곱슬머리, 너는 세지 않는구나.   그리고 너의 눈-네 눈은 어디를 보고 있나? 네 눈이 만델을 마주 보고 있지 네 눈, 무를 마주 보고 있지 왕을 보고 있지 그렇게 멈추어 있지. 언제까지고.   인간의 곱슬머리, 너는 세지 않는구나. 텅 빈 만델은 로얄 블루.   *만돌라 중세 교회의 그림이나 조각에서 성인(聖人)의 전신을 아몬드형으로 감싸도록 장식한 후광, 한편 이 시를 연시(戀詩)로 읽는 해석도 있다. 이 시는 에 수록되어 있다. / 전영애     운하수문 / 파울 첼란     이 모든 너의 슬픔 너머에, 없다 두 번째 하늘은.   -----------   그것이 천 마디 말이었던 입 하나를 스치며 잃어버렸다- 잃어버렸다 내가, 내게 남아 있었던 말 하나를, 누이를.   많은 신들을 믿다가 말 하나를 잃어버렸다 나를 찾던 말을. 카디시.   운하 수문으로 나는 통과시켜야만 했다. 그 말을, 다시 소금물로 되돌려- 저 바깥으로 그리고 그 너머로 건져 내기 위하여. 이스코르.   *카디시와 이스코르 카디시는 '성스러운'이란 뜻의 아랍어로 유대교 미사를 마무리하는 유족을 위한 '진혼의 기도'를 가리킨다. 이스코르는 히브리어로 '(신께서) 기억하시기를'이라는 뜻으로 장례 후, 혹은 추도석에서 모든 회중이 조용히 함께 낭독하는 기도문이다. 이 시가 수록된 시집 를 쓰던 무렵 첼란은 유대 문화에 대한 관심이 각별했으며, 관련된 글도 많이 읽었다. (신비주의적인 유대 경전 카발라, 유대 신학자 마르틴 부버의 저서, 유대 철학자 레비나스가 쓴 글 등) 그 자취가 이 시에도 남아 있다. /전영애   서 있기, 공중의 상흔의 그림자 속에 / 파울 첼란     그 누구도-그 무엇도-위해서가- 아닌-서 있기. 아무도 모르게 오직 당신울 위하여   그 안에 자리를 가진 모든 것과 함께 언어도 없이.     *서 있기, 공중의 상흔의 그림자 속에 역사의 폭력은 공기에까지 상흔을 남겼고, 시인의 설 자리는 그것이 드리운 그림자 속으로 줄어들어 있다. 절체절명의 고독의 역사. 언어에 대한 회의와 접목되어 하나의 결정(結晶)을 이룬다. 이 시는 에 수록되어 있다. /전영애     박해받은 일들과 뒤늦게, / 파울첼란   침묵으로 가릴 수 없 는 빛 발하는 동맹을 이루어.   금박 입힌, 아침의 깊이를 재는 측연*이 내게 와 박힌다 함께 맹세하고 함께 파고 함께 쓰는 발뒤꿈치에.     측연 끈에 매달아 수심을 재는 납추, 자주 총알에 비유되는 납덩이가 캄캄한 수심이 아니라 아침의 깊이를 재는 금박 추가 되어 발뒤꿈치에 와 박혔다고 함으로써 뒤꿈치에 날개 달린 장화를 신은 헤르메스의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떨쳐지지 않는 역사의식과 시적 변용을 통한 상스이 어우러져 첼란 특유의 이미지를 만들어 내고 있다. 이시는 에 수록되어 있다. / 전영애   모래예술은 이제 그만, 모래책도, 명인도 그만 / 파울 첼란     아무것도 주사위 던져 얻어지지 않는다, 몇 명인가 벙어리는? 열일곱.   그대 물음 - 그대 대답 그대 노래,그는 무엇을 알고 있는가?   깊은눈속에서 ㅍㅡ ㄴ 눈 ㅗㄱ ㅡ-ㅜ-ㅗ       *깊은 눈 속에서: 끝에 이르러서 '깊은 눈 속에서'라는 구절이 한 덩이로 뒤엉키고 이어 차츰 녹아내리듯 모음만 남는다. 언어에 대한 회의가 극단적으로 드러나며 실행된 작품이다. 이 시는 에 수록되어 있다. / 전영애       언젠가, / 파울 첼란   그의 기척을 들은 적이 있다, 그가 세계를 씻고 있었다, 보이지 않게, 밤새도록, 정말로.   하나와 무한(無限), 파괴되어, '나'되어.   빛이 있었다, 구원.     *'나'되어: '나(ich)'에 동사화 어미 '되다(-en)'을 붙여 만든 조어 'ichen'의 과거형이다. 이 단어는 앞 행의 '파괴되어 (vernichtet)' 다음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음향상 그 여운처럼 들리고, 또 '빛(Licht)'이라는 단어가 그 뒤로 이어지기 때문에 '파괴'와 '빛' 사이에서 일어나는 무엇인가를 가리키는 것으로 짐작된다. 비슷한 단어를 찾자면 중세 독일어 'iht'('무엇'을 뜻하는 고어)가 있다.(이 경우 번역은 "하나의 무한/파괴되었다/무엇인가가" 정도가 될 것이다.) 유희처럼 들리기도 하는 언어의 피안 침묵과 절망의 언어 너머로 절절히 간구된 '구원'이 비쳐 나온다, 이 시는 에 수록되어 있다. /전영애   죽음의 푸가 / 파울 첼란      새벽의 검은 우유 우리는 마신다 저녁에  우리는 마신다 점심에 또 아침에 우리는 마신다 밤에  우리는 마신다 또 마신다  우리는 공중에 무덤을 판다 거기서는 비좁지 않게 눕는다  한 남자가 집 안에 살고 있다 그는 뱀을 가지고 논다 그는 쓴다  그는 쓴다 어두워지면 독일로 너의 금빛 머리카락 마르가레테  그는 그걸 쓰고는 집 밖으로 나오고 별들이 번득인다 그가 휘파람으로 자기 사냥개들을 불러낸다  그가 휘파람으로 자기 유대인들을 불러낸다 땅에 무덤 하나를 파게 한다  그가 우리들에게 명령한다 이제 무도곡을 연주하라    새벽의 검은 우유 우리는 너를 마신다 밤에  우리는 너를 마신다 아침에 또 점심에 우리는 너를 마신다 저녁에  우리는 마신다 또 마신다  한 남자가 집 안에 살고 있다 그는 뱀을 가지고 논다 그는 쓴다  그는 쓴다 어두워지면 독일로 너의 금빛 머리카락 마르가레테  너의 재가 된 머리카락 줄라미트 우리는 공중에 무덤을 판다 공  중에선 비좁지 않게 눕는다    그가 외친다 더욱 깊이 땅나라로 파 들어가라 너희들 너희 다른 사람들은 노래하고 연주하라  그가 허리춤의 권총을 잡는다 그가 총을 휘두른다 그의 눈은 파 랗다  더 깊이 삽을 박아라 너희들 너희 다른 사람들은 계속 무도곡을 연주하라    새벽의 검은 우유 우리는 너를 마신다 밤에  우리는 너를 마신다 낮에 또 아침에 우리는 너를 마신다 저녁에  우리는 마신다 또 마신다  한 남자가 집 안에 살고 있다 너의 금빛 머리카락 마르가레테  너의 재가 된 머리카락 줄라미트 그는 뱀을 가지고 논다    그가 외친다 더 달콤하게 죽음을 연주하라 죽음은 독일에서 온 명인  그가 외친다 더 어둡게 바이올린을 켜라 그러면 너희는 연기가 되어 공중으로 오른다  그러면 너희는 구름 속에 무덤을 가진다 거기서는 비좁지 않게 눕는다    새벽의 검은 우유 우리는 너를 마신다 밤에  우리는 마신다 너를 점심에 죽음은 독일에서 온 명인  우리는 마신다 너를 저녁에 또 아침에 우리는 마신다 또 마신다  죽음은 독일에서 온 명인 그의 눈은 파랗다  그는 너를 맞힌다 납 총알로 그는 너의 금빛 머리카락 마르가레테  그는 우리를 향해 자신의 사냥개들을 몰아 댄다 그는 우리에게 공중의 무덤 하나를 선사한다  그는 뱀들을 가지고 논다 또 꿈꾼다 죽음은 독일에서 온 명인    너의 금빛 머리카락 마르가레테  너의 재가 된 머리카락 줄라미트     *죽음의 푸가: 첫 시집 에 수록된 시 중 가장 유명한 시이다. / 전영애   유골항아리에서 나온 모래 외 / 파울 첼란     망각의 집은 곰팡이 슨 초록빛, 나부끼는 문마다 너의 머리 없는 악사가 푸르러진다. 그는 너를 위해 이끼와 쓰라린 치모(恥毛)로 만든 북을 울려주고 곪은 발가락으로 모래에다 너의 눈썹을 그린다. 그것이 달려 있었던 것보다 더 길게* 그린다, 또 네 입술의 붉음도. 너는 여기서 유골 항아리를 채우고 네 심장을 먹는다.   *길게: '오래'라고도 번역이 가능하다.     절반의 밤 / 파울 첼란      절반의 밤, 번득이는 눈에 꿈의 단검들로 꽂힌.  고통으로 울부짖지 마라, 깃발처럼 구름이 펄럭인다.  비단 양탄자, 그처럼 절반의 밤은 우리 사이에 펼쳐져, 어둠에서 어둠으로 춤추었다.  그들은 살아 있는 나무로 검은 피리를 깎아 우리에게 주었고, 이제 춤추는 여인이 온다.  그녀는 파도 거품으로 자아낸 손가락을 우리 눈에 담근다.  여기서 누가 아직 울려는가?  아무도 그리하여 절반의 밤은 희열에 차 소용돌이치고, 뜨거운 팀파니는 울린다.  그녀는 우리에게 고리들을 던져 주고 우리는 그것을 단검으로 받는다.  그녀는 우리를 이렇게 맺어 주는가? 사금파리인 듯 소리 울리니, 이제 다시 알겠다.  네가 접시꽃빛 죽음을  맞지 않았음을.     마리아네 / 파울 첼란    라일락도 아닌 꽃은 너의 머리, 거울인 너의 얼굴  눈에서 눈으로 구름이 흐른다. 소돔이 바벨로 몰려가듯  나뭇잎인 양 구름은 탑을 쥐어뜯고 유황불 타는 덤불숲 둘레를 광란한다.    그리고 번개도 번쩍인다 너의 입가에서-바이올린의 잔해를 지닌 저 계곡,  눈(雪)빛 이빨로 누군가 바이올린 활을 그으니, 오 더욱 아름답 게 갈대는 울렸는데!    사랑아, 너 또한 갈대이고 우리 모두 비(雨)여라.  너의 육신은 비할 데 없는 포도주, 우리 열(十)이서 잔을 든다.  곡식 속의 나룻배 너의 가슴을, 우리가 그것을 밤(夜)으로 저 어 가느니,  작은 항아리 하나를 채운 푸르름으로, 그렇게 너는 가벼이 우리 를 훌쩍 뛰어넘어 가고, 우리는 잠자고 있다----    천막 앞에 백 명의 병사가 집합하고, 우리는 마시며 마시며 너 를 무덤으로 나른다.  이제 세상의 석판 위에서 꿈의 단단한 은화*가 쨍그렁 울린다.   *은화: 망자에게 동전을(입에 물려) 주는 것은,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의 풍습이다. 진혼의 모티브가 드러난다.   프랑스의 추억 / 파울 첼란      그대 나와 생각하자. 파리의 하늘, 때 잊은 커다란 가을나리 꽃---    우리는 꽃 파는 아가씨에게서 하트를 샀지.  그건 파랬고 물속에서 꽃피었어.  우리의 방 안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우리 이웃 사람이 왔다, 므시외 르송주, 깡마른 난쟁이.  우리는 카드놀이를 했고, 나는 눈동자를 잃었어.  그대는 내게 머리카락을 빌려 주었는데, 그것마저 나는 잃었고 그는 우리를 내리쳤지.  그가 문밖으로 나가자, 비가 그를 따라갔지.  우리는 죽었는데 숨은 쉬었지.   *가을나리 꽃: 상사화. 봄에 돋은 잎이 죽고 나서 가을에 불쑥 줄기만 솟아나와 피는 (연)보라빛 꽃으로 강심제로 쓰이는 약용식물이기도 하다. *므시외 르송주: Monsieur L' Songe. 프랑스어로 '꿈'을 의인화한 이름.     먼 곳의 찬양 / 파울 첼란   네 눈의 샘 안에 살고 있다, 표류의 바다의 어부들의 그물이. 네 눈의 샘 안에서 바다는 약속을 지킨다.   여기에 나 던지네, 사람들 가운데 머물렀던 가슴 하나 옷들 그리고 맹세의 광채를 벗어던지네.   상복을 입어 나는 더욱 검고, 더욱 벌거벗었다. 배반하며 나는 비로소 충실하다. 나는 나이면서 너다.   네 눈의 샘 안에서 나 떠들며 약탈을 꿈꾼다.   그물이 그물을 포획하였다. 우리가 껴안은 채 헤어지고 있는 것.   네 눈의 샘 안에서는 교수형을 당한 자가 밧줄을 교살한다.     온 생애 / 파울 첼란    선잠 든 태양들은 아침 한 시간 전 네 머리카락처럼 푸르다.  태양들도 새의 무덤을 덮은 풀처럼 빠르게 자라고,  태양들도 유혹한다. 기쁨의 선상에서 우리가 꿈으로 벌였던 유 희를.  시간의 백악암에서는 태양들도 비수에 찔린다.    깊은 잠의 태양들은 더욱 푸르다. 네 고수머리도 오직 한 번 그 리 푸르렀지.  돈으로 살 수 있는 네 누이의 품 안에서 나는 밤바람으로 머물 렀다.  네 머리카락은 우리 위에 드리운 나무에 걸려 있는데, 거기 너 는 없었다.  우리는 세계였고, 너는 문 앞의 덤불이었다.    죽음의 태양들은 우리 아이의 머리카락처럼 희다.  네가 모래 언덕에 천막을 쳤을 때 밀물에 밀려 나왔던 아이.  행복의 칼이 우리 위에서 움찔거린다. 꺼진 눈으로.   /전영애 번역   애급에서 / 파울 첼란     이방 여인의 눈에다 이렇게 말하라. 물이 있으라! 이방 여인의 눈 속에 네가 아는 물속의 여인들을 찾으라. 룻! 노에미! 미르얌! 그녀들을 물 밖으로 불러내라. 네가 이방 여인 곁에 누울 때 그녀들을 치장해 주라. 이방 여인의 구름머리카락으로 그녀들을 치장해 주라. 룻, 미르얌, 노에미에게 이렇게 말하라. 보라, 내가 이방 여인과 동침하노라! 네 곁의 이방 여인을 가장 아름답게 치장해 주라. 룻, 미르암, 노에미로 인한 고통으로 그녀를 치장해 주라. 이방 여인에게 말하라. 보라, 내가 그녀들과 동침했노라고!   * 동침: 마지막 문장에 이르기까지 아홉 문장이 모두 마치 십계명처럼 나란히 '-하라'로 시작하고 있다. 룻, 미르암, 노에미는           유대 여인의 전형적인 이름들이다. '동침'이라는 가장 밀착된 인관관계에 동족의 기억이 스며들어 있다. *이방 여인: 첼란은 1948년 '정월 스무날' 빈에서 잉에보르크 바하만을 만났다. 독일의 대표적인 현대 시인인 두 사람은  오랫동안                 가까우면서도 먼 관계를 유지했는데, 최근 연구와 시간집 출간을 통해 두 사람은 서로의 작품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음이                 밝혀졌다. 첼란의 시 , 와 바하만의 소설 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 전영애   코로나 / 파울 첼란   가을이 내 손에서 이파리를 받아먹는다. 가을과 나는 친구. 우리는 시간을 호두에서 까 내어 걸음마를 가르친다. 시간은 껍질 속으로 되돌아가기에.   거울 속은 일요일이고, 꿈속에서는 잠을 자고, 입은 진실을 이야기한다.   내 눈은 연인의 음부로 내려간다. 우리는 서로 바라본다. 우리는 서로 어두운 것을 이야기한다. 우리는 서로 양귀비와 기억처럼 사랑한다. 우리는 잠을 잔다, 조개에 담긴 포도주처럼, 달의 핏빛 빛줄기에 잠긴 바다처럼.   우리는 서로 껴안은 채 창가에 서 있고, 사람들은 길에서 우리를 본다. 알아야 할 때가 되었다. 때가 되었다. 돌이 꽃피어 줄 때, 그침 없는 불안으로 가슴이 뛸 때가. 때가 되었다, 때가 될 때가.   때가 되었다.   *코로나: 태앙이 완전히 가려졌을 때 그 주위로 먼저 나오는 빛의 환(環). 한순간 태양 빛이 꺼지듯           시간의 어두운 원점에 선 연인들의 모습을 그린 연가이다.   무적(霧笛) 속으로 / 파울 체란     감춰진 거울 속의 입, 자부심의 기둥 앞에 꿇은 무릎, 창살을 거머쥔 손이여.   너희에게 어둠이 다다르거든, 내 이름을 불러라, 나를 내 이름 앞으로 끌어가라.     화인(火印) / 파울 첼란      더는 잠들지 못했다. 우울의 시계 장치 속에 누워 있었기에, 우리,  시계바늘은 채찍처럼 휘었고,  도로 다시 튕겨져 피 맺히도록 시간을 후려쳤고,  너는 짙어 가는 어스름을 이야기했고,  열 두번 나는 네말의 밤에 대고 너를 불렀고,  하여 밤이 열렸고, 그대로 열린 채로 있었고,  나는 눈 하나를 그 품 안에 넣고 또 하나는 네 머리카락에 넣어 땋아 주었고,  두 눈을 도화선으로, 열린 정맥으로 읽었고-  갓 번뜩인 번개가 헤엄쳐 다가왔고.     누군가 / 파울 첼란   누군가 심장을 가슴에서 뜯어내 밤으로 건네는 이, 장미를 향 해 손을 뻗는다.  그 잎과 가시는 그의 것이니,  장미는 그의 접시에 빛을 놓고,  그의 유리잔을 숨결로 채우니,  그에게서는 사랑의 그림자가 술렁인다.    누군가 심장을 가슴에서 뜯어내 밤으로 건네며 울리는 이,  그는 헛맞추지 않고,  돌을 돌로 치며,  그의 시계에서는 피가 울리고,  그의 시계에서는 그의 시각이 시간을 친다.  그이, 보다 아름다운 공을 가지고 놀아도 좋다.  너에 대해, 나에 대해 이야기해도 좋다.   크리스탈 / 파울 첼란   찾지 마라, 내 입술에서 네 입을, 문 앞에서 낯선 이를, 눈에 눈물을.   일곱 밤 높게 붉음은 붉음에게로 가고 일곱 가습 더 깊게 손은 문을 두드리고 일곱 장미 더 늦게 우물은 좔좔 흐르고.     수의 / 파울 첼란   내가 가벼움으로 짠 것을 나는 돌의 영광을 위해 입는다. 내가 어둠 속에서 외침들을 깨우면, 수의는 외침들을 실어 온다.   자주, 내가 더듬거려야 할 때, 수의는 잊었던 주름을 잡고, 지금의 나인 이가 용서한다. 지나날 나였던 이를.   그러나 돌 언덕의 신은 자신의 둔탁하디둔탁한 북을 건드리고 옷에 주름이 잡히듯 그 어두운 이의 이마에 주름살이 생긴다   그녀가 머리를 빗는다 죽은 이의 머리를 빗겨 주듯. 그녀는 푸른 사금파리를 셔츠 밑에 지니고 있다.   그녀는 사금파리 세계를 끈에 꿰어 걸고 있다. 그녀는 말을 알면서도, 웃기만 한다.   그녀는 자신의 미소를 포도주 잔에 섞는다. 너는 그걸 마셔야 한다, 세상에 머물자면.   너는, 그녀가 생각에 잠겨 생(生)을 굽어볼 때, 사금파리가 그녀에게 보여 주는 상(像).     풍경 / 파울 첼란   너의 키 큰 포플러 - 이 땅의 사람들! 너의 행복의 검은 연못들 - 너희가 그들을 비추어 죽게 한다!   내가 너를 본다, 누이야, 네가 이 찬란한 빛 속에 서 있음을.     정적이여! / 파울 첼란   정적이여! 내가 너의 가슴에다 가시를 박고 있구나. 장미가, 장미가 거울 속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서 있기에, 피를 흘리고 있기에! 장미는 전에도 피 흘렸다, 우리가 '예'와 '아니요'를 섞었을 때 우리가 그것을 들이켰을 때, 유리잔이 식탁에서 튀어 올라 쨍그랑 울렸기에, 그 소리는 예고했다, 우리보다 더 오래 어두어졌던 밤을.   우리 탐욕스러운 입으로 마셨다. 소태 맛이었으나, 그래도 포도주처럼 거품 일었다 - 나는 너의 두 눈이 뿜는 빛을 따라갔고 우리 혀는 달콤함을 웅얼거렸다--- (그렇게 혀는 웅얼거리고 있다. 그렇게 혀는 여전히 웅얼거리고 있다.)   정적이여! 가시가 네 가슴을 더 깊이 파고든다. 가시는 장미와 한 동아리다.     해아려라 만델을,  헤아려라, 쓴 것, 너를 눈뜨고 있게 했던 것을,  거기에 나까지 함께 헤아려 다오.    네가 눈을 떴으나 아무도 너를 눈여겨보지 않았을 때, 나는 너 의 눈을 찾았다.  나는 저 남모르는 실오리를 자았다.  네가 생각했던 이슬이,  그걸 타고 굴러 내려  항아리에 담겼다, 그 누구의 가슴에도 가 닿지 못한 한마디 말 씀이 지키는 항아리.    거기서야 너는 너의 것인 이름 안으로 온전히 들어섰다.  확실한 걸음으로 너에게로 갔다.  네 침묵의 종루에서 종추들이 자유롭게 흔들렸을 때  귀담아들은 말이 너에게로 울려 나왔고,  죽은 것이 또한 네 어깨에 팔을 둘러,  너까지 셋이서 너희들은 저녁을 지나갔다.    나를 쓰게 만들어 다오  만델에 나까지 함께 헤아려 다오.   *만델: 편도(아몬드)를 말한다. '만델형 눈'은 갸름한 눈을 가리키며 '구부러진 코'와 더불어 전형적인 유대인의 외모를 묘사할 때 사용한다. *쓴: '(맛이) 쓰다'는 뜻 외에 '쓰라린' 또는 '혹독한'이라는 뜻으로 쓰였으며 마지막 연 첫 번째 햄의 "쓰게"도 마찬가지이다. 만델 열매의 '쌉살한 떫은' 맛에 '혹독한' 체험이 겹친다.   나는 들었다 / 파울 첼란   나는 들었다. 물속에는 돌 하나 또 동그라미 하나 있다는 얘기를 물 위에는 말 하나 동그라미를 돌 주위에 놓는 말 하나 떠 있다는 얘기를.   나는 보았다, 내 포플러가 물로 내려가는 것을 나는 보았다, 그 팔이 깊은 곳으로 뻗어 내려가는 것을 나는 보았다, 그 뿌리가 하늘을 향해 어둠을 간구하는 것을.   나는 서둘러 뒤쫓지 않았다, 나는 그저 바닥에서 빵 부스러기를 주워 들었다, 네 눈의 모양과 기품을 니진 빵 부스러기를 나는 네 목에서 말씀의 목걸이를 벗겨 그 빵 부스러기가 놓인 식탁 가장자리에 둘렀다.   그러자 내 포플러가 이제 보이지 않았다.     붉은 노을 속에 / 파울 첼란   붉은 노을 속에 이름들이 잠자고 있다. 하나를 너의 밤이 깨워 데리고 간다, 하얀 막대들을 따라 마음의 남쪽 벽을 더듬으며 소나무 아래로. 사람 키만한 소나무 한 그루 성큼성큼 도공(陶工)들의 도시로 걸어간다, 바다시간의 친구 되어 비가 돌아오는 곳으로 푸름 속에서 그것은 어둠을 약속하는 나무말을 한다, 그리고 네 사랑의 이름을 그 음절에 덧붙여 헤아린다.     도끼로 유희하며 / 파울 첼란   밤의 일곱 시간, 깨어 있음의 일곱 해 도끼들을 가지고 유희하며 너는 누워 있다. 일어선 시체들의 그늘에 -오, 나무들 네가 베지 않은 나무들!- 머리맡에는 침묵으로 은폐된 것의 호화로움 말(言)의 구걸은 발치에 두고 너는 누워 유희한다, 도끼로- 그러다 마침내 번득인다, 도끼처럼.     삼단 같은 머리 / 파울 첼란   내가 땋아 주지 않은, 나부끼게 내버려 둔 삼단 같은 머리 오고 가며 희어졌구나 내가 미끄러져 스쳐 간 이마에서 흘러내려 이마의 해(年)에-   이것은, 만년설을 위하여 일어선 말(言) 하나 내가 눈(眼)들에 여름처럼 에워싸여 네가 내 위에 펼쳐 놓은 눈썹을 잊었을 때 눈(雪) 쪽으로 눈길 주었던 말 하나 내 입술이 언어로 피 흘렸을 때 나늘 피했던 말 하나.   이것은 말들 곁에서 나란히 걸었던 말 하나 침묵의 모습을 한 말 하나, 늘 푸른 담쟁이와 근심으로 에워싸인.   여기서 먼 곳들이 내려가면 그러면 네가, 솜털 같은 머리카락별 하나여, 너 여기서 눈 되어 내리는구나 흙의 입에 닿는구나.   어렴풋한 모습 / 파울 첼란   네 눈을 그 방 안에서 한 자루 양초이게 하라 네 눈길을 심지이게 하라 나를 충분히 눈멀게 하라 그 심지에 불붙일 만큼.   아니다. 다르게 하라.   네 집 앞으로 나서라 네 얼룩얼룩한 꿈에다 마구를 매라 네 경적이 말하게 하라 눈(雪)에게, 네가 내 영혼의 용마루에서 불어 날린 눈에게.     어둠에서 어둠으로 / 파울 첼란   네가 눈을 뜬다 - 내 어둠이 살아 있음이 보인다 내 어둠의 바닥을 본다 거기서도 그건 내 것이고 살아 있다.   그런 것이 건너갈까? 그러면서 깨어날까? 누구의 빛이 내 뒤를 바짝 따라오는가. 사공이 있으라고?     아시시 / 파울 첼란   움브리아의 밤, 움브리아의 밤, 종과 올리브 잎의 은빛이 있는. 움브리아의 밤, 당신이 지고 오는 돌이 있는. 움즈리아의 밤, 돌이 있는.   말없이, 삶 속으로 솟는 것, 말없이. 항아리를 바꿔 채워라-   흙 항아리, 흙 항아리, 도공의 손과 한데 엉겨 붙어 버린. 흙 항아리, 그림자의 손이 영원히 봉인한. 흙 항아리, 그림자의 봉인이 찍힌.   돌, 그대 바라보는 곳에, 돌. 그 나귀를 들어가게 하라.   터덜터덜 가는 짐승. 터덜터덜 가는 짐승, 가장 헐벗은 맨손이 뿌리는 눈 속을. 터덜터덜 가는 짐승, 철커덕 잠겨 버리는 말(言) 앞에서. 터덜터덜 가는 짐승, 손에서 잠을 받아먹은.   광휘, 위로하지 않으려는, 광휘. 죽은 이들--- 그이들이 아직도 구걸하고 있나이다, 프란 체스코여.   *이시시: 이탈리아 중부 움부리아 주(州)의 옛 도읍. 성 프란체스코가 태어난 곳으로 유명한 순례지다. *도공: Toper. '창조주(Schopfer)'를 연상시킨다. *나귀: 성경 속에서 신이 사랑하는 짐승으로 등장한다.     프랑수아를 위한 비명(碑銘)     세상의 두 문(門)이 열린 채 있다. 네가 어스름 속에서 열어 두고 가 버린 문. 그 문이 덜컥덜컥 닫히는 소리를 들으며 우린 어렴풋한 것을 나른다. 초록빛을 네 영원 속으로 나른다.   1953년 10월   *프랑수아를 위한 비명: 프랑수아는 첼란의 첫아들 이름이다. 첼란이 날짜를 기입한 시는 이 시가 유일하다.     열쇠를 번갈아 가며 / 파울 첼란     열쇠를 번갈아 가며 너는 집을 연다. 그 안에는 침묵으로 은폐된 것의 눈(雪)이 휘날리고 있다. 네게서, 눈(眼)에서 입에서 혹은 귀에서 솟는 피에 따라 네 열쇠가 바뀐다.   네 열쇠가 바뀌면 말이 바뀐다. 눈송이와 더불어 휘날려도 좋은 말. 너를 앞으로 몰아치는 바람에 따라 그 말 주위에는 눈이 뭉친다.   /전영애 번역   정물(靜物)/ 파울 첼란   촛불 곁에 촛불, 흐릿한 빛 곁에 흐릿한 빛, 환한 빛 곁에 환한 빛.   그리고 그 아래, 여기 이것. 눈 하나 쌍이 못된 채로, 감겨서, 저녁이지는 않은 채 찾아드는 늦음에다 속눈썹을 달아 주며.   그앞에, 네가 여기서는 그것의 손님인 낯선 것 빛 없는 엉겅퀴 그로써 어둠은 제것들을 의심하고 먼 곳으로부터 잊히지 않기 위하여.   그리고 또 이것, 귀 먼 것 가운데 실종되어, 입 돌이 되어, 돌을 꽉 그러 물고, 바다로부터, 그 얼음을 여러 해 굴려 오고 있는 바다로부터 부름 받아.     그리고 아름다운 것 / 파울 첼란   그리고 아름다운 것, 네가 쥐어뜯는 그리고 머리카락, 네가 쥐어뜯는. 어느 빗이 그것을 다시 단정하게 벗어줄까, 그 아름다운 머리를? 누구의 손 안의 어느 빗이?   그리고 돌들, 네가 쌓은, 네가 쌓는. 그것들은 어디로 그림자 그리우나. 또 얼마나 멀리?   그리고 그 위를 스치며 가는 바람, 그리고 바람, 이 그림자 하나를 그러쥐어 바람은 네게 나누어 줄까?     돌 언덕 / 파울 첼란   내 곁에 너는 살고 있다, 나같이 움푹 꺼진 어둠의 뺨 속 돌 하나로.   오, 이 돌 언덕, 사랑아, 우리가 쉼없이 구르는 곳, 돌인 우리가, 얕은 물줄기에서 물줄기로, 한 번 구를 때마다 더 둥글게. 더 비슷하게, 더 낯설게.   오 이 취한 눈, 여기서 우리처럼 길 잃고 두리번거리며 우리를 이따금씩 놀라며 하나로 보는.     벌판들 / 파울 첼란   늘 그 한그루, 그 포플러 생각의 자락에. 늘 손가락, 솟아 있는 손가락 밭둑에.   그보다 이미 훨씬 전에 이랑이 저녁 속에서 망설이고. 그러나 구름. 그건 흐른다.   늘 그 눈. 늘 그 눈, 그 눈꺼풀 그 감긴 눈꺼풀들이 뿜는 빛 속에서 네가 활짝 뜨는. 늘 이 눈.   늘 이 눈, 그 자아내는 시선이 그 한 그루, 포플러에 감긴다.   밤 쪽으로 젖혀진 / 파울 첼란 -한나 렌츠, 헤르만 렌츠를 위하여   밤 쪽으로 젖혀진 꽃들의 입술, 엇갈리고 뒤엉킨 전나무 줄기들, 잿빛 띤 이끼들, 뒤흔들린 돌, 깨어나 무한히 날아간다 만년설 너머 검은 새들.   여기는 우리가 쉬는 곳. 서둘러 와 닿은 지역.   그것들은 시간을 일컫지 않을 것이다 눈송이를 헤아리지 않을 것이다 물을 막힌 곳까지 따라가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세상에 갈라져 서 있다 하나하나가 자기 어둠 곁에 하나하나가 자기 죽음 곁에 무뚝뚝하게, 맨머리로, 서리에 덮혀 가깝고도 먼 것에 의해.   그들은, 그들의 부채(負債)를 져 낸다, 근원에 혼을 불어넣은 부채를 그들은 그걸 져 낸다. 말 하나에까지로 여름처럼, 부당하게 존속하는 말.   말 하나 - 알지 시체 하나.   우리 그걸 씻어 주자 우리 그걸 빗질해 주자. 우리 그 눈이 하늘 쪽으로 향하게 하자.     시간의 눈 / 파울 첼란   이건 시간의 눈 일곱 빛깔 눈썹 아래서 곁눈질을 한다 그 눈꺼풀은 불로 씻기고 그 눈물은 김이다.   눈먼 별이 날아와 닿아 뜨거운 속눈썹에서 녹으니 세상이 따뜻해지리 죽은 이들이 봉오리 틔우고 꽃 피우리.     쉬볼렛 / 파울 첼란   창살 뒤에서 커다랗게 울었던 내 돌들과 함께,   그들은 나를 날카롭게 갈아서 시장 한복판으로 보냈네, 거기로 내가 어떤 서약도 하지 않은 그 깃발 오르는 곳으로.   피리들, 밤의 이중 피리. 생각하라, 빈과 마드리드의 어두운, 꼭 같은 두 개의 붉음을.   네 깃발을 조기(弔旗)로 올리라, 기억을, 조기로 오늘과 영원을 위하여.   가슴, 여기서도 너는 네 신분을 밝히라, 여기 시장 한복판에서 외치라 그것, 쉬볼렛을, 저 밖으로 낯선 고향에 대고 2월. 노 파사란.   아인호른. 너는 돌을 훤히 알지, 너는 물을 훤히 알지, 오라 내 너를 인도하마 에스트레마두라의 목소리들에게로.   *쉬볼렛: 구약 성경에서 에브라임인과 적대 관계에 있던 길르앗인들이 에브라임 지역 요르단 강 나루터를 점령했을 때 , 에브라임인임을 숨기고  강을 건너려는 자를 색출해 내기 위해서 썼다는 암호. 에브라임인은 이 단어를 '시볼렛'이라고 발음했는데, 이를 제대로 발음하는 사람만 살려 통과시켰다고 한다. *두 개의 붉음: 빈의 노동자 봉기(1938)와 스페인 내전의 시발이 된 마드리드 봉기(1936)를 가리킨다. *노 파사란:  No pasaran  스페인 내전 당시 프랑코으 파시즘에 맞선 공화파의 구호로, "너희가 건너지 못하리라"라는 뜻 *아인호른: Einhorn 글자 그대로 옮기면 일각수(一角獸)를 뜻하나 여기서는 사회주의자였던 첼란의 고향 친구 이름이다. *에스트레마두라: 스페인 내전 당시 피해가 혹심했던 남서부 지역   가묘(假墓) / 파울 첼란   꽃을 뿌리라, 낯선 여인이여, 마음 놓고 뿌리라. 그대 저 아래 깊은 곳에 정원들에 꽃을 건넨다.   여기 누웠어야 할 사람은, 그 어디에도 누워 있지 않다. 그렇지만 세계가 그의 곁에 누워 있다. 세계, 그것이 갖가지 꽃들 앞에서 눈을 떴다.   그러나 그는 붙들었다, 많은 것들 보았기에, 눈먼 사람들과 함께. 그는 갔다, 그리고 너무 많이 꺾었다. 향기를 꺾었다- 그리고 그걸 본 사람들이 그를 용서하지 않았다.   이제 그는 갔다, 낯선 물 한 방울 마셨다, 바다를. 물고기들- 물고기들이 그 몸에 와 부딪힐까?     어느 돌을 네가 들든 / 파울 첼란   어느 돌을 네가 들든- 너는 드러내 버린다, 돌의 보호를 필요로 하는 이들을, 벌거벗긴 그들은 이제 짜임을 새롭게 한다.   어느 나무를 네가 베든- 너는 짜 맞춘다, 그 위에 혼(魂)들이 또다시 고일 잠자리를, 마치 흔들리지 않을 듯이 이 영겁(永劫) 또한.   어느 말을 네가 하든- 너는 감사한다 사멸(死滅)에.     그대도 말하라 / 파울 첼란   그대도 말하라, 마지막 사람으로, 그대의 판정을 말하라.   말하라- 그러나 '아니요'를 '예'와 가르지 마라. 그대의 판정에 뜻도 주라. 그것에 그림자를 주라.   그것에 그림자를 충분히 주라. 그것에 그만큼을, 네 주위 한밤중과 한낮과 한밤중에 두루 나누어 줄 수 있는 만큼 주라.   둘러보라, 보라, 사방이 살아나고 있다- 죽음 곁에서! 살아나고 있다! 그림자를 말하는 이, 이 진실을 말하는 것.   지금 그러나 그대 선 곳이 줄어든다, 어디로 이제, 그림자 벗겨진 이여, 어디로? 오르라, 더듬어 오르라. 그대 점점 가늘어지고, 점점 희미해지고, 점점 섬세해진다! 더욱 섬세해져 이제 한 올 실낱이다. 그가, 별이, 타고 내려오고 싶어 하는 실낱. 낮은 곳에서 유형하고자, 낮은 곳,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보는 곳, 떠도는 말들의 물살에서.   *판정: Spruch '말씀', '격언' 등의 뜻도 있다 *뜻: Sinn '감각', '방향' 등의 뜻도 있다.     침묵의 증거 / 파울 첼란 -르네 샤르를 위하여   황금과 망각 사이 사슬에 꿰인 밤 둘은 밤을 잡으려 하였다. 둘에게 밤은 허락하였다.   놓으라 너도 지금 거기다 놓으라. 낮들 곁에서 어스름히 차오르려는 것을 별 넘어 날아간 말 바다 넘쳐 씻은 말을.   그 말을 누구에게나 폭도들이 등덜미를 쳤을 때 노래 불러 주었던 그 말을 누구에게나- 노래 불러 주고는 굳어버린 그 말을 누구에게나.   그녀, 밤에게, 별 넘어 날아간, 바다 넘쳐 씻은 말을. 밤에게 침묵으로 얻은, 독니가 음절을 짓씹었을 때도 피 흘리지 않은 그 말을.   밤에게, 침묵으로 얻은 그 말을.   껍질 벗기는 자 귀들이 화냥질하고 시간과 시대도 기어오르는 그 많은 다른 말들에 맞서 그것은 증언한다 마침내,   마침내, 사슬이 절거덕거리기만 하면 증언한다, 거기 황금과 망각 사이에 놓인 밤에 대하여, 예로부터 그 둘과 형제인 것에 대하여-   그럴 것이, 대체 어디에서 밝아 오겠는가, 말하라, 그 밤 곁이 아니라면 그 밤의 눈물의 유역(流域)에서 잠수하는 태양들에게 씨앗을 가리키고 또 가리키는 밤 곁이 아니라면?   *침묵의 증거: '침묵으로 된 증거' 혹은 '침묵으로 이루어진 시'로 번역할 수 있다. 첼란이 이 시를 헌정한 프랑스 현대 시인 르네 샤르는 라는 시를 쓴 바 있으며, 첼란은 그의 시를 많이 번역하였다.   목소리들 / 파울 첼란   목소리들, 초록에다, 수면(水面)의 초록에다 새겨 넣은. 물총새가 자맥질해 들어가면 초(初)가 쨍 - 울린다.   어는 물가에서나 당신을 향해 섰던 무리가 다가온다 베어져, 다른 형상 되어.   * 목소리들, 쐐기풀 길에서 들려오는   손을 짚고 거꾸로 서서 우리에게 오라. 등불과 함께 홀로 있는 이에게는 읽어 낼 손밖에 가진 것이 없다.   *   목소리들, 어둠을 견뎌 내고 들려오는, 동아줄들, 네가 종을 매다는. 휘어라, 세계여 망자(亡者)의 조개가 쓸려 오면 여기서 종소리 울리려 하노니.   * 목소리들, 그 앞에서 너의 가슴이 어머니의 가슴으로 뒷걸음질 치는. 나이테의 햇목질과 묵은 목질이 그 테를 바꾸고 또 바꾸는 곳. 교수목(絞首木)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들.   * 목소리들, 돌 부스러기 속에서 울리는, 꺽꺽거리는, 그속에서 또한 무한(無限)이 삽으로 파내고 있다.   (마음의-) 점액질 물줄기.   여기에다 배를 내려라, 아이야, 내가 승선시켰던 배들을. 선체 중앙에서 돌풍이 우현으로 불면 꺾쇠가 닫힌다.   * 야곱의 목소리.   눈물. 형제의 눈에 고인 눈물. 그 한 방울이 계속 매달린 채 커졌다. 우리는 그 눈물 방울 속에서 살고 있는 것. 숨 쉬어라, 그 눈물이 떨어지도록.   * 목소리들, 방주 안에서 들려오는.   구조된 것은 입들뿐이다. 가라앉고 있는 이들아, 들어 다오 우리의 소리도,   * 목소리는 없고 - 한 가닥 때늦은 소음, 시각에 맞지 않게, 너의 생각에 주어져, 여기, 마침내 깨어 데려온 소음. 눈(眼) 크기만 한, 깊게 상처 난 과엽(果葉) 하나 진물이 흐른다, 아물려 들지를 않는다.     *물총새: Eisvogel.글자 그대로 옮기면 '얼음새'라는 뜻이다. 천 연의 경직된 목소리를 묘사하는 데 효과를 더한다. *꺽쇠: 앞의 "마음의-"의 앞뒤에 친 괄호를 뜻하기도 한다. 괄호가 닫히면 "마음의-"는 사라지고 '점액질 물줄기'만 남는다. *그 눈물이 떨어지도록: 유대교 신비주의의 전통에 의하면 카인에게 죽임을 당한 '아벨'의 눈물이 말라야 메시아가 온다고 한다.     확신 / 파울 첼란   눈 하나 또 있으리라 우리들 눈 옆에, 낯선 눈 하나, 말을 잃고 돌이 된 눈꺼풀 아래 있으리라.   오라, 너희들의 갱(坑)을 뚫으라!   속눈썹 하나 있으리라, 암석 속에서 안으로 향한 채 울지 못한 울음의 강철 입힌 가장 섬세한 굴착기가 있으리라.   그대들 앞에서 그것이 작업하고 있다, 마치, 돌이 있으니, 형제도 있으리라는 듯.     편지와 시계로 / 파울 첼란   밀랍, 적히지 않는 것을 봉인하는 네 이름을 알아맞혀 낸, 네 이름을 암호로 감추는 밀랍.   이제 오고 있는가, 표류하는 빛이여? 손가락들, 손가락들도 밀랍이다, 낯선 고통을 주는 반지 끼워져, 녹아들었다 손가락 끝 끝.   오고 있는가, 표류하는 빛이여?   시계의 벌집, 비었다 시간이 없다 신부처럼, 벌 떼는 떠날 채비가 되었다.   오라, 표류하는 빛이여.   귀향 / 파울 첼란   점점 짙어지는 강설(降雪), 비둘기빛, 어제처럼, 그대 아직도 잠들어 있기라도 하듯, 강설   멀리까지 펼쳐진 백색(白色), 그 너머, 끝없이, 사라져 버린 이의 썰매 자국.   그 아래, 감추어져 있다가, 젖혀 올려진다. 두 눈을 이토록 아프게 하는 것. 보이지 않던 언덕 또 언덕.   그 언덕마다에 '오늘'로 되불려 온, 침묵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간 '나' 나무로 된, 말뚝.   저기, 얼음바람에 실려 온 하나의 감정, 그 비둘깃빛, 눈(雪)빛 깃발을 달고.     흠 / 파울 첼란   각막에 그어진 흠. 절반 간 길에서 시선이 보아 버린 '잃어버림'. 실제로 자아낸 '결코 아니다'의 되돌아옴.   반 동강 길들 - 그러나 가장 긴 길들.   혼(魂)이 밟고 간 실 가닥, 유리 흔적, 뒤로 말려들어 가고 그리고 이제 그대 머리 위, 항(恒) 성(星), 그 위에서 눈(眼)인 당신이 하얗게 너울 씌워 놓은   각막에 그어진 흠. 어둠에 실려 온 기호 하나 간직하라는 것.   낯선 시간의 모래로 (아니면 얼음으로?) 보다 낯선 '언제나'를 위하여 되살아나고 소리 없이 떨리는 자음으로 조율해 놓은 그 기호.   *각막에 그어진 흠: 긁힌 유리를 통해 사물을 보면 그 사물에도 긁힌 자국이 나 보이듯, 무언가에 긁혀 흠이남은 각막으로 세상을 보면 무엇을 보든 그 대상에도 흠이 그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흑암 / 파울 첼란   저희가 가까이 있나이다, 주여. 잡힐 듯 가까이.   이미 잡혀서, 주여. 저희 하나하나의 몸이 당신의 육신인 듯, 서로를 움켜쥐고, 주여.   기도하소서, 주여 저희에게 기도하소서 저희가 가까이 있나이다.   바람에 뒤틀린 채 저희가 갔습니다 향하여 갔습니다. 물 괸 웅덩이와 분화구를 찾아 몸을 굽히려고.   물 마실 곳으로 갔습니다, 주여.   피였습니다, 그건 당신께서 흘리신 피였습니다, 주여.   그것이 반짝였습니다.   그것이 우리 눈에 당신의 형상을 비추었습니다, 주여. 눈과 입이 저렇듯 열려 있고 비어 있습니다, 주여. 저희가 마셨습니다, 주여. 피와 그 피 속에 잠겨 있는 형상을, 주여.   기도하소서, 주여. 저희가 가까이 있나이다.   *흑암: Tenebrae. '어둠' 외에도 '죽음의 밤'이라는 뜻이 있는데, 특히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직후          골고다 언덕을 뒤덮은 어둠을 가리킨다. 첼란이 독일어를 두고 굳이 라틴어로 제목을 쓴 것은, 그로 인          해 덧붙여지는 기독교적 의미를 신이 인간을 위해 기도해 달라는, 이 뒤집힌 기도 형태의 시에 수           용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여름 소식 / 파울 첼란   이제는 아무도 밟지 않는, 에둘러 가는 백리향(百里香) 양탄자. 종소리벌판을, 가로 질러 놓인 행(行) 바람이 짓부수어 놓은 곳으로는 아무것도 실려 오지 않는다.   다시금 흩어진 말들과의 만남, 가령 낙석(落石), 딱딱한 풀들, 시간.     쾰른, 임 호프 / 파울 첼란   마음의 시간, 꿈꾸어진 이들이 멈추어 있다 자정의 자판을 가리키며.   어떤 이들은 정적 속에다 말을 하고, 어떤 이들은 입 다물고 있고 어떤 이들은 자기 길을 갔다 추방당하고 상실되어 집에 있다.   너희 사원들.   보는 이 없고.   너희 사원들.   너희 강물에 귀 기울리는 이 없고 너희 시계는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있고.   *암 호프: Am Hof. 호텔 이름으로, 첼란은 파리에서의 재회 후 몇 년이 지난 뒤에 이곳에서 바하만을 다시 만났다.     그림 하나 아래로 / 파울 첼란   갈까마귀 떼 뒤덮힌 물결치는 밀밭. 어느 하늘의 푸름인가? 낮은 하늘의? 높은 하늘의? 늦은 화살, 영혼이 당겼다. 더 세찬, 화살 나는 소리. 더 가까운 이글거림. 두 세계.   *그림 하나 아래로: 빈센트 반 고호의 그림 을 소재로 한 시이다   스트렛토 /파울 첼란   실려 왔다 그 확연한 흔적이 있는 땅으로.   풀, 갈라져 적혀 있고, 돌들, 하얗게 풀 줄기 그림자 드리워져. 이제 읽지 말고 - 보라! 이제 보지 말고 - 가라!   가라, 너의 시간은 다시 올 시간이 없고, 너는 - 집에 와 있다. 바퀴 하나, 천천히, 저 혼자 굴러 나온다, 바퀴살들이 기어간다 거무스름한 들판을 기어간다, 밤은 별이 필요 없다, 그 어디서도 네 소식을 묻지 않는다.   *   그 어디서도 네 소식을 묻지 않는다 -   그들이 누었던 곳, 그곳은 이름이 있다 - 그곳은 이름이 없다.그들은 거기 눕지 않았다.무엇인가가 그들 사이에 가로놓여 있었다.그들은 꿰뚫어 보지 못했다.   보지 못했다, 아니 제각기 논하였다, 말에 대해서. 아무도 눈뜨지 않았다 잠이 그들을 덮었다.   * 왔다, 왔다.그 어디서도 묻지 않는다 -   나야, 나, 내가 너희 사이에 누워 있었어, 나는 열려 있었고 들리기도 했지, 내가 너희를 향하여 째깍거렸지, 너희 숨소리가 귀 기울렸지, 그건 여전히 나야, 너희는 잠만 자는데.   *   그건 여전히도 나야 - 세월. 세월, 세월, 손가락 하나가 더듬고 있다. 아래로 위로 더듬고 있다 이리저리 만져지는, 꿰맨 자리, 여기 다시 아물어 붙었구나 - 누가 그것을 덮어 주었을까?   *   덮어  주었다 - 누가?   왔다, 왔다. 왔다 말(言) 하나, 왔다. 밤을 뚫고 와 밝히고자 하였다, 밝히고자 하였다. 재. 재, 재, 밤-또-밤. - 눈(眼) 을 찾아가라, 젖은 눈을 찾아.   *   눈   을 찾아가라,                젖은 눈을 찾아 -   돌풍. 돌풍, 언젠가의, 입자(粒子)들의 흩날림, 타자, 당신 그걸 알지, 우린 책을 읽었어, 의견 이었어. 의견 이었지, 있었어. 어떻게 우리가 우리를 붙잡았을까 - 이 두 손으로?   적혀 있기도 했어, 이렇게. 어디에? 우리는 그 위에 침묵 하나를 띄워 놓았어, 독(毒)으로 안정시켜, 커다랗게. 초록빛 침묵 하나, 꽃받침 이파리 하나, 거기 식물적인 것에 대한 생각 하나 매달려 있었어 - 초록빛으로, 그래, 매달려 있었어, 그래, 음흉한 하늘 아래서. 그래, 식물적인 것에 대한.   그래, 돌풍, 입 자들의 흩날림, 남아 있었어. 사간이, 남아 있었어, 식물적인 것을 돌에서 틔워 보려고 - 돌은 손님을 환대했지, 그건 말을 가로막지 않았어, 우린 제법 형편이 좋았지.   알갱이로, 알갱이로, 섬유질로, 줄기로, 빽빽하게. 송이로 다발로, 신장으로, 판으로 그리고 덩이로,느슨하게, 가지 쳐서 - ,그는,그것은 말을 가로막지 않았다, 식물적인 것이 말했어, 말하기 좋아했어 메마른 눈에게도, 그것이 감기기 전에. -   말했어, 말했어. 있었어, 있었어.   우리는 늦추지 않았다, 한가운데 서 있었다, 하나의 숨구멍 짓기, 그리하여 그것이 왔다.   우리에게로 왔다, 뚫고 왔다, 꿰매었다 보이지 않게, 꿰매었다 마지막 음향전달막을, 하여 세계, 한 덩어리 수천의 수정(水晶) 결정(結晶)이 이루어졌다, 결정이 이루어졌다.   *   결정이 이루어졌다, 결정이 이루어졌다.                                       그러고는 -   환원된, 밤들, 동그라미들 초록 혹은 파랑, 빨강 네모들. 이 세계가 그 가장 내면적인 것을 새로운 시간들과의 도박에 건다. - 동그라미들, 빨강 혹은 검정, 환한 네모들, 비상(飛翔)의 그림자 없고 측량 탁자도 없고 연기혼(魂)도 피어올라 섞이지 않는다.   *   피어올라          섞인다 -   땅거미 질 녘 돌이 된 문둥병 곁에 도망쳐 온 우리들의 손들 곁 최근의 박해 때 무너진 담벼락 총알받이 너머로,   보인다, 새 롭게 이랑들이.   그때의 그 합창들이 찬미가가, 흐,호- 산나. 그러니까 아직 사원(寺院)은 서 있는 것. 아무것도 아무것도 상실되지 않았다.   호- 산나.   땅거미 질 녘, 이곳에 땅 밑을 흐르는 물흔적이 나누는 날 어두운 대화들.   *   땅 밑을 흐르는 물흔적                     의                         날 어두운 - 실려왔다 그 확연한 흔적 이 있는 땅으로.   풀, 풀, 갈라져 적혀 있는.     * 스트렛토: 로 시작되는 시집 의 맨 끝에 수록된 시. 이 시에서는 에서 나열되었던, 또한 에서 울렸던 여러 목소리들이 하나의 궤적을 좇아 집약되고 있다. 홀로코스트를 다룬 알랭 르네의 영화 와 연결시킬 수도 있다. '스트렛토'로 번역한 'Engfuhrung'은 '비좁히기'라는 뜻의 음악 용어로 푸가 형식에서 여러 성부가 나오는 부분을 가리킨다.   *의견: 단테는 에서 '사랑'을 그저 하나의 '의견(Doxa)'으로 정의했다. 함께 책을 읽다가 사랑에 빠져 불륜을 범하게 되는 파올로와 프란체스카 이야기와 연결된다.   *그는, 그것은: er,es. '돌'을 가리키는 대명사 'er'와 '식물적인 것'을 가리키는 대명사 'es'를 나란히 적어 돌에서 생명이 생성되기를 바라는 꿈을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바로 앞에 나열한 명사와 형용사를 보면 생물(식물)에 관련된 표현과 무생물(광물)에 관련된 표현이 뒤섞여 있다.   *음향전달막: 북 따위의 악기들에서 소리를 전달시키는 데 쓰이는 얇은 금속, 종이, 고무 등으로 된 이파리 모양의 관   *땅거미 질 녘: Eulenflucht '올빼미로 날아오를 녘'의 고어이다. 그대로 옮기면 미네르바의 올빼미를 연상시키는 장점이 있지만, 시 전테의 어두운 분위기에 부합하지 않아 '땅거미 질 녘'으로 옮겼다.  /전영애 역   취리히, 춤 슈토르헨 / 파울 첼란 -넬리 작스를 위하여   이야기가 있었다, 너무 많거나 너무 적음에 대하여. '그 이'에 대하여 '그래도 그이'에 대하여, 밝음에 의한 흐림에 대하여 유대적인 것에 대하여 너의 신에 대하여.   '그것'에 대하여. 어느 성모 승천일 성당은 건너편에 서 있었다, 성당은 금빛을 띠고 물을 건너왔다.   너의 신에 대해 말해져 왔다, 나는 그에 맞서 이야기하였다, 나는 내가 한때 가졌던 마음이 희망하게 하였다. 그의 높고 가장 높은, 구멍 뚫린, 다투는 말을- 네 눈이 나를 보았다, 그 너머 멀리를 보았다. 네 입이 눈에게 격려를 보냈다, 말이 들려왔다.   우리는 정말이지 모릅니다, 아시겠어요, 우리는 정말 모릅니다, 무엇이 유효한지.   *춤 슈토르헨: 호텔 이름으로 "황새네' 정도의 뜻이다. 1960년 첼란은 이곳에서 넬리 작스를 만났다. 히틀러의 유대인                 박해를 피해 스웨덴으로 망명한 작스의 시즌 많은 부분 첼란의 시와 주제를 공유한다. 다만 첼란의 시                 와 달리 구원에 대한 희망이 비교적 겉으로 드러난다. *'그래도 그이': Aber-Du. 대화 상대자인 '너(du)'와 구별되도록 앞 철자를 대문자로 써서 만들어 낸 새로운 주체                 '그이(Du)'에 부정어를 붙였다.가리키기 어려운, 부정하면서도 다시 긍정할 수밖에 없는 존재인 신(神)                  을 암시한다.   저 많은 성좌들, 우리 앞에 내밀어져 있는 나는, 언제였던가? 너를 보았을 때 저 바깥 또 다른 세계들 곁에 있었다.   은하계의, 오, 이 길들. 우리들에게로 우리들 이름의 짐 안으로 밤들을 흔들어 보내오는 이 시각, 나 이제 알겠네, 우리가 살았다는 건 틀린 말, 숨결 하나가 '저기'와 '거기 없음'과 '이따금씩' 사이를 눈 먼 채 지나갔을 뿐. 혜성처럼 눈 하나가 불 꺼져 버린 것을 향하여 휘익 날았을 뿐, 골짜기들 속에서, 거기, 그 작열이 스러진 곳 유두(乳頭)처럼 화사하게 시간이 멈추어 있다. 거기서 이미 위로, 아래로 그 너머로 자랐다. 있는 것, 있었던 것, 있을 것이- 나 알겠네. 내가 알고 당신이 알고, 우리가 알았네, 알지 못했네, 우리는 있었지만, 거기에는 없었지. 그리고 이따금씩 오직 무(無)가 우리 사이에 서 있을 때라야 우리는 서로를 온전히 마주하였지.     당신의 저 건너에 있음, 오늘 밤. 말(言)로써 내 당신을 다시 데려왔다, 여기 당신이 있다 모든 것이 진실하고 진실에의 한 가닥 기다림도 진실하다.   우리 창(窓) 앞을 콩 넝쿨이 기어오른다. 생각하라 누가 우리 곁에서 자라며 그것을 바라보는가를.   신(神)은, 우리는 그리 읽었다, 하나의 조각이며 또 하나의, 흩어진 조각이라고 모든 베어진 이들의 죽음 가운데서 그이는 자신에게로 자라 간다.   그곳으로 시선이 우리를 이끌어 간다. 그 반쪽과 우리는 오가며 지내는 것.     양손에, 여기 별들이 내게로 자라 오는 곳, 멀리 모든 하늘에, 가까이 모든 하늘에. 저기 저 깸! 저기 우리들 한가운데를 뚫고 열려 오는 저 세계!   네가 있다 네 눈이 있는 곳에, 너는 있다 저 위에, 있다 저 아래, 나는 밖으로 찾아 가노니.   이 떠도는, 텅 빈 환대하는 중심. 갈라진 채 나는 네게로 떨어져 가고, 너는 네게로 떨어져 온다, 서로 떨어져 나가며, 우리는 꿰뚫어 본다.   같은 것이 우리를 잃었다, 그 같은 것이 우리를 잊었다, 그 같은 것이 우리를-   열두 해 / 파울 첼란   진정 남은 것, 진정 이루어진 행(行)은 ---파리의 네 집 - 네 두 손의 봉헌소.   세 번 속속들이 심호흡, 세 번 속속들이 밝히기.   ----------------   말을 잃는다, 귀가 먼다 눈 뒤에서, 독(毒)이 꽃피는 모습이 보인다 온갖 말과 모습으로.   오라, 가라 사랑이 그 이름을 지운다. 사랑이 스스로를 그대에게 양도한다.   모든 생각을 지니고 나는 세계 밖으로 나섰다. 거기 당신이 있었다 당신 나의 나직한 여인, 당신 나의 열린 여인, 하여 - 당신은 우리를 받아들인다.   누가 말하는가, 눈빛이 꺼졌으니 우리의 모든 것이 죽었다고? 모든 것이 깨어났다, 모든 것이 일어났다.   커다랗게 태양 하나 헤엄쳐 왔다, 환하게 그 태양을 영혼과 영혼이 마주 섰다, 분명하게 명령조의 침묵으로 그들은 태양에게 자신들의 궤도를 가리키고.   가볍게 당신의 품이 열렸다, 고요히 숨결 하나가 에테르 속으로 솟아올랐다 하여 구름이 된 것, 그건 우리에게서 떠난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거의 이름 같은 것 아니었을까?   말 잃은 가을 냄새들, 이 별꽃은 꺽이지 않은 채, 걸어갔다 고향과 심연 사이로 네 기억을 지나.   낯선 상실 하나 모습 갖춰 거기 있었다. 네가 어쩌면 살았던 것이리.     정월, 튀빙엔 / 파울 첼란   멀도록 설득당한 눈들. 그 눈의 - "순수 발원(發源)은 수수께끼" - 그 눈의 갈매기 떼 에워싼 물 위에 뜬 휠덜린 탑의 회상.   익사한 목수들을 찾아오곤 하는 손님들. 이 물에 잠기는 말들에게로   왔으면, 한 사람이 왔으면 한 사람이 왔으면, 오늘, 족장의 빛수염을 달고, 그는 정녕, 그가 시대를 이야기한다면,   정녕 다만 웅얼거리고 또 웅얼거리리 언제, 언제, 언제까지고.   ("랄락쉬, 팔락쉬")   *정월, 튀빙엔: 생의 후반기를 광증 속에서 보낸 천재 시인 프리드리히 휠덜린이 한 목수의 보살핌을                      받으며 살았던 튀빙엔 네가 강가의 집 '휠덜린의 탑'을 배경으로 한 시. "랄락쉬"는                      실성한 휠덜린이 자주 했다는 뜻 없는 말로 때로는 '예'를 때로는 '아니오'를 가리켰다고                      한다. 첫 연의 "순수/발원은 수수께끼'도 휠덜린의 시 중 한 구절이다.   연금술의 소화액같이 / 파울 첼란   침묵, 숯이 된 두 손 안에서 금(金)처럼 끓인,   커다란, 잿빛, 모든 잃어버린 것처럼 가까운 누이의 모습.   그 모든 이름, 그 모든 함께 불살라진 이름들. 그만큼 축복받아야 할 재(灰).그만큼 얻어진 땅 가벼운, 저렇듯 가벼운 영혼들 - 동아리들 너머.   큰 모습, 잿빛 모습, 앙금 남기지 않은 모습.   그때의 너. 창백한 깨물어 쪼갠 꽃봉오리를 지닌 너. 넘치는 포도주 속의 너.   (이 시계는 우리도 내보냈어, 안 그래? 그래, 그래, 네 말(語)은 여기를 스쳐 죽어 갔어.)   침묵, 금처럼 끓인 석탄이 된, 석탄이 된 손 안의. 손가락, 연기처럼 가느다란, 왕관처럼, 공기왕관처럼 씌워져 - 큰 모습, 잿빛 모습, 발자국 흔적 없는 모습 왕 같은 모습,   몇몇의 손 같은 것, 어둡게, 풀과 함께 왔다.   얼른 - 절망들이여, 너희 도공들이여! - 얼른 시간은 진흙을 내주었고, 얼른 눈물을 얻었다 -   다시 한 번, 푸르스름한 둥근 화서(花序)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이 '오늘'이.     검은땅, 검은 땅 너, 시간의 어머니 절망.   내 손에서 그 상처에서 또 태어난 것 하나가 네 목구멍을 닫는다.   사기꾼과 건달의 노래, 사다고라 변두리 체르노비츠 출신의 파울 첼란이 퐁투아즈 변두리 파리에서 부름                                                "어두운 시대에, 이따금씩만"                                            -하인리히 하이네, 중에서 그때 아직 교수목이 있던 시절, 그때는 정말이지 '위(上)'라는 게 있었지.   어디에 나의 수염은 있는가, 바람아, 어디에 나의 유대인 얼룩이 있는가, 어디에 네가 쥐어뜯는 나의 수염이 있는가?   꼬불꼬불했지, 내가 온 길은 꼬불꼬불했지, 그래, 그래, 그건 그 길이 똑발랐기 때문.   자장자장 꼬불꼬불, 구부러지는 것은 내코, 코,   우리는 프리아울로 갔지 거기서 말이야, 거기서 말이야. 만델바움이 꽃피고 있었거든. 만델바움, 반델마움, 만델트라움, 탄델마움 그리고 또 만한텔바움까지. 샨델바움.   아장아장. 아움.   앙부아   그런데 그런데 그가 뻗대고 일어섰다네, 그 나무가. 나무가 나무까지도 맞섰다네 흑사병에     *퐁투아즈 변두리 파리: 프랑스의 시인 프랑수아 비용의 사행시에서 인용한 구절로, "사다고라 변두리 체르노비츠"는 원래 구절을 뒤집어 쓴 표현이다.                 첼란의 고향 체르노비츠는 부코비나의 수도이며, 사다고라는 그 근교의 작은 도시로 하시딤 사상의 중심지였다. *유대인 얼룩: 독일은 1530년 제국경찰령을 내려 유대인들에게 노란 반지를 끼게 했다. 나치 시대가 되어 유대인 표지는 황색 별로 바뀌었다. *구부러지는 것은 내 코: '구부러진 코'는 '만델형 눈'. '수염'과 더불어 유대인 특유의 외모를 묘사하는 단어이다. *산델바움: '만델바움(Mandelbaum)'에서 자음 'm'과 'b'의 자리를 바꿔 '반델마움(Bandelmaum)'이라는 단어를 만든 언어유희는 무의미를 거쳐 의                 미를 만들어 내는데, 그 중간에 '만델트라움(Mandeltraum)', 즉 만델나무의 꿈' 같은 의미 있는 어휘가 섞인다. 언어유희 끝에 나오는 '마                 한텔바움(Machandelbaum)'은 계모가 의붓아들을 죽여 아버지 식탁에 올리고 뼈를 그 나무 밑에 묻었는데 새가 되어 날아갔다는 동명의                 그림 동화에 나오는 나무이다. '샨델바움'에서는 샹들리에라는 단어에서처럼 '빛'을 읽을 수 있어 '빛나무'로 번역할 수도 있다. 불구화로 치닫는                 언어유희를 통하여 오히려 놀라운 전환에 이르고 있다. *아움: '나무(Baum)'에서 첫 자음 'B'를 생략했다. *앙부아: Envoi. 프랑스어로 '-에게 부침'의 뜻. 발라드의 마지막 절에 헌정의 의미로 쓰며 시 제목과 더불어 프랑수아 비용이 즐겨 썼던 음율 형식이다 *그가 뻗대고 일어섰다네: Er baumt sich der Baum. 앞서 이루어진 '나무'를 통한 언어유희의 귀착점을 잘 보여 준다. 마치 말이 뒷발로만 서 있는 듯한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강한 이미지를 담은 동사 '뻗대고일어서다(sich baumen)'의 어근이 '나무(Baum)'에서 나왔기 때문이   *흑사병: 카뮈의 소설 가 상징하는 '나치즘'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누구의 뺨 / 파울체란   그 누구의 뺨을 부비랴, 너의 뺨이 아니면, 삶이여, 몽당손으로 찾은 너의 뺨이 아니면.   너희 손가락들, 멀리, 도중에 교차로들에, 이따금은 풀려난 팔다리의 휴식, '언젠가'의 먼지방석 위에.   나무로 변한 마음의 저장물들 - 그 속에서 타는 사랑의, 빛의 노예.   절반 거짓의 작은 불꽃 하나 아직 너희가 건드리는 이, 저 밤 지샌 땀구멍 속에.   저 위 열쇠 소리, 너의 위의 숨결 나무. 너희를 바라본 마지막 말 지금 제자리에 있어야, 머물러야 한다.   -----------   네 뺨을 부비며 몽당손으로 찾은 삶이여.     환한 돌들이 공중을 지나간다, 환히- 아는 것들, 빛 가져오는 것들.   그것들은 내려오려고도, 떨어지려고도 맞히려고도 하질 않는다, 올라 간다 조그만 해당화처럼, 그렇게 열린다 둥둥 떠 간다 그대에게로, 그대 나직한 여인 내 진정한 여인-   나 그대를 본다,그대 그것들을 꺾는다 내 새로운, 내 누구나의 손으로, 그대 그것들을 넣는다 '다시 한 번 밝음' 안에다, 아무도 올 필요도 일컬을 필요도 없는 밝음 안에다.     바깥으로 왕관 씌워져 / 파울체란   어둠 속으로 뱉어 내져서.   무슨 별들 곁에서인가! 온통 잿빛 낀 마음망치은(銀). 그리고 베레니케의 머릿단, 여기에도- 내가 땋았다, 내가 풀었다. 내가 땋았다, 풀었다. 내가 땋았다.   푸른 계곡, 네 안으로 나는 금을 박아 넣는다, 또한 그와 함께, 창녀들 작부들 곁에서 허비한 사람과 함께 나는 온다 나는 온다, 너에게로, 사랑이여.   또한 저주와 기도와 더불어.또한 누구와도 함께 내 너머로 휙휙 휘둘린 곤봉들,그것들도 하나로 녹아서, 그들도 남근으로 묶여 너에게로 다발-이며-말. 이름과 더불어, 모든 망명지에 적셨던 이름, 이름과 싸앗과 더불어, 이름과 더불어,모든 잔에 잠겼던 이름,너의 왕의 피로 가득 찼던 잔, 인간이여,-모든 커다란 게토-장미의 잔들에,거기서 당신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것, 죽은 죽음들의 그 많은 아침길들로 불멸인 당신이.   (그리고 우리는 바르쇼비앙카를 불렀다. 갈대가 되어 버린 입술로, 페트라르카여. 툰드라의 귀들에 대고, 페트라르카여.)   그리하여 이제 땅 하나 솟는다, 우리의 땅, 이 땅,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들 중 그 누구도 내려보내지 않겠다 네게로는, 바벨아.   *베레니케의 머릿단: 이집트의 왕비 베리니케 2세의 이름을 딴 별자리. 메레니케는 남편 프롤레마이오스 왕이 3차 시리아전에서 승전하고                             돌아오기를 빌며 신들에게 자신의 머리채를 바쳤다고 한다. *게토: 유대인 거주 지역. *바르쇼비앙카: 폴란드 혁명의 노래 *페트리르카: 토스카나 출신의 시인 페트리르카는 아비뇽에 망명해서 살았다.     어디로 내게서 말은, 불멸이었던 말은 떨어져 갔는가 / 파울체란   아마 뒤 하늘골짜기 속으로, 그곳으로, 침과 쓰레기에 이끌려,간다 나와 함게 사는 일곱 별은.   어둠의 집 안에 운율, 오물 속의 호흡, 눈, 이미지들의 노예- 그리고 그럼에도, 꼿꼿한 침묵 하나, 돌 하나 악마의 사닥다리를 비껴간다.   오두막 창문 / 파울 첼란   어두운, 눈, 오두막 창문인. 모여든다 세계였고 세계로 남은 것, 떠도는 동쪽, 떠도는 사람들, 인간이며, 유대인인 이들, 구름 백성, 자력(磁力)으로 그들을 끌어당긴다, 마음의 손가락으로 내게로, 대지여, 너는 온다, 너는 온다 우리가 거처하리, 거처하리, 무엇인가가   -한 가닥 숨결인가? 하나의 이름인가?-   고아가 된 것 가운데서 헤맨다. 춤추듯, 곤봉 모양*으로, 천사의 날개들, 보이지 않는 것으로 무거워져, 상처로 껍질 벗겨진 발, 머리   무겁게 그곳, 비텝스크*에도 떨어졌던 검은 우박으로 균형 잡혀   -그리고 그를 씨 뿌린 이들, 그들 그들이 그를 써서 버린다 미믹의 장갑주먹손아귀로!-   간다, 헤맨다. 찾는다 아래서 찾는다 위에서 찾는다, 멀리서, 찾는다 눈으로, 가져온다 켄타우르스 알파*를 아래로, 아르크투어를, 가려 온다 빛을 덧붙여서, 무덤으로부터   게토와 에덴으로 간다, 성좌를 꺾어 모은다, 그가, 인간이 터 잡아 살자면 필요로 하는 것, 여기에서 인간들 가운데서   성큼성큼 자모를 걸음으로 재어 본다 자모들의 필멸의- 불멸의 영혼을 알레프와 유트에게로 간다, 내쳐 간다   그것을, 다윗의 방패를 세운다, 그것을 불타오르게 한다, 한 번   그것을 꺼지게 한다-거기 그가 서 있다. 보이지 않게, 서 있다 알파*와 알레프, 유트* 곁에 다른 사람들 곁에, 모두 곁에, 그대 안에   베트 - 그건 집, 거기 식탁이 있다   빛과 또 빛과 함께   *곤봉 모양: klobig '이삭 모양'으로도 번역할 수 있다. *비텝스크: 러시아의 도시 이름 유대인 마을이 있다. *펜타우르스 알파, 아르크투어: 북동쪽 하늘의 별들. *알파: 그리스 문자의 첫째 글자이다. *알레프, 베트, 유트: 각각 히브리 문자의 첫째, 둘째, 열째 글자이다. 발음할 수 없는 신의 이름이 유트로 시작된다.   얼음, 에덴 / 파울 첼란   '잃어버림'이라는 땅 하나 있다. 거기선 갈대 속에서 달(月)이 자란다 그 땅 우리와 함께 얼어붙어 사방에서 작열하며 바라본다.   그것이 본다. 문(眼)이 있기에, 환한 땅들인 눈. 밤, 밤, 잿물. 그것은 본다, 눈의 자식.   그것이 본다, 그것이 본다, 우리가 본다, 내가 너를 본다, 네가 본다. 얼음이 불활한다 시각이 닫히기 전에.   그대 나를 / 파울체란   그대 나를 안심하고 눈(雪)으로 대접해도 좋다. 내가 어깨에 어깨를 걸고 뽕나무*와 여름을 지날 때마다 그 갓 돋은 잎이 소리 질렀거든.   *뽕나무: 뜯어도 자꾸 돋아나는 잎 때문에 강한 생명력을 상징한다.    꿈꾸지 못한 것에 /파울 체란   꿈꾸지 못한 것에 부식되어 잠 못 이루고 헤맨 빵 나라가 삶의 산을 쌓아 올린다.   그 부스러기로 당신은 우리의 이름을 새로 반죽하고 그 이름들을 내가, 당신 눈과 닮은 외눈을 손가락 끝마다 달고 닳도록 더듬는다, 깨어나며 당신에게로 다가갈 수 있는 한 자리를 찾아 환한 입속의 굶주림촛불*.   *굶주림 촛불: Hungerkerze 체란의 조어로, 의미의 연결 방식을 짐작할 수              있는 유사 단어로는 굶주림샘(Hungerquelle 어쩌다 비가 오면              물이 나오는 샘), 굶주림천(Hungertuch 금식 기간 동안 성가대              석에 걸거나 계단을 덮는, 대개 그리스도의 수난 장면이 그려진 천)              굶주림존재(Hungerdasein 몹시 고생스러운 삶) 등이 있다.     그 고랑에다 파울체란   문틈에 낀 하늘 동전의 팬 고랑에다 당신이 말을 눌러 넣고 있다 그 말에서 나, 굴러 나왔지. 떨리는 두 주먹으로 우리 머리 위 지붕을 기왓장 한 장 한 장, 음절 한 개 한 개 헐어 내다가 저 높은 곳 동냥 접시의 희미한 구리 빛을 위하여.   강물들에서  / 파울체란    강물들에서 미래 북녘 내가 그물을 던진다. 그 그물을 당신이 머뭇거리며 눌러 준다 돌들이 써 놓은 그림자로.     그림자 - 부스러기 속의 길들 / 파울체란, 네 손의   네(四) 손가락 이랑에서 나는 헤집어 낸다 돌이 된 축복을.     땅 쪽으로 노래 불린 돛대를 세우고 하늘 난파선이 간다.   이 목질(木質)의 노래 이로 깨물다 네가 굳어졌구나   너는 노래가 스미지 못하는 속눈썹.   실낱태양들 /파울체란   실낱태양들 흑회색 황량함 위에 내린. 나무 높이의 사념 하나 빛소리를 잡으로 손을 뻗으니, 아직 부를 노래들이 있어라, 인간의 피안에.   실낱태양들: 이 시는 잿빛 하늘에서 빛줄기들이 내리 비치는 가운데 한 그루 나무가                우뚝 선, 간결하고 장엄한 풍경을 묘사하고 있다. 그런데 이때                "나무/높이의 사념 하나"를 '고매한 사상'의 시적 형상화로 읽으면, 현실                에만 매몰된 시에 대한 풍자로 볼 수 있다. 이 시가 쓰였던 때는 거대 정                당이 서로 연합한 소위 대연정의 시기로, 그 복고적 기류가 사회 비판적                지식인들과 학생들에게 위협적으로 다가오던 때였다. (이에 비롯한 저                항적 기류는 '68혁명'으로 이어졌다.) 특히 첼란이 매우 비판적 세계관을                가지게 된 시점에서 쓴 시임을 감안한다면, 이 시를 이렇게 번역할 수 있                다. "실낱태양들 / 흑회색 황량함 위에 내린 / 나무만큼 /고매한 사상 하                나 / 빛소리를 잡으려 손을 뻗으니, 아직 / 부를 노래들이 있어라 / 피안에"                (전영애)     나 당신을 알아, / 파울체란   그대 깊숙이 몸 굽힌 여인. 나, 온통 꿰뚫린 자, 나는 그대 휘하에. 우리 둘을 위하여 증언해 줄 한마디 말씀은 어디서 불타고 있는가? 그대 - 온전히, 온전히 현실이고, 나 - 온전한 광기(狂氣)   당신: 첼란이 파리로 이주한 뒤에 만나 결혼한 판화가 지젤 레스트랑주를 가리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부부는 오랫동안 좋은 관계를 유지했으며 레스트랑주의 작품들은 첼란의 후기 시들과 이미지가 매          우 유사하다.     조약돌이 된 말씀, / 파울체란   주먹 안에서 당신은 잊는다, 당신이 잊는다는 것을   손목 관절에서 번쩍이며 문장 부호가 사격을 시작한다   빗살이 되어 버린 갈라진 땅을 지나 휴지(休止)가 말달려 온다   거기, 희생의 다년생 초목 곁, 기억이 타오르는 곳에서 한 분이 너희를 위해 주워 거두고 있다 입김을.     결 드러나도록 닦아 냈다 / 파울체란   당신 언어의 빛바람으로. 자신의 체험인 양 여기는 것의 현란한 다변(多辨) - 백 개의 혀를 가진 내 시(詩), 아무것도 아닌 것.   회오리쳐 - 나가고 드러나는 길, 사람의 모습을 한 눈(雪), 고해자의 눈을 지나 손님을 환대하는 만년설 방과 만년설 식탁들에 닿는 길.   시간의 균열 깊이 벌집 얼음 곁에서 기다리고 있다, 숨결의 수정(水晶) 하나, 폐기할 수 없는 당신의 증언(證言).     밝음에의 허기 – 허기져 / 파울체란   나는 빵 계단을 나섰다 맹인들의 종(鐘) 아래로.   그 종, 물처럼 맑은 종, 젖혀지다 함께 오른 것, 함께 너무 많이 올라 버린 자유, 그 자유를 하늘 하나가 포식했다 그 하늘을 내가 궁륭의 형상대로 두었다 단어가 헤엄쳐 간 심상(心象)의 궤도, 피의 궤도 위로.     쓰인 것, 파이고 있고 말해진 것, 바다초록빛, 만(灣)안에서 불타고 있고   액화(液化)된 이름 속에서 쥐돌고래가 튀어 오르고   영원화(永遠化)한 '그 어디에도 없는 곳'에, 여기에, 너무나 요란했던 종소리의 기억 속에 - 대체 어디에?   누가 이 그림자 사방터 안에서 헐떡이는가, 누가 그 아래서, 희미하게 밝아오는가, 밝아 오는가, 밝아 오는가?     '그 어디에도 없는 곳': 시어의 작위적 품사 전환이 눈길을 끈다. '영원히'라는 부사를 무리하게 동사화하여                           과거분사형으로 썼으며, 부사인 '그 어디에도 ~없이'는 명사화했다. 사방터: '죽은자' 라는 의미가 있는 '그림자'와 철학자 하이데거의 개념으로 삶의 터를 나타내는 '사방터'를            합성한 시어.     한 가닥 우렁찬 뇌성 / 파울 체란   진실 그것이 인간들 가운데로 들어서고 있다. 은유의 회오리 한가운데로.    깨물린 자국 외 / 파울 첼란   깨물린 자국, 어디에도 없는 곳에.   그 자국도 너는 없애야 한다 여기서부터     온스 진실, 광증 깊은 곳에, 그 곁을 스쳐서 저울 접시들이 굴러 온다 두 접시가 동시에, 대화 속에서   투쟁하며, 마음- 높이로 버텨 놓은 법(法), 아들아, 그것이 승리한다.     짐부스러기, 쐐기, 어디에도 없는 곳에 박혀 우리는 계속 우리와 비슷하다 빙 돌아 방향 잡힌 둥근 별이 우리에게 동의한다.     진실, 드러나 버린 꿈의 잔해에 밧줄로 몸 동이고, 어린아이 되어 능선을 넘는다.   지팡이, 흙덩이 자갈 눈(眼)씨앗에 어지럽게 에워싸여 골짜기 속 저 높은 곳에서 꽃피우는 '아니요'를- 화관(花冠)을 뒤적여 본다.     너는 나의 죽음이었다 너는 내가 붙들고 있을 수 있었다 모든 것이 떨어져 나가는 동안에도.    듣고 남은 것들, 보고 남은 것들 외 / 파울 첼란   듣고 남은 것들, 보고 남은 것들 침실 1001호에,   밤낮으로 곰들의 폴카.   그들이 너를 재교육한다   너는 다시 된다 그가.     언젠가, 죽음이 대성황을 이루었다 당신이 내 안에 몸을 숨겼다.     토트나우베르크   아르니카 꽃,  눈길의 위안, 그 위에 별 모양 목각이 달린 우물 물을 마심,   오두막 안에서   책에 - 누구의 이름이 그 책에 적혔는가 내 이름에 앞서? - 책에 적어 넣은, 그 한 줄, 희망을, 오늘, 생각하는 한 사람의 마음속으로 오고 있는 말 에의 희망을 담고. 고르게 만들지 않은 숲 속 습지, 오르히스 꽃 또 오르히스 꽃, 흩어져 하나씩,   잔인한 것, 나중에, 달리며, 선명해지고   우리를 타고 가는 것, 그것에 함께 귀 기울리는 인간,   절반 밟은 고습지 속 곤봉 오솔길,   젖은 것, 많이.   토크나우베르크: 철학자 하이데거의 산장이 있는 곳이다. 1967년 여름 하이데거는 첼란을 자신이 재직하고 있는                    프라이부르크 대학으로 초청하여 낭독회를 열었다. 성황을 이룬 낭독회에서 첼란의 시를 경청한 하                    이데거는 그를 개인적으로 산장에 초청하였다. 첼란의 착잡한 심경이 읽어 내기 어려울 정도로                    압축되어  있는 시이다. 아르니카 꽃: 노란 꽃이 피는 국화과 여러해살이풀로, 이 꽃에서 낸 즙으로 상처를 치료한다. 눈길의 위안: Augentrost. '좁쌀풀'과 '눈요기'라는 뜻이 모두 있다. 아르니카  꽃에 대한 부연 설명이면서 동시에 그                  주변의 다른 풀들을 가리킨다. 우물: 하이데거의 오두막에서 내다보이는 우물을 가리킨다. 이 우물에 달린 단순한 별 모양 목각 장식은 유대인의 표지        인 황색 별을 연상시킨다. 책에 적어 넣은, 그 한 줄 희망을: 이 날 첼란은 방명록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우물 별이 내다보이는 오두막의 책 에 마음속으로 오고 있는 한마디 말을 희망하며,                                          1967. 7. 25. 파울 첼란" 오르히스 꽃: 음경 모양의 꽃이 피는 난초과 풀로, '총각풀'이라고도 불리며 '음경'이라는 뜻도 있다. 7연의 '곤봉'과도 연상의               고리를 이룬다. 첼란은 청소년기부터 식물에 대하여 남달리 해박했다. 잔인한 것: 하이데거와 나눈 대화를 가리키는 듯하다. 위대한 철학자이지만 나치 경력이 문제 된 하이데거와 나               치의 대표적 피해자인 시인 첼란의 만남이었던 만큼, 추측이 무성하다. 고습지: 늪지 혹은 고습지는 곤봉이라는 단어와 연결되어, 흔히 늪에서 몰아넣은 방식으로 자행되던 유대인 처형을 연상           시킨다.   거기 내가 당신 안에서 나를 잊어버린 곳에서 당신은 생각이 되었지.   무언가가 우리 둘을 뚫고 솰솰 흐르고 있다. 마지막  날개들의 첫 번째 세상   풍상에 젖은 내 입 너머 가죽이 덧자란다   당신은 오지 않는다 당신 에게로.   두드려 그 빛쐐기를 떨어라.   물 위를 떠다니는 말은 어스름의 것.   ] 눈(雪)의 파트 / 파울 첼란   보랏빛 공기, 노란 불빛 점 점 창문들이 있는   무너진 안할트 역사(驛舍) 위에 떠 있는 성좌, 야곱의 띠   요술 수업 시간이네, 아직은 아무것도 끼어드는 것 없네   선술집 에서 눈(雪)술집까지.   무너진 안할트 역사: 앞 시와 같이 1967년 12월 첼란이 베를린에 갔을 때 쓰였다. 베를린 장벽                          가까이 있던 번화가 베를린의 안할트 역 부근은 전쟁 중 폭격으로 당시 거의                          폐허가 되어 있었다. 첼란은 유대인에게 대규모 폭력이 가해졌던 소위 '수정의                          밤' 다음 날인 1938년 11월 10일 아침, 이 역에 도착하여 범죄의 현장을 보았                          다. 야곱의 띠: 오리온자리의 세 별을 이은 직선을 가리킨다.     당신은 누워 있구나 커다란 은신처에서 덤불에 에워싸여, 눈송이에 에워싸여.   슈프레 강으로 가라, 하펠 강으로 가라, 가라, 푸주한의 갈고리로 스웨덴 산 빨간 크리스마스 장식 사과에로-   선물들이 놓인 식탁이 온다 그것이 어느 에덴을 돌아간다-   남자는 구멍 숭숭한 시체가 되었고, 여자는 둥둥 떠다녀야 했다, 그 계집, 혼자서, 누구를 위해서도 아니게, 누구나를 위해서-   국방 운하에 여울 물소리 없겠구나 아무런 막힘이 없구나.     당신은 누워 있구나: 첼란은 1967년 베를린을 방문했는데, 이 시는 크리스마스 무렵 임시 장터가 늘어선 베를린의 슈프레 강가                         를 배경으로 했다. 이 시에 대해서는 해석학자 스촌디가 상세하게 해설한 바 있는데, 그에 따르면 시의                         남성 화자는 칼 립크네히트, 여성 화자는 로자 룩셈부르크를 상징한다. 총살당한 둘의 시체가 국경 수비 운                         하에 던져졌던 역사적 사실(1919)을 회상시킨다. "푸주한의 갈고리"는 베를린 플뢰첸제 처형장의 갈                         고리를 가리키며, "어느 에덴"은 '에덴동산'이 아니라 이들 두 사람이 사살되기 전 억류되었던 호텔 이름이다.                         또한 "계집(Sau)"는  '암퇘지'라는 뜻으로 당시 가해자들이 로자 룩셈부르크를 가리켜 썼던 욕설이다. 크리스마스 장식 사과: 성탄절 무렵 보통 현관문에다 거는 조그만 초록 화환으로, 여기서는 이 평화로운 장식물이 '푸주한 의 갈고리'                            와 운을 맞추어 낯선 이미지를 환기시킨다. 국방 운하에 (중략) 아무런 막힘이 없구나: 국방 운하는 베를린 시내에 있었다. 이 얕고 작은 운하에 시체를 던졌을 때 물소리가                                                      나지 않고 아무것도 막히지 않는다는 것은, 그 안에 던져진 시체가 무수한 관통상을                                                      입어 체처럼 구멍이 나 있는 탓이다. 무심히 흘러가는 역사의 시간도 함께 읽을 수                                                      있다. 그런데도 언어적으로는, "아무런 막힘이 없"을 것이라는 구절이 막힘 없이 이                                                      어지지 못하고 끊겨 있다.   읽을 수 없음, 이 세계의 모든 게 두 겹.   강한 시계들이 쪼개진 시간에 따라 준다, 목쉬어서.   당신은, 당신의 가장 깊은 곳 안으로 옥죄어 들어, 스스로를 벗어난다 영원히.     눈(雪)파트, 마지막까지 거역하며 솟구쳐, 상승 기류 속에, 영영 창문을 막아 버린 오두막들 앞에.   얕은 꿈들이 씽 물수제비를 뜬다 골 진 얼음 너머로.   말(言)그림자들이 치고 나온다, 팔 펴서 재 본다 은 사방 꺾쇠들을 강둑 밑 팬 어느 곳에서.   파트: 합찬대의 한 '성부', 연극에서의 '역할'과 가장 가까운 뜻이다.     이파리 하나, 나무도 없이, 베르톨트 브레히트를 위하여.   이 무슨 시대란 말인가 대화가 거의 범죄이니 그 많은, 이미 말해진 것을 포함하기에.   이 무슨 시대란 말인가 (중략) 포함하기에: 브레히트의 시 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 '이 무슨 시대란 말인가/나무에 대한 대화가                                                     거의 범죄이니/대화가 그 많은 범죄에 대한 침묵을 포함하는 까닭에"를 변형했다. 나치 시대                                                     의 정치 비판적 시구가 회의으로 전환되며 극단적인 언어로 축약되었다.     영원(永遠)이    머물러 있다, 한계 안에 가벼이, 그 강력한 축량흡입관 안에 신중히, 돌고 있다, 손 톱으로 속속들이 빛날 수 있는 혈당(血糖) 완두콩.   측량흡입관: 의미를 짐작하기 어려운 조어이다. 흡입관(Tenakel)은 하등동물이 먹이를 먹을 때 쓰는 관 모양의 기관을 뜻한다.     더듬더듬 따라 말할 세상   나, 그의 손님 이었으리, 이름 하나였으리, 상처가 높이 핥아 올라간 장벽에서 식은땀으로 흘러내린 이름.   더듬더듬 따라 말할 세상: 1968년 11월 23일. 죽기 두 해 전 생일에 쓴 시로 생의 결산처럼 읽힌다.   시간의 뜨락 / 파울 첼란    나팔자리 이글거리는 빈 텍스트 깊숙이 햇불 높이로 시간 구멍 속에.   너의 말을 들르라 입으로.     양극(極)이 우리 안에 있다 깨어서는 넘어갈 수 없이. 잠자며 우리는 건너간다, 문 앞으로 긍휼의 문 앞으로.   당신에 부딪쳐 당신을 잃는다, 그게 내가 준 눈(雪) 위로.   말하라, 예루살렘이 있다고   말하라, 마치 내가 이것 당신의 백색(白色)이라는 듯 마치 당신이 내 것이기라도 한 듯.   마치 우리가 우리 없이 우리이기라도 한 듯   내가 당신을 넘긴다, 영원히   당신이 기도한다, 당신이 놓는다 우리를 풀어놓는다.     있으라, 무언가가, 나중에 당신으로 채워져 솟구쳐 어느 입가에 이르는 것.   사금파리로 부서진 광기(狂氣)로부터 나는 일어나 내 손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 손, 단 하나의 동그라미를 자꾸 그리고 있는 모습.     크로커스, 손님 식탁에서 바라보노라니 기호를 감지하는 작은 망명지로구나 공유한 진실 하나의 망명지, 넌 뭐든 꽃줄기가 필요하구나.     너를 써넣지 마라   세계들 사이로는,   일어나라 의미들의 다양(多樣)에 맞서,   눈물 자국을 믿으라 삶을 배우라.     시(詩) 닫고, 시(詩) 열고   여기서 빛깔들은 보호받아 본 적 없는 맨이마 유대인에게로 간다. 여기 떠오르고 있다 가장 무거운 사람이. 여기 내가 있다.     (파울 첼란 시선 전영애 번역 끝)   첼란의 시는 침묵을 통해 극도의 경악을 말하고자 한다. 아우슈비츠 이후에는 어떠한 서정시도 쓰일 수 없다는 말은 잘못이었다. — 테오도어 아도르노   음지를 얘기하는 사람은 진실을 말하는 자이다. — 파울 첼란   그가 유대인이고, 그의 언어가 독일어라 할지라도, 시인이 시 쓰기를 포기하는 일은 존재하지 않는다. — 존 펠스티너   2차 세계대전과 아우슈비츠라는 참혹한 비극을 감당해야 했던 유대인으로서, 그 고통을 아름답고 밀도 높은 시어로 표현해 낸 20세기 독일의 대표 시인 파울 첼란의 시선집 『죽음의 푸가』가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이 시선집은 1986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첼란의 시에 관한 이론서를 펴낸 전영애 교수가 30여 년 전 독일에서 번역해 놓은 시들을 2001년부터 10년 동안 틈틈이 다듬어 내놓는 것이다. 전후 독일 문단에서는 아우슈비츠에 관한 것뿐만 아니라 서정시 자체를 쓸 수 없다는 의식이 만연해 있었다. 유대인 학살을 자행함으로써 인간의 존엄성과 함께 인간에게 친숙했던 세계가 무너져 버렸는데 어떻게 인간이 다시 이 세상에 대해 시적으로 노래할 마음을 가질 수 있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인간의 문제와 문학은 결코 분리될 수 없다고 보았던 첼란은 자신이 겪은 참혹한 시대를 극도로 상징적이고도 초현실적인 시어로 그려 내며 아우슈비츠를 바탕으로 한 서정시를 쓰는 데 성공한다. 첼란은 전후 독일 문단에서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시인으로 평가받으며 1958년 브레멘 문학상, 1960년 뷔히너 문학상을 수상했다.  이번 시선집에는 첼란의 시집 아홉 권 『양귀비와 기억』(1952), 『문턱에서 문턱으로』(1955), 『언어창살』(1959), 『그 누구도 아닌 이의 장미』(1963), 『숨결돌림』(1967), 『실낱태양들』(1968), 『빛의 강박』(1970)과 유고 시집 『눈[雪]파트』(1971), 『시간의 뜨락』(1976)에서 추린 시 118편과 그의 시론을 엿볼 수 있는, 브레멘 문학상 수상 연설문과 뷔히너 문학상 수상 연설문, 유일하게 남긴 산문인 「산속의 대화」가 실려 있다. 특히 산문 「산속의 대화」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소개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발간된 첼란 시집 중 가장 많은 작품을 수록하였으며, 첼란의 시 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시선 내에서도 작품을 추려 「죽음의 푸가」를 비롯한 대표 시를 맨 앞에 실었다. 다소 난해한 첼란의 시를 우리말에 최대한 밀착시켜 옮겼으며, 유난히 함축적인 그의 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주석을 충실히 달았다.     ■ 적의 언어로 시를 써야 했던 고통의 시인     그런데 견디시겠어요, 어머니, 아 언젠가, 집에서처럼, 이 나직한, 이 독일어의, 이 고통스러운 운(韻)을? —「무덤 근처」에서   첼란의 암울하고 고통스러운 시는 나치에 의한 유대인 학살의 기억을 한평생 안고 살아야 했던 비극적 운명에서 비롯한 것이다. 그가 처했던 가장 근원적 비극은 자신의 인생에 가혹한 상흔을 남긴 가해자의 언어로 시를 써야 한다는 데 있었다. 시인이 태어난 부코비나 지방은 이전에 합스부르크 왕령이었던 곳으로 독일어를 사용하는 지역이었다. 유대인으로 태어난 시인에게 독일어는 모국어인 동시에 자신과 부모, 친구를 죽인 ‘살인자들의 언어’였던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시는 모국어로만 쓸 수 있다고 믿었던 첼란은 결국 혈족을 죽인 자들의 언어이자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언어, 끔찍한 어둠을 지닌 이 잿빛 언어를 자신의 시어로 택한다. 시인은 자신에게 가해를 입힌 이들의 언어로 자신의 상처를 들여다봐야 하는 것은 물론 구원을 염원해야 하는 고통스러운 아이러니에 봉착했음에도, 끝까지 시 쓰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새벽의 검은 우유 우리는 마신다 저녁에 우리는 마신다 점심에 또 아침에 우리는 마신다 밤에 우리는 마신다 또 마신다 우리는 공중에 무덤을 판다 거기서는 비좁지 않게 눕는다 한 남자가 집 안에 살고 있다 그는 뱀을 가지고 논다 그는 쓴다 그는 쓴다 어두워지면 독일로 너의 금빛 머리카락 마르가레테 그는 그걸 쓰고는 집 밖으로 나오고 별들이 번득인다 그가 휘파람으로 자기 사냥개들을 불러낸다 그가 휘파람으로 자기 유대인들을 불러낸다 땅에 무덤 하나를 파게 한다 그가 우리들에게 명령한다 이제 무도곡을 연주하라 —「죽음의 푸가」에서     첼란에게 극심한 고통을 안겼던 ‘아우슈비츠’를 가장 구체적으로 그려 낸 시가 바로 그의 대표작 「죽음의 푸가」이다. 그는 이 시에서 죽음을 ‘푸가’라는 음악 형식을 빌려 유희적으로 노래하며, 실재했던 끔찍한 ‘죽음’을 서정적인 ‘은유’에 담아낸다. 시인은 자신들이 판 무덤 앞에 꿇어앉아 총살당하고, 죽어 가는 동료들 앞에서 연주를 해야 했던 참혹한 유대인 포로수용소의 기억을 “검은 우유”를 마시고 “공중”과 “땅”에 무덤을 파며 “무도곡”을 연주하는 시적 상황으로 형상화한다. 시인은 이처럼 자신에게 상처 입힌 이들의 언어로 고통을 감당하고 표현함으로써, 자신이 처한 한계를 수동적으로 견디는 것에서 나아가 적극적으로 한 차원 높은 경지를 이룩해 내는 인간의 ‘위대함’을 몸소 증명해 보인다.                ■ 비극의 시대를 향해 외친 ‘소리 없는 아우성’       첼란은 어두운 현실 속에서 자신이 경험한 극한의 고통을 직시하여 군더더기 없이 분명한 언어로 형상화시킨다. 고통의 맨살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투명한 시어들 때문에 아픔은 더욱 선명하고 생생하게 다가온다.     너희 나의 나와 더불어 불(不) 구(具)된 말들, 너희 나의 똑바른 말들. (중략) 우리 동요를 부르리, 그걸 네가 듣고 있어, 그 동요 인(人 )들과 간(間)들이 있는, 인간들이 함께 있는, 그래, 그 뒤엉킨 덤불과 눈 한 쌍이 거기 함께 눈물- 또- 눈물로 함께 있는 그 동요를.   —「…… 좔좔 샘물이 흐른다」에서   암호문처럼 은유가 집약되어 있는 그의 파격적인 시어는 후기로 넘어갈수록 ‘파괴’되고 ‘해체’되어 간다. 하지만 침묵, 생략, 비약 등으로 조각 나 “불구”가 된 말들은 실제의 부정적인 시대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는 의미에서 오히려 “똑바른” 말이다. 이를테면 위의 시에서 ‘인’과 ‘간’으로 조각 나 있는 낱말 ‘인간’은 파시즘 시대 독일에서 인간에게 가한 일을 연상시킨다. 첼란에게 언어와 현실은 늘 불가분 관계에 놓였다. 후기에 이르러 점점 조각 나고 불안정해졌던 시어처럼 그의 의식도 점점 흐려지고 분열되어 갔으며, 그는 결국 1970년 센 강에 몸을 던져 자살하고 만다. 인간성이 말살된 참혹한 시대를 지나며 겪은 쓰라린 고통을 침묵의 시로 표현했지만 마지막까지 구원을 얻지 못한 이 비운의 시인은, 결국 생을 마감하며 스스로 침묵이 되는 길을 택한 것이다.  “오로지 진실한 손만이 진실한 시를 쓴다. 나는 손도장과 시 사이에 어떠한 근본적인 차이도 없다고 본다.”(파울 첼란) 죽음의 문턱에 선 이가 남긴 이 손도장은 그 어떤 시들보다 묵직하고 진중하며 아름답다. 거기엔 극도의 고통을 견디고 살아남은 자만이 내뿜을 수 있는 강렬한 ‘생명의 힘’이 있기 때문이다. 이 고통의 시들은 지금 각자의 ‘아우슈비츠’에서 상처 받고 고통 받고 있을 고된 인생들에게 그가 헌정하는 슬픈 진혼가다.    
188    정지용 시모음 댓글:  조회:1618  추천:0  2017-05-17
정지용 시모음       //     비 슬픈인상화 말 구성동(九城洞) 옥류동玉流洞 紅椿(홍춘) 엽서에쓴 글  석류 호면 호수1  산너머저쪽  저녁햇살 유리창1  유리창2  그의반  별똥 새빨간기관차  바람 내맘에맞는 이  춘설  카페프랑스  향수(鄕愁)  조약돌 바다1  바다2  바다3  바다4  바다7  고향 슬픈기차  황마차(幌馬車) 작가연혁  ~~~~~~~~~~~~~~~~~~~~~~~~ 비 돌에 그늘이차고,  따로몰리는  소소리바람. 앞서거니하여  꼬리치날리어 세우고,  종종다리 까칠한  산(山)새걸음걸이.  여울지어  수척한흰 물살,  갈갈이 손가락펴고.  멎은듯  새삼듣는 빗낱¹  붉은잎 잎  소란히밟고 간다  1)원문 : '새삼 돋는 비ㅅ낯'  ~~~~~~~~~~~~~~~~~~~~~~~~~~~~~~~~~~~~~~~~~~~~ 슬픈인상화 수박냄새품어 오는  첫여름저녁때.....  먼해안 쪽  길옆나무에 늘어 슨  전등.전등. 헤엄쳐나온듯이 깜박어리고 빛나노나.  침울하게울려 오는  축향의기적 소리... 기적소리...  이국정조로퍼득이는  세관의깃 발.깃 발.  세멘트깐 인도측으로 사폿사폿옮기는  하이얀양장의 점경!  그는흘러가는 실심한 풍경이여니..  부질없이랑쥬껍질 씨비는 시름....  아아,에시리. 황  그대는상해로가는구료....  ~~~~~~~~~~~~~~~~~~~~~~~~~~~~~~~~~ 말 말아,다락 같은 말아,  너는점잔도 하다마는  너는왜 그리 슬퍼 뵈니?  말아,사람 편인 말아,  검정콩푸렁콩을 주마.  이말은 누가 난 줄도 모르고  밤이면먼 데 달을 보며 잔다.  ~~~~~~~~~~~~~~~~~~~~~~~~~~~~~~~~~~~~~~~~~~ 구성동(九城洞) 골작에는흔히  유성(流星)이묻힌다.  황혼에 누뤼가소란히 쌓이기도 하고,  꽃도 귀양사는 곳,  절터드랬는데  바람도모이지 않고  산그림자 설핏하면  사슴이일어나 등을 넘어간다.  ~~~~~~~~~~~~~~~~~~~~~~~~~~~~~~~~~~~~~~ 옥류동玉流洞 골에하늘이  따로트이고,  瀑布소리 하잔히  봄우뢰를울다.  날가지겹겹히  모란꽃닙포기이는듯.  자위돌아 사폿 질ㅅ듯  위태로히솟은 봉오리들.  골이속 속 접히어 들어  이내(晴嵐)가새포롬 서그러거리는 숫도림.  꽃가루묻힌양 날러올라  나래떠는 해.  보라빛해ㅅ살이  幅지어빗겨 걸치이매,  기슭에藥草들의  소란한呼吸 !  들새도날러들지 않고  神秘가한끗 저자 선 한낮.  물도젖여지지 않어  흰돌우에 따로 구르고,  닥어스미는 향기에  길초마다옷깃이 매워라.  귀또리도 흠식한양  옴짓 아니긘다.  ~~~~~~~~~~~~~~~~~~~~~~~~~~~~~~~~~~ 紅椿(홍춘) 椿나무꽃 피뱉은 듯 붉게 타고  더딘봄날 반은 기울어  물방아시름없이 돌아간다.  어린아이들제춤에 뜻없는 노래를 부르고  솜병아리양지쪽에 모이를 가리고 있다.  아지랑이조름조는 마을길에 고달펴  아름아름 알어질 일도 몰라서  여윈볼만 만지고 돌아 오노니.  실린곳:정지용전집 1 시/민음사  ~~~~~~~~~~~~~~~~~~~~~~~~~~~~~~~~~~~~~~~ 엽서에쓴 글  나비가한 마리 날러 들어온 양하고  이종이ㅅ장에 불빛을 돌려대 보시압.  제대로한동안 파다거리오리다.  ──대수롭지도 않은 산 목숨과도 같이.  그러나당신의 열적은 오라범 하나가  먼데 가까운 데 가운데 불을 헤이며 헤이며  찬비에함추름 휘적시고 왔오.  ──서럽지도 않은 이야기와도 같이.  누나,검은 이밤이 다 희도록  참한뮤─ 쓰처럼 주무시압.  해발이천 피이트 산봉우리 위에서  이젠바람이 나려옵니다.  ~~~~~~~~~~~~~~~~~~~~~~~~~~~~~~~~~~ 석류 장미꽃처럼곱게 피어 가는 화로에 숯불,  입춘때 밤은 마른 풀 사르는 냄새가 난다.  한겨울 지난 석류열매를 쪼기어  홍보석같은 알을 한 알 두 알 맛보노니,  투명한옛 생각, 새론 시름의 무지개여,  금붕어처럼어린 녀릿녀릿한 느낌이여.  이열매는 지난 해 시월 상ㅅ달, 우리 둘의  조그마한이야기가 비롯될 때 익은 것이어니.  작은아씨야, 가녀린 동무야, 남몰래 깃들인  네가슴에 조름 조는 옥토끼가 한 쌍.  옛못 속에 헤엄치는 흰 고기의 손가락, 손가락,  외롭게가볍게 스스로 떠는 은실, 은실,  아아석류알을 알알이 비추어 보며  신라천년의푸른 하늘을 꿈꾸노니.  ~~~~~~~~~~~~~~~~~~~~~~~~~~~~~~~~~~~~~ 호면 손바닥울리는 소리  곱드랗게건너간다  그뒤로 흰게우가 미끄러져 간다  ~~~~~~~~~~~~~~~~~~~~~~~~~~~~~~~~~~~~~~~~~~~~~~~~~~ 湖水(호수)1  얼골하나 야  손바닥둘 로  폭가리지 만,  보고싶은 마음  湖水(호수)만 하니  눈감을 밖에  시집: 정지용전집 1 시/민음사  ~~~~~~~~~~~~~~~~~~~~~~~~~~~~~~~~~~~~~~~~~~~~~~~~~~~~ 산너머저쪽  산너머저쪽에는  누가사나?  뻐꾸기영우 에서  한나절울음 운다.  산너머저쪽 에는  누가사나?  철나무치는 소리만  서로맞어쩌르렁!  산너머저쪽에는  누가사나?  ~~~~~~~~~~~~~~~~~~~~~~~~~~~~~~~~~~~~~~~~~~~~ 저녁햇살 불피어오르듯하는 술  한숨에키여도 아아 배고파라.  수저븐듯 놓인 유리컵  바쟉바쟉씹는 대로 배고프리.  네눈은 고만스런 혹 단초  네입술은 서운한 가을철 수박 한점.  빨어도빨어도 배고프리.  술집창문에 붉은 저녁 햇살  연연하게탄다, 아아 배고파라  ~~~~~~~~~~~~~~~~~~~~~~~~~~~~~~~~~~~~~~~ 유리창(琉璃窓)1  유리에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  열없이붙어 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양 언 날개를 파닥거린다.  지우고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딪히고,  물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박힌다.  밤에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황홀한 심사이어니,  고운폐혈관이 찢어진 채로  아아너는 산새처럼 날아갔구나!  ,시문학사  ~~~~~~~~~~~~~~~~~~~~~~~~~~~~~~~~~~~~~~~~~~~~~~~~~~~~~~~~~~~~~~~~~ 유리창2  내어다보니 아주캄캄한 밤,  어험스런뜰 앞 잣나무가 자꾸 커 올라간다.  돌아서서자리로 갔다.  나는목이 마르다.  또,가까이 가  유리를입으로 쪼다.  아아,항 안에 든 금붕어처럼 갑갑하다.  별도없다, 물도 없다, 쉬파람 부는 밤.  소증기선처럼흔들리는 창  투명한보랏빛 유리알 아,  이알몸을 끄집어내라, 때려라, 부릇내라.  나는열이 오른다.  뺨은차라리 연정스레이  유리에부빈다, 차디 찬 입맞춤을 마신다.  쓰라리,알연히, 그싯는 음향―  머언꽃!  도회에서고운 화재가 오른다.  ~~~~~~~~~~~~~~~~~~~~~~~~~~~~~~~~~~~~~~~~~~ 그의반  내무엇이라 이름하리 그를?  나의영혼 안의 고문 불,  공손한이마에 비추는 달,  나의눈보다 값진 이,  바다에서솟아 올라 나래 떠는 금성,  쪽빛하늘에 흰꽃을 달은 고산 식물,  나의가지에 머물지 않고,  나의나라에서도 멀다.  홀로어여삐 스스로 한가로워 항상 머언 이,  나는사랑을 모르노라.오로지 수그릴 뿐,  때없이가슴에 두 손이 여미어지며  굽이굽이돌아 나간 시름의 황혼 길 위  나바다 이편에 남긴  그의반임을 고이 지니고 걷노라.  ** 3호 1931.10  ~~~~~~~~~~~~~~~~~~~~~~~~~~~~~~~~~~~~~~~~~~~~~~~ 별똥 별똥떨어진 곳,  마음에두었다  다음날가보려,  벼르다벼르다  인젠다 자랐오.  별똥은본 적이 없다  난아직 다 자라지 않았다  별똥떨어진 곳에 가보고 싶다  내눈에도 보였으면…  ~~~~~~~~~~~~~~~~~~~~~~~~~~~~~~~~~~~~~~~~~~~~~~~ 새빨간기관차  으으릿느으릿 한눈파는 겨를에  사랑이수이 알어질가도 싶구나.  어린아이야,달려가자. 두뺨에피여오른 어여쁜 불이  일즉꺼져 버리면 어찌 하자니?  줄달음질 쳐 가자.  바람은휘잉. 휘잉.  만틀자락에 몸이 떠오를 듯.  눈보라는풀. 풀.  붕어새끼꾀여내는 모이 같다.  어린아이야,아무것도 모르는  새빨간기관차처럼 달려가자!  ~~~~~~~~~~~~~~~~~~~~~~~~~~~~~~~~~~~~~~~~~~~~~~~~~ 바람 바람. 바람. 바람. 늬는내 귀가 좋으냐?  늬는내 코가 좋으냐?  늬는내 손이 좋으냐?  내사왼통 빨개졌네.  내사아무치도 않다.  호호칩어라 구보로!  ~~~~~~~~~~~~~~~~~~~~~~~~~~~~~~~~~~~~~~~~~~~~ 내맘에맞는 이  당신은내맘에 꼭 맞는이.  잘난남보다 조그마치만  어리둥절어리석은 척  옛사람처럼 사람 좋게 웃어좀 보시요.  이리좀돌고 저리좀 돌아 보시요.  코쥐고 뺑뺑이 치다 절 한 번만 합쇼.  호.호.호.호.내맘에 꼭 맞는이.  큰말타신 당신이  쌍무지개홍예문 틀어세운 벌로  내달리시면 나는산날맹이 잔디밭에 앉어  기를부르지요.  [앞으로----가.요.] [뒤로--가.요.] 키는후리후리. 어깨는 산고개 같어요.  호.호.호.호.내 맘은 맞는이.  ~~~~~~~~~~~~~~~~~~~~~~~~~~~~~~~~~~~~~~~~~~~~~~~ 춘설  문열자 선뚝! 뚝 둣 둣  먼산이 이마에 차라.  우수절(雨水節)들어  바로초하로 아침,  새삼스레눈이 덮인 뫼뿌리와  서늘옵고빛난 이마받이 하다.  얼음금가고 바람 새로 따르거니  흰옷고름 절로 향기롭워라.  옹송거리고살어난 양이  아아꿈 같기에 설어라.  미나리파릇한 새순 돋고  옴짓아니기던 고기입이 오믈거리는,  꽃피기전 철 아닌 눈에  핫옷벗고 도로 칩고 싶어라.  정지용시선.깊은샘. ~~~~~~~~~~~~~~~~~~~~~~~~~~~~~~~~~~~~~~~~~~~~~~~~~~~~ 카페프랑스  옮겨다심은 종려(棕櫚)나무 밑에  빗두루선 장명등  카페프랑스에 가자.  이놈은루바시카  또한 놈은 보헤미안 넥타이  삣적마른 놈이 앞장을 섰다.  밤비는뱀눈처럼 가는데  페이브먼트에흐늘기는 불빛  카페프랑스에 가자.  이놈의머리는 빗두른 능금  또한놈의 심장은 벌레먹은 장미  제비처럼젖은 놈이 뛰어간다.  ** *  “오오페롯(鸚鵡)서방! 굿이브닝!”  “굿이브닝!”(이친구 어떠하시오?)  鬱金香아가씨는 이 밤에도  更紗커-튼 밑에서 조시는구료!  나는子爵의 아들도 아모 것도 아니란다.  남달리손이 희어서 슬프구나!  나는나라도 집도 없단다.  대리석테이블에 닿는 내 뺨이 슬프구나!  오오異國種강아지야  내발을 빨아다오  내발을 빨아다오    황해문화,2000년 여름호, p.156.  ~~~~~~~~~~~~~~~~~~~~~~~~~~~~~~~~~~~~~~~~~~~~~~~ 향수(鄕愁)  넓은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나가고,  얼룩백이황소가  해설피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재가 석어지면  비인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자란 내 마음  파아란하늘 빛이 그리워  함부로쏜 화살을 찾으러  풀섶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바다에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성근 별  알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 조약돌 조약돌도글도글...  그는나의 혼의 조각 이러뇨.  앓은페에로의 설움과  첫길에고달픈  청제비의푸념겨운 지줄댐과,  꾀집어아즉 붉어 오르는  피에맺혀,  비날리는 이국 거리를  탄식하며헤매노나,  조약돌도글도글....  그는나의 혼의 조각 이러뇨.  ~~~~~~~~~~~~~~~~~~~~~~~~~~~~~~~~~~~~~~~~~~~~~~~~~~~~~~ 바다1  오.오.오.오.오.소리치며 달려가니,  오.오.오.오.오.연달아서 몰아 온다.  간밤에잠 살포시  머언뇌성이 울더니,  오늘아침 바다는  포도빛으로부풀어졌다.  철썩,처얼썩, 철썩, 처얼썩, 철썩  제비날아들 듯 물결 사이사이로 춤을 추어  ~~~~~~~~~~~~~~~~~~~~~~~~~~~~~~~~~~~~~~~~~~~~~~~~~~~~~~ 바다2  한백년진흙 속에  숨었다나온 듯이,  게처럼옆으로  기어가보노니,  머언푸른 하늘 알로  가이없는모래밭.  *정지용시집,시문학사, 1935  ~~~~~~~~~~~~~~~~~~~~~~~~~~~~~~~~~~~~~~~~~~~~~ 바다3  외로운마음이  한종일두고  바다를불러---  바다우로  밤이 걸어온다.  ~~~~~~~~~~~~~~~~~~~~~~~~~~~~~~~~~~~~~~~~~~~~~~~~~~ 바다4  후주근한물결소리 등에 지고 홀로 돌아가노니  어데선지그누구 쓰러져 울음 우는듯한 기척,  돌아서서보니 먼 등대가 반짝 반짝 깜박이고  갈매기떼끼루룩 비를 부르며 날어간다.  울음우는 이는 등대도 아니고 갈매기도 아니고  어덴지홀로 떨어진 이름 모를 서러움이 하나.  ~~~~~~~~~~~~~~~~~~~~~~~~~~~~~~~~~~~~~~~~~ 바다7 바다는 푸르오, 모래는 희오,희오,  수평선우에  살포-시내려앉는  정오하늘,  한한가운데 돌아가는 태양,  내영혼도  이제 고요히고요히 눈물겨운 백금 팽이를 돌리오.  ~~~~~~~~~~~~~~~~~~~~~~~~~~~~~~~~~~~~~~~~~~~~~~~~~~~~~~ 고향 고향에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고향은 아니러뇨.  산꽁이알을 품고  뻐꾹이제철에 울건만,  마음은제고향 진히지 않고  머언港口로 떠도는 구름.  오늘도메끝에 홀로 오르니  한점 꽃이 인정스레 웃고,  어린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나고  메마른입술이 쓰디쓰다.  고향에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하늘만이 높푸르구나.  ~~~~~~~~~~~~~~~~~~~~~~~~~~~~~~~~~~~~~~~~~~~~~~~~~~~~~~~~~~~ 슬픈기차  우리들의기차는 아지랑이 남실거리는 섬나라 봄날 온 하루를 익살스런 마도로스 파이프를 피우며 간 단 다.  우리들의기차는 느으릿 느으릿 유월 소 걸어가듯 걸어 간 단 다.  우리들의기차는 노오란 배추꽃 비탈밭 새로  헐레벌떡거리며지나 간 단 다.  나는언제든지 슬프기는 슬프나마 마음만은 가벼워  나는차창에 기댄 대로 휘파람이나 날리자.  먼데 산이 군마처럼 뛰어오고 가까운 데 수풀이 바람처럼 불려 가고  유리판을펼친 듯, 뇌호내해 퍼언한 물 물. 물. 물.  손가락을담그면 포도빛이 들으렷다.  입술에적시면 탄산수처럼 끓으렷다.  복스런돛폭에 바람을 안고 뭇 배가 팽이처럼 밀려가다 간,  나비가되어 날아간다.  나는차창에 기댄 대로 옥토끼처럼 고마운 잠이나 들자.  청만틀깃자락에 마담 R의 고달픈 뺨이 불그레 피었다, 고운 석탄불처럼 이글거린다.  당치도않은 어린아이 잠재기 노래를 부르심은 무슨 뜻이뇨?  잠들어라. 가여운내 아들아.  잠들어라. 나는아들이 아닌 것을, 웃수염 자리 잡혀가는, 어린 아들이 버얼써 아닌 것을.  나는유리쪽에 갑갑한 입김을 비추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이름이나 그시며 가 자.  나는느긋느긋한 가슴을 밀감쪽으로나 씻어 내리자.  대수풀울타리마다 요염한 관능과 같은 홍춘이 피맺혀 있다.  마당마다솜병아리 털이 폭신폭신하고,  지붕마다연기도 아니 뵈는 햇볕이 타고 있다.  오오,개인 날씨야, 사랑과 같은 어질머리야, 어질머리야.  청만틀깃자락에 마담 R의 가여운 입술이 여태껏 떨고 있다.  누나다운입술을 오늘이야 실컷 절하며 갚노라.  나는언제든지 슬프기는 슬프나마,  오오,나는 차보다 더 날아가려지는 아니하련다.  ~~~~~~~~~~~~~~~~~~~~~~~~~~~~~~~~~~~~~~~~~~~~~~~~~ 황마차(幌馬車) 이제마악 돌아나가는 곳은 時計집 모롱이, 낮에는 처마끝에 달어맨 종달새란 놈이 都會바람에 나이를 먹어 조금 연기 끼인 듯한 소리로 사람 흘러나려가는 쪽으로 그저 지줄거립데다.  그고달픈 듯이 깜박깜박 졸고 있는 모양이-가여운 잠의 한점이랄지요- 부칠 데 없는 내맘이 떠올릅니다. 쓰다듬어 주고 싶은, 쓰다듬을 받고 싶은 내 마음이올시다. 가엾은 내 그림자는 검은 喪服처럼 지향없이 흘러나려갑니다. 촉촉히 젖은 리본 떨어진 浪漫風의 帽子 밑에는 金붕어의 奔流와도 같은 밤경치가 흘러나려갑니다. 길옆에 늘어슨 어린 銀杏나무들은 異國斥候兵의 걸음세로 조용조용히 흘러나려갑니다.  슬픈銀眼鏡이 흐릿하게  밤비는옆으로 무지개를 그린다.  이따금지나가는 늦인 電車가 끼이익 돌라나가는 소리에 내 조고만 魂이 놀란 듯이 파다거리나이다. 가고 싶어 따뜻한 화로갛을 찾어가고 싶어.  좋아하는코-란 經을 읽으면서 南京콩이나 까먹고 싶어, 그러나 나는 찾어 돌아갈 데가 있을나구요?  네거리모퉁이에 씩 씩 뽑아 올라간 붉은 벽돌집 塔에서는 거만스러운 12시가 避雷針에게 위엄있는 손까락을 치여들었소. 이제야 내 목아지가 쭐 삣떨어질 듯도 하구료. 솔닢새 갚은 모양새를 하고 걸어가는 나를 높다란 데서 굽어보는 것은 아주 재미있을 게지요.  마음놓고술술 소변이라도 볼까요. 헬멧 쓴 夜警巡査가 필일림처럼 쫓아오겠지요!  네거리모통이 붉은 담벼락이 훔씬 젖었소. 슬픈 都會의 뺨이 젖었소. 마음은 열없이 사랑의 落書를 하고 있소. 홀로 글성글성 눈물 짖고 있는 것은 가엾은 소-니야의 신세를 비추는 빩안 電燈의 눈알이외다. 우리들의 그 전날밤은 이다지도 슬픈지요. 이다지도 외로운지요. 그러면 여기서 두 손을 가슴에 념이고 당신을 기다리고 있으릿가?  길이아조 질어터져서 뱀눈알 같은 것이 반쟉 반쟉어리고 있오. 그두가 어찌나 크던동 거러가면서 졸님이 오십니다. 진흙에 챡 붙어 버릴 듯하오. 철없이 그리워 둥그스레한 당신의 어깨가 그리워. 거기에 내 머리를 대이면 언제든지 머언 따뜻한 바다 울음이 들려오더니......  ......아아,아모리 기다려도 못오실 니를 ......  기다려도못 오실 니 때문에 졸리운 마음은 幌馬車를 부르노니, 회파람처럼 불려오는 幌馬車를 부르노니, 은으로 만들은 슬픔을 실은 원앙새 털 깔은 幌馬車, 꼬옥 당신처럼 참한 幌馬車, 찰 찰찰 幌馬車를 기다리노니.  ~~~~~~~~~~~~~~~~~~~~~~~~~~~~~~~~~~~~~~~~~~~~~~~~~~~~~~~~~~~~~~~~~~ 정지용(鄭芝溶) 1903년충청북도 옥천 출생  1918년휘문 고보 재학 중 박팔양 등과 함께 동인지 『요람』 발간  1929년교토 도시샤(同志社) 대학 영문과 졸업  1930년문학 동인지 『시문학』 동인  1933년『가톨릭 청년』 편집 고문, 문학 친목 단체 『구인회』 결성  1939년『문장』지 추천 위원으로 조지훈, 박두진, 박목월, 김종한, 이한직, 박남수 추천  1945년이화 여자 대학교 교수  1946년조선 문학가 동맹 중앙 집행 위원  1950년납북  시집: 『정지용 시집』(1935), 『백록담』(1941), 『지용 시선』(1946), 『정지용 전집』(1988)  *절제된언어의 구사는 정지용의 시에서 일관되는 특성이지만 그의 시세계가 그리는 궤적은 몇 단계의 변모 과정을 보인다.  정지용시의 전개 과정을 크게 세 단계로 나누면 다음과 같다.  첫째1923년경부터 1933년경까지의 서정적이며 감각적인 시,  둘째,1933년 [불사조] 이후 1935년경까지의 카톨릭 신앙을 바탕으로 하는 종교적인 시,  셋째,[옥류동](1937),[구성동](1928) 이후 1941년에 이르는 동양적인 정신의 시 등이 그것이다.  특히주목을 요하는 것은 정지용의 종교시가 [카톨릭 청년](1933)의 창간과 관련되어 있으며 이 지면에 대부분 그의 종교시가 발표되었다는 점이다.  초기의감각적인 시와 후기의 고전적인 시들의 교량적인 역할을  종교시가담당하고 있는 셈이다. 지용의 신앙시는 1934년 [카톨릭 청년]에 발표된 [다른 하늘], [또 하나의 다른 태양] 이후 자취를 감추며  4년여의침묵 뒤에 [옥류동], [비로봉], [구성동] 등이 발표된다.  이를카톨릭 신앙의 전면적인 포기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겠지만 그가 1930년대 후반에 나름대로 각고의 방향 모색을 시도했으며, [옥류동], [백록담] 등에서 그 실마리를 찾으려 했고 1939년 [장수산], [백록담] 등에서는 한층 더 정신주의에의 침잠을 시도하면서 현실의 고통스러움을 견인의 정신으로 극복하고자 했다고 추정할 수 있다  . 정지용의대표작으로서 국민들에게 널리 애송되는 작품 한 편을 들라고 한다면, 우리는 [향수]를 꼽지 않을 수 없다. 지용의 [향수]를 노래하는 사람 모두가 언제나 마음의 고향으로 되돌아감을 느낀다.  정지용은[향수]에서 독특한 감각적 표현을 율격 언어로 응축시켜 한국인들이 마음의 고향에 도달하는 심정적 통로를 열어 보였다.  [향수]가그려내는 고향의 정경은 누구에게나 있었음직한 추억이며 따라서 강력한 정서적 호소력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정서적 호소력에 힘을 더하는 것은 뛰어난 감각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금빛 게으른 울음'이나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전설의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에서 보이는 언어적 환기 효과는 당시로서는 특별한 예이다.  고향에대한 그리움 표현한 [향수]는  뛰어난감각적 표현으로 온 국민의 사랑 받아  첫째연의 고향에 대한 공간적 환기와  둘째연의 전형적인 농가의 풍경에서 제시되는 육친애의 그리움에 이어 셋째 연에서는 화자의 구체적인 성장 경험이 표현된다.  흙에서자란 마음과 파란 하늘 사이의 화자의 행동 모습은 현실과 이상 사이의 괴리가 생겨나기 이전의 것으로서 유년 시절의 낙원에 대한 믿음을 연상시킨다. 그 정경은 어린 시절의 단순한 반추가 아니라 어린 시절의 이상과 낙원이 괴리되어 떠도는 현재의 상황을 시사한다. 넷째 연은 다시 구체적인 삶의 정경으로 돌아가고 다섯째 연은 계절의 순환과 더불어 포착된 고향집이 그려진다. 고향집이 내포하는 평화롭고 정겨운 감각으로 인해 가난의 어려움마저 넘어서고 있다.  [향수]는20년대 초반의 젊은이가 고향을 떠나와 고향을 그리는 젊음이 용해되어 있으며, 오늘의 우리들 또한 상실한 낙원으로 되돌아가게 하는 생의 근원에 대한 동경을 담고 있다. 농경 사회에서 산업 사회로, 그리고 이를 넘어 정보화 시대를 살고 있는 오늘의 한국인들에게 [향수]는 생의 근원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을 일깨워 준다.  - 최동호 / 1948년생, 시인, 고려대 국문과 교수 -   
187    파블로 네루다 시 모음 댓글:  조회:1760  추천:0  2017-05-16
 [시인탐방] 파블로 네루다                                       남미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를 함께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조국 칠레의 군사독재에 맞서 이태리로 망명한 네루다와  우체부의 우정을 그린 영화 "ilpostino'로 더욱 유명해진 시인이지만 현대 시에 있어 그의 문학적 성과가 갖는 의미는 여러모로 다양  하게 평가되고 있습니다.          약력: 1904년 칠레 태생.           본명은 네프딸이 리까르도 레예.           1971년 시집 '황혼의 세계'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           1973년 사망           국내 판매 저서  :  스무개의  사랑의 시와 하나의  절망/공간                                         스무편의 사랑의 시와 한편의 절망/민음사                                      언어와 술꾼들의 우화/  솔   **작품 소개     시(Poem)       그 나이였다... 시가 나를 찾아왔다.  모른다. 그게 어디서 왔는지 모른다.   겨울에서인지 강에서인지 언제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다.   아니다... 그건 목소리가 아니었고, 말도 아니었으며, 침묵도 아니었다.   어떤 길거리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였다.   밤의 가지에서 홀연히 다른 것들로부터 격렬한 불 속에서 불렀다.   또는 혼자 돌아오는 길에 그렇게 얼굴없이 있는 나를 시는  건드렸다.   나는 뭐라고 해야할 지를 몰랐다.   내 입은 이름들을 도무지 대지 못했고, 눈은 멀었으며, 내 영혼 속에서 뭔가 시작되어 있었다.   끓어오르는 열이나 잃어버린 날개, 내 나름대로 해 보았다.   그 불을 해독하며, 나는 어렴풋이 첫 줄을 썼다.   어렴풋한, 뭔지 모를, 순수한 넌센스, 아무것도 모르는 어떤 사람의 지혜이다. 그리고 문득 나는 보았다.   풀리고 열린 하늘을, 유성들을, 고동치는  논밭, 구멍뚫린 그림자, 화살과 불과 꽃들로 들쑤셔신 그림자.   휘감아도는 밤, 우주를, 그리고 나, 이 작은 존재는 그 큰 별들의 총총한 허공에 취해, 신비의 모습에 취해,   나 자신이 그 심연의 일부임을 느꼈고,  별들과 더불어 굴렀으며, 내 심장은 바람에 나부꼈다.             이 밤 나는 가장 슬픈 시를 쓸 수 있으리           예를 들면, "밤은 별이 많다, 별들은 파랗게     떨고 있다, 멀리서, 파랗게"라고 쓸까.       밤바람은 하늘에서 돌며 노래하는데       나는 이 밤 가장 슬픈 시를 쓸 수 있으리.     난 그녀를 사랑했었지. 때로 그녀도 나를 사랑했었어.       오늘 같은 밤이면 그녀는 내 품에 있었지.     끝없는 하늘 아래서 난 몇번이고 그녀에게 입맞추었지.       그녀는 나를 생각했었지. 때로 나도 그녀를 사랑했었어.     그녀의 그 커다랗게 응시하는 눈망울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었으리!       이 밤 나는 가장 슬픈 시를 쓸 수 있으리.     문득 그녀가 없다는 생각. 문득 그녀를 잃어버렸다는 느낌.       황량한 밤을 들으며, 그녀 없이 더욱 황량한 밤.                 절망의 노래               너의 추억은 내가 자리하고 있는 밤에서 솟아오른다.         강물은 그 끝없는 탄식을 바다에 묶고 있다.           동틀녘의 부두처럼 버려진 사내.         떠나야 할 시간이다, 오 버림받은 이여!           내 심장 위로 차가운 꽃비가 내린다.         오 폐허의 쓰레기 더미, 조난자들의 흉포한 동굴.           네 위로 전쟁과 날개가 쌓여 갔다.         노래하는 새들은 네게서 날개를 거두었다.           마치 머나먼 무엇처럼 너는 그 모든 것을 삼켜 버렸다.         바다처럼, 시간처럼, 네 안에서는 모든 것이 조난이었다!           침략과 입맞춤의 즐거운 시간이었다.         등대처럼 타오르던 혼수 상태의 사간.           항해사의 조바심, 눈 먼 잠수부의 분노,         사랑의 혼미한 도취, 네 안에서는 모든 것이 조난아있다!           희마한 안개의 유년 속에 날개 달고 상처 입은 나의 영혼.         길 잃은 탐험가, 네 안에서는 모든 것이 조난이었다!           너는 고통에 동여매인 채, 욕망에 붙들려 있었지.         슬픔은 너를 쓰러뜨렸다, 네 안에서는 모든 것이 조난이었다!           나는 그림자 드리운 성벽을 뒤로 하고,         욕망과 행위의 피안을 걸었다.           오 살이여, 나의 살결이여, 내가 사랑했고 나를 버린 여인이여,         이 음습한 시간 속에서 나는 너를 추억하며 노래한다.           하나의 술잔처럼 너는 한없는 애정으로 머물렀고,         또 어떤 술잔처럼 끝없는 망각이 너를 산산이 부숴 버렸다.           그것은 검은 빛, 섬들의 검은 고독이었다,         그리고 거기서, 사랑하는 여인아, 네 품이 나를 반겼다.           그것은 갈증이었고 허기짐이었다, 그리고 넌 과일이었다.         그것은 비탄이었고 폐허였다, 그리고 넌 기적이었다.           아 여인아, 네 여혼의 대지 안에, 네 품의 십자가 속에         어떻게 네가 나를 품을 수 있었는지 알 수가 없다!         너를 향한 나의 욕망은 참으로 어마어마하면서도 그토록 짧은         것,         가장 엉망진창 취해 있는 것, 그토록 위험하고도 목마른         것이었다.           입맞춤의 묘지여, 아직도 너의 무덤들에는 불이 남아 있어,         새들의 부리에 쪼인 포도송이들이 이적지 뜨겁게 타오르고         있다.           오 깨물린 입, 오 입맞추며 엉켜 있는 팔다리,         오 허기진 이빨들, 오 비비 꼬여 있는 육체들.           우리가 맺어졌고, 우리 함께 절망한         희망과 발버둥의 미친 듯한 교접.           그리고 물과 밀가루 같은 사소한 애정.         그리고 입술에서 방금 떨어져 나온 그 단어.           그것이 나의 운명이었고 그 안에서 나의 갈망이 항해하였으며,         그 속으로 나의 갈망은 가라앉았다. 네 안에서는 모든 것이         조난이었다.           오 폐허의 쓰레기 더미여, 네 위로 모든 것이 추락하고 있었다.           네가 말로 다하지 못했던 고통이며, 너를 질식시키는 데 실패한         파도들이.           뱃머리에 선 뱃사람의 다리처럼 이리로 저리로         너는 불꽃을 일으키는가 하면 노래도 하였다.           노래 속에서 너는 꽃도 피워 내고, 시냇물에서는 부서지기도         했다.         오 폐허의 쓰레기 더미여, 활짝 열린 고통스러운 깊은         연못이여.           눈 먼 창백한 잠수부, 기꺽인 戰士,         길 잃은 탐험가, 네 안에서는 모든 것이 조난이었다!           떠나야 할 시간이다, 밤의 일정표가 꽉 찬         단단하고도 냉랭한 시간이다.           바다의 소란스러운 허리띠는 해변을 휘어감고 있다.         차가운 별들이 나타나고, 검은 새들이 날아간다.           동틀녘의 부두처럼 버려진 사내.         떨리는 그림자만이 내 손아귀에서 몸부림치고 있다.           아 모든 것의 피안으로! 아아 모든 것의 피안으로!           떠나야 할 시간이다, 오 버림받은 이여!                                      절망의 노래           너의 추억은 내가 자리하고 있는 밤에서 솟아오른다.         강물은 그 끝없는 탄식을 바다에 묶고 있다.           동틀녘의 부두처럼 버려진 사내.         떠나야 할 시간이다, 오 버림받은 이여!           내 심장 위로 차가운 꽃비가 내린다.         오 폐허의 쓰레기 더미, 조난자들의 흉포한 동굴.           네 위로 전쟁과 날개가 쌓여 갔다.         노래하는 새들은 네게서 날개를 거두었다.           마치 머나먼 무엇처럼 너는 그 모든 것을 삼켜 버렸다.         바다처럼, 시간처럼, 네 안에서는 모든 것이 조난이었다!           침략과 입맞춤의 즐거운 시간이었다.         등대처럼 타오르던 혼수 상태의 사간.           항해사의 조바심, 눈 먼 잠수부의 분노,         사랑의 혼미한 도취, 네 안에서는 모든 것이 조난아있다!           희마한 안개의 유년 속에 날개 달고 상처 입은 나의 영혼.         길 잃은 탐험가, 네 안에서는 모든 것이 조난이었다!           너는 고통에 동여매인 채, 욕망에 붙들려 있었지.         슬픔은 너를 쓰러뜨렸다, 네 안에서는 모든 것이 조난이었다!           나는 그림자 드리운 성벽을 뒤로 하고,         욕망과 행위의 피안을 걸었다.           오 살이여, 나의 살결이여, 내가 사랑했고 나를 버린 여인이여,         이 음습한 시간 속에서 나는 너를 추억하며 노래한다.           하나의 술잔처럼 너는 한없는 애정으로 머물렀고,         또 어떤 술잔처럼 끝없는 망각이 너를 산산이 부숴 버렸다.           그것은 검은 빛, 섬들의 검은 고독이었다,         그리고 거기서, 사랑하는 여인아, 네 품이 나를 반겼다.           그것은 갈증이었고 허기짐이었다, 그리고 넌 과일이었다.         그것은 비탄이었고 폐허였다, 그리고 넌 기적이었다.           아 여인아, 네 여혼의 대지 안에, 네 품의 십자가 속에         어떻게 네가 나를 품을 수 있었는지 알 수가 없다!         너를 향한 나의 욕망은 참으로 어마어마하면서도 그토록 짧은         것,         가장 엉망진창 취해 있는 것, 그토록 위험하고도 목마른         것이었다.           입맞춤의 묘지여, 아직도 너의 무덤들에는 불이 남아 있어,         새들의 부리에 쪼인 포도송이들이 이적지 뜨겁게 타오르고         있다.           오 깨물린 입, 오 입맞추며 엉켜 있는 팔다리,         오 허기진 이빨들, 오 비비 꼬여 있는 육체들.           우리가 맺어졌고, 우리 함께 절망한         희망과 발버둥의 미친 듯한 교접.           그리고 물과 밀가루 같은 사소한 애정.         그리고 입술에서 방금 떨어져 나온 그 단어.           그것이 나의 운명이었고 그 안에서 나의 갈망이 항해하였으며,         그 속으로 나의 갈망은 가라앉았다. 네 안에서는 모든 것이         조난이었다.           오 폐허의 쓰레기 더미여, 네 위로 모든 것이 추락하고 있었다.           네가 말로 다하지 못했던 고통이며, 너를 질식시키는 데 실패한         파도들이.           뱃머리에 선 뱃사람의 다리처럼 이리로 저리로         너는 불꽃을 일으키는가 하면 노래도 하였다.           노래 속에서 너는 꽃도 피워 내고, 시냇물에서는 부서지기도         했다.         오 폐허의 쓰레기 더미여, 활짝 열린 고통스러운 깊은         연못이여.           눈 먼 창백한 잠수부, 기꺽인 戰士,         길 잃은 탐험가, 네 안에서는 모든 것이 조난이었다!           떠나야 할 시간이다, 밤의 일정표가 꽉 찬         단단하고도 냉랭한 시간이다.           바다의 소란스러운 허리띠는 해변을 휘어감고 있다.         차가운 별들이 나타나고, 검은 새들이 날아간다.           동틀녘의 부두처럼 버려진 사내.         떨리는 그림자만이 내 손아귀에서 몸부림치고 있다.           아 모든 것의 피안으로! 아아 모든 것의 피안으로!           떠나야 할 시간이다, 오 버림받은 이여!                 스무 개의 사랑의 시 20             나는 오늘밤 이 세상에서 제일 슬픈 시를 쓸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라고 씁니다.           밤바람은 하늘을 맴돌며 노래합니다.           나는 오늘밤 이 세상에서 제일 슬픈 시를 쓸 수 있습니다.         나는 그녀를 사랑했고, 그녀도 가끔씩 나를 사랑했습니다.           오늘 같은 밤이면 나는 내 품에 그녀를 안고 있었습니다.         저 끝없는 하늘 아래서 수없이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녀는 나를 사랑했고, 나도 가끔은 그녀를 사랑하고 했습니다.           어떻게 그녀의 꼼짝 않는 눈동자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녀가 없어 저으기 막막해 보이는, 그 막막한 밤에 귀를         기울여 봅니다.         그러면 이슬이 풀밭에 떨어지듯 시는 영혼 위에 내립니다.           내 사랑이 그녀를 지킬 수 없다 하더라도 그건 중요한 게         아닙니다.         밤은 별들이 촘촘히 수놓아져 있건만, 그녀는 내 곁에         없습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저 멀리서 누군가 노래를 부릅니다. 저         멀리서.         그녀를 잃어버린 나의 영혼은 결코 채워지질 않습니다.           그녀를 내 곁으로 데려오기라도 할 듯이 내 눈길은 그녀를 찾아         헤매입니다.         내 가슴에 그녀를 찾아 헤매이건만, 그녀는 내 곁에 없습니다.           똑같은 나무들의 하얗게 밝히고 있는 똑같은 밤입니다.         우리는, 그때의 우리들은, 이미 지금의 우리가 아닙니다.           이제 나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분명합니다, 그러나 나는         그녀를 얼마나 사랑했던가요.         내 목소리는 그녀의 귀에 가 닿으려고 바람을 찾곤 했지요.           그녀의 목소리, 그녀의 맑은 육체, 그녀의 끝모를 눈동자들.         다른 남자의 것입니다. 이마 다른 이의 것일 겁니다. 전에는 내         입술의 것이었던 것 처럼.           이제 나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분명합니다, 하지만 혹시         그녀를 사랑하는지도 모릅니다,.         사랑은 그토록 짧고, 망각은 그토록 길기만 합니다.           왜냐하면 오늘 같은 밤이면 그녀를 내 품에 안고 있었기에,         그녀를 잃어버린 내 영혼은 결코 채워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비록 이것이 그녀가 내게 안겨주는 마지막 고통이라 할지라도,         그리고 이것이 내가 그녀에게 쓰는 마지막 시가 될지라도         말입니다.                 스무 개의 사랑의 시 19             가무잡잡하고 날렵한 소녀야, 과실을 맺게 하는 태양,         밀알을 여물게 하는 태양, 해초들을 꼬아 올리는 태양은,         즐거운 네 육체, 이글거리는 눈동자,         물의 미소를 지닌 네 입을 만들었다.           네가 두 팔을 뻗을 때, 불안에 사로잡힌 검은 태양 하나         늘어뜨린 검은 머리결로 너를 감아 올린다.         너는 개울과 그러듯 태양과도 장난하는데         태양은 네 눈에 어두운 두 개의 물웅덩이를 남기는구나.           가무잡잡하고 날쌘 소녀야, 아무것도 나를 네 가까이에 데려다         주지 않는다.         마치 정오로부터 멀어져 가듯, 모두가 네게서 나를 멀리         떨어뜨려 놓는다.         너는, 정신 없이 들뜬 꿀벌의 청춘,         파도의 주정, 이삭의 힘이다.           그래도, 나의 우울한 심장은 너를 찾고 있다.         즐거운 네 육체, 나긋나긋하고 갸날픈 네 목소리를 사랑한다.         밀밭 같기도, 태양 같기도, 양귀비 같기도, 물결 같기도 한,         달콤하면서도 단호함, 가무잡잡한 나비야.                             스무 개의 사랑의 시 18             나는 여기 널 사랑하고 있다.         어두운 소나무들 속으로 바람이 헤집고 지나간다.         달은 떠도는 물 위로 빛을 발하고 있다.         똑같은 날들이 쫓기듯 지나간다.           춤추는 모습으로 안개는 풀어진다.         은빛 갈매기 한 마리 낙조로부터 날아온다.         때로는 돛폭 하나가, 높디 높은 별들이.           오 어는 배의 검은 십자가,         홀로,         가끔씩 나는 내 영혼이 축축해질 때까지 밤을 새워 아침을         맞는다.         저 머나먼 바라 소리가 들리고 또 메아리진다.         여기는 항구다.         나 여기 널 사랑하고 있다.           나 여기 널 사랑하고 있건만 수평선은 부질 없이 널 감춘다.         이 차가운 것들 사이에서 아직도 나는 널 사랑하고 있다.         자꾸만 나의 입맞춤은 끝내 가 닿지 못할         바다를 향해 달리는, 그 무거운 배를 타고 간다.           이 낡은 닻줄처럼 나는 이미 잊혀진 존재임을 안다.         오후가 정박할 때의 부두는 더욱 서럽다.         불필요하게 허기진 나의 삶은 쉬 피곤해 한다.         내 널 갖지 못하는 걸 사랑하낟, 너는 그렇게 저만치 있다.           나의 구역질은 느릿한 황혼들과 함께 몸부림친다.         하지만 밤이 다가와 나를 노래하기 시작한다.         달은 꿈의 수레바퀴를 빙글빙글 돌린다.           가장 크막한 별들이 네 눈과 함께 날 바라다본다.         그리고 내 너를 사랑하기에, 바람 속의 소나무들은,         그 철사줄 같은 잎파리들로 네 이름을 노래하고 싶어한다.                     스무 개의 사랑의 시 17             생각에 잠겨, 깊은 고독 속에서 그림자들을 그물로 잡아         올린다.         너는 여전히 저 멀리 있다, 아 그 누구보다도 더 먼 곳에 있다.           생각에 잠겨, 새들을 풀어 주면서, 너의 이미지를 지우며,         등불들을 땅에 파묻는다.         안개 낀 종루, 저 위쪽으로, 얼마나 멀리 있는가!         아무 말 없는 방앗간 사내는         탄식을 삭이며, 우울한 희망들을 가루로 빻는다.         밤은 도시의 저 멀리서부터 네게 엎드려 다가온다.           네 모습이 다른 사람만 같고, 어떤 물건처럼 낯설기만 하다.         기나긴 길을 걸으며 네 앞의 내 삶을 생각한다.         아무의 앞에도 놓여진 적 없는 나의 삶을, 나의 혹독한 삶을.         바다를 마주한 절규는, 돌멩이 사이로, 미친 사람처럼         바다 내음 속을 자유로이 질주한다.         슬픈 분노, 절규, 바다의 고독,         재갈이 풀려, 격렬하게 하늘을 향해 온몸을 내뻗는다.           너, 여인아, 그곳에서 너는 무엇이었지? 무슨 선이었고, 어는         커다란 부채의 살대였지? 너는 지금 처럼 저 멀리 있었지.         숲 속의 불길이여! 푸른 십자가들 속에서 타오르는구나.           타오른다, 타오른다, 불길이 인가.         탁탁거리며 쓰러진다. 불이야. 불이야.         그리고 불탄 잿더미의 상처를 안고 내 영혼은 춤을 춘다.         누구십니까? 어떤 침묵에 메아리가 살고 있을까요?         향수에 젖는 시간, 기쁨의 시간, 고독의 시간.         모든 시간들 가운데 나의 시간이여!         뿔피리를 바람이 노래하며 지난다.         내 몸뚱이엔 그토록 커다란 통곡의 열정이 맺혔다.           모든 뿌리들의 흔들림,         모든 파도들의 습격!         즐거웠다가, 슬펐다가, 내 영혼은 한없이 구르고 있었다.           생각에 잠겨, 깊은 고독 속에 등불을 파묻고 있었다.         너는 누구지, 네가 누구였더라?                      [네루다] 스무 개의 사랑의 시 16             황혼녁 나의 하늘에서 너는 한 조각 구름 같고         너의 색깔과 모양새는 내가 좋아하는 것과 같은 것들이다.         너는 나의 여자 너는 나의 여자, 달디단 입술의 여자,         그래서 나의 한없는 꿈들이 네 삶 속에 살고 있다.           내 영혼의 등불은 네 발을 붉게 물들이고,         시디신 내 포도주는 네 입술에서 더욱 달콤하기만 하다.         오, 해질녁의 내 노래를 거두어 들이는 여인이여,         어찌하여 내 외로운 꿈들은 네가 나의 여인이라 느끼는가!           너는 나의 여자, 너는 나의 , 하오의 산들바람 속에         내가 소리치며 지나노라면, 바람은 내 홀아비 같은 목소리를         끌고 사라져 버린다.         내 눈 깊숙한 곳의 여자 사냥꾼아, 너는 나를 사로잡아         밤이면 활발한 너의 눈길을 마치 물처럼 고여들게 하는구나.           너는 내 음악의 그물에 잡힌 나의 포로, 나의 사랑아,         내 음악의 그물들은 하늘처럼 넓기만 하다.         나의 영혼은 상복 같은 네 눈동자의 기슭에서 태어난다.         상복 같은 너의 눈동자 속에서 꿈의 나라가 시작된다.                         [네루다] 스무 개의 사랑의 시 15             마치 네가 없는 것만 같아서 나는 네가 말 없을 때가 좋다,         너는 저 멀리서부터 내게 귀 기울이고, 내 음성은 네게 가 닿지         못한다.         마치 눈동자들이 네게 날아가 박히기라도 할 것만 같고         단 한 번의 입맞춤이 네 입을 꼭 닫아 버리기라도 할 것만         같다.           세상 모든 것들이 나의 영혼으로 가득 차 있듯이         너는 그것들 가운데서 솟아나와, 나의 영혼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꿈의 나비여, 너는 내 영혼을 닮았다.         너는 우수라는 단어를 닮았다.           나는 네가 말이 없을 때가 좋다 그러면 너는 저만치 있는 것만         같다.         그리고 너는 투덜거리고 있는 것만 같다, 자장가 속의 나비여.         그리고 너는 저 멀리서 내게 귀 기울이고 있지만, 내 음성이         쫓아가 닿지 못한다.         부디 네 침묵과 함께 나도 침묵할 수 있게 하라.           등불처럼 밝게, 반지처럼 소박하게         내가 너의 침묵과 함께 네게 말할 수 있게 해다오.         너는 아무 말 없이 별만 초롱초롱 빛나는 밤과 갔다.         너의 침묵은 그토록 머나먼 곳의 소박한 어느 별의 것이다.           마치 네가 없는 것만 같아서 나는 네가 말이 없을 때가 좋다.         너는 곧 죽을 듯이 저만치서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그럴 때면 한 마디의 말, 한 자락의 미소만으로도 충분하리라.         그리고 나는 즐겁다, 확실치는 않아도 무언가 때문에 즐겁기만         하다.                       [네루다] 스무 개의 사랑의 시 14             매일 너는 우주의 빛과 장난을 한다.         예민한 방문객이여, 너는 꽃 속과 물 속으로 도착한다.         맨날 그렇듯 내 손 사이의 포도송이처럼         내가 괴롭히는 이 티없는 작은 머리보다 더한 존재가 바로         너다.           내 너를 사랑하는 순간부터 너는 그 누구도 닮지 않은 존재.         노란 화관들 사이에서 내가 너를 가질 수 있게 하여 다오.         그 누가 저 남쪽 별들 사이에 연기 글씨로 네 이름을 쓰겠는가?         아, 아직까지 네가 존재하지 않던 그때, 진정 네 모습은         어땠는지 기억하게 해다오.           별안간 바람이 울부짖으며 나의 닫힌 창문을 때린다.         하늘은 우울한 물고기들로 엉켜 있는 그물.         여기엔 모두가 저마다 온갖 바람을 일으키러 온다, 모든         바람들을.         비는 옷을 벗는다.           새들은 도망치듯 날아간다.         바람이다. 바람이다.           나는 사람들의 힘에 맞서 싸우는 수밖에 없다.         폭풍우는 어두운 잎새들을 소용돌이로 휘몰아가고         엊저녁 하늘에 매어 둔 배들을 모조리 풀어 놓는다.           너는 여기 있구나. 아 너는 도망가지 않는구나.         너는 마지막 비명까지도 내게 응답하리니.         잔뜩 겁먹은 듯이, 내 곁에 조그맣게 웅크리고 있으라.         그래도 네 눈동자엔 낯선 그늘이 가끔씩 스쳐 갔다.           지금도, 지금까지 여전히, 작은 여인아, 너는 내게 인동 덩굴을         가져오면서,         향기 가득한 젖가슴까지 간직하고 있구나.         슬픈 바람이 나비를 죽여 가며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사이         나는 너를 사랑하고, 나의 희열은 네 살구 입술을 깨문다.           나에게, 내 외롭고 거친 영혼에, 모두가 멀리하는         나의 이름에 친숙해졌다는 것으로 너는 엄청난 고통을         겪으리라.         우린 보았다 우리의 눈이 입맞출 때 자꾸만 끓어 오르던 샛별과         우리 머리 위를 맴도는 부채 속으로 꼬인 몸이 풀려 가는         황혼을.         너는 사랑으로 만질 때면 나의 단어는 네 위에 비로 내린다.         나는 네 몸이 별에 잘 말려진 진주 조개이던 시절부터         사랑했다.         지금은 네가 우주의 여주인이라는 것까지도 믿는다.         내 너에게, 즐거운 꽃과, 물메꽃, 짙은 색 개암나무 열매와         거친 입맞춤을 광주리 채 저 산에서 가져다 주마.           정말로 나는 봄이 벚나무와 하는 행위를         너와 함께 하고 싶다.                    [네루다] 스무 개의 사랑의 시 13             나는 불의 십자가로 네 몸에         하얀 지도를 그려 왔다.         두려워하면서도, 타오르는 갈증을 이기지 못하는 네 속으로, 네         뒤로         내 입은 몸을 숨겨 가면서 활보하는 한 마리 거미였어.           슬프고도 감미로운 인형이여, 네가 슬퍼하지 않는다면 좋을,         황혼의 기슭에서 네게 해줄 이야기들.         백조 한 마리, 나무 한 그루, 아득하고도 기쁜 그 무엇.         포도송이의 시간, 과일이 여물고 열매 맺는 그런 시간.           너를 사랑할 때부터 나의 삶은 시작됐다.         꿈과 침묵이 교차하는 고독.         바다와 슬픔 사이에 갇힌 채,         두 명의 꼼짝 않는 곤돌라 뱃사공 사이에서, 말없이, 헛소리를         지른다.           입술과 목소리 사이에서 무언가 죽어 간다.         새의 날개를 가진 그 무엇이, 고뇌와 망각의 그 무엇이.         물을 붙잡아 두지 못하는 그물도.         나의 인형이여, 떨리는 물방울도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그래도, 이 덧없는 단어들 사이에서 뭔가가 노래를 한다.         뭔가가 노래를 한다. 뭔가가 목마른 내 입까지 올라온다.         오 온갖 기쁨의 낱말로 너를 기릴 수 있을지니.           노래하라, 끓어 오르라, 도주하라, 어느 미친 사내의 손 안에         든 鐘樓처럼.         슬픈 나의 연인이여, 너는 갑자기 뭐가 되어 버린 것일까?         내가 그토록 무릅쓰고 추운 절절에 다다랐을 때         나의 심장은 밤꽃처럼 저절로 닫혀 버린다.                           [네루다] 스무 개의 사랑의 시 12             내 심장을 위해선 너의 가슴 하나면 족하고,         네 자유를 위해선 나의 날개면 족하나니.         네 영혼 위에 내가 잠들어 있었다는 사실은         내 입으로부터 하늘까지 가 닿으리다.           네 안에 나날의 환상이 존재한다.         이슬이 꽃술에 가 닿듯 네가 다가온다.         지금 너의 부재로 너는 수평선을 파내고 있다.         파도처럼 영원한 도망길에 있다.           내가 얘기한 적 있지 소나무처럼 혹은 돛대처럼         네가 바람 속에서 노래하고 있었다고.         꼭 그들처럼 너는 저 높이 있으면서 아무 말도 없다.         마치 어떤 여행처럼, 너는 이내 슬픔에 젖어든다.           오랜 길처럼 정다운 여인아.         메아리와 향수에 젖은 목소리들이 네게 거주하고 있다.         내가 잠깨운 너의 영혼 속에 잠들어 있던 새들은         이따금 이리저리 날아다니다가 도망가 버린다.                        [네루다] 스무 개의 사랑의 시 11             거의 하늘 바깥 쪽의 두 개의 산 사이로 반달이 닻을 내린다.         빙빙 맴을 돌며, 헤매이는 밤은, 눈동자의 웅덩이.         그런데 그 웅덩이엔 얼마나 많은 별들이 갈기갈기 찢겨져         있는가.           내 눈썹 사이에 애도의 십자가를 긋는가 하면, 도망도 친다.         푸른 금속의 화로, 소리 없는 싸움의 밤들,         나의 심장은 미쳐 날아 다니는 놈처럼, 빙글빙글 싸돌아         다닌다.         그토록 먼 곳에서 온, 그토록 머나먼 곳에서 데려온 소녀요.         이따금 너의 눈길이 하늘 아래로 반짝인다.         한탄스러움, 폭풍우, 분노의 소용돌이가         너를 붙잡지 못한 내 가슴 위를 휩쓸고 지나간다.         묘지의 바람은 졸리우는 너의 뿌리를         실어 가서, 박살을 내어, 산산이 흩뿌린다.         그 뿌리의 다른 쪽 거대한 나무등걸도 송두리채 뽑아 버린다.         하지만 너는, 맑디 맑은 소녀, 煙氣의 질문, 이삭.         빛나는 나뭇잎으로 바람을 일으키던 소녀였어.         한밤의 산 뒤켠으로는 백합의 불꽃.         아 나는 지금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그녀는 이 세상 모든         것으로 이루어진 여자였다.         네가 내 가슴팍에 난도질을 하고 떠나가 버린 안타까움,         이제는 그녀가 미소짓지 않았다 다른 길을 따라나서는 시간,         폭풍우가 땅에 묻어 버렸지, 바로 그녀에게 가 닿으려는,         그녀를 슬프게 하려는, 종소리들 그리고 아뜩한 飛上을.           아아, 길을 계속해서 가는 거다. 이슬 사이로 눈을 활짝 열고,         고뇌와 죽음과 겨울을 막아 주지 않는,         모든 것으로부터 서서히 멀어져 가는 길을.                          [네루다] 스무 개의 사랑의 시 10             우리는 이 황혼까지도 잃어버렸다.         푸른 밤이 이 세상 위에 내리는 동안         아무도 오늘 오후에 맞잡은 우리의 손을 보지 못했다.           나는 창문으로부터 바라보고 있었다.         머언 언덕들 위로 지고 있는 태양의 축제를.           가끔씩 마치 동전 한 닢만큼하게         내 손 사이에서 한 조각 해가 타오르고 있었다.           네가 나를 속속들이 알고 있다는 그 슬품 때문에         질식할 듯한 영혼으로 나는 너를 그리워했었다.           그런데, 너는 어디 있었던 것일까?         어떤 사람들 사이에 있었던 것일까?         무슨 말을 하고 있었을까?         내가 슬퍼할 때나, 네가 저 멀리 있다고 느껴질 때면,         왜 사랑의 아픔은 내게로만 다가오려 하는 것일까?           황혼 속에서 항상 지니고 있던 책이 떨어져 버렸고,         상처 입은 한 마리 개처럼 내 망토는 나의 발 아래로 굴러         내렸다.           항상 그렇지, 황혼이 굳은 표정을 지워 버리며 질주하는         그런 하오면은 항상 너는 멀어져만 간다.                       [네루다] 스무 개의 사랑의 시 9             송진 냄새와, 여름날의 오랜 입맞춤에 취하여,         둔중한 바다의 광포함에 휩싸여,         갸냘픈 대낮의 죽음을 향해 추설 수 없는 몸으로         나는 장미의 돛단배를 조종한다.           창백하게 나의 탐욕스런 물결에 옭아매여,         고통스러운 잿빛 소리의 옷을 아직도 걸치고,         버림받은 물거품의 슬픈 장식을 단 채,         활짝 벗어제낀 날씨의 시디신 향기 속을 항해한다.           견고한 정열에 휩싸여, 내 단 하나의 파도를 타고 간다,         밤인가 하면, 낮이고, 끓어오르는가 하면, 차가워지더니,         갑자기         싱싱한 허리 같은 하이얗고 달콤한,         행복한 섬들의 기슭에 잠들어 있다.           입맞춤의 옷을 입은 내 몸은 축축한 밤에         전기로 감전된 듯 미친 듯이 떨려 오고,         마침내는 몇 개의 꿈고         내게 열심히 그 일을 해대는 몽롱한 장미들로 電離된다.           물 위에서, 표면의 물결 한가운데서         낮은 하늘 빛의 힘 속에서 빨랐다 느렸다 하며,         한없이 내 영혼에 달라붙어 있는 한 마리 물고기처럼         평행한 네 육체는 스스로 내 품에 내맡겨 온다.                         [네루다] 스무 개의 사랑의 시 8             하얀 꿀벌이여, 너는 꿀에 취한 채, 내 영혼 속에서 윙윙거리고         연기의 느릿한 螺旋을 따라 몸을 뒤튼다.           나는 절망에 빠진 사람, 메아리 없는 말,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 그리고 한때는 그 모든 것을 가졌던         사람.           마지막 밧줄이여, 나의 마지막 불안은 네 안에서 삐걱거린다.         너는 나의 황량한 대지의 마지막 장미꽃,           아 말 없는 여인아!           네 깊은 눈을 감으라. 거기 밤이 나래를 펴리니.         아아 네 몸에서 겁에 질린 딱딱한 모습을 벗어 던져 버려라.           너는 밤이 날개를 치는 깊디 깊은 눈을 가지고 있다.         신선한 J의 품속과 장미의 무릎을 가졌다.           네 젖가슴은 하얀 달팽이들을 닮았다.         네 뱃속에는 그림자 나비 한 마리가 잠자러 들어와 있다.           아 말 없는 여인다!           나 여기 너 없는 고독을 안고 있다.         비가 내린다, 바닷바람은 헤매이는 갈매기들을 사냥한다.           물은 젖은 길을 따라 맨발로 걸어간다.         저 나무의 이파리들은 병자들처럼 탄식을 한다.           하얀 꿀벌이여, 지금은 없지만, 너는 아직껏 내 영혼 속에서         윙윙거린다.         갸냘프고 말이 없는 너는 시간 속에서 다시 되살아난다.           아 말 없는 여인아!                       [네루다] 스무 개의 사랑의 시 7             하오에는 몸을 숙여 바다 같은 네 눈동자 위로         나는 슬픈 그물을 던진다.           거기서 조난자처럼 팔을 휘젓고 있는 나의 고독이         가장 높은 화롯불에서 온몸을 펼치고 타오른다.           바다가 등대 기슭에 그러듯 이별의         聖油를 베푸는 네 넋잃은 눈동자 위로 나는 붉은 자국을         남긴다.           너는 오직 어두움만 지키는구나, 저 먼 곳의, 나의 여자여,         너의 눈길로부터 가끔씩 놀라움의 해변이 솟아난다.           하오에는 몸을 숙여 나는 슬픈 그물을 던진다         대양 같은 네 눈동자를 흔들어 대는 저 바다로.           밤새들은 너를 사랑할 때의 내 영혼처럼         빛나는 첫 별들을 부리로 쪼아 대고 있다.           들판 위로 푸른 이삭들을 흩뿌리며         밤은 우울한 암말을 타고 전속력으로 달려간다.                       [네루다] 스무 개의 사랑의 시 6             지난 가을 네가 어떤 존재였는지 난 오늘도 너를 기억해 낸다.         너는 회색 베레모였고 고요 속의 심장이었다.         네 두 눈에서는 황혼녁의 불꽃들이 싸우고 있었지.         그리고 나뭇잎들은 네 영혼의 물결 위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어.           너는 메꽃 덩굴처럼 내 품에 꼭 매달려 있었지.         나뭇잎들은 네 느릿하고 고용한 목소리를 끌어 모으고 있었어.         나의 타는 듯한 목마름은 인사불성의 화롯불 속에서 끓어         오르고 있었지.         푸른 빛 달콤한 히아신스가 내 영혼 위에서 몸을 뒤채이고         있었어.           네 두 눈이 여행을 하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가을은 저 멀리         있었다.         회색 베레모여, 새 같은 음성이여 그리고 나의 깊숙한 갈망이         이주하여 가곤 하였고 발갛게 뜬 숯불처럼         나의 즐거운 입맞춤들이 내려 앉고는 하던 심장의 거처여.           뱃머리에서 보는 하늘. 언덕에서 보는 들판.         너의 추억은 빛의, 연기의 침묵하는 연못의 것!         네 눈동자의 저 너머에서는 황혼이 끓어 오르고 있었지.         가을의 마른 낙엽들은 네 영혼을 맴돌고 있었어.                           [네루다] 스무 개의 사랑의 시 5           네가 내 얘길 들을 수 있도록         나의 단어들은         해변의 갈매기 발자국들처럼         때때로 갸냘퍼지곤 한다.           목걸이, 포도 같은         네 보드라운 손길을 위한 술취한 방울.           그리고 머나먼 나의 단어들을 바라본다.         네 것들이 내 것보다 많다.         그들은 덩굴나무처럼, 나의 오랜 고통을 기어 오른다.         축축한 담벼락을 따라 그렇게 매달려 오른다.         이런 피투성이 장난의 죄인은 바로 너.           단어들은 내 어두운 은신처로부터 도망간다.         너는 그 모든 것을 채워 준다. 그 모두를 가득 채운다.           너보다도 먼저 단어들은 네 고독에 살고 있었고         너보다도 많이 내 슬픔에 친숙해져 있다.           네가 내 얘길 들어 주었으면 하는 마음에, 그 단어들이 너         들으라고         내가 네게 말하고 싶은 것을 얘기해 주길 나는 지금 기원하고         있다.           고뇌의 바람은 아직까지도 종종 단어들을 질질 끌고 다닌다.         꿈속의 폭풍은 지금까지도 종종 단어들을 쓰러뜨린다.         나의 고통스런 목소리에서 너는 다른 음성들만 듣고 있다.         해묵은 입들의 오열, 해묵은 바램의 피,         나를 사랑해 다오, 벗이여, 나를 버리지 말아 다오, 나를         따라와 다오.         이 고뇌의 파도 속에서 나를 따라와 다오, 벗이여.           그러나 나의 단어들은 너의 사랑으로 차츰 물들어 간다.         너는 그 모든 것을 차지한다. 그 모든 것을 차지하고 있다.           포도처럼 보드라운, 네 하얀 손길을 위해         나는 모든 단어들을 묶어 한없는 목걸이를 만든다.                       [네루다] 스무 개의 사랑의 시 4             여름의 심장 속에         폭풍우 가득한 아침입니다.           이별의 하얀 손수건처럼 흘러 가는 구름을,         바람은 방랑자의 손길로 흔들어 대고 있습니다.           무수한 바람의 심장은         사랑에 빠진 우리의 침묵 위에 고동치고 있습니다.           싸움과 노래로 가득한 혓바닥처럼         오케스트라처럼 신성하게 나무 사이로 휘잉 소리냅니다.           바람은 날쌘 도적처럼 낙엽을 훑어 가고         고동치는 화살을 새들로부터 빗나가게 합니다.           포말도 일지 않는 파도 속에서, 무게도 없는 근원 속에서,         사위어 버린 불길 속에서, 바람은 아침을 허물어 버립니다.           여름 바람의 문간에서 패배당한         입맞춤의 부피는 산산이 부서져 물 속에 잠깁니다.                          [네루다] 스무 개의 사랑의 시 3             아 소나무 숲의 광막함, 부서져 내리는 파도의 소문,         빛의 느릿한 장난, 고독의 종소리,         네 눈 속으로 가라앉는 황혼, 인형이여,         대지의 소라고둥이여, 네 안에서 대지는 노래하나니!           네 안에서 강물이 노래하면 내 영혼은 그 속으로 도망쳐         들어간다         그러길 네가 바랄 게고 그곳은 네가 좋아하는 곳이기에.         네 희망의 활에 재여진 나의 행로를 가르쳐 다오         그러면 미친 듯이 나의 화살을 무더기로 쏘아 보내리니.           나를 맴도는 네 안개 허리를 보고 있으면         너의 침묵은 쫓기는 듯한 나의 시간들을 힘들게 한다,         너는 투명한 돌맹이 같은 품을 간직한 존재         그곳에 나의 입맞춤이 닻을 내리고 음습한 고뇌가 깃든다.           아 사랑이 물들여 곱게 접어 놓은 너의 신비한 목소리는         해거름이면 메아리처럼 울려퍼지며 죽어 가고 있구나!         마음 깊은 곳의 시간 속에서 나는 보았다         바람의 입 속에서 꺽이고 마는 들판의 이삭들을.                       [네루다] 스무 개의 사랑의 시 2             그 죽음의 불꽃 속에 빛은 너를 휘감아 돈다.         네 주위를 선회하고 있는         황혼의 오랜 소용돌이를 마주한 채         정신 없이 빠져들어, 고통 속에 창백한 모습으로, 그렇게         자리하고 있는 여인아.           벙어리여, 나의 친구여,         이 죽음의 시간에 외로움의 한가운데 홀로         삶의 불꽃들로 가득 차 있는,         무너져 내린 하루의 유일한 상속녀여.           태양에서 꽃 한 송이가 네 검은 옷자락 위로 떨어진다.         거대한 뿌리들이 밤으로부터         네 영혼으로부터 갑자기 자라나고,         네게서 갓 태어난 창백하고 푸른 민족의         자양분이 되기 위하여         네 속의 감추어진 것들은 바깥으로 되돌아 나온다.           검은 빛과 황금빛 속에 생겨나는 圓光의 노예 여인은         오 거대하고 풍요로우며 자석처럼 마음을 끌어당기나니         오만한 여인, 그녀가 갈구하여 얻는 그토록 생생한 피조물로         하여         꽃들은 풀이 죽고, 그녀는 슬픔으로 가득하다.                 [네루다] 스무 개의 사랑의 시, 그리고 절망의 노래 1           스무 개의 사랑의 시, 그리고 절망의 노래           스무 개의 사랑의 시             여자의 몸, 하얀 구릉, 하얀 허벅지,         너를 내어주는 모습은 꼭 이 세상을 빼어닮았구나.         우악스런 농사꾼 내 몸뚱이는 너를 파헤쳐         대지의 밑바닥에서 아들놈이 튀어나오게 한다.           터널처럼 나는 홀로였다. 새들은 내게서 도망쳤고         밤은 엄청난 침략으로 내게 쳐들어왔다.         내가 살아 남기 위해 너를 벼리었다 무기처럼,         내 활에 재어진 화살처럼, 내 投石機의 돌맹이처럼.           그러나 복수의 시간은 다가왔다, 그리고 내가 너를 사랑하고         있다.         가죽의, 이끼의 갈증나고 단단한 젖의 몸.         아 젖가슴의 사발들! 아 넋나간 눈동자!         아 陰部의 장미들! 아 너의 느릿한 슬픈 음성!           내 여인의 몸이여, 나는 네가 상냥하길 고집하리라.         나의 목마름, 끝없는 나의 번민, 막막한 나의 行路여!         영원한 목마름이 계속되는 어두운 水路들,         끊이지 않는 피로, 그리고 한없는 고통.      [제  목] [네루다와의 대담]  羊과 솔방울                                  羊과 솔방울   파블로 네루다 - 로버트 블라이 대담.   - 당신의 시에는 엄청난 이미지들의 강이 범람한다. 로르카, 알레익 산드레, 바예호 그리고 에르난데스의 시에서와 마찬가지로 - 바로 시의 뿌리에서 솟는 시의 분출이다. 20세기에 가장 위대한 시가 스 페인어로 나타난 이유는 무엇인가?    그런 얘기를 미국시인한테서 듣는 건 아주 기분 좋은 일이라는 걸 우선 말해야겠다. 우리도 물론 열광하는 걸 좋아하지만, 우리는 아 직 대단한 게 없는 일꾼들이다. - 우리는 너무 비교를 해서는 안된 다. 스페인어 시에 대해 두 가지 다른 걸 얘기해야겠다. 16세기와 17세기 스페인 시는 위대했다. - 공고라, 케베도, 로페 더 베가 그 리고 다른 많은 거인들이 있다. 그런데 그후 3세기, 시가 없다 - 아 주 보잘 것 없는 시밖에는. 마침내 로르카, 알베르티, 그리고 알레익 산드레의 세대가 다시 큰 시를 썼다. - 그들은 그 작은 시를 극복 하고 솟아올랐다. 어떻게, 또 왜? 우리는 이 세대가 공화국으로서의 스페인의 정치적 각성, 잠자고 있던 위대한 나라의 깨어남과 때를 같이하는 세대라는 걸 기억하지 않으면 안된다. 문득 그들은 깨어나 는 사람의 모든 에너지와 힘을 갖게 되었다. 나는 그에 대해서 내 시 에서 얘기했는데, 어젯밤 포에트리 센터 에서 내가 낭독한 걸 당신은 기억할 것이다. 불행하게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프랑코 일당이 반란을 일으켰다. 그건 많은 시인들을 추방하거나 죽였다. 미겔 에르난데스, 로르카, 안토니오 마차도한테 일어난 일들이 그것인데, 그들은 실로 20세기의 고전이었던 것이다.   남미에서의 시는 전혀 다른 문제다. 아다시피 우리 대륙의 나라들 에는 이름없는 강들, 아무도 모르는 나무들, 누구도 말한적이 없는 새들이 있다. 우리가 초현실적이 되는 건 쉬운 노릇인데 왜냐하면 우리가 아는 모든 것은 새로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알 기로는, 우리의 의무는 들어보지 못한 것을 표현하는 것이다. 유럽 에서는 모든게 그려졌고, 유럽에서는 모든게 노래되었다. 그러나 아 메리카에서는 그렇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휘트먼은 위대한 선생이 었다. 휘트먼은 무엇인가? 그는 강렬한 의식이었을 뿐만 아니라 눈 뜬 사람이었다! 그는 모든 것을 보는 무서운 눈을 갖고 있었다 - 그는 우리한테 사물을 보는 걸 가르쳤다. 그는 우리들의 시인이었다   - 휘트먼은 확실히 북미의 시인들보다 스페인어권 시인들한테 더 많은 영향을 주었다. 왜 북미의 시인들은 그를 이해하지 못했을까? 영국의 영향 때문에 그랬을까?   아마, 아마 영국의 주지주의적 영향때문일 것이다. 또한 많은 미국 시인들은 휘트먼을 너무 거칠고 너무 원시적이라고 생각한 엘리오 트를 그냥 따른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 휘트먼 - 그는 복잡한 인간이며 그가 저일 좋은 건 그가 가장 복잡한 때이다. 그는 세상을 향해 열린 눈을 가지고 있었으며 또 그는 우리한테 시 와 다른 많은 것들에 대해 가르쳤다. 우리는 그를 대단히 사랑했다. 엘리오트는 우리한테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그는 아마도 너무 지적 이고, 우리는 너무 원시적인 모양이다. 그리고 누구나 어떤 길을 선 택해야 한다 - 세련되고 지적인 길이거나, 아니면 보다 형제답고 일반적인 길을 택해 당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를 끌어안으려고 한 다든지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려고 한다든지..........   - 그의 에세이에서 엘리오트는 전통에 주목했다. 그러나 당신 말씀 을 들으면 남미에는 실로 아무 전통이 없다는 얘기로 들리기도 한 다 - 아메리카에는 아무 전통이 없다 - 그리고 그 전통 결핍의 인 정이 사물을 열었다.............    그거 흥미있는 얘기다. 우리는 어떤 남미 시인들한테서는 아주 오 래된 사고방식과 표현방식의 흔적을 볼 수 있다는 점을 얘기해야겠 다. 예컨대 바예호한테 있는 인디언적 사고방식 같은 게 그것이다. 세사르 바예호는 인디언 나라인 그의 나라, 페루의 아주 깊은 데서 유래한 어떤 걸 가지고 있다. 아다시피 그는 훌륭한 시인이다.  문학의 전통에 대해서 말인데, 우리는 어떤 전통을 가졌을까? 19세 기의 스페인 시는 아주 빈약한 시였다 - 미사여구에다 거짓되고  - 가장 나쁜 방식으로 후기 낭만주의적이었다. 그들 중에는 좋은 낭만 주의 시인이 없었다. 셀리도 없었고, 괴테도 없었다. 도대체 그런 시 인이 없었다. 도무지 없었다. 수사적이고 공허했다.   - 당신의 시는 사람들 사이의 애정의 비젼을 보여준다. 사람과 동 물 사이의 애정, 식물과 뱀들에 대한 연민, 그리고 인간과 그의 무 의식이 주고 받은 것...........대부분의 현대 시인들은 아주 다른 비젼 을 드러낸다. 그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글세, 나는 시의 종류를 구분한다. 나는 이론가는 아니지만, 나는 밀 폐된 방에서 씌어진 시를 한 가지의 시로 본다. 한 예로 말라르메를 들겠는데, 아주 위대한 블란서 시인이다. 나는 가끔 그의 방을 찍은 사진들을 보았다 ; 그 방들은 작고 아름다운 물건들 - 아바나코 - 부채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부채들에 대해서 아름다운 시를 쓰 곤했다. 그러나 그의 방들은 숨막히고, 커튼 천지이며, 공기가 통하 지 않았다. 그는 닫힌 방의 위대한 시인이며 새세계(미국을 가르킴) 의 많은 시인들이 이 전통을 따르는 것 같다 : 그들은 창을 열지 않은데, 당신을 창을 열 뿐만 아니라 창 밖으로 나가서 강과 동물과 맹수들과 더불어 살지 않으면 안된다. 나는 우리나라의 라틴 아메리 카의 젊은 시인들한테 - 아마 이게 우리의 전통일 것이다 - 사물을 발견하라고 말하고 싶다. 바다에 들어가보고, 산에 들어가보고 모든 살아 있는 것에 다가가라고. 그리고 그런 엄청난 경이가 있는데, 어 떻게 생명에 접근하는 걸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는 이슬라 네그라의 아주 거친 바닷가에서 살고 있다 - 내 집이 거기 있다 - 그리고 나는 거기서 혼자 바다를 바라보거나 일을 하 는데 지치는 법이 없다. 나한테 그건 끊임없는 발견이다. 아마 내가 당신에 나라의 위대한 저술가 쏘로우나 그밖의 명상적인 작가들처 럼 19세기의 어리석은 자연 애호가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명상적이 지 않지만, 그러나 그건 시인의 삶의 아주 커다란 부분이라고 생각 한다.   - 당신은 많은 정치적 싸움터에서 싸웠고, 곰처럼 진지하게 그리고 확고하게 싸우고 있는데도, 톨스토이처럼 정치적인 문제에 사로 잡 히는 걸로 끝나지도 않았고 또 더 나빠지지도 않았다. 당신의 시는 점점 더 인간적이 되고, 애정 깊은 게 되어가는 것 같다. 그러한 걸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아다시피 나는 아주 정치적인 나라 출신이다. 싸우는 사람들은 대중 으로부터 대단한 지지를 받는다. 정치적으로 칠레의 모든 작가들은 좌익이다 - 그 점에는 거의 예외가 없다. 우리는 우리 국민들한테 지지받고 이해받았다고 느낀다. 그게 우리 마음을 아주 든든하게 하 며 우리를 지지하는 상당수의 사람들은 대단히 훌륭하다. 아다시피 칠레에서의 선거들은 일방적인 승리를 하거나 상대방은 아주 적은 득표를 할 뿐이다. 시인으로서 우리는 참으로 일반 국민과 접촉하는 데, 그러한 건 매우 드문 일이다. 나는 내 시를 우리나라 어디에서 나 낭독한다 - 모든 마을, 모든 도회지에서 - 여려해 동안, 그리고 그렇게 하는 걸 나는 내 의무라고 느낀다. 그건 싫증나고 귀찮은 일 이지만 그러나 부분적으로는 그것으로부터 정치에 대한 내 집착은 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우리나라의 허구많은 불행을 보아왔 다. 내가 보는 가난 - 나는 그걸 외면할 수가 없다.   - 근년에 와서야 미국사람들은 남미 문학이 어떤 것인지 깨닫기 시 작했다. 그들은 여전히 그것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   그 문제는 번역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북미의 작가가 더 많이 스페 인어로 번역되고 또 남미의 시와 문학이 영어로 번역될 필요가 있 다. 칠레의 펜클럽 대표가 그들이 만든 책 목록을 나한테 보여주었 다. 그 목록은 북미인들이 읽어야 할 백권의 기본적인 남미 작품을 담고 있다. 그들은 그런 계획에 대한 지원을 바라고 있고 펜대회 기 간 동안 자기들의 뜻을 알리려 하고 있다. 그건 좋은 생각이다. 펜 클럽이 그걸 지원할는지 어떨지 알 수 없으나, 누군가가 그 계획을 지원하지 않으면 안된다. 생각해보라 - 그 바예호의 작품이 미국에 서 번역이 된 일이 없다! 겨우 스무편의 작품이 당신네의 식스티스 프레스(Sixties Press)출판사에서 출판되었을 뿐이다   - 당신은 인류의 많은 적들 중에 신들이 있음을 믿게 되었다고 알 고 있다. 당신이 랑군에 있을 때 그러한 것을 처음 느꼈다고 말한 걸로 나는 안다. 그러나 시와 마찬가지로 신들도 인간의 무의식로부 터 나오는게 아닌가? 그렇다면 어떤 뜻에서 그들이 적인가?   처음에는 신들이 시와 마찬가지로 돕는다. 인간은 인간을 돕는 신을 만든다. 그러나 나중에 인간은 신들을 이기고 그리고는 파산한다.   - 당신한테 좋은 질문이 하나 있다. 당신은 지금까지 과연 살았다 고 생각하는가?   모르겠다........그렇게 생각하기보다는 - 더 생각해 보겠다!   - 톨스토이는 인간성 속에 새로운 의식이 기관처럼 발전해왔다고 말하면서, 정부들이 이 새로운 의식의 성장을 막으려하고 있다고 말 했다. 당신은 그게 사실이라고 생각하나?   일반적으로 정부들은 이 세계의 어디에서나 작가와 시인들의 정신 을 이해한 적이 없다. 그것은 우리가 고치고자 하는 일반적인 일이 다. 어떻게? 제작하고 씀으로써. 대중 앞에서 하는 강연이나 다른 강연들을 하는 걸 보니 당신들 미국 시인들은 훌륭한 일을 하고 있 다. 당신들은 당신이 말하는 그런 정신을 옹호함으로써 새로운 걸 깨닫게 하고 있다.   - 세사르 바예호는 초현실주의를 통해 싸우고 거기에 오랫동안 빠 져 있던 시기를 지나, 에서는 매우 인간적인 단순성에 이르렀다. 당신도 의 오랜 초현실주의 시기를 지나 의 단순성에 이르렀다. 당신들 두 사람 이 같은 길을 간 건 묘하지 않은가?    나는 바예호를 사랑한다. 나는 항상 그에 대해 감탄했고, 우리는 형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주 다르다. 특히 인종이 그렇 다. 그는 페루 사람이었다. 그는 진짜 페루 사람이고 나한테는 페루 사람이 뭔지 흥미롭다. 우리는 다른 세계에서 왔다. 나는 당신이 나 한테 한 말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 나는 당신이 우리 두 사람에게 접근하는 방식을 아주 좋아한다 - 다시 말해서 우리의 작품세계에 서 우리를 가까이 접근시킨 게 상당히 좋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해보 지 못했다. 그거 좋다.   - 그와 함께 실내에 있을 때 그는 어떤 모습이었는가? 흥분하기 쉬 운 사람이었나 아니면 평온하고 생각에 잠겨있는(침울한) 사람이었 나?   바예호는 보통 아주 진지했고, 아주 근엄했고, 대단한 위엄을 가지 고 있었다. 그는 아주 높은 이마를 갖고 있었고 체구는 작았으며, 겅원한다고 할까 떨어져 있는 듯이 아주 서름서름했다. 그러나 친구 들과 같이 있을 때는 - 그가 다른 사람들과 있을 때도 그랬는지는 모르겠으나 우리와 있을 때는 그랬는데 - 행복해서 펄쩍펄쩍 뛰는 걸 보았다. 그러니까 나는 적어도 그의 두 가지 면을 알고 있다.   - 사람들은 라틴아메리카 시와 소설에서 많이 보이는 에 대해 자주 얘기한다. 그 란 정확히 무엇 인가?   바예호에게서 그것은 미묘한 사고방식, 직접적이 아니고 간접적인 표현방식으로 드러난다. 나한테는 그게 없다. 나는 카스틸랴 시인이 다. 칠레에서 우리는 인디언을 옹호하며 모든 남미 사람은 어느 정 도 인디언 피를 갖고 있는데, 나 또한 그렇다. 그러나 나는 내 작품 이 어느 모로도 인디언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 에서 당신의 시는, 마치 검은 땅을 파들어가는 사람처럼, 절망 속으로 깊이깊이 파들어간다. 그 뒤 당신은 방향을 바꾸었고, 당신의 시는 더욱더 단순성을 향해간다. 그것은 스페인 내란이 사람들이 얼마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는지를 아주 분명하 게 보여준 데 그 일부 이유가 있는 것인가?     당신 그 얘기 참 잘했다 - 사실 그렇다. 아다시피 내가 과 2를 썼을 때 나는 인도에 살고 있었다. 나는 스물 하나, 스물 둘, 그리고 스물 세 살이었다. 나는 인도 사람들로부터 고립되어 있었는데, 그들을 나는 잘 몰랐고, 또한 내가 이해하지 못한 영국 사람들과도 떨어져 지냈는데, 그들 역시 나를 이해하지 못했으며, 그래서 나는 뚫고 들어갈 수 있는 흥미진진한 나라에 있었는데, 그 나라를 잘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때가 나한테는 외로운 날들이요 세월이었다. 1934년에 나는 마드리드 주재 영사로 옮기게 되었다. 스페인 내란은 나로 하여금 더욱 보통 사람들 가까이 살도록 돕고 부추겼으며, 더욱 이해하고 더욱 자연스러워지도록 했다.  처음으로 나는 내가 공동체에 속해 있다는 걸 느꼈다.     - 릴케와 에 대한 당신의 생각을, 당신이 그들을 공격하는 시를 쓴 이래 조금이라도 바뀌었는가?   그렇다. 일생 동안 나는 여러번 잘못했다는 걸 말해야겠다. 나는 독 단적이고 어리석었다. 그러나 내 생각의 흐름은 옛날과 다름이 없 다. 단지 과장 속에서 나는 잘못을 했는데, 왜냐하면 그는, 카프카가 위대한 소설가인 것과 마찬가지로, 위대한 시인이기 때문이다. 미안 하다. 그러나 모순들 - 사람은 삶이 진행해야만 그것들을 보며, 실 수를 한 뒤에야 그걸 안다.   - 많은 사람들이 오늘날 쓰여진 문학작품의 질이 30년 전에 씌여진 작품보다 떨어진다고 느끼고 있는데?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나?   아니, 그렇지 않다. 창조성은 두드러진다고 생각한다. 나는 오늘날 젊은 시인들의 작품에서 일찍기 보지 못한 수많은 새로운 형식들을 본다. 체험에 대한 두려움이 더 이상 없다. 전에는 틀을 깨는 데 대 한 커다란 두려움이 있었으나 인제는 그런 두려움이 없다. 그건 근 사한 일이다.   - 어떻게 해서 당신은 그런 체험의 두려움이 없는가?   두려움이 없어지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내가 젊었을 때 나는 구석에 몰린 쥐처럼 공포로 가득차 있었다. 내가 아주 젊은 시인이 었을 때 나는 비평가들에 의해 우리한테 강요된 모든 법칙들을 깨 는 걸 두려워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모든 젊은 시인들은 등장해서 그들이 하고 싶은 대로 말하고 그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한 다.   - 어떤 에세이에서 당신은, 당신이 어렸을 때 겪은 일로 당신의 시 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고 스스로 생각한 일에 대해서 썼다. 당신네 집 뒷뜰에 담이 있었다. 거기 뚫린 구멍으로 어느날 작은 손 이 당신한테 선물을 - 장난감 양을 하나 들이밀었다. 그리고 당신 은 집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그 구멍으로 당신이 제일 좋아하는 물 건 - 솔방울을 건네주었다.   그래, 그 아이가 나한테 양을, 나무로 만든 양을 들이밀었다   - 그 일이 당신으로 하여금 만일 당신이 어떤 걸 인류에게 주면 당 신은 한결 더 아름다운 걸 받게 된다는 걸 이해하도록 했다고 말했 는데.   당신의 기억력은 대단하다. 그거 옳은 얘기다. 나는 어린 시절의 그 일에서 많은 걸 배웠다. 그 선물의 주고 받음 - 신비한 - 은 무슨 앙금처럼 내 속 깊이 자리잡았다.     * 이 대담은 1966년 6월 12일 뉴욕에서 이루어졌다.          - 스무편의 사랑의 시과 한 편의 절망의 노래 -    [제  목] 네루다에 관한 영화-일 포스티노                                 아름다운 한편의 시...`일 포스티노'       {아우슈비츠 이후에 시는 없다}고 선언했던 한 미학자는 {그렇다면 살아 남은 자는 무엇인가}하는 반문에 발언을 다시 주워담았다. 시란 인생과 동 격이라는 뜻일터.  [일 포스티노]는 살며 사랑하는 기쁨을 아는 자만이 시 인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칠레의 저명한 시인 파블로 네루다(필립 느와레)가 정치적 이유로  추방 당하자 이탈리아 정부가 망명처를 제공한다. 52년 네루다가 햇살이 눈부신 지중해 나폴리의 작은 섬에 도착하자 세계 각지에서 우편물이 날아오기 시 작한다.  우체국장은 네루다 전담 우편 배달원을 고용한다. 그래서 취직하 게 된 마리오(마시모 트로이지)는 글자나 겨우 읽는 가난한 어부의 아들. 마리오는 여자들이 네루다에게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고는 네루다에게  말 을 붙이기 위해 노력한다.     {메타포가 뭐죠?} 마리오가 묻자 네루다는  {하늘이 운다는 것이 무엇이 냐}고 되묻는다. {비가 온다는 소리죠.} 은유가 느낌이라는 것을 배운  어 부의 아들은 마을 주점에서 베아트리체를 본 순간부터 시인을 꿈꾼다.     {꿈의 나비여, 너는 내 영혼을 닮았다. 너는 우수라는 단어를 닮았다.} 네루다의 시를 도용해 연애 편지를 보내고  네루다에게 지원 요청을  하던 마리오는 사랑에 깊이 빠져 자기도 모르게 시인이 되어간다.  {이 섬의 아 름다움에 대해 한마디 해보게.} 네루다가 말하자 마리오는 {베아트리체 루 소}라고 답한다.     이제 그는 시인이 될 자격을 갖춘 셈이다. 지겹게만 느껴졌던 섬 생활도 문득 돌아보니 아름다운 바다와 쏟아질 것 같은 별들로 가득차 있으며  바 람은 절벽을 쓰다듬고 파도는 크고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걸어오는 것이  아 닌가.  마리오는 마침내 베아트리체와 결혼하고 네루다는 본국으로 돌아간 다.  선생님이 떠나자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이 떠난줄 알았던 마리오는 그 를 통해 듣게 된 마을의 소리들을 녹음기에 담는다. 파도, 바람, 그물, 그 리고 베아트리체의 뱃속에 있는 아기의 심장소리.   지금까지 살며 사랑한 자기 세계의 소리를 담은 것이다. 비로소 관객들은 마리오가 진정한  시인 이 되었음을 깨닫는다.  돌아온 네루다가 마리오의 녹음 소리를 들으며 느 끼는 것도 세상의 수많은 마리오가 다 시인이라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살고 싶다}는  정현종의 시처럼 사랑하는 마음이 바로 시라는 것이 다.     마이클 랫포드 감독과 촬영 완료 다음날 지병으로 사망한 마시모 토로이 지는 놀랍게도 이 아름다운 서정시를 설명하지 않고 느끼게 해주는 영화적 감동을 안겨준다.    [제  목] 파블로 네루다의 詩 6편                                                        파업   돌아가지 않는 공장이 이상해 보였다. 공장 속의 고요, 두 행성 사이의 한 가닥 실이 끊어진 듯 기계와 사람 사이의 거리, 물건 만드느라 시간을 쓰던 사람이 손들의 不在, 그리고 일도 소리도 없이 휑한 방들, 사람이 터빈의 空洞들을 저버렸을 때, 그가 불의 팔들을 잡아뜯었을 때, 그리하여 용광로의 내부 기관이 죽었을 때, 바퀴의 눈을 뽑아내어 눈부신 빛이 그 보이지 않는 圓 속에서 꺼졌을 때, 크나큰 에너지의 눈, 힘의 순수한 소용돌이의 눈, 엄청난 눈을 뽑아버렸을 때, 남은 건 의미 없는 강철 조각 더미, 그리고 사람들 없는 상점들 안에 혼자 남은 공기와 쓸쓸한 기름 냄새, 그 파편 튀는 망치질 없으니, 아무것도 없었다. 엔진 덮개 외엔 아무것도 죽어버린 동력의 더미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오염돼 더러운 바다 깊은 데 있는 검은 고래처럼, 갑자기 外界의 쓸쓸함 속에 잠겨버린 산맥처럼.                     수수께끼   바닷가재가 그 금빛 다리로 짜고 있는 게 뭐냐고 당신은 나한테 물었다. 나는 대답한다. 바다가 그걸 알 거라고. 우렁쉥이가 그 투명한 방울(鍾) 속에서 무얼 기다리고 있느냐고 당신은 말한다. 그건 뭘 기다리고 있을까? 나는 말한다. 그건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고, 당신처럼. 당신은 나한테 묻는다. 매크로씨스티스 앨거(해초)는 그 품 속에 누구를 안고 있는냐고. 연구해, 그걸 연구해봐, 어떤 시간에, 내가 아는 어떤 바다에서. 당신은 一角고래의 고약한 송곳니에 대해 묻고, 나는 그 바다의 一角獸가 어떻게 작살을 맞아죽는지 말하는 걸로 대답을 대신한다. 당신은 물총새의 깃에 대해 알고 싶어한다, 남쪽 조수의 맑은 샘에서 몸을 떠는 그 새의. 또는 카드에서 말미잘의 투명한 건축에 관한 의문을 발견하고 나더러 해명하라고 할 모양이지? 당신은 지느러미 가시의 電氣的 성질을 알고 싶어하지? 걸어가면서 부서지는 裝甲 종유석은? 아귀의 돌기, 물 속 깊은 데서 실처럼 뻗어가는 음악은?   바다가 그걸 안다는 걸 나는 당신한테 말하고 싶다, 그 보석상자 속에 들어 있는 생명은 모래처럼 끝이 없고, 셀 수 없으며, 순수하고, 그리고 피빛 포도 사이에 시간은 단단하고 반짝이는 꽃잎을 만들었고, 빛으로 가득찬 해파리를 만들었으며 또 그 마디들을 이어놓았고, 그 음악적인 줄기들을 무한한 眞珠層으로 만들어진 풍요의 뿔에서 떨어져내리게 한다.   나는 사람의 눈을 앞질러간, 그 어둠 속에서 쓸모 없이 된 빈 그물일 뿐, 삼각 기중기, 겁많은 오렌지 球體 위의 經度를 앞질러간 빈 그물,   나는 당신처럼 돌아다닌다, 끝없는 별을 찾으며, 그리고 내 그물 속에서, 밤중에, 나는 벌거숭이로 깨어난다, 단 하나 잡힌 것, 바람 속에서 잡힌 물고기 하나.              망각은 없다 (소나타)   나더러 어디 있었냐고 묻는다면 "어쩌다 보니 그렇게 돼서........."라고 말할밖에 없다 돌들로 어두어진 땅이라든가 살아 흐르느라고 스스로를 망가뜨린 강에 대해 말할밖에; 나는 다만 새들이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알고, 우리 뒤에 멀리 있는 바다에 대해, 또는 울고 있는 내 누이에 대해서만 알고 있다. 어찌하여 그렇게 많은 서로 다른 장소들이, 어찌하여 어떤 날이 다른 날에 융합되는 것일까? 어찌하여 검은 밤이 입 속에 모이는 것일까? 어째서 이 모든 사람들은 죽었나?   나더러 어디서 왔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망가진 것들 애기부터 할밖에 없다, 참 쓰라림도 많은 부엌 세간, 흔히 썩어버린 동물들, 그리고 내 무거운 영혼 애기부터. 만나고 엇갈린 게 기억이 아니다, 망각 속에 잠든 노란 비둘기도; 허나 그런 눈물 젖은 얼굴들, 목에 댄 손가락들, 나뭇잎에서 떨어지는 그런 것; 어떤 날의 어두움은 이미 지나가고, 우리들 자신의 음울한 피로 살찐 어떤 날의 어두움도 지나가고.   보라 제비꽃들, 제비들, 우리가 그다지도 사랑하고 시간과 달가움이 이슬렁거리는 마음 쓴 연하장에서 긴 고리를 볼 수 있었던 것들.   허나 이빨보다 더 깊이 들어가지는 말고, 침묵을 싸고 껍질을 잠식하지도 말자, 왜냐하면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니까; 죽은 사람이 참 많고 붉은 태양이 흔히 갈라놓은 바다 제망이 참 많고, 배들이 치는 머리들이 참 많으며, 키스하며 몸을 감는 손들이 참 많고, 내가 잊고 싶은 게 참 많으니까.         소나타와 파괴들   그렇게도 많은 일을 겪은 뒤에, 그다지도 머나먼 거리를 지나온 뒤에, 어떤 왕국인지도 모르고, 어떤 땅인지도 모르는 채, 가련한 희망을 갖고 돌아다니고, 속이는 동료들, 수상한 꿈과 더불어 돌아다니고 나서, 나는 아직도 내 눈 속에 살아있는 단단함을 사랑한다. 말을 탄 듯이 내 심장이 뛰는 소리를 나는 들으며, 잠든 불과 황폐한 소금을 나는 물어뜯고, 밤이 되어 어둠이 짙고, 그리고 슬픔이 남몰래 움직일 때, 나는 내가 먼 야영자들의 기슭을 망보는 사람이라고 상상한다. 빈약한 방비로 돌아 다니는 여행자, 자라나는 그림자와 떨리는 날개 사이에 끼인, 그리고 돌로 만든 내 팔이 나를 보호하는 여행자.   눈물의 과학중에는 혼란스런 재단이 있으며 , 그리고 내 향기 없는 저녁 명상 속에서, 달이 사는 내 황폐한 침실 속에서, 내 식구인 거미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파괴들 속에서, 나는 내 잃어버린 자아를 사랑하고, 내 흠 있는 성격, 내 능변의 상처, 그리고 내 영원한 상실을 사랑한다. 습기찬 포도는 변색하고, 그 우중충한 물은 아직도 명멸하며, 여전히 우리와 함께 있다, 그리고 보잘 것 없는 유산과 무너질 듯한 집도. 누가 재의 儀式을 거행했는가?   누가 잃어버린 걸 사랑했으며, 누가 마지막 남은 걸 보호했는가? 아버지의 뼈, 그 죽은 배의 목재, 그리고 그 자신의 종말, 그의  날아감, 그의 우울한 힘, 불운했던 그의 神을? 그러니 나는 살아 있지 않은 것과 고통받고 있는 걸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내가 제시하는 비상한 증언 - 잔인할 만큼 효능 있고, 재에다 쓴 증언은 내가 좋아하는 망각의 방식이다, 내가 땅에 붙인 이름, 내 꿈들의 가치, 내 쓸쓸한 눈으로 분배한 끝없는 풍부함, 이 세계가 이어가는 나날들.           나는 기억한다 그 최후의 가을에..........     나는 기억한다 그 최후의 가을에 네가 어땠는지. 너는 회색 베레모였고 존재 전체가 평온했다. 네 눈에서는 저녁 어스름의 熱氣가 싸우고 있었고, 나뭇잎은 네 영혼의 물 속에 떨어지고 있었다.   나팔꽃처럼 내 팔 안에 들 때 네 슬프고 느린 목소리는 나뭇잎이 집어올렸다. 내 갈증이 타고 있는 경악의 모닥불. 내 영혼 위로 굽이치는 히아신스의 부드러운 청색.   나는 느낀다 네 눈이 옮겨가고 가을은 사방 아득한 것을 : 회색 베레모, 새의 목소리, 그리고 내 깊은 욕망이 移住하는 집과도 같고 내 진한 키스의 뜨거운 석탄처럼 떨어지고 있었던 가슴.   배에서 바라보는 하늘. 언덕에서 바라보는 평원 : 너를 생각하면 기억나느니 빛과 연기와 고요한 연못 ! 네 눈 너머로 저녁 어스름은 싸우고 있었고. 가을 마른잎은 네 영혼 속에 맴돌고 있었다.                   한 여자의 육체...   한 여자의 육체, 흰 언덕들, 흰 넓적다리, 네가 내맡길 때, 저는 세계처럼 벌렁 눕는다. 야만인이며 시골사람인 내 몸은 너를 파들어가고 땅 밑에서 아들 하나 뛰어오르게 한다.   나는 터널처럼 외로웠다. 새들은 나한테서 날아갔다. 그리고 밤은 그 막강한 군단으로 나를 엄습했다. 살아남으려고 나는 너를 무기처럼 벼리고 내 활의 화살처럼, 내 投石器의 돌처럼 벼렸다.   허나 인제 복수의 시간이 왔고, 나는 너를 사랑한다. 피부의 육체, 이끼의, 단호한 육체와 갈증나는 밀크! 그리고 네 젖가슴 잔들! 또 放心으로 가득찬 네 눈! 그리고 네 둔덕의 장미들! 또 느리고 슬픈 네 목소리!   내 여자의 육체, 나는 네 경이로움을 통해 살아가리. 내 갈증, 끝없는 욕망, 내 동요하는 길! 영원한 갈증이 흐르는 검은 河床이 흘러내리고, 피로가 흐르며, 그리고 가없는 슬픔이 흐른다.  
186    오은영 동시바구니 댓글:  조회:1962  추천:0  2017-05-15
한 뼘만 더  / 오은영   왼손을 펴고 한 뼘을 재어 봐 10cm도 안 되는 짧은 길이지? 하지만 난, 고만큼 더 멀리 바라볼 테야. 더 넓은 세계를 볼 수 있도록. 그 다음엔 고만큼 더 높게 뛰어 볼 테야. 푸른 하늘이 가까이 내려오도록. 마지막엔 고만큼 마음 속 웅덩이를 깊이 파야지. 내 꿈이 그 안에서 더 크도록. 내가 자라면 고 한 뼘도 따라서 자랄 거잖아? (`9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작)   고르는 손    / 오은영   보이니? 소반 위에 쏟아놓은 콩을 할머니가 한 알 두 알 고르시는 거   메주를 맛있게 쑤려면 흠 없는 콩만 골라야 한대   지구 위에 쏟아져 있는 우리도 누.군.가. 고르고 있을 것 같지 않니?   산토끼랑 달팽이랑     / 오은영   허둥지둥 언덕길 뛰어가던 산토끼가 글쎄 달팽이 보고 혀를 찼대.   너처럼 느릿느릿 가다간 언덕 너머 산비탈 뒤덮은 진달래꽃 잔치 못 보겠다.   달팽이도 글쎄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대!   너처럼 빨리빨리 가다간 제비꽃 낑깽이풀 얼레지 족두리풀 매미꽃 봄까치꽃 애기풀 들바람꽃...... 언덕길 따라 줄줄이 핀 풀꽃 잔치 하나도 못 보겠다.   새똥  오은영   새가 날아가다 똥을 쌌다 나랑 다툰 친구 머리 위에   헤헤 내 대신 하나니미 버 주신 거야   말도 안 끝난는데 내 머리 위에도 찌익 똥을 싸고 간다.   하품하는 시계  /오은영 시계가 자꾸 하품을 해 내가 책상에 앉으면 눈물까지 찔끔거리며 제자리에서 꾸벅꾸벅 졸기까지 하지 몰래 간 게임방에서 게임할 때 개울가에서 첨벙첨벙 가재 잡을 땐 어서 집에 가자 보채며 뺑뺑글 뺑글 잘도 달리더니 말야 "야, 빨리 좀 달려!" 아무리 재촉해도 "제발 빨리 좀 가 줘, 응?" 아무리 사정해도 눈곱만큼씩 움직이는 거 있지? 시계에 꼬리가 있다면 좋겠어 졸고 있을 때 불침 놓게 그럼 꽁지 빠져라 뺑뺑뺑 돌아가겠지? "와, 벌써 공부 다 했네!"   봄비의 발뒤꿈치 / 오은영   봄비는   토도도도 맨발로 산기슭 바위틈까지 뛰어가 선잠깬 앵초꽃 눈꼽 떼어주고   토도도도 맨발로 시냇가 둔덕까지 뛰어가 개구리 두꺼비 늦잠 깨우고   토도도도 맨발로 우리집 텃밭까지 뛰어와 아욱싹 열무싹 나오라며 발 동동 구르느라   쪼그만 뒤꿈치가 온통 흙투성이다.     동그라미 선생님   잠자리는 선생님이야 동그라미만 치는 마음 좋은 선생님이야   빨간펜 들고 돌아다니다 “친구가 약 올려도 잘 참았구나.” 개구쟁이 영석이 머리 위에 동그라미 쳐주고   “동생을 잘 돌봐 주는구나.” 깍쟁이 민지 머리 위에도 동그라미 쳐 줘   동그라미 가득한 시험지를 받고 가을 하늘은 기분 좋아 맑게 맑게 웃고 있어. 고쳐 말했더니 오 은 영     사다리가 전봇대를 보고 놀렸어요. "넌 다리가 하나밖에 없네." 전봇대도 사다리를 보고 놀렸어요. "넌 다리가 두 갠데도 혼자 못 서지?" 사다리가 말을 바꿨어요. "넌 대단해!" 다리가 하난데도 혼자 서잖아!" 전봇대도 고쳐 말햇어요. "네가 더 단단해! 사람들을 높은 데로 이끌어 주잖아."     꼭 집어낸다 오 은 영     진달래꽃은 와르르 쏟아지는 빛살 속에서 "바로 내 빛깔이야!" 분홍빛 꼭 집어내고 기러기는 많고 많은 하늘길 속에서 "바로 이 길이야!" 가야 할 방향 꼭 집어내고 우리 엄마는 단체 사진 속 콩알만한 얼굴들 사이에서 "여기 너 있다!" 나를 꼭 집어 낸다. (2004년 여름『시와 동화』제28호)     꽃이랑 우리랑  오 은 영      꽃들은  물 한 바가지에  고개 들어 활짝 웃고  우리는 칭찬 한 모금에  어깨 펴며  벙긋 웃고    '칭찬 한 모금'은 마음의 따뜻함이다.   인간에게는 따뜻함이 무엇보다 소중하다. (박두순)       나무에 걸터앉은 햇살 오 은 영         햇살이     라이락 나뭇가지에 걸터앉아     팝콘을 튀기고 있어요.     팝, 팝, 팝     가지마다     다닥다닥 피어 있는 팝콘에서     고소한 냄새가 나요.     솔, 솔, 솔     온 마을이     봄 냄새에     젖어 드네요.     흠, 흠, 흠       만유인력의 법칙  오 은 영     '안 떨어질 거야' 얼굴이 노래지도록 안간힘 쓰지만 기어이 열매는  땅으로 끌려가고야 말지. '끝까지 매달릴 거야' 얼굴이 빨개지도록 이 악 물지만  마침내 나뭇잎은 땅으로 떨어지고야 말지. '엄마랑 얘기하나 봐라' 야단맞고 새침하게 토라져 보지만 엄마가 다정하게 부르면 어느새 엄마 무릎 위로 끌려가고야 말지. (제2회 은하수동시문학상 신인상 수상작)    제목부터가 낯설다. 감히 과학 용어를 시어로 쓰다니. 이것이 발상의 전환이다.   고정관념에 매여 있으면 새로운 시는 한 줄도 쓰지 못한다. 시의 소재는 무엇이든 좋다. 다만 시적 육화가 이루어졌느냐가 문제일 뿐이다.   물리학에서 만유인력은 사물이 낙하할 때 지구 중심부를 향해 떨어진다는 원리를 말한다. 1,2연에 그것을 미적으로 잘 드러냈다.   인간 심리에서의 만유인력은 어떤 것인가? 3연에 그것을 심상으로 명쾌히 제시하고 있다.   '어느새 엄마 무릎 위로 끌려가고야 마는' 것이다. 그 만유인력은 어머니의 다정함이다.   인간에게 따뜻함이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걸 시로 표출하고 있다. (박두순)   이 시는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과학의 법칙을 어머니와 자식의 사랑에 비유한 발상이 돋보이며, 뉴턴이 그랬듯이 둘 사이에 '끌려감의 미학'을 시인은 발견한다.   사람들은 물질에 끌려 생명마저 경시하며 살아가는 일이 많다.   그러나 여기에서의 끌려감의 힘은 물질로는 비교할 수 없는 고귀한 사랑이다.   읽노라면 가슴이 따뜻해오는 그러한 시라 할 수 있겠다. (김진광)       미끄럼틀 성적 오 은 영         내 성적은     미끄럼틀 성적.     한 계단     두 계단     힘들게 올라가     꼭대기에는 잠깐만 머물고     밤하늘서     미끄럼 타는 별똥처럼     쏜살같이     바닥으로 떨어지거든.     엄마는 그런 내 성적 보며     혀 끌끌 차지만     난 걱정 안해     미끄럼틀은     한번 떨어지면 끝인     별똥과 다른 걸.     마음만 먹으면     엉덩이 툭툭 털고     다시 올라갈 수 있는 걸. (2004년 가을『한국동시문학』제7호)     뿌리와 나뭇가지  오 은 영          뿌리는     두레박 가득 남실남실     물 담아 올려 보내며     물방울 편지를 띄웁니다.     "빛나는 햇살 보내줘 고마워."     나뭇가지는     빈 두레박에 찰랑찰랑     햇살 채워 내려보내며     햇살 편지를 띄웁니다.     "달콤한 물 보내줘 고마워."       젖 먹는 나무 오 은 영       손발 꽁꽁   마음 꽁꽁   얼어 버린 나무들에게   햇살이   따뜻한 젖 물려요.   "칼바람 속에서   춥고 배고팠을 거야."   꿀꺽꿀꺽   배부르게 먹은 나무들   마음이 녹네요   산수유 마음도   진달래 마음도   노랗게   발갛게 웃네요.       초록 쉼표 오 은 영         우리 동네 느티나무는     커다란     초록 쉼표예요.     떨어지던 빗방울도     초록 잎 의자에 앉아     잠깐 쉬고     떠돌이 채소장수 아저씨도     초록 물든 그늘에     땀방울 잠깐 내려놓고     우리도     학원버스 기다리는 동안     초록빛 너른 품에서     친구랑 어울려 놀지요. (2004년 가을『한국동시문학』)    이 시인은 시에서 제목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잘 알고 있다.   제목부터 독자의 마음을 시 속으로 끌어들인다.   내용도 초록만큼 신선하다. (김)       흉내  오 은 영        뒤뚱뒤뚱 걷는    아기를 보면    오리가 웃겠다    제 흉내 낸다고    뒤뚱뒤뚱 걷는    오리를 보면    아기가 토라지겠다    제 흉내 낸다고     남들이 자기 흉내를 내면 그렇게 유쾌하진 않지요.   하지만 우연찮게도 모습이 같아 보일 때는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이지요.   뒤뚱뒤뚱 걷는 아가의 걸음마가 오리의 모습과 닮아 보인다는 것을, 오은영(1959~) 시인이 아주 귀엽게 표현해 내었군요.   그런데 아가 걸음걸이를 오리가 흉내냈다니 아가가 토라질 만도 하겠지요. (김용희)               오 은 영 1959년 ∼ 서울 출생. 여류. 이화여대 불문과 졸업. 1994년 아동문예 문학상에 동시 '휴전선 넘기' 외 2 편 당선. 199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더 멀리, 더 높게, 더 깊이' 당선. 1999년 대산문화재단 창작지원금 받음. 2003년 제2회 은하수동시문학상 신인상 수상. 동시집 : 우산 쓴 지렁이             넌 그럴 때 없니?    
185    동시 잘 쓰는 법 [ 스크랩] 댓글:  조회:2983  추천:0  2017-05-15
< 시 쓰는 요령 요약 > 리듬이 살아있게 쓴다. 쉽고 간결하며 아름다운 말을 사용한다. 연과 행을 꼭 나누어 써야 한다. 알맞은 비유와 감각적인 표현을 사용한다. 착한 마음으로 솔직하게 쓴다.   동시를 쓰는 방법 ① 글감은 무엇이든 좋습니다.   - 주위의 사물을 관심 있게 바라보며 지나쳐 버리기 쉬운 것에서 글 감을 찾아냅니다. 눈에 보이는 것, 마음을 스쳐 가는 짧은 생각, 늘 그 자리에 있는 자연 속의 일부분도 좋은 글감이 됩니다. 무엇을 쓸 것인가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무엇이든 동시의 재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둡시다. 착하고 고운 마음에서 동시도 아름다운 언어로 표현됩니다. 사물을 바라보는 관찰력과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는 어린이다운 정서 속에서 글감을 찾아냅시다.   ② 거짓없이 솔직한 감정을 표현합니다.   - 동시는 맑고 깨끗한 마음의 글입니다. 억지로 기교를 부리거나 가식적으로 표현한다면 생명을 잃게 됩니다. 어린이의 마음은 때묻지 않은 순수함으로 부끄러움이나 잘못도 정직하게 표현하고, 사물을 바라보는 착한 마음으로 동시를 씁니다.   ③ 남의 글을 흉내내지 말아야 합니다.   - 동시는 짧은 글이기 때문에 자칫하면 다른 사람의 것을 암기했다가 모방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이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될 경우, 습관이 되어서 창작활동에 방해가 됩니다. 스스로 생각해 내어서 나만의 글을 만들어 내야 합니다. 낱말 하나도 신중하게 생각하고, 행 하나, 연 하나에 정성을 다해 자신의 표현을 찾아냅니다.   ④ 리듬이 나타나게 씁니다.   - 동시는 노래에서 비롯된 글입니다. 노래처럼 아름다운 리듬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짧게만 쓰면 된다는 생각에 운율을 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음악처럼 율동을 가지고 노래를 부르듯이 쓰는 동시에서 동시의 참맛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설명하거나 이야기하듯이 쓰여서는 안 되며, 일정한 리듬과 흥겨운 가락이 숨어 있어야 합니다.   ⑤ 연과 행을 바르게 나누어 씁니다.   - 산문과 시의 구별은 연과 행의 구분에 있습니다. 동시는 산문과는 달리 글자와 글자가 효과적으로 이어져야 하며, 행과 연이 구분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의성어나 의태어도 사용하고 반복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같은 말을 자주 사용하게 됩니다. 의미가 비슷한 행들이 모여서 각 연을 이루고, 이 연이 모여 한 편의 동시가 완성됩니다. 제멋대로 나눈 행과 연은 호흡이 끊어지게 되므로 잘 짜 맞추어 나누어야 합니다.   ⑥ 알맞은 비유를 사용합니다.   - 짧은 글 속에서 많은 내용을 표현해야 하므로, 다른 것에 견주어 표현하는 방법을 사용해야 합니다. 비유를 사용하면 읽는 사람이 쉽게 이해할 수 있으며, 효과적으로 시를 표현하게 합니다. 직유는 두 개의 사물을 견주어서 '-같이, -처럼' 을 사용하는 것이며, 은유는 다른 사물로 그 의미를 대신 나타내어 원래의 의미를 감추는 것입니다. 이처럼, 비유를 적절하게 사용하여 아름다운 의미를 찾아냅니다.   ⑦ 감각적인 표현을 사용합니다.   - 동시는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미각의 감각이 모두 동원되어야 합니다. 마음속에 간직한 것이나 사물의 모습을 눈에 보이는 것 외에 더 새롭게 보이게 하기 위해서, 감각을 표현하는 것을 자신의 느낌으로 새롭게 표현합니다.     좋은 동시를 쓰는 요령   ① 다른 사람의 시를 많이 읽어야 합니다.   - 동시를 잘 쓰기 위해서는 윗사람이나 친구들의 좋은 시를 자주 읽고 암기하여 그 의미를 파악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내 나름대로 그 시를 소화시켜서 자기의 감정으로 만들어 둡니다.   ② 자주 써서 정리해 둡니다.   - 동시의 글감이 될만한 것이 있으면 그때마다 써 둡니다. 막상 새롭게 쓰려면 안 되는 경우가 있으니, 계절이 지나기 전에 그 계절의 감상을 써두고, 기쁜 일, 슬픈 일 등을 겪고 난 뒤에 곧바로 동시로 표현합니다. 처음부터 잘 쓰려면 무리를 하게 되어, 좋을 글이 나오지 않습니다. 자주 메모하듯이 시의 구절을 써두면, 꼭 필요할 때 정리하여 좋은 동시를 쓰게 됩니다.   ③ 사물을 바라보는 눈을 가져야 합니다.   - 계절이 변화하면, 온갖 자연의 모습이 바뀌며, 새 학년에 올라가면 친구들의 얼굴도 바뀝니다. 그러한 변화를 자주 찾아내어 자신의 감정으로 만들어 둡니다. 다른 사람이 찾지 못하는 것을 새롭게 발견하는 일이 동시 쓰기에 도움이 됩니다. 남들이 미처 찾아내지 못하는 자기만의 생각을 생동감 있게 표현하면 좋은 동시가 됩니다.   시의여러가지 표현방법 ① 의성법; 소리를 비슷하게 흉내 내어 표현함으로써 그 소리가 직접 들리는 것 같은 느낌을 불러 일으켜 생동감을 더해 주는 방법입니다.   예) 귀뚜라미 귀뚜르르   ② 의태법; 사물의 모습이나 동작을 비슷하게 흉내 내어 표현하는 방법입니다.   예) 반짝반짝 빛나는 별   ③ 의인법; 사람이 아닌 것이 사람처럼 말하고 행동하고 생각하는 것처럼 표현하는 방법입니다. 의인법은 무생물이 생물처럼 살아 움직이는 표현을 하므로 활유법에 속합니다.   예) 부끄러움을 가득 안은 아카시아 꽃   ④ 생략법; 낱말이나 구절을 빼어 버리거나, 간단하게 줄여서 여운을 남기도록 하는 표현법입니다.   예) 네 손을 잡듯…….   ⑤ 반어법; 문장에 나타난 뜻과 실제의 뜻을 서로 반대되게 나타내는 표현법입니다. 예) 아이, 얄미워라. (여기서 '얄밉다'는 귀엽고 예쁘다는 뜻)   ⑥ 역설법; 얼핏 보기에는 이치에 맞지 않는 듯하나, 실제로는 그 속에 진리가 담기도록 표현하는 방법입니다.   예) 극과 극은 서로 통한다.   동시’란 어린이를 위한 시로, 동심(어린이의 마음)의 세계를 표현한 시이다. [동시의 특징] 1. 짧게 줄여 쓴 글이다. 2. 글쓴이의 상상력과 느낌 등이 담겨 있다. 3. 다양한 표현 방법을 사용한다. 예) 빗대어 표현하기, 말의 순서 바꾸기, 사람이 아닌 것을 사람인 것처럼 표현하기, 흉내내는 말 사용하기, 반복되는 말 사용하기 등 4. 연과 행으로 이루어져 있다. [동시 짓는 방법] 1. 시의 글감을 정한다. - 자신이 보고, 듣고, 경험하고, 생각한 것들이 모두 글감이 될 수 있다. 2. 떠오르는 생각이나 느낌을 적는다. - 어떤 내용을 쓸지, 먼저 자유롭게 글로 표현하여 본다. 3. 한 폭의 그림을 그리듯이 재미있는 말로 표현한다. - 빗대어 표현하기, 말의 순서 바꾸기, 사람이 아닌 것을 사람인 것처럼 표현하기, 흉내내는 말 사용하기, 반복되는 말 사용하기 등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해 본다. 4. 솔직하게 쓴다. - 꾸미지 않고 솔직한 느낌과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 살아 있는 시를 쓸 수 있는 방법이다. 5. 시에서는 움직일 수 없는 것이라도 살아 있다고 표현할 수 있다. - 시에 나오는 물건들을 살아 있다고 표현해서 재미있게 나타낸다. 6. 리듬을 살려 써 본다. - 리듬을 살리기 위해서는 글자 수를 일정하게 되풀이 하거나 소리나 모양을 흉내내는 말을 쓸 수 있다.  7. 행과 연으로 나눈다. - 내용과 리듬에 따라 행과 연을 알맞게 나눈다. 8. 다 쓴 다음에는 다시 한 번 살펴본다. - 시를 다 쓴 다음에는 사실과 느낌이 제대로 전달되었는지, 문맥상 잘 어울리지 않는 표현은 없는지 등을 살펴서 고치고 다듬는다. 9. 제목을 붙인다. - 제목은 시를 쓰기 전에 정해도 좋고, 시를 다 쓴 다음에 정해도 좋다. 시의 내용에 가장 잘 어울리는 제목을 정해 본다. [동시를 잘 쓰려면] 1. 무엇이든지 관심을 갖고 바라본다. 2. 꾸미지 말고, 솔직한 마음을 표현한다. 3. 사물을 살아 있는 사람처럼 생각하며 쓴다. 4. 그림을 그리는 마음으로 동시를 쓴다. 5. 사물을 볼 때 새로운 방향에서 보고 느끼도록 한다. 6. 책을 많이 읽고, 동시를 많이 써 본다. 비유법이란 표현하려는 대상이나 내용을 독자가 알기 쉬운 다른 대상이나 내용에 빗대어서 보다 구체적으로 나타내는 표현 방법이다.   [비유법의 목적] 비유법의 목적은 나타내고자 하는 내용을 더욱 정확하고, 참신하고, 힘 있고, 생동감 있게 표현하려는 데에 있다. [비유법의 종류] 1. 직유법 표현하려는 대상과 비슷한 특성을 가진 다른 대상에 직접 빗대어 나타낼 때, ‘~처럼’, ‘~같이’ 등의 말을 사용하여 표현하는 방법이다. 예) 달 달 무슨 달 쟁반 같이 둥근 달 → 달을 쟁반에 직접적으로 빗대어 나타냄. 2. 은유법 표현하려는 대상과 비슷한 특성을 가진 다른 대상을 간접적으로 빗대어 나타낼 때, ‘~은 ~이다.’의 말을 사용하여 표현하는 방법이다. 예) 내 마음은 호수요. → 내 마음을 호수에 간접적으로 빗대어 나타냄. 3. 의인법 사람이 아닌 것을 사람인 것처럼 나타내는 표현 방법이다. 예)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 풀 아래 웃음 짓는 샘물같이 → 햇발과 샘물이 마치 사람인 것처럼 속삭이고 웃음 짓는다고 표현함. 4. 풍유법 속담이나 격언, 우화는 대부분이 풍유법을 사용하는 것으로, 비유하는 말만 드러내 숨은 뜻을 넌지시 나타내는 방법이다. 예) 공든 탑이 무너지랴. → 힘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한 일은 그 결과가 반드시 헛되지 않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5. 대유법 부분으로 전체를 대신하거나, 밀접한 연관이 있는 사물로 대신하여 전체를 표현하는 방법이다. 예) 사람은 빵만으로 살 수 없다. → 여기에서 ‘빵’은 ‘음식’을 대신하여 나타낸 것임. 6. 의성법과 의태법 의성법이란 실감나는 표현을 위하여 사물이 내는 소리를 그대로 흉내내어 표현하는 방법이고, 의태법이란 사물의 모양이나 행동을 그대로 흉내내어 나타내는 표현 방법이다. 예) 시냇물은 졸졸졸졸 / 고기들은 왔다갔다 / 버들가지 한들한들  
184    중고생을 위한 시강의 [스크랩] 댓글:  조회:1951  추천:0  2017-05-15
  카페 >머털도사의 즐거운 교실, 시문관 글 쓴이 정진명   중고생을 위한 시강의  제 1부   학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도 수업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하여 인터넷의 신나는 가상현실 속을 떠도느라 고생하시는 학생 여러분을 생각하면 기성세대로서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과 함께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그런 운명은 여러분들의 몫이지만, 그 운명을 만든 것은 기성세대의 무책임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장래는 여러분의 어깨에 달려있습니다. 그리고 이 글을 읽고 계시는 여러분들의 어깨에는 특별히 한국 시의 장래가 달려있습니다. 시를 사랑하는 학생 여러분에게 혹시 도움이 될까 하여 이 강의를 시작하고자 합니다.   시작하기 전에, 우선 한국에 살면서 시를 자신의 희망으로 생각하는 학생들에게 아주 반가운 소식을 전하고자 합니다. 제가 한 20년 동안 시를 쓰면서 든 생각입니다만, 한국 시의 수준은 다른 인접 갈래와 비교해볼 때 별 볼 일 없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소설과 비교하면 아주 간단합니다. 우리나라의 소설 수준은 정말 대단합니다. 노벨문학상을 받아도 시원찮을 작품들이 아주 많습니다. 박경리의 토지, 조정래의 태백산맥, 황석영의 장길산 같은 작품이 다 그렇지요.    그러나 시에서는 그렇지를 못해서 딱히 우러러 볼 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냐면 시에 뜻을 가진 여러분이 위대한 업적을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있다는 뜻입니다. 정말 좋은, 위대한 작품이 아직 안 나왔으니, 그것을 쓸 수 있는 기회가 여러분에게 남아있는 것입니다. 엘리어트의 황무지 같은 작품을 쓸 수 있는 것은 현재의 시인들이 아니라 여러분의 몫입니다. 그러니 한국에서 시를 자신의 희망으로 택한 여러분은 정말 좋은 기회를 앞에 두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막 시를 시작하려는 여러분에게 이보다 더 반가운 소식이 있을까요?   혹시 소설이나 드라마 같은 분야에 눈독을 들이는 학생들이 이 글을 보고 있다면 장래희망을 얼른 시로 바꾸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더 희망이 있습니다. 물론 그것이 밥벌이가 된다는 보장을 못 하지만, 이상에 한참 불타는 여러분이라면 그 밥벌이 때문에 희망을 버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제가 이 글을 쓴 동기는 간단합니다. 한국 시의 장래는 젊은 학생들에게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학교 현장에서는 시 쓰는 법을 배우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시를 올바르게 읽는 것을 배우는 것도 아닙니다. 여러분이 학교에서 배우는 시는, 평론가들이 이미 정리해놓은 이론을 시에 어거지로 꿰맞추는 작업에 지나지 않습니다. 시는 정서를 전하려고 하는 물건인데, 그것을 토막내어 내부구조를 들여다보고 있으니, 그 정서가 전달될 리가 없지요. 발 앞에서 튀는 개구리를 보자는 것인데, 그것의 안이 궁금하다고 갈기갈기 찢어놓은 꼴입니다. 시험지로 묻는 내용은 바로 그 내부 모양새입니다. 그러나 시는 그런 모양새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읽고 난 직후의 느낌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그것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기 위한 과정이 중요한 것입니다. 사람을 보고 놀라 팔짝 뛰는 개구리의 모습을 보자는 것이지요. 이 자명한 사실을 가르치는 교재도 없고 교사도 없습니다. 입시가 원흉이지요.   시중에 나와있는 창작 안내서를 보면 창작보다는 이론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시 창작에서 이론은 수박 껍데기를 핥는 일에 불과합니다. 수박 맛은 껍데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있거든요. 이론으로 백날 설명한들 단 한 번 쓰도록 유도하는 것만 못합니다. 그런데 시중에는 그런 맛을 느끼게 할 만한 이론서가 없습니다. 이것은 제가 도서관을 뒤져서 내린 결론입니다.    그래서 학생들이 직접 쓴 시를 인용하면서 실제로 창작하고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하기 위해 제가 발벗고 나섰습니다.    글쎄요, 여러분들이 읽으면서 어떤 느낌을 얻을지 모르지만, 한 번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돈을 많이 벌면 저한테 그 돈 좀 나눠주시기 바랍니다. 이 원고를 좀 책으로 내게. 하하하.    학생 여러분, 반갑습니다. 한국 시의 유일한 희망인 여러분에게 저의 작은 선물을 드리고자 합니다.    참고로, 이 연재가 끝나면 여러분의 작품을 직접 봐드릴 예정입니다. 여러분이 평상시에 연습한 작품을 이 사이트의 회원 문단에 올리시면 제가 할 수 있는 한도까지 손봐드리겠습니다. 단, 학생인 경우에만 말이지요. 이미 대가리가 다 커버린 것들은, 가르쳐봤자 소용없습니다. 잔머리만 굴리거든요. 하하하.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1. 군소리     안녕하십니까?   지금부터 학생 여러분을 위한 시 창작 강의를 시작하고자 합니다. 그런데 막상 시작하고자 하니 알아야 할 것이 한둘이 아닙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일은 무엇이든 태도가 중요합니다. 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시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느냐 하는 태도에 따라 시를 쓰는 방법도 방향도 달라집니다. 따라서 시 창작 기술을 얘기하기 전에 그 동안 제가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느낀 몇 가지를 먼저 얘기하고 넘어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래야만 시 창작 강의에서 하는 말의 의미가 더욱 분명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1) 책탕물+1(?)     시 창작 강의라? 이건 물론 시 쓰는 법을 강의한다는 얘깁니다. 그렇기는 한데, 학생들을 상대로 이런 강의를 하자고 결심하기까지는 적잖은 고민이 뒤따랐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시 쓰는 법에 관한 책이라면 이미 많이 나왔는데, 다시 한 번 더 반복해서 책탕물(?)에 또 다시 별 볼 일 없는 책 한 권을 보태어 독자들의 혼란만 가중시키는 것이 아니냐 하는 그런 고민을 했습니다. 책탕물이 뭐냐고요? 흙탕물이라는 말이 있죠? 여기에다가 ‘흙’ 대신 ‘책’을 집어넣은 것입니다.   애써 글을 썼는데 쓸모없는 책이 되면 어쩌나 하는 고민은 책을 쓰는 사람이면 누구나 합니다. 책이란 새로운 정보를 전하는 귀중한 방법인데, 쓸데없는 내용으로 가득 차거나 이미 남들이 다 써놓은 내용을 반복하면 그러잖아도 출판물이 홍수를 이루는 요즘 세상에 정말 처치 곤란한 쓰레기 하나를 더 보태는 일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꽤 오래 고민을 하다가 결국은 쓰기로 결심하고 이렇게 나섰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도서관에 가서 시 창작에 관한 책들을 주욱 훑어보다가, 한 가지 특징을 발견하게 되었지요. 뭐냐면, 지금까지 시에 관한 창작이나 이론을 써낸 책들은 모두 어른들을 위한 책이라는 겁니다. 특히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쓴 안내서나 개론서들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 중학교나 고등학교에서 공부하는 여러분들이 보기에는 다소 벅찬 내용들입니다. 또 창작을 위한 책이라고 하는 것들도 내용을 들여다보면 실제로 시를 쓰는 데는 크게 필요하지 않은 이론들까지 자세하게 나와 있어서 그런 책을 봤다가는 시 쓰는 일을 오히려 더 어려워 할 것 같았습니다. 궁색하지만, 이것이 제가 이 책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이유입니다.   따라서 여기서는 이미 나온 것들의 내용이나 질서를 무시하고 그 동안 제가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느낀 방법과 이론을 중심으로 설명하되, 어떻게 하면 어렵지 않고 재미있게 시를 쓸 수 있는가 하는 방법에 대해 궁리를 해보겠습니다. 물론 그 결과는 이 책의 맨 뒷장을 덮으면서 여러분들이 판단하겠지요.     이왕 나온 김에 한 마디만 더 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지금은 학생들이나 청소년들이 읽을 책이 많아졌습니다. 제 또래의 어른들이 청소년들을 위한 책을 많이 펴냈고, 또 외국의 청소년 서적을 많이 번역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가 자라던 1970년대만 해도 그렇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어릴 때는 책이 귀해서 동화책을 읽기도 어려웠지만, 그나마 동화책을 마칠 때쯤이면 어른들이 읽는 책으로 단계를 뛰어 넘어버렸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는 청소년을 위한 도서가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피노키오나 삼총사들이 나오는 책을 읽다가 갑자기 프로이드 심리학이나 실존철학으로 넘어가 버리는 것입니다. 물론, 그 중간에서 무협지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그러니 중 고등학교 때에 우리 세대가 겪었던 공부의 어려움은 이루다 말로 할 수 없습니다. 이해가 안 가니 포기를 하던가, 아니면 아예 문장 전체를 외워버려서 어느 날 문득 머릿속에서 터득이 되는, 그런 미련 맞은 방법으로 공부를 해야 했습니다. 이런 방법을 ‘독서백편의자현’이라던가요?   그런데 요즘은 청소년을 위한 좋은 책이 많이 나왔습니다. 아마도 이런 고생을 한 세대들이 어른이 되면서 다음 세대에는 이런 고생을 시키지 않고 쉽게 공부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맺은 결실이 아닌가 합니다. 1980년대 중반부터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책이 많이 나오기 시작해서 1990년대는 정말 엄청나게 많은 청소년 도서가 출판되었습니다. 2천 년 대 중반에 접어든 이제는 학생들을 겨냥한 도서가 출판업계의 소득과 생존을 좌우할 만큼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습니다. 여러분을 위해서는 아주 다행한 일이지요.   그러나 아직도 부족한 부분이 많습니다. 실용서 부분에서는 많이 나왔는데, 정작 중요한 인문학 분야, 즉 철학, 문학, 예술, 사회학, 경제학 같은, 여러분들이 듣기만 해도 머리가 딱딱 아픈 분야에서는 아직도 청소년을 위한 도서가 거의 없다시피 한 실정입니다. 이름도 없는 제가 이렇게 발 벗고 나선 것도 바로 이런 사정 때문입니다.   문학 분야에서도 많은 개론서가 나왔습니다만, 대부분 대학 강단에 선 교수님들이 대학생 언니들을 상대로 쓴 것들이어서 여러분 같은 청소년들이 읽을 책은 거의 없는 형편입니다. 그러니 이제 이 책을 따라가면서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여러분의 시각으로 충고를 해주기 바랍니다. 그러면 언제든지 고치겠습니다. 지금 이 책은 저 개인의 명예를 위해서 쓰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에게 필요한 책을 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2) 시대가 변했다     시대가 변했다는 말은 유사 이래 계속 있어온 말입니다. 이집트 피라미드 벽에도 ‘요즘 젊은 애들 싸가지 없다’는 말이 나온다니, 이 말이 진짠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럴 법한 이야기입니다. 이미 있는 것에 익숙한 어른들은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젊은이들의 모험에 늘 의구심을 보내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요즘 시대가 변했다는 말은 다른 그 어느 때의 그 말과는 사뭇 다르다는 생각을 합니다. 정보 매체의 발달 때문입니다. 옛날에는 누구나 편지를 쓰고 책을 읽었습니다. 새로운 정보를 접하는 방법은 책밖에 없었고, 소식을 전하는 방법은 편지가 유일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런 방식을 아날로그라고 한다는 것은 신세대인 여러분이 더 잘 알 것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우리가 자랄 때만 해도 책 읽는 것이 새로운 정보를 얻는 유일한 창구였고, 바로 그 새로운 정보를 얻기 위해서 우리는 학교에 다녔습니다. 우리 시골 마을에 제가 중학교 2학년 때에 처음 전기가 들어왔습니다. 그 후에 텔레비전이 들어왔지요. 그러니까 우리 세대만 해도 젊은 날의 가장 중요한 때를 아날로그 방식으로 세상을 더듬은 것입니다.   바로 이 전기 때문에 세상은 확 뒤바뀌었습니다. 새로운 정보가 활자로 찍혀 나오는 데는 아무리 빨라도 몇 달이 걸립니다. 가장 빠른 것이 신문인데, 신문은 하루가 걸리죠. 그러나 책은 그렇게 빨리 나올 수가 없습니다. 조판과 제본을 하고 그리고 그것을 필요한 사람에게 가져다주는 장사꾼의 손을 거치는 과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책 한 권이 지은이의 손에서 여러분의 손까지 도착하는 데는 아무리 빨라도 보통은 3~6개월을 잡아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떻습니까? 텔레비전에서는 사건이 발생하는 그 즉시 화면을 타고 안방으로 전달됩니다. 시시각각으로 새로운 정보를 전해주는 것이지요. 이 속도는 컴퓨터가 등장하면서 더욱 빨라졌습니다. 더욱이 인터넷이라는 온라인 체계가 일상화되면서 지구 저편의 일까지도 책상 앞에서 금새 알아보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게다가 인터넷은 한쪽에서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쌍방체계라는 것이 앞의 텔레비전과는 또 다른 점입니다. 이러니 몇 달이 걸려서 새로운 정보를 전하는 출판 매체가 사양길에 접어들 수밖에 없는 시대입니다.   텔레비전과 컴퓨터가 세상을 확 바꾸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방식을 바꾸었고, 그로 인해 세상을 사는 방법까지도 바꾸었습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지금 시대가 변했다고 하는 탄식은 옛날에 시대가 변했다고 탄식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디지털 세대가 아날로그 세대와 가장 다른 점은 사고의 방식일 것입니다. 우리 세대는 책으로 사고 한 세대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책으로 사고하기보다는 그 즉시 눈앞에 나타나는 화면을 통해 사태를 파악합니다. 즉 세상을 그림으로 읽어 들인다는 말이지요. 아프리카의 굶주림에 관해서 진단하고 해부한 몇 권의 책보다 그곳에서 찍어 보낸 사진 한 장이 여러분의 행동과 사고를 결정합니다. 우리 세대가 어떻게 하는 것이 이들을 돕는 일일까 고민하는 동안 여러분은 인터넷에서 후원회를 검색하지요. 또 애인이 필요하면 우리 때는 ‘썬데이서울’이라는 주간지의 뒤쪽을 뒤적여서 거기 나온 주소로 편지를 썼는데, 여러분은 인터넷 채팅 방에서 실시간으로 전송되는 사진까지 보며 상대를 고르지요. 생각과 표현, 행동의 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디지털 세대의 이러한 사고방식과 행동은 출판계에도 엄청난 영향을 끼쳤습니다. 골치 아픈 책은 팔리지 않습니다. 팔리는 책들은 그림책이거나 만화책, 그것도 아니면 본격소설이라고 하더라도 중간중간에 그림이 들어가서 눈맛을 시원하게 자극해주는 것들입니다.   그리고 문학보다는 영화나 드라마를 좋아합니다. 좋아하는 정도를 넘어서 스스로 영화나 드라마에 미쳐 그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하기 싫어하는 폐인임을 자처합니다. 2003년도에 라는 미니 시리즈 드라마에 미친 사람이라는 이라는 말이 그 효시이지요.   그러니 이런 열광이 문학에 큰 영향을 미치리라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시인들이 내는 시집을 보지 않고 소설을 읽지 않습니다. 소설은 머잖아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질 것이기 때문에 그 때까지 기다립니다. 예술을 생각하는 기준과 가치가 달라진 것입니다. 우리 때는 시인을 아주 고상한 예술가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감수성이 조금 있는 학생들은 예외 없이 문학청년의 시절을 겪었습니다. 어쩌다가 학교에서 발행하는 교지나 청소년 잡지에 자신의 작품이 실리기라도 하면 천하를 다 얻은 듯이 자랑을 하고 자부심을 느꼈지요. 주변의 친구들도 그러는 그에게 존경의 눈길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관심 분야가 다르다 보니 이러한 세태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지금은 누구나 탤런트나 영화배우, 또는 슈퍼모델이 되는 것을 꿈꿉니다. 그러니 얼굴을 고치면서까지 그 꿈을 이루려고 하는 것입니다. 모델이나 탤런트를 양성하는 기관이 생기고 가수를 배출하는 전문회사가 생겨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런 영향은 시나 문학에서 독자의 감소로 나타납니다. 영화판으로 젊은이들의 관심이 몰리자 문학판에는 텅 비어버리는 공동화 현상이 나타나는 겁니다. 그래서 요새 무슨 문학상이나 신인상 같은 데 응모해오는 사람들의 연령을 보면 대부분 30대 후반이라고 합니다. 세월과 세태의 변화를 한 눈에 보여주는 일이지요.   그러나 아무리 시대가 그렇다고 해도 글의 중요성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진정한 사고는 잠시 스쳐가는 영상 몇 컷이 아니라 머릿속에 새겨진 깊은 이해력과 그러한 영상을 제공하는 현실세계 속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조리 있는 사고는 대부분 글을 읽고 쓰는 능력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이것은 시대가 달라져도 변하지 않는 부분입니다.     지금까지 논의한 바에 의하면 시대의 변화 때문에 시의 독자가 감소한다는 식으로 말했습니다. 그러나 꼭 그렇지만은 않은 면도 있습니다. 어차피 젊은이들은 학교를 다니면서 문학을 배웁니다. 하기 싫더라도 거쳐야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런데 그런 현실에 몸담고 있으면서 그 현실을 잠시 거쳐야 할 곳으로 생각하지 내가 앞으로 미래를 걸고 한 번쯤 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까지 생각하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새로운 시대의 탓만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지금 문학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에게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 시대에는 문학을 너무 엄숙한 분위기로 했습니다. 무슨 상이라도 타면 마치 옛날에 과거 급제한 사람 모양으로 대접을 했고, 또 주변의 분위기가 그렇게 돌아갔습니다. 바로 이 엄숙주의가 젊은이들의 발랄한 사고를 용납하지 못한 측면이 있습니다.   사람은 무엇이든 재미가 있어야 거기에 오래 매달립니다. 그런데 엄숙한 분위기에서는 재미를 느끼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니 재미없는 곳에 누가 오래 머무르겠습니까? 오늘날 디지털 시대를 맞이해서 문학판이 이런 위기에 직면하게 된 것은 문인들 스스로 자초한 면도 없지 않습니다.   시도 재미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교과서에서 여러분들이 배운 시, 또는 그 시를 배운 시간을 돌이켜보십시오. 과연 재미있었는지요? 아마도 그렇다고 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아직도 국어시간의 시 공부는 지루합니다. 그런 분위기가 여러분들을 시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요인이지요. 이 지루함의 원인은 앞으로 이 책 곳곳에서 지적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각과 어떻게 같고 다른지 천천히 따라오면서 감상해보기 바랍니다 3) 학생도 변했다     앞서 시대가 변했다는 말을 했습니다. 변한 그 시대에 따라서 학생들도 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요. 그런데 그 변화의 조짐이 심상찮다는 것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학교에서 문예반 학생을 지도하다 보면 여러 가지 어려움에 맞닥뜨립니다. 제일 골치 아픈 것이 관청에서 주관하는 대회에 학생들을 참가시켜달라는 주문입니다. 문예반 학생들을 지도하면 그런 공문이 전부 넘어와서 학생들을 대회에 내보내라는 은근한 압력이 들어옵니다. 그러다가 학생들이 대상이나 금상이라도 타면 학교에서 전교생이 보는 가운데 시상을 하지요.   그러다 보니 그런 대회에는 일종의 형식이 있습니다. 예컨대 민족의 비극인 6.25을 소재로 한 글짓기 대회가 열리면 할아버지의 얘기를 꺼내서 당시의 아픔을 회상한 다음 다시는 그런 비극이 없도록 힘써야겠다는 식의 수필을 쓰고 시를 짓지요. 그러면 이따금 운이 좋아서 상이 따라옵니다.   그러나 바로 그런 행사가 학생들의 문예활동을 망가뜨리는 원인이 된다는 것을 주최 측에서도 내보내는 학교 측에서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왜 학생들의 문예의식을 망가뜨리는 일이냐 하면, 그런 대회에 참가하면서 상 타기 위한 거짓말을 배우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문학은 일종의 거짓이 조금씩 다 들어있다는 점에서 그것을 또 합리화합니다. 그렇게 해서 몇 차례 상을 타면 그 학생은 거짓말쟁이가 되고 맙니다. 그리고 거짓말을 통해서 사람을 감동시키는 방법을 배웁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양치기 소년의 거짓부리와 같은 것이어서 나중에는 문학이 일종의 거짓을 통해 ‘진실’을 전하는 것이라는 가장 중요한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점차 문학을 잊고 맙니다. 진실하지 않은 것에 평생을 매달린다는 것은 거짓입니다. 금방 지루해지고 또 남들이 봐주는 재미도 없으면 스스로 그 판을 떠납니다.   바로 이런 점을 중고등학교의 문예반에서 차단하는 것이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덕목입니다. 그리고 생활 속에서 우러나는 느낌을 글로 적은 것이 문학임을 깨닫는 것이 청소년 때의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시를 보는 시각과 시를 평하는 태도를 기르는 것입니다. 교과서에서 배우는 것은 대개 시를 감상하는 법입니다. 창작하는 법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래서 1992년에 제천상고라는 학교에서 문예반을 지도할 적에, 이것을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학생들에게 몇 가지를 주문했습니다.   먼저 본받을 만한 좋은 시집 목록을 30여권 골라주면서 구해 읽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학생들 개개인이 이 많은 시집을 사려면 용돈이 바닥날 것이니, 한 학생 당 한두 권씩 사서 동아리에 기증하고, 그렇게 해서 모은 시집을 서로 돌려서 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쓴 시를 가져와서 친구들과 돌려 읽으며 잘못 된 곳과 잘된 곳을 검토하는 법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시 창작에 도움이 될 만한 이론서를 쉬운 것으로 골라서 소개했습니다.   다행히도 당시 학생들은 잘 따라 주었습니다. 매주 토요일 날 학교에 남아서 학생들 스스로 창작한 시를 돌려 읽으며 잘못된 부분과 잘 된 부분을 지적하며 몇 달을 지내니, 학생들이 시를 보는 안목과 시 쓰는 능력이 눈에 띄게 달라졌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해마다 한 번씩 시민회관을 빌려서 시화전을 했습니다.   그때 학생들의 관심은 자신의 고민과 생활의 느낌을 시로 쓰는 것이었습니다. 상을 타겠다던가 하는 다른 욕심은 있을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는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다가 2000년도에 대도시의 한 인문계고등학교로 전근을 왔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의 부탁으로 이미 있던 문예반을 기꺼이 맡았습니다. 그리고는 회장을 불러서 앞서 제천상고의 학생들에게 주문했던 것을 그대로 다시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1달이 가고 2달이 가도록 어떻게 했다는 소식이 없습니다. 그래서 회장을 불러서 사정을 알아보았더니, 내가 요구한 사항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학과 공부 때문에 바쁘고 시간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학생들의 태도에 어이가 없었습니다. 속으로 굉장히 실망을 했지요. 과연 시대가 변했다더니 애들이 어쩜 이 지경이 되었단 말인가 하고요.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새롭고 중요한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것은 학생들이 처한 환경이 10년 전과는 그 근본부터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즉 대학에서 내신 성적을 반영하여 수시로 신입생을 뽑는데, 그 내신 점수에 영향을 주는 것 가운데 하나가 전국 고교생들이 참여하는 백일장의 수상 경력이었던 것입니다. 각 대학에서 주최하는 백일장에서 대상을 타면 입학할 때 혜택을 주는 제도가 그 10년 사이에 생겨난 것입니다. 그러니까 학생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그 상을 한 번 타보려고 발버둥을 치는 것이고, 관심이 글쓰는 즐거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상장에 온통 쏠려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그 학생들에게는 원론에 가까운 나의 요구가 오히려 이상했던 것이지요. 문학의 기초를 배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당장 몇 달 후에 벌어질 백일장에서 상 타는 것이 더 중요했던 것입니다. 그런 것을 동상이몽이라고 하지요? 한 침대에서 잠자면서도 서로 다른 꿈을 꾼다는 것이 이것입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시 쓰는 태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인데, 학생들은 상 타는 방법에만 관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 얼마나 황당하고 우스운 일입니까?   그런데 학생들의 이 같은 그릇된 열망을 채워줄 선생님조차도 일선 학교에는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 또 문제입니다. 대부분의 국어선생님들도 문학을 다 배워서 알고 있지만, 창작하는 법은 따로 배우지를 않습니다. 대학에서 가르쳐주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창작은 순전히 혼자서 궁리해야 할 몫이지요. 그러나 장래에 국어 교사를 하겠다고 해서 창작에 나서는 분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창작하는 분들은 정말 가뭄에 콩 나듯 한 일입니다.   그래서 정말 일선에서 애 타는 학생들을 위해서 누군가 그에 필요한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을 했고 몇 년을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기에 재주 둔한 줄도 모르고 이렇게 나선 것입니다.     각 대학에서 주최하는 문학상에는 나름대로 다 의도가 있습니다. 인재를 확보하기 위한 방편이겠지요. 그러나 그러한 행사가 학생들에게 안겨주는 좌절감은 결코 만만히 볼 것이 아닙니다. 대상은 한 명한테 돌아가는데 거기에 참가하는 학생들은 1천명에 육박하거든요. 그러니 그 한 명 때문에 나머지 1천여 명이 재주 없는 학생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백일장의 맹점입니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이 관청에서 주관하는 대회가 갖는 나쁜 점을 백일장 역시 그대로 안고 있을 수밖에 없지요.   백일장은 시를 삶의 표현으로 놔두지 않고 이벤트로 만들어서 극소수에게 엄청난 영광을 돌리고는 많은 사람들을 소외시키는 결과를 낳습니다. 그런데도 각 대학에서는 자신들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 그런 일을 계속 강행하고 있지요. 그렇다고 해서 나쁜 일이라고만 단정 짓기도 어렵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그런 백일장에 응모하는 것을 보면 학생들의 관심을 모으게 하는 한 요인으로 작용하니까요.   그러나 먼 장래를 내다보고서 말하자면 그런 기획성 행사는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많습니다. 생활 속에서 자연히 우러나서 시가 되어야지 어떤 행사를 염두에 두고 거기에 맞는 작전으로 시를 쓰는 것은, 오래 우려서 국물을 내려고 하지 않고 조미료를 부어서 맛을 내려는 것과 같습니다. 입맛을 확 당길지는 몰라도 몸에 좋을 리는 없겠지요.      새 학교에 와서 이런 상황을 접하게 되자, 안타깝지만, 학생들이 시를 잘 쓰는 법을 가르치지 않을 수도 없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천천히 가는 것이 옳은 길이라고 해서 빨리 가려는 학생들에게 달리는 방법을 아예 안 가르쳐주는 것도 역시 문제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나름대로 학생들이 빨리 시 잘 쓰는 방법을 연구한 것이 이 책의 목적이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서둘러서 좋을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바쁘더라도 원칙부터 해나가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은 이 세상 살아가는 모든 분야에서 법칙으로 통하는 것입니다. 시 창작이라고 해서 그 원칙에서 벗어날 리는 없습니다.  4)어른들의 시가 재미없는 사연은?     2004년 10월부터 1년 동안 시집을 1,000여 권 읽었습니다. 손에 닥치는 대로 다 읽은 것입니다. 옛날에 읽었던 것은 물론이고 최근에 나온 것까지 손에 잡히는 대로 다 읽었습니다. 학교 도서관은 물론 시립 도서관, 그리고 시집을 갖고 있는 벗들이 소장한 것까지 빌려다가 모조리 읽었습니다.   이런 무모한 짓을 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고 또 그것은 사사로운 것이어서 굳이 밝히지는 않겠습니다만, 시집 1천 권을 읽고서 한 가지 아주 중요한 사실을 알았습니다. 시인들은 거대담론에 집착해있다는 것과, 그 결과 시에서 가장 중요한 시 읽기의 즐거움을 시인들의 시집에서는 찾기 힘들다는 것이었습니다.   거대담론이란 커다란 주제라는 말입니다. 즉 민족의 장래, 국가의 통일, 이 시대 문명의 폐해나 방향, 자본주의가 인간의 삶에 끼치는 영향, 생명과 환경……, 이런 것들 말입니다. 시인들의 시와 시집에서는 이런 커다란 주제들이 꿈틀거리고 있습니다. 이런 커다란 주제를 말하면서 익살스럽고 재미있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뭐, 하자면 못할 것도 없겠지만, 그게 쉽지는 않겠지요. 그러니까 시인들은 너무 진지한 주제를 진지하게 이야기하느라고 시가 원래부터 갖고 있는 놀이와 재미의 속성을 너무나 많이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시가 진지하고 무겁고 부담 가는 주제를 다루게 되면서 그런 분위기를 싫어하는 보통 사람들은 저절로 시로부터 멀어진 것입니다. 그러니 인문학의 위기네 시의 몰락이네 하면서, 독자를 탓할 것도 없는 일이지요.     수수께끼 하나 내겠습니다. 한 번 맞춰보기 바랍니다.       약 오르면 빨개지는 것은?   답은 뭐지요? 답은, 고추입니다. 썰렁하다구요? 썰렁하지요. 하지만 우리가 자라던 시대에는 이런 수수께끼를 들으며 낄낄거렸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요. 이와 똑같은 수수께끼는 아니겠지만, 말장난으로 이루어진 수수께끼나 삼행시 짓기를 하면서 연인들끼리 혹은 친구들끼리 아주 재미있게 보내는 것을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재미는 우리 시대나 여러분의 시대만의 일이 아닙니다. 사람이 살아있는 한 이런 말장난은 우리의 생활을 재미있게 하고 삶을 풍요롭게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너무 심하면 실없는 사람이 되겠지요? 그리고 삶을 허망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예컨대, 제가 한 학생을 혼내려고 불러서 ‘너 도대체 몇 살이야?’ 그랬더니 ‘게맛살!’이라고 하더군요. 당연히 화가 치밀어서 종아리를 때렸지요. 농담도 좋지만, 상황을 구별하지 않으면 큰 오해를 사기도 하는 것입니다. 말장난은 함부로 할 게 못 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런 말장난이 꼭 필요한 분야가 바로 문학이고, 그 중에서도 시입니다. 시를 읽으면서 내용 때문에 감동하기도 하지만, 시에서 말이 만드는 재미를 또한 놓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은 살면서 먹고사는 문제로 인생의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먹고사는 일에 허덕이다 보면 어느덧 세월은 가고 살 만해지면 이미 나이가 들어서 옛날 청춘 시절에 꿈꾸었던 것들은 아득해져버립니다. 그러다 보니 삶의 모든 문제가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그러다 보니 시도 이런 문제를 자꾸 다루게 됩니다. 이런 커다란 문제들은 인생사의 중요한 일이기에 시에서도 중요하게 다룹니다. 통일이라든지 민족의 장래라든지 문명 비판이라든지 환경 문제라든지, 하는 모든 것들이 시의 중요한 주제가 됩니다. 지금 제가 읽은 1,000권의 시집 대부분이 이런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무겁습니다.   그렇지만, 시가 다루어야 할 것이 꼭 그런 것이어야만 할까요?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시는 우리가 우리 생활의 느낌을 표현하는 문학의 갈래입니다. 그러니 거기에는 우리 같은 소심한 사람들의 애환과 고민, 기쁨 같은 것이 있어야 하고, 또 그런 것을 우리 스스로 표현할 줄 알아야 하며, 그런 표현을 받아주고 발표해줄 수 있는 어떤 기관이나 잡지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요? 여러분들이 고민하는 바를 시로 쓸 수 있습니까? 일기장에 써놓은 시를 발표할 잡지가 여러분 주변에 있던가요? 아마도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시의 위기는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지금의 시는 무언가 큰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교과서에서 배운 시도, 서점에서 사보는 기성 시인들의 시도 모두 큰 주제에 집착해서 시가 가진 가볍고 재미있는 부분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이런 부분을 간과하고 자꾸 무거운 주제를 다룬 시들만을 좋다고 강요하다보니 그런 것에 별로 관심이 없이 사는 많은 사람들이 시를 싫어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바로 이 지점입니다. 시가 너무 무겁고 큰 것만을 다루지 않고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작은 느낌과 감정을 그때그때 표현할 수 있는 그런 것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 그 방법에 대해서 논하고 있는 것이구요.   기성 시인들이 쓴 시를 읽으면 여러분은 당장 부끄러움을 느낄 것입니다. 내가 쓰고 싶은 내용은 아주 작은 것인데, 시인들이 쓴 시는 시란 큰 것을 노래하는 것이라는, 보이지 않는 압력으로 작용하니까요.   따라서 여러분은 우선 그런 생각부터 벗어 던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시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느끼는 아주 작은 감정들을 노래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생각이 좀 더 깊어지고 시 쓰는 실력이 나아지면 그때 가서 좀 더 큰 주제를 노래해도 된다. 지금은 말장난이라도 좋으니 글을 쓰고 말을 꾸미는 재미에 빠져서 시의 맛을 느끼는 일부터 하자. 시는 놀이의 일종이다.   이것이 앞으로 시를 즐기면서 평생을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여러분들은 남의 눈치 보지 말고 이와 같은 생각으로 시를 가볍게 생각하고 매일 부딪치는 감정을 일기 쓰듯 쓰기 바랍니다. 시라는 거 별거 아닙니다. 엄청난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맛있는 사탕 같은 것입니다. 쓰디쓴 것을 억지로 삼키려고 할 것 없습니다. 맛있는 것부터 핥아먹기 바랍니다. 지금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도 그것이고, 마침내는 그 방법을 알려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 책의 끝까지 따라가면 저절로 그렇게 될 것입니다.   5) 엉뚱함은 예술의 원천     혹시 평소에 엉뚱한 생각을 하거나 행동을 해서 어른들한테 혼난 적은 없나요? 아마 있을 것입니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많고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 것이 많은 청소년 시절에 그런 적이 없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하지요. 그런 중에도 유난히 엉뚱한 짓을 많이 해서 혼나는 사람이 있지요? 있을 것입니다. 많은 학생들이 거기에 해당할 것이고, 말과 행동은 안 해도 주변에서 혼나는 친구들을 보면서 혼내는 어른들에 대한 불만을 속으로 삭인 경우도 많았을 것입니다.   이 엉뚱함은 일상생활에서 많은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여러분을 둘러싼 환경은 이미 안정된 모습을 하고 있고, 그 안정된 모습이란 가장 필요한 것만을 해서 불필요한 낭비를 없애는 방향으로 오랜 세월 발전해온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런 생각 없이 어른들의 지시를 따르는 사람들이 빨리 성공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이미 있는 질서와 환경이 장애가 되고 걸림돌이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럴 경우에는 그 장애를 뚫어야만 새로운 세계를 보게 됩니다. 젊은이들 가운데 새로운 길을 뚫어서 성공하는 경우가 바로 그런 경우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예술에서는 그 엉뚱함이 생명입니다. 엉뚱한 생각을 하는 것이 가장 훌륭한 예술을 성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회는 경제성을 본능에 가깝게 추구하지만 인간의 내면에는 경제성과는 상관없이 놀고자 하는 욕망도 있습니다. 노는 데는 경제성의 원리가 적용되지 않지요. 바로 놀고자 하는 이 욕망을 높은 차원으로 승화시킨 것이 예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경제성의 원칙에서 벗어나는 엉뚱한 생각과 행동이 정말로 즐거움을 주는 원천이 되곤 합니다.   그러니 평소에 엉뚱한 생각을 한다고 혼나는 학생들은 절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술 쪽으로 방향을 바꾸십시오. 그 엉뚱함을 예술 쪽에서 살리면 칭찬 받을 수 있고,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시에서는 이 엉뚱함이 어떻게 작용하는가 하는 것을 한 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봄에 일제히 피는 꽃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듭니까? 아름답지요? 당연하지요. 봄에 피는 꽃의 특징은 잎새보다 먼저 핀다는 것입니다. 잎이 피기도 전에 꽃이 피고, 꽃이 지면서 잎사귀가 나지요.   그런데 어느 날 저는 봄꽃을 보면서 엉뚱한 생각을 했습니다. 가지 끝에서 밀려나오는 꽃이 꼭 똥으로 보이는 겁니다. 꽃은 나무가 누는 똥이다. 하하하. 웃기지요? 만약에 여러분이 저녁 밥상에서 아빠한데     아빠, 오늘 꽃피는 것 보니까 꼭 똥 싸는 것 같애.   라고 하면 어떨까요? 아마도 그 아빠가 예술가가 아니라면 좋은 소리를 듣지는 못할 것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지요.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이라는 사람이 다른 선생님이나 교장 선생님한테     어째 꽃이 똥으로 보이네요.   라고 한다면, 겉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속으로는,     미친 눔!   할 겁니다. 그렇지 않겠어요? 그게 궁금하거든 옆 친구한테 한 번 그렇게 말해 보세요. 그 반응을 보면 알겠지요.   그런데도 그 발상이 너무 아까워서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궁리 끝에 저는 이것을 시로 쓰기로 했습니다. 한 번 보겠습니다.     변비   뛰어가 앉으면 나오지 않고 멫 방울 힘겹게 떨구고 나와도 뒤끝이 영 개운치 못한 내가 변비 환자라는 사실을 안 것은 요 며칠 전의 일이다. 그러고 보니 창밖의 꽃나무들도 심한 변비를 앓고 있구나. 겨우내 참고 참았던 것을 밀어내느라 목련, 개나리, 진달래, 버들강아지들 바야흐로 봄볕 아래서 끙끙거리고 있다. 힘겹게 밀려나온 꽃이 지자 파릇한 화장지까지 한 장씩 톡톡 밀어낸다.     여러분이 보기에 어떤가요? 혼날 짓인가요? 그렇지는 않겠지요. 이 작품을 보고 시가 아니라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아무리 유명한 시인이라고 하더라도 그렇습니다. 분명히 시지요.   이 시를 써 가지고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읽어줬습니다. 그랬더니 학생들이 배꼽을 잡고 웃더군요. 그러면서 ‘뭐, 그런 시가 있담?’ 하는 반응이었습니다. 하지만 재미있지 않습니까? 바로 그 재미로 학생들은 시에 한 발 더 가깝게 다가간 것입니다.   물론 저는 지금 제가 시를 잘 썼다고 자랑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시 중에는 이런 시, 이렇게 쓰는 시도 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 꺼낸 것입니다. 이 시가 잘 쓴 것인지 못 쓴 것인지는 보는 사람에 따라서 각기 다를 것입니다. 사물을 인식하는 시각의 신선함으로 보면 잘 썼다고 할 것이고, 지금 유행하는 시집들의 무거운 분위기로 보면 시가 무슨 장난이냐고 힐책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그런 말에 개의치 않습니다. 재미없는 시는 그 시가 재미없는 것을 떠나서 시를 독자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마침내는 스스로 무덤을 파는 결과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는 것보다는 차라리 재미있는 모습으로라도 독자의 곁에 머무는 것이 더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한 편 더 보겠습니다. 봄에 벚꽃 피는 것을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벚꽃은 어느 날 갑자기 확 피었다가 불과 열흘을 못 버티고 순식간에 져버리지요. 불어오는 봄바람에 하얀 꽃잎이 눈발처럼 날릴 때는 황홀하기까지 합니다. 이렇게 확 피었다가 급히 지는 꽃의 특성 때문에 일본 사람들은 그 꽃을 가장 좋아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자신들의 민족성에 갖다 붙입니다만, 꽃에서 국수주의의 냄새를 읽을 필요는 없겠지요. 어쨌거나 여러분은 이런 벚꽃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들던가요? 아무 생각 없다구요? 하하하.   무슨 폭발이라도 하듯이 피는 벚꽃을 보고, 어느 날 저는 갑자기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저거, 무슨 뻥튀기 장사가 튀밥 튀겨내는 것 같다.     쌀알을 뻥튀기면 하얀 튀밥이 되어 나오지요. 벚꽃 피는 모양이 그렇게 보인 겁니다. 여러분 같으면 어떨까요? 그래도 이번에는 아까 그 똥 연상보다는 나으니, 아빠한테 혼나는 일은 없겠지요. 그렇지만 엉뚱하다는 핀잔은 면키 어려울 것입니다. 엉뚱하기는 하지만 버릴 수 없는 아주 소중한 발상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시를 썼습니다. 다음이 그겁니다.     벚꽃   4월의 봄바람에 가지를 흔드는 벚나무 뿌리 밑에서는 뻥튀기 장사가 기계를 돌리고 있는 것 같다. 맹꽁이처럼 똥똥한 몸통을 스스로 풀무질한 장작불 위에서 시커먼 숯검댕이가 되도록 궁굴리며 고압계 바늘이 허용하는 눈금까지 가까스로 참았다가 손가락으로 꼭 막은 우리들 어린 날의 귓바퀴를 뻥! 하고 때리면 하얀 콧김과 함께 헤벌어진 검정 아가리로 와르르르르 쏟아지던 튀밥과 강냉이들, 지금은 벚나무 가지에서 정신없이 터지고 있다. 뒤쫓아온 우리를 동구밖에 세워두고 황톳길로 돌아간 그 뻥튀기 아저씨일까? 우주의 손잡이를 잡고 지구를 빙글빙글 돌려 겨우내 땅속에서 풀무질 하다가 뜸 잘 들었다는 표시로 아지랑이가 오르면 앞이빨처럼 하얀 강냉이들이 폭발음을 내며 검은 가지마다 걷잡을 수 없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계절이 뻥틀 자루를 잡고 시간을 돌리는 벚나무 밑을 지나노라면 이 가지에서 뻥 저 가지에서 뻥 뻥뻐벙뻥 뻥뻥 뻐버버버벙뻥 뻥뻥 강냉이들 터지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귓구멍을 활짝 열어놓는다.     정신없이 터지는 벚꽃들을 보며 강냉이를 먹던 옛날의 추억을 떠올린 것이지요.   자, 이렇게 설명해놓으니까 어떤가요? 엉뚱함도 아주 버릴 것만은 아니죠? 엉뚱함도 쓸모가 있는 겁니다. 사람의 행동은 버릴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가 사람을 이해하는 데 아주 중요한 구실을 합니다. 여러분들의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떠오르는 공상이나 엉뚱함을 굳이 없애려 하지 말고 이렇게 예술의 원천으로 활용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이런 엉뚱함이 너무 심해서 일상생활을 도저히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 곤란합니다. 그러나 예술의 열정은 자기 뜻대로 되는 게 아니어서 많은 유명한 예술가들이 정신병원에서 생애를 마치는 경우도 많습니다. 짜라투스투라로 유명한 니체가 그랬고, 함형수도 정신질환에 시달리다 삶을 마감했고, 김소월도 말년에 앓던 우울증을 아편으로 달래다가 죽음을 맞습니다. 엉뚱함의 열정이 삶을 망가뜨린 경우에 해당합니다만, 그런 엉뚱함이 이룬 예술의 성취 때문에 그 뒤를 살아가는 우리는 높은 정신의 경지를 감상하고 사는 것이지요. 개인으로서는 불행이지만, 그 뒤의 인류에게는 큰 도움이 된 것입니다. 시인이 된다는 것.     우리가 시인, 시인, 하는데 그 시인이 무엇입니까? 이렇게 물으면 여러분은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거나, 아니면 단순하게, ‘시 쓰는 사람’이라고 답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시인은 시를 쓰는 사람에게 붙이는 호칭입니다.   그렇다면 한 번 더 묻겠습니다. 시라고는 모르는 어떤 직장인이 술을 마시고 와서 저녁에 시를 썼습니다. 그 시는 일기장 속에 들어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시인인가요? 시인이 아닌가요?   어때요? 갑갑하지요? 앞의 말에 의하면 시인은 시를 쓰는 사람이니 시인이 분명하고, 그렇다고 시 한 편 썼다고 시인이라고 부를 수도 없고……. 이를 어쩌지요?   자, 우리가 보통 시인이라고 부르는 사람과 어쩌다 시를 한 편 쓴 직장인의 사이에는 이상한 차이가 있습니다. 이제부터 그 이상한 차이에 대해서 설명하려고 장황하게 서두를 꺼낸 것입니다.     1) 시인이 되는 방법     앞서 말한 대로 시를 쓰는 모든 사람은 다 시인입니다. 당연한 일이지요. 그러나 보통 앞서 시 한 편을 쓴 직장인에 대해서는 시인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된 것은 우리 사회의 관습 때문입니다.   우리가 시인이라고 부르는 일군의 사람들은 시 쓰는 것을 자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로 여깁니다. 그러나 생각만 그렇게 한다고 해서 시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시인이 되는 데는 일정한 절차가 있습니다. 그 절차란 이른바 을 말합니다. 등단이란 무대에 오른다는 뜻입니다. 시인으로 등단한다는 말은 시인으로 활동하는 시인들의 무대에 오른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 시인이라는 무대에서 활동하도록 해주는 어떤 단체나 조직이 있다는 뜻이겠지요? 맞습니다. 우리가 시인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보통사람들과는 다릅니다. 일정한 절차를 거쳐서 시인이라는 인정을 누군가한테서 받은 사람들이고, 그들에게 그런 자격을 인정해주는 곳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그런 일을 할까요?     보통은 문학잡지사에서 그런 일을 합니다. 잡지사에서는 문학작품을 싣는 잡지를 냅니다. 보통은 정기간행물로 내지요. 거기에는 문학 전반을 다루는 잡지도 있고, 시만을 다루는 시 전문지도 있습니다. 이런 잡지들이 출판되면 그런 잡지를 사서 읽는 사람이 생깁니다. 문학에, 또는 시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겠지요. 그들 가운데 시를 쓰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잡지사에서는 추천해주겠다는 광고를 합니다. 그리고는 작품을 받아서 그 중에서 좋은 작품을 쓰는 사람이 발견되면 그 작품을 잡지에 발표해줍니다. 이런 것을 추천이라고 하지요. 이러한 관문을 통과하여 잡지에 계속 시를 발표하고 그러한 시를 모아서 시집을 내면 그때부터 시인이라는 호칭이 따라붙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추천을 잡지사에서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엉뚱하게도 우리나라에서는 각 신문사에서도 매년 초에 이런 행사를 합니다. 이름하여 라는 것이 그것입니다. 매년 말에 상금을 걸어놓고서 작품을 모은다고 광고한 다음에 응모작 중에서 가장 좋은 작품을 뽑아서 이듬해 첫날 신문에 발표하고는 수상자를 불러서 상금을 주지요. 여기에 당선되는 것을 우리나라 문학지망생들은 가장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좀 우스운 일이지요? 그런데 그 우스운 일이 왜 전통으로 굳었을까요?     잠깐 골프 얘기 좀 하겠습니다. 골프는 유럽에서 발생한 운동인데 미국에서는 메이저 대회가 있을 만큼 인기 있는 종목으로 성장했지요. 아마도 이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인기 있는 종목인 만큼 그것을 즐기는 사람도 많아서 대중 스포츠로 정착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바라보는 골프는 어떻습니까? 돈이 없으면 하지 못하는 귀족스포츠지요? 왜 이렇게 됐을까요? 그것은 전파과정 때문에 그렇습니다.   미국에서는 골프가 이미 대중화되었고, 마음만 먹으면 일반 시민들도 다 배울 수 있습니다. 이 얘기는 비용이 크게 들지 않는다는 얘깁니다. 땅이 넓은 미국에서는 얼마든지 그 용지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겠지요. 따라서 골프를 치고 나오면서 흘린 땀을 씻을 수 있는 샤워 실이나 한 칸 있으면 누구나 즐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일본에 골프가 들어오면서 성격이 약간 변했습니다. 일본은 땅이 좁은 나라입니다. 땅을 구하기 힘들기 때문에 골프장을 짓는 사람은 거기에 든 본전을 뽑아야 하고, 그러다 보니 찾아오는 손님들이 주머니를 열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방법은 간단합니다. 부대시설을 좋게 만들어서 그 사용료를 비싸게 받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골프를 치기 위해 골프장에 들어서면 우선 옷을 갈아입는 곳이 있고, 대기실이 있고, 휴게실이 있고, 샤워 실이 있습니다. 매점도 만들어야겠지요. 이런 시설을 아주 으리으리하게 해서는 그만큼 비싼 이용료를 받는 겁니다. 좋은 시설에서 골프를 치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니 골프라는 운동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좋은 시설에서 여가를 즐기는 것도 역시 중요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점점 단가가 올라가면 일반 봉급쟁이들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차원으로 올라가 버립니다. 이렇게 되면 골프는 일반 대중 스포츠가 아니라 귀족 스포츠가 되는 겁니다. 돈이 없는 사람들은 하기 어렵겠죠.   문제는 한국의 골프 역시 신분계층을 가르는 노릇을 톡톡히 한다는 점입니다. 웬만큼 수입이 보장되는 계층이 아니고는 골프를 즐기기 어려운 것이 우리나라의 실정입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미국식 골프 문화가 들어온 것이 아니고 일본식 골프 문화가 들어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위공직자들이 골프를 친다는 고발이 뉴스에서 이따금 나오는 것은 골프 문화의 이런 속성 때문입니다.     추천제도라고 하는 관행이 바로 이와 같습니다. 유럽에서는 우리나라 같은 추천제도가 없습니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문단을 형성하는 어떤 장치가 있겠지만, 그것은 쌀롱이라든지 아카데미라든지 하는 식의 운영방법이 있지, 마치 옛날에 과거제도처럼 군림하는 우리나라 식의 추천제도는 없다는 얘깁니다. 그들은 시를 써서 시집을 내면 그것이 시인이 되는 길입니다. 아주 간단하지요.   우리나라에 이렇게 추천제도가 정착한 것은 일본의 제도를 본뜬 것입니다. 일본에서는 오래 전부터 그런 제도가 있었고, 일제가 우리나라를 식민통치하면서 그 제도가 그대로 들어와 정착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관행을 뒷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따르는 것은 우리나라에 그런 전통이 수백 년 이어져왔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즉 과거제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과거제도는 지방에서 실력이 뛰어난 후보자들을 시험으로 뽑아서 중앙으로 올려보내고 중앙에서 두 차례에 걸쳐서 시험을 치른 다음에 장원을 내는 방식으로 운영되었습니다. 그리고 벼슬길로 나아가는 유일한 길이었기도 합니다. 따라서 옛날 조선시대에는 공부를 해서 과거를 치른 다음 거기서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하는 것만이 선비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습니다. 무언가 뽑히지 않으면 자격을 주지 않는 어떤 관행이 생긴 것이지요. 바로 이런 관행이 잡지사에서 신인을 뽑는 제도로 정착하고, 거기에 신문사까지 가세해서 오늘날의 문단이라는 세력이 형성된 것입니다.   물론 근대문학 초기에 신문사에서 문인들의 작품을 신문에 실어준 것은 당시에는 문인들이 작품을 써도 딱히 발표할 지면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재미있는 소설을 실어서 신문을 한 장이라도 더 팔아보겠다는 속셈도 깔려 있습니다. 그러나 시대는 변했고, 이제는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는데, 지금도 그렇게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요.     뽑히는 자가 있으면 뽑는 자도 있는 법입니다. 신춘문예건 잡지사건 어떤 추천을 통과하면 뽑힌 나와 나를 뽑은 사람의 관계가 저절로 생깁니다. 그렇게 되면 뽑는 사람의 시각에 맞는 작품이 뽑힌다는 결론이 나오지요? 무슨 얘기냐면 누구의 입맛에 맞는 작품들만 뽑힌다는 얘깁니다. 사과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사과와 배, 바나나를 주고서 고르라고 하면 당연히 사과를 고르지 않겠어요? 그렇다고 배나 바나나가 잘못 된 것은 아니거든요. 이처럼 입맛에 맞지 않는 것들은 저절로 묻히게 됩니다. 묻힌 그것이 아무런 것이 아닐 수도 있지만, 만약에 아무 것도 아닌 게 아니었다면 그것을 어떻게 할까요? 신춘문예 심사에서 초심을 맡은 사람이 버린 것을 본심을 맡은 사람이 주워서 당선시켰다는 얘기가 종종 들려오는 것을 보면 이런 우려는 그냥 우려로 그칠 일이 아닙니다.   게다가 추천해주는 잡지사가 잡지 경영에 도움을 받기 위해서 어떤 의도를 깔고 추천을 감행한다면 그건 더욱 큰 문제를 일으키지요. 그것은 장사꾼들이 하는 흥정과 같습니다. 자격이 안 되는 사람에게 자격증을 주는 것과 같은 일이 벌어질 테니까요. 추천제도 하에서 이런 일은 안 생길래야 안 생길 수가 없습니다.   결국 추천제라고 하는 것은 옛 시대 과거제도의 잔상이 남아서 전해오는 것입니다. 이런 일에 얽매이는 것은, 부끄러운 일까지는 아니더라도 자랑스러울 리 없는 일이지요.     이런 관행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또 다른 방법을 찾아 나섭니다. 그 방법은 대체로 두 가지로 나눠 볼 수 있습니다.   한 가지는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동인지를 내는 것입니다. 즉 스스로 돈을 걷어서 시집을 내는데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참여하여 시집 한 권 안에 여러 사람의 시를 싣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동인 활동이라고 합니다. 남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고, 자신들의 세계를 마음껏 드러낼 수 있다는 점에서 가장 좋은 방법이지요. 여러분도 주변에 시 쓰는 친구들이 있으면 한 번 모여서 해보기 바랍니다. 꼭 출판사에 의뢰하지 않아도 됩니다. 두 세 명이 모여서 복사기로 복사를 해서 10부만을 해도 좋고, 아니면 부모님들의 지원을 받아서 출판을 해도 좋습니다. 미숙하더라도 어릴 때 그런 일을 해본 것이 나중에 굉장한 추억이 됩니다. 사실 이런 방법으로 시를 즐기는 사람이 많아야 시가 진정으로 발전하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방법은 스스로 시집을 내는 것입니다. 남의 눈치 볼 것 없이 오래도록 시를 쓰다가 50편이 되고 100편이 되면 그것을 시집으로 묶는 것입니다. 실제로 시집을 평생에 한 권만 내고도 유명해지는 사람도 있고, 한 권도 내지 못한 채 죽고서 나중에 뒷사람들이 시집을 내줘서 유명해진 경우도 많습니다. 여러분이 저항시인으로 알고 있는 윤동주 같은 분도 생전에는 시집을 한 권도 못 냈는데, 그 뒤 해방 후에 친지들이 그가 남긴 유고를 모아서 낸 시집으로 유명해진 경우입니다.     중요한 것은 자기 스스로 시를 쓰는 일입니다. 그것을 남이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내가 즐거워서 시를 쓰면 지금 당장은 시인이라는 이름을 듣지 못해도 나중에 언젠가는 시인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는 시인이 들어있습니다. 그 시인을 불러내어 노래하게 하는 것이 이 책을 읽는 여러분의 할 일입니다. 지금 자신의 마음속을 들여다보고 그 안에 숨어서 잠자고 있는 시인의 방문을 두드리십시오. 똑똑똑! 2) 시의 관행과 전통을 이해하는 방법 : 남의 시집 읽기     이 정도 하면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시인이 되는가 하는 것을 대충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렇게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더 중요한 일이 남아있습니다. 추천제도 같은 억지 제도가 해줄 수 없는 중요한 일 한 가지가 남아있습니다. 그것은 시라는 전통과 관습을 제대로 이해하는 일입니다.   이게 무슨 소리냐?     시는 이미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이 옛날부터 써서 그것이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는 전통의 한 분야로 굳었습니다. 사회를 구성하는 분야라고 하는 것은 그 분야에 오래도록 종사한 사람이 있었다는 얘기이고, 그러는 과정에서 다른 분야와는 다른 그 분야의 전통과 질서가 형성되었다는 얘기입니다.   시만을 놓고 보면 시라는 전통이 섰으면 시 아닌 것과 시인 것을 구별하는 방법이 확립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시인이 된다는 것은, 문단에서 추천을 해주든 말든, 이미 오랜 세월 동안 이어져온 시의 전통을 이해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 시의 역사는 아주 오랩니다. 문헌으로 기록된 것을 보더라도 고구려 2대 유리왕이 지은 ‘꾀꼬리의 노래’라는 것이 있지요. 고구려는 기원전에 선 나라이니 벌써 2000년도 넘은 세월입니다. 그 후에도 계속 한자가 들어와서 기록으로 남기는 바람에 이루 헤아릴 길이 없을 만큼 많은 시들이 있습니다. 국어시간에 배운 것들만 해도 민요, 향가, 고려가요, 경기체가, 시조, 가사, 한시 같은 것들이 그렇습니다. 이와 같은 시의 전통을 이해하는 것이 진정으로 시인이 되는 길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시의 전통을 이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선배 시인들이 써놓은 시를 읽으면 됩니다. 남의 시를 읽다 보면 시라는 것은 이렇게 쓰는 것이구나 하는 판단이 저절로 생겨납니다. 그리고 그런 방법을 익혀서 거기에 맞춰서 나의 감정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그 방법을 이렇게 시 읽기가 아닌 설명으로 배우는 중이구요.     아까 앞서서 제가 시집 1000권을 읽었다고 했습니다. 1000권이나 되는 시집을 다시 읽고 또 읽은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점, 과연 정말 좋은 시가 되려면 어떤 속성을 갖추어야 하는가 하는 것을 직접 깨닫기 위한 것입니다. 이론으로 시를 배우지만 남의 시를 읽으면서 확인을 하고, 그렇게 해서 터득한 원리로 내가 직접 써보는 것이 가장 훌륭한 방법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1000권이라는 숫자에 기죽지는 말기 바랍니다. 많이 읽는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닙니다. 더구나 여러분처럼 이제 막 시 쓰는 일을 시작하려고 하는 마음을 먹은 경우에는 많이 익는 것이 오히려 혼란을 부를 수도 있습니다.   저는 시를 인생의 목표로 삼아서 이미 등단의 과정을 마친 사람입니다. 말하자면 프로인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무모한 짓을 한 것입니다. 프로는 프로다워야 합니다. 프로답다는 것은 자신이 택한 전문 분야의 일을 전부는 아니라도 큰 줄기를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1000권에 도전한 것입니다. 이 점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자, 앞서 시의 전통을 배우려면 남의 시를 읽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에 앞서 시인들의 시집이 참 재미없다는 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그 많은 시집을 다 읽을 수는 없을 것이고, 설령 많이 읽는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좋은 작품을 골라낼 수 있느냐 하는 문제점이 생깁니다. 그렇다고 1000권을 다 읽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이건 정말 고민될 일입니다. 어떡하면 좋을까요?   가장 좋은 방법은 좋은 시집만을 골라 읽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많은 시간을 절약할 수 있겠지요. 문제는 좋은 시집을 골라놓은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주변에서 좋은 시집 목록을 골라놓은 분 보셨나요? 아마 없을 것입니다. 물론 좋은 시 몇 편을 뽑아서 소개한 책들은 있겠지요. 궁여지책으로 그런 책들을 사서 읽는 것이 가장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욕심을 내서 장래에 시인이 되고자 하는 꿈을 꾸는 사람에게는 만족스럽지 못한 일입니다. 그런 걱정을 하는 분들을 위해서 이 자리에 그 목록을 제시할까 합니다. 앞서 얘기했듯이 1000권을 읽고 그 가운데서 이런 건 시 쓰는 사람이 꼭 읽어볼 만하구나 하는 생각을 한 시집들입니다.   □진달래꽃□김소월, 한국대표시인100인선집 1, 미래사, 1991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윤동주, 한국대표시인100인선집 33, 미래사, 1991 □님의 침묵□한용운, 한국대표시인100인선집 4, 미래사, 1991 □광야□이육사, 한국대표시인100인선집 18, 미래사, 1991 □접시꽃 당신□도종환, 실천문학의 시집 37, 실천문학사, 1986 □농무□신경림, 창비시선 1, 창작과비평사, 1975 □뿔□신경림, 창비시선 215, 창작과비평사, 2002 □탄광 마을 아이들□임길택, 실천문학의 시집 75, 실천문학사, 1990 □나그네□박목월, 한국대표시인100인선집 30, 미래사, 1991 □청산우체국 소인이 찍힌 편지□정유화, 시작시인선 24, 천년의시작, 2003 □땅의 연가□문병란, 창비시선 26, 창작과비평사, 1981 □지도에 없는 섬 하나를 안다□임영조, 민음의 시 94, 민음사, 2000 □도화 아래 잠들다□김선우, 창비시선 229, 창비, 2003 □누우떼가 강을 건너는 법□복효근, 경계시선 8, 문학과경계사, 2002 □대설주의보□최승호, 오늘의 시인총서 22, 민음사, 1983 □노동의 새벽□박노해, 풀빛판화시선 5, 풀빛, 1984 □정선 아리랑□박세현, 문학과지성시인선 103, 문학과지성사, 1991 □오라, 거짓 사랑아□문정희, 민음의 시 102, 민음사, 2001 □붉은 편지가 도착했다□박미라, 현대시시인선 16, 현대시, 2004 □양귀비꽃 머리에 꽂고□문정희, 민음의 시 119, 민음사, 2004 □적멸의 불빛□오세영, 문학사상 신작시집, 문학사상사, 2001 □너는 꽃이다□이도윤, 창비시선 113, 창작과비평사, 1993 □사람의 마을에 꽃이 진다□도종환, 문학동네 시집 2, 문학동네, 1994 □입 속의 검은 잎□기형도, 문학과지성시인선 80, 문학과지성사, 1989 □만국의 노동자여□백무산, 청사민중시선 33, 청사, 1988 □난초□이병기, 한국대표시인100인선집 8, 미래사, 1991 □세속도시의 즐거움□최승호, 세계사시인선 4, 세계사, 1990 □머나먼 곳 스와니□김명인, 문학과지성시인선 71, 문학과지성사, 1988 □우리 이웃 사람들□홍신선, 문학과지성시인선 39, 문학과지성사, 1984 □산시□이성선, 시와시학 시인선 4, 시와시학사, 2000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신석정, 창비시선 86, 창작과비평사, 1990 □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이면우, 창비시선 211, 창작과비평사, 2001 □제비꽃 여인숙□이정록, 민음의 시 105, 민음사, 2001 □몸에 피는 꽃□이재무, 창비시선 144, 창작과비평사, 1996 □이 짧은 시간 동안□정호승, 창비시선 235, 창비, 2004 □물 건너는 사람□김명인, 세계사시인선 21, 세계사, 1992 □어딘지 모르는 숲의 기억□박남수, 한국대표시인100인선집 29, 미래사, 1991 □별빛 속에서 잠자다□김진경, 창비시선 143, 창작과비평사, 1996 □향수□정지용, 한국대표시인100인선집 9, 미래사, 1991 □슬픔이 기쁨에게□정호승, 창비시선 19, 창작과비평사, 1979 □백년 자작나무 숲에 살자□최창균, 창비시선 236, 창비, 2004 □기억들□송재학, 세계사시인선 107, 세계사, 2001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신용목, 문학과지성시인선 290, 문학과지성사, 2004 □멧새 소리□백석, 한국대표시인100인선집 20, 미래사, 1991 □오감도□이상, 한국대표시인100인선집 19, 미래사, 1991 □사랑의 기교□오규원, 오늘의 시인총서 11, 민음사, 1975 □외롭고 높고 쓸쓸한□안도현, 문학동네시집 1, 문학동네, 1994 □길은 광야의 것이다□백무산, 창비시선 82, 창작과비평사, 1999 □가난한 사랑노래□신경림, 실천문학의 시집 50, 실천문학사, 1988 □경주 남산□정일근, 문학동네, 2004 개정판 □절정의 노래□이성선, 창비시선 96, 창작과비평사, 1991 □누구도 마침표를 찍지 못한다□정일근, 시와시학 시인선 15, 시와시학사, 2001 □동두천□김명인, 문학과지성 시인선 9, 문학과지성사, 1979 □거미□박성우, 창비시선 219, 창작과비평사, 2002 □아무 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안도현, 현대문학북스의 시 1, 현대문학북스, 2001 □오래 말하는 사이□신달자, 민음의 시 122, 민음사, 2004 □버드나무 껍질에 세들고 싶다□이정록, 문학과지성시인선 221, 문학과지성사, 1999 □나의 사랑은 나비처럼 가벼웠다□유하, 열림원, 1999 □문자들의 다비식은 따뜻하다□주용일, 경계시선 20, 문학과경계사, 2003 □천지현황□김종길, 한국대표시인100인선집 41, 미래사, 1991 □세상의 밥상에서□김은자, 세계사시인선 69, 세계사, 1999 □내 혀가 입 속에 갇혀있길 거부한다면□김선우, 창비시선 194, 창작과비평사, 2000 □붉은 열매를 가진 적이 있다□이윤학, 문학과지성시인선 159, 문학과지성사, 1995 □조국의 별□고은, 창비시선 41, 창작과비평사, 1984 □한 잔의 붉은 거울□김혜순, 문학과지성시인선 288, 문학과지성사, 2004 □장미라는 이름의 돌멩이를 가지고 있다□정영선, 문학동네 시집 42, 문학동네, 2000 □서울의 예수□정호승, 오늘의 시인총서 21, 민음사, 1982 □무화과는 없다□김해자, 실천문학의 시집 135, 실천문학사, 2001 □내 안의 열대우림□정해종, 생각의 시 1, (주)생각의 나무, 2001 □마당으로 출근하는 시인□정일근, 문학사상사, 2003 □지상의 편지□조성림, 우리시대의 시인 100인 선집, 문학마을사, 2002 □강릉, 프라하, 함흥□이홍섭, 문학동네 시집 29, 문학동네, 1998 □당신의 옹이에 옷을 건다□김수우, 시와시학 시인선 19, 시와시학사, 2002 □우포 늪 왁새□배한봉, 시와시학 시인선 17, 시와시학사, 2002 □어두워진다는 것□나희덕, 창비시선 205, 창작과비평사, 2001 □개□최준, 세계사시인선 14, 세계사, 1991 □청산행□이기철, 오늘의 시인총서 20, 민음사, 1982 □세상의 모든 저녁□유하, 민음의 시 56, 민음사, 1993 □사랑의 감옥□오규원, 문학과지성시인선 102, 문학과지성사, 1991 □자신 없는 것들은 걸려있다□금기웅, 문학동네 시집 68, 문학동네, 2003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나희덕, 창비시선 125, 창작과비평사, 1994 □집은 아직 따스하다□이상국, 창비시선 174, 창작과비평사, 1998 □개같은 날들의 기록□김신용, 세계사시인선 9, 세계사, 1990 □국경의 밤□김동환, 한국대표시인100인선집 7, 미래사, 1991 □알 시□정진규, 세계사시인선 77, 세계사, 1997 □젖은 눈□장석남, 솔의 시인 11, 솔출판사, 1998 □이용악 시 전집□윤영천 편, 창작과비평사, 1988 □푸르른 날□서정주, 한국대표시인100인선집 23, 미래사, 1991 □무지개가 되기까지는□박정만, 문학사상한국시선 18, 문학사상사, 1987 □삼베옷을 입은 자화상□조용미, 문학과지성시인선 283, 문학과지성사, 2004 □악어를 조심하라고?□황동규, 문학과지성시인선 53, 문학과지성사, 1993 □다보탑을 줍다□유안진, 창비시선 240, 창비, 2004 □우리 낯선 사람들□이하석, 세계사시인선 3, 세계사, 1989 □처용 이후□김춘수, 오늘의 시인총서 19, 민음사, 1982 □비단길□강연호, 세계사시인선 42, 세계사, 1994 □천년의 바람□박재삼, 오늘의 시인총서 7, 민음사, 1975 □새는 하늘을 자유롭게 풀어놓고□황인숙, 문학과지성시인선 69, 문학과지성사, 1988 □길안에서의 택시 잡기□장정일, 민음의 시 16, 민음사, 1988 □산정묘지□조정권, 민음의 시 33, 민음사, 1991 □풀잎□강은교, 오늘의 시인총서 5, 민음사, 1974 □쓰러진 자의 꿈□신경림, 창비시선 115, 창작과비평사, 1993 □맨발□문태준, 창비시선 238, 창비, 2004 □모래인간□최승호, 세계사시인선 101, 세계사, 2000 □우리들의 양식□이성부, 오늘의 시인총서 4, 민음사, 1974 □햄버거에 대한 명상□장정일, 민음의 시 7, 민음사, 1987 □자명한 산책□황인숙, 문학과지성시인선 281, 문학과지성사, 2003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신경림, 창비시선 172, 창작과비평사, 1998 □붉은 눈, 동백□송찬호, 문학과지성시인선 239, 문학과지성사, 2000 □추억의 푸른 이끼□장병천, 현대시 시인선 14, 현대시, 2004 □지상의 그 집□홍윤숙, 시와시학사, 2004 □나나 이야기□정한용, 민음의 시 92, 민음사, 1999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황지우, 문학과지성시인선 32, 문학과지성사, 1983 □인간의 시간□백무산, 창비시선 152, 창작과비평사, 1996 □나와 함께 모든 노래가 사라진다면□김남주, 창비시선 128, 창작과비평사, 1995 □누가 두꺼비집을 내려놨나□장경린, 민음의 시 21, 민음사, 1989 □진흙소를 타고□최승호, 민음의 시 8, 민음사, 1987 □지상의 인간□박남철, 문학과지성시인선 36, 문학과지성사, 1984 □나를 위해 울어주는 버드나무□이윤학, 문학동네 시집 22, 문학동네, 1997 □여우를 살리기 위해□이학성, 민음의 시 58, 민음사, 1994 □낯선 길에 묻다□성석제, 민음의 시 39, 민음사, 1991 □처용□김춘수, 오늘의 시인총서 2, 민음사, 1974 □김씨의 옆 얼굴□이하석, 문학과지성시인선 35, 문학과지성사, 1984 □사랑은 늘 혼자 깨어있게 하고□한승원, 문학과지성시인선 160, 문학과지성사, 1995 □벽을 문으로□임동확, 문학과지성시인선 149, 문학과지성사, 1994 □황금 연못□장옥관, 민음의 시 44, 민음사, 1992 □왕자가 아닌 한 아이에게□오규원, 문학과지성시인선 4, 문학과지성사, 1978 □무인도를 위하여□신대철, 문학과지성시인선 7, 문학과지성사, 1994 □예레미야의 노래□박두진, 창비시선 29, 창작과비평사, 1981 □별의 집□백미혜, 민음의 시 112, 민음사, 2002 □뒹구는 돌은 언제 잠깨는가□이성복, 문학과지성시인선 13, 문학과지성사, 1980 □지리산의 봄□고정희, 문학과지성시인선 64, 문학과지성사, 1987 □게 눈 속의 연꽃□황지우, 문학과지성시인선 97, 문학과지성사, 1990 □자유가 시인더러□조태일, 창비시선 60, 1994 □겨울날□김광섭, 창비시선 4, 창작과비평사, 1975 □그대의 하늘길□양성우, 창비시선 63, 창작과비평사, 1987 □적당히 쓸쓸하게 바람 부는□심재휘, 제3의 시 10, 문학세계사, 2002 □내 몸이 유적이다□이순현, 문학동네 시집 62, 문학동네, 2002 □변명은 슬프다□권경인, 창비시선 181, 창작과비평사, 1998 □사무원□김기택, 창비시선 185, 창작과비평사, 1999 □유리의 나날□이기철, 문학과지성 시인선 211, 문학과지성사, 1998 □수런거리는 뒤란□문태준, 창비시선 196, 창작과비평사, 2000 □이팝나무 길을 걷다□박정남, 문학세계현대시선집 180, 문학세계사, 2001 □이형기 시 99선□이형기, 도서출판 선, 2003 □물은 목마름 쪽으로 흐른다□허만하, 솔, 2002 □두고 온 시□고은, 창비시선 213, 창작과비평사, 2002 □버려진 사람들□김신용, 시작시인선 16, 천년의시작, 2003 □바늘구멍 속의 폭풍□김기택, 문학과지성 시인선 151, 문학과지성사, 1994 □빗자루를 타고 달리는 웃음□김승희, 민음의 시 99, 민음사, 2000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장석남, 문학과지성 시인선 156, 문학과지성사, 1995 □아픈 곳에 자꾸 손이 간다□이윤학, 문학과지성 시인선 241, 문학과지성사, 2000 □적멸의 즐거움□김명리, 문학동네 시집 37, 문학동네, 1999 □사물의 운명□하종오, 문학동네 시집 19, 문학동네, 1997 □뒤란이 시끌시끌해서□조달곤, 작가정신, 2004 □국토□조태일, 창비시선 2, 창작과비평사, 1975 □파천무□송수권, 경계시선 1, 문학과경계사, 2001 □그리움이라는 짐승이 사는 움막□조정인, 시작시인선 37, 천년의시작, 2004 □염소좌 아래 잠들다□전명숙, 시작시인선 39, 천년의시작, 2004 □상처가 스민다는 것□강미정, 시작시인선 15, 천년의시작, 2003 □몽유 속을 걷다□김신용, 실천문학의 시집 118, 실천문학사, 1998 □열 손가락에 달을 달고□이준관, 문학과지성시인선 122, 문학과지성사, 1992 □흙은 사각형의 기억을 갖고 있다□송찬호, 민음의 시 22, 민음사, 1989 □10년 동안의 빈 의자□송찬호, 문학과지성시인선 148, 문학과지성사, 1994 □혼자 가는 먼 집□허수경, 문학과지성시인선 118, 문학과지성사, 1992 □고슴도치의 마을□최승호, 문학과지성시인선 46, 문학과지성사, 1985 □그리운 바다 성산포□이생진, 동천사, 1987 □이 땅에 씌어지는 서정시□오규원, 문학과지성시인선 19, 문학과지성사, 1981 □북 치는 앉은뱅이□양성우, 창비시선 23, 창작과비평사, 1980 □사평역에서□곽재구, 창비시선 40, 창작과비평사, 1983 □전야□이성부, 창비시선 30, 창작과비평사, 1981 □아무것도 아니면서 모든 것인 나□최승호, 문학 판 시 1, 열림원, 2003 □꽃산 가는 길□김용택, 창비시선 70, 창작과비평사, 1988 □어여쁜 꽃씨 하나□서홍관, 창비시선 80, 창작과비평사, 1989 □밤의 공중전화□채호기, 문학과지성 시인선 201, 문학과지성사, 1997 □대머리와의 사랑□성미정, 세계사시인선 71, 세계사, 1997 □살아있는 날들의 비망록□임동확, 민음의 시 31, 민음사, 1990 □풍경 뒤의 풍경□최하림, 문학과지성 시인선 254, 문학과지성사, 2001 □지루한 세상에 불타는 구두를 던져라□신현림, 세계사시인선 41, 세계사, 1994 □화개□김지하, 실천문학의 시집 141, 실천문학사, 2002 □섬진강□김용택, 창비시선 46, 창작과비평사, 1985 □반시대적 고찰□박남철, 세계사시인선 89, 세계사, 1999 □푸른 삼각형□강유정, 청하시선 8, 도서출판 청하, 1983 □국어선생은 달팽이□함기석, 세계사시인선 86, 세계사, 1998 □1차원 나라□박순업, 세계사시인선 25, 세계사, 1992 □난간 위의 고양이□박서원, 세계사시인선 59, 세계사, 1995 □지리산 갈대꽃□오봉옥, 창비시선 69, 창작과비평사, 1988 □자본주의의 약속□함민복, 세계사시인선 31, 세계사, 1993 □새로운 오독이 거리를 메웠다□이수명, 세계사시인선 62, 세계사, 1995     물론 이 중에는 여러분이 소화하기 힘든 시집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몇 권 읽어보고 어렵다고 해서 절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선 이 중에서 구미에 맞는 것부터 골라 읽으면 됩니다. 시간이 가면서 시를 보는 안목이 발전하고 정신이 성숙하면 저절로 다 이해가 될 만한 시집들입니다. 접하기 쉽고 이해하기 쉬운 순서로 배열하려고 애썼습니다만, 그게 제대로 됐는지는 장담하지 못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의 의견이 다르다면 저에게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의 의견을 감안해서 순서를 바꾸도록 하겠습니다. 3)일기 쓰기의 중요성      장래에 시인이 될 꿈을 꾸는 학생들을 위해서 한 가지 더 이야기하고 넘어가겠습니다. 그러니까 장래에 시인까지 될 필요가 없는 학생들은 읽지 않고 넘어가도 되는 부분이 되겠습니다. 단순히 남이 써놓은 시를 읽는 독자로만 남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냥 넘어가도 좋습니다.   시인은 어느 날 갑자기 태어나지 않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유명해진 것 같아도 그렇게 되기까지는 굉장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시를 쓰기 위해서는 사전에 몇 가지 생활 습관을 바꿔야 합니다. 무슨 100미터 달리기를 하듯이 준비 땅! 하고서 해도 되는 일이라면 일상생활에서 버릇까지 들일 필요는 없겠지요. 그러나 시 쓰는 일은 시의 격식과 형식에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맞추는 일입니다. 그런 훈련이 되어있을 때 시로 표현할 느낌이 찾아오면 그 순간에 시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실로 시를 발상하는 순간은 몇 초에 불과하지만, 몇 초 안 되는 그 짧은 순간에 시를 만들 수 있는 능력과 기술은 그 전의 꾸준한 노력에 의해 결정됩니다.     이와 관련하여 시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크게 오해한 것 한 가지가 있습니다. 시는 천재성에 의존한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즉, 굳이 시의 형식을 배우지 않아도 천재 시인은 나타나서 위대한 작품을 쓴다는 것입니다. 시의 천재는 어릴 때부터 재주를 드러내서 굳이 시 쓰는 법을 배우지 않아도 어른이 되기 전에 위대한 작품을 쓸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어린 시절에 시를 몇 편 써보고서 뜻대로 안 되면 ‘아, 나는 재주가 없는가보다!’ 하고는 등을 돌리고 맙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착각은 없습니다. 시에는 형식이 있습니다. 아무리 천재라고 하더라도 그 형식을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고, 그 형식을 배우는 데는 상당한 시일이 걸립니다. 물론 그런 형식을 전혀 모르고서도 쓸 수 있는 것이 시이기는 합니다만, 역사 이래 위대한 작품은 그런 형식에 대한 공부를 하지 않고서 이루어진 작품은 없습니다.   시인의 천재성이 발휘되는 것은, 등산에 비유할 때 9부 능선 언저리쯤입니다. 누구나 노력하고 시간을 들이면 8부 능선까지 올라갈 수 있습니다. 형식을 완전히 배워서 익힌 다음에 그 사람의 감수성이 절묘하게 작용하여 위대한 작품을 쓸 수 있는 것입니다. 많은 시인들이 위대한 작품을 남기지 못하고 고만고만한 작품을 쓰고 마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부분이 작용하기 때문인데, 그렇다고 해서 그런 위대한 작품만을 위해서 시가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시는 우리 일상생활의 즐거운 도구입니다. 감상하는 것도 이런 창작의 비밀을 알 때 정말 큰 즐거움을 얻을 수 있습니다. 위대한 작품의 위대성을 알아보는 것 역시 위대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시를 쓰기 위해서 평상시에 길들여야 할 버릇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일기입니다. 일기를 꾸준히 쓰면서 시의 감성을 닦아야 합니다. 감성이라는 것은 느낌입니다. 이 감수성은 세월이 흐르고 나이를 먹어가면서 점차 줄어듭니다. 그냥 두면 20대 후반에 메말라 버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러나 시인은 감수성으로 사는 자입니다. 그래서 감수성을 갈고 닦아서 나이가 들어도 세상을 그런 감수성으로 바라볼 줄 아는 그런 자세를 길러야 합니다. 그 방법이 일기 쓰기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일반인들이 쓰는 일기와 똑같이 쓰면 그건 부족합니다. 일반인들이 쓰는 일기는 보통 사건을 중심으로 씁니다. 오늘 누구를 만났고, 무엇을 했으며, 세상에 어떤 일이 일어났다, 하는 식이지요.   그러나 시인 지망생의 일기는 달라야 합니다. 일기의 초점을 사건이 아니라 자신의 느낌, 즉 감수성에 맞추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아침에 일어나니 안개가 끼었는데, 그 모습이 어땠다던가, 그 하얀 안개를 보니 무슨 느낌이 들었다던가 하는 그런 방식으로 말입니다. 사건을 접하더라도 그 사건의 개요만이 아니라 그 사건을 보는 나의 느낌을 적어야 합니다. 이런 식으로 자신의 감성과 느낌을 중심으로 일기를 오랜 세월 쓰면 어떤 사물을 보고 어떤 사건을 접하는 순간 말해야 할 느낌을 금방 잡아내게 됩니다. 시는 사건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느낌을 전하는 갈래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일기를 ‘감성일기’라고 합니다.   시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은 감성일기를 꼭 써야 합니다. 이것은 너무 중요해서 백 번을 강조해도 좋습니다. 감성일기를 쓰지 않는 사람은 30 중반이 못 되어 시를 떠납니다. 감수성이 메말라서 세상을 봐도 아무런 느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이 시를 쓴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겠지요.     약간 빗나갑니다만, 말이 나온 김에 소설가를 지망하는 학생들에게도 한 마디 하겠습니다. 역시 소설을 지망하는 학생들도 일기를 쓰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시인 지망생이 쓰는 감성일기와는 약간 다르게 써야 합니다.   소설은 사회의 인간관계를 바탕으로 하는 문학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의 변화에 따라서 변하는 사람의 의식과 풍속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의 감수성이나 생각도 중요하지만, 소설 지망생은 현재 자신이 몸담고 있는 시대의 변화를 꼼꼼히 적을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앞서 이라는 말을 했지요? 무슨 드라마와 관련하여 폐인이라는 말이 처음 등장한 것은 2003년도의 일입니다. 그런데 한 50년 세월이 흐른 뒤에 2002년도의 사건을 소설로 쓴다고 합시다. 그런데 2002년도에는 김두한의 일생을 다룬 라는 드라마가 유행했습니다. 소설에서 2002년도의 그 드라마에 반한 사람을 등장시키는데 여기서 이라는 말을 쓰면 될까요? 안 될까요? 당연히 안 됩니다. 시대 배경이 2002년인데 그 후에 생긴 말을 쓰면 안 되지요. 또 임진왜란 때 고추장을 담갔다고 하면 되겠습니까? 안 되지요. 왜냐? 고추는 임진왜란 때 일본인들이 가져온 것이거든요. 그러니 그 후에는 되지만 그 전에는 안 되는 겁니다.   바로 이 점입니다. 소설은 사회의 변화를 꼭 읽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현재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의 변화를 일기에 꼼꼼하게 적어두는 것이 필요합니다.   물론 인터넷이 발달하여 자료를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만, 그것도 장담할 수 없는 것이, 인터넷에는 거짓 정보가 하도 많아서 그것을 걸러내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자료가 가장 정확한 것입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꼼꼼히 기록해놓으면 세월이 갈수록 자신에게 귀중한 소설의 자료가 됩니다.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또 한 가지, 소설 지망생이 해야 할 일은 소설을 읽고 그것을 정리하는 공책을 만드는 일입니다. 소설을 읽으면 그에 대한 정리를 하는 버릇을 길러야 합니다. 즉 제목, 지은이, 출판사, 발행년도, 소설의 시점을 차례대로 적고 줄거리를 요약한 다음, 그에 대한 느낌과 문제점을 정리하는 버릇을 기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소설을 읽는 대로 정리를 해두면 나중에 그것이 좋은 자료가 되거니와, 그런 작업을 하면서 소설에 대한 깊은 이해로 나아가게 됩니다. 깊은 이해는 창작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4) 진정으로 살아있는 시는 생활을 노래한 시이다     시인들이 쓴 시는 거대담론에 빠져서 재미가 없다고 앞서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된 데는 다 사연이 있습니다. 그 사연은 우리나라의 복잡하고 한 맺힌 역사에서 비롯합니다.   일제 강점기 때에 일본군 소위였던 사람이 해방 된 뒤에 장군이 되었는데, 이 사람이 4.19로 어지러운 정국을 틈타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서 대통령이 됩니다. 자신의 과거를 덮기 위해 경제 살리기에 총력을 기울입니다. 그러다가 자기가 죽을 때까지 평생토록 대통령을 하려는 욕심으로 헌법을 고칩니다. 그것이 저 악명 높은 유신헌법이지요. 그런데 불행하게도 1979년에 자신의 부하가 쏜 권총을 맞고 죽습니다. 20년 동안 철권통치를 했던 독재자가 죽자 우리나라 정치권은 갑자기 공황 상태에 빠졌습니다. 정국은 한 치 앞도 내다 볼 수 없을 정도로 혼미에 빠졌습니다.   이 때 서울을 지키던 젊은 군인 몇몇이 흑심을 품고 또 한 번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자신들이 거느리고 있던 군대를 이용하여 서울을 장악했고, 계엄령을 선포했습니다. 이를 위하여 휴전선을 지키는 군대까지도 몰래 빼내어 동원했습니다. 군대가 나라를 다스리는 체제로 간 것입니다. 나라는 발칵 뒤집혔습니다. 젊은 대학생들이 날마다 거리로 나와서 데모를 했고, 많은 시민들이 여기에 동참했습니다. 전국의 각 도시는 날이면 날마다 최루탄 가스로 가득 찼습니다. 권력에 눈이 먼 이들은 마침내 칼을 뽑았습니다. 전국의 도시 하나를 택하여 본때를 보이기로 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광주를 택했습니다.   1980년 5월의 일입니다. 다른 여느 도시와 마찬가지로 당시 광주는 매일 같이 학생들의 시위로 최루탄이 터졌습니다. 18일 새벽에 공수부대가 도시를 점령했고, 군인들은 물러가라고 시위하는 학생들을 공수부대들은 몽둥이로 무참히 때렸습니다. 지나가던 시민들이 분노하여 군인들에게 항의하자 군인들은 이들을 역시 몽둥이로 다스렸습니다. 그러자 그 다음날 군인들의 무지막지한 행동에 항의하기 위해 수만 명의 시민들이 도청 앞으로 모여들었습니다. 그러자 군인들은 이들에게 총을 쏘았고, 그들이 모여들었던 금남로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을 변했습니다. 이것이 저 유명한 5.18광주항쟁의 발단입니다.   그 뒤로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광주에서 피를 뒤집어 쓴 그 군인들은 권력을 잡는 데 성공하고, 친구가 친구에게 대통령 자리를 물려주며 10년 동안 한국을 주물럭거립니다. 문제는 이 젊은 군인들의 움직임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알고 있던 미국이 끝내 침묵을 지켰다는 사실입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반미를 외치지 않던 나라 대한민국이 이 사태를 계기로 미국의 정체를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한국인들은 세상을 다시 보게 됩니다. 한국의 정치를 다시 보고, 미국을 다시 보고, 그리고 진정 무엇이 조국을 위하는 길인가를 깊이 고민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잘못된 일들에 대해서 비판을 하기 시작합니다.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것을 그대로 두고서는 아무 것도 안 된다는 믿음이 당시 민주주의를 꿈꾸던 평범한 젊은이들을 투사로 만듭니다. 그리고 군부독재를 타도하여 민주주의를 이루자는 혁명의 길로 나섭니다. 이것이 1980년대 내내 팽배했던 사회 분위기였습니다.     여러분이 시인이었다면 이런 시기에 어떻게 했을까요? 뒷짐 지고서 한가하게 세월을 노래하고 하늘에 흘러가는 구름의 아름다움을 노래했을까요? 아마 그러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시인은 순수한 영혼을 지닌 사람들이거든요. 순수하다는 것은 욕심 없이 올바르다는 것이고, 올바른 사람은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합니다. 나만을 위해서 사는 사람은 이런 고민을 하지 않겠지요. 그러나 시인은 순수하기 때문에 옆에서 일어나는 불행을 그냥 보고 지나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그것이 가족과 이웃과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결정하는 커다란 일이라면 목숨을 바쳐서 바로잡으려고 하겠지요. 당연한 일 아닌가요?   1980년대 이후의 시는 이런 상황을 빼놓고서는 아무 것도 설명할 수 없습니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시인들은 당시의 독재 정권이 만드는 암울한 세태에 대해 절규를 했고, 어떻게 하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 것인가 하는 고민을 했습니다. 당연히 이런 것들이 그 당시의 가장 중요한 주제로 떠올랐습니다. 그런 사회를 이루기 위해서 시도 일정한 기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시의 주제가 통일이라든가 민족, 문명, 환경 같은 거대한 주제를 다루었던 것입니다.   어른들의 시가 재미없어진 것도 바로 이런 분위기와 깊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하루도 아니고 10년이 넘게 매일 같이 조국의 장래를 걱정하고, 통일을 해야 하고, 인간을 황폐화시키는 도시 문명을 비판하는 분위기가 이어져온 것입니다. 좋은 얘기도 한두 번이지 10년이 넘고 20년이 넘도록 들으면 어떻겠어요? 지겹지요? 그래서 최근 들어서는 이러한 경향에 반발을 보이는 시들이 많이 나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주제들이 틀렸다거나 잘못된 것이라고 받아들이면 그것은 큰 오해입니다. 이러한 문제들은 통일이 되고 진정한 민주주의가 이루어지는 날까지 가장 중요한 시의 주제가 될 것입니다. 지금 여기서 얘기하는 것은 그러한 주제들이 너무 강해서 상상력이 딱딱해지고 그 바람에 시의 즐거움이 많이 줄었다는 것과 그런 영향으로 인해 시가 일반 독자들로부터 멀어지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시는 자신이 고민하고 있는 현실의 내용을 다루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1980년대의 시인들이 그러한 거대담론을 주제로 삼은 것은 그 당시에 그들의 고민이 거기에 집중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어떨까요? 여러분도 그런 주제에 깊은 고민을 하고 있나요? 그렇다면 여러분들도 그런 내용을 시로 써야 할 것입니다. 어떤가요? 그런가요? 날마다 조국의 장래를 걱정하나요?   아마도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들 중에서도 조국의 장래를 걱정하는 사람이 있기는 하겠지만, 그게 여러분 고민의 전부는 아닐 겁니다. 오히려 여러분은 어떻게 하면 성적을 더 올릴 수 있는가 하는 것을 고민할 테고, 아니면 어떻게 하면 예쁜 여학생과 사귈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멋쟁이 남학생을 사귈 것인가 하는 고민을 할 것입니다. 아니면 어떻게 하면 용돈을 더 올려 받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극히 사소하지만 중요한 고민들을 하며 지낼 것입니다.   사정이 이렇다면 여러분들은 어떤 것을 시로 써야 할까요? 답은 자명하지요? 시는 여러분들의 고민을 담아야 합니다. 당연히 공부 때문에 걱정하는 내용이 시에 담겨야 하고, 이성 친구에 대한 관심이 시에 나타나야 합니다. 그것이 여러분이 여러분의 나이에 써야 할 내용입니다.   그렇다고 여러분이 평생토록 그런 내용으로만 시를 쓰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관심은 계속 바뀝니다. 그러면 시의 내용도 바뀌겠지요. 대학에 가서 운동권이 된 학생은 조국의 장래를 노래할 것이고, 평범한 주부가 된 사람은 평범한 주부의 일상을 노래하는 시를 쓸 것이고, 그럴 것입니다.   제가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억지로 감정을 만들어서 쓰지 말라는 것입니다. 시를 쓸 때는 그 당시의 고민을 솔직하게 쓰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자기가 고민하는 것을 쓰는 일에 익숙해지면 나중에 조국의 장래를 걱정하는 순간이 오고, 그때 조국의 장래를 걱정하는 아주 감동스런 시를 쓸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프로가 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이렇게 자기 주변의 일과 감정을 시로 쓰면서 시의 재미를 느끼다가 나중에 가서 실력이 쌓이고 재능을 발휘하게 되면 저절로 시인이 되는 겁니다. 진정한 시의 즐거움과 발전은 프로페셔널리즘이 아니라 아마튜어리즘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시의 그런 즐거움을 만끽해야 할 나이이고 그런 때라는 것임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5) 시평 하는 법     여러분들이 시에 관심을 갖고 살다보면 주변에서 그런 친구들을 만납니다. 시도 역시 사람이 하는 일이라 혼자서 하는 것보다는 여러 사람과 함께 나누는 것이 훨씬 진도가 빠릅니다. 재미도 있구요. 그래서 혹시 주변에 그런 친구들이 있으면 머뭇거리지 말고 동아리를 만들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매주에 한 번씩 모여서 자기가 쓴 작품을 보여주고 그들의 견해를 들으면 혼자서 고민하고 쓸 때에는 볼 수 없던 여러 가지를 보고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시를 쓰는 사람들은 굉장히 콧대가 높습니다. 그래서 칭찬을 해주기를 바라지 단점을 지적 받는 것을 굉장히 싫어합니다. 그래서 시평을 하다가 크게 상처를 받고 싸워서 그예 시를 그만두고 마는 그런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면 누구 손핸가요? 그만 두는 사람 손해겠지요? 남의 지적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발전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여기서는 시평을 하는 방법에 대해서 간단히 알아보고 넘어가겠습니다. 저는 26살이 되던 1985년에 시를 처음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제가 몸담고 있던 이라는 문학 동아리가 있었는데, 거기서 시평 하는 방법을 처음으로 배웠습니다. 그런데 그 후에 이곳저곳으로 돌아다니면서 시평 하는 방법을 유심히 살펴보았는데, 창문학에서 하던 그 방법보다 더 좋은 방법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 방법을 소개하려고 하는데, 만약에 나중에 더 좋은 방법을 찾게 되면 그때 가서는 그 새로운 방법을 소개하지요.     ① 자리를 둥글게 배치한다.   먼저 자리를 둥글게 배치하는 게 좋습니다. 그래야만 모든 사람을 볼 수 있고, 어느 한쪽이 논의를 주도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습니다. 둥근 배치가 어려우면 네모난 배치를 해서 될수록 가운데를 향해 집중하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물론 사회자는 사회 보기 편한 자리에서 합니다.   사회자는 보통 모임의 회장이 합니다. 회장이 없을 때는 연장자나 부회장이 맡게 되지요. 사회자는 특별히 할 것이 없고 회의 진행을 원만하게 하면 됩니다. 대개 논의가 시작되면 두 패로 나뉘어 격론을 벌이기 쉽습니다. 그러면 사회자는 눈치를 봐가면서 그 논쟁이 개인의 감정을 상하는 단계까지 나가지 않도록 적절히 조절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행을 위한 발언 이외에는 될수록 아끼는 것이 좋습니다.     ② 시를 미리 복사해온다.   시는 모임이 시작되기 전에 미리 복사해옵니다. 사회자가 미리 확인을 해서 시를 쓴 사람에게 복사해오라고 하던가 시를 미리 받아서 복사해둡니다.   지금은 복사하기가 편해서 좋지만, 옛날에는 칠판에 쓰고 그것을 노트에 옮겨 적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복사해서 보는 것보다는 그렇게 하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기도 합니다. 쓰여 있는 시를 맨눈으로 볼 때와 손으로 한 번 옮겨 적는 것은 굉장한 차이가 있습니다. 눈으로 읽을 때 눈에 띄지 않던 것들이 손으로 적으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복사 얘기를 했지만, 가장 좋은 것은 시를 자신이 직접 손으로 적어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집을 읽다가도 유난히 좋다고 느껴지는 시가 있으면 꼭 한 번 공책에 적어두기 바랍니다. 눈으로 대충 읽을 때와는 다른 모습이 많이 발견됩니다.     ③ 시를 돌려주고서 5분가량 읽는 시간을 준다.   시를 돌리면 그것을 읽느라고 조용해집니다. 그 상태로 5분가량 둡니다. 그러면 시를 받아든 사람은 시를 읽으면서 자신이 말해줄 부분을 표시하고 내용을 정리해둡니다. 그리고 발표할 시간이 되면 발표합니다.     ④ 사회자의 지시에 따라 지은이가 한 번 소리 내어 읽는다.   반드시 소리를 내어 읽어야 합니다. 옛날에 시는 노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리듬이 잘 살아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대부분 잊고 삽니다. 시를 소리 내어 읽을 때하고 그냥 눈으로 읽고 말 때하고는 굉장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 차이를 느껴보는 시간이 되기도 하고, 또 시 낭송의 즐거움을 이런 때가 아니면 누리기 어렵습니다. 보통 때에 우리는 시집을 사서 눈으로 읽지 그것을 입으로 소리 내어 읽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지은이 자신이 읽는 것은 혹시 글로 적는 과정에서 잘 못 적은 것이 있는가 확인하는 차원입니다.     ⑤ 지은이가 아닌 다른 사람이 한 번 더 낭송한다.   지은이가 아닌 다른 사람이 한 번 더 읽습니다. 아무나 읽고 싶은 사람이 읽도록 하고, 자원자가 없을 경우에는 사회자가 지정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⑥ 자유롭게 시에 대해서 견해를 발표한다.   두 번 낭송이 끝나면 이제 사회자는 시에 대해서 자신의 견해를 밝히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그때부터 그 시의 문제점을 발표하기 시작합니다. 순서는 굳이 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무나 한 사람의 발표가 끝나면 다른 사람이 발표하면 됩니다. 종종 서로 발표하려는 수가 있는 그 때는 사회자가 교통정리를 해주면 됩니다. 또 반대로 모두 침묵을 지키는 수가 있는데 그때도 사회자가 눈치를 봐서 시키면 됩니다.   중요한 건 이 부분입니다. 한 번 이야기가 시작되면 시의 단점을 지적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왜냐하면 습작기의 여러분이 완벽한 작품을 쓸 리 없기 때문이지요. 시의 초보자인 여러분이 쓰는 시에는 아무래도 미숙한 부분이 많이 있기 마련이고, 그런 부분은 시의 전문가가 아니라도 금세 눈에 띕니다. 그래서 그런 단점을 지적하는 소리가 나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지적을 당하고 나면 시를 쓴 사람은 큰 충격을 받는 것이 보통입니다. 자신은 잘 썼다고 생각하는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이런 경험을 처음 하면 약이 얼마나 오르는지 그날 밤에 잠을 못 이루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자존심이 너무 강한 사람은 그날 당장 시를 때려치우지요. 실제로 그래서 시를 그만 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누구 손해인지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알 것입니다. 처음부터 완벽한 사람은 없고, 완벽한 시는 더더욱 없습니다. 그래서 남이 지적하는 단점을 겸허히 받아들여 더 좋은 작품을 쓰는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그런 정도도 받아들일 수 없는 지경이면 그 사람은 시가 아니라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미워서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부분을 고치라고 지적하는 것이 시평의 의도이기 때문입니다.   시평을 해주는 사람도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시를 비평하는 것은 그것의 잘못 된 점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의 인격과 관련하여 상처를 받을 듯한 발언은 절대로 하면 안 됩니다. 그리고 그 사람의 시에 잘못된 점이 발견되었을 때 그 점을 지적한 뒤에 반드시 자기의 체험을 말해주어야 합니다. 나 같은 경우에는 이런 문제점을 이렇게 해보니까 시 쓰기에 훨씬 좋더라, 하는 식으로요. 말하자면 그것을 고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사회자는 논쟁이 격해지면 특히 조심해서 운영해야 합니다. 논쟁이 너무 뜨겁게 진행되면 식혀주어야 하고, 너무 진행이 안 되면 잘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논쟁과정에서 개인이 상처를 입을 듯한 상황이 오면 재빨리 제지를 해서 좋게 풀도록 해야 합니다. 시평이 개인의 인격에 대한 공격이 아니라 좀 더 성숙된 토론의 장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단점을 지적해주는, 그래서 오히려 격려해주는 것이라는 점을 계속 부각시켜주어야 합니다.     ⑦ 더 이상 새로운 견해가 없으면 마친다.   모임이 진행되다 보면 잠잠해지는 순간이 옵니다. 할 이야기가 대부분 나왔기 때문이지요. 그러면 눈치를 봐서 시평을 마칩니다. 이때 사회자가 대충 총정리를 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한 가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작품 발표자입니다. 작품을 낸 사람은 발언권이 없습니다. 시평이 끝날 때까지 일체 한 마디도 하지 못합니다. 만약에 글 쓴 사람에게 발언권을 줘놓으면 이상하게도 변명을 하게 됩니다. 자기가 작품을 쓴 동기가 어떻고, 어떤 구절은 어떤 의미로 썼으며, 이런 말을 하려고 했다. 뭐, 이런 얘기를 하지 않겠어요? 그러니 그건 변명이 되지요. 작자가 그렇게 얘기를 해놓고 나면 다른 사람이 뭐라고 말하겠어요. 시평이 진행되지 않습니다. 만약에 반박을 하면 시인을 욕하는 것이 되고요. 이래서 작품을 낸 사람에게는 일체 발언권을 주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총무를 뽑아서 총무가 이 시평의 내용을 정리해두는 것이 좋습니다.     ⑧ 뒤풀이를 한다.   시평을 마친 뒤에 반드시 뒤풀이를 합니다. 우리는 신분이 대학생이었기 때문에 주로 막걸리를 마셨습니다만, 중고생인 여러분들은 그러면 안 되겠지요? 빵집에 가서 빵을 사먹든가, 아니면 음료수와 간단한 먹을 것을 사다가 먹는 것도 좋습니다.   왜 이것을 해야 하냐 하면, 시평을 하다 보면 감정이 상합니다. 아무리 상대의 인격을 존중하더라도 단점을 지적하는 것인데, 서로 기분이 좋을 리는 없지요. 그래서 말은 안 해도 속이 편하지는 않은 것입니다. 바로 그런 찜찜한 기분을 없애주는 것이 뒤풀이입니다. 음료수를 마시면서 시평에서 못 다한 이야기도 하고, 시평에서 마음이 상했으면 위로도 해주고, 생활하면서 겪는 고민도 털어놓고 또 고약한 성미를 지닌 선생님들 흉도 보고, 하면서 마음을 푸는 겁니다. 그러면서 한 층 더 친한 친구가 되는 것이지요.     자, 이상 장황하게 시평하는 절차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이상의 논의를 간단히 다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 자리를 둥글게 배치한다. ② 시를 미리 복사해온다. ③ 시를 돌려주고서 5분가량 읽는 시간을 준다. ④ 사회자의 지시에 따라 지은이가 한 번 소리 내어 읽는다. ⑤ 지은이가 아닌 다른 사람이 한 번 더 낭송한다. ⑥ 자유롭게 시에 대해서 견해를 발표한다. ⑦ 더 이상 새로운 견해가 없으면 마친다. ⑧ 뒤풀이를 한다.     자, 지금까지 사설이 좀 길었지요? 이제부터 진짜 시 쓰는 법으로 넘어갑시다.   3.시 창작의 원리와 실제     시를 쓰는 방법은 모두 3가지입니다. 다음과 같습니다.   ① 빗대어 쓰기 ② 그리듯이 쓰기 ③ 직접 말하기     애개개! 겨우 세 가지 뿐이예요? 시가 그렇게 많이 나오는데 방법이 모두 세 가지 뿐이라구요? 뭐, 이런 질문을 하고 싶은 충동이 마구 일어나지요?   그러나 사실입니다. 위의 세 가지 방법만 기억하면 어떤 내용이든지 원하는 것을 모두 시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다른 책에서는 뭐라고 설명하는지 모르겠으나 제가 한 20년 넘게 시를 쓰다 보니 이 정도로 나누면 되겠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실은 이것도 많이 늘려서 얘기한 겁니다. 아예 두 가지로 줄일 수도 있습니다만, 그렇게 하면 이론으로 설명하기는 좋아도 실제로는 조금 불편하니 그대로 두겠습니다.   너무 간단하지 않냐구요? 하하하. 별 걱정을 다 하는군요. 바둑 두는 분들의 말씀을 들으면 바둑판에서 벌어지는 전략과 계획은 무한대라고 하는군요. 바둑알은 색깔이 많아서 작전과 전략이 많은가요? 단 두 가지 색깔인데도 바둑판에 드러나는 정신의 질서와 배열은 무한대로 확대됩니다. 시 역시 그렇습니다. 이 세 가지가 혼자서, 또는 서로 섞이면서 만드는 시의 양상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고 무한합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한 가지씩 보면서 연습을 하겠습니다. 1)빗대어 쓰기 : 비유와 상징     빗대어 쓰기란 시를 비유의 방법으로 쓰는 것을 말합니다. 비유는 내 생각을 다른 것에 빗대어 표현하는 것입니다. 내 생각을 상대가 알고 있는 것을 토대로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것입니다. 시는 시인이 보고 느낀 것을 노래합니다. 그런데 시인이 보고 느낀 것은 그 사람만의 체험에서 나옵니다. 특수한 것이죠. 그 특수한 체험을 그대로 쏟아놓으면 혼잣말이 되기 쉽습니다. 이렇게 혼자 느낀 내용이 어렵거나 복잡할 때 그것을 쉽게 이해시키기 위해서 이미 익숙한 것에 빗대어 알려주는 것입니다.     사자는 사바나 지역에 살기 때문에 온대 기후에 사는 우리 조상들은 볼 수 없는 짐승이었습니다. 만약에 그 옛날 우리네 할아버지들이 외국에 가서 이것을 보고 왔다면 사자가 뭐냐고 궁금해 하는 이웃들에게 뭐라고 알려주었을까요? 이거 궁금하지 않은가요? 나는 무척 궁금하던데……. 사자를 본 사람은 사자를 보지 못한 사람에게 이렇게 설명할 겁니다.   먼저 사자는 맹수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알고 있는 짐승에 비유할 겁니다. 조선의 호랑이가 먼저 얘기되겠죠. 그런데 사자와 호랑이는 여러 모로 다릅니다. 그래서 먼저 전체 모습이 비슷하다고 한 다음에 부분부분의 다른 점을 열거할 겁니다. 우선 목둘레에 긴 털이 수북이 난다는 것이 호랑이와는 다릅니다. 그래서 머리가 훨씬 더 크다고 강조합니다. 그리고 큰 얼굴 때문에 눈이 더 강조되죠. 뭐라고 하겠어요? 왕방울 만하다고 하겠죠. 거기다가 커다란 입을 강조합니다. 이렇게 되겠지요. 머리통은 몸의 절반쯤이나 되게 크고, 목엔 목도리처럼 털이 달렸고, 입은 귀밑까지 찢어지고, 두 눈은 왕방울만하고…….   이와 같이 새로운 사물에 대해 설명할 때는 그것과 비슷한 것을 통해서 재구성하도록 듣는 사람이 잘 아는 것과 비교합니다. 그래야 빨리 알아듣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비유의 기능입니다. 이를 토대로 비유를 정리해보면 비유는, 이미 있는 것을 토대로 낯선 것을 이해하는 방법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습니다.   앞서 사자 얘기를 했습니다. 그러면 설명을 듣고서 우리 조상들이 떠올린 사자의 모습을 알 수는 없을까요? 있습니다! 어디에? 탈춤에! 탈춤에 나오는 사자들이 우리 조상들이 말로만 듣고서 머릿속에 그려본 그것입니다. 이제 알겠지요? 탈춤의 눈에 왜 커다란 방울이 달렸는지를요! 사자의 큰 눈을 보고 왕방울 만하다고 누군가 표현했고, 그 말이 비유인 줄을 모르는 순진한 할아버지가 진짜로 커다란 방울을 달아버린 것입니다. 우리 할아버지들의 머릿속에서 그려진 사자는 두 눈에 방울이 달린 괴상망측한 모습이었습니다. 하하하.     이 비유는 같은 문학이라고 하더라도 다른 갈래 예컨대 소설이나 수필, 희곡보다 시에서 아주 강력한 힘을 발휘합니다. 물론 다른 분야에서도 쓸 수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시에서 가장 화려하고 멋있게 쓰입니다. 시의 전유물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옛날부터 시인들이 써온 방법입니다. 그래서 시를 배우는 첫 번째 항목에서 이 방법을 다루는 것입니다.   비유는 크게 두 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비유와 상징이 그것입니다. 보통 문학이론서나 시 개설서에서는 비유와 상징을 많이 다른 것으로 다루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제가 시를 오래 쓰면서 보니까 이 두 가지는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조금 다른데 시를 쓰는 원리와 방식은 동일합니다. 그래서 같은 항목으로 묶어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론가와 시를 쓰는 사람은 다릅니다. 이론가는 이미 나타나있는 현상을 설명하는 사람이고, 시인은 없는 것에서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이기 때문이지요. 저는 지금 시의 이론을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고 시 쓰는 방법을 설명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론가들의 생각과는 어긋날 수도 있습니다.   먼저 비유를 살펴본 다음에 상징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비유는 한자로 라고 쓰는 데 이 나 는 모두 옛날 한문에서 쓰이던 표현법입니다. 비는 좀 과장되게 표현하는 것이고, 유는 하고픈 말을 직접 하지 않고 슬쩍 돌려 말해서 상대가 말하는 이의 의중을 눈치 챌 수 있도록 하는 표현법입니다. 메타포라는 서양의 이론을 번역하면서 이 두 가지를 합쳐서 라고 한 것이지요.   비와 유의 뜻을 보면 비유가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직접 말하지 않고 그와 비슷한 다른 상황이나 사물에 빗대어서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좀 과장을 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여러분의 말로 좀 뻥을 치는 것이지요.   우리 집 아이가 어렸을 때 음악 책의 악보를 보더니 꼭 콩나물 같다고 말하더군요.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것이지요. 음악 책의 음표가 하고자 하는 말이고, 콩나물이 빗대어 표현한 것입니다.   그리고 며칠 뒤에는 밤중에 켜져 있는 가로등을 보고서도 역시       아빠, 저거 콩나물 같아.   라고 말하더군요. 그러니까 가로등의 모습과 콩나물의 모습이 비슷하게 생긴 것이고, 그것을 연결시켜서 말한 것입니다.   이런 것이 바로 비유의 시초이고 시의 출발점입니다. 누구나 새로운 풍경을 보거나 사물을 보면 이런 연상을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것이 세계를 이해하는 방법입니다.   비유는 새로 발견한 것을 이미 내가 알고 있는 것으로 바꾸어서 설명하는 것입니다. 우리 아이는 콩나물을 먹었기 때문에 이미 익숙한 것이죠. 그런데 태어나서 처음으로 음악 책에서 악보에 그려진 음표를 봤습니다. 얼마나 신기했겠어요? 그러니까 자기가 알고 있는 것 중에서 그것과 비슷한 것을 찾아내서 얘기한 겁니다. 이것이 비유의 의미이고 기능입니다.   따라서 비유는 특별히 새로운 것이 아니라 사람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재주이고 기능입니다. 다만 시에서는 그것을 최대한 활용할 뿐이지요.     자, 그러면 이번에는 비유를 활용해서 시를 쓰기 위한 예행연습을 한 번 해보겠습니다. 사랑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요? 그런데 사랑이 뭐냐고 물으면 누구나 머뭇머뭇 거립니다. 그건 몰라서 그러는 게 아니라 딱히 뭐라고 설명하기 힘들어서 그런 것이죠. 그런 상황에서 비유보다 더 잘, 그리고 더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방법도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입니다. 가장 흔한 것은 그냥 마주보고서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이죠. 그러면 받아들이는 사람은 사랑하는가보다, 그렇게 생각하지요. 그러나 편지를 쓸 때는 사정이 달라집니다. 편지를 쓰는데 달랑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이렇게만 달랑 써 보낼 수는 없지 않습니까? 하여간 날씨는 어떻고 어쩌고 하면서 분위기를 잡은 다음에 사랑 얘기를 꺼내야 하지 않겠어요? 일종의 기교가 필요하다는 얘깁니다. 그때 비유는 사랑을 표현하는 아주 좋은 방법이 됩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해요.   라고 쓰는 것보다   내게 당신은 별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내 영혼 속에서 언제나 반짝반짝 빛나기 때문이지요.   라고 쓴다면 그것을 받아본 사람은 그냥 사랑한다고 쓴 것보다는 훨씬 더 감동을 할 것입니다. 이렇게 감동의 진폭을 크게 만들어주는 손쉬운 방법이 바로 비유입니다.   비유는 하고자 하는 말을 직접 하지 않고 다른 것에 빗대어 표현하는 거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 한 번 연습을 해보겠습니다. 앞에서 말한 사랑을 표현해보겠습니다. 먼저 사랑은 ~이다, 라고 해놓고 그것에 대해 설명을 하는 겁니다. 예를 들면       사랑은 사닥다리다.   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유를 말해봅니다. 한 번 해보세요. 사랑이 왜 사닥다리일까요? 제가 한 번 해볼까요?   사랑은 사닥다리다. 왜냐 하면, 높이 있는 당신에게 다가가게 해주니까.   어때요? 그럴듯한가요? 별루라고요? 하하하하. 그러면 여러분들이 좀 더 좋은 해석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하나 더 합니다.   사랑은 가로등이다. 왜냐 하면 당신에게 가는 길을 환히 밝혀주니까.   어때요? 이번에도 시원찮았나요? 자꾸 그렇게 구박하면 곤란합니다. 자, 여러분도 한 번 해보세요. 아무거나 갖다 붙이고서 그것을 설명해보는 겁니다. 엉뚱하면 엉뚱할수록 좋습니다. 해보셨나요? 그러면 제가 생각나는 대로 한 번 나열할 테니 여러분은 그 뒤에다가 이유를 써보시기 바랍니다.   사랑은 동전이다. 왜냐 하면, ~   사랑은 유리창이다. 왜냐 하면, ~   사랑은 봄바람이다. 왜냐 하면, ~   사랑은 느티나무다. 왜냐 하면, ~   사랑은 이쑤시개다. 왜냐 하면, ~   사랑은 빵이다. 왜냐 하면, ~   사랑은 폭탄이다. 왜냐 하면, ~   사랑은 참새다.  왜냐 하면, ~   자, 해보셨나요? 이 밖에도 여러분이 얼마든지 만들어서 설명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주 재미있습니다. 이런 재치가 시를 잘 쓰는 바탕이 됩니다.     이렇게 해서 비유를 활용해 보았습니다. 그러면 이제 이 비유의 성질을 좀 설명해보겠습니다. 여러분은 국어시간에 시를 배우면서 이것에 대한 설명을 많이 들었을 거예요. 지루하겠지만, 여기서 다시 한 번 더 복습을 하고 넘어가겠습니다.   비유는 내 생각을 다른 사물에 빗대어 표현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겉으로 드러나는 모양에 따라서 다시 두 가지로 나눕니다. 그 두 가지는 다음입니다.     -직유:   -은유:     이 차이는 엄청난 것이 아니라 아주 사소한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것을 말로 하다 보니 그것을 연결시켜주는 말을 사용하게 됩니다. 그 연결사가 있으면 직유, 없으면 은유입니다. 예를 들어 앞서 살펴본 대로 라는 생각을 한 번 보겠습니다. 이 생각을 나타내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사랑은 사닥다리 같다.     -사랑은 사닥다리이다.     무슨 차이가 있나요? 와 의 차이지요? 는 생략해도 됩니다. 이 차이를 두고 직유와 은유라고 합니다. 직유는 위에서 보듯이 라는 연결사가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런 연결사가 들어가지 않으면 은유라고 하지요. 은 인데 곧장이라는 뜻이고, 은 인데 숨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직유는 문장의 겉으로 직접 드러난다는 뜻이고, 은유는 그런 연결사가 문장 뒤로 숨어서 안 보인다는 얘깁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직유 : ~처럼, ~같이, ~인 양, ~답게, ~하듯     -은유 :     이것이 교과서나 이론서에서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시를 창작하는 사람들 쪽에서 보면 이런 것은 굳이 구별하자고 따지지 않아도 됩니다. 결국 같은 발상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을 붙이느냐 마느냐 하는 것은 시 쓰는 사람에게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 발상을 한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요.     이번에는 앞서 제시한 비유를 시의 모양으로 만드는 방법에 대해서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기억이 안 나요? 그러면 아래를 봅시다. 앞서       사랑은 사닥다리다. 왜냐 하면, 높이 있는 당신에게 다가가게 해주니까.   라는 놀이를 했을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만 놓으면 발상은 될지언정 시가 되지는 않습니다. 시가 되려면 이 생각을 좀 더 다듬어야 합니다. 다듬는다는 것은 이 엉뚱한 연결을 그럴 듯하게 생각하게끔 살을 붙이는 것을 말합니다. 어떻게 살을 붙여야 할까요? 한 번 살을 붙여보겠습니다.   당신은 내게 늘 높은 곳에 계십니다. 나는 당신에게 다가가고 싶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나에게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은 사닥다리입니다. 나는 나의 사랑으로 높이 있는 당신에게 다가갑니다. 당신이 나를 돌아보지 않아도 나는 내가 만든 사랑으로 당신에게 날마다 다가갈 것입니다. 내게 사랑은 사닥다리입니다. 당신에게 다가가는 사닥다리.   자, 이렇게 써놓으면 어떤가요? 잘 쓴 것까지는 못 되어도 그럭저럭 시라고 할 만큼은 되지 않았나요? 시가 아니라구요? 떼끼! 하하하.   웃지만 말고 발상법을 배우기 바랍니다. 이렇게 비유를 만들어 놓고 거기에 알맞은 상황을 만들어서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는 것이 시의 기초입니다. 알맞은 상황이라는 건 비유된 두 가지 사이의 닮은 점을 계속 찾아내는 겁니다. 그러면서 찾아낸 그것을 연관 지어 설명하면 묘한 긴장을 이루면서 시가 됩니다. 이건 시에 남다른 재주가 있다고 하는 것도 아니고, 시에 조금만 관심이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지금 당장 해보시기 바랍니다. 재주의 문제가 아니라 관심의 문제라고 방금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누구나 시인입니다. 방법을 몰라서 입을 다물고 있을 뿐이지요.   앞서 제가 제시한 사랑에 대한 비유 가지고 한 번씩 시를 만들어보기 바랍니다. 사랑은 동전이라는 것 갖고 한 번 더 해볼까요?   사랑은 동전입니다. 내가 앞면이면 당신은 뒷면 그래서 완벽한 사랑을 만듭니다. 내가 향하지 못하는 곳으로 당신이 향하고 당신이 향하지 못하는 곳으로 내가 향하여 당신과 내가 동그란 한 세상을 만듭니다. 둥글게 만든 그 세상으로 우리 사랑의 길을 갑니다. 만지면 만질수록 빛나는 우리 사랑은 동전입니다.     시는 이런 식으로 쓰는 것입니다. 전혀 어렵지 않지요? 어려운가요? 몇 번 연습하면 아주 쉽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는 누구나 시인이 한 명씩 들어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잠시 머리를 식힐 겸해서 작품 한 편 보고 넘어가겠습니다.   할미꽃   할미꽃을 보면 우리 할머니 같다.   할머니를 보면 할미꽃이 생각난다.   내 친구 할미꽃은 장미보다 예쁘다.   할미꽃 내 친구 할미꽃이 좋다.   우리 할머니 같으니까…….   난, 할머니가 좋다.     할미꽃의 모습에서 자신을 친근히 감싸주는 할머니를 연상하고 이렇게 쓴 것이겠지요. 할미꽃을 할머니에 빗대어 자신의 감정을 표현했습니다. 여러분이 보기에는 어때요? 잘 썼나요? 못 쓴 것은 아니지만, 썩 잘 쓴 것 같지 않다구요? 제 눈에는 이것이 아주 잘 쓴 것으로 보입니다. 내막을 알면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이 학생은 한글을 잘 모르는 중학교 1학년 학생입니다. 초등학교 때 미처 한글을 떼지 못한 채 중학교로 올라온 것이지요. 특히 받침을 제대로 적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족한 부분은 지금 열심히 배우고 있으니, 머지않아 다 깨우치겠지요. 그럼 어떻게 시를 썼느냐구요? 시화전을 할 테니까 시를 써보라고 하고 난 뒤에, 마음에 걸리는 것이 이 학생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학생에게는 시를 말로 쓰고 옆 학생에게 받아쓰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런 말을 옆 학생에게 했고, 옆 학생이 받아 적어서 가져온 것입니다.   어때요? 그래도 못 쓴 시로 보이나요? 아주 잘 썼지요? 저는 이 학생에게 칭찬을 많이 했습니다. 시화전을 무사히 마쳤고, 아주 즐거운 시화전이 되었습니다. 이 학생의 명예가 걸린 일이기에 이름을 밝히지는 않겠습니다만, 굳이 이 얘기를 하는 것은, 시는 특별한 사람만 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시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고, 그것을 일상 생활 속에서 즐기는 것이 시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임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시를 더 감상하기 전에 한 가지만 더 공부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사실, 이 이야기를 꺼낼 것이냐 말 것이냐를 두고 한 동안 고민했습니다. 비유와 관련하여 그 원리를 설명하는 일인데, 주로 이론가들이 즐겨 다루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원관념과 보조관념이라는 말이 그것입니다. 이것까지 말하면 너무 어려워질 것 같아서 그냥 지나갈까 하다가, 아무래도 그냥 지나치면 여러 가지로 문제가 생길 듯하여 일단을 설명을 해볼까 합니다.   비유는 두 가지를 전제로 합니다. 내가 하려는 말이 있고, 그것을 표현해주는 대상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라고 할 때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사랑이고, 그 사랑을 꾸며서 상대방이 쉽게 알아듣게 해주는 것은 동전입니다. 이것을 일러서 원관념과 보조관념이라는 말을 씁니다. 이 두 가지를 구별해야만 나중에 시가 어떻게 쓰이기 시작했는가 하는 원리를 설명할 때 아주 편합니다. 여기서 사랑은 원관념이고, 동전이 보조관념이지요.   그런데 저는 이론서나 시 안내서를 읽으면서 늘 못 마땅하게 생각한 것이 있습니다. 뭐냐면, 뭐든지 서양에서 들어온 이론이라고 해서 전부 이상한 말로 번역을 하는 겁니다. 대부분 일본에서 쓰던 번역어를 그대로 베껴다 씁니다. 철학이니, 문학이니, 과학이니, 하는 것들이 다 그런 것들입니다. 이런 것들은 그래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서 대부분 다 알아듣는 것이지만, 택배니, 구좌니, 하는 말들은 아직도 생소합니다. 우리가 만들어서 쓴 것이 아니라 일본인들이 영어권에서 쓰는 것을 자기들 실정에 맞게 번역해서 쓴 것을 우리가 아무런 생각 없이 가져다 쓴 결과입니다. 학문에서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학자들이 쓴 논문을 읽으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아들을 수 없는데,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기초 용어의 낯섦 때문에 그런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 원관념과 보조관념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주 마음에 안 드는 말들입니다. 좀 더 쉽고 친근하게 번역하면 어디가 덧나는가요? 예를 들어 원관념은 원래 전하고자 하는 생각이란 뜻이고, 보조관념은 그것을 쉽게 전달되도록 도와주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과 라고 번역하면 안 되나요? 이란 말이 여러분에게 얼마나 어려운 말인가를, 어른들은 잘 모릅니다. 그러면서 이라고 쓰면 우스워 보이죠. 참 이상한 관행이 어른들에게 있습니다.   그래서 과연 지금 이 자리에서는 어떻게 할까 보통 고민되는 것이 아닙니다. 나중에 다른 사람이 쓴 시 이론서를 보면 전부 원관념과 보조관념이라고 나올 텐데, 나만 원생각, 도우미라고 쓰면 여러분들이 고생할 거란 말입니다. 이를 어쩌지요?   해서, 일단 여러분을 덜 고생시키는 방향으로 하겠습니다. 다른 책에서 쓰는 용어를 쓰는 것으로 하고 중간중간에 여러분이 어렵지 않게 제가 만든 용어를 쓰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겠습니다. 됐지요? 자, 그러면 시작하겠습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물건들이 있고, 생각들이 있습니다. 나무, 책상처럼 눈에 보이는 것도 있는가 하면 손으로는 만질 수 없는 사랑, 믿음, 꾸지람 같은 것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이름을 붙이는 것은 이름 붙은 것을 다른 것과 구별하기 위해서 그런 것입니다. 예를 들어 김철수라는 학생이 있으면 그 김철수라는 이름은 그 사람을 다른 사람과 구별시켜주는 노릇을 합니다.   꼭 사람의 이름만이 그런 건 아닙니다. 장미도 마찬가지입니다. 장미는 다른 꽃으로부터 그 꽃을 구별시켜주는 일을 합니다. 장미란, 해바라기나 깨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모든 이름은 그 이름이 담는 내용을 다른 이름으로부터 구별해줍니다. 세상의 만사 만물을 구별 짓기 위해서 사람이 이름을 갖다 붙인 것이지요.   그런데 세상엔 다른 점만 있나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공통점도 많습니다. 비유는 바로 이와 같이 구별하도록 이름을 지은 사람들의 생각을 반대로 이루어지도록 하는 방법입니다. 세상에 전혀 관련이 없는 사물들 사이에서 같은 점을 찾아내는 방법이 비유입니다. 그래서 비유는 세상을 모두 같은 것으로 보는 철학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앞서 라는 시를 소개했을 겁니다. 꽃과 똥을 같다고 보는 것입니다. 꽃과 똥이 같을 리 없지요. 이 둘은 서로 다른 것을 나타낸 말입니다. 구별을 하기 위해서 붙인 이름이죠. 그러나 그렇게 다른 것에서 공통점을 보는 것도 역시 사람이 하는 일이고, 그 공통점이 남들이 생각을 하지 못하는 방향에서 이루어질 때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감동을 합니다. 그 감동의 원인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인간의 마음입니다. 세상에 꽃을 똥과 같다고 보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런데 그 공통점을 찾아내잖습니까? 남들이 미처 보지 못한 공통점을 찾아내는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을 열어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세상의 모든 것은 서로 관련이 있고 공통점이 있다고 보는 것이 시의 생각입니다. 그것은 세상의 모든 사람이 한 형제고, 세상의 모든 만물이 한 바탕 위에 있다는 믿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세상은 한 송이 꽃이라는 말입니다. 이쯤 되면 이제 철학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거지요? 시의 철학. 우리는 지금 너무 진도를 많이 나갔네요. 시를 많이 쓰다 보면 시의 영역 바깥으로 나가게 됩니다. 그 만큼 넓은 세상을 보게 되는 것이지요. 여러분에게 그 길을 안내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기도 합니다.     라는 시를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변비   뛰어가 앉으면 나오지 않고 멫 방울 힘겹게 떨구고 나와도 뒤끝이 영 개운치 못한 내가 변비 환자라는 사실을 안 것은 요 며칠 전의 일이다. 그러고 보니 창밖의 꽃나무들도 심한 변비를 앓고 있구나. 겨우내 참고 참았던 것을 밀어내느라 목련, 개나리, 진달래, 버들강아지들 바야흐로 봄볕 아래서 끙끙거리고 있다. 힘겹게 밀려나온 꽃이 지자 파릇한 화장지까지 한 장씩 톡톡 밀어낸다.     다시 한 번 얘기하지만, 제가 이 시를 인용한다고 해서 이 시가 잘 썼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얘깁니다. 잘 썼다던가 못 썼다던가 하는 평가는 어떤 관점과 믿음을 전제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여기서는 방법만을 보기 바랍니다.   꽃과 똥을 원관념과 보조관념으로 나누면 다음과 같이 되겠지요?   원관념 : 꽃 보조관념 : 똥     이 시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꽃이 피는 모습입니다. 그것을 똥이 나오는 상태와 비슷하다고 보고 똥을 통해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지요. 원생각은 꽃이고 그것을 여러분에게 전달해주는 도우미는 똥인 것입니다.   이렇게 내가 생각하는 것을 다른 것에 견주어서 표현하는 것이 시의 아주 중요한 방법입니다. 그 방법을 알아보고자 한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생각을 잊지 말고서 이제부터는 작품을 감상해보겠습니다. 먼저 직유부터 볼까요?   봄이 되면                김준옥(3-1)   방긋방긋 들녘 길가에 피어나는 진달래는 상진이의 얼굴을 닮았고 막 피어오르는 아지랑이는 성식이의 흰머리를 닮았네.   들녘에서 농부들이 한해 농사가 잘 되기 기원하는 마음은 마치 노총각이 올해는 장가를 갈 수 있을까 하는 마음과 같고   밤하늘에 초롱초롱 떠있는 별들은 개나리를 꼭 닮았고 사람이 아기들을 낳듯 식물들은 싹을 틔운다.     한 행마다 비유가 나오지요? 같은 매개어로 다 연결되었습니다. 그러면 원래생각과 그것을 전하기 위해 도우미로 나선 것들을 분류해보겠습니다.   원관념 상진이 얼굴 성식이 머리 농사꾼 마음 별 싹 보조관념 진달래 아지랭이 노총각 마음 개나리 아기   이렇게 되겠지요? 상진이가 누구인지 성식이가 누구인지 굳이 알지 않아도 이 시를 감상하는 데는 아무런 이상이 없습니다. 그들이 누구인지 몰라도 그들과 같은 사람들이 여러분들의 주변에는 얼마든지 있기 때문입니다. 이 시는 이름까지 써서 아주 특수한 사람을 끌어들인 것 같지만, 잘 살피면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은 그 이름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보편성을 갖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시의 비유를 거꾸로 유추하면 상진이는 얼굴이 곧잘 벌게지는 사람이고, 성식이는 머리에 새치가 많이 있는 학생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겠지요. 나머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는 다 아는 것들입니다.   이 시에서 생각할 것은 이 시가 어디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시골입니다.  사람들이 도시로 빠져나가는 바람에 농사지을 사람이 부족하고, 쓸 만한 처녀들은 힘든 농사꾼에게 시집을 오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농촌에 사는 총각들은 장가도 못 갑니다. 이 학생이 이런 말을 하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이 시에는 그런 정경이 잘 나타나있습니다. 농촌을 있는 그대로 보고 느끼고 있다는 뜻입니다. 솔직함보다 더 큰 힘과 감동도 없습니다. 그래서 시에서 억지로 꾸미려 하지 말고 솔직하게 쓰라고 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정답습니까? 이렇게 주변에서 찾아보는 것이 쉽고도 좋은 방법입니다.   이 작품은 특별한 기교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학생이 무슨 시의 대가도 아니고 그냥 평범한 학생인데, 이렇게 빼어난 시를 쓴 것은 눈에 보이는 대로 정직하게 썼기 때문입니다.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속에는 시의 본성이 숨어있다는 뜻입니다. 자기 주변에서 눈에 보이는 것을 끌어다가 서로 연결시켜 본 것이 이 시의 원리입니다. 서로 다른 것을 연결만 시켜 놓아도 이렇듯 감동이 옵니다. 아주 쉬운 방법이면서도  큰 감동을 줄 수 있는 방법입니다. 적극 활용하기 바랍니다.     학생의 이름 뒤에 이라고 나오지요? 제가 한 동안 근무한 학교입니다. 그런데 전화로 내북중학교라고 말하면 듣는 사람은 꼭 다음과 같이 되묻곤 합니다.       내복이요?   그러면 저는 웃으면서 다시 교정해줍니다. 내복이 아니라 내북이라고요. 그래도 잘 못 알아  들어서 몇 번은 다시 얘기하죠. 한자로는 이라고 씁니다. 내복은 이죠. 속옷이라는 뜻입니다. 그래도 내북은 낫습니다. 충북 단양에는 라는 동네가 있습니다. 거기에 사는 학생에게       너 어디 사니?   하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가리요.     내북이라고 하면 어딜 가서든 이름 때문에 꼭 한 번씩 웃습니다. 내복이 연상되기 때문입니다. 전교생수는 32명(2004년 현재)이고 한 학급에 열 명 안팎입니다. 그래도 정말 내복처럼 따뜻한 학교입니다. 해마다 봄이 되면 국어시간에 학생들을 이끌고 뒷산에 올라갑니다. 뒷산을 한 바퀴 돌고 오면 딱 한 시간이 흘러갑니다. 그리고는 그 다음 시간에 한 마디 하지요.       얘들아! 시 쓰자.   그러면 아이들은 괴성을 지릅니다. 그리곤 곧 잔잔해집니다. 지난 시간에 산에 가서 봄꽃을 본 풍경이 눈에 선해지기 때문입니다. 그 느낌이 선명하게 살아있기 때문에 10분이면 시 한 편을 씁니다. 그리고는 다시 떠들지요. 그래서 이렇게 쓴 작품으로 해마다 5월이 되면 시화전을 합니다. 자기가 쓴 시로 자기가 도화지에다가 그림을 그려서 전시회를 하는 것입니다. 시는 미리 써놓았으니 작품을 만들기만 하겠지요?   이 책에서 소개되는 시들은 모두 그런 시화전에 출품되었던 작품입니다. 따라서 소속을 표시하지 않은 학생들은 모두 내북중학교 학생으로 이해해주기 바랍니다. 다른 학교 학생들의 작품일 경우에는 소속을 밝히겠습니다  계속해서 보겠습니다.   닮았네 닮았어             김준석(2-1)   중국에서 날아온 황사는 제성이의 싹스를 닮았고 산에서 깝치는 토끼는 희성이를 닮았고 외양간에서 미치광이처럼 날뛰는 염소는 연호를 닮았네.   들판에서 피어나는 아지랑이는 영어선생님의 흰머리를 닮았고. 마당에서 뼝알거리는 병아리는 병덕이를 닮았고. 부엌에서 냄새나는 누룽지는 제성이를 닮았네.   비광에서 우산 들은 바보는 남주의 모습을 닮았고. 드라마에서 멋있는 원빈은 윤표를 닮았고. 김칫독에서 각이 진 깍두기는 봉진이를 닮았네.   “짱”에서 나오는 “현상태”는 영근이의 맞짱 실력을 닮았고. 학교에서 회장인 방제연은 국어선생님의 카리스마를 닮았고. 교실에서 주접떠는 정근이는 이성진을 닮았네.   학원에서 공부하는 현자는 조선시대 망나니를 닮았고. 학교에서 눈이 찢어진 순실이는 엽기토끼를 닮았고. 학교에서 잠자는 현진이는 호빵맨을 닮았네.   투성이지요? 잘 보십시오. 어떻게 시를 썼는가를. 주변의 인물들을 모두 다른 사람이나 사물이 빗대어 나타내본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이 학생 주변의 사람들이 어떤 모습으로 생활하는가 하는 것이 눈에 잡힐 듯이 드러나지요? 여기에 나오는 이름의 주인공들이 어떤 사람들인가까지 알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 주변에도 이런 비슷한 사람들이 살고 있고, 그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이렇게 다른 시각으로 한 번 비춰봄으로써 내가 그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표현해보는 것입니다. 각 구절마다 얼마나 정겹고 새롭습니까?   병덕이가 뼝알거린다는 것은, 말을 많이 한다는 것인데, 병덕이라는 이름 때문에 뼝덕 뼝덕 하고 불렀겠지요. 그래서 종알거린다는 말을 변형시켜 뼝알이라는 말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렇게 없는 말을 함부로 만들면 안 됩니다만, 여기서는 아주 정겹게 잘 쓰였지요. 방제연은 학생회 회장을 한 녀석인데, 늘상 머리에다 뭘 바르고서 폼 잡고 다녔습니다. 빳빳하게 선 머리 때문에 카리스마라고 별명이 붙었고, 방 카리스마가 줄어서 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온 표현입니다.   엽기토끼, 망나니, 호빵맨은 별로 좋지 않은 내용으로 이루어졌지요? 이걸로 보아 여학생들을 골탕 먹이려고 일부러 이런 표현을 선택했겠지요. 남녀 합반이거든요. 얼마나 귀여운 발상입니까? 여기서 원관념이니 보조관념이니 하는 말을 떠들 필요는 없겠지요? 한 눈에 들어오는 일이니까요.   그러면 다음에는 나열이 아니라 좀 더 깊은 관찰을 담은 시로 넘어가겠습니다.   진달래 사스              박은범(2-1)   산에 사스가 유행한다. 진달래만 걸리는 사스   우리는 산에 문병을 갔다. 생각했던 것 보다 심한 사스 유행   모두들 사스가 무서워 나오지 않는다. 그나마 어쩔 수  없이 나온 진달래꽃   사스 걸리기 전에 광놈 민호와 철한테 죽는다. 불쌍한 진달래꽃들.     산에 갔다가 진달래가 피어있는 모습을 보았겠지요? 붉게 핀 진달래에서 무엇을 연상했나요? 뜨거움을 연상했지요. 뜨거움에서 다시 자신이 감기 걸렸던 경험을 떠올렸을 겁니다. 그리고 좀 더 뻥을 치느라고 최근에 중국에서 유행한 유행성 괴질인 사스라고 한 겁니다. 감기에 걸리면 얼굴이 열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모습에서 진달래가 핀 것을 그것과 연관 지은 것입니다. 시의 발상 과정이 이해가 되나요? 지금 이렇게 조리 있게 설명하지만, 이 발상은 정말 순식간에 머릿속을 스친 것입니다. 그것을 놓치지 않고 그 즉시 받아놓는 것이 중요합니다.   진달래 핀 것을 감기 걸린 것으로 하고 나니, 산에 가는 것은 저절로 문병이 되는 것이지요. 한 가지 연상 작용이 다른 연상으로 금방 넘어간 겁니다. 그렇게 해놓고서는 자기 체험을 적었습니다. 민호와 철이라는 친구가 진달래를 꺾었겠지요. 감기 걸린 데다가 그나마 꺾여 버렸으니, 얼마나 안타깝겠어요. 은 그래서 나온 결론입니다.   이란 말이 나오지요? 아마도 이것은 만든 말인 것 같은데, 은 미칠광(狂)자겠지요. 미친놈이란 뜻인데, 친구한테 미친놈이라고 하면 평상시야 그렇게 하겠지만, 그래도 시를 쓴다고 하는 마당에 그냥 미친놈이라고 하면 여러 가지로 민망하고 불편하니까 슬쩍 바꿔 표현한 것이겠지요. 바람직한 일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그냥 애교로 봐줍시다.   자, 광놈이라는 표현을 보면 민호와 철이가 진달래를 어떻게 꺾었을까요? 곱게 꺾지는 않았겠지요? 아마 장난삼아 난폭하게 꺾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나이의 남학생들은 대개 그렇잖아요?   우리 학교의 봄                 이순실(3-1)   봄이 되니 왕눈을 가진 홍석영 선생님처럼 큰 눈을 가진 개구리가 울어대고   봄이 되니 손 매운 과학 선생님처럼 매운 고추들이 밭에 심어지고   봄이 되니 우리학교 공주님 조경애 선생님처럼 꽃들이 예쁜 옷을 입고   봄이 되니 우리교실을 청소하시는 체육 교생 선생님처럼 우리들의 마음마저 깨끗해지고   봄이 되니 이 모든 것들을 미술 선생님께서 봄이라는 하얀 도화지에 그려 넣으신다.     재미있지요? 봄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현상을 학교의 선생님들에 비유해서 시를 썼습니다. 이 역시 자기 주변에서 소재를 찾아서 썼다는 점에서 크게 칭찬 받을 일입니다. 위의 시에 선생님들의 이름이 나오는데, 이 역시 어떤 이름이든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어느 학교에든 그와 비슷한 분들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특수한 사실이 흔한 사실을 가리키는 기능을 잘 해내고 있습니다. 그래도 시에 나왔으니 재미 삼아 한 번 알아보고 갈까요?    시의 표현대로 홍석영 선생님은 눈이 큼지막합니다. 눈 크고 얼굴은 갸름하고 키는 작달막하고 살빛은 하얗고……. 어떤 모습이 떠오르나요? 아주 예쁜 선생님입니다. 게다가 처녀 선생님이고, 집은 서울입니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들을 아주 좋아한다는 겁니다. 사회 과목인데 늘 아이들에게 새로운 정보를 주려고 노력합니다. 시골의 아이들에게 인기 있지 않겠어요? 이 시에 등장한 뒤 1년쯤 지나서 결혼을 했고, 다시 1년 뒤에 아들을 낳았답니다. 개구리 울음소리에서 눈 큰 개구리를 연상하고 다시 눈이 큰 선생님을 연결시킨 것입니다.   과학 선생님은 몸집이 아주 좋은 분입니다. 그리고 한시도 자리에 앉았지를 못하고 산으로 들로 돌아다닙니다. 수업시간에도 애들을 데리고 들로 나가서 나물을 캐곤 합니다. 산과 들을 얼마나 뒤지고 돌아다녔으면 학교 근처에서 새끼손가락만한 산삼을 다 캤겠어요? 또 학교 옆 공터를 삽으로 뒤집어서 밭을 만들었습니다. 상추도 심고, 고추도 심고, 하지요. 그런 선생님의 동작에서 봄을 연상한 것입니다. 손이 맵다는 것을 고추와 연결시켰는데, 고추가 맵기 때문이겠지요? 선생님은 몸집이 좋아서 손도 큽니다. 좀 뻥을 튀기면 솥뚜껑 만합니다. 그리고 그 손을 잘 활용하여 아이들을 통제합니다. 그 큰 손으로 떠드는 놈의 등을 쾅 내려치면 아이들이 비명을 지르지요. 안 맞아본 학생이 없습니다. 그러니 그 매운 손맛에서 고추를 연상할 수밖에 없지 않겠어요? 그런데 덩치 큰 사람이 마음은 비단결 같은 법이어서 이 선생님도 그렇습니다. 아이들이 하는 부탁을 거절하지 못할 만큼 마음이 여리고 좋답니다.   조경애 선생님은 메일 아이디가 입니다. 소리 나는 대로 읽으면 이지요. 어떤 분위기를 풍기는 선생님인지 금방 연상할 수 있지요? 나이는 마흔 안팎인데, 옛날에는 꽤나 공주병이 심했겠다 싶답니다. 발랄하고 자존심 강하고 아이들과 잘 어울리고, 나이 마흔 줄에도 곳곳에서 고운 자태와 애교 넘치는 마음씨가 엿보이는 분이랍니다.   고동춘이라는 교생 선생님이 한 달 동안 다녀갔습니다. 사춘기 아이들이 얼마나 좋아했겠습니까? 학교가 작아서 아이들 수가 적다 보니 선생님은 아이들하고 매일 축구하고 과자 사주고 그랬습니다. 여러분들 말로 인기 짱이었죠. 그리고 교생 때에는 아이들이 그렇게 사랑스러워 보입니다. 그래서 정말 아이들이 해달라는 것을 다 해주고 싶은 시절이지요. 그 열정과 사랑을 아이들은 느낍니다. 이 시에서처럼 아이들 교실 청소까지도 같이 하는 분입니다. 지금은 발령을 받아서 아마 어디서 훌륭한 선생님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자기의 주변에 있는 선생님들을 봄을 표현하는 데 끌어들였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친근하게 살아났습니까? 마지막 연에 이것을 미술로 그리는 동작으로 통합까지 했으니, 시로서는 완벽에 가깝게 마감 처리된 것이지요. 앞에서 비슷한 구조로 나열한 다음, 그것을 다시 통합시키는 발상입니다.   발가락            유제성(3-1)   다섯 명의 가족이 살고 있는 양말 속   발가락 중에 제일 큰 아빠 발가락 두 번째로 큰 엄마 발가락   그리고 아빠를 닮은 세 번째 발가락 또 네 번째 발가락은 엄마를 닮았네.   그럼 다섯 번째 발가락은 누굴 닮았을까?   그건 바로 아빠 발가락과 엄마 발가락을 모두 닮은 잘 생긴 막둥이 발가락이다.     가지런히 모여 있는 발가락의 모양을 보고 가족을 연상했지요? 그리곤 각각의 발가락을 가족구성원들에게 갖다 적용시켰습니다. 제일 큰 건 아빠, 그 다음 큰 건 엄마, 그리고 주욱 나가야겠지만, 이미 예측되는 것이기 때문에 생략하고, 마지막 새끼발가락으로 건너뛰었습니다. 전개와 생략이 잘 조화된 작품이지요.   대부분 학생들은 자신이 시를 써놓고서 그게 잘 쓴 건지 못 쓴 건지 판단을 못합니다. 이 학생도 상을 받을 때까지 자신의 이 시가 좋은 작품인지 모르고 있다가 시상식을 할 때 이름을 부르니까 놀라서 뛰어나간 경우입니다.   분필가족              정철(3-1)   분필가족이 평화롭게 지내고 있다. 우리가족의 가장은 아빠다. 아빠의 몸은 하얀 피부 엄마는 노랗게 뜬 피부 나는 뻘건 피부 동생은 파란 피부 오늘따라 왜 이렇게 시끄러운지 아빠가 직장을 나가신다. 아빠가 다니는 직장 이름은 칠판 그런데 너무 시끄럽다. 그러다가 우리엄마가 나가신다. 우리엄마가 키 작은 여자선생님한테 잡히셔서 높이 들린다. 얼마 후 내가 그 선생님한테 잡혀서 높이 들린다. 아이들은 모두 벌을 받고 조용하다.     가족과 분필을 대비시켰습니다. 분필은 칠판 밑에 모여 있죠. 종이컵에 담겨있거나 바닥 홈에 나란히 누워있죠. 옹기종기 모인 그 모양에서 가족을 연상한 것입니다. 한 가지 색깔만이었다면 이런 상상은 어려웠겠죠? 그런데 분필의 색깔은 여러 가지입니다. 그 중에서 하얀 색 분필을 가장 많이 쓰지요. 하얀 색이 아빠가 된 사연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분필이 움직이는 공간을 가족이 움직이는 공간으로 만들어놓고서 그 상황을 서로 이은 것입니다.   선생님이 앞에서 칠판에 글씨를 쓰는 동안 이 학생은 이런 엉뚱한 상상에 빠져서 혼자서 빙긋이 웃었겠지요. 그런데 그런 엉뚱함이 그냥 낭비가 아니라 이렇게 시를 만나서 좋은 결과를 만들었습니다. 여러분의 엉뚱한 생각이 시에서는 가장 중요한 글감이 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합니다. 이런 시들은 발상만으로도 반은 성공한 것입니다. 그래서 시에서는 발상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얼마나 정겹습니까? 자기 주변에서 소재를 찾아 쓴 것도 칭찬 받을 일입니다.   나무는 청개구리              양영주(3-1)   나무는 나무는 청개구리 우리학교 운동장의 나무도 청개구리 산에 있는 나무와 모든 나무도 청개구리   더운 여름에는 벗고 있어야 할 옷을 가지각색으로 입고 있어서 나무는 청개구리   추운 겨울에는 입고 있어야 할 옷을 뼈만 앙상하게 벗고 있으니까 나무는 청개구리   청개구리처럼 거꾸로 행동하지만 우리에게 꼭 필요한 소중한 자연의 하나이지요.     엉뚱한 생각이지요? 생각이 엉뚱할수록 그것을 연결시키는 논리가 많이 드러납니다. 이 시에서도 그렇습니다. 청개구리는 부모님의 말을 안 듣다가 나중에 후회하지요. 개구리 아들이 하도 거꾸로 행동해서 개구리 아버지는 마지막으로 죽어서 자신이 물가에 묻힐까봐 걱정하면서 죽은 뒤 물가에 묻어달라고 하지요. 그러면 매번 거꾸로 행동하는 아들은 당연히 양지바른 언덕에 묻지 않겠어요? 아들의 그런 뒤잡이 심성을 미리 예측하고 남긴 유언이지요. 그런데 매번 아버지의 말과 반대로 행하던 아들이 이번에는 마지막 소원이라도 들어드리겠다고 진짜로 냇가에 묻었습니다. 비가 오면 어떻겠어요? 빗물에 쓸려가겠지요? 그래서 걱정이 돼서 개굴개굴 우는 거랍니다. 이런 이야기를 시에 적용시켰습니다.   나무는 추운 겨울에 옷을 벗습니다. 더운 여름에 옷을 입지요. 잎새가 나무에게 옷인지 어쩐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학생은 그렇게 생각한 것이지요. 그러고 보니 거꾸로 된 겁니다. 이 거꾸로 된 것에서 개구리 이야기를 떠올린 것이고, 행동을 거꾸로 하는 청개구리의 특성과 나무의 행동을 연결시킨 것입니다. 사물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이 비유의 방법에 실려서 시를 만든 경우입니다.   봄의 무도회              김이슬(3-1)   봄이 오면 산과 들에 무도회가 열려요.   여기 저기 노랑 옷, 분홍 옷 … 초록 옷. 알록달록 옷을 입고 기지개를 피며 얼굴을 내밀어요.   현진이네 뜰에서도 미란이네 마당에서도 정훈이의 마음에서도   봄이 오면 모두 색동옷을 입고 나와 온 세상이 무도회장이 돼요.     이슬, 이름이 참 예쁜 학생이지요? 실제로도 예쁩니다. 예쁜 애들은 예쁜 짓을 하느라고 운동을 잘 못하는데, 이 학생은 오래 달리기를 하면 꼭 전교 1등입니다.   간단한 원리가 눈에 보이나요? 봄이 오는 것을 무도회의 광경과 연관 지었습니다. 무도회는 춤추는 것이기 때문에 가장 아름다운 복장을 하기 마련입니다. 나무에게도 꽃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지요. 그래서 예쁜 차림으로 나서는 무도회의 상황에다가 연결시킨 것입니다.   1연에서 봄을 무도회라고 전제해놓고, 2연에서 그 이유를 말한 다음에, 3연에서 장소를 말하고, 마지막으로 그래서 무도회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하지요. 특히 3연에서 장소를 말할 때 1행과 2행에서는 실제 장소인 과 을 말하다가 3행에서는 실제의 장소가 아닌 사람의 마음속을 말하는 것은 아주 기발한 방법입니다. 사물에서 관념으로 생각을 확산시키는 방법이지요.   물론 이 학생은 이 이론을 알고 쓰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씁니다. 이것은 시가 요구하는 어떤 아름다움의 질서가 사람의 마음속에 다 들어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는 그런 질서를 알든 모르든 세상을 정직하게, 그리고 아름답게 보려고 하고 시를 쓰면 그것을 실천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비의 형제             김경수(1-1)   비는 여러 형제가 있다. 제일 큰 장마비 둘째 소나기 막내 이슬비   장마비는 말썽쟁이 아주 많은 비를 내여 많은 사람들을 아프고 힘들게 하는 비   소나기는 착한 둘째 사람들이 물 부족으로 힘들어하면 가끔씩 내려주는 착한 비   이슬비는 소심한 비 사람들이 물 부족으로 힘들어하면 아주 조금만 내려주는 소심한 비   가끔씩 비가 와서 우리 마음이 우울할 때 창문으로 흘러내리는 빗방울과 이야기를 나누어요.     비의 다양한 모습을 형제에 빗대어 표현해본 경우입니다. 먼저 형제의 관계임을 설명한 뒤 각 비의 모습을 다시 사람에 빗대어 구체화시켰고, 다시 이것을 끝에서 종합해서 정리했습니다. 아주 논리 정연한 구조와 전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표현을 통해서 각 비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잘 보여줍니다. 비가 사람에게 미치는 관계와 영향을 평소에 체험하지 않으면 쓰기 어려운 시죠.   발상을 보면, 시를 쓰자고 했을 때 제일 먼저 비 온 날 창문에 흘러내리는 모습이 인상에 남았는데, 거기서 흘러내리는 비를 보다가 빗방울을 연상했고, 빗방울에서 다시 빗방울의 상태에 따라 여러 가지 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상상합니다. 그리고 같은 빗방울인데도 사람들의 반응이 각기 다르다는 사실을 떠올립니다. 그래서 같은 형제이면서도 각기 다른 특징을 보이는 점과 같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거기에 비유를 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발상의 과정이 이렇게 해서 정리됩니다. 결코 시를 쓰는 발상이 어려운 일이 아니죠.   빨래                       김선영(1-1)   빨랫줄에 빨래가 걸려있습니다. 남자 빤스 여자 빤스   아우 민망해 남자 빤스가 말합니다.   맞아 여자 빤스가 말합니다. 맞아 사람들이 한 번씩 힐끔힐끔 보고   정말이지 이해가 안 가 무슨 물건이라도 된다고   아우 기분 나뻐. 그래도 우리는 뜨거운 햇빛 아래에서 썬탠을 합니다.     의인화시켰지요? 의인화란 사물을 사람에 비유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에 비유한다고 해서 비유가 아닌 건 아닙니다. 이름만 다를 뿐 같은 원리입니다.   팬티는 가장 은밀한 곳을 감추는 옷이기 때문에 빨래가 널려있어도 사람들이 뚫어지게 쳐다보지는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힐끔거리며 볼 것은 다 보고 가지요. 하하. 마음에 은근히 걸리면서도 피할 수 없는 그런 심리를 아주 잘 잡나냈습니다.   는 가 표준어겠지요? 그러나 시에서는 그런 것이 전혀 문제가 안 됩니다. 오히려 누구나 사용하는 빤스라는 말이 더 시를 살립니다. 시에서는 맞춤법이 전혀 문제되지 않습니다. 분위기를 전하는 데는 오히려 사투리나 맞춤법에 안 맞는 말들이 더 잘 어울릴 때가 많습니다. 도 마찬가지죠. 틀린 표기이지만, 문제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주차장        김경애(마산 무학여고 3)   흰 선으로 둘러싸인 바둑판에 고수인 아저씨의 흰 알 초보인 아빠의 검은 알이 놓여있다. 한참 헤맨 끝에 찾았는데 서툰 아빠… 흰 선 안에 바둑알을 놓는 게 여간 쉽지 않다. 아저씨는… “뭐가 어렵냐”며 성화다. 날마다 늘어나는 한숨과 조여드는 삶의 공간에서 아빠는 흰 선과의 보이지 않는 사투를 벌이고 있다.   아빤 오늘도 바둑알을 놓을 바둑판을 찾고 있다.                2003년 경남대 제32회 전국고교생 한마백일장 운문 차상1)     주차장에서 차를 대는 상황을 바둑판의 상황에 빗대어 표현했습니다. 가지런하게 그어진 하얀 주차 선은 바둑판의 선으로 보인 것이고, 그 위에 놓여있는 차들은 바둑알로 보인 것입니다. 바둑알은 흰 색과 검정 색 단 둘 뿐이죠. 그런데 차는 그렇지 않습니다. 다양한 색깔이 있는데, 주차 선을 바둑판으로 인식한 순간 나머지 색깔은 보이지 않는 것이죠. 이렇게 무리한 적용이 갑갑하고 어색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때로 시에서 필요합니다. 이미지를 단순화시키기 위한 것이죠. 초보 운전인지 주차에 서툰 자신의 아빠와, 숙련된 솜씨로 주차를 하는 아저씨를 비교하고서 바둑의 초보와 고수를 거기다 갖다 맞추었습니다. 전체의 시상이 바둑판의 상황과 주차장의 상황을 겹쳐놓는 방법으로 전개되고 있어서 비유를 활용한 시 쓰기의 한 전형을 보여주는 경우라고 하겠습니다.     전에 무슨 운동을 하다가 목을 삐끗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정형외과에 가서 엑스레이 사진을 찍었는데 의사 선생님이 형광등을 켜고 사진을 달아놓으니까 신기하게도 나의 몸속에 들어있는 등뼈의 배열이 나타나더군요. 그때 처음으로 내 등뼈의 속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등뼈의 배열은, 내가 아기들에게 보여주던 공룡의 그림책에 나오는 공룡들의 뼈와 똑같더군요. 그때 ‘아하, 내가 짐승이구나!’ 하는 것을 새삼 알았습니다. 그리고서는 문득 느낀 바가 있어 다음과 같이 써 내려갔습니다. 길어도 이런 시 쓰는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습니다.     공룡   나는 내가 여태까지 사람인 줄 알았는데 오늘 알고 보니 공룡이다. 살가죽으로 뼈대를 싸고 그럴 듯한 헝겊으로 몸뚱이를 덮었지만 정형외과의 형광벽에 비친 나는 쥐라기나 백악기 어느 한 지층 속에 납작하게 박혀있어야 할 한 마리 공룡. 목에서부터 등마루를 거쳐 꼬리까지 날개처럼 돋친 스테고사우루스의 화려한 뼈들이 흑백의 필름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수억 년 내력의 탐욕과 난폭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그 뼈들의 행렬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니 이제서야 모든 의문이 스르르 풀린다. 이만하면 되었다 싶은데도 마음속에서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던 물욕과 옷 밖으로 송곳처럼 치밀던 공격성, 그리고 약자한테 강하고 강자한테 약한 비굴함까지 도대체 내 마음 어느 구석에서 말미암는지 여태까지 좀처럼 알 수 없던 것들이 공룡의 뼈들 사이로 분명히 드러난다. 자칫 잘못 건드렸다간 큰 코 다칠 것이라는 것을 예고하며 등줄기 따라 톱날처럼 뻗어간 우람한 뼈들. 가장 중요한 무기였던 꼬리 끝의 뿔은 엉덩이 밑의 꼬리뼈 속으로 완전히 감추었지만 수십 억 년이 지난 지금에도 전혀 진화하지 못한 채 한 마리 공룡이 내 몸 안에서 으르렁거리고 있다.     발상법을 알겠지요? 이 시에서 이야기하는 바는 인간의 탐욕성입니다. 자신의 내면에서 무언가를 소유하고자 하는 탐욕성이 들끓는데, 그것을 드러내기 위해서 공룡을 떠올린 것이고, 그 계기를 엑스레이 사진을 본 것에서 얻은 것입니다.   먼저 공룡의 뼈와 나의 뼈가 같다는 것에서 출발해서, 공룡의 난폭한 성질과 탐욕성을 나의 그런 특성을 나타내기 위해 이용했습니다. 시상을 전개시킨 순서 역시 뼈의 모양에서 심리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겉모습의 동일성에서 성격의 문제까지도 이끌어냈다는 것입니다.   운명   전생의 어느 먼 우주를 떠돌 때부터 당신은 내게 점지된 별이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내 마음속에서 이렇듯 아름답게 깜빡일 리 없지요.   전생의 어느 먼 우주를 떠돌 때부터 당신은 내게 점지된 달이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내 삶의 중심까지 이렇듯 인력으로 끌어당길 리 없지요.   전생의 어느 먼 우주를 떠돌 때부터 당신은 내게 점지된 해이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내 삶의 모든 곳을 이렇듯 환하게 비추어줄 리 없지요.   전생의 어느 먼 우주를 떠돌 때부터 당신은 내게 점지된 바람이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내 마음속에 이렇듯 힘차게 나부낄 리 없지요.     이번에는 사랑에 관한 시를 골라 봤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그냥 맺어진 것이 아니고 무언가 뗄 수 없는 어떤 질긴 인연이 운명처럼 엮여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마음이 절실할수록 사랑은 무언가 그럴 듯한 운명에 의해 연결되었다고 믿는 것이지요. 그래서 옛날에도 삼신할미나 월하노인 같은 어떤 신이 맺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사랑에 관한 시 중에는 두 사람이 우연히 만난 것이 아니라 무언가 보이지 않는 손길인 운명이 작용한다고 노래한 것이 많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만 감정이 아주 애절하게 잘 전달되는 특성이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누구나 그런 이상에 가까운 아름다운 사랑을 그리는 욕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태까지 잘 따라온 학생은 이 시의 비밀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변치 않는 어떤 존재들에 잇따라 연결시킨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설명한 것이죠. 따라서 원생각은 사랑하는 당신이지만 당신이라는 그 존재를 알리기 위해 도우미로 나선 말들은 별, 달, 해, 바람입니다.   비슷한 구절과 구조가 반복되면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익숙함을 느낍니다. 음악에서 아주 중요한 요인이죠. 시에서는 그것을 운율이라고 합니다. 일종의 가락인 셈입니다. 이 시에서도 별, 달, 해, 바람으로 바뀌어 나타나지만, 각 연의 구조는 똑같습니다. 읽으면서 속도가 붙기 마련이죠. 그 속도에 빨려들어 갑니다. 사람에게 시를 익숙하게 하는 방법 중의 한 가지입니다.   은행   전생의 쥐라기 하늘에서 띄운 내 영혼의 꽃가루가 무수한 기억의 퇴적층을 뚫고 활짝 편 당신의 가지에 내립니다.   받아주셔요. 내 고단한 사랑을. 당신이 아무리 먼 곳에 있어도 당신이 아무리 먼 세월 뒤에 있어도 내 영혼은 꽃가루가 되어 당신의 사랑을 찾아갑니다.   받아주셔요. 전생의 쥐라기 하늘에서 당신께 띄운 내 영혼의 꽃가루를.     우리가 흔히 보는 은행나무는 참 독특한 식물입니다. 우선 오래 산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500년, 1000년도 삽니다. 청주에는 고려 때 심었다는 은행나무가 아직도 살아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장수하는 이면에는 병충해에 강하다는 특징도 있습니다. 그런데 은행나무가 이런 장수를 누리는 데는 지구가 주는 시련을 몇 억 년째 이겼기 때문입니다. 은행나무는 공룡이 살던 시절에도 있던 나무랍니다. 놀랍지요? 공룡은 쥐라기, 백악기 때 최전성기를 누리지요. 그리고는 어느 순간 전멸하고 맙니다. 은행나무의 또 다른 특징은 암수가 서로 다르다는 점입니다. 물론 암컷 나무에서만 열매가 열립니다. 그러면 주변에 수컷 나무가 있어야 수정이 된다는 얘기겠죠. 어떻게 수정을 할까요? 암컷 나무에서 꽃이 피기 시작할 때 수컷 나무에서는 꽃가루를 뿌리는 겁니다. 그러면 꽃가루가 바람을 타고 암컷 나무에게 날아가서 수정되는 것이죠.   나무에게 암수가 있다는 사실과 마치 동물처럼 꽃가루를 날려서 수정을 한다는 사실. 무언가 신경을 탁 건드리는 바가 없나요? 나는 그런 은행나무에서 오래 된 사랑 법을 느꼈습니다. 천 년을 살고 수억 년 전부터 목숨을 버티어 오늘까지 살아온 은행나무의 특성을 이용해서 사랑을 노래한다면 무언가 절실한 느낌을 주겠지요. 그래서 쓴 것입니다.   1) 이재무 유성호 편, 전국고교백일장수상작품집, 천년의시작, 2003 이하 청소년백일장 작품들은 모두 이 책에서 인용했음을 밝힙니다.     자, 한 편을 더 살펴보고서 다음 단계인 상징으로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수렵도          박윤배   달리는 흰 말의 안장 위에서 상반신을 뒤로 젖힌 채 작은 체구의 사내가 달리고 있다. 우둔한 20대의 화살촉을 뽑아 아직도 푸르게 뛰는 수렵도의 사내처럼 펄떡펄떡 살아있기로 한다. 청년기가 지나더라도 포획된 용기와 젊음을 남기기 위하여 은밀히 은밀히 그려놓는…… 부장품으로 남길 시를 쓰는…… 내 스무 살의 수렵도.   나는 내 시대의 젊음을 위하여 수렵도를 그린다. 탄피 흩어진 이 터의 숲을 무너뜨리고 넝쿨로 기어드는 어둠 따위는 쏘아 넘기고 한숨뿐인 포획물을 끌고 돌아올지라도 저녁노을 뭉개는 어둠 자락을 빈 도시락 가득 채워올지라도 달아나는 노루와 사슴을 겨누고 있다. 불멸을 끌고 산 속을 달려 황산벌의 갈대숲 새떼들 날리며 달려 백두까지 오르고 있다. 그렇게 젊은 날을 살아있던 날의 함성을 부장품으로 남긴 한 사내의 수렵도.     이 작품은 1985년 어느 대학의 신문에 실린 작품입니다. 대학문학상의 수상 작품이죠. 상을 받았으니까 잘 썼다는 뜻이겠죠? 여러분이 보기에 어떤가요? 발상법부터 살펴보는 것이 좋겠죠?   시인은 수렵도를 보고 있습니다. 수렵도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고구려 고분벽화에 나오는 것이 유명합니다. 벽화 중에서도 무용총이라고 하는 벽화의 수렵도가 제일 유명하죠. 여러분도 많이 보았을 겁니다. 무용총은 벽화에 춤추는 인물들을 그려 넣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순 우리말 쓰기를 좋아하는 북한에서는 춤 무덤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면 수렵도는 어때요? 수렵도 역시 북한에서는 사냥그림이라고 합니다. 수렵도라는 말에 이미 익숙해진 사람에게는 사냥그림이라는 말이 어쩐지 좀 늘어진 듯한 느낌을 주지요? 말의 습관이란 이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뭐, 어느 수렵도를 보든 그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요는 시인은 수렵도를 보고 있고, 그 수렵도를 보면서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 엉뚱한 생각이란 무엇인가요? 수렵도는 힘찹니다. 당연하지요. 짐승을 사냥하는 그림이기 때문입니다. 거기다가 화면에는 사슴과 범이 있습니다.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고는 쉽지 않은 사냥이죠. 그런 힘찬 기상이 넘치는 그림을 보면서 무얼 떠올릴까요? 절망이나 우울함 같은 것은 아니겠지요? 당연히 힘찬 기상과 관련이 있는 내용일 겁니다.   시를 읽어보면 시인이 떠올리는 것은 자신의 젊은 날입니다. 수렵도는 힘찬데, 바로 저것처럼 자신의 젊은 날도 힘차게 살아야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하면서 사는가요? 이 시인이 젊은 날에 이루고 싶은 꿈은 무엇인가요? 그것은 시를 쓰는 일입니다. 좋은 시를 쓰는 일이지요. 이것이 이 시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입니다.   발상은 이렇게 된 겁니다. 먼저 수렵도를 봅니다. 그림이 힘차지요. 거기서 무언가 강한 힘을 느낀 겁니다. 그 힘은 곧 젊음을 떠올립니다. 젊음이 이루는 것은 희망이지요. 그 희망 중에서 자신이 하고픈 것, 즉 시를 쓰는 일입니다. 그래서 먼저 수렵도의 사내 모습을 보여준 다음에 그 사내처럼 나도 힘찬 삶을 살고 싶다고 말하고 뒤이어 시를 쓰고 싶다는 욕심을 말한 것이지요. 그러니까 이 시에서 정작 하고픈 말은 앞부분의 1연에 다 나옵니다. 뒷부분의 2연은 이러한 희망을 한 번 더 반복해서 보여준 것이 되겠습니다. 과 까지 나아간 것은 용맹한 기상으로는 다 좋은데 너무 많이 나가서 좀 허풍스럽다는 생각도 조금은 듭니다. 그러나 전체의 흐름을 보면 허물이라고 보기는 좀 어렵겠죠. 그런 기상은 젊음의 특권이랄 수도 있으니까요.   자, 한 가지 문제를 내겠습니다. 맞춰보기 바랍니다. 이 시에는 문장 구조상 앞 뒤 문맥이 잘 맞지 않고 어긋나는 부분이 둘 있습니다. 어디 어디가 그런지 한 번 맞춰보기 바랍니다.   우리가 완벽한 시를 보고 많이 배울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너무 완벽하면 무엇을 어디서 어떻게 시작했는지 알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시를 배우는 단계에서는 좀 허술하고 잘 정리가 안 된 작품들을 보는 것이 시의 원리를 배우는 데 더 많은 것을 얻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약간 문제가 있는 작품을 보여주는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이 형편없는 작품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작품은 발상만으로도 대단한 경지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여러분이 확인할 수 있잖습니까? 다만 여기서는 그런데도 간간이 보인 허점을 찾아보자는 것입니다. 작품의 발상이 좋아도 때로 허물이 있는 법이고, 그것을 찾을 줄 알아야 시 쓰는 법을 빨리, 그리고 잘 배울 수 있습니다.   자, 찾아봤나요? 잘 안 보인다구요? 당연하지요. 잘 안 보여야 정상입니다. 이 시 속의 문제점을 찾아낼 정도이면 여러분은 정말 눈이 매우 날카로운 사람입니다. 평론가로 나서면 성공할 수 있습니다.   먼저 1연 1~3행에 문제가 있습니다. 뭐라구요? 다시 봐도 안 보인다구요. 하하하. 당연하지요. 이렇게 가르쳐 주어도 잘 안 보이는 것이 시 속의 단점입니다. 자, 보겠습니다.   달리는 흰 말의 안장 위에서 상반신을 뒤로 젖힌 채 작은 체구의 사내가 달리고 있다.     어때요? 밑줄을 쳐놔도 모르겠어요? 달리는 동작이 겹쳤지요? 달리는 말 위에서 사내가 달린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는 얘깁니다. 사내는 가만히 있고 말이 달리는 것입니다. 달리는 말 위에서 또 달리면 어떻게 되겠어요? 분명히 틀렸지요? 지은이도 미처 눈치 채지 못한 부분입니다.   또 한 군에 있는데 찾아보세요. 못 찾겠다구요? 4행에 있습니다. 그래도 못 찾겠죠?       우둔한 20대의 화살촉을 뽑아     그래도 못 찾겠어요? 그럼 가르쳐 주죠. 이 문젭니다. 그래도 몰라요? 무얼 뽑았나요? 화살이 아니라 화살촉을 뽑았지요? 화살촉을 뽑으면 어떡하나요? 화살을 뽑아 쏘아야지 화살촉을 뽑아 쏘면 안 되잖아요? 그렇죠?   웃기죠? 전문가 시인들도 이따금 이런 실수를 한답니다. 그런 실수를 통해서 우리는 배우면서 날카로운 눈매를 길러 가는 겁니다. 그런 눈매를 갖추면서 자신의 작품에 생기는 실수를 줄여 가는 것이죠.   이 시인도 나중에 이런 실수를 깨닫고 시집에 실을 때는 고쳤습니다. 하하하.   시를 읽다가 참 잘 쓴 시를 만나면 오래도록 그 이미지가 마음속에서 지워지지 않습니다. 감탄에 감탄을 하다가 나중에는 질투가 납니다. 왜 나는 저런 시를 쓸 생각을 못했을까? 수렵도를 본 것은 이 시인만이 아니잖습니까? 나 자신도 맨날 수렵도를 보면서 왜 그것을 이 시인처럼 시로 쓸 생각을 못했을까 하고 탄식을 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은근히 질투가 나서 그보다 더 좋은 시를 한 번 써보겠다고 벼르는 것이죠. 그래서 1985년에 이 시를 접하고는 마음속으로 언젠가는 한 번 수렵도를 소재로 이보다 더 좋은 멋진 작품을 쓰리라 마음먹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꿈은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발상을 먼저 빼앗겼기 때문이지요. 시에서는 발상이 제일 중요합니다. 동일한 소재라고 하더라도 어떤 발상으로 접근하느냐에 따라서 작품의 수준이 천차만별이 됩니다. 그래서 이렇게 좋은 발상으로 쓴 시를 보면 질투가 나는 겁니다. 언젠가는 쓰고 말아야지! 하고 결심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1985년에 이 작품을 봤으니 실로 20년만에 저도 라는 작품을 썼습니다. 그러나 제 작품이 위의 작품보다 더 잘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발상을 먼저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한 번 보기 바랍니다. 그리고 절대로 발설은 하지 마십시오. 만약에 어느 작품이 안 좋다고 말한다면 박시인이나 저, 둘 중의 하나는 상처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속으로만 판단하고 한 번 빙그레 웃고 말기를 바랍니다.   수렵도   내 안에는 커다란 동굴이 있다. 컴컴한 그곳으로 들어가면 깊은 어둠에 익어 가는 속도로 개이는 눈앞에 벽화가 나타난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또 할아버지가 연꽃 하늘 위의 북두칠성에서 걸어나와 내 젊음의 뒷편에 그린 수렵도.   왼여밈 한 허리를 질끈 동인 사내가 디귿(ㄷ)자로 굽은 활을 가슴 가득히 끌어안고 굽이치는 산봉우리를 훌쩍 뛰어넘는다. 꽁지로 달겨드는 헛살 소리에 달아나던 범이 놀라 고개를 돌릴 찰라 이마 한 복판의 임금 왕짜 무늬에 꽂히며 나뒹군 포획물에서 부르르 깃을 떠는 대우전. 방금 넘어온 산봉우리들이 말발굽 아래 엎드려 등성이 너머로 새벽을 쏘아 올린다.   뭉툭한 명적(鳴鏑) 하나 가만히 산 너머로 날리면 어둠 속 곳곳에 박혀있던 젊은 날의 꿈들이 매화포처럼 와아 솟아오르고 반구비로 날아오르던 명적 소리, 어두운 밤하늘의 배경으로 올라가 지상의 길을 비추는 별이 된다. 그 별빛 속으로 영혼의 더듬이를 내밀며 비로소 중심을 잡는 청춘의 뼈.   세월은 흘러도 벽화는 남는다. 흘러간 세월의 길이만큼 동굴은 스스로 더욱 깊어져 지상의 덧없는 꿈들이 사위어갈 때 마늘과 쑥을 먹으며 인간을 꿈꾸던 첫새벽의 빛과 말발굽 소리로 지평선 저쪽을 발 밑까지 끌어당기던 할아버짓적 기상이 천장과 벽의 딱딱한 돌 속으로 파고든다.   동굴 속으로 들어간 나의 일은 가없는 화폭 속에 얼어붙은 꿈을 깨우는 것. 할아버지의 영혼이 새겨놓은 수렵도 속의 꿈을 불러 달리다 멎은 그의 말발굽을 지상에 옮겨놓는다. 그러면 시위처럼 팽팽해진 벌판 위로 동굴 벽에서 방금 살아난 꿈들은 쏜 살 같이 달려나가고 그 꿈을 타고 달려간 사내들과 함께 무용총의 벽으로 돌아올 때까지 나는 달리는 말의 안장 위에서 가슴 가득히 활을 당긴다.     그러면 상징으로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빗대어 쓰기의 두 번째 방법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이론가들은 비유와 상징을 다른 것으로 설명합니다만, 시를 쓰는 쪽에서 보면 같은 원리에 해당합니다. 다만 시에 나타나는 결과는 다르게 보입니다.   비유는 원관념과 보조관념이 1:1로 대응합니다. 즉       사랑은 사닥다리다.   라고 했으면 이 비유는 의 대응이 쉽게 눈에 띕니다. 말하고자 하는 원생각이 사랑이라면, 사닥다리는 그것을 전해주기 위한 도우미이지요. 로 정확히 맞습니다.   그러나 상징은 그렇지 않습니다. 상징은 1:1이 아니라 입니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나는 어려서 어렵게 자랐어. 그래서 내게는 어둠이 많아.   라고 했다고 칩시다. 여기서 은 무슨 뜻인가요? 아픔? 돈 없음? 쪼들림? 마음의 상처? 아픈 추억? 괴로움? 가족이 없음? 이 중에 무엇일까요?   자, 이와 같이 이 어둠이라는 말은 한 가지 뜻으로 정리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앞에서 말한 문장 때문에 그렇습니다. 앞에서 말한 것은 사실을 가리키는 말인데, 뒤의 어둠이란 말은 그것을 뭉뚱그려 나타내는 비유의 언어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직유나 은유처럼 원관념과 보조관념이 1:1로 대응하는 것도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1:1로 대응한다면 비유라고 하면 되겠지요. 그러나 그렇게 안 되고 1:여럿이 되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그리고 원관념이 없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읽는 사람이 알아서 짐작할 뿐이죠.   이렇게 앞 뒤 정황을 참작해서 여러 가지 뜻을 한꺼번에 지니는 것을 상징이라고 합니다. 잘만 쓰면 시에서는 굉장한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상징이란 말은 영어의 심볼(symbol)을 번역한 것입니다. 한자로는 이라고 씁니다. 이 은 원래 하늘에서 천체가 움직이면서 나타내는 조짐을 뜻합니다. 은 천체의 움직임에 따라서 땅에 나타나는 기운의 양상을 말합니다. 하늘의 기운에 따라서 지상에 기후가 변하고 그에 따라 생물들이 나타내는 변화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 둘을 합쳐놓은 상징은 무슨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나타나는 조짐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죠.   그러면 앞서 말한 이 내포하고 있는 것은 무슨 뜻일지 알아봅시다. 그런데 이것은 그 말을 한 사람 이외에는 이것이다, 라고 분명하게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 말을 듣는 사람은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그 뜻을 유추할 뿐이죠. 그러니까 흔히 생각할 수 있는 어려운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이 안 좋게 생각하는 모든 것을 포함한다고 보면 되겠죠. 예를 들면 가난, 불화, 굶주림, 이별 같은 것들이 이 범주에 들 것입니다.   이와 같이 상징은 느닷없이 나타나서 많은 뜻을 그 안에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잘만 쓰면 비유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엄청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물론 잘못 쓰면 애매모호해서 오히려 시의 분위기를 망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이제 막 시를 배우려고 하는 여러분들은 함부로 아는 체하면 안 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꼭 기억하기 바랍니다.     7월 중순에 3학년 교실에 수업을 하러 들어갔습니다. 보통 7월초에 기말고사를 보니 기말고사가 끝나면 방학이 코앞에 다가와서 대부분 분위기가 어수선합니다. 게다가 7월 중순이면 무더위가 시작되는 때지요. 가만히 앉아 있어도 더워서 헉헉거리는 상황입니다. 그러니 수업이 제대로 될 리가 없지요. 제가 교실에 들어가자마자 한 학생이       선생님, 우리 물놀이하러 가요!   하는 겁니다. 그러자 마치 메아리라도 울리듯이 교실 전체가 떼를 쓰는 분위기로 변하더군요. 아무래도 이놈들이 작전을 짰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더군요. 관찰 수업한다고, 체험 학습한다고 학교 뒷산으로, 들로 몇 차례 데리고 나갔더니 저를 만만하게 보고서 그러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게다가 그 전전달에는 애들을 데리고 학교 앞개울에서 물고기까지 잡은 적이 있거든요. 국어시간에 말입니다.   그러나 물놀이하러 가자는 것은 앞개울이 아닙니다. 한 20분쯤 걸어가면 꽤 큰 개울이 나옵니다. 거기를 염두에 두고 하는 말입니다. 그렇게 멀리 가는 데다가 물놀이를 하면 위험까지 동반되기 때문에 관리자인 교장은 허락하지 않기가 쉽습니다. 이 일이 성사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마찰이 있어야 할 듯한 일입니다. 그래도 평상시에 수업에 관심도 없던 놈들이 무얼 하자니까 신이 나서 이렇게 대답하고 말았습니다.       좋다. 가자! 총대는 내가 메지.   그러자 아이들이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그리고는 밖으로 뛰어나갔고 나는 허락을 맡으러 교장실로 갔습니다. 아이들이 바깥에서 웅성웅성 거리니까 다른 학년 아이들이 밖을 내다보고는 물놀이 간다는 소리에 다른 선생님한테도 떼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전교 세 반 중에서 한 반이 물놀이 간다는데 다른 두 반의 수업이 제대로 되겠어요? 그래서 교장 선생님한테 허락을 받고 나오니, 전교생이 다 나와서 기다리고 있더군요. 그래서 전교생을 데리고 물놀이를 하러 갔습니다.   여기서 를 멘다고 할 때의 총대가 바로 상징입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요? 총대를 멘다는 것은 결과에 대해서 감당을 하겠다는 얘깁니다. 그런데 이 말이 이런 뜻을 갖는 데는 총대라는 말이 그 전부터 그와 비슷하게 쓰였기 때문입니다. 총대는 총을 얘기하는 것이고, 총은 전쟁에서 쓰는 무기입니다. 그러니까 총대를 멘다는 것은 전쟁터에 나간다는 얘기고, 전쟁터에 나간다는 것은 자신을 희생시켜 공동체를 지킨다는 뜻입니다.   생각해보세요. 목숨은 하나인데, 누가 전쟁터에 나가서 목숨을 바치려 하겠어요? 올바른 일인 줄은 알지만 목숨을 바쳐가면서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죠. 그래서 외부의 적이 쳐들어오는데 감히 나서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때 총대를 멘다는 것은 바로 이런 상황에서 남을 위해서 적과 맞서 싸우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의 연장선상에서 총대를 멘다는 뜻이 그와 유사한 상황에 적용되어 쓰이는 겁니다.   내가 총대를 메겠다는 것은 학생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학교 관리자는 막으려 들 것이고, 막으려는 학교 관리자와 불편한 관계를 감수하면서 그 일과 관련된 모든 책임을 진다는 얘기지요. 모든 책임이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이렇게 총대란 말에는 많은 것들이 들어있습니다. 이렇게 한 가지 말에 여러 뜻이 담기는 경우를 상징이라고 하는 겁니다.   뒷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은가요? 그렇게 돼서 전교생이 물놀이를 갔습니다. 장소는 도리비라는 곳입니다. 이름이 참 아름답지요? 라니! 이곳은 물길이 둥글게 돌아나가면서 만들어진 기슭에 동네가 들어섰고 그런 까닭에 동네 이름이 도리비입니다. 안동 하회마을의 본이름이 물도이동인 것을 보면 이 도리비도 물이 돌아나간다는 뜻과 관련이 있는 말임을 알 수 있습니다.   5, 6교시 두 시간 연이어서 아이들은 신나게 물놀이를 했습니다. 애들끼리 서로 물속에 집어넣고 발버둥치는 여학생들까지 끌고 들어가서 온통 물귀신이 되었습니다. 나중에는 양복 입은 남녀 선생님들까지 붙잡혀서 몽땅 물에 빠진 새앙쥐꼴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참 신나게 노는데 방송사의 차가 오더니 멀리서 촬영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 무더위가 오니까 시원한 여름을 보낸다는 보도 기사의 화면으로 내보내려는 거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물속에서 손으로 V자를 그리며 흔들어주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는 무사히 물놀이를 마쳤는데, 물에서 나오면서 방송국 카메라가 찍은 곳에 가서 보니 무슨 표지판이 있고 그 표지판을 가만히 읽어보니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수 영 금 지   다음날 학교에 출근하니 학교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어제 오후에 찍힌 그 화면이 텔레비전의 지방방송 뉴스에 나왔답니다. 물론 화면이 좀 흐릿하게 처리되어 사람을 정확히 알아볼 수 없게는 했습니다만, 그 위치라든가 상황을 보면 단번에 알 수 있는 것이거든요. 게다가 여름철이 다가오면서 익사 사고의 위험이 높아진다며 자료 화면으로 내보냈다니 기가 막힐 일이지요. 저 대신 애꿎은 일과계 선생님이 교장실에 불려가서 상황을 설명하고 꾸중 비슷한 넋두리를 들었답니다. 당사자인 저를 부르지 않은 것은 제가 그날 몇 분 늦게 간 탓도 있지만, 울뚝불뚝한 저보다는 고분고분한 여 선생님이 더 만만해 보였기 때문이겠지요? 하여간 한 바탕 소란이 일면서 저보다는 일과계 선생님한테 불똥이 튀어(이 불똥도 상징입니다.) 덕분에 예쁘고 맘씨 착한 홍선생님이 애를 먹었습니다.   출근하는 나를 보더니 애들이 먼저 긴장을 하고서 어떡하느냐고 걱정을 하더군요. 그래도 사고 안 났으니 괜찮다고 교장선생님은 더 이상 문제를 확대시키지 않고 조용히 넘어갔습니다. 그나마 학생들을 야외로 데리고 나가면서 하는 수업에 대해 나름대로 깊은 이해를 하고 있는 분이 교장으로 계셨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큰 소란으로 이어질 뻔한 일이었습니다. 이 정도면 교장 선생님의 이름을 밝히는 것도 괜찮겠지요? 그 분의 이름은 안응락입니다.     그러면 박윤배 시인의 에서 상징이 어떻게 쓰이는가 하는 것을 보겠습니다. 2연 앞부분에서 찾아보겠습니다.   나는 내 시대의 젊음을 위하여 수렵도를 그린다. 탄피 흩어진 이 터의 숲을 무너뜨리고 넝쿨로 기어드는 어둠 따위는 쏘아 넘기고 한숨뿐인 포획물을 끌고 돌아올지라도 저녁노을 뭉개는 어둠 자락을 빈 도시락 가득 채워올지라도 달아나는 노루와 사슴을 겨누고 있다.     여러분이 한 번 찾아보시죠. 어떤 것이 상징에 해당하는 말일까요? 잘 모르겠어요? 잘 모르는 게 당연한 겁니다. 모르겠다고 너무 절망하지 말기 바랍니다. 처음부터 잘 알면 굳이 배울 필요도 없겠지요. 모르는 것을 배우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모르면서도 아는 것처럼 가만히 있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지요. 모르면 세 살배기 아이한테도 머리 숙이고 배워야 합니다.   답은 입니다.       넝쿨로 기어드는 어둠 따위는 쏘아 넘기고   의 말입니다. 여기서 어둠이 뜻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이것은 이 시 전체의 상황을 전제로 해서 유추해내야 합니다. 이 시의 상황은 수렵도라는 그림을 보고서 내 젊음 역시 그처럼 우렁찬 기백으로 시를 써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수렵도의 사내처럼 우렁찬 모습의 시를 써야 하는데, 막상 살다보면 그게 안 되는 상황이 생길 겁니다. 그것은 자신의 내부에 있는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외부의 조건일 수도 있습니다. 어쨌거나 그런 시를 쓰는 데 방해가 되는 요인이 있겠지요. 그런 모든 요인을 두루 가리키는 말이 됩니다. 즉 내 젊은 날 좋은 시를 쓰는 데 방해가 되는 것들 전부가 이 어둠에 포함됩니다. 예를 들면, 시간이 없어 쫓기는 것, 아니면 둔한 재주, 아니면 성실하지 못한 태도, 뭐 이런 모든 것들이 이 어둠에 다 포함됩니다.   이상에서 보듯이 상징은 어느 한 가지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뜻을 안에 간직합니다. 그래서 잘만 쓰면 굉장한 효과를 낼 수 있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뜻을 많이 끌어안을 수 있는 만큼 자칫 잘못 쓰면 오히려 시 전체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를 만큼 모호해지는 수도 있으니 어설프게 알고서 흉내 내면 안 됩니다.   다음의 짧은 시를 보겠습니다.     맹수   ①맹수가 사라진 곳에 ②맹수가 산다. 온갖 ③맹수들 다 쫓아내고 ④맹수인 줄도 모르는 채 저희들끼리 으르렁거리며 ⑤맹수로 산다.     이 시를 보면 맹수란 말이 모두 다섯 번 나옵니다. 번호는 제가 임의로 붙였습니다. 이 중에서 어떤 것이 같고 어떤 것이 다를까요? 한 번 짝을 지워보기 바랍니다.   이 시의 상황을 살펴보겠습니다. ①의 맹수는 그냥 사나운 짐승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범, 사자, 악어 같은 짐승들 말이지요. 그 맹수가 사라졌으니, 그 다음에 나오는 맹수는 틀림없이 ①의 맹수는 아니겠네요. 그러니까 ②의 맹수는 우리가 아는 그런 사나운 짐승을 쫓아버린 존재들을 나타내는 것이 되겠지요. 사나운 짐승들까지 쫓아내는 그런 짐승이 무엇이 있을까요? 현재 지구상에는 인간들 밖에 없지 않겠어요? 그러니까 짐승들과 공존을 꾀하지 않고 자신들의 탐욕을 위해서 다른 짐승들의 멸종을 생각지 않는 그런 인간세계를 비꼰 것이라고 볼 수 없을까요? 그렇다면 ③은 맹수지만, ④의 맹수는 그냥 짐승이 아닙니다. ⑤역시 ④와 같지요. 그러면 이 시 속의 맹수라는 말은 단순히 그냥 사나운 짐승을 가리키는 뜻이 있고, 사나운 짐승이 아닌 무언가를 암시해주는 뜻이 있습니다. 이상의 논의에 따라 정리하면 다음과 같이 되겠지요.   사나운 짐승의 맹수 : ① ③ 다른 존재를 암시하는 맹수 : ② ④ ⑤     그러면 다른 존재를 암시하는 맹수는 무엇일까요? 위에서는 그냥 인간이라고 추정했습니다. 그렇다면 모든 인간이 이 맹수 속에 다 포함될까요? 잘 생각해보면 다른 종류의 맹수와 공존을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서 다른 종족의 멸종을 전혀 생각지 않은 탐욕스런 존재입니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들이 다 포함된다고 보기는 좀 어렵겠죠? 그렇습니다. 이 맹수는 인간들 중에서 탐욕에 찌든 자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탐욕을 말하는 것일까요? 그 이상은 아마도 읽는 사람이 알아서 추측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이와 같이 어떤 특정 범위를 정해주지 않고 읽는 사람이 무한정 추정해 들어가야만 그 뜻이 확연히 정리가 됩니다. 이런 방법을 상징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만 이러한 방법을 활용할 수 있을까요?   비유는 앞서 보았듯이 1:1로 대응을 시킵니다. 어떤 것을 보니 무엇을 닮았더라, 하는 생각이 들면 그 둘의 공통점을 찾아서 설명해주면 됩니다. 닮은 그것과 원래의 그것을 연결시켜주면 되지요.   그러나 상징은 1:1이 아니기 때문에 조금 달리 해야 합니다. 원리는 비유와 같습니다. 그러나 원관념을 정하는 방향이 조금 다릅니다. 상징 수법을 활용할 때의 원관념은 한 가지로 정리되지 않는 생각으로 정해서 그것을 잘 나타내줄 수 있는 어떤 대상을 찾습니다.     예를 들면 젊은 시절에 저는 무언가 세상과 자신에 대한 불만과 분노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존심이 아주 강해서 남들이 싫은 소리 하는 것을 싫어했고 남들에게 아쉬운 소리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옳지 않은 일로 저에게 강요를 하면 한 판 붙었습니다. 절대로 물러서지 않고 대들어 싸웠습니다. 싸움은 승산이 있어서 이길 때 해야 하는데, 젊어서는 그게 아니었습니다. 상대가 다치고 내가 죽더라도 싸웠습니다. 내가 죽더라도 저 놈은 다칠 것이고, 그러면 아플 것이니 내가 죽더라도 그것으로 만족한다는 생각이었지요. 죽기 살기로 산 것입니다. 그러니 남들이 저를 볼 때 어떻겠어요? 어느 정도 분위기가 험악해지면 한 발 물러서는 것이지요. 자, 이렇게 세상에 대한 불만으로 사소한 불의를 참지 못하는 이 불끈거리는 심사를 무어라고 하면 좋을까요? 불평불만? 정의? 분노? 화? 신념? 열등감? 치기? 어느 것으로 갖다 붙여도 적당한 것이 없지요? 그렇다고 관련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조금씩은 다 관련이 있어요. 그렇지만 딱히 이거라고 잘라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딱 부러지게 이거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분명히 머릿속에는 복잡한 감정이 들어있습니다. 바로 이런 것을 표현할 때 상징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습니다. 그런 복잡한 심사를 나타내줄 어떤 사물이나 사건을 찾아서 설명하는 겁니다.   저는 위에서 말한 그런 저의 심란한 심뽀를 곰곰이 생각하다가 어느 날 그 감정이 송곳이나 뿔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남을 찔러서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그런 도구를 떠올린 것이지요. 송곳이나 뿔은 얌전한 것이지만 상황에 따라서 상대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것입니다. 특히 뿔은 그렇지요. 그래서 ‘야, 바로 이것이구나!’ 하고는 다음과 같은 시를 썼습니다.     뿔   한창 때 내겐 뿔이 하나 있었다. 그 뿔은 젊음만큼이나 영롱한 빛을 냈고 우람한 그 만큼 무엇이든 들이받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 세상 어느 구석에도 그 뿔보다 더 크고 드센 뿔이 있으리라는 가정을 전혀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말하자면 내 뿔은 최고였다. 어쩌다 호락호락치 않은 뿔이 나타나면 그 뿔보다 작을지언정 섬뜩한 점에서는 결코 뒤지지 않을 때까지 뾰족하게 갈고 또 갈았다.   지금도 그 뿔이 있다. 어쩌다 난폭한 말을 함부로 내뱉으며 스쳐 가는 나보다 더 젊은 친구들을 보면 오랫동안 잊고있던 그 뿔이 기억의 퇴적층을 뚫고 불끈 돋는다. 그러나 삼십대란 뿔의 상처를 헤아릴 줄 아는 나이 어르고 다독거려서 잠시 돋은 뿔이 가라앉을 때쯤이면 곰곰이 생각한다. 이 뿔을 좀 더 따스한 곳에 쓸 수 없을 것인가를.     이곳의 뿔은 어떤가요? 사람에게는 뿔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시에서는 자신에게 뿔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그 뿔은 짐승의 뿔은 아니겠지요. 그러니까 무언가 다른 것을 나타내주는 그런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이 뿔이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만약에 이 뿔이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 한 가지여서 뿔과 그 한 가지가 1:1로 대응하면 무엇이 되나요? 그렇죠! 비유죠. 만약에 1:1 대응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건 무엇이라구요? 그렇습니다! 그게 바로 상징인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지 그 뜻을 찾아보겠습니다.   이 시의 뿔은 크고 드셉니다. 그리고 뾰족하기도 하지요. 섬뜩합니다. 난폭한 말을 뱉는 사람들을 보면 사라졌던 뿔이 돋아납니다. 다독거려서 달래면 또 가라앉기도 합니다. 자, 이렇게 해놓으니 뭐가 뭔지 모르겠지요? 어쨌든 딱 한 가지 뜻이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마음속의 어떤 복잡한 감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정도면 상징으로 봐도 되지 않을까요?   그렇습니다. 상징으로 봐야 합니다. 그러면 그것이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요? 잘 읽어보면 뿔은 용도에 따라서 무례한 젊은 친구들을 무찌를 수도 있고, 또 방향을 바꾸기만 하면 따뜻한 곳에 쓸 수도 있습니다. 남한테 상처를 줄 수도 있고, 좋은 뜻으로 쓸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몸의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고 돋았다 가라앉는 것으로 보아 몸 안에 있으면서 감정에 따라서 생기고 말고 합니다. 무엇일까요? 틀림없이 감정과 관련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정도면 정의감이나 혈기왕성함, 나아가 못 마땅한 것을 참지 못하는 어떤 심리상태를 가리킨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정도로 뜻을 파악하면 되지 않겠어요?   이 시에 대한 설명은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대신에 어떤 방법으로 이런 상징을 쓰는 것인가 하는 것은 한 번 더 앞으로 돌아가서 확인해두기 바랍니다.   소 망                  장미(3-1)   저 깊은 숲 속을 걷다가 발걸음을 멈추고   이리저리 미처 보지 못했던 곳까지 바라본다.   바라보지 못했던 곳에는 작은 꽃이 열매를 맺는다.   그 열매 속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작은 소망들이 담겨있다.     열매라는 말을 잘 살펴보기 바랍니다. 언뜻 보면 그냥 열매일 것 같은데, 앞의 상황이 약간 다릅니다. 늘상 보던 곳에 있던 열매가 아니라 평상시에는 바라보지 못했던 곳에서 발견한 열매입니다. 시에서는 이쯤 되면 아 무언가 있구나 하는 판단을 하게 됩니다. 평상시에 보지 못했던 곳에서 발견한 꽃이 피운 열매. 그리고 그렇게 찾아낸 열매 속에 무엇이 들었나요? 소망이 들었다고 끝을 맺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소망이 무엇인지는 알려주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이 무엇인가를 알려면 천상 지은이에게 물어보던가 아니면 내 체험을 바탕으로 그것을 재구성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지은이에게 물어볼 수는 없는 일이니, 이 상황을 염두에 두고서 읽는 사람이 재구성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의미를 해석하여 재구성하도록 요구하는 것이 바로 상징입니다.   열매는 꽃과 관련이 있습니다. 꽃은 화려하지만 속이 없지요. 반면에 열매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알찹니다. 꽃의 화려함은 결국 이 알찬 열매를 맺기 위해서 식물이 취한 동작입니다. 열매의 가장 큰 임무는 종자를 퍼뜨리는 것이지요.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꽃이 맺는 열매는 희망을 안으로 가진 것일 수밖에 없지요. 그 희망은 여건이 주어지면 곧 싹을 틔워서 아름다운 꽃을 보여줍니다. 희망은 곧 소망입니다.   평상시에 보지 못하던 것을 이 학생은 숲에 와서 바로 그런 새로운 것을 자신도 모르게 보게 된 것입니다. 물론 이 학생이 이러한 생물의 순환 과정까지 계산을 하고서 이 시를 쓴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자신이 굳이 그렇게 의도하지 않더라도 우주의 섭리 속에서 살기 때문에 사람의 관찰 속에는 뜻밖으로 우주의 깊은 섭리가 담기는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멋을 억지로 부리려는 허황한 생각부터 버려야 합니다. 솔직하고 정직하게 바라보는 자에게 우주는 자신의 비밀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겨울밤      이윤정(포항 유성여고 3)   할머니는 화롯가에 앉아 내 스웨터를 짜셨다.   한 올은 나뭇꾼 이야기로 한 올은 선녀 이야기로 돌리고 빼고 엮으면 밤은 숯칠 한 채 익어 가는 소리만 투둑투둑  할머니 무릎을 울리고 입혀주신 옷은 낮게 웅성이는 말들로 엮여 진눈깨비 졸음을 가렸다.   까치밥으로 남은 감이 마당가에서 쉬쉬거리며 겨울 바람을 쫓고 있을 때   따뜻한 베갯머리 맡에서 우리 할머닌 내 겨울을 짜고 계셨다.                    2003년도 배재대 청소년 소월문학상 운문 대상     여기서는 스웨터를 잘 살펴보기 바랍니다. 이 스웨터는 그냥 옷이 아닙니다. 할머니와 관련된 추억이 담겨있습니다. 스웨터는 두꺼운 겨울옷입니다. 추위를 막아주는 기능을 합니다. 할머니가 손주에게 스웨터를 손수 짜 줄 때는 사랑을 전제로 합니다. 그런데 추위를 막는다는 것은 단순히 온도가 차갑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여기서는 세상의 추위까지도 함께 한다고 읽어야 합니다. 할머니는 나에게 스웨터를 짜주는데 그것은 곧 추위에 노출될 손주를 생각하는 할머니의 마음이 아니고는 안 되는 일입니다. 그래서 직접 짜는 스웨터는 단순히 겨울바람만을 막는 기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아늑한 사랑과 그 스웨터를 짜는 할머니를 바라보던 나의 추억까지도 입혀주는 기능을 합니다.   할머니는 스웨터를 짜면서 나무꾼 이야기를 해주었겠지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할머니의 무릎을 베고 잠이 들곤 했습니다. 할머니와 맺은 좋은 추억이지요. 따라서 스웨터를 보면 할머니의 추억이 떠오르고 그런 옷을 입으면 단순히 가게에서 산 옷과는 다른 느낌이 날 수밖에 없습니다. 추위라든가 하는 것은 누구한테나 같은 조건이지만, 추위를 느끼는 것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따스한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은 아무래도 추위를 덜 느끼겠죠. 추억에는 그런 힘이 있습니다.   따라서 이 시의 스웨터는 그냥 추위를 막는 장비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할머니의 추억을 돌이켜 주는 그런 기능까지도 함께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한 가지 뜻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분위기를 한꺼번에 보여주기 때문에 스웨터는 상징이 되는 겁니다.   그러면 이와 비슷한 발상을 시인의 작품에서 보겠습니다.   궤짝에서 꺼낸 아주 오래된 이야기                                 송찬호   우리 집에는 아주 오래된 얼룩이 있다 닦아도 닦아도 잘 지워지지 않는 누런 냄새, 누런 자국의,   우리 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은 그 건망증이다 바스락바스락 건망증은 박하 냄새를 풍긴다 얘야 이 사탕 하나 줄까, 아니에요, 할머니, 할머닌 벌써 십 년 전에 돌아가셨잖아요!     버릇이나 행동 특성이 세대를 넘어서 이어지는 수가 있습니다. 예컨대 우렁손톱이 자식에게 연결되고 손자에게 이어지는 경우가 있지요. 이와 같이 습관도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건망증 같은 경우도 그렇죠. 이 시에서는 집안 내력으로 건망증을 말하고 있습니다. 건망증은 노망든 할머니에게서 나타났겠죠. 그런데 그것이 얼룩, 박하 냄새, 냄새, 자국에 비유되었습니다. 분명히 이것은 비유를 사용한 시입니다. 그런데 그 건망증이 나나 식구들에게 나타난다면 그것은 할머니와 나를 이어주는 매개체 노릇을 합니다. 따라서 시인은 자신이나 혹은 다른 식구들이 겪은 건망증을 보면서 할머니를 떠올린 것이고, 건망증에 걸린 할머니와 맺었던 추억까지 아울러 떠올린 것입니다. 여기서 건망증은 나와 할머니를 이어주는 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징이죠. 그러니까 비유와 상징이 동시에 들어있는 시입니다.   아버지의 휴대폰                     임태운(전주 영생고 3)   태양처럼 붉은 벽돌에 자식의 하루를 짊어져야 하는 아버지의 허리 같이 안테나가 휘어진 그 핸드폰은 언제나 꽃씨를 날리지 못하는 꽃잎이었다.   벌떼들처럼 온갖 소리들이 금 간 안전모 사이로 촉수를 뻗는 공사 현장도 하루살이 같은 내 희미한 목소리로는 닿을 수 없는 모래 화단이었고 찢어진 꽃잎처럼 깨어진 액정은 방향을 잃은 문자 메시지만이 먼지처럼 쌓여 있는 아버지의 휴대폰에는 동그란 종료 버튼만이 잎맥을 지운 채 닳아 있었다.   귓가에 와 닿는 몇 개의 구멍 너머 아버지의 낡은 생은 내 플라스틱 버튼으로는 뿌리를 내릴 수 없는 그 어느 수신 지역에 피어 있는 것일까. 질 때를 알고 고이 지는 꽃잎처럼 아버지의 휴대폰은 늘 기본요금을 넘어서는 법이 없었지만 아버지의 휴대폰이 더 짙은 향기를 뿜어낼 수 있기를 바라는 나는 오늘도 나만이 특수문자로 나비를 만들어 아버지에게 송신해본다. 그 작디작은 나비의 더듬이를 아버지가 볼 수는 없을 테지만 아버지의 핸드폰 안에 피어있는 꽃잎 속에서만큼은 힘차게 날갯짓할 수 있도록.                  2003년 인하대 제9회 인하백일장 운문 장원     아주 재미있는 발상이 돋보이는 시입니다. 휴대폰을 통해서 아버지와 자신의 관계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휴대폰의 사용법을 잘 모르는 아버지와 휴대폰 없이는 살 수 없는 나 사이에는 간격이 있습니다. 나는 휴대폰 속의 이미지나 언어를 잘 활용하지만 아버지는 거기에 익숙지 않아서 휴대폰을 끄고 켜는 것밖에는 모릅니다. 말하자면 보통 전화기의 용도 이외에는 활용할 줄을 모르는 것이죠. 그런데 그런 아버지는 나의 삶을 책임집니다. 그런 책임을 맡은 아버지의 노력 위에서 나는 휴대폰을 사용하는 세대죠. 그래서 아버지에게 휴대폰으로 내 생각을 전달하지만 아버지는 그것을 볼 줄 모릅니다. 세대 간의 단절된 거리를 휴대폰의 상황으로 잘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런 단절을 다시 휴대폰을 통하여 해결하려는 의지가 아버지에게 문자메시지를 날리는 노력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휴대폰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잇고 갈등을 해결하는 구실을 합니다. 당연히 상징입니다.   가는 비 온다                    기형도   간판들이 조금씩 젖는다 나는 어디론가 가기 위해 걷고 있는 것이 아니다 둥글고 넓은 가로수 잎들은 떨어지고 이런 날 동네에서는 한 소년이 죽기도 한다. 저 식물들에게 내가 그러나 해줄 수 있는 일은 없다. 언젠가 이곳에 인질극이 있었다. 범인은 「휴일」이라는 노래를 틀고 큰 소리로 따라 부르며 자신의 목을 긴 유리조각으로 그었다 지금은 한 여자가 그 집에 산다 그 여자는 대단히 고집 센 거위를 기른다 가는 비……는 사람들의 바지를 조금 적실 뿐이다 그렇다면 죽은 사람의 음성은 이제 누구의 것일까 이 상점은 어쩌다 간판을 바꾸었을까 도무지 쓸데없는 것들에 관심이 많다고 우산을 쓴 친구들은 나에게 지적한다. 이 거리 끝에는 커다란 전당포가 있다, 주인의 얼굴은 아무도 모른다, 사람들은 시간을 빌리러 뒤뚱뒤뚱 그곳에 간다. 이를테면 빗방울과 장난을 치는 저 거위는 식탁에 오를 나날 따위엔 관심이 없다 다는 안다, 가는 비……는 사람을 선택하지 않으며 누구도 죽음에 쉽사리 자수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쩌랴, 하나뿐인 입들을 막아버리는 가는 비……오는 날, 사람들은 모두 젖은 길을 걸어야 한다.     여기서 가 나타내는 바는 무엇일까요? 죽음이라고 재빨리 대답한 사람들은 앞의 설명을 아주 잘 이해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앞으로 시에서 얼마든지 이 상징 기법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짝짝짝!   그렇다고 무슨 특별한 눈이 있어서 쉽게 알아본 건 아닐 겁니다. 앞의 시를 읽어보면 그렇게 해석하도록 상황을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죽음은 시를 쓰는 사람이면 누구나 한 번은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태어납니다. 그때부터 그 사람의 시간이 흐르죠. 그 시간의 흐름은 언뜻 보면 한 방향입니다. 자, 여러분은 지금 16세 안팎일 겁니다. 한창 나이죠. 16세라면 여러분들은 한 살이라도 더 살았노라고 제 나이를 속일 나이죠. 그러니까 여러분은 16년을 살아왔다고 말할 겁니다. 그러면 시간으로 환산해보겠습니다. 16년을 살아왔습니다. 그러면 한 번 묻겠습니다. 만약에 사람이 70세까지 산다고 가정을 하면 이 사람에게 남은 시간은 54년이겠죠. 그러면 살았다고 대답한 이 16년은 시간을 줄여온 것인데, 산 게 맞나요? 아니면 죽어온 건가요? 시간이 줄어들었으니, 분명히 명줄이 짧아진 겁니다. 그러면 그게 죽은 것이죠. 어때요?   특별한 해결책이 없는 한 사람은 이와 같이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점점 줄어드는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그러니 이대로 가다가는 저절로 다음을 알 수 없는 컴컴한 구멍으로 빨려들겠죠? 그 구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들이 위 시에는 여러 가지 나옵니다. 떨어지는 낙엽, 인질극, 식탁에 오를 나날에는 관심이 없는 거위……. 이렇게 무심한 듯이 묘사하고 있지만, 죽음이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작용하도록 시인이 배치한 이미지들입니다.   는 속담이 있습니다. 소낙비나 장마비는 굵기 때문에 바깥에 나가면 금방 젖는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런데 안개의 경우는 어떤가요? 또 안개보다 입자가 조금 더 굵은 는개는 어떨까요? 만약에 는개 속에 있다면 옷이 눅눅하다고 생각할 뿐, 비에 젖는다고 생각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가랑비도 마찬가지죠. 신경 쓰지 않고 나돌아 다니면 어느 새 젖어있는 것이 가랑비입니다. 시간이라는 것이 그렇지 않은가요? 16년을 살아온 줄 알았는데, 조금씩 조금씩 시간은 흘러가 버린 것입니다. 드디어 죽음이 다가오죠. 이렇게 죽음으로 젖어 가는 것이 삶의 모습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린다고 직접 말까지 한 것입니다. 그러니 이 가랑비가 곧 죽음을 의미한다고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시간을 빌리러 전당포로 간다고 표현하고 있으니 이 정황은 분명한 것입니다.   이 시의 는 존재하는 것을 무로 바꾸어버리는 어떤 존재를 나타냅니다. 거기에는 죽음도 있고 시간도 있고 허무도 있습니다. 그래서 상징입니다. 이 중에서도 죽음이 가장 중요한 의미로 들어있죠.   대답 없는 바람            조수현   내가 바람에게 물어 보았다. 어디서 오는 길이냐고. 그러나 바람은 아무 말이 없었다. 굳어있는 바위처럼 또 내가 바람에게 물어 보았다. 어디로 가는 길이냐고. 그러나 바람은 역시 아무 말이 없었다. 나무로 만든 인형처럼 다시 또 내가 바람에게 물었다. 바다 건너 들을 질러 산을 넘는 동안 무엇을 얻었으며, 잃었느냐고 그리고 이 세상 다 휘돌고 난 끝에 무엇을 얻겠으며 잃겠느냐고. 그러나 바람은 이미 내게서 보이지 않을 만큼 들리지 않을 만큼 멀리 멀어져 가고 있었다.     여기서는 바람을 잘 살펴보기 바랍니다. 이 시의 바람이 무엇일까요? 우선 나는 삶에 대해서 궁금하게 여기고 있지요? 바람은 어디서 오는지 알 수도 없고 알려주는 사람도 없습니다. 어디로 가는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이 이와 같지요. 그래서 인생의 의미가 무엇이냐고 묻는 것입니다. 그러면 바람이 답을 할까요?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그렇다면 이 시인은 누구에게 묻는 것일까요? 아마도 자신에게 묻는 것이 분명합니다.   시의 끝에서 바람이 멀어져 가는 것으로 봐서는 답을 얻었나요? 못 얻었지요. 원래 얻을 수 없는 답입니다. 그런데 답을 얻지 못해도 궁금한 것이 삶의 의미입니다. 자신에게 끝없이 되묻는 것이 그 질문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 바람은 무엇일까요? 자신이 궁금해 하는 질문에 대해 답을 해줄 수 있는 어떤 가상의 존재일 것입니다. 신일 수도 있고, 자신의 내면에 깃든 본성일 수도 있으며, 아니면 질문하는 사람 자신일 수도 있습니다. 이와 같이 딱히 어떤 존재라고 한 가지로 규정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보면 이렇고 저렇게 보면 저렇습니다. 그렇지만 아무 것도 아닌 것은 아니죠. 분명히 무언가 있습니다. 이와 같은 것을 상징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1989년의 일입니다. 한 후배가 찾아와서 부탁을 하나 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자기네 동네에 어려서 소아마비를 심하게 앓은 사람이 있는데, 거동조차 불편하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혼자 있을 때 시를 쓰곤 한다는 거예요. 시가 뭔지도 모르면서 말이지요. 그래서 답답하다는 겁니다. 혹시 주변에 시를 쓸 줄 아는 사람이 있으면 소개해달라는 부탁을 받았고, 그 부탁을 받은 후배는 나한테 와서 그 사람에게 시 쓰는 법도 알려주고 실제로 시를 봐달라고 당부하는 겁니다.   그래서 나는 어려울 것 없으니, 그리 하겠다고 답했습니다. 그 사람이 움직이기 어렵기 때문에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요즘이야 인터넷으로 대화도 하고 사진도 보내고 하지만 1989년에는 286컴퓨터가 막 나오는 시점이었고, 컴퓨터를 접하기가 쉽지 않은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니 편지로 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그 분의 주소를 받아서 시를 쓰는 데 필요한 몇 가지 마음가짐과 시 쓰는 방법을  알려주었습니다. 그 분한테서 답장이 오고, 그 때부터 편지로 하는 시 창작 강의가 시작되었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읽고 있는 이 책의 창작법이 대부분 그때 뼈대가 잡힌 것입니다.   열흘에 한 번 정도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러면 그에게서 두세 번에 한 번씩 답장이 왔고, 그때 자신이 쓴 시를 한두 편 보냈습니다. 그러면 저는 그 시를 평해서 고칠 점을 다시 써 보냈죠. 이렇게 한 1년 남짓 편지 강의를 했습니다. 그리고는 어느 시점부터인가 편지가 끊겼습니다. 아마도 제 쪽에서는 시 창작 강의의 중요한 부분을 거의 다 했기 때문에 저절로 편지를 중단한 것으로 기억납니다. 그리고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1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을 즈음에 다시 그 후배를 만났습니다. 반갑게 만나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그 사람 소식을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은 오래 전에 세상을 하직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갑자기 머릿속이 텅 비면서 윙윙 소리가 들리더군요. 저와 편지를 나누기 시작한 1년쯤 뒤에 작고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그는 저한테 답장을 할 수 없었던 것이지요. 저는 그것을 모르고 계속 편지를 썼던 것이고, 답장이 오질 않자 제 풀에 꺾여 그만두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맨 막바지에 보낸 편지 몇 장은 그가 아니라 그의 영전으로 배달되었겠지요.   이 이야기를 할까 말까 많이 망설였습니다.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사람의 이름을 거명하여 혹시 그를 욕되게 하는 일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사람의 몸으로 와서 시 한 편이라도 남긴다면 그것은 그가 이 세상에 드리운 아름다운 인연의 자취일 것이고, 그런 인연을 저버린다면 또한 그를 영원 속으로 묻어버리는 것이라는 생각이 한편으로 들었습니다. 그래서 오랜 고민 끝에 이렇게 이야기를 꺼낸 것입니다. 이 책의 첫 출발은 그에게서 비롯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이 세상에 남긴 시와 함께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도 아름다운 인연의 마지막 결산이라고 믿고 15년이 지난 시점에서야 뒤늦은 명복을 빌면서 시인의 이름을 밝힙니다. 조수현 씨. 이승에서 못 다 이룬 시인의 꿈을 저승에서는 꼭 이루기를 빕니다. 2)그리듯이 쓰기 : 이미지     지금까지 비유를 활용하여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이제부터는 마치 그림을 그리듯이 쓰는 방법을 배우겠습니다. 이것은 이미지를 활용하는 방법입니다. 그러려면 우선 이미지가 무엇인가 하는 것부터 알아야겠지요?     이미지는 물론 영어입니다. 라고 쓰지요. 이것을 심상(心象)이라고 번역하여 씁니다. 심상이란 마음속에 그려진 그림이라는 뜻입니다. 이 이미지가 중요해진 것은 서양에서 20세기 들어 일어난 시의 한 유파 때문입니다. 즉 시에서 이미지를 가장 중요한 것으로 활용하여 쓰기를 주장한 사람들이 이미지즘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습니다. 에즈라 파운즈, 흄, 그리고 그들의 뒤를 이은 엘리어트 같은 시인들이 그들입니다. 이들은 여러 이미지 중에서도 특히 눈에 보이는 시각 이미지를 적극 활용했습니다.   그런데 이 이미지즘이라는 시사의 중요한 문예사조가 등장하는데 영향을 끼친 것은 동양의 시들이었습니다. 당시 일본 세력이 한참 성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서양의 시인들에게 일본의 시가 많이 알려졌습니다. 거기에 중국의 한자 문학이 가세를 한 형편이지요. 서양의 시인들이 일본의 시와 중국의 시를 보니까 희한하게도 깔끔하게 풍경묘사가 된 거예요. 그러면서도 아주 절제된 풍경 묘사만으로도 주제를 잘 전달합니다. 그 원리가 무엇일까를 골똘히 연구하고 고민한 결과 그들은 일본과 중국의 옛 시인들이 이미지를 아주 잘 활용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곧 그 방법을 시에 적용시켰습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이미지즘이라는 문예사조입니다.     그러면 이미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자, 제가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젓가락!   이렇게 말하면 이 말을 들은 여러분의 머릿속에는 젓가락이 한 짝 떠오를 겁니다. 안 떠오르는 사람은 졸았거나 딴 짓 하던 사람이죠. 하하하. 바로 이렇게 말을 듣고서 머릿속에 떠올린 그것을 바로 이미지라고 합니다. 이것을 심상이라고 번역한 이유를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말을 듣거나 글을 읽고서 머릿속에 떠오른 사물이나 상황을 이미지라고 하는 겁니다.   이해 다 했지요? 그러면 한 가지 묻겠습니다. 방금 제가 젓가락이라고 했을 때 여러분의 머릿속에 젓가락이 떠올랐는데, 그 젓가락은 옆에 앉은 친구의 머릿속에 떠오른 젓가락과 같을까요? 다를까요?   다를 겁니다. 다를 수밖에 없지요. 자기가 평소 쓰는 젓가락이 쇠젓가락인 사람은 쇠젓가락을 떠올릴 것이고, 거기에다가 황금을 입힌 금젓가락이면 금젓가락을 떠올릴 것이고, 일본에 자주 가는 사람은 네모난 나무젓가락을, 중국에 자주 여행하는 사람이면 길다란 대나무젓가락을 떠올릴 것입니다. 짜장면을 자주 시켜먹은 사람은 두 개가 들러붙은 배달용 나무젓가락을 떠올리면서 머릿속에서 여전히 두 가닥을 짜개고 있을 것이고요.   이미지를 이해하는 것은 그 사람의 체험과 관련이 있습니다. 똑같은 이미지를 제공해도 그것에 반응하는 것은 그 사람의 경험이 결정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독자의 체험이 시의 감상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뜻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미지즘 시인들은 이러한 개인차를 최대한 극복하고 상황을 가장 효과 있게 전달할 수 있는 방법으로 이미지를 선택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주로 느낌을 말로 전하는 그 전의 시에 대해서는 객관성이 부족하다고 비판했습니다. 사실 맞는 말이지요. 그래서 그 후로 이미지는 시에서 빼놓을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이미지가 체험에 의존하여 해석된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사실을 암시합니다. 내가 이렇게 시를 써도 그것을 읽는 사람은 내가 의도한 대로 읽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것을 엘리어트는 ‘의도의 오류’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라는 것이죠. 독자에게는 그렇게 읽을 권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시를 쓰는 사람은 자신의 생각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표현이 독자에게 어떤 이미지를 떠올릴 것인가 하는 것까지 감안을 해서 써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도 문제는 여전히 남겠지요. 그렇지만 시를 쓰면서 오해의 소지를 줄일 수 있는 방향으로 시를 써야 한다는 교훈은 남습니다. 그래야만 자신의 의도를 정확히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점점 개발해 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시인에게 남겨진 숙제입니다. 그리고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 사이의 어긋남 현상을 최대한 자극하여 이미지가 부릴 수 있는 최대한의 효과를 추구하는 방법이 있기도 합니다. 이 점은 앞으로 여러분들이 시를 많이 접하고 쓰면서 점차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이번에는 이미지의 종류에 대해서 간단히 언급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이건 뭐 그토록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이미지에는 다음과 같은 종류가 있습니다.   -시각 이미지 -청각 이미지 -후각 이미지 -촉각 이미지 -공감각 이미지     이것은 감각을 어디로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결정한 겁니다. 무슨 필연성 때문에 한 것이 아니라 편의상 나누어본 것이죠.   시각 이미지는 눈으로 인식하는 이미지를 말합니다. 청각은 듣는 것으로 인식하는 이미지를, 후각은 냄새와 관련된 것을, 촉각은 접촉과 관련된 것을 말하고, 공감각 이미지는 이상의 이미지가 둘 이상 결합한 경우를 말합니다. 예를 들면   -시각 이미지 : 빛나는 아침 햇살 -청각 이미지 : 짹짹짹 참새소리 -후각 이미지 : 고소한 누룽지 냄새 -촉각 이미지 : 꺼끌꺼끌한 마룻바닥 -공감각 이미지 : 수정처럼 빛나는 목소리   어려운 것 없으니 공감각 이미지만 설명하겠습니다. 공감각 이미지는 두 가지 이상의 이미지가 결합한 것입니다. 를 보면 빛난다는 것은 눈으로 인식하는 것이고, 목소리는 귀로 듣는 것입니다. 그러니 시각과 청각이 결합한 것이죠. 이런 것을 말합니다.   이 모든 것이 다 중요합니다만, 이 중에서도 시인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시각 이미지입니다. 다른 것과 다르게 시에서는 시각 이미지만으로도 한 편의 시를 쓸 수 있습니다. 다른 이미지들은 하나만으로 시를 쓰기가 쉽지 않습니다. 청각 이미지인 소리만으로 시를 쓰려면 참 어렵겠지요. 그러나 시각 이미지는 그림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묘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미지에 의한 시 쓰기라고 하면 시각 이미지라고 보면 됩니다. 그래서 이 단원의 제목을 라고 한 것입니다.   작품을 보겠습니다. 강아지          배형준(2-1)   얼마 전 태어난 새끼 강아지   9 마리의 강아지가 와글와글 북적북적   젖 달라고 우는 소리 깨갱깨갱   제일 귀여운 새끼 강아지 쓰다듬어 주고 만져주는데   내 손가락을 쪽쪽 빤다. 간지러운 가운데 손가락   그러다 내 손가락 깨물면 한 대 때려준다.   9 마리의 귀여운 새끼 강아지.     이 시를 읽고 나면 그림 같은 장면이 떠오르지요? 갓 태어난 강아지들이 꼬물꼬물 움직이고 있고, 한 아이가 거기서 강아지들을 만집니다. 사람과 강아지가 어울린 한 폭의 풍경화가 연상되는 것이지요. 이렇게 눈에 보이듯이 그리는 것도 아주 중요한 시의 방법입니다.   그런 걸 누가 못 쓰냐고 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한 번 해보세요. 어떤 풍경을 눈에 쏙 들어오도록 묘사한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절감하게 될 겁니다. 먼저 무엇을 그려야 할지 선택하기가 참 애매합니다. 선택을 해도 어떤 것을 그리고 어떤 것을 빼야 할지 선택하기가 힘들어요.   예를 들면, 이 시에서도 무슨 강아지인지 알 수가 없지요. 그냥 똥개인지, 사냥개인지, 시베리안 허스키인지, 불독인지, 발바리인지 알 수 없어요. 그런데도 강아지를 귀여워하는 한 소년이 장난치는 모습을 드러내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지요. 만약에 불독이라든지 해서 강아지의 종류를 밝혔다면 오히려 더 어색해질 수 있는 상황입니다. 또 개집은 어떤 모양인지 전혀 안 나타나 있어요. 그래도 상황을 이해하는 데 불편함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꼭 필요한 부분만 선택해서 보여주었다는 것이 이 시의 장점입니다.   물론 이 시를 쓴 학생이 일부러 이렇게 계산해서 썼을 리는 없습니다. 그냥 강아지가 귀여우니까 생각나는 대로 보인 대로 쓴 것이겠지요. 꼭 이론을 공부하지 않아도 아주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을 이 작품은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런 절묘한 감각을 나이가 들어가면서 잃어버립니다. 그리고서 어른이 된 뒤에 한 번 시를 써보라고 하면 엉뚱한 묘사만 잔뜩 하다가 괴상망측한 시를 내지요. 이런 감각을 잃지 않고 되찾는 일이 시인이 되는 길입니다. 그걸 배우는 것이 창작법이고요.   사실 배우지 않아도 순수한 마음으로 본 세상을 정직하게 적으면 그게 감동을 주는 시가 된답니다. 이 사실을 꼭 기억하기 바랍니다. 무슨 엄청난 기술을 배워서 시를 쓰려고 할 것이 아니라 자신이 본래 가지고 있던 깨끗한 영혼을 회복하는 것이 좋은 시를 쓰는 가장 좋은 기술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더 강조합니다.   병아리                 김은지(2-1)     어미 닭 쫓아다니느라, 나들이 나가느라, 정신없는 병아리.   소풍가는 아이들처럼 때지어 쫓아다니고,   까만 눈 속에 흑진주 박은 듯이 반짝거리며,   합창하듯이 ‘삐약’거리는 귀여운 병아리.   노란 원피스가 잘 어울리는 유치원 아이들처럼   노란 옷이 잘 어울리는 사랑스런 병아리.     비유가 일부 들어가 있기는 하지만, 이 작품의 전체 흐름은 병아리의 모습을 묘사하는 데 있습니다. 연노란 색 털이 보송보송한 병아리를 보면 누구나 귀엽다는 생각을 합니다. 병아리들이 돌아다니는 모습을 아주 잘 잡아내고 있지요. 봄에 눈에 잡힌 한 풍경을 그렸는데, 바로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처럼 선명하게 나타납니다. 그리고 자신이 그 병아리를 보면서 감탄했던 순간으로 안내합니다. 딱히 병아리가 어때서라기보다는 그런 상황에 처한 자신의 체험을 떠올리기 때문에 감동하는 것이죠. 그런 순간은 아주 순수한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상황으로 독자를 끌어들였다는 것이 이 시의 장점입니다. 이렇게 어떤 상황을 깔끔하게 그려놓기만 해도 좋은 시가 된다는 사실을 이 시는 보여줍니다.   부처님 오신 날              장미(2-1)   지금 목탁소리가 들린다.   스님들이 부처님 앞에서 절을 하고 있다.   불경소리가 들린다. 불경을 외우는 스님 옆에서.   사람들이 부처님께 절을 하고 있다.   어린아이에서부터 머리가 하얀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모두 부처님께 절을 하고 있다.   부처님은 행복을 바라는 우리의 마음을 아시는지.   우리 모두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으신다.     절에 간 체험을 간략하게 잘 요약하여 묘사하고 있습니다. 부처님은 미소를 짓고 있지요. 부처님의 모습을 잘 묘사하고서 그 미소의 의미를 나름대로 제시했습니다. 부처님이 왜 미소를 짓고 있는지는 아무도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설령 설명했다고 하더라도 그건 그 사람의 설명일 뿐인 것입니다. 부처님은 말이 없습니다. 그런데 부처님 오신 날 사람들이 많이 가서 소원 비는 것을 보니까 그런 마음을 부처님이 아시는 거라고 추측한 것입니다. 그 추측이 생뚱한 것이 아니라면 시에서는 얼마든지 표현할 수 있습니다. 시인은 사물을 새롭게 해석할 권리가 있고 의무가 있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해석한 장면을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여주듯이 보여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어떤 사건이나 사물에서 자기 나름대로 새로운 면을 찾아내어 노래하는 것 역시 시의 중요한 방법입니다. 이 시는 그런 방법에 충실한 것입니다. 부처님 오신 날의 절터 풍경이 손에 잡힐 듯이 떠오르지요? 이렇게 생활의 느낌을 보이는 대로 그리듯이 쓰는 것도 시의 한 방법입니다.   요즘 나는             정해남(제천상고 3)   친구들이 남자친구 이야기를 하면 난 힘없이 고개를 돌리고 맙니다.   친구들이  자기 집안 얘기를 하면 난 무척 바쁜 양 딴청만 피웁니다.   친구들이 심술궂은 내 짝 이야기를 하면 난 어디를 가는 척 슬며시 뒤로 물러 나와버립니다.   친구들이 조기 취업 이야기를 하면 난 나와 무관하다는 듯 하품만 해 버립니다.   무언가에  속하지 않으면 딴 세상 사람이 되어야 하는 세상의 법칙.   요즘 나는 이렇듯 모든 것에서 예외인 아이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외톨이가 되어 가는 학생의 모습이 아주 깔끔하게 묘사되었지요? 정말 군더더기 하나 없습니다. 이란 말이 나오네요. 이 말은 실업계 학생들에게 해당하는 얘깁니다. 실업계 학생들은 3학년 2학기 때 현장실습이라는 것이 있어서 공장이나 회사에 취업을 나갑니다. 이때 각 업체에서 추천해달라고 주문이 들어옵니다. 그러면 성적을 보거나 생활 태도를 보고서 점수에 따라 순서대로 취업을 내보냅니다. 못 나가거나 늦게 나가면 전에는 못난이 취급을 하곤 했습니다. 자존심 상하는 일이지요. 그것을 말한 것입니다. 열등감이 있는 학생의 심리와 행동을 아주 잘 묘사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이 학생만의 이야기 같지만 사실 알고 보면 당시의 이런 환경에 처한 학생들은 열에 아홉은 이런 고민을 했습니다. 그러니 마치 자기 얘기인 것처럼 말했지만, 이것을 읽는 사람은 마치 자기 이야기처럼 들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 이야기를 해도 남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 시입니다.   이 시에서 보듯이 그리듯이 쓰는 방법은 어떤 것을 그릴 것이야 하는 것이 아주 중요한 노릇을 합니다. 남들이 별로 공감할 수 없는 것을 아무리 충실하고 빼어나게 그린들 사람들이 반응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분명하지요. 그래서 시인들은 고민을 하는 겁니다. 과연 어떤 부분을 그릴 것인가? 정답은 늘 자신에게 있습니다. 자신에게 절실한 것은 남에게도 절실한 것입니다. 그런 부분을 흥분하지 않고 눈에 보이는 대로 그려주는 것이 좋은 작품을 쓰는 비결입니다.   5연에는 이란 말이 두 번 나오는데, 이 중에 하나는 다른 말로 바꾸어주는 것이 좋겠죠? 불필요한 반복은 시에서 단점으로 봅니다 농무                신경림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오동나무 전등이 매어달린 가설무대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빈 운동장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줏집에서 술을 마신다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 꽹과리를 앞장세워 장거리로 나서면 따라붙어 악을 쓰는 건 조무래기들뿐 처녀애들은 기름집 담벽에 붙어 서서 철없이 킬킬대는구나 보름달은 밝아 어떤 녀석은 꺽정이처럼 울부짖고 또 어떤 녀석은 서림이처럼 해해대지만 이까짓 산구석에 처박혀 발버둥친들 무엇하랴 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 따위야 아예 여편네에게나 맡겨 두고 쇠전을 거쳐 도수장 앞에 와 돌 때 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 한 다리를 들고 날나리를 불꺼나 고갯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꺼나     농무는 시골에서 농사꾼들이 상모를 돌리면서 한 바탕 추는 춤을 말합니다. 물론 장구라든가 북 같은 도구들이 따라 나오지요. 이 시는 그런 시골의 풍경이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이 시를 쓰던 상황의 시골을 보면 농사를 지어도 비료 값도 안 나오죠. 사는 게 답답하고 고달픕니다. 시골 살림이 어렵다는 말입니다. 그런 어려움에 찌든 사람들이 나와서 춤을 추는 것입니다. 나 는 조선 중기 사람들입니다. 벽초 홍명희가 소설 을 썼는데, 거기에 나오는 인물들이죠.   답답하고 살기 어려운 시골의 정경이 잘 요약되었습니다. 그런데 하고 많은 풍경 중에서 하필 사람들이 버리고 떠나는 시골을 상대로 이렇게 세세하게 묘사를 했을까요? 여기에 시인의 의도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농촌은 날로 피폐해졌습니다.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그 속도는 점점 빨라졌지요. 우리나라는 농사를 가장 중요한 일로 생각하고 하늘처럼 떠받들며 살아온 사람들의 나라입니다. 그런데 상황이 바뀌었어요. 산업사회로 접어들면서 농사는 이제 사람을 먹여 살리는 기능을 도시에 떠넘긴 겁니다. 그러면서 점점 사람들이 시골을 떠나지요. 이렇게 되면 수 천 년 동안 이어져온 농촌이 파괴됩니다. 그러나 거기를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잘 살 수 있을까요? 그 반대입니다. 떠나지 못해서 하는 수 없이 삽니다. 이 얼마나 비참합니까? 그래도 농촌을 버릴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이 시는 그런 사람들의 애환을 담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모습을 충실하게 그린 것입니다.   만약에 그런 사람들에 대한 시인의 동정심을 겉으로 드러냈다면 이 만큼의 감동을 주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그런데 그들에 대한 감정을 살짝 감추고서 안타까운 풍경만을 슬며시 그려서 제시했습니다. 그래서 더욱 감동을 하게 되는 겁니다.   이미지로 그림 그리듯이 쓴 시가 어떤 효과를 내려고 하는 것인지 잘 알겠죠? 감정이 직접 드러나지는 않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그 그림 전체를 머릿속에 그린 후에 한꺼번에 감동이 밀려드는 것입니다.   주막                      백석     호박잎에 싸오는 붕어곰은 언제나 맛있었다     부엌에는 빨갛게 질들은 팔모알상이 그 상 위엔 새파란 싸리를 그린 눈알만한 잔이 보였다     아들아이는 범이라고 장고기를 잘 잡는 앞니가 뻐드러진 나와 동갑이었다     울파주 밖에는 장꾼들을 따라와서 엄지의 젖을 빠는 망아지도 있었다     제목이 주막입니다. 나그네들이 오가는 길목에서 음식과 잠자리를 제공하는 옛날 숙박업소를 말합니다. 백 시인은 평안북도 사람입니다. 해방 전에 자신의 고향집 풍경을 그린 것이죠. 풍경만 그려놓았을 뿐 가타부타 무슨 말이 없습니다. 이렇게 풍경만 제시해도 그것을 읽는 사람의 머릿속에는 그림이 떠오르면서 어떤 감성을 불러일으킵니다. 친구 엄마가 운영하는 주막에서 친구가 호박잎에다가 잘 고은 붕어를 가져다준 모양이죠? 장꾼들이 망아지를 끌고 와서 밥을 먹고 가는 그런 추억의 풍경들이 고스란히 살아나서 그런 정황을 아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묘한 향수를 자극하게 됩니다. 이렇게 풍경을 묘사하는 것만으로도 시를 쓸 수 있습니다.   불국사                 박목월   불국사 자하문   달안개 물소리   대웅전 큰보살   바람소리  솔소리   범영루 뜬그림자   흐는히 젖는데   흰달빛 자하문   바람소리 물소리.     이 시는 묘사의 극단까지 나갔지요? 불국사에 대해서 시를 쓰는데, 자신의 의견을 모두 버리고 눈에 보이는 대로 적었습니다. 그것도 거의 명사만을 썼습니다. 어떻습니까? 불국사의 분위기가 잘 전달이 되나요? 읽는 사람은 이 명사들이 나타나는 대로 불국사의 정경을 떠올리면서 따라갑니다. 그의 머릿속에는 불국사의 정경이 그림처럼 나타나겠지요?   사실 절에 대해서 시를 써보면 만만찮습니다. 절이란 부처님이 사는 곳인데, 그곳에 대해서 섣불리 말했다가는 망신만 당하기 일쑤입니다. 불교의 사상이나 철학이라는 것이 쉽게 접근해서 얻기 어려울뿐더러 설령 얻었다고 해도 문자 밖의 세계이기 때문에 말로 하기 참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놀러왔다는 듯이 묘사를 해 가지고는 또 절의 그 신성한 모습이 담기지를 않거든요. 그래서 아주 절제된 감각으로 불교의 신앙체계와 관련이 있는 이미지들을 끌어들이기가 쉽습니다. 그런데도 설명을 자꾸 하게 되어 짧은 지식을 드러내곤 하지요. 이렇게 명사만 나열해서 시 한 편을 이루어야겠다고 판단한 것 자체가 굉장한 고수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듯이 쓰기의 극치를 보여주는 시입니다.   살다보면 우리는 때때로 잊을 수 없는 장면이나 상황을 마주치는 수가 있습니다. 예컨대 5.18 광주항쟁 때 열 살 안팎의 한 아이가 아버지의 영정 사진을 안은 채 제 품에 안은 사진틀에 턱을 괴고 앞을 바라보는 사진 한 장이 신문에 실려 전 세계인의 가슴을 찡하게 만든 적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광주 사태를 떠올릴 때 그 사진이 먼저 떠오릅니다. 한 장면이 그대로 한 사건의 인상을 결정해버린 것입니다. 비단 이런 커다란 사건만이 아니라 개인에게도 이런 잊을 수 없는 장면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 장면은 특별한 설명 없이 제시만 해주어도 큰 울림을 갖습니다. 바로 이와 같이 어떤 전형이 될 만한 사건이나 상황을 있는 그대로 제시하기에 가장 좋은 시의 방법이 바로 입니다.   디지털 세대인 여러분들이 이런 효과를 가장 많이 그리고 쉽게 접하는 것은 광고일 것입니다. 10초의 미학이라는 말이 있듯이, 광고는 가장 짧은 순간에 시청자의 뇌리로 파고들어야 하기 때문에 옛날식으로 물건의 쓰임새나 효과에 대해 시시콜콜 설명했다가는 당장 리모콘이 다른 번호를 눌러버릴 것입니다. 그래서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장면을 제시해주는 방법을 많이 씁니다. 바로 이 광고식 보여주기 수법을 연상하면 시에서 쓰는 이 방법을 이해하기 좋을 듯합니다. 시를 오래 쓸수록 이 방법의 위력을 점점 더 느낍니다. 3)직접 말하기     위의 두 가지 방법은 무엇엔가 의탁해서 표현하는 방법입니다. 그런 만큼 어느 정도 기술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시에는 이런 것을 전혀 몰라도 쓸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생각나는 것을 정리해서 수필 쓰듯이 쓰는 것입니다. 체험하면서 느낀 점을 담담하게 말하는 것이죠. 그래서 라고 이름을 붙여봤습니다.     이 방법은 가장 흔하게 쓰이는 방법이고, 또 가장 쉬운 방법입니다. 생각나는 것을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쓰는 것입니다.   시는 언어로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언어는 사람의 생각을 상대에게 전해주는 기능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어의 본래 속성대로 내 생각을 전해주는 수단으로 여기고 자신의 생각을 쓰는 것입니다.   그런데 언어는 사람의 생각을 전달하는 것인데, 막상 글을 쓰면 이상하게도 생각만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그 생각을 말로 적을 때의 감정까지도 전달됩니다. 시는 바로 이 점을 노린 겁니다. 생각을 전달하되, 거기에다가 최대한 많은 감정이 실리도록 쓰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글을 쓰는 사람이 그렇게 감정이 잘 실리도록 써야 합니다. 그러니까 언어 자체에 시의 속성이 있는 것이 아니고, 언어가 감정을 최대한 갖고 가도록 쓰는 방법에 시의 속성이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런 방법을 잘 터득할 수 있는가? 그건 딱히 어떻다고 말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말로 설명하자면 너무 어려워집니다. 아침에 집에서 나올 때 왼쪽 신발을 먼저 신었던가 오른쪽 신발을 먼저 신었던가를 말하라는 것과 비슷합니다. 잘 쓰면서도 왜 그렇게 썼느냐고 물으면 대답하지 못하는 것이 시입니다.   다만, 이것만은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많이 읽고, 또 많이 쓰면 저절로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쓰는 요령은 이렇습니다. 자신이 겪은 일 가운데서 새로 깨달은 부분을 과장되지 않고 솔직하게 적으면 됩니다. 그런 일을 자꾸 반복하다 보면 점차 숙련이 됩니다.   그러면 작품을 보면서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내 안의 적                    김민지(3-1)   이번만은 꼭 하겠다고 이번만큼은 해 내겠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말일뿐이다. 생각일 뿐이다.   몸과 마음은 서로 적이다. 그래서 인지 마음이 말을 듣지 않는다. 이상한 현상이다.   진실하게 말하자면 나도 몸이 하는 행동을 알면서도 모른 척 하는지 모른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인지 몸과 마음을 구별할 수 있는 시기가 온 것 같다.     자, 이 시에 앞서 배운 어떤 표현이 있나요? 없지요? 특별한 기교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 학생이 현재 고민하고 있는 생각의 질서만이 나타날 뿐입니다. 그래도 자신의 갈등을 아주 잘 정리하고 있습니다. 이런 간략한 정리 역시 생각의 질서를 나타내는 것이고, 그런 생각의 질서를 아무런 꾸밈없이 드러내는 것 역시 시의 중요한 방법입니다. 그래서 라고 제목을 붙인 것입니다. 말 그대로 자신의 생각을 직접 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학생의 작품을 한 편 더 보겠습니다. 겉모습은 많이 다른 것 같지만 원리는 같은 시입니다.   나들이 가던 날           김민지(3-1)   어미 닭과 그 뒤를 졸졸 따르는 병아리들처럼……   우리도 선생님 뒤를 따라 쫑쫑거리며 봄나들이를 간다.   우리가 나들이 왔다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곤히 자던 잠을 깨고 눈을 비비며   서로서로 먼저 나올려고 발버둥을 친다. 할미꽃은 허리 많이 아픈지 고개를 들을 생각도 않는다.   진달래는 우리를 환영하기 위해 줄지어 서서 바람을 따라 산들산들거린다.   진달래가 샘이 났는지, 소나무와 다른 나무들은 우리를 막아서서 못 가게 가시를 이용해 마구 찔러댄다.   우리는 ‘아야’ ‘아야’ 하며, 화를 내지만 우리는 알 수 있다.   샘이 나서가 아니라 관심을 끌기 위해서란 걸…….     중간 중간에 비유도 나오지만 이 시를 잘 보면 선생님을 따라서 산으로 봄나들이 간 체험을 말하고 있습니다. 봄나들이야 누구나 다 하는 일이지요. 그런데도 이것이 시가 되는 것은 이 학생이 경험한 느낌을 적었기 때문입니다. 체험은 같을지 몰라도 그것을 느끼는 것은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선생님을 따라갔기 때문에 이 학생만 간 건 아닙니다. 다른 학생들도 다 갔지요. 그런데 이 느낌은 이 학생만의 것입니다.   앞서 자신의 느낌을 적으라고 했던 것 기억날 겁니다. 자신의 느낌이라는 것을 유달리 강조하는 것은 바로 이런 것 때문입니다. 느낌은 사람마다 다 다르고 시에서는 사람마다 다 다른 그런 느낌을 존중합니다. 사람마다 느낌이 다 같다면 시라는, 나아가 문학이라는 예술이 성립할 수도 없습니다. 예술은 독자성이 그 생명입니다.   가는 도중에 꽃도 구경하고, 바람도 느꼈고, 나무들에게 찔렸습니다. 그리고 그 나무들이 사람의 사랑을 받으려고 샘을 냈다고 썼습니다. 아마 그 날 산에 가서 본 것은 이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구름도 봤을 것이고, 동네도 봤을 것이고 무덤도 봤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은 시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시에서 자신의 체험을 쓸 때 모든 것을 다 쓰는 것이 아니라 꼭 필요한 몇 가지만 추려서 쓴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이와 같이 자신의 경험 중에서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요약해서 제시하는 방법이 바로 지금 우리가 세 번째의 방법으로 제시한 방법입니다. 어떤 다른 표현법을 사용하지 않고 체험을 추려서 중요한 부분만 직접 말하는 것입니다.   이 시에서는 비유도 들어있지만, 전체의 흐름은 자신의 체험을 말하는 것이라고 미리 말했습니다. 그래서 의 범주에 넣은 것입니다.   4연 첫 행의 는 가 맞는 것이겠지요? 그렇기는 합니다만, 시에서는 그런 거 너무 골치 아프게 따질 필요가 없습니다. 나중에 말하겠지만, 그런 거 시시콜콜 따지다가는 정작 생각이 끊겨서 시를 잘 못 씁니다. 그리고 이런 틀린 표현이라고 하더라도 실제 생활에서 그렇게 발음하고 쓰면 그게 오히려 더 시의 분위기를 살려줍니다. 시에서는 맞춤법보다 어감이 더 중요합니다. 그리고 아래 5연을 보면   진달래가 샘이 났는지, 소나무와 다른 나무들은 우리를 막아서서 못 가게 가시를 이용해 마구 찔러댄다.   는 굳이 없어도 되는 말입니다. 그렇지요? 없어도 앞 뒤 의미 연결에 전혀 지장을 주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있다고 해서 무슨 문제가 되는 건 아닙니다. 이렇게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을 경우에는 없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합니다.   계속해서 작품을 보겠습니다.   시 쓰는 친구들             김봉진(2-1)   지금은 국어시간. 노는 시간이라 착각하고 놀고있는 친구들   병덕이는 나무에 매달리고. 광섭이는 돌아다니며 시를 자랑하고. 연호는 노래를 리매이크를 하고. 제연이는 “방카”의 카리스마를 자랑하고. 팔장 끼고 돌아다니는 윤표. 시를 쓰고 들어오는 정근이와 희성이 춤을 추며 들어오고.   우리 반은 시 쓰는 시간이 체육시간보다 쬐금 재미있다.     시를 쓰라고 시간을 주면 얌전히 앉아서 쓰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자꾸 떠들려고 하지요. 한 번은 시상을 떠올려야 한다면서 밖으로 나가자고 하더군요. 말하자면 야외수업을 하자는 겁니다. 그래서 모르는 체하고 허락을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시 쓸 생각은 안 하고 엉뚱한 장난만 하면서 놀더군요. 그래도 그냥 두었습니다. 그랬더니 자기들이 해놓은 말이 있으니까 뒤가 켕겼는지 집에서 써왔습니다. 이 시도 그 중의 하나죠.   국어 시간에 시 쓰는 친구들의 모습이 자세히 묘사돼있죠? 여기서 병덕이니, 광섭이니, 연호니 하는 학생들이 누구인가를 굳이 알 필요는 없겠지요? 왜냐하면 여러분의 경험으로 보아 어떤 상황인지 모두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지요. 이름은 특수한 명사이지만, 이렇게 독자로 하여금 연상할 수 있는 상황에서 쓰이면 보통 명사처럼 쓰인답니다.   이 시에서 우리가 배울 것은 어떤 상황을 잘 요약한 겁니다. 특별히 화려한 표현도 없고, 재미있는 표현도 없지만, 시 쓰라고 준 시간을 활용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눈에 잡힐 듯이 보입니다. 이렇게 우리들이 살고 행동하고 느끼는 것을 잘 요약하여 옮겨놓으면 그것이 그대로 시가 되는 것입니다.   맨 마지막 줄에는 재미있는 심리가 드러나 있지요? 남학생들에게 체육시간보다 더 재미있는 시간이 어디 있겠어요? 그런데도 국어시간이 재미있다고 말하는 것은 미안한 마음이 투영된 것이겠죠? 앞부분에서 제시했듯이 시를 쓴다고 하면서 엉뚱한 짓을 하는 데도 혼내거나 뭐라고 잔소리를 하지 않으니까 일종의 아부를 한 것이겠죠. 그런 순수한 마음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그런 마음을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 시의 장점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애개개! 이런 정도는 누가 못써? 이런 생각을 하는 학생들이 있을 겁니다. 그런 학생들은 여태까지 약간 잘못된 고정관념에 빠져있던 것입니다. 시는 무언가 그럴 듯한 것을 표현해야 한다는 그런 고정관념 말입니다. 그런 고정관념은 틀림없이 교과서의 시에서 배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 학생들처럼 자신의 생활을 노래하는 과정을 충분히 거쳐서 그런 시에서 시의 재미를 느끼게 된 다음의 일입니다. 시는 결코 특별한 것을 노래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소박하게 담는 훌륭한 그릇입니다. 바로 이 점을 깨닫는 것이 시를 잘 쓰는 것보다 더 중요합니다.     무시무시한 놀이터              이세호(1-1)   놀이터는 위험을 주는 곳 항상 조심해야 할 곳.   시소는 무척이나 재미있다. 하지만 엉덩이가 다칠 수도 있다.   그네도 무척이나 재미있다. 하지만 뒤에 있다가 부딪칠 수도 있으며 떨어질 수도 있다.   미끄럼틀도 재미있다. 하지만 굴러 떨어질 수 있다.   놀이터는 언제 다칠지 모르는 위험한 곳.     재미있지요? 놀이터를 재미있는 곳으로만 생각했지, 위험하다고 노래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듯합니다. 그러나 내막을 살펴보면 정말 그렇지요. 누구나 놀이터에서 다친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놀이터라는 머릿속의 개념 때문에 그런 위험을 노래한다는 생각을 미처 못 한 것입니다. 이 학생은 놀이터라는 선입관을 버리고 자신이 처했던 위험한 경험을 시로 쓸 생각을 했습니다.   이와 같이 남들이 흘려버리기 쉬운 것을 한 번 깊이 생각해서 옮겨 놓는 것도 좋은 시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너무나 많지요.   시작과 끝 부분에 비슷한 말을 반복하면 의미를 강조하는 효과를 냅니다. 물론 이 학생이 그러한 시의 이론을 알고 썼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생각을 잘 정리하면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는 명쾌히 몰라도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바로 이와 같이 자신의 내면을 조용히 들여다보는 것이 시를 잘 짓는 것입니다. 시의 이론을 배운다고 해서 시를 잘 쓸 수는 없습니다. 이와 같이 생각이 움직이는 방향을 면밀히 살피면 복잡한 시의 이론에서 설명하는 효과를 나도 모르게 시에서 발휘하게 됩니다.   봉진이                김준석(2-1)   우리 반의 실장 우리 반의 덩치 얼굴에는 여드름 꽃.   얼굴에는 하얀 미소를 띠고 귀에는 항상 이어폰을 꽂고 노래를 부르네.   내가 놀리면 도끼눈을 뜨고 나는 도망을 가네. 잡히면 죽으니까.     사람의 특징을 아주 짧게 요약하여 보여주는 것도 시의 좋은 방법입니다. 사람은 사람을 무수히 만나면서 살고 사람 사이에서 감정을 느끼고 살아갑니다. 그런 감정들을 소홀히 하지 않고 주위의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져서 그들의 특징을 노래하는 것 역시 즐거운 일입니다.   맨 끝에 보듯이 장난을 많이 치는 관계인가 봅니다. 잡히면 죽는다는 표현은 좀 과장된 것이겠지요? 하지만 이렇게 표현하는 상황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 만큼 친하게 지낸다는 뜻입니다. 장난치고 도망가고 하는 두 사람의 관계가 눈앞에 선하게 떠오르게 상황을 아주 잘 요약했습니다.   내 필통               채희성(2-1)   내 필통은 갈곳 없는 볼펜들의 종착점 갈곳 없는 볼펜은 다 내 필통으로 온다.   교실에 굴러다니는 볼펜도…… 복도에 굴러다니는 볼펜도……   내 눈에만 띠면 전부 다 내 필통으로 모여든다. 그래서 내 필통에는 내 볼펜 조금. 줏은 볼펜 하나 가득.     우리가 자랄 적에는 연필도 귀했고 볼펜은 더더욱 귀했습니다. 그래서 보통 잉크를 펜촉으로 찍어서 썼지요. 그런데 잉크는 병에 담겨서 가지고 다니면 아주 불편합니다. 깨지는 수도 있고 엎질러지는 수도 있고, 또 펜촉은 너무 날카로워서 찔리는 수도 있습니다. 연필 같은 경우에는 쥐고 쓸 수 없을 정도로 짧게 닳으면 볼펜깍지에 끼워서 썼습니다. 종이도 그렇습니다. 그때는 질도 나빴고 귀했습니다. 교과서도 몇 해를 건너면서 빌려다 보아야 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요새는 물자가 너무 흔해서 탈입니다. 연필은 절반도 쓰기 전에 잃어버리기 일쑤이고, 볼펜 종이 말할 것도 없습니다. 학생들이 돌아가고 난 교실에 가보면 볼펜이나 공책 따위는 쉽게 주울 수 있습니다.   이 학생은 볼펜을 줍는 버릇이 있는 모양이지요? 자신의 그런 습관을 잘 묘사한 작품입니다. 옛날 같으면 남의 볼펜을 주워서 자기 필통에 넣기 쉽지 않습니다. 도둑놈으로 몰릴 테니까요. 그런데 요즘이야 물자가 흔한 세상이니 설사 다른 사람이 가져간다 해도 그거 돌려달라고 할 사람 거의 없을 것입니다. 흘린 것이니 말이죠.   이와 같이 자신의 습관을 소재로 표현하는 것도 중요한 재미입니다. 그래서 늘 자신의 버릇이나 생활을 꼼꼼히 살피는 것이 시를 잘 쓰는 지름길입니다. 시는 주변에 대한 관심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3년 마지막 행의 은 이 맞겠지요? 그러나 이런 거 함부로 따지면 안 된다고 아까 말했죠? 그 사람의 말버릇이라고 봐도 되기 때문입니다. 시에서는 개인의 그러한 소소한 버릇까지도 존중해주어야 합니다.   우유             길영근(2-1)   월 화 수 목 금 토 매일 매일 나오는 매일 우유   화요일엔 정근이 얼굴처럼 검은 초코 우유   금요일엔  소풍을 가고 싶던지 피크닉 우유   우리 학교엔 언제나 3가지 맛! 우유가 찾아온다.     요새는 학교마다 거의 우유를 먹습니다. 옛날에는 상상도 못하던 일이지요. 면장 아들이라든가 아니면 최소한 양조장 주인의 조카쯤은 되어야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우유 역시 흔한 것이 돼놓으니, 이젠 잘 먹으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학생들이 돌아간 뒤에 교실에 가보면 교탁에는 꼭 우유가 몇 개씩 남아있습니다. 그 만큼 흔한 것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각 학교에서는 성장기에 있는 학생들이 우유를 먹도록 갖가지 꾀를 냅니다. 그 중에 좋은 것이 입맛을 당기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흰 우유를 주다가 어떤 때는 딸기 우유, 초콜렛 우유같이 다른 맛이 나는 우유를 주기도 하지요. 어떻게든 먹여보려는 선생님들의 노력입니다.   이 시는 그렇게 해서 배달되는 우유를 보며 장난삼아 쓴 것입니다. 매일 우유, 초코 우유, 피크닉 우유. 이렇게 오는 우유 이름을 갖고 나름대로 해석을 붙여본 것이죠. 매일 오니까 , 초코 우유는 밤색이니까 친구의 얼굴색을 닮아서 , 피크닉에서는 소풍을 연상하고는 , 모두가 친근하고 엉뚱한 생각입니다.   발상이 참 재미있지요? 그런데 잘 보면 비유도 있어서 시 전체의 균형을 잡고 있습니다. 그런데 전체의 흐름은 매일 공급되는 우유에 대해서 쓴 것이기 때문에 비유에서 다루지 않고 이 단원에서 다룬 것입니다. 이렇게 재미를 느끼면서 시를 쓰다 보면 나중에 저절로 훌륭한 작품을 쓸 수 있게 됩니다. 그전에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은 이렇게 생활 주변에서 재미있는 시의 소재를 찾는 일입니다.   처마 밑 고드름                   노은희(1-1)   언제 녹아서 고드름이 되었는지 처마 밑엔 고드름이 줄지어 서있다.   누가 더 키 크나, 누가 더 뚱뚱하나 대결하기 바쁘다.   제일 큰 고드름은 뽐내다가 어느 개구쟁이의 손에 떼어지고   두 번째로 큰 고드름도 뽐내다가 두 번째 개구쟁이의 손에 떼어진다.   이렇게 처마 밑의 고드름들은 개구쟁이 손에 하나 둘씩 떼어져 간다.   언제 녹아서 고드름이 되었는지 처마 밑엔 고드름이 줄지어 서있다.     이 시에도 역시 비유가 나오지요? 그렇지만, 비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고드름을 보고서 그것을 관찰했다는 것이 이 시의 장점입니다. 고드름은 추녀 끝에서 땅 쪽으로 자라지요. 추울수록 굵기도 굵어지다가 햇빛을 받으면 물을 뚝뚝 흘립니다. 아이들이 이것을 신기하게 여기고서는 똑똑 떼어서 먹기도 하고 차버리기도 합니다. 그런 과정을 눈에 보이는 대로 정리하여 적은 것이지요. 어른들의 눈에는 보일 리 없는 현상입니다. 세심한 관찰이 이룬 일이지요.   그림                정윤섭(3-1)   하얀 백짓장 위에 색색깔로 그림을 그린다. 살색으로 얼굴을 그리고 검은색으론 머리를 그리고 파랑색으로는 옷을 그리고 회색으로 바지를 그리면 나의 모습 완성   옆에서 누군 줄 모르는 사람을 그리고 그 사람을 향해서 빨간색을 날린다. 누군 줄 모르는 사람이 나를 보고 웃는다. 그 사람이 누굴까?   다음 장으로 넘기고 그림을 한 장 더 그린다. 이번엔 그 사람이 보인다. 누구지? 아직 내가 모르는 사람 그 사람이 나에 사랑에 상대 그 사람의 색깔을 모르겠다. 나는 사람에 색깔을 모르는 아직 애송이다.     사춘기 학생이면 누구나 이성에 대해서 사랑을 느낍니다. 대부분 그것이 부끄러운 것인 줄 알고 숨기지요. 그리고는 혼자서 끙끙 앓습니다. 표현력이라도 좋고 배짱이라도 좋으면 과감하게 자기감정을 표현하면 되는데,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것도 여의치 않습니다. 그래서 속을 속 태우지요. 그런 감정을 시로 쓴 것입니다. 그것을 그림에다 비유를 했고, 그림을 보면서 완성하고픈 사랑을 노래한 것입니다. 사춘기의 섬세한 감수성이 아주 잘 나타난 경우가 되겠습니다.   시험             김영주(2-1)   시험은 나에게 어려운 문제 시험을 보면 틀릴까봐 마음이 콩닥콩닥.   풀고도 걱정되어 또다시 풀어보고 수학시험을 보면 내 마음은 긴장하듯   시험은 왜 어려울까? 아이들은 고민하네. 틀린 문제 싫어   시험을 부모님께 보여 주면 부모님이 나에게 하시는 잔소리.     자, 이 시는 학생들의 절실한 고민을 담은 시지요? 무슨 기법이나 기술을 가지고 쓴 시가 아닙니다. 성적을 두고 걱정되는 생각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입니다. 그저 시험 때문에 애간장 타는 심정을 있는 그대로 적은 것이지요.   이렇게 자신의 심정을 직접 말하듯이 쓰는 방법이 있습니다. 마음이 간절할수록 시는 감동을 줍니다. 아주 많은 시들이 이 방법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모기향                엄유진(안양예고 1)   초등학교 1학년 정식이, 늦게까지 학교에 남아 친구들과 얼음땡을 하고 들어와서는 얼굴과 손, 발에 물만 대충 묻히고 잔다 땀냄새 때문에 극성을 부리는 모기 소리에 찡얼대며 일어난 준식이는 미색바탕에 백합 무늬가 그려져 있는 이빠진 접시 위에 모기향을 피워 동생 머리맡에 놓는다. 그래도 형이라고.                     2003년 경남대 제32회 전국고교생 한마백일장 운문 장원   이 시의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한 형이 동생을 위해 모기향을 피우는 사연을 동작이 이어지는 대로 묘사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시를 시답게 해주는 것은 마지막 구절입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를 맨 마지막에 제시함으로써 앞에서 무심한 듯이 묘사해온 구절들을 한 순간에 시로 만들어줍니다. 그럼으로써 동생을 생각하는 형의 마음을 아주 잘 나타냈습니다.   이런 시를 보면 좋은 시를 쓰는 것은 글재주가 아니라 주변의 사소한 일들에 대한 관심과 관찰력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이 시에서도 특별히 엄청난 기교나 재주가 사용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동생을 생각하는 한 아이의 행동을 관찰하여 그것을 시로 써볼 생각을 한 계기가 좋은 시를 낳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 말을 이 학생이 시를 쓰는 재주가 부족하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안 되겠죠? 이 상황을 이만큼 간략하면서도 필요한 말들만 골라 쓸 줄 아는 것도 아주 대단한 능력입니다. 그리고 오랜 연습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죠.     앞서 살펴본 두 방법, 즉 1)빗대어 쓰기와 2)그리듯이 쓰기는 나름대로 기술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 세 번째 방법인 직접 말하기 수법은 특별한 기술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살아가면서 느낀 점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쓰면 됩니다. 물론 어떻게 쓰면 시가 단단해지고 군더더기 없이 자기의 생각이 잘 전달될 것인가 하는 것을 익히고 연습하는 숙제가 남아있습니다만, 달리기 연습을 많이 한 학생이 잘 달릴 수 있는 것처럼 그것은 많은 작품을 쓰면서 조금씩 숙달시켜 가면 될 일입니다.     금강산   글 깨나 한다는 사람치고 읊지 않은 사람이 없고 그림 깨나 그린다는 사람치고 그리지 않은 사람이 없다. 그런 작품을 위해 나도 기꺼이 절망의 순간을 맞고 싶다. 하지만 내가 걱정하는 것은 조화옹의 손길 앞에서 절망한 나머지 시 한 구절 읊조리지 못하고 그냥 돌아서는 것이 아니라 그리움이 너무 긴 나머지 막상 보았을 때 조화옹의 솜씨가 그 동안 꿈속에서 그려낸 내 작품만 못하면 어쩌나 하는 것이다.     이 작품은 순전히 생각만으로 썼습니다. 비유도 없고 상징도 없고 이미지도 없습니다. 그냥 금강산을 생각하는 마음뿐입니다.   금강산은 우리나라, 아니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이지요. 그런데 분단으로 인해서 남쪽에서는 가볼 수 없는 땅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금강산에 다녀온 옛날 분들한테 금강산 칭찬을 들으면서 나름대로 금강산을 머릿속에 그려봅니다. 너무 오랜 세월 동안 가장 아름다운 형상으로 금강산을 마음속에 만들었습니다. 분단의 세월이 깊어가면서 그 그림 역시 화려해지지요. 한 사람의 상상력을 최대한 가동해서 그렸으니까요.   그러다가 몇 해 전부터 북한 금강산을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배를 타고 가기도 하고 얼마 전부터는 육로로도 가지요. 그래서 지금은 갈 수 있는데도 이제는 겁이 나는 겁니다. 만약에 ‘내가 생각한 금강산보다 실제 금강산이 못하면 어쩌나?’ 하는 엉뚱한 생각이 나는 겁니다. 오랜 분단이 사람의 마음속에 만들어놓은 상처지요. 이런 상태를 있는 그대로 생각 따라 적은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만을 적어도 시가 된다는 것을 말하려고 이 작품을 소개했습니다.   이 작품은 비유나 이미지가 없이 생각으로만 썼습니다. 그러나 이 방법이 꼭 순수하게 생각만으로 쓰는 것은 아닙니다. 자기의 생각을 직접 말하는 방법으로 시를 쓰더라도 그 안에 이미지도 나타나고 비유도 나타나도록 하는 것이 더 흔한 방법입니다. 한 번 보겠습니다.   몇 년 전에 우리 가족이 서울 나들이를 간 적이 있습니다. 방학을 이용해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롯데월드를 가서 놀다 오자는 것이었지요. 그래서 기차를 타고 청량리역에서 내려서 잠실 가는 지하철을 탔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아내, 그리고 아이 둘, 해서 모두 넷이었습니다. 낮이어서 그랬는지 자리가 비는 바람에 우리 넷은 나란히 앉았습니다. 몇 시간 기차에 시달리다 보니 피곤했는지 옆에 앉은 아내가 꾸벅꾸벅 졸다가 제 어깨에 머리를 대는 겁니다. 곧 이어서 아이들도 엄마 옆구리에 끼여서 졸더구만요.   그런데 저는 졸 수가 없는 겁니다. 넷 중에 행선지를 아는 사람은 저뿐이고 만약에 제가 졸다가 역을 지나치면 낭패를 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졸음이 쏟아지는데도 저는 졸지 않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마음속으로 내려야 할 역을 꼽으면서 기다렸지요.   그런데 그 순간 묘한 생각이 떠오르는 겁니다. 이거 상황이 꼭 제가 살아가는 것과 똑같은 것처럼 느껴진 것입니다. 남편이라고 아빠라고 한 가족이 저를 따라나섰는데, 저 자신도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 잘 알 수 없고, 그러면서도 한 가족을 이끌고 그들을 어디론가 데려가는 제 처지가 생각난 겁니다. 순간 순간의 내 결정에 따라서 이들의 삶도 바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묘한 상황입니까? 사는 게 뭔지도 모르고 흘러가는 것이 내 인생인데, 그런 인생에 또 다른 인생 여럿이 딸려서 지금 어디론가 가고 있는 것입니다. 갑자기 가슴이 콱 막히면서 막막해지더구만요. 눈시울이 뜨거워졌지만, 나이 마흔 아저씨가 어디 울 수가 있나요? 한 동안 고개를 떨구고 있는데 머릿속에서 갑자기 시의 회로가 작동하기 시작하더군요. 그래서 담담히 속으로 이 시를 썼습니다. 그리곤 집에 와서 정리했지요.     지하철에서   그 붐비는 지하철 안에서 운이 좋게도 우리 식구 넷이서 나란히 앉았다. 잠시 후 아이들이 졸고, 양쪽 옆구리에 아이들의 몸을 받친 아내도 존다. 롯데월드 가는 길, 나는 잠이 오질 않는다. 우리 식구가 누릴 한 때의 즐거움을 향하여 지하철이야 잠실에서 끝나겠지만, 그곳에서 끝나지 않을 또 다른 길이 문득 떠올랐기 때문이다. 살아갈수록 길은 험하고 흐려지는데 방향을 물어도 분명해지는 건 없고 캄캄한 창 밖은 불빛이 번뇌처럼 스쳐간다. 종착점과 방향을 분명히 모르는 한 가장과 그 가장을 철썩 같이 믿고 따라나선 곤한 식솔들을 태우고 지하철은 덜컹거리는 어둠 속을 달린다. 롯데월드 가는 길 간간이 서는 간이역을 잊은 채 식솔들은 곤히 잠들고 나는 잠이 오지 않는 지하철에서.     비유도 나오고 이미지도 나오지만 시의 중심이 되고 있는 것은 지하철을 타고 롯데월드를 찾아가던 체험입니다. 이 체험의 과정에서 깨달은 내용을 독자들이 알기 쉽게 설명해준 것입니다. 이렇게 직접 말하기의 수법으로 시는 써집니다.     라는 창작 방법을 마치기 전에 확인하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말하기는 누군가 듣는 것을 전제로 하고 속삭이듯 쓰는 것입니다. 산문 중에서 그러한 방법으로 쓰는 것이 바로 입니다. 따라서 편지의 어법을 시에서 활용하면 아주 좋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예를 보겠습니다.   해바라기의 사랑                 최희정(제천상고 2)   당신의 뒷모습에서 빗물이 묻어납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형태를 흐리게 하고 내 마음을 흐리게 합니다.   언제나  뒷모습만을  바라보며 서 있는 기다림의 마음을, 그것만으로도 행복과 슬픔을 모두 느낄 수 있는 해바라기의 사랑을 당신은 모르십니다.   바람이 세차어도 꺼지지 않을 촛불 하나 가지고 있지만 당신에게서 묻어나온 빗물에 내 가진 촛불 하나 슬픔으로 가물거립니다. 이젠 돌아서서 날 보아주지 않으시렵니까?   사랑하는 사람에게 쓴 편지의 투를 흉내 낸 시입니다. 누군가에게 말하는 형태로 쓰였지요? 물론 이 시의 원리는 비유를 활용한 방법입니다. 해바라기는 해를 바라보면서 삽니다. 해와 해바라기의 관계를 사랑하는 사람과 나의 관계로 바꿔놓고서 쓴 시이지요.   그런데 여기서 설명하고자 하는 것은 그 비유가 아니라 말투입니다. 편지에 쓰이는 말투로 쓰면 시를 쓰기가 굉장히 편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시를 써야 할지 막막할 때는 편지투를 사용하는 것도 좋습니다.     신혼 초에 주말부부를 한 적이 있습니다. 일요일 날 새벽에 떠나서 토요일 날 오후에 오는 것이죠. 사랑하니까 함께 살자고 하는 것이 결혼인데, 결혼을 하자마자 떨어져서 일주일에 한 번 보니 얼마나 애절하겠어요? 월요일마다 아내는 눈물바람입니다. 그런 아내를 보는 저의 심사는 어떻겠어요. 감정이 북받칠 밖에요.   그런데 현실이 현실이다 보니 아내를 위로해야 할 방법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가끔 편지를 썼지요. 그런데 감정이 애절하다 보니 써놓은 편지를 읽어보면 시 같은 거예요. 그래서 이참에 시를 쓰자 마음을 먹고 그날 그날의 느낌을 시로 썼습니다. 그리고 날마다 그것을 엽서에 적어서 보냈습니다. 아내가 무척 감동하더군요. 그러면서 그 어렵던 시절을 건넜습니다. 옛날에 냈던 시집에서 두 편만 소개합니다.   완행열차   좌석표가 이미 매진이 되어 하는 수 없이 완행열차에 올랐습니다. 긴 의자 두 줄뿐인 맨 뒷칸으로 가니 텅 빈 것이, 속도에 떠있는 것은 덜컹거리는 고요와 나 혼자 뿐입니다. 느긋한 마음에 늘어질 대로 늘어져 긴 의자에 네 활개를 펴고 누웠습니다. 세상이 이렇게 편할 수 없습니다. 당신에게 가는 길은 언제나 이렇게 마음 편하면 좋겠습니다. 마음의 허리띠를 한 칸 늘여놓고 돌아갈 그 어떤 곳이 있다는 것은 이 각박한 세상에 당신이 내게 내린 커다란 축복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투명한 햇살과 시원한 봄바람이 열린 창으로 손뼉 치듯 쏟아집니다.     이 시는 정말 편지 그대로지요? 일요일 날 아내를 헤어져서 돌아오다가 기차를 타고서 느낀 것을 있는 그대로 적은 것입니다.   꽃   아름다움이란 개나리, 튜울립, 장미 같은 꽃들을 염두에 둔 말이지요. 그러나 복숭아, 살구 혹은 사과나 배꽃도 그에 못지않게 아름다운 것들임을 이 아침 과수원 길에 잠시 서서 깨닫습니다. 목적에 가려진 아름다움이라고나 할까요. 그래서인지 삶의 그늘에 가려진 아름다움을 어느 날의 당신에게서 문득 발견하고는 소스라치게 놀라듯이 아름다움이 목적인 꽃나무들보다 더 아름다운 과일나무의 꽃들 앞에서 감탄사를 연발하는 아침입니다. 꽃이 지면 그저 풀일 뿐인 꽃들과 가지마다 풍성한 가을의 예감을 매달고 있는 과일나무의 아름다움을 잠시 생각하곤 이 시간 생활의 먼지 속에 가려져 있을 당신의 빛과 풍성한 당신의 사랑을 생각했습니다.   여기에는 비유가 주축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비유 얘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라 편지투로 된 방식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 점을 살펴보기 바랍니다.  자, 이렇게 해서 시를 쓰는 원리 세 가지를 다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시를 이렇게 분류한 것은 이전에는 없던 일입니다. 제가 처음으로 한 것입니다. 이것이 칭찬 받을 일인지 비난  받을 일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읽고서 실제로 시 쓰는 데 도움을 받으면 칭찬을 받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비난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고 저러고, 이렇게 세 가지로 분류를 했는데, 그냥 이렇게 설명만 해놓으면 좀 무책임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 세 가지 방법에 대해 간단한 이름을 한 번 붙여볼까 합니다.   세 가지 방법을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제일 먼저 는 내 생각을 다른 것에 빗대어 표현하는 것입니다. 비유를 말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비유라고 하는 것은 서로 다른 두 사물 사이에서 같은 점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 생각과 같은 것을 골라내는 것이지요. 따라서 이것은 서로 다른 사물의 사이에서 동일점을 찾아내는 것이기 때문에 ‘동일시의 시학’이라고 이름 붙이면 어떨까요?   두 번째 는 이미지로 말을 하는 것입니다. 이미지로 말을 한다는 것은 마음의 그림을 그린다는 얘깁니다. 따라서 쉽게 ‘그리기의 시학’이라고 하겠습니다.   세 번째 는 자기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쓰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쓰는 데는 듣는 사람을 전제로 합니다. 말하자면 이야기가 되는 것이죠. 그래서 ‘이야기의 시학’이라고 하면 어떨까요?   이렇게 해서 서툴지만 나름대로 이름을 붙여봤습니다.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빗대어 표현하기 - 동일시의 시학 ②그리듯이 쓰기 - 그리기의 시학 ③직접 말하기 - 이야기의 시학  4)변형과 종합     시를 쓰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라는 것이 여태까지 말해온 지론이었습니다. 방법상으로 보면 분명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런 방법을 섞어서 쓰는 또 다른 방법이 있지 않을까요? 실제로 그렇습니다. 이 방법을 둘 또는 세 가지를 모두 섞어서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원칙은 세 가지이지만, 이 섞어 쓰는 정도에 따라서 다시 몇 가지로 더 나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목을 변형과 종합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그 변형의 방법에 대해 한 번 훑어보고 가겠습니다. 그냥 참고로 하기 바랍니다. 어차피 위의 세 가지 원칙만 알면 나머지 변형은 그 세 가지를 가지고 적당히 섞은 것이기 때문에 다 알아볼 수 있습니다.   먼저,  순수하게 위의 방법 한 가지만으로 쓴 시들이 있을 것입니다.   [1] 순수한 동일시의 시학 [2] 순수한 그리기의 시학 [3] 순수한 이야기의 시학   여기에다가 두 가지를 섞어서 쓴 것이 있을 수 있으니, 그 경우의 수를 만들어보면 다음 네 가지를 만들 수 있습니다.   -[1+2] -[1+3] -[2+3] -[1+2+3]     관찰력이 민감한 학생은 이렇게 물을 수 있습니다. [1+2]와 [2+1]은 다른 것 아니냐고요. 맞습니다. 그런데 수학에서는 맞는데 시에서는 이 두 가지가 섞인 양상이 거의 비슷합니다. 물론 동일시의 시학을 주로 하고 그리기의 시학을 곁들이로 하는 것과, 그리기의 시학을 주로 하고 동일시의 시학을 곁들이로 하는 것은 분명히 다른 것이지만, 막상 그 정도로 정확하게 구별해서 섞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섞이나 저렇게 섞이나 다 비슷한 모양으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것은 [3]을 뼈대로 하고 거기에 [1]이나 [2]를 추가한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접하는 시의 한 7~80% 가량이 이런 형태에 속합니다. 자신이 살아가면서 느끼거나 깨달은 것을 담담히 서술하면서 거기에다가 신선한 비유와 상징, 또는 이미지를 곁들여 쓰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자세한 구별이 필요하다면 더 자세히 나누어도 됩니다. 다만 그렇게 너무 세세히 구별하면 시 쓰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서 이런 정도로 그치는 것입니다. 그러면 방법이 섞인 시를 보겠습니다. 유성음            -야학일기 3.-                               강규선   저무는 날. 처음부터 우리들은 흔들림이었고.           Ⅰ 비틀대는 수업을 가로지르며 네가 다가왔다. 썬생니, 수업을 하노라면 흐르는 시간 따라 떠돌던 마음도 문득 깨어나, 그렇지 너도 읽어야지, 국어 책을 읽히고, 순간 깜빡이는 불빛으로 불안하던 눈동자들.   저무는 바람 속. 무심히 드러누운 활자 사이를 더듬으며 비틀대는 반신불구, 네 혀 주위로 우뚝 솟아오르는 한 어둠을 보았다. 종결어미 없이 스러지는 너의 말 끝으로 부끄러이 스며드는 한 얼굴을 보았다. 견고하게 아름답던 세상 풍경마저 비스듬히 돌아누워 아 우 어 우 으, 으, 으.   결국은 소리죽인 울음으로 끝나가던 책 읽기. 끝없이 응고하며 주저앉는 너의 침묵이 크낙한 말의 벽으로 일어서는 역설 앞에서 웅웅대며 흩어지던 시야 끝 돌연 반신불구처럼 뒤틀며 키득이던 아이들.              Ⅱ   모든 우리들은 어디에도 없어. 오늘 국어시간. 하루의 안전을 확인하듯 조심스레 출석을 부르면, 너의 번호 위에서 언뜻 비틀대는, 붉은 두 줄의 확고함. 꿈꾸듯 걸어온 나의 실족들을, 꼭꼭 디디며 이어서는 너의 빈자리. 사실 산다는 것은 흔들림 이외에 또 무엇인가. 살아있는 우리들은 잠시 역설일 뿐이라며 교탁을 후려치는 불빛.     그러나 이제 책을 펴야지. 가진 것 너무 많은 우리여서 서글픈 확신 하나, 아는 것이 힘. 어둠 저 너머로 별 하나 흐르듯 자 찔끈 두 눈 감고 오늘은 유성음을 공부할 차례. 저…… 선생님. 유성음(流星音)이란 우리들처럼 어디에도 없는 소리인가요. 아 아니야 유성음(有聲音)은 떨려, 떨리는 음. 코를 잡고 발음해 봐, ㄴ-ㄹ-ㅁ-ㅇ- 그래 너희들처럼 코가 울리지 울리는 너희들이 유성음.     이라는 부제가 달린 것으로 봐서는 연작이라는 것을 알 수 있고, 또 야간학교 생활을 다룬 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시인은 야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임을 알 수 있습니다. 내용을 추려보면 야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데 발음을 잘 못하는 학생이 있습니다. 발음이 잘 안 되니 국어시간에 곤란하겠지요. 그 때문에 아이들은 웃고요. 당사자는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상황을 바라보는 교사의 마음은 너무나 아프고 게다가 그런 상황을 어찌 해줄 수 없다는 무력감이 교사를 괴롭히고 있는 상황입니다.   야간학교는 일반 학교를 갈 여건이 못 돼서 다니는 학교입니다. 그런데 거기서도 배우고자 하지만 그게 여의치 않은 사람이 있는 겁니다. 이와 같은 체험이 시의 중요한 줄기를 이루고 있지요. 직접 말하기를 택하는 입니다. 그런데 섬뜩하면서도 날카로운 표현들이 들어있습니다.   무심히 드러누운 활자 말의 벽 반신불구처럼  너의 번호 위에서 언뜻 비틀대는, 붉은 두 줄의 확고함 유성음(流星音) - 유성음(有聲音) 울리는 너희들이 유성음.     이런 표현들은 비유에 바탕을 둔 표현들입니다. 의인화도 들어있고요. 또 자세히 보면 상징도 들어있습니다. 다음이 그런 구절들입니다.   처음부터 우리들은 / 흔들림이었고 우뚝 솟아오르는 한 어둠을 꿈꾸듯 걸어온 나의 실족들을, 꼭꼭 디디며 이어서는 너의 빈자리.   의인화니 상징이니 하는 것들은 빗대어 쓰기의 수법입니다. 그러니까 이 시는 에 이 결합된 경우입니다.   이렇게 시는 어느 한 가지 방법으로만 쓰이는 것이 아니고 여러 가지 방법이 결합하면서 다양한 표정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면 학생의 작품을 보겠습니다.   대망석재                박미라(옥천고)   바닥에 널린 돌조각들 밟고 선 아버지의 신발 속으로 불편한 시간이 들어가 있다 아버지는 돌을 깎는다 살점 떨어져나갈수록 더 선명한 눈물자국 보여주는 대리석에 형의 숨소리 박아넣는다 돈을 벌어오겠다며 뛰쳐나간 형은 석재상의 간판 주름처럼 거미줄이 생기고 색 바래가도 돌아오지 않는다 아버지는 형을 기다리며 날마다 무딘 망치소리 사이에 흐느끼는 신음 채워넣는다 전기톱이 살을 뚫고 오는 소리에 톱날을 물어버리는 대리석 돌가루 날리는 허공에 물 뿌려보지만 뿌연 그리움은 쉽게 진정되지 못한다 아버지의 닳은 옷소매에 채워지는 기다림 털어도 헤진 자리 깊숙이 파고 들어가 털어지지 않는다 망부석처럼 말이 없는 석상 앞에서 아버지는 굳게 다문 입으로 바람 드나드는 것 허락하지 않은 채 구름도 멈춰선 하늘을 오래 바라본다 신발 속에서 뒤척이는 돌조각들 서로 부딪혀 모서리 헐어내고                         2003년 배재대 청소년 소월문학상 운문부 우수     이 시는 석재상을 운영하는 아버지의 삶을 요약한 시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거의 묘사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돌을 깎아서 석물을 만들면서 이루어지는 동작을 동원시켜서 말을 하고 있지요. 그런데 거기에 할 말이 사이사이 끼어들어서 읽는 사람에게 설명을 해줍니다. 돈벌이가 안 되는지 형은 돈을 벌어오겠다며 뛰쳐나갔습니다. 그 만큼 아버지는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지요. 그런데 시인은 아버지의 생활이 힘들고 어렵다고 쓰지를 않았습니다. 그것을 석재상의 여러 도구와 작업으로 대신 묘사를 하면서 중간 중간에 자기가 하고픈 말을 곁들인 것입니다. 묘사와 할 말이 적당히 배합된 작품입니다.     시의 형식을 보고서 발상법을 구별하자면 한이 없습니다. 예컨대 비유를 사용하는 동일시의 시학에서도 가짓수를 무제한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동일시의 시학은 비유이기 때문에 비유하는 것과 비유 당하는 것 두 가지가 나타나게 마련이지요. 그것을 원관념과 보조관념이라고 한다는 것은 앞서 설명한 대로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원관념을 더 많이 드러내느냐 보조관념을 더 많이 드러내느냐에 따라서 시의 모습이 많이 달라집니다. 원관념만 많이 드러내고 보조관념은 조금만 드러낸 시와, 원관념은 조금 드러나고 보조관념이 많이 드러난 시는 분위기가 많이 다릅니다. 그리고 이 두 가지가 아주 조화를 이루어서 균형 잡히게 드러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를 구별하면 다음과 같이 되겠지요.   -원관념을 더 많이 드러낸 시 -원관념과 보조관념이 비슷하게 드러난 시 -보조관념을 더 많이 드러낸 시   이렇게 하면 셋인 것 같지만, 실제로는 이 사이사이에도 무한정으로 종류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무지개는 일곱 색깔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그 사이사이에 무수히 색깔이 들어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예컨대, 이런 식이지요.   -원관념 10% + 보조관념 90% -원관념 20% + 보조관념 80% -원관념 30% + 보조관념 70% -원관념 40% + 보조관념 60% …………… -원관념 90% + 보조관념 10%     물론 이 사이에도 계속 숫자를 잘게 나눌 수 있습니다. 물론 그게 현실 속에서 정확히 그숫자만큼 달아서 시를 판독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요. 이론상으로는 그렇다는 얘깁니다.   게다가 이것을 위의 분류와 결합시키면 시의 가짓수는 무한대에 가깝게 많아집니다. 그것을 다 다루어 볼까요? 어때요? 머리가 딱딱 아프지요? 좋은 방법이 없을까요?   있습니다. 앞서 말한 세 가지 방법만 기억하면 됩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상황에 따라서 섞여서 나타난다고 보면 간단합니다. 5)퇴고하기     시에서 이미 써놓은 작품에 손을 대거나 고치는 것을 퇴고(推敲)라고 합니다. 물론 한자말이죠. 이 말은 중국의 한 고사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아니! 이 어려운 말은 쉬운 말로 바꿔 쓸 생각을 안 하셨나요? 더욱이 남의 것을 갖다 쓰는 것은 더 싫어하시면서. 이렇게 물을 사람이 있을 법도 합니다. 없다구요? 없으면 말구요. 하하하.   사람이 하는 일이 전문화가 이루어지다 보면 불가피하게 어려운 용어가 등장합니다. 저는 그런 것을 좋아하지 않는 편입니다.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말을 쓰지 않고 전문용어를 쓴다고 해서 내용이 달라지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자꾸 그렇게 하는 사람들은 무언가 다른 의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일반인들이 할 수 없는 어려운 일을 자기들이 하고 있다는 식의 권위를 세운다든지, 그것을 바탕으로 일반인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막아서 자신들의 영역을 확보한다든지 하는 것 말입니다. 법률 용어나 의학 용어를 보면 이런 혐의를 지울 수 없습니다. 문학도 마찬가지입니다. 불가피한 경우도 없지 않겠지만 영어나 한문 같은 어려운 말을 써서 일반인들이 따라가기 참 어렵게 만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언뜻 보면 이 퇴고라는 말도 그렇게 보입니다. 어려운 말이지요. 그 말이 생겨난 사연까지 알아야 하는 경우니까요. 그런데 이 말에 작품을 고치는 어떤 아름답고 인간미 넘치는 사연이 들어있다면 어떨까요? 그런 사연으로 인해서 시 쓰는 사람들 사이에 관습으로 전해졌다면, 그 아름다운 사연을 기억하는 것도 아름다운 일이 아니겠어요? 그런 말들은 좀 어렵더라도 받아들이는 것이 마땅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면 그 사연을 좀 보겠습니다.     옛날 당나라 말기에 가도(賈島)라는 중이 있었습니다. 이 중이 나귀를 타고 가다가 기가 막힌 시 한 구절을 얻었습니다. 이런 내용입니다.       새는 연못가 나무에 깃들고,(鳥宿池邊樹)     중은 달빛 아래 문을 두드린다.(僧敲月下門)   어때요? 길을 가다가 저녁때가 되면 시인으로서 이런 생각을 할 법하지 않은가요? 그런데 써놓고 나니 이 자가 문제였습니다. 중이 문 앞에 서서 인기척을 낼 때 두드린다고 하는 것이 더 좋을까, 민다고 하는 것이 더 좋을까 잘 판단이 서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귀 위에서 직접 동작을 해보았습니다. 미는 동작을 했다가 두드리는 동작을 했다가, 이렇게 혼자 움직이고 흥얼거리며 어떤 글자를 쓸까 골똘히 고민하는 사이 나귀는 등에 탄 사람이 방향을 가르쳐주지 않자 엉뚱한 곳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나귀가 간 곳은 공교롭게도 경윤의 행렬이었습니다.   경윤(京尹)은 요즘으로 치면 서울시장쯤 됩니다. 당시 서울을 관리하는 최고 책임자가 호위군사를 대동하여 지나가는 행렬로 밀고 들어간 것입니다. 당연히 소란이 일었지요. 으리으리한 원님 행차가 지나가는데 그 위에 탄 사람은 어디에 온 줄도 모르고 밀고 두드리는 동작을 하면서 흥얼거리고 있으니 미친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겠어요? 시위들이 당장 붙잡아서 경윤 앞으로 끌고 갔습니다. 그러자 그 경윤은 어찌 된 사연이냐고 물었고, 가도는 시 구절에 들어갈 말을 고르지 못해서 골똘히 생각을 하다가 그랬다고 사연을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경윤은 어떤 구절이냐고 물었고, 가도는 앞의 두 구절을 말해주었습니다. 그 구절을 한참 생각하던 그 경윤은 가 더 좋다고 말했습니다.   그 경윤은 누구냐 하면 당시는 물론 지금까지도 유명한 한유라는 선비였습니다. 다행히도 그 나귀는 가도라는 이름 없는 한 중을 당시의 대학자이자 높은 벼슬아치에게 데려가 소개를 해준 셈입니다. 아주 묘한 인연이지요. 사정이 이쯤 되니 이 둘 사이의 관계는 어떻겠어요? 당연히 친해졌겠지요? 이 사연을 전해주는 이야기책의 끝 구절이 ‘드디어 함께 고삐를 나란히 하여 돌아갔다’(遂與竝轡而歸)고 하는 것으로 봐서는 그 뒷이야기도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한유의 권유로 이 중은 환속하여 나중에 벼슬생활을 합니다. 이 사건으로 한유의 명성 덕분에 단숨에 유명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시가 지닌 경향은 다소 달랐습니다. 한유는 당나라 말기의 시 풍조가 화려한 표현을 좋아하는 쪽으로 흘러가자 그것을 비판하면서 꾸밈이 없는 옛날 한나라 때의 순수한 분위기로 돌아가자는 쪽이었고 가도는 당시 화려한 재주를 한껏 뽐내며 멋을 부리는 쪽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고친다는 뜻으로 쓰는 라는 말은 여기서 나온 것입니다. 가도가 로 할 것이냐 로 할 것이냐 고민하듯이 정성 들여서 고친다는 뜻이 담긴 말이지요. 이 정도면 아름다운 일 아닌가요? 그래서 라는 말보다는 라는 말을 쓰는 것입니다. 이런 일을 기억하는 일이야말로 시를 생각하는 마음이기도 합니다.     퇴고를 하는 방법에 무슨 왕도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열심히 그리고 많이 쓰다 보면 저절로 고치는 요령이 생기는 법입니다. 이런 일에 수학 문제 풀 듯이 어떤 방법이 있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것이죠. 시는 이 세상에는 없는 마음속의 느낌을 언어에 담아서 질서화 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많이 쓰다 보면 저만의 어떤 원칙이 생기는 것이고, 그것을 창작법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무언가 기댈 언덕은 있어야겠죠? 먼저 시를 쓸 때는 발상을 메모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메모를 마친 다음에 그 시에서 무엇을 말할 것인가 하는 것을 찾아봅니다. 쉽게 말하면 주제를 찾는 것입니다. 처음 시상이 머릿속에 떠올랐을 때는 주제가 분명하게 잡히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냥 상상만으로도 존재하는 경우가 많죠.   그런데 대부분의 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제입니다. 나머지 표현 방법들은 이 주제를 전달하기 위해서 동원되는 것들입니다. 그러니까 모든 표현은 이 시의 주제를 잘 전달하기 위해서 작용한다고 보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발상을 메모했으면 주제를 한 번 더 생각하고, 그 주제에 맞는 내용을 보충합니다. 이 때의 내용이란 주제를 보충해주는 할말도 포함되고 거기에 필요한 표현이나 장식도 포함됩니다.   이렇게 하고 나서는 다시 처음부터 읽어가면서 주제를 전달해주는데 잘 어울리는 이미지들은 놔두고 나머지는 과감하게 잘라버립니다. 라고 하는 것은, 표현이 아깝다고 그대로 두지 말라는 얘깁니다. 시를 쓰는 사람들은 표현을 굉장히 중요시합니다. 그래서 평상시에도 이런저런 좋은 표현들을 머릿속에 담아두었다가 시에 필요할 때 쓰죠. 좋은 표현을 얻는 일은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래서 애써 얻은 구절들은 버리기 아까워하죠. 그렇다고 그대로 두면 바로 그 아까운 구절 때문에 시 전체의 초점이 흐려집니다. 그래서 과감하게 버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버린다고 해서 영원히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나중에라도 다시 쓰는 날이 생기니 염려 말고 지금 당장은 과감하게 버리기 바랍니다.   그리고 나서는 다시 읽어가면서 부족한 부분은 표현이든 주제든 추가시킵니다. 그리고 다시 읽어 가면서 다듬으면 됩니다. 그리고 반드시 소리 내어 읽어야 합니다. 몇 차례 소리 내어 읽다 보면 읽어가면서 가락도 생기고 눈으로 볼 때와는 또 다른 단점들이 눈에 띕니다.   이상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① 발상부터 재빨리 적는다. ② 초고를 보면서 시의 주제를 명확히 정한다. ③ 그 주제를 중심으로 이미지를 재배치한다. ④ 불필요하거나 조금 거리가 먼 이미지나 표현은 과감하게 잘라낸다. ⑤ 다시 읽으면서 부족한 주제나 표현을 보충한다. ⑥ 세밀한 부분을 다듬는다. ⑦ 몇 차례 소리 내어 읽는다.   그러면 퇴고의 과정을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앞에서 비유로 쓰는 동일시의 시학을 소개하면서 이란 작품을 소개했습니다. 그 작품의 경우를 보겠습니다. 목이 삐끗해서 정형외과에 가서 엑스레이 사진을 찍었고 내 몸 속의 뼈가 드러난 그 사진을 보면서 쓴 시입니다. 그 사진을 보는 순간, 어떤 할 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것을 대충 이렇게 적었습니다.   나는 내가 여태까지 사람인 줄 알았는데 오늘 알고 보니 공룡이다. 흉측한 모든 뼈대를 살가죽으로 덮고 헝겊으로 잘 싸기까지 한 저 백악기나 쥐라기의 한 공룡이다.   정형외과에서 찍은 엑스레이 사진에 내 본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등뒤로 살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지만 목뼈부터 등뼈까지 날개처럼 돋친 스테고사우루스 뼈들의 나열. 엑스레이 앞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러니까 이제야 풀린다. 옷으로 덮어도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던 탐욕과 주머니에 든 송곳처럼 밖으로 치솟던 공격성과 난폭함 이런 것들은 공룡한테 당연한 것이다. 어디서 말미암은 것인지 분명해진다.   수 억 년이 지났는데도 완전히 퇴화하지 못한 채 내 살과 가죽 속에서 으르렁거리며 한 마리 공룡이 깃들어있다.     먼저 형광 사진에서 본 뼈를 통해서 나를 공룡으로 규정을 하고, 그 모습의 실상을 제시한 다음에, 내 속의 난폭성이 공룡에서 왔음을 말한 다음에, 그런 공룡이 내 몸 속에 들어있다고 제시하고자 한 방법입니다. 그 순서대로 정리됐죠.   그런데 좀 거칩니다. 이렇게 제시하면 뭐 시라고 못 할 것까지는 없지만 잘 썼다고 보기는 힘들겠죠. 이렇게 네 단계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독자가 아무런 불편도 느끼지 못하고 저절로 따라가게 하려면 이 비약과 비약 사이를 좀 더 매끈하게 연결시켜주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주제입니다. 이 정도에서도 주제가 분명하기는 합니다. 육식공룡의 탐욕성이 내 안이 있다는 것이죠. 그 탐욕성에 대한 설명이 그냥 뼈대만 나와 있어요. 그래서 공룡과 인간의 탐욕성을 좀 더 자세하게 설명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부분에 대한 추가설명과, 상황을 좀 더 자세하게 표현하는 것이 이번 퇴고의 목적이 됩니다. 그래서 이렇게 고쳤습니다.   나는 내가 여태까지 사람인 줄 알았는데 오늘 알고 보니 공룡이다. 약육강식이 판을 치던 저 쥐라기나 백악기의 한 지층에서 살아온 한 마리 육식공룡임을 정형외과에 와서 알았다. 엑스레이선이 통과한 뒤 형광불로 밝혀진 벽에 드러나는 나의 본모습. 비록 살가죽으로 뼈대를 싸고 그럴듯한 헝겊으로 덮기는 했지만, 정형외과의 형광벽이 흑백으로 밝혀주는 나의 본모습이 드러난다. 살에 가려서 거울로는 볼 수 없었지만 목에서부터 등을 거쳐 꼬리까지 날개처럼 돋친 스테고사우루스의 화려한 뼈들이 엑스레이 필름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제야 모든 의문이 스르르 풀린다. 내 마음속엣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던 탐욕과 옷으로 덮어도 송곳처럼 밖으로 치밀던 공격성, 약자한테 강하고 강자한테는 약한 비굴함까지 도대체 어디서 왔는지 불분명하던 것들이 질서정연한 뼈와 뼈 사이로 가지런하게 이제야 분명하게 드러난다. 가장 중요한 무기였던 꼬리의 뿔은 꼬리뼈 속으로 완전히 사라졌지만 수십 억 년이 지난 지금에도 내 살과 살갗 속에서 으르렁거리며 한 마리 공룡이 깃들어있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연을 없앴다는 겁니다. 연은 의미와 이미지를 구성하는 한 매듭입니다. 대개는 연을 넘어갈 때 상상력의 비약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이 시에서는 상상력의 비약이라고는 두 단계에 지나지 않습니다. 내 몸의 뼈 배열이 공룡의 뼈와 같기 때문에 공룡의 탐욕성이 내게도 남아있다는 두 가지입니다. 그러니 이 두 상황을 설명하려면 시가 길어질 것이고, 시가 길어진 것에서 굳이 연을 나누어야 좋은 효과를 얻기 어렵다고 본 것이죠. 차라리 설명하듯이 끌고 나가면서 두 가지를 서로 대비시키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연을 없애고 좀 더 자세하게 설명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해놓고 나니까 좀 더 상황이 자세하게 설명되었고, 또 이 시를 통해서 전하고자 하는 주제도 명확히 잡혔습니다. 그런데 너무 길어졌고, 또 설명이 너무 많아졌습니다. 앞쪽의 든가 든가, 다든가, 라든가 하는 것의 거의 산문 수준입니다. 그래서 산문 투의 문장을 없애고 군더더기를 조금 덜어내는 작업이 남았습니다. 아래의 작품과 비교하면 그 차이가 드러날 것입니다.     공룡   나는 내가 여태까지 사람인 줄 알았는데 오늘 알고 보니 공룡이다. 살가죽으로 뼈대를 싸고 그럴 듯한 헝겊으로 몸뚱이를 덮었지만 정형외과의 형광벽에 비친 나는 쥐라기나 백악기 어느 한 지층 속에 납작하게 박혀있어야 할 한 마리 공룡. 목에서부터 등마루를 거쳐 꼬리까지 날개처럼 돋친 스테고사우르스의 화려한 뼈들이 흑백의 필름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수억 년 내력의 탐욕과 난폭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그 뼈들의 행렬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니 이제서야 모든 의문이 스르르 풀린다. 이만하면 되었다 싶은데도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던 물욕과 옷 밖으로 송곳처럼 치밀던 공격성, 그리고 약자한테 강하고 강자한테 약한 비굴함까지 도대체  내 마음 어느 구석에서 말미암는지 알 수 없던 것들이 공룡의 뼈들 사이로 분명히 드러난다. 자칫 잘못 건드렸다간 큰 코 다칠 것임을 예고하며 등줄기 따라 톱날처럼 뻗어간 우람한 뼈들. 가장 중요한 무기였던 꼬리 끝의 뿔은 엉덩이 밑의 꼬리뼈 속으로 완전히 감추었지만 수십 억 년이 지난 지금에도 전혀 진화하지 못한 채 한 마리 공룡이 내 몸 안에서 으르렁거리고 있다.     문장의 배열 구조가 바뀌고 위치가 바뀌면서 좀 더 단정해졌다는 느낌이 올 것입니다. 형광벽에서 공룡의 뼈를 연상하고 그것을 정신세계까지 연장하여 욕망과 탐욕에 시달리는 나, 나아가 인간의 속성을 고발하고자 한 작품이 된 것입니다. 큰 뼈대는 변하지 않았지만, 중간중간의 말투나 문장은 많이 바뀌었습니다. 이 바뀐 과정을 면밀히 살펴보면 시를 고치는 방법에 대한 암시를 얻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스스로 많이 써나가는 과정에서 이런 점들을 터득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앞에서부터 시에 천재가 없다고 자꾸 강조하는 것도 바로 이 같은 과정 때문입니다. 발상은 천재성으로 얻는 것일 수 있지만, 이런 것은 천재성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실하지 않으면 천재 역시 아무 것도 아닙니다.     충북 보은에 가면 장안이라는 마을이 있습니다. 인내천을 기치로 내건 동학의 출발점이 된 곳이죠. 원래 동학의 2대 교주 최시형은 경주사람이었습니다. 창시자 최제우의 후계자였죠. 그런데 동학을 혹세무민하는 종교로 규정한 관청의 탄압을 피해 깊은 산중으로 숨었습니다. 북으로 올라가서 소백산 기슭의 마을에 숨었다가 다시 백두대간 줄기를 타고 내려오다가 보은의 깊은 산 속에서 오랜 세월 동안 숨어 지냅니다. 교세가 확장되자 신도들은 억울하게 죽은 그들의 초대교주 최제우의 죄를 풀어달라는 신원운동을 합니다. 초대교주 신원운동을 하려면 2대교주의 허락을 받아야 하고 그러려면 그가 사는 곳으로 모여야 하지 않겠어요? 그래서 각 지역의 동학 지도자들은 최시형이 살던 보은으로 모여듭니다. 그리고는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해 논의를 하게 됩니다. 바로 그곳이 장안입니다.   이 신원운동을 시발점으로 하여 한국의 근대사는 벌집을 쑤셔놓은 모양으로 요동을 치기 시작합니다. 이른바 동학농민전쟁이 그것입니다. 정부는 백성들의 요구를 무시하고 탐관오리들은 날뛰고 하니 참을 수 없는 백성들은 무기를 들고일어납니다. 그리고 청나라와 일본군까지 가세한 정부군을 상대로 몇 년에 걸쳐 전쟁을 하지요. 그리고는 쫓기고 쫓긴 농민군이 다시 보은의 북실이라는 곳에 와서 마지막으로 궤멸 당하고 맙니다. 이 북실이라는 곳은 장안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있습니다. 동학농민전쟁의 시작과 끝이 충북 보은이라는 곳에 있는 셈입니다.   지금 북실에는 종곡초등학교가 있습니다. 종곡은 한자로 이라고 쓰는데 북의 골짜기라는 뜻이죠. 당연히 을 한자로 번역한 것입니다. 동네 이름도 종곡리입니다. 이 학교에 볼 일이 있어 들렀다가 그곳이 바로 그 북실임을 알고는 머릿속이 텅 비면서 한 가지 시상이 문득 스쳤습니다. 북실, 북처럼 생긴 동네. 그런데 북은 소리를 내서 무언가를 알려주는 도구입니다. 그렇다면 그 북은 천지개벽을 알리는 것으로 볼 수 있고, 그것은 우리가 역사에서 배운 동학의 의미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동학은 잠든 백성들의 마음속에 천지개벽의 기쁨을 알리는 종교였고, 그들이 마지막으로 죽은 곳이 북실이라면 그들의 행동과 사상을 북이라는 도구에 상징화 시켜서 시로 쓴다면 아주 적절한 비유가 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머리를 퍼뜩 스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재빨리 그 발상을 메모지에 썼습니다.   천지개벽을 알리는 커다란 쇠북이 이 골짜기 어딘가에 묻혀있다네. 저 어두운 세상에 누군가 남아있을까 두려워 귀머거리도 들을 수 있도록 큰 소리를 내기 위하여 온 신명으로 소리를 내려다가 깨진 북. 여기까지 오는데 100년이 걸렸네. 100년 전의 자취 찾아볼 수 없어도 어디선가 쇠북소리 들리네. 지나가는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들리고 여인의 소맷자락에서 들리고 소달구지, 뛰노는 아이들 골짜기 전체가 큰 북이 된다.   이렇게 썼습니다. 중요한 것은 골짜기 전체를 북으로 묘사하고 그 북을 천지개벽을 알리는 어떤 상징물로 활용한다는 것입니다. 그 점을 요약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북을 상징물로 사용하되 거기에 어떤 주제를 넣을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동학농민전쟁은 백성들의 자신들의 나라를 만들기 위해 일어선 것이고, 그것은 곧 민주주의를 뜻할 것입니다. 그런데 100년이 지난 지금도 백성들은 관료들과 정치인들의 눈치를 보면서 삽니다. 완전한 민주주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탓이죠. 입으로는 백성들의 심부름꾼으로 자처하면서도 국회의원이 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뇌물 받아먹다가 검찰에 붙잡혀가고, 대통령이 되고 나면 공약은 기억도 하지 못합니다. 이런 일들이 소란스럽게 일어나는 꼴을 우리는 매일 안방의 텔레비전에서 봅니다. 그렇다면 이 시에서도 당시의 실패한 혁명을 얘기하면서 우리가 진정으로 이루어야 할 민주주의 내지는 백성들의 나라에 대해서 말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방향으로 내용을 대폭 추가시켰습니다.   천지개벽을 알리는 커다란 쇠북이 이 골짜기 어딘가에 묻혀있다네. 새로운 시대가 성큼성큼 다가오는 소리를 듣지 못하고 저 어두운 세상에 누군가 남아있을까 두려워 귀머거리도 듣게 하기 위하여 온 신명으로 소리를 내려다가 깨진 북. 그 북소리 다시 들으려 만장의 물결 앞세우고 여기까지 오는데 100년이 걸렸네. 한 번 열린 세상은 다시 닫히지 않는 법이니 만장의 물결 따라 어디선가 북소리 들린다. 처음엔 두근두근 심장 박동소리 같다가 한 사람의 한 발자국 모으고 두 사람의 두 발자국 모아서 조금씩 커진다. 개벽을 알리기 위해 기꺼이 깨진 100년 전의 북이 공명을 일으키다가 마침내 하늘을 모신 마음속에서 둥 두둥 운다. 마음의 골짜기에서 큰 북이 울다가 골짜기 전체가 큰 북이 된다.   이 정도 되면 일단 주제는 확정됐고, 발상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셈입니다. 2000년에 보은에서 작은 행사가 열렸습니다. 동학군들의 넋을 추모하는 행사였습니다. 그러니 거의 100년만에 보은에서 죽은 동학군들을 위로하는 행사가 열린 것이지요. 는 것은 그것을 암시하기 위해 집어넣은 말입니다. 그렇지만 시에서는 꼭 그 사건이나 행사를 얘기하는 것만은 아니고, 이 시를 쓰거나 읽는 사람들의 현재와 연결시켜주는 구실을 하지요.   그런데 어딘가 좀 산만하지 않은가요? 할 말만 제시되어 그렇습니다. 이 산만함을 없애려면 상상해간 방향을 뚜렷이 드러내야 하고 그에 따라 주제를 아울러 더 드러내야 합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시상의 전개 방법과 순서를 좀 더 뚜렷이 하는 것입니다.   북실에서 천지개벽을 알리는 북을 떠올렸습니다. 그 북소리를 사람들은 듣기도 하고 못 듣기도 합니다. 그러나 누구나 들어야 할 내면의 소리입니다. 그 소리를 들으러 북실에 왔고, 민주주의의 의미를 기억하는 현재의 시점으로 보면 100년만에 그들을 그런 의미로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만이 그렇게 보겠죠. 현재 북실에는 그들의 흔적을 찾아볼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런 상황도 아울러 말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죽음이 아무 것도 아닌 것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분명히 의미가 있다는 얘기도 해주어야 합니다. 그것을 설득하면 안 되고 북이라는 상징물에 실어야 하지요. 그래서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마지막으로 북이라는 사물을 묘사해주면 됩니다. 앞의 글도 그런 방향이 어느 정도 잡혀있지만, 조금 불투명하지요. 그래서 시가 좀 산만한 겁니다. 그래서 이런 저런 생각을 좀 더 자세하게 정리하면서 이렇게 완성했습니다.   북실   천지개벽을 알리는 커다란 쇠북이 이 골짜기 어딘가에 묻혀있다. 성큼성큼 다가오는 새 세상 밖에 누군가 남아있을까 두려워 귀머거리라도 들을 큰 소리를 내려고 온 신명으로 부딪다가 깨진 북. 그 북소리 다시 들으려 만장의 물결 앞세우고 여기까지 오는데 1백년이 걸렸다. 솔잎죽창이 삭풍과 싸울 뿐 백년 전의 자취 찾아볼 길 없어도 한 번 열린 세상은 다시 닫히지 않는 법이니 눈을 감고 가만히 귀 기울이면 어디선가 북소리 들린다. 처음엔 두근두근 심장 소리 같다가 모여드는 발자국들 따라 공명을 일으키며 커지다가 마침내 세상을 삼켜버리는 큰 울림. 개벽을 알리기 위해 백년 전에 깨어진 북이 묻힌 마음의 골짜기에서 북이 운다. 큰 북이 울리며 골짜기 전체가 큰 북이 된다.     한결 단정해졌음을 느낄 것입니다. 이런 뼈대를 만들어 가는 것은 하루아침에 되지 않습니다. 오랜 훈련을 거치고 연습을 해야 합니다. 처음부터 잘 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자꾸 반복하다 보면 저절로 요령이 생깁니다. 여러분은 갑자기 천재가 되려 하지 말고 꾸준히 연습해서 좋은 시를 쓰는 그런 사람이 되려고 해야 합니다.     송나라 때 적벽부라는 유명한 시를 쓴 소동파라는 선비가 있습니다. 이름은 식이고 동파는 호죠. 그런데 이 사람은 평소 자기가 시의 재주를 타고났다고 큰소리 쳤던 모양입니다. 하루는 친구들이 찾아갔는데, 시를 보여주더랍니다. 그게 저 유명한 적벽부라는 시입니다. 삼국지의 조조가 적벽대전에서 패한 그 적벽인데, 그곳을 유람하고 난 뒤의 소감을 시로 쓴 것입니다. 친구들이 명작이라고 모두 찬탄을 했습니다. 그런데 소동파는 그것을 단 한번의 가감도 없이 한 달음에 써 내려갔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천재성을 자랑하려고 했던 것이죠. 그 말을 들은 친구들은 더욱 감탄했습니다. 그러는 벗들을 바라보며 우쭐거리는 소동파의 모습에 눈앞에 선합니다. 잠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소동파가 다른 일로 잠깐 자리를 비웠습니다. 그 사이에 친구들이 혹시 다른 글이 없나 하고서 소동파가 앉았던 자리를 살펴보니 방석 밑으로 무슨 종이가 삐죽 나와있는 겁니다. 꺼내보니 거기에는 방금 보여준 적벽부를 고친 흔적이 역력한 글들이 수북이 쌓여있더랍니다. 적벽부를 고치다가 친구들이 오자 얼른 방석 밑으로 숨긴 것이죠. 소동파 역시 자기 재주를 한껏 자랑하고픈 마음을 지닌 평범한 사람임을 이런 데서 깨닫습니다.   아무리 천재라고 하더라도 고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말로 퇴고의 이야기를 마칩니다.  
183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시모음 댓글:  조회:1900  추천:0  2017-05-14
스웨덴의 국민시인’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는 스웨덴 국민에게 ‘말똥가리 시인’이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세상을 높은 곳에서 바라보고 자연세계를 세밀하고 예리한 초점으로 묘사하는 그는 노벨 문학상 제정 이후 스웨덴 출신의 일곱 번째 작가가 됐다. 올해 80살인 트란스트뢰메르는 23살 때 ‘17편의 시’로 데뷔해 ‘여정의 비밀’ ‘미완의 천국’ 등을 내며 스웨덴 자연시의 전통 위에 모더니즘의 세계를 펼쳤다. 지금까지 총 10편이 넘는 시집을 냈지만 전체 시는 2백 편에 불과해 ‘과작(寡作) 시인’으로 불린다. 그는 스칸디나비아 지역에서 생존해 있는 시인 중 가장 유명한 사람 중 한 명으로, 혹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 지역 문단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가로 지목되고 있다. 스톡홀름대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그는 교도소와 장애인 시설, 마약중독 차 치료센터에서 상담사로 일하기도 했다. 그러던 1990년 뇌중풍으로 쓰러지면서 반신마비가 와 현재 사람들과 대화조차 어려운 상채다. 즐겨 치던 피아노도 이제는 왼손으로밖에 연주할 수 없다고 한다. 한 해 4-5편 정도의 시만을 발표하며 차분하고, 조용하고, 시류에 흔들림 없는 ‘침묵의 시’를 생산해 온 그의 시는 스웨덴 자연시의 토착적이고 심미적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다. 초기 작품에서 스웨덴 자연시의 전통을 보여준 그는 자유분방한 상상력으로 시의 영역을 확대해 현실정치나 사회와 벽을 쌓았다는 비판도 받았지만 자기만의 작품 세계를 꿋꿋이 지켜왔다. 잠과 깨어남, 꿈과 현실, 무의식과 의식 간의 경계지역을 탐구하고 있기에 그의 시 한 편 한 편이 담고 있는 시적 공간은 광대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트란스트뢰메르의 작품은 독일어, 핀란드어, 헝가리어, 영어 등 5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돼 독일의 페트라르카 문학상, 보니어 시상, 노이슈타트 국제 문학상 등 세계적인 문학상도 다수 받았다. 국내에 출간된 그의 책은 가 유일하다. 는 2004년 출간된 시선집으로 ‘오늘의 세계 시인’ 시리즈 가운데 하나다. 사과나무, 벚나무, 호수, 잔디밭, 햇볕, 얼음, 눈, 붉은 벽돌집 등 시에 등장하는 소재만으로도 북유럽을 여행하는 듯한 느낌을 들게 한다. 스웨덴의 차갑고 투명하며 깨끗한 자연 속에서 그는 우리가 모두 공감하는 보편적 우주를 창조해 냈다. 고은 시인이 책임∙편집한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소곡小曲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좀처럼 가지 않는 어두운 숲을 물려받았다. 하지만 죽은 자와 산 자가 자리바꿈하는 날이 오리라. 숲은 움직이게 되리라. 우리에겐 희망이 없지 않다. 많은 경찰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가장 심각한 범죄들은 미결로 남으리라. 마찬가지로 우리 삶의 어딘가엔 미결 의 위대한 사랑이 있는 것이다. 나는 어두운 숲을 물려받았지만 오 늘은 다른 숲, 밝은 숲을 걷는다. 노래하고 꿈틀대고 꼬리 흔들고 기는 모든 생명들! 봄이 왔고 공기가 무척 강렬하다. 나는 망각의 대학을 졸업하였고, 빨랫줄 위의 셔츠처럼 빈 손이다.   기억이 나를 본다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유월의 어느 아침, 일어나기엔 너무 이르고 다시 잠들기엔 너무 늦은 때.   밖에 나가야겠다 녹음이 기억으로 무성하다, 눈 뜨고 나를 따라오는 기억.   보이지 않고, 완전히 배경 속으로 녹아드는, 완벽한 카멜레온,   새 소리가 귀먹게 할 지경이지만, 너무나 가까이 있는 기억의 숨소리가 들린다.   1979년 삼월에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말로, 언어는 없고 말로 다가오는 사람들이 지겨워 눈 덮인 섬을 향한다. 야성은 말이 없다. 쓰여지지 않은 페이지들이 사방팔방 펼쳐져 있다! 눈 속에 순록馴鹿의 발자국을 만난다. 언어, 말 없는 언어.   검은 엽서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1   달력이 꽉 채워지고, 미래를 알 수 없다. 케이블이 국적 없는 포크송을 흥얼댄다. 납빛 고요의 바다에 강설降雪, 그림자들이  부두에서 씨름하고 있다.     2   생의 한가운데서 죽음이 찾아와 몸의 치수를 잰다. 방문은 잊혀지고 삶이 계속된다. 하지만 침묵 속에  옷이 재봉되고 있다.   불꽃 메모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암울한 몇 개월 동안, 내 삶은 당신과 사랑을 나눌 때만 불타올랐다. 개똥벌레가 점화되고 꺼지고, 점화되고 꺼지듯이, 밤의 어둠 속 올리브나무 숲 속에서 눈여겨보면 개똥벌레의 움직임을 따라갈 수 있다.   암울한 몇 개월 동안, 영혼은 움츠러들고 망가진 채 앉아 있었다. 하지만 육신은 당신을 향한 자신 통로를 택하였다. 밤하늘들이 울부짖었다. 우리는 우주의 젖을 훔쳐먹고 연명하였다.   서곡(序曲)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깨어남은 꿈으로부터의 낙하산 강하. 수막히는 소용돌이에서 자유를 얻은 여행자는 아침의 녹색 지도 쪽으로 하강한다. 사물들이 확 불붙는다. 퍼덕이는 종달새의 시점에서 여행자는 거대한 뿌리 체계를, 지하의 상들리에 가지들을 본다. 그러나 땅 위엔 녹음, 열대성 홍수를 이룬 초목들이 팔을 치켜들고 보이지 않는 펌프의 박자에 귀 기울린다. 여행자는 여름 쪽으로 하강하고, 여름의 눈부신 분화구 속으로 낙하하고, 태양의 터빈 아래 떨고 있는 습기 찬 녹색 시대들의 수갱(竪坑) 속으로 낙하한다. 시간의 눈 깜빡임을 관통하는 수직 낙하 여행이 이제 멈추고, 날개가 펼쳐져 밀려드는 파도 위 물수리의 미끄러짐이 된다. 청동기시대 트럼펫의 무법의 선율이 바닥 없는 심연 위에 부동(不動)으로 걸려 있다. 햇볕에 따뜻해진 돌을 손이 움켜잡듯, 하루의 처음 몇 시간 동안 의식은 세계를 움켜잡을 수 있다. 여행자가 나무 아래 서 있다. 죽음의 소용돌이를 통과하는 돌진 후, 빛의 거대한 낙하산이 여행자의 머리 위로 펼쳐질 것인가?     /번역 이경수: 서울대 영문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 1986년 문학평론을 발표하면서 비평 활동 시작.                서울대 이화여대 등의 강사를 거쳐 1989년부터 인제대 영문과 교수로 재직하다 2006년 3월 타계.                평론으로 등                논문으로 등   동요받은 명상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밤의 어둠 속, 아무것도 갈지 않으면서 폭풍이 풍차의 날개를 사납게 돌린다. 동일한 법칙에 따라 그대는 잠깨어 있다. 회색의 상어 배(服)가 그대의 가냘픈 램프.   형체 없는 기억들이 바다 바닥으로 내려가 그곳에서 낯선 조상(彫像)으로 굳어진다. 해조가 들러붙어 그대의 노걸이는 녹색. 바다로 가는 자가 돌이 되어 돌아온다.   돌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우리가 던진 돌들이 유리처럼 선명하게 세월 속으로 떨어지는 소리를 듣는다. 골짜기엔 순간의 혼란된 행위들이 나무 꼭대기에서 꼭대기로 날카롭게 소리치며 날아간다. 현재보다 희박한 대기 속에서 입을 다문 돌들이 산꼭대기에서 꼭대기로 제비처럼 미끄러져, 마침내 존재의 변경(邊境) 지대 머나먼 고원에 이른다. 그곳에서 우리의 모든 행위들이 유리처럼 선명하게 떨어진다. 바로 우리들 자신 내면의 바닥으로.   사물의 맥락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저 잿빛 나무를 보라. 하늘이 나무의 섬유질 속을 달려 땅에 닿았다. 땅이 하늘을 배불리 마셨을 때, 남는 건 찌그러진 구름 한 장뿐. 도둑맞은 공간이 비틀려 주름잡히고, 꼬이고 엮어져 푸른 초목이 된다. 자유의 짧은 순간들이 우리 내부에서 일어나, 운명의 여신들을 뚫고 그 너머로 선회한다.   아침의 입장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태양 선장, 검은 등갈매기가 항로를 잡는다. 갈매기 아래로는 넓은 물, 물 속의 다채색(多彩色) 돌처럼 세상은 아직 잠들어 있다. 해독되지 않은 하루, 하루들. 아즈텍 상형문자 같은!   나는 음악의 고블랭 비단 덫에 걸려, 팔을 치켜들고 서 있다. 원시 예술에 나오는 인물처럼.   자정의 전환점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소리없이 움직임 없이 숲 속의 개미가 공(空)을 들여다본다. 들리는 것은 오직 어두운 나뭇잎 똑딱이는 소리, 여름 협곡 깊은 곳 밤의 웅얼거림뿐.   가문비나무가 긴 시계바늘처럼 뾰족 가리킨다. 산그늘 속에서 개미가 반짝 빛난다. 새 한 마리의 외침! 이윽고, 구름 마차가 천천히 구르기 시작한다.   에필로그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십이월. 스웨덴은 해변에 정박한 삭구(索具)를 뗀 배. 황혼의 하늘을 배경으로 돛대가 날카롭다. 황혼이 낮보다 오래 지속되고, 이곳의 길은 돌투성이. 정오가 지나야 빛이 도착하고, 겨울의 콜로세움이 비현실적인 구름의 빛을 받아 솟아오른다. 즉각 흰 연기가 마을에서 구불구불 치솟는다. 구름이 높고 또 높다. 바다는 다른 무엇에 귀 기울이는 듯 흐트러진 모습으로, 하늘나무의 뿌리에 코를 대고 킁킁거린다. (영혼의 어두운 면 위로 새 한 마리 날아들어, 잠든 자들을 울음으로 깨운다. 굴절 만원경이 몸을 돌려, 다른 시간을 불러들인다. 때는 여름이다. 산들이 빛으로 부풀어 포효하고, 시냇물이 투명한 손으로 태양의 광휘를 들어올린다. 그리고 모든 것이 사라진다. 영사기의 필름이 다 돌아갔을 때처럼.)   저녁별이 구름 사이로 불탄다. 집들, 나무들, 울타리들이 어둠의 소리없는 눈사태 속에 확대된다. 별 아래 또 다른 숨겨진 풍경이 자꾸자꾸 모습을 드러낸다. 밤의 엑스선에 비친 등고선의 삶을 사는 비밀의 풍경들, 그림자 하나가 집들 사이로 썰매를 끈다. 그들이 기다리고 있다.  저녁 여섯시, 바람이 일단의 기병대처럼 어둠 속 마음의 길거리를 따라 천둥처럼 질주한다. 검은 소동이 어찌나 반향하고 메아리치는지! 집들이 꿈속의 소동처럼 부동(不動)의 춤을 추며 덫에 걸려 있다. 강풍 위에 강풍이 만(灣) 위를 비틀거리면서, 어둠 속에서 머리를 까딱거리는 난바다 쪽으로 빠져나간다. 우주공간에서 별들이 필사적인 신호를 보낸다. 별들은 영혼 속을 배회하는 과거의 구름들처럼, 자신이 빛을 가릴 때에만 자기 존재를 드러내는 곤두박이 구름들에 의해 명멸한다. 마구간 벽을 지나면서 나는 그 모든 소음 속에서 병든 말이 안에서 터벅터벅 걷는 소리를 듣는다.   이제 폭풍이 자리를 뜬다. 부서진 대문이 쾅쾅 소리를 내고, 램프가 손에서 대롱거리고, 산 위의 짐승이 겁에 질려 울부짖는다.폭풍이 퇴각하면서 외양간 지붕 위에 천둥이 구르고, 전화선들이 포효하고, 지붕 위의 타일들이 날카로운 휘파람을 불고, 나무들이 속절없이 머리를 까딱거린다.   백파이프 소리가 울려 퍼진다! 백파이프 소리가 길을 걷는다! 해방자들의 행렬! 숲의 행진! 활 같은 파도가 들끓고, 어둠이 꿈틀대고, 수륙(水陸)이 움직인다. 갑판 밑으로 사라져 죽은 자들, 그들이 우리와 자리를 함께 한다. 우리와 함께 길을 걷는다. 항해는, 야성의 돌진이 아니고 고요한 안전을 가져다주는 여행.   세계가 끊임없이 텐트를 새롭게 친다. 어느 여름날 바람이 상수리 나무 장비를 움켜잡고, 지구를 앞으로 민다. 백합이 연못의 포옹 속에서, 날아가는 연못의 포옹 속에서 감추어진 물갈퀴로 헤엄친다. 표석(漂石)이 우주의 홀에서 굴러내린다.   여름날 황혼에 섬들이 수평선 위로 솟아오른다. 옛 마을들이 길을 간다. 까치소리 내는 계절의 바퀴를 타고 숲 속 깊숙한 곳으로 퇴각한다. 한 해가 자기 부츠를 벗어던지고 태양이 높이 솟아오를 때, 나무들은 잎사귀로 피어나 바람을 받고 자유의 항해를 떠난다. 산 아래 솔숲 파도가 부서지지만, 여름의 깊고 따뜻한 큰 파도가 오고, 큰 파도가 천천히 나무 꼭대기들 사이를 흐르고, 일순 휴식을 취하고, 다시 가라앉는다. 남는 건 잎사귀 없는 해안뿐. 결국, 성령(聖靈)은 나일강 같은 것, 여러 시대의 텍스트들이 궁리한 리듬에 따라 넘치고 가라앉는다.   하지만 신(神)은 또한 불변의 존재이고, 따라서 이곳에선 좀처럼 관찰되지 않는다. 신은 옆구리로부터 행렬의 진로를 가로지른다.   기선(氣船)이 안개 속을 통과할 때 안개가 알아채지 못하듯. 정적. 등불의 희미한 깜빡거림이 그 신호.   고독한 스웨덴의 집들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뒤엉킨 검은 가문비나무와 연기 뿜는 달빛. 이곳에 나지막이 엎드린 작은 집이 있고 한 점 삶의 기미도 없다.   이윽고 아침 이슬이 웅얼거리고 노인이 떨리는 손으로 창문을 열어 올빼미를 내보낼 때까지.   멀리 떨어진 곳에는 새 건물이 김을 내뿜으며 서 있고, 세탁소의 나비가 모퉁이에서 퍼드덕거린다.   죽어가는 숲의 한가운데서 퍼덕이는 나비, 그곳에서 썩어가는 것이 수액(樹液)의 안경을 통해 나무껍질 뚫는 기계의 작업을 읽는다.   짖어대는 개 위로 삼단 같은 머리결의 비 또는 한 점 고독한 천둥구름을 동반한 여름이 있고, 씨앗이 땅 속에서 발길질하고 있다.   흔들리는 목소리들, 얼굴들이 황야의 먼 거리를 가로질러 발육부진의 잽싼 날갯짓으로 전화선 속을 날아간다.   강 속에 있는 섬 위의 집이 자신의 초석(礎石)을 골똘히 생각한다. 끊이지 않는 연기, 누군가가 숲의 비밀문서를 태우고 있다.   비가 하늘을 선회하고 불빛이 강 속에서 사리를 튼다. 비탈 위의 집들이 폭포의 흰색 황소들을 감독한다.   일단의 찌르레기 무리를 거느린 가을이 새벽을 저지하고, 사람들이 불 켜진 극장에서 굳은 동작으로 움직인다.   이들이 경보(警報)없이 위장한 날개들을 느끼고, 어둠 속에 사리를 튼 신(神)의 에너지를 느끼게 하라.   지붕 위의 노랫소리에 잠깬 사람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아침, 오월의 비. 도시는 산 속의 작은 마을처럼 아직도 조용하다. 길거리들도 조용하다. 하늘에는 청록색 비행기 엔진 소리.  창문이 열려 있다.   엎드려 누워 잠자던 사람의 꿈이 순간 투명해진다. 그는 몸을 뒤척이며 관심의 악기들을 찾아 더듬기 시작한다. 거의 공중에서.   기상도(氣象圖)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시월 바다가 신기루 등지느러미를 달고 차갑게 반짝인다.   아무것도 요트 경기의 백색 현기증을 기억하지 않는다.   어스푸레한 호박(琥珀) 빛이 마을 위를 비추고, 온갖 음향들이 천천히 날아다닌다.   개가 짖는 소리는 정원 위의 대기 중에 그려진 상형문자.   정원에는 노란 과일이 나무를 바보 만들며 제 멋대로 떨어진다.   낮잠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돌들의 성령강림절, 불꽃 튀기는 혀들--- 한낮의 시간 동안, 무중력의 도시. 부글거리는 빛 속의 매장, 자물쇠 채워진 영원의 탕탕 주먹소리를 익사시키는 북소리.   독수리가 잠든 자들 위로 솟구치고 또 솟구친다. 물레방아 바퀴가 천둥처럼 돌아가는 곳에서의 잠. 두 눈 가린 말들의 유린. 자물쇠 채워진 영원의 탕탕 주먹소리.   잠든 자들이 폭군의 시계 속 시계추마냥 매달려 있다. 독수리가 태양의 백색 물결 흐름 속을 죽어서 떠내려간다. 라자로의 관 속에서처럼 시간 속에서, 자물쇠 채워진 영원의 탕탕 주먹소리들의 메아리.   길 위의 비밀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한낮의 빛이 잠자는 사람의 얼굴을 강타하였다. 그의 꿈이 더욱 생생해졌지만 그는 잠깨지 않았다.   어둠이 태양의 강렬한 참을성 없는 광선 속을 남들과 더불어 걷는 사람의 얼굴을 강타하였다.   갑자기 억수처럼 어둠이 내렸다. 나는 모든 순간을 담고 있는 방, 나비 박물관 속에 서 있었다.   태양은 이전이나 다름없이 강렬하였다. 태양의 참을성 없는 붓들이 세상을 그리고 있었다.   선로(線路)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새벽 두시. 달빛. 열차가 평원 한가운데 멈추어 섰다. 멀리 시가지의 불빛들이 지평선 위에 차갑게 깜빡인다.   마치 어떤 사람이 너무 깊은 잠 속으로 들어갔을 때, 자기 방으로 돌아오면서 자신이 그 꿈속에 있었던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듯.   아니면 어떤 사람이 너무 깊은 병 속으로 들어갔을 때, 그 사람의 생애 모두가 몇 개의 깜빡이는 점들, 지평선 위 작고 차가운 불씨 때가 되듯.   열차는 완전 부동(不動)으로 서 있다. 새벽 두시, 환한 달빛 속, 별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키리이*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때때로 내 삶은 어둠 속에 눈을 떴다. 마치 내가 투명인간처럼 서 있는 동안 군중들이 어떤 기적을 향하여 맹목과 불안 속에 길거리를 밀고 나가는 듯한 느낌.   어린아이가 제 심장의 무거운 박동소리에 귀 기울리며 두려움 속에 잠이 들듯. 천천히 천천히, 이윽고 아침이 광선을 자물쇠 속으로 집어넣어 어둠의 문이 열릴 때 까지.   *키리리(Kyrie); Kyrie Eleison의 줄임말. 카톨릭에서 미사의 첫머리에 외는 지비송으로, 그리스어로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의 뜻.   발병(發病) 이후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병이 난 소년, 뿔처럼 딱딱한 혀를 가지고 비전 속에 감금되어 있다.   소년은 밀밭 그림 쪽으로 등을 돌리고 앉아 있다. 턱을 둘러싼 붕대가 방부 처리를 짐작케 한다. 안경은 잠수부 안경처럼 두툼하다. 어둠 속에 울리는 전화벨처럼 만사가 대답 없이 요란하다.   하지만 소년 뒤의 그림, 그림은 밀밭이 황금 폭풍일지라도 보는 사람에게 평화를 가져다주는 한 폭의 풍경화. 청색 해초 같은 하늘과 떠다니느 구름들. 아래쪽 황색 파도 속에는 백색 셔츠가 몇몇 항해하고 있다. 추수하는 사람들, 그들은 그림자를 던지지 않는다.   밀밭 건너 멀리 한 남자가 서 있고, 이쪽을 바라보는 듯, 챙 넓은 모자가 남자의 얼굴에 그늘을 드리운다. 도움이라도 주려는 양, 남자는 이곳 방 속의 어두운 형체를 관찰하는 모습이다. 자기 몰두의 병약한 소년 뒤에서, 모르는 사이에 그림이 차츰 확대되면서 열리기 시작한다. 그림이 불꽃을 튀기면서 탁탁 소리를 낸다. 소년을 깨우려는 듯, 밀알 하나하나 불타오른다! 밀밭 속의 남자가 사인을 보낸다.   그가 가까이 와 있다. 아무도 알아채지 못한다.   여행의 공식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1955년 발칸 반도에서   1 쟁기꾼 뒤의 중얼거리는 목소리들. 쟁기꾼은 둘러보지 않는다. 빈 들판을. 쟁기꾼 뒤의 중얼거리는 목소리들. 하나씩 하나씩 그림자들이 풀려 여름 하늘의 심연 속으로 돌진한다.   2 하늘 아래 네 마리 황소들이 온다. 황소들에겐 자랑스런 기색이 조금도 없다. 양모처럼 두터운 흙, 곤충들의 펜이 긁어댄다.   역병의 회색 알레고리 속에서처럼 야윈, 한 떼의 말들의 소용돌이. 말들에겐 부드러운 구석이 전혀 없다. 태양의 광란.   3 깡마른 개들이 있는, 마구간 냄새 풍기는 마을. 장터 광장의 당(黨) 간부. 백색 가옥들이 있는 마구간 냄새 풍기는 마을. 당 간부의 천국이 그를 수행한다. 천국은 첨탑 내부처럼 높고 협소하다. 산허리의 날개 끄는 마을.   4 한 고가(古家)가 이마를 불쑥 내밀었다. 두 소년이 황혼 속에 공차기를 한다. 한 무리의 신속한 메아리들. 갑작스런, 별빛.   5 긴 어둠 속의 길 위, 내 손목시계가 시간의 감금된 곤충과 더불어 완고히 빛을 발한다.   붐비는 차칸 속의 정적이 조밀하다. 어둠 속에 초원들이 흘러 지나간다.   하지만 작가는 반쯤 자신의 이미지 속으로 들어가, 그곳에서 동시에 독수리 겸 두더지 되어 길을 간다.   커플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그들이 불을 끄자 불빛의 흰 그림자가 어둠의 유리잔 속 알약처럼 잠시 깜빡거리다 용해된다. 다음은 상승. 호텔 벽들이 하늘의 어둠 속으로 치솟는다.   사랑의 동작이 잦아들고, 그들은 잠이 든다. 하지만 그들의 가장 내밀한 생각들은 만난다. 학교 다니는 아이가 그림 그릴 때 젖은 종이 위에서 두 색채가 만나 서로서로의 속으로 흘러들 때처럼.   어둠고 조용하다. 그러나 불 꺼진 창들과 더불어 도시가 오늘밤 더 가까이 다가왔다. 집들이 다가왔다. 집들이 무리지어 가까이 서서 기다린다. 표정 없는 얼굴의 군중들.   나무와 하늘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비속의 나무 한 그루가 이리저리 거닐고 있다. 우리를 지나 쏟아지는 잿빛 속으로 질주한다. 나무에겐 해야 할 일이 있다 과수원의 지빠귀처럼 나무는 빗속에서 생명을 거두어들인다.   비가 멈추자 나무도 멈춘다. 나무는 맑은 밤 조용히 서서 천지사방 눈송이 꽃피어나는 그 순간을 꼭 우리들처럼 기다린다.   얼굴을 맞대고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이월엔 삶이 정지했다. 새들은 마지못해 날갯짓하였고, 보트가 제 묶어 있는 부두에 몸 비비듯 영혼은 풍경에다 몸을 비벼댔다.   나무들은 나에게 등을 돌리고 서 있었다. 깊이 싸인 눈은 죽은 밀집으로 측정되었고, 발자국들은 바깥 언 땅 위에서 늙어갔다. 방수모(防水帽) 밑에서 언어가 시들어갔다.   어느 날 무언가가 창으로 다가왔다. 잎이 떨어졌고, 나는 쳐다보았다. 색채들이 화르르 타오르고, 만물이 회전했다. 땅과 나는 서로서로를 향하여 튀어올랐다.   종소리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종소리가 울리고 개똥지빠귀가 사자(死者)들의 뼈 위에서 노래를 날렸다. 우리는 나무아래 서서 시간이 가라앉고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두 강물이 바다에서 만나듯, 교회 묘지와 학교 운동장이 서로 만나 상대방 속으로 확대되어 들어갔다.   교회의 종소리는 부드러운 활공기 지레장치에 실려 사방팔방으로 솟아올랐다. 종소리가 떠나고 뒤에 남는 것은 더욱 거대해진 땅 위의 정적, 그리고 한 그루 나무의 소리없는 발걸음, 소리없는 발걸음.   정오의 해빙(解氷)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아침 공기가 타오르는 우표를 붙인 자기 편지를 배달했다. 눈(雪)이 빛났고, 모든 짐들이 가벼워졌다. 일 킬로그램은 칠백 그램밖에 나가지 않았다.   태양이 빙판 위로 높이 솟아, 따뜻하면서도 추운 지점을 배회했다. 마치 유모차를 밀듯 바람이 부드럽게 불어나왔다.   가족들이 밖으로나왔고, 수세기만에 처음인 듯 탁 트인 하늘을 보았다. 우리는 마음을 아주 사로잡는 이야기의 첫 장(章)에 자리하고 있었다.   꿀벌 위의 꽃가루처럼 모피모자마다 햇살이 달라붙었고, 햇살은 겨울이라는 이름에 달라붙어, 겨울이 떠날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았다.   눈 위의 통나무 정물화가 나를 생각에 잠기게 했다. 나는 물었다. '내 유년 시절까지 따라올래?' 통나무들은 대답했다.'응'   잡목 덤불 속에는 새로운 언어로 중얼거리는 말들이 있었다. 모음은 푸른 하늘, 자음은 검은 잔가지들, 그리고 건네는 말들은 눈 위에 부드러웠다.   하지만 소음의 스커트 자락으로 예(禮)를 갖춰 인사하는 제트기가 땅위의 정적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헤엄치는 검은 형체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사하라 사막 바위 위 선사시대의한 그림에 대하여. 검은 형체 하나가 젊은 옛 강물 속에서 헤엄치고 있다.   무기도 전략도 없이, 휴식도 질주도 없이, 제 그림자에 잘려 나가 강의 바닥을 미끄러진다.   검은 형체는 잠자는 녹색 그림을 벗어나, 마침내 강기슭에 닿아 제 그림자와 하나 되려 애썼다.   비가(悲歌)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그가 펜을 치웠다. 펜이 탁자 위에서 조용히 쉬고 있다. 펜이 텅 빈 방에서 조용히 쉬고 있다. 그가 펜을 치웠다.   쓸 수도 침묵할 수도 없는 일들이 이토록 많다니! 멋진 여행 가방이 심장처럼 고동치지만, 그의 몸은 먼 곳에서 일어나는 무슨 일로 뻣뻣해진다.   밖은 초여름. 초목에서 들려오는 휘파람소리, 사람인가,새인가? 꽃핀 벚나무가 집에 돌아온 짐차를 껴안는다.   몇 주가 지나간다. 밤이 서서히 다가온다. 나방들이 창유리에 자리잡는다. 세상이 보내온 조그만 창백한 전보들   알레그로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검은 하루가 끝나고, 하이든을 연주한다. 손 안에 얼마간의 온기가 느껴진다.   건반들이 흔쾌한 태도이고, 부드러운 망치들이 친다. 울리는 소리는 초록색, 생생하고 차분하다.   자유는 존재한다고, 황제에게 세금 내지 않는 사람도 존재한다고 음악은 말한다.   하이든 포켓에 손을 쑤셔넣고 세상을 차분히 바라보는 사람을 모방한다.   하이든 기(旗)를 내건다. '우리는 굴복하지 않는다, 평화를 원한다'고 깃발은 말한다.   음악은, 돌이 날고 돌이 구르는 비탈 위의 유리 집.   돌이 곧바로 집으로 굴러들지만 창유리 하나하나 모두 건재하다.   미완의 천국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절망이 제 가던 길을 멈춘다. 고통이 제 가던 길을 멈춘다. 독수리가 제 비행을 멈춘다.   열망의 빛이 흘러나오고, 유령들까지 한 잔 들이킨다.   빙하시대 스튜디오의 붉은 짐승들, 우리 그림들이 대낮의 빛을 바라본다.   만물이 사방을 둘러보기 시작한다. 우리는 수백씩 무리지어 햇빛 속으로 나간다.   우리들 각자는 만인을 위한 방으로 통하는 반쯤 열린 문.   발밑엔 무한의 벌판.   나무들 사이로 물이 번쩍인다.   호수는 땅 속으로 통하는 창(窓).   야상곡(夜想曲)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밤중에 차를 몰고 마을을 지난다. 헤드라이트 불빛 속에 집들이 일어선다. 집들이 잠 깨어 마실 것을 찾는다. 집들, 곳간들, 표지판들, 버려진 차들, 지금이 바로 이들이 생명의 옷으로 갈아입는 때이다. 사람들은 잠들어 있다.   어떤 사람들은 평화의 잠을 자고, 어떤 사람들은 영원을 위한 고된 훈련 중인 듯 얼글을 찡그린다. 이들은 깊은 잠 속에서도 놓여나지 못하고, 신비가 지나갈 때 아래로 내려진 건널목 차단기 같은 휴식을 취하고 있다.   마을 바깥으로는 멀리 숲 속으로 길이 뻗어 있다. 나무들, 서로서로 한마음으로 침묵을 지키는 나무들. 이들의 색깔은 불붙은 나무들처럼, 연극색! 잎사귀 하나하나가 어찌나 또렷한지! 나무들은 바로 집까지 따라온다.   잠자리에 드러눕는다. 눈꺼풀 너머로 어둠의 벽 위에 알 수 없는 그림들과 알 수 없는 기호들이 휘갈겨진다. 깨어 있음과 꿈 간의 작은 틈새로 커다란 편지가 밀고 들어오려 하지만, 성공하지 못한다.   겨울밤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폭풍이 집에 입을 갖다대고  불어서 음악을 만든다. 나는 불편한 잠을 자다 돌아누워, 감은 눈으로  폭풍의 텍스트를 읽는다.   하지만 아이의 두 눈은 어둠 속에 동그랗다.  아이에게는 폭풍이 울부짖는다. 아이와 폭풍은 둘 다 흔들리는 램프를 좋아한다.  둘 다 말이 어눌하다.   폭풍은 아이 같은 손과 날개를 가졌다.  카라반 호(號)가 라플란드 쪽으로 치닫고, 가지 손톱의 별무리기가 벽을   꼭 움켜잡는 것을 집은 느낀다.   우리 층에서는 밤이 고요하다.  이곳은 기한 끝난 발자국들이 모두 연못 속에 가라앉은 잎사귀처럼 쉬고 있지만.  바깥에서는 밤이 야성적이다.   세계 위로는 더한 폭풍이 지나간다.  우리 영혼에 입을 갖다대고 불어서 음악을 만든다 폭풍이  우리를 텅 비게 불어 버릴까 두렵다.   아프리카 일기 중에서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1963년)   콩고의 장터 예술가의 그림 속에서 사람들은 곤충처럼 조그맣게 움직인다. 인간의 에너지를 빼앗긴 듯. 두 가지 생활양식 간의 힘든 길. 도달한 자는 먼길을 가야만 한다.   한 아프리카 청년이 오두막 사이에서 길 잃은 외국인을 발견했다. 청년은 친구로 여겨야 할지 협박 대상으로 여겨야 할지 결정할 수 없었다. 이것이 청년을 당혹케 했다. 둘은 혼란 속에 헤어졌다.   유럽 사람들은 마치 엄마라도 되는 양 차 둘레에 주렁주렁 매달린다. 매미는 전기면도기만큼 강하다. 차들이 돌아간다. 머잖아 아름다운 어둠이 오고, 불결한 빨랫감을 떠맡는다. 잠. 도달한 자는 먼길을 가야만 한다.   어쩌면 철새 무리 같은 악수가 도움될지 모른다. 어쩌면 진리를 책 밖으로 끄집어내는 것이 도움될지 모른다. 우리는 더 멀리 가야만 한다.   학생이 밤중에 책을 읽는다. 자유로워지기 위하여 읽고 또 읽는다. 시험이 끝나면 학생은 다음 사람을 위한 계단이 된다. 힘든 길. 도달한 자는 먼길을 가야만 한다.   겨울의 공식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1 침대 속에서 잠들었고 용골(龍骨) 아래서 잠깨었다.   새벽 네시. 살을 깨끗이 발라낸 삶의 뼈들이 차갑게 상호 교제한다.   제비들 속에서 잠들었고 독수리들 속에서 잠깨었다.   2 램프불빛 아래 길 위의 얼음이 돼지기름처럼 빛난다.   이곳은 아프리카가 아니다. 이곳은 유럽이 아니다. 이곳은 '이곳'이외의 어느 곳도 아니다.   그리고 '나'였던 것은 십이월 어둠의 입 속에서 한 마디 말에 불과할 뿐.   3 어둠 속에 모습을 드러낸 병원 가건물이 텔레비전 화면처럼 빛난다.   큰 추위 속에 감추어진 소리굽쇠가 음(音)을 내보낸다.   나는 별이 총총한 아늘 아래 서서 세계가 내 코트 안팎을 개미집처럼 들락거리는 것을 느낀다.   4 눈(雪) 밖으로 튀어나온 검은 상수리나무 세 그루. 투박한 거구지만, 민첩한 손가락을 가졌다. 넉넉한 나무 병(甁)들로부터 봄이면 초록 거품 터지리라.   5 버스가 겨울 저녁을 뚫고 기어간다. 좁고 깊은 죽은 운하 같은 가문비나무 숲길에서 버스가 배처럼 깜빡거린다.   몇 안 되는 승객, 몇 안 되는 노인, 몇은 아주 젊은이. 만일 버스가 멈추어 불을 끈다면 세계가 삭제되리라.   아침 새들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차를 깨운다. 꽃가루가 바람막이 유리를 뒤덮는다. 검은 선글라스를 낀다. 새의 노래가 어두워진다.   그 동안 누군가 열차역에서 신문을 산다. 멀지 않은 곳에 큰 화물차가 온통 붉은 녹을 뒤집어쓰고 햇빛 속에 빛난다.   어디에도 빈 데는 없다.   몸의 온기 속으로 서늘한 복도가 뚫려 있다. 한 남자가 서둘러 달려와 위층 상사의 사무실에서 모함받은 이야기를 한다.   풍경의 뒷문에서 까치가 날아든다 검은색 흰색의 까치, 헬*의 새. 검은지빠귀가 이리저리 날아다녀 빨랫줄 위의 흰 빨래만 빼고 마침내 풍경 전체가 한 폭 목탄화가 된다. 이것은 팔레스트리나**합창단.   어디에도 빈 데는 없다.   내 자신이 작아지는 동안 시가 커지는 환상적인 느낌. 시가 자라고, 내 자리를 차지하고, 나를 밀어낸다. 나를 둥지 밖으로 팽개친다. 시가 완성되었다.   *헬(Hel): 북유럽 신회에서 죽음의 여신. **팔레스트리나(Palestrina): 16세기 이탈리아의 교회음악 작곡가.    역사에 대하여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1 삼월 어느 날 바다로 내려가 귀 기울인다. 얼음이 하늘처럼 푸르다. 태양 아래 부서지고 있다. 태양이 얼음 밑의 마이크에 대고 속삭인다. 거품이 일고 부글부글 들끓는다. 멀리서 시트를 잡아채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 이 모든 것이 '역사'와 같다 우리들의 '지금'. 우리들은 그 속으로 내려가 귀 기울인다.   2 회담들은 불안하게 날아다니는 섬들. 나중엔, 타협의 기나긴 흔들리는 다리. 모든 차량이 그 다리 위를 지나간다. 별들 아래,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들의 창백한 얼굴들 아래, 쌀알처럼 이름 없이 텅빈 공간에 내동댕이쳐진 얼굴들 아래.   3 1926년, 괴테는 지드로 변장하고 아프리카를 여행하며 모든 것을 보았다. 어떤 얼굴들은 사후에 본 것으로 하여 더욱 분명해진다. 알제리 소식이 나날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올 때 큰 저택 한 채가 보이고, 저택의 창들은 하나만 빼고 모두 검었다. 그 창에서 우리는 그레퓌스의 얼굴을 보았다.   4 급진과 반동은 불행한 결혼 속에 동거한다. 서로를 갉아먹으면서, 서로에게 기대면서. 하지만 그 자식들인 우리는 우리들 자신의 길을 찾아야만 한다. 모든 문제는 자신의 언어로 소리치는 법! 진실의 흔적을 따라 탐정처럼 길을 가라.   5 건물에서 멀지 않은 공터에 신문지 한 장이 몇 달째 누워 있다. 사건을 가득 담고 빗속 햇빛 속에 밤이나 낮이나 신문은 그곳에서 늙어간다. 식물이 되어가는 중이고, 배추가 머리가 되어가는 중이고, 땅과 하나 되어가는 중이다. 옛 기억이 서서히 당신 자신이 되듯.   어떤 죽음 이후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한때 충격이 있었다. 뒤에는 긴 창백한 깜빡이는 혜성 꼬리. 그것은 우리를 집안에 묶어둔다. 그것은 TV 화면을 흐리게 한다, 그것은 전화선 위에 차가운 물방울로 내려 앉는다.   지난해의 잎새들이 몇몇 매달려 있는 관목 숲에서 아직도 우리는 겨울 태양 아래 천천히 스키를 즐길 수 있다. 잎새들은 오래된 전호번호부에서 뜯겨져 나온 책자 같다. 사람들의 이름은 추위가 삼켜버렸다.   아직도 심장 고동소리를 듣는 것은 아름답다. 하지만 대로 그림자가 몸보다 더 실재(實在)일 때가 있다. 검은 용비늘 갑옷 옆에서 사무라이는 조그맣게 보인다.   여름 초원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너무 많은 것들을 우리는 보아야만 했다. 현실은 우리를 너무 많이 닮게 했다. 하지만 마침내 여름이다.   커다란 비행장, 관계사가 한 짐 한 짐 짐을 부려 놓는다. 얼어붙은 외계인들.   풀과 꽃들의 나라, 우리가 착륙하는 곳. 풀 나라엔 초록 감독이 있고, 그에게 나를 신고한다.   압력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푸른 하늘에서 귀청 찢는 엔진 소리. 모든 것이 떨리는 공사장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돌연 대양의 심연이 열릴 수도 있는 곳. 조가비와 전화기가 뒤엉켜 소리 내는 곳.   옆으로 잽싸게 보면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 빽빽한 곡식 들판의 다채로움이 황색 강으로 흘러간다. 머리 속의 불안한 그림자들이 그곳에 가고 싶어한다. 곡식알 속으로 기어들어 자기도 황금색이 되고 싶다.   어둠이 내린다. 한 밤중에 잠자리에 든다. 작은 배가 큰 배에서 떨어져 나온다. 물 위의 홀로움. 사회의 검은 선체가 멀리멀리 흘러간다.   열린 공간 닫힌 공간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장갑같은 일을 통해 사람은 세상을 느낀다. 한낮에 잠시 장갑을 벗어 선반 위에 올려놓고 쉰다. 장갑은 선반에서 갑자기 자라고 펼쳐지고, 집 전체를 안으로부터 검게 만든다.   검어진 집이 떨어져 나가 봄바람 속에 선다. '사면(赦免)이야' 속삭임이 풀밭을 달린다. '사면이야.' 한 소년이 하늘로 비껴 올라가는 투명한 줄을 잡고 내닫는다. 소년의 야성적인 미래의 꿈이 하늘에서 교외보다 더 큰 연과 더불어 난다.   꼭대기에서 보면 더 북쪽으로는 끝없이 펼쳐진 소나무 숲의 푸른 융단. 구름 그림자가 가만히 서 있다. 아니, 날아가고 있다.   느린 음악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오늘은 건물을 열지 않는 날. 태양빛이 차유리로 밀려들어 책상 표면을 덥힌다. 인간의 운명을 짊어질 수 있을 만큼 튼튼한 책상들.   오늘 우리는 야외로 나와, 길고 널찍한 경사지에 선다. 검은 옷을 입은 사람도 있다. 햇빛 속에 서서 눈을 감으면, 서서히 앞으로 밀려가는 느낌을 가지리라.   나는 좀처럼 바다로 내려오지 않지만, 오늘 이곳 평화로운 등을 가진 큼직한 돌들과 자리를 함께 한다. 돌들은 바다로부터 한 걸음 한 걸음 뒷걸음질쳐 여기에 와 있다.   몇 분간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늪에 웅크린 소나무가 왕관을 떠받친다. 그러나 이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뿌리에 비한다면, 넓게 뻗은, 은밀히 기어가는, 죽지 않는, 혹은 반쯤 죽지 않는 뿌리 조직에 비한다면.   나 너 그 그녀 역시 가지를 뻗는다. 의지 바깥으로, 대도시 바깥으로.   우유 빛 여름 하늘에서 소나기가 쏟아진다. 나의 다섯 감각들이 다른 생명체에 연결된 듯한 느낌이 온다. 어둠이 흘러내리는 운동장에서 밝은 옷을 입고 달리는 육상선수처럼 끈질기게 움직이는 다른 생명체에 연결된 듯한 느낌.   칠월, 숨쉬는 공간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키 큰 나무 아래 등을 대고 드러누운 사람은 또한 나무 위에 올라가 있기도 하다. 사람은 수천의 잔가지를 뻗고 앞뒤로 흔들리고, 느린 동작으로 밀려나오는 사출좌석(射出座席)에 앉는다.   부둣가에 내려가 앉은 사람은 실눈을 뜨고 물을 바라본다. 부두는 사람보다 빨리 늙는다. 부두의 말뚝들은 은회색, 뱃속에는 둥근 돌이 들어 있다. 눈부신 빛이 곧장 관통한다.   갑판 없는 작은 배를 타고 번쩍이는 해협을 온종일 돌아다니는 사람은 마침내 푸른 램프 속에서 잠들리라. 섬들이 램프 유리 너머로 거대한 나방처럼 기어다니는 동안.   근교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땅과 동일한 색깔의 작업복을 걸친 사람들이 구덩이에서 올라 온다 막다른 중간 지대, 도시도 시골도 아닌 곳. 지평선의 키 큰 건설 기중기는 대도약을 원하지만 시계는 반대다. 여기저기 널려 있는 시멘트 관들이 바싹 마른 혓바닥으로 빛을 핥는다. 자동차 정비소가 한때의 곳간 자리를 차지한다. 돌들이 돌연 달 표면의 물체같은 그림자를 던진다. 이런 곳이 점점 늘어난다. 유다의 돈으로 산 땅처럼 '도공(陶工)의 땅, 이방인의 무덤'처럼.   교통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트레일러 달린 장거리 화물 자동차가 안개 속을 기어간다. 호수 바닥 진흙탕 속을 기어가는 잠자리 애벌레의 거대한 실루엣.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나뭇가지들 사이에서 헤드라이트들이 만난다. 서로서로 얼굴을 알아볼 수 없다. 불빛의 홍수가 솔잎 사이로 돌진한다.   우리들, 어둠의 차량들은 황혼 속 사방에서 달려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둔탁한 굉음 속을 미끄러져 간다.   탁 트인 평원 공장들이 둥지 틀고 있다. 해마다 공장 건물들이 2밀리미터씩 가라앉는다. 땅이 천천히 집어삼키고 있다. 알 수 없는 짐승들이 이곳에 세워진 가장 화사한 꿈의 산물 위에 발자국을 남긴다. 씨앗들이 아스팔트에서 살려고 힘겨워한다, 다음엔 밤나무가 먼저 나타나고, 하얀 꽃 송이 대신 강철 장갑 꽃피울 준비를 하는 듯 우울한 밤나무를 지나   회사 수위실이 나타난다. 고장 난 형광등 불빛이 깜빡이고 또 깜빡인다. 이곳 어디엔가 비밀의 문이 있다. 열려라! 뒤집어진 잠망경에 눈을 갖다대고   아래쪽을 보라. 거대한 구멍들이 있고, 깊이 매설된 거대한 파이프들에는 바다풀들이 죽은 사람의 수염처럼 자라고 있다. 진 흙투성이 잠수복을 입은 '청소부'가 유영하고 있다.   맥박이 점점 약해지고, 막 질식할 듯,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다만 사슬이 부서지고 부서지고, 다시 붙고 다시 붙고 한다는 것만, 영원히.   야간 근무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1 밤중에 모래자루들 사이로 내려간다. 나는 배의 전복을 막는 말없는 무게 추들 중의 하나! 흐릿한 얼굴들이 어둠 속에 돌처럼 움직인다. 그들이 전하는 소리는 다만, '손대지 마.'   2 다른 목소리들이 몰려든다. 듣는 자는, 희미한 빛을 발하는 라디오 다이얼 위로 수척한 그림자처럼 미끄러진다. 언어가 사형집행인들과 보조를 맞추어 행진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새로운 언어를 찾아야만 한다.   3 늑대가 왔다! 창문에 혀를 대고 비비는 우리들의 친구! 골짜기엔 기어다니는 도끼 자루들이 가득하다! 야간 비행기가 철테 달린 휠체어처럼 밤하늘에 느릿한 굉음을 쏟아 붓는다   4 사람들이 땅을 파헤치는 중이다. 지금은 조용하다. 텅 빈 교회묘지 느릎나무 아래 빈 굴착기 한 대, 손을 땅에 내려놓고 있다. 주먹을 앞으로 내밀고 식탁에서 잠든 사람의 모습, 교회 종이 울린다.   열린 창(窓)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어느 날 아침 이층으로 올라가 열린 창가에 서서 면도를 하였다. 면도기에 스위치를 넣었다. 가르릉거리기 시작했다. 가르릉 소리는 점점 커져 갔다. 포효소리가 되었다. 헬리콥터 소리가 되었다. 한 목소리가, 조종사의 목소리가 소음을 뚫고 소리쳤다. '눈감지 마세요! 이 모든 것을 마지막으로 보시는 겁니다.' 일어났다. 여름 위로 낮게 비행하였다. 내가 사랑하는 조그마한 것들, 그들은 무게가 있을까? 수도 없는 초록의 방언들. 특히나 목재 가옥의 붉은 벽들. 풍뎅이들이 햇빛 속, 거름 속을 번쩍이고 있었다. 뿌리째 뽑힌 지하실들이 공중을 항해하였다. 움직이는 공장들. 인쇄소가 기어왔다. 그 순간 사람들만이 동작 없는 유일한 물체였다. 사람들은 침묵의 순간을 지켜보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교회묘지에 잠든 자들이 카메라의 유년 시절에 촬영 포즈를 취하는 사람들 처럼 숨을 죽이고 있었다. 저공비행! 나는 어느 쪽으로 고개를 돌려야 할 지 알 수 없었다. 말(馬)의 시야처럼 시야가 갈라졌다.   서곡(序曲)들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1 진눈깨비 속에서 옆으로 질질 발을 끌며 다가오는 그 무엇에 나는 멈칫한다. 다가올 일의 단편. 허물어지는 벽. 눈 없는 그 무엇. 단단한. 이빨의 얼굴! 홀로인 벽. 아니면 집인가, 내가 볼 수 없어도? 미래. 일군(一群)의 빈집들. 눈을 맞으며 앞으로 길을 더듬어 나가는.   2 두 가지 진실이 서로 접근한다. 하나는 내부에서 하나는 외부에서. 두 진실이 만나는 곳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볼 기회를 갖는다.   일어날 일을 아는 사람이 격렬하게 외친다. '멈춰! 내 자신을 알 필요만 없다면, 무슨 일이라도!'   물가에 정박하고 싶은 배가 있다. 바로 여기서 정박을 시도한다. 앞으로도 수천 번 시도하리라.   숲의 어둠으로부터 길다란 갈고리 장대가 나타난다. 열린 창을 밀고 들어와, 춤으로 몸 덥히는 파티 손님들 사이에 섞인다.   3 내 삶의 대부분을 살아온 아파트가 철거되려 한다. 벌써 많은 것이 비었다. 닻이 풀렸다. 계속되는 슬픔의 무게에도 불구하고, 이 아파트는 도시 전체에서 가장 밝은 아파트다. 진실은 가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내 삶은 큰 원을 한 바퀴 그리고, 막 출발점으로 돌아왔다. 날아가 버린 방. 이곳에서 내가 살 비 비며 살아온 물건들이 이집트 그림들처럼, 묘지 내실(內室)의 장면들처럼, 벽 위에 모습을 드러낸다. 하지만 빛이 너무 강하여 그림이 점점 흐릿해진다. 창 들이 훨씬 커졌다. 빈 아파트는 하늘을 향한 커다란 망원경. 퀘이커 교도들의 예배 때처럼 사방이 조용하다. 들리는 것은 오직 뒤뜰에서 비둘기들이 구구대는 소리뿐.   이름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차를 모는 동안 졸음이 와서 길옆의 나무 아래로 밀고 들어갔다. 뒷자석으로 굴러들어가 잠들었다. 얼마 동안? 몇 시간 동안 어 둠이 와 있었다.   나는 갑자기 잠이 깨었고, 내가 누군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의 식이 충분히 돌아왔지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는 어디에 있지? 내가 누구지? 나는 막 뒷좌석에서 잠깨어 마대자루 속의 고양 이처럼 공포에 질려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그 무엇! 내가 누구지?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나의 삶이 내게로 돌아온다. 나의 이름이 천 사처럼 돌아온다. 성벽 바깥에는 레오노라 전주곡처럼 트럽펫 소 리가 들리고, 나를 구출해줄 발걸음들이 긴 계단 아래로 신속히 다 가온다. 내가 오고 있어! 내가!   하지만 자동차들이 불을 켜고 미끄러져 지나가는 간선 고속도로에 서 몇 발짝 떨어진 곳에서, 무(無)의 지옥 속의 15초 전투를 잊을 수 없다.   똑바로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순간적 집중으로 닭을 잡는 데 성공했다. 손에 들고 서 있었다. 기묘하게도 닭은 살아 있는 느낌이 제대로 들지 않았다. 뻣뻣하고 메마른 느낌이 흡사 1912년의 진실을 외쳐댄 흰 깃털장식의 낡은 여성모자 같았다. 천둥이 허 공에 걸려 있었고, 울타리 널빤지에서 냄새가 피어올랐다. 사람을 알아 볼  수 없을 만큼 낡아버린 사진첩을 열 때처럼.   닭을 들고 닭장 속으로 다시 데려가 놓아주었다. 갑자기 닭이 생기를 되찾 았다. 자기가 누군지 어디에 있는지를 알고 규칙에 따라 쫓아다녔다. 닭장 은 금기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주변은 사랑과 끈기로 가득하다. 온통 초록 잎새들로 뒤덮이다시피 한 나지막한 돌담. 황혼이 내릴 때면 담을 만든 손의 백 년 된 온기로 돌들은 희미한 빛을 발한다.   겨울은 힘들었지만 이제 여름이 오고, 땅은 우리가 똑바로 걷기를 원한다. 마치 작은 보트 안에 서 있을 때처럼 자유롭게, 하지만 조심스럽게, 아프리카의 어느 날이 떠오른다. 샤리 강변에 수많은 보트들이 있고, 우호적인 분위가 있고, 거의 암청색 피부의 사람들이 있다. 양 뺨에 세 개씩 평행선 상처를 새겨 사라족임을 나타낸다. 나는 환영받으며 보트에 오른다. 숲의 검은 목재로 만든 카누는, 웅크리고 앉아 있을 때도 못 믿을 정도로 흔들린다. 균형 잡기 동작, 만일 심장이 왼쪽에 있다면 오른쪽으로 조금 기울여야 하고, 호주머니엔 아무것도 없어야 하고, 팔 동작도 크지 않아야 하고, 모든 수사(修辭)도 재쳐두어야 한다. 바로 이것, 이곳에선 수사 있을 수 없다. 카누가 물위로 미끄러져 나간다.   변경(邊境) 너머 친구들에게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1 편지가 너무 빈약하였네. 하지만 내가 쓸 수 없었던 것들은 부풀고 부풀어올라 마침내 구식 비행선이 되어 밤하늘로 날아가 버렸네   2 편지는 지금 검열관에게 있다네. 그가 램프를 켜자 불빛 속에서 나의 말들이 창살 속의 원숭이처럼 튀어오르고, 창살을 흔들고, 멈추어서는, 이빨을 드러낸다네.   3 행간을 읽게나. 우리는 이백 년 뒤에 만날 걸세. 그때는 호텔 벽의 마이크로폰이 잊혀지고 마침내 잠들 수 있겠지. 삼엽충 되어.   1966년의 눈 녹음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곤두박이로 곤두박이로 흘러내리는 물길, 포효소리, 오래된 최면술. 강물이 자동차 공동묘지를 늪으로 만들고, 가면 뒤에서 번쩍인다. 나는 다리 난간을 꽉 움켜잡는다. 다리, 죽음 지나 항해하는 거대한 강철 새.   시월의 스케치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예인선이 점점이 녹슬어 있다. 이토록 먼 내지(內地)에서 무엇을 하는 걸까? 이것은 추위 속에 소등(消燈)된 육중한 램프. 하지만 나무들은 야성의 색깔을 띠고 있다. 반대편 기슭으로 보내는 신호. 마치 불려오고 싶은 사람이 있기라도 한 듯.   집으로 오는 길에 잔디밭을 뚫고 고개 쳐드는 버섯들을 본다. 이것은 누군가의 손가락. 오랫동안 땅 속 어둠 속에서 홀로 흐느낀 자의 구조 요청. 우리는 땅의 손가락들.   더 깊은 곳으로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도시로 들어가는 간선도로, 해가 낮게 걸려 있다. 차들이 몰려들어 기어가기 시작한다. 이것은 느릿느릿 꿈틀대는 한 마리 번쩍이는 용. 나는 용비늘 중의 하나, 돌연 붉은 해가 바람막이 창을 불태우며 쏟아져 들어온다. 내가 투명해진다. 내 속의 글이 보인다. 투명 잉크로 쓰여진 말들, 종이를 불태우면 형체가 나타나리라! 멀리 가야겠다. 도시를 곧장 가로질러 반대편으로, 그리고 때가 되면 차를 내려 숲 속 멀리까지 걸으리라. 오소리의 발자국을 따라 걷다보면, 어둠이 내리고 앞이 보이지 않고, 저 안쪽 이끼 위에는 돌들이 놓여 있고, 그 중에 하나는 보석! 그 돌은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 어둠을 빛나게 할 수 있다. 그 돌은 나라 전체를 위한 스위치. 모든 것이 그 돌에 달려 있다. 들여다봐, 만져 봐.   보초근무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나는 철기시대 고관대작의 송장처럼 바깥의 돌무덤 속 근무를 명(名)받는다. 다른 사람들은 수레바퀴 살처럼 뻗어 텐트 속에 잠들어 있다.   텐트 속은 난로가 대장(隊長), 난로는 불의 탄환을 삼키고 쉭쉭거리는 커다란 뱀. 하지만 이곳 바깥, 새벽을 기다리는 차가운 돌들 사이의 봄밤은 조용하다.   바깥 추위 속에서 나는 마법사처럼 날기 시작한다. 곧장 하얀 비키니 자국이 있는 그녀의 몸으로 날아간다. 우리는 바깥에서 함께 태양을 받고 있었고, 이끼가 따뜻하였다.   나는 따뜻한 순간들 위를 날아다지만, 그곳에 오래 머물지 못한다. 호각 소리가 나를 공간 이동시킨다. 돌들 속을 기어, 지금 이곳으로 돌아온다.   임무, 지금 있는 곳에 있기. 이 같은 엄숙한 황당한 역할 속에서도 나는 여전히 창조가 제 작업을 수행해 나가는 공간이다.   새벽이 오고, 성긴 나무줄기들이 색깔을 띠기 시작하고, 서리한테 물린 봄꽃들이 어둠 속에 사라진 누군가를 찾아 소리없는 수색대를 형성한다.   하지만 지금 있는 곳에 있기. 그리고 기다리기. 나는 초조하고, 고집에 차 있고, 혼란스럽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들이 이미 여기에! 나는 그들이 바로 바깥에 와 있음을 느낀다.   문밖에 중얼거리는 무리들. 그들은 하나씩만 통과할 수 있다. 그들이 들어오기를 원한다. 왜? 하나씩 들어오고 있다. 나는 십자형 회전문.   땅을 뚫고 바라보기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흰 태양이 스모그에 젖는다. 햇빛이 뚝뚝 떨어지고, 아래쪽으로 길을 더듬어   깊숙한 내 눈에 닿는다. 도시 아래 깊은 곳에 내려가 위를 쳐다보는,   밑에서 도시를 바라보는 눈. 길거리들, 건물 기초들, 이것은 흡사 전시(戰時)의 도시를 찍은 항공사진,   거꾸로 찍은, 말하자면 두더지 사진. 흑백의 말없는 사각형들.   그곳에서 결정이 내려진다. 죽은 자의 뼈와 산 자의 뼈를 분간할 수 없다.   햇빛의 볼륨이 높여지고, 항공기 선실 속으로, 낚싯배 속으로 범람해 들어간다.   1972년 십이월 저녁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여기 내가 왔다. 어쩌면 '대 기억'에게 고용되어 바로 지금을 살게 된 투명인간, 나는 차를 몰고   자물쇠 채워진 흰 교회를 지난다. 안쪽에는 나무로 만든 성자(聖者)가 마치 안경이라도 빼앗긴 듯 속절없이 웃고 있다.   성자는 홀로이다. 나머지 모든 것은 지금, 지금, 지금이다. 만유인력 법칙이 우리를 압박한다. 낮이면 일의 반대편으로, 밤이면 침대의 반대편으로 전쟁이다.   늦은 오월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사과나무 벚나무 꽃피어 마을이 날아오른다. 하얀 구명의(求命依) 같은 아름답고 지저분한 오월 밤, 나의 생각들이 바깥을 떠돈다. 고요하고 완강하게 날갯짓하는 풀잎들 잡초들. 편지함이 침착하게 반짝인다. 쓰여진 것은 되돌릴 수 없다.   부드럽고 서늘한 바람이 셔츠 속으로 들어와 가슴을 더듬는다. 사과나무 벚나무, 그들은 말없이 솔로몬을 비웃는다. 그들은 나의 터널 속에서 꽃핀다. 나는 그들이 필요하다.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   엘레지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첫 번째 문을 연다. 햇빛 비치는 커다란 방. 육중한 차가 길거리를 지나면서 도자기를 떨게 한다.   이호실 문을 연다. 친구들, 어둠을 마셔 눈에 보이는 친구들!   삼호실 문. 비좁은 호텔방. 뒷골목이 보인다. 아스팔트 위를 밝히는 가로등 하나. 경험, 그 아름다운 찌꺼기.     건널목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그토록 오래 나를 따라왔던 길거리. 그린란드의 여름에 눈 웅덩이에서 빛나는 길거리를 건널 때, 얼음바람이 내 눈을 치고 두세 개의 태양이 눈물의 만화경(萬華鏡) 속에 춤춘다.   내 주변으로 길거리의 온 힘이 몰려든다.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고, 아무것도 욕망하지 않는 힘. 차량들 아래 땅 속 깊은 곳, 아직 태어나지 않은 숲이 조용히 천 년을 기다린다.   거리가 나를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거리의 시력은 너무 빈약하여 태양도 검은 공간의 회색 공일 뿐. 그러나 일순 내가 빛난다! 거리가 나를 본다.   늦가을 밤의 소설, 그 시작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배에서 기름 냄새가 난다. 무언가가 내내 강박관념처럼 덜거덕거린다. 스포트라이트가 켜진다. 우리는 선착장에 다가선다. 여기서 내릴 사람은 나 혼자뿐이다. '트랩 드릴까요?' 됐습니다. 나는 기우뚱 큰 걸음을 곧장 밤 속으로 내딛는다. 선착장 위에, 섬 위에 올라와 있다. 뭔가 축축하고 주체할 수 없는 느낌이 든다. 나는 고치에서 막 기어나온 한 마리 나비. 손에 든 플라스틱 옷가방은 아직 덜 생긴 날개. 몸을 돌려 창에 불을 환하게 켜고 돌아가는 배를 지켜본다. 어둠 속에 길을 더듬어 내가 너무나 잘 아는 집을 향한다. 오랫동안 비워둔 집. 이 부근에는 지금 집들이 모두 비어 있다---. 이곳에서 잠자는 일은 아름다운 일. 나는 등을 대고 드러눕는다. 잠자고 있는지 깨어 있는지 불확실하다. 방금 읽은 몇 권의 책이 버뮤다 삼각해역을 향하는 낡은 범선처럼 항해한다. 그곳에 이르면 그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리라---. 어떤 소리가 들린다. 속이 빈, 멍한 북소리, 바람이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어떤 물체를 땅이 움켜잡고 있는 다른 물체에 갖다 부딪친다. 만일 밤이 단순히 빛의 부재가 아니라면, 만일 밤이 진실로 그 무엇이라면, 바로 이소리이리라. 청진기를 통해 들려오는 느린 심장 고동소리. 고동치고, 일순 멎고, 되돌아 온다. 마치 그 존재가 지그재그를 그리며 경계를 넘어가는 듯. 어쩌면 저기에 누군가가 있는지 모른다. 벽 속에서, 자꾸 두드리는, 딴 세상에 속하는, 어떤 사정으로 이곳에 남겨진, 벽을 두드려, 돌아가고 싶은 사람. 그 사람은 너무 늦어 여기 내려올 수도, 저기 올라갈 수도, 때맞추어 배를 탈 수도 없었다----. 딴 세상은 또한 이 세상이기도 하다. 다음날 아침, 황금 잎사귀 갈색 잎사귀를 닫고 있는 녹슨 것 같은 나뭇가지가 보인다. 하늘을 향한 일군의 뿌리들. 얼굴 가진 돌들. 숲은 배가 떠날 때에 남겨 두고 간 내가 사랑하는 괴물들로 가득하다.   검은 산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다음 모퉁이에서 버스가 차가운 산그늘을 벗어나, 코를 태양에 갖다대고 소리치며 위로 기어올랐다. 우리는 짐 꾸러미 신세였다. 독재자의 흉상도 거기에 있었다. 신문지에 싸여, 병 하나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죽음, 출생의 표지인 죽음이 우리 모두들 위에서 자라고 있었다. 어떤 사람 위에서는 빠르게 어떤 사람 위에서는 느리게. 산턱 높이 푸른 바다가 하늘에 걸려 있었다.   슈베르트 연구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1  저녁 어둠 속 뉴욕을 벗어나 팔백 만이 살아가는 집들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한 조망 지점.  저 거대한 도시는 희미하게 빛나는 하나의 긴 부유물, 옆구리에 서 바라본 나선형 은하수.  은하수 속에서는 커피 잔들이 카운터 위를 오가고, 숍 윈도우들이 회오리바람처럼 흔적 남김 없이 지나가는 구두들에게 구걸한다.  화재 탈출계단이 솟아오르고, 엘리베이터 문이 미끄러져 닫히고, 삼겹 자물쇠 채운 문 뒤에서 목소리들이 끊임없이 끓어오른다.  돌진하는 카타콤*, 지하철 전동차 속에서 구부린 몸들이 꾸벅거린다.  통계가 없어도 나는 또한 알고 있다, 바로 이 순간 저쪽 어떤 방에 서는 슈베르트가 연주되고 있음을, 또한 어떤 사람에게는 슈베르트 선율 이 다른 어떤 것보다 더한 실재(實在)임을.   2  인간 두뇌의 광막한 평원이 접고 또 접혀 주먹 크기만하게 되었다.  사월이면 제비가 지난해의 둥지로 돌아와 바로 이 교구 바로 이 헛 간의 처마 밑을 찾아든다.  제비는 트란스트발을 출발하여 적도를 지나고, 육 주간 두 대륙 상공을 날고, 계속 항해하여 거대한 땅덩어리 끝에서 사라져 가는 바로 이 지점을 정확히 향한다.  그리고 그 남자, 전 생애의 부호들을 한데 끌어모아 다섯 현악기를 위 한 꽤나 흔한 몇몇 음표로 압축시킨 사람,  바늘 귀 속으로 강을 흐르게 한 그 사람은  비엔나 출신의 몸매 풍성한 젊은 양반이었고, 친구들한테 '작은 버섯'이 라 불렸고, 안경 낀 채 잠들었고, 아침이면 정확히 제 시간에 높다란 작업대 앞에 섰다.  그렇게 했을 때, 경이의 지네들이 종이 위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3  현악 오중주가 연주되고 있다. 나는 탄력 있는 땅을 딛고 따뜻한 숲을 통해 집으로 걷는다.  태아처럼 웅크리고, 잠에 빠져, 중량없이 미래로 굴러 들어가, 불현듯 식물들도 생각이 있음을 깨닫는다.   4  그토록 많은 것들을 믿어야 한다. 땅 밑으로 가라앉지 않고 단지 나날의 일상을 살아내기 위해!  마을 위쪽 산비탈에 달라붙은 쌓인 눈을 믿어야 한다.  침묵의 약속들과 이해의 미소를 믿어야 하고, 사고 전보가 우리를 향한 것이 아님을 믿어야 하고, 안으로부터 돌연한 도끼의 타격이 오지 않을 것임을 믿어야 한다.  고속도로 위 삼백 배로 확대된 강철 벌떼 속에서 우리를 데리고 달리는 차축을 믿어야 한다.  그러나 그 중 어느 것도 진실로 우리의 믿음에 값하는 것은 없다.  우리가 다른 무엇을 믿을 수 있다고 다섯 현악기들이 말한다. 그 리고 무엇으로 가는 길을 얼마간 우리와 동행한다.  마치 계단에 불이 나갔을 때. 어둠 속의 길을 찾아나가는 눈먼 난간을 우리의 손이 믿고 따르듯,   5  우리는 피아노로 몰려들어 네 개의 손으로 F 단조를 연주한다. 한 마차 속의 두 마부처럼 약간은 우스꽝스럽다.  손들이 음(音)의 추를 앞뒤로 움직이고 있는 것 같다. 마치 행(幸) 불행(不幸)의 무게가 정확히 똑같아서  무서운 균형을 이루고 있는 큰 저울에 작은 변화를 주려고 우리가 납 의 추를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애니가 말했다. '이 음악은 너무나 영웅적이예요.' 맞는 말이다.  하지만 행동의 인간들을 부러운 눈길로 쳐다보는 사람들, 살인자가 되지 못해 스스로를 경멸하는 사람들.  또 사람을 사고 파는 사람들, 그리고 어떤 사람이라도 살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 그들은 여기에서 자신을 발견하지 못한다.  그들의 음악이 아닌 것이다. 그 모든 변주 속에서도 때로는 반짝이며 부드럽고 때로는 거칠고 힘찬, 저 긴 멜로디의 선, 달팽이의 흔적과 강철 철사의 모든 변주 속에서도 끝내 자기 자신으로 남는 멜로디.  완고한 멜로디가 바로 이 순간 우리와 자리를 함께 한다.  위로 솟아 오른다.  심연 속으로.   *카타곰(catacomb): 초기 기독교시대의 비밀 지하묘지.   집으로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전화 호출 소리가 밤중에 달려나갔다. 들판 이곳저곳 도시들의 근교에서 희미하게 반짝였다.  그 후 호텔 방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나는 마치 고동치는 심장으로 숲 속을 달리는 크로스컨트리 경기자 가 손에 든 나침반의 바늘 같았다.   긴 가뭄이 끝나고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여름 저녁이 회색이다. 하늘에서 비가 살금살금 내려와 소리없이 착륙한다. 잠든 누군가를 놀래키려는 듯.   물 반지들이 만(灣)의 수면을 수놓으며 헤엄치고, 만의 수면은 지금 이 순간 유일한 표면. 나머지는 모두 높이와 깊이, 솟아오르고 가라앉는다.   두 개의 소나무 둥치가 하늘로 치솟아, 길다란 속이 빈 신호드럼이 된다. 도시들과 태양은 흔적도 없다. 키 큰 풀 속에는 천둥이 들어 있다.   신기루 섬에다 전화를 걸 수 있다. 회색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천둥에게 철광석은 꿀, 우리는 자신의 암호에 따라 살 수 있다.   숲 속의 집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그곳으로 가는 길에 놀란 날개들이 두어 번 퍼드덕거렸고, 그것이 전부였다. 그곳은 혼자 가는 곳이다. 그곳에 있는 키 큰 빌딩은 완 전히 균열들로만 이루어져 있다. 그 빌딩은 언제나 기우뚱거리지 만 붕괴 능력이 전혀 없다. 천 개로 변한 태양이 갈라진 틈으로 들어온다. 이 햇빛 놀이에서는 전도된 만유인력의 법칙이 지배한 다. 집이 하늘에 닿은 채 떠 있고, 떨어지는 것은 무엇이나 위로 떨어진다. 이곳에선 빙그르르 돌 수 있다. 이곳에선 울 수도 있다. 이곳에선 우리가 보통 보따리 싸서 꽁꽁 묶어두는 오래된 진실들을 볼 수도 있다. 저 아래 깊숙한 곳에 숨어 있던 내 역할들도 날아 올라, 머나먼 멜라네시아의 작은 섬 어떤 납골당 속의 바싹 마 른 두개골처럼 내걸린다. 어린애 같은 햇빛이 무시무시한 트로피를 감싼다. 숲은, 그렇게 온화하다.   오르간 독주회의 짧은 휴지(休止)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오르간 연주가 멈추고 교회 속은 죽음 같은 정적, 그러나 그건 잠시뿐, 덜컹거리는 희미한 소리가 더 큰 오르간, 바깥쪽 차량들로부터 뚫고 들어온다.   우리는 차량의 중얼거림에 둘러싸여 있고, 그 소리는 교회 벽을 따라 흐른다. 바깥세상이 그곳에서 투명한 필름처럼, '매우 약하게'되려 애쓰는 그림자들과 더불어 미끄러진다.   거리 소음의 일부인 양, 고요 속에 고동치는 내 맥박소리를 듣는다. 나와 함께 걸어다니는, 내 속에 숨은 작은 폭포, 내 피가 돌아가는 소리를 듣는다.   내 피만큼 가까이, 네 살 때의 기억처럼 아득하게, 트레일러가 덜컹거리며 지나가는 소리를, 지나가며 육백 년 된 교회 벽이 떨리게 하는 소리를 듣는다.   이건 어머니의 무릎보다 못할 게 없지만, 그래도 이 순간 나는 아이가 되고, 어른들 이야기 소리를 멀리서 듣고, 승자와 패자의 뒤섞인 목소리를 듣는다.   푸른색 벤취 위엔 드문드문 신자들이 앉아 있고, 교회 기둥들이 이상한 나무들처럼 솟아 있다. 뿌리도 없고 꼭대기도 없이, 다만 흔한 바닥과 흔한 지붕뿐.   하나의 꿈을 다시 산다. 교회묘지에 내가 홀로 서 있다. 사방엔 시야가 닿는 데까지 히스가 타오르고 있다. 지금 누굴 기다리는 거지? 친구, 왜 오지 않는 거지? 벌써 와 있어.   서서히 죽음이 밑으로부터, 땅으로부터 빛을 피워 올린다. 히스가 빛난다. 점점 더 강한 자줏빛으로, 아니, 누구도 본 적이 없는 어떤 색깔로---- 이윽고 아침의 창백한 빛이 흐느끼며 눈꺼풀을 뚫고 들어오고   나는 깨어난다. 흔들리는 세상 속으로 나를 데려가는 저 흔들림 없는 '어쩌면'의 세계로. 추상적인 세계 그림은 어느 것이든 폭풍의 청사진만큼이나 불가능하다.   집에는 만물박사 '백과사전', 일 야드의 서가(書架)가 있었고, 그 속에서 나는 책 읽기를 배웠다. 그러나 우리들은 저마다 자신의 백과사전을 쓰고, 백과사전은 각자의 영혼에서 자라나오고, 백과사전은 태어날 때부터 쓰여지고, 수천수만 장의 페이지들이 서로를 압박하며 서게 된다. 그래도 그 사이엔 공기가! 숲 속의 떨리는 잎새들처럼 모순의 서(書).   거기에 있는 것은 매 시간 변하고, 그림들은 자신을 다시 만지고, 말들은 깜빡거린다. 한 파도가 전(全) 텍스트를 덮치고, 다음 파도가 뒤따르고, 또 다음---.   답장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책상 맨 밑바닥 서랍에서 26년 전에 처음 도착한 편지를 만난다. 겁에 질린 편지, 편지는 두 번째 도착한 지금도 여전히 숨쉬고 있다.    집에 다섯 개의 창이 있다 창을 통하여 낮이 청명하고 고요하게 빛 난다. 다섯 번째 창은 검은 하늘, 천둥 그리고 구름을 마주하고 있다, 나는 다섯번 째 창에 선다. 편지.    때로는 화요일 수요일 사이에 심연이 열리기도 하지만, 26년은 한순 간에 지나갈 수도 있다. 시간은 직선이 아니라 더 미로 같은 것이어서, 만일 적절한 곳에서 벽에 바짝 붙어선다면 서두르는 발걸음 소리들을 들을 수 있고, 목소리들을 들을 수 있고, 저 반대편에서 자기 자신이 걸어 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편지에 답장을 보냈던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오래 전 일이었다. 헤 아릴 수 없는 바다의 문지방들이 이동을 계속했다. 팔월 젖은 풀 속의 두 꺼비처럼 심장이 순간순간 고동치기를 계속했다.    답장 보내지 않은 편지들이 나쁜 날씨를 약속하는 솜털 구름처럼 쌓여 간다. 편지들이 햇빛의 광택을 잃게 한다. 어느 날 답장을 보내리라. 어느 날 내가 죽어 마침내 집중할 수 있을 때 혹은 적어도 나 자신을 다 시 발견할 수 있을 만큼 이곳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 때 대도시의 125번 가에 갓 도착하여, 바람 속에 춤추는 쓰레기들의 거리를 내가 다시 걸 을 때, 가던 길을 벗어나 군중 속으로 사라지기를 사랑하는 나, 끝없는 텍스트 대중 속의 하나의 대문자 T.   후주곡(後奏曲)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움켜잡는 갈고리처럼 세상의 바닥을 질질 끌며 걷는다. 내게 필요 없는 모든 것들이 걸린다. 피로한 분개, 타오르는 체념. 사형집행관들이 돌을 준비하고, 신이 모래 속에 글을 쓴다.   조용한 방. 달빛 속에 가구들이 날아갈 듯 서 있다. 천천히 나 자신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텅 빈 갑옷의 숲을 통하여.   꿈 세미나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땅 위의 40억 모두가 잠자고, 모두가 꿈꾼다. 얼굴들이 떼 지어, 몸들이 떼 지어, 꿈속에 나타난다. 꿈속의 사람들은 현실 속의 우리보다 수가 더 많다. 하지만 공간을 차지하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는 극장에서 졸 수가 있고, 극중에 눈거풀이 처질 수 있다. 일순간 이중노출이 오고, 눈앞의 무대는 꿈의 조종을 받아 마침내 제압당하고, 그러면 무대는 더 이상 없고, 오직 우리 자신뿐. 정직한 심연 속의 극장! 과도한 연출가의 신비! 새 연극 끊임없이 기억하기.   한 침실, 밤 어두워진 하늘이 방으로 흘러든다. 누군가 읽다 잠든 책이 아직도 열린 채 부상 입은 몸으로 침대 모서리에 큰 대자로 뻗어 있다. 잠자는 눈은 움직이고 있고, 또 다른 책 속의 문자 없는 텍스트를 따라가고 있다. 환히 밝혀진, 구식의 날쌘 텍스트. 눈꺼풀의 수도원 담장 속에서 쓰여지는 현란한 즉흥극. 지금 이 순간 바로 이곳의, 유일무이 본(本). 아침이면 말소(抹消). 거대한 낭비의 신비! 절멸(絶滅)! 의심 많은 제복들이 관광객을 세워 카메라를 열고, 필름을 풀고, 햇빛이 그림들을 죽게 할 때처럼. 그렇게 꿈들은 낮의 빛으로 검어진다. 절멸인가. 단지 보이지 않을 뿐인가? 한 번도 끊어지는 적이 없는 일종의 보이지 않는 꿈꾸기가 있다. 빛은 남의 눈에게나 줘버리는 곳. 기어가는 생각들이 걸음마를 배우는 곳. 얼굴들과 형상들이 재편성되는 곳. 환한 대낮에 우리가 사람들 속에 섞여 어떤 거리를 걸어가고 있을 때,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동일한 수의, 어쩌면 더 많은 수의 사람들이 그곳 길거리 양편 어두운 건물들 속 높은 곳에 들어 있는 것이다. 때로 그 사람들 중 하나가 창가로 와서 우리를 내려다본다.   명종곡(鳴鐘曲)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손님이 자신의 누추한 호텔에 묵기를 원하므로, 주인 여자는 손 님을 멸시한다.  나는 한 층 올라가 구석방에 자리잡는다. 형편없는 침대. 천장에 매달린 백열전구,  수십만 진드기들이 행진하고 있는 무거운 커튼.    바깥은 보행자 전용거리.  느릿느릿한 관광객들, 서두르는 학교 아이들, 덜거덕거리는 자 전거를 타고 가는 작업복의 사내들.  자기가 지구를 돌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지구의 손아귀에 사 로잡혀 자기도 속절없이 돌아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우리들 모두가 걷는 거리, 그것은 어디에서 나타나는가?    방의 유일한 창은 다른 무언가에 면해 있다. '야성의 장터,'  들끓는 땅, 널찍한 떨리는 지표, 때때로 붐비고 때때로 버림받 은 곳.    내가 속에 데리고 다니는 것들이 저곳에서는 물질로 화한다. 온 갖 공포들, 온갖 기대들,  생각도 할 수 없는 모든 것들, 그럼에도 언젠가 일어날 모든 것들.    나의 해변들은 나지막하다. 만일 죽음이 6인치 올라온다면 나는 범람하리라.  나는 막시밀리안**이다. 때는 1488년, 적들이 우유부단한 탓에  나는 이곳 부뤼헤***에 유폐되어 있다.  적들은 사악한 이상주의자들, 그들이 공포의 뒤뜰에서 행한 일 을 나는 묘사할 수 없다. 나는 피를 잉크로 바꿀 수 없다.    나는 또한 덜거덕거리는 자전거를 타고 길거리를 내려가는 작업 복의 사내이기도 하다.    나는 또한 아까 본 그 사람, 그 관광객이기도 하다. 가다가 멈추 고 가다가 멈추면서,  관광객은 시선을 달에 탄 창백한 얼굴들 위로, 옛 그림들의 파도 치는 휘장들 위로 배회하게 한다.    내가 갈 곳을 결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 자신은 더더욱 아니다. 매번 발걸음이 있어야 할 곳에 있긴 하지만.  모두가 죽었기에 아무도 상처받을 수 없는 화석 전쟁터 속을 돌 아다니기!  먼지 뒤집어쓴 초목들, 총안(銃眼)이 있는 성벽들, 돌처럼 굳은 눈물들이 발꿈치 아래 우지끈 부서지는 정원 통로들----.    뜻밖에, 마치 덫의 철사줄을 밟기라도 한 듯, 종 울림이 익명의 탑에서 시작된다.  명종곡! 솔기를 따라 지루가 터지고, 종소리가 플랑드르 지방을 가로질러 굴러나간다.  명종곡! 꽝꽝거리는 쇳소리, 찬송가인 동시에 유행가, 떨면서 공 중에 새겨지는!    떨리는 손의 의사가 아무도 해독할 수 없는 처방전을 작성하지 만, 쓰여진 것은 알아볼 수 있으리라----.    초원과 집들 위로, 수확과 매매(賣買) 위로,  산 자들과 죽은 자들 위로 명종곡이 울린다.  그리스도와 적그리스도, 구분이 안 된다!  종들이 이윽고 우리를 날개에 실어 집으로 데려다 준다.    종소리가 멈추었다.    나는 다시 호텔 방에 돌아와 있다. 침대, 불빛, 그리고 커튼, 이상 한 소리가 들린다. 지하실이 몸을 끌고 계단을 올라오고 있다.    팔을 뻗고 침대에 눕는다.  나는 하나의 닻, 저 밑으로 내려가 위에 둥둥 떠 있는  거대한 그림자를 안정시켜 주는, 나를 일부로 포괄하면서  분명 나보다 더 중요한 위대한 미지(未知)를 안정시켜 주는.    바깥은 보도, 길거리, 내 발걸음들이 죽어가는 곳, 또한 쓰여지 는 것이 죽어가는 곳, 침묵에 붙이는 나의 서문과 안팎 뒤집힌 나 의 찬송가가 죽어가는 곳.   *명종곡: Carillon. 교회의 탑에 한 벌의 종을 매달아 연주하는 곡. **막시밀리안(Maximilian 1459~1519): 신성 로마제국의 황제를 지낸 막시밀리안 1세 ***브뤼헤(Brugge): 벨기헤 북서부의 도시.   자장가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나는 하나의 미라, 숲의 푸르른 관 속에서, 엔진들과 고무와 아 스팔트의 부단한 소음 속에서 휴식을 취한다.    낮 동안 일어난 일들이 가라앉고, 숙제가 삶보다 무겁다.    외바퀴 손수레는 단일한 바퀴를 타고 앞으로 굴렀고, 나 자신은 회전하는 정신을 타고 걸어왔다. 하지만 지금 내 생각들은 회전을 멈추었고 손수레는 날개를 달았다.    긴 마침내, 우주공간이 어두울 때 비행기가 오리라. 승객들은 아 래쪽 도시들이 고트족의 황금처럼 번쩍이는 것을 보리라.   유럽 깊은 곳에서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나, 두 개의 수문 사이에 떠 있는 어두운 선체는  주변의 도시가 깨어나는 동안 호텔 침대에서 쉰다.  침묵의 소란과 회색의 빛이 흘러들고,  천천히 나를 일으켜 다음 단계를 맞게 한다. 아침이다.    수평선을 엿듣고, 죽은 자들이 뭔가를 말하려 한다.  죽은 자들은 담배를 피우나 식사를 하지 않고, 숨을 쉬지 않으나 음성을 가지고 있다.  그들중 하나처럼 나도 서둘러 길을 가고 있으리라.  달처럼 무거운 검게 변한 대성당이 밀물과 썰물을 일으킨다.   상하이 거리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1  공원의 많은 나비를 사람들이 읽고 있다.  마치 팔랑이는 진실의 모퉁이라도 되는 듯, 나는 저 배추 흰나비 를 사랑한다.    새벽 군중들이 달리기로써 우리의 조용한 행성을 돌아가게 한다.  공원이 사람들로 가득 찬다. 사람들 각자에게는 모든 상황을 위 하여, 그리고 실수를 피하기 위하여, 옥처럼 반들반들하게 닦은 여덟 개의 얼굴들이 있다.    각자에게는 또한 '말하지 않는 그 무엇'을 반영하는 보이지 않는 얼굴이 있다.  피곤한 순간에 나타나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한 입의 에더 브랜 디처럼 맛이 쓴 그 무엇을 반영하는 얼굴.    연못 속의 잉어들이 쉼 없이 움직이고 있다. 잠자는 동안에도 헤엄치 는 잉어들. 잉어들은 언제나 활동 중이므로, 충실한 신자들의 귀감이다.     2  한낮이다. 빨래가 잿빛 해풍 속에 펄럭이고, 아래쪽으로는 자전거 탄 사람들이  빽빽이 떼를 지어 몰려온다. 좌우로 미로를 조심하시오!    해석할 수 없는 문자 기호들에 둘러싸인다. 나는 완전 문맹이다.  하지만 나는 지불할 걸 모두 지불했고, 영수증을 모두 가지고 있다.  나에게는 그토록 수많은 읽을 수 없는 영수증들이 쌓여 있다.  나는, 매달려 땅에 떨어질 줄 모르는 시든 잎사귀들을 달고 있는 한 그루의 고목.    한 줄기 바닷바람이 불어 영수증들을 바스락거리게 한다.     3  새벽에 군중들이 걷기로써 우리의 고요한 행성을 돌아가게 한다.  우리는 모두 이 거리에 승선하고 있다. 거리는 여객선의 갑판처 럼 빽빽하다.  어디로 가고 있지? 찻잔이 충분할까? 우리는 이 거리에 승선하게 된 걸 행운으로 여겨야 할 지경!  지금은 폐소 공포증에 태어나기 천 년 전!    이곳을 걷는 사람들 하나하나 뒤에는 십자가 하나씩 맴돌고 있다. 우 리들 뒤에서 우리를 따라잡고, 우리와 결합하고 싶어하는,  살금살금 뒤로 다가와 눈을 가리고 '누구게?'라고 속삭이고 싶어 하는.    우리는 바깥 햇빛 속에서 거의 행복해 보인다. 자기도 모르는 상처들로 우리가 치명적인 피를 흘리고 있는 동안.   작은 잎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소리없는 아우성이 벽 위에 안쪽으로 휘갈긴다. 꽃핀 과일나무들과 뻐꾸기 울음소리. 이것은 봄의 마취, 하지만 소리없는 아우성은 차고에서 뒤쪽으로 슬로건을 칠한다.   우리는 모든 것을 보며 아무것도 보지 않는다. 그러나 지하의 부끄럼 많은 승객들이 사용하는 잠망경처럼, 곧바로 본다. 이것은 순간들의 전쟁, 불타는 태양이 고통의 주차장, 병원 위에 서 있다.   우리는 망치질 당해 사회 속에 박혀 있는 살아 있는 못들. 어느 날 모든 것에서 놓여나리라. 날개 밑에 죽음의 공기를 느끼며, 이곳에서보다 더 온화해지고 더 야성적이 되리라.   로마네스크 아치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거대한 로마네스크 교회의 반(半) 어둠 속에서, 관광객들이 서로를 밀쳤다.  둥근 천장이 둥근 천장 뒤에 입을 벌리고 있어, 완전히 볼 수 없었다.  몇 개의 촛불들이 깜빡거렸다.  얼굴 없는 한 천사가 나를 껴안고,  나의 온몸을 관통하여 속삭였다.  '인간 됨을 부끄러워하지 마시고, 자랑으로 여기시라!  그대 내부에서 둥근 천장이 둥근 천장 위에 끝없이 열리나니,  그대는 한 번도 완전하지 못할 것이나, 그것이 그분의 뜻이나니'  눈물이 앞을 가려  나는 존즈 씨 부부, 다나카 씨 그리고 사바티니 여사와 함께  태양 들끓는 광장으로 밀려 나왔고,  그들 모두의 내부에서 둥근 천장이 등근 천장 뒤에 끝없이 열렸다.     경구(警句)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자본의 건물, 살인 벌의 꿀벌통, 소수를 위한 꿀. 그는 그곳에서 복무했다. 그러나 어두운 터널에서 날개를 펴고 아무도 보지 않을 때 날았다. 그는 삶을 다시 살아야만 했다.   9세기 여자의 초상화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그녀의 목소리가 옷 속에서 질식당한다. 눈이 검투사를 따라간다. 다음은, 그녀 자신이 경기장에 섰다. 그녀는 자유로운가? 금박 입힌 틀이 그림을 교살한다.   중세의 모티프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우리들의 마법의 얼굴놀이 아래에는 불가피하게 두개골이, 표정 없는 얼굴이 기다린다. 한편 태양은 서두르지 않고 하늘을 굴러간다. 체스는 계속된다.   이발사 가위같이 자르는 소리가 잡목 숲에서 들린다. 태양은 서두르지 않고 하늘을 굴러간다. 체스게임이 무승부로 멈춘다. 무지개의 침묵 속에.   황금 장수말벌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도마뱀 저 말 없는 도마뱀이 현관 발판을 따라 흐른다. 아나콘다처럼 고요하고 위엄 있게, 다만 크기가 다를 뿐. 하늘이 구름으로 덮여 있지만 해가 밀고 나온다. 이런 날이다.   오늘 아침 내 사랑하는 여자가 악령들을 쫓아버렸다. 마치 남쪽 어딘가에 있는 어두운 혓간의 문을 우리가 열었을 때 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바퀴벌레들이 구석으로 돌진하고 벽 위로 올라가고 그리고 사라지듯이, 이때 우리는 바퀴벌레들을 보았고 또한 보지 않았는데, 그렇게 내 사랑하는 여자의 적나라한 모습이 마귀들을 달아나게 했다.   마귀들이 존재한 적이 없었던 것처럼. 그러나 그들은 돌아오리라. 천 개의 손을 가지고, 신경(神經)의 구식 전화교환국 속에 있는 전화선들을 넘어서.   7월 5일이다. 루핀*들이 바다가 보고 싶은 듯 위로 뻗고 있다. 우리는 아무 문자도 따르지 않는 침묵 지키기의 교회, 경건의 교회 속에 있다. 마치 고위 성직자들의 저 용서없는 얼굴들과 돌에 잘못 새겨진 신의 이름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돈을 비축해놓은, 축자적(逐字的)으로 문자에 충실한 TV 설교가를 본 적이 있다. 하지만 그는 이제 힘이 없었고 경호원의 부축이 필요했다. 경호원은 재갈처럼 딱딱한 미소를 짓는 잘 차려입은 청년이었다. 비명을 질식시키는 미소. 부모가 떠날 때 병상에 홀로 남은 아이의 비명.   신성(神性)이 인간을 스쳐가며 불꽃을 밝혀놓고, 그러고서는 물러난다. 왜? 불꽃이 그림자들을 끌어당기고, 그림자들이 바스락거리며 날아 들어 불꽃에 합류하고, 불꽃이 치솟으며 검어지고, 검은 질식의 연기가 뻗어나간다. 마침내 검은 연기뿐, 마침내 경건한 사형집행관뿐. 경건한 사형집행관이 장터와 군중들 위로 몸을 기울리고, 장터와 군중들은 사형집행관이 자신을 볼 수 있는 흐린 거울이 된다.   최대의 광신자는 최대의 불신자이다. 이 사실을 알지 못한 채. 광신자는, 하나는 백 퍼센트 눈에 보이고 다른 하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둘 간의 계약이다. '백 퍼센트'라는 표현을 내가 얼마나 증오하는지.   정면에서가 아니면 어디에서도 결코 존재할 수 없는 자들 멍한 마음이 결코 될 수 없는 자들 문을 잘못 열어 '정체 물명자'를 얼핏 보게 되는 일이 결코 없는 자들. 이들을 지나가라!   7월 5일이다. 하늘이 구름으로 덮여 있지만 해가 밀고 나온다. 말 없는 도마뱀은 관료주의가 없는 듯하다. 황금 장수말벌은 우상숭배가 없는 듯하다. 루핀들은 '백 퍼센트'가 없는 듯하다.   페르세포네처럼 우리가 우리가 포로인 동시에 통치자인 그런 심연을 나는 알고 있다. 나는 자주 그곳 뻣뻣한 풀 속에 누워 땅이 내 위에 아치를, 둥근 천장을 그리는 것을 보았다. 자주, 그것이 내 삶의 절반이었다.   하지만 오늘 나의 응시가 나를 떠났다. 나의 눈 멂이 사라졌다. 검은 박쥐가 내 얼굴을 떠나 여름의 밝은 공간을 가위질하며 돌아다니고 있다.   *루핀(lupin); 콩과 루피너스 속의 식물   사월과 침묵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봄이 버림받아 누워 있다. 검보랏빛 도랑이 아무것도 비추지 않고 내 옆에서 기어간다.   유일하게 빛나는 것은 몇 송이 노란 꽃.   나는 검은 케이스 속의 바이올린처럼 내 그림자 속에 담겨 운반된다.   하고 싶은 유일한 말은 닿을 수 없는 곳에서 반짝인다. 전당포 안의 은그릇처럼.   밤에 쓰는 책 한 페이지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어느 오월 밤, 서늘한 달빛 속 잿빛 풀과 꽃들이 초록 향기 풍기는 기슭에서 배를 내렸다.   색맹의 밤, 나는 비탈을 미끄러져 올랐고 하얀 돌들은 달에게 신호를 보냈다.   몇 분의 길이와 58년의 폭을 가진 시간의 한 부분.   내 뒤로은 납빛 반짝이는 물결 너머 다른 기슭이 있었고, 통치하는 자들이 있었다.   얼굴 대신 미래를 가진 자들.   1990년 칠월에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장례식이 있었고, 죽은 자가 내 생각들을 나보다 잘 읽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오르간이 침묵을 지키고 새들이 노래했다. 무덤이 바깥 햇빛 속에 놓였다. 친구의 음성은 순간들의 먼 저편에 속했다.   집으로 차를 몰고 올 때 여름날의 반짝임이, 비와 정적이 뚫어보고 있었다. 달이 뚫어보고 있었다.   뻐꾸기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뻐꾸기 한 마리가 집의 정북쪽 자작나무 속에서 뻐꾹뻐꾹 소리내고 있었다. 소리가 너무 힘차서, 처음엔 오페라 가수가 뻐꾸기를 성대 묘사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놀라움 속에 새를 보았다. 소릴를 낼 때 마다 우물의 펌프 손잡이처럼 꼬리털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두 발로 깡총 뛰더니만, 몸을 돌려 나침반의 모든 눈금을 향해 소리 질렸다. 다음엔 땅을 박차고 뭔가를 중얼거리면서 집 위로 날아 올라, 멀리 서쪽으로 사라졌다---. 여름이 늙어가고 모든것이 단일한 우수의 한숨 으로 내려앉는다. 뻐꾸기는 열대로 돌아가리라. 스웨덴 시절은 끝난 거야. 뻐꾸기의 스웨덴 시절은 길지 않았어! 사실 뻐꾸기는 자이르의 시민이지---. 나는 이전만큼 여행을 사랑하지 않는다. 하지만 요즈 음은 여행이 나를 방문하지. 내가 점점 더 먼 구석으로 몰리고, 나이테 가 커지고, 독서 안경이 필요한 요즈음 우리가 운반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일들이 언제나 일어나지. 놀랄 일은 아무것도 없어. 수지와 쿠 바가 아프리카를 온통 통과해 리빙스턴의 미라 시신을 충직하게 운반하 였듯, 이러한 생각들이 나를 운반해 가는 거야.   슬픈 곤돌라*/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1  두 늙은이, 장인과 사위 간인 리스트와 바그너가 대운하에 머물고 있다.  미다스 왕처럼 손대는 것은 무엇이나 바그너로 변형시켜버리는  남자와 결혼한 저 신경과민의 여자와 더불어.  바다의 초록 냉기가 궁전 바닥을 뚫고 밀고 올라온다.  바그너는 표가 난다, 그 유명한 펀치넬로** 옆모습이 이제 기울고,  얼굴은 백기(白旗)이다.  무겁게 짐 실은 곤돌라가 그들의 삶을 싣고 간다,  두 장의 왕복표와 한 장의 편도표.    2  궁전 창 하나가 덜컹 열리고, 갑작스런 외풍에 사람들이 얼굴을 찡그린다.  바깥 물위에는 쓰레기 곤돌라가 보이고, 두 명의 외팔 도적이 노를 젓고 있다.  리스트가 몇 개의 악보를 적었다. 너무 무거워서  파두아에 있는 광물학 연구소로 보내 분석해봐야 할 지경이다.  운석들!  지금 있는 자리에 머물기엔 너무 무거워, 악보들은 가라앉고 가라앉아  앞으로 다가올 해들을 통과하여 마침내 나치스당 시절에까지 이른다.  무겁게 짐 실은 곤돌라가 미래의 웅크리고 앉은 돌들을 싣고 간다.    3  1990년을 들여다보는 구멍.    3월 25일. 리투아니아에 대한 걱정.  큰 병원 하나를 방문한 꿈을 꾸었다.  직원이 없었다. 모두가 혼자였다.    같은 꿈속에서  한 여자 신생아가 완전한 문장으로 말을 했다.    4  자기 시대 사람인 사위에 비한다면, 리스트는 케케묵은 귀족이다.  그것은 하나의 위장.  이런저런 가면을 써보고 던져버리는 바다가 바로 이 가면을 그에게 골라주었다.  자기 얼굴을 보여줌 없이 인간사에 개입하기를 좋아하는 바다가    5  리스트 노부(老父)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옷가방 챙겨 들고 다니는 일에 익숙해서,  그가 죽음에 도착하는 날 역에 마중 나오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리라.  잘 숙성된 술 한 모금의 미풍이 업무 중의 그를 밀고 나가게 한다.  그는 일거리로부터 자유로울 때가 없다.  연간 이천 통의 편지들!  학교에서 잘못 쓴 단어를 백 번 써야 집에 갈 수 있는 아이처럼.  무겁게 짐 실은 곤돌라가 삶을 싣고 간다. 단순하게 검은 곤돌라.    6  다시 1990년.    차를 몰고 그냥 백 마일을 달리는 꿈을 꾸었다.  그러자 모든 것이 거대해졌다. 닭만한  참새들이 귀 먹을 정도로 크게 울어냈다.    식탁 위에다 피아노 건(鍵)들을  그리는 꿈을 꾸었다. 그것으로 소리없이 피아노를 쳤다.  이웃들이 들으러 왔다.    7  '파르지팔'*** 전곡(全曲) 연주가 끝날 때까지 들으면서 침묵을 지키고 있던 건반이 마침내 한 마디 할 기회를 허락받는다.  한숨 지으며--- 아주 슬프게---  오늘 밤 연주할 때 리스트는 바다 패달을 밟아서,  바다의 초록 힘이 바닥을 뚫고 올라와 건물의 석재 하나나 속으로 스며들게 한다.  좋은 저녁 되시길, 아름다운 바다여!  무겁게 짐 실은 곤돌라가 삶을 싣고 간다, 단순하게 검은 곤돌라    8  학교 가려는 꿈을 꾸었는데. 도착해보니 지각이었다.  교실 안의 사람들이 모두 하얀 가면을 쓰고 있었다.  누가 선생님인지 알 수 없었다.     *슬픈 곤돌라: 1882년 말부터 1883년 초까지 리스트는 당시 베네치아 대운하의   벤드라민궁(Palazzo Bandramin)에 머물고 있던 딸과 사위 바그너를 방문하였다.   바그너는 얼마 후 세상을 떠났다. '슬픈 곤돌라'라는 제목으로 발표된 리스트의 두개의 피아노 곡이   이 방문기간 동안에 작곡되었다.  **펀치넬로(Punchinello): 이탈리아 인형극에 나오는 땅딸막하고 괴상하게 생긴 사내  ***파르지팔(Psrsifal): 중세 유럽의 아서(Arthur)왕의 전설에서 성배를 찾아나선 기사 여기서는    1877년에서 1882년 사이에 작곡된 바그너의 악극.   세 개의 연(聯)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1 시간 밖에서 나는 관 뚜껑 위, 돌이 되어 행복한 기사와 귀부인.     2 티베리우스*의 옆 얼굴이 새겨진 동전을 예수가 들어 보였다. 사랑 없는 옆얼굴, 순환하는 권력.     3 물 듣는 검(劍)이 모든 기억들을 지운다. 땅 위에는 나팔과 검대(劍帶)들이 녹슬고 있다.     *티베리우스(Tiberius. B.C. 42~ A.D. 37) :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의붓아들로 로마 제 2대 황제.   어린이 됨을 좋아하라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어린이 됨을 좋아하라. 순간 갑작스런 모욕이 자루처럼 그대 머리 위로 쏟아진다. 망사 사이로 그대는 태양을 슬쩍 보고 벚나무들이 흥얼대는 소리를 듣는다.   어쩔 수 없는 일, 거대한 모욕이 그대 머리를 그대 몸통을 그대 무릎을 덮고, 간혹 움직일 수 있으나 그대는 봄을 기대할 수 없다.   희미한 양털 모자를 얼굴 위에 뒤집어쓰라. 바늘 뜸 사이로 세상을 보라. 해협에는 물 반지들이 소리없이 몰려들고, 초록 잎새들이 땅을 어둡게 한다.   두 도시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물의 양쪽에 하나씩 도시가 서 있다. 하나는 완전 암흑, 적이 점령했다. 다른 도시에는 램프들이 불타고 있다. 불 켜진 기슭이 어두운 기슭에게 최면을 건다.   번쩍이는 어두운 물 위를 나는 황홀경 속에 유영한다. 둔중한 튜바 소리가 파고든다. 친구의 음성이다. 그대 무덤을 들고 걸으라.   하이쿠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송전선이 뻗어 있다 서리의 왕국, 모든 음악의 북쪽에       *   해가 낮게 걸려 있다 그림자가 거인이다 머잖아 모두 그림자       *   자줏빛 난초꽃들, 유조선이 미끄러져 지난다 달이 꽉 찼다        *   잎새들이 속삭인다 멧돼지 하나 오르간을 연주한다 종소리들이 울려 퍼진다        *   신의 현존. 새소리의 터널 속 자물쇠 채워진 봉인이 열린다         *   상수리나무와 달. 빛. 침묵의 성좌들. 그리고 차가운 바다   1860년의 섬 생활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1 어느 날 그녀가 방파제에 내려가 빨래를 하였다네 깊은 바다 한기가 팔 속으로 삶 속으로 스며들었다네   얼어붙은 눈물은 안경이 되고 섬의 풀들이 섬을 위로 들어올렸다네 저 아래 발트 해 깊은 바다 위에는 청어잡이 깃발이 떠 있었다네   2 천연두 벌떼들이 그에게 달려들어 얼굴 위에 주렁주렁 자리 잡았다네 그는 자리에 누워 천장을 쳐다본다네   침묵의 물결 위로 노젓는 일 가혹도 하지 이 순간의 얼룩이 영원으로 흘러가고 이 순간의 상처가 영원히 피 흘린다네   한겨울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푸른 광맥이 내 옷에서 뿜어져 나간다. 한겨울. 쨍그랑거리는 얼음 템버린. 눈을 감는다. 소리없는 세계가 있고 갈라진 틈이 있고, 죽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경계 넘어 밀수입된다.   십일월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지루할 때 교수형 집행관은 위험해진다. 불타는 하늘 위로 굴러간다.   두드리는 소리가 감방에서 감방으로 들리고 땅의 서리로부터 공간이 위로 흐른다.   몇 개의 돌들이 보름달처럼 빛난다.     독수리 바위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동물원 유리 뒤로 파충류들, 움직임이 없다.   한 여자가 정적 속에 빨래를 넌다. 죽음이 조용해진다. 땅의 깊은 곳에서 내 영혼이 미끄러진다 혜성처럼 소리없이     서명(署名)/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어두운 문턱을 넘어가야 한다. 홀이 하나. 하얀 서류가 빛난다. 여러 그림자들이 움직인다. 모두 서명을 원한다.   빛이 나를 덮쳐 사간을 접어 올릴 때까지.       이경수 번역 전재 끝
182    랭보 산문시 모음 댓글:  조회:3184  추천:0  2017-05-06
일뤼미나시옹 [ Les Illuminations ] 요약 프랑스 상징파 시인 랭보(1854~1891)의 산문시집. 구분 : 산문시집 저자 : 랭보 시대 : 1886년 본문 출처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원래는 ‘채색삽화(彩色揷畵)’를 의미한다. 1886년 처음으로 잡지 《보그:La Vogue》에 발표되었으며 제작 시기는 1872∼1875년으로 추정된다. 42편의 시적 산문으로 된 이 시집은, 시인은 창조자, 보는 자(voyant)로서 미지(未知)의 것의 탐구자여야 한다는 랭보의 생각을 나타낸 것으로, 언어의 연금술(鍊金術)에 의해 놀라운 이미지를 구성하였으며, 강렬하고 현혹적인 시적 우주를 개척하여 훗날의 초현실파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다. 이 시집에는 눈이 어지러울만큼 다채로운 이미지의 범람이 있다. 방랑의 소년시인 랭보가 삼라만상과의 우연한 해후를 그대로 언어의 영상(映像)으로서 정착시킨 듯한 느낌이 있으며, 이른바 보는 자로서의 그의 시경(詩境)의 가장 농밀(濃密)한 표현으로 평가된다.     문장   A. 랭보     이 세상에, 놀란 우리 네 개 눈에 검은 숲이 되고, 두 경건한 아이에게 해변이 되고, 우리 분명한 호감에 음악 있는 집 된다면, 나 그대를 찾으리. 지금 이곳에는 다만 "엄청난 호사"에 둘러싸인 조용하고 아름다운 고독한 노인만이 있기를. 난 그대 무릎 아래 잇네. 나 그대 추억을 몽땅 실현시켰기를, 그대 목을 조를 수 있는 여인이기를. 나 그대 질식시키리.   ──────   우리 아주 경건하니, 누가 물러서는가? 아주 쾌활하니, 누가 웃음거리 되는가? 우리 아주 심술궂으니, 우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 잘 차려입어요. 춤추어요. 웃어요. 나는 결코 사랑을 창으로 보낼 수 없으리.   ──────   - 친구여, 거지여, 괴물 같은 아이야! 저 불행한 이와 노동자와 나의 곤궁은 그대와 상관없듯이. 그대 낼 수 없는 목소리, 그대 목소리로 우리를 사랑하라! 비루한 절망 속에 유일한 아첨꾼이네.   ...   7월의 어느 흐린 아침. 재 냄새가 하늘로 날아오른다. 아궁이에서 방울져 나오는 나무 냄새. 물에 차곡차곡 쌓인 꽃, 엉망이 된 산책로, 들판을 지나 운하에 내리는 이슬비. 장난감과 향은 왜 없는가?   ...   나는 종루에서 종루로 밧줄을 당겼다. 창에서 창으로 꽃 장식을. 별에서 별로 금빛 사슬을. 그리고 나는 춤춘다.   ...   높은 연못에서 끊임없이 김이 난다. 하얗게 지는 해 위에서 어떤 마녀가 서 있을까? 어떤 자줏빛 나뭇이이 떨어질까?   ...   공공의 깊은 바다가 우애의 축제 속에 흘러 들어가는 동안, 그는 구름 속에서 장밋빛 불길의 종을 울리고 있다.   ...   기분 좋게 먹 냄새를 풍기며 검은 화약이 조용히 내 지난밤 위로 비 내리듯 내린다. 촛대의 불길을 낮추고 잠자리에 든다. 어두운 곳으로 얼굴 돌리고 그대를 본다, 내 딸이여! 내 여왕이여!   도시   A. 랭보   난 덧없이 사라질 인간, 현대적이면서 꾸밈없이 대도시의 별로 불만이 없는 시민. 이미 알고 있는 냄새는 모두 도시 지도에서 멀리 가구와 집 외벽에서 빠져나갔기 때문. 여기 미신 기념물 흔적도, 당신은 지적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도덕도 언어도 가장 소박한 표현이 되었다! 자신을 알 필요도 없는 수많은 사람은 너무나 똑같이 교육과 직업과 늙음을 데리고 간다. 인생은 흔히, 어리석은 통계표가 대륙의 대중을 위해서 발견하는 것보다 길지 않은 게 틀림없다. 내 창 너머로 영원히 짙은 석탄 연기를 통해서 굴러가는 새로운 환영을 보듯이. 우리 숲 어둠이여, 우리 여름밤이여! 내 조국이고 내 온 마음인 시골집 앞에 새로운 복수의 신을 본다. 여기 모든 것 이것과 닮았으므로, 우리 딸이고 하녀인 눈물없는 죽음, 절망적인 사랑, 예쁜 범죄, 이들이 거리 진흙에서 울고 있으니.   야만인 A. 랭보   여러 날이, 여러 계절 지난 뒤에, 사람과 나라를 거친 뒤에, 북극 꽃과 바다 비단(이것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위로 피 흘리는 고기로 만든 정자(亭子). 영웅주의의 낡은 팡파레를 다시 생각한다, 아직 우리 가슴과 머리를 공격한다. 옛날 암살자들과는 멀리 있으면서. 오! 북극 꽃과 바다 비단(이것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위로 피 흘리는 고기로 만든 정자. 감미로움이여! 서리를 동반한 돌풍으로 내리를 불길, 감미로움이여! 우리 위해 영원히 석탄 같은 땅 속에서 다이아몬드 바람으로 솟구쳐 비처럼 내리는 불길, 오 세계여! (낡은 은둔과 낡은 불길에서 멀리 있으면서, 우리는 듣고 느낀다.) 불길과 거품, 음악, 심연은 길을 바꾸고, 하늘에서 얼음 조각이 부딪친다. 오! 감미로움이여, 오 세계여, 오 음악이여! 형태, 땀, 머리카락, 눈, 이 모든게 떠 있다. 또 끓어오르는 하얀 눈물, 오, 감미로움이여! 북극 화산과 동굴 바닥에 닿은 여자 목소리. 정자...   역사적인 저녁 A.랭보   예컨대, 어느 저녁에, 경제적 공포에서은퇴했따고 생각하는 순진한 여행자가 있는데, 어느 스승의 손이 풀밭에 있는 클라브생을 울린다. 사람들이 연못 깊은 곳에서 카드 놀이를 한다. 연못은 여왕과 귀여운 아가씨 불러오는 거울. 지는 해 위로, 성자와 베일과 조화의 아들과 전설적 채색이 있다. 그는 사냥꾼과 유목민이 지나가는 길에 몸을 떤다. 코미디가 잔디밭의 간이 무대에서 물방울을 흘린다. 가난한 자와 약자는 어리석은 지도 위에! 의존적인 그의 비전에, 독일은 달을 향해 차곡차곡 쌓아 올라간다. 타타르 사막은 환하게 빛난다. 중국 중앙에서 오랜 반란이 들끓는다. 돌층계와 왕의 의자를 지나서, 창백하고 평탄한 작은 세계인 아프리카와 유럽이 곧 건설되리. 그 다음에 알려진 어둠과 바다의 발레, 가치없는 화학, 불가능한 멜로디. 여객선이 우리를 어디로 내려놓든지 온갖 곳에 부르주아 마술이 있다! 가장 초보적인 물리학자도 느낀다, 이제 개인적인 기분에 따르는 게 불가능하다고. 육체적 회한의 안개, 그 검증이 이미 고뇌임을. 아니다. 한증막, 거친 바다, 지하에서 일어난 대화재, 날려보낸 유성, 합리적인 말살, 이 모든 순간이 있다. 성서와 운명의 여신이 거의 악의없이 지적한 확실한 일이다. 이는 성실한 존재가 지켜볼 것이다. 하지만 이는 전설의 영향은 아니리!   막다른 곳 A. 랭보   현실은 내 위대한 성격에는 너무 가시가 많아. 그래도 난 내 여인 집에 있었네. 그녀 커다란 회청색 새 되어 천장 쇠시리로 비상하여 저녁 그림자 속으로 날개를 끌고 가네. 난 잇몸은 보랏빛에 털은 슬픔으로 백발이 된 뚱뚱한 곰이었네. 두 눈은 장식장의 수정과 은을 바라보네. 그녀의 탐나는 보석과 걸작품인 그녀의 육체를 받치는 덮개 아래 있네. 모든 것 그림자되고 불타는 수족관 되었네. 아침에, 싸우기 좋아하는 6월의 새벽에, 나 당나귀 되어, 비애를 외치고 휘두르며 들판을 달렸네. 변두리에 사는 사비나가 내 가슴에 뛰어들어왔을 때까지.   평범한 야상곡 / Nocturne vulgaire A.랭보   한번의 숨결이 칸막이에 오페라 같은 균열이 나게 하고, - 부식한 지붕의 선회(旋回)를 흐릿하게 하고, - 화상(火床: 부뚜막)의 한계를 지워버리고, - 격자창을 보이지 않게 한다. - 포도나무를 따라 하수관에 발을 올려 놓고, - 나는 이 마차 안으로 내려갔다. 이 마차의 고통스러움은, 볼록 면의 유리, 불쑥 내민 판자, 울퉁불퉁한 긴 의자 등이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내 외로운 잠의 영구마차, 내 어리석은 짓 때문에 목인의 집인 짐마차는 사라진 큰길 위를 달려간다. 또 오른쪽 유리의 갈라진 틈 속에는 달의 창백한 영상, 잎, 유방이 선회한다. - 아주 짙은 녹색과 청색이 영상(l'image)을 사로잡는다. 자갈의 한 점 언저리에서 말들을 마차에서 떼어낸다. - 여기서 신호로 피리를 불까? 폭풍의 도래를 알리기 위해, 소돔(Sodomes) 같은 거리들에도, - 소림(Solymes) 같은 거리들에도, - 맹수들에게도 그리고 군대에게도. - (몽상의 마부와 동물들은 더없이 답답한 큰 수림 아래를 또 달리기 시작할까? 비단의 샘 속에 나를 눈까지 잠기지 않기 위해) - 그리고 밀려드는 물결과 펼쳐진 숲속을 지나 흥분을 느끼는 우리들을 보내며, 개들이 짖어대는 소리에 쫓겨 달리는 것이다. - 한 번의 숨결이 화상(火床)의 한계를 지워버린다.   철야 / Veillees A.랭보   1   그것은 잠자리와 목초지 위에서 밝게 비춰지고 열도 없고 초췌함도 없는 휴식.   친구. 그것은 치열하지도 않고 약하지도 않은 친구.   연인. 그것은 괴롭히지도 않고 괴로움을 당하지도 않은 친구.   조금도 추구되지 않은 대기와 세계. 인생.   - 대체 그것이 이렇단 말인가?   - 그리고 몽상은 깊어져가는 것이다.   2   빛이 거대한 배의 돛대로 돌아온다. 홀의 양쪽 끝은 하찮은 장식이지만 거기서 조화의 상승이 서로 만난다. 밤샘하는 자의 맞은편 벽면은 띠모양을 한 장식의 단면과 대기의 띠와 지질학적 우발사건의 심리적 연속. - 모든 겉모습 속에 있는 온갖 기질의 사람들이 갖춘 감상적인 집단의 강렬하고 신속한 몽상.   3   밤. 철야의 램프와 융단은 선체를 따라, 또 고물 언저리에서 물결의 울림을 일으킨다.   철야의 바다는 '아멜리'의 유방 같다.   중천까지는 여러 개의 벽걸이, 에머럴드 색조의 레이스 잡목림, 거기에 철야의 산비둘기들이 날아든다.   검은 화덕판, 모래톱의 진짜 태양, 아아! 마법의 우물이다. 지금은 다만 새벽의 광경뿐.   고뇌 / Angoisse   가 나로 하여금 줄곧 좌절되고 있는 야심을 사면하게 한다는 일이 있을 수 있을까? - 안락한 결말이 적빈의 시대를 보상한다는 일이 있을 수 있을까? - 언젠가 성공했다고 하여, 그것은 우리들의 숙명적인 무능함이라는 치욕을 베개삼아 우리들을 잠자게 한다는 일이?  (오오, 종려! 다이아몬드! - 힘이여! - 모든 기쁨과 영광보다도 높게! - 만난(萬難)을 물리치고 도처로, - 운명의 신이여, - 여기의 이 존재의 을! 즉 나를!)  과학적 몽한주의 우발사의 사회적인 우애의 운동이 원초적 자연과 자유의 점진적 복귀로서 사랑을 받는다는 일이 있을 수 있을까?  그러나 우리들의 마음을 부드러워지게 하는 는 자기가 우리들에게 맡기는 것과 놀고 있으라, 아니면 더 이상한 것으로 있으라고 명령한다.  상처투성이가 되더라도 권태의 대기와 바다를 넘어, 고통은 있어도, 살인적인 파도와 대기의 침묵 속을, 조소하는 고문을 당하건, 그 무섭게 물결치는 정적을 뚫고 달려가자.   A. 랭보   미개인 / Barbare    나날과 사계절 뒤, 사람들과 나라들의 뒤를 돌아,  북극의 바다와 꽃들(그런 것들은 존재하지 않는다)의 비단 위에 선혈이 떨어지는 고기의 깃발.  옛날의 암살자들을 뒤로 하고 - 여전히 우리들의 마음과 머리를 공격하는 - 영웅주의의 낡은 팡파레로 다시 부름을 받았다.  오오! 북극의 바다와 꽃들(그런 것들은 존재하지 않는다)의 비단위에 선혈이 떨어지는 고기의 깃발 감미로움이여!  빙화의 돌풍과 함께 내리 쏟아지는 화로, - 감미로움이여! - 우리들을 위해 영원히 탄화되는 땅의 핵심 속으로 다이아몬드의 바람으로 분출되어 비처럼 내리는 불길,  - 오오, 세계여!  (들리고 냄새를 풍기는 낡은 은둔, 낡은 불길을 뒤로 하고)  화로와 거품, 음악, 심연의 선회와 얼음덩어리의 별에의 격돌.  - 북극의 화산과 동굴바닥에 도착한 여자의 목소리와,  깃발...   A. 랭보   염가판매 / Solde    유태인들조차 판 적이 없는 것. 귀인도 죄인도 맛본 적이 없는 것. 저주받은 사랑과 민중의 지옥 같은 성실함이 알지 못하는 것, 때로 학문도 인식할 수 없는 것을 팔아 주리라.  가 또 회귀하고 있다. 합창과 교향악의 모든 힘의 우애에 넘친 각성과 그것들의 즉각적 전념이 우리들의 감각을 해방하는 유일한 기회다!  모든 혈통, 모든 사회, 모든 성별, 모든 후예를 넘어서 값을 매길 수도 없는 를 파는 것! 일투족마다 분출하는 풍요로움! 다이아몬드의 무제한의 염가판매다!  민중에는 무정부상태를 파는 것, 우수한 애호가들에게 억제할 수 없는 포만을. 신심이 깊은 사람들과 연인들에게는 견디기 어려운 죽음을. 파는 것.  보금자리와 이민을, 스포츠와 몽환경과 완벽한 인식을, 또 울림과 움직임과 그것들이 이루는 미래를 파는 것!  계산의 적용, 미증유의 조화의 도약을 파는 것, 의심할 수 없었던 진귀한 물건과 말과 직접적인 소유,  보이지 않는 장려함과 느껴지지 않는 환희에의 상쾌함을 벗어난 무한의 비약 - 어떤 결함으로서도 미칠듯이 기쁜 그의 비법 - 군중에는 무서운 그의 쾌활함을.  목소리, 의심할 바 없는 끝없는 호사, 다른 데서는 절대로 팔지 않는 를 팔아주리라. 팔 사람들에겐 아직도 싸게 파는 물건이 남아 있다! 여행을 더날 사람들이라면 그렇게 일찍 주문하지 않아도 된다!   A. 랭보   노동자/Quvriers A. 랭보 오오, 2월의 이 무더운 아침. 때아닌 '남풍'이 우리들의 어처구니 없는 적빈한 자의 추억과 우리들의 젊음의 비참함을 환기하러 왔다. 앙 리카는 흰색과 갈색의 바둑판 무늬 면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그것은 전세기에 누군가 입었던 것이 틀림 없었다. 리본이 달린 햇볕가리개 모자를 쓰고, 비단스카프를 두르고 잇었다. 그것은 정말 상복보다도 슬프다. 우리는 교외를 한바퀴 돌고 갔다. 하늘은 흐려있어 남풍이 황폐한 정원과 메마른 목초지의 모든 역겨운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그것은 나의 아내를 나만큼이나 틀림없이 피로하게 하지 않았을게다. 지난달, 시냇물의 범람으로, 상당히 높은 오솔길에 생긴 물구덩이에서 그녀는 아주 작은 물고기가 있는 것을 나에게 가르쳐 주었다. 거리는 연기와 직조기계 소리로 무척 멀리까지 우리를 쫓아오는 것이었다. 오오, 또 하나의 다른 세계, 하늘과 나무 그늘에 축복되는 보금자리여! '남풍'은 내게 회상토록 해주었다. 소년기의 비참한 일, 여름의 거듭되는 절망, 운명이 항상 내게서 멀어진 힘과 학문의 무서운 양을, 그렇다! 우리는 이렇게 궁색한 나라에서 여름을 보내지는 않으리라. 여기서는 우리가 영원히 약혼한 고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젠 이 굳어진 팔로 '사랑스런 모습'을 데리고 갈 수는 없는 것이다.   밤샘 ㅡ 랭보   그건 환한 휴식, 열기도 피로도 없이, 침대위, 혹은 풀밭위에서 그건 친구, 열렬하지도 시시하지도 않은, 친구 그건 연인, 고통을 주지도 받지도 않은, 연인 찾아오지 않은 대기와 세계, 삶 -그것일까? 꿈은 깊어만 간다.   갑(岬)(1)/Promontoire                                  A.랭보 황금빛 새벽과 전율하는(2) 초저녁이, 이 새벽 하늘의 제단과 부속 건물의 정면에서 우리들의 작은 범선을 옆으로 발견한다. 그것은 에피로드(l'Epire)와 펠로포네스(Peloponnese) 반도만큼 넓거나, 일본의 큰 섬 만큼, 혹은 아라비아 반도만큼이나 넓은 하나의 갑을 형성하고 있다!(아테네에서 행한) 엄숙한 종교행사 행렬의(3) 귀환이 피쳐주는 신전(4), 현대 해안의 방어의 끝없는 조망(5), 뜨거운 꽃들(6)과 박카스 축제(7)로 색채가 선명한 모래언덕, 카르타고의 대운하와 분명치 않은 베네치아인 듯한 도시의 '제방'(8), 에트나(Etnas) 화산의 부드러운 분화(9)와 빙하의 꽃과 물의 크레파스(10), 독일의 포플라에 둘러싸인 세탁장, '일본의 나무'의(11) 머리가 숙어지게 하는 기묘한 공원의 사면(12), 스카보로(Scarbo)(13) 혹은 브루클린(Brooklyn)(14)의 '로이얄'혹은 '그랜드'(15)의 원형의 정면. 이탈리아와 미국의 아시아의 건조물 중에서 가장 우아하고 규모가 큰 것의 역사 속에서 이 '호텔(Hotel)'(16) 안에 선택된 설비(17)를, 그들의 철도는(18) 측면을 방비하고 파고 앞으로 불쑥 나오게 한다. 지금 호텔의 창문과(19) 테라스에는 조명과 술과 풍부한 미풍이 넘쳐 있으나, 거기는 길손과 귀족의 정신으로 열려져 있어,-새벽 동안 내내 '궁전=갑'(20)의 정면을 희한하게, 해안의 타란텔라(21)의 모든 것에 장식한 것을 허용한다. -또 예술의 이름 높은 계곡의 소악장조차도.   1) 이상과 같은 열거는 새벽의 절정까지의 전개를 동지중해에서 대서양 끝까지의 여러지역의 속성에 의해 그린 점묘법식 그림이다. ①신전을 비추는 사절단-그리스 이오니아섬들(구름)을 비춘다. ②해안의 방어-동지중해에서 주홍빛을 분출시키는 수평선 ③뜨거운 꽃들과 박카스 축제의 모래 언덕-(붉은꽃, 횃불, 모닥불) ④카르타고의 제방-(튜니지아) 상승하는 광선. ⑤베네치아의 제방-(이탈리아 북동부): 상승하는 광선 ⑥에트나-(시실리아섬): 주홍빛 수평선과 구름. ⑦빙하의 크레파스-(스위스.알프스): 균욜 모양의 푸른 하늘 ⑧포플라에 둘러싸인 세탁장-(독일): 원형의 푸른 하늘 ⑨공원의 사면-(스위스.알프스): 붉은 광선 ⑩스카보로, 브루클린-호텔의 정면(영국과 미국): 동쪽 하늘의 전체의 빛나는 구름. 2) '전율하는(frissonnante)': 피에 젖은 주홍빛의 환기. 3) '종교행사의 행렬': 새의 무리와 대상들의 무리처럼 새벽빛의 상승을 표현하고 있는 듯함(그리스의 이오니아섬들) 4) '신전': 지중해 연안에 있는 섬들의 신전과 성채를 환기. 5) '끝없는 욕망': 주홍빛으로 불타는 수평선을 동쪽(새벽빛)에서의 빛의 폭격으로 치환한 것 같음. '새벽=전투'의 이미지임. 6) '뜨거운 꽃들(chaudes fleurs)': 주홍빛의 치열한 빛. 7) 박카스 축제: 밤새도록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는 이 제전에서의 횃불과 모닥불의 연상. 8) "카르타고의 대운하와... 베네치아인 듯한 도시의 '제방': 희고 길게 뻗어 상승하는 새벽의 광선인 듯함. '색체가 선명한 모래언덕'에 연결되는 '제방'이고 보면 '장미와 오렌지의 모래 위에', '수저의 한길이 교차했다'고 하는 의 첫머리의 시구와 똑같다는 것을 알 수 있다." 9) '부드러운 분화': 새벽=부드러운 분화임. 동쪽하늘에 구름과 함께 있는 주홍빛을 연상해 보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10) "빙하의 꽃과 물의 크레파스": 'de+fleurs', 'de+eaux'는 '붉은 색과 황금 색', '보라빛과 푸른색'을 나타내며 '빙하의 크레파스'는 수정색으로 빛나는 하늘을 뜻함. 11) '일본의 나무': 소나무. 고개를 숙이게 하는 나무. 일본적이며 풍속화에 자주 나옴. 12) 기묘한 공원의 사면: 고개를 숙인 소나무를 연상 시킨다. 13) 스카보로: 바르게는 Scarborough임. 런던 북방 약 3백킬로미터 떨어진 요크셔 구릉의 북쪽. 북해 연안. 14) 브루클린: 롱 아일랜드에 있는 뉴욕시의 한 구역. 15) '위풍당당한(Royal)' ' 큰(ground)': 호텔의 이름을 형용사 '로얄', '그랜드'로 쓰고 있다. 16) '호텔': autel(제단), 즉 하늘을 상징. 17) 선택된 설비: 신전, 요새, 모래언덕 18) 그들의 철도(leurs railways): 정면의(leurs) 철도. 정면이 동쪽 하늘. 철도는 새벽 광선의 서진을 나타냄. 19) 호텔 창문: 동쪽 하늘. 20) '궁전=갑': 환상적 새벽하늘. 21) 타란텔라: 남이탈리아 지방의 가락이 빠른 노래와 춤. '해안의 타란텔라': 새벽의 푸른 하늘에 격렬하고 밝은 빛의 음악성을 나타냄.   다리들   A.랭보 수정의 잿빛 하늘. 다리의 괴상한 데생. 이쪽 몇 개는 수직으로, 저쪽 몇 개는 둥글게 구부러져 있고, 다른 다리는 첫째 다리와 각도를 이루어 하강하거나 교차해 있다. 더구나 이런 이미지는 운하의 빛나는 다른 회로 속에 재현되지만 모든 것이 그토록 길고 가벼움므로, 여러 개의 돔을 받치고 있는 강기슭은 낮아지고 작아진다. 이런 다리 중의 약간은 여전히 초라한 오두막을 받치고 있다. 이밖의 몇 개는 돛대와 신호 등대와 연약한 난간을 받치고 있다. 단조의 화음이 교차하여 뻗어나가 현악은 제방에서 오른다. 붉은 저고리가 뚜렷이 보이지만 어쩌면 다른 의상과 악기도 보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대중가요 인가, 영주의 저택에서의 연주회의 단편인가, 공적인 찬가의 여운인가? 물은 회색이고 푸르고, 바다의 팔처럼 넓다. -한 가닥의 흰 광선이 하늘의 높이에서 내려와 이 연극을 지워버렸다.   헌신 A.랭보   나의 수녀 루이즈 바낭 드 보랑겡에게. -북해로 향해진 그녀의 푸른 수녀의 모자. -파선당한 사람들 때문. 나의 여동생 레오니 오브와 다쉬비에게. 바우 -날개 소리가 나는 역한 냄새의 여름풀. -어머니들과 자식들의 열 때문. 륄뤼, -악마에게 -그녀의 '여자친구'의 시대와 자기의 불완전한 훈련의 기도소에의 기호를 보전했다. 남자들 때문, 마담에게. 나의 지나간 청춘에게. 은둔인가 사명인가, 그 거룩한 노인에게. 빈민들의 심령에게. 또 어떤 고위의 성직자에게. 여하튼 어떤 회고적 예배의 자리. 어떤 사건에 있어서도 순간의 동경에 따라, 혹은 우리들 자신의 중댇한 결함에 따라, 귀의해야 할 어떤 예배건 간에. 오늘 저녁은 물고기처럼 기름지고 붉은 밤의 10개월처럼 붉게 채색된 높은 빙산의 시르세토에게, -(그녀의 마음은 호박과 불길)-밤의 영역처럼 말이 없고, 이 주지의 카오스 보다도 격렬한 무훈에 앞서는 나의 유일한 기도를 위해. 무엇을 걸고서라도 모든 대기권에서, 형이상학적 여행에서조차. -하지만 더 '그때'를. 수소/H A.랭보 모든 기괴한 것이 오르탕스의 흉악한 거동을 침해한다. 그녀의 고독은 정욕적 기동력, 그녀의 권태는 사랑의 역학, 원초기의 감시아래서 그녀는 엄청나게 많은 여러 시대에 여러 종족의 치열한 위생학이었다. 그녀의 문은 비참함을 향해 개방되어 있다. 거기서는 현재의 사람들의 도덕이 그녀의 정념 혹은 움직임 속에 해체한다. -오오, 피에 젖은 대지의 빛나는 수소 속에 새로운 사랑의 무서운 전율! 오르탕스를 찾아내라.   노동자/Quvriers A. 랭보 오오, 2월의 이 무더운 아침. 때아닌 '남풍'이 우리들의 어처구니 없는 적빈한 자의 추억과 우리들의 젊음의 비참함을 환기하러 왔다. 앙 리카는 흰색과 갈색의 바둑판 무늬 면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그것은 전세기에 누군가 입었던 것이 틀림 없었다. 리본이 달린 햇볕가리개 모자를 쓰고, 비단스카프를 두르고 잇었다. 그것은 정말 상복보다도 슬프다. 우리는 교외를 한바퀴 돌고 갔다. 하늘은 흐려있어 남풍이 황폐한 정원과 메마른 목초지의 모든 역겨운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그것은 나의 아내를 나만큼이나 틀림없이 피로하게 하지 않았을게다. 지난달, 시냇물의 범람으로, 상당히 높은 오솔길에 생긴 물구덩이에서 그녀는 아주 작은 물고기가 있는 것을 나에게 가르쳐 주었다. 거리는 연기와 직조기계 소리로 무척 멀리까지 우리를 쫓아오는 것이었다. 오오, 또 하나의 다른 세계, 하늘과 나무 그늘에 축복되는 보금자리여! '남풍'은 내게 회상토록 해주었다. 소년기의 비참한 일, 여름의 거듭되는 절망, 운명이 항상 내게서 멀어진 힘과 학문의 무서운 양을, 그렇다! 우리는 이렇게 궁색한 나라에서 여름을 보내지는 않으리라. 여기서는 우리가 영원히 약혼한 고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젠 이 굳어진 팔로 '사랑스런 모습'을 데리고 갈 수는 없는 것이다.   ...........[청춘]......... ..공감   1.        일요일 일거리를 옆에 밀어놓으면 추억의 방문과 율동의 대소동과 하늘로부터의 불가피한 침입이, 주거지와 머리의 정신세계를 점령한다. - 한 필의 말이 교외의 경마장을 도망쳐, 탄소의 페스트에 둟려서 경작지와 식림지를 향해 질주해간다. 드라마의 비참한 여자 한 사람이 세계의 어딘가에서 가망이 없는 단념을 갈망하고 있다. 자포자기한 무범자들은 폭풍과 도취와 상처에 괴로워하고 있다. 아이들은 강가에서 저주의 말을 억제한다. - 민중 속에서 모으고 상승하는, 몸을 들볶는 작품의 울림을 들으며 또 연구를 시작하자. 3. 20세 교훈적인 목소리는 멀어져 버리고 있고..... 육체의 솔직함은 견디기 어려울만큼 가라앉고 있다 ........ -아다지오, -아아! 청춘의 무한한 에고이즘, 근면한 낙관주의, 이 여름에 이 세상은 얼마나 꽃들로 넘쳐 있었던가! 대기와 형상이 죽어간다...... - 합창을, 무력함과 부재를 달래기 위해! 밤의 멜로디의 유리의 합창을..... 실로 신경은 신속하게 쫓아갈 것이므로 4. 무제 너는 지금도 여전히 앙투안의 유혹에 빠져있다. 어중간한 열성적 오락, 순진하게 오만한 버릇, 쇠약과 두려움. 그러나 너는 이 일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조화적이고 건축적인 모든 가능성이 너의 주위를 술렁거릴 것이다. 완벽하고 뜻밖의 존재가 너의 경험에 몸을 내어밀 것이다. 너의 주위에는 옛 군중과 안락한 호사에의 호기심이 꿈꾸듯이 몰려들 것이다! 너의 기억력과 감각은 다름 아닌 너의 창작적 충동의 거름이 될 것이다. 네가 나가면 세계는 어떻게 되어버릴까! 어떻게 되건 외관 중에 아무것도 실제적인 것은 없을 것이다.   보톰/Bottom A.랭보 나는 위대한 기호에는 너무 지나친 형극에 넘쳐 있는 현실.-그러나 나는 천장의 가장자리로 비상(飛翔)하여 초저녁의 그림자속에 날개를 끄고 커다란 회청색의 새로서 마담 의 집에 있었다. 그녀가 열애하는 보석과 육체적 걸작품들을 지탱하는 천개(天蓋)아래서는 연한 보랏빛 잇몸과 슬픔의 흰 모피의 큰 곰, 두 눈은 연주대 위의 수정과 은을 바라보고 있었다. 모든 것이 그림자가 되고 치열한 물통이 되었다. 아침,-전투같은 6월의 새벽. -당나귀인 나는 나의 비애를 불고 휘두르며 들판을 달렸다. 교외의 사비나(Sabines)의 여자들이 내 가슴에 뛰어 들어왔을 때까지.   역사의 황혼/Soir historique                                 A.랭보  길손이, 자기 자신을, 순박하고 현대의 경제적 참혹함에서는 은퇴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 어느 황혼에는, 어떤 거장의 손이 목초지의 크라브생(피아노의 전신)에 생기를 주고, 여왕들과 귀여운 아가씨를 환기시키는 거울인, 늪의 바닥에서는 트럼프 놀이가 행해지고, 석양 위에는 성녀들과 베일과 조화의 현(絃), 그리고 전설같은 색무늬가 있다.  추격하는 사람들과 여러 부족의 통행에 그는 전율한다. 희극이 잔디밭의 무대 위에 물방울을 떨군다. 그리고 그 어리둥절하게 하는 평면 위에는 가난뱅이와 약자의 당혹!  속박된 그의 환상에서는 독일은, 달들을 향해 형성된다. 타타르의 사막은 밝게 비쳐진다. 중국의 중앙지역에는 옛날과 같은 반란이 준동한다. 돌층계와 팔걸이 의자를 거쳐 창백하고 평탄한 작은 세계, 아프리카와 유럽이 이윽고 솟으리라. 그 다음에 바다와 밤의 무용, 가치도 없는 화학, 그리고 불가능한 멜로디.  우편선이 우리들을 내려 놓을 곳에는 어디든지 같은 시민적 미술! 가장 초보적인 물리학생 이라도, 이 개인적인 분위기에 그 증명이 이미 비탄인 것 같은, 육체적 희한의 안개, 이것에 스스로 복종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으로 느끼고 있다.  그렇구 말구! 한증막의 그 순간, 거친 바다의 순간, 지하실 대화재의 순간, 격분한 유성의 순간, 절멸의 필연적 순간, 성서와 노르느(Nornes)에 의해서도 조금도 악의를 품지 않고 지적된 확실한 것이 허용된다고 생각된다.-하지만 그것은 하나의 적설적 효과는 아닐 것이다!   움직임/Mouvement A.랭보 벼랑 위에 강이 낙하하는 우곡의 움직임, 배의 후미에 (바다의)심연, 난간의 신속함, 조류의 거대한 변덕, 이것들이 미증유의 빛과 화학적 새발견 속에, 계곡과 해류의 물기둥에 둘러싸인 길손들을 이끈다. 그것은 개인의 화학적 재산을 구하는 세계의 정복자들; 스포츠와 안식은 그들은 함께 여행한다. 그들은 데리고 간다. 혈통과 계급과 동물의 훈련을, 이 배 위에 휴식과 눈부심 홍수 같은 빛에 비춰져서, 연구의 무서운 밤에로 왜냐하면 화려함, 피, 꽃들, 불길, 보석속에서의 잡담과 도주하는 이 강변에 흔들린 계산에 의한 -수력으로 움직이는 가로 저편에 둑처럼 달려가 기괴하게 끝없이 빛나는- 그들의 연구의 축적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환희와 발견과 영웅주의에 쌓여 쫓겨간다. 가장 놀라운 대기의 우발적인 변화 앞에서, 젊은 부부는 아마 주위에 단 둘뿐. -옛날의 만행은 용서될까?- 노래하고 항해한다.   바다그림 A.랭보 은과 구리의 수레들- 강철과 은의 뱃머리들- 거품을 휘젓고,- 가시덤불의 그루터기를 들어올린다. 황야의 조류들, 그리고 썰물의 거대한 수레바퀴 자국들, 원을 그리며 동쪽으로 길게 뻗친다, 숲의 기둥들 쪽으로,- 모퉁이가 빛의 소용돌이에 부딪히는 부두의 방파제 쪽으로.   왕의 존엄성/Royaute A.랭보 어느날 아침 매우 조용한 인민의 거리에서 공중을 앞에 두고 위풍당당한 남자와 여자가 외치고 있었다: 고 그는 웃으며 몸을 떨고 있었다. 그는 친구들에게 ?시(?示) 에 대해, 끝나버린 시련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 몸을 기대어 황홀해져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주홍빛 장막이 집들 위에 솟은 아침 내내, 왕과 왕비였으므로. 오후 내내 그들은 거기서 종려나무 정원 쪽으로 갈 것이리라.   출발/Depart A.랭보 충분히 보았다. 환상은 어느 하늘에도 존재했다. 충분히 소유했다. 거리들의 소란은 황혼에도, 햇빛 아래서도 항상 존재한다. 충분히 알았다. 생의 정지다.-오오,과 온갖 이여! 새로운 애정과 소요속으로 떠나자!   퍼레이드/Parade A.랭보 매우 강건하고 우스운 녀석들. 몇 사람인가는 당신들의 세계를 개척했다. 필요없기 때문에, 그들은 자기 능력과 당신들의 정신에 관한 그들의 경험을 사용하는 데, 조급하게 서두르고 있지 않다. 얼마나 성숙한 어른들인가! 여금밤처럼 빨강과 검정, 3색 금빛 별들이 흩어진 강철색의 멍청한 두 눈, 이그러진 얼굴, 납빛 얼굴, 쾌활하고 쉰 목소리! 낡은 옷을 입은 사람들의 형편없는 걸음걸이! - 젊은이도 몇 사람 있지만 - 도대체 그들은 어떻게 지휘관을 -바라볼까- 울컥거리는 듯한 목소리를 하고 위험한 방편을 몇 가지인가 가지고 있따. 그들은 혐오스런 옷장식을 이상하게 걸치고 거리에 배후에서 자극을 주기 위해 파송되어 온다. 오오, 미친듯이 찌푸린 더없이 강렬한 파라다이스! 당신들의 탁발승과 우스꽝스런 다른 연극과 비교하는 것은 그만두기 바란다. 악몽에 대한 취미를, 간직하고, 즉석 의상을 입고 비탄의 가락, 불량배와 영적인 (?)신들의 비극이야기와 종교가 조금도 그렇지 않았던 것처럼 상연한다. 중국인, 호텐토트족, 집시, 바보, 하이에나, 모코로인, 비실거리는 얼간이, 불길한 악마가 되어 그들은 속어와 각자의 모국어와 짐승같은 동작과 에정이 뒤섞는다. 그들의 신작 연극과 이라는 노래를 부를지도 모른다. 유랑 곡예사이 그들은 장소와 인물을 변형하여 매력적인 희극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린다. 두 눈은 불타고 피가 노래하며 뼈는 느슨해지고 눈물과 붉은 실이흐른다. 그들의 냉소, 그들의 공포는 한 순간이건 여러달이 걸리건 지속한다. 나만이 이 야만적인 퍼레이드의 열쇠를 가지고 있다.   도취의 아침 A.랭보 오오, '나의' 선이여! 오오, '나의' 미! 조금도 비트적거리지 않는 잔인한 팡파레! 몽환적인 받침대여! 미증유의 작품과 놀라운 육체를 위해, 최초의 새벽을 위해! 만세! 그것은 아이들 의 웃음소리 아래 시작되어 그들에의해 끝날 것이다. 이 독은 팡파레가 멀어지고 우리가 이전의 부조화에 다시 끌려와도 우리들의 혈맥 전체에 남아 있을 것이다. 오오, 지금이야말로 우리는 그와 같은 고문에 얼마나 당당한가! 열심히 모으자. 창조된 우리들의 육체와 영혼에 다짐된 이 초인적인 약속을, 이 약속, 이 광기! 이 우아함, 이 학문, 이 격렬! 우리가 자신의 매우 깨끗한 사랑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사랑은 윌에게 선악의 나무를 어둠에 매장해버릴 수 있도록, 저항할 수 없는 성실함을 추방하도록 허락해주었따. 그것(새벽)은 어떤 불쾌감으로 시작되었으나 끝난다. -당장 우리들이 이 영원성으로부터 포착할 수 없으므로 -그것은 향기의 발산으로 끝난다. 아이들의 웃음소리여, 노예들의 조심스러움이여, 처녀들의 준엄함이여. 이 세상 사람과 사물의 두려움이여, 그대들은 이 불면으로 지난날의 추억에 의해 성화 되기를, 그것은 아주 야비하게 시작되고있었으나, 지금 바로불길과 얼음의 천사들로, 도취와 새벽 성녀여! 아무리 그것이 우리들에게 그대가 씌워준 가면탓에 지나지 않더라도, 윌들은 그대에게 단언한다. 질서여! 우리는 그대가 어제의 우리 시대를 영과스러운 것으로 해주었음을 잊지 않는다. 우리는 독을 믿는다. 날마다 우리는 자신의 삶의모든것을 그대에게 바칠 수 있다. 지금이야말로 '암살자'의 때가 왔다.   미의 존재 A. 랭보 눈 앞에서 키가 크고 아름다운 존재, 죽음의 휘파람과 소리 없는 노랫소리는 마치 환영처럼, 열렬히 사랑하는 육체를 상승시키고 넓혀서 그렇게 한다. 주홍빛과 검은 상처자국들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육체 속에서 작렬한다. 생명의 고유한 빛깔이 짙어지고 춤추며 대 위에서 '환상'의 둘레는 벗어난다. 전율이 상승하여 포효한다. 이같은 효과의 격렬한 홍취에 소멸한 휘파람과 목이 수니 음악이 겹친다. 세계는 그것들을 우리들의 배후 멀리 아름다운 어머니 위에 던지고-어머니는 물러가 일어선다. 오오, 우리들의 뼈는 새로운 사랑의 육체 옷을 또 입는다. ◇ 오오, 잿빛이된 얼굴, 방패 모야의 헝클어진 머리, 수정의 팔! 수목과 희박한 대기의 혼전 사이를 빠져나가 덤벼들어야 할 대포.   대홍수 후 a.랭보 대홍수라는 관념이 가라앉은 후, 한 마리의 토끼가 생푸엥과 흔들리는 방울꽃 속에서 발을 멈춰 거미줄 너머로 무지개를 향해 언제나처럼 기도를 드렸다. 오! 오! 숨겨져가는 보석들. -이미 바라보고 있는 꽃들. 지저분한 큰 길에는 판매대가 설치되었다. 배는 판화에 흔히 있듯이 파도에 끌려갔다. 푸른 수염 속에서는 피가 흘렀다. -도살장에서, -투기장에서 -거기서는 신의 인장이 창문을 푸르게 했다. 피와 젖이 흘렀다. 해리는 세웠다. '마자그랑 커피'는 북부 프랑스의 카페에서 김을 올렸다. 아직도 반짝이는 유리창이 달린 큰집 안에서, 상복을 입은 어린이들은 놀랍게도 아름다운 광경을 바라보았다. 문 여는 소리가 달칵 났다. -그리고 농가의 광장에서 어린이가 바람개비와 종루의 닭을 흉내내어 그의 팔을 사방으로 휘둘렀따. 눈부신 소나기 아래서. 마당은 알프스 봉우리에 피아노를 설치했다. 미사와 최초의 성체배령이 대성당의 무수한 제단에서 성대하게 거행되었다. 카라반은 출발했다. 그리고 장엄 호텔은 극점의 얼음과 밤의 카오스 속에 세워졌다. 그 후 달은 백리향(탱)나무가 있는 사막에서 나칼들이 짖어대는 것을 들었다. -나막신을 신은 에그로그가 과수원 안에서 수근거리는 것을 들었다. 그리고 연한 보랏빛으로 움이 튼 큰 나무에서 우카리스 나뭇소리가 나에게 '봄'이라고 알렸다. 솟아라, 늪이여-거품이여, 다리 위와 숲 밑에서 흘러라,-검은 담요와 오르간들-빛과 천둥이여,-오르라,흐르라-물과 비애여, 오르라, 홍수를 높게 올려라. 왜냐하면 홍수가 사라져버린 뒤에는, -오오! 숨겨져가는 보석 피어버리고 있는 꽃들!-그런 것은 따분하다!-유약을 바르지 않고 구워 만든 항아리 속에 불을 피우는 여자 마법사인 여왕(마녀)은 결코 우리들에게, 그대가 알고 있고, 우리가 모르는 일을 얘기해주려고 하지 않을 것이므로.     철야 a.랭보 1 그것은 잠자리와 목초지 위에서 밝게 비춰지고 열도 없고 초췌함도 없는 휴식. 친구. 그것은 치열하지도 않고 약하지도 않은 친구. 연인. 그것은 괴롭히지도 않고 괴로움을 당하지도 않은 친구. 조금도 추구되지 않은 대기와 세계. 인생. .... 대체 그것이 이렇단 말인가? ... 그리고 모상을 깊어져가는 것이다. 2 빛이 거대한 배의 돛대로 돌아온다. 홀의 양쪽 끝은 하찮은 장식이지만 거기서 조화의 상승이 서로 만난다. 밤샘하는 자의 밪은편 벽면은 띠모양을 한 장식의 단면과 대기의 띠와 지질할적 우발사건의 심리적 연속.-모든 겉모습 속에 있는 온갖 기질의사람들이 갖춘 감상적이 집단의 강렬하고 신속한 몽상. 3 밤. 철야의 램프와 융단의 신체를 따라, 또 고물언저리에서 물결의 울림을 일으킨다. 철야의 바다는 '아멜리'의 유방 같다. 중천 까지는 여러 개의 벽걸이, 에메랄드 색조의 레이스 잡목림, 거기에 철야의 산비둘기 들이 날아든다. 검은 화덕판 건너의 벽, 모래톱의 진짜 태양, 아아! 마법의 우물이다. 지금은 다만 새벽 광경뿐.   이야기                                    A.랭보 어느 군주가 저속한 해사를 오직 완성미로서 지금까지 전력했던 일에 자존심이 상해져 있었다. 그는 사랑에 의한 놀라운 변혁이 일어날 것을 내다보고 있고, 하늘과 사치로 장식할 그런 하찮은 허영의 마족보다 더 자기의 부인들쪽이 훨씬 좋지 않을까 하고 전부터 의아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는 진실을 보려 했고 보질적인 욕망과 만족의 시간을 보려 했다. 아무리 그것이 빗나간 신앙심이건 아니건 간에그는 보고자 했던 것이다. 그는 적어도 인간으로서는 상당히 큰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를 알고 있는 여자들은 모두 살해되었다. 얼마나 무서운 미의 동산의 황폐였던가! 칼을 받으면서도 여자들은 그를 축복했다. 그는 새로운 여자들을 살해하도록 명령하지는 않았따. -여자들은 또 나타났다. 군주는 사냥과 주연을 벌인 후 주기를 따른 자들을 몰살했다. -모두 그를 따라왔다. 그는 호사한 동물들을 학살하며 즐겼다.-여러 곳의 궁전을불질렀다. 사람들을 습격하여 그들을 도살했다.-군중, 황금빛 지붕, 훌륭한 짐승들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다. 파괴에 도취할 수 있을까? 잔악함으로짊어질 수 있을까? 인민은 불평을 말하지 않았다. 아무도 그의 시선을 되돌아보지 않았다. 어느 저녁 때 그는 위세 당당하게 말을 질주시키고 있었다. 도저히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미에서 한 '정령의 신'이 모습을 나타냈다. 그의 표정에서, 그의 몸짓에서, 다양하고복잡한 어떤 사랑의 약속이생기고 있었다! 필설로 다할 수 없는, 견디기 어렵기까지 한 어떤 행복의약속이! 군주와 정령의 신으 틀림없이 본질적인 건강 속에서 무로 변했을 것이다. 어째서 그들은 죽을 수 없었을까? 따라서 그들은 함께 죽은 것이다. 그러나 이 군주는 자기 궁전에서 흔히 있는 나이에 서거했다. 군주는 정령의 신이었다. 정령의 신이 군주였다. 우리들의 욕망에는 재치있는 음악이 결여되어 있다.   하나의 이성(理性)애                                A.랭보 북위에 그대의 손가락의 일격은 모든 소리를 퉁겨내며 새로운 조화를 시작한다. 그대의 일투족, 그것은 새로운 사람들의 소집이며 그들의 진군이다. 그대의 얼굴을 돌아다보면 새로운 사랑! 또 돌아다보면-새로운 사랑. "우리의 운명을 바꾸시오, 큰 재앙을 거르시오. 그때로부터 시작하도록, 이 어린이들이 그대에게 노래 부른다. 우리의 운명과 우리의 기원의 질료가 있는 어디에서나 높이시오" 그들이 그대에게 부탁한다. 영원의 토착, 그대는 도처에 가버리리라. *하나의 이성: 날마다 도래하여 도처에 번져가는, 즉 새벽빛(의식)을 의미(빛시간=의식)   삶                                       A.랭보 1 오오, 신성한 나라의 거대한 가로수 길들이여, 사원의 테라스들이여! 나에게 잠언서를 설명해준 바라문 스은 어떻게 되었는가? 그 당시 그쪽의 늙은이들까지도 아직 내 눈에 보이고 있고나! 내 어깨에 놓인 전원과 후추투서잉의 평야에 서 있는 우리들의 애무의 손을 그리고 큰 강을 향한 은과 태양의 시간들을 나는 되새긴다. -주홍빛 비둘기 무리의 비상이 내 사고의 주변에서 울린다.-여기 유배의 몸이 되어 나는 모든 문학 속의 극적인 걸작을 연출해야 할 한 장면을 소유해 버렸다. 나는 당신들에게 미증유의 풍요로움을 보일지도 모른다. 나는 당신들이 찾아낸 보물의 역사를 지켜본다. 나의 예지는 혼돈 만큼이나 경멸당한다. 당신들을 기다리는 망연자실 상태에 비해 나의 무(無)란 대체 무엇일까? 2 나는 모든 선배들보다 아주 다른 가치인ㅆ는 발견가이다. 사라으이 열쇠같은 것을 찾아낸 음악가이기도 하다. 현재 소박한 하늘이 계속되는 시큼한 전원의 신사인 나는 구걸을 한 소년기와 시작 학습생 시절과 나막신을 신고 (파리에)도착했을 떄의 일을 되새기며 마음을 북돋아보려고 한다. 여러 번의 논쟁과 대여섯번이나 되는 독신생활, 몇 번의 결혼과 그때마다 나의 완고한 머리는 동료들의 장단에 맞추는 것을 방해했다. 나는 내가 옛날에 즐겼던 멋진 유쾌함을 그리워하지 않는다. 이 시큼한 전원의 소박한 하늘의 공기는 무척 강하게 견뎌내기 어려운 회의를 양육한다. 그러나 이 회의는 이미 더 쓸모없고, 더욱이 나는 새로운 어려움에 몰두하므로 -나는 심술궂은 광인이 되기를 기다린다. 3 12세때 갇힌 다락방에서 나는 세계를 알고 인간희극에 삽화를 넣었다. 어느 지하의 술 창고에서 역사를 배웠다. 북쪽의 어느 거리에서의 어느 밤의 축제에서 옛날 화가들이 그린 모든 여자들을 만났다. 파리의 어느 낡ㅇ느 통로에서 고전학문을 배웠다. 동양 전체에 둘러싸인 어느 장려한 주거에서 나는 나의 장대한 저작을 완성해 버리고 저명한 은둔생활을 했다. 나는 나의 피를 뒤섞었다. 나에게는 다시 나의 의무가 맡겨져 있다. 이제 그런 일을 생각할 필요는 없다. 나는 정말 사후의 존재, 사명은 없다.   소년기                                                             A.랭보 1 눈은 검고 머리는 황색, 친척도, 신하도 없으며 신화보다도 고귀한 멕시코 및 플랑드르들의 이 우상, '그녀'의 영지는 오만한 청색과 녹색, 배의 그림자도 없는 파도를 넘어 용맹하게도 그리스, 슬라브, 켈트의 각 언어로 이름지어진 여러곳의 해안에 이른다. 숲의 가장자리에, -몽상의 꽃들은, 종처럼 울리어 진도아며 비추인다. -목초지를 적시는 밝은 홍수 속에서, 무릎을 포개고 있는 분홍빛 입술의 소녀, 그 소녀의 나신을 그늘지게 하고 빛이 가로질러가 무지개와 꽃과 바다에 분사의 옷을 입힌다. 바다를 향한 테라스 위에서 선회하는 부인들, 녹청색의 이끼 속에서 귀엽고 거대하며 굉장한 흑인 여자들, 숲과 서리가 녹을 때 작은 뜰의 비옥한 흙에선 보석들-젊은 어머니들과 큰 딸들, 그녀들의 눈동자에는 순례자들과 술탄의 왕비들, 거동도 의상도 권위적인 공주들과 이국의 소녀들, 감미롭게 불행한 사람들이 가득 비치고 있다. 얼마나 권태로운가? '친밀한 육체'와 '친밀한 마음'의 순간이다. 2 장미나무 뒤에 있는 죽은 소녀, 바로 그녀이다.-살해된 절은 어머니가 층계를 내려온다.-사촌형의 사륜마차는 모래 위에서 외친다.-동생(그는 인도에 있다!)은 석양을 앞에 두고 붉은 카네이션 목초지에 있다.-정향꽃이 피는 성벽 속에 곧게 매장된 노인들. 황금잎의 무리들이 장군의 집을 둘러싼다. 그들은 남국에 있다. -아무도 없는 텅빈 오베르즈(주막)에 도착하려면 붉은 길을 가는 것이다. 성운 팔려고 내놓고 있다. 덧문은 열려있따. -사제는 교회의 열쇠를 가져다 버렸다. -공원 주위에는 보초병들의 집들이 빈 채로 서 있다. 울타리가 너무 높아보이는 것은 살랑거리는 나뭇가지뿐, 그러나 그 안에는 볼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수탉도 없고 대장간의 망치소리도 울리지 않는 농촌의 작은 마을에 목초지가 또 솟아오른다. 수문이 열린다. 오, 여러 개의 십자가들, 사막의 풍차, 섬들과 건초더미들! 마법의 꽃들은 붕붕소리를 내고 있었다. 벼랑이 그것을 고이 흔들고 있었다. 신화적인 우아함을 찬양하는 동물들이 선회하고 있었따. 큰 구름이 여러개 뜨거운 눈물의 영원성으로 생긴 앞바다에 모여 있었다. 3 숲에 한마리의 새가 있다. 그 노래가 당신을 멈추게 하고 당신 얼굴을 붉어지게 한다. 울리지 않는 큰 시계가 있다. 흰 동물들의 둥우리가 있는 늪지가 있다. 하강하는 대성당과 상승하는 호수가 있다. 잡목림속에 버려진 한 대의 작은 마차가 있다. 혹은 리본으로 장식되어 오솔길을 달려 내려오는 한 대의 작은 마차가. 의상을 입은 작은 배우들의 일행이 있어, 숲의 가장자리를 지나가는 가로에 보인다. 마지막으로 허기와 갈증을 느낄 때 당신을 뒤쫓아오는 누군가가 있다. 4 나는 테라스 위에서 기도하는 성자다.-팔레스티나의 바다에까지 풀을 뜯어먹으러 가는 평온한 짐승들처럼. 나는 어두운 빛깔의 안락의자에 앉은 학자. 나뭇가지들과 비가 서재의 격자 창문을 두드린다. 나는 소인들의 숲속에서 외로운 큰길을 가는 보행자. 여러 수문의 소란스러움이 나의 발소리를 없앤다. 나는 오랫동안 석양의 우수에 넘친 노란 알카리성 용액을 바라보고 있다. 나는 앞바다에 돌출한 방파제 위에 버려진 어린아이인지도, 끝머리가 하늘에 닿은 오솔길을 따라가는 작은 하인인지도 모른다. 오솔길은 걷기가 힘들다. 구릉은 가시투성이인 금잔화로 덮혀 있다. 대기는 움직이지 않는다. 새들과 샘은 얼마나 멀리 있는가. 깊어가는 [밤은] 오직 세상의 종말뿐일 수 있다. 5 마침내 시멘트의 선이 돋아져 있는 흰 석회벽의 무덤이 나에게 대여되기를-지하 훨씬 멀리에 나는 책상에 팔꿈치를 세우고 있다. 램프 빛이 아주 선명하게 신문과 흥미 없는 책들을 비추이고 있다. 신문같은 것을 읽다니 나도 바보같지만. 내 지하방 위에 상당한 거리를 두고 집들이 늘어서고 안개가 낀다. 진흙은 빨강, 또는 검정 괴물같은 거리. 끝없는 밤! 그리 높지 않은 곳에 하수구가 있다. 사방에는 지구의 두꺼운 밀도뿐 어쩌면 검푸른 심연, 불의 샘인지도 모른다. 달과 유성, 바다와 우화가 만나는 것은 어쩌면 이런 평면에서인지도 모른다. 비애의 시간에 나는 스스로가 사파이어와 금속의 구체라고 상상한다. 나는 침묵의 거장이다. 환기창같은 것이 궁륭의 일각에 창백해지는 일이 어떻게 있을 수 있을까?    지옥의 계절 [ 地獄-季節, Une Saison en Enfer ] 요약 프랑스의 시인 J.A.랭보(1854~1891)의 대표적인 시집. 구분 : 시집 저자 : J.A.랭보 시대 : 1895년 본문 출처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등 10편의 산문시로 되었다. 1873년 4~8월에 원고를 써서, 브뤼셀에서 출판하려고 했다가, 500부를 찍어 내어, 견본을 몇 부 받았을 뿐, 출판을 단념하고 말았다. 랭보가 죽은 후 1895년에 정식으로 간행되었다. 순진무구한 영혼을 주체 못하는 시인의 ‘심리적 자서전’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한편 추상적인 표현 배후에는 베를렌과의 동성애의 갈등이라는 구체적인 체험이 분명히 깔려 있다. 1873년 7월 10일, 브뤼셀에서 베를렌이 랭보를 피스톨로 저격한 사건 전후에 걸쳐 쓰인 것을 생각하면 그것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불순과 오욕에 가득 찬 시인의 내면 풍경을 지옥으로 그려내고, 그와 동시에 그 내면의 위기 끝에 어쩌다가 보인 미래에의 전망을 노래하였다. 독신(瀆神)과 저주의 언어를 섞으면서 시구(詩句)의 격조는 높고 힘차다. 순수에의 갈망과 지옥에 떨어지는 슬픔이 교착되는 이 작품은 어디까지나 즉물적(卽物的)인 미학(美學)의 세계인 《일뤼미나시옹:Illumination》에 대해, 랭보의 세계의 윤리적인 극점(極點)을 이루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독특한 감각영역을 개척한 이 시집은 프랑스 상징주의의 최대 걸작의 하나로서, 초현실주의 이후 20세기의 시에 많은 영향을 주어, 그의 이름을 문학사상 불후의 것으로 만들었다.   지옥에서 보낸 한철---서시 A.랭보 예전에,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나의 삶은 모든 사 람들이 가슴을 열고 온갖 술이 흐르는 축제였다. 어느 날 저녁, 나는 무릎에 아름다움을 앉혔다. 그 런데 가만히 보니 그녀는 맛이 썼다. 그래서 욕설을 퍼 부어주었다. 나는 정의에 대항 했다. 나는 도망쳤다. 오. 마녀들이여, 오 비참이여, 오 증오여, 내 보물들은 바로 너희들에게 맡겨졌다. 나는 마침내 나의 정신 속에서 인간적 희망을 온통 사라지게 만들었다. 인간적 희망의 목을 조르는 완전한 기쁨에 겨워, 나는 사나운 짐승처럼 음험하게 날뛰었다. 나는 사형집행인들을 불러들여, 죽어가면서, 그들의 총 개머리판을 물어 뜯었다. 나는 재앙을 불러들였고, 그 리하여 모래와 피로 숨이 막혓다. 불행은 나의 신이었 다. 나는 진창속에 길게 쓰러졌다. 나는 범죄의 공기에 몸을 말렸다. 그리고는 광적으로 못된 곡예를 했다. 하여 봄은 나에게 백치의 끔찍한 웃음을 일으켯다. 그런데, 아주 최근에 하마터면 마지막 소리를 낼 뻔했을 때, 나는 옛 축제의 열쇠를 찾으려고 마음먹 었다. 거기에서라면 아마 욕구가 다시 생겨날 것이다. 자비가 그 열쇠다. 이런 발상을 하다니, 나는 꿈 꾸어왔나 보다. '너는 언제까지나 하이에나이리라, 등등......', 그토 록 멋진 양귀비꽃으로 나에게 화관을 씌어준 악마가 소 리지른다. '너의 모든 욕구들, 너의 이기심, 그리고 너 의 큰 죄업들로 죽음을 얻으라' 아! 나는 그것들을 실컷 맞이했다. 하지만, 친애하 는 사탄이여, 간청하노니, 눈동자에서 화를 거두시라! 하여 나는 뒤늦게 몇몇 하찮은 비열한 짓을 기다리면 서, 글쟁이에게서 묘사하거나 훈계하는 역량의 부재를 사랑하는 당신을 위해, 내 악마에 들린 자의 수첩에서 이 흉측스러운 몇 장을 뜯어내 덧붙인다.   가장 높은 탑의 노래 A.랭보 오라, 오라, 황홀한 시간이여. 얼마나 참았나 내 영원히 잊었네. 공포와 고통도 하늘 높이 날아가버렸고 위험한 갈증이 내 혈관 어둡게 하네. 오라, 오라, 황홀한 시간이여. 내맡겨진 망각에 더러운 파리떼 기운차게 웅웅거리는데 향과 가라지를 키우고 꽃피우는 들판처럼 오라, 오라 황홀한 시간이여. 나는 사막, 불타는 과수원, 시들은 상점, 미지근한 음료를 사랑했다. 나는 냄새나는 거리를 기어다녔고, 눈을 감은 채, 불의 신, 태양에 몸을 바쳤다. 오! 주막 공동변소에 취한는, 날벌레여! 서양지치 식물을 그리워하며 한 가닥 광선에 녹는 날벌레여!   불가능/L'impossible                                             A.랭보 아- 나의 소년시절의 -저 생활. 일년 내내 거리를 헤매고 다녔고, 초자연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절식을 하고 거지 중의 상거지보다도 더 이욕에 초연하였고, 고향도 없고 친구도 없는 것을 자랑으로 삼고 있었다. 생각하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었을까. -그리고 나는 이제야 겨우 그것을 깨달았다!-내가 저 사나이들을 경멸하는 것은, 옳은 일이었다. 우리의 여자들의 정결과 건강에 기생하여 단 한번의 애무의 기회라도 놓치지 않으려 하고잇었던 저 사나이들을 경멸한 것은 하기야 오늘에 와서는 여자들이 우리와 죽이 딱 맞는다는 일은 절대로있을 수 없지만. -나는, 나의 모든 경멸에 있어서 옳았었다. 왜냐하면 나는 이처럼 도망치고 있으니까! 나는 도망친다! 내 그 설명을 하리라. 어제도, 나는 이런 한숨을 쉬었다. "제기랄! 이 지상에도 이만큼 고약한 놈들이 수두룩하면됐지! 나도 벌써 꽤 오랜 동안 놈들의 동아리였다! 나는 모든 놈들을 다 알고이따. 우리들은 언제나 인식이 그러고도 서로 미워한다. 애덕이란것을 우리들이 알 까닭이 없다. 하지만 우리들은 예절은 바르다. 우리들과 세상과의 사귐 역시 아주 잘 되어 있다." 이것은 놀라운 일인가? 세상인가! 장사꾼이랑, 우직한 친구들이야! -우리는 아무것도 명예를 더럽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선택된 자들은, 어떤 모양으로 우리를 맞이할 것인지? 한데 세상에는 엉뚱하고 기분이 좋은 그런 상대방이란 것이 있다. 이런 자들은 가짜 선량들이야. 그 까닭은 우리들이 이런 상대와 가까워지려 하는 것은, 뻔뻔스럽게 뱃장을 부리거나 아니면 굽실거려야만 되기 때문이다. 선택된 놈이란 이런 친구들 뿐이야. 그러니까 상냥한 놈들은 아니야! 꾀죄죄한 이성이 내게로 돌아와서-그것은 순식간에 사라져 없어지지만-나의 이 갖가지 불쾌는 자기들이 서구에 잇다는 것을, 일찌감치 생각에 넣어두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거기에 깨달음이 가는 것이다. 서구의 늪지여! 이것은 그 빛이 바랬다던가, 그 형식이 쇠퇴하였다던가, 그 운동이 착란하였다던가, 그런 따위를 내가 생각하고 잇다는 뜻ㅅ이 아니라... 좋다! 지금 내 정신은 동양의 종언 이래로, 인간 정신이 입어 온 모든 참혹한 발전을, 결연히 한몸이 받아들이려고 소망하고 있다... 내 정신이 그처럼 소망하고 있다! ... 꾀죄죄한 내 이성은 이것으로 끝장이다! -정신이 권위를 떨치고 있어서, 그것이 나에게 서구에 있기를 소망한다. 내가 전에 소망한 것과 같은 결과를 부치기 위해선, 그 정신을 침묵케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나는 순교자의 영광을, 예술의 광휘를, 발명가의 교만을 약탈자의 열정을 악마녀석에게 주어버렸다. 나는 동양으로, 저 원초적이면서 영원한 예지로 돌아갔다.-지금은 그런 일도 조잡한 안일의 꿈과 같이 생각된다. 그런데 나는 근대의 갖가지 고뇌를 피하는 기쁨같은 것은 거의 생각도 못했다. 나는 코란의 절충적인 예지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러나 저 과학의 선언 이래로 그리스도교가, 인간이, '스스로를 희롱'하며, 뻔한 것을 자기에게 증명해 보이고, 그것들 증명을 되풀이하고 즐거움으로 부풀어, 아마도 이렇게밖에 살 방도가 없다고 하는 그 자체야말로 참다운 형벌이 있는 것 아니겠는가! 조밀하게 꾸며진 어리석은 고문이다. 나의 정신적인 방황의 원천이다. 자연인들 이래 가지고는 아마 지루하겠지! 프뤼돔씨(
181    릴케 시모음 댓글:  조회:1878  추천:0  2017-05-06
릴케(Rainer Maria Rilke)  작별  소녀의 기도  엄숙한 시간  석상의 노래  봄을 그대에게  고독  자신이 직접 쓴 릴케의 묘비명  사랑은 어떻게  당신 말씀의 파수꾼으로  고독한 사람  고아의 노래  살로메에게 바치는 시  존재의 이유  흰장미  사랑의 노래  장미의 내부  삶의 평범한 가치  가을의 종말  사랑에 빠질수록 혼자가 되라  가을날(Herbsttag)  순례의 서  가을  그리움이란  젊은 시인에게 주는 충고  피에타  서시(序詩)  사랑한다는 것과 사랑받는다는 것  고독  사람들은 모두 자기 자신에게서  만년의 밤  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 (1부/ 3편)  과수원  두이노의 비가-제 4 비가 (1-18)  두이노의 비가  ~~~~~~~~~~~~~~~~~~~~  작별  우리 이제 서로 작별을 나누자, 두 개의 별처럼,  저 엄청난 밤의 크기로 따로 떨어진,  그거야 하나의 가까움이려니, 아득함을 가늠하여  가장 먼 것에서 스스로를 알아보는.  ~~~~~~~~~~~~~~~~~~~  소녀의 기도  그 언젠가 그대가 나를 보았을 때엔  나는 너무도 어렸습니다.  그래서 보리수의 옆가지처럼 그저 잠잠히  그대에게 꽃피어 들어갔지요.  너무도 어리어 나에겐 이름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대가 나에게 말하기까지  나는 그리움에 살았었지요.  온갖 이름을 붙이기에는 내가 너무나 큰 것이라고.  이에 나는 느낍니다.  내가 전설과 오월과 그리고 바다와 하나인 것을,  그리고 포도주 향기처럼  그대의 영혼 속에선 내가 풍성한 것을...  ~~~~~~~~~~~~~~~~~~~  엄숙한 시간  지금 이 세상 어디에선가 우는 사람은,  까닭없이 이 세상에서 우는 사람은  내가 슬퍼 울고 있다.  지금 이 밤 어디에선가 웃는 사람은,  까닭없이 이 밤에 웃는 사람은  나를 비웃고 있다.  지금 이 세상 어디에선가 가고 있는 사람은,  까닭없이 이 세상에서 가고 있는 사람은  나를 향해 걷고 있다.  지금 이 세상 어디에선가 죽어가는 사람은,  까닭없이 이 세상에서 죽어가는 사람은  나를 보고 있다.  ~~~~~~~~~~~~~~~~~~~~  석상의 노래  소중한 목숨을 버릴만큼  나를 사랑해 줄 사람은 누구일까.  나를 위하여 누군가 한 사람 바다에 익사한다면  나는 돌에서 해방되어  생명체로, 생명체로 되살아나는 것이다.  이렇게도 나는 끓어오르는 피를 그리워한다.  그러나 돌은 너무 조용하기만 하다.  나는 생명을 꿈꾼다. 생명은 참으로 좋은 것이다.  나를 잠깨울수 있는 만큼  용기를 가진자는 아무도 없는가.  그러나 언젠가 내가, 가장 귀중한 것을 내게 주는  생명을 갖게 된다면------  ~~~~~~~~~~~~~~~~~~~~  봄을 그대에게  갖가지의 기적을 일으키는  봄을 그대에게 보이리라.  봄은 숲에서 사는 것,  도시에는 오지 않네.  쌀쌀한 도시에서  손을 잡고서  나란히 둘이서 걷는 사람만  언젠가 한번은 봄을 볼 수 있으리.  ~~~~~~~~~~~~~~~~~~~~  고독  고독은 비처럼  바다로부터 저녁을 향해 올라 온다.  멀리 외딴 벌판으로부터 고독은  언제나 외로운 하늘로 올라가서는  처음 그 하늘에서 도시 위로 떨어져 내린다  모든 골목길마다 아침을 향해 뒤척일때,  아무것도 찾지 못한 육신들은  실망과 슬픔에 젖어 서로를 떠나 갈 때,  그리고 서로 미워하는 사람들이  한 잠자리에 들어야하는  그 뒤엉킨 시간에 비 되어 내리는  고독은 냇물과 더불어 흘러 간다.  ~~~~~~~~~~~~~~~~~~~~  자신이 직접 쓴 릴케의 묘비명  장미여, 아 순수한 모순이여, 기쁨이여  그 많은 눈꺼풀 아래에서 누구의 잠도 아닌.  Rose, oh reiner Widersprluch, Lust  niemandes Schlaf zu sein unter soviel Lidern.  ~~~~~~~~~~~~~~~~~~~~  사랑은 어떻게  그리고 사랑은 어떻게 그대를 찾아왔던가?  빛나는 태양처럼 찾아 왔던가, 아니면  우수수 지는 꽃잎처럼 찾아 왔던가?  아니면 하나의 기도처럼 찾아 왔던가? --- 말해다오  반짝이며 행복이 하늘에서 풀려 나와  날개를 접고 마냥 흔들리며  꽃처럼 피어나는 내 영혼에 커다랗게 걸려 있었더니라  ~~~~~~~~~~~~~~~~~~~~  당신 말씀의 파수꾼으로  나를 당신 말씀의 파수꾼으로 삼아 주소서.  돌에 귀기울일 줄 아는 자가 되게 해 주소서.  나에게, 바다의 고독을 볼 수 있는 두 눈을 주소서.  양 기슭의 맞부딪치는 소음 속에서  멀리 밤의 음향 속으로  나를 당신의 텅빈 나라로 보내 주소서.  그곳을 지나 끝없는 바람이 불어  큰 수도원의 승복처럼  아직 살아 보지도 못한 삶의 주위에 서 있는 그곳에  어떤 유혹에 의해서도 다시는  그들의 목소리와 모습에서 벗어나는 일 없이  거기서 나는 순례자 쪽에 서렵니다.  눈 먼 늙은이의 뒤를 따라  모르는 사람뿐인 길을 가렵니다.  ~~~~~~~~~~~~~~~~~~~~  고독한 사람  낯선 바다를 항해하는 사람처럼.  그렇게 나는 영원히 귀향길에 있습니다.  그들 식단을 보면 충족된 날들로 가득하지만  내게는 아득한 곳의 모습만 있습니다.  내 얼굴 속에 세상이 스며듭니다.  달처럼 어쩌면 사람이 살지 않는 세상,  그러나 세상은 어떤 감정도 남겨두지 않습니다.  세상의 온갖 언어에는 삶이 끼어 있습니다.  멀리서 내가 가져온 것들은  희귀하게 보이면서, 제몸에 매달려 있죠:  그들의 넓은 고향에서 그들은 짐승이지만,  여기서 그들은 부끄러움을 타며 숨을 죽입니다.  ~~~~~~~~~~~~~~~~~~~~  고아의 노래  나는 아무도 아닙니다.  앞으로도 아무도 되지는 않으렵니다.  지금은 존재하기에도 너무 초라한 몸  그러나 훗날에도 마찬가지일 게요.  어머님들 아버님들이시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정말 키워 주신 보람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잘려지는 몸입니다.  아무한테도 쓸모없는 신세입니다.  지금은 너무 이르고 내일이면 너무 늦습니다.  내가 걸친 옷은 이 옷 한 벌뿐  헤어지며 빛이 바랩니다.  영원을 간직하는 옷입니다.  어쩌면 신 앞에서도 지킬 수 있는 영원 입니다.  나한테 남은 것이라고는 이 한 줌 머리카락뿐입니다.  (언제까지나 똑같은 것이지만)  한때는 사랑하는 이의 것이었어요.  이제는 사랑이라고는 모르는 그 사람 이어요.  ~~~~~~~~~~~~~~~~~~~~  살로메에게 바치는 시  내 눈을 감기세요  그래도 나는 당신을 볼 수 있습니다.  내 귀를 막으세요  그래도 나는 당신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발이 없어도 당신에게 갈수 있고  입이 없어도 당신의 이름을 부를 수 있습니다.  내 팔을 꺾으세요  나는 당신을 가슴으로 잡을 것입니다.  심장을 멎게 하세요  그럼 나의 뇌가 심장으로 고동칠 것입니다.  당신이 나의 뇌에 불을 지르면  그 때는 당신을 핏속에 실어 나르렵니다.  ~~~~~~~~~~~~~~~~~~~~  존재의 이유  아! 우리는 세월을 헤아려 여기저기에  단락을 만들고, 중지하고, 또 시작하고  그리고 두 사이에서 어물 거리고 있소.  그러나 우리가 마주치는 것은 어쩌면  모두가 친한 관계에 있고, 태어나고, 자라고  자기 자신으로 교육되어 가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는 결국 그저 존재하면 되는 겁니다.  다만, 단순하게 그리고 절실하게 말이요.  마치도 대지가 사계절의 돌아감에 동의 하면서  밝아졌다, 어두워 졌다 하며 공간 속에 푹 파묻혀서  하늘의 별들이 편안하게 위치하는  그 숱한 인력의 그물 속에 쉬는 것 밖에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 것과 같이......  ~~~~~~~~~~~~~~~~~~~~  흰 장미  너는 죽음에 몸을 맡긴 채  잎새 위에 서럽게 얼굴을 뉘인다.  유령 같은 빛을 숨쉬며  희푸른 꿈을 띠고있다.  하지만 노래마냥  마지막 가냘픈 빛을 띠며  아직도 하룻밤을  달콤한 네 향기 방안에 스민다.  네 어린 영혼은 불안스럽게  이름없는 것을 더듬거리다  내 가슴에서 웃으며 죽는다.  내 누이인 흰 장미여.  ~~~~~~~~~~~~~~~~~~~~  사랑의 노래  당신의 영혼이 내 영혼에 닿지 않은 바에야  어찌 내 영혼을 간직하겠습니까?  어찌 내가 당신 아닌 다른 것 에게로  내 영혼을 쳐 올려 버릴 수 있겠습니까?  오, 어둠 속에서 잃어버린 어떤 것 옆,  당신의 깊은 마음이 흔들려도 흔들리지 않는  조용하고 낯선 곳에  내 영혼을 가져가고 싶습니다.  당신과 나의 몸에 닿는 모든 것은  확실히  마치 두 줄의 鉉에서 한 音을 짜내는  활 모양의 바이올린처럼 우리를 한데 묶어 놓습니다.  어떤 악기에 우리는 얽혀져 있는 것인가요?  어떤 바이올리니스트가 우리를 사로잡은 건가요?  오, 달콤한 노래입니다.  ~~~~~~~~~~~~~~~~~~~~  장미의 내부  어디에 이런 내부를 감싸는  외부가 있을까. 어떤 상처에  이 보드라운 아마포 (亞麻布)를 올려놓는 것일까.  이 근심 모르는  활짝 핀 장미꽃의 내부 호수에는  어느 곳의 하늘이  비쳐 있을까. 보라,  장미는 이제라도  누군가의 떨리는 손이 자기를 무너뜨리리라는 것을 모르는 양  꽃이파리와 꽃이파리를 서로 맞대고 있다.  장미는 이제 자기 자신을  지탱할 수가 없다. 많은 꽃들은  너무나 충일하여  내부에서 넘쳐나와  끝없는 여름의 나날 속으로 흘러들어 간다.  점점 풍요해지는 그 나날들이 문을 닫고,  마침내 여름 전체가 하나의 방,  꿈속의 방이 될 때까지.  ~~~~~~~~~~~~~~~~~~~~~  삶의 평범한 가치  이따금 나는 륨 드 세인 같은 거리의 조그만 가게의  윈도우 앞을 어정거리는 일이 있다.  그것은 고물상이나 조그만 헌 책방의 동판화를 파는 가게로  어느 윈도우에나 자질구레한 물건들이 많이 들어차 있다.  나는 손님이 한 사람도 들어가는 것을 본 일이 없다.  아마 장사를 하려고 가게를 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그러나 가게 안을 들여다보면 역시 거기에 사람이 있는 것이다.  앉아서 무엇을 읽고 있다. 정말 한가한 모습이다.  내일을 걱정하는 것도 아니고, 부자가 되려고 억척을 피우는  모습이란 눈곱만치도 없다.  발치에는 살이 찐 개가 배를 깔고 누워 있다.  개가 아니면 고양이가 있다. 고양이는 꽂혀 있는 책에  몸을 비비며 표지의 등 글자를 지우듯이 걸어 다닌다.  그것은 주위의 조용함을 더욱 깊게 하는 것 같다.  아아, 이런 생활에 만족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어느 가게 하나를, 구닥다리 물건이 차 있는 윈도우를  고스란히 사들여 개 한 마리와 함께 그 안에서  20년쯤 앉아 있을 수 있다면 하고.  ~~~~~~~~~~~~~~~~~~~~  가을의 종말  언제부터인가 눈앞에  만물의 변화가 보인다.  무엇인가 우뚝 서서 몸짓을 하며  죽이고 또 아픔을 준다.  시시로 또 아픔을 달리하는  모든 정원들.  샛노란 잎새들이 차차 짙으게  조락에로 물든다.  내가 걸어온 아득한 길  이제 빈 뜨락에서  가로수길을 바라보면  먼 바다에까지 이어닫는  음울하고 무거운  차디찬 하늘  ~~~~~~~~~~~~~~~~~~~~  사랑에 빠질수록 혼자가 되라  사랑에 빠진 사람은  혼자 지내는데 익숙해야 하네.  사랑이라고 불리는 그것  두 사람의 것이라고 보이는 그것은 사실  홀로 따로따로 있어야만 비로소 충분히 전개되어  마침내는 완성될 수 있는 것이기에.  사랑이 오직 자기 감정 속에 들어 있는 사람은  사랑이 자기를 연마하는 일과가 되네.  서로에게 부담스런 짐이 되지 않으며  그 거리에서 끊임없이 자유로울 수 있는 것,  사랑에 빠질수록 혼자가 되라.  두 사람이 겪으려 하지 말고  오로지 혼자가 되라.  ~~~~~~~~~~~~~~~~~~~~  가을날  주여, 때가 왔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위대하였습니다.  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얹으십시오.  들에다 많은 바람을 놓으십시오.  마지막 과실들을 익게 하시고  이틀만 더 남국의 햇볕을 주시어  그들을 완성시켜, 마지막 단맛이  짙은 포도주 속에 스미게 하십시오.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고독한 사람은 이 후도 오래 고독하게 살아  잠자지 않고, 읽고, 그리고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바람에 불려 나뭇잎이 날릴 때, 불안스럽게  이리저리 가로수 길을 헤맬 것입니다.  ~~~~~~~~~~~~~~~~~~~~  순례의 서  내 눈빛을 지우십시오  나는 당신을 볼 수 있습니다  내 귀를 막으십시오.나는 당신을 들을수 있습니다.  발이 없어도 당신에게 갈 수 있고  입이 없어도 당신을 부를 수 있습니다.  팔이 꺾여도 나는 당신을  내 심장으로 붙잡을 것입니다.  내 심장을 멈춘다면  나의 뇌수가 맥박 칠 것입니다  나의 뇌수를 불태운다면  나는 당신을 피속에 싣고 갈 것입니다  - 릴케가 연상의 여인  루 안드레아 살로메에게 첫사랑을 고백한시  ~~~~~~~~~~~~~~~~~~~~  가을...  앞이 떨어집니다. 멀리서인 듯 떨어집니다.  하늘의 저 먼 정원이 시든 것처럼  거부하는 몸짓으로 떨어집니다.  밤이면 저 무거운 대지가  모든 별들에서 고독으로 떨어집니다.  우리 모두가 떨어집니다. 이 손도 떨어집니다.  다른 것을 보십시오. 떨어짐은 어디에나 있지요.  하지만 이 떨어짐을 부드러운 손으로  끝없이 맞아주는 누군가가 계십니다.  조두환 번역  ~~~~~~~~~~~~~~~~~~~~  그리움이란  그리움이란 이런 것  출렁이는 파도 속에서의 삶  그러나 시간 속에 고향은 없는 것  소망이란 이런 것  매일의 순간들이 영원과 나누는 진실한 대화  그리고 산다는 것은 이런 것  모든 시간 중에서도 가장 고독한 순간이  어제 하루를 뚫고 솟아오를 때까지  다른 시간들과는 또다른 미소를 띠고  영원 속에서 침묵하고 마는 것  ~~~~~~~~~~~~~~~~~~~~  젊은 시인에게 주는 충고  마음 속의 풀리지 않는 모든 문제들에 대해  인내를 가지라.  문제 그 자체를 사랑하라.  지금 당장 해답을 얻으려 하지 말라.  그건 지금 당장 주어질 순 없으니까.  중요한 건  모든 것을 살아 보는 일이다.  지금 그 문제들을 살라.  그러면 언젠가 먼 미래에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삶이 너에게 해답을 가져다 줄 테니까.  ~~~~~~~~~~~~~~~~~~~~  피에타  이렇게, 예수여, 저는 당신의 발을 다시 봅니다,  제가 가슴 떨며 벗기고 씻겨드렸던,  그 때는 한 젊은이의 발이었지요.  내 드리운 머리카락 속에 당황하여 서 있던 모습  마치 가시덤불 속에 하얀 야수 같았지요.  이렇게 저는 당신의 사랑 받은 적 없는 팔다리를 봅니다  처음으로 이 사랑의 밤에.  우리는 아직 함께 누워 본 적도 없는데,  이제는 경이로와 지켜볼 뿐이로군요.  그런데, 보아요, 당신의 손이 찢겨 있군요-:  사랑하는 이여, 저 때문에, 제가 찔러서 그런 것이 아니에요.  당신의 심장은 열려 있어, 누구나 들어갈 수 있군요:  어찌 저만 들어갈 수는 없었던가요.  이제 당신은 지쳤고, 당신의 지친 입술은  제 슬픈 입술에 아무런 욕구도 없군요-.  오 예수여, 예수여, 우리의 시간은 언제였나요?  어쩌면 기이하게도 우리 둘 다 몰락하는지.  ~~~~~~~~~~~~~~~~~~~~  서시(序詩)  네가 누구라도, 저녁이면  네 눈에 익은 것들로 들어찬 방에서 나와보라;  먼 곳을 배경으로 너의 집은 마지막 집인 듯 고즈넉하다:  네가 누구라도.  지칠대로 지쳐, 닳고닳은 문지방에서  벗어날 줄 모르는 너의 두 눈으로  아주 천천히 너는 한 그루 검은 나무를 일으켜  하늘에다 세운다: 쭉 뻗은 고독한 모습, 그리하여  너는 세계 하나를 만들었으니, 그 세계는 크고,  침묵 속에서도 익어가는 한 마디 말과 같다.  그리고 네 의지가 그 세계의 뜻을 파악하면,  너의 두 눈은 그 세계를 살며시 풀어준다. . . .  (김재혁 / 고려대학교 교수 / 옮김)  ~~~~~~~~~~~~~~~~~~~~  사랑한다는 것과 사랑받는다는 것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오직 타버린다는 것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기나긴 밤을 새운 아름다운 불빛이다.  사랑받는다는 것은 스러지는 것이고,  사랑하는 것은 영원한 지속이다  ~~~~~~~~~~~~~~~~~~~~  고독  고독은 비와도 같은 것  저녁을 찾아 바다에서 오른다.  멀고 먼 외진 들녘에서 오른다.  늘상 고적하기만 한 하늘로 옮겨갔다가  하늘에서 비로소 도시에 내린다.  아침을 향해 골목골목이 몸을 일으키고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한 육신들이  실망과 슬픔에 젖어 서로 떠나갈 때,  서로 미워하는 사람들이  같은 잠자리에서 함께 잠들어야 할 때,  낮과 밤이 뒤엉킨 시각, 비가 되어 내리면  고독은 강물과 함께 흘러간다.....  ~~~~~~~~~~~~~~~~~~~~  사람들은 모두 자기 자신에게서  사람들은 모두 자기 자신에게서 달아나려 합니다.  박해받으면 갇혀 있는 감옥에서 풀려나려는 듯이  그러나 이 세상은 하나의 위대한 기적입니다.  나는 느낍니다.여기에는 모든 삶이 살고 있다고.  그러나 대체 누가 사는 것이겠습니까?  연주되지 아니한 선율이 하아프 속에 깃들여 있듯이  저녁 어스름 속에 숨어 있는 것들이겠습니까.  물 위에 불어 오는 바람이겠습니까,  신호를 주고받는 나뭇자기겠습니까,  향기를 풍기는 꽃송이겠습니까,  늙어 가는 긴 가로수 길이겠습니까,  오고가는 따뜻한 동물들이겠습니까,  갑자기 떠오르는 새들이겠습니까.  대체 누가 사는 것이겠습니까, 신(神)이여, 당신입니까-  이 "삶"을 살고 있는 것은.  ~~~~~~~~~~~~~~~~~~~~  만년의 밤  밤이여, 오 그대 나의 얼굴에서  깊이 속으로 녹아든 얼굴이여.  그대여, 내 경탄하는 관조의 가장 위대한  과중(過重)함이여.  밤이여, 나의 응시 속에 전율하며,  그러나 스스로 그토록 확고한 ;  고갈되지 않는 피조물,  대지의 잔해(殘骸) 위에 영원한;  저네들의 가장자리의 도피로부터  중간영역의  소리 없는 모험 속으로 불길을 던지는  어린 별들로 가득한;  그대 다만 존재함 자체만으로도, 우월한 존재여,  나는 얼마나 왜소한 모습인가 ― ;  허나 어두운 대지와 한 몸 되어  내 감히 그대 안에 존재하려 하노라.  ~~~~~~~~~~~~~~~~~~~~  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 (1부/ 3편)  A god can do so. But tell me how a man  신은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러나 말 해다오.  is supposed to follow, through the slender lyre?  어떻게 인간이 가냘픈 수금을 통해 신을 따라갈 수 있는지를?  His mind is riven. No temple of Apollo  그의 마음은 찢겨졌다.  stands at the dual crossing of heart-roads.  이중의 마음의 십자로엔. 아폴론의 사원이 서 있지 않구나.  Song, as you have taught it, is not desire,  노래는, 당신이 가르쳐 준 것처럼. 욕망이 아니다.  not a winning by a still final achievement:묵묵한 마지막 성취에 의한 승리도 아니다:  song is being. A simple thing for a god.  노래란 존재이고. 신에겐 단순한 것.  But when are we in being? And when does he  그러나 우리는 언제 존재해야 하는가? 그리고 그는 언제  turn the earth and stars towards us?  대지와 별을 돌려서 우리에게 향하게 해 줄 것인가?  Young man, this is not your having loved, even if  젊은이여, 이것은 네가 사랑을 간직하는것만으로 될 수 없다.비록  your voice forced open your mouth, then – learn  그때, 네 목소리가 네 입을 열도록 만든다 할지라도.  to forget that you sang out. It fades away.  네가 불렀던 노래를 잊어버리도록 배워라. 그건 사라질것이다.  To sing, in truth, is a different breath.  노래한다는건. 사실은, 또 다른 호흡이며  A breath of nothing. A gust within the god. A wind.  아무것도 호흡하지 않는 것이며. 신 안의 돌풍이고. 바람이기 때문이다.  ~~~~~~~~~~~~~~~~~~~~  과수원  1  내가 만일 빌려온 언어로 그대에게  편지를 쓸 용기를 냈다면,  그것은 아마도  과수원이라는 이 소박한 명사를 사용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나는 그 명사 하나에 사로잡혀 오래 전부터 고통스러워했다.  이 명사가 포함하고 있는 모든 것을 말하기 위해서  흔들리는 너무나 막연한 하나의 의미나,  또는 그보다 못한 방어하는 울타리라는 의미 중에서  선택해야만 하는 가엾은 시인이여.  과수원 : 오, 너를 단순하게 이름 부를 수 있는  리라의 특권이여 ;  꿀벌들을 매혹하는 비할 데 없는 말,  숨쉬고 기다리는 말...  고대의 봄을 숨기고 있는 명료한 명사,  가득 차 있으면서도 투명한 말,  그 대칭적인 음절 안에서  모든 것을 배가시킴으로써 풍요로워지는 말.  ~~~~~~~~~~~~~~~~~~~~  두이노의 비가-제 4 비가 (1-18)  오 생명의 나무여, 겨울은 언제이뇨?  우리는 한 마음이 아니다. 철새들처럼 그렇게  때를 알지도 못해 뒤쳐지고 늦어서야 우리는  느닷없이 억지 바람을 일으켜  무심한 못 위로 떨어질 뿐이다.  피고 지는 것을 우리는 동시에 의식하고 있다.  어디에선가 당당한 걸음걸이로  가고 있는 사자들은 무기력을 모르련만.  그러나 우리가 서로 아주 하나라고 생각하는 곳에서도  이미 상대편이 필요함을 느낄 수 있다.  적대감은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것, 여인들도  언제나 서로 안에 하나가 되어  가장자리로 나아가지 않는다.  거기 아득한 넓이와 사냥과 고향이 약속되어 있건만.  한 순간의 그림을 위한 여기에도  애써 대조의 바탕이 마련된다.  우리가 그것을 보기라도 하듯, 사람들은 아주 분명하게  우리를 아니까. 우리는 감정의 윤곽을  모른다. 아는 것이라곤  밖에서 그것을 형성해 주는 것일뿐.  ~~~~~~~~~~~~~~~~~~~~  두이노의 비가  내가 소리친들, 천사의 계열 중 대체 그 누가  내 목소리를 들어 주리오? 설령 한 천사가 느닷없이  나를 가슴에 끌어안는다 해도, 나보다 사뭇 강한 그의  존재로 말미암아 나 스러지고 말텐데. 아름다움이란  우리가 간신히 견디는 무서움의 시작에 다름아니니까.  우리 이처럼 아름다움에 경탄하는 까닭은 아름다움이  우리를 아랑곳하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천사는 무섭다.  나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어두운 흐느낌의  유혹소리를 꿀컥 삼키는데, 아, 대체 우리는 그 누구를  부릴 수 있을까? 천사들도 아니요 인간들도 아니다.  영리한 짐승들은 해석된 세계 속에 사는 우리가  마음 편치 않음을 벌써 느끼고 있다. 우리에게 산등성이  나무 한 그루 남아 있어 날마다 볼 수 있을런지.  우리에게 남은 건 어제의 거리와, 우리가 좋아하는  습관에의 뒤틀린 맹종, 그것들은 남아 떠나지 않았다.  오 그리고 밤, 밤, 우주로 가득찬 바람이  우리의 얼굴을 파먹어가면, 누구에겐들 밤만 남지 않으랴,  그토록 그리워하던 밤, 모든 이의 가슴 앞에 힘겹게 드리운,  약간 환멸을 느끼는 밤. 밤은 사랑하는 이들한테는 더 쉬울까?  아, 그들은 그저 몸을 합쳐 그들의 운명을 가리우고 있구나.  너는 아직 그것을 모르는가? 우리가 숨쉬는 공간을 향해  두 팔을 벌려 네 공허를 던져라. 그러면 새들은  더욱 당찬 날갯짓으로 넓어진 대기를 느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 봄들은 너를 필요로 할지 모르지. 수많은 별들은  네가 저희들을 느끼기를 바랐다. 과거 속에서  파도 하나 일어나고, 혹은  열려진 창문 옆을 지나갈 때  너는 바이올린 소리를 들었겠지. 그 모든 건 사명이었다.  그러나 너는 그것을 완수했는가? 모든 것이  네게 애인을 점지해줄 듯한 기대감에  너는 언제나 마음이 어지럽지 않았는가? (네가 그녀를  어디에 숨겨도, 크고 낯선 생각들은 네 가슴속을  들락거리며 밤이면 어김없이 네 안에 머무르는데.)  그리웁거들랑, 사랑을 하는 자들을 노래하라, 하지만  그들의 유명한 감정도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못하리라.  네가 시기할 지경인 그 사람들, 너는 그들이 사랑의  만족을 맛본 이들보다 훨씬 더 사랑스러움을 알았으리라.  결코 다함이 없는 칭송을 언제나 새로이 시작하라,  생각하라, 영웅이란 영속하는 법, 몰락까지도 그에겐  존재하기 위한 구실이었음을, 그의 궁극적 탄생이었음을.  그러나 지친 자연은 사랑에 빠진 자들을,  두 번 다시는 그 일을 할 수 없다는 듯이,  제 몸 속으로 거두어들인다. 너는 가스파라 스탐파를  깊이 생각해 보았는가, 사랑하는 남자의 버림을 받은  한 처녀가 사랑에 빠진 스탐파의 드높은 모범에서  자기도 그처럼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느끼는 것을?  언젠가 이처럼 가장 오래 된 고통들이 우리에게  열매로 맺지 않을까? 지금은 우리가 사랑하면서  연인에게서 벗어나, 벗어남을 떨며 견딜 때가 아닌가?  발사의 순간에 힘을 모아 자신보다 더 큰 존재가 되기 위해  화살이 시위를 견디듯이. 머무름은 어디에도 없으니까.  목소리, 목소리들, 들어라, 내 가슴아, 지난날 성자들만이  들었던 소리를, 엄청난 외침 소리가 그들을  땅에서 들어올렸지만, 그들, 불가사의한 자들은  무릎꿇은 자세 흐트리지 않고, 그에 아랑곳하지 않았으니,  바로 그렇게 그들은 귀 기울이고 있었다. 신의 목소리야  더 견디기 어려우리. 바람결에 스치는 소리를 들어라,  정적 속에서 만들어지는 끊임없는 전언을.  이제 그 젊은 주검들이 너를 향해 소곤댄다.  네가 어디로 발을 옮기든, 교회든 로마든 나폴리든  그들의 운명은 조용히 네게 말을 건네지 않았던가?  아니면 얼마 전의 산타 마리아 포르모자의 碑文처럼  비문 하나가 네게 엄숙히 그것을 명하지 않았던가?  그들은 내게 무엇을 바라는가? 내 그들의 영혼의  순수한 움직임에 가끔 조금이라도 방해가 되는  옳지 못한 인상일랑 조용히 버려야 하리라.  이 지상에 더 이상 살지 않음은 참으로 이상하다,  겨우 익힌 관습을 다시는 행할 수 없음과,  장미들과 그밖의 무언가 나름대로 약속하는 사물들에게  인간의 장래의 의미를 선사할 수 없음과,  한없이 걱정스런 두 손 안에 들어 있는 존재가  이제 더 이상 아님이, 그리고 자기 이름마저도 마치  망가진 장난감처럼 버리는 것은 참으로 이상하다. 서로  연결되어 있던 모든 것이 그처럼 허공에 흩어져 날리는 것을  보는 것은 이상하다. 그러므로 죽어 있다는 것은  점차 조금이나마 영원을 맛보기 위한 힘겨움과 만회로  가득 차 있는 것 ―― 그러나 살아 있는 자들은  모든 것을 너무나 뚜렷하게 구별하는 실수를 범한다.  천사들은 살아 있는 자들 사이를 가는지, 죽은 자들  사이를 가는지 때때로 모른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영원한 흐름은 두 영역 사이로  모든 세대를 끌어가니, 두 영역의 모두를 압도한다.  끝내 그들, 일찍 떠난 자들은 우리를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으니,  우리는 어느 덧 자라나 어머니의 젖가슴을 떠나듯, 조용히  대지의 품을 떠난다. 그러나 그토록 큰 비밀을  필요로 하는 우리는, 슬픔에서 그토록 자주 복된 진보를  울궈내는 우리는 ―― 그들없이 존재할 수 있을까?  언젠가 리노스를 잃은 비탄 속에서 튀어나온 첫 음악이  메마른 단단함 사이를 꿰뚫었다는 전설은 헛된 것인가,  거의 신에 가까운 한 젊은이가 갑작스레 영원히  떠나버려 깜짝 놀란 공간 속에서 비로소 공허함이  우리를 매혹시키고 위로하며 돕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것.   ~~~~~~~~~~~~~~~~~~~~  - 릴케(Rainer Maria Rilke)  평가 : 열정적인 몸부림과 영감, 충일한 언어로 20세기를 감당하고자 했던 세계문학사의 거장  약력 : 1875년 체코 프라하(당시 오스트리아, 헝가리 영토) 출생  1890년 메리시 바이스키르헨의 육군사관학교 입학  1891년 사관학교 퇴학  1894년 처녀시집 를 발레리의 도움으로 출간  1895년 프라하 대학 입학  1901년 여류 조각각 클라라 베스트호프와 결혼  1902년 출판  1910년 출판  1923년 출판  1926년 장미가시에 찔려 급성 백혈병의 증세로 사망  작가 이야기  열정적인 몸부림과 영감, 충일한 언어로 20세기를 감당하고자 했던 세계문학사의 거장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실존의 불안과 예감의 고뇌 속에서 자신의 영감이 폭풍을 일으키고 그것을 언어로 춤추었던 불세출의 서정시인이요 작가였다. 그는 매우 열정적인 몸부림과 영감 그리고 충일한 언어로 20세기를 감당하고자 했던 세계문학사의 거장이었다.  체코의 수도 프라하 출신의 독일 시인이었던 그는 일찍부터 고향 상실의 비애와 감상에 젖어야 했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육군유년학교를 거쳐 예비사관학교에 입학했다가 퇴학한 것도 그의 우수를 더해 주는 요소였다. 군사교육에 대한 지독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던 그는 그로 인해 잃어버린 어린 시절에 대한 아쉬움을 평생 극복할 수 없었노라고 실토하기도 했다. 뮌헨대학을 졸업하던 22살 무렵 만난 루 살로메와 더불어 러시아 여행을 하면서부터 그의 삶은 사랑과 고독, 방황과 편력, 여행과 발견, 그리고 그에 따른 문학적 탐색의 드라마처럼 전개된다.  릴케의 문학은 정신적 순례를 통해 영혼의 초월을 모색하고자 했다는 특성을 지닌다. 신을 찾고 신에게로 다가서고자 하는 순수 영혼의 열정적인 동경을 형상화한 을 비롯하여 사물의 존재를 관조적으로 성찰한 , 무한한 우주 공간에 던져진 인간의 실존과 고뇌를 그린 , 존재와 세계의 아름다움과 조화 세계를 노래한 등의 시편들로 현대시인으로서의 불멸의 지위를 확보했다. 그의 대표적인 소설인 는 을 집필하기 위해 프랑스 파리에 체류했던 기간에 쓰여진 대표적인 소설이다. 말테라는 청년 주인공의 내면 영혼의 심층을 깊 있게 보여준다.  를 완성하던 날, "마침내 축복받은, 축복받은 듯한 날이 왔습니다"라며 열광적인 편지를 쓰기도 했던 그는 장미 가시에 찔려 그 상처가 깊어져 숨을 거둔다. 51세의 나이로 "장미여, 오 순수한 모순이여, 기쁨이여"라고 스스로 쓴 묘비명 아래 누웠다. 누구의 꿈도 아닌 깊은 잠을 포근히 감싸주는 장미꽃에 덮혀, 그렇게 20세기의 순수 열정과 운명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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