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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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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    공재동 동시바구니 댓글:  조회:1064  추천:0  2016-10-24
나비야 공 재 동           나비야, 나풀나풀      네 작은 날개 위로      나를 태울 수는 없겠지만        바람보다 가벼운      내 생각 몇 조각이야      실어갈 수 있겠지.        꽃에서 꽃으로      너는 날아다니고      내 생각의 조각마다에는        꽃가루가 묻히고      꽃내음이 배이고.        나비야, 꽃이 질 무렵에는      내 생각일랑      돌려주고 가렴.        꽃물이 배인      아름다운 생각으로      나는 다시 태어나      곱고 예쁜 시를      다시 쓰고 싶어. 낙엽  공 재 동         가을    나무들    엽서를 쓴다.      나뭇가지    하늘에 푹 담갔다    파란 물감을    찍어내어      나무들    우수수    엽서를 날린다.      아무도 없는    빈 뜨락에      나무들이    보내는    가을의 엽서 부채 하나가 공 재 동        그 모진 무더위를    쫓아내느라    부서지고 찢어진 부채 하나가    무심히 산길에 버려져 있다      가을이 오다가 발을 멈추고    소복소복    낙엽으로 덮어 주더니      오늘은 수만 개 단풍이 되어    가을 산을 물들인다    부채 하나가.       들에서 공 재 동      누가      나를 부른다.        돌아다보아도      돌아다보아도      들녘에      마구 핀       풀꽃 무더기.        누가       내게 손짓한다.        가까이      가까이      다가가 보면        기억처럼       멀어지는       억새풀 하얀 손.    갑갑한 방안에 갇혀 있다가 들녘에 나서 보면 시야가 확 트이고 마음까지 시원해지는 것 같습니다. 아득한 저 멀리에서 알지 못하는 그 누군가가 자꾸만 손짓해 나를 부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막연한 그리움에 이끌려 가다 보면 봄에는 여러 가지 풀꽃들을, 가을에는 새하얀 억새풀들을 만나게도 됩니다. 이건 속은 게 아닙니다. 멀리까지 걸어온 걸 후회할 리도 없습니다.   소리없이 들려주는 대자연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다는 마음가짐이 중요합니다. 마음에 여유가 없다면 그런 목소리가 들릴 리가 만무하니까요.(허동인)   바람 부는 날 숲에는 공 재 동        떡갈나무들이    흰 손바닥을 드러내고    손뼉을 치며 웃고 있다.      뻣뻣한 수염을 쓰다듬으며    점잔 빼던 소나무도    끝내 웃음을 참지 못하고      밤나무도 허리를 잡고 웃노라    하얀 꽃잎이 떨어져    흩날리는 것도 모르고 있다.      바람 부는 날 숲에는    나무를 간지럽히는    바람의 손길이    은비늘처럼 반짝이고      초록 웃음을 밟고 가는    바람의 장난기가    끝없이 끝없이 날아오른다. (어린이문학 2001-12)   바람이 길을 묻나 봐요 공 재 동    꽃들이 살래살래 고개를 흔듭니다.   바람이 길을 묻나 봅니다.   나뭇잎이 살랑살랑 손을 휘젓습니다.   나뭇잎도 모르나 봅니다.   해는 지고 어둠은 몰려오는데 넓은 들녘 저 끝에서   바람이 길을 잃어 걱정인가 봅니다.   별 공 재 동        즐거운 날 밤에는   한 개도 없더니   한 개도 없더니     마음 슬픈 밤에는   하늘 가득   별이다.     수만 개일까.   수십만 갤까.     울고 싶은 밤에는   가슴에도    별이다.     온 세상이   별이다.     인간의 감성은 수시로 변합니다.   내 마음이 즐거울 때는 눈에 보이는 게 없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다른 사물에 대한 관심도 조금은 줄어들게 마련이지요.     하지만, 내 마음이 슬퍼지면 온갖 것이 다 생각납니다. 과거에 잊혀졌던 것들도 기억으로 되살아 다시금 괴롭힙니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나요? 평소에는 잘 쳐다봐지지도 않던 밤하늘이었는데, 갑자기 별이 눈에 들어옵니다. 내 마음이 슬프고 내 몸이 외롭고 고달프니 그제야 사물이 제대로 보이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슬픈 마음을 위로받을 데라곤 어디가 좋겠습니까? 진정 대자연밖에 없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숲속 바위나 언덕을 찾아 올라가 아래로 내려다보거나  밤하늘의 별들을 쳐다보면 마음의 위안을 크게 받을 수 있지요.   대자연은 거짓이 없고 인간을 차별하지 않기 때문에 어느 누구와도 다같이 친해질 수 있습니다. 정이 통합니다. (허동인)             슬픈 사람에겐 별은 친구이자 애인   별을 노래한 시들은 지천이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이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하는 마음과 하나라고 쓴 것은 윤동주다. 시인들에게 별은 몸을 고되게 부려야 하는 지상의 삶과 멀리 떨어진, 혹은 그 너머에 있는 초월적 실재에 대한 표상이다. 하늘은 벼락과 비를 관장하는 주신이 사는 곳이다. 그래서 하늘과 별은 외경심을 자극한다. 우주의 둥근 천장, 그 궁륭의 별들이 땅의 운명을 계시한다는 믿음은 오래되었다. 《고려사》의 천문지에도 '하늘이 징후를 나타내어 길흉을 보인다'는 구절이 보인다.   천문학과 주술적 미신이 버무려진 별점치기는 별의 운행 자리, 빛, 모양 등이 자연 현상이나 나라의 운세 그리고 운명의 조짐이라는 믿음에서 번성한다.   별들은 몇 천 광년이나 그보다 더 멀리 떨어져 있다. 지구에서 가장 먼 은하 성단의 별에서 오는 빛은 아직 지구에 닿지 않은 것도 있다. 그 별들로 가득 찬 밤하늘 아래 서면 우리는 알 수 없는 신비 속에 사는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공재동(59)의 동시에서 별은 사람에게 보다 다정한 별이다. 그 별들은 사람의 감정 기복에 따라 반응한다. 기쁜 날에는 없더니, 슬픈 밤에는 하늘에 별이 가득 찬다. 그럴 리가 없지만 별은 그걸 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누구나 울고 싶을 때 마음 밖에 있는 외부적 요소의 위로와 도움이 필요한 법이다. 슬픈 사람에게 별은 친구이자 애인이다. 슬플 때는 '가슴에도 별'이 뜨고, '온 세상이 다 별이다.' 별들은 밤의 눈[眼] 혹은 밤의 눈가에 맺힌 눈물이다. 아하, 기쁠 때 별이 보이지 않았던 것은 그 많은 별들이 누군가의 슬픈 가슴으로 몰려갔기 때문이다.   시인은 또 다른 별에 관한 시를 썼다. '별이 지고 나면/ 해가 돋아나듯이// 네 없는 마음/ 쓸쓸하지 않도록// 별 하나/ 꼭꼭 묻어둔다//모두가 잠든/ 이 어둔 밤에.'() 별이 슬픈 마음에 위로가 되는 까닭에 시인은 누구나가 '쓸쓸하지 않도록' 별을 어두운 밤에 '꼭꼭 묻어둔다'고 썼다. 공재동은 경상남도 함안에서 태어나고, 1977년 문단에 나왔다. 부산광역시교육청 장학사로 일하기도 한 교육자이자 아동문학가다. 30여 년 동안 쉼 없이 동시를 쓰며 부산교육대학출신들로 이루어진 아동문학 동인 '맥파'를 결성하여 이끌어온 사람이다. (장석주 시인)              모든 것을 내 마음처럼 느끼기   이 시를 쓴 시인은 슬플 때는 별들도 나처럼 눈물을 글썽인다고 느끼고 있다. 그래서 세상은 온통 눈물을 그렁그렁 매단 별들로 가득하다고 표현하고 있다.   여러분도 슬픈 날이면 마치 별이 눈물을 흘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은 적이 있을 것이다.   이처럼 모든 것을 내 마음처럼 느끼고, 그것들과 한마음이 되어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고 아파하고 안타까워해야 느낌이 생생한 시를 쓸 수 있다. (이준관)   별은 즐거운 날에 보고 싶지 않을까요? 그런데 이 시는 슬픈 날에 별 본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시인은 기쁠 때와 슬플 때 느낌이 어떻게 다른지 말해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즐거운 날 밤엔 별이 없대요. 즐겁게 보내느라 별(하늘) 볼 틈이 없었겠지요.   슬픈 날 마음을 달래려고 하늘을 보니, 우아! 하늘 가득 별이네요. 그 별이 가슴에 가득 찼을 거예요.   그러니 온 세상이 별로 가득 차 보이는 것 아닐까요. (박두순)     산딸기  공 재 동        홍보석     구슬    구슬    수풀 속에 숨겨 두고      들킬까    들킬까    염려가 되어      풀벌레도    가만    가만    울지를 않고      풀꽃도 한낮에는    입을 다문다.    조용한 수풀 속에서 홍보석처럼 익은 산딸기.   수풀 속에는 몰래 핀 빨갛게 익은 산딸기. 수풀도 숨겨주고 풀벌레와 들꽃도 입을 꼭 다물었습니다.   딸기 한 알이 빨갛게 익는데도 자연의 은혜는 끝이 없습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들도 하나의 자연입니다. 둘레의 온갖 은혜 속에서 내가 살고 있습니다. (신현득 김종상)       식은 밥  공 재 동       짝지와 싸우고   울며 울며 돌아와     아무도 없는 빈 방에서   식은 밥을 먹는다.     그 눈물   아귀아귀   볼우물에 고인다.    언젠가 언짢은 일로 다시는 안 볼 듯이 짝지와 싸운 적이 있지요. 힘에 부쳐 이길 수 없을 땐 분해서 눈물이 나오지요.   울면서 돌아온 집에 자신을 편들어 줄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더욱 서럽지요. 분이 삭진 않았지만, 힘 쓴 탓에 배가 고프답니다. 훌쩍거리며 혼자 먹는 식은 밥이 웬일인지 입아귀에서 넘어가지 않습니다. 자꾸만 목에 걸립니다. 은근히 마음이 아려옵니다. 씹던 밥이 불현듯 또다른 슬픔이 되어 볼우물에 고입니다.   공재동(1949∼) 시인은 이렇듯 아픔을 깨달으며 성장하는 아이의 모습을 동시에 담았습니다. (김용희)     이슬 공 재 동     별들 반짝이며 놀다 간 자리마다   이슬, 이슬이 이슬이 맺혔다.   잘 가라는 풀잎의 인사처럼   더러는 글썽이는 눈물처럼   밤새 풀잎에서 속삭이다 돌아간   별들 별들의 작별처럼             이른 아침 풀잎에 맺힌 이슬을 보면 절로 마음이 맑아지지요.   바쁜 사람들은 이슬의 인사를 받으며 길을 떠나지만, 동심을 간직한 사람들은 밤새 이슬에 서린 이야기를 읽고 있습니다.   인사처럼, 눈물처럼, 작별처럼…… 하고 반복되는 말놀이로 이슬방울들의 싱싱하고도 아련한 이미지를 공재동(1949~) 시인이 살려 놓았습니다. (박덕규)     초가을  공 재 동           그 무성하던 매미 소리는       어디로 갔을까.         고추잠자리       마알간 날개 위로       한 잎 두 잎       하루 해도 시든다.         어느새       창들은 모두 닫히고       오슬오슬       밖에서는       어둠이 떨고 있다.    고추잠자리 날개 끝에 묻어오는 초가을.   매미 소리도 멈추고, 낙엽이 한 잎 두 잎 지고 있는 초가을. 추위에 움츠러드는 마음처럼 집집마다 문이 닫히고 나면 창 밖에서는 쓸쓸하게 어둠이 떨고 있습니다.   쓸쓸한 가을, 어둠이 찾아오면 마음도 창문을 걸 듯이 꽁꽁 잠그고만 싶습니다. (신현득 김종상)         한가위  공 재 동        미루나무 가지 끝에    초승달 하나    걸어 놓고      열사흘    시름시름    밤을 앓던    기다림을      올올이    풀어 내리어    등을 켜는 보름달.    오랜 기다림 끝에 밝게 비치는 보름달.   초승달이 커져서 상현달이 되고, 상현달이 더 커져서 보름달이 되기까지의 기다림으로 보름달은 더욱 환히 밝습니다.   환한 달빛은 그렇게 기다려 온 마음으로 올올이 등불을 켠 것인지도 모릅니다. (신현득 김종상)       봄비  공 재 동     아무리 보아도     고운 실인데       옷부터 촉촉이     젖어들지요.       아무리 보아도     색깔은 없는데       온 들에 연두빛     물이 들지요.    봄비는 실낱같이 가늘고 섬세해서 아무리 맞아도 옷이 젖지 않을 것 같아요. 손에 잡힐 것 같은 봄비는 맑고 고운 실 같은데 봄비를 맞으며 길을 걸으면 어느새 촉촉히 옷이 젖지요. 봄비는 아무 빛깔도 없는 깨끗한 물방울이에요. 그러나 봄비가 지나간 들판에는 연둣빛 풀잎이 솟아나고 나뭇가지 사이에도 연둣빛 고운 새싹이 돋아나지요. 온 들판에 연둣빛 물이 드는 것이지요.   동시의 세계는 아름답고 신비합니다. 그것은 아름답고 고운 마음으로 사물을 바라본 세계예요. 동시는 아름다운 마음으로 세상을 보고, 신비로운 눈으로 사물을 바라볼 때 생겨나는 생각을 정리한 것이에요. 봄비가 수없이 이 세상을 지나가곤 해도 아름답고 신비한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동시가 되지 못할 것입니다. (공재동)                공 재 동(孔在東) 1949년 6월 19일, 경상남도 함안군 대산면에서 태어남. 마산고등학교, 부산교육대학, 방송통신대학, 동아대학교 교육대학원 졸업. 1974년 '새교실'지 동시 천료, 1975년 '교육자료'지 동시 천료. 1977년 '아동문학평론'지에 , 등이 천료됨으로써 문단에 데뷔함.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조 당선(1979) 제12회 세종아동문학상((1979), 제10회 이주홍아동문학상(1990). 제8회 부산문학상(2001), 제3회 최계락문학상(2004) 수상. 동시집 : 꽃밭에는 꽃구름 꽃비가 내리고(새로출판사, 1979. 5)             새가 되거라 새가 되거라(남경출판사, 1981. 12)             별을 찾습니다(인간사, 1984. 5)             단풍잎 갈채(1988)             바람이 길을 묻나 봐요(하얀돌, 1995. 2)             별이 보고 싶은 날은(2003)             보물 찾기(육일문화사, 2006. 4) 시조집 : 휘파람(1991) 시평집 : 동심의 시를 찾아서(빛남출판사, 1989. 12) 반공소년소설 : 소년 유격대(아동문학사, 1982. 12) 평론집 : 아동문학 무엇이 문제인가(1998)
139    강현호 동시 바구니 댓글:  조회:1166  추천:0  2016-10-17
    버들강아지 / 강 현 호        "엄마, 지금 나갈래요."   "안 돼, 아직은 추워."     아기버들강아지   자꾸만 엄마를 졸라댑니다.     "으응, 나가 놀고 싶어."   "자, 그럼 이걸 쓰고 나가렴."     엄마가 씌워 준   털모자를 쓰고 빈 가지 가지마다   쏘옥쏘옥 얼굴을 내밉니다.   이른 봄, 아직은 볼에 느껴지는 공기가 쌀쌀합니다.   딱딱한 가지에 갇혀 안달이 난 아기버들강아지가 밖에 나가 놀겠다고 엄마를 조릅니다.   말리다 못한 엄마는 할 수 없이 허락하고 맙니다.   하지만 엄마가 그냥 내보내지는 않겠지요?   엄마가 준 털모자를 눌러쓰고 쏘옥쏘옥 얼굴을 내미는 아기버들강아지들.   아무리 날씨가 춥다 해도 이제 아무런 걱정이 없을 테지요. (신현득 유경환 문삼석)                                       나뭇잎 하나 /강 현 호    -아이, 곱기도 해라.  바람이 손을 뻗쳐  나뭇잎을 또옥 땁니다.    -아휴, 어지러워.  나뭇잎은 눈을 감고  바람의 팔뚝에 꼬옥  매달립니다.      바람이 점점 선선해지고 나뭇잎들은 저마다의 단풍으로 가을을 장식하기 시작합니다. 나뭇잎이 곱게 몸단장을 하는 일은 저를 키워준 나무와 작별을 준비하는 일이기도 하지요. 성급한 바람일수록 그 고운 나뭇잎을 그냥 두고만 보지 않습니다.   강경호(1943∼) 시인이 가을에 낙엽이 지는 일을 바람과 나뭇잎의 가슴 설레는 만남의 순간으로 묘사하며 색다른 동시 한 편을 빚었습니다. 제 몸에서 나뭇잎을 떨구는 나무의 고통도 실은 이렇듯 또다른 시간을 위한 통과의례가 아닐런지요. 눈을 감고 바람의 팔뚝에 몸을 맡기는 나뭇잎의 표정이 재미있군요. (김용희)                                    겨울 아이들 /  강 현 호           바람이 세찬 날에도      겨울 아이들은      연을 띄운다.        밤새도록 풀어 놓은      빛살을 감으면      하늘 뚫고      오르는 동그란 해.        솟구치다가 기울고      다시      부딪쳐오르는 힘이      햇살을 거두어 쏟아 놓는다.        감아도 감아도      끝없는 속삭임을      얼레에 감고 크는      겨울 아이들.                하늘 높이 연을 띄우는 겨울 아이들.   겨울 하늘에 연을 띄우면, 얼어붙은 햇살도 훈훈하게 녹아내리고 아이들의 꿈도 연을 따라 끝없이 오릅니다.   연은 파란 하늘을 한없이 오르고 싶은 아이들의 마음이며 산 너머 먼 곳을 가보고 싶은 무한한 꿈입니다. (신현득 김종상)                                         귤 하나에 / 강 현 호          가을이    노랗게 숨어든다.      햇빛도    잰걸음으로 따라가    제 빛깔이며    제 꿈을    꼭꼭 여며 준다.      입안 가득    군침을 삼키며    겉돌던 바람은      마지막 가지에서    향내음 물씬 나는      노오란 열매를    내려 놓는다.    노랗게 숨어드는 가을볕에 익고 있는 귤.   가을 햇빛과 바람과 자연의 모든 은혜로움이 향기로운 귤 한 개로 엉겨서 우리 앞에 놓이게 됩니다.   그래서 귤 한 개를 입에 물면 따스한 햇살과 파란 하늘과 맑은 바람이 한 입 가득 되살아납니다. (신현득 김종상)                  꽃게/ 강 현 호         금빛 모래벌에     떼 지어 놀러 온     여름 꽃게들.       쫘악 벌린     집게발로     반짝이는 여름을      움켜 쥔다.       쏴아     쏴아     밀리는 물결 소리.       파도도     자꾸만     여름을 몰고 간다.    모래벌에 나와 놀고 있는 여름 꽃게들.   한적한 바닷가를 걸어보셔요.   해수욕장에 모이는 피서객만큼이나 많은 꽃게들이 무리지어 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금빛 모래벌에서 뙤약볕을 즐기듯이.   그래서 여름 바다는 더욱 황홀한 꿈으로 살아나는 것입니다. (신현득 김종상)                                나이테 / 강 현 호   봄   여름   가을   겨울   한자리에 불러모아   꽁꽁 한데 묶어 버렸습니다.     커다란   시간의 태엽을   힘주어 꼬옥꼭 감아 버렸습니다.     끝 연의 비유가 실감이 나고 새로운 감각적 표현이었다. (최춘해)                                            나팔꽃 /강 현 호           사다리도 없이      엉금엉금      기어올라가        아침부터      따따따      손나팔 부는        우리 동네      수다쟁이.                                         눈 오는 날 / 강 현 호         하늘이    하얀 지우개로    온 세상을 지우네.      길도    나무도    집도 하얗게 지우고      친구와 다투어    얼룩진 내 마음도    하얗게 지우고 있네.                                      봄날에 /강 현 호           엄마가 사 온      연둣빛 새 치마를      구겼다 폈다 하는 앞산        뒤뜰로 나들이 나와      봄 햇살을 톡톡 부리로 쪼는      수다쟁이 햇병아리들        선잠 깬 개나리만      노오란 손바닥을 가리고      긴 하품을 토한다.                              봄 들판 / 강 현 호      해님 선생님이 봄 들판 교실에서 출석을 부른다.   "제비꽃." "…예."   "민들레." "…예."   "진달래." "…예."   "들국화." "…?"   "그 아이는 작년 가을에 전학 갔어요." 봄꽃들이 입을 모아 대답했다.                                     봄을 그리는 아이 / 강 현 호             아이는       일곱 빛 무지개로       봄을 그린다.         노오란 크레용에       쏘옥 내미는       개나리 하품         진달래 귓밥에도       스스로 번지는 분홍 빛깔         늦잠 깬       나비 한 마리       그림 위를 기웃댄다.         아이의 하얀 꿈이       아지랑이로 피어나면,         어느새       봄은       아이와 함께       풀밭에서 뒹군다.    '아이는/ 일곱 빛 무지개로/ 봄을 그린다'에서 '일곱 빛 무지개'는 크레용이다. 말하자면 크레용의 여러 가지 색깔로 봄의 그림을 그린다는 말이다.   노란 크레용 색깔로 칠하면 노오란 개나리가 되고 분홍 색깔을 칠하면 진달래가 된다는 표현이다. 여기서 '개나리 하품'이니 '진달래 귓밥' 등이 특이하게 느껴진다.   이렇게 그린 그림 위로 나비 한 마리가 기웃거리고 또 아이의 하얀 꿈이 아지랑이로 피어난다. 그러면 어느새 봄은 아이와 함꼐 풀밭에서 뒹군다.   봄은 이처럼 살며시 우리에게 온다. 무슨 대단한 변화를 일으키면서 봄이 오는 것은 아니다. 개나리에게로 또 진달래에게로 와서 그들의 빛깔을 내주고 나비를 날게 하고 아지랑이를 피운다. 어쩌면 봄은 제 스스로 오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아이가 그리는 대로 오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마지막 연의 '봄은/ 아이와 함께/ 풀밭에서 뒹군다'에서는 자연인 봄과 아이가 하나로 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자연과 인간의 조화라고나 할까 일체라고나 할까. 옛 사람들이 흔히 말해오던 '물아일체'의 경지를 보는 듯하다. 이 시인도 아마 이런 생각을 하면서 시를 썼을 것이다. (이재철, 신현득, 제해만, 노원호)                                        소나기 / 강 현 호      여름 한낮   하늘이   잠깐 수도꼭지를 틀었다.     이 때다 하고   더위에 지친   풀이랑   나무들이   초록빛 두 팔을 흔들며   시원하게 샤워를 했다.                                  별 /강 현 호         밤마다 책을 읽는    풀벌레들의 등불이 되어 주었다고      하느님이 날마다    달님에게 착한 표를 주었다.      달님은    하느님께 받은 착한 표를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어      밤마다 이곳 저곳    반짝반짝 붙여 놓았다.                                         억새 /강 현 호      가을이 산 너머 이사를 간다.   "잘 가." "잘 가."   산등성이에서 억새들이 가을을 향해 자꾸만 하얀 손을 흔들었다.                                        오월 어느 날 / 강 현 호             파아란 잎들이       잘 다림질한       꽃잎을 받쳐듭니다.         사뿐 걸터앉았던       나비가       흰 옷자락을 걷어올리며       일어섭니다.       ―에그, 옷을 다 버렸군.       지나던 바람이       날개에 묻은 꽃가루를       안타깝게 바라봅니다.                                      가을비 /강 현 호     햇살이 잡아주지 않아도 바람이 거들어주지 않아도 가을비는 혼자서 색칠을 합니다.   빠알간 초가 지붕 그리고 황금빛 너른 벌판 그리고 노오란 단풍잎도 그리면 고추잠자리 떼지어 와 맴을 돕니다.   원색 물감을 통째로 풀어놓고 가을비는 신나서 마구마구 색칠을 합니다.                           사과밭에서 / 강 현 호            "우리 아기 얼굴빛이 왜 이렇지요?"            엄마 사과가             아기 사과를            걱정스럽게 들여다보았습니다.              "편식이 심하군요"            "일광욕도 자주 시키세요"              왕진온 햇살이            금빛 주사기를 뽑아들고            아기 사과의 파아란 엉덩이에다            꼭 꼭 찔렀습니다.    사과나무에 아기 사과가 달려 있습니다. 영양분이 부족한지 생기가 없고 잘 자라지도 않습니다. 엄마 사과는 아기 사과를 들여다보고 늘 걱정을 합니다.   이 때 엄마 사과의 마음을 알아 보았다는 듯, 햇살이 다가와서 검진을 하고 처방을 내립니다. 마치 병을 고치는 의사 선생님처럼,   햇살을 금빛 주사기로 비유했군요. 대화체 문장에다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이 재미납니다. (허동인)     사진 찍기 /  강 현 호      "자아, 활짝 웃어요." "자아, 김―치."   봄 뜰에서 봄바람이 사진을 찍는다.   흰 덧니를 드러낸 목련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노오란 가락지를 낀 개나리도 두 손을 흔든다.   뒤늦게 달려온 해님이 두 뺨을 붉히며 활짝 웃었다.    코스모스 / 강 현 호       시골로 놀러 왔던   고추잠자리가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길섶까지   배웅 나온   코스모스들이   나란히 한줄로 서서   손을 흔듭니다.     빨강   분홍   하양   손바닥을 보이며   자꾸만 섭섭해합니다.      등꽃 /강 현 호          수천 개의 소망들이      가지마다      심지로 돋았습니다.        햇살이      길다란 성냥을 그어대고        심지마다      활활 타오르는      보랏빛 불꽃        오월의 가슴      한가운데      예쁜 브로치 같은      등꽃이 피었습니다.         강 현 호(姜賢鎬) 1943년 11월 3일 ∼ 경상남도 진주에서 태어남. 부산 동아대학교 대학원 졸업 1979년 2월 '아동문예'에 동시 을 발표, 1982년 1월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동화 이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함. 아동문예작가상(1982. 12. 8), 부산아동문학상(1984. 6. 2), 현대아동문학상(1985. 1. 19) 등 수상. 부산아동문학협회 회장 역임 지도서 : 글짓기 교실(진주인쇄소, 1966. 2) 동시집 : 새끼줄 기차(교음사, 공저, 1983. 2)             산마을 아이들(소문당, 1983. 9)             사과밭과 가을굴렁쇠(아동문예사, 1991. 11)             닮았어요(21문학과문화, 2002. 11. 30) 동시, 동화집 : 메아리를 부르는 아이(글숲, 1986. 11. 30) 외      
138    강소천 동시바구니 댓글:  조회:1384  추천:0  2016-10-15
  가을의 전선줄  강 소 천                가을의 전선줄은       우리 누나 풍금책       제비들이 전선줄에       와 앉았다 갈 때마다         노래 노래 곡조는       자꾸자꾸 변한다.       가을의 전선줄은       우리 누나 풍금책     바다 강 소 천            바다는 이남박   모래알은 쌀.     커다란 이남박을   기웃둥… 기웃둥―     퍼어런 쌀 뜨물을   처얼썩… 철썩―     바다는 하루 종일   쌀을 인다우.    이남박……쌀 따위의 곡물을 씻거나 일 때 쓰는       함지박의 한 가지(안쪽에 여러 줄의 골이 나 있음)   사슴 뿔 강 소 천             사슴아, 사슴아!     네 뿔엔 언제 싹이 트니?       사슴아, 사슴아     네 뿔엔 언제 꽃이 피니? (초등학교 1학년 교과서에 실린 작품)   사슴의 뿔은 얼핏 보기에는 꽃나무나 꽃가지와 비슷한 생김새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때를 따라 새로 돋아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한 사슴의 뿔에 '언제야 싹이 트고 꽃이 필까?' 하는 것입니다.   때묻지 않은 동심의 눈이 잡은, 아주 단순하고 깨끗한 느낌입니다. 생각으로 거르지 않고, 느낌에 선뜻 닿아오는 것을 곧이곧대로 노래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형식 또한 짧고 단순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작품은 1935년 경에 빛을 보았습니다. 그 때만 해도 7,5조의 가락에 실은 텅 빈 내용의 동요들이 판을 치던 때였습니다. 자유로운 꼴을 갖춘 동시를 쓰자!'는 외침이 그로부터 2년 뒤인 1937년에 있었습니다. 그러니 그 때의 사정을 넉넉히 헤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시가 품고 있는 중심되는 뜻은 기다림이 아닐까요. 싹이 트고 꽃이 피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의 기다림!   그 티없는 기다림의 마음만은 언제까지나 귀한 것입니다. (박경용)   동물의 머리에 난 뿔은 위엄을 상징하는 표시이기도, 다급할 때는 싸움하는 도구가 되기도 하지요. 하지만 한가로이 풀을 뜯다 가끔 고개 들어 먼 허공을 바라보는 사슴의 머리에 돋은 뿔은그렇게 보이지 않는걸요.   그 뿔은 마치 겨울 나무의 앙상한 가지 같아 보이지요. 거기서 곧 싹이 나올 것 같아요. 아니, 어쩌면 그 가지 끝에 꽃이 피어날지도 모르지요.   삶에서 잃어 버린 것을 꿈의 세계에서 찾아내는 환상적인 이야기들로 명성을 날린 동화 작가 강소천(1915∼1963)은 한편으로 주변에서 만나는 작은 사물로 이렇게 재미있는 상상의 세계를 빚어내는 시인이기도 했지요. (박덕규)   사슴은 어쩌면 그렇게 멋진 뿔을 머리 위에 이고 있는지! 마치 겨울나무의 가지 같지요.   그래서 금세 싹이 돋을 것 같아 "언제 싹이 트니?" 하고 묻고 싶고, 꽃이 필 것 같아 "언제 꽃이 피니>" 하고 묻고 싶어요.   노천명 시인은 '사슴'이란 시에서 사슴의 뿔을 보고 "관이 향그럽다(향기롭다)."고 읊었어요.   사슴아, 그 향기로운 뿔관 나도 한번 써 보면 안 될까? (박두순)       바람 강 소 천          ―얘, 넌 오늘 어디 가  뭘 했니?    ―나? 길거리에서  바람개비 돌렸지.    ―그래, 넌 오늘  어디 가 뭘 했니?    ―난 오늘 공중에서  연 올렸지.    ―얘, 오늘 밤엔  너 뭐 할 테냐?    ―난, 숲속에 들어가  소롯이 자야겠다.    ―나두 일찍이  자야겠다.     ―아아 고단하다.  ―아아 다리 아프다.    이 시는 아주 특이합니다. 순전히 바람과 바람이 나누는 대화체 문장만으로 한 편의 시가 이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말을 못하는 대자연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여러 가지 얘기 소리를 엿들을 줄 아는 시인의 마음이 놀랍고 기특하기만 합니다.   바람도 하루종일 돌아다니며 온갖 일을 다 했으니, 저녁 무렵이면 얼마나 피곤할까요?   마치 우리 개구쟁이 어린이들 같은 생각이 듭니다. (허동인)     별 강 소 천           나도 하나의 별일 수 있을까?   저 수많은 별들 중에 내가 내 별을 찾고 있듯이 은하수 별무리 그 어느 속에라도 날 찾는 작디작은 별 하나 정녕 있을까?   나도 언젠가는 발견될 수 있을까?   이렇게 들판에 혼자 서서 하늘을 우러러 내라고 내 여기 있노라고 손짓하는 나를 정녕 못 알아보고 말까? 내가 이미 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린 뒤에도 내 별은 남아 있어 날 찾고만 있을까?     이 동시는 강소천 아동문학 전집 (배영사, 1964. 4. 20)에는 빠져 있습니다.    어쩌면 잊혀지고 있는 작품을 내가 발굴해 낸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특별히 실었습니다. (허동인)          잠자리 강 소 천           빠알간 아기 잠자리 한 마리가   가아는 나뭇가지 끝에 날아와서     ―조금 앉았다 가랍니까?   ―안 돼!     ―조금만 앉았다 갈께요.   ―안 돼!     ―조금만…    ―글쎄 안 된다는데 그래!     앉으려다간 못 앉고   또 앉으려다간 못 앉고     그러다 그러다 잠자리는   다른 데로 날아가 버렸습니다.    시가 단조로울 때는 강조하고 변화를 주어라   이 시는 나뭇가지에 앉으려다가는 못 앉고 또 앉으려다가는 못 앉고 다른 데로 날아가버린 잠자리의 모습을 문답법을 써서 재미있게 표현하고 있다.   아주 단순한 내용을 묻고 대답하는 형식으로 표현함으로써 리듬이 있는 재미난 시로 변화시켰다.   이렇게 문답법은 변화와 재미를 주고 시를 생동감 있게 한다.   동시를 쓸 때는 이 문답법을 잘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이준관)     아기와 나비 강 소 천               아기는 술래      나비야, 날아라.        조그만 꼬까신이 아장아장      나비를 쫓아가면        나비는 훠얼훨      "요걸 못 잡아?"        아기는 숨이 차서      풀밭에 그만 주저앉는다.        "아기야,      내가 나비를 잡아 줄까?"        길섶의 민들레가      방긋 웃는다. (초등학교 3학년 교과서에 실린 작품)  이 시는 한 연 한 연을 재미있게 표현했다. 나비와 민들레가 사람인 것처럼 생각해서 아기와 직접 대화를 나누게 한 장면이 재미있다.   봄이 되면 풀밭에 꽃들이 피어난다. 그런 꽃들에 나비가 날아들면 아기는 나비를 잡으려고 아장아장 걸어다니기도 한다. 나비는 꽃에 앉았다가 아기가 가까이 가면 훨훨 날아가 다른 꽃에 앉는다. 아기는 또 그 나비를 잡으려고 꼬까신을 신고 아장아장 걷는다. 지은이는 이러한 모습을 보고 아기와 나비가 술래잡기를 한다고 생각했다.   아기는 그 나비를 잡으려고 쫓아다니다가 숨이 차면 그만 풀밭에 주저앉기도 한다.아기의 그러한 모습을 지은이는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 그래서자기가 대신 잡아주고 싶어한다. 즉, 이 시에서는 민들레를 통해 '아기야, 내가 나비를 잡아 줄까?'하고 나타내었다. 이는 얼마나 멋진 생각인가?   아기와 나비가 술래잡기를 하는 것처럼 나타낸 것도 재미있지만, 나비와 민들레가 사람처럼 아기의 동무가 되어 준다는 생각도 정말 재미있는 표현이다.   이처럼, 이 시는 표현의 재미를 한껏 살린 뛰어난 작품이다. (이재철, 신현득, 제해만, 노원호)       다알리아  강 소 천           보슬비에 얼굴이    간지럽다고      우리 집 다알리아    고개 숙였네.       닭 강 소 천       물 한 모금 입에 물고   하늘 한번 쳐다보고     또 한 모금 입에 물고   구름 한번 쳐다보고 -《소년》1937년 4월   3,4조나 7,5조의 음수율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운율을 지니면서도 간결한 시 형태. 이 시가 보여주는 모습은 바로 이런 모습이다. 햇빛 밝은 날 닭이 뜰에서 물을 먹고 있다. 물 한 모금을 입에 물고 그것을 넘기기 위해 하늘을 한번 쳐다보고, 또 한 모금을 넘기기 위해 구름을 쳐다보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물론, 닭이 하늘과 구름을 번갈아 보는 것은 아니겠지만, 굳이 하늘이나 구름을 보는 것이라고도 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시의 작자는 어린이다운 눈과 어린이다운 마음으로 그렇게 보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것을 우리는 시심이라 부른다.   어떤 이는 이 시를 두고 작자 자신의 그리움을 나타낸 시라고 하기도 한다. 문득 어떤 일을 하다가도 한 번씩 머리를 들어 먼 하늘이나 구름을 보는 일. 그것은 멀리 떠난 고향이나 정답게 지냈던 사람을 생각해 보는 행동이라고도 볼 수 있다.   닭이 하는 이러한 대수롭지 않은 행동도 눈여겨 보고 시를 쓸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만이 진정으로 좋은 시를 쓸 수 있을 것이다. (이재철, 신현득, 제해만, 노원호)             단 네 줄에 압축된 닭의 '모든 것'   이보다 더 간결할 수 있을까. 단 네 줄로 닭의 모든 것이 표현되고 있다. 닭은 물 한 모금 마시고 고개 한번 들고, 또 물 한 모금 마시고 고개 한번 든다. 닭이 물을 마시는 이 무심한 행동을 강소천은 무심히 보지 않고 '순간 포착' 했다. 그리고 거기에 슬쩍 '하늘'과 '구름'을 집어넣었다. 닭이 물 한 모금 마시고 고개 한번 드는 것은 하늘과 구름을 보기 위해서라는 것. 이 순간, 시가 탄생했다. 바로 이 시다.   아마도 강소천(1915∼1963)에게는 대상의 순간 포착력과 시적 압축에 대한 신념이 있었던 듯하다. "달밤/ 보름달 밤// 우리 집 새하얀 담벽에/ 달님이 곱게 그려놓은/ 나무// 나뭇가지."() '달밤'에서 시작해 '나뭇가지'로 끝을 맺은 이 시에서도 우리는 강소천의 압축미에 대한 강박을 본다. 보름달이 세상을 환하게 비추는 밤, 시인은 이 황홀한 '순간'을 '달'에게 바친다. 그러나 달뿐이었다면 이 시의 시적 완성도는 현저히 떨어졌을 것이다. 달은 '흰 벽에 그려진 나무 그림자'가 있어 비로소 그 마술적 매력을 배가시키게 된다.   "아기는 술래/ 나비야, 달아나라.// 조그만 꼬까신이 아장아장/ 나비를 쫓아가면// 나비는 훠얼훨/ "요걸 못 잡아?"// 아기는 숨이 차서/ 풀밭에 그만 주저앉는다// "아가야,/ 내가 나비를 잡아줄까?"// 길섶의 민들레가/ 방긋 웃는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는 이 시도 마찬가지다. 시인은 아장아장 나비를 쫓는 아기와 그 아기를 따돌리며 도망가는 나비를 포착한 뒤, 거기에 은근슬쩍 길섶의 '민들레'를 끼워 넣었다. 이 민들레가 없었다면 아기와 나비의 쫓고 쫓김 역시 밋밋했을 수도 있다.   김요섭, 박홍근, 최계락, 신지식, 최요섭 등에게 수여된 '소천아동문학상'의 영예가 이야기하듯 강소천이 우리 아동문학계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 을 비롯하여 수십여 권에 이르는 동화책의 저자이자 200여 편의 동시를 생산한 시인으로서 그는 50·60년대 우리 문학의 중심축이었다. 특히 함경남도 고원이 고향인 그의 활약은 장수철(평양), 박경종(함남), 박홍근(함북), 박화목(황해도) 등 전쟁 이후 북쪽에서 월남해온 문인들의 작품 활동과 더불어 전후 아동문학계의 촉매제가 되기도 했다. 서울대공원에 을 새긴 '강소천문학비'가 있다. (신수정 문학평론가)          나팔꽃  강 소 천        붉은 꽃 파란 꽃    나팔꽃들이 서로 다투어 핀다.      아침마다 나는 심판관    "오늘은 파란 편이 이겼다."     달밤  강 소 천            달밤      보름 달밤.        우리 집 새하얀 담벽에      달님이 고웁게 그려 놓은,        나무      나뭇가지.   팽이  강 소 천             오빠가 돌리는      팽이를 바라보다      문득 생각난 건      우리가 사는 땅덩이.        ―지구는  누가 누가 돌리는      팽이일까?       호박  강 소 천    ]            호박은 벌거벗고도        부끄러운 줄도 몰라.          배꼽을 내 놓고도        부끄러운 줄도 몰라.       호박줄 강 소 천           호박줄이 바알발   수수깡 울타리를   기어 올라간다.     아무도 모르게   조금씩 조금씩   기어 올라간다.                    강 소 천(姜小泉) 1915년 9월 16일 ∼ 1963년 5월 6일 본명은 강용률(姜龍律) 함경남도 고원에서 태어남. 동요, 동시, 동화 작가. 함흥 영생고등보통학교에 다닐 때부터 백석의 가르침을 받음. 월남 후 주간(1952) 한국문협 아동문학분과 위원장(1953∼1955) 아동문학 연구회 회장(1960) 문교부 우량 아동도서 선정 위원(1961) 한국문협 이사(1962) 등을 역임. 아동소설 로 제2회 5월문예상 문학 본상 수상(1963). 간경화증으로 작고 후 배영사에서 '강소천 아동문학상'을 제정(1965). 1931년 . 등에 동요 등을 발표하고, 동요 가 조선일보(1930) 현상문예에 당선, 이후 '소년' 창간호에 (1936)을 비롯한 여러 편의 동요 동시를 창작함으로써 문단에 데뷔함. 1939년을 전후하여 동화와 아동소설도 쓰기 시작하여 많은 작품을 발표했으며, '어린이 헌장'의 기초, 독서 지도, 글짓기 지도 및 아동문학의 보급, 육성을 위해 노력하는 등, 아동문화에도 남다른 열성과 정열을 기울임. 마해송 등과 어린이헌장을 기초함. 금관문화훈장 서훈. 동요동시집 : 호박꽃 초롱(박문서관, 1941) 동화, 소설집 : 조그만 사진첩(다이제스트사, 1952)                      진달래와 철쭉(다이제스트사, 1953)                      꽃신(한국교육문화협회, 1953)                      꿈을 찍는 사진관(홍익사, 1954)                      달 돋는 나라(1955)                      바다여 말하여 다오(1955)                      종소리(대한기독교서회, 1956)                      해바라기 피는 마을(대동당, 1956)                      꽃들의 합창(1957)                      무지개(대한기독교서회, 1957)                      인형의 꿈(새글집, 1958)                      꾸러기와 몽당연필(새글집, 1959)                      대답 없는 메아리(대한기독교서회, 1960)                      진달래와 철쭉(배영사, 1960) 전집 : 강소천 아동문학전집 전 6권(배영사, 1964)          강소천 아동문학독본(을유문화사, 1961)          한국아동문학전집 강소천 작품집(민중서관, 1962)
137    신현득 동시론 [ 한국 ] 모셔온 향기 댓글:  조회:1760  추천:1  2016-08-10
동시 창작법 ① 동시(童詩) 산책(散策) 신 현 득   동시가 어떻다는 말을 하기 전에 나는 나의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나는 사범학교 출신이지만 그 때 어느 곳에서나 다 그랬듯이 아동문학이란 말은 조금도 들어보지 못하고 졸업했다. 간혹 동화란 말은 들었지만 동시란 말은 전혀 듣지 못했던 것이다.   학장 시절 나도 남만 못지 않은 문학 지망생이었다. 시(詩)도 쓰고 소설도 습작을 했다. 이 중 소설은 그 뒤 지방의 작은 규모의 현상 모집에서 뽑히기까지 했으니 약간은 소질이 있었던 것 같다. 학창 시절에는 이런 것을 씁네 하고 제법 우쭐거리기도 했다.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곧 교사로 부임을 하게 됐는데 마침 도내(道內)의 무슨 글짓기 행사가 있어 글짓기 지도를 맡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종목은 동요·동시·산문이었다. 나는 이 때 처음 동시라는 말을 들었다. 동요는 알고 있었지만, 동시란 말을 처음 들은 나는 나름대로 정의를 내려봤다.   「동요가 4·4조 7·5조 등의 정형시이니 동시는 아마 어린이들이 읽을 자유시를 말할 것이다.」   내 생각은 적중했다. 내 생각대로 아이들을 지도해 간 것이 도내 행사에서 3등이란 영광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 뒤 그 때 씌어진 아동작품이 모두 지상에 발표되었는데 아이들이 쓴 글은 동요는 없고 모두 동시뿐이었다. 그러자 동시 동요의 구별없이 통틀어 상을 주고 만 것이다.   그 때부터 아동들의 운문은 동시가 되었고 동요는 이들 세계에서 사라지고 있는 단계가 되었다. 이것이 1955∼6년 때의 일이다.   동요가 아이들의 글짓기에서 사라지게 되기까지는 이상의 과정들을 겪었다. 아마 아동들에게는 자유스런 표현이 가능한 동시보다는 동요가 더 구속적이고 어려웠기 때문이었을는지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이런 면에서 아직도 신춘문예는 동요를 모집하고 있었다. 그런데 동요를 응모하는 사람이 없어서 뽑히는 것은 모두 동시뿐이었다. 동요 모집이라는 간판을 걸고 동시를 당선시키고 있는 것이었다. 얼마 후에는 신춘문예에서도 동시라는 간판을 내걸게 되었다. 이것이 60년대의 초기다. 이런 모든 것이 동요와 동시의 미분화 시대에 있었던 일이다.   이상의 이야기에서처럼 동시는 동요에 맞서는 아동문학의 장르로 동요가 정형시인데 반해 동시는 자유시의 한 형태이다.   지금에 와서는 우리 나라에서 동시만을 전공하는 사람이 백 명이 넘게 되었지만 그 당시만해도 동시는 개척 단계여서 지금 손꼽을 수 있는 아동문학의 대가급 외엔 없었다.   물론 아동문학과 글짓기 지도는 별개의 것이며, 전자가 창작 행위인데 비해 후자는 하나의 교육 활동이지만, 어쨌든 나는 나의 아동문학에 접한 코오스가 아동작문이란 비정상적인 것이었다.   나는 아동들을 지도하면서 나도 아이들처럼 이런 글을 써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것이 잘 되지 않는 것이다. 아이들 지도하는 일은 되는데 내가 글을 쓰기란 여간 힘들지 않았던 것을 지금 나는 기억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나는 습작기에서 애를 태우고 있는 아동문학 지망생들을 선험자(先驗者)로서 동정을 하면서 격려하고 싶다.   나는 하루종일 작품을 생각하다가 지쳐서 저녁이면 술을 들이키곤 했다. 괴로운 작업이기도 했다. 빠꼼 빠꼼 문구멍이 높아간다. 아가 키가 큰다.   스무 글자가 되지 않는 이 작품은 이런 피나는 작업 긑에서 이루어진 것인데 69년도 조선일보에서 당선작 없는 가작으로 뽑혔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이런 작품을 쓰기 위해 그와 같은 힘을 들였던가 싶은 마음뿐이다. 이 작품의 짜임새나 깊이가 뭐 대단하지 못한데도 실망이 되지만 지금 같으면 단 몇 시간만에 써버릴 것을 몇 달을 두고 머리를 짜내던 일이 우습게만 여겨지는 것이다.   그 때 나에게는 겨우 걸음마를 배우는 아이가 있었다. 이 아이가 창호지로 바른 문을 뚫는 것이다. 어느 아이나 그런 버릇이 있다. 곧잘 손가락을 내밀어 구멍을 뚫는다.   아이가 있는 집이면 으레 문구멍이 있다. 문구멍이 없는 집처럼 서글픈 집은 없다. 자식이 흔하지 않는 집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아니었다. 아이가 문구멍을 뚫을 때마다 아이에게 야단을 쳤다. 셋방을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히려 문구멍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이 때 문구멍의 높이와 아이의 키와의 관계 같은 것을 생각하면서 상당히 긴 시를 썼다고 기억이 된다. 그러다가 그것을 줄이고 줄인 끝에 남은 것이 이 열여덟 개의 글자였다.   나는 이 열여덟 자의 동시를 완성하고   「길이가 너무 짧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신춘문예에 내는 작품 가운데 별반 기대도 하지 않으면서 끼워 넣었다. 그런데 우연히도 이것이 가작에 뽑힌 것이다. 이리하여 내 이름 석 자가 신문에 발표되었다.   작품을 써 놓고   「왜 이렇게도 뭇난이 작품을 썼을까?」   「참 할 수 없어.」 하고 부족을 느끼는 이들은 이제 안심해도 될 것이다.   나는 1961년 첫 동시집 을 냈다. 70페이지밖에 되지 않는 4·6판의 작은 책이다. 내가 고백하고 싶은 것은 이 작품집의 체재가 못되고 책이 얇다는 말이 아니다. 못난이 작품들이 있기 때문이다. 뽕잎이 핍니다. 뽕잎이 피면서 생각합니다. 아까시아 잎이 핍니다. 아까시아 잎이 피면서 생각합니다.   이라는 작품이다. 어떤 이들이 이 작품을 읽고 무슨 뜻인지 전혀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고 난 다음에사 이 작품이 객관성이 없는 표현에서 씌어졌다는 것을 알았다.   그 소리를 듣고 나는 고민했다. 그러나 이제와서 어쩔 수도 없었다. 내딴은 뽕잎이 피면서 누에의 입맛을 생각하고 아까시아가 피면서 아까시아를 가장 즐기는 토끼의 입맛을 생각하는 내용을 그려낸다고 쓴 작품이다. 그런데 그 표현 수법이 잘못되었던 모양이다.   그밖에도 실패작은 얼마든지 있다. 그런가 하면 지금 읽어봐도 괜찮다 느껴지는 것도 더러 있다. 까만 아기 눈 속 샘 그림자. 조그만 샘 속에 엄마 그림자. 그림자 덮고 잠이 들면 그림자 살아서 꿈이 되지요. 꿈 속에서 엄마와 뛰어다니면 찰방찰방 잔물결이 일어나지요.   이 작품은 제법 시가 담겨져 있다. 그러나 역시 표현들이 분명하지 못하다. 그것은 끝연에 가서 더욱 그렇다.   그러나 나는 그 당시 이 변변치 못한 작품을 쓰기 위해 땀을 흘렸고 여러 가지 방면으로 생각해 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아기의 눈 속에 내 그림자가 지는 것을 발견해 냈다. 그 그림자를 엄마 그림자로 바꾸어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그 아기눈의 그림자가 어쩌면 옹달샘에 비친 그림자와 같다는 데서 이런 시를 잡은 것이다.   어쨌든 힘드는 작업이었다.   「작품이 잘 씌어지지 않는다. 왜 이렇게도 잘 되지 않는가」 하고 자신을 투덜대는 사람은 이 말을 듣고 안심해도 될 것이다. 아가씨가 베를 짜고 있었습니다. 뒷밭에 목화씨가 베짜는 장단에 싹이 틉니다. 한 눈. 한 눈. 또 한 눈……. 뒷밭에는 하룻밤 사이에 목화꽃이 소복이 나왔습니다. 목화싹은 베짜는 장단에 쑤욱쑤욱 키가 컸습니다. 베짜는 장단에 잎이 돋고 가지가 나고, 베짜는 장단에 꽃망아리를 맺고 꽃이 피기 시작했습니다. 한 송이. 한 송이. 또 한 송이……. 목화밭은 하룻밤 사이에 아름다운 꽃밭이 되었습니다. 베짜는 장단에 뚝뚝 꽃이 지고 베짜는 장단에 복숭아 같은 다래가 열고 다래가 벌어 목화가 피기 시작했습니다. 한 송이. 한 송이. 또 한 송이……. 목화밭은 하룻밤 사이에 하얀 솜밭이 되었습니다.   의 전문이다.   산문시 목화밭을 쓰기 위해서도 힘드는 작업이 필요했다. 첫째는 베틀 소리에 맞추어 목화싹이 트고 목화꽃이 피고 목화송이가 피도록 하는 일이었고, 그보다도 힘이 든 것은 목화밭을 베틀 가까이로 끌어들이는 작업이었다. 두 번째의 작업이 이루어졌을 때 이 산문시는 절반의 일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사실 목화밭을 들판 가운데 두고서는 이 시의 장면을 상상할 수 없다. 그래서 목화밭을 집뒤로 끌어온 것이다. 이것이 아직 그 당시의 내 사고력으로서는 큰 작업이 아닐 수 없었던 것이다.   목화밭을 집뒤에 두고 나니 베짜는 소리에 목화가 크도록 하는 일은 쉽게 진행되었고 베틀 소리에 싹이 트는 일, 꽃 피는 일 등을 적당한 대구(對句)로 만들어 행(行)을 잡음으로써 시각적(視覺的) 효과도 노릴 수가 있었다. (1978년 가을 『아동문학평론』 제9호)   동시 창작법 ② 동시(童詩) 산책(散策) 신 현 득   학교 종이 땡땡 친다. 어서 가 보자. 선생님이 우리를 기다리신다.   이 노래의 「땡땡 친다」는 어법에 맞지 않다 해서 지금은 「땡땡땡」으로 고쳐 부르고 있다. 첫 행에서 「땡땡」을 빼버리면 「학교 종이 친다」가 된다. 「종이 친다」는 「글씨가 쓴다」「옷이 입는다」「공이 친다」와 마찬가지로 문법적인 모순이 있다.   그런데 이런 식의 동시가 얼마든지 있다. 이 동요를 지은이도 처음 그 문장에서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글이 되었고 그것이 작곡되어 상당히 오랜 동안 어린이들 입으로 불려졌던 것이다.   시처럼 어법을 따지는 문장은 없을 것이다. 동시는 더욱이 그렇게 해야 되고 그렇게 해야 어린이들을 위한 시가 되는 것이다. 저기 가는 저 영감 꼬부랑 영감 우물쭈물 하다가는 큰일 납니다.   처음 지어졌을 때의 라는 이 동요는 교육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이런 노래를 권한다면 도의 교육이 어떻게 되겠는가? 어른을, 특히 나이 많은 할아버지를 놀리는 것이 되고 만다.   도의를 범하는 것이 아동문학일 수는 없다. 아동문학은 교육과 문학의 중간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긴 하지만 따지고 보면 교육이 되지 않는 문학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따위의 글은 동요뿐만 아니라 어느 노래의 가사로도 좋은 것이 아니다.   섹스를 동원할 수 없는 게 아동문학이라고 한다. 섹스가 꼭 비도덕적인 것만은 아니지만 어린이들은 아직 섹스가 그들의 생활이 될 수 없기 때문에 따라서 아동문학의 소재가 되지 않는다.   이런 도덕 문제나 섹스 문제를 생각지 않고 씌어진 아동문학 작품이 눈에 띄기도 하는 것이다. 땅 속엔 땅 속엔 누가 있나 봐. 손가락으로 쏘옥 올려미나 봐 쏘옥 모란꽃 새싹이 나온다.   이 아동시는 조금 전까지도 교과서에 실려 전국 어린이들의 본보기 글이 되어 주었다. 땅속에다 손가락을 두고 봄날 돋아나는 새싹의 광경을 재미있게 표현했다.   그러나 이 시에는 모순이 있다. 모란싹은 땅 속에서 솟은 것이 아니라 모란의 가지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모순을 처음 발견해낸 사람은 시인 박목월씨라고 한다.   이와 같이 아무리 착상을 잘 잡은 글이라해도 내용에 모순을 가지고 있어서는 작품이 되지 않는다.   이런 보기는 얼마든지 있다. 병아리떼 뿅뿅뿅 놀고 간 뒤에 미나리 파란 싹이 돋아났어요.   병아리가 놀던 곳은 무논 가운데가 아니다. 그런데 미나리는 미나리논 같은 물이 고인 데서 싹을 틔운다. 물론 마른 땅에서 미나리가 돋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보편성이 없다. 보편성이 없는 경우는 작품에서 피하는 것이 좋다.   언젠가 나는 백두산 천지에 대해서 재미나는 걸 생각햇다. 천지의 물이 그 넓은 호수에 하나 가득 괴자면 얼마나 깊은 땅밑에서부터 많은 물이 솟았겠느냐 하는 생각이었다.   「그것은 백두산의 뿌리쯤 되는 깊이에서일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보니 퍽 재미가 있었다.   이 물이 백두산에 고여 있다가 압록강 두만강이 돼 흐르는 것이다. 이 때 호수의 물은 절반씩 나뉘어서 서로 이야기를 할 것이라 생각했다.   「얘, 너는 압록강물 되어라. 나는 두만강물 될께.」   「그래 그래 지금부터 작별이야. 그렇지만 바다에서 만나게 될걸.」   나는 이렇게 천지의 물이 압록강 두만강의 물줄기로 나뉘어 흐르는 장면을 생각했다.   나는 이런 착상이 좋은 시가 될 것이라 생각하고 며칠 밤이나 시를 낳느라 끙끙거렸다. 하나의 물줄기로 같이 솟아서 너는 압록강 나는 두만강 나뉘어져 흐르는데 손 흔들며 헤어지지만 너른 바다에서는 다시 하나가 돼 만날 걸.   나는 며칠만에 이런 낱귀절 몇을 생각하고 더 다듬어 보면 대작이 되리라는 기대를 해봤다.   그렇지만 확인을 해야 한다. 정말 압록강 두만강이 천지에서 흐르는가? 그 때 어느 교과서에 그렇게 배운 듯하고 학교 선생님도 그렇게 가르쳤다. 그러나 확인을 할 필요는 있다.   그런데 온갖 서적을 다 뒤진 결과 천지에서 흐르는 것은 엉뚱하게도 송화강(松花江) 하나뿐이었다. 백두산에 오른 등정기(登頂記)를 읽어봐도 역시 그러했다.   실망은 컸지만 다행이었다. 이것을 잘못 알고 이 작품을 발표했더라면 나중에 얼마나 웃음거리가 됐을까?   결국 이렇게 해서 이 엉터리 작품은 폐기가 되고 말았다. 비가 돼 내리면서 내려다봤네. 하나의 반도가 젖고 있네. 산맥이 젖고 있네. 총부리가 젖네. 나의 한 끝은 벌써 강을 이루며 긴 구비를 돌아 바다로 흐르고 있네. 저쪽 영상강으로도 흐르고 있네. 도롱이를 쓴 농부들이 논둑을 걷고 있네. 틀림없는 같은 나라 사람이 걷고 있네. 시들었던 땅이 푸르게 일어서네. 백두산 천지가, 작은 그릇이 나를 받아 모으네. 송화강으로 나를 쏟아 보내고 있네. 저쪽에서도 한라산이 백록담이란 그릇을 들고 방울방울 나를 받아 모으네.   이 시는 동시라는 이름으로 지난 여름 『소년』에 발표한 작품이다. 제목은 였다.   이 시의 내용에서 는 구름이다. 구름인 가 비가 돼 내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시의 표현으로 봐서는 구름이 백두산 한라산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높이에 떠 있다. 이것은 인공위성 정도의 높이에 있어야 한다. 도대체 그런 소나기 구름이 있을 수 있는가? 사실은 한 고장을 내려다볼 만한 높이의 구름도 잘 있을 것 같지 않다.   시는 허풍이며 거짓말일 수 있다. 그러나 이치에 맞는 거짓말이어야 한다. 그런 점으로 봐서 이 시는 단단히 얻어맞아야 하고 그 책임은 지은이인 필자가 져야 한다.   그러나 이런 모순을 알면서도 이 엉터리 글을 발표한 것은 이 시를 낳기까지의 수고와 이 시에 담긴 나의 염원 같은 것이 아까워서였던 것이다. (1978. 10. 『아동문학평론』 제10호)   동시 창작법 ③ 철저히 의인(擬人)을 하라 신 현 득   ―연필이 말을 한다   거짓말이다.   ―이슬비가 속삭인다   거짓말이다.   ―나무가 생각한다   거짓말이다.   연필이 말을 한다든가, 이슬비가 속삭인다든가, 나무가 생각한다든가, 모두가 거짓말이다. 그러나 시의 세계에서는 그것이 사실이다.   「그것이 사실이다. 그것이 사실이다.」   이런 생각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렇게 느껴지기를 바라다 보면 그렇게 느끼지 않으려 해도 느껴지는 것이다. 이 때 온 세상 자연과 자연스런 대화가 될 때, 참 편안하게 앉아서 쉽게 시를 쓸 수가 있다. 이렇게 생각을 하는 것이 하나의 습관이 되고 생활이 되도록 노력해 보는 것이 좋다.   ―사람만이 생각한다.   ―사람만이 말을 한다.   이것은 사람과 사물을 구별하는 생각이다. 나와 남을 구별하는 생각인 동시에 차별하는 생각이다.   ―사람이니까 당연히 저런 나무보다는 낫다. 훌륭하다.    ―그러니 저까짓 나뭇가지 하나쯤 꺾으면 어떠랴.   이런 생각이 바로 나와 남을 구별하는 생각이요 차별하는 생각이다. 이런 생각이 발전하면「나만 제일이다」하는 자만에 빠지게 된다. 이웃과 남을 생각할 줄 모르는 사람, 나만 편하고 배 부르고 잘 견디면 그만이라는 생각도 이런 생각이 발전한 것이다.   그러나 시를 쓰는 마음은 그러해서는 안 된다.   ―남도 나와 똑같으리라.   이것이 시를 낳게 하는 바탕이 되는 것이다.   ―남도 나와 같이 배고프리라. 남도 나와 같이 괴롭고 아프리라.   이런 생각을 하고 보면 세상은 모두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나와 같이 생각한다. 나와 같이 말을 하리라. 나와 같이 그도 나를 사랑하리라.   이런 것은 모든 것을 하나로 보는 생각이다. 모든 것은 나와 똑같다. 모든 것은 나와 평등하다는 생각이다.   ―연필이 말을 한다.   이 생각은 바로 연필이 나와 똑같다는 생각에서 시작된 것이다. 연필이 나와 같지 않다고 생각할 때 연필이 말을 한다는 건 거짓으로 들리게 된다.   ―이슬비가 속삭인다.   이런 생각도 그렇다. 이슬비가 나와 똑같은 생각과 목소리를 갖고 있다는 생각에서 시작된 것이다. 모든 걸 하나로 본 것이다.   ―나무가 생각한다.   역시 그렇다. 나무와 나를 하나로 생각지 않고는 이런 생각이 나지 않는다.   「모든 걸 하나로 보는 눈」   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자. 여기 한 그루의 나무가 있다.    하나로 생각하자. 나무에는 가지가 있다. 그것은 바로 나무의 팔이다.   하나로 생각하자. 나무의 가지에는 꽃이 피어 있다. 그것은 나무의 팔에 달린 꽃이다. 꽃은 자라서 열매가 된다. 그것은 나무의 팔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래서 시인들은 나무가 과일을 들고 있다고 표현한다.   ―나무는 들고 있네     조롱조롱 열린 과일   그렇게 보고 있으니 재미있다.   ―나무는 그 많은 과일을 들고, 낑낑거리네.   이렇게 생각해 봐도 재미있다.   어쨌든 가지가 나무의 팔인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재미있는 일이다.   우리가 손에 과일을 들고 있다면 어떻게 할까. 나무는 과일을 많이 익혀서 들었을 때 어떻게 할까?   『얘, 이거 하나 먹어 봐.』   이렇게 말하면서 슬쩍 동무의 손에 과일 하나쯤을 던져 줄 것이다. 나무도 그럴까? 그렇고 말고. 여기 감나무 한 그루가 있다. 가을에 빨간 감을 많이 익혔다. 여기 또 사과나무가 있다. 가지에 사과가 잘 익은 사과가 달려 있다. 어떻게 할까?   돌각담 너머로   감나무 긴 팔이   감 한 개 들고   아가 손에 와 닿는다.   ―이거 내가 익힌 거야   맛 좀 봐.   탱자 울타리 밖으로   사과나무도   아기 손에   사과 한 개 놓아주면서   ―이거 내가 익힌 거야   맛 좀 봐 줘.   이건「가을」이라는 제목을 가진 시이다. 재미있다.   가을이다. 가을에 감나무도 사과나무도 열매를 익혔다. 익혀서 그냥 떨어뜨리고 마는 게 아니다.   「누구에게 줄까? 같은 값이면 예쁘고 착한 아이에게 더 많이 줘야지.」   이런 생각에서 과일나무들은 과일을 들고 있는 것이다. 참 재미있고 평화스러운 광경이다.     대추나무   돌각담 위에   가지를 얹고   마당 끝에 서서   대추나무가   오롱조롱   가지에   대추를 달고   꼬마들이 모이기를   기다립니다.   바람이 가지를   흔들어 주면   마당 끝에 서서   대추나무가   빨간 대추   하나 둘   던져 주면서   어서어서 주워 가라   손짓합니다.   이 글은「대추나무」라는 동요다. 여기서도 나무의 착한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나뭇가지는 바람에 흔들린다. 소리를 내면서 흔들린다. 그런데 정말 흔들리는 걸까? 모든 건 나와 같은 생각이라고만 생각하자. 바람이 분다고 흔들려본 일이 있는가. 그렇지 않았을 테지. 그러니까 그건 대번에 알 수 있다.   ―바람이 불어서 흔들리는 게 아니라 자기가 자기 몸을 흔드는 거로군.   그런데 자기 몸을 자기가 흔들 때는 무슨 뜻이 있어서일 것이다.   ―틀림없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그러나 보다.   시인이면 누구나 나무가 흔드는 모습을 보고 느끼는 것이다.   재미있다. 다음의 시를 읽으면서 다시 생각하자.     몸짓   말로는   다하지 못하기 때문이어요   몸짓을 하는 것은.   하고 싶은 말이   얼마나 많아   그 많은 잎을 흔들어 댈까요?   나무는   가지마다 꽃을 단 날은   얼마나 자랑이 하고 싶을까요?   몸이라도 흔들어   보여야지요.   나무를 관찰하는 김에 다시 나무의 가지를 바라보자. 나뭇가지에는 새가 집을 짓는다. 새둥지 안에는 새새끼가 자란다. 이 때 나무가 흔들리는 건 바로 새새끼를 잠들게 하기 위한 것이라는 걸 시인은 쉽게 알아낸다.   엄마 까치   아빠 까치   일터에 가고   둥지 속 새끼 까치   누가 봐 주나?   나무가   흔들흔들   흔들어 주어   둥지 속 새끼 까치   낮잠 들었다.   이 글은「까치 둥지」라는 동요다. 나무가 흔들리는 것은 까치 새끼를 잠재우기 위해서라는 뜻에서 씌어진 글이다.   이와 같이 모든 사물을 보거든 우선 이런 생각을 하자.   ―내가 이 나무라면?   ―내가 이 꽃이라면?   ―내가 이 방아깨비라면?   ―내가 이 돌멩이라면?   이렇게 해서 습관이 되면 무엇을 보든지 우선 이런 방법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이 때 꽃송이가 돼 나뭇가지에 열려보는 것이다. 눈을 감고 아주 꽃송이로 나무에 열렸을 때의 광경을 생각해 보는 것이다.   꽃송이가 되었다면 어떻게 될까?   ―내가 예쁘다고 모두 쳐다보는군.   ―벌과 나비가 나를 향해 모여드는군.   벌써 시가 되었다.     꽃송이   지나는 사람마다   쳐다보네.   벌과 나비가   모여드는군.   다음은 방아개비가 되었을 때를 생각해 보자. 아주 작은 방아개비가 된 것이다.   돌멩이가 되었을 때의 광경을 생각해 보자. 아주 돌멩이가 되었을 때의 광경을 그대로 생각하는 것이다.     불국사의 층계다리   누구의 발이나   한 번은   불국사 올라가는   층계 위에 놓인다.   층계는   여러 개 돌이 누워   눈을 감고서도   제 위에   그 여럿 발자국이 생기는 걸   느낀다.   발자국 위에 놓이는 신발   신발 속에 담긴   사랑의 무게.   옛날의 왕에서   옷차림과 말씨는 변했어도   그만한 사람의   무게는 같다.   발자국 위에   발자국이 놓여 지워지듯   옛 기억은   오늘의 일로 희미해지지만   온 신라를 살다 간 사람의   몸 무게를   제 안에 새겨 둔 층계는   그 하고 싶은 이야기를   돌이기 때문에 참는다.   이 시는 불국사 자하문을 올라가는 층층대인 청운교, 백운교를 놓고 지은 시이다. 물론 자기가 층층대가 되었다는 가정에서 씌어진 글이다. 층층대의 입장이 되어 본 것이다. 누구나 불국사의 자하문 올라가는 층층대가 되었다는 생각을 해 보면 이런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에 대해 지은이는 이렇게 작품을 지은 동기를 말하고 있다.      (1979년 봄『아동문학평론』제11호)   동시 창작법 ④ 자연의 음성을 번역해서 들어야 신 현 득   자연의 어느 것도 생각을 갖고 있다고 했다.   자연의 어느 것도 음성(언어)을 갖고 있다고 했다.   이것은 정말이다.   그래서 냇물이 속삭인다고 한다. 그래서 산들바람이 속삭인다는 말을 한다. 이슬비가 속삭인다고도 한다.   이들은 모두 제대로의 음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사람의 말로 속삭여 주지 않는 것으로 들린다. 냇물은 냇물의 소리만 낸다. 산들바람은 산들바람의 소리만 낸다. 이슬비는 이슬비의 음성으로만 말을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말을 알아 듣지 못한다.   그래도 시인은 그 음성을 알아 듣는다. 이것이 시인의 특기다. 아프리카 사람의 말은 우리말로 번역해야 알아 듣는 것처럼 냇물의 말이나 산들바람의 말이나 이슬비의 말이나 모두 우리들 사람의 말로 번역을 해야 한다. 번역을 하는 것이 시인의 기술이다. 사물의 음성을 번역하는 것은 시인만이 할 수가 있다.   번역을 잘해야 한다.   엉터리 번역은 번역을 않는 것만 같지 못하다.   그럼 냇물의 소리를 들어보자.   ―졸졸졸 졸졸졸, 졸졸졸…….   아무리 들어도 졸졸졸 뿐이다. 그런데 이것을 번역해서 들어야 한다.   ―졸졸졸……   그 물 소리 속에는「달이 밝구나」하는 음성이 있다. 그 물소리 속에「오늘은 물레방아를 돌렸지. 참 재미있던데」하는 말이 들어 있다.「자, 우리 모두 모여서 바다로 가는 거야」하는 뜻이 들어 있다.   산들바람 소리 속에도 그렇다. 번역을 잘해야 한다.   ―귀를 간지려 줄까?   ―머리칼을 날려 줄까?   ―나뭇잎을 흔들어 보자.   ―잔디를 쓰다듬어 보자.   ―…….   이렇게 무수한 언어가 있다. 이 산들바람의 음성을 잘 번역해 들어야 한다.   이슬비의 음성도 그런 것이다.   ―박꽃에 사뿐이 앉을까?   ―아니야, 연못물에 앉아 동그라미 그려 보는 게 재미있어.   ―…….   이런 무수한 음성이다.   이런 음성을 알아 듣지 못하는 사람이야 참 바보같이만 느껴진다. 그런데 시인만이 이 말은 알아듣는다. 그러니, 시인만이 바보가 아니다.   그러고 보니 시란 자연의 음성을 번역해 듣는 그것이다.   자연의 음성을 번역해 듣는 그것.   그렇다. 시는 바로 그런 것이다.   나는 나는 갈 테야.   연못으로 갈 테야.   동그라미 그리러   연못으로 갈 테야.   나는 나는 갈 테야.   꽃밭으로 갈 테야.   꽃봉오리 만지러   꽃밭으로 갈 테야.   강소천은 이슬비의 음성을 알아 듣고 이 동요를 지었다. 그래서 처음 이 동요의 제목을 이라 했다.   이와 같이 냇물이나 산들바람이나 이슬비는 소리를 스스로 내기 때문에 번역이 쉽다. 사람의 목소리로 번역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도「물소리가 나는구나」「바람 소리가 나는구나」「이슬비 내리는 소리가 나네」정도는 느낄 수 있다.   그런데 말 없는 돌멩이나 마른 나무 막대기 같은 것, 빈 병 같은 것, 축구공 같은 것도 음성이 있을까?   음성이 있다. 그들 나름대로 음성이 있다. 그들 나름의 말이 있다.   그렇지 않은가 그런가 실험을 해 보자. 돌멩이의 언어를 들어보기로 하자.   냇가에 가서 두 개의 자갈돌을 마주 들고 두드려 보자.   ―딱 딱!   분명히 말을 한다. 돌에게도 언어가 있다. 제대로의 음성이 있는 것이다.   ―딱 딱…….   그 말이 무슨 뜻인가를 알아야 한다. 번역을 해서 우리들 말로 알아들어야 하는 것이다.   다시 한 번 돌을 마주 두드려 보자.   ―딱 딱!   (나는 돌멩이다.)   ―딱 딱 딱!   (꼬마들과 공기놀이라도 하고 싶어.)   ―딱 딱 딱 딱!   (냇물에 뛰어들어 수제비라도 뜨고 싶구나.)   ―딱딱 딱딱!   (깊은 물에 퐁당 빠지고 싶어.)   돌멩이에게 계속 말을 시켜 보자. 그 말을 알아들으려고 애를 써 보자. 그 목소리를 잘 알아들어야 한다. 그러고 보면 온갖 부딪히는 소리를 다 알아듣게 된다. 까마귀 까치가 우짖는 소리쯤이야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물소리나 바람소리나 비소리나 돌멩이가 부딪히는 소리처럼 어떤 음성으로든지 소리를 내어 주어야 그 말을 알아듣게 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정말 남의 뜻을 잘 살피는 사람은 사람의 눈빛만 보고도 그 사람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를 안다. 표정만 보고도 그 사람이 하고 싶어 하는 말을 알아낸다.   마찬가지다.   정말 시인은 사물이 놓여 있는 모습만 보고도 그 음성을 알아듣는다.   몽당연필을 보면 몽당연필의 하소연이 들린다.   지우개 조각을 보고 지우개 조각의 하소연을 듣는다.   나팔꽃을 보고 그 꽃 속에서 쏟아지는 노래를 듣는다.     빈 화분·빈 병   화분이 빈 그릇으로   교실 구석에 놓여 있게 되자   『국화 한 포기만 심어 주셔요.』   사정을 한다.   국화는 선생님 손으로 심겨진다.   국화가 화분 속에 들어 앉자   물주개가 가랑비를 뿌려 준다.   병이 빈 병으로 굴러 다니며   『내 안에 물이라도 채워 줘.』한다.   물을 채워 주니   『꽃 한 포기만 꽂아 다오.』한다.   꽃은 우리 손으로 꽂혀진다.   화분과 꽃병은   양지바른 창 밑에 놓여   마주보고 웃는다.   이 시에 대하여 지은이는 시를 지을 때까지의 일을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어느 날이었어요. 교실의 대청소를 하고 있었지요.   교실 뒤의 급식대를 들어내고 교실 바닥을 닦을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겨울에 숨겨둔 화분이 있었어요. 정말 지난 초겨울에 담고 있던 꽃부리를 비우고 여태까지 교실 구석에 박혀 있었지요.   화분은 참 심심하고 답답하게 겨울을 난 거예요. 누구도 화분의 마음을 알아주지는 못했을 거여요.   화분은 커다랗게 입을 벌리고 있었어요. 그러면서 화분은 무엇인가 나에게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어요.   그 커다랗게 벌린 입의 모습에서 나는 대번에 그걸 알아차렸지요.   참 그래요.   「화분이 얼마나 말을 하고 싶을까?」   내 생각은 틀림이 없었지요. 곧 그 화분의 커다란 입에서 말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었어요.   ―무엇이나 심어 줘. 국화 한 포기라도 심어 줘. 제발 그렇게 해 줘.   화분의 하소연이었어요. 참 가여운 화분이었어요.   나는 곧 그 화분을 들고 꽃밭에 나갔지요. 국화 모 한 포기를 떠서 그 화분에 심어 주었어요. 보드라운 흙에 부엽토를 섞어 넣었지요. 그리고   ―잘 자라라.   속으로 말을 하면서 국화의 뿌리를 다져 줬지요. 그러자 화분이 그냥 있는 게 아니었어요.   ―고마워요, 선생님.   나는 그 화분으로부터 분명히 이런 소리를 들었어요. 분명히 그런 소리가 났던 거지요.   ―그것 참 희한한 일이다.   여러분은 그런 생각을 할 테지요. 그렇지만 나의 귀에는 그 말이 틀림없이 들렸던 것이었어요.   나는 국화가 심겨진 화분에 물을 뿌려 주었어요. 가랑비를 뿌려 주었지요. 화분이나 화분에 심겨진 국화 모는 참 기쁜 모습을 하는 것이었어요.   화분을 교실의 창가에 갖다 두고 다시 청소를 계속 했지요.   그런데 이번에는 교실 구석에 빈 유리병 하나가 굴러 다니는 것이었어요.   나는 생각했지요.   「이 병은 또 얼마나 심심할까?」   그런데 정말 빈 병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이었어요.   ―심심하고 말고요. 내 안에 물이라도 채워 주십시오. 제발 제발 제발…….   이것은 빈 유리병이 사정을 하는 목소리였지요.   「가엾다.」   나는 이런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곧 이 유리병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했습니다. 아이들을 시켜 수도에 가서 물을 채워 오라고 했지요.   그런데 물을 채워 넣고 보니 병은 다시 부탁하는 것이었습니다.   ―고마워요, 선생님. 이왕 수고하시는 김에 나에게 꽃 한 송이 만 꽂아 주셔요.   나는 참 그렇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빈 병에 물을 채워 넣었으니 꽃을 꽂아야지요.   꽃병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유리병은 반드시 사이다나 쥬우스만 담아야 하는 것이 아니어요. 꽃을 꽂으면 꽃병이 되는 것입니다.   꽃은 곧 아이들 손으로 꽂혀졌어요.   나는 화분이 놓인 양지바른 창가에 병을 갖다 놓았지요. 꽃병과 화분, 꽃병의 꽃과 화분의 국화 모가 서로 바라보고 웃는 것이었어요. 그 웃음 소리도 분명히 들리는 것이었지요.   ―히히히히…….   나는 분명히 그 웃음 소리를 들었어요.   이 이야기는 사실일 것이다. 이런 마음으로 사물을 바라보면 자연에서 호소해 오는 많고 많은 소리가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숲에서도 그렇다.   나무와 나무끼리는 저들끼리의 말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 소리를 못 들으면 시인이 아니다.   나무들 끼리는 서로가 남이 아니다.   도토리 열매를 여는 떡갈나무를 보기로 들자.   떡갈나무 그 옆에 있는 나무는 남이 아니다. 서로 어버이와 자식의 관계에 있는 나무가 있다. 할아버지와 손주가 되는 나무도 있다. 이들은 같은 골짜기에 뿌리를 박고 살고 있다.   이렇게 가까이에 살면서 서로 바라보면서 모른 척할까?   그렇지 않다.   ―어머니 어머니!   ―그래 그래 너는 내 씨앗에서 태어난 나무로구나.   ―그럼요 어머니.   산에 가 보면 분명히 이런 말소리가 들린다. 들으려고 노력만 하면 누구의 귀에도 들리는 목소리다.   ―우리는 형제다. 같은 나무 같은 가지에서 정답게 씨앗으로 익었댔지.   ―그럼 그럼 우린 형제야.   이런 말도 들려 온다. 사람이었다면 서로 손을 잡아보고 끌어안기도 할 것이다. 이런 나무의 심정을 아는 이가 시인이다.     나무끼리   산에 가면   나무끼리   주고 받는 말이 들리네.   ―잎을      내 놔 봐라.   ―꽃을     피워 보자.   잎이 같을 때   나무끼리 반갑네.   꽃이 같을 때   더욱 반갑네.   나무는   같은 나무 아니면   꽃가루를 나누지 않네.   같은 나무끼리는   멀리서도   잎을 흔들어 서로 반기네.   한 날 한 모양의 열매를 다네.   ―너는 형제다.     너는 내 형제.   추운 겨울을 눈 속에 떨면서도   같은 나무는   그 나무끼리   서로 생각하네.   목이 메이네.   이 시는 산에 가서 나무의 소리를 듣고 그것을 시로 옮긴 것이다.     첨성대   눈을 감으면   들리는 듯하네.이 돌을 다듬을 때   울리던 정 소리.   이 돌을 쌓을 때   메기던 노래들이.   신라의 옷을 입은   그 때 아이들이둘러서서 구경하고 있었겠지.   이 돌을 다듬고 쌓는 것을.   이 돌이 쌓여지던 날   어여쁜 그 때의 여왕님이   금관을 쓰고   비단 수레를 타고 와   첨으로 불러 줬겠지   첨성대란 이름을.   그 날부터 점잖은 학자님들이   여기서 밤마다 별을 바라보고   저 많은 별의 이름을 지었겠지.   저 별을 바라보고   별자리를 그렸겠지.   그리고   그 넓은 우주 안의   작은 자기를 생각했겠지.   거기 비하면   이 서울도   신라도   얼마나 작은 겔까 생각했겠지.   이 시는 지은이가 첨성대를 바라보고 지난 날을 미루어 생각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으나 사실 첨성대에게 물어보아 첨성대가 대답하는 것을 적은 것이다.   경주에 가는 길이 있으면 누구든지 첨성대 앞에 서서 조용히 눈을 감으면 이런 소리가 들린다.   ―나는 첨성대이다.   ―내 몸뚱이의 돌은 정으로 다듬었지. 옛날 신라의 석수장이들이 말이야.   ―그것을 쌓으면서 메기던 노래들이 아직도 들려.   ―내 이름은 선덕여왕이 지어 주셨지. 그 날 비단 수레를 타고 오셔 처음「첨성대다!」하고 내 이름을 부르셨어.   이렇게 첨성대가 시인의 귀에 일러 주는 그것을 그대로 옮겨 쓴 것이 이 작품이다. (1979년 여름『아동문학평론』제12호)   동시 창작법 ⑤ 손은 생각지 않아도 된다 신 현 득   사람의 손이 작용을 해 주어야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세상에는 너무도 많다.   수레는 밀어주어야 움직인다. 사람의 손이 미는 것이다. 더구나 자동차는 운전기사의 손에 의해 움직인다.   양말은 손이 있어야 신을 수 있다. 양말 스스로 발에 와 신겨지는 법은 잘 있지 않다.   청소할 때의 빗자루 역시 그렇다. 손이 들어야 비로소 방의 먼지를 쓸어낸다. 의사의 주사기도 그렇다. 의사의 손이 있어야 주사약을 혈관에 넣어 사람을 치료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팽이도 그렇다. 팽이채를 쥔 손이 있어야 팽이가 맴을 돌 수 있다.   바느질할 때의 바늘도 그렇다.    밥 먹을 때의 숟가락도 그렇다.   가위도 그렇다. 송곳도 그렇고 책상의 빼닫이도 그렇다. 그렇게 생각해 보니 모두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서 손 이상 가는 보배가 없다고 한다.   인류는 손이 있음으로써 지구를 지배했다는 말도 있다.    ―그런데 이 때 손을 생각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현재 세상의 움직임에서 세상을 생각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렇게 되면 자동차는 이름 그대로 스스로 움직이는 수레 즉 「자동차」가 된다. 운전기사의 손을 생각지 않기 때문이다.    양말은 스스로 발에 와 신겨지는 것이 된다. 빗자루는 혼자 걸어다니게 된다. 팽이는 혼자서 맴을 돌게 된다.   바늘은 혼자서 바느질을 하게 된다. 숟가락은 혼자서 밥을 뜨게 되고 송곳은 혼자서 구멍을 뚫게 되고 빼닫이는 저절로 열리고 저절로 닫긴다.   그것뿐인가? 컵은 사람에게 물을 마셔주고 귀비개 혼자서 귀를 후벼주고 호미는 혼자서 밭을 맨다.   만일 이런 세상이 있다고 가정한다면 재미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시를 쓸 때 특히 동시를 쓸 때 이 사람의 손을 어떻게 할 것이냐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물건은 사람의 손에 의해 움직여진다.   ―그런데 그 손의 동작을 꼭 그대로 표현하는가?   가령 여기 감나무가 있다고 하자. 감나무는 가을에 많은 감을 열었다. 빨갛고 탐스러운 감이다.   감을 따고 싶다. 그런데 감이 스스로 움직여 줄 리 없다.   「감아 내려오너라. 가지에서 내려오너라.」   이렇게 말해봐야 감이 나무에서 내려오지 않는다. 제 스스로 중력을 감당할 수 없을 때까지는 가지에 매달려 있다. 사람이 말한다 해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할 수 없이 사람이 나무에 올라가서 감을 딴다. 감을 따는 「감집게」라는 것이 있다. 긴 대나무장대 끝에 작은 그물을 달아 감이 떨어져 깨어지는 걸 막는다. 그래 이 감집게로 감을 하나씩 담아 가지를 비틀어 꺾어 내린다.   감을 따는 것은 이렇게 복잡하다. 이 과정을 시로 표현해 보자.       나무에 올라가        빨간 감을 따        광주리에 담고        ……………….   이런 시의 구절이 된다.   그런데 이 때 손을 생각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사람의 손을 생각지 않고 장대 끝에 달린 감집게도 생각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감은 제 스스로 나무에서 내려와 광주리에 담긴 것이 된다.   이 때의 시구절을 생각해 보자.       빨간 감이        나무에서 내려와        광주리에 쌓이고….   아무래도 감이 제 스스로 내려왔다는 표현에 맘이 끌린다.   이 경우에서는 손을 생각하지 않는 편이 더 낫다는 말이 된다.       소 등을 타고 오든지       지게 위에 놓여 오든지       시월에        대문을 열어놓고 있으면       봄에 나갔던 씨앗이        몇 백 배의 열매를 거느리고       들어와 이엉을 쓰고 쌓이고       산에서 여문 도토리도        멍석에 널리고       가을 씨앗이 대신 나가       이랑에 묻히고 나면       텅 비어버린 들판.   10월을 노래한 시의 구절이다. 10월이 마당이다. 추수를 해들이는 광경이다. 어느 것이나 사람의 손에 의한 것이다. 실어 들이는 것도 져 들이는 것도 그렇다. 가을 씨앗을 묻는 것도 그렇다.   그러나 여기서 곡식이 소 등이나 기게 위에 놓여 스스로 들어와 마당에 쌓이는 것처럼 표현하고 보니 가을 마당이 더 실감되는 것 같다.   ―연필이   공책 위를 걷는다.   이런 시의 구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의 생각을 할 수 있다. 논리만을 따지는 사람이 있다면   『연필이 어떻게 걸어다녀? 사람의 손이 잡아주는 거지.』   이렇게 말을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표현은 엉터리요 억지라고 우길 수도 있다.   ―지우개가   글씨를 지우다.   이런 시의 구절에서도 같은 이야기가 된다.   『지우개가 어떻게 글씨를 지워? 사람이 손으로 지우개를 잡아주는 거지.』   틀림없는 말이다. 그러나 시는 과학이나 논리가 아닐 수도 있다. 과학이나 논리를 초월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산 것, 산 것이 아닌 것, 숨쉬는 것, 숨 쉬지 않는 것, 생각을 가진 것, 생각을 가지지 않는 것, 말을 하는 것, 말하지 않는 것을 구별해 생각지 않는다.   또한 모두가 생명있는 것이며, 숨쉬는 것이며, 같이 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런 입장에서 본다면 연필이 공책 위를 걷기도 하는 것이다. 지우개가 스스로 글씨를 지우기도 하는 것이다.   시인은 이런 입장에 눈의 위치를 두어야 한다.       학교는 제 시간에       품을 연다.       교문이 문짝 두 개를        열어젖혔다.       학교 이름을       커다랗게 가슴에 달고       교문은 아침마다       교장 선생님이 된 기분이다.       교장 선생님의 눈으로        들어오는 아이들의        마음 속을 읽는다.       첫 번째 교문을 들어서는 아이       완장을 팔에 감은       선도 반장.       그러다가 학교 앞에       줄이 이어진다.       집에서 밭갈이를       거들던 아이       그 아이는        손마디가 텄다.       저녁 썰물에       조개를 캐던 아이       그 아이 손에는        개흙이 묻었다.       그러나 더러는       숙제를 잊은 아이       그렇지만 그 아이도       들여보내고       집은 가까워도        정해 논 지각생       그렇지만        그 아이도 들여보내고       학교의 품은 크다.       참새가 우짖고       아침해가        산 위에 한 뼘.       그래도 오는 아이가 없나?       살피며        교문은        두 개 문짝을 닫는다.   이야기가 담긴 이런 시를 읽고도   『뭐가 이래? 교문이 문짝을 열어젖혔다니?』   이런 말을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이 작품도 사람을 손을 생각지 않았기 때문에 시가 되어 있다. 교문이 스스로 열리는 것으로 표현했기 때문에 훨씬 더 시다운 표현이 되었다는 결론이다. 시를 이해하는 어린이라면 여기서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아침에 교실에서       철수가 책보를 푼다.       같이 쌓여 온       풀 냄새가 한 보자기.       영희가 보자기를 풀었다.        들에서 같이 쌓여온 새 소리       ―찌찌꼴 찌찌꼴 찌찌꼬르르르…       교실이 새소리로 찬다.       드르륵―       문을 열고 꽃다발이 들어온다.       학교 길에서 꺾어 모은 꽃다발.       하품만 하고 있다가       꽃병이 입을 벌려 받는다.       (하략)   5월의 교실을 노래한 이 시에서 「문을 열고 꽃다발이 들어온다」 「꽃병이 입을 벌려 받는다」의 두 구절을 두고 생각해도 그렇다.   전혀 사람의 손을 생각지 않는 데서 실감을 더 느끼게 한다.       골목에 아침에       대문이 열리며       아이 하나를 내보낸다.       저 집서도 대문이 열리며       아이를 내보낸다.       책가방을 맨 아이.       ―학교 가자.       ―안녕!       아이들은 골목을 나간다.       골목이 아이들을 내보낸다.       저 골목서도       아이들을 내보낸다.       책가방을 맨 아이들       참새 짹짹        우짖는 아침에       학교를 향하는       길다란 행렬.   아침에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있는 골목의 광경을 이렇게 노래했다. 손을 생각지 않은 것이다.   손을 생각지 않을 때 대문이 아이를 내보내는 것이 된다. 작은 골목은 큰 골목으로 아이를 내보내는 것이 된다.   이렇게 생각하고 보면 세상은 하나의 요술나라 같기도 하다.    신은 사람의 발에 신겨 사람을 따라 다니게 된다. 신이 사람의 몸뚱이를 담고 다니는 것이다.   괭이는 제 혼자 일을 하게 된다. 사람의 손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괭이가 제 스스로 흙을 파고 논밭을 가꾸게 된다.   크레용은 스스로 그림을 그리고 피아노는 스스로 곡을 연주하게 된다. 세상의 모든 사실에서 손이라는 관념을 지워버리고 세상을 바라보자.   그러나 이런 생각으로 세상을 관찰하는 것은 시를 짓는 한 방법일 뿐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이렇게 생각을 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소재나 표현하는 각도에서 따라 이런 표현을 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손을 생각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손을 생각하지 말아야 된다」는 말과는 다르다.   즉 사람의 손이 작용하는 소재가 아닐 때는 이런 입장의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 된다.       거울 속에        우리 한 식구       정답게 살고 있어요.       새벽이면       거울 속에 불이 켜지고       엄마가 아침 쌀을 갖고 나가고       밥상에 온 식구가 둘러 앉아요.       거울 속에서        문이 열리고        아빠가 장난감 사가지고       들어오셔요.       거울 속을 들여다보면       거울에서 내다보는       내가 보여요.       거울 속에 내다보며       이쪽을 거울 속이라 생각겠지요.       우리를        그림자라 생각겠지요.   이 시는 거울 속의 세상을 두고 생각한 내용이다. 즉 이 소재에는 사람의 손이 작용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손이 있고  없고는 생각할 필요조차 없는 것이다. 1979. 겨울.  13호에서     동시 창작법 ⑥ 모든 것을 하나로만 본다 신 현 득     시를 쓰는데 있어서 비인격물을 인격화한다는 것은 다시 말해서 세상을 하나로 보는 작업이다. 나와 남이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서 출발이 된 것이다.   비인격물의 인격화뿐만 아니라 인격체인 사람을 딴 것에 비유하는 것도 같은 작업이 된다.   내 한 몸뚱이가 사람이지만 나무일 수도 있고 돌일 수도 있고 흐르는 물일 수도 있고 햇볕일 수도 있다.   그런가 하면 나무가 곧 돌일 수도 있고 돌이 나무일 수도 그것이 곧 내 몸일 수도 있다.   이것이 나와 남을 하나로 보는 작업이다.   비유라는 것이 또한 그렇다. ㄱ이 ㄴ에 비유된다는 것은 ㄱ과 ㄴ에서 같은 속성을 찾는 것이요 ㄱ과 ㄴ을 동일화시키는 작업일 수 있다.   역설이라는 것 역시 그렇다. ㄱ을 지칭하기 위해 그와 반대가 되는 ㄴ을 가르치는 것은 ㄱ과 ㄴ을 같은 입장에서 하나로 본다는 말이 된다. 그래서 매우 사랑스럽다는 표현을 밉다고 한다. 낮은 것을 오히려 높다고 한다. 흐르는 것을 멈추어 있다고 한다.   이 때 사랑과 미움은 같은 것이며 높은 것과 낮은 것은 같은 것이며 흐르는 것과 멈춤은 같은 것이다. 따라서 원수와 친구가 따로 없고 나쁜 것 좋은 것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이런 눈으로 세상을 보면 세상은 들어가고 나감이 없이 쪽 골라 보인다. 모두가 평등해 보인다. 이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보살의 눈이다.   이런 눈으로 죽음과 삶을 하나로 보자. 교장실의 시계 속 아득한 시간을 감은 태엽이 퇴근 시간을 치는 시간에 상당히 먼 옛날일 텐데 쉽게 와서 페스탈로찌 선생이 축하의 손을 잡았어요. ―중략― 벙글거리는 아이들의 얼굴을 거느리고 교문을 나오셨을 때 기다리던 안데르센 할아버지가 불쑥 손을 잡았어요.   이 시는 유여촌 선생의 회갑을 축하하는 시의 몇 구절이다. 유 선생은 교단에서 회갑을 맞으셨다. 동화 작가다. 그러므로 페스탈로찌나 안데르센과 관계를 가진다. 그런데 페스탈로찌와 안데르센은 생존자가 아니다. 그러나 생과 사를 둘로 보지 않는다면 한자리에서 서로 만나 손을 잡고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는 것이다. 생사를 하나로 보았을 때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이것은 곧 과거·현재·미래의 삼세를 꿰뚫어 보는 작업이기도 하다. 다시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고향 마을로 드는 오솔길에서 발가숭이 적 나를 만났네. 내 옛날을 만났네. 발가숭이 적 나와 손을 잡았네. 나와 같이 크던 산짐승 그들은 층바위에서 그대로 메아리를 부르며 살고 있었네.   고향에 돌아와서 옛일을 회상하는 장면을 노래했다.   "아, 옛날이 그립구나!"   이렇게 회고의 탄식을 하는 일은 너무도 바보스런 것이다. 10년 전, 20년 전, 30·40년 전의 일을 바로 오늘 이 시간 안에 불러들이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과거와 현재는 바로 하나다. 그 때 그 옛날의 나와도 만날 수 있다.   이런 눈으로 먼 데 가까운 데를 하나로 보고자 아주 거리 감각을 없애는 것이 좋다. 선생님이 걷는 길은 교실과 교실 사이 쪽지 한 장을 들고 산을 넘는다. 한 교실 두고 온 아이들이 되돌아보며 울며 울며 걷는 걸음도 새 소리 솔바람이 길을 이끌어 쉽게 쉽게 발이 놓인다. ―중략― 산꿩이 우는 골을 내려다보니 학교 두 교실이 가지 끝에 와 보이고 산토끼들이 모이라는 듯 ―땡 땡 땡. 학교 종이 울린다.   발령장을 들고 먼 산골로 전근가는 교사의 심정을 노래했다. 여기서 교사가 걷는 길을 교실과 교실 사이라 했다. 이것은 전에까지 근무했던 교실과 이동해서 근무해야 할 교실의 사이다. 사실 교실과 교실 사이인 것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먼 것 가까운 것을 하나로 보지 않았을 때는 이 사실을 발견할 수가 없다. 엄마는 가지 많은 나무 오빠의 일선 고지서 소총의 무게 절반을 오게 하여 가지에 단다.   어머니를 하나의 나무에 비유한 이 시에서 소총의 무게 절반을 가지에 단다는 구절을 음미해 보자. 일선 고지와 나무 사이에는 엄청난 거리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시에서는 그 멀리에 있는 소총을 끌어 오는데 있어 마치 옆에 있는 물건을 거머쥐는 듯이 표현했다. 거리를 전혀 의식하지 않은 것이다.   이런 눈으로 보면 많고 적은 것이 하나로 보인다. 전체와 부분이 하나로 보인다. 전체는 부분인 동시에 또한 전체다. 1은 10과도 같지만 또한 1이 된다. 수에 대한 관념을 아주 없애는 것도 좋다. 나의 하나는 바다로 보내고 나의 그 하나는 산으로 보내고 나의 또 하나는 오지 않는 내일에도 보내어 두고 나는 누워서 그들을 보네. ―중략― 그러나 바다에서 가지고 온 것 그러나 산에서 가지고 온 것 내일에서 가지고 온 것을 틀리지 않게 내 안에 쌓아 두네. 그것들이 작게 나를 이루네.   내가 어떻게 하루하루를 자라고 있는가를 살펴본 것이다. 이 시에서는 외부에서 받아들여진 것이 쌓여서 나를 형성하고 있다. 이 때 나는 하나이지만 사실 열도 되고 백도 된다. 그것이 모두 또한 나다. 그 많은 나가 하나인 나 안에서 나타나 외부와 작용을 하고 있다. 내 몸 밖으로 나가 내 생각이 미치는 데까지를 쏘다닌다.   하나인 나는 누워서 여럿인 나를 본다. 이것들은 내가 생각을 거두었을 때 나에게로 되돌아온다. 이렇게 해서 보면 나는 하나라고 우길 수가 없다. 어째서 내가 하나뿐이란 말인가?   이런 눈으로 형체가 있는 것 없는 것을 하나로 보자. 아기 울음이 바위에 스며들어 다져집니다. 오늘의 이야기가 차례로 스며들어 다져집니다. 바위도 내일부터 입을 다물면 박혁거세가 날 때까지 견뎌냅니다.   석기시대의 어느 날을 노래한 것이다. 여기서 생각해야 할 것이 아기 울음과 이야기다. 울음은 형체가 없다. 이야기도 형체가 없다. 그러나 어떤 액체의 형태가 되어 바위에 스며들고 있는 것이다. 계절은 오다가 강가에 머물러 남몰래 배에 실려 건너옵니다. 남쪽 나라 건너 북쪽 나라로 살구꽃이 차례로 꽃잎을 엽니다. ―중략― 저녁 해에 돌아오는 시골 장꾼의 시끄런 사투리도 한 배 가득 건넙니다. 산 넘어 사라지는 해그림자도 강가에 머물러 배를 탑니다.   여기서 「계절」이란 말을 두고 생각하자. 계절은 물체가 아니다. 그러나 이것이 배를 탄다는 것이 거짓으로 들리지 않는다.   사투리도 부피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배에 실린다는 것이 어색하기는 커녕 아름답고 재미있게만 들린다.   이런 눈으로 세상을 보면 보이지 않는 걸 쌓아도 부피와 무게가 된다. 나무― 그 많은 잎에는 종일 햇살이 와서 만져집니다. 송아지 우는 소리 학교의 종소리가 와서 만져집니다. 그것뿐이었습니다. 그것뿐인 그것이 나무에게는 가지 끝에 무게가 되어 달립니다. 가슴 둘레가 커집니다.   이 시는 햇살이나 송아지 울음, 학교의 종소리 같은 것이 쌓여 무게를 갖는 과정을 노래했다. 재미있는 생각이라 느껴지는 것이다. 햇볕은 물 위에 쌓인다. 따뜻하다. 햇볕은 피라미 새끼의 체온이 된다. 햇볕은 붕어 새끼의 체온이 된다. 따뜻하다. ―중략― 바람 소리 새 소리가 물 밑에 쌓인다. 물 소리가 커진다.   봄 개울을 노래한 것이다. 형체가 없는 햇볕이나 바람 소리·새 소리가 물밑에 쌓이면서 부피를 느끼게 한다. 그 부피는 커지는 물 소리에서도 나타나 있다. 도라지 뿌리가 기지개 켜는 소리도 모이면 커다란 메아리가 됩니다. 소나무 큰 뿌리에 물 오르는 소리도 모이면 커다란 메아리가 됩니다. ―중략― 새 움의 입김이 모여 하얀 안개가 산을 감고 하늘로 피어오릅니다.   봄 산의 광경이다. 도라지가 기지개 켜는 소리, 소나무에 물 오르는 소리들이 모인다. 메아리가 커졌다는 데서 그 부피를 느끼게 한다. 새 움의 작은 입김들이 모여 산을 감을 수 있는 커다란 안개를 이룬다. 입김의 부피가 쌓인 것이다.   액체는 그 온도에 따라 기체가 되든지 고체가 된다. 그래서 물은 얼어서 단단해지기도 하지만 증기가 되고 구름이 된다. 바위는 부서지면 돌이 되고 돌은 모래가 되고 다시 부서져 흙이 된다. 그러나 세상을 하나로 보면 변화가 일정하지 않다. 모든 것은 하나이며 같은 속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사물은 같은 것이어서 서로 변하면서 옮겨다니는 것이다. 그런 일들이 키가 되어 크는가? 길가에 우는 아기를 달래어 준 일. 아, 그런 것이 조그맣게 내 위에 와서 쌓이네. 자는 사이 밤 사이에   이 시에서는 착한 일 한 것이 쌓여 키가 되고 있다. 키 크는 원인이 착한 일 한 것에 있는 것이다. 영양분이 쌓여서 키를 이룬다는 생각이 아니지만 거짓말로 느껴지지 않는다. 종일 뻐꾸기 수다스런 울음이 한 개씩 머루 알이 돼 열리고, 종일 푸르른 산의 색깔이 바위 틈 물소리로 돼 들리고,   여름 산의 정경을 읊은 것이다.뻐꾸기 울음이 머루 알이 되고 산의 빛깔이 물 소리가 된다.   이런 눈으로 주위를 살피면 도대체 불가능이란 것이 없다. 온갖 조화를 다 가지게 되는 것이어서 홍길동이라도 된 기분이다.      (1980년 봄 『아동문학평론』 제14호)   동시 창작법 ⑦ 의인(擬人)에는 난이도(難易度)가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신 현 득   아이들은 그림을 그릴 때 해를 그리기 좋아한다. 그리고 해에다 눈이나 귀·코·입들을 그려 넣는다.   이것은 해에게 사람의 모습을 주려는 생각이 작용한 것이다. 재미있는 사실이다.   아이들은 미분화된 사고를 가지고 있어서 무엇이나 자기와 같다는 생각을 한다.   즉 그들의 사고에 의하면 세상의 모든 사물이 생각하고, 말하고, 웃고, 동작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태양에게도 얼굴이 있어야 한다.   아이들의 세계는, 특히 나이 어린 아이일수록 그들은 철저히 의인화된 세계에서 살고 있다.   어린이를 위해 시를 쓸 때 철저히 의인을 하라는 말은 이런 어린이의 심리를 이용하자는 것일 수도 있다.   아이들은 의인화된 것일수록 거기서 재미와 친밀감을 느낀다. 아이들은 동물을 좋아하지만 사납고, 불결하고, 잔인한 동물의 그 성질을 잘 알아서가 아니라, 동물에게 사고력·웃는 모습 등 사람이 가진 능력을 모두 주어 놓고 동물을 좋아하는 것이다.   어린이들의 사고에서 느껴지는 동물은 언제나 어느 정도 의인이 된 동물이다.   이와 같은 어린이의 심리를 이용한 것이 동물 만화다. 그러므로 동물 만화는 문장상의 의인법을 그림에 적용시킨 것이다. 즉 동물 만화는 의인된 그림인 것이다.   세계 어린이들이 모두 좋아한다는 미키마우스는 손과 발을 가지고 있고 아래 윗도리 옷을 차려 입은 새양쥐다. 이 의인된 동물은 말도 잘하고 영리하며 비상한 판단력을 가지고 있다.   만화가가 미키마우스에게 손과 발과 옷과 판단력을 주었으므로 아이들에게 친근감을 줄 수 있는 동물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미키마우스는 하수구에 버리는 음식찌꺼기나 찾아다니는 불결하고 연약한 새양쥐가 아니다.   그러면서 화가들은 동물에게만 의인법을 쓰는 것이 아니다. 연필이나 돌멩이·나무, 심지어는 물방울에까지 의인법을 적용시켜 보는 것이다.   이 때는 대개 연필이나 돌멩이·나무·물방울에게 눈·코·입 등을 곁들여서 얼굴을 만들어 주고 때에 따라서는 팔과 다리를 그려주기도 한다. 그러나 아무래도 동물의 경우에서처럼 실감이나 친근감이 덜하다.   왜 그럴까?   여기서 우리는 사물의 속성이 사람과 닮아 있는 것일수록 의인하기가 용이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사실을 알아 둘 필요가 있다.   ―인형이 웃는다.   ―나무가 웃는다.   ―돌멩이가 웃는다.   ―물방울이 웃는다.   위의 네 가지 표현을 읽어보면 의인에도 어렵고 쉬운 정도, 즉 난이도(難易度)가 있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이 네 가지의 표현 가운데 에 가장 공감이 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에 공감을 주기까지는 거기에 상당한 상황 설명이 따라야 한다. 그래도 그것이 실감있게 받아들여질 것 같지 않다.   그러므로 철저히 의인을 하라는 말과는 상대적으로 덮어놓고 의인을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 성립되는 것이다.   비 오는 날 비가 온다. 마당이 운다. 빗방울을 맞아 마당이 운다. 빗방울을 빗방울을 자꾸 맞으며 「앙 앙!」운다. 비가 개었다. 울던 마당이 이제 살았다고 활짝 웃었다.   이 시는 놀랍지도 못한 글이지만 마당을 의인한데서 더욱 어색한 느낌을 갖게 한다.   마당은 입체가 아니다. 사람의 모습과는 너무도 거리가 멀다. 그러므로 여기에 인격을 주어 사람의 모습으로 바꾸어 생각하는데 저항을 느낀다. 따라서 마당이 운다는 표현이나 웃는다는 말이 어색하게만 느껴지는 것이다.   감 감나무 빨간 감은 여러 형제다. 형아, 아우야, 부르며 익는다…….   감나무에 달린 감은 의인화해도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 그것은 감이 가지고 있는 모양과 몸빛깔에서 사람과 닮은 요소를 느끼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사람을 아주 닮아버린 인형에서 더욱 실감과 재미를 느낀다.   인형 내 다리로 달리게 해 주세요. 내 팔을 움직이게 해 주세요. 정말이어요. 나를 예쁘다 칭찬만 하지 말고 나를 걷게 해 주세요. 영이를 따라 학교에도 가고 싶어요.   이 인형의 호소는 실감나게 들린다. 그것은 인형이 아주 어린 아이를 닮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의인을 하는데서는 이 세 가지 소재의 경우서만 보아도 「마당 < 감 < 인형」의 공식이 성립되는 것이다.   ―종이를 사람이라 생각해 보자.   ―연기를 사람이라 생각해 보자.   ―배추잎을 사람이라 생각해 보자.   ―비닐끈을 사람이라 생각해 보자.   그런데 연상이 잘 되지 않는다. 이런 것들이 사람과 닮은 데가 적기 때문이다. 그래서 특별한 경우를 제하면 이런 것은 거의 의인이 되지 않는다.   ―도토리를 사람이라 생각해 보자.   ―돌멩이를 사람이라 생각해 보자.   ―연필을 사람이라 생각해 보자.   ―공을 사람이라 생각해 보자.   이 경우는 그래도 앞의 네 가지 경우보다 연상이 잘 된다. 의인이 쉬운 것은 어느 정도 입체물이어야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입체물이라 해서 사람의 성질을 다 가진 것이 아니다. 모든 각도로 다 의인이 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중요한 말이다.   ―돌멩이가 운다.   ―돌멩이가 웃는다.   ―돌멩이가 노래한다.   ―돌멩이가 성낸다.   ―돌멩이는 야물다.   ―돌멩이는 구른다.   ―돌멩이는 달린다.   ―돌멩이는 부딪힌다.   위의 는 모두 사람의 성질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모두 돌멩이의 속성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 등은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돌멩이는 야물다. 그리고 동글동글하다. 그리고 잘 구른다. 구르다 보면 다른 물건들과 부딪히길 잘 한다.   그러므로 돌멩이를 의인할 경우 이런 돌멩이의 성질에 맞추어야 한다.   돌멩이 ① 돌멩이가 굴렀다. 산위에서 굴렀다. 냇물에 퐁당 빠졌다. 고기들이 깜짝 놀랐다.   돌멩이 ② 돌멩이가 말했다. 항아리가 말했다. 돌멩이가 대들었다. 커다란 항아리가 빌었다.   이상의 작품은 돌멩이의 성질을 잘 알아서 의인했기 때문에 실감과 재미를 느끼게 된다. 그러나 돌멩이가 갖는 성질과 맞지 않을 때는 저항을 느끼게 된다.   돌멩이 ③ 냇가에 돌멩이가 뙤약볕을 쬐었다. 몸뚱이가 뜨끈뜨끈 달아 올랐다. 소나기 한 줄기가 지나갔다. ―시원해요, 시원해요.   아이고 시원해. 돌멩이가 좋아서 노래를 불렀다.   여기서 돌멩이가 노래를 불렀다는 표현이 어색하게 느껴진다. 노래라는 것이 돌멩이의 특성에는 맞지 않아서이다.   어떤 사물이나 소재가 사람의 성격을 다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다시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대개의 사물은 사람과 같은 성격을 몇 가지는 지니고 있으므로 그 방향으로 의인이 되어야 한다.   가령 라는 소재가 있다면,   ○ 무게가 있다.   ○ 입을 다물고 있다.   ○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 간사한 말로 꾀어봐야 잘 넘어가지 않는다.   ○ 많은 일을 참는다.   ○ 알면서도 모른 척한다.   ○ 오랜 세월 견뎌낸다. 와 같은 방향으로 의인이 되어야 한다. 의 방향으로 의인화해서는 바위의 이미지를 살릴 수 없다.   「꽃이 웃는다」는 것은 꽃의 빛깔의 밝기와 꽃의 모양과 사람의 웃는 모습과 사람의 입모양이 연관되므로 이루어진 표현이다. 세상의 꽃이 모두 어두운 검정색이었다면 꽃이 웃는다는 표현이 생겨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꽃의 모양이 꽃잎을 벌린 모양이 아니고 태초부터 주먹이나 공과 같은 모양이었다면 꽃이 웃는다는 말이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같은 밝은 빛깔을 띤 전깃불이나 초롱불을 보고 「전깃불이 웃는다」「초롱불이 웃는다」라고 말하고 보면 어색하게 들리는 걸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러나 모양이야 어떻게 생겼든, 또는 형체가 없는 추상물일지라도 그 소재가 사람을 닮은 성질이 강하면 그 성질의 방향으로 의인이 쉽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성질이 강할 때만 있을 수 있는 것이라는 말이다.   예를 들어 「천둥 소리」나「바람」은 형체를 따질 수 없지만 그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쉽게 의인이 되고 또한 실감을 느낄 수 있다.   천둥이라면,   ○ 고함 소리   ○ 무서운 목소리   ○ 성낸 목소리 등으로 의인이 쉽게 된다. 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게 받아들여진다. 이렇게 하여 씌어진 작품을 살펴보자.   천둥 누군가 하늘에서 소낙비 오는 날 성이 났다. 먹구름 속에서 소리를 친다. 겁먹은 나무들이 비를 맞는다.   바람의 경우에도 그렇다.   ○ 나뭇가지를 흔든다.   ○ 세상을 바쁘게 돌아다닌다.   ○ 아무것이나 만져보고 쓰다듬는다.   ○ 물위를 걸어다닌다.   등이 바람의 성질이다. 그러므로 이런 방향으로 의인이 되어야 한다.   바람 ① 감나무 잎을 흔들어 보다가 잘못해 「톡!」 풋감 한 개 떨어뜨리고, 개암나무 가지를 흔들다가 잘못해 「톡!」 개암 한 알 떨어뜨리고.   바람 ② 바람이 물 위로 걸어간다. 물 위로 발을 끌며 걸어간다. 바람의 발끝에 걸려 물결이 사르르 일어난다.   바람 ①에서는 바람의 손을 생각했고, ②에서는 바람의 발과 발끝을 생각했으나 조금도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여기서 그럴 만한 조건만 있다면 어느 소재를 어느 경우에서나 의인화할 수 있다는 논리가 성립되기도 한다. 이것은 돌멩이가 웃는다는 말이 어색하게 들리기는 하지만 그럴 만한 상황이라면 돌멩이가 웃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보기를 들어보자.   ―나무가 소리를 듣는다.   이 한 구절의 표현으로는 약간 어색하게 들리는 싯구도 여기에 그럴 만한 분위기, 즉 그럴 만한 이유를 설정해 줌으로써 어색하게 들리지 않게 된다는 말이다. 작품을 한 편 살펴보자.   달밤의 나무 달이 뜨면서 나무의 영혼이 가지 끝에 나와 반짝이게 되면서 나무는 귀가 열린다. 개울가 물소리를 알아듣는다.   이 시에서 나무가 물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게 된 것은 달이 떴다는 사실 때문이다. 달이 뜸으로써 나무의 영혼이 가지 끝에 나와 달빛에 반짝이게 되고 영혼의 문이 열리면서 나무는 귀로써 개울물 소리를 듣게 된다. 이렇게 그럴사한 분위기를 설정해 놓고 보니 나무가 소리를 듣는다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게 된다.   그래서 처음으로 되돌아 생각해 봐야겠다. 어떻게 생각하면 의인에 난이도(難易度)가 있다는 말이 모두 거짓으로 느껴진다.   이것은 결국 시에는 방법이 많으면서 별다른 방법이 따로 없다는 논리가 되기도 한다.   (1980년 여름 『아동문학평론』 제15호)   동시 창작법 ⑧ 표현(表現)과 객관성(客觀性)의 사이 신 현 득   작품은 작가가 쓰는 것이지만 독자인 어린이에게 호감을 얻어야 한다. 공감이란 독자가 그 작품에 대해서 작가와 같은 걸 느끼는 일이다.   ―그것 참 그렇겠다!   ―참 재미있네!   ―나는 미처 생각지 못 했더니!   이렇게 감탄사를 내면 이는 독자가 작자의 작품에 동조하는 이상의 것이 되지만 아무 저항 없이 읽고 작가의 뜻이 전달되기만 해도 이것으로 공감이 된 것이다.   작가의 시가 독자에게 공감되지 않을 때 독자는   ―이건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이건 그렇지 않은 것 같은데?   ―시원치 못한 글 같다.   ―어색하다.   이렇게 느낀다. 이 때 작가가 옆에 있다면 그 작가의 체면을 위해 그 말을 직접 표현하지 않을 수는 있으나 내심으로는 좋게 여기는 것이 아니다.   이럴 때 이 작품은 성공한 것이 아니다. 물론 독자도 그 계층에 따라 작품을 이해하는 정도가 다르나 여기서는 일반적인 독자, 아동문학 작품을 꼭 읽어야 할 독자를 상대했을 경우를 뜻한다.   대체로 시가 독자에게 공감되지 않을 때는 표현에 객관성이 없기 때문이다. 객관성이 부족하다는 것은 작품이 주관적이라는 말을 할 수 있겠다.   작가는 이것을 알아야 한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지만 남이 정말 내 생각에 동조할까? 공감해 줄까? 하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이 말은 독자에만 영합해서 글 아닌 글을 써야 된다는 말이 아니다.   그런데 적어도 습작기의 경우 이것이 참으로 힘드는 과정이 된다.   습작기의 경우 대개 그 작품이 자기 위주의 주관이 되기 쉽다. 자기만 아는 표현을 하는 것이다. 이런 작품은 물론 표현의 미숙에서 온다. 그래서 남이 읽어보면 무엇이 무엇인지 모르는 글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습작기를 벗어났다 해서 반드시 객관성이 있는 글만을 쓰는 것은 아니다. 다만 주관과 객관을 어느 정도 일치시킬 수 있을 뿐이다. 그 두 가지 관점의 일치가 이루어질수록 그 작품은 작가와 독자가 공감을 하게 되고 공유의 것이 된다.   여기에 남의 예를 들 것이 아니라 내 습작기의 노우트를 뒤져 한 작품을 꺼내어 보자.   박덩굴 박덩굴이 지붕에 올라갔다. 높은 지붕 마루에 올라갔다. 어떻게 어떻게 올라갔나? 사다리를 놓아주어 올라갔다.   놀랍지 못한 작품이다. 그러나 독자들이 이해되지 않을 구절은 없을 듯하다. 그런데 이 작품을 쓰고 몇 해 후에 느낀 것은 는 두 행이 독자들에 그릇 이해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독자들은 문면에 나타난 대로 사람이 정말 사다리를 놓아주어 박덩굴이 며칠 동안 쉬엄쉬엄 지붕까지 기어올라간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표현한 의도는 그와는 얼토당토 않은 것이었다. 시골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누구나 경험한 것이지만 박은 대개 뒤안에 심어 지붕으로 올린다. 박이 자라서 덩굴손을 휘두르게 되면 지붕까지 올라가는 덕을 만들어 준다. 나뭇가지나 막대기 또는 못쓰는 장대 같은 것으로 덩굴손을 이끌어 지붕까지 안내하는 것이다. 내가 생각했던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그 때 지붕에 걸쳐준 그 나무막대기는 바로 박덩굴의 사다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나 혼자의 생각이었다. 주관적인 생각이었던 것이다. 알고 보니 이 작품의 문면에 그것을 깨우치거나 힌트를 줄 만한 낱말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독자의 잘못은 하나도 없다.   나는 크게 깨달았다.   그리하여 그 다음부터 나는 작품이 일단 완성되면 여태 나를 휩쓸던 영감이나 환상 같은 것을 완전히 가라앉혀 놓고 순전히 독자의 입장에서 내 작품을 바라보고 수정하게 되었다.   일단 작자가 아닌 독자의 눈으로 내 작품을 바라볼 때 내 작품은 모순투성이었던 것이다.   또 하나의 작품을 보기로 하자.   꽃나무 가지 꽃나무가 흔들리네. 꽃가지가 흔들리네. 바람이 살짝 밀어주네. 꽃냄새가 풍겨오네. 꽃가지를 뛰어오네. 바람이 살짝 날라다주네.   언뜻 읽어서 무난한 글 같지만 나는 얼마 후 이 글에서 모순을 발견했다. 물론 독자가 되어 이 작품을 완전히 객관적인 자리에 두고 발견한 것이다.   그것은 하는 구절이다.   나는 여기서 꽃향기가 꽃가지에서 나의 코에 와 닿는 상태를 표현했던 것이다. 누가 이 문맥을 그렇게 인정해 주겠는가. 나 혼자 도취되어 지껄인 나 혼자만 아는 표현이었던 것이다.   이런 예는 얼마든지 있지만 우선 내 작품의 두 가지 예를 들어둔다.   되풀이되는 말이지만 습작기의 사람들에게 이런 표현이 많지만 습작기의 사람이 아닌 누구의 작품에도 이런 면이 더러는 있을 수 있다고 보아지는 것이다. 요즘 동시가 난해하다느니 하는 것도 사실은 이런 미숙한 표현, 즉 객관성이 없는 표현이 상당 부분 차지하고 있다. 시가 되지 않아 독자에게는 무슨 뜻인지 모르겠고 무슨 뜻인지 모르니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다. 전체의 독자가 시에 소양을 가질 수는 없는 것인즉 작품이 되었느니 어떠니 하고 따질 능력이 없어 털어놓고 어렵다 모르겠다고만 하는 것이다.   응모되어 오는 작품을 살펴보면 객관성이 없는 표현인 경우는 여러 가지다.   첫째는 낱말이 제자리를 찾아앉지 못한 것이다. 낱말이 뜻하는 의미, 낱말에서 풍기는 분위기, 이미지 등을 깊이 생각지 않았을 때다. 시에서 비슷한 말은 안 된다. 비슷한 말은 같은 말이 아니며 같은 말이란 없기 때문에 제자리에 맞는 하나뿐인 낱말을 찾아야 한다.   다음은 지나친 과장이다. …… 등은 주위의 분위기를 여간 잘 끌어가지 않고는 과장된 것으로 읽혀지게 된다.   다음은 몇 구절의 표현은 좋으나 전체를 하나로 아우르지 못한 것이다. 이 때는 시의 중간에 빈 곳이 생기는 수가 있거나 동강이가 나 있는 경우가 많다.   다음은 표현에 통일성이 없는 것이다. 어느 부분은 직관적이다가 엉뚱한 데 하나가 추상물이 돼버리는 경우다. 어느 부분은 시가 돼 있고 어느 부분은 산문이 돼 있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다음은 표현에 보편성이 없는 것이다. 나팔꽃이 위로만 감아 올라가는 것은 보편적인 표현이다. 그런데 어쩌다가 아래로 감아 내려가는 것을 하나 보았다 해서 그것을 독자에게 강요하는 예와 같은 것이다.   다음은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것이다.   겨울 밤 하늘에 은하수가 떴다든가(새벽이 되면 뜰 때도 있지만) 압록강이 천지에서 흐른다든가 하는 표현은 모두 관찰 부족·조사 부족에서 온 것이다. 작가는 어떤 씨앗이 언제 싹트며 어느 나무는 언제 꽃이 피는가를 대강은 알고 있어야 한다.   다음은 도덕성에 바탕을 두지 않은 것이다. 이웃집의 감을 따먹는다든지 아무 죄책감도 없이 심한 장난을 하는 것을 그대로 그려 놓은 것.   다음은 아동 심리에 위배되는 일이다. 이럴 때는 아예 아동문학이라는 딱지를 떼어야 하며 동시라는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이 때 이런 초심자에게 우리는   ―알맞은 낱말을 찾아라.   ―알맞은 표현을 찾아라.   ―지나친 과장을 삼가라.   ―부분을 두고 전체를 생각하라.   ―표현에 통일성을 두라.   ―표현은 보편성을 지녀야 한다.   ―사실에 근거를 두라.   ―도덕성에 위배돼서는 안 된다.   ―아동 심리에 근거를 두라. 하고 일러준다. 그러나 사실 이 모든 말은 표현에 객관성을 두어 독자에게 공감을 주라는 말이 된다. 나 하나의 생각으로 작품을 쓸 것이 아니라 독자의 눈으로 작품을 써라는 말이 된다.   겨울의 노래 얼음이 얼면 얼어서 즐겁고 눈이 오면 눈이 와서 즐거운 겨울은 우리의 세상. 수정보다 맑은 한얼음 유리판 위로 식식식 달리며 커다랗게 그려보는 오색 무지개. 눈이 오면 눈싸움 편을 갈라서…… 눈싸움에 지치면 썰매를 탄다. 야호야호 달리는 썰매. 바람이 부는 날은 연을 날린다. 팽팽한 연줄을 감을 때마다 연도 즐거워 붕붕거리며 하늘 복판에서 노랠 부른다. 팽이도 쳐야지 양지바른 골목에 함께 모여서 윙윙 우는 팽이의 노래 윙윙 우는 겨울의 노래. 처마마다 기다란 수정 고드름 한 개씩 꺾어내어 골목마다 전쟁놀이도 신나지. 얼음이 얼면 얼어서 즐겁고 눈이 오면 눈이 와서 즐거운 겨울은 우리의 세상.   이 작품은 4학년 국어 교과서 12페이지에서부터 시작되는 시 한 편이다. 교과서에 수록될 만한 작품이라면 어린이들에게 본보기글로 제시된 것이다. 그런데 이 시는 그 분위기는 되어 있으나 몇 구절의 표현이 모호해서 상당한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이다.   어느 아동문학 세미나에서도 이 작품에 대한 말이 나와 토론을 벌인 일이 있다. 그래서 이왕 말이 난 것이기 때문에 이 작품을 예문으로 든 것이다.   이 시의 의 부분이 모호한 것이다.   얼음판 위에 무지개를 그려 본다는 이 대목을 두고 교사들의 생각이 구구한 것이다.   어떤 교사는 이 무지개라는 표현이 스케이트의 자국일 것이라고 말한다. 스케이트의 빙 돌아가는 자국이 마치 무지개의 곡선과 같지 않느냐고 한다.   그럼 「오색」이란 수식어를 왜 끼웠느냐는 말에는 아이들이 알록달록한 옷을 입고 있으니 무지개 같지 않느냐고 한다.   또 어떤 참고서에는 이 오색 무지개가 마음속에 있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스케이트를 타게 될 때 느껴지는 느낌이라는 것이다.   또 어떤 해석에서는 스케이트를 탈 때 얼음가루가 해에 비쳐져 프리즘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이 시는 이런 입장에서 표현됐을 것이라고 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 표현은 보편성을 잃었다. 스케이트를 탈 때마다 프리즘이 생기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많은 조사를 한 것은 아니지만, 오랫동안 어린이에게 스케이트를 지도하던 교사에게 물어보아도 그런 사실은 잘 모른다고 한다.   이와 같이 이 하나의 구절 때문에 야단이다. 표현이 전혀 객관화되어 있지 않아서 독자로부터 공감이 되지 않고 있다.   다음은 팽이 우는 소리를 노래라 한 것이다. 겨울의 노래라 했다. 팽이 우는 소리를 정작 들어본 사람이라면 아무리 해도 그것을 노래에 비유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리 얼음판 위에서 돌리는 팽이라 해도 팽이가 노래로 흥겹게 들릴 만한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다. 그저 「윙―」 소리를 몇 초 동안 내고 만다. 이것을 겨울의 노래라 표현한 것은 공감이 되지 않는다. 어색한 과장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팽이 우는 소리를 노래로 비유한다면 선풍기 도는 소리·기계 소리·비행기 소리를 모두 노래로 보아야 한다.   되풀이되는 말이지만 분위기만으로는 동시가 되지 않는다. 주관적인 표현만으로도 동시가 되지 않는다. 하는 주장은 모두 객관성이 있는 문장이 되게 하자 그 소리다.    (1980년 가을 『아동문학평론』 제16호)   동시 창작법 ⑧ 표현(表現)과 객관성(客觀性)의 사이 신 현 득   작품은 작가가 쓰는 것이지만 독자인 어린이에게 호감을 얻어야 한다. 공감이란 독자가 그 작품에 대해서 작가와 같은 걸 느끼는 일이다.   ―그것 참 그렇겠다!   ―참 재미있네!   ―나는 미처 생각지 못 했더니!   이렇게 감탄사를 내면 이는 독자가 작자의 작품에 동조하는 이상의 것이 되지만 아무 저항 없이 읽고 작가의 뜻이 전달되기만 해도 이것으로 공감이 된 것이다.   작가의 시가 독자에게 공감되지 않을 때 독자는   ―이건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이건 그렇지 않은 것 같은데?   ―시원치 못한 글 같다.   ―어색하다.   이렇게 느낀다. 이 때 작가가 옆에 있다면 그 작가의 체면을 위해 그 말을 직접 표현하지 않을 수는 있으나 내심으로는 좋게 여기는 것이 아니다.   이럴 때 이 작품은 성공한 것이 아니다. 물론 독자도 그 계층에 따라 작품을 이해하는 정도가 다르나 여기서는 일반적인 독자, 아동문학 작품을 꼭 읽어야 할 독자를 상대했을 경우를 뜻한다.   대체로 시가 독자에게 공감되지 않을 때는 표현에 객관성이 없기 때문이다. 객관성이 부족하다는 것은 작품이 주관적이라는 말을 할 수 있겠다.   작가는 이것을 알아야 한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지만 남이 정말 내 생각에 동조할까? 공감해 줄까? 하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이 말은 독자에만 영합해서 글 아닌 글을 써야 된다는 말이 아니다.   그런데 적어도 습작기의 경우 이것이 참으로 힘드는 과정이 된다.   습작기의 경우 대개 그 작품이 자기 위주의 주관이 되기 쉽다. 자기만 아는 표현을 하는 것이다. 이런 작품은 물론 표현의 미숙에서 온다. 그래서 남이 읽어보면 무엇이 무엇인지 모르는 글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습작기를 벗어났다 해서 반드시 객관성이 있는 글만을 쓰는 것은 아니다. 다만 주관과 객관을 어느 정도 일치시킬 수 있을 뿐이다. 그 두 가지 관점의 일치가 이루어질수록 그 작품은 작가와 독자가 공감을 하게 되고 공유의 것이 된다.   여기에 남의 예를 들 것이 아니라 내 습작기의 노우트를 뒤져 한 작품을 꺼내어 보자.   박덩굴 박덩굴이 지붕에 올라갔다. 높은 지붕 마루에 올라갔다. 어떻게 어떻게 올라갔나? 사다리를 놓아주어 올라갔다.   놀랍지 못한 작품이다. 그러나 독자들이 이해되지 않을 구절은 없을 듯하다. 그런데 이 작품을 쓰고 몇 해 후에 느낀 것은 는 두 행이 독자들에 그릇 이해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독자들은 문면에 나타난 대로 사람이 정말 사다리를 놓아주어 박덩굴이 며칠 동안 쉬엄쉬엄 지붕까지 기어올라간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표현한 의도는 그와는 얼토당토 않은 것이었다. 시골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누구나 경험한 것이지만 박은 대개 뒤안에 심어 지붕으로 올린다. 박이 자라서 덩굴손을 휘두르게 되면 지붕까지 올라가는 덕을 만들어 준다. 나뭇가지나 막대기 또는 못쓰는 장대 같은 것으로 덩굴손을 이끌어 지붕까지 안내하는 것이다. 내가 생각했던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그 때 지붕에 걸쳐준 그 나무막대기는 바로 박덩굴의 사다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나 혼자의 생각이었다. 주관적인 생각이었던 것이다. 알고 보니 이 작품의 문면에 그것을 깨우치거나 힌트를 줄 만한 낱말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독자의 잘못은 하나도 없다.   나는 크게 깨달았다.   그리하여 그 다음부터 나는 작품이 일단 완성되면 여태 나를 휩쓸던 영감이나 환상 같은 것을 완전히 가라앉혀 놓고 순전히 독자의 입장에서 내 작품을 바라보고 수정하게 되었다.   일단 작자가 아닌 독자의 눈으로 내 작품을 바라볼 때 내 작품은 모순투성이었던 것이다.   또 하나의 작품을 보기로 하자.   꽃나무 가지 꽃나무가 흔들리네. 꽃가지가 흔들리네. 바람이 살짝 밀어주네. 꽃냄새가 풍겨오네. 꽃가지를 뛰어오네. 바람이 살짝 날라다주네.   언뜻 읽어서 무난한 글 같지만 나는 얼마 후 이 글에서 모순을 발견했다. 물론 독자가 되어 이 작품을 완전히 객관적인 자리에 두고 발견한 것이다.   그것은 하는 구절이다.   나는 여기서 꽃향기가 꽃가지에서 나의 코에 와 닿는 상태를 표현했던 것이다. 누가 이 문맥을 그렇게 인정해 주겠는가. 나 혼자 도취되어 지껄인 나 혼자만 아는 표현이었던 것이다.   이런 예는 얼마든지 있지만 우선 내 작품의 두 가지 예를 들어둔다.   되풀이되는 말이지만 습작기의 사람들에게 이런 표현이 많지만 습작기의 사람이 아닌 누구의 작품에도 이런 면이 더러는 있을 수 있다고 보아지는 것이다. 요즘 동시가 난해하다느니 하는 것도 사실은 이런 미숙한 표현, 즉 객관성이 없는 표현이 상당 부분 차지하고 있다. 시가 되지 않아 독자에게는 무슨 뜻인지 모르겠고 무슨 뜻인지 모르니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다. 전체의 독자가 시에 소양을 가질 수는 없는 것인즉 작품이 되었느니 어떠니 하고 따질 능력이 없어 털어놓고 어렵다 모르겠다고만 하는 것이다.   응모되어 오는 작품을 살펴보면 객관성이 없는 표현인 경우는 여러 가지다.   첫째는 낱말이 제자리를 찾아앉지 못한 것이다. 낱말이 뜻하는 의미, 낱말에서 풍기는 분위기, 이미지 등을 깊이 생각지 않았을 때다. 시에서 비슷한 말은 안 된다. 비슷한 말은 같은 말이 아니며 같은 말이란 없기 때문에 제자리에 맞는 하나뿐인 낱말을 찾아야 한다.   다음은 지나친 과장이다. …… 등은 주위의 분위기를 여간 잘 끌어가지 않고는 과장된 것으로 읽혀지게 된다.   다음은 몇 구절의 표현은 좋으나 전체를 하나로 아우르지 못한 것이다. 이 때는 시의 중간에 빈 곳이 생기는 수가 있거나 동강이가 나 있는 경우가 많다.   다음은 표현에 통일성이 없는 것이다. 어느 부분은 직관적이다가 엉뚱한 데 하나가 추상물이 돼버리는 경우다. 어느 부분은 시가 돼 있고 어느 부분은 산문이 돼 있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다음은 표현에 보편성이 없는 것이다. 나팔꽃이 위로만 감아 올라가는 것은 보편적인 표현이다. 그런데 어쩌다가 아래로 감아 내려가는 것을 하나 보았다 해서 그것을 독자에게 강요하는 예와 같은 것이다.   다음은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것이다.   겨울 밤 하늘에 은하수가 떴다든가(새벽이 되면 뜰 때도 있지만) 압록강이 천지에서 흐른다든가 하는 표현은 모두 관찰 부족·조사 부족에서 온 것이다. 작가는 어떤 씨앗이 언제 싹트며 어느 나무는 언제 꽃이 피는가를 대강은 알고 있어야 한다.   다음은 도덕성에 바탕을 두지 않은 것이다. 이웃집의 감을 따먹는다든지 아무 죄책감도 없이 심한 장난을 하는 것을 그대로 그려 놓은 것.   다음은 아동 심리에 위배되는 일이다. 이럴 때는 아예 아동문학이라는 딱지를 떼어야 하며 동시라는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이 때 이런 초심자에게 우리는   ―알맞은 낱말을 찾아라.   ―알맞은 표현을 찾아라.   ―지나친 과장을 삼가라.   ―부분을 두고 전체를 생각하라.   ―표현에 통일성을 두라.   ―표현은 보편성을 지녀야 한다.   ―사실에 근거를 두라.   ―도덕성에 위배돼서는 안 된다.   ―아동 심리에 근거를 두라. 하고 일러준다. 그러나 사실 이 모든 말은 표현에 객관성을 두어 독자에게 공감을 주라는 말이 된다. 나 하나의 생각으로 작품을 쓸 것이 아니라 독자의 눈으로 작품을 써라는 말이 된다.   겨울의 노래 얼음이 얼면 얼어서 즐겁고 눈이 오면 눈이 와서 즐거운 겨울은 우리의 세상. 수정보다 맑은 한얼음 유리판 위로 식식식 달리며 커다랗게 그려보는 오색 무지개. 눈이 오면 눈싸움 편을 갈라서…… 눈싸움에 지치면 썰매를 탄다. 야호야호 달리는 썰매. 바람이 부는 날은 연을 날린다. 팽팽한 연줄을 감을 때마다 연도 즐거워 붕붕거리며 하늘 복판에서 노랠 부른다. 팽이도 쳐야지 양지바른 골목에 함께 모여서 윙윙 우는 팽이의 노래 윙윙 우는 겨울의 노래. 처마마다 기다란 수정 고드름 한 개씩 꺾어내어 골목마다 전쟁놀이도 신나지. 얼음이 얼면 얼어서 즐겁고 눈이 오면 눈이 와서 즐거운 겨울은 우리의 세상.   이 작품은 4학년 국어 교과서 12페이지에서부터 시작되는 시 한 편이다. 교과서에 수록될 만한 작품이라면 어린이들에게 본보기글로 제시된 것이다. 그런데 이 시는 그 분위기는 되어 있으나 몇 구절의 표현이 모호해서 상당한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이다.   어느 아동문학 세미나에서도 이 작품에 대한 말이 나와 토론을 벌인 일이 있다. 그래서 이왕 말이 난 것이기 때문에 이 작품을 예문으로 든 것이다.   이 시의 의 부분이 모호한 것이다.   얼음판 위에 무지개를 그려 본다는 이 대목을 두고 교사들의 생각이 구구한 것이다.   어떤 교사는 이 무지개라는 표현이 스케이트의 자국일 것이라고 말한다. 스케이트의 빙 돌아가는 자국이 마치 무지개의 곡선과 같지 않느냐고 한다.   그럼 「오색」이란 수식어를 왜 끼웠느냐는 말에는 아이들이 알록달록한 옷을 입고 있으니 무지개 같지 않느냐고 한다.   또 어떤 참고서에는 이 오색 무지개가 마음속에 있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스케이트를 타게 될 때 느껴지는 느낌이라는 것이다.   또 어떤 해석에서는 스케이트를 탈 때 얼음가루가 해에 비쳐져 프리즘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이 시는 이런 입장에서 표현됐을 것이라고 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 표현은 보편성을 잃었다. 스케이트를 탈 때마다 프리즘이 생기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많은 조사를 한 것은 아니지만, 오랫동안 어린이에게 스케이트를 지도하던 교사에게 물어보아도 그런 사실은 잘 모른다고 한다.   이와 같이 이 하나의 구절 때문에 야단이다. 표현이 전혀 객관화되어 있지 않아서 독자로부터 공감이 되지 않고 있다.   다음은 팽이 우는 소리를 노래라 한 것이다. 겨울의 노래라 했다. 팽이 우는 소리를 정작 들어본 사람이라면 아무리 해도 그것을 노래에 비유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리 얼음판 위에서 돌리는 팽이라 해도 팽이가 노래로 흥겹게 들릴 만한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다. 그저 「윙―」 소리를 몇 초 동안 내고 만다. 이것을 겨울의 노래라 표현한 것은 공감이 되지 않는다. 어색한 과장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팽이 우는 소리를 노래로 비유한다면 선풍기 도는 소리·기계 소리·비행기 소리를 모두 노래로 보아야 한다.   되풀이되는 말이지만 분위기만으로는 동시가 되지 않는다. 주관적인 표현만으로도 동시가 되지 않는다. 하는 주장은 모두 객관성이 있는 문장이 되게 하자 그 소리다.    (1980년 가을 『아동문학평론』 제16호)   동시 창작법 ⑩ 동시(童詩)는 동화적(童話的)인 시(詩)다 신 현 득              바다 속                                                      강소천       조개들의 조그만 단간 집들이      올망졸망 둘러앉은 동구 밖엔       사철 산호꽃이 만발하고      조용히 흔들리는 미역 숲에선      하루 종일 아기 고기들이       술래잡기를 하고       푸른 바다를      멋지게 날아다니는       가지가지 고기들      등대에 배들에 불이 켜지면,       "별 하나 나 하나…."      등불을 세고.    지난 날 초등학교의 교과서에 수록됐던 이 동시(童詩)에 대해 지은이 소천(小泉)은 어느 교육지(敎育誌)에 그 해설을 곁들이면서 이런 말을 한 일이 있다.    즉 처음에 이 작품은 동화(童話)로 구상을 했다는 것이다. 동화로 쓸려던 것이 그 결과(結果)에서 동시(童詩)가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물론 이 작품은 교과서에 본보기글로 수록될 만큼 수작이다. 훌륭한 동시(童詩)라는 말이 된다. 그러나 이 내용을 그대로 옮겨 동화가 되게 할 수가 있다는 것도 이 작품을 읽으면서 느끼게 된다.    결국 소천의 말은 헛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 내용을 소재로 해서 동화를 썼다면 역시 수작의 동화를 뽑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말은 동시 동화의 거리 관계를 말해 주는 것이 된다.   일반 쟝르에서는 소설의 소재로 희곡을 쓸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소설의 소재로 시를 쓴다는 말은 잘 듣지 못한다. 시의 소재로 시조를 쓴다는 것은 용이한 일이다. 그것은 자유시와 정형시의 차이밖에는 없는 가까운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소설(小說)을 무대에 올렸을 때는 희곡이 된다는 것도 같은 이야기를 곁들일 수 있는 산문이기 때문이다. 가까운 관계라는 말이다.    이와 같은 말을 동시와 동화에서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동문학(兒童文學)의 작가(作家)들 사이에는 상당히 오래전부터 이런 것을 느껴왔지만 아직 이론적(理論的)인 전개(展開)를 한 사람은 없다.   여기서 동화(童話)란 사실적(寫實的)인 문장(文章)으로 된 소년소설(少年小說)이나 생활동화(生活童話)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팬터지로써 씌어진 본격동화(本格童話)를 말한다.    이런 환상동화(幻想童話)와 동시(童詩)의 관계를 먼저 그 문장수사(文章修辭)에서 찾아보기로 하자.   환상동화의 경우 동물(動物)이나 사물에 인격(人格)을 주어 사람차럼 사고(思考)와 언어(言語)를 갖게하는 의유(擬喩)가 쓰인다. 이것은 시(詩)의 수사(修辭)에 쓰이는 한 방법(方法)이다. 동시(童詩)의 수사(修辭)에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냇물이 지껄인다.   ―나무가 춤을 춘다.   이렇게 간단한 동시(童詩)의 구절(句節)도 냇물과 나무를 하나의 인격체(人格體)로 보고 있는 데서 시작된 표현이다.   이런 동시(童詩)의 의유법(擬喩法)을 동화(童話)가 공유(共有)하고 있는 것이다. 전래동화(傳來童話) 창작동화(創作童話)를 막론하고 의인적(擬人的)인 전개(展開)가 많은 양(量)을 차지하고 있다.   "옛날 호랑이 한 마리가 뻐끔뻐끔 담배를 피우고 있었는데…." 하는 구전(口傳)의 이야기나    "돌멩이는 생각했지요. '산꼭대기에서 내리굴렀으면 재미있겠는데' 하고…"   이런 창작동화(創作童話)의 한 대목도 모두 그렇다.   그러므로 철저히 의인(擬人)된 문장(文章)이라는 데서 동시(童詩) 동화(童話)는 가깝다. 환상(幻想)이라는 것 역시 그렇다.   동심(童心)을 담은 같은 그릇이라는 점, 재미성을 지녀야 할 수밖에 없는 문장(文章)이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그러므로 동화(童話)는 산문(散文) 가운데서 동시(童詩)에 가까운 것이며 동시(童詩)는 운문(韻文) 가운데서 동화(童話)에 가까운 것이라는 설명이 된다.   김요섭씨는 동시(童詩) 동화(童話)가 하나의 포에지(poesy), 즉 이 포에지라는 시(詩)의 광석(鑛石)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광석의 제련술(製鍊術)에 따라 동시(童詩)로도 동화(童話)로도 결정이 되는데 그 바탕인 광석(鑛石)은 같은 것이라는 풀이가 된다. 이 제련술(製鍊術)이라는 것은 바로 형식(形式)이요 모티브이다.   그래서 김요섭씨는 동화(童話)야말로 시인(詩人)이 써야할 쟝르라고 말하고 있다. 이 말은 시(詩)의 소양 없이는 환상동화(幻想童話)를 쓰기 어렵다는 말로도 느껴진다.   요즈음 동시(童詩)작가들이 동화((童話)를 많이 쓰고 있고 사실 이 두 가지 쟝르를 겸하는 작가들이 대단히 많다.    "그것이 그렇게 쉽게 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으나 원체 가까운 문장(文章)에 가까운 발상(發想)의 것이기 때문에 별로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 없는 것이다.   동시로 씌어져야 할 소재로 동화를 썼다는 말은 조유로씨도 말한 바가 있고 필자도 이런 경험이 더러 있다.    이것을 다시 동시(童詩)의 입장에서 보면 동시(童詩)는 동화적이어야 된다는 말로 해석이 된다. 이것은 동시(童詩)가 산문(散文)이 되라는 말과는 다르다.   그 문장(文章)의 전달면(傳達面)이나 문장난해도(文章難解度)에 있어 동시(童詩)는 동화(童話)를 본받아야 된다는 말이 된다. 곧 동시(童詩)는 동화(童話)의 문장(文章) 이상으로 난해해서는 전달(傳達)에 지장이 된다는 것이다. 동화(童話)의 문장(文章)을 하나의 자로 삼아야 된다는말이다.   되풀이 말했듯이 동시(童詩)는 그 개념이 지닌 그대로 구속성(拘束性)을 갖고 있다 . 이 구속(拘束)을 벗어버리면 이것은 일반 자유시(自由詩)가 된다. 동시(童詩)의 기능을 잃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속성(拘束性)이 있으므로 동시(童詩)인 것이다.   여기서 백번 양보를 해도 동시(童詩)는 시(詩)의 모더니즘을 따라갈 수도 없고 그런 방법을 필요로 하지도 않는 것이다.    모더니즘에서는 모호(模糊)한 표현이 오히려 시(詩)다운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언어(言語)의 건축(建築)이라고도 볼 수 있는 이들 표현(表現)을 위해 암시(暗示)와 상징(象徵)과 은유(隱喩)의 방법(方法)을 동원한다. 이것이 현대시(現代詩)의 수사(修辭)다. 그런데 이것은 전혀 동시(童詩)의 방법(方法)이 될 수 없다.    동시(童詩)에서 모호(模糊)한 표현은 지탄이 돼야하며 은유(隱喩)나 암시(暗示)는 독자인 어린이에게 거리를 두게 한다.   같은 포에지에서 출발된 동시(童詩), 동화(童話)는 근본 문장(文章) 수사(修辭)에서도 같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동시(童詩)는 난해(難解)한 현대시(現代詩)보다 동화(童話)쪽에 가까운 문장(文章)이 된 것이다.   다시 말해서 동시(童詩)는 동화적(童話的)인 시(詩)요, 동화(童話)는 동시적(童詩的)인 산문(散文)이다.    여기에 그 예문(例文)을 들어 이를 실증(實證)할 수도 있다.           엄마 심부름                                                      윤석중       아기가 반찬 가게로      엄마 심부름을 갑니다.      조그만 소쿠리를 옆에끼고      아장아장 콩나물을 사러 갑니다.      콩나물을 담아 놓은 치룽이 너무 높아서      아기는 못 보고 그냥 지나갑니다.      자꾸자꾸 걸어갑니다.      집이 점점 멀어집니다.      집을 잃어버리고 우는 아기를      엄마가 달려가서      넬름 업어 왔습니다.    이 '엄마 심부름'은 1961년에 출판된 윤석중 동요집 중의 한 편이다. 이 시는 저학년 어린이의 감각을 잘 살린 작품이다. 이런 작품들 말고라도 윤석중씨의 작품만큼 어린이들과 친밀한 작품은 드물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동시에서 동화적인 것을 느끼게 된다. 사실 이런 소재라면 좋은 유년동화 감이다. 동화로 썼으면 좋을 뻔했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것이다.  1981. 봄.  제18호에서     동시 창작법 ⑪ 자연(自然)에게 물어보라.  가르쳐 줄 것이다. 신 현 득     자연(自然)의 음성(音聲)을 듣는 것만으로는 시(詩)가 씌어지지 않을 때가 있다. 이 때는 자연물(自然物)에게 대화(對話)를 거는 것이 좋다. 그러면 자연(自然)은 나름의 음성(音聲)으로 대답해 줄 것이다.   ―내가 짤깍짤깍 소리내면 동네 꼬마들이 모여들지.   이것은 엿장수 가위의 대답이다.   ―나는 방망이로 얻어맞기만 해.   이것은 빨랫터의 빨랫돌의 대답이다.   ―네가 꼬마였을 땐 이랬단 말이야.   이것은 내 돌사진이 하는 말이다.   어느 것이나 몇 마디의 대답은 하여 준다.   ―나는 뱃속에서 종소리를 낼 수도 있다.   괘종시계의 말이다.   ―꽃밭에 이슬비를 오게 해 주는 굉장한 재주가 있지.   이것은 물뿌리개의 말이다.   그런데 이 때는 가장 깊이있게 대답해 줄 만한 놈에게 가서 수작을 거는 것이 한 가지 요령이다. 시는 있을 만한 곳에 있으니까.   도랑물에게 가서 물어보자.   "도랑물아 어디로 가니? 어디를 거쳐서 가니? 무슨 일을 하면서 가니?"   이렇게 물어 놓고 기다리자. 대답이 없거든 하루종일이라도 도랑가에 앉아서 대답을 기다리자. 그러면 도랑물은 대답할 것이다.   "바다까지의 긴 여행이다. 우리는 여행을 하다가 쉬는 일이 없단다."   "밤낮 쉬지 않고 흘러 가지. 밤에는 달그림자를 띄우고 낮에는 산그림자를 띄우고 흘러 가지."   "긴 여행에 지치지 않게 노래를 부르며 흐르지."   "종이배도 띄우고, 나룻배도 띄우게 될 걸."   "마을 앞을 지나다가 물레방앗간에 들르게 될 거야. 쿵덕쿵덕 물레방아를 올려 봐야지."   자연(自然)의 대답은 모두가 시(詩)다 . 이것을 그대로 정리해 보자.           달그림자를 띄우고            산그림자를 띄우고           마을 앞을 지나다가           물레방아를 돌린다.           -쿵덕 쿵덕 쿵덕!   다시 더 깊은 이야기를 해 줄 것과 대화를 나누어 보자. 우리에게는 두 개의 손이 있다. 내 가장 가까운 손에게 물어 보자.   "손아 내 손아 네가 하는 일은?"   ―공을 치는 일이지. 그렇지만 커서는 큰일을 하게 될 걸. 나는 (손은) 자라고 있어.   "할머니 손이 하는 일은?"   ―아기 궁둥이를 닦아 주는 일.   "엄마손이 하는 일은?"   ―쌀단지를 긁어 퍼내는 일이지.   "오빠의 손은?"   ―구두닦는 일(마침 이 때는 6.25전쟁 때였다)   손으로부터 들은 말이다. 충분히 시가 될 수 있다.                손           할머니가            아기 둥둥이르 닦아 주고 있다.           엄마가            쌀 단지를 긁어 퍼낸다.           오빠는 구두닦이에서 돌아왔다.           할머니 손에           아기 똥이 묻지 않았나 보셔요.           오빠 손에는            거멓게 구두약이 묻었다.           죽 한 그릇씩을 먹고           저녁상을 치우고 나서           자 이리로            손을 모아 보셔요.           아기 손부터           차례로 놓아 보셔요.           작은 손들이 어떻게 커서           어른이 되는가를 알게.           내 손이 커서           오빠 손만해지고           오빠 손이            엄마손보다 커졌을 때           우리집은 아무도           쌀단지를 긁어내지 않아도 된다.           아기가 커서            오빠만 해졌을 때는           아기 손에            구두약이 묻지 않아도 된다.   자연에 물어보니 자연은 무엇이나 가르쳐 주고 있다.   어느 때 시골 학교에 가서 자취를 하며 1년 3개월을 지낸 일이 있다. 학교서 자취방까지에는 과수원이 있었고 과수원을 둘러 탱자나무 울타리가 있었다. 한적한 시골이라 아이들을 만나는 시간 외에는 자연을 만나는 일밖에는 없었다. 나는 탱자꽃이 피는 봄부터 여기를 지나다니며 과일나무보다는 탱자울타리가 재미있는 소재(素材)라는 걸 느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시(詩)가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다가 하루는 재미있는 생각을 했다. 그것은 울타리를 만들고 있는 탱자나무에게 물어보면 될 게 아니냐는 생각이었다. 정말이지 탱자나무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은 바로 탱자나무다.   "미처 몰랐구나!"   나는 아침마다 이 탱자나무 울타리르 지나며 조용히 대화를 걸었다.   "탱자나무 울타리야!"   "응"   대답을 해 줄 때도 있었고 대답이 없을 때도 있었다. 며칠인가 지났을 때다.    "우리는 여럿이 어깨동무를 하여 울을 만들고 있단다."   울타리는 재미있는 대답을 해 주었다. 역시 탱자나무에 대해서는 탱자나무가 제일 잘 알고 있었다. 다음에는 이런 대답을 얻어내었다.   "우리에겐 가시가 있어. 문을 지키는 이는 무기가 있어야 되거든 우리는 이 뾰족한 무기를 이파리 밑에 숨겨두고 있단다. 누구든지 과일밭에 들어오기만 해 봐."   가을 날이 되고부터 과일밭의 사과가 빨갛게 익어 있었고 과일밭을 지키는 탱자나무도 노란 구슬로 된 자기 열매를 들고 익히고 있었다. 참으로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학교에 가다가 보니 탱자나무 울타리 한 곳이 해쳐져 있었다.   '간밤 도적이 들었구나!'   그러면서 탱자나무의 이야기를 들었다. 탱자나무의 말을 들으면 어제 저녁 밤중에 과일밭의 사과를 탐내는 사람이 들어오다가 가시에 찔려 달아났다는 것이다.   나는 이 탱자나무들이 그 밤도적을 물리치기 위해 어떻게 힘을 합쳐 싸웠을까를 상상해 보았다. 참으로 기특한 탱자나무다. 이렇게 하여 나는 한 편의 작품을 얻을 수 있었다.             탱자나무           같은 나무이지만           착한 탱자나무는           과일나무 울이 돼 준다.           여럿이 어깨동무하고           울이 되어 서서           봄 사월           날이 선 가시 위에            잎과 꽃을 단다.           잎은 자라           가시를 덮는다.           가시는 움츠리고           이파리 밑에 숨는다.           과일밭의 과일이 익을 무렵에           탱자꽃은 커서           향기를 가득 담고           구슬이 돼 다시 열린다.           그러나 어둡고 무서운 밤에           가슴이 떨리도록 무서운 밤에           발자국 소리 여럿이 몰려 온다.           검은 그림자가 손을 내민다.           ―과일을 탐내는 놈이냐?           ―내 열매를 탐내는 놈이냐?           숨었던 가시가 나와           마구 찌른다.           ―아야 아얏!           ―아야 아얏!           자국 소리도 그림자도           달아나고           여러 개 구슬을 가지고 놀면서           탱자나무는            한가을까지 즐겁다.           과일밭을 지키면서            즐겁다.    의 한 작품도 자연과의 대화에서 씌어졌다. 처음에는 흙과의 대화였다.   "나는 세상의 어머니다."   이것이 흙의 대답이었다. 세상 모든 것이 흙을 의지해 살고 있다는 것이다.   "풀과 나무가 나를(흙을) 의지해 살고 있지. 이 풀을 먹고 나무의 과일을 먹고 온갖 동물이 자라고 있지. 내가 없다면 누가 목숨을 유지할 수 있겠니. 나비도 잠자리도 살 수 없다."   이것도 들판을 덮고 있는 흙의 말이었다.   "나는 젖을 주고 있다. 배나무가 뿌리를 뻗어 오면 배맛이 나는 열매가 되도록 젖을 주지. 복숭아나무에게도 살구나무에게도…."   이것도 흙의 말이었다.    "내가 나무의 뿌리를 잘 잡아 두니까 나무가 서 있을 수 있는 거야. 나무뿐 아니지. 모든 풀뿌리도 내가 잡아 주고 있다."   이것도 흙의 말이었다.   "나무끝 새집에서 새새끼가 잘 크는 것도 내가 잘 흔들어 주기 때문이야."   이것도 흙의 말이었다.   다음에는 나무에게 물어보았다.    "너는 흙을 엄마라 생각하니?"   "그럼, 흙은 우리 엄마다. 지평선 끝으로 아침해를 띄우는 것도 모두 흙엄마가 하는 일이야. 그리고 내가 익힌 씨앗이 가서 묻히는 것도 흙엄마다. 내가 넘어져 묻힐 곳도 흙엄마야."   흙의 말은 깊은 뜻을 지니고 있었다. 다음으로 이 흙과 나무끼리 대화하는 소리까지 엿듣게 됐다. 분명히 저희끼리도 엄마와 자식 사이처럼 다정하게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흙과 엄마           "나는엄마다."           흙은 그런 생각으로           하늘을 마주 보고 누워 있어요.           배나무가 뿌리를 뻗어 오면            배맛 될 것만 골라           젖을 주어요.           미루나무 키다리를           젖으로 키워요.           흙은 넘어지지 않게           뿌리를 잡고           그 줄기 끝에다 새집을 달고           새집을 흔들어 새끼새를 키우며           그 위로            구름이 흐르게 해요.           아침에 태양이 지평선에 떠서            나무꼭지서            열두시를 만나게 해요.           "엄마야!"           "나다 나다."           "엄마야!"           나다.           흙과 나무는            불러주고 대답해요.           "엄마야            내 씨가 떨어지면           어디로 가노?"           "그야 엄마한테로 오지."           "엄마야           내가 넘어지면           어디로 가노?"           "그 때도           엄마께로 와 묻힌다."  1981. 가을 '아동문학평론' 제20호에서     동시 창작법 ⑫ 동요운동(童謠運動)에 붙여 신 현 득   동요(童謠)를 쓰자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이것은 근 30년 동안 자유동시(自由童詩), 즉 동시(童詩) 일변도가 되어온 아동문학의 시분야(詩分野)가 동요도 아동문학의 책임영역이라는 자기 반성을 한 데서 시작된 것이다.   동요의 학술용어(學術用語)는 「정형동시(定型童詩)」다. 그러므로 동시의 한 갈래로 정의(定義)가 된다. 다만 오랫동안 「동요」라는 용어를 써온 습관상 이 학술용어를 취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냥 「동요」라고만 할 때는 시(詩)로서의 의미와 곡(曲)으로서의 의미를 같이 지니고 있어서, 낱말 구성의 분위기를 따지지 않으면 구별이 되지 않는 수도 있다.   즉 「동요를 쓴다」와 「동요를 작곡한다」「동요를 부른다」에서 씌어지는 동요라는 의미는 각각 다른 것이다. 동요를 정형동시로 불러야 할 이유가 여기에도 있다.   동요는 정형시(定型詩)이지만 시조( 時調)·경기체가(景幾體歌)·가사(歌辭)나 한시(漢詩)의 칠언절구(七言絶句)·오언시(五言詩)와 마찬가지로 정해진 외형률(外形律)이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4·4조나 7·5조가 반드시 동요의 요건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동요는 어느 정형시보다 그 표현이 자유로운 것이다.   그러면서 동요는 정형시로서의 제약을 받는다. 그것은 그 작품 나름의 리듬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과 연(聯)과 연 또는 절(節)과 절 사이의 대칭관계(對稱關係), 즉 대구(對句)를 유지하는 데에 있다. 모든 동요는 그 첫 연이 기준이 된다. 그 다음의 연이 여기에 맞추어져 대칭을 유지함으로써 정형시의 성격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대칭관계의 맞서는 자리에 같은 자수(字數)의 시어(詩語)를 두되 서로 나란히 놓을 수 있는 것이나 대구가 될 수 있는 낱말을 두어 전체의 조화를 이루게 된다.           봄비                       김종상 보슬보슬 봄비야 잔디밭에 내려라. 마른 잔디 속잎을 파릇파릇 피워라. 산과 들을 파랗게 융단으로 덮어라. 보슬보슬 봄비야 꽃나무에 내려라. 가지마다 꽃잎을 곱게곱게 달아라. 산과 들을 예쁘게 꽃밭으로 꾸며라.   위의 동요의 경우를 두고 보자. 첫 연과 둘째 연을 볼 때 「보슬보슬 봄비야」로 시작이 되고 있다. 「잔디밭에 내려라」와 「꽃나무에 내려라」의 대구다. 행을 살펴보면 「파릇파릇 피워라」와 「곱게곱게 달아라」의 대구다. 끝맺음을 「융단으로 덮어라」와 「꽃밭으로 꾸며라」의 대구로 이루어져 있다.   그 형식을 따져 보면 맞서는 자리에 같거나 비슷한 내용의 시어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문장의 종지를 「내려라」「피워라」「덮어라」 등 「라」로 끝나는 낱말을 받혀 전체의 조화를 이룬 것도 이 동요의 재미있는 구성이다.   이와는 반대로 맞서는 자리에 전혀 반대가 되는 낱말을 놓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보기를 들면 「높다」와 「낮다」,「길다」와 「짧다」,「검다」와 「희다」 등과 같은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의 마방진(魔方陣)처럼 낱말이 있을 자리에 있어야 하기 때문에 동요는 표현이 자유롭지 못하다. 쓰기에 어려운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의 동요는 이런 구속에서조차 벗어나려고 하고 있다. 반드시 연을 가지지 않아도 동요가 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연이 없는 단련동요(短聯童謠)는 특히 구전동요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 나라의 민요는 4·4조를 기본 외형률로 하고 있다. 그러나 동요의 경우는 반드시 그런 것이 아니다. 성인(成人)의 작의(作意)가 작용하지 않는 것일수록 그 표현이 아주 자유롭다. 황새야 덕새야 네 모가지 짜르고(짧고) 내 모가지 길―고   이것은 황새를 보고 부르는 구전동요이지만 4·4조도 7·5조도 아니다. 별 하나 똑 따서 행주 닦아 망태에 담아서 동문에 걸―고 별 둘 똑 따서 행주 닦아 망태에 담아서 서문에 걸―고…….   별을 세는 이 구전동요(口傳童謠)도 4·4조와는 멀다. 이것만 보아도 동요는 그 리듬이 퍽 다채로우면서 자유로웠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단련의 동요가 지어지고부터 표현이 자유스러워진 반면 자유시와의 한계가 모호해진 것이다.   시조는 글자가 한정돼 단수에서도 시조의 성격을 지닌다. 가사는 정해진 음률이 있어서 길이에 관계 없이 그 성격이 변하지 않는다.   자수의 제한도 정해진 음률도 없는 동요에서는 그렇지 않다. 그래서 이 때의 척도를 문장의 리듬과 담긴 내용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창작동요(創作童謠)가 씌어진 것은 1908년 육당에 의해서였다. 이후 20년대부터 동요는 아동문학의 주류로서 그 황금시대(黃金時代)를 이룬다. 그러나 이 당시의 동요는 현재의 동시적인 성격의 것도 있었다. 즉 현재의 동시와 동요의 기능을 다 맡고 있었다. 동시·동요의 미분화시대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정형시인 동요를 써도 노래가 될 수 있는 것과 노래가 되기에 용이했던 것과 노래가 붙여질 수 없었던 것이 있었다.   그것은 정형시라 해서 다 노래가 아니라는 말이 된다. 현대의 자유동시를 동요의 틀에 잡아 넣었다 해서 반드시 노래가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동요는 오히려 외형적인 것보다 그 내용적인 조건이 갖추어져야 된다. 즉 시의 내용에서 악상(樂想)이 풍겨 나와야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유동시를 함축미(含蓄美)의 시라고 한다면 동요는 밖으로 발산되는 내용을 갖추어야 한다.   「푸른 물 출렁출렁 어디로 가나?」   이 시구(詩句)는 1행(行)만으로도 동시의 문장과는 구별이 되고 있다. 악상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이 때 의성어나 의태어가 악상을 잡아 주는데 역할을 한다고 믿어 왔다. 그것은 사실이다.   그러므로 동요는 경쾌하고 발랄하면서 재미있고 흥겨운 표현이 되어야 한다.   동시를 쓴다 해서 동요도 쓸 수 있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동요를 쓸 때 동시와는 전혀 다른 표현 방법을 가지고 임해야 하기 때문이다.   많은 시인들이 동요에 실패하는 원인은 동시에서 배배 꼬인 비유들을 동요의 틀에 잡아 넣기 때문이다. 문장에다 의미를 강조해 두려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주 딱딱하고 뻣뻣한 것이 돼버린다. 이런 것은 노래가 될 수 없다. 동요의 문장은 부드러워야 한다. 따라서 시의 소재에서도 동시보다 제약을 받아야 한다. 충분히 노래가 담길 만한 소재여야 하는 것이다. 어두운 면보다는 밝은 면이 있는 것이 좋다.     이슬 눈 방울 눈                     유경환 풀잎 끝에 마알간 이슬 눈 한 개. 풀잎 끝에 은빛의 방울 눈 한 개. 눈빛을 반짝이는 풀잎들이 세상은 파랗다 생각할 거야. 풀잎 끝에 매달린 이슬 눈 한 개 풀잎 끝에 또로록 방울 눈 굴러 해님을 쳐다보다 잠이 들면 풀잎은 눈 감고 꿈나라 간다.   이 동요는 소재를 잘 택한 보기가 된다. 「이슬 눈 방울 눈」이라는 제목에서 벌써 노래가 연상돼 온다. 좋은 동요가 지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동요를 쓰고자 할 때 소재의 발견이 큰 열쇠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주제가 정해졌을 때 거기에서 재미나는 몇 개의 사실을 골라 알맞게 배치해 놓고 그것을 전체의 뼈대로 삼는 것이다.   2연이나 3연의 노래를 지을 경우 이 뼈대 위에 대구가 될 만한 시어들을 배치한 다음 문장을 다듬어 간다.   그러나 동요는 어디까지나 문학인 만큼 문학적인 조화가 어느 정도인가에서 평가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한때 동요가 아동문학의 주류를 이루었던 만큼 동요에는 훌륭한 문학을 담을 수 있다.         겨울 밤                         김재원 나무 속에 하늘이 들어와 있다. 가지마다 매달린 수많은 별들 나무들은 별을 세며 추위를 잊고 별들은 가지에서 겨울을 난다. 나무들아 춥거든 별을 보아라. 반짝반짝 눈부시게 살아있잖니? 별들아 춥거든 나무를 보렴. 찬 바람 이겨내고 살아있잖니?   이 작품에서 느끼는 것은 강한 문학성(文學性)이다. 그러므로 이만한 작품을 쓰기가 쉽지 않다. 각고(刻苦) 끝에 낳아진 작품이다.   동요가 아동문학의 책임 분야라는 것을 새삼스레 강조해야겠다. 만일 아동문학인이 동요를 써 주지 않을 경우 어린이들은 첫째 노래에서 굶주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동요의 기능은 그것뿐이 아니다. 어린이들에게 부담이 되지 않고 전달이 쉬운 시를 제공해 주게 된다.   그러나 동요운동이 자유시로서의 동시가 발전하는데 지장을 주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한편 동요운동을 일으키는 단계에서 살펴볼 때 우리의 할 일은 너무도 많다.   육당(六堂)은 창작동요를 처음 쓰면서 『흥부전』 『나무꾼과 선녀』 『별주부전』 같은 옛 얘기를 소재로 한 이야기 노래를 창작했다. 7、5조 4행을 1연으로 하는 이들 이야기 노래는 현재의 동화시(童話詩)와는 다르다. 동화시는 자유시인데 반해 이 이야기 노래는 철저한 7、5조의 정형시다.   이러한 작품은 처음부터 노래를 위해서라기보다 이야기를 재미있게 전달해 주기 위한 수법으로 보인다. 그 길이가 엄청나게 길기 때문이다.   별주부전을 주제로 한 을 예로 들면 56행의 정형시다. 또한 이보다 긴 작품도 있다. 그러므로 이런 작품은 7·5조로 된 가사(歌辭)로 보아도 될 만하다.   만일 이와 같은 작업이 현대에 와서 이루어질 때 우리의 고전 이야기는 물론 지리적인 기행문, 물건의 생산 과정, 유통 과정(流通過程)을 모두 노래에 담을 수 있다. 물론 이런 작품을 시도한다고 할 때 현대적인 감각에서 씌어져야 할 것이다.   다음에는 고전동요인 구비전래동요(口碑傳來童謠)를 현대동요에 어떻게 수용할 것이냐의 문제다.   구전동요(口傳童謠) 중에는 녹두새요(謠)처럼 현대적인 가락에서 곡이 지어진 것도 있다.   그러나 나머지는 이 많은 노래의 소재(素材)들이 방치되고 있는 상태다.   구전동요가 현대적인 노래가 되지 못하는 것은 그 시어들이 낡고, 길이가 너무 길고, 표현이 모호하다는 점이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현대동요에서 구전동요를 받아들인다면 그 전체가 아니고 소재면이 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이 중에는 약간의 수정으로 현대적인 노래가 될 수 있는 것도 있다.   임동권 교수의 한국민요분류표(韓國民謠分類表)에 의하면 우리 나라 민요 362형 중에서 동요가 절반이 넘는 197형이다. 이들 전래동요는 동물요, 어류요, 식물요, 채약요(採藥謠), 수무자장요(受撫자장謠), 정서요, 자연요, 풍소요(諷笑謠), 어희요(語戱謠), 수요(數謠), 유희요(遊戱謠) 등 참으로 다양하고 많다. 이것이 모두 현대동요의 자산(資産)이다.   동화의 경우 우리의 동화는 전래동화에 뿌리를 두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마찬가지로 동요 또한 전래의 것에 뿌리를 두어야 우리 것이 될 것이다. 맡겨진 자산을 어떻게 키워가야 할까?   이렇게 생각할 때 동요운동에서 지워진 일이 참으로 많다는 것을 다시 느끼게 된다.   (1982년 여름 『아동문학평론』 제23호)  출처 ㅡ 허동인의 동시교실
136    유경환 동시론 [한국] 모셔온 향기 댓글:  조회:1602  추천:1  2016-08-10
동시 창작론 ① 직접 표현은 피해야 유경환(시인,동시인)     산길에   풀꽃이   아름답게 피었어요.   이 석 줄 한 연(聯)으로 씌어진 글을 한 편의 동시로 보아야 할 것인가.   '산길에 풀꽃이 아름답게 피었어요.'   이렇게 이어붙여 보면, 틀림없는 산문이다. 주어, 동사가 뚜렷하고 주어와 동사의 서술 관계가 분명하다.   그러니 한 줄의 완벽한 산문이다. 하건만 위에 인용했듯 석 줄로 바꿔 놓고서 동시라고 하는 경우가 있다. 즉 운문이라고 여긴다. 쓴 사람의 생각으로만 운문일 뿐, 그러니까 형식으로 운문처럼 보일 뿐이지, 사실은 운문이 아니다. 다른 말로 동시라고 하기가 어렵다.   산길에   풀꽃이   아름답게 피었어요.   위의 글이 작품이 되려면, 적어도 '아름답게'라는 부사어는 다른 표현으로 바뀌어야 한다. '아름답게'라는 형용사적 부사어를 직접 표현으로 구사하면, '아름답게'라는 표현의 분위기가 사전적 의미에 갇히고 만다. 따라서 쓴 사람이 지녔던 느낌이 읽는 사람에게 전달되기 어렵다.   읽는 사람에게 아무런 감동이 오지 않는다. '아름답게'라는 표현은 시어(詩語)가 되기 적합하지 않다는 뜻이다. 이미 일상어로 때묻어 있어 쓴 사람과 읽는 사람 사이에 아무런 정서 이동을 시키지 못하는 것이다.   감정을 전달하는 정서 이동, 이것이 쓴 사람에게서 읽는 사람에게 옮겨지려면, '아름답게'라는 표현 대신 다른 표현이 동원되어야 한다. 그냥 쉬운 표현으로 '아름답게'가 아니라, 쓴 사람만의 새로운 표현 기법이 요구된다.   쓴 사람이 생각해 낸 새로운 표현 방법, 없던 것을 있도록 하는 표현 방법 찾기가 곧 창작인 것이다. 창작을 크리에이션(Creation)이라 한다. 이미 있는 것을 가지고 되풀이 사용하면 되풀이의 Re가 붙어서 리크레이션(Recreation)이 된다. 오락이다. 이미 있는 표현을 재사용하는 경우가 유행가의 노랫말이다. 동시는 창작이어야 한다.   '산길에'는 어디라는 것을 나타내는 부사적 조건이다. '풀꽃이'는 주격으로 상징적 존재일 수 있다. 주어인 풀꽃이 다른 의미의 해석을 가능케 구사되었다. 그러기에 이 석 줄에서 시적 분위기를 조성할 요체는 '아름답게 피었어요'에 달려 있다. 그런데 일상적 대화에서 하듯 그냥 '아름답게 피었어요'라고 하면 읽는 사람이 쓴 사람의 내면에 접근할 수가 없다. 쓴 사람이 어떻게 아름답게 보았는지, 그리고 어느 정도 감동을 했는지 조금도 짐작할 수 없다.   쓴 사람이 이 석 줄을 쓸 때 지닌 내적 정서, 이것을 읽는 사람이 짚어낼 수 없다. 쓴 사람이 지녔던 내적 체험이 읽는 사람에게 전달되지 못하면, 어떤 감응도 생기지 않는다. 곧 감동이 오지 않는다. 그러므로 정서 이동이 안 된다.   정서 이동의 불가능은, 한마디로 감동의 차단이다. 그런데도 적잖은 사람들이, 그들 자신은 소정의 절차를 밟아 등용의 관문을 통과한 동시인이라고 스스로 자부하고 있기 때문에, '산길에/풀꽃이/아름답게 피었어요.'라고 써놓고, '이렇듯 아름다운 모습을 시적으로 묘사했는데…… 어째서 작품이 덜 되었다고 평가하느냐'고 불만스러워한다. 쓴 사람은, 풀꽃이 핀 산길의 정경을 잘 옮겨 놓았다고 여기기 때문에 항변하는 것이다.   이런 불평을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까. 어떻게 설명해야 '발효되지 아니한 표현'인 것을 깨닫도록 할 수 있을까. 어떤 방법으로 일러줘야 숙성한 감정이 바탕하고 있지 않음을 받아들이게 할 수 있을까. 산길에 풀꽃이 수를 놓듯이 피어 있는 것을 보고 나서 '산길에/풀꽃이/아름답게 피었어요.'라고 쓰는 것은 초등학교 1학년생도 가능한 것이다.   소정의 등단 절차를 거쳤다면 한 20년은 살았을 것이다.그런데 7살이면 써낼 정도의 표현 기교밖에 못 지니는가? 20년, 30년, 40년, 심지어 60년을 살아보고도 나이에 걸맞는 삶의 체험을 겪어내고도, 초등학교 1학년생이 표출하는 정서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인가.   살아낸 세월만큼 나무의 나이테처럼 자기 내면에 축적한 것이 있을 것이다. 단순한 경험일 수 있고, 생각 깊은 체험일 수 있으며 또 아픔을 이겨낸 쓰라림일 수도 있겠다. 이것을 눈에 안 띄게 대입할 경우, 의인화의 풀이나 이중 해석이나 상징 분석이 가능해진다.   필자는 '생각의 우물'이라는 표현을 오래 전부터 써 왔다. 얼마나 깊게 생각의 우물을 파 왔으며, 얼마나 오래 사색에 젖어 왔으며, 얼마나 깊은 고뇌에 빠져 보았느냐에 따라 동원 선택하는 시어(詩語)가 달라지게 마련이다.   별다른 생각 없이 '산길에 풀꽃이 예쁘게 핀 것을 보나, 아… 아름답구나… 이런 분위기를 글로 옮겨서 남에게도 전해주고 싶다'라는 충동에 따라 위의 인용처럼 썼다면, 이 사람 나이가 60대일지라도 정서 연령은 10대일 수밖에 없다. 만약 유치원에 다니는 원아나 초등학생이 이렇게 썼다면 칭찬받을 일이다. 하지만 인생을 겪어본 사람의 안목으로 이렇게 썼다면 돌아서서 한숨을 뿜을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산길에   풀꽃이   ○○○○○○…피었어요.   위에 ○○○○○○… 남겨진 자리를 자기 체험처럼 자기 사상에 바탕한 자기만의 표현으로 채우려 애쓰고 고민할 때, 비로소 생각이 숙성되고 발효하여 자기다운 목소리가 나오게 된다. 동시 창작을 위한 표현 기교에서 기법이라는 것은 가장 적절한 한마디를 찾아내는 데 있다. 이것이 표현 기법의 개발이다. 윗줄과 아랫줄 그리고 앞과 뒤, 그 사이에 들어서서 전체 분위기를 살려내는데 걸맞는 한마디를 만들어 내는 일, 이 일은 어렵고 힘든 작업이 아닐 수 없다.   사물은 보는 사람의 눈에 따라 달리 보인다. 슬픈 심정으로 달을 쳐다보면 달이 슬퍼 보이고 즐거운 감정으로 쳐다보면 달이 웃는 것으로 보인다. 보이는 대상은, 보는 사람의 심상(心象)에 걸맞게 보인다. 더 쉽게 말하면 볼록렌즈로 보느냐 오목렌즈로 보느냐와 같다. 곤충의 모듬눈[複合眼]은 사람이 보는 것과 다른 영상을 곤충이 인식하도록 작용한다. 보이는 대상이 보는 사람의 눈을 통해 보는 사람의 마음에 들어와 자리하는데, 보는 사람의 마음 상태에 따라 내면화하는 양상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 말은 생각이 깊은 사람이 보는 풀꽃과 생각이 단순한 사람이 보는 풀꽃이 같지 않다는 것을 정당화한다. 깊은 고뇌에 갈등하는 시인의 눈을 통해 내면화한 풀꽃의 이미지가 어찌 '아름답게'라는 단어로 표출될 수 있겠는가.   부모와 헤어져 살고 있는 초등학생이 보았다면 '산길에/풀꽃이/어우러져 피었어요'라고 쓸 것이고, 서로 싸우고 돌아선 사람이 보았다면 '산길에/풀꽃이/서로 외면한 채 피었어요'라고 쓸 것이다. 보는 사람에 따라서 '산길에/풀꽃이/아무도 듣지 못하는 말로 속삭이고 있어요' '산길에/풀꽃이/길이 외로울까 봐 피었어요' '산길에/풀꽃이/어머니 발자국으로 피었어요' '산길에/풀꽃이/햇볕을 붙잡고 있어요' '산길에/풀꽃이/볕을 기다리고 있어요 '산길에/풀꽃이/달빛 마시려 목을 쳐들고 있어요'…….   얼마든지 '아름답게'라는 형용사적 부사어를 대신하여 시적 요건을 보태줄 수 있는 일이다. 과연 어떤 표현이 '아름답게'라는 것 대신 시적 요건을 충족시켜 줄 것인가. 그것은 이 석 줄의 위와 아래에 올 다른 연(聯)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직접 표현은 되도록 피해야 은유라고 하는 비유의 역할이 커질 수 있다. 그러므로 직접 표현은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분명하게 덧붙여야 할 것이 있다. 산문에서 운문으로 형식을 바꾸기 위한 조건으로 ①명사 뒤에 붙는 토씨(조사)를 가능한 떼어버리고, ②문법적 어문 구조를 해체하는 손질이 필요하다. 토씨를 생략하고 산문 구조를 해체해야만, 그만큼 빈 자리가 생긴다. 이런 빈 자리가 만드는 공백이 있어야, 읽는 사람의 상상이나 폭 넓은 해석이 들어갈 자리가 생기는 것이다.   이런 감정의 여운에서 다양한 해석이 증폭되며 확대 해석이 가능해진다. 쓴 사람이 생각 못했던 비유나 상징까지, 읽는 사람에 의해 지적되면, 동시의 감상은 여러 사람에 의해 다양하게 이루어진다. 곧 독자에 의해 상징 의미가 발견되는 셈이다. 고속도로에 제한 속도를 60 Km라고 표시해 놓으면 60 Km로 달려야 하는 규제를 당한다. 그 이상의 속력을 내면서 느끼는 쾌감이나 그 이하의 속력을 내면서 풍치를 감상하는 즐거움이 박탈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산길에   풀꽃이   아름답게 피었어요. 라고 써 놓으면, '아름답게'라는 직접 표현이 지닌 사전적 의미 또는 일상의 어의(語意)에 구속되기 때문에 그 이상의 멋을 읽는 사람이 느낄 수 없게 된다. 시는 산문과 다르다. 상상을 제약하거나 해석을 제한하는 언어의 구속, 이런 구속을 의도적으로 생략하거나 또는 문법 구조의 해체를 시도하는 작업에서 오히려 매력을 얻는다.   (2003년 봄 『한국동시문학』창간호)   동시 창작론 ② 「생략」으로 빛나는 동시 유경환(시인, 동시인)   문화재 기능 보유자들이 제품을 만들 때 갈고 닦고 하는 모습을 보면 장인(匠人) 정신이라는 것을 엿볼 수 있다. 동시를 쓰는 일에서도 이와 다르지 않다. 산문 형태에서 운문 구조로 바꾸는 1차 작업이 있어야 하고, 그 다음으로 '지워 버리는' 작업이 뒤따라야 한다. 이 생략 작업은, '여러 해석이 가능하도록' 하는 나무의 가지치기와 다름없다. 좀더 구체적으로 짚어보기로 하자.   좋은 산문은 한 가지 뜻만 드러나되 그 뜻이 분명해야 한다. 이런 뜻인지 저런 뜻인지 헷갈리는 산문은 좋은 산문이 못 된다. 운문은 이와 반대이다.   운문은 여러 가지 뜻을 품을 수 있어야 매력 있는 운문이 된다. 좋은 운문은 여러 가지 뜻을 담을 수 있으므로 여러 해석이 가능하다. 이것이 운문이 존재하는 이유이다. 산문과 운문의 차이는 이렇게 확실하다. 산문과 운문에는 겹칠 수 없는 큰 차이가 있다. 그런데 (2002. 12∼2003. 2) 잡지에 실린 '동시'라는 글을 보니, 산문과 운문의 구별이 안 되는 것을 '동시'라고 발표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을 '동시를 쓰는 아동문학가'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회원의 글이면 다 실어주는 협회지(協會誌)에 발표하고 싶어 보냈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이 쓰는 글을 어떻게 동시 작품이라고 믿게 되었을까? 아마도 어떤 등단 절차를 거쳤을 것이다. 소정의 절차를 밟는 동안, 자기 글도 동시 작품이라고 확신하게 되었을 것이다. 혹 심사위원이나 추천위원이 있었다면 그들의 안목에 책임이 귀착될 수밖에 없는 일이다.   문학 작품으로서의 '동시' 수준에 오르지 못한 글을 (어떤 생각에서인지) '인정'하여 준 그 대가(代價), 그 대가의 결과로 오늘날 아동문학 풍토엔 잡초가 무성하게 휘날리게 된 것이 아니랴.   다시 말머리를 돌리자.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바로 이 점에 운문의 멋과 맛이 있다. 시는 동시를 포함하여 운문이다. 그러므로 시는 물론, 동시도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해야 한다.   '여러 해석'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서, 시인은 첫 번째로 산문과 다른 형태로 변형시키는 작업으로 문장을 해체하고, 두 번째로 복합 의미를 지닌 상징 언어를 시어로 선택한다.   문장을 해체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①주어 동사 따위의 문법 구조를 일부러 무너뜨리거나 ②주어 동사 따위의 문법적 배열을 의도적으로 뒤바꾼다거나 ③명사 뒤에 붙는 토씨 따위를 잘라버리는 생략 기법을 쓰거나 ④명사 앞에 오는 형용사 부사 따위를 철저하게 지워버리는 기법(技法)이다.   독자가 작품을 한 번 읽어서 어떤 느낌(feeling)은 알아낼 수 있으되 그러나 어떤 말(message)을 담고 있다고 대번에 짚어내기엔 애매하도록 시인은 모호한 시어를 선택 구사하기 일쑤다. 여기서 모호한 시어란, 다중(多重) 의미를 지닌 어휘를 가리킨다. 어떤 연유에서 시를 읽을 때 두 번 세 번 읽도록 유도하는 술책으로 상징 단어를 시어(詩語)로 동원하는 것이 예사(例事)이다.   왜 두 번 세 번 읽도록 유도하는 술책을 쓰는가? 되풀이 읽어내면서 글 속에 시인이 숨겨 놓은 뜻을 찾아내 감지(感知)하도록, 곧 독자를 시 속에 끌어들이는 술책이다. 달리 쉽게 말하면 '간단히 직설적으로 할 수 있는 말'을 철사를 구부리듯 이리 돌리고 저리 돌려, 복잡 구조를 통해 간접적으로 내비치는 방법이 시의 작법일 수 있다.   왜 이렇게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는' 것일까?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는 작업은, 마치 반도체의 집적(集積) 회로처럼 다양한 의미를 글 속에 축적하는 작업이다. 한눈에 대번에 읽어내는 글은, 글이 지닌 밑바닥 내용이 금세 드러나므로, 액면가가 곧 실제가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두 번 세 번 읽어야 비로소 글의 밑바닥 사상이 드러나는 시는, 독자의 정서 상태와 독자의 체험의 폭과 그리고 독자가 살아온 삶의 농도에 따라 다른 메시지를 독자에게 안겨주게 한다. 여기서 시작품이 '시로서 읽히는' 매력이 발견되는 것이다. 같은 동시를 읽더라도 읽는 독자의 수준에 따라 감상이 달라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시가 지닌 메시지와 독자의 수용 태도가 서로 상관 관계(相關關係)를 이루는데, 독자는 이를 잘 모르거나 간과한다.   이쯤에서 이 창작론의 본론으로 들어가자. 무엇을 보고, 생각하고, 그리고 가슴에 스며오는 정감(情感)이 괸다면 ①우선 그 정서를 줄글(산문)로 쓰기 시작하라. 바로 적어두어야지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정감이 흩어지거나 엷어져서 정서를 포착하기 어렵다. ②그 다음 해야 할 일은, 생선을 토막 내듯이 이 줄글(산문)을 토막토막 잘라서 두 줄이나 석 줄이나 넉 줄, 다섯 줄……로 나누어 배열하고 되풀이 읽어보라.(대부분의 발표 '동시'는 이 단계에서 작업이 중단된 것들이다.) ③적잖은 이들이 놓치고 있는 작업 과정이 이 세 번째 단계의 작업이다. 여기서는 문법에 구애되지 않고 명사 뒤에 붙어다니는 토씨를 떼어내고, 가급적 형용사 부사 따위 수식어를 지워버려야 한다. 이 생략 기법의 활용은 쉬운 것이 아니다. 자기 글을 자기가 자른다는 행위는, 고도의 장인 기술이며 용기를 필요로 하는 작업이다. 흔히 '열 손가락 안 아픈 것 없다'고 말하지 않은가? ④끝으로 글의 기본 문법인 주어 동사 따위 배열 순서를 의도적으로 뒤바꿔 도치법(倒置法)을 활용해 효과를 높이는 효과 측정을 해야 한다.   이런 네 단계 작업을 마친 뒤에 다시 읽어보면서 '속으로 느껴지는 논리' 곧 내면으로 수긍할 수 있는 논리(정서 논리)가 통하고 있다고 여기면, 산문에서 운문으로의 변이(變移)가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모든 시는 먼저 마음 속에 산문으로 오게 마련이며, 그 다음 다듬는 과정에서 운문 형식으로 탈바꿈하게 마련이다. 이것은 동시 쓰기에서도 마찬가지 일반 순서이다. 박목월도 그랬을 것이고 박두진도 그랬을 것이다. 이분들이 남긴 동시를 읽어보면 일반 순서에 따라 지어졌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물론 대가(大家)가 되면 산문에서 운문으로 전이(轉移)하는 과정을 안 거치고 바로 운문 형태로 들어갈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대개의 경우, 시는 산문적 기초에서 출발하여 운문적 구조로 이월하는 것이 상식이다.   이번에는 실례를 들어 설명하기로 하자. 아름다운 경치를 눈 앞에 보고 있다고 가정하자. '아, 참으로 멋진 풍경이다.…… 이 경관을 오늘 여기에 함께 자리하지 아니한 뉘에게도 보여주고 싶다. 혼자 보기엔 너무 고운, 아까운 경치야…….' 이렇게 감탄할 만한 풍경 앞에 서 있다고 치자.   어떤 이는 카메라를 꺼내 찰칵 찍을 것이다. 사진에 그대로 담길 것이다. 어떤 이는 붓을 들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할 것이다. 화가가 하는 작업이다. 사진 작가의 작업과 화가의 작업은 모두 그 풍경을 재현하는데 초점을 둔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작업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차이는 생략이라는 작법 곧 생략 기법인 것이다. 사진에는 생략 없이 모든 것이 담긴다. 그러나 그림에는 화가의 선택대로 생략된 나머지만 담긴다.   정밀 사진기로 감탄 대상을 정확히 담아낸 사진 작품과 그리고 무디지만 감성적인 선택으로 그려낸 미술 작품을 비교해 보자. 화가의 정서가 이입(移入)된 (화가가 붓으로 표현하되 물감의 농도로 강조된) 주관적 선택이 더 황홀한 감정을 현장 부재자에게 전달할 수 있잖은가? 밴 고흐가 남긴 작품이 그 시대의 사진 작품보다 더 선호되는 이유와 같다.   시와 동시가 애매 모호한 문장 구조를 지니도록 하는 것은, 한마디로 작품에 시인의 의도가 숨겨지도록 하는 작법이다. 시인이 그 작품을 쓸 때 (안 보이도록) 작품 행간 속에 깔아놓은 정서, 이것을 비슷한 체험을 지닌 독자가 읽어낼 수 있도록 '숨겨 놓는' 것이 시인이 즐겨 택하는 시작법이다. '나만큼 고민한 사람은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나만큼 관찰한 사람은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나만큼 생각해 본 사람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시인은 이런 부담을 독자에게 요구한다. 이런 요구는, 문학을 하고자 하는 사람에겐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지극히 당연시되는 요구이며 또 아울러 독자에겐 최소한의 의무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시를 읽고 감상하는 행위는, 누워서 TV 연속극을 보거나 TV 가요를 듣는 것과 같을 수 없는 최소한의 부담을 지불하는 행위인 것이다.   이런 '부담'을 지불하지 않고 읽고 즐기고자 하는 사람들 수준에서 '동시'를 써내거나 발표하는 글이 바로 '시의 수준에 이르지 못한', '시적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그런 '동시'들인 것이다. 흔한 말로 수준 미달의 것을 이른바 '동시'라고 발표하면서, '어째서, 왜 내 동시에 대해선 혹평을 일삼느냐?'고 항변하기 일쑤이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는 속담이 있다. '목마른' 경험이 없다면 이 속담의 진의를 알기 어렵다는 말과 상통한다. 그러므로 먼저 목마른 경험에 마음을 쏟아야 한다. 목말랐던 경험 없이 물맛이 어떻다고 불만 불평을 쏟아놓는 데 문제가 있다.   동시를 그냥 언어의 유희라고만 여기면 유리알 굴리듯 예쁜 낱말 고운 낱말을 추려서 이리저리 맞추는 작업에 그치고 만다. 이런 이들에겐 문학적 고민이나 시대의 아픔이나 역사의 앙금 같은 것들이 과연 필요한 것일 수 있을까? 동시는 어린이나 또 피곤한 어른에게 삶을 따뜻이 품어안도록 위안을 주며, 그런 위안을 안겨주는 일(몫)도 아울러 해내는 문학 작품으로의 값을 지닌다. 동시는 어린이나 어른에게(특히 생각이 달리는 어른에게) 주는 정서 영양일 수 있다. 그들의 가슴을 촉촉히 적셔주는 샘과 다르지 않다.   이 글의 결론을 위해 긴 말을 짧게 줄여 보자.   동시를 쓰겠다는 사람은, 첫 번째 단계로 쓰고 싶은 내용을 우선 산문으로 써 놓고 나서 줄일 수 있는 것을 모두 잘라내 길이를 줄여 운문 형태로 바꿔 놓은 뒤에, 두 번째 단계로 반드시 숨겨져 있어야 할 음률과 운치 곧 내재율과 율동성을 속으로 외워 맞춰야 한다. 세 번째 단계로 은유적으로 해석이 달라질 수 있는 낱말, 곧 비유가 가능한 시어(詩語)로 자기가 사용한 낱말을 바꾸는 작업을 해야 한다.   이러한 세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과감한 생략 기법이다. 이준관의 동시를 읽어보면, 긴 산문체에서 퇴고 과정을 거치는 동안 몇 줄씩 지워버렸거나 아주 잘라버린 흔적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이준관 시인은 시와 동시를 함께 쓰는, 시를 아는 동시인이기 때문에 좋은 동시도 잘 써내고 있는 것이다. (2003년 여름 『한국동시문학』 제2호)   동시 창작론 ③ 형상화란 무엇인가? ―간결하게 소재를 선택하면 형상화의 어려움 덜 수 있다 유 경 환   동시 쓰기에서 세 번째로 다뤄야 할 것은, 형상화(形象化)의 문제라고 여겨 왔다. 형상화라는 말은 창작 기법 이론서에 자주 나오는 어휘이다. 그러나 쉽게 풀이하여 놓은 것을 보지 못했다. 이 기회에 형상화에 대하여 진지하게 다가서 보고자 한다.   형상화라는 말이 한자로 되어 있어서 우리말로 바꿔볼 수 없을까 하고 여러 번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쉽사리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모양 만들기'라면 어떨까 싶기도 하지만, 마음에 드는 한마디가 못된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모양 만들기에 가깝거나, 비슷하다고 할 만하다.   어쨌거나 창작이라는 작업에서는, 형상화가 창작인의 가슴에 먼저 밑그림으로 들어서야 하느니만큼, 문학에서는 물론 미술 조각 따위에서도 한결같이 형상화가 중요한 일몫을 한다.   창작이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도록 만드는 작업이다.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만드는 작업이기에, 창작이 예술의 첫 번째 조건이 된다. 목수는 통나무를 가지고 온갖 도구를 사용하여 자기가 만들고자 하는 것의 모양을 나무 속에서 찾아 뽑아낸다. 이 때 '만들고자 하는' 것의 밑그림이 곧 형상화의 대상이 된다.   조각가의 경우, 조각을 빚는 과정에서 자기 예술 속의 것을 모양이 있는 것으로 빚어내는 일에 따라다니는 생각이 곧 형상화의 대상이 된다.   시인이 시를 쓰는 경우, 시인의 가슴 속에 괸 정서를 가슴 밖으로 꺼내어 모양이 있는 것으로 바꿔 놓을 때, 글자들이 갖추는 모양이 형상화의 대상이 된다.   그러므로 형상화라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마음이 아닌 것(모양이 있는 것)으로 바꿔 놓을 때, 만들고 싶어하는 모양으로 옮겨진 심상의 변화라고 설명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형상화가 어째서 중요하다고 하는 것일까. 형상화 작업이 아니면 어떤 느낌이나 감동이나 떠오른 상(像)이 예술가의 가슴 속에 한동안 담겨 있다가 그냥 스러지고 만다. 때문에 예술가의 가슴에만 담겨 있게 하지 말고, 가슴 밖에 존재하도록 모양을 갖춰 입혀야 하는 작업이 중요한 것이다.   수많은 예술가들 가슴에 괴어 있던 생각이, 그들 가슴 밖에 존재하도록 창작되지 않고, 예술가와 함께 사라진 에는 부지기수다. 예술가의 가슴 밖에 있을 때에는 구상이나 예감이나 상상일 수도 있고, 예술가의 가슴 밖에 있을 때엔 창작물이 되는 것이다.   가슴 안과 밖의 차이는, 가슴살 한 겹의 차이가 아니라, 무(無)와 존재의 차이다. 아무리 좋은 착상을 가지고 있다 한들, 누구나 읽을 수 있게, 노래할 수 있게, 눈으로 감상할 수 있게, 창작품으로 바꿔 놓지 못하면 그것은 여전히 무인 것이다. 인간의 육신 속의 영혼은 육신과 헤어져 따로 서야만 존속될 수 있다. 그래서, 죽기 전에 분리가 중요하다.   예술가의 심상 속에 깃든 영혼은 만인의 영혼으로 바뀌어야, 그 값을 빛처럼 발휘할 수 있다. 예술가의 심상 속의 영혼은 고독한 영혼이되, 예술가의 심상 밖으로 나온 영혼은 만인의 영혼을 달래줄 수 있는 기능으로 값지게 된다. 죽은 육신에서 영혼이 나올 수는 없다.   동시 작가의 동시 쓰기에서도 위에 말한 일반론이 그대로 적용된다. 동시 작가의 가슴에 스며든 시정(詩情)이, 가슴 밖으로 나와 글자라는 수단에 힘입어 어떤 모양을 갖추게 되면, 이 때 비로소 동시 작가의 정서가 형상화하고 이 형상화에 담긴 작가 의도가 독자에게 전달된다.   동시 작가가 동시를 쓰기 전 또는 쓰는 동안, 어떤 작가 의도를 형상화시키려 했던지, 그것은 동시 작가의 기량에 달린 문제다.   여기서는 만질 수 없고 느낄 수만 있는 마음, 곧 작가 의도를 내가 아닌 남이 만지거나, 읽거나, 듣거나, 보거나 할 수 있도록 모양을 갖춰 '독립적 존재'로 바꿔 놓는 작업이 중요하며, 이 작업 과정에서 형상화는 다양한 모양 가운데 한 가지 형식을 얻게 되는 것이다.   조각가가 창작한 조각, 미술가가 그려낸 미술 작품, 음악가가 창작한 작곡, 시인이 쓴 시 작품…… 모두 마음을 영원히 존재하도록 변형시킨 결과물이다. 이 창작물이 예술인의 마음을 어느 정도 대변하므로 창작인의 창작 의도를 짚어볼 수 있는 것이다.   도예가가 빚은 자기를 바라보면서, 도에가가 흙을 빚을 때 담아 넣으려던 마음을, 우리는 자기에서 짐작해 볼 수 있다. 선이 아름다운 곡선 허리의 자기를 감상하면서, 도예가의 작가 의도를 유추 해석한다면, 애초에 도예가가 형상화하려던 그 마음까지 짚어볼 수 있다.   이 말은 그대로 동시를 놓고 되풀이할 수 있다. 뜻을 지닌 낱말들을 골라 적당한 위치로(속으로 정서 논리가 통하도록) 배열해 놓으면, 글자들의 논리에 따라 머리에 그릴 수 있는 추상적인 그림이 그려진다. 바로 이것이 동시 쓰기에 잇어서 형상화 작업이다.   여기서 말하는 글자의 논리라는 것은, 문법이라든가, 어법이라든가, 어감(語感)이라든가, 또는 복합 의미(複合 意味), 이중 해석(二重 解釋) 따위가 어우러져 만드는 질서이다. 우리 말과 글을 모국어로 쓰는 사람과 그리고 우리 말과 글을 외국어로 쓰는 사람의 차이는, 이 「글자의 논리」를 어느 정도 이해하느냐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하물며 정서 논리에 있어서는, (아무리 우리 말과 글을 잘 한다 하더라도) 외국인인 경우 이해하고 납득하는 데 우리 나라 사람을 따르지 못한다.   동시 쓰기에서, 이 글자 논리와 질서 논리는 아주 중요한 기능을 하기 때문에 형상화를 쉽지 않은 작업으로 보는 것이다.   한 줌의 찰흙을 쥐어 주면서 잔을 형상화하라고 이르면, 한국인은 소주를 마시는 술잔 모양으로 빚어내는데, 아랍인은 아랍식 다기 모양으로 빚어낸다. 이 차이를 흔히 문화의 차이라고 이야기하려 든다. 좀더 구체적으로 짚어 본다면, 정서 논리에 따른 결과라고 설명할 수 있다. 정서 논리는 이렇듯, '마음을 굳혀서' 존재로 변형시키는데 변수(變數) 같은 기능을 한다.   이쯤에서, 우리는 형상화라는 것을, '마음 빚기'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형태가 없는 마음 곧 예술가의 심상을, 형태가 있는 것으로 바꿔 놓기라고, 위에서 길게 늘어놓았다.   형상화의 대상은 마음이다. 가슴 속의 마음을, '가슴 밖에 존재하는 마음'으로 남기기 위해, 모양을 갖추게 하는 작업이 형상화 작업이다. 이를 바꿔 말하면 마음 빚기가 된다. 작곡가는 오선지 위에 음표로 마음을 빚어 나타내며, 시인은 원고지 위에 글자로 마음을 빚어 나타낸다.   변형된 마음, 곧 빚어진 마음은 예술가가 지구에서 사라져도 계속 존속한다. 그래서 창작품은 예술가의 분신(分身)이라고 일컫는다. 예술가의 분신은, 영혼을 얼마만큼 형상 속에 지닌다.   이렇게 거꾸로 소급하여 생각해 보면, 동시를 쓸 때 동시 작가의 의도를 형상화하는 작업이 얼마나 고귀한 일인가 알 수 있다. 가장 순수하고 가장 경건하고 가장 진지한 마음, 이것을 바꿔 담을 만한 글자의 그릇을 찾는 일이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글자로 빚어진 그릇, 마음 빚기로 만든 마음 덩어리를 그대로 폭 빠뜨려 담아낼 수 있는 그릇, 이런 글자로 된 그릇이 쉽게 찾아지는가.   길을 가다가도 문득 걸음을 멈추고 펜을 꺼내 끄적이고, 뭘 먹다가도 정신 나간 사람처럼 돌아앉아 펜을 꺼내 끄적이고, 잠을 자려하다가도 벌떡 일어나 떠오른 것을 적어 놓는 작업이 모두 마음 빚기를 실천하는 행위이다.   도공은 빚은 마음을 1600도의 고열 가마에 넣고 구워서 형상이 유지되도록 하나, 시인은 빚은 마음을 흙가마가 아닌 고뇌의 가마에 넣고 구워내야 한다. 이런 고뇌가 몇 도인지 사람들이 알겠는가?   정작 형상화 작업에서 꼭 하고 싶은 말을 이제 하겠다.   시인이 성인을 위한 시를 쓰는 작업에서는 1600도를 넘는 고뇌의 과정을 앓아야 하겠지만, '동시를 쓰는 과정에서도 그런 과정이 필요하겠는가'라며 지껄이는 말을 들을 땐 참으로 기가 막힌다.   동시 쓰기에서 가장 적절한 표현을 위해, 낱말 고르기에 하루가 아닌 한 달을 고심하거나, 썼다 지웠다를 열 번 스무 번이나 되풀이하거나, 윗줄과 아랫줄을 붙였다 떼었다 줄였다 늘였다를 수없이 실험하는, 이런 '목마르는 체험'을 못해본 사람이라면 감히 그런 말을 입에 담을 수 있겠지만…….   끝으로 형상화 작업에서 형상화하고자 하는 대상의 선택, 이 선택이 참으로 어렵고 힘든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사진기로 찍어내는 대상은 렌즈의 기능에 따라 담길 수 있는 영역 전부가 축소되어 재현된다. 그러나 화가는 그렇게 하지 않고 자기 시선이 닿는 범위 안에서 자기가 선택하는 것만 골라 옮겨 그린다. 이 때 선택은, 화가의 의도에 따라 선별된 선택이다.   화가는 눈에 보이는 대로 다 옮겨 그리지 않고, 그리고 싶은 몇 가지만 소재로 삼아 캔버스에 옮겨 그리면서 자기 감정도 그림 속에 집어 넣는다. 결국 사진 예술 작품과 화가의 미술 작품과의 차이는, 인간의 정서가 선별적으로 선택한 조재의 강조에서 나타나게 마련이다.   동양화와 서양화의 차이도 소재의 선택에서, '얼마나 생략하느냐'에 따라 분명하게 차이가 나타난다. 선택의 차이가 아주 극명한 경우를 우리는 화가와 그리고 판화가의 눈으로 선택한 최소한의 선택만으로 작품을 구성하고 있지 않은가.   동시 쓰기에서도, '선택'은 판화가의 선별 선택 만큼 큰 비중을 차지하는 몫이다. 꼭 선택해야 하는 것만 선택한 경우, 형상화 작업에서 어려움을 덜 겪게 된다. 그러나 이것 저것 선택하는 욕심을 부릴 경우, 형상화 작업에서 매우 어려운 '어려움'을 겪지 않을 수 없다. 동시 쓰기에서 최소한의 것만 선택한 간결한 소재는, 형상화 작업에서 겪는 어려움을 덜어주는 몫을 해준다.   흙에 씨앗을 심어 키운 나무는, 자라는 데 십년 이십년이 걸린다. 그러나 마음에 씨앗을 심어 키우는 형상화는, 하루에도 가능하다. 하지만 결코 쉽지 아니하다. 마음에 씨앗을 심어 키운 나무는 예술이다. 형상화는, 십년 자란 나무를 하루에 키우는 신비를 지닌다. 형상화는 창작을 위한 밑그림이요, 아울러 예술 전단계의 필수 작업이다.      (2003-여름 한국동시문학 3호)   동시 창작론 ④ 이미지의 연결 유 경 환(동시인/시인)     이번에는 '이미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이미지를 우리말로 어떻게 써야 하며, 어떤 표현법이 서양의 이미지에 가장 가까운 것이냐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일 수 있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그냥 이미지라는 외국어를 그대로 차용한다.   이미지란, 이야기로 쓰기가 아주 예민한 낱말이므로, 여지껏 미뤄온 것이다. 그래도 더 이상 미룰 수 없게 되었다. 하고자 하는 말은 이런 것이다. '이미지'가 떠오르면, 떠오르는 대로 적기부터 하는 것이 현명하다.   떠오르는 그대로, 조각 조각이어도 좋다. 순간적으로 스치는 이미지를 놓치면 다시 불러오기 어렵다. 이것이 이미지의 속성이다. 사람의 가슴이나 머리는, 이런 이미지를 차근히 붙잡아둘 능력에서, 아직 덜 개방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이미지란 과연 어떤 것인가?   간단히 말해, '구름이 한 마리 양으로 보였다면' 이 때에 양은 이미지다. 상상 속에 떠올라 겹쳐지는 생각의 그림이라고나 할까?   대상을 보는 순간, 또는 어떤 생각이 가슴에 차오르는 순간에, 매우 빠르게 머리 속을 스쳐 지나가는 직관(直觀)이므로, 이를 재빠르게 잡아야 한다. 이런 이미지는 떠오르는 대로, 스며오는 대로 그대로 기록하여, 나의 것으로 만드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만일 그것들을 연결시키려고 애를 쓴다면, 그 동안에 뒤미쳐오는 다른 이미지를 놓쳐버리기 쉽다.   이미지는 책을 읽거나 그림을 보거나 음악을 들으면서 느닷없이 오기도 하고, 산책을 하거나 산엘 오르거나 잠에서 깨어나면서 시나브로 만나기도 한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갑작스레' 오는 것이 아니라, 그 동안 머리 속에 또는 가슴 속에 늘 담아 왔기에 그것이 넘쳐 나오듯 다가오는 것이다.   이쯤에서, 이미지를 다시 생각해 보기로 하자. 은유(메타포어 metaphor)란 언어로 이루어지는, 언어로 비유되는 어떤 상(像)이지만 이미지란 언어 이전의 상(像)이므로 그냥 서양말 이미지를 빌어쓰기가 오히려 편하다. 그래도 설명이 구태어 있어야 하겠다면 '어떤 것을 보고 다른 무엇을 생각나도록 하는, 이런 연상 작용의 밑바탕'이라 할 수 있겠다.   이미지는 시를 신선하게 표현하는데 아주 좋은 일몫을 한다.시가 참신하다는 평을 듣는 데는, 동원된 이미지가 아주 새롭거나 또는 독자들이 생각하는 범위를 훨씬 넘어 구해왔다는 이유가 잠재한다.   남들이 여러 번 동원한 이미지를 다시 쓰면, 되풀이된 만큼 신선한 감각을 잃게 되어, 구태의연한 표현 기법이라는 평을 듣게 된다. 따라서 이미지를 옮겨 놓는 기법에서, 낡은 단어나 식상한 낱말은 피하는 것이 좋다.   따라서, 남들이 이미 사용한 이미지 구사법은 피해야 한다는 결론과 만난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선배의 작품을 되도록 많이 읽는 것이 상책이다. 앞서 발표된 작품이나 작품집을 읽는 길밖에는 달리 길이 없다.   언젠가 '병아리들이 흙담 밑의 봄볕을 쫑쫑 물고 간다'는 이미지 표현이 활자화되었는데, '병아리', '노란 주둥이' 그리고 '햇볕' 이렇게 세 가지를 연결시킨 표현이 잇달아 작품으로 발표되어,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 적이 있다.   비슷한 시기(봄을 눈앞에 둔 절기)에 비슷한 생각(유사한 동질 상황 속에서)을, 따로 지닐 수 있다. 그러므로 쓴 사람은 '모방이 아니고 표절은 더구나 아니'라고펄쩍 뛸 노릇이다. 하지만 같은 이미지가 포개진다면, 결과적으로 부분 모방 또는 부분 표절로 몰릴 수밖에 없다. 말은 안 해도 독자는 속마음으로 그렇게 간주할 것이다. 속마음(내심)으로 굳히는 판단이니, 따라다니며 변명할 수도 없는 일 아닌가.   이미지라는 것은, 시 작품 속에 전개된 내용에서 앞과 뒤, 그리고 위와 아래가 조금도 어색하지 않게 서로 잘 어울려야, 이미지의 기능을 제대로 하게 된다.   다른 말로 하면, 서술된 표현 속에 이미지는 마치 천조각들로 이어 맞춰진 조각보처럼, 아우러진 조화와 균형 이것들을 생명으로 기능한다.   한 편의 시 작품 속에서 이미지가 조화스럽고 균형되게 아우러졋다면, 이를 놓고 문학 이론서에선 '정서 논리'가 존재한다고 말한다. 유의할 것은 일반 논리(一般論理)가 아닌 정서 논리다. 큰 기게를 돌아가게 하는 톱니바퀴들이 맞물리듯, 또는 손목시계 속에서 작은 톱니바퀴들이 맞물리듯, 정서적으로 척척 맞아떨어지는 경우라야 독자에게 상상 연상 또는 환상을 만들어 줄 수 있다.   이런 황홀한 세계를 독자가 만나야, 시인의 내면 세계에 깊이 들어갈 수 잇으며 실제 이상의 세게로 들어갈 수 있다. 이미지는 생각의 조각에다, 천사의 날개 같은 날개를 달아주는, 멋진 기능을 시 속에서 하는 것이다.   또 이미지는, 다른 한편, 낡은 시형식이나 오래 전부터 자주 동원된 시어를 물갈이하는 방법으로 채택된다.   시에 동원되는 단어들이 새로운 단어로 바뀌는 것은, 시인이 시를 창작할 때 전에 한번도 쓰이지 아니한 새 이미지로 형상화하기 때문이다.   요즘 새로 등단하는 신인들의 작품을 읽으면, 그들이 사물을 보고그 사물에게서 뽑아낸 이미지가 얼마나 새로운가를 확실히 알 수 있다. 곧 이미지의 표출 방식이 그 전 세대와 달라진 것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시의 진화(進化)는 새로운 이미지의 선택으로 이루어진다.   시적 대상에서 시적 메시지를 끌어내기 위하여 새로운 감각으로 접근한다는 것은, 참신한 이미지의 표출을 위해 전연 새로운 발상으로, 생각지도 못했던 꿈을 꾸고 이를 표현할 언어를 찾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론의 차이로 말미암아, 전세대의 수용 감각과 신세대의 수용 감각에 차이가 나고, 틈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시의 진화는 이루어지고, 수용 감각의 차이로 시를 대하는 감각이 달라지며, 마침내 이미지를 표출하는 능력까지 '같지 않게' 되고 만다. 같은 재료를 쓰면서 다른 차원의 형상을 빚는 감각의 차이를 인정한다면, 이미지의 처리에서도 또한 그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   옛 사람들의 정서 작품인 시조(時調)를 보면, 꽃의 이미지로 여인을 글 속에 숨겼다. 그리고 이런 이미지 활용 기법은, 생존하는 시인 김춘수의 '……내가 네 이름을 불러주기까지……'라는 작품 '꽃'에까지 지속되어 왔다.   '호박꽃도 꽃이냐?'라고 한다면 이 경우 호박꽃의 이미지는 부정적으로 활용된 것이지만, '수더분한 누나가 생겨날 때면 호박꽃을 보러 울타리로 간다'고 했다면 호박꽃의 이미지는 긍정적으로 활용된 것이다.    이렇듯 이미지의 활용은 시인의 잠재의식에 따라 달라진다. 시의 품위를 유지하는데, 이미지의 활용은 결정적 일몫을 한다. 이미지의 활용을 천박하게 하면, 시가 아닌 '유행가'로 전락하고 만다.   따라서 시 작품의 품격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시인의 내적 잠재의식이 고상해야 할 것은 당연지사이다. 오늘날 어린이도 읽을 만한 시, 곧 동시 속에 시인들이 어떤 이미지를 활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우리 나라 동시의 미래와 직결되는 과제가 된다. 어린이가 읽을 만한 시라고 해서, 유치한 이미지 활용을 생각없이 일삼는다면, 동시가 천한 것이 될 것은 확실하다.   요즘 동화의 소재로 '똥'이 자주 채택되는데, 이는 일부 사실주의 작가들의 이야기와는 달리, 철학이 빈곤한 작가들의 짓거리일 수도 있다.   어린이에게 권할 만한 시, 곧 동시에도 이런 경향이 옮겨오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다. 시는 언어의 유희가 아니라, 언어의 조각이고 정서의 보석이다. 시에는 조각 같고 보석 같은 영혼이 담겨야 시로서 존재할 수 있다.   아이들이 글짓기 시간에 써내듯, 아동문학가로 등단한 시인이 한두 시간 안에 동시라고 써내는 글을 보면, 말문이 열리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들은 이미지의 연결에 고민할 이유가 없다고 여기는 것일까?   '꽃밭에 가장 큰 해바라기꽃은 우리 아버지……' 이것은 초등학생의 글인가, 아동문학가의 글인가? 초등학생이 능히 써 낼 수 있는 글을 아동문학가의 작품이라고 발표한다면, 그는 스스로 자기의 위치를 초등학생 수준으로 퇴장시키는 것과 다르지 않다.   동시를 쓴다고 하는 아동문학가들이여, 발표하기 전에 한 주일에 한 번씩 한 달쯤, 두고두고 퇴고하길 바란다. 서로 상충되는 이미지는, 원고지만 구기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아동문학의 얼굴까지 구겨 놓기 때문이다.  (2003-겨울 『한국동시문학』 제4호에서)   동시 창작론 ⑤ 상징(象徵)의 활용(活用) 유경환(시인, 동시인)     동시를 쓰는데 상징(symbol)을 왜 알아야 할까? 대답은 잠시 뒤로 미루자. 이론은 들어본 적이 없어도 훌륭한 동시 작품을 써낼 수 있다. 이론 공부 없이 신춘문예에 당선되기도 하고 문예지의 추천으로 등단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론 공부를 구태어 해야 할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닐까? 창작 행위에 있어서 이론이란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론을 알아 두어야 할 이유가 있다. 이론 공부는 지속적으로 창작 활동을 하기 위해 필요한 '거름주기'와 같다.   한두 번 동시를 써본다거나, 아니면 몇 편 써낸 동시 가운데 잘 된 것으로 한 편이 뽑히거나 가려진 경우엔 '이론 없이도 된다'는 말이 나올 만하다.   하지만 좋은 평가를 받을 만한 수준의 동시 작품을 계속해서 생산하려면, 이론의 뒷받침이 있어야 함을 동시 작가들이 더 잘 알 것이다.   문학은 원래 혼자 하는 것이다. 앞에서도 이 말을 한 것으로 기억한다. 혼자 창작하는 과정에서 '이렇게 써도 되는 것일까?' 하는 의아심이 자기 속에서 떠오를 때, 이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면 이론서를 꺼내 뒤적여야만 한다.   마치 '저쪽이 내가 가려는 남쪽'이라 믿고 배를 몰고 나가다 한참 뒤에 동서남북을 가릴 만한 것이 아무것도 눈에 띄지 않게 되면, 그 때에야 나침반을 찾는 것과 다르지 않다.   훌륭한 동시를 써내겠다면 상징의 활용이 어떤 효과를 작품에 얹는지 알아야 한다. 동시 창작에 있어서 상징의 활용은 필요 조건이 아닌 충분 조건이다. 쉬운 말로 한다면 꼭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지만 있으면 더 좋은 것이다. 그러므로 상징을 알면 더 좋은 작품을 쓸 수 있는 조건을 더 얻는 셈이다.   자, 그러면 본론으로 들어가 상징에 대해 생각해 보자. 기존의 이론서처럼 하자면 제1장 제1과 이렇게 나눠 놓고 상징의 의미, 상징의 구사, 상징의 효과…… 이런 식으로 설명해야 하겠다.   그러나 우리도 좀 바꿔 보자. 다른 나라에서 가르치고 배우는 식으로 우리도 부드럽게 이야기식으로 풀어가 보자.   교과서에 나온 동학혁명 운동이라는 것이 일어났을 때 그 시절 사람들은 입에서 입으로 전하는 노래를 불렀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이 노래 속의 녹두는 곡식 이름이기도 하지만 동학혁명을 일으킨 전봉준을 상징하였다. 녹두장군이란 말도 있었다.   아침에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고 해서 까치는 반가운 새로 여겼으며, 그와 반대로 까마귀를 불길한 새로 여겼다.(하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까마귀를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유치환 시인의 알려진 시 작품에서 '깃발'은 소리 없는 아우성, 곧 생명의 몸부림을 상징하는 시어로 씌였다.   이육사 시인의 알려진 시 작품에서 '광야'는, 광막한 현실, 곧 일제 시대의 우리 나라 형편을 상징하는 시어로 구사되었다. 김춘수 시인의 알려진 시작품 가운데 '꽃'은 어떤 상징으로 동원되었는지는 이미 지난번에 이야기하였다.   태극기는 우리 나라의 상징이고 푸른색 한반도는 통일된 나라의 상징이다. 태극무늬, 장고도 상징으로 씌이는 경우가 있다. 시야를 넓히면 비둘기는 평화의 상징이며 하늘에서 지구를 내려다본 지구본은 유엔의 상징이다. 학교마다 교기가 있고 모표나 배지가 있다. 이만하면 상징이 어떤 역할과 기능을 하는 것인지 짐작이 갈 것이다.   이쯤에서 어려운 말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상징은, 복합적 의미들 가운데서 어느 한 가지를 대신하도록 특별한 의미를 확대한 표상(表象)이다. 그래서 문예 이론서에서는 상징주의를 표상주의라고도 부른다.   동시 작품을 쓰는데 상징법을 활용한다는 것은 직접 표현은 미뤄 놓고 간접 표현을 써서 독자로 하여금 더 깊고 더 넓은 뜻을 생각하도록 새로운 해석에 이끌어 들이고자 하는 것이다. 일종의 유도 기법이다.   동시 작가들이 동시를 창작하는데 무덤가에 핀 할미꽃은 돌아가신 할머니를 생각하도록, 하늘에 일찍 뜬 이른 별은 하늘에 올라간 언니나 동생을 생각하도록 , 또 안 보이는 곳에서 울어대는 산새는 그리운 사람을 생각하도록, 상징법을 활용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할미꽃, 별, 산새…… 따위들은 이미 상징 시어로서 생명을 잃은 낱말이 되었다. 더 이상 상징 시어로서 역할과 기능을 할 수 없을 만큼 닳고 때묻은 낱말이 되었기에, 이런 상징 시어는 독자에게 참신하지 못한 인상을 주고 있다. 지속적으로 동시를 써내야 하는 동시 작가라면 상징 시어로서 새로운 낱말을 찾아내고 골라내야만 하는 부담을 그래서 안게 된다.   말을 뒤집어 하면, 참신한 동시 작품을 쓰고자 한다면 먼저 참신한 상징시어를 찾아내는 작업이 있어야 한다. 요즘 박두순, 이준관, 윤삼현, 이상문, 이정석, 한명순, 신형건(무순) 시인들이 주목을 받고 있는 까닭은 상징의 활용에서 남다른 기량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분들은 그 앞 세대가 구사하던 상징 기법과 아주 다른 상징 기법을 스스로 개척하여 활용하는 본보기들이다.   그러나, 이런 분들의 상징 활용과 상징 기법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말한다. '동시가 너무 어려워…… 난해한 것을 써놓고 저희들끼리만 좋다고 하는, 저들끼리만의 잔치'라고.   직접 표현의 낱말만 가지고 동시를 써온 세대가 있었다. 유치원 어린이들이 읽고 들으면 금세 알아듣는 직접 표현의 낱말만 시어로 선택하였던 세대가 오늘날 70대 후반과 80대에 이른 원로 세대이다.   그러나 직접 표현의 낱말을 시어로 써온 80년 동안, 그런 낱말들은 '반달' 같은 눈썹, '앵두' 같은 입술에서 반달이나 앵두처럼, 상징의 역할과 기능을 할 수 없는 수준으로 퇴색하고 말았다.   그래서 6.25전쟁 직후부터 새로운 세대의 동시 작가들이 직접 표현 대신에 간접 표현의 시어를 도입 구사하는 방법으로 '동시도 시이어야 한다'는 기치를 올렸던 것이다. 이 기치는 필자가 맨 먼저 들었다. 동시도 시이어야 한다는 말의 뜻은, 동시는 '어린이에게 읽힐 만한 시'라는 것이다.   유치원 어린이들이 발맞춰 가며 부르는 노래의 노랫말 같은, 틀에 맞춘 동요― 틀에 맞도록 한 가지 이야기를 줄 바꿔가며 짧게 줄인 노랫말……에서 벗어나려고 했던 것이다. 벗어나기 위해 간접 표현을 중시했고 상징 활용을 은유적으로 시도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 간접 표현 중시와 상징 활용을 눈치 채지 못하는 일부 동시인들이(일부 비평가와 함께) 입을 맞춰 '난해하다'는 불평을 터뜨렸던 것이다. 아마 그들은 계속 할미꽃, 별, 산새, 반달, 앵두…… 이런 정도의 낱말만 상징 용어로 쓰이길 바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또는 이야기 한 토막을 몇 줄로 줄 바꿔가며 나열하는 것이 쉬운 동시라고 여기는지도 모르겠다.   한가지 분명히 해 두어야 할 것이 있다. 유아 동요나 유년 동시에는 상징을 활용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는 사실이다. '짝자꿍' 같은 유아 동요나 유치원 원아들 수준에 맞는 유년 동시에서 상징을 구사하면 오히려 혼란이 온다. '새나라의 어린이는 일찍 일어납니다.'의 '새 나라', '어린이'는 그냥 직접 표현으로 충분하다.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서의 '나팔꽃'이나 또는 '과꽃'도 직접 표현으로 충분하다. 이런 동시는 한 줄의 이야기를 내재율이나 외재율에 맞도록 줄을 바꿔 쓴 '이야기'이므로(이야기 속에 모든 것이 이미 들어가 있으며) 한 번 읽어서 대번에 들어있는 뜻을 알 수 있으므로 구태어 상징을 동원할 필요도 구사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나라 동시가 언제까지나 이런 노랫말에 맞는 동시 수준에 머물러야만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는 것이다. 정서면에서 지체 또는 장애를 강요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에 설득력이 없다고 보는 것이다.   다른 나라 어린이들 그리고 청소년(teen-ager)들이 어떤 시를 읽고 있는지 한번 살펴보기를 권한다. 모르면 배워서라도 바로 알아야 할 일이다. 우물 속에 들어가 앉아 하늘 둘레가 지금 몇 미터라고 말하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아니한 주장을 펴는 사람들이 100년 전도 아닌 오늘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현실이다.   영국의 어린이들이 윌리엄 브레이크의 시를 '어린이가 읽을 만한 시'로 여기면서 읽고 외우는 까닭을 모르면, 프랑스의 어린이들이 보들레르의 시를 초등학교 과정에서 외우는 까닭을 모르면, '동시에 왜 상징이 필요하냐?'고 반문할 것이 뻔한 일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간다. 동시에서 상징을 활용하면 동시가 지니고 있는 함의(함축된 의미)를 확대시킨다. 물 위에 뜬 얼음만 읽어도 물 속에 잠긴 빙산의 규모까지 해석할 수 있도록 상징 기법을 쓰는 것이다. 물 위에 뜬 글자만 읽어도 물 속에 잠긴 것을 알아차릴 수 있도록 물 위의 글자를 직접 표현으로 하지 않고 간접 표현으로 쓰는 것이 최종적 대답이다.   좋은 동시로서 난해한 시는 있을 수 없다.   산을 다룬 좋은 동시는 산을 주제로한 동시로도 읽히면서 아울러 덕스러운 할아버지의 상징성을 풍기기도 한다. 강을 다룬 좋은 동시는 강을 주제로 한 동시로 읽히면서 오랜 역사나 전통의 상징성을 독자에게 넌즈시 던져주기도 한다. 나무를 다룬 좋은 동시는 그냥 나무의 시로 읽히기도 하지만 아울러 인격이 높은 사람으로 읽히기도 한다.   문제는, 좋은 동시가 품고 있는 그 내면의 이중성을 독자가 감지하지 못하거나 찾아내지 못할 경우, 좋은 동시를 '난해하다'고 단정해버리는 태도에 있다. 백두산을 다룬 동시에서 '백두산'이 나라를 상징한다는 것은 쉽게 알아차리면서 다른 동시가 속깊이 품고 있는 상징성을 알아내지 못한다면, 그 독자의 능력과 수준의 문제라고밖에 달리 말할 수가 없다. 좋은 동시를 읽고 '난해하다'고 하는 사람은 좋은 동시인지 그렇지 못한 것인지를 식별할 능력이 없는 사람일 수밖에 없다. 하필이면 좋은 동시가 못 되는 작품(?)을 놓고 '난해하다'고 해야 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좋은 동시와 난해한 동시의 상관성은 다음과 같이 정리핳 수 있다.   ① 좋은 동시는 난해한 시가 아니다.   ② 난해한 시는 좋은 동시가 될 수 없다.   ③ 난해한 것은 좋은 동시가 못 된다.   ④ 좋은 동시는 난해하지 않다.   되풀이하자면, 좋은 동시인데도 난해하다고 우긴다면 그 상징성을 파악할 능력이 없거나 그럴 만한 독해력을 갖추지 못한 독자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일반 독자도 아닌 비평가라는 사람이 좋은 동시를 놓고 난해하다고 앞장선다면 우리는 이 비평가라는 사람을 어떻게 봐야할 것인가!   (2004년 봄 『한국동시문학』 제5호)   동시창작론 ⑥ 비유의 정체와 기능 ―비유를 모르면 시를 못 쓰는가? 유 경 환   '비유컨대, 한용운의 시에서 님은 무엇입니까?'라고 말한다. 비유라는 낱말이 문장에 등장한 경우이다. '내 마음은 호수요'라는 김동명의 시에서는 호수가 마음의 비유임을 알 수 있다.   기독교의 성서는 비유로 가득 차 있다. '하느님의 어린 양'의 양, '나의 목자시니'의 목자,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로다'의 포도나무는 모두 비유이다. 불교의 법구경도 비유로 말한 경구들의 모음이다.   윌리암 워드워즈는 무지개를 이상에 비유했다. '용비어천가'의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도 비유의 시다. 월인천강은 '1천 개의 강줄기에 달이 빠져 있다'는 뜻으로 읽힐 수 있다. 1천 개의 강줄기는 수많은 강의 과장 표현이다. '임금이 어질면 그 은총이 어디에나 고루 퍼진다.' 이런 해석이 위의 한자 넉 자에서 나올 수 있다. 달은 군주의 비유로 쓰였다.   '물 한 모금 입에 물고 하늘 한 번 쳐다보고'라는 강소천의 '닭'은, 현실에 발을 딛고 있으면서 이상을 쳐다보는 인생을 비유하였다고 해석할 수 있다. 우리가 잘 아는 동요 '병아리떼 종종종'의 병아리도 귀여운 어린이의 비유일 수 있다.   자, 이 정도의 예문을 읽어보면 비유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대강 짐작할 수 있으리라. '어떤 관념이나 사물을 그와 비슷한 것을 끌어대어 설명하는 일'이 사전적 비유의 뜻이다. 그러나 이런 사전적 정의를 읽으면 알 듯한 뜻이 더 알쏭달쏭하게 안개 속에 숨겨진다.   비유란 쉬운 말로 빗대어 하는 말이다. 빗댄다는 말이 흔히 나쁜 뜻으로 쓰이기 때문에 개념의 혼란을 일으키기 쉽다. (하지만 빗댄다는 말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이유는 없다. 여기서는 이미지를 끌어오기 위해 빗댄다고 여기면 된다.)   사물이 지니고 있는 이미지를 끌어다 설명하는, 간접적 묘사의 방법이라고 받아들이면 비유의 개념은 단순해진다.   그러면 왜 다른 사물이 지니고 있는 이미지를 끌어다 간접적으로 설명하려는 방법을 쓰는가? 비유의 방법을 쓰면 독자에게 해석의 폭을 넓혀 줄 수 있다. 독자에게 해석의 폭을 넓혀주는 일몫이 바로 비유의 기능인 까닭이다.   독자는 독자 나름으로 제각기 체험(내적인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이 독자 체험과 쉽게 연결시켜주는 일몫이 비유의 효과에 들어 있다. 그래서 비유의 기법은 독자의 체험과 서로 관계가 있는 상관 관계라고 말한다.   강소천의 작품 '닭'에서 닭을 그냥 마당가에 이리저리 다니는 닭으로 읽는 독자는 어린 독자이고, 닭 이상의 것으로 읽는 독자는 그만큼 성숙한 독자이다. 한 군주가 어질면 만 백성이 편하게 산다는 해석을 하는 이는, 월인천강의 달을 임금으로 해석하는 사람이다.   비유의 기법을 써서 다른 사물의 이미지를 끌어다 간접적으로 설명하면 그만큼 해석의 폭이 넓어지기 때문에, 다양한 체험을 지닌 폭 넓은 독자층에겐 전달 의지가 쉽게 수용될 수 있다. 독자는, 성숙한 독자일수록 다양한 체험을 축적하고 있으므로, 그만큼 해석의 폭을 넓힐 수 있다. 이 점이 바로 비유와 체험 사이를 말하는 상관 관계의 참뜻인 것이다.   비유는 영어로 메타포어(metaphor)이다. 비유는 직유(直喩)와 은유(隱喩)로 갈라볼 수 있다. 직유는 한자 그대로 직접적인 비유를, 은유는 한자 글자대로 은근한 비유를 가리킨다. 시에서는 직유보다 은유가 더 쓰인다. 영어에서 a heart of stone 이라고 쓰면 비유가 되는데, a heart like stone 으로 쓰면 직유가 된다. 직유의 예문으로 꿀벌처럼 부지런하다를 as busy as a bee 라고 쓰면 꿀벌은 직유인 것이다. 비유의 개념을 분명하게 하기 위해서 영문으로 예문을 들었지만 이것까지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 다만 중학교 고등학교 과정에서 영어를 공부할 때 한번씩 짚고 넘어갔던 것이기에, 비유가 문장에서 어떻게 기능하는가를 확실하게 밝혀보기 위해 재인용한 것이다.   그러면 이런 비유를 시 쓰는 작업에서 어떻게 다루어야 할 것인가에 초점을 두어 이야기를 더 나누어 보기로 하자. '이런 비유를 왜 알아야 하는가'로 줄여서 말할 수도 있다. 몰라도 큰일이 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독서를 하다보면, 한두 권의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다량의 책을 읽다보면, 문장의 파악에서 저절로 비유의 일몫을 일깨우게 된다. 문법상 비유의 기능은 해석의 폭을 넓혀주는 것이다. a heart of stone 이라고 할 때에, '돌 속에 들어 있는 마음'으로 읽는 이는 아주 적을 것이다. 돌 같은 마음(a heart like stone)으로 읽고 감상할 것이다. 그러나 문장으로서는 a heart of stone 이 더 멋지다. 왜 더 멋질까? 비유가 시에 있어서 빼어놓을 수 없는 '시적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를 쓰는 데 비유를 모르면, 낱말의 사전적 의미에 한정된 것밖에 전달하지 못한다. 뒤집어 말하면, 비유가 없는 문장에선 사전적 의미 이상의 것을 기대할 수 없다. 그러기에 비유가 시에서는 중요한 시적 요소가 된다.   한 문장에서 또는 글에서 사전적 의미에 한정된 감상밖에 할 수 없다면 얼마나 삭막한 문장이 되겠는가. 뼈가시만 남은 물고기를 뱃전에 잡아매고 돌아온 헤밍웨이의 소설 '바다와 노인'의 그 '앙상한' 해석만 가능할 것이 아닌가. 이쯤에서 비유의 개념과 기능을 더 분명하게 짚어보자. 비유는, '시에 함축된 의미를 독자의 체험만큼 확대시켜주는 효소'라고 할 만하다. 시어로 동원된 언어의 뜻을 기량껏 더 깊고 더 높게 확대시키는 마술적 기능을 비유가 한다. '기량껏'이라는 것은 독자가 지닌 '체험의 질(質)과 수준에 따라서'라는 말이다. 언어의 요술사가 바로 이 비유인 것이다.   복사꽃이 이울게 되어 바람에 날릴 때, 시인이 '꽃비'가 온다고 표현한다. 그러나 꽃잎이 눈 내리는 것보다 더 자욱하게 날리는 것을 보지 못한 독자는 (이런 체험의 결여 때문에) '꽃비'라는 비유에 선뜻 다가서지 못한다. 하지만 이런 장면을 본 적이 있는 독자는, '꽃비'라는 비유를 바로 받아들이게 된다. 비처럼 꽃잎이 내리는 것을 본 적이 있는 체험만이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을 내면적으로 생각해 본 독자는, 1차 비유인 꽃잎을 넘어서 2차 비유로 '목숨이 진 낙화'로 '꽃비'를 확대 해석한다.   이렇듯, 시어의 함의(함축된 의미)를 한 겹만이 아닌 두 겹 세 겹까지 벗겨내는 해석, 이것을 가능하도록 해주는 기능이 비유의 숨겨진 기능인 셈이다.   사람이 그 주변 분위기나 환경에 따라 옷을 갈아입듯이, 비유는 시를 이루는 글의 옷을 맞춰 입히는 일몫을 한다. '가을이 오자 나무도 나뭇잎을 떨군다"는 글은 산문이고, '노란 빨간 옷 / 벗는 나무'의 두 마디는 운문이다. 같은 독자가 위의 산문과 운문을 읽었을 때, 더 오래 더 깊이 생각하게 하는 글은 어떤 것인가. 뒤의 것이다. 사막에선 / 바람이/ 줄무늬 만들고 // 가슴에선 / 그리움이 / 줄무늬 만든다.// 그리운 이름 하나 / 가슴에 묻고 / 살지 않으면 / 어이 가슴에 / 줄무늬 일겠는가.// (졸작 '사막' 전문)   이 시에서는 사막도 줄무늬도 모두 비유다. 내셔날 지오그래픽 쏘사이어티가 보여주는 사막의 필름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은, 그 장면의 모래줄무늬를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어 모래사막을 자신의 가슴으로 바꿔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위의 필름을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이야기는 아예 달라진다.)   사막을 자신의 가슴에다 연결시킬 수 있는 사람은, 그리움 때문에 가슴앓이를 해 본 사람이다. 그리움, 이 때문에 잠을 제 때에 제대로 잘 수 없을 만큼 속앓이를 해 본 사람만이 사막의 줄무늬와 자신의 내면에 그어진 줄무늬를 연결시킬 수 있다. 가슴앓이라는 체험이 이 시에 구사된 비유를 직감적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그러므로 비유는 '체험을 매개로 하여 기능한다'고 말할 수 있다.   윤석중이 자신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자선한 동시 '꽃밭'은 아기가 넘어져 한참 울다가 보니 정강이에 피가 아니고 꽃잎이라는 내용이다. 여기서 윤석중은 새빨간 피와 새빨간 꽃잎을 비유로 쓰지 않았다. '새빨간 피가 아닌 것을 자세히 보니 알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니 피와 꽃잎은 몇 번을 읽어도 (처음부터 끝까지) 그냥 피와 꽃잎일 뿐이다. 절대로 그 이상의 어떤 것이 될 수 없다. 시 '꽃밭'이라는 동시의 감상은 이렇게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만약 '피가 아닌 꽃잎'이라는 설명을 시 속에 넣지 않고 생략했더라면, 감상의 폭은 더 넓게 확대될 수 있었을 것이다. 여기서, 비유가 시의 함의와 그 해석을 확대시킴으로써 시의 멋과 격(格)을 더 돋보이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게 된다.   지난 날, '동시에도 비유를 쓸 필요가 있겠는가'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을 때엔, 동시 창작에 비유가 거론되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동시를 '어린이가 읽을 만한 시'로 수용하는 오늘날에는, 비유에 대한 공부가 당연히 있어야 하겠다. 다만 유치원 원아들이나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이 읽을 만한 동시 창작에는, 비유의 활용과 기법을 굳이 고집할 이유가 없다. 실정법상 미성년자는 모두 어린이이면서 아울러 청소년이다. 이 애매한 지칭 때문에 '어린이'라는 말의 개념 범주가 넓어졌다 좁아졌다 하고 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면 '우린…… 동시는 유치해서 안 읽어요'라고 거침없이 내뱉는 현실에서, 동시를 계속 유치원 원아나 초등학교 저학년 계층에 걸맞도록 창작할 것인지, 더 생각해 볼 일이다.   우리 나라 현재의 동시는, 중학교 고등학교 학생들의 접근을 막거나 배척하는 그런 수준의 동시인 것이 분명하다. 어린이나 청소년에게 읽힐 것을 바라며 동시를 쓰는 시인들은, 심각하게 들어야 하고 냉철하게 검토해야 할 과제이다.   유아 동시 유년 동시에서 어린이에게 읽힐 만한 시로 위상을 바꾸려면, 동시 창작에서 비유의 기법을 충분히 활용하는데 적극적일 필요가 있다. 비유는 시의 발효를 돕는 효소, 꼭 있어야 할 효소이다.   (2004년 여름 『한국동시문학』 제6호)   동시 창작론 ⑦ 고쳐쓰기 유경환(동시인/시인)   옛날에 쓰던 교과서엔 '고쳐쓰기'를 퇴고라고 하였다. '퇴고'라고 한자로는 '堆敲'라고 쓴다. '시문의 자구(字句)를 여러 번 생각하여 고치는 일'이, 사전에 나와 있는 풀이다. 한자 때문에 한때엔 '추고'라고도 했다. 어떻게 일컫든, 고쳐쓴다는 뜻은 같다. 그러기에 '고쳐쓰기'로 한다.   글을 쓰는 일에서 고쳐쓰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되는 것은 글을 쓰는 경력과 관계가 있다. 글쓰기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는 나이에선 고쳐쓰기가 별로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는다. '처음부터 잘 쓰면 되지, 왜 쓰고 나서 또 고치고 고치고 해야 돼?' 이런 의문이 들게 마련이다. 이런 의문을 지닌 사람에겐 '그래, 네 말도 맞다.'라고 하는 것이 상책이다.   왜냐하면, 그 정도의 사람에겐 아무리 이야기를 들려주어도 설득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한다'는 말은 바로 이런 경우에 쓸 만한 속담이다. 사실을 고백하자면 나도 그랬었다. 그러나 차차 글쓰기가 쉽지 아니한 일임을 알아차리게 되고 글쓰기가 어려운 일임을 깨닫게 되자, 비로소 고쳐쓰기가 왜 필요한지를 납득하게 되었다.   고쳐쓰기는 단순히 고쳐 쓴다는 것으로 여길 일이 아니다. 고쳐쓰기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을 생각해 내는 기회와 만남이기도 하다. 고쳐쓰기는 '생각의 우물'을 더 깊이 파고드는 기회가 된다는 말이다. 고쳐쓰기는 그냥 이미 써놓은 것을 되짚어 보면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고쳐쓰기는 반드시 거쳐야 할 창작의 과정이다. 건너뛸 수 없는 글쓰기의 과정이라는 말이다.   흔히 고쳐쓰기를 '써놓은 것을 다듬는 일'로 여기기 쉽다. 이런 것으로 여기면 건너뛸 수 있다. 하지만 다시 한번 강조하거니와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다. 왜? 사람은 처음부터 완벽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좁은 병목에 걸려 잘 나오지 않듯이, 글을 쓸 때 생각도 손을 기다려주지 않고 앞질러 나오려 하는 것을 누구나 경험할 것이다.   이런 경우, 생각이 국수 기계에서 국수발이 가지런히 나오지 못하고 뭉개지듯 또는 실타래에서 할머니들이 실을 풀어낼 때 실이 엉키는 일과 비슷하게 된다. 글을 쓸 때 손을 통해 펼쳐지는 생각도 이와 같다. 가슴속의 생각과 그리고 손끝의 생각이 뒤엉키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이렇게 되면 '생각'이 차분하게 순서에 맞게 서술되지 못하거나 서술이 뒤바뀌는 결과가 된다.   이렇기 때문에 글은 (운문이거나 산문이거나) 반드시 고쳐쓰기 과정에서 고쳐져야 옳다. 만일 고쳐지지 아니하면, 그것을 읽는 독자에게 혼란을 주거나 또는 메시지를 정확히 전달치 못하게 되므로 받아들여지지 아니한다.   그러므로 고쳐쓰기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기능을 한다고 볼 수 있다.   ① 틀린 곳을 바로잡는다.   ② 문법과 어법에 맞는가를 살펴보게 된다.   ③ 빠뜨린 것을 알게 되어 보태어 넣는다.   ④ 미처 생각지 못한 것을 뒤늦게 집어넣는다.   ⑤ 더 깊은 뜻을 스스로 깨닫고, 새로운 의미를 글에 덧붙인다.   여러 번 (다른 글에서도 이미 이야기했듯이)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셈이지만, 나의 경우 작품 한 편을 완성시키는데 평균 다섯 번 원고지에 옮겨 쓴다.   지겹고 귀찮은 작업이다. 하지만 활자로 찍혀나간 뒤에는 고칠 수 없는 일이 아닌가. 내 의사가 충분히 전달되기에 미흡한 글인 경우, 굴곡 왜곡 또는 와전될 가능성이 크기에 안타깝다.   그래서 지겹고 귀찮아도 옮겨 쓰고 또 옮겨 쓴다. 다시 옮겨 쓰면서 위에 열거한 다섯 가지 가운데 어느 한 가지를 '발견'하며 위안을 얻으면서 보람을 느낀다.   고쳐쓰기가 지니는 또다른 의미는 '객관적 시각'에서 찾을 수 있다. 객관적 시각이란, 글을 읽는 냉정한 눈길을 말한다. 흥분된 나의 눈이 아니라 냉정한 남의 눈인 셈이다.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 글을 쓸 때에는 누구나 그 나름의 흥분을 지니게 된다. 이런 내적인 긴장 상태는 글을 계속 써 나가도록 밀어주는 힘, 곧 추진력을 팔과 손에 실어주지만 그 대신 '신나는' 흥분을 느끼게 한다.   이 흥분은 글을 쓰는 이로 하여금 객관적 시각을 잃게 하거나 또는 주관적 판단을 우선시키도록 유도하기 일쑤다. 그러므로 '잘 씌어진다' 또는 '잘 나간다'는 엉뚱한 생각에 빠지게 한다. 이런 함정에서 헤어나오는 기회가 바로 고쳐쓰기의 기회다. 고쳐쓰기는 나의 눈이면서 동시에 남의 눈인 '객관적 시각'으로 다시 훑어보게 하는 기회를 안겨준다. 남에게 읽어보도록 하고 나서 틀린 곳 고칠 곳을 지적받는 작업에 버금가는 기회인 셈이다.   나의 눈과 남의 눈은 같지 않다. 틀리기 때문에 차이가 난다. 이런 차이로 말미암아 글에 대한 평가가 달라진다. 글에 대한 나의 주장보다 독자의 주장을 고맙게 여겨야 글이 늘 수 있다. 일단 발표되고 나면 독자의 평가에 변명하기 어렵다. 그러기에 발표되기 전에 (고칠 수 있을 때에) 고쳐쓰기를 통해서 고쳐 쓰는 것이 바른 작법이다.    또 고백하자면 초기에는 마침표를 찍자마자 청탁된 주소로 보내었다. 마음에 드는 글을 마쳤다는 기쁨이 나를 서둘러 우체통으로 내보냈다. 그러나 이젠 그렇게 하지 않는다. 밥을 지을 때 불을 끄고도 한참 동안 뜸을 들이듯 글에서도 뜸을 들인다. 뜸 들이는 시간에 고쳐쓰기를 되풀이한다. '아, 내가 왜 이런 생각을 그전에 못햇었지?' 아니면 '아, 내가 왜 이런 생각을 빠뜨리고 그냥 넘어갔지? 하면서 원고지를 더럽힌다.    원래 원고지라는 인쇄된 용지는 고쳐쓰기를 하기 쉽도록 고안된 용지다.  줄을 그어 글의 순서를 바꾸거나 옮기고 또 덧붙인 글을 줄로 끌어들이며 중복된 부분을 지우게 한다. 예전에 고쳐쓰기를 할 때 빨간 색 잉크나 볼펜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고쳐쓰기를 끝낸 원고지를 인쇄소 사람들이 '빨간 종이'라고 불렀었다.   사람의 생각은 끊이지 않고 나오는 법이 없다. 논리적인 서술인 경우 더 그렇다. 토막토막 끊긴 사유의 결과를 한 줄의 글로 이어맞춰 나가려면, 생각을 가다듬어야 하고 가다듬은 생각을 순서대로 줄 세워 체계적으로 전개해야 한다. 그러므로 줄 세운 생각을 이어가면서 써나간다는 작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사유도 어렵지만 사유의 결과를 쓰는 작업도 힘드는 일이다.   이런 순서, 곧 배열과 전개의 서술은 운문에서 더욱 어렵고 힘드는 일이다. 이렇게도 놓아보고 저렇게도 놓아보면서 몇 번이나 다른 시도를 실험한다. 이 또한 고쳐쓰기에서 가능한 작업이다.   작품을 쓰고 나서 고쳐쓰기를 서둘지 않는다. 일부러 간격을 둔다. 왜냐하면 객관적인 안목으로 평가하고 싶기 때문이다. 내가 읽되 남이 보듯 다시 읽는 데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대강 한 주일쯤 뒤에 다시 본다. 작품을 쓸 때에 만나게 되는 내적 긴장, 이 긴장이 완전히 풀어진 다음에라야 자기 흥분에서 벗어날 수 있다. 자기 흥분에서 '자유로워야' 비로소 남의 눈으로 읽게 된다. 이렇게 해야 '고쳐야 할 곳'이 제대로 눈에 띈다. '다섯 손가락 안 아픈 데 없다'는 속담은 자기가 써놓은 글, 곧 작품에도 그대로 적중한다. 애써 힘들여 써놓은 글일수록 어느 부분을 쉽게 잘라버리기가 아주 어렵다.   이렇게 한 주일만에 한 번 고쳐쓰기를 하고 또 미뤄 두었다가 다시 며칠 뒤에 다시 고쳐쓰기를 하고…… 몇 번 되풀이하면 그 과정을 다 거치는 동안에 '더 손 댈 데 없는 듯한' 결과로 낙찰된다. 손목이 저리고 눈이 아픈 경우가 왜 없으랴. 헌데, 이런 일련의 과정을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써왔다면 이런 태도는 올바른 창작 태도라 할 수 없다.   글쓰기는 길 없는 곳에서 길을 묻는 일과 다름없다. 길 없는 곳에서 누구에게 길을 물을 수 있는가. 결국 자기 자신에게 물을 수밖에 없다. 길 없는 곳에서 길을 찾기 위해 자신에게 묻는 것과 똑같은 일을 고독하게 해내야 한다. 이런 일의 한 가지로 고쳐쓰기도 자신에게 길을 묻는 방법인 것이다. 그래서 고쳐쓰기 또한 고독한 작업이다. 혼자서 기쁨과 보람을 찾아내는 작업.   한번 지나간 길을 되짚어 다시 오고 가듯 하면서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고치고 하는 되풀이는 지루한 일이다. 이런 일을 하다보면 처음에 썼던 것과는 아주 다른 것이 되기 십상이다. 나의 경우 끝부분이 크게 달라지곤 한다. 이런 결과를 놓고 '괜찮은 일인가? 하고 자문하거나 반신반의하는 경우가 흔하다. 처음에 생각하였던 것과 아주 달라진 끝부분이 되어도 전연 개의치 않는다. 작품을 완성시킨다는 뜻에서 첫 생각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여긴다. 처음 생각에 미련을 가지고 집착하다 보면 완성도를 높이는데 지장이 온다. 자꾸 되풀이하며 읽다가 문득 멋진 생각이 떠올라 비로소 마음에 드는 맨 끝줄 한 줄과 만나기도 한다. 혼자서 무릎을 치게도 된다.   여기서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이 있다. 크게 보아 '고쳐쓰기'의 범주에 드는 방법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덧붙이는데 그것은 외국에서 하는 글짓기 방법이다.   밖에 나가 공부하는 동안 방학을 맞아 일리노이 스프링필드라는 곳에 가서 '시를 어떻게 가르치고 배우고 하는가'를 살펴본 적이 있다. 본 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칠판에 휫트먼의 작품 '풀잎'을 써 놓으면서 선생은 일부러 단어를 빈칸으로 남긴다. 그리고는 학생으로 하여금 빈 칸에 가장 적당하다고 여기는 단어를 시어(試語)로 선택하여서 메꾸도록 한다. (벽돌 담에서 갈라진 벽돌을 깨뜨려 버리고 새 것으로 채우게 하는 것과 같다.) 대강 한 반에 12명 정도인데 앞의 학생이 선택한 단어와 같은 것을 뒤의 학생이 택하여도 괜찮다. 12명 가운데 3분의 2 이상이 선택한 시어가 같은 것이라면 가장 알맞는 시어라고 우선 1차로 판정한다.   선생은 원작자인 휫트먼보다 더 나은 예비 시인을 기다리는 것이다. 시적 감각이 예민한 학생은 휫트먼이 생각지 못했던 시어의 구사 능력을 보인다. 휫트먼을 능가하는 새 시인을 이런 식으로 키우는 이다. (후배에 의해 교실에서 시가 고쳐지는 셈이다.)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라는 시조를 교과서에서 배운 적이 있다. 선생은 이 시(시조)를 가르치는데, 작자인 남구만(南九萬)이 어떤 사람이고 언제 태어나 언제 죽었는지 따위…… 작품 외적인 것만 들려 주었다. 원문에서 한두 자를 바꿔 읽었다가는 큰일이 나는 것처럼 우리는 공부하였다. 그들과 우리 사이에는 이런 차이가 있다. 물론 원문을 훼손하여서는 안 된다. 하지만 원작보다 더 나은 작품을 기대하는 방법론에서는 '실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그들의 교실에서의 수업 방법이다.   이름난 양복점에서 양복을 맞추면 가봉이라는 절차를 거친다. 아주 꿰매기 전에 한번 입혀보고 구석구석을 살펴보는 마무리 작업이다. 그러나 큰 백화점 같은 곳에서 파는 기성복을 사 입는 경우, 이 가봉이라는 절차는 있을 수 없다. 맞춤양복이 몸에 맞는 것엔 그럴 만한 까닭이 있는 것이다. 글쓰기에서 고쳐쓰기란 바로 이 마지막 과정이라 여기는 것이 좋겠다.  (2004년 가을『한국동시문학』제7호)   *동시 창작론 ⑧ 감동, 체험의 일치에서 오는 감동 유 경 환   1   창작론에서 아직까지(7회에 걸쳐) 다루어 온 것은 외적인 틀(하드웨어)에 관한 것이었고, 이제부터는 알맹이에 해당하는(소프트웨어) 내적인 질(質)에 관하여 다루겠다.   2   시의 알맹이는 감동(感動)이다. 시에는 감동적인 요소가 들어 있다. 줄여서 말하면, 시는 곧 감동이다. 감동을 줄 수 없는 시는, 쓴 사람이 혼자 즐기는 시다. 그러므로 시라고 일반화하기 어렵다. 흔히 시의 생명은 감동이라고 말한다. 읽는이에게 감동을 전해주므로, 시는 널리 읽힌다. 이렇게 감동이 시의 생명을 연장시킨다.   그러나 대부분 감동적 요소는 드러나지 않고 숨겨져 있다. 숨겨져 있기 때문에, 제대로 감상하지 못하는 경우엔, 이를 감지하지 못하고 만다. 그래서 시에 감동적 요소가 들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거나 모르게 된다. 시에 대한 오해는 이렇게 비롯된다.   동시도 시다. (동시도 시이어야 한다고 1950년대 말에 외친 사람은 필자다.) 동시도 시이므로 또한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당연한 이야기를 여기서 왜 다시 해야 하는가. 시를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듯이, 동시를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너무(부정적으로 쓰는 부사다) 많다. 더구나 아동문학인 가운데, 동시를 잘못 알고 있는 수가 너무 많기 때문에,「동시」작품이라고 발표되는 글의 질적 수준이 매우 유치하다. 동시라는 명사의 첫 글자 아이동(童) 한 자로 말미암아, 어린이의 입재롱감으로 동시를 인식하는 현실이 확대된다.   「동시」라는 일컬음이, 문학으로서의 동시의 본질을 왜곡시켰고, 그 원인은 1920∼1960년까지 우리 나라 문학에 대해 제대로 눈을 뜰 겨를이 없었다는 공백 상황에서 찾을 수 있다. 이렇게 잘못된 인식이 그 동안 화석(化石)처럼 굳어 대물림되었다.   잘못된 인식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첫째, '동시이므로 시의 경지에 이르지 아니하여도 된다.' 둘째, '동시이므로 시의 차원에 오르지 않아도 된다.'   이런 잘못된 인식은 왜 자꾸 대물림되는 것인가. 서울의 신춘문예나 또는 권위 있는 문학 전문지에 여러 번 응모하였어도 등단에 실패하는 경우, '시는 어려우니까 이제부터 동시나 해봐야지…'라는 말을 서슴없이 지껄이는 인사들(?)에 의해서 퍼진다.   왜 신춘문예나 문예지 추천에서 번번이 실패하는가? 그것은 시를 잘못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시에 대한 이해가 오류에 기반하는 것이기에 시를 오해하게 되는 것이다. 시는 서두에 말했듯이 감동을 내포하고 있는 운문이다. 감동, 그렇다. 이것이 들어 있어야 시의 기능과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3   동시도 시이므로 당연히 시적(詩的) 요건(要件)을 갖추어야 한다. (이 한마디는 좀 번거로우므로, 이하 시적 요건을 그냥 시라고 말하겠다.) 동시와 그리고 일반시를 그림으로 그려서 이해를 돕게 하자면, 지름의 길이가 다른 동심원(同心圓)을 그려서 설명할 수 있다.   일반 성인시는 지름이 길다. 그러나 동시는 성인시에 비해 지름의 길이가 짧은 편이다. 이해와 감상의 폭이 같지 않다는 뜻이다. 동시는 어린이를 포함하는, 또는 어린이를 주된 독자라고 여기는, 이러한 대상을 의식하면서 쓴 시다.   지난 날에는 어린이를 대상으로하여 쓴 시라고 하였으나 이는 편협된 견해이다. 이런 견해가 한동안 지배적이었던 것이 바로 1920∼1960년까지의 공백 상황인 것이다. 오늘날 동시의 독자는 어린이에 한하지 않는다. 어린이에 한정한다는 생각은 폐쇄적 사고의 소산이다. '아동문학은 3대(代)에 걸쳐 효용을 발휘하는 문학'이라는 말이 왜 나왔겠는가. 영국의 이름난 시인들의 '어린이를 위한 시' 작품에서부터 시작하여 '아낌없이 주는 나무' 등을 읽고 그 효과를 수용하는 계층은 어린이부터 노인에 이른다. 우리 나라의 문단이 1920∼1960년까지 지극히 폐쇄적이었기 때문에 우물 속에 들어가 앉아 하늘의 넓이를 재고 있었던 것이다.   동시는 어린이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계층에게 읽히는 문학 작품이다. 동시는 어린이를 포함하는 (또는 어린이를 더 많은 독자로 여기는) 대상을 위하여 문인이 써내는 시 작품이다. 그러므로 아동이 써내는「아동시」와는 차원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아동시」와「동시」의 질적인 차이를 식별하지 못하는 인사(?)들로 말미암아 혼동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더 기가 찰 일은, 적잖은 아동문학인들까지 어린이가 써내는 아동시 수준의 것을 자신의 문학 작품으로 읽어달라며 발표하고 있는 현상이다.   아동시와 동시의 질적 차이는 무엇인가? 한마디로 짧게 이야기하자면, 아동시에는 (위에 여러 번 강조한 그대로) 시가 들어 있지 아니하다. 시가 들어가 있지 아니하다는 말의 뜻은, 체험의 일치를 유발할 내용(또는 철학)이 들어 있지 아니하다는 것이다. 경륜이 짧으면 체험의 깊이도 얕을 수밖에 없다. 체험의 깊이가 얕으면, 감동시킬 핵(核)이 엷거나 약하거나 또는 없을 수밖에 없다. (이 핵은 바로 시적 요건이다.)   4   시가 들어 있지 아니한 글을 동시라고 하면서 발표하는 것을 보면, 대강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귀여움을 나타내고자, 예쁜 생각을 꾸려서, 어린이들이 늘 쓰는 낱말을 동원하여, 줄을 끊어서 몇 줄로 써내는 형식.'   이런 형식에 그친 것이 대부분이다.   시는 글자로 형상화된다. 글자로 형상화되므로, 글자가 수단이자 재료이다. 이런 기능을 지닌 글자를 배열하는 데엔, 눈에 잘 안 띄는 기술이 요구된다. 글자를 배열하는 주체(사람 = 어른 = 문인)는 글자들이 이루는 줄 사이 어딘가에 자기 체험을 깔아서 직접 나타나지 않는 어떤 생각(체험의 연장)을 불러 일으키는 기술을 숨겨 넣어야 한다. (이런 기술 숨겨넣기가 쉬운 것이 아니므로 성공하지 못하는 것이리라.) 마찬가지로 동시에도 이런 기술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런 수준에 이르지 못하는 사람들이 하는 푸념은 대강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벽돌 쌓기처럼 고운 말을 쌓아 연결시키면, 재미있다고 어린이가 손뼉을 친다. 그러면 되지 않는가?'   이런 질문 아닌 항의에 맞서서 대답을 하면, 곧이어 나오는 한마디가 '그건 어린이에게 난해하다'이다. 이런 사람에겐 당분간 대답을 안 하는 것이 상책이다. 받아들일 수준이 못 되기에 그렇다. 좀더 문학을 알게 되고 좋은 동시 작품을 읽게 되고, 그래서 혼자서라도 좋은 동시에서 오는 잔잔한 감동을 느껴보게 된다면, 그 때 비로소 동시도 시이어야 한다는 말을 수긍하게 되리라.   교직자로 일생을 보내다 퇴직한 교감, 교장 출신 아동문학인이 발표하는 작품을 보면 대부분 대칭 기법을 쓰고 있다. 대칭 기법이란 대강 다음과 같은 것이다. 첫 연에서 '맑은 하늘'을 쓰면 두 번째 연에선 '푸른 바다'를 쓴다. 첫 연에서 '푸른 산'을 쓰면 다음 연에선 '깊은 강'을 쓴다. 이런 식이다. 이런 식은 동시를 쓰는 것이 아니라 동시를 뜯어맞추는 것이다.   1920년대 창가(唱歌)라는 것이 있었다. 창이니 타령이니 하는 악보 없는 노랫가락만 전수하다가 악보가 있는 노래가 처음 보급되던 그 시기에 불리던 노래다. 오늘날 70대 할아버지 세대가 부르는 학도가(學徒歌)도 그런 것 가운데 하나다. 학교의 교가도 그 즈음에 제정되기 시작했다. 이런 노래의 가사(歌辭)에는 시가 들어 있지 아니하다. 전형적인 틀에 맞추어 찍어내는 붕어빵식이니 시가 들어갈 수 있었겠는가. 그 영향을 아직 못 벗어난 교직자 출신 아동문학인들, 그들은 어린이의 글짓기 경험만 가지고 동시를 쓴다고 나선다. 시를 정식으로 공부한 적이 없으므로「자신」을 모를 수밖에 없다. 시가 들어 있지 아니한 짜맞추기씩「동시」의 본보기를, 그래서 써내게 되는 것이다.   5   조선 시대의 시조 틀에서 최남선에 의해 자유로워진 것이 1920년대 1차 시의 해체이다. 그리고 신체시라는 이름으로 자유시가 씌어지고 퍼지고 한 것이 지난 30년간이다. 이 30년 동안에 윤석중이 정형율(3,4조, 4,4조, 7,5조 등)에 맞게 동요와 동시를 개발하고 보급시켰다. 정형율에 맞도록 써냈기 때문에, 작곡가들이 곡을 붙이기에 아주 수월하였다. 그래서 동요는 부르는 노래와 동의어처럼 사용되었다. 그 혼용은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다행히 윤석중은 우리 나라 최초의 동시집을 내면서 동시의 문학사적 지위를 확고하게 했다.   요즘 신현득이 새로 쓰는 '한국 동시사' 연재에서 밝혔듯이, 우리 나라 자유 동시는 1950년대 말에 2차 시의 해체가 시도된다. 신현득은 '유경환. 조유로, 박경용, 신현득'에 의해서 주창되었다고 썼다. 가장 정확한 기술이다. 어떤 아동문학사(史)의 기술에는 이와 다르게 서술되어 있는데, 그것은 저자가 ○○지방 아동문학사의 기본 자료를 가지고 ○○대신 한국을 붙여 개작하였기 때문에 생긴 오류인 듯하다.   유경환이 1950년대 말에 동시도 시이어야 한다는 기치를 들었을 적에, 지면을 내준 곳은 배영사와 그리고 교육자료사였다. 이 기치에 때맞춰 이론으로 걸맞게 옹호하고 나선이가 박경용이고, 조유로는 그 때까지 중앙에는 낯선 이름이었으며 2년 뒤에 신현득이 작품으로 동참하였다.   필자가 1950년대 말 동시도 시이어야 한다고 외쳤을 적에, 당시 아동문학계는 건방지다는 투의 시선을 보냈다. 다만 이원수만이 '맞는 말이긴 한데, 그런데 그런 말을 하려면 우선 작품으로 보여줘야지… 나는 유군이 동화를 쓸 줄 알았는데….' 라고 하였다. 이원수는 1952년 피난지 대구에서 내게 제1회「소년세계문학상」을 준 분이다. (당선작은 동화 '오누이 가게', 상으로 받은 금 5돈·메달 형식을 팔아서 1953년 고등학교 입학 등록금으로 요긴하게 쓴 것을 이미 다른 곳에서 말한 바 있다.)   1957년도 조선일보 신춘문예(당선작 없는 가작, '아이와 우체통')를 선고(選考)한 윤석중, 어효선(그 뒤 50년간 줄곧 가까이 찾아뵙곤 하였지만)은 필자를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왜냐하면 '한 번 더 응모하여 당선작을 내놓으라'는 충고를 따르지 아니 하였기 때문이다. (1957년 11월호 지에 박두진에 의해 초회시 추천이 이루어졌고, 1958년 4월호로 추천 완료 등단하였기에) 그러나 신현득은 2년 뒤에 가작 그리고 당선의 절차를 밟아 마친다.   이런 상황과 분위기에서 '동시도 먼저 시이어야 한다'는 외침은, 저항이나 거역으로 비칠 가능성도 없지 않았다. 다행이도 박경용이, 필자와 사전 의논이라도 한 듯, 같은 주장을 펴준 덕택에 기진할 일이었으나 문단에서의 외로움을 참고 견뎌낼 수 있었다. 필자는 이원수의 '작품으로 해야지…'하는 말에 걸려서 서둘러 첫 동시집 을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 있던 책방 겸 출판사인 숭문사에서 낸다.(1966) 이 때 숭문사에서 함께 나온 황영애의 동화집, 최효섭의 동화집을 기억한다.   6   동시도 시이므로, 시적 수준에 이른 것만 동시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주장에 맞대고 나온 것이 동시의 난해성이라고 앞서 말했다. 난해성을 들고 나오면서 방어 태세를 취하는 사람들은 대강 다음과 같은 보충 설명을 붙인다.   '동시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글이기 때문에 쉬워야 하며 또 재미있어야 한다. 동시에서는 이 두 가지가 우선적 조건이다.'   이 말은 반만 맞고 반은 맞지 않는다. 우선적 조건이라는 말은 틀린 말이다. 우선적 조건은 '우선 시가 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시가 안 되어 있는데 쉽고 재미있으면 시인가? 그런데 적잖은 아동문학인들이 '쉽고 재미있는 운문이면 되지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운문에서 시는 왜 찾아?' 라고 아전인수격의 주장을 편다. '쉽고 재미있으면 된다'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고, 갖추어야 할 시적 요건은 슬며시 흘려버리는 태도다.   색깔 있는 나무토막이나 장난감 레고같이, 낱말을 짜맞추어 읽기 쉽고 보기 좋게 틀을 짜놓고서, 이를 동시라고 우기는 사람들에겐 동시의 감동이 중요할 수가 없다. 동시를 어린이의 입재롱 놀이감쯤으로 여기는 태도이기에 그렇다.   시의 감동, 이는 시를 살리는 요체다. 동시에서도 똑같다. 동시를 읽고난 뒤 아무런 감동도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을 더 이상 읽겠는가.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안 될 경우 한 번 더 읽을 수 있겠다. 그래도 감상이 안 되면 체험의 일치를 위한 바탕이 들어 있지 않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겉만 동시 형식이지 속이 없는 박제된 새, 곧 표본실의 새와 다를 것이 무엇인가. (2004년 겨울『한국동시문학』8호)   동시 창작론 ⑨ 생각의 우물 파기 유 경 환   1.   필자는 오래 전부터 '생각의 우물파기'라는 말을 써왔다. 한데 이 말에 낯설어 하는 독자가 있다면, 아마 동시에 대해 그 동안 피력해 온 필자의 글을 읽어볼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퍼낼수록 맑은 샘이면 좋은 샘이듯이, 파내려 갈수록 생각의 우물도 깊어지게 마련이다. 사유(思惟)를 우물에 비유하면 납득이 쉬워진다.   달리는 차를 타고 보게 되는, 스쳐 지나가는 풍경에서 동시의 소재를 얻기보다는, 깊은 연못처럼 폭 넓은 사색과 깊이 있는 사유에서 동시의 소재를 찾아내기가 바람직스럽다.   이해를 돕기 위한 방법으로, 생각의 우물파기로 얻어낸 시상(詩想)을, 먼저 문삼석의 작품에서 엿보기로 하자. 숲 속의 풀들은 모두 풀빛인데요. 어쩌다 풀빛이 아닌 풀들이 섞여 있더라도 모두들 조금씩 제 빛들을 풀어내어 다 같은 풀빛이 되게 합니다. 숲 속의 나무들은 모두 나무빛인데요. 어쩌다 나무빛이 아닌 나무들이 섞여 있더라도 모두들 조금씩 제 빛들을 풀어내어 다 같은 나무빛이 되게 합니다. 그렇게 된 풀빛과 나무빛들 쌓이고 쌓여 숲빛이 됩니다. 깊은 빛이 됩니다.              ―문삼석 '숲빛' 전문   작품 '숲빛'은 눈으로 씌어진 것이 아니라 생각으로 씌어진 시다. 필자만 이렇게 보는 것이 아닐 것이다. 누구든 한 번만 읽어보면, 생각 깊은 사색으로 발견해 낸 시의 세계임을 대번에 알아차릴 수 있다. 사유가 없다면 이런 작품을 써낼 수가 없다. 생각의 우물을 파는 작업 끝에 얻어낸, 하나의 시상인 것에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생각이 없다면 시도 없다'는 한마디 말을 할 수 있는, 증언 같은 것이 바로 '숲빛'이다. 문삼석의 깊은 사유가 이 작품에다 시를 흥건히 담아준 것이다.   다른 보기를 들겠다.   생각의 우물파기로 얻어낸 시상이 아주 잘 드러나는 작품을, 이준관이 '길을 가다'로 제시한다. 길을 가다 문득 혼자 놀고 있는 아기새를 만나면 다가가 그 곁에 가만히 서보고 싶다. 잎들이 다 지고 하늘이 하나 빈 가지 끝에 걸려 떨고 있는 그런 가을날 혼자 놀고 있는 아기새를 만나면 내 어깨와 아기새의 그 작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어디든 걸어보고 싶다. 걸어보고 싶다.           ―이준관 '길을 가다' 전문   이준관은 길을 가다가 작은 새 한 마리를 보고, 아니 작은 새가 눈에 띄자, 그 때부터 계속 새에 대해 생각을 하였을 것이다. 생각의 우물파기를 하면서 상당 기간 머리 속에 작은 새를 품었을 것이다. 이준관의 가슴이 곧 새장이 되었을 것이다. 마침내 '아기새'로 가슴속의 새가 '형상화'되어, 이준관의 친구가 되었을 것이다. 마음의 동무로.   자기 어깨 높이로 새의 어깨를 크게 치켜올려, 나란히 함께 걷는(노는) 동무로 여겼을 것이다. 생각이 작은 새를 이준관의 동무로 만든다. 이런 새의 변신(變身)이 가능한 것이 사유 세계이다.   세 번째 보기를 들겠다.   이창건의 작품이다. 시인의 생각이 바로 작품이 된다는 보기다. 시인의 가슴이 곧 작품의 터요. 아울러 작품이 담기는 그릇이 된다. 나는 구석이 좋다. 햇살이 때때로 들지 않아 자주 그늘 지는 곳 그래서 겨울에 내린 눈이 쉽게 녹지 않는 곳 가을에는 떨어지는 낙엽들이 구르다가 찾아드는 곳 구겨진 휴지들이 모여드는 곳 어쩌면 그 자리는 하느님이 만든 것인지도 모르지. 그 곳이 없으면 나뭇잎들 굴러다님이 언제 멈출 수 있을까.          ―이창건 '구석' 전문   목숨 있는 것 가운데 생각이 깊은 사람들만이 시를 쓸 수 있는 것은, 시가 생각의 우물에서 길어올려지는 사색의 앙금이기 때문이다. 생각이 시를 만든다는 말은, 생각이 시의 재료라는 말로 다시 설명될 수 있다. 어떤 사물을 보든 그 사물을 놓고 생각의 깊은 우물을 파내려 가지 않는 한, 눈앞의 사물은 그냥 사물로서만 존재할 뿐이다.   그러나 사물을 놓고 생각의 우물을 깊이 파내려가 보면, 사물은 슬거머니 변신하게 마련이며 '형상화'되는,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이 진행되게 마련이다.   2.   동시를 쓴다면서(시를 짓는다면서)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가슴에 시가 담길 그릇을 만들지 않는다는 말과 같다. 결코 동시는 눈에 보이는 사물을 보이는 그대로 옮겨 적는 일로는 씌어지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사물을 시인의 생각으로 해석하고, 시인의 생각으로 다시 빚고 시인의 바람대로 태어나도록 새로운 모양을 지니게 형상화(形象化)시켜야 비로소 '창작'이 된다. '형상화'라는 말은 표의문자의 원래 지닌 뜻대로 '상징적 모양을 갖추도록 한다'는 것인데, 한번 더 굴려서 말하자면 사물이 본래 지니고 있는 모양과는 달리 지니게 한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이 형상화 작업은 겉모양만 바꿔 나타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속에 들어 있는 본질적 내용까지 바꿔 지니도록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형상화 작업은 시를 창작하는 알파요 아울러 오메가인 것이다. 예를 들자면, 시인 김춘수는 작품 '꽃'에서 꽃을 꽃이 아닌 다른 것으로까지 바꿔 놓지 아니했던가.   이쯤에서 뒤집어서(연역적으로) 설명하여 보자. 만약 생각의 우물파기를 하지 아니하고 '동시'라는 것을 써본다고 한다면 어떤 결과가 될 것인가 살펴보자.   첫 번째, 눈에 보이는 사물을 보이는 상태 그대로 묘사한다면, 산문이 될 것이다. 이 산문을 운문 형식으로 바꾸기 위해, 적당한 길이로 잘라서 몇 줄씩의 행(行)으로 나열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줄 바꿔 쓴 산문, 곧 '산문의 줄 바꿔 쓰기'에 지나지 않는 글이다. 이런 까닭에 ①동시의 요건인 '시가 들어 있음'에서 벗어난 글이 되며, ②동시의 요체인 감동이 없는 글이 되고 만다.   두 번째 눈에 보이는 현상을 보이는 현상 그대로 묘사한다면 의미가 삽입될 틈이 없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이런 글에 억지로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 색깔 있는 단어를 동원한다든가 또는 대칭 단어를 짜집기 식으로 구사하게 될 것이다. 결국 억지로 꾸며 쓴 글에 그치고 만다. 흔히 보아온 종이접기식이나 장난감인 나무벽돌 맞추기 같은 '짜맞춘 글'은 이런 과정을 통해 생산된다.   시가 어떤 것인지, 시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일부 아동문학인(?)들이 지면에 발표하는 것들 가운데 '산문의 줄 바꿔 쓰기'나 '짜맞춘 글'이 많은 까닭은 이렇게 해명된다. 이들에겐 '동시는 이렇게 써야 한다'는 말을 하기에 앞서 '동시는 이런 것이다'라는 말을 먼저 들려주어야 옳은 순서이다.   그러나 이 일은 대단히 어려운 과제로 남는다. 아니, 여지껏 미뤄온 셈이다. 그들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고서는 일깨워 줄 묘안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이렇게 말하여 왔다. 누구든 동시를 제대로 공부하려거든, 먼저 동시집을 3백 권쯤 읽으라고. 3백 권이면 이 가운데 동시집다운 작품집이 3분의 1쯤 될까 말까 할 것이다.   그렇다 하여도 3백 권쯤 읽어내면, 그 과정을 통해서 어떤 것은 동시이고 또 어떤 것은 시가 들어 있지 아니한 동시 형식인지를 스스로 식별할 능력을 터득하게 될 것이다.   만일 '시가 들어 있지 아니한 동시 형식'에 질리게 된다면, 모름지기 자신의 내부에서 오는 거부 반응을 감지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깨닫게 되는 이 방법론은 뉘의 자존심도 건드리지 않는 자기 수련이 될 것이다. 문학 공부는 혼자 하는 것이라고 선인들이 일찍부터 말해 오지 않았던가.   3.   생각의 우물파기라는 사유 세계의 확장과 심화(深化)는, 돌을 던져서 물주름을 퍼뜨리는 연못의 크기와 깊이에 비유할 수 있고 또 나무의 내면에 감기는 나이테에 비유할 수도 있다.   작은 연못에 돌을 던져 물주름을 만들 때, 퍼져나가는 파문의 크기는 연못의 크기를 넘지 못한다. 그러나 깊고 큰 연못에서는 연못 둘레만큼 큰 파문을 기대할 수 있다. 생각의 우물파기에서도 깊이 생각하고 크게 생각하여야만 큰 감동을 작품 안에 담아 낼 수 있다.   동시 작품에 담기는 시적 요건과 시적 요체에서도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동시 작품의 질(質)과 격(格)에 있어서도, 깊이 생각한 결과와 넓게 생각한 결과로만 비로소 좋은 작품을 얻게 된다. 깊이 생각하고 넓게 생각하고 얻은 작품의 소재와 내용은, 깊은 의미와 감동을 지니게 마련이다.   그 대신 톡톡 튀는 듯한 가벼운 의미와 재미를 느끼게 하는 재치는, 문학 작품으로서의 작품성이나 완성도를 높이는데 이바지 못한다. 작품성이나 완성도를 충족시키는 질과 격에서 이미 처져 있기 때문이다. 다만 아이들의 말을 통한 놀이감으로서 유희성에 이바지할 뿐이다.   나무가 자라면서 내면에 감게 되는 나이테. 이 나이테와 생각의 우물파기를 연결시켜 보자. 가늘고 작은 어린 나무에 들어 있는 나이테는 가는 몇 줄에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오래된 고목에 감겨 있는 나이테는 그 연륜만큼 겹겹이 감겨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동들이 써내는 '아동시'에는 과연 몇 줄의 체험적 사유가 감겨 있을 것인가. 인생을 체험적으로 말할 수 있는 아동문학인, 이들이 창작하는 동시에는 작가로서 살아온 연륜만큼 축적된 체험적 사유 세계가 감겨 있을 법하다. 분명한 것은 체험적 사유 세계의 넓이다.   때로 아이들이 써내는 '아동시'에서 재미를 느끼는 재치가 발견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아동문학인이 창작한 작품성이나 완성도에 견줄 만한 것이 되지 못한다. 사유 세계의 넓이나 깊이에서 견줄 만한 것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재미를 느끼는 재치는 그것으로 끝날 뿐이지 결코 문학적 감동에 앞서지 못하는 것이다.   재미로 읽는 동시가 있고, 감동 때문에 읽는 동시가 있다. 재미로 읽는 동시는 한두 번 읽는 것으로 끝나나 감동을 느껴 읽는 동시는 오래 계속 읽힌다. 감동을 주는 동시가 문학 작품으로서 생명이 긴 것은 자명한 이치다. 진정한 동시 작가라면 어떤 동시를 쓰고자 할 것인가.   4.   생각은 열쇠다.   생각의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가지 않으면, 어떤 사유 세계로도 들어갈 수가 없다. 깊은 사유 세계에 들어가지 않고서는 의미 깊은 작품을 써낼 수가 없다. 아니 구상(構想)조차 불가능하다.   발목이나 차는 냇물에 들어가 놀면서, 깊은 의미가 담긴 시를 생각할 수 있겠는가. 어린 묘목 한 그루를 심어 놓고, 겹겹이 감긴 연륜의 나이테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생각의 우물파기는 자기 가슴에 깊고 깊은 사유의 우물을 파라는 말이다. 깊이 가라앉은 사유의 결과를 퍼올릴 수 있으려면, 체험의 깊이만큼 해석의 깊이도 깊어야만 한다.   사물에 대한 시인의 해석은 남들이 생각지 못하는 형상을 찾아내거나 남들이 꿈도 못 꾸는 상징을 발견해 낸다. 이 체험이라는 것, 그리고 이 체험의 해석이라는 것, 그 다음에 오는 형상화를 위한 상징의 발견이라는 것이, 사물을 응시하는 시인의 눈길에서 차례로 이루어지게 된다. 이 과정이 바로 시가 창작되는 과정이다. 동시 또한 마찬가지 과정을 거쳐 창작된다.   리차드 바크는 '높이 나르는 갈매기가 많은 것을 볼 수 있다'고 하면서, 광산은 깊이 파야 광물을 얻는다는 개념을 뒤집었으나 그 본질에서는 반대가 아니다.   진정한 아동문학인이면 교실 복도나 운동장에 뛰노는 어린이에게 집착하는 대신, 벌판을 달리는 어린이에게도 눈길을 돌릴 만하다. 어린이에게도 어린이가 알아들을 만한 언어로 인생을 일깨워 줄 수가 있고, 삶과 그 가치에 대해 생각하도록 암시해 줄 필요가 있다. 어린이는 '자라지 않는 어린이'가 아니라 매일매일 성장하는 어린이기 때문이다.   문학 작품의 작품성은 인간 삶의 고달픔을 위로하고 위안한다. 삶의 고달픔은 어린이의 어려운 삶에도 있다. 동시의 작품성은 어린이에게도 필요하다. 아니, 할아버지나 할머니에게도 필요하다. 동시의 기능과 효용은 이렇게 확대된다. 깊은 생각을 자아내게 하는 문학 작품으로서의 동시는 어린이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필요로 하는 모두에게 읽힐 작품인 것이다. 그래서 생각의 우물을 더 깊이 팔 필요가 있다.   생각의 우물파기에는 아무런 연장이 없다. 있다면 짧은 관념의 호미가 우리들 마음 속에 있을 뿐이다. (2005년 봄『한국동시문학』제9호)   동시 창작론 ⑩ 묘사―외다리 걷기식 묘사법 유 경 환   1.   동시 쓰기에서 묘사 기법을 나는 '외다리 걷기'에 비유해 왔다. 외다리 걷기에는 (줄타기 놀이에서 보듯) 균형이 아주 중요하다. 균형을 못 잡거나 잃으면 떨어지고 말 듯이, 동시 쓰기에도 균형을 못 잡거나 잃으면 바로 함정에 빠지고 만다.   그렇다면 외다리 걷기식이란 어떤 것인가? 한마디로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중심을 잡으라는 것이다. 이 중심 잡기를 구체적으로 다음 3가지 기법으로 설명한다.   그 첫째는 짧게 쓰기다.   그 둘째는 간결하게 쓰기다.   그 셋째는 순수하게 쓰기다.   위의 3가지는 동시 쓰기의 묘사 기법에 기본이다. 이것들을 기본이라고 강조하는 것은, 기본에서 이탈할 때 산문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동시는 운문이다. 그래서 운문의 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산문이 될 소지를 배제해야만 한다.   짧게 쓰고, 간결하게 쓰고 그리고 순수하게 쓰라는 것은, (같은 말의 되풀이이긴 하지만) 운문의 형식을 지키라는 것이다. 아주 쉬운 말로 다시 말하면, 형용사나 부사를 되도록 쓰지 아니하는 것이 위의 3가지를 이행하는 지름길인 것이다.   산문에서는 (더구나 소설 문장에서는) 형용사나 부사를 작가의 의도대로 중복하거나 또는 강조하는 뜻에서 겹쳐 쓰기도 한다.   하지만 동시 쓰기에서는 이와 다르다. 기둥과 가지만 남긴 채 겨울을 난 과수원 과수에 봄이 오면 잎이 돋아 나듯이, 기둥과 가지만 갖춰 주는 것이 시인의 몫이고 잎을 다는 것은 읽는 독자의 몫이다. 그러므로 동시 쓰기의 묘사 기법에서 형용사나 부사를 덜 쓰는 것은 읽는 독자의 몫을 남기는 것이기도 하다.   오늘날 법의학자들이 아주 오래된 두개골을 발견하여 그 구조적 특징을 살펴서 인체 공학적으로 생전의 모습을 재현해 내고 있다. 이처럼 시인은 정서의 기본 뼈대만 갖춰 제시하면, 독자가 읽으면서 상상의 살을 붙여가며 감상하는 것이 제대로 동시를 읽는 법이다.   동시 읽기의 재미는 어디까지나 읽는 독자의 몫이다. 그러므로 정서의 뼈대에 기본이 되는 짧고 간결하고 순수함의 3가지만 요구된다. 쓰지 않아야 할 형용사나 부사를 묘사를 위해 썼다면, 이런 행위는 결과적으로 독자의 상상인 독자의 재미를 앗아버리는 것이 된다. 물론 꼭 필요하거나 있어야 할 형용사 부사까지 쓰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가급적 덜 쓰는 것이 가장 쉬운 기법이다.   2.   동시를 쓰는 묘사 기법에서 두 번째로 마음에 두어야 할 점은, 시인의 의도를 (버선목 뒤집어 보여주듯이) 다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흔히 동시를 쓰는 습작기에 있는 사람들은 독자가 이런 뜻을 짚어낼 수 있을까 하고, 걱정스럽고 염려스러워서 쓰는 의도를 밝히려고 한다.   이렇게 '이 글은 이런 의도로 썼다'고 밝혀 놓는다면, 그 글의 성격은 거기서 끝나고 만다. 동시의 매력을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흔히 우리가 듣는 목적시들, 예를 들면 '어린이날 노래'라든가 '한글날 노래'라든가 '개천절 노래'들은 아무리 숭고한 뜻을 지녔다 하더라도 그 날 하루만 불리는 노래일 뿐이다.   그러므로 동시를 쓰는 묘사 기법에서 중요하게 다뤄야 할 점은, 독자의 눈에 쉽사리 드러나지 아니하도록 이중 해석이 가능한 낱말을 골라 시어로 쓰는 그 '어떻게'에 있다.   필자가 여기서 이런 식으로 설명하면, 어떤 이는 다음과 같이 묻고 싶어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중 해석이 가능하지 않는 낱말로는 동시가 되지 않느냐?'고. 이런 질문엔 여기서 '그렇다'고 대답할 수는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이중 해석이 어려운 낱말의 모음만으로는 유치원 원아들이 부르는 노래 수준의 작품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유치원 원아들이 즐겨 부르는 수준의 작품이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는 문학 작품으로 남기는 어렵다.   이름난 시인 정지용이 남긴 어린이를 위한 시 가운데 '해바라기씨'라는 것이 있다. 여기 옮기면 다음과 같다. 해바라기씨를 심자. 담모퉁이 참새 눈 숨기고 해바라기씨를 심자. 누나가 손으로 다지고 나면 바둑이가 앞발로 다지고 고양이가 꼬리로 다진다. 우리가 눈 감고 한 밤 자고나면 이슬이 내려와 같이 가고 가고 우리가 이웃에 간 동안에 햇빛이 입맞추고 가고 해바라기는 첫새악시인데 사흘이 지나도 부끄러워 고개를 아니든다. 가만히 엿보러 왔다가 소리를 꽥! 지르고 간 놈이― 오오 사철나무 잎에 숨은 청개구리 고놈이다.                 ―정지용 '해바라기씨' 전문   여기서 '해바라기씨'는 그냥 해바라기씨일 수도 있으며 아울러 다른 뜻을 상징하거나 비유할 수도 있는 그런 씨다. 이 시가 씌어진 일제 시대에 일본 경찰을 우리 나라 사람들이 '참새'라는 은어로 불렀다는 사실을 기억하거나 알아 낸다면 이중 해석은 그만큼 쉬워질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이중 해석'이란 꼭 두 가지 해석만 말하는 것이 아니다. 여러 가지 해석이라는 뜻을 다중(多重) 해석으로 풀이하여도 좋다.   이 이중 해석은 읽는 독자의 체험 수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체험 수준은 거의 나이에 따라 그 폭과 수준이 비례하므로, 이중 해석은 흔히 나이에 따라 나타난다고도 말한다.   '송아지 송아지 얼룩 송아지……' 할 때에 유치원 원아에겐 그냥 소의 새끼인 작고 귀여운 송아지의 이미지가 전달되겠지만, 그러나 세상을 살 만큼 살아본 어른에게는 그냥 송아지가 아닌 것이다.   '날 저무는 하늘에 별이 3형제……'에서도 별은 그냥 별로 듣는 어린이가 있는가 하면, 별에서 다른 뜻을 찾아 내 마음 아파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쓴 사람의 의도가 다 드러나는 글이 산문에선 환영받으나 운문에서는 그렇지 않다.   3.   동시 쓰기에서 묘사 기법은 그 말이 원천적으로 지니고 있는 어감(語感)이나 율동감(律動感)에 의해 제약된다.   영국 동요집 (1760)를 읽어보면 음악적인 율동감을 금방 느낄 수 있다. 원래 영국에서 전래되어온 (입으로 전해진) 노래 같은 동요를 모은 모음집이기 때문에 율동감이 쉽게 감지된다.   영국에서 이름을 떨친 A.A.밀느(Alan Alexander Milne 1882∼1956)의 동시집 속 작품들도 귀에 들려오는 사운드를 아주 중요하게 여기면서 쓴 작품들이다. 흔히 아기곰 푸우푸우를 쓴 동시인으로 그를 알고 있다.   동시. 이를 읽을 때에 힘을 들이거나 힘을 빼는 발음의 강약(强弱)이라든가, 낱말 자체가 지니고 있는 음량(사운드)을 참고하여서 동시를 쓸 때 낱말의 순서를 바꾸거나 또는 도치법(倒置法)으로 앞뒤와 위아래를 뒤섞거나 할 필요가 있으면, 문법대로 쓰지 않으며 또 줄을 바꿔서 새로운 줄을 만들게 된다.   예를 들어, 뜻을 알아듣지 못하는 자장가라도 들어보면 일정한 율동감이 있다는 것을 감지할 것이다. 이렇게 일정한 율동의 감각이 되풀이 되도록 운(韻)을 맞춰 쓰는 것이 초기 영국 동시의 틀이었다.   우리 나라 아동문학의 개척자인 윤석중도, 일본을 통해 받아들인 영국의 운문 형식의 영향을 아니 받은 것이 아니어서, 우리 말의 율동과 장단 그리고 숨결 이 3가지를 고르고 다듬어 가며 윤석중 동시의 틀을 짰다. 이런 까닭에 작곡가에 의해 쉽게 멜로디가 붙을 수 있는 그런 작품들이 된 것이다.   어쨌거나 동시 속에는, 안으로 접어 넣은 율동이 일정한 박자처럼 감각으로 살아나도록 스며 있으며, 또 멀리 퍼져 나가는 종소리처럼 은은한 여운이 스며 있게 마련이다.   때문에 동시 쓰기 묘사 기법은 이런 감각적인 제약을 수용하며서 전개되어야 한다. 이런 제약 속에서도 멋진 동시를 써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오래 목수일을 해온 목수가 자 없이도 척척 일을 하는 것을 보고 있지 아니한가.   동시 쓰기를 할 때, 낱말의 순서를 왜 바꾸며 그리고 언제 어느 때 줄을 바꿔 써야 하는지를 자신있게 알려면 노련한 목수처럼 충분한 체험을 쌓아야 한다. 동시 쓰기는 결코 수학 문제를 풀 듯이 공식에 대입하거나 법칙을 응용하듯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율동의 감각적 제약을 수용하는 능력 또한 목수의 수련과 마찬가지이다.   4.   동시 쓰기 묘사 기법에서 '묘사를 위한 감정 절제'가 필수적임을 말할 차례다.   시어(詩語)로서 '상큼한'이라는 형용사와 그리고 '봄'이라는 명사가 만나면, '상큼한 봄'이라는 한 구절이 성립된다. 그런데 상큼한 봄이라는 4글자가 만들어내는 이미지는 실로 다양한 것이다. 이런 이미지의 분위기는 들판을 가득 덮을 수도 있고 골짜기를 메울 수도 있는 그런 색깔을 연상시키기도 하며, 동시에 재래시장 한 구석 장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나이든 아줌마의 봄나물 한 줌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이미지를 다 늘어놓는다면, 이것은 시가 아닌 산문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시에는 절제가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필수 사항이라는 말을 하게 된다.   오래 전 애니메이션 '마리 이야기'라는 영상이 소개된 적이 있다. 마리 이야기는 하얀 털옷을 입은 마리가 2시간 동안에 보여주는 영상 스토리다. 그런데 관객은 이 영상을 보면서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읽어낸다. 그래서 아름다운 것이다.   만일 관객이 눈으로 보면서, 보이는 것 이상의 것을 가슴으로 상상하지 못한다면, 이 애니메이션은 그냥 아이들의 장난으로 끝나고 말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그런 수준 이상으로 평가되었다.   시에서도, 시를 이루는 몇 줄은 독자의 가슴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는 (아픔 비슷한) 정서를 찌르는, 그런 힘을 지녀야 한다. 그 힘이 곧 시의 매력이다. 이 매력은 단 한 줄 속에 들어 있을 수도 있다. 그러기에 시가 몇 줄로 씌어졌는가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리거나 나이들었거나 상관없이 사람의 가슴 속 어느 한 구석에 담겨 있는 마음을 건드려 줄 수 있는 한마디! 이런 숨겨진 메시지가 시를 시답게 만드는 요체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한 2년 전부터 김용택이나 안도현 같은 시인들의 작품이 우리들 마음을 보자기로 싸담듯이 다잡는 것을 경험했다. 그들은 어디에서도 아동문학가로 불리지 않으며 동시인이나 동시작가라는 바이라인을 달고 다니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그들이 써내는 작품들이 기성 아동문학인들이 차지하던 자리에 밀물처럼 침식하여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러는 동안에, 우리 나라 아동문학과 관계 있는 잡지에 발표되는 동시의 성격과 형식이 현저하게 달라지는 현상을 보아 왔다. 왜일까? 한마디로 그들의 작품에는 절제된 시가 들어 있으되 아주 쉬운 그리고 자연스러운 묘사 기법이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절제. 감정의 절제는 물론이거니와 묘사에서도 절제는 당연한 것이다. 그냥 늘어놓으면 시가 안 되는 것을 왜 모르는가. '그냥 늘어놓는다'는 말에는 절제없이 형용사나 부사를 자꾸 붙인다는 뜻도 들어 있다. 다 자라 옥수수대에 붙어 있는 옥수수잎보다 적은 단어 몇 개로 김시인이나 안시인은 그들의 속내를 그럴 듯하게 형상화하고 있지 않은가?   5.   동심이라고 일컬어 온 '어린이 마음'은 간결하고 짧고 순수한 것으로 묘사된다. 이 3가지를 합쳐서 말하면 시에는 군더더기가 필요 없다는 말이 된다. 그러므로 어린이 마음으로 동시를 쓴다면, 간결하고 짧고 순수한 낱말을 시어로 선택하여야 어린 독자에게 쉽게 다가설 수 있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구태어 논리라는 어려운 말을 빌려올 것 없이, 동시에 구사하는 시어는 겉으로 투명하되 해석에선 두 겹일 수 있는 그런 단어이어야 하겠다. 여리고 고운 마음을 담아내는 글(자)그릇은 거기 담아내는 마음 그대로 덧칠 안 된 단어일 때에 독자 가슴에 밀착될 수 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빼앗긴'은 얼마나 큰 뜻으로 씌인 단순한 시어인가? (2005년 여름『한국동시문학』10호)   동시 창작론 ⑪ 쉽게 쓰기 유경환(동시인/시인)   읽기는 쉬워도 실제로 쓰기에는 쉽지 아니한 것이 바로 '쉽게 쓰기'이다. '동시는 쉽게 써야 한다'라는 것을 누가 모르겠는가. 하지만 알면서도 어렵게 쓰는 버릇을 못 고치는 편이다.   왜냐하면 어떻게 쓰는 것이 쉽게 쓰는 것이고 그리고 어떻게 쓰는 것이 어렵게 쓰는 것인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된 적이 없기에, 막연히 모호하고 포괄적인 기준만 내세워 '쉽게 쓰자' 또는 '어렵게 쓰지 말자'고 말해온 탓이다.   1. 관념어(觀念語)는 피해야   먼저 필자는 쉽게 쓰기를 위한 실제 방안으로 관념어는 피하자고 말한다. 관념어라는 것은 한자가 표의(表意)하는 그대로 관념을 나타내는 낱말이다. 예를 들면 '역사'라든가 '사상'이라든가 또는 태고(太古)라든가 하는 낱말들이다.   우리들의 사유 세계에만 존재할 뿐이고, 실제로 접근하여 만나거나 만져볼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닌 낱말이다. 어린이나 청소년이 가까이 다가가서 만져보거나 접촉할 수 없는 추상적 개념인 까닭에, 어린이나 청소년의 마음을 흔들어 움직이는 이런 정서 작업에 동원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이런 까닭에 어린이나 청소년도 독자 대상에 포함하는 동시에, 관념어를 동원 구사하는 것은 마땅치 않다.   어린이나 청소년에게 읽히길 바라는 시를 쓰면서 그들에게 낯선 낱말을 선택하는 이런 실제의 경우를 필자는 요즘에도 적지 않게 보고 있다. 더 실증적으로 밝히자면, 교육 기관에서 퇴직한 교직자들 가운데 특히 교감 교장 같은 고위직 경력자들이 발표한 이른바 '동시'라는 글에서 다반사로 관념어를 만난다.   왜 그럴까? 동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째서 오랜 교직 경력을 쌓았음에도 제대로 이해할 기회를 못 가졌을까? 기회를 못 가진 것이 아니라, 동시를 문학 작품으로 수용할 기회를 못 가졌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줄여서 지적한다면 동시를 얕보아온 탓이다. 어린이가 써내는 '아동시'와 그리고 문학 수업을 거친 문학인이 창작한 '동시'와의 차이를 모르는 그 개념 혼돈에서, 자신을 구출해 내지 못한 채 고위 교직에 오른 탓이다. 그러므로 동시도 아동시처럼 쉽게 씌어진다고 여기는 것이다.   문학 작품으로서의 가치, 이것이 인정되는 동시는 결코 쉽게 씌어지지 않는다. 어렵게, 참으로 어렵게 창작된다. '쉬운 표현을 위해 쉬운 낱말을 선택하는' 일이 정말 어려운 일인 것이다.   여기서 동시 '쉽게 쓰기'는 '쉬운 낱말로 쓰도록 하는 노력'이라는 것으로 결론된다. 쉬운 낱말로 동시 쓰기는(모순 같지만) 사실상 어렵게 쓰기와 상통하는 말이기도 하다. 동시를 쓰고자 하면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자가당착일 뿐이다.   2. 쉽게 쓰기와 유치하게 쓰기   쉽게 쓰기. 이는 읽기에 쉽도록 또는 감상하기에 쉽도록 쓰자는 것이지, 결코 유치하게 쓰자는 것이 아니다.(이런 말을 이 창작 강좌에서 해야만 하는 것인가 의구심이 든다) 하지만, 요즘 어떤 종합 문예지에 활자화되는 것을 읽어보면 그래도 '해야 하겠다'고 작심하게 된다.   어른이 쓴 글인데 어째서 유치한 글이 되는 것일까? '동시는 어른이 어린이 마음으로 돌아가서(동심으로) 써야 한다'는, 이런 일부 평자들의 말을 마치 초등학교 1학년 학생처럼 듣기 때문이다. 어린이의 마음으로 쓰라는 이런 주장은 ①때묻지 아니한 마음으로 ②순수한 감정으로 ③또는 투명한 심사로 소재를 해석하라는 주장일 뿐이고, 쓰는 사람이 갑자기 어린이의 정서 수준으로 내려가서 쓰라는 말은 아닌 것이다.   우리는 적잖은 발달 장애 현상을 보고 있다. 키가 한창 클 시기에 어떤 원인 작용으로 말미암아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면 결국 평균 신장에 못 미치는 키를 갖게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정서가 한창 발달할 시기에 어떤 원인 변수가 개입하여 충분히 발달하지 못하면, 몸과 나이에 걸맞도록 제대로 발달이 이루어지지 않는 정서 지체에 걸리게 된다.   그런데, 어린이의 마음으로 돌아가 동시를 쓰란다고 마치 정서 지체자처럼 어린이의 사유 능력과 어린이의 사유 세계 안에서 뒹구는 모습을 글로 보이고 있다. 이런 글인 경우 정상적 기준으로 보면 유치한 글로 읽혀질 수밖에 없지 아니한가.   쉽게 쓰기는 유치하게 쓰기와 같을 수 없다. 이의 차이나 간격을 식별하지 못하고 동일시(同一視)한다면, 정서 발달에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다시 생각해 봐야 할 일이다. 사실의 인지(認知)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쉽게 쓰기와 그리고 유치하게 쓰기. 이것들이 분명히 다르다는 차이점은, 첫째 낱말의 선택에서 찾아야 할 일이고, 둘째 낱말의 배열인 전개 방법에서도 찾아야 할 일이며, 셋째 낱말들의 서술에서 기술적으로(또는 의도적으로) 생략하는 그 기교에서까지 찾아야 할 일이다. 위에 열거한 3가지는 말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만큼 표현 기교는 예민하고 까다롭고 또 델리케이트한 처리 방법을 필요로 하고 있다.   3. 정서의 집적회로(集積回路)   '동시도 시(詩)이어야 한다'는 말을 필자는 1950년대 말에 시작하였다. 이것은 '우선 시가 되어 있어야 동시일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필자의 이런 주장에 여러 가지 반응이 나왔다. 일부 평자들은 참뜻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 했는지 또는 이해 수용에 오해가 끼었는지 아니면 정서 지체가 있었는지, 하여간 동시의 난해성(難解性)을 제기하면서 '유 아무개가 한 말 때문에 동시가 갑자기 어려워지고 독자를 잃어버린 결과를 가져왔다'고 난해성에 결부시켰다.   1970년대 동시가 일부 독자층으로부터 외면당했다고 하는 말은, 1970년대 아동문학 독자의 주계층이 분화(分化) 분류되는 현상을 오해한데 기인한 말이다.   1920년대부터 50년간 지속된 동요의 흐름에서 시(詩)다운 동시의 새 흐름이 갈라지기 시작한 것이 1970년대 그 즈음이다.   유치원 시설이 늘어나기 시작하여 유아 교육이 본격적으로 확장되던 시절, 유아들의 정서 생활에 걸맞는 운문이 정서 교육의 교재용으로 요청되는, 이런 시대적 수요에 따라 동시의 분화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50년간 지속된 동요의 형식에서 동시의 형식으로 외적 변형을 이루자, 음악동요에 필요한 노랫말 즉 음률적으로 내재율이 뚜렷한 노랫말이 귀해져서, 새로운 노랫말 틀에 맞는 운문의 수요가 교육 현장에 급증하였기에, 동시의 분화가 곁들여 나타나게 되었다.   사회가 열리면서 다원화(多元化)로 개방되는 기회를 통하여, 해외의 아동문학이 소개되고 그 가운데 선진국의 동시와 청소년시에 노출되는 기회가 늘면서, 우리 나라의 동시도 그 격과 위상을 높이자는 의식과 함께 '동시는 어른도 독자일 수 있다'는 해석이 짙어졌다.(이런 자극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같은 글에서 앞섰다)   위에 분석한 3가지 상황과 현상을 간과한 일부 평자들은 '시가 되어가는 동시'를 놓고, 계속 종래의 동요 가사의 기준에서 바라보면서, 자기네 기대를 넘었다며 '난해하다'고 한 것이다. 그럴 수 있는 일이다. 모두가 현명한 사람들은 아니다.   그러나 동시의 격(格)과 난해성과의 상관 관계에는 상관성이 지극히 약한 사실을 살펴야 오해를 벗어날 수 있다.   ①1920년대의 신체시와 그리고 창가(唱歌)의 가사, ②1930∼50년대의 동와 동요 가사, ③1960∼70년대 동시와 동요 노랫말. 이렇게 3단계로 발전한 발전 과정을 살피면, 동시가 시로서의 위상을 차지할 충분한 이유가 나타난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나누어 살펴야 마땅할 상황과 현상을 한데 뭉뚱그려 말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아니한 발언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일부 평자들이 자기 평가의 기준을 계속 그 전 시대에 맞추어 놓은 채, 1970년대에 나타나기 시작한 '시다운 동시'를 난해한 동시로 규정하는 일은, 앞으로 동시를 공부하여 창작 생활에 들어갈 아동문학 지망생에게 적당치 못한 견해를 줄 염려가 있기 때문에, 상세히 설명하는 것이다.   4. 동시의 원리(原理) 알아야   두루 알고 있다시피 컴퓨터 작동 원리인 디지털 능력은 0과 1, 이 두 가지를 가지고 만드는 순열조합의 집합체에서 나온다. 이와 크게 다르지 않게 동시의 원리를 설명할 수 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여온 낱말이지만, 이 가운데 시어로 쓸 만한 낱말들만 동원하여, 그것들을 이어 놓거나 나눠 놓거나 또는 줄바꿔 놓거나 하는 배열 형식을 통해 일상적으로 통하던 감정 이상의 정서 곧 시적 분위기를 자아내는 정서를 담아내는 것이 시의 창작이다.   그런데 동원된 낱말들이 엮는 정서회로, 이것이 전해 주는 의미를 제대로 소화할 능력이 문제인 것이다.   이런 능력에 못 미치는 사람이 평자로 등장하는 경우, 난해시와 그리고 난해시가 아닌 것을 식별하지 못하고 평하기 일쑤다. 정말 어려운 낱말을 구사하여 독자가 수용하기 어렵도록 쓴 난해시와 '시다운 동시'까지 한데 뭉뚱그려 '난해하다'고 치부하는 결과를 내놓는다.   시에는 누가 봐도 난해한 난해시가 있다. 열 사람이 읽고 나서 모두 난해하다고 한다면, 결국 쓴 사람 혼자만 아는 난해시일 수밖에 없다. 문예 사조사(史)에 보면, 실험적으로 시도된 첨단적 성격의 작품들이 거의 난해시의 대접을 받은 것을 알 수 있다. 동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위에 언급한 경우와 달리 '시다운 동시'가 품고 있는 고도의 기교적 완성도, 이것이 만드는 정서회로의 효과를 추적해 낼 능력이 부족하면 작품 속에 숨겨진 작품성의 가치를 발견 못하게 된다.   결국, 시어로 선택된 낱말들이 시인의 의도에 따라 이어졌을 때 구축되는 정서회로의 효과, 즉 시적 분위기의 느낌을 감지해내는 능력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정서회로가 내뿜는 효과를 받아들이는 능력이 모자라서 난해하다고 불평하는 경우가 참 많다. 이를 놓고 필자는 '적절하지 못한 치부'라고 지적하는 것이다.   쉽게 쓰기.   이는 시다운 동시를 쓰려고 노력을 하되, 어린이나 청소년에게 친숙한 낱말을 시어로 구사해야, 어린이나 청소년이 자기들 나름의 시적 상상을 충분히 펼 수 있다는 주장이다.   관념어는 쇠에 녹이 슬 듯 때가 낀 낱말과 같아서 어린이나 청소년에게 시적 상상을 불러일으키거나 시적 자극을 주기에 적합하지 아니한 낱말이다. 감동을 전달하고자 하거나 느낌을 전달하고자 하는 동시 쓰기에서, 기능적으로 이미 녹슨 관념어를 계속 고집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2005년 가을『한국동시문학』제11호)   동시 창작론 ⑫ 내면화(內面化) 들여다보기 유경환(동시인/시인)   1   사람과 원숭이와의 차이를 설명한, 재미있는 한마디 이야기가 있다. 의사이면서 정신분석학자인 자크 라캉이 한 말이다. '사람도 거울을 보고 원숭이도 거울을 본다. 그런데 사람과 원숭이와의 차이는 이렇게 나타난다. 원숭이는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만 보나, 사람은 거울에 안 비치는 내면(內面)까지 본다.'   필자는 내면(內面)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자, 이 한마디를 주석을 달지 않은 채 인용하였다. 이 한마디가 나온 지는 퍽 오래다. 그러나 우리 나라 아동문학가들에게는 아직 낯선 편이겠다.   내면(內面)이 시에서 중요한 것은, 겉으로 드러나지 아니한 채로 뜻을 지니기 때문이다. 드러나지 아니한 채로 뜻을 품고 있기 때문에, 시의 의미를 깊게 하는 마술 같은 일몫을 하게 된다.   다시 말하겠다. 시어들이 나란히 조합되어 시인의 생각을 형상화시킬 때,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담아내는 일몫이 있다는 것을, 시인이 아니면 미처 생각지 못하는 편이다. 바로 내면의 문제다.   이런 까닭에 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동시라고 작품을 써낼 때, 물 밑으로 담기는 뜻을 아예 처음부터 놓쳐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동시를 통해 글자들이 빚어내는 이미지를 그려보려 하지만, 그와 아울러 물 밑으로 담겨지는 뜻은 생각지도 못한다. 잘 씌어진 동시와 그렇지 못한 동시와의 차이는 여기서 벌어진다. 이 차이를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퍽 많이도 동시인으로 등단하였으니까 말이다.   2   동시를 발표하면서 만약 어린이들이 감상하는 작품이기에, 선택한 시어들 밑에 다른 뜻을 깔아 둘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면, 이렇게 발표된 작품들은 어린이들에게 일회용 읽거리의 작품성 때문에, 두고두고 펼쳐볼 읽거리가 못되고 만다. 적잖은 동시인들이 기성 문단에 불만스러워하는 것은 그들의 작품이 일회용 대접밖에 못 받는 데 있다. 하지만 왜 그런 대접을 받는지에 대한 원인 분석은 간과하고 있다.   동시집 출판은 참으로 벅차고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이렇게 어려운 과정을 거쳐 출판된 동시집을 읽어보면, 아깝게도 수록된 작품들의 상당수가 일회용품이라는데 혀를 차게 된다. 이런 일회용 수준의 작품을 써내면서, 어떻게 시인이라고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겠는가.(때로는 좀 모자라는 사람이 아닌가 싶게 안타깝기도 하다)   '주된 독자층이 어린이'라고 잘못된 생각을 편견인 줄 모르고 계속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주독자층을 얕보는 태도에서 한번 읽으면 다시 읽고 싶지 않은 것을 써내는 사람들이, '나도 동시인!'이라고 자부하는 셈이다.   시 앞에다 아이 동(童)자를 붙인 동시라고 하여도, 첫 번째 독자인 어린이가 성장 과정을 통해 계속 자라면서 다시 읽고 또 읽고픈, 이런 작품을 내놔야 비로소 기억되는 시인이 되는 것 아닌가. 동시도 시이어야 계속 읽힐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별다른 생각 없이 '어린이'가 되어 갑자기 어린이가 된 그런 눈으로, 깊은 고민의 흔적도 없이 옛날을 되돌이켜 보고 자시의 어린 시절 회상기를 동시라고 써서 발표하고 있다. 이런 창작 태도이고 보면, 시로서 갖춰야 할 시적 요건이 들어갈 자리조차 마련되지 않은 어린이 글, 곧 아동시가 되고 마는 것이다.   길고 길게 설명을 하였지만, 요체는 내면화(內面化)이다. 내면화가 안 된 것은, 속이 빈 허물과 다르지 않다. '속 빈 강정'이라는 속담이 꼭 맞는 말이다.   내면화는 동시를 시의 지위에 올리는 격(格)이다. 내면화는 시인의 의도이든 아니든, 겉으로 읽히는 것과 다른 뜻을 시가 그 물 밑에 지니게 하는 묘한 일을 한다. 내면화는 그래서 시의 매력이고 신비라고 일컬어진다. 그러나 내면화는 오직 느낌(feeling))으로만 감지되고 느낌으로만 전달된다. 작품 속에 내면화되어 있는 정서를 진단할 수 있는 능력은 이론이 아닌 느낌에서 터득된다.   3   시인은 생각하는 사람이다. 다시 말하면, 시인은 고민하는 사람이고 늘 고뇌에 차 있는 그런 존재다. 그런데 이런 고뇌 없이 '어린이가 되어' 맑은눈으로 순수한 것만 골라 '생각의 난쟁이'처럼 '곱고 예쁘고 귀여운' 것들을 글자로 짚어내, 틀에 맞게 써 내면 이 글이 곧 동시가 된다는 말인가?   아니다.    아무리 동시라고 할지라도, 한 편의 동시 작품 안에 시가 들어가 제자리를 잡고 있지 아니하면, 글자 맞춤의 형식에 지나지 아니함을 알아야 한다. 곱고 예쁘고 귀여운 것. 이런 것을 줄맞춰 나타낸다 하여도, 이런 것을 어린이눈으로 그려낸다 하여도 결코 동시가 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동시도 시이어야 한다는 필자의 주장은, 동시에도 사람의 사람다운 마음이 들어가 내재(內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사람다운 마음'은 기쁨과 슬픔, 아픔과 괴로움 따위 온갖 정서가 다 녹아들 수 있는 마음이다. 동시의 일차적 독자가 어린이라는 이유를 내세워, 슬픔이나 괴로움의 정서를 외면할 수 있는가. 이는 변명일 수밖에 없다. 여러 번 기회 있을 때마다 이야기하였지만, 동시는 더 이상 어린이만을 주독자층으로 삼지 아니한다. 어린이를 주독자층으로 설정한 범주 규정은, 우리 나라 1930년대 사회 문화 구조와 상관관계가 있다. 당시 민족의 희망을 어린이에게 걸 수밖에 없다는 암울한 민족적 현실에서, 동시의 범주를 좁혀 감상과 보급의 농도를 어린이에게 집중시키고자 한 의도가 그런 결과를 낳았다. 하지만 동시는 인간의 온 생애에 걸쳐 위안과 위로를 안겨 주는 문학 형식으로 인정되고 있다. 이것이 세계 보편적 현상이다.   유아에서 노년까지 좋아하는 시가 동시다. 유아에서 노년까지 즐겨 듣는 시가 동시다. 유아에서 노년까지 인생을 담아낼 그릇의 효용이 인정되는 시가 동시인 것이다.   그러니, 동시라고 하여 더 이상 그 격을 낮추지 말 일이다. 동시인 스스로 동시의 격을 낮추면 그것을 생산하는 동시인도 사회적인 대접을 받지 못한다.   4   햇살을 프리즘에 통과시켜 분해하면 일곱 가지 빨, 주, 노, 초, 파, 남, 보의 빛으로 나눠 볼 수 있다. 그런데 사람의 눈에는 안 보이는 적외선이 있고 자외선이 있다.   만약 이를 볼 수 없기에 적외선이나 자외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물리학 공부를 더 해야 할 일이다. 마찬가지로 좋은 동시, 동시다운 동시 한 편에서는 읽을 땐 겉으로 드러나는 느낌과 그리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으나 속마음에 전달되어 오는 깊은 뜻을 감지하게 된다.   그런데 이 속마음에 전달되는 깊은 뜻을 감지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기도 작품을 쓰는데 왜 어째서 좋은 동시로 쳐주지 않는가' 하고, 기회 있을 대마다 불만을 터뜨리고 불평을 일삼는다. 문제는 나열된 글자들이 형상화해 낸 이미지 밑에서(물 밑으로) 전달되고 있는 뜻의 기능을 감지할 만큼, 충분히 삶이나 인생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거나 고뇌에 빠지지 않았다는 생활 자세 또는 생활 태도에 있다고 할 것이다.   생각 없이 씌어지는 시가 없고, 생각 없이 씌어지는 동시 또한 없다. 이 말은 고민 없이 씌어지는 동시가 있을 수 없고, 고뇌 없이 씌어지는 동시가 있을 수 없다는 말과 같다.(고민 없이, 고뇌 없이 어린이가 써 내는 것은 동시가 아닌 아동시다)   그런데 어쩌다 갑자기 그냥 '어린이가 되어'서는 결코 진솔한 어린이의 흉내도 낼 수 없다. 어린 사람에게도 생각이 있고 고민이 있으며 그 나름의 고뇌가 있다고 말하니까, 작품에다 고민이니 고뇌니 하는 한자(漢字)를 그대로 써넣는 동시인(?)도 있었으니, 이 어찌 한심한 실정이라 아니 하겠는가.   좀더 추적해 보면, 여러 잡지나 기관이 신인을 등단시키는데, 그 심사위원이나 추천위원 가운데 동시를 제대로 써내지 못하는 '위원'이 끼어 있어서, '그 밥에 그 나물' 같은 신인을 등단시키고 있다. 이것이 동시의 내면화를 모르는 일부 위원들의 심사나 추천의 결과이다.   5   한 채의 집을 아담하게 잘 지으면 투시도만 보았을 때와 다른 느낌을 받고 좋아하게 된다. 한 편의 동시다운 동시를 읽게 되면, 글자의 조합이 풍기는 것 이상의 느낌과, 그리고 잘 드러나지 않는 속 깊은 뜻을 감지하게 된다.   내면화는 동시를 쓴 사람의 마음을 읽는 사람의 마음에다 고스란히 옮겨 줄 수 있는 글자 밑의 얽힘이다.   반도체 칩이 서로 연결되어 정보를 전달하듯이, 사전에 나와 있는 글자들이 얽혀서 사전에 나와 있지 아니한 뜻을 전달하는 일몫을 내면화가 해 낸다.   사람의 마음은 반도체 칩이 아니므로 일정한 형식으로 내몀화의 뜻을 전달하지 않는다. 그 대신 사람마다 다른 체험 곧 내적인 체험에 따라 다른 뜻을 전달한다. 여기 감상의 묘미가 있고, 그래서 해석의 폭이 넓어진다.   윤석중은 기찻길 옆에서도 잠을 잘 자는 아기에서, 편히 잠들 수 없는 사회를 기찻길로 해석될 수 있게 썼다. 박목월은 엄마소도 얼룩소에서 창씨개명을 부추기는 당시 사회 분위기에 저항으로 해석할 수 있도록 송아지를 썼다. 시인의 의도이든 아니든, 작품이 지니고 있는 내면화된 세계는, 작품의 작품성을 높이고 완성도를 결속시킨다.   동시의 창작에서 내면을 중시하고 내면화의 세계를 천착하는 것은, 돌 한 덩이를 가지고 어떤 모양을 파내 다면체(多面體)적인 해석을 끌어내는 것과 다르지 않게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표본실에 진열되어 있는 박제된 동물에는 내면이 없다. 시가 들어 있지 아니한 동시는 동시라고 할 수가 없다. 내면은 분해된 기능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으나, 내면은 전체로서 생리 기능을 한다. 마찬가지로 시에서 내면화는 전체로서 드러나지 아니하는 다른 뜻을 전달하는 일몫을 감당한다. (2005년 겨울『한국동시문학』12호)   동시 창작론 ⑫ 내면화(內面化) 들여다보기 유경환(동시인/시인)   1   사람과 원숭이와의 차이를 설명한, 재미있는 한마디 이야기가 있다. 의사이면서 정신분석학자인 자크 라캉이 한 말이다. '사람도 거울을 보고 원숭이도 거울을 본다. 그런데 사람과 원숭이와의 차이는 이렇게 나타난다. 원숭이는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만 보나, 사람은 거울에 안 비치는 내면(內面)까지 본다.'   필자는 내면(內面)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자, 이 한마디를 주석을 달지 않은 채 인용하였다. 이 한마디가 나온 지는 퍽 오래다. 그러나 우리 나라 아동문학가들에게는 아직 낯선 편이겠다.   내면(內面)이 시에서 중요한 것은, 겉으로 드러나지 아니한 채로 뜻을 지니기 때문이다. 드러나지 아니한 채로 뜻을 품고 있기 때문에, 시의 의미를 깊게 하는 마술 같은 일몫을 하게 된다.   다시 말하겠다. 시어들이 나란히 조합되어 시인의 생각을 형상화시킬 때,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담아내는 일몫이 있다는 것을, 시인이 아니면 미처 생각지 못하는 편이다. 바로 내면의 문제다.   이런 까닭에 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동시라고 작품을 써낼 때, 물 밑으로 담기는 뜻을 아예 처음부터 놓쳐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동시를 통해 글자들이 빚어내는 이미지를 그려보려 하지만, 그와 아울러 물 밑으로 담겨지는 뜻은 생각지도 못한다. 잘 씌어진 동시와 그렇지 못한 동시와의 차이는 여기서 벌어진다. 이 차이를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퍽 많이도 동시인으로 등단하였으니까 말이다.   2   동시를 발표하면서 만약 어린이들이 감상하는 작품이기에, 선택한 시어들 밑에 다른 뜻을 깔아 둘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면, 이렇게 발표된 작품들은 어린이들에게 일회용 읽거리의 작품성 때문에, 두고두고 펼쳐볼 읽거리가 못되고 만다. 적잖은 동시인들이 기성 문단에 불만스러워하는 것은 그들의 작품이 일회용 대접밖에 못 받는 데 있다. 하지만 왜 그런 대접을 받는지에 대한 원인 분석은 간과하고 있다.   동시집 출판은 참으로 벅차고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이렇게 어려운 과정을 거쳐 출판된 동시집을 읽어보면, 아깝게도 수록된 작품들의 상당수가 일회용품이라는데 혀를 차게 된다. 이런 일회용 수준의 작품을 써내면서, 어떻게 시인이라고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겠는가.(때로는 좀 모자라는 사람이 아닌가 싶게 안타깝기도 하다)   '주된 독자층이 어린이'라고 잘못된 생각을 편견인 줄 모르고 계속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주독자층을 얕보는 태도에서 한번 읽으면 다시 읽고 싶지 않은 것을 써내는 사람들이, '나도 동시인!'이라고 자부하는 셈이다.   시 앞에다 아이 동(童)자를 붙인 동시라고 하여도, 첫 번째 독자인 어린이가 성장 과정을 통해 계속 자라면서 다시 읽고 또 읽고픈, 이런 작품을 내놔야 비로소 기억되는 시인이 되는 것 아닌가. 동시도 시이어야 계속 읽힐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별다른 생각 없이 '어린이'가 되어 갑자기 어린이가 된 그런 눈으로, 깊은 고민의 흔적도 없이 옛날을 되돌이켜 보고 자시의 어린 시절 회상기를 동시라고 써서 발표하고 있다. 이런 창작 태도이고 보면, 시로서 갖춰야 할 시적 요건이 들어갈 자리조차 마련되지 않은 어린이 글, 곧 아동시가 되고 마는 것이다.   길고 길게 설명을 하였지만, 요체는 내면화(內面化)이다. 내면화가 안 된 것은, 속이 빈 허물과 다르지 않다. '속 빈 강정'이라는 속담이 꼭 맞는 말이다.   내면화는 동시를 시의 지위에 올리는 격(格)이다. 내면화는 시인의 의도이든 아니든, 겉으로 읽히는 것과 다른 뜻을 시가 그 물 밑에 지니게 하는 묘한 일을 한다. 내면화는 그래서 시의 매력이고 신비라고 일컬어진다. 그러나 내면화는 오직 느낌(feeling))으로만 감지되고 느낌으로만 전달된다. 작품 속에 내면화되어 있는 정서를 진단할 수 있는 능력은 이론이 아닌 느낌에서 터득된다.   3   시인은 생각하는 사람이다. 다시 말하면, 시인은 고민하는 사람이고 늘 고뇌에 차 있는 그런 존재다. 그런데 이런 고뇌 없이 '어린이가 되어' 맑은눈으로 순수한 것만 골라 '생각의 난쟁이'처럼 '곱고 예쁘고 귀여운' 것들을 글자로 짚어내, 틀에 맞게 써 내면 이 글이 곧 동시가 된다는 말인가?   아니다.    아무리 동시라고 할지라도, 한 편의 동시 작품 안에 시가 들어가 제자리를 잡고 있지 아니하면, 글자 맞춤의 형식에 지나지 아니함을 알아야 한다. 곱고 예쁘고 귀여운 것. 이런 것을 줄맞춰 나타낸다 하여도, 이런 것을 어린이눈으로 그려낸다 하여도 결코 동시가 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동시도 시이어야 한다는 필자의 주장은, 동시에도 사람의 사람다운 마음이 들어가 내재(內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사람다운 마음'은 기쁨과 슬픔, 아픔과 괴로움 따위 온갖 정서가 다 녹아들 수 있는 마음이다. 동시의 일차적 독자가 어린이라는 이유를 내세워, 슬픔이나 괴로움의 정서를 외면할 수 있는가. 이는 변명일 수밖에 없다. 여러 번 기회 있을 때마다 이야기하였지만, 동시는 더 이상 어린이만을 주독자층으로 삼지 아니한다. 어린이를 주독자층으로 설정한 범주 규정은, 우리 나라 1930년대 사회 문화 구조와 상관관계가 있다. 당시 민족의 희망을 어린이에게 걸 수밖에 없다는 암울한 민족적 현실에서, 동시의 범주를 좁혀 감상과 보급의 농도를 어린이에게 집중시키고자 한 의도가 그런 결과를 낳았다. 하지만 동시는 인간의 온 생애에 걸쳐 위안과 위로를 안겨 주는 문학 형식으로 인정되고 있다. 이것이 세계 보편적 현상이다.   유아에서 노년까지 좋아하는 시가 동시다. 유아에서 노년까지 즐겨 듣는 시가 동시다. 유아에서 노년까지 인생을 담아낼 그릇의 효용이 인정되는 시가 동시인 것이다.   그러니, 동시라고 하여 더 이상 그 격을 낮추지 말 일이다. 동시인 스스로 동시의 격을 낮추면 그것을 생산하는 동시인도 사회적인 대접을 받지 못한다.   4   햇살을 프리즘에 통과시켜 분해하면 일곱 가지 빨, 주, 노, 초, 파, 남, 보의 빛으로 나눠 볼 수 있다. 그런데 사람의 눈에는 안 보이는 적외선이 있고 자외선이 있다.   만약 이를 볼 수 없기에 적외선이나 자외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물리학 공부를 더 해야 할 일이다. 마찬가지로 좋은 동시, 동시다운 동시 한 편에서는 읽을 땐 겉으로 드러나는 느낌과 그리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으나 속마음에 전달되어 오는 깊은 뜻을 감지하게 된다.   그런데 이 속마음에 전달되는 깊은 뜻을 감지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기도 작품을 쓰는데 왜 어째서 좋은 동시로 쳐주지 않는가' 하고, 기회 있을 대마다 불만을 터뜨리고 불평을 일삼는다. 문제는 나열된 글자들이 형상화해 낸 이미지 밑에서(물 밑으로) 전달되고 있는 뜻의 기능을 감지할 만큼, 충분히 삶이나 인생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거나 고뇌에 빠지지 않았다는 생활 자세 또는 생활 태도에 있다고 할 것이다.   생각 없이 씌어지는 시가 없고, 생각 없이 씌어지는 동시 또한 없다. 이 말은 고민 없이 씌어지는 동시가 있을 수 없고, 고뇌 없이 씌어지는 동시가 있을 수 없다는 말과 같다.(고민 없이, 고뇌 없이 어린이가 써 내는 것은 동시가 아닌 아동시다)   그런데 어쩌다 갑자기 그냥 '어린이가 되어'서는 결코 진솔한 어린이의 흉내도 낼 수 없다. 어린 사람에게도 생각이 있고 고민이 있으며 그 나름의 고뇌가 있다고 말하니까, 작품에다 고민이니 고뇌니 하는 한자(漢字)를 그대로 써넣는 동시인(?)도 있었으니, 이 어찌 한심한 실정이라 아니 하겠는가.   좀더 추적해 보면, 여러 잡지나 기관이 신인을 등단시키는데, 그 심사위원이나 추천위원 가운데 동시를 제대로 써내지 못하는 '위원'이 끼어 있어서, '그 밥에 그 나물' 같은 신인을 등단시키고 있다. 이것이 동시의 내면화를 모르는 일부 위원들의 심사나 추천의 결과이다.   5   한 채의 집을 아담하게 잘 지으면 투시도만 보았을 때와 다른 느낌을 받고 좋아하게 된다. 한 편의 동시다운 동시를 읽게 되면, 글자의 조합이 풍기는 것 이상의 느낌과, 그리고 잘 드러나지 않는 속 깊은 뜻을 감지하게 된다.   내면화는 동시를 쓴 사람의 마음을 읽는 사람의 마음에다 고스란히 옮겨 줄 수 있는 글자 밑의 얽힘이다.   반도체 칩이 서로 연결되어 정보를 전달하듯이, 사전에 나와 있는 글자들이 얽혀서 사전에 나와 있지 아니한 뜻을 전달하는 일몫을 내면화가 해 낸다.   사람의 마음은 반도체 칩이 아니므로 일정한 형식으로 내몀화의 뜻을 전달하지 않는다. 그 대신 사람마다 다른 체험 곧 내적인 체험에 따라 다른 뜻을 전달한다. 여기 감상의 묘미가 있고, 그래서 해석의 폭이 넓어진다.   윤석중은 기찻길 옆에서도 잠을 잘 자는 아기에서, 편히 잠들 수 없는 사회를 기찻길로 해석될 수 있게 썼다. 박목월은 엄마소도 얼룩소에서 창씨개명을 부추기는 당시 사회 분위기에 저항으로 해석할 수 있도록 송아지를 썼다. 시인의 의도이든 아니든, 작품이 지니고 있는 내면화된 세계는, 작품의 작품성을 높이고 완성도를 결속시킨다.   동시의 창작에서 내면을 중시하고 내면화의 세계를 천착하는 것은, 돌 한 덩이를 가지고 어떤 모양을 파내 다면체(多面體)적인 해석을 끌어내는 것과 다르지 않게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표본실에 진열되어 있는 박제된 동물에는 내면이 없다. 시가 들어 있지 아니한 동시는 동시라고 할 수가 없다. 내면은 분해된 기능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으나, 내면은 전체로서 생리 기능을 한다. 마찬가지로 시에서 내면화는 전체로서 드러나지 아니하는 다른 뜻을 전달하는 일몫을 감당한다. (2005년 겨울『한국동시문학』12호)   동시 창작론 ⑭ 감동을 담아내기 유 경 환   1   산의 높이는 해발 3백 미터니 3천 미터니 한다. 바다가 기준이다. 지도에는 등온선이 그려진다. 시에서도 이처럼 수치로 급수를 매길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 그 기준이 애매하기 때문이다.   시를 읽을 때 '좋은 시'라는 느낌이 오게 된다. 이런 좋은 시에도 여러 층이 있게 마련이다. 한마디로 좋은 시는 읽는이에게 감동을 주는 시다. 분명한 것은, 읽는 뉘에게나 감동을 전달하는 작품은 좋은 시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요즘 몇몇 지면에 발표되는 동시라는 것을 보면, 좋은 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좋은 시와는 거리가 먼 '맹물' 같은 것들이 놀랍게도 참 많다. 어째서 이런 형편에 이르렀을까.   시인의 내면에 내재하는 감동적 요소를 작품에 옮기는 표현 기법, 이것이 서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겠다. '이 정도면 내가 옮겨 놓고자 한 대로 독자가 감동을 받겠지…'라고 여기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좋은 작품 대신 맹물이 되는 것이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기는 것일까. 시인은 자기 생각을 전달하기 위해 그것을 가능케 하는 표현 기법 찾기에 참으로 많은 시간을 두고 고민하게 된다. 그런데 '주된 독자가 어린이일 뿐'이라는 잘못된 지식(1930·40년대 우리나라에선 그랬다) 탓에 '아이들이 읽어서 알 수 있는 표현 기법'만 내세워, 아무런 고민 없이 쉽게 표현하려고만 하였다. 그래서 의도와 전달 사이에 괴리가 생겼다.   2   무엇보다 먼저 깨달아야 할 것은, 쉬운 시(동시)와 그리고 쉽게 씌어진 시(동시)는 같지 않다는 사실이다. 쉬운 시와 그리고 쉽게 씌어진 시는 다르다. 달라도 하늘과 땅의 차이만큼 다르다. 이 차이를 모르거나 지나치므로 두 가지를 혼동하게 된다.   좋은 시는 쉬운 시일 수 있다. 그러나 좋은 시가 쉽게 씌어지기는 어렵다. 이런 개념 혼동으로 말미암아 쉽게 씌어진 것을 발표하는 사례가 흔하게 되었다.   윤석중, 강소천, 박목월이 표현 기법이 쉬운 시를 보여 주지만, 결코 쉽게 씌어진 작품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하겠다. 오랜 동안에 걸쳐 깊은 사유 끝에 어렵게 씌어진 작품들이다. '기찻길 옆에서 잘도 자는 아이'나, '물 한 모금 먹고 하늘 한번 쳐다보는 닭'이나, '얼룩송아지'가 쉽게 창작된 것이라 본다면 이는 잘못된 감상이다.   아이들 가슴은 유리병처럼 투명한가? 아니다. 그것은 인형이나 유리 모형에서나 그렇다. 아이들 가슴에도 가늘고 여린 심상이 차 있고, 때로는 그것이 얽히기도 한다. 이것이 그들의 고민이다.   우리가 숨 쉬는데 필요한 공기는, 아이에게나 어른에게나 똑같은 신선한 공기이다. 이와 다르지 않게, 아이에게나 어른에게나 나이에 따른 고민이 다 있게 마련이다. 그렇건만, 아이에겐 고민이 없고 있다면 장난스러운 생각만 있으리라는 일방 통행적인 사고 방식, 이런 사고 방식의 소유자들 안목 탓에 동시가 혼란에 빠진다.   '아이에겐 고민이 있을 수 없으므로, 그런 것을 담을 필요가 없다. 그런 것을 작품에 담을 필요가 없으니, 아이들 생각 그대로를 옮겨 쓰면 된다.' 이런 안목에서 아이들 입에 붙은 표현으로 어렵지 않게 옮겨지는데, 다시 말하면 쉽게 씌어지게 된다.   '어린이가 읽는 시에 왜 그리고 어째서 표현 기교를 도입하라는 것이냐'가 쉽게 써내는 사람들의 항변이다. 고민 없이 자란 사람만이 (자신의 유년기나 청소년기를 준거하여) 이런 항변을 할 수 있다. 정서적으로 메마른 (유년기·청소년기를 거친) 정서 결핍의 성장 과정을 지닌 사람, 이들이 문단 등단 절차를 쉽게 마치면 아이동(童) 글자 '동'자에 집착하여 쉽게 써내는 버릇을 지니게 된다.   이렇게 소급하여 따지면, 동시라는 어휘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아이동(童)자를 시 앞에다 접두어(接頭語)로 붙인 것이 원죄가 되는 것이다.   3   사람에겐 대체로 12∼15살이 빠른 성장기다. 이는 눈에 보이므로 이런 의학 상식을 수긍한다. 그런데 심성 발달 과정에서 정서적으로 가장 빠른 성숙 시기가 있다는 것은, (눈에 잘 보이지 않으므로) 수긍하려 하지 않는 편이다.   정서 발달 기간에 충분한 효과를 얻지 못한 사람들이 문인으로 양산(量産)되면, 그 원천적 정서 결핍 때문에 작품에 담아내야 할 내면 정서에 약하거나, 그것을 드러내도록 하는 표현 기법에 서툴 수밖에 없다.   육체의 성장기에 필요 영양이 충분치 못하여 체격이 작게 굳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심성의 성숙기에 감성 훈련이 충분치 못했다면 자신의 정서 결핍을 자각하지 못한다. 이런 사람의 경우, 표현 기법에 서툴기 짝이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제부터라도 시에 대한 공부를 다시 해야 마땅하다. 대장간의 대장장이도 불덩어리 무쇠 두드리는 연마를 어깨 팔뚝이 부풀도록 거쳐야 쟁이가 된다. 그런데 '아이들 생각'을 단순하게 글자로 바꿔 놓으면 동시가 되는 줄 알고, 붕어빵 찍어내듯 아이들 생각을 찍어내는 형편이니, 이런 것들이 어떻게 읽는이에게 감동을 주겠는가.   시 공부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않고 등단 절차를 마친 사람들 가운데, 교직자 출신이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한다. 매우 아이러니한 현상이다. 어째서 이렇게 되었는가.   그들에겐 오랜 동안 아이들의 글짓기 지도를 해온 경험이 있는데, 이 지도 경험을 시 공부라고 착각한다. 아이들이 써내는 '아동시'와 그리고 시인이 창작하는 '동시'에는, 인생을 살아본 만큼의 차이가 있다. 아동시와 그리고 동시와의 차이를 식별 못하고, 글쓰기 지도의 '실제 경험'만으로 등단 절차를 마쳤기에, 표현 기법의 기교를 모르는 것이다. 기교는 기술의 문제이다. 모자라면 연마해야 한다.   4   시는 고민이 익히는 열매다. 동시도 시이므로 다르지 않다. 햇살 없이 익는 열매 없고 고민 않고 완성되는 작품 없다. '아이들이 읽는 것인데 왜 고민해?' 이런 사고 방식이 바로 맹물 같은 작품들 생산의 주범이다. 동시가 쉽게 씌어진다는 말은 자기 옹호이거나 변명이다.   아동문학은 인간학(人間學)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기초 인간학이라고 이미 오래 전에 주장한 바 있다. 필자의 주장이다. '아이들이 읽는 글을 쓰는데 왜 고민을 해야만 하느냐? 이런 편견이 우리나라 아동문학의 위상을 높이지 못하고 지금의 수준에 붙잡아 매놓고 있는 첫째 원인이다.   아동문학가라는 명함을 내밀고 인사를 나눠 보라. 상대가 어떤 표정을 지으며 돌아서는가. 이것이 우리가 받고 있는 사회 대접이 아닌가. 아동문학가의 의식에서 하루빨리 아이동(童)자를 지워야 옳다. 그래야 작품에 인간의 문제가 담길 수 있고, 아이동(童)자의 구속에서 벗어나야 작품성 높고 완성도 치밀한 작품을 창작할 수 있다. 초롱에 든 새는 날지 못하며, 의식에 구애된 사고는 장애를 못 벗는다.   어린이가 읽어서 감동할 작품 수준이면 할아버지·할머니가 읽어도 감동한다. 역(逆)도 진(眞)이라는 말은 수학에서만 통하는 한마디가 아니다. 할아버지·할머니가 읽어서 감동할 작품이면 어린이가 읽어도 당연히 감동한다.   어른이 읽어서 맹물로 치면, 어린이에게도 맹물이고, 어른이 읽어서 유치하면 어린이에게도 유치할 수밖에 없다. 누구나 다 아는 프랑스의 단편 '별'이나 '곡예사', 쌩키비치의 '등대지기', 황순원의 '소나기'는 어른이나 어린이에게나 똑같은 감동을 안겨 주는 작품의 예이다. 감동을 전달하는 정서 매체는 같아서 시, 동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5   문학은 혼자 하는 작업이다. 시에 대한 공부도 혼자 하는 일이다. 좋은 동시 곧 감동을 주는 동시도 혼자 쓰는 것이다. 혼자 하되, 앞서 살다간 국내외의 문인들 작품을 읽으면서 '뒤따르지 말아야 할 점을 밝혀가며 읽는' 이런 독서가 핑요하다.   시에 대한 공부를 하여도 인접 학문 분야에까지 폭넓게 읽어야 사고의 바탕이 넓어지고 보편적 가치에 눈을 뜨게 된다. 밑줄 쳐 놓았다가 자신을 위해서 해 둔 한마디처럼 인용하는, 주(註)도 달지 않고 슬쩍 옮겨 쓰는, 그런 독서는 도움이 되기는커녕 인격을 해치는 결과만 얻는다.   만일 독해력(讀解力)의 문제에 걸려서 그것이 안 된다면, 차라리 수도승이나 수도사처럼 벽을 보고 앉아 묵상하는 것이 훨씬 나은 시 공부가 되리라. 왜냐하면 문학은 인간의 문제를 다루는 것으로서 결국엔 인간학에 귀결되듯, 동시 공부 역시 기초 인간학의 탐구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장난감인 색색의 레고를 맞추듯이 써내는 동시는 말장난이므로 어린이에게 재미는 줄 수 있으되 그러나 감동은 주지 못한다. 어린이가 자라면서 오래 기억할 수 있는 감동, 이는 자라는 가슴에 심겨진 보석과 같다. 그래서 오래 간직될 수 있다.   말장난이 어떤 가치를 지닌다는 것은 허황된 것일 뿐, 결코 가치 있는 꿈일 수 없다. 감동을 읽는이 가슴에 옮겨 주는 표현 기법은, 말장난처럼 뜯어맞추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 심겨지는 씨앗처럼 자리하는 것이다.   씨앗처럼 자리하는 것은, 생각이 담긴 사람의 마음이 옮겨지는 것이다. 이는 넓은 사고 깊은 사유의 어망(漁網)으로만 건져 올려지는, 비늘이 번쩍이는 싱싱한 물고기와 다름없는 메시지다. 그런데 떨어진 비늘 조각을 모아 붙여 펄펄 뛰는 물고기를 만들 수 있는가.   감동을 주는 작품은, 인간의 문제나 어린 인간의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어린이에게서 노인에게까지 감동을 전한다. 그러하건만 '어린이가 읽는 글에 왜 고민이 필요해?' 라고 말하는 이가 아직도 많다. (2006년 가을『오늘의 동시문학』제15호)   동시 창작론 ⑮ 童詩의 形式 유 경 환     1. 압축의 묘미   아동문학 이론서의 '동시'편에 보면 동시의 형식이 맨 앞자리에 놓여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나는 의도적으로 이 글의 마지막 편으로 미루어 왔다. 왜냐하면, 동시 형식이라는 개념은 이론으로 수용되는 것이 아니라 체험으로 수용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창작을 하지 않는 이론가들은, 동시의 형식을 맨 먼저 다루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창작을 하는 나는, 동시의 형식은 맨 뒤에 마무리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긴다. 동시가 어떤 운문인가를 알고 나면, 그 형식은 부차적인 것이 되고 말 수밖에 없다.   2. 의미의 압축   줄글(산문)을 엿가락 자르듯 뚝 뚝 끊어서 서너 줄로 나눠 놓으면, 과연 동시가 될 수 있을까? '아니다'라고 누구나 대답할 것이다. 줄글을 뚝 뚝 잘라놓아도 동시는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줄글과 동시는 다르다는 것을 쉽게 알게 된다. 줄글과 동시, 이것은 산문과 운문이라는 형식에서만 다른 것이 결코 아니다.   동시의 바른 이해를 돕기 위해 여기서 생각을 거꾸로 돌려보자.   우리는 한 편의 동시를 가지고 원고지 20장이나 30장 정도의 긴 줄글을 만들 수 있다. 이 말은 무엇을 암시하는 말일까. 동시는 줄글을 줄여서 만들 수 있다는, 그런 말이다.   기나긴 강물처럼 구비구비 긴 줄글을 단 몇 줄의 짧은 글로 줄여 놓은 것이 동시일 수 있다. 그러므로 동시는 압축의 묘미를 지닌다. 줄이고 또 줄여서 더 이상 줄일 수 없도록 의미를 구겨넣는, 그 결과 깊은 뜻을 숨겨 지니게 되는, 그런 압축의 기술을 요구한다.   의미의 묘미를 얻으려 하는 압축에는, 단순한 길이의 압축만이 아니라 내용의 압축까지 들어간다. (이것을 흔히 양(量)의 압축과 질(質)의 압축이라고 말한다.) 줄이고 또 줄여서 더 이상 줄일 수 없도록 구겨넣은 의미를 놓고 우리는 함축된 의미라고 말한다.   함축된 의미를 풍기려면, 한 가지 뜻만 지닌 낱말이 아니라, 여러 가지 뜻을 복합적으로 지닌 낱말을 골라 써야 한다. 여러 가지 뜻을 이중 삼중적으로 지닌 낱말은, 흔히 비유나 상징에서 선택되는 낱말들이다. 비유나 상징을 써서 뜻을 압축할 수 있으므로, 이것이 곧 질의 압축이 되는 것이다.   '동시는 말하는 그림'이라고 이름난 시인이 일찍이 말한 적이 있다. (시인의 이름을 오래 전에 읽어서 잊엇기에 못 밝히는 것임) 동시에서는 일반시에 비해 비유나 상징을 덜 쓰는 편이거나, 쓴다 하여도 그 농도가 엷은 비유나 상징을 쓰는 편이므로 '말하는 그림'이라는 한마디는 어렵지 않게 받아들여진다.   동시를 쓰고자 할 때, 사물의 모양이 비슷한 것들이나 또는 성질이 비슷한 것들을 비교해 가면서 간접적 비유를 통해 두 가지를 한 가지로 묘사하는 것이 곧 시 쓰기의 기술이다. 이 기술을 드러내지 않고자 토막 토막 끊어서 배열하거나 또는 장작을 포개 쌓듯이 짧게 포개는 것이다.   3. 「말의 그릇」 빚기   원래 낱말은 한 개의 사물을 대신하는 기호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시에 시어로 쓰일 경우엔 달라진다. 시어로 선택되어 시 속에 쓰여지면, 낱말은 기호 이상의 뜻을 스스로 품게 되고, 뿐만 아니라 다른 뜻까지 얹어 지니게 된다. 이런 신비스러운 일이 시를 쓰는 일에선 일어난다.   시에 쓰이는 하나의 낱말은, 그 다음에 오는 낱말과의 만남을 통해 낱말이 본래 지니고 있던 뜻과는 다른 뜻을 새롭게 풍기게 된다. 이것이 신비스러운 일이 일어나는 그 원리(原理)이다.   누구나 다 쓰는 말을 가지고 시인은 좀 유별난 뜻이 담기는 말의 그릇을 빚어낸다. 이 한마디 말에서 시의 본질(本質)이 어느 정도 밝혀진다고 할 수 있다. 누구나 다 쓰는 말로 엮어지되, 누구나 쉽게 짐작하는 것과는 다른, 별난 의도를 담아내는 「말의 그릇」이 곧 시요 동시인 것이다.   시인은 「말의 그릇」을 빚기 위해서 낱말을 가지고 말의 순서인 어순(語順)을 바꿔놓거나 뒤집어 놓거나, 또는 비유되는 낱말을 대입(代入)하는 그런 기교를 부려서 말의 그릇을 빚어내는 것이다. 여기서도 그냥 줄글이 아닌 토막난 글의 형식이 나타나게 된다.   시인은 또 말의 그릇을 빚기 위해서 줄글에서와는 달리, 일반 문장의 서술법을 무시하기 일쑤이다. 일반 문장에서의 서술법대로 쓰지 아니하고, 주어와 동사의 자리를 바꾸는 도치법(倒置法) 따위의 여러 기교를 부려 형식의 묘미를 얻어내는가 하면, 아예 있어야 할 주어나 동사 따위를 아주 생략해버리는 기교를 다반사(茶飯事)로 즐겨 쓴다.   그런데 동시도 시인 만큼, 시에서처럼 동시에서도 율(律)과 운(韻)이 매우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 이런 까닭에 길이를 압축하여 의미를 함축시키되, 율과 운이 어긋나지 않고 서로 아물려지도록 '말의 정서적 기능'을 살려내는 작업을 가볍게 해서는 안 된다.   말로 빚는 그릇이라고 앞서 말하였다. 사발엔 무엇인가를 담을 수 있고 접시엔 무엇인가를 얹어 놓을 수만 있다. 접시엔 담는다고 말하지 않는다. 깊이가 없어 주르르 흘러내리기 때문이다. 국물은 흘러내려 건더기만 얹을 수 있는 접시와, 그리고 옴폭한 깊이가 있어 국물까지 담을 수 있는 사발, 이것은 동시의 형식에서도 좋은 비유일 수 있다.   접시 모양의 동시에선 이야기만 얹을 수 있으나 시상(詩想)까지 고이게 하지 못한다. 요즘 엿가락처럼 재미있게 늘여가다 뚝 뚝 끊어내는 동시의 형식은, 접시 모양일까 사발 모양일까? 참신한 소재를 발견하여 그것을 이야기식으로 길게 전개한다지만, 시상이 결여되면 이야기일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   말은 본래부터 그것이 가리키는 사물의 뜻과, 그리고 함께 스스로 지니고 있는 음향적 리듬도 아울러 가지고 있다. 이 뒷것을 일컬어 말의 정서적 기능이라고 일컫는다.   이런 말의 정서적 기능을 아주 잘 활용하여 시를 쓴 시인으로 김소월을 들 수 있다. 또 윤동주도 들 수 있으되, 정서적 기능에 가장 먼저 눈길을 둔 이는 역시 김소월이다.   이런 까닭으로 위의 두 시인은 오래도록 독자들 입술에 오르내리는 것이다. 이를 달리 말하면, 율과 운을 잘 살려가며 작품을 쓴 시인들이라 하겠다. 이렇듯, 동시의 형식에는 율과 운을 잘 살려내는 특별한 관심까지 요구된다.   동시 쓰기는 또 말의 의미적 기능과 그리고 정서적 기능, 이 두 가지를 읽기 좋게 배열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그런데 읽기 좋게, 보기 좋게 배열하는 작업은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다. 오히려 힘들고 괴로운 작업이다.   4. 마음눈이 읽어내는 시심   시인은 자기가 말하고자 하는 속뜻은 작품을 이루는 몇 줄의 글 속에다 감추어 놓고, 시어로 선택한 낱말들이 은근히 그 속뜻을 겉으로 드러내도록, 그렇게 시치미 떼고 유도하는 일을 저지르기 일쑤이다.   이것은 따지고 보면 아주 고약한(?) 짓이지만, 시를 읽히도록 어떤 형식의 틀 안에 집어넣기 위한 전략에서는, 매우 묘한 술책으로 볼 수도 있다.   나뭇잎들이 서로 좁건 넓건 거리를 두고 어울려야 비로소 한 그루의 나무로 보인다. 나무라는 것을 멀리서 바라보며 나무로 인식하는데, 나뭇잎들의 어울림은 대단히 중요한 일몫을 하는 셈이다. 이와 마찬가지다. 낱말들이 서로 상관(相關)된 거리를 나눠 갖고 만나야 비로소 한 편의 시가 틀지어진다. 여기에 거리를 두고 어울리는 상관된 거리가 충분히 갖춰진, 그런 결과로 시의 형식이 마무리되는 것이다.   사물의 본질은 얼굴눈만으로는 볼 수 없다. 그러나 마음눈으로 살피면 어느 정도 본질 테두리를 알아 볼 수 있다. 동시도 마음눈으로 사물을 살필 때에 시심을 찾아낼 수 있으며, 마음눈으로 읽어야 그 시심을 나눌 수 있게 된다.   '아주 좋은 시는 최대한의 의미를 지닌 언어라고 하겠다.' 이는 에즈라 파운드(1885~1972)라는 시인이 남긴 말이다. 좋은 동시 또한 최대한의 의미를 함축한 작품일 때에 무한한 암시력을 풍길 수 있는 것이다.   다시 한번 이 말을 놓고 재해석하자면, 좋은 동시는 극한적으로 압축되고 생략되어 더 줄일 수 없을 만큼 줄여졌으나, 그 대신 지니는 속뜻은 최대한으로 늘일 수 있는 그런 시 작품이다.   모르는 사람 없을 만큼 알려진 영국 시인 엘리옷은 이런 말을 남겼다.   '시에 대한 정의(定義)의 역사는 곧 오류의 역사이다.' 시를 놓고 여러 사람들이 내린 온갖 정의를 다 모으면 모을수록 잘못의 길이만 길게 늘어날 뿐이라는 말이다. '시란 …… 무엇이다.'라고 정의한 것을 모두 다 모아놓는다 하더라도, 그것들이 시의 본질을 완벽하게 드러내 주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시란 무엇이냐?' 라는 질문은 필요 없는 것이다. 시는 그냥 시일 뿐이다. 우리 나라 어느 스님의 말(법어)대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와 다를 것이 없다.   아주 넓게 보면, 어떤 형식이든  시라고 써내는 것들은 모두 시일 수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다 외우고 싶을 만큼 좋은 시나 좋은 동시일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요즘 한 방송사의 지구 탐험대가 찍어오는 필름을 보면, 아랫입술을 뚫어 작은 접시 모양의 물건을 끼워넣어야 미녀라 여기는, 그런 검은 색 피부의 여인들이 오늘날에도 살고 있다. 아름다움에 대한 그들의 인식을 구태여 우리가 바꿔 주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동시의 형식, 이에 대한 인식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보고자 한다. 다만, 요즘 동시의 형식을 길게 늘이는 그들의 그 인식에 대해, 그들 스스로 신중하게 재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일깨월 줄 수 있을지 문제라 여긴다.   아름다움 또는 미(美)에 대한 기준은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것이므로 누가 상관할 일이 아님을 모르지 않는다. 그렇다 하여도 보편적인 기준에 맞춰보는 것은 보편적인 아름다움을 지키고자 하는 노력의 다른 표현일 수 있다.   5. 유치원 원아에 들려줄 동화처럼?   하루살이가 내일을 어떻게 알겠느냐고 흔히 말해 왔다. 매미들이 다음해 여름을 어떻게 알겠느냐고도 말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의 생각은 하나의 가설(假說)일 뿐이다. 유충으로 있을 동안 '선택적 입력'이 되었을지도 알 수 없다. 사람의 판단과는 달리, 땅 속에 7년 있는 동안, 7년 전의 정보가 계속 보전되어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사람의 머리는 이 정도가 아니도록 경이롭다. 그 놀라움의 두 가지만 설명한다면 다음과 같다. 1백살 정도밖에 못 사는 사람이, 빛이 1년 동안 달리는 거리를 생각하여 '1광년'이라는 개념을 설정하였다. 그리고 사람은, 그 후손에게 3천억 광년 밖에 있는 은하계를 그려볼 수 있게 머리를 물려 주고 있다.   그뿐이랴. 몸 안에 퍼져 있는 핏줄 속으로 달리는 마이크로 로봇을 만들고 렌즈를 달아 몸 속 어디에 고장이 났는지를 찾아내는 진단을 하고 있다. 우주의 넓이와 크기를 알아내는 머리와 그리고 핏줄 속의 로봇을 만드는 나노기술의 머리가 오늘날 사람의 두뇌이다. 그런데 우리에겐 이런 두뇌만이 꼭 있어야 할 것들인가?   아니다. 결코 아니다. 또 있어야 할 두뇌도 있다. 그것은 어떤 두뇌인가?   봄 여름 가을, 세 철을 알아낸 나뭇잎 그 맨 밑에 달리는 아침이슬에 찬란히 첫 햇살이 닿을 때의 순간적인 눈부심을, 동시로 표현하는 동시 쓰기의 능력 또한 위에 두 가지 어느 것 못지 않게 가치 있는 두뇌가 아닌가? 카메라 렌즈가 잡아내는 모습, 그 이상의 감동을 전해 주는 한 편의 동시를 창작하는데, 여기 무슨 형식이라는 것이 필요하겠는가.   이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 창작(創作, Creation)이다. 이미 어떤 형식으로든 존재하는 것을 되풀이하면 그것은 창작이 아니고 다만 오락(Re+creation)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예술의 장르에서도 다른 장르와 마찬가지이며, 문학 장르 안에서 동시 쓰기에서도 또한 같다. 동시 쓰기에서의 창작은, 소재의 발견이나 소재의 선택에서 뿐만 아니라 형식의 개발에서도 다를 바 없다. 그러므로 동시의 형식도 그 전과 같지 않고 달라질 필요가 있다.   하지만, 줄글을 엿가락 뚝 뚝 잘라 적당한 길이로 장작 포개 쌓듯 배열하는, 요즘의 그 길어진 형식에 대해 좀더 진지하게 생각하여 보자. 산문시(散文詩)도 아니고, 산문시의 형식을 따라 (요즘 일반적으로 성인시가 길어졌듯이) 길게 늘여가며 율도 운도 무시한 채, (마치 유치원 원아들에게 들려주는 동화처럼) 적당히 끊어서 줄 바꿔 쓰는 요즘 동시의 형식은 ① 그래야만 할 「필요하고도 충분한」 조건으로서의 까닭을 그 스스로 지니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② (독자들에게) 설명할 정서 논리를 그렇게 쓰는 까닭이 지니고 있는 것일까 ③ 과연 독자들은 그런 작품에서 어느 정도 「감동」할 수 있을까? 이런 물음에 도움이 되는 글을 누군가에게서 받고 싶다.  출처  ㅡ 허동인 동시감상교실 
135    수필에 관한 인터넷 자료 모음[모셔온 향기 ] 댓글:  조회:2645  추천:0  2016-03-19
수필에 관한 인터넷 자료모음   2010.  6. 5. 먼저 수필은 시의 정신으로써 창작되어야 할 것이다.  시는 작자의 주관적인 직관력과 사색적인 인생 철학에서 이루지는 것과 같이 수필도 작자의 주관적인 인생 철학에서 이루어지는 하나의 산문적인 작품이 것이다.  수필은 하나의 산문시적인 정신으로써 창작되어야 할 것이며, 줄이면 한 편의 시가 되어야 할 것이다.  철학적인 아이디어가 없는 작품은 문학도 음악도 회화도 될 수 없을 것이고, 하나의 예술적 작품으로서의 가치가 없을 것이다.  김광섭의 '수필 문학 소고'에는 이러한 말이 있다.   우리는 시를 쓰려 한다. 소설을 지어 보려고 한다. 혹은 희곡을 만들어 보고자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 때 그 어느 것에나 함부로 달려 들려는 무뢰한은 아니다. 동일한 작자이면서도 그 태도가 서로 다르다. 시는 심령이나 감각의 전율된 상태에서, 희곡과 소설은 재료의 정돈과 구성에 있어서 과학에 가까우리만큼 엄밀한 준비에서 시작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보면 수필은 달관과 통찰과 깊은 이해가 인격화된 평정한 심경이 무심히 생활 주위의 대상에, 혹은 회고와 추억에 부딪쳐 스스로 붓을 잡음에서 제작 된 형식이다.   피천득의 '수필'에는 이런 글귀들이 있다.   수필은 플롯이나 클라이맥스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가고 싶은 대로 가는 것이 수필의 행로이다. 그러나 차를 마시는 거와 같은 이 문학은 그 차가 방향을 갖지 아니한 때에는 수돗물같이 무미한 것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한 조각 연꽃잎을 꼬부라지게 하기에는 마음의 여유를 필요로 한다. 이 마음의 여유가 없어 수필을 못 쓰는 것은 슬픈 일이다.   김시헌의 「수필문학」제 2 집 책 머리에 이런 글귀가 있다.  수필은 호젓하면서도 군색하지 않고 멋이 있으면서도 방탕하지 않고 소박하면서도 우둔하지 않다. 수필은 건강하지만 파격을 좋아하고, 야유스럽지만 악의가 없고, 날카롭지만 따갑지 않다. 수필은 길이가 짧지만 소설이 담겼고, 리듬은 없지만 시가있다. 수필은 부담 없이 걷는 산책과 같고, 장바구니 든 아낙네 같다. 그 속에는 꿈을 돌아보는 낭만이 있고, 회의를 극복한 철학이 있고, 생사를 초월한 우주가 있다.   이상의 수필론에서 수필의 정신이 어떠한 것인지 인식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우리는 특히 영문학상 수필의 위치가 얼마나 높은 문학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알고 있다. 우리 한국 문단에도 빛나고 높은 품위의 수필 문학이 세워져야 할 것이다. 구원과 절제와 동반의 언어     정 태 헌 (수필가) 1. 들어가기   수필에 대한 의견은 수필을 쓰는 사람의 수만큼 다양하게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수필의 상식적인 면을 끄집어내는 이유는 수필문학의 본질과 보편성을 상실한 글이 이즘 난무하기 때문입니다. 김광섭은 그의 ‘수필문학 소고’에서 “수필이란 글자 그대로 붓 가는 대로 써지는 글일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문학보다 더 개성적이며 심경적이며 경험적이다. 우리는 오늘까지의 위대한 수필문학이 그 어느 것이 비록 객관적 사실을 취급한 것이라 하더라도 심경에 부닥치지 않은 것을 보지 못했다. 강렬히 짜내는 심경적이 아니요 자연히 유로되는 심경적인 점에 그 특징이 있다. 이 점에서 수필은 시에 가깝다. 그러나 시 그것은 아니다.” 라고 수필을 정의 내린 바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김광섭의 정의에서 일부 사람들이 자구 해석에 급급하여 수필 문학의 성격을 호도하는 빌미를 제공한 것 또한 사실이라고 할 수 있지만, 더러 독자들 중 수필문학에 대한 인식을 잘못 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타 장르의 글을 쓰는 어떤 이가 ‘그까짓 수필 하루에 열 편은 너끈히 쓸 수가 있다’고 말한 것을 들은 적도 있습니다. 그 사람에게 수필의 본질을 말해 주고 싶었지만 알아듣지 못할 것 같아서 목젖 너머로 꾹 넘기고 말았습니다. 그 사람은 분명 자신의 장르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편 부끄러움이 들기도 했습니다. 얼마나 허튼 수필들을 많이 보아왔으면 저런 말까지 할까 하고요. 이런 말들이 난무하는 현실에서 수필가들은 작금의 수필 현실을 직시하고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끊임없이 반성적 성찰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문장의 분칠로 독자를 속이려는 글은 금방 들통이 나고 말며, 자신을 과시하는 글은 역겨움을 주고, 바탕이 문체보다 승하면 거칠고 문체가 바탕보다 승하면 필요 이상의 치장이 값싼 사치로 전락하질 않던가요. 즉 내용이 형식에 비해 튀면 거칠고, 형식이 내용에 비해 튀면 사치스럽다는 뜻이지요. 이런 글을 만나면 책장을 덮는 독자들이 어찌 필자뿐이겠습니까.    수필은 원고지 15매 내외의 짧은 글입니다. 그러기에 고도의 문학성과 철학성이 요구됩니다. 철학이란 무엇입니까. 인간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모든 종류의 노력이 아니던가요. 또한 앎의 바탕을 찾아 가는 과정이 철학입니다. 소재에 대한 개성적 해석이나 독창적인 의미화도 넓은 의미에서 철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소재를 수직적으로 파고 내려가면 의미가 발견되며. 소재의 뼛속까지 내려가다 보면 그곳에 철학이 있습니다. 철학은 인간의 삶이 없이는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인간은 철학을 하기 전에 미리 살아 움직여야 하고 살기 위해서 일정한 이론적 실천적 활동을 해야 합니다. 바로 이러한 활동에 대한 이해와 반성으로부터 출발한 학문이 철학이 아니던가요. 즉 철학은 인간의 삶을 전제로 하는 학문이기에 인간 삶의 진실을 바탕으로 하는 수필에 철학이 없다는 것은 잡문에 불과하다는 다른 이름일 뿐입니다. 그래서 철학은 모든 장르의 고갱이 역할을 하는 셈이지요. 물론 상상이나 정서, 정경이나 이미지만으로도 좋은 글을 빚어낼 수는 있지만, 문학적 공감을 얻어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 않던가요.   하여 좋은 수필이 되기 위해서는 문학성과 철학성이 두루 갖추어져야 한다고 여깁니다. 철학을 담은 수필을 쓰기 위해서는 작가는 항상 대상을 바라보면서 참된 인식을 얻고자 하는 자세를 지니고 있어야 하겠지요. 대상의 본질에 대해 깊이 궁리하고 다양하게 생각하며 자신의 생각에 논리적 오류나 정서적 편견은 없는가 등을 점검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러한 자세가 습관화될 때 얻어지는 수필의 철학성은 통찰력을 통해 형상화됩니다. 삶을 통찰하기 위해서는 인생에 대한 깊은 시각과 다채로운 경험이 필요하겠지요. 경험만으로는 깊은 맛이 나지 않습니다. 경험이 사유의 과정을 거쳤을 때 비로소 체험이 되며, 이 체험에 의미를 부여하면 통찰력이 생겨납니다. 통찰력이란 사물과 현상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힘, 즉 생에 대한 철학적 이해가 아니던가요. 그래서 수필을 쓰기 위해서는 사유와 관조의 훈련이 필요하다고 말을 하는 것 아닙니까. 지극히 개인적인 신변잡사를 늘어놓거나 주관적인 감정만을 토로한 글은 생활의 기록일 뿐 문학수필로 대접받기는 곤란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수필은 평범한 일들의 기록이 아니라 음악에 있어 편곡처럼 자기화하여 육화된 글이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즉 커피에 설탕을 가미하여 잘 저어야 제 맛을 내는 것처럼 문학성 속에 철학성을 잘 휘저어놓아야 용해되어 글 속에 어우러질 것입니다. 2.    가을 호에 게재된 30여 편의 수필을 읽다 보니 끝가지 읽히는 글이 있는가 하면 첫 단락을 읽다가 그만 둔 글도 있고, 처음과 끝만 읽고 책장을 덮게 되는 수필도 있었습니다. 끝까지 읽히는 글은 무언가 독자를 잡아끄는 힘이 있었지만, 중간에 읽기를 멈추게 하는 글은 그런 요소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독자를 잡아끄는 힘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한 마디로 말 할 수는 없지만 진실과 문학성에 바탕을 둔 공감과 울림이 있는 경우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수필 한편이 독자에게 생생한 울림과 공감을 주기란 녹록치 않습니다. 공감 있는 수필이 되기 위해서는 글 속에 울림의 요소를 은밀하게 내장하고 있어야 합니다. 발효되지 않은 날것 그대로 소재를 쓰다 보면 독자에게 울림을 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실험적인 수필을 쓴다 하여 공허하고 허튼 글을 내놓은 경우도 있습니다. 독자들은 한 작가의 발효된 삶에서 진실을 보고 싶어 합니다.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작가와 독자와의 사이에 공감의 통로, 즉 교감의 길이 열려있어야 합니다. 좋은 글이란 급조하거나 포장한 글이 아니라 삶에서 우러난 진국이어야 합니다. 자잘한 일상만을 쓰는 게 아니라 인간의 뼛속과 영혼의 고처(高處)까지 방문하여 우려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독자에게 감동을 주어 우리들의 몸 속에 맑은 개울을 흐르게 하고 환한 길을 내어주지 않겠습니까. 다음에서 다루고자 하는 세 작가의 문학적 자세와 태도를 살펴보면 참 치열하고 진지합니다. 이들이 수필가로서 독자들에게 수필을 통한 삶의 공감을 주기 위해, 또 작품쓰기의 충실함, 즉 좋은 글을 빚어내기 위해 얼마나 각고의 노력을 하는지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필자는 이들의 문학적 태도와 글 쓰는 자세를 통해 그들의 문학적 열정을 편안한 마음으로 한번 따라가 보고 싶습니다. 구원의 언어    박영덕의 ‘절반은 구속 절반은 구원’은 마흔 셋이 되던 해, 문학 세미나에서 후배가 찍어준 사진 한 장을 소재로 쓴 글입니다. 문학이 자신에게 갖는 의미를 곱씹어 의미를 반추하며 치열한 글쓰기를 속으로 회다짐하고 있습니다. 문학을 하는 일은 취미가 아닌 운명의 굴레인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글이며 작가입니다. 어쩌면 글쓰기는 스스로를 구속하는 일이지만 자신의 영혼을 구원하는 작업인지도 모릅니다. 구속한다는 것은 글 쓰는 사람으로서의 올곧은 자세이고, 구원이라는 것은 삶의 치열하고 결곡한 정신적 자세일 터입니다. 박영덕의 문학 정신을 통해서 수필쓰기의 한 전형을 읽습니다. 치열성이 없는 글쓰기란 특히 수필에서는 잡문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수필은 아무렇게나 쓰는 잡문이 아니라 치열한 고뇌와 문학적인 미적과정을 통해 형상화되어야 합니다. 형상화란 무엇입니까. 추상적인 것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작업입니다. 형상화 이전의 글이 신변잡기면 형상화 이후의 글이라야 비로소 문학 작품입니다.   ‘절반은 구속 절반은 구원’은 박영덕의 문학적 명제가 배어있으며 그의 생의 안쪽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글입니다. 박영덕에게 문학은 일상적 삶의 구속이면서 구원의 손길이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구속은 구원을 낳게 될 것입니다. 흔히 문학 작품을 통해서 불멸의 글 한 편, 그 글을 통해 영생의 기쁨, 하고 말하는 분들이 있지만 박영덕에게는 그보다 구원이 더 중요한 명제인 듯싶습니다. 영생과 불멸이라는 말은 실은 끔찍한 말들이 아닙니까. 그것은 인간이 지닌 탐욕과 사유의 놀이가 빚어낸 그로테스크한 산물이기 때문입니다. 살아생전에 구원이라는 심적 해방감만으로도 문학은 그 얼마나 은혜로움이겠습니까. 박영덕의 문학적 자세는 구원을 위해서 구속까지 마다하지 않겠다는 진지한 문학적 태도임을 분명히 알 수 있는 글입니다.   이 글이 소재로 삼은 것은 앞모습과 뒷모습이 함께 찍힌 사진 한 장입니다. 소재를 탐색하는 과정을 통해서 사물을 보는 진지함과 철학적 사유가 묻어납니다. 그 사진은 그 무렵 마흔앓이를 심하게 하는 도중에 찍힌 사진이어서 남달랐을 것입니다. 앞모습은 현재의 모습이지만 뒷모습은 과거의 모습과 미래의 모습을 함께 담곤 하지요. 박영덕은 그 사진을 보며 어느 쪽에 더 눈길이 쏠렸을까요. 아마 뒷모습이었을 것이라 생각해 봅니다. 현재의 구속된 모습보다는 미래의 구원된 모습을 바랐을 테니까요. 또한 인간의 본질적 모습은 뒷모습에 더 진지하게 반영되기 때문입니다.   박영덕은 한때 마흔 살이 되면 괜찮은 인생이 펼쳐지리라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미래에 대한 기대로 어서 마흔이 되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세월에 대한 믿음으로 40대는 흔들리지 않는 의지와 강물과 같은 평화를 가져다주리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꿈꾸었던 40대는 실망이었습니다. 어찌 박영덕에게만 그랬겠습니까. 40대의 나이를 불혹이라 하건만 그건 공자와 같은 경지에 이른 자에게 적용되는 말이지 생에 대한 방황과 고통이 가장 심한 때가 아니던가요.   기실 40대는 갈등의 세월이지요. 올라온 생만큼 다시 내려가야 하는 분기점이기도 하고요. 삶에 대한 회의가 가장 많은 시기이기도 하며 지나온 삶에 대한 회한과 다가올 미래에 대한 기대와 불안이 교차하는 시기이기도 하지요. 박영덕은 해야 할 일들보다 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아지고 미래에 대한 설계보다는 과거를 그리워하게 됩니다. 어찌 그리움만 있었겠습니까. 앞날에 대한 불안과 불확실성이 삶을 뒷걸음치게 하지는 않았을까요. 그래서 생은 갈수록 경직돼 가고 타인과 부대끼기를 거부하는 완고함으로 자기 성 쌓기에 급급하게 되었겠지요. 박영덕은 그래서 50이 되기를 또 바랐습니다. 현실에 대한 불만족과 미래에 대한 막연한 기대를 또 50대에 걸면서 말입니다.    이런 세대별 생의 부침과 매듭을 겪으면서 박영덕은 생의 중심점을 문학에 깊이 뿌리내리게 됩니다. 그래서 마흔에 들어선 그녀에게 글쓰기는 절반은 구속으로 다가왔고 절반은 구원으로 다가왔다고 말합니다. 문학이 박영덕에게 운명인지 숙명인지는 더 두고 봐야겠지만 구원이 될 거라는 믿음은 확실합니다. 문학의 치열성 때문에 고통을 겪고 생의 무늬닦기와 성찰을 위해서 무두질을 하다 보니 구속감을 느꼈을 것이고 현실에서 충족하지 못한 삶의 활력을 문학에서 찾으려고 하니 문학은 자연 삶의 구원으로 인식되었을 것입니다. 한데 삶의 망루에서 내려다보니 영혼은 생기를 잃고 있었습니다. 삶에 대한 또 다른 자각이자 생에 대한 새로운 발견입니다. 지금까지의 시간은 거울 속의 모습처럼 웃는 모습이라면 나머지 뒷모습은 잘 닦이고 빗질된 아름다운 모습이어야 한다는 것은 생에 대한 반성적 성찰과 함께 문학에 대한 견고한 의지의 모습입니다. 여기에 박영덕 문학의 내공과 철학성이 내재되어 있다고 봅니다.   박영덕이 문학 동네에 발목을 디민 때는 사십대였다고 술회를 합니다. 기대와 실망을 지닌 40대는 그래도 박영덕의 삶에서 가장 힘들면서도 행복한 때라 여겨집니다. 문학을 숙명처럼 만난 때였기 때문입니다. 삶의 길목에서 가슴을 움켜잡을 수 있는 무엇인가를 만난다는 것은 은총입니다. 그것이 설령 고통이라 하더라도 말입니다. 그 고통을 느끼고 그것을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시기가 지내놓고 보면 생에서 가장 치열하게 산 때가 됩니다. 결국 지내놓고 보면 고통은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안고가야 한다는 지혜를 터득하게 됩니다. 그래서 40대는 예배 같은 시간이었고 정화하는 기도의 때가 될 수 있습니다. 박영덕에게 40대는 구속이자 구원이었지만 문학의 힘은 40대에서 시작되었으니 60대가 돼서 망루에서 내려다본다면 박영덕에게 문학의 꽃은 찬란하게 다가오리라 여깁니다.   박영덕에게 문학이 구속뿐이었다면 후배의 말처럼 절필했을 것이지만 구원이라는 끈을 놓지 않았기 때문에 박영덕 문학의 열매는 갈수록 올곧고 단단해지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일상의 구속에서 벗어나 기계론적 세계관과 학습에 의해 상식이 최고의 가치라는 것을 건너뛰었을 때 박영덕의 문학은 더욱 완숙되어 절정을 이룰 것입니다. 나아가 박영덕의 구원의 문학은 스스로뿐만 아니라 독자를 위해서도 유효하리라 여깁니다. 문학은 현실의 제약과 구속으로부터 벗어나 내일의 새로운 미래를 꿈꿀 수 있게 해주는 구원의 기능을 지니기 때문입니다. 절제의 언어  ‘파도의 언어’를 읽고 김상희가 단단하며 만만치 않은 작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김상희는 수필적인 언어는 아끼며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고 굳게 믿으며 여백과 함축의 아름다움을 수필의 미덕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당연하고 지당한 말씀입니다.  또한 주변의 미세한 소리나 감각, 현상이나 사물에도 소홀히 지나치지 않고 소라고동처럼 눈과 귀를 열어놓고 사물과 현상을 받아들여 걸러내려는 자세를 견지하고 있어 미덥습니다. 단단한 작가정신과 치열한 수필정신으로 무장한 작가입니다.   김상희의 ‘파도의 언어’는 작가 자신의 수필론이자 수필을 쓰는 사람들을 향한 조용한 외침입니다. 여운은 독자를 위한 배려이고 함축은 문학적 형상화를 위한 장치입니다. 산들바람이 무풍지대의 파도를 일으켜 먼 항해를 거쳐 동해의 남단 외진 바닷가에 도달해 ‘차알삭’하는 마지막 속삭임으로 남듯이 여백과 함축미를 지닌 수필을 써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을 하고 있지만 글 속에 담고 있는 내용은 그것뿐이 아닙니다. 하찮은 소재가 한 편의 글이 되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를 ‘파도의 언어’를 통해 구현해 놓고 있습니다. 즉 문학 작품을 통해 원초적 이미지를 구체적 이미지로 형상화하고 변용하며 새로운 세계를 꿈꾸게 하는 역동적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은유적으로 말하고 있다고 봅니다.   삶과 자연의 현상에 귀를 열어놓고 있는 작가의 모습은 잡사만을 쓰려는 안일한 태도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소재의 본질을 파고 내려가서 영혼과 만나려는 작가의 진지한 태도가 엿보입니다. 소재는 늘 가시적인 것만을 대상으로 하지는 않습니다. 김상희는 형체가 없는 바람에게도 눈길을 보내고 있습니다. 바람의 존재를 다른 사물을 통해서 보려는 소재 탐색의 진지함도 엿보입니다. 나뭇잎에서, 깃발에서, 눈송이의 원무에서도 소재의 변형된 모습을 보려는 작가의 소재잡기는 집요합니다. 또한 소재의 변형된 이면을 보려는 시선도 날카롭습니다.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은 수필은 눈에 보이는 현상과 사물만을 소재로 하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여기에 김상희의 또 다른 작가적 힘이 엿보입니다.   문학은 인간의 가치 있는 체험의 표현이어야 한다고 일반적으로 말합니다. 문학은 인간계과 자연계 등 모든 것이 문학의 소재가 될 수 있지만, 작가의 주관적인 경험만으로는 문학작품으로 연결짓기에는 무리입니다. 소재를 통해 다른 이면을 유추하기도 하고 숨은 그림도 찾으려고 노력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바람을 통해 바닷새도, 달도, 외로움도, 포용도, 양보도 그려내야 합니다. 또한 바람을 통해 평화도, 공포도, 강인한 의지도, 아름다운 사랑도, 공포와 참상까지 보아야 합니다. 탐욕도, 천진무구도, 고운 마음씨도 읽어내야 합니다. 소재의 겉모습, 즉 작가의 가슴에서 발효되지 못하고 날것 그대로 밋밋하게 써지는 수필을 작가는 거부하고 있습니다.   한 주제에 대해 진지한 탐구를 착수하기 전에 그 주제를 비켜 바라보거나, 그것과 먼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광범위한 관점에서 뒤틀어보거나 꼼꼼하게 관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적도에서 인 바람이 수많은 과정을 겪고 동해 바닷가에 도착해서 토해낸 말은 그저 ‘차알삭’ 한 마디뿐이어야 한다는 표현 속엔 언어의 절제와 내용의 함축이 담겨있습니다. 모든 체험이 응축되고 미세한 감정과 예지가 융합된 가장 소중한 달관의 언어가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파도는 한 마디 화두를 던지고 물러나는 여운을 독자에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치밀하고 치열하며 융화된 언어로 발효된 체험을 절제의 언어로 표현해야 독자에게 울림을 주고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글이 된다고 말하고 있으며 많은 수필가들에게 쉽게 언어를 부리지 말기를 에둘러 말하고 있습니다. 김상희는 수필의 언어를 체득한 작가로 제 멋에 겨워 아무렇게나 써내고 발표하는 일부 수필가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싶어 합니다. 그것도 아주 조용하고 겸손하게 말입니다. 김상희의 다른 글이 기다려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동반의 언어  ‘내가 하고 싶은 것’의 작가 이정숙은 문학을 생의 도반으로 여깁니다. 문학 때문에 현실적 삶에서 욕심과 갈등으로 몸살을 앓으며 산통을 겪지만 이도 은혜라 여기고 운명처럼 받아들이겠다는 다부진 작가정신입니다. 다른 것은 대충하더라도 글쓰기만은 치열하게 하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래야 삶의 갈증이 풀릴 것 같다고 여기면서요. 오랜만에 비가 오고 유리창을 말끔히 닦아내듯이 문학을 통해 자신의 마음의 창을 응시합니다. 일상에서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찾아보지만 언제나 그날이 그날인 것이 불만입니다. 소시민적인 닳아 가는 삶을 거부합니다. 그래서 불꽃이 튀는 정열적 삶을 꿈꾸어보지만 언제나 방황으로 끝이나 불만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야무지게 살고 있는데 자신은 언제나 그 자리라고 자신을 탓하기도 합니다. 욕심뿐 주변에서 밀려나 변방을 떠돌고 있는 심정이 되기도 합니다. 이는 어찌 이정숙의 삶뿐이겠습니까. 대부분의 삶이 그렇고 조금 다른 삶이 있다고 하더라도 본질적으로는 대동소이합니다. 이정숙의 이런 생각은 자의식이 강하고 문학에의 욕심이 불러온 치열한 실존적 인식 때문입니다.   갈수록 생활에 자신감을 잃게 되자 이는 체계성 없는 생활과 게으름 때문에 쉬 기존의 안주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여기며 자신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삶의 활력을 일상보다는 문학에서 찾고자 합니다. 일상은 생존을 위한 일이고 문학은 스스로를 구원해 주리라 여기기 때문입니다. 이제 정말 욕심내고 싶은 것들이 많지만 하나만 선택한다면 단연 글쓰기라고 여깁니다. 끊임없이 욕망을 자극하며 스스로를 닦달하는 것은 역시 글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마음처럼 문학이 턱하니 안겨들지를 않습니다. 이는 여지없는 문학에의 짝사랑입니다. 작가는 이것이 그 동안의 글쓰기가 겉핥기였다고 스스로를 질책하게 됩니다. 글쓰기에 대한 심한 갈증을 느끼면서도 쉽게 오아시스만 찾으려는 안이한 태도 때문이라 여깁니다. 노력을 하지 않고 능력 밖의 욕심을 부린 때문이라고 자신을 한탄하기도 합니다.   작가가 자신 있게 내세울 일이라고는 개떡 찌는 일인데 단순한 이 일도 10년이 넘어서야 어느 정도 터득하지 않았던가요. 개떡 찌는 일도 이럴진대 고도의 정신작업인 문학은 얼마나 많은 고뇌와 문장 수련이 있어야 하는지를 스스로 잘 알고 있습니다. 작가의 체험이 문학적 형식이나 방법에 따라 재구성되어 작품으로 형상화되어야 한다는 점을요. 그래서 글 욕심 이전에 글을 쓰기 위한 바탕을 마련하려고 결심을 하게 됩니다. 늘 밖에서 서성거리는 글감을 안으로 끌어들여 발효시켜 보려 합니다. 글쓰기가 녹록치 않음을 깨달은 겁니다. 아니 쉽게 글을 써 내놓을 수도 있으련만 작가는 수필에 치열성을 지니고자 합니다. 수필을 끌어안고 평생의 도반으로 여기며 문학을 운명처럼 주어진 숙제로 여기며 살려 합니다. 문학에의 길이 고통일지언정 은혜라 여기며 감사하겠다고 합니다. 삶에 태클 거는 일도 참 많을 텐데 문학에 대한 태도가 참 열정적이고 진지합니다.    어찌 보면 수필쓰기는 생존에 비하면 사치이며 잉여일 수도 있습니다. 글보다 밥이 수필집보다 몸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밥과 몸이 수필쓰기의 토대가 되듯이 이제 이정숙의 글쓰기는 삶의 든든한 토대가 될 것입니다. 일상의 삶 위에 문학적 삶을 지향하려는 작가의 눈물겨운 고뇌와 다짐이 앞으로 그의 문학의 성을 밀도 있고 견고하게 쌓아 가게 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이러한 고통과 시련의 문턱을 건너면 문학이 고통과 구속에서 벗어나 삶의 활력과 재미를 주는 유쾌한 작업이라 여기게 될 날이 분명 오리라 믿습니다. 그때 가서는 그에게 문학은 유미적이고 자유로움으로 새롭게 다가올 것입니다.  3. 나가기     위 세 작가의 글이 필자의 눈길을 끈 이유는 글쓰기의 진지한 자세와 어려움이 깃들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 분 다 여류들로서 수필쓰기의 고뇌와 자세를 쓴 글들이어서 꼼꼼히 몇 번씩 읽어보았습니다. 글의 미학적 구조나 내용과 문장에 앞서 견고한 글을 쓰기 위한 세 작가들의 내적 고뇌와 그 문학이 작가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지대하다는 것을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박영덕의 ‘절반은 구속 절반은 구원’, 김상희의 ‘파도의 언어’, 이정숙의 ‘내가 하고 싶은 것’ 세 편은 글쓰기가 자유롭고 유쾌한 삶의 구속이 되기도 하고 구원이 되기도 하지만 치열한 글쓰기를 통해 수필을 생의 도반으로 여기며 평생의 반려로 삼겠다는 다부진 작가 정신을 공통적으로 담고 있습니다. 이들의 말처럼 수필은 작가에게 구속과 구원도 되고, 절제의 미덕을 가르치는 도구도 되며, 생의 도반으로 동반자가 되기도 합니다. 어찌 이들뿐이겠습니까. 많은 수필가들이 밥이 되지도 못하는 수필쓰기에 날밤을 바치는 것도 바로 이점 때문이 아니겠는지요. 수필가들의 폭발적 증가로 내 멋과 맛에 쓴 글을 수필이라는 이름으로 내보내 그야말로 문학작품인 수필은 쓰러지고 허명뿐인 수필가란 이름만 남기는 사람들이 많은 이 때, 이러한 견고한 문학정신은 귀하디귀한 문학적 자세들임에 분명합니다. 이 점에서 세 분 여류의 짱짱하고 단단한 문학적 삶과 문학에의 치열한 정신은 독자들에게 수필의 격을 높여줄 것이며 이들이 써 낸 글들은 분명 수필의 문학성을 충분히 갖추리라 믿습니다. 세 분 여류의 문학적 정신과 자세에 경의를 표하며 앞날의 문운이 창대하기를 바라며 다음 글을 기대해 봅니다. 수필이란 무엇인가? 수필이 무엇인가에 대해 한마디로 정의하기란 매우 어렵다. 수필문학은 항간에 그것쯤은 아무나 쓸 수 있는 글이란 그릇된 이해와 인식을 가져 왔다. 그것은 수필을 사전적 의미에만 국한하여 ‘붓 가는 대로’의 정도로만 이해하여 왔거나 또는 ‘어떤 주의가 없이 생각나는 대로 쓴 글’ 이라든지 ‘그때그때 본대로 들은 대로 붓 가는 대로 적어낸 글’이라고 하는 사전적 의미에 매달려 왔던 것이 사실이다. 수필 어원의 역사를 고찰해 보면 최초 문헌으로 중국 남송 때의 홍매에 의해 정의된 용재수필이라고 할 것이다. 그는 이 용재수필에서 ‘나는 게으른 버릇으로 책을 많이 읽지 못하였으나, 그때그때 혹은 뜻한 바 있으면 곧 기록하였다. 앞뒤의 차례를 가려 갖추지도 않고 그때그때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수필이라고 하였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서양에서 에세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자기 작품에 붙인 이는 프랑스의 몽테뉴다.(Les Essais : 수상록 1580) 그 후 2년 뒤 영국의 베이컨에 의해 에세이가 탄생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수필의 개념을 사전적 의미에서만 국한하여 해석해야만 할 것인가에 대한 회의를 갖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김광섭은 그의 ‘수필문학 소고’에서 ‘수필이란 글자 그대로 붓 가는 대로 써지는 글일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문학보다 더 개성적이며 심경적이며 경험적이다. 우리는 오늘까지의 위대한 수필문학이 그 어느 것이 비록 객관적 사실을 취급한 것이라 하더라도 심경에 부닥치지 않은 것을 보지 못했다. 강렬히 짜아 내는 심경적이 아니요 자연히 유로되는 심경적인 점에 그 특징이 있다. 이 점에서 수필은 시에 가깝다. 그러나 시 그것은 아니다.’ 라고 수필을 정의 내린 바 있다. 바로 이러한 김광섭의 정의에서 일부 사람들이 자구 해석에 급급하여 수필 문학의 성격을 호도하는 빌미를 제공한 것 또한 사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백철의 말(문학개론 p353) 대로 ‘수필은 산문으로 씌어진 문학이며 그것이 아무리 무형식이고 개인적이라 하지만 기본적으로 대우성(對偶性)의 문학’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필문학이 수의수제(隨意隨題), 또는 자조(自照)의 문학이니 하는 바와 같이 자유로운 산책이거나 그때그때 뜻한바 있으면 앞뒤의 차례를 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바로 메모하여 놓은 것 정도로 정의 할 수 있을 것인가는 다시 한번 음미해 봐야 할 문제가 아닌가 생각한다. 한상렬은 (수필 창작과 읽기)이러한 수필의 개념상 해석의 호도됨을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수필이 문학임에 틀림이 없다면 그것이 어찌 붓 가는대로 씌어질수 있을 것인가? 또 실제로 붓 가는 대로 씌어진 글을 문학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인가? 아무리 천래의 영감을 지닌 작가라 할지라도 그저 붓 가는 대로 쓴 것이 한편의 완벽한 문학적 가치를 지닌 작품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이는 어불성설이다. 김광섭교수나 김진섭교수 그리고 피천득의 수필에 대한 정의를 수필문학이 여타의 장르와 달리 자연스러움과 진실성을 요구한다는 말이지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닥치는 대로 형식적 제약을 무시한 글이라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견해가 수필문학의 정의인 듯 오해를 불러온 것은 진정한 수필의 개념 파악도 없이 표피적 해석에 그쳤던 논자들이나 작가들의 잘못된 인식의 탓이었다고 할 수 있다. (중략) 결국 수필문학은 평범 속에서 비범함, 그리고 평이함 속에 어려움, 자연스러운 가운데 세련됨, 거침없는 듯 하면서도 완벽함을 추구하는 문학이라 할 것이다. 필자도 이 말에 공감을 표시하면서 향금 횡행하고 있는 신변잡기식의 글이나 아무렇게나 무질서하게 난무하고 있는 작금의 수필문단의 공해성에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음을 밝히는 바이다. 따라서 수필을 쓰고자 하는 작가는 우선 이러한 신변잡기식의 공해에서 탈피하여 근원적으로 인간 존재에 대한 원형을 탐색하고 천착해야만 할 것이며 보다 진솔한 자기성찰과 고뇌에 찬 직관과 깊은 관조가 있어야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독자에게 감동으로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은 손가락 끝에서 부려지는 기교가 아니라 마음으로부터 쓰는 글이어야 할 것이며 어느 누가 읽어도 은은한 감동으로 여울져 오는 글이어야 함은 재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한 편의 수필은 그 속에 작가 자신의 인생관이 담긴 비평정신이 깃들어야 할 것이며 작가자신 해박한 지식과 넉넉한 정서와 문학적 감성, 그리고 사상이 깃들어야 할 것이다. 흔히들 범람하고 있는 자신의 신변 잡기성 자랑거리의 나열과 넋두리의 나열, 입심 좋은 사람들의 푸닥거리의 장이 되어서는 더욱이 안 될 것이며 음담패설이나 상대방의 약점이나 잘못됨을 물고 늘어지는 독설과 아집의 사설장이 되어서도 아니 될 것이다. 오늘날 많은 수필들이 독자들에게 감동을 주지 못하고 신변잡기적이라고 비하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이러한 문제가 아닌가 생각해 볼 일이다. 독자는 한편의 수필이 작가 자신의 현실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한 사상의 의미화 과정과 내적 승화를 통해 완성된 작품을 읽음으로써 작가 자신의 주장과 공명할 수 있을 것이며 따라서 감동을 받을 수 있을 것임을 알아야 한다. 수필 개론 (隨筆槪論) [1]. 수필의 본질 1. 수필의 정의 수필은 인생이나 자연에 대하여 느낀 바를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부담 없이 산문으로 쓰는 글이다. 2. 수필의 어원 (1) 중국에서의 어원 : 남송시대의 홍 매(洪邁; 1123∼1202년)가 '수필(隨筆)'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썼다고 한다. 그의 저술'용재수필(容齋隨筆)'의 서문에서, 저술 제목에 '수필'이란 말은 붙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는 습성이 게을러서 책을 많이 읽지는 못하였으나, 뜻하는 바를 따라 앞뒤를 가리지 않고 썼기 때문에 수필이 라고 한다." (2) 서양에서의 어원 ①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수필이라는 용어는 영어 '에세이(essay)'를 번역해서 쓴 말이라고 할 수 있다. 'essay'는 'assay'에서 비롯된 말인데, 'assay'는 '시금(試金)하다', '시험하다'등의 뜻을 가진 말이다. 또 이 'assay'는 프랑스 어'essai'에서 왔으며, 'essai'는 '계량하다','음미하다'의 뜻을 가진 라틴어 'exigere'에 서 그 어원을 찾을 수 있다. ② 이러한 뜻의 '에세이'라는 용어를 실제 작품에 처음 쓴 사람은 몽테뉴다. 몽테뉴는 1580년 'Les Essais(수상록)'라는 수필집을 출판하였다. 현재 사용하는 에세이라는 용어는 몽테뉴로부터 비롯된다. 3. 수필의 역사 (1) 서구 ① 근대 이전 : 고대에는 플라톤의 '대화',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명상록'등에서 수필 형식을 찾을 수 있으며, 본격적인 수필은 16세기에 들어와 몽테뉴의 '수상록(隨想錄 Les Essais)'에서 시작되어서 베이컨으로 이어진다. ② 근대 : 18세기에 영국의 수필가 차알스 램의 '엘리아 수필'과 해즐리트의 '탁상담화(卓上談話 : Tavle Talk)'등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2) 우리 나라 ① 고려 시대 : 이제현(李霽賢;1287∼1367)의'역옹패설(轢翁稗設)',이규보(李奎報;1168∼1241)의 '백운소설(白雲小說)' 중의 일부에서 수필 형식의 글을 찾을 수 있다. ② 조선 시대 : 조선 시대에는 수필 형식의 글이 문집속에 잡설(雜說), 만필(漫筆)등의 용어로 많이 쓰여졌는데, 문헌상 '수필'이란 용어가 보이는 것은 박지원(朴趾源;1737∼1805)의 속에 '일신수필(일신수필)'이란 말이 들어 있는 것이 최초이다. 4. 수필의 특성 (1) 자유로운 형식 : 형식이 다양하다는 뜻이며, 아무렇게나 써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수필은 무형식의 자유로운 산문이다. 이것은 수필의 특성을 말할 때에 누구나 가장 먼저 말하는 것으로, 수필은 구성상의 제약이 없이 자유롭게 쓰여지는 산문임을 뜻한다. 수필은 일기체, 서간체나 담화체로도 쓰이며, 그 밖에 갖가지 산문으로 쓰여진다. 내용면에서도 인간이나 자연에 관한 어느 것 한 가지만을 다루는 수도 있고, 여러가지를 생각나는 대로 토막토막 다루는 수도 있다. 수필 작품에 '단상(斷想)','편편상(片片想)','수상(隨想)'이란 이름을 붙이기도 하는 것은 수필 문학의 이런 특성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2) 다양한 소재 : 인생이나 자연 등 소재를 어디에서나 구할 수 있다. 수필 문학은 그 소재가 대단히 광범위하다. 수필은 그 작자가 인생이나 사회, 역사, 자연 등 이 세계의 모든 것에 대해 느낀 것, 생각한 것을 무엇이나 다 그때 그때 부분적으로든 전체적으로든 자유자재로 서술하는 것이므로, 그 소재는 대단히 다양하다. (3) 개성적 고백적인 글 : 글쓴이의 개성과 적나라한 심성이 생생하게 드러나는 문학이다. 수필의 내용은 다분히 주관적, 주정적이고, 독백에 가까운 것이 많다. 수필의 대부분은 작자 자신의 생활이나 체험, 생각한 것이나 느낀 것을 붓 가는 대로 솔직하게 서술한 글이다. 따라서,주관적, 주정적이고 독백에 가까운 것이 많으며, 이로 인해서 수필 작품에는 작자 자신의 인생관이라든가 사상이나 감정이 잘 드러나 있다. 수필을 가리켜 '개성의 문학'이라고도 말하는 것은, 이러한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또 수필은 이러한 특성 때문에, 아무리 그 길이가 짧더라도 내용에 있어서는 매우 심오한 것, 광범위한 것이 많다. (4) 심미적 철학적인 글 : 흔히 글쓴이의 심미적 안목과 철학적 사색의 깊이가 드러나는 글이다. 현대에 와서는 어떤 문학 양식이든지, 그 제재에 구속을 받는 일이란 거의 없다. 삼라 만상이 다 문학의 제재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러한 제재가 다른 문학 양식에서는 기법과 융합되어 함축적어어야 하지만, 수필의 제재는 생생하고 단편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더욱 광범위하다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수필이라는 이름 아래 과학론, 철학론, 종교론 등을 피력할 수도 있고,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소한 일을 고백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므로 수필의 제재는 무한하고 다양하다. 그러나, 한 가지 주의할 점은, 모든 제재가 그 자체로 수필이 될 수는 없고, 거기에는 지은이의 투철한 통찰력, 달관에 의한 독특한 기법 그리고 문장이 뒤따라야 한다는 점이다. (5) 유우머 위트 비판 의식이 요구되는 글 : 때론 글쓴이의 유우머와 위트와 비판 의식이 나타난다. 유우머, 위트, 비판 정신, 이런 것들은 다른 문학 양식에서도 나타나지만, 어떤 사건의 구성이 없는 수필에서는 특히 중요한 요소가 된다. 유우머나 위트는 수필의 평면성, 건조성을 구제해 주는 요소이며, 비평 정신은 수필의 아름다운 정서에 지적 작용을 더해 주는 요소이다. (6) 간결한 산문의 문학 : 수필은 간결한 것이 특색이며 산문으로 씌어진다. 수필은 비교적 길이가 짧은 산문이다. 근래 신문이나 잡지에서 흔히 볼 수 있듯이, 수필 작품의 길이는 2백 자 원고지로 5매 정도에서 10여매 정도인 것이 많다. 산문 문학의 다른 쟝르에 속하는 작품들, 예컨데 소설 작품이 2백 자 원고지로 짧게는 몇십 매에서 길게는 몇천 매에 이르는 것을 보면, 수필은 대단히 짧게 씌여지는 것임을 알 수 있다. (7) 비전문성의 문학 : 생활인이면 누구나 쓸 수 있다. 그러나, 사물에 대한 깊은 통찰력과 개성이 드러나야 한다. 오늘날 문학의 여러 쟝르 가운데서 수필 문학은 가장 대중적이다. 근래 신문이나 잡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수필 자굼의 예를 다시 들어 보면, 전문적인 문학인의 것보다 비전문적인 필자들의 것이 훨씬 더 많으며, 독자들 또한 어떤 특수한 분야나 계층의 사람들이 아닌 대중이다. '수필'하면 대개는 누구나 쓸 수 있고, 누구나 읽을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5.수필의 요건 (1) 수필은 자연 발생적이고 지속적인 관찰력을 필요로 한다. (2) 사색과 명상의 깊이가 있어야 한다. 사색의 체계이다. (3) 가치 감각과 느낌, 공감력을 가져야 한다. (4) 개성의 발로이되, 겸허하고 품위 있는 개성의 반영이다. (5) 수필은 문학성을 지녀야 한다. [2] 수필의 내용 1. 수필의 내용 (1) 일상 생활, 자연 및 사회 현상에 관한 관찰과 생각, 느낌 등. (2) 독자는 위의 것들에 관한 정보(지식)와 교훈, 정서를 얻는다. (3) 수필의 내용에는 감동과 해학이 따른다. 2. 수필의 소재 (1)체험(體驗) : 생활해 가면서 특별히 겪은 일. 예) 여행, 사랑, 직업, 학업 등. (2)관찰(觀察) : 무엇에 대하여 유심히 살핀 일이나 대상. 예)사회, 자연, 환경 등. (3)독서(讀書) : 책을 읽고 느낀 내용이나 방법. 예) 독서론, 독후감(독서 감상문) 등. (4)사고(思考) : 인생이나 가치관에 대하여 생각해 낸 일. 예)죽음, 인생, 종교 등. [3] 수필의 갈래 1. 수필 문학의 분류 한 마디로 수필 문학이라고는 해도, 관점에 따라 여러가지로 세분해서 말하게 된다. 중국이나 우리 나라의 옛 한문 수필 작품에 있어 기(記), 록(錄),문(聞), 화(話)등, 앞서 말한 여러 가지 의 말이 쓰인 것도, 이를테면 수필 작품을 세분하는 하나의 방법이었을 것이다. 서구에서는 흔히 경수필(輕隨筆:informal essay 또는 miscellany)과 중수필(重隨筆:formal essay)로 구분하였다. 2. 수필의 종류 (1) 태도상의 종류 ① 경수필 인포멀 에세이(informal essay),미셀러니(miscellany). 감성적, 주관적 성격을 지니되, 일정한'주제보다 사색이 주가 되 는 서정적 수필이다. 비정격 또는 비격식 수필이라고도 한다. 예) 정비석의 '들국화' 등. ② 중수필 포멀 에세이, 에세이, 지성적, 객관적성격을 지니되, 직감적, 통찰력이 주가 되는 비평적인 글로서, 논리적, 지적인 문장이다. 정격 또는 격식수필이라고도 한다. 예) 조연현의 '천재와 건강' 등. (2) 내용상의 종류 ① 사색적 수필(思索的隨筆) : 인생의 철학적 문제를 다룬 글이나 감상문 따위. ② 비평적 수필(批評的隨筆) : 작가에 관한 글이나, 문학 음악 미술 등 예술작품에 대한 글쓴이의 소감을 밝힌 글. ③ 기술적 수필(記述的隨筆) : 주관을 배제하고 실제의 사실만을 기록한 글. ④ 담화 수필(譚話隨筆) : 시정(市井)의 잡다한 이야기나 글쓴이의 관념 따위를 다룬 글. ⑤ 개인적 수필(個人的隨筆) : 글쓴이 자신의 성격이나 개성, 신변 잡기 등을 다룬 글. ⑥ 연단적 수필(演壇的隨筆) : 실제의 연설 초고는 아니나, 연설적, 웅변적인 글. ⑦ 성격 소묘 수필(性格素描隨筆) : 주로 성격의 분석 묘사에 역점을 둔 글. ⑧ 사설 수필(社說隨筆) : 개인의 주관이나 의견이긴 하지만, 사회의 여론을 유도하는 내용의 글. [4] 수필의 구성 1. 수필의 구성 (1) 3단 구성 : 서두(도입, 起)+본문(전개,敍)+결말(結)[중수필의 경우] (2) 4단 구성 : 기(起)+승(承)+전(轉)+결(結)[중수필의 경우] (3) 자유구성 : 자유로운 구성[경수필의 경우] 2 수필의 짜임 (1) 직렬적(直列的)인 짜임 'A→B→C →주제'와 같이 수필의 각 부분인 A,B,C 등이 인과(因果)나 시간적 순서, 공간적 순서 등의 유기적인 관계에 놓이는 짜임이다. 이 짜임의 전형은 '서두 본문 결말'로 짜이는 3단 구성인데, 가운데 부분인 '본문'은 또 몇 부분으로 분화되기도 한다. (2) 병렬적(竝列的)인 짜임 'A+B+C →주제'와 같이 수필의 각 부분인 A,B,C 등이 서로 유기적 관계가 없이 독자적으로 존재하면서 주제에 봉사하는 짜임이다. 이 짜임은 연시조의 짜임과 같은 것으로, 경우에 따라서는 그 자리를 바꾸어 놓아도 주제에 봉사하는 기능은 마찬가지가 된다. (3) 혼합적(混合的)인 짜임 'A→B+C→D →주제'나 'A→B+C→D→E + F→G 주제'와 같이 직렬적인 짜임과 병렬적인 짜임이 한 편의 수필에 섞여 있는 짜임이다. 이 짜임은 전체적으로는 직렬 구성이나 일부는 병렬 구성으로 된 경우와 전체적으로는 병렬 구성이면서 그 부분 하나하나는 직렬 구성으로 된 경우 등이 있다. [5] 수필의 진술 방식 진술 방식의 면에서 보면, 수필은 다음과 같이 네 가지로 구분된다. 즉, 교훈적(敎訓的) 수필, 희곡적(戱曲的) 수필, 서정적(抒情的) 수필, 서사적(敍事的) 수필로 나눌 수 있다. 1. 진술 방식에 의한 수필의 종류 (1) 교훈적 수필 필자의 오랜 체험이나 깊은 사색을 바탕으로 하는 교훈적인 내용을 담은 수필. 수필로서는 그 내용이라든가 문체가 다 같이 중후하며, 필자 자신의 인생관이라고 할 수 있는 신념과 삶의 태도 등이 강하게 드러나 있다. 수필 문학에 있어서의 교훈적인 경향은 이른바 교훈주의를 생각하게 한다. 즉, 문학 예술은 독자에게 쾌락보다는 교훈을 주려는 의도로 창작된다고 보는 일종의 공리설(功利設)이 그것이다. 그러므로, 시나 소설에서처럼 수필에 있어서도 이런 교훈적인 경향에 있어서는 자칫 예술성을 소홀히 하게 되는 예가 많다. 소(牛)의 덕성을 찬양하면서, 그것을 우리 인간들이 본받을 것을 권장한 이 광수의 '우덕송(牛德頌)'. 일제 치하라는 30년대의 암담한 시점에서 우리 나라 젊은이들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일깨우고 있는 심 훈(沈熏)의 '대한의 영웅' 나무의 덕성을 찬양하면서 인간이 그것을 배울 것을 강조한 이 양하(李敭河)의 '나무' 혼란한 사회에서 우리가 바르게 살아가는 태도를 제시한 이 희승(李熙昇)의 '지조(志操)' 등. (2) 희곡적 수필 필자 자신이나 다른 사람이 체험한 어떤 사건을 생각나는 대로 서술하되, 그 사건의 내용 자체에 극적인 요소들이 있어서, 대화나 작품의 내용 전개가 다분히 희곡적으로 이루어지는 수필. 사건의 전개가 소설에서처럼 유기적, 통일적인 진행을 이룬다. 그리고, 극적인 효과를 위해서 문장에 있어 극적 현제의 시제가 흔히 쓰인다. 즉, 현제 시제를 사용한다. 필자가 어떤 곤란을 겪게 될 때나 슬픈 일을 겪게 될 때, 어떻게 대처했는가를 보여 주는 점에서 각별한 흥미를 끈다. 자신의 구두 발자국 소리가 기이했던 탓으로, 어떤 낯 모르는 여인에게 자칫 불량배로 오해받을 뻔한 수모를 당한 체험담을 쓴 계 용묵(桂鎔默)의 '구두'. 낯선 산에서 길을 잃고 죽을 뻔한 조난의 체험을 쓴 이 숭녕(李崇寧)의 오봉산 등산기 '너절하게 죽는구나'. 김 소운의 '가난한 날의 행복' 등. (3) 서정적 수필 일상 생활이나 자연에서 느끼고 있는 감상을 솔직하게 주정적, 주관적으로 표현하는 수필. 문장은 흔히 서정문이라고 불리는 것으로, 서정의 내용은 정서, 즉 희(喜) 노(怒) 애(哀) 낙(樂) 애(愛) 오(惡) 욕(欲) 이라고도 설명된다. 교훈적 수필에 공리성이 강하다면, 서정적 수필에는 예술성이 강하다. 그것은 작자의 의도가 자기의 정서적 경험을 독자에게 전달해서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데 있으므로 표현에서 주로 기교에 유의하는 것과도 관련된다. 이 효석의 '청포도(靑葡萄)의 사상(思想)', '화초(花草)', 이 양하의 '신록 예찬(新綠禮讚)', 김 진섭의 '백설부(白雪賦)', 이병기의 '백련(白蓮), '난초(蘭草)' 등. (4) 서사적 수필 인간 세계나 자연계의 어떤 사실에 대하여 대체로 필자의 주관을 개입시키지 않고, 객관적으로 서술하는 수필. 그 내용이 얼마나 사실 또는 현실에 가까운 것인가, 서술이 얼마나 정확한가 하는 문제가 따르게 된다. 이런 작품을 쓰려면 평소의 날카로운 관찰, 세심한 조사, 올바른 지식이 필요하다. 유명한 작품으로 최 남선의 '백두산 근참기(白頭山覲參記)' '심춘순례(尋春巡禮)' 이 광수의 '금강산 유기(金剛山遊記)', 이 병기의 '낙화암을 찾는 길에'. 김 동인의 '대동강', 노 천명의 '묘향산 기행기' 등이 있다. 이 밖에 필자 자신의 학문에 대해 다양하게 술회하고 있는 양 주동의 '연북록(硏北錄)', 옛날의 선비들에 대해서 뛰어나게 묘사한 이 희승의 '딸깍발이'등이 서사적 수필로 분류된다. [참고] 김광섭(金珖燮) - 「수필 문학 소고(小考)」 수필이란 글자 그대로 붓 가는 대로 쓴 글이다. 그러므로 다른 문학보다 더 개성적이고,심경적이며, 경험적이다. 우리는 위대한 수필 문학이, 그 어느 것이나 비록 객관적 사실을 다룬 것이라 하더라도, 심경에 부딪치지 않은 것을 보지 못했다. 강렬하게 짜내는 것이라기보다,자연히 유로되는 심경적인 점에 그 특징이 있다. 이 점에서 수필은 시에 가깝다.. 그러나 시 그것은 아니다. 시나 소설이나 희곡은 동일한 작자에 의해 씌어졌다 하더라도, 그 태도가 각각 서로 다르다. 시는 심령이나 감각의 전율된 상태에서 비롯되며, 소설과 희곡은 재료의 정돈과 구성에 있어서, 과학에 가까우리만큼 엄밀한 준비로 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수필은 달관과 통찰과 깊은 이해가 인격화된 평정한 심경을 바탕으로 한다. 무심히 생활 주위의 대상에, 혹은 회고와 추억에 부딪쳐 스스로 붓을 잡을 때, 수필은 제작되는 것이다. 제작이라고 하나, 의식적 동기에서가 아니요, 결과적 현상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수필은 논리적 의도에서 제작된 일은 없다. 수필은 써 보려는 데서 시작되어 자연스럽게 씌어진 글이다. 시나, 소설이나, 희곡은 글을 써 보고자 하는 한가로운 마음으로 씌어지는 것이 아니라, 작가에 의해 의식적으로 제작되는 것이다. 그러나 수필은 한가로운 심경에서의 시필(試筆)쯤에 그치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수필은 수필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시가 운율적, 정서적이요, 희곡이 조직적, 활동적이라면, 수필은 진실한 태도에서 인생을 관조하는 격이라고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문학의 형식에서 보면, 수필에는 시나 소설이나 희곡에서 보는 바와 같은 어떤 완성된 형식이 없다. 단편 소설을 제작하려면 우리는 적어도 에드거 앨런 포나 안톤 체흡이나 혹은 모파상에게 잠시라도 사숙하여야 하겠고, 시나 희곡을 지으려면 괴테나 셰익스피어나 혹은 입센등을 통해 그 완성된 형식을 한번 살펴볼 아량쯤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수필에 있어서 그 형식을 구하거나 참고하려고 찰스 램이나 해즐리트를 찾을 필요성까지는 없을 것같다. 가장 아름다운 수필을 찾아 우리의 문학적 욕구를 만족시키고자 하는 점은 찬(讚)하여 마지아니할 바이나, 그 형식의 섭취에 구속될 바는 없는 것이다. 아무것에도 사로잡히지 않는 평정한 마음으로 마치 먼 곳의 그리운 동무에게 심정을 말하듯이 붓을 잡아야 한다. 한가로운 기분을 지니면서도 진실된 마음으로 한 편의 문장을 쓸 때,그것은 곧 수필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수필은 무형식이 그 형식적 특징이다. 이것은 수필의 운명이요, 또한 성격이다. 한 시대나 한 세기의 시, 소설, 희곡은 내용이나 형식으로 보아, 개괄적으로 몇 가지의 주류로 나누어 논할 수 있다. 그것은 이들 문학 형태가 모두 시대 사조나 사회 의식에 연결되어 발전, 쇠퇴하는 특징을 가진 까닭이다. 하지만 수필은 생활 단면에 부딪쳐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그렇게 커다란 조류를 따르지 않는다. 가을 밤 무심히 잡은 펜으로 가지가지의 아름다운 서정을 느끼는 대로 쓸 수도 있을 것이다. 사소하나마 매력 있는 제목을 붙잡고 시종이 없을 드한 기분으로 표현, 향락할 수도 있겠고, 야시의 풍경에서도 흥미진진한 글 한 구절은 쓸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수필은 참고서를 구하거나 지식의 정돈을 요할 바는 아니지만, 어딘가 탁마된 세련과 각고의 노력이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런데 수필은 잡다한 모든 것이 그냥 그대로 내용이 될 수 있다다러하도, 단순한 기록에 그쳐서는 우리의 흥미를 긴장시키지 못할 것이다. 거기에는 유머가 있어야 하겠고, 위트가 있어야 한다. 전자는 무의식적 소성에서 피는 꽃 같은 미소요, 후자는 지혜와 총명의 샘과 같다. 이천성스런 유머와 보석 같은 위트는 수필의 본성과도 같은 것이다. 만일 이러한 속성을 갖추지 못한다면, 수필은 그저 무미 건조한 생활적, 심경적 기록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유머와 위트가 수필의 속성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소설이나 희곡에서도 솜씨 좋게 짜여서 섬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위대한 문학으로서의 수필에는 유머와 위트가 수필의 속성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소설이나 희곡에서도 솜씨 좋게 짜여서 섬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위대한 문학으로서의 수필에는 유머와 위트가 혼연히 숨어 있어서, 더욱 우리를 매혹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모든 문학과 예술은 결국 사람에게서 생겨서 사람에게로 돌아간다. 소설이나 희곡이라는 이름에 사로잡혀서, 그것이 수필보다 우월하며 향상성이 많다거나, 혹은 수필이라는 산만하여 보이는 어의에서 오는 선입견때문에, 그것이 발전성이 적다고 하는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어떤 사회이건 그것이 인간의 사회요 인간으로 구성되는 이상, 수필은 전인격적 표현의 문학으로 어느 사회에나 존재할 것이다. 수필은 개성적 심경과 기분에 싸여서, 어떠한 대상이나 또는 문제를 간단하게 단편적으로 그리면서도, 진지하게 붓 가는 대로 쓰는 글이다. 그 내용이 정치 경제로 향하든지 사회 문제나 생활 개선으로 향하든지, 그것은 평론의 논리성에 미치지 못하지만, 그러면서도 평론이 가질 수 없는 깊은 영역을 포괄한다. 그리고 수필은 내용과 형식에 있어서 완성을 기다리지 않으면서도, 저절로 그 자체로서의 완결된 형태를 지닐 수 있다는 점에 특징이 있다. 모든 문학의 출발점이 인간에 있다면, 자연스럽게 인간성을 드러낼 수 있는 문학 형식은 수필을 두고 달리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수필의 맛은, 어떠한 시간에 어떠한 문제나 어떠한 대상에 작자의 기분이 부딪쳐서 표현되는 인간미에 있다. 인간의 생활이란, 요컨대 수필의 심경에서 성숙된다. 다시 말하면, 생활은 시와 산문의 조화를 통해 더욱 풍요로워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문학으로 볼 때 곧 수필이 된다. 그러므로 수필의 성격은 인간의 성격이라 하면 가장 타당할 것이다. 바로 잡아야 할 수필의 개념 (鄭木日) 수필의 개념과 성격에 대한 정의(定義)로 고정 관념화 돼온 것들이 있다. '여기(餘技)의 문학', '붓가는 대로 쓰는 글', '산만과 무질서, 무형식의 글', '40대의 문학'등이다. 그러나, 현대에도 수필에 대한 이같은 개념들이 타당성을 갖고 있는가, 재점검해 보아야 한다. 앞서 언급한 수필의 개념들은 30년대에 정립된 것으로, 시인, 소설가, 평론가들이 여기(餘技) 삼아 수필을 써 왔던 때에 이뤄졌다. 당시엔 본격적 문학의 대상이 아니라, 여유가 있으면 쓰는 '붓가는 대로 써지는 글' 쯤으로 가볍게 인식하였던 게 사실이다. 문학평론가 조연현(趙演鉉)씨가 수필은 '비전문 문학'이다 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우리 문단에 수필가를 배출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다. 신춘문예, 종합 문예지들이 문단 데뷔 종목에 '수필'을 포함시켜 전문 수필시대를 열게 되었다. 이 시점(時點)은 우리 수필문학사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종전까지 '주변문학', '아웃사이드 문학' '비전문 문학' '여기의 문학'으로 수필을 경시해 오던 문단의 인식변화를 보여준 것으로 대등한 문학 장르로서 공인하는 의식을 보여준 것이다. 현대의 다양한 삶의 양식, 고학력화 속에서 생산자인 작가와 소비자인 독자로 나눠졌던 엄격한 구별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전문 직업인들과 독자들도 자신의 삶을 기록하거나 작품화하여 작가와 독자의 경계가 애매해지면서 생활 속의 문학이 확산되기에 이르렀다. 이런 추세 속에서 픽션보다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인생의 발견과 의미를 담는 논픽션인 「수필」이 대중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서게 되었다. 수필이 대중적인 문학, 삶의 문학으로 자리잡게 된 것은 현대인들의 자의식이 높아진 점, 시와 소설의 중간 위치에서 양 장르의 장점을 취하면서 대중들의 구미를 맞추었기 때문이다. 시의 압축, 비유, 절제, 리듬을 살리면서 소설의 사실, 설명, 묘사, 구성법을 활용하고 시의 난해성과 의사 전달력의 취약성, 소설의 읽기의 시간 부족에서 벗어나 적당한 독서물로써 '수필'이 대중 속에 각광을 받기에 이르렀다. 이제 수필문학은 「여기(餘技)의 문학」 「주변문학」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삶과 직결된 문학 장르로서 자리 매김과 함께 미래문학의 중심에 서 있다. 그러나, 수필의 양적 팽창에 비해, 질적 향상이 따르지 못한 점, 수필문학을 본격적 문학으로 보지 않는 문단의 사시적 시각을 바로 잡지 못한 데 대해서는 수필문단은 진지한 성찰과 각성이 필요하다. 수필문학의 발전을 위해서 무엇보다 투철한 작가 정신, 치열한 창작열, 전문성 등과 함께, 고정 관념화 돼 온 수필의 개념 및 정의에 대해 과감한 수정과 재검토가 이뤄져야 한다. 첫째, 수필은 「여기의 문학」이 아니다. 수필은 '여기의 문학'이라 했던 것은 농경시대의 사고(思考)이며, 당시 시, 소설, 평론을 썼던 문인들이 본업 외 시간이 날 때, 여기로 수필을 써 왔기에 어느새 '수필=여기의 문학'으로 굳어진 것이다. 1970년대부터 본격적인 수필가가 배출되기 시작했고 오늘의 수필가들은 '여기'로 수필을 쓰고 있지 않다. 시와 소설이 치열한 삶과 다양하고 복잡다난한 시대상, 사회상을 수용하는데 비해, 수필이 다소 느긋하게 한 걸음 물러서 인생을 바라보는 면도 없지 않으나 종전처럼 '여기의 문학'으로 인식하고 있지 않다. 수필도 시와 소설처럼 치열성, 실험성, 본격성, 전문성, 개성, 참신성을 추구해 나가고 있으며. 오늘날에도 '여기(餘技)의 문학'으로 안주한다면 생존이 불가능해진다. 무한경쟁과 무한 변화 속의 삶을 영위할 수밖에 없는 현대에서 「여기」로 멈춰 있는 것은 생존 이유를 상실하는 것과 다름없다. 시대상과 삶의 변화를 수용하기 위해서 수필은 더욱 치열성, 전문성, 본격성, 개성을 추구하지 않을 수 없다. 둘째, 수필은 '붓가는 대로 쓰는 글'(김광섭 「수필문학 소고」) 이라는 개념은 수정돼야 한다. 이와 같은 개념은 '隨筆'이란 어원의 해석에서 나온 말이 굳어진 것이다. 수필을 '여기의 문학'으로 알던 농경시대에나 적용될 수 있는 개념이다. 물론 수필의 형식상 자유스러움을 말하는 부분이 있지만, '마음대로 쓴 글' '아무렇지 않게 쓴 글' 로 인식되어 수필을 폄훼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게 사실이다. '붓가는 대로 쓰는 글'이란 오랜 인생수련과 습작을 통해 고도의 구성과 표현 기법과 질서를 획득하여 물 흐르듯 막힘 없이 써 내려가는 경지의 글을 말한다. 그럼에도 누구나 쉽게 마음 내키는 대로 쓰면 수필이 될 수 있음을 말하는 것처럼 인식하여, 수필을 경시하는 풍조를 불러왔다. 수필은 소설, 희곡에 비해 비교적 짧은 글이다. 붓가는 대로 쓰는 글은 산만, 중복, 과장이 있기 쉽다. 수필은 짧은 글이기 때문에 보다 치밀, 함축, 사색을 요하는 글이 아닐 수 없다. 셋째, 수필은 '산만과 무질서, 무형식의 글'(김진섭「수필의 문학적 영역」)이 아니다. 시와 소설은 허구(픽션)의 세계지만, 수필은 작가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사실(논픽션)의 세계이다. 진실을 생명으로 삼는다. 작가가 겪은 체험을 바탕으로 쓰기 때문에, 상상력과 허구를 통해 진실에 접근하려는 시, 소설에 비해. 더욱 적나라하고 진솔하게 자신을 드러낸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명쾌하고 절서 정연하기는 쉬워도 '산만하고 무질서하다'는 말에는 설득력이 없다. 본격 수필 시대에 '산만과 무질서'를 수용할 수필가가 있을지 의문이며, 이는 농경시대 '여기(餘技)의 문학'이라고 인식할 때의 개념인 것이다. '무형식의 글'이라는 개념도 수필을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시, 소설, 희곡에 비해 엄격한 형식에 구애됨이 없이 자유스런 표현 형식을 갖는다는 것이지, '무형식'은 아닌 것이다. 수상, 일기문, 서간문, 기행문, 칼럼 등 수필의 범주에 넣을 수 있는 글들이 많아서, 일일이 형식을 정해 엄격히 적용시키기보다는 작가에게 창의성과 자유성을 많이 부여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수상, 일기문, 서간문, 기행문 등이 '무형식의 글'은 아니다. 형식과 구성이 있으되, 엄격한 형식의 틀에 구애됨이 없이 자유자재로 생각이나 느낌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오히려 장점이 될 수도 있다. 넷째, 수필은 '40대의 문학이다'는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피천득씨는 「수필」이란 글에서 '수필은 서른 여섯 고개를 넘어선 중년 여인의 글'이라고 했다. 또한 수필을 가르켜 '40대의 문학'이라는 데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다. 수필이 체험을 바탕으로 인생의 발견과 의미를 형상화하는 문학임을 들어, 다양한 체험과 인생적 경지를 담기 위해선 40대가 돼야만 비로소 좋은 수필을 낳을 수 있는 연령이 된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런 해석에 수긍하면서도, 연령이나 성별에 관계 없어야 하며 '40'로 한정하여 고정관념화 해선 안될 것이다. 10대의 순수, 20대의 감수성, 30대의 정열은 수필의 소중한 소재가 아닐 수 없다. 또 수필에 대한 개념으로 '청자연적'이 있다. 피천득씨가 자신의 수필론을 전개한 '수필'에서 수필을 '청자연적'에 비유하였다. 수필을 도자기예술의 백미(白眉)로 꼽히는 '청자연적'에 비유한 것은 기능과 깨달음으로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 경지에서 피워 올린 꽃으로 생각한 까닭에서다. 수필의 참모습을 올바르게 평가한 빛나는 말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는 피천득씨의 수필관(隨筆觀)이다. 수필 '토기 항아리', '유리 그릇'일 수도 있는 것이다. '고정관념'은 다양성을 해치는 요소가 된다. '수필은 청자연적이다'라는 말은 수필의 고귀함과 높은 경지의 문학임을 일깨워 주는 말로 이해해야 한다. '청자연적'은 피천득씨의 추구 목표이자, 개성으로 보아야 한다. 수필을 쓰는 모든 사람이 '청자연적'을 수필쓰기의 목표로 삼을 필요는 없다. 자신의 체험을 통한 발견과 깨달음을 최대한의 개성과 창의성을 발휘하여 최상의 경지로 끌어올리는 작업이 수필쓰기의 방법이 돼야 한다. 수필문학의 발전을 위해서 고정관념으로 굳어진 바르지 못한 수필의 개념들을 깨트려야 한다. 낡은 틀을 벗어 던져야 새로운 세계로 나갈 수 있다. 수필사기론(隨筆四忌論)    권대근(수필학박사, 국제문화대학원대학교 교수 ) 1. 글을 쓴다는 것에 의미를 재구성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예술성이란 의미의 각색이다. 작가의 인식이 녹아 있는 메시지의 미적 조형성이 결국 본격적인 수필의 격을 결정짓는 축이다. 이것은 단순한 직관이나 관찰로는 수필이 일상성을 못 벗어난다는 의미다. 문학성은 제재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데 있어서 작가가 얼마나 개성을 참신하게 탄력적으로 발휘하는가에 달려 있다. 여기에는 작가의 지적 치열성도 요구된다. 의미를 논리적으로 정돈하고 발전시키는 데 있어서 객관적 지식이 배제된 감성이 주된 역할을 해야 마땅할 것이다. 대체적으로 보면, 좋은 수필을 쓰는 사람은 거의 계속 좋은 수필을 쓴다. 왜 그렇까. 이들은 잘 피하기 때문이다. 폭풍이 불면 고개를 숙이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는 재앙을 잘 피해 나가야 오래 살 수 있는 것이다. 본격수필 쓰기도 마찬가지라 본다. 무엇보다도 좋은 수필을 쓰기 위해서는 해야 될 일과 하지 말아야 될 일을 구분하는 기본적인 인식 활동이 수필가에게 필요하다고 하겠다. 본고는 ‘본격수필유사기本格隨筆有四忌’, 즉 본격수필은 네 가지를 기피한다는 관점에서 집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2.     백남준이 “예술은 사기詐欺다”라고 했다. 그러나 여기에서 ‘사기’란 남보다 먼저 보고, 남보다 깊이 보고, 남이 드러내지 못하는 방식으로 표현한다는 점을 드라마틱하게 묘사한 것이다. 그것은 인간과 삶, 그리고 본질에 대한 깊은 사유를 바탕으로 하여 빚어지는 ‘사기’다. 자의적인 뜻의 속임수가 아니라 예술의 창의적 속성을 강조한 말이라 하겠다. 필자는 감히 “수필도 사기四忌다”라고 말하고 싶다. 수필은 본질적 속성상 네 가지를 기피한다는 점에서 분명 사기四忌다. 그 첫째가 ‘格弱’이고, 둘째가 ‘理短’이며, 셋째가 ‘才浮’이고, 넷째가 ‘意雜’이다. 이름하여 ‘본격수필유사기本格隨筆有四忌’란 본격수필론이다.      첫 번째로 피해야 할 ‘격약格弱’이란 수필은 품위를 매우 중요시한다는 의미다. 수필에 있어서 품위는 작가의 인격에 직결되기 때문이다. 김광섭은 에서 “수필은 진실한 태도에서 인생을 관조하는 격이라고 비유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여기에서 ‘격’은 품격을 말한다. 수필은 작가의 모든 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품위를 잃으면 결정적인 타격이 된다. 따라서 수필은 필자의 자질이 중요시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시나 소설의 경우에는 생산적 상상을 통하여 허구적 언어로써 집을 짓기 때문에 작가의 인격적인 문제와 직접적인 상관성이 확연히 드러나지 않지만, 수필의 경우는 생산적 상상으로 허구적 언어의 집을 짓는 게 아니라 심적 나상, 즉 마음의 옷을 벗는 것처럼 작가 자신의 신변잡사라든지 미묘한 심리 세계까지 적나라하게 드러내기 때문에 수필의 소재나 제재 등의 취사 선택에 따라서 작자에게는 치명적인 내용이 될 수도 있다.      비구니가 사는 절에 반바지를 입고 경내를 거닐다 연세 지긋한 여승으로부터 혼이 난 적이 있다. 품위를 지키지 못한 탓이다. 그렇게 아름다운 고궁의 뜰을 거닐기 위해서는 우선 의상부터가 우아해야 하고, 걸음걸이는 덤비거나 허둥대는 법이 없이 여유 있고 맵씨있게 걸어서 품위를 잃지 않아야 함은 말할 나위가 없다.  만일 요새 젊은이들처럼 배꼽이 드러나 보이는 배꼽티를 입고 흔들거리거나 건들거리면서, 또는 껍을 씹기도 하고 뱉아 가면서, 그렇게 히히덕거리면서 고궁의 뜰을 내달리는 식으로 수필을 쓴다면, 우성 품위를 잃기 때문에 독자로부터 외면당할 뿐 아니라 그 천박스러움이 작가의 인격에 치명적인 오점을 남기게 된다. 그러므로 품위를 잃지 않기 위해서, 또 품위 있는 수필을 쓰기 위해서는 품위 있는 글을 많이 읽어서 고상하고 품위 있는 인품을 길러가면서 품위를 잃지 않는 글을 쓰고자 노력해야 할 것이다.      중국의 시법에 '격약 불로' 格弱不老란 말이 있다. 수필은 품격이 약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윤오영은 내용이 저속한 글을 속문이라 하고, 문장이 좋지 않아 표현이 졸렬한 글을 악문이라 했다. 속문과 악문이 결합된 수필을 맹수필이라 부르면 어떨까? 수필의 시대에 수필로서의 격을 갖추지 않은 맹수필류의 글이 넘치는 것은 아마도 수필에 대한 인식 부족 때문인 듯싶다. 수필이 대중화되는 추세에 따라 수필의 영역이 확장되는 것은 좋으나 격이 낮아지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 수필의 격이 낮아지는 요인은 수필가에게만 있다고 보지 않는다. 오히려 쓰는 사람보다 편집자, 독자, 비평가에게 더 책임이 크지 않을까. 특히 비평가의 책임이 막중하다 할 것이다. 수필의 격을 냉정하게 재단해서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하리라 본다.      두 번째로 피해야 할, ‘이단’理短이란 이치가 짧은 걸 수필은 기피한다는 의미다. 이는 수필가에게는 지성이 요구된다는 말과 상통하는 것이다. 프랑스의 비평가인 알베레스는 수필을 가르켜 “지성을 바탕에 깐 정서적 신비적 이미지의 문학”이라고 했다. 이 말은 백번 타당한 말이다. 짤막한 이 말에 ‘지성’과 ‘정서’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간에게는 무엇인가를 알고자 하는 지적 욕망이 있다. 수필이란 마음의 자연스러운 표현이기 때문에 내적인 지, 정, 의가 외적인 진, 미, 선 또는 의, 인이 나타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인생을 통찰하고 달관하는 경지나 여과되거나 뱔효된 정서로서 얻어지는 멋스러움이나 맛스러움이라든지, 재기 발랄한 유머와 위트, 날카롭게 찌르는 풍자 등 지성이 세련되게 번득여야 한다. 짧은 산문 속에 인생에 대한 깊은 성찰이라든지 그 무슨 느낌을 받아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흐뭇한 유머나 재치있는 위트라든지, 날카로운 지성적 통찰력과 찌르는 듯한 풍자, 또는 아이러니와 패러독스, 페이소스 등이 요구된다고 하겠다.      중국의 시법에 있는 '이단 불심'理短不深이란 이치가 짧으면, 그 뜻이 깊지 못하니, 내용이 없는 부실한 글이 됨을 이르는 말이다. 사상과 철학 즉 정신적인 요소가 결여되면 결국 잡문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수필은 신변을 수필적 소재로 하여 쓰되, 반드시 문학적 형상화를 이루어야 한다. 수필가의 개성적 시각이 없는 흔해빠진 일상사가 나열된 수필이 아직도 문학수필이란 이름으로 발표되고 있는 현실은 하루 빨리 시정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중국의 시법에 나와 있는 두 가지 항목을 기준으로 볼 때, 수필은 지식의 나열이나 사상의 조술에 진의가 있는 것도 아니요, 글로 씌어진 지식의 축적은 더더군다나 아닌 것이다. 또한 단순한 생활의 기록이거나 신변의 잡사를 보고하는 것도 아니다. 좋은 수필은 존재 의미를 발견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세 번째로 피해야 할, ‘의잡意雜’은 집필 의도가 잡스러우면 안 된다는 뜻이다. 문학 장르는 모두 정서적인 감화를 목적으로 해서 쓰여지는 글이다. 수필은 자기의 박식을 선진하는 글도 아니요, 지나치게 아는 체 하면서 자기를 선전하는 데 목적을 두지 않는 글이다. 무엇보다도 정치적인 목적이나 상업적인 목적으로 수필을 써서는 안 되는 것이다. 깊은 우물에서 시원한 샘물이 길어 올리듯, 깊은 생각에서 수필다운 수필이 탄생된다. 생각이 깊지 못하고 천박하면 아무리  많은 글을 써낸다 하여도 질 좋은 비단 같은 언어가 짜여져 나올 리 만무하다. 마음 속 깊은 곳으로 깊이깊이 얘기하는 그 떨림과 울림을 수필에서 맛볼 수 있다면 이것은 하나의 축복이다. 이제는 연지 찍고 분 발랐다고 해서 무조건 미인이 아니듯이, 화려하게 치장을 했다고 해서 좋은 수필이라고 할 수 없다는 자각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수필이 피해야 할 ‘재부才浮’란 재주를 부리지 말라는 뜻이다. 훌륭한 수필가는 글재주꾼을 말함이 아니다. 좋은 수필을 쓰려면 문과 지志를 겸비해야 한다.  문이 없는 지는 거칠고, 지가 없는 문은 황홀할 따름이다. 요즈음도 이상 야릇한 제재, 특이한 제재를 찾아 헤매며 고심하는 사람들을 보게 되는데, 이는 좋은 수필을 쓸 수 있게 하는 올바른 처방이 되지 못한다. 제재란 물론 주제에 기여하기 위해서 동원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주제가 빈약한 상태에서의 제재 편중주의는 재사의 문인, 장색적 수필가를 낳게 한다고 지적한 황송문의 지적은 일리가 있다고 하겠다. 알멩이 없는 상태에서 제재를 선택하여 기묘하게 다듬어 놓은 것은 글재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재주를 부리면 안 된다는 말과 관련하여 수필 창작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허구’의 수용 문제다. 어떤 이는 수필에 허구가 절대로 끼어들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만일 수필에 허구가 끼어들면 그건 소설이지 수필이 아니라고까지 한다. 얼핏 들으면 그럴듯하게 들리는 말이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그 말이 지나친 억지라는 걸 알 수 있다. 수필가는 소설가가 즐겨 쓰는 그런 허구를 차용하지 않는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수필을 쓰는 사람은 사실을 바탕으로 수필을 쓰기 마련이다. 그리고 처음부터 소설가처럼 그렇게 허구를 끌어들이지도 않는다. 수필에는 허구가 절대로 끼어들어서는 안 도니다고 주장하는 측에서는, 만일 수필에 허구가 끼어들면 그것은 거짓이지 진실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수필가가 거짓말을 쓸 수도 없고 또 써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이 말도 얼핏 들으면 일리 있는 말로 들릴 수 있다. 그런데 허구는 거짓인가 하는 문제는 문제가 있는 것이다. ‘fact'와 'reality'는 엄연히 그 성격이 다르다. 허구가 사실은 아니기는 해도 진실이 아니라고 하는 주장에는 문제가 있다.   수필이란 사실을 얘기하기 위해서 창작하는 것도 아니요 사실을 알기 위해서 읽는 것도 아니다. 수필이란 사실이건 허구이건 삶의 진실을 창작하거나 읽음으로써 누리게 되는 성질의 것이다. 그러므로 수필은 작가가 경험한 사실을 바탕으로 쓰되 그 사실 이상의 어떤 진실을 말하기 위해서 거짓이 아닌 허구적 방법을 차용할 수도 있다. 이것이 필자가 말하는 부분적 수용론이다. 이러한 경우, 분명히 허구가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여기에서의 허구는 소설가가 즐겨 다루는 그런 허구와는 전혀 다른 성질의 것이다. 처음부터 상상의 집을 지어나가지만, 수필가는 사실적인 이야기를 쓰되 질서화하는 과정에서 필요에 따라 차용하는 허구임으로 문학의 본질상 이 점은 어쩔 수 없는 숙명이다. 문학은 진실을 말하기 위해 사실에 근거하거나 허구를 차용할 수 있는데, 소설은 주로 허구를 차용하고 수필은 사실에 근거할 따름이다. 진실을 말하기 위해서 여러 요건이 요구되는데, 수필은 특히 사실을 근거로 진실을 추구하는 게 특징이라는 것이다.    3.       독자들은 이 논고를 통하여 수필이란 붓 가는 대로 쓰는 글이라고 하지만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네 가지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은 수필에도 나름의 작법이 있다는 말과도 통한다. 수필은 붓 가는 대로 쓰면서도 그 붓을 끌고 가는 주제의식, 즉 어떤 ‘보이지 않는 손’의 지시에 의해서 쓰여지게 된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수필을 가리켜 이야기에 앞선 사색이라고도 하고, 철학적 깊이에까지 이르는 관조의 문학이라고 하는 것은 ‘이치’가 짧아서는 안 된다는 말과 통한다. 그러면서도 문장도를 벗어나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은 ‘의도’가 잡스러워서 안 된다는 것과 통한다. 수필이 문학의 장르인 이상 문학 일반론을 무시할 수 없다. ‘재주’를 부려서 되는 글이 아니다.   아무튼 수필은 삶의 이삭줍기다. 한 알의 보리나 밀을 가지고 천하 대소사나 우주의 진리를 애기할 수 있는 수필은 우리들 인생의 길동무다. 그 길동무는 고아하고 담박하여 품위를 잃지 않는다. 이는 수필이 ‘품격’을 유지해야 된다는 의미다. 사소한 신변잡사 가운데 파생되는 기억의 부스러기 하나를 보면서 열 가지 백 가지, 우주 천주의 섭리를 말하기도 하는 그것은 완성을 지향하는 미완의 글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인생 길동무의 발걸음은 끝이 없다. 어쩌면 수필이라는 인생의 길동무는 성속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살되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그렇게 삶의 질을 높여주며, 그렇게 높아진 삶을 우리들이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광주수필문학회 문학강좌 수필의 어휘 그리고 문장   강사 김수봉 1. 들어가기    가, 문학은 인간정신의 자기전개가 형태를 얻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여기서 ‘형태를 얻는’ 이란 문장으로 표현해서란 말이다.    나, 나는 지금도 한편의 수필을 쓰다가 어휘 한두 개에 막혀 날밤을 꼬박     샌  일이 많다.       -어떻게 하면 좋은 문장을 만들까.       -어떻게 하면 적확한 어휘를 찾아낼까.       -어떻게 하면 나만의 색깔을 내는 문체를 써 볼까.    다, 이런 고심은 때때로 원고지 앞에 앉는 두려움까지를 불러오지만 ‘내가 어 려움을 겪고, 써낸 글이 독자에겐 쉬운 글로 다가간다.’ 라는 철칙 앞에 다시 용기를 얻는다.        그리고 이제껏 수필을 써온 나는 ‘불행한 문인은 면했구나.’라고 위안을 얻는다.    다. 김광섭 씨는 ‘수필문학 소고’에서 ‘수필을 써 보지 못한 채 문필을 마친 사람은 불행하다.’ 고 하였다.    라, 지금부터 수필의 어휘와 문장에 대한 나의 소견을 말 해 볼까 한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소견은 어디까지나 여기저기서 얻어들은 것에다 나의 경험을 보탠 것이기에 편견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2. 언어의 의미    가.  언어의 의미는 청각영상으로부터 이루어진 개념영상이라 할 수 있다.    나. 의미에는 중심적 의미(기본적, 핵심적)와 주변적 의미(상징, 비유 등의 다른 의미)로 나뉘며, 단어들의 의미관계는 동의관계,이의관계,유의관계,반의관계,당대관계, 하의관계 등 매우 다양하다. 이런 것을 ‘낱말밭’ 또는 언어의 자장(磁場)이라고도 한다. 때문에 이런 관계의 구분은 아주 섬세하게 가려서 구사되지 않으면 안 된다.    다. 어휘란 일정한 범위에 사용되는 말의 총체이지만 가려쓰기에 소홀해서, 비슷하니까  그냥 써버리거나 남들이 쓰니까 따라 써 버린다면 범문(凡文)이거나 악문이 되기 쉽다.    ;그는 자신의 부도덕한 행위를 방증(傍證)→반증(反證)이라도 하듯 난잡한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마크 트웨인’은 ‘비슷한 말과 정확한 말은 반딧불과 번갯불만큼이나 다르다.’고 했고, ‘문학은 상투어를 극복하는 노력이라야 한다.’라고 했으며 ‘최일남’은 ‘말은 말임자를 만나야 제값을 받는다.’ 고 했다. 3. 어휘와 어법    가. 사람은 성장하고 살아가면서 듣고, 보고. 읽어서 습득된 말로 생활하며 언어활동을 한다. 그러나 그런 언어는 어법에 맞지 않는 말들이 허다하다. 그런 언어는 생활의 언어는 될지언정 문학 언어는 되지 않는다.    나. 한때 ‘언문일치’라는 말이 강조되어 말하듯 글을 쓰면 된다고 여긴 적이 있었고, 지난 날 한문 투의 문장이 너무 심했던 것을 반성하려는 노력도 있었다. 말하는 그대로를 글로 옮긴다고, 요즘 인터넷상에서 떠돌아다니는 꼬부린 말들을 그대로 써 놓는다면 어떻게 될까? 평범한 일상에서는 재미있고 신선한 느낌마저 든다고 할지 모르나 문학적 문장은 아니다.    다. 글을 쓰는. 특히 수필을 짓는 우리에겐 모국어를 바르고 아름답게 가꾸어야 할 소명이 있다. 그래서 정확, 적절, 적확한 어휘구사가 요구되며 이것이 후학들을 위한 우리의 책무이기도 하다.    라, 물론 어법이라는 게 불변의 절대성을 지닌 것은 아니다. 시대가 바뀌고 언중(言衆)이 요구하면 바뀌는 것 또한 어법이다. 그러나 지금의 어법은 현재로선 최선의 것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지켜나가야 한다. 문장이 어렵거나 어법에 어긋나면 의미전달에  많은 오해가 생기기 때문이다. 4.어휘는 글의 자본(資本)    가. 우리는 남의 글을 읽으면서 쉽게 따라가 버리는 일을 종종 보게 된다. 그러나 그 표현의 적절성을 곱씹어 봐야 한다. 사전을 펼치고 확인해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 나는 수시로 어휘를 수집하여 노트해가는 습벽이 있다. 책을 읽다가. 신문을 보다가 , 방송을 듣다가 좋은 말, 몰랐던 말은 곧 메모를 해 놓고, 사전을 펼쳐 확인을 한다. 고유어, 옛말, 한자어, 외래어, 속어, 비어, 사투리, 심지어 시골 노파나 푸성귀 파는 아낙들에게서도 좋은 말을 많이 배운다. 그래서 내가 갖고 있는 어휘노트가 30 권쯤은 된다. 요즘 KBS TV에서 월요일 저녁 7시에 방송되는 우리말 달인 프로를 보는 것도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다. 풍부한 어휘는 문필가의 자본이다. (문장연구가 장 하늘)     * 정확, 적절치 못한 어휘 혼용 사례       -생명/목숨. 저희나라/우리나라, 버스 값/버스 삯, 아는 척(체)/알은 체(척),        쉬파리/쇠파리       -옥편/자전(대용어), 정종/청주(대용어), 트렌지코트/버바리코트. 스테이폴러/호지키츠,        크리넥스/스카치테이프, 귀걸이(제구)/귀고리(장식품), 경신(기록)/갱신(고침)       -전기세(료), 전화세(료), 수도세(료) 재산세, 면허세, 자동차세     *호응 어      -쌀(곡물)-사다(팔다). 책- 사다. 옷감-뜬다(끊다). 연탄-떼다(들이다),정육-사다(뜨다)       술(물)- 들다(마시다). 담배-태우다(피우다) 5.문장의 요건    가. 수필을 통합문학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수필은 문학 전 장르의 요소를 아우른다고 볼수 있다. 시적이며 소설적이며 극적(희곡)인 요소에 동요, 동화적 요소도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 수필을 읽는 독자에게는 가슴으로 읽는 기쁨(정서적 감동)과 두뇌로 읽는 보람(지적인 소득)을 함께 주어야 한다.    다. 수필은 첫째도 문장, 둘째도 문장이라고 강조한 수필가가 있듯 위의 요소들을 만족 시키는 첫발이 곧 문장이다.    * 이응백은 좋은 조건의 글로      1).충실한 내용일 것      2).독창적일 것      3).정성이 담길 것      4).정확한 어휘가 구사될 것      5).표현이 경제성일 것      6).논지의 일관성      7).구성의 치밀성을 들었고.    * 수필이론가들은 수필의 덕목을      1).독자를 향해 자랑하지 말 것      2).독자를 향해 교훈하지 말 것      3).스스로 도취하지 말 것      4).전부를 알아도 그 반만 이야기할 것 등을 강조 하였으며 이는 문장이 갖춰야 할 요건으로 요약된다.    * 덧붙이면 좋은 문장의 5대 요체는      1).분명하게.      2).정확하게.      3).간결하게.      4).정중하게.      5).쉬운 말로 평이하게 라 할 수 있다.    라. 생각을 대신하는 것이 말이요, 말을 옮겨 쓰는 것이 글이다. 고로 글은 말맛이 나게 써야 하고, 말맛은 글이 쉬워야 나오며 그 말맛은 독자의 생각을 뻗어가게 한다.    * 선배 수필가 윤오영 선생은      1).간결성을 문단의장(文斷意長) 즉 문장은 짧게 의미는 길게 써야 한다. 그러나 효과를 감쇄시키는 절약은 오히려 결손이라는 점은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고수의 문장일수록 간결하다.)      2).평이성으로는 의현사명(義玄詞明) 즉 속뜻은 깊어도 말은 알기 쉬워야 한다. 그러나  여기서도 쉽게 하려다 평범에 빠지는 것을 염려했다.      3).정밀성은 지리멸렬하고 산만하지 않게, 선명하고 구체적 실감으로 강한 무드가 배게 할 것      4).솔직성은 수식이나 과장 변명을 늘어놓지 말 것을 강조 했다.      * 또한 선생의 저서‘수필문학 입문’에서 문장의 ‘탈’을 무려 15가지로 지적 했는데 몇 가지만 소개하면 수식이 많은 것. 인용이 많은 것. 구체성이 결여 된 것. 박학을 자랑하는 것. 다 아는 것을 혼자만 아는 체 하는 것 들이다.      -‘김태길’은 ‘미사여구. 예화. 인용구 등을 많이 써서 문장을 현란하게 함은 일종의 교란 전술이며 사이비 행위다.’ 라고 했고.      -‘한비야’(걸어서 지구 밖으로 행진하자. 저자)는 ’미사여구 없애는 작업시간이 길면 길수록 독자들의 시간을 덜 빼앗는다.‘ 라고 했다.      - 이 모두가 쉬운 문장의 중요성을 같은 맥락에서 강조한 것이다.      - 고로 수필쓰기는 나 자신만을 위한 ‘배설의 언어’가 아니라 모든 독자를 위한 ‘소통의 언어’이므로 항상 새로움을 생각하고 글을 써야 한다. 6. 거친 문장 모호한 문장    가. 거친 문장 모호한 문장은 독자에게 혼란을 겪게 하여 자신의 작품을 멀리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보면        -(신문기사 제목): 시급한 공정거래법 개정안 통과(시급한 걸 이제야 통과? 중요한걸 심사숙고하지 않고. 졸속으로 서둘러 통과?)        -(어떤 소설): 박 사장은 그에게 남겨 두었던 술을 권했다.(그에게 보관했던 술인지?  본인이 남겨 두었던 것인지?)        -(어떤 수필): 풋고추에 고추장 쿡 찍어 막걸리 한잔을 ...( 풋고추에 고추장을 찍은 것인지? 고추장에 풋고추를 찍은 것인지?)        -(어느 책 제목):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자신의 문화유산인지?  남의 문화유산도 있다는 것인지?)=우리문화유산,~내가 답사한 문화유산        -(가사 말):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시)를 넣었을 때-- 아는 사람 있나요?.          (시)를 뺄 때=모르는 사람 없이 다 안다.(역설법)        -(어느 수필):총성이 멎고, 한참 후에 나는 동굴 밖을 나섰다.(동굴 밖에 있다가 다른 곳으로 갔다는 것인지? 동굴 속에서 나갔다는 것인지?)=밖으로 나섰다.        -(어느 병원 선전 현수막): 불임 전문병원( 임신을 못하게 하는 병원인지?        -(어느 초등학교 정문 현수막): 학교 폭력은 우리가!( 하자는 것인지?   없애자는 것인지?        -(충장로 어느 방법초소 명): 법질서 단속 초소( 법을 지키는 사람을 단속하는 것인지? 법질서 문란자를 단속하는 것인지?)        -(동요):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내가 살던 고향은        -칸트의 명제= 너의 의지의 원칙이 항상 동시에 보편적 입법의 원리로서 타당할 수 있도록 행위 하라.(번역판 ‘순수이성 비판’) 7. 쉽게 쓰기의 어려움    가. ‘욕이선난(欲易先難)’이란 말이 있다. 서예의 운필지침에 ‘말로서 쉽게 하고자 하면  먼저 어려움을 겪으라.’는 말이 어찌 서예에만 국한하겠는가. 글쓰기는 물론 세상 모든 일이 다 그렇다.    나. 쉬운 문장을 쓰기위한 필수 적 요건은 자기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자신이 먼저 철저히 이해하는 일이다. 독자에게 자기가 쓴 글의 뜻을 이해하도록 노력해달라고 요구하는 작가는 이미 실패한 글쟁이다.    다. 독자들에게 이해를 위한 노력을 요구하지 않는 작가의 문장이 바로 쉬운 글이다. 어떤 어려운 문제라도 ‘대중의 언어’로 나타내지 못할 것이 없다고 한다.    다. 그러나 실제로 쉬운 글을 써서 독자들의 호감을 사는 문장가 자신은 하루 종일 반 페이지도 못 쓰는 날이 많다.    라. ‘쇼펜하우어’는 “평범한 표현 속에 비범한 내용을 담으라.” 했으니 어려운 것을 쉽게,  쉬운 것을 재미있게, 재미있는 것을 깊게라는 원칙을 신조로 삼을 일이다.     *쉬운 글의 요소 셋은      1).비유법을 쓴다.      2).구체적 경험이나 실례를 든다.      3).인용법을 짤막하게 쓴다. 한자라도 덜 써도 효과가 같으면 줄이는 게 글이다.     * 내가 나름대로 좋은 문장이라고 노트해 뒀던 몇 문장을 골라 함께 보면서 어휘와 문장에 대한 소견을 마무리 한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 하리. 나는 지금 오월 속에 있다. (피천득)      -바람은 서러운 추억의 현(絃)을 가만가만 흔들어 준다.(최명희)      -동짓달 마른 바람이 베 폭 찢는 소리로 날카롭게 가른다.(최명희)      -나이 든 사람들에게 보다 잘 맞는 것은 유머와 웃음이다. 스스로가 덧없는 저녁구름의 유희 같은 존재인 것처럼(헷세) 8. 수필의 기술(記述) 단계    가. 한편의 수필을 쓸 때는 힌트-구상-소재-자료수집-틀 짜기(가장 고심해야 함)단계를 거쳐야 한다. 즉 무엇부터 시작할까? 무슨 얘기를 깔고 갈까? 어떻게 마무리 할까 이다. 비유를 하자면 주부가 식단을 짜는 것과 같다.    나. 수필이 다른 문학에 비해 자유롭다보니 몇 개의 틀로 정해질 수 없으며 소재와 주제에 맞는 그때그때의 적합성을 찾아야 한다.    다. 가장 일반적인 기술 순서는 서두쓰기, 본문쓰기, 결미쓰기 이다. 글 쓰는 사람은 다 아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매우 어렵다. 다 아는 것이긴 하지만 참고삼아 간단히 열거 해 보기로 한다.      1). 서두쓰기         서두의 한 두 문장은 독자가 수필을 대하고 30초 정도 걸리는데 이 시간에 독자의 발목을 잡지 못하면 실패한 글이 된다. 밥은 먹어야 배가 부르고 수필은 읽어줘야 가치를 발휘한다.     * 서두 쓰기에 고려해야 할 몇 가지 예를 들면       - 관련 화제나 배경을 제시한다. (오랜만에 해변마을에서 하룻밤을...)       - 자주 쓰는 용어를 미리 정의하여 제시한다. (목욕탕이란... / 승려의... 신문의... /경종의... 등 개념상 오해의 소지를 미리막음)       - 짧고 참신한 경구나 명구를 인용한다. ( 너 자신을 알라, 고사 성어, 속담 등)       - 구체적 사건이나 일화를 실감나게 소개한다. (꽝! 소리를 들음과 동시에 의식을 잃고 말았다.)= 현장묘사       - 설문을 던져 주의를 집중시킨다. (눈보라치는 겨울 바다를 보신 적이 있습니까? . ~~어떨까?. 누군가 ~~라고 했던가. 등)       - 글의 주제를 분명하게 미리 정의 또는 암시한다. (논설, 사설, 두괄식, 연역법)      2). 본문 쓰기         - 주제에 초점이 맞는 내용(앞문장의 풀이. 연유, 시점 등으로 뒷받침 )         - 화제의 내용과 범위에 맞게 (관련이 없어 보이는 것도 그 본질에서 유추 해석이 나올 수 있도록)         - 단락의 전개가 긴밀하고 합리적일 것 (유기적 관련)         - 개성 있는 사고와 새로운 인식의 독창성을 지닐 것 (특수체험,지식정보를 줄 것.)         * 이성계의 파자 점(破字占 ‘問’字) :이성계 에게는 왼쪽 오른쪽이 모두‘君’字 이니 장차 王이 된다. 진짜 거지에게는 문(門)에 입(口)을 매단 꼴이니 천상 거지이다.)         - 문장의 형식이 다양하고 리듬감, 정중동의 변화를 줄 것(문체 바꾸기.서술, 명령,  청유문/비유, 강조. 비약법/~다. --명사형 종결)      3). 결말쓰기         - 서두의 말을 반복하거나 되살린다. (시에서 수미 상관, 기승전결,--진달래꽃)         - 인용을 할 것(명언, 속담, 고사,--윤오영의 ‘마고자’-귤화위지의 고사)         - 정경묘사로 암시하며 끝맺기 식( 희망적. 절망적.)         - 요망하거나 전망하면서 (~하면 좋겠다. ~하기를 기대한다. ~해야 한다.)       *경고: 자신만 순수하고, 고고한 척 하면서 세상을 개탄하는 식은 독자의 반발을 사게 됨) 9. 마무리    나는 한편의 수필 원고를 써 놓고 숙성의 시간을 오래 가진다. 읽고 또 일고, 아침에 읽어보고 저녁에 읽어보고, 눈으로 읽고 소리 내어 읽고, 취중에도 읽어보고 술 깬 후에도  읽어 본다. 여러 날 잊었다가 문득 꺼내어 읽어보기도 한다. 한 스무 번쯤은 읽는다. 물처럼 흘러야 할 문장의 흐름이 막힘이 없는가 해서이다. 마무리 할 때의 유의사항을 두 가지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정진권의 ‘수필쓰기의 이론’ 중에서)   가. 글 전체를 살필 때      1) 주제를 구현하는데 불완전하거나 결여된 내용은 없는가.      2) 주제에 어긋나거나 무관한 내용은 없는가.      3) 글의 각 부문(문단)의 이음새는 유연한가.      4) 냉정을 잃어 갑자기 흥분하거나 감상에 빠진 데는 없는가.      5) 스스로 확신이 서지 않는 미심적은 내용은 없는가.      6) 제자랑(가족포함)으로 받아들여질 곳은 없는가.   나. 문단단위로 살필 때      1) 소주제를 구현하는데 불완전하거나 결여된 내용은 없는가.      2) 소주제에 어긋나거나 무관한 내옹은 없는가.      3) 문장들의 이음새는 유연한가.      4) 문장은 정확하고 분명한가.      5) 단어는 정확하고 알맞은가.      6) 심상은 선명하고 표현은 참신항가.      7) 맞춤법과 띄어쓰기는 정확하고 오․탈자는 없는가. 한국 수필계의 현황과 문제점 해결 1 영상매체의 발전과, 사이버 시대의 도래는 21세기 이전부터 문학 전반의  입지를 어렵게 만들 공적(共敵)으로 거론되어 왔다. 그런데 이런 주장에도  불구하고   수필계는 오히려 놀라운 변화를 거듭해온 것이 사실이다. 1971년에 한국수필가협회가 창립되고 이듬해엔 회원지《수필문예》(75년에 한국수필로 개칭)가 창간되었다. 1972년에 수필 월간지《수필문학》(관동출판사)이  처음으로 등장하고, 1977년에 잡지의 운영과 수필의 발전을 위한 수필문학진흥회가 만들어지던 때에 비하면 20종에 가까운 수필지(월간, 격월간, 계간지)와 3,000명 이상으로 추산되는 수필가, 많은 그룹의 출현은 참으로 놀라운 발전이다.  그러나 이런 변화가 꼭  긍정적 발전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장르보다 수필계는 심각한 문제를 지니고 있다. 신춘문예는 전통적으로 신인 등단의 중요한 관문이지만, 주요 일간지에서 수필은 여전히 제외되고, 오랜 전통의 종합문예지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대표적 문학단체의 하나인 한국작가회의에도 수필가는 없다.   이런 현상은 수필을 본격적인 문학으로 보지 않는다는 인식을 노골적으로 들어 낸 것이다. 한국 수필계에 이보다 심각한 문제는 없다. 그리고 사실은 외국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노벨 문학상을 비롯해서 대부분의 문학상에서 수필은 아예 후보 명단에 오르지도 않는다.   그런데 외국의 사례도 그렇다고 해서 이런 사태가 정당화되는 것이 아니다. 한국에서는 2천6백 여 명의 수필가가 엄연히 한국문인협회에 등록되고 기타 많은 수필가가 활동하고 있다. 이런 양적인 위세가 무조건 수필의 위상을 높여줄 이유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오늘의 한국수필을 바로 파악하지 못한 무지의 소치로 문화단체 등에서 차별대우를  받기도 하는데 이것은 먼저 수필가 자신들의 자발적인 노력으로 성취해야 한다.   2 1) 수필 장르에 대한 바른 인식 수필은 진화했다. 1930년대부터 김진섭 김동석 김용준 이양하 이태준 등의작품들이 수필을 독립적인 문학 장르로 인식시키게 되었고 그것이 광복 후로 이어졌지만 지금의 수필은 달라졌다.  수필을 이름대로 해석한 ‘붓 가는대로 쓰는 글’이란 인식에서는 거의 모든 수필가들이 벗어났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인식의 변화와 실천은 다르다.  소수는 새로 진화된 수필을 쓰고 있지만 예술성을 위한 기법에 충실하지 못한 수필이 많은 편이어서 수필에 대한 외부의 인식 변화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문학은 언어로써 상상을 통하여 사상과 감정을 아름답게 표현한 예술이다” 이것이 문학의 기본 개념인데 시나 소설은 그것 자체가 기본적으로 상상의 세계를 만드는 형태지만 수필은 그렇지 않다. 상상이 아닌 실제적 경험적 소재를 거짓 없이 다루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필은 이 조건에서도 문학성을 잃을 위험이 크다.    그러나 지금의 진화된 수필은 상상의 세계를 만들어 나간다.   김태길의「대열(隊列)」에는 그의 꿈 얘기가 나온다. 동쪽과 서쪽으로 서로 엇갈리며 행진하고 최루탄과 돌이 난무하는 광경이 나타난다. 이것은 작자가 실제로 꾼 꿈이니까 실제적 경험적 사실이고 남들이 흔히 말하는 ‘신변잡기’의 소재다. 그렇지만 여기에는 독재정권시대에 지식인이 갈 길과 우리 민족의 갈 길 그리고 그 역사적 시기에 대한 구체적 증언이 압축되어 있다.  이런 작품은 그 소재만으로도 신변적 위험이 따르기 쉽다. 시나 소설과 달리 수필은 이렇게 정면도전하는 장르다. 그런데 그것은 독자가 상상을 통해서 도달해야 한다. 이 밖에도 적지 않은 수필들이 은유법등을 구사하며 상상의 세계를 만들어나가고 심오한 사상과 정열을 담아 나간다.  이렇게 일상적 신변 소재로 출발하면서도 넓은 상상의 세계를 담아 나가고 영원한 인생 문제를 논하는 수필들은 확실히 과거와 달리 진화된 수필이며 이것이 한국의 현대수필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아직 여기에 도달하지 못한 수필들이 많기 때문에 오해가 생긴다. 그것은 오래도록 가지에 매달려 서리를 맞은 홍시가 있다는 것을 모르고  미숙한 떫은 감만 씹어 보고 감나무를 말하는 것과 같은 무지함이다.  이런 점에서 수필가 자신들부터 떫은 감은 팔지 말아야 하고 외부에서도 시대에 뒤떨어진 지식으로 현대수필을 평가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2)  늦은 나이에 출발하는 신인들 떫은 감 문제는 수필가들의 전문가적 의식의 문제이며 그것은 수필가들의 등단 시기 및 등단 동기와도 관계가 있다. 시, 소설 등 다른 장르에도 젊은 지망자가 적다지만 수필에는 문학소년, 소녀였던 사람들이 퇴직 후에, 또는 자녀를 다 성장시킨 후에 등단하는 경우가 많다보니 전문성 없이 나이 든 수필가가 많다. 수필은 ‘36살 이후의 문학’이고 인생의 경륜이 쌓여야 쓸 수 있는 것이라 하지만 어떤 장르이든 이런 기준은 있을 수 없다. 이것은 유물이 된 과거 수필의 인식일 뿐이고 이런 인식대로라면 수필은 뒤늦게 시작하는 문학이 되고 따라서 전문성은 애초부터 바라기도 어렵게 되며 젊은 독자들과 감각도 맞지 않는다.   늦은 나이에 출발한 수필가들이라면 인생의 산전수전 다 겪었다 해도 생리적 감수성이 젊은이들보다 둔하고 세속의 때도 많이 묻어 있어서 중고품 자동차처럼 기능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 흔히 늦은 출발을 제2의 인생이라고 미화하지만 그것은 제1의 인생만큼 도전적이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철저한 전문의식이 따르기 어렵다. 제2인생은 ‘남은 여생’이라는 인식이 다분히 깔려 있다.  수필이 30대 후반이나 넘은 사람들에게 적당한 문학이고 퇴직자와 자녀를 다 키운 아줌마들의 문학이라는 인식이 보편화되고 있는 이상 젊고 유능한 신인들의 배출로 수필문단의 발전을 기대하기에 현실은 어둡다. 대학의 문예창작과에서도 수필 지망생이 줄고 대학원에서도 수필전공이 없어서 우수한 작가와 평론가 배출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결국 이것은 어떤 제도의 모순 때문도 아니며 오직 수필가들 자신의 인생관의 문제다. 수필가라는 이름의 형식적 명예에만 안주하고 고객도 없는 떫은 감 장사에 만족하든지 아니면 철저한 전문가의 의식을 갖고 홍시를 파는 사람이 되느냐의 문제다.    3) 한 우물 파기 한 우물을 파야 사막에서도 샘을 만나고 깊이 파야 더 맑고 시원한 지하수를 만난다. 얕은 우물은 자칫 지상의 탁류가 스며들어 있기 쉽다. 전문성이란 한 우물 파기다.  문학은 일생 동안 최선을 다 해도 완성이 있을 수 없는 분야다. 그런데 등단한지 몇 해 되지도 않아서 수필가이며 시인임을 자랑하는 사람도 있다. 한 우물도 다 파기 전에 다른 우물을 파는 사람이다. 수필가로서 아직 갈 길이 먼데 문예지를 통해서 시인도 되고 소설가도 되고 또 평론가의 자격증을 얻는 사람이 있다. 자격증의 남발도 문제지만 이것은 전문가집단이어야 할 한국수필계의 위상을 격하시키는 행위다.  물론 두 가지 이상에서 우수성을 나타내는 경우는 예외다. 그러나 시 수필 소설 평론은 모두 다른 전문성과 타고난 재능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그런 재능을 모두 갖춘 문인이 있더라도 그것을 누구나 모방할 수는 없다.  모든 문학의 장르는 전문분야다. 그래서 시인이나 소설가도 수필에 대해서는 대개 무지하며 쓰더라도 기법도 모르고 재능미달 사태를 벗어나기 어렵다. 혹시 시인이나 소설가가 수필집을 내서 잘 팔리는 경우가 있더라도 특수한 경우가 아닌 이상 그것은 자기 전문분야의 인기도 때문이지 수필도 역시 시인이나 소설가가 써야 잘 쓴다는 주장은 무지의 소치다.  4) 완벽한 문장력과 예술성 수필이 전문분야이고 예술분야인 이상 수필가는 이에 맞는 문장력을 갖춰야 한다. 수필은 일반 산문이 아니다. 인문이나 사회과학 논문도 아닌 예술의 문장이다. 그러므로 표현에 차이가 있어야 한다. 우선 어법에 맞는 정확성이 기본 조건이며 다음으로 감동적인 의미 전달을 위한 다양한 기법이 따라야 한다. 사실만 전하는 것이 아닌 이상 수필이라는 짧은 장르 형식에 맞는 문장을 갖춰야 하고 자기 개성에 맞는 문체를 지녀야 한다.  한국의 수필가들이 대개 등단시기가 늦는 것은 유감이지만 늦었더라도 전문성을 갖추려면 창작의 기초가 되는 문장 수업부터 해야 한다. 시나 소설은 그 형태가 허구나 이미지의 창출을 통해서 만들어져야 하므로 문학성이 따른다. 이와 달리 수필은 실제적 경험적 사실의 거짓 없는 표현이 기본적 형식이므로 문학성이 처음부터 배제되기 쉽다. 따라서 우선 기본적으로 문장의 표현력으로 문학성을 획득해야 된다. 모든 예술분야가 다 그렇듯이 대가가 되었더라도 발전을 위한 끊임없는 정진은 숙명이며 이를 위해서는 항상 어린 학생처럼 많이 쓰고 많이 배워야 한다. 인생말년에 잠시 여기로 쓴다 생각해도 마찬가지다.   문장력과 함께 예술성은 다양한 기법을 요구한다. 예술성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주제를 만들고 상상의 세계를 통해서 감동을 증대시키는 것이다.   5) 평론가들의 외면과 비평의 수용문제 이것은 매우 절실한 문제다. 미술계의 거장이라는 피카소나 유명 화가들도 평론가가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평론가가 그렇게 별난 그림에다 이유를 달아 주었기 때문에 유명해지고 미술사에 남고 거액의 값이 붙은 것이다.  수필도 그런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평론가들이 외면하고 있다. 그것은 수필이 곧 재미없는 신변잡기라는 잘못된 선입견 때문이고 떫은 감이 너무 많아서 홍시를 먹어 보는 일이 드물기 때문에 흥미를 잃은 것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비평의 수용문제 때문이다. 자기 발전을 위한 정직한 비평을 받아들일 풍토가 되어 있지 않은 이상 평론가들은 수필계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없게 되고, 따라서 수필이란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 못한 이가 어디서 황당한 수필 강의를 하고 있어도 개선될 여지가 없다.  대부분의 수필잡지에는 지난호의 작품 평란이 있다. 평자의 입장에서는 다룰만한 작품이 적다하고, 수필가들은 덮어놓고 좋은 평을 기대하기도 한다. 평자들은 수필의 핵심적인 문제와 도움 될 방향제시, 그리고 개선이론을 전개하고 나서 서너 작품을 다루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화려한 이론전개보다 실제 필자에게 도움이 되도록 많은 작품을 대상으로 하면 좋겠다는 요구가 있다. 그러자면 필자들도, 객관적인 시선과 이론에 따라 평한 지적을 긍정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책을 출판할 때 지도교수가 써주는 발문, 축사와 비평은 성격이 다르다. 편집인들중에 자기가족 감싸기가 지나쳐서 손이 안으로 굽는 식의 평론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전체 수필가들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요구된다.   6)동인지와 문호 개방 한국 수필의 발전을 저해하는 원인 중의 하나는 각 문예지들의 폐쇄성이다. 한국의 거의 모든 수필 전문지들은 본질적으로 동인지다. 등단으로 기성문인이 된다고 해도 그것은 그 문예지에나 통하는 그 동네의 등단일 뿐이다.  수필계는 유난히 그룹과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타 동호인들을 배타적으로 대하는 경우가 많다. 다른 문예지나 그룹 출신이더라도 출중한 작가의 작품을 게재하고 수상자가 되는 것을 용납할 수 있도록 개방해야 한다. 3 수필가들뿐만이 아니라 인생에 있어서 새로움을 발견하려는 노력과 그 결과로 얻어지는 감동적인 삶이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1930년대에 김광섭(金珖燮) 선생이 「수필문학소고」에서 감동적인 삶을 “탁마된 세련과 각고의 노력이 있어야 함은 그 어느 분야에서나 공통될 것이다”한 말을 오늘에도 적용하여 글쓰기에 임해야 할 것이다.  삶이란 긴 여정이고, 사람은 오직 그 자신이 하나하나의 주인인 독립된 개체들이다. 수필은 삶과 체험을 형상화한 짧은 글이어서 영상시대에 그나마 좁은 입지를 차지할 수 있는 희망을 갖고 있어 다른 장르에서 부러워하는 추세이다. 진지하고 값진 체험과 사색, 관조 등 기본도 갖추지 않은 채 안일한 자세로 쓴 글이라면 짧은 수필도 외면당할 것이다. 좋은 수필을 쓰고 싶은 것은 수필가 누구나의 열망이리라. 수필가 개개인에게 치열한 문학정신과 전문성이 요구된다. 아직도 수필의 문학성이나 위상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이들이 있는 것은 한심한 일이다. 얼마나 열의 있고 진실된 삶을 살며 의미 있는 생활을 하는지, 그런 생활에서 얻은 좋은 경험이 수필의 바탕이 되어야 하고, 경험을 탁월하게 표현할 수 있는 필력을 갖춰야 하리라.  누구나 발랄하고 미래지향적인 글을 쓸 수야 없겠지만, 나이든 수필가들도 허무하고 체념에 찬 상념보다는 인생을 오래 산 사람만이 발견하는 참신한 시각과 무게감을 느낄 수 있는 글로 노인의 글이라고 외면당하지 않아야 한다.  현대문명의 눈부신 발달로 급변하는 세태에 시대에 앞서가는 대처능력이 부족한 수필가가 많을 것으로 추측된다. 참신함과 함께 도전정신, 미래를 내다보는 예지도 갖춘 이들이 많아야 한다. 문학작품은 시대나 환경의 변화를 넘어서는 원칙적 진실을 가지고 있는 글이 오래간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시효가 있는 진지한 경험을 소재로 하되, 표현하는 언어를 마지막 단계까지 걸러낸 것을 사용해야 한다.  다양한 소재와 다양한 형태의 글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되리라. 퓨전수필도 한 방법이 될 수 있겠지만, 그것은 사실적인 그림을 연마하여 아주 잘 그리는 화가가 추상을 시도하듯이 기본적인 필력과 양식이 갖춰진 사람들이라야 성공한 경우를 본다. 문장력을 갖추지 못하고 기초가 부족한 사람이 시도하면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또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시정을 요구하는 사회수필이 요구된다고 하는 이들이 많다. 이것 역시 사회 전반적인 지식이 깊고 안목이 넓어 중후한 문장으로 쓰지 않으면 일간지의 논설보다 못한 글이 되기 쉽고 뒷북을 치는 수가 많음에 유의해야 한다. 소재를 장기적인 것으로 해서 공감을 살 수도 있으나 문학성과 결부시키기는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수필의 위상을 높이려고 소리 없이 노력하는 사람들의 뛰어난 작품이 많아져서 아직도 수필이 정식으로 문학 대접을 못 받는다든가, 수필의 위상을 높여야 한다는 구호가 사라져야 할 것이다. (※ 이 글은 한국수필가협회 제15회 해외심포지엄 발표 원고입니다.)       수필은 어떻게 써야 하나 최승범 수필은 어떻게 써야 하나. 딴은 그동안 몇몇 잡지사의 수필 청탁에도 응해왔고, 내 나름의 몇 권 수필집을 내놓기도 하였다. 또한 대학에서는 의 강의를 맡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막상 붓을 움직이자니 자신이 없다. 나의 두번째 수필집 『여운의 낙서』(1973)를 엮고 나서, 나는 다음과 같은 후기를 덧붙인 바 있었다. 수필의 정체·본령을 파고 들면 들수록 확연한 모가 잡히질 않는다. 그러면서도 수필에 대한 매력만은 잊을 수가 없다. 수필을 쓰고 싶은 일이나 수필을 알고 싶은 일이 매한가지다. 내 삶을 갈아(耕)가는 한, 수필(隨筆)하는 일에서 나는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 이로부터 17년이 지난 오늘이지만, 수필에 대한 생각은 그제나 이제나 나아진 것이 없다. 오직, 그 동안 수필의 매력에 이끌려 오면서 생각한 바 몇 가지를 들어 이 글을 이어보고자 한다. 먼저 수필이란 무엇인가를 잠시 살펴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이제 ‘수필이 문학이다’엔 누구나 이의를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른바 ‘신문학’의 출발 이후, 특히 30년대 초반만 해도 문학인 간에 있어서조차 수필의 문학성을 놓고 회의적인 이야기가 있었다. 다음 임화(林和)의 글(『文學과 論理』, 1940)로도 짐작할 수 있다. 몇 해 전 어느 문예잡지의 좌담회에서 수필에 관한 이야기를 교환한 일이 있었다. 자세히 기억치는 못하나 이야기의 초점은 아마 수필도 과연 다른 문학, 이를테면 소설과 같이 하나의 독립한 장르로써 취급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것이었던 듯싶다. 그때 이런 제목이 골라진 것은 수필이 차차 성황해가므로 문학하는 사람들이 이런 것을 쓰는 데다가 다분의 정력을 경주해서 족한지 아니한지 하는 문제가 아니었는가 생각된다. 그런데 당시로부터 벌써 5~6년의 세월이 지났고, 이즈음에 와서는 잡지에는 물론 신문에까지 수필이 여간 많이 실리는 것이 아니다. 임화가 이 이야기를 『문학과 논리』라는 그의 평론집에 수록하기 전 글로 쓴 것이 1938년이니까, 이로부터 5~6년 전이라면 30년대 초반이 된다. 오늘날과 같이 수필이 하나의 독립한 문학 양식으로써 자리를 차지하기까지에는 이무렵 김기림(金起林, 『수필을 위하여』, 1933)·김광섭(金珖燮, 『수필문학 소고』, 1934)·김진섭(金晋燮 『수필의 문학적 영역』, 1934) 등의 노력에 힘입은 바 크다는 생각이다. 이들은 이론과 실제 작품으로 우리의 수필문학 정립에 기여하였기 때문이다. 이후, 수필의 문학적인 특성에 관하여 많은 논자들의 이야기가 있어 왔다. 나도 졸저 『한국수필문학연구』(1980)에서 다음 6가지를 들어 말한 바 있다. ①형식의 자유성 ②개성의 노출성 ③유우머와 위트성 ④문체와 품위성 ⑤제재의 다양성 ⑥주제의 암시성 등이 곧 그것이다. 여기서는 딱딱한 이야기를 피하고, 한 편의 수필로 수필의 이모저모를 말한 피천득(皮千得)의 「수필」에서 몇 가지를 들어 보고자 한다. ⑴ 수필은 청자 연적이다. 수필은 난(蘭)이요, 학(鶴)이요, 청초하고 몸맵시 날렵한 여인이다. 「수필」의 서두다. 이 서두의 멋지고도 은유적인 표현은 수필의 문학적인 한 특성을 말해주고 있을 뿐 아니라, 그 특성을 말해줌에 있어서도 수필적인 표현으로 하였다. 청자 연적의 저 은은하고도 귀품스러운 빛깔, 난초의 잎이 지닌 선(線)과 꽃이 지닌 방향(芳香), 학이 앉았을 때의 모양이나 비상할 때의 모습, 여인의 호리호리 청초하고 날렵한 몸맵시, 이 모두가 얼마나한 멋인가. 시적(詩的)인가. 수필은 이러한 시적인 멋을 풍겨주는 산문이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⑵ 수필의 색깔은 황홀 찬란하거나 진하지 아니하며, 검거나 희지 않고, 퇴락하여 추하지 않고, 언제나 온아우미하다. 수필과 시, 수필과 평론, 수필과 연구논문 등의 다른 점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황홀 찬란하게 번쩍거리는 비단에 시를 비길 수 있다면, 수필은 ‘비둘기빛이거나 진주빛’ ‘번쩍거리지 않는 바탕에 약간의 무늬가 있는 비단’이라는 것이다. 흑백을 가리는 게 평론이라면, 수필은 그렇듯 싹독싹독 잘라 말하지 않아도 읽는 사람이 분간하고 ‘미소’를 띠게 한다는 것이다. 또 연구논문이란 새로운 주장이 나오면 퇴락하여 추해지기 쉬우나, 수필은 사람들의 마음에 한 번 젖으면 언제나 그 빛으로 남아 있게 된다는 이야기다. 연구논문을 소설로 바꾸어 생각해도 마찬가지다. ⑶ 수필의 재료는 생활경험, 자연관찰, 또는 사회현상에 대한 새로운 발견, 무엇이나 다 좋을 것이다. 그 제재가 무엇이든지간에 쓰는 이의 독특한 개성과 그 때의 무우드(氣分)에 따라 ‘누에의 입에서 나오는 액(液)이 고치를 만들 듯이’ 수필은 써지는 것이다. 수필의 제재는 우리의 눈에 와 닿는 무엇이거나 다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오직 그 개성적인 독특한 눈으로 바라보고 그것을 자연스럽게 토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수필은 무엇이라도 담을 수 있는 용기(容器)라고도 볼 수 있을지니, 무엇을 그 속에 담던 그것은 오로지 필자 자신의 자유로운 선택에 맡길 수밖에 없다.(김진섭) 수필의 대상은 사유(思惟)의 전영야(全領野)인 것이다.(김동리) 위 이야기도 같은 맥락이다. 어느 면, 문학평론의 대상은 문학이어야 하듯, 시를 쓰려면 시적인 것을, 소설을 쓰려면 소설적인 것을, 희곡을 쓰려면 희곡적인 것을 제재로 선택해야 하는 괴로움이 따를 것이다. 그러나 수필을 쓰기 위하여 수필적인 제재를 따로 찾을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다. 문제는 무엇을 제재로 하여 말하든 ‘말하는 사람, 그 사람의 심경이 전인생 위에 확충되어 있기만 하면, 그 말한 것은 반드시 문학적인 가치를 가져오기 마련인 것이다. 다시 『문학과 논리』에서의 인용이지만, 임화는 수필의 문학적인 가치를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참말 좋은 수필이란 일상의 지지한 사소사(些少事)를 사상의 높이에까지 고양하고 마치 거목의 하나하나의 잎사귀가 강하고 신선한 생명의 표적이듯이 일상사가 모두 작가가 가진 높은 사상, 순량(純良)한 모랄리티의 충만한 표현으로써의 가치를 품어야 한다. 여기서도 강조된 것은 수필에 있어서의 제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제재에 대한 작가의 안목이나 사상이라는 것이다. ⑷ 수필은 독백(獨白)이다. 소설가나 극작가는 때로 여러가지 성격을 가져보아야 된다. 쉑스피어는 햄레트도 되고 폴로니아스 노릇도 한다. 그러나 수필가 램은 촬스 램이면 되는 것이다. 수필은 그 쓰는 사람을 가장 솔직히 나타내는 문학 형식이다. 수필의 가장 근본적인 특색의 하나를 말하였다. 수필은 한 마디로 말하여 ‘자기표백(自己表白)의 문학’ ‘personal-note’ ‘필자의 심적(心的) 나상(裸像)’이라고 한 것도 이 점을 단적으로 들어 말한 것이다. 서구에 있어서 수필의 원조라 일컬음을 받는 몽테뉴도 그의 『수필집』의 서문에서, 내가 그리는 것은 내 자신이다. 나의 결점까지도 나의 수필에서 읽혀질 것이다. 내 자신이 이 수필집의 내용이다. 고까지 말하였다. 일본의 한 영문학자도 수필의 이 특색을 강조하여, 수필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요건은 필자가 자기 자신의 개인적 인격적인 색채를 두드러지게 드러내는 데에 있다. 그 본질에서 말할 때, 기술(記述)도 아니며 설명도 아니요 논의(論議)도 아니다. 보도를 주안으로 하는 신문 기사가 비인격적(In-personol)으로 기자 그 사람의 개인적 주관적인 노오트를 피하는 것과는 정반대로 수필은 극단적으로 작자의 자아(自我)를 확대하고 과장하여 씌어진 것으로, 그 흥미는 전혀 personol-note인 점에 있다. 고 하였다. 모두 같은 맥락의 이야기들이다. ⑸ 덕수궁 박물관에 청자 연적이 하나 있다. 내가 본 그 연적은 연꽃 모양을 한 것으로 똑같이 생긴 꽃잎들이 정연히 달려 있었는데, 다만 그중에 꽃잎 하나만이 약간 옆으로 꼬부라졌었다. 이 균형 속에 있는 눈에 거슬리지 않는 파격(破格)이 수필인가 한다. 이는 수필의 형식이 지닌 특성을 암시한 것이라고 본다. 흔히 수필의 형식을 말하여, 무형식이 그 형식적 특징이다.(金珖燮) ‘붓이 가는 대로’의 형식으로써 산문화한 것이 수필의 일반적인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어떤 고정된 형식에 맞추어서 쓰는 것이 아니고 가장 자유롭게, 시나 소설과 같은 특별한 형식의 제한이 없이, 붓이 가는 대로 쓸 수 있는 것이다.(韓黑鷗) 고 하였다. 물론 수필의 형식은 이러한 것이다라고 제시할 수 있는 하나의 본보기를 우리는 가지고 있지 않다. 하나의 연적에 똑같이 생긴 꽃잎들을 정연히 놓아가는 일이란 어떠한 형식만을 그대로 좇는 일이 된다. 이것은 어쩌면 기계적으로 되풀이만 하면 되는 쉬운 일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일로 한 편의 수필을 이룰 수 있다면, 똑같이 생긴 꽃잎들을 정연히 놓아가는 일 을 수필의 형식으로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수필은 그러한 일이 되풀이되는 것이 아니라, 정연히 꽃잎틀을 놓아가다가, 그 중의 꽃잎 하나를 약간 옆으로 꼬부라지게 하는 일 정연한 균형 속에 있는 꼬부라진 꽃잎이면서도 눈에 거슬리지 않는 파격 에 수필의 멋은 있다는 이야기다. 굳이 수필의 형식을 들라면, 이 멋을 부릴 수 있는 ‘파격’일 수밖에 없다. 이 ‘파격’은 파격을 짓는 사람, 또 파격을 짓는 상황에 따라서 다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수필의 형식이라면 일정한 것이 없는 ‘불구격투(不拘格套)’의 자유성을 지닌 것이라 할 수밖에 없다. 이상 피천득의 「수필」에서 수필이 지녀야 할, 문학적인 특성의 몇 가지를 들어 보았다. 자못 시적이고 은유적인 표현의 「수필」이지만, 여기서 우리는 수필이란, 문학의 다른 양식과 달리 어떠해야 하고 어떻게 있어야 하리라는 것도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수필을 어떻게 써야할 것인가는 이 생각으로부터 각자가 스스로 풀어나가야 할 문제다. 사실 문학이란 이론만으로 쓰여지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문학 뿐이랴. 미술도 음악도 마찬가지다. 이론에 밝다고 꼭 좋은 작품은 내놓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흔히 무슨무슨 작법(作法)같은 것을 흔히 말하고, 그러한 것에 관한 책들도 내놓고 있다. 나도 졸저 『수필 ABC』(1965)에서 ‘수필 쓰는 법’의 한 장(章)을 마련하여 다음 몇 가지를 들어 말한 바 있다. ①자기의 렌즈를 갖자 ②일단의 구상은 필요하다. ③서두에서부터 관심을 이끌도록 하자 ④’누에가 실을 뽑듯’ 그렇게 써 나가자 ⑤품위있는 글이 되도록 하자 ⑥길이는 되도록 3천자 내외로 하자 는 것들이었다. 이제 보면, 여기저기서 줏어다가 열거한 것도 같고, 또 꼭 수필만이랴 다른 문학에도 마찬가지의 이야기지 않겠느냐는 항변도 있지만, 그때 내 나름으로는, 수필을 쓰고자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수필을 써 나가기 전에 먼저 가져야 할 마음가짐으로 이러한 여섯 가지를 들어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에도 수필을 쓰고자 한 사람이면 이만한 유의점은 필요한 것이 아닐까. 예문을 들면서 다시 생각해 본다. ⑴ 나는 이 바위 앞에서 바위의 내력을 상상해 본다. 태초에 꿈틀거리던 지심의 불길에서 맹렬한 폭음과 함께 퉁겨져 나온 이 바위는 비록 겉은 식고 굳었지만 그 속은 아직도 사나운 의욕이 꿈틀대고 있을 것이다라고 . 그보다도 처음 놓여진 그 자리 그대로 앉아 풍우상설(風雨霜雪)에 낡아가는 그 자세가 그지없이 높이 보였다. 바위도 놓여진 자리에 따라 사상이 한결같지 않다. 이 각박한 불모(不毛)의 미가 또한 나에게 인상적이었다. 이는 조지훈(趙芝薰)의 「돌의 미학」 중 한 대문이다. 누구나 ‘바위’에서 이러한 생각을 가질 수 있을까. 이것은 어디까지나 지훈의 ‘렌즈’에 비친 바위다. 지훈의 ‘렌즈’는 지훈의 눈이요 안목(眼目)이다. 스위스 조각가 쟈코메티는, 눈에 보이는 대로를 그린다. 고 했다. 그러나 그의 그림이나 조각은 사진기의 렌즈에 비친 어떠한 풍경도 어떠한 사람도 아니었다. 쟈코메티의 눈이 아니고는 볼 수 없는 풍경이요 사람이 그의 작품에는 담겨지고 조소되었다. 「돌의 미학」은 지훈의 안목이 아니고는 쓰여질 수 없는 수필이다. 지훈은 또 다른 한 편의 글에서, 아안(雅眼)으로 속(俗)을 관(觀)하면 속도 아가 되고, 속안(俗眼)으로 아를 관하면 아도 곧 속이다. 이 말을 한 바 있다. 수필을 쓰기 위해서는 이 ‘아안’이 필요하다. 아안은 누구에게나 일조일석에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가 부단한 ‘눈의 훈련’을 통해서 비로소 가질 수 있는 ‘렌즈’인 것이다. 피천득의 「수필」에서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명구, 수필은 청춘의 글은 아니요 설흔 여섯 살 중년 고개를 넘어선 사람의 글이다. 는 말도 그만한 세상살이·사람살이에서 ‘눈의 훈련’을 거쳐온 사람만이 수필다운 수필을 쓸 수 있다는 이야기로 받아들여서 좋을 것이다. 알렉산더 스미스의 말, 수필을 쓰는 사람은 천하가 다 아는 바람둥이, 무슨 일이고 못할 게 없다. 민감한 귀와 눈, 흔히 있는 사물에서 무한한 암시를 식별하는 능력, 생각에 잠기는 명상적인 기질, 이 모든 것만 있으면, 수필가로서 수필 쓰는 일을 시작할 수 있다. 에서 수필가의 요건으로 든 ‘귀와 눈’ ’능력’ ’기질’이란 것도 따져보면 ‘눈의 훈련’을 통해 가질 수 있는 높은 ‘안목’을 이야기한 것이 된다. 수필을 쓰고자 하면, 평소 사물에 대한 높고도 우아한 자기 안목부터 부단히 닦아 지녀야 할 것이다. ⑵ 붓가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 쓴 글이 수필이라고들 하지만, 막상 수필을 많이 써 본 분이면 이런 안이한 수필작법에 동의하지는 않을 것이다. 말하듯이 그대로 써 내려가면 된다는 말도 수긍이 안 간다. 글자로 표현된다는 것은 작품을 뜻하는 것이다. 작품이란 소재와 주제가 겸비되어야 하고 또 매끈하게 다듬어져야 한다. 형식과 내용이 조화되고 통일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수필도 하나의 작품일진대 이런 조건이 갖추어져야 하는데 이것을 생각나는 대로 말하듯이 붓가는 대로 써버릴 수는 없다. 물론 쓸 수는 있지만 그것은 하나의 예술적인 작품으로 승화될 수는 없다. 낙서가 아니면 붓장난의 소산일 뿐이다. 이는 장덕순(張德順)의 수필론 「힘들게 써서 쉽게 읽혀져야」의 서두 부분이다. 흔히, 수필의 글자 풀이, ‘따를 隋, 붓 筆에서 붓가는 대로 쓰여진 글’이라는 안이한 생각을 갖기가 쉽다. 수필을 쓴 사람의 입장에서는, ‘붓가는 대로 마음 내킨 대로 쓴 글인데’의 겸사로 수필을 말할 수 있을지라도(사실 수필이란 말을 처음 쓴 사람의 의도는 그러한 것이었다), 문학인 수필을 놓고의 이러한 생각은 금물이다. 수필의 형식이 자유롭다고 해서 막연히 붓을 들고 원고지 앞에 잠깐 써낼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수필을 위해서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작가에 따라서는 대충의 구상만으로 원고지를 메꾸어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톨스토이는 대충의 구상만으로 붓을 잡았고, 써나가는 동안에 그 구상을 다져 갔다고도 한다. 그런가하면 도스토엡스키는 『죄와 벌』의 구상에 3년이 걸리고 몇 권의 노오트가 필요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길이에 있어서는 소설에 비할 바 없는 짧은 길이의 수필이래도 무엇을 내용으로 어떻게 엮어나갈 것인가, 주제·제재·줄거리의 구상은 필요하다. ‘균형 속에 있는 눈에 거슬리지 않는 파격’의 ‘균형’과 ‘파격’을 생각하는 것도 구상에 포함되는 일이다. 수필의 초보자인 경우, 이러한 구상은 더욱 필요하리라는 생각이다. ⑶ 문장의 첫 귀절이라면, 글을 쓰는 이는 누구든지 경험한 일이겠지만 글에 있어서 최초의 1귀 같이 중요한 것은 없을 것이다. 최초의 1귀, 이것을 얻기 위해서 말하자면 모든 문장가의 노심초사는 자고로 퍽 큰 듯 보이고 그만큼 이 1귀는 문장의 가치에 대해서도 결정적인 세력을 가지고 있다. 이곳에 문장을 있게 만드는데 흰 원고지의 유혹도 확실히 무시할 수는 없지만 어데서 졸연히 때늦이 솟아 나왔는지 모르는 이최초의 1장 같이 문장인에게 창조의 정력을 일시에 제공하므로 해서 팔면치구(八面馳驅)를 하게 하는 요소도 없을 것이니, 백 사람의 문장가를 붙들고 물어본다면 그 중에 여든은 가로되 이 최초의 1장이 얼마나 고난에 찬 최대최시(最大最始)의 문장적 위기를 의미하는 동시에 그의 모든 준비를 발전시키는 가장 중요한 지도자임을 말하리라. 이는 김진섭의 「문장의 도」의 한 대문이다. 여기 ‘문장’을 수필로 바꾸어 생각해도 마찬가지다. 수필이 짧은 글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이 서두의 몇 줄은 독자의 흥미와 긴장을 이끌기 위해서 더욱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계용묵(桂鎔默)은 그의 수필 「침묵의 변」에서, 이 서두 1행 때문에 살이 깎인다. 8·15 이후 내가 들었던 붓을 놓고 침묵을 지키기 거의 이태이거니와 구상까지 다 되어 있는 것도 이 서두를 내지 못해 머리 속에서 그대로 썩어 나는 게 4,5개나 된다. 고 했다. 이는 물론 소설의 경우이지만 서두가 중요하다고 하여 지나치게 거의 집착하다 보면, 이처럼 아예 글을 쓰지 못하게 될 것이다. 하여, 이태준(李泰俊)은 서두를 쓰는 요령으로, ‘①너무 덤비지 말 것이다 ②너무 긴장하지 말 것이다 ③기(奇)히 하려 하지 말고 평범하려 하면 된다’의 세 가지를 들어 말하였다. 한 편 수필의 구상이 이루어졌으면, 주제나 제재, 또는 줄거리를 암시할 수 있는 것으로부터 그 서두를 시작하는 것이 무난할 것이다. 줄거리에서 서두를 이끌어 내고자 할 때에는 인물·시간·배경에 관한 말로 첫줄을 시작하는 것도 쉽게 풀어나가는 방법의 하나가 되겠다. ⑷ ‘최선의 책이란 그것을 읽는 사람이 나도 쓸 것 같다고 생각하는 책이다.’ 이것은 빠스깔의 말이다. 사실 그렇다. 그렇게 쉽게 쓸 수 있다면 나도 쓸 수 있다고 느끼게 하는 책, 그것이 정말 잘 쓴 책이다. 얘기도 그렇다. 정말 훌륭한 이야기란 쉬운 말로 쉽게 하면서 그 속에 교훈과 생명이 배어 있는 말이다. 들어서 알 수 없는 이야기는 말하는 사람 자신도 모르고 하는 이야기다. 대학에서 강의를 해보면 그것을 절실히 느낄 수 있다. 완전히 내 것이 된 지식일수록 쉽게 이야기 할 수 있다. 내가 아직 소화하지 못한 지식일수록 어려운 말로 어렵게 얘기하게 된다. 쉬운 말로 할 수 없으니까 어려운 말로 캄프라쥬하는 것이다. 문장의 호흡도 얘기의 호흡과 마찬가지라고 나는 생각한다. 안병욱(安秉煜)의 『문장도』에서 옮긴 것이다. 쓰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흐르는 물처럼 써야 하고, 읽는 사람은 쉽게 느끼고 젖을 수 있어야 한다. ‘누에의 입에서 나오는 액(液)이 고치를 만들 듯이’ 수필은 써지는 것이라고 한 피천득의 인용은 알렉산더 스미스의 『On the writing of essays』에 있는 말이다. 누에가 토사구(吐絲口)로부터 실을 뽑아 고치를 만드는 광경을 보면 지극히 수월스럽다. 이만한 ‘자연적인 유로(流路)’를 위해서는 그렇게 되기까지의 공정이 필요하다. 누에가 섶에 오르자면 넉 잠을 자고 다섯 돌을 맞는 탈바꿈이 있어야 한다. 한 편의 수필을 자연스럽게 흐르는 물처럼 쓰자면 먼저 아는 것이 많아야 할 것이다. 수필가에게 폭넓은 견문과 박학다식, 그리고 깊은 사색을 요구하는 것도 이에 말미암은 것이다. ⑸ 꽃가게 앞에서 고전(古典)과 양장(洋裝)이 가지런히 발을 멈춘다. 소담한 꽃묶음을 한 아름씩 안으며 맑고 아름답기가 첫애기를 기르는 산모와 같다. 이는 이동주(李東柱)의 「꽃」의 서두다. 정갈한 표현의 멋을 느끼게 한다. 비유가 시적이다. ‘고전’과 ‘양장’은 한복을 입은 여인과 양장 차림의 여인을 일컬음이다. 「꽃」의 중간에는, 사람도 그늘에 살면 생선처럼 상하기 마련인데 제마다 어둔 방, 이 한묶음 꽃을 고작 은촛대에 불을 켜듯 환히 밝히면 때로 후기(嗅氣)와 음습(陰濕)을 가시는 분향(焚香)일 수도 있는 일. 의 일절도 있다. 앞의 두 여인의 신분과 이들이 꽃묶음을 사든 까닭도 암시되어 있다. 「꽃」의 하반부(轉)에 가면, 취안(醉眼)으로 꽃을 대한 사나이란 죽순밭을 어질르는 악동(惡童)과 같이 심사가 사나와 화즙(花汁)으로 마구 문질러야 몸이 풀린다고. 의 구절이 있다. 이어서 이른바 홍등가에서 들을 수 있는 대화가 나오고, 비린 외어(外語)가 어색지 않다. 하룻밤 청춘이 박리로 팔리는데, 흥정에 따라 에누리가 있고 악착같은 거간이 붙는다. 정희와 희순이는 간간 나들이를 한다. 때로 꽃가게 앞에서 가지런히 발을 멈춘다. 로, 「꽃」의 결말이 맺어진다. 사람살이에 있어서도 그늘진 곳의 추한 이야긴데, 「꽃」을 읽으면 그러한 것을 느낄 수 없다. 조촐하고 정갈한 글발은 오히려 멋까지를 느끼게 한다. 수필은 읽어서 멋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멋은 글발에 배어 있는 유모어나 위트로 드러난다. 수필 쓰는 이는 어떻게 표현하는 것이 읽는이에게 회심의 미소를 짓게 하고 삼박한 재치를 안겨줄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할 일이다. 다음은 수필의 길이에 관한 문제다. 나는 『수필 ABC』에서 ‘길이는 되도록 3천자 내외로 하자’고 한 바 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수필을 써보고자 하는 초보자를 위해서 한 말이었다. 수필의 길이는 참치부제하다. 마해송(馬海松)의 「편편상(片片想)」과 같은 원고지 한두장의 짧은 길이의 것일 수도 있고, 이은상(李殷相)의 「무상(無常)」이나 김태길(金泰吉)의 「흐르지 않는 세월」처럼 한 권의 책이 되는 길이의 것일 수도있다. 수필을 쓰고자 할 때 이상 몇 가지를 유의하였으면 싶다는 것으로 들어 보았다. 그러나 앞에서도 이야기한 바와 같이 글이란 이론만으로 잘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직접 써보면서 스스로 글 쓰는 법을 터득하는 길이 상책이라는 생각이다. 이러한 점에서, 수필 쓰는 법이 뭐네눠네 하는 너절한 이야기보다도 『후산시화(後山詩話)』에 나오는 구양수(歐陽脩)의 말, -간다(看多-多讀) -고다(做多-多作) -상량다(商量多-多思) 로 이 글의 결말을 대신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구양수는 문장에 익숙해지는 요령으로 이 3가지를 들었지만, 수필도 먼저 문장이 되어야 하느니만큼, 이 3가지는 바로 수필에 익숙해지는 요령으로 보아 다를 것이 없겠다.◑ ◇최승범 문학박사 전북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58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했으며, 한국문인협회, 예총 전북지부장을 역임했다. 저서로 『蘭緣記』, 『韓國隨筆文學硏究』, 『바람처럼 구름처럼』 , 『무얼 생각하시는가』, 『풍미산책』, 『거울』, 『蘭 앞에서』, 『3분읽고 2분생각하고』, 『朝鮮陶工을 생각한다』 등이 있다. 정운시조상, 현대시인상, 학농시가상, 가람시조문학상, 황산시조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좋은 수필을 쓰는 법   1. 좋은 수필의 요건 우리는 일상생활에 많은 수필을 읽게된다. 그러나 마음에 감동을 받기가 어렵다. 어떻게 써야 좋은 글이 될까? 우선 좋은 글이 되게 하려면 다음의 내용을 잊지 말자. 1. 글의 주제와 내용에 있어서 (1) 글의 내용이 충실해야 한다. (2) 주제가 선명해야 한다. (3) 진실성이 있어야 한다. (4) 독창성이 있어야 한다. (5) 철학이 있어야 한다. (6) 감동이 있어야 한다. 2. 글의 짜임새는 (1) 논지(論旨)의 통일성이 있어야 한다. (2) 내용이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2) 문장이나 단락이 연결성이 있어야 한다. 3. 글의 표현은 (1) 표현이 정확하고 명료해야 한다. (2) 표현이 쉽고 간결해야 한다. (3) 수사적 표현이 있어야 한다. 2. 단어와 문장 구조 문장에 있어서 구조와 단어는 똑바르게 써야한다. 단어가 잘못 사용되면 엉뚱한 의미를 나타내게 된다. 그럼으로 문장에 알맞은 단어를 선택해야한다. 1. 단어의 선택 (1) 단어의 표현 효과는 이렇게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㰠† 구체어 : 대상이나 행동을 지시하는 단어 㰠Œ 추상어 : 관념적인 내용을 나타내는 단어 㰠† 일반어 : 보다 포괄적인 범주의 상위 개념어 㰠Œ 특수어 : 보다 한정된 범주의 하위 개념어 㰠† 지시적 의미 : *사회적으로 공인된 객관적 의미 → 객관적 전달의 효과 㰠Œ 함축적 의미 : *지시적 의미에서 연상되는 의미 → 느낌·인상·정서의 효과적 표현 (2) 단어의 선택 과정 지식적 의미 이해 → 문맥적 고려 → 함축적 의미 고려 2. 문장 구조의 선택 (1) 문장 구조의 표현 효과 ① 홑문장 : 강렬한 인상, 간결성, 명료성 ② 이어진 문장 ㆍ 대등하게 이어진 문장 : 평행 구조 㰠† 유사구조 : 균형감 㰠‰ 대립구조 : 차이점 강조 㰠Œ 점층구조 : 점층적 강조효과 ㆍ종속적으로 이어진 문장 : 종속구조 → 글의 논리적 전개에 효과적이다. ③ 안은문장 : 포유(包有) 구조 두 단위의 생각을 일원화하는 간결성의 효과와 구체화의 효과가 있다. 3. 문장쓰기 자기의 생각을 어떻게 문장으로 표현해야 상대방이 쉽게 이해할 수 있을까? 어려운 단어나 추상적인 생각으로 문장을 쓰지 말아야한다. 1. 문장의 개념 : 하나의 완결된 생각의 표현단위. 주어와 서술어를 포함한 두 개 이상의 성분으로 이루어진다. 2. 좋은 문장의 요건 (1) 평이성 : 쉬운 말, 부드러운 말투를 쓰며, 관념이나 추상어, 상투어는 피한다. (2) 간결성 : 말을 절약, 문장을 짧게 하며, 한 문장에는 한 가지 내용만을 쓴다. (3) 정확성 : 어법, 문법을 지키며 모호성을 띠지 않도록 주의한다. 4. 단락쓰기 단어의 모임이 문장이다. 문장은 연결성이 있어야하고 전달하려는 내용이 같아야한다. 그러면 단락들의 문장은 다음을 잊지 말자. 1. 단락의 개념 : 하나 이상의 문장이 모여서 통일된 하나의 생각을 나타내는 글의 단위로 되어야한다. 2. 단락의 구조 : 작은 주제문 + 뒷받침 문장 (1) 작은 주제문은 일반적이며 추상적인 진술 (2) 뒷받침 문장들은 구체적이고 특수한 진술 ① 추상적 진술 : 개념적, 원리적, 요약적 ② 구체적 진술 : 특수적, 분석적, 묘사적 3. 단락 구성의 원리는 통일성, 완결성,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1) 통일성 : 단일 주제에 수렴되어야 한다. (2) 완결성 : 주제를 충분히 뒷받침해야 한다. (3) 일관성 : 뒷받침 내용은 서로 긴밀하게 관련되어야 한다. 5. 주제 설정 글에는 어떤 주제가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글의 중심은 재미가 있고, 쉽고, 감동적이어야 한다. 1. 주제 : 한 편의 글을 통하여 필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중심생각을 정한다. 2. 주제 설정 기준 (1) 범위는 되도록 한정한다. (작은 것) (2) 필자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또 잘 알고 있는 것을 고른다. (쉬운 것) (3) 독자가 관심과 흥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을 고른다. (재미있는 것) 3. 주제설정 과정 가 주제- 범위가 넓고 막연한 범주의 주제 참주제 - 가 주제에서 범위가 한정된 주제 주제문 - 참주제를 보다 더 구체적으로 진술한 문장 6. 재료의 수집과 선택 1. 재료 : 주제를 뒷받침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나타내기 위한 글감 2. 재료의 요건 (1) 주제를 뒷받침할 것 (2) 확실할 것 (3) 풍부하고 다양할 것 (4) 관심거리일 것 3. 재료의 정리 (1) 내용이나 성격이 비슷한 것끼리 묶는다. (2) 중요도, 시대 순 등의 기준에 따라 배열한다. (3) 편견에 치우치지 않도록 배열한다. 7. 글의 구성 1. 구성 (1) 개념 : 주제를 가장 효율적으로 표현하기 위하여 선택한 글의 전개 방식에 따라 수집· 정리한 제재를 알맞게 배열하여 글의 뼈대를 짜는 것 (2) 기능 : 글의 설계도 구실을 하며, 글의 단계성, 일관성, 응집성을 유지하게 한다. (3) 구성의 방법 ① 자연적 구성 : 시간적 순서나 공간적 질서에 따라 제재를 배열하는 방법 ② 논리적 구성 : 제재 자체의 자연적 질서를 무시하고 필자의 의도에 따라 논리적으로 제재를 배열하는 방법 → 단계식 구성, 포괄식 구성, 병렬식 구성, 점층식 구성, 인과적 구성 2. 개요작성 (1) 개요 : 구성을 그대로 정리하여 놓은 것 (2) 개요의 종류 ① 화제의 개요 : 줄거리의 각 항목을 핵심적인 어구로 간결하게 표현한 개요 ② 문장의 개요 : 줄거리의 각 항목을 구체적인 문장으로 표현한 개요 8. 분석과 묘사 1. 분석 : 하나의 관념이나 사물을 구성요소로 나누어 가는 과정 (1) 분석의 과정 : 대상 식별→기준결정→이유진술→목적명시→항목배열→항목정리→내용제시→분석의 마무리 (2) 종류 ① 대상에 따라 ㉠ 물리적 분석 : 공간적 분해 가능 경우 ㉡ 개념적 분석 : 내용 분석의 방법 ② 작용에 따라 ㉠ 기능적 분석 : 작용에의 답 형식 ㉡ 연대기적 분석 : 사건의 계기적인 단계 구명 ㉢ 인과적 분석 : 원인과 결과 구명 2. 묘사 : 대상의 감각적 인상을 있는 그대로 생생하게 언어로써 그려내는 지적 작용 (1) 묘사의 유의점 : 치밀한 사건 관찰·지배적 인상을 중심으로 의미 있는 것만을 묘사·일정한 순서에 따른 전개 (2) 관점 ① 고정 관점 : 고정시켜 관찰한 묘사 ② 동적 관점 : 시점 이동의 관찰 묘사 ③ 얼개 형상의 방법 : 대상이 방대하거나 상상적인 공간에까지 확장되는 경우에 채택 (3) 종류 ① 객관적 묘사 → 정확하게 표상 ② 주관적 묘사 → 분위기, 감정, 인상 창조 9. 분류와 예시와 정의 1. 분류 : 대상이나 생각을 비슷한 특성에 근거하여 기준을 정해 부분으로 나누는 지적 작용 ◎ 분류의 유의점 : 단일한 기준 설정․일관된 기준 적용․기준간의 상호 배타성․하위 항목의 충실성․하위항목에 대한 동일성․분류정도에 대한 진실성 2. 예시 : 특수진술이나 특수 사항으로 예를 제시함으로써 유형, 계층 부류 등 일반적인 원리나 법칙, 진술을 구체화하는 지적 작용 ◎ 예시의 유의점 : 사례의 구체성․일반적 진술과의 관련성․거례(擧例) 의도의 명확성 3. 정의 : 어떤 대상 또는 사물의 범위를 규정짓거나 그 사물의 본질을 진술하는 지적 작용 ◎ 정의의 유의점 : 피정의항과 정의항의 대등성․정의항 개념의 명확성․용어의 반복 사용 회피 10. 비교와 대조와 유추 1. 비교와 대조 : 둘 또는 그 이상의 대상들을 견주어 공통점을 밝혀 내는 지적 작용이 비교, 그 차이점을 밝혀내는 지적 작용이 대조이다. (1) 기능 ① 공통점 - 사물을 다른 사물에 견주는 것 ② 차이점 - 비교 : 언어적, 형태적 유사성 대조 : 종류, 특성, 정도면의 차이 (2) 유의점 ① 동일 범주 내 사물간의 대비 ② 필자의 의도에 부합하는 기준 설정 ③ 시간, 공간, 가치의 연속성에서 배열될 기준 설정 2. 유추 : 생소한 개념이나 복잡한 주제를 단순한 개념이나 주제와 비교해 나가는 지적 작용 ◎ 유의점 ① 다른 범주에 속하는 것이어야 함 ② 알기 쉽고 친밀한 사물과의 비교 ③ 두 사물 사이에 유사성이 있어야 함 11. 서사의 과정과 인과 1. 서사 : 행동이나 상태가 진행되어 가는 움직임을 시간의 경과에 따라 표현하는 진술방식 (1) 목적 : 대상의 행동이나 상황의 변화 양상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려 독자에게 뚜렷하게 재생되도록 하는 것 (2) 유의점 ① 시간, 움직임의 단계 구분, 이동관계의 명확성 ②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시간의 흐름을 뒤바꾸지 말 것 2. 과정 : 결과에 이르게 된 일련의 행동, 변화, 기능, 단계, 작용 등에 초점을 맞춘 전개방식 (1) 목적 : 관계와 절차에 초점을 둠으로써 주제를 구체적이고 체계적으로 드러내 주는 데 있다. (2) 유의점 ① 각각의 단계와 절차의 주제에의 집중 ② 움직임을 나누는 단계의 기준이 균일해야 하며, 각 단계의 이동 관계를 분명히 드러내야 한다. 3. 인과 : 원인이 되는 힘과 결과적 현상에 관계된 사고유형 (1) 목적 : 구조적 인식을 위해 행동, 사물의 인과 관계를 드러낸다. (2) 유의점 : 필연적인 인과관계․체계적 순서․인과관계의 유기적 연결․진술의 동일성 12. 표현 기법 1. 표현기법(수사법) 선택의 원칙 (1) 조화의 원칙 : 문장에 균형, 정제, 해조의 미를 주도록 표현법의 효과를 고려하여 구사한다. (2) 구상의 원칙 : 추상적인 것을 구체적인 것으로, 막연한 것에 형태를 부여하여 생생하면서도 뚜렷한 인상을 주도록 한다. (3) 증의의 원칙 : 어떤 사물에다 다른 사물의 뜻을 덧붙임으로서 내용에 음영을 주어 풍부하게 하고 암시를 줌으로써 상상의 여지를 남기도록 한다. 2. 표현 기법의 종류 (1) 비유법 : 표현하려는 사물을 다른 사물에 빗대어 표현함으로서 그 자체의 성질, 모양 등을 뚜렷하고 선명하게 하여, 공감의 폭을 넓이고 쉽게 이해시키기 위한 기법. 은유·직유·의인화·활유·대유·성유·시자·풍유·중의 등 (2) 강조법 : 표현하는 내용보다 강렬하게 드러내기 위하여 취해지는 기법. 과장·영탄·반복·열거·점층·점강·억양·대조·미화·연쇄·비교 등 (3) 변화법 : 문장이 단조롭고 평범하게 흘러가지 않도록 표현 방법에 변화를 주는 기법. 대구·설의·도치·인용·방어·역설·문답·돈호 등 13. 단계별 쓰기 1. 서두쓰기 (1) 서두의 성격 : 독자의 주의를 끌어 들이고, 글의 내용을 함시하여 주제의 방향을 제시 (2) 서두쓰기의 방법 ① 글의 내용, 방법 등을 밝힘 ② 글의 주제나 관련 화제를 직접 제시 ③ 독자의 주의를 집중시킨다. - 인용, 예화, 경험 ④ 대상의 뜻을 정의하는 것으로 시작 2. 본문쓰기 (1) 본문의 성격 :몇 개의 제재에 의해 서두의 주제가 보다 명확해지는 글의 중심을 이루는 부분 (2) 본문쓰기의 방법 ① 개요에 의거하여 전개한다. ② 단락의 소주제문을 충분히 뒷받침한다. ③ 접속 어구에 유의하여 단락과 단락의 현결을 매끄럽게 한다. 3. 결말쓰기 (1) 결말의 성격 : 서두와 유사항 성격으로 서두 본문에서 전개해온 내용은 요약·정리함으로써 주제를 명확히 하는 부분 (2) 결말쓰기의 방법 ① 본문을 요약하고 보충한다. ② 남은 과제나 전망을 제시한다. ③ 암시하거나 여운을 남긴다.(서사적인 글) 14. 고쳐 쓰기 1. 개념 : 일단 만들어진 초고에 첨삭을 가하고 문맥을 가다듬어, 처음 설정한 주제가 일관되면서도 명확하게 드러나는 글로 만드는 글쓰기의 마지막 과정 2. 퇴고의 원칙 (1) 삭제의 원칙 : 불필요한 부분, 지나친 부분 조심하고 과장이 심한 부분들을 삭제한다. → 표현의 긴장 효과 (2) 부가의 원칙 : 미비한 부분, 빠뜨린 부분을 첨가·보충한다. → 표현의 상세화 효과 (3) 재구성의 원칙 : 글의 순서를 바꾸어 표현의 효과를 높인다. → 논리적 완결성의 효과 3. 퇴고의 단계 : 전체의 글의 퇴고 → 단락 수준의 퇴고 → 문장수준의 퇴고 → 단어수준의 퇴고 글을 쓴다는 것   김태길   사람은 가끔 자기 스스로를 차분히 안으로 정리(整理)할 필요를 느낀다. 나는 어디까지 와 있으며, 어느 곳에 어떠한 자세(姿勢)로 서 있는가? 나는 유언 무언(有言無言)중에 나 자신 또는 남에게 약속(約束)한 바를 어느 정도까지 충실(充實)하게 실천(實踐)해 왔는가? 나는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있으며, 앞으로 어떤 길을 걸을 것인가? 이러한 물음에 대답함으로써 스스로를 안으로 정돈(整頓)할 필요를 느끼는 것이다.   안으로 자기를 정리하는 방법(方法) 가운데에서 가장 좋은 것은 반성(反省)의 자세로 글을 쓰는 일일 것이다. 마음의 바닥을 흐르는 갖가지 상념(想念)을 어떤 형식으로 거짓 없이 종이 위에 옮겨 놓은 글은, 자기 자신(自己自身)을 비추어 주는 자화상(自畵像)이다. 이 자화상은 우리가 자기의 현재(現在)를 살피고 앞으로의 자세를 가다듬는 거울이기도 하다.   글을 쓰는 것은 자기의 과거(過去)와 현재를 기록(記錄)하고 장래(將來)를 위하여 인생의 이정표(里程標)를 세우는 알뜰한 작업(作業)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기 자신의 엉클어지고 흐트러진 감정(感情)을 가라앉힘으로써 다시 고요한 자신으로 돌아오는 묘방(妙方)이기도 하다. 만일 분노(憤怒)와 슬픔과 괴로움이 있거든 그것을 중이 위에 적어 보라. 다음 순간 그 분노와 슬픔과 괴로움은 하나의 객관적(客觀的)인 사실(事實)로 떠오르고, 나는 거기서 한 발 떨어진 자리에서 그것들을 바라보는, 마음의 여유(餘裕)를 가지게 될 것이다.   안으로 자기를 정돈(整頓)하기 위하여 쓰는 글은, 쓰고 싶을 때에 쓰고 싶은 말을 쓴다. 아무도 나의 붓대의 길을 가로막거나 간섭(干涉)하지 않는다. 스스로 하고 싶은 바를 아무에게도 피해(被害)를 주지 않고 할 수 있는 일, 따라서 그것은 즐거운 작업이다.   스스로 좋아서 쓰는 글은 본래 상품(商品)이나 매명(賣名)을 위한 수단(手段)도 아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이 읽기 위한 것이요, 간혹 자기와 절친한 가까운 벗을 독자로 예상(豫想)할 경우도 없지 않으나, 본래 저속(低俗)한 이해(利害)와는 관계(關係)가 없는 풍류가(風流家)들의 예술(藝術)이다. 따라서 그것은 고상(高尙)한 취미(趣味)의 하나로 헤아려진다.   모든 진실(眞實)에는 아름다움이 있다. 스스로의 내면(內面)을 속임 없이 솔직(率直)하게 그린 글에는 사람의 심금(心琴)을 울리는 감동(感動)이 있다. 이런 글을 혼자 고요히 간직하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복된 일일까. 그러나 우리는 그것으로 만족(滿足)하지 못한다. 누구에겐가 읽히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가까운 벗에게 보인다. 벗도 칭찬(稱讚)을 한다.   “이만하면 어디다 발표(發表)해도 손색(遜色)이 없겠다.” 하고 격려하기도 한다.   세상에 욕심이 없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칭찬(稱讚)과 격려를 듣고 자기의 글을 ‘발표’하고 싶은 생각이 일지 않을 만큼 욕심이 없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래서 노트 한구석에 적었던 글을 원고 용지(原稿用紙)에 옮기고, 그것을 어느 잡지사(雜誌社)에 보내기로 용기(勇氣)를 낸다. 그것이 바로 그릇된 길로의 첫걸음이라는 것은 꿈에도 상상(想像)하지 못하면서, 활자(活字)의 매력(魅力)에 휘감기고 마는 것이다.   잡지(雜誌)나 신문(新聞)은 항상(恒常) 필자(筆者)를 구하기에 바쁘다. 한두 번 글을 발표한 사람들의 이름은 곧 기자(記者)들의 수첩에 등록(登錄)된다. 조만간(早晩間) 청탁(請託)서가 날아오고, 기자의 방문(訪問)을 받는다. 자진 투고자(自進投稿者)로부터 청탁(請託)을 받는 신분(身分)으로의 변화(變化)는 결코 불쾌(不快)한 체험(體驗)이 아니다. 감사(監謝)하는 마음으로 청탁을 수락(受諾)하고, 정성(精誠)을 다하여 원고(原稿)를 만들어 보낸다. 청탁을 받는 일이 점차(漸次)로 잦아진다.   이젠 글을 씀으로써 자아(自我)가 안으로 정돈(整頓)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밖으로 흐트러짐을 깨닫는다. 안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생각을 정열(情熱)에 못 이겨 종이 위에 기록(記錄)하는 것이 아니라, 괴지 않은 생각을 밖으로부터의 압력(壓力)에 눌려 짜낸다. 자연히 글의 질(質)이 떨어진다.   이젠 그만 써야 되겠다고 결심(決心)하지만, 그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먼 길을 내 집까지 찾아온 사람에 대한 인사(人事)를 생각하고, 내가 과거에 진 신세를 생각하며, 또는 청탁(請託)을 전문(專門)으로 삼는 기자의 말솜씨에 넘어가다 보면, '열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   쓰겠다고 한 번 말만 떨어뜨리고 나면 곧 채무자(債務者)의 위치(位置)에 서게 된다. 돈빚에 몰려 본 경험(經驗)이 있는 사람은 글빚에 몰리는 사람의 괴로운 심정(心情)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젠 글을 쓴다는 것이 즐거운 작업이나 고상한 취미(趣味)가 아니라, 하나의 고역(苦役)으로 전락(轉落)한다.   글이란, 체험(體驗)과 사색(思索)의 기록(記錄)이어야 한다. 그리고 체험과 사색에는 시간(時間)이 필요하다. 만약 글은 읽을 만한 것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면, 체험하고 사색할 시간의 여유(餘裕)를 가지도록 하라. 암탉의 배를 가르고, 생기다만 알을 꺼내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따라서 한동안 붓두껍을 덮어두는 것이 때로는 극히 필요하다. 하고 싶은 말이 안으로부터 넘쳐 흐를 때, 그 때에 비로소 붓을 들어야 한다.   일단(一旦) 붓을 들면 심혈(心血)을 기울여 써야 할 것이다. 거짓없이 성실(誠實)하게, 그리고 사실에 어긋남이 없도록 써야 한다. 잔재주를 부려서는 안 될 것이고, 조금 아는 것을 많이 아는 것처럼 속여서도 안 될 것이며, 일부(一部)의 사실을 전체(全體)의 사실처럼 과장(誇張)해서도 안될 것이다.   글이 가장 저속한 구렁으로 떨어지는 예는, 인기(人氣)를 노리고 붓대를 놀리는 경우(境遇)에서 흔히 발견(發見)된다. 자극(刺戟)을 갈망(渴望)하는 독자나 신기(神奇)한 것을 환영(歡迎)하는 독자의 심리(心理)에 영합(迎合)하는 것은 하나의 타락(墮落)임을 지나서 이미 죄악(罪惡)이다.   글 쓰는 이가 저지르기 쉬운 또 하나의 잘못은, 현학(衒學)의 허세(虛勢)로써 자신을 과시(誇示)하는 일이다. 현학적(衒學的) 표현(表現)은 사상(思想)의 유치(幼稚)함을 입증(立證)할 뿐 아니라, 사람됨의 허영(虛榮)스러움을 증명(證明)하는 것이다. 글은 반드시 여러 사람의 칭찬(稱讚)을 받을 필요는 없다. 그러나 되도록이면 여러 사람이 읽고 알 수 있는 것이 바람직하다.   글을 쓴다는 것, 그것은 즐거운 작업이어야 하며, 진실의 표명(表明)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하여 우선 필요한 것은 나의 자아(自我)를 안으로 깊고 크게 성장(成長)시키는 일이다.   김태길 : 학술원 회장 역임. 서울대 명예교수. *수필집 ≪꽃 떨어져도 봄은 그대로≫≪삶과 그 보람≫≪삶이란 무엇인가≫≪흐르지 않는 세월≫≪무심 선생과의 대화≫≪일상 속의 철학≫≪체험과 사색 Ⅰ.Ⅱ≫≪초대≫등.
134    한국현대시 100선 [모셔온 향기] 댓글:  조회:5311  추천:0  2016-03-19
한국현대시 100선     ‘해’ 하면 떠오르는 시, 그것도 ‘새해’ 하면 떠오르는 시, 현대시에서 드물게 희망으로 충만한 시, 중학교 1학년 교과서에서 읽게 되는 시가 바로 박두진의 ‘해’이다. 1946년에 발표된 이 ‘해’가, 해방을 염원하던 해든 해방의 기쁨을 담은 해든, 솟지 않는 해를 향한 촉구든 솟고 있는 해를 향한 경이든 무슨 상관이랴. 그 해가 여전히, 지금-여기에서, 이글이글 솟구치고 훨훨훨 분방하고 워어이 워어이 불러모으고 있다는 게 중요하다. 막 솟는 해처럼, 말의 되풀이는 힘차고 뜻의 개진은 꿋꿋하다. 언어가 어떻게 되풀이되고, 그 되풀이가 어떻게 노래가 되고 주술에 가까워지는가를 보여주는 시다.  ‘씻고’ ‘살라먹는’, 그 세례와 정화에 의해 날마다 생생(生生)하게 새로 뜨는 해. 그 해 아래 시를 살(生)고, 사는(生) 시를 꿈꿔 보는 새벽이다. 삶 속에서 이글이글 솟아나는 예의 그 생생지락(生生之樂)과, 시 속에서 훨훨훨 깃을 치는 시시지락(詩詩之樂)을 꿈꿔 보는 아침이다. 미움과 갈등의 시간을 버리고 강자와 약자가 워어이 워어이 더불어 상생하는 아름다운 세상을 꿈꿔 보는 새해다. 우리는 이제 달밤에 벌어진 상처, 눈물 같은 골짜기에서 일어난 죄악을 (불)살라 태우고 ‘앳된 얼굴’로 다시 태어날 것이니, 새해야 부디 ‘늬’도 그렇게 솟아라. 세상 모든 사람들이 꿈꾸는 세상의 모든 희망아, ‘늬’도 꼭 그렇게 고운 해처럼 오라. 삼백예순 날의 삶아, ‘앳되고 고운 날’들아, ‘늬’들도 꼭 그렇게만 좋아라. 백년의 백년 내내 낙희낙희(樂喜樂喜)하고 럭키럭키(lucky lucky)하게! [현대시 100편-2편]    풀 - 김수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김수영 전집 1' (민음사)       ▲ 일러스트=권신아 풀은 이 세상에서 제일로 흔하다. 풀은 자꾸자꾸 돋는다. 비를 만나면 비를 받고 눈보라가 치면 눈보라를 받는다. 한 계절에는 푸르고 무성하지만, 한 계절에는 늙고 병든 어머니처럼 야위어서 마른 빛깔 일색이다. 그러나 이 곤란 속에서도 풀은 비명이 없다. 풀은 바깥에서 오는 것들을 긍정한다.   풀은 낮은 곳에서 유독 겸손하다. 풀은 둥글게 휘고 둥글게 일어선다. 꺾임이 없는 ‘둥근 곡선’의 자세가 풀의 미덕이다. 느리지만 처음 있던 곳으로 되돌리는 이 불굴의 힘을 풀은 갖고 있다. 풀은 이변을 꿈꾸지 않는다. 제 몸이 무너지면 그 무너진 자리에서 스스로 제 몸을 일으켜 세운다. 풀은 솔직한 육필이다. 풀은 ‘발밑까지’ 누워도 발밑에서 일어선다. 바닥까지 내려가 보았으므로 풀은 이제 벼랑을 모른다.   새날이 왔다. 새날을 받고도 많은 사람들의 마음은 어제에 있다. 어제의 슬픔과 어제의 이별과 어제의 질병과 어제의 두려움 속에 있다. 그러나 어제의 곤란은 어제의 곤란으로 끝나야 한다. 열등은 어제의 열등으로 끝나야 한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내심에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다. 이것을 잘 아는 사람은 만 명의 적이 와도 무서움이 없으며 물러섬이 없을 것이다. 자존(自尊)과 자립(自立)의 에너지가 우리의 자성(自性)이다.   나아지고 있다는 믿음, 일어서고 있다는 믿음, 넓고 큰 세상으로 향해 가고 있다는 믿음, 당신을 더 사랑하게 되리라는 믿음, 우리는 이 다짐으로 새날을 살아야 한다. 눈사태를 뚫고 산정(山頂)을 찾아가는 산악인처럼.   타계한 해에 발표된 ‘풀’은 김수영(1921~1968)의 마지막 작품이고, 우리 시대 100명의 시인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시이기도 하다. 올해로 40주기를 맞은 김수영은 전위적 모더니즘으로, 4·19 혁명 이후에는 참여시(詩)로 한국 현대시의 지평을 넓혔다. 그의 시는 사람들 가슴 속에 눕고 울고 일어서며 푸르게 살아 있다.     [애송시 100편 - 제3편]  남해 금산 - 이성복     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   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 속에 들어갔네   어느 여름 비 많이 오고   그 여자 울면서 돌 속에서 떠나갔네   떠나가는 그 여자 해와 달이 끌어 주었네   남해 금산 푸른 하늘가에 나 혼자 있네   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 속에 나 혼자 잠기네     ▲ 일러스트=잠산   돌 속에 묻힌 한 여자의 사랑을 따라 한 남자가 돌 속에 들어간다면, 그들은 돌의 연인이고 돌의 사랑에 빠졌음에 틀림없다. 그 돌 속에는 불이 있고, 목마름이 있고, 소금이 있고, 무심(無心)이 있고, 산 같은 숙명이 있었을 터. 팔다리가 하나로 엉킨 그 돌의 형상을 ‘사랑의 끔찍한 포옹’이라 부를 수 있을까?   그런데, 그런데 왜, 한 여자는 울면서 돌에서 떠났을까? 어쩌자고 해와 달은 그 여자를 끌어주었을까? 남해 금산 푸른 하늘가에 한 남자를 남긴 채. 돌 속에 홀로 남은 그 남자는 푸른 바닷물 속에 잠기면서 부풀어간다. 물의 깊이로 헤아릴 길 없는 사랑의 부재를 채우며. 그러니 그 돌은 불타는 상상을 불러일으킬밖에. 그러니 그 돌은 매혹일 수밖에.   남해 금산, 돌의 사랑은 영원이다. 시간은 대과거에서 과거로 다시 현재로 넘나들고, 공간은 물과 돌의 안팎을 자유롭게 드나든다. 과거도 아니고 현재도 아닌, 안(시작)도 없고 밖(끝)도 없는 그곳에서 시인은 도달할 수 없는 사랑의 심연으로 잠기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돌이 되고 바위가 되는지 남해의 금산(錦山)에 가보면 안다. 남해 금산의 하늘가 상사암(相思巖)에 가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랑의 불길 속에서 얼굴과 얼굴을 마주한 채 돌이 되는지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돌의 고통 속에서도 요지부동으로 서로를 마주한 채 뿌리를 박고 있는지 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 속을 들여다보면 안다.   모든 사랑은 위험하지만 사랑이 없는 삶은 더욱 치명적이라는 것을, 어긋난 사랑의 피난처이자 보루가 문득 돌이 되어 가라앉기도 한다는 것을, 어쩌면 한 번은 있을 법한 사랑의 깊은 슬픔이 저토록 아름답기도 하다는 것을 나는 ‘남해 금산’에서 배웠다. 모든 문을 다 걸어 잠근, 남해 금산 돌의 풍경 속. 80년대 사랑법이었다.   80년대 시단에 파란을 일으킨 이성복의 첫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깨는가’(1980)는, 기존의 시 문법을 파괴하는 낯선 비유와 의식의 초현실적 해체를 통해 시대적 상처를 새롭게 조명했다. ‘남해 금산’은 그러한 실험적 언어가 보다 정제된 서정의 언어로 변화하는 기점에 놓인 시다.      [애송시 100편 - 제4편]  즐거운 편지 -황동규     1.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2.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 일러스트=잠산 황동규 시인은 올해로 등단 50주년을 맞는다. 반 세기 동안이나 그는 우리말을 정갈하게 빚었고 우리말의 숨결을 세세하게 보살펴 고아(高雅)하게 했다. 놀랍게도 ‘즐거운 편지’는 황동규 시인이 1958년 ‘현대문학’에 발표한 그의 데뷔작이다. 영화 ‘기쁜 우리 젊은 날’과 ‘편지’ 등에서 낭송되어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이 시에서 모티브를 얻었다는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의 원 제목도 ‘즐거운 편지’였다고 한다. 이제 이 시는 한국인의 애송시가 되었다. 만남과 이별의 회전 속도가 이처럼 빠른 시대에 이 시는 왜 여전히 사람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가. 왜 여전히 막막하게 하는가. 헤어져 돌아가던 옛사랑의 뒷모습을 보게 하는가.   하늘이 먹먹하게 어두워지고 주먹눈이 막 내리는 날이면 어디 먼 산골이나 바닷가 민박집에라도 가고 싶어진다. 작은 넝쿨에 말라붙는 붉은 열매 같은 눈빛을 하고서 눈이 내리는 그 시간을 살고 싶어진다. 눈이 그치면 순백의 설원과 설원 위를 유행(遊行)하는 바람의 노래를 듣고 싶어진다. 그리고 멀리 두고 온 사람을 ‘가까스로’ 떠올릴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적막한 시간에 나를 선택하지 않은 사랑을 떠올리는 일은 아주 사소한 일이 될 것이다.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이 될 것이다. 너무 사소하여서 손을 놓고 아무 일도 하지 못할 것이다. 너무 사소하여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그렇게 이 세상에서 잊혀진 듯 살 것이다. 폭설에 갇힌 순한 산짐승처럼 우는 일은 더더욱 없을 것이다. 그대가 나에게 마지막으로 건넨 이별의 말은 나의 가슴에서 깨끗하게 씻어낼 것이다. 겨울 하늘에 뜬 달이 천강(千江)을 비추어도 그대는 나를 생각하지 말라. 그대가 나의 사랑을 다시 받아 안는 날이 와도 내가 아직 저 산골짜기 깊은 산막에서 그대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하는 그런 아주 짧은 후일에도 그대는 나를 생각하지 말라.     [애송시 100편 - 제5편]  ‘꽃’ -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香氣)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 일러스트=권신아 김춘수 시인은 릴케와 꽃과 바다와 이중섭과 처용을 좋아했다. 시에서 역사적이고 현실적인 의미의 두께를 벗겨내려는 '무의미 시론'을 주장하기도 했다. 교과서를 비롯해 여느 시 모음집에서도 빠지지 않는 시가 '꽃'이며 사람들은 그를 '꽃의 시인'이라 부르기도 한다.   1952년에 발표된 '꽃'을 처음 읽은 건 사춘기의 꽃무늬 책받침에서였다. '그'가 '너'로 되기, '나'와 '너'로 관계 맺기, 서로에게 '무엇'이 되기, 그것이 곧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이구나 했다. 그러니까 사랑한다는 것이구나 했다. 이름을 부른다는 게 존재의 의미를 인식하는 것이며, 이름이야말로 인식의 근본 조건이라는 걸 알게 된 건 대학에 와서였다. 존재하는 것들에 꼭 맞는 이름을 붙여주는 행위가 시 쓰기에 다름 아니라는 것도.   백일 내내 핀다는 백일홍은 예외로 치자. 천 년에 한 번 핀다는 우담바라의 꽃도 논외로 치자. 꽃이 피어 있는 날을 5일쯤이라 치면, 꽃나무에게 꽃인 시간은 365일 중 고작 5일인 셈. 인간의 평균 수명을 70년으로 치면, 우리 생에서 꽃핀 기간은 단 1년? 꽃은 인생이 아름답되 짧고, 고독하기에 연대해야 한다는 걸 깨닫게 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고 그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면, 서로에게 꽃으로 피면, 서로를 껴안는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늦게 부르는 이름도 있고 빨리 부르는 이름도 있다. 내 꽃임에도 내가 부르기 전에 불려지기도 하고, 네 꽃임에도 기어코 네가 부르지 않기도 한다.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이름을 부르는 것의 운명적 호명(呼名)이여! '하나의 몸짓'에서,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는 것의 신비로움이여! 내가 본 가장 아름다운 꽃은 나를 보는 너의 눈부처 속 꽃이었으나, 내가 본 가장 무서운 꽃은 나를 등진 너의 눈부처 속 꽃이었다.   세계일화(世界一花)랬거니,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세계는 한 꽃이다. 만화방창(萬化方暢)이랬거니,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세계는 꽃 천지다. 꽃이 피기 전의 정적, 이제 곧 새로운 꽃이 필 것이다. 불러라, 꽃!        [애송시 100편 - 제6편] 서정주 '冬天(동천)'       내 마음 속 우리 님의 고은 눈썹을     지난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   동지 섣달 나르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 일러스트=잠산 겨울 밤하늘을 올려 본다. 얼음에 맨살이 달라붙듯 차갑고 이빨은 시리다. 문득 궁금해진다. 미당(未堂) 서정주 시인은 왜 한천(寒天)에 사랑의 일과 사랑의 언약과 사랑의 얼굴을 심어 두었을까. 손바닥으로 쓸어보아도 온기라고는 하나 없는 그곳에 왜 하필 사랑을 심어 두었을까. 매서운 새조차 '비끼어 가'는 사랑의 결기를 심어 두었을까.   생심(生心)에 대해 문득 생각해본다. 처음으로 마음이 생겨나는 순간을 생각해본다. 무구한 처음을, 손이 타지 않아서 때가 묻지 않은 처음을. 부패와 작파가 없는 처음을. 신성한 처음을. 미당이 한천을 염두에 둔 것은 처음의 사랑과 처음의 연민과 처음의 대비와 처음의 그 생심이 지속되기를 바랐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심어 놨'다고 한 까닭도 생심 때문이 아니었을까. 심는다는 것은 생육(生育)한다는 것 아닌가. 여리디 여린 것, 겨우 자리 잡은 것, 막 숨결을 얻은 것, 젖니 같은 것 이런 것이 말하자면 처음이요, 생양해야 할 것들 아닌가. 미당은 초승달이 점점 충만한 빛으로 나아가듯 처음의 사랑 또한 지속되고 원만해지기를 기도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미당의 시에는 생명 없는 것을 생장시키는 독특한 영기(靈氣)가 서려 있다. 그는 시 '첫사랑의 詩'에서 '초등학교 3학년때 / 나는 열두살이었는데요. / 우리 이쁜 여선생님을 / 너무나 좋아해서요. / 손톱도 그분같이 늘 깨끗이 깎고, / 공부도 첫째를 노려서 하고, / 그러면서 산에가선 산돌을 줏어다가 / 국화밭에 놓아 두곤 / 날마다 물을 주어 길렀어요.'라고 하지 않았던가. 산돌을 주워 와서 물을 주어 길렀듯이 이 시에서도 미당은 '고은 눈썹'을 생장시키는 재기를 보여준다.   미당의 시에는 유계(幽界)가 있다. 그는 '무슨 꽃으로 문지르는 가슴이기에 나는 이리도 살고 싶은가'라며 황홀을 노래했지만 그는 우주의 생명을 수류(水流)와 같은 것으로 보았다. 흘러가되 윤회하는 것으로 보았다. 이 운행에서 그는 목숨 받은 이들의 만나고 헤어지는 일을 노래했다. 목숨 없는 것에는 목숨의 숨결을 불어 넣었다. 미당의 시의 최심(最深)은 삶 너머의 이승 이전의 유계를 돌보는 시심에 있다. 이 광대한 요량으로 그는 현대시사에수많은 활구(活句)를 낳았다.      [애송시 100편 - 제7편] 사평역(沙平驛)에서 - 곽재구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을 호명하며 나는   한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일러스트=권신아  조그만 간이역에 눈은 푹푹 내려 쌓이고, 푹푹 내려 쌓이는 눈 때문에 막차는 오지 않는다. 사람들은 대합실에서 오지 않는 막차를 기다리고 있다. 부려둔 보따리나 꾸러미에 기대 누군가는 졸고, 누군가는 담배를 피우고, 누군가는 웅크린 채 쿨럭이기도 한다. 털모자에 잠바를 입은 사내는 간간이 난로에 톱밥을 던져 넣으며 깊은 생각에 빠져 있다. 난로 위 주전자는 그렁그렁 끓는 소리를 내며 수증기를 내뿜고, 시계는 자정을 넘어서고….   시대적 아픔을 서정적으로 그려냈다고 평가되는 곽재구 시인의 데뷔작 '사평역에서'(1981)를 읽을 때마다 나는 울컥한다. 아름다우면서 서럽고, 힘들지만 따뜻했던 그때 그 시절의 풍경을 소중한 흑백사진처럼 남기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에는 지난 시절의 희망과 절망이 눈보라로 흩날리고 있다, 모래처럼 톱밥처럼. 그 울컥함이 소설(임철우 '사평역에서'), 드라마(TV문학관 '사평역', '길 위의 날들'), 노래(김현성 '사평역에서')로 장르를 달리하며 독자들의 공감을 얻게 했으리라.   이십대에 쓴 시답게 감각과 묘사가 풋풋하다. 깜깜한 유리창에 쌓였다 녹는 눈송이들은 흰 보라 수수꽃(라일락꽃)빛이다. 사람들이 그믐처럼 졸고 있다는 표현은 절묘하다. 확 타올랐다 사그라지는 난로 속 불빛은 톱밥을 던져 넣는 청색의 손바닥과 대조를 이룬다. 간헐적으로 내뱉는 기침 소리는 '눈꽃의 화음'을 강조하고, 뿌옇게 피어올랐다 사라지는 담배 연기는 회억(回憶)처럼 떠올랐다 가라앉곤 한다.   한줌의 톱밥을 던지는 '나'는 무슨 사연을 간직한 걸까? 기다리는 막차는 올까? 모든 역들은 어디론가 흘러가기 위한 지나감이고 경계이다. 하여 모든 역들이 고향을 꿈꾸는 것이리라. 사평은 나주 근처에 있는 조그만 마을이다. 그 사평에 사평역이 없다니, 그토록 울컥하게 했던 사평역이 어디에도 없다니, 그래서 더욱 우리를 울컥하게 하는 것이겠지만.      [애송시 100편 - 제8편] 묵화 (墨畵) - 김 종 삼                       물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일러스터=잠산 김종삼(1921~1984) 시인의 시는 짧다. 짧고 군살이 없다. 그의 시는 여백을 충분히 사용해 언어가 잔상을 갖도록 배려했다. 그리고 아주 담담하다. 언어를 우겨넣거나 막무가내로 끌고 다닌 흔적이 없다. 사물과 세계를 대면하되 사물과 세계의 목소리를 나직하게 들려준다. 그의 시를 읽고 있으면 물안개가 막 걷히는 새벽 못을 보고 있는 듯하다. 그의 시를 읽고 있으면 작은 여울에 누군가가 정성스레 놓아 둔 몇 개의 징검돌을 보고 있는 것 같다.   '묵화(墨畵)'의 목소리도 자분자분하다. 하루의 노동을 끝내고 막 돌아와 쌀 씻은 쌀뜨물을 먹고 있는 소를 보여준다. 그의 시선은 소의 목덜미에 가 있다. 하루 종일 써레나 쟁기를 끌었을, 멍에가 얹혀 있었을 그 목덜미를 보여준다. 목덜미에는 굳은살이 박였을 것이다. 그리곤 소의 목덜미와 할머니의 손을 교차시킨다. 할머니도 노동을 마치고 돌아와 소와 함께 날이 저무는 저녁을 맞고 있다. 할머니는 겹주름처럼 고랑이 나 있는 밭에 쪼그려 앉아 풀을 뽑고 돌을 캐내고 종일 호미질을 했을 것이다. 시인의 시선은 소와 할머니의 부은 발잔등으로 옮아간다. 부은 발잔등을 보여줄 뿐이지만, 우리는 소와 할머니의 하루가 얼마나 고단했을지 짐작할 수 있다.   시인이 눈여겨본 대목은 소와 할머니의 관계일 것이다. 소는 할머니를, 할머니는 소를 마주하고 있다. 이 둘 사이에 조용하고 평화롭고 안쓰러운 대화와 유대가 오가고 있다. 낮의 소란과 밤의 정적이 합수(合水)하는 성스러운 시간에 마치 삶이란 본래 비곤하고 외롭고 쓸쓸한 것이라는 듯 소와 할머니는 잠시 멈춰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그리하여 이 둘의 '서로 돌봄'은 훈훈하면서도 슬프다. (우리는 얼마나 이 '쓸쓸한 돌봄'을 자주 잊고 사는가) 이 시를 다 읽고 나면 우리는 얼굴 가득 흐뭇하게 피어나던 웃음이 천천히 묽어지는 감정의 변화를 겪게 된다. 본래 삶이란 웃음과 슬픔으로 꿰맨 두 겹의 옷감이라는 듯.   김종삼 시인은 등산모를 곧잘 썼고 파이프 담배를 자주 물었고 술을 좋아했고 고전음악을 즐겨 들었다. 그에게 삶은 '방대한 / 공해 속을 걷는' 일처럼 여겨졌다. 그는 '하늘나라 다가올 때마다 /맑은 물가 다가올 때마다 /라산스카 /나 지은 죄 많아 /죽어서도 /영혼이 /없으리'라며 인간의 원죄를, 불구의 영혼을 아프게 노래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순하고 명랑하고 맘 좋고 인정이 있는' 사람들과 세상을 좋아하고 동경했다. 그의 시는 말이 적었지만 정직했다. 언어의 낭비가 많고 외화(外華)에 골몰하는 시대를 살수록 언어를 지극히 아껴 쓴, 먹그림같이 실박하게 살다 간 김종삼 시인이 그립다.     [애송시 100편- 제9편] 한 잎의 여자 - 오규원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한 잎같이 쬐그만 여자,   그 한 잎의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그 한 잎의 솜털, 그 한 잎의 맑음, 그 한 잎의 영혼, 그 한 잎의 눈, 그리고 바람이 불면 보일 듯 보일 듯한 그 한 잎의 순결과 자유를 사랑했네.       정말로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네. 여자만을 가진 여자, 여자 아닌 것은 아무것도 안 가진 여자, 여자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여자, 눈물 같은 여자, 슬픔 같은 여자, 병신(病身) 같은 여자, 시집(詩集) 같은 여자, 그러나 영원히 가질 수 없는 여자, 그래서 불행한 여자.       그러나 영원히 나 혼자 가지는 여자, 물푸레나무 그림자 같은 슬픈 여자.       ▲ 일러스트=권신아 오규원(1941~2007) 시인은, 보통 사람이 호흡하는 산소의 20%밖에 호흡하지 못하는 '만성폐쇄성폐질환'을 앓다 작년 겨울에 타계했다. 임종 직전 "한적한 오후다/ 불타는 오후다/ 더 잃을 것이 없는 오후다/ 나는 나무 속에서 자본다"라는 마지막 문장을 손가락으로 제자 손바닥에 써서 남겼다.   나는 이 시를 대학교 1학년 때의 여름, 한 남학생이 보낸 대학학보의 주소 띠지 속에서 처음 읽었다. 얼마나 많은 남자들이 얼마나 많은 여자에게 이 시를 옮겨 나르곤 했던가. 이 시는 시집 '왕자가 아닌 한 아이에게'(1978)에 실린 작품이다. 그러나 시집 '사랑의 감옥'(1991)에 3편의 연작시 중 1편으로 다시 실렸다. '언어는 추억에 걸려 있는 18세기형 모자'라는 부제가 첨가되었고, 2연의 끝 '영원히 가질 수 없는 여자'와 3연의 '영원히 나 혼자 가지는 여자'가 바뀌었다. 부제를 첨가하여 '여자'는 '언어'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는 것을, '영원히 가질 수 없는 여자'를 뒤로 배치하여 여자나 언어 모두 소유할 수 없는 존재임을 강조하였다.   나무껍질을 벗겨 물에 담그면 물빛이 푸르스름해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물푸레, 이 시 덕분에 물푸레나무와 그 잎이 보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커다란 나무에 비해 여릿하고 포릇하고 정말 '쬐그만' 둥근 잎이었다. 천생 '여자'를 닮은, 이를테면 눈물 하면 떠오르는 글썽임이라든가, 슬픔 하면 떠오르는 비릿함이라든가. 병신 하면 떠오르는 어리숙함이라든가, 시집 하면 떠오르는 아련함이라든가….   그런 '여자'를 반복해 나열하면 할수록, 묘사하면 할수록 '여자'의 실체는 사라지고 '여자'는 신비의 옷을 입는다. 세상의 절반이 여자다. 물푸레나무에 달린 '쬐그만' 잎처럼 하고많은 여자와 '여자'라는 보통명사를 이토록 입에 척척 달라붙도록, 혀에 휘휘 휘감기도록 구체화시켜 놓고 있다니!   여자는 남자의 '여자'다. 남자의 엄마이고 누이이고 애인이고 아내이고 딸이다. 남자의 과거이고 미래이다. 남자의 부재이자 심연이고, 선물이자 폭력이다. 그러니 시작이고 끝이다. 그런 여자를 어찌 정의할 수 있으랴. 모두 가지지만 결코 가질 수 없는 그런 한 '여자'를 누가 가졌다 하는가.     [애송시100편-제10편]사슴- 노천명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   관이 향기로운 너는   무척 높은 족속이었나 보다   물속의 제 그림자를 들여다보고   잃었던 전설을 생각해내곤   어찌할 수 없는 향수에   슬픈 모가지를 하고 먼데 산을 쳐다본다       애송시 100편-제11편] 대설주의보 - 최 승 호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산들, 제설차 한 대 올 리 없는 깊은 백색의 골짜기를 메우며 굵은 눈발은 휘몰아치고, 쬐그마한 숯덩이만한 게 짧은 날개를 파닥이며… 굴뚝새가 눈보라 속으로 날아간다.   길 잃은 등산객들 있을 듯 외딴 두메마을 길 끊어놓을 듯 은하수가 펑펑 쏟아져 날아오듯 덤벼드는 눈, 다투어 몰려오는 힘찬 눈보라의 군단, 눈보라가 내리는 백색의 계엄령.       쬐그마한 숯덩이만한 게 짧은 날개를 파닥이며… 날아온다 꺼칠한 굴뚝새가 서둘러 뒷간에 몸을 감춘다. 그 어디에 부리부리한 솔개라도 도사리고 있다는 것일까.   길 잃고 굶주리는 산짐승들 있을 듯 눈더미의 무게로 소나무 가지들이 부러질 듯 다투어 몰려오는 힘찬 눈보라의 군단, 때죽나무와 때 끓이는 외딴집 굴뚝에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산과 골짜기에 눈보라가 내리는 백색의 계엄령.          ▲ 일러스트=권신아   눈은 어떻게 내리는가. 어디서 오는가. 어디로 사라지는가. 머언 곳에서 여인의 옷 벗는 소리로 내리는 김광균의 눈이 있는가 하면, 쌀랑쌀랑 푹푹 날리는 백석의 눈이 있다. 기침을 하자며 촉구하는 김수영의 살아있는 눈도 있고, 희다고만 할 수 없는 김춘수의 검은 눈도 있다. 괜, 찮, 타, 괜, 찮, 타, 내리는 서정주의 눈도 있고, 갑작스런 눈물처럼 내리는 기형도의 진눈깨비도 있다.   그리고 여기 '백색계엄령'처럼 내리는 최승호(54) 시인의 눈이 있다. 1980년대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이념의 시대였고 폭압의 시대였다. 그는 '상황 판단'이라는 시에서 '굵직한/ 의무의/ 간섭의/ 통제의/ 밧줄에 끌려다니는 무거운 발걸음./ 기차가 언제 들어닥칠지 모르는/ 터널 속처럼 불안한 시대'라고 일컬었다. 그의 시는 선명하고 섬뜩하게 '그려진다'. '관(觀)'과 '찰(察)'을 시 정신의 두 기둥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시대와 현실을 '보면서 드러내고', 자본주의와 도시문명을 '살피면서 사유한다'.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산골짜기에 눈은, 굵게 힘차게 그치지 않을 듯 다투어 몰려온다. 눈보라의 군단이다. 도시와 거리에는 투석이 날리고 총성이 울렸으리라. 눈은 비명과 함성을 빨아들이고 침묵을 선포했으리라. 백색의 계엄령이다. 쉴 새 없이 내림으로써 은폐하는 백색의 폭력, 어떠한 색도 허용하지 않는 백색의 공포! 그 '백색의 감옥'에는 숯덩이처럼 까맣게 탄 '꺼칠한 굴뚝새'가 있고, 굴뚝새를 덮쳐버릴 듯 '눈보라 군단'이 몰려오고, 그 군단 뒤로는 '부리부리한 솔개'가 도사리고 있다. 분쟁과 투쟁, 공권력 투입, 계엄령으로 점철됐던 시대 상황에 대한 알레고리이기도 하다.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골짜기에 굵은 눈발이 휘몰아칠 때 그 눈발을 향해 날아가는 굴뚝새가 있었던가. 덤벼드는 눈발에 짧은 날개를 파닥이며 서둘러 뒷간에 몸을 감췄던가. 꺼칠한 굴뚝새의 영혼아, 살아있다면 작지만 아름다운 네 노랫소리를 들려다오! 다시 날 수 있다면 짧지만 따뜻한 네 날개를 펼쳐 보여다오!      [애송시 100편-제12편] 저녁눈 - 박 용 래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말집 호롱불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조랑말 발굽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여물 써는 소리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변두리 빈터만 다니며 붐비다.     ▲ 일러스트=잠산    박용래(1925~1980) 시인은 과작의 시인이었다. 그는 우리말을 한 땀 한 땀 정성스럽게 기워 시를 써냈다. 그의 시는 가난한 것과 세상이 거들떠보지 않는 작고 하찮은 것들을 세필(細筆)로 세세하게 그려내고 돌보았다.   '저녁눈'을 읽으면 허름한 말집(추녀를 사방으로 삥 두른 집)에 앉아 '탁배기'를 한 잔 하고 있는 박용래 시인이 보이는 듯하다. 말집에는 마차꾼과 지게꾼이 흥성흥성하고, 먼 길을 터벅터벅 걸어온 나귀와 노새가 급한 숨을 내쉬느라 투루루 투레질을 하고, 누군가는 구유에 내놓을 여물을 써느라 작두질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해는 떨어지고 추운 밤은 오는데 눈발은 삭풍에 내려앉을 곳을 찾지 못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호롱불 불빛을 받으며 떠도는 눈발을, 조랑말의 정처 없는 걸음처럼 난분분한 눈발을, 여물 써는 소리처럼 내리는 눈발을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이 시에서 '붐비다'라고 써서 목탄화처럼 평면적인 풍경에 동선(動線)을 끌어넣는가 하면, 한 곳 한 곳 짚어가던 시선을 들어 올려 퀭한 빈터로 옮김으로써 시의 공간을 일순에 넓게 확장하는 재주를 선보이고 있다.   그는 물러나 앉아 늦은 저녁 눈발 내리는 그 풍경을 하나의 '공터'로 읽었을 것이다. 마차꾼과 지게꾼의 떠도는 삶과 내일이면 또 먼 길을 떠나야 하는 그네들의 노심초사와 나귀와 노새의 공복(空腹)을 읽었을 것이다.   박용래 시인은 술판에서 엉엉 잘 울던 마음 여린 시인이었다. 천진하게 잘 울어 '눈물의 시인'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박용래 시인과 절친했던 소설가 이문구는 '박용래 약전(略傳)'이라는 글에서 박용래 시인의 잦은 눈물에 대해 이렇게 썼다.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언제나 그의 눈물을 불렀다. 갸륵한 것, 어여쁜 것, 소박한 것, 조촐한 것, 조용한 것, 알뜰한 것, 인간의 손을 안 탄 것, 문명의 때가 아니 묻은 것, 임자가 없는 것, 아무렇게나 버려진 것, 갓 태어난 것, 저절로 묵은 것…. 그는 누리의 온갖 생령(生靈)에서 천체의 흔적에 이르도록 사랑하지 않은 것이 없었으며, 사랑스러운 것들을 만날 적마다 눈시울을 붉히지 않은 때가 없었다."   박용래 시인이 생전에 살았던 대전시 오류동 17번지의 15호를 찾아가면 "감새/ 감꽃 속에 살아라"라고 노래했던 선한 그가 "윤회 끝/ 이제는 돌아와" 다시 살고 있을까     [애송시 100편- 제13편] 빈집 - 기 형 도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 일러스트=권신아 기형도(1962~1989) 시인의 마지막 시다. 1989년 봄호 문예지에서 이 시를 읽었는데 일주일 후에 그의 부음을 접했다. 이제 막 개화하려는 스물 아홉의 나이에, 삼류 심야극장의 후미진 객석에서 홀로 맞아야 했던 그의 죽음에 이 시가 없었다면 그의 죽음은 얼마나 어처구니없고 초라했을 것인가.   어릴 적부터 살던 집에서 이사를 계획하고 쓰여졌다는 후일담도 있지만 이 시는 사랑의 상실을 노래하고 있다. 사랑으로 인해 밤은 짧았고, 짧았던 밤 내내 겨울 안개처럼 창 밖을 떠돌기도 하고 촛불 아래 흰 종이를 펼쳐놓은 채 망설이고 망설였으리라. 그 사랑을 잃었을 때 그 모든 것들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이 되었으리라. 실은 그 모든 것들이 사랑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사랑을 떠나보낸 집은 집이 아니다. 빈집이고 빈 몸이고 빈 마음이다. 잠그는 방향이 모호하기는 하지만 '문을 잠근다'는 것은, '내 사랑'으로 지칭되는 소중한 것들을 가둔다는 것이고 그 행위는 스스로에 대한 잠금이자 감금일 것이다. 사랑의 열망이 떠나버린 '나'는 '빈집'에 다름 아니고 그 빈집이 관(棺)을 연상시키는 까닭이다. 삶에 대한 지독한 열망이 사랑이기에, 사랑의 상실은 죽음을 환기하게 되는 것일까.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라고 나직이 되뇌며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을 하나씩 불러낸 후 그것들을 떠나보낼 때, 부름의 언어로 발설되었던 그 실연(失戀)의 언어는 시인의 너무 이른 죽음으로 실연(實演)되었던가. 죽기 일주일 전쯤 "나는 뇌졸중으로 죽을지도 몰라"라고 말했다던 그의 사인은 실제로 뇌졸중으로 추정되었다. "나의 영혼은 검은 페이지가 대부분"('오래된 서적')이라 했던 그가, 애써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정거장에서의 충고')라고 스스로를 다독이기도 했건만.   그가 소설가 성석제와 듀엣으로 불렀던 팝송 'Perhaps Love'를 들은 적이 있다. 플라시도 도밍고의 맑은 고음이 그의 몫이었다. "Perhaps, love is like a resting place…"로 시작하던 화려하면서 청량했던 그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질투는 나의 힘')라는 그의 독백도.          [애송시 100편-제14편] 한계령을 위한 연가  - 문 정 희     한겨울 못 잊을 사람하고 한계령쯤을 넘다가 뜻밖의 폭설을 만나고 싶다. 뉴스는 다투어 수십 년 만의 풍요를 알리고 자동차들은 뒤뚱거리며 제 구멍들을 찾아가느라 법석이지만 한계령의 한계에 못 이긴 척 기꺼이 묶였으면.     오오, 눈부신 고립 사방이 온통 흰 것뿐인 동화의 나라에 발이 아니라 운명이 묶였으면.     이윽고 날이 어두워지면 풍요는 조금씩 공포로 변하고, 현실은 두려움의 색채를 드리우기 시작하지만 헬리콥터가 나타났을 때에도 나는 결코 손을 흔들지는 않으리. 헬리콥터가 눈 속에 갇힌 야생조들과 짐승들을 위해 골고루 먹이를 뿌릴 때에도…     시퍼렇게 살아 있는 젊은 심장을 향해 까아만 포탄을 뿌려대던 헬리콥터들이 고라니나 꿩들의 일용할 양식을 위해 자비롭게 골고루 먹이를 뿌릴 때에도 나는 결코 옷자락을 보이지 않으리.     아름다운 한계령에 기꺼이 묶여 난생 처음 짧은 축복에 몸둘 바를 모르리.         ▲ 일러스트=잠산 이 겨울에 사랑이 찾아온 연인들에게 이 시를 읽어보라고 권한다. 우선 어렵지가 않다. 쉽고, 리듬이 있어 흐르는 물처럼 출렁출렁한다. 이야기도 있다. 그런데 눈이 쌓여 무게가 생기듯이 어느 순간 이 시는 우리들의 가슴께를 누르며 묵직하게 쌓이기 시작한다. 한 편의 시를 읽는 경험에도 '뜻밖의 폭설'은 내린다. 폭설이 내려 우리는 압도되어 이 시 안에 고립된다.   큰 고개를 넘으면서 느닷없는 폭설을 만나고 싶다는 말은 사실 좀 도발적이다. 우리는 그 불편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인은 '못 잊을 사람하고' 폭설에 갇히고 싶다고 말한다. 폭설에 갇히는 것이 고립의 공포로 엄습해오더라도. 사실 사랑만이 실용적인 것을 모른다. 사랑은 당장의 불편을 모른다.   모든 사랑은 고립의 추억을 갖고 있다. 서랍 깊숙이 넣어둔 연애편지가 있거든 꺼내서 다시 읽어보라. 연애편지는 고립의 기억, 고립의 문장 아닌가. 둘만의 황홀한 고립. 그러니 사랑에게 고립은 고립이 아니다. 우리는 사랑을 지속시키는 한 기꺼이 고립을 선택할 것이다. 그것이 후일에는 우리의 몸과 마음을 무너뜨리더라도. 그것이 모든 길을 끊어 놓더라도. 사랑은 은밀하고, 은밀해서 환하다.   문정희(61) 시인은 여고 시절부터 전국의 백일장을 휩쓸었다. 백일장 당선시들을 모아서 여고 3학년 때 첫 시집을 냈다. 타고난 재기를 미쁘게 본 미당 서정주 시인이 시집의 서문을 썼고, '꽃숨'이라는 시집 제목도 달아주었다. 그녀는 여성의 지위와 몸을 관습이라는 이름으로 가두려는 것들을 거부하면서 한국시사에서 '여성'을 당당하게 발언해왔다. 그러면서 여성 특유의 감수성으로 사랑의 가치를 활달하고 솔직하게 표현해왔다. '한 사람이 떠났는데/ 서울이 텅 비었다'라는 그녀의 문장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사랑은 미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활동이다. 톨스토이가 말한 대로 "아무도 사랑하지 않고 있어보라. 사랑은 소멸하고 말 것이다."        [애송시 100편-제15편] 목마와 숙녀 -  박 인 환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거저 방울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숴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 등대(燈臺)에 …… 불이 보이지 않아도 거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거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 개의 바위 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 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거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 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 바람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 일러스트=권신아 시냇물 같은 목소리로 낭송했던 가수 박인희의 '목마와 숙녀'를 옮겨 적던 소녀는 이제 중년의 '여류' 시인이 되었다. '등대로(To the lighthouse)'를 쓴 버지니아 울프는 세계대전 한가운데서 주머니에 돌을 가득 넣고 템스강에 뛰어들었다. '추행과 폭력이 없는 세상, 성 차별이 없는 세상에 대한 꿈을 간직하며'라는 유서를 남긴 채. '목마와 숙녀'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페시미즘의 미래'라는 시어가 대변하듯 6·25전쟁 이후의 황폐한 삶에 대한 절망과 허무를 드러내고 있다.   수려한 외모로 명동 백작, 댄디 보이라 불렸던 박인환(1926~1956) 시인은 모더니즘과 조니 워커와 럭키 스트라이크를 좋아했다. 그는 이 시를 발표하고 5개월 후 세상을 떴다. 시인 이상을 추모하며 연일 계속했던 과음이 원인이었다. 이 시도 어쩐지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일필휘지로 쓴 듯하다. 목마를 타던 어린 소녀가 숙녀가 되고, 목마는 숙녀를 버리고 방울 소리만 남긴 채 사라져버리고, 소녀는 그 방울 소리를 추억하는 늙은 여류 작가가 되고…. 냉혹하게 '가고 오는' 세월이고,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로 요약되는 서사다.   우리는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생명수를 달라며 요절했던 박인환의 생애와, 시냇물처럼 흘러가버린 박인희의 목소리와, 이미 죽은 그를 향해 "나는 인환을 가장 경멸한 사람의 한 사람이었다"고 쓸 수밖에 없었던 김수영의 애증을 이야기해야 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인 것을, 우리의 시가 조금은 감상적이고 통속적인들 어떠랴. 목마든 문학이든 인생이든 사랑의 진리든, 그 모든 것들이 떠나든 죽든,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바람에 쓰러지는 술병을 바라다보아야 하는 것이 우리 삶의 전모라면, 그렇게 외롭게 죽어 가는 것이 우리의 미래라면.       [애송시 100편-제16편] 우리가 물이 되어 - 강은교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우리가 키큰 나무와 함께 서서 우르르 우르르 비오는 소리로 흐른다면. 흐르고 흘러서 저물녘엔 저혼자 깊어지는 강물에 누워 죽은 나무뿌리를 적시기도 한다면. 아아, 아직 처녀(處女)인 부끄러운 바다에 닿는다면. 그러나 지금 우리는 불로 만나려 한다. 벌써 숯이 된 뼈 하나가 세상의 불타는 것들을 쓰다듬고 있나니. 만리(萬里)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여 저 불 지난 뒤에 흐르는 물로 만나자. 푸시시 푸시시 불꺼지는 소리로 말하면서 올 때는 인적(人跡) 그친 넓고 깨끗한 하늘로 오라.     ◆ 일러스트=잠산 물은 선하다. 물은 그 자체로 흐르는 모습이다. 흐르는 에너지이다. 물은 작은 샘에서 솟고, 뿌리에게 스미고, 하나의 의지로 뭉쳐 흐르고, 환희로 넘치고, 작별하듯 하늘로 증발하고, 우수가 되어 떨어져 내리고, 다시 신생의 생명으로 돌아와 이 세계를 흐른다.   우리가 태어나고 사귀고 웃고 슬프고 울고 아득히 사라질 때에도 물은 우리보다 먼저 이 세계에 왔으며 우리보다 먼저 사라졌으며 우리보다 먼저 다시 태어났으니, 유한한 우리에게 물은 한 번도 태어난 적이 없고 한 번도 사라진 적이 없다. 물은 불과 흙과 공기와 더불어 이 세계가 온존하는 한 온존할 것이다. 해서 물은 모든 탄생과 소멸을 완성하며, 그 자체로 소생하고 순환하는 생명이다.   이 시를 읽을 때면 '선한 물'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불이 어떤 부정과 대립이라면 물은 그마저도 끌어안는 어떤 관용. 물은 사랑. 자주 침묵하지만 한 번도 사랑을 잊은 적이 없는 마음 큰 이. 우리도 서로에게 물이 되어 서로의 목숨 속을 흐를 수 없을까. 우리는 그렇게 만날 수 없을까. 물과 같고 대지와도 같은 침묵의 큰 사랑일 수 없을까.   강은교(62) 시인이 '사랑法'이라는 시에서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고/ 그리고도 남는 시간은/ 침묵할 것// 또는 꽃에 대하여/ 또는 하늘에 대하여/ 또는 무덤에 대하여// 서둘지 말 것/ 침묵할 것.//(중략)//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 뒤에 있다.'라고 노래했듯이.   강은교 시인은 1968년에 등단해 올해로 등단 40주년을 맞았다. 초기에 발표한 시들이 강한 허무 의식을 드러냈기 때문에 그녀를 '허무의 시인'이라고 부르기도 했지만, 그녀의 시는 민중적인 서정에도 가 닿고, 사소하고 하찮은 생명들을 끌어안기도 하는 등 아주 큰 스펙트럼을 보여주었다. 나는 어느 해엔가 그녀가 시의 낭송과 울림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 속 질병과 상처를 치료하는 '시 치료' 공연을 하는 것을 감명 깊게 본 적이 있다. 그때에도 지금에도 강은교 시인은 이 세계의 순례자로서 이 세계의 구원을 위해 생명수를 구해오는 바리데기의 현신이다.      [애송시 100편-제17편] 별들은 따뜻하다 -  정호승                           하늘에는 눈이 있다   두려워할 것은 없다 캄캄한 겨울   눈 내린 보리밭길을 걸어가다가   새벽이 지나지 않고 밤이 올 때   내 가난의 하늘 위로 떠오른   별들은 따뜻하다       나에게   진리의 때는 이미 늦었으나   내가 용서라고 부르던 것들은   모든 거짓이었으나   북풍이 지나간 새벽거리를 걸으며   새벽이 지나지 않고 또 밤이 올 때   내 죽음의 하늘 위로 떠오른   별들은 따뜻하다     ▲ 일러스트=권신아정호승(58)시인만큼 노래가 된 시편들을 많이 가진 시인도 드물다. 안치환이 부른 '우리가 어느 별에서'를 비롯해 28편 이상이다. 그의 시편들이 민중 혹은 대중의 감성을 일깨우는 따뜻한 서정으로 충만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따뜻한 슬픔'으로 세상을 '포옹'하는 그의 시편들을 읽노라면 좋은 서정시 한 편이 우리를 얼마나 맑게 정화시키고 깊게 위로할 수 있는지를 새삼 깨닫곤 한다.   그는 별의 시인이다. 그것도 새벽 별의 시인이다. 별이란 단어를 그보다 더 많이 쓴 시인이 또 있을까. 그가 바라보는 별에는 피가 묻어 있기도 하고 새들이 날기도 한다. 그의 별은 강물 위에 몸을 던지기도 하고, 그 또한 별에 죽음의 편지를 쓰기도 한다. 어쨌든 그런 별들도 어둠 없이는 바라볼 수 없으며, 밤을 통과하지 않고는 새벽 별을 맞이할 수 없다.   이 시는 '하늘에는 눈이 있다'라는 단언으로 시작한다. 눈은 '보리밭길'을 덮는 눈(雪)이기도 하고 '진리의 때'를 지키는 눈(眼)이기도 할 것이다. 눈 내린 보리밭길에 밤이 왔으니 '캄캄한 겨울'이겠다. 겨울의 캄캄하고 배고픈 밤은 길기도 길겠다. '가난의 하늘'이니 더욱 그러하겠다. 진리의 때가 늦고 용서가 거짓이 될 때, 북풍이 새벽거리에 몰아치고 새벽이 다시 밤으로 이어질 때 그 하늘은 '죽음의 하늘'이겠다. 그런데 그런 하늘 위로 떠오른 별들은 얼마나 아름다울 것인가. 얼마나 따뜻할 것인가.   우리 생의 팔할은 두려움과 가난과 거짓으로 점철된 어둠의 시간이다. 눈물과 탄식과 비명이 떨어진 자리에 피어나는 꽃, 그것이 바로 별이 아닐까. '슬픔을 기다리며 사는 사람들의/ 새벽은 언제나 별들로 가득한('슬픔을 위하여')' 법이다. 어두운 현실에서 희망을 놓지 않으려는 시인의 의지가 '별'을 바라보게 하는 것이리라. 그래서인지 그의 시는 가장 낮은 곳에서 밝다.   눈 내리는 보리밭길에 흰 첫 별이 뜰 때부터 북풍이 지나간 새벽 거리에 푸른 마지막 별이 질 때까지 총총한 저 별들에 길을 물으며 캄캄한 겨울을 통과하리라. 그 별들의 반짝임과 온기야말로 우리를 신(神)에 혹은 시(詩)에 가까이 가게 만드는 것이리라.        [애송시 100편-제18편] 님의 침묵 - 한용운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야 난 적은 길을 걸어서 참어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든 옛 맹서는 차디찬 띠끌이 되야서, 한숨의 미풍에 날어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쓰'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指針)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러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골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얏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 일러스트 = 잠산만해(萬海) 한용운(1879~1944)은 식민지 시대를 살다 간 혁명가요, 시인이요, 수행자였다. '님의 침묵'은 1926년에 펴낸 그의 유일한 시집 '님의 침묵'의 표제시이자 서시이다. 이 시는 님과의 이별과 이별의 슬픔을 재회(再會)로 역동적으로 바꿔놓는다. 이런 극적 구성은 불교 특유의 유심적 상상력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마음의 중심을 돌이키는 것으로써 만해는 있음과 없음, 좋음과 그렇지 못한 것, 가능한 것과 가능하지 않은 것, 만남과 이별의 경계를 무너뜨렸다. 아마도 만해의 시를 올연히 뛰어나게 하는 힘은 한쪽 극단으로 치우치려는 마음의 편당(偏黨)과 굴복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한 그의 수행자적 기풍에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역설의 화법이 생겨났을 것이다.   만해는 시집의 맨 앞에 놓인 '군말'에서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다. 중생이 석가의 님이라면, 철학은 칸트의 님이다. 장미화(薔薇花)의 님이 봄비라면 마시니의 님은 이태리다. 님은 내가 사랑할 뿐 아니라 나를 사랑하나니라. 연애가 자유라면 님도 자유일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이름 좋은 자유에 알뜰한 구속을 받지 않느냐"라고 썼다. 만해는 님을 절대적인 추앙의 대상으로만 보지 않았고, 님과 나의 관계를 적극적이고도 능동적으로 해석했다. 만해는 내 안에서 님을 발견하고 완성하고자 한 실천가였다.   조선의 땅덩어리가 하나의 감옥인데 어떻게 불 땐 방에서 편히 살겠느냐며 만해는 냉골의 거처에서 꼿꼿하게 앉아 지냈다. 해서 '저울추'라는 별명이 따라다녔다. 돌집(조선총독부)이 마주 보이는 쪽으로 당신의 집을 지을 수 없다며 심우장을 북향으로 지었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만해는 깨달음을 얻은 후 오도송에서 "사나이 이르는 곳 어디나 고향인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그네의 수심에 잠겼던가. 한마디 소리쳐 우주를 설파하니 눈 속의 복숭아꽃 붉게 붉게 나부낀다"라고 읊었다. '눈 속에 핀 복숭아 꽃송이'가 바로 만해의 시요, 만해의 정신이었다 할 것이다.      [애송시 100편-제19편] 겨울 바다 - 김남조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미지(未知)의 새   보고 싶던 새들은 죽고 없었네       그대 생각을 했건만도   매운 해풍에   그 진실마저 눈물져 얼어버리고   허무의 불 물이랑 위에   불붙어 있었네       나를 가르치는 건   언제나 시간   끄덕이며 끄덕이며 겨울 바다에 섰었네       남은 날은 적지만   기도를 끝낸 다음 더욱 뜨거운   기도의 문이 열리는   그런 영혼을 갖게 하소서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인고(忍苦)의 물이   수심(水深) 속에 기둥을 이루고 있었네       ▲ 일러스트=권신아 기도하는 사람을 본 적 있다. 새벽 교회당 구석에서, 간절히 내뻗은 자신의 두 손을 부여잡고 고개를 떨군 채였다. 소리 없이 일렁이는 가파른 등에서 겨울 바다 냄새가 났다. 지난밤 내내 뚝 끊긴 생의 절벽 앞에 서 있다 온 사람의 등이었다. 인간은 기도할 줄 아는 사람과 기도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구분되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누구나 가슴에 새를 품고 산다, 미지라는 한 마리 새를. 삶에 대한 자신의 의지 혹은 희망을 우리는 그렇게 부르는 것이리라. 그 새를 잊지 않고 간직한 사람은 미지의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자이다. 그러나 미래의 새를 잃어버린 사람은 '겨울 바다' 앞에 서기도 한다. 그곳은 절망의 끝 혹은 허무의 끝일 것이다.   보고 싶던 미지의 새들은 죽어 있고 매운 바닷바람에 진실마저 눈물져 얼어버린, 허무라는 마음의 불(心火)로 불붙은 겨울 바다. 그 죽음의 공간에서 시인은 시간의 힘을 깨닫는다. 시간은 모든 걸 해결해 준다는 말도, 세월이 약이라는 말도,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우리를 맑게 깨우치고 우리를 키우는 건 세상을 항해 '끄덕이게' 하는 보이지 않는 시간이다.   기도는 시간을 견뎌내는 데서 비롯된다. '기도를 끝낸 다음/ 더욱 뜨거운 기도의 문이 열리는/ 그런 영혼'을 갖게 해달라는 심혼(心魂)의 기도는, 저 차디찬 바다를 수직으로 관통하는 '인고의 물기둥'을 세우는 일이었으리라. '허무의 불'을 '인고의 물'로 버텨내는 것이야말로 시간의 힘이고 기도의 힘이다.   김남조(80) 시인은 기도하는 시인이다. 팔순을 맞이하여 어언 60여 년의 시력(詩歷)으로 간구해온 그의 시편들은 사랑과 생명과 구원으로 충만한 기도들이다. "혼자는 아니다./ 누구도 혼자는 아니다./ 나도 아니다./ 실상 하늘 아래 외톨이로 서 보는 날도/ 하늘만은 함께 있어 주지 않던가.// 삶은 언제나/ 은총(恩寵)의 돌층계의 어디쯤이다./ 사랑도 매양/ 섭리(攝理)의 자갈밭의 어디쯤이다."('설일(雪日)')를 낭독하는, 떨리는 듯한 그러나 결기 있는. 시인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애송시 100편-제20편] 삽 - 정진규                       삽이란 발음이, 소리가 요즈음 들어 겁나게 좋다 삽, 땅을 여는 연장인데 왜 이토록 입술 얌전하게 다물어 소리를 거두어들이는 것일까 속내가 있다 삽, 거칠지가 않구나 좋구나 아주 잘 드는 소리, 그러면서도 한군데로 모아지는 소리, 한 자정(子正)에 네 속으로 그렇게 지나가는 소리가 난다 이 삽 한 자루로 너를 파고자 했다 내 무덤 하나 짓고자 했다 했으나 왜 아직도 여기인가 삽, 젖은 먼지 내 나는 내 곳간, 구석에 기대 서 있는 작달막한 삽 한 자루, 닦기는 내가 늘 빛나게 닦아서 녹슬지 않았다 오달지게 한번 써볼 작정이다 삽, 오늘도 나를 염(殮)하며 마른 볏짚으로 한나절 너를 문질렀다         ▲ 일러스트=잠산 시인은 언어의 맨살을 만진다. 말과의 상면과 말의 '한 줄금 소나기'를 만나는 순간의 경이를 시인은 표현한다. 우리의 마음에서 세상에 대한 경이가 사라지는 일은 슬픈 일이다. 보고 듣고 냄새를 맡고 혀를 대보고 생각을 만드는 이 날것의 감각에서 소위 맛이 사라지면 살맛이 가실 것이니 이 세상은 얼마나 캄캄한 절망이겠는가. 이 세상을 다시 맞는 아침에는 당신도 "아, 세상이 맛있다!"라고 말해 보라. 애초에 생(生)에는 무력감이 없으므로.   시 '삽'에는 경이가 있다. 나도 '삽'을 발음해 본다. 입술이 모시조개처럼 예쁘게 모인다. 손으로 목화를 따들이는 느낌이 있다. 시인은 이 발성의 쾌감에 희열한다. 그리고 거기서 좀 더 들어간다. "젖은 먼지 내 나는 내 곳간"에 작달막한 삽 한 자루가 세워져 있는 것을 보여준다. 언젠가 제대로 한 번 써볼 생각으로 연일 '마른 볏짚으로' 문질러 놓아 녹슬지도 않았다. (나도 나의 아버지가 들일을 마친 해질 무렵에 마른 볏짚으로 삽날을 문지르는 것을 많이 보았다. 그 저녁 풍경의 숙연함이여!)   시인은 무슨 일에 이 삽을 사용하려 하는 것일까. 당신의 사랑을 얻을 때에 한 번 뜨고, 종국에 닥칠 나의 죽음을 내 스스로 거두어들일 때 한 번 뜨겠다고 한다. 생의 한 경이를 포착한 이 시가 참 좋은 이유는 시 전반부의 발성의 쾌감이 후반부의 비장함으로 진행되는 데에 있다. 비장하지만 마구 심각하지는 않다. 다가올 시간에 대한 기다림이 있기 때문이다. 이 또한 경이다. 경이가 없다면 기다림도 없을 것이므로. (연애에 경이가 사라지는 순간 우리의 애인들이 내일을 기다리지 않고 당장 모두 떠나가 버리는 것처럼)   시 전문지 월간 '현대시학'의 주간을 맡고 있는 정진규(69) 시인은 산문시의 성공적인 전형을 제시하고 있는 시인이다. 그의 산문시는 영혼을 한순간에 탁, 부려 놓는다. 그리하여 산문시 아닌 시들보다 오히려 더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낸다. 시 쓰는 일을 비유하길 세상을 배알하는 일이라고 겸손하게 말하는 그는 올해로 칠순을 맞았다. 그의 시는 종심(從心)이되 어긋남이 없으니 무량무변하다.     [애송시 100편-제21편] 귀천 -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영화 '박하사탕'에서, 돌아갈 곳 없는 설경구는 철교 위에서 하늘을 향해 절규한다. "나 다시 돌아갈래." 그러나,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은 '빽'이 있는 사람이다. 그 '빽'이 하늘이라면 그는 천하무적으로 세상을 주유하는 사람이다. 하늘을 믿으니 이 땅에서는 깨끗한 빈손일 것이다. 하늘을 믿는데 들고 달고 품고 다닐 리 없다. 그러니 새벽빛에 스러지는 이슬이나, 저물녘 한때의 노을이나, 흘러가고 흘러가는 구름의 손짓 등속과 한패일밖에.   "막걸리를 좋아하는데/ 아내가 다 사주니 무슨 불평이 있겠는가. / 더구나 하나님을 굳게 믿으니/ 이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분이 나의 빽이시니/ 무슨 불행이 온단 말인가"라며 스스로를 '세계에서 제일 행복한 사나이'(시 '행복')라 일컬었던, 왼쪽 얼굴로는 늘 울고 있던 시인, 천상병!(1930~1993) '귀천'은 1970년 발표 당시에는 '주일(主日)'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었다.   그의 시는 생(生)의 바닥을 쳐본 사람들이 갖는 순도 높은 미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의 언어는 힘주지 않고, 장식하지 않고, 다듬지 않는다. '단순성으로 하여 더 성숙한 시'라 했던가. 이 시에서도 그는 인생이니 삶이니 사랑이니 죽음이니 하는 말을 쓰지 않는다. 그러니 우리도 무욕이니 초월이니 달관이니 관조니 하는 말로 설명하지 말자. 이슬이랑 노을이랑 구름이랑 손잡고 가는 잠깐 동안의 소풍이 아름답지 않을 이유가 있겠는가. 그런 소풍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 가볍지 않을 이유가 있겠는가. 그러니 소풍처럼 살다갈 뿐.   그의 삶은 파란만장했다. 전도유망한 젊은이였으나 '동백림 사건'(1967)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르고 심한 고문을 받았다. 그 후유증은 음주벽과 영양실조로 나타났으며 급기야 행려병자로 쓰러져 정신병원에 수감되었다. 그가 죽었다고 판단한 친지들에 의해 유고시집 '새'(1968)가 발간되었는데, 그 후로도 천진난만하게 25년을 더 살다 갔다.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 내 영혼의 빈 터에/ 새날이 와, 새가 울고 꽃잎 필 때는, / 내가 죽는 날/ 그 다음날"이라고 노래했던 그는 분명 새가 되었을 것이다. 가난하고 외롭게 살다 갔으니, 자유롭고 가벼운 새의 영혼으로 다시 태어났을 것이다.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다고/ 나쁜 일도 있었다고/ 그렇게 우는 한 마리 새"('새')!      [애송시 100편-제22편] 푸른 곰팡이-산책시1 - 이문재                                        아름다운 산책은 우체국에 있었습니다   나에게서 그대에게로 편지는   사나흘을 혼자서 걸어가곤 했지요   그건 발효의 시간이었댔습니다   가는 편지와 받아볼 편지는   우리들 사이에 푸른 강을 흐르게 했고요       그대가 가고 난 뒤   나는, 우리가 잃어버린 소중한 것 가운데   하나가 우체국이었음을 알았습니다   우체통을 굳이 빨간색으로 칠한 까닭도   그때 알았습니다, 사람들에게   경고를 하기 위한 것이겠지요     ▲ 일러스트=잠산 이문재(49) 시인의 시들은 치열하고 내부가 끓고 있다. 그의 시들은 결사(結社)를 한다. 주로 도시와 문명의 급소를 공격해 단숨에 제압한다. 시 '푸른 곰팡이'가 실려 있는 두 번째 시집 '산책시편'(1993)은 시단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 그는 이 시집을 통해 우리가 유토피아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도시적 공간의 무서운(파시스트적인) 속도에 대항해 '게으르고 어슬렁거리고 해찰하는' 8편의 산책시(散策詩) 연작을 발표한다. 그는 '아파트단지가/ 웨하스처럼, 아니 컴퓨터칩처럼/ 촘촘하게 박혀' 있는 곳을 느릿느릿 걷는다. 그는 '도시는 단 한 사람의 산책자도/ 인정하지 않으려 합니다 느림보는/ 가장 큰 죄인으로 몰립니다/ 게으름을 피우거나 혼자 있으려 하다간/ 도시에서 당하고 말지요/ 이 도시는 산책의 거대한 묘지입니다'('마지막 느림보-산책시 3')라고 썼다.   시 '푸른 곰팡이'에서도 느림을 예찬한다. 사랑도 산책 같아야 한다고 말한다. 사랑이 산책 같아야 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사랑은 불꽃처럼 일어나는 것이지만 기다림과 그리움의 시간을 살면서 사랑은 무르익고 완성된다는 뜻 아닐까.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한 통의 편지를 써 보라. 아무리 격렬한 사랑에 휩싸인 사람일지라도 백지를 앞에 두면 말문이 막힐 것이다. 그러나 머뭇거림이 편지의 미덕. 지우고, 생각을 구겨버리고, 파지(破紙)를 내는 시간에 우리는 사랑의 감정을 솔직하게 만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사나흘을 또 기다려 보라. 나의 편지가 사랑하는 이의 안뜰과 마루와 품에 전달되기까지의 그 시간을 마른 목으로 가슴 설레며 살아보라. 푸른 강이 흘러가는 그 기다림의 거리를 살아보라. 그러는 동안 사랑은 푸른 강의 수심처럼 깊어질 것이다.   요즘 이문재 시인은 따뜻한 체온의 '손'을 주목하고 있다. 나와 당신 사이에 '내미는 손'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근년에 발표한 시 '손은 손을 찾는다'에서 '손이 하는 일은/ 결국 다른 손을 찾는 것이다/ 오른손이 왼손을 찾아/ 가슴 앞에서 가지런해지는 까닭은/ 빈손이 그토록 무겁기 때문이다/ 미안함이 그토록 무겁기 때문이다'라고 썼다. 그의 시는 도시와 문명에 단호하게 맞서는 목소리를 가지고 있지만 그 속내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괸, 그리워하고 연민하는 사랑의 마음이 산다.      [애송시 100편-제23편]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   백 석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木手)네 집 헌 삿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 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우에 뜻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밖에 나가디두 않구 자리에 누어서,   머리에 손깍지벼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여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턴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내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 보며,   어니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어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 일러스트=권신아 평북 정주하면 소월이 있고 백석(白石·1912~1995)이 있다. 1988년의 월북시인 해금 조치 이후 '백석 붐'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백석 시인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현대시에서 드물었던 북방 정서와 언어의 한 정점을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이 시는 그의 절친한 친구가 소장하고 있다가 1948년에 발표했다. 해방 공간에 발표된 백석의 마지막 작품이다. '남신의주 유동에 있는 박시봉 집에서'라는 제목의 뜻에 주목해볼 때 친구에게 편지 형식으로 보낸 고백시가 아니었을까 짐작된다. 그래서일까. 소리 내어 읽노라면 그가 나직이 말을 건네는 듯 '가슴이 꽉 메여 오'고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이곤 한다.   '나'라는 맨 얼굴의 시어나 '-이며' '-해서' '-인데'와 같은 나열 혹은 연결어미나 '것이었다'라는 종결어미 등의 반복이 내뿜고 있는 독특한 산문적 리듬이야말로 이 시의 백미다.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한다는 직유며,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다는 직설이며,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 같'다는 역설 등 사무치지 않는 구절이 없다.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를 생각하기까지의 의연한 회복 과정이 유장한 리듬과 어우러져 한 편의 인생 서사를 떠올리게 한다.   1942년 일본 시인 노리다케 가즈오는 기자와 교사생활을 작파하고 만주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히 살고 있던 그를 찾아간다. 그는 가즈오에게 '나 취했노라'라는 시를 헌정했다. 20년 후 가즈오는 "파를 드리운 백석./ 백이라는 성에, 석이라고 불리는 이름의 시인./ 나도 쉰세살이 되어서 파를 드리워 보았네."('파')라는 시를 그에게 헌정했다. 파를 들고 우두커니 서 있었을 그를 생각한다. 쌀랑쌀랑 소리를 내며 싸락눈을 맞는다는, 이름만으로도 가슴 뻐근한 갈매나무를 생각한다.      [애송시 100편-제24편] 산문(山門)에 기대어 - 송수권     누이야   가을산 그리메에 빠진 눈썹 두어 낱을   지금도 살아서 보는가   정정(淨淨)한 눈물 돌로 눌러 죽이고   그 눈물 끝을 따라 가면   즈믄 밤의 강이 일어서던 것을   그 강물 깊이깊이 가라앉은 고뇌의 말씀들   돌로 살아서 반짝여오던 것을   더러는 물 속에서 튀는 물고기같이   살아오던 것을   그리고 산다화 한 가지 꺾어 스스럼없이   건네이던 것을       누이야 지금도 살아서 보는가   가을산 그리메에 빠져 떠돌던, 그 눈썹 두어 낱을 기러기가   강물에 부리고 가는 것을   내 한 잔은 마시고 한 잔은 비워두고   더러는 잎새에 살아서 튀는 물방울같이   그렇게 만나는 것을   누이야 아는가   가을산 그리메에 빠져 떠돌던   눈썹 두어 낱이   지금 이 못물 속에 비쳐옴을             ▲일러스트 잠산    하마터면 이 시는 세상에서 빛을 보지 못하고 유성처럼 사라질 뻔했다. 송수권(68) 시인이 서대문 화성여관 숙소에서 이 작품을 백지에 써서 응모를 했는데, 잡지사 기자가 "원고지를 쓸 줄도 모르는 사람의 원고"라며 휴지통에 버렸다. 당시 편집 주간이었던 이어령씨가 휴지통에 있던 것을 발견해 1975년 '문학사상' 지면에 시인의 데뷔작으로 발표했다. 이 일화로 '휴지통에서 나온 작품'이라는 '입소문'을 타 문단에서 화제가 되었고, 발표 이후에는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누이'를 애타게 호명하고 있지만, 이 시는 남동생의 죽음에 바치는 비가(悲歌)였다. "내 한 잔은 마시고 한 잔은 비워두고" 비어 있는 맞은편을 망연히 바라보았을 그 시방(十方)의 비통함은 짐작되고도 남음이 있다. 시인은 무엇보다 죽은 동생의 환생에 대한 강한 희원을 드러낸다. "더러는 물 속에서 튀는 물고기같이" "더러는 잎새에 살아서 튀는 물방울같이" 등의 역동적인 문장은 적극적인 환생을 바라는 시인의 마음을 엿보게 한다. 산문(山門)은 속계(俗界)와 승계(僧界)의 경계이고, 이승과 명부(冥府)가 갈라지는 경계인 바, 산문에 기대어 생사의 유전(流轉)을 목도하는 것은 큰 고통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생사의 감옥에 갇혀 살아도 죽은 사람은 산 사람의 마음속에서 영생을 살아 이처럼 마음을 절절하게 울리는 노래를 낳았다.   송수권 시인은 전통 서정시의 맥을 이어오면서 황토와 대(竹)와 뻘의 정신에 천착해 왔다. 그는 '곡즉전(曲卽全·구부러짐으로써 온전할 수 있다)'을 으뜸으로 받든다. "곡선 속에 슬픔이 있고, 추억이 있고, 들숨이 있지요. 시간이 있고, 희망이 있고, 공간이 있습니다"라고 그는 말한다. 그의 시는 "고깔 쓴 여승이 서서 염불 외는 것" 같아서 사람의 마음을 '애지고 막막'하게 하지만 남도 특유의 가락과 토속어의 사용으로 슬픔과 한을 훌쩍 넘어서는 진경을 보여준다.      [애송시 100편-제25편] 잘 익은 사과 - 김혜순       백 마리 여치가 한꺼번에 우는 소리   내 자전거 바퀴가 치르르치르르 도는 소리   보랏빛 가을 찬바람이 정미소에 실려온 나락들처럼   바퀴살 아래에서 자꾸만 빻아지는 소리   처녀 엄마의 눈물만 받아먹고 살다가   유모차에 실려 먼 나라로 입양 가는   아가의 뺨보다 더 차가운 한 송이 구름이   하늘에서 내려와 내 손등을 덮어주고 가네요   그 작은 구름에게선 천 년 동안 아직도   아가인 그 사람의 냄새가 나네요   내 자전거 바퀴는 골목의 모퉁이를 만날 때마다   둥글게 둥글게 길을 깎아내고 있어요   그럴 때마다 나 돌아온 고향 마을만큼   큰 사과가 소리없이 깎이고 있네요   구멍가게 노망든 할머니가 평상에 앉아   그렇게 큰 사과를 숟가락으로 파내서   잇몸으로 오물오물 잘도 잡수시네요               ▲ 일러스트=잠산   여름 여치가 운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달린다. 가을 정미소를 지난다. 차가운 (겨울) 구름이 떠있다. 그렇게 자전거는 골목 모퉁이를 돈다. (아가였던) 할머니가 구멍가게 평상에 앉아 있다. '잘 익은 사과'는 이런 일상적인 풍경을 다채로운 감각의 성찬으로 펼쳐놓고 있다.   백 마리의 여치 울음 소리는 자전거의 바퀴 도는 소리, 정미소에서 나락 빻는 소리와 겹쳐진다. 처녀 엄마가 낳은 입양 가는 아가의 뺨은 구름의 차가움으로 전이되고, 그 구름은 천년 동안 아가인 그 사람의 냄새로 확장된다. 고향 마을은 금세 큰 사과로 축소되고, 마을을 달리는 자전거 바퀴는 사과를 깎는 칼날 소리를 낸다. 차르르차르르(사각사각)!   자전거 바퀴가 둥글게 길을 깎아내고 그때마다 고향 마을만큼이나 큰 사과가 깎인다는 발상과 그 큰 사과를 노망든 할머니가 숟가락으로 파내 잇몸으로 오물오물 잡수신다는 발상은 사뭇 상징적이면서 동화적이다. 노망든 할머니가 숟가락으로 야금야금 파먹는 사과는 시간의 신(神)이 돌리는 물레의 실타래에 비견할 만하다. 기발하면서도 유쾌하다. 아가, 처녀 엄마, 할머니로 숨가쁘게 이동하는 시간을 '천년 동안 아가인 그 사람'으로 정지시켜 놓는 것도 흥미롭다.   차르르차르르 돌던 한 세월이 발갛게 잘 익었겠다. 누군가 고향 마을에서 그 한 세월을 잘 놀다 갔겠다. 껍질이 홀라당 깎인 노르스름한 사과 속살 같았겠다. 군침 가득 돌았겠다. 그렇다면, 이 구멍가게 노망든 할머니는 '밤낮을 만드시고 이 지구를 세세년년토록 운항하시는' '숫자 나라의 시간 윤전기 노동자인 우리들 앞에서/ 감독을 게을리하신 적이 한 번도 없으신', '세상의 모든 달력 공장 공장장님'을 낳은 바로 그 처녀 엄마 아니었을까.   김혜순(52) 시인은 80년대를 대표하는 여성 시인이다. 그는 겹침의 시학을 즐겨 구사한다. 시간과 공간을 확장시키는가 하면 수축시키고, 감각과 시점을 겹쳐놓는가 하면 뚝 떨어뜨려 놓는다. 여성의 환상적 내면을 몸의 감각과 경험으로 그려냄으로써 일견 초현실주의적 색채를 떠올리게 한다. 그를 최근 유행하는 '환상시'의 대모라 불러도 무방하리라.      [애송시 100편-제26편] 산정 묘지 - 조정권       겨울 산을 오르면서 나는 본다.   가장 높은 것들은 추운 곳에서   얼음처럼 빛나고,   얼어붙은 폭포의 단호한 침묵.   가장 높은 정신은   추운 곳에서 살아 움직이며   허옇게 얼어터진 계곡과 계곡 사이   바위와 바위의 결빙을 노래한다.   간밤의 눈이 다 녹아버린 이른 아침,   산정(山頂)은   얼음을 그대로 뒤집어 쓴 채   빛을 받들고 있다.   만일 내 영혼이 천상(天上)의 누각을 꿈꾸어 왔다면   나는 신이 거주하는 저 천상(天上)의 일각(一角)을 그리워하리.   가장 높은 정신은 가장 추운 곳을 향하는 법.   저 아래 흐르는 것은 이제부터 결빙하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침묵하는 것.   움직이는 것들도 이제부터는 멈추는 것이 아니라   침묵의 노래가 되어 침묵의 동렬(同列)에 서는 것.   그러나 한번 잠든 정신은   누군가 지팡이로 후려치지 않는 한   깊은 휴식에서 헤어나지 못하리.   (중략)   어둠은 존재의 처소(處所)에 뿌려진 생목(生木)의 향기   나의 영혼은 그 향기 속에 얼마나 적셔두길 갈망해 왔던가.   내 영혼이 내 자신의 축복을 주는 휘황한 백야(白夜)를   내 얼마나 꿈꾸어 왔는가.   육신이란 바람에 굴러가는 헌 누더기에 지나지 않는다.   영혼이 그 위를 지그시 내려누르지 않는다면.       ▲ 일러스트=잠산 시집 '산정묘지'를 펼쳐 자서(自序)를 대신하고 있는 시 '독락당'을 읽는다. "독락당(獨樂堂) 대월루(對月樓)는/ 벼랑꼭대기에 있지만/ 옛부터 그리로 오르는 길이 없다./ 누굴까, 저 까마득한 벼랑 끝에 은거하며/ 내려오는 길을 부셔버린 이." 아주 짧지만 고절이 있다. 찬 서릿발 속에 핀 국화 같고, 차돌처럼 향기를 돌돌 말았다 피는 매화 같다. 시집에 수록된 서른 편의 산정묘지 연작시들을 꿰는 시가 바로 '독락당'이라는 시이다.   산정묘지 연작시들은 협소한 한국시의 정신적인 영역을 광대하게 확장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프랑스의 좌파 일간지 리베라시옹은 불어로 번역된 산정묘지 시편들의 성과를 대서특필하기도 했다. 시인의 고백에 따르면, 시인이 동양적인 정신주의의 극점을 보여주는 이 시편들을 쓰게 된 것은 한학자이면서 불교학자였던 김달진 시인과의 만남이 그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 후로 시인은 세속적인 욕망을 덜어내고 영혼의 품위와 위엄을 지향하는 '고사(高士)의 시'를 선보인다.   '산정묘지 1'은 설산의 꼭대기에 정신의 처소를 마련해 두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눈이 다 녹아버린" 질척질척하고 비루한 세계가 아니라 얼음이 꽝꽝 언 침묵의 세계에 살겠다는 결의를 드러낸다. '정신적인 공해'의 공간을 떠나 무서운 고요가 사는 산정에 오르겠다는, 우리가 인간으로서 지켜내야 할 정신적인 기품을 잃지 않겠다는 속뜻을 내보인다.   조정권(59) 시인은 언어감각이 예민할 뿐만 아니라 고건축과 고전음악에 대해서도 일가견이 있다. 평소에 그를 만나면 그는 "자기를 잘 견뎌내는 일 하나만 잘해도 아주 잘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모두가 성자가 될 수는 없지만, 세속적인 욕망을 버리고, 시끄럽고 험악한 곳을 버리고 고독하게 물러나 앉아 스스로의 마음을 보살피는 일에 대해 생각해 보자. "바람에 굴러가는 헌 누더기"인 몸을 끌고 저 산정에 오르는 성스러운 즐거움에 대해 생각해 보자.       [애송시 100편-제27편] 광야 - 이육사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진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光陰)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 러스트=권신아 시집 한 권으로 '현대시 100년'에 길이 남은 시인들이 많다. 김소월과 한용운과 김영랑이 그렇다. 특히 유고시집 한 권으로 길이 남은 시인들도 있으니, 이상과 윤동주와 기형도 그리고 여기 이육사(1904~1944) 시인이 그렇다. 그의 이름 앞에는 많은 수식이 따라 다닌다. 지사(志士), 독립투사, 혁명가, 아나키스트, 테러리스트, 의열단 단원 등. 1928년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계획을 세웠으나 사전에 발각되어 수감되었을 때 수인번호가 264(혹은 64), 이를 '대륙의 역사'라는 뜻의 한자 '육사(陸史)'로 바꾸었다고 한다. 그가 어떤 항일운동을 했는지 자세히 알 수는 없다. 단지 17회 정도 감옥을 들락거리며 심한 고문을 받았다는 것, 만주·북경 등지를 부단히 왕래했다는 것, 북경 감옥에서 40세의 나이로 옥사했다는 것 정도.   닭 울음소리가 들렸다는 것인지 안 들렸다는 것인지, 초인이 있을 거라는 것인지 초인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인지, 이 광야에 목놓아 부르는 사람이 초인인지 나인지, 초인을 목놓아 부르는 것인지 노래를 목놓아 부르는 것인지,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은 왜 천고(千古)의 뒤에야 오는 것인지 해석 이 애매한 부분이 많은데도 이 시가 이토록 많은 사랑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늘이 처음 열렸던 날부터 다시 천고 후까지, 휘달리던 산맥들도 범하지 못했으며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어준 이곳! 이 신성불가침의 시공간 속에서 흰 눈과 흰 말(馬), 매화 향기와 초인의 이미지는 돌올하다. 특히 까마득한 날부터 천고 뒤로 이어지는 대서사적 시제와 감탄하고 묻고 명령하는 극적인 어조 속에서 '광야'의 고결한 미감과 강렬한 정서는 한결 고무된다. 웅대하다는 말, 장엄하다는 말이 이만큼 어울리는 시도 드물 것이다.   감옥에서 남긴 것으로 추정되는 유시 '꽃'에서도 "동방은 하늘도 다 끝나고/ 비 한 방울 내리잖는 그때에도/ 오히려 꽃은 빨갛게 피지 않는가 (…) 오늘 내 여기서 너를 불러보노라"라고 노래했다. 오천 년의 역사가 시작된 이 광야에서, 지금-여기의 눈보라 치는 겨울 추위를 이겨내고 찬란한 꽃을 피울 미래의 그날을 떠올려본다. 시인이 기꺼이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렸던 이유일 것이다. 기름을 바른 단정한 머리에 늘 조용조용 말하고 행동했다는, 올곧은 시인이 올곧은 삶 속에서 일구어낸 참 올곧은 시다.      [애송시 100편-제28편] 순은(純銀)이 빛나는 이 아침에 - 오탁번       눈을 밟으면 귀가 맑게 트인다.   나뭇가지마다 순은의 손끝으로 빛나는   눈 내린 숲길에 멈추어 선   겨울 아침의 행인들.       원시림이 매몰될 때 땅이 꺼지는 소리,   천년 동안 땅에 묻혀   딴딴한 석탄으로 변모하는 소리,   캄캄한 시간 바깥에 숨어 있다가   발굴되어 건강한 탄부(炭夫)의 손으로   화차에 던져지는,   원시림 아아 원시림   그 아득한 세계의 운반소리.   이층방 스토브 안에서 꽃불 일구며 타던   딴딴하고 강경한 석탄의 발언.   연통을 빠져나간 뜨거운 기운은   겨울 저녁의   무변한 세계 끝으로 불리어 가   은빛 날개의 작은 새,   작디작은 새가 되어   나뭇가지 위에 내려 앉아   해뜰 무렵에 눈을 뜬다.   눈을 뜬다.   순백의 알에서 나온 새가 그 첫 번째 눈을 뜨듯. (후략)             ▲ 일러스트=잠산  겨울 서정시의 대표격인 이 시는 평론가 이숭원씨의 표현대로 '찬란한 시간의 금비늘'이 반짝반짝한다. "눈을 밟으면 귀가 맑게 트인다"는 섬세한 감각이나, "순백의 알에서 나온 새가 그 첫 번째 눈을 뜨듯" 같은 투명한 언어감각을 보라. 시인은 다른 행인들처럼 나뭇가지에 내린 눈을 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시의 묘미는 자연 현상인 눈의 적설을 생명의 큰 순환으로 읽어낸 데 있다. 눈이 쌓인 원시림이 석탄이 되고, 탄부의 손에 의해 채탄이 되고, 이층방 스토브의 꽃불이 되고, 하늘로 올라가는 기운이 되고, 다시 숲으로 내려앉는 눈이 되는 그 시간의 돌고 돎-둥근 궤적을 시인은 읽어내고 있다. 이 '돌아옴'의 발견이 이 시를 빼어나게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우주의 모든 존재가 돌아온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이 세계는 얼마나 신비롭고, 얼마나 기특하고, 얼마나 황홀하겠는가.   오탁번(65) 시인은 1966년에 동화 당선, 1967년에 시 당선, 1969년에 소설 당선이라는 신춘문예 3관왕의 화려한 등단 이력을 갖고 있다(김은자 시인을 아내로 둔 시인 커플로도 유명한데, 김은자 시인도 신춘문예 2관왕 출신이다). 이 시는 그의 시 데뷔작이다. 너무 가난해서 고등학교 3학년 2학기를 다니지 못했는데 담임선생님이 졸업장을 우편으로 보내주었다는 일화를 나는 언젠가 들었다. 대학에서 시 창작 수업을 진행하는 방식도 독특했다. 가끔은 밤새 쓴 시를 칠판에 적어놓고 학생들로부터 터놓고 평가를 받기도 했다. 나도 시 창작 수업을 들었는데 기말시험에 '학교에 자목련나무가 몇 그루인가'를 묻는 문제가 있었을 정도였다.   요즘 오탁번 시인은 고향으로 내려가 살고 있다. 그의 고향은 충북 제천시 백운면으로 천둥산과 박달재 사이에 있는 조그만 마을. 폐교된 모교를 사들여 '원서헌'이라는 문학관을 차렸다. 그곳서 그는 시골 아이들에게 시를 읽히는 훈장님이다. 그곳서 그는 우리가 잊어버린 토박이 우리말을 되살려내는 시를 쓰고 있다. "산 속에 큰 항아리를 하나 묻고 그 속에 들어앉아 글을 쓰고 싶다"는 그는 "아기를 낳는 산모의 지독한 아픔과 숨찬 기쁨이 바로 시"라고 말하는 순은의 시인이다.      [애송시 100편-제29편] 성탄제 - 김종길       어두운 방 안엔   바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러히 잦아지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약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오신   그 붉은 산수유 열매―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생,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열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이따금 뒷문을 눈이 치고 있었다.   그날 밤이 어쩌면 성탄제의 밤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새 나도   그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   옛 것이란 거의 찾아볼 길 없는   성탄제 가까운 도시에는   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   설어운 설흔 살 나의 이마에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눈 속에 따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           ▲ 일러스트 권신아 김종길(81) 시인의 '성탄제'를 읽는 일은 내게 유년의 흑백 사진을 보는 일처럼 애틋하고 살가운 일이다. 겨울밤, 열에 시달리며 칭얼대던 어린 내게 아버지의 코트 자락은 서늘했다. 겉옷을 벗으신 아버지는 물에 만 밥 한 숟갈 위에 찢은 김치를 씻어 올려놓으시고는 아, 아, 하셨다. 하얀 가루약도 그렇게 먹이셨다. 어머니가 방을 치우고 이부자리를 펴는 사이 오래오래 나를 업고 계셨다.   산수유 열매는 고열에 약효가 있다. 열에 시달리는 어린것을 위해 산수유 열매를 찾아 눈 덮인 산을 헤매셨을 아버지의 발걸음은 얼마나 초조했을까. 할머니가 어머니의 부재를 대신하고 있으니 아버지 속은 얼마나 더 애련했을까. 흰 눈을 헤치고 따오신 산수유 열매는 혹한을 견디느라 또 얼마나 안으로 말려 있었을까. 눈 속의 붉은 산수유 열매는, 바알간 숯불과 혈액과 더불어 성탄일의 빨간 포인세티아를 떠올리게 한다. 아버지가 찾아 헤매셨던, 탄생과 축복과 생명과 거룩을 염원하는 빛깔이다. 생을 치유할 수 있는 약(藥)의 이미지다.   김종길 시인은 명망있는 유학자 집안의 후예다. 한학과 한시에도 조예가 깊었던 그가 선택한 것은 영문학이었다. 우리나라에 영미시와 시론, 특히 이미지즘을 소개하는 데 선구적 역할을 했다. 유가적 전통과 이미지즘이 어우러진 그의 시는 명징한 이미지, 절제된 표현, 선명한 주제 의식을 그 특징으로 삼고 있다. 이를 일컬어 '점잖음의 미학'이라 했던가.   차가운 산수유 열매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이 어린것의 열을 내리게 했을 것이다. 특히 산수유, 서느런, 성탄제, 숯불, 설어운 설흔 살의 'ㅅ' 음이 서늘한 청량제 역할을 한다. 그 서늘한 청량제 속 따스한 혈맥이 우리네 가족애일 것이다. 그 따스함은, "오늘 아침/ 따뜻한 한 잔 술과/ 한 그릇 국을 앞에 하였거든// 그것만으로도 푸지고/ 고마운 것이라 생각하라.// 세상은/ 험난하고 각박하다지만/ 그러나 세상은 살만한 곳"이라는 그의 시 '설날 아침에'에서도 만날 수 있다. 한 잔 술과 한 그릇 국, 그것만으로도 푸지고 고마운 마음으로 설날 아침을 맞이하자. 매운 추위 속에서 한 해가 가고 또 올지라도 '어린것들 잇몸에 돋아나는 고운 이빨'을 보듯 맞이하자. 그 한가운데 가족이 있음을 기억하자     [애송시 100편-제30편] 사라진 손바닥 - 나희덕   처음엔 흰 연꽃 열어 보이더니   다음엔 빈 손바닥만 푸르게 흔들더니   그 다음엔 더운 연밥 한 그릇 들고 서 있더니   이제는 마른 손목마저 꺾인 채   거꾸로 처박히고 말았네   수많은 창(槍)을 가슴에 꽂고 연못은   거대한 폐선처럼 가라앉고 있네       바닥에 처박혀 그는 무엇을 하나   말 건네려 해도   손 잡으려 해도 보이지 않네   발밑에 떨어진 밥알들 주워서   진흙 속에 심고 있는지 고개 들지 않네       백 년쯤 지나 다시 오면   그가 지은 연밥 한 그릇 얻어먹을 수 있으려나   그보다 일찍 오면 빈 손이라도 잡으려나   그보다 일찍 오면 흰 꽃도 볼 수 있으려나       회산에 회산에 다시 온다면               ▲ 일러스트 잠산  이별이 이별의 사건으로만 완성된다면 사람에겐 애초부터 마음이라는 게 없었을 것이다. 이별 뒤에 오는 축축한 망각의 시간이 훨씬 고통스럽다. 서서히 잊어가며 다시 시간을 거슬러 돌아가 축음기처럼 생생하게 이별 이전의 일까지를 재생시키는 모든 과정을 아울러 우리는 이별이라는 사건의 전모(全貌)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잊는 고통이 없다면 우리는 생명 없는 사물처럼 안색 없이 돌아서기만 하면 될 것이다. 생명 없는 사물의 안색으로 헤어진다면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괴로움을 겪을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큰 사랑은 사랑이 소멸하는 것까지를 포함하는 것. 꽃 이후의 꽃다발 혹은 열매 이후의 열매처럼 쇠잔하게 말라가는 것까지를 포함하는 어떤 것이 바로 사랑 아니겠는가.   무안의 회산 백련지를 찾아가 본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연꽃이 만개한 그 시간을 찾아가겠지만. 시인은 연못이 폐선처럼 가라앉는 시간에 거기를 찾아간 모양이다. 흰 연꽃도, 푸른 손바닥 같은 연잎도, 따뜻한 한 공기의 밥 같은 연밥도 없는 시간. 시인은 뒤늦게 그 연못을 찾아간 모양이다. 마치 애별리고(愛別離苦)를 겪고 있는 친구를 만나러 간 사람처럼. 그 연못에서 시인은 연밥과 연잎과 연꽃의 시간을 다시 살려낸다. 우리의 습관인 순차적인 짐작과는 다른 방식으로.   누군가의 말대로 나희덕(43) 시인은 '울음의 감별사'이다. 그녀는 한 산문에서 마른 석류를 들여다본 일에 대해 쓴 적이 있다. 붉은 석류가 마르면서 바람 빠진 공처럼 물렁물렁해지고 거기서 작은 벌레들이 기어나오는 것을 보면서 "삶이란 완벽한 진공포장이 될 수 없다는 사실에 오히려 안도했다"라고 적었다. 세상의 통증 하나하나와 만날 때 투덜대고, 서운해하며 토라지고, 대놓고 직설적으로 말하는 그녀의 시편들은 시원시원하게 정직해서 비옥하다. 그녀는 복숭아나무 같은 시인이다. 가까이 다가가면 흰꽃과 분홍꽃 사이에 수천의 빛깔을 펼쳐놓는 복숭아나무. 복숭아나무가 그토록 눈이 부신 나무임을 처음 알게 해준, 복숭아나무와 친족인 시인.      [애송시 100편-제31편] 혼자 가는 먼 집 - 허수경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그래서 불러봅니다 킥킥거리며 한때 적요로움의 울음이 있었던 때, 한 슬픔이 문을 닫으면 또 한 슬픔이 문을 여는 것을 이만큼 살아옴의 상처에 기대, 나 킥킥……, 당신을 부릅니다 단풍의 손바닥, 은행의 두 갈래 그리고 합침 저 개망초의 시름, 밟힌 풀의 흙으로 돌아감 당신……, 킥킥거리며 세월에 대해 혹은 사랑과 상처, 상처의 몸이 나에게 기대와 저를 부빌 때 당신……, 그대라는 자연의 달이 나에게 기대와 저를 부빌 때 당신……, 그대라는 자연의 달과 별……, 킥킥거리며 당신이라고……, 금방 울 것 같은 사내의 아름다움 그 아름다움에 기대 마음의 무덤에 나 벌초하러 진설 음식도 없이 맨 술 한 병 차고 병자처럼, 그러나 치병과 환후는 각각 따로인 것을 킥킥 당신 이쁜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내가 아니라서 끝내 버릴 수 없는, 무를 수도 없는 참혹……, 그러나 킥킥 당신                             ▲ 일러스트 권신아  '그대'는 어떻게 '당신'이 되는가. 허수경(44) 시인은 "그대라는 자연의 달이 나에게 기대 와 저를 부빌 때"라고 한다. '사내'가 아름다울 때, 그 아름다움에 기댈 수 있을 때 '당신'이 되기도 한다. 부빈다는 것, 기댄다는 것, 그것은 다정(多情)이고 병(病)이기도 할 것이다. 나는 병자처럼 당신을 묻은 마음의 무덤에 벌초하러 간다. 사실은 슬픔으로 이어진 '살아옴의 상처'와, 금방 울 것 같은 '사내의 아름다움'을 추억하며 한 병의 맨 술을 마시는 중이리라. 백수광부처럼 돌아올 수 없는 강을 훌쩍 건너가 버린 당신! 당신이 먼저 당도해버린 그곳은 나 또한 혼자서 가야 할 먼 집이다. 그러니 남겨진 나는 참혹할밖에.   참혹은 '당신'으로 상징되는 모든 것들이 불러일으키는 총체적 참혹이다. 사랑을 떠나 보낸 실연의 참혹, 아버지를 여읜 망부의 참혹, 신념을 잃은 한 시대의 참혹. 내가 아니라서 끝내 버릴 수 없고 무를 수도 없는, 죄다 마음에 묻어야 하는 당신들이다. 그런 당신을 웃으면서 울면서 혹은 취해서 부르는 이 시의 언어는 언어 이전이거나 언어 이후다. 단속적인 말줄임표와 쉼표, 어쩔 수 없이 새어 나오는 '킥킥'이라는 의성어에는, 참혹인 줄 알면서도 참혹에 뛰어들 수밖에 없는 자의 내면풍경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나와 당신, 사랑의 마음과 마음의 무덤, 환후와 치병이 '각각 따로'이기에, 당신과 함께했던 세월과 사랑과 상처와 그 상처의 몸이 모두 적요이고 울음이다. 그런 울음을 짊어지고 가는 시인, 세간의 혼몽을 잘 먹고 잘 노래하는 시인이야말로 자신의 불우함을 다해 노래하는 시인의 지복(至福)일 터, 이 시는 그 지복의 한 자락을 걸쳐 입고 있다.   허수경 시인은 울음 같은, 비명 같은, 취생몽사 같은 시집 '혼자 가는 먼 집'을 낸 직후 독일로 휘리릭 날아가버렸다. 1990년대 초반이었고, 시인의 생부가 돌아가시고 난 직후였다. 동안(童顔)에, 대책 없는 맨몸이었다. 고고학을 공부한다 했다. 잘살고 있다고 했다. 독일로 날아간 지 벌써 16년째다. 당신… 당신이라는 말은 언제 불러도 참 좋다, 그리고 참 참혹하다, 킥킥 당신….      [애송시 100편-제32편] 소 - 김기택         소의 커다란 눈은 무언가 말하고 있는 듯한데   나에겐 알아들을 수 있는 귀가 없다.   소가 가진 말은 다 눈에 들어 있는 것 같다.       말은 눈물처럼 떨어질 듯 그렁그렁 달려 있는데   몸 밖으로 나오는 길은 어디에도 없다.   마음이 한 움큼씩 뽑혀나오도록 울어보지만   말은 눈 속에서 꿈쩍도 하지 않는다.       수천만 년 말을 가두어 두고   그저 끔벅거리고만 있는   오, 저렇게도 순하고 동그란 감옥이여.       어찌해볼 도리가 없어서   소는 여러 번 씹었던 풀줄기를 배에서 꺼내어   다시 씹어 짓이기고 삼켰다간 또 꺼내어 짓이긴다.                 ▲ 일러스트 잠산   쟁기와 써레와 달구지를 끌던 소, 두꺼운 혀로 억센 풀을 감아 뜯던 소, 송아지를 낳아 대학 공부를 시켜주던 소, 추운 날 아버지가 덕석을 입혀주던 소, 등을 긁어주면 한없이 유순해지던 소, 코뚜레가 꿰어 있는 소, 우시장에 팔려가는 아침에는 주먹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던 소….   소에게 들일이 점점 없어지면서 소의 쓸모는 이제 비육에만 있다지만 소만큼 오랫동안 농가를 살려온 짐승도 드물다. 일하러 갈 땐 강한 무릎으로 불끈 일어서던 소. 뿔이 솟아 있으나 뿔을 사용하는 일이 거의 없는 소. 소의 느린 걸음걸이와 큰 눈과 우직함을 생각해본다.   김기택(51) 시인은 소에 관한 시를 네 편 썼다. 꾀는 파리를 쫓아내지도 못하는 무력한 소, 무게를 늘리기 위해 강제로 물을 먹인 소, 도살되는 순간 바람이 빠져 나가서 빈 쇠가죽 부대가 되어버린 소에 대해 썼다. 시집 '소'의 표제작인 이 시는 소에 관한 그의 네 번째 시이다. 전작들이 소의 비극적인 몸에 관한 시라면 이 시는 소라는 종(種)의 역사를 바라보는 시인의 슬픈 시선이 있다. 한마디의 말도 사용할 줄 모르고 다만 울음이 유일한 언어인 소. 오직 끔벅거리고만 있는 소의 눈. 우리가 최초에는 가졌을 혹은 오히려 우리를 더 슬프게 내내 바라보았을 그 '순하고 동그란 감옥'인 눈. 당신에게 내뱉으면 눈물이 될 것 같아 속에 가두어 두고 수천만 년 동안 머뭇거린 나의 말….   김기택 시인의 시는 무섭도록 정밀한 관찰과 투시를 자랑한다. 그는 대상을 냉정하고도 빠끔히 묘사한다. 그는 하등동물의 도태된 본능을 그려내거나 사람의 망가진, 불구의 육체를 고집스럽게 그려냄으로써 역설적이게도 생명이 고유하게 가지고 있던 생명의 '원시림'을 복원시켜 놓는다.   시 '신생아 2'에서 '아기를 안았던 팔에서/ 아직도 아기 냄새가 난다/ 아가미들이 숨쉬던 바닷물 냄새/ 두 손 가득 양수 냄새가 난다// 하루종일 그 비린내로/ 어지럽고 시끄러운 머리를 씻는다/ 내 머리는 자궁이 된다/ 아기가 들어와 종일 헤엄치며 논다'라고 그는 노래했다. 이런 시를 한껏 들이쉬면 어지럽고 시끄럽던 머리가 맑아진다. 선홍빛 아가미가 어느새 새로 생겨난다.         [애송시 100편-제33편] 저녁의 염전 - 김경주     죽은 사람을 물가로 질질 끌고 가듯이   염전의 어둠은 온다   섬의 그늘들이 바람에 실려온다   물 안에 스며 있는 물고기들,   흰 눈이 수면에 번지고 있다   폐선의 유리창으로 비치는 물속의 어둠   선실 바닥엔 어린 갈매기들이 웅크렸던 얼룩,   비늘들을 벗고 있는 물의 저녁이 있다   멀리 상갓집 밤불에 구름이 쇄골을 비친다   밀물이 번지는 염전을 보러 오는 눈들은   저녁에 하얗게 증발한다   다친 말에 돌을 놓아   물속에 가라앉히고 온 사람처럼   여기서 화폭이 퍼지고 저 바람이 그려졌으리라   희디흰 물소리, 죽은 자들의 언어 같은,   빛도 닿지 않는 바다 속을 그 소리의 영혼이라 부르면 안 되나   노을이 물을 건너가는 것이 아니라 노을 속으로 물이 건너가는 것이다   몇천 년을 물속에서 울렁이던 쓴 빛들을 본다   물의 내장을 본다              ▲ 일러스트 권신아   바닷물을 끌어다가 삼일 정도 가둬두면 바닥에 소금 알갱이가 뭉치기 시작한다. 가만히 고인 바닷물이 제 안의 소금을 응결시키고 있는 저녁의 염전을 볼 때면 마음이 쓸쓸해지곤 한다. 스러지는 햇빛, 슬어가는 어둠, 남루한 생의 얼룩, 비늘 같은 욕망의 흔적, 서늘한 죽음의 그늘… 흩어져 있던 그리 어두컴컴한 것들이 가라앉곤 했던가.   흰 눈이 내리는가 싶더니 상갓집 밤불처럼 노을이 내리는 염전. 그곳에서 시인은 소금의 소리, '죽은 자들의 언어'와 같은 그 '희디흰 물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소금의 빛, 그 '몇 천  년을 물속에서 울렁이던 쓴 빛'을 본다. 소금의 근원인 '빛도 닿지 않는 바다 속'은 모든 생명의 시원이자 종말이다. 그러니까 존재의 끝과 시작을 듣고 보는 셈이다. 우리의 내장이 이리 어둡고 이리 쓴 이유일 것이다. 물의 내장이 그러하고, 생의 내장이 그러한 것처럼.   노을 속으로 바닷물이 건너는 염전에 서면, 죽음과 소멸을 견뎌내는 법을 배우는 것만 같다. 실리고, 스미고, 비치고, 번지고, 가라앉고, 퍼지는 술어의 움직임 속에서 하얗게 증발하는 허공 속 흰 눈같이. 아니 깊은 바다 속 소리의 영혼같이, 아니 아니 온갖 사랑이 밀려왔다 밀려간 사람 속 쓰디쓴 내장같이. "나 없는 변방에서 나오는 그 시간이 지금 내 영혼이다 나는 지금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부재중')라는 그의 시 구절이 떠오른다.   김경주(32) 시인은 젊다. 2003년에 등단하여 2007년에 첫 시집을 냈으니 시력 또한 젊다. 한 시인은 "이 무시무시한 시인의 등장은 한국 문학의 축복이자 저주다"라고 단언하기도 했다. 스무 살 이후, 이 대학 저 대학에서 이 공부 저 공부 하며 밥벌이를 위해 대필작가, 학원강사, 광고일, '야설' 작가까지 했다는 기이한 이력이 인상적이었던가. 수려한 외모에 여행, 사진, 에세이, 영화, 연극을 넘나드는 전방위적 재능이 또 신인류(!)적이었던가.      [애송시 100편-제34편] 어떤 적막 - 정현종     좀 쓸쓸한 시간을 견디느라고   들꽃을 따서 너는   팔찌를 만들었다.   말없이 만든 시간은 가이없고   둥근 안팎은 적막했다.       손목에 차기도 하고   탁자 위에 놓아두기도 하였는데   네가 없는 동안 나는   놓아둔 꽃팔찌를 바라본다.       그리로 우주가 수렴되고   쓸쓸함은 가이없이 퍼져나간다.   그 공기 속에 나도 즉시   적막으로 一家를 이룬다―   그걸 만든 손과 더불어.               ▲ 일러스트 장산   들꽃을 따서 엮은 둥근 꽃팔찌. 그 반짝이는 꽃팔찌를 말없이 만들었을 당신의 낮과 당신의 손. 가는 손목에 차고 다니다 탁자에 벗어놓은 당신의 꽃팔찌. 들꽃 같은 시간의 꽃팔찌. 쓸쓸함과 적막이라는 삶의 시간을 견디게 해 준 꽃팔찌. 그러나 어찌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존재의 쓸쓸함과 적막함. 당신은 없고 이제 나의 팔목에 차 본 둥근 꽃팔찌. 오, 들꽃처럼, 들꽃으로 엮은 꽃팔찌처럼 온기와 생기(生氣)의 일가를 이루려 했던 당신의 마음.   이 시처럼 정현종(69) 시인은 작품을 통해 삶의 생기를 발견해내는 노력을 보여준다. 그는 전후의 한국 시단에 팽배해 있던 허무주의를 극복하려는 경향을 내내 보여주었다. 그는 사물들에게 생명의 숨을 불어넣었고, 만물과의 우주적인 교감을 노래했다. 그는 탄력 있는 생각의 샘을 소유한 시인이다. 그의 언어는 은유적이고 율동적인데, "가벼움, 경묘(輕妙)함이 나의 시론의 하나"라고 스스로 밝힌 바 있다. 가볍다는 것은 자유롭다는 뜻. 자유로운 정신은 고통을 뼈저리게 느낀 사람에게만 허락되는 축복일 터. 해서 정현종 시인은 "가슴이 고만 푸르게 푸르게 두근거리는" 시인이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라고 단 두 줄로 짧게 쓴 시 '섬'은 많은 독자들이 여전히 사랑하는 시이며, 그가 번역해 국내에 소개한 네루다와 로르카, 옥타비오 파스 등 외국 시인들의 시집과 시론서들도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우리의 영혼은 어둠 속에서도 샛별처럼 빛나야 하는 것. 우리의 영혼은 바닥에 떨어져도 다시 튀어오르는 공처럼 생동해야 하는 것. 시인은 한 대담에서 "이 세상이 내 앞에 처음으로 있는 것처럼 그렇게 느껴라. 그렇게 살라"고 당부한다. 오늘은 그의 시 '꽃시간'을 함께 읽어보자. 당신에게도 오늘이 꽃시간이기를, 안팎이 둥근 꽃팔찌의 시간이기를. "시간의 물결을 보아라./ 아침이다./ 내일 아침이다./ 오늘밤에/ 내일 아침을 마중 나가는/ 나의 물결은/ 푸르기도 하여, 오/ 그 파동으로/ 모든 날빛을 물들이니/ 마음이여/ 동트는 그곳이여."      [애송시 100편-제35편] 그릇1 - 오세영         깨진 그릇은   칼날이 된다.       절제와 균형의 중심에서   빗나간 힘,   부서진 원은 모를 세우고   이성의 차가운   눈을 뜨게 한다.       맹목(盲目)의 사랑을 노리는   사금파리여,   지금 나는 맨발이다.   베어지기를 기다리는   살이다.   상처 깊숙이서 성숙하는 혼(魂)       깨진 그릇은   칼날이 된다.   무엇이나 깨진 것은   칼이 된다.               ▲ 일러스트 권신아   시력 44년을 맞는 오세영(65) 시인은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이자 국문학 박사이자 교수로 시작과 평론과 시학을 병행해 왔다. 지금까지 17권의 시집으로 출간된 그의 시들은 물질과 정신, 문명과 자연, 철학적 지성과 감성적 정서가 상응하는 '잘 빚어진' 서정시를 견지하고 있다. 이를 '전통의 토대 위에 형성된 철학화된 서정시' 혹은 '모순의 시학'이라 했던가.   일찍이 노자는 말했다. 도는 빈 그릇과 같다고. 얼마든지 퍼내서 사용할 수 있고, 언제나 넘치는 일이 없고, 깊고 멀어서 천지 만물의 근원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릇은 하나인데 그 하나로 인해 안과 밖이 나뉘고, 그릇에게는 밖인데 그 밖이 안을 품고 있고, 비어 있음으로 다른 것을 채운다. 그릇에 대한 시인의 통찰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시인은 '절제와 균형'을 긴장된 힘으로 유지하고 있던 그릇의 '깨짐'에 주목한다.   깨진다는 것은 긴장하고 날카로워진다는 것이다. 모와 날을 세운다는 것이다. 겨냥하고 노린다는 것이다. 때로 상처를 내고 피를 부르기도 한다. 그릇은 비어 있음으로 충만한 둥금의 세계지만, 언제나 깨질 위기에 처해 있고 깨졌을 때 이면을 드러낸다.   그러한 파괴는 이전을 벗음으로써 이후를 여는 파탈(擺脫)이 된다. 스스로뿐 아니라 타자의 파탈을 이끌기도 한다. 스스로뿐 아니라 타자를 상처냄으로써 상처 깊숙한 곳에서 혼(魂)의 성숙을 이끌기도 한다.   그러므로 깨진 그릇이야말로 끝이면서 시작이다. 시작의 '눈뜸'은 바로 끝의 '깨짐'과 한 몸을 이룬다. 때문에 시인에게 '깨진다는 것'은 갇히기를 거부하는 움직임이다. 공간을 뛰쳐나온 존재의 환희다. 빈 공간이며 허공이고 무(無)다. "깨지는 그릇./ 자리에서 밀린 그릇은/ 차라리 깨진다./ 깨짐으로써 본분을 지키는/ 살아 있는 흙,/ 살아 있다는 것은/ 스스로 깨진다는 것이다"('살아 있는 흙 -그릇14'). 흙이 되기 위하여 흙으로 빚어진 '모순의 그릇', 깨져서 새롭게 완성되는 '깨진 그릇'이야말로 오세영 시인의 가장 개성적인 개인 상징이라 할 만하다.      [애송시 100편-제36편] 우리 오빠와 화로 - 임화       사랑하는 우리 오빠 어저께 그만 그렇게 위하시던 오빠의 거북 무늬 질화로가 깨어졌어요   언제나 오빠가 우리들의 ‘피오닐’ 조그만 기수라 부르는 영남(永南)이가   지구에 해가 비친 하루의 모―든 시간을 담배의 독기 속에다   어린 몸을 잠그고 사온 그 거북 무늬 화로가 깨어졌어요     그리하여 지금은 화(火)젓가락만이 불쌍한 영남(永男)이하구 저하구처럼   똑 우리 사랑하는 오빠를 잃은 남매와 같이 외롭게 벽에 가 나란히 걸렸어요     오빠……   저는요 저는요 잘 알았어요   왜―그날 오빠가 우리 두 동생을 떠나 그리로 들어가신 그날 밤에   연거푸 말은 궐련[卷煙]을 세개씩이나 피우시고 계셨는지   저는요 잘 알았어요 오빠   언제나 철 없는 제가 오빠가 공장에서 돌아와서 고단한 저녁을 잡수실 때 오빠 몸에서 신문지 냄새가 난다고 하면   오빠는 파란 얼굴에 피곤한 웃음을 웃으시며     ……네 몸에선 누에 똥내가 나지 않니―하시던 세상에 위대하고 용감한 우리 오빠가 왜 그날만   말 한 마디 없이 담배 연기로 방 속을 메워 버리시는 우리 우리 용감한 오빠의 마음을 저는 잘 알았어요   천정을 향하여 기어올라가던 외줄기 담배 연기 속에서―오빠의 강철 가슴 속에 박힌 위대한 결정과 성스러운 각오를 저는 분명히 보았어요   그리하여 제가 영남(永男)이의 버선 하나도 채 못 기웠을 동안에   문지방을 때리는 쇳소리 마루를 밟는 거칠은 구둣소리와 함께―가 버리지 않으셨어요     그러면서도 사랑하는 우리 위대한 오빠는 불쌍한 저의 남매의 근심을 담배 연기에 싸 두고 가지 않으셨어요   오빠―그래서 저도 영남(永男)이도   오빠와 또 가장 위대한 용감한 오빠 친구들의 이야기가 세상을 뒤집을 때   저는 제사기(製絲機)를 떠나서 백 장에 일 전짜리 봉통(封筒)에 손톱을 부러뜨리고   영남(永男)이도 담배 냄새 구렁을 내쫓겨 봉통(封筒) 꽁무니를 뭅니다   지금―만국지도 같은 누더기 밑에서 코를 고을고 있습니다     오빠―그러나 염려는 마세요   저는 용감한 이 나라 청년인 우리 오빠와 핏줄을 같이 한 계집애이고   영남(永男)이도 오빠도 늘 칭찬하던 쇠같은 거북무늬 화로를 사온 오빠의 동생이 아니예요   그리고 참 오빠 아까 그 젊은 나머지 오빠의 친구들이 왔다 갔습니다   눈물 나는 우리 오빠 동무의 소식을 전해 주고 갔어요   사랑스런 용감한 청년들이었습니다   세상에 가장 위대한 청년들이었습니다     화로는 깨어져도 화(火)젓갈은 깃대처럼 남지 않았어요   우리 오빠는 가셨어도 귀여운 ‘피오닐’ 영남(永男)이가 있고   그리고 모든 어린 ‘피오닐’의 따뜻한 누이 품 제 가슴이 아직도 더웁습니다   그리고 오빠……   저뿐이 사랑하는 오빠를 잃고 영남(永男)이뿐이 굳세인 형님을 보낸 것이겠습니까   ?지도 않고 외롭지도 않습니다   세상에 고마운 청년 오빠의 무수한 위대한 친구가 있고 오빠와 형님을 잃은 수없는 계집아이와 동생   저희들의 귀한 동무가 있습니다     그리하여 이 다음 일은 지금 섭섭한 분한 사건을 안고 있는 우리 동무 손에서 싸워질 것입니다     오빠 오늘 밤을 새워 이만 장을 붙이면 사흘 뒤엔 새 솜옷이 오빠의 떨리는 몸에 입혀질 것입니다     이렇게 세상의 누이동생과 아우는 건강히 오늘 날마다를 싸움에서 보냅니다     영남(永男)이는 여태 잡니다 밤이 늦었어요     ―누이동생               ▲ 일러스트 잠산   임화(1908~1953)는 일제강점기에 사회주의 문학운동을 표방한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KAPF)의 핵심 멤버로 카프의 서기장을 지낸 시인이자 평론가였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임화는 모던 보이였다. 영화 '유랑'과 '혼가'에서 주연을 맞기도 해 '조선의 발렌티노'로 불리었다. 그는 계급주의 문학의 선봉에 서서 카프를 이끌었지만, 막상 1935년에는 카프 해산계를 직접 내야 했다. 해방 직후에는 서울 종로 한청빌딩에 조선문학건설본부라는 간판을 내걸어 좌익 계열 문인들을 규합했다. 그 후 박헌영을 따라 월북했으나 '미제의 간첩'으로 몰려 처형당했다.   이 시는 사건적이고 소설적인 데서 시의 소재를 찾았고, 소박하고 '된 그대로의 말'을 사용했고, 노동자들의 낭독에 편한 리듬을 씀으로써 카프문학을 대표하는 전형적인 '단편 서사시'라는 평가를 받았다. 제사(製絲) 공장 여직공이었다가 이제는 백 장의 봉투를 붙이면 일전을 버는 일을 하는 화자가 오빠에게 보내는 애틋한 편지글 형식이다. '밤을 새워 이만 장을 붙이면 사흘 뒤엔 새 솜옷이 오빠의 떨리는 몸에 입혀질 것입니다'라는 표현으로 봐서 오빠는 지금 감옥에 갇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화로에 '오빠' 혹은 '혁명가의 정신'을 빗대어서, 역경―거북무늬 화로가 깨어지는―이 지금 닥쳐왔지만 굴하지 않고 이겨내겠다는 뜻을 밝혀 놓았다.   임화는 올해로 김기림, 김유정, 최재서, 백철과 함께 탄생 100돌을 맞았다. 임화는 1936년에 '오오 적이여, 너는 나의 용기다'라는 자신의 묘비명을 미리 썼다. 고은 시인은 '만인보 20'에서 '임화'라는 시를 통해 '아직껏 한국문학사에는 버려둔 무덤이 있다/ 마른 쑥대머리 무덤/ 그 무덤 벙어리 풀려 열리는 날/ 그 무덤 속 해골/ 뚜벅 걸어나오는 날/ 임화는 오리라// 아름다운 얼굴 다시 오리라 부신 햇살 뿜어 오리라'라고 써 왕양(汪洋)한 기상의 소유자였던 그를 추모했다.      [애송시 100편-제37편] 문의(文義)마을에 가서 - 고은       겨울 문의(文義)에 가서 보았다.   거기까지 닿은 길이   몇 갈래의 길과   가까스로 만나는 것을.   죽음은 죽음만큼 길이 적막하기를 바란다.   마른 소리로 한 번씩 귀를 닫고   길들은 저마다 추운 소백산맥 쪽으로 벋는구나.   그러나 삶은 길에서 돌아가   잠든 마을에 재를 날리고   문득 팔짱 끼어서   먼 산이 너무 가깝구나.   눈이여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느냐.       겨울 문의(文義)에 가서 보았다.   죽음이 삶을 꽉 껴안은 채   한 죽음을 받는 것을.   끝까지 사절하다가   죽음은 인기척을 듣고   저만큼 가서 뒤를 돌아다 본다.   모든 것은 낮아서   이 세상에 눈이 내리고   아무리 돌을 던져도 죽음에 맞지 않는다.   겨울 문의(文義)여 눈이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느냐.   주(註) : 문의(文義)-충북 청원군의 한 마을.                 ▲ 일러스트 권신아  중학생 때 길에서 주운 한하운 시집을 읽고 시인이 되기로 결심했다는 시인. 해마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시인. 출가와 환속, 숱한 기행, 폐결핵, 자살시도, 군법회의에서 종신형을 선고받기도 한 반독재 민주화운동 등 열정적인 삶을 살아온 시인. 시, 소설, 평론, 평전, 번역, 수필 등 150여 권에 이르는 신화적 글쓰기로 유명한 시인. '젊은 시인이여 술을 마셔라'라고 일갈하는 말술의 시인. 격정적인 시낭송이 일품인 시인. 낭만적인 허무의식에서, 역사와 민중에 대한 첨예한 현실인식으로, 그리고 선적(禪的) 초월의식으로 시적 변모를 거듭해온 시인. 올해로 등단 반세기를 맞이하는 시인. 여러 의미로 고은(75) 시인은 '큰' 시인임에 분명하다.   이 시는 신동문 시인의 모친상을 조문하러 문의에 갔다가 쓴 시라고 알려져 있다. '문(文)'과 '의(義)'의 마을, 문사(文士) 혹은 지사(志士)들이 꿈꾸었을 유토피아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지명이다(실제의 문의마을은 80년 대청댐 담수로 수몰되었으며 그 일부가 문의문화재단지에 복원되었다). 문의마을에 눈은 만났다가 갈라지기를 거듭하는 삶과 죽음, 산과 들, 마을과 길의 경계를 덮으며 내린다. 경계를 덮으며 내리는 눈은 온 세상을 낮게 그리고 가깝게 만들고, 적막하게 그리고 서로를 껴안아주고 받아줄 듯 내린다. 시인에게 그 눈은 죽음처럼 내리는 것이다. 우리 삶 속의 죽음처럼.   그의 다른 시 "싸락눈이 내려서/ 돌아다보면 여기저기 저승"('작은 노래'), "쌓이는 눈더미 앞에/ 나의 마음은 어둠이노라"('눈길')라는 시에서도 눈은 '대지(大地)의 고백(告白)'이나 '위대한 적막(寂寞)'처럼 내린다. 한 평자는 그러한 눈을 '아름다운 허무'라고도 했다. 그러나 눈은 금세 내리고 금세 녹아버리듯, 우리가 삶에서 죽음의 의미를 깨닫기란 높고 먼 일이다. 상여(喪輿)의 길처럼, 마을에서 산에 이르는 길은 삶에서 죽음에 이르는 길이다. 겨울 문의에 가서 시인이 본 것은 그 길이 '가까스로 만난'다는 것이고, 너무 가깝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덮으며, 가깝게 낮게 내리는 눈 때문에 더욱 그러하였으리라.      [애송시 100편-제38편] 긍정적인 밥 - 함민복       시(詩)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덮여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 일러스트=잠산 "아무리 하찮게 산// 사람의 생(生)과 견주어 보아도// 시(詩)는 삶의 사족(蛇足)에 불과"('詩')하지만 시인은 시를 써서 세상의 돈을 쥔다. 끙끙대고 밤을 새우며 쓴 노력에 비하면 원고료는 박하고, 몇 년 만에 펴내고 받는 인세로 꾸리는 생활은 기궁하다.   그러나 이 가난한 시인은 원고료와 인세를 교환하면 쌀이 두 말, 국밥이 한 그릇,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이나 되니 든 공에 비해 너무 많은 게 아닌가라고 묻는다. 쌀이 두 말이 되기까지의 노동, 한 그릇의 국밥이 되기까지의 노동, 굵은 소금 한 됫박이 되기까지의 노동에 비하면 내 노동의 대가는 얼마나 고맙고 큰 것인가 라고 말한다. 땡볕 속에서 몸으로 얻어낸 그것들에 비할진대. 이 세상 정직한 사람들의 숭고한 노동에 비할진대.   함민복(46) 시인의 초기 시는 거대 자본주의 현실에 대한 공포를 노래했다. "이 시대에는 왜 사연은 없고/ 납부통지서만 날아오는가/ 아니다 이것이야말로/ 자본주의의 절실한 사연이 아닌가"('자본주의의 사연')라고 노래했고, 서울을 문명을 주사하는 '백신의 도시'라고 이름 붙였다. 그리고 1996년 그는 보증금 없이 월세 10만원인, 마당에 고욤나무가 서 있는 강화도 동막리 폐가 한 채에 홀로 살림을 부렸다. 동네 형님 고기잡이배를 따라다니며 망둥이, 숭어, 농어를 잡고, 이제는 뻘낙지를 잡을 줄도 아는 어민후계자 시인이 되었다. 뻘에 말뚝을 박으려면 힘으로 내려 박는 것이 아니라 "뻘이 말뚝을 품어 제 몸으로 빨아들일 때까지/ 좌우로 또는 앞뒤로 열심히 흔들어야 한다"('뻘에 말뚝 박는 법')는 것도 배웠고, 그물 매는 것을 배우러 나갔다 배를 타고 돌아오면서 "경진 아빠 배 좀 신나게 몰아보지/ 먼지도 안 나는 길인데 뭐!"('승리호의 봄')라며 농담을 할 줄도 안다.   강화의 서해 갯바람과 갈매기와 뻘냄새가 물씬 풍기는 그의 시는 단단한 문명에 맞서는 '부드러움의 시학'으로 나아가면서 우리 시단에서는 한동안 드물었던 '섬시(詩)' 명편들을 낳고 있다. 강화도의 '물때달력'을 오늘도 들여다보고 있을 시인아      [애송시 100편-제38편] 전라도 가시내 - 이용악       알룩조개에 입맞추며 자랐나   눈이 바다처럼 푸를뿐더러 까무스레한 네 얼굴   가시내야   나는 발을 얼구며   무쇠다리를 건너온 함경도 사내   바람소리도 호개도 인전 무섭지 않다만   어드운 등불 밑 안개처럼 자욱한 시름을 달게 마시련다만   어디서 흉참한 기별이 뛰어들 것만 같애   두터운 벽도 이웃도 못 미더운 북간도 술막   온갖 방자의 말을 품고 왔다   눈포래를 뚫고 왔다   가시내야   너의 가슴 그늘진 숲속을 기어간 오솔길을 나는 헤매이자   술을 부어 남실남실 술을 따르어   가난한 이야기에 고이 잠거다오   네 두만강을 건너왔다는 석 달 전이면   단풍이 물들어 천리 천리 또 천리 산마다 불탔을 겐데   그래도 외로워서 슬퍼서 초마폭으로 얼굴을 가렸더냐   두 낮 두 밤을 두루미처럼 울어 울어   불술기 구름 속을 달리는 양 유리창이 흐리더냐   차알삭 부서지는 파도소리에 취한 듯   때로 싸늘한 웃음이 소리 없이 새기는 보조개   가시내야   울 듯 울 듯 울지 않는 전라도 가시내야   두어 마디 너의 사투리로 때아닌 봄을 불러줄께   손때 수집은 분홍 댕기 휘 휘 날리며   잠깐 너의 나라로 돌아가거라   이윽고 얼음길이 밝으면   나는 눈포래 휘감아치는 벌판에 우줄우줄 나설 게다   노래도 없이 사라질 게다   자욱도 없이 사라질 게다                 ▲ 일러스트=권신아   "거리의 뒷골목에서 만나거든/먹었느냐고 묻지 말라/굶었느냐곤 더욱 묻지 말라"(시 '나를 만나거든')던 시인 이용악(1914~1971)! 그는 한반도의 최북단 함경북도 경성에서 태어났다. '두만강 너 우리의 강'을 건너 할아버지는 소금을 밀수입했고 친척들은 그 강을 건너 아라사(러시아) 연해주 등지로 이민을 갔다. 그 두만강을 건너 밀무역 행상 중 아버지는 객사하였으며, 홀로 된 어머니는 국숫집을 하며 어린 자식들을 키웠다. 시인 또한 서울에서 동경에서 품팔이 노동을 하며 고학했다. 이야기성과 체험의 구체성이 두드러진 그의 시들을 읽는 일은 일제강점기의 불행한 개인사, 가족사, 그리고 우리의 근·현대사를 읽어내는 일이기도 하다.   북간도 어느 술막에서 함경도 사내와 전라도 가시내가 만났다. 사내는 언 발로 눈보라를 뚫고 두만강을 건너왔으며 날이 밝으면 다시 흔적도 없이 떠나야 한다. 가시내는 석 달 전에 북으로 달리는 '불술기(기차)' 속에서 치마를 뒤집어쓴 채 이틀을 울며 두만강을 건너 이곳으로 팔려왔다. 그런 두 남녀가 국경 너머에서 만나 겨울밤 내 지나온 내력을 이야기하며 술잔을 주고받고 있다.   그 밤 내 사내가 '가시내야' '가시내야'라고 부를 때, 그것도 함경도 사내가 '전라도 가시내야'라고 부를 때, 그 전라도 가시내는 한없이 차고 한없이 차진 느낌이다. 고향을 떠나 두 낮 두 밤을 두루미처럼 울고 울었던 가시내, 지금은 남실남실 술을 치는 가시내. 때로 싸늘한 웃음을 보조개를 소리 없이 새기는 가시내, 까무스레한 얼굴에 눈이 바다처럼 푸른 가시내, 간간이 전라도 사투리가 섞이는 가시내…. 이 함경도 사내처럼 나는, 그 전라도 가시내를 만난 것만 같다. 전라도 개펄의 바지락 조개 같고 세발낙지 같고 때로 꿈꿈한 홍어 같기도 했으리라.   그 밤 내내 함경도 사내가 피워 올리는 북쪽 눈포래 냄새와, 전라도 가시내가 피워 올리는 남쪽 바다 냄새에 북간도 술막이 흥성했겠다. 그 술막의 술독 바닥났겠다. 눈에 선한, '흉참한' 시대를 살았던 그 전라도 가시내. "너의 노래가 어부의 자장가처럼 애조롭다/너는 어느 흉작촌(凶作村)이 보낸 어린 희생자냐"(제비 같은 소녀야-강 건너 주막에서)!      [애송시 100편-제40편] 박꽃 - 신대철       박꽃이 하얗게 필 동안   밤은 세 걸음 이상   물러나지 않는다       벌떼 같은 사람은 잠 들고   침을 감춘 채   뜬소문도 잠 들고   담비들은 제 집으로   돌아와 있다       박꽃이 핀다   물소리가 물소리로 들린다                   ▲ 일러스트 잠산   꽃의 개화를 본 적이 있으신지. 그 잎잎의 열어젖힘을 본 적이 있으신지. 불교에서는 이 세상에서 최고의 일을 씨앗이 움트는 일이라고 했다지만, 꽃의 '열린 앉음새'라 불러도 좋을 꽃의 개화는 사람을 압도한다. 대개 꽃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핀다.   천천히 진행되는 개화 파노라마를 관심있게 시종 지켜볼 만큼 여유롭고 섬세한 마음의 눈을 가진 사람들은 아마도 많지 않겠지만.   이 시에서 사람을 '벌떼 같은 사람'이라고 비유한 부분은 압권이다. 정신없이 분주하고 시끌시끌 작당(作黨)하여 몰려다니며 입으로 바늘 같은 독설을 내뱉는 세간의 사람들을 잉잉거리는 벌떼 무리에 비유했다. 인간의 시간이 깊은 잠에 빠져들고 소란이 뚝 그쳤을 때 자연의 시간은 도래한다. 그리고 오, 하얀 박꽃은 피어난다. 물소리는 물소리로 들린다. 자연은 자연 그대로 들린다.   자연의 시간에는 살기(殺氣)가 없다. 자연의 시간은 인간의 세계를 맑게 회복시킨다. 씻어낸다. 시 '무인도'에서 "인간을 만나고 온 바다,/ 물거품 버릴 데를 찾아 무인도(無人島)로 가고 있다"라고 했을 때의 무인도처럼. 하산(下山)한 당신도 '죄(罪) 짓지 않고' 어슬렁어슬렁 자연의 시간에 살고 싶지 않으신지.   이 시는 '산(山)의 시인'이라고 불러도 좋을 신대철(63) 시인의 첫 시집 '무인도를 위하여'에 실려 있다. 신대철 시인은 1977년 첫 시집을 출간하고 23년간 절필을 했다. 2000년 시작 활동을 재개한 후 근년에는 알래스카, 시베리아 평원, 바이칼호, 몽골, 두만강 등 원시적이고 광활한 자연에 대한 시들을 발표하고 있다. 그곳에 정착하게 된 사람들의 이산의 역사와 고통을 부각시키면서. 신대철 시인은 북파 공작원 부대의 학군장교로 군복무를 했고, 그 당시의 기억을 토대로 전쟁과 남북 분단의 아픈 현대사를 시로 표현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린 시절 충청도 청양의 깊은 산에서 화전민으로 살았던 그만의 체험은 붉은 혈액이 되어 신대철 시의 몸을 움직인다. 그의 시는 큰 산이요 큰 숲이다. 더 깊숙이 평화롭고, 깨금이 떨어지고, 아그배가 떨어지는 그런 곳. 당신도 가서 살고 싶지 않으신지.       [애송시 100편-제41편] 6은 나무 7은 돌고래, 열번째는 전화기 - 박상순       첫번째는 나   2는 자동차   3은 늑대, 4는 잠수함   5는 악어, 6은 나무, 7은 돌고래   8은 비행기   9는 코뿔소, 열번째는 전화기   첫번째의 내가   열번째를 들고 반복해서 말한다   2는 자동차, 3은 늑대   몸통이 불어날 때까지   8은 비행기, 9는 코뿔소,   마지막은 전화기   숫자놀이 장난감   아홉까지 배운 날   불어난 제 살을 뜯어먹고   첫번째는 나   열번째는 전화기             ▲ 일러스트=권신아   말문이 트인 아이는 어느 날 선언한다. "엄마, 오늘부터 엄마는 아지, 아빠는 끼리, 언니는 콩콩이, 나는 밍밍이야, 이제 그렇게 불러야 돼, 꼭." 또 어느 날은 이렇게 선언한다. "오늘부터 식탁은 구름, 의자는 나무, 밥은 흙, 반찬은 소라라고 해야 돼, 알았지?" 난감, 황당 그 자체일 때가 많은 박상순(46) 시인의 시는 이런 네 살배기 놀이의 사유로 들여다보았을 때 쉽게 이해되곤 한다. 그러니 주의하시라! 그의 시를 향해, 이게 무슨 말이지 하고 묻는 순간 당신은 헛방에 발을 들여놓는 것이니.   'A는 B'라는 반복으로 이루어진 시다. A와 B의 관계는 무연하고 또 우연하다. 인과관계가 없는 '관계 맺기' 혹은 '이름 바꾸기' 놀이다. 그러니 왜 첫 번째가 나이고 6이 나무이고 7이 돌고래인지를 묻는 것은 무의미하다. 독자들도 A에 혹은 B에 마음껏 다른 단어를 넣어 읽어도 무방하다. 또한, 이 시는 앞에는 숫자가, 뒤에는 낱말이 새겨진 아이들의 카드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6이라 쓰인 카드의 뒷면에는 나무라고 씌어 있고, 7이라 쓰인 카드의 뒷면에는 돌고래라고 씌어 있다. 십진법에 따르면 세상 혹은 세상의 모든 숫자는 1부터 10까지의 숫자로 환원된다. 현실과 언어의 관계가 그러한 것처럼 숫자와 낱말의 관계도 무연하고 우연한 약속에 불과하다면, 세상의 모든 관계도 그러하다는 것일까?   이 시의 핵심은, '내'가 이 순서와 관계를 (외우듯) 반복하는 그 리듬에 있다. '자, 아무 생각 말고 따라 해 봐'라는 식의 폭력적인 우리의 교육 현실 혹은 성장 과정을 암시하는 것일까? 매일 반복되는 단조로운 일상 내지는 언어(혹은 제도)의 감옥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것일까? 아니면 유년의 로망이 담긴 단어의 나열이라는 점에서 상실한 본향에 대한 향수를 그리워하는 것일까? 아무것이면서 아무것이 아니기도 할 것이다. 언뜻 보면 천진난만한데 읽다 보면 슬쩍 공포스러워지는 까닭들이다.   박상순 시인은 회화를 전공한 미술학도다. 유능한 북(표지)디자이너이자 편집자이며 출판인이기도 하다. '무서운 아이들'의 유희적 상상력, 신경증적 반복, 파격적 시 형식, 의미의 비약적 해체를 특징으로 하는 그의 시에 대해 다 알려고 하지 말자. 다 알려고 하면 박상순 시는 없다. 박상순보다 시를 잘 쓰는 사람은 많을지 모르지만 그 누구도 박상순처럼 시를 쓰지는 못한다. 그게 중요하다.      [애송시 100편-제42편]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 - 황지우         나무는 자기 몸으로   나무이다   자기 온몸으로 나무는 나무가 된다   자기 온몸으로 헐벗고   영하(零下) 십삼도(十三度)   영하(零下) 이십도(二十度) 지상(地上)에   온몸을 뿌리박고 대가리 쳐들고   무방비의 나목(裸木)으로 서서   두 손 올리고 벌 받는 자세로 서서   아 벌 받은 몸으로, 벌 받는 목숨으로   기립(起立)하여, 그러나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온 혼(魂)으로 애타면서 속으로 몸속으로   불타면서   버티면서 거부하면서 영하(零下)에서   영상(零上)으로 영상(零上) 오도(五度)   영상(零上) 십삼도(十三度) 지상(地上)으로   밀고 간다, 막 밀고 올라간다 온몸이 으스러지도록                             으스러지도록 부르터지면서   터지면서 자기의 뜨거운 혀로   싹을 내밀고   천천히, 서서히, 문득, 푸른 잎이 되고   푸르른 사월 하늘 들이받으면서   나무는 자기의 온몸으로 나무가 된다   아아, 마침내, 끝끝내   꽃피는 나무는 자기 몸으로   꽃피는 나무이다   ▲ 일러스트=잠산 황지우(56) 시인의 시 '손을 씻는다'를 함께 읽는다. "하루를 나갔다 오면/ 하루를 저질렀다는 생각이 든다/ 내심으로는 내키지 않는 그 자와도/ 흔쾌하게 악수를 했다/ 이 손으로/ 만져서는 안 될 것들을/ 스스럼없이 만졌다"라고 쓴 시. 한 점 오점 없이 살 수는 없다. 저질러가면서 우리는 산다. 좌충우돌하면서 난동을 부리면서.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시대가 진화해가는 것은 우리가 내부적으로 가진 자기 반성과 좀 더 나아지려는 희망의 추구 같은 것 때문이다.   이 시는 솔직하다. 나무는 꼭 나무를 지칭하지는 않는다. 헐벗고 무방비이고, 때로는 벌 받고, 긴가민가 하는 사람으로 읽어도 좋다. 그러나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라고 중얼중얼할 줄은 아는 사람이다. 아주 숙맥이거나 속물적이지는 않아서 현재의 환멸을 볼 줄은 아는, 앙가슴이 뛰는 그런 사람. 바깥 세상이 영하인지 영상인지 구별할 줄 알아 드디어 버틸 줄도 거부할 줄도 알게 된 사람. 마침내 싹도 잎도 틔우면서 불쑥 기립하여 봄의 나무가 된 사람. 자력의 운동성을 가진, 스스로를 혁명하는 사람. 자기 몸을 쳐서 바다를 건너가는 새 같은 사람. 의지의 사람… 우리는 이런 봄나무를 기다리는 것 아닌가.   황지우 시인은 1980년대를 날카로운 풍자로 노래했다. 그는 1980년대의 독재와 살해와 검열에 맞선 '시의 시국사범'이었다. 한 대담에서 1980년대의 시대적 상황에 대해 "시대가 우리를 건드렸다"고 표현했는데, 그의 시는 권력의 중증(重症)을 처절하게 해체하려한 양심이었다. 설령 그가 시 '뼈아픈 후회'에서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폐허다//(…)// 아무도 사랑해본 적이 없다는 거/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한번도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라고 써 지나온 삶의 궤적을 돌아보고 있지만, 이 혹독한 자기 검열의 고백이 황지우 시의 미덕이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시대와의 불화와 선적(禪的)인 기개를 넘나드는 그의 시는 한국시사에서 푸릇푸릇한 '방풍(防風)의 대밭'이다.      [애송시 100편-제43편] 쉬 - 문인수         그의 상가엘 다녀왔습니다.   환갑을 지난 그가 아흔이 넘은 그의 아버지를 안고 오줌을 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생(生)의 여러 요긴한 동작들이 노구를 떠났으므로, 하지만 정신은 아직 초롱 같았으므로 노인께서 참 난감해 하실까봐 "아버지, 쉬, 쉬이, 어이쿠, 어이쿠, 시원허시것다아" 농하듯 어리광 부리듯 그렇게 오줌을 뉘였다고 합니다.   온몸, 온몸으로 사무쳐 들어가듯 아, 몸 갚아드리듯 그렇게 그가 아버지를 안고 있을 때 노인은 또 얼마나 더 작게, 더 가볍게 몸 움츠리려 애썼을까요. 툭, 툭, 끊기는 오줌발, 그러나 그 길고 긴 뜨신 끈, 아들은 자꾸 안타까이 땅에 붙들어매려 했을 것이고 아버지는 이제 힘겹게 마저 풀고 있었겠지요. 쉬-   쉬! 우주가 참 조용하였겠습니다.   (〈2006〉)       ▲ 일러스트=권신아   해방둥이 문인수(62) 시인은 마흔이 넘어 등단한 늦깎이 시인이다. 하지만 시적 성취는 어느 시인보다 높아 환갑 지나 시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이 시는 정진규 시인의 부친상에 문상을 갔다가 선친에 대한 회고담을 듣고 쓰인 시인데, 바야흐로 문인수 시인의 대표시가 되었다. 문상을 다녀와 순식간에 쓰였을 것이다. 그만큼 이 시는 막힘이 없이 활달하다.   환갑이 지난 아들이 아흔의 아버지를 안고 오줌을 뉘고 있다. 정신은 아직 초롱한 아버지가 '생(生)의 여러 요긴한 동작'들이 떠나버린 스스로의 몸에 난감해 하실까봐 아들이 "아버지, 쉬, 쉬이, 어이쿠, 어이쿠, 시원허시겄다아"며 농 반 어리광 반을 부리고 있다. 상상만으로도 그 모습은 흐뭇하고 뭉클하다. 이 '쉬'는 단음절인데 그 뜻은 다의적이어서 긴 여운을 남긴다. 일차적으로는 오줌을 누시라는 말이겠고, 그것도 쉬이(쉽게) 누시라는 말이겠고, 아버지가 힘겹게 오줌을 누시는 중이니 우주로 하여금 조용히 하라는 말이겠다. 아버지를 향해, 우주를 향해 그리고 신을 향해 내는 울력의 소리이자 당부의 소리이고 주술의 소리일 것이다.   오줌발을 '길고 긴 뜨신 끈'으로 비유하는 부분은 압권이다. 계산해 보지는 못했지만 한 사람이 평생 눈 오줌발을 잇고 잇는다면 지구 한 바퀴쯤은 돌 수 있지 않을까. 그 길고 뜨신 오줌발이야말로 한 생명의 끈이고 한 욕망의 끈이다. 그 '길고 긴 뜨신 끈'을 늙은 아들은 안타깝게 땅에 붙들어 매려 하고 더 늙으신 아버지는 이제 힘겨워 땅으로부터마저 풀려 한다. 아들은 온몸에 사무쳐 '몸 갚아드리듯' 아버지를 안고, 안긴 아버지는 온몸을 더 작게 더 가볍게 움츠리려 애쓴다. 안기고 안은 늙은 두 부자의 대조적인 내면이 시를 더욱 깊게 한다.   마지막 행의 '쉬!'는 첫 행의 '상가(喪家)'를 환기시킨다. 이제 아들의 쉬- 소리도, 툭 툭 끊기던 아버지의 오줌발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 '길고 긴 뜨신 오줌발'도 쉬!, 이렇게 조용히 끊기기도 하는 것이다. 때로 '시가 뭘까' 라는 고민을 할 때 이런 시는 쉬운 답을 주기도 한다. 삶의 희로애락을 한순간에 집약시키는 것, 그 순간에 삶과 죽음을 관통하는 통찰이 녹아 있는 것이라는. 이 시가 그러하지 않는가.        [애송시 100편-제44편] 너와집 한 채 - 김명인       길이 있다면, 어디 두천쯤에나 가서   강원남도 울진군 북면의   버려진 너와집이나 얻어 들겠네, 거기서   한 마장 다시 화전에 그슬린 말재를 넘어   눈 아래 골짜기에 들었다가 길을 잃었네   저 비탈바다 온통 단풍 불 붙을 때   너와집 썩은 나무껍질에도 배어든   연기는 매워서   집이 없는 사람 거기서도 눈물 잣겠네   쪽문을 열면 더욱 쓸쓸해진 개옻 그늘과   문득 죽음과, 들풀처럼 버팅길 남은 가을과   길이 있다면, 시간 비껴   길 찾아가는 사람들 아무도 기억 못하는 두천   그런 산길에 접어들어   함께 불 붙는 몸으로 저 골짜기 가득   구름 연기 첩첩 채워넣고서   사무친 세간의 슬픔, 저버리지 못한   세월마저 허물어버린 뒤   주저앉을 듯 겨우겨우 서 있는 저기 너와집,   토방 밖에서 황토흙빛 강아지 한 마리   키우겠네   부뚜막에 쪼그려 수제비 뜨는 나 어린   처녀의   외간 남자가 되어   아주 잊었던 연모 머리 위의 별처럼   띄워놓고       그 물색으로 마음은 비포장도로처럼 덜컹거리겠네   강원남도 울진군 북면   매봉산 넘어 원당 지나서 두천   따라오는 등뒤의 오솔길도 아주 지우겠네   마침내 돌아서지 않겠네           ▲ 일러스트=잠산 흔하게도 인생은 여행에 비유된다. 우리는 흘러가면서 만난다. 사람과 붐비는 시장과 웃음과 꽃밭과 폭풍의 바다와 벼랑과 사막을 만난다. 그러므로 삶에는 여독이 있다. 이 시를 읽으며 나는 내 여행의 종착지를 생각한다.   이 시는 우리의 마음을 적적한 곳으로 데려간다. 세상에서 가장 깊은 골짜기로 가서 살자고 한다. 종일을 살아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을, 개옻 그늘과 늦가을만이 살고 있는 곳. 세상의 쓸쓸함을 다 살아본 듯 벌써 무욕을 알고, 골짜기보다 더 깊은 눈으로 속리(俗離)한 우리를 맞아줄 여인이 살고 있는 곳. 그러나 그런 곳이 있을까. 잇속이나 명리나 부귀 같은 것은 손을 털 듯 탁, 탁 털어버린 곳. 더 움켜쥐려는 근욕(根欲)이 사라져 알몸의 자아를 비로소 만날 수 있는 곳. 퇴폐도 맑게 씻기어서 별처럼 빛나는 곳. 삶을 탕진한 사람도 다 받아줄 것 같은 마지막 성지(聖地). 그곳서 우리의 여행이 끝난다면 후회는 없으리니.   많은 독자들은 김명인(62) 시인의 첫 시집 '동두천(東豆川)'을 기억할 것이다. 기지촌에서 혼혈아에게 국어를 가르치던 시기의 경험을 쓴 동두천 연작은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니. "그 아이는 지금 대전 어디서/ 다방 레지를 하고 있는지 몰라/(…)/ 지금도 기억할까 그때 교내 웅변대회에서/ 우리 모두를 함께 울게 하던 그 한마디 말/ 하늘 아래 나를 버린 엄마보다는/ 나는 돈 많은 나라 아메리카로 가야 된대요"('동두천 4')라고 써 수많은 독자를 여지없이 울먹이게 한 시!     김명인 시인은 동두천 연작 발표 후에도 지금까지 '욕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그 막막한 표랑을 강한 연민으로 감싸 안아온 시인이다. 그는 한국의 서정시가 실험과 해체와 생각의 과잉과 포즈의 유행을 탈 때에도 흔들림 없이 서정시를 지켜내는 수문신장(守門神將)의 역할을 맡아 왔다. 그의시에 대해 이승훈 시인은 다음과 같이 평했다. "한마디로 김명인의 시는 마음이 놓인다"라고. 동감이다      [애송시 100편 - 45] 향수-정지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석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 일러스트 권신아   시간은 가고 기억은 쌓인다. 잃어버린 시간의 기억을 우리는 추억이라 하던가. 향수(鄕愁)란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추억이자 그리움이다. 상처나 슬픔조차도 지나간 것이기에 아름답고 생의 근원에 대한 동경을 일깨워주는 고향. 마음의 고향은 늘 그렇게 잃어버린 시간에 자리하고, 향수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가게 한다.   이동원과 박인수가 노래로 불러 더 유명해진 정지용(1902~1950)의 '향수'는 이십대 초반의 시인이 일본으로 유학 가기 전 고향인 충북 옥천을 다니러가며 쓴 시다. 이제 곧 떠나야 할 고향이기에 더욱 간절했을 것이다. 검정 두루마기를 즐겨 입고 정종을 좋아했던 그는 몇 순배의 술잔이 돌고 나면 낭랑한 목소리로 이 '향수'와 함께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로 시작하는 '고향'을 즐겨 낭송했다 한다. 신석정 시인은 "지용같이 시를 잘 읊는 사람은 보지 못했노라" 회고한 바 있다.   "시의 신비는 언어의 신비"라고 믿었던 그는 우리 현대시사에서 언어와 감각의 탁월한 경지를 보여주었다. 이 시 또한 소리내어 읽노라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는 ㅂㅂㅂ 말을 달리는 듯하고,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함추름 휘적시던 곳'은 ㅎㅎㅎ 흩어져 있는 듯하다. 실개천을 '옛이야기 지줄대는' 소리로, 황소를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으로, 아버지를 '엷은 졸음'으로 감각하는 솜씨 또한 일품이다. '해설피'가 해가 설핏할 무렵인지 느리고 어설프게(혹은 슬프게)인지, '석근' 별이 성근(성긴) 별인지 섞인 별인지 애매하지만 그 질감만은 새록하다.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아버지와 검은 귀밑머리를 날리는 누이와 사철 발벗은 아내가 집안에 있고 집밖으로는 넓은 벌과 실개천이, 파란 하늘과 풀섶 이슬이, 석근 별과 서리 까마귀가 있다면 그곳이 어디든 이미 마음의 고향이다.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를 후렴처럼 노래하며 '그곳'을 그리듯 보여주는 단순한 시 형식은 음악적 울림은 물론 애틋한 향수의 정감을 쉽고 실감나게 전달하기에 안성맞춤이다. '흙에서 자란 마음'을 서늘옵고 빛나게 '이마받이'해보는 아침이다. "얼음 금가고 바람 새로 따르거니/ 흰 옷고름 절로 향기"('춘설(春雪)')롭지 아니한가.      [애송시 100편 - 제46편] 어디로? - 최하림       황혼이다 어두운   황혼이 내린다 서 있기를   좋아하는 나무들은 그에게로   불어오는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으며   있고 언덕 아래 오두막에서는   작은 사나이가 사립을 밀고   나와 징검다리를 건너다 말고   멈추어 선다 사나이는 한동안   물을 본다 사나이는 다시   걸음을 옮긴다 어디로?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 일러스트=잠산 최하림(69)은 한글 세대를 대표하는 시인이다. 1962년 평론가 김현·김치수, 소설가 김승옥과 한글 세대 최초의 동인지 '산문시대'를 함께 냈다. 최하림 시인의 시는 점점 그윽하다. 그는 내면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본다. 조금 걸어나가면 강이 바라보이는 양수리 그의 집에   갔을 때에도 그는 어둠이 내리는 거실에 오도카니 앉아 있었다. 그의 말은 "참 좋지요"가 전부였다. 그에게는 오연(傲然)함이 없다.     최하림 시인은 빛과 어둠, 정지와 운동 사이의 미묘한 오고 감을 살피는 데 놀라운 실력을 보여준다. 이 시를 읽어도 그렇다. 황혼이 내리는 무렵에 나무들이 있고 바람이 있고 오두막이 있고 사내가 있고 징검다리가 있고 흐르는 물이 있다. 이 존재들의 뒤에는 커튼처럼 황혼이 있다. 황혼은 아래로 하강하고, 바람은 직립한 나무들에게 수평으로 이동하고, 오두막과 사내는 수직으로 서 있거나 수직으로 움직이고, 물은 옆으로 흐른다. 존재들은 내려오고 올라가고 옆으로 이동한다. 움직이는가 했더니 곧 멈추어 선다. 동작을 보여주지만 격하지 않다. 시인은 돌보듯이 존재들 하나하나에 시선을 건넨다. 하나만을 전유하려는 못된 버릇도 없다. 해서 존재들은 하나하나가 언뜻언뜻하고 얼핏얼핏하다. 어느 것 하나가 도드라질 양이면 그 윤곽을 살짝 지워놓는다. 마음은 곧잘 뛰쳐나가길 좋아하는데 여기서는 그렇지가 않으니 갸륵하다. 마음은 이렇게 우묵하고 참할 때가 있다.   자작나무 껍질을 머리에 쓰고 너덜너덜하게 옷을 입고 다녔다는, 숨어 살았다는 한산(寒山)은 "우스워라, 나의 길이여/ 거마(車馬)의 자국조차 없네/ 돌고 도는 시내의 굽이를 알 수 없고/ 첩첩의 산은 그 겹을 모르겠네/(…)/ 내 여기에 이르러 길 잃고 헤매느니/ 그림자를 돌아보며 '어디로?' 물어보네"라고 썼는데, 이 시에서는 나아갈 길의 향방조차 묻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가 살아야 할 근사한 이유라도 있는 것이냐"고 잘 묻는다. 그러나 "어디로?" 라고 보채며 질문하지 말자. 다만 거기에 여기에 있을 뿐. 무릎을 모으고 앉아 있을 뿐. "우리는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오래도록 걸음을 멈추고 있어야"('십일월이 지나는 산굽이에서')할 뿐. 그럴 때 손결이 한 번 스치고 지나간 듯 삶에는 빛이 인다. 그 빛에 무엇을 더 보태겠는가.      [애송시 100편-47]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 이상화       지금은 남의 땅―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조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 일러스트 잠산   "오등(吾等)은 자(玆)에 아(我)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로 시작하는 기미(己未) 독립선언문에는 시 못지않은 리듬과 비장한 여운이 있다. 고교 시절, 이 선언문과 함께 짝패처럼 좔좔좔 암송해야 했던 시가 이상화(1901~1943) 시인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이다. 1919년 서울에서 3·1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그는 3월 8일 장날을 기해 대구에서 학생만세운동을 모의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사전에 발각되고 말았다. 그는 상화(相和)라는 이름을 상화(尙火)나 상화(想華)로 쓰곤 했는데, 정녕 그의 시와 삶이 '항상 불' 같았으며 '만주를 오가며 늘 독립운동을 생각'하곤 했다. 그러니 3월이 되면 이 시가 떠오를 수밖에.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고, 오는 봄은 누구도 빼앗을 수 없다. 그것이 천지만물을 들썩이게 하는 봄의 '신령'이고 봄의 '풋내'이고 봄의 '푸른 웃음'이다. 그러나 들을 빼앗긴 자에게 오는 봄은 절박하다. 봄조차 빼앗기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봄의 '답답'함이고 봄의 '푸른 설움'이다. 들의 봄과 인간의 봄, 자연의 봄과 시대의 봄은 이렇게 갈등한다. 그리고 시인은 '지금은'에 담긴 이 봄의 혼곤 속을 '다리를 절며 걷'고 있다.   이 시의 매력은 굳세고 비장한 의지와 어우러진 섬세한 감각에 있다. 가르마 같은 논길, 입술을 다문 하늘과 들, 삼단 같은 머리를 감은 보리밭, 살진 젖가슴 같은 흙 등 빼앗긴 들을 온통 사랑스런 여성의 몸에 비유하고 있다. 그러니 온몸에 햇살을 받고 이 들(판)을 발목이 저리도록 실컷 밟아보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이야말로 내 나라 내 땅에 대한 지극한 사랑의 표현인 것이다. 관능적인 연애시의 옷을 입은 지극한 애국애족의 저항시다.      [애송시 100편 - 제48편] 서시 - 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일러스트=잠산 너무나 아름다운 이 시를 통째로 암송할 수 있는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서정적이고 여성적인 말씨와 어렵지 않은 입말로 쓴 시. 무엇보다 이 시는 우리의 삶을 성찰하게 한다. 천상의 별과 지상의 잎새에 걸쳐 있는 넓은 공간의식도 놀랍다. 삶은 잡목림 같은 것. 해서 번뇌와 의혹과 부정의 바람은 그치지 않고 불어와 잎새와 같은 우리를 교란시키는 것. 부끄러움은 하루 걸러 오는 것. 그러나 어둠을 배경으로 별은 빛나고, 바람과 같은 시련을 만날 때 큰 사랑은 움트는 것. 다만 우리는 나의 부끄러움으로, 나의 양심으로 나와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고고함과 지순함과 강직함으로 사랑하자.   윤동주(1917~1945) 시인은 맑은 영혼의 소유자였다. 그는 일제강점기의 어둠과 황폐를 의식의 순결함으로 초월하려고 했다. 그는 "지조 높은 개는/ 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또 다른 고향')고 써 스스로를 반성했고, "단 한 여자를 사랑한 일도 없다./ 시대를 슬퍼한 일도 없다"고 쓰며 자신을 끊임없이 돌이켜 봤다.   종교적인 순교의 의지로도 읽히고 독립에의 의지로도 읽히는 등 다양한 해석의 층위를 갖고 있는 이 시를 쓴 것은 1941년 11월로 알려져 있다. 윤동주는 1941년 자선 시집을 내려고 했으나 주변에서 시국을 염려해서 시집 출간 연기를 권함에 따라 뜻을 미루고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1943년 7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됐고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아 출감을 기다렸지만 불운하게도 해방을 불과 반년 앞둔 1945년 2월 16일 후쿠오카 형무소의 차디찬 바닥에서 옥사했다.   윤동주 시인은 생전에 한 편의 시도 발표하지 못했다. 다만 이 시가 포함된 원고뭉치가 국문학자 정병욱의 어머니에 의해 장롱 속에 몰래 보관되다가 1948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유고시집으로 발간되었다. 정지용 시인은 유고시집의 서문에서 "무시무시한 고독에서 죽었구나! 29세가 되도록 시도 발표하여 본 적도 없이!"라고 써서 청년 윤동주의 죽음을 애도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별 헤는 밤')고 노래한 영원한 청년 윤동주. 생전에 그는 자기 성찰로 뒤척이는 한 잎의 잎새였으나, 이제 보석처럼 빛나는 천상의 별이 됐다.       [애송시 100편 - 제 49편] 바람의 말 - 마종기       우리가 모두 떠난 뒤   내 영혼이 당신 옆을 스치면   설마라도 봄 나뭇가지 흔드는   바람이라고 생각지는 마.   나 오늘 그대 알았던   땅 그림자 한 모서리에   꽃나무 하나 심어 놓으려니   그 나무 자라서 꽃 피우면   우리가 알아서 얻은 모든 괴로움이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릴 거야.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린다.   참을 수 없게 아득하고   헛된 일이지만   어쩌면 세상 모든 일을   지척의 자로만 재고 살 건가.   가끔 바람 부는 쪽으로 귀 기울이면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 마,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     ▲ 일러스트=권선아   바람을 생각하는 일이란 마음이 울렁거리는 일이다. 바람 불면 그곳이 어디든 따라 나서고 싶고, 바람 들면 온몸이 저절로 살랑살랑 나부끼게 되고, 바람나면 불타는 두 눈에 세상 보이는 것 아마 없으리. 바람을 생각하는 일이란 사무치는 일이다. 빈자리를 어루만지는 부재와 상실, 추억과 그리움으로 가슴이 시리고 뼛속까지 시리리. 그리고 바람을 생각하는 일이란 '참을 수 없게 아득하고 헛된 일'이다. 물처럼 세월처럼, 시작도 없고 끝도 없고 지나고 나면 흔적도 없으리.   삶이, 사랑이, 시(詩)의 말이 바람이라고 생각한 적 있다. 바람(願)이라서, 바람(風) 같아서 간절한 것들이다. 이 시를 읽노라면 간절하게 그리운 부재가 떠오르고, 간절하게 따뜻한 배려가 떠오른다. 몸을 떠나 영혼으로 떠돌며 사랑하는 사람 곁을 지키던 영화 '사랑과 영혼', 그 애틋한 바람의 영혼도 떠오른다. 서로 떨어져 있어도 사랑의 괴로움, 사랑의 피로까지를 함께하는 바람의 마음. 그렇게 따뜻한 바람이라면 '가끔'이 아니라 매일매일 바람 부는 쪽으로 귀 기울이고 싶다. "목숨을 걸면 무엇이고/ 무섭고 아름답겠지./ 나도 목숨 건 사랑의/ 연한 피부를 쓰다듬고 싶다"('성년의 비밀')   이 시는 조용필이 부른 '바람이 전하는 말'의 노랫말과 흡사하다. 물론 이 시가 5년쯤 먼저다. 의사이기도 한 마종기(69) 시인은 고희를 앞두고도 여전히 젊고 댄디(dandy)하다. 어떤 선입관과 고정관념과 권위로부터 자유롭다. 동화작가 마해송과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 여성 무용가 박외선 사이에서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다. 서울에서 성장해 의과대학 재학 시절 시인으로 등단한 후 미국으로 건너가 40여 년간 방사선과 전문의로 지내며 시를 써왔다.   그는 올해로 시력 49년을 맞는다. 투명하면서 울림이 깊은 그의 시에 유난히 위로받고 행복해하는 마니아들이 많다. 오롯한 그리움과 따뜻한 진심이 느껴지기 때문이리라. 누군가 말했다. 그의 시는 '맹물' 같다고. 어느 날 마시면 상쾌하고 시원하고, 어느 날은 목이 메고 어느 날은 아무 맛도 나지 않는다고. "나는 이제 고국에서는/ 바람으로만 남겠네"('산수유')라는 그의 최근 시의 구절이 떠오른다.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 마"라는 이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과 함께. 그는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 시민임이 분명하다, 저 바람처럼.       [애송시 100편 - 제 50편] 봄 - 이성부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 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듣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 보는   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 일러스트=잠산 봄! 살찐 볼을 만지는 것 같다. 입안에 쑥 냄새가 돈다. 노란 산수유 그늘도 펼쳐진다. 연못가 버들개지도 눈을 뜬다. 볕은 보송보송하다. 옷은 가볍고 걸음은 경쾌하다. 찬 없이 따뜻한 밥과 냉잇국 한 그릇을 받고 싶다. 차닥차닥 빨랫방망이 소리가 들리던 옛날의 빨래터도 다시 가보고 싶다.   봄! 자연에게만 봄이 다시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마음에도 그것은 돌아온다. 인심에도 계절이 있다. 정치가 싸움판을 걷어내거나, 경제가 잘 돌아 보통사람의 주머니 사정이 좋아지면 훈풍 부는 봄이 왔다고 한다. 넉넉하고 화창하면 모두 봄이다. 그러므로 봄은 우리의 일상에서 제일로 선호하는 비유의 언어이다. 봄에는 게정게정 불평하는 소리가 싹 사라진다.   이 시의 맛은 봄을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으로 빗댄 데 있다. 그러나 이 시에 등장하는 봄의 비유로서의 사람은 순박하고 좀 어수룩하다. 제 잘난 맛에 사는 사람이 아니다. 저기서 기웃거리는 것을 좀 보라. 무리에 끼어서 한눈도 팔고 궂은 데서 뒹굴기도 한다. 자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줄을 모르고 한량처럼 '나자빠져' 있기도 한다. 느려터졌지만 한판 싸움질도 하는 것을 보니 강퍅하니 나름으로는 고집도 센 듯하다. 대처를 떠도느라 산전수전 다 겪었다. 몸고생 마음고생이 많았을 것이다. 아, 그러나 사람 냄새가 나는 그는 '마침내' 돌아온다. 민주주의의 도래처럼. 격전지에서 생환한 용사처럼. 봄의 백성이 되어 꿈에도 못 잊고 기다리고 있던 사람의 품으로.   이성부(66) 시인은 남성의 굵직한 목소리를 지닌 민중시인이다. "벼는 서로 어우러져/ 기대고 산다./ 햇살 따가울수록/ 깊이 익어 스스로를 아끼고/ 이웃들에게 저를 맡긴다.// 서로가 서로의 몸을 묶어/ 더 튼튼해진 백성들을 보아라"라고 쓴 시 '벼'는 민중서정시의 한 경지를 보여주었다. 광주 출신의 그는 '80년 광주'를 겪은 후 죄의식으로 방황을 하다 산(山)에서 정신적인 위안을 얻는다. 그는 산행을 통해 "처음에 울적하게 막혔던 것이 나중에는 쾌함을 얻는다"라는 퇴계의 글귀에 공감하게 되었다고 한다. 근년까지는 지리산과 백두대간을 종주한 경험으로 '내가 걷는 백두대간' 연작시를 발표했다.   그가 돌아오고 있다. 오늘은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오는 봄을 마중 나가자. 들길과 거리와 사람 사는 동네에, 그리하여 이 세상에 봄볕 그득할 때까지.      [애송시 100편 - 제 51편] 타는 목마름으로 - 김지하         신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가닥 있어   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아직 동 트지 않은 뒷골목의 어딘가   발자국소리 호르락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소리   신음소리 통곡소리 탄식소리 그 속에 내 가슴팍 속에   깊이깊이 새겨지는 네 이름 위에   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 위에   살아오는 삶의 아픔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 일러스트 권신아   출간되자마자 금서(禁書)가 된 시집 '타는 목마름으로'를 구하기 위해 책방을 뒤지고 다녔던 것도, 최루 속에서 금지곡(禁止曲)이었던 '타는 목마름으로'를 불렀던 것도, 시보다 운동을 택했던 선배가 '타는 목마름으로'라는 주점에서 결혼식을 했던 것도, 지금도 김광석이 부른 '타는 목마름으로'를 들으면 뭉클해지는 것도 다 이 시 때문이다.   쫓고 쫓기는, 맞고 때리는, 울고 신음하고 비명을 지르는 소리의 중첩을 통해 지난 70년대의 공포와 고통을 날카롭게 드러낸 시다. 누군가는 그렇게 피를 흘리며 뒷골목으로 쫓겼고 누군가는 유명을 달리하기도 했다. 자정부터 신 새벽 사이, 뒷골목과 뒷골목 사이, 소리와 소리 사이에서 타는 목마름으로 열망했던 자유 그리고 민주주의! 이 시가 뜨거운 것은 잊혀져 가는 '민주주의'를 노래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타는 목마름으로' 노래했기에 더욱 뜨겁다. 오래 가지지 못한 아니 너무도 오래 잃어버린 그 모든 목마름의 이름을 '타는 목마름'으로 남 몰래 쓰고 있는 한, 이 시는 여전히 뜨겁게 살아오는 것이다. 우리에게 되살아오는 것이다.   그의 본명은 '영일'(英一, 한 꽃송이)이다. 거리 입간판에 조그맣게 써있던 '지하'라는 글자를 보고 지었다는 필명 '지하'(地下가 芝河로 바뀌었다). 시위, 필화사건, 긴급조치 및 국가보안법 위반, 내란선동죄 등으로 체포, 투옥, 사형 및 무기징역 선고, 석방을 거듭하면서 김지하(67) 시인은 70년대 내내 박정희 정권과 맞섰다. 감옥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암살 소식을 듣는 순간, 무상함에 휩싸여 "잘 가시오. 나도 뒤따라가리다"라는 혼잣말이 저절로 나왔다고 한다. 이후 '투사' 김지하는 '생명사상가' 김지하로 변신한다. 감옥 창틀에 싹을 틔운 민들레를 보고 생명의 신비와 소중함에 눈을 떴다는 일화는 잘 알려져 있다.   "시(詩)란 어둠을/ 어둠대로 쓰면서 어둠을/ 수정하는 것// 쓰면서/ 저도 몰래 햇살을 이끄는 일"('속 3')임을 온몸으로 보여주었던 시인, 그리고 이제 자신의 시와 삶이 우주 저편으로까지 이어지는 '흰 그늘의 길'에 서기를 꿈꾸는 시인, 그가 있어 우리 시는 또 이렇게 시퍼렇게 살아있지 않은가.      [애송시 100편 - 제 52편]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 김선우         그대가 밀어 올린 꽃줄기   끝에서   그대가 피는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떨리는지       그대가 피어 그대 몸속으로   꽃벌 한 마리 날아든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아득한지   왜 내 몸이 이리도 뜨거운지       그대가 꽃피는 것이   처음부터 내 일이었다는 듯이.         ▲ 일러스트=잠산 '입아아입(入我我入)'이라고 했다. 저것이 나한테 들어 있고, 내가 저것 속에 들어 있다고 했다. 이 세계는 서로가 연결되어 주고받는 중중무진(重重無盡) 연기의 세계이다. '법화경'을 보면 입아아입을 몸소 실천한 상불경보살(常不輕菩薩)이라는 이가 있다.   그는 길에서 만나는 사람에게 "나는 당신을 공경합니다. 나는 당신을 가벼이 여기지 않습니다"고 말하면서 살았다. 막대기나 돌멩이로 때릴 때도 피해 도망가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후일에 많은 사람은 상불경보살의 큰 사랑을 알고 그를 예배 공경했다지만.   김선우(38) 시인은 90년대 여성시의 흐름을 이어오면서 여성의 '육체성'을 재발견하는 작업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그녀의 시를 읽으면 상불경보살이라는 이가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녀의 시는 너와 나의 차별이 없는 큰 화해와 사랑의 세계를 발언한다. 해서 그녀의 시에는 "너의 영혼인 내 몸"이라는 표현이 나오고, "나 아닌 것들이 나를 빚어/ 그대 아닌 것들로 빚어진 그대를 사랑하오니"와 같은 표현이 등장한다. 젊은 여성 시인인 그녀가 우주 생명에 대한 무차별적 사랑을 가붓한 어조로 고백하는 이유는 이 물질세계를 "고맙고 미안해하던 마음의 떨림이 없고 (상품과 화폐만 있고) 자못 괴로운 포즈만 남았다"고 인식했기 때문인 듯하다.   아무튼 그녀의 시는 딱한 생명을 뱃속에 품고 강보에 받아내고 젖을 먹여 길러내는 모성을 보여준다. 오르가슴을 느끼는 여성의 몸을 과감하게 등장시켜 관능적이기도 하지만, "아프지 마, 목숨이 이미 아픈 거니까/ 아파도 환한 벼랑이 목숨이니까"라고 말할 때 알 수 있듯이 그녀의 시는 사바세계의 가엾은 목숨을 살려내는 천수관음(千手觀音)의 마음을 지녀 몸을 섞고 탐하는 쾌락을 넘어선 자리에 있다.   개화(開花)를 모티프로 삼고 있는 이 시는 그 뜻이 비교적 쉽게 읽힌다. 그러나 꽃피는 꽃의 몸과 내 몸을 교차시키면서 이 시는 의미의 확장을 얻는다. 꽃과 꽃벌의 혼례가 꽃과 나와의 혼례로 얽혀 읽히면서 이 시는 심상치 않은 의미를 낳는다. 그것은 성애적인 열락을 넘어선다. 그러나 "사랑이여 쓰러진 것들이 쓰러진 것들을 위해 울어요"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랑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얼마나 더 "밥알을/ 서로의 입에 떠 넣어주"며 살아야 하는가      [애송시 100편 - 제 52편] 바다와 나비 - 김기령       아무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준 일이 없기에 흰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靑)무우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三月)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청산(靑山)이라면 몰라도 바다는 나비와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 거대한 바다에 비해 흰나비는 얼마나 작고 어리고 가냘픈가. 이 무구한 흰나비는 바다를 본 적이 없다. 알 수 없는 수심과 거센 물결에 대해 들은 적도 없다. 흰나비에게 푸르게 펼쳐진 것은 청(靑)무우밭이고 그렇게 푸른 것은 꽃을 피워야 마땅하다. 흰나비가 삼월의 바다에서 청무우꽃을 꿈꾸는 까닭이다. 그러나 짜디짠 바다에 흰나비의 날개만 절 뿐, 삼월이어도, 바다가 푸르긴 해도, 바다는 꽃을 피우지 않는다. 나비의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만 비친다. 삼월의 바다, 어린 나비, 초생달은 모두 이른 것들이다. 시작인 것들이다.   허공을 나는 것들은 날개가 중요하고 땅을 걷는 것들은 허리가 중요하다. 헌데 '나비의 허리'라니! 공주의 아름다움은 춤에 있고 나비의 아름다움은 비상(飛翔)에 있다. '공주처럼 지쳐서' 바다에서 돌아온 나비. 바다로의 비상에 실패하고 뭍으로 귀환한 '나비의 허리'는 상징적 의미가 깊다. 이제 흰나비는 청무우 꽃그늘을 노니는 그런 나비가 아니다. 짜디짠, 바다의 깊이와 파도의 흔들림을 맛본, 허리가 실한 나비다. "땅을 밟고 하는 사랑은 언제고 흙이 묻"('주피터 추방')기 마련이다. 새롭고 먼 곳을 향해 비상하다 날개가 절어본 적이 있기에, 흰나비는 이제 흙이 묻더라도 땅을 밟는 사랑을 알았으리라.   이 시의 꽃은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이다. 하얗고 가늘고 기다란 나비의 몸과 초생달이 그려지고, 새파란 바닷물에 새파랗게 전 흰나비의 허리가 그려지고, 지쳐 돌아오는 흰나비 허리를 비추는 저물녘 초생달이 그려지기도 한다. '시린' 풍경들이다. 어쨌든 '바다'가 냉혹한 현실이라면 '나비'는 순진한 꿈의 표상이다. 꿈은 언제나 현실의 냉혹함을 모른 채 도전한다. 근대 혹은 서구문명 앞에서 좌절할 수밖에 없었던 식민지 지식인의 자화상이 떠오른다. 역사 혹은 시대의 흐름 앞에 무력했던 시인의 모습도.   김기림(1908~?) 시인의 탄생은 현대시 탄생과 그 햇수를 같이 한다(얼마 전 출생연도가 1907년으로 기록된 학적부가 발굴되어 탄생 101주년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는 30년대 이상(李箱)과 더불어 한국 문단의 모더니즘을 주도하면서 서구문명 지향하는 '새로운 생활'을 동경했다. 그는 기자, 문학비평가(이론가), 번역가, 대학 교수를 겸한 모더니즘 선봉에 선 시인이었으나 분단과 전쟁은 그를 납북 이후 생사조차 알 수 없는 '비운의 모더니스트'로 만들어버렸다.      [애송시 100편 - 제 54편] 나그네 - 박목월       강(江)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南道) 삼백리(三百里)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 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 일러스트=잠산   이 시는 박목월(1916~1978)이 조지훈, 박두진과 함께 펴낸 3인 시집 '청록집'(1946)에 실려 있다. 임시 정가 30원의 '청록집'을 발간한 이후 세 명의 걸출한 시인들은 '청록파'로 불리게 되었다. 한국 서정시의 큰 산맥을 이룬 이 3인은 모두 정지용의 추천을 받아 문단에 나왔다.   경주에 살고 있던 박목월을 조지훈이 처음 만난 것은 1942년. 이 시는 박목월과 조지훈의 각별한 관계에서 태어났다.   '목월에게'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조지훈의 시 '완화삼(玩花衫)'에 대한 화답으로 이 시를 썼기 때문이다. '완화삼'의 "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 노을이여"의 한 부분인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 노을이여'를 부제로 삼았다. '완화삼'의 시어인 나그네와 구름과 달과 강마을과 저녁 노을을 그대로 받아서 썼다. 다만 '완화삼'이 나그네의 구슬픈 우수(憂愁)를 더 드러내면서 가야 할 앞길의 정서적 거리를 '물길은 칠백리(七百里)'로 표현했다면, '나그네'에서는 물처럼 바람처럼 걸림 없이 '남도(南道) 삼백리(三百里)'의 길을 표표히 가는 나그네의 심사를 부각시켰다.   이 시는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접한 최초의 시였다. 외할머니가 벽에 붙여져 있던 이 시를 '가갸거겨'를 배우던 방식으로 흥얼흥얼하는 것을 곁에서 들었다. 그처럼 이 시는 우리말의 가락이 아주 잘 살아 있다.   조지훈은 박목월의 시에 대해 "압운(押韻)이 없는 현대시에도 이렇게 절실한 심운(心韻)이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라고 격찬을 아끼지 않았는데 이 시를 읽으면 역시 그 평이 그르지 않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시를 쓸 때에는 꼭 연필을 깎아 썼다는 박목월. 아이들에게 공책을 사주지 못할 정도로 가난했지만 한지를 묶어 공책을 만들어줄 정도로 다정다감한 아버지였던 박목월.   "산이 날 에워싸고/ 씨나 뿌리며 살아라 한다/ 밭이나 갈며 살아라 한다// 어느 짧은 산(山)자락에 집을 모아/ 아들 낳고 딸을 낳고/ 흙담 안팎에 호박 심고/ 들찔레처럼 살아라 한다/ 쑥대밭처럼 살아라 한다"('산이 날 에워싸고')고 노래한 박목월. 시를 알게 되면서부터 본명 박영종(朴泳鐘) 대신 '木月'이라는 큰 자연의 이름을 스스로 붙였던 그. 식민지 현실을 외면했다는 지적이 있지만, 박두진의 말대로 청록파에게 자연은 "온갖 제약을 타개하기 위한 시의 유일한 혈로(血路)"였는지 모른다. 그 한가운데에 '애달픈 꿈꾸는 사람' 박목월이 있다.      [애송시 100편 - 제 55편] 봄바다 - 김사인       구장집 마누라   방뎅이 커서   다라이만 했지   다라이만 했지       구장집 마누라는   젖통도 커서   헌 런닝구 앞이   묏등만 했지   묏등만 했지   그 낮잠 곁에 나도 따라   채송화처럼 눕고 싶었지   아득한 코골이 소리 속으로   사라지고 싶었지       미끈덩 인물도 좋은   구장집 셋째 아들로 환생해설랑   서울 가 부잣집 과부하고   배 맞추고 싶었지         ▲ 일러스트=권신아 구장집 마누라는 방뎅이도 크고 젖통도 크고 잠도 푸지게 잘 자니 미끈덩 아들 쑥쑥 낳겠다. 역시나 셋째가 제일 미끈덩하겠다. 미끈덩 인물 재산이겠다. "부뚜막에 쪼그려 수제비 뜨는 나어린 처녀의 외간 남자"라도 되는 양 바람깨나 피우겠다. 도망치듯 상경해 이양저양 살피다 부잣집 과부 만나 한몫 챙기기도 하겠다. 살집 좋은 과부 곁에서 시름시름 늙어가며 이모저모 기웃대다 '인생 탕진하'겠다. 저리 생생(生生)한 구장집 마누라 몸을 거쳐 미끈덩 셋째 아들로 환생하는 것, 사내들의 로망이겠다. 이 시의 묘미는 현실 속 구장집 마누라가 아니라, 상상 속 셋째 아들의 부잣집 과부로 튀는 오지랖의 '쓰리 쿠션'에 있겠다.   이 시를 읽노라면 김 시인의 '심성'을 엿볼 수 있는 이시영 시인의 재미난 산문시 하나가 떠오른다. 내용인즉슨 이렇다. 술자리에 김사인 시인이 폭우 속 흰 고무신을 신고 와 합류했다는 것. 새벽 즈음에 이 시인의 처가 천둥치듯 "복희년 나오라고 그래!" 소리치며 들이닥쳤다는 것. 바로 그때 "나와 송 사이에서 묵묵히 고개를 떨구고 있던 사인이가 갑자기 일어나 문밖으로 내빼는데 흰고무신 신은 발이 비호처럼 빨랐다. 그리고 빗속을 번개처럼 가르며 사라졌다. 복희씨가 졸린 눈을 뜨기도 전에, 송과 나의 처가 시퍼렇게 걷어붙인 팔을 풀기도 전에 일어난 아주 순식간의 일이었다"('김사인의 흰고무신')는 것.   김사인(52) 시인은 사람 좋은 충청도 양반이다. 떠듬떠듬 어눌하게, 천천히 길게, 그러나 뜨겁게 시를 쓰는 시인이다. 첫 시집을 내고 19년 만에 두 번째 시집을 냈으니, 시 한 편을 길게는 30년을 쓰고 썼다니 '곡진'하다는 말, '지극'하다는 말은 그에게 딱 어울리는 말이다. 그런 그가 1980년대의 혁혁한 문화운동가이자 날카로운 논객이었다는 건, '노동해방문학'사건에 관여해 수배되기도 했다는 건 다 아는 전력(!)이다. "시는 크고 요란한 것이 아니라 작고 나지막한 섬김"이라고 말하는 그는 스스로를 낮춤으로써 시를 높이고 세상과 사물을 높이는 드문 미덕을 가진 시인임에 틀림없다.   봄은 남쪽으로부터 오고, 남쪽 끝 바다로부터 온다. 구장집 마누라 방뎅이 같이 방방한 저 들판에, 구장집 마누라 젖통 같이 봉긋한 저 능선에, 구장집 마누라 코골이 같이 달디단 봄바람으로 온다. 바다 내음 향긋한 천지가 무릇 봄바다다. 물 맑은 봄바다에 두둥실 떠가는 저 배를 타고 미끈덩 풋것들로 환생하고 싶다. 어쨌든 봄이고 하여튼 봄밤이고 바야흐로 봄바다다.      [애송시 100편 - 제 56편] 상한 영혼을 위하여 - 고정희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 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 일러스트=잠산 시름 많은 사람들과 "어두운 땅 한 평 가꾸다 갈래요/ 우리나라 하늘 한 평 비추다 갈래요"라고 노래했던 시인 고정희(1948~1991). 이 시를 읽고 있으면 마치 그녀가 상한 영혼의 곁에 앉아 작은 목소리로 "흙에 심은 뿌리 죽는 법 보았나요"라고 묻는 것 같다.   평론가 김주연이 분석한 대로 이 시는 "상한 갈대도 꺾지 아니하시고 가는 등불도 끄지 아니하신다"는 성경의 말씀과 겹쳐 읽힌다. '하늘 아래'라는 표현도 예수의 언약과 임재(臨在)를 둥글게 포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내 넋으로 기댈 곳 없이 큰 고통에 놓여있는 사람들을 힘껏힘껏 껴안고 살겠다는 강한 의지를 이 시는 보여준다.   한국신학대학을 졸업했고 다분히 기독교적인 신앙에 기초한 시편들을 써낸 고정희 시인은 기독교의 현실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칼을 들이댔다. "하느님을 모르는 절망이라는 것이 얼마나 이쁜 우매함인가"라고 질문했고, 동시에 "하느님을 등에 업은 행복주의라는 것이/ 얼마나 맹랑한 도착 신앙인가"라며 고민했다. 그녀가 비판하고 날카롭게 투시한 대상은 눈앞의 현실 그 자체였으며, 돌봄이 있는 따뜻한 공동체는 그녀가 꿈꾸는 세계였다.   고정희 시인은 한 생애를 정열적으로 살다 간 여성운동가이기도 했다. '여성신문' 초대 편집주간을 지냈고, 여성주의 문화집단인 '또 하나의 문화' 창립 동인으로도 활동했다. "제도적 억압의 굴레를 극복하려는 힘, 그것이 자유 의지라고 말할 수 있다면 나의 시는 항상 자유 의지에 속해 있는 하나의 에너지"라고 자평했는데, 조금의 호락호락함도 없이 평소 신념을 시 창작과 생활에서 실천했다. 한 시대의 깊고 어두운 계곡을 묵상했으므로 그녀의 시는 미지근하거나 융융한 그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시는 80년대의 격문이면서 '우릉우릉 폭발하는 화산(火山)'이었다.   1991년 6월 지리산 뱀사골을 오르다 폭우로 불어난 물에 휩쓸려 생을 마감했다. 그녀의 충격적인 죽음을 생각하면 생전에 쓴 시 '지리산의 봄 1-뱀사골에서 쓴 편지'가 자꾸 떠오른다. "아득한 능선에 서 계시는 그대여/ 우르르우르르 우뢰 소리로 골짜기를 넘어가는 그대여/(…)/ 아름다운 그대 되어 산을 넘어갑니다/ 구름처럼 바람처럼/ 승천합니다"라고 쓴 시. 그녀의 시를 읽고 있는 오늘 새벽은 내 가슴이 아프다.      [애송시 100편 - 제 57편] 달은 추억의 반죽 덩어리 - 송찬호           누가 저기다 밥을 쏟아 놓았을까 모락모락 밥집 위로 뜨는 희망처럼   늦은 저녁 밥상에 한 그릇씩 달을 띄우고 둘러앉을 때   달을 깨뜨리고 달 속에서 떠오르는 노오란 달   달은 바라만 보아도 부풀어오르는 추억의 반죽 덩어리   우리가 이 지상까지 흘러오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빛을 잃은 것이냐   먹고 버린 달 껍질이 조각조각 모여 달의 원형으로 회복되기까지   어기여차, 밤을 굴려가는 달빛처럼 빛나는 단단한 근육 덩어리   달은 꽁꽁 뭉친 주먹밥이다. 밥집 위에 뜬 희망처럼, 꺼지지 않는         ▲ 일러스트=권신아   동치미 무를 먹으며 아삭아삭 달을 베어먹는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팥죽에 뜬 새알을 떠먹으며 어두운 밤하늘을 들락날락하는 달을 떠먹는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달걀과 밀가루가 들어간 둥근 지짐이와 부침들을 먹을 때마다 달(빛)을 지져먹고 달(빛)을 부쳐 먹는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모든 알들은 달을, 하얗고 부드러운 가루들은 달빛을 닮았다. 그리고 흰 고봉밥이, 노란 달걀 프라이가, 토실한 감자가, 탐스럽고 둥근 빵이 죄다 달을 닮아 있지 않은가. 그뿐 아니다. 밥상에 뜬 온갖 달들을 만들어내는 엄마와 아내와 누이와 딸이 모두 달의 여인들이니, 우리는 밥상에 뜬 달을 먹고 자라는, 그 달을 만드는 이 달에 의해 키워지는, 달의 후예들이다. 그러니 밥이 달이고, 밥의 집이 달의 집이다.   '조각조각' 달집 아래를 걸을 때, '모락모락' 밥집 곁을 지나칠 때 그 집들이 우리를 먹여 살리는 부푸는 추억이자 꺼지지 않은 희망임을 깨닫는다. 저녁 밥상 앞에 둥그렇게 앉아 '한 그릇씩의 달'을 비우며 서로를 마주볼 때 '꼭꼭 뭉친 주먹밥'처럼 비로소 한 식구(食口)임을 확인한다. 그런 '달빛은 무엇이든 구부려 만'든다. "꽃의 향기를 구부려 꿀을 만들고/ 잎을 구부려 지붕을 만들고/ 물을 구부려 물방울 보석을 만들고(…) 이 세계를 둥글게 완성시켜 놓"('달빛은 무엇이든 구부려 만든다')는다. 달은 어머니처럼 둥글고, 이 둥근 것들을 우리는 끊을 수 없다. 밤의 어둠을 굴리는 달(빛)이 이울며 차며 '달의 원형'을 회복하듯, 우리도 그렇게 추억과 희망을 완성할 것이다. 그것들로 배가 둥그렇게 부르리라. 또 다른 달을 낳기도 하리라. 그것이 달의 역사(歷史)이고 달의 미래일 것이다.       80년대가 끝나갈 무렵에 출간된 송찬호(49)의 첫 시집 '흙은 사각형의 기억을 갖고 있다'가 불러일으켰던 반향은 컸다. 그는 마치 연금술사와도 같이, 시대와 가족과 인간과 사물과 언어를 비극적이면서 비의적(秘儀的)으로 결합시키곤 한다. "나는 시를 무겁게 시작한다. 그리고 오래 매만진다"는 시작 태도는 시의 이미지를 돌올하게 하고 형이상학적인 깊이를 거느리게 한다. 소를 치던 어린 시절 '아이 지게'를 갖는 게 꿈이었다는, 고춧가루 몇 되를 들고 가출해 소설을 쓰기도 했다는, 군대와 대학 생활을 제외하고는 고향 보은을 떠나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떠나지 않을 거라는 그는 자신에게는 '시 쓰는 일'이 전부일 뿐이라고 일갈하는 몇 안 되는 시인이다. 이런 시인이라야 모름지기 전업시인일 것이다.      [애송시 100편 제 -58편] 수묵(水墨) 정원 9 - 번짐 - 장석남     번짐,   목련꽃은 번져 사라지고   여름이 되고   너는 내게로   번져 어느덧 내가 되고   나는 다시 네게로 번진다   번짐,   번져야 살지   꽃은 번져 열매가 되고   여름은 번져 가을이 된다   번짐,   음악은 번져 그림이 되고   삶은 번져 죽음이 된다   죽음은 그러므로 번져서   이 삶을 다 환히 밝힌다   또 한번저녁은 번져 밤이 된다   번짐,   번져야 사랑이지   산기슭의 오두막 한 채 번져서   봄 나비 한 마리 날아온다       ▲ 일러스트=잠산 번짐이라니. 바뀜이 아니라 번짐이라니. 목련꽃이 피는 일을, 꽃이 지고 열매를 맺는 일을, 계절의 순환을, 너와 나 사이 사랑과 이별의 사건을, 삶과 죽음이 돌고 도는 그 둥?을, 시간과 공간의 옮김을 번짐이라고 부르다니. 먹물이 화선지에서 고요하게 번지듯이. 그리하여 번짐은 환함이라니. 씨나 날로 결어서 천을 짜듯이 조촘조촘 가는 것이라니. 망설이고 머뭇거리며 나아가는 것이라니. 번짐이라고 부르면 나와 당신은 얼마나 가까운가. 이 생(生)을 받아 가꾸는 일이 얼마나 거룩한가.   장석남(43) 시인의 시는 강한 전염력을 갖고 있다. 그의 시는 '번지면서' 아주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나아간다. 밀어내고 부드럽게 떠나고 밀려들어오는, 그 '어쩌지 못하는' 사랑의 감정을 잘 표현한다. 우리들 '마음 그늘을 빌려서 잠시 살다가 가는 것들'을 아주 잘 들여다보고 귀담아듣는 출중한 감각을 자랑한다. "찌르라기떼가 왔다/ 쌀 씻어 안치는 소리처럼 우는/ 검은 새떼들"('새떼들에게로의 망명')이라고 쓴다거나, "어미소가 송아지 등을 핥아준다/ 막 이삭 피는 보리밭을 핥는 바람/ 아, 저 혓자국!"('저녁 햇빛에 마음을 내어 말리다')이라고 쓸 때의 놀라운 감각이라니!   장석남 시인의 마음에는 '옹근 고요'가 살고 있는 것 같다. 옹근 고요 위에서 그의 시는 태어난다. 고독과 외면과 섭섭함과 흔들림과 설움과 간신히 잦아드는 것과 사소함과 곰곰 궁금함과 은밀함과 찬란함과 되비쳐옴과…… 그 모든 감정의 섬세한 자세를 그의 시는 그려낸다. '겨우'라고 수식될 세상 살림들의 속삭임과 혈육인 듯 함께 살면서 '물항아리에 물 차 오르면 거기에 어룽대는 물의 빛'과도 같은, 사람의 가슴에 도는 생(生)의 윤기를 발견해낸다. (삶에 윤기가 없다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는가)   "시에도 자원이라는 게 있다면 그건 갈증/ 그건 아무도 모르게 영혼을 찢어놓는,/ 남은 모르는 갈증/ 갈증"('시법(詩法)')이라고 말하는 그는 우리 시대에 아주 드문 서정시인이다.   첫 시집을 내고 "나는 춤꾼이거나 가수이거나 아니면 유능한 세션맨이 되었어야 옳았다"고 고백하는, 해서 한때는 전기기타를 배우러 사설강습소를 다녔다는, 해서 한때는 배우로도 활동한, 거문고를 안고 사치를 부리기도 한다는 시인. 장석남 시인을 만날 때마다 나는 확신하게 된다, 모르긴 몰라도 시인은 울림통 하나쯤은 지닌 근사한 악기여야 한다는 것을.      [애송시 100편 - 제 59편] 사철나무 그늘 아래 쉴 때는 - 장정일       그랬으면 좋겠다 살다가 지친 사람들   가끔씩 사철나무 그늘 아래 쉴 때는   계절이 달아나지 않고 시간이 흐르지 않아   오랫동안 늙지 않고 배고픔과 실직   잠시라도 잊거나   그늘 아래 휴식한 만큼 아픈 일생이   아물어진다면   좋겠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굵직굵직한 나무등걸 아래 앉아   억만 시름 접어 날리고   결국 끊지 못했던 흡연의 사슬   끝내 떨칠 수 있을 때   그늘 아래 앉은 그것이 그대로   하나의 뿌리가 되어   나는 지층 가장 깊은 곳에 내려앉은   물맛을 보고   수액이 체관 타고 흐르는 그대로   한됫박 녹말이 되어   나뭇가지 흔드는 어깨짓으로 지친   새들의 날개와   부르튼 구름의 발바닥 쉬게 할 수 있다면   좋겠다 사철나무 그늘 아래 또 내가 앉아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내가 나밖에 될 수 없을 때   이제는 홀로 있음이 만물 자유케 하며   스물 두 살 앞에 쌓인 술병   먼 길 돌아서 가고   공장들과 공장들 숱한 대장간과   국경의 거미줄로부터   그대 걸어나와 서로의 팔목 야윈   슬픔 잡아 준다면   좋을 것이다 그제서야 조금씩   시간의 얼레도 풀어져   초록의 대지는 저녁 타는 그림으로   어둑하고   형제들은 출근에 가위 눌리지 않는   단잠의 베개 벨 것인데   한 켠에선 되게 낮잠을 자 버린 사람들이 나즈막히 노래불러   유행 지난 시편의 몇 구절을 기억하겠지   바빌론 강가에 앉아   사철나무 그늘을 생각하며 우리는   눈물 흘렸지요         ▲ 일러스트=권신아 그늘! 나비 그늘, 꽃 그늘, 나무 그늘, 처마 그늘, 담 그늘, 당신 그늘, 심지어 위태롭게 서 있는 전봇대나 바지랑대에도 그늘은 있다. 그늘은 눈부시지 않고 어둡지 않다. 뜨거운 햇살은 가려주고 비바람은 대신 먼저 맞아준다. 여운, 깊이, 여유, 멋을 지닌다는 점에서 그림자와 다르다. 그래서일까. 그늘 아래 서면, 잠시, 시간도 잊고 이름도 잊고 일도 잊고 갈 곳도 잊는다. 그늘 아래 스스로를 부리듯 노동과 불안과 걱정을 부려두고, 잊거나 잃은 것을 떠올리며 눈물짓기도 한다.   시간과 계절은 너무 빨리 달아나고, 우리는 너무 빨리 늙고, 늘 배고픔과 실직의 공포에 시달리면서 출근과 스트레스와 피로와 시름과 술과 담배에 지쳐 있는데… 맨땅에 뿌리를 내린 채 사시사철 변함 없는 사철나무의 그늘이니 참 깊고 넓겠다. 시인 장정일(46)이 꿈꾸던 '사철나무 그늘', 누구나 그런 그늘 하나쯤은 꿈꾸기 마련이다. '가장 장정일답지 않는 시'임에도 가장 많이 애송되고, 시인 스스로도 첫 시집을 여는 시로 삼았던 까닭일 것이다.   이 시는 "By the rivers of Babylon/ there we sat down/ ye-eah we wept,/ when we remember Zion"이 반복되는 보니엠(Boney M)의 노래 '바빌론 강가에서(Rivers of Babylon)'를 들으며 읽어야 한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시편, 137편)라는 성경 구절과 더불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바벨탑과 공중정원이 있었다는 번영의 땅 바빌론은, '시온(Zion·예수살렘의 도시로 하나님의 나라를 상징)'을 생각하며 견뎌야 했던 이방의 땅, 고난의 땅, 타락의 땅이다. 원조 '디아스포라'의 고난과 희망이 담긴 디스코 풍의 이 노래는, 80년대 내내 '사철나무 그늘 아래 쉬'던 공장노동자들의 휴식시간을 장악하기도 했던가.   불온하다는 말, 문제적이라는 말이 장정일처럼 잘 어울리는 시인이 또 있을까. 중졸의 학력과 방황의 청소년기, '삼중당 문고'를 읽으며 했다는 독학, 최연소 '김수영 문학상' 수상, 극작가, 소설가, 외설 시비, 무시무시한 독서량, TV 교양프로 진행, 교수…. 그는 정복자처럼 자신의 삶을 찬탈했으며 게릴라처럼 80년대 시단을 점령했다. 그리고 어느날 '시 쓰는 법을 까맣게 잊어버렸다'고 오리발을 내미는, 그가 이른바 '쉬인' 장정일이다. '동사무소 하급 공무원'을 꿈꾸며 들었을 '바빌론의 강가'를 다시 들으며 '사철나무 그늘 아래 쉬는 마음'을 헤아려보는 아침이다.     [애송시 100편 - 제 60편] 울음이 타는 가을강(江) = 박재삼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햇볕으로나 동무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나고나.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강(江)을 보것네.   저것 봐, 저것 봐,   네보담도 내보담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 물소리가 사라지고   그 다음 사랑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와 가는,   소리죽은 가을강(江)을 처음 보것네.         박재삼(1933~1997)은 생전에 '슬픔의 연금술사'로 불린 시인이다. 시 '눈물 속의 눈물'에서 "꽃잎 속에 새 꽃잎/ 겹쳐 피듯이// 눈물 속에 새로 또/ 눈물 나던 것이네"라고 노래했듯이 그의 시들은 눈시울이 촉초근하게 젖어 있다.   박재삼 시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이 시는 노을이 붉게 번지는, 굽이쳐 흐르는 강을 산등성이에서 내려다보며 썼을 것이다. '눈물'과 '울음'과 '강'과 '산골 물'과 '바다'로 연결되는 물의 이미지는 누선(淚腺)을 자극하고, '햇볕'과 '불빛'으로 연결되는 불의 이미지는 삶의 소진과 소멸을 두드러지게 하는 바, 이 시는 사랑의 비극과 고독과 생(生)의 무상(無常)을 동뜨게 드러낸다.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이라는 표현은 "뉘가 알리, 어느 가지에서는 연신 피고/ 어느 가지에서는 또한 지고들 하는/ 움직일 줄을 아는 내 마음 꽃나무"('자연(自然)')라는 표현과 쏙 빼닮았다. '눈물나고나'와 '보것네' 등의 종결어미에서는 그의 다른 시편에서도 예사인 전통적인 가락의 활용을 보여준다. 이 시가 처음 월간지에 발표된 후 박두진 시인은 "노도(怒濤)처럼 세찬 현대의 휩쓸림 속에서 배추 꽃목처럼 목이 가늘고 애잔한, 실개천처럼 맑고도 잔잔한 서정"이라고 평해 신예 박재삼을 주목했다.   박재삼 시의 가옥을 떠받치는 두 기둥인 '한'과 '가락'의 능수능란한 구사는 그가 자라난 생활환경과 관련이 있다. 일본 동경에서 태어나 막노동을 하는 아버지와 생선 장사를 하는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집이 가난해서 낮에는 중학교 급사로 일하면서 야간반에서 수학을 했다. 집 형편이 옹색해 책을 살 수 없어 '가람시조집'을 빌려다 공책에 베껴 쓰고 늘 외웠고, 중학 시절 김상옥 시인의 작문 지도를 받으면서 전통시의 낭창낭창한 가락에 눈떴다.   병을 얻어 직장을 그만둔 후로는 시를 쓰고 신문에 바둑 관전평을 써서 생계를 꾸렸다. '요석자(樂石子)'라는 이름으로 바둑 관전평을 썼는데 바둑계에서는 그를 '박국수(朴國手)'라고 불렀다. 병을 앓고 난 후, 가난한 시인은 새봄을 맞는 소회를 썼다. "눈여겨 볼 것이로다, 촉트는 풀잎,/ 가려운 흙살이 터지면서/ 약간은 아픈 기(氣)도 있으면서/ 아, 그러면서 기쁘면서…/ 모든 살아 있는 것이/ 형(兄)뻘로 보이는 넉넉함이로다."('병후(病後)에') 그러니 우리네 삶이 '햇볕 반(半) 그늘 반(半)'이라 하더라도 오늘 당신은 글썽임보다 반짝이는 쪽을, 촉트는 생동(生動)을 보아라.      [애송시 100편 - 제 61편] 노동의 새벽 - 박노해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를 붓는다   아   이러다간 오래 못가지   이러다간 끝내 못가지       설은 세 그릇 짬밥으로   기름투성이 체력전을   전력을 다 짜내어 바둥치는   이 전쟁 같은 노동일을   오래 못가도   끝내 못가도   어쩔 수 없지       탈출할 수만 있다면,   진이 빠져, 허깨비 같은   스물아홉의 내 운명을 날아 빠질 수만 있다면   아 그러나   어쩔 수 없지 어쩔 수 없지   죽음이 아니라면 어쩔 수 없지   이 질긴 목숨을,   가난의 멍에를,   이 운명을 어쩔 수 없지       늘어쳐진 육신에   또다시 다가올 내일의 노동을 위하여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를 붓는다   소주보다 독한 깡다구를 오기를   분노와 슬픔을 붓는다       어쩔 수 없는 이 절망의 벽을   기어코 깨뜨려 솟구칠   거치른 땀방울, 피눈물 속에   새근새근 숨쉬며 자라는   우리들의 사랑   우리들의 분노   우리들의 희망과 단결을 위해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잔을   돌리며 돌리며 붓는다   노동자의 햇새벽이   솟아오를 때까지       ▲ 일러스트=권신아 '박노해 노동의 새벽 20주년 헌정음반'(2004)을 들으며 시집 '노동의 새벽'(1984)을 읽는다. 장사익, 윤도현 밴드, NEXT 등이 '노동의 새벽' 시편들에 곡을 붙여 노래한 앨범이다. '노동의 새벽'은 어두운 새벽빛의 표지다. "노동형제들에게 조촐한 술 한 상으로 바칩니다"라는 시인의 헌사로 시작하고 있다. '노동해방'을 줄여 필명으로 삼은 '얼굴 없는 노동자 시인' 박노해(50)의 시에, 독설로 민중문학론을 설파했던 고(故) 채광석의 기획 및 해설과, 민중미술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던 고(故) 오윤의 판화가 어우러져 사회과학 출판사 풀빛에서 출간된 시집이다. '노동'과 '해방'과 '문학'의 접점에서 생산되고 소비되었던 이 시집은 1980년대를 대표하는 한 상징이다. 금서(禁書)로 노동문학의 전범이 되었고, 판매량이 100만부로 추정되고 있으며, 지난 20년간 우리 사회의 변화에 큰 영향을 미친 책 중 한 권이 되었다.   이 시는 '시대의 새벽을 부른' 박노해의 명실상부한 대표시다. 조출(조기출근)-야근(야간잔업)의 노동현실에서 야근현장은 졸음과 사투를 해야 하는 전쟁터다. "드르륵 득득/ 미싱을 타고, 꿈결 같은 미싱을 타고/ 두 알의 타이밍으로 철야를 버티는/ 시다의 언 손"('시다의 꿈')으로, 조는 순간 "기계 사이에 끼어 아직 팔딱거리는 손을/ 기름먹은 장갑 속에서 꺼내"('손 무덤')야 하는 무참한 사고 없이 무사히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 새벽이면 속이 빈 '쓰린 가슴'에 '차거운 소주'를 부을 수밖에. '어쩔 수 없는' 분노와 슬픔 때문에 붓고, '기어코'의 깡다구와 오기의 힘으로 붓는다. 고통과 절망을 위무하기 위해 붓고, 연대와 희망을 고무하기 위해 붓는다. 차가운 소주가 뜨거운 소주로 변하는 '노동자의 햇새벽'에, 식히기 위해 붓고 태우기 위해 붓는다.   그는 열다섯에 상경해 야간 상고를 졸업하고 섬유·화학·건설·금속·운수 노동을 하며 노동운동과 노동문학에 투신했다. '사노맹(남한 사회주의노동자동맹)' 사건으로 체포되어 '반국가단체 수괴'로 무기징역이 선고되자 "나는 노동자이자 시인이며 혁명가입니다"라는 최후진술로 스스로를 변호했다. 지금은 세계의 빈곤 지역과 분쟁 지역을 돌며 생명과 평화와 나눔의 활동을 펼치고 있다. 수감 중에 썼다는 시 '그 해 겨울나무'가 떠오른다. "그해 겨울,/ 나의 시작은 나의 패배였다"로 시작해 "그해 겨울,/ 나의 패배는 참된 시작이었다"로 끝을 맺는다.      [애송시 100편 - 제 62편] 눈물 - 김현승     더러는   옥토(沃土)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生命)이고저……     흠도 티도,   금가지 않은   나의 전체(全體)는 오직 이뿐!     더욱 값진 것으로   들이라 하올제,     나의 가장 나아중 지니인 것도   오직 이뿐!       아름다운 나무의 꽃이 시듦을 보시고   열매를 맺게하신 당신은,       나의 웃음을 만드신 후에   새로이 나의 눈물을 지어 주시다.      ▲ 일러스트=잠산 이 시는 1957년에 펴낸 김현승(1913~1975)의 첫 시집 '김현승시초'에 실려 있다. 시집의 장정을 서정주 시인이 맡았다고 되어 있고, 가격은 육백환이라 적혀 있다. 시인은 "하나에서 열까지 전부를 주선하여 준 서정주 시백의 우의에 깊이 감사를 드린다"고 자서에 썼다. 서정주 시인은 김현승 시인에 대해 "사람 사이의 정(情)에 철저했던 그는 정의감을 큰 것이건 작은 것이건 고수하는 데서도 철저했던 것인데, 이것은 그의 고독(孤獨)의 원인일 것이다"라고 평가해 친근한 사이임을 자랑했다.   어린 자식을 잃은 참혹한 슬픔을 노래한 시들은 많다. 김광균의 시 '은수저'가 그렇고, 정지용의 시 '유리창'이 그렇다. 김광균은 "저녁 밥상에 애기가 없다./ 애기가 앉던 밥상에 한 쌍의 은수저/ 은수저 끝에 눈물이 고인다"라고 썼고, 정지용은 "고운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 아아, 늬는 산새처럼 날아갔구나"라고 썼다.   아들을 잃고 난 후 창작한 것으로 알려진 시 '눈물'은 독실한 기독교 신앙에 의지해 그 슬픔을 넘어선다. '들이라 하올제'의 대상이나 '당신'은 그가 신앙한 절대자였다. 그는 눈물이야말로 한 점 생명의 씨앗과도 같고, 더러움이 없으며, 인간의 마음이 가장 마지막 순간까지 순금처럼 지니고 살아야 할 것으로 보았다. 일시적이고 가변적인 '웃음'보다는 영혼을 정결하게 하는 '눈물'을 귀하게 보았다. 눈물의 참회 이후 인간이 지니게 될 순수하고 진실한 양심을 옹호했다. 이 시가 기독교적 신앙시의 모습을 보여주긴 하지만, 그가 정작 염원한 것은 더 심오한 가치였다. 그는 스스로 밝히길 "나는 또한 신앙에 순응하기만 하는 시인은 아니다"라며 "떳떳하고 참되고 올바른 인간정신을 나의 시에 스며들게 하는 데 더 큰 가치를 느낀다"고 했다.   눈물이 너무 흔해서 아무래도 천국엘 못 갈 것 같다고 한 김현승 시인의 자화상은 어떠했을까. "내 목이 가늘어 회의에 기울기 좋고", "연애엔 아주 실망(失望)이고" "눈이 커서 눈이 서러워,/ 모질고 싸특하진 않으나,/ 신앙과 이웃들에 자못 길들기 어려운 나"('자화상')라고 써 본인의 내·외형적인 기질의 근사치를 내놓았다.   현대시 100년의 역사에서 김현승 시인처럼 고독과 슬픔을 지독하게 노래한 시인도 드물다. '싸늘한 증류수의 시대'를 살다간 그에게 고독과 슬픔과 뜨거운 눈물은 본능적으로 이끌리는 것이었다. "슬픔은 나를/ 목욕시켜준다,/ 나를 다시 한 번 깨끗게 하여준다"며 "슬픔 안에 있으면/ 나는 바르다!"고 썼을 정도로. 숭전대학교(현 숭실대학교) 채플 시간에 기도 중 쓰러진 뒤 병석에서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눈물의 옹호자였던 시인은 영혼의 옷마저 벗고 우리 곁을 떠났다.      [애송시 100편 - 제 63편] 그리스도 폴의 강(江) 1 - 구상     아침 강에   안개가   자욱 끼어 있다.   피안(彼岸)을 저어 가듯   태백(太白)의 허공속을   나룻배가 간다.   기슭, 백양목(白楊木) 가지에   까치가 한 마리   요란을 떨며 날은다.   물밑의 모래가   여인네의 속살처럼   맑아 온다.   잔 고기떼들이   생래(生來)의 즐거움으로   노닌다.   황금(黃金)의 햇발이 부서지며   꿈결의 꽃밭을 이룬다.   나도 이 속에선   밥 먹는 짐승이 아니다.       ▲ 일러스트=권신아 구상(1919~2004) 시인은 강과 물을 유난히 사랑했던 시인이다. 당호를 관수재(觀水齋)라 하고 서재에 '관수세심(觀水洗心)'이라는 편액을 걸어놓고는, 그 글귀대로 여의도 윤중제방에 나아가 유유히 흘러가는 한강을 바라보며 마음을 씻어내곤 했다. 수(水)와 심(心)은 통하는 글자이기에 관수(觀水)와 세심(洗心)은 '마음을 바라보는' 일인 바, "마치 매일예배를 보듯/ 나는 오늘도 강에 나와 있"('겨울강 산조(散調)')곤 했던 것이리라.   무릇 물은 맑다. 흐르면서 넓어지고, 끊이지 않고, 거슬러 오르지도 않는다. 무엇이든 그 밑바닥으로 흘러들고, 다른 무엇에 스며들었을 때에는 이미 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물이었다./ 맑은 물이었다./ 맑은 물이 하염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흘러가면서 항상 제자리에 있었다./ 제자리에 있으면서/ 순간마다 새로웠다.// 새로우면서 과거와/ 이어져 있었다."('그리스도 폴의 강 11'). 강에서 사람을 업어 건네는 수행을 통해 예수 발현(發顯)을 체험했던 성자 '그리스도 폴'의 강처럼, 시인에게 강은 건너가야 하는 삶의 터였으며 구도의 방편이자 사랑의 궁극이었을 것이다.   흐르는 강물처럼 과거와 미래와 현재가 하나이기에, 오늘이 바로 영원이고 오늘 하루가 신비의 샘이다. 오늘 시방 그 영원을 살고 있기에 '마음이 가난한 삶'을 살아야 하고 '마음을 비운 삶'을 살아야 하는('오늘') 것이리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꽃자리')인 것이리라. 그러니 내가 앉아 있는 지금-여기의 꽃자리가 '반갑고 고맙고 기쁠' 수밖에. 그는 격동의 현대사 속에서 파랑(波浪) 많은 삶을 살았지만 그의 시편들은 고요한 강물처럼 조용하고 편안하다. 진솔하고 정갈하다. 그의 삶도 시와 다르지 않았다.   이 시는 아침 강의 신비와 신성을 노래하고 있다. 자욱한 아침 안개는 물과 하늘, 여기와 저기, 차안과 피안의 경계를 지운 채 세계를 하나의 '허공'으로 만들고 있다. 그 허공 속을 저어 가는 나룻배는 이미 비승비속(非僧非俗)이다. 구불구불 휜 흰 백양목 가지에 앉은 검은 까치 한 마리, 여인네 속살 같은 물밑의 모래, 생래의 즐거움으로 노니는 잔 고기떼, 동터오는 황금의 햇발은 인간이 침범하지 않는 태고(太古)적 아침 강의 이미지들이다. 이런 강을 마음에 품고 하루의 아침을 시작한다면, 매일 매일의 밥벌이 터에서도 '밥 먹는 짐승'으로 전락하지 않을 것 같다.      [애송시 100편 - 제 64편] 섬진강1 - 김용택       가문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퍼가도 퍼가도 전라도 실핏줄 같은   개울물들이 끊기지 않고 모여 흐르며   해 저물면 저무는 강변에   쌀밥 같은 토끼풀꽃,   숯불 같은 자운영꽃 머리에 이어주며   지도에도 없는 동네 강변   식물도감에도 없는 풀에   어둠을 끌어다 죽이며   그을린 이마 훤하게   꽃등도 달아준다   흐르다 흐르다 목메이면   영산강으로 가는 물줄기를 불러   뼈 으스러지게 그리워 얼싸안고   지리산 뭉툭한 허리를 감고 돌아가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섬진강물이 어디 몇 놈이 달려들어   퍼낸다고 마를 강물이더냐고,   지리산이 저문 강물에 얼굴을 씻고   일어서서 껄껄 웃으며   무등산을 보며   그렇지 않느냐고 물어보면   노을 띤 무등산이   그렇다고 훤한 이마 끄덕이는   고갯짓을 바라보며   저무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어디 몇몇 애비 없는 후레자식들이   퍼간다고 마를 강물인가를.     ▲ 일러스트=잠산 김용택(60) 시인은 섬진강의 시인이다. 전북 임실군 덕치면 진메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전북 임실군 덕치면 덕치초등학교 선생님이다. 그는 하루도 섬진강을 보지 않는 날이 없이 섬진강과 함께 살아왔다.   그를 80년대 대표적 농촌시인으로 우뚝 서게 한 섬진강 연작시는 섬진강변의 새와 풀꽃과 흙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가득 담고 있다. 그에게 섬진강이라는 공간은 "치마폭에 쌓이는 눈물을/ 강물에 가져다 버리"('섬진강 2')는 누이가 살던 곳이요, "강 건너 산밭에 하루 내내 스무 번도 더 거름을 져 나르"면서 "해 저문 강 길을 홀로 어둑어둑 돌아오시는 어머니"('섬진강 9')가 살아온 곳이요, "누구는 이라자라 쟁기질 잘하고/ 소 잘 다루고/ 누구는 선일 잘하고/ 모 잘 심고 써레질 잘하고"('섬진강 13') 그리하여 다 사람 구실을 하고 인심에 변동이 없는 곳이다.   이 시는 섬진강 연작시의 말머리 시이다. 생명들의 이마에 꽃등을 달아주는 생명의 젖줄 섬진강을 노래했다. 지도에도 없지만 그네들만은 서로 아끼고 챙겨가며 뼈 으스러지게 그리워 얼싸안고 사는 곳, 일어서서 껄껄 웃는 지리산과 훤한 이마 끄덕이는 무등산을 부모처럼 이웃처럼 모시고 사는 곳, 그런 큰 산들의 역사와 함께 살아온 까닭에 지금껏 마른 적 없는 도도한 흐름이 있는 곳, 크고 굳세고 건강한 살림 공동체…….   섬진강 연작시에는 시골 사람들의 투박한 입담이 들꽃처럼 곳곳에 피어 있다. '너무 그리 말더라고' 등의 전라도 방언과 '저런 오사럴 놈들' 같은 상말을 구사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툭 터놓고 말하는 그의 시는 맑고 정직하다. "나는 내 이웃들의 농사에/ 내 손이 희어서 부끄러웠고/ 뙤약볕 아래 그을린 농사군들의/ 억울한 일생이/ 보리꺼시락처럼 목에 걸려/ 때로 못밥이 넘어가지 않아/ 못 드는 술잔을 들곤 했다"('길에서')는 고해성사와도 같은 자기고백을 보라. 그럼으로써 "우리 어매 날 낳아/ 가난한 일 속에 날 기른/ 헐벗은 젖가슴 같은 산천"('섬진강 27')을 다 노래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았다. 그럼으로써 그는 "아직도 두 눈 시퍼렇게 부릅뜨고/ 땅을 파는/ 농군"('마당은 비뚤어졌어도 장구는 바로 치자')의 편에 섰다. 살 아프고 맘 아픈 그들의 편에 서서 환장할 것 같은, 기가 차고 어안이 벙벙한 농촌의 현실을 다 발언했다.   그의 시에서는 포슬포슬한 흙냄새가 난다. 그의 시를 통해 은어 떼가 헤엄치는 푸른 강과 넓디넓은 평야를 본다. 가슴이 넓어지고 따뜻하다.      [애송시 100편 - 제 65편] 생명의 서(書) - 유치환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懷疑)를   구(救)하지 못하고   내 또한 삶의 애증을 다 짐지지 못하여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으로 나는 가자   거기는 한 번 뜬 백일(白日)이   불사신같이 작열하고   일체가 모래 속에 사멸한   영겁(永劫)의 허적(虛寂)에   오직 알라의 신(神)만이   밤마다 고민하고 방황하는   열사(熱沙)의 끝   그 열렬한 고독 가운데   옷자락을 나부끼고 호올로 서면   운명처럼 반드시   '나'와 대면(對面)케 될지니   하여 '나'란 나의 생명이란   그 원시의 본연한 자태를   다시 배우지 못하거든   차라리 나는 어느 사구(砂丘)에   회한 없는 백골을 쪼이리라       ▲ 일러스트=권신아 유치환(1908~1967) 시인의 작품 가운데 애송시 후보를 꼽으라면,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는 시 '행복'을 떠올릴 독자도 있겠다.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라는 구절은 우리에게 친숙하다. 그는 편지의 고수(高手)였다. 일본 유학시절, 주일학교에서 만난 소녀에게 매일같이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후일 그 소녀와의 결혼식 때 들러리를 섰던 화동(花童)이 먼 훗날 '꽃'의 시인으로 유명해진 김춘수였다. 시조 시인 이영도에게 보냈던 편지들은 책으로 묶이기도 했다.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임은 뭍같이 까딱 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 어쩌란 말이냐"나, "바람 센 오늘은 더욱 더 그리워/ 진종일 헛되이 나의 마음은/ 공중의 깃발처럼 울고만 있나니/ 오오, 너는 어드메 꽃같이 숨었느냐"('그리움')와 같은 절절한 연시들은 바로 사랑의 편지에서 비롯되었으리라.   그러나 이런 '사랑의 시인'과는 사뭇 다른, '의지의 시인' '허무의 시인'의 면모가 유치환의 진면목에 더 가깝다. 형이상학적인 역설을 근간으로 하는 '생명의 서'는 유치환 시 정신의 정수를 보여준다. 생명이 부대끼는 병든 상태에서 무생명의 공간, 바로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을 찾아간다는 것 자체가 역설이다. 사멸·영겁·허적 등의 관념적 시어가 사막의 무생명성을 강조한다. 또한 열사의 끝 그 '영겁의 허적' 속에 '호올로' 맞는 고독이 열렬하다는 것, 생명 그 '원시의 본연한 자태'를 '회한 없는 백골'이 될 때까지 배우겠다는 것에서도 생명에의 역설은 두드러진다. 모든 생명의 본연은 무(無)다. 생명의 시작은 죽음의 끝과 이어져 있다. 그러기에 사멸의 땅 사막에서 근원적 생명을 배우려는 것이리라.   대낮의 태양이 이글거리고 영겁의 시간이 층층이 새겨진 사막의 적막, 그 열렬한 고독 한가운데서 영원한 생명에의 충동이 샘솟는 단독자(單獨者)가 있다. 물 한 줄기 찾을 수 없는 사멸의 사막 끝을 생명에의 의지를 등에 지고 낙타처럼 묵묵히 걸어가고 있다. 그러기에 생명의 '서(書)'에는 생명이 충만한 삶의 서(序)와 서(誓)뿐만 아니라 경전의 의미까지도 담고 있다. 그의 시는 형이상학적 전통이 희박한 우리 현대시사에서, 드물게도 인간의 의지 혹은 정신적 높이의 한 정점을 보여주고 있다. 그를 '생명파 시인'이라 부르는 까닭이고 '사막' 하면 그의 시가 떠오르는 까닭이다.      [애송시 100편 - 제 65편] 의자 - 이정록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   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 어른의 말씀을 받아 적기만 해도 시가 될 때가 많다. 주름살 사이에서 나온 말씀이기 때문이다. 짧고 두서없이 울퉁불퉁 불거져 나온 말이지만 마늘처럼 매운 맛이 있기 때문이다. 이 시는 어머니가 무심코 던진 말씀으로부터 태어났다. 허리가 아픈 어머니는 앉아 쉴 곳이 눈에 밟혔을 것이다. 어디건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허리를 펴고 싶었을 것이다. 이 시가 심상찮은 것은 의자를 내놓을 데를 태연무심하게 열거하는 어머니의 품 큰 생각에 있다. 사람뿐만 아니라 꽃과 열매와 참외밭과 호박과 망자(亡者)에게도 의자를 내주어야 한다는 그 우주적인 마음 씀씀이에 있다. 공생과 배려에 기초한 이런 모성적 마음씨는 식구를 다 거둬가며 밥을 먹여온 삶의 연륜에서 생겨난 것이리라. (우리의 어머니가 아니라면 누가 인생을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것이라고 먹줄을 대듯 명쾌하게 말할 수 있겠는가)   이정록(44) 시인의 시에는 모자(母子)가 자주 등장한다. 시 '꽃벼슬'에서는 한식날 돌아가신 아버지의 묘를 모자가 찾아간다. 아들은 무덤에 난 쥐구멍에다 꽃다발을 꽂아드린다. "꽃밥 한 그릇 바치는 것이다". 어머니는 쥐구멍에 술잔을 따르며 "새끼들이 술 갖고 올 줄 알고/ 입을 동그랗게 벌리고 있구나"라고 익살맞게 말씀하신다. 아들이 "무덤 안에서 뭔 소리 들려요"라고 너스레를 떨자 어머니는 농(弄)으로 "그랴 니 불알 많이 컸다고 그런다"라시며 "아예 술병을 쥐구멍에 박아놓는다". (모자 사이에 오가는 이 능청능청한 대화여.)   이정록 시인의 시는 이처럼 곰살가운 살내가 수북하니 풍긴다. 그의 시를 읽으면 옷 벗고 대중목욕탕에 함께 들어앉아 있는 기분이 든다. "사랑은 울컥이란 짐승의 둥우리"라고 말하는 그는 안간힘을 쓰며 사는, 몸살 앓는 사람들의 머리맡으로 가 슬그머니 앉는다. 식은땀을 흘리는 자식의 머리맡에서 차가운 물수건을 들고 꼬박 밤을 새던 어머니처럼.   그는 시와 삶의 거리를 18.44미터라고 말한다. (18.44미터는 투수판에서 홈 플레이트까지의 거리이다.) 18.44미터가 곧 "너와 나, 사랑과 이별, 탄생과 죽음의 거리"라고 말한다. 그만큼 그의 시는 삶을 정면으로 팽팽하게 응시한다. 삶에 근거해 삶의 현장에서 그의 시는 발발한다.   "내 꿈 하나는 방방곡곡 문 닫은 방앗간을 헐값에 사들여서 술집을 내는 것"('좋은 술집')이라고 말하는 시인. 가난하고 쓸쓸한 사람들에게 공짜 술도 나눠주고 봉지쌀도 나눠주고 싶다는 시인. 그는 소년교도소에 가서 한문을 가르치기도 하는 천안 중앙고등학교 교사이다.     [애송시 100편 - 제 67편] 칼로 사과를 먹다 - 황인숙       사과 껍질의 붉은 끈이   구불구불 길어진다.   사과즙이 손끝에서   손목으로 흘러내린다.   향긋한 사과 내음이 기어든다.   나는 깎은 사과를   접시 위에서 조각낸 다음   무심히 칼끝으로   한 조각 찍어 올려 입에 넣는다.   "그러지 마. 칼로 음식을 먹으면   가슴 아픈 일을 당한대."   언니는 말했었다.   세상에는   칼로 무엇을 먹이는   사람 또한 있겠지.   (그 또한 가슴이 아프겠지)   칼로 사과를 먹으면서   언니의 말이 떠오르고   내가 칼로 무엇을 먹인 사람들이 떠오르고   아아, 그때 나,   왜 그랬을까……   나는 계속   칼로 사과를 찍어 먹는다.   젊다는 건,   아직 가슴 아플   많은 일이 남아 있다는 건데.   그걸 아직   두려워한다는 건데.         황인숙 시인은 좀체 변하지 않는 사람이다. 사는 방식도, 취향도, 생각도, 표정도, 말투도, 심지어 헤어스타일까지도. 황 시인의 절친한 후배 장석남 시인은 사석에서 이렇게 얘기한 적 있다.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도, 이제 30년이 지나가는데도 정말 안 변하는 사람이 황인숙 선배라고, 그쯤이면 도(道)의 경지라고. 새들은 변하지 않는다, 늙지 않는다. 말하자면 그는 '새'과다. '하늘을 자유롭게 풀어놓는' 새처럼, 그는 명실상부한 '프리랜서'로 30여 년을 자유롭게 살고 있다. 글을 쓰며(맛깔스런 그의 산문은 이미 정평이 나 있다) 세든 집에서 혼자 산다. 책과 음악과 식도락과 고양이(들)와 그의 단짝 벗들과 더불어 산다. "마감 닥친 쪽글을 쓰느라 낑낑거리며/ 잡문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부르짖는/ 가난하고 게으른 시인이/ 그 동네에도 살고 있을 것이다"('파두―비바, 알파마!')   타인에게 칼을 건넬 때는 반드시 칼등을 잡고 칼날이 자신에게 향하도록 건네는 것이 예의다. 이사 갈 때 칼을 버리고 가면 그 집과의 인연을 끊고 가는 것이고, 부엌에 칼을 아무렇게나 놓으면 가족이 다치거나 돈이 모이지 않는다고 한다. 칼(날)이 날카롭기 때문에 이런 금기들이 생겨났을 것이다. '칼로 음식을 먹으면 가슴 아픈 일을 당한다'는 금기도 마찬가지다. 예전에도 칼로 사과를 먹다가 언니에게 이 금기의 말을 들은 적이 있건만, 지금도 여전히 시인은 사과껍질을 깎던 칼로 사과를 찍어 먹는다. 칼로 사과를 먹으며 누군가에게 칼로 사과를 먹였던 일을 떠올린다.   이 시의 맛을 깊게 하는 건 마지막 연이다. "젊다는 건, 아직 가슴 아플, 많은 일이 남아 있다는 건데. 그걸 아직, 두려워한다는 건데." 오래 되짚어 보게 하는 구절이다. 젊지 않은데도, 여전히 가슴 아플, 많은 일이 줄지 않는 걸 보면 칼로 사과를 너무 많이 먹었나 보다. 칼로 주는 사과를 너무 많이 받아 먹었나 보다. 칼로 먹고 칼로 먹였던 게 비단 사과뿐이었겠나 싶다. 뭔가를 준다는 게 이렇게 위태로울 때가 있다. 그것이 자기에게든 타인에게든, 그것이 사랑이든 배려든. 젊음이 아름다운 건, 가슴 아플, 많은 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두려워하지 않는 젊음은 그러기에 두려운 대상이다. 황인숙 시인은 여전히 젊고 경쾌하다. 계속 칼로 사과를 콕콕 찍어먹을 수 있을 만큼! 부리로 사과를 콕콕 쪼아먹는 새처럼, 아니 그의 시처럼.     [애송시 100편 - 제 68편] 이탈한 자가 문득 - 김중식           우리는 어디로 갔다가 어디서 돌아왔느냐 자기의 꼬리를 물고 뱅뱅 돌았을 뿐이다 대낮보다 찬란한 태양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한다 태양보다 냉철한 뭇별들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하므로 가는 곳만 가고 아는 것만 알 뿐이다 집도 절도 죽도 밥도 다 떨어져 빈 몸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보았다 단 한 번 궤도를 이탈함으로써 두번 다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할지라도 캄캄한 하늘에 획을 긋는 별, 그 똥, 짧지만, 그래도 획을 그을 수 있는, 포기한 자 그래서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롭다는 것을     ▲ 일러스트=잠산 이 시를 읽고 있으면 미국의 대표적인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이 생각난다. 노란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으니, 나는 풀이 더 많고 사람이 다닌 발자취가 적은 외로운 길을 선택해서 걸어갔노라고 쓴 시. 그리고 그런 선택으로 인하여 나에게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쓴 시.   이 아침에도 우리의 목전(目前)에는 여러 갈래의 길이 놓여 있다. 낯익고 평탄한 길이 있고, 그렇지 않은 길이 있다. 소의 잔등처럼 유순하고 완만하고 반듯해진 길이 있고, 나아갈 틈이 없는 가시넝쿨을 헤치듯 누군가 처음으로 개시(開示)해야 하는 길도 있다. 그러나 '가는 곳만 가고 아는 것만 알 뿐'인 우리는 각지고 불규칙한 길보단 대열의 후미에서 앞의 궤적을 뒤따라가고 싶어진다. 은근슬쩍 길들여졌으므로, 이 순응을 등지고 뒤집는 일은 엄두를 못 낼 정도로 어렵다.   이 시는 우리 마음에 악착스레 붙어사는 순응주의를 되돌아보게 한다. 보통 사람들의 비겁과 안일에 대해 울화통을 터뜨린다. 앞선 행로에 기생하여 '꼬리를 물고 뱅뱅' 돌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야멸치게 묻는다. 좌충우돌이면 어떠냐고, 뒤죽박죽이면 어떠냐고 묻는다. 풍파(風波), 그것이 우리들 삶의 표정이며, 우리가 살아 있다는 증거이므로 안주(安住)하려 하거나 상처받지 않으려 하지 말라고 호통을 친다. 그러나, 이 야유는 좀 불편하다. "병 대신 병적인 것, 아픔 대신 아픔적인 것, 애인 대신 애인적인 것에서 우리는 위안받는다"('행복하게 살기 위하여'). 그래서 만만히 볼 수 없는 이런 맹랑한 발언은 우리들의 속을 긁어 놓는다.   이 시가 실려 있는 김중식(41) 시인의 첫 시집 '황금빛 모서리'의 시편들은 길들여진 우리의 일상과 사고를 전복하려는 노력을 줄기차게 보여준다. 그의 시에는 우회(迂廻)가 없다. 그는 스스로 자초하는 존재들의 억센 자유의지를 격려한다. 시집 뒤표지 글은 이렇게 썼다. "자기 삶을 방목(放牧)시킨 그를 나는 존경한다. 자기 삶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방목된 삶은 야생마처럼 갈기를 세우고 주인의 울타리를 넘어서려 한다. 그 고투의 흔적이 역력한 그의 연보를 읽을 때 나는 열등감을 느낀다."   사는 일이 지치고 가야 할 길이 막막할 때 스스로를 이렇게 불러보자. "주인공아!" 생념(生念)이라 했으니 엄두를 내보자. 박약한 의지를 다시 일으켜 세워보자. 당신은 당신의 삶의 후견인(後見人). 아무도 간 적 없는 길을 당신이 앞서가고 앞서간 당신을 당신이 뒤따라가는 것. 야단법석인 이 삶을 살아 가야 할 주인공아     [애송시 100편 - 제 69편] 농무 - 신경림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달린 가설 무대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빈 운동장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주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   꽹과리를 앞장세워 장거리로 나서면   따라붙어 악을 쓰는 건 쪼무래기들 뿐   처녀애들은 기름집 담벽에 붙어서서   철없이 킬킬대는구나   보름달은 밝아 어떤 녀석은   꺽정이처럼 울부짖고 또 어떤 녀석은   서림이처럼 해해대지만 이까짓   산구석에 처박혀 발버둥친들 무엇하랴   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 따위야   아예 여편네에게나 맡겨두고   쇠전을 거쳐 도수장 앞에 와 돌 때   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   한 다리를 들고 날나리를 불거나   고갯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거나         ▲ 일러스트=권신아 '우리'라는 말은 참 오묘하다. '우리'라는 말에는 내가 들어있고 네가 들어있다. '지금-여기'라는 울 안에는 '너' 하나를 비롯해 무한한 '너'들이 어깨를 맞대고 있다. 그 '안'에는 널따란 품 같은 수평적 친밀함은 있지만 수직적 높낮이는 없고, '한솥밥'이라는 공모와 공유와 공감의 연대가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일까.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 뜨끈뜨끈한 끈기가 우리의 어깨를 감싸곤 한다. 신경림(72) 시인은 '우리'라는 시어를 우리의 시와 현실 속에 말뚝처럼 세워놓았다.   긴급조치가 발령되기 시작했던 1974년, 창작과비평사에서 출간된 시집 ≪농무≫는 '우리' 현실의 사실주의적 묘사 하나만으로도 크나큰 시적 발견이었다. 이를테면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 이발소 앞에 서서 참외를 깎고/ 목로에 앉아 막걸리를 들이키면/ 모두들 한결같이 친구 같은 얼굴들" ()이라며 민중의 삶과 민중들의 연대감을 살갑게 담아내곤 했다. 혹은 "우리의 슬픔을 아는 것은 우리뿐/ (……)/ 우리의/ 괴로움을 아는 것은 우리뿐"()이라며 농민들의 애환과 정서를 일체의 수식 없이 단숨에 끌어올리곤 했다. 그리하여 이 시집은 '하나의 민중적 경사'로, 70년대 '민중시의 물꼬를 튼' 시집으로 평가되었다.   농무는 두렛일을 하며 두레패들과 함께 놀아야 하는 농악과 춤이다. 그러니 본래의 무대는 논두렁이나 밭두렁이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이 시에서 농무는 운동장의 가설무대에서 분을 바르고 구경꾼들을 위한 볼거리로 전락해 있다. 산업화와 도시화로 비어가고 쇠락해가는 농촌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술과 노름과 빚과 주정과 싸움과 울음만 늘어나는 농촌의 현실이 답답하고 고달프고 원통해서 농사꾼인 '우리'는 소주를 마신다. 술잔이 돌고 술기운 취해서 걸립패의 후예인 '우리'는 보름달 아래 꽹과리를 앞장세워 장거리에 나선다.   소시장을 거쳐 도살장을 돌며, 임꺽정과 그의 배신자 서림이처럼 한패가 되어 놀아보지만, 쪼무래기 처녀애들이나 꼬일 뿐이다. 돌고 돌면서 점점 더해가는 '우리'의 신명에는 술기운과 분노와 원통이 묻어나고, 놀고 놀면서 점점 가벼워진 '우리'의 고갯짓에는 아직 흥과 신바람이 남아있다. 장삼이사(張三李四) 필부필부(匹夫匹婦)인 '우리'의 고단한 삶을 신명 난 가락에 실어, 치고 빠지는 슬픔과 해학의 정조가 일품이다.     [애송시 100편 - 제 70편] 방심(放心) - 손택수       한낮 대청마루에 누워 앞뒤 문을 열어 놓고 있다가, 앞뒤 문으로 나락드락 불어오는 바람에 겨드랑 땀을 식히고 있다가,     스윽, 제비 한마리가,   집을 관통했다       그 하얀 아랫배,   내 낯바닥에   닿을 듯 말 듯,   한순간에,   스쳐지나가버렸다       집이 잠시 어안이 벙벙   그야말로 무방비로   앞뒤로 뻥   뚫려버린 순간,       제비 아랫배처럼 하얗고 서늘한 바람이 사립문을 빠져 나가는 게 보였다 내 몸의 숨구멍이란 숨구멍을 모두 확 열어젖히고       '마음을 놓다'라는 말, 참 오랜만이다. 마음을 풀어 놓아 버린 일 얼마나 오래되었나. 마음 졸이며 염려하고 살아왔을 뿐. 시인은 대청마루에 큰 대(大)자로 누워 있었던 모양이다. 최대한 마음과 몸을 느슨하게 하고서. 바다처럼 편편하고 넓게 퍼져서. 그런데, 스윽, 칼날이 지나가듯 제비가 공중을 한 층 횡으로 서늘하게 자르면서 지나간 모양이다. 손가락을 퉁기는 정도의 짧은 시간 동안에 벌어진 기습처럼. '나락드락 불어오는 바람'보다 더 민첩한 한 줄기 바람으로.   집과 나의 중심부를 뚫고 지나갔으니 급소(명자리)를 맞은 듯 어이없고 어리둥절해서 말을 잃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체험은 얼마나 시원한 것인가. 체증(滯症)이 가신 듯했을 것이다. 마음을 꼭 붙들어 매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터. 마음을 사방으로 허술하게 경계 없이 풀어놓는 것으로서 우리는 마음의 열림을 얻기도 한다. 그것이 무방비의 미덕이다. 좀 게으르게 혹은 별 준비 없이 멍청하게 있다가 한번쯤 당해보기도 해보라. 그런 당함에는 오히려 소득이 있다. 마음의 앞뒤 문을 다 열어놓고 있지 않았다면 어떻게 '제비 아랫배처럼 하얗고 서늘한 바람'을 볼 수 있었겠는가. 마음을 조급하게 각박하게 쓰느니 차라리 이처럼 마음에 장애를 아예 만들지 않음이 오히려 '심심(深心)'이요, '정(定)'에 가깝다.   손택수(38) 시인은 긍정심이 아주 많은 시인이다. 다른 존재들의 '빛나는 통증'을 그의 시는 받아 안는다. 그의 시는 그가 어렸을 때 그곳서 자랐다는 전남 담양 강쟁리 마을을 배경으로 태어나는 경우가 많다. 그곳 마을 사람들의 천문(天文)적인 상상력은 그의 시에 들어와 크게 빛을 발하면서 그만의 새로운 서정을 만들어낸다. "별이 달을 뽀짝 따라가는 걸 보면은 내일 눈이 올랑갑다"('가새각시 이야기')라고 말씀하시는 할아버지와 매달 스무 여드렛날은 "달과 토성이 서로 정반대의 위치에 서서/ 흙들이 마구 부풀어오르는 날"('달과 토성의 파종법')이자 "땅심이 제일 좋은 날"이라며 밭에 씨를 뿌리러 가던 할머니의 상통천문(上通天文)이 자주 등장한다. 뿐만 아니라 사람의 콧구멍에는 흰 쥐와 검은 쥐 두 마리가 혼쥐로 살고 있다는 믿음, 임신한 몸으로 시큼하고 골코롬한 홍어를 먹으면 태어날 아이의 살갗이 홍어처럼 붉어진다는 믿음 등 오랜 세월을 거치는 동안 한 마을에서 자연 발효된 이런 금기사항은 우리 시에서 어느덧 희귀해진 것이어서 각별하고 값지다.   그는 스무 살 무렵 안마시술소에서 구두닦이를 할 때 안마시술소 맹인들에게 시를 읽어주면서 시를 처음 알게 되었다고 했다. 이시영 시인은 그를 "송곳니로 삶을 꽉 물고 놓지 않는, '고향의 기억'을 잊지 않는 오랜만의 생동하는 민중서사적 시인"이라고 평가했다. 나는 그의 시를 읽을 때마다 '역린(逆鱗)'을 생각한다. "물고기 비늘 중엔 거꾸로 박힌 비늘이 하나씩은 꼭 있다고"('거꾸로 박힌 비늘 하나') 하는데, "유영의 반대쪽을 향하여 날을 세우는 비늘"인 역린을 생각한다. 그의 시에는 바닥으로 곤두박질친 생(生)을 펄떡이게 하는, '뽈끈 들어올려주는' 힘이 있다. 시에 있어서 가장 든든한 원군(援軍)은 역시 '삶 그 자체'라는 것을 다시 깨닫게 해준다.     [애송시 100편 - 제 71편] 진달래꽃 - 김소월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우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 일러스트=권신아 소월(1902~1934)을 생각하면 노랫가락이라는 말이 먼저 떠오른다. 그의 시가 노래처럼 가락을 타고, 실제로 그가 노랫가락을 즐겨 듣고 그 노랫가락을 시로 썼고, 무엇보다 그의 시가 많은 노래로 불렸기 때문일 것이다. 동요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엄마야 누나야〉)에서 시작해 정미조의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합니까"(〈개여울〉), 홍민의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부모〉), 장은숙의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못잊어〉), 건아들의 "봄 가을 없이 밤마다 돋는 달도"(〈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활주로의 "가고 오지 못한다는 말을"(〈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마야의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진달래꽃〉)에 이르기까지. 가히 '국민시인'이라 칭할 만하다.   그런 소월을 생각하면 또 제일 먼저 떠오르는 시가 〈진달래꽃〉이다. 소월은 외가인 평북 구성에서 태어나 그 가까운 정주에서 자랐으며 그 가까운 곽산에서 31세의 나이에 아편 과다복용으로 유명을 달리했다. 정주 가까운 영변에는 약산이 있고, 약산은 진달래꽃으로 유명하다. 그가 보았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은 약산의 진달래꽃이었을 것이다. 그는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꽃'으로 보통명사화시키고 있다.   '가실 때에는'이라는 미래가정형에 주목해볼 때, 이 시는 사랑의 절정에서 이별을 염려하는 시로 읽힌다. 사랑이 깊을 때 사랑의 끝인 이별을 생각해보는 건 인지상정의 일. 백이면 백, 헤어질 때 '말없이 고이' 보내주겠다고 한다. 죽어도 눈물만은 보이지 않겠다고 한다. 아무튼 그땐 그렇다! 그 사랑을 아름답게 기억해달라는 소망이야말로 이별의 로망인 바, 떠나는 길에 아름다운 진달래꽃을 '아름 따다' 뿌리려는 이유일 것이다. 특히 '아름'은 두 팔로 안았던 사랑의 충만함을 환기시켜 주는 감각적 시어다.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떠나는 건 아무래도 여자에게 더 어울린다. '말없이 보내드리우리다'나 '죽어도 아니 눈물을 보이겠다'는 결기야말로 남자다운 이별의 태도일 것이다.   나 보기가 역겨워 떠나실 그때, 눈물을 참기란 죽는 일만큼이나 힘겨운 일이지만 그래도 당신을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겠고, 당신이 '사뿐히 즈려 밟고' 떠날 수 있도록 눈물만은 보이지 않겠다는 것이 이 시의 전모다. 얼마나 애틋한 사랑시인가. 이 사랑시는 영혼을 다해 죽음 너머를 향해 부르는 절절한 이별시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초혼·招魂〉)에 의해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리라. 이렇게 노래하는 시인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애송시 100편 - 제 72편] 마음의 수수밭 - 천양희         마음이 또 수수밭을 지난다.       머위잎 몇장 더 얹어 뒤란으로 간다.       저녁만큼 저문 것이 여기 또 있다   개밥바라기별이   내 눈보다 먼저 땅을 들여다본다   세상을 내려놓고는 길 한쪽도 볼 수 없다   논둑길 너머 길 끝에는 보리밭이 있고   보릿고개를 넘은 세월이 있다   바람은 자꾸 등짝을 때리고, 절골의   그림자는 암처럼 깊다. 나는   몇 번 머리를 흔들고 산 속의 산,   산 위의 산을 본다. 산은 올려다보아야   한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저기 저   하늘의 자리는 싱싱하게 푸르다.   푸른 것들이 어깨를 툭 친다. 올라가라고   그래야 한다고. 나를 부추기는 솔바람 속에서   내 막막함도 올라간다. 번쩍 제정신이 든다.   정신이 들 때마다 우짖는 내 속의 목탁새들   나를 깨운다. 이 세상에 없는 길을   만들 수가 없다. 산 옆구리를 끼고   절벽을 오르니, 천불산(千佛山)이   몸속에 들어와 앉는다.   내 맘속 수수밭이 환해진다.    - 천양희         ▲ 일러스트 잠삼 마음을 네모진 돌과 같이 하라는 말씀이 있다. 비가 떨어져도 깨지지 않고 바람이 불어도 움직이지 않는 네모진 돌. 그러나 우리네 마음이 어디 그러한가. 마음은 사나운 코끼리에 비유되고 번갯불에 비유되고 원숭이에 비유되니 그 분주함과 변화무쌍을 제어하기 어렵다. 시시각각 생기면 사라지니 붙잡으려야 붙잡을 수 없다. 마음에는 '차츰'과 '조용히'와 '차근차근'이 살지 않는다. 마음은 근심의 주머니여서 고통에 결박되므로 큰 병(病)의 뒤끝처럼 완쾌가 드물다.   이 시는 쉬지 않는 마음을 수수밭의 일렁임에 빗대었다. 시인의 고백에 따르면 이 시는 강원도 어느 마을에서 만난 수수밭이 시 창작의 모티프가 되었다고 한다. 시인은 "죽음을 각오하고 떠난 여행길에서 살아 돌아온 마음으로 쓴 시"라고 고백했다. 바람결에 서럽게 서걱대는 수수밭에 앉아 통곡을 했다고도 한다. 그런 일이 있은 지 8년 만에 이 절창의 시는 태어났다고 했다. 시인은 암처럼 깊어진 삶의 그림자를 끌고 보리밭과 수수밭과 계곡 초입에 있었을 절을 지나 산을 올랐을 것이다. 속 빈 고사목을 두들겨 쪼는 까막딱따구리도 도중에 만나면서. 절벽에 홀로 섰을 때 산 아래 저쪽에서 아직도 쪼그리고 앉아 수수밭처럼 울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멀찍이서 보았을 것이다. 비로소 고통마저 사랑하게 되었을 것이다. 고통과 안온과 증오와 자애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화엄의 생명세계를 보았을 것이다. 저속하고 용렬한 세상과의 불화가 사라졌을 것이다.   천양희(66) 시인은 1965년 박두진 시인의 추천으로 등단했다. 올해로 시력 43년이 되는 그녀는 "고통에 함몰된 나를 시가 구원했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럴까. 김승희 시인은 그녀의 시를 "고독 위에 새긴 존재의 찬란한 금속세공과도 같다"고 평했다. 아직도 원고지에 시를 쓰고, 시를 쓰기 전에는 꼭 손부터 깨끗이 씻는다는 시인.   "벌새는 1초에 90번이나/ 제 몸을 쳐서/ 공중에 부동자세로 서고"(〈벌새가 사는 법〉) 그녀는 혹독하게 그녀의 '몸을 쳐서' 시를 쓴다. 고통의 몸을 쳐서 쓴 시들이기에 그녀의 시편들은 존재들의 뒤편을 읽어낸다. 문득 생(生)의 뒤란으로 돌아가 만나게 되는 쓸쓸함과 욕됨과 근심의 얼굴을. 시 〈뒤편〉에서 "백화점 마네킹 앞모습이 화려하다/ 저 모습 뒤편에는/ 무수한 시침이 꽂혀 있을 것이다"라고 썼듯이.   시집 《너무 많은 입》에 실린 '시인의 말'은 그녀의 골똘한 시작(詩作)을 짐작하게 한다. "시 생각만 했다 시 생각만 하다가 세상에 시달릴 힘이 생겼다 생긴 힘이 있어 시 생각만 했다 그토록 믿어왔던 시 오늘은 그만 내 일생이 되었다, 살아봐야겠다."     [애송시 100편 - 제 73편] 반성 704 - 김영승     밍키가 아프다   네 마리 새끼가 하도 젖을 파먹어서 그런지   눈엔 눈물이 흐르고   까만 코가 푸석푸석 하얗게 말라붙어 있다   닭집에 가서 닭 내장을 얻어다   끓여도 주어보고   생선가게 아줌마한테 생선 대가리를 얻어다 끓여 줘 봐도   며칠째 잘 안 먹는다   부엌 바닥을 기어다니며   여기저기 똥을 싸 놓은 강아지들을 보면   낑낑낑 밍키를 보며 칭얼대는   네 마리 귀여운 강아지를 보면   나는 꼭 밍키의 남편 같다.  - 김 영 승           ▲ 일러스트 권신아 김영승(49)은 반성의 시인이다. 그는 술이나 잠에서 반쯤 깬 반성(半醒)의 시인이고 기존의 서정시로부터 반 옥타브쯤 들떠 읊조리는 반성(半聲)의 시인이다. 가난과 무능으로 일그러진 욕망의 고백을 일삼는 반성(反性)의 시인이고, 구도자적 치열함으로 당대와 스스로를 부정하는 형이상학적 반성(半聖)의 시인이다. 그는 이 모든 반성의 삶을 돌이켜 살피며 반성(反省)한다. 반성하는 기록자, 반성하는 반항인, 반성하는 백수(白手), 반성하는 주정꾼, 반성하는 폐인, 반성하는 시인이 바로 그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반성시는 취언(醉言)이고 포르노이고 일기이고 철학이고 종교이기도 하다.   '밍키'는 그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강아지 이름이다. "놀랍고 분(憤)해 죽겠다는 듯 밍키가 짖는다/ '저젓……영키야!'/ 하며 어머니가 소리치고 나서 웃는다// 영승이를 부르시려 한 건지/ 밍키를 부르시려 한 건지// 하긴 나를 밍승이라고 부르면 또 어떠랴"(〈반성 764〉), "우리 식구를 우연히 밖에서 만나면/ 서럽다// 어머니를 보면, 형을 보면/ 밍키를 보면/ 서럽다"(〈반성 673〉)에서처럼, 그는 스스로를 반성할 때 슬쩍 자신을 밍키에게 얹어놓곤 한다.   이 시에서도 병들고 구차한 밍키의 모습에 자신의 삶을 비춰보며, 스스로가 밍키의 남편 같다며 너스레를 떤다. 밍키도 아닌, 밍키의 남편 같다는 데서 날카롭고 쓸쓸한 유머는 더해진다. 밍키에 대한 사랑은, 설움과 누추함 속에 살아가는 스스로에 대한 동병상련일 것이다. 실은 아내도 없이 상처투성이로 뒹구는 백수의 외로움과 고독과 소외를 얘기하려는 것이리라. 그가 동병상련하는 것은 구차한 강아지, 밍키만이 아니다. 발로 눌러 끄는 선풍기(〈반성 743〉)나 똥통에 빠진 슬리퍼 한 짝(〈반성 827〉)이나 만신창이가 된 풍뎅이(〈반성 608〉)에게도 마찬가지다. "나는 늘 아름답습니다./ 자신있게 나는 늘 아름답습니다./ 그러기에 슬픈 사람일 뿐이지만/ 그렇지만 나는 갖다 버려도/ 주워갈 사람 없는 폐인입니다."(〈아름다운 폐인〉)라는 그의 자조와 위악과 오만은, 이렇게 '바닥'을 치고 있는 것들에 대한 연민과 사랑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이리라.   그는 자신의 시를 "훔쳐보기만을 하는 변태성욕자처럼/ 자기자신과 세계에 대한 불연속적 보고서의 작성자로 전락한/ 사실무근한// 인간과 인간사와/ 그리고 '나'라고 하는 개체의 일들을/ 왜곡되게 기록한 것// 내가 인정할 수 있는 서정시"(〈반성·서(序)〉)라고 규정한 바 있다. 이렇게 반성의 끝을 향해 치달았던 그의 시는 개인과 젊음이 차압당한 폭력적이었던 80년대에 대한 저항이자, 그 회복을 위한 자존과 실존의 고해성사일 것이다. 우리 시사에서 드물게도 외설시비를 불러일으켰던 《반성》은 '아름다운 폐인'의 경지에서 '시인됨' 혹은 '시됨'의 가능성을 새롭게 모색한 시집이라 할 수 있다.     [애송시 100편 - 제 74편] 절벽 - 이 상         꽃이보이지않는다. 꽃이향기롭다.   향기가만개한다. 나는거기묘혈을판다.   묘혈도보이지않는다. 보이지않는묘혈속에나는들어앉는다.   나는눕는다. 또꽃이향기롭다. 꽃은보이지않는다.   향기가만개한다. 나는잊어버리고재차거기묘혈을판다.   묘혈은보이지않는다. 보이지않는묘혈로나는꽃을깜빡잊어버리고들어간다.   나는정말눕는다. 아아. 꽃이또향기롭다. 보이지않는꽃이―보이지도않는꽃이.         ▲ 일러스트=잠산 아마도 시인은 꽃이 핀 것을 보고 있었을 것이다. 꽃잎이 둥글게 열리는 것과 꽃의 둘레를 달무리처럼 둥글게 감싸는 향기를 맡고 있었을 것이다. 시인은 그 둥근 공간에 들어가 자신의 몸을 눕힌다. 죽은 사람의 몸이 놓이게 되는 무덤의 구덩이 부분이 묘혈인데, 그처럼 오목하게 파인 곳에 자신의 몸을 눕힌다. 이 시는 시인의 다른 시에 비해 비교적 쉽게 읽히는 편이지만 문제적이기는 마찬가지다. 밝게 만개한 꽃과 비산하는 꽃 향기의 반대편에 차디찬 주검과 서늘한 묘혈을 배치하고 있다. 열린 공중과 유폐된 땅 속, 두 공간은 서로 차단되어 멀리 떨어져 있다. 시인은 이 이격된 거리를 가파르고 낙차가 큰 절벽으로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이 시에도 병이 든 육체를 바라보는 시인의 황폐한 자의식이 드러나고 있다.   이상(1910~1937·본명 김해경)은 실험적인 글쓰기를 보여준 시인이자 소설가이다. 기이한 발상과 국어 문법을 파기한 그의 작품들은 당시에도 지금에도 파격 그 자체이다. 절망적인 근대의 시공간을 살아가는 자아의 분열과 의식과잉을 그는 익히지 않고 날것 그대로 드러냈다. 해서 그의 작품들은 수많은 연구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해독 불가능한 상태로 남겨져 있는 경우가 많다.   1934년 조선중앙일보에 연재한 〈오감도〉는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독자들의 거센 항의가 빗발쳐 연재 15회 만에 전격적으로 연재가 중단되었다. (독자들은 이상의 시에 대해 "개수작", "미친 놈의 잠꼬대" 등의 화포와도 같은 말들을 동원해 비난을 퍼부었다).   시인 이상에 대한 문단의 평가는 온도차가 뚜렷했다. 희대의 문제아였고, 모던 보이였고, 모더니스트였고, 천재작가였으며, "이상은 사람이 아니라 사건"(고은)이었고, "모국어의 훼손에나 기여한 시인"(유종호)이었으며, 그는 "잉크로 글을 쓰지 않고 스스로 제 혈관을 짜서 시대의 혈서를 썼다"(김기림).   그러나 이상은 다방면에서 재능을 보여주었다. 그는 미술에 솜씨가 있어 하융(河戎)이라는 이름으로 박태원의 신문연재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의 삽화를 직접 그렸다. 그의 시는 숫자와 도형의 사용, 공간 분할 등을 보여주는 바, 이것은 그가 한때 조선총독부 건축과 기수로 일한 전력과 무관하지 않았다.     [애송시 100편 - 제 75편] 성북동 비둘기 - 김광섭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 같은 새파란 아침 하늘에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의 메시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한 바퀴 휘 돈다.   성북동 메마른 골짜기에는 조용히 앉아 콩알 하나 찍어 먹을 널찍한 마당은커녕 가는 데마다 채석장 포성이 메아리쳐서   피난하듯 지붕에 올라앉아 아침 구공탄 굴뚝 연기에서 향수를 느끼다가 산1번지 채석장에 도루 가서 금방 따낸 돌 온기(溫氣)에 입을 닦는다.   예전에는 사람을 성자(聖者)처럼 보고 사람 가까이 사람과 같이 사랑하고 사람과 같이 평화를 즐기던 사랑과 평화의 새 비둘기는   이제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낳지 못하는 쫓기는 새가 되었다.                            ▲ 일러스트 권신아 김광섭(1905~1977) 시인의 호는 이산(怡山), '기쁜 산'이다. 그는 시인으로서뿐만 아니라 창씨개명을 반대한 애국교육자, 광복 후 중앙문화협회를 창립한 우익 문단의 건설자, 이승만 대통령 공보비서관을 지낸 정치인, 언론사 편집국장을 지낸 언론인으로 현대사 100년을 정말 '산'처럼 살았다. 실제로도 그는 늘 산을 향해 있었다. "이상하게도 내가 사는 데서는/ 새벽녘이면 산들이/ 학처럼 날개를 쭉 펴고 날아와서는/ 종일토록 먹도 않고 말도 않고 엎뎄다가는/ 해질 무렵이면 기러기처럼 날아서/ 틀만 남겨 놓고 먼 산속으로 간다"(〈산〉), "목마른 아스팔트를 옆으로 빠져서/ 나는 계절이 풀리는 산으로 간다"(〈산바람처럼〉).   '남포 깐다' '남포 튼다'는 말이 있었다. 남포란 다이너마이트를 이르는 말이다. 이 개발 저 개발로 너도나도 산업화의 역군이었던 60~70년대 내내 대한민국 전역에 이 산 저 산을 깨는 남포 소리 울려 퍼졌었다. 산을 깎아 돌을 채취하고 도로를 만들고 빌딩을 올리곤 했다. 뻥 뻥 남포를 까면 산에 살던 뭇 짐승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 내리고 강에 살던 뭇 물고기들은 기절을 하기도 했다. 뻥 뻥 남포 까는 소리에 밤 보따리를 싸들고 서울로, 서울로 몰려든 사람들이 산동네, 달동네로 몰리던 시절이었다. 이 시의 창작 배경에 대해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돌 깨는 소리가 채석장에서 울리면 놀라서 날아오르는 새들, 그러나 저것들이 우리에게 평화의 메시지를 전해 줄 것인가. 돌 깨는 산에서는 다이너마이트가 터지고 집들은 모두 시멘트로 지어서 마음 놓고 내릴 장소도 없는 저것들이란 데 생각이 머물렀어요." 고혈압으로 쓰러져 투병하던 중 성북동 집 마당에 앉아 하늘을 돌아나가는 비둘기떼를 보고 착상했다고 한다.   성북동 산과 산동네가 개발되면서 산비둘기는 둥지를 빼앗겼다.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인간들이 산을 깨는 것과 비둘기들 가슴에 금이 가는 것을 대비시키고 있다. 이제 산비둘기들은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낳지 못하는 쫓기는 새가 되었다." 그렇게 쫓긴 산비둘기들이 거리로, 광장으로, 고가 밑으로, 옥상으로, 창턱으로 흰 똥을 찍찍 내갈기며 뒤뚱뒤뚱 걸어다니고 있다. 산동네, 달동네 사람들도 그렇게 내쫓기곤 했다. 재개발과 산업화와 도시화와 문명화의 이면이었다. 유심초가 부른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라는 노래로 더 많은 사랑을 받았던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저녁에〉)라는 시를 읊조려 보는 아침이다.     [애송시 100편 - 제 76편] 조국(祖國) - 정 완 영       행여나 다칠세라 너를 안고 줄 고르면   떨리는 열 손가락 마디마디 애인 사랑   손닿자 애절히 우는 서러운 내 가얏고여.       둥기둥 줄이 울면 초가삼간 달이 뜨고   흐느껴 목 메이면 꽃잎도 떨리는데   푸른 물 흐르는 정에 눈물 비친 흰 옷자락.       통곡도 다 못하여 하늘은 멍들어도   피맺힌 열두 줄은 구비 구비 애정인데   청산아 왜 말이 없이 학(鶴)처럼만 여위느냐. 1962년>         ▲ 일러스트 = 잠산7   정완영(89) 시인은 평생 한국의 정형시인 시조만을 위해 외길 인생을 살아왔다. 우리는 정완영 시인을 통해 "이 당대, 시조 분야의 숭고한 순교자적 상(像)"(박경용)을 만난다. 시조를 말할 때 가람 이병기와 노산(鷺山) 이은상을 먼저 말하고, 그다음에 초정(草汀) 김상옥, 이호우를 말하고, 그 뒤에 백수(白水) 정완영을 세워 말한다. "백랑도천(白浪滔天) 같은 분노도 산진수회처(山盡水廻處)의 석간수 같은 설움도 시조 3장에 다 담으셨다."(조오현)   박재삼 시인은 정완영 시인의 인간적인 면모를 숭앙해서 "조용하게 잘 참는 것이 있다"면서 "야단스럽지 않고 기다릴 줄 아는 성품이 그를 시조의 거목이게 했다"고 썼다.   이 시조는 196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정완영 시인의 초기 작품이다. 조국의 슬픈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이 절절하게 배어 있다. 시 〈만경평야에 와서>에서 "애흡다 열루(熱淚)의 땅 내 조국은 날 울리고"라고 썼을 때처럼. 조국을 한 채의 전통악기 가얏고(가야금)에 빗대면서 조국에 대한 큰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옛 시조의 행 배열을 살리면서 시종 장중한 어조로 감칠맛 나는 고유어를 사용했다. 청각에 시각을 한데 버무리는 감각적 이미지의 활용은 압권이다. 가얏고의 서러운 가락이 귀에 들리는 듯하고, 백의민족(白衣民族)의 청사(靑史)를 보는 듯하고, 한 마리 학의 고고한 성품을 가슴으로 마주하는 것 같다.   정완영 시인의 시조는 천부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수사와 우주적인 상상력을 자랑한다. "내가 입김을 불어 유리창을 닦아내면/ 새 한 마리 날아가며 하늘을 닦아낸다/ 내일은 목련꽃 찾아와 구름 빛도 닦으리."(〈초봄〉)같은 시조를 보라. 무릎을 치며 저절로 감탄할밖에.   이뿐만 아니라 정완영 시인은 정겨운 동시조도 많이 써왔다. 〈분이네 살구나무〉는 대표적이다. "동네서 젤 작은 집/ 분이네 오막살이/ 동네서 젤 큰 나무/ 분이네 살구나무/ 밤사이 활짝 펴올라/ 대궐보다 덩그렇다."   "시조는 말로만 쓰는 시가 아니라 말과 말의 행간(行間)에 침묵을 더 많이 심어두는 시"라고 말하는 그는 요즘도 매일 간곡하게 시조를 창작한다. 원로 시조시인의 이 창창(滄滄)한 뜻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애송시 100편 - 제 77편] 국토서시(國土序詩) - 조 태 일       발바닥이 다 닳아 새 살이 돋도록 우리는   우리의 땅을 밟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숨결이 다 타올라 새 숨결이 열리도록 우리는   우리의 하늘 밑을 서성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야윈 팔다리일망정 한껏 휘저어   슬픔도 기쁨도 한껏 가슴으로 맞대며 우리는   우리의 가락 속을 거닐 수밖에 없는 일이다.   버려진 땅에 돋아난 풀잎 하나에서부터   조용히 발버둥치는 돌멩이 하나에까지   이름도 없이 빈 벌판 빈 하늘에 뿌려진   저 혼에까지 저 숨결에까지 닿도록       우리는 우리의 삶을 불 지필 일이다.   우리는 우리의 숨결을 보탤 일이다.   일렁이는 피와 다 닳아진 살결과   허연 뼈까지를 통째로 보탤 일이다.                                                                                                          ▲ 일러스트 권신아  육척 거구, 고집불통, 임전무퇴, 대의명분의 시인. '쑥대머리'를 부르며 '소주에 밥말아 먹던' 두주불사(斗酒不辭)의 시인. 국토와 식칼의 시인. 반골에 강골의 광주 시인. 의리와 정(情)의 시인. 조태일(1941~1999) 시인에게 붙여진 수식들이다. 그는 〈국토〉 연작시와 〈식칼론〉 연작시로 1970년대 우리시의 저항성에 일획을 더했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에 대해 '몸도 크지만 마음이 더 큰 사람'이라고 입을 모은다. 스스로도 "이 조가야, 그 거창한 체구엔/ 노동을 하는 게 썩 어울리는데/ 시를 쓴다니 허허허 우습다, 조가야"(〈석탄·국토 15〉)라고 노래했다.   감옥에 갇힌 후배의 가솔들을 찾아 쌀과 연탄을 사주고, 언제나 제자들 밥부터 챙기는 격의 없는 스승이었다 한다. 술에 취한 야밤에 장독대에 올라가 혀 꼬부라진 소리로 독재자는 물러가라 물러가라 물러가라 삿대질 삼창을 일삼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도 어머니의 통장에 다섯 해나 더 용돈을 송금했다고 한다. 그의 대학 은사였던 조병화 시인은 세상을 떠나기 직전, 먼저 간 제자를 추모하며 "조태일은 시인이다 착하고 정직하고 곧고 의리의 시인이다 어린이도 느끼는 시인이다"라는 글을 남겼다. 이념적 지향성은 서로 달랐으되, 스승은 젓갈 행상을 하던 홀어머니 밑에서 공부하는 제자의 형편을 알고 장학금을 받게 해주었고 제자는 두고두고 스승에게 극진했다는 미담도 잘 알려져 있다.   나라 국(國), 흙 토(土)! 국토는 우리 땅이다. 조태일 시인이 노래하듯, 우리의 하늘 밑이고 삶이고, 우리의 가락이고, 우리의 혼이고 숨결이다. 그뿐 아니다. 피와 살과 뼈에 이르는 우리의 온몸 그 자체이다. 그게 있어야 나라도 있고 국가도 있고 민족도 있다. 이 마땅하고 당연한 우리의 땅을 잃어버렸을 때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이상화), "바라건대는 우리에게 우리의 보습대일 땅이 있었더면"(김소월), "나는 갈고 심을 땅이 없음으로 추수(秋收)가 없습니다"(한용운)라고 노래했다. 70년대 조태일에게 국토는 특히 '버려진 땅에 돋아난 풀잎', '조용히 발버둥치는 돌멩이', '이름도 없이 빈 벌판 빈 하늘에 뿌려진 혼'으로 상징되는 소외된 민중의 다른 이름이다. 이 땅의 주인인 그들을 위해 '일렁이는 피', '다 닳아진 살결', '허연 뼈'까지 보태리라는 시인의 뜨거운 의지가 돌올하다.   "발바닥이 다 닳아 새 살이 돋도록 우리는/ 우리의 땅을 밟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라고 국토에 대한 숙명적 사랑을 노래했던 시인은, 간암으로 99년 9월 7일, 58세의 나이로 "풀씨가 날아다니다 멈추는 그곳/ 그곳이 나의 고향,/ 그곳에 묻"(〈풀씨〉)혔다. '그곳'이 바로 우리의 국토이고, 오매불망 국토를 노래했던 시인의 유택이 되었다. 그는 28세에 "내가 죽는 날은 99년 9월 9일 이전"(〈간추린 일기〉)이라고 썼다. 미래를 예언한 그의 시참(詩讖)이 서늘하다.      [현대시 100년…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78) 일찌기 나는 - 최승자     일찌기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마른 빵에 핀 곰팡이 벽에다 누고 또 눈 지린 오줌 자국 아직도 구더기에 뒤덮인 천년 전에 죽은 시체.     아무 부모도 나를 키워 주지 않았다 쥐구멍에서 잠들고 벼룩의 간을 내먹고 아무 데서나 하염없이 죽어 가면서 일찌기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떨어지는 유성처럼 우리가 잠시 스쳐갈 때 그러므로, 나를 안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너를모른다 나는너를모른다. 너당신그대, 행복 너, 당신, 그대, 사랑     내가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영원한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     ▲ 일러스트 잠산 1980년대 대표적인 여성시인의 한 사람인 최승자(56) 시인. 그녀의 시는 송곳의 언어로 위선적인 세계와 정면으로 맞선 하나의 살의(殺意)였다. 가장 최승자답다는 이 충격적인 일갈을 혹시 기억하시는지. "개 같은 가을이 쳐들어 온다./ 매독 같은 가을."(〈개 같은 가을이〉)   "시인은 여전히 컹컹거린다./ 그는 시간의 뼈를 잘못 삼켰다."(〈시인〉)라며 시인의 기본 성깔을 운운한 그녀는 삶의 고통과 세계의 위선을 거리낌 없이 폭로했다. 오직 자기 모욕과 자기 부정과 자기 훼손의 방식을 통해서.   이 시에도 폐광과 같은 유폐와 자기 방기가 있다. 시인은 '곰팡이'와 '오줌 자국'과 '죽은 시체'에 자기 존재의 흔적을 견준다. '나'라는 존재는 세상의 귓가를 정처 없이 떠돌다 사라지고 마는 '영원한 루머'일 뿐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삶을 저주받은 운명이라고 감히 말하며 아예 내 존재의 근거를 박탈해 버리려는 이런 듣기 거북한 발언은 그녀의 다른 시편에서도 흔하게 있다. 그녀에게 "이 조건 반사적 자동 반복적/ 삶의 쓰레기들.// 목숨은 처음부터 오물이었다."(〈미망(未忘) 혹은 비망(備忘) 2〉)   그러나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 자체가 아주 보잘것없는 일이라고 치부해 버리는 이런 발언에는 위선의 세계에 대한 강한 혐오와 저주가 깐질기게 숨어 있다. 그녀는 이 세계가 치유 불가능할 정도로 깊이 병들어 있다고 보았다. 세계가 비명으로 가득 차 있고, 탐욕의 넝마이며, 치명적인 질환을 앓고 있는데 누군들 그곳서 생존을 구걸하겠는가. 그러므로 내 존재를 루머도 없게 치워달라고 할밖에.   그러므로 이 시에서 그녀가 독하고 날카로운 비유를 동원해 본인의 존재 자체를 혐오하고 스스로 욕되게 하는 것은 일종의 위악의 방식이다. 이 부패한 지상에서 더 이상 썩지 않으려고 '부정하는 법'을 그녀는 선택한 것이다.   세월은 길고 긴 함정일 뿐이며 오직 슬퍼하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다고 서슴없이 말하던 시인. '허무의 사제' 최승자 시인은 세상을 혹독하게 앓고 시를 혹독하게 앓았다. 시로써는 "밥벌이를 할 수도 없고 이웃을 도울 수도 없고 혁명을 일으킬 수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는 "고독의 창 앞에 쏟아부을/ 충분한 피"(〈미망(未忘) 혹은 비망(備忘) 13〉)로 시를 써냈다.   "나는 아무의 제자도 아니며/ 누구의 친구도 못 된다./ 잡초나 늪 속에서 나쁜 꿈을 꾸는/ 어둠의 자손, 암시에 걸린 육신.// 어머니 나는 어둠이에요./ 그 옛날 아담과 이브가/ 풀섶에서 일어난 어느 아침부터/ 긴 몸뚱어리의 슬픔이예요."(〈자화상〉) 라고 읊었다. 그녀는 《빈센트, 빈센트, 빈센트 반 고흐》, 《자살 연구》, 《침묵의 세계》 등 주옥 같은 역서를 낸 능력 있는 번역가이기도 하다. 그녀는 지금 병환 중이라고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녀가 세상에 내놓은 신작시를 찾아 읽기가 쉽지 않다. 끔찍하게 독한 그녀의 시가 그립다. 그녀가 밤새 짜낸 '치욕의 망토'로 '귀멀고 눈멀은' 우리들은 따스함을 얻겠지. 그녀가 시 〈삼십세〉에서 "오 행복행복행복한 항복/ 기쁘다우리 철판깔았네"라고 쓴 것을 읽고 기이한 쾌감을 느꼈었던 것처럼.     [애송시 100편 - 제 79편] 투명한 속 - 이하석         유리 부스러기 속으로 찬란한, 선명하고 쓸쓸한 고요한 남빛 그림자 어려온다, 먼지와 녹물로 얼룩진 땅, 쇠 조각들 숨은 채 더러는 이리저리 굴러다닐 때, 버려진 아무 것도 더 이상 켕기지 않을 때, 유리 부스러기 흙 속에 깃들어 더욱 투명해지고 더 많은 것들 제 속에 품어 비출 때, 찬란한, 선명하고 쓸쓸한, 고요한 남빛 그림자는 확실히 비쳐 온다.   껌종이와 신문지와 비닐의 골짜기, 연탄재 헤치고 봄은 솟아 더욱 확실하게 피어나 제비꽃은 유리 속이든 하늘 속이든 바위 속이든 비쳐 들어간다. 비로소 쇠 조각들까지 스스로의 속을 더욱 깊숙이 흙 속으로 열며.    ▲ 일러스트 권신아   투명한 것은 비친다. 통과하며 통과시킨다. 더 많은 것들을 제 속에 '품어 비춘다'. 투명한 속은 제 속을 훤히 드러내며 더 많은 것들을 제 몸에 비추어낸다. 그리고 더 많은 것들은 투명한 속을 깊숙이 열며 '비쳐 들어간다'. 시간의 흔적과 문명의 찌꺼기를 받아들이고 뱉어내는 유리 부스러기의 투명한 속은 보호구역이다. 그 투명한 속은 끝이 없다. 투명한 유리 속 제비꽃처럼, 그 찬란하고 선명하고 쓸쓸하고 고요한 남빛 그림자처럼.   이하석(60) 시인의 〈투명한 속〉을 읽다보면 영화 《밀양(密陽)》의 '햇살이 시궁창을 비추는' 마지막 장면이 떠오른다. 마당 한구석의 흙탕물을 비추는 그 비밀스런 햇볕 혹은 숨어있는 햇살에 카메라 시선은 오래 머물러 있었다. 이하석 시인의 시선이 그렇다. 그는 도시문명 속에서 구석지고 버려지고 망가지고 폐허화된 '것들'의 뒷풍경을, 클로즈업된 카메라 시선으로 보여준다. 인간을 편리하고 안락하게 해주는 현대문명의 뒷면에는 산업쓰레기와 비인간적 삶이 있다. 그는 1970년대 후반 그가 살고 있던 대구 주변에 널린 산업쓰레기 현장을 흑백사진을 찍어 그 사진을 바탕으로 시 작업을 했다고 한다. 사진처럼 감정 개입은 배제한 채. 쓰레기 가득한 이러한 낯선 시선은 '냉혹한 사실주의' '극사실주의'로 평가되었으며 1980년대 우리 시단에 잔잔한 반향을 일으켰다.   쇳조각, 폐타이어, 유리병, 깡통, 껌종이, 신문지, 비닐 등 산업화의 노폐물들은 흙과 풀뿌리에 뒤엉켜 덮여 있다. "폐차장 뒷길, 석양은 내던져진 유리 조각/ 속에서 부서지고, 풀들은 유리를 통해 살기를 느낀다./ 밤이 오고 공기 중에 떠도는 물방울들/ 차가운 쇠 표면에 엉겨 반짝인다,/ 어둠 속으로 투명한 속을 열어 놓으며"(〈뒷쪽 풍경 1〉)에서처럼, 그것들은 쉽사리 흙 속으로 스며들지 못하고 풀과 더불어 성장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것들, 오랜 시간 후 흙과 풀뿌리에 깃들어 투명해지고 흙과 풀을 제 속에 품어 비칠 때, 그것들의 투명한 속은 흙과 풀을 통과하며 통과시킨다. 먼지와 녹물과 날카로움과 독성을 잠재우며 또 다른 이슬의 반짝임 쪽으로 뻗어나간다.   이 시도 버려진 유리병(조각)에 카메라를 고정시켜 놓고 있다. 유리의 반짝임과 투명함 쪽으로 흙과 풀들은 뻗어나간다. '찬란한, 선명하고 쓸쓸한, 고요한 남빛 그림자'로 상징되는 '제비꽃'은 버려진 유리 부스러기의 '투명한 속'을 비쳐 오고 비쳐 들어간다. 봄의 기운 혹은 생명의 싹 혹은 자연의 힘이다. 우리는 날마다 보고 있지 않은가. 유리 부스러기 속, 제비꽃 같은 남빛 그림자를! 시멘트 콘크리트 틈으로 돋아나는 노란 민들레꽃이나, 타일 콜타르 틈으로 삐쳐 나온 연한 세 잎 네 잎 클로버의 경이 그 자체를!     [애송시 100편 - 제 80편] 갈대 등본 - 신 용 목         무너진 그늘이 건너가는 염부 너머 바람이 부리는 노복들이 있다   언젠가는 소금이 설산(雪山)처럼 일어서던 들   누추를 입고 저무는 갈대가 있다   어느 가을 빈 둑을 걷다 나는 그들이 통증처럼 뱉어내는 새떼를 보았다 먼 허공에 부러진 촉 끝처럼 박혀 있었다   휘어진 몸에다 화살을 걸고 싶은 날은 갔다 모든 모의(謀議)가 한 잎 석양빛을 거느렸으니   바람에도 지층이 있다면 그들의 화석에는 저녁만이 남을 것이다   내 각오는 세월의 추를 끄는 흔들림이 아니었다. 초승의 낮달이 그리는 흉터처럼   바람의 목청으로 울다 허리 꺾인 가장(家長)   아버지의 뼈 속에는 바람이 있다 나는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       ▲ 일러스트 잠산  젊은 시인 신용목(34)은 "바람 교도(敎徒)"(시인 박형준의 말)다. 그의 시 곳곳에는 바람이 불어오고 멈추고 쌓이고 흐른다. 독특한 것은 그가 포착하는 바람의 속성인데, 그의 생각에 바람은 쌓이는 것이면서 강하게 '무는 힘'을 갖고 있다. 예를 들면 "바람이 비의 칼집을 잡고 서는 날"(〈바람 농군〉)에서처럼 바람을 정지시켜 묶어두거나, "느닷없이 솟구쳐 오르는 검은 봉지를/ 꽉 물고 놓지 않는/ 바람의 위턱과 아래턱"(〈새들의 페루〉), 혹은 "나는 바람의 백만번째 어금니에 물려 있다"(〈바람의 백만번째 어금니〉)라고 써서 바람의 '무는 힘'을 강조한다. 아무튼 '바람 교도'답게 그의 시집을 펼치면 바람이 와르르 쏟아진다.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는 문장이 모 기업의 에어컨 광고 문구로 사용되어 더 많은 이에게 알려진 이 시에도 바람이 등장한다. 시인은 폐(廢)염전을 걸어가고 있다. 저녁 무렵이었을 테고, 갈대가 있는 곳에서 멈춰 섰을 것이다. 바람 속에서 갈대는 갈대숲에 깃든 새들을 "통증처럼 뱉어내"고 있었을 것이다. 늦가을이었으므로 갈꽃이 진 갈대는 '촉'처럼 '화살'처럼 서 있고 시인은 그 갈대들을 보면서 세월의 한 참극과 풍파를 기억해 냈을 것이다. 아마도 가족사에 해당될 사건들을. (그래서 제목이 〈갈대 등본〉 아닌가. 우리가 동사무소에 가서 한 장씩 떼는 '주민등록등본'처럼.) 가족사 가운데서도 아버지와 관련된 과거의 일을 시인은 떠올렸을 것이다. 갈대처럼 누추를 입고, 뼛속까지 바람의 지층이 나 있고, 바람의 목청으로 울다 이제는 꺾인 아버지를 보았을 것이다. 지금 시인이 서 있는 공간, 즉 폐염전과 빈 둑과 꺾인 갈대와 바람이 부는 이 공간이 마치 아버지라는 존재의 영역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는 표현에는 개인적인 참회를 통해 아버지와의 관계를 복원하려는 결심이 담겨 있는 것이다.   노숙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연극 《나비 눈》의 대본을 쓰기도 한 신용목 시인은 우리 주변 사람들의 '허기'를 돌본다. 이주노동자, 구두수선공, 시장통 사람들이 등장하는 그의 시는 따뜻하고 서글서글하다. '등이 굽은 가축'인 우리를 돌보는 아파트 경비원 정씨는 "어제는/ 물통을 청소하고 오늘은/ 배설구를 씻는다 가축은/ 정갈해야 하므로 내일은/ 쥐똥나무를 전지하고 모레는/ 짜기철망을 손질한다 가축은/ 안전해야 하므로/ 정해진 시간마다/ 상한 데는 없는지 손전등을 들고/ 고삐를 훑으러 간다"(〈경비원 정씨〉)   신용목 시인은 한국 서정시의 계보를 잇는 젊은 시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다음과 같은 시는 그런 평가에 대한 신뢰를 갖게 한다. "밤의 입천장에 박힌 잔이빨들, 뾰족하다// 저 아귀에 물리면 모든 죄(罪)가 아름답겠다// 독사의 혓바닥처럼 날름거리는, 별의 갈퀴// 하얀 독으로 스미는 죄(罪)가 나를 씻어주겠다"(〈별〉)     [애송시 100편 - 제 81편] 보리피리 - 한하운         보리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 그리워 피-ㄹ 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꽃 청산 어린 때 그리워 피-ㄹ 닐리리.     보리피리 불며 인환(人還)의 거리 인간사 그리워 피-ㄹ 닐리리.       보리피리 불며 방랑의 기산하(幾山河) 눈물의 언덕을 지나 피-ㄹ 닐니리.        ▲ 일러스트=권신아   사월이면 보리가 패기 시작한다. 초록이 지천으로 팬 보리밭을 지날 적이면 보리피리가 불고 싶어진다. 보리의 싹이 나오기 전의 보릿대를 꺾어 불면 피-ㄹ- 소리가 났다. 보릿대를 적당한 길이로 잘라 손톱으로 작은 구멍을 내 요령껏 불면 피-ㄹ 닐니리 소리가 나기도 했다. 청보리밭의 소리이자 고향의 소리 피-ㄹ 닐니리. 피-ㄹ 닐니리는 향수의 소리다.   〈보리피리〉의 시인 한하운(1920~1975). 그의 또 다른 이름은 '문둥이'였다. 본명은 태영(泰永). 함경남도 함주에서 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1936년 17세의 나이에 한센병 진단을 받았다. 중국 베이징대학 농학원을 졸업하고 귀국해 도청에 근무하며 양양한 미래를 시작하던 25세에 다시 악화되어 직장도 그만 두고 숨어들었다. 이때 이름도 하운(何雲, 어찌 내 인생이 떠도는 구름이 되었느냐)으로 바꾸었다. 1946년 함흥학생사건에 연루되어 반동분자로 투옥되었다가 이듬해 월남했다. 구걸을 하며 연명하다 명동거리에서 시를 파는 사람으로 유명해졌다. 1949년 《신천지》에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뿐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천리, 먼 전라도길."(〈전라도 길 -소록도 가는 길에〉) 외 12편이 실리면서, '불우의 시인' '천작(天作)의 죄수' '정처 없는 유리(遊離)의 가두(街頭)에서 방황하고 섰는 걸인'으로 소개되었다.   〈보리피리〉를 읽다보면 말 그대로 '천형(天刑)'을 짊어지고 살았던 그의 삶과 세월이 떠오른다. 보리피리를 불며 가는 '꽃 청산', '인환(인간의 세계)의 거리', '방랑의 기산하(많은 산과 들)'는, 그의 고향 함경도 함주에서부터 남쪽 끝 섬 소록도까지 이르는 과정을 상징하는 것만 같다. 사월의 고향 들판에서 불었던 보리피리를 불며 그는 내내 그 멀고 먼 거리를 떠도는 구름처럼 흘러온 것이다. "나는/ 나는/ 죽어서/ 파랑새 되어// 푸른 하늘/ 푸른 들/ 날러 다니며// 푸른 노래/ 푸른 울음/ 울어 예으리// 나는/ 나는/ 죽어서/ 파랑새 되리"(〈파랑새〉)라고 노래하며.   시는 행간을, 행간의 여백을 읽는 일이다. 이 시는 신문사에 갔다가 즉석에서 써준 즉흥시다. 한 편의 시에, 가곡이나 가요로 가장 많은 곡이 붙여진 시이기도 하다. 그의 삶이 그토록 불우하고 파란만장하지 않았더라면, '인환'이나 '기산하' 같은 한자어를 제외한다면 동시라 해도 무방할 이 단순한 시가 그토록 많은 사랑을 받았을까. 기운생동 창끝처럼 패는 새파란 보리가, 지는 꽃처럼 문드러지는 붉은 살끝을 거느리고 있기에, 피-ㄹ 닐니리 봄의 보리피리 소리가 한층 깊고 서럽다.     [애송시 100편 - 제 82편] 해바라기의 비명(碑銘) -함형수 청년화가 L을 위하여       나의 무덤 앞에는 그 차거운 비(碑)ㅅ돌을 세우지 말라.   나의 무덤 주위에는 그 노오란 해바라기를 심어 달라.   그리고 해바라기의 긴 줄거리 사이로 끝없는 보리밭을 보여 달라.   노오란 해바라기는 늘 태양같이 태양같이 하던 화려한 나의 사랑이라고 생각하라.   푸른 보리밭 사이로 하늘을 쏘는 노고지리가 있거든 아직도 날아오르는 나의 꿈이라고 생각하라.     ▲ 일러스트=잠산   함형수(1914~1946) 시인은 생전에 불과 17편의 시편을 남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난해서 노동자 숙박소 등을 전전했지만 하모니카와 시 노트만은 꼭 갖고 다녔다. 한 여배우와 동거했지만 사랑에 실패하고 해방 이듬해인 1946년 정신착란증에 시달리다 북에서 숨졌다. 그는 평생 한 권의 시집도 펴내지 못했지만, 만큼은 많은 사랑을 받았다.   《시인부락》은 서정주·김달진·김동리·오장환·김광균·함형수 등이 참여한 시 동인지였다. (《시인부락》 동인들은 '생명파'로 불렸다.) 함형수 시인은 이 시를 1936년 《시인부락》 창간호에 발표했다. 우선 이 시를 읽으면 후기 인상파 화가인 빈센트 반 고흐의 《까마귀가 나는 밀밭》이나 《해바라기》 같은 그림이 떠오른다. '압생트'라는 싸구려 술을 많이 마셔서 물체가 노랗게 보이는 황시증에 시달렸다는 빈센트 반 고흐. (고흐는 술을 마시는 이유를 "노란 높은 음에 도달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정신착란증으로 권총 자살한 빈센트 반 고흐의 죽음도 함형수 시인의 불우한 죽음과 겹쳐 읽혀진다. 함형수 시인이 '청년화가 L을 위하여'라는 부제가 붙은 이 시를 창작하면서 빈센트 반 고흐의 열정적인 삶과 죽음을 염두에 두었는지는 헤아릴 수 없지만, 적어도 둘 사이에 적잖은 영향관계가 있다고 분석하는 의견은 많다.   시인은 자신의 무덤 앞에는 묘비를 세우지 말라고 말한다. '차거운' 주검 앞에 세운 '차거운' 비석은 죽음을 완성하고, 죽음을 죽음으로 붙박는 것. 마치 널이 죽은 사람의 몸을 사방으로 서늘하게 가두듯이. 대신 노랗게 출렁이는, 태양처럼 열정적으로 타오르는 해바라기를 심어 달라고 말한다. 다함이 없는, 대해(大海)와 같은 보리밭의 생명력과 공중으로 높이 날아오르는 노고지리(종다리)의 꿈과 자유를 달라고 말한다. 노란 빛깔과 푸른 빛깔의 색채대비가 인상적인 이 시는 식민지시대의 고한(苦恨)을 넘어서면서, 몸과 사랑과 꿈의 죽음을 완강하게 거부하겠다는 시인의 의지가 시종 넘쳐난다.   "눈앞에 보이는 삶의 미미(微微)한 즐거움은 선화륜(旋火輪)과 같다"고 했다. 선화륜은 횃불 같은 것을 손에 들고 빙빙 돌릴 때 생기는 불의 둥근 원(圓)을 말한다. 그만큼 삶의 즐거움은 허망하게도 머무르지 않고 흩어진다는 뜻이다. 그러나, 우리가 삶을 지속시키는 이유는 무엇인가. 수미산(須彌山) 같고 큰 바다 같은 꿈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마음에 해바라기가 자라고 보리밭이 출렁이고 종다리가 날아오르게 하자. 보리밭의 너비와 종다리의 높이를 사랑하자. 함형수 시인의 이 시가 우리에게 주는 불멸의 선물은 바로 그것일 것이다.         [애송시 100편 - 제 83편] 솟구쳐 오르기 2 - 김승희         상처의 용수철   그것이 우리를 날게 하지 않으면   상처의 용수철   그것이 우리를 솟구쳐 오르게 하지 않으면       파란 싹이 검은 땅에서 솟아오르는 것이나   무섭도록 붉은 황토밭 속에서 파아란 보리가   씩씩하게 솟아올라 봄바람에 출렁출렁 흔들리는 것이나   힘없는 개구리가 바위 밑에서   자그만 폭약처럼 튀어나가는 것이나   빨간 넝쿨장미가 아파아파 가시를 딛고   불타는 듯이 담벼락을 기어 올라가는 것이나         민들레가 엉엉 울며 시멘트 조각을 밀어내는   것이나   검은 나뭇가지 어느새 봄이 와   그렁그렁 눈물 같은 녹색의 바다를 일으키는 것이나       상처의 용수철이 없다면   삶은 무게에 짓뭉그러진 나비알   상처의 용수철이 없다면   존재는   무서운 사과 한 알의 원죄의 감금일 뿐   죄와 벌의 화농일 뿐         ▲ 일러스트=권신아 김승희(56) 시인의 시를 읽노라면 '시는 상처의 꽃'이라는 말이 입에 돈다. 상처에서 피처럼 피어나는 꽃, 그것이 시라는 생각에 미친다. 우리는 가족·사랑·출산·질병·밥벌이·이념·사회를 떠나 살 수 없기에, 우리들 상처는 우리들 보금자리에서 생긴다. 매일매일이 상처투성이다. 상처로부터 솟구쳐 오르게 하는 '용수철'이 없다면 우리는 상처로 짓뭉그러져 있을 것이다. 우리 몸에 내장된 '상처의 용수철'이 아니었다면 우리의 삶은 상처의 화농에 파묻혀 있을 것이다. 튕겨 오르는 힘, 솟구쳐 오르는 힘이 있기에 우리는 매일 새롭게 아침을 맞는다.   〈솟구쳐 오르기〉 연작시들을 통해 시인은 "활활 타오르는 상처의 꽃에서 훨훨 날아가는 새의 날개의 푸드득 솟구쳐 오름"(시집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싸움》의 자서)을 찾아 어둡고 지리멸렬한 일상의 삶 위로 튀어 오른다.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 창을 장대로 삼아 장대 높이뛰기를 하듯 하늘 위로 솟구쳐 오르고(〈솟구쳐 오르기1〉), 상처의 힘을 깨닫기 위해 긴 머리에 성냥불을 당기고 싶어하고(〈솟구쳐 오르기3〉), 상처의 혼(魂), 아니 혼 속에 간직한 상처의 오케스트라에서 터져 나오는 황금 별들의 찬란한 음악을 듣기(〈솟구쳐 오르기10〉)도 한다. 상처를 비상의 날개로 삼아 날아 오르고자 한다. 그는 '시인은 천형을 앓는 무당'과 같은 존재라고 쓴 적이 있다. 무당이 고통의 칼날 위에서 춤추는 자라면, 상처의 작두를 타고 상처의 작두 위에서 공중부양을 하는 이가 시인일 것이다. 그 역시 고정희, 최승자, 김혜순과 더불어 1970년대 여성시의 새로운 솟구침을 주도한 시인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시 쓰기 외에도 에세이, 평론, 장·단편 소설, 동화, 논문, 번역 등 분출하는 글쓰기를 펼쳐 보이고 있다.   이 시에서도 상처에 내재한 자기갱생 및 자기정화의 힘을 노래하고 있다. 봄은 겨울에서 솟구쳐 오른다. 파란 싹, 파아란 보리, 개구리, 빨간 넝쿨장미, 민들레, 나뭇가지의 새 눈의 몸을 빌려 솟아오른다. 땅속이나 바위 밑에서부터, 담벼락을 타고 시멘트를 뚫고, 텅 빈 허공을 일으키며 기어오른다. 떨어져야 다시 튀어 오르는 공처럼 내내 얼어 있던 것들이, 넘어져야 다시 일어서는 오뚝이처럼 내내 고통스러웠던 것들이, 당겨져야 다시 줄어드는 고무줄처럼 내내 아팠던 것들이, 오늘도 '상처의 용수철'을 타고 튕겨 오른다. 내일도 스카이콩콩을 타고 날아오른다. 아아 오오 우우~ 기지개를 켜며 솟구쳐 오르는 탄성(彈性)의 탄성(歎聲) 소리 가득한 아침이다. "쓰러졌던 바로 그 자리에서/ 바닥이여 바닥에서/ 무거운 사슬들이/ 짤랑짤랑 가벼운 빛의 음악이 되는 그날까지"(〈무거움 가벼움 솟아오름〉).     [애송시 100편 - 제 84편]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 김광규         4·19가 나던 해 세밑 우리는 오후 다섯시에 만나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불도 없이 차가운 방에 앉아 하얀 입김 뿜으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어리석게도 우리는 무엇인가를 정치와는 전혀 관계없는 무엇인가를 위해서 살리라 믿었던 것이다 결론 없는 모임을 끝낸 밤 혜화동 로터리에서 대포를 마시며 사랑과 아르바이트와 병역 문제 때문에 우리는 때묻지 않은 고민을 했고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는 노래를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노래를 저마다 목청껏 불렀다 돈을 받지 않고 부르는 노래는 겨울밤 하늘로 올라가 별똥별이 되어 떨어졌다 그로부터 18년 오랜만에   우리는 모두 무엇인가 되어 혁명이 두려운 기성 세대가 되어 넥타이를 매고 다시 모였다 회비를 만 원씩 걷고 처자식들의 안부를 나누고 월급이 얼마인가 서로 물었다 치솟는 물가를 걱정하며 즐겁게 세상을 개탄하고 익숙하게 목소리를 낮추어 떠도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모두가 살기 위해 살고 있었다 아무도 이젠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적잖은 술과 비싼 안주를 남긴 채 우리는 달라진 전화번호를 적고 헤어졌다 몇이서는 포커를 하러 갔고 몇이서는 춤을 추러 갔고 몇이서는 허전하게 동숭동 길을 걸었다 돌돌 말은 달력을 소중하게 옆에 끼고 오랜 방황 끝에 되돌아온 곳 우리의 옛사랑이 피 흘린 곳에 낯선 건물들 수상하게 들어섰고 플라타너스 가로수들은 여전히 제자리에 서서 아직도 남아 있는 몇 개의 마른 잎 흔들며 우리의 고개를 떨구게 했다 부끄럽지 않은가 부끄럽지 않은가 바람의 속삭임 귓전으로 흘리며 우리는 짐짓 중년기의 건강을 이야기했고 또 한 발짝 깊숙이 늪으로 발을 옮겼다         ▲ 일러스트=잠산   이 시는 4·19세대의 좌절과 절망을 노래한 4·19세대의 만가(輓歌)이다. 김광규(67) 시인은 한글로 교육을 받은 첫 세대로 4·19가 일어난 1960년에 대학에 입학했다. 그는 이 시를 4·19혁명 18년 뒤에 썼다. 중남미 보컬그룹이 불러 1960년대 초반 크게 유행했던 노래와 동명의 제목이다.   터놓고 말하는 이 시는 굳이 설명이 필요 없을 듯하다. 변해버린 세상과 변해버린 사람들의 살풍경, 온데간데없는 열망과 초심(初心), 터럭만큼의 부끄러움조차 없게 된 양심, 판치는 속물주의와 물질주의. 이것을 시인은 부지불식간에 빠져들게 된 깊숙한 '늪'이라고 부른다. 크게 호통을 치지 않는데도 이 시를 읽고 나면 뭉근하게 가슴이 저민다. 왜 그런가.   우리는 점점 어깨가 움츠러들고 왜소화되어 간다. "작아진다/ 자꾸만 작아진다/(…)/ 모두가 장사를 해 돈 벌 생각을 하며 작아지고/ 들리지 않는 명령에 귀 기울이며 작아지고/ 제복처럼 같은 말을 되풀이하며 작아지고/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우며 작아지고/ 수많은 모임을 갖고 박수를 치며 작아지고/ 권력의 점심을 얻어먹고 이를 쑤시며 작아지고/ 배가 나와 열심히 골프를 치며 작아지고/ 칵테일 파티에 가서 양주를 마시며 작아지고/ 이제는 너무 커진 아내를 안으며 작아진다"(〈작은 사내들〉) 시인은 어느덧 소시민이 되어버린 우리에게 입장 없음과 순순히 따름이 정녕 우리들이 고대한 초상이었느냐며 정직한 질문을 던진다. 면구스럽다.   독문학자이기도 한 김광규 시인은 일상시(日常詩)의 영역을 새롭게 개척한 시인이다. "김광규의 시는 그 생각에 비뚤어짐이 없으며 그 어조에 격렬한 부르짖음이 없으며 그 은유에 현란한 모호성이 없고 그 관심이 소박한 일상을 넘어서지 아니한다."(문학평론가 이남호)   김광규 시인 스스로도 자신의 시는 오페라에 있어서의 레치타티보(서창)쯤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그의 시는 아리아처럼 목청을 높여 외치지는 않는다. 다만 낮게 중얼중얼거릴 뿐. 하지만 이 중얼거림은 살기 바쁜, 살기 위해서 살아가는, 배불리 먹는 일에 열중인 우리들을 거북하게 만든다. 마치 맨발로 사금파리를 밟은 듯하게. 일례로, 그는 우리를 '4월의 가로수'에 섬뜩하게 빗댄다. 우리의 모습이 "팔다리까지 잘려/ 봄바람 불어도 움직일 수 없고/ 토르소처럼 몸통만 남아"(〈4월의 가로수〉) 있는 수양버들이라니! 그러나 둘러댈 말이 없다.   4·19혁명 기념일이 다가오면 이 시를 다시 읽게 된다. 까슬까슬하게 카랑카랑하게 살자고 다짐하면서.      [애송시 100편 - 제 85편] 낙화 - 조지훈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촛불을 꺼야 하리 꽃이 지는데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어하노니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 일러스트=권신아   천지에 꽃 피는 소리 가득하다. 등성이는 등성이대로 기슭은 기슭대로 봄꽃들 넘쳐난다. 껍질만 살짝 문질러도 생강 냄새가 확 풍기는, 산수유꽃 닮은 생강나무꽃, 사람 환장하게 하는, 산복사꽃, 개살구꽃, 제비꽃, 메꽃, 달맞이꽃, 애기똥풀꽃, 쑥부쟁이꽃 본 적 있다. 이 꽃들의 소요! 사람 홀린다는 흰 동백꽃, 바람 불 때마다 이리저리 흔들린다는 꿩의바람꽃, 아침이면 수줍은 듯 고개 숙이고 있다. 해가 나면 자줏빛 꽃잎을 활짝 연다는 바람난 처녀꽃, 엘레지꽃, 홀아비바람꽃, 너도바람꽃, 며느리배꼽꽃은 아직 못 보았다. 저 꽃들의 고요!   "어진 이는 만월(滿月)을 경계하고/ 시인은 낙화를 찬미하나니/ 그것은 모순의 모순이다"(한용운 〈모순〉)라고 했거늘, 꽃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세속의 분별과 속도로부터 한 걸음 물러서 있는 사람이리라. 올해로 40주기를 맞는 조지훈(1920~1968) 시인은 섭리로서의 소멸에 대한 아름다운 통찰을 보여준 시인이다. '지조(志操)'를 지킨 논객이자, '주정(酒酊)'의 교양과 '주격(酒格)'의 품계를 변별했던 풍류를 아는 학자였으며, 무엇보다 낙화를 찬미할 줄 아는 시인이었다.   이 시는 화두처럼 시작한다.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 꽃은 바람에 지지 않는다. 피면 지고, 차면 이울기 마련이라서, 꽃은 꽃의 시간이 다해서 지는 것이다. 저 꽃을 지게 하는 건, 바람이 아니라 밤을 아침으로 바꾸는 시간인 것이다. 시인은 촛불이 켜진 방안에서, 주렴 밖으로 꽃이 지는 것을 보고 있다. 아니 꽃이 지는 소리를 듣고 있는 것이리라. 돋았던 별이 하나 둘 스러지는 새벽, 먼 산의 소쩍새가 울고, 뜰에는 꽃이 지고 있다. 달빛이 고즈넉했던지 꽃 지는 그림자가 미닫이에 비친다. 방 안의 촛불을 꺼야, 지는 꽃이 빛을 발한다. 인간의 촛불을 꺼야, 어둠 속에서 목숨이 지는 자연의 꽃이 내는 소리를 온전히 들을 수 있다.   그는 범종소리를, 과실이 가지에서 떨어지는 소리에 비유한 적이 있다. "허공에서 떨어진다. 떨어진 그 자리에서/ 종소리는 터져서 빛이 되고 향기가 되고/ 다시 엉기고 맴돌아/ 귓가에 가슴 속에 메아리 치며 종소리는/ 웅 웅 웅 웅……/ 삼십삼천(三十三天)을 날아오른다 아득한 것"(〈범종(梵鐘)〉)이라고. 그 새벽에도 꽃이 지는 소리 웅 웅 웅 웅…… 아득했으리라. 흰 창호지문을 물들이는, '우련(보일 듯 말 듯 은은하게)' 붉은, 낙화의 그림자! 지는 꽃의 그림자를 나는 이 시에서 처음 배웠다. 꽃이 지고 나서야 비로소 그 꽃이 다시 보인다는 것도. 밤새 진 꽃들 한 치는 쌓이리라. 꽃은, 진 후에 더욱 꽃이기에, 지는 꽃의 슬픔을 이리 높고 깊게 맞을 일이다.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이 과묵한 슬픔 앞에 목이 멘다.      [애송시 100편 - 제 86편] 서시 - 이시영                                                  어서 오라 그리운 얼굴     산 넘고 물 건너 발 디디러 간 사람아     댓잎만 살랑여도 너 기다리는 얼굴들     봉창 열고 슬픈 눈동자를 태우는데     이 밤이 새기 전에 땅을 울리며 오라     어서 어머님의 긴 이야기를 듣자      ▲ 일러스트 잠산   이시영(59) 시인을 떠올리면 그가 늘 쓰고 다녔던 검고 둥글고 큰 뿔테 안경과 그 너머의 빛나는 안광(眼光)이 생각난다. 깡마른 체구와 또각또각 한마디씩 끊어가며 내놓는 정직한 말이 생각난다. 그는 1974년 문인들의 민주화운동 조직이었던 자유실천문인협의회 결성에 참여한 이후 엄혹의 시대와 맞서는 문인의 길을 걸었다.   이로 인해 연행되고 구금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1989년 《창작과비평》 주간으로 있을 때 황석영의 북한 방문기 〈사람이 살고 있었네〉를 잡지에 게재했다는 이유로 구속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유신 철폐를 위해, 구속 문인과 양심수 석방을 위해,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위해, 노동자의 살 권리를 위해 국가 폭력에 맞서고 분연히 일어나 싸웠다. 그런 체험과 시대에 대한 울분을 선혈(鮮血)의 언어로 기동력 있게 쓴 것이 그의 민중시였다.   첫시집 《만월》에 수록되어 있는 이 시에도 그의 발자취와 육성이 살아있다. 이 시는 어둠의 시대를 살다 실종되고 도피중인 동지가 돌아오기를 갈망하고 있다. 압수되고, 두들겨 맞고, 체포당한 자유와 민주주의와 인권과 평등과 평화가 어서 빨리 돌아오기를 열망하고 있다. 댓잎이 살랑이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는 숨막히는 고요가 기다림의 절절함이라면, 천지를 쿵쿵 울리는 역동적인 발자국 소리는 돌아옴의 당위에 해당한다. 저 폭압의 시대에는 자식의 생사도 모르는 채 하염없이 뜬눈으로 눈물로 밤을 지새운 어머니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이시영 시인은 민중시를, 이야기시를, 우리말을 세공(細工)한 단시(短詩)를 선보여 왔다. 근년에는 질곡의 한국 현대사를 스크럼을 짜고 함께 통과해온 인물들을 전면에 등장시키는 시를 써내고 있다.   광주일고 1학년 생활기록부에 장래 희망을 법관으로 적어 놓은 해방전사 김남주, 휘파람 잘 부는 송영, 마포추탕집에서 쭈글쭈글한 냄비에 된장을 듬뿍 넣고 끓여 함께 먹던 조태일, 문단 제일의 재담가 황석영, 상갓집에 가면 제일 나중까지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던 인심 좋은 이문구, 섬진강서 갓 올라와 창작과비평사 문을 벌컥 열고 사과궤짝을 쿵 하고 바닥에 내려놓던 김용택 등등.   그는 지나간 옛일들을, 고통의 역사를 애틋하게 따듯하게 불러낸다. 특히 송기원과의 두터운 교분을 자랑하는 시편들은 왁자하고 눈물겹다. (이시영 시인은 송기원, 이진행과 함께 '서라벌예대 문창과 68학번 삼총사'로 불리기도 했다.)   이시영 시인은 "마치 이 세상에 잘못 놀러 나온 사람처럼 부재(不在)로서 자신의 고독과 대면하며 살아온 사람"(〈시인〉)이 바로 시인이라고 말한다. 그의 시는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미풍'이 되어 서러운 사람에게로 불어간다. 가슴이 뭉클하다.     [애송시 100편 - 제 87편] 껍데기는 가라 - 신 동 엽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 일러스트 권신아   기운생동, 만화방창의 4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노래했던 이는 엘리어트였다. 우리에게도 4월은 잔인한 달이었다. 부여의 시인, 금강의 시인, 신동엽(1930~1969)은 이렇게 노래했다. "미치고 싶었다/ 4월이 오면/ 곰나루서 피터진 동학의 함성/ 광화문서 목터진 4월의 승리여// 강산을 덮어, 화창한/ 진달래는 피어나는데,/ 출렁이는 네 가슴만 남겨놓고, 갈아엎었으면/(…)/ 그날이 오기까지는, 4월은 갈아엎는 달/ 그날이 오기까지는, 4월은 일어서는 달"(〈4월은 갈아엎는 달〉)이라고. 겨울 땅을 갈아엎어 줘야 싹들이 더 잘 일어서는 이 4월에.   4월 19일이 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시 〈껍데기는 가라〉는 벼락같은, 천둥같은 시다. 이 시에 무엇을 더 덧붙일 수 있으랴. 덧붙이는 순간 사족이고 군말일 뿐이다. 그만큼 시 자체   로 명명(明明)하고 백백(白白)하다. 1967년에 발표된 이 시는 4·19 혁명의 실패, 5·16 군사 쿠데타, 6·3 사태, 베트남 전쟁 파병, 분단의 고착, 외세의 개입 등 1960년대의 구체적 시대상황을 시의 배면에 깔고 있다. 그러니 시인에게 삼천리 한반도의 사월은 껍데기들로 가득했을 것이다.   '껍데기는 가라'라고 반복적으로 촉구하고 있지만 사실 이 시의 핵심은 '껍데기'보다는 '중립의 초례청'에 있다. 이 '중립(中立)'에는 남과 북, 좌와 우의 이데올로기적 대립을 넘어서려는 시인의 의지가 담겨 있다. 백두에서부터 한라까지, 동학년(1894년) 곰나루에서부터 4·19(1960년) 광화문까지, 백제의 후손 아사달과 아사녀의 못다 이룬 사랑에서부터 신라의 석가탑(無影塔)과 영지(影池)까지를 아우르는 이 중립의 스케일은 얼마나 장쾌한지.   이 웅대한 중립의 시 공간을 시인은 '껍데기는 가라'라는 문장 하나로 관(貫)하고 통(通)해낸다. 이 중립이야말로 진정한 알맹이이자 흙가슴이며, '부끄럼을 빛내며' 두 몸이 맞절하여 새로운 생명이 잉태할 수 있는 화해의 장(場)이라고 말하고 있다. 60년대 참여문학를 대표하는 이 시는 이후 민중·민족 문학의 이정표 역할을 했다.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송이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라고 짐짓 물을 때, 시인이 보고자 했던 '하늘'은, "이제 올/ 너그러운 봄은, 삼천리 마을마다/ 우리들 가슴 속에서/ 움트리라.// 움터서,/ 강산을 덮은 그 미움의 쇠붙이들/ 눈 녹이듯 흐물흐물/ 녹여 버리"(〈봄은〉)는 사월의 하늘이었을 것이다. 그런 하늘은 보지 못하는 한, 시인은 여전히 4월에는 껍데기는 가라고 목이 터져라 외치고 싶은 것이고, 향기로운 흙가슴만 남겨놓고 갈아엎고 싶은 것이다.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애송시 100편 - 제 88편] 낙화 - 이형기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 일러스트=잠산   꽃이 지고 있다. 손에 꼭 쥐었던 것을 놓아버리고 있다. 어떤 꽃의 낙화에는 만행을 떠나는 수행자의 뒷모습이 있다. 미련 없이 돌아서기 때문에 낙화에는 구차함도 요사스러움도 없다. 아쉬움이 없을 리 없다. 이별은 등 뒤를 허전하게 만들고, 며칠 눈물을 돌게 할 것이다. 그러나 제때에 떠나감은 말끔하고 쾌적하다.   새잎이 돋고, 줄기가 힘차게 뻗고, 꽃이 벙글고, 벌이 꽃의 외곽을 맴돌고, 비로소 어느 아침에는 꽃이 '하롱하롱' 지고, 꽃의 시간을 구구절절 기억하며 열매가 맺히고,… 우리의 몸과 마음도 이 큰 운행을 벗어나기 어렵다.   부귀는 빈천(貧賤)으로 바뀌고, 만남은 이별로 바뀌고, 건강은 늙고 죽음을 초래한다. 시시각각 바뀐다. 그래서 이런 것에는 견실성이 없다. 견실성이 없으므로 집착할 것이 못 된다. 불교에서는 "온갖 사물은 다 없어질 것이어서 공중의 번개 같고, 굽지 않은 질그릇, 빌린 물건, 썩은 풀로 엮은 울타리, 모래로 된 기슭과 같다"고 했다. 이형기(1933~2005) 시인의 초기 시에 속하는 이 시는 집착 없음과 아름다운 물러남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이형기 시인은 1950년 시 〈비오는 날〉을 잡지 《문예》에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그때 그의 나이 17세. 최연소 등단기록이었다. "시(詩)란 본질적으로 구축해 놓은 가치를 허무화시키는 작업이야. 시에 절대적 가치란 없어. 자꾸 다른 곳으로 가는 팔자를 타고난 놈들이 시인이야. 그 무엇이건 전적으로 수용하지 않으려는 정신의 자유 말이야." 그는 시 창작뿐만 아니라 소설, 평론, 시론, 수필 등에 이르기까지 열정적인 창작활동을 펼쳤다. 초기에는 자연 서정을 선보였으나 현대문명을 통렬하게 비판하는 악마적이고 그로테스크한 시 세계로 나아갔다. 그는 한국시사에서 사라짐에 대한 존재론적 미학을 선보였다. "빈 들판이다/ 들판 가운데 길이 나 있다/ 가물가물 한 가닥/ 누군가 혼자 가고 있다/ 아 소실점!/ 어느새 길도 그도 없다/ 없는 그 저쪽은 낭떠러지/ 신의 함정/ 그리고 더 이상은 아무도 모르는/ 길이 나 있다 빈 들판에/ 그래도 또 누군가 가고 있다/ 역시 혼자다."(〈길〉)   "고독과 고통은 시인의 양식"이라고 말했던 그는 뇌졸중으로 쓰러져 오랜 투병생활을 했다. 그러나 고통스런 병석에 있으면서도 그는 아내의 대필로 시를 계속 창작했다. 그는 슬픔에 휩싸인 사람들을 위로하며 이렇게 아포리즘을 남겼다. "슬퍼할 수밖에 없는 일이 이 세상에는 적지 않다. 그때는 슬퍼해 봐도 물론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다.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에 슬퍼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슬픔은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슬픔은 가장 순수하고 따라서 값지다."     [애송시 100편 - 제 89편] 철길 - 김정환       철길이 철길인 것은   만날 수 없음이   당장은, 이리도 끈질기다는 뜻이다.   단단한 무쇳덩어리가 이만큼 견뎌오도록   비는 항상 촉촉히 내려   철길의 들끓어오름을 적셔주었다.   무너져내리지 못하고   철길이 철길로 버텨온 것은   그 위를 밟고 지나간 사람들의   희망이, 그만큼 어깨를 짓누르는   답답한 것이었다는 뜻이다.   철길이 나서, 사람들이 어디론가 찾아나서기 시작한 것은 아니다.   내리깔려진 버팀목으로, 양편으로 갈라져   남해안까지, 휴전선까지 달려가는 철길은   다시 끼리끼리 갈라져   한강교를 건너면서   인천 방면으로, 그리고 수원 방면으로 떠난다.   아직 플랫포옴에 머문 내 발길 앞에서   철길은 희망이 항상 그랬던 것처럼   끈질기고, 길고   거무튀튀하다.   철길이 철길인 것은   길고 긴 먼 날 후 어드메쯤에서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우리가 아직 내팽개치지 못했다는 뜻이다.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길이 이토록 머나먼 것은   그 이전의, 떠남이   그토록 절실했다는 뜻이다.   만남은 길보다 먼저 준비되고 있었다.   아직 떠나지 못한 내 발목에까지 다가와   어느새 철길은   가슴에 여러 갈래의 채찍 자욱이 된다.       ▲ 일러스트=권신아   '철길이 철길인 것은'하고 나직이 되뇌면 생각의 꼬리가 철길처럼 길게 이어지곤 한다. '철길이 철길인 것은'하는 순간 수수께끼라도 떠안은 듯 뒷말을 잇도록 한다. 김정환(54) 시인은 '철길이 철길인 것은'을 되뇌며 (철)길과 만남과 희망을 엮어 이렇게 노래한다. 만날 수 없음이 이리도 끈질기기 때문이고,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아직 내팽개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아닌 게 아니라 '철길이 철길인 것은'하고 되뇌면 신촌역, 성북역, 용산역, 서울역을 오가던 아련한 철길들이 떠오른다. 그러니까, 철로도 아니고, 철도도 아니고, 바로 '철길이 철길인 것은' 그 길이 인간 안쪽으로 뻗어 있기 때문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철길은 두 개의 길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의 길과 또 하나의 길, 한 사람의 길과 또 한 사람의 길! 그 두 길은 서로 마주칠 수 없음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서로 버팅김으로써 지나감의 속도와 무게를 견뎌내는 길이다. 지금 당장은 만날 수 없는 길이지만, 언제나 함께 나아가는 길인 것이다.   '철길이 철길인 것은' 시간의 누적인 역사(歷史)가 배어 있기 때문이다. 1899년 제물포에서 노량진을 오가는 경인선이 첫 경적을 울린 이후 철길은 격동의 근대사를 달려왔다. 수탈하고 징병하고 피란하고 산업하러 가는 길에 철길이 있었다. '철길이 철길인 것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따뜻한 핏줄이기 때문이다. 방방곡곡을 누비며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나서 사람들이 모인 곳으로 돌아간다. 상경하고 귀경하고 입영하고 귀대하고 여행하는 곳에 늘 철길이 있었다. 그러니 '철길이 철길인 것은' 그 길에 자갈돌처럼 깔려 있는 기다림 때문이다. 그 기다림이 너무 길고 외로워서, 철길이 두 길이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철길이 철길인 것은' 끝이 있기 때문이다. 시인이 철길을 사랑하는 이유다. 그러므로 그는 "이 살아있음이 언젠가는 끝이 있으리라는 것을/ 나는 믿고/ 또 사랑하는 것이"(〈육교〉)고, "음침한 시대가, 끝났다는 듯이/ 기름 묻은 이슬이 검게, 선로 위에서 반짝인다/ 아직 젖어 있는 것은 무엇인가"(〈검붉은 눈동자〉)라며 희망을 놓지 않는 것이다. 고통도 절망도 이별도 끝이 있기 때문에 견딜 만한 것이고, 드디어 완성되는 것이고, 결국 희망적인 것이다. 그리하여 "철길은 희망이 항상 그랬던 것처럼/ 끈질기고, 길고/ 거무튀튀한" 것이다. 당신이든 미래든 휴전선 너머든 완행이든 급행이든, 바로 그곳까지 달려가는 것이 철길인 것이다.     [애송시 100편 - 제 90편] 추일서정(秋日抒情) - 김광균         낙엽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   포화(砲火)에 이즈러진   도룬 시의 가을 하늘을 생각케 한다.   길은 한줄기 구겨진 넥타이처럼 풀어져   일광(日光)의 폭포 속으로 사라지고   조그만 담배 연기를 내어 뿜으며   새로 두 시의 급행차가 들을 달린다.       포플라나무의 근골(筋骨) 사이로   공장의 지붕은 흰 이빨을 드러내인 채   한가닥 꾸부러진 철책이 바람에 나부끼고   그 우에 세로팡지로 만든 구름이 하나.   자욱―한 풀버레 소리 발길로 차며   호을로 황량한 생각 버릴 곳 없어   허공에 띄우는 돌팔매 하나.   기울어진 풍경의 장막 저쪽에   고독한 반원을 긋고 잠기어간다.       ▲ 일러스트 잠산   김광균(1914~1993) 시인은 1930년대 후반 회화적 이미지즘의 새로운 문법을 선보였다. 그는 시에 '회화(繪?)'라는 웃옷을 입혔다. 모더니즘 시론가 김기림은 "소리조차를 모양으로 번역하는 기이한 재주를 가진 시인"이라고 평했다.   김광균의 시는 독자들의 눈앞에 한 장 한 장의 데생을 그려 보이는 작법을 구사했다. 이런 데에는 김광균이 미술에 관심이 많았고, 많은 화가와 직간접적으로 교우한 영향이 컸다. 김광균은 고흐의 그림을 처음 접한 충격을 이렇게 고백했다.   "고흐의 '수차(水車)가 있는 가교(假橋)'를 처음 보고 두 눈알이 빠지는 것 같은 감동을 느낀 것도 그 무렵이다. 그때 느낀 유럽 회화에 대한 놀라움은 지금도 생생하다. 세계미술전집을 구하며, 거기 침몰하는 듯하여 나는 급속히 회화의 바다에 표류하기 시작했다. 시집보다 화집이 책상 위에 쌓이기 시작했고, 내 정신세계의 새로운 영양(營養)은 이렇게 해서 이루어진 것 같다."   그는 섬세한 감각의 촉수로 "구름은/ 보랏빛 색지(色紙) 우에/ 마구 칠한 한 다발 장미"(〈뎃상〉)로 표현했고, 흰 눈이 내리는 모습은 "먼―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설야〉)로 표현했고, 성교당(聖敎堂)의 종소리는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외인촌〉)로 빛나게 노래했다.   마치 먼지 낀 삽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이 시에서도 그는 공허하고 고독하고 스산한 마음을 '모양으로 번역'해 인상적으로 드러낸다. 시인은 낙엽을 보면서 망명정부에서 발행하는 무가치한 지폐를 떠올리고, 폐허가 된 도룬(토룬) 시(市)의 공백(空白)한 하늘을 떠올린다. 구불구불한 길은 '구겨진 넥타이'로, 잎이 다 떨어진 포플러 나목(裸木)은 초라한 '근골'로, 불투명하고 얇은 구름은 '세로팡지(셀로판지)'로 표현함으로써 아주 구체적으로 대상을 조형한다.   낙엽을 망명정부의 무용한 지폐에 비유하거나, 공장의 지붕을 단단하고 날카로운 이빨에 비유하는 대목에서는 도시적 문명에 대한 시인의 비판 의식도 엿볼 수 있다. 이 시에 나타나는 황량한 심사는 모색(暮色) 그득한 그의 다른 시편들에서도 자주 나타난다. 이러한 상실감과 창백한 감상(感傷)은 가족들의 죽음, 실향 등의 정신적 외상에서 비롯되었다. 해서 혹자는 김광균을 '엘레지의 시인'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1926년 12세의 나이로 '중외일보'에 처음 시를 발표하면서 천부적인 시안(詩眼)을 자랑했던 김광균 시인은 1950년대로 접어들면서부터는 한동안 시를 쓰지 않았다. 납북된 동생의 사업을 인수해 사업가로 변신했다. 그렇지만, 그는 안개 자욱하던 한국 시단에 장명등(長明燈) 하나를 켜 놓았다. 아직도 그곳서 가늘고 고단한 불빛이 새어나오며 밤을 밝히고 있다.     [애송시 100편 - 제 91편] 거짓말을 타전하다 - 안현미         여상을 졸업하고 더듬이가 긴 곤충들과 아현동 산동네에서 살았다 고아는 아니었지만 고아 같았다 사무원으로 산다는 건 한 달치의 방과 한 달치의 쌀이었다 그렇게 꽃다운 청춘을 팔면서 살았다 꽃다운 청춘을 팔면서도 슬프지 않았다 가끔 대학생이 된 친구들을 만나면 말을 더듬었지만 등록금이 없어 학교에 가지 못하던 날들은 이미 과거였다 고아는 아니었지만 고아 같았다 비키니 옷장 속에서 더듬이가 긴 곤충들이 출몰할 때도 말을 더듬었다 우우, 우, 우 일요일엔 산 아래 아현동 시장에서 혼자 순대국밥을 먹었다 순대국밥 아주머니는 왜 혼자냐고 한번도 묻지 않았다 그래서 고마웠다 고아는 아니었지만 고아 같았다 여상을 졸업하고 높은 빌딩으로 출근했지만 높은 건 내가 아니었다 높은 건 내가 아니라는 걸 깨닫는 데 꽃다운 청춘을 바쳤다 억울하진 않았다 불 꺼진 방에서 더듬이가 긴 곤충들이 나 대신 잘 살고 있었다 빛을 싫어하는 것 빼곤 더듬이가 긴 곤충들은 나와 비슷했다 가족은 아니었지만 가족 같았다 불 꺼진 방 번개탄을 피울 때마다 눈이 시렸다 가끔 70년대처럼 연탄가스 중독으로 죽고 싶었지만 더듬더듬 더듬이가 긴 곤충들이 내 이마를 더듬었다 우우, 우, 우 가족은 아니었지만 가족 같았다 꽃다운 청춘이었지만 벌레 같았다 벌레가 된 사내를 아현동 헌책방에서 만난 건 생의 꼭 한 번은 있다는 행운 같았다 그 후로 나는 더듬이가 긴 곤충들과 진짜 가족이 되었다 꽃다운 청춘을 바쳐 벌레가 되었다 불 꺼진 방에서 우우, 우, 우 거짓말을 타전하기 시작했다 더듬더듬, 거짓말 같은 시를!      ▲ 일러스트 권신아   "저질러라, 닥치면 겪는다, 긍게 긍갑다"를 인생의 3계명으로 삼고 사는 여성 시인이 있다. 실제로도 여상을 졸업하고 '더듬이가 긴 곤충들'과 아현동에서 살았으며, "치사량과 열정과 눈물 한 방울만큼의 광기와 고독/ 개미의 페로몬 같은 상상력"(〈짜가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을 재료로 '시 같은 거짓말'을 제조하고 '거짓말 같은 시'를 타전하여 시인이 되었다고 한다. 씩씩하고 싹싹한 안현미(36) 시인의 얘기다.   2006년에 엮어낸 그의 첫시집 《곰곰》은 이렇게 소개되었다. "활짝 핀 착란의 찰나에서 건져 올린 생짜의 시, 시라니!"라고. 그의 시를 읽는 일은 "막장에서 석탄을 캐내던 내 아버지"(〈고장난 심장〉)와 "까치밥처럼 눈물겨운 엄마"(〈우리 엄마 통장 속에는 까치가 산다〉)의 틈바구니에서 '생짜'로 캐낸, 캄캄한 그러나 반짝이는, 검은 조개탄을 들여다보는 일만 같다.   누구에게나 '젊은 날의 비망록'은 있는 것이어서, 그 비망록이 어둡고 고통스러울수록 그 젊음은 젊었음이 틀림없다. 이 시는 시인의 '젊은 날의 초상'이다. 여상, 산동네, 등록금, 비키니 옷장, 순대국밥, 번개탄, 연탄가스 중독, 헌책방 따위로 그려지는 90년대면서도 '여전히 70년대적인' 풍경이다.   거기에는 짐작되는 아픔이 있고 헤아려지는 가난과 고독이 있다. '고아는 아니었지만 고아 같았다', '가족은 아니었지만 가족 같았다'라고 반복적으로 말할 때, '~이었지만'을 경계로 앞 문장은 뒤 문장에 의해 뒤집힌다. 경계는 해체된다. '높은 빌딩으로 출근했지만 높은 건 내가 아니었다', '죽고 싶었지만 더듬더듬 더듬이가 긴 곤충들이 내 이마를 더듬었다'라고 말할 때, 앞 문장은 뒤 문장에서 완성되지 않는다.   '꽃다운 청춘이었지만 벌레 같았다'라고 말할 때도 앞 문장은 뒤 문장에서 무참히 무너진다. 이렇게 앞과 뒤는 가파르게 반전하지만 사실은 동어를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리듬감은 여기서 살아난다.   시인에게 '거짓말'은 '시'의 다른 이름이다. 그것은 진실의 또 다른 이름이라는 점에서 일종의 아이러니다. 그러므로 '거짓말을 타전하다'라는 말은 "목마른 시인의 가면을 뒤집어쓰고 팔리지 않는 위독한 모국어로 시(詩)를 쓰고 있었다"(〈그해 여름〉)의 다른 표현이며, 그의 시에서는 거짓말을 제조하다, 환을 연주하다(보다), 몽유병에 꽂히다, 착란에 휩싸이다 등으로 변주된다.   그런데, 나를 울게 하고 결국은 가족이 되는, '더듬이가 긴 곤충들'이란 무엇에 대한 은유일까? 야행성의 창녀들일까, 치한 혹은 사내들일까, 불안이나 공포일까, 죽음일까…… 어쨌든 "그녀의 더듬이는 쓴다 우우, 우, 우 그녀의 더듬이가 운다"(〈거짓말을 제조하다〉). 그것은 진행형이다.     [애송시 100편 - 제 92편] 참깨를 털면서 - 김준태         산그늘 내린 밭 귀퉁이에서 할머니와 참깨를 턴다.   보아하니 할머니는 슬슬 막대기질을 하지만   어두워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젊은 나는   한번을 내리치는 데도 힘을 더한다.   세상사에는 흔히 맛보기가 어려운 쾌감이   참깨를 털어대는 일엔 희한하게 있는 것 같다.   한번을 내리쳐도 셀 수 없이   솨아솨아 쏟아지는 무수한 흰 알맹이들   도시에서 십 년을 가차이 살아본 나로선   기가 막히게 신나는 일인지라   휘파람을 불어가며 몇 다발이고 연이어 털어댄다.   사람도 아무 곳에나 한 번만 기분 좋게 내리치면   참깨처럼 솨아솨아 쏟아지는 것들이   얼마든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정신없이 털다가   "아가, 모가지까지 털어져선 안 되느니라"   할머니의 가엾어 하는 꾸중을 듣기도 했다.     ▲ 일러스트=잠산   "아아, 광주여 무등산이여/ 죽음과 죽음 사이에/ 피눈물을 흘리는/ 우리들의 영원한 청춘의 도시여// 우리들의 아버지는 어디로 갔나/ 우리들의 어머니는 어디서 쓰러졌나/ 우리들의 아들은/ 어디에서 죽어 어디에 파묻혔나/ 우리들의 귀여운 딸은/ 또 어디에서 입을 벌린 채 누워 있나/ (중략)/ 죽음으로써 죽음을 물리치고/ 죽음으로써 삶을 찾으려 했던/ 아아 통곡뿐인 남도의/ 불사조여 불사조여 불사조여". 5·18광주항쟁을 최초로 형상화한 이 시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를 썼던 시인이 바로 김준태(60) 시인이다.   이 시는 1980년 6월 2일자 전남매일 1면에 일부 게재되었고, 전 세계 외신을 타고 나라 밖으로도 알려졌다. 이 시 발표 후 전남매일은 강제 폐간되었고, 김준태 시인은 재직하던 전남고교에서 해직되었다. 이 일례는 그의 문학적 이력에 비하면 일부에 불과하다. 진보적 문인인 김준태 시인은 시를 통해 대동세상(大同世上)에의 열망을 노래해왔다.   남도의 입심을 잘 살려가며 시를 써내는 김준태 시인. 그의 시 세계의 원적(原籍)은 농민시이다. 첫 시집 《참깨를 털면서》에서도 그랬고, 그 이후 발표한 〈밭시〉 연작에서도 그랬다. "칼과/ 흙이 싸우면/ 어느 쪽이 이길까// 흙을/ 찌른 칼은/ 어느새/ 흙에 붙들려/ 녹슬어버렸다"(〈칼과 흙-밭시(詩) 52〉). 그는 흙의 건강한 생명력을 강하게 신뢰하는 시인이다.   시 〈참깨를 털면서〉는 김준태 시인의 데뷔작이다. 밭에서 할머니와 '도시에서 십 년을 가차이 살아본 나'가 참깨를 털고 있다. 할머니는 깻단을 슬슬 막대기질 하지만, '나'는 산그늘이 내려 날이 어둑어둑해지자 조바심을 낸다. 명령하듯 깻단을 한번 내리치면 복종하듯 솨아솨아 쏟아지는 깨알들이 기막히게 신기하고 신이 난다. 그예 모가지까지 털다가 꾸중을 듣는다. 목숨 가진 것에 대한 조금의 외경도 포용도 없이 무턱대고 털어대는 쾌감에 정신없으니 왜 혼나지 않겠는가. 이 시를 읽으면서, 인간의 본직을 잘 잊고 사는 나도 할머니 곁에서 참깨를 털며 한 차례 꾸중을 듣고 싶어진다. 참깨농사뿐만 아니라 사람농사까지 원융(圓融)하게 지어온 그 할머니로부터 꺼끌꺼끌한 사투리로 꾸중을 듣고 싶어진다.   준엄한 역사의식으로 당대에 대응해 우직하게 노래하는 김준태 시인의 또 다른 관심사는 통일문학이다. 말을 구부리거나 곧은 문장을 비틀어서 만든 시가 아니라 '심장을 싸늘하게 감싸는' 시를 찾는다는 그는 이렇게 말한다. "언제나 안테나의 촉수가 쉴 새 없이 작동되어야 하고 상황이 타전이 되어 오면 재빠르게 이웃에게 알려주어야 하는 혹은 예언의 나팔을 불어주어야 하는 사람들이 이름하여 시인이 아니던가." 현실로부터 비켜서지 않는 그의 열정은 폭포수 같다 할 것이다.     [애송시 100편 - 제 93편] 감나무 - 이재무         감나무 저도 소식이 궁금한 것이다   그러기에 사립 쪽으로는 가지도 더 뻗고   가을이면 그렁그렁 매달아놓은   붉은 눈물   바람결에 슬쩍 흔들려도 보는 것이다   저를 이곳에 뿌리박게 해놓고   주인은 삼십년을 살다가   도망 기차를 탄 것이   그새 십오년인데……   감나무 저도 안부가 그리운 것이다   그러기에 봄이면 새순도   담장 너머 쪽부터 내밀어 틔워보는 것이다        ▲ 일러스트 권신아   소설가 현기영의 발문을 빌려 말하자면, 좀 '지랄 같은 성깔'과 '흰 이를 드러내고 씨익 웃는 개구쟁이의 웃음'과, 그리고 '시적 허기증'이라 할 만한 왕성한 창작 욕구가 가장 그답다고 한다. 그가 바로 이재무(50) 시인이다. 그의 시는 어렵지 않다. 고향과 유년에의 기억, 도시와 문명의 피로 등 자신의 삶 체험을 진솔하게 담아내기 때문이다. 그는 "퇴고할 필요가 별로 없는 완전한 모습의 시가 초고부터 씌어진 경우 좋은 시가 많았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 〈감나무〉야말로 단숨에 쓰여진 시임에 틀림없다.   고향을 버리고 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슴에 감나무 한 그루쯤은 담고 산다. 흰 보석 같은 감꽃과 달착지근했던 그 꽃맛, 새파란 감잎과 툭 툭 떨어지던 풋감들이 만들어내는 그 그늘, 꽃보다 더 고왔던 붉은 감잎과 그 거름, 감과 곶감과 까치밥의 그 달콤한 맛…. 그것들이 있는 풍경이란 하나같이 정답고 포근하다. 이 고향 같은 '감'은 도무지 어디서 비롯된 이름일까.   15년 동안을, 주인이 도망치듯 떠난 빈집에서 꽃을 내고 잎을 내고 감을 내며 홀로 고군분투하는 감나무 한 그루가 있는 풍경은 애틋하다. 성큼 들어설 주인을 마중이라도 하려는 듯 사립 쪽으로 가지를 내뻗고 있다. 연초록 새순도 담장 너머 쪽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다. 새순이 잎이 되고 그 잎이 질 때, 한 기다림을 다 살았을 때, 그렁그렁 붉은 눈물을 매달고 바람의 안부에나 귀기울이는 것이리라. 날렵하게 포착해낸 이 짧은 시의 여백에는 농촌의 붕괴와 이농 현상이 있고, 한 가족의 곡절 많은 삶이 있고, 녹록치 않았을 도시살이가 있고, 무작정의 세월이 있고 계절이 있고, 그리움과 기다림이 있고, 인정이 있고 섭리가 있다.   이런 감나무는 또 어떤가. "저물 무렵 밭둔덕에 외로이 서 있는/ 늙은 감나무와 나란히 서서/ 인생의 황혼을 억세게 갈무리하시는/ 아부지의 등허리엔/ 살아온 날의 높고 낮은 등고선이/ 가파르게 펼쳐져 있다"(〈아부지〉).   이 감나무는 주인과 함께 늙어가며, 뻗어가는 가지들을 잘 갈무리하고 있다. "초겨울 인적 드문 숲속/ 앙상한 가지에 매달려/ 위태위태한 빨간 슬픔의 홍시/ 하나의 마음으로 기다린다"(〈기다림〉). 이 감나무는 기다림을 완성시켜줄 '큰 입 가진 임자'를 기다리는 것이리라. 고향이란 이런 감나무처럼 애틋하게 기다려주는 곳이다. 고향에 대한 향수는 이런 감나무로 통하는 것이다.   새순이 돋았으니 감꽃마저 지고 나면, 감이 열리고 감잎이 물들 것이다. 그리고 까치밥 하나 오래 맺혀 있으리라. 고향 빈집에 남겨두고 온 저 감나무는 그렇게 삼십년을 알콩달콩 한 식구처럼 살았으니, 십오년에 또 십오년은 더, 피붙이처럼 그리워할 것이다. 속을 바짝바짝 태우며 그리 오래 기다렸던 감나무니 그 감은 또 오죽 달 것인가.     [애송시 100편 - 제 94편] 가지가 담을 넘을 때 - 정 끝 별       이를테면 수양의 늘어진 가지가 담을 넘을 때   그건 수양 가지만의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얼굴 한번 못 마주친 애먼 뿌리와   잠시 살 붙였다 적막히 손을 터는 꽃과 잎이   혼연일체 믿어주지 않았다면   가지 혼자서는 한없이 떨기만 했을 것이다       한 닷새 내리고 내리던 고집 센 비가 아니었으면   밤새 정분만 쌓던 도리 없는 폭설이 아니었으면   담을 넘는다는 게   가지에게는 그리 신명 나는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가지의 마음을 머뭇 세우고   담 밖을 가둬두는   저 금단의 담이 아니었으면   담의 몸을 가로지르고 담의 정수리를 타 넘어   담을 열 수 있다는 걸   수양의 늘어진 가지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목련 가지라든가 감나무 가지라든가   줄장미 줄기라든가 담쟁이 줄기라든가       가지가 담을 넘을 때 가지에게 담은   무명에 획을 긋는   도박이자 도반이었을 것이다          ▲ 일러스트 잠산   정끝별(44) 시인의 시는 경쾌하다. 언어에 용수철 같은 탄력이 있고 집중력 있게 나아간다. 그녀의 시는 '불붙는 것'을 읽어내는 솜씨가 있다. 시적 대상이 갖고 있는 상반된 성격을 동시에 읽어내는 놀라운 수품(手品). 하나 속에 들어있는 상반된 성격의 팽팽한 대립을 말할 때 그녀의 시는 유니크(unique)하다. 그녀의 시는 모임과 빠져나감, 격렬함과 멸렬함, 달아남과 풀어줌 등 이 세상의 모든 시적 대상이 아마도 갖고 있을 상반된 두 성격, 한데 엉킨 두 성격을 표현한다. 해서 "세상 밖으로 뛰쳐나가려는 열망을 추슬러서 세상 안으로 돌아와 자리잡을 때 정끝별의 시에는 물기가 번지고 리듬이 인다"(소설가 김훈의 말).   이 시에서도 시인은 허공에 혹은 담장에 맞닥뜨린 가지의 엉킨 두 마음을 읽어낸다. 사람에게도 그렇듯이 새로운 영역과 미래로의 진입을 위해 첫발을 떼는 순간은 두렵고 떨리는 마음과 감행의 신명이 공존할 것이다. 다만 가지가 담을 넘어서는 데에는 혼연일체의 믿음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 그것을 범박하게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이 사랑의 배후로써 우리는 금단과 망설임과 삶의 궁기(窮氣)를 넘어선다. 사랑 아니라면 어떻게 한낱 가지에 불과한 우리가 이 세상의 허공을, 허공의 단단한 담을, 허공의 낙차 큰 절벽을 건너갈 수 있겠는가.   정끝별 시인은 시 에서 우리의 삶은 "조율되지 않은 건반 몇 개로 지탱하고" 서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낡아가는 악기는 쉬지 않고 음악소리를 낸다. 나 딸 나 애인 나 아내 나 주부 나 며느리 나 학생 나 선생 응 나는 엄마 그리고 그리고 대대손손 아프디아픈 욕망의 음계, 전 생을 손가락에 실어 도레토 라시토 미미미". 이 시에서처럼 그녀의 시는 삶의 상처를 솔직하게 드러내면서 그것을 딛고 나아간다. 길의 상처를 받아들이면서 나아가는 타이어의 둥근 힘처럼. 조율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도레토 라시토 미미미'가 없다면 우리 삶의 악보는 진혼곡 그 자체일 터. 그녀의 시가 각별한 것은 '도레토 라시토 미미미'의 음계를 연주하는, 이 특별한 식미(食味)에 있다.   바람을 표절하고, 싱싱한 아침 냄새를 표절하고, 나무를 쪼는 딱따구리의 격렬한 사랑을 표절하는 '불굴의 표절작가'가 되고 싶다는 정끝별 시인. 그녀의 시는 봄나물처럼 생기발랄하다. 부럽게 상큼한 맛으로 그녀의 시는 우리의 입맛까지 살려준다. "세상을 덜 쓰면서 살라"며 지친 이의 마음에 숟가락을 쥐여주는 이 시는 얼마나 푸근푸근한가.   "달아도 시원찮을 이 나이에 벌써/ 밥이 쓰다/ 돈을 쓰고 머리를 쓰고 손을 쓰고 말을 쓰고 수를 쓰고 몸을 쓰고 힘을 쓰고 억지를 쓰고 색을 쓰고 글을 쓰고 안경을 쓰고 모자를 쓰고 약을 쓰고 관을 쓰고 쓰고 싶어 별루무 짓을 다 쓰고 쓰다/ 쓰는 것에 지쳐 밥이 먼저 쓰다/(중략)/ 세상을 덜 쓰면서 살라고/ 떼꿍한 눈이 머리를 쓰다듬는 저녁"().      [애송시 100편 - 제 95편] 인파이터 - 코끼리군의 엽서 - 이장욱         저기 저, 안전해진 자들의 표정을 봐.   하지만 머나먼 구름들이 선전포고를 해온다면   나는 벙어리처럼 끝내 싸우지.   김득구의 14회전, 그의 마지막 스텝을 기억하는지.   사랑이 없으면 리얼리즘도 없어요   내 눈앞에 나 아닌 네가 없듯. 그런데,   사과를 놓친 가지 끝처럼 문득 텅 비어버리는   여긴 또 어디?   한 잔의 소주를 마시고 내리는 눈 속을 걸어   가장 어이없는 겨울에 당도하고 싶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   방금 눈앞에서 사라진 고양이가 도착한 곳.   하지만 커다란 가운을 걸치고   나는 사각의 링으로 전진하는 거야.   날 위해 울지 말아요, 아르헨티나.   넌 내가 바라보던 바다를 상상한 적이 없잖아?   그러니까 어느 날 아침에는 날 잊어줘.   사람들을 떠올리면 에네르기만 떨어질 뿐.   떨어진 사과처럼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데   거기 서해 쪽으로 천천히, 새 한 마리 날아가데.   모호한 빛 속에서 느낌 없이 흔들릴 때   구름 따위는 모두 알고 있다는 듯한 표정들.   하지만 돌아보지 말자, 돌아보면 돌처럼 굳어   다시는 카운터 펀치를 날릴 수 없지.   안녕. 날 위해 울지 말아요.   고양이가 있었다는 증거는 없잖아? 그러니까,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구름의 것은 구름에게.   나는 지치지 않는   구름의 스파링 파트너.       ▲ 일러스트=권신아   이장욱(40) 시인의 시는 몽롱하다 아니 명쾌하다. 난해하다 아니 낯설다. 좀 다르게 말해보자. 그는 낮을 사는 시인이다 아니 밤을 사는 시인이다. 그는 시인이다 아니 소설가다. 노문학자다 아니 (픽션)에세이스트다 아니 비평가다. 현대시 모더니티의 한 극점에 서 있는 '우울한 모던보이'다, 아니 서정시의 안부(內部)를 공략하는 '진정한 인파이터'다. 짐작하겠지만, 그는 그 모두이면서 단지 문학 그 자체이다. 이 시의 묘미도 이런 어울림에 있다. 대화와 독백, 여기저기서 끌어온 문장들의 인용과 변용, 절망을 농담으로 받아치는 경쾌함, 뜬금 없고 돌연한 조증(躁症)과 울증(鬱症)의 변주, 비극적이면서 냉소적인 다변(多辯)으로 날렵하게 치고 빠지는 잽이 장기인 시이다.   파이터!라는 말은 자극적이다. 인파이터! 라고 듣는 순간 단전에서부터 전의(戰意)가 꿈틀거린다면 당신은 사각의 링 위에서 난투극을 벌여본 적이 있거나 벌이고 있는 자다. 외곽을 돌면서 상대의 빈틈을 노리는 아웃파이터이거나 상대에게 바짝 달라붙어 저돌적인 공격을 퍼붓는 인파이터일 것이다. 1982년 겨울,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인파이터 맨시니의 강펀치를 맞고 맞고 또 맞으면서도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던 복서 김득구, 그 경기에서 김득구는 분명 맨시니보다 더 인파이터였다. 그러나 김득구는 오는 펀치를 피해 되받아치는 카운터 펀치, 그 한 방의 나이스 펀치를 날리지 못했다.   "코끼리를 천천히 허물어지는 코끼리를/ 그대는 본 적이 있으십니까. (…) 그의 거대한 육체가/ 황폐하지 말라 황폐하지 말라 중얼거리듯/ 무심하지만 지극히 섬세한 자세로 무너져가는/ 그 아늑한 풍경을"(〈코끼리〉). 김득구는 그렇게 무너졌다. 가출해 구두닦이를 전전하다 헝그리 복서로 막 인생이 피려고 할 그때, 14회전까지 계속 얻어맞았지만, 그때까지 버텨온 김득구의 드림, 김득구의 땀과 눈물, 김득구의 피로, 김득구의 공포…김득구는 살아 생전 술을 마시면 노래했다. "권투란 무엇인가, 맞는 걸까, 때리는 걸까".   이 사각의 링에서 그 누군들 단 한 방의 펀치도 맞지 않으면서 단 한 방의 카운터 펀치를 노리는 아웃파이터가 되고 싶지 않겠는가. 그러나, 나는야 '지치지 않는 구름의 스파링 파트너'일 뿐, 이름하여 '인파이터 코끼리군'. 우리는 정말 밑도 끝도 없는 저 모호한 구름에 너무 바짝 붙어 싸우고 있는 게 틀림없어! 우리 삶이란 게, 그렇게 허무맹랑한 싸움임에 틀림없어!       [애송시 100편 - 제 96편] 비망록 - 김경미   햇빛에 지친 해바라기가 가는 목을 담장에 기대고 잠시 쉴 즈음. 깨어보니 스물네 살이었다. 신(神)은, 꼭꼭 머리카락까지 졸이며 숨어있어도 끝내 찾아주려 노력하지 않는 거만한 술래여서 늘 재미가 덜했고 타인은 고스란히 이유 없는 눈물 같은 것이었으므로.   스물네 해째 가을은 더듬거리는 말소리로 찾아왔다. 꿈 밖에서는 날마다 누군가 서성이는 것 같아 달려나가 문 열어보면 아무 일 아닌 듯 코스모스가 어깨에 묻은 이슬발을 툭툭 털어내며 인사했다. 코스모스 그 가는 허리를 안고 들어와 아이를 낳고 싶었다. 석류 속처럼 붉은 잇몸을 가진 아이.   끝내 아무 일도 없었던 스물네 살엔 좀 더 행복해져도 괜찮았으련만. 굵은 입술을 가진 산두목 같은 사내와 좀 더 오래 거짓을 겨루었어도 즐거웠으련만. 이리 많이 남은 행복과 거짓에 이젠 눈발 같은 이를 가진 아이나 웃어줄는지. 아무 일 아닌 듯 해도.   절벽엔들 꽃을 못 피우랴 강물 위인들 걷지 못하랴 문득 깨어나 스물다섯이면 쓰다 만 편지인들 다시 못 쓰랴. 오래 소식 전하지 못해 죄송했습니다. 실낱처럼 가볍게 살고 싶어서였습니다. 아무것에도 무게 지우지 않도록.   ▲ 일러스트=잠산 누구든 삶의 중요한 골자를 적는 하나의 비망록을 갖고 있다. 생(生)의 사건은 낙차가 있고, 중립(中立)이 없으므로, 그 자체로 강렬하지 않은 생(生)의 시간은 없다. 어떤 과거는 해약하고 싶어진다. 어떤 과거는 지금에라도 더 꽃피우고 싶어진다. 어느 때는 폭풍이 지나가는 바닷가처럼스산하고 절벽처럼 위태위태해 시큰한 냉기가 돌기도 한다. 어느 때는 사랑이 붉은 가슴에게로 오지만 눈물의 손바닥이 얼굴을 덮는 밤도 있다. 우리는 이 사건들을 모두 속기할 수는 없다. 갈피를 잡지 못해 헤매는 미망(迷妄) 속에 살면서 잊을 수 없는 미망(未忘)만을 기록할 뿐.   김경미(49) 시인의 데뷔작인 이 시에는 스물네 살에서 스물다섯 살로 넘어가는 나이의, 섬세한 감성을 소유한 여성이 등장한다. 신(神)은 그녀의 절망을 구원하지 않았고, 그녀가 만나는 이들은 팔뚝으로 눈물을 훔쳤으며, '산두목 같은 사내'는 끝내 그녀의 사랑이 되지 못했다. '아무 일도 없었던' 스물네 살. 그러나 젊은 열정이 어딘들 못 나서랴. "절벽엔들 꽃을 못 피우랴 강물 위인들 걷지 못하랴". 그예 젊은 열정은 생의(生意)를 내는 것. 마치 견고한   배는 풍랑에도 해를 입지 않듯이.   미래에 대한 이 적극적인 의욕은 시 〈겨울 강가에서〉에도 드러난다. "딸아 기다림은 이제 행복이 아니니/ 오지 않는 것은/ 가서 가져 와야 하고/ 빼앗긴 것들이 제 발로 돌아오는 법이란 없으니/ 네가 몸소 가지러 갈 때/ 이 세상에/ 닿지 않는 곳이란 없으리". 그러나, 이 굽히지 않는 마음이 20대의 젊음에게만 있을쏜가. 우리는 또 내일을 만나고, 내일은 공백(空白)의 페이지이고, 내일은 새롭게 써야 할 비망록인 것을.   고형렬 시인의 표현대로, 김경미 시인은 "맵차고도 직정적인 여성시인"이다. 그녀는 자기 혐오와 자기 부정을 통해 자신과 전면전을 치르는 시인이다. 해서 그녀의 시는 이 세상의 패악함과 간활함에 맞선다. 시 〈나의 서역〉의 도발적인 허무는 또 어떤가. "서로 편지나 보내자 삶이여/ 실물은 전부 헛된 것/ 만나지 않는 동안만 우리는 비단 감촉처럼 사랑한다 사랑한다 죽도록/ 만날수록 동백꽃처럼 쉽게 져버리는 길들/ 실물은 없다 아무곳에도/ 가끔 편지나 보내어라". 이렇게 솔직하게 속내를 꺼내 보이는 시를 읽고 나면 우리는 다시 만나고 싶어진다. 다시 만나 동백꽃처럼 모가지를 꺾으며 서로를 외면하게 될지라도. 다시 만나 과거의 비망록을 다시 열람하려는 용기, 그것이 우리의 가슴에 아직 남아있는 그리움 아니겠는가.     [애송시 - 제 97편] 맨발 - 문태준         어물전 개조개 한마리가 움막 같은 몸 바깥으로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죽은 부처가 슬피 우는 제자를 위해 관 밖으로 잠깐 발을 내밀어 보이듯이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펄과 물속에 오래 담겨 있어 부르튼 맨발   내가 조문하듯 그 맨발을 건드리자 개조개는   최초의 궁리인 듯 가장 오래하는 궁리인 듯 천천히 발을 거두어갔다   저 속도로 시간도 길도 흘러왔을 것이다   누군가를 만나러 가고 또 헤어져서는 저렇게 천천히 돌아왔을 것이다   늘 맨발이었을 것이다   사랑을 잃고서는 새가 부리를 가슴에 묻고 밤을 견디듯이 맨발을 가슴에 묻고   슬픔을 견디었으리라   아- 하고 집이 울 때   부르튼 맨발로 양식을 탁발하러 거리로 나왔을 것이다   맨발로 하루 종일 길거리에 나섰다가   가난의 냄새가 벌벌벌벌 풍기는 움막 같은 집으로 돌아오면   아- 하고 울던 것들이 배를 채워   저렇게 캄캄하게 울음도 멎었으리라       ▲ 일러스트=권신아 문태준(38) 시인의 시에서는 뜨듯한 여물 냄새가 난다. 느림보 소가 뱃속에 든 구수한 여물을 되새김질하는 투실한 입모양이 떠오른다. 잘 먹었노라고 낮고 길고 느리게 음매- 울 것도 같다. 21세기 벽두의 우리 시단에서 그의 시는 '오래된 미래'다. 찬란한 '극빈(極貧)'과 '수런거리는 뒤란'을 간직한 청정보호구역이다. '시인·평론가가 선정한 2003년 최고의 시'로 뽑히기도 했던 이 시는 겹겹의 배경을 거느리고 있다. 수묵의 농담(濃淡)처럼 그 그림자가 자연스럽다. 죽기 직전의 개조개가 삐죽 내밀고 있는 맨살에서, 죽은 부처의 맨발을 떠올리는 상상력의 음역은 웅숭깊다. 그런데 사실은 우리들 아버지의 맨발, 그 부르튼 한평생을 얘기하고 있다. 시를 포착하는 시적 예지와 시안(詩眼)의 번뜩임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세상에 제일 나중에 나와, 세상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큰 하중을 견뎌내고서는, 세상으로부터 제일 나중에 거두어들이는 것이 맨발이다. 맨발로 살다 맨발로 돌아가는 모든 것들은 평속(平俗)한 세파를 화엄적으로 견뎌내는 존재들이다. 길 위에서 태어나 평생토록 길 없는 길을 '맨발'로 걸어 다니다 길 위에서 열반에 든 부처가, 자신의 죽음을 슬퍼하는 가섭을 위해 관 밖으로 내밀어 보여준 두 발에는 천 개의 바퀴살을 하나로 연결시킨 바퀴테와 바퀴통의 형상이 새겨있었다고 한다. 부처는 무량겁 지혜의 형상을, 그리고 죽고 사는 것이 하나라는 것을 제자에게 일러주고 싶었던 것이다.   '바깥'에서 안으로 거두어들이는 이 맨발의 움직임은 적막하다. 어물전의 개조개가 무방비로 내놓았다가, '최초의 궁리인 듯 가장 오래하는 궁리인 듯 천천히' 맨발을 거두어들이는 그 느린 속도에는 죽음이 묻어 있다. 무언가를 잃고 자신의 초라한 움막으로 되돌아와야 하는 '맨발'의, 적나라한, 온 궁리를 다한 뒤끝의 거둠이다. 탁발승의 벌거벗은 적멸이요, 개조개 속에 담긴 부처다. '조문'하듯 만져주는 시인의 손길 또한 애잔하다. 개조개가 슬쩍 내보인 맨발에서 천길 바다 밑을 걷고 또 걸었던 성스러운 걸인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가난한 우리의 아버지들과, 그 범속(凡俗)한 빈궁 속에서 세계의 아득한 끝을 바라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생명의 끈을 놓아버린 차디찬 맨발을 만져본 사람에게 이 시의 적막함은 유난하다.   인연이든 시간이든 기적이든 순력(巡歷)을 다했기에 '바깥'에서 거두어들이는 것이다. 부르튼 맨발을 가슴에 묻고 슬픔을 견디었기에, '아-' 하고 우는 것들을 채워주었기에, 느리고 느리게 제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아,/ 다시 생각해도/ 나는/ 너무 먼/ 바깥까지 왔다"(〈바깥〉)!     [애송시 100편 - 제 98편] 오산 인터체인지 - 조병화         자, 그럼   하는 손을 짙은 안개가 잡는다   넌 남으로 천 리   난 동으로 사십 리   산을 넘는   저수지 마을   삭지 않는 시간, 삭은 산천을 돈다   등(燈)은, 덴막의 여인처럼   푸른 눈 긴 다리   안개 속에 초초히   떨어져 서 있고   허허들판   작별을 하면   말도 무용해진다   어느새 이곳   자, 그럼   넌 남으로 천 리   난 동으로 사십 리.     ▲ 일러스트=잠산 "시간은 마냥 제자리에 있음에/ 실로 변하는 건/ 사람뿐이다.// 시간에 집을 지으라/ 생각에 집을 지으라// 시간은 마냥 제자리에 있음에/ 실로 변하는 것은/ '오고 가는 것'들이다."(〈의자 6〉)   조병화(1921~2003) 시인의 시 〈의자 6〉을 읽고서 나는 망연히 물처럼 앉아 있다. 나의 바깥은 바람 가듯 물결 지듯 지나가는 것이 있다. 순간순간이 작별이다. 여관이 여관에 들었다 나가는 하룻밤 손님과 작별하듯이. 허공이 허공에 일었다 잦아드는 먼지와 작별하듯이.   그리고 〈오산 인터체인지〉를 다시 읽는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이 보인다. 사랑이 갈라서는 것이 보인다. 맞잡았다 놓는 당신과 나의 손을 안개가 물컹물컹 잡아 쥔다. 안개를 두른 당신과 나의 행로에 대해 알 방도가 없다. 나는 동쪽으로 사십 리를 가지만, 당신은 남쪽으로 천 리를 가야 한다. 내가 가야 할 거리보다 당신이 가야 할 거리가 까마득하게 더 멀다. 당신이 나를 떠나 보내는 거리보다 내가 당신을 떠나 보내는 거리가 훨씬 멀다. "자, 그럼"이라는 대목은 또 어떤가. 가슴이 아프다. "자, 그럼"이라는 표현에는 뒤편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나는 당신에게 당신은 나에게 단호한 듯 순응하는 듯 "자, 그럼"이라고 말하지만, 그 음색에는 애써 숨긴 슬픔의 기색이 역력하다.   이 시에서처럼 조병화 시인은 단독자인 인간의 숙명적인 고독과 밀통하고 내통했다. 꾸밈이 없는 어투로 그는 생애 내내 우리네 도시인들의 슬픔을 노래했다. "사랑하는 사람아/ 너는 내 비밀을 아느냐// 나는 아직 어려서// 슬픔이 나의 빛/ 나의 구원/ 나의 능력"(〈너는 나의 빛〉). 그는 '편운(片雲)'이라는 호를 썼다.   1949년 시집 《버리고 싶은 유산》의 발간을 계기로 등단한 후 유고시집을 포함해 총 53권의 창작시집과 시론집, 수필집 등 무려 160여권의 저서를 출간했다. 그는 럭비와 그림을 좋아했다. 럭비선수로 일본 원정까지 다녀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림에도 상당한 솜씨가 있었다. 여백을 넉넉하게 살린 그림을 즐겨 그려 여러 권의 화집을 냈고 여러 번의 개인전을 가졌다. 그는 시를 쉽게, 빨리 쓰되 한 차례 쓰고 난 뒤에는 그냥 내버려두었다고 한다. (애써 쓴 시를 짐짓 모르는 척 내버려두는 시간은 참으로 적막하였을 것이다.) 내버려 둔 시가 며칠 후에 다시 눈에 밟히면 고쳐 썼고, 눈에 어른거리지 않으면 매몰스레 아예 버렸다고 한다.   박재삼 시인은 "조병화 시인의 시에서는 어디서든 난해한 데라곤 없다. 그저 술술 읽히는 마력(魔力)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라고 했다. 시 〈어머니〉도 난해한 데라곤 없다. "어머님은 속삭이는 우주/ 속삭이는 사랑/ 속삭이는 말씀/ 속삭이는 샘"이라고 그는 썼다. 담담하게 말할 뿐이다. 그러나 이런 담담함은 더 감당을 못하겠다. 나직하고 담담하게 말하는 사람의 내상이 더 깊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자, 그럼"이라고 말하며 작별을 고하는 사람, 그이에게는 "말도 무용해진다".     [애송시 100편 - 제 99편] 저문 강에 삽을 씻고 - 정 희 성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 우리가 저와 같아서 일이 끝나 저물어 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 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 스스로 깊어가는 강을 보며 쭈그려 앉아 담배나 피우고 나는 돌아갈 뿐이다 삽자루에 맡긴 한 생애가 이렇게 저물고, 저물어서 샛강바닥 썩은 물에 달이 뜨는구나 우리가 저와 같아서 흐르는 물에 삽을 씻고 먹을 것 없는 사람들의 마을로 다시 어두워 돌아가야 한다         ▲ 일러스트 권신아 정희성(63) 시인은 해방둥이다. 올해로 38년의 시력에 4권의 시집이 전부인 과작(寡作)의 시인이다. "말이 곧 절이라는 뜻일까/ 말씀으로 절을 짓는다는 뜻일까"(〈시(詩)를 찾아서〉), 그의 시를 읽노라면 언(言)과 사(寺)가 서로를 세우고 있는 시(詩)됨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의 시는 나직하게 절제되어 있으며 민중들의 삶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쉽게 읽히되 진정하고, 단정하되 뜨겁다. "그는 자신의 시처럼 단정하고 단아하지만 단아한 외형 속에는 강철이 들어 있다"고 했던 신경림 시인의 말처럼, 시와 시인과 시인의 삶이 버성기지 않은, 참 보기 좋은 경우다.   〈저문 강에 삽을 씻고〉는 "눈덮여 얼어붙은 허허 강벌/ 새벽종 울리면 어둠 걷히고/ 난지도 취로사업장 강바닥엔 까마귀떼처럼/ 삽을 든 사람들 뒤덮인다"(〈언 땅을 파며〉)나, "퍼내도 바닥이 흰 서러움/ 하루 벌어 하루 먹는 놈이/ 팔다리만 성해서 무얼 하나/ 공사판엔 며칠째 일도 없는데/ 삽을 들고 북한산을 퍼낼까/ 누구는 소용없는 일이라지만/ 나는 북한산 바닥까지 눈을 퍼낸다"(〈눈을 퍼내며〉) 등의 시와 함께 읽을 때, '삽자루에 맡긴 한 생애'라는 핵심 구절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다.   '삽'이라는 한 글자에는 많은 의미와 뉘앙스가 담겨 있다. 파다, 덮다, 뜨다, 퍼담다, 퍼내다 등의 술어를 수반하는 삽질은 자신의 몸을 구부리고 낮춰야 하는 일이다. 한 삽에 한 삽을 더해야 하는 묵묵하고 막막한 일이다. 흙 한 삽, 모래 한 삽, 석탄 한 삽, 시멘트 한 삽이 모여야 밥이 되고 집이 되고 길이 되고 마을이 되고 무덤이 된다. 삽질의 정수(精髓)란 그 우직함과 그 정직함에 있다. 그 정직함을 배반할 때 삽은 무기가 되기도 한다. 농민이든 노동자든, 노동의 본질이 삽질에 있는 것이다.   공자는 냇물을 보며 "흘러가는 것들이 저와 같구나! 밤낮으로 쉬지 않고 흐르는구나!(逝者如斯夫, 不舍晝夜)"라고 했다. 흐르는 것이 물뿐이 아니듯, 저무는 것이 어디 하루뿐이겠는가. 인생도, 세월도 다 그렇게 흐르고 저문다. 흐르다 고이면 썩기도 하고 그 썩은 곳에 말간 달이 뜨기도 한다. 두 번에 걸쳐 반복되고 있는 '우리가 저와 같아서'는 그러한 자연의 섭리를 불운한 삶 그 안쪽으로 순하게 끌어안는 모습이다.   '저와 같아서'라는 말에는 수다나 울분이 없다. 하루가 저물듯, 고단한 노동이 저물어 연장을 씻듯, 노동의 비애와 슬픔도 함께 씻어낼 뿐이다. 저물어 가는 삶의 비애와 슬픔도 함께 씻었으리라. 흐르는 것들은, 저물 수 있는 것들은 그러한 정화와 치유의 힘을 간직하고 있다. 해서 이 시를 읽고 나면 어느덧 '우리도 저와 같은' 마음이 되고 싶은 것이다. 흘러가는 것들이 저와 같으니!     [애송시 100편 - 제 100편] 모란이 피기까지는 -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둘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네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둘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 일러스트=잠산   김영랑의 본명은 윤식(允植). 1915년 결혼했으나 일찍 상처(喪妻)했다. 아내를 잃은 슬픔을 "쓸쓸한 뫼 앞에 후젓이 앉으면/ 마음은 갈앉은 양금줄같이/ 무덤의 잔디에 얼굴을 부비면/ 넋이는 향맑은 구슬 손같이/ 산골로 가노라 산골로 가노라/ 무덤이 그리워 산골로 가노라"(〈쓸쓸한 뫼 앞에〉)라고 노래했다. 고향인 강진에서 만세운동을 모의하다가 체포되어 6개월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일본 유학 때에는 무정부주의자 박열과 가깝게 지냈고, 창씨개명과 신사참배를 끝까지 거부했다. 1950년 9·28 수복 때 유탄에 맞아 애석하게도 운명했다.   영랑은 '내 마음'을 많이 노래했다. 초기 시에서는 '내 마음'을 빛나고 황홀한 자연에 빗대어, 주로 3, 4음보 4행시에 담아 은은하고 섬세하게 노래했다. 잡된 것이 섞이지 않은 깨끗한 자연에 순결한 마음을 실어 노래했다. 이것은 불순하고 추악한 식민지 현실을 대립적으로 드러내려는 속내가 있었다.   이 시를 김영랑은 나이 서른 살을 갓 넘긴 무렵에 썼다. 모란이 피기를 기다리는 나의 꿈과 그 시간의 보람, 모란이 지고 난 후의 설움과 불모성을 함께 노래했다. 이 시는 찬란한 광채의 '절정에 달한' 시간을 포착하듯 짧게 처리하면서 음울과 부재의 시간을 길고도 지속적으로 할애하는 데 시적 묘미가 있어 보인다. 시인은 낙화 후의 사건을 아주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떨어져 누운 꽃잎'의 시듦뿐만 아니라, 시듦 이후의 건조와 아주 사라짐을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물론 이렇게 한 데에는 모란이 피는 희귀한 일의 극명(克明)한 황홀을 강조하기 위함이 있었을 것이다. 이 시는 감미로운 언어의 울림을 살려내는 난숙함이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고, '눈물 속 빛나는 보람과 웃음 속 어둔 슬픔'을 특별하게 읽어낼 줄 알았던 영랑의 유다른 안목과 영리함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시가 사람이라면 그이는 무엇을 간곡하게 바라며 뛰는 가슴인가. 많은 시들이 울분과 슬픔의 감정을 표표하게 표현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삶이 더 찬란한 쪽으로 몰아쳐 가기를 바라는 열망에 기초해 있다. 한편 한편의 시는 그런 마음의 예감과 기미를 보여주는 것이기에 아무리 작은 것을 노래해도 이미 뜨겁고 거대하다.   애송시 100편의 연재를 오늘로써 마친다. 가쁘게 오면서 우리 시를 사랑하는 분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느꼈다. 열독에 감사드린다. 이제 당신의 마음은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풀 아래 웃음짓는 샘물같이" 살아라. '허리통이 부드럽게' 드러난 보리의 오월을 보아라. 신록의 눈동자로 살아라. 당일(當日)에도 명일(明日)에도 우리네 마음은 '향 맑은 옥돌'이요, 은물결이오니.   출처 http://mc0713.com.ne.kr/essay/essay.html
133    풀꽃 망울 댓글:  조회:1720  추천:0  2016-03-12
풀꽃 망울 /강려   잔등에 동글동글 망울혹 볼록 단     니눈가엔 눈물방울이 대롱대롱     누가 곱사등이라 놀렸니     고개 갸웃하던 고추잠자리 볼록 솟은 너의 잔등을 은빛날개로 하느작하느작 도닥여주는구나 아동문학 작품집 에 나간 발표작
132    풀잎과 이슬 세방울 댓글:  조회:1515  추천:1  2016-03-12
풀잎과 이슬 세방울 /강려   풀잎은 새파란 세발자전거     이슬 세방울은 동그란 바퀴 세개     메뚜기가 새파란 세발자전거에 폴짝 올라 한들한들 바퀴를 돌린다 아동문학 작품집 발표작
131    敢于梦想的日子【汉语文原创散文】 댓글:  조회:2299  추천:4  2016-01-12
 敢于梦想的日子 /姜丽 “梦想”像小溪眷恋大海,大雁追求春天一样,人们盼望着它,寻它,思念它。但是失败、挫折让你的梦想面临考验。谁都知道走过去就是一片天、然而迈出的每一步都是饱蘸着艰辛困苦的。 因脑瘫我是个手脚不灵活,语言发音不准确的残疾人。曾有多少次、无情的寒风呼啸着从我身上吹过。可是我却完好地挺过来了。在这随时承受的各种考验中、我学会了奋进与抗争,也学会了坦然地承受命运给予我的一切磨难的本领。当然,我也在生活的艰辛面前徘徊、犹豫过、甚至绝望过。 1997年6月初,生活的‘尖刺’又一次扎得我身心发痛,延边一家培训机构的负责老师竟然拒绝我学电脑打字,原因就是我有一双不灵活的手! 就业的梦想被严酷的现实生活所打破,像敲碎一个鸡蛋壳似的。我一下子无法接受这个残酷的现实。这对一个手脚不灵活、语言发音不准确的脑瘫姑娘来说意味着什么,是不言自明的。为此,我沮丧地回到家里闭门痛哭,同时真想投入到死神的怀抱,结束苦难的残生。但那毕竟是短暂的一瞬,我想:不经历风雨怎能看见彩虹呢?只要活着决不能沉沦,我要鼓起勇气去乐观奋斗,去扼住命运的咽喉。俄国诗人普基金说道:‘假如生活欺骗了你, 你不要悲伤,不要生气!熬过这忧伤的一天:请相信,欢乐之日即将来临。’ 一想到这儿,我心头又升起一点希望的火花,觉得我的面前还有新梦想在闪耀。我从家藏的书堆里翻出许多书籍,狂热地阅读着,像饥饿的人找寻食物似的。一年又一年过去了,我每日埋在书堆里不断地充实自己,不知不觉中我的文学梦,像新苗一样站起来,向我招手。 2003年2月末,我在朝文版《延边日报》上得到了延边作家协会民族文学院招收学员的消息。我想:虽然手脚不灵,语言发音也不准确,但我还拥有健康的思维,照样可以在逆境的泥沼中闯出一条人生之路来。比如学写作,总会有我的收获和用途的。 于是,我鼓起勇气报名了延边作家协会民族文学院的第5期《文学讲习班》,我发奋学习,努力进取。结业第5期文学讲习班后,我满腔热情地投身于写作上。 成功者的成功远没有失败者的第一次胜利来得感人至深、刻苦铭心,因为锦上添花总比雪中送炭来得容易。也因为那胜利经历了风霜的洗礼,更显其弥足珍贵。当我望眼欲穿的稿件采用信像一只远方飞来的青鸟,幕然地降临到我的手里时、我像久久陷落在迷蒙的雾海里见到桅杆一样、心止不住兴奋得一蹦三跳,好像快要跳出来了。 是啊,我觉得功夫是不费有心人的。2008年度我的原创儿童散文《《山孩儿》》在中国朝鲜族少年报社主办的第14届白头儿童文学奖上获得了二等奖。同年 我加入了延边作家协会。还作家协会每年主办的第24届 ,第25届,28届儿童文学创作及研究会上新的文学作品《露珠》,《芍药花》,
130    오리와 박꽃 댓글:  조회:4130  추천:1  2015-10-02
오리와 박꽃 /강려   히야 ! 박 박 하얀 이름이 나를 꼭 닮았잖아 오리가 지붕위 쳐다보고     지붕위 박꽃도 내려다보며 어머 ! 박 박 하얀 소리가 나를 쏙 닮았네   2015년 9월11일 발표작
129    이슬 댓글:  조회:1722  추천:0  2015-10-02
이슬 2 /강려   누구지 빨간 풀잎꼬챙이에 빙 탕 후 루 한꼬치 꿰여놓고 갔네     까만 눈알 되록거리던 참새가 부리로 빙탕후루를 톡톡 찍어먹어요 *  빙탕후루 (冰糖葫芦) 2015년 9월11일 발표작
128    연길시아리랑 방송국 명상프로 <<한밤에 읽는 편지>> 댓글:  조회:1801  추천:0  2015-06-05
2015년 4월 19일 연길아리랑 방송국 명상프로 에 나간 글입니다 지인이 발표작인 을 아리랑방송에 내보내고싶은데 넘 짧다고 편지체형식으로로 늘여쓸수없느냐고 제의하더군요 그래서 편지체형식으로 늘여봤습니다. ^*^
퍼온글입니다 [평론] 솔솔 동시향기 꽃 되여 흩날리네―강려가 흔들어주는 동시묶음에 취하여                                                               글 /해주 꽃가루에 이슬 섞어 꽃떡 빚으면 이보다 향기로울가 흰구름에 꿀꿈 얹어 희망 싹트면 이보다 아름다울가 요즘 우리 문단에는 그야말로 티없이 맑은 동심을 투명하게 들여다보며 졸졸졸 흐르는 시내물마냥, 돌돌돌 구르는 조약돌마냥 아름다운 동시를 바람결에 흩날려 그 상큼한 향을 솔솔솔 피워올리는 동시인이 있다. 누구보다 어려운 여건임에도 누구보다 맑은 심성으로 동시를 폭폭 퍼올리는이가 바로 강려 동시인이다. 나는 강려를 모른다. 《중국조선족열린문인회》라는 카페에서 카페지기를 맡고있으면서 많은 사람들과 두루 만나 인사를 나누듯이 그렇게 강려와도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어느날 그녀가 큐큐를 추가해와서 그것으로 몇마디 인사말을 주고받았다. 그게 전부다. 그뒤 어느날인가 나는 강려가 보내준 그녀의 처녀동시집 《또르르 뱅뱅》을 받아보게 되였다. 그리고 나는 바로 그 동시집에 빠져버리고말았다. 이미지시들은, 시라는 렌즈를 통해 시적대상이 독자들의 시망막에 뛰여든다. 좋은 렌즈일수록 투명도가 높아서 시적대상이 눈앞에 보이는듯 생동할것이고 훌륭한 렌즈일수록 시적대상의 다양한 모습을 한꺼번에 보여주는 진풍경을 연출해보일것이다. 이때 렌즈(시)는 전혀 시인의 재간에 따라 좋은 렌즈가 될수도 있고 훌륭한 렌즈가 될수도 있는것이다. 강려는 세상 색색의 이미지들을 독자들한테 보다 아름답게 보여주기 위해 늘 렌즈를 갈고 닦기에 게으르지 않으며 렌즈의 변형(오목렌즈, 볼록렌즈, 프리즘 등)을 통해 평범한 이미지들을 밝고, 맑고, 깨끗하고, 향기나게 독자들앞에 펼쳐보이고있다. 오늘 우리가 만나게 되는 강려의 렌즈(동시다발)는 과연 어떤 이미지들을 우리앞에 펼쳐보일것인가. 하나씩 만나보기로 하자. 《함박꽃》에서 시인은 함박꽃을 하얀 이남박이라고 이름지어주고는 해님의 노란쌀에 구름의 샘물로 나비가 팔랑팔랑 쌀 인다고 표현하고있다. 너무 아름답다. 한수의 짧은 동시인데 신비한 동화세계에 빠져드는 느낌이다. 동시속에 온전히 빠진 동시인만이 이런 아름다운 경지에 이를수 있는것이리라. 《별》에서 시인은 하늘을 호수로, 별을 꽃붕어로 보고있다. 아이들의 시각에 알맞는 비유이다. 그런 동시적발견은 달님이 지나가며 하얀 밥알 뿌리고 꽃붕어들이 그걸 받아먹는것으로 승화되고있다. 신기하지 않은가. 동시가 이렇게 살아날수도 있다는게 마냥 신기하다. 《달빛1》에서 시인은 달빛살을 창문발로 보고있다. 그걸 귀뚜라미가 자꾸 풀어내리고있다. 달빛 고요로운 밤, 온 대지에 하얗게 실실이 드리우는 달의 빛살들, 그리고 귀뚤귀뚤 울어대는 귀뚜라미소리… 고즈넉한 밤에 연출되는 풍경화이다. 게다가 정적인 사물(달빛)이 동적인 의미(귀뚜라미에 의해 풀리는)로 느껴지는 대목이다. 《달팽이2》에서 시인은 간결미의 극치를 보여주고있다. 《딱/ 고기 한점 넣은/ 항아리 지고/ 엉금엉금》 자고로 달팽이를 묘사한 시들은 엄청 많다. 그러나 이렇게 간결하면서도 일목료연하게 보여준 시는 흔치 않다. 이는 시인이 평소 많이 관찰하고 많이 사색하면서 시어를 끊임없이 다듬어온 노력의 결정체이리라. 그럼 《얼음장》은 또 어떤가. 나는 겨울이 잉태한 하얀 곰이다. 풀리는 강물에 찰싹찰싹 엉뎅이를 얻어맞는 하얀 곰이다. 그래서 화가 나서 퉁방울눈 부릅뜨고 봄물 쫓아가다가 그만 녹아흐르며 나를 잃고만다. 형상적이면서도 동시적인 모습을 잃지 않고있다. 《진달래1》에서는 진달래가 분홍빛 봄을 토하고있다. 개구장이 구름이 물총을 쏘아대도 꽃잎은 젖지 않고 오히려 은구슬 금구슬을 굴린다. 그 어떤 진달래보다 형상적이면서도 구체적이고 생활의 론리를 떠나지 않으면서도 생활에서 껑충 뛰여올라있다. 시인의 눈에 《토끼》는 어느 아이가 굴려놓은 눈덩이다. 그래서 그 눈덩이는 넘넘 부드럽고 살살 녹기도 한다. 그러나 토끼에는 분명 생명이 깃들어있었으니 퐁퐁 뛰기도 한다. 재치의 극치라 해야겠다. 《봄은야1》은 봄을 강물로 보고 거기에서 풀, 꽃, 잎들이 방게가 되여 나오는것으로 묘사되고있다. 봄을 맞아 온통 햇순들이 고개 쏘옥쏘옥 내미는 모습들을 굉장히 멋진 이미지로 형상화하고있다. 《연필》이 이번에는 딱따구리로 변한다. 딱따구리가 되여 글나무를 키운다. 이 정도라 해도 동시로는 훌륭하다. 그러나 시인은 한차례 비약을 더해본다. 그래서 나는 방아공이 되여 콩콩 글콩 찧는다. 콩콩이라는 의성어에 글콩이라는 새뜻한 낱말을 만들어내 조합시킴으로써 시의 형상화가 재미스럽게 된다. 《이슬》에서는 이슬이 은빛공기돌이 된다. 바람이 다가와 통통 튕기며 혼자 놀고있다. 그랬다. 강려는 동시라는 렌즈를 들이대고 시적대상물들을 가지고 놀고있었다. 그 모습은 어린 소녀가 강가에 앉아 혹은 풀 푸르고 꽃 고운 들녘에 앉아 물과 돌과 꽃과 풀과 새와 바람과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에 다름아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은 지극히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것으로 덜어도 더해도 안되는, 꼭 알맞는것들이다. 강려의 눈에 비친 시적대상들은 일제히 어린이들의 시각에서 동화적색채가 다분한 모습으로 탈바꿈한 뒤 우리앞에 나타난다. 강려가 들이댄 렌즈(동시)를 통해 우리는 지극히 평범하고 그래서 우리가 평소 쉽게 스쳐버렸던 모든 주변 사물들이 사실은 그토록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있음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되며 그런 아름다움의 세례를 받고난 뒤 우리는 일상에서 얼룩진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된다. 풀이 피여나고 꽃이 미소 짓고 나비가 한들거리고 구름이 낮잠 자고 물이 흐르고 달빛이 부서지는 등 이 모든 자연의 이야기들은 강려의 동시를 통해 새록새록 새롭게 되살아나고 살아나서는 신기한 모습으로 우리앞에 다가오며 다가와서는 우리의 얼룩을 닦아준다. 동시를 읽는 대상인 어린이들은 강려의 동시를 보면서 동심을 더욱 보듬게 될것이며 맑은 심성을 키우게 될것이다. 한 아이를 키우는 열 사람의 어른이 해내지 못하는 일을 강려는 동시 한수로 거뜬히 해내고있다는 말이다. 동시는 환히 피여난 꽃속을 팔랑이는 나비처럼 예쁜 존재이다. 동시는 아슴한 밤하늘 수줍게 미소 짓는 별들처럼 맑은 존재이다. 티없이 맑고 깨끗한것만이 통하는 동심세계, 동심세계에서만이 통하는 동시, 동시는 동심을 보듬어키우는 요람과도 같은 존재이다. 동시는 아이들이 눈물방울을 단채 웃으며 읽을수 있는 문학이다. 동시는 슬프거나 아픈 마음을 달래주는 엄마와도 같은 존재이다. 동시를 모르고 성장한 아이는 얼마나 슬플가? 그런 동시를 강려는 너무 멋지게 아름답게 펼쳐보이고있는것이다. 어른들이 읽으면 반성을, 아이들이 읽으면 찬탄을 하게 만드는 강려의 동시들은 무궁한 매력으로 우리 조선족동시단에 이채로운 빛을 더해주고있다. 강려의 동시탐구행보가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우리 모두 지켜볼 일이다. 출처 ㅡ 길림신문    http://www.jlcxwb.com.cn/health/content/2015-06/03/content_157239.htm?bsh_bid=651802106
126    꽃망울 댓글:  조회:1842  추천:0  2015-05-14
                                                                                        꽃망울 /강려 꽃바람이 동그란 통배추 한잎 두잎 벌리곤     해살고추가루 이슬소금 버무린 양념 골고루 묻혀놓네     노란벌님 지나다 빨간 김치 한조각 맛보고 붕붕 입풀무 부네 은 2013년도의  중국조선족아동문학 연구세미나 에서 외 4수로 우수상 받은 5수의 동시속에 끼여있던 시인데 연변인민출판사  2015년도  첫번째 아동문학작품집 에 나감  
125    검정나비 댓글:  조회:1838  추천:0  2015-05-14
검정나비 /강려   봄눈이 몰래 두고간 검정색 손풍금     풀꽃이 폴락폴락 뜯는다 연변인민출판사  2015년도  첫번째 아동문학작품집
124    파도 댓글:  조회:1994  추천:0  2015-05-14
파도 /강려   초록물 엄마가 하얀 세타 짭니다   한코한코 짤때마다 둥그런 털실뭉치가 데굴데굴 굴러갑니다     아기갈매기 서너마리 털실뭉치 차며 포로롱 포로롱 돌아다닙니다 는 2013년도의  중국조선족아동문학 연구세미나 에서 외 4수로 우수상 받은 5수의 동시들속에 끼여있던 시인데 연변인민출판사 2015년도 첫번째 아동문학작품집 에 나감
123    개나리 댓글:  조회:2356  추천:2  2014-12-31
 개나리 /강려   누굴가 통통한 바나나살은 뽁 빼먹고 달랑 노랑 껍질만 가지에 걸어놓은 이는?     뒤돌아보던 솔바람이 노랑 바나나 껍질 밟고 쪼르륵 미끄럼 탑니다   2014년도  7월 중순 제28회 아동문학창작 및 연구모임에서 우수상 걸렸던 동시 임 아동문학작품집 에  나간 발표작
122    ‘’못난 새끼오리’’의 제비꿈[퍼온 글 ] 댓글:  조회:2686  추천:2  2014-09-29
평론                                                 ‘’못난 새끼오리’’의 제비꿈                                                    ㅡ 강려동시집을 중심으로                                                                                               글 / 태현 얼마전에 중국조선족소년보사에서 사업하는 림금산선생으로부터 동시집 한권을 받았다. 강려의 동시집 이였다. (참, 대단하구나.) 강려가 멋진 동시집을 출간했다니 기쁘고 탄복이 가면서도 잘 믿어지지않았다 2급지체장애자가 불편한 현실을 타승하고 꿈을 이루었다니……이튿날 연변작가협회 아동문학창작위원회 최동일주임이 ‘’강려동시집 출간 모임’’을 가지게 되니 발언을 준비해달라는 부탁을 해왔다. 강려는 2008년에 중국조선족소년보사에서 주최한 제14회 ‘’백두아동문학상’’을 수상한바 있다 게다가 나는 또 수차 그의 동시를 편집하여 에 발표한적이 있기에 강려와 그의 동시에 대해 잘 알고있었다.   ‘’못난 새끼오리’’ 강려는 1975년 5월29일(음력)에 길림성 룡정시 개산툰진에서 출생하였다. 하지만 그는 난산으로 인한 대뇌손상으로 손발이 령활하지 못하고 말도 똑똑히 번질수 없는 장애인이 되고말았다. 1993년, 강려는 초중졸업과 함께 집구석에 눌러앉았다.부모들이 출근하고 남동생도 학교에 가면 강려는 쥐죽은듯 고요한 집에 홀로 남아야했다. 말 못할 고독이 몰려들었다.   (이대로 못난 오리가 될수없다.) 강려는 타오르는 생의 욕망을 느꼈다. 강려는 룡정시의 한 복리공장에 취직했다. 허나 가위질도 바로 할수없는 손때문에 아쉬운대로 포기할수밖에 없었다 그후 강려는 모 컴퓨터양성쎈터를 찾아갔다 지도교원은 강려의 두손이 령활하지못한것을 보고 배워낼수없을것이라며 머리를 저었다 하지만 강려는 두달간 고심히 분투하여 끝내 컴퓨터 초급 중급 과정을 수료했다. ‘’나도 하면 되는구나’’ 세상에 태여나 처음으로 느껴보는 자부심이였다. 강려의 마음속에서는 더큰 꿈이 싹트기 시작했다.   당시 개산툰화학팔프공장 자녀 제2중에서 교원사업하던 강려의 아버지는 학교도서관 에서 책을 빌려다 강려에게 주었다 강려는 목마른 사람이 물마시듯 책을 읽었다. 하루라도 책을 읽지않으면 뭔가 햐야할 일을 못한것같은 허전함을 느꼈다 그렇게 몇년이 지나자 자신도 글을 쓸수 있지않을가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였다. 2003년 4월초  강려는 를 읽다가 연변작가협회민족문학원에서 문학강습반 학원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였다   (그래 문학공부를 해보자, 내가 나를 위해 할수 있는 일이 문학공부이고 내가 이 세상에 나의 존재를 알릴수 있는 일 또한 문학이다.)   강려는 결심을 내리고 연변작가협회 민족문학원을 찾아갔다 이미 많은 동시와 수필을 여러신문 간행물에 발표한 강려는 ’’나는 누구 못지 않게 내 인생의 홀로서기를 해나가고있는 이 사회의 당당한 일원’’이라고 소리높이 웨치고있다.   강려 동시의 예술특성 1.강려 동시의 소재특성과 동심발굴   우에서 언급했지만 강려는 뇌성마비환자로서 2급지체장애자이다 손발이 령활하지 못한데다가 사람들과의 교류가 비교적 어렵다.하기에 그는 대부분 시간을 책과 대화하고 대자연과 대화하는데 돌렸다. 그래인지 그의 동시집 을 살펴보면 시적소재의 대부분이 자연에서 선택되고있다. 이슬, 해, 달 ,오리, 바둑강아지, 달팽이, 잠자리,함박꽃, 초롱꽃, 제비꽃, 진달래, 맨드라미 ….. 동시집에 실린 56수의 동시는 모두 자연과 동식물에서 시적소재를 발굴하고있는데 ‘’작은것이 지니고있는 아기자기한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 ,발견과 례찬’’이라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연에서 섭취한 이런 시적소재들은 일상생활에서 수시로 볼수있고 관찰할수 있는것들이다. 강려는 이런 소재들을 통하여 동심발굴을 기하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이 동시집의 첫번째 특점이라 해야겠다.   2 . 기발한 착상과 대담한 시적발견   동시’’맨드라미꽃’’은 착상이 기발하고 남다른 시적발견이 있다.   인기척에 / 놀랐나 / 망울우리에서 / 빨간 수탉 한마리 / 쭈뼛쭈뼛 / 머리 내밀더니 / 꼬끼오 / 홰치네   꽃망울을 터치고 뾰족이 일어선 맨드라미꽃을 인기척에 놀라 쭈뼛쭈뼛 일어서며 꼬끼오 ㅡ 하고 홰치는 빨간 볏 수탉으로 형상화한 동시다. 실로 남다른 시적발견이 아닐수없다. 동시 ‘’오리’’에서도 못은 하늘에 동동 떠다니는 오리를 ‘’구름송이’’에 비유하고있다.   문학창작은 관찰과 체험을 필요로 한다. 관찰과 체험은 문학창작의 기초작업이라고 할수있다. 사물에 대한 관찰과 체험을 통하여 문학적인 발견을 할수있는데 이런 발견은 또 상상과 련상을 통하여 예술적승화를 실헌하게 된다. 하지만 이 과정은 여러가지 예술수법을 필요로 한다.   ‘’바둑강아지’’는 참 잘된 동시이다.   바둑 둘래 ?// 바둑강아지 / 바둑돌 등에 지고 /콩콩 묻네 // 나비는 / 하얀 손만 / 팔랑팔랑 젓네 // 코스모스는 / 긴 목만 / 살래살래 흔드네 // 바둑강아지 / 도리도리 / 친구 찾아 가네   이동시는 비유, 과장 상징과 의인화수법을 다양하게 활용하여 우습강스러운 바둑강아지의 모습을 재치있게 그려냈다. ‘’진달래꽃 .2’’도 참 잘된 동시이다   봄애기 / 사는 집 / 분홍빛초인종// 길가던 4월이 / 딩동딩동 / 봄 애기를 불러낸다   짧은 시행에 비유, 련상, 의인화의 수법을 리용하여 진달래꽃을 생동하게 묘사하고있다. ‘’제비꽃’’은 강려자신을 대변한 성공한 동시라고 볼수있다   동그란 동그란 / 망울알속에서 /고 조그마한 / 두 다리가 /쏙 나와도 / 종종종 /걸어가지 못하네 // 동그란 동그란 /망울알속에서 /고 /자그마한 /부리가 / 쏙 나와도 / 지지배배 / 말하지 못하네 // 동그란 동그란 / 망울알속에서 고/ 쬐꼬만 / 두 날개가/ 쏙 나와도/ 동동동/ 날지못하네//   강려는 인젠 더이상’’못난 새끼오리’’가 아니다. 그는 지금 훨훨 하늘을 날아예는 제비처럼 소박한 꿈을 실헌해가고 있다. 동시집 ‘’또르르 뱅뱅’’은 자연과의 대화.,동식물과의 감정교류를 통해 낳은 강려만의 ‘’꿈덩어리’’이다   3. 강려 동시에서의 의성의태어   강려의 동시는 모두 짤막하고 시어가 생동하며 의성의태어 사용이 잘 되여있다. 보다싶이 제목도 ‘또르르 뱅뱅’’으로 되여있다. 강려는 이 동시집에서’’쭈뼛쭈뼛, 소올솔, 한들한들 ,도옹동, 팔랑팔랑 ,살래살래, 도리도리,사알살, 엉금엉금, 딩동딩….’’등 많은 의성의태어를 사용하여 동시의 생동성을 살리고 형상성을 기했으며 동심에 접근하려고 노력했다   동시집에서 보여지는 문제점   동시집에는 시적발견과 착상, 련상 상상 수법 사용에서 조금 억지감이 나는 점도 없지않다 이를테면 초원을 바둑판으로 비유하고있는데 바둑판은 사실 네모로 되여있다 물론 양을 하얀 바둑돌로 ,얼록송아지를 검은 바둑돌로  비유할수는 있지만 초원을  바둑판으로 비유하는것은 억지감이 든다 . 강려 동시집
121    하필이면 /장영희 [퍼온 글] 댓글:  조회:2729  추천:0  2014-09-21
장영희 (수필집 중. 2002년 제1회 ‘올해의 문장상’ 수상작) 번역가. 서강대 영문과 교수. .신문사 논설위원. 번역작품 ‘스칼렛’, ‘종이시계’, 수필집 (2000.샘터사) 외. 한국문학번역상 수상. 2002년 제1회 ‘올해의 문장상’ 수상. 하필이면 몇 년 전인가 십대들이 즐겨 부르던 유행가 중에 ‘머피의 법칙’이라는 노래가 있었다. 확실히 기억은 안 나지만 가사가 대충 이랬다. “화장실이 있으면 휴지가 없고, 휴지가 있으면 화장실이 없고, 미팅에 가도 하필이면 제일 맘에 안 드는 애랑 파트너가 되고, 한 달에 한 번 목욕탕에 가도 하필이면 그날이 정기 휴일이고” 등등 “무슨 일이든 어차피 잘못되게 마련이다”라는 ‘머피의 법칙’을 코믹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 노래에 나오는 ‘하필이면’이란 말은 분명히 ‘왜 나만?’이라는 의문을 전제로 한다. 그러니까 남의 인생은 별로 큰 노력 없어도 모든 일이 잘 되어 나갈 뿐더러 가끔은 호박이 넝쿨째 굴러 오는 것 같은데, 왜‘하필이면’내 인생만은 아무리 기를 쓰고 노력해도 걸핏하면 일이 꼬이고, 그래서 공짜 호박은커녕 내 몫도 제대로 못 챙겨 먹기 일쑤냐는 것이다. 그런데 억울하기 짝이 없는 ! 것은 그게 내 탓이 아니라는 거다. 순전히 운명적인 불공평으로 인해 다른 이들은 벤츠 타고 탄탄 대로를 가는데, 나는 펑크난 딸딸이 고물차를 타고 비포장 도로를 가고 있는 것이다. 아닌게아니라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나도‘머피의 법칙’을 생각할 때가 많다. 한 예로 내 열쇠 고리에는 겉으로는 구별이 안 되는 열쇠가 두 개 달려 있는데, 하나는 연구실, 또 하나는 과 사무실 열쇠이다. 열쇠에 유성 펜으로 방 번호를 표시해 놓으면 그만이지만, 그러기도 귀찮고 또 그냥 재미도 있고 해서 내 방에 들어갈 때마다 둘 중 아무거나 꽂아 본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것이, 수학적으로 따져 볼 때 확률은 분명히 반반인데, ‘하필이면’ 연구실 열쇠가 아니라 거의 과 사무실 열쇠가 먼저 손에 잡혀 두 번씩 열쇠를 돌려야 하는 일이 열이면 아홉이다. 그뿐인가, ‘하필이면’ 큰 맘 먹고 세차한 날은 갑자기 맑은 하늘에서 비가 오고, 무엇을 사기 위해서 줄을 서면 바로 내 앞에서 매진되고, 더욱이 얼마 전에는 길거리를 걸어가다가 내 어깨에 새똥이 떨어지는 일도 있었다. 나는 망연자실, 한동안 서서 나의 ‘하필이면’의 운명에 경악했다. ! 1천만 서울 인구 중에 새똥 맞아 본 사람은 아마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일 텐데 ‘하필이면’ 그게 나라니! 물론 이보다 더 중요하고 근본적인 ‘하필이면’도 있다. 남들은 멀쩡히 잘도 걸어 다니는데 왜 하필이면 나만 목발에 의지해야 하고, 어떤 사람은 펜만 잡으면 멋진 글이 술술 잘도 나오는데 왜 하필이면 나만 이 짤막한 글 하나 쓰면서도 머리를 벽에 박아야 하는가. 그렇다고 다른 재주가 있느냐 하면 노래, 그림, 손재주 그 어느 것 하나 내세울 게 없다. 하느님은 누구에게나 나름대로의 재능을 골고루 나눠주신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하필이면’ 나만 깜빡하신 듯하다. 언젠가 치과에서 본 여성지에는 모 배우가 화장품 광고 출연료로 3억 원을 받았다는 기사가 실려 있었다. 3억이면 내가 목이 쉬어라 가르치고 밤 새워 페이퍼 읽으며 10년쯤 일해야 버는 액수인데, 여배우는 그 돈을 하루만에 벌었다는 것이다. 그건 재능이나 노력과는 상관없이 오로지 타고난 생김새 때문인데, 그렇게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난 일 때문에 불이익을 받는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불공평한 일이다. 나는 내가 잘빠진 육체는 가지지 못했어도 그런! 대로 아름다운 영혼을 가졌다고 생각하지만, 아마 내 아름다운 영혼에는 3억 원은커녕 3백 원도 주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러니 어차피 둘 다 못 가지고 태어날 바에야 아름다운 몸뚱이를 갖고 태어날 일이지 왜 ‘하필이면’ 3백 원도 못 받는 아름다운 영혼을 갖고 태어났는가 말이다. 그래서 ‘하필이면’이라는 말은 내게 한심하고 슬픈 말이다. 그런데 어제 저녁 초등학교 2학년 짜리 조카 아름이가 내게 던진 ‘하필이면’은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길거리에서 귀여운 팬더 곰 인형을 하나 사서 아름이에게 갖다 주자 아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런데 이모, 이걸 왜 하필이면 내게 주는데?” 하는 것이었다. 다른 형제나 사촌들도 많고, 암만 생각해도 특별히 자기가 받을 자격도 없는 듯한데, 뜻밖의 선물을 받았다는 아름이 나름대로의 고마움의 표시였다. 외국에서 살다 와 우리말이 아직 서투른 아름이가 ‘하필이면’이라는 말을 부적합하게 쓴 예였지만, 아름이 처럼 ‘하필이면’을 좋은 상황에 갖다 붙이자 나의 ‘하필이면’ 운명도 갑자기 찬란한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누리는 많! 은 행복이 참으로 가당찮고 놀라운 것으로 변하는 것이었다. 도대체 내가 전생에 무슨 좋은 일을 했기에, 하고많은 사람들 중에 ‘하필이면’ 내가 훌륭한 부모님 밑에 태어나 좋은 형제들과 인연 맺고 이 아름다운 세상을 살고 있는가. 아무리 노력해도 헐벗고 굶주리는 사람들이 그토록 많은데 왜 ‘하필이면’ 내가 무슨 권리로 먹을 것 입을 것 걱정 없이 편하게 살고 있는가. 또 나보다 머리 좋고 공부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왜 ‘하필이면’ 내가 똑똑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가. 게다가 실수 투성이 안하무인인데다가 남을 위해 하는 일이라곤 하나도 없는 나, 장영희를 ‘하필이면’ 왜 많은 사람들이 도와주고 사랑해 주는가(우리 어머니 말씀으로는 양순하고 웃기 좋아하는 나의 성격 때문이라는데, 그렇다면 잘빠진 육체보다 아름다운 영혼을 타고난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하필이면’의 이중적 의미를 생각하니 내가 지고 가는 인생의 짐이 남의 짐보다 무겁다고 아우성쳤던 좁은 소견이 새삼 부끄럽다. 창문을 여니, 우리 학생들이랑 일산 호수공원에 놀러 가기로 한 오늘, ‘하필이면’ 날씨가 유난히 청명하고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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