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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0    현대시의 난해성의 의의와 역할/김신영 댓글:  조회:1167  추천:0  2021-01-04
현대시의 난해성의 의의와 역할/김신영 현대시의 난해성은 늘 왈가왈부하는 논의의 대상이다. 시에 대한 논의가 변방으로 밀려나도 난해성에 대해서만큼은 문단을 달구는 요소가 된다. 그만큼 난해성에 더해지는 문화예술의 창조적 역량과 심화를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현대라는 시대가 갖는 특성 중에는난해성으로 표출되는 언어와 또한 표현의 다양성으로 논의할 수 있다. 그리하여 현대는 시대적인 특성으로 인한 독자적인 언어의 다양성으로 산문시나 소설같은 시의 양산을 부추키고 있는 실정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각양각색을 가진 다양한 독자성과 자기목적성으로 인해 앞으로도 시는 더욱 난해성을 추구해 갈 것으로 여겨진다. 유럽의 시들은 난해성을 논할 때 주로 상징주의 시인들을 떠올린다. 엘리어트의 대화시나 보들레르나 말라르메의 시에서 발견하는 의미는 사물의 외적 요소에 대한 것들이라기보다 내적인 요소에 대한 상징이다. 이러한 상징은 각계각층에 영향을 미치는 데 특히 말라르메의 ‘목신의 오후’는 아름다운 음악으로 재창조되어 그 의미의 심오함을 표출하고 있다. 이에 상징성으로 대표되는 애매성(曖昧性, ambiguity)을 앰프슨은 7가지로 정의하면서 시에서 애매성이 갖는 의미를 역설한 바 있다. 이것은 시의 애매성이 그 미묘한 차이로 인하여 의미의 확장과 풍요를 가져올 뿐만 아니라 복잡성을 제공하여 본래 가진 의미를 확장시켜준다고 하였다. 이러한 애매성이나 상징이 시를 난해하게 하는 요소이다. 그로 인하여 시는 복잡성을 띠면서 의미를 확장하며 그때 내포된 의미로 인해 난해해진다. 이것은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 것이 아니라 시에서 어떤 의미를 표현하기 위한 작가의 의도적 장치이다. 그러므로 난해한 시는 자기목적성을 갖는다고 할 수 있으며, 난해한 시의 탄생은 결코 우연에 의한 것이라고 말 할 수가 없다. 우연히 난해한 시를 쓴다는 것은 상징이나 모호성을 인정하지 않는 시쓰기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난해한 시는 시인의 뚜렷한 자기목적성을 동반하면서 탄생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의 시에서 난해성으로 논의되는 시인들은 대략 이상과 김수영, 김춘수, 김구용, 이승훈, 오규원 그리고 최근에 논의가 활발했던 황병승 등이 있다. 이들의 시도 산문성과 문법의 무시 또는 파괴, 그리고 상징적인 언어의 사용으로 그 난해성에 대해 논란을 일으킨 바가 있다. 이 시인들의 시는 우리 문단에 일단락 나름의 공헌을 하였다. 새로운 시를 갈구하는 사회와 독자들에게 새로운 시의 패턴을 제공한 것이다. 독단적인 언어 독법과 새로운 인식의 틀을 구성하면서 파란을 불러일으킨 시가 이상의 「오감도」가 아닌가? 그것은 의미전달과 더불어 존재에 대한 인식의 차원으로 확대되면서 많은 파장을 일으켰다. 김수영 시인도 자신의 시를 난해시로 규정하면서 그에 대한 견해를 피력하기도했다. 김수영의 「꽃잎.1」 이나 황병승의 시 「여장남자 시코구」등은 해석에 있어 여러차례 문단에서 논란을 일으킨 작품이다. 특히 이상의 작품은 시의 진위에 대한 논란을 일으켰으며, 김수영은 난해시가 갖는 특성으로 상징성을 들어 논의한 바 있다. 또한 최근 황병승의 작품은 소위 ‘미래파’ 논란을 불러 일으켰는데 평단은 미래파 시에 대한 논의로 한동안 시끄러웠다. 난해시는 무엇보다도 시의 해석에 대한 난삽함을 드러내면서 더불어 의미의 재생이나 새로운 의미의 탄생이 화두였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그렇다보니 난해시는 일면 기교중심의 시로 흐른 면도 없지 않아 이 또한 비판을 많이 받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해시는 시의 발달사에 비추어볼 때, 이상 시인을 선두로 꾸준히 다시 나타나고 있음이 확인된다. 또한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난해시는 더욱 늘어난 양상을 보인다. 시인들을 위한 말잔치라고 비판하는 독자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시인들은 난해시를 즐기며 또한 쓰는 까닭은 무엇일까? 미술계에서 피카소의 그림은 추상화의 의미와 더불어 난해한 그림으로 유명하다. 미술계는 이미 난해한 미술이 오래전부터 나타나 일반독자와 거리두기를 시도한지가 오래 되었으며 미술은 추상미술이나 입체파로 진화일로에 있다. 그러나 문학계는 책읽기의 난독성을 제기하면서 독자층의 중요성이 확대되어 지탄을 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해시는 새로운 독자층을 끌어들이고 있다. 그 독자들은 일반적인 독자가 아닌 시를 이해하는 어느 정도 수준의 이해력을 가진 독자층이다. 그들은 시가 난해해 지는 것을 반긴다. 시가 갖는 신선함과 의외성은 문학의 창조적 역량을 충족시켜주는 까닭이다. 즉, 일반적인 서정으로 표현할 수 없는 복잡미묘한 세계를 난해시는 표현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난해시가 갖는 문학적 특성이며 의의라고 할 수가 있겠다. 앞서도 논의하였듯이 문학예술의 창조적 역량과 심화는 심오한 정신적인 세계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정신적인 세계의 다양성과 복잡성은 현대시에서 서정성으로 나타날 때 단순화될 소지가 있으나 난해시는 이를 더욱 정교하게 복잡미묘한 세계를 표현한다. 정신병리적인 현상이나 신경증적인 강박증들이 시에서 표현되기 때문이다. 4 내가 결석한 나의 꿈. 내 위조가 등장하지 않는 내 거울. 무능이라도좋은 나의 고독의 갈망자다. 나는 드디어 거울 속의 나에게 자살을 권유하기로 결심하였다. 나는 그에게 시야도 없는 들창을 가리키었다. 그 들창은 자살만을 위한 들창이다. 그러나 내가 자살하지 아니하면 그가 자살할 수 없음을 그는 네게 가리친다. 거울 속의 나는 불사조에 가깝다. 5 내 왼편 가슴 심장의 위치를 방탄 금속으로 엄폐하고 나는 거울 속의 내 왼편 가슴을 겨누어 권총을발사하였다. 탄환은 그의 왼편 가슴을 관통하였으나 그의 심장은 바른편에 있다. 6 모형 심장에서 붉은 잉크가 엎질러졌다. 내가 지각한 내 꿈에서 나는 극형을 받았다. 내 꿈을 지배하는 자는 내가 아니다. 악수할 수조차 없는 두 사람을 봉쇄한 거대한 죄가 있다. 이상의 시제15호에서 하늘의 뜨거운 꼭지점이 불을 뿜는 정오/도마뱀은 쓴다/찢고 또 쓴다// (악수하고 싶은데 그댈 만지고싶은데 내 손은 숲 속에 있어)// 양산을 팽개치며 쓰러지는 저 늙은 여인에게도/쇠줄을 끌며 불 속으로 달아나는 개에게도 황병승의 여장남자 시코쿠에서 낯선 문법이 등장하면 사회는 열광한다.   프랑스의 누벨바그(전통적 영화에 대항해 1957년 태동한 영화운동)도 즉흥연출과 장면의 비약적 전개로 장 뤼크 고다르에게 대단한 영예를 안긴 바 있다. (‘네 멋대로 해라’의 감독으로 누벨바그를 등장시키며 뉴웨이브의 기수로 불렸다. ) 개인의 실존문제를 주로 다루는 이 누벨바그처럼 난해시의 등장은 낯선 문법과 새로운 시의 양식으로 논쟁을 불러 일으킨다. 다시 말해 난해시는 낡은 것을 밀치면서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양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상은 주로 개인의 자아를 탐구하면서 새롭고 낯선 규범들을 창조하였다면, 황병승의 시에 등장하는 소수의 대변자인 캐릭터는사회의 탐구를 추구하는 측면에 가깝다고 하겠다. 이상의 시에는 자아의 분열적 증상이 나타나지만 황병승의 시에는 사회적인 병리현상과 더불어 신경증적인 반응들이 詩化된다. 어지럽고 복잡한 언어들 속에서 표상화되는 시어들을 살피다 보면 이 넓은 세상에 어지러이 불고 있는 갖가지 바람의 의미를 이해할 듯도 하다. 이것이 난해시의 의미이며 역할이라고 아니겠는가? 이제 난해시에 대한 나름의 논의는 일단락된 것이 아닌가 개인적인 생각을 한다. 난해시도 하나의 조류이며 새로운 현상으로 이미 시단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신영 (시인, 문학평론가), 충북 중원 출생 94년 《동서문학》시부문 신인상으로 등단 저서『화려한 망사버섯의 정원』(시집, 문학과지성사, 1996) 『불혹의 묵시록』(시집, 천년의 시작, 2007) 『현대시, 그 오래된 미래』(평론집, 한국학술정보, 2007) 중앙대 국문과 문학박사, 홍익대 등에서 강의 문학서재 : http://ksypoem.kll.co.kr   아시아문예 2008년 가을호  
1079    시의 언어는 어떤 언어인가 - 박상천 댓글:  조회:1103  추천:0  2020-11-11
 시의 언어는 어떤 언어인가                                박상천     시를 일컬어 흔히 언어예술이라고 한다. 언어예술이라는 말은 시의 핵심이 무엇인지 잘 드러내고 있다. 따지고 보면 언어는 시의 질료(material)이면서 시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시에 관한 이론을 공부하건 시 창작의 방법을 공부하건 그 출발은 언어일 수밖에 없다. 언어에 대한 공부는 시 공부의 출발이자 기초이며 그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 공부를 언어 공부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말은 먼저 언어의 속성을 이해하는 것을 말한다. 특히 일상의 언어와 시의 언어가 어떻게 다른지를 아는 일이 시 공부의 출발이다.   1. 언어는 사물을 존재하게 한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말했다. 언어가 ‘존재의 집’이라는 것은 무얼 뜻하는 것일까? 언어란 가장 쉽게 말해 어떤 사물에 붙여진 ‘이름’이다. ‘나무’ ‘하늘’ ‘책상’ ‘물고기’ 등 물질적인 것들을 일컫는 언어만이 아니라 ‘슬픔’ ‘기쁨’ ‘사랑’ 등 추상적인 감정을 나타내는 언어들도 따지고 보면 그러한 감정들에 붙여진 이름이다.사물들은 이러한 이름(언어)에 의해 구별되고 비로소 존재하게 된다. ‘언어에 의해 사물들이 구별되고 존재한다’는 말을 더 쉽게 설명해보자. 여기 우리가 ‘볼펜’이라고 부르는 사물과 ‘연필’이라고 부르는 사물이 있다고 하자. 그런데 만약 이 두 가지 사물들을 각각 ‘볼펜’ ‘연필’이라고 구분하여 이름을 붙이지 않고 그저 ‘필기도구’라는 이름만을 붙였다고 한다면 ‘필기도구’는 존재하지만 ‘볼펜’과 ‘연필’은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또 ‘장롱’ ‘식탁’ ‘의자’라는 각각의 이름이 없이 ‘가구’라는 이름만 있다면 이 세상에는 ‘가구’는 있지만 ‘장롱’ ‘식탁’ ‘의자’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이름이 붙지 않은 존재를 우리는 어떻게 존재한다고 할 수 있으며 그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러므로 ‘필기도구’라는 이름이 ‘필기도구’를 존재하게 하고 ‘볼펜’이라는 이름이 ‘볼펜’을 존재하게 하며 ‘연필’이라는 이름이 연필을 존재하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까닭에 하이데거는 언어를 일컬어 ‘존재의 집’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언어는 이처럼 사물에 붙여진 이름으로서 사물을 존재하게 하는 것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그는 다만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 ―김춘수의 「꽃」 일부 어떤 사물이건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무어라 말할 수 없는 ‘하나의 몸짓’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사물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비로소 ‘꽃’이 되고 ‘나무’가 되고 ‘하늘’이 된다.   2. 언어와 사물의 관계는 자의적이지만 사회적 약속이다   언어는 가장 쉽게 말해 사물에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사물과 사물의 이름인 언어의 결합 관계에는 필연성이 없다. 예를 들어 우리가 ‘나무’라고 부르는 사물과 ‘나무’라는 언어의 결합은 임의적이고 자의적인 것이다. 만약 ‘나무’라고 부르는 사물과 ‘나무’라고 부르는 언어 사이에 꼭 그렇게 결합할 수밖에 없는 필연성이 있다면 세계 각국의 언어가 서로 다를 수가 없고 시대를 따라 언어가 변화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모두 알다시피 우리가 ‘나무’라고 부르는 사물을 15세기에는 ‘나모’라고 하였고 영어에서는 ‘tree’라고 부른다. 사물과 언어의 결합이 필연적이라면 동일한 사물을 이렇게 다르게 부를 수는 없고 또 다르게 불러서도 안될 것이다. 그러므로 언어와 사물의 결합 관계가 자의적이라는 것은 여기서 명백해진다.그러나 사물과 언어의 관계가 자의적이라고 해서 말하는 사람이 임의로 그 이름을 바꿀 수는 없다. ‘나무’를 ‘나무’라 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이 자기 마음대로 ‘하늘’이라고 한다면 의사 소통은 불가능해진다. 그러므로 사물과 언어 결합의 자의성은 사회적으로 용인을 받아야 하고 용인을 받은 이름으로 사물을 부름으로써 우리의 의사 소통이 가능해진다. 그러므로 일상의 언어는 사회적 약속을 깨뜨려서는 안 된다.   3. 시의 언어는 사회적 약속을 깨뜨린다   언어와 사물의 관계는 분명 자의적이지만 그것은 사회적 약속이다. 따라서 사회적 약속을 저버리면 의사 소통이 불가능해지거나 어려워진다. 그런데 시는 이러한 언어의 사회적 약속을 저버리고 그 약속을 깨뜨리려고 한다. 가장 쉬운 예를 들어보자.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애수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아아 누구던가.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유치환의 「깃발」 이 시는 우리가 잘 아는 유치환의 「깃발」이다. 그러나 우리가 제목도 없이 이 시를 처음 대했다고 했을 때, 이 시가 무엇을 대상으로 쓴 글인지 또는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쉽게 알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사전을 찾아보면 ‘기(旗)’는 “헝겊이나 종이 같은 데에 무슨 글자, 그림, 부호, 빛깔 같은 것을 잘 보이도록 그리거나 써서 막대 같은 것에 달아 특정한 뜻을 나타내는 표상으로 쓰는 물건의 총칭”이라고 되어 있고 ‘깃발’은 ‘헝겊이나 종이로 된 기의 근본 부분’이라고 되어 있다. 이러한 사전적 정의들을 보고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를 사람은 없다. 그런데 왜 유치환은 누구에게나 뜻이 통하는 이런 정상적인 언어를 버리고 깃발을 일컬어 ‘소리없는 아우성’이니 ‘노스탤지어의 손수건’이니 ‘백로처럼 날개를 편 애수’니 하는 말로 읽는 이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일까?한 마디로 말해서 시의 언어는 일상의 언어를 ‘비틀고 왜곡’하는 것이다. 일상 언어가 지닌 가장 중요한 기능은 ‘의사 소통’ ‘정보 전달’이라 할 수 있는데 의사 소통을 위하여서는 언어의 사회적 약속을 잘 지켜서 사용해야만 한다. 그러한 일상어의 사용법을 ‘정상적 언어 사용법’이라고 한다면, 시의 언어는 그러한 정상적 언어 사용법을 어기고, 부수고, 비틀어 비정상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여기에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첫째, 시는 일상 언어의 정상적 용법을 사용하지 않고 사회적 약속을 깨뜨리며 비정상적 용법을 사용한다는 사실과 둘째, 그러므로 시는 의사 소통을 위해서는 효율적이거나 그다지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4. 시의 언어는 왜 사회적 약속을 깨뜨리는가?   언어가 사물에 붙여진 이름이라는 사실 때문에 우리는 흔히 언어와 사물을 동일시하기 쉽다. 그러나 언어가 곧 사물은 아니다. 언어는 ‘사물의 공통적인 속성에 붙여진 이름’에 불과한 것이다예를 들어 여기 ‘연필’ 두 자루가 있다고 하자. 이 두 자루의 연필은 각각 별개의 사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두 가지 별개의 사물을 모두 ‘연필’이라고 부른다. 우리의 이러한 언어 사용법은 논리적으로 모순이다. 두 자루의 연필 중에 하나를 A라 하고 또다른 하나를 B라고 하자.그러면 우리의 언어 사용법으로 볼 때, A〓연필, B〓연필이고 이 명제에 따라 ‘A〓B〓연필’이라는 명제가 성립해야 한다. 그러나 A와 B는 서로 다른 사물이므로 ‘A〓B’라는 명제가 성립할 수 없다. 왜 이러한 모순이 발생하는가? 그 까닭은 ‘A〓연필’, ‘B〓연필’이라는 명제가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다시 말해 사물과 언어는 동일한 것이 아니다. 언어는 사물 그 자체가 아니며 또한 사물 개개의 이름이 아니라 ‘사물의 공통적인 속성에 자의적으로 붙여진 이름(기호)’에 불과한 것이다. ‘연필’이라는 언어는 연필 하나하나에 붙여진 개별적인 이름이 아니라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연필의 공통적 속성(흑연 심을 가느다란 나무때기 속에 넣어 만든 필기도구)에 붙여진 이름인 셈이다.개별적인 사물의 이름이 아니라 공통적 속성에 붙여진 이름이라는 언어의 성격 때문에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근본적으로 추상적일 수밖에 없고 불완전한 것이다. 다시 예를 들어보자. A가 ‘나는 슬프다.’고 말했다. B도 ‘나는 슬프다.’고 말했다. 그러면 이 두 사람이 말한 ‘슬픔’은 동일한 것일까? 이 두 사람의 ‘슬픔’이 동일한 것이 아님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슬픔’이라는 말은, 모든 이들이 가진 그 다양한 ‘슬픔’의 공통적 속성(뜻밖의 일에 낙심하여 눈물이 나거나 한숨이 나오며 마음이 아프고 괴로운 느낌)을 뽑아내어 ‘슬픔’이라고 이름 붙인 것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는 슬프다’ 라는 말을 가지고 자신이 지닌 개별적인 ‘슬픔’의 진실을 온전히 표현할 수는 없는 것이다.시는 일상의 언어가 지닌 이러한 추상성과 불완전성을, 언어를 통해 극복하려는 노력이라 할 수 있다. ‘슬픔’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나의 슬픔. 그래서 사람들은 나의 슬픔의 진정한 모습을 표현해낼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된다. 그러한 노력이 시를 탄생하게 하였다. 그래서 시는 비유, 묘사, 상징, 이미지 등 다양한 시적 장치들을 동원하여 사물의 공통 속성에 붙여진 이름이 아닌 개별적 사물에 적합한 이름을 붙이려고 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시에서는 일상 언어의 정상적인 사용법이 아닌 언어의 비정상적 사용법이 더욱 두드러지게 되는 셈이다. 5. 시의 언어는 의사 소통을 위한 언어가 아니다   언어의 가장 중요한 기능인 ‘의사 소통’ ‘정보 전달’을 위해서는 위에서도 설명한 바와 같이 사회적 약속을 지켜 언어를 정상적으로 사용해야만 한다. 그러나 시는 이러한 언어의 정상적 사용법을 무시하고 깨뜨리고 왜곡한다. 따라서 시는 언어 구조물임에도 불구하고 일상의 언어와는 달리 의사 소통이나 정보 전달을 위해서는 그다지 효율적인 것이 아니다.다시 말해 의사 소통이나 정보 전달을 위해 시를 쓰는 일은 어리석은 일이다. 의사 소통을 위해서는 정상적 용법으로 가장 간명하게 표현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것이다. 그러나 시는 앞서도 설명한 바와 같이 의사 소통을 위한 효율적인 방법이 결코 아니다.그렇다면 시는 의사 소통이나 정보 전달을 할 수 없는 것일까? 시도 언어로 만들어진 것인 만큼 의사 소통이나 정보 전달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고 의사 소통의 목적을 위해 시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의사 소통이라는 목적을 달성하려고 할 때 시는 일상의 언어 수준으로 떨어지게 된다.의사 소통의 일반적 원리를 생각해보자. 의사 소통이란 발신자(말하는 이)가 어떤 ‘매체’를 사용하여 수신자(말 듣는 이)에게 ‘내용’을 보내고 수신자는 매체를 통해 받은 ‘내용’을 해독하는 일련의 과정이다. 이러한 의사 소통의 과정이 제대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발신자는 ‘내용’을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매체를 사용하여 수신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보내야 하고 수신자는 발신자가 매체를 통해 보낸 내용을 발신자가 의도한 내용대로 해독하여야만 한다. 만약에 발신자가 보낸 내용이 수신자가 해독하기 어려운 내용이라거나 또는 발신자가 보낸 내용을 수신자가 임의로 해석하게 되면 의사 소통은 실패하게 된다. 이러한 의사 소통의 일반적 원리를 시에 적용한다면 시인은 발신자, 시의 언어는 매체, 독자는 수신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그렇다면 의사 소통의 일반 원리에 따라 시인은 독자가 해독할 수 있는 방법으로 내용을 전달해야 하고 독자는 시인의 의도에 따라 시를 해석해야만 한다. 그러나 시는 이러한 의사 소통의 일반 원리를 따르지 않는다. 시인은 언어를 통해 어떤 세계를 창조하였고 독자는 시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시인이 창조해 놓은 세계를 해독할 뿐이다. 즉, 시인은 독자에게 어떤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시를 쓰는 것이 아니고 독자는 시인의 의도를 알기 위해 시를 읽는 것이 아니다. 시는 시인이 독자에게 보내는 ‘편지’가 아니다.   6. 시의 언어는 체험하게 하는 언어이다   일상의 언어와 시의 언어는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시의 언어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사용되는 언어가 그대로 시에 사용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시의 언어와 일상의 언어가 완전히 동일한 것은 아니다. 기능 면에서 두 언어는 차이를 보여준다.언어는 크게 보아 세 가지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정보 전달의 기능이고 둘째는 행위 요구의 기능이며 셋째는 체험의 기능이다.첫째 정보 전달의 기능은 일상의 언어가 가지고 있는 핵심 기능이라 할 수 있다. 정보 전달을 위하여서는 언어는 가장 간명해져야 하며 사전적 정의를 사용하는 것이 가장 간명하면서도 효과적인 정보 전달의 방법이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려고 한다고 하자. 사전에는 ‘사랑’을 ‘① 아끼고 위하는 정성스런 마음 또는 그러한 일 ② 남녀가 서로 정을 들이어 애틋하게 그리는 마음 또는 그러한 일’이라고 정의하고 있다.이렇게 사전적인 정의를 통해 그 개념을 전달하면 읽는 이나 듣는 이에게 가장 간명하면서도 분명한 개념을 전달할 수 있다. 그러나 정보 전달을 가장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이러한 설명의 방법은 한계를 가지고 있다. 설명의 한계로 먼저 우리의 감정이나 정서를 설명하는 데에는 따르는 어려움을 들 수 있다.앞서도 설명한 바와 같이 언어는 개개의 사물에 붙여진 이름이 아니라 사물의 공통되는 속성에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근본적으로 추상적일 수밖에 없다. 추상이란 ‘낱낱의 구체적인 사물에서 공통되는 속성이나 관계 따위를 관념적으로 뽑아낸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개개인의 감정 상태를 적확하게 표현해 보여주지 못한다.예를 들어 ‘사랑’하는 마음의 상태를 설명해보도록 하자. ‘나는 요즈음 A를 사랑하게 되어 마음이 기쁘고 즐겁다.’라고 설명을 한다고 해서 사랑하는 마음의 상태를 상대방에게 모두 전달할 수는 없다. 열 명의 사람이 있으면 열 명의 사람은 모두 사랑하는 마음이 같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열 명이 지닌 각각의 사랑을 ‘구체적, 개체적’이라고 한다면 그 구체적이고 개체적인 ‘사랑’이 지닌 공통의 속성 즉, ‘서로 정을 들이어 애틋하게 그리는 마음’이라는 관념을 뽑아낸 것이 바로 ‘사랑’이라는 추상적 언어인 셈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일상의 언어는 나의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사랑을 있는 대로 모두 다 표현해 낼 수는 없다.둘째는 말하는 이가 말 듣는 이에게 어떤 ‘행위를 요구하거나 유도’하기 위한 기능이 있다. 그러나 그 행위를 실행하느냐 하지 않느냐는 어디까지나 듣는 이의 ‘의지’에 달려 있다. 다른 사람을 설득하기 위하여, 설득하여 행동하게 하기 위하여 씌어지는 글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글들을 읽은 이들이 그 글에 설득당하거나 감동하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으며 간혹 그 글에 감동하여 그 글이 요구하는 어떤 행위를 실행에 옮기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그러나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이러한 언어 행위는 읽는 이의 ‘의지’라는 장애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인간들은 서로 사랑해야만 한다. 사랑은 인간들에게 주어진 최대의 사명이다. 그러므로 우리 서로 사랑하자.” 라고 말한다고 해서 사랑할 수 있게 된다면 이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워질 것인가?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개인 모두는 개체적인 의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행위 요구나 유도 지향의 언어는 그 목적을 실현하기가 쉽지 않다.이러한 면에서 보자면 시의 언어는 정보 전달이나 행위 유도를 위해서는 그다지 좋은 방법이 아니다. 그렇다면 시의 언어는 어떤 기능을 하는 언어인가?먼저 다음에 있는 시 한 편을 읽어보자. 당신 곁에 머물면화상(火傷)을 입고. 당신 곁을 떠나면동상(凍傷)에 걸린다. 아나벨리 내 사랑. 아아, 불 ―이세룡의 「아나벨리」 이 시는 ‘사랑’을 ‘불’의 속성에 비유하여 시화하고 있다. 이 시를 통해 시인은 독자들에게 ‘당신 곁에 머물면 火傷을 입고 당신 곁을 떠나면 凍傷에 걸린다.’는 사실(정보)을 전달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그 사람 곁에 머물면 火傷을 입으니까 가지 말라거나 또는 사랑은 이렇게 좋은 것이니까 사랑을 하라.’는 행위를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이 시인이 ‘사랑’의 속성에 관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서 또는 ‘사랑’을 요구하기 위해서 시를 쓴 것은 결코 아니다. 이 시는 산문의 언어, 일상의 언어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사랑의 아이러니를 단 6행으로 표현해내고, 세계 어느 나라 사전에도 없는 ‘사랑’의 속성을 새롭게 말하고 있다.이처럼 시인은 언어를 가지고 기존의 ‘사랑’에 새로운 ‘이름’을 붙여줌으로써 ‘사랑’이라는 ‘존재’를 새로 태어나게 하고 있다. 그래서 시인은 사물의 새로운 면을 발견해내는 ‘발견자’이며 그러한 발견에 새로운 이름을 붙여 사물을 새롭게 존재하게 하는 ‘명명자’이기도 하다.따라서 우리는 이 시를 읽으며 ‘사랑’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존재’를 새롭게 또는 구체적으로 체험하게 된다. 정보 전달의 언어가 지닌 관념성이나 추상성을 극복하려는 시의 언어는 새로운 체험을 가능하게 한다. 시인은 시를 통해 일정한 사실을 전달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시를 통해 우리에게 새로운 체험을 가능하게 해준다.그러므로 시는 언어를 통해 언어가 지닌 추상의 세계를 극복하고 구체화한다. 이해의 대상은 될지언정 체험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추상의 세계를 구체적인 체험의 세계로 만들어 준다. 우리가 알고 있었던(이해하고 있었던) ‘사랑’은 ‘남녀가 서로 정을 들이어 애틋하게 그리는 마음 또는 그러한 일’이지만 우리의 구체적인 사랑을 만족시켜주는 설명이 아니기 때문에 계속해서 대상을 추상적인 세계에 머물러 있게 한다. 그러나 위의 시에서 보듯 한 시인에 의해 ‘사랑’은 새롭게 존재하게 되었고 우리는 시인에 의해 창조된 새로운 사랑을 만나게 된다.그렇다면 체험이란 무엇인가. 체험이라는 것은 구체적인 대상과 만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감각 기관을 통해 대상과 만나게 되고 그 대상에 대한 인식을 갖게 되는데 이를 ‘지각’이라고 하며 이러한 지각을 통해 대상을 체험하게 된다. 또한 대상을 지각하게 될 때 우리는 마음이 움직이는 어떤 느낌(감정)을 갖게 되기도 하고 이성적 사유를 하기도 한다.우리는 살아가면서 수없이 많은 체험들을 하게 된다. 그러나 동일한 체험들이 반복되면서 체험의 대상들에 대해 무감각해지기 마련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늘상 만나고 있는 사물에 대하여 점차 무감각해지고 있다. 이러한 습관적이고 무감각해진 삶을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은 ‘자동화된 삶’이라고 말한다. 자동화된 삶 속에는 감동이 있을 수 없다. 어떠한 느낌도 주지 못하는 체험, 그 체험은 이미 체험으로서의 가치를 잃고 만 것이다.이렇듯 일상의 반복되는 체험은 우리의 삶을 무감각하게 하고 있다. 그러나 시는 우리들의 잃어버린 감각을 되살려 줄 수 있어야 하고 대상과 삶을 새롭게 체험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새로운 체험이야말로 시를 시답게 해주는 가장 중요한 요건이라 할 수 있다.‘사랑’이란 ‘남녀가 서로 정을 들이어 애틋하게 그리는 마음 또는 그러한 일’이라는 것을 이해시키기 위해 시를 쓰는 것도 아니고 여름에는 나무가 푸르고 가을에는 낙엽이 진다는 사실을 알리거나 내가 실연을 해서 슬프다는 사실을 독자에게 알리기 위해서 시를 쓰는 것도 아니다. 시는 무디어져버린 우리의 감각을 되살려주고 느낌이 사라져버린 우리의 삶을 새롭게 해주지 않으면 안 된다.시는 이렇게 우리의 삶을 그리고 세계의 사물을 새롭게 지각하고 체험하도록 해주어야 한다. 시인은 언어를 가지고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낸다. 시의 언어가 새로운 세계를 존재하게 한다. 우리는 시의 언어가 새롭게 존재하게 해준 세계를 만남으로써 현실에서는 체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계를 체험하게 된다. 시는 기존의 삶을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삶을 느끼게 해주려는 것이다.       출처 : 나는..영혼을 적시며 서있다  |  글쓴이 : 푸른하늘저편 원글보기 [출처] 시의 언어는 어떤 언어인가|작성자 최진연    
1078    시와 예술, 그리고 신화 -유승우 댓글:  조회:1074  추천:0  2020-11-11
시와 예술, 그리고 신화                             유 승 우   1. 시란 무엇인가     시는 무엇이며, 시를 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것은 시에 대한 정의의 문제이며, 시에 대한 본질적 문제이다. 그런데 시의 개념과 시에 대한 정의는 고정 불변한 것이 아니라 시대의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다. 시, 곧 문학의 관점과 정의는, 시는 세계를 모방한 것이라는 관점(모방설-아리스토 텔레스), 작품이 독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초점으로 하는 관점(실용설-호라시우스), 작품을 예술가인 시인 자신의 표현으로 보는 관점(표현설-워즈 워드),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작품 그 자체에 초점을 두는 관점(객관설-신 비평) 등에서1) 보는 바와 같이 시대적 상황에 따라 변화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어떠한 시대적 상황에서도 변화할 수 없는 시에 대한 개념이나 정의가 있다. 시라는 말의 어원에 의한 개념이나 정의는 동서를 막론하고 변함이 없다. 이것이 바로 시에 대한 본질적 문제이다.   나는, 이 글에서 어원에 의한 시의 정의를 고찰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하여 시의 내용적 정의와 형식적 정의를 시도함으로써 시 창작의 이론과 실제의 문제를 밝혀보고자 한다. 시의 내용적 정의는 ‘시는 무엇을 쓰는 것인가’라는 문제이며, 시의 형식적 정의는 ‘시는 어떻게 쓰는 것인가’라는 문제이다. 이제까지는 시의 정의와 같은 것은 이론의 측면이고, 시 창작 곧 시를 쓰는 것은 기능의 문제라고 하여 서로 관련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에 대한 이론은 시 창작과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시의 이론은 오히려 시 창작에 방해가 될 뿐이라고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시의 이론은 대학에서 연구하는 것이고, 시인은 시를 쓰는 기술자이면 된다는 생각이 만연하게 된 것이다.                시인은 시를 쓰는 기술자가 아니며, 또한 시를 떠난 이론의 연구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시의 이론이 시인의 생리가 되고, 시를 쓰는 것이 바로 시인의 삶 자체가 될 때, 시가 사람의 삶 속에서 생기를 얻게 될 것이다. 우리의 삶, 곧 존재 자체가 바로 시이며, 시를 쓰는 것이 바로 우리의 살아가는 것이 될 때, 인생은 아름다운 것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한 첫 걸음의 디딤돌이 되고자 하는 것이 이 글을 쓰는 목적이다.     2. 시는 언어(言語) 예술이다     시는 언어(言語) 예술이다. 그러면 예술이란 무엇인가. 예술(藝術)의 ‘藝’자를 자전에서 ‘種也’라 풀이하고, ‘種’의 뜻은 ‘씨앗’과 ‘심다’라고 했다.2) ‘씨앗’ 곧 종자란 무엇인가. 생명의 씨눈이 잠들어 있는 집이다. 이 씨앗을 심어서 그 속에 잠들어 있는 생명의 잠을 깨우고 자라게 하여,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하는 기술이 곧 예술인 것이다. 그래서 예술에는 반드시 그 열매인 ‘작품’이 있어야 한다. 이 열매인 시작품에서, 언어는 시적 생명의 씨눈이 잠들어 있는 종자이다. 그러면 언어(言語)에서 씨눈에 해당하는 부분은 무엇인가. 그것이 바로 말씀(言)이다.   이 말씀(言)은 마음을 들을 수 있게 한 것이며, 글(文)은 마음을 볼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런데 말씀(言)이 글(文)보다 먼저이다. 이 말씀이 어떻게 쓰이느냐에 따라서 말(語)이 되기도 하고, 시(詩)가 되기도 한다. 말씀(言)이 관청(寺)에3) 바쳐지면 시(詩=言+寺=poetry)가 되고, 나(吾)를 위해 쓰여지면 말(語=言+吾=language)이 된다. 관청에서 가장 높은 곳엔 천자 곧 하늘의 아들이 있다. 그러므로 제정 일치 시대에는 관청이 곧 신전이다. 그러니까 말씀이 관청에 바쳐진다는 것은 신과 하나가 되는 것이며, 원래의 제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다. 제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말씀(言)과 시(詩)는 같은 것이다. 그래서 언어(言語)처럼 언시(言詩)라는 말은 쓰지 않는다. 말씀은 곧 신이며, 말씀이 곧 하나님이기 때문이다.4) 처음에는 말씀(言)이 곧 신이며 마음이므로, 사람의 마음이 신과 함께 있는 ‘言=神’의 모습 그대로였다. 에덴동산에서는 아담과 이브의 마음이 곧 신의 마음이었다. 그런데 이 신(神)의 자리에 내(吾)가 끼어 들면서, 말씀은 그 본래의 생기인 신성(神性)을 잃고, 인간 상호간의 의사소통의 도구인 말(語)로 추락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일상어이며, 본래의 생기가 죽은 말인 것이다. 생기가 죽었다는 것은 살아 있는 기운이 잠들었다는 것이지, 생명이 끊어졌다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언어(言語)가 된 것이다. 언어는 말씀(言)과 말(語)이 함께 사는 존재의 집이다. 그래서 언어는 시의 종자이다. 이를테면 번데기나 식물의 씨앗과 같은 것이다. 이 번데기나 씨앗과 같은 언어에다 따뜻함 곧 사랑을 불어넣고, 다시 말해 신(神)을 불어넣으면 시가 태어난다. 예술이란 원래 생기와 신을 불어넣어 생명의 잠을 깨우는 기술이다.   시의 종자인 말(言語)에서 생명의 씨눈은 말씀(言)이다. 이 씨눈을 싹틔우려면 이 씨눈을 잠들게 한 나(吾)를 죽여야 한다. 언어라는 집에서 나(吾)를 내쫓고 그 자리에 신의 아들(天子)을 들이면 시(詩)가 된다는 것이다. 관청은 곧 신의 아들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관청은 곧 신전인 것이다. 로마에서도 주(主)라는 영어단어를 소문자로 ‘lord’라고 쓰면 노예가 자기 주인을 가리키는 말이고, 대문자로 쓰면 황제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것은 말씀을 신에게 바치면 시가 되고, 나를 위해 쓰면 말(言語)이 된다는 의미다. 다시 말해서 신과의 대화는 시가 되며, 사람과의 대화는 언어가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씀은 곧 신이며 마음이므로, 사람의 마음이 신과 교감하면 시가 되고, 사람이 서로 의사소통을 하게 되면 언어가 된다는 말이다. 그리스에서도 시는 신탁(神託)이라고 해서, 신의 뜻을 전하는 사람이 시인이라고 했으며,5) 공자도 술이부작(述而不作)이라고 해서 그냥 뜻을 받아 진술할 뿐 자기가 짓지 않는다고 했고,6) 구약성경에서도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전할뿐 자신의 생각을 보탤 수 없었다. 그래서 서정시를 ‘신과의 대화’라고 정의하는 것이다.   말씀으로 천자를 섬기면 시인(詩人)이 되지만, 몸으로 천자를 섬기면 또 다른 시인(侍人)이 된다. 몸으로 천자를 섬기려면 궁중 안에 있어야 함으로 내시(內侍)가 된다. 천자도 남자이고 내시도 남자이지만, 내시는 자신의 남성을 거세해야 한다. 이것은 주(主)를 모시기 위해서는 나는 죽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시가 천자를 속이고 권세를 잡으면 나라가 망한다. 천자가 하늘의 뜻을 어기고 하늘 자리에 앉으면 우상이 되고, 이 우상이 바로 용(龍)이다. 용은 신의 소리를 듣지 못한다. 들으려 하지 않는다. 하늘에 올라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용은 귀머거리다. 용(龍)의 귀(耳)는 귀머거리(聾)가 될 수밖에 없다. 누구나 자기를 죽이지 않으면 신의 음성, 곧 진리의 소리를 듣지 못한다. 신은 무엇인가. 마음으로 느껴야 하는 어떤 무엇이다. 마음의 눈으로 보아야 하고, 마음의 귀로 들어야 하는 것이 신의 소리다. 여기서 참고로 관청 시(寺) 자가 어떻게 절 사 자가 되었는지를 알아보면, 후한(後漢)의 명제가 백마에 불경을 싣고 인도에서 돌아온 마등과 축법란 두 스님을 귀빈 접대 관청인 홍려시에 머물게 했다가 낙양성 교외에 그들을 위한 거처를 짓고 백마시라고 했는데 이것이 중국 최초의 절인 백마사가 되었다고 한다.7)              사람에게 처음 주어진 것은 마음(心)이며, 이 마음이 밖으로 흘러나온 것이 말씀(言)이다. 그러니까 말씀이 시(詩)가 되든지 아니면 언어(言語)가 되든지 하는 것은 순전히 그 마음에 달렸다. 그래서 휠더린은 “그러므로 모든 재보(財寶) 가운데 가장 위험한 재보인 언어가 인간에게 주어졌다. -인간이 자기가 스스로 무엇인가를 증시하기 위해---”8)라고 했다. 사람에게는 마음이 주어졌고, 그 마음의 씀인(用) 언어가 주어졌다. 이 언어가 나를 위해 봉사하면 죽음을 지향하게 되고, 신에게 바쳐지면 시가 된다고 하겠다. 그래서 가장 위험한 재보인 것이다. 어쨌든 인간은 스스로 무엇인가를 증시(證示)해야 한다. 왜냐하면 사람은 ‘없음(無)’이며, ‘0’이기 때문이다. 마음이 주어졌기 때문에 ‘없음’이 되고, ‘0’가 된 것이다.   싸르트르는 자의식 곧 마음을 가질 수 없는 모든 존재(물체와 생물)를 ‘즉자(卽自․en-soi)’라 하고, 자의식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을 ‘대자(對自․pour-soi)’라고 부른다. 사람은 의식 곧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없음(無․neant)’이라고 한다는 것이다.9) 이 ‘없음’에서는 ‘있음’이 되고자 하는 지향성이 있기 마련이며, 이 지향성이 곧 욕구가 되는 것이다. 모든 생물에게는 그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본능이 주어졌다. 물론 사람에게도 본능이 주어졌다. 그리고 그 위에 사람에겐 마음이 더 주어졌기 때문에 본능의 욕구 위에 마음의 욕구가 더 있게 된 것이다. 이 마음의 욕구를 우리말로 옮기면 ‘그리다’가 될 것이다.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Erich From)은 이 욕구를 소유(to have)에의 욕구와 존재(to be)에의 욕구로 나누고 있다.10) 소유에의 욕구는 ‘욕심(慾心)’이라고 할 수 있으며, 존재에의 욕구는 ‘꿈’이나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사람이 밥이나 옷을 주지 않는 즉 소유에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지 않는 시를 버리지 못하는 것은 꿈과 사랑, 즉 존재에의 욕구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은 존재 일반의 단순한 일부에 지나지 않지만 존재 일반도 사람에 의해서만 밝혀질 수 있기 때문에 사람을 가리켜 ‘존재의 목자’라고 하이데거는 말한다. 그런데 그 목자도 말이 없이는 그가 할 일을 다할 수 없다. 그래서 결국 말은 ‘존재의 집’이라는 것이다. 말로 표현되지 않은 것은 ‘의식되어 졌다’고 할 수 없으며, 의식되어지지 않은 것은 어둠 속에 갇혀 있다고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캄캄한 어둠 속에 던져져 있기 때문에 자신의 실존을 비롯하여 존재 일반에 대해서도 캄캄한 무지 속에 묻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은 의식 곧 마음이 있기 때문에 물체나 생물처럼 어둠 속에 버려진 채로 묻혀 있을 수는 없다. 빛을 캐내어 나의 실존도 비추어 밝혀야 하고, 모든 존재 일반에 대해서도 그 모습을 밝혀 드러내야 한다. 이러한 의무를 진 사람을 가리켜 ‘존재의 목자’라고 하며, 이러한 사람에게만 ‘위험한 재보(財寶)인 말’이 주어졌던 것이다.11)   사람은 말(言語)로써만 어둠에서 벗어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무언가를 증시(證示)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말을 ‘소유의 욕구’로 쓸 때엔 오히려 더욱 더 어둠 속에 묻히게 된다. 그래서 말을 위험한 재보라고 하는 것이다. 말은 어떤 목적을 위해 쓰는 수단이나 기호가 아니라 어둠에서 빛을 피워 내는 존재 그 자체가 될 때 재보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말을 ‘본질적 언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일상적인 언어는 ‘비본질적 언어’이며, 시는 ‘본질적 언어’가 되는 것이다. ‘비본질적 언어’인 ‘외연적 의미(denotative meaning)’의 말이 시인의 가슴속에서 그 일상성이 죽고, ‘본질적 언어’인 ‘내포적 의미(connotative meaning)’의 말로 다시 태어날 때 그것이 바로 시가 되는 것이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언어에서 내(吾)가 죽어야 시로 환생하는 것이다. 언어에서 말씀(言)은 곧 언어 속에 잠들어 있는 씨눈이다. 이 씨눈이 시인의 가슴에서 싹이 터서 시의 나무로 자라게 되는 것이다. 시인의 가슴은 정서(emotion)의 도가니이기 때문에 꿈과 사랑이 끓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꿈과 사랑이 끓고 있는 것은 ‘의식의 지향성’ 때문이며, ‘존재에의 향수’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사람이 되고자 하는 욕구이며, 이 욕구가 동사로 표현될 때 ‘그리다’가 되는 것이다.   이 ‘그리다’라는 말은 사람이 되기 위한 유일한 길이다. 이 길을 통하지 않고는 사람은 언제나 ‘없음(無)’에 머물러 있어야 하며, ‘0’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다. 인간의 본질이 ‘없음’이기 때문에 ‘그리다’가 아니면 ‘0’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이 ‘그리다’라는 말의 한자어는 상상(想像)이다. 상상의 뜻은 어떤 모습을 생각한다는 것이다. 고아가 부모의 모습을 생각하는 것도 ‘그리다’이고, 애인이 없는 사람이 애인의 모습을 생각하는 것도 ‘그리다’이다. 그러니까 ‘그리다’라는 동사는 ‘없음’의 상태를 느꼈을 때 활동을 시작한다. 사람은 원래 ‘없음’이기 때문에 아무 것도 아니다. 이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이 무언가가 되기 위해 움직이는 것이 바로 ‘그리다’이다. 이 마음의 움직임이 손을 통해 눈에 보이는 모습을 만들었을 때 ‘그림’이 되고, 마음속으로만 그리고 있으면 ‘그리움’이 된다.      그는 그리움에 산다. 그리움은 익어서 스스로도 견디기 어려운 빛깔이 되고 향기가 된다. 그리움은 마침내 스스로의 무게로 떨어져 온다. 떨어져 와서 우리들 손바닥에 눈부신 축제의 비할 바 없이 그윽한 여운을 새긴다.                                       -金春洙 〈능금Ⅲ〉 전문     이 작품은 시로 된 시론이면서 또한 존재의 원리를 시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 존재의 본질로서 김춘수는 ‘그리움’을 제시한다. 모든 시작품은 이 ‘그리움’의 성육(成肉 : incarnation)에 지나지 않는다. 시인은 그리움을 가지고 존재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기다리는 사람이다. 상상력(imagination)이란 에너지가 정서의 도가니에 열을 가해 꿈과 사랑을 끓일 때 반짝이는 빛이 ‘그리움’인 것이다. ‘그리움’은 존재를 지키는 등대이며, 시인은 그 등대지기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꿈과 사랑이 끓고 있는 시인의 가슴속에서 일상의 언어, 즉 때묻은 말은 허물을 벗게 되는 것이다. 허물을 벗으면서 존재는 개명되는 것이다. 이리하여 시인의 가슴속에서 ‘그리움’은 존재의 목소리인 ‘빛깔과 향기’를 가진 새로운 말의 수육(受肉 : incarnate)되어 시로 탄생하는 것이다. 시는 바로 그리움의 성육인 것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이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香氣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金春洙 〈꽃〉 전문     꽃은 시인이 이름을 불러 주기 전까지는 하나의 몸짓에 불과했다. 어둠 속에 묻혀 있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이었다. 시인의 그리움에 성육된 말을 통하여 살아 있는 눈짓이 되는 것이다. ‘나’도 어는 누구의 그리움에 성육이 되기 전까지는 보통명사인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이다. 그래서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주길 기다린다. 그리하여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은” 것이다.   사람은 사람에게만 주어진 마음으로 해서 그리움이라는 의식의 병을 앓고 있다.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생각 있음의 존재이며 그리움의 존재일 수밖에 없다. 가슴속에서 꿈과 사랑이 뜨겁게 끓고 있는 정서의 도가니가 있기 때문에 시에서 떠날 수도 없고 시를 버릴 수도 없다. 사람은 ‘이성의 동물’이라기보다 ‘정서의 동물’이라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사람은 ‘정서의 동물’이기 때문에 시를 떠나서 존재할 수 없다. 시를 떠난다는 것은 사람임을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서의 동물’인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시의 나라의 백성일 수밖에 없다. 정(情)이란 무엇인가. 정(情)은 마음(忄)이 푸르게(靑) 살아 있는 것이다. 육체가 살아 있는 것만으로는 동물적인 차원에 머무는 것이다. 마음이 살아야 사람이란 아름다운 이름을 가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음이 살아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마음은 영혼의 다른 표현이며, 영혼은 사람 속에 자리한 신(神)이다. 그러므로 마음이 살면 영혼이 살고, 영혼이 살면 신과의 교감이 이루어진다. 영혼이 신과 교감하는 것을 영감(靈感)이라고 한다.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영혼과 육체를 갈라서 말하는 이원론은 아니다. 육체나 영혼이나 살아 있는 것은 느낌(感)이 있어야 한다. 육체의 느낌은 육감(肉感)이며, 영혼의 느낌은 영감(靈感)이다. 마음이 살아 있는 것으로 표현하면 정감(情感)이지만, 영혼이 살아 있는 것으로 표현하면 영감이다. 그러니까 정감이나 영감은 ‘그리다’라는 동사가 활동하는 단서가 된다. ‘그리다’가 활동을 시작하면 나(吾)는 죽게 되고, 내가 있던 자리에 신(神)이 자리해서 신과의 교감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 때부터 시의 나라가 건설된다. 육체가 죽는 것은 죽을 사(死) 자로 표현하고, 영혼이 죽는 것은 망할 망(亡) 자로 표현한다. 육체가 사는 것은 살 생(生) 자로 표현하지만 영혼이 사는 것은 흥할 흥(興) 자로 표현한다. 그런데 영혼이 살 수 있는 길은 시의 나라에만 있다.12) 시의 나라는 신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제정 일치 시대에는 관청이 곧 신전이라고 앞에서 말했다. 이곳에서만은 신과의 교감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 신과의 교감이 시(詩)를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시에서 영혼이 살고, 영혼이 살면 영혼의 감각이 살게 되어 신과의 교감이 이루어진다. 시는 곧 신과 만나는 길이며, 신과 통하는 길인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 관청에는 신이 없다. 인간만이 살아서 서로 다투고 있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며, 관청은 그 사회의 중심이다. 이 관청을 중심으로 사회는 활성화된다. 여기서 활성화의 활(活)은 육체의 삶인 생(生)과 영혼의 삶인 흥(興)이 합작해서 만들어 가는 삶이다. 그러니까 활(活)은 곧 ‘몸’의 삶이다. 인간의 사회에는 특히 관청에는 영혼의 삶인 시와 나의 삶인 언어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시는 없고 언어만 있다는 말이다. 육체는 죽으면 썩는다. 영혼도 죽으면 썩는다. 그것을 부패라고 한다. 오늘의 관청이나 사회가 부패한 것은 시가 없고 언어만 있기 때문이다. 시가 살아야 관청이 살고 사회가 산다는 말이다.      3. 시는 신화이다     ‘시는 神話이다’라는 말은 시의 내용적 정의이다. 시의 내용, 즉 시는 무엇을 표현한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이다. 그러니까 시의 내용은 ‘神話’라는 것이다. 여기서 필자는 神話의 의미를 밝혀야 할 필요를 느낀다.  그러면 신화는 무엇인가. 신화는 글자 그대로 ‘신들의 이야기’ 혹은 ‘신과의 대화’이다. 그런데, “지금은 ‘신들의 황혼’도 훨씬 지난 신들의 밤의 시대, 신들을 위해 떠오를 해가 없는 세기(世紀).”13)라는 인간들의 세기에 신들의 얘기를 하자는 것이다. 이 인간들의 세기에 대해 토마스 만은, “합리주의란 현대인이 행하는 자기 억제의 속물적 표현이다.”라고 했다.14) 그리고 이어서 토마스 만은, 자신의 신화에 쏠리는 관심을 ‘흔들리는 배의 균형 잡기’에다 비유했다. 신화적 세계가 대표하는 초 합리와 과학이 대표하는 합리 사이에 형평을 유지하려는 것을 인간들이 지닌 충동 내지 본능이 빚은 결과로 보는 것이 토마스 만의 ‘균형의 이론’이라는 것이다.15) 그렇다. 현대는 아무리 봐도 신(神)들을 위해 떠오를 해가 없는 시대다. 균형이 맞지 않는 시대다. 땅의 시대이며, 육체의 시대이며, 물질의 시대이다. 육체는 죽었다가 살아날 수 없다. 그러나 영혼은 죽지 않고 잠든 상태이기 때문에 다시 깨울 수 있다. 현대는 신이 죽은 시대가 아니라 잠든 시대다. 신은 무의식 속에 잠들어 있다. 언어 속에 말씀(言)으로 잠들어 있다. 이 말씀을, 이 시의 씨앗을 싹틔우면 신이 깨어나 신화의 세계가 열린다. 그러면 신화(神話)의 의미는 무엇인가. 신화 연구가들에 의하면 다음의 세 가지로 풀이된다.     ① 신들의 이야기  ② 신과의 대화  ③ 신의 말씀     위의 세 가지 신화의 의미 중에서 시의 내용이 되는 것은 ②번의 ‘신과의 대화’이다. 오늘날에는 시라고 하면 서정시만을 가리키는 말이 되므로 ‘신과의 대화’는 곧 서정시에 대한 정의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①번의 ‘신들의 이야기’는 신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펼치는 이야기로서 그리스․로마 신화 같은 것을 말한다. 이것도 시의 내용이긴 하지만 서사시와 극시의 내용인 것이다. 오늘날의 소설과 희곡에 대한 정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신들의 이야기’는 결국 ‘사람들의 마음의 이야기’로 귀결되는 것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도 실은 사람들의 마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리고 ③번의 ‘신의 말씀’은 종교적 차원의 의미이다. 그러니까 시는 다시 말해서 서정시는 ‘신과의 대화’를 내용으로 하는 것이다.   ‘신과의 대화’가 시의 내용이라면, 시인은 신을 만나서 신의 말씀을 들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여기까지는 시인과 종교인은 같은 차원이라고 할 수 있다. 종교인은 신의 말씀을 듣고, 신의 뜻에 순종하고, 신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시인(詩人)이 아니라 시인(侍人)과 같은 것이다. 그런데 시인(詩人)은 신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다시 자신의 말로 표현해야 한다. 그러니까 시인의 표현은 신에게 보내는 회답이다. 그래서 시를 ‘신과의 대화’로 정의하는 것이다. 이 ‘신과의 대화’를 가리켜 시적 영감이라고 말한다. 그리스 시대에는 시를 신탁(神託)이라고도 했다. 신이 사람을 매개로 해서 그의 뜻을 나타낸다는 의미이다. 시인은 신과 대화하는 사람인 것이다.     詩神의 詩觀은 詩를 인간에 의한 것이 아니라 신에 의한 것으로 보았다. 詩로써 神(Muses)과 인간은 通話를 한다고 보았다. 그 通話의 通路가 바로 靈感(inspiration)이었다. 詩神에게 靈感은 시인을 부르는 것이었고 詩人에게 靈感은 부름에 응함이었다. 詩神의 부름과 詩人의 응함을 가능하게 했던 靈感은 神의 목소리를 듣는 귀였고 읊는 입이었던 셈이다.16)      이것은 그리스 시대의 ‘詩神의 詩觀’에 대한 설명이다. 이러한 관점에 의해, 오늘날 예술(Art)로 번역되는 그리스의 용어인 Techne를 ‘황홀함의 양식(a mode of ecstasis)’ 또는 ‘언제나 새로운 것을 보는 양태(a pattern of looking beyond whatever is already given at any time)’로 보기도 한다.17) 이것은 신화의 신비성을 인정하지 않는 이성적인 견해이다. 신이 사람 속에 들어오면 영혼이 되고, 이 영혼의 작용이 마음으로 나타난다. 어쨌든 언어가 시가 되기 위해서는 언어(言語)에서 내(吾)가 죽어야 한다고 했다. 내가 죽어야 신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가 열린다. 다시 말해서 신의 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입신의 경지를 의미한다. 입신의 경지가 바로 황홀함이며, 한자로는 흥(興)이다. 대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듣는 것이다.     신의 소리를 듣는 데까지는 시인이나 종교인이나 같다. 그런데 종교인은 신의 말씀에 대한 회답을 몸으로 하고, 시인은 언어로 한다. 신의 말씀에 대한 회답으로서의 언어, 이것이 곧 언어 예술이다. 신의 말씀은 지식이 아니다. 느낌으로 전해 오는 살아 있는 말씀이다. 이 살아 있는 말씀에 대한 회답도 살아 있는 언어라야 한다. 살아 있는 언어를 만드는 것이 곧 언어 예술이다. 예술이란 생명(藝)을 살리는 기술(術)이란 뜻이라고 앞에서 밝힌 바 있다. 또한 시인이란 뜻의 영어인 ‘poet’은 만드는 사람(maker)이란 뜻이다. 살아 있는 언어를 만드는 사람 곧 창조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그리고 시를 우리말로는 노래라고 하는데, 노래는 ‘놀+애’라는 구조로 되어 있다. 놀이도 원래 ‘놀+이’의 구조라고 한다. 그런데 ‘놀’이라는 말이 ‘神’의 의미라고 한다. 그래서 노래는 ‘神樂’의 의미이며, 놀이는 ‘神遊’의 의미라고 한다.18) 서정시는 원래 시가(詩歌)이다. 그러니까 시와 노래는 사람의 영혼이나 마음, 곧 사람 속에 있는 신(神)이 살아서 나오는 것이다. 이것을 워즈워드는 강한 느낌(powerful feeling)의 자발적 유로(spontaneous overflow)라고 했으며, 한자로는 흥(興)이라고 하고, 그리스의 ‘techne’에서 말하는 ‘황홀함’이라 하는 것이다. 마음은 영혼의 나타남이며, 영혼은 곧 사람 속에 있는 신이다. 이 마음이 신과 만나서 교감(交感)할 때 이를 영감이라 하며, 영감에 의해 시가 탄생하고, 거기서 마음이 살아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이러한 상태를 ‘神난다’라고 한다.   사는 것의 반대는 죽는 것이다. 땅에서 온 물질인 육체가 물질의 모체인 자연과의 교통이 이루어져야 살 수 있듯이, 영인 마음도 영의 모체인 神과의 교감이 이루어져야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신과의 교감, 마음과 마음과의 교감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어떤 사람이 시를 낳게 되며 어떤 사람이 시인이 될 수 있는가. 흔히 시를 가리켜 체험이라고 한다. 그런데, 체험을 정의해서, ‘남은 못 보는 것을 나만이 보고, 남은 못 듣는 것을 나만이 듣는 것’이라 하고, 또는 ‘경험+사랑=체험’이라고도 한다. 이러한 체험을 하려면 누구보다도 가슴이 뜨거워야 한다. 뜨거운 사랑이 없이는 경험에 그치고 말며, 체험은 할 수 없다는 말이다. 마음속으로 ‘그리는 것’이 많아야 한다. 마음속으로 그리는 것은 ‘그리움’이며, ‘사랑’인 것이다. 문학적 용어로는 ‘상상(想像)’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상상이란 말을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어떤 모습(像)을 생각한다(想)’이다. 그러니까 상상을 우리말로는 ‘그리다’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리다’의 작용은 반드시 있어야 할 사랑의 대상이 없을 때 작동하는 것이다. 사람은 사람으로서의 성을 하늘로부터 명부 받았다고 한다.19) 그런데 남성은 남성만을, 여성은 여성만을 하늘로부터 명부 받았기 때문에 남성에겐 여성이 없고, 여성에겐 남성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남성은 여성을, 여성은 남성을 그리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리다’의 원리이며, 시 창작의 원리가 되는 것이다. 상상력이 활발하게 움직일 때, 다시 말해서 가슴이 뜨거울 때, 사람은 신을 만나서 교감하게 되고, 남은 못 보는 것을 보게 되며, 남은 못 듣는 것을 듣게 되는 것이다. 이를 가리켜 ‘신과의 대화’라고 하는 것이다. 신의 음성은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듣는 것이며, 가슴으로 듣는 것이다. 시인은 뜨거운 가슴으로 모든 사물 속에 숨어 있는 신의 이미지를 보고, 그 음성을 듣는 시적 체험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 체험만으로는 시인이 될 수 없다. 이 체험을 살아 있는 언어로 만들어서 회답을 보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시인의 특권이며 또한 시인에게 주어진 십자가이기도 하다. 시를 낳지 못하는 시인은 그 영혼이 죽은 망(亡)한 시인이기 때문이다.   현대는 신을 위해 떠오를 해가 없는 시대라고 한다. 불균형의 시대라고 한다. 하늘과 땅, 영혼과 육체, 빛과 그늘, 아버지와 어머니, 이것이 균형을 이루어 잘 어울릴 때, 이 세상은 아름다운 세상이 된다. 이 말은 불균형이 해소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땅에 산다. 그래서 하늘을 그려야 하고, 영혼의 삶을 그려야 하고, 빛과 아버지를 그려야 한다. 다시 말해서 신과의 교감, 곧 영감에 의한 시를 써야 한다. 영감은 신의 소리를 듣기 위한 귀의 열림이다. 이 귀가 열려야 신탁이 이루어진다. 한국 민속에서는 이것을 ‘공수’라고 한다. 신에 접한 무당이 신의 말을 듣고 이를 옮기는 것이 ‘공수’이다. 시베리아의 샤먼은 그의 입무식(入巫式) 동안의 탈혼 상태에서 즉흥적인 시작(詩作)을 한다고 한다. 입신하여 있는 경지가 바로 창작하고 시작(詩作)하는 과정 그 자체인 것이다.20) 그러니까 시를 쓰고 있는 동안에는 신과 교감하고 있다는 것이다.   옛날에 시인이나 무당은 신의 소리를 듣고 그 소리를 제 멋대로 조작하거나 거역할 수 없었다. 종교성이 특히 강한 기독교의 예언자들은 더욱 그랬다. 왜 그랬을까. 그들에게 있어서 신은 절대이면서 진리이기 때문이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할 일이 없어서 심심풀이로 시나 써야지 하는 생각에서 시인이 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시인이란 이름은 사명 그 자체이며, 입무(入巫) 그 자체이다. 그런데 이것은 시인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옛날에는 지도자가 따로 있고, 시인이 따로 있었다. 그러나 현대에는 누구나 입무를 해야한다. 모두가 신화를 창조하는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옛날에는 황제만 신의 아들이었지만 지금은 모두가 신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황제만 주(主)였지만 지금은 모두가 주(民主)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시정신이다. 시를 쓰는 기술자로서의 시인이 아니라 시정신의 소유자로서의 시인이 되어야 한다. 신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져야 한다. 진리의 소리에 귀를 열 수 있어야 한다.   개체 생명도 늙으면 다시 어린애로 돌아간다고 한다. 동심의 세계로 돌아간다고 한다. 신과의 대화를 할 수 있으려면 신과 같아야 한다. 등신(等神)이 되어야 한다. 공동체 생명인 사회도 처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원시시대는 신화 시대다. 네 것도 없고, 내 것도 없는 때다. 내가 없는 말씀(言)만의 시대다. 시정신이란, 언어(言語)의 말(語)에서 내(吾)가 죽고 그 자리에 절대적인 공간(寺)인 신전을 세워 에덴으로 돌아가려는 마음가짐이다. T. 만의 말대로 불균형의 황무지에서 에덴을 꿈꾸는 마음과 노력이다. 황무지는 영적 죽음의 풍경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황무지에서 시의 나라에 대한 동경이나 에덴에 대한 향수가 곧 시정신이라는 것이다. 시정신은 곧 신과의 교감을 할 수 있는 마음의 자세다. 그런데 이런 마음의 자세는 종교를 통해서 만들어진다고 할 수 있다. 원시 종합예술 시대에는 종교와 예술이 한 자리에 있었으나, 예술이 분화되어 따로 나왔을 때에는 종교의 자리를 이성(reason)이 차지하게 되었다. 그 결과 현대 사회는 결국 종교의 멸종을 맞게 될 것이라고 하기도 한다.21) 그러면 인간 존재의 원형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은 없는가. 다시 말해서 황무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없는가. 이에 대해 조셉 캠블은, “신학처럼 권위의 말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 경험에 충실한 능력 있는 통찰, 감성, 사고, 비젼에서” 나오는 창작 신화에 의해서 가능하다고 했다.22) 창작 신화란 시작품을 일컫는 말이다.           이제 해답에 접근할 수 있게 된다. 창작 신화 곧 시작품을 통해 시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그리움’ 곧 사랑이란 에너지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여기서 문학의 3요소 중 첫째와 둘째인 정서와 상상력의 의미가 확실해진다. 정서는 살아 있는 마음의 덩어리로서 무언가가 되기 위해 머리를 내밀고 있는 상태이며, 상상력은 무언가의 모습을 그려 줄 수 있는 힘이다. 이 두 가지는 다 마음이 행할 수 있는 기능이다. 마음은 영혼에서 오고, 영혼은 신에게서 왔다. 살아 있는 마음을 통해 영감이 살아나고, 영감을 통해 신과의 교감이 이루어진다. 다시 말해서 마음을 통해 영혼으로, 영혼을 통해 신(神)에 이르게 된다. 그러면 그 과정은 어떠한가. 그 과정이란 신의 나라, 곧 신화의 마을인 시의 나라에 이르는 과정을 의미한다.   마음이 하는 일은 ‘생각하다’인데, 이 ‘생각하다’에는 크게 두 가지 방향이 있다. 그 첫째가 이성을 기반으로 하는 ‘사고(思考)’이며, 둘째가 감성을 바탕으로 하는 ‘상상(想像)’이다. 흔히 사고는 머리로 하고, 상상은 가슴으로 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마음의 주된 기능은 ‘상상’이라고 할 수 있다. 가슴이 곧 마음이며 심장을 뜻하기 때문이다. 이성을 기반으로 하는 사고력은 분석하는 힘이고, 감성을 바탕으로 하는 상상력은 종합하는 힘이라고 한다. 상상력을 통해 마음에서 영혼으로, 다시 영혼에서 신화의 나라에 이르는 과정을 재구하여, 처음 신화의 나라에서 쫓겨나 황무지에 이르게 되는 과정을 느낄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창작 신화의 기능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캠블은 상상력으로 종합하여, “생성되는 것은 사물(死物)이 아니라 생명이다. 될 것이나 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또 되었던 것이나 전혀 되지 않을 것이 아니라, 안과 밖에, 지금 여기에, 깊음 속에, 과정 속에 있는 것이다.”23)라고 한 것이다. 이성을 바탕으로 하는 사고력에 의해 과학이 발달했다. 이러한 바탕 위에서 실험적 진실만이 진리이며, 인간 체험이라는 공통 분모에 의해 이루어진 종교적 혹은 시적 진리는 허구나 착각이라고 무시되어버렸다. 과학은 이렇게 하여 종교나 시의 정신적 공화국의 위대한 독재자가 되었다.   인간이라는 의식이 성숙하기 이전의 사회에서는 그 언어 자체가 시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시인이다. 원시언어는 다 시라고 할 수 있다. 이 말은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이브가 주고받은 말이나 그들이 하나님과 대화한 것도 그 자체가 다 시라는 것이다. 원시언어는 리듬과 은유를 동시에 사용하는 신비의 측면이 있기 때문이며, 세려된 언어보다는 집단심성(community mind)을 더 직접적으로 표현하기 때문이라고 한다.24) 따라서 원시언어는 주술적 기능도 가지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주술적 기능이란 신과의 교감을 의미한다. 영혼이 살아야 신과의 교감이 이루어지고, 신과의 교감은 곧 집단심성의 표현이라면, 영혼의 죽음을 한자로 망할 망(亡)자로 쓰는 것이 타당하다. 망한다는 것은 집단 곧 공동체 생명의 죽음이기 때문이다. 공동체 생명의 첫 단계는 가정이고, 아직까지는 그 끝 단계가 국가이다. N. 프라이는, “신화는 심오한 공공의식의 표현이다. 이 때 공공의식은 과학자들 사이에서 문제되는 것처럼 지적 수준에서가 아니라 느낌과 행위와 삶의 전체의 일체감이다.”라고 했다.25)    이 가정과 국가는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면 누구나 그것에 소속되게 마련이다. 다시 말해서 나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다. 그러니까 집단심성의 표현인 원시언어란 나의 뜻인 내 마음이 생기기 이전의 언어다. 이 원시언어의 세계가 곧 신화의 세계이며 시의 나라인 것이다. 나(自我)라는 자의식이 눈뜨기 이전의 상태이기 때문에, 신화의 세계에는 공동체의식의 발로에서 일체감이 양식화되었으며, 이렇게 양식화된 일체감은 제의(祭儀)나 기도, 춤, 그리고 노래 등의 리듬으로 표현된다고 한다. 이 신화세계에서는 종교적 의식이 자유롭게 발달할 수 있어서 신비감이 모든 인식에 영향을 끼친다고 한다. 이러한 신비감은 신과 악마들이라는 다신교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고, 하나의 위대한 유일신으로 집중되어 나타나기도 한다는 것이다..26) 그런데 신화 시대에는 이 신비가 주로 외형적인 리듬으로 나타났는데, 현대에는 외형적인 운율의 정형시가 없어지고 내재율의 자유시가 되었다. 그렇다면 내재율이란 무엇인가.    나는 내재율을 글자 그대로 풀고 싶다. 그렇다면 내재율이란 ‘안에 있는 가락’이다. 이 ‘안’이 바로 마음이다. 가락 곧 리듬은 ‘살아 있음’을 뜻한다. 살아 있는 마음에서만 마음의 가락인 내재율이 울리게 되어 있다. 이것이 곧 영혼의 가락이며, 이 영혼의 리듬이 바로 신과의 교감이며, 한자로는 영혼의 삶을 뜻하는 흥(興)이 되는 것이다. 이 흥은 곧 신(神)이 살아나는 것이며, 신이 살아나는 것 곧 신이 날 때 노래와 춤이 나오는 것이다. 내재율은 오히려 시정신이라고 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러니까 자유시 곧 현대시는 외형률로 쓰는 것이 아니라 내재율 곧 마음의 가락으로 쓴다. 다시 말해서 신과의 교감으로 쓰는 것이다. 신과의 교감이란, ‘남은 못 보는 것을 보며, 남은 못 듣는 것을 듣는 것’이다. 마음의 눈으로 보고, 마음의 귀로 듣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내가 없는 ‘우리의 상태’에서만 가능하다.   칼 마르크스는 이 ‘우리의 상태’를 ‘원시공산사회’라고 했다. 네 것도 없고, 내 것도 없는 사회 곧 에덴동산과 같은 것이다. 인간의 역사는 분명히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유물론자였기 때문에 물질의 생산을 공유한다는 공산(共産)에다 초점을 둔 것이다. 그러므로 그 다음이 노예사회, 봉건사회, 자본주의 사회, 그리고 마지막으로 현대공산주의 사회가 와야한다고 했다. 논리적으로는 타당하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을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곧 물질의 생산과 소유의 구조로만 본 것이다. 개체생명도 노인이 되면 다시 어린애가 되는 것과 같이 ‘원시공산사회’에서 시작하여 ‘현대공산사회’로 끝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다.27) 그들은 자본주의 다음에, “그러나 다음에는 무엇이 올 것인가? 공산주의이다. 여기서 처음으로 되돌아가게 되지만 보다 높은 차원에서 돌아가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원시적인 생산력에 원시공산주의 자리에 극단적으로 발전된 생산력에 근거하며, 자체 내에 거대한 새로운 발전의 가능성을 안고 있는 공산주의가 오게 된다.”라고 했다.28) 그러나 역사는 물질의 생산과 소유에 관한 공간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에서 영혼, 영혼에서 다시 신으로 이어지는 시간의 문제인 것이다. 인간사회는 물질의 공산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공유로 세워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마음의 문제이다. 한 사회가 형성되는 것은 그 시대의 마음들의 모음인 시대정신에 의한 것이다. 그러므로 에덴동산은 ‘원시공산사회’가 아니라 신과의 대화가 가능한  그 시대의 마음들이 형성한 ‘신화시대’인 것이며, ‘현대공산사회’가 아니라 현대인의 마음들이 서로 교감할 수 있는 ‘민주시대’가 되어야 한다. 역사의 흐름이 마지막으로 다다라야 할 곳은 ‘민주의 바다’이기 때문이다. 바다는 아래로 흐르는 물이 가장 낮은 자리에 이르러 머문 것이다. 그러나 바다는 하늘과 닿아 있다. 하늘과 만난 것이다. 이것은 그대로 마음과 영혼을 상징하는 것이다. 낮아지는 마음과 영혼의 안에는 하늘이 들어오게 마련이다. 겉으로 보면 하늘과 바다는 맞닿아 있는 것 같지만 하늘은 바다 속에 잠겨 있는 것이다. 그래서 바다의 빛깔이 하늘보다 더 푸른 것이다. 더 푸르다는 것은 더욱 생명력이 충만하다는 것이다. 민(民)은 가장 낮은 사람이다. 이 가장 낮은 사람이 임금이며 주인인(主) 시대가 ‘민주시대’이다. 이것은 순전히 마음의 문제이다. 그런데 공산주의는 영혼이나 정신을 배제한 유물론으로 출발했기 때문에 그 출발에서부터 영혼이 죽은 것이므로 망(亡)할 것을 전제로 한 것이다. 사실 공산주의는 망했으며, 망할 수밖에 없었다.    마르크스의 역사관은 성 어거스티누스의 이라는 대 순환론의 영향이라고 한다. 헤겔과 토인비도 마찬가지며, 유태 기독교와 조로아스터교, 그리고 이슬람까지 순환론적 역사관이다. 동양에서는 힌두교, 불교, 그리고 스리 오르빈도와 라다크리쉬난에 이르기까지 모두 순환론적 역사관이다. 이들의 순환론적 역사관이 모두 신에서 출발해서 신으로 귀착하는 순환론이다. 오직 마르크스만이 공산에서 출발하여 공산으로 귀착하는 것이다. 오르빈도의 경우, 사람을 무한자로 보고, 이 무한자의 퇴화는 가장 저급한 수준의 존재인 물질로의 하행이며, 물질은 비 의식적인 차원이므로 여기서부터 진화가 시작되어 의식적인 차원에 도달한 다음 정신적인 차원을 넘어서서 진화 과정의 최종 목표인 영지(靈知)적인 차원에 도달하는 것이라고 한다.29) 어쨌든 인간의 문제는 마음에서 영혼으로, 거기서 다시 신으로 이어져야 풀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순환론적 역사관에는 근본적인 오류가 숨어 있다. 역사는 절대로 순환하지 않는다. 순환론의 뿌리는 인도에 있다. 역사는 시간과 영혼이 만드는 것이다. 시간과 역사는 원이 아니며, 만다라가 아니다. 하루는 아침에서 출발해서 다시 아침으로 돌아오지만 오늘 아침이 어제의 아침은 아니다.        역사는 시간의 문제이기 때문에 흐른다고 한다. 그래서 역사는 물의 흐름에 비유한다. 에덴동산 곧 신화시대에서 나(吾라)는 의식이 생기면서부터 나를 중심으로 모인 것이 씨족이다. 시간은 흐를 수밖에 없으므로 이것은 자연이다. 이렇게 나를 중심으로 모인 작은 냇물과 같은 것이 ‘씨족시대’라는 흐름이다. 이 시대가 열리면서 마르크스가 말하는 노예제도가 탄생한다. 한 씨족이 다른 씨족을 정복한 다음 노예로 만들기 때문이다. 자연의 물은 저절로 합류하지만 인간 공동체의 흐름은 싸우면서 큰 집단이 된다. 작은 냇물이 여럿이 만나면 큰 냇물이 되듯이 몇 개의 씨족이 서로 싸워서 합병해 부족을 이룬다. 여기서 탄생한 것이 봉건제도다. 큰 냇물이 모여서 강이 되듯이 강한 부족이 약한 부족을 합병하여 민족국가를 만들게 된다. 여기에 과학의 발달과 함께 산업이 발달하면서 자본이라고 하는 돈의 힘이 부각되고, 권력이 돈의 힘인 자본과 합작하면서 만들어진 게 자본주의사회다. 여기서부터 인간의 마음은 물질로 향하게 되고 영감은 돈을 버는 경제감각으로 바뀌게 된다. 그래서 물신시대가 오고, 영적 황무지가 된 것이 현대다. 오늘날은 공산주의자만 유물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유물론자가 되었다. 공산주의자만 좌익이 아니라 모두가 좌익이 되었다.   한 어둠이 또 다른 어둠에게 캄캄한 제 속뜻을 전한다. 다른 어둠이 빨리 알아듣고 둘은 서로 캄캄하게 껴안는다. 덩달아 모여드는 어둠들이 온 누리를 뒤덮는다. 어둠들이 한데 뭉쳐서 캄캄한 대권을 거머쥔다. 눈을 떠도 캄캄하고 눈을 감아도 캄캄하다. 빛을 모두 잡아먹고 캄캄하게 살이 오른 거대한 야행성 동물의 뱃속이다. 나도 그 뱃속에서 캄캄하게 소화된 지 오래다. 어둠공화국의 충실한 백성이 된지 오래다.                    -유승우, 전문.     현대의 영적 황무지를 상징한 작품이다. 모든 사람이 시정신을 떠나서 산문정신으로 무장되었다. 현대야말로 시가 탄생해야 할 때다. 그래야 영혼이 살아서 흥(興)이 나고, 신(神)이 나서, 남은 못 보는 것을 보고, 남은 못 듣는 것을 듣게 될 것이다. 흥이 나고 신이 나는 것은 바다의 물결이다. 물이 흘러서 바다에 이르듯이 역사는 흘러서 민주로 가야한다. 바다는 민주를 상징한다. 바다는 평등하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제 멋에 겨워 흥이 나고 신이 나는 것이 물결이다. 바다는 편을 가르지 않는다. 압록강에서 흘러온 물이나 섬진강에서 흘러온 물이, 낙동강에서 흘러온 물이나 두만강에서 흘러온 물이, 서로의 근원을 따져 지역감정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모두가 민주(民主) 곧 임금이며 주인이기 때문이다.   강물이 바다로 흘러 들어갈 때 그 가슴속에 키우던 민물고기들은 다 두고 간다. 바다의 가슴속 어디에서도 강물의 추억이나 기억을 찾아볼 수 없다. 송사리 새끼 한 마리도 그 품속에 숨겨두지 않는다. 이토록 깨끗한 몸 바꿈을 위해 새벽마다 기도하지만, 나는 송사리나 미꾸라지처럼, 아니면 산골의 가재처럼 민물을 벗어나지 못한다.             -유승우, 전문.     물이 강물일 때까지는 흘러야 한다. 흐르지 않고 고여 있으면 늪이 되어 썩는다. 그러나 바다는 흐르지 않아도 썩지 않는다. 이렇게 될 때, 나(吾=私)는 죽고, 우리(公共)만 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산다는 것은 신화가 탄생하는 것이며, 신화가 탄생한다는 것은 영혼이 산다는 것이다. 이렇게 영혼이 살면 영감이 발달하여 마음의 눈과 귀가 열린다. 그리하여 마음의 눈으로 보고, 마음의 귀로 듣게 되는데, 이를 가리켜 ‘이미지’라고 한다. 그러니까 현대시를 쓰는 것은 외형률로 노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시정신으로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미지란 무엇인가. 다음 장에서 살펴보기로 하자.               4. 시는 이미지이다     ‘시는 이미지이다’라는 말은 시의 형식적인 정의다. 신(神)의 체험을 어떻게 형상화하여 보여주느냐 하는 물음에 대한 답이다. 신의 체험은 지식이나 사상이 아니다. 지식이나 사상이라면 설명이라는 형식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종교나 예술은 이해가 아니라 느낌이며 체험이다. 종교의 교리를 이해함으로써 종교적 체험을 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음악이나 미술이나 시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다. 감동이며 교감이다. 시인은 시를 음악처럼 느끼게 하기 위하여 청각적 이미지를 만들고, 미술처럼 느끼게 하기 위하여 시각적 이미지를 만든다. 시인은 이미지를 만드는 사람이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많은 체험을 하게 된다. 그 체험들은 사라져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기억의 창고 속에 저장된다. 이것을 심리학에서는 무의식이라고 한다. 시인은 이 무의식 속에 묻혀 있는 체험들을 살려서 이미지로 만든다. 그래서 과거의 경험과 현재의 지각이 결합하는 것이 바로 이미지가 되는 것이다. 결국 시인은 이미지를 만드는 사람이다. ‘poet'이란 말이 만드는 사람(maker)이라는 어원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이런 뜻에서 이해할 수 있다.   사실 ‘신과의 대화’라든지 ‘신의 말씀’이란 것은 추상적 관념이다. 자기만이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타인에게도 느끼게 하기 위해서 이미지를 만든다. 신과의 대화란 정신적 혹은 영적 교감이다. 쉽게 말해서 마음의 느낌이다. 마음의 느낌은 그 느낌의 당사자인 시인에겐 생동하는 감각이다. 이 생동하는 감각을 타인에게 이해시킬 수는 없다. 보여줘야 하고, 들려줘야 한다. 그래서 이미지를 만든다. 이해시키는 언어는 과학적 언어이며, 보여주고, 들려주어서 느끼게 하는 언어는 시적 언어이다. 그러니까 이미지는 시적 언어라고 할 수 있다. C. D. 루이스는 이미지를 말로 그린 그림이라고 했다. 보여주는 언어, 곧 ‘언어로 구성된 회화’라고 할 수 있다.30)   과학적 언어는 이해하는 언어이며, 논리적 언어이다. 과학적 언어의 가장 훌륭한 표본은 수식이다. 모든 과학의 법칙은 수식으로 요약되고, 이해된다. 삼각형의 넓이를 구하는 공식은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통해 ah/2라는 수식으로 요약된다. 이 명쾌한 요약을 사람들은 이해한다. 그러나 이해된 지식은 추상적 관념이다. 사실 숫자보다 추상적인 것은 없다. 숫자는 이미지가 없다. 1이나 2가 어떻게 생겼는가. 1이나 2는 그 모습을 보여줄 수 없다. 그래서 초등학교 산수 책에서는 3을 이해시키기 위해 사과 세 개나 병아리 세 마리를 보여준다. 추상적 관념을 이해하게 되면 과학이나 철학을 지식으로 갖게 된다. 그러면 시를 느낄 수가 없다. 어린이의 마음을 지녀야 시를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시심은 동심이라고 하는 것이다. 시인과 어린이는 모든 것을 이미지로 감각한다.   나는 앞에서 상상(想像)을 우리말로 ‘그리다’라고 했다. 이 ‘그리다’를 다른 말로는 ‘묘사’라고 한다. 묘사라는 말은 수사학에서 쓰는 용어이다. 수사학에서는 글을 쓰는 형식을 ‘설명, 논증. 묘사, 서사’로 나눈다. 이 중에서 ‘묘사’는 시를 쓰는 형식이다. 그러니까 시를 쓰는 것은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며, 느낌을 말로 그리는 것이다. 윤재근은 상상에 대해, “마음속에 눈이 있고 귀가 있고 입이 있고 코가 있으며 온 몸의 觸角이 있음을 想像은 확인한다. 想像은 시간과 공간을 벗어나 마음이 완전한 자유를 누리게 한다. 이처럼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마음의 작용이 妙하므로 옛부터 想像을 강조하여 神思라고 하였다.”31)에서 보듯이, 劉勰의 ‘文心雕龍’에 나오는 ‘神思’를 상상으로 풀이한다.32) 상상은 마음의 기능이며, 마음은 영혼의 다른 이름이고, 영혼은 神과 교감할 수 있는 신적 요소다. 그러므로 마음이 하는 일은 무엇이나 신을 빼놓고는 논의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상상(想像)’을 특히 ‘神思’라고 한 것은 마음이 그리는(想) 모습(像)이 있기 때문이다. 동양에서는 상상이란 말 대신에 신사(神思)를 쓴 것이다. 노래를 ‘神樂’이라 했고, 놀이도 ‘神遊’라고 한 것을 보면 동양적 신(神)의 의미를 짐작할 수 있다.   E. 파운드는 이미지를 ‘지적 정서적 무의식의 일시적 발현(presents an intellectual and emotional complex in an instant of time)'이라고 했다.33) 나는 여기서 ’complex'를 ‘무의식’이라고 번역했다. 원래 콤플렉스는 종합이나 합성물이란 뜻이다. 심리학에서는 무의식을 모든 경험이 녹아든 기억의 창고라고 한다. 그리고 빙산의 물 속에 잠긴 부분을 무의식에 비유한다. 그렇다면 물 밖에 나와 있는 부분은 의식이다. 이 빙산이 바다 위에서 떠도는 것은 밖에 나와 있는 부분이 바람에 밀려서가 아니라 물 속에 잠긴 부분이 물결에 밀려서이다. 이것은 인간의 행동이 의식에 의해서가 아니라 무의식에 의해서 좌우된다는 것을 말해준다. 상상은 마음의 행동인 ‘그리다’인데, 이 상상이 그려낸 이미지가 바로 무의식의 발현이라는 것은 정확한 해석이다. 그런데 여기서 일시적(in an instant of time)인 발현이라는 것이 문제이다. 무의식이 왜 일시에 튀어나오느냐 하는 것이다. 무의식이 일시에 발현되려면 의식이 사라져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의식이 바로 나(吾)라는 자아이다. 그렇다면 의식이 사라져야 한다는 것은 신과의 교감을 위해서 내(吾)가 죽어야 한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그러면 어떤 때 의식이 사라질 수 있을까. 일상적으로는 충격을 받았을 때 의식이 사라진다. 그러나 여기서의 충격은 물리적인 충격이 아니라 정신적인 충격이다. 정신적인 충격은 사랑하는 심장을 가진 사람에게만 찾아온다. 의식이 곧 생각이나 마음이라면 여기서는 내 생각이나 내 마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내 생각이나 내 마음이 죽어야 사물 자체를 그릴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심장을 가진 사람은 내 생각이나 내 마음이 죽을 수밖에 없다. 사랑하는 대상만 있고 나는 사라지게 된다. 이런 상태가 바로 시인의 영혼이 신(神)과 교감하는 상태인 것이다.   신과 교감하는 상태에서는 사람을 의식하지 않는다. 그 때의 말은 의미를 만들지 않는다. 신과의 교감은 느낌일 뿐 의미와는 상관이 없다. 순수 예술은 의미를 만들지 않는다. 이미지를 만들뿐이다. 음악은 소리의 예술이다. 소리를 살리는 것이 음악이다. 소리는 느낌일 뿐 의미를 만들지 않는다. 높은 소리로 아버지를 발음하나 낮은 소리로 발음하나 그 의미는 다르지 않고 느낌만 다르다. 미술도 순수 예술이다. 미술의 재료인 색채도 의미와는 상관이 없다. 빨강이나 파랑은 느낌이 다를 뿐 어떤 의미를 만들지 않는다. 그래서 음악이나 미술은 번역이나 통역이 필요 없다. 시는 언어 예술이다. 그런데 언어는 소리와 의미라는 두 가지 요소로 구성되었다. 이 두 요소 중 사람과 대화할 때는 의미가 중요하지만 신과의 대화에서는 느낌이 중요하다. 말의 요소 중 소리로는 듣는 이로 하여금 느끼게 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정형시의  율격이다. 그러나 현대시는 자유시다. 귀로 듣는 율격이 아니라 눈으로 보아서 소리도 느끼게 하고 의미도 느끼게 하는 것이 이미지이다. 여기서 눈으로 본다는 것은 듣는 시가 아니라 읽는 시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미지를 ‘말로 그린 그림’이라고 정의한 의미이다.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 (김광균 ‘외인촌’에서)   꽃처럼 붉은 울음에 밤새 울었다. (서정주 ‘문둥이’에서)   흔들리는 종소리의 동그라미 속에서 (정한모 ‘가을에’에서)   음악이 혈액처럼 흐르는 이 밤(김종한 ‘살구꽃’에서)   “요한복음 삼장 십육절이 하얗게 하얗게 내리고 있다.“ (유승우 ‘섣달에 내리는 눈’에서)     위에 인용한 것들이 감각적 이미지들이다. 감각적 이미지의 이상적인 방법은 여러 종류의 이미지들이 결합해서 정서를 환기시키는 방법이다. 이것을 공감각적 이미지라고 한다. 이러한 이미지를 만드는 원동력은 상상력이다. 위대한 시인은 위대한 상상력의 소유자이다. 위대한 상상력은 참으로 살아 있는 듯한 감각적 이미지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위대한 상상력의 소유자는 또한 위대한 사랑의 소유자이다. 남은 못 보는 것을 보는 사람이며 남은 못 듣는 것을 듣는 사람이다. ‘푸른 종소리’에서처럼 종소리의 빛깔도 보며, ‘붉은 울음’에서처럼 울음의 빛깔도 보는 것이다. ‘음악이 혈액처럼 흐르는’ 것도 볼 수 있으며, ‘요한복음 3장 16절이’ 눈처럼 내리고 있는 것도 보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바로 시인인 것이다.   감각적 이미지는 마음으로 그려보는 그림이다. 사실은 없는 것을 그렇게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다. 종소리와 울음에 무슨 색깔이 있으며, 음악이나 요한 복음이 어떻게 피처럼 흐르며 눈처럼 내릴 수가 있겠는가. 이것은 모두 정신적인 관념을 육체의 오관을 통해 느끼는 것처럼 인식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을 감각적 인식이라고 하며, 정신적 이미지라고도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것을 그렇게 느낀다는 것이다. 이것을 체험이라고 한다. 있는 것을 그대로 보는 것은 경험이며, 없는 것을 시인만이 보는 것을 체험이라고 한다. 시인은 어떻게 남은 못 보는 것을 볼 수가 있으며, 남은 못 듣는 것을 볼 수가 있을까. 그것은 시인의 살아 있는 마음이 하는 일이다. 살아 있는 마음은 곧 영감(靈感)이며, 영감은 신과 교감하기 때문이다.     5. 마무리-시는 몸이다     사람을 가리켜 작은 우주라고 한다. 우주란 무엇인가. 무한 공간인 우(宇)와 무한 시간인 주(宙)가 만나서 우주가 된 것이다. 그런데 끝이 없는 무한(無限)에는 결코 사이(間)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무한 공간’이나 ‘무한 시간’이란 말을 쓴다. 여기서 쓰는 공간이란 말은 땅(地球)이 있음으로 해서 성립된 낱말임을 알 수 있다. 지구가 없다면 그냥 빈 하늘일 것이다. 그래서 빌 공(空) 자는 하늘 공자도 된다. 지구가 있음으로 해서, 이 쪽 하늘과 저 쪽 하늘 사이에 땅이 있다는 공간 개념이 성립된 것이다. 다시 말해서 땅이 있음으로 해서 하늘도 있게 되었다는 말이다. 모든 것은 땅이 기준이다. 땅으로 해서 공간개념이 있게 된 것이다. 땅이 없으면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다.    땅은 눈으로 볼 수 있는 물질이다. 이 땅의 흙으로 사람의 육체를 만들었다. 땅과 같이 눈에 보이는 물질로 된 부분이 육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사람의 모형일 뿐 사람이 아니다. 여기에 생명이 들어가야 하고, 마음이 들어가야 한다. 이것들은 형체가 없으므로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을 종합해서 영혼이라고 할 수 있다. 큰 우주는 공간과 시간의 모음인 몸이고, 작은 우주인 사람은 육체와 영혼을 모은 몸이다. 그러니까 우주는 몸을 의미한다. 여기서 ‘시는 몸이다’라는 결론이 도출된다. 1) 문덕수, ꡔ시론ꡕ(서울, 1993, 시문학사), p.36.2) 김언종, ꡔ한자의 뿌리ꡕ(서울, 문학동네, 2001), p.636.3) ‘寺’자는 원래 관청이란 뜻과 ‘시’의 음을 가진 글자이다. 제정 일치 시대에는 관청이 곧 신전이다. 그러므로 관청에 바쳐진다는 것은 곧 신에게 바쳐진다는 뜻이다.4) 요한복음 1장 1절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라는 말씀 참조.5) 윤재근,ꡔ詩論ꡕ(서울, 둥지, 1990), p.259.6) 論語, 述而篇, ‘述而不作 信而好古’7) 김언종, 앞의 책, pp.400-401.8) 하이데거, 소광희 옮김, 「시와 철학」(서울, 박영사,1978). p.43.9) 박이문, 「현상학과 분석철학」(서울, 이조각. 1982). p.114.10) 에리히 프롬, 김진홍 옮김, 「소유냐 삶이냐」(서울, 홍성사, 1978). p.30.11) 박이문, 앞의 책, pp96-98.12) 論語, 泰伯篇, 「興於詩, 立於禮, 成於樂」13) 김열규 외, 「우리 民俗文學의 이해」(서울, 1984, 개문사). p.11.14) 위의 책, 같은 곳.15) 위의 책, p.12.16) 윤재근, 「詩論」(서울, 둥지, 1990), p.259.17) 위의 책, p.258.18) 서정범, 「어원별곡」(서울, 1991, 범조사) p.158.19) 中庸, 제1장, 天命之謂性.20) 김열규, 앞의 책, p.21.21) 지라르, 김진식 옮김,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서울, 2004, 문학과 지성). p.7.22) 캠블, 정영목 옮김, 「창작 신화」(서우, 2002, 까치), p.15.23) 캠블, 위의 책, p.16.24) 김병욱 외 편역, 「문학과 신화」(서울, 1981, 대람). p.138.25) 김병욱 외 편역, 「문학과 신화」(서울, 1981, 대람). p.137.26) 위의 책, p.137.27) E. 케언즈, 이성기 옮김, 「역사철학」(서울, 대원사, 1990). p.267.28) 위의 책, p.290.29) 위의 책, pp.244-317.30) 문덕수, 「詩論」(서울, 1993, 시문학사). p. 215.31) 윤재근, 「詩論」. p.721.32) 崔信浩 譯註 「文心雕龍」(서울, 1975 재판, 현암사)에서는 券六, ‘信思二六’을 ‘想像力의 陶冶’라고 했다.33) Handy and Westbrook, Twentieth century criticism, LIGHT & LIFE, p.18. [출처] 시와 예술, 그리고 신화|작성자 최진연
1077    부끄러움 댓글:  조회:2059  추천:0  2020-08-17
부끄러움- 강려   나비쪽지 한장속엔  민들레 볼  수집움의  하얀 냄새  팔랑 접혀진다    아뿔싸 !  접시꽃 누나  아끼는  접시인데  ...    여름바람  초록 손의 쑥스러움도  솔솔 쓸어모은다   2020년도 아동문학작품집 “쿵쿵 심장소리” 발표작    
1076    어마나 댓글:  조회:989  추천:0  2020-08-17
어마나- 강려   하늘하늘 날아예는 호랑나비 이슬풍선 건드리니 어마나 바람 빠지잖아   한들한들 물 위 걷던  해살 엉덩방아 찧으니 어마나 올챙이 밟히잖아     2020년도 아동문학작품집 “쿵쿵 심장소리” 발표작  
1075    하이퍼시에 대한 이해 - 정 신 재 댓글:  조회:1178  추천:0  2020-06-20
하이퍼시에 대한 이해 - 정 신 재     “얼마나 많은 기차가 지나갔는지/ 얼마나 많은 이별을 했는지/ 낡은 침목은 가끔 쿨럭거리고/ 날것의 비를 온종일 맞은 침목처럼/ 갈비뼈는 평생 울음을 받치고 있었다/그 새벽 기차 소리 듣는 사람은/ 소리가 시나브로 사라질 무렵/ 한 가지 깨닫는 게 있다/ 더 이상 기차가 가슴 위를 지나지 않을 때/ 마지막 승객이 내가 된다는 것/ 철커덩철커덩 기차가 멀리 떠나고 소리 잠든다/ 아직 새벽이다”(이성주,「기차 떠나는 새벽」에서)   사람들은 어딘가로 떠나고 싶어한다. 그곳은 미지의 세계일 수도 있고,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일 수도 있다. 우리가 창작을 하는 것은 현실을 닮은 미지의 새로운 세계를 만나기 위한 고독과 사색의 경험도 포함된다. 그곳에 가면 진실과 진리와 아름다움이 놓여 있을 것이라는 꿈이 작가로 하여금 글을 쓸 수 있는 에너지를 부여하는 것이다. 이제 여러분은 내가 모두(冒頭)에서 이성주의 「기차 떠나는 새벽」을 인용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낡은 침목은 가끔 쿨럭거리고/ 날것의 비를 온종일 맞은 침목처럼/ 갈비뼈는 평생 울음을 받치고 있”는 것과 같이, 지금 우리들의 갈비뼈는 실재(實在)에 가 닿기 위한 창작열로 불타고 있다. 우리가 왜 전국 각지에서 비싼 돈을 들여가며 여기에 모여 있는가. 그것은 단지 하나 문학을 온몸으로 사랑하고 문학이 우리를 미치게 하기 때문이다. 여기 모여서 우리는 각자 그동안 쌓아 두었던 고독의 짐을 풀어 놓고 영혼을 전율시키는 감동을 찾아 그것을 독자들에게 실어나르기 위해서 잠시 정거장에 모여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곳은 독자들과의 소통을 찾아나서기 위한 기착지(寄着地)라 할 만하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인간 구원과 존재의 본질을 찾아나서는 창작의 길이 쉽지  않음을 실감할 것이다. 그것은 문학 환경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여러분이 전철을 타거나 길거리를 걷다 보면 직감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스마트폰이나 갤럭시를 보는 데 익숙하고, 맛집이나 여행지를 돌아다니는 데서 쾌락을 맛보기도 한다. TV 시청자들은 리모콘을 들고 보다 재미 있는 프로를 찾아 채널 돌리는 데에 익숙해 있다. 이제 전철에서 책을 보는 사람을 찾기 힘들다. 이에 따라 문학은 몇몇 유명 문예 잡지를 제외하고는 온라인 문학 카페에 정착하기도 한다. 달라진 것은 비단 문인들의 모임만이 아니다. 문학 양식도 이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시에 소설적인 이야기나 대화가 들어가는가 하면, 극적 구성이 짜여지기도 하고 소설에서 시나 소설적인 요소가 나타나기도 한다. 장르의 탈경계나 가로지르기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시에서의 음보만 보더라도 예전의 3,4음보보다 훨씬 긴 음보가 유행하고, 아예 산문율로 이야기나 대화가 전개되기도 하며, 극단적이거나 엽기적인 행위가 이미지와 함께 나타나기도 한다. 이러한 가운데서 형이상학적인 것과 형이하학적인 것이 컨시트로 엮어지거나, 현실과 환상이 하이퍼링크로 연결되기도 하는 등의 다양한 기법들이 문예 잡지사마다 특징을 가지고 자리잡기도 한다. 그래서 이 자리에서는 하이퍼시를 소개하려 한다.      하이퍼텍스트는 단편적인 정보와 정보를 연결하는 하이퍼링크(hyperlink)를 통하여 정보의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을 말한다. 컴퓨터 화면에 보이는 텍스트에 그림이나 밑줄친 부분을 마우스로 누르면 다른 텍스트가 연결되어 화면에 나오는데 이렇게 다른 텍스트로 연결하여 주는 것을 하이퍼링크라 하는데, 하이퍼링크로 연결된 쌍방향성 복수의 텍스트 전체가 하이퍼 텍스트가 된다. 하이퍼텍스트는 고정된 지식이 아니라, 유통의 지식, 성장하는 지식 체계를 갖추고 있다. 이러한 연결 고리는 리좀(rhizome)의 사유에 닿아 있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수목(tree)형과 대비시켜 리좀 개념을 제기한 바 있다. 리좀은 우리말로 근경(根莖)이나 뿌리 줄기에 해당한다. 줄기가 마치 뿌리처럼 땅속을 파고들어 사방팔방으로 소통하면서 뿌리와 줄기의 구별이 모호해진 상태를 말한다. 수목의 개념이 계통화되고 위계화되는 방식에 있다면, 리좀의 개념은 통일되거나 위계화되지 않은 복수성과 이질성에 있다. 리좀은 새로운 접속과 창조가 이어지면서 열린 사고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개념이다. 리좀은 원줄기를 가지고 있으나 수만 갈래의 뿌리 줄기와 네트워크화를 이루고 있어 원줄기와 단절되어도 생명을 잃지 않는다. 그래서 리좀은 탈중심성, 탈고정성, 탈유한성을 지향하는 담론에서 즐겨 비유된다. 리좀은 이성적 사유, 전통적 시적 주체를 해체하고 시인과 독자의 소통 구조를 단선적 구조에서 다양한 해석 체계로 전환시켜 주고 있다. 리좀적 사유를 담고 있는 하이퍼시는 시어 혹은 시행을 따라가다 보면 시적 주체가 더욱 탄탄해진다. 좌충우돌하는 듯한 이미지는 단절된 것이 아니라 교차되면서 더욱 탄탄한 의미를 형성한다. 이 과정에서 시는 생명을 얻고 이미지는 성장을 한다. 초현실주의시들이 이미지조차 단절시키고 있는 데 비하여, 하이퍼시는 이미지의 새로운 결합을 보여준다. 하이퍼시는 첫 시어의 이미지와 이어지는 이미지가 단절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단절은 영구한 단절이 아니라 또다른 연결고리를 위한 일시적인 단절이다. 결국 그 연결망은 한 편의 작품에서 충실한 의미를 가진다. 하이퍼링크를 통하여 정보가 단단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하이퍼시가 가진 의미의 단단함과 주제의 생명성은 하나의 주제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열린 해석, 즉 다양성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시의 행은 끝이 나도 이미지의 구성은 끝나지 않고 독자들을 무한한 상상의 세계로 안내한다. 그래서 언어적 유희, 발랄한 상상, 재빠른 이미지의 전환 등과 같은 요소들이 비틀어짜기로 결합될 수 있다.  심상운은 「하이퍼시의 창작 방법」(, 2008.10)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1) 이미지의 집합적 결합(하이브리드의 구현)을 기본으로 한다. 2) 시어의 링크 또는 의식의 흐름이 통하는 이미지의 네트워크(리좀)를 형성한다. 3) 다시 점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캐릭터를 등장시킨다. 캐릭터는 사물도 될 수 있다. 4) 가상 현실의 보여주기는 갈등 구조인 소설적 서사를 활용한다. 5) 현실을 바탕으로 현실을 초월한 상상 또는 공상의 세계로 시의 영역을 확장한다. 6) 정지된 이미지를 동영상의 이미지로 변환시킨다. 7) 시인의 의식이 어떠한 관념에도 묶이지 않게 되었다. 8) 의식세계와 무의식세계의 이중 구조가 들어가게 한다. 9) 시인은 연출자의 입장에서 시를 제작한다.   이를 보면 하이퍼시는 초현실주의시와는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초현실주의시가 의식과 무의식 간의 흐름이 자연스러운 것이라며, 이미지와 이미지, 현실과 상상, 행과 행, 구절과 구절이 단절되어 있는 것처럼 제시하고 두 사물 간의 거리를 멀게 함으로써 상상의 힘이나 의미의 다양성을 모색하는 것이라면, 하이퍼시는 사물 간, 이미지 간 거리가 단절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의식과 무의식, 존재와 존재, 사물과 언어가 하이퍼링크로 연결되어 있음을 특징으로 한다. 이를 이성주의 시를 통하여 살펴보자.   어머니 나를 물에 빠트린다 괘씸한 년, 말 없는 손이 무겁게 짓누른다 수초를 뒤집어 쓴 어머니 나를 잡아끌었다, 떨칠 수 없이 엄마, 나는 물에 젖어 울었다 사람들이 명당이라고 말한 송추松楸는 시름시름 앓았고 차오르는 물보다 더 빠르게 아파트에 둘러싸인 섬이 되었다   유택幽宅으로 향하는 길목 번번이 어머니를 잃어버리고 나도 이끼로 덮여갈 즈음 내 몸에 꼭 맞는 수의 하나 맞췄다 물에 잠겨 퉁퉁 분 몸으로 관 속에 들어갔다   다시 찾아오지 않는 어머니 물은 바닥을 다 드러내고 어머니 안녕하시다  - 이성주,「이장移葬」전문   이 작품에서는 죽은 어머니와 산 화자가 하이퍼링크로 만나고 있다. 여기서 죽음은 슬픔으로만 고착되지 않는다. 어머니는 화자를 “물에 빠트”리는 악마도 될 수 있고, 화자는 어머니와 놀아주는 조력자가 될 수도 있다. 이때 무덤은 놀이의 공간이 되고, 물은 두 존재를 맺어 주는 수단이 된다. 놀이는 화자가 관 속으로 들어가는 입관의식으로까지 발전한다. “나도 이끼로 덮여갈 즈음/ 내 몸에 꼭 맞는 수의 하나 맞췄다/ 물에 잠겨 퉁퉁 분 몸으로/ 관 속에 들어갔다”. 이 작품에는 “다시 찾아오지 않는 어머니”를 만나는 꿈 장면과 “아파트에 둘러싸인 섬”(무덤)을 다룬 현실이 하이퍼링크되어 있다. 이와 같은 연결을 통하여 존재와 존재-화자와 죽은 어머니-, 존재 存在와 부재不在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이는 죽음에 대한 기존의 편협한 시선을 해체하고 현실과 무덤의 경계를 넘어서 존재의 본질을 들여다 보는 기회를 가져다 준다. 이는 하이퍼링크가 가져다 준 놀이의 방식이다.      잘 익은 부사를 깎는다 둥글게 깎여나간 ‘잘’이란 꽃뱀 한 마리 쟁반에다 또아리를 튼다   과도에 내 손이 닿아 끈적끈적 달라붙는 군살   우리집 통유리창 틈으로 들어오다 보름달이 해체된다 초승달 하현달 반달 갈고리달 둥글게 머리 맞대고 모니터 앞에 앉아 ‘부사’란 단어를 검색중이다 “사과의 한 품종으로서 당도가 높고 색깔이 붉다. 품사의 하나로서 한 문장의 특정한 성분을 꾸며주는 성분 부사(잘 매우 겨우 등) 그리고 문장 전체를 꾸며주는 문장부사(과연 설마 제발 등)”   내가 깎아낸 부사 쟁반을, 슬슬 기어다니는 붉은 꽃뱀을 만진다 미끈 소름이 돋는다   잘 깎은 내 얼굴, 속살이 달다 - 송시월,「사과를 깎으며」 전문   이 작품에서도 “잘 익은 부사”와 “문장 부사”가 하이퍼링크되어 있다. “부사”는 “꽃뱀 한 마리”와 연결되지만 “또아리를” 트는 사과 껍질을 연상하면 두 사물 사이가 단절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마지막 행에서 “잘 깎은 내 얼굴, 속살이 달다”도 “부사”와 단절되어 있는 것 같지만, “부사”의 둥근 모양과 사람의 둥근 얼굴이 환유의 관계 연결되어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자크 데리다, 자크 라캉 등을 비롯한 현대의 철학자들은 해체를 강조하여 왔다. 그것은 기표와 기의 간에 기존의 관계를 해체하여 존재나 사물의 본질을 들여다보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었다. 그러나 해체가 존재로 나아가는 다양한 의미를 표출한다고는 하지만, 존재나 사물이 제 모습을 갖추기 위해서는 해체된 의미들이 엮어져서 하나의 몸을 이루는 결합이 요구된다. 하이퍼링크는 흩어져 있는 의미들을 모아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는 데 소용된다. 이미지나 사물의 단절과 결합은 생명력 있는 존재나 사물을 만드는 필요적절한 원리다. 이러한 원리는 현실과 환상, 삶과 죽음, 존재와 존재를 해체하고 결합함으로써 시에 생동감과 활력을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하이퍼텍스트의 원리를 응용하는 것은 여러분의 권리이다.      * 정신재 약력                                 1983년 1월 지를 통해 문학평론으로 등단. 1992년 국민대에서 문학박사학위 취득. 제14회 문학평론가협회상, 제4회 이은상 문학상 수상. 현재 시인, 문학평론가. 저서-『성과 광기의 담론』외 14권.
1074    송시월 시모음 2 댓글:  조회:1892  추천:0  2020-05-19
송시월 시모음 2   출처 http://blog.daum.net/siiwoell   비명      창 밖은 지금 회오리가 일고 은행나무    수천의 노랑나비를 허공에다 풀어놓고 있다   날개를 걸고 팔랑팔랑 흔드는 놈, 등 떠민 놈, 납작 껴안고   공중회전을 하다가 함께 떨어지는 놈, 패거리로    껄렁껄렁 몰려다니며 밟고 밟힌다     유리창 밖의 낙엽 하나   두 손으로 감싸든 잔에 날아드는 든다, 나비    비스듬히 기우는 날개   치켜 뜬 좁쌀 만한 눈의   들릴 듯 말 듯 파르르 떠는 나비,   (이모, 나 "살고 싶어"   원자력병원에 새로운 암치료기가 들어 왔대)   창 밖은 우수수 "살고 싶어"가 쏟아진다     청계천에 비명 노오란 조각, 조각조각 떠내려가고 있다   광인      길가 느티나무 밑    녹슨 철벤치에 앉은 까치집머리 중년의 한 남자    그 옆 한 쪽 귀떨어진 채 졸고 있는 쇼핑백 하나    그 앞엔 배가 홀쪽 누워 있는 깡통 하나     남자가 툭툭 깡통을 찬다    갑자기 회오리바람 인다    까치집머리 찌그러져 엉키고     "명퇴 세상 깡똥 세상"    달리는 버스를 향해 빌딩을 향해 삿대질하고 소리치는 남자    밀고 밀리는 나뭇잎 틈새    빌딩 한 쪽이 사내 쪽으로 조금씩 기운다   그 빌딩 등에 입 쩍 벌리고 있는 초이레 칼날 달      사내의 머리 위로 흐르는 고압전선이 부르릉 떤다     중복 날       -언어의 감옥 8               잠자리들 공중으로 치솟아 수십 겹의 포물선     얼크러졌다 풀렸다 하는 중복 날       웨이브머리에 잠자리날개핀을 꽂은     키 큰 여자     수박을 안고 줄장미 몇 송이 피어 있는     담장길을 돌아      서른 살 통굽 소리 똑똑 찍고 간다     그녀 왼쪽 어깨에 닿을 듯 말 듯     줄무늬 푸른 대문의 담장을     장미 넝쿨이 넘쳐 내리고 있다       꼬리가 반원으로 휜 담장 위의 잠자리     하트?     한 낮, 암컷의 머리에다 꽂고 비행을 한다     호흡이 잘 맞아 싱싱 흐른다     씩 웃으며 대문을 들어서는 우체부 아저씨      싱싱하게 햇살 몇 송이 핀다   아차산           - 언어의 감옥 7                     휙 휙 스치는 언어의 푸로펠라          길목마다 터지는 4월의 햇볕탄          와와 치솟는 색색의 문장          여기저기 나뒹구는 불발 접속어 야생화           이 꽃 저 꽃 음소를 빠는 윙윙 소리              백운대를 향해 45°바윗길 오르는 리듬들          아차, 미끄러진다    눈을 쓸다가            흰옷, 눈이 내린다     북풍에 조각조각 떨어진다     명주두루마기를 입은 아버지가     회색허공을 가만가만 내딛다가. 두 손으로 거머쥐다가.     무명저고리 어머니가     아버지와 부딪힐 듯 부딪힐 듯     아버지 위로 어머니가 쌓이고 어머니 위로 아버지가 쌓인다     내 비질에     은발을 날리며 어머니가 쓸린다     흰 수염의 아버지가 쓸린다     눈이 그치고     겹겹 쌓인 눈의 고요 속에다 가만히 귀기울이면     어머니의 바느질 시침 소리, 아버지의 붓끝 스치는 소리,     "이제 그만 잡시다" 호롱불 부는 소리     몸이 시린 나뭇가지, 얼굴과 얼굴들 모두 지워지고     높고 낮음, 길고 짧은 밋밋한 선들 사이     나는 티끌 만한 검은 점으로 우두커니 서 있다   호랑나비           4월의 아차산 생태공원 입구,  골목에서 벚꽃이 뻥튀기처럼 뻥 핀다. 벚꽃  사이 햇살 속에서 튀어나온 호랑나비, 묻힐 말 듯 꽃 속을 난다. 내  동공 안  으로 푸른 하늘의 배경을 확 당기자, 꽃술을 밀며 들어가는 나비! 내 눈썹에  와  간질간질 닿는다. 나비가  떤다. 내가  떤다. 떨리는 두 팔이 가벼워지고  나도  나폴거려  본다. 이때, 일방통행길에  포크레인이 지나가고  생태공원  호랑나비의 환영, 드르르르 뭉개진다.   입술에 걸린다          비 100mm 쏟아낸 청계천 먼 하늘을    빨대로 쭈―욱 빨자    물 젖은 별이 입술에 걸린다    은하수를 휘저어 다니던 피라미 떼가 와서 걸린다      주말 새벽 2시     가물가물 선잠 휘저어오르는  피라미떼들     가로등 불빛 엷게 들어서는 유리창을 때린다     아침 장교동과 수하동 사이를  휘젓고 다닌다      유리창 때리는 철거반의 쇠망치 소리     냉장고 에어컨 컴퓨터 골프채 인쇄기기    붉은 딱지를 붙이고 질질 끌려나온다    보관소를 향해 100m 쯤 늘어서 가는 이사짐차들    우리 집 옆으로 펜스가 쳐진다         청계천의 팔뚝만한  잉어 한 마리    저음의 으르렁 소리를 내며 재빨리 꼬리 감춘다    파아란 통유리문 때리고 나서      구름 사이로 미끄러지는 빗방울들      하늘의 사타구니에서 쏟아지는 햇살    내 속눈썹 가닥가닥에 걸려 파들거리는   제2 한강교       1      제2 한강교를 여자가 걸어간다    강물에서 안개가 피어오른다    한강철교가, 달리는 차들이 흐물흐물 안개가 된다    여자가 안개를 딛고 사박사박 걸어간다    여자의 오른쪽 다리가 지워진다    왼쪽 다리가 지워진다    두 팔로 허우적 허우적 몸통을 끌고 간다    두 팔이 한꺼번에 지워진다    가슴으로 안개를 밀고 간다    여자가 완전히 지워진다    12월 32일의 안개가 여자 속을 걸어간다       2    붉은 런닝에 맨발의 가로수들    아침해를 이고 차선을 달린다    노랑머리 날리며 은행나무가 달린다    붉은 머리칼 떨구며 단풍나무가 달려온다    어깨 스치며 토막울음 우우우......    이른 출근길의 자동차들 꽁무니에    부싯돌이 쉴새없이 그싯고    더러는 꽁무니에 아침노을을 매달고    빨간 스카프를 두른 한강교    노을노을 앰블런스가 지나가고    토막울음소리 우우우......   여승의 합장 보살보살    이사 온 첫날 아침  남으로 난 원형의 통유리에 붉은 장미가 핀다  맞은편 용천사 기와지붕이 미끈한 버선코를 세운다  장마비 앞산에 초록초록 내리고  4층의 나를 올려다보는 여승의 합장 보살보살 내리고  (이번 토요일 오전 10시 올림픽 경기장 평화공원 호수 가에서  시화전)  핸드폰에 문자멧세지 뜬다                    산까치 한 마리 날아간다, 밖으로 열린 창틀  쌍무지개 걸어 놓은 산등성이   백지              맞은편 숲이 나를 받아쓰고 있다 4층 베란다 하늘색 유리탁자 앞에 앉아 데리다 192페이지 “기원에 대한 꿈: ‘문자의 교훈’을 펼쳐 놓고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끄떡거리다 하는 내 얼굴을 정면의 아카시아나무가 잎을 팔락거리며 받아쓰고 있다 허공에다 상형의 소문자로 쓰고 있다 띄어쓰기나 행갈이도 없이 빽빽하게 쓰고 몇 번을 덮어씌우고 하다가 계란형의 중앙에다 눈. 코, 입, 귀 구멍을 내고 구멍만큼의 하늘을 넣는다 그 하늘이 뭐야뭐야 새울음을 운다 내가 기지개를 켜자 우우우 일어서며 옆의 물푸레나무가 대문자로 내 팔을 받아쓰고 키를 받아쓴다 내가 물푸레나무만큼 키가 커지고 몸통이 커지며 바람에 두 팔이 흔들리자 문자들이 뒤집히며 일그러져 날려간 백지             내가 나를 읽을 수가 없다       딸아이의 집.1       그녀 생일날 딸아이가 내 배꼽의 벨을 누르고 들어간다. 앞이 환해지며 딱딱한 허공이 말랑말랑 따뜻해진다. 앞으로 옆으로 그 옆으로 뒤로 그 뒤로 촘촘히 꽂혀 있는 책들, 앞쪽 밑에서 다섯째 줄 중간쯤에 내 동인지 디지털리즘 3호 표지의 D자가 나를 향해 바짝 귀를 세운다 오랜만에 빨간 귓부리를 만지니 따뜻하다. 허공이 탁자 위에다 두툼한 책을 펼쳐 놓고 있는 우측으로 옥매트가 깔려 있고 가지런히 걸려있는 옷가지들 사이 낯익은 밤색벨트가 원피스의 허리를 팽팽하게 조이고 있는 그 앞 가스레인지 위에선 압력밥솥이 밭은 숨을 내뿜으며 딸랑딸랑 나를 부르고 있다. 소파에 앉아 리모콘의 파워키를 누르자 딸아이가 튀어나오고 2007년 1월 1일 0시 종을 울리며 보신각이 뜬다.   딸아이의 집 3         ―윈드서핑   한 시인이 붉은 바다를 입고 지하도를 걸어간다 등짝의 물고기들 아가미를 벌린 채 물살을 차고 튀어 오른다 바다가 뛰어간다 그 뒤로 딸아이가 뛰어간다  붉은 파도가 밀려가고 지하도를 들었다 놓았다 상점의 배들이 기우뚱 덜덜덜 진동이 인다 천정으로 튀어 올라 가로등 눈을 켠 물고기들 환히 비추는 붉은 바다   윈드서핑 저녁 8시 15분의 시침과 분침 사이로 미끄러져나간다   화분에서 자라는 새                               오월 창가 화분에 해가 뜬다      내리쬐는 C32˚의 초록 햇살 쪼아 먹고     찰랑이는 머릿결 초록바람 쪼아 먹고     간지럽게 파고드는 겨드랑이의 초록그늘 쪼아 먹고     느티나무의 초록 지저귐 왼 종일 쪼아 먹고     화분에 달이 뜬다     동맥 정맥 청계천 꿈틀꿈틀 흐르는 사이로     실핏줄 달의 골목 몇 바퀴 휘감아 도는 사이로                 버들치 한 마리, 흐르는 물살에 뒷걸음질 치다가     거슬러 오르다가 허기진 저물 녘     굴러오는 어둠 몇 알 깨트려먹고     별꽃을 먹고 달꽃을 먹고     물밑 모래알에 비스듬히 엎드려 잠이 든다         화분에 발이 빠진 채 깃털 하나 둘     빠져 날리는 새 한 마리   쥐의 공화국   우리집 천정은 쥐의 공화국, 대선 박두 인 듯 마른 쥐오즘자국이 선거벽보처럼 어지럽게 나붙어 있다 발자국 소리 쿵당거리며 새 시대 지도자의 첫째 조건인 말 바꾸기의 빠른 순발력테스트를 마라톤 경기로 대신 한다는 안내 방송이 벽지를 찢으며 내 귓속으로 오물처럼 흘러든다   마라톤이 시작된다. 42,195Km의 지정된 난코스를 돌아 황영조의 지구력과 살라자르의 스피드로 선두 골인하는 기호 3번, 1번, 4번...... 이때 기호 2번이 검은 보자기를 어깨에 메고 본부석으로 뛰어나온다. ‘여러분 희디흰 메가톤급 비리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기호 3번이 어제의 밝음을 틈타 표 당 1톤씩의 어둠으로 수 천 표를 매수했으며 그 표들이 이 자리에 세몰이로 동원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우리 공화국을 탈색시킬 치욕적인 표백제입니다 지도자의 바탕은 순진 무구 검어야 합니다. 보십시오 저의 얼굴을, 저의 말을, 새카만 비로도의 이 진실 위에 현명한 한 표를 얹어 주십시오 금세 유세장은 투석전이 벌어지고 창이란 창은 모조리 깨져 어둠이 봇물처럼 빠져나간다.  저마다  검은 공화국의 유리창을 갈아 끼울 지도자는 반드시 “나”이어야 한다고 디데이 전날, 쥐들이 사방에다 쥐덫을 놓는다.     경칩날       아침 수도꼭지를 열자 햇살이 콸콸콸 쏟아진다 진달래화분의 팥알만한 꽃망울들 아침 노을 글썽글썽 유두가 가렵다 바람이 스치자 초경의 숨결 파르르 쏟아진다   지하도에서 밀려나와 리라초등학교 쪽으로 피어가는 노오란 책가방을 멘 아이들 명동 역 3번 출구 노릇노릇... 햇살이 쓸고 간다   남산 입구 박새가 톡톡 내가 움찔움찔 두어 발짝 물러서면 등 뒤 수령 460년 은행나무 잎눈들 검은 벽을 뚫고 개굴개굴 기어나온다   웰빙 상상을 사다   쑥고개 시장 노릇노릇 진도 봄동 한 근 1000원 뿌리 통통 살 오른 강원도 산 노지냉이 한 근 3000원 (금요포럼, 한국관광공사 3층 지리실) William James의 재생적 상상의 티각태각 토론 500g 유리창에 비치는 생산적 상상의 햇살 500g 각각 5000원      주방에다 장바구니를 풀어 놓자 봄동에서 초인종이 울린다 진도아리랑 한 가락이 아라리 쓰라리 신림동 고개를 넘어오고 또 노지냉이에서 정선아리랑 한 가락이 내 시에 리듬을  깐다 금요포럼 “웰빙 상상을 사다”내시 행간 행간에에다 이월의 유채꽃 무더기무더기 피워 놓고 노오란 햇살이 렌즈를 들이민다 자! 꼰디발로 키를 맞추고 원산지 표시를 보이세요 티각, 리듬을 약간 출렁거리세요 태각, 앞자크 반쯤만 내려 보세요 티각NG, 화난 얼굴이네요 여기서는 홀랑 벗어도 흉보지 않습니다 미소를 지으세요 태각,  티각태각 상상을  빠져나온다 된장국에다 햇살을 풀어 밥말아 먹는다   패션쇼    쥐색 버버리에 삐뚜름히 이마를 가린 베이지색 베레모  정오의 거울 속으로 들어간다  거울 속 시계 속으로 들어가 다리를 약간 벌려고 몸을  살짝 틀어  포즈를 잡는다  반쯤 열린 창으로 들어와 사푼 다가서는  신세대 패션 붉은 꽃무늬햇살  옆구리에다 두 손을 얹고 둘이서  재깍재깍 돌면서 좌로 우로 포즈를 바꾼다  이때, 공지머리에 투명 개량한복의 앙드레김바람 혀꼬부라진 소리로 중얼중얼 끼어든다 세이서 2열 종으로 1열 횡으로 옷깃 스치며 걷다가 휙 돌아서서 나를 중심으로 나란히 선다 모자를 벗는 그들이 닮은골이다 순간, 내 오른발이 미끄러지고 뚝 떨어져 깨지는 안경알, 앞단추를 풀어헤치고 무료하게 걸려 있다 거울 속에 휴일 몇, 옷을 벗고 사라진다 유리창을 지나는 해가 입술을 바짝대고 키스마크를 찍는다  
1073    송시월 시모음 1 댓글:  조회:1910  추천:0  2020-05-19
송시월 시모음 1   출처 http://blog.daum.net/siiwoell     애기풀새                     옥상 구석  빈 분에 돋는 풀을 뽑다가  멈칫  손끝에 찌르르~ 전해오는 떨림,       어! 이건 초록 새다.  새 잎의 날개 활짝 펴  종종종 발레를 하는 풀,  내 손등       을 간지럼 태우는 풀, 흙에서 막 깨어 난 풀에게"애기풀새야"하고 부르면 이       슬눈으로 나와 눈맞춤을 한다.  어느새  내 눈이 투명해져 보이는 것마다 참       맑 다. 이때 포르르 날아 내리는 한 무리 참새 떼, 무어라무어라 재재거림에       내 입술이 간지럽다.                *나의 시 쓰기/‘사물과 내가 하나되어’-송시월           탈관념의 창작시론인“꽃의 문답법”을 읽었다. 그 이후, 나의 관심은    생명 탐구쪽으로 기울어졌고, 탈관념의 실험을 하는 시류의 아방가르드    대열에 끼어들게  되었다. 새로움에  대한 기대  이면에는 늘 두려움과    회의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선/악을 구분짓는 원죄론(이원론)에 있던 내    가, 사물의 본질은 하나라는 동양적 인식(일원론)에 이르기 까지는 무려    5년 이란 시간이 걸렸다. 암벽 깨기보다 더 힘든 작업이었다. 이제야 어    떤 사물의 상처를 보면 내 몸이 떨리고 아파옴을 느낀다.        4년 전 시류 동인은  아방가르디스트  오남구 시인의 실험에 동참하여     "디지털리즘"  선언한다. 동인의 한 사람인  나는 이후  아날로그시대의    수사학적  말하가(telling)가 아닌 디지털시대의 '보여주기(Showing)'의    시  쓰기를  실험한다. 어떤 사물과의 ‘눈맞춤(靜觀)’을 하고, 직관한    생명의  절편(Unit)을 카메라로  찍듯(접사하거나 염사하여) 언어로 묘사    하는  기법이다. 이때 사물들이 저희끼리 동화되고 때로는 트러블을 일으    키기도  하면서 공명하여  울림을  일으키어  내가  할말을 대신해 준다.     (다만 시는 언어를 통해 태어나는 특성  때문에  내가 쓰는 언어는 지시    적 기능만으로 제한된다) 이것이 내가 실험에  참여하고  있는 디지털적    시 쓰기인, 보여주기이며  생명탐구의 한방법인데, 나의 확장된  인식이    디지털 카메라의  기법을 통해 시로 태어난다고 하겠다.   계곡 물 속의 풍경     -언어의 감옥 1              계곡의 물이랑 일렁일렁 바람이 밟고 간다. 오후 3시의 햇살이 물 속에 꽂힌다. 사정하듯 쏟아져 나온 햇살올챙이들 바람의 보폭만큼 흔들리는 바위의 배꼽 위로 줄줄이 기어오른다. 바위가 갸웃 몸을 튼다. 빛살무늬의 버들치들 물속 어른거리는 개버들 가지의 그물망을 빠져나와 여인의 얼굴에 뜬 하얗게 굽은 낮달을 살랄살랑 지나간다. 여인의 얼굴이, 달이 잠깐 갈라졌다가 이내 붙는다. 얼굴이 찌르르 아프다. 이때, 누군가가 첨벙 손을 담근다.    오후 3시의 풍경에 뒤엉켜 일그러지는관념의 예수.   남산의 동쪽   수녀님 지금 뭐하세요? 잡풀을 뽑지요 잡풀이란 뭐지요? 죄없는 풀인데 사람의 말 아닌가요? 내 투명한 언어에 찔려 산책로 계단을 총총히 내려서는 그녀, 바람에 날리는 풀머리 어수선하게 엉킨다 남산의 동쪽 고만고만하게 누워 아침 햇살에 눈이 부신 초록 뿌리 잘린 명아주 토끼풀 뱀딸기 까시랑풀 몇 밤 자고나니 거뜬히 기지개 켠다 이슬눈 투명하게 굴리며 낯설면서 낯설지 않게 고화질화면으로 푸르게 어우러진 내 아이들 풀 풀 풀   12시간의 성장   --언어의 감옥 4       낮 10시에 흔드는 시계 알 하늘 한 눈금 먹고 나면 초사흘 노른자위에 심장의 실핏줄이 돋고 또 하늘 한 눈금 먹고 나면 오소소 돋아나는 솜털 또 하늘 한 눈금 먹고 나면 온몸이 가렵고 눈자위에 별이 뜬다.   물상들이 또록또록 반짝인다. 중천을 한참 비켜서서 초록 눈금을 먹는 시계 알 초록~ 초록~ 가려움을 쪼다가 미운털이 박히다가 골골골 알을 짓다가 꼬끼오 운다.     구토    ―언어의 감옥 2       2004년 3월 전화기가 구토를 한다     따르릉 폭설을 토한다   따르릉 실크바람을 토하고 오후 3시의 햇살을 토한다   따르릉 진달래를 토하고 하얀 목련을 토한다     엇물린 신호음, 뚜탄 뚜핵 뚜탄 뚜핵......     청계천이 30년 묵은 검은 가래 토하는 소리     물웅덩이  ㅡ자화상     비 그친 후, 물웅덩이  붉은 하늘 한 조각 하늘 속의 물구나무선 반쪽의 가로수 거꾸로 처박힌 빌딩의 모서리와 육교 한 토막, 그 틈새에 납짝 끼인 나 한 조각 언뜻 멧새가 휙 일렁이며 간다   푸른진통  ―언어의 감옥 3               물음표에서 싹이 튼다 모니터에 뜬 비안개 자욱한 쌍우물의 언저리 어느 밤 유성이 떨구어 논 살 비듬?  혹은 월식의 발자국? 초음파로도 판독이 유보된 꺼뭇꺼뭇한 ?들 ?가 낳은 ?의 새끼들 ??? 오늘 봄비에 젖은 애무덤 같은 저것들 푸른 진통 싹!!  쑥잎과 냉이 순이 싹트고 있다      내 유방을 만지면 아직은 얼얼한 강물소리 바람 소리 손바닥에 쑥내음 냉이향이 불그스레 묻어난다 (유방암 조직검사~ 요?)   엘빈의 커피잔         동숭동의 빗소리를 놓고 산목*과 마주 앉으면 커피 잔에 봄비가 내린다. 플라타너스 새싹들에, 노 시인의 두 눈에 이제 막 돌아온  가시내 봄비 티스푼으로 건져 올리면 비 멎은 허공에 물먹은 달 무슨 말을 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거린다.     한 잔 앨빈의 커피와 내 뇌신경이 말똥거리는 밤 창 밖 풀라타너스의 그림자들 유령처럼 서성인다. 저놈의 벽시계는 눈금을 쩍쩍 미끄러뜨리고 가습기는 아라리 쓰라리 봄을 희뿌옇게 뱉어내고            * 山木: 함동선 시인의 호    사각 ―점1     사각 방 속의 나, 보이는 것 모두 사각이다. 사각 벽, 벽면의  거울 액자, 그 밑의 책상, 책상위의 모 니터, 모니터 옆 책장, 책장에 꽂 인 책, 그 옆으로 창문 문밖의 하 늘, 하늘을 이고 선 빌딩, 빌딩에 매달린 간판, 간판 속의 흔들리는 글자들, 사각사각 사각으로  숨쉬 고 사각의 나 모서리가 말을 한다      모리와 모서리가 부딪는 공간, 유리알 하늘을 쳐다본다. 청옥빛 쨍그랑 깨지며 콕 찌르는 햇살 투명한 초록 눈물 주룩 흐른다.   유명산                 내 앞에 걸어가는 다리가 미끈     쭉쭉 곧은 소나무들,      안개로 짠 하얀 실크드레스를 걷어올리고 있다     한 발짝 옮기며 한 꺼풀     또 한 발짝 옮기며 또 한 꺼풀     불그스레 드러나는 열일곱 살결     소나무 사이로 누드를 팔랑거리는 파스텔 톤의 나비     순백한 하늘을 배경으로       고도를 높이자     떨리는 순결이 찌-익 긁힌다     노오란 날개 팔랑거리며 순음 하는 왕오색나비들     칡넝쿨에 앉으면 초록 나비     망초꽃에 앉으면 하얀 나비       입춘무렵              몸 트는 나무 가지에       마른 풀잎에       반짝 띄우는 문자 멧세지         "곧 진도 7도의 진통이 일 것임"         눈이 푸른 휘파람새 한 마리       느닷없이 한참을 기우뚱이는       내 머리 위로       휘이익― 푸른 선율을 그으며 날아간다              온 몸이 간지럽다   얼굴 x           -  언어의 감옥5          하늘의     해 ,달, 별, 천둥 번개, 구름, 비, 노을, 어둠     사람의     그림자, 눈물, 웃음, 언어        땅의     나무, 풀, 꽃, 나비, 강물, 불꽃, 바위     얼굴 x이다         심심한 삼복의 한낮     선풍기 앞에 오면 내 얼굴의 기호들이 조각조각 날린다   좌표에서 달리는 지하철      ―점5             시간이 달리고 있는 X좌표의 지하철에    오전10시 30분 볼펜 Y가 입실한다.    철거덕 문 닫히는 소리    서로의 숨소리 팽팽하게 밀고 당기며 내 눈빛 속으로    빨려드는 이력들.      나는 먹물의 사기범, 너는 이념의 신호등 앞에 서성이는 경계인, 그는 산업    스파이, 초범인 듯 털보송이 노랑머리가 나를 빤히 쳐다본다.    을지로 3가  에서 고속터미널까지 초록숨소리를 토하고 출감한다      X좌표의 국립도서관 3층 자료실에 볼펜 Y가 다시 입실하면    청옥 빛 바람 섬뜩 차다.    책갈피 속 시의 맥박 차근차근 짚다가    파닥거리는 리듬을 복사해 출구를 나서면    내려서는 계단이 기우뚱거린다.      하루에도 몇 번씩 들락거리는 초록생명  Y는 0,1번 Digit   눈부시게 깨어나는 수면공간      ―점. 2                           장출혈 앓는 새벽 4시 45분      머리 위에 수술중이란 표지판이      혈액의 팩처럼 매달려 있다      부슬부슬 어둠이 떨어져 모르스부호로 찍히고      새벽녘의 눈뜨는 공간      반짝이는 상형의 악기들,        가야금자리  갈루버자리  탄부르자리 거문고자리 오보에자리      구슬리자리  클라이버자리 심벌즈자리 수르나이자리 쳄발로자리      라이베스자리  단소자리 가물란자리 마우피스자리 바이올린자리      색소폰자리 파이프오르간자리 클라리넷자리 기타자리 사론자리의          굴러가는 숱한 겨울의 바퀴들, 장엄한 오케스트라      아다지오 알레그로로 안단테로 때로는 프레스토 모데라토로      그믐밤 하늘을 구르는 선명한 선율,      공간 한 귀퉁이가 부서진다   12월 32일, 안개               제2 한강교를 여자가 걸어간다      강물에서 안개가 피어오른다      한강철교가 달리는 차들이 흐물흐물 안개가 된다      여자가 안개를 딛고 사박사박 걸어간다      여자의 오른쪽 다리가 지워진다      왼쪽 다리가 지워진다      두 팔로 허우적허우적 몸통을 끌고 간다      두 팔이 한꺼번에 지워진다       가슴으로 안개를 밀고 간다       여자가 완전히 지워진다        12월 32일의 안개가 여자 속을 걸어간다   청사과   지하철 1호선 청량리 역 청사과빛 둥근 하늘이 승강기 틈으로 굴러 떨어진다 진동음 철거덕철거덕 지긋이 눈을 감은 순간, 내 입에서 주르륵 신물이 흐른다 눈을 뜬다 철로의 틈바구니 파문처럼 번지는 푸르고 시큼한 저 하늘의 입자들 부셔진 하늘이 역내에 온통 널려있다 나는 2번 출구로 빠져나온다 ` 청사과빛 초가을 하늘에 피라미드형으로 쌓인 노점의 과일가계, 내가 볼륨 2개를 빼내자 와르르 무너지는 오후 3시의 하늘   초록 매미   초록 매미 맹∼ 맹∼ 맹∼ 맹∼ 찌르르르∼운다 치과( 구강외과 치주과) 진료실 하얀 차단 막 위의 한상진 의사 “마취합니다, 아∼ 좀더 크게 아∼ 따끔거릴 거예요” 진초록 마취제가 왼쪽 아랫잇몸을 찌르르 흐른다 매미울음의 큐렛에 시큼 들렸다 놓았다 하는 내 이빨들  윗니 어금니가 덩달아 운다  눈, 코, 입, 전신의 구멍들이 운다  "끝났습니다 양치하세요" 이빨모서리에 찔린 비릿한 피울음 몇 번이고 헹궈낸다   붉은 치통을 쏟는 오후 3시 내 머리 위를 몇 발짝 비켜 느티나무에 기대선 푸른 신호등이 찌르르 운다      *큐렛: 잇몸 치료기   어느 휴일의 NG      잘 익은 백도 맛 같은 길, 부암동「머리하는 날」을 기웃거리다가 얄팍한 지갑을 만지작거리다가 불룩한 아랫배, 150억+알파의 덩치를 상상하다가 NG, 북한산을 축지법으로 한 바퀴 돌아 시청 앞 광장, 인공기의 불춤에 한숨 몇 바가지 끼얹다가 NG, 인사동「된장 예술의 집」에서 어느 시인과  된장 비빔밥을 먹다가  NG, 된장찌개! 토종인 내가 아주 맛지게 재창작해 새로운 된장 예술의 간판을 내 걸어야겠다고 생각하다가  NG, 어느새 총동원된 내 안의 악기들, 뚝딱와글벅적썰고볶고지글뭉글끓이고지지고...... 된장 예술의 새로운 디지털 기법, 한참실험 중이다.   배가 아프다, NG   비구름이                    남산타워 꼭대기에서 미끄러져 내린 비구름이, 절룩절룩 예장동 산 5번지 6호 와룡묘 풍경 소리에 잠깐 귀 기울인 비구름이, 비염 앓는 산까치의 기침 소리를 밟고 산책로 108 벚꽃 계단에서 헛발을 내딛는 비구름이, 교통방송국 안테나를 훌쩍 휘어잡다 도미노 피자가계로 넘어진 배고픈 비구름이,"물은 미래의 행복" 산업자원부 에너지 광고판의 "물" 이란 글자를 벌컥벌컥 들이키는 비구름이, 벽보 속 장서희의 촛불을 들고 미선이와 효순이를 추모하는 비구름이, 폭격 맞은 이라크 어느 소녀의 귀 비구름이, 텅 빈 내 방의 유리창에 살며시 귀를 댄다. 비구름이   마라토너          전국을 완주해 온 봄비!  남산의 보호수    서2-7, 400년 은행나무 594㎝  서2-6, 450년 느티나무 637㎝  가슴둘레를 파랗게 문질러 놓고     숨소리 고르게 을지로 1가  지금 막 내 앞을 지나는 중이다  봄비를 마라토너들이 추격 중이다  뒤이어 플래카드를 든  맨몸의 가로수들이 달린다   플래카드 속 붉은 글자들도 달린다   ‘강국의 중심 ADSL 한 수위’   ‘정상의 물 山水’       가로수 연두 빛으로 빗는다, 봄비!  그때, 빌딩 사이 반짝  물구나무선 햇살에  마라토너들이 추격하고 사라진다   일몰, 4분간             #1         오후 5시 47분이 해를 떨어뜨린다         서산의 이마에 폭삭 깨지며 번지는 핏물, 내 얼굴을  만지자         손바닥이 붉게 젖는다           #2         오후 5시 48분이 빈 논 귀퉁이에다 모닥불을 지피고  있다          젊은 허수아비들 논둑을 서성이며 매운 기침을 하고          낱알을 쪼던 참새 떼 어디론가 재재재 이동중이다           #3          산꼭대기에서 오후 5시 49분이 어스름을 걸치고         성큼 내려선다         길들이 아슴아슴 지워져간다                 #4        오후 6시가 가로등에 일제히 불 알을 켠다        스카이 모텔도 층층 긴 불 알을 켠다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4분간, 눈떴다 감았다 용두휴게소 가등 아래         쫄깃한 우동발을 후르르 삼킨 나, 아직도 배가 고프다      겨울 화단        -  점,3        고만고만한 새내기, 화초들  신축 SK빌딩은 겨울 화단이다   정문 옆 맨 첫줄 수호초, 상록패랭이, 송악, 꽃양배추, 원출무늬사사, 왜란, 헬레부로스, 줄 바꿔 늦개미취, 무늬쑥부쟁이, 지피말발도리, 홍매자나무, 또 줄 바꿔 노랑조팝, 삼색조팝, 관중, 맹문동 끼리끼리 이름표를 달고 갓 입사한 듯 어깨 쭉쭉 펴거나 조금은 움추리고 서 있다. 감전주의보 표지판을 살짝 비켜 이름표(원추리 옥잠화)만 덩그머니 서있는 빈자리에 추운 내 아이의 그림자 서성이고 그 사이사이 경력의 소나무들 굵은 대지팡이로 빨갛고 노오란 성탄의 별자리 둥굴게 띄우고 있는 12월     화초들 층,층 놓여 23층이 된다      1.5평의 내 방, 화병에 꽂힌 입술 마른 황색 장미 한 잎 두 잎 지고       맹인 부부       - 점4       검은 잎과 붉은 잎들 구르는 소리   그 소리가 남산 산책로에 간다.   그 뒤로 맹인 둘이 똑똑 점을 찍고 가고   그 뒤로, 그 뒤로 독똑똑......     가던 길 멈춰선 맨 앞의 맹인 부부   盲人보호철책에 기대선다.   그들 머리 위, 개나리 12월의 꽃송이 몇 점 피어 있다.   무어라 소곤거리다가 고개를 치켜들고   뒤따르던 맹인들도 한 방향으로 서서 웃는다.   이때, 산까치 한 마리 깍깍깍 날아가고   조지훈 시비에서 아득히 들려오는   파초 잎에 떨어지는 빗소리   맹인들이 찍고 가는 소리    똑, 똑, 똑   배추를 절이며                  쓴 소리의 왕소금을 뿌린다       조간신문 행간의 갈피마다 뿌린다       배추포기의 꼭 다문 속잎에도 누우렇게 헤벌어진 겉잎에도       켜켜이 뿌린다       간밤의 열대야와 한낮의 복더위도 끌어다 눕혀 뿌린다       병풍 서풍 비리비리억풍의 날개도 싹뚝 잘라 설설 뿌린다       구름 안개 어둠 계절풍 걸신들 듯 퍼먹어 네 탓, 내 탓,       빨치산 친일파 국민의 이름으로 어쩌고저쩌고 설사하듯       게워내는 입술에도,        얼쑤절쑤 귀거리인지 코거리인지 법이란 놈의       곱사춤의 등줄기에도 쓴 소리의 왕소금을 뿌린다       물 한 바가지 끼얹는다            저 연노오란 속 배기 한 잎       내 텃밭에 남겨 두기로 한다     bill, 빌빌거리다       쉴새없이 날아드는 bill,빌, 청구서들     카드결제청구서 건강보험고지서 국민연금 전화요금     전기료 오물세 수도료 신문대금 할부금 소득세     빌의 숫자들에 이리 끌리고 저리 끌려 빌빌거리다     한 달이 가고 일년이 가고 한 생이 가고         가을이 내게 청구서를 보내온다     문틈으로 햇살의 종이쪽지를 들이밀다가     바람이 활짝 창문을 열어제치다가     아예 빚쟁이처럼 안방까지 퍼질러앉는다     가을 내내 빌빌거리는 내게 더덕더덕 붙여오는     붉거나 노오란 낙엽 딱지들, 나는 전신 차압되었다     이제 몸도 마음도 내 뜻대로 어찌할 수 없는,     1400g의 뇌가 온갖 청구서의 무게에 빌빌거리다     머지않아 부도처리될 것이다     풀처럼 꽃처럼 bill,빌,         이륙하는 비행기의 굉음소리   비양도 태몽        사람들은 이 섬을 비양도라 불렀다.      산봉우리 하나가 날아오는 것을 보고 촉새네가 방정맞게 "산이 날아온다 " 외치자, 중국 쪽에서 날아 오던 그 봉우리가 제주 앞 바다로 다이빙하 듯 뛰어 내렸다. 그 후 닷새 동안이나 코피를 쏟고 나서 주저 주저앉은 섬, 그 후 비양도는 보름달이 뜨면 가끔 시인의 "말의 오두막집"* 뜰로 불려갔다.        내 시가 추락하는 비양도. 하늘, 바람, 파도, 새의 노래, 나무, 꽃, 나비 의 춤 이런 것들로 그득하다. 숨소리와 날개가 늘 푸른 비양도, 푸른 날개 반쯤 접고 엎드린 저 섬이 언제 또 훌쩍 날아가 여의도쯤에다 코피나 쏟지 않을는지, 밤낮 없이 꽃과 새와 나무들 노래와 춤으로 꿈틀거리는 넝마살이               *윤석산 시인의 시집 제목         구토        - 언어의 감옥2           2004년 3월 전화기가 구토를 한다     따르릉 폭설을 토한다     따르릉 실크바람을 토하고 오후 3시의 햇살을 토한다     따르릉 진달래를 토하고 하얀 목련을 토한다     엇물린 신호음, 뚜탄 뚜핵 뚜탄 뚜핵....         청계천이 30년 묵은 검은 가래 토하는 소리   월식      나는 늘 자전의 바퀴만 굴렸다. 북극의 해를 찾아가면 해는 이미 남극에 가 있고 남극으로 가면  해는 북극으로 간 뒤였다. 해도 달도 없는 월식의 밤, 빗장 닫아걸고 천둥 같은  빗쟁이의 전화벨  소리도 재워놓고, 하늘의 별자리를 따라다녔다. 0.3초, 그 혼돈의 눈빛으로 오리온좌의 왼쪽 붉은  베델규스가 되다가  오른쪽의 푸른 리켈이 되다가, 아래의 푸르스름한 시리우스가  되기도 했다.  이때마다 나를 에워싼 구름, 비, 안개, 침묵까지도   푸르거나 붉게 익어갔다. 자유 평화 사랑 꿈  이런 말들이 머루빛으로 익은 지상의 밤 "엄마"하고 부르는 딸아이의 목소리는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잘 익은 머루알이였다. 나는 머루빛 밥을 짖고 때로는 친구를 만나 머루빛 눈이 내리는 길에  서 머루빛 시를 이야기했다.    지금은 시큼하게  어둠이 발효된 부엉이 날개가 꺾인 새벽 2시 좀생이별을보는  순간, 어둠이  초생달 하나를 반쯤 토해내고 있다.   12월 그리고 통증                벽의 달력에서 쏟아져 나오는 숫자의 파리떼, 탈옥하는 죄수들이다. 윙윙거리며 닥치는 대로 입술을 들이민다. 나를 빤다. 숨소리를 빨고 눈빛을 빨고 살을 빨고 말랑한 것들은 모두 빤다. (이건 분명 대 재앙이야) 나는 유방을 자궁을 뇌를 손으로 움켜쥐며 필사적으로 쫓는다. 엎치락뒤치락 옥 매트 위에서 굴러 떨어진다. 꿈이였다. 벽에 걸려 반쯤 찢어진 채 파르르 입술 떨고 있는 12월, 노을 빛 창이 어둠을 빨아들이고 있다.   크리스마스트리의 꼬마전구들, 그 반짝임 아래로 한 여인이 겁먹은 12월 통증이 지나가고 있다.   장미꽃 해부도                     - 슬픈 중심                    장미꽃에도 선율의 수평선이 있다        일렁일렁 나의        감각들 일렬 횡대로 걸어가고 있다        황홀하고 두려운        장미꽃,        머리위로 새털구름 몇 가닥 흘러간다        한창 뻐꾹뻐꾹 초음파의 울음소리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면 발목을 타고 오르는         반짝이는 소름의 찰거머리들        내 몸은 푸른 가시가 돋는다        고감도영상, 자궁의 저 아름다운 장미꽃        가시밭에 너무 활짝 피어            슬픈 중심             어지럽다        꽃술 몇 개 간당간당 매달려        충혈된 눈자위 빙그르르    아침 여섯시는 백지다              백지에 반짝 나는 것들     새벽바다 풍랑 위를 유유히 걷는 한 사나이의 뒷모습이     반짝 날고     萬古長空에  一朝風月이     반짝 날고                        불 속의 거미집에서 차를 달이는 고기의 등이*     반짝 날고     임오군란의 와중 피신하는 민비의 "살아야 돼" 절규가     반짝 날고     노오란 은행잎이, 가을바람의 비질이     반짝 날고       환하게 눈을 켠 아침 여섯시는 백지다.     권태로운 밥상 위 잡탕의 언어들, 비빔밥그릇에 비가 내린다.   호랑나비       4월의 아차산 생태공원 입구, 골목에서 벚꽃이 뻥튀기처럼 뻥 핀다. 벚꽃 사이 햇살 속에서 튀어나온 호랑나비 묻힐 듯 말 듯 꽃 속을 난다. 내 동공 안으로 푸른 하늘의 배경을 확 당기자, 꽃술을 밀며 들어가는 나비! 내 눈썹에 와 간질간질 닿는다. 나비가 떤다. 내가 떤다. 떨리는 두 팔이 가벼워지고 나도 나폴거려 본다. 이때, 일방통행 길에 포크레인이 지나가고  생태공원 호랑나비의 환영, 드르르르 뭉개진다.        애기풀새        옥상 구석 빈 분에 돋는 풀을 뽑다가 멈칫 손끝에 찌르르~ 전해오는 떨림, 어! 이건 초록 새다. 새 잎의 날개 활짝 펴 종종종 발레를 하는 풀, 내 손등을 간지럼 태우는 풀, 흙에서 막 깨어 난 풀에게 "애기풀새야" 하고 부르면 이슬눈으로 나와 눈맞춤을 한다  어느새 내 눈이 투명해져 보이는 것마다 참 맑다. 이때 포르르 날아 내리는 한 무리 참새 떼, 무어라무어라 재재거림에 내 입술이 간지럽다.   겨울 새벽 풍경                    샛별 몇 개 깜박거리는 새벽의             TV 뉴스 화면,            쓰나미가 지나간 몰디브의 바다, 12월 31일 여진의 해일이 일고            막막하게 떠도는 산호초의 섬 몇 개            32일을 표류하고 있다            을지로 1가 ㄷ자로 둘러싼 고층빌딩들 드문드문 뜬 사각의 눈으로            쌍방통행의 빈 길을 내려다본다             하얀 파카를 입은 핸드폰 하나 무어무어라 암호의 그림자를            흘리며 뛰어가고            눈이 침침한 가등이 블랙커피를 마시고            1.5평 어스름의 방 안, 점 하나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계곡 물속의 풍경 ―언어의 감옥 1                  계곡의 물이랑 일렁일렁 바람이 밟고 간다. 오후 3시의 햇살이 물속에 꽂힌다. 사정하듯 햇살올챙이들 쏟아져 나와  바람의 보폭만큼 흔들리는 바위의 배꼽 위로 줄줄이 기어오른다. 바위가 갸웃 몸을 튼다. 빛살무늬의 버들치들, 물속 어른거리는 개버들가지의 그물망을 빠져나와 여인의 얼굴에 뜬 하얗게 굽은 낮달을 살랑살랑 지나간다. 여인의 얼굴이, 달이, 잠깐 갈라졌다가 이내 붙는다. 얼굴이 찌르르 아프다. 이때, 누군가가 첨벙 손을 담근다.   오후 3시의 풍경에 뒤엉켜 일그러지는 관념의 예수.   아침 찻잔       오후 여섯시 30분   30층 옥상 위로 굴러온 달   둥둥둥 바람에 울리는 황금 북소리, 배가 고푸다    저녁 11시   내 머리 위에서   노오랗게 쏟아지는 오랜지향기, 새콤달큼 배가 부르다   새벽 3시   남산 타워 뒤쪽   구절초 언덕길 넘어가는 만취한 그림자 하나    비틀비틀 공복의 헛기침을 한다     아침 찻잔에 반쯤 떠오른 달, 구절초 향이 아리다   새벽          새벽 3시       별똥별 하나 검은 하늘에 사선의 빛줄기를 긋는다         술을 마시고 방금 들어온 작은애가       냉장고에서 별을 꺼내고       별 하나 귤처럼 달콤하게 삼키고       이내 코를 고는 새벽종소리       촛불을 든 아이들       고요한밤 거룩한 밤을 부르며 지나가고       밤새 빛을 찾아 헤매다가 언 2003년 여의도의 겨울 철새 몇 마리       푸드득 나무 가지에서 떨어지고       눈이 내리고       건너편 박도순 산부인과 분만실 신생아의 울음소리         누군가가 별과 연결된 퓨즈를 끼운다    앨빈의 커피잔         동숭동의 빗소리를 놓고 산목*과 마주 앉으면   커피 잔에 봄비가 내린다.   플라타너스 새싹들에, 노 시인의 눈에 이제 막 돌아온   가시내 봄비   티스푼으로 건져 올리면 비 멎은 허공에 물먹은 달   무슨 말을 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거린다.     한 잔 앨빈의 커피와 내가 말똥거리는 밤   창 밖 풀라타너스의 그림자들 유령처럼 서성이고 있다   저놈의 벽시계는 눈금을 쩍쩍 미끄러뜨리고   가습기는 아라리 쓰라리 봄을 희뿌옇게 뱉어내고          * 山木: 함동선 시인의 호    영하 16도 아리랑                   아침  수도꼭지가 헛돈다            동쪽 능선의 벨브가 열리며 햇살이 영하 16도를         끓인다         청량고추바람을 다져 넣고 얼어붙은 가계부와         “핵”이란 붉은 글자와 갱년기의 요도괄역근을         숭덩숭덩 썰어 넣고         낡은 처마 끝 극좌와 극 우측의 고드름도 따 넣는다            햇살이 내 두뇌의 열 두 신경 줄 현을 탄다         수도꼭지가 요실금처럼 오줌을 찔끔거리고         유리창이 눈물을 흘린다         북한강 남한강이 쩍쩍 엇갈려 부셔진다         반 박자 빠르게 혹은 반 박자 느리게           아라리 쓰라리 아리랑을 엇모리로 편곡중이다     風,楓,풍자에 대하여                    風자에다 가만히 귀 기울이면       여름과 가을 사이, 삐꺽이는 소리가 난다       매미들의 토막울음 소리       내 손바닥 허물 벗는 소리       며칠 전 제대한 아이가 긴장과 이완의 골에서 흔들리는 소리          여름과 가을, 그 사잇길로 태풍이 몇 차례를 지날 때 발부리에 채이는 감나무 밑의 풋감처럼, 설  익어 뱉어진 내 언어들도 지금쯤 누군가의 발 밑에서 나뒹굴거나 으깨지고 있을까? 할 말은 해야 한다고, 함부로 내뱉지 말아야한다고, 혀와 입술이 밀고 당기며 삐그덕 소리를 낸다.            楓자에 가만히 귀 기울이면       나무들 초록빛깔 벗는 소리       제 몸 다 태워야 다시 태어날 수 있다 불길 번져       하늘 끝 타는 소리       風,楓,풍!       획과 획을 통과하는 소리 소리들    4 월 은 갈 지(之)자 다       4월의산은之자다      붉은갈지(之)노오란갈지(之)초록갈지(之)연보라빛갈(之)      앞서거니뒤서거니어깨동무를하거나바람의요람을타거나      하늘하늘공중곡예를하거나      갈지(之자사이로갈지(之)갈(之)새울음이날고      갈지(之)갈지(之)산딸기가열리고      계곡의물이흐른다      색색의배낭들이색색의모자들이      무지개빛갈지(之)자사이로갈지(之갈지(之)      걸어오고걸어온다      4월의산은갈지(之자다    유명산               내 앞에 걸어가는 다리가 미끈           쭉쭉 곧은 소나무들,            안개로 짠 하얀 실크드레스를 걷어올리고 있다           한 발짝 옮기며 한 꺼풀           또 한 발짝 옮기며 또 한 꺼풀           불그스레 드러나는 열일곱 살결           소나무 사이로 누드를 팔랑거리는 파스텔톤의 나비           순백한 하늘을 배경으로             고도를 높이자           떨리는 순결이 찌-익 긁힌다           노오란 날개 팔랑거리며 순음 하는 왕오색나비들           칡넝쿨에 앉으면 초록 나비           망초꽃에 앉으면 하얀 나비   산부인과 수술대 위의 칸나꽃                              칸나꽃이 아프다.     빌딩의 그늘이 짓밟고 간 칸나꽃     48도의 고열이 오르고     신음, 신음     꽃잎이 쏟아진다. 하혈인 듯,         (섬광 한 줄기, 이슬 한 방울 흐른다.)          마침내 햇빛 산부인과 수술대 위에 누운 칸나꽃, 87 마이크로미터의 미세먼지 속을 걸어 온 여름날, 나의 혈압은 머리끝에 곤두서고 심장은 100m 경주하듯 뛴다. 산소의 테놀민으로 혈압을 꿇어앉히고 부분 마취를 시킨 후 꽃받이에 돋아난 중금속의 근종!! 빛살의 칼날이 지나간다.       자웅동화의 길을 막던 울퉁불퉁 부스럼들 다 도려낸 칸나꽃,     꽃술 열어 깔(色)이 싱싱하다.     햇살보다 더 붉은 페르몬 향, 환하게 흐른다.   파아란 휴일        징검다리 휴일이 건너가고 있다.      풍덩 풍덩 휴일의 울안으로 뛰어드는      꽃과 나무와 새      라일락 쩔쭉 자목련 싸리꽃 은행나무 느티나무      손사래치는 잎새들 사이로      참새 두 마리가 포르르 날고      창문 간유리 하늘이 성큼 배경으로 선다          유리창을 닦다가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는      휴일에 지는 꽃잎의 게이트 게이트 게이트      (파아란 창의 이 여유!)      휴일의 강 징검다리 디딤돌 휘돌아      소용돌이로 피어나는 4월의 꽃들   4월의 부호들                     1       황사바람에 날리는 벚꽃잎들       안약 히아레인 눈물방울에 젖은 붉은 눈동자,       4월의 부호들이 가렵다.                2      눈을 감으면 고흥 반도 내 유년의 방죽      지평선을 날으는 갈매기의 날개가 가렵고 썰물의 갯벌을 기는      꽃게의 빨간 발이 가렵다.      튀는 망둥어의 꼬리가 가렵다.               3      한 치쯤 자란 고만고만한 모싹들이 서로의 등을 긁는      교동면 상황리 논바닥이 천연기념물 205호      저어새의 질척한 울음소리를 긁는다.      등량만에서 산지 직송되어온 염포탕집 냄비 속      오돌토돌 낙지의 발이 내 눈을 긁는다.        떠도는 4월의 부호들이 가렵다   위 염             오전 11시10분   화살표(→)를 날린다   서울→신촌→수색→화전→강매→행신→능곡→고산→백마   →일산→탄현→운정→금촌→원릉→파주→문산→임진강→   도라산역에 꽂힌 통일호.            정 지!   라이트 꺼!   시동  꺼!   실내등 켜!   운전병 하차!   창문 내려!       전망대에서 침침한 내 눈빛의 화살을(→) 날린다.  한낮의 어둠을 뚫고 원경 12KM 밖  내 스승의 고향 개성의 등에 얹힌다.  하얀 치마저고리에 흰 머리칼 날리는 안개, 어머니    거푸거푸 신트림이 넘어온다.  오래 동안 잠복해온 그리움의 헬리코박토파이로리.     흐름을 위하여                            거시기가 흐른다        계곡의 노을 빛 물줄기        보름달밤 이슈타르*의 붉은 눈물        꽃나무 흔들어 깨우는 봄비        내 어머니의어머니의 장독대 옆 금줄 너머의 붉은 바람         거시기의 증후군       두근거리는 꽃술에다 달빛 솔솔 뿌리면       한층 깊어지는 이 우울       커피, 초코렛, 설탕, 소금, 술은 금줄 너머에 둔다        여기저기서 거시기꽃 피고 지는 소리             나는 500번쯤 꽃 둘레 돌아 나왔어도 그 꽃을 모른다      거시기를 따라 오늘도 빛이 오고      어둠이 오고          *고대 바빌로니아의 여신   약 손            한 마음 신경정신과          거울을 막 빠져나온 휘청거리는 해          신당동 지하계단에서 굴러 떨어진다          내 중추의 열두 계단까지 미끄러진다          정전이다          구세군 자선냄비의 종소리 파랗게 흐르는 지하도가           김밥처럼 또르르 말린다          명치끝에 걸린 영하 7도의 어둠          찌릿찌릿 뒷골로 치솟아 오른다          어지럽고 메스껍다          이때, 어느 출구인지 부스럭 뛰어내려 내 등          까실까실 쓰러 내리는 마른 플라타나스잎들          어머니의 약손          (어릴 적 횟배 앓아 온방을 뒹굴 때 어머니의 손이          사알살 문지르면 거짓말처럼 금방 일어나 뛰어 놀곤 했다)          내 안에 맺힌 구멍이 뚫리고            일만 삼천 샛길들이 환하게 일어선다   안경점 앞에서        명동입구 밝은 세상 통 유리 안의  툭툭 튀어나온 눈알들이 나를 노려보고 있다  바짝 다가서자  수 백 개의 안경알 속으로 내 눈빛이 빨려 들어간다   검게 불그죽죽하게 혹은 투명하게  순간, 내 몸에 촘촘히 뜨는 마른눈들  떴다 감았다 뻑뻑하다    말아 쥔 신문을 펼친다  “이라크 테러집단에 인질로 잡힌 김 XX씨 살해됨”이란  활자의 지렁이들 토막토막 꿈틀거린다  이때, 검은 새 한 마리 긴- 선을 그으며 하늘 저편으로 사라지고  갑자기 캄캄해지는 사위  지팡이하나가 내 발등을 툭툭 치며 지나가고  붉은 장미꽃안경알이 밟혀 깨진다    내가 안경을 벗자 흐릿하게 공중을 기어오르다 낙상하는  빌딩의 개미떼들   노을이 뒤척인다                    저녁노을 뒤척이는 소리     아래층 사오정씨 매일 출근을 한다. 오늘은 북한산 내일은 관악산에서 퇴근한 그는 한 필쯤의 노을 오려다 서른 다섯 새카맣고 큰 눈을 뜬 아내의 목에 스카프처럼 걸어 준다. 그의 귀에는 밤새 스카프 뒤척이는 소리가 난다.   이태백의 내 아이, 담뱃불 타 들어가 듯 물드는 단풍, 당단풍잎 한 장이 밤새 잔기침을 하며 대문을 들락거리고 창틀엔 스무 하루 새벽노을이 걸린다    아침, 사오정씨 8차선 도로를 한 절룩절룩 무단 휭단하고 있다   나팔꽃                하나,둘,셋!   눈 질끈 감고 나팔꽃줄기를 뽑는다   휘청 엎어지는 서녘하늘        10월과 11월   까실까실 담당에 붙은 나팔꽃 줄기    씨방 몇 개 매달고 말라가는 신경줄   가위질 한다   부슬부슬 떨어지는 갈색 각질, 바스락 끊긴 리듬,   종량제 쓰레기봉투 속으로 눕힌다   내 발 밑에서 노을 부스러지는 소리     철새 한 무리 하늘 저-켠으로 검은 줄기를 놓는다     더듬이     구석구석 더듬어도 잠이 없는 밤 유리창 안으로 굴러든 한가위 보름달이 나를 꼬드겨 일으킨다   달과 손잡고 종로통을 밤새 걸으며 뒤적거려도 이상도 구보씨도 만나지 못하고 다방 제비나 다옥정 7번지는 흔적조차 없다   시장통이나 들판을 아무리 헤매어도 내가 영원히 회귀할 곳은 마땅치 않다   팽목항에 가서 잠수를 할까 한산섬에 가 이순신과 수루에 앉아 시나 한 수 지어볼까 아니면 평양에 가서 김정은과 맥주나 한잔하며 “핵장난감놀이는 싱거워졌으니 나와 함께 유라시아 철도놀이를 하는 게 어때“ 하며 등이나 슬슬 긁어줄까   신경증의 프로이트는 밤잠을 설치면서 정신분석학의 창시자가 되었다는데 고흐는 정신병원에서 별을 주물럭거려 소용돌이치는 자기만의 별, 불후의 걸작을 만들었는데 조을증 환자 다윈은 밤마다 잠과 싸우며 적자생존의 원리를 터득했다는데 뉴턴과 아인슈타인의 정신분열증의 밤은 만유인력과 상대성원리의 태반이 되었다는데   미네르바의 부엉이와 내가 둥근 문하나 찾아 밤새 더듬은 달이 희뿌옇게 빛을 死産하고 있다     모기     낯선 행성의 배를 탄 별난 밤 파랑 치는 이명을 긁는다 충혈 된 눈에 떠오르는 별, 꼬리를 잇는 별별 생각들   고, 군, 산, 열도를 탄다   구름처럼 떠다니며 색색을 탄주하는 칸칸의 섬들 랑거한스섬*을 잃어버린 낭구갈매기가 끼룩낭구 끼룩낭구 따라오다가 M선생님이 하이퍼하는 ‘새우깡’이란 언어를 받아먹고 하이퍼 하이퍼 활강을 한다   바다에 떨어진 새우깡 몇 개 기웃뚱이는 꼬임의 경계가 두렵고 불안한 나 하늘을 야금야금 갉아먹는 낮달을 향해 손바닥 마주쳐 공포탄을 쏜다   폭발하는 팔레스타인 하늘 내 눈에 총총총 박혀오는 검은 포도알 눈들 비실거리는 내게서 무얼 먹겠다고 글썽이며 파고드는지   이흥도 역을 지나 아직 장자도역인데 가자지구도역엔 언제쯤 닿을까   바람에 날리는 초조한 내 사유의 불랙박스, 바람이 해체한다   공룡알을 품은 나금재 통통마디 공작초 함초밭이 질펀하게 노을을 싸고 있다   1869년 췌장에서 특수한 세포집단을 발견한 랑거 한스가 자신의 이름을 따 랑거한스섬이라고 명명하다 인슐린이 만들어짐을 아직 발견하지 못한 때였지만 후에 영국의 샤피-사퍼(1850년-1935)는 당분대사에 필요한 물질이 랑거한스섬에서 만들어진다고 생각하여 섬을 뜻하는 라틴어insula를 따서 인슐린이란 이름을 붙였다     해안선       유리컵에 두 개의 노을빛 해안선이 그려진다   하늘을 수장시키고 하늘을 건져 올리는 한 여름의 짜디짠 해안선, 제부도 조력발전소 타는 내 입술적시며 달의 주기는 밀려왔다 밀려가고 깊고 깊은 바다의 육감들 왜 이렇게 내 젖은 맥박을 느려뜨리고 있는지   사소한 일렁임이 사소하지 않게 출렁이는 파키스탄의 15살 소녀 말랄라 “한 자루의 펜이 세계를 바꾼다”는 속 깊은 속삭임이 노벨평화상이란 봄꽃을 전 지구에 피워가고   윗입술과 아랫입술이 부딪혀 유속을 빠르게도 하고 느리게도 하면서 새로운 예술 사조를 모색 중이라고 마를린 먼로의 붉은 입술로 사방 연속무늬를 끊임없이 그리고 있는 피카소   바다의 속 깊은 속도전은 이론이 아닌 사건이라고 써놓은 해안선에다 석양의 물너울이 나를 새롭게 편집하고 있다   나는 입술 밖에 있는가 입술 안에 있는가     polyandry*       잠시 經의 갑옷을 벗고 맨몸으로 제게 와 주세요 딱 하룻밤씩만 두 분에게서 쌍둥이를 낳고 싶어요   부처와는 ‘남북’과 ‘자비’를 예수님과는 ‘동서’와 ‘사랑’을 낳아 넷이서 뒤통수 맛 대면 멋진 입체파 그림이 될거예요   나와 싫으시면 두 분이 동성애를 하시든가 그도 싫으시면 상의 하셔서 한분이 성기수술을 하시는 건 어때요 ‘돈오 점수’나 ‘구원’ 둘은 꼭 낳아야겠으니까요 ‘해탈’과 ‘부활’ 도 상의해보시고요   예수님을 팔고 있는 유럽이 돈돈돈 돈타령인데도 왜 멸망하지 않을까요 부처님의 나라는 너무 더워 돈도 녹아내려 점수는커녕 돈오도 못할 것 같네요   예보도 없이 오리알만한 우박이 내 머리통을 치네요   요즘 낌새로 보아 사람들끼리 놔두면 원숭이로 퇴화되거나 씨가 마를까 두려워요   그도 저도 싫으시면 ‘종말’이란 화두 삐라처럼 뿌려 놓고 세상을 아예 폭파시켜 버리든가요   오늘은 동서남북하늘이 유난히도 고운 생리혈 철철 흘리고 있네요   * 1처 다부제(폴리앤드리)     싸리꽃     슬로시티 슬로시티   잠이 간간하게 마른 내가 밤새 증도와 신의도를 어슬렁거렸다   목이 말라 염수가 덜 빠진 짜디짠 별을 먹었다   내 몸에 피어나는 하얀 싸리꽃 짜초름한 향기에 시나브로 절여지는 나   딱딱해져가는 내 안에서 총동원되어 드레박질 하는 세포들   0.9%의 나트륨을 유지키 위해 포타슘언어를 낳기 위해 지금 이순간도 반투막 밖으로 짜디짠 관념의 외액, 싸리꽃 피워내는 소리   너무 오래 절은 나를 맹물에 울궈 세탁기에 넣고 탈수 버튼을 누른다     시문학 10월호 게제
1072    내가 읽은 해외동시 묶음 댓글:  조회:1761  추천:0  2020-05-05
 추운 날 / 이 준 관   추운 날 혼자서  대문 앞에 서 있으면요.      지나가던 아저씨가  ―엄마를 기다리니? 발 시리겠다.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온, 저런. 감기 걸리겠다. 집에 들어가거라.      지나가던 강아지가  ―야단맞고 쫓겨났군. 안됐다. 컹컹.      대문 앞에서 친구를 기다리는  내 마음  알지도 못하고…….      팽, 팽, 팽, 돌고 싶은 팽이가  내 주머니 속에서  친구를 동동 기다리는 줄도 모르고…….    (초등학교 2학년 교과서에 실린 작품)   냇물이 꽁꽁 얼었습니다. 팽이를 치러 가려고 합니다. 대문 앞에서 주머니 속의 팽이를 만지작거리며 친구를 기다립니다.  친구는 오지 않고 지나가던 아저씨가 말합니다. "엄마를 기다리니? 발 시리겠다." 아주머니가 걱정을 합니다. "온, 저런. 감기 걸리겠다. 집에 들어가거라." 강아지도 약을 올립니다. "야단맞고 쫓겨났군. 안됐다. 컹컹"  마음이 답답합니다. (김종상)    + 빨랫줄 / (조영수·아동문학가 징마가 끝난 뒤 아빠와 이불을 널려고 하는데 이런이런 나팔꽃이 먼저 넝쿨손을 뻗어 젖은 분홍 꽃봉오리를 널어놓았다. 이런이런 수세미가 먼저 넝쿨손을 뻗어 젖은 노랑 꽃을 널어놓았다. + 빗방울 / (작자 미상)     또르르 유리창에 맺혔다.   대롱대롱 풀잎에도 달렸다.   방울방울 빗방울이 모여서   졸졸졸 시냇물이 흐른다.   + 모래 한 알 / (정용원·아동문학가)   모래 한 알이 작다고 하지 마 눈에 한 번 들어가 봐 울고불고 할 거야.   모래 한 알이 작다고 하지 마 밥숟갈에 한 번 들어가면 딱! 아이구 아파! 할 거야.   모래알들이 작다고 하지 마 레미콘 시멘트에 섞이면 아파트 빌딩으로 변할 거야.     + 들리지 않는 말 / (김환영·극작가이며 삽화가, 1959-)   풀섶 두꺼비가 엉금엉금 비 소식을 알려온다   비 젖은 달팽이가 한 잎 한 잎 잎사귀를 오르며 길을 낸다   흙 속에서 지렁이가 음물음물 진흙 똥을 토해낸다   작고 느리고 힘없는 것들이   크고 빠르고 드센 것들 틈에서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는 바닥 숨을 쉬고 있다     + 고 조그만 것이 / (전영관·아동문학가)   고 조그만 산새 알에서 하늘을 주름잡는 날개가 어떻게 나올까?   고 조그만 꽃씨 속에서 아름다움을 주는 꽃이 어떻게 나올까?   고 조그만 새싹이 자라 밀림을 만드는 아름드리 나무가 어떻게 나올까?   고 조그만 아기가 커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 어떻게 나올까? 흙 / 최 운 걸   흙 속엔 가지가지의 빛깔이 있나 봐. 그러길래 노랑, 빨강, 하양… 꽃도 가지가지 피나 보지.   흙 속엔 가지가지의 맛이 있나 봐. 그러길래 딸기, 자두, 포도랑… 과일도 가지가지 맺히나 보지.   흙은 푸짐한 마음씨를 가졌나 봐. 그러길래 씨 한 톨 떨어지면 열매도 백 곱절 더 주나 보지.     흙 속에는 '가지가지의 빛깔이 있나 봐' '가지가지의 맛이 있나 봐' 얼마나 놀라운 발견입니까? 어른들의 눈에는 놀라울 것도 없지만, 어린이의 눈으로 보면 신기하기까지 합니다. 이처럼 경이로운 발견이 훌륭한 시를 낳게 하고, 시를 읽는 사람에게는 큰 감동을 주게 되지요. 나무나 풀의 입장에서 보면 흙은 어머니의 마음과도 같습니다. 가지가지의 빛깔도, 가지가지의 맛도 전부 흙으로부터 얻어내게 되니까 흙은 푸짐한 마음씨를 가졌다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허동인)   눈 오는 날 / 이 문 희   논밭들도 누가 더 넓은가 나누기를 멈추었다.   도로들도 누가 더 긴지 재보기를 그만 두었다.   예쁜 색 자랑하던 지붕들도 뽐내기를 그쳤다.   모두가 욕심을 버린 하얗게 눈이 오는 날.     눈이 오는 날이면 모두가 하나로 통일되어 버립니다. 산도, 들도, 집도, 길도 모두가 하얗게 보여 어디가 어딘지 구별이 잘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잘난 체하며 뽐낼 수도 자랑할 수도 없고, 화난다며 다투거나 싸울 일도 없습니다. 눈 덮인 세상처럼 모두가 공평하고 평등한 사회, 우리들도 그런 사회를 바랄려면 지나친 욕심부터 버려야겠지요. (허동인) 1997년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품은 「눈 오는 날」 (이문희)이란 동시이다. 누구나 잡을 수 있는 흔한 소재이나 선명한 심상을 통해 동시의 본질에 접근시킨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신춘문예 당선 작품으로서는 일반적 상상을 깰 만큼 짧은 동시인데 동시다운 어법과 참신성이 돋보인다. (엄기원의 심사평)   + 달팽이가 말했어 / (민현숙·아동문학가   집을 지고 다닌다고? 아니야, 난 지금 부릉부릉 차를 몰고 가는 거야. 내 차는 캠핑카거든.   걸음이 느리다고? 아니야, 난 지금 둘레둘레 세상 구경하느라 그런 거야 난 여행을 무척 좋아하거든.   소문 / 정 진 숙   사알짝 나비가 꽃에게 귓속말을 했다 ―참 이뻐!   바람이 엿듣고 나무에게 전했다 ―나비가 꽃을 좋아한대   나무가 우렁우렁 큰 몸을 흔들엇다 ―뭐? 나비랑 꽃이 결혼한다고   나무에 있던 매미 온 동네 시끄럽게 외쳤다 ―어머나 세상에! 꽃이 나비의 아기를 낳았대   여름 지나자 아무 일 없이 조용해졌다.   이 작품은 나비, 꽃, 바람, 나무, 매미를 등장시켜 우리 주위에 얼마든지 있을 법한 한 유형의 소문을 그려 놓았다고 볼 수 있겠다. 소문에 대한 속성을 잘 살렸으며, 이야기의 구성이 매우 유연하고 시의 마무리도 야무져 구성의 견고함을 느끼게 한다. 또한 이야기가 구체성을 띠고 있어서 마치 한 편의 짧은 동화를 읽는 느낌이 든다. (서재환)   서쪽 하늘 / (손광세·아동문학가, 1945-)   빨간 사과 껍질이 널려있다.   드문드문 귤껍질도 섞여있다.   + 햇살 발자국 / (오은영·아동문학가, 1959-)     반짝반짝 빛나는 햇살 발자국   누구 집에 다녀갔는지 시치미 뗄 수가 없다   햇살이 쉬었다 간 나무마다 잎새들 반짝 반짝   햇살이 앉았다 간 꽃마다 꽃잎들 반짝 반짝     바람도 코 막고 비켜간 쓰레기 더미 옆 민들레 집에도 찾아갔는지 민들레 꽃잎이 반짝 반짝     + 꽃들의 노크 / (신새별·아동문학가, 1969-)   "문 열어 주세요."   냉이꽃이 똑똑똑 텃밭 한 귀퉁이가 밝아 온다.   제비꽃이 똑똑똑 개구리들도 문을 열고 나온다.   할미꽃이 똑똑똑 할머니께 봄 인사를 한다.   냉이꽃 제비꽃 내가 지나갈 때마다 까딱까딱 봄 인사를 한다.   시집오는 봄 / (이임영·아동문학가   산등성이 진달래 빨간 볼연지   산자락에 개나리 노랑 저고리   들판에 새싹들 연초록 치마   길가에 벚꽃 하얀 면사포   꽃단장하고서 새봄이 와요   빛은 / 정 현 정   가을 빛은 녹아서 단맛이 된다 사과 속에서.     가을빛은 녹아서 향기가 된다 국화 속에서.   어머니 눈빛은 녹아서 사랑이 된다 내 가슴 속에서.   태양계 / 정 현 정   태양 둘레 도는 수성, 금성, 지구.     지구 둘레 도는 달.   우리집도 태양계   아빠 둘레 도는 엄마   엄마 둘레 도는 나.   꽃들의 시계 / 정 현 정   새벽이면 어김없이 꽃 피우는 나팔꽃   해 질 녘 꽃잎 열고 해 뜰 때 꽃잎 접는 달맞이꽃   이상해 꽃들은 어디에 시계를 놓고 보는지.   뿌리에 숨겨 두었을까 꽃대궁 속에 걸어 두었을까   참 정확한 꽃들의 시계.   (제135회 아동문예문학상 당선작)   엄마의 메아리 / 정 현 정   "얘들이 나더러 땅꼬마래." 소리치면 "넌 마음이 거인이야." 엄마의 메아리.     "달리기도 못하고 공부도 못한대." 소리치면 "넌 조립도 잘하고 만화도 잘 그려." 엄마의 메아리.   갯벌 /정 현 정   지구 어디에 빈 자리 있어 바닷물은 우르르 몰려갔다가 다시 돌아오나요?     바닷물 우르르 몰려오면 꽃게 나라.     바닷물 우르르 몰려가면 도요새 나라.   (제135회 아동문예문학상 당선작)   여름 낮(서정숙)   꽃들이  “아이 더워!” 졸라대니까   나비가 펄럭펄럭 부채질해요.   새들이  “아이 더워!”  졸라대니까  나뭇잎이 살랑살랑  부채질해요.   시계 소리 / 정용원 해가 굴러가는 소리 꽃잎 위를 굴러서 한여름 폭포에서 곤두박질 하고 낙엽따라 구르다가 흰 눈 위로 자박자박 걸어가는 소리   달님 굴러가는 소리 호수 위를 반짝반짝 걸으며 찰방 찰방 찰방 파도 위를 걸으며 철벙 철벙 철벙   + 여름 / (권오삼·아동문학가, 1943-)   해는 활활 매미는 맴맴 참새는 짹짹 까치는 깍깍 나뭇잎은 팔랑팔랑 개미는 뻘뻘 꿀벌은 붕붕 모두모두 바쁜데   구름만 느릿느릿   뿌리와 나뭇가지 / 오 은 영   뿌리는 두레박 가득 남실남실 물 담아 올려 보내며 물방울 편지를 띄웁니다.   "빛나는 햇살 보내줘 고마워."     나뭇가지는 빈 두레박에 찰랑찰랑 햇살 채워 내려보내며 햇살 편지를 띄웁니다.     "달콤한 물 보내줘 고마워." 문이 없다 / 오 은 영 떡갈나무숲 속 오소리네 집에는 문이 없다 꽃내음이 지나가다 들러 보라고.     미루나무 꼭대기 까치네 집에도 문이 없다 별빛도 잠깐 놀다 가라고.     울 엄마 마음에도 문이 없다 힘들면 아무 때나 쉬었다 가라고. 놀고 있는 것 같아도 / 오 은 영 잔잔한 바다, 거북이 다랑어 돌고래 정성 다해 돌보고 있지요.     텅 빈 겨울 들판, 초롱꽃 민들레 씨앗들 다독다독 재우고 있어요.     개구쟁이 우리들도 놀고 있는 것 같지만 고물고물한 생각들 키우고 있는걸요.   2003년 제2회 은하수동시문학상 신인상 수상작   이까짓 바람쯤이야 / 오 은 영   단단한 씨앗문 머리로 밀고 나올 때 고 작은 새싹은 참 아팠겠다.     딱딱한 달걀껍질 부리로 깨고 나올 때 고 작은 병아린 참 힘들었겠다.     그런데 뭐 그런데 뭐 이까짓 꽃샘바람쯤이야.       바람 속 꽃눈이 이를 악문다.     (아동문예 2002-2)     매달려 있는 것 / 신새별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게 뭐지? ㅡ 나뭇잎     나뭇잎에 매달려 있는게 뭐지? ㅡ물방울     엄마한테 매달려 있는게 뭐지? ㅡ나!   비오는 날 - 김용택     하루종일 비가 서 있고 하루종일 나무가 서 있고 하루종일 산이 서 있고 하루종일 옥수수가 서 있고   하루종일 우리 아빠 누워서 자네   겨울 들판 - 이상교     겨울 들판이 텅 비었다.     들판이 쉬는 중이다. 풀들도 쉰다. 나무들도 쉬는 중이다.     햇볕도 느릿느릿 내려와 쉬는 중이다 냇물 - 유성윤     모래알 따라가는 냇물 속에는 싱그러운 풀잎도 춤을 추지요.       잠자리 따라가는 냇물 위에는 청개구리 누워서 여행 가지요. 코스모스 - 박경용     무얼 먹고 저리도 키가 컸을까? 하늘 먹고 컸겠지. 바람 먹고 컸겠지.     무얼 발라 얼굴은 저리 이쁠까? 햇발 발라 이쁘겠지. 달빛 발라 이쁘겠지.     하늘 먹고 바람 먹고 나보다 키클라...     햇발 발라 달빛 발라 나보다 이쁠라...   쌀 씻고 빨래하는 바다 / 김진광     바다가 쌀을 씻는다. 금모래쌀 은모래쌀 저 많은 밥 누가 다 먹누?     바다가 빨래를 한다. 비누거품 풀어 치대고 헹구고 저 많은 옷감 누가 다 입누? 좀좀좀좀 - 한상순     잠 좀 자라 공부 좀 해라 내방청소 좀 해라 제발, 뛰지 좀 마라 게임 좀 그만해라 텔래비전 좀 그만봐라 군것질 좀 그만해라     엄마 잔소리 속에 꼭 끼어드는 좀좀좀좀   겨울 / 윤동주     처마 밑에 시래기 다래미(두름) 바삭바삭 추워요     길바닥에 말똥 동그래미 달랑달랑 얼어요.   집오리 /권 오 훈     우리 속에 날 왜 가둬 왜 왜 왜 왜.   문 열어주면 넓은 세상 빨리 가자 갈 갈 갈 갈.   연못에 뛰어들어선 어, 시원하다 어 어 어 어.   집오리의 소리는 사람의 마음 먹기에 따라서는 여러 가지로 들립니다. 우리 속에 갇혀 있을 때는 답답하다고 왜 가둬 두느냐며 왜왜왜…. 그래서 문 열어주면 즐거운 마음으로 갈 길이 바쁘다는 듯, 갈갈갈…. 연못에 풍덩 뛰어들어서는 너무 시원하다고 어어어…. 감탄사를 연발합니다. 집오리가 자기 형편에 따라 다르게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감정이 그렇게 느끼고 받아들인 것뿐입니다. '왜왜왜, 갈갈갈, 어어어.' 하는 의성어가 재미있고 그럴듯합니다. (허동인)   어른들은 모르셔 / 제 해 만   엄마, 제비가 왔어요.   엄마는 들은 척도 않고 빨래를 하십니다.   아빠, 새싹이 나왔어요.   아빠도 들은 척 않고 비질을 하십니다.   어른들은 정말 모르셔 말다툼이나 하고 돈 걱정이나 하시고,   할머니, 여기 꽃이 웃어요. 빙그레 웃어요.   ―무슨 소리냐? 꽃이 웃다니!     정말 어른들은 모르셔 꽃이 웃는 것도 모르시나 봐.   어른들이 어린이들 마음을 너무 몰라 주신다. 그것이 야속하다. "제비가 왔어요." "새싹이 나왔어요." "꽃이 웃어요." 어린이들 생각에는 놀라운 사실인데도 어른들은 관심을 갖지 않으신다. 일에 바빠서일까? 생활이 힘들어서일까? 정말 속상하다. 이 시는 우리 생각을 좀 알아 주셨으면 하고 어른들에게 호소하고 있다. (김수남)   목련 / 제 해 만   목련은 입이다.   아이스크림처럼 하얀 봄을 한 모금 물고 있는 아이들의 예쁜 입이다.   목련은 웃음이다.   아무 욕심도 불평도 없이 얼굴 가득 담고 있는 아이들 티없는 웃음이다.   가을은 / 제 해 만   가을은 노을지는 강물을 딛고 온다. 가을은 풀벌레 울음에 묻어 온다. 가을은 방울꽃 소리를 내며 온다. 가을은 양지밭 수숫잎을 흔들며 온다. 가을은 산능금 열매 속으로 온다. 가을은 단풍나무 물든 숲으로 온다. 가을은 새털구름 은빛을 타고 온다. 가을은 하늘 높높은 너머에서 온다. 가을은 아이들 푸른 꿈 속에서 온다.   태풍 후 / 박 소 명   풀들은 뿌리를 더 든든히 엮는다.   새들은 둥지를 더 촘촘히 깁는다.   들마다 산마다 상처를 싸맨다.   엮고 깁고 싸맨 후에 하늘 보라고 하늘이 더 푸르게 웃고 있다.   산의 사진 찍기 / 박 소 명   언덕은 편히 앉으세요.   앞산은 몸을 낮추고 뒷산은 반듯이 서세요.   먼 산은 까치발로 서고 어깨 사이사이로 봉우리는 얼굴을 내미세요.   찰칵!   앞산, 뒷산, 먼 산 봉우리들의 다정한 어울림.   (한국동시문학 2003-3호)   홍시 / 문 삼 석   잎새를 떨구고 부끄러워 그러니?   꼭지에 매달려 무서워서 그러니?   파아란 하늘만 가지 끝에 걸렸는데,   넌 왜 얼굴을 붉히고만 있니?   씨앗들이 모여서 / 문 삼 석   씨앗들이 모여서 자랑을 했대요. 뭐라 했게요?   민들레 꽃씨가 가만가만 말했대요. ―난 낙하산을 타고 하늘하늘 바람 따라 내려왔단다.     봉숭아 꽃씨도 또글또글 말했대요. ―난 뜨거운 햇볕 속을 총알처럼 빠르게 튀어 왔지.     그러자, 도깨비바늘이 큰소리로 말했대요. ―겨우 그거야? 난 노루 등을 타고 껑충껑충 신나게 달려왔다구.   우리 동네 뒷산길엔 / 문 삼 석   우리 동네 뒷산길엔 이름표를 단 풀꽃들이 많습니다.     꽃무릇 옆에 동자꽃이 있고 동자꽃을 지나면 털머위가 있고 털머위 다음엔 노루오줌, 노루오줌 다음엔 애기똥풀꽃이 있습니다.     하얀 이름표를 단 애기똥풀꽃은 웃음이 작고 노랗습니다.     우리에게만 이름이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물에게도 이름이 있습니다. 들에서 자라는 들풀도, 거기서 피는 풀꽃들에게도 저마다 이름이 있습니다. 들풀들은 그리고 들꽃들은 저마다 자기의 특성을 잘 나타내고 있지요. (김원석)   사마귀야 / 문 삼 석   사마귀야, 네 앞다린 왜 그리 짧은 거니?     ―뒷다리는 안 보니? 얼마나 긴데!   그럼, 네 머린 왜 그리 작은 거니?   ―눈망울은 안 보니? 얼마나 큰데!   별(9) / 문 삼 석   9   아가 같은 귀연 눈.   엄마 같은 따슨 정.   10   너를 보면, 그리움이 무언지 알 것 같아.     너를 보면, 기다림이 무언지 알 것 같아.   별(5) / 문 삼 석 5   알 듯 말 듯 작은 웃음.   날 듯 말 듯 누나 얼굴.   6   밤에만 피고 작게만 피고,     하늘에만 피고 눈으로만 피고.   머얼뚱 / 문 삼 석   왜 그러니? ―머얼뚱   할 말 있니? ―머얼뚱   나를 보고 누렁소   커단 눈만 ―머얼뚱 눈 내린 날 / 문 삼 석 소복이 눈 모자 쓴 공중 전화실로     소복이 눈 모자 쓴 꼬마가 들어간다.   소복이 눈 내린 거리를 내다보며   소복이 눈 내렸다고 전화하려나 보다.   (초등학교 3학년 교과서에 실린 작품)     하얀 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 꼬마는 소복이 눈모자 쓰고 공중 전화를 하고 있다. 눈 오는 정경이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처럼 눈앞에 떠오르는 시이다. 소복이 눈모자 쓴 공중 전화실과 꼬마, 그리고 소복이 눈 내린 거리와 꼬마의 속삭임이 이 시의 모티브이다. 이 시를 읽으면 세상의 잡다한 번뇌도 한 올의 재처럼 스러진다. (오순택) 꽃을 보면서 / 문 삼 석 네가 꽃이야? ―그럼, 예쁜 꽃이지.     요 꽃망울은? ―그건 우리 아가란다.     엄만 어딨어? ―꽃을 싸고 있는, 요 잎이지.     그럼, 아빠는? ―여기, 굵은 줄기 보이잖니?     할머니, 할아버지도 있어? ―땅 속에 계신단다. 튼튼한 뿌리로…….   고추 / 문 삼 석   가을 해랑 놀다가 빨개졌다.     알몸으로 놀다가 빨개졌다.     가을 해 눈짓 땜에 빨개졌다.     알몸이 부끄러워 빨개졌다. 딸기를 보고 / 문 삼 석 잘 익은 딸기 한 알을 보고,     눈이 뭐랬게? ―'참 빨갛다' 했지.     코는 뭐랬게? ―'참 향기롭다' 했지.     입은 뭐랬게? ―'참 맛있겠다' 했지.   잘 익은 딸기 한 알을 보고….   그만 뒀다 / 문 삼 석   신발짝 물어 던진 강아지 녀석 엉덩일 차 주려다 그만 뒀다. 살래살래 흔들고 있는 그 꼬리 땜에…….     우윳병 넘어뜨린 고양이 녀석 꿀밤을 먹이려다 그만 뒀다. 쫑긋쫑긋 세우고 있는 그 두 귀 땜에…….   그냥 / 문 삼 석   엄만 내가 왜 좋아?     ―그냥….     넌 왜 엄마가 좋아?     ―그냥….     말로 담아낼 수 없는 아이와 엄마의 사랑 '그냥'이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더 이상의 변화 없이 그 상태 그대로' 혹은 '그런 모양으로 줄곧' 등이다. '그냥 내버려두다' 혹은 '그냥 기다리고만 있다'라고 할 때의 '그냥'은 바로 이와 같은 의미로 쓰인 경우다. 그런데 '그냥'은 또한 '아무런 대가나 조건 없이'란 뜻도 있다. '그냥 주는 돈이 아니다'라고 할 때의 '그냥'이 이에 속한다. 그렇다면 위 시의 '그냥'은 이 가운데 어디에 속할까? 문삼석(67) 시인은 엄마와 아이의 사랑을 '그냥'이라는 말 속에 함축했다. 아이와 엄마는 막 잠에서 깨어 서로의 몸을 간질이며 까르르 웃고 있는 중이다. 엄마와 아이의 몸에 살짝 손을 대기만 해도 아이는 몸을 오그리며 숨이 넘어가도록 킥킥댄다. 아니다. 아이는 일하는 엄마 옆에서 방바닥에 배를 대고 숙제를 하고 있는 중일 수도 있다. 익숙하지 않은 손놀림으로 힘겹게 글씨를 쓰고 덧셈을 하는 아이를 언뜻언뜻 돌아보며 엄마는 잠시 일하던 손을 놓고 빙그레 웃는다. 사정이 어떻게 되었든 이 시 속의 아이와 엄마는 서로 '마주본다' 이 마주봄은 서로에 대한 사랑의 궁극, 절대적 신뢰의 한 표현이다. 그것은 터져 나올 것 같은 행복의 비명이자 살아 있음에 대한 환희이기도 하다. 이 숨 막힐 것 같은 사랑의 회오리 속에서 아이는 저도 모르게 묻는다. 엄만 내가 왜 좋아? 이것은 질문이되 질문이 아니다. 아이는 다만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지, 얼마나 충만한 사랑을 느끼고 있는지, 그것을 표현했을 뿐이다. 따라서 이 시의 '그냥' 역시 답이되 답이 아니다. 그것은 아무런 의미도 지니고 있지 않다. 사전이 정의하고 있는 그 어떤 의미도 이 시의 '그냥'을 온전하게 설명할 수 없다. "엄마는 아가를/ 품속에 안고서도/ "아가야, 아가야."/ 아가만 부르지요."()라거나 "엄마는 나 몰래 나가셨지만/ 어디 계시는지 난 다 알지요./ 달그락달그락 그릇 소리가/ 부엌에 계신다고 알려 주거든요."()라고 노래할 때, 문삼석 시인은 이미 아이와 엄마의 사랑은 설명 불가능의 영역, 즉 이른바 '언어도단'의 경지에 속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하다. 그에게 '그냥'은 존재하는 것들이 내지르는 신음소리에 가깝다. 세상의 어떤 사전에도 이때의 '그냥'은 등재되어 있지 않다. 그것의 용례는 오로지 시인의 작업 속에서만 찾아볼 수 있을 뿐이다. 시인이 새로운 말의 창조자라는 이야기는 괜한 소리가 아니다. (신수정 문학평론가)   고향, 그 고향에 / 노원호     고향에 가면 바람이 있다. 내 눈을 가만히 적실 바람이 있다. 강물에 발 담그고 푸른 하늘을 끌어내릴 꿈이 있다. 초록빛 들판에서 끝도 없이 피어오르는 아지랑이, 그 아지랑이를 몸에 감을 종달새 목소리도 있다.     고향에 가면 은비늘 반짝이는 미루나무 숲이 있다. 수천의 피라미떼 오르는 강물 소리를 숲에서 들을 수 있다. 눈을 비비며 맑아지는 바람을 잡을 수 있다.     고향에 가면 내 어머니의 흙손을 만날 수 있다. 한 줌의 흙을 보듬으며 푸른 보릿골에 앉은 어머니, 그 어머니의 따뜻한 마음을 만날 수 있다. 숱한 시간이 지나도 내 마음 속에 괴어 있는 것은 고향의 흙냄새, 그 진한 냄새를 어머니의 치맛자락에서 맡을 수 있다.     향토적인 시어를 많이 사용해서 고향맛을 느끼게 하는, 고향을 노래한 시입니다. 첫째 연에서는, 고향에 가면 바람이 있고 꿈이 있고 아지랑이가 있고 종달새 목소리가 있음을, 둘째 연에서는, 고향에 가면 미루나무 숲이 있고 강물소리를 들을 수 있고 바람을 잡을 수 있음을, 셋째 연에서는, 고향에 가면 어머니의 흙손을 만날 수 있고 어머니의 따뜻한 마음을 만날 수 있고 또 고향의 흙냄새를 어머니의 치맛자락에서 맡을 수 있음을 노래했습니다. 결국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도 어머니가 그 곳을 지키고 계시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릴 적 살았던 고향을 두고 객지에 나가 살면서 상상을 통하여 그려본 그리움의 시입니다. (허동인)   나무들의 목욕 / 정 현 정   나무들이 샤워하고 있다.     저것 봐 저것 봐     진달래는 분홍 거품이 조팝나무는 하얀 거품이 영산홍은 빨강 거품이 보글보글 일고 있잖아   깨끗이 씻은 자리 씨앗 마중하려고 부지런히 목욕 중이야     온 산이 공중목욕탕처럼 색색의 거품으로 부글거리고 있어.     나무들이 꽃을 피우는 걸 '거품을 내며 목욕하는 것'으로 그렸다. 상상력에 의해 사물의 모습이 이처럼 새롭게 달라져 있다. 달라진 모습을 통해 독자들은 시 읽는 쾌감을 한층 깊이 느끼게 되고, 새로운 사물 세계로 여행을 하게 된다. 때문에 상상력이 동원되지 않으면 새로운 시의 세계가 열리지 않고, 시들은 무미건조할 수밖에 없다. (박두순)   봄바람 / 전 원 범     새장 안의 새 부리 끝에 쪼르릉 걸렸다가     하늘하늘 살구꽃으로 내리다가     파랗게 파랗게 들을 헤매다가     산을 기어오르면서 미친 바람이 되어     아, 빠알갛게 불타 오르는 진달래. 모두가 다 말을 한다 / 전 원 범   세상 무엇이든지 때리면 소리 내어 대답을 한다. 종은 종 소리로 북은 북소리로     양철통은 양철통 소리 나무는 나무 소리 방바닥은 방바닥 소리로   말이 없다고 해서 말을 못하는 것은 아니다.   물소리의 말 바람 소리의 말 빗소리의 말   행복한 아이들 / 구 용 맹아학교에 갔어요. 앞 못 보는 아이들 점자로 공부하며 지팡이로 더듬어 골마루를 오가고 있었어요. 그러면서 자신들은 청각장애인에 비해 아름다운 소리 들을 수 있어 행복하다고 웃었습니다.   농아학교에 갔어요. 말 못 하는 아이들 수화로 열심히 이야기하며 놀고 있엇어요. 그러면서 자신들은 시각장애인에 비해 아름다운 세상 볼 수 있어 행복하다고 웃었습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 구 용   기쁠 때 꽃을 봅니다. 언젠가 떨어질 꽃을 봅니다.     슬플 때 달을 봅니다. 언젠가 보름달이 될 달을 봅니다.     욕심이 생길 때 나무를 봅니다. 꽃도 열매도 다 주는 나무를 봅니다.   봄날에 / 이 준 관    바람이 불 때마다 꽃나무 삐죽한 새순에 화그르 불이 붙는다.     동동동 발을 구르며 봄을 기다리는 씨앗들이 사르르 껍질을 벗는다.     아! 가지마다 쌓인 겨울 햇살을 퍼내는 푸른 삽질 소리.     아이들은 창가에 앉아 거울을 들고 쏟아지는 환한 햇빛을 줍고 있다.   실비 / 강 정 안   실비 금비 내려라. 잔디밭에 내려라.   실비 꽃비 내려라. 꽃송이에 내려라.   실비 싹비 내려라. 가지마다 내려라.   실비 떡비 내려라. 못자리에 내려라.   실비 은비 내려라. 연못 속에 내려라.   비는 한 가지지만, 비가 오는 그 때의 마음에 따라 좋게도 느껴지고, 나쁘게도 느껴져요. 이 시에서는 '금비', '꽃비' 등 좋은 비로 나타내고 또 좋은 곳에 내리라고 했네요. 아무리 나쁜 것도 좋게 보면 좋게 보인답니다. (김원석)   꼭 / 이 준 관   꼭 손 잡고 가자. 감꼭지처럼 다정한 말.     꼭 잊지 않을게. 새끼손가락처럼 사랑스런 말.     장갑 꼭 끼고 가렴. 장갑처럼 따스한 말.     '꼭'이라는 말. 어딘가에 붙여 주면,     엄마처럼 말없이 꼭 껴안아 주는 말.   빈 나뭇가지에 / 김 구 연   빈 나뭇가지에 구름 한 조각 걸렸다 가고   빈 나뭇가지에 하얀 눈 몇 송이 앉았다 가고   빈 나뭇가지에 뾰쪽뾰족 초록잎 돋았다 가고   빈 나뭇가지에 다닥다닥 빨간 열매 달렸다 가고   빈 나뭇가지에 한 마리 산새 쉬었다 가고   빈 나뭇가지에 빈 나뭇가지에   (초등학교 5학년 교과서에 실린 작품)   빈 나뭇가지에 왔다가 떠나가는 것을 '걸렸다, 앉았다, 돋았다, 달렸다, 쉬었다'로 말을 바꾸어 나타낸 것에 주의를 기울여야겠습니다. 시는 같은 내용의 이야기라도 이렇게 표현을 달리 해야 좋은 문장이 됩니다. 만약 이것을 모두 '앉았다 가고'로 표현했다면 '구름 한 조각 앉았다 가고' '초록잎 앉았다 가고' '빨간 열매 앉았다 가고' '한 마리 산새 앉았다 가고' 로 되어 참으로 지루하고 멋없는 글이 되고 말 것입니다. (김종상)   꼭 집어낸다 / 오은영      진달래꽃은 와르르 쏟아지는 빛살 속에서 "바로 내 빛깔이야!" 분홍빛 꼭 집어내고     기러기는 많고 많은 하늘길 속에서 "바로 이 길이야!" 가야 할 방향 꼭 집어내고     우리 엄마는 단체 사진 속 콩알만한 얼굴들 사이에서 "여기 너 있다!" 나를 꼭 집어 낸다.     (2004년 여름『시와 동화』제28호)   만유인력의 법칙 / 오 은 영     '안 떨어질 거야' 얼굴이 노래지도록 안간힘 쓰지만 기어이 열매는  땅으로 끌려가고야 말지.     '끝까지 매달릴 거야' 얼굴이 빨개지도록 이 악 물지만  마침내 나뭇잎은 땅으로 떨어지고야 말지.     '엄마랑 얘기하나 봐라' 야단맞고 새침하게 토라져 보지만 엄마가 다정하게 부르면 어느새 엄마 무릎 위로 끌려가고야 말지.   (제2회 은하수동시문학상 신인상 수상작)      제목부터가 낯설다. 감히 과학 용어를 시어로 쓰다니. 이것이 발상의 전환이다.   고정관념에 매여 있으면 새로운 시는 한 줄도 쓰지 못한다. 시의 소재는 무엇이든 좋다. 다만 시적 육화가 이루어졌느냐가 문제일 뿐이다.   물리학에서 만유인력은 사물이 낙하할 때 지구 중심부를 향해 떨어진다는 원리를 말한다. 1,2연에 그것을 미적으로 잘 드러냈다.   인간 심리에서의 만유인력은 어떤 것인가? 3연에 그것을 심상으로 명쾌히 제시하고 있다.   '어느새 엄마 무릎 위로 끌려가고야 마는' 것이다. 그 만유인력은 어머니의 다정함이다.   인간에게 따뜻함이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걸 시로 표출하고 있다. (박두순)     이 시는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과학의 법칙을 어머니와 자식의 사랑에 비유한 발상이 돋보이며, 뉴턴이 그랬듯이 둘 사이에 '끌려감의 미학'을 시인은 발견한다.   사람들은 물질에 끌려 생명마저 경시하며 살아가는 일이 많다.   그러나 여기에서의 끌려감의 힘은 물질로는 비교할 수 없는 고귀한 사랑이다.   읽노라면 가슴이 따뜻해오는 그러한 시라 할 수 있겠다. (김진광)   손님 오실 때 / 엄 기 원   현관에 신발들이 나란히     거실엔 탁자 유리가 반짝     주방엔 커피물이 팔팔     엄마 입술엔 꽃잎이 두 장     게으른 우리 식구 옷도 깔끔   연못 속 / 윤 석 중   연못 속으로 사람이 거꾸로 걸어간다. 소가 거꾸로 따라간다. 나무가 거꾸로 쳐다본다.     연못 속에는 새들이 고기처럼 헤엄쳐 다닌다. 구름이 방석처럼 깔려 있다. 해님이 모닥불처럼 피어 오른다.   (초등학교 3학년 교과서에 실린 작품)   허리를 구부리고 두 다리 사이로 둘레를 보면 늘 보던 풍경도 별다르게 보입니다. 연못 속에 비쳐 보이는 풍경도 그러합니다. 소를 몰고 가는 사람과 연못가의 나무들이 거꾸로 되어 있어 색다른 세상을 보는 듯합니다. 물 속에서 날아가는 새는 물고기 같고, 그 아래쪽에 하늘이 있어 구름은 폭신한 방석만 같습니다. 해는 동그랗지만 흔들리는 물결에 밀려서 꼭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처럼 보입니다. 참 신비로운 세계입니다. (김종상)   연못 속에도 또 다른 세상이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땅 위를 사람이나 소들은 걸어 다니는데 연못 속 사람과 소들은 거꾸로 걸어 다닙니다. 연못 속의 세상은 정말 신비스럽고 재미있는 세상입니다. (김진태)   봄날에 /강 현 호   엄마가 사 온 연둣빛 새 치마를 구겼다 폈다 하는 앞산     뒤뜰로 나들이 나와 봄 햇살을 톡톡 부리로 쪼는 수다쟁이 햇병아리들     선잠 깬 개나리만 노오란 손바닥을 가리고 긴 하품을 토한다. 할아버지 등 긁기 / 김 경 성   대구 대구 대구 아이구 시원테이.     전주 저언주 거그 거그 어이 시원혀.     서어울 서울 그래그래 아이 시원해.     부산부산 부산 거어 쫌 글거봐라. 부산은 옆구리니까 할아버지가 긁어요.   산에서는 / 김 용 석   쉿 사뿐사뿐 걷기.     아기 멧새 걸음마 한창인걸요.     쉿 사뿐사뿐 앉기.     길섶 아기 풀씨 새 옷 나들이.     쉿 소곤소곤 말하기.     잎새마다 이는 바람 온 산이 엿듣거든요 깊은 산 속 / 강 영 희     깊은 산 속 나무들은 아름다운 산새 소리 오래오래 쌓아 두고 싶어 날마다 잎을 키운다.     깊은 산 속 나무들은 밤마다 속삭이는 별들의 이야기가 듣고 싶어 자꾸만 하늘로 뻗어간다.     조잘대는 산새 소리 발끝까지 간지러운 산골물 소리 그 소리가 듣고 싶어 산토끼 다람쥐도 쫑긋쫑긋 귀 기울이고 찾아오면     지나던 달님도 밤새도록 함께 놀다가 새벽에야 허겁지겁 산을 넘는다.   진땀 / 강 윤 제   결 곱게 불어야지 결 곱게 불어야지 바람은 진땀을 흘렸습니다.     딱 맞게 뿌려야지 딱 맞게 뿌려야지 가랑비까지 진땀을 흘렸습니다.     논과 밭, 흙들도 땅심을 보태느라 진땀을 흘렸습니다. 그것들을 버물러서 노오랗게 익히느라 빠알갛게 다듬느라 햇볕도 진땀을 흘렸습니다.     엄마 아빠도 두 손이 갈퀴가 다 되도록 짭조롬한 진땀을 흘렸습니다.     농사를 지어 그 열매를 거두어들일 때까지는 농부들의  노력과 정성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들어갑니다. 그 노력과 정성을 '진땀'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습니다. 농부들만 진땀을 흘린다고 농사가 잘 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토질도 좋아야 하지만, 햇빛과 온도가 맞아야 하고, 또 비도 적당한 때에 내려줘야 합니다. 그래서 바람도, 비도, 땅도 진땀을 흘려야 했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그 해는 풍년임이 틀림없습니다. '삼위일체'란 말도 있지만, 계획했던 일이 자기 뜻대로 되었다면 그건 자기 혼자 잘나서가 아니라, 알게 모르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여러 사람이 도와주었기 때문이라는 걸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항상 감사한 마음을 지니고 살아야 한다고 강조하나 봅니다. (허동인)   오월 어느 날 / 강 현 호   파아란 잎들이 잘 다림질한 꽃잎을 받쳐듭니다.     사뿐 걸터앉았던 나비가 흰 옷자락을 걷어올리며 일어섭니다.     ―에그, 옷을 다 버렸군. 지나던 바람이 날개에 묻은 꽃가루를 안타깝게 바라봅니다.   사진찍기기 / 강현호   "자아, 활짝 웃어요." "자아, 김―치."     봄 뜰에서 봄바람이 사진을 찍는다.     흰 덧니를 드러낸 목련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노오란 가락지를 낀 개나리도 두 손을 흔든다.     뒤늦게 달려온 해님이 두 뺨을 붉히며 활짝 웃었다.   바람 부는 날 숲에는 / 공 재 동   떡갈나무들이 흰 손바닥을 드러내고 손뼉을 치며 웃고 있다.     뻣뻣한 수염을 쓰다듬으며 점잔 빼던 소나무도 끝내 웃음을 참지 못하고     밤나무도 허리를 잡고 웃노라 하얀 꽃잎이 떨어져 흩날리는 것도 모르고 있다.     바람 부는 날 숲에는 나무를 간지럽히는 바람의 손길이 은비늘처럼 반짝이고     초록 웃음을 밟고 가는 바람의 장난기가 끝없이 끝없이 날아오른다.   (어린이문학 2001-12)   바람  / 구 옥 순   빨랫줄에 널린 아가 옷 고 속에 들어가 아가도 되었다가     나뭇가지에서 떨어진 나뭇잎 쓸어 모으는 청소부 아저씨도 되었다가     호륵 호르륵 휘파람 부는 장난꾸러기 소년도 된다.   귀여운 장난꾸러기 같은 바람. 빨랫줄에 걸린 옷 속에도 들어가 보고, 나뭇잎도 쓸어 모으고, 호르륵 휘파람을 불며 아무 데나 돌아다니는 바람은 틀림없이 장난꾸러기이겠지요. 바람을 보면서 개구쟁이 동생이나 짓궂은 골목대장을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신현득 김종상)   쪼금만 / 권 영 상   햇살이 숲 위로 쏟아집니다. 쏟아지는 햇살이 아까워 참나무들이 잎을 펼쳐 햇살을 받습니다. 그러고도 남은 햇살이 참나무 아래로 떨어집니다.     ―쪼금만. 거미줄에서 기다리고 있던 거미가 꼭 필요한 만큼 햇살 조각을 떼어 냅니다. 거미가 떼어 내고 남은 햇살이 숲 아래 어린 풀잎 위에 내려앉습니다. 쪼금만, 이번엔 꼭 필요한 만큼 풀잎이 햇살을 덜어 냅니다.     ―나도 쪼금만. 개미가 있군요, 풀잎 밑을 기는 개미. 개미까지 받을 수 있도록 숲은 꼭 맞게 햇살을 나눕니다.   바람 부는 날 / 김 구 연   미루나무들이 벌판을 달리고 있습니다. 맨주먹 불끈 쥐고 머리칼 휘날리며.     콩밭도 달립니다. 수수밭도 달립니다. 미루나무 꼭대기 까치집도 달립니다.   동심의 모습을 발견하기   이 시는 바람 부는 날에 나뭇잎들이 흔들리는 모양을 보고 마치 아이들이 맨주먹을 쥐고 달리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쓴 시다. 이 시에 나오는 미루나무나 콩밭이나 수수밭은 주먹을 쥐고 달리는 아이들 모습 그대로이다. 자연을 보면 이와 같이 귀여운 동심을 발견할 수 있다. 새와 꽃과 나무에서 아이들과 닮은 점을 찾아 시로 써보기 바란다. (이준관)   재 보기 / 문 삼 석   "나랑 키재기해 보겠니?" 기린이 목을 길게 늘였어요.     "그럼 나랑 코재기해 볼래?" 코끼리가 투우! 코를 불었어요.     "그런 것 말고…" 하마가 하아앙! 하품을 했어요. "…나랑 입재기는 어때?   하찮은 짐승일지라도 다른 짐승들보다 더 좋을 점을 조금씩 갖고 있기 마련입니다.   키를 잰다면 기린이 일등이겠지만, 코로 겨룬다면 코끼리를 당할 것이 없지 않겠어요? 자기가 남보다 더 훌륭하다고 뽐내는 사람은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이지요.(문삼석)   아가 웃음 / 문 삼 석     ―반짝! 눈이 웃고     ―발름! 코가 웃고     ―방긋! 입이 웃고     ―볼록! 배가 웃고…     아기가 웃는 모습을 본 적이 있나요? 눈은 반짝반짝, 코는 발름발름 웃지요. 방긋방긋 웃는 건 무엇일까요? 또 볼록볼록 웃는 것은요? 아기가 웃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우리도 저절로 웃음이 나오지요. (문삼석)   산골 물 / 문 삼 석   하도 맑아서   가재가 나와서 하늘 구경 합니다.   하도 맑아서   햇빛도 들어가 모래알을 헵니다.   가재가 나와서 하늘 구경 한다니 얼마나 맑은 물인가? 또 햇볕도 들어가 모래알을 헨다고 하니 얼마나 맑은 산골물인가? 시를 읽는 순간 마치 맑은 산골물에 하얀 발을 담그고 서서 눈부신 햇살이 쏟아지는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시이다. 귀에 돌돌돌 모래알 구르는 소리 들리고 마음이 금세 맑아지는 듯하다. 문득 동시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문삼석(1941∼)의 초기 시세계는 '이슬'과 '산골물'로 대표된다고 할 것이다 그는 '이슬', '산골물' 등 세상에서 가장 맑은 물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담아낸다. 이슬이 가장 맑고 깨끗한 물의 상징인 것처럼 그가 생각하는 동시도 가장 맑고 깨끗한 마음을 담은 시인 것이다. 따라서 그의 동시는 이슬과 닮은 점이 의외로 많다. 시가 응축되어 있다. 이미지가 투명하다. 또 아주 쉬운 말을 구슬처럼 깔끔하게 갈고 닦아서 쓰고 있다. 시적 구성도 최대한 단순화하여 보여준다. 그리고 연작 형태가 많다. (전병호)   지지지 지지지 / 김 기 현   뭐가 뭐가 지지지? 흙장난하는 아기보고 고모가 하는 소리지.   뭐가 지지지? 추석날 엄마가 빈대떡 뒤집는 소리지.   뭐가 지지지? 공부할 때 남포 심지 타는 소리지.   '지지지'는 아기들에게 더러운 것을 말할 때 쓰지요. '지지지'란 말은 또 빈대떡 뒤집을 때의 의성어, 또 등잔불의 심지 타는 소리죠. '지지지'란 말에는 다양한 뜻이 담겨 있네요. (김원석)   운동장에서 아이들은 / 김 상 길   운동장에서 아이들은 비눗방울이 된다. 무지개빛 방울이 되어 하늘 가득 피어오른다.     운동장에서 아이들은 새 떼가 된다. 어지럽게 날아다녀도 부딪치지 않고 하늘을 덮는다.     운동장에서 아이들은 시냇물이 된다. 갈라지는 것 없이 누구나 하나 되어 웃음으로 흐른다.     운동장에서 아이들은 종 소리의 남는 소리가 된다. 아이들이 떠나고 놀이 내려도 남는 소리는 동그라미를 그린다.   학교 운동장은 어린이들의 꿈이 영그는 곳이기도 합니다. 어린이의 꿈이 담긴 비눗방울과 새가 되어 하늘을 날아 오르기도 합니다. 운동장은 혼자 있어도 어린이의 소리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김원석)   봄 오는 소리 듣기 / 김 봉 석     가만히 눈 감고 들어보아요 산마다 진달래꽃 붉은 물감 칠하는 소리     가만히 귀 대고 들어보아요 목련나무 하얀 꽃잎 나무 타고 올라오는 소리     가만히 숨 고르고 들어보아요 입학식 날 동생들이 "하나, 둘, 셋, 넷!" 운동장 발 구르는 소리   (2006. 3.『어린이동산』)   봄맞이 / 박 근 칠    개나리 핀 울타리를 비집고 나온 강아지 꼬리에 햇살이 감긴다.     파란 강물 속의 물고기 비늘은 번득이고 버들강아지 솜털눈이 부시다.     보리밭 이랑마다 겨울잠을 풀어내는 생명의 숨소리 들리고     ―음매 나중 나온 송아지는 동구 밖에서 들판을 깨운다.   새 봄을 맞이하는 즐거움. 봄을 남보다 먼저 맞이하는 것은 누구일까요? 울타리 구멍을 빠져나온 강아지와 냇가에 피어난 버들강아지와 동구 밖을 뛰어나온 송아지들입니다. 그들이 산과 들을 뛰어다니면서 봄을 깨우고 있습니다. (신현득 김종상)   풀꽃 / 박 소 명   향기 샘 아무리 얕아도 향기 솔솔     꽃방 아무리 좁아도 암술, 수술 나란히 나란히     꽃씨 아무리 작아도 뿌리랑 잎이랑 꽃이랑 차곡차곡   누렁소의 말 / 박 소 명   파리에겐 꼬리로 말하지요 (저리 가) 철썩     강아지에겐 뒷발로 말하지요 (귀찮아) 뻥     할아버지에겐 눈으로 말하지요 (고마워요) 꿈뻑꿈뻑     송아지 부를 때만은 다정한 목소리로 말하지요 움머움머!     (2007년 봄 『오늘의 동시문학』)   시인은 누구나 자연물과 대화가 되는 능력을 가졌지만 박 시인은 동식물의 언어를 통역하는 자세를 취하기 때문에 여느 시인들이 자연물과 하는 대화하는 방식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다른 시인들은 그냥 바로 마음을 터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거나 마음을 읽지만 박 시인은 소꼬리가 하는 말은 '저리 가'라는 뜻이라고 독자에게 일러주는 방식입니다. 어린이를 즐겁게 할 작품이 귀한 터에 안성맞춤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최지훈)   봄 / 박 숙 희   네가 보낸 편지는 어여쁜 웃음이다. 매화나무, 벗나무, 살구나무들이 저렇게 팝콘처럼 웃고 있으니.     네가 보낸 편지는 기쁜 축전이다. 솜방망이, 민들레, 냉이, 제비꽃 모두모두 일어서서 환호하는 것 좀 봐.     네가 보낸 편지는 즐거운 노래다. 얼어붙은 산골물 쫄쫄 쪼르르 비이비이 로리로리로 노래하는 새들.     어디어디, 나도 좀 보아 발뒤꿈치 들고 새싹들이 일제히 발돋음한다. 산도 들도 부시시 일어나 앉고,     네가 보낸 편지는 아름다운 시다. 기쁨으로 노래로 온 세상에 그득한 시 읽어도 읽어도 싫증나지 않는 시다.   생일 선물 ./ 박 종 해   아빠가 주신 생일 선물은 동화책 임금님, 왕자님에 신기한 요술 나라 내 마음은 부풀어 하늘 문 열고 파아란 꿈밭으로 달려갑니다.     엄마가 주신 생일 선물은 크레파스 가고픈 바다 궁전, 무지개 일곱 나라 내 마음은 아롱다롱 오색 빛깔로 새벽 풀잎 이슬처럼 맺혀 있어요.   (초등학교 3학년 교과서에 실린 작품)   동화책을 펴면 동물 나라, 귀신 나라, 하늘 나라, 바다 나라 어디든지 갈 수 있습니다. 동화책 표지는 온갖 신기한 나라로 들어가는 대문인 셈입니다. 크레파스로 쓱쓱 그리면 고운 놀과 울창한 숲, 바다 궁전, 달나라 풍경, 무엇이나 만들어 보일 수 있습니다. 생일 선물로 받은 동화책과 크레파스는 참으로 귀한 꿈의 선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김종상)   좋겠다 / 서 정 숙    꽃잎은 좋겠다 방울방울 이슬이 닦어 주니까.   나무는 좋겠다 주룩주룩 소나기가 씻어 주니까.     (초등학교 2학년 교과서에 실린 작품)   우리는 아침마다 세수를 하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목욕을 합니다. 그것이 싫어서 세수를 하지 않고 학교에 오는 날도 있습니다. 그런데 꽃잎은 아침마다 밤이슬이 내려 세수를 시켜주고, 나무는 가만히 서 있어도 때때로 소낙비가 와서 목욕을 시켜 주니까 좋겠다고 했습니다. 꽃과 나무를 나와 똑같은 자리에 두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종상)   섬은 / 선 용   파란 들판에 홀로 핀 한 송이 꽃 꽃 꽃     파도 소리 그리운 작은 귀 귀 귀   망망대해에 떠 있는 섬은, 파란 들판에 핀 한 송이 꽃이라 할 만하지요. 하지만 섬은 아름다움을 갖는 대신 스스로 외로운 단독자로 남아 있어야 하지요. 그래서 섬은 늘 파도에 실려오는 물 소식이 그리워 파도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는지 모르지요. 섬이 갖는 아름다움과 고독을 선용(1942~) 시인은 꽃과 귀로 의미있게 표현해 냈지요. (김용희) 맞아, 맞아, 맞아. 이 시를 읽으면 이 말이 절로 나와요. 넓은 바다는 파란 물결 들판 같고, 섬은 그 들판에 핀 한 송이 꽃 같아요. 참 아름다운 상상이지요. 그러나 섬은 외로워요. 그래서 늘 파도에 실려 오는 뭍(육지) 소식이 그리워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요. 섬은 꽃이고 귀예요. 섬은 시인에 의해 꽃과 귀로 새롭게 탄생한 거지요. (박두순)   비 내리는 사이에 / 설 용 수   바람이 그네 줄을 흔들며 "튼튼하구나."     빗물이 미끄럼을 타며 "잘 미끄러지는걸."     참새 두 마리 시소에 올라서 "중심도 잘 맞아."     바람이 빗물이 비 맞은 참새가     놀이터 안전을 점검하고 있다.     비 내리는 그 사이에,   산골 사는 옥이 / 김 동 산   산골에 사는 옥이는 계곡물처럼 졸졸거리며 산다.     산골에 사는 옥이는 산새처럼 재재거리며 산다.     산골에 사는 옥이는 산꽃처럼 방실거리며 산다.     산골에 사는 옥이는 잎새에 비치는 햇빛처럼 반짝거리며 산다.     산골에 사는 옥이는 그대로 순진한 자연이다.   (2001년 11월 『월간문학』 제95회 신인상 당선작   빈 집 / 유 정 숙   산 아래 빈 집 마당에 뒹구는 개밥그릇에 푸른푸른 풀씨가 싹을 틔웠다.     흙먼지 뒤집어 쓴 운동화 짝에 들레들레 민들레가 피어났다.     주인 없는 빈 집에 바람이 제 맘대로 꽃꽂이했다.   (2005년 봄『한국동시문학』9호)   이 작품을 대하면 자연의 아름다운 모습이 가슴에 그려진다. 사람들이 일부러 가꾼 꽃보다 저절로 피어나는 자연의 꽃이 자연스러워 더욱 정감이 간다. 개밥그릇에 싹을 틔운 것도 예쁘고 운동화 짝에 민들레가 핀 모습도 귀엽다. 자연은 사람의 손길만 멀리 있어도 빼어난 그림을 연출한다. 이 시는 끝 연의 뛰어남이 시 전체를 살려주었다.(남진원)   가을 바람 / 윤 이 현   가을 바람은 하얀 손수건 기차의 꼬리가 달달달 산모롱이 휘돌아 갈 때 언덕 위엔 억새풀 날리고 있었지.     가을 바람은 가녀린 웃음 고추잠자리 맴을 돌다 저녁노을 속으로 멀어져 갈 때 길섶엔 코스모스 파르르 피어 있었지.     가을 바람은 휑한 가슴 허수아비 엉거주춤 빈 손으로 들녘에 서 있을 때 먼 곳엔 하늘이 솔솔솔 높아 있었지.     '가을 바람'을 3연으로 나누어 같은 형식으로 나타내었습니다. 그러기에 동요에 가까운 동시로 볼 수 있습니다. 표현에 있어선 은유법이 두드러지는데 '가을 바람은 하얀 손수건' '가을 바람은 가녀린 웃음' '가을 바람은 휑한 가슴'이 바로 그것입니다. 더 깊이 파고 들면 '하얀 손수건'은 ''언덕 위의 억새풀'을 '가녀린 웃음'은 '먼 곳의 하늘'을 노래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섬세한 감각이 돋보이며, '기차' '산모롱이' '고추잠자리' '저녁노을' '허수아비' '들녘' 등의 단어가 가을의 정경과 정취를 한층 더 돋구어 주고 있습니다. (허동인)   망망망 / 이 상 교   작은 두 귀가 망망망     작은 발 네 개가 망망망     작은 엉덩이가 망망망     작은 꼬랑지가 망망망     우리 강아지가 맨 처음 짖은 날.     낯선 이가 찾아오면 맨 먼저 짖으며 경계하는 일이 개의 몫이지요. 그런데 젖 먹던 힘까지 다해 짖어도 위협적이긴커녕 귀엽게만 들립니다. 태어나 처음 짖는 강아지의 외침이 우리 집 아이의 옹알이 소리 같기도 하고, 이웃집 아이가 부르는 동요 같기도 하지요. 이상교(1949~) 시인이 '망망망' 하는 소리에다 어린 강아지의 앙증맞은 움직임을 모두 담았으니, '소리'와 '모양'의 절묘한 어울림이라 할 만합니다. (박덕규) 망망망. 강아지가 맨 처음 짖었어요. 두 귀를 흔들며 망망망. 네 발을 흔들며 망망망. 엉덩이를 흔들며 망망망. 꼬랑지(꼬리)를 흔들며 망망망. 짖는 소리도 귀엽게 망망망. 짖는 모습도 귀엽게 망망망. 시인은 '작은'이라는 말을 네 번이나 썼어요. '귀엽다'라는 말을 대신하기 위해서이지요. 작은 것은 다 귀여워요. 작은 송아지, 작은 개미, 작은 물고기, 작은 아기, 다 귀엽지요. (박두순)   목련 / 이 석 장   보여줄까 말까 보여줄까 말까 겨우내 써 모아 둔 가슴 시리던 사연 꼬깃꼬깃 접은 하얀 쪽지     봄햇살이 하도 보채어 화알짝 펴 들었다.     웃을까 말까 웃을까 말까 겨우내 오들오들 눈물겹게 견디며 앙 다물었던 입술     봄바람에 하도 간지러워 화알짝 웃었다.   동요에 가까운 시입니다. 두 가지로 나누어 노래했는데 하나는 목련을 '하얀 쪽지'로, 다른 하나는 '다물었던 입술'로 보았습니다. 봄날 목련꽃이 피어 날 때의 모습을 시로써 그려보았습니다. (허동인)   우산과 양산 / 이 인 화   비 오는 날 우산은 작은 지붕이야.     비를 대신 맞아주는 참 착한 지붕이야.     해 밝은 날 양산은 활짝 핀 해바라기야.     해님 향해 웃는 참 예쁜 해바라기야.   보름달 / 이 종 문   밤마다 밤마다 잠도 못 잤는데 어쩌면 포동포동 살이 쪘을까?     날마다 날마다 햇볕도 못 쬐었는데 어쩌면 토실토실 여물었을까?   (초등학교 3학년 교과서에 실린 작품)   보름달이 떴습니다. 둥글고 환하게 밝은 저 보름달! 지은이는 그 보름달을 포동포동 살이 찐 어린이의 복스러운 얼굴에 빗대어 생각해 보았어요. 그러자 순간, 밤에 떠서 세상을 밝게 비추느라 잠도 못 잤을 텐데 어쩌면 저렇게 살이 쪘을까? 놀라움을 느꼈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또 한번 쳐다보았어요. 그러니까 이번에는 그 어느 잘 익은 열매같이 느껴졌습니다. 그러니까 문득, 열매는 햇볕을 쬐어야 잘 익는데, 밤에만 떠서 햇볕도 쬐지 못하면서 어쩌면 저렇게 잘 여물었을까? 큰 감동을 느꼈습니다. 이와 같이, 시는 곧 감동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김한룡) 시가 단조로울 때는 강조하고 변화를 주어라 이 동시는 글의 짜임이 같다. 짜임은 같은데 말만 바꾸어놓았다. 옛날 한시에서는 반드시 대구법을 썼다고 한다. 우리 동요에서도 대구법을 많이 썼다. 대구법은 음악성을 살리고자 할 때 사용하는 게 좋다. 시가 단조로워질 때는 시에 변화를 주어야 한다. 변화를 주는 수사법으로는 도치법, 설의법, 문답법 등이 있다. (이준관)   들꽃 이름 / 이 지 은     "이름이 왜 애기똥풀이니?" "줄기를 자르면 노오란 즙이 나와."     "이름이 왜 끈끈이대나물이야?" "줄기를 만져보면 끈적거려."     "이름이 왜 씀바귀야?" "뿌리도 잎도 아주 쓰거든."   꽃씨/ 이 태 선   까만 꽃씨에서 파란 싹이 나오고.     파란 싹이 자라 빨간 꽃 되고.     빨간 꽃 속에서 까만 씨가 나오고.   참으로 간결한 동시입니다. 낱말이 모두 17 개요, 글자 수가 모두 37 자입니다. 이만한 말로써도 꽃시를 나타낼 수 있다는 건 문학(시)의 자랑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는 색깔이 있는 말들을 골라 쓴 것을 주의깊게 보아야겠습니다. 까만 꽃씨를 땅에 묻었더니 파란 싹이 나온다는 신기함을 어린이의 느낌으로 그린 것인데 까망과 파랑이 대조가 이뤄짐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에 파란 싹이 나와 자라더니 빨간 꽃이 핀다고 한 데서는 파랑과 빨강이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빨간 곷 속에서는 까만 씨가 나온다고 해서 빨강과 까망의 색깔 대조가 아주 효과적입니다. 색깔을 대조시키는 거기, 화안한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한국아동문학인협회)   개미 / 이 환 채   고 작은 이마 뻘뻘     고 작은 눈 반짝반짝     고 작은 다리 영차영차     고 작은 머리 지혜가 가득     (2006년 11월『어린이동산』)   초가집 낙숫물 / 이 희 철    사르륵 사알짝 물방울 아기들     초가집 지붕 위에 모여 와서 미끄럼 탄다.     퍼르륵 퍼얼쩍 물방울 아기들     초가집 추녀 끝에 모여 서서 뜀질을 한다.     투루룩 루욱룩 물방울 아기들     초가집 댓돌 밑에 모여 앉아 옹달샘 판다.   1연 3행 6연으로 이루어진 동시이다. 자연 현상을 통해 천진한 동심을 묘사했다. 동심을 통해 자연을 관찰하고 자연을 통해 다시 동심으로 되비치는 밝은 정신이 들어 있다. 문체는 생략법에다가 '사르륵 사알짝', '퍼르륵 퍼얼쩍', '투루룩 루욱룩' 등의 의성어로 음악적 리듬을 가미하여 돋보이도록 했다. 시간의 순서와 공간의 질서로 구성되었으며 '옹달샘 판다'로 마무리하여 물방울이 돌 뚫는다는 것을 연상 쉬지 않고 나아감을 시사했다. 소박한 동심을 관조하여 어린이 모습을 순수세계(자연현상)로 환치시켰다. 의인법으로 하여금 '물방울'하면 '어린이', '어린이'하면 곧 '물방울'로 그 작은 것과 맑고 깨끗한 것과 또 밝은 곳으로 자라남을 연상시킬 수 있어 좋다. 이 시는 지은이의 나이 44세 때 작품으로 1978년 '세광동요 350곡집'에 박창옥 작곡으로 실려 있다. (공주대 국어과 교수 노종두)   비둘기 / 전 병 호   글자를 배우고 나서 들어보면 구구구구구     숫자를 배우고 나서 들어보면 99999   술래잡기 / 전 원 범   해와 달이 술래잡기를 한다. 빙빙 돌면서 술래잡기를 한다. 한 바퀴 돌 때마다 하루가 가고     시침과 분침이 술래잡기를 한다. 두 바퀴 돌 때마다 하루가 가고 시간이 가고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이 술래잡기를 한다. 한 바퀴 돌 때마다 한 해가 간다.   해와 달, 시계의 분침과 시침,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도는 것이 마치 술래잡기를 하는 것 같습니다. 마치 아이들이 술래잡기를 하는 것 같아 시로 옮겨 보았습니다. (전원범) 구리구리구리 / 손 동 연 구리는 구린데 논에서 나는 구리는? 개구리     구리는 구린데 나무에서 나는 구리는? 딱다구리     구리는 구린데 굴에서 나는 구리는? 너구리     구리는 구린데 길에서 나는 구리는? 쇠똥구리 말똥구리     이 문제를 못 풀면 너는너는 무슨 구리? 멍텅구리   (아동문예 2001-5)   태풍 / 정 춘 자   ―얘들아! 먹구름 봐 태풍이 온다 사과나무는 사과알 꼭 붙잡는다.     ―얘들아! 떨어지면 큰일이야 감나무는 풋감을 꼭꼭 붙잡는다.     ―얘들아! 엄마를 꼭꼭 붙잡아라. 대추나무가 소리친다.   의인화한 시로서 흔하지 않은 작품이다. 위험에 처했을 때 자식을 보호해 주는 부모의 마음을 나타냈다. 대체로 잘 짜여진 작품이라고 생각한다.(최춘해)   봄비 내리는 소리 / 정 하 나   산으로 갈까? 들로 갈까? 소곤소곤     꽃을 먼저 피울까? 잎을 먼저 피울까? 소곤소곤     소곤소곤 소곤소곤 아직도 결정 못 했나? 종일토록   (초등학교 5학년 교과서에 실린 작품)   봄비 내리는 소리를 들으면 저들끼리 속삭이는 얘기소리가 들려 오지요. 산으로 갈까? 들로 갈까? 꽃을 먼저 피울까? 잎을 먼저 피울까? 보통 사람의 귀에는 들려오지 않는 말도 시인의 귀에는 또렷하게 들려 오지요.   고 작은 것 / 제 해 만   고 작은 것 제비꽃이 피지 않으면 봄이 아니다.     고 작은 것 매미가 울지 않으면 여름이 아니다.     고 작은 것 고추잠자리가 날지 않으면 가을이 아니다.     고 작은 것 눈가루가 내리지 않으면 겨울이 아니다.     고 작은 것 고 작은 것들이 모여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만들고     고 작은 것 고 작은 것들이 모여 우주를 만든다.   사람들은 대개 큰 것을 좋아하고 큰 것에 눈길을 더 준다. 작은 것은 시시하고 하찮게 생각한다. 가벼히 여긴다. 그런데 이 시를 읽어보면 그게 아니다. 작은 것이 우주를 이룬다고 한다. 놀라운 일이다. 시인의 눈은 이렇게 작은 데서 큰 것을 보고, 작은 것에 큰 뜻과 가치를 매긴다. 작은 제비꽃이 피어 봄이 온다. 작은 매미가 울어 여름이 된다. 고추잠자리는 가을을 부르고, 눈은 겨울을 뒤덮는다. 어찌 작은 것이 크지 아니한가. (박두순)   이른 아침 / 조 명 제   빨랫줄에 참새 두 마리 갓 익은 아침 햇살을 톡톡 쪼아대고 있다.     선잠 깬 노랑 병아리     쫑쫑대며 부스러기 햇살을 줍고 있다.   저녁 바닷가 / 조 명 제    산등성 넘어 해님은 집으로 가고     칭얼대는 파도를 바람이 살랑살랑 잠재우고 있다.     갯벌엔 기일게 꽃게 발자국     어둠이 할금할금 뒤를 밟고 있다.   바닷가에 해가 지고 있다. 해님은 산등성이를 넘어 집으로 갔다. 잔잔한 저녁 바다의 파도 위로 바람이 지나간다. '칭얼대는 파도를/ 바람이 살랑살랑/ 잠 재우고 있다'의 한 구절은 묘한 생각을 떠올리게 한다. 갯벌엔 꽃게 발자국이 길게 찍혀 있다. 어두움이 뒤를 밟아오고 있다. 이 밖의 많은 사실들은 생략해 버렸다. 그러면서 저녁 바다의 풍경을 그림처럼 떠오르게 했다. 같은 내용을 담은 시는 간결할수록 좋다고 한다. 꽃게 발자국을 점 찍듯 몇 개의 풍경을 들어, 저녁 바닷가를 노래한 이 시는 여운이 오래 남는다. (이재철, 신현득, 제해만, 노원호)   적당히에는 / 조 영 수   ―아빠, 화분에 물 얼마나 줘? ―음, 적당히. 아빠의 적당히에는 꽃망울의 두근거림이 들어 있다.     ―엄마, 밥물 얼마나 부으면 돼? ―음, 적당히. 엄마의 적당히에는 둥그렇게 둘러앉은 식구들 웃음 소리가 들어 있다.     달달달 외운 내 적당히에는 시험지 속에 껍데기로 납작 엎드려 있다. 꽃씨 / 최 계 락   꽃씨 속에는 파아란 잎이 하늘거린다.     꽃씨 속에는 빠알간히 꽃도 피어서 있고 꽃씨 속에는 노오란 나비떼가 숨어 있다.   (초등학교 3학년 교과서에 실렸던 작품)   이 작품은 꽃씨 한 알 속에 담겨 있는 신비로움을 노래한 시다. 지은이는 꽃씨 한 알을 보면서 그 꽃씨가 땅에 묻힌 뒤의 일을 상상해 보고 있다. 즉, 봄이 되면 흙 속에 묻힌 꽃씨는 파란 싹을 틔우고, 빨간 꽃을 피우고, 그러다 노란 나비까지 불러들이는 신비로움의 세계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어떻게 이 조그만 꽃씨에서 싹이 돋아나고, 많은 꽃이 피게 되는지 신기하기 짝이 없다. 지은이는 이런 신기함을 맛보고 있는 것이다. 꽃씨를 보면서 상상한 사실(꽃씨가 싹을 틔우기도 하고, 꽃을 피우기도 한 일)을 실제로 보고 있는 것처럼 재미있게 나타내었다. 만약 한 알의 꽃씨를 호주머니에 넣고 다닌다면, 내 호주머니 속에서도 꽃이 피고 나비떼가 날아다니는 셈이 된다. 시인의 멋진 상상이 매우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재철, 신현득, 제해만, 노원호) 최계락(19301970)은 경상남도 진양 출생이다. 1947년 9월 에 동시 '수양버들'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재철은 그의 동시를 평하여 종래의 요적 내재율을 완전 배제하고 순전한 내재율을 채택하고 있으며, 정적인 고요함으로 느낌보다는 생각을 자아내게 한다고 하였다. 또한 그는 이 작품이 현상학적인 표현보다는 보이지 않는 복합적이고 입체적인 의미를 추구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서 보고, 이를 이전의 동시에서는 찾을 수 없었던 새로운 표현 미학으로 보았다. 따라서 이 같은 그의 시 창작법은 순수 동시 추구를 위한 노력으로 받아들여졌는데, 이는 곧 1960년대 본격 동시를 낳는 밑거름이 된 것으로 높게 평가하고 있다. 이 '꽃씨'는 독자인 어린이에게 직관에 의해 파악되는 경이로운 세계를 생생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오랜 세월 애송되고 있다. (전병호) 컴퓨터 파일 같은 조그만 꽃씨. 누가 저장해 둔 걸까요? 어떤 손길이 그 파일을 열었을까요? 이른 봄 파일 속에서 잎과 꽃과 나비 떼가 깨어났어요. 조그만 꽃씨가 눈을 비비지요. 잎을 매달고, 꽃잎을 엮어, 나비 떼를 데리고 세상을 내다보고 있어요. 해마다 봄이 되면 깨어나는 자연의 신비. 그 신비 속은 걸어들어 갈수록 풀리지 않고 오히려 감기기만 하는 수수께끼 같아요. 아름다운 수수께끼. (박두순)   불과 여섯 줄. 글자로 따져도 50 자가 못 되는 이 작품 속에는 그러나 한없이 넓고 깊은 세계가 담겨져 있다. 그 작은 꽃씨 속에서 하늘거리는 파아란 잎, 피어있는 빠알간 꽃, 그리고 숨어있는 노오란 나비떼를 볼 수 있는 눈은 누구나 쉽게 갖는 것이 아니다. 시인들 중에서도 최계락쯤 되니까 그런 눈을 갖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그것은 꽃씨의 생성 변화를 통해 자연의 섭리, 우주의 신비를 파악하는 눈이다. 눈에 보이는 것만을 보는 눈이 아니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까지도 환히 꿰뚫어 보는 눈이다. 어린이는 직관을 통해 존재를 파악한다. 따라서 거기에는 일반적인 세계의 객관성, 논리성이 게재될 틈이 없다. 어린이에게는 그것이 그대로 하나의 엄연한 실재다. 그것은 고대인이 의식한 세계의 실재 속에 내재하는 원리와 닮은 점이 있다. 그 중의 하나가 시간과 공간 개념. 거리와 양에 대한 개념의 미분성 내지 원시성이다. (어느 신문 기사에서 발췌한 내용임)   민들레 꽃씨 / 최 정 심   민들레가 솜사탕을 들고 소풍간다.     바람이 지나며 한 입 덥썩 베어먹고     벌 나비 날갯짓에 한 웅큼 묻혀 가고     빈 대궁만 남았어도 즐거운 소풍길.   의인화를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은 민들레씨가 여물어 흩어져 나가는 모습을 형상화한 시이다. 군더더기 하나 없는 깔끔한 시이다. 1연과 2연을 보면 참신한 경이감이 표출되어 있어 독자들을 감동케 한다.(정만영)   산새 / 허 호 석   네 소리로 산이 자고 깬다.     네 소리로 나무 나무 끝끝 구름이 머물고     외딴 곳에 산딸기가 익어간다.     네 소리로 산마을이 자고 깬다.     네 소리로 빛깔 고운 산망개가 열리고     산빛 곱게 옹달샘이 맑아진다.   산새소리는 언제 어느 때 들어도 아름답고 즐겁습니다. 그 산새소리에 따라서 모든 것이 움직이며 돌아가는 듯합니다. 산도,구름도, 산딸기도, 산마을도, 산망개도, 옹달샘도…. 산새도 자연의 일부이지요. 말은 없어도 질서있게 돌아가는 자연의 이치를 새삼 느끼고 깨닫게끔 합니다. (허동인)   가을 / 김 녹 촌   가을 하늘 한껏한껏 높푸르니,     고추도 한껏한껏 눈부시게 빨갛고     햇살이 한껏한껏 해맑으니,     벼도 한껏한껏 노랗게 깨끗하고     햇볕이 한껏한껏 따가우니     대추도 한껏한껏 토실토실하고…….   가을이면 고추가 빨갛게 물들고, 벼가 노랗게 익고, 대추가 토실토실 살찌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하늘이 높푸르고, 햇살이 해맑고 햇볕이 따갑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모든 자연이 어떤 모습을 갖추기까지는 반드시 그 원인이 있기 때문입니다. (김종상)   가을 아이 / 강 윤 제   코스모스는 아이들 손 되어 바람을 흔들다가     코스모스는 아이들 얼굴로 바람을 웃다가     코스모스는 아이들 되어 바람을 보여준다.     가을 아이로 서 있는 코스모스.   전선줄 정거장 / 홍 은 순   전봇대의 전선줄은 정거장인지 오고 가는 참새들이 모여 앉아서 짹짹짹짹 지껄이고 헤진답니다.     전봇대의 전선줄은 정거장인지 강남 가는 제비들이 모여 앉아서 비비배배 의논하고 떠난답니다.   꽃잎 속에는 / 권 극 남    찬찬히 찬찬히 꽃잎을 바라보렴.     빨간 빛덩이 해가 보이잖니?     벌, 나비, 바람도 보이네.     또 있잖니? 비를 뿌려 목 축여준     파란 하늘도 보이잖니?   시계 가게 / 이 상 교   "5시 5분이 맞아!" 부엉이 시계가 눈을 커다랗게 부릅뜬다.     "아냐, 11시 정각이야!" 기둥 시계가 뚝딱뚝딱     "7시라니까!" 뻐꾸기 시계도 지지 않는다.     시계마다 제가 가리킨 시각이 맞는다, 맞는다, 서로 우긴다.     뚝딱뚝딱, 투닥투닥 째깍째깍, 찰칵찰칵     우기는 목소리도 다 다르다.     감각적으로 표현하라     시계 가게의 제각각 시간이 다른 시계들을 재미있게 의인화한 이 시에서 '뚝딱뚝딱', '투닥투닥', '째깍째깍', '찰칵찰칵' 등이 청각적 이미지다. 후각적 이미지는 냄새를 표현하는 수사법으로서 예컨대 '산새알은 달콤하고 향깃한 풀꽃 냄새 이슬 냄새'에서 '풀꽃 냄새'와 '이슬 냄새'가 후각적 이미지다. (이준관)   봄 날 / 추필숙   푸우 푸우 비눗방울 날아간다.   아이들이 두 손으로 받아든다.   후우 후우 민들레 씨앗 날아간다.   흙이 두 손으로 받아든다.   웃음 / 엄 기 원   그건 꽃이다. 아름다운 빛깔의…….     그건 행복이다. 남도 듬뿍 나누어 주고 싶은…….   참 잘했지 / 엄 기 원   울 밑에 심심풀이로 꽃씨 몇 알 뿌려 놓고,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어느새 싹이트고 줄기가 자라 봉숭아꽃, 분꽃이 고맙다고 웃는다.   그 때 꽃씨 뿌리길 참 잘했지.     날마다 메꾸는 나의 일기 쓰면서 쓰면서 "에이, 일기는 뭣하러 쓴담?" 투덜댔는데,     먼 훗날 그 일기 읽어 보니 온갖 기억 되살아난다.     그 때 일기 쓰길 참 잘했지.     (초등학교 3학년 교과서에 실린 작품)   조그만 일도 큰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 알의 꽃씨가 크게 자라 꽃을 피울 때나 조금씩 쓴 일기가 커다란 추억을 되살려 줄 때의 기쁨을 생각해 보셔요. 그런 것이 모두 작은 일이지만 결과는 참으로 커다랗게 자라서 우리를 기쁘게 해 줍니다. (김종상)   어울려 사는 세상 / 강 대 택   꽃밭이 이렇게 아름다운 것은 빨강, 보라, 노랑, 하양…… 색깔도, 모양도, 크기도 가지가지 저마다 제 모습으로 눈부시지만 제 자랑 앞세워 뽐내지 않기 때문이란다.     숲 속이 저렇게 평화로운 것은 새 소리, 물 소리, 바람 소리…… 크고 작고, 높고 낮고, 길고 짧고 저마다 제 소리로 노래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방해하지 않기 때문이란다.   줄서기 / 김 둘   화장실갈 사람은 줄을 서야지 오줌 급한 미루나무들이 주루룩― 언덕 위에 줄을 섭니다.     체조 할 사람은 줄을 맞춰요 운동 나온 미루나무가 샤샤샥― 옆팔 벌려 줄을 맞춰 섭니다.     사진 찍을 사람은 모두 나와요 머리 빗고 몸단장한 미루나무들이 콧노래 부르며 줄을 섭니다. 하나, 두울, 세엣, 찰칵!   (제149회 아동문예문학상 당선작) 가을 들판 / 김마리아 벼 익는 냄새에 메뚜기 코가 발름발름.     수수 익는 색깔에 참새 눈이 반들반들.     '아, 먹고 싶다.' 가을 들판에서 메뚜기와 참새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거예요. 좋아하는 벼와 수수가 익어가고 있으니까요. 벼 익는 냄새에 메뚜기 코는 발름거리고, 수수 익는 색깔에 참새 눈은 반들거리겠지요. 그걸 어떻게 알았을까요? 그야 우리도 좋아하는 음식을 보거나 냄새 맡으면 자꾸 코가 벌름거리고, 눈길이 가는 걸 경험했으니까 알지요. 시인의 코와 눈은 예민하고 밝아야 한답니다. (박두순)   괄호 안에 말 / 김마리아   "잘못한 것도 없는데" 친구에게 따지고 싶은 말 괄호 안에 꼭꼭 묶어 둬야지.     "미진이는 옷이 더러워" 짝에게 귓속말하고 싶을 때 괄호 안에 꽁꽁 묶어 둬야지.     "엄마, 형아가 군것질했어요" 고자질하고 싶은 말 괄호 안에 꽉꽉 묶어 둬야지.   밖으로 못 나가게.   숲 속/ 김 숙 분   숲 속은 미로     향기가 들어섰다 나오지 못하고 여기서 솔솔 저기서 솔솔.     새들이 들어섰다 나오지 못하고 여기서 짹짹 저기서 짹짹.   봄 길 / 김 영 민   햇살이 놀고 있는데     민들레가 끼어들었다.     개나리가 끼어들었다.     벌, 나비도 끼어들었다.     어서 와 어서 와   (2008년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단순 명쾌하고 동심(童心) 잘 깃들어 있어   동시는 '동심 읽기'를 잘 해서 써야 한다. 좋은 시적 표현에다 동심이라는 옷을 잘 입혀야 한다. 그래서 동시는 특수한 문학 장르이다. 그 때문에 동시는 아무나 쓸 수 있는, 아무나 쓰는 글이 아니다. 무르익은 시 쓰기 능력을 가져야 좋은 동시를 빚을 수 있다. 동심이란 무엇인가? 때 묻지 않은 순진무구한, 인간 원형질적인 마음이다. 어른보다 어린이에게 그런 심성이 제대로 살아 있다. 그런 심성은 단순함에서 온다. 어린이는 단순하다. 단순한 것은 명쾌해 보인다. 따라서 동시는 단순명쾌한 것이 특징이다. 동시가 단순명쾌하려면, 시적 스토리와 주제의 분명함에다 압축 절제돼 있어야 하고, 동심이 깃들어야 한다. 이런 요쇼에 가장 근접해 있는 김영민의 작품 4편 중 '봄길'을 당선작으로 올린다. 시어 하나만 빼 버려도 시가 와르르 무너질 정도로 압축 절제돼 있다. 따뜻한 햇살이 내리는 봄 들길에 민들레 개나리꽃이 피고, 벌 나비가 날아오는 광경이 산뜻하게 그려져 있다. 잘 어울리며 조화를 이루는 자연의 모습이다. 약점이 될 수도 있는 감각적인 시가 이런 의미에 둘러싸여 오히려 빛난다. '나도' '끼어들었다' '어서 와' 같은 시어로 동심 읽기에도 소홀함이 없다. 이게 이 시인의 역량이다. 정진해, 동시문학의 탑쌓기에 돌 하나 얹기를 바란다. (박두순의 심사평)   짝 / 손동연   "엄마"의 반대말은 "아빠"래요. 아네요, 아냐. 엄만 아빠의 참 좋은 짝인걸요.     "남"의 반대말은 "북"이래요. 아네요, 아냐. 북은 남의 참 좋은 짝인걸요.     "하늘"의 반대말은 "땅"이래요. 아네요, 아냐. 땅은 하늘의 참 좋은 짝인걸요.     우리 가족 우리 나라 우리 별 지구... 자꾸자꾸 불어나는 참 좋은 짝인걸요.     생각해 봤니? / 김 종 상   네가 따뜻한 옷을 입을 때 떨고 있는 동무를 생각해 봤니?     네가 맛있는 걸 먹을 때 굶주리는 이웃을 생각해 봤니?     네가 즐겁고 행복할 때 괴롭고 슬픈 사람들을 생각해 봤니?     네가 차지한 햇볕의 넓이만큼 그늘도 짙다는 걸 생각해 봤니?   숲에 가면 / 김 종 상   나뭇잎이 살랑살랑 손짓하며 반깁니다.     들꽃들이 생글생글 음음으로 맞습니다.     도깨비바늘이 우르르 옷깃에 매달립니다.     숲에 가면 모두가 그렇게 반겨 줍니다.   속이 차면 / 김 종 상   빈 양동이는 요란하지만 속을 채우면 소리가 없지.     얕은 냇물은 시끄럽지만 깊은 강물은 잠잠하단다.     잔가지는 바람에 흔들려도 굵은 둥치는 꿈쩍도 안 하지.     생각이 넓고 깊은 사람은 늘 신중하고 조용하단다.   (2004년 여름『시와 동화』제28호)   이른 봄 / 김 종 상   꽃들도 이른 봄 꽃들은 배시시 수줍게 웃는 귀여운 아기 웃음 꽃.     나비도 이른 봄 나비는 연약한 두 날개 다칠라 귀여운 아기 날개짓     아기도 이른 봄 아기는 종종종 잔걸음으로 귀여운 아기 나들이.     봄의 모습 중에서 이른 봄의 모습은 여러 가지로 상상할 수 있습니다. 이 동시에서는 이른 봄의 모습을 세 가지를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째 연에서는 이른 봄에 피어나는 꽃들의 모습입니다. 그 수줍은 느낌 때문에 귀여운 아기 웃음 꽃이라고 했습니다. 둘째 연에서는 이른 봄 나비의 모습입니다. 아직 찬 기운이 다 가시지 않았기에 나비의 날개는 더욱 가냘퍼 보이기만 합니다. 이런 모양을 귀여운 아기 날개짓이라고 했습니다. 셋째 연에서는 이른 봄 아기의 모습입니다. 무엇보다도 수줍고 가냘픈 느낌을 주는 봄 아기는 종종종 잔걸음으로 걸어갑니다. 그런 걸음으로 나들이를 나가는 아기의 귀여운 모습을 그려 보셔요. 첫째 연에서는 식물, 둘째 연에서는 동물, 셋째 연은 사람을 순서대로 들어 이른 봄의 정취를 그려내고자 했습니다. 소재는 '이른 봄의 꽃과 나비와 아기'이고 주제는 '이른 봄의 꽃과 나비와 아기의 모습은 귀엽기만 하다'입니다. (김종상의 '나는 시를 이렇게 썼다'에서)   산에서 / 김 종 상   산을 오르다 보니 골짝물이 꽃잎을 싣고 간다.     "어디로 가니?" 산기슭의 진달래가 내려다보고 있었다.     산을 오르다 보니 칡덩굴이 나무에 매달려 있었다.     "나무에 오르고 싶니?" 멧새들이 재재재재 떠들다가 날아갔다.     산기슭의 진달래와 골짝물의 꽃잎, 멧새들과 칡덩굴, 그들 사이에 오고가는 정겨움을 생각하면 여기가 별천지인가 싶습니다. '어디로 가니?' '나무에 오르고 싶니?' 사실 이러한 표현들은 자연과 친하고 싶은 지은이의 솔직한 심정을 진달래와 멧새들에게 옮겨 본 것이라 봐야겠죠. 동요적인 동시, 아니면 동시적인 동요라고 보겠습니다. (허동인)   둥근 것 / 박 두 순     둥근 것은 곱다. 이슬 눈빛이 곱고 빗방울 속삭임이 곱다.     둥근 것은 향기롭다. 모난 과일이 어디 있나 맛이 향가롭다.     둥근 것은 소중하다. 땅덩이도, 해도 별도 달도 둥글다. 씨앗도 둥글다 잎과 꽃과 뿌리까지 품으려니.     사랑스런 널 보는 눈이 둥글다. 네가 나를 용서할 때의 웃음도 둥글었다.   할머니집에 가면 / 박 두 순       할머니 화안한 웃음이 먼저 마중나옵니다.     가끔 그렁그렁한 눈물도 마중나옵니다.     강아지 꼬리도 살랑살랑 마중나옵니다.   내가 부르면 / 하 인 혜   "아빠." 하고 부르면 아빠는 책장을 넘기며 안경 너머로 "무슨 일이야?" 물어봅니다.     "엄마." 하고 부르면 엄마는 등 돌리고 서서 그릇을 닦으며 "왜 그러니?" 대답합니다.     "할머니." 하고 부르면 할머니는 하시던 일 멈추고 두 팔 벌려 "오…오…냐!" 안아줍니다.   가을 해 / 한 인 현   배추밭을 다 못 맨 마나님은 한 발 남은 해님을 바라보고서 "아이 참 가을 해는 짧기도 하이."     온종일 새를 몰던 영감님은 한 뼘 남은 해님을 바라보고서 "아이 참 가을 해는 길기도 하이."     사람들은 어떤 사물을 두고 사람에 따라서, 아니 그 마음가짐에 따라서 보고 느끼는 것들이 다른 법입니다. 그 마음가짐(상태)이 중요한 것은 다 이루 말할 수 없으며 그것이 곧 그 사람의 일생과 운명까지도 결정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마음가짐을 착하고 즐겁게 지니면서 오늘을 참고, 내일을 바라보면서 살아야 합니다. 가을 날, 배추밭의 김을 마저 다 매지 못한 마나님은 한 발자국쯤 남은 해님을 바라보면서 "아이 참, 가을 해는 짧기도 해."하는가 하면, 온종일 벼논에서 새를 쫓던 영감님은 한 뼘쯤 남은 가을 해를 바라보며 지루함을 이기지 못해서 "아이 참, 가을 해는 길기도 해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다른 의견인가요? 그리고 얼마나 재미가 있는 비교인가요? (한국아동문학인협회)   나비의 또 다른 이름은 / 한 혜 영   나비의 또 다른 이름이 어쩌면 바람일 거야. 그러니까 그렇게 몸이 가벼워 하루 종일 팔랑팔랑 지치지도 않는 거지.     아냐 아냐 나비의 또 다른 이름은 어쩌면 공주일 거야. 그러니까 그렇게 옷이 예뻐서 꽃밭에 꽃들이 하루 종일 불러 주지.     아니 아니 나비의 또 다른 이름이 어쩌면 그냥 꽃일 거야. 그러니까 꽃잎 속에 꼭꼭 숨어 있으면 꽃인지 나비인지 나는 통 알 수가 없지.   이름을 불러 주세요 / 허 명 희   이름을 불러 주세요. 꽃에게 이름을 불러 주세요. 민들레야 원추리야 명아주야 거 봐요, 눈망울이 헐씬 빛나잖아요.     나무에게도 이름을 불러 주세요. 소나무야 자귀나무야 상수리나무야 보세요, 키가 훨씬 더 커 보이잖아요.     이름을 불러 주세요. ―선영아, 하고     그 소리 들으면 마음 빈 자리에서 파랑새 한 마리 지저귈 거예요.     우리는 정다운 사람의 이름을 부를 때 나직한 목소리로 불러요. 그러면 왠지 더 따스하게 느껴지지요. 꽃도 나무도 그래요. "민들레야, 소나무야." 하고 불러 주면 눈망울 빛나고, 키가 훨씬 더 커 보여요. 친구 이름도 다정하게 불러주면 마음 빈 자리에서 파랑새 한 마리가 지저귀지요. 마음을 푸르게 해 주는 파랑새가 가슴에 날아다니게 친구 이름을 불러 보세요. "선영아―." 하고. 김춘수 시인도 '꽃'이란 시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 그는 나에게로 와서 / 꽃이 되었다." 하고 노래했어요. 서로에게 꽃이 되는 아름다운 이름을 불러 주세요. (박두순)   참 좋은 짝이야 / 허 명 희   젓가락과 숟가락 왼발과 오른발 물병과 뚜껑 나무와 새 놀이터와 아이들 아빠와 엄마 너와 나 ……….     참 좋은 짝이야.   친구가 되기 위해서 / 허 명 희   도토리는 딱딱한 껍질을 벗어야 말랑말랑한 맛나는 묵이 되는 거야     도토리도 가시 옷을 벗어야 겨울 군밤이 되어 사람들의 마음을 데워 놓는 거야     호두를 봐 딱딱한 껍질 속에 오글오글 모여앉은 고소한 속살     너랑 나랑 친구가 되기 위해서도 이런 껍질을 벗어야 돼 그래야 따뜻한 마음이 나와 손을 잡게 되지.   작은 것 / 황 베드로 웅덩이가 작아도 흙 가라앉히면     하늘 살고 구름 살고 별이 살고.     마당이 좁아도 나무 키워 놓으면     새가 오고 매미 오고 바람이 오고.   (초등학교 3학년 교과서에 실린 작품)   맑은 물웅덩이를 들여다보셔요. 조그만 웅덩이에 하늘이 비치고, 구름이 떠가고 별이 빛납니다. 작은 웅덩이에 모두 다 들어 있습니다. 좁다란 마당을 생각해 보셔요. 새가 날아다니고, 매미가 와서 울고 바람이 마음대로 돌아다닙니다. 좁은 마당에 참 많은 것이 와서 살아갑니다. 웅덩이와 마당은 조그마해도 참 크고 넓습니다. (김종상)   산 / 차 보 현   산은, 높푸른 하늘 아래 의젓이 서서 생각하며 산다. 논갈이나 밭갈이를 마친 소처럼, 초록 풀밭에서 새김질하는 황소처럼, 산은 한 가지 한 가지 차분히 생각하며 산다.     산은, 아침해를 기린다. 동해에서 덩실 솟아오르는 둥근 해를 반긴다. 들판이나 들판을 적시는 강물이 안개의 잠 속에 잠겨 있을 때, 산은 남 먼저 아침해를 맞이한다.   봄 / 최 만 조   밖에서 누가 부르는 것 같아서 창문을 활짝 열고 내다보았다.     봄바람이 사알사알     꽃밭에서 속삭이는 봄 노래를 듣고 있었다.     밖에서 누가 찾는 것 같아서 씨앗 심은 꽃밭에 나가보았다.     아지랑이 아롱아롱     담장 밑에서 혼자 꽃망울 어루만지고 있었다.   축하해 / 유 미 희   ―어린이날   ―축하해 산이 일어서고,     ―축하해 새들이 노래를 선물한다.     ―축하해 시냇물이 도란도란 속삭이고,     ―축하해! 꽃들은 펑펑 폭죽을 터뜨린다.   할아버지의 과일 / 오순택       시골할아버지가 보내준 과일 속엔 해가 들어있어요       뜨거운 여름 햇볕 받아먹고 빠알가니 익었으니까요   시골할아버지가 보내준 과일 속엔 물소리도 들어있어요   뭉게구름 지나가다 과일 밭에 들러 비 뿌려주고 갔으니까요   시골할아버지 보내준 과일 속엔 새소리도 들어있지요   온음표 물고 날아가던 새 과일나무 가지에 앉아 노래하다 갔거든   책벌레 공부벌래 일벌레 / 이묘신   꿈틀꿈틀 애벌레 보면 징그럽다던 엄마 바퀴벌레는 더 싫어하는 엄마     ㅡ어마나, 책벌레 우리 아들! ㅡ어이구, 공부벌래 우리 딸! ㅡ에휴, 일벌레 우리 남편!     오늘은 우리를 벌레로 만들어놓고 웃음 짓는다.   그만큼 / 유 미 희   나무에서 멀어진 톱,       흙에서 멀어진 호미,     풀에서 멀어진 낫.     꼭 그만큼 녹이 슬었다.   (2005년 10월『아동문예』)   언어 절약이 두드러져 보이는 작품이다. 극도로 절제된 발언이지만, 할말은 다 하고 있다. 매우 메시지가 강하게 전해온다. 그렇다고 강압적이진 않다. 톱과 호미, 낫 등 사물의 역할을 통해 그것을 구현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읽힌다. 자기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그만큼' 녹슬게 된다는 의미다. 녹슨다는 것은 자기를 잃는 것과 같다. 제 할 일을 게을리하면 자아 상실을 하게 된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박두순) 배를 깎으면서 / 최 장 길 엄마는 배를 깎으면서   좁은 오솔길을 만든다.   시원한 바람이 솔 솔     배꽃 향기도 술 술     배나무 그늘에 매미 울음이 맴맴     박하처럼 시원하게 가슴 적신다.     배가 깎이는 껍질을 오솔길로 그렸습니다. 배가 깎이며 배 속에 있던 시원함과 향기 그리고 여름내 울어대던 매미소리가 있어 가슴을 시원하게 적신다고 했네요. (김원석)   동시 나라 / 기 영 순       햇살 같은 웃음이 부서지는 나라. 이슬 같은 마음들이 뒹굴며 노는 나라.     풍선 같은 꿈이 둥실 떠 있는 나라. 참새 떼 같은 이야기들이 도란도란 숨쉬는 나라.   + 별이 나에게 / (전영관·아동문학가) 작은 섬 하나 있기에 파도는 흰 물결을 만들고 작은 꽃 하나 있기에 나비는 아픈 날개를 쉬고 네가 거기 있기에 나 오래오래 반짝이리. + 어깨동무하기 / (신새별·아동문학가, 1969-) 어깨동무하고 몰려다니는 구름들. 어깨동무하고 뻗어 있는 산들. 어깨동무하고 누워 있는 밭이랑들. 강물도, 파도도 파란 어깨동무. 어깨동무하기   사람들만 힘든가 보다. + 모두 함께 / (김위향·아동문학가) 풀밭에는 철쭉, 장미, 목련만 있는 게 아니야. 씀바귀, 민들레도 피고 애기똥풀도 노란 얼굴을 쏘옥 내밀고. 풀밭에는 나비, 벌만 놀러 오는 게 아니야. 바람이 살그머니 지나가고 개미들도 소풍 나오고 하루살이 빙글빙글 춤을 추고. 우리 동네에는 우리 집만 있는 게 아니야. 석이네, 봄이네, 희연이네, 세탁소, 미장원, 문구점, 방앗간, 자전거 수리점도 있고. 우리 동네에는 사람 사는 집만 있는 게 아니야. 까치 집, 개미 집, 다람쥐 집. 새들이 쫑알쫑알, 고양이가 살금살금 모두 모여서 함께 사는 거야. + 끼리끼리 모이면 /  (이혜영·아동문학가) 혼자는 싫어 떼 지은 참새. "짹 짹 짹" 끼리끼리 모이면 이야기가 생겨요. 방울 방울 물방울 개울 되어 흐르며 "졸 졸 졸" 끼리끼리 모이면 노래가 생겨요. 햇볕 드는 담벼락 아이들 모여 앉아 "재잘 재잘 재잘" 끼리끼리 모이면 웃음이 생겨요. + 보기 좋아서 / (이준관·아동문학가, 1949-) 우리들은 옥수수가 자라는 들길에서 잡았던 잠자리를 날려보냅니다. 잠자리가 획획획 날면 획획획 높이 커 가는 옥수숫대 보기 좋아서. 우리들은 벼가 자라는 논둑길에서 잡았던 개구리를 놓아줍니다. 개구리가 파알딱 뛰면 파알딱 개구리 따라 커 가는 벼들이 보기 좋아서. 9월 / (윤이현·아동문학가) 풋사과 새콤한 맛에 으스스 땀이 가시면 지붕 위에 빠알간 고추 가을이 물들어 오고 「오도독」 알밤톨 고소함에 가을이 영글어 들면 홍시감 뽀오얀 얼굴 가을은 또 익어가고 파아란 저 하늘은 마아냥 높아만 가네. + 엄마 손끝에서 / (김재용·아동문학가, 전남 목포 출생) 엄마 손끝에서 봄꽃이 피어난다 할미꽃 바람꽃 엄마 손끝에서 푸성귀도 잘도 큰다 상치, 쑥갓 부추, 시금치 엄마 손끝에서 또 누가 쏘옥쏘옥 자라지? 나 너 이 땅의 어린이들 + 슬픈 어느 날 /  (박지현·아동문학가) 울음을 참으려고 애를 썼지만 별님이  먼저 알고 눈물이 글썽. 슬픔을 잊으려고 애를 썼지만 달님이  먼저 알고 수심이 가득. + 아름다운 만남 / (곽홍란·아동문학가, 경북 고령 출생) 애들아! 지구를 살아 있게 하는 건 만남이란다. 초록별 지구를 숨쉬게 하는 참 아름다운 만남 새싹이 쏘옥, 눈뜰 수 있게 빗장문 열어 주는 흙 병아리 맨발이 시려울까 종종종 따라 다니는 아이들 참새, 토끼, 다람쥐, 고라니들의 추운 겨울을 위해 풀섶에 낟알곡 남겨두는 농부 어디 이것뿐이겠니? 작은 물결에도 놀라 두 눈이 동그래진 물고기 떼를 품어주는 바다풀 뿌리를 가지지 못한 겨우살이에게 가지 한 켠을 쓰윽 내어주는 물참나무 이런 아름다운 만남으로 지구는 푸르게 푸르게 숨쉬며 살아 있는 거야. + 초록 쉼표 / (오은영·아동문학가, 1959-) 우리 동네 느티나무는 커다란 초록 쉼표예요. 떨어지던 빗방울도 초록 잎 의자에 앉아 잠깐 쉬고 떠돌이 채소장수 아저씨도 초록 물든 그늘에 땀방울 잠깐 내려놓고 우리도 학원버스 기다리는 동안 초록빛 너른 품에서 친구랑 어울려 놀지요. + 달이 떴다 / (박혜선·아동문학가) 소쩍새가 노래 부르며 보는 달을 발발발발 짐 지고 가는 땅강아지가 땀 닦으며 본다. '내일 비 오면 안 되는데…….' 소풍을 기다리는 아이가 보는 달을 '왜 아직 안 오실까?' 아빠를 기다리는 아이가 골목길에서 본다. 달, 참 밝다. + 너를 위한 자장가 / 이미애·아동문학가) 아가, 들리니? 쏴아쏴아 솔숲에 바람 부는 소리. 아가, 들리니? 개골개골 무논에 개구리 우는 소리. 아가, 들리니? 찰랑찰랑 못 물에 달님 발 씻는 소리. 아가, 들어 봐. 자장자장 엄마가 널 재워 주는 소리. + 말이 다르니까 /  (김자연·아동문학가, 1960-) 병아리 말, 뾰약뾰약 비둘기 말, 그그그그 참새 말, 찌액찌액 꿩 말, 끄웡끄웡 말이 다르니 모양도 다르고 사는 곳도 다르네. 수돗물 말 쓰아아쓰아아 도랑물 말 도로돌도로돌 강물의 말 처처철 처처철 바다의 말 촤아악촤아악 말이 다르니 소리도 다르고 냄새도 다르네. 충청도말, 하지라유 전라도 말, 했뿌러 경상도 말, 하랑게 제주도 말, 했수까 말이 다르니 생각하는 것도 다르고 먹는 것도 다르네. + 해바라기꽃 / (이준관·아동문학가, 1949-) 벌을 위해서 꿀로 꽉 채웠다. 가을을 위해서 씨앗으로 꽉 채웠다. 외로운 아이를 위해서 보고 싶은 친구 얼굴로 꽉 채웠다. 해바라기 꽃 참 크으다. + 눈 덮인 아침 / (박두순·아동문학가) 마을은 일어나고 싶지 않은가 보다 눈을 덮고 가만히 엎드려 있는 걸 보면. 강아지는 놀고 싶어 못 견뎠나 보다 눈밭 가득 발자국이 뛰어다닌 걸 보면. 새들은   노래하고 싶어지나 보다 해도 뜨기 전에 자꾸만 지저귀는 걸 보면. 냇물은 잠이 오지 않았나 보다 들을 깨우는 얘기를 아침에도 재잘대고 있는 걸 보면. 온통 마음이 설레는 때다. + 손을 기다리는 건 / (신형건·아동문학가, 1965-) 손을 기다리는 건 어제 새로 깎은 연필, 내 방 문의 손잡이, 손을 기다리는 건 엘리베이터의 9층 버튼, 칠판 아래 분필가루 투성이 지우개, 때가 꼬질꼬질한 손수건, 애타게 손을 기다리는 건 책상 틈바구니에 들어간 30센티미터 뿔자, 방구석에 굴러다니는 퍼즐 조각 하나, 정말 애타게 손을 기다리는 건 손, 꼬옥 잡아 줄 또 하나의 손. + 보이지 않는 손 / (신현득·아동문학가, 1933-) 흙이 뿌리를 잡아 주어 나무는 서서 버틸 수 있다. 가지가 나뭇잎을 잡아 주어서 잎은 맘놓고 흔들려도 된다. 도토리를 잡고 있는 도토리 깍지 대추를 잡고 있는 대추 꼭지. 안 그런 것 같지만 우리도 그렇다. 나무에서 흙처럼 잡아 주는 이가 있다. 대추에서 꼭지처럼 붙잡아 주는 이가 있다. 그래서 맘놓고 뛰놀 수도 있다. + 돌멩이와 바위 / (안오일·아동문학가) 조잘조잘조잘 시냇물이 재미있게 얘기할 수 있는 건 들쑥날쑥 돌멩이들이 있기 때문이죠 철썩철썩 쏴 쏴 파도가 신나게 수다 떨 수 있는 건 끝까지 들어주는 바위가 있기 때문이죠 + 겨울 들판 /  (이상교·아동문학가, 1949-) 겨울 들판이 텅 비었다. 들판이 쉬는 중이다. 풀들도 쉰다. 나무들도 쉬는 중이다. 햇볕도 느릿느릿 내려와 쉬는 중이다. + 비 오는 날 / (양성우·시인, 1943-) 둥지 없는 작은 새들은 이런 날 어떻게 지낼까? 나비들은, 잠자리, 풍뎅이, 쇠똥구리들은 이런 날 어떻게 지낼까? 맨드라미, 나팔꽃, 채송화...... 그리고 이름 모를 풀꽃들은 어떻게 지낼까? 그칠 줄 모르고 이렇게 하염없이 비가 오는 날에는 죽도록 사랑하다가 문득 헤어진 사람들은 어떻게 지낼까? + 비 온다 / (박혜선·아동문학가, 1969-)    개미야 개미야 얼른 얼른 집에 가서 대문 걸어 잠궈라 지렁이야 지렁이야 얼른 얼른 나와서 대문 활짝 열어라. + 자연을 칭찬하기 / (권창순·아동문학가, 1961-) 친구만 칭찬하지 말고 강아지만 칭찬하지 말고 우리와 함께 묵묵히 걸어가는 길도 칭찬하자 가지마다 주렁주렁 열매를 익힌 감나무도 칭찬하자 풀숲에서 목청껏 노래하는 풀벌레들도 칭찬하자 둥둥 달을 띄워 놓고 있는 연못도 칭찬하자 동생만 안아주지 말고 고양이만 안아주지 말고 나무도 안아주자 풀들도 안아주자 꽃들도 안아주자 돌들도 안아주자 + 지구의 일기 / (이병승·아동문학가, 1966-) 나는 더워서 입기 싫은데 엄마는 자꾸 옷을 입혀요 두껍고 딱딱한 콘크리트 옷 나는 뛰놀고 놀고 싶은데 꼼짝 말고 있으래요 머리 깎아야 한다고 소나무 전나무 갈대 솜털까지 자꾸만 깎아요 나는 아파서 살살 하라는데 아빠는 등을 너무 빡빡 밀어요 때도 아닌데 구멍 나게 밀어요 곰보딱지 같다고 집들을 밀어요 산도 밀어요 나는 따가워서 싫은데 엄마는 뭘 자꾸 발라요 농약도 바르고 제초제도 바르고 냄새 고약한 폐수도 발라요 + 초여름 / (조용원·아동문학가 하늘과 산이 손잡고 초록 손수건 흔들고 있네요 강과 들판이 어깨 기대고 초록 꿈을 키우고 있네요 새들과 바람이 입 맞추고 보리밭에서 춤추며 사랑을 노래하네요 + 마음 /  (이혜영·아동문학가) 깃털처럼 가볍지만 때론 비위처럼 무겁단다. 시냇물처럼 즐겁지만 얼음처럼 차갑기도 해. 들꽃 향기에도 와르르 무너지지만 천둥 번개에도 꿈쩍하지 않아. 순한 양이다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가끔 나를 쩔쩔매게 하는 것. 알지? 조심조심 잘 다스려야 해.   + 꽃씨 / (안오일·아동문학가, 전남 목포 출생) 꽃씨는 알까요? 아주 조그마한 자기 몸이 딱딱한 땅을 뚫게 되리란 걸                     꽃씨는 알까요? 아주 조그마한 자기 몸이 세상을 물들이는 꽃이 되리란 걸                     꽃씨는 알까요? 정말 정말 조그마한 자기 몸이 꽁꽁 닫힌 사람들의 마음을 열어 주는 열쇠가 되리란 걸 + 봄 /  (한상순·아동문학가) 겨우내 시냇물과 조약돌 말 안하고 지내다 어느 날부턴가 쉬지 않고 도란거리는 걸 보면 겨우내 옷 벗은 미루나무에 잠시 눈길도 주지 않고 씩씩 지나치던 바람 미루나무 연초록 잎새에 매달려 온종일 반짝이는 걸 보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집 앞 산수유나무를 시작으로 꽃들 다투어 피는 걸 보면 분명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 아무리 숨었어도 /  (한혜영·아동문학가, 1953-) 아무리 숨었어도 이 봄 햇살은 반드시 너를 찾고야 말걸 땅 속 깊이 꼭꼭 숨은 암만 작은 씨라 해도 찾아내 꼭 저를 닮은 꽃 방실방실 피워 낼 걸. 아무리 숨었어도 이 봄 바람은 반드시 너를 찾고야 말걸 나뭇가지 깊은 곳에 꼭꼭 숨은 잎새라 해도 찾아내 꼭 저를 닮은 잎새 파릇파릇 피워 낼 걸.   + 파도는 / (이상문·아동문학가)                        파도는 100미터 달리기 선수 세차게 달려와 바위벽 결승선을 튕겨 나간다. 숨도 차지 않은가 보다. 잠시 바위에 주저앉았다가 벌떡 일어나 되돌아간다. 파도는 마라톤  선수. 먼길 달려서 지쳤을까? 모래밭 결승선을 밟고 쓰러진다. 숨이 몹시도 가쁜가 보다. 한참 모래밭에 뒹굴다 가까스로 일어난다. 꼭 그만큼만―민현숙(1958~ )   장다리 밭에 꼬물꼬물 배추벌레가 자란다고 한꺼번에 다 먹어치우는 건 아니다 제가 먹을 만큼 꼭 그만큼만 배추벌레를 물어 가는 새들   언덕마다 푸른 풀이 자란다고 있는 대로 먹어치우는 건 아니다 제가 앉은 자리만큼 꼭 그만큼만 풀을 뜯어 먹는 소들   새들이 남겨 놓은 장다리 밭의 배추벌레가 어느 새 흰나비가 되었구나 노랑나비가 되었구나   소들이 남겨 놓은 언덕 위의 풀들이 어느 새 흰꽃을 피웠구나 노랑꽃을 피웠구나   꽃 ―이봉춘(1941~ ) 꽃은 손이 없다 그러나 많은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꽃은 발도 없다 그러나 산을 넘어 먼 곳까지 잘도 간다 서로 몰라요 ―최영재(1947~ ) 아이는 아이끼리 서로 몰라요 누가 오늘 이만큼 몸이 컸는지 나무는 나무끼리 서로 몰라요 누가 오늘 이만큼 키가 컸는지 흰 구름 나란히 떠내려가면 가는지 서는지 서로 몰라요 웃으며 노래하며 어깨를 겯고 나란히 크느라 서로 몰라요 우리보고 -민경정(1967~) 선생님이 우리보고 개구리래요. 와글와글 버글버글 시끄러워도 들판에 개구리처럼 없으면 이상하대요. 선생님이 우리보고 들꽃이래요. 하양 빨강 크게 작게 마음대로 피어도 들판에 들꽃처럼 없으면 서운하대요. 나무들의 약속 -김명수 (1945~) 숲 속 나무들의 봄날 약속은 다 같이 초록 잎을 피워 내는 것 숲 속 나무들의 여름 약속은 다 같이 우쭐우쭐 키가 크는 것 숲 속 나무들의 가을 약속은 다 같이 곱게 곱게 단풍 드는 것 숲 속 나무들의 겨울 약속은 다 같이 눈보라를 견뎌 내는 것 빨주노초파남보 ―신경림(1936~   우리 교실은 빨주노초파남보 나리 옷은 빨갛고 하나 옷은 주황 미나 옷은 노랗다 서로 어우러져 무지개 같다   우리 집 식탁은 빨주노초파남보 시금치 나물이 초록이고 미역국은 파랑 가지 무침이 남빛이다 서로 빛깔을 뽐내는 게 꽃밭 같다   우리 동네 재래시장은 빨주노초파남보 과일과 생선도 빨갛고 노랗고 산나물과 버섯은 보랏빛이고 남빛이다 신발은 빨갛고 그릇은 노랗다 다투어 예쁘다고 뽐내면서 별로 수놓은 밤하늘처럼 아름답게 모두모두 빨주노초파남보 연못 ㅡ최두호(1938~ )   청개구리 한 마리 퐁당! 물둘레가 동그르르   연꽃 한 송이 퐁당! 꽃향기가 동그르르   구름 한 송이 퐁당! 놀란 잉어가 동그르르 가을은 ―신현신(1964~ 살금살금 오지 여우가 꼬리를 내리고 산을 내려오는 것처럼 조심조심 오지 도깨비가 요술 방망이 숨기고 발소리 내지 않고 오는 것처럼 숨바꼭질하며 오지 따가운 햇볕과 서늘한 바람이 서로서로 술래가 되는 것처럼 가을은 이렇게 해마다 오지 가을 운동회 기다리는 아이들 마음 알고 단물이 든 열매로 큰 잔치를 열 것처럼 첫서리 ―송명호(1938~2007) 첫서리 내렸다지 전깃줄에 아기 참새들 쭁쭁쭁 발이 시리대. 첫서리 내렸다지 감나무에 홍시감이 빠알갛게 볼이 시리대. 첫서리는 겨울 소식 눈사람의 편지 세수할 때 울 아기 손이 시리대. 시인의 손에 놓이면 / 신현득   돌멩이 한 개라도 시인의 손에 놓이면 달라, 시가 되거든.   몽당연필이라도 시인의 손에 잡히면 달라, 시를 쓰거든.   흔한 햇빛이라도 나뭇잎이 받아 지니면 다르듯이 과일의 살이 되듯이,   흔한 물방울이라도 나뭇잎이 받아 지니면 다르듯이 초록빛 피가 되듯이,   버릴 만한 한 생각이라도 시인의 마음에 잡히면 달라, 시를 빚거든.   시가 되는 모든 것 / 신현득   동그란 건 시가 된다. 내 손안의 유리구슬. 동그랗지 않아도 시가 된다. 내 손안의 손톱깎이.   빨간 것은 시가 된다. 울타리의 장미꽃. 빨갛지 않아도 시가 된다. 노랑 민들레.   달콤한 건 시가 된다. 알사탕. 달지 않아도 시가 된다. 풋살구.   보이는 건 시가 된다. 서산마루 저녁놀. 보이지 않아도 시가 된다. 가슴속 내 마음.   ㅡ『신현득 동시선집』(2015, 지만지)   꽃 떨어진 자리 / 정 용 원   감꽃이 떨어진 아픈 그 자리 배꼽 달린 아기 땡감 하나 기쁜 그 자리   민들레꽃 떨어진 아픈 그 자리 낙하산 여행 꿈꾸는 씨앗 형제들   아픔과 기쁨 나눈 꽃 떨어진 그 자리   발자국 / 정용원   진달래 나뭇가지 위 산새 발자국 폴짝폴짝 건너 뛸 때마다 꽃봉오리 하나씩 피어나지요.   금잔디 풀숲 사이 개미 발자국 살금살금 지나갈 때마다 까만 씨앗 오르르르 떨어지네요.   안개꽃 몽오리 위 바람 발자국 솔솔솔솔 지나갈 때마다 하얀 안개 입김처럼 퍼져 나가요.    2004년 가을호     정용원의 동시 은 꽃봉오리가 피어나고 금잔디가 무성해지는 것이 발자국에 의한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씨앗이 여러 과정을 거쳐서 꽃(결실)이 피고 다시 씨앗으로 되돌아가는 과정은 그 매개자가 있기에 가능하다. 따라서 모든 일은 혼자서 이루어지기 보다는 여럿이 함께 자기의 역할을 할 때 가능하다. 혼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산새의 움직임이 꽃봉오리를 피어나게 하고 개미의 부지런함이 금잔디 숲을 만들어낸다. 한편 솔솔 부는 바람이 안개꽃을 더 많이 피워내고 있다. 이처럼 한 송이의 꽃은 씨앗만 있어서 되는게 아니다. 자연의 조화로운 상생의 소통이 있을 때 비로소 하나의 결과물을 얻게 됨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이 동시는 개체보존의 과정을 순환적으로 나타내는 과정에서 매개자의 역할을 중시하고 있다. ‘진달래-산새-꽃봉오리’, ‘금잔디-개미-씨앗’, ‘안개꽃-바람-하얀 안개(꽃)로 이어지는 시어의 연결은 산새, 개미, 바람의 ’발자국‘에 의해 더 확산적으로 번지고 나아가서 종족 보존이 가능해 짐을 시각화하고 있다. 이 동시의 시적 화자는 관찰자의 입장에서 세계를 읽고 있다. 즉, 자연의 섭리를 관찰함으로써 혼자가 아닌 어울림의 미학을 깨닫고 있다. 다소 복잡한 듯한 연결고리를 이어가고 있지만 비틀림 없이 단순한 연결을 하고 있어 어린이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다. 또 시적 화자는 평법한 자연적 현상을 예리한 관찰력과 상상력으로 읽어내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어른의 관점이 아닌 동심의 관점이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시적 화자는 미숙한 존재도 아니고 교육의 대상도 아니다.   평 * 김종헌 (아동문학평론 2005년 봄호 통권 114호     귀를 대 봐 / 오순택   항아리에 귀를 대 봐.   숨소리가 들려.   나무에 귀를 대 봐.   펌프질 소리가 들려.   땅에 귀를 대 봐.   매미 애벌레 눈 뜨는 소리가 들려.   우리들 귀는 청진기야.   한 번도 못 들었다 /최영재   쩍쩍 갈라진 논바닥, 밭작물이 타들어 가지만 잡초 말라죽었다는 말 한 번도 못 들었다   폭풍우로 굵은 나무들 뽑혀 강물에 떠가지만 연밭의 연뿌리 떠내려갔다는 말 한 번도 못 들었다   사흘 내내 폭설, 길 막혀 자동차들 꼼짝 못 하지만 제발 눈 좀 그만 내리라는 아이들의 말 한 번도 못 들었다.        「한 번도 못 들었다」는 자연의 법칙은 변함없으며, 작물은 가뭄으로 죽어가더라도 잡초는 질긴 생명력으로 죽지 않으며, 폭풍우와 홍수로 나무들까지 떠내려갔지만 물의 생태에 적응한 연밭의 연뿌리는 떠내려가지 않고, 아이들이 폭설이 내리지 말라는 말을 한다 해서 폭설이 그치지 않는다는 자연현상의 생명력과 기상 현상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들은 어떠한가? 자신의 잘 못을 회피 하는 변명의 말이 「한 번도 못 들었다」이다.   그릇은 / 신현득   "끓는 된장을 담으세요." 뜨거운 걸 잘 참는 그릇.   "얼음덩이를 담으세요." 차운 걸 잘 참아내는 그릇.   "고추장을 담으세요." 매운 것도 잘 견디는 그릇.   사람도 참고 견디는 쪽이 그릇이다!   아버지 말씀.   새싹 모자 / 신현득   새싹은 모자를 쓰고 나와요.   "나는 콩이야" 콩싹은 콩껍질을 쓰고 나와요.   "나는 호박이야" 호박은 호박씨 껍질을 쓰고 나와요.   작고 예쁜 새싹 모자.   나무의 맛 / 곽해룡   매미가 나무둥치를 빨며 매움 매움 쓰디쓰 쓰디쓰 시어시 시어시   오목눈이가 나무를 비켜 가며 비리비리 비리비리   《맛의 거리》(문학동네 2008)   검은등뻐꾸기는 네 음절로 운다. 그 소리가 마치 ‘홀딱벗고’ ‘홀딱벗고’ 하는 것처럼 들린대서 ‘홀딱벗고새’라고도 한다. 스님들 귀에는 ‘홀딱벗고’가 아니라 ‘빡빡깎고’로 들린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지집죽구 지집죽구’로 받아 적은 이는 소설가 이문구 선생이다.(‘들비둘기 소리’) 같은 소리라도 듣는 사람의 처지에 따라 다르게 들린다. 전봇대 위에서 ‘구구 구구’ 우는 비둘기 소리를 ‘꾸욱 꾸욱’으로 듣는 사람은 비둘기가 전봇대의 뭉친 근육을 풀어주느라 애쓴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며, ‘9×9 9×9’로 듣는 사람은 비둘기가 구구단 답을 몰라 저렇게밖에 못 운다면서 ‘팔십일!’ 하고, 답을 알려준다.(김철순, ‘산비둘기’) 은 매미 소리를 “매움 매움/ 쓰디쓰 쓰디쓰/ 시어시 시어시”로, 오목눈이 소리를 “비리비리 비리비리”로 받아 적었다. 나무의 맛이 맵고, 쓰고, 시고, 비리다고 듣는 사람은 일찌감치 인생의 매운맛, 쓴맛, 신맛, 비린 맛을 고루 맛보았을 터이다. 그러니 이 시에서 말하는 맛은 겉에 드러난 나무의 맛이 아니라 신산고초한 인생의 맛, 그것이겠다. 참새는 정말 ‘짹짹’ 울까. 개구리는 정말 ‘개굴개굴’ 울까. 아이랑 함께 똑같은 소리에 귀 기울인 다음 그것을 글자로 적어 보자. 얼마나 다른지 비교해 보자. 참새인 것을 모를 때, 참새 소리를 더 정확히 들을 수 있다. 참새인 것을 알면 선입견의 참견을 받아 ‘짹짹’ 정도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아이와 함께 빛이 없는 곳, 소음이 적은 곳으로 가 풀벌레 소리, 새소리, 바람 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멀리 가지 않아도 좋다. 변기 물 내려가는 소리, 밥 되는 소리, 설거지 소리,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 트림 소리, 방귀 소리, 이 닦는 소리 같은 일상의 소리를 새롭게 발견해 보자   시골 친구 / 오순택   시골에서 온 내 친구 목소리에선 장다리꽃 냄새가 나지요   시골에서 온 내 친구 호주머니 속에는 풀잎 바람이 들어 있어요   시골에서 온 내 친구 신발에는 개울물 소리도 묻어 있지요   시골에서 온 내 친구 마음씨는 분꽃 씨 같아요   연못 / 오순택   연못은 오선지   보슬비가 음표를 놓고 간다   연못은 푸른 색종이   물방개가 동그라미를 그린다   계몽사 1992   벌레들의 놀이터 / 작가 미상   풀밭은 벌레들의 놀이터   실베짱이는 풀잎에 앉아 첼로를 켜고 긴알락꽃하늘소는 더듬이로 무전을 치고 모시나비는 긴 입으로 꽃에 주사 놓고 버들잎벌레는 풀대 위에서 미끄럼 타고   이슬은 무당벌레 등에 업혀 눈 깜박깜박   풀밭은 벌레들의 즐거운 놀이터   이슬  1 / 문삼석   이슬은 밝음 한 알   이슬은 맑음 한 알   이슬 7 / 문삼석   보이는 건 그대로 티 없는 세상.   들리는 건 그대로 소리 없는 노래.   이슬.8 / 문삼석   굴 러 라. 융단 위를.....   울 려 라. 방울 소릴....   이슬.10 / 문삼석   달빛 속에 자라서 저리 고옵고,   별빛 보고 자라서 저리 말갛고.   이슬.12 / 문삼석   누가 살까? 이슬 속 작은 마을엔....   누가 알까? 이슬 속 숨은 이야길....   이슬.17 / 문삼석   새벽이랑 함께 떠 어둡지 않고,   풀잎이랑 함께 살아 외롭지 않고.   이슬.19 / 문삼석   훅 불면 또그로 구르겠다.   자칫 떨어지면 쨍그랑 깨지겠다   이슬.20 / 문삼석   하늘이 맑아서 너는 맑게 뜨고,   바람이 고와서 너는 곱게 뜨고.   이슬. 21 /문삼석   -다칠라..... 개미가 조심조심 꼿발로 비켜 가고,   -깨질라.... 바람도 가만가만 꼿발로 지나 가고.   이슬.30 / 문삼석   아무도 몰래 혼자 뜨고,   아무도 몰래 혼자 감고   이슬.31 / 문삼석   그늘 속에선 조용한 시.   그늘 밖에선 반짝이는 노래.   이슬.33 / 문삼석   새소리 맑게 걸러 더 맑아가고,   새벽빛 밝게 걸러 더 밝아 가고.   이슬.49 / 문삼석   어딜까? 네 눈빛만 초롱초롱 모여 사는 곳은?   언젤까? 네 숨소리만 세상 가득 차오를 날은?   개미 / 문삼석   더운줄도 모르고 일만 하다가 가맣게 온 몸이 타버렸나봐   무거운줄도 모르고 짐만 나르다가 짤룩하게 허리가 휘여졌나봐.   호박넝쿨 / 손길봉   호박넝쿨 끝에는 눈이 있지요 울바자를 보고서 찾아가지요   호박넝쿨 끝에는 손이 있지요 울타리를 붙잡고 올라가지요   장난꾸러기는 장난꾸러기   / 김자미                                         도대체 언제 갈 거냐고 엉덩이를 때려본들 달팽이는 달팽이    종일 길이만 젤 거냐고 허리를 묶어놓은들 자벌레는 자벌레   똥경단은 그만 시루떡도 만들어보라 해본들 쇠똥구리는 쇠똥구리     얌전히 있어라 철 좀 들어라 해본들  나는 장난꾸러기    - 김자미 동시집 '달복이는 힘이 세다'·   섬아이·2016    아이들은 활동량이 많다. 잠시도 가만히 있질 못한다. 안으로만 구겨 넣어 꽁꽁 뭉친 아이보다는 몸으로 가는 채널을 많이 열어 놓은 장난꾸러기가 더 튼실하다.  달팽이, 자벌레, 쇠똥구리의 모습이 바로 성실하게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 아닐까. 시 속의 내가 장난꾸러기가 아니었다면 아이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너무 어른스러운 애늙은이보다는 자기만의 특화된 장난꾸러기가 더 좋다. 그래서 더 공감이 가는 동시다.  사람은 자기가 흘린 땀방울의 양만큼 성장한다고 한다. 고통이 따르더라도 뛰어넘고 보면 걸림돌도 디딤돌로 바뀐다. 요즘 신문이나 뉴스에는 불미스러운 사건 사고가 유독 잦다. 그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린이는 받들어 주고 어른은 깍듯이 섬기는 아름다운 삶의 조각들이 모일 때 세상은 더욱 살맛 나는 녹색 지대가 되지 않을까?   오선자·동시인    말하는 꽃 / 정용원   나팔꽃은 “잠꾸러기야 일어나라 아침해가 떴다”   함박꽃은 “함박웃음 웃는 얼굴 제일 예쁘단다”   호박꽃은 “ 못생겼다고 놀리지만 꿀이 젤 많아요”   무궁화는 “ 삼천리 금수강산 온 세상 빛내봐요 “   분꽃은 “ 얼굴에 분칠하고 시집가고 싶어요   행운목꽃은 “ 모두 모두 행운의 열쇠 가져가세요 “   알 수 있지요 / 정용 원   바람의 냄새를 알 수 있나요? 아버지 땀에 절은 얼굴 부채질 해보면 알 수 있지요   바람이 얼마나 향긋한지 알 수 있나요? 어머니 따스한 품속 안겨 있어보면 알 수 있지요   바람이 얼마나 정다운지 알 수 있나요? 남바람 북바람 한바탕 씨름하고 휴전선 풀밭에서 뒹구는 걸 보면 알지요   숨박꼭질 / 월터 드 라 메어   숨바꼭질 하자네 바람이 나무 우거진 그늘에서   숨바꼭질 하자네 달이 귤나무 잎새에서   숨바꼭질 하자네 구름이 이 별에서 저 별로   숨바꼭질 하자네 물결이 항구의 모래밭에서   숨바꼭질 하자네 내가 날더러   그러고는 잠이 들어 꿈나라로 숨어 버렸네.
1071    我拜读的中文童诗 댓글:  조회:5085  추천:0  2020-05-05
我拜读的中文童诗 我知道   文 / 雨蓝   一片树叶上 会有河流的走向 嗯  我知道   一只瓢虫身上 散布着的是星辰的密码 嗯  我知道   一朵小野花的脸上 会荡漾着大地的微笑 嗯  我知道   一只蛐蛐的歌声里 会藏着时光的咏叹调 嗯  我还知道   因为我是大地妈妈 最贴心的孩子 所以才洞悉这些美好的秘密   ——选自小学生拼音报社《读写》(小学高年级)2016年第42期 [출처] 我知道 / 雨蓝|작성자 옥토끼   难以琢磨   文  / 王宜振   难以琢磨 难以琢磨风来的时刻 花是什么姿态 树是什么形状   难以琢磨 难以琢磨雨来的时刻 寄居蟹是否痛苦 蜗牛是否快乐   难以琢磨 难以琢磨流星坠落的时刻 你是否变成一只萤火虫 点起寻找黎明的灯   ——选自小学生拼音报社《读写》(小学高年级)2016年第37期 [출처] 难以琢磨 / 王宜振|작성자 옥토끼   语文老师 任小霞   每一个文字 都是奇异的种子 您一粒粒 种进我们心里   一粒粒种子 长出了词 长出了句子 长出了小诗 长出了故事 长出了成长的秘密   ——选自小学生拼音报社《读写》(小学中年级)2016年第34期 [출처] 语文老师 / 任小霞|작성자 옥토끼   秋天 安武林   有时候 我是一颗露珠 坠在草尖上 有时候 我是一顶蘑菇 长在大树旁 有时候 我是一颗小星星 闪烁在夜空中 有时候 我是一盏灯 燃烧在遥远的村庄里 有时候 我是一枚果子 芬芳在大地的梦中   ——选自小学生拼音报社《读写》(小学中年级)第38期 [출처] 秋天 / 安武林|작성자 옥토끼   疑问 汪静之   蝴蝶怎么会飞呢? 我怎么不能够呢? 啊,我也要飞呀!   小鸟怎么会唱歌呢? 妈妈怎么不教我唱歌呢? 啊,我也要唱啊!   花儿怎么那么鲜艳可爱呢? 我怎么不和它一样呢? 啊,我也要开得像花呀!   ——选自《小学生拼音报》2017年暑期合刊 [출처] 疑问 / 汪静之|작성자 옥토끼   好忙好忙的夏天 无尘   到了夏天 风一直好忙好忙 它总是很晚 才会出来一小会儿 找我吹吹牛聊聊天儿   到了夏天 雨也是好忙好忙 好多些天 都没法和它见面   更别提雷和电了 它们俩早就 忙得没了边儿   只有太阳最悠闲 从早到晚 躺在白云摇椅上 抱着书来看   终于有一天 大家约好 在天空之城相见 风雨雷电都来了 却少了太阳 背后的故事   “放暑假了,好忙好忙的夏天开始了,我的朋友们都好忙好忙起来,瑶瑶天天去跳芭蕾舞,箐箐天天去练书法,鹏鹏要去画画……只有我天天在家闲着,一天到晚抱着书来看。   “周六,我们约好早上去游乐场玩,谁知道前一天晚上,我看书看晚了,一觉睡到大中午,错过了时间。第二天,我被朋友们从床上狠狠地拽起来,大家罚我做我最拿手的‘上古神饮’给他们喝。悄悄地告诉你们我的‘上古神饮’秘方吧:四分之一个菠萝洗净切成片,一个猕猴桃洗净剥皮切成片,半个柠檬洗净剥皮切成片,两片薄荷草叶子洗净,加入适量白糖,倒入一大杯凉白开水。然后把它们摇匀,放入冰箱里冷藏1小时左右。   “好了,可以喝了,比外面卖的饮料好喝多了!对了,忘记告诉你们了,24小时之内必须喝完哟。”   上面是儿子写的假期作文,引发了我无限的想象,让我想到在好忙好忙的夏天里,风、雨、雷、电和太阳之间是不是也是这个样子呢?于是,一首有意思的诗就诞生了。    ——选自《读写》(小学中年级)2017年暑期合刊 [출처] 好忙好忙的夏天 / 无尘|작성자 옥토끼   最难的单词 (德国)雪丁   最难的单词 不是 墨西哥的 山名 ——波波加特帕托, 不是 危地马拉的 地名 ——乞乞加斯坦兰戈, 不是 亚非利加的 城名 ——阿瓦卡杜哥, 最难的单词 对许多人来说 是: 谢谢!   诵读一点通 读题目,我们的重音自然会放到“难”字上,脑海里也会浮现出一连串难读、难懂、难写的单词。在朗读前三种回答时,我们的语气从平缓冷静到疑惑不解,再到惊讶不已。最难的单词到底是什么呢?读到最后,要有一种屏住呼吸、期待答案的感觉,然后用冷静的、意味深长的语气,轻轻地读出答案“谢谢”。(曾佑惠 供稿) ——选自小学生拼音报社《读写(小学高年级)》2016年9月 [출처] 最难的单词 / (德国)雪丁|작성자 옥토끼   音乐 【西班牙】希梅内斯   在宁静的夜里, 悦耳的乐曲啊,你是一汪清水。 凉爽宜人——仿佛那夜来香, 开在一个深不可测的花瓶里—— 繁星满天际。   风逃进了自己的洞穴, 恐怖回到它居住的的茅舍里, 在松林的绿色丛中, 一片生机正蓬勃地升起。   星儿渐渐隐退, 群山色如玫瑰, 远方,果园的水井旁, 燕子在歌唱。   赏析:   想知道音乐到底有多大的魅力吗?那就来朗诵这首纯美的诗吧。你听,美妙的音乐响了起来——作者用“宁静的夜”来衬托音乐的清晰、响亮,“一汪清水”贴切而传神地表达了音乐的动听。音乐让“风”逃进洞穴,把“恐怖”赶回茅舍里,让“松林”变得生机勃勃。最后一节,作者给我们描绘了一个充满诗情画意的境界,“燕子在歌唱”,好似余音绕梁,让人回味无穷。     选一段你喜爱的乐曲,想象自己正身处大自然中,带着对音乐的无限热爱,有感情地朗诵这首诗吧!(米粒供稿) ——选自小学生拼音报社《读写》(小学高年级)2016年第19期 [출처] 音乐 / 【西班牙】希梅内斯|작성자 옥토끼   雨后迷人的草地 ●张菱儿   洗过澡的草地青翠欲滴 美丽的矢车菊绽开笑脸 过路的微风传播着小道消息 一只肥胖的蝈蝈伏在草尖儿 对矢车菊弹奏出好听的乐曲 调皮的猫咪躲在草丛 偷听着蝈蝈的小秘密 眼尖的小鸟从天空冲下来 蝈蝈吓得慌忙躲避 可爱的猫咪挺身而出 鸟儿埋怨着快速飞起 喵——喵——喵—— 猫咪柔声召唤着蝈蝈 讨厌的小鸟已经被赶跑 你的演奏可以继续   背后的故事   夏日的一天,与同伴们去京郊的雾灵山游玩,遭遇了淅淅沥沥的小雨。雨停后,我们打算去水上划船。路过一片绿油油的草地时,那草经雨水洗过后,绿似乎呼之欲出,而且,草尖儿上挂着晶莹的雨珠,其间还零星地开放着几朵黄色的小花,在绿的衬托下格外醒目。草地的某个地方传来夏虫的鸣叫声,这一切美得让人陶醉。正在欣赏草地,突然,一个毛茸茸的脑瓜儿从草丛中露出来。“小猫。”我忍不住发出一声低呼,轻轻地呼唤。“咪咪——”随着我的声音,草丛中有更多的脑瓜儿冒了出来,一只,两只,三只,它们瞪着圆溜溜的大眼睛看着我,萌萌的样子很可爱。我用手机拍下这片草地,并写出了这首童话诗。 ——选自小学生拼音报社《读写》(小学中年级)暑期合刊 [출처] 雨后迷人的草地 / 张菱儿|작성자 옥토끼   花的呢喃 ●应拥军   晚风闯进小树林 在那里休息了   萤火虫关掉灯盏 不知去哪儿了   月光的脚步很轻很轻 走过一片片草地   枝条上的花儿 发出的呢喃声 甜蜜而芬芳 滑进鸟儿的梦境 ——选自小学生拼音报社《读写》(小学中年级)18期 [출처] 花的呢喃 / 应拥军|작성자 옥토끼   妈妈你笑了 谭旭东   妈妈你笑了 你的笑像一朵葵花 在夏天的阳光里 开得越来越香   妈妈你笑了 你的笑像一朵荷花 在夏天的阳光里 开得越来越红   妈妈你笑了 你的笑像一朵烛光 在夏天的黑夜里 照亮了爸爸的心房 也照亮了我的心房   ——选自小学生拼音报社《新经典小学生晨诵④》 [출처] 妈妈你笑了 / 谭旭东|작성자 옥토끼   没有一艘船能像一本书 ●(美)狄金森 江枫/译   没有一艘船能像一本书 也没有一匹骏马能像 一页跳跃着的诗行那样—— 把人带往远方。   这渠道最穷的人也能走 不必为通行税伤神 这是何等节俭的车—— 承载着人的灵魂。   【赏读品悟】   这是一首哲理性诗歌。诗人狄金森选取了一系列意象:书、船、马、车……这些意象看似平淡无奇,实则蕴含着深意——它们都可以把人带向远方,但书籍又有不同之处——它没有浆,却能载你畅游大海;它没有翅膀,却能驾你翱翔蓝天;它没有车轮,却能带你走遍全球……书籍是最平凡而又最神奇的事物。 ——小学生拼音报社编辑因“4.23 世界读书日”特别推荐 [출처] 没有一艘船能像一本书 / (美)狄金森 江枫/译|작성자 옥토끼   爷爷喜欢麻雀   潘与庆   小鸟在婉转歌唱, 小松鼠在枝头跳跃。 林间的小路上, 走着我和我爷爷。 爷爷问我: “鸟类中你喜欢谁?” 我想了想: “我喜欢会唱歌的百灵, 我喜欢会说话的鹦鹉, 我喜欢会跳舞的孔雀……” 我问爷爷喜欢谁, 爷爷的回答出人意料, 他说他喜欢麻雀。   爷爷喜欢麻雀? 麻雀,没有漂亮的羽毛, 没有动人的歌喉, 爷爷,您为什么喜欢它?   爷爷停下脚步, 语气变得有点儿严肃: “有许多鸟类, 为了食物, 不惜放弃自由, 在笼子里歌唱、跳舞…… 只有不起眼儿的麻雀, 从来不曾被人类驯服。 为了自由,为了天空, 它宁可饿死也不屈服……”   爷爷的话让我心头一震, 麻雀的骨气让我佩服。 同学,不知你听了爷爷的这番话, 有些什么想法与感悟?   ——选自小学生拼音报社《读写》(小学高年级)2016年第46期  [출처] 爷爷喜欢麻雀 / 潘与庆|작성자 옥토끼   我喜欢 安武林   我喜欢 小燕子的小剪刀 它轻轻一剪 姹紫嫣红的春天就来了                 我喜欢 稻草人的目光 它目光炯炯地向远方一望 麦浪翻滚的夏天就来了   我喜欢 喇叭花的小喇叭 它神气地一吹 秋风摇摇荡荡地就奔来了   我喜欢 小雪花的花裙子 它轻轻地一转身 冬天一路吆喝着就来了   诵读提示:      诗人眼里的四季充满诗情画意。整首诗共四节,形式整齐,富有节奏感。“我喜欢”,看似简单、直白的一句话,却饱含着诗人对四季的热爱之情。诗中运用拟人和比喻的修辞手法,选取小燕子、稻草人、喇叭花和小雪花四种景物,代表了春、夏、秋、冬四季。     朗读每一小节的前两句时,语调舒缓,满含深情。随后,语调上扬,语速稍快,读出四季到来时内心的喜悦之情。诗中运用“剪、望、吹、奔、转身”等一系列动词,表现出了四季的不同特点。朗读时,这些动词要重读。在优美的意境中,我们感受到四季的美好,一幅幅诗意的画卷,仿佛在我们眼前一一展开。(张玲芳 供稿)        ——选自小学生拼音报社《读写》(小学中年级)2016年第46期 [출처] 我喜欢 / 安武林|작성자 옥토끼   《十月的树林》 作者:迈克尔•布洛克(加拿大)   凉雾中 落叶 如雨点滴滴嗒嗒   树枝中间 潮湿的鸟儿发出 生锈的栅门的吱嘎声   一根秃枝在小径上拱起 举行 秋的凯旋 [출처] 《十月的树林》 作者:迈克尔•布洛克(加拿大)|작성자 옥토끼   蓝   文/阿妙   鸭跖草的蓝 是一朵小小的蓝 撑不住 一颗最小的露珠   天空的蓝 是一片大大的蓝 能包容 每朵云的喜怒哀乐   海水的蓝 有时褶皱 有时平坦 望也望不到边   你眼中的蓝 深深浅浅 是一首 怎么也看不厌的诗篇   来源: 公众号 “阿妙的童诗童话” [출처] 蓝 / 阿妙|작성자 옥토끼   落叶 文/何春燕   落叶是多彩的稿纸 秋风拿来写信 写了一封又一封 寄给大雁、松鼠、刺猬 还有小青蛙   落叶是漂亮的蝴蝶 是丰收宴上的舞者 秋风挥一挥指挥棒 它们就翩翩起舞 舞得大地果瓜飘香   落叶是可爱的娃娃 站在枝头比跳伞 跳下来,转个圈 看谁最先到地面 争着去给树妈妈焐脚   来源 ‘儿童诗歌’ [출처] 落叶 /何春燕|작성자 옥토끼    不一样的喜欢 /  啊妙   牙膏遇到牙刷 开心得吐起泡泡 小河遇到太阳 翻滚着亮闪闪的波浪 小熊遇到大树 摇头晃脑蹭痒痒 松鼠遇到松子 两眼发光忙往嘴里藏 苹果遇到牛顿 狠狠砸在他头上 喜欢就是喜欢 可喜欢的方式 又是那么 不一样   来源: 公众号 “阿妙的童诗童话” [출처] 不一样的喜欢 / 啊妙|작성자 옥토끼   夏日的绿口哨     ○ 鲁程程     每一只浅绿的知了 都是夏日的口哨 知——了—— 立正,正午的阳光 报数,甜滋滋的雪糕 别乱跑,圆滚滚的西瓜   每一只浅绿的知了 都是夏日的口哨 知——了—— 稍息吧,扑蜻蜓的老猫 稍息吧,摇蒲扇的姥姥 稍息吧,最勤快的作业本们   你们都听到了吗? 知——了—— 夏日的绿口哨响了 全体稍息,放暑假啦     选自《儿童文学》故事版 2017年10月号 [출처] 夏日的绿口哨 / 鲁程程|작성자 옥토끼   种下一首诗,就是我们的一生   (娜仁琪琪格)     这天与地  这人流往来的地方 都是我们的桃花源  我们不种菊花 不见南山  我们种下春天的草木 种下花鸟  种下满天下的大好河山   种下云朵  在天上开花 种下细雨  滋生万物 种下微风  传送花香 种下月光的同时  也种下蝉鸣 种下缓慢走着的爱  种下一盏灯光的明亮   亲爱的  我们种下北极熊吧 它们的样子多么可爱  种下南极的企鹅 绅士一般在雪地上行走  种下一对企鹅的爱 种下它们笨笨的样子 春暖啊  天光倾泄  冰川融化 潋滟的波光  奔涌的鱼潮 那便是一对企鹅的天堂   这天与地  这人流往来的地方 都是我们的桃花源  我们栽花  我们植树 我们引来山泉  就有了流水 我们搭上石桥  就有了风光   种下一首诗啊  就是我们的一生   To大朋友:   正如作者所说:“好诗是一定有的。因为四季是美的,自然是美的,所以,美好的诗篇一定就存在。只是这些同自然的美一样,等着我们去相遇,去发现。”我们读诗诵诗,抑或陪着孩子亲近诗,正是为了播种美,播种善的人生态度和好的学习习惯,对吗? To小朋友:   大声地朗诵这首诗,你有什么样的感觉?   来源 ‘天天欢乐诵 ’ [출처] 种下一首诗,就是我们的一生 / 娜仁琪琪格|작성자 옥토끼   奇怪的事   [日] 金子美玲 | 吴菲 译   我奇怪得不得了, 乌云里落下来的雨, 却闪着银色的光?   我奇怪得不得了, 吃了绿色的桑树叶, 却长出白色的蚕宝宝?   我奇怪得不得了, 谁都没碰过的葫芦花, 一个人 “啪” 地就开了花?   我奇怪得不得了, 问谁谁都笑着说 “那是当然的啦”?   来源  "香草 " [출처] 奇怪的事 |[日] 金子美玲 | 吴菲 译|작성자 옥토끼   《酒窝》   作者:任小霞   哎呀! 快瞧! 风一来, 笑的酒窝 就堆了一水池。 池塘有多高兴呀!   咦? 风走了, 酒窝也不见了。 是不是 好朋友离开了, 池塘伤心啦?   来源  "童诗园" [출처] 《酒窝》 作者:任小霞|작성자 옥토끼   《一束》 作者:北岛   在我和世界之间 你是海湾,是帆 是缆绳忠实的两端 你是喷泉,是风 是童年清脆的呼喊   在我和世界之间 你是画框,是窗口 是开满野花的田园 你是呼吸,是床头 是陪伴星星的夜晚   在我和世界之间 你是日历,是罗盘 是暗中滑行的光线 你是履历,是书签 是写在最后的序言   在我和世界之间 你是纱幕,是雾 是映入梦中的灯盏 你是口笛,是无言之歌 是石雕低垂的眼帘   在我和世界之间 你是鸿沟,是池沼 是正在下陷的深渊 你是栅栏,是墙垣 是盾牌上永久的图案  [출처] 《一束》 /北岛|작성자 옥토끼   雪花,沙沙沙 佟希仁     雪花,沙沙沙, 像一片片纷谢的梨花。 梨花呀, 你从天庭的哪个果园飘来? 那里的梨树, 是不是长得又高又大? 树下是不是, 有一群天真活泼的娃娃, 正在那里缠着一位老爷爷, 让他给讲述梨花公主的童话?   雪花,沙沙沙, 像漫天鹅毛随风飘洒。 鹅毛哇, 你从天庭的哪个鹅场飞来? 那里鹅群的红掌, 是不是也荡起银色的水花? 牧鹅的可是一位小姑娘, 她头上也扎着一对小角儿, 在洒满朝阳的路上, 光着两只小脚丫? [출처] 雪花,沙沙沙/ 佟希仁|작성자 옥토끼   落 叶 ◎     任可馨 (江苏省南通市通州区石港小学二(3)班;指导老师:潘亚峰)        银杏树叶落下来, 是一把小扇子, 帮秋天扇着凉爽的风。   枫树叶落下来, 是一个小手掌, 努力的鼓励秋天。   杨柳树叶落下来, 是一把小梳子, 帮秋天梳理头发。   枣树叶落下来, 像一个小枣, 秋天舔了一口, 甜甜的。 [출처] 落 叶 / 任可馨|작성자 옥토끼   落 叶  谷 雨     梧桐叶落了 一片,两片…… 织了条长长的围巾 送给黝黑的马路 枫叶落了 三片,四片…… 织了床大红的冬被 送给过冬的蚂蚁 银杏叶也落了 五片,六片…… 嗬!奶奶的小院子 穿上了金灿灿的毛衣 [출처] 落 叶 / 谷 雨|작성자 옥토끼   滑滑梯 屠文颖     咚 一位甲壳虫 沿着树叶滑下来   啪 一位浆果 沿着树叶滑下来   叮 一位桂花 沿着树叶滑下来   嘿! 星星们 请你们排好队 一个一个滑下来 注意安全! [출처] 滑滑梯 / 屠文颖|작성자 옥토끼   落 叶 何春燕   落叶是多彩的稿纸 秋风拿来写信 写了一封又一封 寄给大雁、松鼠、刺猬 还有小青蛙   落叶是漂亮的蝴蝶 是丰收宴上的舞者 秋风挥一挥指挥棒 它们就翩翩起舞 舞得大地果瓜飘香   落叶是可爱的娃娃 站在枝头比跳伞 跳下来,转个圈 看谁最先到地面 争着去给树妈妈焐脚 [출처] 落 叶 / 何春燕|작성자 옥토끼   秋 天 崔蕊霞   银杏树 摇动精巧的小折扇 说秋天金灿灿   甜柿子 点亮橘红的小灯笼 说秋天暖融融   小松鼠 把松果搬回树洞 说秋天喷喷香   熊妈妈 搅动锅里的南瓜汤 说秋天甜哒哒   小刺猬 什么也不说 躺到大枣树底下 咕噜噜 打个滚 就把秋天背回了家   诗人小档案   崔蕊霞   淳朴善良的胶东妇女一枚。烟台作协会员,年少时学着大人的样子写东西,九十年代初在《烟台晚报》《天津工人报》《百花园小小说月刊》发过几篇小诗文,但是没能坚持下来。几年前因为翻看孩子的杂志,喜欢上了童话和童诗,幸运地遇到了一些志同道合的好朋友。幸运地闯进过《课堂内外》《小溪流》《上海托幼》《小青蛙报》《好孩子画报》等二十几家报刊的门坎。获2015年冰心儿童文学新作奖。入选《年度最美幼儿文学》等选集。 [출처] 秋 天/ 崔蕊霞|작성자 옥토끼   毛虫和蛾子 顾城   毛虫对蛾子说: 你的翅膀真漂亮。 蛾子微笑了, 是吗? 我的祖母是凤凰。   蛾子对毛虫说: 你的头发闪金光。 毛虫挺自然, 可能, 我的兄弟是太阳 [출처] 毛虫和蛾子 / 顾城|작성자 옥토끼   《当你成为》 作者:王宜振   当你成为 一只鸟 不要担心 你会飞不远   我会 随之成为空气 为你扶着 整个翅膀   当你成为 一颗星 不要担心 你会落下来   我会 随之成为大地 为你托起 整个天空 [출처] 《当你成为》 / 王宜振|작성자 옥토끼   雪花 文 / 李文   落在院子里的雪花, 堆成了雪娃娃。 落在小河里的雪花, 成了唱歌的浪花。 落在污水里的雪花, 成了脏泥巴。 落在房顶上的雪花, 还是雪花。   小朋友,想一想, 喜欢什么样的雪花? [출처] 雪花 /李文|작성자 옥토끼   生活的颜色 作者:曾卓   一个小朋友问我 生活是什么颜色? 有时是闪闪桂冠的银色 有时是长夜漫漫的黑色 有时是飞腾火焰的红色 有时是阴霾天空的灰色 有时是浩瀚大海的蓝色 有时是无垠沙漠的黄色 有时是夏日森林的绿色 有时是黄昏薄暮的紫色 …… 我无法告诉你 生活是什么颜色 我不能想象 生活只是单一的颜色 它旋转着,旋转着向前 闪射着灿烂的彩色     作者简介 曾卓,原名曾庆冠。出版诗集:《门》、《悬崖边的树》、《老水手的歌》、《曾卓抒情诗选》等。 [출처] 生活的颜色 / 曾卓|작성자 옥토끼   问 题   小二牛(7岁)   什么是眼泪 眼泪是我哥哥气我时 我发射的炮弹 眼泪是透明的血   什么是害怕 害怕是老鼠遇到猫 害怕是满大街都是人 可我一个也不认识   什么是小溪 小溪是大海的宝宝   什么是闪电 闪电是一片乌云重重一拳打到 另一片乌云眼睛   什么是花 花是佛的手指   《家》 作者:王宜振   我的家, 是一棵春天的花树; 爸爸妈妈是干和枝, 我和妹妹是花朵, 在款款地盛开。   我的家, 是一株夏天的小草; 爸爸妈妈是茎和叶, 我和妹妹是露珠, 在亮亮地闪耀。   尾巴 文/王星懿 指导老师:董超   小鸟的尾巴像剪刀; 兔子的尾巴像圆球; 老鼠的尾巴像绳子; 妈妈的尾巴就是我。 【山东平度市西关小学一(1)班】   树 文/杜振贵   蓝天说 好像惊叹号   大地说 好像棒棒糖   小狗说 好像一把伞   宝宝说 好像我妈妈 留着大披发   镜子里是…… 文 /韩志亮   小猫咪过去看看 说:小猫咪!   小白兔过去看看 说:小白兔!   小黄狗过去看看 说:小黄狗!   小黑鸡过去看看 ——哼哼哼哼!   什么眼神啊? 一只小黑鸡罢了!     作家小档案    韩志亮,山东省作家协会会员,潍坊市作家协会副主席。上世纪八十年代开始诗歌创作,著有《亲爱的泥土、村庄,亲爱的人》等诗文集多部,有作品入选《新华文摘》。近几年间转向写作儿童诗,已在《诗刊》《星星诗刊》《儿童文学》《中国校园文学》《中国童诗》《少年文艺》《意林》等省级以上报刊发表儿童诗二百余首,出版儿童诗集《蜜蜂蜇了花朵》《田字格里种生字》,有作品在中国童诗“崇文奖”评奖、 中央宣传部五部委联合组织的“全国优秀童谣创作大赛”、中共江苏省委宣传部组织的全国“童声里的中国·成长的歌谣”大赛中获奖,或选入山东省《心理健康》小学教材、《中国儿歌大系》《儿童文学选刊》。     小树有自己的方式 文 / 张晓楠   树叶落了 树叶落了 这是小树,撒下的 一只又一只脚印   不要说小树 不能行走 小树以自己的方式 丈量梦想   树叶落了 树叶落了 这是小树,放飞的 一片又一片羽毛   不要说小树 不能飞翔 小树以自己的方式 追逐光亮   树叶落了 树叶落了 这是小树,发出的 一张又一张请柬   不要说小树 没有真诚 小树以自己的方式 邀请八方   树叶落了 树叶落了 这是小树,驶出的 一艘又一艘小船   不要说小树 一无所有 小树以自己的方式 承载鸟鸣 承载果香   【赏析】小诗由“树叶落了”生发开去,展开丰富的想象。整首诗八节四段,实际上是由一连串丰富的想象构成。如果把其中的每一个想象喻为一颗珍珠,穿起来就是一串闪闪发光的项链。这种想象奇特、意境清新的小诗,简直就是一桌想象的盛宴,对开发少年儿童的智力,激发少年儿童的想象力是十分有益的。(王宜振)   【作家小档案】   张晓楠,中国作家协会会员,山东省作家协会委员会委员,山东省作家协会签约作家,菏泽市作家协会副主席。出版《叶子是树的羽毛》《和田鼠一块回家》《春天经过的路口》等诗集十余本。作品入选北京大学基础教育文库、全国高等师范院校通用教材等。荣获全国优秀儿童文学奖、冰心儿童图书奖、泰山文艺奖(文学创作奖)、冰心儿童文学新作奖、牡丹文学奖等。   夏日里 文/ 金敏   太阳懒懒的 躺在大地上 听树上的蝉 哼夏天的歌谣   风走不动了 坐在那儿休息 听树荫下的小鸟 讲各自的故事   荷叶上的青蛙 一下蹦得很高 教游泳的孩子们 怎样潜水   掉进池塘的阳光 挽起四溅的水花 和孩子们一起 跳着快乐的舞蹈     诗人小档案   金敏,男,1955年12月出生于上海嘉定,自幼喜爱儿童文学,2011年开始写儿童诗,迄今为止已经写了952首儿童诗。作品散见《儿童文学》《少年文艺》《江苏少年文艺》《儿童时代》《小青蛙报》《好儿童画报》《中文自修》《小星星》等诸多报刊杂志。写作宗旨是:不为名利,只为自己喜欢而写。   西红柿 ○ 李海颖   青青的西红柿 是个淘气包 在哪里打闹啦 弄得鼻青脸又肿   红红的西红柿 是个开心果 想什么好事呢 笑得满脸红通通   蜗 牛 文 / 小狗屁妈妈   有时候,蜗牛把自己变成曲奇 和戒指   有时候,它变成等红灯的人 站在路口作揖   很多日子,不需要有时候   蜗牛很开心 它坐在小羊面前 举着小号 吹   诗人小档案     小狗屁妈妈,本名王笑梅。作品曾在《读写算》《西南军事文学》《诗刊》《星星》《汉诗》《青年文摘》等发表。诗歌作品曾入选作家出版社《给孩子的好诗》一书。   会变脸的妈妈 作者:湖南省岳阳市站前小学 彭堃荥(8岁) 指导老师:刘悦   妈妈的脸是蜂蜜 好甜 那时候―― 我得到了老师的夸奖   妈妈的脸是辣椒 好辣 那时候―― 我正在做一件坏事情   妈妈的脸是柠檬 好酸 那时候―― 隔壁哥哥又得大奖状   妈妈的脸是苦瓜 好苦 那时候―― 我正生病住在医院里   我的妈妈是魔术师 会变脸 一会儿一个脸 酸甜苦辣样样都不差   《生活的色彩是爱》 作者:(菲律宾)马丁   爸爸,生活是何种色彩? 同树叶一样嫩绿? 如玉齿一般洁白? 还是像砖块似的殷红? 爸爸,生活是何种色彩?   爸爸,生活是何种色彩? 同山谷一样幽暗? 如深夜漆黑一片? 还是像少女那绯红的脸蛋? 爸爸,生活是何种色彩?   孩子,生活的色彩, 既不是漆黑幽暗, 也不是殷红湛蓝, 更不像白鸽的羽毛, 孩子,生活的色彩是爱。   有趣的冬天 ◎   丁 杨 (江苏省南通市通州区石港小学金波儿童诗社,指导老师:潘亚峰)     冬天里, 要是有许多小鸟, 在电线上来回跳跃, 那是一首美妙的冬之歌!   冬天里, 要是有蚂蚁, 也来堆雪人、打雪仗, 那一定很好玩儿!   冬天里, 要是雪花儿, 也有冰淇淋的味道, 那小朋友们, 一定会乐开了花儿吧!     雪 花 ◎ 周佳妍 (浙江宁波市鄞州区堇山小学学生作品,指导老师:顾育蓓)   雪花,是 调皮的娃娃, 只要你出去了, 她就拿一只红蜡笔, 把你的鼻子涂红。   她呀,可真是一个帮倒忙小姐! 要是走了很长一段路, 被她发现了, 她就会施展自己的魔法, 把你的手 变成冰棒   冬天的树 ◎ 潘 建 (四川达州市达川区桥湾镇中心小学五[1]班,指导教师:黎海燕)   冬天的松树 是毛毛虫的家 每根树枝都爬着 几只绿腿儿的小家伙   冬天的银杏树 是个食品加工厂 每根光秃秃的树枝上都挂着 晶莹剔透的粉条   冬天的梧桐树 又是一只大手掌 在寒风中每根小手指都想抓住 红红的太阳   电的回语 作者:付钟艺(高二学生)   雷: “什么是星星?” 电: “夜里的眼睛。”   雷: “什么是太阳?” 电: “天空的指针。”   雷: “什么是月亮?” 电: “黑夜的枕头。”   雷: “什么是雨?” 电: “浸泡太阳的温泉。”   雷: “什么是风?” 电: “是追赶你舞动的裙衫 奔跑的影子。”   付钟艺 ,女。如今是湖南岳阳华容一中高二学生。就读华容县实验小学六年级时,写下了这首小诗。付钟艺自幼爱好文学。八岁时开始在报刊杂志上发表文学作品。已有小小说、散文、诗歌多篇(首)在《创作》(全国唯一的青少年创作的文学期刊)、《岳阳晚报》、《长安报》、《华容教育》等省、市级报刊杂志上发表。其中散文《奶奶的团子》被入选《2014-2015年度精选本》。     春天飞上天空了吗 文/公主如花   五彩的风筝飞呀飞, 是想和白云握手吧? 可爱的小鸟追呀追, 是想做白云的发卡吧? 杨柳扬起眉毛, 是要和彩霞媲美吧? 小花小草抬起头来, 揉了揉惺忪的睡眼。 奇怪地问: 春天飞上天空了吗?   春天很大又很小 /(王宜振)   春天到底有多小 问问小花朵,也许会知道 花朵说:它常站在我的花瓣上跳舞 跳完舞,又钻进小小的花苞里睡觉   春天到底有多小 问问小燕子,也许会知道 燕子说:我衔着它从南方飞到北方 它哩,同一粒小豌豆差不了多少   春天到底有多大 问问那棵树,也许会知道 大树说:春天是一只大鸟 一棵树只是它的一根羽毛   春天到底有多大 问问小朋友,也许会知道 小朋友说:我们都被春天含在嘴里 远山和草地也陷进春天的怀抱   春天到底是大是小 大伙儿碰在一起就争争吵吵 说它大说它小都有一定道理 老师说,这样的问题想想就会知道   To大朋友: 巧妙的构思是这首诗的主要特点。作者用拟人、比喻、设问等多种修辞手法,集中描写了春天似乎相悖的两种特性,让人们司空见惯的各种事物在我们头脑中留下了深刻的印象。   To小朋友: 小朋友,在你眼里,春天到底是大还是小呢?有多大?有多小?   金黄色的春天 作者:  李后宏   黄鹂说 春天是绿色的 你看你看 那绿色的春风长在柳条上 芦芽听了 冒出尖尖的脑袋 是的是的   桃树说 春天是红色的 你看你看 那红色的春雨弄花我的衣裳 杜鹃花听了 吹响亮亮的喇叭 是的是的   燕子说 春天是白色的 你看你看 那满山的李树披上洁白的盛装 梨树听了 舞动素素的头纱 是的是的   蜜蜂说 我天天飞到西来飞到东 春天就装在我的口袋中 打开一看 咦 为什么春天是金黄色的     作者简介   李后宏,岳阳市岳阳楼区花板桥学校教师,岳阳市作家协会少儿诗歌创作委员会成员,业余爱好文学和摄影。   夏天的味道 赵素杰   夏天的味道 是甜甜的 不光是娃娃的嘴角 流淌着甜甜的冰激凌 就连脸上,也挂着甜甜的笑   夏天的味道 是咸咸的 夏收的田野里 滴落着咸咸的汗水 忙碌的操场上 奔跑着咸咸的味道   夏天的味道 是苦苦的 天上的大雨一阵连一阵 雨滴苦的真是不得了 不信,你就尝一尝   我们都发芽了 ○ 顾海英     春天来了, 小草发芽了, 钻出了一个个小脑袋;   春天来了, 柳树发芽了, 结出了一条条小辫子;   春天来了, 我的思想也发芽了, 冒出了一首首可爱的小诗。   我的爷爷 文/苟念成   爷爷的额头 有一条小溪流 从波光粼粼的 到渐渐地干涸   爷爷的眼睛 是两颗黑葡萄 从光亮光亮的 到暗暗淡淡的   爷爷的耳朵 是一台录音机 从清晰动听的 到发出吱-吱-声   爷爷的牙齿 是一架小铡刀 长年地使用 终蹦出了豁口   爷爷的双脚 是一双小木舟 出外划呀划 停靠家的港湾   桂花雨 作者:岳阳市东方红小学 李凤杰 (8岁)   下桂花雨啦 下桂花雨啦   落在我的头发上 我有金色发卡了   落在我的裙子上 我有鲜花花裙了   落在我的睫毛上 啊,我 看见星星了 黄黄的 小小的 嗯,还香甜甜的呢   打翻了/ 张晓风   太阳打翻了 金红霞流满西天 月亮打翻了 白水银一直淌到我床前 春天打翻了 滚得漫山遍野的花 花儿打翻了 滴得到处都是清香 清香打翻了 散成一队队的风 风儿打翻了 飘入我小小沉沉的梦   ——选自小学生拼音报社《读写》(小学高年级)2017年第14期   铁线草 ○ 张锦屏   十里春风 吹醒了铁线草 团结一心的小草们 喜欢手拉着手 在一起编织春天 在沉睡的山坡上织出 一张张绿地毯   在老旧沉闷的 花园里 织出一个个绿网兜   还在我家 灰蒙蒙的花盆里 织出了一团团 毛茸茸的绿线球   春 ○ 逍遥游   春天傻傻的 一屁股坐在地上 惊得许多的草娃娃 钻出了地面   春天傻傻的 一头撞在树上 撕碎了树妈妈的旧棉袄 硬让她换上了新装   春天傻傻的 一猛子扎入水中 小鱼儿便背起书包 走在了上学的路上   春天傻傻的 一口气吹在山坡上 羊儿们撒着欢子 把小山坡的脸都吓绿了   春天傻傻的 一咕脑儿扑在爷爷的怀里 晒着暖暖的太阳 荡起了秋千   来源:“ 新童诗”   闹 春 ○ 刘 凤   小鸟像天使报信 甜甜的声音 醉了春   柳条像蚕吐丝 长长的绿丝带 织成春   蚯蚓像农伯伯春耕 软软的糖泥 种下春   春鱼儿像顽童吹泡泡 串串的珍珠链 感动春   春走到哪里 哪里闹哄哄   来源:“ 新童诗”     蜗 牛 / 樊发稼   蜗牛 爱背着小房间 出去游玩 路上 也不忘 把有趣的电视节目 收看 你瞧 小房间上面 总竖起 两根天线   蜗牛 记性特坏 它怕回不了家 就在 走过的地方 涂上一条 鲜明的 标志线     樊发稼,著名诗人、文学评论家。1937年生,上海人。 1957年毕业于上海外国语大学。中国社会科学院文学研究所研究员、研究生院文学系教授,中国作家协会全国委员会委员、儿童文学委员会副主任,中国文学研究会会长。   原载:《小不点儿童诗歌报》2010.10.1创刊号   芽 / 李文   云儿发了芽, 飘下雨花花。 大海发了芽, 生出小鱼虾。 土地发了芽, 长出绿娃娃。 光荣榜里发了芽, 一朵一朵小红花。   作者简介: 李文,西安市新城区人,喜欢文学,业余时间喜欢写写诗   《打开四季》 作者:王宜振   把春天打开 把春天里的一棵小草取出   把夏天打开 把夏天里的一只蟋蟀取出   把秋天打开 把秋天里的一片黄叶取出   把冬天打开 把冬天里的一个雪人取出   把日子打开 把课桌上的一条界河取出 小手儿拉起跌倒的快乐 小脚丫踩痛一条童年的小路   童 年 作者:平江县城北学校 李珂熳 指导老师:李娣员   童年是 一首动听的催眠曲, 我在梦里头, 母亲在外头。   童年是 老鹰捉小鸡的游戏, 我在后头, 老师在前头。   童年是 许多关爱的目光, 我在这头, 希望在那头。   童年是 一堆写不完的作业, 我在里头, 蜻蜓在外头。   小作者简介   李珂熳,8岁,平江县城北学校三年级355班学生。我兴趣广泛,平时最喜欢阅读各类书籍。在书海中翱翔,不仅可以丰富我的知识,给我带来无尽的快乐,还让我交到了许多志同道合的朋友。   来源 : "儿童诗歌"   起床啦 作者:岳阳楼区站前小学 方玺竣 (6岁半)     瞧 东边一片红霞 那是 太阳娃娃起床啦 高楼和大厦 是他的大牙刷 洗洗刷刷 刷刷洗洗 世界变亮咯   咦 云朵手帕怎么不见了 找来找去 找去找来 原来 她躲在 天空妈妈的怀里 和我们 捉迷藏呢   指导老师: 向颖   小诗人简介 我叫方玺竣,今年6岁半,大家都说我是小萌哥。我在岳阳楼区站前小学一年级上学。我总喜欢到大自然中去发现、探索,是一个善良的小暖男   梦 作者:滕毓旭   花儿的梦, 是红的, 小树的梦, 是绿的,   露珠的梦, 是圆的, 娃娃的梦, 是甜的。   作者简介 滕毓旭,1953年毕业于大连师范学校,先后在小学、中学、师范学校任教,曾担任过杂志社的主编。1957年开始发表作品。1994年加入中国作家协会。作品有近300篇选入“儿童诗新大系”、“海峡两岸儿童诗选”。   喷 泉 作者:常福生   这是一棵树 一棵水晶树 一棵不会枯黄 永远向上的 快活的树   这是一朵花 一朵水晶花 一朵开不败的 洁白美丽的 快活的花   作者简介   常福生,1938年生于上海,任小学教师数十年,之后在上海少年儿童出版社编辑部工作。1959年开始发表作品。2006年加入中国作家协会。儿童诗《牙齿亮晶晶》获2004年全国儿童诗征文三等奖。   儿童是世界上一点一点的光 【韩国】李元凤  任溶溶/译   世界上一点一点的光, 已经变成一条一条的小溪流。 它们有一天还将变成海洋, 当朋友和朋友合在一起的时候。   世界上一点一点的光, 是在天上流动的星星, 它们有一天还将变成宇宙。   世界上一点一点的光, 各在不同的地方。 可有一天它们碰在一起, 就像含笑的鲜花开放。   诵读一点通: 本诗用了三个排比,每一段都以“世界上一点一点的光”开头,分别把儿童比作小溪流、星星和鲜花,体会事物不同的特征分别读出不同的味道。结尾一节中“各在不同的地方”,是指儿童散落在世界各地,他们是世界的未来和希望,应读出温馨而美好的感觉。(山叶 供稿)   ——选自小学生拼音报社《读写》(小学高年级)2018年6月内容   忙碌的风 ○ 谷 雨   早晨的风 溜进花朵里打了个滚儿 浑身裹满了瓢虫的文字 一篇美好的故事 送给花园里的姗姗学步的孩童   中午的风 撩撩树叶发烫的面颊 捎带着蝉儿的心思 一首清凉的歌儿 送给树下打盹儿的老人   夜晚的风啊 缓缓地,缓缓地 拉开夜的序幕 我们的日子 划来了月亮船 流淌着星星河 和又一个喷薄而出的太阳   萤火虫也是花朵 王立春   萤火虫也是花朵 只不过开在晚上 白天宁可假装睡觉 也不想开   萤火虫也是花朵 只不过喜欢跑着开 才不学那些傻花 一辈子只停在一个枝上   所有的花朵一开出来 都是凉的 只有晶亮的萤火虫 能开出一朵热的花   背后的故事   起初,缘于一杯水。当朋友要把杯子里喝剩的水倒向窗台的花盆里时,我怕有些热的水浇上去会把花烫了,就赶紧制止:“别浇……”朋友停下来,转头看着我。我赶紧婉转地解释说:“凉水浇出的花是凉的,用热水浇了,会开出一朵热花……”朋友扑哧一下笑弯了腰,水洒了。这朵“热花”一下子就植进了我的心田。我后来在想,什么花开出来都是凉的,而且必须凉。那么,什么花开出来是热的呢?活泼、灵动的生命也许有这种可能。正当百思不得其解之时,我在南方的夏夜看到了一群亮闪闪的萤火虫。萤火虫是热的,萤火虫是飞来飞去的,萤火虫却不是花朵,但是好办——诗人有这样的本事——让萤火虫变成花朵。于是,就有了这首诗。     ——选自小学生拼音报社《读写》(小学中年级)2018年暑假合刊   戏 水 向 辉   水真调皮 用脚踢它 竟跑到我们的嘴里来了   水真调皮 用石头吓唬它 竟跳到我们的衣服上来了   水真调皮 低着头问它 它又欢笑着跑开了   背后的故事   一个夏日,我带着学生来到月溪河畔。有几个男孩儿拿着小石子在打水漂,腰一弓,手一甩,小石子在水面上荡出一个个小水圈。   在我旁边,有一个男孩儿低着头,嘴里在嘟囔着什么。   你刚才在干什么呢?”我笑着问。     “我在和水说悄悄话呢。”     “水能听懂你的话?”我满脸好奇。     “当然能。”孩子说,“不过这水也太调皮了,我的话还没有讲完,它就哗啦啦地唱着歌儿走开了。”     ——选自小学生拼音报社《读写》(小学中年级)2018年暑期合刊   眼睛变成口袋 /芷涵     什么都喜欢 眼睛就变成了口袋 装—— 蓝蓝天空 一只又一只 风筝的畅想     装—— 高高山上 一排又一排 绿色的波浪   装—— 浅浅草里 一朵又一朵 鲜花的怒放   装—— 清清河里 一条又一条 鱼儿的欢畅   装—— 丰收园里 一缕又一缕 果实的馨香……….   装啊装 眼里装满阳光 世界就会更明亮   作者简介:芷涵,中国作家协会会员,吉林省儿童文学委员会委员;作品散见于全国100多家儿童报刊,75篇作品入选《2014中国最佳幼儿文学》《2014年中国幼儿文学精选》《中国儿歌大系》等多种选本并数次获奖   《筷子》 作者:吴思晓   筷子 是一个美食家 酸 甜 苦 辣 咸 样样尝个遍 可身体从不发胖 苗条得很呢   筷子是个胆小鬼 每次出行 都要有个伴儿     雨 文/郑秀云   一串串细小的项链 从天空落下来 小草芽的心动了 何不给自己戴上一串呢 小草带上项链 突然收藏了好多阳光   小青蛙的心动了 它采下一串 挂在脖子上 哦,项链上好像沾着 妈妈的味道   小鸟的心动了 它摘了两串 挂在翅膀上 准备送给远方的朋友   雨 淅沥沥 哗啦啦   希望 文/公主如花   种子种下的希望泥土最能读懂 小花种下的希望蜜蜂最能读懂 小草种下的希望大地最能读懂 太阳种下的希望天空最能读懂 春天种下的希望秋天最能读懂 妈妈种下的希望我正试着一天天读懂   可爱的女孩儿 【美国】艾米莉·布尔松   活泼如羔羊, 忙碌如蜜蜂—— 人们喜欢的小女孩儿 应该是这样。   谦逊如紫罗兰, 可爱如玫瑰初放—— 人们喜欢的小女孩儿 应该是这样。   聪明如宝石, 纯洁如珍珠—— 每个人都喜欢 这样的小女孩儿。   欢乐如知更鸟, 温和如白鸽—— 所有人都喜欢 这样的小女孩儿。   我四处飞翔,四处寻找, 我心目中的天籁。 因为这样的女孩儿 才是我的珍爱。   赏析:   诗人用几个比喻就为我们描绘了一个可爱的小女孩儿,一个我们再也忘不了的小女孩儿。让我们一起走进这首诗,去认识这个活泼、谦逊、聪明、纯洁的小女孩儿吧!   来源 : "天天欢乐诵"   书包 文/陈艳   花儿说: 我的书包装着 花园所有的颜色   鸟儿说: 我的书包装着 森林所有的歌   云朵说: 我的书包装着 天空所有的故事   大海说: 我的书包装着 星星所有的眼泪   我说: 我的书包装着 爸爸妈妈所有的爱   来源: "儿童诗歌   当你在田野散步 雨 兰   当你在田野散步 如果遇到一棵很老很老的槐树 就给她一个拥抱 她会喜欢的   如果遇到低飞的燕子 就给她一个飞吻 她会明白的   如果遇到一只孤单的蜗牛 就陪她散散步 她会开心的   如果遇到一棵狗尾巴草 就和她亲切地招招手 她会懂得的   如果遇到低着头的小野花 就给她一个微笑 她会看到的   ——选自小学生拼音报社《读写》(小学高年级)2017年暑期合刊   来源 : "天天欢乐诵"   清晨 文/一滴水   清晨 是一个调皮的小孩子   他变成了一颗露珠儿 在小草的头顶 荡起了秋千 他对着熟睡的小草 瞪了瞪眼睛,说: 小懒虫,快起床   他变成了一只小鸟 站在树梢上 吹起了口哨 他对着熟睡的大树 跺了跺脚,说: 小懒虫,快起床   他变成了一根风丝儿 探头探脑地钻进 一扇开着的窗户里 他对着熟睡的小宝宝 吹了一口气,说: 小懒虫,快起床   他玩累了 变成了一束阳光 蹦跳着跌进天空的摇篮里 呼噜噜 呼噜噜  把全世界沉睡的人们都吵醒了   来源 : "儿童诗歌"   影子》 作者:任小霞   我躲 影子也躲 她是一个 爱躲猫猫的 小淘气   我跑 影子也跑 她是一个 爱赛跑的 小调皮   我爬 影子也爬 她是一个 爱爬地的 黑孩子   来源;“童诗园”   河流吉他 文/郑秀云   河流是四季的吉他 春天用它 弹来了鸟语花香 夏天用它 弹出了山河壮美 秋天用它 弹开了金桂飘香 冬天自己谱写 一首流行乐曲 吉他响起 飘来纷纷扬扬的雪花   来源: "儿童诗歌"   云朵 ○ 张锦屏   早晨的云朵 沿着山边开放 白白红红的花朵 是一道道好看的狗牙边   中午的云朵 是太阳的随从 跟随着太阳领䄂 征战东西   傍晚的云朵 是一匹柔软的丝绸 铺在太阳的行宫前 迎接太阳回家   来源:“新童诗”   照镜子 ○ 毛思词   云儿在小河里照镜子 小鱼儿轻轻舔了舔它的影子 咂咂嘴巴:“真甜!”   云儿在稻田里照镜子 秧苗长满了它的影子 神气地叉着腰: “我在云朵上面哩!”   云儿在小水洼里照镜子 飘落的树叶躺在它的影子上 高兴地说: “这个小床好舒服!”   来源:“新童诗”   采云去 ○ 陈 馨   云花、云鱼、云蘑菇…… 天上万亩云田 谁见谁乐   采云去,采云去 小鸟想 采朵云花做个窝   采云去,采云去 大海想 采几条云鱼真不错   采云去,采云去 孩子们想 云蘑菇的味道没尝过   风儿呼呼跑过 什么也不说 手一挥 万亩云田都收割   来源:“新童诗”   快上学去吧 杨 唤   ——快上学去吧! 小书包发急地看着那越升越高的太阳。 ——快上学去吧! 老闹钟也扯着嗓子大声地嚷。 懒洋洋地看着天花板, 小弟弟装做生病不起床。 蒙上头,正想再睡, 忽听得他们在开会: 眼睛说:很好,我要关起窗子永远地休息! 耳朵说:不错!我要锁起门来整年地睡! 鼻子说:很好!我高兴放长假! 脚说:我也永远不想再走路! 手说:那我也永远不想再工作! 小弟弟一听着了慌,一翻身就爬起来: 好!好!——好!你们都别再吵! 我要做一个好孩子,再也不懒惰!   作者简介   杨唤真实姓名杨森,杨唤是他用来发表作品的笔名。他生于1930年的9月7日,却不幸在1954年的3月7日发生火车撞击事故,意外身亡,当时只有二十四岁。杨唤幼年丧母,缺失母爱,过的很清苦,父亲去世后,随着伯父到青岛,在报社工作,还出版了他的第一本诗集。1949年,杨唤去了台湾,摆脱了不幸的童年阴影,写出了一首首具有丰富情感、趣味与纯真的童诗。被誉为台湾现代儿童诗的先驱,代表作《夏夜》、《水果们的晚会》等,1988年由台湾一些著名儿童文学家发起成立“杨唤儿童文学奖”。   读诗小语   每天早上一番努力的起床挣扎,就这样成为一首诗的灵感。这首诗的情节,你是不是似曾相似呢?天亮闹钟响,小弟弟赖床,眼睛、耳朵、鼻、手、脚也想跟着休息,小弟弟急忙起床上学。 除了眼睛鼻子耳朵它们说话,一定还有别的方法让小弟弟起床的。 小朋友,你想想看   来源 : "天天欢乐诵"   巴喳——巴喳——   【英国】里弗茨 韦苇/译   穿上大皮靴在林子里走, 巴喳——巴喳——   “笃笃”听见这声音, 就一下躲到了树枝间。   “吱吱”一下蹿上了松树, “嘣嘣”一下钻进了密林。   “叽叽”嘟一下飞进绿叶中, “沙沙”哧一下溜进了树洞。   全都悄没声儿蹲在看不见的地方, 直盯盯地看着巴喳——巴喳——   越走越远。   来源 : "天天欢乐诵"   春雷 ○ 李越   我是春天最响亮的号角 唤醒小熊小蛇们走出冬眠   我是春天最优扬的号角 召集春雨滋润干枯的枝叶   我是春天最欢乐的号角 奏响江河冰融奔流的音乐   我是春天最韵味的号角 提报农人播下希望的种子   我来了  春天热闹了   来源 : "新童诗"   最小的鱼 / 顾艳龙     最小的鱼 有花蕾一样的脑袋   最小的鱼 有针尖一样的眼睛   最小的鱼 有细细水纹一样的尾巴   最小的鱼 它飞越浪尖的翅膀 已经长出   作者简介   顾艳龙又名顾燕龙,1985年开始发表作品,1992年出版诗集《风景线》,2000年加入江苏作家协会。作品被收入《台湾文学年鉴》,香港中大图书馆《香港文学资料库》等。曾任供销社营业员,媒体记者、编辑。现供职于苏州某大型国企。     출처 “小不点儿童诗歌报”   小河也翻了个跟斗/ 顾艳龙       带着暖暖的太阳 带着小南风 带着哗哗的小河 春游 你不由自主在草地上 翻了个跟头   太阳也翻了个跟头 小南风也翻了个跟头 小河也翻了跟头   哈,翻,翻 再翻 就翻到了夏天     作者简介   顾艳龙又名顾燕龙,1985年开始发表作品,1992年出版诗集《风景线》,2000年加入江苏作家协会。作品被收入《台湾文学年鉴》,香港中大图书馆《香港文学资料库》等。曾任供销社营业员,媒体记者、编辑。现供职于苏州某大型国企。     출처 “小不点儿童诗歌报”   童 话  文/[捷克]约瑟夫·斯拉德克 译/刘星灿   “白桦为什么颤抖,妈妈?” ——“它在细听鸟儿说话。” “鸟儿说些什么,妈妈?” ——“说仙女傍晚把它们好一顿吓。” “仙女怎么会把鸟儿吓呢?” ——“她追赶着白鸽在林中乱窜。” “仙女为什么要追赶白鸽?” ——“她见白鸽差点儿淹死在水潭。” “白鸽为什么会差点儿淹死呢?” ——“它想把掉在水里的星星啄上岸。” “妈妈,它把水里的星星啄上来了吗?” ——“孩子啊,这个我可答不上。 我只知道,等到仙女挨着白鸽的脸蛋时, 就像如今我在亲你一样, 亲呀亲呀,亲个没完。”   关于作者   约瑟夫·斯拉德克全名是约瑟夫·瓦·斯拉德克(1845-1912),捷克共和国人。其前身为捷克斯洛伐克,于1993年与斯洛伐克和平地分离。 约瑟夫·瓦·斯拉德克一生写了许多表现捷克民族勇敢精神的诗作。最早的诗集《诗书》、《海上的火花》,记录了他在美国的见闻和作者的心情,反映了他的爱国主义热情。代表作有《光明的足迹》、《在天堂门口》、《来自生活》和《太阳与阴影》等诗集,以饱满的热情歌颂了捷克民族追求幸福和光明的强烈愿望。他的儿童诗集《金色的五月》、《云雀之歌》以及《钟与小铃铛》等,这些语言生动形象,富有音乐性的儿童诗,为许多小读者所喜爱。他还翻译了莎士比亚的三十二部剧作。   《树叶是一幅地图》 作者:李德民   真的,树叶 是一幅地图 纵纵横横的脉络 是纵纵横横的道路、河流   喜欢旅行的风 天天都来看 看过正面看背面 一遍又一遍 直到看熟了、记住了 风才放心地吹响远处   同样喜欢旅行的鸟 也天天来看 看过这叶看那叶 好像还在对比着 鸟要把每条道路都记清 要不然,它就没法飞回来了   树叶的地图 太阳也看 月亮也看 从天空落下的雨点也看 看了,它们才不会 落错地方   来源 :  "童诗园"   魔法小草 文/李红梅   小小的狗尾巴草 会变魔法的小草 竖起毛茸茸的尾巴 在风中起劲地 摇呀摇 从春天到夏天 从夏天到秋天 从长耳朵的小兔 到胖乎乎的小熊 从咩咩叫的小羊 到汪汪叫的小狗…… 变着魔法儿 给小朋友带来了多少欢笑?   来源 :   "儿童诗歌"   秋天 文/夏青荷   秋天到了 秋姑姑召开了 秋装展示会 高挑的大树们都来做模特 白杨树披一身亮黄的铠甲 枫树穿一身火红的风衣 松树穿一身墨绿的西装 花楸树最特别 穿了一件绿底红花的礼服 秋风看了 哗哗哗地鼓起了掌   来源: " 儿童诗歌"   闪闪发亮 ○ 崔蕊霞     大柳树在挂念 春天里 挠它脚心的小蚯蚓   狗尾巴草在幻想 像鸟一样自由飞翔   晚饭花哧哧傻笑 想起早上 有阵风曾对它耳语 你真漂亮!   我想起你 嘟着嘴巴生气的怪模样   月亮底下就应该想点 美好的事情 月光会让它们闪闪发亮   来源 : "新童诗"   月亮的说明书 文/王雁君   “圆圆的 有时像个盘子" ”小老鼠说   “弯弯的 有时象条小船” 小鸟说   “还有的时候象条软软的香蕉” 大象说   “他摸起来一定有点暖 因为他不象太阳那么热” 乌龟说   “他一定不是石头的 因为他总是挂在那,应该是棉花”  长颈鹿说   “他一定会魔法, 因为花开得越好 他就会越来越圆” 花朵说   “他闻起来好象很香, 有时候象桂花呢” 小熊说   “他吃起来一定也很甜, 因为人们仿着他做成月饼呢” 小猪说   “他就象个电灯泡 也象打着手电筒 天黑下来他就给我们照亮儿!” 是啊是啊 我们找到回家的路 我们能回到家 我们能在妈妈怀里睡觉啊!   来源 : " 儿童诗歌 "   黑夜 文/苟念成   月亮是手电筒 被黑夜打着 它从西到东 找到了黎明   星星是萤火虫 飞来飞去的 躲进云背后 怕看见太阳   来源 : "儿童诗歌"   月光是什么 文/王雁君   月光 是一条 金色的小毯子 它把怀里的宝宝 大地的一切 轻轻地盖上 好让他们暖暖睡     月光 是一首 柔柔的摇篮曲 它给累了的人们 匆匆的旅者 轻轻地哼着 好象回到妈妈手臂   月光 是一场 慢慢慢慢的舞蹈 它给山川田野树木河流 那些它的观众 轻轻地跳啊 邀他们来到舞池中央   月光 是一瓶 芬芳的美酒 它打开自己的瓶盖儿 看到它的我们 轻轻地嗅啊 象花儿一样沉醉   月光 是一首 小小的诗 星星是一颗颗闪耀的字 不用加标点 写在一个云朵一片云彩 仰望着的人们 轻轻地吟啊 把乡情默念   来源 :  "儿童诗歌"   春风艺术家   文|蔡静   春风是个演说家 他把花朵的秘密打开 蜜蜂和蝴蝶钻进来   春风是个指挥家 他把燕子从南方召回来 踏着轻快的旋律 一dada 二dada   春风是个大画家 他把画笔轻轻一扬 小草伸长脖子 杨柳扭动着细腰   嘿,春风这个艺术家 描绘着,春天 动人的故事   四季的心   文|苟念成   春天的心 是花朵 被蜜蜂拨动了   夏天的心 是绿叶 被雨点点亮了   秋天的心 是果子 被风儿染色了   冬天的心 是雪花 被阳光融化了   春风的吻 文|陈园英   春风吻了吻桃花 桃花羞答答地 拉低了帽檐 它有点儿腼腆   春风吻了吻小溪 小溪哗啦啦画几个圆圈 它还不会写字 只会用圆圈表达开心   春风吻了吻杨柳 杨柳沙沙沙 一口气写出了几首小诗 它可是一位大才女呢  
1070    비자루 댓글:  조회:2276  추천:0  2020-04-03
비자루- 강려     물결 촐랑촐랑 모으는  하얀 파도엔 초록빛갈 반짝 반짝 감겨듭니다     사락사락 풀꽃잎 밀어내는 빨간 해살엔 샛노란 냄새 착착 묻어납니다   2019년 도라지 5기 연변동북아문학예술연구회 시특집에 실림  
1069    비밀 댓글:  조회:1429  추천:0  2020-04-03
비밀 -강려     더위 먹을가봐 초롱꽃 산바람 한초롱 쏟는 속내 개미만 읽는다     시내물 징검돌 업어주는건 외다리여서인줄 돌쫑개만 눈치챈다      2019년 도라지 5기 연변동북아문학예술연구회 시특집에 실림  
1068    봄길에서 댓글:  조회:1290  추천:0  2020-04-03
봄길에서 /강려     잠꾸러기야,  일어나 얼음송이 내물엉덩이 톡 톡     참새 발가락 버들개지눈 감싸며 누구갬?     챗 도련님도 아니면서 쟤 , 나리꽃이래   2019년 도라지 5기 연변동북아문학예술연구회 시특집에 실림  
1067    당시선집, 신석정 역. 댓글:  조회:2187  추천:0  2020-02-09
당시선집, 신석정 역. 序 文   詩文學에 從事한 지 40여년이 넘도록 내 머리맡에서 唐詩가 떠나본 적이 한 번도 없다. 詩는 바로 내 마음의 고향이요, 내 詩의 요람이었다. 俗情에 끌려 마음이 흐릴 때에도 마치 탕자가 고향에 돌아오는 심정으로 찾아가는 곳은 바로 唐詩의 세계일 수밖에 없었다. 눈에 익은 고향 산천의 옛 얼굴과 귀에 익은 고향 산천의 물소리처럼 마음의 회복을 찾게 되는 것은 唐詩의 가락이었으니, 길어내도 길어내도 끝이 없는 지하수처럼 詩心은 그 때마다 새로 열리게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唐詩를 애독하는 동안에 우리 말로 옮겨보고 싶은 충동에 사로 잡히게 되어 손을 대게 된 것은 20여년전 까마득한 옛날의 일이다. 李 白의 자유 분망한 가락이나 杜 甫의 침통 무비한 절규를 옮겨 놓기에는 나의 재간은 너무 서투르고 모자람을 뼈저리게 느꼈던 것이다. 그 시심의 한 자락이나마 전할 수 있다면 다행한 일이라고 생각할 따름이다. 당시의 드높은 산맥에서도 詩仙이라 일컫는 李 白과 詩聖이라고 불리우는 杜 甫의 두 巨岳과 더불어 陶淵明을 비롯한 唐代 詩人외에도 몇몇 詩人을 덧 붙였음을 밝혀둔다. 1971년 12월 比斯伐 艸舍에서 辛 夕 汀   이 백 李 白 (701-762) 盛唐의 詩人. 字는 太白, 號는 靑蓮 또 스스로 酒仙翁이라했다. 中宗 長安 元年(701, 신라 효소왕 10년) 사천성에서 났다. 10살에 벌써 詩書에 통하고 百家書를 탐독했다. 고향에서 소년시대를 보내고, 뒤에 각지로 방랑, 襄州 漢水로부터 洞庭湖로, 다시 長江으로 내려가 金陵을 거쳐 楊州로 가 호방한 생활을 하고, 35살때에는 太原에 놀고, 산동성 任城에서 孔巢文․韓 準․裵 政․張淑明․陶 沔등과 만나, 이른바 竹溪六逸의 교유를 맺고, 742년 42살 때 翰林院에 들어갔다. 시와 술로 명성이 높았으나, 결국 술이 원인이 되어 744년에 실각, 陳留에 이르러 道士가 되고, 8578년에 江南에서 玄宗의 아들 永王의 모반에 가담한 죄로 옥에 갇혔다가 이듬해 夜郞에 유배되어 가다가 도중에서 풀렸다. 代宗이 즉위하자 拾遺에 배명, 11월에 當塗에서 62살로 죽었다. 李 白은 自然兒였다. 喜悲哀歡을 그대로 노래에 옮겨, 그의 작품은 한껏 자유분방하여 天衣無縫의 神品이라고 하거니와, 당시 그와 아울러 일컬은 杜 甫가 새로운 詩風을 일으킨 것과는 달리, 李 白은 漢魏 六朝이래의 詩風을 集大成했다. 모랄에 민감하고 정치에 관심을 보인 杜 甫와는 달리, 현실을 떠난 감정의 소유자였다. 그는 당나라 문화의 爛熟期에 生을 받아, 그 퇴폐적 기풍에 젖은데다가 불우했기 때문에 술과 여자에 憂愁를 잊으려 했다. 詩文集 30권이 있다.     峨山月歌 峨眉山月半輪秋 影入平羌江水流 夜發淸溪向三峽 思君不見下渝州 아미산월가 가을 밤 아미산에 반달이 걸려 평강 깊은 물에 흘러가는구나 청계를 밤에 나서 삼협으로 가는 길에 너도 못 본 채 유주로 내려간다.     靜夜思 牀前看月光 疑是地上霜 擧頭望山月 低頭思故鄕 야곡 침실로 스며드는 달 그리매 어찌 보면 서리가 내린 듯도 하이 산 위에 뜬 달을 바라보고는 머나먼 고향을 생각하노라.     黃鶴樓送孟浩然之廣陵 故人西辭黃鶴樓 煙花三月下揚州 孤帆遠影碧空盡 唯見長江天際流 호연에게 그댄 이 황학루를 그대로 두고 삼월사 말고 양주로 떠나는가 먼돛 그리매 하늘 가에 숨으면 강물만 굽이굽이 흘러가는 것을......   獨座敬亭山 衆鳥高飛盡 孤雲獨去閒 相看兩不厭 只有敬亭山 경정산 뭇새 멀리 사라지고 구름만 한가히 떠가는구나 바라봐도 바라봐도 지치지 않는 건 경정산이 있어서 그렇지 뭐.......     子夜吳歌 長安一片月 萬戶擣衣聲 秋風吹不盡 總是玉關情 何日平胡虜 良人罷遠征 자야의 부르는 노래 장안에 조각달 멀리 비치는데 다드미 소리 자지러게 들려와 가을 바람 불어도 끝이 없는데 옥관에 달리는 마음 설렌다 임이여 오소라 돌아오소라 원정은 어느때 끝이 나는가.     山中與幽人對酌 兩人對酌山花開 一杯一杯復一杯 我醉欲眠君且去 明朝有意抱琴來 대 작 둘이서 잔 드는 사이 소리 없이 산꽃이 피어 한잔 한잔 들자거니 다시 한잔 먹자거니 난 위한채 자고파 그댄 돌아가도 좋으리 낼아침 오고프면 부디 거문고 안고 오시라.   友人會宿 滌蕩千古愁 留連百壺飮 良宵宣且談 皓月未能寢 醉來臥空山 天地郞衾枕 그대와 더불어 천고에 쌓인 한을 풀어 한없이 마시는 술에 끝날 줄 모르는 이야기 밤은 깊어 밝은 달에 잠도 멀리 가는데 취한채 빈산에 쓰러지니 천지는 하냥 이부자린듯하구나.   烏夜啼 黃雲城邊烏欲棲 歸飛啞啞枝上啼 機中織錦秦川女 碧紗如煙隔窓語 停梭悵然憶遠人 獨宿空房淚如雨 오야제 해설피 구름은 성가에 떠도는데 가마귀는 자꾸만 울어 예고 베틀에 진천아가씨 오늘도 베를 짜네 푸른 창창 새에 두고 혼자 속삭여 물레북 손에 든채 멀리 떠난 그대 생각하며 홀로 새는 방에 비보다 눈물이 더 쏟아져......     送友人 靑山橫北郭 白水遶東城 此地一爲別 孤蓬萬里征 浮雲遊子意 落日故人情 揮手自玆去 蕭蕭斑馬鳴 그대를 보내며 푸른산 북녘 성곽을 둘렀는데 강물은 굽이 굽이 성을 돌아가는구나 예서 그대 한번 보내고 보면 외로이 떠나리 먼 만리길 길손은 뜬구름에 뜬구름에 닮아 지는핸 서글픈 그대의 심정이리 손을 내저으며 이제 떠나거니 울어예는 말소리 더욱 섧구나     月下獨酌 其一 天若不愛酒 酒星不在天 地若不愛酒 地應無酒泉 天地旣愛酒 愛酒不愧天 已聞淸比聖 復道濁如賢 聖賢旣已飮 何必求神仙 三盃通大道 一斗合自然 俱得醉中趣 勿謂醒者傳 월하독작 1 하늘이 만일 술을 즐기지 않으면 어찌 하늘에 주성이 있으며 땅이 또한 술을 즐기지 않으면 어찌 주천이 있으리요 천지가 하냥 즐기었거늘 애주를 어찌 부끄러워하리 청주는 이미 성인에 비하고 탁주는 또한 현인에 비하였으니 성현도 이미 마시었던 것을 헛되이 신선을 구하오리 석잔에 대도에 통하고 한말에 자연에 합하거니 모두 취하여 얻는 즐거움을 깨인 이에게 이르지 마소라.     月下獨酌 其二 花下一壺酒 獨酌無相親 擧盃邀明月 對影成三人 月旣不解飮 影徒隨我身 暫伴月將影 行樂須及春 我歌月徘徊 我舞影凌亂 醒時同交歡 醉後各分散 永結無情遊 相期邈雲漢   월하독작 2 꽃 아래 한독 술을 놓고 홀로 안아서 마시노라 잔들자 이윽고 달이 떠올라 그림자 따라 세 사람일세 달이 술은 마실 줄 모르고 그림자만 나를 따라 다녀도 달과 그림자 데불고서 함께 즐기는 이 기쁨이여 내 노래하면 달도 거니는 듯 내 춤을 추면 그림자도 따라라 깨이면 함께 즐기는 것을 취하면 모두 흔적이 없이 길이 이 정을 서로 맺아 오늘날 은하에서 또 만나리.     淸平調詞 三首 一. 雲想衣裳花想容 春風拂檻露華濃 若非群玉山頭見 會向瑤臺月下逢 二. 一枝濃艶露凝香 雲雨巫山枉斷腸 借問漢宮誰得似 可憐飛燕倚新粧 三. 名花傾國兩相歡 常得君王帶笑看 解釋春風無限恨 沈香亭北倚欄干 청평조사 1. 발길에 끄는 치마자락은 구름을 생각한다 얼굴은 꽃을 닮아 더 어여쁘구나 봄 바람 살며시 난간을 스치는데 이슬도 꽃처럼 짙어 곱더라 군옥산 산머리에 못 만날양이면 요대 휘영청 밝은 달 아래 거닐 때라도 만나보리......     2. 다만 네가 농염한게 흡사 향그러운 이슬 같아라 무산에 비 머금은 구름만 떠돌아 홀로 애 끊노니 한궁에 누가 널 닯았더냐 비연...그댄 물찬 제비처럼 되려 가련하구나.     3. 꽃도 너도 나는 좋더라 임은 항상 그댈 보고 웃거니 봄바람엔 그지 없는 원한도 풀리는 침향정 난간을 오고 가고 하리라.     怨 情 美人捲珠簾 深坐嚬蛾眉 但見淚痕濕 不知心恨誰   소 곡 발 걷고 앉은 여인 눈썹을 찡그리고 눈시울 젖은 흔적 누구를 원망하여.......   對酒問月 靑天有月來幾時 我今停盃一問之 人攀明月不可得 月行却與人相隨 皎如飛鏡臨丹闕 綠烟滅盡淸輝發 但見宵從海上來 寧知曉向雲間沒 白兎搗藥秋復春 姮娥細栖與誰隣 今人不見古時月 今月曾經照古人 古人今人若流水 共看明月皆如此 惟願當歌對酒時 月光長照金樽裏   잔들어 달에게 묻는 노래 저하늘에 달이 있어 몇 해나 지냈는가 지금 나는 잔 놓고 물어 보노라   사람은 달을 잡을 길 바이 없어도 달은 언제나 우리를 따라 오거니   거울처럼 밝은 빛이 선궁에 다달아 푸른 연기 헤치고 밝게 빛나네   밤따라 바다 위에 고이 왔다가 새벽엔 구름 새로 침몰하누나   봄에도 가을 옥토끼 약을 찧고 선녀는 외로이 누구와 사는가     옛 달을 바라본 이 지금 없어도 달은 천추나 두고두고 비치었으니   인생은 예나 지금 물처럼 흘러도 언제나 달은 떠서 바라봤으니   원하거니 노래 부르고 잔 들 때마다 달빛이여 나의 잔에 길이 쉬어 가라.     蘇臺覽古 舊苑荒臺楊柳新 菱歌淸唱付勝春 只今唯有西江月 曾照吳王宮裏人   소대에서 옛 동산에 버들잎 파릇파릇한데 봄 들어 부는 노래 더욱 서러라 강 위엔 초승달 더욱 밝구나 지난날 옛 궁에 비치던 달이.....     自 遺 對酒不覺瞑 落花盈我衣 醉起步溪月 鳥還人亦稀 황혼 술잔 기울이니 해지는 줄을 몰라 어쩌자고 꽃은 떨어져 옷깃을 덮는가 거나히 취한채 달을 밟고 가노니 새는 깃을 찾고 인적은 끊쳐.......     斷章 昔日芙蓉花 今成斷腸草 단장 옛날의 부용 꽃 인젠 단장초로구나...(妾薄命의 한구절)     早發白帝城 朝辭白帝彩雲間 千里江陵一日還 兩岸猿聲啼不住 輕舟已過萬重山 벡제성을 떠나 아침에 백제성 구름 새를 떠나 강릉 천리 길을 하루에 돌아 왔다 강 기슭에 원숭이 자꾸 울어 예는데 배는 이미 첩첩이 쌓인 산을 돌아......     客中行 蘭陵美酒鬱金香 玉碗盛來琥珀光 但使主人能醉客 不知何處是他鄕 여중 (旅中) 난릉의 술은 바로 울금향이로구나 크나큰 옥배에 넘쳐 호박 같이 빛난다 다만 주인으로 하여금 손을 취케하라 어디가 타향인 줄도 알지 못하게......     春夜洛城聞笛 誰家玉笛暗飛聲 散入春風滿洛城 此夜曲中聞折柳 何人不起故園情 봄 밤 어둔 밤 옥피리 소리 들려 온다 봄 바람에 흩어져 낙양에 가득하여라 이 밤사 말고 절류곡 들려 오거니 뉘라서 고향을 생각하지 않으리.     與史郞中欽聽黃鶴樓上吹笛 一爲遷客去長沙 西望長安不見家 黃鶴樓中吹玉笛 江城五月落梅花     장안을 떠나면서 한번 쫓긴 몸 되어 장사로 간다 서녘 하늘 아래 먼 장안엔 나의 집도 묻히고 황학루엔 누가부는 옥피리 소린가 강성 오월 달엔 매화꽃도 지는 것을......     山中答俗人 問余何事栖碧山 笑而不答心自閑 桃花流水杳然去 別有天地非人間 산에서 내게 묻길 왜 푸른 산에 사느냐고 웃음으로 대답하니 마음도 한가하이 복사꽃 흘러흘러 멀리 자는 곳 거기 또한 딴 세상이 있나보아......     三五七言 秋風淸 秋月明 落葉聚還散 寒鴉栖復驚 相思相見知何日 此日此夜難爲情 가을밤 가을 바람 맑아 달이 더 밝다 낙엽은 모였다 또 다시 흩어지고 놀란 까마귀 깃을 감돈다 못 잊어 그리는 정 언제나 펴 볼거나 이날 이밤사 말고 더욱 마음 졸이어.     백낙천 白 樂天(772-846) 이름은 居易, 樂天은 字다. 號는 香山, 섬서성 太原사람인데, 어릴 때부터 詩를 지었다. 28살 때 進士에 급제, 秘書省 校書郞.翰林學士.左拾遺를 거쳐 810년에 京北部에 전임했다. 이듬해 어머니를 여의고 814년 중앙으로 들어갔으나 그 이듬해 참소를 당해 江州의 司馬로 좌천되었다가 이내 풀려 서울로 송환되어 太子贊善大夫가 되고, 822년 杭州刺使로 전출, 西湖에 이른바 白堤를 쌓고, 825년 蘇州刺使, 827년 秘書監을 지내고, 다시 河南尹.太子太傅.馮翊縣侯를 역임, 刑部尙書로 致仕했다. 만년에는 洛陽에서 香山의 중들과 교유, 그래서 號를 香山이라 한 것이다. 또 스스로 醉吟先生이라 일컬었다. 武宗 會昌 6년(846,신라 문성왕 8년) 8월에 죽었다. 그는 젊을 때부터 정치적 포부가 있어, 시를 짓는 데 있어서도 적극적으로 사회 비판을 행했으나, 그의 주장이 용납되어지지 않자, 거문고와 술로 나날을 보내고, 시도 한적한 경지를 주로하는 소극적인 것이 되었다. 그러나 그의 本領은 역시 사회 풍자에 있어, 그 방면의 걸작이 많다. 10首도 가혹한 세금으로 피폐해가는 농촌이며, 상하 빈부의 차가 심함을 노래한 것이다. 이와같이 그의 시풍은 쉽고 명쾌하여, 그의 친구 元 鎭과 함께 라 일컬었으며, 세상에 널리 애송되었다. 저서로 詩 3,800여 首 등이 수록된 71권이 있다.     琵琶行 潯陽江頭夜送客 楓葉萩花秋瑟瑟 主人下馬客在船 擧酒欲飮無管絃 醉不成歡慘將別 別時茫茫江浸月 忽聞水土瑟琶聲 主人忘歸客不發 尋聲闇問彈者誰 瑟琶聲停欲語遲 移船相近邀相見 添酒回鐙重開宴 千呼萬喚始出來 猶抱琵琶半遮面 轉軸撥絃三兩聲 未成曲調先有情 絃絃掩抑聲聲思 似訴生平不得志 低眉信手續續彈 說盡心中無限事 輕攏慢撚抹復挑 初爲霓裳後六么 大絃嘈嘈如急雨 小絃切切如私語 嘈嘈切切錯雜彈 大珠小珠落玉盤 閒關鶯語花底滑 幽咽流泉水下灘 水泉冷澁絃凝絶 凝絶不通聲漸歇 別有幽愁闇恨生 此時無聲勝有聖 銀甁乍破水漿迸 鐵騎突出刀槍鳴 曲終收撥當心畵 回絃一聲如裂帛 東船西舫悄無言 唯見江心秋月白 沈吟放撥揷絃中 整頓衣裳起斂容 自言本是京城女 家在蝦蟆陵下住 十三學得琵琶成 名屬敎坊第一部 曲罷常敎善才服 妝成每被秋娘妒 五陵年少爭纏頭 一曲紅綃不知數 鈿頭銀篦擊節碎 血色羅裙飜酒汚 今年歡笑復明年 秋月春風等閑度 弟走從軍阿姨死 暮去朝來顔色故 門前冷落車馬稀 老大嫁作商人婦 商人重利輕別離 前月浮梁買茶去 去來江口守空船 繞船明月江水寒 夜深忽夢少年事 夢啼妝淚紅欄干 我聞琵琶已歎息 又聞此語重喞喞 同是天涯淪落人 相逢何必曾相識 我從去年辭帝京 謫去臥病潯陽城 潯陽之僻無音樂 終歲不聞絲竹聲 佳近湓城地低濕 黃蘆苦竹繞宅生 其間旦暮聞何物 杜鵑啼血猿哀聲 春江花朝秋月夜 往往取酒還獨傾 豈無山歌與村笛 嘔啞嘲哳難如聽 今夜聞君琵琶語 如聽仙樂耳暫明 莫辭更坐彈一曲 爲君翻作琵琶行 感我此言良久立 郤坐促絃絃轉急 凄凄不是向前聲 滿座重聞皆掩泣 座中泣下誰最多 江州司馬靑衫濕 비파행 심양강 저문 날에 손을 보낼제 갈꽃 단풍잎에 갈 바람 불어 주인은 말을 내리고 손은 배에 올라 잔 들자니 피리도 거문고도 없어라 하염없이 잔 놓고 떠나려 할제 아득한 강물에 달이 적시어 문득 비파 소리 물을 타고 들려 와 주인도 손도 갈길을 잊었구나 비파 소리 따라서 타는 이 물어보니 소리는 끊쳤어도 미처 대답이 없어 배 저어 가까이 따라가 대고 등불 돌려 술을 다시 갖추어 놓고 천만번 부르니 겨우 나오는데 비파 안은채 수집어 고개를 숙여 줄 골라 두어 소리 투겨 보는데 제 가락 아니지만 어딘지 끌려 줄줄이 타는 소리 소리마다 생각이라 평생에 못 이룬 뜻 하소하는 듯하구나 머리 수그린채 비파를 손에 맡겨 덧없는 심사를 쏟아 놓는 듯 지긋이 눌렀다간 되쳐 투기니 예상 뒤이어 육요를 타누나 큰 줄을 쏟아지는 소낙비라면 작은 줄은 속삭이는 말소리 같아 큰 줄 작은 줄이 어울어지는 소린 큰 구슬 작은 구슬 옥반에 구는 소리 꽃 아래 주고 받는 꾀꼬리 소릴런가 흐느끼며 여울물을 돌아가는 시냇물 소리 높고 낮던 소리가 그 어디 엉기어 막힌채 이슥히 소리가 죽어 깊은 한 소스라쳐 일어나는데 되려 없는 소리가 한결 좋아라 은병이 깨져 쏟아지는 물 소리 철기가 뒤끓어 창칼 쓰는 소리 한 곡조 끝내고 줄을 투기니 네 줄이 한데 합쳐 비단 째는 소리 여기 저기 배에선 숨소리조차 없고 가을달만 희구나 강위에 희구나 흥 그리며 발목을 줄사이에 꽂고 옷깃을 여미며 고이 일어나서 스스로 하는 말이 서울 사는 계집으로 고향은 하막릉 아래이었노라고 열세살에 비파를 처음 배워 교방에 있었노라 이르드고 줄 골라 소리 내면 칭찬하는 소리 단장하고 나오면 추랑도 시새웠어 오릉에 사는 귀공자 서로 시새워 내 한 곡 끝나면 비단도 선사했다오 흥겨워 은비녀 비치개로 장단도 치고 술 엎질러 비단 치마 적셔도 봤소 해마다 이러여니 즐거이 보내며 가을달 봄바람을 그저 보냈소 아우는 수자리로 수양어머닌 저승으로 세월이 가고 오고 나도 또한 늙었고 문전엔 찾아 오던 말도 드물고 장사치의 아내가 되고 말았소 사랑보다 이끝에 밝은 장사친 지난달 차 사러 간 뒤 소식이 없고 강 가에 오가며 빈 배를 지키노라면 뱃전을 감도는 달빛 차게 빛나고 이슥한 밤 꿈꾸는 내 지난 청춘이며 흐느껴 우는 꿈에 눈시울도 뜨겁구나 내 듣노니 비파 소리 탄식일레라 중얼대는 그 소린 더욱 설어라 모두다 천애에 떠도는 외로운 사람 어쩌자고 만나서 알게 되었으리 지난 해 서울을 떠나온 이후 귀양살이 심양에 누운 몸이라 궁벽한 고장이라 풍류도 없어 해가 다하도록 한 곡조도 못 들었지 더더구나 나 사는 곳 습기가 많아 집을 싸고 갈과 대 우거졌지 왼종일 이곳에서 무슨 소리 들리리 두견이 피를 토하고 원숭이 슬피 울어 꽃 피는 봄 달 밝은 가을 밤에 흥겨우면 홀로 잔을 기울여 봐도 초동의 노래와 목동의 피리 뿐이여 제가락 찾아서 들을길 없더니 오늘밤 그대의 비파 소리 들으니 꿈결에 들려 오는 신선의 주악인듯 원하노니 그대여 한 곡조 더 타다오 그대를 위해 비파행 지으려거니 내 말에 느껴 이윽고 다시 일어나 줄 골라 비파를 급히 타누나 먼저보다 설어라 타는 그 소리 모두다 눈물없이 들을 길 없어 게서도 누가 가장 섧어하는가 내 옷깃 적시네 눈을 적시네     夜雨 早蛩啼復歇 殘燈滅又明 隔窓知夜雨 芭蕉先有聲 밤비 귀뚜라민 자꾸만 울어 예고 꺼질듯 등불이 다시 밝아라 창 건너 구슬픈 밤비 소리 파초에 흩뿌리며 지나가누나.     落花古調賦 留春春不駐 春歸人寂寞 厭風風不定 風起花蕭奈 낙화부 봄은 좋더라 머물지 않아도 저만 가고 우리만 남아 서럽지 바람은 싫더라 나는 싫더라 꽃샘에 지는 꽃이 어떻게 많다고......     池窓 池晩蓮芳謝 窓秋竹意深 更無人作伴 唯對一張琴 가을 저문날 못 가엔 연꽃 지는 소리 창 옆엔 댓잎도 가을을 머금어라 같이 거닐 사람도 없는 것을 혼자서 거문고를 대하는 마음.     古秋獨夜 井梧凉葉動 隣杵秋聲發 獨向檐下眠 覺來半牀月 가을밤 우물 가에 오동 잎새 바람에 나부끼고 옆집 다드미 소리 가을이 분명코나 처마 밑에 홀로 누워 어렴풋이 졸을 때 머리맡에 달빛이 소리 없이 흘러든다.     古墳 古墳何代人 不知姓與名 化爲路傍土 年年春草生 옛무덤 반남아 헐린 무덤 그 뉜줄을 몰라라 길가에 한줌 흙인데 해마다 풀만 우거져     買花 帝城春欲暮 喧喧車馬度 共道牡丹時 相隨買花去 단장 장안에 봄은 이미 저물어 오가는 차마도 시끄러운 속에 모란도 필 무렵이여 속삭이면서 꽃을 사 가는 이의 주고 받는 이야기.     晩望 江城寒角動 沙州夕鳥還 獨在高亭上 西南望遠山 만망 강기슭 성터에 각적이 들려 사주에 새들은 떼지어 돌아오고 홀로 정자에 올라서 보니 서남엔 산만 첩첩 쌓여 있구나.     宿樟亭驛 夜半樟亭驛 愁人起望鄕 月明何所見 潮水白茫茫 장정역에서 야반에 장정에 홀로 누워서 고향을 생각한다 먼 고향을 달은 밝아 휘영청 밝아 밀물도 끝없이 달빛에 젖는다.     賦得古原草送別 離離原上草 一歲一枯榮 野火燒不盡 春風吹又生 遠芳侵古道 晴翠接荒城 又送王孫去 萋萋滿別情 풀 언덕 위에 풀이 길 나마 우거져 해마다 시들고는 되 살아나     들불에도 풀은 타지 않나보이 봄바람 불면 그러기 돋아 나지     그윽한 향기 길에 스며 들고 옛성 가에도 푸른 빛 연연하다     너를 또 다시 보내고 나면 애끊는 정만 가득 넘쳐 흐른다.     두 보 杜 甫 (712-770) 唐나라 初期의 詩人. 字는 子美, 號는 小陵. 睿宗 太極 원년(712, 신라 선덕왕 11년)에 하남성 鞏縣에서 났다. 7살 때 이미 詩를 지을 줄 알았고, 14~5살 때에는 어였한 詩人이 되었다. 24살 때 進士 시험을 보았으나 낙방, 이 때부터 10여년 동안 山東.洛陽.長安등지로 돌아다니며 李 白․高 適등과 깊이 사귀었다. 36살 때 玄宗의 부름을 받아 長安으로 가서 40살에 集賢院待制, 44살에 太子右衛率府의 兵曹參軍事가 되었다가 안녹산의 난리에 난을 피해 三川으로 달아 났다. 46살에 右拾遺가 되었으나 곧 좌천당해 華州의 司功參軍이 되었다. 기근때문에 생활이 곤란하여 벼슬을 버리고 泰州로 가서, 나무 열매를 주워 먹으며 목숨을 이었다. 이 무렵의 작품으로 20수가 있다. 代宗 大曆 5년(770, 신라 혜공왕 5년)에 湖南의 潭州, 岳州부근에서 病으로 죽었다. 나이 59세. 그의 시는 공상적이 아니고 실제적이다. 시집 20권에는 古體詩 399수, 今體詩 1,600수가 수록되어 있다.     登高 風急天高猿嘯哀 渚淸沙白鳥非回 無邊落木蕭蕭下 不盡長江滾滾來 萬里悲秋常作客 百年多病獨登臺 艱難苦恨繁霜鬢 潦倒新停濁酒杯 등고 바람도 높은 하늘인데 원숭이 설리 울고 흰 모래 적시우는 강엔 물새가 날아 끝없는 숲엔 우수수 낙엽지는 소리 다할 줄 모르는 강물은 굽이굽이 흘러라 또다시 이향에서 가을을 맞이하노니 오랜 시름 이길길 없어 홀로 대에 오르네 쓰라린 세월을 머리칼은 자꾸만 세어 늙어가는 외로움을 술로 풀어 보리.     春望 國破山何在 城春草木深 感時花濺淚 恨別鳥驚心 烽火連三月 家書抵萬金 白頭搔更短 渾欲不勝簪 춘망 나란 망했어도 산천은 있어 봄들자 옛 성터에 풀만 짙푸르다 한송이 꽃에도 눈시울이 뜨겁고 새소리 마음이 더욱 설렌다 봉화는 석달을 연달아 오르는데 진정 그리워라 고향 소식이여 흰머린 날로 짧아만지고 비녀도 되려 무거웁구나.     絶句 江碧鳥逾白 山靑花欲燃 今春看又過 何日時歸年 이 봄도 예이고 보면 파란 강물이라 나는 새 더욱 희고 산엔 타는듯 사뭇 꽃이 붉어라 올봄도 이대로 예이고 보면 어느때 고향엘 돌아가리. 贈花卿 錦城絲管日紛紛 半入江風半入雲 此曲衹應天上有 人間能得幾回聞 화경에게 금성에 풍류 소리 분분히 흘러 반은 강바람에 또 반은 구름 속에 이 가락 응당 하늘에 있을 것이 인간에 몇번이나 들려 오리까.     解悶 一辭故國十經秋 每見秋瓜憶故丘 今日南湖采薇蕨 何人爲覓鄭瓜州 고국을 떠나 고국을 떠나 온지 십년을 지나 추과 볼적마다 그리운 고향 오늘도 남호에 뜯는 고사리 주구를 위하여 정과주를 찾는다.     書堂飮旣夜復邀李尙書下馬月下賦 湖月林風相與淸 殘尊下馬復同傾 久拌野鶴如雙鬢 遮莫鄰鷄下五更 음주 호수엔 달이 밝고 숲에는 맑은 바람 말 내리자 남은 술 다시 기운다 버려둔 수염은 그대로 학을 닮았는데 닭은 덧없이 오경을 아뢰는구나.     貧交行 飜手作雲覆手雨 紛紛輕薄何須數 君不見管飽貧時交 此是今人棄如土 빈교행 손을 두집으면 구름 되고 엎으면 비라 경박한 세사를 어찌 다 헤아리리 그대도 보았으리 관포의 사귄 것을 인제는 그 길을 버렸어 흙같이 버렸어.     도연명 陶 淵明 (365-427) 이름은 潛, 淵明은 그의 字다. 東晋 哀帝 建元 원년(365, 신라 내물왕 10년) 심양의 柴桑에서 났다. 어릴 때부터 榮利를 생각하지 않고 글읽기를 좋아했다. 부모는 늙고 집안은 가난하여, 주의 際酒가 되었으나 마음에 맞지 않아 벼슬을 버리고 덜아왔다. 35살 때 다시 彭澤의 수령이 되었으나, 고을의 督郵가 오게 되어, 이속들의 말이, 의관을 정제하고 뵈어야 한다 하므로, “내 어찌 5말 쌀을 위해 향리의 어린아이에게 허리를 굽히랴”하고, 그자리에서 벼슬을 내어놓고 고향으로 돌아와, 저 유명한 를 지었다. 뒤에 또 著作郞에 임명되었으나 끝내 취임하지 않고, 고향에서 술과 국화를 즐기며 지내다가, 文帝 元嘉 4년(427, 신라 눌지왕 11년) 63살로 죽었다. 세상에서 그를 靖節先生이라 일컬었다. 그의 시는 평이하고 담박하면서도 깊은 의취가 있다. 그는 낙천주의자였고, 또한 풍부한 상상력을 가지고 있었다. 8권이 있다.     歸去來辭 歸去來兮 田園將蕪胡不歸 旣自以心爲形役 奚惆悵而獨悲 悟已往之不諫 知來自之可追 實迷塗其未遠 覺今是而昨非 舟搖搖以輕颺 風飄飄而吹衣 問征夫以前路 恨晨光之熹微 乃瞻衡宇 載欣載奔 僮僕歡迎 稚子候門 三徑就荒 松菊猶存 携幼入室 有酒盈樽 引壺觴以自酌 眄庭柯以怡顔 倚南牕以寄傲 審容膝之易安 園日涉以成趣 門雖設而常關 策扶老以流憩 時矯首而游觀 雲無心以出岫 鳥倦飛而知還 景翳翳以將入 撫孤松而盤桓 歸去來兮 請息交以絶游 世與我而相遺 復駕言兮焉求 悅親戚之情話 樂琴書以消憂 農人告余以春及 將有事于西疇 或命巾車 或棹孤舟 旣窈窕以尋壑 亦崎嶇而經丘 木欣欣以向榮 泉涓涓而始流 善萬物之得時 感吾生之行休 已矣乎 寓形宇內復幾時 曷不委心任去留 胡爲乎遑遑欲何之 富貴非吾願 帝鄕不可期 懷良辰以孤往 或植杖而耘耔 登東皐以舒嘯 臨淸流而賦詩 聊乘化以歸盡 樂夫天命復奚疑 귀거래사 자, 돌아가련다. 고향 전원이 황폐해지려는데 어찌 돌아가지 않으리오 이제껏 자신의 존귀한 정신을 천한 육체의 노예로 삼았으나 어찌 슬퍼 탄식하여 홀로 서러워 하리 지나간 인생은 후회해도 이미 쓸데 없음을 깨달아 장래 인생을 쫓아 갈 수 있음을 알았네 실상 내가 인생길을 갈팡질팡한 것은 오래지 않았나니 지금이 바른 삶이요, 어제까지 그릇됨을 알았네 고향가는 배는 흔들흔들 움직여 가볍게 흔들리고 바람은 솔솔 옷깃에 불어 온다 길손애게 고향이 얼마나 머냐고 물어 보며 새벽빛 아직 희미하여 길 떠나지 못함을 한스러워한다. 마침내 우리 집 대문과 지붕을 보고 기뻐서 뛰어갔네 머슴들도 기뻐 마중나왔고 꼬마들은 대문께서 기디리고 있네 집 마당의 세 줄기 오솔길은 황폐했으나 소나무와 국화는 나를 반기어 꼬마 손을 끌고 방에 들어가니 술이 가득 독에 담겨 항아리와 잔을 끌어당겨 혼자 마시며 마당의 나무 보고 웃음짓는다 남쪽 창가에 기대어 내키는대로 움직이고 무릅이나 들어갈 좁은 방이라도 편안히 있음을 알았네 동산은 날마다 취향있는 경치로 바뀌고 대문은 달았으나 언제나 닫힌 채로다 지팡이 짚어 늙은 몸 부축하여 걷다가는 쉬고 때때로 머리 들어 주위를 살핀다 구름은 산 굴속에서 나와서는 흘러가고 새는 날기가 싫어져 둥지로 들어가네 저녁 햇빛 그늘져 서산에 지려하고 나는 마당의 외솔을 쓰다듬으며 거니네.     돌아가련다. 세상 사람과 교유를 끊고 세상과 나는 서로 잊고 말지니 다시 한번 관리가 되어도 거기 무슨 구할 것이 있으료 친척과 정겨운 이야기를 나누며 기뻐하고 거문고와 책을 즐기며 시름을 지우련다 농부가 찾아와 애게 봄소식 알려 주니 이제는 서쪽 밭에 갈이를 시작하자 어떤 때에는 장식한 수레를 명하고 어떤 때는 한 척의 배를 노저으리니 작은 배 저어 깊은 시내 골짜기를 찾아가고 장식한 수레 타고 험한 언덕 나아가리라 길가의 나무는 생기있게 자라고 샘물은 졸졸 흘러 가네 모든 만물 봄을 기뻐 맞이하고 내 생은 곧 사라짐을 느끼네 아 그저 그런 것인가 육체가 이 세상에 깃드는 것이 얼마 동안이리오 어찌 마음이 명하는대로 생사를 운명에 맡겨 두지 않으며 어찌 이제 와 덤벙거리며 어디로 가려 하는가 돈도 지위도 내 바라는 바 아니요 신선의 세계도 기약할 수없네 따뜻한 봄볕을 그리워하여 홀로 산과 들 거닐고 또한 지팡이 세워 두고 밭의 풀을 뽑는다 아님 동편 언덕 올라가 느긋히 시를 읊고 맑은 강물 흐르는 곳에서 시를 짓는다 하늘에 맡겨 죽으면 죽으리니 천명을 즐기며 살면 그뿐, 근심할 일 아무 것도 없지 않은가.     歸園田居 少無適俗韻 性本愛丘山 誤落塵綱中 一去三十年 전원에 돌아와서 차라리 허튼 세상엔 뜻도 아니 맞았어 어쩌자고 나는 산이 자꾸만 그리운 것이냐 보살필 일도 없는 것을 헤매이다간 그대로 서른 해가 섬적 지나깠구나. (귀원전거 6수중 한구절)     擬挽歌辭 千秋萬歲後 誰知榮與辱 但恨在世時 飮酒不得足 만가에 비겨서 오랜 세월이 흘러간 이후 뉘 있어 너와 나의 이야길 하리 오직 한되는 일이 남아 있노라 세상엔 내 마실 술이 그리도 없거니와.     飮酒 採菊東籬下 悠然見南山 山氣日夕佳 飛鳥相與還 此中有眞意 欲辨已忘言 국화 따 들고 동녘 울밑에 심은 국화 제철이여 따든채 남산을 조용히 바라보노니 해질 무렵 먼 산은 진정 아름다워라 저물어 뭇새들도 깃 찾아 돌아오고 여기 우리 살며 느끼는 끝없는 기쁨이 있어라 무어라 이것을 모집어 이를길도 없구나.     맹호연 孟 浩然(689-740) 당나라 盛時의 詩人. 이름은 浩, 字는 浩然. 中宗 嗣聖 6년(689,신라 신문왕 9년) 호북성 襄陽에서 났다. 鹿門山에 들어가 숨어 살면서 시를 즐기며 유유자적하다가, 40살 때 서울로 나와 진사시험을 보았으나 낙방하고, 뒤에 大學에서 시를 강의했는데 학생들은 그의 박식함에 경탄했다. 張九齡 등과 가까이 사귀었다. 등창이 나서 고생하다가 玄宗 開元 28년(740,신라 효성와 4년) 52살에 죽었다. 그의 시는 自然美나 靜寂의 경지를 노래한 것이 많은데, 특히 五言詩에 뛰어났다. 4권이 있다.     洛陽訪袁拾遺不遇 洛陽訪才子 江嶺作流人 聞說梅花早 何如此地春 그대는 가고 낙양에 그댈 찾아 가니 강령으로 떠난 지 오래더고 매화 피는 철도 이르다지만 어찌 낙양의 봄만 하오리.     臨洞庭 八月湖水平 涵虛混太淸 氣蒸雲夢澤 波撼岳陽城 欲濟無舟楫 端居恥聖明 坐觀垂釣者 徒有羨魚情 동정호에서 팔월달 호수가 잔잔도 하이 하늘도 물에 잠겨 더욱 맑아라 운몽못 가에 물안개 자욱하고 물결은 악양성 향하고 흘러 건너고 싶어도 배엔 노가 없으니 묻혀 살기엔 성덕이 부끄럽다 낚시질하는 옆에 덧없이 앉아 헛되이 고기를 부러워하는 마음     義公禪房 夕陽連雨是 空翠落庭陰 看取蓮花淨 方知不染心 단장 해 지자 몰려 가는 빗발 따라 푸른 산 그리매 뜰에 들고 조촐한 연꽃 바라보니 물들지 않은 마음 알아 즐겁다.     送杜十四之江南 荊吳相接水爲鄕 君去春江正水茫 日暮孤舟何處泊 天涯一望斷人腸 두십사를 보내는 노래 형오랑 강남이라 모두 다 수향이래 그대 떠난 뒤 강물만 아득한데 해 지자 외로운 배 어느 곳에 멈추리 하늘가 바라보면 마음 더욱 애달퍼.....     왕 유 王 維 (699-759) 字는 摩詰, 산서성 太原사람이다. 어릴 때부터 詩名을 날려, 12살에 진사에 급제하여 大樂丞이 되었으나, 이내 산동으로 좌천당했다. 얼마후에 벼슬을 버리고 서울 장안의 근교 輞川에 땅을 사 가지고 은사의 생애를 보냈다. 31살에 아내를 잃고나서는 독신행을 계속하다가, 나중에 불교에 귀의했다. 735년 37살 때 張九齡에 의해 右拾遺에 발탁, 차차 벼슬이 높아져서 752년에는 吏部郎中, 756년에는 給事中에 이르렀고, 시명도 더욱 높아졌다. 그러나 곧 안녹산의 난이 일어나, 그 해 6월 장안이 함락되고 그는 적에게 잡혔다. 난이 평정된 뒤에 복직되어 759년에는 尙書右丞이 되었으나, 그해 61살로 죽었다. 그는 李 白이나 杜 甫에 비하면 마음이 약하여, 현실의 汚濁에 초연할 수도 없고, 반항할 수도 없어, 청정한 자연과 西方往生의 사상에 도피하여 裵 迪․錢 起등과 사귀면서, 평범한 그러나 순수한 정신을 시와 그림에 담았다. 저서에 20권, 6권이 있다.     斷章 天寒遠山淨 日暮長江急 단장 추운 하늘인데 먼 산 씻은듯 맑고 해 지자 강물 소리 더욱 잦이다.     過香積寺 不知香積寺 數里入雲峯 古木無人徑 深山何處鍾 泉聲咽危石 日色冷靑松 薄暮出潭曲 安祿制毒龍 향적사를 지나며 알길 없어라 향적사 가는 길은 몇 리를 들어가도 구름 덮인 산이로고     나무는 길이 넘고 인적도 끊첬는데 깊은 산 어드메쯤 들려 오는 종소린가     흐르는 물 소리는 돌에 걸려 흐느끼고 산 깊어 푸른 솔에 햇볕도 서늘하다     해설피 여울 물 소리만 들려 오는데 선정에 들으니 알 길 없어라.     送沈子福之江南 楊柳渡頭行客稀 罟師盪槳向臨圻 唯有相思似春色 江南江北送春歸 심자복을 강남으로 보내며 버들 우거진 나룻가엔 행인도 드문데 어부는 노 저어 한가히 포구로 간다     다만 못 잊는 정 봄빛처럼 한없는데 강남북으로 찾아온 봄을 보내는듯 하구나.     竹里館 獨坐幽竹裏 彈琴復長嘯 深林人不知 明月來相照 죽리관 홀로 고요한 대숲에 앉아 거문고 뜯다간 휘파람도 불어 보고 깊은 수풀이라 아는 이는 없어도 달빛이 소리 없이 비쳐 오도고......     雜詩 已見寒梅發 復聞啼鳥聲 愁心視春草 畏向玉階生 춘수 (春愁) 벌써 한매도 피어 나고 새 소리도 들려 오고 우거진 풀을 보면 더욱 시름겨워 층층계 덮으니 이렇게 슬플밖에     鹿柴 空山不見人 但聞人語響 返景入深林 復照靑苔上 녹시에서 빈 산에 사람 기척 없는 데 간간이 들려 오는 말소리 있어 비낀 햇볕 먼 숲에 맑고 푸른 이끼 더욱 짙푸르게 빛난다.     雜詠 君自故鄕來 應知故鄕事 來日倚窓前 寒梅著花未 잡영 그대 고향에서 돌아왔거니 응당 고향 일을 알으렸다 올 무렵 우리집 창 옆엔 하마 매화꽃이나 피었던가     送別 下馬飮君酒 問君何所之 君言不得意 歸臥南山陲 但去莫復問 白雲無盡時 송별 말을 내려 그대여 술을 마시라 묻노니 그댄 어디로 가느뇨 그대 말하기를 뜻을 얻지 못하여 남산 기슭으로 돌아간다 하거니 다못 가라 다시 묻질랑 말아라 흰구름 항상 끝날 줄이 있으리.     送元二使安西 渭城朝雨浥更塵 客舍靑靑柳色新 勸君更盡一一酒 西出陽關無故人 이별의 노래 위성 아침 비에 먼지만 개었구나 객사엔 파릇파릇 버들잎이 푸르러라 임이여 다시 한잔 마시고 떠나시라 관문을 나서면 뉘 있어 또 찾으리.     九月九日憶山東兄弟 讀在異鄕爲異客 每逢佳節倍思親 遙知兄弟登高處 徧揷茱萸少一人 여수 홀로 타향에 외론 손 되어 명절이면 어버이 더 그리워라 형이랑 아우랑 같이 오르던 언덕에 수유를 꽂고 놀던 한사람이 줄었겠다.     春桂問答 問春桂 桃李正芳菲 年光隨處滿 何事獨無花 春桂答 春華詎幾久 風霜搖落時 獨秀君知不 춘계문답 계수나무여 도화 이화 향그러워 봄빛 간데마다 무르녹는데 그대만 홀로 꽃이 없는가     계수나무 대답하길 언제까지 도화 이화 꽃이 피리 낙엽이 우수수 지는 가을엔 내 홀로 꽃피는 것 그대 아는가     臨高臺 相送臨高臺 川原杳何極 日暮飛鳥還 行人去不息 별리 보내고 돌아서서 고대에 다다르니 산천은 끝닿은 델 알길 없어라 저문날 새들도 깃 찾아 오는데 떠난인 쉬어 가는 흔적도 없어......     소동파 蘇 東坡(1036-1101) 宋代의 詩人. 字는 子瞻, 이름은 軾, 東坡는 號다. 仁宗 景祐 3년 (1036, 고려 정종 2년) 사천성 眉山에서 태어났다. 22살 때 아우 蘇 轍과 함께 과거에 급제, 곧 代理評事簽書에 임명되고, 다시 鳳翔判官에 제수되었다. 神宗때 王安石과 의견이 맞지 않아, 지방으로 나가 杭州通判이 되었다가, 이어 密州.徐州.湖州등지를 맡아보았다. 이 무렵 이미 그의 文名이 높아서 소인들의 싫어하는 바 되어, 44살 때 마침내 黃州로 좌천되었다. 이 때 그는 동쪽 언덕(東坡)에 집을 짓고 거처하면서 스스로 東坡居士라 일컬었다. 哲宗이 즉위하자 吏部尙書가 되었다가, 곧 潁州지사가 되고 뒤에 다시 중앙으로 돌아와 兵部尙書, 禮部尙書를 역임, 翰林 侍讀의 양 學士를 兼했으나, 紹聖初에 또 반대파에 모함당해 瓊州로 귀양가 다시 永州로 옮겨왔다가 뒤에 사면되어 돌아왔는 데, 徽宗 建中靖國 원년(1101, 고려 숙종 6년) 7월28일, 常州에서 66살에 죽었다. 高宗때 太師를 追贈, 文忠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그는 儒․佛․道에 다 통했고, 시는 음률이나 詩句에 구애받지 않아 자유분방하다. 이 있다.     東欄梨花 梨花淡白柳深靑 柳絮飛時花滿城 惆悵東欄一株雪 人生看得幾淸明 배꽃에 부쳐 배꽃 담백한데 버들잎 짙푸르다 버들개지 흩날리고 꽃은 만발하고 난간엔 서러운듯 하얀 꽃송이 보고 지고 몇해나 보낼 것인가.     春夜 春宵一刻直千金 花有淸香月有陰 歌管樓臺聲細細 鞦韆院落夜沈沈 봄밤 봄밤은 그대로 일각도 천금이여 꽃 향기 그윽한데 달도 밝어라 풍류에 섞인 노래 멀리 들려 오고 그네 소리에 쩌른 밤 깊어 가누나.     縱筆 寂寂東坡一病翁 白鬚蕭散滿霜風 小兒誤喜朱顔在 一笑邪知是酒紅 종필 적막하다 동파에 병든 늙은이 흰수염 소조히 바람에 날린다 어린앤 붉은 얼굴보고 기뻐하건만 내 술에 취한 것을 어찌 알으리.     왕창령 王 昌齡 (?-755) 섬서성 長安에서 났다. 726년 進士, 방만한 성격 때문에 여러 번 좌천당했다. 755년 안녹산의 난이 일어나자 고향으로 돌아갔다가 살해당했다. 李 白과 아울러 일컫는 七言絶句의 명수로서, 閨怨의 작품이 많다. 高 適.王之渙등과 사귀었다. 시집에 5권, 1권이 있다.     西宮秋怨 芙蓉不及美人妝 水殿風來珠翠香 郤恨含情掩秋扇 空懸明月待君王 추원 부용도 미인엔 따를길 없는데 수전 드는 바람에 향기만 그윽하다 문득 품은 정 풀길도 없어 휘영청 밝은 달에 임이 더욱 그립다.     閨怨 閨中少婦不知愁 春日凝妝上翠樓 忽見陌頭楊柳色 悔敎夫婿覓封侯 원한 규중에 젊은 아가씨 시름을 몰라 봄단장 고이하고 누대에 오르니 멀리 푸른 버들 우거진 언덕이 보여 벼슬살이 나간 임 보고파 뉘우침 새롭다.     出塞行 白草原頭望京師 黃河水流無盡時 秋天曠野行人絶 馬首東來知是誰 출새행 백초 우거진 원두에서 서울을 바라보니 황하는 굽이굽이 그칠 길이 없구나 가을날 빈 벌엔 인적도 끊쳤는데 말 머리 동으로 두르는 뜻을 뉘 알으리.     從軍行三首 一. 烽火城西百尺樓 黃昏獨坐海風秋 更吹羌笛關山月 無那金閨萬里愁 二. 靑海長雲暗雪山 孤城遙望玉門關 黃沙百戰穿金甲 不破樓蘭終不還 三. 秦時明月漢時關 萬里長征人未還 但使龍城飛將在 不敎胡馬度陰山 종군행 삼수 1. 누대 드높은 성 밖엔 봉화 타는데 해 지자 해풍은 가을을 싣고 온다 관산 걸린 달에 대피리도 구슬퍼 그리운 네 생각에 시름은 만리 간다.     2. 청해 덮은 구름 설산도 어두운데 성 밖엔 옥문관도 아득하여라 황사 싸움에 갑옷도 해졌는데 누란땅 치기 전엔 돌아가지 않으리.     3. 진한이 바뀌어도 관을 못넘어 만리 전야에 떠난인 아직 오지 않고 용성 땅엔 비장이 지키고 있거니 호마로 하여금 음산을 넘게 하리.     送別魏三 醉別江樓橘柚香 江風引雨入船凉 憶君遙在湘山月 愁聽淸猿夢裏長 위삼을 보내며 취한 채 이별하는 강가에 귤 냄새 풍긴다 강바람 비를 이끌어 배에 들어오고 생각하면 그댄 상산 달 아래에서 잔나비 소리에 시름도 꿈속에 잠기리.     西宮春怨 西宮夜靜百花香 欲捲朱簾春恨長 斜抱雲和深見月 朧朧樹色隱昭陽 서궁춘원 서궁에 밤들자 꽃 향기 그윽하고 발을 걷기에도 마음 설렌다 거문고 비스듬이 안고 달을 바라보니 숲은 어둠 속에 소양궁을 가렸구나.     題覇池 腰鎌欲何之 東園刹秋韭 世事不復論 悲歌和樵叟 비가 낫을 허리에 차고 어디메로 가는가 부출 베러 밭으로 가노니 인젠 뜬 세상일 또다시 이야기 않으리 슬픈 노래를 저 초동에게 부치고.......     두 목 杜 牧 (803-853) 당나라 말기의 시인. 字는 牧之, 號는 樊川. 德宗 貞元 19년(803, 신라 애왕 4년) 섬서성 장안부근에서 났다. 26살때 진사, 현량과에도 급제했다. 宣宗 大中 6년(852,신라 문성왕 14년) 에 50살로 죽었다. 성질이 강직하고 호방하여 장군 재상을 역임했다지만 항상 즐겁지 못해 시문에 그 심정을 담고, 양주 진주등 당시에 유명한 환락지를 떠돌아다녔다. 杜 甫를 大杜라 함에 대하여, 杜 牧은 小杜라 일컬었다. 시집은 20권, 1권, 1권이 있다.     題安州浮雲寺樓寄湖州張郎中 去夏疎雨餘 同倚朱欄語 當時樓下水 今日到何處 恨如春草多 事與孤鴻去 楚岸柳何窮 別愁紛若絮 장낭중에게 부치는 노래 지난 여름 비개인 어느날 난간에 기대어 서로 이야기하던 우리 그날 다락 아래 흘러가던 물 시방은 어디메쯤 흘러갔으리 가실줄 모르는 상채긴 사뭇 봄 풀처럼 우거지고 생각하면지난 일 기러기처럼 모두 날아가 강가에 버들 멀리 늘어섰는데 애달퍼라 그대 생각하는 이 시름이여.     經闔閭城 遺蹤委衰草 行客思悠悠 昔日人何處 終年水自流 孤烟村戌遠 亂雨海門秋 吟罷獨歸去 風雲盡慘愁 합려성을 떠나며 옛 성터에 풀은 시들어 지나는 나그네 애달퍼라     나의 사람아 그대 지금 어딘가 강물만 소리 없이 흘러 가누나     수자리에 연기만 멀리 흐르고 해문에 흩뿌리는 가을비 어지러워......     노래도 끝난 뒤 혼자 돌아가노라면 하늘에도 시름은 사무치는듯......     別離 多情却似總無情 唯覺樽前笑不成 蠟燭有心還惜別 替入垂淚到天明 별리 다정도 병인양하여 그리운 정을 잔들고 바라봐도 웃음은 걷고 이별은 촛불도 서러운 탓에 기나긴 밤 저렇게 울어 새우지........     泊秦淮 煙籠寒水月籠沙 夜泊秦淮近酒歌 商女不知亡國恨 隔江猶唱後庭花 진회에서 연기도 달빛도 모두다 자욱한데 밤 들자 진회 가까운 주막에 드니 장사치 계집애는 나라 망한 한을 몰라 강을 건너 시방도 후정화를 부른다.     淸明 淸明時節雨紛紛 路上行人欲斷魂 借問酒家何處有 牧童遙指杏花村 청명 청명절 비가 마구 쏟아져 길가는 사람도 넋을 잃었다 주막은 어디멘가 목동에게 물으니 멀리 가리키는 살구꽃 핀 마을.     위 장 韋 莊 (?-910) 五代 前蜀의 詩人. 字는 端己, 섬서성 長安 杜陵에서 났다. 黃 巢의 난리에 서울 장안에서 전란의 참혹한 꼴을 보고, 이듬해 낙양으로, 다시 강남으로 피난을 가, 여기서 10년 동안 불우한 생애를 술과 여자로 달래다가,893년 서울로 돌아가 이듬해 진사에 급제, 校書郞에 임명되었다. 900년 경에 蜀에들어가 정치․문학에 전념 907년 吏部尙書平章政事가 되었다가, 910년 城都에서 죽었다. 강남에 있을 때의 작품은 대개 환락․퇴폐․自嘲의 심정을 노래한 낭만적인 것이 많다. 시집에 10권이 있다.     白牧丹 閨中莫妬新粧婦 陌上須慙傳粉郎 昨夜月明深似水 入門唯覺一庭香 백모란 백모란엔 규중 여인도 시새워하리 풍류랑도 또한 부끄러울 것을 지난 밤 달은 물같이도 밝아 뜰에 들자 선뜻 오는 그윽한 향기.     春日晏起 近來中酒起常遲 臥見南山改舊詩 開戶日高春寂寂 數聲啼鳥上花枝 봄 아침 연달아 마시는 술이 몸에 배어 진정 일어나기 싫어라 자리에 누운채 남산을 바라보며 묵은 시를 뒤저기노니 문 열자 해는 높아 봄날은 적적하고 멀리 들려 오는 새소리 더욱 고요하여라.     古別離 晴煙漠漠柳毿毿 不那離情酒半酣 更把玉鞭雲外指 斷腸春色在江南 별리 막막한 연기 새로 버들가지 휘날린다 떠나는 정 어쩌지 못하여 반남아 술에 취해 옥 채찍 다시들고 구름 밖을 가리키니 애끊는 봄빛도 강남으로 강남으로.     東陽酒歌贈別 天涯方歎異鄕身 又向天涯別古人 明日五更孤居月 醉醒何處各沾衣 나그네 떠도는 나그네 그대 마저 여의고 내일 밤 새벽 달을 어디서 보리.     金陵圖 江雨霏霏江草齊 六朝如夢鳥空啼 無情最是臺城柳 依舊烟籠十里堤 봄 보슬비에 강도 풀도 모두 젖는데 지난 날은 꿈이런지 새만 우짖어 무심한 봄에도 버들은 늘어져 십리 긴 뚝에 연기처럼 푸르구나.     잠 삼 岑 參 (?-?) 南陽사람.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가난한 중에서도 학문을 힘써, 唐詩의 극성 시기에 활약한 詩人중의 한 사람이 되었다. 代宗때 嘉州刺史를 지내고, 幕職使로 있다가 파면되어 蜀으로 귀양가 거기서 돌아오지 못하고 죽었다. 그의 시는 말과 뜻이 淸切하여 뛰어난 걸작이 많은데, 한편이 나올 때마다 사람들이 다투어 베꼈다고 한다. 시집 8권이 있다.     見渭水思秦川 渭水東流去 何時到雍州 憑添兩行淚 寄向故園流 애가 위수는 동녘으로 흘러가는데 언제 옹주를 찾아간단 말이냐 덧없이 지는 애 눈물을 실어 고향엘 찾아가는 물결에 부치리.     磧中作 走馬西來欲到天 辭家見月兩回圓 今夜不知何處宿 平沙萬里絶入煙 사주에서 달리는 말 서녘으로 하늘도 아득한데 떠나와 달은 두번 다시 차고 이울어도 오늘 밤 잠자리는 찾을 길도 없구나 인적도 없는데 연기조차 끊쳤어.....     斷章 海暗三山雨 花明五嶺春 단장 삼산에 오는 비 바다를 가렸는데 봄이라 영 위엔 꽃도 밝구나.     蜀葵花 昨日一花開 今日一花開 今日花正好 昨日花已老 촉규화 어제도 꽃피더니 오늘도 꽃이 피네 오늘 핀 꽃 애틋한데 어제 핀 꽃 이울었어.......     行軍九日思長安故園 强欲登高去 無人送酒來 遙憐故園菊 應傍戰場開 중양에서 산에 오르리 높은 산에 오르리 술 보내 올 친구도 없는 것을...... 생각은 먼 고향 국화에 부치노라 비오듯 살은 가도 꽃은 피었으리.     한 악 韓 偓 (?-?) 9세기경 詩人. 字는 致光, 섬서성 長安에서 났다. 889년 進士가 되고 昭宗때 兵部侍郞.翰林學士를 역임했다. 뒤에 朱全忠에 반대하여 좌천당했다가, 905년 복직의 허락이 있었으나 入朝하지 않고 남쪽으로 갔다. 閨房 婦女의 媚態와 戀情을 주제로한 妖艶한 작품이 많다. 시집에 3권이 있다. 그의 작품과 같은 시를 香奩體라고 하는 것은 이 詩集의 이름에서 나온 말이다.     效崔國輔體 雨後碧苔院 霜來紅葉樓 間階上斜日 鸚鵡伴人愁 비 뒤에 비 걷자 이끼 더욱 짙푸르고 서리철 단풍이 한결 붉어라 층층계엔 누엿누엿 해가 저물고 잔시름 알아채는 앵무로구나.     效崔國輔體 羅幕生春寒 繡窓愁未眠 南湖夜來雨 應濕採蓮船 밤비 엷은 창창으론 추운 봄이여라 창 아래 시름겨워 잠 못 이루는데 남호에 밤비가 촐촐히 내려 연 따는 배에도 후줄그니 젖으리.     效崔國輔體 澹月照中庭 海棠花自落 獨立俯閑階 風動鞦韆索 달밤에 푸른 달빛 뜰에 들어 해당화는 소리 없이 지고 홀로 층층계에 서성거리니 가는 바람에 그네줄 흔들린다.     장약허 張 若虛 (?-?) 唐나라 초기의 詩人. 楊州사람으로, 연주의 兵曹가 되어 賀知章․張 旭․包 融 등과 吳中의 四士라 일컬었는데, 이에는 이설이 있다. 시집도 전해 오는 것이 없고, 다만 가 그의 작품으로 알려진 유일한 것이다.     春江花月夜 春江潮水連海平 海上明月共潮生 艶艶隨波千萬里 何處春江無月明 江流宛轉遶芳甸 月照花村皆似霰 空裏流霜不覺飛 汀上白沙看不見 江天一色無纖塵 皎皎空中孤月輪 江畔何人初見月 江月何年初照人 人生代代無窮已 江月年年望相似 不知江月照何人 但見長江送流水 白雲一片去悠悠 靑楓浦上不勝愁 誰家今夜扁舟子 何處相思明月樓 可憐樓上月徘徊 應照離人粧鏡臺 玉戶簾中卷不去 擣衣砧上拂還來 此時相望不相聞 願隧月花謝照君 鴻雁長飛光子度 魚龍潛躍水成文 昨夜閑潭夢落花 可憐春半不還家 江水流春去欲盡 江潭落月復西斜 斜月沈沈藏海霧 碣不瀟箱無限路 不知乘月幾人歸 落月搖情滿江樹 달노래 강물은 사뭇 먼 바다에 연닿아 아득하고 바다 위엔 달이 밝아 물결도 눈부시다     굽이굽이 물결은 천만리로다 어디멘들 강물에 이 달빛 흐르리     강물은 흘러흘러 푸른들 돌고 꽃수풀 우거진데 달빛은 눈과 같아     소리 없이 오는 서리 알길 바이 없고 강가에 흰 모래도 보이지 않아     하늘도 강도 분간할 길 없는데 달빛만 외로이 휘영청 흘러라     강기슭에 저 달을 누가 먼저 보았으리 저 달이 처음으로 언제 사람을 비쳤으니     끊칠줄 모르고 이어사는 인생이거니 해마다 강에 비치는 달과 다르리     알길없어라 저 달은 누굴 비치는가 다만 흐르는 물 보내는 아득한 강인데     흰구름 소리없이 흘러가고 이 포구에 잔시름 이길길 없구나     그 뉘가 이 밤을 배에서 새우는가 어디메 다락엔 달 보고 애끊니니     설어라 다락엔 달빛만 흘러들고 그대의 거울을 소리없이 비치리니     발을 말아도 달빛은 흘러 오고 쫓아도 찾아와선 다드밋돌에 들어     서로 바라봐도 아무런 기척 없고 달 따라 그대 있는 곳 비치어 지고     기러기 길게 날아 달빛을 가리는가 물고기도 이 밤엔 유난히 뛰는구나     그리운 그대여 난 지는 꽃을 꿈꾸며 반남아 봄은 가도 갈길은 몰라     강물도 봄을 싣고 흘러 가는데 소리 없이 지는 달도 서녘에 기울어     달 기울자 바다는 안개에 싸여 남북으로 한없이 아득한 길     저 달 따라 몇몇이 고향엘 갔는가 지는 달만 강가의 숲을 적시네.     유장경 劉 長卿 (?-?) 세기말의 詩人. 字는 文房, 하북성 河間에서 났다. 733년에 進士, 玄宗 至德 연간에 監察御史가 되었다가, 상관과의 사이가 나빠, 지방으로 좌천, 벼슬이 隨州刺史로 그쳤다. 王 維의 영향을 받아 五言詩를 잘 지었으며, 시집에 10권이 있다.     重送裴郞中貶吉州 猿啼客散暮江頭 人自傷心水自流 同作逐臣君更遠 靑山萬里一孤舟 별리 원숭이 울어 예고 손은 떠나고 서러워라 부두에 날은 저문다 사람은 사람이기에 서러워하고 물은 물이기에 흘러가는 게지 그대와 더불어 쫓긴 몸인데 더 멀리 떠나는 그대로구나 청산은 아득한 천리 만리여 또다시 뱃길을 언제 가려나.     酬李穆見寄 孤舟相訪至天涯 萬里雲山路更賖 欲掃柴門迎遠客 靑苔黃葉萬貧家 이 목에게 부치는 노래 뱃길도 아득한 먼 하늘 가 그대는 이렇게 찾아왔구려 구름에 첩첩 싸인 머나먼 산길 그대는 이렇게 찾아왔구려 사립문 조촐히 쓸고 또 닦아 멀리 온 그대를 맞아들이리 가난이 무르녹는 나의 집이라 푸른 이끼 누른 잎을 그대께 뵈리라.     彈琴 冷冷七絃上 靜聽松風寒 古調雖自愛 今人多不彈 탄금 거문고 고요한 소리 일곱 줄을 오가는데 멀리 들려 우는 솔바람 소리 추워라 옛 곡조 내 비록 사랑하지만 지금은 타는 사람 드물어 한이여.     過鄭山人所居 寂寂孤鶯啼杏園 寥寥一犬吠桃源 落花芳草無處尋 萬壑千峰獨閉門 그대 집을 지나며 외로운 꾀꼬리 살구꽃 새에 울고 복사꽃 핀 골엔 개가 짖는다 꽃입파리 바람에 흩날리는데 깊은 산 외론 집엔 문도 닫혔어.     逢雪宿芙蓉山 日暮蒼山遠 天寒白屋貧 柴門聞犬吠 風雪夜歸人 눈 오는 밤 저문 날 푸른 산 더욱 멀고 하늘도 추운데 뼈저린 가난이여 사립문 밖엔 개 짖는 소리 눈보라 속에 누가 오는가.     유우석 劉 禹錫 (772-842) 字는 夢得, 代宗 大曆 7년 강소성 中山에서 났다. 貞元 9년에 進士, 監察御史가 되었다. 806년 憲宗이 즉위, 후에 連州刺史로 좌천, 다시 朗州로 밀려났다. 이 때 10여편을 읊었다. 그는 다시 播.連.和.蘇.汝등의 여러 주로 전전하기를 10년, 소환되어 太子賓客이 되고, 뒤에 檢校禮部尙書가 되었는데, 오래지 않아 병으로 죽었다. 白居易와 친히 사귀었고, 五言詩에 능하여 그의 작품의 3분의 2를 차지한다. 그의 시풍은 민요풍의 소박한 스타일을 지니고 있다. 또 南蠻 땅의 풍토를 주제로한 것이 많이 있어, 당시중 특이한 작품이라고 한다. 시문집에 30권, 10권이 있다.     烏衣巷 朱雀橋邊野草花 烏衣巷口夕陽斜 舊時王謝堂前燕 飛入尋常百姓家 오의항 주작교 변두리에 들꽃이 피고 옛 거리에 지는 해 비꼈어라 옛날에 날아들던 제비떼들은 시방은 농부의 집을 오락가락하누나.     浪淘沙詞 鸚鵡洲頭浪颭沙 靑樓春望日將斜 銜泥燕子爭歸舍 獨自狂夫不憶家 낭도사사 앵무주 기슭엔 모래 씻는 물소리 임 계신 곳 바라보니 해는 이미 기울고 제비도 흙물고 자꾸 돌아가는데 그대는 오늘도 집이나 생각는가.     秋風引 何處秋風至 蕭蕭送雁群 朝來入庭樹 孤客最先聞 가을 바람 어디서 불어 오는 가을 바람이기에 소소히 기러기뗄 보내 오는가 바람은 뜰에 들어 나무잎 흔들린다 혼자서 들어 예는 나그네 마음.     秋思 自古逢秋悲寂寥 我言秋日勝春朝 空晴一鶴排雲上 便引詩情到碧宵 가을날 가을은 서럽다 일러 오지만 나는 봄도곤 가을이 좋아 학은 구름을 헤치고 날아 가는데 생각도 푸른 하늘 멀리 흐르네.     가 도 賈 島 (777-841) 字는 浪仙, 范陽사람. 처음에 중이 되어 號를 無本이라 하고 법건사에 있었는데, 뒤에 京兆尹 韓 愈에게 그 시재를 인정받고 환속하여 변변찮은 벼슬자리에 앉았다. 일찌기 의 句를 얻어, 推자로 할 것인지 敲자로 할 것인가를 결정하지 못해 몹시 애를 먹었다는 일화가 있고, 그래서 지금도 시문을 다듬는 것을 推敲라고 한다. 그는 말하기를 “하루 시를 짓지 않으면 마음이 말라 붙어 낡은 우물과 같이 된다”고 했다. 시집은 10권이 있다.     尋隱者不遇 松下問童子 言師採藥去 只在此山中 雲心不知處 그대를 찾아서 소나무 아래 동자에게 물으면 스승은 약을 캐러 갔노라고 다만 이 산중에 있으련만 골마다 구름이라 알길 없구나.     三月晦日贈劉評事 三月正當三十日 風光別我苦吟身 共君今夜不須睡 未到曉鍾猶是春 전춘사(餞春詞) 봄도 막가는 삼월 그믐인데 계절은 저만 가고 나만 남긴다 그러면 그대여 이 하룻밤을 뜬채 새면서 이야기 다하리 새벽 종 그윽히 들리기 전엔 우리는 그대로 봄에 사는 몸이여.     度桑乾 客舍幷州已十霜 歸心日夜憶咸陽 無端更渡桑乾水 郤望幷州是故鄕 고향으로 십년을 병주 땅에 외론 손되어 날마다 고향을 생각하였노라 상건강 건너와 바라보니 병주가 흡사히 내 고향 같구나.     고 적 高 適 (?-765) 字는 達夫, 하북성 滄州에서 났다. 玄宗때 과거에 급제, 肅宗때 諫議大夫에 발탁되어 거리낌 없이 바른 말을 했다. 50살 때 비로소 詩文에 힘썼다. 762년 西川 節度使가 되어 蜀에서 吐蕃을 막고, 左散騎常侍등을 지냈다. 많이 종군하여 그의 시는 변방의 풍경이며 전쟁에서 취재한 것이 많은데, 웅장 호방하여 王 維.孟浩然등과 어깨를 겨루었다. 8권이 있다.     夜別韋司士 高館張燈酒復淸 夜鍾殘月雁歸聲 只言啼鳥堪求侶 無那春風欲送行 黃河曲裏沙爲岸 白馬津邊柳向城 莫怨他鄕暫離別 知君到處有逢迎 야별 등불 밝은 곳에 술빛 더욱 맑고 종소리 들리는데 달 아래 가는 기러기 새는 짝 찾아 울러 밤을 새우는가 어찌하리 봄바람 따라 헤치는 이 심정 황하 굽은 골에 모래 씻는 물 소리 백마진 강변에는 버들만 우거졌다 원망하지 말아다오 잠시 나뉘는 것을 그대 가는 데마다 반가이 맞아 주리.     田家春望 出門無所見 春色滿平蕪 可歎無知己 高陽一酒徒 봄에 문을 나서봐도 바라볼 것 없는데 봄빛만 제 홀로 무르녹아라 찾아볼 친구조차 나는 없는가 주도라 일컬어도 서럽진 않아.     除夜作 旅館寒燈獨不眠 客心何事轉凄然 故鄕今夜思千里 霜鬢明朝又一年 제야 여관 찬 등 아래 잠 이룰길 없어 어쩌자고 마음은 이리도 설레는가 고향을 생각하면 아득한 천리 센 머리 이밤 새면 또 한해 가는구나.     別董大 十里黃雲白日矄 北風吹雁雪紛紛 莫愁前路無知己 天下誰人不識君 그대를 보내며 십리를 뻗힌 구름 햇볕을 가렸는데 기러기 몰고 가는 북풍에 눈은 내려 서러워 말아라 그대의 가는 길을 천하에 그대를 누가 모르리.     위응물 韋 應物 (?-?) 8세기말의 詩人. 섬서성 長安에서 났다. 756년 玄宗을 섬겨 京兆의 功曹가 되고, 여러 벼슬을 거쳐 德宗 때 蘇州刺史가 되었다가 文宗 때 죽었다. 白居易가 그의 詩를 評하여, 高雅閑淡의 독특한 품격이 있다고 했다. 오언시가 많다. 시집에 10권이 있다.     酬柳郎中春日歸楊州南國見別之作 廣陵三月花正開 花裏逢君醉一廻 南北相過殊不遠 暮潮歸去早潮來 양주로 보내며 삼월 광릉엔 꽃이 한창인데 꽃 속에 만나서 취토록 마시고파 남북으로 떠난들 먼길은 아니여 쓰고 드는 물 따라 오고 갈수 있거니.     聞雁 故園渺何處 歸思方悠哉 淮南秋雨夜 高齊聞雁來 문안 고향은 아득하다 어디메던가 떠도는 길손의 서글픈 심사 회남 가을밤에 비가 듣는데 멀리 지나가는 기러기 소리.     秋夜寄丘二十二員外 懷君屬秋夜 散步咏凉天 山空松子落 幽人應未眠 가을밤 가을도 밤이라 그리운 그대 거닐다 바라보면 머언 밤 하늘 솔방울 떨어져 밤은 한결 고요한데 이 밤을 그댄들 잠을 이루리......     幽居 貴賤雖異等 出門皆有營 獨無外物牽 遂此幽居情 微雨夜來過 不知春草生 靑山忽已曙 鳥雀繞舍鳴 時與道人偶 或隨樵者行 自當安蹇劣 誰爲薄世榮 유거 귀하고 천한게 모두 다르지만 문밖에 나서면 제각기 일이 있어     홀로 명리에 끌리지 않아 끝내 한가히 사는 정 기른다     밤새 보슬보슬 내리는 비에 풀은 얼마나 길어 났는가     청산엔 아침 햇볕 비꼈는데 새들은 집을 싸고 울어 예누나     때로는 도사와 만나기도 하고 때로는 초부를 따라도 가고     이렇게 사는 것이 즐거운 것을 뉘라서 세상영화 엷다 하더뇨.     이상은 李 商隱 (813-858) 당나라 말기의 詩人. 字는 義山, 하남성 沁陽에서 났다. 25살 때 進士, 누진하여 儉校工部郎中에 이르렀는데, 宣宗 大中 12년에 죽었다. 그의 작품은 抒情的인 詩가 많고, 修辭를 중히 여겨, 精密하고 華麗하다. 唐나라 말기와 五代를 통하여 그의 시는 크게 유행했는 데, 세상에서 西崑體라 일컬었다. 저서에 과 3권이 있다.     嫦娥 雲母屛風燭影深 長河漸落曉星沈 단장 운모 병풍에 촛불 그림자 그윽하고 긴 강에 새벽 별 소리 없이 숨는다.     夜雨寄北 君問歸期未有期 巴山夜雨漲秋池 何當共翦西牕燭 郤話巴山夜雨時 밤비에 부쳐 그대 돌아올 길 기약하기 어려워라 파산에 오는 밤비 가을 못을 넘는고야 어느 때 그대와 함께 창 아래 촛불 돋구려 파산에 밤비 오던 때를 서로 이야기하리.     早起 風露澹淸晨 簾間獨起人 鶯花啼又笑 畢竟是誰春 이른 봄 찬 이슬 바람 이는 이른 봄 아침 발새에 혼자서 일어나 보면 꽃 피고 꾀꼬리도 울어 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내 봄은 아니어.     왕지환 王 之渙 (?-?) 8세기 唐나라 詩人. 산서성 太原에서 났다. 高 適.王昌齡등과 함께 이름을 날렸다. 지금 남아 있는 것은 6수뿐인데, 모두가 絶句이고, 그중에서 가 특히 유명하다.     送別 楊柳東風樹 靑靑夾御河 近來攀折苦 因爲別離多 송별 버들은 휘늘어져 바람에 나부끼고 파릇파릇 실개천 덮었는데 이즈음엔 손 들어 가지도 꺽을수 없어 그렇게 오가는 이별도 잦았던가.     登鸛鵲樓 白日依山盡 黃河入海流 欲窮千里目 更上一層樓 관작루에서 산을 의지하고 해는 길이 바쁜데 황하는 아득한 바다로 숨어 멀리 바라보고싶은 덧없는 마음에 또 다시 층층계를 올라가노니.     凉州詞 黃河遠上白雲間 一片孤城萬仞山 羌笛何須怨楊柳 春光不度玉門關 양주사 황하는 멀리 구름 밖에 흐르고 성 밖엔 밋밋한 산이 솟았네 피리는 원한의 양류곡이로고 봄빛도 옥문관은 못 넘나봐.     왕 발 王 勃 (647-675) 唐나라 초기의 詩人. 字는 子安, 어려서부터 글을 잘하여 뽑혀서 朝散郞이 되었다. 당시 유행하는 鬪鷄를 쓴 글로 高宗의 노여움을 사서 劍南으로 좌천되었다가, 뒤에 파면당했다. 交趾에 있는 아버지에게 가다가 배에서 떨어져 물에 빠져 죽었다. 유명한 는 이 여행 중에 鍾陵에서 지은 것이다. 賦詩를 잘하여 唐初 四傑의 한 사람으로 이컬었다. 시집 30권이 있다.     縢王閣 滕王高閣臨江渚 佩玉鳴鸞罷歌舞 畵棟朝飛南浦雲 朱簾暮捲西山雨 閒雲潭影日悠悠 物換星移度幾秋 閣中帝子今何在 檻外長江空自流 등왕각 등왕각 높은 집이 강가에 있어 옥을 굴리며 부르던 노래도 끊쳤구나 단청 고운 기둥 새로 구름이 흘러가고 서산으로 비낀 빗발은 발을 걷고 바라보거니 한가한 구름과 못에 내려앉은 그리매 날은 고요하여 말썽 많은 세월이 몇번이나 흘러갔던가 등왕각 노니던 이 시방은 어디 있으리 난간 너머 아득한 강물만 소리없이 흐르누나. (王 勃의 遺詩)     蜀中九日 九月九日望鄕臺 他席他鄕送客杯 人情已厭南中苦 鴻雁那從北地來 중양에 구월구일에 망향대에 올라 잔 들고 손 보내는 외로운 심정 이제 촉나라엔 머물기도 괴론데 기러긴 어쩌자고 북녘에서 또 오는가.     고청구 高 靑邱 (1335-1374) 이름은 啓, 靑邱는 號다. 강소성 吳縣에서 났다. 1368년에 를 修撰, 戶部侍郞에까지 올랐다. 궁중의 비사를 읊은 일로하여 허리 잘리는 형으로 죽었다. 1,700여수나 되는 그의 시는 청신하고 웅건한데, 18권에 수록되어 있다.     問梅閣 問春何處來 春來在何許 月墮花不信 幽禽自相語 단장 찾아 든 봄 있는 델 알길이 없고 지는 달 말없는가 꽃가지 새만 우짖어.     尋胡隱君 渡水復渡水 看花還看花 春風江上路 不覺到君家 그대를 찾아서 물을 건너고 또다시 물을 건너고 여기 저기 꽃을 보고 가노라면 봄바람도 강을 건너 스쳐 오는데 어느 틈에 그대 집에 다달았구나.     장구령 張 九齡 (673-740) 字는 子壽, 광동성 曲江사람이다. 玄宗을 섬겨 재상에까지 올라서 명망이 높았다. 20권이 있다.     自君之出吳 自君之出吳 不復理殘機 思君如滿月 夜夜減淸輝 그대 떠난 뒤 그대와 나뉜 몸이 베를 짠들 무엇하리 흡사히 보름달 같이 밤마다 빛만 예이느니.     왕 건 王 建 (?-?) 9세기때 詩人. 字는 仲初, 하남성 許昌에서 났다. 775년에 進士, 827년에는 陝州司馬가 되어 변경에 종군했다가 돌아와 韓 愈.張 籍같은 詩人들과 사귀었다. 친척인 宦官으로부터 궁중의 일을 듣고 지은 는 널리 애송되었다. 詩集 10권이 있다.     十五夜望月 中庭地白樹棲鴉 冷露無聲濕桂花 今夜月明人盡望 不知秋思在誰家 십오야망월 달빛 들어 흰뜰인데 까마기 깃들이고 찬 이슬 소리 없이 꽃을 적신다 오늘밤 저 달 보는 이 퍽은 많지만 뉘라서 가을을 생각하는가.     送 人 河亭收酒器 語盡各西東 回首不相見 行軍秋雨中 너를 보내고 술도 다하고 잔을 던지고 이야기도 다하고 훌훌히 갈려 오던 길 되돌아 바라보면 너 실은 차는 가을비 속에 묻혀......     장 설 張 說 ?     蜀道後期 客心爭日月 來往預期程 秋風不相待 先至洛陽城 여정 헤매는 길손 일월과 다투는 뜻은 오고 가는 기약을 하였기 탓이지 그래도 가을 바람 기다리질 않고 날보다 먼저 낙양에 이르었네.     전 기 錢 起 (?-?) 字는 仲子. 玄宗 때 進士가 되어, 벼슬이 考功郎中에 이르렀다. 王 維와 친히 지냈으며, 代宗 大曆年間에 이름 높았던 大曆 十才子의 제 일인자다. 그의 시는 風趣가 풍부했다. 시집 10권이 있다.     歸 雁 瀟湘何事等閑回 水碧沙明兩岸苔 二十五絃彈夜月 不勝淸怨郤飛來 귀안 소상에서 어쩌자고 한가히 돌아올까 푸른 물 흰 모래에 이끼 더욱 푸르다 달 아래 뜯는 거문고 소리 맑은데 그 소리에 못이겨 되돌아오는가.     江行無題 咫尺愁風雨 匡廬不可登 祗疑雲霧窟 猶有六朝僧 강에서 비바람 흩뿌려 여산은 못 오르리 구름 짙은 골에 고승은 사는가.     온정균 溫 庭筠 (?-?) 8세기 중엽의 詩人, 本이름은 岐, 字는 飛卿, 산서성 陽曲에서 났다. 당나라 시인으로서 처음으로 詞에 전심한 사람이다. 그의 작품은 거의 다 散逸했는데, 지금 남아 있는 수십首는 修辭美를 다한 艶麗한 것들이다. 이 있었고, 소설 가 있다.     題分水嶺 溪水無情似有情 入山三日得同行 嶺頭便是分頭處 惜別潺湲一夜聲 분수령에서 무정한 시냇물도 어찌 보면 뜻 있는듯 산에 들어 사흘을 같이 걸었지...... 분수령에 다달아 이별할 때는 서러워 하룻밤내 울며 갑데다.     유종원 柳 宗元 (778-819) 唐宋八大家의 한사람. 字는 子厚, 산서성 永濟에서 났다. 進士에 급제, 803년 監察御史禮部員外郞이 되었다가 남쪽지방으로 좌천, 815년에 柳州刺史에 전임했다. 廣西지방을 방랑하며 많은 기행문을 남겼다. 시문집 45권이 있다.     江雪 千山鳥飛絶 萬徑人蹤滅 孤舟蓑笠翁 獨釣寒江雪 눈 산엔 나는 새 기척도 없고 길엔 지나는 사람도 없는데 어옹은 외론 배에 앉아 눈 속에 낚시를 드리운다.     登柳州峨山 荒山秋日午 獨上意悠悠 如何望鄕處 西北是融州 가을 날 황산 가을날 한낮인데 산엔 아무 기척도 없어 홀로 고향을 생각하노라 서북엔 융주가 있으려니.     황정견 黃 庭堅 (1045-1105) 字는 魯直, 號는 부翁 또는 山谷, 강서성 修水사람이다. 1067년에 進士, 國子監 敎授.國史編修官이 되었다가 1094년 지방으로 좌천, 마지막에는 귀양가 宜州에서 죽었다. 저서 이 있다.     鄂渚南樓書事 回顧山光接水光 凭欄十里芰荷香 淸風明月無人管 倂作南樓一夜凉 다락에서 돌아보니 푸른 산은 물에 연하고 난간에 기대 서니 연꽃 향기 그윽하이 휘영청 밝은 달밤인데 피리 소리도 안들려 드높은 다락에 밤은 그저 시원하여라.     가 지 賈 至 (718-772) 字는 幼隣, 洛陽사람이다. 玄宗때 起居舍人.知制誥를 지냈다. 肅宗이 선위받자. 그는 冊文을 지어 바쳤다. 뒤에 中書舍人이 되었다가 岳州의 司馬로 좌천당했다. 代宗 大曆 7년 (772, 신라 혜공왕 8년) 55살로 죽었다. 시호를 定이라 했다. 시집 10권이 있다.     春思 草色靑靑柳色黃 桃花歷亂李花香 東風不爲吹愁去 春日偏能惹恨長 춘수(春愁) 풀빛 짙은데 버들 더욱 노랗고 복사꽃 난만하고 이화 더욱 향그럽다 동풍은 시름도 불어 갈줄 모르는가 봄날엔 한되는 일 이렇게 많으니......     送李侍郞赴常州 雪晴雲散北風寒 楚水吳山道路難 今日送君須盡醉 明朝相憶路漫漫 노만만(路漫漫) 눈 걷자 흩어지는 구름 바람도 춥다 초나라 오나라는 가는 길도 험하리 그대 보내며 우리 잠시 취해나 보자요 낼 아침 생각해도 길은 아득하리.     西亭春望 日長春暖柳靑靑 北雁歸飛入窅冥 岳陽城上聞吹笛 能使春心滿洞庭 춘망 해 길고 바람 잔데 버들만 푸르러 기러기 돌아가는 먼 북녘 길 악양성 가에 피리 소리 들려 봄 마음 이끌고 동정호로 가누나.     위승경 韋 承慶 (?-?) ?     南行別弟 淡淡長江水 悠悠遠客情 落花相與恨 到地一無聲 별리 담담한 강물 멀리 흐르는데 길손의 심정 비길 데 없어라 낙화도 서러라 바라보는 마음 흩날려도 땅에는 소리도 없이......     江樓 獨酌芳春酒 登樓已半醺 誰驚一行雁 衝斷過江雲 강루 봄날 홀로 마시는 술에 취한채 오르는 높은 누대 어디서 난데없는 기러기 한떼 구름을 가로질러 날아 가누나.     대숙륜 戴 叔倫 (?-?) 당나라 중기의 시인. 字는 幼公, 潤州 사람이다. 德宗때 李希烈이 모반하자, 그는 항주자사로 가 있다가, 뒤에 돌아오는 도중에 갑자기 죽었다. 나이 58, 이 있다.     贈殷亮 日日河邊見水流 傷春未已復悲秋 山中舊宅無人住 來往風塵共白頭 은량에게 부치는 노래 한종일 나는 강기슭에 앉아 한종일 나는 물을 바라보노라 서러운 봄 채 가시우기 전에 애달다 가을이 또 찾아오누나 황량한 고향은 찾을 길도 없는데 옛집엔 사는 이도 없다하더고 풍진에 싸여 사는 몸이라서 모두다 머리칼이 세어 가나베.     湘南卽事 盧橘花開楓葉衰 出門何處望京師 沅湘日夜東流去 不爲愁人住少時 상남에서 비파꽃 피어나는 겨울이 오면 문 밖에 바라보는 먼 서울길 강물은 밤낮 없이 흘러 예어라 나를 위해선 멈출법도 하건만......     夜發袁江寄李穎川劉侍郞 半夜回舟入楚鄕 月明山水共蒼蒼 孤猿更叫秋風裏 不是愁人亦斷腸 가을 밤 배 돌려 야반에 초향에 드니 달 밝아 산과 불 한결 푸르다 가을 바람 속에 잔나비 울어 시름 없는 사람도 애를 끊나니.     이 섭 李 涉 ?     宿武關 遠別秦城萬里游 亂山高下入商州 關門不鎖寒溪水 一夜潺湲送客愁 무관에 들어 고향을 멀리 떠나 만리 길이라 산은 한이 없이 가는 길을 막는구나 관문을 흘러가는 추운 물소리 밤 새어 시름 싣고 흘러가누나.     형 숙 荊 叔 ?     題慈恩塔 漢國山河在 秦陵草樹深 暮雲千里色 無處不傷心 자은탑에 제하여 산천은 한나라 의연하고 진나라 능엔 풀만 우거져 저문날 천리나 먼 구름 보면 상채기 많은 마음 둘 곳이 없어......     낭사원 郎 士元 (?-?) 字는 君冑, 정주 中山 사람. 玄宗의 天寶 15년(756) 進士, 京畿選官에 뽑히고, 渭南尉. 拾遺를 거쳐 영주자사가 되었다. 그의 시는 淸幽秀澹, 한아한 맛이 넘친다. 문집이 있다.     送麴司直 曙雪蒼蒼兼曙雲 朔風燕雁不堪聞 貧交此別無他贈 惟有靑山遠送客 국사직을 보내고 새벽 눈도 추워라 구름도 추워 삭풍에 기러기 소리 마음 설렌다 가난도 몸에 젖어 서러운 이별 푸른 산 푸른 산이 그댈 보내네.     장 욱 張 旭 ?     山中留客 山光物態弄春暉 莫爲輕陰便擬歸 縱使晴明無雨色 入雲深處亦沾衣 청명 산도 눈부시게 빛나는 봄인데 구름을 핑게 삼아 흐렸다 가지마오 청명에 무슨 비가 오기야 하리만 구름도 깊은 곳엔 옷깃을 적신다오.     상 건 常 健 ?     破山寺後禪院 淸晨入古寺 初日照高林 曲徑通幽處 禪房花木深 山光悅鳥性 潭影空人心 萬籟此俱寂 惟聞鍾磐音 선원 새벽녘에 옛절에 들어서니 뜨는 해는 먼 숲 실가지에 빛나고 굽어든 오솔길을 걸어 들며는 선방에 꽃나무만 우거져 파란 산빛은 새도 좋아하는가 푸른 소에 그리매 마음도 가라앉어라 누리는 죽은듯 고요한데 먼 종소리 그윽히 들려 온다.     옹유지 雍 裕之 ?     宮人斜 幾多紅粉委黃泥 野鳥如加又似啼 應有春魂化爲燕 年年飛入未央棲 궁인의 무덤터 연지 곤지 단장하던 궁녀의 무덤터에 새 소리 노래하듯 또 울어 예듯 그대들 혼이 있어 제비라도 되었다면 길 익은 미앙궁을 해마다 찾아 오리.     황보염 皇甫 苒 ?     送魏十六還蘇州 秋夜沈沈此送君 陰蟲切切不堪聞 歸舟明日毘陵道 回首姑蘇是白雲 그대를 소주로 보내며 그대 보내는 적막한 가을 밤에 풀벌랜 어쩌자고 설리 울어 옐까 돌아가는 배 내일엔 비릉에 닿으리 머리 돌리니 고소산엔 흰 구름 인다.     소강절 邵 康節 ?     淸夜吟 月到天心處 風來水面時 一般淸意味 料得少人知 야곡 눈부시게 달은 밝고 바람은 물 위를 기어 오는데 이렇게 시원한 이 한밤을 뉘라서 알고 즐기오리.     개가운 蓋 嘉運 ?     伊州歌 打起黃鶯兒 莫敎枝上啼 啼時驚妾夢 不得到遼西 단장 가지에 꾀꼬리 울리지 마라 임 찾아 가는 꿈길 행여 깨일라.     왕 주 王 周 ?     宿疎陂驛 秋染棠梨葉半紅 荊州東望草平空 誰知孤宦天涯意 微雨瀟瀟古驛中 소피역에서 아그배 가을 물들어 반남아 붉었구나 형주를 바라보면 풀은 하늘에 닿았는데 천애에 외로이 헤매는 나그네 시름 역에는 가는 비 부슬부슬 자꾸만 내리고.     장 악 張 鄂 ?     九日宴 秋葉風吹黃颯颯 晴雲日照白鱗鱗 歸來得問茱萸女 今日登高醉幾人 구일연 나무잎 바람에 불려 사뭇 누렇게 지고 가을 구름 해에 비껴 비늘처럼 빛난다 물었노라 수유 꽃은 여인이 돌아오기에 “오늘은 산에 올라 누구누구 취했던가”.     사마 예 司馬 禮 ?     宮怨 柳色參差掩畵樓 曉鶯啼送滿宮愁 年年花落無人見 空逐春泉出御溝 궁원 버들은 서로 얽혀 다락을 덮고 꾀꼬리 울어 옛 궁엔 시름만 가득하다 철 따라 꽃은 피고 져도 보는 이 없고 샘물은 무심히 뜰을 흘러 넘는다.     두 공 竇 鞏 ?     南遊感興 傷心欲問前朝事 惟見江流去不回 日暮東風春草綠 鷓鴣飛上越王臺 애가 서럽다 지난 일 묻자 했더니 흘러서 올길 없는 강물이구나 해 지자 이는 바람 풀만 푸르러 자고새만 월왕대를 넘나드누나.     우무릉 于 武陵 ?     勸酒 勸君金屈巵 滿酌不須辭 花發多風雨 人生足別離 권주 그대여 이 잔을 들으라 가득 부었다 사양치 마소 꽃 피자 비바람 더욱 많거니 우리 별린들 서럽다 하리.     유 상 劉 商 ?     送王永 君去春山誰共遊 鳥啼花落水空流 如今送別臨溪水 他日相思來水頭 왕영을 보내며 그대 가고보면 누구와 이 봄을 지내오리 새 울고 꽃도 이룰고 물만 흐르는데 그대 시방 보내는 이 시냇물 가를 오는날 생각하면 찾아올 밖에.     구 위 丘 爲 ?     左掖梨花 冷艶全欺雪 餘香乍入衣 春風且莫定 吹向玉階飛 이화 써늘한게 흡사 눈과 같구나 향기는 사뭇 옷깃에 들어와 봄바람도 그렇게 정처 없는지 불어다간 자꾸 섬돌로 날리네.     최혜동 崔 惠童 ?     秦和宴城東莊 眼看春色如流水 今日殘花昨日開 단장 그대 눈망울에 비치는 봄빛 흐르는 물과 같으이 오늘 남아 있는 꽃은 분명 어제 피었으리.     진 우 陳 祐 ?     雜詩 無定河邊暮笛聲 赫連臺畔旅人情 函關歸路千餘里 一夕秋風白髮生 잡시 무정하 강변에 피리 소리 들려 오고 혁련대 기슭을 거니는 나그네 합곡관 돌아오는 길 천리도 더 되어 하룻밤 갈바람에도 머리칼 센다.     두순학 杜 荀鶴 ?     春窓怨 風暖鳥聲碎 日高花影重 춘창원 화창한 날 바람결에 새소리 부서지고 드높은 햇볕 아래 꽃 그리매 두터웁다.     장경충 張 敬忠 ?     邊詞 五原春色舊來遲 二月垂楊未掛絲 卽今河畔氷開日 正是長安花落時 변사 오원 변방엔 봄철도 늦어 이월이 다 가도 버들움 안 터지고 인제사 강에는 얼음 풀리는 소리 장안엔 시방 꽃도 떨어질 것을.     한 굉 韓 翃 ?     宿石邑山中 浮雲不共此山齊 山靄蒼蒼望轉迷 曉月暫飛千樹裏 秋河隔在數峰西 석읍산속에서 구름도 산이 높아 못 올라오는가 아지랑이 사이로 바라보노니 새벽달 나는듯 나무 새에 숨고 은하도 봉을 건너 멀리 흐른다.     장 계 張 繼 (?-?) 字는 懿孫, 연주사람. 天寶 12년 進士에 급제, 代宗 大曆말에 檢校戶部員外郞이 되었다. 시집 1권이 있다.     楓橋夜泊 月落烏啼霜滿天 江楓漁火對水眠 姑蘇城外寒山寺 夜半鍾聲到客船 풍교에서 달 지자 가마귀 울어 서리 찬 하늘 신나무 사이 사이 어화가 졸아 고소성 밖 한산사에선 종소리 은은히 배까지 들린다.     저광희 儲 光羲 ?     江南曲 日暮長江裏 相邀歸渡頭 落花如有意 來去逐船流 강남곡 해는 저물어 강 밖에 저물어 데불고 돌아오는 이 부두에 지는 꽃잎에도 뜻은 있는가 오거니 가거니 배는 물을 따라서......     최 호 崔 顥 ?     黃鶴樓 昔人已乘黃鶴去 此地空餘黃鶴樓 黃鶴一去不復返 白雲千載空悠悠 晴川歷歷漢陽樹 芳草萋萋鸚鵡州 日暮鄕關何處是 煙波江下使人愁 수 (愁) 그댄 흰구름과 더불어 떠나고 여기 다못 황학루가 남아 있구나 학은 떠나 돌아올 길 바이 없어라 흰구름 천겹 쌓여 하늘만 드높은데...... 한양엔 나무만 길남아 솟고 앵무주엔 봄풀만 우거졌거니 해 지자 이 심사 어디다 돌리리 연기 낀 먼 강엔 시름만 부른다.     장 호 張 祜 ?     胡渭州 亭亭孤月照行舟 寂寂長江萬里流 鄕國不知何處是 雲山漫漫使人愁 산만만(山漫漫) 외로운 달 휘영청 가는 밸 비쳐 강물만 요요히 만리를 흐른다 고향 가는 길은 어딘지도 몰라라 구름만 산을 덮어 시름 자아낸다.     설 영 薛 瑩 ?     秋日湖上 落日五湖遊 煙波處處愁 浮沈千古事 誰與問東流 가을날 오호에 해는 지고 저녁 연기 떠 오른다 천고 옛 일은 누구에게 물어보리.     진자앙 陳 子昻 (?-?) 學者요 詩人. 字는 白玉, 사천성 梓州사람. 대대로 집안이 부유했다. 進士에 뽑혔을 때, 高宗의 임종에 글을 올려 시사를 논했다. 側天武后에게 쓰이어 右拾遺가 되었는데, 마침 武攸宜가 거란을 정벌하게되자, 그 書記가 되어 文翰을 맡아 보았다. 뒤에 아버지의 喪을 당해 고향으로 돌아왔다가, 현령이 되어 그의 재산을 탐낸 誣告를 당하여 옥에 갇혀 죽었다. 나이 43이었다. 唐나라 文章의 興隆이 陳子昻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 있다.     春夜別友人 銀燭吐靑煙 金尊對綺筵 離堂思琴瑟 別路繞山川 明月隱高樹 長河沒曉天 悠悠洛陽去 此會在何年 그대 보내는 밤 촛불은 은빛으로 사뭇 타는 이 밤에 우리 술이나 한잔 마셔 보자요 떠나는 마당에 거문곤들 못 타오리까 그댄 저 산을 넘고 또 강을 돌아가느니 어쩌자고 나무는 달을 가린 것일까 강물도 소리 없이 하늘 밖에 숨었는데...... 이런 밤을 다시 언제 가져 보리까.     登幽州臺歌 前不見古人 後不見來者 念天地之悠悠 獨愴然而涕下 애가 바라보아도 떠난 이 없고 돌아보아도 오는 이 없고 천지는 태고처럼 하냥 조용한데 혼자 서성거리며 눈물지느니.     여 온 呂 溫 ?     鞏路感懷 馬嘶白日暮 劒鳴秋氣來 我心渺無際 河上空徘徊 강가에서 말 울자 해지고 칼 소린 가을을 머금어 내 마음 둘 곳 없어 강가를 거닌다.     조 영 祖 詠 ?     終南望餘雪 終南陰嶺秀 積雪浮雲端 林表明霽色 城中增暮寒 여설 밋밋하게 보이는 종남산 봉우리 쌓인 눈이 구름 끝에 더욱 빛난다 숲 너머 개인 날이 밝기도 하여라 해 지자 성중은 자꾸만 추워지고......     이 목 李 穆 ?     發桐廬寄劉員外 處處雲山無盡時 桐廬南望更參差 舟人莫道新安近 欲上潺湲行自遲 동려에서 유원외님께 가는 곳마다 산엔 구름 끊일길 없고 동려서 바라보니 더욱 밋밋하구나 사공아 신안이 가까왔다 이르지 마소 잔잔한 물길 따라 서서히 가려니.     태상은자 太上隱者 ?     答人 偶來松樹下 高枕石頭眠 山中無曆日 寒盡不知年 한진(寒盡) 때로 이 늙은 소나무 아래에 돌을 벤채 잠을 이루기도 하였더니라 도시 산중에 묻힌 몸이라 봄이 와도 해가신 줄을 몰랐어...... 이 화 李 華 ?     春行寄與 宜陽城下草萋萋 澗水東流復向西 芳樹無人花自落 春山一路鳥空啼 봄 의양성 아래 풀만 우거지고 흐르는 물 동으로 또 서으로 숲은 적막한데 꽃만 떨어져 봄 산에 새 소리 자지러지게 들린다.     장 조 張 潮 ?     江南行 茨菰葉爛別西灣 連子花開不未還 妾夢不離江上水 人傳郎在鳳凰山 강남행 자고 잎새 단풍들 무렵 서녘 항구에 이별한 그대 연꽃이 시방 한창인데 돌아올 길 바이 없구나 설어라 가엾은 이내 심사 꿈은 언제나 그 강물에 흘러 잊으랴 잊을길 없는 나의 사람아 봉황산에 산다니 언제 만나리.     허 혼 許 渾 ?     秋思 高歌一曲掩明鏡 昨日少年今白頭 단장 한 곡조 소리 높여 거울을 바라보니 소년은 간데 없고 흰 머리 나부낀다.     謝亭送別 勞歌一曲解行舟 紅葉靑山水急流 日暮酒醒人已遠 滿天風雨下西樓 별리곡 노래 한가락에 배는 떠나고 단풍이 타는 산엔 물 소리 급하다 해 지고 술 깨고 그대는 멀리 가고 비바람 가득한데 다락을 내려온다.     양사악 羊 士諤 ?     登樓 槐柳蕭疎繞郡城 夜添山雨作江聲 秋風南陌無車馬 獨上高樓故國情 누대에서 성근 버드나무 성을 둘렀는데 밤비에 물이 불어 강소리 높다 가을 바람 부는 거리엔 차마도 없고 나는 홀로 누대에 올라 고향을 바라본다.     郡中卽事 紅衣落盡暗香殘 葉上秋光白露寒 越女含情已無限 莫敎長袖倚欄干 즉흥 연꽃 이울고 그윽한 향기만 남아 잎 위에 가을빛 흰 이슬이 차다 월녀의 품은 정 한이 없으니 행여나 긴 소맬 난간에 스치리.     고 황 顧 況 ?     湖中 靑草湖邊日色低 黃茅瘴裏鷓鴣啼 丈夫飄蕩今如此 一曲長歌楚水西 호반에서 청초호반에 날이 저물어 풀섶엔 자고새 설리도 운다 장부의 뜬 마음 둘 곳도 없어 한 곡조 길게 빼어 노래부른다.     聽角思歸 故園黃葉滿靑苔 夢後城頭曉角哀 此夜斷腸人不見 起行殘月影徘徊     단장곡 고원에 누른 잎 푸른 이끼 덮는다 꿈 깨니 성 가엔 효각 소리 서럽고 이 밤사 말고 애끊는 이도 안보여 기우는 달 아래 홀로 서성거린다.     정 곡 鄭 谷 ?     經賈島墓 水遶荒墳縣路斜 耕人訝我久咨嗟 重來兼恐無尋處 落日風吹鼓子花 가도의 무덤을 찾아 무덤엔 물이 둘러 길이 더욱 아득한데 흐느껴 우는 나를 밭갈던 이 바라본다 다시 찾아 오는 뒷날 무덤이나 남았을까 누엿누엿 해는 지고 고자화에 바람인다.     贈別 揚子江頭楊柳春 楊花愁殺渡江人 一聲羌笛離亭晩 君向瀟湘我向秦 증별 양자강 기슭에 버들이 무르녹아 버들개지 흩날려 나그네 시름 자아내고 해설피 들려 오는 젓대 소리에 그대는 소상으로 나는 진나라로.     맹 교 孟 郊 ?     古別離 欲別牽郎衣 郎今到何處 不恨歸來遲 葉向臨卬去 고별리 그대 옷깃을 차마 놓기 어려워 가시는 데 어딘 줄 나는 몰라도 돌아올 길 늦어서 그러는게 아니라 행여나 임앙으로 떠나실까 두려워.     秋夕懷遠 高枝低枝風 千葉萬葉聲 단장 높고 낮은 가지 바람이 기어들고 잎사귀 잎사귀마다 그윽히 이는 소리.     조 하 趙 蝦 ?     江樓書感 獨上江樓思渺然 月光如水水連天 同來翫月人何處 風景依稀似去年     강루에 올라 홀로 서성거리다 누에 오르니 달도 물을 닮아 하늘에 닿았는데 같이 달 보던 그인 멀리 가고 산천만 그대로 지난해로구나.     도홍경 陶 弘景 ?     詔問山中何所有賦待以答 山中何所有 嶺上多白雲 只可自怡悅 不堪持贈君 산에서 산에 묻혀 살자니 무엇 있으리 고개 넘어 오고 가는 흰구름인데 내 홀로 즐기며 살아 가거니 그리운 그대가 생각날밖에......     하지장 賀 知章 (?-?) 字는 季眞, 會稽 永興사람이다. 처음에 秘書監이 되고, 禮部侍郞으로 옮겼다가, 뒤에 고향으로 돌아와 道士가 되었다. 스스로 四明狂客이라 號했는데, 성질이 활달하고 언변이 좋았다. 나이 86살에 죽었다.     回鄕偶書 一. 離別家鄕歲月多 近來人事半消磨 唯有門前鏡湖水 春風不改舊時波 二. 少小離家老大回 鄕音不改鬂毛衰 兒童相見不相識 笑問客從何處來 고향에 돌아와서 1. 고향엘 고향엘 돌아와보니 모두다 변한 것은 인사로구나 문 앞에 호수만 거울도곤 맑아 봄바람 따라서 물결이 인다.     2. 어려서 떠난 고향 돌아와 보니 사투린 예 같아도 머리가 세어 애들도 서로 바라보면서 웃으며 이르는 말 어디서 왔느냐고.     유정지 劉 廷芝 ?     公子行 天津橋下陽春水 天津橋上繁華子 馬聲廻合靑雲外 人影搖動綠波裏 綠波淸廻玉爲砂 靑雲離披錦作霞 可憐楊柳傷心樹 可憐桃李斷腸花 此日遨遊邀美女 此時歌舞入娼家 娼家美女鬱金香 飛去飛來公子傍 的的朱簾白日映 娥娥玉顔紅粉粧 花際徘徊雙蛺蝶 池邊顧步兩鴛鴦 傾國傾城漢武帝 爲雲爲雨楚襄王 古來容光人所羨 況復今日遙相見 願作輕羅著細腰 願如明鏡分嬌面 與君相向轉相親 與君雙棲共一身 願作貞松千歲古 誰論芳槿一朝新 百年同謝西山日 千秋萬古北邙塵 공자행 다리 아랜 봄 싣고 흐르는 물 소리 다리 위엔 귀공자의 발자국 소리     말 울어 구름 밖에 멀리 사라지고 물 가엔 오가는 사람 그림자 잦이다     물결에 씻기는 조약돌 옥같고 구름은 흩어져 바로 비단결이구나     늘어진 버들에도 애끊는 마음이여 복사꽃도 애달퍼 서러운 것을     즐거워라 이날을 젊은 아가씨 노래하며 춤추며 때를 보내리     울금향같이 사뭇 예쁜 아가씨 귀공자 옆을 따라 오고 가느니     주렴엔 햇볕 눈이 부시고 억안엔 단장도 더욱 곱구나     꽃 따라 짝지어 나는 나비들 못가엔 원앙이 오고 가는데     한무제도 한때는 이리 보내고 초야왕도 한때는 이리 보내고     고래로 고운 얼굴 원하는 것을 항차 서로 보는 이날에서랴     원컨대 옷이 되어 그대 허리 감으리 아니면 거울 되어 그대 얼굴 비추리     서로 만나 가까운 우리들이라 일평생 이대로 살아지이다     소나무로 한 천년 살아지이다 뉘라서 무개꽃을 원하오리까     백년을 이대로 살고지고 천추만세후엔 북망의 티끌 되리.     代悲白頭翁 洛陽城東桃李花 飛來飛去落誰家 洛陽女兒惜顔色 行逢落花長歎息 今年落花顔色改 明年花開復誰在 已見松栢摧爲薪 更聞桑田變成海 古人無復洛城東 今人還對落花風 年年歲歲花相似 歲歲年年人不同 寄言全盛紅顔子 應憐半死白頭翁 此翁白頭眞可憐 伊昔紅顔美少年 公子王孫芳樹下 淸歌妙舞落花前 光祿池臺開錦繡 將軍樓閣畵神仙 一朝臥病無相識 三春行樂在誰邊 宛轉蛾眉能幾時 須臾鶴髮亂如絲 但看古來歌舞地 惟有黃昏鳥雀悲 노인을 대신하여 부르는 노래 낙양성 동녘에 핀 복사꽃 바람에 흩날려 뉘 집에 지는가     낙양에 색시들 늙기 한되어 지는 꽃 바라보며 긴 탄식한다     지는 꽃 따라 늙는 이 얼굴 명년에 피는 꽃엔 누가 남으리     보았노라 송백은 땔나무 되고 들었노니 상전은 벽해된다고     낙성엔 옛사람 자취도 없고 지는 꽃 설어하는 젊은 사람들     해마다 해마다 꽃은 피어도 사람은 해마다 해마다 가네     사랑하는 나의 청춘들이여 서럽지 않은가 늙은 이 몸이     늙은이의 센 머리 가련하구나 이래뵈도 옛날엔 소년이었대     나무 아래 모여서 춤추는 귀공자 지는 꽃도 모르고 노래만 부르네     지대엔 비단에 수놓아 걸고 누각엔 신선화 붙이던 장군     병상에 누우니 알 길 없고 구십춘광도 즐길길 없어     그 곱던 얼굴엔 주름 뿐이요 흰 머리 흡사히 실낱 같구나     고래로 놀고지고 하던 터전엔 밤들자 새들만 설리도 운다.     배 적 裵 迪 ?     送崔九 莫學武陵人 暫遊桃源裏 단장 무릉 사람을 배울라 말어 잠시 이 도원에 놀다 가소.     孟城拗 結廬古城下 時登古城上 古城非疇昔 今人自來往 옛성에서 성 아래 집을 마련하고 때로 고성에 올라가면 성엔 옛 모습 간데 없고 낯 모를 사람만 오고 가거니......     두추랑 杜 秋娘 ?     勸君莫惜金縷衣 勸君惜取少年時 花開堪折直須折 莫待無花空折枝 청춘을 비단 옷 쯤이야 아끼질 마오 차라리 그대 청춘을 아낄 것이 꺽고프면 재빨리 꺽어버리지 꽃 지면 빈 가지만 남는 것을......     왕안석 王 安石 (1019-1086) 北宋의 政治家. 字는 介甫, 강서성 撫州 臨川사람이다. 神宗에게 인정받아 翰林學士參知政事가 되고, 1069년 制置三司條例司를 두고 스스로 그 우두머리가 되어, 이른바 新法을 실시했다. 이리하여 新法, 舊法의 당쟁이 일어났다. 재상의 자리에 있기를 8년, 물러나 10여년만에 병으로 죽었다. 唐宋八大家의 한 사람, 29권이 있다.     梅花 牆角數枝梅 凌寒獨自開 遙知不是雪 爲有暗香來 매화 담 모퉁이 매화가 눈 속에 피어 멀리 보면 눈인듯 그윽한 향기.     원 진 元 稹 ?     聞白樂天左降江州司馬 殘燈無焰影幢幢 此夕聞君謫九江 垂死病中驚坐起 暗風吹雨入寒窓 병상에서 가물거리는 등불 어슴프레한데 이 밤사 말고 그대 구강에 쫓기는 소식 병상에 누웠다 놀라 일어나니 어둔 밤 비바람이 창에 부딪쳐.     심전기 沈 佺期 ?     邙山 北邙山上列墳塋 萬古千秋對洛城 城中日夕歌鍾起 山上惟聞松柏聲 망산 북망산 위엔 무덤도 많아 천추에 서린 한이 낙양에 간다 해 지자 성중엔 노래 소리 일어도 산엔 소나무 스쳐 가는 바람소리.     무명씨     贈人 懶依紗窓春日遲 紅顔空老落花時 世間萬事皆如是 扣甬狂歌誰得知 그대에게 창에 기대어 보내는 봄날은 길어 청춘도 지는 꽃에 늙어가는가 헛되이 여의는 서른 마음에 미친듯 노래한들 뉘 알으리.     溪歌 憂思出門倚 逢郎前溪渡 莫作流水心 引新都舍故 단장 선뜻 나서니 그리운 임 오신다 마음이 물같다 버리지 마오.     子夜歌 擥裾未結帶 紋眉出前窓 羅裳易飄飄 小開罵春風 자야가 치마자락 부여잡고 띠도 못 맨채 그대 오시나 창 열고 바라보노라면 표표한 바람에 치마폭 나부끼고 속절없이 바람만 흘러 가누나.  
1066    심상운의 디지털시 하이퍼시 모음 댓글:  조회:2142  추천:0  2020-02-09
출처ㅡ 시의 꽃이 피는마을 디지털 시 하이퍼시   심상운의 디지털시 하이퍼시 모음     빈자리  -낮 12시 25분     꾸벅꾸벅 졸던 중년 여인이 빠져나간 빈자리에 노란 꽃다발을 들고 앉은 꽃무늬 스카프의 아가씨   두 꽃의 향기가 흥건하던 자리에 머리에 무스를 바른 청년이 앉는다 그의 핸드폰이 뿜어내는 경쾌한 소리   순간, 나는 조금씩 발을 들썩이고 파랗게 살아나는 오래된 바다 흰 목덜미의 그녀는 노란 유채꽃 밭을 뛰어가고 있다   그가 훌쩍 일어서서 나간 뒤 하나의 공간으로 돌아간 진홍빛 우단의 빈자리 그 위로 눈부신 햇빛과 신록新綠의 그림자가 번갈아 앉았다가고   낮 12시 25분 전동차 안은 계속 섭씨 20도의 환하고 푸른 공기 속에 있다      검은 기차 또는 하얀 비닐봉지                      역驛 승강장엔 선 밖으로 나가면 위험하다는           표지판이 쓰러져 있다.           그가 쏟은 핏덩이가 시멘트와 자갈에 묻어 있다.           역무원들은 서둘러 소방 호스로 물을 뿌리고 있다.             (사람들은 그가 검은 기차를 타고 떠났다고 했다.)             나는 그가 타고 간 기차의 빛깔을 파란 색으로 바꾸었다.             그때 어두운 바닥에서 바람을 타고 날아오른           먼지가 햇빛에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그가 안고 간 눈물의 무게는 몇 킬로그램이었을까?)             (그는 드디어 눈물이 없는 세계를 발견한 것일까?)             2006년 7월 21일 오후 2시 23분           서울 중계동 은행 사거리 키 6m의 벚나무 가지 위로           하얀 비닐봉지 하나가 날아간다.    수돗물을 세게 틀었다                 오후 4시 30분               책상 위의 헌책들이 꾸벅꾸벅 졸고 있다               붉게 타오르던 유리병의 꽃이 시들시들하다                 나는 주방廚房의 수돗물을 세게 틀었다                              쏴아-                뇌세포 속으로 퍼져나가는 파란 물소리                청각聽覺이 파르르 떤다                유리병의 꽃이 파르르 떤다                  그때 핸드폰에서 터져 나오는 경쾌한 음악                 싱싱한 푸성귀 냄샐 풍기는 그의 목소리                   전파電波를 타고 날아온                 강원도 산속 공기가 내 귀를 파랗게 물들인다       물고기 그림   겨울 저녁, 물고기는 투명한 유리 공간 속에 혼자 떠 있다. 느릿느릿 지느러미를 움직이며. 그는 원주에서 기차를 타고 k읍으로 간다고 했다. 흰 눈이 검은 돌멩이 위로 나비처럼 날고 있다. 유리 밖으로 뛰쳐나갈 듯 위로 솟아오르던 물고기가 밑바닥으로 가라앉는다. 그는 공중에서 부서져 내리는 하얀 소리들을 촬영하고 있다고 한다. 나는 함박눈이 내리는 그의 설경 속으로 들어간다. 그는 보이지 않고 그의 걸걸한 목소리만 떠돌고 있다. 유월 아침에 나는 겨울 물고기 그림을 지우고 초여름 숲 속의 새를 넣었다. 그때 설경 속으로 떠나간 그가 나온다. 오전 10시 30분 나는 푸른 공기 속을 달리는 버스 속에 앉아 있다.   빨간 방울토마토 또는 여름바다 사진     그는 눈 덮인 12월의 산속에서 누군가가 두드리는 북소리를 듣고 있다고 한다.   그가 촬영한 여름 바다 푸른 파도는 우 우 우 우 밀려와서 바위의 굳은 몸을 속살로 껴안으며 흰 가슴살을 드러낸다.   나는 식탁 위의 빨간 방울토마토 하나를 입에 넣고 TV를 켰다. 무너진 흙벽돌 먼지 속에서 뼈만 남은 이라크 아이들이 뛰어나온다. 그 옆으로 완전 무장한 미군병사들이 지나가고 있다.   갑자기 눈보라가 날리고 1951년 1월 20일 새벽 살얼음 진 달래강 얼음판 위 피난민들 사이에서 아이를 엎은 40대의 아낙이 넘어졌다 일어선다. 벗겨진 그의 고무신이 얼음판에 뒹굴고 있다.   나는 TV를 끄고 밖으로 나왔다.  벽에 붙어서 여전히 흰 거품을 토하며 소리치고 있는 파란 8월의 바다   그때 겨울 산 속으로 들어갔던 그가 바닷가로 왔다는 메시지가 핸드폰에 박혔다.    안개 속의 나무 또는 봄비          어두컴컴한 매립지에서는 새벽안개가 흰 광목처럼 펼쳐져서 나뭇가지를        흐늘쩍흐늘쩍 먹고 있다. 나무들은 뿌연 안개의 입 속에서도 하늘을 향해       아우성치듯 수십 개의 팔과 손가락을 뻗고  있다.                     그는 봄비 내리는 대학로 큰길에서 시위대들이 장대 깃발을 들고 구호를       외치며 행진하는 장면을 촬영하고 있다고 한다.                     나는 그의 우렁우렁한 목소리에 끌려가다가 그가 찍어온' 안개 속의 나무들'        을 벽에 붙여놓고 식탁에 앉아 푸른 야채를 먹는다. 마른 벽이 축축한 물기       에 젖어들고 깊은 잠속에 잠겨 있던 실내의 가구들이 조금씩 몸을 움직거린       다.                     그때 TV에서는 파도 위 작은 동력선의 퉁퉁대는 소리가 지워지고, 지느러       미를 번쩍이던 은빛 갈치의 회를 고추장에 찍어 먹으며 싱싱해서 좋다는       여자 리포터의 붉은  입이 화면 가득 확대되었다.      기억에 대한 명상    나는 심심할 때, 크레파스를 들고 내 뇌腦의 공간 속으로 들어가서 저장된 기억을 뽑아내어서 색칠을 한다. 그러면 파란 기억. 노란 기억, 발그레한 기억, 푸른 기억,검은 기억, 희뿌연 기억. 그들은 색유리가 되어 반짝이다가 아주 가끔 새로운 모자이크 그림이 된다.그들은  타다남은 내면의 불꽃같이 아니면 무덤 속에서  살아나온 시간의 눈빛같이 아니면  버스 창문 밖으로 지나가버린 아카시아 숲의 향기같이 이제는 만져볼 수 없는, 냄새도 없는, 단지 모니터의 영상 속에 숨어 있는, 그러다가도 아, 하는 순간 시퍼런 손자국을 남기고 심장을 관통하는 전율. 그러나 그러나 이따금씩 봄바람이 되어 나를 흔드는 그림. 나는 그 그림들이 띠운 풍선風船을 타고 기억 이전으로, 그 이전의 이전, 부모미생전 父母未生前으로 날아가는 연습을 한다. 아주 홀가분하게 '야호' '야호' 소리치며.  여행지의 들판에서 피어오른 듯한 눈부신 무지개의 등 위에 올라타기도 하며.      길                 길이 1cm 쯤 될까 말까한              배추벌레 한 마리가                     퍼런 배추 잎 위로              배밀이하며 올라가고 있다                자세히 보면              벌레가              지나온 흔적이 보일 듯하다                (배추 잎에 붙어서 분비한 듯)               눈에 보일 듯 말 듯한             분비물의 자국!                        마추픽추의 무너진 벽돌 계단 위에             노란 나비가 하늘하늘 날고 있다             * 마추픽추:페루 중남부 안데스 산맥에 있던 고대 잉카 제국의 요새 도시. 마추픽추의     바람소리          겨울 밤 침대에 누워서 읽는 바람소리. 바람은 소리의 알맹이고 소리는 바람껍질인가? 그런 건 알 필요가 없다고? 하지만 바람소리는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갑자기 히잉히잉 말 울음소리가 내 잠의 줄기를 흔든다. 잠의 뿌리는 짙은 안개 속에 잠기면서 알타이 초원의 기억을 재생한다. 초원의 별빛이 지붕을 뚫고 쏟아져 내린다. 나는 벌거숭이 망아지처럼 초록 들판을 뛰어간다.    기억은 시간과 어떤 관계일까? 기억은 시간의 집에 놓여있는 오래된 가구일까? 집 안 여기저기엔 지나간 시간들의 지문이 찍혀있고 아직 사물 속에 갇혀있는 시간들도 있다. 그들은 갇혀있는 것이 아니라 은박지같이 반짝이고 싶어서 스스로 해방공간 속으로 들어간 것이라고?    바람소리가 또 창문을 흔든다. 나는 집 밖에 나와서도 창문 소리 듣는 것이 즐겁다.그 소리에는 별사탕같이 달콤한 파랑, 초록, 노랑, 빨강, 하양 빛이 묻어있다. 들어가서 살 수 없는 집 울타리엔 노란 개나리꽃이 피어있다   이미지 여행    너는 이미지가 형성되기 이전의 공간 속으로 들어간다고? 거기에는 빛도 어둠도 아닌 것들이 웅숭그리고 있을 것 같지만 실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다만 무엇이 휘익 휘감는 느낌만 든다고? 너는 그림자여서, 그 느낌은 빛이 발산하는 백색의 전율이라고?    어디서 둥둥둥둥 소리가 들려오고 막이 오르면, 무대 뒤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간 너는 거기서 또 다른 이미지를 형성하는 원소가 된다고? 그곳에는 시간을 지워버리는 안개의 덩어리들이 솟구쳐 오르고, 너는 투명한 물방울 같은 것으로 둥둥 떠올라서 어디든지 갈 수 있다고?    너는 아침 햇빛이 물고기 비늘처럼 반짝이는 나일 강을 내려다보다가 히말라야 하얀 눈 산 위를 지나간다고? 너는 도시의 전동차 안을 떠돌기도 하고, 유람선을 타고 가면서 사람들의 말소리를 듣기도 한다고?    나는 너와 통화를 하다가 나도 모르게 앙코르와트 사원 숲 푸른 공기 속을  둥둥 떠간다. 그때 사원의 짙은 그늘과 무한 질량의 환한 햇살 사이를 넘나들며 UFO처럼 번쩍이다 사라지는 것들이 보인다.   북한산의 레몬 향기        비봉(碑峰)이 눈앞에 탁 마주서는 북한산 계곡 비탈길에서 허옇게 누워있는 늙은 눈을 만났다. 늙은 눈은 피부가 푸석푸석하다. 그 옆에는 오전 11시의 햇빛이 벗어 놓고 간 잠옷이 보인다. 꽃나무와 밤을 보낸 햇빛의 잠옷에 발그레한 향기가 묻어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옷 속에서 빈센트 반 고흐의 노란 빛이 뿜어져 나온다. 1937년 4월 17일 오전 4시 20분 일본 동경제대부속병원(東京帝大附屬病院) 어두운 침대 위에서 28세의 뼈만 남은 이상(李箱)이 눈을 감고 있다. 그는 임종의 순간, 갑자기 '레몬 향기를 맡고 싶다'고 한다.진달래나무 가지들이 무성한 계곡, 일주일 전에 속옷마저 훌훌 벗어버린 겨울이 허공에서 와와와와 소리치며  하얗게 쏟아져 내리던 비탈길. 등산화에 밟히는 늙은 눈의 몸에서는 질척한 체액이 흘러내린다. 그때 갑자기 북한산이 꿈틀거리며 체취를 뿜어내기 시작한다. 노란 레몬 향기가 사방에 퍼진다. 정오의 환한 빛 속에서 수염을 깎지 않은 이상(李箱)이 웃고 있다. 꽃이 피지 않은 꽃나무가지가 반짝인다.   은백색 미확인 비행물체   순식간에 내 눈의 자동 셔터가 찍은 한 컷의 동영상. 2008년 5월 25일 정오 일행들과 북한산 사모바위 틈에 뿌리 뻗어 만개한 라일락 꽃 짙푸른 향기에 취해 있을 때, 햇빛 환한 비봉碑峰 쪽으로 휘익 날아가던 은백색 깃털들. 야아, 소리 지를 틈도 주지 않고 반짝이는 빛을 던지며 10분의 1초의 속도로 내 시야를 벗어나는 은빛 부챗살. 그 반짝이는 부챗살은 화창한 초여름 날 산이 사람들에게 보내는 경쾌한 UFO? 그럼 지금 산의 가장 깊은 곳에서는 무성하게 돋아난 녹색 이파리들이 노랑 하양 보라 꽃들과 어우러져 한창 신명나는 판을 벌이고 있는 중! 12월 아침 아이들과 식탁에서 죽은 닭의 살점을 포크로 찍어 먹으며, 빈센트 반 고흐의 ‘프로방스의 시골길 야경’ 사이프러스와 찬란한 별밤 길 그림을 보고 있을 때, 소리 없이 도시 전체를 점령해버린 은백색의 젊은 눈들. 질주하는 차바퀴에 깔린 눈들의 몸에서 나온 맑은 피는 도로에 줄줄 흐르고, 아이들은 포크를 던지고 와아, 환성을 지르며 공터로 뛰어나가고, 도시는 하루 종일 은백색의 축제. 너는 지금 사람들의 무의식無意識 속 공간을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환한 불꽃들을 팡팡 터뜨리는 UFO의 고향을 찾아 네팔로 가고 있는 중이라고? 해발 5000미터가 넘는 백색고산지대白色高山地帶. 그곳은 어떤 것이든 그 자체만으로 존재하기 어려운 지점. UFO의 탄생지는 그곳 새파란 공기층 속 어딘가에 있을 거라고?     *UFO:미확인 비행물체        사각형 스크린     비 그친 아침, 나는 닫힌 창문을 연다. 스르륵 열린 사각형의 스크린 속에서는 오토바이를 타고 경쾌하게 달리는 구름 A, 구름 B,구름 C. 이어서 펼쳐지는 파란 여름바다의 영상. 여름바다, 여름바다, 여름바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출렁인다. 동해 화진포에는 빨간 사과 빛 안개. 나는 그곳에 푸른 비늘 덩이로 살아 움직이는 집을 지어 놓았다. 그 집은 환상의 집. 나는 아이들에게 우리들의 시간 밖에서 일하는 푸른 혼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별빛이 찬란한 밤바다 모래 위를 걷는다. 사각형 스크린은 무한 공간. 그 속에 가득한 여름바다, 여름바다. 여름바다는 나뭇잎에서도 출렁이고 땅강아지 집에서도 출렁이고 아스팔트 속에서도 출렁이고 노래방에서도 출렁인다. 젊은이들은 동해의 고래를 잡으러 가자며 매일 밤 어깨동무를 하고 여름바다로 떠난다. 그들에게 바다는 황홀한 전율의 출렁임. 햇빛 번쩍이는 검푸른 등을 보이며 파도가 밀려올 때마다 사각형 속 스크린도 부르르 부르르 온 몸을 떤다. 스크린은 사각형을 확 밀어버리고 수영복차림으로 뛰어나가려는 거 같다. 그때 사각형 스크린 밖에서 사람 A가 열무, 가지, 오이, 호박을 트럭에 싣고 와서 스피커로 “무공해 싱싱한 채소를 싸게 팝니다.”라고 소리친다. 캄차카 바다 돌고래들이 펄떡펄떡 솟구치고 있는 장면이 TV 화면에 가득한 아침이다.       파란색 기차       파란색 기차, 파란색 기차는 긴 꼬리를 달고 하늘을 날아가는 기차. 여름밤엔 노란 불을 켜고 여우, 뱀, 방패, 전갈, 화살, 직녀, 도마뱀, 헤라클레스, 돌고래, 백조, 견우의 나라를 지나 반인반마半人半馬의 키론이 사는 은하수의 남쪽 궁수자리로 가는 기차. 젊은 화가들은 일곱 살 아이들의 그림 속으로 들어가서 파란색 기차를 타고 별나라 여행을 한다. 기차 옆에서는 우주의 고래들이 허연 거품을 뿜어내며 신나게 솟구치고, 기차의 창을 열고 고래 떼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며 와와 소리치는 아이들. 펄떡펄떡 솟구치는 고래 옆으로 우주 로켓이 유유히 지나가는 한낮, 초록 별 연못가에서는 느릿느릿 기어가는 무지갯빛 달팽이와 폴짝폴짝 뛰는 왕눈이 개구리가 식탁에 앉아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다. 파란색 기차, 파란색 기차. 나는 먼 은하수로 날아가는 긴 꼬리 기차 대신 아이들과 놀이동산에서 파란색 기차를 탄다. 파란색 기차는 딸랑딸랑 방울소리를 내며 파란 나라로 들어간다. 한여름 어느 바닷가 물개들의 도시. 건물의 지붕 위로 날렵하게 날아오르는 검은 물개들의 쇼. 물개들의 등에서  찬란하게 반짝이는 5월의 햇빛이 내 뇌 속을 파랗게 휘감는 일요일이다.     녹색 전율                                                                                7월 아침나절 갑자기 쏟아지는 비                       한낮의 아프리카 대평원엔                      피범벅이 된 사자의 입과           사슴의 붉은 살덩이가 내뿜는 싱싱한 비린내           6월의 태양 아래 이글이글 벌어지는 초원의 잔치!               나는 TV에서 가슴 떨리는 아프리카 생태계를 보다가           식탁의자에 앉아           빨간 방울토마토를 입에 넣고 우쩍우쩍 씹는다.              그때 휴대폰을 울리는 그녀의 숨 가쁜 목소리             그녀는 여름비의 유혹이 참을 수 없어           강변도로를 달리고 있다고 한다.              -굵고 기운찬 빗줄기에           온몸 부르르 떠는 녹색 가로수들이 제각기 잎사귈 퍼덕이며           소리치는 도로를 지나 녹색의 광기를 한껏 즐기고 있는           뜨거운 들판의 가슴을 향해 돌진하듯 달리고 있는 그녀   박쥐 또는 소녀        동굴 탐사요원으로 다녀 온 그의 디지털 카메라 속에서는 신생대新生代의 동굴 속 벽에 검은 부챗살 날개를 접고 붙어 있던 박쥐 떼들이 동영상으로 변해 푸르르 푸르르 날아다니고 있다. 박쥐들은 휘황한 불빛에 놀라 어둠의 중심으로 파고 들어가려는 듯 날개를 퍼덕이며 난다.    하얀 시트 위에 누워 내시경內視鏡 검사를 받고 있는 그녀는 자신의 몸속 깊은 곳에 숨어있는 사춘기 소녀의 얼굴을 떠올리고 있을까? 그녀의 동굴에서 어둠을 모아 발그레한 찔레꽃을 계속 피워 내고 있는 볼이 빨간 소녀.    나는 가끔 이미지가 형성되기 이전 암흑의 물질들이 떠다니는 무의식無意識의 동굴 속으로 들어간다. 그때 동굴의 후미진 곳에서 푸드덕대며 날아가는 박쥐가 보이고 그때마다 그녀의 방 벽에 걸려 있는 에서 빨간 볼의 사과들이 햇빛 속에서 바람에 흔들리며 까르르 까르르 웃는 소리가 들린다.   모형 전시실 또는 깨진 유리창      6월의 태양이 눈부신 한낮 국립박물관 모형 전시실에서는 신석기시대 근육질 젊은 사내의 돌칼 가는 소리가 난다. 사내는 숫돌에 칼을 갈다 가끔씩 고개를 들고 사냥할 때 쓰던 돌화살촉을 움켜쥐고 유리 상자를 깨고 뛰쳐나오려는 듯 허연 수은등 불빛을 노려보고 있다.   12월이 되면  카메라를 메고  세찬 눈보라로 뒤덮인 겨울날 뻘겋게 이글거리던 드럼통 석탄 난로 곁에 둘러서서 외지外地로 떠나려고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과 방금 검은 탄 속에서 나온 듯 이빨이 유난히 하얗게 빛나는 젊은 광부들의 뿌연 입김이 깨진 유리창에 묻어 있는 30년 전의 K역을 찾아서 눈길을 떠나는 그녀.    낮 12시 20분, 나는 그녀의 모형 작업실 벽에 걸려있는 컬러사진 검붉은 고철古鐵들의 무더기 사이로 돋아난 풀잎의 푸른 혈관 위에 앉아 있던 벌 한 마리가 잉잉 잉잉 방안을 돌며 유리창에 몇 번 몸을 부딪칠 듯 하다가 열린 유리창 밖 환한 빛 속으로 날아가는 것을 본다.     자살폭탄 또는 푸른 울음     자신의 부풀어 오른 봉오리를 만지며 은밀한 욕망 속으로 잠입하는 영화 속의 그녀. 밤마다 폭탄을 준비하는 그녀의 몸은 800만 화소의 선명한 영상 속에서 움직인다.   날카로운 과도果刀로 사과를 도막내어 빨갛게 익은 사과의 중심에 박혀서 스스로 소리 없는 폭발을 꿈꾸고 있던 까만 씨앗 몇 개를 들여다본다. 그들도 촉촉한 살의 유혹 속에서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이고 있던 걸까?     TV 뉴스 자막이  사라지자, 한여름 밤 안동 지레 마을 산 개구리들이 어둠 속에서 일제히 쏟아내는 푸른 울음소리가  달빛 속을 벗어나서 무한허공으로 출렁거리며 퍼져나가고 있다.      오전 11시 40분의 통화   도봉산 성인봉 하얀 바위벽 아래 깊은 골짜기에서 옆의 푸른 빛 솔잎에게 빨갛게 불타는 자신의 순수한 몸뚱이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가을 단풍나무를 본다.   산새 몇 마리 그들 사이를 포르르 포르르 포르르 재빠르게 옮겨 다니는 오전 11시 40분   -삐 소리 후 소리샘 픽 보이스로 연결되오며 통화료가 부가됩니다. 내 휴대폰에서 거듭 흘러나오는 젊은 여성의 목소리   순간 하얗게 눈 덮인 소림사 마당에 달마를 찾아온 혜가가 붉은 피 뚝뚝 떨어지는 자신의 팔 하나를 들고 서 있는 그림이 만월암 바위벽 스크린에 나타나고   하얀 침대시트 위에서 좌선坐禪의 자세로 꼿꼿하게 앉아 있는 *남구의 감은 눈이 불그레해진다.   * 남구: 오남구 시인    아침 드라마    아침 8시 TV 드라마 속으로 들어간 그녀는 빨갛게  부풀기 시작하고  나는 1,2,3,4...숫자에서 벗어난 그녀의 시간이 접시 위 생선토막에  빨간 소스로 뿌려지는 상상을 한다.   (낳자마자 자식을 버린 어미를 어찌 어미라고 할 수 있단 말이야!) 드라마의 열기는 더욱 고조되고 그녀는 생선을 구우며 눈물을 흘린다.   그때 40대 여자의 가슴에서 뭉클 솟구쳐 나온듯한 한 뭉치 희끄무레한 연기가 주방의 작은 창문으로 빠져나가고   (파란 신호등 앞에서 서로 반대 방향으로 옷깃을 스치고 지나가는 어머니와 딸)   나는 또 그녀가 울면서 헤쳐 온 시간의 숫자들이 둥근 공이 되어 아스팔트 위를 통통통통 뛰어가는 상상을 한다.    (오늘 서해상에는 시계 30m의 안개가 걷히고 중부지방엔 오전까지 10mm의 비가 내린 후 날씨가 점차 맑아지겠습니다.)   계속되는 미해결에서 잠시 빠져나온 대도시의 아침시간은 유리창에 줄줄 빗물 흘러내리는 거리에서 초록, 노랑, 빨강 물이 든 풍선을 펑펑 터뜨린다.      사각형과 삼각형과 원     사각형 스크린 속으로 들어가면 수없이 많은 각종 스크린이 보인다. 아침 7시. 사각 침대 위에서 기지갤 켜며 일어난 삼각형이 사각문을 열고 나오고, 원이 통통통통 튀면서 그 뒤를 따라온다. 삼각형은 원의 손을 잡고 파랗게 출렁이는 바닷가로 뛰어간다. 사각형의 바다 위에서 삼각형의 돛배가 하얀 물보랄 날리며 신나게 달린다.   몇몇 삼각형이 무어라고 소리치며 사각형의 오래된 집의 창문과 벽을 부수고 있다. 사이렌을 울리며 사각형의 경찰차들이 몰려오고, 100여 명의 삼각형과 원이 둘러서서 응원을 한다. 그들은 손뼉을 치며 응원가를 부르다가 가슴팍 속주머니에서 노랑 풍선을 꺼내서 하늘로 날린다. 그 풍선들은 허공에서 서로 손을 잡고 얼굴을 비비고 입맞춤을 한다. 입맞춤을 할 때마다 풍선의 입 속에서 또 노랑 풍선들이 나와서 파란 하늘을 가득 채운다. 대도시의 봄 하늘에 유채꽃이 만발한다.   밤 12시 20분. 아이슬란드의 거대한 육각형 빙산 벽이 철썩철썩 무너져 내려 새파란 육각수의 바다 속으로 떨어진다. 수천만 톤의 새 육각수가 바다를 넘어 사각형의 도시건축물都市建築物들을 우르릉우르릉 흔들며 밀려오고 있는 밤이다.   태초의 빛    컴컴한 칠흑 공간 속에서 빛 한 줄기 휘익 환한 선을 그으며 지나가는 찰나 여기저기서  펑 펑 펑 펑 터지는 불꽃들. 아 아 소리치며 태초의 허공 속으로 빨려들어간 나는 눈부신  빛의 알갱이들이 파랑, 초록, 노랑, 빨강, 하양 색깔로 부서져 흘러내리는 프로방스의 야경  사이프러스 숲에서 지느러미를 휘저으며 떠오르는 물고기가 된다.      머리나 입술이나 가슴이나 허리에서 빛이 찬란하게 꿈틀거리는 밤길. 괭이를 멘 농부들은  별빛에 휘감긴 듯 비척거리고, 지나가는 역마차도 흥이 났는지 더 털털거린다. 그때 점점 더 거칠어지는 빈센트 반 고흐의 숨소리.      한여름 밤 놀이 공원 은하수가 빛나는 스카프를 목에 두른 유모차 속 아이는 잠이 들고, 태초의  빛 속에서 나와 웅성거리던  어른들은 실로폰 소리가 나고 이어서 “아홉 십니다”라는 여자의 예  쁜 음성이 흘러나오는 곳을 향해 몰려가고 있다.      사진을 찍는다     그는 카메라를 메고 사물들의 꿈을 찾아서 매립지埋立地의 안개 속으로 들어갔을 거라고?     나는 방 안에서 거울 속의 내 눈동자를 찍는다. 내 눈동자 속에 나를 응시하고 있는 또 하나의 나.   그 나의 눈동자 속에 들어 있는 3,4,5,6,7,8,9,10,...의 나, 나, 나, 나............    *第一의兒孩/第二의兒孩/第三의兒孩/第四의兒孩/第五의兒孩/第六의兒孩.........................     나는 만다라曼茶羅 속에 들어가 뱀 옆에 피어 있는 빨간 꽃잎속의 꽃잎에 카메라의 렌즈를 고정한다.     그가 찍어온 에서는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대학로 큰 길을 점령한 시위대의 고함 소리  가 계속 울리고 있다.       * 1930년대 아방가르드 시인 이상(李箱)의 시 (시 제 1호)에서 발췌    초여름 풍경   뱀 굴에서 미끈미끈한 몸뚱일 좌우로 흔들며 뱀 한 마리 뱀 두 마리 뱀 세 마리 뱀 네 마리 나온다.가늘고 긴 혀 날름거리며 나온다. 엊저녁 기억들은 푸른 가지 사이에 허연 비닐봉지로 걸어놓고 햇빛 속으로 스르르르 스르르르 미끄러지며 나온다.   발가숭이 햇빛들은 분수噴水에서 물장구치며 깔깔거리고 아이스크림처럼 햇빛을 빨아먹는 가로수 잎사귀들 사이로 풍선 하나 풍선 둘 풍선 셋 풍선 넷 둥둥 떠오른다. 찢어진 풍선들은 보이지 않고 새 풍선들이 떠오른다.   초여름 풀 향기 풍기며 19살의 오드리 헵번Audrey Hepburn이 청계천 물속에서 나온다. 눈이 큰 헵번, 입이 큰 헵번이 눈웃음치며 나온다. 휴대폰을 들고 시청 앞 광장 잔디 위에 앉아 있는 목이 긴 헵번은 빨간 손수건을 가슴에 달고 있다.   가슴에 철퇴를 맞고 허물어진 50년 전 건물들의 폐자재 더미 속에서 나온 유리창의 파편 조각들이 반짝인다. 덤프트럭에 실린 우그러진 창틀을 향해 반짝인다. 원주민들의 구멍 난 양말짝,찌그러진 양재기, 찢어진 홑이불에 묻어있는 얼룩을 보며 반짝인다.                        검붉은 색이 들어간 세 개의 그림       밤 12시05분. 흰 가운의 젊은 의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을지병원 응급실에 실려 온 40대의 사내. 눈을 감고 꼬부리고 누워 있는 그의 검붉은 얼굴을 때리며 “재희 아빠 재희 아빠 눈 떠 봐요! 눈 좀 떠 봐요! " 중년 여자가 울고 있다. 그때 건너편 방에서 자지러지는 아이의 울음소리.     그는 허연 비닐봉지에 싸여진 채 냉동고 구석에서 딱딱하고 차갑게 얼어붙은 밥을 꺼내 후끈후끈한 수증기가 솟구치는 찜통에 넣고 녹이고 있다. 얼굴을 가슴에 묻고 웅크리고 있던 밥덩이는 수증기 속에서 다시 끈적끈적한 입김을 토해 내고, 차갑고 어두운 기억들이 응고된 검붉은 뼈가 단단히 박혀 있던 밥의 가슴도 끝내 축축하게 풀어지기 시작한다. 푸른 옷을 입고 가스레인지 앞에 서 있는 그는 나무젓가락으로 밥의 살을 찔러보며 웃고 있다.    이집트의 미라들은 햇빛 찬란한 잠속에서 물질의 꿈을 즐기고 있는 것일까? 나는 미라의 얼굴이 검붉은 색으로 그려진 둥근 무화과나무 목관木棺의 사진을 본다. 고대의 숲 속에서 날아온 새들이 씨이룽 찍찍 씨이룽 찍찍 쪼로롱 쪼로롱 5월의 청계산 숲을 휘젓고 다니는 오전 11시.   구멍탐색     아침나절 5월의 숲 속으로 들어가면 개미떼들이 제각기 까만 등을 반짝이며 들락거리고 있는 쓰러진 나무의 구멍에서 작고 투명한 물방울 같은 것들이 떠오르는 것이 보인다. 그 방울들은 죽은 나무의 구멍 속에서 나와 초록 이파리 사이사이로 떠돌고 있다.     맥주를 좋아하는 그는 시를 ‘황홀한 탐색’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탐색은 카메라를 메고 존재의 구멍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라 한다. 존재의 구멍은 탄생의 출구? 구멍 속의 시간은 언제나 태초? 병 속에 갇혀 있던 맥주가 구멍에서 나와 투명한 유리 컵 속에서 하얀 거품을 뿜어낸다.     밤 10시, 나는 TV 채널을 이리저리 옮기다가 산의 구멍으로 들어가는 탐험대들을 본다. 컴컴한 굴속으로 들어간 그들은 전조등을 켜고 굴의 내부를 조사하고 있다. 굴 속에서는 맑은 샘물이 솟아 흐르고 불빛에 비친 종유석이 찬란하다. 산의 구멍은 컴컴함 속에 찬란함을 숨기고 있다. 한 탐험대원은 꿈틀거리며 굴의 벽을 기어가는 작은 생명체를 촬영하고 있다.    그는 내일 오래 비워둔 집에 들어가서 보일러 연통청소를 하고, 3만6천 피트의 하얀 구름 위에서 빨간 바다 새우를 맛있게 먹었다는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내야겠다고 한다.     노란 색을 주조로 한 세 개의 그림     구파발에서 의정부 쪽으로 뻗은 큰 도로 옆엔 봄바람에 흔들리는 개나리꽃 울타리가 석재상 마당 한쪽과 세상에 나오기 이전의 돌부처 돌마리아 돌사자 돌여인 돌사슴의 머리와 가슴을 노랗게 물들이고 있다. 나는 그 석물들과 손잡고 노는 상상을 하며 노란 개나리꽃 울타리를 툭툭 치고 흔들었다. 그때 그 소리 때문일까? 돌부처와 돌마리아가 손을 잡고 초등학교 1학년 학예회처럼 춤을 추기 시작한다. 그 둘레를 돌사자 돌사슴 돌여인이 빙글빙글 돌고 있다. 그들이 뛸 때마다 개나리 울타리에서 노란 빛이 뿜어져 나와 그늘진 석재상 마당이 환해지곤 한다.   목만 있는 늘씬한 젊은 여인이 노란 원피스를 걸치고 서 있는 대형 마트 의류 코너. 그 건너편 쪽에는 목만 있는 청년이 청바지에 노란 티셔츠를 입고 포즈를 취하고 앉아있다. < 그들은 초현실의 예술품이 아니라고요?>   강남 터미널 대형 TV에서 갑자기 콸콸콸콸 흙탕물 쏟아져 내리는 소리가 나고, 홍수가 휩쓸고 간 마을에서 떠내려 온 가재도구들이 큰 물살에 둥둥 떠가다가 나무그루에 걸려있는 게 보인다. 주민들은 무너진 집 지붕 위에 올라가 무어라 소리치며 손을 흔들고 멀리서 털털털털 헬리콥터 소리가 나고 노란 조끼를 입은 구조대원들이 여기저기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구경을 하던 청년 셋이 TV 속으로 풍덩풍덩 뛰어 들어간다. 그때마다 모니터에서 튀어나온 흙탕물이 내 몸에 확확 끼얹힌다. 내 옷에서는 노란 개나리꽃 향기가 난다.   우아우아 아우아우아 아     우아우아 아 우아우아 아 검푸른 파도 펄떡이는 돌고래 (산의 어깨 위로 솟구치는 검붉은 불길)      우아우아 아 우아우아 아 다시마 미역 멍게 해삼 조개 (풀과 나무들의 울부짖음 불길 속의 주택들)   우아우아 아 우아우아 아 파란 바다 빨간 구름 허연 맥주 거품 (47인치 모니터에서 풀썩풀썩 뿜어져 나와 중계동 은행사거리 상공을 떠도는 LA의 검은 연기 검은 연기)    우아우아 아 우아우아 아 파도소리 기타소리 사각사각 사과 먹는 소리 (거대한 공동묘지 상공 떼 지어 떠도는 검은 비닐봉지 위에서 반짝이는 하얀 눈 하얀 눈)   우아우아 아 우아우아 아 뜨거운 모래밭 달빛 속 엉덩이 (당신은 죽은 30대 여인의 목에서 반짝이던 나비날개 모양의 보석을 보았다고요?) (그녀는 나비가 되어서 봄 나라로 날아갔을 거라고요?)    우아우아 아 우아우아 아 모닥불 하얀 잿더미 빈 맥주병 (당신은 사람들이 모두 복제품 같다고요?) (검푸른 파도 속으로 풍덩 뛰어 들어가 혁명을 꿈꾸는 체 게바라의 가슴을 껴안고 싶다고요?)   꿈틀꿈틀 아침 바다 붉은 핏덩이 핏덩이 우아우아 아 우아우아 아   블랙홀(black hole)     빛조차 빠져나갈 수 없는 검은 구멍이 되어 소멸하는 거대한 별에는 정지된 시간들이 검은 옷을 입고 모여 있는 ‘사건의 지평선’이 있다고요? 그들은 모여 있는 것이 아니라 화석化石 속의 물고기처럼 박혀 있을 거라고요?   아산병원 영안실에 있는 그녀의 시신屍身도 자세히 관찰하면 연료가 모두 소모된 마지막 순간에 자체의 중력으로 인해 스스로 붕괴되어 생성하는 죽은 별들의 검은 구멍과 다르지 않다고요?   오늘 밤 당신은 35000피드 상공의 비행기가 컴컴한 허공 벽에 얼어붙어 있는 것을 상상해 보세요. 우주의 얼음덩이 속에서도 뜨거운 입맞춤을 하는 남녀의 그림자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환각제 복용     커피를 마시던 사람들이 떠난 뒤에도 그들이 자리에 두고 간 가슴선이나 허리선이나 다리의 선이 보인다. 20대 아가씨들이 벗어놓고 간 볼록한 가슴선에선 노란 봄꽃냄새가 물씬 풍긴다. 종업원들이 그 선들을 모아 쓰레기통에 버려도 빛 밝은 오전엔 구석에 숨어있던 둥근 선들이 제각기 반짝이는 물방울이 되어 유리창 밖 허공으로 둥둥 떠다니는 게 선명하다.   2월 중순 달리는 승용차 유리창에 윙윙 휘날리며 떼 지어 달라붙는 선들. 브러쉬는 백색 환각제 같은 무수한 선들을 계속 지우지만 도로 옆 막 피어나는 하얀 꽃송이들 속으로 자주 끌려들어가는 바퀴. 차는 발긋발긋한 딸기를 가득 안고 맨살 그대로 누워있는 비닐하우스의 둥근 허리선이 보이는 시골 눈길 뿌연 안개 속에서 미끄러진다.   그때 라디오에선 미국 인기 가수의 죽음에 대해 심층보도하며 죽음의 원인이 환각제의 과다 복용이라고 한다. 봄눈 오는 날 오후 3시 20분. 죽은 가수의 뜨겁고 경쾌한 목소리가 전라북도 부안 고랑 진 눈밭에 선홍빛 물방울을 뿌리고 있다.   아스팔트 위의 맨살 여자     아스팔트 위에서 30대의 여자가 전라의 몸을 둥글게 말고 머리를 허벅지 사이에 넣고 앉아있다. 둥근 여자의 몸은 매끈한 살덩이 바퀴가 되어 아스팔트 도로를 굴러갈 것 같다.   (화가는 왜 여자를 달팽이같이 둥글게 말아서 아스팔트 도로 위에 놓은 것일까?)   (여자는 화가에게 태어나기 이전의 시공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고 한 것일까?)   나는 상상 속에서 그녀를 굴려 본다. 그녀는 공기가 팽팽한 고무공같이 가볍게 구른다. 그녀는 통통 튀기도 한다. 구름이 그녀를 태워 하늘로 오르고 싶어 한다. 그녀는 검은 아스팔트 도로에서 파란 바다로 굴러가며 깔깔거린다. 그때 100km로 달려오던 육중한 화물차가 삐익 소리를 내며 간신히 그녀를 비켜간다. 핏발선 운전기사의 목소리가 휙 스친다.   지금 내 눈 앞에는 파란 바다가 보이는 아스팔트 도로에서 도로에게 반항이라도 하는 듯 맨살로 앉아있는 30대의 여자가 있다. 그녀의 숨소리가 너무 뜨겁다.   파란 의자   아침 10시, 그녀는 파란 의자에 앉는다   앉아 있는 그녀를 하얀 구름이 휩싸고 빨간 버스가 그녀와 구름을 싣고 달린다   (TV 속에서는 굶주린 하이에나 두 마리가  뚝뚝 뻘건 피 떨어지는 누우새끼의 허벅지를 입에 물고 아프리카 초원을 달리고 있다 )    그녀는 구름이 만든 아이스크림을 한 입 베어 물고 무거운 가방을 든 검은 외투의 사내에게 손을 흔든다 사내도 그녀를 보고 웃으며 손짓한다   버스 안은  침묵들이 움직이고 있는 빈 악보 속 같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음표들이 투명한 물방울로 둥둥 떠다니고 있다   그녀는 그 방울들을 손가락 끝으로 톡톡 터뜨린다 그럴 때마다 방울 속에서 나온 노란 알몸의 소리들이 쪼로롱거리며 버스 안에서 뛰어놀다가 바람에 실려서 도시의 하늘로 줄지어 날아간다   도시를 빠져나온 빨간 버스는 돌고래들이 솟구치는 태평양 바다 위를 달린다   출렁이는 바닷물이 그녀를 덮친다 그때 그녀의 가슴 속에서 뛰쳐나온 물고기 한 마리가  은빛 지느러미를 퍼들거리며 튀어오른다   순간 그녀의 눈 앞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2001년 9월 11일 아침, 뉴욕 무역센타 쌍둥이 빌딩 눈부신 유리창 속으로 날아 들어가 굉음을 내며 폭발하는 은빛 비행기   (그 은빛 비행기에는 검은 외투를 벗어버린 알몸의 사내가 타고 있었다고?)   아침 11시, 빨간 버스는 아마존 숲 위를 날아가고 그녀의 파란 의자는 더 반짝이기 시작한다   우주의 시간   그 미술관 대형 바다 그림 속에는 10년 전에 교통사고로 죽은 그녀의 가족들이 푸른 살 번득이며 파도치고 있다. 남편과 아이들이 그녀의 손을 잡고 눈을 반짝이며 춤을 추고 있다.    밤 11시20분, 사이언스 TV에선 은하계 넘어 어느 별에 납치되었던 지구의 사람들이 눈부신 빛에 휩싸여 귀환하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4,400명의 귀환인 들은 우주의 0의 시간 속에서 살다왔다고 한다.   3월에 내리는 함박눈은 서로 다른 집에 살면서 애태우다가 떠나간 이들이 만나서 산과 들과 바다에 눈부신 알몸으로 쏟아져 내리는 장면을 하얗게 풀어서 보여주고 있다. 눈의 입자 속에서는 눈물을 안고 살아온 1000년도 우주의 0의 시간이 되어 반짝이고 있다.    공과 아이        파란 옷을 입은 아이가 꿈속에서 가지고 나온듯한 빨간 공을 길바닥에 굴리며 놀고 있다. 공은 반짝이며 굴러가고 아이는 공을 쫒아 소리 지르며 뛰어간다. 거리의 유리창들이 놀란 눈으로 내려다보는 아침 9시, 공을 따라 신나게 뛰어가는 아이. 공은 주택가를 빠져나와 통통통통 공장 굴뚝을 오르기도 하고, 통통통통 푸른 가로수 가지 위로 올라가 나무 위에서 건너뛰기를 하다가 초록 들길을 달리는 버스 지붕 위에 내려 앉아 잠시 멈춰 있다. 아이도 버스지붕 위에서 흰 구름을 보며 쉬고 있다.   긴 사다리를 허공에 설치하고 구름 위로 올라가는 TV 속 사내가 당신을 유혹한다고요? 그래서 당신도 파란 옷의 아이처럼 빌딩과 빌딩을 휙휙 건너뛰고 싶을 때가 있다고요? 오늘도 꿈속에서 본 빨간 공을 찾아서 뛰어다니다가 빌딩 옥상 구석에 누워서 10월의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고요? 그 아이의 집은 해초들이 나부끼는 바다 속인 거 같다고요? 아이의 몸에선 바닷물 냄새가 난다고요? 빨간 공은 수평선의 해 같다고요?   버스 지붕 위에서 쉬고 있던 아이가 빨간 공과 함께 노랗게 불타는 한낮의 해바라기 밭으로 뛰어간다. 그 뒤를 밀짚모자를 쓴 이중섭이 화판을 메고 걸어가고 있다.      돌밭의 아우성이 만들어 낸 연상     발가숭이 햇빛이 남한강 물 위에서 팔짝팔짝 놀고 있는 낮 12시 30분. 돌밭에선 하얀 돌멩이들이 피 묻은 깃발을 손에 들고 아우성치며, 아우성치며 파란 허공으로 날아오른다. 날아오른 돌들은 한 순간 붉은 동백꽃이 되어 푸른 강물 위를 둥둥 떠가기도 하고 흰 날개 퍼덕이는 두루미 떼가 되어 들판 습지로 날아간다. 나는 수많은 돌중에서 허공으로 떠오르다 물속으로 떨어진 검은 돌 하나를 주워서 걸망에 넣는다.   정동진 새벽바다 뻘겋게 번지는 핏물 위에서 퍼덕이는 금빛 살점들. 그 거대한 물 밑에서 아 아 아 아 아 아 소리치며 꿈틀거리는 붉고 둥근 돌 하나. 그때 둥둥둥 둥둥둥 울리는 북소리. 그 후끈 후끈한 소리 속에 그가 있을지도 몰라. 10년 전 지상을 떠나간 그가 비늘 번쩍거리고 있을지도 몰라. 새 빛 번지는 백사장에 나가 껑충껑충 학춤 추는 무의식 속의 나.       *< >부분은 스에나가 타미오의『색채심리』에서 노르웨이 화가 뭉크(Edvard Munch)의 일기를 인용한 글임   한여름의 검은 자전거와 파란 비닐봉지와 빨간 모자     파란 지붕의 자전거 보관대에 쓰러져 있는 검은 자전거의 바퀴살이 햇빛에 번쩍이고 있다. 오전 10시 46분, 우체부의 빨간 오토바이가 서 있는 가로수 밑으로 아이들이 아이스크림을 빨며 지나가고 점점 뜨거워지는 8월의 태양. (검은 자전거의 주인은 나타나지 않고) 자전거 보관대의 파란 플라스틱 지붕은 자신의 가슴을 다 드러낸 채 번쩍이고 있다.   그 파란 플라스틱 지붕은 왜 하루 종일 번쩍이고만 있을까요? 지금 을지로 상공을 날아가는 반투명의 파란 비닐봉지는 몸무게가 0으로 줄어든 나의 모습이에요. 나는 시청 앞 광장을 지나 바람에 출렁이며 청계천 다리 위를 가고 있어요. 나처럼 가끔 허공을 떠다니고 싶으면 눈을 감고 공중으로 떠오르는 0의 감각에 집중해 보세요. 그리고 몸의 무게를 계속 줄여 보세요. 그러면서 저기저기 빌딩 창문 위 하늘로 둥둥 떠가는 자신을 느껴 보세요. 검은 자전거의 주인이 노랑 풍선이 되어 햇빛에 반짝이며 여의도 쪽 상공을 날아가고 있는 게 보일 거예요.   아, 아, 여보세요. 8월의 풀밭에서는 빨간 모자를 쓴 발가숭이 아이들이 모여서 노란 나팔을 불기도 하고 파란 페인트 통을 굴리며 뱀과 놀고 있다고요? 그 맨살의 아이들이 사람들의 잠속 연못에 들어와서 물장구칠 때가 있다고요? 그 시간에 꿈의 식탁에 앉아 음식을 먹으면 빨간 꽃잎 요리가 아이스크림처럼 달디 달다고요? 그것이 한여름 낮잠의 신비한 맛이라고요?   아우슈비츠     아우슈비츠 아우슈비츠 비오는 날의 아우슈비츠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여기저기서 비명이 들리고 작은 언덕같이 쌓여있는 머리칼이랑 가죽 가방 일곱 살 아이들의 꽃무늬 구두가 유리창 진열장 속에서 푸르르 푸르르 떨고 있는 아우슈비츠 아우슈비츠   1940년 5월 감옥을 쌓는 회색 벽돌에서 푸른 하늘 한 자락을 꺼내들고 환한 햇빛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사내가 있었다고요? 그가 벗어 놓은 듯한 파란 상의上衣가 높은 감시탑 지붕 끝에 걸려있는 것을 보았다고요?   나는 영하의 겨울밤 서울 을지로 지하철역 시멘트 바닥에 박스를 깔고 새우잠 자는 노숙자露宿者의 주머니 속에서 흘러나온 파란 손수건을 본다. 영하 25도의 얼음 꽃밭에서 환한 햇빛 속으로 팔랑팔랑 날아오른 노랑나비 한 마리가 그의 잠든 머리 위에서 날고 있다.   비오는 날 폴란드 오슈비엥침 아우슈비츠의 어둡고 침침한 허공에서 쪼로롱 찍찍 쪼로롱 찍찍 쪼로롱 이름 모르는 새소리가 들린다.   30대 여인 또는 구렁이        한 청년이 풀밭에서 통조림 캔을 딴다. 검푸른 살의 꽁치 한 마리가 책처럼 잘 요약 되어 삭아 있다. 이집트 미라의 여인이 관(棺) 속에서 꿈틀거리며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고대신전(古代神殿)의 조각상에서 나온 30대 여인이 혼자 중얼거린다. “가면을 쓴  사내가 칼을 들고 말했어” “신(神)은 인간의 피를 좋아 한다고” “나는 그와 잔 적이 있어” 그녀의 그림자 뒤에서 붉은 노을이 TV 화면 가득 이글거린다.     작은 새들이 찌르르 쫑쫑 찌르르 쫑쫑 경쾌한 소리로 날고 있는 5월의 물푸레나무 숲에서  어젯밤 드라마 속 여인이 자신의 검은 머리 위로 물을 쏟아 붓고 있다. 그녀의 허리가 푸른 잎 사이에서 구렁이처럼 햇빛에 번득인다.     뱀과 그녀     그녀의 그림 속 뱀들은 금 간 아스팔트 위에 무리지어 똬릴 틀고 있다. 풀밭을 떠나온 뱀들이 화물차가 100km 이상 달리는 검고 뜨거운 바닥에서 서로 엉겨 바들바들 고무락거린다. 햇빛이 그들의 허리에서 번쩍인다.   화랑畵廊에서 돌아 온 날 밤 침대 위에서 허리를 잔뜩 웅크린 나는 키가 30cm로 줄어들고 팔과 다리가 없어졌다. 새벽에 눈을 뜨니 내 옷걸이가 커다란 몸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미명의 어둠 속에서 옷걸이는  “넌 누구니”하고 묻는다. 내가 누구냐고? 하룻밤 사이에 내가 뱀이 되었다고?   아침 햇빛이 소리치듯 창문으로 환하게 쏟아져 들어온다. 햇빛의 뼈가 나를 일으킨다. 내 몸이 점점 커진다. 팔과 다리도 다시 생긴다. 거울에 반사된 빛이 사방으로 뻗어가고 있다. 빛A 빛B 빛C........빛A에는 구름의 살 향기가 묻어 있고 빛B에는 자동차의 경적이 묻어 있고 빛C에는 전화벨소리가 묻어있다.   그녀는 뱀들과 함께 빛의 향기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고 한다. 창 밖 허공엔 눈에 보이지 않는 투명한 뱀들이 혀를 날름거리며 반짝이고 있다.   통화通話     아 아, 여보세요. 40대의 사내가 한강대교 아치 위에 올라가서 집 나간 아내를 찾아 달라며 자살소동을 벌이고 있는 걸 봤다구요. 그 사내는 금방이라도 뛰어내릴 듯 뛰어내릴 듯 아슬아슬한 곡예를 하고 있었다구요. 3월의 하늘에선 확성기를 든 경찰과 구경꾼들에게 주는 선물인양 하얀 눈송이를 흩뿌렸다구요.   말수가 적은 40대의 회사원 K씨는 1년에 한두 번 손에 날카로운 못을 들고 자신이 사는 아파트 주차장 고급 승용차들의 차체에 굵은 금을 긋고 다닌다구요.   망치를 들고 깨진 유리창 조각들을 더 잘게 부수고 있는 인부들의 얼굴이 점점 환해 지고 있어요. 그들은 망치질에 신명을 풀어내는 듯 리듬을 타고 있어요. 작은 알갱이로 돌아간 유리들도 햇빛에 반짝이고 있어요.   아 아, 여보세요. 조주 선사가 신발을 벗어서 머리에 이고 한강대교를 걸어가고 있다 구요?   * 조주 선사(778-897):『육조단경』에 나오는 중국의 선승. 선가(禪家)에서는  조주고불(趙州古佛) 또는 조주라 부른다. 불교의 근본원리를 묻는 질문에  “뜰 앞의 잣나무니라.”라는 말을 했다.     검은 도로     직선의 아스팔트 도로를 100km로 달리는 승용차 안에서 남자가 여자에게 검은 도로를 손짓하며 말한다.   “ 방금 지나온 길이 어릴 적 뛰놀던 동네 언덕이야” “ 이 검은 도로 밑에 내가 태어난 마을이 깔려있는 거야“ " 길을 낼 때 언덕의 중심에 퍼런 정수리 뼈 드러낸 바위 하나 있었대" " 비 오는 날이면 도로 밑에서 둥둥둥둥 풍물소리가 울려오는 거 같아"    TV 속에서는 마다가스카르 맨발의 여자들이 하얀 이빨을 드러내 웃으며 벌거숭이 아이들 손을 잡고 맑은 강물이 보이는 푸른 풀밭 언덕길을 뛸 듯이 걸어가고 있다.   오전 10시 30분의 그래픽      기원전 7세기 그리스 신전神殿의 원형을 복원한 화려한 채색 조각상 그래픽이 TV 모니터 속에서 가볍게 빙빙 돌고 있는 오전 10시 30분   횡단보도를 건너온 30대 여인의 손에 들려있는 구겨진 풍경화風景畵에서 청계산 숲속 산새 몇 마리 나와 삐삐삐 쪼로롱 삐삐삐 쪼로롱 허공에 반짝이는 초록 물방울 뿌리며 빌딩 사이를 지나 푸른 하늘로 날아간다   K화백이 지난 밤 하얀 화선지 위에 내려놓은 검은 묵향墨香의 산 속에서는 걸망을 멘 한 사내가 나와 사방을 둘러보다 징검다리를 건너 빨간 노을이 물든 여진女眞의 마을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나는 이른 봄 햇살의 눈부신 바늘들이 촘촘히 박혀 있는 저수지 수초水草 속에서 발가숭이 아이들이 깔깔거리며 나오는 그림을 그리다가 채소장수의 확성기 소리에 창밖을 본다     붕어빵이 구워져 나올 때       중계동 은행사거리 40대 사내의 붕어빵틀에서 뜨겁고 말랑말랑한 붕어빵이 구워져 나올 때   전자상가 TV 화면에는 시리아 반정부군의 자살폭탄으로 반쯤 부서진 건물에서 들것에 실려 나오는 사상자들   나는 제주산 노란 감귤 한 봉지를 사들고 행인들이 붐비는 4차선 도로를 건너가고   내 옆을 깔깔거리며 지나가는 10대 여자 아이들   아파트 화단 젖은 흙속에서 10cm 가량의 검붉은 지렁이 한 마리가 꿈틀거리고 있다   탈출       제각기 자기의 방 속에 들어가 웅크리고 있는 한밤중   하얀 살들이 속으로 말 하고 있었어. 비 오는 날 손잡고 벌거벗은 망아지처럼 푸른 풀밭을 뛰어다니고 싶다고.   TV 속에서는 야생의 말들이 히힝거리며 몽골 초원의 빛 속으로 뛰어가고 있었어.   나는 벽에 딱 붙어서 바닥에서 통통 튀며 놀다가 창밖으로 날아가는 고무공을 보고 있는 타일 조각들을 생각하고 있었어.   빛 또는      검은 옷을 입은 빛이 무표정한 아파트 유리창에 매미처럼 붙어서 부르르 부르르 떨기 시작하는 시간   성난 개들이 어둠 속 4차선 도로를 횡단하며 번쩍이는 빛을 향해 컹컹 짖어대고   한여름 바닷가 뜨거운 모래밭에선 배구를 하고 있는 맨발의 30대 비키니 여자들의 번들거리는 붉은 살   흰옷을 입은 장발의 50대 남자가 푸른빛이 흐르는 무대 위에서 하늘을 향해 한껏 팔을 벌리고 있다   오전 10시 30분의 그래픽      기원전 7세기 그리스 신전神殿의 원형을 복원한 화려한 채색 조각상 그래픽이 TV 모니터 속에서 가볍게 빙빙 돌고 있는 오전 10시 30분   횡단보도를 건너온 30대 여인의 손에 들려있는 구겨진 풍경화風景畵에서 청계산 숲속 산새 몇 마리 나와 삐삐삐 쪼로롱 삐삐삐 쪼로롱 허공에 반짝이는 초록 물방울 뿌리며 빌딩 사이를 지나 푸른 하늘로 날아간다   K화백이 지난 밤 하얀 화선지 위에 내려놓은 검은 묵향墨香의 산 속에서는 걸망을 멘 한 사내가 나와 사방을 둘러보다 징검다리를 건너 빨간 노을이 물든 여진女眞의 마을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나는 이른 봄 햇살의 눈부신 바늘들이 촘촘히 박혀 있는 저수지 수초水草 속에서 발가숭이 아이들이 깔깔거리며 나오는 그림을 그리다가 채소장수의 확성기 소리에 창밖을 본다   노랑나비     비오는 날 번쩍이는 빛을 향해 어두운 헛간을 뛰어나간 고양이의 눈빛 같은   노랑나비 하나 내 숲의 어둠 속을 떠다니며 반짝인다   李箱은 에서 “찢어진壁紙에죽어가는나비를 본다. 그것은靈界에絡繹 되는秘密한通風口“라고 했다   그는 오늘도 靈界의 컴컴한 숲속에서 죽은 나비와 춤을 추고 있을까?   정리해고 된 40대의 사내가 중고 트럭 조수석에 아내를 태우고 휘파람 불며 강변도로를 달리고 있다.   노랑나비 한 마리 푸른 강물을 배경으로 날고 있다.   마네킹 또는 아침 햇빛    오전 8시 30분 백화점 지하창고에서 점원들의 들것에 실려 나오는 가슴이 깨진 20대의 남녀 마네킹 새 두 마리 지하의 어둠 속에서 날아올라 아침 햇빛 눈부신 빌딩 사이로 날아간다   햇빛 속에서 반짝이며 출렁이기 시작하는 나뭇가지들   바이칼 호수 마을에서 둥 둥 둥 둥 푸른 하늘로 울려 퍼지는 북소리 운길산 수종사 나한전에서는 환한 빛을 향해 맨 머리의 나한들이 웃고 있다     빨래판   아파트 창 밖 젊은 남자의 스피커 소리 -싱싱한 물오징어 한 마리가 이천 원, 이천 원   교실 밖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의 소리가 유리창을 흔들며 바다 속 청어가 되어 퍼덕인다   나는 빈 방에서 생목의 가구가 내쉬는 나무의 숨소리를 듣는다 숲의 나무들이 잎사귀를 흔들고 있다    합천 해인사 장경각에서 팔만대장경판을 둘러보고 나오는 할머니가 옆 할머니 허리를 찌르며 소근거린다 빨래판만 보고 간다고   푸른 풍선 하나 허공에서 둥둥 떠돌고 있는 한낮이다   열탕   시간 속으로 들어가는 길을 찾다가 어둠이 물컹물컹 밟히는 무의식의 늪지대로 들어간다. 축축하고 후끈후끈한 그 늪이 내 원시의 열탕이라는 걸 발견한다.   식탁에 앉아 칼질과 포크질로 죽은 암소고기의 탄력에서 느끼는 관능. 그 암소고기는 물질의 열탕 속에서 꿈꾸기를 계속하고 있는 것일까?   수석 수집가인 그녀는 쑥돌의 속살을 문지르며 원생대 바다 속 생명체들의 숨소리를 만지고 있다고 한다. TV에서는 시리아 난민 열세 살 키난 마살메흐가 인터뷰를 하면서 "그냥 전쟁만 멈춰줘요, 그게 전부예요."라고 외치고 있다.   카프치나 엔진 소리를 내며 굴삭기가 새 길을 내고 있다   굴삭기의 날카로운 삽날에 맥없이 허물어지고 있는 마을의 푸른 언덕 부르륵 부르륵 퍽, 퍽, 퍽 불꽃이 튀는 굉음 언덕의 중심에 숨어 있던 바위의 정수리에서 터져 나오는 핏빛소리 길바닥엔 언덕에서 파낸 돌과 흙들이 맨 몸뚱이로 바들바들 떨고 있다 그는 어제 밤 빨간 버스를 타고 19세기의 그림 속 마을 카프치나로 떠난다고 했다 산양들이 흰 구름들과 살고 있다는 카프치나   고산지대高山地帶의 산양들이 파란 하늘을 향해 메에 메에 노래할 때 흰 구름은 자주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의 모습을 하고 산양들의 머리 위에서 떠돌고 있다는 카프치나 카프치나   아스팔트 도로의 옛 마을 우물터에서는 어릴 적 빠져죽은 계집아이가 밤마다 색동옷을 입고 나와 혼자 놀고 있다   빛과 시간   빛은 과거의 공간 속에서 탈출한 새 시간이라고? 15억 년 전에 폭발한 초신성의 빛이 지금 지구에 도착한 것이라고? 컴컴한 터널 속에서 환한 빛을 뿜으며 달리고 있는 전동차 속의 나 서로 떨어져 있는 시간들을 어떻게 동일하게 맞출 수 있을까? 그녀는 꽃을 안고 천년의 시간이 파란 이끼로 피어나는 탑의 둘레를 돌고 있다          지붕 없는 집   도로를 달리던 차가 지붕 없는 집 앞에 멈춰 서 있다   지붕 없는 그 집에서는 밤이 되면 하늘의 별빛들이 내려와 의자며 식탁이며 깨진 유리창 창틀에서  아이들처럼 뛰고 노는 소리가 들린다   그 집은 어느 날 스스로 배가 되어 별빛 찬란한 우주의 바다로 둥둥 떠갈 일을 생각하고 있는 거 같다   CCTV 화면에는 60대의 여자가 목에 별빛 스카프를 두르고 아파트 옥상에 서 있는 장면이 잠시 나타났다 사라진다     그의 화면   그는 길을 걷고 있다. 그 길은 모래바람이 부는 사막이다. 그는 쓰러질 듯 쓰러질 듯 걷고 있다. 태양 볕이 영상 50도의 열기를 뿜어내고 있다. 그는 모래밭에 쓰러졌다. (그는 장면을 바꾼다. 사막을 초원으로, 계절을 4월로, 그리고 구름이 덮인 하늘, 기온은 영상20도, 풍속은 .....) 그는 풀밭에 앉아 있다. 멀리 마을이 보인다. 그는 일어서서 마을 쪽으로 걷는다. 아스팔트 길이다. (그는 1500cc 빨간 승용차를 아스팔트 길 위에 올려놓았다.) 그는 운전을 하고 달린다. (그는 운전석 옆 자리에 23세의 금발 아가씨를 앉혔다.) 그는 23세의 금발 아가씨와 함께 휘파람을 불며 마을로 들어간다. (그 순간 사라지는 화면) 그는 눈을 떴다. 아침이다. 머리맡 시계를 보니 출근 시간 50분전. 그는 세수를 하고 정장차림으로 문을 나선다. (초원, 빨간 승용차, 금발의 아가씨는 그의 화면에서 지워지고 없다.)              시간   불빛 환한 아파트 창가에는 잠의 시간에서 추방된 사람이 서 있고 지나간 시간이 몽롱한 안개를 피우는 거리엔 한 여인이 죽은 개를 가슴에 품고 걸어가고 있다 그 시간 You Tube의 인문학 특강 “존재의 세계에는 절대로 넘어 설 수 없는 선이 없다“는 강사의 목소리가 귀를 울리고 발굴을 끝낸 인골이 굵은 이빨을 드러내고 있는 카자흐스탄 박물관 유리관 속에서 2500년 전 유목민의 시간이 전등불빛 아래서 반짝이고 있다      사진 한 장           그는 눈 덮인 광야의 사진 한 장 남겨놓고   아시의 시간을 찾아 길을 떠났다    그가 떠난 뒤 밤이 되면 히힝 히힝 광야의    말울음 소리가 집안을 흔들었다.    알타이 산맥 눈 녹은 초원지대 허공에서    검독수리 한 마리 빙빙 돌고 있는 한낮    대낮에도 어두컴컴한 남미의 정글 속    거대한 마야의 탑 돌계단에서 잠자던 곰 한 마리    어슬렁어슬렁 걸어가고          집을 떠난 한 사내가 몽골말을 타고    바이칼 푸른 호수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1065    글쓰기의 0도 - 롤랑 바르트 댓글:  조회:1594  추천:0  2020-01-04
글쓰기의 0도 - 롤랑 바르트       영어단어해석   도그마 ;독단적인 신념이나 학설 데크닉;데크니크, 수법, 기술 아우라;예술작품에서 흉내낼수 없는 고고한 분위기. 다른것과 구별되는 개성적분위기. 파롤(빠롤); 소쉬르의 언어, 말, 가변적개인적 랑그;체계속 언어, 구조적 사회적 메커니즘;어떤 대상의 작동원리나 구조 그래픽;그림이나 사진을 위주로 편집한 지면이나 인쇄 물 시퀀즈; 시간,장소, 사건으로 한개의 에피소드를 구성하는 단위   사유는 어떤 무속에서 말을 배경으로 행복하게 솟아오르는것 같았는데, 이런 무로부터 출발한 글쓰기는 점진적인 응결의 모든 상태들을 통과했다. 그 다음으로 그 만듬의 대상, 끝으로 파괴의 대상이였던 글쓰기는 오늘날 마지막 변신인 부재에 도달하고 있는것이다. 10   언어체는 한시대의 모든 작가들에게 공통적인 규정들 및 습관들의 조직체이다. .. 언어체가 작가의 파롤에 어떤 형태를 주는것은 결코 아니며 자양을 주는것도 아니다. 그것은 진실들의 추상적인 원과 같은것이며, 이원을 벗어날 때 비로소 밀도 있는 고독한 언어가쌓여지기 때문이다. 15   글쓰기는 언어를 넘어선 지점에서 언제나 뿌리내리고 있으며, 하나의 선이 아니라 싹처럼 전개되고 , 어떤 본질을 나타낸다. 어떤비밀의 위협인 그것은 반소통이며 위압갑을 준다 23   지식인의 이런 글쓰기들은 불안정하며 여전히 문학적이다. 왜냐 하면 그것들은 무력하게 참여에 대한 강박에 의해서만 정치적이 기때문이다. 요컨대 그것들은 여전히 윤리적 글쓰기들이며, 그속 에서 필자(우리는 더이상 감히 작가라고 말할수 없다)의 의식은 집단적구원의 안심시키는 이미지를 찾아낸다. 30   중국전통을 보면 예술은 현실의 모방에 있는 완벽에 다름 아니다… 례컨대 나무로 만든 이 호두는 그것을 탄생시킨 예술을 나에게환기시키겠다는 의도를 어떤 호두의 이미지와 함께 전달해서는 안된다. 소설적글쓰기가 수행하는것은 그 반대이다. 35   언어는 당연히 그자체의 파괴를 향하고있기 때문이다. 38   모든 시는 자신을 표현하는 그 방식이 어떠하든지 본질의 상태로 , 힘의 상태로 존재하고있는 잠재적산문의 장식적 암시적 혹은 과장된 방정식에 불과하다… 시적언어와 산문적 언어는 그것들의 타자성을 나타내는 기호들자체가 필요없을만큼 충분히 분리되여있다… 고전주의사유는 지속이 없으며 고전주의적시는 자신의 기교적배치에 필요한 사유만을 지닌다. 그 반대로근대적시학에서 낱말들은 일종의 형식적연속체를 생산하며 이 연속체로부터 낱말들 없이는 불가능한 지적 혹은 감정적밀도가 조금씩 비롯된다. 따라서 말은 보다 정신적인 배태의 빽빽한 시간이며, 이 배태속에서 ‘사유’가 준비되고 낱말 들의 우연을 통해서 조금씩 자리잡힌다.따라서 의미작용의 무르익은 열매를 떨어뜨리게 되는 이와같은 언어적기회는 시적시간을 상정하는데, 이 시간은 더이상 제작의 시간이 아니라 어떤 기호와 어떤 의도의 만남이라는 가능한 모험의 시간이다. 근대적시는 언어의 모든 구조를 포착하는차이를 통해서 고전주의적예술과 대립되며, 이 두시사이에는 동일한 사회학적의도이외에는 다른 공통점을 남기지 않는다.43   고전주의적연속체는 밀도가 동등한 요소들의 연속인데, 이 요소 들은 차안된것같은 개인적의미작용에 대한 모든 성향을 제거하고 동일한 감각적압력을 받지 않을수가 없다. 시적어휘 자체는 창안이 아니라 관례의 어휘이다. 그속에서 이미지들은 창조를 통해서가 아니라 관습을 통해 고립되지 않고 함께 있음으로써 특수하다. … 고전주의적인 기교적수식은 낱말들이 아니라 관계들의 기교적수식이다. 그것은 창작의 기교가 아니라 표현의 기교이다. 44   낱말은 무한한 자유로 빛을 발하며 불확실하고 가능한 수많은 관계를 향하여 빛날준비를 하고있다. 고정된 관게가 무너짐 으로써 낱말은 어떤 수직적인 기회만을 지닌다. 그것은 의미들, 반사들, 잔상들로 이루어진 어떤 총체속에 잠기는 덩어리이고 기둥이다. 요컨대 그것은 서있는 기로이다. 여기서 시적인 낱말은 직접적인 과거가 없는 행위이고, 그것에 결부된 모든 기원들의 반사들이 드리우는 두터운 그림자만을 제안하는 주변없는 해위이다… 각각의 시적인 낱말들은 예기치 않은 대상이고 , 언어의 모든 잠재적가능성들이  날아오르는 판도라의 상자와 같은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특별한 호기심, 일종의 신성한 식도락을 가지고 생산되고 소비된다. 대문자 낱말의 이와같은 절대적갈망은 모든 근대적시에 공통적인데, 시적인 말을 끔찍하고 비인간적인 말로 만든다. 그것은 구멍들과 빛들이 가득하고 , 지나치게 풍부함을 주는 기호들과 부재들로 가득한 담화를 확립하지만. 이 담화는 의도의 예상도 연속성도 없으며 따라서 언어의 사회적기능에 매우 대립되기때문에 어떤 불연속적인 말에 단순히 의존하기만 해도 모든 고유한 초자연들의 길이 열리게 된다. 46-47   근대적시는 언어의 관게를 파괴했고, 담화를 낱말들의 정거장으 로 규결시켰다. 이런 현상은 대자연에 대한 인식에서 전복을 함축한다. 새로운 시적언어의 불연속체는 덩어리들로서만 드러나는 어떤 불연속적 대자연을 확립한다. 기능들의 후퇴가 세계의 관계들에 대해 어둠을 드리우는 바로 그 시점에서 대상은 담화에서 높아진 위치를 차지한다. 그래서 근대적시는 객관적시가 된다. 그속에서 대자연은 고독하고 끔직한 대상들의 불연속체가 된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잠재적관게들만 있기때 문이다.아무도 그것들을 위해어떤 특권적의미나 사용 혹은 서비스를 선택하지 않으며 아무도 그것들에 어떤 계층체계를 감지하지 않고 아무도 그것들을 정신적행동이나 의도의 의미, 작용, 다시말해 요컨대 어떤 애정의 의미작용으로 환원시키지 않는다. 따라서 시적언어의 파렬은 절대적대상을 성립시킨다. 대자연은 수직들의 련속이 되고 대상은 그것의 모든 가능성들로 채워진채 갑자기 일어선다. 그것은 메워지지 않는 따라서 끔직한 하나의 세계를 구획할뿐이다. 낱말들 대상들은 관계가 없으며 그것들이 파렬하는 모든 폭력으로 치장되고 이 폭력의 순전히 기계적인 떨림은 다음 낱말에 기이하게 충격을 주지만 곧바로 소멸한다. 이런 시적낱말들은 인간들을 배제시킨다.결국 근대성의 시적인본주의는 없다. 이처럼 수직적으로 서있는 담화는 공포로 가득한 담화이다. 다시말해 그것은 인간을 다른 인간들과연관시키는게 아니라 하늘 지옥 불가침한것, 어린시절, 순수한 질료 등 대자연의 더없이 비 인간적인 이미지들과 련관시킨다. 이 시점에서 시적인 글쓰기에 대해 나갈수 있다는것은 쉽지 않다. 왜냐하면 모든 윤리적중요성을 파괴해버리는 자률의 폭력을 지닌언어가 문제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구어적몸짓은 대자연을 수정하는것을 목표로 한다. 그것은 하나의 조물주와 같다.그것은 의식의태도가 아니라 관계의 행위이다. 이것이 바로 최소한 근대적시인들,자신들의 의도를 끝까지 밀고 가는 그 시인들의 언어이다. 그들은 시를 정신적인 실천, 령혼의 상태 혹은 립장의 계시로 받아들이는게 아니라 꿈꾸어진 언어의 찬란함과 신선함으로 받아들인다. 이런 시인들에게는 시적감 정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글쓰기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것 역시 쓸데 없다. 48-49   고전주의 작가들 역시 형태의 문제를 알고있었겠지만, 론쟁은 글쓰기들의 다양성 및 의미와 전혀 관련이 없었으며, 언어의 구조와는 더욱 관련이 없었다. 다시 말해 어떤 설득목적에 따라 생각된 담화의 질서만이 문제가 되였다. 따라서 부르죠아적 글쓰기의 특이성이 대응하는것은 수사학의 다양성이였다. 54   모파상, 졸라, 도데의 그 글쓰기는 문학의 형식적기호들 (단순 과거 , 간접화법, 씌여지는 리듬)과 사실주의의   역시 형식적인 기호들(민중언어의 덧붙혀진 조각들, 거친 말, 방언 등)의 결합체이다. 62   공산주의작가들은 부르주아작가들이 오래전부터 단죄했던 부르 주아적글쓰기를 요지부동으로 지지하는 유일한자들이 된다.67   언어의 어떤 질서에의 모든 예속에서 해방된 백색의 글쓰기를 창도하는것이다. 70   의식적인 작가는 이제 조상 전래의 전능한 기호들에 대항해 싸워야 한다. 78   근대적예술전체가 그렇듯이, 문학적글쓰기는 역사의 소외와 역사의 꿈을 동시에 지니고있다. 필연성으로서 그것은 언어들의 찢김, 계급들의 찢김과 분리할수 없는 찢김을 증언한다, 자유로서 그것은 이런 찢김의 의식이고 그것을 뛰여넘고자 하는 노력자체이다. 그것은 그것자체의 고독에 대해 끊임없이 죄의식을 느끼고 있음에도,여전히 낱말들의 행복에 탐식하는 상상력이며, 어떤 꿈꾸어진 언어를 향해 달려간다. 언어가 더이상 소외되지 않는 새로운 아담적인 세계의 완벽함을 일종의 리상적인 예견을 통해서 나타내는 신선함을 지닌 그런 언어를 향해. 글쓰기들의 다양화는 새로운 문학을 확립한다. 왜냐하면 이 새로운 문학은 오로지 하나의 기획이 되기 위해서만 자신의 언어를 창안한다는 점때문이다. 이 기획은 문학이 언어의 유토피아가 되는것이다.79   작품의 불연속성과 무질서가 낳는 열매자체는 각각의 잠언이 이를테면 모든 잠언들의 원형이라는것이다. 유일하면서도 변주되는 하나의 구조가 있다… 성찰들은 담론의 단상들이고 , 구조와 광경이 없는 텍스트들이다. 84   잠언은 개별적인 덩어리들로 구성된 전체적인 불덩어리이다. 뼈대는 뚜렷한 모습이상으로 광경적이며- 그리고 뼈들은 단단한것들이다. 잠언의 모든 구조는 그것이 고정되여 있지 않다는 바로 그점에서 가시적이다. 85   수직성을 통해서만 질서가 잡히는 하나의 세계가 드러난 셈이다. 미덕들, 다시말해 외관들의 유일한 수준에서는 그 어떠한 구조도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구조는 바로 명백한것과 감추어진것 사이의 진실관계로부터 비롯되기 때문이다. 97   무질서는 세계를 만들어낸다 98   지극히 뛰여난 명철성에 지극히 대단한 비현실성이 흔히 대응한다.100   이미지들은 텍스트와 분리시킴으로써 는 대상의 하나의 자율적인 도상학에 진입하고 있었다. … 의 도판들은 대상을 제시하고 이 제시는 예시의 교육적목표에 보다 무상한 미학적 혹은 모상적 정당화를 덧붙이고 있다.105   일반적으로 대상의 생산은 이미지를 거의 신성하다할 단순성으로 이끈다… 창조의 간결한 엄겨겅, 거래의 화려함, 이것이 백과전서적 대상의 이중적체제이다. 109   기계의 도판, 곧 이미지는 … 우선 대상 혹은 작업의 분산된 요소들을 분석하고 열거하며, 그것들을 독자의 눈앞에 테이블위에 던지듯 던지고, 이어서 마무리하기 위해 생활장면, 다시 말해 삶의 두께를 덧붙이면서 그것들을 재구성한다. 116   당신이 재현하는것은 분석적정신의 여정이다. 세계는  당신에게 통상적인것, 분명한것(이것은 생활의 장면이다)을 제시한다. 백과전서파와 함께 당신은 점진적으로 원인들, 물질들, 원요소들로 내려가며 , 체험적인것으로부터 인과적인것으로 가고 , 대상을 지적으로만든다. 일직선적인 글쓰기와 이 점에서 반대되는 이미지의 특권은 그 어떠한 독서의 미로도 강제하지 않는다는것이다. 왜냐하면 이미지는 론리적인 백커가 언제나 결핍되여 있기 때문이다.117   특이한 떨림은 무엇보다도 놀라움이다.118   백과전서적인 시적세게는 언제나 어떤 비현실주의로 규정된다. 따라서 객관성(‘현실’)의 엄격한 요구에 토대한 작품이면서 동시에 , 다른 무엇(타자는 모든 신비의 기호이다)이 끊임없이 현실을 넘어서는 시적작품이 되는것이 의 계획 이다. 121   객관적으로 이야기된 단순한 대상의 은유자체는 무한히 떨리는 대상이 된다. 122   이미지는 대부분의 경우 그것으로 하여금 본질적으로 터무니없는 대상을 재구성하지 않을수 없게 만든다. 첫번째 자연이 일단 분해되고 나면 첫번째것처럼 형성된 또 다른 자연이 출현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세계를 부순다는것은 불가능하다. 세계가 영원히 차있기 위해서는 하나의 시선- 우리 시선- 이면 족하다  123   자신(을 쓴 샤토브리앙)의 마지막 그림속에 그 최상의 신비한 불완전성을 담아놓은 푸생과 자신을 동일시한다. 이불완전성은 완성된 예술보다 더 아름다운데, 시간의 떨림 이다. 추억은 글쓰기의 시작이고 차례로 글쓰기는 죽음의 시작 인것이다.(그것이 아무리 젊은때 시작된다 하더라도 말이다)128   은유      사실 파격구문은 거리의 시학으로 이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문학적노력이 친화성들, 상응들, 유사성들을 추구하는데 있으며, 작가의 기능이 자연과 인간을 단 하나의 세게로 통합하는것이라 고 생각한다. (이것이 우리가 공감각적인 기능이라고 부를 수있는것이다.) 그러나 문학의 근본적인 문채인 은유 역시 분리의 강력한 도구로서 리해될수 있다. 특히 은유는 샤토브리앙의 경우 풍부한데 , 두성분뿐 아니라 비소통을 우리에게 표상한다. 마치 하나는 다른 하나에 대한 향수에 불과한것처럼 말이다. 이야기는 문자적요소들, 다시 말해 은유적인 방법을 통해 갑자기 덥석 물리고 ,쳐들려지며, 떼어내지고, 분리된 뒤후 일화의 자연스러움에 내맡겨지는 문자적요소들을 제공한다. (그것은 심지어 그렇게 하지 않을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보았듯이,준비도 없이 폭력적인 파격구문에 따라 억지로 도입된 새로운 말은 환원불가능한 어떤 다른 곳과 갑작스럽게  이 요소들을 대면시킨다. 샤토부리앙은 죽어가는어떤 젊은 수도사의 미소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는 캐시미르계곡에서 여행자를 위로하는 그 이름모를 새소리를 듣고있다고 생각했다” 뿐만 아니라 이런 대목도 있다.“이곳에서 누가 태여났고, 누가 죽었으며, 누가 울었는가? 저 하늘 높이 있는 새들은 다른 고장들을 향해서 날아간다” 샤토브리앙의 작품에서 은유는 사물들을 접근시키는게 전혀 아니다. 그것은 세계들을 분리시킨다. 기교적으로 말하며 (왜냐하면 기교나 형의상학을 말하는것은 같은것이기때문이다), 오늘날 은유는 (시적자유에서와는 달리)단 하나의기표에만 관련되는게 아니라, 담화의 커다란 단위들에 확장되여 연사莲词생명력자체에 참여하는것 같다. 언어학자들은 연사가 언제나 말과 가깝다고 말한다.샤토브리앙의 커다란 은유는 사물들을 분활하는 여신인데, 언제나 향수적이다. 그것은 반향을 증식시키는것처럼 나타나면서도 인간을 자연속에 불투명한것처럼 남겨두고있고 그에게 결국 직접적인 진정성의 기만을 면제해 준다. 문학은 분리시키고 일탈시킨다. 133-134   대립들이 엄격하도록하기 위해 그것들을 두개이상의 상이한 풍경이 아래로 쫙 펼쳐지는 산정상의 능선처럼 얇고 날카로우며 결정적인 일회식사건을 통해 분리시켜야 한다.   문학은 우연적인 진실을 영원한 개연성(필연성)으로 대체 한다135   근대의 작가는 아브라함이면서 아브라함이 아니다. 그는 도덕을 벗어나 있으면서 동시에 언어속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환원불가능한것을 가지고 일반적인것을 만들어야 하고 , 언어의 도덕적인 일반성을 통해서 자기존재의 부도덕성을 되찾아야 한다. 그래서 문학이라는것은 이와같은 위험을 감수한 통과이다. 138   고유명사는… 보통명사의 모든 특징들을 부여받고 있지만 모든 투사적법칙을 넘어서 존재하고 기능할수 있기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고유명사를 근거지로 하는 하이퍼의미성현상의 대가 –혹은 날쁜점-이다. 이 현상이 고유명사를 시적인 낱말과 매우 유사하게 만들고 있음은 물론이다.146   사실 고유명사는 촉매작용을 할수있다. 우리는 그것을 채울수 있고, 확장할수 있으며 , 그것의 의소적골격이 지닌 사이들을 무한한추가물들로 메울수 있다. 고유명사의 이와같은 의소적 확장은 다음과 같이 다른 방식으로 규정될수 있다. 각각의 이름은 우선 불연속적이고 고정되지 않은 방식으로 출현하는 여러장면들을 포함하지만,이것들은 련합하여 하나의 작은 이야기로 되기만을 요구한다.  왜냐하면 이야기하는것은 일정수의 충만한 단위들을 환유적방식을 통해 련결시키는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148   고유명사는 흉내이고, 아니면 플라톤이 말했듯이 환영이다. (이것은 의구심이 들지만 맞다)150                         프로베르보다 훨씬 전에 작가는 문체의 혹독한 작업, 끊임없는 수정의 피곤함, 미미한 수확을 얻기위한 과도한 시간의 슬픈 필요성을 느꼈다. 그리고 표현했다… 플로베르에게는 문체는 절대적인 아픔이고, 무한한 아픔이며, 불필요한 아픔이다. 집필은 터무니없게 완만하다(‘일주일에 네페지’ ’한페지를 쓰는데 닷새’ ’두줄을 쓰는데 이틀’) 그것은 “삶과의 돌이킬수 없는 고별” 무자비한 자기감금을 요구 한다.157   수직적축에는 대체 낱말들이(이것들은 정정들이나 낱말들이다) 기입된다. 수평적축에는 통합체들의 삭제들이나 첨가들 (이것 들은개정들)이 기입된다.(2015.1.2.)  
1064    시를 공부할 때 자주 만나는 용어 댓글:  조회:1655  추천:0  2019-12-22
시를 공부할 때 자주 만나는 용어   *감상주의(感傷主義) : 어떤 원칙을 주장하는 뜻에서 주의가 아니고 감정 과정의 의미에서 주의이다. 슬픔이나 기쁨 등의 정서를 사실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그러한 정서 자체를 인위적으로 조장하는 데서 생긴다. *감정이입(感情移入) : 작가의 사상이나 감정을 다른 대상에 집어넣어 대신 나타내는 표현 기법 상의 하나. 시에서 많이 쓰인다. *객관적 상관물(客觀的 相關物) : 어떤 특별한 정서를 나타낼 공식이 되는 한 떼의 사물 정황 일련의 사건으로서 바로 그 정서를 곧장 환기시키도록 제시된 외부적 사실들을 이르는 말. 엘리어트가 처음 말함. *계몽주의(啓蒙主義) : 서양에서 17세기에서 18세기에 걸쳐 왕성했던 사조로서 인간의 이성을 중시했다. 계몽주의 문학은 작가가 교사 선각자의 입장에서 민중을 합리성에 호소하여 가르치려 하는 일종의 교훈주의 문학이다. *고전주의(古典主義) :그리스 로마의 고전적 미를 전범으로 하여 17.18세기 유럽에서 일어난 문예 경향 개성적이기 보다는 보편적이면 일반 미를 지향한다. *구조(構造) : 내부 요소들이 짜임 또는 그러한 짜임에 의하여 이루어진 문학 작품의 전체 *구조주의(構造主義) :문학 작품을 작품 속의 여러 요소들의 상호 관계로서 조직된 구조로 보는 연구 방법론 이 사상은 프랑스의 언어 학 이론에서 나왔다. *기지(機智) : 지적인 것이며 언어적 표현에 의존한다 서로 다른 사물에서 유사점을 찾아내고 그것을 경구나 압축된 말로 표현하는 지적 능력 *기호학(記號學) : 문학 작품을 하나의 기호 체계로 보고 이를 분석하는 문학 연구의 한 방법 작품의 언어 분석을 통한 문화 요서의 분석 문체론적 접근 의미론에 따른 분석 등을 행한다. *낭만주의(浪漫主義) : 18세기말부터 19세기초에 걸쳐 독일 영국 프랑스 등에서 유행한 문예사조의 하나 고전주의에 반발하여 생겨난 것으로 자유와 개성을 중시하고 현실보다는 이상을 추구하는 풍만해 감정 표출을 특징으로 한다. *내재율(內在律) : 자유시나 산문시에서처럼 문장 안에 미묘한 음악적 요소로 잠재되어 있는 운율 외형률과 대조가 된다. *내적 독백(內的獨白) : 20세기 심리 소설의 한 서술 방법으로 인물의 심리 적 독백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외적 사건을 그리는 기교 *내포(內包):사전적 의미가 작품구조 내에서 새롭게이루어내는의미함축적 의미 *다다이즘 :1차 세계대전 중 나타난 전위적 예술 운동에 대해 시인 트리스탄 짜라가 붙인 이름 전쟁의 잔인성을 증오하고 합리적 기술 문명을 부정하여 일체의 제약을 거부하고 기존 질서를 파괴하는 과격한 실험주의적 경향 뒤에 초현실주의에 흡수되었다. *다의성(多義性) : 단일한 의미가 아니라 암시적으로 여러 갈래의 의미를 드러내는 문학 언어의 한 특성. *데카당스 : 퇴폐주의 19세기말의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프랑스에서 유럽 각 국에 퍼져 퇴폐적이고 관능적인 예술 경향으로 뒤에 상징주의로 발전하였다. *매너리즘 : 예술 창작에서 독창성을 잃고 평범한 경향으로 흘러가 생기와 신선미를 잃는 일 *모더니즘 : 철학 미술 문학 등에서 전통주의에 대립하여 주로 현대의 도시 생활을 바였나 주관적이 예술 경향의 총칭 시에 있어서는 1910년이래 영미를 중심으로 일어난 이미지즘과 주지주의를 함께 말한다. *모티프 : 일정한 소재가 예술적 관점에서 해석되어 작품의 주제를 구성하고 통일감을 주는 중요 단위를 말한다. 이것은 한 작가 한 시대 나아가 한 갈래에 반복되어 나타날 수 도 있다. *몽타주: 따로따로 촬영된 화면을 효과적으로 떼어 붙여서 화면 전체를 유기적으로 구성하는 영화나 사진 편집의 한 수법 *묘사(描寫) : 어떤 대상을 객관적 구체적 감각적으로 표현하여 나타내는 일 *민요(民謠):민중 속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하여 민중의 생활 감정을 소박하게 반영시킨 노래 반어 의미를 강조하거나 특정한 효과를 유발하기 위해서 자기가 생각하고있는 것과는 반대되는 말을 하여그 이면에숨겨진 의도를 나타내는 수사학의 일종 *보조 관념(補助觀念) : 어떤 다른 생각을 나타내는 매개로 쓰이는 사물이나 생각 비둘기 가 평화를 나타낼 때 비둘기는 보조 관념 평화는 원관념 *부조리(不條理) : 문학: 베케트나 카뮈의 작품이 그것으로 인간 존재의 무의미함 인간 사이의 의사 소통의 불가능함 인간 의지의 전적인 무력함 인간의 근본적인 야수성, 비생명성, 요컨대 인간의 부조리를 아이러니컬하게 나타내는 문학을 말한다 특히 부조리극은 내용만이 아니라 극 구성 자체가 부조리하다. *비유(比喩) : 하나의 사상이나 사건을 설명할 때 다른 사물을 빌려 표현하는 것 직유 함유 은유 인유 등이 있음 *사실주의(寫實主義) : 19세기 후반에 낭만주의에 대립하여 자연이나 인생 등의 소재를 있는 그대로 묘사하려는 예술의 경향 또는 인간의 본질을 역사적 사회적 존재로 보는 세계관 *산문시(散文詩):일정한 운율 없이 자유롭게쓰는 시로이야기형식으로쓰는시 *산문 정신:운문의 외형적 규범 및 낭만주의적인 시적 감각을 배제하고 사회적 현실주의에 의하여 파악된현실을순전한사문으로써표현해야한다고하는 태도 *상징(象徵) : 한 사물 자체로서 다른 관념을 나타내는 일 즉 보조 관념만으로 원관념을 나타내는 일 *상징주의(象徵主義) :19세기 중엽 프랑스에서 자연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일어난 문예 상의 경향 내면적이고 신비적인 세계를 상징으로써 암시하려고 했다. *서사시(敍事詩) : 민족적이거나 역사적인 사건이나 신화 또는 전설과 영웅의 사적 등을 이야기 중심으로 꾸며 놓은시 *서사체(敍事體) : 어떤 사건이나 사실 전달을 위주로 서술해 나가는 문체 *서술자(敍述者) : 소설에서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사람, 시에서 시 내용을 전달하는 사람은 '시적 자아'라고 하며 주로 '나'라는 1인칭 서술자가 된다. *서정시(敍情詩) : 서사시 극시와 달리 주관적이며 관조적인 수법으로 자기 감정을 운율로서 나타내는 시의 한 갈래 *서정적 자아(抒情的自我) : 시 속에서 말하는 사람으로 보통 시인 자신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시인이 시적 표현 효과를 위해 허구적으로 설정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렇게 부름 시적 자아라고도 한다, *서정주의(抒情主義) : 시 소설 등에서 작자의 주관적 체험을 서정적으로 표현하는 한 경향 주로 사람 죽음 자연 등을 제재로 내적 감동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리리시즘 *소재(素材) : 예술 창작 상의 요소가 되는 재료 곧 자연물 환경 인물의 행동 감정 같은 것 *수사학(修辭學) : 역사 전설 도덕 철학 등의 산문적인 요소를 내포하지 아니하고 순수하게 정서를 자극하는 표현적 기능만을 활용하여 짓는 시 *시튜에이션 : 상황 어떤 인물이 처한 정세를 가리킨 것으로 연극 소설 영화 등에서 결정적 장면을 말함 *시학(詩學) : 시에 대한 조직적 체계적 이론으로 시의 본질과 분류, 형식과 기교, 효용,그 밖에 다른 예술과의 관계,시의 기원 등을 합리적으로 설명한다. *신고전주의(新古典主義) : 17세기 중엽에서 18세기 말엽까지의 유럽 문학 사조를 가리킨다 신고전주의는 사람의 불완전성을 강조하고 고전 문학에서 발견한 자연의 보편서 조화 균형 합리성을 더욱 철저히 방법적으로 따르기를 주장 하였다. *실존주의(實存主義) : 실제로 존재하는 체험적 개인의 상황 자체가 중요하며 개인의 실존은 비합리적이라는 입장 실존주의 문학은 인간 존재를 그 근원적 부조리성에서 추구하는 것 존재가 본질에 선행한다는 명제에서 출발한다. 앙가 주망도 여기에서 나왔다. *심볼 : 상징 인간이나 사물 추상적인 사고를 그 연상에 의해 표현하는 것 심상(心像) : 이미지 *아이러니 : 반어법, 수사학에서 의미를 강조하거나 특정한 효과를 유발하기 위해서 말의 표면상 의미 뒤에 숨어 그와의 반대의 뜻을 대조적으로 비치는 표현 형식 *알레고리:흔히 풍유 또는 우유라고도 함 표면적으로 인물과 행위와 배경 등 통항적인 이야기의 요소들을 다 갖추고 있는 이야기인 동시에 그 이야기 배후에 정신적 도덕적 또는 역사적 의미가 전개되는 뚜렷한 이중 구조를 가진작품 *앙가주망:사회 참여 현실 참여라는 뜻으로 프랑스의 사르트르가 주창하였다. *애매성(曖昧性):신비평의 용어 함축적 의미의 언어가 사용되는 시에서 상식적인 의미 이외에 풍부한 암시성을 수반하거나 동시에 둘 이상의 의미를 드러낼 수 있는 융통성 복합적 의미 풍부한 의미라는 뜻으로서 난해서과는 구별된다. *어조(語調) :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사물과 독자에 대한 작가의 태도에 의하여 결정되는 말의 가락 *역설(逆說) : 겉으로 보기에는 진리에 어긋나는 것 같은 표현이나 사실은 그 속에 진리를 품은 말 패러독스 *예술지상주의(藝術至上主義) : 예술을 위한 예술, 예술은 오직 미를 추구하는 독자적인 존재라는 주장으로 유미주의자들이 내세운 구호에서 비롯되었으며 미의 절대적 가치를 의미함 *오버랩 : 영화에서 어떤 화면 위에 다른 화면이 겹쳐지는 것으로 시간 경과에 대한 생략의 의미로 쓰인다. 약화 *외연(外延) : 한 낱말이 본래 가지고 있는 사전적 의미 지시적 의미라고도 하며 내포와 대립된다 *우화(寓話) : 인간의 정화를 인간 이외의 동물, 신 또는 사물들 사이에 생기는 일로 꾸며서 말하는 짧은 이야기로서 도덕적 교훈이 담겨 있다. *운율(韻律) : 시의 음악적 요서 같은 소리의 반복에 의한 음악적 성과를 운이라 하고 말의 고저 장단에 의한 음악적 성과를 율이라고 한다. *원관념(元觀念) : 어떤 말을 통하여 달리 나타내고자 하는 근본 생각 보조 관념과 대립 *원형(原形):근본적인 형식으로 그것으로 부터 많은 실제적 개체들이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을 말한다. 프레이저의 인류학과 융의 심리학의 영향을 받아 문학 비평에 이 방법이 원용되어졌다. 인간의 원초적 경험들이 인간 정신의 구조적 요소로 되어 집단적 무의식을 통해 유전되며 그것이 문학에서 상징적인 형태로 나타난다는 입장 *위트 : 기지 사물을 신속하고 지적인 예지로 인식하여 다른 사람이 기쁘게 즐길 수 있도록 교묘하고 기발하게 표현하는 능력 *유미주의(唯美主義) : 탐미주의라고도 함 미를 최고의 것으로 보고 여기에 절대적 가치를 부여하는 태도로서 문학 예술의 목적을 도덕이나 실용성에서 분리시켜 미 자체를 추구하는 것 *율격(律格) : 율, 즉 말의 고저 장단만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음악적 격식은유처럼 같이 등 연결어가 없이 원관념과 보조 관념을 결합시켜 나타내는 비유법의 하나 A는 B이다 A의B와 같은 형태를 취한다. *음보(音步) : 시의 전체적인 리듬을 형성하는 어절로서의 최소 단위 *음성 상징(音聲象徵) : 시적 표현에서 음성 자체가 감각적으로 떠올리는 표현 가치를 이른다. 의미 작용 의미 작용 문학 작품의 내적 구조 관계를 통해 자율적으로 의미를 산출해 내는 일 그렇게 하여 이루어진 의미 *의식(意識)의 흐름 : 인간의 잠재 의식의 흐름을 충실히 표현하려고 하는 문학상의 수법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는 이 기법으로 쓰여진 유명한 작품이며 이상의 날개도 이런 유의 작품에 속한다. *이미지 : 오관을 통한 육체적 지각 작용에 의해 마음속에 재생된 여러 감각적 현상. 심상, 영상이라고도 한다. * 이미지즘 : 일차 대전 말기 영미의 시인들이 사물의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묘사로써 명확한 심상을 제시하고자 창도한 문학 운동으로 이미지의 색채와 율동을 중시하고 적확한 용어로 새로운 운율을 창조하려고 했음 *인본주의(人本主義) : 인간성의 해방과 옹호를 이상으로 하는 사상 인간성을 구속 억압하는 대상이 시대에 따라 다름으로 휴머니즘의 내포적 의미를 시대에 따라 다른 양상을 보인다. *인상주의(印象主義) : 회화나 조각에 있어 자연에 대한 순간적인 시각적 인상을 중시하고 여러 가지 기교로 인상을 그대로 표현하려고 하는 주의와 그 작가들 *자기화(自己化) : 문학 작품 통해 얻어지는 여러 가치를 자기 변화의 동기로 삼는 일 *자연주의(自然主義) : 사실주의의 뒤를 이어 나타난 문예사조로 진화론 물질의 기계적 결정론 실증주의 등의 사상을 배경으로 일어났으며 생물학적 사회환경적 지배하에 있는 인간을 대상으로 자연 과학자와 같은 눈으로 분석 관찰하고 검토 보고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자유시(自由詩) : 전통적인 정형적 리듬을 벗어나 자유로운 리듬의 가락으로 이루어진 모든 형태의 현대시 *자율성(自律性) : 문학 작품이 그 자체의 내적 구조를 통해 스스로 하나의 완결된 전체를 이루는 특성 *정화 작용(淨化作用) : 아리스토텔레스의 비극 이론으로 울적한 공포에 질린 감정을 해소하여 쾌감을 일으키게 하는일 카타르시스 *주지주의(主知主義) : 종래의 주정주의에 대립하여 감각과 정서보다 지성을 중시하는 창작 태도와 경향 1차 세계대전 후 프랑스와 영국 미국에서 성했다. ※지시적 의미(指示的意味) : 사전에 나타나는 그대로의 의미 *직관(直觀) : 판단 추리 등의 사고 작용을 거치지 않고 대상을 직접적으로 파악하는 정신 작용 직유처럼 같이 등 원관념과 보조관념을 직접 연결해 주는 말에 의해 나타내는 비유법 *초현실주의(超現實主義) : 쉬르리얼리즘 프랑스에서 일어난 예술 운동으로 1920년대에 다다이즘에 이어 프로이트의 심층 심리학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기성의 미학 도덕과는 관계없이 내적 생활의 충동적인 표현을 목적으로 한다. *초점(焦點) : 주의에 상상적인 작품의 제재가 집중된 중심 초점은 한 작품 속에서 순간 순간 이동 될 수 도 있고 지속적으로 고정 될 수도 있음 *추체험(追體驗) : 작품을 읽으며 자신을 작품 속의 인물과 같은 입장에서 그 작품 세계를 행동하고 경험하는 것 *카타르시스 : 아리스토텔레스의 비극 이론으로 공포와 연민을 통해 감정을 해방하여 쾌감을 일으키게 하는 일 *테마:작품 속에 나타난 중심 사상이며 작품 속에 구현되어진 의미여 제재에 대한 해석이다. 창작 과정으로 보아서는 동기의 구체화라고 할 수 있음 주제 *텍스트 : 주석 번역 서문 및 부록에 대한 본문 원문 원전을 말한다. *패러디 : 어느 작가나 시인의 내용 문체 운율 등을 모방하여 풍자적으로 꾸민 작품 *폭풍노도(暴風怒濤) : 1770-1780년 무럽에 괴테와 실러를 중심으로 독일에서 일어난 혁명적 문학 운동 합리적인 계몽주의에 반대하고 격력한 감정과 개성을 존중했다. *표현주의(表現主義) : 1차 세계대전 후 독일을 중심으로 일어났으며 특히 연극 분야에서 성행했다 작가 개인의 강력한 주관적 표현을 내세운다. *풍유법(諷諭法) : 본래의 뜻을 감추고 표현되어 있는 것이 이상의 깊은 내용이나 뜻을 짐작하게 하며 흔히 교훈적인 수사법 알레고리 *풍자(諷刺) : 인간의 약점 사회의 부조리 비논리 같은 것을 조소적으로 표현하는 수법 *함축적 의미(含蓄的意味) : 문학 작품에 있어서 내부 구조를 통해 드러내는 의미 지시적 의미의 반대되는 뜻으로 쓰인다. *해학(諧謔) : 성격적 기질적인 것이며 태도 동작 표정 말씨 등이 광범위하게 나타난다. 인간에 대해 선의를 가지고 그 약점이나 실수를 부드럽게 감싸며 극복하게 하는 공감적인 태도이다. *형식주의(形式主義) : 작품 자체의 형식적 요건들 작품 각 부분들의 배열 관계 및 전체와의 관계를 분석 평가하는 문학론 구체적으로는 러시아 형식주의를 지칭하며 신비평은 여기서 나왔다. *휴머니즘 : 인간성의 해방과 옹호를 이상으로 하는 사상 또는 심적 태도 인간성을 구속 억압하는 대상이 시대마다 다른 양상을 띤다. 인도주의   [출처] 시를 공부할 때 자주 만나는 용어 (시인의 정원) |작성자 소양 김길자  
1063    김기덕 시모음 3 ( 한국) 댓글:  조회:1779  추천:0  2019-12-21
해장하다       술이 덜 깬 날엔 해장을 한다. 뚝배기에 담겨 부글부글 끓어오르던 해장국이 몸속에서 뼈가 녹는 진실을 풀어낸다. 몽롱함을 깨우며 불의 기운이 온몸으로 퍼진다. 한때 푸르렀던 무청과 아삭한 콩나물들이 뒤섞여 회색빛 아침을 깨운다. 싱거운 삶의 시간을 새우젓으로 간 하며 뼈대만 남은 간밤의 생각들을 떠올린다. 하루 종일 불에 달궈지며 한 끼니 식사를 위해 뜨겁게 살았다. 가마솥에 통째로 삶아지며 끓어오르는 내장을 물로 다스렸다. 귀도 잘리고, 간도 썰어져서 한 생의 순대를 채우기 위해 나도 국밥으로 끓어올랐다. 파 마늘에 선지들을 가득 담고 임계점을 넘어야만 맛이 나는 비법을 깨닫는다. 누군가가 내 몸에 연기를 피우고 불을 질렀던 것은 깊은 맛을 내기 위함이었다. 매콤한 다대기를 넣고 휘휘 저으며 칼, 칼을 휘둘러 칼칼하게 맛을 더했던 뚝배기 속에 수저를 담가 열정을 퍼 올린다. 콩나물과 시래기 뒤엉킨 식물성의 생각들을 건져 먹는다. 뱃속에서 해장이 풀어질 때 간밤의 서릿발도 말끔히 풀린다. 얼었던 뼈들도 녹아내려 살이 되고 피가 된다. 불에 달구어질 때 해장국 뚝배기와 나의 전성시대다. 뜨겁게 열 받을 때마다 밥풀떼기 차갑게 식어버린 빈 뚝배기를 조문한다. [출처] 해장하다|작성자 김기덕   깃발이거나 플랜카드         몸 안에 것이 가끔씩 밖으로 내걸리는 것이 혀다. 입이 열리고 혀가 움직일 때 내면을 알 수 있다. 점막으로 덮여 미각과 저작을 위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지만, 혀는 내면을 쓴 유일한 깃발이다. 아니 플랜카드다. 입이 열리고 나면 깃발이 펄럭이고 함성이 울린다. 플랜카드가 내걸린 벽엔 언어들이 춤춘다. 집집마다 혀가 내걸린 창문엔 저마다의 목소리와 의미들이 나부낀다. 창문을 걸어 잠그고 침묵에 빠진 집안의 내력은 알 수 없다. 무엇을 씹는지 알 수 없는 무표정의 얼굴, 입을 열고 혀를 내보일 때 우린 소통을 느낀다. 문을 열고 들어가 서로의 혀를 맞대지만 혀의 색깔이 왜 빨간지에 대해 아는 사람은 없다. 혀가 왜 그렇게 부드러운지에 대해도 나는 아직 생각해 보지 못했다. 색색으로 내걸린 플랜카드들이 유혹의 말을 흘린다. 코드를 찾은 사람들이 펄럭이고, 바람을 핥으며 내통한다. 단칼에 너를 밸 수도 있지. 혀 앞에선 늘 꼬리를 내보인다. 보이는 꼬리와 보이지 않는 꼬리 사이엔 원의 세계가 있다. 혀를 잘 놀려야 천국을 얻는 것이 아니라 혀가 꼬리를 물고 있어야 천국을 얻을 수 있지. 날마다 깃발들이 펄럭이고, 플랜카드가 나부끼는 창문에선 혀를 찾을 수가 없다. 붉게 물든 깃발들이 바람을 삼킨다. 몸 밖으로 나온 혀들이 서로를 피터지게 물어뜯는다. [출처] 깃발이거나 플랜카드|작성자 김기덕   튀김들은 바삭거린다         검은 솥에서 기름이 끓는다. 모든 튀김들은 지옥을 경험한 후에 탄생한다. 바삭바삭 입에서 부서지는 지옥의 맛은 감동적이다. 살면서 지옥을 맛볼 때 튀김이 된다. 질기거나 익지 않음으로 먹을 수 없는 관계는 닭이나 오징어만은 아니다. 튀겨진 살과의 접촉, 익혀진 관계의 바삭거림은 행복하다. 양념을 입었어도 하나가 될 수 없는 것은 익지 않았기 때문이다. 익지 않은 이들이 서로 피하며 등을 돌린다. 강한 고통만이 순간에 뼈와 살을 익힌다. 하루의 검은 솥에서 기름이 끓고 지옥의 고통으로 튀겨질 때, 죽어도 죽지 않는다. 지글거리며 등 뒤집고 부상하는 순간의 깨달음을 얻는다. 허옇게 부풀며 스스로 가벼워질 때 기름불에서 건져진다. 불 속의 순간은 짧아도 변화의 쾌락은 긴, 지옥 불을 경험한 이에게선 바삭한 튀김 냄새가 난다. 끓는 기름의 고통을 경험한 이는 뼈와 가시를 내세우지 않는다. 비릿한 풋내기의 생살을 드러내지 않는 고소함. 푹 삶아지고 고아져서 완숙의 꿈으로 떠오를 수 있는, 죽음은 바삭한 열매다. [출처] 튀김들은 바삭거린다|작성자 김기덕   모래시계         모래 속에 박힌 해골 하나 입 벌리고 웃는다. 눈동자가 사라진 퀭한 구멍으로 나를 바라본다. 구멍 속엔 블랙홀이 담겨있고, 보이지 않는 세상으로 나를 빨아들인다. 그가 보았던 아름다운 풍경과 찬란했던 빛깔들은 어둠이 되었다. 오뚝하던 콧대마저 사라진 구멍 속으로 사막의 모래바람만이 드나든다. 몸의 감각을 다 지우고 나면 남는 해골 하나, 풍화작용하며 모래가 되어간다. 태양빛 입술과 볼의 노을을 지우고, 밤을 닦아 하얗게 탈색해 간다. 모래 속에서 반 쯤 머리 들고 바라보는 세상에 미련이 남았는지 해골이 징상한 이빨로 웃는다. 사는 게 다 풍화작용이지. 감각 속에 울고 웃다가 무감각에 빠져드는 사막, 모래가 되다 만 해골 하나 사막에 누워 말이 없다. 모래가 모래가 되고, 모래가 다시 모래가 되어 미세입자가 되면 나는 누구와 만나 새로운 생명체가 될까. 분해와 결합의 반복을 이루며 살아가는 나와 해골은 하나의 시간 속에 있다. 사막 속에 누운 해골과 사막을 걷는 해골이 마주보고 웃는다. 거꾸로 선 내 몸에서 모래들이 쏟아진다. 시간의 반복, 내가 모래 속에 눕고 해골이 사막을 걷는다. [출처] 모래시계|작성자 김기덕   쓰레기 섬           버려진 이들이 태평양 한 가운데서 만났다. 죽을 고비를 넘기며 흘러 다니다 바다에서 만나 섬이 되었다. 밟히고 차이며 품었던 독기를 숨겨 쓰레기의 영토를 세웠다. 상처투성이로 뚜껑이 열린 영혼들이 바다를 정복했다. 바다는 쓰레기의 식민지가 되고, 쓰레기들에게만 바다의 시민권이 주어졌다. 물고기들은 페트병의 살을 먹으며 군대로 키워졌고, 자살특공대원들은 뼈에서 살까지 플라스틱으로 세뇌되었다. 스티로폼의 명령에 물고기들은 수천 킬로를 헤엄쳐서 자살테러를 했다. 살을 나눠먹은 배신자들의 뱃속엔 비닐의 독 가루가 퍼지고, 사지가 뒤틀리는 죽음이 찾아왔다. 일회용 비닐봉지 하나 버려질 빼마다 쓰레기 나라의 인구는 늘어났다. 햇빛에 미세분말로 개체분열하며 불멸의 종족으로 무한번식 했다. 게릴라전을 준비해온 바다왕국엔 동원령이 내려지고, 밥상머리에서 바다와 안개전투가 시작되었다. 누가 적인지 아군인지 알 수 없는 물고기들로 평화는 깨져있었다. 하얀 소금으로 위장한 병사들도 맛을 내며 흥겨운 식탁을 점령해 갔다. [출처] 쓰레기섬|작성자 김기덕   틀의 유전       아버지는 나를 위해 틀을 만드셨다. 남들 보기에 좋아 보이는 틀은 숨통을 조였다. 다리를 접고, 팔을 오므려야 겨우 들어갈 수 있는 틀이 나를 기형적으로 만들어갔다. 물처럼 살아야지. 벽돌공장의 진흙처럼 너도 반듯하게 자라야지. 하지만 아버지, 제겐 저만의 모양이 있어요. 둥글지도, 각지지도 않은 상상할 수 없는 도형이 있어요. 아들아, 그걸 꿈이라고 생각하며 복잡한 도형을 만들지만 결국은 거대한 프랙탈에 갇히는 거란다. 단순한 원을 그리고, 세모, 네모를 그리자, 남들처럼. 아버지는 날마다 틀을 만들고, 나는 날마다 틀을 부쉈다. 틀 안에서 자란 형제들은 사각형이 되고, 삼각형이 되어 인기 있게 팔려갔지만, 나는 아버지의 열매가 되는 것을 거부했다. 가출하고, 바람이 되어 들판을 헤매다가 길가에 변종의 씨앗을 뿌렸다. 상상의 가지를 뻗고, 무수한 꿈의 이파리를 흔들며, 영원을 향한 프랙탈을 그렸다. 지상으로 도형 하나 그려갈 때마다 내면으로 깊어가던 뿌리들. 나는 구름을 걸치고, 호수를 들여다보며, 사색에 잠겨 빗변을 걸었다. 내가 완전한 바람인 줄로 알았다. 하지만 나는 바람에 흔들리는 이파리였다. 겨울이 되면 옷을 벗어야 하는 나목이었다. 또 다른 틀에 갇혀, 아들아 둥글게 자라 거라. 꽃을 피우면서 꽃 아닌 틀을 만들었다. 아버지보다 더 견고한 틀. 이런 지독한 아버지 같으니, 나는 틀을 깨뜨렸다. 네모, 세모의 아이들이 기어 나왔다.   [출처] 틀의 유전|작성자 김기덕   마지막 화살     주톳빛 광중(壙中)에 관을 내린다. 상·중·하의 세 흰 끈을 잡은 여섯 명의 친구들이 땅 아래 몸을 누인다. 관을 걷어내고 차디찬 땅에 내려놓아도 마포에 싸여진 몸은 말이 없다. 저승에서도 사용하라고 평소에 쓰던 명기를 주변에 묻고, 광(壙)에 흙을 채운다. 첫 삽을 뜬 상주의 흙이 주검 위에 투두둑 떨어진다. 동시에 자식들의 곡(哭)이 후드득 흔들리면서 천천히 한 사람이 땅 속으로 잠겨간다. 잘 생긴 얼굴 웃음 많던 이름이 말없이 지워져간다. 정해진 시간 지관의 지시에 따라 진행되는 한 생의 흔적이 사라지는 순간, 살(殺)을 피해 등 돌린 사람들은 뒤돌아보지 말라 한다. 사라지면서 쏘는 마지막 화살에 명중되는 자는 죽음을 피할 수 없다고. 떠나는 자는 마지막 화살을 쏜다. 가장 강렬하고 치명적인 기억을 남기고 간다. 마지막 살에 급소를 맞은 자는 따라서 죽음을 맞거나, 평생 흉터처럼 기억을 안고 살아갈 것이다. 아무에게도 추억을 남기지 않고 가는 사람은 살아있어도 이미 죽어있었다. 화살을 피하고 싶다. 난 왜 어머니의 마지막 화살을 피하지 못했을까. 즉사의 명중은 피했지만, 평생 아물지 않는 상처를 입었다. 나는 또 하관(下官)의 순간 누구의 가슴을 맞출 것인가. 사라지는 자는 말이 없는데, 마지막 쏜 마지막 화살은 누군가의 가슴에 박혀있다. [출처] 마지막 화살|작성자 김기덕   철길 위의 하모니카       코스모스 피어있는 철길에 하모니카 소리 아다지오 완행열차로 지나고 바람은 들숨과 날숨으로 곡조를 만든다 차창으로 스치는 플라타너스 얼굴 내뿜는 한숨조차 단조의 연주가 되는 하모니카의 입맞춤은 악보 없는 레일 위의 선율로 흐르고 하고픈 말 다 하지 못해 도·미·솔·도 듣고 싶었던 말들이 귀를 열면 레·파·라·시·레 풀잎들도 말없이 하모니카 떨림으로 노래한다 철길은 영원히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이지 하늘엔 뭉게구름 피어나고 기적소리 산허리를 돌아 끊겨진 철길 하모니카 이름은 구름 따라 떠가고 하모니카 구멍 속 눈물 담긴 화병에선 해마다 젖은 코스모스 꽃잎들이 피어난다 [출처] 철길 위의 하모니카|작성자 김기덕   핀셋을 든 여자     현미경 속의 불순물들을 핀셋이 집어낸다. 손이 닿을 수 없는 곳엔 은밀한 무리들이 살아있다. 손잡을 수 없다면 골라내야지. 살면서 만져서는 안 되는 부류들은 핀셋이 필요하다. 두 개의 금속을 붙여 만든 핀셋은 오므려지지 않는 탄성을 갖고 있다. 자기 고집이 강할수록 탄성은 강하고, 탄성이 강할수록 콕 집어 예리하게 집어낼 수 있다. 흑백의 하루에서 골라내는 것이 일과가 되었다. 내겐 더 뾰족한 핀셋이 필요해. 강하게 집어도 휘어지지 않을 탄성을 키우면서 뾰족한 감각을 세웠다. 현미경을 들여다보며 거침없이 골라낸 주변엔 친구 하나 남지 않았다. 썩어서 골라내고, 덜 여물어서 집어내고, 벌레 먹어서 버렸다. 핀셋이 닿는 곳마다 상처를 남기며 뿌리들이 뽑혀나갔고, 고독은 늘어났다. 나중엔 핑계를 대서라도 억지로 괜찮은 놈들까지 콕, 콕 집어냈다. 손에 피를 묻히기 싫거나, 이물질과의 접촉을 꺼리는 이는 핀셋에게 청부살인을 시키기도 했다. 모두 다 어딜 들여다보고 있는 거야? 주변을 집어낼수록 고독해졌다. 나는 내 안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봤다. 썩고 병든 주름 속에 벌레들이 가득했다. 어서 어서, 핀셋을, 사람들의 입엔 핀셋이 물려 있었다. 내 안의 이물질들을 집어낼수록 주변엔 좋은 이들로 채워졌다. 핀셋이 방에 콕 박힌 나를 들어 올렸다. [출처] 핀셋을 든 여자|작성자 김기덕   통증을 모르는 아이         통각의 보호막 속에 나는 물처럼 담겨있다. 비닐봉지에 담긴 물은 바늘이나 가시의 상처에도 쉽게 새버린다. 상처가 아물지 않으면 내용물이 쏟아져서 빈 껍질로 돌아간다. 나를 부풀게 하는 것은 아직 찢어진 막이 없기 때문이다. 살가죽이 물과 피와 정신을 감싸고 있는 줄만 알았지만, 새는 것을 새는지 알 수 있게 하는 통각이 없다면 누가 언제 내게 칼을 던졌는지도 모를 것이다. 미세한 누수나 작은 외부의 침입도 감지할 수 있는 통증의 피막 때문에 나는 존재한다. 비닐 팩은 그저 물만 담고 있을 뿐, 예리한 칼이나 송곳의 침입을 막을 수 없지. 줄줄 물이 새서 쪼글쪼글해져도 비닐 팩은 소리 지를 수 없지. 나를 지키고 있는 것은 가죽이나 괴로운 표정이 아니라 바늘 하나 침투할 수 없이 온 몸을 밀봉하고 있는 통증이야.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몸에 붙어 있을지라도 내가 아니고, 죽은 것이다. 굳은살이나 사마귀 같은 가족과 함께 살면서 나도 통각을 잃어갔다. 통증은 공감인데도 무관심으로 피하기만 했으므로. 통증이 사라지고 나니 넘어져도 알지 못하게 되었다. 다리가 부러지고, 고관절에 금이 가도 망가져가는 나를 알 수 없었다. 오늘 아침, 또 손가락 하나를 잘라 먹었다. 모두가 아픔이 없는 세상을 꿈꾸지만, 통증 없는 곳이 지옥이다. 두려움과 연약함을 깨우치기 위한 신의 선물이 내겐 없다. 덜렁거리는 무릎을 흔들며 논다. 집밖으로 나갈 수 없는 나는 아직 어린아이. 성숙한 이는 통증의 두려움을 안다. [출처] 통증을 모르는 아이|작성자 김기덕   마지막 보시     나귀에 망자를 싣고 천장으로 떠나는 길은 라마승과 천장사뿐이었다. 가족도 없이 떠나는 길은 외롭고 멀었다. 하늘이 맞닿은 천장터에 망자를 누이고 라마승이 주문을 외운다. 망자를 인도하는 독수리를 부르기 위해 향불을 피우고 종을 울린다. 뼈피리를 불며 덧없는 한 생의 바람을 보낸다. 이생에 미련이 남은 자에겐 독수리가 오지 않는 법. 인연을 끊고 환생을 꿈꿀 때만 독수리들은 날아온다. 아낌없이 제 몸을 보시하고 돌아가는 자를 위해 까맣게 허공을 덮는 하늘의 십자가들. 눈을 쪼고, 코를 쪼고, 입술을 찢으면서 한 세상 살아온 욕망을 뜯어먹는다. 감각은 사라지고 백골만 남아서 빈 마음이 되면 훨훨 저승까지 가리라. 독수리의 인도 따라서 껍데기를 벗고 날아오른 망자의 혼은 어디에서 다시 환생했을까. 독수리들이 떠나자 천장지엔 방울소리 잦아들고, 타던 향불도 꺼졌다. 가끔씩 하늘이 열리고 망자가 떠나는 천장터, 뼈를 씻는 비가 내렸다. [출처] 마지막 보시|작성자 김기덕   통         통을 옮기다가 넘어져 구르면서 나도 하나의 통임을 알았다. 숫자를 세며 머리통을 굴리다가 그만 발을 헛디뎠다. 악, 소리가 먼저 울림통에서 흘러나왔다. 그리고 몸통이 중력 작용으로 언덕 아래 굴러 떨어졌다. 통 안의 내장들이 거꾸로 쏟아지는 것 같았고, 허리와 다리통엔 상처가 났다. 서있는 통들은 견고히 중심을 잡고 살아간다. 내면에 가득 내용물이 채워진 통일수록 흔들림이 없다. 두드려 보면 알 수 있는 깊은 내면의 무게. 꿈이 가득 채워진 통은 어떠한 바람에도 넘어지거나 구르지 않는다. 가벼운 통에서만 울리는 얄팍한 불만의 울림. 속이 빈 통들의 공명은 요란하다. 출렁 하고 넘어진 술꾼의 입에서 오물들이 쏟아진다. 누구나 통 안에 감추어진 내용물은 함부로 쏟지 말아야 하는 법. 수십 년 묵은 장일수록 함부로 뚜껑을 열지 않는다. 튼튼한 다리통에 힘을 주고, 허리통을 동여매어 넘어지지 않고 살아가야 한다. 내 안에 오랠수록 썩지 않는 내용물로 가득 채우고, 단 한 번 비밀의 뚜껑을 여는 순간, 아낌없이 주기 위해 함묵하리라. 숨통이 다하는 날까지. [출처] 통|작성자 김기덕   톱이 놓여진 시간       톱이 한 생명의 밑둥치를 자른다. 처절한 비명을 지르다 쓰러진 나무의 부러진 가지들이 진액을 흘린다. 날카로운 이빨 사이엔 하얀 목질의 살점들이 묻어있다. 쩍 소리를 내며 쓰러지던 마지막 비명이 계곡에 메아리로 울렸다. 수십 년 다져온 삶이 한 순간에 무너졌다. 만나지 말았어야 할 톱이 발등에 놓일 때 그 섬뜩한 기운을 미리 알았어야 했다. 야금야금 내 살 속을 파고들 때 단단히 톱날을 붙들고 놓지 말았어야 했다. 잘 생겼다는 바람의 말 한 마디, 쓰윽. 꼭 필요한 데 쓰일 거라는 구름의 말 한 마디, 싸악. 쓱쓱 싹싹 뼈가 잘리는 줄 모르고 어깨를 으쓱거렸다. 밑둥치 잘리는 줄 모르고 푸른 이파리 펄럭였다. 한 눈 파는 동안 발목에 섬뜩한 톱날이 놓인다. 춤추는 순간 옆구리에 날카로운 이빨들이 박힌다. 시계의 톱날들은 날카롭고 촘촘하다. 한 번 걸리면 빠져나갈 수 없는 이빨들이 밑둥치를 물고 놓지 않는다. 내가 가장 강하고 튼튼하다고 생각한 곳에 톱날이 놓인다. 쓱쓱 싹싹 발목을 자르는 시간. 밤과 낮의 반복되고, 하얗게 발밑엔 회한의 톱밥들이 쌓인다. [출처] 톱이 놓여진 시간|작성자 김기덕   카멜레온의 이름들       구두 속에 비밀이 숨겨져 있다. 유전자의 약점을 감추기 위한 5센티 숨겨진 깔창. 난 이미 가식적인 사람이란 걸 안다. 순수했던 내가 아니다. 치아를 교정했고, 머리염색을 하며, 숨겨진 옆구리의 살들을 감추고 산다. 성형미인을 보고 험담을 했고, 짙은 화장의 얼굴을 보고 비웃었다. 거짓말을 하며 자신을 유리하게 변호할 때 카멜레온의 이름을 붙였다.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한 반칙과 트릭의 일상에서 나도 강자인양 주변에 맞는 보호색을 띠며 깃털을 세워 몸집을 부풀렸다. 거친 욕을 하며 광란의 질주를 하고, 추월과 끼어들기에 능해졌다. 들킨 자는 비판 되고, 들키지 않은 자는 용납되는 은폐의 숲에서 살아남기를 한다. 발가락의 뼈들이 휘었다. 목과 눈가에 칼자국이 남았다. 호스로 빨아들인 나의 지방덩어리들은 더 이상 나를 그리워하지 않는다. 살아남기 위해 과감히 나의 일부를 잘랐다. 일부의 공장은 폐쇄됐고, 발전소의 불들은 꺼졌어도 함몰된 젖가슴을 감추며 고상하게 살아간다. [출처] 카멜레온의 이름들|작성자 김기덕   고치 속은 따뜻하다                                                                      찜질방의 벌레집 같은 공간에 몸을 밀어 넣는다 온탕 냉탕을 오가며 사우나에서 땀을 뺐다 날아갈 것 같은 가벼움으로 나비를 꿈꿨다 방과 하늘이 통하는 구멍에서 육체의 한계를 느꼈다 거북의 등껍질을 벗은 사람들은 잠을 자거나 게임을 하고 오락을 했다 낮선 얼굴들이 둘러앉아 계란이나 아이스크림을 먹고 티브이를 보며 잠을 청했다 코를 골아도 깨우지 않고 통로 복판에 큰대자로 누워도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똑같은 유니폼을 입으면 다 똑같은 족속이지 24시간 불 꺼지지 않는 동굴 속의 공간 따뜻하고 습한 기운에 세균들도 달라붙어 잠을 청한다 시간을 갉아먹다 찾은 인간도 한통속이 되어 벌거벗고 목욕하고 시원한 음료나 간식을 먹으며 꿈틀 돌아눕는다 세상에 피난처 하나쯤 있다는 게 좋은 거야 제 맘대로 뒹굴며 시간 때울 수 있는 벌레들의 자유, 한 잠 자고나면 찜질한 몸에선 날개가 돋고 나방들은 새로운 세상을 찾아 떠날 테지 나방과 나비의 차이는 생각에 있었지 육체를 벗어나려는 나비 한 마리 언젠간 내 품을 찢고 날아가겠지 등이 가려운 사람들이 서로의 등짝을 밀어주다가 봄날의 방바닥에 등 붙이고 누워 날개를 기다리는 시간, 고치 속은 참 따뜻하다 [출처] 고치 속은 따뜻하다|작성자 김기덕   장고                                                                     변죽만 두드리며 살아왔지.   울림통의 한복판에서 신명나게 장단을 맞춰 궁채 한 번 놀리지 못한 채, 세요고의 가는 허리 조이며 뼈를 깎아 살아 온 몸. 탕개에 걸린 목숨 줄만 팽팽히 당겨져 붉고 흰 조임줄에 묶여있었지. 낮과 밤의 채편과 북편을 두드려 덩 · 덕 · 쿵 · 더러러…. 명고수를 만나야 해. ‘덩’ 하고 가슴을 울리고, ‘덕 · 쿵’ 뼈마디를 울리며, ‘더러러’ 말초신경까지 뻗어가도록, 오른손 말가죽은 높은 음을 내고, 왼손 소가죽은 낮은 음을 내어 오동나무 붉은 가슴을 울려줄 운명을 만나야 해. 해와 달의 궁채를 들고 온 이가 피 묻은 십자가를 울린다. 털썩 주저앉아 자지러질 것 같은 울림의 만남. 하늘과 땅과 사람 사이에 가막쇠를 걸고 있는 조임줄을 당기며 하늘의 북소리를 울린다. 말씀을 씌운 방망이가 ‘쿵’, 쪼개진 우레 소리 ‘더러러’ 동서남북을 울리는 장고소리에 발을 맞춰. 비스듬히 어깨에다 장고를 둘러메고, 덩실덩실 춤추며 흥청흥청 놀다가도. 이웃들 부추겨 추임새 넣어주고, 빠른 장단 휘몰아쳐 신명나게 도약하며, 초로인생 흥을 돋워 장엄하게 끝맺으세. 덩 · 덕 · 쿵 · 더러러, 덩 · 덕 · 쿵 · 덩덕쿵.   좌뇌와 우뇌를 울리는 영혼의 소리 [출처] 장고|작성자 김기덕   빨강색 통신                                                                         빨간 몸통의 전화기를 사랑했다. 수화기를 들면 전해지는 하트의 언어들, 귓가에서 함박눈이 속삭였다. 일방적으로 받을 수만 있었던, 하늘의 음성들이 시작된 번호를 나는 알지 못한다. 누가 내게 하늘로 거는 전화번호를 알려줄 수 있을까. 액정화면엔 발신자의 번호가 뜨지 않았지만 늘 세상엔 함박눈이 내렸다. 나는 가끔씩 전화선 복구를 위해 새벽이면 교회를 찾기도 했다. 강대상에 선 목사는 한 문장, 한 문장을 읽으며 하늘이 닿을 것 같은 긴 선을 늘였다. 나는 책을 덮었다 폈다 하며 ON/OFF 스위치를 작동했지만, 끊기는 전화 음을 알아듣지 못했다. 기지국은 구름 속 어딘가에 있다고 사람들은 수런댔다. 하지만 전봇대가 세워진 방향은 늘 서산 너머 어디쯤인지 알 수 없었다. 성경 속의 문장들을 다 이으면 하늘까지 닿을 수 있을지 나도 문장들을 꺼내 틈틈이 이어보았다. 페이지를 열어 다이얼을 돌려봐도 빨간 성경책에선 발신음이 들리지 않았다. 먹통이 된 전화기는 차갑게 식어있었고, 나는 숨도 쉬어지지 않았다. 언제쯤 하늘의 벨소리는 울릴까. 하늘엔 구름만 가득하고 아직 눈발은 내리지 않는데, 곧 겨울이 올 거라고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퍼져나갔다.   [출처] 빨강색 통신|작성자 김기덕   밝음 조명가게     밤이 찾아오고 밝음 조명가게에 불이 들어오면 또 다른 은하계가 열린다. 빛을 얻고 살아 숨 쉬는 기구들 모여 새로운 세상의 별을 꿈꾼다. 한 세상을 비추기 위한 생명들이 다양한 빛깔과 모양으로 태어났다. 길거리에 세워지고, 천장에 매달리고, 벽에 걸리고, 바닥에 매몰되어서도 생명이 다하는 순간까지 빛을 발하리라. 자신의 빛깔과 온기를 품고 자신을 사랑하면서 주변을 위해 살아가는 이는 눈부시게 아름답다. 안개등이 샹들리에를 시기하지 않고, 형광등이 백열등을 질투하지 않으며, 자신보다 남을 드러내기 위해 살아가는 등불들이 빛난다. 광원으로부터 받은 빛을 반사, 굴절, 투과시키면서 세상을 향해 빛을 발하는 눈부신 얼굴들. 투광기는 건물의 벽이나 공항·경기장·분수를 비추고, 정원등은 정원을 비추고, 가로등은 길을 비추고, 특수효과를 위한 무대등은 눈과 구름, 불길을 만들며 무대를 비춘다. 아무리 작은 소형전구라 해도 그의 삶은 빛난다. 태양이 뜨기 전까지 자신들의 역할에 충실하며 어두운 세상에 꿈과 희망을 나눈다. 겸허히 어둠을 물리치며 주어진 공간을 지키다가 태양빛을 품고서야 잠든다. 빛의 주인이 돌아오는 날 세상의 어둠은 사라지고 불빛들은 휴식을 얻으리라. 아침마다 가장 크고 광휘로운 십자가 앞에서 작은 십자가들이 무릎 꿇는 것을 보았다. [출처] 밝음 조명가게|작성자 김기덕   지퍼의 웃음                                                                   지퍼의 슬라이드를 밀어 올리자 촘촘한 이빨들이 가지런히 웃는다. 첫 인연은 막음쇠에 발을 들이밀면서였다. 우린 두 개의 테이프 가닥으로 살다가 서로 이가 맞물려 인연을 이뤘다. 똑딱단추나 갈고리단추보다 견고히 뼈를 맞대고 살아. 함께 옷깃을 여미며 바람 한 점 새지 않게 문단속을 하지. 방심 하나에 이빨 하나 빠지고, 원활하던 슬라이드에도 장애가 와서 와이(Y)라는 물음이 많아지면 가지런히 웃어주던 미소는 사라지고 지퍼가 안의 지저분한 내용물이 보여. 벌어진 입으로 바람이 새며 급격히 서로의 결속은 무너지지. 헤픈 여자들 앞에선 함부로 지퍼를 내리지 말았어야 했는데, 가벼운 입 앞에선 지퍼를 열지 말아야 했는데, 지퍼가 벌어지자 수치스러운 내장들이 쏟아졌지. 바느질 자리 촘촘히 꿰맨 실밥으로 굳게 입을 다문 지퍼들 단단히 이빨을 앙다물며 우린 사랑해야 해. 한 번 벌어지면 다물기 어렵고, 이 맞지 않은 채 진행하면 다시 돌이키기 어려운 슬라이드의 길은 늘 처음이 중요하다. 이가 어긋나 옴짝달싹하지 않는다면 이별보단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해. 바람 부는 세상, 단단히 서로를 껴안을 때까지. 지퍼가 웃는 건 웃는 게 아냐. [출처] 지퍼의 웃음|작성자 김기덕   십자가 침술원             내 몸의 막힌 혈을 뚫기 위해 침술원을 찾았다. 허리에 찾아 온 통증과 하반신 저림이 잘못 된 나의 자세 때문이라고 의사가 일침을 놓았다. 장침이 뻐근하게 뼈 속까지 찔러왔다. 내 어릴 땐 회초리 드시던 어머니 말씀이 정체된 혈을 뚫어주었지. 비위가 약해 조그만 일에도 심사가 뒤틀리고 맥이 뛰지 않던 체증에 사관을 놓았다. 혈이 막히는 것은 생각이 막히는 것이란 걸 어른이 되어서야 알았다. 그래, 평소 나의 자세가 삐딱했었지. 음양의 기운을 다스리며, 변하고 순환하는 세상만물의 이치를 통通하여 정심正心하지 못했다. 비딱해진 세상을 바로잡지 못하고,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 말하지 못했다. 막힌 혈을 뚫고 내 몸 안에 고인 옹종의 생각들을 제거하기 위해선 피침이 필요했다. 살을 째고 고름을 도려낼 칼의 침. 골수를 쪼개기까지 하는 십자가의 말씀으로 침뿌리 끝까지 찔러 넣어 혈을 뚫어야 한다. 간절한 기도가 봉침이 되어 허리에 꽂혔다. 끔찍하도록 다리 끝까지 전해지는 통증을 느끼고서야 깨달음이 전해졌다. 침침했던 눈이 밝아지며 침로針路가 보였다. [출처] 십자가 침술원|작성자 김기덕   충치         뼈를 갉아먹으며 벌레들이 이빨에 구멍을 뚫는다. 잠시 한눈 판 사이 바위틈을 비집고 들어와 집을 지었다. 설마 강철도 씹을 수 있는 단단한 뼈를 무너뜨릴 거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정을 두드리며 밤마다 집요하게 내부로 파고드는 망치질을 느낀 후엔 이미 늦었다. 먹고 마시며 씹었던 쾌락의 침입자는 벌써 나의 한쪽 성벽을 허물고 있었다. 마지막 기둥마저 무너지면 방어할 수 없는 적들이 몰려올 것이다. 거대한 성벽이 무너지는 것은 한 순간이겠지만, 성벽이 무너지기까지는 조짐들이 있었다. 성을 지키는 일은 힘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었는데. 멀리 했어야 할 술과 사탕, 달콤한 언어들이 치석을 만들고 부패의 관습이 되었다. 안일한 피로감에 무시해버린 칫솔질이 엄청난 파문을 가져왔다. 벌레는 단순한 벌레로 끝나지 않았고, 망치질은 일회성 위협으로 끝나지 않았다. 밤마다 암벽을 뚫는 착암기의 진동에 골이 흔들리고 세상이 진동했다. 통증의 진앙이 퍼지며 발끝까지 아파왔다. 의사를 찾아야 해. 병든 뼈를 허물고 금을 녹여 새로운 뼈로 채워줄 의사를 만나야 해. 흰 날개옷의 천사가 입을 벌리고 구멍 뚫린 뼈 속에 정금 같은 말씀을 채운다. 어떤 벌레도 접근하지 못할 뼈있는 말씀이 내 안에 기둥을 세웠다.   [출처] 충치|작성자 김기덕   자르고 싶은 촉수들       흡반의 입술이 내 입을 덮쳤다. 끈적이며 달라붙은 입술이 입을 빨아들이며 머리와 몸통을 끌어당겼다. 어느 새 촉수들이 팔과 다리를 휘감고 빨판을 붙이고 있었다. 실낱같던 촉수들은 커져 동아줄 같았고, 고무줄처럼 조여 왔다. 그 사내는 촉각으로 나를 맛보았다. 감각의 세계가 해파리의 나른한 끈으로 풀리며 너풀거렸다. 포식의 혓바닥이 날름거리며 손을 뻗었다. 어느새 수십 개의 빨판이 달린 다리가 내 허리를 휘감았다. 끈적이는 촉수들이 내 몸의 구멍들을 열고 미끄러져 들어오고 있었다. 아지랑이로 피어오르며 흔드는 촉수에 몽롱한 눈꺼풀이 풀려갔다. 잘라내야지. 내 몸을 파고드는 파충류의 혓바닥들, 문어발의 끈적이는 뿌리들을. 길바닥엔 잘못 뻗은 촉수들이 나뒹굴고, 담벼락엔 함부로 놀린 혓바닥들이 달라붙어있었다. 날름거리는 촉수들을 피해 우린 아름다운 산호 밭을 살아왔다. 평화를 가장한 지느러미를 흔들며 촉수들의 뻘밭을 헤엄쳐왔다. 아니, 내겐 예리한 칼날이 있었지. “안 돼요.” 사정없이 붉고 긴 혀를 내밀어 칼을 휘둘렀다. 나를 빨아들이던 입술들이 소릴 지르며 하나둘 추락했다. 나무뿌릴 옥죄던 빨판들의 힘이 풀려 단두대에 섰다. 몽롱하게 끈적이던 물길이 투명해졌다. [출처] 자르고 싶은 촉수들|작성자 김기덕     악마의 빛깔 김 기 덕     커피의 분말엔 코피가 묻어 있다 흑인 소녀의 뼛가루 같은 열매를 얻기 위해 늘 멍이 들던 하늘에 2달러짜리 태양이 시들면 쓰디쓴 밤이 찾아왔다 매를 맞으며 지옥불에 볶아져서 태어난 악마의 빛깔 검은 뼛가루에 뜨거운 물을 부어 영혼을 거른다 창가엔 밤의 앙금만이 쌓이고 한 스푼의 천사와 한 스푼의 악마와 두 스푼의 사랑으로 믹스된 내 몸에도 에스프레소의 피가 흐른다 한 개비 고독과 절망이 타다 남은 타르와 니코틴처럼 몸에 스미는 마성의 수액 초콜릿이라도 믹스할까 검은 네 속셈에 크림을 부어봐 하트가 그려지는지 아무리 백설탕을 넣어도 지워지지 않는 유혹의 빛깔이 독해질 땐 휘핑크림이라도 넣어야지 하늘에 담긴 어둠을 바람의 스푼이 휘젓고 가면 별들이 각설탕처럼 녹는다 달의 입술에서 생크림 빛이 흘러내려도 여전히 캄캄한 창밖 흑인 영가 소리를 내며 나뭇잎들은 떨고 까마귀의 검은 눈동자가 물결의 파문으로 흔들린다 어둠을 마실수록 환해지는 불면의 밤 흑인 소녀의 영혼을 마신 혀끝으로 향기로운 악마의 잔상이 노을처럼 감긴다 [출처] 악마의 빛깔|작성자 김기덕   중심에 서면 김 기 덕   가위질 소리를 내며 시계가 시간을 자른다. 긴 가위가 한 바퀴 돌면 1분씩 잘려나가는 시계의 중심엔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 고속주행 하는 고속도로 위에 바퀴들도 중심엔 속도가 존재하지 않는다. 가장 깊은 중심은 외부의 어떠한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아. 중심을 잡지 않으면 디스크의 음악은 흐르지 않지. 부드러운 멜로디, 행복에 겨운 박자들도 중심에서 탄생하는 것. 돌고 도는 이 땅의 사계절, 매일 다른 365일도 중심의 힘이야. 중심에 서면 세상을 다 얻는데, 중심을 잡지 못하는 한 사내 포장마차에서 나와 비틀비틀 어디로 가는가. 시간의 중심에 서면 영원하고, 바퀴의 중심에 서면 흔들림이 없어. 바람의 중심은 늘 하나의 점. 중심이 되는 순간 태양도 나를 향해 돌고, 별들도 나를 향해 뜨지. 무수한 가로와 세로가 만나는 곳은 십자가의 중심. 하나의 점 위에 서면 중심이 되지. 시계는 시간을 자르고, 자는 세상을 잰다 해도 중심은 언제나 영원한 제자리이다. [출처] 중심에 서면|작성자 김기덕   지문을 읽다 김 기 덕     출근지문인식기에 손가락을 대자 기계가 나를 읽는다. 죽어서도 나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상징마크가 내 몸에 숨겨져 있었다. 길거리에서 객사하거나, 전쟁터에서 이름 없이 죽거나, 영영 기억을 잃었을 때 나를 확인하기 위해 누가 내 몸에 지문을 새겨놓았는가. 손가락 끝의 살갗무늬, 방금 한 나의 행동들도 도어 록과 유리창, 주전자와 커피 잔, 내 손이 닿는 데마다 지문은 흔적을 남겼다.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온 나만의 물결무늬는 어느 바닷가 모래밭에서 새긴 파도의 흔적일까. 아니면 감자 심고, 고구마 캐던 어느 밭고랑의 무늬일까. 손가락 끝마다 새겨진 등고선은 내가 살면서 넘어야 할 험한 산일거야. 내 몸에 보물지도처럼 새겨진 지문을 찍으며 권리를 행사하고, 지문을 찍으며 출근을 확인한다. 아무도 나라는 것을 확인해 주지 않는 아침, 지문인식기만이 진짜 나임을 확인해준다. 너, 아직 잘 살아있었구나. [출처] 지문을 읽다|작성자 김기덕   지팡이 댄스 김 기 덕       지팡이를 든 신사가 경쾌한 스텝을 밟는다   정장의 날씬한 몸매가 빙글 돌며 지팡이를 흔들자 지팡이는 박자를 맞추는 스틱이 되었다가 빙그르 한 바퀴 더 돌면 적을 물리치는 칼이 되고 빙글빙글 돌면 펼쳐진 우산이 되었다   지팡이 하나면 두려울 것 없지 마법의 지팡이는 원 안에 혼령을 부르고 황홀은 생사를 결정하고 산신령의 지팡이는 연기 속에 순간이동을 했지 평생 함께 갈 지팡이 하나만 있으면 구름이어도 좋을 역마살인데   가누기 힘든 몸의 다리가 되고 외로워 다정히 손잡아 주면서 미끄러운 언덕을 오를 수 있는 단단한 내면의 뼈가 필요해 중절모를 벗어 들고 빙글 신사복의 앞단추를 풀고 빙그르르 장단을 맞추며 지팡이를 흔든다   모세의 지팡이는 광야에 구리뱀이 되고 예수의 지팡이는 세상에 십자가가 되었지   지팡이를 의지해 땅을 두드리며 지팡이 장단에 맞춰 몸을 흔들어 봐 중절모에 선글라스 신사가 빙글빙글 돈다 무대가 돌고 세상이 돌고 하늘이 돌다가 펄쩍 지팡이만 의지해 양발을 차고 오른 하늘   지팡이 끝에서 지구별이 돈다 [출처] 지팡이 댄스|작성자 김기덕  
1062    김기덕 시모음 2 ( 한국) 댓글:  조회:2065  추천:0  2019-12-21
기우는 꽃   발을 내딛는 길마다 방사선의 금이 갔다 한 걸음도 다가설 수 없었던 검은 빙판 위에서 꽃보다 먼저 꺾인 관절이 소리 없는 날개로 퍼덕거렸지 바람에 풀잎들이 머리칼로 휘날릴 때 눈빛만으로도 피어나는 꽃이 있었지 은행 한 잎의 미소에도 중심을 잃고 꽃잎은 이슬을 쏟아놓았어 어둠에 젖은 나뭇가지 사이로 별들이 커질수록 붉은 날개는 한 뼘씩 길어졌지 바람을 먹은 빙판이 억새꽃 뿌리를 드러내고 시계추처럼 흔들릴 때도 바위를 등에 지고 천년을 기다려준 산이 있었어 민들레 꽃씨, 깃털의 불꽃을 품고 바람 속으로 기울어져 간다. [출처] 중심잡기|작성자 김기덕   청소부     찢겨진 손들이 멱살을 잡는다.  비질에 껌처럼 달라붙는 아스팔트 위에 젖은 낙엽들   가지 끝에 매달린 잎을 떨어내기에는 몇 마디 입김으로 충분했다.    몽둥이와 쇠망치의 계절  된서리로 온 포클레인이 버마제비 발톱을 내려찍는다.  패전 복서처럼 쓰러진 붉은 담벼락들  사각의 링에서 몸을 떠는 무함마드 알리의 다음 상대는 누구인가.    길거리엔 포플러들이 하늘을 비질한다.  빗자루처럼 사형제가 등장하고  고층빌딩에선 히틀러가 사각 유리창을 닦는다.  세르비아 군인들이 무슬림 여자를 목욕시키던 붉은 창가  쓰레기들이 청소부마저 쓸어내는 비질로  길은 늙은 여자의 머리칼처럼 헝클어져 있다.    지우개는 문지를수록 때가 묻고  무심코 뱉은 언어가 압정으로 박힌다.  버려진 것들의 악취,  향기가 떠난 후 몸엔 파리와 구더기가 들끓었다.    기억을 다 지우고 흔들의자에 앉아계신 할머니는 언제쯤 부처가 되시는 걸까     기러기들 달의 연못으로 목욕 가는  밤하늘의 푸른 광장  눈처럼 날리는 새털구름을 후후 바람이 비질한다. [출처] 청소부|작성자 김기덕   유리의 본능   다리뼈가 살을 뚫고 나온 피 흘림 뒤에 유리는 나와 동족임을 알았지 속도계가 멈춘 철의 심장 조각난 유리 칼날이 젖은 내 바짓가랑이 속에도 꽂혀 있었어 손을 놓칠까봐 이 앙다문 웃음들 폭포로 무너지는 강물이 유리알처럼 내 몸 속을 흘렀지 조각난 물체들의 몸엔 왜 날카로운 이빨들이 날까 발길에 채이면 물방울마저 조각조각 눈물이 되는 돌아 선 등에 모로선 유리조각이 만져진다 거울 같은 수면 위에 누워 별 총총히 뜬 너의 창문이고 싶었던 내 안의 투명한 뼈들 풀잎이 돋아난 파란 유리창 너머 빗줄기에도 실금이 간다 [출처] 유리창|작성자 김기덕   투명인간    누군가 몰래 나의 방을 다녀갔다.  금언의 황금을 도굴한 흔적과 함께 검은 발자국들이 남았다.  바람의 불청객은 날개도 없이 건물을 건너뛰며 창가의 어둠처럼 방에 스며들었겠지.   빗자루를 탄 마녀들의 누리 사냥에  유명 탤런트가 살해되고, 몇몇 정치인의 옷이 벗겨지고  성업 중이던 업소가 폐쇄됐다.   어두운 영들의 빙의  도깨비감투 쓴 얼굴이 모니터에 나타났다 사라진다.  어젯밤에도 왕의 골짜기를 헤매던 그림자들이  투탕카멘의 황금가면과 황금마차를 훔쳤다.  밤의 두건을 쓰고 침실을 들여다보는 검은 망자가 창가에 먹물처럼 번진다.  돌팔매의 파문을 내며 도미노가 시작되고  사냥게임이 현실이 되는 정글 속에서  무색의 유리조각, 서로의 살을 베는 익명의 얼굴들로  쫒기는 하루가 첨탑 위에 서있다.  하트와 꽃다발과 편지와 별무리는 사라지고  뱀과 전갈과 돌멩이와 칼과 화살과 총알과 포탄으로 채워지는 방에  노크도 없이 들어와 노려보는 한밤의 부엉이  흔들리는 수면 위로  투명망토를 걸친 달빛이 박쥐처럼 내려온다. [출처] 투명인간|작성자 김기덕   연리지목       소나무와 자귀나무가 살을 맞대고 산다. 눈비 오는 한 세월 서로를 껴안고 피와 살을 나누며 살아온 듯하나 실은 냉전 중이다.       자귀나무 연분홍 꽃을 피우고 가지를 흔들어도 소나무는 바늘 같은 잎을 찌르며 공중으로 뻗어간다. 이럴 거면 왜 합했느냐고 몸을 비틀고 소릴 질러도 상처만 깊어갈 뿐 관심이 없다.       안개 속에 눈 뜨는 휴일이면 아이의 손을 잡고 교회 가고 결혼식에 참석하여 행복한 듯 카메라 앞에 포즈를 취하고 동창회에서 등을 다독이며 다정한 하루를 연출한다.       밤이면 각방 쓴지 5년, 혼자 지옥을 산다. 등 돌린 나무의 유령부부, 섹스리스의 삶이 가랑잎으로 바스라진다. 가끔씩 생활비청구서나 아이들 학원비가 적힌 낙엽 메시지가 소통의 전부다. 아이들 위해 자리만 지킬 뿐, 자정 지나 삐삐삐 현관문 잠금장치 열리는 외계인 소리에 한기를 몰고 오는 술 냄새의 역겨운 솔향 매달린 아이들은 자귀나무 차지인데, 소나무는 승승장구하며 하늘로 뻗어간다.       한 때 정장이 어울렸고, 곧고 푸른 성격이 좋았던 남자 안경 너머 반짝이는 눈과 자귀꽃 미소가 고왔던 여자       단 한 번만이라도 안아달라고 바람 속에 흐느낄 때 남자는 외면했고 휴식이 필요해 집에 돌아왔을 때 여자는 지네발 같은 잎을 펄럭였다.       옆구리에 박힌 쐐기를 자를 순 없다. 한 집의 불편한 동거 커풀룩을 입고 활보하는 연인들이 부러웠다. 잎사귀를 서걱거리며, 가지들 비벼대며 서로를 원망도 했다. 쓸리는 맨살이 아파 소리도 질렀다. 서로 가슴을 후벼 파며 밤새 삐걱대던 가지에서 흐르던 피, 피가 멈추자 딱지가 굳는다.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투명한 나무가 되었다. [출처] 연리지목|작성자 김기덕   분리수거    노인들이   쓰레기 더미에서 병과 깡통과 박스를 고른다.  잡쓰레기들과 불태워지기 전 고철과 플라스틱을 분류한다.  쓸 놈들과 못 쓸 놈들,   몹쓸 놈들과 어울리지 말라고 어른들은 늘 금을 그었지만  누구나 신상품으로 태어나 속 꽉 찬 시절이 있었다.  철학서와 잡지와 통속 소설들이 함께 꽂힌 서고에서   한 눈에 양서를 읽듯   예리한 눈금을 그어 돈이 되는 놈들만 고른다.  같기도 하고 안 같기도 하고   동전의 양면처럼 공존하는 선과 악  천사이면서 악마인 얼굴을   둘로 나눌 천국과 지옥은 있는 걸까.  현의옹(懸衣翁)이 의령수 가지에 사자의 옷을 내걸고   연옥에선 때 묻고 속 빈 껍데기들도 녹아 알맹이가 된다지.  번뇌를 쫓아 성불한다고  불 속에서 해탈을 기다리는 페트병 스님들,  기의 흐름에 따라 모이기도 하고 흩어지기도 하는   바람 같은 삶의 재생을 위해   빈 깡통이 찌그러진 깡통을 고르고   빈 박스가 물 젖은 박스를 품는다.   뚜껑 열린 병이나 옆구리 터진 봉지들이 토한 내용물들로  악취가 진동하는 쓰레기장   빈 병들이 빈 병을 알아보는 동병상련의  병과 깡통과 박스들이   껍데기만 남은 노인들을 줍는다.   *의령수: 『시왕경』에 나온 죄의 무게를 제는 나무 [출처] 분리수거|작성자 김기덕   누수     밤새 수도가 샌다. 헛바퀴만 도는 꼭지, 파이프를 타고 흘러온 강의 상류는 눈물샘이 되어 솟구친다. 차가운 물방울들은 지류를 따라 계곡을 흘러가고, 체온이 떨어진 숲에 낙엽이 진다. 통증처럼 이는 바람   부어오르는 십이지장의 벽, 천공 직전까지의 증상에도 물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소장을 거쳐 대장의 배관을 타고 빠져나간 그림자들은 검은 바다를 떠다녔다. 오물과 섞여 부글거리는 물거품들   가스가 새고, 양분들이 빠져나간다. 압력을 견디지 못한 입에서 폭언이 쏟아진다. 걸을 때마다 흘리는 요실금, 흐린 기억들을 바지에 지리며 젖어 사는 빗속은 작은 폭우에도 절벽이 무너져 내린다.   구멍 뚫린 방화벽에서 지폐가 쏟아진다. 탱크의 기름은 통에 나뉘어져 어둠 속으로 실려 간다. 썩은 나무 구멍을 두드리는 딱따구리들의 보이스 피싱, 한 순간 가지들이 부러지고   증기자동배출 콕이 고장 난 압력솥은 밥이 되지 않는다. 익기 위해 부글부글 끓이는 속앓이. 적당한 열과 압력을 위해 치밀한 밀봉이 필요해   입을 다물고 괄약근을 조여 아랫배를 끌어당긴다. 운동을 하고, 약을 먹고 눈물을 삼키며 밥을 채워 넣는 내 안의 방수. 팔등신의 미녀들이 활보하는 거리로 나는 고무공처럼 튀어 오른다. [출처] 누수|작성자 김기덕   물 위에 접시   거울 같은 연못이 하늘을 만난다. 연꽃 접시들은 물결에 몸을 싣고 구름으로 떠다닌다. 번개 같은 스침에도 천둥같이 울리는 인연 부딪는 접시들의 소용돌이가 태초의 침묵을 깨뜨리며 우주로 공명한다. 별의 목소리들은 빛이 되고 꽃이 되어 서로를 부른다. 은하수 꿈길을 가는 동그라미들 법당 처마 끝에서 풍경이 운다. 종탑 꼭대기 종소리가 비눗방울로 하늘을 덮는다. 빈 마음으로 만나는 접시들의 청아한 음성, 웅 웅 뼈 속을 울린다. 시간의 물길을 돌고 돌아 티 없이 만나는 접시의 얼굴 눈빛만 마주쳐도 “뗑”하고 가슴에 사무친다. [출처] 물 위에 접시|작성자 김기덕   배말뚝       배가 부른 대리석에 팔뚝만한 쇠사슬이 감겨 녹물을 흘린다. 밀물로 왔다 썰물로 빠져나간 배들 잡지 못한 선착장에서 비바람 휘몰아치던 격정의 밤을 잉태하고 끝과 끝이 만나 다시 돌아오는 수평선을 바라본다. 쇠사슬로 동여매도 물처럼 빠져나가 매어둘 수 있는 것은 바람의 흔적과 끈적거리며 매달리는 비린내뿐이라는 걸 안다. 부침하는 물살과 배반의 폭풍에 밀려온 난파선의 이야기를 뼈에 묻으며 아무렇지 않은 듯 구름도 보내고 갈매기도 보내고 뿌리로 남아 파도치며 안으로 멍들어 가는 바다를 닮아간다. [출처] 배말뚝|작성자 김기덕   맹수는 우리를 뛰어 넘을 뿐       우리 밥 먹으러 갈까? 우리라는 말이 울타리를 친다. 밥을 먹기보다 우리를 만들기 위해 만나는 우리.       숲에 가면 늑대가 많아 혼자 길을 가면 위험하지. 양들의 무리는 풀을 뜯다가도 해가 지면 서둘러 우리를 찾는다는데. 무리들과 어울려야 풀도 맛있게 뜯을 수 있다는 것을 붐비는 점심시간 혼자서 밥상을 차지해본 사람은 안다. 전쟁터 같은 식당 구석자리를 차지하고 편안히 풀과 고기를 뜯기 위해선 우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함께 가는 길은 당당하고 힘이 넘치지. 자살사이트에선 손잡고 함께 갈 우리를 구했어. 강한 척 큰소리치며 떵떵거리던 시간은 우리 속에 있을 때였나 봐. 뿔로 들이받고 싸우던 양들은 우리를 벗어나는 순간 예기치 못할 위험에 몸을 떨었어. 한 평 반의 우리에 갇혀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짐승처럼 나는 왜 길들여지지 않는 걸까.       사람들은 몸 하나 안온히 받아줄 우리에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서서 루이비통을 사고 샤넬을 구한다. 명품으로 약점을 가린 발걸음들은 활기차다. 말뚝을 박고 가로막대를 얹은 끼리끼리의 어깨동무엔 가시철망이 엉켜있다. 명문대를 나온 그녀는 우리에서 내몰리지 않기 위해 밤새워 책을 읽고 논문을 쓴다. 들소들이 머리를 맞대고 사자들을 향해 방어막을 치듯 약자들은 고치를 짓고, 벽을 쌓고, 빌딩을 세우고, 등을 내보인다.       나는 가끔 우리 안에 들지 못한 호랑이를 본다. 강하기 때문에 혼자이고, 혼자이기 때문에 자유로운. 맹수는 우리를 뛰어넘을 뿐, 스스로 갇히지 않는다.   [출처] 우리|작성자 김기덕   슈거파탈   입 맞추기만 해도 솜사탕 여신은 눈물이 된다. 삼킬수록 목마른 생크림 입술 혀끝에 감기는 황홀감에 정신이 혼미하다.   이빨 하나 쯤 정표로 주어도 좋아. 풍선이 부풀고, 바람이 빠져나간 뼈들은 수수깡이 되어간다. 심장이 멈추도록 탐하고 싶은 꽃잎들 잎새를 애무하다 사라지는 한 방울 이슬이고 싶어.   페이스트슈크림이 눈보다 희게 웃는다. 마들렌에 취한 몽환의 눈빛으로 뭉게구름 슈플레가 드레스를 벗는다. 아트아슈의 젖가슴에 얼굴을 묻고 흐느끼는 열매들 애플 타르트의 황홀한 감촉에 오, 오르가즘에 오르는 쇼콜라 퐁당   혼을 팔아 펌킨푸딩의 속살을 산다. 미소 속에 감춰진 환각제를 핥는다. 움켜쥘수록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물의 육체가 흐느적거린다.   여신은 구름이 되어 사라지고 옷깃을 적시는 백색 필로폰의 눈물 마리화나의 연기에 취해 네펜테스로 굴러 떨어진 몸이 초콜릿 시즙으로 녹는다.   죽음이 참 달다. [출처] 슈거파탈|작성자 김기덕   지구를 지켜라   못 다 이룬 꿈을 위해 로봇을 부른다. 지구를 지켜온 로봇 태권브이, 마징가제트, 미래용사 볼트론 눈감으면 태양 저편에서 들려오는 멜로디, 이젠 그만 일어나라 내게 외친다. 그 때마다 움츠러든 몸엔 무쇠팔 무쇠주먹이 생기고 캉타우의 철퇴가 들려지곤 했다. 남자가 눈물을 흘릴 수 없는 세상에서 나의 삶을 로봇들이 대신 해왔다.   절대 뒤돌아보지 말고 앞만 보고 가라고 천둥 속에서, 번개 속에서 저들은 용기를 주었지만 늘 주저하며 머뭇거리던 나는 피닉스킹이나 제트건담의 노랫소리를 듣고서야 분노를 삼키며 날개를 폈다. 강철얼굴에 맞서 우뢰매에서 킹 라이온으로 메칸더브이로 변신합체하며 맞서왔다.   밀리면 죽을 수밖에 없어 무적의 파워레인저가 되어야 했고 초강력 칼과 로켓을 장착해야 했다. 누구는 하이퍼 다간이 되었고, 누구는 에반게리온이 되었고, 누구는 영혼을 판 라젠카가 되었다.   미래 도시 지구를 지켜온 로봇들 땅을 뚫고 바다를 건너 하늘을 날았던 용사들은 가정과 사회와 국가를 지키기 위해 부르면 어디서든 발진했다. 포탄이 떨어지고 건물이 쓰러지던 도시 어둠에 맞서 싸우던 나도 한 시대의 트랜스포머였다. 우주 행성을 점령하려는 메카트론을 물리쳐 평화를 지켜온 지구의 용사들   그때 그 로봇들은 늙고 병들었는지 이젠 보이지 않는다. 영이도, 데일리도 더 이상 불러주지 않는 영웅들은 잊힌 캐릭터와 먼지 뒤집어 쓴 장난감이 되어 어느 진열대에서 호명을 기다리는 걸까.   눈물이 날 때 로봇을 불러봐. 그대의 못 다 이룬 꿈을 위해 철문이 열리고 무쇠팔, 무쇠다리, 로켓엔진을 타고 창공을 날아오를 거야. [출처] 지구를 지켜라|작성자 김기덕   코골이   물감처럼 어둠이 흘러내린 밤 그의 머리가 땅에 닿는 순간 광풍이 불고 영들이 몰려온다. 도깨비, 달걀귀신, 몽달귀신, 터귀신, 저승사자 콧구멍을 드나들며 굿판을 연다. 들이키는 꽹과리소리, 내뿜는 징소리 밀고 당기며 행차를 나간다. 산 넘고 물 건너 세링게티의 숲, 영역을 지키기 위한 사자의 포효가 울린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갈기를 휘날리며 누의 목을 물었고 들소의 숨통을 끊었다. 콸콸 목구멍을 새어나와 초원을 흐르는 강물소리 아래층 여자는 밤새 세탁기를 돌린다고 쫓아올라오고 아무리 빨아도 희어지지 않는 빨랫감들이 목구멍 속에서 물소리와 섞여 돌아간다. 빙글빙글 몸을 돌린 회전의자에서 의사는 늘어진 목젖을 자르자고 한다. 악어 같은 목구멍에 매달린 종 한때는 학교종소리였고 바람결에 풍경소리였다고 여자는 배계를 의심하지만 고혈압 동맥경화가 지속되면서 뼈 속에 바람이 분다. 온난화가 진행될수록 엘니뇨와 라니냐는 지역적 태풍과 홍수를 몰고 왔고 몸에선 허리케인과 토네이도가 잦아졌다. 밤마다 바람에 날아간 여자는 거실 소파에 나뒹굴었고, 아이들은 제 각각의 언덕으로 몸을 숨겼다. 송두리째 휘감아 오르는 용오름, 그는 밤마다 승천하는 걸까. 지각변동 하는 밤의 풍차돌리기가 일순 멈춘 무호흡의 폭풍전야 침묵의 쓰나미가 몰려온다. [출처] 코골이|작성자 김기덕   끈 자르기   들판에서 순산한 어머니는 탯줄을 짚으로 묶고 이빨로 끊었단다.   삼신할미 손에 침 발라 정맥과 동맥의 탯줄을 꼬았다. 탯줄 속의 태극이 우주나무로 이어져 하늘과 땅이 하나이다가 홍수가 나고, 암흑의 동굴을 지나 태양이 뜨며 둘로 갈라졌다. 교미하던 뱀들이 잘려 대문에 내걸린 왼 방향 금줄. 하늘에선 옴파로스*가 떨어졌다.   산소 호흡기에 매달리다 아버지는 줄을 자르고 하늘로 갔지만, 바람 속에서 열매들은 안간힘으로 꼭지에 매달렸고, 배꼽이 허전한 나는 복희와 여와도의 그림 같은 DNA 구조에 집착했다.   한 다발의 볏짚을 잡고 새끼줄을 꼰다. 세 개의 줄을 모아 삼승 가닥을 만들고 구승을 만들어 이십칠근승 용줄을 만든다. 용을 잡고 노는 마을 사람들의 줄다리기, 용과의 한 판 씨름이 끝나면 줄을 조각내어 지붕에 얹고 달여 먹으며 아들을 빈다. 용줄이 똬리 튼 당산나무엔 별무리 같은 정자들이 꿈틀거렸다.   나는 아이의 탯줄도장을 꺼낸다. 상아 속에서 오그라든 탯줄을 잡고 백지 위에 도장을 찍는다. 피가 배어난 이름, 암호 같은 배꼽 속엔 내 전생의 미로가 열려 있다.   은하수 자궁 속의 별들은 자라고, 창가에 매달린 거미줄 하나 바람에 흔들린다.      *옴파로스: 창조주가 세계의 중심을 잡기 위해 던졌다는 돌. [출처] 끈 자르기|작성자 김기덕   하이브리드 정원   스피커에서 사물놀이와 재즈가 몸을 섞는다.   순혈의 기둥에 우산살처럼 꽃피운 단일민족 혈통주의 식민지 지리상의 발견 농경사회 오지탐험 게르만 600만 학살, 하늘 가린 검은 파라솔을 접자 태양이 뜨고 구름들은 산을 넘어 빛과 흘레붙는다.   농촌총각과 서양처녀가 사는 전원주택엔 피자군만두에 된장소스스테이크와 라이밀*이 어울렸다.   텃밭에 토감*을 거두고 나면 무추*를 심었지 상추와 깻잎이 한 가지에 피는 세상이 오면 소통이 열릴 거라고.   크로스 오버하는 뜰에 나뭇가지들은 그늘을 만들고, 한 입 베어 문 과일향이 온 몸으로 퍼진다. 열매들로 나를 진단하며, 사랑 없이 사랑하며, 춤으로 노래하며, 숫자로 요리하며, 유행가로 불공하며, 역사를 악보로 연주하며, 철학으로 문학을 색칠하며, 뒤엉킨 가지와 잎들 속에서 라이거의 포효가 들린다.   기름과 전기가 만나 소리 없이 미끄러져 온 시간   할아버지는 유학자였고 할머니는 무당이었다가 기독교인이 되었지. 한의사였던 아버지는 아침마다 목탁을 두드리는 스님이기도 했지. 제삿날엔 할아버지 따라 축문을 읽었고 일요일엔 교회에서 기도했지. 방학 땐 절에서 공부하며 불공드렸어. 할머니 돌아가신 날 방에선 예배드렸고 대청에선 불공드렸고 마당에선 제사지냈지. 방 마루 마당을 오가며 천당과 극락과 저승이 교미하는 걸 나는 본 걸까?    폭탄주에 컴퓨터와 TV와 오디오가 한 몸으로 춤추며 불러대는 트로트와 니나노의 클래식한 합창 속에서 비빔밥이 버무려져 참기름 향기가 진동한다.   * 라이밀: 쌀과 밀이 교배된 곡식 * 토감: 토마토와 감자가 함께 열리는 식물 * 무추: 무와 배추가 함께 자라는 식물 [출처] 하이브리드 정원|작성자 김기덕     그림자밟기   그림자에 쫓기는 남자가 빛 속을 뛴다. 광속의 추격자를 따돌리고 숨은 곳은 또 다른 그림자   보름달이 뜨면 동네 아이들은 골목에서 그림자밟기를 했다. 술래가 되어 뒤를 쫓던 흑백의 영상들이 컬러풀한 광케이블을 타고 전속력으로 쫓아온다.   벽에 사르트르의 손이 형상을 만든다. 새가 날아오르고, 개가 되어 짖다가 목을 세운 코브라가 사르트르의 손을 문다. 흰 벽에 번지는 검은 피   하나의 태양엔 하나의 그늘이 지고 천의 빛 속엔 천의 얼굴이 흔들린다. 빛의 각에 따라 나무처럼 자라는 색깔들 패션에 쫓긴 알몸들이 거리를 헤매고 헤어스타일에 머리채 잡힌 여인들은 횡단보도를 질질 끌려 다닌다.   구두에 짓밟힌 술래들이 또 다른 술래를 쫓는 그늘의 품에서 콩나물 같던 아이들이 흑백의 이모티콘을 먹으며 거인으로 자란다.   빛이 사라지는 밤 쥐눈처럼 말똥말똥한 별들만 땅에 내려와 그림자밟기 놀이를 한다. [출처] 그림자밟기|작성자 김기덕     물의 사진   호숫가에 사람들은 풍경 한 장씩 복사해 간다. 폴라로이드처럼 망막에서 인화되는 물의 필름 속엔 흐느낌의 주파수가 흐른다. 단풍잎들은 수면 위에 피 묻은 발자국을 찍고 백발의 시인은 돋보기 너머로 내둘러 쓴 자서전을 읽는다. 빛바랜 일기장들의 나들이 오늘이 복사되는 호수엔 둥근 거울이 떠있고 머리 푼 낮달이 나르시시즘에 빠져있다. 달을 닮은 사내아이 하나 쯤 거뜬히 낳아줄 것 같던 그녀에게서 덜덜거리는 기계음이 들려온다. 빛의 칼에 잘린 얼굴이 흐름을 멈춘 미소 끝에 걸려 말려 올라가지 못한다. 반 쯤 새겨진 이름들은 백지 같은 밤을 까맣게 지새워야 하리라. 짝퉁들이 여류화가의 캔버스 위에서 옷을 벗는다. 발목이 빠지는 껍질들의 숲 물의 렌즈를 연 호숫가에서 나무들은 바람을 낳고 수면은 파랗게 멍든 허물을 벗는다. [출처] 물의 사진|작성자 김기덕   번지 점프                            김 기 덕   추락하는 몸엔 끈이 있다. 심연에 떨어졌다가도 솟구치는 용수철의 힘 부도 맞은 아버지와 낙엽 사이엔 상대성 끈이론이 작용한다.   버티던 줄을 놓아버린 여자는 아파트 옥상에서 화단으로 떨어졌고 화살들은 돌아올 수 없는 숲으로 날아갔다.   놓아버림과 매달림 사이에서 열매들은 방황한다.   성년의 통과의례처럼 추락하는 하루의 절벽, 꽃잎들도 비명을 지른다.   줄을 매는 하늘과 줄을 푸는 땅 사이에 비처럼 금을 긋는 유성들 별들은 날기 위해 벽을 넘어 사다리를 오른다.   먹이를 움켜쥐려 급 하강하는 독수리 낚시에 꿰어 요동하는 물고기 끈에 매달려 붕붕 울고 있는 요요   팽팽히 나를 잡은 끈들의 매듭은 굳게 손가락을 걸고 있다.   탯줄의 숨소리 흐르는 양수의 강물로 낙하하는 씨앗들 끈이 풀린다. [출처] 번지점프|작성자 김기덕     열림에 대해                              김 기 덕   꼭지가 비틀린 열매들의 웃음이 터진다. 엔진이 켜진 자동차는 부르르 몸을 떨고 등뼈에 꼬리만 남아 금은방 화석이 된 황금열쇠 수만 년 바위 문을 연 월척의 뼈대는 눈부시다. 해를 향해 채널을 고정한 텔레비전 집들의 안개 드라마에 나무들도 눈물샘을 열고 할머니 허리춤 같은 배, 치맛자락 흘러내리는 파도를 타고 아가미가 꿰인 생선들은 열쇠꾸러미처럼 흔들리며 온다. 잠을 퍼내는 바람의 손짓에 공명하는 휘파람소리 빈 항아리 속을 넘나들고 꽃밭을 나는 흰나비들 은색 실핀을 꽂는 능숙한 솜씨에 꽃들의 방이 털리는 아침 숫자들의 젖꽃판을 누르면 열리는 비밀의 문들 땅에서 가슴에서 우주로 길이 통한다.  [출처] 열림에 대해|작성자 김기덕   달력의 힘   화, 수, 목, 금, 토, 은하수 징검다리를 해와 달이 놓는다.  빛의 발자국마다 열리는 신비한 숫자들       번호 속엔 사계의 바람이 불고  눈과 비의 생애와, 풀과 꽃과 나무의 이력이 담겨있다.       그 중에 나를 닮은 숫자판를 열자  호랑이, 돼지, 소, 쥐가 그려진 한 아이의 출생지도가 드러난다.  손금 같은 길, 하지만 가야 할 능선은 백지 같은 안개로 가려져 있다.     호기심으로 나는 비밀의 방 2012를 들여다본다.  끊어진 마야의 달력, 지축이 기울어진 땅에선 지진과 해일이 일고  활화산의 구름이 하늘을 덮는다.       달력이 필요해.  숫자마다 시간을 엮는 재생의 뿌리들이 빼곡히 들어찬, 완전한 달력이.  나는 하나 둘 믿음의 숫자를 써내려갔고, 일일이 의미를 새기며 동그라미를 그려보았다.       3을 열자 들판엔 꽃들이 피어났고, 7을 펼치자 사람들은 산과 바다로 떠났고  9를 뜯어내자 숲속엔 낙엽이 휘날렸고, 12를 벽에 걸자 거리마다 함박눈이 내렸다.  해와 달의 번호판을 누르는 밀물과 썰물   달력의 숫자들이 만드는 회오리에 세상 빛들이 춤추고  밤과 낮의 채널이 바뀐다. [출처] 달력의 힘|작성자 김기덕   빛                      김 기 덕   베드로가 십자가에 매달려 등불을 켠다. 성냥불꽃 만큼 검은 문틈으로 밝은 세상이 비친다.   크리스마스트리의 별처럼 지나는 표정들이 깜박인다. 연탄이나 장작의 체온이 그리운 길거리마다 내걸린 아크릴 이름들 영토를 지키기 위해 밤새 피를 흘린다.   이 밤을 견딜 만큼 나는 반딧불만한 빛이라도 있는가. 빛인 척 반짝이며 스테인리스와 유리들이 웃는다.   화살과 총탄과 질주의 무리들은 불꽃으로 박히기 위해 휘파람소리를 낸다. 광야에 외치는 소리 유성들은 밤새도록 머리 위로 성수를 뿌린다.   유리벽에 반사된 얼굴들이 야경 속에 파편처럼 흩어지고 흐물흐물 달의 살이 묻어난 골목길로 은 삼십을 받은 유다가 질질 어둠을 끌고온다.   태양이 오기까지 가로등에선 뚝뚝 목련 꽃잎이 떨어져 길에 쌓일거야. 하루살이들의 밤 가시관을 쓴 예수가 동녘의 구름을 쓸어낸다. [출처] 빛|작성자 김기덕   레드 와인                     김 기 덕   코르크를 뽑자 4백 년 전의 바람이 인다. 뚜껑이 열린 알라딘의 램프  햇빛 출렁이는 포도밭과 포도송이들 광장과 깃발과 군중들의 압축파일이 풀려 나온다. 오크통 속으로 쏟아진 눈알들 발굽에 짓밟혀 어둠에서 피 흘리던 얼굴들과 인두 같은 입을 맞춘다. 혀끝에서 감전되어 전신을 마비시키는 뇌향 굽고 뒤틀린 가지에 매달렸던 벙어리들이 두 손으로 바쳐 든 고풍의 병 속에서 나와 자유를 외친다. 시간의 눈금을 긋고 강물로 기다린 오늘 칼이 울리는 축배의 종소리에 나는 천상의 불을 훔친다. 유리창에 달라붙는 단풍의 입술 속에서 불의 언어들이 쏟아진다.  루주가 묻어난 하늘 비틀거리며 루이 13세는 노을 속으로 떠나고 깃발과 함성과 징소리의 불길로 번진다. [출처] 레드 와인|작성자 김기덕   피자                                김 기 덕     돌풍에 금이 간 여자는 도우 위에 페파로니, 양파, 토마토, 올리브, 치즈를 얹고 날마다 오븐에 태양을 구웠다. 고구마피자, 포테이토피자, 치즈‧불고기피자, 구울수록 피자들은 유리처럼 조각이 났다. 아이들은 초승달 하나씩 꾸역꾸역 목구멍으로 넘기며 보름달을 꿈꿨다. 곰팡이 핀 지하실에 해가 뜨고 민들레가 지천으로 피자 아이들은 방 하나씩 차지했지만, 여자는 소스냄새를 풍기며 거실 소파에 피클처럼 쓰러져 쪽잠을 잤다. 아버지 생각이 나면 아이들은 조각난 그림 속의 숫자를 맞추며 치즈의 나른함 속에 녹아든 피망이나 버섯을 스케치북에 그렸다. 고무줄처럼 늘어난 얼굴이 몇 가닥의 기억을 붙들고 끈적끈적 매달렸다. 볼우물이 수줍던 아이들은 개나리가 피자 반쪽을 찾아 집을 떠났고, 여자는 그림처럼 남아 미완의 퍼즐을 맞췄다. 보름달이 부풀고 수반에 꽃들이 차오르면 외출을 꿈 꿀 거야. 들판 가득 돌아온 계절과 빗방울 커지는 동그라미들, 구수한 냄새를 풍기며 오븐 속의 피자가 익어갔다. [출처] 피자|작성자 김기덕   임플란트   방풍림을 흔들며 치통처럼 바람이 불었다.   피고름이 고인 갯벌은 훅훅 입 냄새 풍기며 달려온 태풍에   아랫도리부터 허물어 졌어  파도에 물어뜯긴 모래언덕, 할아버지 수염처럼 늘어진   뿌리들은 허공을 향해 촉수를 흔들었지     쓰레기 매립지를 파고 박은 철 빔들   지반이 약한 탓에 건축 전문가는 조립식 건물을 권했지만   내겐 어떤 태풍도 견딜 반영구적 빌딩이 필요했지   꽃 같은 웃음을 보여주던 마른 대궁들을 뽑고  들뜬 땅을 다진 후 콘크리트 하여 세운 든든한 믿음의 뼈    아버지는 날마다 성현의 말씀 뼈마디에 새겨 곱씹으며 살라 했는데   고기토의 집, 상앗빛 말씀들을 갈고 닦지 못했다.  입에선 악취의 언어들이 쏟아지고   한 순간, 마른 풀잎들은 바람에 흩날리다 떨어졌지   뼈 속에 뼈를 심고서야 말씀의 뿌리들이 가슴에 사무친다  몸에 심겨진 206개의 뼈들이 다 진리였구나.     마을 입구 옹벽이 새 단장을 했다.   폐차들이 녹슬고   빗물과 함께 토사가 넘쳐나던 담벼락,   허물어진 골과 틈을 채워 성형을 했다.   꿈을 디자인한 타일들의 가지런한 이를 드러내고 옹벽이 웃는다.   초특급 태풍에도 무너지지 않을 옹벽의 신념들  동네가 훤하다. [출처] 임플란트|작성자 김기덕   포토샵                                          김 기 덕     점과 주름을 문지르자 별들이 돋아난다. 칼이 지나는 자리마다 피어나는 꽃들, 다이어트 되지 않는 부위들을 자르고 지우며 바비인형들이 태어나는 상자 속에서 유체 이탈한 나를 수정한다.    명품 옷과 구두를 다운받고 다크서클을 가린 선글라스와 시간이 멈춘 다이아몬드 시계, 드라이플라워의 가슴장식, 흑백의 과거 위에 컬러페인트를 부어 구름이 사라지면 나는 새로운 아바타, 신의 합성품이 되지.     그녀는 잘나가는 탤런트의 눈을 오려왔다지. 다음엔 펄펄 끓는 심장을 잘라온댔어. 구름을 만들어 온 뱃살과 처진 엉덩이를 도려내고 이참에 신세대 몸매로 바꿔치기하면 누군가의 메모리에 저장되어 두고두고 컬러풀한 내일을 복사할 수 있을까.     세상은 불붙이면 타버릴 듯 메마른 나무들이 서있다. 동공 속에 별을 그려 넣으며 뼈를 추켜세워도 흐물흐물 무너져 검게 떨어지는 잎사귀들, 내장들. 죽고서야 전송되는 완성품을 위해 바람은 혼을 불러오고, 하나 둘 익숙했던 이름들이 오려진다.     셀 수 없는 클릭으로 계곡의 그늘과 상흔을 다 지운다 해도 치유될 수 없는 상처의 기억들, 별을 담은 요술 상자 속에서 태어나는 피그말리온의 조각품, 낮선 모습이 우주 밖으로 나를 전송한다.     새롭게 인화되고 싶어. [출처] 포토샵|작성자 김기덕   그물                                 한 달 만에 그는 거미줄에 걸린 파리로 발견되었다. 지하실 벽 옷걸이에 나일론 줄로 매여진 몸을 음습한 기운과 악취의 유령들만 칭칭 동여매고 있었다. 줄을 타고 오르던 피라미드 빙벽, 올이 풀리자 믿었던 구석부터 무너지며 순식간에 추락했다. 안전망 하나 없는 절벽 아래 뒹굴다가 정착한 낙엽의 영토, 지하 무덤은 해가 뜨지 않았다. 익명의 무기를 든 악풀러의 베풀과 유러들의 승패가 갈리는 장에서 만랩이 되고 싶었다. 새들의 포위망은 좁혀졌고, 아바타는 코드에 묶여 어디론가 끌려갔다.     로그아웃.  몰리면 고스톱 판을 뒤엎듯 피시를 끄는 거야. 가상공간에서 심장이 깜박인다.     피라미드가 길거리마다 세워지고 사람들이 한꺼번에 생매장 되었다. 사촌에 팔촌까지 끌어들여 꼰 실로 숨구멍 없는 집을 지었다. 누에는 집을 나오지 못하고 끝내 질식했다. 도미노로 무너진 건물들의 틈을 비집고 나온 끈끈이들이 놀라 뛰쳐나온 사람들의 목을 졸랐다. 거리엔 통나무 나동그라지는 소리와 함께 태풍이 몰려 왔다. 하늘이 없어 날지 못한 스파이더맨은 손바닥의 거미줄을 제 목에 감고 몸을 날렸다. 잠자리 날개처럼 가벼워진 몸, 벽에 달라붙어 단잠에 빠졌다. [출처] 그물|작성자 김기덕   방                       김 기 덕   책과 가구들은 문 밖으로 쫓겨났다. 액자가 떼어지자 얼굴 속에 얼룩이 선명히 드러났다. 전신거울의 뒷면에 살던 바퀴들과 빗물이 스며든 벽에 핀 검은 곰팡이들, 눈송이처럼 침대 밑을 굴러다니던 먼지를 치우고 칼로 반듯반듯 재단하는 봄 풀냄새 흠뻑 묻어나도록 풀질했다. 꼿꼿이 일어선 풀잎, 벽과 천장엔 꽃잎이 번지고 새들은 날아와 눈빛으로 노래했다. 작은 발소리에도 우우 공명하는 푸른 우주, 벌판엔 겨우내 살아남은 새싹들이 채워지고 하늘엔 강한 날개의 철새들이 날아다녔다. 에덴을 위해 빛바래고 상처 난 영혼들은 길거리에 버려져야 했다. 주인의 취향을 따라잡지 못한 아날로그TV와 성해 낀 냉장고, 지겹게 누러 붙던 밥솥도 고물상에 넘겨졌다. 아끼던 책들과 흠이 적은 장롱만 제자리를 찾았을 뿐, 최신형 벽걸이형TV나 노트북이 빈자리를 차지했다. 낡은 책상들이 빠져나가고 명패가 바뀌며 활기가 도는 환절기 어둠의 문을 열고 샤워를 하면 이빨 부딪는 물소리에 바이러스들이 지워지며 낮선 바다가 몸속으로 들어왔다. [출처] 방|작성자 김기덕   데칼코마니                         김 기 덕   아이가 종이 위에 물감을 짠다. 빛바랜 나의  도화지는 천장에 떠있고 아이의 도화지는 백지로 깔려있다. 적‧청‧황‧흑의 물감들이 꿈틀거리는 애벌레 같다고 아이가 깔깔거리며 동‧남의 끝을 잡고 북‧서의 경계를 맞대 반으로 접어 꾹꾹 눌렀다 편다.   대칭을 이룬 뇌 속엔 산과 강이 흐르고 땅과 바다가 하나로 합쳐져 아이의 꿈지도가 펼쳐졌다. 입을 맞추는 남녀의 얼굴, 엄마의 품속에서 나팔꽃 길을 타고 온 나비 한 마리 힘찬 날갯짓으로 날아오른다. 반평생 그려온 나의 산과 달과 구름들은 물그림자로 뜨고 너는 꽃과 나무와 열매의 중심에 내려앉는다.   시간의 모래알로 부서지는 물감들, 묵묵히 걸어 온 낙타의 발자국들도 모래바람에 지워지며 박제된 새가 되어 날아오른다. 쉴 새 없이 꽃과 벌들은 만났다 헤어지고 날마다 접혔다 펴지며 풀어놓는 밤과 낮의 씨앗들이 아이 눈망울 같은 빛을 향해 날아오른다. 땅과 하늘 빼곡히 민들레 홀씨처럼 퍼져가는 점돌,알락, 팔랑 문양들   물감들이 눌리며 분출했던 화산을 접어 하늘에 날리자 소리는 사라지고 소용돌이만 허공을 맴돌다가 아이의 동공 속으로 사라진다. 오목렌즈 같은 호수엔 용암들이 잠기고,  풀과 꽃과 나무와 접속하던 나비 한 마리 훌쩍 내 어깨에 매달린다. [출처] 데칼코마니|작성자 김기덕   초점                                밤을 입은 드레스의 여인이 흑인 이빨 같은 피아노 건반을 두드린다. 번개의 손놀림에 한 템포가 늦는 천둥소리. 수천의 눈과 귀의 빔이 쏘아진 피아노에서 소녀의 음계들이 타오른다. 도레미파 솔 솔 솔    어깨동무한 산과 섬들이 바다의 일출을 기다린다. 양수를 터트리고 나올 햇덩이, 수평선을 향해 숨을 멈춘다. 카운트 다운하는 폭발점. 용광로의 쇳물이 끓는다. 핏물이 번지며 솟는 새벽, 펄 펄 펄    이파리들 휘날리는 골목을 향해 눈뜨는 집들. 원무를 추는 수·금·지․화·목·토·천·해. 태양을 향해 돌고, 태양은 우주를 향해 돈다. 하늘 향해 모은 눈빛들이 반짝인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시여    시선이 머문 종이에 불이 붙는다. 눈빛만 닿아도 연기가 풀풀 날리는 빛의 응집. 그녀의 총에 맞아 쾡 하니 구멍 난 표적지의 그을린 탄착점에서 화약 냄새가 피어오른다. 아지랑이 몽롱한 나의 눈동자     구멍을 들여다본다. 홍채 속의 동공이 반짝인다. 암실에 떠오르는 별. 구멍들은 블랙홀이 되고 나는 머리부터 빨려들어 간다. [출처] 초점|작성자 김기덕   얼음 날개                     김 기 덕   수은주가 곤두박질치자 지퍼가 열린 하늘에서 우박이 쏟아져 내렸다. 갈가리 찢겨진 비닐하우스 난도당한 화초의 속살마다 피의 향기가 뿜어져 나왔고 추락한 날개의 깃털들은 팝콘처럼 사방으로 흩어졌다. 볼을 부비며 구름 풍선을 타고 오른 물방울들 결빙선을 따라 눈물이 되고 얼음이 되어 슬픔의 무게를 견디지 못했다. 관절들은 얼음과자처럼 쉽게 부러져 덜그럭거렸고 단절된 혈관의 마른 잎들은 기침 소리를 내며 얼음 나라로 굴러갔다. 15층 옥상에서 투신한 여학생의 차디찬 몸이 떨어진 곳은 왜 하필 국화꽃 만발했던 화단이었는지 길엔 꿀을 잃은 벌들이 떨어져 눕고 바다엔 엔진이 다한 비행기가 불꽃으로 산화했는지 차가운 눈망울로 쏟아진 빙점의 쓰라린 상처를 박하사탕처럼 밤은 오래오래 녹여 먹는다. 얼음유성들이 긴 꼬리를 끌며 매달리는 어둠 속에서 꽃향기의 마지막 기억을 품고 마른 대궁들이 쓰러진다. 추락하는 별의 얼음 날개 사선을 긋는 찰나의 빛들이 섬뜩 살을 벤다. [출처] 얼음 날개|작성자 김기덕   화장   주름을 지우고 눈썹을 그린다. 어둠이 내려앉은 다크써클, 분화구를 메운 대지엔 베이지 톤의 양광이 눈뜬다. 대리석으로 만져지는 표피의 한기, 찢겨진 상처 위에 파우더를 바르고 순간의 충격 속에서 하늘을 꿈 꾼 푸른 멍울에 무지개를 그린다. 잠의 수렁에 빠진 백설 공주의 핏물 든 독 사과가 검다. 한껏 폼을 잡으며 미소 짓던 순간의 사진들만 낙엽처럼 불길 속에 흩어진다. 구름을 지우는 하늘, 햇살 고운 색조화장에 과실마다 노을이 물들고 산들은 그림자를 지운 머리칼로 이마를 덮는다. 가재미눈을 감추는 아이 샤도우, 치켜 올라간 입 꼬리를 지우는 빨강 루주, 밤새 눈이 온다 해도 지워지지 않을 것 같은 땅의 낮선 얼굴들, 거울은 늘 빛이 비치는 한 면만 보여주곤 했다. 파운데이션을 덧칠한 여인의 팬터마임은 끝났다. 어둠의 문을 열면 극명히 드러날 하늘과 땅, 마지막 화장을 고친 여인은 춤추는 불꽃과 함께 한 줌 바람의 잡티로 지워진다. 하늘엔 재가 날리고 관객들은 연기처럼 흩어져 간다. 덕지덕지 간판으로 덧칠한 빌딩들도 하나둘 옷을 벗는다. [출처] 화장|작성자 김기덕   그대 안의 블랙홀                      창밖에 비가 내리면 나는 LP레코드를 튼다. 먼지 앉은 뚜껑을 열고 잊힌 얼굴 같은 판을 얹으면 그대 좋아하던 음악들이 바늘을 타고 떨리는 손길로 전해진다.   어둑한 방의 격자무늬 하늘엔 눈물방울 별들만 떨어진다. 핵융합이 끝난 별들은 급격한 중력현상으로 블랙홀이 되고 LP판의 검은 음악 속으로  분열되어 빨려드는 나의 우울증, 쳇바퀴 도는 구멍 속을 빠져나올 순 없는가.   목을 조이는 거미줄을 벗어나기 위해 나는 밤마다 바다를 헤엄쳤다. 아웃토반을 달려도 여전히 제자리인 집과 얼굴들, 벽에 걸린 음화들이 잠깐 느슨한 감각에 탄력을 주었지만, 이내 절망의 구멍에 빠졌다. 천억 개의 은하계 중 지구별이 속한 은하계엔 천억 개의 별들이 반짝이고, 수백만 개의 블랙홀은 빛을 삼키며 남자들을 빨아들인다. 촉수를 흔드는 검은 실루엣의 Event Horizon 거리를 활보하는 블랙홀들은 가슴에 늙은 느티나무 옹이 하나씩 퀭하니 뚫려 있다.   초신성중력으로 다가온 블랙 아이라인 그대 눈동자는 언제쯤 비를 멈출는지. 나이테로 흐르는 삶의 궤적이 다하기까지 지글지글 흐르는 빗소리 LP레코드판이 비를 다 삼키고 나면 우린 상처를 잊고 다시 태양으로 뜰까? 그대 안의 블랙홀 속으로 빨려든 빛들은 새 생명을 잉태하고 하늘엔 어머니의 양수가 은하수로 흐르는데. [출처] 그대 안의 블랙홀|작성자 김기덕   벽은 너머를 감추고 있다                        김 기 덕   가시철망을 두른 무기고의 담을 담쟁이덩굴이 페인트자국을 더듬어 오른다. 담들은 너머를 감추려하기에 볼 수가 없어 넘어가고픈 너머, 콘크리트 암벽의 옆구리에 철심을 박으며 녹슬지 않는 긴장을 찾아 벽을 넘는다. 우리가 꿈꾸는 너머엔 풀과 나무와 새들이 어우러져 노래하며 집을 짓지만, 언제나 뛰어넘는 너머엔 절벽과 웅덩이와 운무들로 가득했다. 톱니바퀴를 타고 오르는 시간의 벽이 보여주지 않는 너머로 사람들은 손을 모은다. 수억 광년을 뚫고 온 별빛이 아름다운 거라고 무르팍이 깨져 달려 온 파도가 푸른 거라고 네 안의 너머를 갖지 못해 시들지 못하는 담쟁이 촉수를 깨워 젖꼭지 같은 뇌관을 더듬는다. [출처] 벽은 너머를 감추고 있다|작성자 김기덕   아직 한여름이다   장마전선이 몰려온다. 기단의 지루한 대치에 뱃속은 하루 종일 부글거리고 뼈마디에 천둥이 인다.   검은 양복들이 난무하던 길거리 번개 사건이 인터넷 톱기사로 뜨기도 했지만 국지성 호우가 멈춘 거리엔 언제 그랬냐는 듯 건물들이 젖은 몸을 말린다.   먹구름이 가득했던 집안에는 아버지 대신 상복들이 밀려다녔고 장례식장으로 날벼락 같은 폭우가 쏟아져 내렸다.   끼니때마다 들려오던 구름 부딪히는 소리 아내와의 말다툼도 하나로 섞이는 비의 화음인데 꽃이 떠난 뒤 우기는 끝이 보이지 않는다.   날마다 구름이 날리는 하늘, 닦을수록 창이 흐려지는 오늘 하루도 일조량이 부족했다. 골목마다 곰팡이가 피고 지각 변동을 꿈꾸는 판들의 지진과 해일,   내 안의 용들이 한바탕 휘감고 장대비를 퍼 붓고 나면 왁자지껄 시장바닥처럼 풀들이 일어서겠지 검은 발자국 소리에 광장에는 한낮에도 해가 저문다. [출처] 아직 한여름이다|작성자 김기덕     거세에 대하여   파일을 지우자 또 다른 악성파일들이 떴고 휴지통엔 무의식의 상처들이 넘쳐흘렀다.   수퇘지들이 피 흘리며 비틀거리던 80년대 여름엔 예비군들은 훈련장 귀퉁이에서 유행처럼 정관수술을 했다.     성폭력 기사가 모니터를 능욕하면서 한 달 분의 욕망을 제거하는 주사가 짐승들에게 놓아졌다. 사마천은 사기를 쓰고 내시들은 궁형을 마다하지 않았지만 베어도 베어지지 않는 잡초들이 고개를 내밀었다.   내장의 분비물을 밀어내는 관장약 농글리세린 신진들도 조직을 치고 올라 보스를 흔들어 댔다. 사람들은 과일 속의 씨를 잘라내지만, 늘 제거된 것은 과육이었기에 도시는 스캔들로 들썩였고, 돼지고기는 노린내를 풍기며 몸엔 악성종양이 꽃을 피웠다.   땅을 파고 묻은 반코마이신 항생제, 비에 섞여 옴 몸으로 퍼진 후 나무들도 뿌리 뻗어 흙을 움켜잡았다. 자동제거 되는 바이러스파일들, 꿈의 조각모음이 시작됐지만, 서로의 방호벽은 높아만 갔다.   [출처] 거세에 대하여|작성자 김기덕   하이힐                 김 기 덕   나는 가끔씩 여자의 하이힐을 신는다 엉덩이를 치켜들고 몸을 숙인 자태에 발을 밀어 넣으면 G-스폿이 만져질 듯하다 무릎 나온 추리닝에 슬리퍼를 끌다가 문득 빈 자루 같은 몸을 추슬러 세운다 못을 박으며 못이 박히며 벼랑 위에 선 생고무 같은 엉덩이들 허리를 곧추세우고 아랫배를 끌어당기며 괄약근을 조여 자루들의 끈을 묶으면 감각은 깎아지른 언덕에서 하이힐을 신는다 발기한 근육의 종아리 날선 유리의 균형 감각이 발바닥을 찌른다 발레슈즈를 신은 백조들의 비상으로 정상의 바위 끝에서 내려다보는 세상은 장난감 나라일 뿐이다 하이힐을 신은 나는 나무처럼 자라고 하이힐을 벗은 여자의 종아리는 물먹은 스펀지가 된다 몸의 감각에 불을 댕기는 하이힐은 하늘과 구름과 바람이 있는 고원으로 나를 실어간다 아슬아슬 줄을 타고 못을 뽑으며 못이 뽑히며 직선의 첨단을 또각또각 걸어가는 정점엔 유리처럼 투명한 빙벽의 추락이 보인다 [출처] 하이힐|작성자 김기덕   사랑한다는 메시지가 낡아 보인다                        언어들은 대장간의 칼로 녹슬어 있다. 태양이 시간을 돌리는지 시간이 태양을 돌리는지 궁금하지 않은 나의 삶이 식상하다. 달의 짜여진 공식처럼 세상엔 그녀의 달거리와 한통속 아닌 것이 없다. 지구가 기울어져 한 쪽으로 도는 것과 나의 메시지가 물처럼 아래로만 가는 것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바람 따라 구름 흐르고, 그녀 따라 내 마음 흐르는 물리학의 법칙엔 예외가 없다. 먹고 마시는 몸의 기계적 활동은 건망증의 뇌가 지시하기 전 내장들이 먼저 아우성쳤기 때문이리라. 주기적인 사랑에 길들여지고 빡빡한 일정표가 나의 삶을 제 맘대로 살고 장기들은 때마다 지급되는 양분에 군말이 없다. 날마다 신문을 읽고 뉴스를 들으며 중독되는 생각들 부활과 윤회의 소식이 또 다른 반복일 뿐, 새 것이 되지 못한 지 오래다. 쏟아진 우유가 다시 컵에 담기지 않는 고뇌하는 중년이 어린아이로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의 화살에 집 나간 나의 언어들도 돌아오지 않는다. 아침이면 어김없이 태양이 뜨듯 사랑한다는 메시지의 처절한 진동 집요한 울림이 아침마다 그녀 몸에 녹슨 못을 박는다. [출처] 사랑한다는 메시지가 낡아 보인다|작성자 김기덕   이성의 초원                            삶은 이성의 뼈대 위에 세워져 있다. 반듯한 합리성에 윤리의 기둥을 세워 지은 사고의 집 속은 드라이플라워의 장식처럼 메말라 있다. 인류의 구원을 꿈꿨던 20세기 이성의 칼날엔 피가 묻어 있고, 사고의 벽돌로 쌓은 바벨탑은 더 이상 새 하늘을 보여 줄 수 없게 되었다.   사막의 삶에 영감은 생명력을 부여해 왔다. 이성이 지배해 온 것 같은 세상을 실은 영감이 지배해 왔다. 고흐의 그림 속에서, 베토벤의 운명 속에서, 도공이 빚은 청자 속에서, 죽음을 초월한 선지사도들의 삶 속에서 영감이 충만한 기운을 느낀다. 초월적 세계의 신성한 불을 만진다.   영감이 없는 이성의 세계는 향기가 없는 꽃과 같다. 영혼이 사라진 육체와 같으며, 반복된 작업의 복사물이다. 반면 이성이 없는 영감은 녹아버린 아이스크림과 같다. 몽환이고 환상이며, 숲에 떨어진 나비의 허물이다. 영감만 있는 자는 정신분열자요, 귀신들린 자에 불과할 것이다.   이성의 초원 위에 영적 기운이 서릴 때 우린 새벽을 볼 수 있다. 이성만 있는 십자가는 심판의 형틀이었지만, 신령한 영적 능력으로 가득 찬 그리스도의 피 묻은 십자가는 구원의 상징이 되었다. 이성의 기름 위에 이글거리는 꿈의 열정, 성령의 불로 타오를 때 삶은 세상을 비추며 밝게 빛날 수 있으리라. [출처] 이성과 광기|작성자 김기덕   나는 타오르고 있다                              김 기 덕              나는 굴뚝을 보고 자랐다. 산꼭대기에 우뚝 선 굴뚝은 바지랑대처럼 하늘을 떠받쳤고, 심호흡으로 내뿜어진 연기들은 용을 만들고 새를 만들며 구름이 되었다. 방에 누워서도 산타가 굴뚝을 타고 온다는 말을 실감하곤 했지만, 쉴 새 없이 오르는 연기에 내 하늘 한 자락은 늘 검게 흐려져 있었다.   아버지는 골초였다. 집안에서 줄담배를 피우는 날에 식구들은 기침을 쿨룩거리며 쫓겨났다. 담배연기가 방안에 찰수록 집안은 어두워져갔고 구겨진 아버지의 미간에선 가끔씩 담을 헐어버릴 듯 천둥이 쳤다. 그 때마다 어머니는 검은 눈물을 흘렸고, 하나 둘 자란 형제들은 구름으로 집을 떠났다.   15년 된 나의 아반테 고물 자동차는 아직 쌩쌩하다. 길거리에 매연을 내뿜으며 큰소리치는 그의 입에서 나온 침과 독설들이 거리를 더럽히고, 하늘과 내 가슴에 구멍을 뚫는다. 덜덜거리는 내 가슴 한 쪽은 늘 허전하다. 금과 은을 제련하듯 속도를 제련하는 연기들, 그 속도에 실려 나는 가끔 바람이 되었다.   내 몸의 세포들이 날마다 양분을 태워 구멍으로 내보낸다. 내 몸의 구멍마다 연기가 피어났고, 염분과 소량의 미네랄들은 산성비가 되었다. 힘든 노동의 대가가 불러온 사막화로 희미한 미소와 창백한 육질 속엔 중금속이 쌓여갔다. 태울수록 늘어나는 주름과 어두운 그림자, 잡티 같은 욕망들은 고스란히 앙갚음으로 땅에 떨어졌다.   고혈압으로 대동맥이 파열한 친구를 화장했다. 갑자기 그의 몸에서 생긴 굴뚝에선 붉은 연기가 뿜어졌고, 너무 빨리 태워버린 젊음은 45년 3개월의 불꽃을 남기고 재가 되었다. 화장장의 굴뚝에선 또 다른 굴뚝들을 태웠고, 굴뚝은 연기가 되어 하늘로 올랐다. 굴뚝으로 와서 굴뚝으로 사라지기까지, 나는 한창 타오르고 있다. [출처] 나는 타오르고 있다|작성자 김기덕     퍼즐놀이                      김 기 덕   모자이크에 누워 모자이크 속에 빠진다. 타일조각 흩어진 기억들을 모아 완성된 돌고래 위에서 내가 조립된다. 아이와 맞추던 로봇 태권V 퍼즐은 이 빠진 한 조각에서 균열이 시작되다가 한 순간 와르르 무너지곤 했다. 그물망 같은 재건축 단지에 살면서도 사소한 이유로 금이 가는 이웃들, 얼굴 본 지 오래인 내 인맥들은 견고할까. 조각조각 희망을 끼워넣으며 가족들은 제 몸에 맞는 무늬를 고르지만 목소리 큰 아내 곁에서 무능한 남편은 늘 모자이크 처리된다. 땅엔 크고 작은 나라들이 세력을 맞추고 하늘엔 완성된 은하의 별들이 총총히 채워지는데 빈 구석이 많아 나는 평생 성경 속의 구절들을 꿰맞춰왔다. 예수와 붓다와 공자와 소크라테스, 하지만 미완인 나의 퍼즐엔 아버지가 없다. 찢겨진 불경들이 빠져나간 빈자리에서 실금이 간다. 촘촘히 짜인 밑그림들은 하나라도 어긋나면 안 된다고 이를 악문다. 아슬아슬한 나의 해부도 모자이크의 법칙을 벗어난 돌고래는 이미 죽어있고 그림들은 시간 밖으로 줄줄이 풀려난다.  [출처] 퍼즐놀이|작성자 김기덕     입술의 상징                                   김 기 덕(공도)       우리 몸에서 입술처럼 특별한 곳도 없을 것이다. 피부로 덮인 몸 전체에서 입술만이 속살이 돌출되어 생긴 곳이다. 그래서 어느 시인은 ‘심장의 돌출부’라고 표현했다. 두근두근 가슴 뛰듯 입술엔 심장의 기운이 살아있다. 입을 맞추면 심장이 먼저 반응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으리라.   입술은 몸의 문이다. 몸은 세상이요, 음식물은 세상만물이다. 세상에 오는 것들은 형상을 입고 오지만, 나가는 것들은 영혼의 언어들이다. 우리도 하나의 육체를 입고 세상에 왔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변화이다. 자신을 부수고 갈아 사랑의 양분이 될 때 다시 말씀의 모양으로 하늘문에 다다를 수 있다.   입술엔 태양이 떠있다. 희망의 아침과, 절망의 저녁이 맞물려 있다. 삶은 이 두 입술을 벌려 백옥같이 미소 짓는 것이다. 기쁨과 슬픔의 휘파람이며 만남과 이별의 사랑노래이다. 입술을 꼭 깨물고 생각에 잠겨보라. 순간 가슴 속에서 정열의 태양이 떠오르리라.   입술은 독주고, 꽃뱀이고, 네펜테스이면서 동시에 꽃잎이고, 심장이고, 불이다. 가롯 유다의 입술엔 죽음이 담겨 있었고, 옥합을 깬 마리아의 입술엔 부활이 담겨 있었다. 찬송과 기도와 절제가 있는 입술, 그 아름다운 집에서 말씀인 하나님이 사신다. [출처] 입술의 상징|작성자 김기덕   마블링                            김 기 덕   거리엔 섞이지 못한 피들이 둥둥 떠다녔다. 기름들은 스크럼을 짰고 띠를 형성하고 질주한 길거리마다 붉은 꽃이 피어났다. 연약한 풀뿌리들의 봄 혁명, 하늘을 복사하는 양동이 물 위로 안개 낀 골목을 비추는 거울과 같이 떠다니는 고뇌들 도로마다 넘쳐나는 물감들로 메커니즘의 반항아들은 시내로 잠식하며 흘러들었다. 세상을 휘젓는 막대기 같은 바람과 함께 격동하는 젊음의 무늬들은 피로 엉기어 갔다. 아침을 기다리며 샘물같이 살아온 이파리들도   물 아닌 삶을 밀어냈다. 검은 영혼들이 서로 부둥켜안고 밀려다니는 바다 흰옷의 달빛이 머릴 풀고 혼을 건진다. 차마 떠나지 못해 끈적이며 매달리는 붉고 푸른 영혼들 시즙은 수의에 한을 그린다. 백지 위로 나타난 넋의 기하학적 무늬 응결된 정신의 문양은 물결로 요동치고 있었다. 살아 있어 처절한 혼의 불꽃을 태우며 한 겹 한 겹 벗겨진 물의 껍질들이 꿈틀꿈틀 생살을 파고들어 새기는 문신 울컥, 치밀어 오른 각혈이 무지개로 흘러내린다. [출처] 마블링|작성자 김기덕   몸에 그린 동그라미 ​ 은행잎 카시미론 이불에서 연인들이 입을 맞춘다. 엄마는 아이를 손짓하고 아이는 발목까지 빠지는 노랑물감 속을 뒤뚱거리며 걷는다. 가을을 붓질하는 은행나무 옆에서 내 한쪽 가슴이 물든다. ​ ䷭ 지풍승地風升, 바람이 땅 위로 자라서 올라간다. ​ 징코민 한 알이 몸속에 바람을 풀어놓는다. 으슬으슬 몸살이 날 것 같다. 차단된 벽속에서 그리움 탓인지 잎들의 떨림소리가 들린다. 나를 압축캡슐로 너에게 보낼 수 있다면 너의 혈관을 뚫어줄 수 있을까? ䷑ 산풍고山風蠱, 산 아래 바람이 부니 일이 생긴다. 황금이 쌓인 은행들, 현금지급기 앞에 서면 돈세는 소리가 바람소리로 들린다. 바람에 스쳐가는 얼굴들. 발아를 꿈꾸는 은행의 정자들과 자루 속의 동전들과 묶였던 지폐들과 이별의 메시지들이 흩날린다. ​ ䷩ 풍뇌익風雷益, 파종하여 봄바람이 이니 만물이 풍성하다. ​ 썩는 냄새 훅훅 입김에 불려온다. 거리엔 곰팡이들이 피어나고, 뱃속에선 용연향이 익는다. 알맹이를 감싸는 썩음의 껍질. 구린내가 빗어내는 향기로운 과당을 위해 몸이 썩어간다. 뼈를 감싸고 살이 문드러진다. ​ ䷌ 천화동인天火同人, 하늘 아래 태양이 비추듯이 모두가 만나 함께한다. ​ 여인은 재가 되어 뿌려지고 뿌리만 남았다. 뼈를 타고 온 몸으로 전율하는 뿌리, 몸속엔 나무가 산다. 세모, 네모, 각진 잎들을 떨구며 둥글게 다짐하는 동그라미. 그녀의 얼굴은 해마다 커진다. [출처] 몸에 그린 동그라미|작성자 김기덕   인두화                       김 기 덕   연탄불에 달군 인두가 흰 목질에 달을 그린다. 비명소리 타오르는 연기 속에서 상처들은 꽃이 되고 나무가 되고 눈 위에 찍는 구두 발자국 뜨겁게 흘린 검은 눈물들이 몸에 문신을 새긴다. 남자는 여자의 볼에 화인을 찍고 여자는 뜨거운 채찍을 피 흘리며 온 몸으로 받아들인다. 불탄 흔적이 박힌 사람들은 두고두고 재가 된 상처를 쓰다듬는다. 옆구리를 핥으며 독을 내뿜는 붉은 혀의 뱀들이 비늘을 말아 올리며 제 살 깎는 대패질의 꽃판 위에서 달마가 되고 예수가 되고 사막의 능선을 넘던 낙타의 무리들도 빙벽의 등고선을 오르던 설인들도 화석으로 박힌 나신의 등걸, 달빛 뽀얀 속살에 떨어진 마른 꽃잎들을 별로 새겨 넣는 뼈 마디마디 향불처럼 목향이 낮은 숨소리로 피어오른다. [출처] 인두화|작성자 김기덕  
1061    김기덕 시모음 1( 한국) 댓글:  조회:1791  추천:0  2019-12-21
가을의 환상 교향곡       마법의 성 구름옥탑에 4옥타브 공주가 창백한 달로 갇혀있다. 기러기 그림자만 독수리 날개처럼 창가에 머물다 간다. 달을 구하기 위해 흰 턱시도의 별 테너가 피아노 건반 3옥타브 G선의 나선 계단을 오른다. 고음의 절벽에서 미끄러진 오페라 왕자들이 추락한다. 입술에 한 방울만 적셔도 저주가 풀릴 이슬이 쏟아진 숲에서 첼로도 호른도 몽환 속에서 길을 잃고 어깨를 떨며 흐느끼는 바람만이 낙엽의 악보를 켠다. 부를수록 멀어지는 파란 하늘의 창문 틈으로 파리하게 시든 그믐달이 누웠다. [출처] 가을의 환상교향곡|작성자 김기덕     달빛 처방전                                                                          김기덕                                 고양이의 눈에서 어둠을 먹고 초승달이 떠올라. 잠 못 이루는 것은 달이 커졌기 때문이야. 상자 속에 눈들은 빛을 싫어해. 달이 가늘어지면 쿨쿨 잠만 자지. 나른해진 몸은 아무리 튀어 오르려 해도 바닥에 눕게 돼. 목을 쓰다듬고 발바닥을 간질여도 생각들은 털 속에 숨으려고만 해.   상자 안의 고양이는 날마다 방문을 걸어 잠그지. 밀폐될수록 달은 커지고, 발톱들은 날을 새우지. 이파리 사각거리는 소리에도 창가에 커다란 귀를 매달게 돼. 유리창으로 웅크린 고양이들이 노려봐. 똑, 똑, 똑, 핏방울이 떨어지는 초침소리가 들려.   언제부턴가 달은 악마들의 출구란 걸 알았지.   달이 차면 알약들을 몸에 묻고 시체놀이를 하지. 눈꺼풀을 밟고 잠이 올까봐 눈가에 까만 아이라인을 칠하지. 하지만 입 맞추는 밤은 늘 죽어 있어. 매니큐어로 지워버린 달은 한나절이 지나면 또 다시 떠오르곤 해. 눈 속에 까만 달은 저리도 매력적인데.   달빛 고인 침대 시트는 돌돌 말아 세탁기에 넣었어. 시계 위에 누워 아무리 바늘을 돌려도 제자리인 상자 속. 고양이 울음의 스위치를 끄는 거야. 손톱을 물어뜯어도 지지 않는 달. 손가락 하나 씩 잘라지는 쪽잠이어도 좋아. 피 묻은 자판을 두드려 방안 가득 검은 활자를 채우면 죽음처럼 찾아오는.   고양이의 눈 속에서 달이 지는 한낮. [출처] 달빛 처방전|작성자 김기덕     빛 ​ 베드로가 십자가에 매달려 등불을 켠다. 성냥불꽃 만큼 밝은 세상이 비친다. 크리스마스트리의 별처럼 지나는 표정들이 깜박인다. 연탄이나 장작의 체온이 그리운 길거리마다 내걸린 아크릴 이름들 영토를 지키기 위해 가로등은 밤새 피를 흘린다. 이 밤을 견딜 만큼 나는 반딧불만한 빛이라도 있는가. 빛인 척 반짝이며 스테인리스와 유리들이 웃는다. 화살과 총탄과 질주의 무리들은 불꽃으로 박히기 위해 휘파람소리를 낸다.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 유성들은 밤새도록 머리 위에 성수를 뿌린다. 유리벽에 반사된 얼굴들은 야경 속에 파편처럼 흩어지고 흐물흐물 달의 살이 묻어난 골목길로 은 삼십을 받은 유다가 질질 어둠을 끌고 온다. 태양이 오기까진 뚝뚝 떨어진 목련이 어두운 길을 밝힐 거야. 하루살이들의 밤 가시관을 쓴 예수가 동녘의 구름을 쓴다. [출처] 빛|작성자 김기덕   만원의 이력서   나랏말싸미 듕궉에 달아 한글을 창제하신 세종대왕의 피를 받아 한국은행 일월오봉도에서 태어났다. 차원이 다른 홀로그램의 족보를 새기고, 등과 가슴에 용 문신으로 가문의 인장을 찍었다. 뼈 속에 쓴 일만만의 설법, 진짜로 살아야 한다는 말씀에 천상열차분야지도를 가슴에 품고 보현산 천문대 혼천의에서 우주를 꿈꿨다. 비스듬히 기운 각도에도 언뜻 비치는 성골의 요판잠상은 평범한 신분이 아닌 듯했다. 신출귀몰한 바람소리를 내며 한국은행 출신의 빳빳한 칼라들은 은빛 어깨띠를 두르고 세상에 첫발을 내디뎠다. 한동안 두툼한 엉덩이를 씰룩거리다가 블랙박스에서 몇몇 구름 속을 오간 후, 할머니 전대에 떨어진 뒤에야 알았다. 도가니탕 한 그릇 값도 안 되는 동그라미들의 무게감을. 노래방 아줌마의 젖가슴에 꽂혀 마이크를 잡다가, 도박판에 던져진 누런 배춧잎들과 함께 고리를 뜯다가, 창녀의 손에 침 발라 비벼지며 닳고 닳은 얼굴들을 봤다. 손가락 한 번 튕기는 순간 황홀하게 만났던 육체들이 구겨진 채로 몸을 뒤집는다. 너덜너덜 뭉개진 몸에서 구린내가 난다. 지하도에서 떨고 있던 여인에게 국밥 한 그릇 말아주지 못했다. 희끗희끗한 머리칼, 주름투성이의 얼굴이 UFO를 닮은 자선냄비 안에서 천상의 종소리를 듣는다. 산동네 양은냄비를 끓이는 할머니를 위해 마지막 연탄을 사랑해야지. 몸을 내어주고 얻는 최후의 어둠. 덜컹, 철문이 열린다. [출처] 만원의 이력서|작성자 김기덕   악마의 중독 김 기 덕     염소가 검은 상자 위에 쪼그리고 앉아 배를 열어보였지. 젖이 범람한 젖꼭지에서 쓰디쓴 강이 흘렀어. 어둠 속에 뿔은 왕관처럼 반짝였고 이마에 새겨진 펜타 그램에선 게이의 웃음이 새어나왔어. 박쥐의 은빛 날개를 퍼덕이며 펼친 오른손에 선명했던 못자국 중지와 약지를 벌린 각인에 혀를 끼우고 왼손에 들었던 횃불로 바람의 꼬리에 불을 붙이자 메케하게 피어난 악성 루머들 사람들은 스스로 검은 상자에 매달린 중독성의 쇠사슬을 목에 걸었지. 자동조절 되지 않는 나의 몸에서도 고열이 일었어. 통증으로 웅크린 배를 독수리의 발톱이 휘젓자 거친 호흡으로 들썩이던 종잇장은 찢겨져 쏟아진 폐를 독수리가 인공호흡기처럼 입에 물고 숲을 흡입했어. 노을이 빠져나간 얼굴에서 금세 어둠이 흘러나와 달의 내장을 꺼낸 굴뚝이 목에다 뱀처럼 구름을 두르고 방안을 노려봤지. 구멍 난 튜브 속에선 지독한 황사와 매연, 미세먼지들이 쏟아져 나왔고 나의 목구멍에서도 뱀의 혓바닥이 아지랑이로 피어올랐어. 독수리가 홀연히 날아간 후에야 검은 상자 위에 염소가 목의 쇠사슬을 풀었지만, 손바닥을 뒤집는 타로카드 15번 재가 된 사람들은 안개처럼 공중에 떠다녔지. 한 방울 눈물과 백색연기로.     [출처] 악마의 중독(미래시학, 과천문학)|작성자 김기덕     가위가 오린 풍경 김기덕   하늘을 오린 가위들이 황사로 날아왔다. 찢어진 헝겊조각처럼 펄럭이는 내 봄날의 모래바람   가위질할 수 없는 밤과 아침 사이로 빠져든 도시는 사막에 잠기고 낙타로 깨어난 차들은 느릿느릿 사구를 넘었다.   죽은 태양을 파묻은 땅에선 검은 연기가 피어올라 비릿한 악취를 풍겼지. 스펀지 같은 폐에 꽂힌 바늘들은 찢긴 상처를 꿰매지 못해 수풀로 짠 바람을 밀어 넣어도 숨을 쉴 수가 없었어.   찢어버리고 싶은 하루의 졸린 책장을 오리면 태양은 다시 떠오를까. 꽃과 아이들, 이슬방울 영롱한 아침과 가위를 부서뜨릴 바위덩어리. 가위! 바위! 보!   간밤에 내 몸을 짓눌렀던 검은 가위는 어디부터 나를 오려내고 싶었을까. 담배연기 찌든 폐, 이미지를 상실한 뇌 황사로 뿌연 내 가슴 한 귀퉁이도 오려내고 싶었겠지만, 난 공포감으로 상영 중인 가위 꿈의 필름을 소리 내어 잘라냈어.   비단 폭처럼 찢어진 어둠 속에서 보았지 잠든 여인의 눈부신 속살, 등 돌린 창가에서 그믐달이 새벽을 꿈꾸고 있는 것을. 아침이 동녘부터 야금야금 오려져 능선을 만들어가기 시작했어.   흐린 유리창을 오리면 무지개가 뜨던 오늘밤 머리맡엔 어머니가 쓰시던 가위 하나 놓고 자야겠다. [출처] 가위|작성자 김기덕     절벽에 선 나무 김 기 덕   바다로 향한 불빛들이 강물로 흘러갔다.   뼈만 남은 어깨엔 눈과 비와 바람을 채색한  누더기뿐.   바람의 난간에 선 맨발 실금 하나 사이로 생존과 파멸이 공존하고 있었다. 뜬구름 접어서 종이비행기로 날려준 바람 줄을 나는 놓지 못하는 걸까.   힘줄이 불거진 발은 평생 수직의 길을 걸어왔다. 담쟁이 더듬거리던 길로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못 박혀 직각의 모서리를 걸었다.   날개 접은 풍문들이 벼랑 끝으로 낙엽들을 몰아갔을 때   달은 지프라이터에 갇혀 초승달로 사그라지고 별의 눈동자들은 담배 불빛 깜박이던 옥상에 올라 마지막 어둠을 태웠다.   절벽에 매달려서야 창틀의 위대함을 알았다. 평생에 한 번이라도 유리창을 껴안고 절벽에 매달려 본 적이 있던가. 내 몸 하나도 붙들지 못했던 옹벽   바위를 껴안던 뿌리가 뽑혀 내 척추로 이식되던 밤 신경줄마다 흐르고 있는 이빨들의 강을 보았지.   이를 앙다문 뼈들이 절벽에 매달린  ​절규.  [출처] 절벽에 선 나무(문학메카 2015. 9)|작성자 김기덕     사막의 연인(戀人) (문학메카 2015. 9)​   아담과 이브가 바람뿐인 카페에 앉아 에스프레소를 마신다.   퇴색된 열두 개의 생명나무 불꽃은 일 년 열두 달 검은 장미로 피어났어.   생크림을 핥는 뱀의 혓바닥 위로 노을이 지고 꽃잎이 떨어졌지.   선악을 알기 전의 남녀는 누드였단다. 서로를 알고 난 후부터 아무리 가려도 가려지지 않는 몸에서 솟는 붉은 가시들   녹색의 초원이 놓인 탁자 위로 에스프레소가 쏟아져 황무지가 펼쳐진다. 사막을 오가던 말들이 선인장이 되어 모래 속에 뿌리박고 피보다 진한 꽃을 피운다.   아담과 이브가 살던 동산엔 열두 개의 태양과 열두 개의 달이 뜨고, 보라색 옷을 입은 천사가 양팔저울에 해와 달의 열매들을 달았지.   구름이 치마끈을 풀고 능선에 앉아 엉덩이를 흔들면 산은 잔이 되고, 잔엔 옥수로 가득했던 눈물을 안 후,   다시 누드로 돌아갈 수 없는 아담과 이브가 라이브 카페의 난간에 앉아 마시는 치사량의 검은 유혹. 피 묻은 입술이 머그잔을 타고 흘러내린다.   카펫 위엔 엉겅퀴가 자라고, 독버섯이 피어났지. 구둣발에 짓밟힌 뱀들이 서로의 몸을 말며 물어뜯는 아담과 하와의 발뒤꿈치. [출처] 연인|작성자 김기덕     철탑 속의 황제                                        김 기 덕 ​ 카페나 호주머니 낡은 가방 그 어디에도 황제는 있지 황홀을 든 태양의 눈동자가 물결 위를 지날 때마다 갈대들이 허리를 꺾던 강가  갑옷 속에 감추어진 발톱이 물결을 할퀴며 건져 올린 안개의 거리는 마차소리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어  괴목의 뿔을 매단 절벽, 죽음의 부리만이 서로를 쪼아댔지 피로 번진 노을이 암투의 커튼을 드리운 하늘가 욕망이 치솟는 곳은 어디든 마천루였어  달의 보주를 차지하기 위해 밤마다 강물 위로 별들은 폭죽처럼 쏟아졌지  물결을 거스를 수 없는 왕관이 흘러 정박한 곳 아무도 믿을 수 없었던 독수리는 늘 땅으로 추락했어  바위들이 송곳처럼 삐져나온 안개 속 철탑의 도시엔 뿔 달린 머리들만 문마다 내걸렸지 ​아기의 울음이 헤롯의 칼과 창과 방패를 삼킨 후 스카이라운지나 전광판, 갤러리, 그 어디에도 황제는 없어 대관식을 마친 나폴레옹은 세인트헬레나로 떠나고 성난 군중들만 남은 광장에 붉은​ 십자가 [출처] 황제의 비밀|작성자 김기덕     권태기의 화학반응 김 기 덕   유기물과 무기물의 화학기호들로 결합된 여인이 다리를 꼬고 앉아 H2O를 마시며 CO2의 언어를 내뿜는다.   시냅스가 전달한 한 남자의 페르몬 물질로 첫눈에 반해버린 신경세포들의 발작적 흥분이 죽어도 좋을 환각을 몰고 왔다. 뼈와 심장의 얼음까지도 다 녹일 수 있는 순수 가용성의 용매가 되고 싶어.   초고온으로 발생한 마이크로파가 플라즈마를 일으키는 자기장 속에서 한평생 서로를 밝히는 오로라가 되기로 했지. 외로움의 전자를 버리며 금속으로 만나든, 그리움의 전자를 얻으며 비금속으로 만나든, 서로의 이온결합을 만들며 분해되지 않는 화합물을 꿈꿨어.   혹서와 한파를 지나며 서로 다른 비등점과 빙점을 확인해온 시간 속의 유리벽은 넘을 수 없을 만큼 높았다. 유기물을 분해하고 흡수하여 가스로 방출하는 일상의 기계적인 실습에서 흥미로울 것도 새로울 것도 없는 의무감으로 서로의 용액을 섞으며 무관심의 밀도를 잰다. ​ ​더 이상 흥분 호르몬이 발생하지 않는 비환유의 뇌 속으로 연결된 소통의 회로들은 막다른 골목처럼 좁아져 갔다. 가슴 떨렸던 반응들이 멈추고 몽환의 기체들이 날아간 비커 속에 유리조각처럼 남은 추억의 불순물들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굳어진 몸처럼 검은 구멍에서 뿜어진 독설로 흡열반응, 발열반응이 멈춘 무의식의 몸이 식어간다. [출처] 권태기의 화학반응(미래시학, 과천문학)|작성자 김기덕   상자 속의 수평선     무쇠상자 안의 슈뢰딩거 고양이는 관찰을 통해서만 살아있다. 원자가 방사능을 방출하는 순간, 망치가 독가스 용기를 깨뜨리도록 고안된 상자 속에서 죽느냐 사느냐는 오십 대 오십. 어느 시점에서 고양이가 죽는 지에 대해선 아무도 알 수 없다. 고양이는 발견을 통해서 죽는다. 고양이의 죽음은 내부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들여다볼 때 결정된다. 관찰자가 상자를 들여다볼 때 고양이가 죽어있다면 그는 고양이를 죽인 것이다.          핵이 붕괴하는 순간 분기점이 생기고, 삶의 세계와 죽음의 세계가 분리되어 평행 우주를 만든다. 관찰되지 않는 나와 관찰되는 당신과의 사이엔 물과 기름의 길이 있다.  당신은 나의 의식속에 살고, 나는 당신의 무의식속에 산다.        관찰되지 않는 태양은 영원하다. 나의 죽음이 발견되지 않는 한 나는 죽지 않는다. 사랑은 확인되지 않기에 영원하다. 볼 수 없기 때문에 바람과 공기는 존재한다. 귀신과 영혼과 망령과 풍문들이 떠나지 않는 세계는 아무도 들여다볼 수 없기 때문에 살아있다. 무쇠상자 안의 고양이를 관찰하지 않는다면 고양이는 영원히 산다.  관찰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도 고양이를 죽이지 않았다. 신은 모든 곳에 존재하기 때문에 관찰되지 않는다. [출처] 상자 속의 수평선|작성자 김기덕   0과의 만남           음식을 비운 접시처럼 달은 어둠을 비우고서야 보름달이 되었다. 무소유의 달 대웅전 불당의 부처 얼굴이 달처럼 환했던 것도 어둠을 비웠기 때문이었다. 속이 빈 시간의 굴렁쇠가 오늘도 태양의 길을 따라 굴러간다. 음과 양의 물줄기가 합쳐지며 동맥과 정맥의 피돌기를 시작한다.      0이 더해진 숫자와 사물은 백지 위에 그리움이 되었다. 0을 뺀 숫자와 사물은 욕심을 오려낸 허공이 되었다. 0을 곱한 숫자와 사물은 나무속에 천년의 나이테를 채워도 0이 되는 하나일 뿐. 0을 나눈 숫자와 사물은 물결이 번지며 사라져가는 파문이었다.      마음을 비웠다고 못 박은 0 하나 잘난 척 나설수록 십의 배수로 가치가 떨어졌다. 0.1, 0.01, 0.001…… 마음을 비우고 못을 뺀 0 하나 뒤에서 따를수록 십의 배수로 가치가 상승했다. 10, 100, 1000……     0의 얼굴을  닮은 무중력의 비행체가 새처럼 내 품으로 날아들었다. 0과 0 사이의 무한 공간속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들은 0을 그리며 사라져간다.  웜홀과 블랙홀을 지나서 미래의 공간 속으로 달려가는 靈 0과 0이 손을 잡는다. ∞의 세상이 손끝에서 만난다.  [출처] 0과의 만남|작성자 김기덕   오늘의 날씨       눈부신 태양은 매일 뜨지 않는다. 구름 옷 입고 출근하는 날씨의 하루는 비이거나 눈 천둥소리에 풀들은 고개를 움츠렸다. 회오리에 추풍낙엽의 증권들 핏빛으로 물드는 창문 사무실마다 썰물이 빠져나가고 사막의 도시엔 한 생의 발자국을 묻는 모래바람이 불었다. 안개 속을 잠행하며 자리를 지켜오던 김씨, 이씨, 박씨도 보이지 않는다. 면도날 같은 날씨의 예상이 일기예보를 빗겨간다. 계절이 공존하던 객장엔 수축하는 시간의 지층이 쌓이고 동전만한 우박이 사선을 긋는다. 내려치는 번개에 후줄근히 등줄기가 젖는다. 쾌청을 꿈꾸는 실내와 구름 낀 실외와의 기온 차에 유리창엔 날마다 성에가 꼈다. 기쁨과 슬픔의 기상도가 교차하는 스크린 삼한사온을 오가던 엘리베이터의 로프마저 끈긴 수은주의 하강에 구겨진 날씨의 하루는 눈보라였다. 몸을 웅크린 노씨, 나씨, 남씨의 하루도 눈사태였다. 영원한 겨울은 없는 법, 영원한 여름을 꿈꾸지 않는다. 내일 먼 바다의 파고는 높음 강풍이 불수록 깃발들의 심장이 펄럭인다. [출처] 오늘의 날씨|작성자 김기덕   달의 기원   달이 커지며 그녀의 가슴도 부풀었다. 늑대가 울고 광기가 차오르는 밤. 스톤렌지의 돌들은 그녀의 월경주기를 계산하고 있었다. 여자는 무엇으로 태어나는가. 아담의 갈비뼈로부터 분리가 있은 후 남자의 가슴엔 태평양이 생겼다. 조석간만의 애증이 출렁이며 눈물바다를 남겨주었지만, 왜 여자는 남자 주변에서 공전해야 하는지는 설명되지 않았다. 그녀와 나 사이의 공간도 진공은 아니다. 주변의 매개물인 미소행성체들과의 만남 속에 이루어진 브레이킹, 오 부킹. 지구를 차지하기 위해 달은 주변의 바람들을 다 삼켰을까. 아니, 달은 지구의 관심으로 융합, 팽창하며 태어난 거야. 태양계의 행성들처럼 주변을 배회하며 한 마디의 말이나 표정까지 몸에 돌로 다져 넣었던 거야. 어느 날 내 허블망원경에 포착된 여드름투성이 얼굴. 내 안에 뜨기까지 충돌했던 파편들 치솟아 뭉쳐진 애증의 달. 서로 부딪칠 때마다 노아의 홍수가 일고 여호수아의 태양이 떴다구. 아니, 아니 달은 지구를 위해 설계된 신의 못질일 뿐, 일식과 월식의 관계를 만들며 서로 입 맞추고 그늘이 되는 필요충분관계야. 늘 한 면만 보여주는 그녀의 뒷모습이 나는 그립다. 어느 곳도 중력의 차이는 없다고 나를 향해서만 무게중심이 쏠려있다. 어둠 속에서 다시 태어나는 달. 나는 단 한 번도 그녀에게 태양을 보여주지 못했다. 쿵, 떨어진 로켓에 달의 가슴에서 종소리가 울린다. [출처] 달의 기원|작성자 김기덕   골프   十八界의 홀을 정복하기 위해 108구멍에 염주를 굴린다. 버디와 보기를 오가다 파로 끝나는 중생의 라운드 스코어는 나이 같은 숫자에 불과했다. 임펙트한 퍼팅보다는 비워야 할 루틴이 많았던 시간 롱 드라이브 아이언 샷으로 꿈의 깃발에 어프로치해 보지만 페어웨이보다는 러프와 벙커에 빠지는 일이 많았다. 죽음의 연못에 잠겨버린 순간들조차 또 다른 세상의 여정임을 알려주며 숲과 나무와 구름의 갤러리들이 손을 흔든다. 바람을 읽고 잔디의 굴곡을 재며 웃음으로 도반이 돼 주었던 캐디 리봇을 남기고 떠난 인연들을 일일이 손으로 덮어주며 이 세상 다녀간 그린 위에서 나의 흔적을 지운다. 잔기침마저 태풍이 되는 숲 속의 나비효과에도 핸디캡을 극복하고 흔들림 없이 스윙을 해야 해 깨달음의 이글을 날리며 홀인원했던 무아경의 돈오돈수 물과 불을 다스리는 가부좌를 틀고 우주를 굴린다. [출처] 골프|작성자 김기덕   먼지 보고서   먼지별에 가득 찬 먼지들 서로 껴안고 몰려다닌다. 바람의 미세 혼령들 한통속으로 몸을 드나들며 구름을 일으킨다. 성층권까지 치솟는 분노의 화산재 변심한 애인의 모래바람 꽃 입술에서 나온 꽃가루들이 거울 같은 세상을 지운다. 불을 피우고, 물을 뒤집어쓰며 풀풀 먼지만 피우다가 연기로 사라지는 미세먼지들 벽을 통과해 내 몸속에 둥지 틀고 기침을 한다. 어젯밤 꿈으로 분해된 초미세먼지의 빙의 아 무서워, 현실의 악몽들은 중금속으로 살던 입자들이 알레르기를 일으키며 나를 깨운다. 분해결합하며 공간 이동한 에어로졸들은 또 거미가 되고 세균이 되겠지. 진드기나 박테리아들과 한 이불 덮으며 구름방울, 빗방울로 살다가 아지랑이처럼 흩어질 내 안의 미립자들 쥐며느리나 개미들처럼 껴안지 못하고 진공청소기를 돌린다. 책상 위에 쌓인 중금속들이 비둘기로 날아간다. 유리창에 달라붙은 꽃가루들이 자동차가 되어 달린다. 나는 몇 억만 년 전에 피어난 소금방울이고 화산재였나. 석면가루의 말들이 진폐증을 일으킨다. 메트로놈의 파장이 엔진을 돌린다. 먼지로 왔다가 먼지로 돌아가는 날개들의 소리 없는 퍼덕임 굴절과 산란을 만들며 노을처럼 흩어진다. 반짝이는 먼지들로 가득한 은하계에 바람이 인다. 나뭇잎마다 수북이 쌓이는 빛. [출처] 먼지 보고서|작성자 김기덕     황금비의 비밀   170센티미터의 아빠와 105센티미터의 딸이 손잡고 화랑을 걷는다. 현의 길이 1:2의 8도 화음, 2:3의 5도 화음, 3:4의 4도 화음이 섞이며 라파미, 미파라의 선율이 흐른다. 다섯 개의 꼭지점과 다섯 개의 면을 가진 피라미드가 별을 가리킨다. 살바도르 달리의 최후의 만찬장엔 고개 속인 제자들이 영의 양식을 먹고 있었다. 여신 아테나 파르테노스를 숭배한 파르테논 신전,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풀처럼 기둥에 기대어 5분지2 바퀴마다 난 잎들을 세며 얼마나 햇빛이 필요하냐고 물었다. 파보나치의 수처럼 커지는 내가 무서워. 내 안에서 앵무조개 같은 소용돌이가 일었다. 태풍이 되든가 나선은하가 되든가 같은 비율에 갇히는 게 싫어. 몸의 중심인 배꼽에 컴퍼스를 대고 영향력의 한계를 그려보았다. 손끝과 발끝에서 만난 원이 알파와 오메가를 그렸다. 머리에서 발끝까지의 길이를 수직으로 긋고 뻗은 양팔의 길이를 가로로 그으니 정사각형의 땅이 생겼다. 다빈치의 아름다운 드로윙 속에서 비트루비우스적 인간인 내가 최초의 인체 골격으로 서있었다. 몬드리안의 그림 속에서 사람들은 카드놀이를 하고 티브이를 보고 담배갑을 매만졌다. 창문 안에 가득했던 책들은 액자가 되어 벽에 걸리고 십자가에서 피를 흘렸다. 스트라디바리우스의 비밀을 간직한 피아노에서 피타고라스 원리인 직각삼각형의 파랑이 인다. 점점 커지는 소프라노의 하이 톤. 수학자인 신은 놀라운 비율의 분할을 숨겼고, 나는 바로 선 펜타그램과 거꾸로 선 펜타그램 사이에서 방황했다. 누가 동그라미와 세모와 네모 사이에서 프렉탈을 그리나. 시간의 원근법은 늘 하나의 꼭지점에서 시작되었다. [출처] 황금비의 비밀(시문학)|작성자 김기덕   물에는 바퀴가 달려있다     물이 흐르는 냇가에선 엔진소리가 난다. 울컥 눈물로 가동되는 물의 모터 눈물 마르지 않는 나무엔 물기둥들이 수직으로 오른다. 수십 층의 벽을 타고 오르는 물의 동력으로 콘크리트 건물은 살아있다. 직립하는 내 몸의 벽을 타고 오르는 바퀴들의 힘으로 나의 하루도 굴러간다.     몸에 시동을 거는 정액의 힘 들이켠 한 잔의 물이 온 몸에 바퀴를 굴린다. 계절의 바퀴 윤회의 바퀴 죽음과 부활의 바퀴를 굴리며 물이 흐른다. 파도들이 쓸려간 갯벌 위에 남겨진 타이어 자국들 기하학의 무늬 속엔 생명들이 가득하다.     엔진이 꺼진 바퀴들은 계곡을 미끄러져 폭포로 추락했다. 동력이 멈춘 물들의 하향곡선 바퀴가 정지한 호수엔 시간의 기어들이 녹슬어 갔다.     태풍이 몰려온다. 파도가 몸을 말며 굴러온다. 눈물의 엔진을 달고 지상에서 영원까지 무지개가 굴러간다. 대지의 자궁에서 바퀴를 굴리며 나오는 꽃들 ​ 만조로 차오른 달이 외발 자전거를 밟으며 하늘을 건넌다. [출처] 물에는 바퀴가 달려있다.|작성자 김기덕   불의 기억   부싯돌 속에서 태어난 씨앗들은 별처럼 반짝거렸지. ​ 마른 쑥잎에서 실연기로 성장해 바람결에 눈을 뜬 아이들은 석유나 나무나 양초 위에서 붉은 혓바닥을 놀렸지. ​ 태풍의 풍문을 들으며​ 자란 불새들은 몸을 웅크리고 담배와 폭죽과 수류탄 속에 잠들어 있었어.   성냥골의 뇌관을 건드리던 불장난으로 단 한 번 불꽃이고 싶던 봉오리들도 재가 될 운명의 껍질 속에 몸을 숨겨왔지. ​ 태양을 삼킨 잎들은 불꽃을 토하려 물을 뽑아 올리는데 단 한마디 기도이기 위해 침묵해온 향불 흐려질수록 태풍의 고요와 심해의 어둠이 감싸온 심장이 꿈틀거렸지. ​ 가시덤불에서 타오르던 불꽃이 몸속에서 타오르지만 않았다면, 불이 빚어서 혼이 된 흙이 도자기처럼 끌어안고 싶었던 죄의 불 ​ 성화는 분수처럼 뻗쳐올랐어. ​ 악을 담금질하며 녹슨 뼈를 연마하는 연금술사의 손이 풀무로 지나는 계절, 껍질이 깨진 은행에서 천년 동안 줄기와 가지들이 폭발하고​ 아기의 입술에선 태초의 말씀이 울음을 터트리는데 ​ 재가 되기 전 마지막 바람의 입술을 기다리는 ​숯 [출처] 불의 집(과천문학)|작성자 김기덕   가로등                           김 기 덕     달항아리에서 물이 넘친다. 화석이 된 어둠의 뼈를 녹이며 빛의 웅덩이를 만든다. 눈과 귀와 코와 입술이 떨어져나간 달의 얼굴에서 백설탕이 쏟아진다. 골탄의 검은 발바닥에 감각은 사라지고 별빛 물의 언어들만 밟힌다. 굽이굽이 책장을 넘겨 강으로 흘러온 푸른 경전 속의 활자들이 천 길 물줄기로 추락하다가 영겁의 불로 활활 송전탑을 가로질러와 철골에 혼불을 밝혔다. 수백 만 볼트 물의 혼령들이 유방을 열고 밤새 쓰레기와 도둑고양이와 부서진 자전거를 적신다 해도 젖지 않는 유리창 안의 풍경들 병아리를 품은 날개의 온도로 떨어지는 깃털들이 는개같이 내려 골목 가득 물안개를 피워도 좋아 아무리 비워도 샘솟는 달항아리의 물이 밤새도록 길 위에 넘친다. [출처] 가로등(2015. 스토리문학)|작성자 김기덕    중간숙주     불뱀이닷! 광야에서 불타던 뱀이 종아리에서 꿈틀거린다. 물벼룩에 감염되어 내장에서 자라던 메디나의 뱀들이 수포를 일으키며 발뒤꿈치를 물어뜯는다. 물속에 알을 낳기 위한 저들의 뜻을 위해. 불에 덴 이빨자국을 물에 담그라하는 메디나충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다. 물에서 짝짓기하기 위해 유인한 곤충들을 자살시키는 연가시의 지상명령은 계속된다. 위장에 암거하던 헬리코박터들이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추라한다. 요충들이 항문을 긁던 손으로 이웃을 위해 떡을 떼라한다. 노란 끈 같은 촌충이 알 밴 몸을 끊어내며 입맛을 돋운다. 내가 먹고 싶은 것은 내 안에 존재들의 입덧 때문. 실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항아리 모양의 편충들이 빈 그릇을 채우라 한다. 주걱을 닮은 디스토마가 밥을 푸라한다. 살을 뚫고 다니던 스파르가눔이 환청을 들려주며 밤마다 꿈꾸게 한다. 간흡충, 폐흡충, 선모충들의 비위를 맞추며 나는 식단표를 고른다. 바이러스, 세균들의 눈치를 살피며 외출을 준비한다. 그녀와 공생관계가 깨지면서 내 의식에 뿌리박은 애증의 빨판들. 머릿니나 빈대처럼 집요하게 잠의 뼈를 갉아먹는다. 내 몸의 주인이 된 에이리언이 장기 어딘가에서 나를 조종하는지도 몰라. 가끔씩 전해지는 외계의 텔레파시. [출처] 중간숙주|작성자 김기덕     통증은 말한다   편두통이 머리에 못질을 한다. 망치를 든 귀신을 쫒기 위해선 연기처럼 빠져나갈 틈이 필요했다. 머리에 구멍을 뚫고 아무리 울어도 통증은 눈물에 녹지 않았다. 벌레를 잡기 위해 쪼아대는 딱따구리 약을 먹으며 플라시보 효과를 꿈꿨다. 몽환의 잠속에서 꽃의 원초적 뿌리를 캐보았지만 경련의 시작과 끝은 알 수가 없었다. 우울과 불안의 늪에서 물풀 같은 말초신경들이 손을 흔들었다. 물결무늬의 고통이 썰물과 밀물로 오가는 골짜기는 깨달음이 클수록 깊어졌다. 살아있음의 은유, 몸이 주는 메시지를 나는 받지 못하고 있었다. 라오콘의 형상에서 울부짖음이 흘러나왔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얼굴에서 읽을 수 없었던 통각신호기의 적색등이 깜박였다. 눈을 감아야 해. 귀를 막고 통증이 없는 낙원을 찾아야 해. 소리를 잃어버린 나환자들이 촛농처럼 녹아내린 손을 흔든다. 에테르 기체를 마신 사람들이 표백된 얼굴로 무덤에 누워있다. 꼬챙이로 혀에 구멍을 뚫고, 피부를 낚싯바늘로 꿰며 통각의 소리를 듣는다. 고통이 무거울수록 위로를 얻는 뼈의 외침을 듣는다. 가장 고통스러울 때 영혼은 몸을 벗어나 자신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두드리고 담금질하는 연금술사의 망치소리. 십자가에 못 박는 소리가 내 몸 안에서 천국 문을 두드린다. [출처] 통증은 말한다|작성자 김기덕   동양화 보는 법   동양화가 집안에 들어왔다. 그림 현실이고 현실이 그림인 풍경 속엔 계절과 상관없는 시간들이 흐르고 있었다. 퍼즐처럼 이를 맞춰 그려진 사물들, 참새와 까치가 입을 모아 기쁨을 노래했다. 70년 된 고양이가 수천 년 묵은 바위 위에서 소나무를 올려다본다. 수탉이 울어대는 공명의 울림, 백로들은 하나의 길로만 날아갔다. 부유한 집안에선 모란이 피고, 석류가 익으면 포도, 박 넝쿨 뻗으며 자손들이 자랐다. 누구에게나 피라미 시절은 있었다. 학업을 마치고 꽃을 피워 부평초 같은 타향살이엔 원추리 어머니가 그리웠다. 장미꽃 청춘이 가고 붉게 복숭아는 익어갔다. 맨드라미, 닭 벼슬 같은 불을 꿈꾸며 일품의 두루미가 파도를 바라본다. 작은 잉어를 건진 후 큰 잉어를 건지는 과거시험, 장원급제한 오리들이 하늘로 날아오른다. 대궐은 하나였기에 두 개일 수 없는 배반의 쏘가리들이 탁본된 벽 속에서 퍼덕였다. 관아에서 귀뚜라미들은 갈대로 게를 묶은 임금의 음식을 먹었다. 금옥만당에 금붕어들이 놀고 여러 신선들은 늙지 않는 색비름을 따고 있었다. 근검절약 속에 피어난 연꽃들, 마음을 비운 연뿌리들이 한 줄기 형제애로 통했다. 바다새우와의 해로偕老, 구리그릇에 평안을 담아 국화꽃 핀 뜨락에서 유유자적한다. 갈대와 기러기들도 춤추며 노안老安을 즐긴다. 게들은 바르게 걸어보지만 늘 반항적이었다. 팔랑팔랑 나비가 흰 사슴 뿔 위에 앉아 팔순을 축복한다. 난초 같은 자식들, 죽순 같은 손자들 바위와 대나무 우거진 숲에서 축수한다. 군자의 인품이 가득한 매‧난‧국‧죽의 꽃향기. 냇가에 앉은 노인이 빈 마음으로 발을 씻는다. 벽이 동양화이고 동양화가 벽인 창문을 연다. 새롭게 펼쳐지는 산수화. 호리병박, 포도가 열리고 소나무 등걸에 기대어 달이 산을 올려다본다. [출처] 동양화 보는 법|작성자 김기덕     원시 다이어트       숲이 나뭇잎을 털어낸다. 해독을 위해 토해내는 붉고 노란 빛깔들, 최소한의 식단을 위해 꽃은 피우지 않기로 했다. 원 푸드에 길들여진 포도알을 씹는다. 미더덕처럼 터지는 배반의 껍질들, 풍선으로 부풀려진 세포마다 침을 꽂고 비파나무 같은 효소를 심었다. 지방흡입용 호스를 타고 빠져나가는 바람에 내장들이 쪼그라든다. 산화되지 못한 불꽃들이 물이 되어 흐른다. 위절제술은 이제 뿌리부터 행해질 거야. 식욕억제제를 먹으며 한겨울을 버텨야 해. 목구멍에 손가락을 넣고 구토하는 나뭇잎들의 얼굴이 붉다. 거리마다 부는 구조조정 바람 때문일까. 가지치기할 때도 아닌데 꼬마 인형들이 오른팔을 분질러 뽑는다. 이삿짐을 싼 방은 곧 얼음동굴이 될 것이다. 겨울왕국에 눈이 쌓이고, 일만 년 쯤 빙하기가 찾아온다 해도 상대성이론의 시간이라면 버티기엔 하루나 이틀로 충분해. 말라깽이 모델이 활보하던 쇼룸에 불이 꺼지고 성형외과의 문은 굳게 닫혀있다. 요요현상의 함박눈들을 쏟아낸 하늘이 구름을 마구 집어 삼킨다. 거식증에 걸린 위벽이 딱딱하게 굳어진 땅에 빈혈로 쓰러진 하얀 풀잎들 좀 봐. 굶어죽은 혼백들이 나풀거려. 골다공증이 찾아온 내 골반뼈를 인수분해하며 빈 마음의 방정식을 푼다. 부질없는 공식들을 꿰맞추며,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노라 복잡한 선들을 지우고 단순화된 도형을 세운다. 세모, 네모, 동그라미의 압축파일들은 지금 즉시 천국으로 보내고 싶어. 참선하고 고해성사하던 나무들이 뼈만 남아 도장을 새기는 길거리에서 바다가 고무줄놀이를 한다. 해안선을 따라 복식호흡하는 아스팔트 위에 섬들. 구석기의 식탁을 차리면 나는 원시인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겨울마다 계절은 허리띠를 조이고 밥을 굶는다. 실반지처럼 가늘어진 허리, 비틀거리며 초승달이 검은 스테이지를 밟는다. [출처] 원시 다이어트|작성자 김기덕     살풀이       생의 반쪽들이 갈고리에 걸려 물구나무를 섰다. 0을 가리키는 기울기의 눈금엔 잘려진 시간의 핏물이 고여 있었다.       칼을 맞고 일어서는 냉동의 살들 해체되는 의미 속엔 뼈도 눈물도 없었다. 세월의 등살에 새겨진 물결무늬마다 하루가 풍랑이고 폭풍이었던 여정이 끝났다.       푸른 도장을 받기 위해 문자와 글자들의 건초더미를 되씹던 언어의 사체에서 한 근의 채끝살을 바르기 위해 살아서 고뇌 중인데, 죽은 자의 칼이 산자의 살을 바른다. 광란의 바람이 이는 ㄱㄴㄷㄹ       소가 환전된 금고를 열면 목쉰 쇠방울소리가 울렸지       벌판에서 울부짖던 메아리들만 뼈 속을 맴돌았다. 난도질 할수록 부드러운 칼의 속삭임, 현란한 혀의 놀림에 상처는 깊었다. 무덤 속 벌레들의 섬뜩한 미소 같은 하늘을 품고 되새김질해 온 말씀들이 일어나 칼춤을 춘다. 헝겊처럼 얇게 썰어지며 리듬을 탄다.       해의 시즙이 묻어나는 언덕 위로 밤새 뚝, 뚝 떨어진 달의 꽃무늬들 이글거리는 불꽃 속으로 눈송이들이 몸을 던진다. [출처] 살풀이|작성자 김기덕     길 잃은 방       입에서 언어들이 부글거린다. 찌그러진 냄비의 얼굴 라면가닥 같은 생각의 통로들이 끊겨있다. 창문에 오려붙인 구름에서 유아기의 옹알들이 떨어진다. 배수관을 타고 오른 벌거벗은 냄새들만 쿨룩거리며 기침을 토한다. 산에 막혀 길을 잃은 아들이 흐느낀다. 바다에 갇혀 섬이 된 어머니가 깔깔거린다. 막혀서야 차오른 강물의 정은 마그마처럼 뜨겁다고 광야마다 구리뱀의 눈물이 흐른다. 댐을 넘어선 물이 오열하며 낙차 큰 절규로 발전을 시작하면 차단된 기억의 방에도 전기가 들어올까. 소통 없는 수위를 다스리며 강물은 누워 바람의 젖을 물리는데 빛을 만드는 저항의 필라멘트처럼 뼈에 박힌 다이오드들만 부루치 같은 내 심장을 밝힌다. 아스피린의 냇물이 마르며 툭, 길이 끊어진 숲의 어둠에 갇힌 어린 아이가 뇌혈관처럼 펼쳐진 가지들의 푸른빛을 풀어 털실로 짠 방에서 무덤처럼 열리는 내세를 본다. [출처] 길 잃은 방|작성자 김기덕     바람의 영양제 김 기 덕       파도의 혓바닥이 태양을 삼킨다. 밤의 목구멍을 넘어 아침의 능선에서 꽃씨를 뿌리는 햇살, 파랗게 열린 길 위로 바람이 인다.       비타민은 채소의 언어였다. 순식물성의 말속엔 엽록소가 담겨있었다. 신진대사를 부르던 언어들은 뱀처럼 꿈틀거렸고, 한 알의 씨앗은 산과 바다를 풀어놓았다. 심해를 헤엄치는 상어 떼들, 근육질로 영그는 산비탈에 씨알들. 한 계절의 농익은 얼굴들이 토마토를 심는다.       바람은 계절 내내 나무들의 유방에 볼을 부비고, 이파리를 흔들며 젖을 물렸다. 햇살 밴 과실의 유두를 빨면 꿀물이 쏟아지던 하늘.       바람이 빠져나간 골다골증의 땅들은 황무지로 변해갔다. 끼니때마다 밥을 떠 넣으며 양분을 채워도 무의식의 토양에서 나무들은 고사목이 되어갔다. 랩을 씌우고 비닐 포장한 안개의 날들. “새로운 태양이 필요해” 바람의 알갱이들이 플라스틱 병에서 달그락거렸다. 하늘 사방에 매인 구름의 묵시록.       바람의 말씀은 미네랄이 되었다. 식이섬유의 알약을 삼킨 뿌리마다 풀냄새가 났다. 컹컹 짖어대는 어둠속에서 뼈의 백색분말들은 눈물로 녹아들었다.       가시만 남은 입으로 어머니의 젖을 빤다. 독으로 박힌 파편들이 뼈에서 흐물흐물 녹아내린다. 고래들이 뛰는 맥을 짚어 노을을 넣고 숲의 바람으로 빗어낸 캡슐. 목구멍으로 넘기자 초신성이 타오른다. 온 몸으로 번지는 붉은 파도. 입에서 나온 말들이 딸기밭에 불콰하다.       태풍이 몰려온다. 가득 수액을 실은 바퀴를 밀고와 후드득 뿌리마다 바늘을 꽂는다. 새파랗게 일어서는 핏줄. [출처] 바람의 영양제|작성자 김기덕     블랙박스         젖은 그림들이 판화처럼 찍힌다. 네거티브 필름으로 현상되는 암실의 풍경, 검은 동공이 하늘을 열고 X-ray 눈으로 뼛속까지 어둠을 찍는다. 구름의 눈, 바람의 셔터, 물의 렌즈들, 보지 않는 것은 신의 눈뿐이다. 잎사귀들 엿듣는 밤을 헤드라이트 불빛이 순간복사한다. 번개처럼 스쳤다 사라지는 허상들, 가드레일을 넘어 뜨겁게 키스한 차들처럼 내겐 사랑할수록 파편들로 가득해진다. 중앙선을 넘나드는 철제 심장으로 횡단보도를 간통하며 깜박깜박 영상을 찍는 신호등을 무시하며 살았다. 천수보살 관음상의 풀과 나무들, 순간도 놓치지 않는 별들의 기록은 누구에게로 흘러갈까. 유성의 속달 메신저가 사라진다. 하늘의 이름으로 이웃들을 손가락질하다 도시의 십자가 무덤에 누워 내시경을 하고 MRI를 한 후, 내겐 영혼이 없음을 들켜버렸다. 뉴런을 타고 가는 도파민의 검은 웃음을 흘리며 항히스타민제를 먹은 벌레들이 머릿속을 찍어댄다. 어젯밤에 뱉은 나의 말들이 뛰어다니며 검은 발자국을 남기는 마룻바닥, 피사체 속의 어린아이가 웃는다. 눈부신 거울은 렌즈에 잡히지 않는데 벽에 못 하나 나를 꼬나본다 [출처] 블랙박스|작성자 김기덕   꿈꾸는 금연     남자가 여자를 빨아들인다. 흰 종아리부터 불꽃이 일며 머리카락 같은 연기가 피어오른다. 혼미하게 타다만 이파리들이 누렇게 얼룩지며 머릿속에 달라붙는다. 너 없인 못살아. 필터 같은 입술을 부비며 걸었던 손가락 사이에서 백색가루들이 흩어진다. 솟구치는 검은 타르의 배반은 갑 속의 누구를 선택해도 마찬가지. 치아를 부딪치며 혀를 핥아도 다 태워지지 않는 건 늘 자신이었을까.     빨아들인 독사과 향의 혼, 아무리 삼켜도 삼켜지지 않는 바람을 토해내며 소유할 수 없는 구름으로 보낸다. 남은 것은 니코틴의 채취와 거친 호흡의 파동뿐. 물에 젖은 우울의 습도에 다시 태울 수 없는 육체들이 사라져간다. 안개, 그리고 눈물.     남자를 흡입한 여자의 입술 사이에서 안개꽃들이 흔들린다. 붉은 루주의 도취, 검은 손톱에 파인 배꼽에서 불꽃으로 피가 흐른다. 수축되었던 뱃속으로 막소주 같은 기억들이 차오르며 손과 발이 떨어져 나간다. 몽상의 도넛들이 허공으로 피어오른다. 다 주고 싶어도 섞일 수 없는 뜨거운 폭풍들이 휭 하니 빠져나간 저녁. 몽롱이 피어오르는 순간의 미학으로 또 하나의 석양이 저문다.     구둣발에 비벼지는 불꽃 심장. 침을 뱉고 돌아서는 빙석의 뒷모습은 언제나 절벽이었다. 두려움으로 담배를 꺼낸다. 두려움으로 불을 붙인다. 매번 시작하는 마지막 사랑은 늘 첫사랑으로 끝났다. 날마다 최후의 담배를 쥐며 파르르 떠는 손. 다시 원점에 서있다. [출처] 꿈꾸는 금연|작성자 김기덕   달리의 꽃      달걀 속에서 꽃들이 부화한다. 초콜릿처럼 녹아내린 시간 위에 알들이 깨지며 시침이 검은 잎을 피운다.폭탄같이 웅크렸던 꽃봉오리가 남자의 몸에서 폭죽으로 터진 후 시작된 검은 우주의 빅뱅, 하늘엔 거위 알 같은 별들이 눈을 떴다. 동굴의 문이 열리며 열꽃을 피우던 여드름투성이 얼굴이 스친다. 풀어헤친 머리칼에서 풀 비린내가 번진다. 술병 마개가 빠진 안개의 숲, 팝콘처럼 터진 잎을 물고 배꽃 웃음이 쏟아진 곳에서 나의 뿌리를 찾는다. 어둠이 내려 푹푹 발이 빠지던 늪에서 연꽃처럼 개화를 꿈꿨었다. 창밖엔 천둥소리로 흙탕물이 흘러갔고 계절은 지독한 거름 내를 풍기며 썩어갔다. 늑골의 유정에서 불꽃을 길어 올리는 창세기. 몸 안의 용연향이 풀어지며 배꼽에서 꽃들이 부화한다. 흐물흐물 시계들이 녹는 사막의 땅으로 향수병이 넘어진다 [출처] 달리의 꽃|작성자 김기덕     종이비행기       소녀의 팔은 접혀있었다. 흰 블라우스에 밴 붉은 꽃물로 온통 꽃밭인 화단엔 깃발처럼 스커트자락이 펄럭였다. 바람의 손에서 놓인 구름은 비가 되었고 꽃들은 시들기 시작했다. 줄기를 놓친 지상의 나뭇잎들은 절벽으로 떨어졌고, 할딱이는 심장들은 비에 젖어 상처가 아물어 갔다. 연서처럼 안개가 피어오르며 나뭇가지마다 그리운 나라의 엽서가 매달릴 때면 초록 글씨들은 꽃이 되고 열매가 되었다. 노을을 접어 날리는 언덕 위로 빨간 우체통 안의 석류 알 같은 얼굴들이 흩날린다. 밀랍으로 붙인 하루하루가 이카로스 날개처럼 떨어진다. 몸을 흔드는 꽃잎들. 하강기류에 휘말린 엔진들은 정지하고, 강철 심장의 새들마저 둥지로 비상하지 못한 채 깃털로 흩어진다. 탯줄을 자른 눈송이들은 땅에 닿자마자 불꽃 눈물로 태어난다.     종이비행기 소녀의 팔은 접혀있었다. 흰 블라우스에 밴 붉은 꽃물로 온통 꽃밭인 화단엔 깃발처럼 스커트자락이 펄럭였다.   바람의 손에서 놓인 순간 구름은 비가 되었고 꽃들은 시들기 시작했다.   손을 놓친 지상의 나뭇잎들은 절벽으로 떨어졌고 할딱이는 심장들 위로 비가 내려 상처들이 아물어 갔다.   연서처럼 안개가 피어오르며 나뭇가지마다 그리운 나라의 엽서가 매달릴 때면 초록 글씨들은 꽃이 되고 열매가 되었었지.   노을을 접어 날리는 언덕엔 빨간 우체통 안의 석류 알 같은 얼굴들이 흩날린다.   밀랍으로 붙인 계절의 이카로스 날개들이 떨어진다. 꽃잎들이 몸을 흔든다.   하강기류에 휘말린 엔진의 정지 박동이 멈춘 강철 심장의 프로펠러 새들도 둥지로 비상하지 못한 채 깃털로 흩어진다.   탯줄을 자른 눈송이들은 땅에 닿자마자 불꽃같은 눈물이 되었다. [출처] 종이비행기|작성자 김기덕     시소의 법칙   빛과 어둠이 시소를 타는 놀이터에서 나는 땅으로 기울고 아이는 하늘로 기운다.  모래알 같은 언어의 지층을 뛰며 타이어의 탄력에 별이 되고 달이 되다가도 산의 무게에 아이는 차가운 철재 손잡이에 매달려 지구 끝에서 대롱거렸다. 기울어진 평균대 위에 발이 흔들리고 창이 가려진 하늘엔 천칭자리가 보이지 않는다. 팔이 부러진 병신 저울들이 춤추는 세상에 가로놓인 절벽, 입구까지 엉덩이를 들이 민 바위들로 기우뚱 마을이 기울고 사람들은 거꾸로 길에 매달려 거미줄 같은 집으로 종종걸음 친다.  철봉 위에 무중력 아이가 삐걱거리는 관절소리를 들으며 철탑으로 성장한다. 시간의 파도타기에  낙엽이 되어가는 나 방향이 바뀐 바람에 꽃잎들이 떨어진다. 일어섰던 풀들이 일제히 쓰러진다.  서로의 무게를 양보하며 오르락내리락 하늘 사다리를 타는 계절의 메트로놈 소리에 해와 달이 널뛰기 하는 골목 3옥타브 C 쯤의 가을이 내 어깨 위로 ♭ 된다. [출처] 시소의 법칙|작성자 김기덕   달의 암자   죽 그릇 속에 담긴 핏기 없는 얼굴들 흰 밥알로 풀어져 형광등 하늘을 비춘다.   사발에 새겨진 竹竹竹   竹音이 들린다.   숟가락을 뜨지 못하고 풀어진 눈동자들 희멀건 밥풀이 목구멍에 달라붙는다.   화장실 변기에 엎드려 토해본 후 알았다. 몸 안의 죽들이 부글부글 끓어올라 역겹던 가스와 마그마   활화산 같은 암자엔 죽 쑤며 살아온 사람들이 그릇을 비우는 게지. 暗, 癌, 庵   粥飮을 맛본다.   막걸리 푸고 길바닥에 게풀어져 오장육부 게워낸 보름달 창가에 빈 사발만 남았다. [출처] 달의 암자|작성자 김기덕   휴대폰 하나님       가게에서 별을 샀다. 별 속에 길을 내고 빛을 밝혀 생명의 씨앗을 뿌렸다. 여호와는 지구별의 하나님 나는 검은 별의 하나님   메네메네데겔우바르신 패턴인식으로 문을 연 세상엔 상징들로 가득했다. 집집마다 태양이 뜨고 손끝에서 사물들이 나타났다 사라지며 터치패드의 새로운 인사가 시작되었다.   E.T의 손끝에서 만나는 별들의 교신   지하철은 신들로 가득했다. 저마다의 행성에 문자를 보내고 메시지를 날리며 계시를 입력했다. 서로의 중력을 확인하며 다운로드한 복음들이 가득한 행성 목마른 영혼들이 게임을 즐겼다. 전쟁을 즐겨온 신들의 게임은 아직 끝나지 않은 걸까. 피조물로 전락한 자폐아들은 땅을 피로 물들이고도 스위치를 끄지 못했다.   신이 된 별들이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우주로 뻗어간다. 기계와 인간이 접속하여 응시하는 하늘의 창 은하의 별들이 뜨고 상형문자들이 흘러간다.   한시도 하늘을 보지 않으면 불안한 중독 아이들은 매일 접신 중이다. [출처] 휴대폰 하나님|작성자 김기덕   단풍나무 별     별이 쏟아진 언덕엔 심장들이 할딱이며 피를 흘렸다. 새의 부르튼 발자국들은 길을 잃고 밤이 늦도록 단풍나무 아래를 서성였다. 숭숭 구멍 뚫린 날개를 접은 거울 속의 빛바랜 눈빛들 풍선처럼 부푼 달빛에 산산조각 난 옷자락들은 새털처럼 흩어지고 눈동자는 땅에 묻히어 해가 떠도 하늘은 검은 가면이었다. 중력에 끌려 행성이 된 남자만 풀어헤친 밤의 미로를 이리저리 헤매 다녔다. 유성우의 칼날에 바람의 편지들이 풀잎처럼 허공에 찢겨질 때 노을이 묻힌 무덤가에서 흐느끼던 실루엣의 그림자 별이 지고서야 단풍나무 별 하나 가슴에 품었다. 바람이 불고, 구름이 일며 푸른 시트가 걷히는 언덕 파란 약병에서 쏟아지는 붉은 알약들 뼈만 남은 단풍나무는 흰 달빛에 실려 가고 비처럼 내리던 빛들이 검은 입속에서 초록빛으로 피어났다. [출처] 단풍나무 별|작성자 김기덕   비 개인 아침       옥상 위에 지렁이들이 물음표를 그린다. 승천하던 용들이 떨어져 지렁이가 된 건 아닐까. 간밤의 천둥 번개가 수상했다.       하늘엔 비룡이 살고 바다엔 해룡이 살고 성경엔 리워야단이 산다는데 땅에는 토룡이 산다.       여의주 같은 이슬을 물고 어둠 속에서 흙을 삼켜 빛을 토해낸다. 기꺼이 제 몸을 두더지나 뱀에게 내어주고 어혈을 풀어주면서 토막이 나서까지 생명을 낚는 낚시 밥이 된다.       밟힌다 해도 꿈틀 돌아누우며 온 몸으로 참아내는 묵언수행의 민초들 헌신의 용상에 올라 예수로 부활하고 석가로 환생한다.       흰 스티로폼 상자에 흙을 채워 하늘빛으로 상추와 깻잎을 가꾸신 어머니 품 같은 옥상에서       승천도 마다하고 콘크리트 바닥에 엎드려 목숨이 다해 전하는 상징의 기호들 동그라미를 그린다. 알파와 오메가를 그린다. 세상과 하늘과 내가 하나 되는 한일자를 쓴다. [출처] 비 개인 아침|작성자 김기덕   달의 항해   비행기가 지나자 물보라가 일었다. 반딧불과 어우러져 은어 떼처럼 별들이 유영하는 밤하늘 달의 목선을 타고 심해로 떠나는 항해를 꿈꿨다.   턱시도를 입고 구름 파도에 휩쓸리던 밤바다엔 용암이 흘러넘쳤다. 꽃밭의 별들이 숯불을 피워 이글이글 타올랐다. 해저에 닻을 내리고 은사銀絲의 투망을 던지는 초신성의 바다 달의 나침반은 지상을 가리켰다.   아버지의 이마에서 남자의 등에서 말의 엉덩이에서 새의 날개에서 나뭇잎의 푸른 잎맥에서 신의 성경책에서 마주보던 거울 속에서 출렁이는 바다,   달의 뒷면에서 어둠은 바다를 잊고 살았다. 문득 발견한 빛, 둥실 허공에 뜬 몸에서 엔진소리가 들렸다. 밀물로 차오른 보름달 망망대해엔 북극성의 부표가 떠올랐다.   온 세상 밤의 물결로 차오른 중수감 ䷜ 손 안에서 바다가 출렁이고 바람에 깃발처럼 달력이 찢겨진다. 시간의 속력에 찌그러진 유선형의 그믐달, 화살이 날아간다. [출처] 달의 항해|작성자 김기덕   날마다 선택된다    바람 속에서 춤추던 4g의 고무공들이   빛을 뚫고 세상에 나온 0.1초의 순간, 운명은 결정되었다.  비너스의 몸에서 나온 60억분의 일의 확률로 나는  아프리카 오지가 아닌,  가난과 굶주림의 전장이 아닌  대한민국, 언제까지나 살고 싶은 과천에 산다.  당첨번호는 62, 10, 2, 8  권천성, 수천성, 귀천성, 예천성의 별들이 반짝이고  날마다 다이아몬드 태양이 떠오른다.  상금으로 받은 재산과 아이들, 최고의 행운은 그녀의 과녁을 맞힌 화살이었다.  황금 달과 지폐다발을 세는 바람  평생 쓰고도 남을 물과 공기 속에서 나는 또 다른 화살을 쏜다.  서울역 근처 와이티엔 빌딩 앞 명당에서 로또를 사고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며 녹번동 은평구청 사거리   편의점 바이더 웨이에서 즉석 행운을 긁는다.  시간의 통 속엔 64궤의 공들이 돌아가고 384의 효들이 춤춘다.  지금 내가 뽑은 공은 33번째   천산돈(天山遯), 세상을 피해 잠시 몸을 숨겨야 한다.  백 번째 여자에게서 태어난 우레가 온 동네 떠나갈 듯 울어대는 밤  벼락 맞을 확률에 돈을 걸고  돼지나 불타는 집이나 물난리 꿈을 꾸진 않았어도  회차와 당첨금에 차이가 있을 뿐,  우린 이미 꽃이 된 구름을 따고, 눈물이 된 강을 마시고  백지 같은 땅을 구겼다 폈다하며 날마다 복권(福權)을 누린다.  비너스의 문이 열리는 하루하루   긴장의 연속, 빗방울 하나에도 환성과 탄식이 교차한다. [출처] 복권|작성자 김기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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