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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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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8    말도로르의 노래 / 로트레아몽 (황현산 옮김) (19) 댓글:  조회:173  추천:0  2019-07-06
말도로르의 노래 / 로트레아몽 (황현산 옮김) (19)     두번째 노래(5)   (5) 나는 늘 하던 산보를 하며, 날마다 좁은 길 하나를 지나가곤 햇다. 날마다 열 살짜리 날씬한 소녀가 동정과 호기심이 어린 눈꺼풀로 나를 바라보며, 거리를 두고 공손하게 이 길을 따라 내 뒤를 쫓았다. 그녀는 나이에 비해 키가 컸으며, 몸매는 호리호리했다. 머리 위에서 두 갈래로 갈라진, 검고 풍성한 머리칼은 따로따로 대리석 같은 어깨 위로 땋아 내려져 있었다. 어느 날은, 그녀가 평소처럼 나를 따라오고 있었는데, 한 여성 주민의 근육질 팔이 그녀의 머리칼을 마치 회오리바람이 나뭇잎을 휘어잡듯 휘어잡아, 그 당당하고 말없는 빰을 난폭하게 두 번 때리고는, 이 넋 나간 의식을 집으로 데려갔다. 나는 무관심한 척하였으나 부질없는 짓이었다. 그녀는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때 아니게 나타나 나를 따라왔다. 내가 길을 계속 걸어가다가 다른 길로 접어들 때는, 그녀는 격렬한 노력으로 그 좁은 길의 끝에 침묵의 동상처럼 요지부동으로 멈춰 서서, 내가 사라질 때까지 그치지 않고 자기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번은, 이 소녀가 길에서 나를 따라잡더니, 발꿈치가 닿을 정도로 앞서가는 것이었다. 내가 그녀를 추월하려고 거의 뛰다시피 하였다. 그러나 내가 걸음을 늦추어 그녀와 나 사이를 크게 벌려 충분한 간격을 두려 하면, 그녀 역시 걸음을 늦추고, 어린애다운 귀염을 띠는 것이었다. 그 길의 끝에 이르자, 그녀는 내 통행을 막는 식으로, 천천히 몸을 돌렸다. 나는 몸을 빼낼 시간이 없어서 그녀와 얼굴을 마주보게 되었다. 그녀의 눈을 빨갛게 부어 있었다. 나는 그녀가 내게 말을 걸고 싶은데, 어떻게 걸어야 할지 알지 못한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아차렸다. 그녀는 갑자기 시체처럼 창백해져서 내게 물었다. "지금 몇 시인지 말씀해주시겠어요?" 나는 시계를 차고 있지 않다고 말해주고 재빨리 달아났다. 불안하고 조숙한 상상력을 지닌 아이야, 너는 그날 이후로 그 좁은 길에서, 무거운 샌들로 구불구불한 갈림길들의 포도를 고통스럽게 밟아 울리던 그 신비스러운 젊은이를 다시 보지 못하였다. 이 불타는 혜성이 네 낙담한 관찰의 정면에 열광적인 호기심의 슬픈 대상처럼 나타나 빛나는 일은 이제 더는 없을 것이며, 너는 그 사람을 자주, 너무 자주, 아마도 날마다 생각할 터인데, 그 사람은 지금 이 삶의 악에 대해서도, 선에 대해서도 걱정하지 않는 것 같았고, 무섭도록 사색이 된 얼굴, 곤두선 머리칼, 비틀거리는 발걸음으로, 운명의 가차없는 제설기에 몰려, 온 공간의 거대한 영역을 가로질러, 끊임없이 몸부림치는 희망의 피 흐르는 먹이를 거기서 찾기라고 하려는 듯, 에테르의 아이러니한 물속에서 두 팔을 맹목으로 허우적거리며, 무턱대고 가고 있었다. 너는 나를 이제 만나지 못할 것이다! --- 누가 알랴? 필경 이 소녀는 겉에 드러나는 그대로가 아니었다. 순진한 외피 밑에 그녀는 필경 거대한 술책과 열여덟 해의 무게와 악덕의 매력을 숨기고 있었다. 사랑을 파는 여자들이 영국의 섬들에서 희희낙락 망명하여 해협을 넘는 것이 보였다. 그녀들은 날개를 반짝이며, 금빛 벌떼를 아루어, 파리의 불빛을 받아 선회하였다. 당신은 그녀들을 알아보고서 말했다. "하지만 아직 어린애들이다 열 살이나 열 두살을 넘지 않았다." 실제로는 스무 살이었다. 오! 이렇게 추론하면, 이 어두운 길의 모퉁이들은 저주를 받은 것이로다! 무섭다! 무섭다! 거길 지나가는 것이. 나는 소녀가 제 직분을 충분히 민완하게 수행하지 않아서 그 어머니가 소녀를 때렸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어린애에 지나지 않았을 수도 있으며, 그대는 어머니의 죄가 더 큰 것이다. 나는 가정에 지나지 않는 이 추론을 믿고 싶지 않으며, 이런 낭만적인 성격이라면, 너무 일찍 베일을 벗는 영혼을 사랑하는 쪽이 더 좋다---- 아! 아느냐, 소녀야, 언젠가 내가 이 좁은 길을 다시 지나가더라도, 다시는 내 눈앞에 나타나지 말라고 네게 충고한다. 그러다간 값비싼 대가를 치를 수도 있다! 벌써 피와 증오가 끓는 물결처럼 내 머리로 솟구친다. 나는 내 동류를 사랑할 만큼은 충분히 관대하다! 아니다, 아니다! 나는 내가 태어난 날부터 그러기로 결심했다! 그들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그들은! 내가 어느 인간 존재의 더러운 손을 만지기도 전에, 세계들이 파멸하고, 화강암이 한 마리 가마우지처럼 물결 이는 수면 위로 미끄러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뒤로--- 뒤로 물려라! 이 손을!---- 소녀야, 너는 천사가 아니며, 결국 너는 다른 여자들처럼 될 것이다. 아니다, 아니다, 네게 애원한다. 내 찌푸린 사팔뜨기 눈썹 앞에 더는 나타나지 말라. 어느 미망의 순간에, 나는 네 두 팔을 붙들어 세탁한 속옷의 물기를 짜내듯 비틀거나, 마른 두 개비 장작처럼 우지끈 부러뜨리곤, 완력을 써서 네게 그걸 먹일지도 모른다. 나는 내 두손으로 네 머리를 부드럽게 잡고, 그 무죄한 뇌엽에 내 탐욕스러운 손가락을 찔러넣어, 평생토록 끝나지 않는 불면에 시달리는 내 두 눈을 씻는 데 효과적인 지방을, 입술에 미소를 머금고, 추출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바늘로 네 눈꺼풀을 꿰매어, 천지의 조망을 네게서 빼앗고, 네 길을 찾기에 불가능한 지경에 너를 몰아넣을 수도 있을 것이다. 네게 안내자가 되어줄 사람은 내가 아니다. 나는 처녀인 네 몸을 내 강철 팔로 들어올려, 네 두 다리를 잡고, 투석기처럼 내 주위로 너를 내돌려 가장 큰 원주를 그려 힘을 모으고는 너를 담벼락에 내던질 수도 있을 것이다. 피가 방울방울 한 인간의 가슴에서 솟아나와, 인간들을 두렵게 하며, 그들 앞에 내 악독함의 예를 보여주리라! 그들은 쉬지 않고 제 살을 한 조각 한 조각 떼어내리라. 그러나 핏방울은 똑같은 자리에 지워지지 않고 남아서, 무슨 다이아몬드처럼 빛나리라. 안심하라. 나는 내 반 다스의 하인들에게 네 육체의 존경할 만한 잔해를 지키고, 아귀 들린 개들의 허기로부터 그것을 보호하라고 명령할 것이다. 필경, 몸은 익은 배처럼 성벽에 눌어붙어, 땅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개들은, 누가 지키지 않는다면, 훌륭한 도약을 완수할 수 있다.  
937    말도로르의 노래 / 로트레아몽 (황현산 옮김) (18) 댓글:  조회:211  추천:0  2019-07-06
말도로르의 노래 / 로트레아몽 (황현산 옮김) (18)     두번째 노래(4)   (4) 자정이다. 바스티유에서 마들렌으로 가는 합승마차는 단 한 대도 보이지 않는다. 내가 틀렸다. 합승마차 하나가 갑자기 땅밑에서 솟아오르기라도 한 것처럼 나타나지 않는가. 귀가가 늦어진 몇몇 행인들이 마차를 주의깊게 바라본다. 여느 마차와 다른 것 같기 때문이다. 지붕 위 이층 좌석에 죽은 물고기의 눈처럼 움직이지 않는 눈을 가진 사람들이 앉아 있다. 그들은 서로 밀어붙이며 앉아 있는 꼴이 생명을 잃어버린 것 같다. 더구나 정원이 초과된 것도 아니다. 마차꾼이 말들을 채찍질할 때, 그의 팔이 채찍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채찍이 그의 팔을 휘두르는 것만 같다. 이 기이하고 말없는 존재들의 결합을 무어라고 해야 하나? 달의 주민들인가? 그렇게 믿고 싶을 때도 있지만 그들은 오히려 시체들을 닮았다. 합승마차는, 마지막 역에 도착하는 것이 급해, 허공을 집어삼키며, 포장도로를 삐걱거리게 한다--- 달아난다!---- 그러나 형체를 알 수 없는 덩어리 하나가 먼지를 뒤집어쓰며 바큇자국을 따라 악착스럽게 쫒아간다. "세워주세요, 제발 세워주세요--- 하루종일 걸어서 다리가 부었어요. ---- 어제부터 먹지도 못했어요.--- 부모님들이 나를 버렸어요.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집에 돌아가기로 결심했어요. 자리 하나만 내주신다면 빨리 갈 수 있을 텐데--- 난 여덟 살 먹은 어린아이예요. 여러분들을 믿어요----" 마차는 달아난다!---- 달아난다!---- 그러나 형체를 알 수 없는 덩어리 하나가 먼지를 뒤집어쓰며 바큇자국을 따라 악착스럽게 쫓아간다. 그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 차가운 눈으로 옆 사람을 팔꿈치로 찌르며, 자기 귀에까지 이르는 이 은빛 음색의 하소연에 마뜩잖은 기분을 그에게 표현하는 것 같다. 옆 사람은 동의한다는 식으로, 흐지부지하게 고개를 숙이며, 곧바로 거북이가 자기의 등껍질 속으로 숨어들듯, 제 이기심의 요지부동함 속에 다시 빠져든다. 다른 여행자들의 태도에서도 모든 것이 앞의 두 사람의 기분과 똑같은 기분을 나타낸다. 외침소리는 이삼 분 동안 더 들리고, 일 초 일 초 더욱 날카로워진다. 대로를 향해 창들이 열리고, 겁먹은 얼굴 하나가 손에 등불을 들고 차도 위에 눈길을 던지더니, 격렬하게 덧문을 다시 닫고는 더이상 나타나지 않는다. --- 마차는 달아난다!---- 달아난다!---- 그러나 형체를 알 수 없는 덩어리 하나가 먼지를 뒤집어쓰며 바큇자국을 따라 악착스럽게 쫒아간다. 오직 한사람, 몽상에 잠긴 젊은이만, 이 돌덩어리 인물들 가운데서, 그 불운에 동정을 느끼는 것 같다. 작고 아픈 다리로 마차를 따라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아이를 편들어, 그는 감히 목소리를 높이지 못한다. 다른 사람들이 그에게 경멸과 위압에 찬 시선을 던지기 때문이며, 자신이 모든 사람들에게 맞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그는 알기 때문이다. 무릎에 팔꿈치를 괴고,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싼 채, 그는 어안이 벙벙해서, 인간의 자비라 불리는 것이 진실로 이런 것인지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이 말이 이제는 시어 사전에도 발견할 수 없는 헛된 낱말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고 솔질하게 자기 잘못을 인정한다. 그는 혼자 말한다. "사실, 어린애 하나에 관심을 가질 이유가 뭐란 말인가? 내버려두자." 그렇지만 이 청년의 빰 위로 한줄기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고, 그는 욕설을 내뱉는다. 그가 손으로 고통스럽게 이마를 문지르는 모습이, 마치 그 불투명함으로 자기 지성을 어둡게 하는 구름을 그 이마에서 흩뜨려버리려는 것 같다. 그는 분발하나, 자신이 던져진 이 세기에서, 헛되이 분발한다. 그는 이 세기에서 자신이 있을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란 것을 느끼지만, 밖으로 나갈 수 없다. 무서운 감옥! 악랄한 운명! 롱바노여, 나는 오늘부터 너에게 만족하노라! 나의 얼굴이 다른 여행자들의 얼굴과 똑같은 무관심을 내보이는 동안에도, 나는 끊임없이 너를 관찰하였다. 청년은 분개하는 동작으로 일어나서, 비로소 의도적인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악행에 가담하지 않으려고 자리를 뜨려 한다. 내가 그에게 손짓을 하여, 그는 내 옆에 다시 몸을 내려놓는다.----- 마차는 달아난다! 달아난다!---- 그러나 형체을 알 수 없는 덩어리 하나가 먼지를 뒤집어쓰며 바큇자국을 따라 악착같이 쫓아간다. 외침소리가 갑자기 끊어진다. 아이가 솟아나온 포석에 발이 걸려 넘어지면서 머리에 상처를 입은 것이다. 합승마차는 지평선으로 사라지고 조용한 거리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마차는 달아난다! 달아난다! ---- 그러나 형체를 알 수 없는 덩어리 하나는 이제 먼지를 뒤집어쓰며 바큇자국을 따라 악착스럽게 쫓아가지 않는다. 희미한 램프를 늘어뜨리고 허리를 구부리고 지나가는 넝마주이를 보라. 그는 합승마차에 탄 그와 같은 족속들 전체가 지닌 것보다 더 많은 심장을 지녔다. 그는 이제 아이를 거두었다. 그가 아이를 치료할 것이며, 아이의 부모가 했던 것처럼 아이를 버리지 않으리라는 것을 확신하시라. 마차는 달아난다!---- 달아난다!---- 그러나, 넝마주이가 서 있는 곳에서, 그의 통렬한 시선이 먼지를 뒤집어쓰며 바큇자국을 따라 악착스럽게 쫓아간다!---- 어리석고 바보 같은 종족이여! 그렇게 행동하다니, 너는 후회할 것이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너는 후회할 것이다. 가라! 너는 후회할 것이다. 나의 시는 오직 이 야수 인간과, 그리고 이와 같은 해충을 만들어내지 말았어야 할 창조주를 공격하는 데 있을 것이다. 내 생명이 다할 때까지, 시집 위에 시집이 쌓일 것이로되, 그러나 거기에서는 언제까지나 나의 의식에서 사라지지 않은 단 하나의 생각만을 보게 될 것이다.  
936    말도로르의 노래 / 로트레아몽 (황현산 옮김) (17) 댓글:  조회:204  추천:0  2019-07-06
말도로르의 노래 / 로트레아몽 (황현산 옮김) (17)     두번째 노래(3)   (3) 로엔그린과 내가 거리에서 서로 쳐다보지도 않고, 바쁜 두 행인처럼 팔꿈치를 스치며 옆으로 지나가는 날이 오지 않기를! 오! 내가 이런 가정으로부터 언제까지나 멀리 도망칠 수 있기를! 영원한 자는 지금 이대로의 세계를 창조하였다. 만일 그가 망치를 한 번 내리쳐 여자의 머리를 박살내기에 필요한 바로 그 시간 동안만이라도 자신의 항성 같은 위엄을 접어두고, 삶이 작은 배의 밑창에 갇힌 물고기처럼 신비 한가운데서 질식하고 있는 우리에게 그 신비를 계시한다면, 그는 많은 지혜를 보여주는 셈이련만. 그러나 그는 위대하고 고귀하다. 그는 그 이해력으로 우리를 압도한다. 만일 그가 인간들과 담판을 짓는다면, 온갖 치욕들이 그의 얼굴에 까지 용솟음칠 것이다. 그러나--- 가련하도다! 왜 너는 얼굴을 붉히지 않는가?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육체적 정신적 고통들의 떼거리를 낳아놓은 것으로는 모자란다. 누더기를 둘러쓴 우리 운명의 비밀이 우리에게 폭로되지 않았다. 나는 전능한 자, 그를 알고---- 그도 분명 나를 안다. 우연히, 우리가 같은 오솔길을 걸어가면, 그의 꿰뚫는 시선은 저멀리 내가 오는 것을 보고, 자연이 네게 혀 대신 주었던 혀 모양의 삼중 독침을 피하기 위해, 샛길로 접어든다! 오, 창조주여, 내 생각하는 바를 퍼붓도록 나를 내버려두어, 나를 기쁘게 해다오. 꿋꿋하고 냉정한 한쪽 손으로 무시무시한 아이러니를 다루며, 내 너에게 경고하노니, 내 가슴에 이 아이러니가 충분히 담겨 있는 만큼, 나는 삶의 끝까지 너에게 덤벼들 것이다. 나는 네 구멍 뚫린 해골을 칠 것이다. 그것도 매우 강렬하게 칠 것이니, 인간이 너와 동등해질 것을 필경 질투하여, 네가 인간에게 주려 하지 않았던 지성의 남은 파편들을 그 해골에서 쏟아져나오게 함을 내 임무로 짊어지는 것이다. 이는 또한 내가 너의 창자 속에 그 지성의 쪼가리들을 뻔뻔스럽게 숨겨놓은 탓이기도 하다. 이 교활한 산적아, 어느 날인가, 내가 항상 열려 있는 이 눈으로 그 쪼가리들을 이미 발견하고 끄집어내어, 나의 동류들과 함께 나누었을 것임을 네가 모르기라도 했다는 듯이 말이다. 나는 내가 말하는 것처럼 하였으며, 이제, 나의 동류들은 너를 더이상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들은 너와 힘에는 힘으로 대응한다. 내가 나의 대담함을 후회하도록 나를 죽여보라. 나는 가슴을 내밀고 겸손하게 기다린다. 자, 어서 모습을 보여라. 영원한 징벌의 가소로운 역량이여!--- 지나치게 찬양되는 속성들의 과장된 전사여! 그는 자기를 조롱하는 나의 혈액순환을 멈출 능력이 없음을 보여주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가 다른 인간들의 숨결을, 때 이른 나이에, 그들이 인생의 기쁨을 겨우 맛보려 할 때, 주저없이 꺼버린다는 증거들을 가지고 있다. 그저 잔학한 처사인데, 그러나 이는 단지 내 견해의 유약함에 따른 것일 뿐이다! 나는 창조주가 자신의 쓸데없는 잔인성을 몰아내어, 화재를 일으키고, 그 불에 늙은이들과 어린애들이 스러지는 것을 보지 않았던가! 공격을 시작하는 것은 내가 아니다. 팽이를 돌리듯, 강철 채찍 회초리로 자기를 돌리도록 나를 강요하는 것은 바로 그인 것이다. 자신에게 퍼부을 비난을 내게 제공하는 것이 바로 그가 아닌가? 나의 이 무시무시한 열변은 추호도 고갈되지 않으리라! 이 열변은 나의 불면을 괴롭히는 괴이한 악몽들을 먹고 자란다. 여기까지 쓴 것은 로엔그린 때문이다. 따라서 그에게로 다시 돌아가자. 그가 후에 다른 사람들처럼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서 나는 그가 지순함의 나이를 갓 넘겻을 때, 그를 단도로 찔러죽이기로 우선 결심을 했다. 그러나 나는 숙고했고, 곧바로 내 결심을 슬기롭게 포기했다. 그는 자신의 생명이 십오 분간 위험에 처했던 것을 짐작하지 못한다. 모든 것이 준비되었고, 칼도 사두었다. 이 단검은 예뻤는데, 그것은 내가 죽음의 도구에서까지도 우아하고 멋진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칼은 길고 날카로웠다. 목의 동맥 하나를 조심스럽게 찔러 상처 하나만 내면 충분했으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내 처신에 만족하나, 후에 뉘우칠지도 모르겠다. 따라서, 로엔그린이여, 네가 바라는 바를 행하라, 즐거울 대로 행동하라, 나를 평생 동안 어두운 감옥에 가두고 내 억류 생활의 동료로 전갈을 함께 처넣을지라도, 혹으 내 눈알 하나가 땅에 떨어질 때까지 내 눈구멍을 후벼팔지라도, 나는 너를 추호도 비난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네 것이다. 나는 너에게 속한다. 이제 나는 나를 위해 살지 않는다. 네가 나에게 불러일으킬 고통이 크다 한들, 저 학살의 손으로 나에게 상처를 주는 자가 그의 동류들의 기름보다 더 성스러운 기름에 적셔질 것임을 안다는 행복과 어찌 비교될 수 있으랴! 그렇다, 한 인간의 존재를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친다는 것, 그리고 모든 사람이 다 악하지는 않다는 희망을 간직하는 것이 아직도 아름다운 일일진대, 이는 내 쓰라린 공감에서 나오는 의심스로운 혐오감을, 자기 쪽으로, 강제로, 끌어모을 줄 알았던 사람이 끝내 하나 있었기 때문이다!---  
935    말도로르의 노래 / 로트레아몽 (황현산 옮김) (16) 댓글:  조회:176  추천:0  2019-07-06
말도로르의 노래 / 로트레아몽 (황현산 옮김) (16)     두번째 노래(2)   (2) 나는 두번째 노래를 지을 깃털펜을 쥐고 있었으니--- 적갈색 흰꼬리수리의 날개에서 뽑아낸 도구가 아니던가! 그러나--- 도대체 나의 손가락에 무슨 탈이 났는가? 작업을 시작하자마자 내 관절들이 마비되어버린다. 그렇지만 나는 쓸 필요가 있다--- 그게 불가능하다니! 아, 이런, 되풀이해서 하는 말이지만 나는 내 생각을 쓸 필요가 있다. 나도 다른 사람처럼 저 자연법칙에 따를 권리가 있다--- 그러나 안 된다, 안 된다, 펜이 움직이지 않는다!--- 자, 들판을 가로질러, 멀리서 빛나는 번갯불을 보라, 뇌우가 허공으로 내달린다. 비가 온다--- 여전히 비가 온다---- 저토록 비가 온다!---- 벼락이 작열했다---- 벼락이 반쯤 열린 내창문에 떨어지고, 내 이마를 쳐, 나를 타일바닥에 눕혔다. 가엾은 젊은이여! 네 얼굴은 벌써 때 이른 주름살과 타고난 기형으로 충분히 덮여 있으니, 그 위에 유황냄새 나는 흉터가 필요치 않다!(나는 방금 이 상처가 아물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빨리 낫지는 않을텐데) 이 뇌우는 웬일이며, 내 손가락의 마비는 웬일인가? 내가 글 쓰는 것을 막고, 내 네모진 입에서 침을 흘리면서 내가 무엇에 노출되어 있는지 더 잘 생각하는 것을 막기 위해 높은 곳으로부터 내려오는 경고인가? 그러나, 아, 뇌우가 내게 두려움을 일으키지는 않았다. 이 폭풍우 군단이 내게 무슨 대수일 것인가! 내 상처난 이마를 굴려 개략적으로 판단컨대, 하늘의 경찰들이 자기들의 고달픈 의무를 열심히 수행하는 것이다. 나는 전능한 자에게 그의 뛰어난 재주에 대해 감사할 필요가 없다. 그는 상처에 가장 취약한 부분인 이 이마로부터 시작하여 내 얼굴을 정확히 두 조각으로 가르려고 벼락을 내려보내지 않았는가. 다른 인간이나 그를 찬양하시라! 그러나, 뇌우는 자기들보다 더 강한 자들 가운데 어떤 자를 공격하고 있다. 그러므로 살모사의 얼굴을 한 소름 끼치는 영원한 자야, 그대는 광기와 분노 어린 생각들의 경계에 내 혼을 놓아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그것들을 서서히 죽일 뿐이니, 너의 위엄에 걸맞도록, 그에 더하여, 농익은 실험을 한차례 거친 뒤에, 나의 이마에서 한 대접 피를 쏟아낼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있어야 했으리라!--- 하지만 결국, 너에게 어떤 것을 말하는 자가 누구인가? 내가 너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러기는커녕 내가 너를 증오한다는 것을 너는 알고 있다. 왜 고집을 부리는가? 언제쯤이면 너의 행장은 기이함으로 그 겉모습을 감추기를 그만두려 할까? 친구에게 말하듯, 내게 솔직히 말하라. 너는 결국 그 추악한 박해중에 순진한 친절을, 너의 세라핌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감히 그 우스꽝스러운 완성판을 다시 재연할 수는 없을 그런 친절을 드러내면서, 스스로는 그걸 짐작도 못하는 것인가? 어떤 분노가 너를 사로잡았는가? 너는 알아야 하리라, 너의 추적을 피하여 살아가도록 나를 내버려둔다면, 너는 내 감사를 받아 마땅할 것임을--- 자, 어서, 술탄아, 방바닥을 더럽히는 이 피를 그 혀로 내게서 씻어다오. 붕대 감기는 끝났다. 닦인 내 이마는 소금물로 씻기고, 나는 내 얼굴에 좁은 헝겁 띠를 십자로 질러 묶었다. 결과가 무궁무진한 것은 아니다. 피가 홍건한 속옷 네 벌과 손수건 두 개--- 누구도 처음에는 말도로르가 그의 동맥에 그렇게 많은 피를 담고 있었다고는 믿지 않을 것이다. 그의 얼굴 위에서 빛나는 것은 오직 시체의 반사광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이와 같다. 아마도 이것이 그의 몸에 담길 수 있는 거의 모든 피이며, 더는 그의 몸에 많은 피가 남아 있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 됐다, 됐어, 탐욕스러운 개야. 방바닥을 그냥 그대로 놔두어라. 너의 배는 가득 찼다. 마시기를 계속해서는 안 된다. 머지않아 토할 것이기 때문이다. 너는 적당히 포식하였으니, 네 개집으로 가서 자거라, 네가 행복 속에서 헤엄친다고 생각하라. 왜냐하면 너는 내가 네 목구멍으로 내려보낸 혈구 덕분에, 엄숙하리만큼 가시적인 만족감을 누리며, 망연한 사흘 동안 배고픔을 생각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너, 레망이여,1) 대걸래를 들어라, 나도 하나 들고 싶다만 그럴 힘이 없구나. 너는 내가 힘이 없다는 것을 알지 않느냐? 너의 눈물을 눈물주머니에 거둬들여라. 그러지 않으면, 이 커다란 발자국을 네가 냉정하게 응시할 용기가 없다고 믿을 것이다. 칼자국을 초래한 형벌이야 나로서는 지나간 시간의 어둠 속으로 이미 사라져버렸다. 너는 샘으로 물통 두 개를 찾으러 가거라. 일단 마루가 닦이면, 너는 이 속옷들을 옆방에 가져다놓아라. 빨래하는 여자가 저녁에 다시 오거든, 그러기로 되어 있으니, 이것들을 그 여자에게 맡겨라. 그러나 한 시간 전부터 비가 많이 오고 있고 여전히 내리고 있으므로, 그 여자가 자기 집에서 나올 것 같지 않구나. 그럼, 내일 아침에는 오겠지. 여자가 너에게 이피가 모두 어디에서 나온 거냐고 묻더라도, 네가 꼭 대답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 나는 너무나 기운이 없구나! 상관없다. 그렇더라도 펜대를 들어올릴 힘과 내 생각에 골몰할 용기는 있을 것이다. 벼락을 수반하는 뇌우로, 내가 어린애도 아닌데, 나를 겁박해서 창조주가 무슨 이득을 얻었던가? 그렇더라도 나는 글을 쓰려는 결심을 고수한다. 이 좁은 붕대들이 나를 귀찮게 하고, 내 방의 공기가 피냄새를 풍긴다---   1) 레망, 로젠그린 등 에 나오는 여러 이름에 특별한 전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작가는 제 1절에서 이 이름들을 가리켜 "내 깃털펜이 한 뇌수에서 끌어냈던, 저 천사의 본성을 지닌 상상적 존재들의 이름"이라고 말한다.  
934    말도로르의 노래 / 로트레아몽 (황현산 옮김) (15) 댓글:  조회:202  추천:0  2019-07-06
말도로르의 노래 / 로트레아몽 (황현산 옮김) (15)     두번째 노래(1)     (1) 말도로르의 저 첫번째 노래는 어디를 지나갔는가? 노래의 입이, 벨라도나1)의 잎을 가득 물고, 깊은 생각의 한 순간에, 분노의 왕국을 가로질러, 쏟아보낸 이후로, 저 노래가 어디를 지나갔는가---- 그것을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노래를 붙잡아둔 것은 나무도 아니고, 바람도 아니다. 그런데 이곳을 지나가던 도덕은, 이들 작열하는 페이지에 자신의 힘찬 옹호자가 있음을 예견하지 못한 채, 이 노래가 굳세고 곧은 발걸음으로 의식의 어두운 구석과 비밀스러운 바탕을 향해 나아가는 것을 보았다. 적어도 과학에서 기정사실이 된 것은, 그때 이후로, 인간이 두꺼비의 낯짝을 하고도 더는 자신을 인식하지 못하고, 저를 숲의 짐승과 닮게 하는 분노의 발작에 자주 빠진다는 것이다. 이는 그의 잘못이 아니다. 어느 때나, 인간은 겸손의 물푸레나무에 눌려 눈꺼풀을 내리접고, 자신이 선과 극소량의 악으로만 이루어져 있다고 믿었다. 느닷없이 내가 나타나 그의 마음과 근성을 한낮의 햇빛에 드러내보이며, 그의 믿음과는 반대로 그가 악과, 입법자들이 날아가지 않게 하려고 고심하는 극소량의 선으로만 이루어져 있음을 그에게 가르친 것이다. 내가 그에게 가르친 것에 새로운 것은 아무것도 없건만, 내가 알린 쓰라린 진실 때문에 그가 영원한 치욕을 느끼지 않기를 바라고 싶다. 그러나 이런 희망의 실현은 자연의 법칙과 일치하지 않으리라. 실제로 내가 그의 표리부동하고 진흙투성이인 얼굴에서 가면을 벗겨내고, 저 자신을 속이는 그 숭고한 거짓들을, 은 대접 위에 상아 공을 떨어뜨리듯, 하나하나 떨어뜨리면, 그때, 이성이 오만의 암흑을 흩뜨려버릴 때조차도, 그가 평온함에게 두 손으로 제 얼굴을 가리라고 명령하지 않는 것은 당연지사다. 이 때문에, 내가 연출하는 주인공은, 박애적이고 황당한 장광설들의 틈바구니에서, 저 자신을 상처받을 수 없는 존재로 생각하는 인류를 공격함으로써, 화해할 수 없는 증오를 샀다. 그 장광설이 인류의 수많은 책 속에 모래알처럼 쌓이고, 나마저도, 이따금 이성이 나를 저버릴 때면, 그토록 우스꽝스럽고도 짜증나는 그 익살극을 높게 평가할 지경이 된다. 그는 그 점을 예견했던 것이다. 도서관이 간직하고 있는 양피지 더미의 꼭대기에 선의의 상을 조각하는 것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오, 인간 존재여! 이제 한 마리 벌레처럼 벌거벗은 채 금강석 칼 앞에 놓인 게 바로 너로구나! 네 방법을 버려라, 이제 더는 거만을 떨 때가 아니다. 나는 엎드린 자세로 너를 향하여 나의 기도를 들어올린다. 네 죄 많은 생애의 가장 사소한 움직임까지도 관찰하는 어떤 자가 있다. 너는 그 가차없는 통찰력의 치밀한 그물망에 싸여 있다. 그가 허리를 돌린다고 해도 그를 믿지 말라. 그가 너를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눈을 감는다고 해도 그를 믿지 말라. 그가 여전히 너를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술책과 악의에 있어서, 너의 위험한 해결책이 내 상상력에서 태어난 아이를 능가한다고 가정하기는 어렵다. 그 아이의 가장 하찮은 타격도 효과를 거둔다. 그를 모른다고 생각하는 자에게라면, 이리와 산적이라도 자기들끼리는 서로 잡아먹지 않는다는 것을, 신중하게, 가르치는 것은 가능하다. 이것은 아마도 그들의 습속은 아니다. 그런고로, 네 생존에 대한 배려를 그의 손에 두려움 없이 맡겨보라. 그는 네 생존을 자기가 알고 있는 방식으로 끌고 갈 것이다. 믿지 말라. 있는 그대로 말하자면 네가 그의 관심을 어쭙잖게만 끌기 때문이다. 아직도 나는 내 진위확인의 친절한 척도인 총체적 진실에 다가가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은, 네가 자기와 똑같이 약해져서, 그 시간의 종이 울릴 때, 네가 자기를 따라 입을 크게 벌린 지옥의 구렁텅이 속으로 들어갈 것이라고 정당하게 설복하는 과정에서, 그가 너에게 기꺼이 악행을 저지르기 때문이다, 그의 자리는 오래전부터, 사슬과 쇠고리들이 걸린 강철 교수대가 뚜렷한 곳에 표시되어 있다. 운명이 그를 그리로 데려갈 때, 을씨년스러운 구덩이의 아가리는 그보다 더 맛있는 먹이를 맛본 적이 없을 것이며, 그도 또한 그보다 더 알맞은 거처를 구경한 적이 없을 것이다. 나는 의도적으로 아버지처럼 이야기하는 것 같고, 인류는 불평할 권리가 없는 것 같다.   1) '아름다운 귀부인'이라는 뜻을 지닌 벨라도나(belladonne) 진정제나 마취제로 사용되는 약용식물이다. 이 식물이 마취와 진정 작용을 첫번째 노래의 최면효과와 연결시키려는 연구자들이 있다.  
933    别说 文/王军 댓글:  조회:559  추천:0  2019-07-03
别说 文/王军     别说…… 别说水珠小, 它编织云儿轻柔的衣裳; 别说石头小, 它铸就大山厚实的胸膛; 别说花儿小, 它装扮大地美丽的梦想; 别说浪花小, 它唱响大海如诗的乐章。 别说娃娃小, 他将理想的火把燃烧得越来越旺。  
932    낭만적 영혼과 꿈 / 알베르 베겡 저 이상해 옮김 문학동네 댓글:  조회:617  추천:0  2019-06-30
낭만적 영혼과 꿈 알베르 베겡 저 이상해 옮김 문학동네   독일낭만주의와 프랑스 시에관한 시론       서문       꿈의 개화 현상   밤의 꿈들, 표면에 너무 근접해서 조그만 충격에도 표면으로 드러날 것같은, 낮에도 줄곧 나를 따라다니는 더욱 신비로운 꿈들, 거기에는 여러가지 기호들을 통해 자신의 영속성과 풍성함을 나타내는 또하나의 현실이 있다.     내가 소홀히 한 것, 망각속으로 사라져버린 것들이 어느날, 뜻하지 않게, 땅속에 묻힌 씨앗이 꽃이나 나무로 자라듯이,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자양으로 성장하여 변용된 모습으로 거기서 다시 솟아오른다.     그것은 나 자신보다 훨씬 더 먼곳에서, 조상 대대로 이어져오는 무의식적인 기억 속에, 또는 개체로서의 내 존재의 영역과는 다른 어떤 영역에서 오는 것만 같다.         상상력의 세계   상상을 통해 표출되는 이미지들은 바로 나의 내부에 있는 꿈을 자극하고 표면에 떠오르게 하여,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사물들에 투사하는 능력을 갖고있다. 또는 사물들이 나의 외부에 존재하기를 멈추고   마술적인 그들의 진정한 이름으로 부름받고 마침내 잠에서 깨어나, 나와 새로운 관계를 맺기위해 생동한다고도 말 할 수있다.     사상이나 예술작품은 실제로 우리자신의 가장 비밀스러운 부분에 관계한다. 외관상의 개체속에서 벗어나 진정한 우리 자신에게로 향해진 그부분에 이르면 우리에겐 단 하나의 근심밖에 남지 않는다.     징조와 신호들에 우리자신을 열고, 그럼으로써 한순간 완전히 생소하게 응시된 인간조건이, 그것이 가지는 위험과 전반적인 불안, 아름다움과 실망스런 한계들과 함께 불러일으키는 혼미함을 깨닫는 것이 바로 그 근심이다.           꿈 신화의 황금시대의 유적인 우리 자신의 근원으로 돌아가기   성인이 된 인간은 사물들, 종이 조각들, 예전에 친숙했던 풍경들과 같은 마술적 잔해의 힘을 빌어, 자신 속 어딘엔가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위해 끓어오를 순간을 숨죽여 기다리고 있는 모든 것을 일깨우려한다.     우리의 자애심 자체가 우리에게 깊이 감추려드는 가장 독특한 우리 존재에 대한 인식은, 거울이나 사진이 제공해 줄 수 있는 죽어버린 우리의 초상에서 우리의 얼굴 혹은 어깨에 대한 미지의 이미지를 찾아내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이러한 조화 혹은 특수한 법칙을 포착하려면, 시간에 대한 관조를 통해 시간에서 벗어나거나, 귀를 귀울여 모든 것 가운데서 우리의 운명인 이 멜로디를 식별해 내는 방법밖에는 없다.     역사가 필요한 이유는 그것이 인류가 행하는 , 각 개인의 멜로디가 귀결되는 인류 자신의 멜로디에 대한 탐구이기때문이다.     꿈이란 말은 한편에서는 미학적이거나 특이한 형이상학적 성격을 띠는 밤의 꿈을 지칭하고, 또한편에서는 관념의 세계보다는 감성으로 채워진 , 안락처를 찾아 나선 정신을 이끄는 변함없는 이미지들의 세계를 뜻한다.     또 달리는 시인과 신화적 상상력이 한결같이 그들의 부를 길어오는, 먼 과거에서 대대로 이어져오는 무의식적 기억이라는 보물창고와 동일시되기도 한다. 때로는 유령들이 살고있는 위험한 장소이기도하고, 또 때로는 천국을 향해 열려있는 휘황찬란한 현관이기도 하다. 신 자신이 꿈을 통해 우리에게 엄숙한 경고를 전하기도 하고, 대지에 밖혀있는 우리의 뿌리가 꿈에 의해 자연의 풍요로운 품으로 뛰어 들기도 한다.     예술의 리듬에 영감을 불어넣는 몽환적 삶의 리듬은 별들의 영원한 운행과도, 원죄를 짓기 전에 우리 영혼이 가지고 있었던 원초적인 박동과도 일치한다.     낭만주의자들은 무의식적 이미지들 속에서, 그것이 비록 병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영혼을 미지의 영역으로 이끄는 길을 찾으려 한다. 그것은 단순한 호기심이나 병적 이미지를 정화시켜 지상의 삶에 유용한 것으로 만들려는 치료의 목적이 아니라, 시공 속에서 우리를 우리 너머로 연장시켜 현재의 우리존재를 무한한 운명의 선 위에 찍힌 한점으로 만드는 모든것의 비밀을 거기에서 찾아내기 위한 것이다.   제1장 낮에서 밤으로   낭만주의자들은 꿈이나 또다른 주관적인 상태들을 통해 자신 속에 침잠함으로써 우리의 의식보다 '더 우리자신인' 우리의 부분을 만나게 된다고 생각한다. 또한 유일한 앎은 내적 심연으로의 침잠을 통한 앎, 개별적인 우리의 리듬과 전 우주적 리듬의 일치를 통한 앎, 외부에서 주어진 것이 아닌 어떤 실재에 대한 유추적인 앎이다.     1. 켜진 촛불 우리의 무의식적 기억과 향수는 우리가 육체화되어 생리적으로 개인이 되는 탄생의 신비에 앞서는 어떤 존재의 무엇인가가 우리 속에 계속 남아 있다는 증거이다.     2. 지상의 미로 이중적 충동- 광활한 공간에 대한 갈망과 칩거생활에 대한 욕망, 감옥처럼 느껴지는 한계 밖으로의 도피와 그 울타리 안으로 되돌아 오게 만드는 현기증- 모리츠는 일찌감치 자신의 내부에서 그것을 발견한다. 그 충동은 그의 내적 삶의 원초적이고 심원한 리듬, 그존재의 풍부함과 비극성을 형성한다.     팽창에서 자기 내부로의 귀환, 신비주의적 내적일치에서 행동의지의 고갈로 이행되는 동일한 리듬이 각운을 이룬다.     내적 숙명의 자각   모리츠는 인간이 다른 능력을 가지게 될 미래에 대한 '마술적'이고 낭만적 생각에 이끌리기도 하지만, 개인의 저주로 여기는 신비적 염세주의의 유혹을 받기도 한다. 신비학자들 그리고 이어 낭만적 사상가들은 원초적 통일성이 죄로 인해 깨어졌다는 것을 인정한다.     자연에서 발효되어 요동치는 모든 생명과 모든 사랑을 자신 속으로 들여마신다고 믿을 정도로 그 생각을 밀고 나갈 수만 있다면, 자신을 동시에 꽃이자 초목이자 새이자 노래이고 신선함이자 유연함이며 쾌락이자 평온으로 느낄수만 있다면! 수축에 '활짝 피어남'이 대응한다. 최상의 순간은 낭만주의자들에게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모리츠에게도 무한속에서 자아가 완전히 망실되는 순간이 아니라, 팽창과 한정이 실재감 속에서 서로 만나게 되는 순간이다.     우리 존재의 팽창과 수축의 감정은 한순간 안으로 집약되며, 거기서 유래되는 혼합한 느낌에서 바로 그와같은 순간에 우리를 사로잡는 이상한 종류의 우울이 탄생된다.     그의 정신적 진화의 본질적인 문제는 두 세계, 그에게 상처를 입히는 실제 세계와 그가 안식처로 삼으려 했던 꿈의 '이상적인' 세계의 분열이었다. 거친 현실에 의해 손상을 입은 자아가 활짝 피어날 수잇는 자의적 세계를 창조하는 것, 그것은 낭만적 영혼의 첫 움직임이다.     이러한 믿음을 획득한 영혼이 삶으로 되돌아와 새로운 빛으로 그 삶을 변모시키고, 무덤너머에 있는 고등한 삶의 '여기와 지금'을 살아야 할 필요성을 인정하는 움직임 말이다. 꿈은 그에게 사람들이 은신처로 삼으려하는 하나의 다른 세계이다. 그것은 가시적 현실에 아직 마술적인 색깔들을 퍼뜨리지는 않는다.     그는 꿈이 의식적인 삶에 의해 망각된 기억의 수문장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는 그 기억들을 거대한 전체속의 혼돈이었던 이전의 삶과 연관시키고, 기억의 고리를 끝까지 거슬러 올라갈 능력을 가진 사람은 개별적인 존재에서 벗어날 것이라고 어렴풋이 예감한다.   제2장 꿈, 자연 그리고 복귀     한개인이나 한 세기의 우주는 우리 정신의 이미지에 속하는 것이다.   다시말해 그것의 통일성은 자신의 통일성을 믿는 자에게만 존재한다.   '영혼'이라는 낱말에 그무엇도 대신할 수 없는 전체적인 가치를 부여해 줄 수 있는 중심의 개념을 알지 못하는 자에게 통일성은 무한대로 분열한다.     합리주의자들의 오만은 가장 명백하지만 가장 깊이가 없는 우리의 능력에 집착하는데 있고, 신비주의자들과 시인들의 오만은 우리의 가장 깊은 곳에 이르면, 자신이 자신을 한없이 초월하는 어떤 신비한 실재와 유사할 것이라는 확신에서 비롯된다.     이 오만은 결국 최고의 겸손이다. 그것은 인간조건의 불안을 생생하게 간직하고, 끊임없이 우리자신의 신비에 놀라움을 나타내며, 피조물은 알 수없는 운명에 따른다는 사실을 간파하여 그운명이 자신의 존재에 관해 우리에게 보내는 모든 신호들을 포착 하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삼는다.     18세기 리히텐베르크와 모리츠, 하만과 헤르더, 젊은 괴테와 장 파울, 게다가 장 자크와 디드로까지, 그리고 경건주의자들과 신비론자들... 그들의 사고와 정서에 있어서도 그들 자신의 전 존재를 몰입시키는 일에만 가치를 부여하기 시작한다. 그들의 앞선 경험적 시대와 뒤이어 오는 과학적 시대에 반하여 그들은 어떤 감정적 충격에 의해 강화되는 직관만을 믿는다. ......거대한 반항과 신비적 겸허함이 언제나처럼 어깨를 나란히 한다.     낭만주의가 모든 위험과 난파를 무릎쓰고, 또한 모든 운을 걸고 그 모험을 감행할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보편적 통일성, 세계의 영혼, 절대적 수와 같은 대신화들을 부활시키고 보물창고와 수호신인 밤- 우리가 지고한 실재와 성스러운 대화를 나누는 성소인 무의식- 모든 광경이 변모하고, 모든 이미지가 상징과 신비적 언어가 되는 꿈과 같은 대신화들을 창조해낼 것이다.   3. 르네상스의 재발견   자신에 대한 앎만이, 이 지옥으로의 탐방만이 우리에게 신으로 이르는 길을 열어준다 - 하만   19세기초 자연철학자: 사변가,실험가,신비론자,최면술사, 연금술사   비이성주의의 태동- 독일 르레상스의 신플라톤 학파: 낭만적 물리학자: 케플러/파라겔수스/쿠자/아글파/브루노/ 등에게서 우주는 영혼을 지닌 살아있는 존재로 인식     본질적인 하나의 정체성이 전체의 발현에 불과한 모든 개별자들을 연결시킨다. 보편적 친화의 관계가 삶의 모든 발현들을 지배하고, 르네상스의 모든 사상가들이 왜 마술을 믿었는지 설명해준다. 그의 울림들이 단계적으로 만물전체로 퍼져나간다. 그래서 마술적 작용은 머나먼 곳에 있는 사물이나 존재들에게까지 아주 자연스럽게 도달한다.     자연과 인간사이에 존재하는 본질적인 유사는 각각의 운명이 별들과 성좌들의 흐름에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 사고할 수 있고 의식이 있는 피조물이라는 긍지, 우주가 스스로를 비추어 보고 자신을 알게되는 거울이라는 긍지 덕분에 인간은 만물의 중심에서도 특별한 자리를 점한다. 또한 거꾸로 인간은 자신의 중심에서 만물의 전체를 되찾는다. 안다는 것, 그것은 내부를 탐방하는 일이다.     신비의 길은 내부로 향한다. 영원이 그의 세계들 과거와 미래와 함께 있는 곳은 우리의 내부이지 그외의 어느 곳도 아니다.     자연을 창조한 신은 자신의 이미지를 본떠 인간을 만들었다. 바로 거기에 인간적 운명의 모든 비밀이 있다.창조주와 인간의 주요한 유사점은 둘다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에 있다. 갑자기 만물이 완전히 새롭게, 그들의 완전한 의미를 갖춘채 바로 거기에 있다. 그것들은 특별한 순간에만 우리에게 이러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시인은 바로 이순간들을 포착한다.     내부의 인간은 하나이다. 그의 모든 열정은 보이지 않는 관계들에 의해 연결되어 있고 한결같이 단 하나의 불꽃에 의해 생기를 얻는다.     헤르더의 생기론적 개념   합리주의에 반대하여 내적 감각의 직관, 혹은 모든 존재와 그가 속한 유기체 전체 사이의 교감 뿐만 아니라, 자연은 살아있기때문에 그것을 포착하기위해서는 이성만으로는 불충분한 것이다.     생물학적 생성의 법칙   모든 존재들의 진화와 정련의 대신비이고 증오와 사랑, 매혹 변모의 심연이다. 신은 자연과 역사라는 평행적인 두진화 속에서 우리에게 드러나는 영원히 생성중인 하니의 힘으로 이해된다. 그 두 움직임 속에서, 끊임없는 투쟁은 앞선 형태들 보다는 항상 더 우월한 형태들의 탄생과 변모를 야기 시킨다.     전체 사이의 교감   만물이 가지고 있는 유사성에 따른 리듬적 의미 - 인간의 본성과 신의 본성 사이뿐만 아니라 개인의 삶과 자연의 진화 사이에도 존재한다.     우주와 인간의 관계뿐만 아니라 우주 자체에서도 적용될 수 있는 예술작품의 법칙은 바로 영원을 포착하되 그러나 순간 속에서 포착하고, 무한을 인식하되 그러나 대상 속에서 인식하는 것이다.     괴테는 사물을 통해 그들이 상징하는 것을 생각하기를 거부했고, 인간의 행위라고 불릴 자격이 있는 행위는 최상의 비전으로 사물들 자체를 파악하는 것이라 주장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포착된 각 순간 속에서, 파악된 각 사물안에서 그가 도달하는 것은 영원이라고, 영구불변하는 본질이 아니라 살아 있는 , 생기에 찬 하나의 실재인 영원 자체라고 확신 하고 있다.     경험주의자들에 대한 신비주의자 낭만주의자들의 반발: 자연의 상징적 가치 그리고 감각적인 세계를 초월하는 실재하는 세계의 우의성. 그것은 즉각적인 우주의 기계적인 힘이 아니라 초월적인 동시에 내재적인 실재들에 대해 발휘되는 권능이다.     자연에 대해 진실인 것은 인간 존재에 대해서도 진실이어야 했다.. 왜냐하면 그 둘 사이에는 단순한 유사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인 동일성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 유기체의 구조와 우주의 구조 사이에 무한히 많은 유사성이 설정된다.     4. 우주적 통일     고로 자연은 다양한 요소들로 분해될 수 있는 하나의 기계장치가 아니라 생기에 찬 하나의 유기체이다. 거기서 중요한 것은 동물적 삶과의 단순한 비교가 아니라, 외적 현상들의 다양성에서 하나의 기본적인 통일성을 찾고자 하는 욕구에 따랐던 모든 이에게 공통된 본질적 직관이다. 자연을 시간 속에서 바라볼때, 그것은 모든 개별적인 존재가 태어나고 죽으며, 총체에의 복종을 통해서만 의미를 가질 수 있는 무한한 순환으로 보인다.     공간 속에서의 자연은 모든 현상을 포함하고 있으며, 그 현상들 각각은 전체적인 삶을 반영하고 재생산 할 뿐이다.     오직 전체(절대)만이 살아 있다. 각 개인은 전체에 얼마나 가까이에 있느냐에 비례해서만, 다시 말해 엑스터시가 그를 그자신의 개체성에서 분리 시키는 한에 있어서만 살아있다: 바아더     그러므로 생명만이 유일한 실재이고 영원한 움직임은 신적인 것과 동일시된다. 하지만 이러한 영원한 생명의 유동은 방향이 있으며 맹목적인 힘과는 구별된다.     "각자의 종에서 완벽한 모든 것은 자신의 종을 넘어 다른 무엇, 비교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 괴테     생성 과정은 일정한 방향을 따라 진행되고, 개별적인 생명들의 진보는 생명 전체가 최초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믿게 해준다.     신비주의자들의 출발점   원초적으로 주어진 것은 신적인 통일성이고, 자신들은 그로부터 추방당했다고 느끼며, 신비한 결합을 통해 그것으로 되돌아 가고자 열망한다, 또한 낭만적 사상가들은 우주의 생성과정 자체를 상실된 통일성으로 돌아가는 도정으로 설명하려함.     분리된 존재는 악이다. 모든 개별적 존재는 전체의 불완전한 반영일 뿐이며, 자연이 그 전체성을 통해서만 실현할 수 있는 생명의 절대적 관념을 표현하고자하는 미완성의 시도일 뿐이다.     모든 것 속에는 개별화와 분리의 근원과 상실되었지만 미래에 되찾을 통일성의 씨앗이 함께 비밀스럽게 살고 있다. 하지만 오직 통일성 만이 실재하기 때문에 복귀를 향한 삶은 불가피한 것이다.     생명을 구성하는 모든 쌍들의 성향들 사이에서 하나의 방대한 유사체계가 세워진다. 낮과 밤의 리듬에 여러가지 층위의 성의 대립, 중력과 빛, 힘, 물질등의 원리들이 상응한다. 하지만 하나의 거대한 힘이 모든 존재를 서로 서로 그리고 전체와 연결시키며 전 우주적 생명을 관통한다. 자기에 대한 발견들에 영향을 받아 이힘은 친화력이라 명명한다.     우주-동물이라는 신플라톤 학파적인 인식과 더불어, 개별적인 영혼들을 통해 발현되거나,한 양상을 드러내는 , 모든 사물의 정신적 근원이고 어디에서나 존재하는 보편적 영혼의 개념이 다시 태어난다. 이 영혼은 정신적 실재와 우주가 발현하는 근원이다. 관념들의 초월적 차원과 자연의 차원사이에는 더이상 심연은 없고 공통된 관계만 있을 뿐이다.자연은 인간 정신 속에서 의식적인 것이되는 , 그리고 창조의 측면에서 볼때는 분리될 수없는 통일성인 이 영혼의 어떤 무의식적인 행위와 동일시된다.     신이 모든 것안에 있다면, 그는 동시에 결코 우주의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생명원리, 그의 중심, 그의 영혼으로서 우주안에 현존해 있는 진정하고 유일한 존재라고 그들은 말한다.     인간은 '모든 순간에 살아있고 그 내부에 있는 그 무엇도 결코 우주에서 고립되거나 분리될 수 없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하나이고 모든 것은 하나의 내부에서 살아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인간은 자신 속에서 자연의 전체성을 반영하고 거기서 신을 발견한다. 분리된 각각 의 존재를 유기체 전체의 상징으로 만드는 유추에 우리의 정신을 우주의 완전한 상징으로 삼는 유추가 응답한다.     자연의 신비는 인간의 형태속에 전체적으로 표현되어있다. 인간은 지구의 멀고 먼 과거의 심연 속에서 만들졌다. 인간은 지구의 전 운명 그리고 무한한 우주의 운명을 자기자신의 운명처럼 그내부에 지니고 있다- 우주의 전역사가 우리 각자 속에 잠들어 있다. (슈터펜스)     인간은 자신의 내부로 내려가, 사랑과 언어, 시 그리고 무의식의 모든 이미지 속에서 그에게 아직 그의 기원들을 기억나게 할 수있는 다양한 모든 잔해들을 찾아야 한다. 그는 영혼 깊은 곳에서 신과의 유사점에 대한 감명을 모호하게라도 불러일으키는 모든 것을 자연 속에서 재발견 해야만 한다. 잠들어 있는 이 씨앗들을 취해 경작해야만 한다.     신비한 현존을 드러내주는 꿈의 씨앗들   5. 삶, 그 밤의 양상들     인간 -소우주는 내적 감각 혹은 보편적 감각이라 명명된 단 하나의 인식방법을 갖춘 완벽한 유기체로 존재하기 시작한다. 신비신학의 교리에 따르면, 이 감각은 유추를 통해 우주를 알고 있다. 인간이 조화로운 자연과 유사하기때문에 그자신이 그대로 반영되는 현실에 도달하기위해서는 자기자신의 관조 속에 침잠하기만 하면 되었다.     현상태에 이르기까지 이감각은 지위지고 조각나기는 햇지만 우리 내부에 살아 남아 있다. 진정한 앎에 이르고자 한다면 그감각까지 내려가야한다. 그감각은 자연을 지배하는 역동적인 힘 -자기작용 같은 것-과 유사한데, 최면, 몽유, 시적 고양의 모든 상태들, 다시말해 엑스터시라 불릴 수 있는 자연의 리듬 자체에 자신을 유기하는 상태들 속에서 나타난다.     엑스터시 ekstase 우리를 평상적인 상태 밖으로 데리고 가서 일시적으로 다른 존재로 복원시켜 놓는다.     랭보: 시인은 본질적으로 견자다. 시는 예언이며 과거, 미래, 전체성에 대한 엑스터시 상태의 비전이다.     프시케: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로 생명원리, 영혼을 나타냄. 심리학적으로는 의식적이고 무의식적인 모든 정신현상의 총체를 가리킴.     영혼: 우리 마음 속의 현존, 우리를 한없이 초월하는 무엇인가의 신성하고 강력한 현존이다. - 마음 속에 현존하는 신     깨어있음과 잠의 교대는 우리가 우주적 생명에 속해있고 리듬의 유사가 보편적 관계라는 가장 뚜렷한 표현이다.     온갖종류의 '대지의 영향'에 의해 물리적 우주에 뿌리를 박고있는 우리는 모두 포로들이다. 하지만 이 포로들에게 는 그들을 묶고있는 사슬자체가 미래의 자유와 조화의 약속이다.     잠은 대지의 산물이며 깨어있음은 태양의 산물이다.     영혼은 잠에 빠져 있을때, 자연이라는 전체적인 유기체와, 그리고 동시에 바로 자신의 육체적인 생명과 보다 밀접한 공생관계를 이룬다. 인간은 주기적으로 두뇌가 지배하는 활동에서 벗어나 대지의 영향을 받던 최초의 상태로 되돌아간다.     고로 꿈은 생리학적 성장의 모든 무의식적 과정이 모호하게나마 예감되는 희미한 의식상태로, 전 우주에 생기를 불러넣는 생명의 유기적 존재로서의 행위와 가장 즉각적으로 접촉하게 되는 순간으로 인식된다.     꿈   꿈을 통해 우주적 실재에 참여 꿈은 아직 인간이 자연의 말씀이었던 황금시대에 인간이 처해있던 최초의 상태였고, 신화적 시간에 대한 이 무의식적 생각은 자연의 완전한 계시다. 꿈을 통해 우리는 신호들에 귀 기울이고, 우리 존재의 밤을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는 유적들을 재발견해야만 한다.   6. 꿈의 형이상학     마음과 관능은 둘다 존재의 중심을 지칭하는데, '진정한 실재 속에서'사느냐 아니면 무의 변경에 있는 감각적인 현상의 세계즉 maya에 사느냐에 따라 다를 뿐이다.     인간은 자신의 마음 속에서 신을 지각하고 자신의 관능 속에서 우주를 지각한다.     트록슬러: 인간의 물질적인 본성은 우주 안에 스스로를 드러낸 신의 발현인 반면에, 그의 정신적 본성은 신에게로 회귀하려는 성향     최초의 통일성이 우주와 인간이라는 자연의 창조 속으로 전개되었다면, 자연의 모든 진화는 최초의 상태에 다시 도달하려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이 회귀성향의 최고의 표현은 본질적인 갈망들로 목말라하는 인간의 영혼이다.     깨어있음은 삶의 밝은 면이고 잠은 어두운 면이다. 하나는 신 속의 삶이고 다른 하나는 자연 속의 삶이다. 이 교대의 삶은 죽음에 의해 해방되고 불멸에 이르러우주의 삶 속에서 새로이 자리잡을 때까지 계속된다.     꿈, 그것은 물질적이고 정신적인 모든 실재의 중심 자체이다. 원초적이고 영원한 인간 내부의 심원이며 '생명의 행위 그자체'이다.     정신이 물질 속으로 내려오면, 상상력은 신에게서 나오는 모든 생성에 동반되는, 그리고 앎이라고 불리우는 그 꿈을 꾼다. 하지만 거꾸로 물질이 정신을 향해 상승하면, 앎은 자신의 '심연' 혹은 그의 완성에 이르게 된다.     이것이 엑스터시라는 이름을 가진 상상력의 두번째 꿈이다.   그러므로 밤의 꿈은 영원한 꿈과 '유사한 것' 이상이다. 즉 그것은 영원한 꿈의 잔존물이고 우리 마음속, 우리내부 깊은 곳의, 최초의 통일성의 실제적 현존이다. 그것은 '깊이를 알수없고 탄생전과 죽음 후에나 그의 완전한 실재성을 가지게 되는 원초적 상태에 대한 암시'이다. 하지만 바로 이 순간 부터 이심연들은 우리 모든 삶의 근원이 된다.   7. 꿈의 상징 체계     1814년 슈베르트 : 발간 바아더 를 통해 신비주의적 사상에 입문     사랑의 법칙은 아무리 미세한 것이라 하더라도 자연적인 모든 과정을 지배한다. 금속은 공기와 결합하려는 욕망에 의해 녹슨다. 빛은 생명이 없는 존재들간에 이루어지는 사랑의 형태이고 소리는 동성의 사물들 사이의 우정이다.     우주적 순간들에서 사물들은 자기를 통해 보다 발달된 종류의 존재 속으로 통합시켜주는 활발하고 감수성이 예민한 성질을 얻게 된다.     왜냐하면 생명은 어디에서나 하나이고 동일하기 때문이다. 식물과 동물의 삶은 자연의 대주기, 즉 연 일 시를 주재하는 동일한 리듬에 따라 조직된다.     '생명은 서로 대립하거나 조화를 이루는 보편적인 거대한 힘들과의 일치에 다름아니다.' 식물들에 있어서 '죽음의 순간이기도 한 개화의 순간은 동물적 존재에 대한 예감이다.' 이처럼 단계에서 단계로 모든 자연적 생성은 존재의 사다리 꼭대기에 있는 인간을 지향한다.     시적 리듬은 그자체로서 마법적 주문의 역할을 하고, 일깨어진 어떤 조화, 우리와 우리가 속하는 우주 사이에서 복원된 보다 심원한 어떤 교감을 나타내는 행복감을 발생시킨다. 노래는 낮의 기능들을 '잠들게 함'으로써 무의식적인 삶의 내적인 탄생을 촉진 시킨다.     운명은 어떤 신성에 의해 계산된 길을 따라 우리의 삶을 이끄는 숙명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한 생애를 구성하는 모든 순간들 사이의 미묘한 관계이다.     현 세계는 반대되는 두 힘에 의해 지배된다. 하나는 개별화를 지향하고, 다른 하나는 자석처럼 작용하여 모든 사물들 사이의 유대와 모든 사물과 신 사이의 유대를 창조한다. 인간의 영혼은 사랑을 통해 화해하게 되는 이 두경향의 포로이다.   8 무의식의 신화       프리드리히의 위대한 풍경화; '그는 풍경의 비극을 발견했다' -다비르당제르.   자신의 내적비극 , '황혼은 그의 기본요소였다' -카루스     인간의 본성을 찢어놓는 화해할수없는 이중성들에서 오는 번민에 사로잡혀 있는 그는 자신의 신앙심과 예술관이 동시에 표현되는 통일성의 획득을 통해 거기에서 벗어나고자 애썼다.     자연을 앞두고 있는 인간의 감정들을 표현하는 것.   화가가 우주적 유기체의 생명에 대해 가지고 있는 앎.   이 두야망을 밀접하게 일치시켜야 했고 만물 속에 있는 신의 존재를 짐작하게 해주기위해 그토록 생생한 인상을 우리의 인상을 결합시켜야 한다.     이상적인 풍경은 만물의 배면에 있는 무한을 우리에게드러내는 영혼의 주관적 상태들과 유한한 세계를 향해 있고 형태에 주의를 기울이는 객관적 비전을 동시에 일깨워준다.   카루스의     전 자연은 외부로부터가 아니라 내부로 부터, "영원한 법칙들에 따라, 끊임없이 변모하는 우주를 전체적으로 창조하는 영원한 생성, 모든 삶의 근원"에 의해 생기를 얻는다.   "이생명의 원동력이 우주의 변화 뿐만 아니라 아주 미세한 유기적 성장 속에서도 표출된다."   전체와 부분 사이에는 카루스가 리듬의 일치라는 이미지를 통해 표현한 유사의 관계가 존재한다. 천체들의 삶을 특징짓는 주기들의 광대한 리듬이 '신적인' 항구성을 가지고, "우리 자신의 내적 삶의 극도로 작은 입자들의 존재 속에도 반영된다."     유기체의 각 부분은 그의 내적 구조에 있어서 전체적 유기체와 흡사하다. 모든 부분들은 서로 동일하고, "생체의 각부분의 성장은 아주 단순한 하나의 동일한 원초적 형태의 극히 다양한 증식에 의해 결정된다." 이 형태는 바로 완벽한 원형, "전체라는 관념을 표현하고, 그결과로 일종의 자율을 누리는 " 세포이다.     하지만 생명의 무한한 흐름은 방향이 없는 맹목적인 것이 아니라, 무궁한 상승, 극에 도달하는 완벽은 끊임없이 태어나는 형태들에 그 의미를 부여한다.     그는 물리학과 우주발생론의 중심에 가치의 개념 재도입.   식물에서 동물 , 인간에 이르기까지 생명이 새로운 형태를 창조함에 따라, 이 존재들과 이에 생기를 불어 넣는 신과의 관계는 밀접.   " 자신의 종에서 완벽한 모든 것은 그 종을 초월하여 다른 , 비교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되어야 한다."는 괴테의 생물학적인 원칙, 카루스의 사상에도 낯설지 않은 개별적 진보를 통한 분화와 향상의 원칙인 것만은 아니다.   신적인 것은 모든 것 속에 존재하지만, 신은 동시에 세계의 중심이고 영혼, 혹은 생명과 그부분들의 원동력이다.   무의식     의식적인 정신적 삶에 대한 앎의 열쇠는 무의식이라는 영역속에 있다.     관념, 영혼은 모든 피조물에 형태와 생명을 부여하는 제1원인이다. 하지만 개인의 전 형성과정은 그 개인 자신의 의식에서 벗어난다. 유기적 진전과정, 성장, 생리적 형성은 무의식이라는 생기에 찬 거대한 실재속에 속한다.     "무의식은 우리가 자연이라는 이름으로 객관적으로 알고 있는 것을 지칭하는 주관적 표현이다."     그로므로 무의식은 그의 심원한 본질 속에서는 비개인적인 실재, 영원하고 끊임없는 생성, '신의 창조적 활동' 같은 것이다.     유기체적 통일   의식 속에서 기억과 예견이라고 부르게 될 시간들의 상관관계의 깊은 이유.     무의식은 의식의 본질적인 형태들에 대한 예시를 자신 속에 지니고 있다.   식물의 씨앗과 동물의 태아는 미래에 있을 성장들을 모조리 그안에 내포하고 있다.   카루스는 이러한 유기적 무의식의 예견에 프로메테우스의 원리라는 이름 부여.     다른 한편으로 유전은 과거가 현재의 진화 속에서 살아남아 활동하고 효율적으로 작용한다는 사실 증명 이것이 기억의 무의식적인 형태 , 에피메테우스적 원리이다.     그러므로 삶을 이루는 모든 순간들 사이의 관계를 표현하는 이러한 유기적 기억은 그 내용물이 개인적 삶의 틀을 넘어서 존재의 근원들 자체에 이르는 일종의 무의지적 기억이다.         개인적인 삶은 '인류'라는 유기체의, 더나아가서 우주적 유기체의 한 부분이다.   인류의 영혼 그리고 세계 영혼의 모든 움직임은 필연적으로 각각의 개별적 영혼을 거쳐 지나가야만 하고 무의식적으로 그것의 형상을 만들어야한다.     따라서 절대적 무의식은 우리 모든 삶에 있어서 극히 중요. 그것은 우리 모두의 본능적 삶과 내부에 있는 , 개별적 진화와 개인적 독창성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 아닌, 우리 종 전체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지휘한다.( 카알 융 과 일치)     본능의 형태로 각자의 삶 속에 잔존해 있는 무의식적 과정의 에피메테우스적 원리는 인간의 전 역사를 통한 경험을 영속화 시킨다. 유리환 정화들 속에서 투여된 개인들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피조물 자격으로 우리가 우주와 관게를 맺는 모든 순간에 있어서, 우리는 무의식이라는 이 보물에서 방어수단과 삶의 창조적 근거를 빌어온다.     시적 창조와 사고의 일례, 직관- 가장 심원한 창조력은 개인의 의식적인 삶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 속에 조상 대대로 경험을 통해 축적해온 것을 간직하고있는 무의식의 집단적 저장소안에 있기때문이다.   그러므로 무의식은 그 과정의 절대적 필연, 어떠한 학습도 필요로 하지 않은 즉각성, 우주적 생명 그리고 과거와 미래와의 법촉으로 특징지어진다.     감정은 무의식적 삶에 섞어들고 그 모든 특성을 함께하는 '의식적 영혼의 어떤 특수한 색조'이다.       감정을 통해, 영혼은 모든 영혼들의 공통된 통일성과 관계하고 있는 심원한 영역에 가 닿는다.   감정중 최고의 형태인 사랑은 "분리된 존재로 부터의 최초의 해방이고 전체로 되돌아가는 첫걸음이다."   꿈의 귀환적 상상력     꿈을 통한 이미지의 순환     존재의 근원으로서의 귀환은 서로 다른 두가지 양상   혈액의 순환과 유사한 첫번째 순환은 어떤 특수한 이미지나 감정을 망각속에 잠기게 하고, 이 이미지와 감정은 의식적인 삶 속에 새로이 작용하기 위해 변화하고 풍성해져 망각에서 다시 솟아오른다. 그사이 그것들은 발아되기 이전의 식물의 씨앗의 삶과 비교되는 잠재적 삶을 산다.     하지만 이런 분리된 이미지들과의 순환과는 별도로 보다 본질적인 또다른 리듬이 의식전체를 주기적으로 무의식의 밤 속에 잠기게 한다.   이 리듬은 "관념이라는 영원한 존재의 대 주기들, 우리의 삶과 죽음이라고 부르는 주기들을 재현"할 뿐이다. 꿈으로의 귀환은 식물적 삶 혹은 "아직 이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 유아의 무의식적 삶"과 유사한 하나의 의식없는 잠이었던 태초의 상태로의 귀환이다.     "영혼이 의식적인 동시에 무의식적인 이중의 삶을 끊임없이 영위하고" 이 양극사이를 영원히 오갈수있도록 잠은 그에 앞선 깨어있음을 통합한다.   그래서 카루스에 따르면 "표면적인 비존재 속의 존재의 연속성"이야말로 심리적 삶의 가장 큰 신비들 중 하나이다.     잠은 외부세계에 대한 감각과 의식의 부분적인 퇴거에 의해 유발된다. 이처럼 식물적인 삶 속에 침잠함으로써 '영혼의 자연적인 부분들'은 새로운 활력을 취하고, 동시에 '자연 전체와의 보다 활발한 관계'가 무의식 속에 생겨난다.     일단 나라는 경계들이 무너지면, 존재는 모든 생명의 근원인 위대한 무의식과 보다 즉각적인 방법으로 소통하게되고, 한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전달된 기억들의 불분명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경험은 의식의 세계에 우주에 대한 모호하고 심원한 인식을 가져다 준다.     그에게 있어 의식적 영역은 여전히 자율성을 지닌 이물질처럼 잠속에서 잔존하는 것이 아니다. 의식과 무의식 사이에 내밀한 결합이 이루어지고 그 결합에서 꿈이 생겨난다.     유기체의 어떤 내적 불균형들은 실제로 어떤 특별한 감정들을 발생시키고, 이감정은 다시 어떤 내적 이미지, 어떤 시적 상징을 일깨워 그로써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자연 속에서 발현된 신적인 관념인 영혼은 스스로는 시간과 공간을 알지 못한다.   영혼이 자연에서 퇴거함에 따라, 발현된 세계에 대한 의식이 흐려짐에 따라 영혼은 "생각들의 연속, 즉 식간과 그것들의 병렬, 즉 공간이 사라지고, 그자리에 이제 하나의 전체를 형성하는 모든 존재의 통일성이 들어서는 것"을 보게된다.     전체 유기체의 의식적 부분이 인격 개성 그리고 자유가 생겨나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면, 유기체의 무의식적 부분은 그 유기체를 일반적 생명과 밀접하게 연관시키는 것, 요컨데 그를 보편화 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무의식이기때문에 우주의 모든 움직임에 의해 관통되고 그것에 참여한다. 더 나아가서 가가운 것과 먼것, 그리고 공간에 속하는 모든 것 뿐만 아니라 과거와 미래, 그리고 시간에 석하는 모든 것도 그안에서 서로 만나고 섞인다.     "영혼의 건강한 성숙에 적합한 우리의 습관적 한계"속에서 우리는 과거와 미래가 실제로 모든 현순간에 존재하고, 멀리 떨어져 공간들이 서로 수없이 많은 방식으로 영향을 끼치는 보편적인 생명의 얼마되지 않는 부분이외에는 우리의 감각으로 지각할 수 없다.   하지만 '정상적'인 우리 상태의 어떤 변모에 힘입어 우리는 보편적인 생명의 다른 양상들 , "우리로 하여금 멀고 먼 곳들 뿐만 아니라 과거와 미래와도 접촉을 가지게 할 수 있는 양상들"을 지각할 수 있는 능력을 예외적으로 누리게 된다.     그러므로 "무의식 속에 깊이 침잠해 있기때문에 영혼이 바로 무의식에 고유한 특성인, 만물을 연결하는 그물망 속에, 공간적인 모든 것과 시간적인 모든 것의 상호침투에 속에 더 깊이 침잠하게 되는 " 예외적인 상태들 속에 신비롭거나 불가사의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ㅜ여기서 유기적 참여와 의식적 참여를 구분해야한다.   예감과 통찰력       예감   우주적 감각의 조건인 우리의 무의식적인 삶은 자신의 자율성을 유기함으로써 보편적 생명의 순환 속으로 삼켜진다.   그리고 그때그것은 인체의 변모와 동일하게 보편적 생명의 변모들에 영향을 받는다.   우리는 이처럼 인류 혹은 자연의 생명의 순환 속에 침잠하여, 일반인은 전혀 느낄 수 없는 ,   멀리 발생한 혹은 미래에 발생할 어떤 사건들이나 다른 작용들에 영향을 받아 이상한 불안에 빠지는 사람들을 보게된다.   이러한 예외적인 사실의 설명할 수 없는 지각은 그들의 정신상태를 완전히 변모해 놓는다.   바로 이것이 흔히들 예감이라 칭하는 것이다.     통찰력   다른 한편으로 우주와 인류의 모든 생명과 가지는 이 관계가 인간의 의식적인 영혼 속에 드러나 새로운 종류의 민감한 지각의 형태를 취한다. 그때 그빛이 항상 우리 각자를 관통하고 있지만, 우리가 평상시에는 지각하지 못하는 보편적 생명의 양상들이 의식에 도달하는 것은 더이상 모호한 감정들로서가 아니라 분명하게 한정된 생각들로나타나는데 이것을 통찰력이라 부른다.     무의식을 통해 옛시대의 인류, 우리시대의 인류 그리고 우리 종의 미래적 운명들도 매순간 우리를 변모시킨다.   그리고 꿈의 이미지들 속에서 모호하게나마 의식에 도달하는 것이 바로 이 변모들이다.     카알 융은 이러한 낭만적 철학자 카루스의 직관을 이어간다.   '무의식 본래의 언어'인 이미지들에 말할때, 카루스는 슈베르트의 직계상속인이다. 하지만 슈베르트의 천재성이 최초의 직관 속에 있었다면, 카루스의 힘은 이러한 각각의 통찰력을 정신적이고 자연적인 삶에대한 전체적 비전에 연결시켜주는 일관된 구성에 있다.   명상   신의 의식에 그의 전능함을 되돌려주는 이 명상은 "사랑의 힘과 깊이로 심연을 메우고 극복하기위해" 열심인 우리의 노력이 도달할 수있는 최고의 진보이다.하지만 일단 이 정상에 도달하게되면 정신은 인간적인 삶 그자체로 되돌아 올수있다. 정신은 자신의 엑스터시로 인해 아름답게 변모된 인간의 삶을 발견하게 된다. 가장 고귀한 종교적, 시적 영감들을 통해 얻게 되는 것이 이 변모이다.     이 각성된 영혼은 눈먼 유기적 생명의 심연 뿐만 아니라 신의 생명의 무한 속에서 '제2의 눈'을 담고 있을정도의 능력을 갖추고 있을 것이다.     우리안에 불멸하는 것은 관념, 영혼, 우리의 생성의 법칙이지 생성 중에 획득된 모든 특성들이 아니다. 개인적인 삶에서 진보는 연속되는 모든 경험들, 감정들,사상들,관념이 신에게로 회귀하는 데에 소용이 되게하는데 있다. 유기적인 무의식은 생성의 모든 단계를 결합시키고, 그것들과 일치되며, 영원히 변함으로서 그 경계가 이동하는 과거와 미래로 나뉠 수밖에 없는 반면, 정신은 현재를 포착하기에, 다시말해 그본질에 있어 영구불변하는 관념 그자체를 응시하기에 이른다. 우리는 시간과 공간 속에 그것의 발현을 통해서만 관념을 알 수 있다.     < 우리 영혼의 관념은 지고의 존재의 이중적 빛의 방사를 하나밖에 없는 자신의 존재속에 함축하고 있다. 이 발현 중 하나는 무의식적으로 창조하는 신적인 원동력으로 우리 외양의 끊임없는 변모를 결정한다. 다른 하나는 지속되는 하나의 내적 현재 속에 영원히 존재하는 정신으로, 우리의 자유로운 반쪽이고, 다른 반쪽의 꽃과 같은 것이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신과 맺고있는 이중적 관계가 설명된다. 만물에 속하는 우주적 존재들로서 우리는 무의식에 의해 신의 실재속에 뛰어든다   9. 순수 심리학에서 형이상학으로     낭만주의 사상가들의 첫번째 공리는 오직 전체만이 존재를 절대적으로 부여받았다고 단언하는 것이다.     분리된 존재는 악이다. 하지만 다양한 방법으로 잃어버린 통일성에 이르는 길을 되찾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이의 매개체는 무의식이다.     무의식은 - 그 설명이 의식 속에서 찾아질 개인적 영역으로 귀착하지 않고   - 우리의 에너지가 솟아오르는 근원이 있는 초-개인적인 실재이고,   우리가 보편적 유기체와 접촉을 가지는 지점이다.     꿈과 다양한 열광들, 언어에서 인칭의 변화와 같은 사고들과 시적인 번득임들, 광기의 창조들과 유아기의 상상력들, 이모두가 태초에 자연의 생명과 함께한 협화음의 소중한 유물인 동시에, 결국에는 우리를 태초의 조화의 품으로 되돌려줄 근원들이다.     독일 낭만주의 시인들은 사상가들에 앞서 제각기 독특하지만 모두 밤의 가장자리에 이르는 다양한 길을 따라 무의식의 모습들을 포착하고자 시도했다.   이러한 무의식의 양상들을 일깨우는 도구인 그들의 예술을 그들 자신의 개인적인 운명과 동일시했다는 바로 그 이유때문에 그들은 영웅적인 정열을 가지고 그일에 달려 들었다.     정신속에 내재해 있는 집단적 무의식(신화) , 즉 우주적 통일성과 개인적 이미지 (직관) 즉 보이지 않는 세계의 상징적 발현이 낭만주의의 근원적 미학이다.   이는 창조적 상상력의 원천인바 무의식과 의식의 조화로 나타난다.   이는 자연과 영혼의 합일에 이른다.   10 성운과 혜성     낭만주의의 핵심적소재(근원) - 창조적 상상력의 원천 - 꿈의 미학   1) 집단적 무의식 (신화)   2) 개인적 이미지(직관)     우리의 상상력은 세계를 형성시킨 거대한 창조력의 알 수 없는 하나의 응답이다.   그의 활동이 우리에게 아주 생생한 행복감을 부여해 주는 것은 '정신이 창조한 이미지들이 바로 정신이고 삶'이기 때문이다.     휠더린   그가 전력을 다해 지향하는 소유는 낭만주의가 획득하고자 할 그 마술적 권능이 아니다.그가 얻고자 하는 것은 질적으로 다른 관조적이고 미학적인 소유이다.   세계를 소유한다는 것은 만물이 갑자기 완벽하고 은혜로운 조화의 관계속에서 드러나 보일정도로 순수한 관조와 아름다운 비전을 되 찾는데 있다.      
931    활과 리라 / 옥타비오 파스 댓글:  조회:387  추천:0  2019-06-30
활과 리라   옥타비오 파스 Octavio Paz Lozano     옥타비오 파스 로사노(Octavio Paz Lozano, 1914년 3월 31일 ~ 1998년 4월 19일)는 멕시코의 시인, 작가, 비평가 겸 외교관이다.   멕시코 시티 출신인 그는 진보적인 문화인이었던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인해 문학에 관심이 높았으며 19세 때에 자신의 첫 시집인 《야생의 달 (Luna Silvestre)》을 발표했다. 그는 1937년에 내전이 한창이던 스페인에서 열린 반(反) 파시스트 작가 회의에 참가했으며 1938년에 멕시코로 귀국, 멕시코의 신세대를 대표하는 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한다. 그는 1944년에 미국으로 유학을 갔으며 1945년에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갔다.   그는 1946년에 외교관으로 임명되었으며 시집 《가석방 상태의 자유 (Libertad bajo palabra)》 (1949년 작)와 《독수리인가? 태양인가? (¿Águila o sol?)》 (1951년 작), 《격렬한 계절 (La estación violenta)》 (1956년 작), 《일장석 (Piedra de sol)》 (1957년 작), 《도롱뇽 (Salamandra)》 (1962년 작)을 비롯, 수필집 《고독의 미궁 (El laberinto de la soledad)》 (1950년 작)과 《활과 리라 (El arco y la lira)》 (1956년 작), 《느릅나무에 열린 배 (Las peras del olmo)》(1957년 작) 등을 발표했다.   그는 1962년에 인도 주재 멕시코 대사로 임명되었지만 1968년에 멕시코 정부가 급진파 학생들이 일으킨 시위를 무력으로 탄압한 것에 대한 항의의 뜻으로 사퇴했다. 이후 그는 케임브리지 대학교와 텍사스 대학교, 하버드 대학교 등에서 교수로 근무하면서 문학 활동을 전개했으며 시집 《하양 (Blanco)》 (1968년 작)과 《동쪽 비탈길 (Ladera este)》 (1969년 작), 《공기의 아들들 (Hijos del aire)》(1981년 작)을 비롯, 수필집 《결합과 분리 (Conjunciones y disyunciones)》 (1970년 작), 《원숭이 문법학자 (El mono gramático)》 (1974년 작) 등을 발표했다.   그는 1981년에 세르반테스 상을 수상했으며 1990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주요 작품 시집 《가석방 상태의 자유 (Libertad bajo palabra)》 (1949년 작) 《독수리인가? 태양인가? (¿Águila o sol?)》 (1951년 작) 《격렬한 계절 (La estación violenta)》 (1956년 작) 《일장석 (Piedra de sol)》 (1957년 작) 《도롱뇽 (Salamandra)》 (1962년 작) 《하양 (Blanco)》 (1968년 작) 《동쪽 비탈길 (Ladera este)》 (1969년 작) 《공기의 아들들 (Hijos del aire)》(1981년 작) 수필집 《고독의 미궁 (El laberinto de la soledad)》 (1950년 작) 《활과 리라 (El arco y la lira)》 (1956년 작) 《느릅나무에 열린 배 (Las peras del olmo)》(1957년 작) 《결합과 분리 (Conjunciones y disyunciones)》 (1970년 작) 《원숭이 문법학자 (El mono gramático)》 (1974년 작)             서론     시와 시편     시는 앎이고 구원이며 힘이고 포기이다.   시의 기능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며 시적행위는 본래 혁명적인 것이지만   정신의 수련으로서 내면적 해방의 방법이기도 하다.   시는 이 세계를 들어내면서 다른 세계를 창조한다.   시인의 선택받은 자들의 빵이자 저주받은 양식이다.   시는 격리시키면서 결합시킨다.   시는 여행에의 초대이자 귀항이다.   시는 들숨과 날숨이며 근육 운동이다.   시는 공을 향한 기원이며 무의 대화이다.   시의 양식은 권태와 고뇌와 절망이다.   시는 기도이며 탄원이고 현현이며 현존이다.   시는 악마를 쫓는 주문이고 맹세이며 마법이다.   시는 무의식의 승화이자 보상이고 응집이다.     시 속에서 모든 객관적 갈등들이 해소되고   인간은 마침내 일시적으로 스쳐가는 것에 이상의 어떤 것에 대한 의식을 얻게 된다.     시는 경험이며 느낌이고 감정이며 직관이고 방향성이 없는 사유이다.   시는 우연의 소산이자 계산된 결과물이다.   시는 규칙에 복종하며 동시에 다른 규칙들을 창조한다.   시는 광기이며 황홀경이고 로고스이다.   시는 어린시절로 돌아가는 것이며 성교이고 낙원과 지옥 그리고 연옥에 대한 향수이다.     시는 아날로지다.   시편은 세상의 음악이 울리는 소라고둥이고   시편의 운율과 각운은 전체적인 조화의 상응이자 울림이다.     천의 얼굴로 나타나지만 결국 시편은   빔 – 인간의 모든 작위의 헛된 위대함에 대한 아름다운 증거-을 숨기고 있는 가면일 뿐이다.     우리는 살아있고 고통받는 어떤 것에 대한 표현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     시가 우연의 응축으로 주어질 때나 혹은 시인의 창조적 의지와는   다른 힘과 여건의 결정체로 주어질 때 우리는 시적인 것과 만나게 된다.   시인이 시적 흐름을 유도하거나 변형시킬 때 현저히 다른 어떤 것 즉,   작품의 출현을 보게되는 것이다.   시적인 것이 무정형 상태의 시라면 시편은 창조물 즉, 일어선 시이다.   시는 단지 시편이라는 형식을 통해 자신을 완전히 드러낸다.     시편은 시를 품고 있고 시를 유도하며 시를 방출하는 언어적 유기체이다.   형식과 본질은 동일하다.     부분이 곧 총체이다.   각각의 시문은 유일하며 환원 및 반복 불가능한 것이다.     하나 하나의 시편은 창조의 순간에 소멸하는 기술에 의해서   창조되는 유일한 대상이다.     스타일은 모든 창조적 의도의 출발점이다.   그리고 바로 이 이유 때문에 모든 예술가는 역사적인 공통의 스타일을 뛰어 넘으려 한다.   시인은 그 시대의 공통된 자산, 그 시대의 스타일을 이용하고 적용하고 모방하지만   그러한 모든 자료들을 변화시켜 독창적인 작품을 만든다.     시인은 스타일을 갖지 않는다.   그때 생긴 이미지는 공동재산, 즉 미래의 역사가와 문헌학자의 전리품이 된다.   이런 저런 비슷한 돌들이 사용되어 예술적 스타일이라고 불리는 건축물이 세워지는 것이다.     문학적 언어, 스타일은 일상 언어보다 더 정확하고 혁신적이다.   그러나 그는 언어를 뛰어 넘는다.   더 적절히 말하면 반복불가능한 시적 행위,   즉 이미지, 색깔, 리듬, 비전등을 시편으로 용해시킨다.     시편이 가지는 유일하고 반복 불가능한 성격은   그림이나 조각, 소나타나 춤, 기념탑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결국 그림과 송가, 교향악과 비극을 구별짓는 차이점을 뛰어넘어   그 모두가 동일한 우주를 선회하도록 하는 창조적 요소가 있다.     조형예술과 조음예술은 이러한 ‘의미하지 않음’에서 출발하지만   양가적 유기체인 시편은 의미를 품은 존재인 말에서 출발한다.       우주의 주기를 나타내는 개념으로서의 한 쌍의 음과 양은   철학이고 종교이며, 춤이고 음악이며, 의미로 충만한 주기적 운동이다.   또한 이것은 비유적 언어에 그치는 게 아니라 인간의 행동을 특징짓기 위하여   조화 주기성, 혹은 대조법과 같은 표현을 내포한다.     모든 작품은 의미화작용에 닻을 내린다.   인간의 손에 닿음으로서 성질이 바뀌고 작품의 세계로 진입하게 된다.   지향성에 물들게 되어 어딘가를 향하게 된다. 인간의 세계는 의미의 세계인 것이다.   애매성 모순 광기 혹은 분규따위는 허용하지만 의미의 결핍은 용납하지 않는다.     활동범위와 직업이 무엇이든, 예술가이든 수공업자이든,   인간은 원료, 즉 색깔, 돌, 금속, 말을 변형시킨다.   변형이란 원료들이 맹목적인 자연의 세계를 포기하고 작품의 세계,   다시 말하면 의미의 세계로 진입하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면 조각을 새기고 계단을 만들기 위해 인간이 사용한 재료인 돌에 일어난 변화는 무엇인가?   조각에 쓰인 돌과 계단을 만드는데 쓰인 돌이 동일하며   이것이 모두 동일한 의미체계를 이루고 있다하더라도 변형의 속성은 다르다.   산문작가와 시인의 손에 놓인 언어의 운명이 그러한 차이점이 뜻하는 바를 보여준다.   산문작가가 되기보다 시인이 되는 것이 더 쉽다.   산문에서 언어는 많은 의미의 가능태들을 희생시키고 그 중의 단 하나와 동일화를 시도한다.   빵은 빵이고 포도주는 포도주일 뿐이다.   이러한 작용이 바로 분석적 특성이며 이것의 실현에는 반드시 폭력이 수반되는 법인데   왜냐하면 말은 다수의 잠재태의 기의(significado)들을 포함할뿐 아니라   다수의 방향성과 의미들의 가능태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시인은 결코 단어의 다의성을 거역하지 않는다.   산문과 일상언어가 강요한 구속으로 불구가 되었던 언어는 시 속에서 원초의 상태를 회복한다.   본성의 회복은 총체적이어서 의미론적 가치 뿐만 아니라 음악적이고 조형적인 가치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렇게 자유를 찾은 말은 농익은 과일처럼 혹은 하늘에서 폭발하기 직전의 불꽃처럼 자신의 내부,   즉 모든 의미들과 암시들을 드러낸다.   시인은 말을 자유롭게 풀어주고 산문작가는 말을 구속한다.   이런 현상은 형식, 소리, 색깔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돌은 조각으로 변형될 때 광휘를 얻게 되며 계단으로 만들어질 때 빛을 잃게 된다.   색깔은 그림 속에서 광채를 내고 몸의 운동은 춤을 출 때 빛난다.   시적 기능은 기술적 조작과 정 반대이다.   시적기능에 힘 입어 재료가 본성을 회복하게 됨으로서 색깔은 더욱 색깔다워지고   소리는 충만한 소리가 된다.   시적 창조에는 재료나 기구에 대한 구속을 찾아 볼 수 없으며   오히려 그것들에 자유를 부여한다.   말, 소리, 색깔 그리고 그 박의 재료들은 시의 궤도에 진입하자마자 변화를 겪는다.   여전히 의미작용과 의사소통이 도구이면서 ‘다른 사물’로 변한다.   기술의 영역과는 반대로 진행되는 변화는 원래의 본성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로 들어간다.   ‘다른 사물‘이 된다는 것은 실상 ’원래의 사물‘이 되는 것이며   원래의 사물이란 태초부터 실재적인 그런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조각이 된 돌, 그림의 빨강, 시편의 말은 순수하고 단순한 돌이나 색, 말이 아니라   그것을 초월하고 뛰어넘는 어떤 것을 구현한다.   그것들은 일차적인 가치, 원래의 무게를 잃지 않은 채, 피안에 닿는 다리가 되며   일상의 단순한 언어로는 말 할 수 없는 기의들의 또 다른 세계로 열리는 문이 된다.   다의적인 존재, 즉 시적인 말은 온전히 있음-리듬, 색깔, 기의-이며 동시에 다른사물, 즉 이미지이다.   이미지는 듣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에게 이미지의 성좌를 유발시키는   이상한 힘으로서 모든 예술을 시적으로 만든다.   시는 의미와 의미의 전달이면서 언어를 넘어서는 어떤 것이다.   그러나 언어를 넘어서는 어떤 것은 언어를 통해서만 다다를 수 있는 것이다.   그림은 회화적 언어 이상의 어떤 것일 때 시가 된다.   그때의 작품은 기술적 성과를 넘어서는 어떤 것, 즉 이미지이며 반복불가능한 시이다.   위대한 화가는 위대한 시인으로   그가 사용하는 언어의 한계를 뛰어넘는 사람이다.   결국, 수공예업자가 자신의 도구라고 할 수 있는 돌, 소리, 색깔, 말을 이용하는 것과 달리   예술가는 그 재료들의 고유한 본성을 회복하기 위하여 그것들에게 봉사한다.   언어의 봉사자는 그언어가 무엇이든간에 언어를 초월한다.   이런 역설적이고도 모순적인 기능이 이미지를 생산한다.   예술가는 이미지의 창조자, 즉 시인이다.   이미지가 됨으로서 말은 말이면서 동시에 언어,   즉 역사의 의미화 작용으로 주어진 체계를 뛰어 넘는다.   시편은 말이고 역사이며 역사를 초월한다.     모든 독자들은 시편에서 무언가를 찾는다.   그리고 그것을 발견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이미 자신의 내부에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하나의 만남이다.   우리들의 열정과 일상의 간만(干滿)에 모든 것이 화해하는 순간이 있다.   적대적인 것들은 사라지지는 않지만 한 순간 융합한다.   그것은 판단중지하는 것이며 이순간 시간은 멈춘다.   우파니샤드의 가르침에 의하면 이러한 화해는   ‘아난다(ananda) 혹은 하나 속에 노니는 쾌락이다.   틀림없이 극히 소수의 사람만이 그런상태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누구나, 언젠가 찰라의 순간에 이와 비슷한 것을 어렴풋이 느낀다.   우리는 모두 어린이였다. 우리는 모두 사랑을 해 보았다.   사랑은 인간에게 열려있는 일치와 참여의 상태이다.   사랑의 행동에 의해 의식은 부서지기 전에 장애물을 넘어 충만한 상태로 일어서는 파도와 같다.   이러한 충만한 일어섬 속에서   위를 향해 일어서는 힘과 중력등 모든 힘은 미묘한 균형 상태에 도달한다.   동중정(動中靜).   사랑하는 사람의 육체를 통하여 한 순간 충만한 생명을 엿보는 것처럼   시편을 통하여 찰나적으로 멈추어 있는 시의 번갯불을 본다.   그 순간은 모든 순간을 포함한다.   흐름을 멈추지 않고 시간은 정지하며 자기 자신으로 가득찬다.     자력을 띤 사물.   그 덕분에 우리는 시적 경험에 참여할 수 있다.   시편은 개인의 성질이나 기질 그리고 성향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게 열려있는 가능성이다.   그래서 시편은 가능성일 뿐이다.   모든 시편이 갖는 공통점은 참여이며 이것없이는 결코 시가 될 수 없다.   독자가 진실로 시편을 소생시킬 때마다 그는 시적이라고 일컬는 상태에 참여 한다.   그러한 경험은 이런저런 형태를 취할 수 있지만 언제나 자기자신을 뛰어넘는 것이며   시간의 벽들을 부수고 다른 ‘나’가 되는 것이다. (他者性의 발현)     시편은 이미지를 소생시키고 직선적 시간개념을 부정하고 시간을 역전시킨다.   시편은 중재 역할을 한다. 그 덕분에 시간의 시조인 태초의 시간이 순간 속에 육화된다.   직선적 시간은 순수한 현재로 변화하는데,   순수한 현재란 쉬지 않고 자신을 새롭게 창조하며 인간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우리가 좋은 시 한편을 읽었을 때 느끼는 감정,   높은 파도처럼 분출하여 직선적 시간이 쌓아놓은 둑을 붕괴시키는 그 충만했던 감정은   독자들의 삶을 통해 여전히 생생하게 간직된다.   시편은 순수한 시간에 도달하는 통로이며   실존의 생명수에의 잠항이다.   시는 끊임없이 창조하는 리듬 이외에 그 어떤 것도 아니다   제 1부     시 편 el poema     언 어       언어를 대하는 인간의 맨 처음 태도는 기호와 표상된 대상이 동일하다는 신뢰였다.   말을 한다는 것은 말하는 대상을 재창조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경과되면서 사람들은 사물과 이름 사이에 깊은 골짜기가 생겼음을 알아챘다.   대상과 기호가 동일하다는 믿음이 사라지자마자 언어에 대한 학문들은 그들의 자율성을 획득했다.   인간의 역사는 말과 사유 사이의 관계로 환원될 수 있다.   모든 철학의 모호성은 철학이 언어에 치명적으로 예속되어있기 때문이다.   거의 모든 철학자들은 말이란 실재를 포착하기에는 너무 조악한 도구라고 확신한다.   그러나 말없이 인간은 포착되지 않는다.   인간은 말로 된 존재이다.     또한 말도 인간처럼 태어나고 죽기 때문에 말을 이용하는 모든 철학은 역사에 예속될 수 밖에 없다.   하이데카의 말처럼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언어없이 사유는 존재할 수 없으며 앎의 대상 역시 존재할 수 없다.   인간이 미지의 실재에 부딪혔을 때 제일 먼저 하는 것은 그것에 이름을 붙이는 일,   즉, 세례하는 것이다.   이름이 붙여지지 않은 것은 우리가 모르는 것이다.   모든 배움은 사물의 진정한 이름을 배우는 것으로부터 시작되고   우리에게 지혜의 문을 열어주는 중요한 열쇠가 되는 말의 계시로 끝난다.   혹은 무지의 고백인 침묵으로 끝나기도 한다.   그리고 침묵조차도 무언가를 말하는데,   침묵은 무가 아니라 여전히 기호들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말은 의미화 작용이다.   말은 표상적 작용으로서의 기호이며 상징이기도 하다.   의미화 작용은 지시적이고 감정적이며 표상적이다.   언어의 본질은 다른 것을 통하여 경험의 한 요소를 표상하는 것,   즉 기호 혹은 상징과 의미되거나 상징된 사물 사이의 양극 관계인 것이며 그러한 관계에 대한 의식이다.   언어와 신화들은 실재에 대한 광범위한 은유들이다.     언어의 본질은 상징적인 것인데   은유는 실제의 한가지 요소를 다른 것으로 표상하기 때문이다.   말 하나하나와 혹은 구와 절은 하나의 은유이며 동시에 마법적인 도구이다.   즉, 말이란 다른 사물로 변화하기 쉽고 또 건드리는 것을 변용시키는 어떤 것으로,   예컨대 태양이라는 말이 빵이라는 말을 건드리면 빵은 별로 변한다.   그리고 태양자신은 빛을 내는 음식이 된다.     말은 상징을 발산하는 상징이다.   인간은 말 덕분에 인간을 다른 존재로 만들어 주고   자연의 세계에서 분리시켜주는 원초적 은유 덕분에 인간이 될 수 있다.   인간은 언어를 창조할 때 자기 자신을 창조하는 존재이다.   언어를 통해서 인간은 자신의 은유가 된다.       이미지와 운율을 띤 언어적 형상의 계속적 산출은 일상어의 상징적 특성, 시적 성격을 증거한다.   언어는 자발적으로 은유로 구체화 되려는 경향이 있다.   매일 말들은 서로 충돌하여 금속성의 불꽃을 튀기거나 혹은 파랗게 빛을 내는 짝들이 된다.   말들로 수놓아진 하늘에는 끊임없이 새로운 천체들이 생겨난다.   차가운 비늘 위로 채 마르지 않은 물기와 침묵을 떨구는 말들과 구들이   언어의 수면위로 날마다 솟아오른다.     시는 언어를 초월하려는 시도다.   시는 일어서는 언어다.   시는 원초적 언어로 돌아가려는 시도이다.   즉, 말하는 것이 곧 창조하는 것이었던 시간으로의 복귀이다.   혹은 사물과 이름이 동일하던 때로 돌아가는 것이다.   미래에 총체적 시의 실현이 이루어 진다면   그것은 원초적 시간으로 돌아가는 것을 가정할 때만 가능할 것이다.         말과 대상 사이의 거리-말이 지시하는 것의 은유로 변화할 때,   어쩔 수 없이 말에 강요되는 거리-는 다른 현상의 결과이다.   즉, 인간이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을 획득하자마자   자연 세계에서 분리되었고 자신의 내부에서 타자가 되었다.   말이 지시하는 실재와 말이 동일하지 않은 것은 인간과 사물 사이에   그리고 더욱 심층적으로는 인간과 인간의 존재 사이에,   자신의 의식이 개입하기 때문이다.   말은 가교이며 이 다리를 통하여 인간은 자신을 외부 세계와 분리시키는   거리를 없애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그러한 거리는 인간 본성의 일부를 구성한다.   거리를 소멸시키기 위하여 인간은 인간됨을 포기하고 자연 세계로 돌아가거나   인간됨의 한계를 초월하여야 한다.     모든 역사 속에 잠재되어 있는 양자의 시도는   근대인에 이르러 더욱 극단적으로 나타난다.   이런 연유로 현대시는 양극사이를 운동하는데,   한 쪽 극은 마법적 가치에 대한 철저한 긍정이며 다른 한 쪽은 혁명적 소명이다.   이러한 양극으로의 운동은 인간 자신의 조건에 대한 인간의 반역이다.   역사적 실존이 의식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의식이 역사적 실존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혁명적 시도는 소외된 의식의 회복으로 나타나며 동시에 역사적 세계와 자연의 세계에 대한   진정한 의식을 갖는 것이다.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법칙에 매몰되지 않고,   의식은 실존을 결정해 나가게 된다.   그리고 그때 인류는 두 번째의 결정적 도약을 이룰 것이다.       언어는 시이며 모든 말은 비밀스런 발화점이 건드리자 마자 폭발할   준비를 하고 있는 은유의 전하를 숨기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말이 갖는 창조적 힘은 그것을 발화하는 사람에게 있다.       무심의 언저리-텅빈 충만   정신은 불가분의 총체이다.   만일 정신과 육체 사이에 경계선을 그을 수 없다면 ,   의지가 끝나고 순수한 수동성이 시작하는 곳을 분별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모든 정신작용은 총체적 방법으로 표현된다.   각각의 기능에는 다른 모든 기능들도 함께 있는 것이다.   절대적인 수용의 상태로 침잠해 있다는 것이 욕구의 소멸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십자가 성 요한의 증언 “없음을 욕망하며” 는 여기서 무한한 심리학적 가치를 획득한다.   즉, 욕망의 힘에 의하여 없음 상태가 능동적이 되는 것이다.   열반 nirvana 도 이와 똑같이 능동적 수동성의 조화를 요구하고 정중동의 조화를 요구한다.   수동적 상태들- 내면적 빔의 경험으로부터 그와 반대되는 존재의 충만의 경험에 이르기 까지-은   객체와 주체 사이의 이원성을 깨기 위한 결연한 의지의 행사를 요구한다.     완벽한 요가 수행자는 적당한 자세로 앉아 움직이지 않고   “무심하게 자신의 코끝을 바라보면서”   망아의 상태에 이르기까지 적극적으로 자신을 제어한다.   무심의 언저리를 건드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우리는 알고 있다.   무심의 경험은 방심자, 은둔자, 그리고 심약자까지도 인간의 원형으로 제시하는   서구적 문명의 지배적 경향에 반대된다.   무심한 사람은 근대세계를 부정한다.   그는 전체를 얻기위해 자신의 전체를 건다.   지적인 면에서, 그의 결단은 생의 저편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자하는 욕망 때문에   자살을 하는 사람의 결단과 다르지 않다.   무심한 사람은 이성과 소극적 안일함의 다른 편에는 무엇이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무심이란 이 세상의 반대편에 대한 매혹이다.   의지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단지 방향을 바꿀 뿐이다.   즉, 의지는 분석적 힘에 봉사하는 대신에, 분석적 힘이 자신의 목표를 위하여   정신적 에너지를 억압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다.   십자가의 성 요한의 “침묵의 음악” 혹은 노자의 “텅빈 충만”이란 말을 상기해보자.   수동적 상태는 침묵과 빔의 경험일 뿐 아니라 능동적이고 충만한 순간의 경험이기도 하다.   즉, 존재의 핵심으로부터 이미지가 샘 솟는 것이다.   “나의 가슴은 한밤중에 꽃을 피운다”라고 아즈텍인의 시는 말한다.   자발적 마비는 정신의 다른 부분을 상승시킨다.   한 영역의 수동성은 다른 영역의 능동성을 야기시키며   분석적이고 담론적이며 혹은 추론적인 경향에 맞서 상상력의 승리를 가능케 한다.         시적 창조는 언어에 대한 위반으로 시작한다.   이러한 작용의 첫 번째 행동은 말들을 지탱하고 있는 뿌리를 뒤흔드는 일이다.   시인은 일상적인 일들, 그리고 그것들과 맺고 있는 연관 관계에서   말을 뿌리채 뽑아내어 일상적 언어의 획일적인 세계와 결별시킨다.   이때 단어들은 이제 막 태어난 것처럼 생생한 것이다.   두 번째 행위는 말을 원초적 상태로 복귀시키는 것이다.   이때 시는 소통의 대상으로 변한다.   시에는 두 개의 적대적인 힘이 존재한다.   하나는 언어로부터 말을 뿌리채 뽑아내는 상승 혹은 적출의 힘이며   또다른 하나는 말을 다시 언어로 복귀시키려는 중력의 힘이다.       이데올로기들과 관념 그리고 여론이라 부르는 것들이   의식의 가장 바깥 표피층을 구성하는 반면에,   시는 존재의 가장 심층에 거주한다.   시는 공동체의 생생한 언어, 신화, 꿈 그리고 열정들,   다시말해 가장 비밀스럽고 강력한 성향들로부터 자양분을 공급 받는다.   시는 민중의 토대를 세우는데,   왜냐하면 시인은 언어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 시원의 샘물을 마시기 때문이다.   사회는 시에서 자신의 존재의 토대, 즉 자신의 맨 처음의 말과 마주친다.   반면에 진정한 시인은 밑에서 위로, 공동체의 언어에서 시의 언어로 움직인다.   작품은 곧바로 자신의 근원으로 돌아가 합일의 대상이 된다.       시의 모호성   모든 창조는 모호성을 야기한다.   시적 즐거움은 창조의 어려움과 유사한 어떤 어려움을 이겨내야만 주어지는 것이다.   참여는 재창조를 암시한다.   독자는 시인의 몸짓과 경험을 재창조한다.   시인은 그의 말을 발견할 때, 그 말이 이미 자기 자신 속에 있음을 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그도 이미 그 말 속에 있엇다.   그것은 처음부터 자신과 같이 있었으며 실제로 그에게 속하는 말과   책과 거리에서 배운 다른 말 사이에서 머뭇거리며 주저한다는 뜻이다.   시인의 말은 시인의 존재 자체와 혼동된다.   시인이 그의 말이다.   창조의 순간에, 우리 자신의 가장 비밀스런 부분이 의식에 떠오른다.   창조는 우리의 존재와 떼어 놓을 수 없는 어떤 말에 빛을 비추는 것이다.   다른 말이 아니라 꼭 그말인 것이다.   시는 필연적이며 교체할 수 없는 말로 되어 있다.   그래서 이미 만들어진 작품을 고치는 일은 매우 어렵다.   어떠한 수정이든 재창조이다.   즉 우리의 내면을 향하여 우리가 걸어온 과정으로 돌아가는 것을 암시한다.   단어 하나에 상처를 입히면 시 전체가 상처를 입는다.   쉼표 하나를 고치면 건물 전체가 위태로워진다.   시는 교체 불가능한 요소들로 이루어진 살아잇는 총체이다.   따라서, 진정한 번역은 재창조에 다름 아니다.         계시   어디선가 발레리는   “시는 감정적 외침이 발전된 것이다.”라고 말했다.   발전과 감정적 외침 사이에 모순적 긴장이 존재한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말은 그러한 긴장이 곧 시라는 사실이다.   발전의 주체는 감정적 외침이 시사하는 총체적이고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그러한 실재 앞에서 자기 자신을 창조해 가는 언어이다.   시는 감정적 외침이 말하지 못하는 것을 듣는 귀이다.   고통 혹은 열락의 외침은 우리에게 상처를 입히거나   혹은 우리를 즐겁게 하는 대상을 가리킨다.   그것을 가리키지만 그것을 숨긴다.   즉 저기에 있다라고 말하지 무엇 혹은 누구라고 말하지 않는다.   감정적 외침이 가리키는 실재는 결코 이름 붙여질 수 없다.   그것은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은 상태로   이제 막 나타나거나 혹은 이제 막 영우너히 사라지려는 순간처럼 저기에 있다.   금방이라도 무언가 닥쳐올 것같은 급박함,   발전한다는 것은 질문이나 대답이 아니라 소집을 의미한다.   말하는 입이며 듣는 귀인 시는 감정적 외침이 지시만 하고   이름 붙이지는 못하는 것을 계시한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게시이지 설명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것이 설명이라면, 실재는 계시되지 않고 해명될 뿐이며 언어는 단지 이해될 뿐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불구가 될 것이다.   감정적 외침인 경우에, 말은 ‘빔’을 향하여 던져진 외침이다.   거기에는 대화자가 부재한다.       우리가 언어를 이용할 때마다, 우리는 언어를 훼손 시킨다.   그러나 시인들은 말들을 이용하지 않는다.   그는 말에게 봉사하는 자이다.   말에 봉사함으로서 말에게 말의 충만한 본성을 되돌려주고   말의 자신의 존재를 회복하게 한다.   시 덕분에 언어는 원래의 상태를 회복한다.   먼저 일반적으로 사유에 의해 손상된 조형적이고 음성적인 가치를 회복하게 되며,   이어서 정감적인 가치를, 마지막으로는 의미를 나타내는 가치를 회복한다.   언어를 순화하는 것은 시인의 과제이며, 이것은 언어에게   원래의 본성을 되돌려주는 것을 뜻한다.   1부 시편     리듬   단어들은 변덕스럽고 제멋대로인 존재들처럼 행동한다.   단어들은 언제나 ‘이것 그리고 이것과 다른 것’을 말하고 동시에   ‘저것 그리고 저것 너머의 것’을 말한다.   그러나 사유는 단어 다스리기를 단념하지 않는다.   사유는 부득이 단어들을 사용하면서 끊임없이 단어들을   자신의 법칙으로 환원시키기를 단념하지 않는다.   언어에 대한 신뢰, 즉 사물과 이름은 동일한 것이라는 믿음은   인간의 자발적이고 원초적인 행위이다.   단어가 가지는 힘에 대한 믿음은 인간의 가장 오래된 신앙들에 대한 회상이다.   즉, 자연엔 영이 깃들여 있고, 각각의 사물은 스스로의 생명을 갖는다.   객관적 세계의 닮은 꼴 언어에서도 역시 영이 깃들여 있다.   언어도 우주처럼 부름과 응답의 세계이다.   밀물과 썰물, 합일과 분리, 들숨과 날숨의 세계인 것이다.   어떤 단어들은 서로 끌어당기고, 어떤 단어들은 서로 밀치면서,   모든 단어들은 서로 상응한다.   일상어는 별과 식물을 다스리는 것과 비슷한 리듬에 따라 움직이는   살아있는 존재들의 집합이다.   가능한데까지 자동 기술법을 실천해 보았던 모든 이들은   스스로의 자발성에 맡겨진 언어들의 기이하고도 당혹스러운 상호 연관 관계를 알고 있다.   불러드림 evocation과 불러모음 convocation.   브르통은 ‘단어들도 사랑한다.’고 말한다.   시인은 이미지들의 강에 휩쓸려서 우리는 순수한 실존의 끄트머리를 건드리고   우리의 존재가 세계의 존재와 최종적으로 합일하는 통일된 상태를 예감한다.   조수에 대항하지 못한 채 의식은 요동한다.   그리고 갑자기 모든 것은 최종적인 이미지에 닻을 내린다.   벽이 우리의 행로를 가로막고 우리는 침묵으로 돌아간다.   이와 반대의 상태들-의식의 지나친 긴장, 언어에 대한 날카로운 감정,   이해력들이 부딪혀 불꽃 튀기는 대화들, 내면적 성찰이 무한으로 증대되는   투명한 화랑들-역시 하늘로부터 떨어져 내리는 느닺없는 구의 출현을 돕는다.   그것은 불멸의 정진 뒤에 주어지는 보상같은 것이다. 이성의 저항 뒤에 열리는   통로를 지나 우리는 조화로운 지대를 밟는다. 거기서 모든 것은 용이해 지고,   모든 것은 말없는 대립이며 기다렸던 암시가 된다.   우리들은 개념들이 운을 맞추는 것을 느낀다.   그때 우리는 사유와 구도 역시 리듬, 부름, 울림이라는 것을 알아챈다.   사유한다는 것은 적절한 음률을 타는 것이며, 번쩍이는 물결이 우리를 건드리자 마자   몸을 떨게 된다. 노여움, 열광, 분노, 그리고 우리를 우리 밖으로 팽개치는 모든 감정은   똑같이 우리를 해방시키는 힘을 갖는다.   전기 같은 힘을 가진 예기치 않은 구가 솟아오른다.   “시선이 불꽃을 튀겼다.”   “입으로 번개와 불꽃을 토했다.”........   저주받은 불순한 단어들이 난폭한 별처럼 폭발한다.   우주적 질서를 뒤흔드는 저주와 폭언.   사실 그러한 구들을 발설한 것은 우리가 아니었고, ‘자신 밖에’ 있었던 ‘타자’였다.   사랑의 대화들도 동일한 특징을 보여준다.   사랑하는 연인들은 종종 ‘말을 잃어버린다.’   모든 것-휴지와 감탄사, 웃음과 침묵-은 동시에 발생한다.   대화는 합의 이상의 어떤 것, 즉 화음이다.   연인들 자신은 보이지 않은 입이 발음한 두 개의 조화로운 각운이다.   말은 처음에 말을 부르지 않아도 다가와서 서로 결합한다.   이러한 결합과 이후의 결별은 순수한 우연의 소산이 아니다.   즉, 어떤 질서가 말들 사이의 친밀성과 거부감을 다스린다는 것을 알게 된다.   모든 언어 현상의 밑바탕에는 리듬이 존재한다.   단어들은 어떤 리듬의 원리에 따라 서로 모이고 흩어진다.   만일 언어라는 것이 비밀스런 리듬에 의해 지배되는 구가 끊임없이 변전하는 것이라면   그러한 리듬의 재생산은 우리에게 말을 다스리는 힘을 줄 것이다.   언어의 역동성은 시인으로 하여금 말 사이에 존재하는 끌어당김과 밀침의 힘을   사용하게 함으로써 언어의 우주를 창조하도록 이끈다.   시인은 아날로지에 의거하여 창조한다.   시인이 모델로 삼는 것은 모든 언어를 움직이는 리듬이다.   리듬은 자석이다. 리듬을 재생산할 때-박자, 각운,변주,유사어   그리고 다른 방법을 통하여 - 시인은 말들을 불러 모은다.   불모의 상태에 뒤이어 언어의 풍요로운 상태가 이어진다.   내면의 수문이 열리자 구들은 샘물처럼 혹은 분수처럼 솟아오른다.   시인과 마법사   시적 작용은 주문(呪文), 주술 그리고 다른 마법의 방법들과 다르지 않다.   시인의 행위는 마법사의 행위와 매우 유사하다.   시인과 마법사는 아날로지의 원리를 이용한다.   양자는 실질적이고 즉각적인 목적을 위해 행동한다.   그들은 언어가 무엇인지 혹은 그 본질이 무엇인지 묻지 않으며,   목적 그 자체를 위하여 그것들을 이용할 뿐이다.   철학자, 기술자, 현자와 달리 마법사와 시인은 자싱의 힘을 스스로에게서 추출한다.   모든 마법적 작용은 정화를 위한 고통스런 노력을 통하여 얻어지는   내면적 힘을 필요로 한다.   마법적 힘의 원천은 이중적이다.   즉, 마법을 위한 공식과 그 밖의 방법들, 그리고 마법사의 정신적인 힘,   곧 자신의 리듬과 우주의 리듬을 조화시켜주는 정신적 조율이 필요하다.   시인에게도 같은 일이 일어난다.   시인의 언어는 자신 안에 있으며 오직 그에게만 드러난다.   시적 계시는 내면적 탐색을 포함한다.   내적 성찰 혹은 분석과 전혀 다른 탐색이다.   탐색이라기보다는 이미지의 출현에 적절한 수동성을 야기시킬 수 있는 정신적 활동이다.   빈번히 마법사는 번역자와 비교된다.   마법사의 모습이 여전히 우리에게 매력적인 이유는   그가 신을 부정하고 인간의 의지를 긍정한 최초의 인간이었다는 사실에서 연유한다.   다른 모든 반역은 최초의 이러한 반역에서 출발한다.   주술사의 모습에는 과학자와 철학자의 모습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비극적 긴장이 존재한다.   마법사에게서 신은 가정이 아니며, 신자의 경우처럼 달래고 사랑해야할 실재도 아니다.   그것은 유혹이거나 정복하거나 비웃어야 하는 힘이다.   마법은 초자연적인 것에 대항하여 인간의 힘을 긍정하는   위태롭고 신성모독적인 기도(企圖)이다.   신들에게 대항하는 마법사는 인간의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홀로 있다.   그를 위대하게 하는 것은 바로 이 고독이며   사회성의 결여로 언제나 종국적으로 불모를 초래하는 것도 이 고독이다.   고독은 한편으로 그의 비극적 결단의 증거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자긍심의 증거이다.   결과적으로   자신을 뛰어넘지 못하는 , 다시 말해, 인간을 위한 선물로 변모되지 못하는 모든 마법은   자신을 삼켜버리며 끝내는 창조자까지 삼켜버린다.   마법사는 인간을 수단으로, 힘으로, 잠재된 에너지의 핵심으로 본다.   마법사의 반역은 고독한데,   그것은 마법적 행위의 핵심이 힘을 찾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법사에 대항하여 프로메테우스가 떠오르는데,   그는 서구적 상상력이 창조한 최고의 인물이다.   그는 마법사나, 철학자나, 현자가 아니라 영웅이며 불을 훔친 자이고 박애주의자이다.   프로메테우스적 반역은 인간이라는 종의 반역이다.   바위에 묶인 영웅의 고독에는 암시적으로 인간 세계로의 귀환이 내재되어 있다.   반면 마법사의 고독은 사회로 귀환하지 않는 고독이다.   마법, 즉 힘에 의한 힘의 탐색은 자신을 파멸시킴으로서 끝을 맺기 때문에   마법사의 반역은 불임이다. 근대사회의 드라마도 이와 다르지 않다.   마법사의 이중성은 이렇게 요약될 수 있다.   한편으로, 인간은 우주와 생생하게 관계 맺으려 하는 것으로, 일종의 보편적인 교감이다.   다른 한편으로, 마법의 실현이 암시하는 것은 힘의 탐색 바로 그것이다.   마법은 ‘무엇을 위하여’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마법사가 우주적 힘과의 의사소통과-인간이 우주적 힘과 하나가 될 때를 제외하고-   인간과 의사불통 사이에서 찢겨진 인물인 이유도 이 때문이다.   마법은 생명-우주 전체를 가로지르는 동일한 흐름-의 친교 관계는 긍정하지만   인간사이의 친교는 부정한다.   시인은 마법사가 아니지만 언어를 ‘생명의 사회’-카시러가 조화로운 우주의 마법적 비전을   정의한 것처럼-로 보는 시인의 개념은 마법의 개념에 접근한다.   시편은 주술도 아니고 주문도 아니지만, 안수기도의 방법으로   시인은 어넝의 비밀스런 힘들을 일깨운다.   시인은 리듬을 통하여 언어를 유혹한다.   하나의 이미지는 또 다른 이미지를 유발한다.   시는 리듬 위에 세워진 언어적 질서, 즉 구들의 집합이다.   리듬은 측량이 아니며 우리 밖에 있는 어떤 것도 아니다.   리듬에 우리를 부어넣고 ‘어떤 것’을 향하여 우리를 발사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리듬은 의미이며 무엇이가를 말한다.   시의 단어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그러한 단어들이 의지하고 있는   리듬이 이미 말하고 있다.   그러한 단어들은 줄기에서 꽃이 피는 것처럼 리듬에서 솟아난다.   리듬과 시 언어의 관계는 춤과 음악적 리듬 사이의 관계와 다르지 않다.   모든 춤은 리듬이며 모든 리듬은 춤이다.   리듬에는 이미 춤이 있고 춤에는 이미 리듬이 있다.   제의와 신화적 이야기는 리듬과 의미를 분리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리듬은 어떤 힘들을 매혹시켜 사로잡고,   다른 힘들을 쫒아내는 즉각적인 목표를 갖는 마법적 방법이다.   또한 리듬은 기념하기 위한 것 혹은 좀더 정확히 말하면,   어떤 신화를 재생산 하기 위한 것이다., 우주적 운율의 닮은꼴로서   말 그대로 인간이 원했던 것- 기우, 풍요로운 사냥, 혹은 적의 죽음-을   마들어 낼 수 있는 창조적 힘이다.   춤은 이미 씨앗 상태의 표상을 품고 있다.   리듬은 측량이 아니라 세계에 대한 비전이다.   리듬은 인간의 모든 창조의 뿌리이다.   신화와 제의의 이중적 현실은 그들을 품고 있는 리듬에 의지한다.   그리고 각각의 문명은 원초적 리듬의 발전으로 환원될 수 있다.   그대 중국인들은 우주를 두 리듬의 혼합으로 보았다.   ‘한번은 음이고, 한번은 양인 것을 도라고 한다.’   그라네가 관찰한 바에 의하면, 음과 양은 서양적 의미의 관념이 아니다.   또한 단순한 소리나 표시도 아니다.   우주의 구체적인 표상을 품는 기장이며 이미지이다.   실재들의 창조적 역동성을 갖는 음과 양은 서로 바뀌고, 서로 바뀌면서 총체를 낳는다.   그러한 총체 속에는 아무것도 말소되거나 추상화 되지 않는다.   각각의 모습이 특수성을 잃지 않고 생생하게 존재한다.   음은 겨울이며 여성들의 게절이고 집이며 그늘이다.   그것의 상징은 문門 이며 어둠 속에서 성숙하는 것, 숨어 있고 닫힌 것이다.   양은 빛이며 농사일이고 사냥이며 낚시이고 대기이며 남성들의 시간이고   열려 있음이다.   더위와 추위, 빛과 어둠,   “충만한 시간과 결핍의 시간, 남성적 시간과 여성적 시간-용의 모습과 뱀의 모습-   그러한 것이 생명이다.“   우주는 상호 대립하며 교류하고 보완하는 리듬의 양가적 체계이다.   리듬은 식물의 성장과 제국의 팽창, 수확의 증대와 제도의 확장을 다스린다.   리듬은 우주의 생생한 이미지이며 우주의 법칙이 현시적으로 드러난 것이다.   한번은 음이고 한번은 양인 것이 도이다.   우주를 리듬의 모임, 흩어짐, 그리고 다시 모임으로 느낀 것은 중국인 만이 아니다.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우주론적 개념들은   원초적 리듬에 대한 직관에서 싹튼 것이다.   리듬이 우리를 인간이게 하는 결정적 사실- 유한한 존재, 죽을 운명의 존재,   그리고 언제나 ‘어떤 것’을 향하여, ‘다른 것’ 즉 죽음,신, 사랑하는 사람,   우리와 닮은 사람을 향하여 던져진 존재-에 대한 가장 오래되고 지속적이며 단순한 표명이라는 사실이다.   모든 리듬은 하나의 태도이며 의미이고 세계에 대한 사이하고 독특한 하나의 이미지이다.   각각의 리듬은 세계에 대한 구체적 비전이다.   이미지이고 의미-삶에 대한 인간의 자발적 태도-인 리듬은 우리 밖에 잇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표현하는 우리 자신이다.   운율은 구체적인 시간성, 즉 반복될 수 없는 인간의 생명이다.   단테는 항성들과 영혼들을 움직이는 리듬을 사랑이라고 인식했다.   노자와 장자는 상보적 대립물로 된 다른 리듬을 듣는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리듬을 투쟁으로 여겼다.   리듬은 철학이 아니라 철학이 의지하고 있는 세계의 이미지이다.   우주적 리듬과 신화     어떤 사회나 두 개의 달력이 존재한다.   하나는 일상의 삶과 세속적 행위들을 다스린다.   다른 하나는 신성한 시간, 제의 그리고 축제를 다스린다.   세속적 날짜와 달리 신성한 날짜는 측량단위가 아니라 정해진 장소에   현현하는 초자연적 힘을 싣고 있는 생생한 실재이다.     모든 문화는 ‘시간의 종말’에 대하여 공포를 느껴왔다.   ‘출입(등장과 퇴장)의 제의’가 존재하는 연유가 여기에 있다.   고대 멕시코인들에게는 불의 제의는 새로운 시간의 도래를 유발시키기 위한 목적을 가진다.   별의 언덕에 모닥불이 피워지자마자 그때까지 어둠 속에 잠겨있던 멕시코 시 전체가 반짝였다.   이 순간 다시 한 번 신화가 현현했다.   공허한 연속성이 아니라 생명의 창조적 시간이 재생하는 것이다.   삶은 적어도 그 순간이 다 소모할 때까지는 지속될 수 있다.   그러나 새로운 시간의 재생은 숙명적인 것이 아니다.   성배grial의 신화처럼 사라져 버리지 않으려고, 사멸하지 않으려고 기를 쓰는   낡은 시간의 완고함을 이야기하는 신화들이 있다.   이러한 신화들에게는 불모가 지배한다.   평원은 고갈되고 여자들은 아이들을 낳지 못한다.   ‘나감(퇴장)의 제의’는 낡은 시간으로 하여금 젊은 후계자에게 평원을 내놓도록 강요한다.   이러한 신화는 거의 언제나 젊은 영웅의 구세주적 개입에 근거한다.   신화의 세계는 시간과 공간이 서로 얽히는 매듭이다.   신화는 과거이며 과거는 또한 미래이다.   신화들이 발생하는 시간적 영역은 인간의 모든 행동이 끝나고 수정 불가능한 과거가 아니라   언제나 현실화 될 수 있는 가능성들을 품고 있는 과거이다.   신화는 원형적 시간에서 진행된다.   원형적 시간이란 신화가 다시 재현될 수 있는 시간을 의미한다.   신성한 달력이 리듬을 갖는 이유는 그것이 원형적이기 때문이다.   신화는 현재에 실현될 준비가 되어있는 미래적 과거이다.   시간의 일상적 개념에서 시간은 미래를 지향하는 현재이지만 숙명적으로 과거에 닻을 내린다.   신화적 질서는 용어들을 전도시킨다.   과거는 현재에 닻을 내리는 미래가 된다.   현재 속에서 총체적인 현존 속에 과거와 미래의 모든 시간을 껴안고 있는 원초적 시간에   도달 할 수 있는 문들이 있지만, 세속적 달력은 그 문을 닫아버린다.   그러나 신화는 인간의 삶을 자신의 총체 속에 포괄한다.   리듬을 통하여 원형적 과거를,   다시 말해 현재에 현현할 준비가 되어있는 잠재적 미래인 과거를 현실화 한다.   우리가 ‘좋았던 시간’은 다른 모든 시간들처럼 흐름 속에 죽어간다.   반대로 신화적 시간은 죽지 않고 반복되어 현현한다.   시간에 대한 다른 표상들로부터 시화적 시간을 구별짓는 것은 원형적 특성이다.   언제나 오늘이 될 수 있는 과거로서의 신화는 언제나 반복하여 현현할 준비가 되어있는   부동하는 실재이다.     리듬의 반복에 의해 신화는 되돌아온다.   이 주제에 대한 고전적 연구에서 위베르와 모스는 신성한 달력의 불연속적 성격을 보여주며   리듬의 마법에서 이러한 불연속성의 기원을 발견한다.   “시간의 신화적 표상은 본질적으로 리듬같은 것이다.   종교와 마법에서 달력의 역할은 시간을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리듬화시키는 것이다.“   좀더 엄밀히 말하면 ‘원초적 시간’을 돌아오게 하는 것이다.   리듬의 반복은 원초적 시간의 초대이며 소환이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원초적 시간을 재창조하는 것이다.   모든 신화들이 시는 아니지만 모든 시는 신화이다.   신화에서처럼, 시에서도 일상적 시간은 변화를 겪는다.   내용이 없는 동질적 연속성의 시간이 리듬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비극, 서사시, 노래 등의 시는 반복하여 순간을 재창조하는데,   그 순간은 원형적 사건 혹은 그 사건들의 집합이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것이다.’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나 시인에게 지나간 것은 다시 돌아올 것, 다시 현현할 무엇이다.   과거에 그랬던 것이나 지금 그러한 것이 아니라 지금 되고 있는,   지금 생성되고 있는 시간이다. 재생되는, 재현되는 과거이다.   그리고 그러한 시간은 두 가지 방법으로 재현된다.   첫째는 시적 창조의 순간에, 그리고 둘째는 독자가 그 순간을 새로히 소환하여   시인의 이미지를 소생시켜 재창조 할 때이다.   시편은 어떤 입술이 리듬이 깃들인 구들을 반복하자마자 현실화되는 원형적 시간들이다.       “시인의 일은 일어난 사건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일어났으면 하고 바랐던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시가 다스리는 영토는 ‘제발....했으면’이다.   시인은 ‘욕망하는 자이다.’   결과적으로 시는 욕망이다.   그러나 그 욕망은 가능한 것으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며,   사실인 듯한 것으로 표현되는 것도 아니다.   이미지는 ‘그럴듯한 불가능’이 아니다.   즉 불가능한 것에 대한 욕망이 아니다.   시는 실재에 대한 배고픔이다.   욕망은, 최고의 욕망인 사랑의 충동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끊임없이 거리를 지워버리려 한다.   이미지는 욕망이 인간과 실재 사이에 걸쳐놓은 다리이다.   제발 ‘...같은, 제발 ....했으면’을 지워버리고 말하는 다른 은유-   즉, 이것은 저것이다.-가 있다.   욕망이 행동을 취하는 곳은 바로 여기이다.   비교하거나 유사함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환원 불가능해 보이는 사물들의 최종적인 동일성을 드러내고   더 나아가 유발시킨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 진실되게 보이는 것은 바로 시가 재창조 된다는 의미에서   모방적 창조일 때이다.   자신의 경험을 재창조할 때는 서정시인 조차도 미래에 다가올 과거를 소환한다.   시인은-어린아이, 원시인들, 그리고 요컨대 가장 깊숙하고 자연적인 자신의 본능을 붙잡아 매었던   고삐를 자유롭게 풀어 놓았을 때의 모든 인간들처럼 – 직업적 모방자라고 확신해도 역설은 아니다.   그러한 모방은 독창적 창조이다.   시간의 근원에 있고 모든 인간의 밑바닥에 있는 어떤 것,   시간 그 자체와 혼동되고 우리 자신과 혼동되는   그리고 우리 모두의 것이면서 동시에 유일하고 독특한 어떤 것을   불러내고 부활시키고 그리고 재창조하는 것이다.     시적리듬은 미래이며 현재인 그러한 과거, 즉 우리자신을 현재화actualization하는 것이다.   시구는 살아있는 구체적인 시간이다.   그것은 리듬이며 근원적 시간이고 영원히 재창조되는 것이다.   운문과 산문   리듬은 언어를 구성하는 가장 오래되고 항존하는 요소일 뿐 아니라   일상어보다 앞서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언어는 리듬의 소산이라고 말 할수 있다.   혹은 적어도 모든 리듬은 언어를 암시하거나 예시한다.   그렇다면 산문과 시를 구별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리듬은 모든 언어적 형태에서 자발적으로 주어지는 것이지만 ,   그것이 가장 충만되게 나타나는 것은 시이다.   언어는 리듬이 되려고하는 본래의 경향을 갖는다.   마치 신비스런 중력의 법칙에 따르려고 하는 것처럼,   말들은 자발적으로 시로 돌아간다.   또한 사유가 언어인 한에 있어서, 사유도 동일한 매혹을 경험한다.   사유를 이리저리 방황하도록 내버려두면 결국 리듬으로 돌아간다.   이성은 교감으로 변화되며, 삼단논법은 아날로지로 변환되고   이성적인 행진은 이미지의 흐름으로 변화된다.   그러나 산문작가는 일관성과 개념적 명료성을 추구한다.   그래서 개념으로서가 아니라 이미지로 명시하고자 하는 운율의   숙명적인 흐름에 저항하는 것이다.   시는 모든 시대에 속한다.   반면 산문은 특정사회의 고유한 표현 형태라 말할 수 있다.   시는 진보나 진화를 무시하며, 시의 기원과 종말은 언어의 기원이나 종말과 혼동된다.   원래 비판과 분석의 도구인 산문은 점진적인 성숙을 요구하는 것이며   일상어를 길들이고자 하는 일련의 기나긴 노력 뒤에 생겨나는 것이다.   시가 닫혀진 질서처럼 보이는 반면에 산문은 열리고 직선적인   건축물의 모습이 되려고 한다.   발레리는 산문을 행진에, 시를 춤에 비유하였다.   산문이 상징하는 기하학적인 형상은 선이다.   이와 반대로 시는 원형 혹은 구형으로 주어진다.   자기 자신에게 닫혀 있는 어떤 것, 즉 자족적인 우주로,   그안에서 종말은 되돌아 오고, 반복되고 재창조 된다.   그리고 이러한 끊임없는 반복과 재창조가 다름아닌 리듬이며,   밀려갔다 밀려오고, 드러누웠다가 다시 일어나는 조수(潮水)이다.   산문의 작위적 성격은 산문작가가 언어의 흐름에 몸을 맡길 때마다 증명된다.   시인, 혹은 음악가의 방법처럼 언어의 흐름으로 돌아가 스스로를 언어에 내재하는   끌어당김과 밀어냄의 힘에 이끌리도록 내버려 두자마자,   산문작가는 합리적 인 사유의 법칙을 위반하고   시의 울림과 교감의 분위기에 진입한다.   많은 현대 소설에서 바로 이런일이 일어나고 있다.   무라사키 부인이 쓴 는 끊임없이 산문과 리듬 사이에서,   개념과 이미지 사이에서 흔들리는 소설의 모호성을 가장 멀리 밀고나갔던   프루스트를 연상시킨다.   모든 언어적 리듬은 자신 안에 이미 이미지를 포함하고 있으며 실제적으로,   혹은 잠재적으로 완전한 시구를 구성한다.   운율은 리듬에서 생겨나서 리듬으로 돌아간다.   처음에는 양자 간의 경계는 희미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운율은 고정된 형태로 결정화 된다.   광휘의 순간이지만 동시에 마비의 순간이기도 하다.   언어의 간만(干滿)의 흐름에서 고립되면 시행은 소리나는 음격으로 변하고 만다.   언어는 산문과 시, 리듬과 담론사이에서 흔들린다.   리듬에 따르는 작시와 아날로지적 사유는 동전의 양면이다.   리듬 덕분에 우리는 이러한 우주적 상응을 인식한다.   다시말해 그러한 상응이 다름아닌 리듬의 나타남이다.   보들레르는 “자연에서처럼 정신 세계에서도 모든 것은 의미를 가지며,   상호적이고 상응적이다.....모든 것은 상형문자이다....그리고 시인은   상형문자를 해독하는 사람, 즉 번역자에 다름아니다“라고 말한다.   리듬으로 돌아가는 것은 실재에 대한 태도의 변화를 포함한다.   즉, 역으로 아날로지의 원리를 택하는 것은 리듬으로 돌아가는 것을 뜻한다.   고정된 운율의 작위성에 대항하여 강세 위주의 시작(詩作)이 가지는 힘을   긍정할 때, 낭만주의의 시인은 개념에 대한 이미지의 승리,   논리적 사유에 대한 아날로지의 승리를 선언하는 것이다.   엘리엇의 는 혁명적 시로 평가받았다.   그것의 주제는 단순히 냉혹한 근대 세계의 묘사가 아니라,   로마의 기독교적 질서에서 모범을 찾고 있는 보편적 질서에 대한 향수이다.   엘리엇은 근대 사회의 현실과 기독교적 질서를 대립시켰다.   그는 기독교적 질서를 다시 수용하고 변화시켜서 이교도들의 오래된 풍요의 제식에   개인적인 구원의 의미를 부여한다.   기독교적 가치의 세계, 그것의 중심은 천국과 지상과 지옥 사이의 보편적 아날로지   혹은 상응인데, 이러한 세게가 사라진 뒤에 인간에 남은 것은 사유와 이미지의   우발적이고 우연적인 연상뿐이다.   근대세계는 의미를 상실하였고 그러한 방향성의 부재를 보여주는 가장 적나라한 증언은   우주적이고 정신적인 리듬이 아니라, 우연에 의해서 지배되는,   관념들이 일으키는 연상의 자동성이다.   의 반대편에 이 있으며 바로 앞의 선례는 이다.  
930    심상운 시모음 댓글:  조회:359  추천:0  2019-06-30
심상운 시모음   헤드라이트       초여름 감자밭 고랑에 앉아 포실 포실한 흙 속으로 맨손을 쑤욱 밀어 넣으면 화들짝 놀라는 흙덩이들. 내 난폭한 손가락에 부르르 떠는 축축한 흙의 속살. 나는 탯줄을 끊어내고 뭉클뭉클한 어둠이 묻어있는 감자알을 환한 햇살 속으로 들어낸다. 그때 아 아 아 외마디 소리를 내며 내 손가락에 신생의 비릿한 피 냄새를 묻히고 미꾸라지처럼 재빠르게 흙 속으로 파고드는 어둠. 흙 속에 숨어있는 어둠의 몸뚱이에는 빛이 탄생하기 이전 우주의 피가 묻어있을 거라고? 그럼 붉은 피는 어둠 속에 서 나오기를 거부하는 우주의 꽃빛 파일(file)! 몇 장의 헌혈 증서를 남기고 떠나간 20대의 그녀는 하얀 침대에 누워 누군가의 혈관 속으로 흐르는 자신의 장밋빛 시간을 상상했을까? 아니면 비 오는 밤, 검정고양이가 청색 사파이어 눈을 번득이며 잡동사니로 가득한 헛간을 빠져나와 번개 속을 뛰어가고 있는 TV화면을 보고 있었을까? 나는 불빛이 번쩍하는 순간 번개 속을 통과한 검정고양이를 찾아 승용차의 헤드라이트를 켜고 강변도로를 달린다. 비가 그치고 가로수를 껴안고 있던 어둠들이 깜짝깜짝 놀라면서 몸을 피하는 게 희뜩희뜩 보이는 밤이다.               모형 전시실 또는 깨진 유리창       6월의 태양이 눈부신 한낮 국립박물관 모형 전시실에서는 신석기시대 근육질 젊은 사내의 돌칼 가는 소리가 난다. 사내는 숫돌에 칼을 갈다 가끔씩 고개를 들고 사냥할 때 쓰던 돌화살촉을 움켜쥐고 유리 상자를 깨고 뛰쳐나오려는 듯 허연 수은등 불빛을 노려보고 있다.     12월이 되면 카메라를 메고 세찬 눈보라로 뒤덮인 겨울날 뻘겋게 이글거리던 드럼통 석탄 난로 곁에 둘러서서 외지外地로 떠나려고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과 방금 검은 탄 속에서 나온 듯 이빨이 유난히 하얗게 빛나는 젊은 광부들의 뿌연 입김이 깨진 유리창에 묻어 있는 30년 전의 K역을 찾아서 눈길을 떠나는 그녀.     낮 12시 20분, 나는 그녀의 모형 작업실 벽에 걸려있는 컬러사진 검붉은 고철古鐵들의 무더기 사이로 돋아난 풀잎의 푸른 혈관 위에 앉아 있던 벌 한 마리가 잉잉 잉잉 방안을 돌며 유리창에 몇 번 몸을 부딪칠 듯하다가 열린 유리창 밖 환한 빛 속으로 날아가는 것을 본다.               뱀과 그녀       그녀의 그림 속 뱀들은 금 간 아스팔트 위에 무리지어 똬릴 틀고 있다. 풀밭을 떠나온 뱀들이 화물차가 100km 이상 달리는 검고 뜨거운 바닥에서 서로 엉겨 바들바들 고무락거린다. 햇빛이 그들의 허리에서 번쩍인다.     화랑畵廊에서 돌아 온 날 밤 침대 위에서 허리를 잔뜩 웅크린 나는 키가 30cm로 줄어들고 팔과 다리가 없어졌다. 새벽에 눈을 뜨니 내 옷걸이가 커다란 몸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미명의 어둠 속에서 옷걸이는 “넌 누구니”하고 묻는다. 내가 누구냐고? 하룻밤 사이에 내가 뱀이 되었다고?     아침 햇빛이 소리치듯 창문으로 환하게 쏟아져 들어온다. 햇빛의 뼈가 나를 일으킨다. 내 몸이 점점 커진다. 팔과 다리도 다시 생긴다. 거울에 반사된 빛이 사방으로 뻗어가고 있다. 빛A 빛B 빛C........빛A에는 구름의 살 향기가 묻어 있고 빛B에는 자동차의 경적이 묻어 있고 빛C에는 전화벨소리가 묻어있다.     그녀는 뱀들과 함께 빛의 향기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고 한다. 창 밖 허공엔 눈에 보이지 않는 투명한 뱀들이 혀를 날름거리며 반짝이고 있다.       오전 10시 30분의 그래픽       기원전 7세기 그리스 신전神殿의 원형을 복원한 화려한 채색 조각상 그래픽이 TV 모니터 속에서 가볍게 빙빙 돌고 있는 오전 10시 30분     횡단보도를 건너온 30대 여인의 손에 들려있는 구겨진 풍경화風景畵에서 청계산 숲속 산새 몇 마리 나와 삐삐삐 쪼로롱 삐삐삐 쪼로롱 허공에 반짝이는 초록 물방울 뿌리며 빌딩 사이를 지나 푸른 하늘로 날아간다     K화백이 지난 밤 하얀 화선지 위에 내려놓은 검은 묵향墨香의 산 속에서는 걸망을 멘 한 사내가 나와 사방을 둘러보다 징검다리를 건너 빨간 노을이 물든 여진女眞의 마을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나는 이른 봄 햇살의 눈부신 바늘들이 촘촘히 박혀 있는 저수지 수초水草 속에서 발가숭이 아이들이 깔깔거리며 나오는 그림을 그리다가 채소장수의 확성기 소리에 창밖을 본다         빛 또는     검은 옷을 입은 빛이   무표정한 아파트 유리창에 매미처럼 붙어서   부르르 부르르 떨기 시작하는 시간     성난 개들이 어둠 속 4차선 도로를 횡단하며   번쩍이는 빛을 향해 컹컹 짖어대고     한여름 바닷가 뜨거운 모래밭에선   배구를 하고 있는 맨발의 30대 비키니   여자들의 번들거리는 붉은 살     흰옷을 입은 장발의 50대 남자가   푸른빛이 흐르는 무대 위에서   하늘을 향해 한껏 팔을 벌리고 있다     노랑나비       비오는 날 번쩍이는 빛을 향해   어두운 헛간을 뛰어나간 고양이의 눈빛 같은     노랑나비 하나   내 숲의 어둠 속을 떠다니며 반짝인다     李箱은 에서   “찢어진壁紙에죽어가는나비를 본다. 그것은靈界에絡繹   되는秘密한通風口“라고 했다     그는 오늘도 영계의 컴컴한 숲속에서   죽은 나비와 춤을 추고 있을까?     정리해고 된 40대의 사내가   중고 트럭 조수석에 아내를 태우고   휘파람 불며 강변도로를 달리고 있다.       노랑나비 한 마리   푸른 강물을 배경으로 날고 있다.         블랙홀(black hole)           빛조차 빠져나갈 수 없는 검은 구멍이 되어 소멸하는 거대한 별에는 정지된 시간들이 검은 옷을 입고 모여 있는 ‘사건의 지평선’이 있다고요? 그들은 모여 있는 것이 아니라 화석化石 속의 물고기처럼 박혀 있을 거라고요?     아산병원 영안실에 있는 그녀의 시신屍身도 자세히 관찰하면 연료가 모두 소모된 마지막 순간에 자체의 중력으로 인해 스스로 붕괴되어 생성하는 죽은 별들의 검은 구멍과 다르지 않다고요?     오늘 밤 당신은 35000피드 상공의 비행기가 컴컴한 허공 벽에 얼어붙어 있는 것을 상상해 보세요. 우주의 얼음덩이 속에서도 뜨거운 입맞춤을 하는 남녀의 그림자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초여름 풍경                 뱀 굴에서 미끈미끈한 몸뚱일 좌우로 흔들며 뱀 한 마리 뱀 두 마리 뱀 세 마리 뱀 네 마리 나온다. 가늘고 긴 혀 날름거리며 나온다. 엊저녁 기억들은 푸른 가지 사이에 허연 비닐봉지같이 걸어놓고 햇빛 속으로 스르르르 스르르르 미끄러지며 나온다.     발가숭이 햇빛들은 분수噴水에서 물장구치며 깔깔거리고 아이스크림처럼 햇빛을 빨아먹는 가로수 잎사귀들 사이로 풍선 하나 풍선 둘 풍선 셋 풍선 넷 둥둥 떠오른다. 찢어진 풍선들은 보이지 않고 새 풍선들이 떠오른다.     초여름 풀 향기 풍기며 19살의 오드리 헵번Audrey Hepburn이 청계천 물속에서 나온다. 눈이 큰 헵번, 입이 큰 헵번이 눈웃음치며 나온다. 휴대폰을 들고 시청 앞 광장 잔디 위에 앉아 있는 목이 긴 헵번은 빨간 손수건을 가슴에 달고 있다.     가슴에 철퇴를 맞고 허물어진 50년 전 건물들의 폐자재 더미 속에서 나온 유리창의 파편 조각들이 반짝인다. 덤프트럭에 실린 우그러진 창틀을 향해 반짝인다. 원주민들의 구멍 난 양말짝, 찌그러진 양재기, 찢어진 홑이불에 묻어있는 얼룩을 보며 반짝인다.                   한여름의 검은 자전거와 파란 비닐봉지와 빨간 모자       파란 지붕의 자전거 보관대에 쓰러져 있는 검은 자전거의 바퀴살이 햇빛에 번쩍이고 있다. 오전 10시 46분, 우체부의 빨간 오토바이가 서 있는 가로수 밑으로 아이들이 아이스크림을 빨며 지나가고 점점 뜨거워지는 8월의 태양. (검은 자전거의 주인은 나타나지 않고) 자전거 보관대의 파란 플라스틱 지붕은 자신의 가슴을 다 드러낸 채 번쩍이고 있다.     그 파란 플라스틱 지붕은 왜 하루 종일 번쩍이고만 있을까요? 지금 을지로 상공을 날아가는 반투명의 파란 비닐봉지는 몸무게가 0으로 줄어든 나의 모습이에요. 나는 시청 앞 광장을 지나 바람에 출렁이며 청계천 다리 위를 가고 있어요. 나처럼 가끔 허공을 떠다니고 싶으면 눈을 감고 공중으로 떠오르는 0의 감각에 집중해 보세요. 그리고 몸의 무게를 계속 줄여 보세요. 그러면서 저기저기 빌딩 창문 위 하늘로 둥둥 떠가는 자신을 느껴 보세요. 검은 자전거의 주인이 노랑 풍선이 되어 햇빛에 반짝이며 여의도 쪽 상공을 날아가고 있는 게 보일 거예요.     아, 아, 여보세요. 8월의 풀밭에서는 빨간 모자를 쓴 발가숭이 아이들이 모여서 노란 나팔을 불기도 하고 파란 페인트 통을 굴리며 뱀과 놀고 있다고요? 그 맨살의 아이들이 사람들의 잠속 연못에 들어와서 물장구칠 때가 있다고요? 그 시간에 꿈의 식탁에 앉아 음식을 먹으면 빨간 꽃잎 요리가 아이스크림처럼 달디 달다고요? 그것이 한여름 낮잠의 신비한 맛이라고요?                     가방 또는 붉은 바닷물       나는 나의 가방 속으로 들어가고   그는 그의 가방 속으로 들어가서   불을 켠다     내 가방은 빨간 토마토들이 제각기 불을 반짝이는   도시의 상공을 떠다니고   그의 가방은 하와이 푸른 해변 위로 둥둥 떠간다     나는 가방 속에서 방울토마토를 깨물며   젊은 가방들이 터뜨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20대의 백남준이 도끼를 휘두르고   부서지는 피아노가 비명을 지른다     피아노의 비명 속에서 튀어나온 붉은 바닷물이   허공에서 지렁이처럼 꿈틀거린다     순간 내 가방도 꿈틀대며 다른 허공으로 치솟는다         붕어빵이 구워져 나올 때       중계동 은행사거리 40대 사내의 붕어빵틀에서   뜨겁고 말랑말랑한 붕어빵이 구워져 나올 때     전자상가 TV 화면에는 시리아 반정부군의 자살폭탄으로   반쯤 부서진 건물에서 들것에 실려 나오는 사상자들     나는 제주산 노란 감귤 한 봉지를 사들고 행인들이 붐비는   4차선 도로를 건너가고     내 옆을 깔깔거리며 지나가는 10대 여자 아이들     아파트 화단 젖은 흙속에서 10cm 가량의 검붉은   지렁이 한 마리가 꿈틀거리고 있다     통화       아 아, 여보세요. 40대의 사내가 한강대교 아치 위에 올라가서 집 나간 아내를 찾아달라며   자살소동을 벌이고 있는 걸 봤다구요. 그 사내는 금방이라도 뛰어내릴 듯 뛰어내릴 듯 아슬아슬한 곡예를 하고 있었다구요. 3월의 하늘에선 확성기를 든 경찰과 구경꾼들에게 주는 선물인양 하얀 눈송이를 흩뿌렸다구요.     말수가 적은 40대의 회사원 K씨는 1년에 한두 번 손에 날카로운 못을 들고 자신이 사는   아파트 주차장 고급 승용차들의 차체에 굵은 금을 긋고 다닌다구요.     망치를 들고 깨진 유리창 조각들을 더 잘게 부수고 있는 인부들의 얼굴이 점점 환해지고   있어요. 그들은 망치질에 신명을 풀어내는 듯 리듬을 타고 있어요. 작은 알갱이로 돌아간 유리들도 햇빛에 반짝이고 있어요.     아 아, 여보세요. 조주 선사가 신발을 벗어서 머리에 이고 한강대교를 걸어가고 있다구요?     * 조주 선사(778-897):『육조단경』에 나오는 중국의 선승. 선가(禪家)에서는 조주고불(趙州古佛) 또는 조주라 부른다. 불교의 근본원리를 묻는 질문에 “뜰 앞의 잣나무니라.”라는 말을 했다.       자살폭탄 또는 푸른 울음       자신의 부풀어 오른 봉오리를 만지며 은밀한 욕망 속으로 잠입하는 영화 속의 그녀. 밤마다 폭탄을 준비하는 그녀의 몸은 800만 화소의 선명한 영상 속에서 움직인다.     날카로운 과도果刀로 사과를 도막내어 빨갛게 익은 사과의 중심에 박혀서 스스로 소리 없는 폭발을 꿈꾸고 있던 까만 씨앗 몇 개를 들여다본다. 그들도 촉촉한 살의 유혹 속에서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이고 있던 걸까?         TV 뉴스 자막이 사라지자, 한여름 밤 안동 지레 마을 산 개구리들이 어둠 속에서 일제히 쏟아내는 푸른 울음소리가 달빛 속을 벗어나서 무한허공으로 출렁거리며 퍼져나가고 있다.           사각형과 삼각형과 원         사각형 스크린 속으로 들어가면 수없이 많은 각종 스크린이 보인다. 아침 7시. 사각 침대 위에서 기지갤 켜며 일어난 삼각형이 사각문을 열고 나오고, 원이 통통통통 튀면서 그 뒤를 따라온다 삼각형은 원의 손을 잡고 파랗게 출렁이는 바닷가로 뛰어간다 사각형의 바다 위에서 삼각형의 돛배가 하얀 물보랄 날리며 신나게 달린다     몇몇 삼각형이 무어라고 소리치며 사각형의 오래된 집의 창문과 벽을 부수고 있다 사이렌을 울리며 사각형의 경찰차들이 몰려오고, 100여 명의 삼각형과 원이 둘러서서 응원을 한다 그들은 손뼉을 치며 응원가를 부르다가 가슴팍 속주머니에서 노랑 풍선을 꺼내서 하늘로 날린다. 그 풍선들은 허공에서 서로 손을 잡고 얼굴을 비비고 입맞춤을 한다 입맞춤을 할 때마다 풍선의 입 속에서 또 노랑 풍선들이 나와서 파란 하늘을 가득 채운다 대도시의 봄 하늘에 유채꽃이 만발한다     밤 12시 20분. 아이슬란드의 거대한 육각형 빙산 벽이 철썩철썩 무너져 내려 새파란 육각수의 바다 속으로 떨어진다 수천만 톤의 새 육각수가 바다를 넘어 사각형의 도시건축물都市建築物들을 우르릉우르릉 흔들며 밀려오고 있는 밤이다           물고기 그림         겨울 저녁, 물고기는 투명한 유리 공간 속에 혼자 떠 있다. 느릿느릿 지느러미를 움직이며. 그는 원주에서 기차를 타고 k읍으로 간다고 했다. 흰 눈이 검은 돌멩이 위로 나비처럼 날고 있다. 유리 밖으로 뛰쳐나갈 듯 위로 솟아오르던 물고기가 밑바닥으로 가라앉는다. 그는 공중에서 부서져 내리는 하얀 소리들을 촬영하고 있다고 한다. 나는 함박눈이 내리는 그의 설경 속으로 들어간다. 그는 보이지 않고 그의 걸걸한 목소리만 떠돌고 있다. 유월 아침에 나는 겨울 물고기 그림을 지우고 초여름 숲 속의 새를 넣었다. 그때 설경 속으로 떠나간 그가 나온다. 오전 10시 30분 나는 푸른 공기 속을 달리는 버스 속에 앉아 있다.           오토바이가 달린다       푸른 오토바이가 달린다   푸른 소리를 사방에 뿌리며   무너진 건물 속에서 나온 피 흘리는 시신들이   흰 천에 덮여 있는   바그다드 한복판을 달린다     빨간 오토바이가 달린다   엉덩이에서 하얀 물보라를 뿜어내며   여름 바다 위를 달린다   해변의 아이들이 손을 흔들며 뛰어 온다     하얀 오토바이가 달린다 산맥을 넘어   붉은 토마토 즙을 온 몸뚱이에 바른   벌거숭이 사내들이   떼를 지어 뛰어가는 도시 위를 달린다     노란 오토바이가 달린다 혼자서 신나게   비가 갠 들판을 달린다     “어이, 저거 봐, 오토바이가 무지개 허리 위로 올라가고 있어.”   시골 사람들이 손을 흔들며 소리치고 있다                   파란 의자     아침 10시, 그녀는 파란 의자에 앉는다     앉아 있는 그녀를 하얀 구름이 휩싸고   빨간 버스가 그녀와 구름을 싣고 달린다     (TV 속에서는 굶주린 하이에나 두 마리가 뚝뚝   뻘건 피 떨어지는 누우새끼의 허벅지를   입에 물고 아프리카 초원을 달리고 있다 )     그녀는 구름이 만든 아이스크림을   한 입 베어 물고   무거운 가방을 든 검은 외투의 사내에게 손을 흔든다   사내도 그녀를 보고 웃으며 손짓한다     버스 안은 침묵들이 움직이고 있는 빈 악보 속 같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음표들이 투명한 물방울로   둥둥 떠다니고 있다     그녀는 그 방울들을 손가락 끝으로 톡톡 터뜨린다   그럴 때마다 방울 속에서 나온 노란 알몸의 소리들이   쪼로롱거리며 버스 안에서 뛰어놀다가   바람에 실려서 도시의 하늘로 줄지어 날아간다     도시를 빠져나온 빨간 버스는   돌고래들이 솟구치는 태평양 바다 위를 달린다   출렁이는 바닷물이 그녀를 덮친다   그때 그녀의 가슴 속에서 뛰쳐나온 물고기 한 마리가   은빛 지느러미를 퍼들거리며 튀어오른다     순간 그녀의 눈 앞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2001년 9월 11일 아침, 뉴욕 무역센타 쌍둥이 빌딩   눈부신 유리창 속으로 날아 들어가 굉음을 내며   폭발하는 은빛 비행기     (그 은빛 비행기에는 검은 외투를 벗어버린   알몸의 사내가 타고 있었다고?)     아침 11시, 빨간 버스는 아마존 숲 위를 날아가고   그녀의 파란 의자는 더 반짝이기 시작한다       환각제 복용       커피를 마시던 사람들이 떠난 뒤에도 그들이 자리에 두고 간 가슴선이나 허리선이나 다리의 선이 보인다. 20대 아가씨들이 벗어놓고 간 볼록한 가슴 선에선 노란 봄꽃냄새가 물씬 풍긴다. 종업원들이 그 선들을 모아 쓰레기통에 버려도 빛 밝은 오전엔 구석에 숨어있던 둥근 선들이 제각기 반짝이는 물방울이 되어 유리창 밖 허공으로 둥둥 떠다니는 게 선명하다.     2월 중순 달리는 승용차 유리창에 윙윙 휘날리며 떼 지어 달라붙는 선들. 브러쉬는 백색 환각제 같은 무수한 선들을 계속 지우지만 도로 옆 막 피어나는 하얀 꽃송이들 속으로 자주 끌려들어가는 바퀴. 차는 발긋발긋한 딸기를 가득 안고 맨살 그대로 누워있는 비닐하우스의 둥근 허리선이 보이는 시골 눈길 뿌연 안개 속에서 미끄러진다.     그때 라디오에선 미국 인기 가수의 죽음에 대해 심층보도하며 죽음의 원인이 환각제의 과다 복용이라고 한다. 봄눈 오는 날 오후 3시 20분. 죽은 가수의 뜨겁고 경쾌한 목소리가 전라북도 부안 고랑 진 눈밭에 선홍빛 물방울을 뿌리고 있다.                       파란색 기차           파란색 기차, 파란색 기차는 긴 꼬리를 달고 하늘을 날아가는 기차. 여름밤엔 노란 불을 켜고 여우, 뱀, 방패, 전갈, 화살, 직녀, 도마뱀, 헤라클레스, 돌고래, 백조, 견우의 나라를 지나 반인반마半人半馬의 키론이 사는 은하수의 남쪽 궁수자리로 가는 기차. 젊은 화가들은 일곱 살 아이들의 그림 속으로 들어가서 파란색 기차를 타고 별나라 여행을 한다. 기차 옆에서는 우주의 고래들이 허연 거품을 뿜어내며 신나게 솟구치고, 기차의 창을 열고 고래 떼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며 와와 소리치는 아이들. 펄떡펄떡 솟구치는 고래 옆으로 우주 로켓이 유유히 지나가는 한낮, 초록 별 연못가에서는 느릿느릿 기어가는 무지갯빛 달팽이와 폴짝폴짝 뛰는 왕눈이 개구리가 식탁에 앉아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다. 파란색 기차, 파란색 기차. 나는 먼 은하수로 날아가는 긴 꼬리 기차 대신 아이들과 놀이동산에서 파란색 기차를 탄다. 파란색 기차는 딸랑딸랑 방울소리를 내며 파란 나라로 들어간다. 한여름 어느 바닷가 물개들의 도시. 건물의 지붕 위로 날렵하게 날아오르는 검은 물개들의 쇼. 물개들의 등에서 찬란하게 반짝이는 5월의 햇빛이 내 뇌 속을 파랗게 휘감는 일요일이다.           사각형 스크린       비 그친 아침, 나는 닫힌 창문을 연다. 스르륵 열린 사각형의 스크린 속에서는 오토바이를 타고 경쾌하게 달리는 구름 A, 구름 B,구름 C. 이어서 펼쳐지는 파란 여름바다의 영상. 여름바다, 여름바다, 여름바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출렁인다 동해 화진포에는 빨간 사과 빛 안개. 나는 그곳에 푸른 비늘 덩이로 살아 움직이는 집을 지어 놓았다 그 집은 환상의 집. 나는 아이들에게 우리들의 시간 밖에서 일하는 푸른 혼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별빛이 찬란한 밤바다 모래 위를 걷는다 사각형 스크린은 무한 공간. 그 속에 가득한 여름바다, 여름바다 여름바다는 나뭇잎에서도 출렁이고 땅강아지 집에서도 출렁이고 아스팔트 속에서도 출렁이고 노래방에서도 출렁인다 젊은이들은 동해의 고래를 잡으러 가자며 매일 밤 어깨동무를 하고 여름바다로 떠난다. 그들에게 바다는 황홀한 전율의 출렁임. 햇빛 번쩍이는 검푸른 등을 보이며 파도가 밀려올 때마다 사각형 속 스크린도 부르르 부르르 온 몸을 떤다. 스크린은 사각형을 확 밀어버리고 수영복차림으로 뛰어나가려는 거 같다 그때 사각형 스크린 밖에서 사람 A가 열무, 가지, 오이, 호박을 트럭에 싣고 와서 스피커로 “무공해 싱싱한 채소를 싸게 팝니다”라고 소리친다. 캄차카 바다 돌고래들이 펄떡펄떡 솟구치고 있는 장면이 TV 화면에 가득한 아침이다             미완성의 시   -그림 감상하기     그의 방 우측 벽에 걸려 있는 첫 번째 그림- 검은 철제 의자 위에 사람 대신 활활 불타는 붉은 꽃 한 다발이 앉아있고, 그 밑에 “죽은 뱀의 영혼은 발가숭이로 꿈틀거리며 꽃밭의 환한 햇빛 속으로 들어갔을까?”라는 글이 붙어있다. 나는 그 글 밑에 “영하 10도의 겨울 밤 시멘트 도로 바닥에 귤 장수가 떨어뜨리고 간 노란 색종이 같은 귤의 꿈을 보았느냐? 고 쓴다 그는 그 밑에 “시인들은 밤마다 죽은 언어가 새로 태어나는 나라로 여행을 떠난다고?”라고 또 쓴다     세 번째, 발가숭이 노인들이 노란 해바라기 밭으로 뛰어가는 그림을 지나 다섯 번째, 식탁 옆 젊은 여자의 풍만한 궁둥이 그림 곁으로 가는 순간, 벽에 걸려 있는 네 번째 그림- 뒤척이는 태평양의 퍼런 몸뚱이에서 물이 흘러내린다. 그는 그 물을 수조水曹 속 물고기들에게 매일 부어준다고 한다       그때 그의 두 번째 그림 속에서 나온 파랑 공, 초록 공, 노랑 공, 빨강 공, 하양 공이 거실을 이리저리 굴러다니다 점점 부풀어 식탁이 되고 놀이터가 되고, 침대가 되고, 의자가 되고, 남자 여자 어른 아이들과 들판을 통통통통 신나게 튀어가고, 마을 언덕에 봄빛이 눈부신 한낮 하늘을 나는 마차가 되어 지붕 위를 둥둥 떠간다. 나는 찬란한 햇빛 속에서 공이 터지는 환상에 전율한다     그림 또는 링크           산 너머에서 산 너머로 오가면서 어디론가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다가 나타나는 것은 구름? 그 구름들은 수분덩이. 사람보다 더 많은 수분을 안고서도 유유하다 한 목동이 언덕 풀밭에 앉아 풀피릴 불고 있다 메에 메에 우는 양들은 공기가 희박한 고산지대의 경사진 돌밭 길에서 내려오지 않는다. 그들 머리 위에는 새파란 하늘과 흰 구름이 있다 19세기 그림이 21세기의 나를 유유하게 휘감는다 나는 어디로 가야 그 구름과 양을 만날 수 있나? 지하철 4호선 분실물 센터에는 양털실로 짠 모자가 있다. 그 모자는 울지 않는다 그 모자의 DNA에는 고산지대의 기억이 들어있지 않을까? 나는 양털의 기억 속 좁은 경로를 따라가다가 길을 잃는다. 양털 속에는 하얗게 말라버린 양의 숨소리만 묻어있다 나는 햇빛이 환한 내 의식의 방으로 들어가서 양이 걸어갔음직한 북한산 향로봉 계곡 바위 길을 링크한다. 순간 양은 지워지고 5월의 하얀 아카시아 꽃향기가 물씬물씬 솟아나며 쌔애롱찍 쌔애롱찍 능선의 산새들 소리가 귀를 울리는 사이사이로 "순수한 떨림은 기호를 넘어서는 곳에 있다"는 누군가의 말소리가 새어나온다 나는 그 소리에 취해 일행들과 더 깊은 산속 숲길로 들어가는 상상을 하다가, 깜박하는 사이에 하루 종일 녹취한 북한산 계곡 물소리와 어른 손바닥보다 큰 떡갈나무 잎사귀들의 푸른 숨소리가 출렁이는 등산 가방을 지하철 4호선 전동차 바닥에 놓고 내렸다     * DNA: 디옥시리보핵산(Deoxyribonucleic acid)의 약자. 모든 살아 있는 세포에서 볼 수 있고 유전형질을 전달하는 복잡 한 유기 화학적 분자구조           우주의 시간         그 미술관 대형 바다 그림 속에는 10년 전에 교통사고로 죽은 그녀의 가족들이 푸른 살 번득이며 파도치고 있다 남편과 아이들이 그녀의 손을 잡고 눈을 반짝이며 춤을 추고 있다     밤 11시20분, 사이언스 TV에선 은하계 넘어 어느 별에 납치되었던 지구의 사람들이 눈부신 빛에 휩싸여 귀환하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4,400명의 귀환인 들은 우주의 0의 시간 속에서 살다왔다고 한다       3월에 내리는 함박눈은 서로 다른 집에 살면서 애태우다가 떠나간 이들이 만나서 산과 들과 바다에 눈부신 알몸으로 쏟아져 내리는 장면을 하얗게 풀어서 보여주고 있다 눈의 입자 속에서는 눈물을 안고 살아온 1000년도 우주의 0의 시간이 되어 반짝이고 있다       공과 아이           파란 옷을 입은 아이가 꿈속에서 가지고 나온듯한 빨간 공을 길바닥에 굴리며 놀고 있다. 공은 반짝이며 굴러가고 아이는 공을 쫒아 소리 지르며 뛰어간다 거리의 유리창들이 놀란 눈으로 내려다보는 아침 9시, 공을 따라 신나게 뛰어가는 아이. 공은 주택가를 빠져나와 통통통통 공장 굴뚝을 오르기도 하고, 통통통통 푸른 가로수 가지 위로 올라가 나무 위에서 건너뛰기를 하다가 초록 들길을 달리는 버스 지붕 위에 내려 앉아 잠시 멈춰 있다 아이도 버스지붕 위에서 흰 구름을 보며 쉬고 있다       긴 사다리를 허공에 설치하고 구름 위로 올라가는 TV 속 사내가 당신을 유혹한다고요? 그래서 당신도 파란 옷의 아이처럼 빌딩과 빌딩을 휙휙 건너뛰고 싶을 때가 있다고요? 오늘도 꿈속에서 본 빨간 공을 찾아서 뛰어다니다가 빌딩 옥상 구석에 누워서 10월의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고요? 그 아이의 집은 해초들이 나부끼는 바다 속인 거 같다고요? 아이의 몸에선 바닷물 냄새가 난다고요? 빨간 공은 수평선의 해 같다고요?       버스 지붕 위에서 쉬고 있던 아이가 빨간 공과 함께 노랗게 불타는 한낮의 해바라기 밭으로 뛰어간다. 그 뒤를 밀짚모자를 쓴 이중섭이 화판을 메고 걸어가고 있다       30대 여인 또는 구렁이       한 청년이 풀밭에서 통조림 캔을 딴다. 검푸른 살의 꽁치 한 마리가 책처럼 잘 요약되어   삭아 있다. 이집트 미이라의 여인이 관棺 속에서 꿈틀거리며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고대신전古代神殿의 조각상에서 나온 30대 여인이 혼자 중얼거린다. “가면을 쓴 사내가 칼을 들고 말했어” “신神은 인간의 피를 좋아 한다고” “나는 그와 잔 적이 있어” 그녀의 그림자 뒤에서 붉은 노을이 TV 화면 가득 이글거린다     작은 새들이 찌르르 쫑쫑 찌르르 쫑쫑 경쾌한 소리로 날고 있는 5월의 물푸레나무 숲에서 어젯밤 드라마 속 여인이 자신의 검은 머리 위로 물을 쏟아 붓고 있다 그녀의 허리가 푸른 잎 사이에서 구렁이처럼 햇빛에 번득인다           은백색 미확인 비행물체         순식간에 내 눈의 자동 셔터가 찍은 한 컷의 동영상. 2008년 5월 25일 정오 일행들과 북한산 사모바위 틈에 뿌리 뻗어 만개한 라일락 꽃 짙푸른 향기에 취해 있을 때, 햇빛 환한 비봉碑峰 쪽으로 휘익 날아가던 은백색 깃털들. 야아, 소리 지를 틈도 주지 않고 반짝이는 빛을 던지며 10분의 1초의 속도로 내 시야를 벗어나는 은빛 부챗살. 그 반짝이는 부챗살은 화창한 초여름 날 산이 사람들에게 보내는 경쾌한 UFO? 그럼 지금 산의 가장 깊은 곳에서는 무성하게 돋아난 녹색 이파리들이 노랑 하양 보라 꽃들과 어우러져 한창 신명나는 판을 벌이고 있는 중! 12월 아침 아이들과 식탁에서 죽은 닭의 살점을 포크로 찍어 먹으며, 빈센트 반 고흐의 ‘프로방스의 시골길 야경’ 사이프러스와 찬란한 별밤 길 그림을 보고 있을 때, 소리 없이 도시 전체를 점령해버린 은백색의 젊은 눈들. 질주하는 차바퀴에 깔린 눈들의 몸에서 나온 맑은 피는 도로에 줄줄 흐르고, 아이들은 포크를 던지고 와아, 환성을 지르며 공터로 뛰어나가고, 도시는 하루 종일 은백색의 축제. 너는 지금 사람들의 무의식無意識 속 공간을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환한 불꽃들을 팡팡 터뜨리는 UFO의 고향을 찾아 네팔로 가고 있는 중이라고? 해발 5000미터가 넘는 백색고산지대白色高山地帶. 그곳은 어떤 것이든 그 자체만으로 존재하기 어려운 지점. UFO의 탄생지는 그곳 새파란 공기층 속 어딘가에 있을 거라고?     *UFO:미확인 비행물체       이미지 여행             너는 이미지가 형성되기 이전의 공간 속으로 들어간다고? 거기에는 빛도 어둠도 아닌 것들이 웅숭그리고 있을 것 같지만 실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다만 무엇이 휘익 휘감는 느낌만 든다고? 너는 그림자여서, 그 느낌은 빛이 발산하는 백색의 전율이라고?     어디서 둥둥둥둥 소리가 들려오고 막이 오르면, 무대 뒤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간 너는 거기서 또 다른 이미지를 형성하는 원소가 된다고? 그곳에는 시간을 지워버리는 안개의 덩어리들이 솟구쳐 오르고, 너는 투명한 물방울 같은 것으로 둥둥 떠올라서 어디든지 갈 수 있다고?     너는 아침 햇빛이 물고기 비늘처럼 반짝이는 나일 강을 내려다보다가 히말라야 하얀 눈 산 위를 지나간다고? 너는 도시의 전동차 안을 떠돌기도 하고, 유람선을 타고 가면서 사람들의 말소리를 듣기도 한다고? 나는 너와 통화를 하다가 나도 모르게 앙코르와트 사원 숲 푸른 공기 속을 둥둥 떠간다. 그때 사원의 짙은 그늘과 무한 질량의 환한 햇살 사이를 넘나들며 UFO처럼 번쩍이다 사라지는 것들이 보인다       맨살에 링크하기     한 청년이 공원 풀밭에서 통조림 캔을 툭하고 딴다 그 속에 꽁치 한 마리가 웅크리고 있다. 유통기한이 찍힌 주검이 눈부신 5월의 햇살 속에서 검푸른 살을 드러낸다 눈감고 있던 맨살이 꿈틀거린다     물에 젖은 살에서 하얀 거품을 일으키는 비누의 살을 만진다. 비누는 아무에게나 포동포동한 맨살의 향기를 풍기며 몸뚱일 비틀다가도 가끔 미끄러져 나와 세면대 바닥에서 통통거린다     누가 푸른 바다를 유리병 속에 넣고 어항이라고 했을까? 열대어 두 마리 맨살 번득이며 유유히 지느러미를 흔들고 있는 오전 11시 20분 한 쌍의 남녀가 산호초 화려한 바다 속을 보며 어깨를 감싸고 있다     ( )   * ( ) 안은 당신의 상상이 들어가는 공간입니다. 링크해서 펼쳐보세요. 그러면 당신의 마음이 반짝이며 나타날 것입니다.           아스팔트 위의 맨살 여자       아스팔트 위에서 30대의 여자가 전라의 몸을 둥글게 말고 머리를 허벅지 사이에 넣고 앉아있다. 둥근 여자의 몸은 매끈한 살덩이 바퀴가 되어 아스팔트 도로를 굴러갈 것 같다     (화가는 왜 여자를 달팽이같이 둥글게 말아서 아스팔트 도로 위에 놓은 것일까?)     (여자는 화가에게 태어나기 이전의 시공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고 한 것일까?)     나는 상상 속에서 그녀를 굴려 본다 그녀는 공기가 팽팽한 고무공같이 가볍게 구른다 그녀는 통통 튀기도 한다 구름이 그녀를 태워 하늘로 오르고 싶어 한다 그녀는 검은 아스팔트 도로에서 파란 바다로 굴러가며 깔깔거린다 그때 100km로 달려오던 육중한 화물차가 삐익 소리를 내며 간신히 그녀를 비켜간다 핏발선 운전기사의 목소리가 휙 스친다     지금 내 눈 앞에는 파란 바다가 보이는 아스팔트 도로에서 도로에게 반항이라도 하는 듯 맨살로 앉아있는 30대의 여자가 있다. 그녀의 숨소리가 너무 뜨겁다           우아우아 아우아우아 아       우아우아 아 우아우아 아 검푸른 파도 펄떡이는 돌고래   (산의 어깨 위로 솟구치는 검붉은 불길)     우아우아 아 우아우아 아 다시마 미역 멍게 해삼 조개   (풀과 나무들의 울부짖음 불길 속의 주택들)     우아우아 아 우아우아 아 파란 바다 빨간 구름 허연 맥주 거품   (47인치 모니터에서 풀썩풀썩 뿜어져 나와 중계동 은행사거리 상공을 떠도는 LA의 검은 연기 검은 연기)     우아우아 아 우아우아 아 파도소리 기타소리 사각사각 사과 먹는 소리   (거대한 공동묘지 상공 떼 지어 떠도는 검은 비닐봉지 위에서 반짝이는 하얀 눈 하얀 눈)     우아우아 아 우아우아 아 뜨거운 모래밭 달빛 속 엉덩이   (당신은 죽은 30대 여인의 목에서 반짝이던 나비날개 모양의 보석을 보았다고요?)   (그녀는 나비가 되어서 봄 나라로 날아갔을 거라고요?)     우아우아 아 우아우아 아 모닥불 하얀 잿더미 빈 맥주병   (당신은 사람들이 모두 복제품 같다고요?)   (검푸른 파도 속으로 풍덩 뛰어 들어가 혁명을 꿈꾸는 체 게바라의 가슴을 껴안고 싶다고요?)       꿈틀꿈틀 아침 바다 붉은 핏덩이 핏덩이 우아우아 아 우아우아 아           노란 색을 주조로 한 세 개의 그림       구파발에서 의정부 쪽으로 뻗은 큰 도로 옆엔 봄바람에 흔들리는 개나리꽃 울타리가 석재상 마당 한쪽과 세상에 나오기 이전의 돌부처 돌마리아 돌사자 돌여인 돌사슴의 머리와 가슴을 노랗게 물들이고 있다 나는 그 석물들과 손잡고 노는 상상을 하며 노란 개나리꽃 울타리를 툭툭 치고 흔들었다 그때 그 소리 때문일까? 돌부처와 돌마리아가 손을 잡고 초등학교 1학년 학예회처럼 춤을 추기 시작한다 그 둘레를 돌사자 돌사슴 돌여인이 빙글빙글 돌고 있다 그들이 뛸 때마다 개나리 울타리에서 노란 빛이 뿜어져 나와 그늘진 석재상 마당이 환해지곤 한다     목만 있는 늘씬한 젊은 여인이 노란 원피스를 걸치고 서 있는 대형 마트 의류 코너. 그 건너편 쪽에는 목만 있는 청년이 청바지에 노란 티셔츠를 입고 포즈를 취하고 앉아있다                   강남 터미널 대형 TV에서 갑자기 콸콸콸콸 흙탕물 쏟아져 내리는 소리가 나고, 홍수가 휩쓸고 간 마을에서 떠내려 온 가재도구들이 큰 물살에 둥둥 떠가다가 나무그루에 걸려있는 게 보인다 주민들은 무너진 집 지붕 위에 올라가 무어라 소리치며 손을 흔들고 멀리서 털털털털 헬리콥터 소리가 나고 노란 조끼를 입은 구조대원들이 여기저기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구경을 하던 청년 셋이 TV 속으로 풍덩풍덩 뛰어 들어간다 그때마다 모니터에서 튀어나온 흙탕물이 내 몸에 확확 끼얹힌다 내 옷에서는 노란 개나리꽃 향기가 난다
929    하이퍼시 구조와 시창작 기법의 실제 / 이선 댓글:  조회:490  추천:0  2019-06-28
하이퍼시 구조와 시창작 기법의 실제 / 이선     필자는 양천문화원, 광진문화원, 성동구민대학 수강생들에게 수년간 시창작을 가르쳤다. 아래 소개하는 하이퍼시 창작기법은 필자가 연구하여 수강생들에게 가르친 하이퍼시 창작 기법의 실제다. 학생들의 예시 작품은 익명으로 하였음을 밝혀둔다. . (1) 하이퍼시 문장 만들기 1: 언어충돌 아래에 제시한 낱말들을 연결하여 시적인 문장을 만드시오. 예제 1) 배, 연못, 유리컵, 반사경, 지붕, 김밥, 안개, 뛴다, 흐른다, 사라진다 고향/ 최〇〇// 연못 속 하얀 지붕/ 반사경처럼 비친다/ 안개 닮은 고향이/ 흐릿하게 사라지고// 김밥을 나눠먹으며/ 뛰어놀던 순자 얼굴/ 뱃고동 따라 흐른다 정〇〇: 고흐의 잘린 귀가 연못에/ 떨어져 별빛 언어를 듣고 있다/ 유리잔에 비친 얼룩진 얼굴/ 반쪽만 남아 홀로 웃고 있다 예제 2) 전봇대, 청기와집, 봉지, 강(한강), 낙엽 임〇〇: 겨울의 눈썹 밑으로 난 물길을 따라/ 조약돌들이 흘러간다// 한강 바닥의 낙엽 속으로 작은 강물이 흐른다/ 넓은 강을 전봇대들이 껑충껑충 뛰어 건너간다 예제 3) 이슬, 칠판지우개, 색소폰, 드럼, 은행나무, 푸른 바다 정〇〇: 색소폰 멜로디에 풀잎 이슬이 떨어진다/ 푸른 바다가 은행나무에 걸터앉아/ 이슬을 뿌리고 있다 김〇〇// 모기 목 땀띠에/ 백분 곱게 바르고/ 코스모스 향기 나들이할 때/ 고추잠자리 편대가 한가롭다 신〇〇: 지각한 날/ 미끄러진 아침이/ 커피잔 속, 미세먼지에 갇혀 있다 김〇〇: 참새가 울고 간 거리마다 편지만 걸려 있다 정〇〇: 누드화 숲 사이를 꼬불꼬불 도는/ 산꿩 울음소리/ 나목이 되어 서 있다 임〇〇: 우편배달부가 세계지도 위에 봄을 엎지른다. 온 세상이 꽃향기에 취했다. 신〇〇: 유리창에 비친 12월 말 달력/ 등굽은 나무 아래 참새 한 마리/ 눈썹 빠진 단풍 하나 입에 물어/ 바람난 숫고양이 물통에 살짝 빠뜨린다 〇기〇: 내 구부러진 시선에 들킨/ 기와지붕 위 고양이 한 마리/ 하늘 물에 세수를 하고 있다 〇순〇: 지도 한 켠에서 꽃향기가 날아와/ 집앞 정원에 내려앉았다/ 아련한 기억 속의 기차가 봄날을 실어와/ 나른한 즐거움에 젖어 있다 위의 시창작 방법은 거리가 먼 낱말들의 결합으로 언어충돌을 하여 ‘낯설게하기’를 실현하고 있다. 하이퍼시는 시의 내용을 제한하거나 한정하지 않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하이퍼시는 과학적으로 검증된 사물에 대한 지식에 근거할 때 객관화를 획득한다. (2) 하이퍼시 문장 만들기 2: 낯설게하기 * 교사는 학생들에게 낯설게하기를 실현할 이미지 시를 쓰도록 한다. 교사 예제 작품 1: 깃털꼬리구름/ 국립중앙박물관 앞 거울호수에 내려앉다가/ 날개가 부러져 물 밖으로 삐져나온다// 허공에 부딪힌 아픈 기억들/ 물살이 흔들린다 유〇〇: 섬진강 쪽빛 물 위에/ 얇은 그림자로 일렁이는 벚꽃 춤사위/ 봄햇살 반짝이는 흰구름 사이로/ 나란히 손잡고 흐르는 벚꽃 십리 길/ 그대와 나의 얼굴에도 팝콘처럼 번져가는 연분홍 봄날 〇〇석: 민들레꽃 피고/ 밀잠자리 날 때/ 자전거를 탄 청년이/ 라일락 향기나는 마을로 내달린다 송〇〇: 나는 벚꽃 만발한/ 4월의 싱그러운 바람이 되어/ 들길을 홀로 걷는다 〇〇이: 물안개 피어오른/ 새벽 강물 속으로/ 침묵이 스며들고/ 테두리 안경 안에서/ 한 폭의 수묵화를 이루네 함〇〇: 활짝 핀 벚꽃 잎이 바람 타고 꽃구경 간다/ 노란 민들레 꽃잎 위에/ 부드러운 개나리 입술 위에/ 달콤한 키스가 흐른다 최〇〇: 앵두빛 서녘하늘에/ 석양이 입술 루즈 칠을 한다/ 산 아래 절 마당엔 은은한 풍경소리/ 달콤한 여름밤 내음 하이퍼시는 사물시에서 출발한다. 거리가 먼 사물끼리 결합하여 낯선 새로운 이미지를 만든다. 꽃을 바라보고 시를 쓰면 기록문이 된다. 꽃이 되어서 꽃의 목소리로 말을 하면 시가 된다. 사물이 되어서 사물의 관점으로 오래 관찰하면 사물이 말을 걸어온다. 심상에 있던 무의식이 넌지시 말을 건넨다. 시를 쓸 때 내용을 중요시하면 관념시가 되거나 설명적이거나 논술이 되기 쉽다. 또 자기 이야기를 그대로 쓰려고 고집하면 사변적인 문장이 된다. 시는 표현이다. 유미주의는 시의 목적이며 결과다. 시를 쓰는 이유는 아름다운 문장을 만들어내는 것에 목표를 두어야 좋은 시를 쓰게 된다. 하이퍼시 기법 중에서 이미지에 운동감을 주는 방법은 시에 상상력이 들어갈 때다. 청각 이미지를 시각 이미지로, 시각 이미지를 공감각 이미지로 확장하면 감각적 미의식을 획득한다. (3) 하이퍼시 문장 만들기 3: 상상력 ☆ 발상의 전환과 이미지 확장 미끈한 종아리를 드러내고/ 봄날 버드나무 잎새가 연초록으로 물들어갈 때/ 네 치마길이는 점점 짧아진다(이〇〇) 역사가 햇볕 속에서 잘 익은 모습으로 얼굴을 드러낸다/ 검은 흑보자기에 싸여/ 천년 동안 뿌리도 없이 수많은 눈들을 비껴/ 어질어질 흩어져 내리는 흙먼지/ 메마른 동굴 속에 혼자다(〇〇만) 잠자리/ 〇천〇/ 연 잎에 살포시 앉은 밀잠자리/ 두 눈을 부라리며 꽃향 맡는다/ 백련, 꽃향기를 빨아대더니/ 향긋한 내음을 밖으로 퍼 나른다 〇윤〇: 지각한 날/ 미끄러진 아침이/ 커핏잔 속, 미세먼지에 갇혀 있다 달빛/ 〇〇석/ 달빛은 이슬을 머금고서/ 그윽한 기타소리에 젖고/ 차가운 물기를 담은 소리/ 그녀의 창문을 두드린다 최〇〇: 분주히 오가던 발자국이/ 긴 수면에 든 거리/ 경계석을 베고 누운 단풍잎 위로/ 늦은 가을이 녹아든다 정〇〇: 허공에 치솟은 미루나무 위에/ 뭉게구름 부리가 꽃잎에 젖어 자욱이 걸려 있다 신〇〇: 지붕 아래 버들가지, 묘목이 하품을 한다/ 안경 너머 시력이 기지개를 켠다/ 모자 테두리가 노랗게 꿈틀거린다 〇〇지: 겨울의 눈썹 밑으로 난 물길을 따라 조약돌들이 흘러간다 위의 학생들의 시는 낯선 새로운 표현을 추구하고 있다. 그 이유는 상상력을 객관화시켰기 때문이다. 또한 시가 한 자리에 머물지 않고 운동감을 주어 흔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산문과 운문은 발상이 다르다. 산문을 줄인 것은 시가 아니다. 시는 반전이 필요하다. 시는 정직하게 본 대로 느낀 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시는 일상적인 것을 거부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거꾸로 생각하기, 반대로 생각하기, 짐짓 시치미 떼기를 일상에서 연습해야 좋은 시를 쓴다. (4) 하이퍼시 문장 만들기 4: 이미지 확장 이미지 만들기는 시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다. ☆ 교사는 ‘나는 간다’라는 문장을 제시한다. 종속절을 넣어 긴 문장을 만들도록 한다. 〇 꽁무늬바람 한 무리 흩날리는 조팝 꽃잎을 양떼처럼 몰고 징검다리 건너간다(〇〇란) 〇 휘파람 새는 봄빛을 물고 시린 겨울강을 건너왔다(조〇〇) 〇 별박이왕잠자리가 구름을 물고 와 옹달샘에 내려놓는다(정〇〇) 교사가 학생들에게 이미지 만들기 공부를 가르치면서 가장 중요시 하는 점은 다음 사항이다. 첫째, 시가 되는 것과 시가 되지 않는 것을 구별한다. 둘째, 감각적이고 미의식이 있는 문장을 만든다. 셋째, 객관화를 실현하기 위하여 하이퍼 사물시를 쓰도록 한다. 넷째, 이미지에 운동감을 주어 공간이동과 시간이동을 하도록 한다. 다섯째, 청각 이미지를 시각 이미지로, 시각 이미지를 청각이미지로 교환하여 공감적 이미지를 만들도록 한다. 여섯째, 구체적인 지명과 사물 이름을 넣어 시가 구체성을 획득하도록 한다. 일곱째, 어디서 들은 것 같은 상투어를 피하도록 한다. 자기가 직접 보고, 만지고, 체험한 독특한 장면을 시에 쓰도록 한다. 여덟째, 특이한 고유명사를 찾아서 시에 쓰도록 한다. 아홉째, 고정관념을 버리고, 기성 시인의 잘못된 시창작 기법을 모방하지 않도록 한다. 개성적인 작품을 쓰도록 한다. (5) 하이퍼시 문장 만들기 5: 조건절, 대귀법 ☆ 조건절과 대귀법을 이용하여 문장을 만들어보자. 예)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교사 예시 작품: 흰 나비는 봄날 민들레꽃을 따라가지만/ 그 노랑 꽃잎의 발자국을 만나지 못하였다 〇〇〇: 황혼을 덮어 쓴 조약돌/ 밀물 썰물의 언어로 몸을 씻는다 첫사랑/ 〇혁/ 나는 그의 꿈속으로 들어가 별이 되었다/ 그는 내 꿈속으로 들어와 이슬이 되었다 임〇〇: 내가 너를 향해 날린 종이 비행기/ 아직도 날아가고 있나 보다/ 내가 아직도 멀미를 하는 것을 보면 조건절과 대귀법은 서양과 동양의 많은 고전에서 볼 수 있는 시창작 기법이다. 무의식 중에 한국의 현대 시인들도 많이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이퍼시에서 조건절과 대귀법을 사용하여 시창작을 학생들에게 실시하였다. 재미있는 하이퍼시 작품을 얻을 수 있었다. (6) 하이퍼시 문장 만들기 6: 패러디 패러디 시는 베끼기가 아니다. 역사적인 인물이나 지명과 작품을 배경으로 시를 창작하는 확장된 영역이 패러디의 범주에 속한다. 이를 잊지 말아야 한다. 표절은 패러디가 아니다. 아래에 제시한 방법은 문화원에서 시를 전혀 모르는 학생들에게 시에 접근하는 방법을 알게 하기 위한 제언서다. 기성 시인에게는 패러디 방법론을 추천하지 않는다. 1) 패러디: 학생 학습과제 1 아래 시는 박남수의 대표시 「종소리」 전문이다. 나는 떠난다. 청동의 표면에서/ 일제히 날아가는 진폭의 새가 되어,/ 광막한 하나의 울음이 되어,/ 하나의 소리가 되어.// 인종은 끝이 났는가./ 청동의 벽에/ ‘역사’를 가두어 놓은/ 칠흑의 감방에서.// 나는 바람을 타고/ 들에서는 푸름이 된다./ 꽃에서는 웃음이 되고,/ 천상에서는 악기가 된다.// 먹구름이 깔리면/ 하늘의 꼭지에서 터지는/ 뇌성이 되어,/ 가루 가루 가루의 음향이 된다.// ― 박남수, 「종소리」 전문 필자는 문화원 학생들에게 박남수 「종소리」에서 3연 ‘나는 바람을 타고/ 들에서는 푸름이 된다./ 꽃에서는 웃음이 되고,/ 천상에서는 악기가 된다.’를 발췌하여 패러디 과제를 내주었다. 아래 문장은 수업 시간에 작성한 학생들의 패러디 작품이다. 고〇〇: 리듬을 탄 물방울은/ 풍금소리의 반주가 되고/ 차가운 음률로 그녀에게/ 다가가서 눈가 웃음꽃이 된다 최〇〇: 나는 소주잔을 타고/객줏집에서 노래가 된다/ 산에 올라 막걸리잔 높이 들어/ 건배사를 외치고,/ 비가 오면 중국집 지하에서/ 배갈잔에 독백을 담는다 〇〇숙: 냉이꽃 바람을 타고/ 들에서는 아가의 배냇짓이 된다/ 초록을 만나 웃는 작은 꽃망울들/ 아지랑이 봄을 위한 합창이 된다 함〇〇: 활짝 핀 벚꽃 잎이 바람타고 꽃구경 간다/ 노란 민들레 꽃잎 위에/ 부드러운 개나리 입술 위에/ 달콤한 키스가 흐른다 박남수의 「종소리」의 문장공식은 A=B+C+D다. A(나)는 B(푸름)와 C(웃음)과 D(악기)가 된다. A는 전혀 다른 사물로 치환된다. 시를 처음 쓰는 학생들은 시를 어떻게 쓸지 당혹스러워한다. 학생들은 시를 좋아하고 향유하는 독자로서 문화원 시창작반을 찾지만, 자신이 직접 시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딜레마에 빠진다. 목공 공작소에서 처음 목공을 배울 때 기술자가 사전에 목공의 기초를 가르친다. 톱 사용법, 주의할 점, 재단하는 방법, 못 박는 법, 사포질, 칠하기 등 목공의 각 단계를 가르친다. 사전 주의사항과 제작과정, 작품의 보관정보까지 주지시킨다. 목수는 절대 초보자에게 일을 맡기지 않는다. 그 이유는 사고를 미연에 막기 위함이다. 적어도 십년이 흘러야 기술자가 된다. 먼저 기술자를 따라다니며 눈으로 익히고 뒤치다꺼리를 하며 곁눈질로 배운다. 그러나 시는 언어유희다. 한글을 알고, 손을 다칠 염려도 없다. 오랜 연마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한 번에 이루려고 조급해 한다. 시도 목공 기술처럼 오랜 시간 단련의 기간이 필요하다. 좋은 시를 읽고, 교사로부터 어떻게 쓰는지 배우고 노력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사랑 몇 번 하고 이별시를 쓴다고 시인이 되는 것이 아니다. 시도 학문적으로 연구해야 한다. 연습하고, 버리고, 연습하고 버리는 오랜 수련과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시는 수학처럼 A는 B가 아니다. 정확하고 똑같이 재단해야 하는 목재가 아니다. A는 B, C, D로 형질이 변형된다. 시는 같으면 틀린다. 시는 창의성이 요구된다. ♧    
현상 저 너머 - 예술 융·복합을 활용한 시 창작(4)       김철교(시인, 평론가)         7. 읽기       문덕수는 시가 ‘소리의 시’와 ‘의미의 시’를 거쳐 이제 ‘이미지의 시’의 단계에 도달하여 ‘이미지의 지적 주권’ 시대에 들어선 것으로 보고 있으며, 시인은 ‘꿈과 무의식의 세계에서 눈을 돌려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하는데 주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문덕수, 『현실과 초월』, 시문학사, 2014, 13-22쪽).       문학비평용어사전에 의하면, 시의 이미지는 표현상에서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것을 구체화함으로써, 내용을 보다 선명하게 인식하고, 시적 상황을 암시하여 독자의 정서적 반응을 유발시키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엘리엇(T.S Eliot)의 ‘객관적 상관물’은 바로 여기에 해당되는 것이다. 이를테면 저녁노을을 통해 독자는 죽음이라는 정서적 반응을 유발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영섭에 의하면, ‘이미지는 철학에서는 실체의 환영, 심리학에서는 심리적 체험을 단순히 재생하는 심리적 작용, 시에서는 마음속에 언어로 그린 그림으로 운율과 더불어 시를 구성하는 원리로서 추상적인 관념을 구체적으로 감각화하는 역할을 한다’(이영섭, 「이미지의 유형과 실제」, 『시창작 이론과 실제』,(오세영 외 편) 시와시학사, 1998, 252-276쪽).       미술용어 사전에서는 ‘자연주의 미술에서는 대상을 직접 갖다 놓을 수 없으므로 그 이미지를 그렸던 것인데, 반자연주의적인 현대미술에서는 마음속에 잠재하는 환각이나 형상을 그리게 되고 여러 가지 사물을 변형시키고 조립함으로써 독특한 이미지를 표현한다’라고 설명하고 있다(월간미술편, 『세계미술용어사전』, 369쪽).       어떤 정의를 인용하든 이미지는 實在(the real) 자체가 아니라 그림자다. 시뮬라크르에 불과하다. 인간이 보고 생각하고 그리고 말하는 것은 모두 실재가 아니라 이미지다. 마그리트는 캔버스에 파이프를 그리고 그 밑에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Ceci n'est pas une pipe)’라고 써넣었다. 그림의 제목을 이라고 붙여 놓은 것은 ‘파이프’를 그린 그림(이미지)이지 진짜 파이프가 아니란 뜻도 담겨 있다. 이 그림을 통해서는 파이프의 실체를 알 수 없다. 어떤 나무로 되어 있고, 얼마나 낡았는지, 그리고 실물의 크기는 얼마나 되는 지 등 어떤 특성도 파악할 수 없다.     언어학적 측면에서도 ‘파이프’라는 단어는 파이프의 참된 성질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파이프’라고 부르자고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끼리 약속한 것뿐이다. 우리나라에는 더 멋있는 단어인 ‘곰방대’가 있다.       사물을 지시하는 언어와 이미지(눈에 보이지 않는 완벽한 원본은 인간인 이상 누구도 볼 수 없다) 사이의 정확한 의미 전달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초현실주의자들의 시각에 의존하여, ‘이것은 천국이다’, ‘이것은 죽음이다’라고 파이프가 그려진 그림 아래에 써놓는다고 해서 거짓이라고 말할 수가 있을까? 단순하게 생각하여, 애연가의 경우 파이프 담배를 피움으로써 천국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고, 담배가 죽음에 이르게 하는 폐암의 원인이 된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을 수도 있다.       현존 너머의 원본의 세상을 보고자 하는 예술가에게는, 특히 시인에게는 언어로 눈에 보이는 대상을 자신의 이미지로 무한히 창조할 수 있는 특권이 주어져 있기에 행복한 것이다. 물론 언어의 한계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시인도 적지 않다.           * 마그리트(René Magritte, 1898~1967), ,   1929, 캔버스에 유채, 60×81Cm, Los Angeles County Museum of Art, 캘리포니아.         바짝 마른 장미꽃 다발에서 앵앵거리는 꿀벌의 날갯짓 들리나요? 닳아빠진 촛불에서 넓디넓은 꿈을 읽을 수 있나요? 장맛비에 휩쓸려온 뼛조각에서 화장품 냄새를 맡을 수 있나요?       지금 우리 자리는 죽은 자들 이미지의 묘지가 아닌가요? 우리 삶은 또 다른 복제물 복제물, 복제물이 아닌가요? 원본의 기억은 살아있나요? 원본은 있기는 있나요?       우리는 어디에 둥지를 마련할 수 있나요? 내가 눈을 감은 후에도 저 바다는 저 산은 감히 저기 저 자리에 버티고 있을 건가요? 아니 내가 있는 이곳은 도대체 어딘가요?   - 김철교 (『무제2018』,시와시학,2018) 전문         시인은 촛불이 다 닳아빠져 흔들리고 있는 서재에서 마른 장미꽃 꽃다발을 바라보고 있다. 얼마전 산보하다 길가에서 마른 뼛조각을 발견했던 것을 문득 떠올린다. 지금-여기 내가 있는 것은, 오래 전에 앞서 간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관습이라는 이미지와 언어에 매몰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나의 진정한 모습’, ‘사물의 실재(the real)’와는 먼 시뮬라크르 세계에 살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죄를 짓기 이전의 하나님 형상(Imago Dei)을 닮은 아담과 이브가 살던 낙원에 대한 기억을 더듬으려 하지만, 이미 너무 멀리와 불가능하다는 좌절감에 젖어 있는 것이다. 시인의 먼 미래, 사후의 세계에 대한 궁금증과, 지금 내가 있는 이곳은 어디일까, 존재에 대한 물음을 끊임없이 제기하고 있다. 질문형을 반복하며 대위법적 기교를 활용함으로써, 그 질문의 절실함을 담아내고 있다.       김유중은 “시인은 여기서 우리가 현재 서 있는 자리가 ‘죽은 자들’이 누워있는 ‘이미지의 묘지’는 아닌지, 그리고 ‘우리의 삶’ 자체가 이미 ‘또 다른 복제물’은 아닌지를 묻고 있다. 원본은 벌써 우리의 기억 속에서 추방되고 지워져버렸으며, 따라서 이 시대에는 더 이상의 어떠한 창조적인 활동도 기대할 수 없을지 모른다는 의구심을 드러낸 것이다. 우리 삶의 원형으로서의 원본, 예술가의 절대적인 이상으로서의 원본은 벌써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훼손되어버린 것인지 모른다. 그것을 되찾기에는 우린 이미 너무 멀리 와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실물로서의 원본이 사라진 시대, 그리하여 그것이 남긴 이미지만이 우리 주변에 넘쳐나는 시대가 바로 지금 현재, 우리 시대인 것이다”라고 평설에서 언급하고 있다(김유중, 김철교의 시집 『무제2018』평설, 2018, 시와시학, 141쪽).       8. 읽기       예술작품은 좋은 시뮬라크르다. ‘좋은 시뮬라크르’라 함은, 현상 저 너머에 대한 꿈을 머금고 있는 시뮬라크르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이는 엄밀한 의미의 시뮬라크르는 아닐지 모른다. 오히려 플라톤의 에이콘의 개념에 가까울 수도 있다. 시뮬라크르(simulacre)의 개념은, 가상, 모조품 등의 뜻을 가진 라틴어 시뮬라크룸(simulacrum)에서 유래한 말로, 원본의 성격을 부여받지 못한, 즉 원본을 알 수 없는 복제물을 뜻하는 개념이다.       넓은 의미의 이미지, 보통명사로서의 이미지는 복사물(플라톤의 eidolon의 개념)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이 에이돌론(eidolon)을 에이콘(eikon)과 판타스마(phantasma)로 나눌 수 있으며, 에이콘은 원본이 반영된 복사물이라는 이미지다. 판타스마는 복사물의 복사물로 원본의 그림자가 사라지고만 시뮬라크르다. 플라톤은 이 시뮬라르크를 악마적인 것으로 배척했다. 에이콘은 실재를 닮은 것이지만 시뮬라크르는 에이콘을 복사한 것으로 원본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플라톤에게 있어서는 원본(이데아 + 실재)을 반영하지 않은 복사물은 저급한 것이다. 여기서 ‘이데아’는 지성의 세계에서 인식하는 것, 즉 머리로서 논리적으로 인식하는 것이며, ‘실재’는 감각의 세계에서 인식하는 것, 즉 오감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이다.       반면에 들뢰즈는 원본이 반영되지 않은 시뮬라크르가 지배하는 세상, 이데아를 중심으로 하지 않는 탈중심의 세상, 이데아를 재현하지 않는, 이데아를 바라보지 않는 재현파괴의 세상, 카오스적 다양성을 가진 개인중심의 세상, 다분히 ‘디오니소스적’이어서 유희적인 유목성을 가진 개인 중심의 세상, 무질서를 내포한 질서를 중시했다. 시뮬라크르 세계는 원본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세상으로, 플라톤의 시각에서는 버려야할 악마적인 것이지만 들뢰즈에 의하면 시뮬라크르가 탈중심화된 체계의 중심을 여는 새로운 사유매체이자 새로운 세계인 것이다(박치완, 『이데아로부터 시뮬라크르까지』, 한국외국대학교 지식출판원, 2016, 60~79쪽).       그러나 시뮬라크르에도 원본의 그림자가 남아있지 않을까? 복사의 복사를 반복하다보면 차이가 누적되게 되고 결국 원본으로부터 멀어지는 결과를 초래할지는 몰라도 원본의 그림자는 남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시뮬라크르인 것이지, 원본의 그림자조차도 없다면 그것은 ‘새로운 창조’와 다름 아니다. 시인이 한편의 시를 써서 그것이 모든 사람들에게 읽힐 때, 그 시가 원본이냐? 시뮬라크르냐? 시인은 그것이 ‘원본’이라고, ‘실재’라고 주장할 수 있지만(독창적이어서), 그러나 그 시가 이 사회에 존재하고 수용된다는 것은, 환경과 문화를 직간접적으로 반영한(복사한) 시뮬라크르라는 것을 의미한다(김철교, 『예술 융·복합시대의 시문학』, 시와시학, 2018, 21-26쪽).         시인은 신에 가깝다고? 에라이, 시뮬라크르 너는 어떤 모습으로 복제된 거지? 어느 것도 원본은 없고 그저 차이만 반복된다면서?       y = ax + b, 변수들의 변치 않는 정의는 무엇일까? y = 나 x = 너 아니 하나님 a와 b는? 그림 속 텍스트도 텍스트를 그린 그림에 불과하지       보이는 것 뒤에 있는 보이지 않는 것을 찾은 양 두툼한 책을 서슴없이 써내지만 행간에는 그저 황무지만이 널따랗고 위안을 주는 작은 풀꽃 하나 찾을 수 없다       인식 저 너며 이성 저 너머 감성 저 너머 거기엔 아무 것도 없는데 용량이 부족한 두뇌로 열심히 삶의 프로그램을 짜서 돌려본들 루핑이 걸려 평생 그칠 줄 모르고 쳇바퀴를 돌릴 뿐이다   - 김철교 (『무제2018』,시와시학,2018) 전문         죄 짓기 이전의 아담과 이브가 인류의 원본(Imago Dei)이라면 지금의 시인 역시 시뮬라크르인 셈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창조한 원본의 그림자가 남아있기에, 낙원에서 추방된 아담과 이브의 후손으로 이어진 복제과정을 반복되어 온 ‘지금의 나’이지만, 창조주의 존재를 잊지 않고 복락원의 꿈을 안고 살고 있는 것이다. y = ax + b가 간단한 삶의 방정식이라고 한다면, 나(y)는 하나님(x) 혹은 이웃(x)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다. 다만 a와 b는 각자에게 주어진 독특한 위치 혹은 무의식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만약 x가 하나님일 때 a가 0인 사람은 하나님의 존재를 완전히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이겠고, -인 사람은 하나님을 거부하는 사람일 것이다. 그러면 이 삶의 공식이 참인가? 여기서는 단순하게 1차방정식으로 표시했지만 삶이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기에 무한대의 다차원방정식일지도 모른다.       마그리트 그림 속 텍스트,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문장의 의미도, 실제 파이프가 아니라는 사실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하나의 ‘글씨그림’으로, 아무 의미도 없는 이미지로 볼 수 있다. 이 세상은 들뢰즈의 시각에 의지하면, 온갖 시뮬라크르가 지배하는 세상이다. 그럼에도 마치 원본을 찾은 양, 실재(實在)를 찾은 양, 사람들은 많은 책을 써내지만 그 글 중에서 진실의 양이 얼마나 될까? 우리는 하나님이 인간을 처음 창조하신 직후 죄짓기 이전의 모습을, 온갖 이성과 감성을 동원해 찾으려 해도 여전히 죄악과 욕심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마치 컴퓨터 프로그램에 루핑(looping)이 걸리면, 프로그램 속에서 동일한 명령이나 처리과정을 반복하여 해답을 내놓지 못하는 것과 같다. 우리에게 주어진 뇌세포의 10%도 가동 못하고 있다고 하지 않는가! 언제 우리는 원본, 실재, 이마고데이를 찾아내어, 저절로 의인으로 살아질 날이 온단 말인가?       9. 읽기       예술의 본령은 현상 저 너머의 탐구라 하겠다. “다른 상징주의 작가들이 그러하듯 랭보에게도, 현실적이고 감지할 수 있는 외관을 지닌 모든 사물들은 단지 본질을 나타내고 투영하는 일부분일 뿐이지, 결코 본질 그 자체이거나 또는 본질을 충분히 투영하고 있지는 않는 것이다. (······) 파괴와 해체를 통해 현실적인 외관을 제거하고, 그 너머에 존재하고 있는 전혀 다른 ‘실체’를 ‘재건축’, ‘재창조’하려는 시도”를 계속했다. 랭보에 의하면 진정한 시인이란 ‘투시자’가 되어, 의식과 이성으로 느끼기보다는 현상 이면에 존재하고 있는 궁극적 본질을 ‘무의식’과 ‘상상력’에 의해 재창조해야 한다는 것이다(곽민석 역, 『랭보 시선』, 지식을만드는지식, 2012, 148-154쪽).     * 미로(Joan Miro, 1893~1983), ,   1978, 캔버스에 유채, 92x73Cm, 마르요카 호안 미로 재단. 스페인.                 천국에서 보내온 우주선 그 안에는 원죄로 인해 잊어버렸던 우리의 원본이 있을까?       천진난만한 언어로 꿈을 길어 올리는 환쟁이 천국의 지도를 완성하러 별나라에서 온 그가 날마다 주문으로 외우는 그림과 음악으로 외우는       함께 가자 함께 가자 함께 가자       - 김철교 (『무제2018』,시와시학, 2018) 전문         적지 않은 예술가들이 왜 자기 작품에 구체적인 제목을 붙이지 않고, 특히 미술가들은, 즐겨 「무제」라는 제목을 쓸까. 작곡가들도 대부분 작품의 제목대신 일련번호를 즐겨 쓴다. 베토벤 도 작곡 당시「운명」이라는 제목을 단 것이 아니다. 베토벤이 죽은 후에 그의 제자가 붙인 이름이다. 특정 제목이 붙지 않은 예술작품은 수용자에게 무한자유를 허용한다. 호안 미로의 「무제 1978」라는 그림을 보고, 어떤 사람은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을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이 그림을 보고 이라는 시를 쓴 시인은 미지의 별에서 온 우주선을 떠올렸다.     이성은 착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지만, 우리의 감성은 자주 우리를 욕심에 휘둘리게 한다. 도대체 우리 인간은 모두 천사일 수 없는가? 아담과 이브가 추방되기 전의 모습을 되찾을 수 없는가? 내 멋대로 살아도 죄가 되지 않는 세상은 불가능한가? 우리가 선하게 살도록 자동프로그램화 될 수 없는가? 모든 인간이 선하게 남을 배려하도록 프로그램된 칩을 머릿속에 심을 수 없을까? 기독교인들이라면 누구나 ‘주기도문’에서 외우듯이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오게 되면 어떤 세상이 펼쳐질까?       이 시에 대한 이덕주의 평설을 인용해보자. 시인은 이 그림을 보면서 “천국에서 보내온 우주선”을 연상해낸다. 그리고 “그 안에는” 어쩌면, “원죄로 인해 잊어버렸던/ 우리의 원본이 있을까?”라며 삶의 근본적 질문에 대한 해답을 탐색하려 한다. 화자는 호안 미로에게, 타고난 “천진난만한 언어로/ 꿈을 길어 올리는 환쟁이”라고 신뢰를 보낸다. 예술가에게는 “천국의 지도를 완성”할 수 있는 상상력이 있기에 긍정적으로 교감하는 것이다. “별나라에서 온 그”이기 때문에 자신이 희원하는 근원적 해답을 반드시 줄 것이라고 “날마다 주문으로 외우”며 기대치를 높여보는 것이다. 반복적인 “함께 가자”라는 구호는 후안 미로가 상상해내는 “천국에서 보내온 우주선”에 동승하려는 화자의 기원이 내포되어 있는 주문이기도 하다(이덕주, 「화가의 영혼과 교류하는 심미안」, 한국시문학아카데미 발표원고, ).       예술세계가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순진한 생각을 끊임없이 해본다. 호안 미로가 초대하는, 천국에서 온 우주선이 초대하는, 예술세계에서 아담과 이브가 추방당하기 전 하나님의 형상을 담은 원본(Imago Dei)을 만날 수 있을 것도 같다.(*)  
음악의 옷을 입은 시 - 예술 융복합을 활용한 시 창작(3)       김철교(시인, 평론가)         4. 읽기           * 클레 (Paul Klee, 1879~1940) ,   1929, 캔버스에 유채, 83.7×67.5Cm, 루드비히 미술관, 쾰른, 독일.       은 과 함께 클레가 음악의 대위법(對位法)을 활용하여 그린 그림이다(김광우,『칸딘스키와 클레』, 미술문화, 2015, 321~323쪽). 크고 작은 사각형 모양의 돌들이 반복되어 쌓이면서 길을 만들고 있다.   ‘예술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것’이라는 신념을 가진 클레는 스위스의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화가가 되었다.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1866-1944)와 클레는 색을 소리처럼 사용하였다. 칸딘스키와 클레 모두 음악을 자신들의 추상화에 적용했지만, 사실상 이를 먼저 주장한 사람을 고갱(Paul Gauguin, 1848-1903)이었다. 고갱은 “생활이나 자연에서 가져온 주제를 가지고 선과 색을 배열하여 일종의 교향곡과 화음을 만든다”고 하였다.       대위법(對位法, counterpoint)은 음악에서 두개 이상의 선율(멜로디)을 동시에 결합하는 다성음악(多聲音樂)이다. 규칙적인 시차를 두고 같은 음을 주고받는 형식으로 연주되기 때문에 연결이 자연스럽고 편안한 느낌을 준다. 여러 성부(聲部)가 일정한 규칙에 따라 결합하여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며, 각 성부가 선율적 독립성을 지니고 있다. 음악에서는 일반적으로 음의 수직적 결합(화성, 화음)과 수평적 결합(선율, 멜로디)을 통해 아름다움을 극대화하고 있는데, 대위법은 수평적 결합에 해당한다. 캐논과 푸가는 대위법의 일종이다. 캐논은 하나의 성부에서 주제가 노래되면, 시간의 차이를 두어 다른 성부가 그 주제를 그대로 ‘모방’하여 뒤따른다. '돌림 노래'는 캐논형식의 전형이다. 푸가는 하나의 성부에서 주제가 제시되면, 이어서 제2의 성부가 이것을 모방하는데 이것을 ‘응답주제’라 한다. 그 동안에 제1의 성부는 응답주제에 대위(對位)하는‘대주제(對主題)’를 부르면서 진행한다. 주제, 응답주제, 대주제의 관계가 모든 성부를 중심으로 반복되는 것이 푸가형식이다.       문학에서의 대위법은 서로 다른 감정이나 주제를 병치시키는 기법으로, 서로 상반되거나 모순되는 어구를 연결하여 대비의 느낌을 강하게 강조하는 동시에 그 대립 자체가 하나의 통일성을 갖게 한다. 김종삼의 시에서 이러한 음악기법들이 잘 활용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으며(조용훈, 「김종삼 시에 나타난 음악적 기법 연구」, 『국제어문』, 2013, 321-346쪽), 푸가 형식을 활용하여 시의 의미를 한층 풍성하게 한 사례를 첼란의 시에서 찾을 수 있다(박미리, 「음악과 문학의 상호 매체성 – 한 예로서 푸가 형식과 첼란의 시 ‘죽음의 푸가’」, 『독일어 문학』제56집, 2012, 121-146쪽).       클레의 그림 에서 그림의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고속도로는 곧게 뻗고 안정적인 길이다. 그 옆의 수많은 샛길들은 좁고 불안정하고 아무렇게나 생겨난 오솔길이다. 우리의 삶은 고속도로처럼 평탄한 한 평생을 보내든, 불안정하고 흔들리며 어렵게 살든 결국은 하나의 지평선에서 만나게 된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고, 살고 있고, 살게 될지 사람마다 다 다르지만, 결국은 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만났을 때, 후회 없는 삶이 되도록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시인은 클레가 그린 을 보면서, 대위법을 염두에 두고 을 썼다. 이 시에서 시인은 주어진 길이 어떤 길이더라도 예술가의 길을 가겠다고 다짐한다.         푸른 바다로 향하는 길 모두에게 넓고 모두에게 좁은 모든 길 가지각색으로 가지각색의 길을 닦고 있다       바다 건너 아주 먼 바다 건너 내가 온 별자리를 향해 층층마다 다른 색깔로 비틀거리기도 하며 뜀박질도 하며 때로는 목적지를 환히 보기도 하고 때로는 목적지를 잊기도 하지만 멈출 수 없는 길       점. 선. 면. 색을 통해 가야할 길 가는 길을 알기 위해 한 평생을 바치는 화가의 붓질 속에 아득하게나마 찾을 수 있는 나의 모습을 붙들자 붉고 푸른 오렌지 빛깔들 안개 속으로 사라져 버리더라도   - 김철교 (『무제2018』,시와시학,2018) 전문           첫째 연과 둘째 연.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푸른 바다를 향하는 길을 가는 길손이며 각각의 길은 다르다. 푸른 바다란 각각이 지향하는 낙원, 본향, 고향인 것이다. 인간은 태어난 고향을 그리워하며, 연어도 알을 낳고 죽기 위해 고향으로 회귀한다. 물론 그 고향, 즉 삶의 목적, 가고자하는 종착지는 모든 사람에게 다르다. 또한 가는 방법(삶의 노정)도 다르다. 어느 것이 정답이고 옳다고 할 수 없다.       둘째 연에서는 가는 길을 멈출 수 없는 숙명을 말하고 있다. “내가 온 별자리를 향해/ 층층마다 다른 색깔로/ 비틀거리기도 하며/ 뜀박질도 하며/ 때로는 목적지를/ 환히 보기도 하고/ 때로는 목적지를/ 잊기도 하지만/ 멈출 수 없는 길”인 것이다.       셋째 연은 예술가의 길을 노래하고 있다. 보통 사람들은 자기의 길이 어떤 길인지, 어떻게 가야 좋은지 고민 없이 그저 간다. 그러나 예술가들은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면서 자기가 가야할 길을 만들어 가려고 한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다른 길들은 어떤 길들일까? 길 너머에는 어떤 길이 있을까? 끊임없이 질문하며 가는 사람이 예술가다. “점. 선. 면. 색을 통해/ 가야할 길/ 가는 길을 알기 위해/ 한 평생을 바치는/ 화가의 붓질 속에/ 아득하게나마 찾을 수 있는/ 나의 모습을 붙들자/ 붉고 푸른 오렌지 빛깔들/ 안개 속으로 사라져 버리더라도” 꼭 그림 속에서 만이 아니다. 모든 예술, 더 넓혀 모든 학문 속에서 삶의 목표를 향해 애쓰는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될 것이다. 그저 아무 할 일 없이 세월을 소비하는 것을 시인을 참지 못한다.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는 듯한 인생은 얼마나 불쌍한가? 목적, 꿈, 소망(죽음을 앞에 두었더라도 천국에 대한 소망이라도 가져야 한다)이 없는 삶은 동물과 다름이 없지 않은가. 물론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는 동물들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시는 음악적 기법 중에 대위법을 잘 활용하였다. 대위법을 통해 리듬을 살리고 있고 내용을 풍성하게 하고 있다. 또한 색채 이미지 ‘붉고 푸른 오렌지 빛깔’은 도, 미, 솔을 색채로 나타낸 것이다. 러시아 작곡가 스크리아빈(Alexander Scriabin, 1871-1915)은 음과 색채와의 상응관계를 연구한 바 있다.       삶의 조화로운 것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행복이 비록 안개 속으로 사라지고 아무 것도 볼 수도 기대할 수도 없는 삶이라 할지라도 나의 모습을 찾아 예술 속에 한 평생을 던지겠다는 것이다. 이 시의 형식적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리듬과 색이 합쳐진, 즉 ‘보는 리듬’도 클레의 이론에 따라 도입한 것이다.         5. 읽기                         피카소의 15m의 조각 작품 는 시카고 시청 앞에 세워져 있다. 이 조각상을 보고 쓴 시 에서, 시인은 거대한 조각 앞에 서 있다가, 자신이 조각 작품이 되어 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 앞을 지나가는 다양한 인종, 다양한 나이, 다양한 모습의 인간들을 관조하면서, 대위법적 구성을 통해, 삶의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는 나름의 해답으로 자족한다. 반야심경에서 세상 모든 삶의 질문에 대한 해답은 ‘없다’라고 단언하고 있는 것을 기억하면서, 그저 있는 자리에서 자족하며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작품화 하였다. 없는 해답을 찾아 애쓰는 고통으로부터 해방이, 구원이요 행복의 지름길이 아닐까 자문자답하면서.         거대한 몸짓이 우리를 저 아래로 내려다보며 안쓰러운 듯 행복한 듯 무심한 듯       거리를 초점 없이 거닐고 있는 노인들 손잡고 휘파람 부는 정다운 애인들, 애인들, 천방지축 재잘대는 아이들, 아이들, 아이들       존재마다 무슨 제목을 붙일 수 있나요? 사람마다 딱 맞는 옷이 있나요? 행복으로 가는 길은 어데 있나요?       도서관에 꽉 찬 책들이 해답을 줄 수 있나요? 책장마다 역사의 뒤편에 감춰진 그림자를 알 수 있나요? 책 속에 뭔가 있긴 있나요?       그냥 저 거리에 부는 매연 섞인 바람 속이지만 웃고 싶은 웃음이나 실컷 웃지요   - 김철교 (『무제2018』,시와시학,2018) 전문         6. 읽기                 미로,         호안 미로의 그림(, 1974, 216x174Cm, 캔버스에 아크릴과 목탄, 마요르카 호안 미로 재단)은 사람의 얼굴을 단순화 시킨 모습이다. 위쪽에는 머리를 표현하는 듯한 검은 색이 있고, 그 아래 검은 눈, 그리고 그 아래는 회색 얼굴빛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림의 크기는 제법 커도 아주 간결한 그림이다.       이 그림을 시로 쓴 에서는 빛의 3원색이 등장하고, 그러한 밝고 맑은 색깔에서, 다장조의 화음까지 읽어낼 수 있다. 사방에서 우리는 지켜보는 하나님의 눈을 염두에 두면서 그림을 응시하고 얻은 이미지를 시로 옮긴 것이다. 검은 색과 회색으로 그려진 그림 앞에 서면, 수용자의 마음에 검은 그림자를 드리울 수도 있을 법하지만, 시인은 이 그림에서 항상 우리를 따뜻한 눈으로 보살피는 창조주의 마음을 읽고, 삶을 평화롭게 관조하는 행복한 얼굴 모습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 시도 대위법을 염두에 두었으며, 색깔의 이미지도 도입하여 미술과 음악 기법을 동시에 활용하려고 시도한 작품이다.           하늘에도 눈 뒤에도 눈 앞에도 눈 바다에도 눈       마음 깊은 곳에도 눈 너머 저 너머에도 눈 온 세상에 눈 눈 눈       정염이 맴도는 빨간 눈 세상 빛으로 가득한 파란 눈 교회 종소리 가득한 초록 눈   도 · 미 · 솔 저 너머 투명한 눈           때로는 차갑게 때로는 따뜻하게 바라보는 눈 그분의 눈   - 김철교 (『무제2018』,시와시학,2018) 전문         우리 주위에는 많은 눈들이 있다. 하늘도 바다도 미지의 세계도 시인을 응시하고 있다. 주위 온갖 세상 사람들의 눈도 시인을 향하고 있다. 내가 어떤 대상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은 그 대상과 내가 눈을 마주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진정 우리에게 평안을 줄 수 있는 인식의 눈은 그 분의 눈 밖에 없다는 것을 시인은 확인한다. 이해할 수도, 내 마음대로 할 수도 없는 삶의 속박 속에서 평안을 얻을 수 있는 길은 그 분의 눈과 마주치는 것이다.(*)
춤과 색과 음의 불협화속에 있는 은근한 질서 - 예술 융·복합을 활용한 시 창작(2)   김철교(시인, 평론가)     3. 읽기       는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1866〜1944)가 1911년 쇤베르크(A. Schoenberg, 1874〜1951)의 음악회에 다녀온 후 그 느낌을 그린 것으로, 청각적 체험을 시각적 이미지로 변환하여 회화와 음악의 공감각을 표현한 것이다.       검은 색 부분은 무대 위의 그랜드 피아노를 상징한다. 왼편 여러 개의 검은 곡선들은 무대 가까이에 있는 청중을 나타낸다. 피아노를 중심으로 좌우 흰 기둥은 소리기둥을 은유한 것이다.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노란색은 쇤베르크의 음악이 홀을 가득채운 것을 그린 것이다. 그 밖의 여러 가지 색들은 각종 악기들의 소리를 표현한 것이다. (김광우, 『칸딘스키와 클레 – 추상미술의 선구자들』, 미술문화, 2015, 19~20쪽).       보다 관련 작품을 정밀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칸딘스키, 쇤베르크, 스크리아빈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어야 한다. 칸딘스키는 추상미술의 아버지, 쇤베르크는 무조음악의 창시자, 스크리아빈은 음을 색으로 표현한 선구자라는 점이다.       당시 칸딘스키가 다녀온 음악회에서는 쇤베르크의 ‘현악 4중주’와 ‘3개의 피아노 소품’이 무대에 올랐다고 하며, 이는 무조음악(無調音樂)의 시작을 알리는 연주회였다. 무조음악이란 악곡의 중심이 되는 장조(長調), 단조(短調) 등의 조성(調性)이 없는 음악을 말한다. 으뜸음도 없어서 모든 음은 동등한 지위를 지닌다. 쇤베르크는 한 옥타브를 구성하는 7개의 온음과 5개의 반음을 포함한 12개의 음을 모두 사용하여 곡을 구성하는,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12음 기법을 창안하였다. 장조나 단조의 조성에 바탕을 두지 않는 무조음악(無調音樂)은 쇤베르크 이후 일반화되었다.       당시로서는 불협화음이 음악에 도입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어떤 것이 불협화음인지 화음인지 정의하기 나름이겠지만 당시로는 혁신적인 기법이었다. 불협화음을 음악에 편입함으로써 현대사회의 부조화와 삭막함을 예술에 담아내어 카타르시스의 역할을 해내고 있다. 아도르노가 현실을 아름답게만 표현하는 예술은 현실의 고통을 회피하고 현실을 왜곡하게 한다는 주장과 같은 맥락이다. “현실의 고통을 표현해서 사람들이 현실을 극복할 수 있도록 힘을 불어넣는 것이 진정한 예술이며, 그런 예술이야말로 진정한 아름다움이다.”고 아도르노가 주장한 바 있다.       러시아의 신비주의 작곡가 스크리아빈(A.Scriabin, 1871~1915)은 자신의 음악에 시각적 효과를 더하기 위하여 작품이 연주되는 동안 개개의 음에 해당하는 빛을 투사하는 것을 시도한 바 있는데, C(도)=빨간색, D(레)=노란색, Db(레b)=자주색, E(미)=파란색, Eb(미b)=구리색, F#(파#)=군청색, G(솔)=오렌지색, A(라)=초록색, Ab(라b)=제비꽃색, B(시)=암적색, Bb(시)=철색이었다.(전상직, 『음악의 원리』, 음악춘추, 2014, 36쪽)       색의 삼원색은 상호조합에 따라 다양한 색을 만들어 내고, 모두 합쳐지면 검은 색을 나타낸다. 음(音)들의 어울림에 따라 다양한 색깔로 표시 할 수 있다고 한다면, 칸딘스키의 그림을 보면서 역으로 어떤 음악을 떠올릴 수 있을까? 또 어떤 느낌을 가질 수 있을까?       각 개인의 집단무의식과 개인무의식의 역동에 따라 똑같은 그림과 음악에서도 행복 혹은 불행, 질서 또는 무질서, 고요함 혹은 잡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시인은 칸딘스키의 그림을 보면서 어떤 시상(詩想)을 얻었는지 살펴보자.                   * 칸딘스키 (Wassily Kandinsky, 1866~1944), , 1911,   캔버스에 오일과 템페라, 77.5x100Cm, 렌바흐하우스(Lenbachhaus), 뮨헨.               색깔 속에서 화음이 들리고 (조화롭지 않아도 된다) 무질서한 선(線)에서도 악보를 읽을 수 있는 캔버스에 콘서트 장이 서고 누군가 시를 낭송하면 된다 (시인이 아니어도 된다)       땀범벅 마당에서는 그렇게 음악과 미술이 문학이 뒤엉켜 무질서 속에서 은근히 질서가 서고 지성도 감성도 찾지 못한 화성(和聲)이 완성된다       도는 빨간색 옷을 입고 미는 파란색 모자를 쓰고 솔은 오렌지색, 그래 오렌지를 입에 물고 흥겨운 춤을 추자 가야 할 길을 몰라도 그저 가는 길로 가자       - 김철교 (『무제2018』,시와시학,2018) 전문             이승하에 의하면, “이 시야말로 ‘음악과 미술이 문학이 뒤엉켜/ 무질서 속에서/ 은근히 질서’를 세우는 융ㆍ복합적인 시가 아닌가 한다. (······) 시의 제3연은 랭보의 시 「모음」을 연상시키기도 하는데 (······) 「춤추는 음악」은 음악과 미술과 문학의 융ㆍ복합을 꾀한 작품”이라고 보았다. (이승하, 「그림을 본 관람객, 어떻게 시를 쓰는가」, 『예술 융복합시대의 시문학』, 시와시학, 2018, 202~203쪽)       시인은 칸딘스키의 그림 를 보면서, 음을 색으로 표현했던 스크리아빈(A.Scriabin, 1871-1915)을 생각한다. 스크리아빈은 음 높이와 색채의 상호관계를 연구하고 각 음계마다 색깔로 나타냈다. 빨간색, 푸른색, 오렌지색(노란색)은 도·미·솔을 은유한 것이다. 또한 시인은 쇤베르크의 무조음악 를 떠 올린다. 칸딘스키가 쇤베르크의 콘서트에서 들었다는 무조음악과 연관시켜 이 그림을 그렸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제1연은 를 듣고 쓴 시이다. 처음에는 부조화(不調和)의 조화(調和)라할까 좀 생경한 맛이 있지만 자주 듣다보면 묘한 세계에 빠져들게 된다. 어울릴 것 같지 않는 음들의 어울림, 조화로울 것 같지 않는 색들의 조화, 시인의 느낌을 자신의 느낌으로 대신하려는 시낭송가, 음악과 미술과 시가 어울리는 한마당이다. 화음이란 본래 조화롭다는 것을 말하지만, 조화로워야 할 화음이 조화롭지 않아도 조화로워질 수 있게 된다는 것은 바로 이런 느낌을 뭉뚱그린 것이다.       인간의 세계는 그런 것이다. 이성적인 것 같으면서도 비이성적인 것이 현실이다. 서양에서 경영경제의 모든 이론들은 합리성을 전제로 한다. 인간은 합리적이라는 기본적인 전제아래 경제이론과 정책들이 세워지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경영경제 현장에서 모든 결정이 이성적인 정확한 계산에 의해서 투자와 생산과 소비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2017년에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세일러(Richard H. Thaler; 1945〜)는 심리학과 경제학을 연결시킨 ‘행동경제학’을 세상에 내놓은 공로를 인정받았다. ‘행동경제학’은 ‘인간이 합리적으로만 행동한다고 할 수 없다’는 전제하에 경제사회를 설명하고 있다.       비이성적인 결정들이 난무하는, 그러면서도 그럴듯하게 어울려 경제 경영사회가 비교적 순항하고 있다. 무질서 속의 질서, 그것이 인간세계를 가장 잘 설명하는 것이 아닐까. 모든 학문에서 이제는 의사결정 주체들이 더 이상 이성적이라고 고집하지 않는다. 인간세계에서 비이성적인 의사결정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에 살맛이 나는 건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미가 전혀 없는 로봇이 경영하는 세계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음악의 세계에서도 장·단조에 따라 화음을 잘 맞추어 오선지에 담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림도 현실을 그럴듯하게 묘사하려 하지 않는다. 예술가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이미지들을 자유롭게 화폭에 오선지에 반영하고 있다. 표현주의 예술, 초현실주의 예술이 우리 삶의 참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쇤베르크가 표현주의 음악으로 분류되는 에서 사용한 알베르 지로(Albert Giraud; 1860~1929)의 시는 의미의 그림자조차 짐작하기 어려운 초현실주의 시(詩)다. 쇤베르크의 는 악기들과 소프라노의 음성이 뒤섞여 만들어내는 소리로 더 초현실적이다. 전통적인 조성(調性)과 화성(和聲), 형식과 구성 등을 부정하여 당시까지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전혀 새로운 음악이다. 표현주의 음악은 20세기 초의 인상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일어난, 세계대전의 어두운 의식을 반영하고 있는 혁신적인 운동이다.   제2연에서“무질서 속에서/ 은근히 질서가 서고// 지성도 감성도 찾지 못한 화성이 완성된다”고 시인은 노래하고 있다. 바로 인간 삶의 진면목이다. 인위적인 법칙과 질서, 지성만으로, 감성만으로 만들어진 예술, 정교한 이론에 의한 이루어진 화성, 그런 것들이 아니라, 모든 것이 뒤엉켜있으나 은근히 질서가 있는 삶, 그것이 이성적이지만은 않은 인간의 세계인 것이다.       이제 우리는 단토((Arthur Danto; 1924〜2013)가 『예술의 종말이후』에서 주장한 바와 같이, 예술은 잘 정돈된 르네상스식의 예술이 종말을 고하고, 1964년 워홀의 가 미술전시장에 등장하면서 모든 것이 예술이 될 수도 있고, 모든 기존 예술이라는 것이 예술이 되지 않을 수도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즉 이성이라는 가면을 쓰고 살던 예술이, 이제는 인간 정신세계에 존재하는 그대로, 즉 이성에 의해 간추려지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표현하는 예술의 시대, 음(音)과 색(色)과 시(詩)가 구분 없이 어우러지는 세계, 그것이 진정한 예술의 세계이며 진정한 삶의 세계인 것이다.       제3연을 보자.“도는 빨간 색 옷을 입고/ 미는 파란색 모자를 쓰고/ 솔은 오렌지색, 그래 오렌지를 입에 물고/ 흥겨운 춤”을 추는 마당. 전통예술의 정돈된 오페라의 무대, 원근법과 잘 복사된 현실을 나타내는 캔버스가 아니라, 나이트클럽에서 추는‘막춤’의 예술이, 예술의 진정한 모습일 수도 있지 않을까? 인간의 삶은“가야 할 길을 몰라도/ 그저 가는 길로 가”는 것이 우리네 삶이다. 무슨 법칙과 이성적인 흐름에 편승하여 사는 삶이 아니라, 하루 아니 한 순간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삶이 우리네 삶인 것이다.       시인이 경영대학원에서 지도했던 러시아 학생 중에‘나자’라는 학생이 있었다. 아주 춤을 잘 추었는데, 러시아에서 고등학교 때 정규과목으로 춤을 배운다고 했다. ‘나자’는 시인에게 춤을 가르쳐 주겠다하여 자주 유성에 있는 나이트클럽에 갔다. 시인은 짧은 시간에 스텝을 배울 수도 없어 그저 마구잡이로 흔들어 대는 소위‘막춤’을 추게 되었다. 동행한‘나자’친구들도 마찬가지다. 한참 흥겨운데 무슨 격식이 필요하겠는가. 시인은 학생들과 어울려 정신없이 막춤을 추면서 깔깔대며 즐거운 저녁을 보낼 수 있었다.   물론 춤의 기본을 배운 학생들은 내가 보기엔 멋대로 추는 것 같아도, ‘은근한 질서’를 갖추었을 것이었지만, 나는 그런 기본기를 배운 적이 없었기 때문에 말 그대로 마구잡이로 흥에 겨워 추는‘막춤’이었다. 격식에 맞는 춤, 원칙에 맞는 춤, 그런 춤은 재미가 없다. 공연장에서 점잔을 빼면서 감상하는 발레도 나름대로 좋겠지만, 그것은 관객인 ‘나’의 세계가 아니라 특수 계급 즉 전문 배우들, 발레리나들의 세계인 것이다. 관객은 그저 멀리 떨어져 있는 타자인 것이다. 막춤은 그저 흥겨운 대로 몸을 흔들어대는 무질서한, 그렇지만 보는 사람이나 추는 사람이나 함께 어울려 흥겨울 수 있다. 나이트클럽에서 정신없이 흔들어대는 막춤같은 음악, 그것이 정신과 맞닿아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이 시를 쓴 것이다.       제3연에서, 도, 미, 솔은 다장조 으뜸화음이다. 으뜸화음은 으뜸음을 기준으로 3도 위의 음과 5도 위의 음을 함께 표현한 화음을 말한다. 장조에서는 ‘도 · 미 · 솔’의 화음이, 단조에서는 ‘라 · 도 · 미’의 화음이 으뜸화음이다. 일반적으로 장조(major)는 밝고 깨끗한 느낌을, 단조(minor)는 우울하고 슬픈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러한 도·미·솔이 무질서하게 어울려도, 멋들어진‘자연스러운’느낌을 연출할 수 있다. 물론 그 무질서는 낙서와 달리, ‘은근한 질서’를 가진 무질서인 것이다. 예술혼이 무질서를 무질서에 머물게 하지 않고 은근한 질서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무질서가 무질서로 머물 때 그것은 낙서요 소음이다. 예술가에 의해 은근한 질서를 갖추어져 있을 때 비로소 예술작품이 될 수 있다. 낙서 같은 한 줄의 글, 혹은 시장 잡배들의 상소리 같은 글들이 버젓이 시라는 옷을 입고 무대에 등장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삼원색이 서로 엉켜 모든 색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화음과 비화음이 어울려서 또 다른 조화로움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이성과 비이성, 현실과 초현실, 의식과 무의식, 그것들의 영역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고 서로 넘나들며 ‘조화로움’을 생산하는 것이 예술의 세계다.       절경을 잘 묘사해놓은 그림보다, 어린아이들이 투박하게 그린 그림에서 진실된 감동을 얻고, 유명한 서예가의 정돈된 서체로 써진 글씨보다, 어린아이의 천진난만한 글씨들에서 우리는 더 푸근함을 느낀다. 정돈된 그림과 글씨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감상해야 하지만, 어린아이들의 그림과 글씨를 보면, 우리의 이성을 무장해제 시켜 안온한 느낌을 주어, 현대 사회의 톱니바퀴에서 짓이겨진 우리 영혼을 치유해 준다. ‘예술의 전당’에서 가끔 전시되는 어린아이들의 작품 앞에서 머무를 때가 더 평화를 느끼는 이유라 하겠다.(*)
그림으로 쓴 시   - 예술 융·복합을 활용한 시 창작(1)       김철교(시인, 평론가)     1. 열린 예술       아서 단토가 『예술의 종말 이후』(이성훈·김광우 역, 미술문화, 2012, 13쪽)에서 “우리는 예술이라고 하는 핵심적인 개념에 속하는 것으로 여겨졌던 거의 모든 것이 사라져버렸다는 것과, 한때 예술에게 본질적으로 보였던 속성들이 아예 없더라도 어떤 것이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미술의 개념은 바자리(Giorgio Vasari, 1511-1574)가 『르네상스 미술가 평전』을 쓴 르네상스 때에 비로소 일반적으로 인식되어 미술사가 시작된 것으로 보며, 바자리 이후 1964년까지의 서양미술사를 하나의 르네상스 패러다임에 비유했는데, 이 전형이 1964년 워홀의 가 등장하면서 종료되었다는 것이다. 1965년부터를 ‘서양미술사 이후’의 시기로 인식하면서, 예술가는 이제 모든 형식과 도그마로부터 자유로워졌고 예술가의 유일한 역할은 ‘예술 자체의 본질을 탐구하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화장실의 낙서도 시집(詩集)으로 들어오면 시가 될 수 있고, 거리에 버려진 찌그러진 깡통도 전시장에 전시되면 예술이 될 수 있다. 물론 거기에는 예술의 본질과 교신하는 예술 철학이 뒷받침이 되어야 한다.       예술은 열려 있어야 한다. 작품을 통해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 수만큼 다양한 질문과 해답을 읽을 수 있다. 생산자인 예술가의 의도와 소비자인 수용자(관객/독자)의 이해가 일치하지 않는 것이 예술이다. 수용자 사이에도 일치할 수가 없다. 무의식의 역동이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 다양한 질문과 다양한 해답이 가능하기 때문에 예술의 존재가 더 우리 삶에 귀중한지도 모른다.   삶의 본질과 행복에 대한 물음은 끊임없이 있어왔다. 그 해답은 모두가 다르기 때문에 ‘정답’은 없다. 모든 물음과 모든 해답이 다 옳다고도 할 수 있고 그르다고도 할 수 있다. 오직 사람마다 각기 다르다는 것을 수긍할 수밖에 없다.(김철교, 『예술 융복합시대의 시문학』, 시와시학, 2018, 7쪽)   최근 예술은 미술이라는 장르를 앞세워, 활발한 융·복합을 통해 각자의 품을 넓히면서 영역을 계속 확장하여 왔다. 파리의 퐁피두 현대미술관, 니스의 근현대미술관은 물론, 우리나라 현대미술 전시장에 가면 회화, 조각, 사진, 음악, 영상, 스토리텔링 등을 비롯하여, 오만가지 혐오스런 오브제까지 어울려 다양한 작품을 만들어내고 있다.       필자는, 문학은 언어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이웃 장르를 넘겨다보며, 미술과 음악을 문자로 은유해 내는 작업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에서, 시문학의 좌표를 그려보고자 『예술 융·복합시대의 시문학』을 2018년 12월에 출간한 바 있다.       이에 앞서, 관련된 실험시들을 2018년 8월에 시집 『무제2018』에 묶었다. 본고에서는 이 시집의 제5부 「이미지의 반란」에 수록된 열여섯 편을 해설하면서, 각종 미술 및 음악 이론과 기법을 어떻게 시 창작에 활용할 수 있는 가를 탐구하고자 한다.       이들 시는 마치 추상화 그림 앞에 서있을 때처럼 나름대로 이미지를 떠 올릴 수 있도록 의도된 시이기 때문에, 그 의미를 파악하려고 노력한다면 쉽게 다가 설 수 없다. 마치 이우환(1936~)의 점·선·면 관련 작품들 앞에서 현상 저 너머의 세계를 유추한다든지, 호완 미로(1893~1983)의 동화 같은 추상화를 보면서 즐거운 상상에 빠진다든지, 마크 로스코(1903~1970)의 추상화 앞에서 가부좌하고 명상에 빠진다든지, 하는 것처럼, 독자들이 어떤 분명한 메시지나 의도를 캐려 하지 말고 오직 무한의 상상의 날개를 펼 수 있도록 기획되었다. 김춘수의 무의미시가 오직 리듬만을 추구했다면, 『무제2018』 제5부 「이미지의 반란」에 실린 시들은 음악과 미술이 한판 거나하게 어우러졌으면 하는 바램을 담았다.       앞으로 이어질 몇 편의 글에서는, 단지 비평가의 견지에서 시인(생산자)의 이미지를 소개함으로써, 독자들의 수용(소비자)을 돕기 위한 것이다. 예술 비평가의 역할은 흔히 예술가의 이미지를 번역 혹은 해설하는 일이라고 한다. 그러나 번역의 우열, 번역의 정오(正誤)는 없다. 단지 비평가의 눈으로 ‘이렇게 볼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독자는 비평가에게 동의할 필요도 없다. 다만,‘저렇게 해석하는 사람도 있구나’하는 정도면 되는 것이다. 원본도 번역본도 ‘실재’는 아니다. 원본도 실재가 아니다? 그렇다. 시인이 쓴 시(원본)도 결국 현상 혹은 인식 저 너머에 있는 그 무엇에 대한 시인의 손짓(열망)일 뿐이니까. 시인의 작품도, 그에 대한 평설도 나름대로 충분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좋은 시뮬라크르들이다. 일반적으로 시뮬라크르는 원본의 성격을 부여받지 못한 복사물을 지칭하지만, 필자는 시뮬라크르에 원본의 그림자는 남아 있다고 본다(김철교,『예술 융·복합시대의 시문학』, 21-24쪽)       2. 읽기       는 호안 미로가 그린 라는 그림을 보고 쓴 시다. 호안 미로는 나름대로 떠오르는 詩의 이미지를 그림으로 그렸다. 시인은 이 그림을 보고 문자로 시를 그렸다. 우리는 추상화나 절대음악 절대음악과 표제음악: 절대음악은 음악 외의 문학, 철학, 회화 등 다른 예술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지 않고 순수한 음의 논리적 조합에 의해서 예술성을 추구하는 음악이며, 표제음악은 곡의 내용을 설명 및 암시하는 표제(標題)로써 구체적 또는 추상적인 대상을 묘사하려는 음악. 을 들을 때에 나름대로 이미지를 떠올리며 감상을 한다. 비록 문자로 된 메시지가 없어도 나름대로 이야기를 만들어 수용을 하는 것이다. 추상예술은 예술가에게나 수용자(관객/독자)에게 무한한 자유를 준다. 호안 미로는 물론이요, 시인도, 호안 미로의 그림을 본 관람객도, 시인의 시를 읽는 독자도, 모두 머리에 떠올리는 이미지가 각기 다를 것이다.       ----------------------------------------------------         * 미로(Joan Miro, 1893~1983), , 1966, 캔버스에 유채와 목탄, 259.5x173.5Cm, 마요르카 호안 미로 재단, 스페인. --------------------------------------------------         호동그랗게 검은 눈 검은 눈 소녀 잠 기지개 아주 큰 기지개       물구나무 하늘 바다 손자국 손금 영혼길 길 큰길 작은길       크레센도 쿵쾅쿵쾅쿵 돛 닻 갈매기 부두 어시장 선혈 해변 장미 말벌 쾅 데크레센도 라르고       묘지 흰나비 흰국화 비너스의 하얀 젓가슴 피아니시모 피아니시모 피아니시모       - 김철교 (『무제2018』, 시와시학, 2018.) 전문     --------------------------------   호안 미로는 바르셀로나에서 출생하여, 1907년 바르셀로나의 미술학교에 입학하고, 1912년 이후 갈리 아카데미에서 공부하였다. 1925년에 초현실주의 제1회전에 출품하였는데, “그의 초현실주의는 아주 밝은 시정과 단순화되고 순수화된 형태와 색채의 조화에 의한 율동적인 구성에 의하여, 조형성(造形性)의 긴밀감을 준다. 별 ·여자 ·새 등을 거의 상형문자와 같이 환상화(幻想化)하여, 그것들을 조화시킨 화면은 건강하고 명쾌한 유머마저 풍긴다.”는 평을 받고 있다.   호안 미로의 그림 를 보고 있노라면, 시인에게는 해변가에서 검은 눈이 커다란 소녀가 큰 기지개를 켜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녀는 이내 물구나무를 선다. 하늘과 바다가 뒤집혀 보인다. 땅 바닥에는 손자국이 선명하다. 손금에는 사람의 굴곡진 한 평생 가는 길이 나타나 있다. 젊은 시절에는 겁 없이 세상에 도전을 하게 된다. 세상을 거꾸로 보고 싶은 것이다. 음악이 점점 높아지는 가운데 소녀는 물구나무를 선 채, 부두와 배와 갈매기를 뒤로 하고 어시장으로 들어간다. 시장에는 싱싱한 고기들이 팔딱팔딱 선혈을 흘리고 있다. 어시장만큼 생과 사가 분주한 곳이 어데 있으랴. 사람들은 세상에 대한 거친 도전에서 때때로 피도 흘리게 된다. 다시 밖으로 나오면 가까이 해변에 장미 꽃밭이 보이고, 아름다운 말벌이 꽃에 앉았다 날았다 하며 점점 커지는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 ‘쾅’하면서 크게 한번 울리고 음악이 점차 잦아들자 소녀는 물구나무서기에서 벌떡 일어난다. 저 멀리 해변가의 묘지로 눈을 돌리자 하얀 국화에 흰나비가 날갯짓을 하고 있다. 소녀는 흐트러진 옷매무새 사이로 하얀 젖가슴을 드러내고 이를 조용히 바라보고 있다가 음악과 함께 점점 사라진다.   한 소녀가 이 세상으로 건너와 격렬하게 살다가 퇴장해야 하는, 인간 삶의 한 노정이 파노라마처럼 상상 속에서 펼쳐지고 있다. 특히 명사만을 사용함으로써 속도감을 높이려는 장치를 하였다.       는 데페이즈망 기법과 표현주의 기법을 사용하되, 특히 색채 이미지와 음악 기호를 차용하였다. 호안 미로의 라는 그림을 보고 있으면 색깔과 음향의 이미지들이 생생하게 떠오르는데, 그때 마음속에 격하게 일어났다가 스러지는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쓴 시가 이다. 전혀 엉뚱한 이미지들이지만 합쳐지면 통일적인 이미지가 형성되도록 유념하였다.       데페이즈망기법이란 사물을 상식적인 관계를 벗어나 엉뚱한 관계에 두는 것을 말한다. 초현실주의자의 선구자인 시인 로트레아몽(Comte de Lautreamont, 1846-70)의 ‘재봉틀과 박쥐 우산이 해부대 위에서 뜻하지 않게 만나듯이 아름다운’이라는 표현에서 그 전형을 볼 수 있다(『세계미술용어사전』, 월간미술, 2010). 표현주의 기법은 예술의 진정한 목적이 감정과 감각의 직접적인 표현에 있음을 나타낸다. 구성(구도)의 균형과 아름다움에 대한 전통적인 개념은, 감정을 더욱 강력하게 전달하기 위해 무시 혹은 왜곡된다.       여기에서 소녀, 배, 어시장, 선혈, 해변, 말벌, 장미, 국화, 젖가슴 등은 엉뚱한 이미지들의 집합이지만 소녀의 격정적인 삶이라는 통일적 이미지를 나타내고 있다. 또한 강약, 고저 등 음악에 사용되는 용어들을 활용함으로써 음악적 효과를 극대화시키고, 미술적 이미지들과 함께 조화를 이루며 한편의 영상을 마음속에 떠올리게 인도한다.(*)  
924    하이퍼시에 대한 토론 댓글:  조회:341  추천:0  2019-06-20
하이퍼 시에 대한 토론     주제: 하이퍼 시에 대한 토론   주제발표와 사회: 심상운   기록: 이선   날짜: 2010년 11월 19일, 오후 3시   장소: ㅇㅇ찻집   참석한 사람들: 문덕수, 김규화, 심상운, 신규호, 유승우, 최진현, 정연덕, 안광태, 송시월, 이솔, 손해일, 조명제, 김기덕, 위상진, 이선,       * 『시문학』에서 기획한 특집은 2009년 11월호부터 2010년 11월호까지 4회에 걸쳐 82편이 발표되는 성과를 이뤘다. 발표된 시 중에서 70% 정도는 하이퍼시의 특성이 나타나지만 아직 흡족하지 못한 상태다. 하이퍼시 동인들은 하이퍼 시에 대한 심도있는 토론을 통하여 하이퍼 시의 개념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보다 특성화된 하이퍼 시를 쓰고자 동인들이 한 자리에 모여 진지한 토론의 시간을 가졌다.           Ⅰ. 하이퍼 시를 쓰면서 느낀 시적 감각       사회자: 자료를 모두 받아보셨습니까? 먼저 문 선생님을 모시고 하이퍼 시에 대한 의견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문덕수: 저는 시 이야기만 나오면 흥분해서 열이 오르는 그런 사람입니다.(모두 웃음) 나중 에 시간이 되면 제가 하이퍼 시에 대해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심상운: 예 제가 이 토론을 위해서 설문을… 아, 고맙습니다. 유승우 시인 오시네요, 유승우 시인한테는 연락을 안 드렸는데   유승우: 아 나도 하이퍼 시를 쓰고 싶어 공부하러 왔습니다.   심상운: 예   이선: 이것 좀 건네 주시겠어요?(유승우 시인에게 토론자료 건네줌)   심상운: 유승우 시인 오셔서 고맙습니다. 제가 이 토론을 위해서 설문을 작성해서 이맬로 보낸 적이 있습니다. 다섯 가지 질문을 드렸는데 먼저 이 일반시에 비해서 어떠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듣도록 하겠습니다. 실제적인 예를 들어서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면 더 좋겠습니다. 먼저 말문을 열 분 은 누구십니까?(주위를 둘러보며) 이솔 시인 말씀해 주세요.   이솔: 시적 감각을 말할 때 뛰어나다/ 새롭다/ 참신하다 등등으로 말할 때가 많은데요. 시적 감각은 시의 갈래를 떠나서 시 쓰기의 기본이고 중요한 요소인데요, 특히 하이퍼시의 시적감각은 하이퍼적이어야 하며 한 마디로 새롭다는 말을 들어야 합니다. 하이퍼 시의 특징 중 하나가 색채감각인데요, 시문학 11월호에서 색채를 시적감각으로 한 시를 보면, 송시월「초록거울」과 이선「빨강 스펙트럼」, 강영은「노란집」, 고종목「땡볕 한 장」, 이솔「도룡뇽알 까만 눈이 나를 보고 있다」등이 있습니다. 「초록거울」은 녹색스프링노트, 떡갈 나뭇잎 거울에서 활활 타는 햇살, 빗방울의 전주곡, 거울 속에서 초록으로 팔랑거리는 난로 초록거울의 시적 감각을 생동감있는 색채로 나타내고, 이선의 「빨강 스펙트럼」에서는 노랑, 빨강, 보랏빛 그림자, 붉은 립스틱, 립글로스, 하얀 이빨, 노랑불빛 등으로 현란한 색채를 통한 감각을 보여줍니다. 강영은의 「노란집」에서는 고흐의 그림을 통해 해바리기, 노랗게 불타는 태양, 햇볕에 그을린 여자의 젖통, 아를의 들판으르 통해 고흐의 단면을 확실하게 보여줍니다. 고종목도 「땡볕 한 장」에서 8월 한낮에 파란신호등, 빨간 관광버스, 깜박깜박 등을 통해 뜨거운 한낮을 색채감을 통해 보여주고, 이솔ㄷ은 「도룡뇽알 까만 눈이 나를 보고 있다」에서 흙빛의 촉촉한 검정빛, 알다발 속에서 나를 보는 까만 눈, 인도 델리 짐꾼의 검은 눈, 그러나 터질듯 미끈거리는 생명의 빛으로 적극적 시적감각을 보이고자 했다. 특히 김규화는 청각적 이미지를 감각적으로 잘 보여준다고 생각듭니다. 「계곡 물소리」는 북한산 계곡에 흐르는 afthfl는 발을 담그고 쉬면서 시는 무엇을 쓰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쓰느냐를 얘기하다 지하철 편의점에서 뜨거운 커피르르 마시며 계속 이어지는 물소리를 감각적으로 쓰고 있다. ‘ㄹ’에 빠져서는 둑에서 흘러흘러 홍제천에 빠지는 나비가 ㄹ을 안고 흐르며 한강까지 누워서 흐르는, 시 전편을 f이 빠져 흘러가는 이어지는 그림을 보듯하여 실험성이 두드러져 보인다. 김시인은 특히 소리로 차별성을 만들어가는 노력을 볼 수 있다. 매미소리, 개구리 울음소리, 계곡물소리의 감각적 이미지를 보여준다.       첫 번째 시적 감각에 대해서 말하다 보면 다른 문제와 중복되는 점이 많은데 우선 참신합니다. 시적감각은 하이퍼적이려하며 한마디로 새롭다는 말을 들어야 합니다. 11월호에서 보면은 색채를 시적감각으로 한 시를 보면은 송시월의 초록 거울, 이선의 빨강스펙트럼, 강영은의 노란, 색채를 고종목의 땡볕담장 색채를 시적 감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 제가 쓴 도룡뇽 알의 까만 눈이 나를 보고 있다. ‘흑빛의 생명의 빛으로 특히 생명에 비추어 김규화 시의 청각적 이미지를 감각적으로 잘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시는 무엇을 쓰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합니다. 김규화는 ’ㄹ‘ 소리를 이미지로 보여주는 시입니다. 매미소리, 개구리 울음소리, 하이퍼적인 시적 감각을 느낄 수 있습니다.   심상운: 그러면 일반시와 하이퍼 시가 어떤 감각에서 다르다고 생각하십니까?   이송:   조명제: 그 부분에 대해서 제가 잠깐 말씀드리면 소리의 울림을 가지고 시르 써 나가는데 사물의 울림과 소리가 그냥 시 작품을 써 나가는데 배경으로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고, 과거의 시들은 배경으로만 작용합니다. 그 소리를 시적 정보를 새롭게 촉발해 나가는 그랫 시를 합니다. 시를 입체화시키지 않느냐 요런 점에서 생각했어요.   이선: 제가 한번 말슴드리겠습니다. 1번 일반시와 하이퍼 시가 어떻게 다른지 위선환의 바위와 김규화의 한강을 읽다를 일단 읽어보겠습니다.           바위       위선환           백일이       김규화 시   저는 여기서 차이점을 뭐라고 보냐하면 상상력의 공간이동과 시간이동, 상상력의 공간이동과 시간이동으로 인하여 정지된 그림이 아니라, 그림이 새로운 감각과 생동감을 상상력의 공간이동과 시간이동을 하여 움직이는 그림, 새로운 감각과 생동감을 부여합니다. 따라서 디지털 시는 풍경화를 그린즌 시인들도 있는데 풍경화를 그리느냐, 김규화의 이젤을 거꾸로 세워 상상력의 공간이동과 시간이동, 또 상상력의 공간이동을 디지털 시의 특징이라고 생각합니다.   상상력의 확산을 디지털 시의 특징이라고 생각합니다.   심상운: 다른 분 준비해 온 것 발표 부탁드립니다.   송시월: 준비는 잘 못했어요. 시향 편집을 하다보니까 아무것도 생각을 못했어요. 준비를 못했어요.   나의 시는 주로 사물을 직관하여 오감으로 느낀 감각으로 시를 씁니다. 그러나 하이퍼 시는 링크되어 사방으로 건너띄는 리좀구조로 네트워크를 형성하기 때문에 주로 감각으로 씁니다. 간단한 제 하이퍼 시 쓰는 방법입니다.   심상운: 김기덕 시인 말씀해 주십시오.   김기덕: 저는 하이퍼 시에 대해서 이해를 제대로 못하고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오늘 배우려고 제가 왔는데요, 시 쓰는 방법에서 변화라고 생각하는데요, 잘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배우려고 왔습니다. 기존 시 쓰기에서 변화를 경험하는 것이 하나의 사물에 대해서 그 주변의 어떤 것을 대치시켜 가지고 다른 이미지로 확산해서 만들 수 잇을까하는 것에 초점을 두어 글을 쓸까하고 왔는데 글이 시를 써보면 잘 안돼서 제가 제 스스로 만히 볻완해야 겠구나 생각합니다. 오늘은 많이 배우려고 합니다.   정연덕: 오늘 자구품을 가지고 애기는 안 하겠고, 하이퍼 시와 생각하고 있는 가장 비선형적인 것의 구성단계를 생각해봤어요. 작법에서 상당히 자유스러워지는 것을 문선생님 작품을 보면 아, 이거구나. 비교하고 있다가 우리도 구체적인 것을 보면 아, 이거구나, 상당히 처음에는 난ㄹ행했었는데 나름대로 말씀드릴 수가 있고 또 진행해 가다가 작법상의 자유스러움, 이것도 우리 하이퍼 시가 가지고 있는 하나의 장점이다. 생각해서 조금 일반시보다 새로워지면서도 자유스러워지는 면도 있겠구나.   심상ㅇ둔: 비선형적인 것에서 오는 자유스러움,   갬규호아: 저도 일반시와 하이퍼 시의 다른점은 시적 감각이라고 했지만, 우선 일반시는 선조적, 선형적이고 시간의 순서대로 원인 결과가 있고 순리대로 나가는데 하이퍼 시는 그렇지 못하고 원인 결과 다 파괴시키고 그렇습니다. 가장 구분되는 것은 원이과 결과 시간은 파괴시켜 버리지요. 파괴시켜버리니까 다른점은 소통이 어렵고 일반적으로 독자와 소통이 어렵고, 그렇지만 결과적으로는 구조상으로는 통일이 필ㅇ요하지 않나? 원인결과 파괴하더라고 구조적으로는   심상운: 비선형적이고 다양하지만은 무언가 통일된 것이 있어야 소통이 될 수가 있다? 그럼 신규호 선생님....   신규호: 내가 쓰는 시에 대해서 구태의연한 것을 느꼈어요. 관념적인 것을 벗어날 수 없고, 거기에 대해서 이미지를 만들어보려고 하고, 검정적인 것을 벗어날 수 없고, 하이퍼 시 읽고 참여해 보자. 내 시가 변해지는 걸 느꼈어요. 일차적으로 뭔가 하이퍼 시가 뭔지 잘 모르지만, 어떻게 써야 될지 잘 모르지만 내 시가 변화를 가져왔다, 거기서 잘할까 싶은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해보니가 역시 나이가 먹어 그런지 자꾸 관년이 들어가요. 그걸 완전히 벗어나기가 굉장히 힘들어요. 그걸 일반시와 비교한다면 어쨌든 시적 리듬이라는 것은 있어야 되는데 리듬을 살리기가 어렵고 산문적이 되기 쉽고... 그래서 어쨌든 하이퍼 시도 시니까 정서적인 감흥이 일어냐야 되는데 그게 어려워요. 산만히 지기 쉽다. 시의 흐름이 . 그게 고민이예요. 어떻게 하면 하이퍼적인 느낌을 살리면서도 기존관념을 벗어나 시적 정서를 살릴 수 있을까? 초점이 기존관념이 아닌, 고정관념이 아닌 어떤 정서적인 초점이 작품 속에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심상운: 최진현 시인? 1부는 묶어서   최진현: 제가 언젠가 시문학에 발표를 했습니다만 심상운씨 책을 정독하고 많이 공부했습니다. 그런데 하이퍼 시를 연구하고 그쪽으로 쓰다보니까 과거 내가 쓰던 시가 하이퍼 시가 아니었나 자꾸 그런 생각이 들어요. 링크라는 것을 제외하면 거의 다 상관성이 없는 이미지의 집합, 주제는 가상이죠. 거기 다양한 선이 집중해 있는, 초점이 거기 포커스 맞춰가지고 통일성은 없이, 잘 영상언어로 얽어놓는 컴포지션요. 저는 처음부터 그런 시를 많이 써왔어요. 젊어서부터. 내가 조금만 적응하면 하이퍼 시를 쓸 수 있겠구나. 두 번째는 아까 신규호 박사 얘기를 했지만은 시에서 관념을 제거한다는 거 그 속에 내가 하고 싶은 얘기도 녹여낼 수 있는 거 그거 제가 제일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이퍼 시의 시적 특성을 살리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녹여넣을 수 있겠는가 하는 거스   송시월: 선생님 옛날 시에 그래프가 하이퍼 적인 시다   최진현: 그래픽 1       2. 실제로 시 쓰기를 할 때 인식한 하이퍼시와 일반 시의 차이점       위상진: 1,2번을 묶어서 말씀드리면 하이퍼를 말할 때 의식과 인식이 유로와질 수 있었다. 그 다음 긴장감을 유지한다는 거. 하이퍼라는 같은 음식도 담는 그릇에 따라서 인식과 의식이 달라진다. 하이퍼를 하나의 그릇이라고 생각했을 때 그릇에 따라서 소스와 다른 부수적인 것이 들어가는 것이 달라진다. 일반시와 차이를 얘기했는데 저는 장치를 얘기할 때 공백을 채우면서 작업을 용이하게 해 주는 부분, 이음쇼트라고 얘기를 한다면 그 부분 장치가 쉽지 않았어요. 그러한 부분드리. 서정적인 부분과 관념적인 부분을 무드가 다가오지 않아서 심정적으로. 다가오지 않아서 그 부분을 지나쳐 가는 점이 있었어요. 또 한 가지는 시점과 관점의 차이라고 볼 수가 있겠는데요, 가령 생활을 일반시라고 한다면 생활을 드라이 플라워라고 한다면 제가 하이퍼로 바꿔볼게요. 기법으로 표현을 하되 생화를 표현해야 하는 느낌이랄가?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여긴 기법적인 요소를 얘기를 한다면 몽타쥬, 쇼트-시작점, 시작점-화자와 독자와의 시점을 달리해야 한다고 생각을 했었어요. 프레임, 내가 담고자 하는 화면을 따내는 부분을 차이를 하이퍼 시와 일반시와 차이점이라고 제 나름대로 써왔어요.           손해일: 1번과 2번이 썪여서 같이 얘기하여야 할 것 같아요. 시험답안처럼 얘기하지 말고. 하이퍼시에서 오남구 씨에게서 많은 얘기를 듣고 현대시에서 논의해 볼 수 있겠다고 생각하면서 시문학에서 월평을 쓰면서 묻기도 하고 벼락치기 공부를 하면서 하이퍼 시의 개념으 물어보멵서 제 시도 하이퍼 시를 내 시도 읽기 싫고 남의 시도 읽기 싫고 식상하여진다. 하이퍼시로 가는게 좋겠다는 생각을 햇고, 중복이 될 지 모르겠는데 첫째는 하이퍼 시는 크게 말하면 상상력의 무한한 확대가 가능하다. 두 번째는 창작기법 면에서 그냥 무한대로 확장이 되는 기분, 언어만 가지고 시는 제한성이 있었는데 두가지를 말할 수 있고, 하이퍼 3편을 썼는데 기존시와 하이퍼 시가 뭐가 다르냐? 그거에 대해서 혼란이 오는데 선조적이다 몽터쥬기법이다. 구성이다, 관념적으로는 안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시화하기에는 상당히 어려웠다고 말씀드립니다.   김규화: 저는 전에 전에 알고보니 하이퍼 시를 많이 썼다고 말씀하셨는데 하이퍼 시와 일반시와 다른 점이 없다고 볼 수 도 있어요. 그러나 중요한 점이 하나가 있다고 생각해요. 일반시는 원인과 결과 자연스럽게 선조적으로 선형적으로 나가게 되는데, 하이퍼 시는 그걸 파괴해버립니다. 파괴하니까 가상현실, 공상, 버츄얼세계, 파괴하니가 공상, 상상이 들어가게돼요. 원인과 결과가 무너져서 가상현실이 들어가게 돼요. 그게 하이퍼 시와 일반시와 다른 점이예요. 하이퍼시도 일반시도 상상력이 들어가고, 엉뚱한 이미지를 결합해서 하이퍼 시를 만드는데 하이퍼 시가 뭐가 다르느냐 하는데, 그게 무너지면 그것이 두드러져야 하이퍼시로서 특징이 지어진다고 생각해요.   안광태: 할 말 없습니다.   최진현: 제가 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래픽이라는 연작시를 쓸 때 하이퍼 시와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래프는 컴퓨터의 도형, 영상,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를 자유롭게 많이 구상하여 써서 선명한 영상이미지로 조립을 한다. 연과 연은 연관성이 전혀없어요. 한행 연 단위도 연과 연 사이의 획일성이라든지 통일성이 없어요. 문선생님이 말하는 집합적 결합, 요소 그런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심상운: 안광태 선생님 말씀 안 하실래요? 한마디는 해야지.   안광태: 흠, 제가 하이퍼라는 말이 나오기 전에 문선생님과 몇 분이 점심을 먹으면서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잠재의식이 흘러갈 때 시공간을 초월한다. 지금생각과 옛날생각이 동시다발적으로 영어로 여비커터스라고 말슴하셨는데 그것을 시로 표현해야 한다고 말씀하셔어요. 영어로는 유비 커터스라고 말하는데 서 그러SWhr으로 써야 한다고 하셨다. 상당히 그것과 연관이 되는 것 같았어요.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이미지가 그냥 아무렇게나 일어나는 건 아니거든요? 어떤 연관성이 있으니까 일어나는 거거든요? 잠재의식에서 그것이 연결고리로 연결될 때 하이퍼 시다는 생각을 나중에 했습니다. 제가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는 점은 오늘 오전에 도종환씨가 얘기하는 걸들었어요. 시에게 듣는다. 도종환씨가 평생교육시에 대해 강의하ㅑ는 걸 드렀어요. 자기 시에 대해 해설하는 걸 듣고 참 저 사람은 시에 대해 듣는다. 평생 몇 가지 시를 가지고 와Tsmssep 1백퍼셑느 관념시예요. 저 사람은 몃ㅊ십년전에 접시꽃당신과 똑같다. 그런데 거기 있는 사람들이 몇 십명 사람드리 곡5ㅐ를 끄덕이면서 듣거든요? 그 사람들은 소통이 잘 되거든요?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하이퍼 시를 생각하면 소통에 문제가 있다, 그런데 지금 소통이 전혀 되지 않으며 문제가 있다. 너무 앞서가는 것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심상운: 이제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하이퍼 시와 일반시의 차이는 보통 일반시는 주제를 지향하는 시라고 하면은 하이퍼 시는 이미지를 지향하는 시입니다. 크게 그렇게 나뉘어집니다. 주제는 관념입니다. 관념시, 관념을 가지고 시를 쓰는 선관념, 후 사물을 쓰는 사람들을 일반시인이라고 말하면 됩니다. 하이퍼 시는 관념보다 사물, 사물로만 이야기하는 그러니까 이미지를 통해서 이미지로만 이야기하는 시를 하이퍼 시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하이퍼 시와 디지털 시를 처음 쓰려고 했는데 어떤 차이가 있느냐 하면 움직이는 그림과 고정된 그림, 그림도 움직이는 그림과 동적으로 움직이는 그림이 있습니다. 고정된 이미지로부터 벗어나서 움직이는 이미지로 이동이 될 겁니다. 아까 안광태 시인이 무의식 공간의 개념을 허물어버리는 것이 하이퍼시라고 했는데 맞습니다. 공부를 참 잘 해 오셨습니다. 그런 것을 허물어버림으로서 자유로운 상상이 나옵니다.       심상운: 일반시와 하이퍼 시와 차이점에 대한 김금와 시인이 보내온 내용을 읽겠습니다.   일반시는 주제의식과 정서를 표현하기 위해 정서를 사용합니다. 함축된 하이퍼시는 특별한 주제를 사용하기 위해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디시적 언어 그것이 하나의 목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시의 정서를 경정하기도 합니다. 또한 일반시는 현실셰계의 이미지에서 이미지로 변화되어 가는 자유로운 시적공간을 두고 있기 때문에 시적 분위기를 만들어가는데 예를 들어 기도하는 여인을 하이퍼시로 묘사한다면 가지런히 몽든 두 손 끝에 매달린 소망과 새로운 생명이 싹뜨늩 ㅁ병아리ㅐ가 묘사하는 그 공감대가 가깍이 나눌수 있는 방몀 ㄴ조금 난해하게 느껴지도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정연덕: 저 한바마디 해도 되겠어요?   t심상운: 예   정연덕: 하이퍼시에 들어가면 픽션이 가장 많이 더오르고 픽션이 작품이 됩니다. 다른 픽션이 자유스러워집니다. 구조가 깨지는 거죠. 탈구조적인 모습이 나오고 하이퍼 시가 잘 발전을 하면 공동작업이 가능하다고 해요. 작품응 올려놓으면 작품을 자유스럽게 독자가 읽고 새로운 작품으 촉각형태, 나무형태, 뿌리에 대한 세 가지가 있는데 적어도 뿌리형에 들어가면 자유스럽게 오버할 수도 있고 끊어내거나 자유스럽게 도입되어지는 걸 느낄 수가 있다,   심상운: 1번과 2번에 대해 말씀했는데 더 말씀하실 것이 있는지?   조명제: 하이퍼 시의 여러 이론적 특징을 제 체험을 중심으로 말슴을 드리면 하이퍼 시의 여러 이론적 특ㄹ징이 아까도 말슴 나옸습니다만, 비선형적이다. 비논리적이다. 다시점, 복수시점은 옛날시에서도 나왔습니다. 제 경우에는 다성성, 여러 목소리가 나오는 경우, 사물을 다각적으로 바라보는 여러 목소리가 동시에 나오는 방법, 그러니가 비선형적이고 다성성이라든가 복수시점, 다시점, 아주 이질적인 대상이나 어떤 스토리가 한 작품 속에서 링크, 또는 점핑해가면서 서 나타난다. 김규화 선생님 말처럼 산만할 수 있는데 마지막에는 리좀이라는 것을 잘 사용하면 되리라 생각하빈다. 마지막으로는 하이퍼 시가 발표한 것을 들여다보면 한참 읽다보면 당수상가뭔가 공허해진다는 걸 느긴다. 공허해지면서 감동ㄸ을 줄지 않느낟는 걸 느낀다. 공허함에서 벗어나려면 장면장면들은 좀더 구체화시키고 치밀한 묘사를 시켜야 하지 않겠는가? 묘사는 좀더 구체화시키고 리얼리티는 태풍의 눈처럼 스스로 제시하지 않아도 독자가 스스로 찾도록   이선: 다음으로 ㄴ넘어가버렸는데, 저는 환타지성과 운동성을 하이퍼 시의 요소라고 생각하는데요, 심상운 선생님 시에서 운동감이 많은데, 그것은 사물에 의식을 넣었어요. 사물에 의식을 넣었어요. 작은 동사, 말그러미 바라본다든지, 탁자가 있는 풍경에서 문덗수 샌성님의 등이 쏘아본다, 재떨이가 바라본다. 사물성에 의식을 넣음으로써, 운동성이 환타지성을 주어 신선한 감각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3. 하이퍼시의 ‘소통’과 독자 수용문제와 그 해결 방법       심상운: 3번 하이퍼 시의 독자수용문제는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소통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하여 의견을 말씀해 주시면 고맙게 ㅆ습니ㅏ. 소통의 문제가 되겠습니다.   손해일: 1번과 2번은 책에도 많이 얘기가 있기 때문에 소통이 많이 중요한 것 같아요. 하이퍼 시가 시 운동을 하겠다는 통일 중시를 하는데 그 문제를 제가 곰곰이 생각하면 하이퍼라는 개념하고 탈관념이라는 개념 차이에서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온다고 생각해요. 에 대해 거부감도 있고 이해를 못하는 점ㅇ도 있고 그 이유를 생각하면 탈관념이라는 것에 대해 이해가 부족한 것에서 이상 시나포스트트 모더니즘시, 기법으로는 새롭다하는데 별로 감동이 없고, 재미가 없다, 새롭기는 한데, 어 하이퍼 시가 새로운면서도 새롭다, 재미있다, 감동ㄹㅇ들 준다. 재미라는 요소를 집어넣어야 될 것 같아요. 감정 정서 중심이 아니고 표현 기법으로 가게 되어 있거든, 디지털적 기법이라든지 그런 걸 사용하기 때문에 정서하고는 자꾸 멀어지고, 하이퍼라는 개념, 관념을 정확하게 쓰면서도 헷갈려요. 감동을 주든지, 재미를 주어야 독자가 읽죠. 재미가 없으면 안 읽어요. 이라는 개념을 쓰면서 헷갈린다. 어디까지가 관념이고 어디까지가 관념이 아난지. 독자에게 다가가려면 감동과 재미가 있어야 한다.   심상운: 그렇다면 하이퍼 시는 길어지지 않을가? 서사적으로 되지 않을까 그런 점에 대해서 생각해 주십시오.   손해일: 디지털ㅈ거인 걸 넣으면 산만해지고 길어진다.   관념하고 개념 자체에 대한 몰이해에서 온다. 하이퍼시는 새로운 것은 눈에 띄는데 감동이나 정서가 없다, 기법에서 재미가 들어가면 요즘 젊은이들은 어록적인 거나 재미 때문에 가지. 그런걸 통해서 좀   심상운: 그러니까 서사성이 들어가면 좋겠다는 말씀이군요.   안광태: 하이퍼 시의 문제점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아가 제가 소통에 대해서 말씀드렸는데, 소설이에 비해서 간결성이 중요하거든요? 시는 간결성이 중요한데 메타포라든지....하이퍼 시는 간결성을 잃어가고 있다. 이것이 큰 ㅁ분제라고 봅미다. 손선생님은 재미를 가미해서 극복하면 어떡하냐고 했는데 그것도 하나의 ㅇ   이선: 저는 반대 의견을 가지고 있는데요, 해체시가 어렵다고 하는데요. 아주 건조하고 드라이하고 황폐하고 병들이 좌좌작 모아놓고 사진찍고, 낙동강 하류의 철새떼가 죽ㄹ어 있는 사진을 싣고, 하이퍼 시가 쓰레기 더미가 막 몰려온 낙동강 하류를 사진을 찍고, 새들이 죽어 잇는 걸 어렵다고 말하지 않고 상황제시라고 말하거든요. 보옺 r보여주기를 하는데요, 하이퍼시는 어떤 상황을 따와서 충격적으로 보여주는데요, 저는 그걸 보면서 우리가 드라이하기만 한가? 아니다. 마음이 아프고 물도 살려야겠다, 산수도 살려야 겠다. 저는 뭐냐하면요, 저기 일반시들이 말하는 영상성으로 보여주면서 느껴라 섬설명하고 웅변하고 설득하려고 하는데 우리는 방법이 다른다. 네가 느껴라 감각에 호소하는 것 같아요. 드라잉 한 것도 소통이 됩니다. 다만 기법에서 디자인과 기법에서 선명하게 드러냈ㅎ거나 산막하게 막 드러내서 뭔 말ㅇ린지도 모르고 뭔 그림인지도 모르고,, 샤갈기법으로 했느냐 몬드리안 기법으로 했느냐 선이냐 면이냐를 선명하게 드러내면 선명하게 드러냈느냐, 반추상도 아니고 뭔 말인지 모르게 하지 말고 추상화도 아니고 뭔 말인지도 모르게 선으로 했느냐 면으로 했느냐 덩어리로 했느냐 디자인과 기법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송시월: 소통의 문제는 시가 되었느냐, 시가되느냐, 안 되었느냐가 문제예요. 난해한 시도 시를 따라 가면 아무리 어려운 시도 소통이 된다. 서사적 구조를 이미지로 선명하게 갖다만 놓으면 안되는데 링크될 요인들이 있다. 링크될 요인들이 정서로 흘러가면 하나의 로드를 놓고 로드를 놓고 마디를 건너뛸 때 링크를 접속사로 복4ㅓ든요. 하나의 접속사로 보는데 독자가 어떤 걸 넣느냐에 다라 또 하나의 ㅛㅣ가 될 수 있다.   심상ㄷ운: 송시월 시인은 하나의 시가 되면 된다?   송시월: 그렇지요. 공허하다.   심상운: 그런데 시적 감동에도 여러 가지가 있어요. 시적 감정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지성, 감성, 영혼으로 느끼는 여러 가지가 있다. 감각적ㄹ인 감동도 있다.   이선: 그런데 송시월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에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문제는 주제로 가는데 관념적인 주제의식을 깔고 그림을 그리느냐 무의미성으로 가느냐가 관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송시월: 언어에는 관념이 반드시 따르는데 새로운 관념을   심상운: 신규호 선생님 말씀해 주시지요.   신규호: 나름대로 하이퍼 시를 쓰려고 하다보니까 자연히 산문적인 문장이 되더라고요. 산문적 문장ㅇ드로 흐르면서 관념이 자꾸 들어가, 설명이 들어가고 그러면서 다시점으로 전개를 했는데, 이게 하이퍼시라고 하긴 뭔가.... 연과 연이 독립되어 있으면서 연 하나를 볼 때는 뭔가 서사적인 것이 깔려있고, 그런게 이어 나가면은 초점 하나를 머리에 두고 연과 연을 단절시키면서 뭔가 연을 이끌어나가면 공통적으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염두에 두고, ㄱ연과 연을 공통으로 연결하면 소통이 되지 않을까, 나는 그러면서 썼어요. 그러나 소통을어떻게 해결할 것이냐가 문제인데   정연덕: 소통을 자꾸 생각하면 오히려 더 소통이 안돼, 그게 더 문젠데 하이퍼 시는 상하, 좌우로 왔다갔다, 서양사람이 쓴 것을 보니까 이렇게 썼어요. 시가 안 되면은 거꾸로 읽어라, 그래도 안되면 중간허리부터 잘라 읽어라. 뭐 그런 말도 있는데 ...소통을 자꾸 생각하면 글이 안돼, 자기나름대로 뭔가 자기 나름대로 쓰면 되는데, 낯설게 쓰서 오히려   유승우; 저도 얘기대호 돼요? ㅈ순전히 들어러 왔었는데 제일먼저 이선 시인이 하이퍼 시와 일반시의 차이점으 얘기하시면서 하이퍼 시와 위선화 쇼ㅣ와 김규화 시의 차이점으 얘기했는데 그걸 읽으면서 아 요런 것이 있구나. 생각했어요. 요 근래와서 심상운 선생 책을 다시 읽어봤어요. 구채의연한 시를 나도 벗어나야지. 나도 새로운 시를 써보고 싶어서 관심을 가지고 온 건데, 정적인 것과 동적인 것을 보면 텔레비전 화면을 보면 그게 동적인 거거든요? 나느 김규화씨 한강을 읽다를 보면 현대적인 것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안되거든요. 텔레배젼 호ㅘ면을 보는 걸 느끼는데 아파트라든지 현대적인 이미지들이옝료. 솔직히 얘기해서 김규화 ㅅ너생의 한강을 읽다를 읽으면서 난 너무 재미있다고 생각하고 읽었거든요? 그런데 처음에는 위선환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처음에는 아 이사람 시 재미있게 썼다? 생각했어요. 여기, 안 선생님이죠? 잠재의식 얘기를 했는데, 시를 그렇게 생각합니다. 인간을 쓴 것이 시다. 인간을 얘기할 때 빙산에 대해서 얘기한다. 에즈라 파운드는 콤플렉스라고 얘기했거든요? 콤플렉스는 사실, 잡동사니거든요? 잡동사니는 기억의 창고에서 의식이 사라질 때 되거든요? 의식이 사라질 때의식이 자라지는 건 언제 사라지냐? 어떤 충격을 받을 때인데, 논리적인 것이 사라질 때 팍 튀어나오는 생명 자체로 튀어나오는 것, 무의식이 튀어나오면서 만들어지는 이미지는 ㄴ리논리적으로 세상적으로 볼 때는 전부 낯선거예요. 하이퍼 시에서 낯선 것 대문에 독자와의 거리르 생각하는데, 옛날 소월 적에도 시 안 읽는 사람은 안 읽어요. 요즘 손자가 보는 만화를 봤어요. 이해가 안 되던데요? 아 현대 하이퍼 시는 아예 리얼리티가 없이 아무렇게나 꾸며놓은 것 말고, 젊은이들이 게임 속에 뺏기는 것을 거기서 교양교육을 좀 한다면 시쪽으로 끌어올 수 있지 않을까? 시만 되면 이미지만 만들어지면 이미지 자체가 시적인 논리를 따라서 리얼리티만 유지한다면 볼 사람은 다 볼 수 있다. 11월호 하이퍼 시를 보면서 내가 쓰는 시도 좀 바뀌여 하지 않을까 충ㄱ5을 ㅂ1았어요. 우리 시는 관념이 들어가서 그런지 잘 이해가ㅑ 되더라. 아직도 우리는 관념이 들어갔거든요. 신규호 시인의 시가 이해가 빠르더라. 같은 세대라서 그런가봐요. 김규화 ㅅ너생님. 이솔시인. 요즈 ㅁ젏ㅁ은 세대는 탈관념한게 더 팍팍 올 수 있거든요. 나는 그렇지만 젊은 세대는 탈관념한게 더 팍팍 느낌이 올 수 있거든요? 저는 하는 일은 해 해나가든거 해 보자. 시는 사명이거든요. 시인은 사명에 살거든요? 그러니가 해 보자 그렇게 생각하거든요?   김규화: 한 마디 할까요? 소통문제는 저는 별거 아니라고 하는데요, 저는 소통 참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럼 하이퍼 시 우리들만 좋다고 하면 뭐합니까? 많은 시인들이 인정해 주고 시문학사에도 남아야 되지 않습니까? 하이퍼 시는 비선형적이고, 공간도, 원인과 결과가 부서지니까 소통이 안 될 수밖에 없어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저는 구조를 형성할 때 말하자면 통일적이라고 해야 할까? 뭐라고 해야 할까요? 통합적, 구조를 생각해야 한는데 구조라는 건 여러 개체가 모여서 자임새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하이퍼 시는 제가 예를 들어서 등산용 반찬통이라고 할 수 있어요. 원래 네모난 프레임이 있어요. 거기에자잘한 반찬통 네 개가 있어요. 반찬통 이름이 모듈반찬통이예요. 아, 정말 하이퍼 시를 이렇게 써야겠구나 생각했어요. 반찬통은 따로 떨어져 있으면 역할을 못해요. 그러나 4개를 다 모아야 각각 ㄷ4ㅏ른 게 다 역할을 다해요. 그러나 한 개만 있으면 아무것ㄷ오 아닌데 4개가 다 있어야 비로소 역할을 다해요. 이런데 하이퍼 시가 아닌가 생각해요.ㅣ   송시웕: 제 시 초록거울을 예로 들어볼게요. 거울에 같은 맥락으로 느껴져서   이선: 저는 참 이상한 생각을 가져요. 이번에 발표된 시를 보면서 하이퍼적이지 않을가? 생각했어요.   심상운: 소통에 대해서 얘기하라고…   이선: 아니, 소통에 대한 얘기예요. 그 이유가 뭔가 생각을 했더니 심상운 선생님 시는 이해가 됐어요. 심상운 선생님 시는 아주 냉정했어요. 다른 사람 시는 자기 생각을 자구 넣을려고 하니까, 실제로 자기 생각을 넣으려고 하는데 방법이 서투니까 소통이 안 돼요. 빨간 손바닥의자를 읽고 이영식 시인이 이러는거예요. 이선 시인 누구한테 시 배워? 아니요, 혼자 쓰는데요. 이선 시인, 평생 혼자 외롭겠다. 내가 조선일보에 발표했는데 50통이나 편지를 받았어. 나같이 이렇게 살아. 변삼핛시처럼 써. 젊은이들이 좋아할 시인데 젊은이들이 이선 시 읽어? ㅅ6ㅓ? 그 사람은 무덤에 들어갈 때까지 외롭다. 아, 하이퍼에서 소통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나? 연과 연에서 시스템에 변화를 하되 소통을 하려면 귓속말하기, 내용은 괄호를 넣어서 보라색을 주조로 한 그림. 단어는 이미 이미지가 있어요. 융의 무의식처럼. 이미지가 이미 관념으 가지고 있어요. 우리가 단어를 버리지 않는 한 관념을 버리기는 어렵다. 단어에서 소통을 하려면 꼭 무의미한 단어만 써야 하이퍼 시냐? 거기에[ 대해서 의문을 제시합니다.   조명제: 김춘수 씨인가요? 전에 시를 써서 아내에게 보여준다. 아내가 아는 척하면 버린다. 쉽게 상대방이 이해하면 그건 자기 시로선 실패다. 문제는 아까 송시인이 말한 것 처럼 나해시가 문제가 아니라, 애매시가 문제다. 난해시는 시적 논리를 타고 들어가면 나중에 해석이 가능한데 애매시는 이해가 안된다. 자기도 무슨 얘기를 하는지 모르거든요?   다음 관념이 문제인데,   이선: 그건 나중에 지금은 소통...   심상운: 소통   모두: (웅성웅성) 모두 소 통소통   조명제: 아까 언어는 언어자체가 이미 이미지 관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관념을 우리가 너무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관념을 추구하는 시가 되어서는 안 되지만 시인들 관념을 다 가지고 있죠? ㅜ분적으로 시어들이 다 관념을 가지고 있고, 관념 자체를 두려워하거나 기피하지 말고, 관념 자체르 ㄹ추구하는 시가 문제가 된다. 오히려 무의미라든가 무관념, 탈관념을 형상화해내기 위해서는 관념은 불가피하게 수용되는 것입니다 무관념으로 시를 쓰겠다? 이건 불가능합니다. 소설을 허구라고 하는데? ㅣ.구무관념 세계를 보여주게 되는 것이지 무관념 단어 자체를 가지고 시를 쓴는 건 어려운 ㅂ문제입니다. 소설으 ㄹ허구, 진실읅 추구하기 위해서는 허구를 보여주는데, 부분적으로 너무 허구를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이선: 오케이 바리   심상운: 김금아 씨가 맬로 보낸 독자수용문제에 대한 의견을 읽어드리겠습니다.   김영아: 그 자쳄반으로 존재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독자와의 소통을 고려하기 이전에 이미 스스로 존재하고 하나의 시적 ㅇ뎡역을 확보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도 내 시를 읽어주지 ㅇ낳아도 다만 하이퍼 시가 독자에게 지속적으로 외면당하면서 고립되지 않으려면 지극히 치밀하게 계산되고 보존된 완벽한 이미지를 현 시점이 어디인지, 어떤 색깔인지 어떤 온도인지 핵심적인 부분을 얻어낼 수 있   심상운: 제 의견을 좀 말씀드리겠습니다. 시에서 독자수용문제는 하이퍼시만의 문제가 아니라, 시 전체의 문제라고 생각합 니다. 시에서 소통에만 신경을 쓰면 예술성을 잃게 됩니다. 하이퍼 시는 이미지의 집합적 결합, 따라서 일반시와 같은 기준으로 논의할 수 없는 것이 따라서 독자들도 하잎 시를 읽어야 합니다.   손해일: 소통이 중요하다고 얘기하는데 그걸 오해하면 안 되고? 독자들이 워낙 모르고 오해하는데 모르고 기법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문젭니다.하이퍼의 핵심을 포기하자는 게 아니고 방법을 찾자는 거지요.   심상운: 그렇게 하다가 하이퍼 시의 핵심을 잃어버릴 수도 있어요. 우리가 소통, 소통하는데... 누구한테 하이퍼 시 읽어보라고 했더니 소통 다 된대. 어려운 거 없대, 사랑 사랑 하는데 하이퍼 시에는 그리움, 사랑도 없고,   이선: 섡생님, 그럼 여기서 중요한 것은요. 저희가 광고를 해야 된다는 필요성이예요. 저희가 시만 쓸 것이 아니라, 우리가 평론이라든지, 시라든지, 우리가 시문학에서 하는 좁으느 확산적인 운동이 다른데 발표를 해야 돼요. 하이퍼 시라는 이름으로요. 여러분드이 다른, 신문, 잡지에 평론, 시를 많이 써 줘야 돼요. 시와 시학의 평론가인데 디지털이 뭐야 디지털이 3년 후에 디지털 3집ㅇㄹ 갖다주었더니, 하이퍼를 쓰면 문선생님과 심상운 선생님 이름만 뜰 것이 아니라 하이퍼 디지털 오남구 선생님 돌아가시고 많이 이름을 알잖아요?eHH 여러분이 하이퍼 시에 대한 평론과 시를 다른 시나 신문에 많이 발표를 해야 해요. 저희 교수님이 평론가세요. 시와 시학요. 박윤우 교수. 그래서 하이퍼 라는 이름을 자꾸 인터넷에 올려야 돼요. 우리 시도 떠야 돼요. 일단은 광고가 부족하니까, 하이퍼라는 이름을 알리는 광고정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연덕: 대한민국 사람은 다 ㄷ알아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많이 알고 있어요. 많은 사람들을 만나봤는데 ㅇ보통 시가 일방통행인데 하이퍼 시는 쌍방통행이예요. 들어가서 남의 시를 비집고 자기 시를 넣을 수도 있고, 보강할 수도 있고, 서양 사람들 하이퍼 시르르 봤어요. 시문학에서 하는 시 운동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이 있어요.   심상운: 관심은 받는데 두려워하고 있어요. 다른 사람들이.   정연덕: 복사하고 난리났어요. 다른 사람들도 자기들끼리 하이퍼시라고 하고. 왜 도대체 저걸 가지고 하이퍼라고 하는지, 또 뭐 평론도 하고 하여튼 잘 되고 있어요.   이선: 하이퍼 시를 안 쓰는 사람들이 우리들보다 하이퍼적인 시를 쓰는 걸 볼 때 문제라는 거죠.   심상운: 얘기를 해야지, 소통에 대해서 얘기해요. 골고루 얘기해야지.   최진현: 골고루   최진형: 쌍방간에 소통이 안 되면 문제가 생기거든요. 일반세상에서. 쌍방간에 소통이 그림전시회 여러분 많이 가봤습니다. 추상화를 보면 누가 일일이 설명하지 않잖아요? 추상화를 보면 많이 이해를 하잖아요? 하이퍼 시는 감각적인 소통에서 거쳐야 돼요. 거기 무슨 의미가 있어요? 감각적인 소통을 하면 돼요. 가각적인 소통을 하면서도 뭔가 여기 있구나 하는게 나는 사상성이라고 생각해요. 나는 시를 쓰면서 감각형을 그려요. 삼각형의 세 꼭지점을 하나는 음악성, 하나는 회화성, 하나는 사상성을 넣어야 돼요. 나는 그 중간지점의 가장 좋은 것을 쓰려고 해요. 어디 억매이면 시를 못 써요.   심상운: 또 누가 말씀하실 분?   김규화: 위 시인   심상운: 누구? 응 위상진 시인   위상진: 익숙하게 우리 자신부터 물들여 가면서 주변에 무의식적으로 잦아들어가면서 우리가 독자임녀서 화자이기더ㅗ 하면서 저희가 시문학에 발표를 하였지만 이렇게 모여서 이렇게 토론을 한 적은 없었을 거예요. 저희가 이렇게 모여서 하이퍼에 대한 토론을 하는 것은 출발점인데요. 유승우 교수님도 오늘 관심이 있어서 오셨다고 하셨잖아요? 우리가 서로 물들여지고 E무의식적으로 잦아들고 스며들어가지고 저희가 독자이면서도 화자이기도 하지만 또 우리가 쓴 시를 다른 사람들도 보지 않습니까? 자꾸 스면 스며들어서. 오늘 이 자리가 하이퍼에 대한, 하이퍼 시에 대한 출범이라고 할까? 이러한 것이 자꾸만 확산되고 말 그대로 확산하이퍼가 되어 오늘 유승우 선생님도 관심이 있어서 왔잖아요? 이 하이퍼는 소통 문제에 있어서 굉장히 기술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부분으 그렇게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봅니다.   손해일: 소통만 얘기하니까 왜 이런 시가 소통이 안 되냐? 하는 문제가 되는데, 소통 플러스 확산, 소통 및 확산 이런 제목을 써 주면 좋을 것 같은데?   이선: 맞아, 맞아요.   모두: 웅성웅성   손해일: 소통에 확산을 하나 더하면   심상운: 하이퍼 시 운동이 시문학에만 갇혀 있는 것이 아니고, 하이퍼 시가 뭡니까? 많은 사람들이 질문을 해요. 질문에 대한 답변도 나오고 그렇게 퍼져나가고 있어요. 문제는 학문적으로 시학을 하는 대학 강단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이 걸리지않을까 생각합니다. 학문을 하는, 시학, 대학강단에 까지 올라가려면 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을가 생각합니다.   손해일:       4. 시문학에 발표된 하이퍼 시       5. 하이퍼 시의 일반론       가. 링크, 리좀, 몽타쥬, 가상현실(공상, 상상)   심상운: MRJS 다 끝났어요. 5번 문제 로 문제로 넘어갑시다. 링크, 몽타쥬, 가상현실에 대해서 자유롭게 말씀해 주세요.   모두: 다 나왔어요.,   심상운: 더 보춛ㅇ할 거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손해일: 주제에 대한 총론적으로 얘기하면 얘기할 건 관념이 자꾸 나오니까   심상운: 관념은 또 나오니까,,   김규ㅜ화: 리좀을 링크하여서 몽타쥬로 하여 리좀화하면 하이퍼 시다. 여기 다 말이 되네요.   심상운: 링크는 연결편집기라는 게 필요합니다. 하이퍼 시를 쓰는 시인은 상상 속에서 연결 하이퍼 시를 쓰는 시인은 상상 속에서 연결편집기를 사용하여 시를 쓰게 됩니다. 우리가 이미지의 연결편집기라는 것ㅎ을 생각해 주면 되겠습니다. 편집기를 활발하게 작용하여 이미지의 이미지의 편집기라는 것을 생각해 주시면 되겠씁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링크는 단어와 단어, 클릭이라는 것이 있어서 완전히 다른 장면으로 별개의 장면으로 넘어가는 그러한클릭이라는 것을 링크리는 걸 생각해 봤으면 위상진: 링크, ㅂ몽타쥬, 가상현실, 이건 인식의 세계에서 나오는 기법의 문제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면 여기서 몽환적인 환각과 환타지, 여기다 데꼬빠쥬, 저는 여기다 꼴라쥬를 더하고 싶습니다. 환각상태, 착시, 저는 여기다 데꼬빠죠ㅜ, 장며분할, 꼴라쥬를 더하고 싶다고 말씀드립니다. 색채만이 하이퍼적이 되는 것이 아니라, 뭘 가져와도 항상 새로운 방법으로 같은 시가 표현되어지는 기법 자체가 달라지지 않을가 생각합니다.   심상ㅇ둔: 또 다른분? 없으면 제가 ㅎ나마디 하겠습니다.   저는 시를 쓰면서 리좀, 컴퓨터의 모듈을 매력을 느꼈습니다. 컴퓨터 시스템은 시를 쓰면서 하나의 시스템을 구축하려 할 때 하나의 하이퍼 시의 리좀이론은 독립적이고 수평적이라는 의미에서 모듈은 리좀고 같은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모듈은 하나의 독자적 기능을 가지는 여러 개의 모듈로 나뉘는 방법입니다. 이때 모듈은 하나의 시스템으로 간주됩니ㅏ. 모듈은 같은 의밀고 쓰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리좀과 리좀의 틀, 프레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손해일: 상상력의 기법의 극대화, 꼴라쥬를 넣고 그것뿐만 아니라 수없이 많은데, 여기에 대한 쉬운 이행. 리좀이라는 게 그런거지 하는데, 시를 쓰려면 제가 맞는지 모르겠는데, 딸기, 나 띠풀, 딸기를 한 송이 심었는데, 계속 러너가 가면서 30개 한 줄기가 딸기가 되는데, 딸기 러너, 딸기를 한 송이를 심었는데 여러 송이가 생격가지고. 다음에는 리좀, 옛날에 오형제 필통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필통이라는 5개가 있는데 대나무 붓을 넣고 연필을 넗고 이해를 할 수 있는 장치가 있어야 되는데, 하이퍼 시를 스마트폰이라고 할 수 있는데 스마트폰이론을 다 알 필요는 없거든요, 그냥 쓰면 되지. 필통이 있고, 기법적인 것을 쉽게 이론이 너무 어렵습니다. 하이퍼를 스마트퓨이라고 할 수 있는데, 스카트폰을 쓰려면 이론을 다 알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쓰면 되지. 하이퍼 시란 이름으로 세편밖에 못 썼는데 어지간한 시는 이거 하이퍼 시가 아니잖아? 이거 기존시하고 뭐가 달라? 기존 시와 조금 다르   심상운: 제가 링크, 리좀, 몽타쥬 이런 이름을 넣은 것으 ㄴ각자 시를 쓰면서 이 중에서 어느 한 가지라도 충실하면 좋은 하이퍼 시가 나오지 않을가 생각한 겁니다.이 항목을 넣은 것은 하이퍼 시를 쓰고자 할 때 이 중에서 어느 한 가지라도 충실하게 쓰면 좋은 하이퍼 시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해서 이 부분을 넣은 겁니다.   위상진, 송시월: 몽타쥬   손해일: 다 해체가 되 가지고 다 떨어지고, 단어 하나까지 다 분해되고, 다시 묶어서 영상을 만들고, 영상 플러스 집합 그런 시가 이일남 하이퍼시 영상 전시회를 합디다. 인사동에서 영상이 막 쪼개지고   심상ㅇ둔: 앞으로 그런 시가 나올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런 시가 앞으로 나올 가능성이 많습니다.   링크니, 리좀이니 많이들 이해를 하시는데, 몽타쥬는 영화에서 주제와 연관된 필름을 모아 주제와 연관된 영상을 만드는 편집기술을 말합니다. 러시아의 영화감독 세르게이 에이젠 슈타인이 만든 파업이란 영화에서는 노동자들이 기병대들에 의해서 쓰러지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에 이어서 나오는 장면이 소가 도살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것이 바로 몽타쥬라고 해요ㅣ. 소가 도살되는 장면하고 기병대들은 전혀 다른 장면이지만 이것이 충격적 결합이라고 합니다. 이런 것이 우리 하이퍼 시에서도 도입이 되면은 아까 재미가 없다는 등 하이퍼 시에 육화되어서 잘 집어넣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정연덕: 화장실 다녀오느라 못 들었는데요....   리좀에 대해서 집중해서 생각해 봤는데, 리좀에 대해서 처음 얘기한 사람은 프랑스의 드레쥬아 카타리예요. 리좀이 횡적인 구조로 돼서 좌우로 움직일 수 있고,리좀이 구성하고 있는 원칙이 6개가 있는데 연결성의 원리와 심상운샘이 말씀하신 것같이 상하, 좌우 구조를 가지고, 다질성에 대한 설명을 안해서 원리만 읽어볼게요.   첫째는 다양성의 원리, 리좀이 어떤 통일 된 것이 없어요. 그래서 그걸 주체 안에서 나누어서 보늩 것이지, 어떤 지점이 아니라, 선에 해당되는 거지요. 선.   김류화: (작은 소리로) 연결, 링크   정연덕: 네 번째 원리는 탈 기포 작용의 연결, 연결되었다고 보지만 새로운 용어도 아니다.   뭔 얘긴지 잘 모르겠지만 번역한 사람도 썼어요, 자기도 잘 모르겠다고(하하… 모두 웃음)   다섯 번째, 지도제작과 전산의 원리, 리좀은 지도의 원리, 투사의 매커니즘이 아니라 여러 결점의 연결 매듭을 가진 지도와 같다. 지도는 투사된즍 대고 어떤 것을 예전의 것을 재현하는 작업니다. 리좀은 투사와 투사의 매카니즘이 아니라 여러 결정, 마디와 같다. 지도는 멈추지 않고 실제적인 것과 직접 이미 주어진 작품에 따라서 그리는 선, 선들에 대해서   이선: 와, 정확하네요.   최진현: 교보에 가보면 책이 있어요. 그 책만 하나 사보면   모두: 웅성웅성       나. 관념       심상운: 관념에 대해서 읽겠습니다.   손해일: 책 속에 다 있어요.   심상운: 관념의 문제는 가상현실을 각자 찾아서 시속에 넣으세요. 괁념은 오감의 감각관믄 다른 차별화된 정신적인 영역의 것입니다. 그래서 현대시에서는 사물시 도는 관념시라고 하지만 관계르 f형성합니다. 대립적이지만 서로 결합할 수밖에 없는 관념은 기의의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기의는 자유로워지고 관념은 제로 지대에서 새로 태어난 관념은 하이퍼 시가 지향한 신선한 그것이 고정관념에서의 해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관념에 대해서 조금 더 다른 의견이 있으시면 사물과 관념은 서로 대립적이면서 결합할 수밖에 없는 그러한 관계를 형성합니다.   기표 관념은 기의의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사물시가 기푱에 둘 때 관념의 제로 지대에서 새로 태어난 관념은 하이퍼 시가 지향하는 언어지대에서 신선한 그것이 고정관념으로부터의 해방이라고 생각합니다.   손해일: 관념을...(중얼중얼 안들림)   심상운: 관념에 대해서 다른 의견이 있으면 말씀해 주십시오.   손해일: 관념에 대한 너무 강박관념. 하이퍼 시는 관념을 배제하고 쓴다더라. 관념을 조금 줄여보자고 하면 의식작용, 언어는 관념이 안 들어간..빼자고 하니까, 확산이 잘 안되고. 로봇트가 쓰면 안 들어갈 거예요.감지단계, 인지단계, 인식단계, 여기까지는 탈관념이고 여기서부터는 관념이다 하니까 일반 독자들로부터 오해를 받는 거야. 우리 자체도 관념을 왜 굳이 뺄려고 하느냐, 우리가 관념에 너무 식상하니까 관념을 굳이 빼려고   (웃음)   하이퍼 시는 관념을 빼고 쓴다더라. 이렇게 생각하고 있어. 의미를 집어넣으면 관념이면서   혼동이 오고 일반독자들로부터 오해를 받는 거지. 거기 우리 자체도 관념 자체를 굳이 왜 뺄려고 하는지.   심상운: 다음 말씀하실 분   최진현: 내 생각에 그래요. 관념을 주제읫힉을 가지고 외표시킨다든지, 사물 속에 녹아들어가는 건 상관이 없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하면 아까 문선생님 말씀하셨듯이 조화를 할 수 있다 생각해요. 말하자면 관념을 사물화시키는 거죠. 심상운 하이퍼 시가 명징성을 가지는 것은 바로 그거예요. 객관적 사물에 관념을 사물화, 심상운 선생님 시가 관념을 노출시키지 않고 절제해서 인지 단계에서 멈추는 거예요. 그렇게 하는 단계에서 사물화하는 거예요.   안광태: 저도 그렇게 생각하는데요, 관념을 사물 속에 넣는 것이지 관념을 완전히 빼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안광태: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관념을 사물 속에 인지시키자는 것이지, 관념을 완전히 빼버리자 그런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김규화: 언어 자체가 다 관념이예요. 천사와 악마 구별할 필요가 없어요. 하이퍼 시엣는 가상현실이 중요하기 때문에. 가상현실에서는 관념이 필요없어요. 그거 빼 버릴 수가 없어요. 그럼 뭐가 중요하냐 하면 하이퍼 시에서는 가상현실이 중요해요. 가상현실에서는 관념이 들어가지 않아요. 그래서 저는 굳이 관념을 얘기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정연덕: 탈관념 문제가 그렇게 용이하고 쉽지는 않다.   김규화: 아, 그렇죠.       6. 하이퍼 시의 가능성       심상운: 하이퍼 시의 미래에 대해서 얘기해 주십시오.       신규호: 하이퍼 시는 실험 시지만, 각자 나름대로 개성이 있게 기법에 따라 달라집니다. 실험시는 일반시인들 시보다는 낯설고 거부감이 듭니다. 예술은 실험입니다. 한번 해볼 만한 것입니다. 언어의 한계성이 있지만 걸 잘 인식하고 벗어나서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한 선명한 시가 형이상 시입니다. 시대가 정보화, 다매체 ㅣ대로 바뀌면서 새로운 시를 추구합니다. 하이퍼 시운동은 의미있으며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새로운 시 운동의 모험을 수반하지만 기법개발을 해야 합니다. 하이퍼 시는 선적인 것과 가까운 것 같습니다. 선문답 같아요.   최진현: 조그만 방에 소주 2-3병 마시고 무의식 상태로 비몽사몽간에 쓰는게 시잖아요? 보들레르도 그랬고, 이미지, 그래픽 이미지를 구성하는 거지요.   유승우: 술은 의식을 없앱니다. 단어자체가 의미와 소리로 되어 있기 때문에 의미를 뺄 수는 없어요. 노자 3장에 아름답다고 생각하고 아름다운 것을 알면 추악한 것이 이TG다고 했어요. 선하다고 생각하고 선하게 보면 악이 있다고 했어요. 상무- 없음의 자리, 기성의 것을 제거하고 하이퍼의 길은 감각적으로   신규호: 언어로 언어 지우기라고 봐요.   최진현: 의식상태가 아닌 감성의 세계, 컨트롤이 안되죠. 감성통제하면 이성이 떠오르니까.   심상운: 다음 문 선생님을 모시고 하이퍼 시에 대한 말씀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7. 마무리 시평       문덕수: 이런 생각을 해 봐요. 묘한 몇몇 시인들이 있어요. 일본이 중국에 항복하고 선장을 석방해서 지금 일본이 난리가 났잖아요? 네아스를 너희에게 안 팔겠다고 해서 항복을 했잖아요. 레아아스가 없으면 전자산업이 망해요. 중국이 가지고 있는 레아아스는 세계의 40%를 중국이 가지고 있어요. 삼성, 엘지, 레아아스가 없으면 전자제품을 못 만들어요. 원자번호 56-71번인데, 이 레아아스 같은 존재들이 금요포럼에 있어요. 11월호에 발표된 시를 보면 시인들 중에 레아아스 같은 종자들이 많아요.   두 번째 말할 건 광고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평론가들이 논리적으로 하이퍼를 뒷받침해 주어야 해요. 논리를 가지고 있는 시인들이 다 못해준다. 각자가 자기 시의 비법을 설명을 하고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신문, 다른 문예지에 알리고 선전해야 합니다.   하이퍼 시의 리좀, 몽타쥬, 링크, 모듈에 대해서 비법을 공개할 게요. 내가 이 시를 예로 든다고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마세요. 이 시가 제일 잘 써서 그러는 것도 아니고, 밤에 잠이 안와서 시를 읽다가 보니까. 나중에 다른 사람들 것도 하나씩 소개할 생각이예요.       의사가 모가지 안으로 스텐 막대를 밀어넣었을 때   비는 내리고   푸른 곰팡이 벽으로 번지고 있다       비밀을 풀면 하이퍼 시의 비밀을 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1연에는 안과 밖이라고 하는 2개의 공간이 생깁니다. 안과 밖. 내부와 외부. 앞의 리좀, 뒤의 리좀. 병원 진찰실 안에서 나는 진료를 받고 있고, 바깥에서는 비가 내리고 있어요. 독자는 전혀 별개의 의미상으로 연결이 안됩니다. 인과관계가 없어요. 하이퍼시의 한 가지 기법입니다.       사람들은 물고기 우산을 쓰고   심심한 바퀴소리를 접었다 펼쳤다       자기와 자기 바깥. 내부와 외부       3연- 지하철 스크린 도어 앞엣허   나는 주머니 속에서 빠져나간   줄시계처럼 늘어졌다           1, 2, 3연은 전혀 별개의 이야기가 연결- 통합되어 있습니다. 이 뒷부분은 필요없어요. 버려요. 전혀 관계없는 두 개의 이미지. 서론, 본론, 결론과는 다른 통합된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어요.   레아아스- 다른 시인들의 시에서는 볼 수 없는 비밀장치, 비법개발, 자존심을 가져도 좋습니다.   김규화- 자기 시작법을 공개하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어요.   문덕수: 요즘 잠이 안 와서 시를 읽는데 시를 이야기 하면 흥분해서 열이 막 올라요. 내가 얼굴이 벌개지고 열이 막 올라와요. (모두 웃음) 내가 흥분해도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심상운: 오늘 열심히 토론에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열띤 토론이었습니다. 준비도 잘 해오시고요. 나머지 이야기는 자리를 옮겨서 식당에서 또 하기로 하고 이것으로 토론을 마치겠습니다. 심상운: 못다한 이야기는 식사하면서 하기로 합시다. 하이퍼 시인들은 치열한 실험의식을 가지고 시를 열심히 써야 합니다.                               하이퍼시에 대한 토론 답변 자료           위상진       1. 위- 자유로운 시공간에 자신을 내던질 수가 있었다. 소재는 오히려 일반시보다 잡기가 용이한데 비해 뜬금없는 시공간을 흐를 우려가 있기에 ‘이음 쇼트’(공백을 채우면서 다른 시공간으로 이동하는 작업)를 장치하기가 쉽지 않았다. 시각과 청각에 전달되도록 쓰려고 했다. 이미지들의 연속성, 링크로 인해 귀착 지점의 예상이 불분명한 부분이 있었다. 서정적인 부분을 배제하다 보니 심정적 무드가 닿지 않는 부분을 그대로 두고 지나치는 느낌이었다.       2. 위-시점 내지는 관점의 차이라고 본다. 틀을 탈피해서 다른 사물에 접목시키는 작업이다. 가령, 생화를 드라이플라워 기법으로 표현하되, 생화로 표현해야 하는 느낌이랄까.   표현기법으로 몽타주(시간과 공간), 쇼트(시의 시작) 시점(화자. 독자의 시점)을 달리 해야 한다고 본다. 프레임(화면)의 범위를 어떻게 따내느냐가 다른 점이라고 생각한다.       3. 위-일반시가 선율적으로 흘렀다면, 하이퍼텍스트 시는 분광의 폭이 넓다고 본다. 속도와 같이 흘러야 하는데 화자와 독자의 간극의 차이가 느껴졌다.       4. 위- 이미지 묘사에 치중한 감이 있어서 사유와 진술이 끼어들 틈이 없는가 하면, 사유와 진술이 지나쳐 하이퍼적 요소가 결핍된 양극단의 끝에서 거리 조정의 필요성을 느꼈다. 또한 파편적으로 튀어서 달아나서 돌아오지 않는다고 할까? 속도감으로 달려가는 감정을 한 호흡 가라앉혀 밀고 나가는 것이 필요함을 느꼈다. 다선구조로 교직을 하면서 하이퍼 쪽으로 모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5.가-위- 인식의 전환이라고 본다. 몽환적 상상, 판타지, 환각상태, 착시 여기에다 데쿠파주(장면 분할, 장면에 대한 시각적 구상), 꼴라주를 더하고 싶다. 발상의 전환에서 기법의 문제다. 꼭 티브이, 영상, 매채 색깔들이 하이퍼의 대상이 되는 것만은 아니라고 본다.       나-위- 관념을 인정하지 않으면 시의 육체화가 되지 않아서 읽히지 않는다. 관념을 바탕으로 쓰고 나중에 그 비계를 버려야 하이퍼 시를 낳을 수 있다. 이미지가 사유와 진술을 거느린다고 본다.       다-위- 『장콕도(시인, 소설가, 각본 안무가, 극작가, 평론가, 영화감독, 삽화가, 디자이너, 무대장치가)가 만든 무성영화 「시인의 피」에 강박관념이 심한 화가가 그림을 그리다가 그림이 지워지지 않아서 손으로 입을 틀어막아 버린다. 화가의 손바닥에서 입술이 말을 하는 기법은 초현실적인 기법이면서 하이퍼적 요소의 발상이었다.   하이퍼텍스트는 이러한 흐름에서 최전방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의식과 인식이 앞서 있기에 오히려 새롭다고 본다. 이 또한 2010년의 하이퍼시와 2020년의 하이퍼 시는 분명 다르게 쓰여질 것이다. 조향의 시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새로운 놀라움으로 모던하게 보여진다.   2020년에 가서 2010년의 시가 새롭게 다가온다면 하이퍼시가 성공했다고 볼 수 있겠다.  
923    하이퍼시론 묶음 / 심상운 댓글:  조회:572  추천:0  2019-06-20
21세기 현대시의 길 열기-   「디지털 시」에 대한 이해   --디지털 시의 원리와 언어의 특성       심 상 운       1. 들어가는 글-디지털 시대의 문화감각       21세기 문화의 핵심 동력으로 자리 잡은 디지털(digital)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 없이 디지털 감각, 디지털 시를 말한다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나 다름없다. 따라서 디지털이 펼치는 놀라운 세계를 자기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디지털 시대의 문화에 대한 이해와 참여가 무엇보다도 선행되어야 한다.   현대사회에서 의사소통 방식은 아날로그 형식에서 디지털 형식으로 바뀌었고, 여기서 생기는 모든 변화를 통틀어 디지털 혁명이라고 한다. 혁명이라는 과격한 단어를 사용한 것은 컴퓨터 체계와 그에 따른 커뮤니케이션의 시스템 변화 때문이다. 즉 CD, 정보통신기기, 휴대폰, 개인컴퓨터(P.C.), 인터넷(Internet), 통신위성, 광섬유, HDTV, 디지털 영상 등, 영상을 공학적으로 처리하는 영상공학, 영상신호처리(Image Signal Processing) 등의 영역은 현대사회의 커뮤니케이션의 구조를 밑바닥에서부터 뒤바꾸는 근원적인 동력이 되어 사회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거대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는 현대인들은 부지불식중에 생활 패턴, 사고방식, 감각, 감성, 언어 등에 변화를 겪으며 살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변화의 현상을 디지털 문화라고 하고, 디지털 문화를 향유하고 사는 사람들은 나이와 관계없이 디지털 세대라고 한다.   인터넷 네트워크 속의 이 세대는 새로운 정보기술의 활용능력의 차이로 구분할 수 있다. 이러한 디지털 세대의 특성은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발적인 요인에 의해서 움직이고, 소외에 짓눌리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함께 나누고 공유하는 집단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강한 독립성과 감성을 드러내며, 지적 개방성을 나타낸다. 자유로운 표현, 확실한 소신, 혁신적 태도, 탐구정신, 즉각적인 반응, 공동 관심사에 대한 민감성은 햄릿 같은 아날로그 시대의 세대들과는 확연히 구분된다. 그들은 익명성에 숨어서 자신의 본래적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고 선입견에서 해방되어서 세대와 성(性)을 뛰어 넘기도 한다. 그리고 파도와 같이 무분별한 군종성(群從性)에 휩쓸리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만이 통용하는 상징이 있으며 언어(문자)뿐만 아니라 모든 사용 가능한 커뮤니케이션을 사용하는 자기표현에도 익숙하다. 따라서 그들은 귀에 대응하는 라디오, 눈에 대응하는 신문 등 하나의 미디어에 하나의 감각능력으로만 대응하는 아날로그 시대의 ‘감각분할’ (그것을 한쪽으로의 미디어에 치중하는 모노미디어 Monomedia 라고도 한다.)의 불완전성에서 벗어나서 디지털의 ‘감각통합의 시대’ 에 사는 세대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인간의 몸 안에서 오감을 자유로이 융합하듯 하나의 미디어 안에서 사운드, 이미지, 텍스트, 데이터의 다양한 요소를 자유자재로 혼융하여 저장, 전달, 재생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통제 범위를 넘는 전달성과 재생(재창조)성은 그 한계를 규정하기 어렵게 만든다.   고대 중국의 한 황제가 궁정 수석 화가에게 “벽화 속의 물소리가 잠을 설치게 한다.”고 궁궐에 그려진 벽화를 지워버리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 이야기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인간은 원래 안(眼), 이(耳), 비(鼻), 설(舌), 신(身), 의(意) 등으로 이루어진 다양한 감각능력을 응집시켜 수용하는 감성통합의 존재임을 암시한다. 그것은 디지털 시대의 문화감각을 향유할 수 있는 현대인의 자질로 연장된다.   이런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 변화의 중심 원리와 특성(디지털과 컴퓨터의 특성)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시 창작의 방법론을 모색하는 것은 현대시의 피할 수 없는 과제다. 그 이유는 시란 대상에 대한 정서의 표현이고, 새로운 해석이고, 이름붙이기이고, 혼란한 생각들을 질서화 하여 깨달음을 주는 것이라는 현대시의 이론에 디지털 시대의 독자들이 과거와 같이 언뜻 그대로 동의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에 대한 이런 인식은 전통적인 서정시나, 지성의 기능을 우월하게 내세우는 모더니즘 시의 일반적인 경향에 대한 반동(反動)이다. 그것은 디지털 시대의 독자들은 시인이 안내하는 대로 끌려가고 설득을 당하는 것을 거부한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따라서 시를 의미의 예술에서 해방시켜서 의미보다는 감각과 이미지의 예술로 전환시키고 독자에 대한 일방적인 설득이 아닌 독자 참여의 공간을 확대시키는 시의 방법론은 시대적인 당위성을 갖는다. 그런 의미에서 디지털의 특성과 디지털 시대의 감성을 탐구․수용하고 그것을 현대시의 표현기법으로 활용하는 것은 현대시의 새로운 길 열기라고 말할 수 있다.       2. 디지털의 컴퓨터 공학적 특성       디지털은 손가락을 뜻하는 라틴어 ‘digitus’에서 숫자 ‘digit’, 2진법을 의미하는 ‘digital’이란 단어로 형성되었으며, 모든 계산을 ‘0과 1’, ‘켜짐과 꺼짐(on-off)’, ‘있음과 없음’의 구조로 이해하는 방식이다. 그것은 아날로그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자료를 1,2,3,4,5,6...과 같은 연속적인 실수가 아닌, 특정한 최소 단위를 갖는 이산적인 수치를 이용하여 처리한다. 이런 원리를 지닌 컴퓨터의 정보처리 방식이 만들어내는 디지털의 특성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디지털은 정수로 이루어진 최소 단위들(unit)이기 때문에 분리와 합성에 의한 변화가 자유롭다. 그것은 물리적인 힘에 의해서 연속적으로 운용되는 아날로그에 비해 디지털은 숫자나 문자로 표시되는 *데이터(data)에 의해서 불연속적인 변화를 순간적으로 구현하기 때문이다. 디지털 카메라에서 화소(畵素)는 화소(畵素)의 위치와 색상을 숫자화 한 데이터에 의해서 구현된다. 이 데이터는 소리의 높이 성량 음색 등도 숫자로 처리하고 보존하기 때문에 언제나 정확한 소리의 재생과 전달이 가능하다.   수리적(數理的) 데이터로 처리되는 이 최소 단위들(unit)은 컴퓨터에서 문서와 통계 자료 뿐만이 아니라 음성 및 영상 자료까지 재편집 재창조를 할 수 있게 한다. 그것을 편집(edit)이라고 하는데, 사용자가 컴퓨터를 이용하여 어떤 문서를 작성하거나 흩어져 있는 여러 자료들을 필요한 형식에 맞추어 재배열하는 것을 말한다. 이 때 편집을 하기 위해 이용되는 워드프로세서 등의 편집 도구를 편집기 또는 에디터(editor)라고 한다. 따라서 디지털은 복제, 삭제, 편집이 간편하며, 복사물과 원본의 차이가 없다는 특징을 갖는다. 이 최소 단위들의 결합과 분리 즉 편집은 디지털의 기본적 특성이 된다.   그 대표적인 예는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을 만들어내는 컴퓨터 그래픽의 기능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컴퓨터그래픽은 어떤 그림의 부분을 떼어내고 다른 것들과 합성시켜서 원래의 그림과는 전혀 다른 그림으로 만들어 낼 수 있다. 이 때 그림의 의미도 바뀌게 된다. 또 은행나무 뿌리와 버드나무의 줄기와 벚나무의 꽃을 합성(집합적 결합)하여 새로운 나무를 만들 수 있다. 현실세계에서 이런 변형은 실제 생명체의 유전자(DNA) 조작(생명공학)에 의해서 가능하지만, 디지털의 가상현실에서는 데이터의 조작(최소 단위들의 수리적 조합과 분리)에 의해서 순간적으로 구현된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그 그림을 형성하는 단위의 데이터 속에는 원래의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탈-관념을 가능하게 하는 원천적인 근거가 존재한다. 이 가상현실의 세계는 가상적인 세계를 현실로 착각하게 한다. 영화 에 나오는 동물들은 버추얼 그래픽(Virtual graphic)이 만든 그림이다.   이 “버추얼”의 영상은 색깔, 모양 등을 마음대로 변화시킨다. 어떤 사람이 누워 있을 때, 그의 옷을 바꿔 입히기도 하고, 옷의 색깔을 변화시키기도 하고, 그 사람의 얼굴 팔 다리 등을 바꿀 수도 있다. 또는 그 사람의 주변 환경을 마음대로 바꿀 수가 있다. 또 현실세계의 소리의 일부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 등)를 채집하여 그것을 여러 음계의 소리로 확대․변형시키기도 한다. 아직 후각의 디지털화는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멀지 않은 미래에 그것도 가능하다고 한다. 따라서 아날로그 시대에는 사진이 사실 확인의 증거가 될 수 있었지만 디지털 시대의 사진은 단순한 이미지가 될 뿐이다.   이런 디지털의 기능들은 모듈(module)화에 의해서 더 효과적으로 운영된다. 컴퓨터의 여러 부분에서 독자적 기능을 가진 교환 가능한 구성 요소로서 작용하는 모듈은 시스템을 구성하는 독립적 단위가 되어서 기능의 효과를 높이고 더 분화된 독자적 역할을 수행한다. 모듈은 컴퓨터에서 전체와 부분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제시하고 있다. 중앙통제의 시스템에 의해서 일괄적으로 정보가 처리(입력, 편집, 출력 등)될 때, 한 부분의 기능이 장애를 일으키면 그 장애로 인해서 전체적인 장애현상이 발생한다. 그래서 그런 비능률적 중앙통제의 기능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기능을 분산하고 독립시켜서 시스템 전체의 능률을 강화하고 장애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한 구조가 컴퓨터의 모듈이다. 이 모듈은 건축 재료의 효과적인 사용을 위한 방법으로 고안된 것을 컴퓨터에서 프로그램 시스템의 구조에 응용한 것이다. 정밀한 조직의 네트워크 속에서 다른 부분과는 전혀 연관성이 없는 운용과 독립성을 갖는 모듈화의 특성은 새로운 프로그램(시스템)을 만들 때, 이미 만들어진 모듈을 가져다 쓰면 된다는 재사용성과 다른 부분과 연관이 없이 자기 일만 수행하기 때문에 기능을 고도화하고 확대하는데 있다. 그리고 이미 만들어진 모듈은 새로운 프로그램(모듈)을 생산하는 모체가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 모듈은 객체지향성에 의해서 독립된 영역을 구축한다.   디지털의 자료(데이터)는 아날로그에서 채집한 자료(화상, 소리 등)를 바탕으로 성립된다. 그것을 샘플링이라고(sampling 견본추출) 하는데, 아날로그의 소리가 디지털로 변화될 때 아날로그에 있던 노이즈(noise 잡음) 현상은 말끔히 제거된다. 그것은 디지털의 명료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리고 디지털은 감각자체의 변화가 아니고 기법의 변화에 한정되기 때문에 고도의 디지털 그림(동영상)이나 음악의 감각은 아날로그를 지향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디지털의 단절적 현상(초기의 계단현상)은 아날로그의 연속적인 현상(경사진 언덕)으로 점차 복귀된다. 그것은 디지털시계가 외형상으로는 아날로그시계의 모양을 닮아 가는 것과 같다. 이 밖에 아날로그는 고갈되거나 변질되는데 비해 디지털은 무한히 재사용해도 고갈되거나 변질되지 않는다는 것도 디지털의 특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데이터(data- 컴퓨터가 통신, 해석 및 처리를 할 수 있도록 형성된 사실 및 개념의 표현을 어떠한 조건, 값 또는 상태로 나타내는 숫자나 문자)       3. 현대시에 나타난 디지털적인 요소       가, 이상(李箱) 시에 나타난 디지털적 요소   현대시에서 1930년대 이상(李箱)의 시만큼 난해하면서도 많은 연구 과제를 던져주는 예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의 시 중에서도 대표적인 난해시(難解詩)로 꼽히는 시가「오감도烏瞰圖」(詩第一號)다. 이 시가 난해한 이유는 현실적 관념으로는 해석할 수 없는 “불확실한 의미의 공간” 때문이다. 그래서 다양한 해석의 방법과 의미가 생산되었으며 앞으로도 누구나 도전해 볼 가치가 있는 매력적인 공간을 남겨놓고 있다. 그러나 그 “불확실한 의미의 공간”은 디지털의 특성과 만날 때 선명하고 명료한 공간이 된다. 그 특성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이 시를 구성하는 언어는 컴퓨터 모니터의 화면(글자나 그림)을 구성하는 디지털의 데이터(data)와 같다는 것.   2) 이 시의 언어들은 어떤 의미에도 감염되지 않아서(탈-관념) 분리와 결합을 통한 변형이 자유롭다는 것.   3) 이 시의 언어들의 결합은 집합적 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   4) 이 시가 표현하는 것은 가상현실의 영상 즉 추상적인 버추얼 그래픽(Virtual graphic)이라는 것.   5) 이 시는 컴퓨터 그래픽의 자유로운 그림 바꾸기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       十三人의兒孩가道路로疾走하오.   (길은막다른골목이適當하오)   第一의兒孩가무섭다고그리오.   第二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三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四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五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六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七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八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九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十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十一兒孩가무섭다고그리오.   第十二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十三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十三人의兒孩는무서운兒孩와무서워하는兒孩와그렇게뿐이모였소.   (다른事情은없는것이차라리나았소.)       그中에一人의兒孩가무서운兒孩라도좋소.   그中에二人의兒孩가무서운아孩라도좋소.   그中에二人의兒孩가무서워하는兒孩라도좋소.   그中에一人의兒孩가무서워하는兒孩라도좋소   (길은뚫린골목길이라도適當하오.)   十三人의兒孩가道路를疾走하지않아도좋소.   -----이상(李箱)「烏瞰圖」(詩第一號)전문   디지털의 기본적 특성을 나타내는 이 다섯 가지의 개념에「오감도烏瞰圖」(詩第一號)를 대입해보면 이 시가 안고 있는 새로운 시의 공간이 열린다. 먼저 이 시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는 도로(道路)를 질주하는 13인(十三人)의 아해(兒孩)들(무서운 아해와 무서워하는 아해들)에 대한 해석이다. 그 아해(兒孩)들을 이 시를 구성하는 언어는 컴퓨터 모니터의 화면(글자나 그림)을 구성하는 디지털의 데이터(data)와 같다는 첫 번째 특성에 대입하면 그들은 고정된 의미가 없는 이미지 또는 재료(object)라는 디지털적 해석이 나온다. 따라서 시 속의 아해(兒孩)들를 수식하는 제1,제2,제3....제13이라는 서수(序數)에도 어떤 의미가 들어 있지 않다는 것이 확실해 진다. 그것은 이 서수(序數)가, 작가가 임의로 지정한 추상적인 숫자라는 의미에서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1의 아해를 제2의 아해로 바꾸어도 되고 제3의 아해를 제10의 아해로 바꾸어도 된다는 가설이 성립된다. 그것은 의미가 없는 서수(序數)로 표시된 이 시의 아해(兒孩)들은 시인이 독자들의 호기심을 유발시키고 상상력을 자극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의미와 무의미의 이중적 이미지가 들어 있는 재료(object)라는 판단의 근거가 된다. 따라서 무서운 아해와 무서워하는 아해를 “������공포������라는 단 한 가지 감정원소로 환원된 추상적 부호집단”이라는 문덕수의 해석도(「이상론(李箱論)」) 고정된 의미가 없는 이미지 또는 재료라는 디지털적 해석에 수용된다. 그의 해석은 이 아해(兒孩)들이 캐릭터(character)의 원소(元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그들은 “추상적 부호집단” 즉 디지털의 데이터(숫자나 문자)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현대 컴퓨터 프로그램의 객체지향적 모듈의 특성과도 부합된다.   이런 해석이 가능한 것은 이 시에는 연극적인 캐릭터의 액션과 작가의 일방적 개입만 있을 뿐 언어단위들의 논리적인 연결이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을 구체적으로 열거하면, 이 시 속에는������왜 13인의 아해(兒孩)가 등장해야 하는지, 13인의 아해(兒孩)들이 도로를 질주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처음에는 막다른 골목이 적당하다고 했다가 끝에서 왜 길은 뚫린 골목길이라도 적당하다고 하는지, 그리고 왜 13인의 아해(兒孩)가 도로를 질주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지, 왜 다른 사정이 없는 것이 차라리 낫다고 하는지������등 작가의 일방적인 개입 외에 사건의 배경이나 원인을 알 수 있는 어떤 논리적인 단서가 발견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시의 언어들이 표현하는 것은 문제만 제시하고 해답을 독자의 사유와 상상에 전부 맡기는 간화선(看話禪)의 화두(話頭) 같은 기능을 하는 순수한 가상현실의 동적인 그림이며 그것을 조정하는 시인의 심리적인 의도만 드러내는 추상화 된 그림이라는 판단을 하게 된다. 따라서 이 시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현실적인 의미가 들어 있지 않은 탈-관념의 가상현실이라고 해석된다. 그 해석을 확대하면 이 시 속의 화자는 연극의 연출자와 같은 입장이 되어서 자신의 그림을 독자에게 보여주는 행위자에 그치고, 시를 완성시키는 주체는 시인이 아니라 독자라는 것이 드러난다. 그래서 이 시는 텍스트(text)로서의 문학작품의 완성은 독자의 수용이라는 소통과정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고 판단하는 20세기 독일의 수용미학 (受容美學,Rezeptionsasthetik)과도 맥을 같이 한다.   이런 관점에서 해석할 때, 디지털의 가상세계를 전혀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하는 독자들에겐 이해하기 어려운 함정이나 속임수같이 생각되었던 이 시의 끝부분������(길은뚫린골목길이라도適當하오.)/十三人의兒孩가道路를疾走하지않아도좋소.������의 진술기법(陳述技法)도 쉽게 풀리게 된다. 앞의 내용을 번복(飜覆)하고 자유롭게 풀어주는 이 끝 구절은 컴퓨터 그래픽의 그림 바꾸기 즉 디지털 적인 변형의 자유로움을 드러낸 것이라고 해석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1930년대의 이상(李箱)이 현대 컴퓨터의 개념을 인식하지는 못했다고 하더라도, 건축기사였던 이상(李箱)이 건물의 치수·비율·구조 등을 조정하기 위해 임의로 정하던 단위인 모듈(module)의 개념을 현대시의 구조 즉 “집합적 결합”(문덕수-「나의 시쓰기」『문덕수 시전집』에 수록) 속에 끌어들인 것이라고 추측되기 때문이다. 이 건축용어의 모듈(module) 개념은 현대 컴퓨터에 응용되어서 독자적 기능을 가진 교환 가능한 구성 요소라는 단위(unit)로 쓰인다.   따라서 무서운 아해(兒孩)와 무서워하는 아해(兒孩)도 시적 긴장감을 조성하기 위한 “대상에 옷 입히기” 이상의 범위를 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이 시에 등장하는 아해(兒孩)들의 수효를 2~3명 더 늘이거나 줄여도 좋고 길은 막힌 골목길이나 뚫린 도로(道路)나 모두 가능하다는 가정(假定)이 성립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와 함께「오감도(烏瞰圖)」를 인류문명 위기의 암시란 관점으로 해석하여 “13인(十三人)의 아해(兒孩)를 최후의 만찬의 예수와 12제자”로 인식하고 이해한 임종국의 견해(『이상전집(李箱全集)』)나, 아이가 태어나서 성장하는 기간의 10개월을 제10의 아해(兒孩)까지로 보고 이 시를 “생명의 탄생과 관념이 성장․분화․심화되는 과정”으로 이해하고 해석한 오남구의 견해를 (『이상(李箱)의 디지털리즘』) 이 시는 의미의 큰 격차에도 불구하고 모두 긍정적으로 수용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 까닭은 아무런 고정관념이 들어있지 않은 백지상태 같은 가상현실(Virtual Reality) 즉 디지털의 영상(이미지)에 새로운 의미를 더하고 이야기를 붙이는 것은 독자의 자유가 되기 때문이다. 그들의 의미 붙이기는 그들의 상상력과 분석력과 체험, 지적수준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누구도 옳다 그르다 판단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만약 선입견(先入見)을 가지고 이 시의 순수 이미지를 지식이나 관념으로 덧칠을 해서 옳다거나 그르다는 이분법적 사고와 판단의 잣대로 가름한다면, 이 시의 끝부분 “그中에二人의兒孩가무서운兒孩라도좋소/그中에二人의兒孩가무서워하는兒孩라도좋소/그中에一人의兒孩가무서워하는兒孩라도좋소./(길은뚫린골목길이라도適當하오.)/十三人의兒孩가道路를疾走하지않아도좋소.”는 영원히 풀리지 않는 미로(迷路)의 비밀로 남을 수도 있다.   디지털에서 핵심이 되는 구성요소는 정수로 표시되는 최소의 단위들 즉 수리적(數理的) 데이터이다. 이 데이터의 기호와 숫자들은 각자의 기능은 있지만 고정된 의미가 없다. 그것은 디지털 시에서 탈-관념된 언어 단위와 같다. 이 단위들은 불교의 삼법인(三法印)의 하나인 제법무아(諸法無我)와도 맥을 같이 한다. 그래서 열린 공간과 열린 사고의 원천이 된다. 따라서 이상(李箱)의「오감도(烏瞰圖)」시제1호(詩第一號)를 디지털의 관점에서 해석할 때, 시의 공간이 얼마나 넓어지는가에 새삼 감탄하게 된다. 그리고 오남구의 성과도 높게 평가된다. 그는 이 시에서 “아해들” 또는 “아해들의 움직임을” 디지털의 최소단위(unit)의 표현 즉 컴퓨터 모니터의 화면의 점(dot) 또는 화소(畵素)로 직관하고������관념의 제로 포인트(무의미, 탈-관념)������라는 시의 새로운 관점을 찾아냈기 때문이다.(오남구의「이상의 디지털리즘」 범우사) 이 시에서 이상(李箱)이 창조한 시적공간은 현실세계와 연결되는 공간이다. 그러나 그 공간은 추상화된 현실의 그림이 들어 있는 공간일 뿐이다. 그래서 살아 있는 현실의 정서나 감각은 찾아볼 수 없고,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확대시키는 사유의 공간만 보인다.   요컨대, 이 시의 언어들은 관념이 전혀 묻지 않은 순수한 인지단계의 언어들이라는 것과 그 언어들을 조정하는 이상(李箱)의 사고(思考)가 탈-관념된 사고라는 것은 이 시의 해석과 감상에 무엇보다 중요한 열쇠가 된다. 그러나 이 시에 대한 이런 접근은 이 시가 이상(李箱)이 디지털적인 탈-관념과 상상의 언어로 그려낸 단순한 액션(action)의 그림(가상현실)이며, 그의 개성적인 사고(思考)가 창조한 짧은 허상의 드라마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라는(어떤 의미도 없다는) 관점 즉 디지털적 관점에 의한 해석일 뿐이다. 또 다른 해석의 방법이 나올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다. 다른 시를 읽어보자.       그사기컵은내骸骨과흡사하다. 내가그컵을손으로쥐었을때   내팔에서는난데없는팔하나가接木처럼돋히더니그팔에달린손   은그사기컵을번쩍들어마룻바닥에메어부딪는다.내팔은그사기   컵을사수(死守)하고있으니散散이깨어진것은그럼그사기컵   과흡사한내骸骨이다.가지났던팔은배암과같이내팔로기어들기   전에내팔이或움직였던들洪水를막은백지白紙는찢어졌으리라.   그러나내팔은如前히그사기컵을死守한다.   -----「오감도(烏瞰圖)」「詩第十一號」 전문       에도 가상현실(假想現實)의 이미지(동영상)가 들어있다. ”내가그컵을손으로꼭쥐었을때내팔에서난데없는팔하나가접목(접목)처럼돋히더니그팔에달린손은그사기컵을번쩍들어마룻바락에메어부딪는다/산산이깨어진것은그럼사기컵과흡사한내해골이다.“라는 영상언어가 그것이다. 이 그로테스크한 영상언어는 사기 컵을 사수(死守)하는 내 팔과 사기 컵을 깨뜨려버리려는 또 하나의 팔(돋아난 팔)의 대립과 갈등을 디지털적 변형의 그림(graphic)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서 그것이 시인의 내면적인 심리현상과 관련된다는 암시를 던진다. 그러나 이상(李箱)은 이 시에서도 「오감도(烏瞰圖)」같이 액션(action) 이외에 아무런 단서도 남겨놓지 않고 자신의 관념을 숨기고 있어서 이 시에 등장하는 팔이나 사기 컵, 해골 등에서 어떤 관념도 발견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 시의 언어들은 가상현실의 영상 속에서 캐릭터의 구실을 하는 도구(재료)이라는 것이 확실해진다. 그래서 ”내 팔“ ”돋아난 팔“ ”사기 컵“ ”해골“ 그리고 사기 컵을 깨뜨리는 행위와, 사수하는 행위, 깨어진 것은 사기 컵이 아니라 자신의 해골이었을 것이라는 시 속 화지(나)의 진술은 시의 공간을 확장하고 탈-관념의 가상공간을 만드는 디지털 시의 원소(元素)가 된다. 그리고 이 시에 의미공간을 여는 것은 순전히 독자의 몫으로 남는다. 그 공간 속에는 독자들의 다양한 상상이 수용된다. 오남구는『이상의 디지털리즘』에서 “사기 컵은 해골과 흡사하다. 시각적으로 흰색과 빛나는 모양이 있고, 내용적으로 물을 담고 관념(생각)을 담는 유사성이 있다.“라고 하면서 ”깨뜨려진 것은 사기 컵과 흡사한 관념의 해골(환상)일 뿐, 집착하고 있는 손에 ������실제 꼭 쥐고 있는 컵(고정관념)은 깨어지지 않고 해탈하지 못한다.“라고 해석하고 있다. 그의 해석은 이 시가 감추고 있는 숨은 의미에 근접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의 그런 해석은 독자로서의 일방적인 해석일 뿐, 다른 해석이 나올 여지는 언제나 남아있다. 이 시에서도 독자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것은 시의 내용(시인의 심리현상 등)이 아니라, 시인이 보여주고 있는 탈-관념의 이미지다. 그것이 이 시에서 발견되는 디지털적인 요소다.       나, 문덕수 시에 나타난 디지털적 요소       빨간 저녁놀이 반쯤 담긴   유리컵 세 개.   횅하니 열린 문으로는   바람처럼 들어닥칠 듯이 차들이   힐끗힐끗 지나간다.   세 유리컵   그 세 지점을 이으면 삼각형이 되는   그 속에 재떨이는 오롯이 앉아 있었다.   열린 문으로는   서 있는 한 사나이,   길 건너 어느 고층으로 뛰어오를 듯이   서 있는 그 신사의 등이 실은   유리컵을 노려보고 있었다.   세 유리컵   그 세 지점을 그으면 삼각형이 되는   그 금 밖으로 밀려나   금박金箔의 청자 담배와 육각형성냥갑이 앉아 있고   그 틈새에 조그만 라이터가   발딱발딱 숨을 쉬고 있었다.   ------문덕수 「탁자를 중심으로 한 풍경」 전문       문덕수의「탁자를 중심으로 한 풍경」에서도 디지털의 특성을 찾아낼 수 있다. 그 단서는 “빨간 저녁놀이 반쯤 담긴/유리컵 세 개.”와 “열린 문으로는/서 있는 한 사나이, /길 건너 어느 고층으로 뛰어오를 듯이/서 있는 그 신사의 등이 실은/유리컵을 노려보고 있었다.”에서 발견된다. 이 장면은 어떤 의미에 감염되지 않은 탈-관념의 영상언어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시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시인의 의식이 만들어낸 가상현실이라는 것이 확인된다. 그리고 이 시를 구성하는 언어의 최소 단위들 “빨간 저녁 놀, 재떨이, 유리컵 세 개, 라이터 ,청자 담배. 육각형 성냥갑, 한 사나이 등”은 분리와 합성이 가능한 집합적 결합이라는 것. 그리고 독자적 기능을 가진 교환 가능한 구성 요소(모듈)로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은 재떨이를 물주전자로, 라이터를 핸드폰으로, 유리컵을 사기 찻잔으로, 청자 담배를 신문지로 변경시키고, 사나이를 20대 젊은 아가씨로 바꾸어도 시의 성립에 영향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이유는 이 시에 등장하는 소재에는 어떤 관념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시의 가상현실은 순수한 이미지로 이루어진 생동하는 사물성의 공간이 되고, 독자들의 상상과 의미 붙이기가 무한정 허용되는 세계로 확대된다. 그러나 이 시는 이상(李箱)의「오감도(烏瞰圖)」시제1호(詩第一號)보다 독자의 상상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넓지 않다. 그 까닭은 이 시는 현실세계에서 직접적으로 샘플링(sampling 견본추출)된 세계이기 때문이다.   디지털 세계의 자료들은 아날로그에서 샘플링 된 자료다. 샘플링의 방법은 1차적인 방법과 2차적인 방법으로 구분된다. 1차적인 방법은 직접 현실세계를 사진 찍듯이 하는 샘플링 방법이고 2차적인 방법은 추상적인 상상을 통해서 샘플링 하는 방법이다. 이 때 1차적 방법은 독자가 들어갈 시적공간은 제한되지만 현실과 현장이라는 생명의 감각에 더 접근되어 있어서 정서의 표현이 살아난다. 이에 비해서 2차적인 방법은 추상적인 상상의 공간을 무한대로 펼치면서 새로운 감각의 세계를 열어놓아서 독자가 들어 갈 수 있는 시적 공간은 무한히 넓어질 수 있다. 그러나 현실과 동떨어진 추상성의 세계는 현실적인 생명감각에서 멀어지고 그것이 만들어내는 가상현실의 조작성이 쉽게 드러난다. 따라서 시의 정서도 조작된 정서가 된다. 문덕수의 「탁자를 중심으로 한 풍경」은 1차적 방법에 해당하는 시이고, 이상(李箱)의「오감도(烏瞰圖)」시제1호(詩第一號)는 2차적 방법에 해당되는 시라고 판단된다.       4. 디지털 시의 성립과 조건       가. 디지털 시의 개념과 근거   디지털(digital)의 특성과 디지털 시대의 감각에 호응하려는 시운동을 디지털리즘이라고 이름붙이기를 해 본다.(2003년 「디지털리즘」1집에서 오진현 시인이 디지털리즘 선언을 함) 그리고 이를 넘어서서 디지털적인 시각, 사유, 지각, 감성, 정서, 언어 등을 망라하여 그것을 현대시에 흡수하여 언어표현의 방법으로 활용하고, 새로운 상상(시각)과 감각과 감성과 사유의 영역을 열어 보이는 시를 즉 디지털 시라고 개념정의를 한다.   그런데 디지털 시의 성립에서 짚고 넘어야 할 문제는 디지털의 특성과 시가 결합할 때, 디지털 시는 기성의 시와 어떤 차별성을 갖느냐 하는 것이다. 그것은 디지털 시의 성립에 중요한 요소가 된다. 아날로그 시(디지털 시에 대응하는 시로 기성의 시를 의미함)나 디지털 시나 공통적인 것은 시의 현실은 현실자체가 아니고 샘프링(sampling 견본추출)된 현실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시는 원래, 현실 그 자체에서 벗어난 가상현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샘플링이나 가상현실은 디지털 시만의 특성이 될 수 없다. 따라서 디지털 시의 특성은 기성의 시와는 다른 표현방법에서 찾게 된다.   그래서 디지털 시는 탈-관념을 기본조건으로 하는 분리와 합성이 가능한 언어단위들(unit)에 근거(根據)를 두게 된다. “탈-관념은 글자 그대로 관념에서 벗어난다는 뜻이다. 관념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대상의 의미”에서 벗어난다는 것이다. 이는 대상에 대한 지각(知覺)을 감지와 인식(의미형성 이전의 의식의 분별작용)의 단계에서 멈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대상에 대한 표현에서 대상에 대한 어떤 감정이나 판단을 전혀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 즉 감정, 판단, 배경의미의 유보를 뜻한다. 그것은 지각(知覺)을 사고(思考) 이전의 단계로 내려서 순수인지(純粹認知)의 세계로 낮추는 것이다. 이 때 대상은 그가 태어날 때의 상태로(원래의 상태)돌아 가게 되고 그것을 인식하는 인식주체들은 대상과 새로운 관계 맺기를 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탈-관념에서는 꽃은 식물학적인 꽃으로, 길은 도로의 의미로, 숲이나 나무도 자연 그대로의 숲이나 나무로 인식되고 표시된다. 여기에 관념의 표현 방식들 -상징, 암시, 풍자 등-은 발붙일 수가 없다. 이렇게 사물에 붙어있는 의미가 다 벗겨져서 의미(관념)의 제로 포인트로 돌아가면 어떤 의식현상이 생길까. 그런 상태에서 시인들은 무엇을 표현해 낼 수 있을까. 하는 것은 새로운 문제로 떠오른다. 그것은 시인들이 원시상태의 인간으로 돌아가서 사물을 접촉하는 것과 같다.“ (심상운 「탈관념 시에 대한 이해」2006, 8 월간 )   이런 무의미의 탈-관념 언어들이 디지털 시의 근거가 되는 이유는 디지털 시가������의미의 예술������(최재서「문학원론」)이라는 종래의 시론에서 벗어나 순수한 영상언어의 시가 되기도 하고, 시의 공간을 확장시키고, 한 편의 시가 하나 또는 몇 개의 언어단위로 표현되면서 통사적 원칙에서 벗어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인은 연극이나 영화의 연출자 같은 위치에서 이미지의 변형과 다시점의 세계가 들어 있는 미완성의 시(설계도) 속으로 독자들을 안내하고, 그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여 그들이 시를 완성시키는 주체가 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방법의 원형은 1930년대 이상(李箱)의「오감도(烏瞰圖)」의 (시제1호)와 1950년대 조향의「바다의 층계層階」에서 발견된다.       나, 디지털 시의 표현 방법   이런 원칙을 기본으로 할 경우 활용할 수 있는 디지털 시의 새로운 표현방법은 크게 네 가지로 파악된다. 그 중 첫 번째의 방법은 이상(李箱)의「오감도(烏瞰圖)」(시제 1호)에서 구현된 독특한 추상화 기법이다. 탈-관념된 언어 단위들을 사용하여 시인이 상상한 현실의 추상화를 그려서 보여주고 작가의 개입을 통해서 독자들에게 화두를 던져 주는 시의 기법은 디지털적인 구조에 맞는 기법이다. 특히 시 속에 시인이 창조한 캐릭터를 등장시켜서 어떤 동적인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은 언어의 환상적인 면(언어유희)에서도 새로운 감각과 상상을 창출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준다.   두 번째 방법은 염사와 접사의 방법을 사용하는 방법이다. 염사와 접사는 현실이 반영(反映)된 마음속의 직관상을 사진 찍 듯이 찍는 것이기 때문에 아날로그가 아닌 디지털적 샘플링 기법이 된다. 염사는 직관을 통해서 내면에 잠재된 대상을 드러내는 방법이고, 접사는 외면 세계에 대한 직관과 시각적인 접근을 통해서 원근법을 깨뜨려버리고 대상의 실상에 접근하는 방법이다. 이 염사와 접사는 병적인 망상(妄想)이나 터무니없는 환상(幻像)과는 구별된다. 염사와 접사는 선적(禪的)인 의식 즉 고도의 집중된 정신의 현상 속에서 발생한 투명한 의식의 그림이다.   세 번째의 표현 방법은 사물과의 직접적인 만남을 통해서 사물성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서 사물과 사물의 충돌, 사물과 사물의 융합 등을 보여주는 방법이다. 이런 사물성의 이미지 세계는 사물성의 감각을 포착하여 직관의 영상으로 떠올리는 것이다. 따라서 디지털 시는 사물 속으로 들어가서 그것을 반영(反映)하는 물아일체(物我一體)의 시가 된다.   네 번째 표현방법은 대상의 순간적인 포착과 포착된 영상자료들의 변형으로 상상의 세계를 확대시키는 이미지의 세계다. 이것은 디지털 시의 독특한 표현방법이 된다. 이 때 시인은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공감각 등을 융합하여 감각의 통합적인 상태를 표현할 수 있다. 이런 감각의 통합은 디지털 언어의 감각이 된다.   이 네 가지의 표현방법의 중심에는 샘플링 된 현실이 들어 있다. 샘플링 된 자료(이미지)는 하나의 독립된 단위를 형성한다. 이 때 중요한 것은 단위들의 결합이나 연결 방법이다. 아날로그 시는 대부분 관념 또는 사유의 연속적인 연결(인과관계)방법을 선호한다. 그것은 논리적인 연결로 의미(관념)와 정서를 표현하는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미보다는 감각이나 이미지를 드러내는데 더 중점을 두는 디지털 시는 단위와 단위의 연결을 “집합적 결합”으로 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이 탈-관념된 이미지의 집합적 결합은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아날로그의 연속적인 것에서 디지털의 불연속 적인 것으로 바꾸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래서 공간과 공간의 마주보기, 시간과 시간의 마주보기와 뒤섞이기가 가능해진다. 그것은 이미지를 컴퓨터의 그래픽처럼 자유롭게 결합하기도 하고 합성할 수 있으며 반대로 이미지의 분리도 그렇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 언어 단위들 사이에는 간섭(干,interference) 과 잔상(殘像, afterimage) 현상이 발생하여 아날로그 시와 같은 효과를 구현한다. 이러한 결합은 단위의 조합을 바탕으로 운용되는 디지털의 성격과도 부합된다.   따라서 디지털 시는 컴퓨터의 모듈과 같이 시의 언어단위를 독립적인 단위로 인정한다. 그것은 위에 제시한 시인의 추상적인 현실 이미지, 염사․접사, 사물성의 이미지, 영상자료의 변형으로 포착하는 감각 등이 그 자체로 한 편의 시(하나의 시스템)를 형성하기도 하고 집합적 결합을 이룬 종합적인 구조의 시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집합적 결합은 “대상의 결합이나 구성방법의 종류를 다양화할 수 있고, 구문과 비구문, 의식․무의식의 경계와는 관계없이 시의 구성 영역의 공간을 무한히 넓힐 수 있다.”(문덕수-「문덕수 시전집」“나의 시쓰기-물리주의와 집합적 결합”에서)   디지털 시에서의 언어단위(단어, 문장)의 집합적 결합과 컴퓨터프로그래밍의 모듈은 서로 유사점을 가지고 있다. 그 유사점의 첫째는 그들이 모두 독립된 단위로 되어 있다는 것. 둘째는 독자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하나의 시스템 속에서 상호 보완적 생산기능(현대시에서는 이미지, 감각, 정서의 조화)을 한다는 것. 셋째는 교환 가능한 독립된 기능을 가지고 있어서 분리될 수도 있고 작가(프로그래머)의 의도대로 임의로 변경할 수도 있다는 것. 넷째는 모듈화 된 시의 구문들은 작가의 의도성에서 이탈하여 그 스스로 독립된 생명력을 가지고 독자에게 다가 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때 모듈화 된 언어단위의 독자적인 방향성(상상작용, 영향력)은 작가도 예측하기 어렵게 된다. 그것은 모듈의 특성인 객체지향성 때문이다. 그래서 언어의 모듈화라는 기능성(機能性)을 부가하게 된 현대시의 디지털적 구성(집합적 결합)은 시의 공간을 무한히 넓히는 효과를 발휘하게 된다. 따라서 이 모듈의 객체지향성은 현대시의 구조를 새롭게 하고 현대시의 성격과 형태를 변화시키는 계기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다음은 디지털 시의 정서다. 디지털은 정서나 감각의 변화가 아니고 기법의 변화이기 때문에 아날로그적인 정서와 감각에서서 멀어질 수가 없다. 그러나 디지털 시는 아날로그와는 구분되는 독특한 정서를 드러낼 수 있다. 샘플링 된 현실은 사실이 아니고 마음 속 화면에 반영(反映)이 되어서 나타난 현실의 일부분이다. 그 반영 속에는 시인 자신의 의식(관념)의 그림자가 들어있다. 그래서 그것을 순수한 탈-관념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현실과 밀착된 마음의 영상은 아날로그를 지향하는 디지털의 생동하는 감각과 조화를 이룰 수 있다. 그리고 현실이 생동하는 감각은 추상적인(현실이 제거된) 증류수(蒸溜水) 같은 정서가 아니라, 현실이 밑바닥에 가라앉은 지장(地漿-黃土水) 같은 정서가 된다.   다시 말하면 디지털 시의 정서는 샘풀링의 과정을 거쳐서 재생 될 때 이미지의 밑바닥에 가라앉은 관념의 위로 솟아올라온 지장(地漿-黃土水) 같은 맑은 정서다. 따라서 시의 밑바닥엔 관념의 그림자가 남는다. 그래야 인간적인 시가 탄생할 수 있고, 그 시에 담긴 정서는 인간의 마음을 정화하는 기능을 가진 맑은 정서가 될 수 있다. 자연을 소재로 했을 때 디지털 시는 관념이 가라앉은 후에 떠오르는 맑은 향기 즉 원래의 자연향기를 풍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정화된 상태의 자연 본연의 향기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래서 굳이 정서적인 언어를 사용하지 않아도 샘플링의 과정을 거쳐서 재생되는 탈-관념의 디지털 시의 정서는 독자들의 마음을 자연스럽게 정화시키는 힘을 드러낸다. 그러나 추상적인 상상을 통한 간접적인 샘플링의 방법으로 구성된 디지털 시에는 증류수(蒸溜水) 같은 정서가 생길 수도 있다.       다. 디지털 시의 조건   디지털 시의 새로운 표현방법의 모색에 전제되는 조건은 디지털 시는 시 본래의 특성(아날로그의 특성)을 훼손시키지 않아야 하며 보통의 시와 같이 읽히는 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디지털 시가 실험시라는 껍질을 깨고 나와서 감각만이 아니라 시가 사유와 정서의 표현이라는 일반적인 시의 조건과도 조화를 이룰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디지털 시가 일반적인 시와 조화롭게 공존한다는 것은 고도의 디지털 그림(동영상)이나 음악의 감각이 아날로그를 지향하는 것과 같다. 그러면 디지털 시의 근원(기본원칙)과 전제조건을 만족시키고 디지털 시의 특성을 드러낼 수 있는 은 무엇일까? 그것을 열 가지로 구분하여서 다음과 같이 정한다.       1) 디지털 시는 분리와 결합이 가능한 탈-관념의 언어 단위(unit)를 기본으로 한다. 언어 단위의 결합은 집합적 결합을 근간으로 한다. 따라서 그 언어 단위는 독자적 기능을 가진 교환 가능한 구성요소 즉 객체지향의 모듈(module)화가 이루어 질 수도 있다.(예시작품: 문덕수의「꽃잎세기」,오남구의「푸른가시짐승-빈자리x.3」,심상운의「빈자리-낮12시25분」)   2) 디지털 시는 탈-관념의 언어 단위(unit)를 기본으로 하지만 탈-관념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인지단계의 관념은 수용한다. (심상운「탈관념 시에 대한 이해」2006, 8 월간 참조)   3) 디지털 시는 현실을 직접 샘플링(1차적 방법)한 자료로 생성된 시와 추상적(2차적인 방법) 샘플링을 통해서 구성된 시로 구분한다. 그러나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을 기본으로 하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디지털 시에는 샘플링(sampling견본추출)된 현실세계가 극소화될 수도 있다.   4) 디지털 시는 영상성, 동시성, 정밀성(선명한 이미지, 순간포착 등)과 사물성의 순수 이미지를 중요한 요소로 한다. 사물과의 직접적인 만남을 통해서 사물성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서 사물의 순수 감각을 드러내고 사물의 충돌과 융합 등을 보여주는 방법은 디지털 감각과 영상언어의 산실이 된다. 이러한 영상언어는 문덕수의 「탁자를 중심으로 한 풍경」에서 찾아볼 수 있다.   5) 디지털 시는 샘플링(sampling 견본추출)하는 과정에서 탈-관념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것을 아날로그의 노이즈(noise 잡음) 제거라고 한다. 그러나 시인의 심리적 현상 속에 들어 있는 관념의 그림자가 남는 것은 허용한다. (예시 작품: 심상운의「검은 기차 또는 흰 비닐봉지」)   6) 직관을 통한 염사와 원근법을 깨뜨리고 실상에 접근하는 접사는 디지털 시의 직접적이고 원초적인 샘플링의 방법이다. 따라서 더 많은 방법들이 원용될 수 있다. (예시 작품 :오 남구의 「밤비」)   7) 디지털 시의 정서는 현실이 제거된 증류수(蒸溜水) 같은 정서와 현실(관념)이 밑바닥에 가라앉은 지장(地漿-黃土水) 같은 정서로 분류한다. 증류수 같은 정서의 대표적인 작품은 이상(李箱)의「오감도(烏瞰圖)」의 (시제1호), 지장(地漿-黃土水) 같은 정서의 시는 송시월의 「입춘무렵」을 예시작품으로 들 수 있다.   8) 디지털 시는 단일한 시점과 감각과 정서만 고집하지 않고 다시점, 다감각, 다정서의 통 합된 감각의 세계를 지향한다. 그것은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 아날로그의 연속적인 개념에서 디지털의 불연속적인 개념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간과 공간의 마주보기, 시간과 시간의 마주보기와 뒤섞이기도 시 속에서 구현될 수 있다. 이런 감각의 다층구조의 예시작품으로는 오남구의 「경운동 88번지로 간다-염사」를 들 수 있다.   9) 디지털 시는 작가(시인)가 만들어낸 완성품의 시에서 벗어나 독자가 참여하여 각자의 사고와 인식과 감정과 감각이 들어가서 만들어 내는 독자 참여의 열린 시를 지향한다. 그 바탕에는 텍스트로서의 문학작품의 완성은 독자의 수용이라는 소통과정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고 판단하는 20세기 독일의 수용미학(受容美學, Rezeptionsasthetik)이 들어있다. 이 때 시인은 시의 설계도를 제시하고 그것의 자유로운 변형을 보여줌으로써 독자 참여를 유도하는 연출자가 된다.   10) 디지털 시의 이미지는 움직이는 이미지를 지향한다. 그래서 꿈틀거리면서 움직이면서 계속 변화하면서 살아있는 가상현실의 감각을 독자에게 전해야 한다. 그 가상현실은 환상도 되고 꿈도 되지만 현실의 절실한 감성과 정서를 전하는 것에 가치를 둔다. 움직이는 이미지의 예시작품으로는 오남구의「달맞이-데몬스트레이션」을 들 수 있다.   이 열 가지의 조건은 한 작품 속에서 서로 조화로운 비중으로 구현될 수도 있지만 한두 가지의 조건만으로도 작품을 형성할 수 있다.       라. 예시 작품에 대한 디지털적 독해(讀解)   다음은 와 에서 예시작품으로 거론된 시에 대한 디지털적 독해다. 예시된 시들은 탈-관념의 세계를 보여주는 1950년대 한국의 초현실주의 시와 2000년대 이후 디지털 시의 방법론을 의식하고 쓴 작품이다. 그래서 앞에 제시한 열 가지의 조건(방법)에 대입하여 디지털 시의 가능성을 진단해보고 새로운 감상과 해석의 길을 열어보는 것은 실제의 창작을 위해서도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낡은 아코오딩은 對話를 관 뒀습니다.       ----여보세요!           에 피는 들국화.       ---왜 그러십니까?       모래밭에서   受話器   여인의 허벅지   낙지 까아만 그림자       비둘기와 소녀들의   그 위에   손을 흔드는 파란 기폭들.       나비는   起重機의   허리에 붙어서   푸른 바다의 층계를 헤아린다.   ---조향「바다의 층계(層階)」전문       1950년대 한국의 초현실주의를 대표하는 이 시는 시가 “의미의 예술”(최재서「문학원론」)이라는 종래의 시론에서 벗어나서 탈-관념의 순수한 영상언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불연속적인 각 연의 언어들은 집합적 결합을 이루고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시의 각 연은 서로 독립적인 관계 즉 객체지향성(모듈)을 드러낸다. 그것은 시인이 연극이나 영화의 연출자 같은 입장에서 독자에게 “보여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5연 는 통사적 구문에서 벗어난 시의 한 형태를 보여주면서, 단위(단어, 구문)들의 충돌과 간섭을 통한 감각적 이미지를 만들어 내고 있다. 그러나 이 시는 전체적 면에서 구성이 산만하다. 그 원인은 이 시에 숨어 있는 시인의 의식(의도)이 시 전체를 통제(관통)하지 못한 때문인 것 같다.       마을을 덮은 코스모스 덤불   아무거나 한 송이 골라 꽃잎을 열심히 세어 본들   나비처럼 머무를 수야.   대추나무 밑동을 감고   한창 뿌득뿌득 기어오르고 있는 나팔꽃   푸른 것은 깔때기 모양   흰 것은 나팔주둥이   한 잎 두 잎 세 잎 네 잎 다섯 여섯 세어보지만   실은 한 송이일 뿐이다.   돌담을 돌자 앞장선 나비는 오간 데 없고   순하고 야들야들한 연보라 무궁화꽃   그 한 송이의 여섯 개 꽃잎을 확인한들   내 어쩌랴 어쩌랴.   해바라기는 서른네 개의 황금 꽃잎을 둥글게 박고   들국화는 서른아홉 개로 쪼개진 보랏빛을 빽빽이 둘렀거늘   내 어찌 머무를 수야.   -------문덕수「꽃잎세기」전문       분리와 결합이 가능한 디지털 시의 탈-관념된 언어 단위(unit)들은 결합을 통해서 대상의 모습(현상)을 드러내지만 분리(해체)를 통해서 존재의 본질을 확인하게 한다. 이 시에서 시인은 “나팔꽃은 여섯 잎, 무궁화꽃 여섯 잎, 해바라기 서른 네 개의 꽃잎, 들국화 서른아홉”이라고 대상을 구성하는 작은 부분들을 분리하고 숫자화 함으로써 색(色)과 공(空), 결합과 분리의 경계를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구상적인 자연현상을 추상적 디지털 언어로 환원하는 작업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문덕수는 이러한 시적 형상의 방법론을 그의 시론 「나의 시쓰기-물리주의와 집합적 결합」에서 “사물이나 대상 하나하나를 1,2,3,4,5.......와 같은 추상적 기수(基數)로서 개개의 구체적 특성을 추상화할 수 있고, 추상된 그 대상을 결합하여 한편의 작품을 만들 수 있다.”고 하였으며, “이러한 방법을 나는 역시 인접학문의 용어를 빌어서 “집합적 결합”이라고 명명해둔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그의 통찰은 디지털을 형성하는 수리적(數理的) 데이터의 의미 즉 디지털의 최소의 단위의 개념을 인식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래서 이 시는 디지털 시의 본질인 단위의 분리와 결합의 원리를 보여준 시라고 판단된다. 이 시에서 ”나팔꽃, 무궁화꽃, 해바라기, 들국화“는 디지털 시의 구조를 형성하는 부분 단위(module)가 된다.       간밤, 회색담장 ������회색������을 헐고 푸른울타리 ������푸른������을 세웠다.   반짝이는 인동의 사금파리������반짝������을 빼고 가시장미������가시������를 올   렸다. 갑자기 ������푸른가시������짐승이 나와서 달빛을 갈갈이 찢고 온   밤을 으르렁댔다. 다시 ������푸른������을 밀고 가시장미������가시������를 내리고   비워 둔 빈자리 x. 아침, 울타리에 구름 한 쪼각 앉아서 쫑긋 꼬   리를 들었다가 사라진다.   --------오남구「푸른가시 짐승 -빈 자리x.3 」전문       이 시의 중심점은 빈자리 x의 무한한 변신이다. 빈자리에 무엇이 채워지느냐에 따라서 감각과 상상의 세계가 바뀐다. 이렇게 바뀌는 것(분리와 결합)이 탈-관념된 디지털 단위들의 특성이다. 만약 어떤 고정된 의미가 빈자리를 채우고 있었다면 감각과 상상의 변신은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시인은 독자들에게 변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탈-관념된 상상의 세계로 안내한다.       꾸벅꾸벅 졸던 중년 여인이   빠져나간 빈자리에   노란 꽃다발을 들고 앉은   꽃무늬 스카프의 아가씨       두 꽃의 향기가 흥건하던 자리에   머리에 무스를 바른 청년이 앉는다   그의 핸드폰이 뿜어내는 경쾌한 소리       순간, 나는 조금씩 발을 들썩이고   파랗게 살아나는 오래된 바다   흰 목덜미의 그녀는   노란 유채꽃 밭을 뛰어가고 있다       그가 훌쩍 일어서서 나간 뒤   하나의 공간으로 돌아간   진홍빛 우단의 빈자리   그 위로   눈부신 햇빛과   신록新綠의 그림자가 번갈아 앉았다가고       낮 12시 25분   전동차 안은 계속 섭씨 20도의   환하고 푸른 공기 속에 있다   ------ 심상운 「빈자리 -낮 12시 25분」전문       이 시도 오남구의「푸른가시 짐승 -빈자리x.3 」같이 빈자리 즉 최소 단위(unit)의 변화에 따라서 바뀌는 감각과 상상의 세계를 드러내고 있다. 그러면서 전동차 안의 풍경과 감각, 시인의 상상이 생동하는 느낌을 풍기고 있다. 그것은 이 시 속에서 언어 단위들의 집합적 결합이 만들어내는 디지털적인 감각의 흐름이 시의 저변을 흐르는 시인의 의식과 조화를 이루어 이미지의 생명력을 형성하는 원천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역驛 승강장엔 선 밖으로 나가면 위험하다는   표지판이 쓰러져 있다.   그가 쏟은 핏덩이가 시멘트와 자갈에 묻어 있다.   역무원들은 서둘러 소방 호스로 물을 뿌리고 있다.       (사람들은 그가 검은 기차를 타고 떠났다고 했다.)       나는 그가 타고 간 기차의 빛깔을 파란 색으로 바꾸었다.       그때 어두운 바닥에서 바람을 타고 날아오른   먼지가 햇빛에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그가 안고 간 눈물의 무게는 몇 킬로그램이었을까?)       (그는 드디어 눈물이 없는 세계를 발견한 것일까?)       2006년 7월 21일 오후 2시 23분   서울 중계동 은행 사거리 키 6m의 벚나무 가지 위로   하얀 비닐봉지 하나가 날아간다.   -----------심상운 「검은 기차 또는 하얀 비닐봉지」전문       이 시는 지하철역에서 일어난 사건을 접사와 염사를 통해서 샘플링한 시다. 샘플링 하는 과정에서 사건은 단순화되었으며 탈-관념이 되었다. 그러나 “검은 색과 푸른 색, 하얀 색”의 색채가 의미하는 관념과 “눈물”이라는 관념의 그림자는 완전히 제거되지 않고 남아서 시의 정서가 되고 있다. 그 정서형성의 원리 속에는 디지털 시에서도 관념의 완전한 제거는 시를 성립시키는 기반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과 인지단계의 관념은 오히려 디지털 시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의미가 숨어있다. 이 시에서도 장면의 변화는 내면적인 의식의 흐름과 디지털의 감각과 상상을 표현하는 중심이 된다. 그리고 단위들의 집합적 결합이 간섭(干涉, interference)과 잔상(殘像, afterimage)을 통해서 이미지 형성의 효과를 나타내고 있음을 보여준다.   깊은 밤,   내 몸은 몇 칼로리의 짐승이   불을 켠다.   빗소리가 깊게 깊게   몸 속을 지나가면서 적시고   짐승이 비를 맞고 서 있다.   깜박 깜박이는 신경 어디쯤일까   새파란 의식이 불을 켜고선   키 큰 미루나무가 선   밤비 속   짐승, 환하게 떠올랐다 캄캄하고   바람 몇 칼로리의 그리움   미루나무 이파리들을 흔든다.   ----------------오남구 「밤비」전문       이 시의 중심은 직관을 통한 잠재의식(潛在意識)의 샘플링이다. 그 잠재의식 속에는 현실이 들어 있다. 그것을 염사와 접사로 나누면 잠재의식 쪽에 더 가까운 것을 염사라 하고 현실 의식 쪽에 가까운 것을 접사라고 한다. 염사와 접사는 대상을 사진 찍 듯이 순간적으로 받아들여서 이미지로 재생하는 샘플링의 방법이다. 이 기법은 디지털 시의 기본적인 표현 방법이다. 이 기법을 터득하기 위해서는 정신의 집중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 시에도 비 오는 밤에 시인의 잠재의식 속에 떠오르는 영상들이 드러나 있다. 그리고 그것들을 관통하는 의식의 에너지가 들어있다.       햇살에 찔린 잔설 한 토 막, 눈물을 흘린다       몸 트는 나무 가지에   마른 풀잎에   반짝 띄우는 문자 메시지       “곧 진도 7도의 진통이 일 것임”       눈이 푸른 휘파람새 한 마리   느닷없이 한참을 기우뚱이는   내 머리 위로   휘이익-푸른 선율을 그으며 날아 간다   온 몸이 간지럽다   -------송시월 「입춘 무렵」전문       이 시에는 디지털적인 감각과 정서가 선명하게 들어난다. “곧 진도 7도의 진통이 일 것임”에 들어 있는 감각은 디지털적인 명료한 감각의 표현이다. 디지털에서 핵심이 되는 구성요소는 정수로 표시되는 최소의 단위들 즉 수리적(數理的) 데이터다. 이 데이터는 디지털 시에서 아날로그 시보다 현장의 감각을 정확하고 명료하게 표현하는 탈-관념된 언어단위가 된다. 이와 함께 휘파람새의 순간적인 움직임은 장면 변화의 동영상이 되고 있다. 그것은 디지털 시의 투명한 의식과 지장(地漿-黃土水) 같은 맑은 정서의 단면(斷面)을 보여주는 감각적인 기법이다.       461120-10675xx吳鎭賢   2002년 12월 29일 57세로 살아 있음.   빨간 싱호등이 켜졌다가 파란 신호등이 켜졌다. 뇌세포의 신   경체계가 잘 유지된다. 오늘 경운동 88번지에 도착할 시간 10분   남았고, 잠깐 내 모습의 환영, 팔순 노구가 앞을 멈칫멈칫 가다가   쉰다.   말없이 손을 내밀어 잡는다. 이 때 번쩍 뇌세포에 녹화된 화면   이 켜진다. 2002년 12월 24일 밤, 행렬이 거리를 넘친다. 징그러   징그러 노랫소리 질퍽하고, 한 목사가 하늘에서 돈뭉치를 뿌린   다. 파란 만원짜리 지폐들 낙엽처럼 날리고 한 무리 병들고 나약   한 노구들이 돈을 향해 허우적허우적 아우성친다.   띵-, 붉은 등이 켜진다. 다시 ������복제인간 아기 탄생!������화면이 겹   친다. 몸이 떨린다. 쾅!쾅!쾅! 맥박이 가슴친다 숨이 가빠지고 정   신이 없다 인내천 인내천 소리치고 숨을 고르면서 경운동 887번   지로 가는 탈출구를 찾는다. 쏴아-.싸늘한 바람,   번쩍,5번 출구의 표시등이 켜졌다. 침략으로 점멸하기 시작   하는 신호,→⑤번 출구, 바뀐다.   시련의 점멸하는 이름 동학 수운, 화살표를 바라보며 내 신호   체계가 경운동 88번지로 간다.   -------오남구「경운동 88번지로 간다- 염사」 전문       이 시는 다시점, 다감각, 다정서의 통합된 감각의 세계를 디지털적인 순간순간의 변화로 보여주고 있다. 이 시에서 다층구조의 감각과 이미지는 팔순노구→ 목사가 하늘에서 뿌리는 파란 만원짜리 지페→미래의 내 모습의 환영인 노구들의 허우적거리는 아우성→복제아기의 탄생의 화면이 겹치는 장면에서 발생한다. 시인은 시공을 이동하며 잠재의식과 현실의식 속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겹쳐져서 나타나는 화면을 생생하게 사진 찍 듯 찍어내고(염사) 있다. 그것은 횡단보도를 건너는 몇 분 사이의 사건이다. 이런 디지털 시의 감각은 하나의 미디어 안에서 사운드, 이미지, 텍스트, 데이터의 다양한 요소를 자유자재로 섞어서 저장, 전달, 재생하는 디지털적 감성통합과 맥을 같이 한다.       1.   공이 뛴다.   점점 높이 뛴다.   점점 더 높이 뛴다.   빌딩 콩크리트를 뚫고 공은 온전하고 깨끗이 뛴다.   파란 하늘이 젖어 내리고 젖어 내리고 별이 된다.       2.   공이 뛰어간다.   집밖으로 뛰어간다.   퐁퐁퐁퐁 가로수를 심고 간다.   대낮 어린이 놀이터에서 심심하다.   햇빛이 폭포수를 쏟아 내고 퐁퐁퐁퐁 계단을 올라갔다.       3.   공이 자유롭다.   횡단보도에서 매끄럽게 섰다가 파란 불을 보고 지나간다.   하나하나 가로수에 황혼의 공을 놓는다.   잘 익은 공이 가슴마다 박힌다.   길이 향기롭다.   -----오남구「달맞이-데몬스트레이션」전문       디지털 시의 특징은 운동 에너지의 발산이다. 이 동적 이미지는 꿈틀거리면서 움직이면서 계속 변화하면서 살아있는 가상현실의 감각을 독자에게 전한다. 이 가상현실은 흥미로운 환상도 되고 꿈도 된다. 이 시에서 주목되는 것은 투명한 의식 속에서 탄생한 공과 운동 에너지의 결합이다. 그리고 자유로운 상상이 만들어주는 시적공간이다. 만약 이러한 직관적인 감성을 언어가 아닌 빛이나 소리 등 다른 것으로 표현했다면 백남준 식의 비디오 아트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독자들은 아무런 부담 없이 경쾌한 리듬과 함께 공이 뛰어가는 대로 따라가면 된다. 빌딩의 콘크리트를 뚫고 나온 공은 퐁퐁퐁퐁 가로수를 심고 가기도 하고, 햇빛이 폭포수를 쏟아 내는 계단을 퐁퐁퐁퐁 올라가기도 하고, 횡단보도에서 매끄럽게 섰다가 파란 불을 보고 지나가기도 하고, 가로수에 황혼의 공을 놓기도 한다. 이런 자유롭고 재미있는 상상의 전개는 시인의 의식이 어떤 관념에도 묶이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독자들은 무한한 자유를 얻는다. 이 시의 언어들은 탈-관념의 언어들이라는 점에서 디지털의 정수로 된 수리적 데이터와 크게 다르지 않다.       5. 나가는 글-디지털 시의 미래       이제까지 “21세기 현대시의 길 열기”라는 주제의 중심에 “디지털 시”를 세우는 작업을 하였다. 21세기의 의사소통 방식은 디지털 형식으로 바뀌었고, 디지털 문화를 향유하는 세대가 시대의 핵심동력(核心動力)이 되고 있다. 그래서 21세기 현대시의 방향을 디지털 시대의 문화감각에 맞추어 탐구하는 것은 시대적 당위성을 갖는다.   1930년대 이상(李箱)의 시는 디지털 시의 근원을 제시해주고 있다. 그리고 1950년대의 조향의 초현실주의 시와 문덕수의 탈-관념의 사물성의 시도 디지털 시의 존재성의 근거가 되기에 충분하다. 그것은 그 시들의 감각과 시에 대한 인식의 근본이 현대 컴퓨터의 디지털 특성과 깊은 연관성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글의 핵심부분 , , 은 순수한 독창적 것이 아니고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의 산물이다. 다시 말하면 이 글은 디지털 시와 연관된 재료들을 발굴하고 새로운 시각으로 조합하여 구성한 21세기 디지털 시의 설계도인 것이다.   과 은 미래지향의 시창작방법론이다. 예시 작품들은 디지털 시의 구체적인 방법론을 증명하는 근거가 된다. 따라서 작품의 완성도 보다는 실험적인 방법론에 더 비중을 두었다. 예술에서 완성이란 신기루(蜃氣樓) 같은 꿈이기 때문이다. “디지털 시”는 디지털의 특성을 시로 환원하여 21세기적인 새로운 시의 표현방법을 모색하는 시 운동이다. 현재 이 시운동은 출발선상(出發線上)에 서 있다. 그래서 이 작은 디지털 시 운동이 한국을 넘어서 세계화가 될 날을 기대해 보는 것은 지나친 자만(自慢)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이 시론은 21세기적인 감각과 의식이 생동하는 젊은 시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의미의 세계에서 하이퍼텍스트의 세계로   --- 디지털 시대의 시 쓰기           심 상 운(시인)   1.   동양시의 경전이라고 일컫는 고대 중국의 「시경(詩經)」에서 보여주는 인간정서의 자연스런 분출이나, 19세기 낭만주의 시대에 피어난 ‘감정의 자유로운 유로’(워즈워즈)는 이성보다 감성을 선호하는 한국현대시에서 아직도 그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그 근원은 ‘시는 인간 정서의 표현’이라는 명제 때문이다. 그러나 정서과잉, 상상력의 고갈 등 시적 긴장감이 풀어진 시들은 독자들에게 식상함을 안겨주었고 시가 외면당하는 현실을 불러왔다. 그래서 시인들은 언어, 리듬, 이미지, 스타일 등에서 시대적 감각에 맞는 시를 쓰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20세기의 모더니즘 시가 지적인 언어와 회화적인 이미지의 기법으로 정서과잉의 낭만주의에 식상한 지적 성향의 독자들에게 새로운 시의 영토로 환영을 받게 된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모더니즘은 현대시에 ‘정서의 절제’와 ‘주지적(主知的) 인식(認識)’이라는 시의 방법을 도입하고, 정서의 자연적 노출에서 벗어나 이를 사물화하여 표현하는 기법으로 ‘이미지의 세계’를 열어줌으로써 사물과 존재에 대한 인식의 심화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표현하는 방법을 알게 했다. 이는 시의 역사에서 매우 획기적인 사건이라고 말할 수 있다.       희망.   희망은 분명 있다.   네가 내일의 닫힌 箱子를   굳이 열지만 않는다면......       희망.   희망은 분명히 빛난다.   네가 너무 가까이 가서   그 그윽한 距離의 노을을 벗기지 않는다면....       희망.   그것은 너의 寶石으로 넉넉히 만들 수도 있다.   네가 네 안에 너무 가까이 있어   너의 맑은 눈을 오히려 가리우지만 않는다면.....   ------김현승 1〜3연       그러나 시에서 의미를 중시하는 지성의 과잉이 일으키는 병폐도 또한 새로운 시운동의 모태가 되었다. 지성의 과잉에 대응하는 반지성(反知性)의 시, 즉 다다이즘이나 초현실주의(surrealism)의 등장이 그것이다. 이 초현실의 시는 합리주의와 자연주의에 반대하여 비합리적 인식과 잠재의식(潛在意識)의 세계를 추구하고 언어표현의 과감한 혁신을 지향한다. 그리고 시적대상의 현실적인 공리성이나 합리적인 관계를 깨뜨려버리고 대상과 대상을 창조적인 새로운 관계로 맺어주는 시작방법(詩作方法)을 내세운다. 이때 시 속에서 현실적 실용성이나 합리성, 공리성을 다 없애버리고 순수한 시적대상으로 재탄생하는 대상을 오브제라고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인간의 정신을 기존의 고정관념으로부터 벗어나게 하고 인간정신의 해방을 이룰 수 있다고 믿는다. 따라서 이런 시작방법은 모더니즘에 대한 반동(反動)이거나 모더니즘의 전위(轉位)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초현실주의 시는 난해성을 수반하지만 시의 존재성을 예술적인 차원으로 높이는데 크게 기여하면서 시대를 뛰어넘는 생명력을 보여주고 있다.       모래밭에서   受話器   여인의 허벅지   낙지 까아만 그림자       비둘기와 소녀들의   그 위에   손을 흔드는 파란 기폭들.   ---조향「바다의 층계(層階)」부분       나의 영혼은 어느 무당집 촛불로 불타고 있다. 그해 겨울 동자상을 안고 오는 길은 뼈가 갈라지는 어둠이었다. 무당이 주는 병든 본능의 복숭아를 깨물며 내가 사랑했던 개들이 나를 자꾸 물어뜯어도 어디가 아픈지도 무서운지도 몰랐다. 그것은 어둠이었다. 잠들 수 없는 어둠, 소리칠 수도 없는 어둠, 껴안을 수도 없는 어둠이 토끼의 눈물처럼 내 손바닥에 쌓이고 그런 날 무당집 뒤뜰의 구렁이는 밤마다 나를 껴안았다. 그 때마다 묻어났던 벌개진 어둠.   ----------양준호「나의 영혼은」전문       모더니즘은 이런 도전 속에서 초현실주의(surrealism)를 포용하고 새로운 변신을 꾀하고 있다. 그것이 반지성을 용인하고 지성과 반지성이 서로 어울리게 하는 20세기 말의 포스트모더니즘 현상이다. 이런 시작방법과 인식의 변화는 21세기에 들어와서 새로운 시운동의 태동을 보이고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한국 현대시에서 디지털 시대의 감각을 시에 도입하고자하는 ‘디지털 시’ 운동이다. 이렇게 모더니즘 시의 큰 테두리 안에서 새롭고 다양한 방법의 모색과 분출이 가능한 것은 모더니즘의 근본정신 속에는 인습적인 것이나 상식적인 것에 얽매이지 않고, 창조의 영역을 확대하고자 하는 변혁(變革)의 정신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2.   21세기는 누가 뭐라고 하여도 디지털의 시대다. 컴퓨터의 발달과 개인 소유에 의해서 확산되는 커뮤니케이션의 변화는 ‘사이버 세계’라는 또 하나의 생활공간을 열어 놓고 있다. 이 사이버공간은 개인 간의 의사소통, 여론의 수집과 확산, 사무처리, 상업적 거래, 오락 등으로 말미암아 실생활의 공간과 개념상 구분이 되지 않는 공간으로 전위되었다. 따라서 사이버의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허상만이 아닌 실제성을 갖는다. 이런 시대의 변화 속에서 TV와 컴퓨터의 영상에 젖어 든 젊은 세대들은 관념적이고 설득적인 현대시 속에 쉽게 들어오지 않는다. 그들은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을 현실과 같은 차원에서 인식하면서, 시를 ‘의미의 예술’에서 ‘영상(이미지)의 예술’로 전환하는데 공감하고 있다. 이때의 영상은 시에서 언어영상을 의미한다. 그것은 디지털의 특성이 만들어 내는 영상과 쉽게 합치될 수 있다. 이 영상(보여주기)은 근대 이성의 ‘문자권’, 을 넘어서는 미디어가 주인인 IT, 디지털 시대의 중심 매체다. 현대를 ‘영상권’의 이미지 시대, 보여주는 영상 시대라고 말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면 ‘디지털의 특성+시= 디지털 시’는 현대시에 어떤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는가? 이를 한 마디로 정의하는 것은 어렵지만, 핵심을 요약하면 디지털의 공학적 세계에서 구현되는 현상을 언어의 예술인 시의 세계에서도 구현해보자는 것이다. 그것은 다시 말하면, 디지털의 특성을 시로 ‘옮겨 온다’라고도 말할 수 있다. 시로 옮겨오는 디지털의 특성에서 중요한 것은 ‘디지털 적인 언어와 상상력’이다.   ‘디지털 적인 언어’라는 것은 언어를 분리와 결합이 자유로운 컴퓨터의 데이터(data)같이 취급하는 것이다. 언어를 기호의 한 형태로 인식하고 음악의 ‘소리’나 회화의 ‘선과 색채’와 같이 의미나 실체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언어에는 자성(自性)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을 탈-관념(무의미)의 언어라고도 한다. 이 탈-관념의 언어는 디지털의 감각인 영상성, 동시성, 정밀성(선명한 이미지) 등을 구현하는 언어가 된다.   이런 디지털 시의 언어는 20세기 언어학자 소쉬르 (erdinand de Saussure 스위스 제네바 857. 11. 26 ~1913. 2. 22)의「일반 언어학 강의 Cours de linguistique generale」(1916)에 근거를 두고 있다. 소쉬르는 언어라는 기호가 청각영상과 개념, 또는 '의미하는 것(시니피앙 記票)'과 '의미되는 것(시니피에 記意)'의 결합이라고 생각했으며, 이 결합은 자의적(恣意的)인 것으로서 기호는 본질이 아닌 형식이라고 규정했다. 따라서 언어는 실제적인 의미의 구속에서 벗어나서 그 자체가 스스로 독립성을 갖는다는 것이다. ‘디지털 시’의 상상은 이런 언어의 이미지로 표현된다. 이미지는 가상현실 속에 존재하는 허상(虛像)이지만 실재(실체)와 동일하게 취급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스통 바슐라르 (Gaston Bachelard 프랑스 철학자 1884-1962)는 인간의 삶 속에 들어 있는 이미지의 실재성을 말하고 있다. 그의「순간의 시학」과「불의 시학」을 강의하는 김융희(서울예술대 교수)는 강의(2006,6,26)에서 가스통 바슐라르의 이론을 “인간은 이미지를 창조하고 이미지와 더불어 살아간다. 인간이 살아가고 있는 세계는 하나의 심리적 현실로서의 이미지의 세계이기도 하다. 인간은 어떻게 이미지를 생산해내는 것이며, 이미지로 사유한다는 것은 우리의 삶에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오랫동안 철학이 이미지의 세계를 하나의 비실재로 바라보고 개념적 사유를 통해 이미지의 환각에서 벗어나고자 했다면 바슐라르는 이미지의 세계를 또 하나의 현실로 바라보고 이미지를 생산해내는 우리 영혼의 능력에 주목한다. 이미지는 인간의 영혼이 세계와 교감하는 순간에 탄생하며 아름다움 역시 그 순간에 빛을 발한다. 시가 포착하는 지점 역시 그 순간이며 그 순간을 향유하는 것은 행복을 실현하는 일이기도 하다.”라고 ‘강의 개요’에서 요약․정리하고 있다. 가스통 바슐라르의 시학에서 중요한 것은 이미지의 존재를 비실재의 단순한 환상으로 보지 않고, 이미지의 세계를 또 하나의 세계로 인식하고 그것을 ‘인간의 심리적인 현실’로 인정한 것이다.   문덕수(시인, 예술원 회원)도「내면세계의 미학」(1966년 ‘사상계’ 157호)에서, “이미지는 어떤 객관적 대상을 가질 필요가 없고, 또 반드시 개념으로 요약할 수 있는 주제를 가질 필요도 없다고 본다. 엄격한 의미에서 ‘순수 이미지’란 객관적 대상도 없고 개념으로 바꾸어 놓을 수 없는 것을 의미한다. 이미지는 이미지 그것만으로 충분하고, 그 밖에 이미지가 지시하는 객관적 대상을 찾는다든지, 이미지가 내포하는 철학적·인생론적 관념을 찾으려 한다는 것은 오히려 이미지를 불순케 하는 과욕이라고 생각한다. 이미지는 이미지 그 자체가 하나의 실재이다”라고 순수 이미지의 실재성을 말하고 있다.       수평으로 네 개의 막대기가 날아간다.   똑같은 속도로 나란히 열을 지어   때로는 장대처럼 일직一直으로 이어져,   그 중의 하나는 달을 두 쪽으로 쪼개고   그 중 하나는 지구를 툭툭 치고   그 중 하나는 꽃밭을 후려갈기고   그 중 하나는 사람을 쳐 죽인다.   흩어졌던 막대기들이 다시 날아와   수평으로 나란히 열을 짓다가   제각기 머리를 돌린다.   하나는 벽을 후비면서 돌고   하나는 유리창을 뚫고 드나들며   하나는 나비를 뒤좇아 내를 건너고   하나는 머뭇거리다가 그대로 떨어져 죽는다.   뒤얽히던 세 개도 차례로 죽는다.   -문덕수 「네 개의 막대기」전문       디지털 적인 상상력은 ‘가상세계(假想世界)’라는 무대를 설치하고 그 속에서 자유로운 상상을 펼쳐 보이는 것이다. 그 가상세계는 ‘허구적(虛構的)’이란 면에서는 예술적인 전통을 계승한다. 그러나 디지털적인 상상은 허구적이라는 범위를 벗어나서 무한대로 확장된다는 데서 기존의 허구와 차이가 생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을 제정하고 홍보하는 조선일보(2007,4,9)에 기고한 이인화 교수 (이화여대 디지털미디어학부)의 글,「꿈을 현실로… 이것이 뉴 웨이브 문학!」은 주목의 대상이 된다. 그는 그 글에서 “정보화 혁명은 문학을 근본적으로 새로운 좌표 위에 위치시켰다. 이제까지 문학 작품은 현실을 재현한 가상, 즉 상상의 결과물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 디지털 미디어 기술에 의해 3차원 컴퓨터 그래픽이 만드는 인터랙티브(interactive)(서로 영향을 미치는, 상호작용을 하는, : 대화식의) 환경으로서의 가상세계가 나타나면서 가상은 곧 현실이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가상은 사람들이 마우스로 클릭해주기를 기다리는 대기상태의 현실, 잠재능력을 가진 현실이 된 것이다.” 라고 21세기 디지털의 세계가 펼치는 가상세계의 특성을 말하고 있다. 그는 디지털 미디어 기술에 의해서 만들어진 가상세계는 대기상태의 현실, 잠재능력을 가진 현실이라고 하면서 가상과 현실의 벽을 허물어 버린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엄밀한 의미에서 오늘날에는 판타지문학도, SF문학도 존재하지 않는다. ‘반지의 제왕’ ‘나니아 연대기’ ‘어스시의 마법사’ ‘듄’ ‘유배행성’ ‘로캐넌의 세계’는 새로운 현실을 그리고 있는 현대문학일 뿐이다. 그 반대편에 대학에서 가르치는 ‘현대문학’, 즉 1990년대 이전까지의 현실 개념에 따라 문학을 이해하는 근대문학이 있다.”라고 현대문학과 근대문학의 경계를 나누고 있다. 그의 이론은 극단적이고 선언적인 성격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논리적인 검증을 철저히 거쳐야 하겠지만, 상상의 무한한 확대라는 면에서 21세기 문학의 핵심을 꿰뚫고 있다고 여겨진다.       3.   인터넷 시대의 새로운 문학 형태로 등장한 하이퍼텍스트 문학 (Hypertext literature) 은 디지털 적인 순수한 상상력의 확산과 독자참여의 문학공간이라는 면에서 한계를 예측할 수 없는 가능성의 세계를 열어주고 있다.   1965년 하이퍼텍스트라는 용어를 처음 만든 테드 넬슨(Ted Nelson)은 “하이퍼텍스트는 종이 위에는 손쉽게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한 방법으로 상호 연결된 글이나 그림 자료들의 조직체”라고 했다. 따라서 이 조직체들은 컴퓨터 속에서 연결(link)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서로 결속된다. 그런데 연결되는 텍스트들은 저자가 준비한 것이지만 선택은 독자의 임의로 이루어지게 된다. 이 독자의 선택은 텍스트를 고정적 상태가 아닌 유동적인 상태로 만드는 원천이 된다. 텍스트의 유동성(流動性)은 텍스트의 자율성과 내적 통일성을 뿌리에서부터 흔들어 놓기도 한다. 그러나 다양하고 풍부한 상상의 세계를 열어주기 때문에 예술의 공간에서는 고정된 틀보다 가치를 지닌다.   하이퍼텍스트 문학은 기존의 인과적, 순차적, 논리적, 선형적 전개에서 탈피하여 비인과적, 비순차적, 비논리적 비선형적인 세계를 지향하는 하이퍼링크가 만들어내는 불연속적인 상상의 가지치기 또는 이미지의 집합적 결합이 형성하는 문학이다. 따라서 인간의 창의력과 상상력을 무한히 확대해 나갈 수 있는 유동성의 문학형태가 된다. 하이퍼링크의 불연속적인 상상의 가지치기는 인터넷에서 리좀(Rhizome)이라는 개념으로 설명되기도 한다. 리좀은 원래 수평으로 자라는 땅속줄기 즉 ‘뿌리줄기’를 가리키는 생물학적인 용어인데, 수평형(水平形)이라는 점에서 J. 데리다, G. 들뢰즈 등의 포스트구조주의에서 중심의 집중에 반대되는 중심의 다양화 또는 탈-중심 체계를 의미하는 용어로도 쓰인다. 현대 사회학에서는 이런 형태의 사회를 구성상으로는 씨줄/날줄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망상사회’(網狀社會 grid society), 주도적 노선이 아닌 임의적 진전경로로 특징되는 ‘리좀 사회’(rhizome society)라고 한다. 이런 네트워크 체계를 현대시의 무한상상에 접합하여 응용한 것이 ‘하이퍼텍스트 시’다.   하이퍼텍스트 시는 컴퓨터에서 구현되는 전자 하이퍼텍스트 시와 종이(책) 위에서 구현되는 종이 하이퍼텍스트 시로 구분된다. 전자 하이퍼텍스트 시는 입력과 동시에 hyper text markup language' 즉 HTML이라는 컴퓨터 언어로 변환되는 시다. HTML로 변환된 시에는 하이퍼링크(연결)의 기능이 들어있으며, 텍스트는 화면의 뒤에 숨어 있다가 독자의 선택에 의해서 나타난다. 그 시에는 그래픽과 음악도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종이에 문자로 표시되는 ‘종이 하이퍼텍스트 시’에는 컴퓨터 속에서 실현되는 하이퍼링크와 같은 기능이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종이에 표시되는 시는 하이퍼텍스트 시로서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정과리(문학평론가)는「컴퓨터와 문학- 문학의 새로운 이해」(문학과 지성사, 1996년)에서 “문학의 ‘文’ 그리고 literature의 'letter'는 문학이 ‘언어’ (더 좁혀, 문자)를 중심매체(中心媒體)로 삼는다는 뜻을 포함하고도 있다. 하이퍼미디어에서는 그런 중심매질(中心媒質)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이퍼텍스트 또한 그 자체로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하이퍼미디어의 장 속에 종속하여 있어서, 하이퍼텍스트는 끊임없이 불안의 상태에 놓여 있다. 그곳의 언어는 컴퓨터 부호로의 변신을 독촉 받고 있는 언어다. 중심매체가 붕괴된 문화적 장르에 대하여, 단순히 언어가 그 안에 포함되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문학이라고 이름할 수 있을까? 차라리 새로운 장르의 탄생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라고 하이퍼텍스트 문학에 대하여 부정적인 견해를 밝히고 있다. 그의 이론은 문학에서 중심매질이 되는 언어(문자)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한 점에서는 타당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컴퓨터에 예속된 하이퍼텍스트 문학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상상력의 부족을 드러내고 있다. 그는 언어구조 속에서 구현될 수 있는 하이퍼텍스트를 생각해 내지 못한 것이다.   숨어있는 부분이 없는, 텍스트 전제가 노출된 종이 하이퍼텍스트의 시에서는 링크의 역할을 텍스트 속에 들어있는 의식과 무의식의 흐름이나, 기표의 건너뛰기, 장면의 변화, 소리, 유사한 단어, 구문 등의 반복 그리고 자유연상, 현실과 환상의 교차, 시간과 시간, 공간과 공간의 넘나듦 등의 다양한 상상과 이미지의 표현방법으로 구현하게 된다. 이런 기능의 확대는 의미(관념)에서 해방된 언어의 자유스러운 쓰임과 가상공간의 무한한 허용이라는 상상의 확산에 의해서 시적인 언어공간으로 구현된다. 따라서 하이퍼텍스트 시는 현실을 바탕으로 하는 허구, 즉 기존의 시적 공간을 허물어버림으로써 작품의 주제나 목적성을 지워버린다. 다만 작품의 내면에 숨어서 흐르는 시인의 의식이 시적 생명력의 바탕이 된다.       그의 방 우측 벽에 걸려 있는 첫 번째 그림- 검은 철제 의자 위에 사람 대신 활활 불타는 붉은 꽃 한 다발이 앉아있고, 그 밑엔 “죽은 뱀의 영혼은 발가숭이로 꿈틀거리며 꽃밭의 환한 햇빛 속으로 들어갔을까?”라는 글이 붙어있다. 나는 그 글 밑에 “영하 10도의 겨울 밤 시멘트 도로 바닥에 귤 장수가 떨어뜨리고 간 노란 색종이 같은 귤의 꿈을 보았느냐? 고 쓴다. 그는 그 밑에 “시인들은 밤마다 죽은 언어가 새로 태어나는 나라로 여행을 떠난다고?”라고 또 쓴다.       세 번째, 발가숭이 노인들이 노란 해바라기 밭으로 뛰어가는 그림을 지나 다섯 번째, 식탁 옆 젊은 여자의 풍만한 궁둥이 그림 곁으로 가는 순간, 벽에 걸려 있는 네 번째 그림- 뒤척이는 태평양의 퍼런 몸뚱이에서 물이 흘러내린다. 그는 그 물을 수조水曹 속 물고기들에게 매일 부어준다고 한다.       그때 그의 두 번째 그림 속에서 나온 파랑 공, 초록 공, 노랑 공, 빨강 공, 하양 공이 거실을 이리저리 굴러다니다 점점 부풀어 식탁이 되고 놀이터가 되고, 침대가 되고, 의자가 되고, 남자 여자 어른 아이들과 들판을 통통통통 신나게 튀어가고, 마을 언덕에 봄빛이 눈부신 한낮 하늘을 나는 마차가 되어 지붕 위를 둥둥 떠간다. 나는 찬란한 햇빛 속에서 공이 터지는 환상에 전율한다.   -심상운 「미완성의 시-그림 감상하기」전문       현대의 모더니즘 시에서 상상의 결과물인 심상(心象, Image)은 대상을 표현하기 위한 도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미지는 어떤 형이상학적 관념을 사물로 표현하기도 하고, 대상과 주체 사이에서 발생하는 인식의 감각적 매개로 쓰이기도 한다. 이때 이미지는 시인의 목적의식과 연관되어서 의도성을 갖게 되고 비유적 상징적 의미를 갖게 된다. 그러나 공상(Fancy)은 콜리지(Samuel Taylor Coleridge 1772.~ 1834 영국의 서정시인·비평가·철학자.)의 말처럼 “시간과 장소의 서열에서 해방”되어서 자유롭게 펼쳐진다. 어떤 목적의식이 없이 공상의 가지치기(연상)를 보여 주는 것으로 만족한다. 공상의 가지치기는 어떤 고정된 의미를 갖지 않음으로써 독자들에게 다양한 가상공간을 제공한다. 따라서 21세기의 새로운 시로 등장한 하이퍼텍스트 시는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상상(imagination)보다는 비합리적이고 비논리적인 공상(Fancy)에 더 기울게 된다. 상상이 합리적이고 논리적이란 것은 그것이 어떤 결실을 맺기 위하여 뚜렷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되고 그런 목적성 때문에 상상하는 과정에서 공상이나 연상 작용만이 아닌 합리적인 지적추리(知的推理)도 필요하게 되기 때문이다. 탈-관념시나 디지털 시나 하이퍼텍스트 시의 창작 과정에서 시인을 괴롭히고 고민에 빠뜨리는 것은 자신도 모르게 ‘시의 무목적성’에서 이탈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시인의 상상력이 관념이나 지적 사유 쪽으로 끌려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상은 목적의식의 좁은 공간에서 벗어난 무목적의 넓은 공간 속으로 시인과 독자를 안내한다.       공이 뛴다.   점점 높이 뛴다.   점점 더 높이 뛴다.   빌딩 콩크리트를 뚫고 공은 온전하고 깨끗이 뛴다.   파란 하늘이 젖어 내리고 젖어 내리고 별이 된다.       2.   공이 뛰어간다.   집밖으로 뛰어간다.   퐁퐁퐁퐁 가로수를 심고 간다.   대낮 어린이 놀이터에서 심심하다.   햇빛이 폭포수를 쏟아 내고 퐁퐁퐁퐁 계단을 올라갔다.       3.   공이 자유롭다.   횡단보도에서 매끄럽게 섰다가 파란 불을 보고 지나간다.   하나하나 가로수에 황혼의 공을 놓는다.   잘 익은 공이 가슴마다 박힌다.   길이 향기롭다.   -----오남구「달맞이-데몬스트레이션」전문       공상이 상상보다 현대적인 감각을 더 넓게 수용할 수 있는 것은 시의 무목적성 외에 공상이 가지고 있는 ‘유희성’과 ‘경쾌성’과 ‘변화성’ 때문이다. 현대인들은 인생의 엄숙성에만 매력을 느끼지 않는다. 그들은 교훈적인 엄숙성보다 ‘유희성’과 ‘경쾌성’과 ‘변화성’에서 미적 쾌감과 매력을 더 느낀다. 그러나 삶의 현실을 외면할 때, 시는 관념이나 유희 쪽으로 끌려들어가게 되거나 박제(剝製) 같은 이미지의 그림만 남을 수도 있다. 그래서 삶의 현실과 하이퍼텍스트의 상상력이 어떻게 조화로운 화합을 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유로운 상상과 현실의 조화 속에 시의 싱싱한 감각이 생동하기 때문이다.   이 하이퍼텍스트 시도 ‘디지털 시’에 포함됨은 물론이다. 필자의 현대시론「디지털 시의 이해」(2006년 12월 ‘시문학’에 발표)에서는 “디지털 시에서의 언어단위(단어, 문장)의 집합적 결합과 컴퓨터프로그래밍의 모듈(Module)은 서로 유사점을 가지고 있다. 그 유사점의 첫째는 그들이 모두 독립된 단위로 되어 있다는 것. 둘째는 독자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하나의 시스템 속에서 상호 보완적 생산기능(현대시에서는 이미지, 감각, 정서의 조화)을 한다는 것. 셋째는 교환 가능한 독립된 기능을 가지고 있어서 분리될 수도 있고 작가(프로그래머)의 의도대로 임의로 변경할 수도 있다는 것. 넷째는 모듈화 된 시의 구문들은 작가의 의도성에서 이탈하여 그 스스로 독립된 생명력을 가지고 독자에게 다가 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때 모듈화 된 언어단위의 독자적인 방향성(상상작용, 영향력)은 작가도 예측하기 어렵게 된다. 그것은 모듈의 특성인 객체지향성 때문이다. 그래서 언어의 모듈화라는 기능성(機能性)을 부가하게 된 현대시의 디지털적 구성(집합적 결합)은 시의 공간을 무한히 넓히는 효과를 발휘하게 된다. 따라서 이 모듈의 객체지향성은 현대시의 구조를 새롭게 하고 현대시의 성격과 형태를 변화시키는 계기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모듈 이론은 하이퍼텍스트 시의 방법론과 부합되는 면이 많다. 중요한 것은 기계적인 연결 관계보다 상상의 다양함과 풍부함이다. 그리고 내면 의식의 흐름이다. 이 의식의 흐름을 ‘시의 맥락’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시의 맥락은 하이퍼텍스트 시의 구성에서 중심역할을 한다.       4.   21세기 디지털 시대에 탈-관념의 영상언어 즉 보여주기(Showing)의 세계를 제시한 ‘디지털 시 운동’은 모더니즘의 구조(frame)속에 들어있으며 시의 창조적 표현방법에 핵심을 두고 있는 ‘시의 새로운 언어 운동’이다. 이 디지털 시 운동은 사물성 이미지의 창조는 물론 상상의 확대, 자유연상(공상), 영상성과 공연성을 통해서 ‘공연 시’나 ‘하이퍼텍스트 시’의 문을 열어놓음으로써 현대시의 공간 확장방법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따라서 디지털 시의 중심이 되는 ‘탈-관념’, ‘기호의 세계’, 그리고 ‘사물성의 세계’, ‘가상현실의 공간’은 시의 위기가 화두가 되는 21세기의 문학 현실 속에 새로운 시의 공간을 개척하는 강한 에너지가 되고 있다.   그러나 낭만주의적인 정서 위주의 시나 모든 시는 의미의 표현이라는 고정관념에 젖어 있는 시인들은 사이버 공간과 가상세계, 언어의 기호성에 대한 이해 부족과 거부감을 안고 있다. 그들 중에는 ‘디지털 시’를 컴퓨터가 만들어내는 기계의 시로 착각하고 있는 시인들도 있다. 그런 시인들에게 디지털 시의 넓은 공간과 새로운 감각을 이해시키는 일은 어쩌면 에스키모에게 냉장고를 파는 일보다 더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도 21세기의 시간과 공간 속에서 호흡하는 존재들이기 때문에 시간이 경과하면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인터넷의 세계는 현대인의 정신을 정주(定住)에서 이동(移動)으로, 삶의 공간을 지역공동체에서 네트워크 공동체로 변화시키고 있다. 탈-중심은 다양한 가치의 세계 속에서 어떠한 대상과도 서로 융합하고 소통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이런 현상은 언어예술의 세계에도 파도처럼 밀려오고 있다. 따라서 현대 시인들은 과거시제의 ‘관념의 집’에서 나와 미지의 세계를 향해 유목민처럼 이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현시점에서 볼 때, 언어를 표현 수단으로 삼는 문학은 미지의 텍스트의 세계로 떠나가는 예술적 여정에서 다른 예술보다 뒤처져 있다. 언어의 의미성이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류문화의 집적(集積)인 언어의 의미성이 새로운 텍스트의 원천이 되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시와 기호(記號)       심 상 운       1.   사물을 대리하는 기호의 생리학적 메커니즘을 처음 제창한 사람은 파블로프(1849-1936, 러시아의 생리학자)이다. 그는 개에게 먹을 것을 줄 때마다 벨 소리를 들려주면 개에게는 벨 소리가 먹을 것 또는 식사의 기호가 된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것을 행동과학(behavioral science)에서 ’조건반사‘라고 한다. 그는 이 조건반사를 1차 신호계라고 하고, 자연언어와 그 내용에 따라 일어나는 여러 가지 반응을 제2차 신호계라고 명명했다. 이 기호는 그 형식적 특징에 따라 아이콘(icon:유상기호, 어떤 대상의 畵像 따위), 인덱스(index:지표기호, 화살표 등으로 무언가를 지시하는 경우), 심벌(symbol:상징기호, 약속된 기호로서 그 대표적인 것이 자연언어임)의 3종으로 분류된다.   20세기 대표적인 언어학자 소쉬르(1857-1913, 스위스, )는 언어라는 기호가 청각영상과 개념, 또는 '의미하는 것(시니피앙 記票)'과 '의미되는 것(시니피에 記意)'의 결합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 결합은 자의적(恣意的)인 것으로서 기호는 본질이 아닌 형식이라고 규정했다. 예컨대, ‘남을 가르치는 사람’을 한국인들은 선생(교사)이라고 하고 미국인들은 티처(teacher)라고 하고 중국인들은 라우스(老師)라고 하는 것이 그 근거다. 따라서 언어를 기호의 구성체계로서 실질적인 의미부분과 자의적인 기호부분으로 분리하는 것은 상식이 되었다.       2.   문덕수(시인, 예술원회원)는 그의 시집 『꽃먼지 속의 비둘기』에 게재한 시론(대담형식의 글)「한국시의 동서남북 (Ⅱ)」에서 한국 현대시의 실험시(탈관념 시. 디지털 시, 기호시)의 근거를 소쉬르의 ‘기호학’에서 찾아내고 있다. 그는, “소쉬르의 기호학은 사물의 본질을 사물자체에서 찾는 실체론(實體論)을 관계론(關係論)으로 전환시켰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혁명입니다. 기호학이나 기호론이 시쓰기에 미친 영향을 몇 가지로 요약해 들어보겠습니다. 이것은 시의 실험적 모험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기초론이 될 것입니다.   첫째, 시의 대상이나 주체에 집착했던 태도를 떼어내어, 대상과 주체 사이의 ‘관계’를 중시하게 됩니다. ‘관계의 장’으로의 전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관계’란 무엇입니까. 대상과 주체와의 사이에 있는 매개적 존재를 의미합니다. 즉 기호입니다. 한 송이의 국화꽃과 소쩍새와의 관계(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보다―미당), 다시 말하면 사물의 생성에 있어서 사물 상호간의 ‘인과’와 같은 것이 아니라, 대상과 주체 사이에 있는 기호나 언어를 말하는 것입니다. 소쉬르는 의미작용(signification)이라는 관점에서 언어학을 구성했는데, 그 의미작용이 다름 아닌 기호(sign)의 작용이 아닙니까. 소쉬르가 말하는 의미하는 것(시니피앙)과 의미되어지는 것(시니피에)이라는 두 가지의 관계에 의해서 된 것이 바로 언어기호입니다. 소쉬르의 언어학은 관계의 시스템에서 구성된 것입니다. 관계의 장으로의 전환은 사물의 실체나 사물을 인식하는 주체의 존재보다는 ‘관계의 존재’에 대한 중요성을 깨닫게 된 것이지요. 실체보다는 그 관계가 존재한다는 생각이 일반화되어 구조주의 언어학이 발생했습니다. 실체에 대한 인식이 실체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의 시점(視點)― 시점도 관계 형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의 변화에 따라 사물의 실체도 바뀌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계론은 대상과 주체 사이의 ‘매개적 존재’(기호)를 강조하게 됩니다. 시론에서 사물이나 주체보다는 그 사이의 매재(媒材) 즉 기호를 중시하게 된 것은, 시에 있어서 언어실험이나 실험적 모험을 촉진하고, 그러한 혁명적 작업의 정당성을 설명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한 것입니다.   둘째 언어기호나 기호는 실체를 가지지 않습니다. 앞에서 소쉬르의 시니피앙과 시니피에의 관계를 언급했습니다만, 언어기호의 이러한 관계도 형식에 지나지 않으며, 언어기호 자체도 형식(形式)에 지나지 않습니다. 시의 방법론을 중시하는 시의 형식주의 이론의 근거도 바로 관계론에 의해서 성립하는 것입니다. 이미 상식화된 예입니다만, 산의 소나무를 보고 “저것이 소나무다”라고 언표해도, 산에 있는 소나무 전체를 추상적으로 지시하고, 그 의미가 어느 한 그루의 소나무에 부착되어 있지 않습니다. ‘소나무’라는 기호는 소나무A, 소나무B, 소나무C를 다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것은 언어학의 기본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기호가 실체를 가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이러한 사실은 언어가 인간의 경험을 버철화(virtual化)한다는 사실의 근거입니다. “라고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3.   소쉬르의 ‘기호학’에 따르면, 실체를 가지지 않는 매재(媒材)로서의 언어기호는 현대시에서 고정된 의미가 없는 음악의 ‘소리’ 나, 회화의 ‘물감’ 같이 사용됨으로써 사실과 다른(관계없는) ‘언어의 독자적인 공간’을 열어준다. 예를 들면, “나는 태평양을 구겨서 주머니에 넣었다./주머니에서 붉은 물이 줄줄 흘러내린다./방금 수평선을 넘어간 태양이 흘린 피다.” 라고 했을 때, 이 텍스트는 어떤 의미(관념)나 사물(실제)로부터 구속을 받지 않는 ‘독자적인 영역’을 확보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 영역은 회화에서 추상화(抽象畵)가 차지하고 있는 순수한 상상에 의한 선과 색채의 영역과 다르지 않다. 이 텍스트에서 ‘태평양’이란 기호에는 실제 태평양의 이미지가 들어 있지만, 텍스트 속의 태평양은 하나의 기표(시니피앙)일 뿐, 실제의 태평양과는 전혀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예를 들면 어느 상점의 간판이 ‘백두산 문방구’라고 했을 때, 문방구는 실제와 관련이 있지만 문방구를 수식하는 ‘백두산’은 실제의 백두산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기호일 뿐이다. 실제와 관계가 없는 기호라는 것은 언어가 의미와 실체의 속박과 간섭에서 벗어나서 자유로운 상태가 된다는 것을 뜻한다. 이 기호는 고정된 의미가 없어서 분리와 결합이 자유로운 디지털의 데이터(data)와도 같다. 그래서 이 기호가 만들어 내는 이미지를 제2의 실재(實在)라고 명명할 수도 있다. 미당(未堂)의 대표시「동천(冬天)」을 예로 들어 보자.       내 마음 속 우리 님의 고운 눈썹을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   동지 섣달 나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미당「동천冬天」전문       이 시의 눈썹, 새, 하늘 등의 언어들도 실체와 관계없는 기호화된 언어다. 따라서 시인의 상상(심리적 이미지, 형이상학적 판타지)은 상상 자체일 뿐, 실제의 사실과는 전혀 상관을 맺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이 시의 가치는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의 영상세계 그 자체를 맛보고 즐기는데서 더 찾아질 수 있다. 이 시는 그런 면에서 제2의 현실이라고 하는 디지털의 사이버 세계와도 맥이 닿는다. 따라서 이 시에서 어떤 의미를 발굴해 내려는 평론가들의 시도는 시를 관념화(고정화)시키는 불순한 작업이 될 뿐이다. 오남구의「데몬스트레이션」을 읽어보자.       공이 뛰어간다.   집밖으로 뛰어간다.   퐁퐁퐁퐁 가로수를 심고 간다.   대낮 어린이 놀이터에서 심심하다.   햇빛이 폭포수를 쏟아 내고 퐁퐁퐁퐁 계단을 올라갔다.   - 오남구「데몬스트레이션」2연       실체의 세계(물, 사물)와 별도로 독립되어서 언어의 기호만으로 존재하게 되는 현대시의 현상(現象)은 초현실주의에서 주장하는 ‘오브제론’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그러나 컴퓨터가 열어 놓은 사이버 세계라는 제2의 생활공간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가상(virtual)의 세계는 현실과 경계선이 모호한 세계가 되었고, 그 범위가 무한히 넓어지기 때문에 ‘기호시’는 초현실주의의 ‘오브제론’만으로는 감당이 되지 않는다. 이러한 경향의 시는 시인의 ‘의식과 무의식을 넘나드는 심리적인 이미지’나 ‘언어놀이(유희)’로 확대되기도 한다.「데몬스트레이션」에서 공과 햇빛이 만들어내는 동영상 이미지는 만화영화(漫畵映畵)의 한 장면 같다. 공과 햇빛에는 어떤 의미도 들어있지 않다. 그들은 다만 시 속에서 캐릭터(character)의 역할을 하면서 상상의 재미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현실의 소멸과 새로운 현실의 탄생이라는 순수한 언어의 기호가 창조해내는 가상공간의 세계 속으로 독자들을 유인한다.       겨울 저녁, 물고기는 투명한 유리 공간 속에 혼자 떠 있다. 느릿느릿 지느러미를 움직이며. 그는 원주에서 기차를 타고 k읍으로 간다고 했다. 흰 눈이 검은 돌멩이 위로 나비처럼 날고 있다. 유리 밖으로 뛰쳐나갈 듯 위로 솟아오르던 물고기가 밑바닥으로 가라앉는다. 그는 공중에서 부서져 내리는 하얀 소리들을 촬영하고 있다고 한다. 나는 함박눈이 내리는 그의 설경 속으로 들어간다. 그는 보이지 않고 그의 걸걸한 목소리만 떠돌고 있다. 유월 아침에 나는 겨울 물고기 그림을 지우고 초여름 숲 속의 새를 넣었다. 그때 설경 속으로 떠나간 그가 나온다. 오전 10시 30분, 나는 푸른 공기 속을 달리는 버스 속에 앉아있다.   -------심상운 「물고 기 그림」전문       이 시에 대한 정신재(문학평론가)의 견해에는(2007년 4월호 월평「실재 모색하기」) ‘현대시의 영역 확대’라는 공간이 들어 있어서 주목된다. 다음은 그 글의 인용문이다.   “디지털 사회에서 시인은 시가 가지는 쾌락적 기능을 활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시인이 20세기 상황에서와 같이 스타로 군림하던 시대는 지났다. 그래서 시인들은 21세기 사람들의 입맛을 찾아 다양한 모색을 시도한다. 소비경향의 글쓰기를 시도하고, 산문의 몸짓을 선보이며, 의식과 무의식을 빠른 동작으로 오가기도 한다. 그리하여 시에서도 놀이가 전개된다. 이들 놀이는 의미를 찾고, 영혼을 고양시키고 실재를 모색하는 흔적 찾기의 놀이가 될 것이다.   심상운은 사물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을 이용하여 존재와 상황 간의 가로지르기를 하고 있다. ‘그’는 물고기를 촬영하고 있고, 물고기처럼 자연스런 흐름을 타고 있다. ‘나’는 그가 촬영한 그림에 새를 넣고 “설경 속으로 떠나간 그”를 회상한다. 나는 “오전 10시 30분” 푸른 공기 속을 달리는 버스 속에 앉아 있다“. 여기서 물고기는 극화된 화자이고,‘그’는 극화되지 않은 화자이며, ‘나’는 시인의 생각을 대리하는 제2의 함축적 작가가 된다. 이들에게 공통적으로 흐르는 이미지는 물고기이며, 새이다. 물고기는 물속에서 새는 공중에서 자유로이 활동하는 존재이다. ”설경 속“이라는 공간을 ‘그’는 기차여행을 하고,‘나’는 버스여행을 한다. 심상운은 극중 공간과 회상 공간과 현실 공간을 설정하여 놓고 놀이를 시도한다. 이런 놀이는 대비된 공간을 자유롭게 가로지르기 하는 방법으로 진행된다. 이는 자유 연상법을 슬로비디오로 형상화하여 놓은 것이기도 하다. 디지털 시대에서 오락 게임은 그야말로 흥미진진하여 사람들을 중독에 빠뜨린다. 이러한 상황에서 시가 더 이상 진리를 핑계로 한 상아탑에 갇혀 있을 수만 없다. 진리가 상아탑 안에만 있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진리는 가까운 일상에도 있고 , 먼 우주에도 있는 법이다. 심상운은 그러한 진리를 찾아 때로는 물고기가 되고, 때로는 새가 된다. 그는 ‘설경 속’과 같은 새로운 세계를 꿈꾸고 있으며, 의식과 무의식을 자유로이 오가는 꿈꾸기를 시도 한다.” “작가들은 실재를 모색하기 위해서 해체나 가로지르기의 방법을 동원하였고, 이전에 경계 지어졌던 가치관을 허물고 탈경계를 모색하게 된다. 시 역시 각 시대에 걸맞는 양식을 가지고 발전되어 왔고, 현대인의 심리나 정서가 보다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되었다.”라고 하면서 그는 현대시의 변화를 긍정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4.   2007년 여름, 한국 영화계에는 관객 800만을 동원한 심형래의 SF영화 가 뜨거운 시비(是非) 속에 많은 화제를 뿌리면서 관객들에게 한국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에 대한 시비의 원인은 가 영상(컴퓨터 그래픽의 판타지)에 비해서 스토리의 짜임이 부족하고 작품성이 떨어지는 영화라는 평론가들의 지적에서 비롯되었다. 평론가들은 순수한 영상보다는 서사성과 관념(주제의식)을 중시한다. 의미가 불확실한, 맹목적(盲目的)에 가까운 영상에 대해서 그들은 점수를 주지 않는다. 이런 그들의 자세는 현대시에서 탈-관념의 언어, 순수한 기호로서의 언어, 맹목적인 가상(virtual)의 세계(하이퍼텍스트의 시)를 이해하지 못하고, 시는 관념의 비유적인 표현, 의미의 표출이라는 고정관념으로 무장한 독자나 시인이나 평론가와 다를 바가 없다.   그들은 관객이나 독자들이 수동적인 입장에서 벗어나서 능동적으로 작품에 참여하여 스토리(관념의 표출)보다는 영상(이미지)을 즐기고, 그 영상의 빈자리에 자신들의 상상을 넣는 ‘참여행위’가 새로운 시대의 영화와 시를 창조하는 동력이 된다는 것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견강부회(牽强附會)의 지나친 상상일지 모르지만 심형래의 파동은 한국 현대시에서 ‘탈관념 시(기호시)’의 파동을 예고하는 전주곡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시에서 인생론이나 교훈, 형이상학적 지향도 높은 가치로 평가된다. 그러나 그 내용은 이미 철학이나 도덕·규범 등에서 말해진 것들이다. 따라서 현대시를 언어예술이라고 한다면 기존의 고정관념에 의해서 만들어진 시들은 창조성이 결여된 언어예술이라고 말할 수 있다. 21세기의 새로운 현대시 -언어예술이면서 언어를 넘어서는 시(문덕수)-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현실과 언어의 밑바닥을 투명하게 응시하면서 ‘기호시의 가능성’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2007년 12월 사단법인 한국 현대 시인협회 기관지 2호에 발표 (2007,12,24 수정)                               사단법인 2008년 여름 세미나 주제발표 원고 (수정보완)       단선구조(單線構造)의 세계에서 다선구조(多線構造)의 세계로   - 21세기 ‘하이퍼 시’의 이해를 위하여           심 상 운 (시인)       1.   2008년은 한국현대시 100주년을 기념하는 뜻 깊은 해다. 1908년 잡지 에 발표된 최남선의‘해(海)에게서 소년에게’를 시발점으로 출발한 한국의 현대시는 100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일제 강점기, 해방, 남북분단, 6,25전쟁, 경제건설, 산업화, 민주화, 세계화를 거치면서 시의 영역에서 큰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그 결과 한국의 현대시는 시대적 이념의 시, 개인적 서정시에서 전통적 서정시, 사회계층에 대한 시, 모더니즘의 예술적 감각의 시, 주지적 관념의 시, 언어실험 시 등 시대적 사회적 예술적인 변화에 대응하여 시의 공간을 대폭 확장시켜 왔다. 그리고 민조시(신세훈), 디지털 시와 하이퍼 시(김규화, 심상운, 오남구), 공연시(신규호), 디카시(이상옥) 등 새로운 시의 형태를 정립하고 있다. 현대시의 이런 변화 속에는‘전통 언어의 계승과 변화’(민조시),‘언어와 실체의 관계’,‘시와 독자의 소통문제’(디지털 시, 공연시, 디카시) 등이 들어있다. 따라서 시에 대한 고정관념의 해체와‘시의 구조(構造)’에 대한 새로운 시각의 설정은 중요성을 더 한다.   20세기 한국 현대시들은 시의 구조에서 공통적인 면을 보여준다. 그것은 한국 현대시의 구조가 대부분 단선구조(單線構造)라는 것을 입증한다. 이 단선구조의 시는 시의 길이에 관계없이 한 편의 시에 하나의 시점(단일 시점)만 존재하면서 하나의 이미지 또는 하나의 메시지(의미)를 전달하는 데 집중하는 시를 말한다. 아래의 시를 읽어보자.       松花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윤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       산지기 외딴 집   눈 먼 처녀사       문설주에 귀대이고   엿듣고 있다.   - 박목월 전문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보다.       한 송이의 국화 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먼언 먼 젊음의 뒤안 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서정주 전문       이 두 편의 시 속에는 인물(눈먼 처녀, 내 누님)이 들어 있지만 그 인물들은 시의 시점을 변화시키는 인물이 아니다. 박목월의 속의 눈먼 처녀는 시적 화자(詩的 話者)의 관찰 대상일 뿐이다. 그래서 눈 먼 처녀의 행위 속에 들어 있는 정서는 화자(시인)의 주관적 인식과 감성의 표출일 수밖에 없다. 만약 화자와 처녀가 독립적인 존재로서 서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연출 된다면 단일시점에서 다시점으로 시점의 변화가 가능해 질 것 같다. 서정주의 속의‘내 누님’은 비유적인 소재라는 점에서 단일시점으로 고정된 화자의 사유와 감성에 더 밀접해 있다. 따라서 이미지의 독립적인 면이 박목월의 의 눈 먼 처녀보다 약하다. 작품 예시는 안했지만“아아 누구던가/이렇게 슬프고도 애닯은 마음을/맨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이라고 시 속에‘그’라는 인물을 삽입하여 정서를 객관화시키고자 했던 유치환의 도 단일시점이라는 점에서는 같다. 이런 단선구조는 선명한 메시지와 이미지의 전달, 주제의 제시이라는 면에서 독자들에게 현대시의 고정된 틀로 인식되어 왔다. 따라서 시의 정체(正體)도 시인의 주관적인 정서 표현이라는 굴레에 갇혀 있게 된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조향의 나 문덕수의 와 는 선명한 메시지와 이미지의 전달, 주제의 제시라는 단선구조의 틀을 적극적으로 거부하고 거기서 벗어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어 주목된다.       낡은 아코오딩은 對話를 관 뒀습니다.       ----여보세요!           에 피는 들국화.       ---왜 그러십니까?       모래밭에서   受話器   여인의 허벅지   낙지 까아만 그림자       비둘기와 소녀들의   그 위에   손을 흔드는 파란 기폭들.       나비는   起重機의   허리에 붙어서   푸른 바다의 층계를 헤아린다.   ----조향전문       남쪽 북쪽의 불벼락을 맞아   지붕 기왓장 문짝 모두 휴지처럼 날려가버린 유령이네   반세기를 앓는 벽은 3층 윤곽만 남았네   태극기 인공기 번갈아 내걸려 펄럭이었을   그날의 불먼지, 벽귀퉁에서 시나브로 날려 떨어지는 문틈에는   바람에 실려 남북을 넘나드는 자잘한 잡초의 씨알들만 걸려   꽃 피네       부석사 무량수전*에 박힌 의상대사 지팡이에서 움튼 선비화에   나비 앉네   ----문덕수 < 철원군 노동당 당사> 전문   *부석사 무량수전에는 의상대사의 지팡이가 선비화禪扉花로 피었다는 설화가 있음       마릴린 몬로가 호텔을 노크한다   제 유방 하나를 떼어 벽에 걸어 놓는다       마릴린 몬로의 떼가 몰려 온다   제 혼자 혹은 손잡고 어깨동무하고   혹은 휴대폰을 걸면서   종로에서 브로드웨이에서 인천국제공항에서   메뚜기처럼 뛰면서   금방 부화한 바닷가 모래밭의 자라새기처럼       마릴린 몬로의 노란 버스   마릴린 몬로의 빨간비행기   마릴린 몬로의 분홍 SST   마릴린 몬로의 파란 자전거   마릴린 몬로의 녹색 트럭       유방이 없는 마릴린 몬로가   고층빌딩 한 개 씩 들고 몰려온다   -----문덕수 전문       조향과 문덕수 시의 공통점은‘이미지의 집합적 결합’이다. 그들은 이질적 이미지의 과감한 결합 즉 하이브리드(hybrid)를 통해서 단선구조의 세계에서 탈출하고자 한다. 조향의 는 연결고리(링크)의 기능이 형성되지 않은 단순 이미지의 병렬적 결합을 통해서 주관적 정서와 의미로부터의 해방을 시도하고 있으며, 문덕수의 는 이질적인 이미지의 결합 (사실적 이미지 + 난해한 이미지) 즉 의식의 중층구조를 통해서 다선구조의 세계를 형성하려고 한다. 의식의 중층구조는 이 시의 끝부분 에서“꽃 피네”와 “선비화에 나비 앉네”의 링크(link)가 만들어주는 의식과 무의식의 결합으로 형성된다.“꽃 피네”에 링크하여 “선비화에 나비 앉네”로 건너뛰는 의식의 비약이 현실을 초월하는 하이퍼(hyper)인 것이다. 에서는 마릴린 몬로의 다양한 이미지의 집합을 통해서 현대인의 내면에 들어있는 다양한 욕망의 모습을 영상으로 보여주려고 한다. 마릴린 몬로는 여성 이미지의 환유(換喩)라고 말할 수 있지만 집합된 이미지들은 서로 논리적 맥락이나 인과를 맺지 않는 당돌한 결합이라는 점에서 독립성을 갖는다. 이 시에서도 “마릴린 몬로”는 연결고리(링크)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시 속에 수평적 네트워크(network)를 형성하고 있다. 그것은 이 시가 단선구조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드러낸다.   조향과 문덕수가 시도한 단선구조의 세계에서의 탈출은 그들의 시에서 의미의 단절 또는 의미로부터 해방과 함께 시의 공간이동을 보여준다. 이 공간이동은 그들의 시를 의식의 세계에서 무의식의 세계로, 형이하의 세계에서 형이상의 세계로, 의미의 세계에서 영상(이미지)의 세계로 전환시키는 작용을 한다. 따라서 그들의 이미지 결합 방식은 김춘수의‘무의미 시’의 기법과는 다른‘시의 무의미화 기법’이라고도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현대시가 지향하여야 하는 시의 정체(正體)에 대한 문제제기와 새로운 기법의 제시다. 따라서 언어의 링크 기능을 통한 하이퍼(의식의 건너뛰기, 초월)의 구현을 보여주고 있는 문덕수의 는 21세기 한국 현대시의 출구를 여는‘디지털 시 또는 하이퍼 시’의 선구적 작품이라는 점에서 평가된다.       2.   21세기의 한국현대시의 대표적인 시운동‘디지털 시’또는‘ 하이퍼 시’는 현대시의 구조에 큰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이 변화는 현대시의 정체에까지 영향을 주는 변화라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20세기에서 21세기로 넘어오는 급격한 생활환경의 변화와 맥을 같이 한다. 21세기는 20세기의 사람들이 상상조차 어려웠던 공간 속으로 사람들을 몰아가고 있다. 그 공간 변화의 대표적인 것이 컴퓨터 발달과 개인 소유에 의해서 확산되는‘사이버(cyber) 세계’라는 또 하나의 생활공간이다. 이 사이버공간은 인터넷이라는 네트워크를 형성한 개인간의 의사소통, 여론의 수집과 확산, 사무처리, 상업적 거래, 오락 등으로 말미암아 실생활의 공간과 개념상 구분이 되지 않는 공간으로 전위되었다. 따라서 사이버의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허상만이 아닌 실제성을 갖는다. 이런 시대의 변화 속에서 TV와 컴퓨터의 공간에 젖어 든 젊은 세대들은 관념적이고 설득적인 현대시속에 쉽게 들어오지 않는다. 그들은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을 현실과 같은 차원에서 인식하면서, 시를‘의미의 예술’에서‘영상(이미지)의 예술’로 전환하는데 공감하고 있다. 이때의 영상은 시에서 언어영상을 의미한다.   이런 변화 속에서 20세기의 단선구조의 틀에서 벗어나서 21세기적인 다선구조의 틀을 세우려는 ‘하이퍼 시 운동’은 한국 현대시에서 시대적 조류에 부합하는 시 형태로 부상하고 있다. 이 다선구조는 논리적(인과적)이고 공리적인 선명한 주제의식의 단선구조에서 벗어나 현실과 가상현실의 복합구조를 시에 도입하여 상상의 영역을 넓히고 이미지의 독자성을 시의 중점에 두고자 하는 시의 방법이다. 따라서 이 다선구조에는 엉뚱한 이야기, 돌출 이미지 등이 뒤섞이어서 시의 기본 줄기가 무엇인지 모호해지고 난해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단선구조의 시보다 풍부한 상상의 세계를 열어주고, 가상현실의 공간, 영상성과 공연성, 자유연상의 이미지 세계를 다양하게 펼쳐준다는 점에서 미래지향의 예술적 공간을 담고 있는 시라고 말할 수 있다.   1965년 하이퍼텍스트(hypertext)라는 용어를 처음 만든 테드 넬슨(Ted Nelson)은“하이퍼텍스트는 종이 위에는 손쉽게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한 방법으로 상호 연결된 글이나 그림 자료들의 조직체”라고 했다. 이 조직체들은 컴퓨터 속에서 연결(link)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서로 결속된다. 따라서 하이퍼 시는 기존의 인과적, 순차적, 논리적, 선형적 전개를 거부하고 비인과적, 비순차적, 비논리적 비선형적인 세계를 지향하는 하이퍼링크가 만들어내는 불연속적인 상상의 가지치기 또는 이미지의 집합적 결합이 전시형태(展示形態)로 작성된 여러 텍스트가 모여서 형성되는 시가 된다. 하이퍼링크의 불연속적인 상상의 가지치기는 리좀(rhizome)이라는 개념으로 설명되기도 한다. 땅 밑 줄기인 리좀은 뿌리나 곁뿌리와 다르다. 구근(球根, bulbs)이나 덩이줄기(tubers)가 리좀이다. 이 리좀은 수평형(水平形)이라는 점에서 현대철학(포스트구조주의)에서 중심의 집중에 반대되는 중심의 다양화 또는 탈-중심 체계를 의미하는 용어로도 쓰인다. 현대 사회학에서는 이런 형태의 사회를 구성상으로는 씨줄/날줄이 복잡하게 얽혀있는‘망상사회’(網狀社會 grid society), 주도적 노선이 아닌 임의적 진전경로로 특징되는‘리좀 사회’(rhizome society)라고 한다. 따라서 리좀은 구조상 위계적이지 않다. 선후(先後)가 없으며, 어떤 점은 다른 어떤 점과만 연결되어야 한다고도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리좀의 연결은 이질적인 것들 간의 연결이다.   이런 네트워크 체계를 현대시의 무한상상에 접합하여 응용한 것이 하이퍼 시다. 그러나 전자 하이퍼 시가 아닌 종이에 문자로 표시되는‘문자 하이퍼 시’에는 컴퓨터 속에서 실현되는 하이퍼링크와 같은 기능이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종이에 표시되는 문자의 시는 하이퍼 시로서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숨어있는 부분이 없는, 텍스트 전제가 노출된 문자 하이퍼텍스트의 시에서는 링크의 역할을 텍스트 속에 들어 있는 의식과 무의식의 흐름이나 기표의 흐름, 장면의 변화, 소리, 유사한 단어, 구문 등의 반복 그리고 자유연상, 현실과 환상의 교차, 시간과 시간, 공간과 공간의 넘나듦 등의 다양한 상상과 이미지의 표현방법으로 구현하게 된다. 이런 기능의 확대는 의미(관념)에서 해방된 언어의 자유스러운 쓰임과 가상공간의 무한한 허용이라는 상상의 확산에 의해서 시적인 언어공간으로 구현된다. 따라서 하이퍼텍스트의 시는 현실을 바탕으로 하는 허구, 즉 기존의 시적 공간을 허물어버림으로써 작품의 주제나 목적성을 지워버린다. 다만 작품의 내면에 숨어서 흐르는 시인의 의식이 시적 생명력의 바탕이 된다.   문덕수는 「종이 하이퍼텍스트와 전자 하이퍼텍스트」(월간『시문학』 2008년 4월호)에서 “컴퓨터의 인공언어가 만들어낸 ‘가상현실’은 지향대상(작품의 바깥에 있는 현실의 어떤 세계나 사물)을 시뮬레이트해서, 즉 허구적으로 구성해서 우리에게 보고 듣게 해주는 것과 같이, 우리가 쓰는 언어도 컴퓨터의 인공언어처럼 가상현실을 창조하고, 그리고 그 ‘가상현실’은 흔히 우리는 ‘이미지’라고 부르고 있는 그런 세계를 우리에게 체험하도록 해줍니다.”라고 이미지 세계(시)와 가상현실 세계(컴퓨터)의 동일성을 논증하면서, ‘종이 하이퍼텍스트 시(하이퍼 시)’ 이론의 근거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컴퓨터에서 하이퍼텍스트는 ‘여러 가지 텍스트를 서로 관련시켜 하나의 데이터로 다루는 복합 텍스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텍스트의 특정 부분으로부터 다른 별개의 텍스트를 관련시킬 수도 있습니다. 컴퓨터에서는, 컴퓨터 화면과 유서(user)의 메시지를 접속시키는 ‘시프터’(shifter)라는 이동장치가 있음은 여러분들께서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 장치를 이용하여 어떤 한 시행(詩行)이나 센텐스의 임의의 부분에 다른 어구나 시행 또는 텍스트가 연결되어(링크되어), 복수의 텍스트가 상호간에 복잡한 네트워크를 구성하게 됩니다. 기존의 시 텍스트나 산문 텍스트는 그 문맥이 선조적(線條的), 일방적 순서로 진행됩니다만, 이동장치인 시프트를 이용함으로써 사용자가 맥락을 자기 시점에서 자유롭게 접속하여 전환하게 됩니다. 시간적, 선조적, 앞뒤의 순서로 진행되는 한 맥락이, 중간에서 전혀 다른 맥락이 가지처럼 붙어서 갈라지고, 다시 그 가지에서 또 다른 맥락의 가지로 갈라져, 이리하여 맥락을 달리하는 많은 복수의 텍스트가 얽혀 하나의 커다란 네트워크를 구성하게 됩니다.       ①여자의눈은北極에서邂逅하였다.②北極은초겨울이다.③여자의눈에는白夜가나타났다.   ― 이상(李箱), 「興行物天使」에서       ‘여자의 눈은 北極에서 邂逅하였다’의 1문 다음에, ‘北極은 초겨울이다’의 2문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제2문은 1문의 “北極”이라는 맥락의 한 부분에서 갈라져나간 또 다른 맥락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3문은 1문의 “여자의 눈”이라는 주어에 링크됨으로써 원래 문맥으로 되돌아간 것으로 보입니다.(엄밀한 의미에서 제2문도 맥락에서 완전히 일탈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제1문의 “여자, 여자의 눈, 북극, 해후” 등의 부분에서 갈라져 또 다른 맥락의 텍스트가 증식되어 하나의 복잡한 네트워크가 형성되면 ‘하이퍼텍스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단선구조에서 다선구조로 바꾸는 방법에서 1차적인 방법은 시 속에 제2 제3 화자의 등장이다. 제1의 화자가‘나’라면 제2 제 3의 화자는‘너‘와‘그’가 된다. 소설에서 1인층 시점에서 3인층 시점으로 바뀌는 것과 비슷하다. 화자의 변화는 시점의 변화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점의 변화는 구조의 변화를 수반한다. 그러나 단선구조에서 다선구조로 이동하는 방법에는 화자의 시점 변화가 아닌 하이브리드 (hybrid)적인 리좀(이미지)의 연결이나 화자의‘의식의 변화’도 가능하다. 의식의 변화는 실세계와 가상세계의 만남과 의식에서 무의식으로, 무의식에서 의식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경우는‘의식의 다선구조’라고 한다. 위에 예시한 와 는 하이브리드 적 다선구조의 시이고, 는 의식의 중층구조로 이루어진 다선구조의 시라고 말할 수 있다.   시 속에 ‘나’만이 아닌 ‘너’나 ‘그’가 들어가서 시상을 전개하는 다선구조의 시는 서정시의 표현형식을 주관적인 독백 형식에서 벗어나게 하고, 화자는 시 속에서 리포터의 역할을 하게 된다. 그리고 시를 평면적인 구조에서 입체적인 구조로 바뀌게 한다. 따라서 시의 구조는 자연스럽게 서사구조(敍事構造)가 된다. 인물과 환경과 행위가 결합할 때 서사는 발생되기 때문이다. 이때 시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사물은 시의 캐릭터(character)가 된다. 그리고 시의 이미지는 움직이는 이미지 즉 동영상이 된다. 따라서 하이퍼텍스트 시에 등장하는‘나’와 일반 서정시의‘나’는 입장이 전혀 다른 존재가 된다. 일반 서정시의 나는 시인 자신일 경우가 많지만, 하이퍼텍스트 시의 나는 ‘상상 속의 나’가 되어 시의 캐릭터로서의 나가 되기 때문이다.   다음은 하이퍼텍스트의 시의 중심이 되는 상상에 대한 고찰(考察)이다. 하이퍼텍스트 시는 시인의 목적의식, 의도성과 연관되어서 비유적 상징적 의미를 갖게 되는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상상보다 콜리지(Coleridge 영국의 문예비평가)의 말처럼‘시간과 장소의 서열에서 해방되어서’자유롭게 펼쳐지는 비합리적이고 비논리적인 공상(Fancy)에 더 비중을 두게 된다. 공상은 어떤 목적의식이 없이 공상의 가지치기를 보여 주는 것으로 만족하기 때문이다. 공상의 가지치기는 어떤 고정된 의미를 갖지 않음으로써 독자들에게 다양한 가상공간을 제공한다. 공상은 목적의식의 좁은 공간에서 벗어난 무목적의 넓은 공간 속으로 시인과 독자를 안내한다. 이것이 순수한 하이퍼텍스트의 세계다. 그러나 삶의 현실을 외면할 때, 시는 관념 쪽으로 끌려들어가게 되고 박제(剝製) 같은 이미지의 그림만 남을 수도 있다. 그래서 삶의 현실과 하이퍼텍스트의 상상이 어떻게 조화로운 화합을 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유로운 상상과 현실의 조화 속에서 시의 싱싱한 감각이 생동하기 때문이다. 아래의 시를 읽어보자.       어두컴컴한 매립지埋立地에서는 새벽안개가 흰 광목처럼 펼쳐져서 나뭇가지를 흐늘쩍흐쩍 먹고 있다. 나무들은 뿌연 안개의 입 속에서도 하늘을 향해 아우성치듯 수십 개의 팔과 손 가락을 뻗고 있다.       그는 봄비 내리는 대학로 큰길에서 시위대들이 장대 깃발을 들고 구호를 외치며 행진하는 장면을 촬영하고 있다고 한다.       나는 그의 우렁우렁한 목소리에 끌려가다가 그가 찍어온‘안개 속의 나무들’을 벽에 붙여놓고 식탁에 앉아 푸른 야채野菜를 먹는다. 마른 벽이 축축한 물기에 젖어들고 깊은 잠속에 잠겨 있던 실내의 가구들이 조금씩 몸을 움직거린다.       그때 TV에서는 파도 위 작은 동력선動力船의 퉁퉁대는 소리가 지워지고, 지느러미를 번쩍이던 은빛 갈치의 회膾를 고추장에 찍어 먹으면서 싱싱해서 좋다고 떠드는 여자 리포터의 붉은 입이 화면 가득 확대되었다.   ----- 심상운 전문       ‘자연풍경+사회와 정치적 사건+실내의 식탁 광경+TV 화면’으로 구성된 이 시는 1,이미지의 집합적 결합 2,동영상과 공연시 지향 3,영화의 몽타주(montage) 기법 4,가상현실의 구현 등의 기법을 시에 도입하여 제작된 시다. 그래서 네트워크가 형성된 하이퍼텍스트 적인 공간의 시라고 하여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시의 장면들은 분리되어 있지만 심리적인 이미지로 링크(연결)된다. 따라서 이 시의 맥락을 추적해보면, 시의 내면에 생명의 본능적인 움직임과 갈구가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먹는다’라는 행위와‘아우성’으로 표현된다. 안개는 나무를 먹고, 나는 야채를 먹고, 여자 리포터는 갈치 회를 먹는다. 안개 속의 나무들도 또한 안개의 입 속에서 아우성치듯 팔과 손가락을 뻗고 있고, 시위대들은 구호를 외치고(아우성치고) 있다. 이 시는 이런 생명현상의 움직임을‘이미지의 집합적 결합’이라는 디지털적 기법으로 표현한다. 자신의 생각을 독자들에게 설득적으로 표현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기법이다. 그래서 영화의 몽타주 기법도 사용된다. 이 시에 나오는‘나’와‘그’는 시 속의 캐릭터다. 끝부분 는 사이버 공간의 장면이지만 현실과 구분되지 않는다. 그것이 21세기의 현실감각이다. 그리고 이 장면은 시에서 TV도 등장인물과 같은 역할을 하는 매체가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 시는 하나의 경로만을 고집하지 않다. 이 시는 하나의 독립된 공간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공간은 세계를 모사(模寫)한다거나 어떤 정리된 정보를 전달하려는 목적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시 속에 존재하는 것은 실세계와 맞닿아 있는 가상공간(假想空間)이다. 그래서 이 공간은 실세계와의 관계에서 리좀을 형성한다. 이것은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복제(複製)하거나 또는 다른 하나의 의미가 되기를 거부하는 하이퍼텍스트의 공간이다.       4.   다각적인 면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동시적인 배열은 디지털 시대의 감각과 밀접한 관련을 갖게 된다. 이런 면에서 볼 때, 한 편의 시에서 최소 2,3개의 다른 리좀(이미지)이 들어가는 것을 시의 기본구조로 삼는 하이퍼 시는 현대의 생활구조를 반영하는 시형태가 된다. 이 구조변화의 핵심에는 위계적 구조가 내포하고 있는 고정된 관념의 틀을 거부하는 수평적인 다양한 선(線)들(이미지, 사유, 정서)이 들어 있다. 이 선들은 새로운 영토를 만들어 내고, 의미작용을 수행하려는 선들도 있지만 자신의 영토에서 탈출하여 미지의 세계로 달아나 탈영토화하려는 선들도 있다. 이 선들의 움직임으로 인해서 하이퍼 시에는 의미의 연결과 단절이 끊임없이 발생한다.   이 수평적인 다양한 선들의 움직임은‘가상현실의 보여주기(showing)’라는 디지털 시의 특성과 결합하여 독자와의 새로운 소통형식이라는 측면에서 독창성을 갖는다. 이 하이퍼 시의 소통은 정서와 의미(관념)를 소통의 중심에 놓는 아날로그의 논리적 소통에서 이미지(상상력)와 감성의 소통이라는 디지털적 방식으로 확장된다. 디지털적 소통은 아날로그의‘선택과 집중’‘설득’의 세계에서 탈출하여‘다양한 상상의 집합과 연결’‘가상현실의 세계’라는 디지털 세계의 문을 여는 21세기적 소통이다. 따라서 디지털의 가상현실의 보여주기와 하이브리드(hybrid)를 중심축으로 삼는 하이퍼 시의 다선구조(多線構造)는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허물뿐 만이 아니라 열린 세계의 다양성을 보여주게 된다는 점에서 시적 생명력을 얻는다.       앞의 서술 내용을 요약하면 단선구조의 세계에서 다선구조의 세계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다음에 열거한 9가지 방법이 유효할 것으로 생각된다.       1, 이미지의 집합적 결합(하이브리드의 구현)을 기본으로 한다.   2, 시어의 링크 또는 의식의 흐름이 통하는 이미지의 네트워크(리좀)를 형성한다.   3, 다시점의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캐릭터를 등장시킨다. 캐릭터는 사물도 될 수 있다.   4, 가상현실의 보여주기는 소설적인 서사(敍事)를 활용한다.   5, 현실을 바탕으로 하여 현실을 초월한 상상 또는 공상의 세계로 시의 영역을 확장한다.   6, 정지된 이미지를 동영상의 이미지로 변환(變換)시킨다.   7, 시인의 의식이 어떤 관념에도 묶이지 않게 한다.   8, 의식 세계와 무의식 세계의 이중구조가 들어가게 한다.   9, 시인은 연출자의 입장에서 시를 제작한다.       이 9가지 방법은 하이퍼 시의 창작방법이 되기도 한다. 하이퍼텍스트(hypertext)의 하이퍼(hyper)에는 불가시적인 세계를 가시적인 세계로 전환시키기 위한 무한한 상상의 변화와 에너지가 있어야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하이퍼텍스트 시의 다선구조는 시대적 성향변화에 대한 현대시인의 적극적이며 창조적 대응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922    속담 4000개 댓글:  조회:1724  추천:0  2019-06-18
[펌] 한국속담 4000 개   출처 yeongun52님의 블로그|필수창 가갸 뒷자[뒷자리]도 모른다 1.아주 무식하다는 말. 2.속내를 전혀 모르고 있다는 말. 가게 기둥에 입춘[주련] ‘격에 어울리지 않음’을 이르는 말. 가까운 남이 먼 일가보다 낫다 이웃끼리 서로 가까이 지내다 보면, 먼 데 있는 일가보다 더 친하게 되어 서로 도와 가며 살게 된다는 말. 먼 사촌보다 가까운 이웃이 낫다. 가까운 데 집은 깎이고 먼 데 절[집]은 비친다 가까운 데 것은 눈에 익어서 좋게 보이지 않고, 먼 데 것은 훌륭해 보인다는 말. 가까이 앉아야 정이 두터워진다[가깝다] 사람은 서로 가까이 있으면서 자주 접촉해야 정이 더 깊어진다는 말. 가꾸지 않는 곡식 잘되는 법이 없다 공들여 가꾸지 않고 버려 둔 곡식이 잘되는 일이 없듯이 사람을 바르게 가르치고 잘 이끌지 않으면 제구실을 못한다는 말. 가난 구제는 나라[나라님]도 못한다 ‘하磁뮌?가난한 사람을 다 구제한다는 것은 나라의 힘으로도 어려운 일인데, 하물며 개인의 힘으로 되겠느냐’는 말. 가난도 비단 가난 아무리 가난해도 체통을 잃지 않고 견딘다는 말. 가난한 양반 씻나락 주무르듯 ‘어떤 일에 닥쳐 우물쭈물하기만 하면서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모양’을 비꼬아 하는 말. 가난한 집 신주 굶듯 줄곧 굶기만 한다는 말. 가난한 집 제사[제삿날] 돌아오듯 치르기 어려운 일만 자꾸 닥친다는 말. 가는 날이 장날 우연히 갔다가 공교로운 일을 만났을 때 이르는 말.  가는 말에 채찍질 ☞닫는 말에 채질한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가는 떡이 커야 오는 떡도 크다) 자기가 먼저 남에게 잘 대해 주어야 남도 자기에게 잘 대해 준다는 말. 가는 방망이 오는 홍두깨 남에게 해를 끼치면 그보다 더 큰 화가 돌아온다는 말. 가는베 낳겠다 ‘솜씨가 거칠고 무딤’을 비웃는 말. 가는 세월 오는 백발   가는 손님은 뒤꼭지가 예쁘다  가늘게 먹고 가는 똥 싸라 너무 욕심을 부리다가는 봉변을 당하기 쉬우니 제힘에 맞게 적당히 취하라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가늘게 먹고 가늘게 살아라 검소하게 먹으면서 소박하게 살라는 뜻으로, 분수에 맞지 않게 호화로운 생활을 추구하거나 분에 넘치는 행동을 하지 말라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가던 날이 장날 생각 않던 일로 공교로이 일이 잘 들어맞거나, 틀어짐을 말함. 가락꼬치 아니면 송곳 날카로워서 잘 꿰뚫는다는 뜻으로, 판단이 아주 정확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가랑니가 더 문다 같잖고 시시한 것이 더 괴롭히거나 애를 먹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거듭되면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된다는 말. 가랑이에 두 다리를 넣는다 일을 할 때 너무 성급히 서둘러 정신을 못 차리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가랑잎에 불붙듯 ‘성미가 급하고 도량이 좁은 사람이 걸핏하면 발끈 화를 내는 짓’을 이르는 말. 가랑잎으로 눈 가리고 아웅한다 가랑잎이 솔잎더러 바스락거린다고 한다 ‘자기의 허물이 더 많으면서 허물이 적은 사람을 나무라거나 흉보는 경우’를 이르는 말. 가래 터 종놈 같다 (가래질하는 마당의 종처럼) 무뚝뚝하고 거칠며 예의범절이라고는 도무지 모른다는 말. 가래질도 세 사람이 한마음이 되여야 한다 세 사람이 하는 가래질도 서로 마음이 맞아야 잘된다는 뜻으로, 무슨 일이나 그것을 하는 사람들이 서로 단합하여야 성과를 낸다는 것을 교훈적으로 이르는 말. 가루는 칠수록 고와지고 말은 할수록 거칠어진다 말이 많으면 해되는 일만 많으니, 말을 삼가라고 경계하는 말. 가마가 솥더러 검정아 한다 제 흉이 더 많은 주제에 남의 흉을 본다는 말. 가마솥 밑이 노구솥 밑을 검다 한다. 가마솥 밑이 노구솥 밑을 검다 한다 ☞가마가 솥더러 검정아 한다. 가마솥에 든 고기 꼼짝없이 죽게 된 신세를 이르는 말. 가마 타고 시집가기는 (다) 틀렸다 일이 잘못되어 제대로의 격식을 차릴 수 없게 되었다는 말. 가만한 바람이 대목을 꺾는다 약하게 가만가만 부는 바람이 큰 나무를 꺾는다는 뜻으로, 작고 약한 것이라고 얕잡아 보아서는 안 된다는 말. 가만히 먹으라니까 뜨겁다 한다 어긋나는 짓을 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남의 약점을 알고 더욱 난처하게 하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가면(을) 벗다 본마음이나 참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다. 가면(을) 쓰다 본마음이나 참모습을 감추고, 거짓 꾸민 말이나 행동을 하다. 가면이 천 리(다) 탈을 쓰고 얼굴을 가리면 가까이 있어도 서로의 사이가 천 리나 떨어져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는 뜻으로, 직접 얼굴을 대하게 되는 것이 아니면 낯간지러운 일도 서슴없이 하게 됨을 이르는 말. 가문 논에 물 대기 =마른논에 물 대기. 가문 덕에 대접받는다 좋은 가문에 태어난 덕분에 변변하지 못한 사람이 좋은 대우를 받는다는 말. 가문을 흐리다 집안이나 문중의 명예를 욕되게 하다. 가물 끝은 있어도 장마 끝은 없다 [가물은 아무리 심한 경우라도 농작물의 다소의 소출은 있지만 큰물이 지면 모든 것을 쓸어가 버리므로 아무 소출도 없다는 뜻으로] 가뭄에 의한 재난보다 장마로 인한 재난이 더 무섭다는 말. 가물에 돌 친다 [가물어서 물이 없을 때에 강바닥에 있는 돌을 미리 치워서 큰물 피해를 막자는 뜻으로] 무슨 일이든지 미리 대비하는 것이 하기도 쉽고 효과도 크다는 말. 가물에 콩(씨) 나듯 무슨 일이나 물건이, 어쩌다가 하나씩 드문드문 나타난다는 말. 가물치가 뛰면 옹달치도 뛴다 ‘망둥이가 뛰면 꼴뚜기도 뛴다’의 북한 속담. 가물치가 첨벙하니 메사구도 첨벙한다 ‘망둥이가 뛰면 꼴뚜기도 뛴다’의 북한 속담. 가시나무에 가시가 난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가시나무에 목을 맨다 ‘가지나무에 목을 맨다’의 북한 속담.  가시나무에 연줄 걸리듯 인정에 걸리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친인척 관계가 얼키설키 얽혀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가시아비 돈 떼어먹은 놈처럼 남에게 폐를 끼치고도 미안해하지 않는 태도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가시어미 눈멀 사위 사위가 왔을 때에 국을 끓여 주느라 생기는 연기와 김으로 장모의 눈을 멀게 할 사위라는 뜻으로, 국을 매우 좋아하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가시어미 장 떨어지자 사위가 국 싫다 한다 처갓집에 장이 떨어져서 국을 끓일 수 없게 되었는데 마침 사위가 국은 싫어서 먹지 않겠다고 한다는 뜻으로, 어떤 일이 서로 공교롭게도 때맞추어 일어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가을바람은 총각 바람, 봄바람은 처녀 바람 가을에는 남자가 바람이 나기 쉽고, 봄에는 여자가 바람이 나기 쉬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가을바람의 새털 가을바람에 이리저리 날리는 새털처럼 매우 가볍고 꿋꿋하지 못한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가을 볕에는 딸을 쬐고 봄 볕에는 며느리를 쬐인다  가을비는 떡 비라 풍족한 가을에는 이것저것 먹을 것도 많으므로, 비가 와서 일하러 나가지 못하게 되는 날에는 집 안에서 넉넉한 곡식으로 떡이나 해 먹고 지내기가 쉬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가을비는 장인[시아버지/시아비]의 나룻[수염/턱] 밑에서도 긋는다 가을비는 아주 잠깐 오다가 곧 그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가을비는 턱 밑에서도 긋는다. 그때그때의 잔걱정은 순간적이어서 곧 지나가 버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가을비는 턱 밑에서도 긋는다.  가을비는 턱 밑에서도 긋는다 =가을비는 장인[시아버지/시아비]의 나룻[수염/턱] 밑에서도 긋는다. =가을비는 장인[시아버지/시아비]의 나룻[수염/턱] 밑에서도 긋는다. 가을에는 부지깽이도 덤빈다[덤벙인다] 추수하는 가을에는 매우 바쁘다는 말. 가을일은 미련한 놈이 잘한다 가을 농촌 일은 매우 바쁘고 힘들기 때문에 미련한 사람처럼 꾀를 부리지 않고 묵묵히 해야 성과가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가을 중 싸대듯[싸다니듯] ‘여기저기 분주하게 돌아다님’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가을철에는 죽은 송장도 꿈지럭한다 =가을에는 대부인 마누라도 나무 신짝 가지고 나온다. 가자니 태산이요, 돌아서자니 숭산이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난처한 처지에 있음을 이르는 말. 진퇴유곡(進退維谷). 가재는 게 편이라 됨됨이나 형편이 비슷한 사람끼리 어울리게 되어 서로 사정을 보아줌을 이르는 말. 가죽이 모자라서 눈을 냈는가 보기 위해서 눈을 냈지 살가죽이 모자라서 눈을 내놓은 것이 아니라는 뜻으로, 남들은 다 잘 보는 것을 보지 못하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가죽이 있어야 털이 나지 무엇이나 그 바탕이 있어야 생길 수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가지 나무에 목을 맨다 워낙 딱하고 서러워서 목맬 나무의 크고 작음을 가리지 않고 죽으려고만 한다는 말.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이 없다 자식을 많이 둔 어버이에게는 근심이 끊일 때가 없다는 말. 가지(를) 치다 하나의 근본에서 딴 갈래가 생기다.  가짜 손오공 에 나오는 손오공을 흉내 낸 가짜라는 뜻으로, 거짓으로 진실을 가리려는 자를 이르는 말.  가짜가 병이라 무엇이나 가짜라는 것은 차라리 없느니만 못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각설이 떼에게서는 장타령밖에 나올 것이 없다 장타령을 부르며 동냥하여 얻어먹고 다니는 각설이 떼에게서 나올 것이란 장타령밖에 없다는 데서, 본바탕이 하찮은 것에서는 크게 기대할 만한 결과가 나올 수 없음을 이르는 말. ≒각설이의 장타령. 각설이의 장타령 =각설이 떼에게서는 장타령밖에 나올 것이 없다. 각전 시전 통비단 감듯 장사치가 솜씨 있게 통 비단을 감듯 한다는 뜻으로, 무엇을 줄줄 익숙하게 잘 감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각전의 난전 몰듯 육주비전 각전에서 그곳의 물건을 몰래 훔쳐다가 파는 난전을 무섭게 몰아치듯 한다는 뜻으로, 정신을 차리지 못할 만큼 매우 급히 몰아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간다 간다 하면서 아이 셋 낳고 간다 간 빼 먹고 등치다 겉으로는 잘해 주는 척하면서 남의 재산을 옳지 못한 방법으로 빼앗다.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다 자기에게 미치는 이익에 따라 줏대 없이 이편에 붙었다 저편에 붙었다 하다. 간이 뒤집혔나 허파에 바람이 들었나 1.‘아무 까닭 없이 웃기만 하는 사람’을 나무라는 말. 2.‘하는 짓이나 말이 허랑한 사람’을 나무라는 뜻으로 이르는 말. 간이라도 빼어[뽑아] 먹이겠다 아주 친하여서 아무리 소중한 것을 주어도 아깝지 않다는 말. 간장이 시고 소금이 곰팡 난다 갈고리 맞은 고기 갈고리를 맞아 놀라 헐떡거리며 어쩔 줄 모르는 고기와 같다는 뜻으로, 매우 위급한 경우를 당하여 어찌할 바를 모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갈매기도 제집이 있다 바닷가에서 날아다니는 갈매기에게도 제집이 있는데 어찌 사람에게 집이 없겠느냐는 말. 갈모 형제라 ‘동생이 잘나고 형이 동생만 못한 형제’를 이르는 말. 갈수록 수미산[태산](이라) ‘갈수록 더욱 어려운 지경에 처하게 됨’을 이르는 말. 갈치가 갈치 꼬리 문다 가까운 사람끼리 서로 모함하거나 해치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감기 고뿔도 남을 안 준다 감기까지도 남을 안 줄 정도로 몹시 인색하다는 말. 감꼬치 빼먹듯 있는 재물을 (늘리기는커녕) ‘하나씩 하나씩 축내며 살아가는 모양’을 이르는 말. 감나무 밑에 누워도 삿갓 미사리를 대어라 아무리 좋은 기회라 하더라도 그것을 놓치지 않으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말. 감나무 밑에 누워서 홍시[연시] (입 안에) 떨어지기를 기다린다[바란다]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좋은 결과가 이루어지기만 바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감사 덕분에 비장 나리 호사한다 남의 덕으로 호강한다는 말. 감옥에 십 년을 있으면 바늘로 파옥한다 감옥살이 10년이면 바늘을 가지고도 옥을 깨쳐 뛰쳐나오게 된다는 뜻으로, 사람이 역경에 처하고 그것을 극복하려고 오래 애쓰는 과정에서는 보잘것없는 작은 물건을 가지고도 큰일을 성사시킬 수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삼 년 감옥살이에 감옥을 바늘로 깨뜨린다. 감이 재간이다 재료가 좋아야 일의 성과가 좋다는 말. 감출 줄은 모르고 훔칠 줄만 안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 감투가 커도 귀가 짐작한다 갑술 병정 흉년인가 병자호란을 전후하여 갑술년과 병자년, 정축년에 큰 흉년이 들었던 데서 매우 심한 흉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갑술 병정이면 다 흉년인가 병자호란을 전후하여 갑술년과 병자년, 정축년에 큰 흉년이 들었다고 하여 갑술년이나 병자년, 정축년이면 무조건 흉년이 든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뜻으로, 어느 하나가 같다고 전체가 같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갑인년 흉년에도 먹다 남은 것이 물이다 아무리 흉년이라도 물마저 말라 버리는 일은 없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물 한 모금도 얻어먹기 어려운 경우를 이르는 말. 값도 모르고 싸다 한다 속내도 잘 모르면서 이러니저러니 참견을 하려 든다. 값싼 갈치자반 (맛만 좋다) 값이 싸서 좋을 뿐더러 쓰기에도 괜찮다는 말. 갓 마흔에 첫 보살(버선) 오래 기다리던 일이 뒤늦게 이루어졌을 때 이르는 말. 갓방 인두 달듯 갓 만드는 작업장의 인두가 언제나 뜨겁게 달아 있는 것처럼 자기 혼자 애태우며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갓 쓰고 박치기해도 제 멋이다 갓장이 헌 갓 쓰고 무당 남 빌려 굿하고 제가 제 것을 만들어 가지지 못하고 제가 제 일을 처리하지 못하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강남 장사 이득이 많은 장사를 이르는 말. 오직 제 이익만 생각하고, 태도가 오만한 사람을 이르는 말. 강물도 쓰면 준다 많다고 헤프게 쓰지 말고 아껴 쓰라는 말. 강물이 돌을 굴리지 못한다 강아지 똥은 똥이 아닌가 다소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그 본질은 다를 것이 없다는 말. 강아지 메주 멍석 맡긴 것 같다 강철이 간 데는 가을?봄(이라) ‘운이 나빠 하는 일마다 실패를 거듭함’을 이르는 말. 강철이 달면 더욱 뜨겁다 더디 다는 강철이 달면 보통 쇠보다 더 뜨겁다는 뜻으로, 웬만해서는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이 한번 성나면 더 무서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강태공이 세월 낚듯 한다 ‘어떤 일을 매우 느리게 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강한 말을 매 놓은 기둥이 상한다 갖바치 내일 모레 ‘약속한 날짜를 자꾸 미룸’을 이르는 말. 갖은 황아다[황아라] [여러 가지를 다 갖추어 가지고 다니는 황아장수라는 뜻으로] ‘나쁜 성격이나 질병 따위를 많이 지녔음’을 이르는 말. 갗에서 좀 난다 가죽을 쏠아 먹는 좀이 가죽에서 생긴다는 뜻으로, 화근이 그 자체에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가죽에 좀이 나서 가죽을 다 먹게 되면 결국 좀도 살 수 없게 된다는 뜻으로, 형제간이나 동류끼리의 싸움은 양편에 다 해로울 뿐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같은 값이면 과부 집 머슴살이 이왕이면 조건이 좋은 쪽 일을 하는 것이 낫다는 말.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 이왕이면 더 좋은 쪽을 택하는 것이 낫다는 말.  같은 값이면 은가락지 낀 손에 맞으랬다 같은 깃의 새는 같이 모인다 또래 또는 한 유(類)끼리 잘 어울리게 된다는 뜻. 같은 떡도 맏며느리 주는 것이 더 크다  같잖은 게 갓 쓰고 장 보러 간다 같잖은 사람이 격에 어울리지 아니하게 차리고 남부끄럽게 행동함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  같잖은 투전에 돈만 잃었다 기를 쓰고 덤빈 투전도 아닌데 돈을 잃었다는 뜻으로, 사소한 일에 손해만 보았음을 이르는 말. 개가 똥을 마다한다 ‘평소에 좋아하던 것을 짐짓 사양함’을 보고 비꼬아 이르는 말. 개가 웃을 일이다 말 같지도 않은 같잖은 일이다.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산다 돈을 벌 때에는 궂은일을 가리지 않고 벌고, 번 돈을 쓸 때에는 어엿하고 보람 있게 쓴다는 말. 개 겨 먹다 필경 쌀 먹는다 개고기는 언제나 제 맛이다 제가 타고난 본바탕은 어느 때나 속이기 어려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개구리 낯짝에 물 붓기 [물에 사는 개구리의 낯에 물을 끼얹어 보아야 개구리가 놀랄 일이 아니라는 뜻으로] ‘어떤 자극을 주어도 그 자극이 조금도 먹혀들지 않음’을 이르는 말.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 (잘되고 나서) ‘지난날의 미천하거나 어렵던 때의 일을 생각지 않고 행동하는 경우’를 경계하여 이르는 말. 개구리도 옴쳐야 뛴다 ‘아무리 급하더라도 일을 이루려면 마땅히 그 일을 위하여 준비할 시간이 있어야 함’을 이르는 말. 개구멍에 망건 치기 ‘남이 빼앗을까 봐 겁을 내어 막고 있다가, 막던 그 물건까지 잃게 됨’을 이르는 말. 개구멍으로 통량갓을 굴려 내다 ‘교묘한 수단으로 남을 잘 속이는 것’을 두고 이르는 말. 개 꼬락서니 미워서 낙지 산다 자기가 미워하는 사람이 좋아할 일은 하지 않는다는 말. 개 꼬리 삼 년 묵어도[두어도] 황모 못 된다 본디 질이 나쁜 것은 아무리 오래 두어도 끝내 좋아지지 않는다. 개 눈에는 똥만 보인다 1.평소에 가까이하고 좋아하던 것이 먼저 눈에 띄는 법이다. 2.질이 낮은 사람에게는 질이 낮은 것밖에 보이지 않는다. 개도 나갈 구멍을 보고 쫓아라 남을 너무 되게 몰아세우면, 도리어 해를 입게 됨을 이르는 말. 개도 닷새가 되면 주인을 안다 배은망덕한 사람을 개만도 못하다고 비꼬아 이르는 말. 개도 무는 개를 돌아본다 온순하기만 해서는 오히려 대접을 못 받고, 당당히 요구를 하고 나서야 정당한 대접을 받는다는 말. 개도 손 들 날이 있다 ☞거지도 손 볼 날이 있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 아주 흔하던 것도 정작 필요해서 찾으려니까 구하기가 어렵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 천하고 고생스럽게 살더라도 죽는 것보다는 사는 것이 낫다는 말. 개똥밭에도 이슬 내릴 날이 있다 역경에 처해 있는 사람도 좋은 때를 만날 때가 있다는 말. 쥐구멍에도 볕 들 날이 있다. 개똥밭에서 인물 난다 변변하지 못한 집안에서도 훌륭한 인물이 난다는 말. 개천에서 용 난다. 개똥참외는 먼저 맡는 이가 임자라 임자 없는 물건은 먼저 발견한 사람이 차지하게 마련이라는 말.  개 머루[약과] 먹듯 1.‘뜻도 모르면서 아는 체함’을 이르는 말. 2.‘내용이 틀리거나 말거나 건성건성 일을 해치움’을 이르는 말. 개 못된 것은 들에 가서 짖는다 ‘제 할 일도 못하면서 쓸데없는 짓만 하고 다니는 사람’을 비꼬아 이르는 말. 개 못된 것은 부뚜막에 올라간다 제 구실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 오히려 미운 짓만 골라서 한다. 개미가 정자나무 건드린다 ‘힘없는 이가 큰 세력에 맞서 덤빔’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개미구멍으로 공든 탑 무너진다 조그마한 실수나 방심으로 큰일을 망쳐 버린다는 말. ≒공든 탑도 개미구멍으로 무너진다. 개미구멍이 둑을 무너뜨린다 작은 결점이라 하여 등한히 하면 그것이 점점 더 커져서 나중에는 큰 결함을 가져오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개미구멍 하나가 큰 제방 둑을 무너뜨린다. 개미구멍 하나가 큰 제방 둑을 무너뜨린다 =개미구멍이 둑을 무너뜨린다. 개미 금탑 모으듯 ‘재물 따위를 조금씩 조금씩 알뜰하게 모음’을 이르는 말. 개미 메 나르듯 [개미가 먹이를 물어 나르듯 한다는 말로] ‘조금씩 가져다 나른 일이 마침내는 매우 많은 것을 가져다 모은 결과가 되었음’을 이르는 말. 개미 쳇바퀴 돌듯 변화나 진보가 없이 늘 제자리에 머무르고 있다는 말. 개 발에 (주석) 편자 [개 발에 주석으로 만든 좋은 편자를 단다는 뜻으로] ‘제격에 어울리지 않게 호사스러운 것을 즐기는 꼴’을 비꼬아 이르는 말. 개밥에 도토리 ‘축에 끼지 못하고 따돌림을 당하는 외로운 처지’를 寬?이르는 말. 개 보름 쇠듯 (한다) 잘 먹고 잘 입을 명절 같은 때에도 잘 먹지 못하고 지낼 때 이르는 말. 개 뼈다귀 은(銀) 올린다 ‘쓸데없는 데에 돈을 들여 치레함’을 이르는 말. 개살구 지레 터진다 능력도 없고 되지 못한 사람이 오히려 먼저 하려고 덤빈다는 말. 개살구도 맛 들일 탓 [시고 떫은 개살구도 자꾸 맛을 들이면 그런대로 먹을 수 있게 된다는 뜻에서] 모든 일은 자기가 하기 나름이라는 말. 개살구 지레 터진다 개 쇠 발괄 누가 알꼬 개와 소의 발괄인 양 ‘두서없이 마구 지껄여 대는 이’를 두고 빈정대어 이르는 말. 개싸움에 물 끼얹는다 시끄러운 개싸움에 물을 끼얹어 더욱 소란해진 것처럼, 사람들이 매우 시끄럽게 떠들어 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시끄러운 개싸움에 물을 끼얹으면 조용해지듯, 같잖은 일로 싸우는 것을 말리려면 보통 방법으로는 되지 않는다는 말.  개싸움에는 모래가 제일이라 맞붙어 싸우는 사람을 말려도 듣지 않을 때 흙을 끼얹으면서 하는 말. 개 잡아먹고 동네 인심 잃고 닭 잡아먹고 이웃 인심 잃는다 개장수도 올가미가 있어야 한다 무슨 일에나 거기에 필요한 준비와 기구가 있어야 한다. 개천에 나도 제 날 탓이라 미천한 집안에 태어나더라도 저만 잘나면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말. 개천에 내다 버릴 종 없다 아무리 못난 사람도 다 쓰일 데가 있다는 말. 개천에서 용 난다 미천한 집안이나 변변하지 못한 부모에게서 훌륭한 인물이 난다는 말. 개털에 벼룩 끼듯 좁은 데에 많은 것이 득시글득시글 몰려 있음을 이르는 말. 복잡하게 뒤섞여 가려내기가 어려움을 이르는 말. 시시하고 너절한 자가 귀찮게 한몫 끼어듦을 이르는 말. 개 팔자가 상팔자라 놀고 있는 개가 부럽다는 뜻으로, 분주하고 고생스러울 때 하는 말. 개하고 똥 다투랴 상대하여 말할 가치도 없을 때, 멸시하는 투로 이르는 말. 객주가 망하려니 짚단만 들어온다 객줏집 칼도마 같다 ‘이마와 턱이 툭 불거져 나오고 코 부근이 움푹 들어간 얼굴’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객지 생활 삼 년에 골이 빈다 객지에서 남이 아무리 잘해 준다 해도 고생이 되므로 여위어서 허울만 남게 된다는 말. 갯고랑을 베게 되었다 갯고랑을 베개 삼아 비참하게 한데에서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는 뜻으로, 욕으로 쓰는 말. 거꾸로 매달아도 사는 세상이 낫다 아무리 어렵고 고생스럽게 살더라도 죽기보다는 사는 편이 낫다는 말. 거둥길 닦아 놓으니까 깍정이가[미친년이] 먼저 지나간다 1.애써서 이루어 놓은 공이 하찮은 일로 하여 전혀 보람 없이 되었을 때 이르는 말. 2.간절히 기다리던 사람은 오지 않고 반갑지도 않은 사람이 나타나 기분을 망쳐 놓는 경우를 이르는 말. 거둥에 망아지 (새끼) 따라다니듯 ‘요긴하지 않은 사람이 쓸데없이 이곳저곳 따라다님’을 빈정대는 말. 거문고 인 놈이 춤을 추면 칼 쓴 놈도 춤을 춘다 자기는 도저히 할 만한 처지가 아닌데도 남이 하는 짓을 덩달아 흉내 내다가 웃음거리가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거미도 줄을 쳐야 벌레를 잡는다 준비가 있어야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말. 거미줄 따르듯 밀접한 관계가 있어서 서로 떨어지지 않고 따라다닌다는 말. 거미줄도 줄은 줄이다 미약하나마 명실(名實)을 갖추었다는 말. 거미줄로 방귀 동이듯 지극히 약한 거미줄로 형체도 없는 방귀를 동여맨다는 뜻으로, 어떤 일에 실속 없이 건성으로만 하는 체하는 모양을 이르는 말. 거미줄에 목을 맨다 =송편으로 목을 따 죽지. 거북이 잔등의 털을 긁는다 ‘구하여도 얻지 못할 곳에 가서 애써 구하려 하는 어리석음’을 이르는 말. 거적문(에) 드나들던 버릇 문을 드나들 때 문을 닫지 않고 다니는 나쁜 버릇을 이르는 말. 거적문에 (국화) 돌쩌귀 ‘제 격에 맞지 않아 어울리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 거지가 도승지를 불쌍타 한다 불쌍한 처지에 있는 사람이 도리어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동정할 때 이르는 말. 거지가 말 얻은 격 [먹이기 힘든 말까지 가지게 되었다는 뜻으로] 괴로운 중에 더욱 괴로운 일이 겹쳐졌을 때 이르는 말. 거지가 밥술이나 먹게 되면 거지 밥한 술 안 준다 거지끼리 자루 찢는다 대수롭지 않은 어떤 결과를 놓고 서로 그 공을 따지며 제각기 더 많이 차지하려고 다툴 때 이르는 말. 거지도 손 볼 날이 있다 [아무리 가난한 집이라도 손님 맞을 때가 있다는 뜻으로] 어렵게 지내더라도 깨끗한 옷가지를 준비해 두어야 한다는 말. 개도 손 들 날이 있다. 거지 옷[베 두루마기] 해 입힌 셈친다 1.대가나 보답을 바라지 않고 은혜를 베풂을 이르는 말. 2.마음에 없는 사람에게 무엇을 주었거나, 뜻하지 않은 손해를 보았을 때 자기 위안 삼아 이르는 말. 거짓말도 잘만 하면 논 닷 마지기보다 낫다 거짓말도 잘하면 처세(處世)에 도움이 된다는 뜻. 걱정도 팔자(다) 아니하여도 될 걱정을 하는 것을 농조로 이르는 말. 건너다보니 절터(라) 1.욕심을 내보아야 자기 것이 될 수 없다는 뜻으로, 마음에는 있으나 불가능할 때 이르는 말. 2.내용을 다 보지 않고 겉으로만 보아도 대강 짐작할 수 있다는 말. 건넛산 보고 꾸짖기 ‘당자가 없는 데서 그를 헐뜯거나 욕하는 짓’을 이르는 말. 건더기 먹은 놈이나 국물 먹은 놈이나 잘 먹은 사람이나 못 먹은 사람이나 결과적으로 배고파지기는 마찬가지라는 말. 잘산 사람이나 못산 사람이나 결국은 마찬가지라는 말. 걷기도 전에 뛰려고 한다 쉽고 작은 일도 못하면서 더 어렵고 큰일을 하려 한다. 걸레를 씹어 먹었나 잔소리가 아주 심함을 핀잔하는 말. 걸어가다가도 말만 보면 타고 가자고 한다 제힘으로 능히 해 나갈 수 있는 경우에도 구실만 있으면 공연히 남을 부려 먹으려고 괴롭게 구는 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걸음새 뜬 소가 천 리를 간다 소는 비록 걸음이 뜨기는 하지만 한결같이 꾸준히 걸어가 마침내는 천 리를 간다는 뜻으로, 꾸준히 인내하면 큰 성과를 낼 수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검둥개 돼지 편이다 인연이 있는 데로 따르게 마련이라는 말. 검둥개 멱 감듯[감기듯] 1.어떤 일의 보람이 나타나지 않을 때 이르는 말. 2.‘악인이 끝내 제 잘못을 뉘우치지 못함’을 이르는 말. 검은 고기 맛 좋다[있다] 한다 ‘겉모양만 가지고 내용을 속단하지 마라’는 훈계의 말. 검은 고양이 눈 감은 듯 [검은 고양이가 눈을 떴는지 감았는지 얼른 알아보기 어렵듯이] ‘경계가 뚜렷하지 않아 분간하기 어려울 때’를 이르는 말. 검은 머리 가진 짐승은 구제 말란다 겉보리 단 거꾸로 묶은 것 같다 겉보리를 베서 단을 만들 때 거꾸로 묶어 놓으면 단이 허술해질 뿐만 아니라 풀어지기 쉽다는 뜻으로, 안정감이 없거나 어설프게 된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겉보리 돈 사기가 수양딸로 며느리 삼기보다 쉽다 겉보리는 식량 사정이 어려운 초여름에 수확하기 때문에 팔아서 돈으로 만들기 쉽다는 뜻으로, 아주 하기 쉬운 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겉보리 서 말만 있으면 처가살이하랴 여북하면 처가살이를 하겠느냐는 말. 처가살이는 할 것이 못 됨을 이르는 말.  겉보리 술 막치 사람 속인다 겉보리 술지게미도 많이 먹으면 취하듯이, 겉보기와는 달리 맹랑한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겉보리를 껍질째 먹은들 시앗이야 한집에 살랴 아무리 고생을 하고 살망정 남편의 첩과 한집에서 살 수는 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게 새끼는 집고, 고양이 새끼는 할퀸다 ‘천성(天性)이나 본능은 어쩔 수 없음’을 이르는 말. 게으른 놈[일꾼] 밭고랑 세듯 게으름을 피우며 그 일에서 빨리 벗어날 궁리만 한다는 말. 게으른 선비 책장 넘기기. 게으른 선비 책장 넘기기 ☞게으른 놈[일꾼] 밭고랑 세듯. 게 잡아 물에 넣는다 ‘소득도 없이 헛수고만 함’을 이르는 말. 겨 묻은 개가 똥 묻은 개를 흉본다[나무란다] 자기에게 결점이 있는 것은 모르고, 남의 결점만 흉본다(나무란다). 겨 주고 겨 바꾼다 ‘보람 없는(쓸데없는) 짓을 함’을 이르는 말. 겨울바람이 봄바람보고 춥다 한다 ‘자기 허물을 생각지 않고 오히려 남의 작은 허물을 나무람’을 이르는 말. 겨울이 다 되어야 솔이 푸른 줄 안다 사람은 위급하거나 어려운 때를 당해 보아야 비로소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다는 말. 겨울이 지나지 않고 봄이 오랴 ‘급하다고 해서 무슨 일이나 억지로 할 수 없음’을 이르는 말. 겨울 화롯불은 어머니보다 낫다 경신년 글강 외듯 1.‘거듭 신신당부함’을 이르는 말. 2.‘하지 않아도 될 말을 거듭 되풀이함’을 이르는 말. 경자년 가을보리 되듯 경자년에 가을보리가 제대로 익지 못하여 보리의 모양을 이루지 못하였다는 뜻으로, 사람이나 사물이 잘될 듯이 보이다가 보잘것없이 되어 버림을 비웃는 말. 경점 치고 문지른다 ‘일을 그르쳐 놓고 그 잘못을 얼버무리려 함’을 이르는 말 경주인 집에 똥 누러 갔다가 잡혀간다 경주인이 위에 바칠 것을 못하고 있으면 차사(差使)가 와서 그 집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다 잡아가면서 똥 누러 갔던 사람까지도 잡아갔다는 뜻으로, 애매한 일로 봉변을 당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경치고 포도청 간다 [곤욕을 당하고 또 포도청에 잡혀가 벌을 받는다는 뜻으로] 매우 혹독한 벌을 받음을 이르는 말. 곁방 년이 코 곤다[구른다] =곁방살이 코 곤다. 곁방에서 불난다 남에게 세를 내준 곁방에서 잘못하여 불이 일어난다는 뜻으로, 평소에 눈에 거슬리던 데서 사고가 생겨 더욱 밉다는 말. 곁집 잔치에 낯을 낸다 제 물건은 쓰지 않고 남의 물건으로 생색을 낸다는 말. 계란 속에서 소 잡을 공론을 한다 ‘섬 속에서 소 잡아먹겠다’의 북한 속담.  계란에도 뼈가 있다 늘 일이 잘 안되던 사람이 모처럼 좋은 기회를 만났건만, 그 일마저 역시 잘 안됨을 이르는 말. 계 타고 집 판다 처음에는 이(利)를 보았다가 나중에는 도리어 손해를 입는다는 말. 계집 둘 가진 놈의 창자는 호랑이도 안 먹는다 본처와 첩을 데리고 사는 사람은 몹시 속이 썩기 때문에 그 창자가 썩어서 호랑이도 안 먹는다는 뜻으로, 처첩을 거느리고 살자면 속이 썩어 편할 날이 없다는 말. 계집 때린 날 장모 온다 일이 공교롭게도 잘 안 되어서 낭패를 본다는 말. 계집 바뀐 건 모르고 젓가락 짝 바뀐 건 안다 큰 변화는 모르고 지내면서, 소소하게 달라진 것에 대해서는 떠드는 사람을 핀잔하는 말. 계집애가 오랍아 하니 머슴애도[사내도] 오랍아 한다 계집아이가 ‘오빠’라고 부른다고 하여 남자도 ‘형’이라고 해야 할 것을 덩달아 ‘오빠’라고 부른다는 뜻으로, 제 주견이 없이 덮어놓고 남이 하는 대로 따라 행동함을 비웃는 말. 계집은 남의 것이 곱고 자식은 제 새끼가 곱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정은 더할 나위가 없음을 이르는 말. 남의 여자를 넘겨다보며 자기 아내에 대하여 불만을 가지는 실없는 남자의 마음을 이르는 말.  계집은 상을 들고 문지방을 넘으며 열두 가지 생각을 한다 아내가 남편에게 할 이야기가 많지만 말할 기회가 없어 못하고 있다가, 밥상을 들고 들어가면서 여러 가지 할 말을 생각한다는 말. 여자는 언제나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을 한다는 말. 계집의 곡한[독한] 마음 오뉴월에 서리 친다 여자가 한번 마음이 틀어져 미워하거나 원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릿발이 칠 만큼 매섭고 독하다는 말. 계집의 말은 오뉴월 서리가 싸다 =계집의 악담은 오뉴월에 서리 온 것 같다. 계집의 매도 너무 (많이) 맞으면 아프다 비록 가깝고 친한 사이라도 예의를 잃지 말라는 말. 계집의 악담은 오뉴월에 서리 온 것 같다 여자가 앙심을 품고 하는 악담은 오뉴월에 서리를 치게 할 만큼 매섭고 독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싸늘하게 만든다는 말. ≒계집의 말은 오뉴월 서리가 싸다. 계집의 얼굴은 눈의 안경 여자의 얼굴이 곱고 미운 것은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는 말. 계집의 주둥이는 사기 접시를 뒤집어 놓는다 여자들의 말시비가 사기 접시까지 뒤집힐 정도로 심하다는 말.  계집이 늙으면 여우가 된다 여자는 나이를 먹을수록 요망스러워진다는 말. 계집 입 싼 것 입이 가볍고 말이 헤픈 여자는 화를 일으키는 일이 많으므로, 아무짝에도 쓸데없고 도리어 해롭기만 하다는 말. 곗술에 낯 내기 공동의 소유물을 가지고, 마치 자기가 베푸는 것처럼 생색을 낸다는 말.  고기는 씹어야 맛을 안다 겉으로 핥는 것처럼, 일을 건성 보아서는 그 참뜻을 모른다는 말. 고기는 씹어야 맛이요, 말은 해야 맛이라 말도 할 말이면 시원히 해버려야 좋다는 말. 고기도 저 놀던 물이 좋다 낯익은 곳이 역시 좋다는 말. 고기 말린 손 국 솥에 씻으랴?  고기 맛본 중 뒤늦게 쾌락을 맛본 사람이 제정신을 못 차리는 경우를 두고 하는 말. 고기 한 점이 귀신 천 마리를 쫓는다  고깔 뒤의 군 헝겊 필요도 없는 것이 늘 붙어 다녀 귀찮게 구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고두리에 놀란 새 (고두리살에 맞은 새처럼) 놀랍고 두려워 어찌할 바를 모르고 떨고 있는 경우를 두고 이르는 말. 고드름 초장 같다 겉보기에는 훌륭한 것 같으나 실지로는 아무 맛도 없는 음식이나 또는 그와 같이 실속이 없는 일을 이르는 말. 고래 그물에 새우가 걸린다 큰 것을 목적하였는데 결국 얻은 것은 하찮은 것이었음을 뜻함.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 ‘세력 있거나 강한 자들의 싸움에 공연히 약한 자가 중간에 끼여 해를 입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고리백장 내일[낼] 모레 옛날에 고리장이는 늘 기한을 어겨 약속한 날을 지키지 않았다는 데서 나온 말로, 약속한 기한을 어김을 보고 핀잔하는 말. 고린 장이 더디 없어진다 나쁜 것이 빨리 없어지지 아니하고 도리어 오래 간다는 말. 고뿔도 제가끔 앓으랬다[앓랬다] 감기조차도 따로따로 앓으라는 뜻으로, 좋은 일이건 궂은 일이건 간에 각자가 저마다 독자적으로 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이르는 말. ≒감기 고뿔도 제가끔 앓으랬다. 고삐가 길면 밟힌다 =꼬리가 길면 밟힌다. 고사리는 귀신도 좋아한다 예로부터 고사리는 제상을 받으러 온 귀신도 다 좋아해서 제상에 빼놓지 않고 올려놓았다는 데서, 우리나라 사람 모두가 몹시 즐겨 먹는 음식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고사리도 꺾을 때 꺾는다 무슨 일이든 다 하여야 할 시기가 있는 것이니 그때를 놓치지 말고 하여야 한다는 말. 무슨 일을 시작하면 그 기회를 놓치지 말고 해치우라는 말. 고생 끝에 낙이 온다[있다] 어려운 일이나 고된 일을 겪은 뒤에는 반드시 즐겁고 좋은 일이 생긴다는 말. 고생도 벌어 할 탓 같은 고생을 하더라도 자기가 어떻게 처신하는가에 따라 고생이 좀 덜할 수도 있고 더할 수도 있다는 말.  고생도 해야 정도 안다 사람은 자기가 고생을 체험해 보아야 남의 어려운 사정도 알고 돌보아 주게 됨을 이르는 말.  고생은 주야 고생이요, 호강은 주야 호강이라 고생하는 사람은 일마다 고생스럽고, 호강하는 사람은 일마다 호강스럽다는 말. 고생을 밥 먹듯 하다 자꾸만 고생을 하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고생을 사서[벌어서] 한다 잘못 처신한 탓으로 하지 않아도 될 고생을 하게 됨을 이르는 말. 여러 가지 정황을 보고는 자신이 스스로 어려운 일을 맡아서 고생을 한다는 말.  고수머리 옥니박이하고는 말도 말랬다 고수머리인 사람과 옥니박이는 흔히 인색하거나 각박하니 상대하지 말라는 말. 고수머리하고는 말도 말랬다 ‘고수머리 옥니박이하고는 말도 말랬다’의 북한 속담. 고슴도치 외 걸머지듯 ☞고슴도치 외 따 지듯. 고슴도치 외 따 지듯 ‘여기저기에서 빚을 많이 짊어짐’을 이르는 말. 고슴도치 외 걸머지듯. 고슴도치도 제 새끼가 함함하다면 좋아한다 ‘칭찬 받을 만한 일이 못 되더라도 칭찬해 주면 기뻐함’을 이르는 말.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고 한다 누구나 제 자식은 귀여워한다는 뜻. 고약으로는 속병을 고치지 못한다 겉에 바르는 고약으로는 몸 안의 속병을 고칠 수 없다는 뜻으로, 알맞은 대책이 아니고서는 일을 성사시킬 수 없음을 이르는 말. 고양이 달걀 굴리듯 ‘어떤 일을 재치 있게 해 나감’을 이르는 말. 고양이 덕과 며느리 덕은 알지 못한다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실행하기가 매우 어려운 일을 공연히 의논함’을 이르는 말. 고양이 보고 반찬 가게 지키라는 격(이다) 지켜 달라고 부탁했다가 도리어 도둑을 맞을 일이라는 뜻. 고양이 앞에 고기반찬 ‘제가 워낙 좋아하는 것이라 남이 손댈 겨를도 없이 후딱 차지해 버림’을 이르는 말. 고양이 앞에 쥐걸음 ‘강자 앞에서 꿈쩍도 못하는 약자의 모습’을 이르는 말. 고양이 죽은 데 쥐 눈물만큼 고양이 쥐 생각 ‘속으로는 해칠 생각이면서도 겉으로는 생각해 주는 척함’을 이르는 말. 고와도 내 임 미워도 내 임 고욤 일흔이 감 하나만 못하다 자질구레한 것이 아무리 많아도 큰 것 하나만 못하다는 말. 고운 사람 미운 데 없고 미운 사람 고운 데 없다 고운 일 하면 고운 밥 먹는다 고자쟁이가 먼저 죽는다 남에게 해를 입히려고 고자질을 하는 사람이 남보다도 먼저 해를 입게 된다는 말. 고쟁이를 열두 벌 입어도 보일 것은 다 보인다 아무리 여러 번 감싸도 정작 가릴 것은 못 가렸다는 뜻으로, 요점을 얻지 못했다는 말. 일을 서투르게 하면 하지 아니한 것만 못하다는 말. 고지기 주는 것은 휘에 치면 되지 고지기의 뒷주머니에 밀어 넣는 것은 스무 말이나 열닷 말들이 ‘휘’에 비겨서 말한다면 열 홉들이 ‘되’에 불과하다는 뜻으로, 엄청나게 뜯길 수 있는 앞날의 손해를 막기 위하여 먼저 얼마간 손해를 보는 것은 손해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보잘것없는 것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고추는 작아도 맵다 ‘몸집이 작아도 힘이 세거나 하는 짓이 야무진 사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고추장 단지가 열둘이라도 서방님 비위를 못 맞춘다 성미가 몹시 까다로워 비위 맞추기가 어려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물질만으로는 사람의 마음을 사기가 어려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고추장이 밥보다 많다 밥을 비빌 때 밥보다 고추장이 많다는 뜻으로, 곁에 딸린 것이 주된 것보다 더 많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고향을 떠나면 천하다 제 고향이나 제 집을 떠나 낯선 고장에 가면 자연 천대를 받기 쉬우며 고생이 심하고 외롭다는 말. 곡식과 사람은 가꾸기에 달렸다 곡식은 사람의 손이 많이 가고 부지런히 가꾸어야 잘되고 사람은 어려서부터 잘 가르치고 이끌어야 훌륭하게 된다는 말. ≒사람과 곡식은 가꾸기에 달렸다. 곡식에 제비 같다 제비는 곡식을 안 먹는다는 데서, 청렴한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곡식은 남의 것이 잘되어 보이고 {자식은} 제 자식이 잘나 보인다 =자식은 내 자식이 커 보이고 벼는 남의 벼가 커 보인다. 곡식은 될수록 준다 곡식은 이리저리 될수록 준다는 말. 무엇이나 여기저기 옮겨 담으면 조금이라도 줄지 늘지는 아니한다는 말. 곡식 이삭은 잘 될수록 고개를 숙인다 곤자소니에 발기름이 끼었다 문에 치는 발처럼 죽죽 줄이 간 기름이 창자에 끼었다는 뜻으로, 부귀를 누리고 크게 호기를 부리며 뽐냄을 이르는 말. 곤장에 대갈 바가지 매를 치는 곤장에 대갈이 숭숭한 방망이라는 뜻으로, 곤장으로 매를 무수히 맞으며 지독한 곤경을 치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곤장을 메고 매 맞으러 간다 공연한 일을 하여 스스로 화를 자초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곤쟁이 주고 잉어 낚는다 곤쟁이로 된 미끼를 주고 큰 잉어를 잡는다는 뜻으로, 적은 자본을 들여서 큰 이익을 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곧은 나무 쉬[먼저] 꺾인다[찍힌다] 똑똑한 사람이 쉬 죽거나 먼저 따돌림을 당한다는 말. 골 나면 보리 방아 더 잘 찧는다 골무는 시어미 죽은 넋이라 바느질하다가 빼어 놓은 골무는 얼른 다시 찾아지지 않고, 일어서서 옷이나 일감을 털어야 나온다는 말. 곯아도 젓국이 좋고 늙어도 영감이 좋다 곪아 빠져도 마음은 조방에 있다 상처가 곪아 터져서 꼼짝 못하는 처지에 있으면서도 마음은 조방꾸니 노릇을 하는 데 가 있다는 뜻으로, 제 처지는 생각하지 않고 힘에 겨운 일을 자꾸만 하려고 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곪으면 터지는 법 살이 곪으면 마침내 터지고 말듯이, 원한이나 갈등이 쌓이고 쌓이면 마침내 터지고야 만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곪은 염통이 그냥 나을가 이미 곪은 염통은 그냥 나을 수 없으며 터지고야 만다는 뜻으로, 잘못된 일은 아무리 감싸도 결국에는 드러나고야 만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곰 가재 뒤듯 ‘느릿느릿하게 행동함’을 이르는 말. 곰배팔이 담배 목판 끼듯 무슨 물건을 옆에 꼭 끼고 있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곰배팔이 파리 잡듯 하는 행동이 몹시 거북스럽고 어색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곰 창날 받듯 ‘우둔하고 미련하여, 자기에게 해가 되는 일을 스스로 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곰이라 발바닥(을) 핥으랴 먹을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는 말. 곱사등이 짐 지나 마나 일을 해도 하지 않은 것이나 다름이 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곱슬머리 옥니박이하고는 말도 말랬다 곱슬머리인 사람과 옥니박이인 사람은 흔히 인색하고 각박하다는 말. 공것 바라기는 무당의 서방(이라) ‘공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좋아하는 사람’을 빗대어 이르는 말. 공것이라면 양잿물도 먹는다 [공짜라면, 먹으면 죽는 양잿물까지도 먹는다는 뜻으로] ‘공짜라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거두어들이는 것’을 비꼬아 이르는 말. 공교하기는 마디에 옹이라 나무의 마디에 공교롭게도 또 옹이가 박혔다는 뜻으로,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고 이러저러한 장애가 공교롭게 겹침을 이르는 말. 공궐 지킨 내관의 상 빈 궁궐을 지킨 내시부의 관원 같은 꼴이라는 뜻으로, 근심이 가득 찬 사람의 슬프고도 처량한 얼굴 표정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공든 탑이 무너지랴 정성을 기울여 이룩해 놓은 일은 그리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말. 공자 앞에서 문자 쓴다 지식이 부족한 사람이 가소롭게도 자기보다 유식한 사람 앞에서 아는 체함을 이르는 말. 공자 왈 맹자 왈 (하는 식) 실천은 없이 헛된 이론만을 일삼는 태도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공자, 맹자를 거론하며 유학의 가르침을 아는 체함을 이르는 말. 글의 내용도 이해하지 못하면서 기계적으로 말마디나 외면서 교조주의적으로 학습하는 태도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공자도 제 사는 골에 먼저 비 오라고 했다 성인 공자도 기우제를 지낼 때에는 자신이 사는 고장에 먼저 비가 오게 해달라고 빌었다는 뜻으로, 사람은 누구나 자기와 가까운 문제부터 해결하려고 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공작 기계(를) 새끼 치다 짐승이 새끼를 낳듯이 매개 공작 기계가 비슷한 유형의 새로운 공작 기계를 만들어 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공중을 쏘아도 알과녁만 맞힌다 별로 애쓰지 않고 한 일이 제대로 잘 이루어지게 됨을 이름. 공짜라면 당나귀도 잡아먹는다 =공것이라면 비상[양잿물]도 먹는다[삼킨다]. 공짜라면 양잿물이라도 먹는다 =공것이라면 비상[양잿물]도 먹는다[삼킨다]. 곶감 꼬치에서 곶감 빼[뽑아] 먹듯 ‘애써 모아 둔 것을 조금씩 쉽게 헐어 써 버림’을 이르는 말. 과물전 망신은 모과가 시킨다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킨다. 과부 사정[설움]은 과부가 안다 남의 사정은 그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이라야 안다는 말. 과부댁 종놈은 왕방울로 행세한다 남자 주인 없는 과부 집에서 사내 종놈은 큰소리로 떠드는 것으로 한몫을 본다는 뜻으로, 실속은 없으나 공연히 한번 떠들어 대는 것으로 일삼는다는 말. 곽란에 약 지으러 보내면 좋겠다 급히 서둘러야 할 경우에도 미련하여 행동이 민첩하지 못함을 비꼬는 말. 곽란에 죽은 말 상판대기 같다 얼굴빛이 푸르뎅뎅하고도 검붉다는 말. 관가 돼지 배 앓는 격 ‘근심이 있으나 누구 하나 알아주는 사람이 없이 끙끙 앓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관 속에 들어가도 막말은 말라 관찰사 닿는 곳에 선화당 관찰사가 가는 곳마다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호화롭게 지내는 것이 마치 자신의 집무실인 선화당에 있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가는 곳마다 호사를 누리는 복된 처지를 이르는 말. 관청 뜰에 좁쌀을 펴 놓고 군수가 새를 쫓는다 군수가 할 일이 없어서 뜰에 좁쌀을 펴 놓고 모여드는 새를 쫓는다는 뜻으로, 관아에 너무나 할 일이 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할 일이 너무 없어서 일부러 일감을 만들어 심심풀이를 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관청에 잡아다 놓은 닭 영문도 모르고 낯선 곳으로 끌려와서 어리둥절해 있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괄기는 인왕산 솔가지라 성질이 몹시 거세고 급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성격이 너그럽지 못하고 몹시 깐깐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광에서 인심 난다 먹고살 만큼 넉넉해야만 남을 동정하게 된다는 말. 광주 생원 첫 서울 처음 대하는 일이라 신기하여 정신이 얼떨떨하고 어리둥절해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광주리에 담은 밥도 엎어질 수 있다 틀림없을 듯한 것도 실수하여 그르칠 수가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교천 부자가 눈 아래로 보인다 벼락부자가 호기를 부림을 이르는 말. 구년지수 해 돋는다 오랜 세월을 두고 간절히 바라던 일이 이루어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구년지수 해 바라듯 =구 년 홍수에 볕 기다리듯. 구년 홍수에 햇빛 기다리듯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까 다소의 장애가 있더라도, 해야 할 일이나 하고 싶은 일은 하게 마련이라는 뜻. 구두장이 셋이 모이면 제갈량보다 낫다 구렁이 담 넘어가듯 ‘일 처리를 분명하고 깔끔하게 하지 못하고 슬그머니 얼버무려 버림’을 탓하여 하는 말. 구레나룻이 대 자 오 치라도 먹어야 량반 수염을 길게 기르고 점잔을 빼는 양반도 먹지 않고서는 살 수 없다는 뜻으로, 체면을 차릴 것 없이 먹는 것이 제일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구르는 돌에 이끼가 안 낀다 활동하지 않으면 폐인이 된다는 말. 굴러 온 돌이 박힌 돌 뺀다 딴 곳에서 들어온 사람이 본디부터 있던 사람을 내쫓는다는 말. 구름 갈 제 비가 간다 둘이 으레 같이 붙어 다녀 서로 떠나지 않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구름 따라 룡이 가고 바람 따라 구름 간다 =바람 따라 구름 가고 구름 따라 룡이 간다.  구름 없는 하늘에 비 올까 필요한 조건 없이 결과가 이루어지는 법이 없음을 강조하여 이르는 말. 구름 잡아 타고 하늘로 날겠다고 한다 하는 생각이 너무나도 터무니없는 헛된 망상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구름을 표하고 물건 파묻기 흔적도 없이 곧 사라지고 말 구름을 표로 삼아 물건을 파묻는다는 뜻으로, 허황한 대상으로 표를 삼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구름이 자주 끼면 비가 온다 일정한 징조가 있으면 그에 따르는 결과가 있기 마련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구름장에 치부(했다) 흘러가는 구름장에 적어 놓는다는 뜻으로, 없어질 데다 기록해 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보고 들은 것을 쉽게 잊어버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구린 입 지린 입 자기의 의견을 이렇다든지 저렇다든지 하고 나타내는 말 또는 그렇게 말하는 입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하는 말이 시시하고 더러워서 그런 말을 하는 입조차도 구리고 지리다는 말.  구린 입도 안 떼다 이렇다든지 저렇다든지, 무엇이든 자기 의견을 말해야 할 사람이 입을 다물고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구멍 보아 가며 말뚝[쐐기] 깎는다 형편을 보아 가며 알맞게 일을 꾸려 나간다는 말. 구멍에 든 뱀 길이를 모른다  구멍은 깎을수록 커진다 허물은 감싸고 얼버무리려고 하면 할수록 더 드러난다는 말. 구복이 원수(라) 먹고살기 위하여 어쩔 수 없이 잘못을 저질렀음을 이르는 말. (참고)목구멍이 포도청. 구부러진 송곳 있기는 있으되 쓸모없게 된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쓸모 있게 만들어 놓아야 가치가 있다는 말. 구시월 세단풍(細丹楓) ‘당장 보기는 좋아도 곧 흉하게 될 것’을 비유하는 말. 구제할 것은 없어도 도둑 줄 것은 있다 1.아무리 가난한 집이라도 도둑맞을 것은 있다는 말. 2.남을 구제할 생각만 있다면 얼마간이라도 도와줄 것은 있다는 말. 구운 게도 다리를 떼고 먹는다 국상에 죽산마 지키듯 무엇인지도 모르고 남이 시키는 대로 멀거니 서서 지켜보고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국수 먹은 배 실속 없고 헤프다는 뜻. 국수 잘하는 솜씨가 수제비 못하랴 어려운 일을 잘하는 사람이면 쉬운 일은 못할 리가 없다는 ? 국에 덴 놈 물[냉수] 보고도 분다[놀란다] 한 번 혼이 나면 그와 비슷한 것만 보아도 겁부터 낸다는 말. 군말이 많으면 쓸 말이 적다 하지 않아도 될 말을 이것저것 많이 늘어놓으면 그만큼 쓸 말은 적어지게 됨을 경계하여 이르는 말. 군밤 둥우리 같다 옷을 입은 맵시가 헐렁하여 맞지 않음을 놀리는 말. 군불에 밥 짓기 ‘어떤 일에 곁따라 다른 일을 쉽게 이룸’을 이르는 말. 굳은 땅에 물이 괸다 검소하고 절약하는 마음이 단단한 사람이라야 재산을 모을 수 있다는 말. 단단한 땅에 물이 괸다. 굴뚝 막은 덕석 (같다) ‘해어지고 더러운 옷’을 이르는 말. 굴러 온 돌이 박힌 돌 뺀다 딴 곳에서 들어온 사람이 본디부터 있던 사람을 내쫓는다는 말. 굴우물에 돌 넣기 ‘아무리 하여도 끝이 없는 일’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굴우물에 말똥 쓸어 넣듯 한다 ‘음식을 가리지 않고 마구 먹는 일’을 조롱하여 이르는 말. 굵은베가 옷 없는 것보다 낫다 아주 없는 것보다는 하찮은 것이라도 있는 것이 낫다는 말. 굶기를 밥 먹듯 한다 자주 굶는다는 말. 굶어 죽기는 정승 하기보다 어렵다 아무리 가난해도 근근이 목숨만은 이어갈 수 있다는 말. 굼벵이 천장(遷葬)하듯 ‘어리석은 사람이 일을 지체하며 빨리 이루지 못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굼벵이가 지붕에서 떨어질 때는 생각이 있어서 떨어진다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 1.아무 능력이 없는 사람이 남의 이목을 끌 만한 일을 함을 조롱조로 이르는 말. 2.무능한 사람도 한 가지 재주는 있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굽은 나무가 선산(先山)을 지킨다 쓸모없어 보이는 것이 도리어 제구실을 한다는 뜻. 굽은 지팡이 그림자도 굽어 비친다  굿 구경하려면 계면떡이 나오도록 해라 굿 뒤에 날장구 (친다) ‘일이 끝난 다음에 쓸데없는 문제로 떠들고 나섬’을 이르는 말.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지 남의 일에 쓸데없이 간섭하지 말고 자기 이익이나 얻도록 하라는 말. 굿하고 싶어도 맏며느리 춤추는 꼴 보기 싫다 궁둥이에서 비파 소리가 난다 바쁘게 쏘다닌다는 뜻. 궁서가 고양이를 문다 =궁지에 빠진 쥐가 고양이를 문다. 궂은고기 먹은 것 같다 마음에 꺼림칙한 느낌이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궂은일에는 일가만 한 이가 없다 상사에는 일가가 서로 도와 초상을 치러 낸다는 말. 권에 띄어[못 이겨] 방립 산다[쓴다] ‘남이 권하는 말이면 무엇이나 잘 듣는 사람’을 두고 이르는 말. 궐련 마는 당지(唐紙)로 인경을 싸려 한다 될 리도 없는 무리한 짓을 하려고 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귀가 보배라 배우지 않았으나 얻어들어서 아는 경우를 농으로 이르는 말. 귀둥이가 천(賤)둥이 된다 귀염을 받고 자란 아이가 커서 천대받는 사람이 되는 수도 있음을 이르는 말. 귀때기가 떨어졌으면 이다음 와 찾지 서둘러 급히 떠날 때에 하는 말. 우물쭈물하지 말고 급히 떠나라는 말. 귀뚜라미 풍류(風流)하다[풍류한다] ‘게을러서 농사일에 손을 대지 아니하는 것’을 비꼬아서 이르는 말. 귀 막고 방울 도둑질한다 귀머거리 삼 년이요, 벙어리 삼 년(이라) 여자는 시집가서는, 남의 말을 듣고도 못 들은 체하고,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으로, 시집살이의 어려움을 이르는 말. 귀먹은 중 마 캐듯 남이 무슨 말을 하거나 말거나 알아듣지 못한 체하고 저 하던 일만 그대로 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귀신은 경문에 막히고 사람은 인정에 막힌다  귀신이 곡할 노릇[일] 일이 하도 신기하여 귀신도 탄복할 만하다는 말. 귀신이 씻나락 까먹는 소리 이치에 닿지 않는 엉뚱하고 쓸데없는 말.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이렇게도 저렇게도 둘러대기에 달렸다는 뜻. 귀여운 애한테는 매채를 주고 미운 애한테는 엿을 준다 =귀한 자식 매 한 대[개] 더 때리고 미운 자식 떡 한 개 더 준다. 귀여운 자식 매로 키운다 =귀한 자식 매로 키워라. 귀염은 제 등에 짊어지고 다닌다 귀한 자식 매 한대 더 때리고 미운 자식 떡 한개 더 준다 귀염을 받고 못 받는 것은 자신의 행동에 달려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귓구멍에 마늘쪽 박았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에게 핀잔하는 투로 이르는 말. ≒귀에다 말뚝을 박았나. 귓구멍이 나팔통 같다 귓구멍이 크다는 뜻으로, 남의 말을 잘 듣는 사람을 두고 이르는 말. 귓구멍이 도자전 마룻구멍이다 =귀가 보배라[도자전이라/산홋가지라]. 그 나물에 그 밥 서로 격이 어울리는 것끼리 짝이 된 경우에 하는 말. 그날 액은 독 안에 앉아도 오고야 만다 나쁜 운수는 어떻게 해서도 피할 수 없다는 말. 그렇게 하면 뒷간에 옻칠을 하나 그렇게 하면 뒷간에까지 값비싼 옻칠을 하고 살겠느냐는 뜻으로, 매우 인색하게 굴면서 재물을 모으는 사람을 비꼬는 말. 그물에 든 고기[새/토끼] 신세 이미 잡힌 몸이 되어 벗어날 수 없는 신세. 그물에 든 고기요 쏘아 놓은 범이라 그물이 삼천 코라도 벼리가 으뜸 아무리 사람이 많아도 통솔자가 있어야 한다는 말. 그믐달 보자고 초저녁부터 나선다 지나치게 일찍 서두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그믐밤에 홍두깨 내민다 뜻밖의 일이 갑작스레 일어난다는 뜻. 그 아버지에 그 아들 여러 점에서 아들이 아버지를 많이 닮은 경우에 하는 말. 근심에 마르고[여위고] 설음에는 살찐다 드러내 놓고 슬퍼하는 것보다 속으로 은근히 근심하는 것이 더 애타고 몸도 축난다는 말. ≒설음에는 살찌고 근심에는 여윈다. 근원 벨 칼이 없고 근심 없앨 약이 없다 내외간의 금실은 끊을 수 없으며, 근심 걱정은 언제나 따른다는 말. 글 못한 놈 붓 고른다 학식이나 기술이 모자라는 사람일수록 공연한 트집을 잘 잡는다는 말. 글 속에도 글 있고 말 속에도 말 있다 말과 글은 그 속뜻을 잘 음미해 보아야 한다는 말. 글에 미친 송 생원 ‘다른 일은 돌보지 않고 글공부만 하는 사람’을 조롱하여 이르는 말. 글 잘 쓰는 사람은 필묵을 탓하지 않는다 긁어 부스럼 ‘공연히 건드려서 만들어 낸 걱정거리’를 이르는 말. 금강산 그늘이 관동 팔십 리 (간다) 위대한 것의 영향력은 아주 먼 데까지 미침을 이르는 말. 금강산도 식후경 아무리 재미있는 일이라도 배가 불러야 흥이 난다는 말. 금관자 서슬에 큰기침한다 나쁜 짓을 하고도 벼슬 높고 돈이 있는 유세로 도리어 큰소리를 하며 남을 야단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금년 새 다리가 명년 소 다리보다 낫다 앞으로 어찌 될지 모르는 큰 것보다는 비록 적지만 당장 눈앞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더 이롭다는 말. 금도 모르면서 싸다 한다 내용도 모르고 아는 체하다. 금돈도 안팎이 있다 아무리 좋고 훌륭한 것이라도 안과 밖의 구별이 있다는 말. 금방 먹을 떡에도 소를[살을] 박는다 아무리 급해도 순서를 밟아야 한다는 말. 금사망을 썼다 무엇에 얽히어 헤어날 수 없다는 뜻. 금새도 모르고 싸다 한다 ‘금도 모르면서 싸다 한다’의 북한 속담. 금이야 옥이야 ‘몹시 아끼고 귀여워하는 모양’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금일 충청도 명일 경상도 일정한 주소가 없이 이곳저곳으로 정처 없이 떠돌아다님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금정 놓아 두니 여우가 지나간다 일이 낭패로 돌아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급하기는 우물에 가서 숭늉 달라겠다 ‘성격이 매우 급하거나 일을 하는 데 매우 조급해 하는 것’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급하면 관세음보살을 왼다 급하면 바늘허리에 실 매어 쓸까 아무리 급해도 밟아야 할 절차는 밟아야 한다는 뜻. 기갈 든 놈은 돌담조차도 부순다 사람이 몹시 굶주리면 상식으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일까지도 저지르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기갈이 감식 배가 고프고 목이 마르면 무엇이나 맛있다는 말. 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 잘하는 사람 위에 더 잘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 기도[기지도] 못하고 뛰려 한다 ‘제 실력 이상의 일을 하려는 사람’을 비웃는 말. 기둥보다 서까래가 더 굵다 기둥을 치면 대들보가[들보가/봇장이] 운다[울린다] 직접 말하지 않고 간접으로 넌지시 말하여도 알아듣는다는 말. 기러기는 백 년의 수를 갖는다 천한 새도 그만큼 오래 사는 것이니, 얕보고 함부로 굴면 안 된다는 말. 기르던 개에게 다리를 물렸다 은혜를 베푼 사람으로부터 큰 화를 입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기른 개가 아들 불알 잘라 먹는다. 기른 개가 아들 불알 잘라 먹는다 =기르던 개에게 다리를 물렸다. 기름 도적해 먹은 개 눈같이 헤번덕거린다 개가 기름을 도둑질하여 먹고 고소한 맛에 홀려 먹을 것이 더 없나 하고 기웃거린다는 뜻으로, 남의 눈치를 살피며 불안스럽게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기름떡 먹기 매우 쉽고도 즐거운 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기름 맛을 본 개 =기름 먹어 본 개(같이). 기름 먹어 본 개(같이) 기름 맛을 본 개가 자꾸 기름을 먹고 싶어 한다는 뜻으로, 자주 어떤 일을 또 하고 싶어 하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기름 맛을 본 개. 기름 먹인 가죽이 부드럽다 뇌물을 쓰면 일이 순조롭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기름 엎지르고 깨 줍기 =기름을 버리고[엎지르고] 깨를 줍는다. 기름을 버리고[엎지르고] 깨를 줍는다 큰 이익을 버리고 보잘것없는 작은 이익을 구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기름 엎지르고 깨 줍기. 기름을 치고 부채질한다 ‘불난 데 풀무질한다’의 북한 속담. 기암절벽 천층석(千層石)이 눈비 맞아 썩어지거든 도무지 실현될 가능성이 없는 일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기와 한 장 아끼다가 대들보 썩힌다 작은 것을 아끼다가 큰 손해를 본다는 말. 기와집 물려준 자손은 제사를 두 번 지내야 한다 초가집 지붕 이기가 귀찮고 힘듦을 이르는 말. 기와집에 옻칠하고 사나 매우 인색하게 재산을 모으는 사람을 핀잔하는 말. 기와집이면 다 사창(社倉)인가 겉이 훌륭하다고 하여 내용까지 다 훌륭하지는 않다는 말. 기운이 세면 소가 왕 노릇 할까 힘만 가지고는 많은 사람을 거느릴 수 없다는 말. 긴병에 효자 없다 무슨 일이나 너무 오래 끌면 성의가 풀리어 소홀해진다는 말. 길가에 집 세우며 남의 말 들으려다간 집 되여 볼 날 없다 ‘길가에 집 짓기?’의 북한 속담. 길가에 집 짓기 길가에 집을 지으면 오가는 사람들이 저마다 간섭을 하여 집을 짓지 못한다는 뜻으로, 무슨 일에 참견하는 사람이 많아서 그 일이 이루어지기 어려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주견이 없이 남의 간섭이나 의견만 좇다가는 아무 일도 제대로 끝을 맺을 수 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길가의 돌부처가 다 웃겠다 =돌미륵이 웃을 노릇. 길가의 조약돌처럼[조약돌 같다] 오가는 사람들의 발에 밟히고 차이면서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는 조약돌 같은 처지라는 뜻으로, 사람다운 대우를 받지 못하고 이리저리 밀려가는 처지나 신세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길고 짧은 것은 대어[재어] 보아야 안다 1.누가 나은가는 실제로 겨루어 보아야 안다는 말. 2.무슨 일이나 실제로 겪어 보아야 잘 알게 된다는 말. 길동무가 좋으면 먼 길도 가깝다 서로 마음이 통하는 사람과 함께 일하면 힘도 덜 들고 성과도 더 좋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길로 가라니까 메로 간다 ‘일마다 엇나가기만 하는 사람’을 빗대어 하는 말. 길마 무거워 소 드러누울까 일을 당하여 힘에 부칠까 걱정하지 말라는 말. 길쌈 잘하는 첩 길쌈 잘하고 부지런한 첩이 어디 있겠느냐는 뜻으로, 괴리한 현상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있을 리 없는 희망적인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길은 갈 탓 말은 할 탓 길을 두고 메로 갈까 쉽게 할 수 있는 것을 구태여 어렵게 할 리 없다는 말. 길을 알면 앞서 가라 자신이 있으면 서슴지 말고 하라는 말. 길이 아니거든 가지를 말고 말이 아니거든 듣지를 말라 길이 없으니 한 길을 걷고 물이 없으니 한 물을 먹는다 김매기 싫은 놈 밭고랑만 센다 =게으른 년이 삼 가래 세고 게으른 놈이 책장 센다. 김매는 데 주인은 아흔아홉 몫을 맨다 남을 부려서 하는 일에 주인만 애쓴다는 말. 김 안 나는 숭늉이 더 뜨겁다 공연히 떠벌리는 사람보다 침묵을 지키고 있는 사람이 더 무섭다는 말. 김칫국 먹고 수염 쓴다 실속은 없으면서 겉으로만 있는 체한다는 말. 김칫국부터 마신다 ‘남의 속도 모르고 제 짐작으로 지레 그렇게 될 것을 믿고 행동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깊고 얕은 물은 건너 보아야 한다 무엇이나 직접 겪어 보아야 알 수 있으며, 사람도 실제로 사귀어 보아야 알 수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깊던 물이라도 얕아지면 오던 고기도 아니 온다 사람이 나이가 많아지면 따르던 사람도 멀어지고 찾아오지 않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보잘것없게 되면 세도가 좋던 때 따르던 사람도 찾아오지 않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깊은 산에서 목마르다고 하면 호랑이를 본다 물을 찾기 어려운 깊은 산에서는 목이 마르더라도 참으라는 말. 형편으로 보아 실현되기 어려운 요구나 희망을 가지지 말라는 말. 까다롭기는 옹생원 똥구멍이라 유별나게 까다로운 사람을 이르는 말. 까마귀가 메밀[보리]을 마다한다 평소에 즐겨하던 것을 뜻밖에 사양할 때 이르는 말. 까마귀가 고욤을 마다한다 까마귀가 까치 집을 빼앗는다 까마귀 검기로 마음도 검겠나 까마귀 고기를 먹었나[먹었느냐] ‘잘 잊어버리는 사람’을 두고 이르는 말.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 ‘아무 뜻 없이 한 일이 다른 일과 공교롭게 때가 일치하여, 무슨 관계가 있는 것처럼 의심을 받게 되는 경우’를 비유하여 이르는 말. 까마귀 밥이 되다 거두어 주는 이 없는 시체가 되어 버려진다는 말. 까마귀 열 두 소리에 하나도 좋지 않다 까마귀 하루에 열 두 마디를 울어도 송장 먹는 소리 까막까치 소리를 다 하다 까마귀와 까치가 울어 대듯 시끄럽게 할 소리, 못할 소리를 다 하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까막까치도 집이 있다 하찮은 까마귀나 까치들도 다 제집이 있는 법이라는 뜻으로, 집 없는 사람의 서러운 처지를 한탄하여 이르는 말. 까치 뱃바닥 같다 ‘흰소리 잘하는 사람’을 조롱조로 이르는 말. 까투리 북한 다녀온 셈이다 보기는 보았으나 무엇이 무엇인지 그 내용을 알 수 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까투리 까투리 얼었다 꽁꽁 얼었음을 이르는 말. 깨물어서 아프지 않은 손가락 없다 열 손가락 중 어느 하나도 깨물어서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없듯이, 자식이 아무리 많아도 부모에게는 모두 소중하다는 말. 깨어진 그릇 (이) 맞추기 한번 그릇된 일은 다시 본래대로 돌리려고 애써도 돌릴 수 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깨어진 냄비와 꿰맨 뚜껑 각각 한 가지씩 허물이 있어 피차에 흉볼 수 없게 된 사이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깨어진 요강 단지 받들듯 조심하여 삼가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깻묵에도 씨가 있다 1.없을 듯한 곳에도 혹 있을 수 있다는 말. 2.세상에 완전무결한 것은 없다는 말. 꺼내 먹은 김치독 (같다) 텅 비고 아무 것도 없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자기 구실을 다하여 쓸모없게 된 물건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꺾이느니보다 차라리 굽히는 편이 낫다 껍질 상치 않게 호랑이를 잡을까 호랑이 가죽이 상하지 않고서 호랑이를 잡을 수 없다는 뜻으로, 힘들여 애써야 일을 이룰 수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껍질 없는 털가죽이 없다 ‘껍질 없는 털이 있을까’의 북한 속담.  껍질 없는 털이 있을까 바탕이 있어야 그 위에 무엇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말. 꼬기는 칠팔월 수수 잎 꼬이듯 심술이 사납고 마음이 토라진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의사 표시를 솔직하게 하지 않고 우물쭈물하는 모습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꼬리가 길면 밟힌다 나쁜 짓을 오래 계속하면 결국 들키고 만다는 뜻. 꼬리 먼저 친 개가 밥은 나중 먹는다 꼬챙이 건시 뽑아 먹듯 ‘곶감 꼬치에서 곶감 빼[뽑아] 먹듯’의 북한 속담.  꼬챙이는 타고 고기는 설었다 꼭 되어야 할 일은 안되고 되지 말았어야 할 일이 된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꼭뒤가 세 뼘 몹시 거만을 피우는 모양을 이르는 말. 꼭뒤에 부은 물이 발뒤꿈치로 내린다 윗사람이 나쁜 짓을 하면 곧 그 영향이 아랫사람에게 미치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조상이 남긴 풍습은 반드시 자손이 물려받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꼴같잖은 말은 이도 들쳐 보지 않는다 말을 살 때 겉모양이 제대로 생기지 아니한 말은 나이를 세려고 이를 들쳐 보지도 아니한다는 뜻으로, 외모와 언동이 점잖지 못한 사람은 더 자세히 알아볼 필요가 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꽁지 빠진 새[수탉] 같다 볼꼴이 추레하거나 우습게 생겼다는 말. 꽃밭에 불 지른다 1.도무지 풍류를 모르는 짓을 한다는 말. 2.인정사정없는 처사를 한다는 말. 3.한창 행복할 때 재액이 닥친다는 말. 꽃샘잎샘에 설늙은이[반 늙은이] 얼어 죽는다 ‘이른 봄의 추위도 제법 춥다’는 뜻으로 이르는 말. 꽃은 목화가 제일이다 겉모양은 보잘것없더라도 실속만 있으면 그만이라는 말. 꽃이 좋아야[고와야] 나비가 모인다 1.가지고 있는 상품이 좋아야 손님이 많이 모여든다는 말. 2.자기 쪽이 온전해야 좋은 상대자를 구할 수 있다는 말. 꾀병에 말라 죽겠다 꾀를 부리며 일을 하지 않으려는 사람을 비꼬는 말. 꾀병을 앓자면 환자 시늉을 하여야 하기 때문에 자연히 말라 죽게 된다는 뜻으로, 얕은꾀를 부리다가 도리어 자신이 봉변을 당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꾸러미에 단 장 들었다 겉모양은 흉하지만 속에 든 것은 훌륭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꾸어 온 보릿자루[빗자루] ‘이야기를 서로 주고받는 자리에서, 말없이 한쪽에 앉아 있기만 하는 사람’을 농조로 이르는 말. 꿀 먹은 벙어리 ‘마음속의 생각을 말하지 못하는 사람’을 조롱하여 이르는 말. 꿀 먹은 벙어리요, 침 먹은 지네 꿀도 약이라면 쓰다 이로운 말을 듣기 싫어한다는 말. 꿀단지 겉 핥기[핥는다] 하여야 할 일을 제대로 안 하고 대충 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꿀컥 소리도 못하다 기가 질려 아무 소리도 못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꿈보다 해몽이 좋다 사실은 그렇지 못하나 해석이 그럴싸하다는 말. 꿈에 서방 맞은 격 1.제 욕심에 차지 않는다는 말. 2.분명하지 않은 존재를 이르는 말. 꿈자리가 사납더니 일이 뜻대로 되지 아니하고 방해되는 것이 끼어들 때 한탄조로 이르는 말. 꿩 구워 먹은 소식 있음직한 소식이 전혀 없을 때 이르는 말. 꿩 구워 먹은 자리 ‘어떤 일을 하고도 아무 흔적이 보이지 않음’을 이르는 말. 꿩 대신 닭 ‘꼭 필요한 것이 없을 때, 그보다는 못하지만 그와 비슷한 것으로 대신하는 경우’에 이르는 말. 꿩 먹고 알 먹는다[먹기] 한꺼번에 두 가지 소득을 볼 때에 이르는 말. 꿩 잡는 것이 매다 ‘매는 꿩을 잡아야 매라고 할 수 있듯이, 이름에 어울리게 실제로 제구실을 해야 함’을 이르는 말. 끈 떨어진 뒤웅박 의지할 곳이 없어진 처지를 이르는 말. 끓는 국에 맛 모른다 급할 때는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없다는 말. 끝 부러진 송곳 ‘가장 긴요한 곳이 탈이 나서 못 쓰게 됨’을 이르는 말.     나간 사람 몫은 있어도, 자는 사람 몫은 없다 나갔던 며느리 효도한다 미움을 샀던 사람이나 기대하지 않았던 사람이 뜻밖에 좋은 일을 해서 어리둥절하게 함을 이르는 말. 나갔던 파리 왱왱거린다 남이 일할 때에 밖으로 나돌던 주제에, 들어와서는 큰소리치고 떠듦을 이르는 말. 나귀 샌님 대하듯 본척만척하며 무표정하게 대하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나귀 샌님 쳐다보듯 눈을 치뜨고 말똥말똥 쳐다보는 모습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나귀는 샌님만 섬긴다[섬기겠단다] 보잘것없는 사람이라도 자기가 지닌 지조를 지키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자기의 비위에 맞는 사람이나 자기에게 좋게 대하는 사람만 상대하려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나귀는 샌님만 업신여긴다 자기에게 만만해 보이는 사람에게는 별 까닭도 없이 함부로 대하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나귀를 구하매 샌님이 없고 샌님을 구하매 나귀가 없다 무엇이나 완전히 갖추기 힘든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어떤 일의 준비가 뜻대로 되지 아니하고 빗나가기만 하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나귀에 짐을 지고 타나 싣고 타나 나귀를 타면서 자기가 가진 짐을 나귀 등에 실으면 더 무거울 것이라고 제가 지고 타지만 그것은 그대로 싣고 가는 것과 다름이 없다는 뜻으로, 이러나저러나 결과는 마찬가지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나그네 귀는 석 자라 나그네는 주인이 자기를 어떻게 대하는가를 항상 살피게 되므로 주인의 소곤거리는 말까지도 다 듣는다는 말. 나그네 모양 보아 표주박에 밥을 담고 주인 모양 보아 손으로 밥먹는다 나는 놈 위에 타는 놈 비상한 재주나 솜씨를 가진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보다 더 나은 사람이 또 있는 법이라는 말. 나는 바담 풍(風) 해도 너는 바람 풍 해라 자기는 그르게 하면서 남에게는 바르게 하라고 요구함을 이르는 말. 나는 새도 깃을 쳐야 날아간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 권세가 당당하여 모든 일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 나라님 만든 관지 판 돈도 자른다 =나라 고금도 잘라먹는다. 나라님 망건 값도 쓴다 사람이 급할 때 어떤 돈이든 가리지 아니하고 써 버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나라님이 약 없어 죽나 목숨은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약도 변변히 못 써 보고 죽게 하였다고 서러워하는 사람을 위로하는 말. 나루 건너 배 타기 무슨 일에나 순서가 있어 건너뛰어서는 할 수 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가까운 데 있는 것을 버리고 먼 데 있는 것을 취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나룻이 석 자라도 먹어야 샌님 체면만 차리고 얌전히 있다가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말. 나막신 신고 대동선 쫓아간다 사람이 요량 없이 터무니없는 짓을 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나막신 신고 돛단배 빠르다고 원망하듯 자기가 뒤떨어진 것은 깨닫지 못하고 남이 빨리 나아가는 것만 원망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나막신 신고 얼음 지치기 걷는 것도 불편한 나막신을 신고 미끄러운 얼음판을 지친다는 뜻으로, 매우 불편하고 위태로운 모습으로 일에 달라붙는 어리석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나 많은 말이 콩 마달까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겠지만) 사실은 남 못지않게 그것을 좋아한다는 말. 나 먹자니 싫고, 개 주자니 아깝다 자기에게는 소용이 없으면서도 남 주기는 싫어하는 인색함을 이르는 말. 나 못 먹을 밥에는 재나 넣지 심술이 매우 사나움을 이르는 말. 나무 공이 등 맞춘 것 같다 ‘서로 상반되는 꼴(경우)임’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나무는 큰 나무 덕을 못 보아도 사람은 큰사람의 덕을 본다 뛰어난 인물에게서는 알게 모르게 가르침이나 영향을 받게 된다는 말. 나무때기 시집보낸 것 같다 사람됨이 변변하지 못하여 무슨 일이나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말. 나무라도 고목 되면 오던 새도 아니 온다 나무에도 못 대고 돌에도 못 댄다 나무에 오르라 하고 흔드는 격 솔깃한 말로 남을 꾀어 난처한 처지에 빠뜨리는 경우를 이르는 말. 나무 접시 놋접시 될까 아무리 하여도 좋게 될 수 없는 일이나 사람을 두고 하는 말. 나무칼로 귀를 베어도 모르겠다 어떤 한 가지 일에 마음이 쏠리어 다른 일에 관심을 기울일 겨를이 없음을 이르는 말. 나 부를 노래를 사돈집에서 부른다 ☞내가 할 말을 사돈이 한다. 나쁜 말은 지붕마루로부터 울려 나간다 나쁜 일에 대한 소문은 아무리 감추려 하여도 빨리 퍼져 나감을 이르는 말.  나쁜 소문은 빨리 퍼진다 나쁜 일일수록 아무리 숨기려 해도 금세 세상에 널리 퍼진다는 말. 나쁜 일은 천 리 밖에 난다 나쁜 일에 대한 소문은 먼 데까지 빨리 퍼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나쁜 풀은 빨리 자란다 별로 긴요하지 아니한 것이 먼저 나선다는 말. 나올 적에 봤다면 짚신짝으로 틀어막을 걸 저렇게 못난 사람이라면 아예 태어나지도 못하게 짚신짝으로 틀어막을 걸 잘못했다는 뜻으로, 지지리 못난 사람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나이 이길 장사 없다 나이 차(서) 미운 계집 없다 무엇이나 한창일 때는 다 좋게 보인다는 말. 나중 난 뿔이 우뚝하다 후배가 선배보다 나을 때 이르는 말. 나중에야 삼수갑산(三水甲山)을 갈지라도 결과가 최악에 이르는 한이 있더라도 우선 단행하거나 저질러 놓고 본다는 말. 나한에도 모래 먹는 나한이 있다 [나한 가운데에도 공양을 받지 못하여 모래를 먹는 나한이 있다는 뜻으로] 높은 지위에 있더라도 고생하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라는 말. 낙락장송도 근본은 종자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처음에는 보통 사람과 다름이 없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대단한 일도 그 처음 시작은 아주 보잘것없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낙숫물은 떨어지던 데 또 떨어진다 한번 버릇이 들면 고치기 어려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낙숫물이 댓돌을 뚫는다 작은 힘이라도 꾸준히 계속하면 큰일을 이룰 수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낙태한 고양이 상 몹시 낙담하거나 실망하여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있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낚싯바늘에 걸린 생선 죽을 수밖에 없는 어려움을 당하여 어쩔 수 없게 된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난리가 나도 얻어먹고 살겠다 영리하고 수단이 좋아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난리가 모 뿌리로 들어간다 농촌에서 일이 없으면 난리 난다는 이야기만 하다가 모 심을 때가 되어 바빠지면 그런 이야기가 없어진다는 말로, 정작 바빠지면 바쁘다는 말도 못하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난쟁이 교자꾼 참여하듯 분수에 맞지 않는 일에 주제넘게 나섬을 빈정거려 이르는 말. 낟가리에 불 질러 놓고 손발 쬐일 놈 남이 큰 손해를 보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의 작은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매우 우둔하고 미련한 행동을 하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낟알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벼 이삭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낟알 천대를 하면[하다간] 볼기를 맞는다 땀 흘려 지은 낟알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낭비하면 크게 혼날 것이라는 뜻으로, 낟알을 귀하게 여기라는 말.  날고기 보고 침 안 뱉을 이 없고 익은 고기 보고 침 안 삼키는 이 없다 고기는 익혀서 먹어야 맛이 있다는 말. 날랜 장수 목 베는 칼은 있어도 윤기 베는 칼은 없다 사람의 인륜 관계는 끊으려야 끊을 수 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날면 기는 것이 능하지 못하다 여러 가지를 다 잘하기는 어렵다. 날 샌 올빼미 신세 ‘세력이 없어져 어쩔 수 없는 외로운 처지가 되었음’을 이르는 말. 날아다니는 까막까치도 제 밥은 있다 나는 새도 먹을 것이 있는데 하물며 사람이 먹을 것이 없어서 되겠느냐는 말. 날 잡은 놈이 자루 잡은 놈을 당하랴 남 눈 똥에 주저앉고 애매한 두꺼비 떡돌에 치인다 남 떡 먹는데 팥고물 떨어지는 걱정한다 남산골 샌님이 역적(逆賊) 바라듯 가난한 사람이 엉뚱한 일을 바라는 경우를 이르는 말. 남산 봉화 들 제 인경 치고, 사대문 열 제 순라군이 제격이라 비상사태를 알리는 봉화가 남산에 오를 때 인경을 치는 것이나 새벽 통행 금지 시간이 끝나면서 사대문을 열 때 통행자를 단속하는 순라군이 나타나는 것은 다 격에 맞는 일이란 뜻으로, 두 가지가 서로 잘 어울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남산 소나무를 다 주어도 서캐조롱 장사를 하겠다 남산의 소나무를 다 주어도 고작 서캐조롱 장사밖에 못한다는 뜻으로, 소견이 몹시 좁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남산에서 돌팔매질을 하면 김씨나 이씨 집 마당에 떨어진다 우리나라 사람의 성에 김씨와 이씨가 많다는 말. 남생이 등 맞추듯 서로 잘 들어맞지 않는 것을 맞추려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남생이 등에 풀쇄기 쐼 같다 남생이의 등이 단단하여 풀쇄기가 쏘아도 아무렇지 않다는 뜻으로, 작은 것이 큰 것을 건드려도 아무런 해를 끼치지 못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남생이 등에 활쏘기 매우 어려운 일을 하려 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해를 입히려고 하나 끄떡없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남양 원님 굴회 마시듯 눈 깜짝할 사이에 음식을 다 먹어 치우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단숨에 일을 처리하여 마치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남의 것을 마 베어 먹듯 한다 남의 고기 한 점 먹고 내 고기 열 점 준다 남의 눈 속의 티만 보지 말고 자기 눈 속의 대들보를 보라 남의 눈에 눈물 나면 제 눈에는 피가 난다 남의 다리 긁는다 애써서 해 온 일이 남을 위한 일이 되고 말았을 때 이르는 말. 남의 떡에 설 쇤다 자기는 힘들이지 않고 남의 덕으로 일을 이룬다는 말. 남의 말 다 들으면 목에 칼 벗을 날이 없다 남의 말이라면 쌍지팡이 짚고 나선다 남의 밥에 든 콩이 굵어 보인다    남의 잔치[제사]에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한다 쓸데없이 남의 일에 참견함을 이르는 말. 남의 집 불 구경 않는 군자 없다  남이야 지게를 지고 제사를 지내건 말건 남이 장에 간다고 하니 거름 지고 나선다 남자 셋이 모이면 없는 게 없다 남자 셋이 모이면 무슨 일이든 해낼 수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남자가 상처하는 것은 과거할 신수라야 한다 남자가 상처해서 다시 장가드는 것도 하나의 복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남자가 죽어도 전장에 가서 죽어라 비겁하고 뜻 없는 죽음을 당하지 말라는 말. 남자는 이레 굶으면 죽고 여자는 열흘 굶으면 죽는다 어려움에 처했을 때, 여자가 남자보다 더 잘 견딜 수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남자는 크게 자란 어린이에 불과하다 남정북벌 명장 믿듯 전적으로 기대하고 의지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남촌 양반이 반역할 뜻을 품는다 몰락하여 가난하게 사는 남촌 지방의 양반들이 반역할 뜻을 품는다는 뜻으로, 불평 많고 불우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반역의 뜻을 품기 마련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남편 공경하지 않는 시어미는 며느리가 남편 공경하는 것을 믿지 않는다 자기의 행실이 바르지 못한 사람은 남이 옳은 일을 하여도 잘 믿지 못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남편 덕을 못 보면 자식 덕을 못 본다 시집을 잘못 가면 평생 고생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남편 복 없는 여자는[년은] 자식 복도 없다 시집을 잘못 가서 평생 고생만 하는 신세를 한탄하여 이르는 말. 남편 죽었다고 섧게 울던 년이 시집은 먼저 간다 남편이 죽자 서럽게 울며 정절을 지킬 듯이 굴던 아내가 남보다 먼저 재가한다는 뜻으로, 남들 앞에서는 끝까지 지조를 지킬 듯이 하다가 먼저 변절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남편은 두레박 아내는 항아리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다 항아리를 채우듯이, 남편이 밖에서 돈을 벌어 집에 가지고 오면 아내는 그것을 잘 모으고 간직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남편을 잘못 만나면 당대 원수 아내를 잘못 만나도 당대 원수 결혼을 잘못하면 일생 동안 불행하다는 말.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른다 [기역 자 모양으로 생긴 낫을 보면서도 기역 자를 모른다는 뜻으로] 아주 무식함을 이르는 말.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 아무리 비밀로 한 말도 누군가가 듣는다는 뜻으로, 항상 말조심을 하라는 말. 낮에 난 도깨비[도둑] 해괴망측한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본래는 밤에 돌아다니는 도깨비가 염치없이 낮에 돌아다닌다는 뜻으로, 염치가 없고 하는 짓이 미련하고 우악스러운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낯익은 도끼에 발등 찍힌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 내가 할 말을 사돈이 한다 1.내가 해야 할 말을 남이 가로채어 한다. 2.내가 남을 탓하려고 하니 남이 먼저 나를 나무란다. 내 것 잃고 내 함박 깨뜨린다 내닫기는 주막집 강아지라 무슨 일이 있기만 하면, 금세 나서서 무게 없이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 내 돈 서푼은 알고 남의 돈 칠 푼은 모른다 내 딸이 고와야 사위를 고르지 자기가 든든해야 그에 걸맞은 좋은 것을 바랄 수 있다는 말. 내뛰기는 주막집 강아지라 =내닫기는 주막집 강아지라.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만큼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기는 어렵다는 말. 내 말은 남이 하고 남 말은 내가 한다 내 밑 들어 남 보이기 자기의 잘못이나 약점을 스스로 드러내는 어리석은 짓을 이르는 말. 내 밥 먹은 개가 발뒤축 문다 은혜를 갚기는커녕 도리어 배반하는 경우를 이르는 말. 내 배가 부르니 종의 배 고픈 줄 모른다 내 손톱[손/손가락]에 장을 지져라 (손톱을 달구어 장을 지지는 고통을 걸고) 자기의 주장이나 생각 따위가 틀림없음을 강조할 때 하는 말. ¶내 말이 거짓이라면 내 손에 장을 지져라. 내외간 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 부부는 싸우기도 하지만, 곧 화해하기도 쉽다는 말. 내일은 삼수갑산을 가더라도 =나중에야 삼수갑산을 갈지라도. 내일의 백냥보다 당장의 쉰냥이 낫다 내일의 천자보다 오늘의 재상 장래의 막연한 일보다는 비록 변변치 않더라도 당장 실제로 가질 수 있는 자리가 더 나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내 집 노새가 옆집 말보다 낫다 내 칼도 남의 칼집에 들면 찾기 어렵다 내 코가 석 자 자기 일도 막막한 처지라, 남의 고통이나 슬픔을 돌볼 겨를이 없음을 이르는 말.  냇가 돌 닳듯 세상에 시달려 성격이 약아지고 모질어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냇물은 보이지도 않는데 신발부터 벗는다 하는 짓이 턱없이 성급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냉수 먹고 속 차려라 (정신이 나도록 찬물을 마시고) 정신 차려라. 냉수 먹고 이 쑤시기 ‘실속은 없으면서 겉으로는 있는 체하는 것’을 조롱하여 이르는 말. 너구리 굴 보고 피물 돈 내어 쓴다 일이 되기도 전에 거기서 나올 이익부터 생각하여 돈을 앞당겨 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너무 고르다가 눈먼 사위 얻는다 너무 고르다 보면 오히려 나쁜 것을 고르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너무 뻗은 팔은 어깨로 찢긴다 지나치게 미리 손을 써서 남을 해치려다가는 도리어 실패하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넙치 눈은 작아도 먹을 것은 잘 본다 =메기가 눈은 작아도 저 먹을 것은 알아본다. 네 떡이 한 개면 내 떡이 한 개라 네 콩이 크니 내 콩이 크니 한다 노는 입에 염불하기 하는 일 없이 그저 놀기보다는 무엇이든 하는 것이 낫다는 말. 노래기 회도 먹겠다 ‘염치도 체면도 없이 치사하게 구는 사람’을 보고 이르는 말. 노루가 제 방귀에 놀라듯 ‘겁이 많은 사람이 공연한 일에도 곧잘 놀람’을 농조로 이르는 말. (참고)토끼가 제 방귀에 놀란다. 노루 꼬리가 길면 얼마나 길까 ‘아는 체하여 보았자 얼마나 알겠느냐’는 말. 노루 때린 몽둥이 삼 년 우린다 노루 보고 그물 짊어진다 ‘일이 다급하게 되어서야 허둥지둥 준비함’을 이르는 말. 노루잠에 개꿈이라 아니꼽고 같잖은 꿈 이야기나 격에 맞지 않는 말을 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노루 친 몽둥이 삼 년 우린다 노루 피하니 범이 나온다 재난이 겹쳐 오는 경우를 이르는 말. 노류장화는 사람마다 꺾으려니와 산닭 길들이기는 사람마다 어렵다 창녀는 아무나 건드릴 수 있으나 자유로이 내어 기른 사람을 다시 길들이기는 매우 힘들다는 말. 노름 뒤는 대어도 먹는 뒤는 안 댄다 노름 하다 보면 따는 수도 있지만 먹는 일은 한없는 일이라서 당해 내지 못하므로 가난한 사람을 먹여 살리기는 어려운 노릇이라는 말. 노름에 미쳐 나면 여편네[처]도 팔아먹는다 사람이 노름에 빠지면 극도로 타락하여 노름 밑천 마련에 수단을 가리지 않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노름은 도깨비 살림 도박의 성패는 도저히 예측할 수 없어 돈이 불어 갈 때에는 알 수 없을 만큼 쉽게 또 크게 늘어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노름은 본전에 망한다 잃은 본전만을 되찾겠다는 마음으로 자꾸 노름을 하다 보면 더욱 깊이 노름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게 된다는 말. 노송나무 밑이다 마음이 음충맞고 우중충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노인네 망령은 고기로 고치고 젊은이 망령은 몽둥이로 고친다 노인들은 그저 잘 위해 드려야 하고, 아이들이 잘못했을 경우에는 엄하게 다스려 교육해야 한다는 말. 노인 부랑한 것 어린아이 입잰 것 노적 섬에 불붙여 놓고 박산 주워 먹는다 =노적가리에 불 지르고 싸라기 주워 먹는다. 노적가리에 불 지르고 싸라기 주워 먹는다 큰 것을 잃고 작은 것을 얻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노적 섬에 불붙여 놓고 박산 주워 먹는다. 노처녀가 시집을 가려니 등창이 난다 오랫동안 벼르고 벼르던 일을 하려 할 때 장애물이 생겨서 하지 못하고 맒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노처녀더러 시집가라 한다 물어보나 마나 좋아할 것을 공연히 묻는다는 말. 녹비에 가로왈 [녹비에 써 놓은 가로왈(曰) 자는, 녹비를 아래위로 당기면 날일(日) 자로도 보이는 데서] ‘일이 이리도 되고 저리도 되는 형편’을 이르는 말. 녹용 대가리 베어 가는 셈 어떤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부분을 가로채어 가는 염치없는 행동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논두렁에 구멍 뚫기 심술이 매우 사납다는 말. 논밭은 다 팔아먹어도 향로 촛대는 지닌다 집안이 망해도 제사 지낼 제구는 반드시 간직하여야 한다는 말. 다 없앤다고 하여도 그중 몇 가지는 남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놀란 토끼 벼랑 바위 쳐다보듯 급한 상황에서 헤어날 길이 없어 말도 못한 채 눈만 껌벅이고 있는 모습을 이르는 말. 농군이 여름에 하루 놀면 겨울에 열흘 굶는다 농사짓는 사람이 열심히 일해야 할 여름에 게으름을 피우면 추운 겨울에 곤란을 겪게 된다는 뜻으로, 여름 시간의 귀중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농사꾼이 (굶어) 죽어도 종자는 베고 죽는다 죽으면서도 농사지을 종자는 먹지 않고 남겼다는 뜻으로, 답답할 정도로 어리석고 인색하기만 한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굶어 죽어도 종자는 베고 죽는다. 농사지을 줄 모르는 농민이 땅 타발을 한다 ‘굿 못하는 무당 장구 타박한다’의 북한 속담. 높기는 과부 집 굴뚝(이다) 과부 집에는 나무할 사람이 없어서 그때그때 해 오는 생나무를 때기 때문에 굴뚝을 높이 세운다는 뜻으로, 굴뚝 따위가 몹시 높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높은 가지가 부러지기 쉽다 높은 지위일수록 그 자리를 오래 지키기가 어려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높은 나무에는 바람이 세다 지위가 높아질수록 더욱 지위의 안정성이 적고 신변이 위태로워진다는 말. 높은 데 송아지 간 발자국만 있고 온 발자국은 없다 언제 없어졌는지도 모르게 무엇이 없어진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높은 산을 피하니까 벼랑이 앞에 나선다 큰 난관을 벗어나니 또 큰 난관이 앞에 가로놓여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놓치고 보니 큰 고기인 것만 같다 =놓친 고기가 더 크다[커 보인다]. 놓친 고기가 더 크다[커 보인다] 현재 가지고 있는 것보다 먼저 것이 더 좋았다고 생각된다는 말. ≒놓치고 보니 큰 고기인 것만 같다. 뇌성벽력은 귀머거리라도 듣는다 명백한 사실은 누구나 다 알 수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누구나 허물 없는 사람은 없다 아무리 원만한 사람이라도 한두 가지 허물은 다 가지고 있다는 뜻으로, 대수롭지 않은 허물을 무슨 큰일처럼 말하지 말라는 말.  누구네 제사날 기다리다가 사흘 굶은 거지 굶어 죽었다 아무개네 제삿날만 돌아오면 굶주린 창자를 채울 수 있으리라고 기다리다가 사흘을 굶어 죽고 말았다는 뜻으로, 눈앞에 닥친 급한 일을 소홀히 하고 먼 앞날의 행운을 바라다가 낭패를 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누에가 뽕 먹듯이 일을 점차적으로 하나하나 처리해 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누에가 진 뽑아내듯 이야기를 수월하게 이어 나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누울 자리 봐 가며 발을 뻗어라 시간과 장소·가능성 따위를 가려서 행동해야 한다는 뜻. 누워먹는 팔자라도 삿갓 밑을 도려야 한다 =감나무 밑에 누워도 삿갓 미사리를 대어라. 누워서 떡 먹기 힘들이지 않고 아주 쉽게 할 수 있음을 이르는 말. 누워서 침 뱉기 결국은 자기 자신에게 해가 돌아온다는 말. 누이 좋고 매부 좋다 양쪽에게 다 이롭고 좋다는 말. 눅은 데 패가한다 물건 값이 눅다고 너무 많이 사들이다가는 결국 살림을 망친다는 뜻으로, 욕심 부리지 말고 필요한 만큼 돈을 쓰라는 말. 눈 가리고 아웅 얕은수로 남을 속이려 함. 눈 감으면 코 베어 먹을 세상 ‘인심이 흉악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눈구석에 쌍가래톳이 선다 너무 분한 일을 당하여 눈에 독기(毒氣)가 서린다. 눈 뜨고 도둑맞는다 번연히 속는 줄 알면서도 억울하게 손해를 본다는 말. 눈 먹던 토끼 얼음 먹던 토끼가 제각각 사람은 자기가 겪어 온 환경에 따라 각기 그 능력이나 생각이 다름을 이르는 말. 눈먼 소경더러 눈멀었다 하면 성낸다 눈먼 자식이 효자 노릇 한다 평소에는 생각지도 않았던 사람한테 은혜를 입게 된다. 눈먼 탓이나 하지 개천 나무래 무엇 하나 자기의 부족함을 탓할 것이지 남을 원망할 것이 아니다. 눈썹만 뽑아도 똥 나오겠다 조그만 괴로움도 이겨 내지 못하고 쩔쩔매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눈섭 새에 내 천 자를 누빈다 눈썹 사이에 한자 내 천(川) 자를 그린다는 뜻으로, 기분이 언짢아서 눈살을 찌푸리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눈섭에 떨어진 병 ‘눈썹에 떨어진 액’의 북한 속담.  눈썹에 떨어진 액 뜻밖에 들이닥친 재난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눈썹에 불이 붙는다 뜻밖에 큰 걱정거리가 닥쳐 매우 위급하게 된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눈섭에 서캐 쓸가 털이 모였다고 해서 눈썹에 서캐가 슬 수 없다는 뜻으로, 어떤 사실에 대하여 옳다는 신념을 가질 때 이르는 말. 눈섭 우에서 떨어지는 벼락 ‘눈썹에 떨어진 액’의 북한 속담.  눈섭 끝에 불벼락이 떨어진 셈 ‘눈썹에 떨어진 액’의 북한 속담. 눈앞에서 자랑 말고 뒤에서 꾸짖지 마라 눈앞에서는 아첨하고 뒤에서는 헐뜯는 간교한 행동을 하지 말라는 말. 눈에는 눈(을) 이에는 이(를) ‘해를 입은 만큼 앙갚음하는 것’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눈 오는 날 개 싸다니듯 [눈이 오면 개들이 좋아하고 돌아다닌다는 뜻으로] 쓸데없이 돌아다니기 좋아함을 이르는 말. 눈을 떠야 별을 보지 어떤 결과를 얻으려면 거기에 필요한 일을 차례대로 해야 한다는 말. 눈치가 빠르면 절에 가도 젓갈을 얻어먹는다 눈치가 빠르면 어디에 가도 군색하지 않게 지낼 수 있다는 말. 느린 걸음이 잰 걸음  늑대는 늑대끼리 노루는 노루끼리 처지나 이해관계가 비슷한 사람끼리 서로 모이고 사귀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까치는 까치끼리. 늙으면 아이 된다 늙으면 아이처럼 토라지기도 잘하고 풀어지기도 잘한다는 말. 늙은 나귀 팔려면 잘 꾸며 줘야 한다 늙은 말이 콩 마다할까 당연한 사실을 두고 공연한 걱정을 하는 경우에 이르는 말. 늙은이 가죽 두껍다 늙은이는 여러 가지 어려운 일도 잘 치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늙은이는 염치없는 짓을 잘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늙은이 고기국 바치듯 늙은이가 고깃국을 몹시 먹고 싶어 하며 자꾸 찾는다는 뜻으로, 무엇을 체면 없이 몹시 가지고 싶어 하거나 먹고 싶어 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늙은이 괄시는 해도 아이들 괄시는 안 한다 세상 물정을 모르는 아이들 대접하기가 더 어려우니 잘하여야 한다는 말. 늙은이 기운 좋은 것과 가을 날씨 좋은 것은 믿을 수 없다 상황이 언제 변할지 모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늙은이 무릎 세우듯 씌운다 마구 우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늙은이 박대는 나라도 못한다 늙은이를 사회적으로 존경해야 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늙은이 아이 된다 =늙으면 아이 된다. 늙은이 잘못하면 노망으로 치고 젊은이 잘못하면 철없다 한다 어떤 잘못의 원인을 개별적으로 규명하지 않고 일반적인 짐작으로 돌려 버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늙은이 호박 나물에 용쓴다 도저히 힘을 쓸 수 없는 처지에 있는 사람이 힘을 쓸 듯이 자신 있게 나섬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호박죽이나 호박 나물이 늙은이들에게 먹기 쉬울 뿐 아니라 그래도 근기가 있는 음식임을 이르는 말.  늙은이(의) 상투 다 빠지고 얼마 남지 않은 머리카락을 틀어 묶은 상투라는 뜻으로, 물건이 작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늙은이도 세 살 먹은 아이 말을 귀담아들으랬다 아랫사람에게도 들을 만한 것이 있으면 들어야 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늙은이에게는 밥이 막대라 늙은이에게는 밥이 몸을 의지해 주는 막대와 같다는 뜻으로, 늙은이는 무엇보다도 잘 먹어야 몸을 지탱하며 살아갈 수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늙은이한테는 수염이 있어야 한다 무엇이나 격에 맞는 표식이 있어야 잘 어울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능참봉을 하니까 거둥이 한 달에 스물아홉 번이라 모처럼 일자리를 하나 얻으니까 별로 생기는 것 없이 바쁘기만 하다는 말. 늦게 배운 도둑이 날 새는 줄 모른다 뒤늦게 시작한 일에 재미를 붙여 더욱 열중하게 됨을 이르는 말. 늦모내기 때에는 아궁 앞의 부지깽이도 뛴다 =늦모내기에 죽은 중도 꿈쩍거린다. 늦모내기에 죽은 중도 꿈쩍거린다 철 늦게 하는 모내기는 되도록 빨리 끝내야 하기 때문에 몹시 바쁘다는 말. ≒늦모내기 때에는 아궁 앞의 부지깽이도 뛴다. 무슨 일이고 몹시 바쁠 때에는 누구나 다 움직여야 한다는 말. ≒늦모내기 때에는 아궁 앞의 부지깽이도 뛴다. 늦바람이 용마름을 벗긴다 늘그막에 바람이 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다는 뜻.     다 가도 문턱 못 넘기 다 닳은 대갈마치라 마음이 굳고 깐깐하여 어수룩한 데라고는 없는 사람을 두고 이르는 말. 다 된 죽에 코 풀기 1.제대로 잘되어 가는 일을 망쳐 버리는 주책없는 행동을 이르는 말. 2.잘되어 가는 남의 일을 심술궂게 헤살 놓는 경우를 두고 이르는 말. 다라운 부자가 활수(滑手)한 빈자보다 낫다 마음은 자비로우나 베풀 것이 없는 가난한 사람보다 인색한 부자가 그래도 베풀 것이 많다는 말. 다람쥐 쳇바퀴 돌듯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제자리걸음만 한다는 말. 다리 부러진 장수 성 안에서 호령한다 다리 아래서 원을 꾸짖는다 직접 만나서 당당하게 말하지는 못하고, 안 들리는 데 숨어서 불평(욕)을 한다는 말. 다섯 손가락 깨물어서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없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 다시 긷지 아니한다고 이 우물에 똥을 눌까? 닦은 방울 같다 1.눈이 아름답고 빛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2.하는 짓이 매우 똑똑하고 영리한 어린이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단간방에서 이붓시애비 노는 꼴 보기 싫어 못살겠다 가뜩이나 미운 사람이 못되게 노는 꼴이 몹시 아니꼽고 보기 싫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단골무당 머슴같이 무당이 춤을 추고 돌아갈 때 앞에서 돌아다니며 심부름을 하는 그 집 머슴 같다는 뜻으로, 앞에서 분주하게 왔다 갔다 함을 이르는 말. 단김에 소뿔 빼듯 말이 났거나 조건이 알맞을 때에 놓치지 않고 바로 해 버리거나 처리해 나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단 소뿔 뽑듯. 단단한 땅에 물이 괸다 ☞굳은 땅에 물이 괸다. 단맛 쓴맛 다 보았다 세상의 온갖 즐거움과 괴로움을 다 겪었다는 말. (참고)산전수전. 단백사위 촉(蜀) 간다 윷놀이에서, 마지막 고비에 한 번 윷을 놂으로써 이기고 지는 것이 결정될 때 그만 지고 말았다는 뜻으로, 무슨 일이든지 단수(單手)에 실패를 보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장난삼아 한 일에 져서 어렵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어려운 처지를 당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단솥에 물 붓기 [달아 있는 솥에 물을 조금 부어 보아야 금방 증발해 버린다는 뜻으로] ‘상황이 매우 심한 지경에 이르러 조금 손을 써 보아야 이를 진정시킬 수는 없음’을 이르는 말.  단술 먹은 여드레 만에 취한다 어떤 일을 겪은 후 한참 만에야 비로소 그 영향이 나타난다는 말. 단천 놈이 은 값 떼듯 한다 받을 것을 사정없이 재촉하여 받아 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단칸방에 새 두고 말할까 한집 식구처럼 가깝게 지내는 사이에 비밀이 있을 리 없다는 말. 단풍도 떨어질 때에 떨어진다 무엇이나 제 때가 있다는 말. 닫는 데 발 내민다 일에 열중하고 있는데 중간에서 방해한다는 말. 닫는 말에 채질한다 잘하거나 잘되어 가는 일을 더 잘하거나 잘되도록 부추기거나 몰아침을 이르는 말. 가는 말에 채찍질. 달걀도 굴러 가다 서는 모가 있다 1.어떤 일이든지 끝날 때가 있다는 말. 2.좋게만 대하는 사람도 성낼 때가 있다는 말. 달걀로 치면 노른자다 가장 중요한 부분을 가리키는 말. 달고 치는데 안 맞는 장사가 있나 아무리 힘이 세어도 여러 사람의 합친 힘을 못 당한다는 말. 달기는 옆집 할미 손가락이다 달도 차면 기운다 온갖 것이 한 번 왕성하다가도 고비를 넘으면 다시 쇠하여지게 마련이라는 말.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 신의나 지조를 돌보지 않고 이익만을 꾀한다는 말. 달무리한 지 사흘이면 비가 온다 달 밝은 밤이 흐린 낮만 못하다 달밤에 삿갓 쓰고 나온다 가뜩이나 미운 사람이 더 미운 짓만 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달 보고 짖는 개 남의 언행을 의심하여 떠드는 어리석은 사람을 두고 이르는 말. 달아나는 노루 보고 얻은 토끼를 놓았다 큰 것을 탐내다가 가진 것마저 잃었다는 말. 달아나면 이밥 준다 일이 궁하게 되면 달아나는 것이 상책이라는 말. 달팽이가 바다를 건너다니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라 말할 거리도 안 된다는 말. 달팽이도 집이 있다 달팽이 같은 것도 집이 있는데 하물며 사람으로서 어찌 집이 없겠냐는 말. ≒다람쥐도 제 굴이 있다. 닭 벼슬이 될망정 쇠꼬리는 되지 마라 닭 소 보듯, 소 닭 보듯 서로 마주 보고도 덤덤하게 대하거나, 상대편의 하는 일에 아무런 관심이 없음을 이르는 말. 닭쌈에도 텃세한다 텃세라는 것은 언제나 있는 법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닭이 천이면 봉이 한 마리 있다 닭 잡아먹고 오리발 내어 놓는다 자신이 저지른 나쁜 일이 드러나게 되자 엉뚱한 수단으로 남을 속이려 한다는 말. 닭 쫓던 개 지붕[먼산] 쳐다보듯 애써 이루려던 일이 실패로 돌아가 어이없이 된 것을 이르는 말. 담배는 꽁초 맛에 피운다 담배가 떨어져 꽁초를 말아 피우는 맛이 아주 좋다는 말.  담배는 꽁초 맛이 제일 무엇이든지 풍족할 때는 잘 모르나 부족하거나 없을 때에는 그 참된 맛을 더욱 느끼게 된다는 말. 담배 잘 먹기는 용귀돌(龍貴乭)일세 옛말에 나오는 용귀돌이처럼 담배를 아주 즐기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담벼락하고 말하는 셈이다 미욱하고 고집스러워 도무지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과는 더불어 말해 봐야 소용없다는 말. 담을 것은 많은데 광주리가 작다 해야 할 일은 많은데 그것을 감당할 만한 여러 가지 준비나 역량이 부족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닷곱에도 참례, 서 홉에도 참견 사소한 일에까지 지나치게 간섭한다는 말. 닷 돈 보고 보리 밭에 갔다가 명주 속옷 찢었다 닷새를 굶어도 풍잠 멋으로 굶는다 체면 때문에 곤란을 무릅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당나귀 귀 치레 [당나귀의 큰 귀에다 여러 가지 치레를 한다는 뜻으로] 어울리지 않는 곳을 쓸데없이 꾸민다는 말. 당나귀 못된 것은 생원님만 업신여긴다 당나귀 하품한다고 한다 [당나귀가 우는 것을 보고 하품하는 줄 안다는 뜻으로] ‘귀머거리의 판단 능력’을 조롱하여 이르는 말. 당닭의 무녀리냐 작기도 하다 당닭의 첫배로 난 무녀리처럼 작다는 뜻으로, 여럿 가운데서 가장 작음을 이르는 말. 대가리를 삶으면 귀까지 익는다 가장 중요한 부분을 처리하고 나면 나머지는 저절로 해결된다는 말. 대감 죽은 데는 안 가도 대감 말 죽은 데는 간다 세상 인심이 이악하여 자기의 이익만을 좇아 움직인다는 말. 대궐 역사는 한이 없다 대궐 짓는 일과 같은 나라의 일은 끝이 없어 백성들이 늘 고생이라는 말. 대나무 그루에선 대나무가 난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대나무에서 대 난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대낮에 도깨비에 홀렸나[홀린 격]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을 당한 경우를 이르는 말. 대낮에 마른벼락 뜻밖의 일로 당한 화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대낮에 옛말하면 흉년 든다 한창 부지런하게 일해야 할 대낮에 한가하게 옛말이나 하고 있으면 흉년이 든다는 뜻으로, 부지런하게 열심히 일하라는 말.  대낮의 올빼미 어떤 사물을 보고도 알아보지 못하고 멍청하게 있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대대 곱사등이 아비의 잘못을 자식이 닮아서 죽 내려옴을 이르는 말. 대들보 썩는 줄 모르고 기왓장 아끼는 격 장차 크게 손해 볼 것은 모르고 당장 돈이 조금 든다고 사소한 것을 아끼는 어리석은 행동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대모관자 같으면 되겠다 쓸모가 많아서 여러 방면에서 자주 찾아 주는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말. 대모관자 같으면 뛰겠다 대모관자라도 너무 자주 매었다 풀었다 하면 끊어지겠다는 뜻으로, 사람을 너무 자주 부르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대목장에 해금통이 깨진다 가장 요긴한 대목에 가서 일이 틀어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대문 밖이 저승이라 사람은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말. 대문 턱 높은 집에 정강이 높은 며느리 들어온다 일이 잘 되어 가려면 다 경우에 맞게 된다는 말. 대부등에 곁낫질이라[낫질이라] [아름드리 나무를 조그만 낫으로 베려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아주 큰일에 그것을 감당해 낼 수 없는 작은 것으로 대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대신 댁 송아지 백정 무서운 줄 모른다 대천 바다도 건너 봐야 안다   대추나무에 연 걸리듯 여기저기에 빚을 많이 진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가윗날만 같아라 더러운 처와 악한 첩이 빈방보다 낫다 아무리 못된 아내라도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좋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더벅머리 댕기 치레하듯 바탕이 좋지 않은 것에 어울리지 않게 지나친 겉치레를 하여 오히려 더 흉하게 된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더부살이 환자(還子) 걱정 ‘남의 일에 주제넘은 걱정을 함’을 이르는 말. 더운 국에 국수사리 풀어지듯 어떤 일이 쉽게 되어 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더운밥 먹고 식은 소리 한다 쓸데없이 실없는 싱거운 소리를 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더운 술을 불고 마시면 코 끝이 붉어진다 더워서 못 먹고 식어서 못 먹고 이런저런 구실과 조건을 대면서 이러쿵저러쿵 불만이 많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더위 먹은 소 달만 보아도 헐떡인다 어떤 일에 크게 욕을 본 사람은 그와 비슷한 일만 당해도 지레 겁을 먹는다는 말. 덕석에 참새 떼 앉은 격 소 잔등을 덮어 준 덕석에 참새 떼가 되는대로 내려앉은 격이라는 뜻으로, 어중이떠중이가 모여든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덕석이 멍석이라고 우긴다 덕석이 멍석인 듯. 어떤 사물을 사실에 맞지 않게 마구잡이로 우겨 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덕석이 멍석인 듯 약간 비슷함을 빙자하여 그 실물인 것처럼 자처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덕석이 멍석이라고 우긴다. 던져 마름쇠 마름쇠는 누구나 던지면 틀림없이 꽂히고 한쪽은 위로 솟듯이, 어떤 일에 별로 숙달되지 않은 사람도 실수 없이 능히 할 수 있는 일인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어떻게 하든 한 가지 정해진 경우밖에 달리는 되지 않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덜 곪은 부스럼에 아니 나는 고름 짜듯 상을 몹시 찌푸리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덜미에 사잣밥을 짊어졌다 생사(生死)의 기로에 처하여 있음을 이르는 말. 덤불이 커야 도깨비가 나온다 덩덩하니 굿만 여겨 덩덩하니 문 너머 굿인 줄 아느냐.  덩덩하니 문 너머 굿인 줄 아느냐 무엇이 얼씬만 하여도 좋은 일이나 구경거리가 있는 줄 알고 속단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덩덩하니 굿만 여겨. 덫에 치인 범이요, 그물에 걸린 고기라 헤어날 길이 완전히 막힌 처지를 이르는 말. 덮어놓고 열넉 냥[열닷 냥] 금 내용을 헤아려 보지도 않고 함부로 판단함을 이르는 말. 도깨비는 방망이로 떼고 귀신은 경으로 뗀다 도깨비 달밤에 춤추듯 싱겁게 거드럭거리는 멋없는 꼴을 두고 하는 말. 도깨비 대동강 건너듯 일의 진행이 눈에 띄지 않으면서 그 결과가 빨리 나타남을 이르는 말. 도깨비 땅 마련하듯 무엇을 하기는 하나 결국은 아무 실속이 없이 헛됨을 이름. 도깨비 사귄 셈이라 귀찮은 자가 늘 따라다녀 골치를 앓음을 이르는 말. 도깨비 수키왓장 뒤듯 쓸데없이 늘 이것저것 뒤지는 모양을 이르는 말. 도깨비도 수풀이 있어야 모인다 의지할 곳이 있어야 무슨 일이나 이루어진다는 말. 도깨비를 사귀었나 까닭 모르게 재산이 부쩍부쩍 늘어 감을 이르는 말. 도끼가 제 자루 못 찍는다 제 허물을 제가 알아서 고치기는 어렵다는 말. 도끼 가진 놈이 바늘 가진 놈을 못 당한다 극단적인 무기는 함부로 휘두를 수 없으므로 웬만한 싸움에는 오히려 적절하지 못함을 이르는 말. 도끼는 날을 달아 써도 사람은 죽으면 그만 도끼를 베고 잤나 잠을 편히 자지 못하고 너무 일찍 일어난 경우에 이르는 말. 도는 개는 배 채우고 누운 개는 옆 챈다 활동하면 얻는 바가 있지만 누워서 게으름이나 피우면 옆구리나 차이기 마련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도둑고양이더러 제물 지켜 달라 한다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기다. 도둑놈 개 꾸짖듯 남이 알까 두려워 우물쭈물 중얼거림을 이르는 말. 도둑놈 개에게 물린 셈 봉변을 당하여도 자기에게 잘못이 있어 아무 말도 하지 못함을 이르는 말. 도둑놈 볼기짝 같다 [도둑이 관가에 잡혀가 볼기를 맞아서 멍이 든 것처럼] 얼굴빛이 푸르죽죽한 사람을 농조로 이르는 말. 도둑놈 부싯돌만 한 놈 ‘하잘것없는 놈’이란 뜻으로 상대를 얕잡아 이르는 말. 도둑놈 소 몰듯 당황하여 서두르는 모양을 보고 이르는 말. 도둑놈은 한 죄 잃은 놈은 열 죄 도둑맞고 사립[빈지] 고친다 시기를 놓치고 때늦게 준비한다는 말. 도둑에도 의리가 있고 땅꾼에도 꼭지가 있다 도둑을 맞으려면 개도 안 짖는다 일이 꼬이려면 믿을 것도, 도움 받을 데도 없게 된다는 말. 도둑의 두목도 도둑이요 그 졸개도 또한 도둑이다 도둑의 씨가 따로 없다 누구나 도둑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말. 도둑이 제 발 저리다 죄를 지은 이가 두려움 때문에 스스로 약점을 드러낸다는 말. 도둑질을 해도 손발이 맞아야 한다 무슨 일이든지 서로 뜻이 잘 맞아야 성공할 수 있다는 말. 도랑 치고 가재 잡는다 1.한 번의 노력으로 두 가지 소득을 본다는 말. 2.일의 순서가 뒤바뀌었다는 말. 도래떡이 안팎이 없다 둥글넓적한 도래떡은 안과 밖의 구별이 없다는 뜻으로, 두루뭉술하여 어떻다고 판단을 내리기가 어려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도련님은 당나귀가 제격이라 제격에 맞게 물건을 쓰거나 행동해야 어울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도련님 천량 아직 돈을 쓸 줄 모르는 도련님의 돈이라는 뜻으로, 쓰지 않고 오붓하게 모은 돈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도련님 풍월에 염이 있으랴 어리고 서투른 사람이 하는 일이 신통할 리가 없으니 심하게 나무랄 것이 못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도마에 오른 고기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을 이르는 말. 도마 위의 고기가 칼을 무서워하랴 이미 죽음을 각오한 사람이 무엇을 무서워하겠느냐는 뜻. 도적은 제 발이 저려서 뛴다 =도둑이 제 발 저리다. 도적의 때는 아무 때건 벗는다 억울하게 누명을 쓰더라도 언젠가는 사실이 밝혀져 그 누명을 벗을 수 있게 된다는 말.  도적이 돈을 빼앗지 못하면 주인 뺨이라도 때리고 뛴다 도둑은 결코 그냥 물러서는 법이 없고 반드시 해로운 일을 하고야 만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도적이 주인더러 밥 잡수 한다 도적이 주인처럼 제 마음대로 행동하면서 오히려 주인더러 ‘그 밥 잡수’ 한다는 뜻으로, 잘못을 저지른 자가 매우 뻔뻔스럽게 행동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도적이 코 세운다 잘못한 사람이 아무런 잘못도 없는 것처럼 행동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도적고양이 코 세다. 도토리 키 재기 1.정도가 고만고만한 사람끼리 서로 다툼을 이르는 말. 2.비슷비슷하여 견주어 볼 필요가 없음을 이르는 말. 도투마리 잘라 넉가래 만들기 ‘아주 만들기 쉬운 것’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독사 아가리에 손가락을 넣는다 아주 위험한 짓을 한다는 말. 독서당 개가 맹자 왈 한다 어리석은 사람도 늘 보고 들은 일은 능히 잘할 수 있게 된다는 말. 독수공방에 유정 낭군 기다리듯 홀로 빈방을 지키며 사랑하는 사람이 오기만을 기다린다는 말로, 무엇인가를 간절히 바라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독수공방에 정든 님 기다리듯. 독수공방에 정든 님 기다리듯 =독수공방에 유정 낭군 기다리듯. 독수리가 병아리 채 가듯 갑자기 덮쳐서 감쪽같이 채 가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독수리는 모기를 잡아먹지 않는다 자신의 위신에 어울리지 않는 지나치게 세세한 일에는 신경을 쓰지 아니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독수리는 파리를 못 잡는다 각자 능력에 맞는 일이 따로 있다는 말. 독수리 본 닭 구구 하듯 독수리를 본 닭이 정신이 나가 떠도는 것에서 나온 말로, 위험이 닥쳤을 때 겁에 질려 어쩔 줄 모르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돈 나는 모퉁이 죽는 모퉁이 돈 벌기는 매우 어렵다는 말. 돈 떨어지자 입맛 난다 돈을 다 쓰고 나면 더더욱 필요한 일이 생겨 간절해진다는 말. 돈만 있으면 개도 멍첨지라 천한 사람도 돈만 있으면 귀하게 대접받는다는 말. 돈만 있으면 귀신[두억시니]도 부릴 수 있다 돈으로 못 할 일이 없다는 말. 돈맛을 보면 대통 그림자를 따라간다 =돈이라면 대통 그림자도 따라간다. 돈반 밥 먹고 열네 닢으로 사정한다 조금이라도 덜 주려고 다랍게 군다는 말. 돈 빌려주면 돈도 잃고 친구도 잃는다 돈 없는 놈이 큰 떡 먼저 든다  돈에 침 뱉는 놈 없다 사람은 누구나 돈을 소중히 여긴다는 말. 돈이 돈을 번다 돈이 많아야 이익을 많이 남길 수 있다는 말. 돈이 많으면 장사를 잘하고 소매가 길면 춤을 잘 춘다 돈주머니가 크다고 인심도 후하랴 돈이 많은 부자일수록 더 인색하고 인정이 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돋우고 뛰어야 복사뼈라 다 해낼 듯이 날뛰어 봤자 얼마 못한다는 말.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 무슨 일이든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가며 하라는 말. 돌다(가) 보아도 마름[물방아] 물 위에 떠돌아다니는 마름은 아무리 떠돌아도 마름이듯이 별다른 진보가 없이 같은 일만 되풀이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돌담 구멍에 독사 주둥이 어떤 것이 흔하게 여기저기 많이 끼어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돌담 구멍에 족제비 눈깔 돌담에 족제비가 많은 것처럼 무엇이 흔하게 많이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눈매가 날카로운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돌담 배 부른 것 도무지 유용한 데는 없고 해만 끼치는 존재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돌담의 부른 배는 쓸모가 없다. 돌담의 부른 배는 쓸모가 없다 =돌담 배 부른 것. 돌도 십년을 보고 있으면 구멍이 뚫린다  돌로 치면 돌로 치고 떡으로 치면 떡으로 친다 원수는 원수로 갚고, 은혜는 은혜로 갚는다는 말. 돌림병에 까마귀 울음 매우 불길한 징조를 이르는 말. 돌멩이 갖다 놓고 닭알 되기를 바란다 전혀 가망이 없는 일을 행여나 하여 기대하는 경우에 놀림조로 이르는 말. 돌배도 맛 들일 탓 처음에는 싫다가도 차차 재미를 붙이고 정을 들이면 좋아질 수도 있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돌부리를 차면 발부리만 아프다 쓸데없이 함부로 성을 내면 자기에게만 해가 돌아온다는 말. 돌부처가 웃다가 배꼽이 떨어지겠다 =돌미륵이 웃을 노릇. 돌부처가 웃을 노릇 =돌미륵이 웃을 노릇. 돌부처도 꿈적인다 남편이 첩을 보면 아무리 무던한 부인도 화를 낸다는 말. 돌부처보고 아이 낳아 달란다 도저히 실현되지 않을 대상이나 사물에게 무리한 것을 소망하는 어리석은 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돌아본 마을 뀌어 본 방귀 놀러 다니던 사람일수록 잘 돌아다니며 방귀는 뀌어 보기 시작하면 안 할 수 없다는 뜻으로, 무엇이나 하기 시작하면 재미가 붙어 그만둘 수 없음을 이르는 말. 돌절구도 밑 빠질 때가 있다 아무리 튼튼한 것도 오래 쓰면 결딴나는 날이 있다. 돗자리는 갈아 댈수록 좋다 물건이 새것일수록 좋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동기간 싸움은 칼로 물 베기 동기간은 싸워도 화합하기 쉬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동냥아치 쪽박 깨진 셈 먹고사는 데 쓰는 유일한 기술이나 연장이 못쓰게 된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동냥아치 첩도 제멋에 한다 =동냥자루도 제멋에 찬다. 동냥은 안 주고 쪽박만 깬다 돕기는커녕 훼방만 놓는다는 뜻. 동냥은 혼자 간다 무엇을 얻는 일에 여럿이 가면 몫이 적어지게 마련이라는 말. 동냥자루도 마주 벌려야 들어간다 어떤 일이든지 서로 힘을 합쳐야 일이 잘 이루어진다는 말. 동냥자루를 찢는다 작은 잇속을 놓고 서로 다툰다는 뜻. 동냥치 첩도 제멋에 취한다 =동냥자루도 제멋에 찬다.  동냥치가 동냥치 꺼린다 제가 무슨 일을 청구하러 갔을 때 또 다른 사람도 와 구하면 혹 제 몫이 줄어들까 봐 방해자로 취급하고 미워한다는 말. 동네 색시 믿고 장가 못 든다 남을 막연히 믿다가 낭패 본다는 말. 동녘이 번하니까 다 내 세상인 줄 안다 세상 물정 모르고 무슨 일이나 다 좋게만 될 것으로 과대망상을 하고 있다는 말. ≒동녘이 훤하면 새벽[세상]인 줄 안다. 동녘이 훤하면 새벽[세상]인 줄 안다 =동녘이 번하니까 다 내 세상인 줄 안다. 동무 따라 강남 간다 자기는 하고 싶지 않은데 남에게 끌려서 덩달아 같이 행동함을 이르는 말. 동무 사나워 뺨 맞는다 좋지 않은 동무를 사귀어, 그 동무의 잘못으로 남에게서 추궁받을 때 자기도 같이 욕을 당하게 된다는 말. 동방화촉 노(老)도령이 숙녀 만나 즐거운 일 매우 즐거운 일이라는 말. 동상전에 들어갔나 먼저 말을 하여야 할 경우에 말없이 그저 웃기만 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동생의 말도 들어야 형의 말도 듣는다 웃어른이라고 하여 일방적으로 내리누르거나 요구만 해서는 안 된다는 말. 아무리 형제간이라도 의리가 있고 서로 간의 은혜 갚음이 있어야 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동생 죽음은 거름이라 다른 사람의 불행이 자기에게는 다행한 일이 될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동생 줄 것은 없어도 도둑 줄 것은 있다 가난하여 제 손으로 남에게 줄 것은 없어도 도둑이 가져갈 만한 것은 있다는 말. 인색하여 응당 돌보아야 할 근친자조차 동정하지 아니한 사람도 도둑이 빼앗아 가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말.  동성 아주머니 술도 싸야 사 먹지 아무리 친분이 두터워도 잇속 없는 관계는 맺지 않는다는 말. 동아 속 썩는 것은 밭 임자도 모른다 남이 혼자 속으로만 하는 걱정은 아무리 가깝게 지내는 사람도 알 수 없다는 말. 동에 번쩍 서에 번쩍 1.금방 여기에 나타났다가 저기에 나타났다가 할 만큼 바쁘게 활동함을 이르는 말. 2.정처도 없고, 종잡을 수도 없이 이곳저곳을 싸돌아다님을 이르는 말. 동의 일 하라면 서의 일 한다 동정 못 다는 며느리 맹물 발라 머리 빗는다 일솜씨는 없는 주제에 겉치레만 꾸미려 함을 비꼬아 이르는 말. 동지섣달에 베 잠뱅이를 입을망정 다듬이 소리는 듣기 싫다 다듬이질 소리는 매우 듣기 싫은 소리임을 이르는 말. 들볶이면서 대접을 받느니보다 고생스러워도 마음 편안히 지내는 것이 나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동짓달에 멍석딸기 찾는다 ‘동지 때 개딸기’의 북한 속담. 동쪽이 번하니 세상만 여긴다 ‘동녘이 번하니까 다 내 세상인 줄 안다’의 북한 속담. 동헌에서 원님 칭찬한다 겉치레로 입에 발린 칭찬을 함을 이르는 말. 돼지가 깃을 물어 들이면 비가 온다 ‘미련한 사람의 직감이 맞아떨어짐’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돼지에 진주(목걸이) ‘아무 소용없거나 격에 맞지 않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돼지 왼 발톱 보통 때와는 다른 짓을 하거나 남다른 짓을 한다는 뜻. 돼지우리에 주석 자물쇠[천반자] 제격에 맞지 아니하게 지나친 치장을 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돼지 발톱에 봉숭아를 들인다. 되 글을 가지고 말 글로 써먹는다  되놈과 겸상을 하면 재수가 없다 어떤 사람과 겸상하기 싫다는 말. 되놈이 김 풍헌을 안다더냐 지위가 높은 사람을 몰라보고 모욕한 경우를 핀잔하는 말. 되는 집에는 가지 나무에 수박이 열린다 ‘잘 되어 가는 집은 일마다 좋은 결과를 맺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 조금 준 대가로 받는 것이 훨씬 크거나 많음을 이르는 말. 되지못한 풍잠이 갓 밖에 어른거린다 된장에 풋고추 박히듯 ‘어떠한 곳에 가서 자리를 뜨지 않고 꼭 틀어박혀 있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 장래성이 있는 사람은 어릴 때부터 남다른 데가 있다는 말. 두견이 목에 피 내어 먹듯 남에게 억울한 일이나 못할 짓을 하여 재물을 빼앗음을 이르는 말. 두꺼비씨름 누가 질지 누가 이길지 서로 다투어도 승부의 결말이 나지 않는다는 말. 두꺼비 파리 잡아먹듯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늘름늘름 받아먹거나 챙기는 모양.   두더지 혼인 같다 제 본분을 모르고 엉뚱한 희망을 가진다는 뜻. 두덩에 누운 소 ‘편하게 놀고 지내는 좋은 팔자’를 이르는 말. 두렁에 누운 소. 두렁에 누운 소 ☞두덩에 누운 소. 두 동서 사이에 산 쇠사다리라 두메 앉은 이방(吏房)이 조정(朝廷) 일 알듯 1.출입 없이 들어앉은 사람이 먼 바깥일을 잘 안다는 말. 2.현장과는 전혀 무관하거나 뚝 떨어져 있으면서 현장 일에 밝은 듯이 말하는 일을 비웃는 말. 두부 먹다 이 빠진다 두부살에 바늘뼈 =바늘뼈에 두부살. 두 손뼉이 맞아야 소리가 난다 1.무슨 일이나 두 편에서 서로 맞받아 응해야 이루어질 수 있다는 말. 2.서로 같은 동아리라야 말다툼이나 싸움이 된다는 말. 두 손의 떡 두 가지 일 가운데서 어느 일을 먼저 해야 할지 모를 경우를 두고 이르는 말. 둘러치나 메어치나 매한가지[매일반] 수단이나 방법이야 어떠하든 결과는 마찬가지라는 말.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르겠다 음식 맛이 매우 좋다는 말. 둘째 며느리 삼아 보아야 맏며느리 착한 줄 안다 비교할 것이 없으면 그 참된 값어치를 알기 어렵다는 말. 뒤로 오는 호랑이는 속여도 앞으로 오는 팔자는 못 속인다 운명은 맘대로 할 수 없다는 말. 뒤로[뒤에서] 호박씨 깐다 ‘겉으로는 얌전한 체하면서 은밀히 온갖 짓을 다 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뒷구멍으로 호박씨 깐다. 뒤에 난 뿔이 우뚝하다 후배나 젊은이가 선배나 늙은이보다 더 훌륭하다는 말. 뒤에 볼 나무는 그루를 돋우어라 뒷일을 생각하거든 미리부터 준비를 하라는 말. 뒤웅박 차고 바람 잡는다 불가능하고 허황된 짓을 함을 이르는 말. 뒤주 밑이 긁히면 밥맛이 더 난다 쌀이 이미 없어진 이후에 밥맛이 더 난다는 뜻으로, 무엇이 없어지는 것을 본 뒤면 그것이 더 애석하게 여겨지고 더 간절하게 생각난다는 말. 뒷간과 사돈집은 멀어야 한다 뒷간은 가까우면 냄새가 나서 나쁘고 사돈집이 가까우면 말이 많으니, 서로 멀리 있는 것이 좋다는 말. 뒷간에 갈 적 마음 다르고 올 적 마음 다르다 제게 긴할 때는 다급하게 굴다가, 제 할 일을 다하고 나면 마음이 변하여 처음과 달라짐을 이르는 말. 똥 누러 갈 적 마음 다르고 올 적 마음 다르다. 뒷구멍으로 호박씨 깐다 겉으로는 얌전한 체하면서, 은밀히 온갖 짓을 다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뒷집 마당 벌어진 데 솔뿌리 걱정한다 제 걱정도 많은데 쓸데없이 남의 걱정을 하는 것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뒹굴 자리보고 씨름에 나간다 드나드는 개가 꿩을 문다 부지런하게 나다니는 사람이 일도 이루고, 재물도 얻는다는 말. 드는 돌에 낯 붉는다 원인이 있어서 결과가 생긴다는 말. 드는 정은 몰라도 나는 정은 안다 정이 들 때는 잘 느끼지 못해도, 정이 식을 때는 뚜렷이 알 수 있다는 말. 드러난 상놈[백성]이 울 막고 살랴 아무것도 없음을 세상이 다 아니 구태여 가난한 것을 남부끄럽게 여길 것이 아니라는 말. 드문드문 걸어도 황소걸음 진도는 느리나 그것이 오히려 믿음직스럽고 알차다는 말. ¶드문드문 걸어도 황소걸음이라고 그가 하는 일은 늘 믿음직스럽다. 드물어도 아이가 든다 일이 더디기는 하나 이루어지기는 한다는 말. 듣기 좋은 노래도 한두 번이지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너무 반복되면 싫증이 난다는 말. 듣보기장사 애 말라 죽는다 ‘요행수를 바라고 애태우는 사람의 모습’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들녘 소경 머루 먹듯 멋도 모르고 덤벙댄다는 말. 들어오는 복도 차 던진다 자기의 잘못으로 제게 오는 복을 잃어버리다. 들으면 병이요, 안 들으면 약이다 들어서 근심될 말은 안 듣는 것이 낫다는 말. 들 적 며느리 날 적 송아지 흔히 며느리는 출가해 온 뒤에 줄곧 일만 하며 산다는 말. 들지 않는 솜틀은 소리만 요란하다 1.어리석고 못난 사람일수록 젠체하고 나선다는 말. 2.되지도 않을 일을 소문만 크게 낸다는 말. 등걸이 없는 휘추리가 있나 부모가 있어야 자식이 있는 것이니 부모에게 효도하라는 말. 등겨가 서 말만 있으면 처가살이 안 한다 처가살이는 할 것이 아니라는 말. 등겨 먹던 개는 들키고 쌀 먹던 개는 안 들킨다 크게 나쁜 짓을 한 사람은 들키지 않고, 사소한 잘못을 저지른 사람만 들켜 애꿎은 허물까지 쓰게 된다는 말. 등살이 꼿꼿하다 일이 매우 거북하여 꼼짝달싹할 수가 없다는 말. 등잔 밑이 어둡다 가까이서 생긴 일을 오히려 더 모를 수도 있음을 이르는 말. 등하불명(燈下不明). 등잔불에 콩 볶아 먹을 놈 어리석고 옹졸하여 하는 짓마다 답답한 일만 하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 등줄기에서 노린내가 나게 두들긴다 몹시 때린다는 말. 등치고 간 내먹다 겉으로는 위해 주는 척하며 실제로는 해를 끼치거나 빼앗음을 이르는 말. 등치고 배 문지른다 남을 구박하거나 윽박지르면서, 제삼자가 보는 데서는 돌봐 주는 척함을 이르는 말. 따 놓은 당상(堂上) [높은 벼슬자리는 이미 따 놓은 것이나 다름없다는 뜻으로] 일이 이미 확실하여 변동이 있을 수 없을 때나 이미 자기 차지가 될 것이 틀림이 없음을 이르는 말. 딱따구리 부작 무엇이든지 완벽하게 하려고 하지 않고 명색만 그럴듯하게 갖추는 것을 이르는 말. 딸 없는 사위 1.인연이나 관계가 끊어져서 정이 멀어졌다는 말. 2.쓸데없이 된 물건을 이르는 말. 딸은 제 딸이 고와 보이고 곡식은 남의 곡식이 탐스러워 보인다 딸의 굿에 가도 자루 아홉은 갖고 간다 딸의 시앗은 바늘 방석에 앉히고 며느리 시앗은 꽃방석에 앉힌다 딸의 차반 재 넘어가고 며느리 차반 농 위에 있다 딸이 셋이면 문을 열어 놓고 잔다 딸자식 길러 시집보내면 륙촌이 된다 =아들은 말 태워 놓으면 사촌 되고 딸은 시집보내면 륙촌 된다. 땅 넓은 줄은 모르고 하늘 높은 줄만 안다 땅 짚고 헤엄치기 매우 쉽다는 말. ¶읽기야 땅 짚고 헤엄치기지, 쓰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땅내가 고소[구수]하다 오래지 않아 죽을 것 같은 느낌이 들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 겉으로는 위해 주는 척하면서 속으로는 해하려는 사람이 더 밉다는 말. 땡감을 따 먹어도 이승이 좋다 구차하게 살아도 죽는 것보다는 사는 것이 낫다는 말. 떡가루 두고 떡 못할까 으레 되기로 정해진 일을 하면서 자랑할 것이 무어냐고 핀잔하는 말. 떡갈나무에 회초리 나고, 바늘 간 데 실이 따라간다 두 가지 사물의 관련성이 썩 긴밀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떡국이 농간한다 재질은 부족하지만 오랜 경험으로 일을 잘 감당하고 처리해 나감을 이르는 말. 떡국점이 된 눈깔 무엇을 찾으려고 둥글게 뜨고 희번덕거리는 눈을 속되게 이르는 말. 떡도 떡같이 못 해 먹고 찹쌀 한 섬만 다 없어졌다 떡방아를 찧어도 옳은 방아를 찧어라 떡방아 소리 듣고 김칫국 찾는다 일이 제대로 이루어지기도 전에 지레짐작으로 성급하게 서두름을 이르는 말.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 기회가 좋을 때 벼르던 일을 해치운다는 말. 떡으로 치면 떡으로 치고 돌로 치면 돌로 친다 떡잎에 황이 들다 원래 보잘것없는 것이 더욱 나빠짐을 이르는 말. 기세가 약해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사람이 맥을 못 추고 다 늙어 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떡 줄 사람은 꿈도 안 꾸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 상대편은 줄 생각을 않는데 받을 준비부터 먼저 한다는 말. 떡판에 엎드러지듯 =떡 친 데 엎드러졌다. 떡 해 먹을 집안 떡을 하여 귀신에게 고사를 지내야 할 집안이라는 뜻으로, 서로 화합하지 못한 집안을 이르는 말. 떨어진 주머니에 어패 들었다 겉모양은 허술하고 보잘것없으나 실속은 뜻밖에 훌륭하고 소중하다는 말. 떫기는 오뉴월 산살구 같다 사람이 사귈 기분을 느끼게 하지 못하고 떨떠름한 경우를 이르는 말.  떫기로 고욤 하나 못 먹으랴 다소 힘들다고 그만 일이야 못하겠느냐는 뜻. 떫은 배도 씹어 볼 만하다 처음에는 좋지 않더라도 차차 정을 붙이고 지내노라면 차츰 재미를 느끼게 된다는 말. 뗏말에 망아지 여럿 속에 끼어, 그럴듯하게 엄벙덤벙 지내는 사람을 이르는 말. 또아리 샅[눈] 가린다 가린다고 가렸으나 가장 요긴한 데를 가리지 못했음을 이르는 말. 똥개도 백 마리면 범을 잡는다 보잘것없는 힘이라도 여럿의 힘을 합치면 큰일을 할 수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똥구멍으로 호박씨 깐다 ‘겉으로는 얌전한 체하면서 은밀히 온갖 짓을 다함’을 비유하는 말.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하다 살림살이가 몹시 궁색하다. 똥 누고 밑 아니 씻은 것 같다 일한 뒤끝이 개운하지 않고 꺼림칙하다는 말. 똥 누러 갈 적 마음 다르고 올 적 마음 다르다 ☞뒷간에 갈 적 마음 다르고 올 적 마음 다르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 제 허물은 더 크면서, 남의 작은 허물을 들어 시비한다는 말. 똥은 건드릴수록 구린내만 난다 똥이 무서워 피하나 더러워 피하지 야비하고 고약한 사람과는 시비하지 말고 피하는 것이 낫다는 말. 똥 친 막대기 천하게 되어 가치가 없는 물건이나 버림받은 사람을 이르는 말.  뚝배기 깨지는 소리 1.음성이 곱지 못하고 탁한 것을 이르는 말. 2.잘 못하는 노래나 말을 놀리거나 비꼬아 하는 말.  뚝배기보다 장맛이 좋다 겉모양보다 내용이 훨씬 낫다는 말. 뚫어진 벙거지에 우박 맞듯 정신을 못 차리도록 무엇이 마구 떨어지거나 쏟아짐을 비유하는 말.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 뜨거운 국에 맛 모른다 사리를 알지 못하고 날뛰거나 혹은 무턱대고 행동한다는 말. 급한 경우를 당하면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없다는 말.  뜨거운 물에 덴 놈 숭늉 보고도 놀란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소댕[솥뚜껑] 보고 놀란다. 뜨겁기는 박태보(朴泰輔)가 살았을라고 뜨겁기는 하지만 참으라는 말. 뜻과 같이 되니까 입맛이 변해진다 오래 바라던 것이 이루어지니까 벌써 싫증을 느낀다는 말.     마냥모 판에는 뒷방 처녀도 나선다 늦모내기를 할 때에는 매우 바쁘고 사람 손이 모자람을 이르는 말. 마당 벌어진 데 웬 솔뿌리 걱정 [마당이 벌어졌는데 그릇이 터졌을 때 필요한 솔뿌리를 걱정한다는 뜻으로] 당치 않은 것으로 사건을 수습하려 함을 빗대어 이르는 말. 마당질 뒤의 쌀자루 우두커니 침묵만 지키고 있는 모습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마디에 공이 닿아 아끼는 곳에 더욱 상하기 쉬운 흠이 있음을 이르는 말. 마디에 옹이 어려운 일이 겹쳤음을 이르는 말. 일이 공교롭게 잘 안됨을 이르는 말. 마루 넘은 수레 내려가기 일의 진행이나 형세의 변화 따위가 매우 빠르거나 걷잡을 수 없는 기세임을 이르는 말. 마룻구멍에도 볕 들 날이 있다 고생을 참고 기다리면 좋은 시기를 만날 수도 있다는 말. 마른나무에 물 날까 원인 없는 결과는 있을 수 없다는 뜻. 마른나무에 좀먹듯 모르는 사이에 건강이 나빠지거나 재산이 없어짐을 이르는 말. 마른날에 벼락 맞는다 뜻하지 아니한 상황에서 억울하게 화를 입거나 봉변을 당하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마른논에 물 대기 1.일이 매우 힘들다는 뜻. 2.힘들여 해 놓아도 성과가 없다는 뜻. 마른땅에 말뚝 박기 일을 어렵고 힘들게 마구 해 나가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마른땅에 물이 잦아들듯 땅이 물을 흡수하는 힘이 매우 강하듯 무엇을 받아들이는 기세가 매우 강한 상태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마른하늘에 날벼락 뜻밖에 당하는 재앙을 뜻하는 말. 마름쇠도 삼킬 놈 몹시 탐욕스러운 사람을 이르는 말. 마마 그릇되듯 ‘형세가 손을 쓸 수 없는 방향으로 그릇되어 나감’을 이르는 말. 마방집이 망하려면 당나귀만 들어온다 사업과는 관계없는 잡것만 끼어들어 일이 잘 되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 마소 새끼는 시골로 사람의 새끼는 서울로 사람은 도회지에서 자라고 배워야 견문이 넓어진다는 말. 마음씨가 고우면 옷 앞섶이 아문다 아름다운 마음씨는 그의 겉모양에도 나타난다는 말. 마음에 없는 염불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마지못해 하는 일을 이르는 말. 마음이 풀어지면 하는 일이 가볍다 마음잡아 개장사 방탕하던 사람이 마음을 돌려 생업(生業)을 하려 하지만, 결국 오래가지 않아 헛일이라는 말. 마음 한번 잘 먹으면 북두칠성이 굽어보신다 마음을 올바르게 쓰면 신명(神明)이 돌본다는 말. 마지막 고개를 넘기기가 가장 힘들다 어떤 일이든지 끝을 잘 마무리하기가 가장 힘듦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마지막 담배 한 대는 기생첩도 안 준다 마지막 남은 한 대의 담배는 남을 주기가 매우 아까움을 이르는 말. 마치가 가벼우면 못이 솟는다 윗사람이 위엄이 없으면, 아랫사람이 순종하지 않는다는 뜻.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음식을 매우 빨리 먹어 치움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마파람에 곡식이 혀를 빼물고 자란다 마판이 안되려면 당나귀 새끼만 모여든다 하는 일이 잘 안되려면 쓸데없는 것들만 찾아와 귀찮게 군다는 말. 막걸리 거르려다 지게미도 못 건진다 큰 이익을 보려다가 도리어 손해만 보았다는 말. 막내둥이 응석 받듯 어떠한 말이나 행동을 하더라도 하는 대로 내버려 둠을 이르는 말. 막내아들이 첫아들이라 무엇이든지 맨 나중 것이 가장 소중히 여겨진다는 말. 단 하나 밖에 없다는 말. 막다른 골목이 되면 돌아선다 일이 궁지에 이르게 되면 계책이 생기게 마련이라는 뜻. 막둥이 씨름하듯 힘이 비슷하여 서로 낫고 못함이 없는 경우를 이르는 말. 막술에 목이 멘다 지금까지 순조롭던 일이 마지막에 탈이 남을 이르는 말. 막혔던 물목이[동이] 터진 듯 많은 것이 한꺼번에 쏟아지거나 생기거나 혹은 자라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만경창파에 배 밑 뚫기 심통 사나운 짓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만나자 이별 서로 만나자마자 곧 헤어짐을 이르는 말. 만날 뗑그렁 생활이 넉넉하여 만사에 걱정이 없음을 이르는 말. 만득이 북 짊어지듯 짊어진 물건이 둥글고 크며 보기에 매우 불편해 보이는 형상을 이르는 말. 만리길도 한 걸음부터 시작된다 만만찮기는 사돈집 안방 ‘자유롭지 못하고 거북함’을 이르는 말. 만수산에 구름 모이듯 사물이 많이 모임을 이르는 말. 만승천자도 먹어야 산다 사람은 안 먹고는 못 사니, 먹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 많은 밥에 침 뱉기 매우 심술 사나운 짓을 이르는 말. 맏며느리 손 큰 것 아무짝에도 쓸모없고 도리어 있어서 해로운 존재를 이르는 말. 말 가는 데 소도 간다 남이 하는 일이라면 자신도 노력만 하면 능히 할 수 있다는 말. 말 갈 데 소 간다 가서는 안 될 데를 간다는 뜻. 말고기를 다 먹고 무슨 냄새 난다 한다 제 욕심을 채우고 나서 쓸데없는 불평을 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말똥도 모르고 마의(馬醫) 노릇 한다 어떤 일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그 일을 맡음을 조롱하여 이르는 말. 말똥도 밤알처럼 생각한다 욕심에 눈이 어두워 매우 인색하게 굶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 말똥도 세 번 굴러야 제자리에 선다 무슨 일이나 여러 번 해 봐야 제자리가 잡힌다는 말. 말똥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 고생스럽게 살더라도 죽는 것보다 낫다는 말. 말똥을 놓아도 손맛이더라 비록 하찮은 것을 차리더라도 솜씨에 따라서 그 맛이 달라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말똥이 밤알 같으냐 못 먹을 것을 먹으려 함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 아주 가망이 없는 일을 바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 말로 온 동네 다 겪는다 [온 동네 사람을 음식으로 대접하는 대신 말로 때운다는 뜻으로] 실천은 하지 않고 모든 것을 말만으로 해결하려 듦을 이르는 말. 말 많은 집은 장맛도 쓰다 가정에 말이 많으면 살림이 잘 안된다는 말. 말 삼은 소 짚신이라 [신 삼을 줄 모르는 말이 소의 신을 삼는다는 뜻으로] 무엇을 한다고 하여 놓은 것이 뒤죽박죽이어서 못 쓰게 되었음을 이르는 말. 말 위에 말을 얹는다 욕심이 많은 사람을 이르는 말. 말은 갈수록 태보고, 봉송은 갈수록 준다 말은 쉬워도 하기는 어렵다 말은 할수록 늘고 되질은 할수록 준다 말은 해야 맛이요 고기는 씹어야 맛이라 말은 행동보다 쉽고 약속은 실행보다 쉽다 말이 많으면 쓸 말이 적다  말 꼬리에 파리가 천 리 간다 말끝에 단 장 달란다 상대편의 마음을 사 놓고 자기가 바라는 것을 요구한다는 말. ≒말말끝에 단 장 달란다. 말 타면 경마 잡히고 싶다 사람의 욕심이란 한이 없음을 이르는 말. 말 한마디에 천 냥 빚도 갚는다 말만 잘하면 어떤 어려움도 해결할 수 있다는 말. 말 한 마리 다 먹고 말 냄새 난다 한다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나서 공연한 트집을 잡는다는 말. 맛없는 국이 뜨겁기만 하다 사람답지 못한 자가 교만하고 까다롭게 군다는 말. ≒못된 음식이 뜨겁기만 하다. 맛없는 음식도 배고프면 달게 먹는다 =시장이 반찬. 맛있는 음식도 늘 먹으면 싫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되풀이되면 싫증을 내게 된다는 말. 망건골에 앉았다 =망건 끝에 앉았다. 망건 쓰자 파장(罷場) 때를 놓쳐 일을 이루지 못함을 이르는 말. 망건편자를 줍는다 아무 잘못도 없이 매를 맞고 의관을 찢기고도 호소할 데가 없어 남아 있는 망건편자만 줍는다는 말. 망나니 짓을 하여도 금관자 서슬에 큰 기침한다 망둥이가 뛰니까 전라도 빗자루도 뛴다 남이 뛰며 좋아하니까 공연히 덩달아 날뛴다. 망둥이가 뛰면 꼴뚜기도 뛴다 남의 행동에 편승하여 덩달아 설침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 망둥이 제 동무 잡아먹는다 동류(同類)나 친척 간에 서로 싸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망둥이 제 새끼 잡아먹듯. 망둥이 제 새끼 잡아먹듯 =망둥이 제 동무 잡아먹는다. 망발 토 달아 놓다 무심결에 자기나 자기 조상에게 욕이 될 말을 함을 이르는 말. 망석중 놀리듯 사람을 자기 마음대로 부추겨 조롱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망신살이 무지갯살 뻗치듯 한다 더할 수 없는 큰 망신을 당하여, 많은 사람으로부터 심한 욕설과 원망을 받게 됨을 이르는 말. 망신하려면 아버지 이름자도 안 나온다 맞기 싫은 매는 맞아도 먹기 싫은 음식은 못 먹는다 맞은 놈은 펴고 자고 때린 놈은 오그리고 잔다 매 끝에 정든다 사랑의 매는, 때리는 사람이나 맞는 사람 사이를 더 가깝게 해 준다. 매달린 개가 누워 있는 개를 웃는다 남만 못한 주제에 남을 비웃는다는 말. 매도 먼저 맞는 놈이 낫다 어차피 당해야 할 일이라면 먼저 치르는 편이 낫다. 매로 키운 자식이 효성 있다 잘되라고 매도 때리고 꾸짖어 키우면, 그 자식도 커서 그 공을 알아차려 효도를 하게 된다. 매에는 장사 없다 매로 때리는 데에는 끝까지 버티어 낼 수가 없는 법이다. 매인 개처럼 돌아다니려고만 한다 그저 돌아다니려고만 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맥도 모르고 침통 흔든다 일의 속내도 모르고 함부로 덤빈다는 말. 맨발로 바위 차기 되지도 아니할 것을 하여 도리어 자기에게 손해만 돌아오게 하는 어리석고 소용없는 짓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맨입에[맨입으로] 앞 교군 서라 한다 어려운 중에 또 어려운 일이 겹침을 이르는 말. 맨입으로 드난한다 할 일은 하지 아니하고 말만 늘어놓음을 이르는 말. 맹꽁이 결박한 것 같다 키가 작고 몸이 뚱뚱한 사람이 옷을 잔뜩 입은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맹꽁이 통에 돌 들이친다 매우 시끄럽게 떠들던 것이 갑자기 조용하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맹물에 조약돌 삶은 맛이다 아무 맛도 없음을 이르는 말. 맹자 집 개가 맹자 왈 한다 무식한 사람도 오래 보고 들으면 자연히 견문이 생긴다는 말. 맺은 놈이 풀지 무엇이든 처음 하던 사람이 그 일의 끝을 내야 한다는 말. 머루 먹은 속 대강 짐작을 하고 있는 속마음이라는 말. 머리 검은 짐승은 남의 공을 모른다 사람이 짐승보다도 더 남의 은공을 모르는 수가 많다. 머리는 끝부터 가르고 말은 밑부터 한다 머리 없는 놈 댕기 치레한다 본바탕은 보잘것없는 놈이 겉치레는 더 한다. 못생긴 놈이 몸치장을 더 한다. 머리카락 뒤에서 숨바꼭질한다 얕은 꾀로 남을 속이려 함을 이르는 말. 머리칼을 베서 신을 삼겠다 ‘머리털을 베어 신발을 삼다’의 북한 속담. 머리털을 베어 신발을 삼다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자기가 입은 은혜는 잊지 않고 꼭 갚겠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머슴보고 속곳 묻는다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에게 자기에게나 요긴한 일을 엉뚱하게 물어보나, 그가 알 리가 없다는 말. 남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생소한 사람에게 자기만의 일을 말함을 이르는 말.  머슴살이 삼 년에 주인 성 묻는다 사람이 무심하여 응당 알고 있을 만한 것도 모르고 지낸다는 말. 머슴이 강짜한다 관계없는 일에 주제넘게 간섭을 한다는 말. 먹기는 아귀같이 먹고 일은 장승처럼 한다 먹기는 파발이 먹고 뛰기는 역마가 뛴다 애쓴 사람은 제쳐 놓고 엉뚱한 사람이 보수를 받는다는 말. 먹기는 혼자 먹어도 일은 혼자 못한다 일은 협동해서 하는 편이 효과적이라는 말. 먹는 개도 아니 때린다 음식을 먹는 사람을 때리거나 꾸짖지 말라는 말. 먹는 데는 감돌이 일에는 배돌이 먹는 자리에는 빠지지 않으면서 일하는 자리에는 요리조리 피하는 사람을 두고 이르는 말. 먹는 데는 남이요 궂은 일엔 일가다 먹는 떡에도 소를[살을] 박으라 한다 이왕 하는 일이면 모양 좋게 잘하는 것이 좋다는 말. 먹는 소가 똥을 누지 공을 들여야 보람이 나타난다는 말. 먹물 먹은 노끈이 재목을 가리지 않는다 사람을 가리지 말라고 타이르는 말. 먹줄 친 듯하다 무엇이 한결같이 곧고 바르다는 말. 먹지 못할 풀이 오월에 겨우 나온다 되지못한 주제에 거레는 퍽 한다는 말. 먹지 않는 씨아에서 소리만 난다 일을 제대로 잘하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핑계가 많고 큰소리만 잘 친다는 말. 먼 데 단 냉이보다 가까운 데 쓴 냉이 먼 데 무당이 영하다 잘 아는 사람보다 새로 만난 사람을 더 중히 여긴다는 말. 먼 사촌보다 가까운 이웃이 낫다 ☞가까운 남이 먼 일가보다 낫다. 먼저 꼬리 친 개 나중 먹는다 어떤 일이나 먼저 서두르는 사람이 뒤떨어짐을 이르는 말. 먼저 난 머리보다 나중 난 뿔이 무섭다 후배가 선배보다 뛰어남을 이르는 말. 먼저 먹은 후 답답 남보다 먼저 먹고 나서 남이 먹을 때에는 바라만 보고 있음을 이르는 말. 너무 욕심을 부리어 남보다 먼저 많이 하려다가는 도리어 실패한다는 말.  먼저 바꾸자고 할 때에는 도적고양이가 있기 때문이다 물건을 바꾸자고 먼저 말할 때에는 자기 것이 약점이 있거나 상대편의 것보다 못하기 때문이라는 말.  먼저 방망이를 들면 홍두깨가 안긴다 먼저 남을 해친 자는 반드시 더 큰 화를 입게 됨을 이르는 말. 멋에 치여 중 서방질한다 자기 몸을 망치면서도 흥에 이기지 못해 방탕에 빠짐을 이르는 말. 멍석 구멍[?]에 생쥐 눈 뜨듯 겁이 나서 몸을 숨기고 바깥을 살피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메고 나면 상둣군 들고나면 초롱군 메기가 눈은 작아도 저 먹을 것은 알아본다 아무리 식견이 좁은 자라도 제 살길은 다 마련하고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넙치 눈은 작아도 먹을 것은 잘 본다. 메기 등에 뱀장어 넘어가듯 슬그머니 얼버무려 넘어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메기 아가리 큰 대로 다 못 먹는다 욕심대로 모두 이루어지지는 않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메뚜기도 유월이 한철이다 1.‘때를 만난 듯이 날뛰는 사람’을 빗대어 이르는 말. 2.무엇이나 한창때는 짧다는 뜻. 메밀도 굴러 가다가 서는 모가 있다 =달걀도 굴러 가다 서는 모가 있다. =달걀도 굴러 가다 서는 모가 있다.  메밀이 세 모라도 한 모는 쓴다더니 신통찮은 사람이라도 어느 한때는 긴요하게 쓰인다는 말. 메밀이 있으면 뿌렸으면 좋겠다 잡귀를 막기 위해 집 앞에 메밀을 뿌리던 민속에서 나온 말로, 왔다 간 사람이 다시는 오지 않게 했으면 좋겠다는 말. 메주(를) 먹고 술 트림 한다 못 먹고도 잘 먹은 체함을 이르는 말. 앞뒤가 전혀 들어맞지 않는 엉뚱한 노릇을 함을 이르는 말. 메추라기 소 발쪽에 밟히운다 너무 약삭빠르게 굴다가는 큰 낭패를 보는 일도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멧돌 집으러 갔다가 집돌 잃었다 며느리가 미우면 발뒤축이 달걀 같다고 나무란다 미운 사람에 대해서는 없는 허물도 만들어 내면서 나무란다는 말.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 사위 사랑은 장모 며느리 자라 시어미 되니 시어미 티 더한다 멱부리 암탉이다 멱부리 암탉이 턱 밑에 털이 많이 나서 아래를 못 보듯이, 바로 눈앞의 것도 모르는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 면례하는 데 뼈 감추기 심술궂게 방해함을 이르는 말. 멸치 한 마리는 어쭙잖아도 개 버릇이 사납다 개에게 멸치 한 마리를 주는 것은 아깝지 않지만 그로 인해 개의 버릇이 사나워질까 걱정이라는 뜻으로, 물건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버릇을 고치라고 나무라는 말. 명문 집어먹고 휴지 똥 눌 놈 법이나 의리를 예사로 어기는 사람을 욕하는 말. 명산대천에 불공 말고 타관 객지에 나선 사람 괄시를 마라 죽어서 극락 가겠다고 명산대천에 대고 불공을 드릴 생각은 하지 말고, 타관 객지에 나서서 외로운 사람을 괄시하지 말고 잘 대접하며 좋은 일을 해야 극락에 갈 수 있다는 말. ≒명산대천에 불공 말고 타관 객지에 나선 사람 잘 대접하랬다. 명산대천에 불공 말고 타관 객지에 나선 사람 잘 대접하랬다 =명산대천에 불공 말고 타관 객지에 나선 사람 괄시를 마라. 명심하면 명심 덕이 있다 무슨 일이든지 마음을 가다듬어 하면 그만한 이익이 있음을 이르는 말. 명주 고름 같다 성질이 곱고 보드랍다. 명주 옷은 사촌까지 덥다 가까운 사람이 부귀하게 되면 그 도움이 자신에게까지 미침을 이르는 말. 명주 자루에 개똥 겉은 그럴듯하나 속은 더럽고 우악한 사람을 이르는 말. 명태 대가리 하나는 놀랍지 않아도 괭이 소위가 괘씸하다 없어진 명태가 아깝기보다 훔쳐 간 고양이의 소행이 더 밉다는 뜻으로, 입은 손해보다도 그 저지른 짓이 미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명태 한 마리 놓고 딴전 본다 하고 있는 일과는 상관없는 엉뚱한 일을 함을 이르는 말. 명태하고 팥은 두들겨서 껍질을 벗기고 촌놈하고 계집은 두들겨서 길들인다 계집은 무섭게 다루어 길을 들여야 한다는 말. 모기 다리에서 피 뺀다 교묘한 수단으로 약한 사람을 착취한다. 모기 보고 칼 빼기[뽑기] 아무것도 아닌 하찮은 일에 너무 야단스레 덤빔을 이르는 말. 견문발검(見蚊拔劍).  모기도 낯짝이 있지 염치없고 뻔뻔스럽다는 말. 모난 돌이 정 맞는다 성격이나 언행이 가탈스러우면 남의 공격을 받게 된다는 말. 모내기 때는 고양이 손도 빌린다 모내는 시기에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있는 대로 다 참여해야 할 정도로 일손이 부족하다는 말. 모래 위에 물 쏟는 격 아무 소용없는 일을 하는 것을 두고 하는 말. 모래 위에 쌓은 성 수고해 보았자 아무 보람이 없는 일을 두고 하는 말. 모래가 싹 난다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을 두고 하는 말. 모래밭에 세워진 궁전 ‘모래 위에 선 누각[집]’의 북한 속담.  모래밭에서 무우 뽑듯 아이를 순탄하게 자주 낳는 모습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수단과 방법이야 어떻든 목적만 이루면 된다는 말. 모르면 약이요 아는 게 병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하여 좋은데, 좀 알고 있으면 도리어 걱정거리가 생겨서 편치 않다는 말. 모사는 재인(在人)이요, 성사(成事)는 재천(在天)이라 일을 꾸미는 것은 사람이요, 일의 성패는 하늘의 뜻에 달렸다는 말. 성공을 미리 기대하거나 예상하기는 어려우나 모름지기 노력은 해야 한다는 뜻. 모시 고르다 베 고른다 1.처음에 뜻하던 바와는 전혀 다른 결과에 이름을 이르는 말. 2.좋은 것을 골라 가지려다가 도리어 좋지 못한 것을 차지하게 됨을 이르는 말. 모양 내다 얼어 죽겠다 실속은 없이 겉보기나 형식만 신경 쓰다가는 낭패할 수 있음을 핀잔하는 말. 모양이 개잘량이다 명예와 체면을 형편없이 잃었음을 이르는 말. 모자라는 사람에게는 세 가지 체병이 있다 똑똑하지 못한 사람은 흔히 모르면서도 아는 체하고 없으면서도 있는 체하며 못난 주제에 잘난 체하는 면이 있다는 말. ≒사람에게는 세 가지 체병이 있다. 모주 장사 열 바가지 두르듯 내용이 빈약한 것을 겉만 꾸미어 낸다는 말. 모진 놈 옆에 있다가 벼락 맞는다 나쁜 사람을 가까이하면 그 사람과 함께 화를 입게 된다는 말. 모처럼 능참봉(陵參奉)을 하니까 한 달에 거둥이 스물아홉 번 모처럼 기다리던 일이 이루어졌으나 어렵고 힘만 들었지 얻은 것이 없다는 말. 모처럼 태수(太守) 되니 턱이 떨어져 모처럼 이룬 일이 허사가 되고 말았을 때 이르는 말. 모화관 동냥아치 떼쓰듯 경우에 닿지 않는 말로 성가시게 군다는 뜻. 목 멘 개 겨 탐하듯 감당할 힘도 없으면서 지나친 욕심을 부림을 이르는 말. 목구멍 때도 못 씻었다 음식이 너무 적어서 아주 조금밖에 먹지 못하였다. (비슷한말)간에 기별도 안 갔다. (참고)간. 목구멍의 때를 벗긴다 오랜만에 맛있는 음식을 실컷 먹는다. 목구멍이 포도청(捕盜廳) 먹고살기 위하여 차마 못할 짓까지 함을 이르는 말. 목낭청의 혼이 씌다 시키는 대로 그대로 하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목마른 놈이 우물 판다 꼭 필요로 하는 사람이 먼저 서둘러 시작한다는 말. 목마른 송아지 우물 들여다보듯 몹시 먹고 싶거나 가지고 싶어 부러워하거나 안타까워함을 이르는 말. 목맨 송아지 남의 제어를 받아 끌려 다니는 처지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목석도 땀 날 때 있다 건강한 사람이라도 아플 때가 있다는 말. 목수 많은 집이 기울어진다 ☞목수가 많으면 집을 무너뜨린다. 목수가 많으면 집을 무너뜨린다 의견이 너무 많으면 도리어 탈을 낸다는 말. 목수 많은 집이 기울어진다. 목욕하는 데 흙 뿌리기 심통 사나운 행동을 이르는 말. 목탁귀가 밝아야 한다 귀가 어두우면 먹을 밥도 얻어먹지 못한다는 말. 목화 신고 발등 긁기 마음에 차지 않거나 시원스럽지 못할 때 이르는 말. 몸꼴 내다 얼어 죽는다 추운 날에 모양을 내느라 옷을 얇게 입는 것을 비웃는 말. 몸이 되면 입도 되다 힘써 일하면 먹을 것도 잘 먹게 된다는 뜻. 몹시 데면 회(膾)도 불어 먹는다 무엇에 몹시 놀란 사람은 그와 비슷한 것만 보아도 미리 겁낸다는 뜻. 못 먹는 감 찔러나 본다 자기가 차지하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심술을 부려 못 쓰게 만들자는 뜻. 못 먹는 씨아가 소리만 난다 1.되지못한 자가 큰소리만 친다. 2.이루지도 못할 일을 시작하면서 소문만 굉장히 퍼뜨린다는 말. 못 먹는 잔치에 갓만 부순다 아무 이득도 없는 일에 분주하기만 하고 손해만 입는다는 말. 못 오를 나무는 쳐다보지도 마라 불가능한 일을 일찌감치 단념하라는 말. 못난 색시 달밤에 삿갓 쓰고 나선다[다닌다] 미운 사람이 점점 더 보기 싫은 짓만 함을 이르는 말. 못난이 열 명의 꾀가 잘난이 한 명의 꾀보다 낫다 한 사람의 지혜보다 여러 사람의 지혜가 더 현명함을 이르는 말. 못되면 조상 탓(잘되면 제 탓) 어떤 일이 안 됐을 때 그 원인을 스스로에게 찾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 그 책임을 전가하는 경우를 비유하여 이르는 말. 못된 나무에 열매만 많다 못된 것이 도리어 성하게 되는 경우를 이르는 말. 못된 소나무에 솔방울만 많다. 못된 바람은 수구문[동대문 구멍]으로 들어온다 궂은일이나 잘못된 일이 있으면, 그 책임이 모두 자기에게만 돌아온다고 항변하는 말. 못된 벌레 장판방에서 모로 긴다 되지못한 사람이 건방진 짓을 한다는 말. 못된 송아지 엉덩이에 뿔 난다. 못된 소나무에 솔방울만 많다 ☞못된 나무에 열매만 많다. 못된 송아지 엉덩이에 뿔 난다 ☞못된 벌레 장판방에서 모로 긴다. 못된 일가(가) 항렬만 높다 세상에는 쓸데없는 것일수록 오히려 성하는 법이라는 말. 못살면 터 탓 제 잘못을 남에게 돌리고 원망함을 이르는 말. 못생긴 며느리 제삿날에 병난다 미운 사람이 더 미운 짓만 한다는 뜻. 못 입어 잘난 놈 없고 잘 입어 못난 놈 없다 몽글게 먹고 가늘게 싼다 큰 욕심 부리지 않고 분수를 지켜야 하며, 또 그것이 편하다는 말. 몽둥이 깎는 새에 도적놈 다 달아난다 준비하는 시간이 너무 느리고 굼떠서 그것이 아무 쓸모없이 되어 버리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몽둥이 들고 포도청 담에 오른다 제가 지은 죄를 숨기려고 남보다 먼저 나서서 떠드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몽둥이 맞는 미친개 소리 안 지르고 죽는 법 없다 스스로 죽을 줄 뻔히 아는 상황에서는 최후의 발악을 하기 마련이라는 말.  몽둥이 세 개 맞아 담 안 뛰어넘을 놈 없다 사람은 누구나 매 맞는 것을 참지 못하여 급하여지면 달아나기 마련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몽둥이는 주인을 미워한다 하인들은 흔히 제 상전에 대하여 불평을 품고 있는 경우가 많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몽치 깎자 도둑이 뛴다 모처럼 세운 대책이 때가 늦어 소용없게 됨을 이르는 말. 무게가 천 근이나 된다 아주 묵직하고 믿음직한 사람을 두고 이르는 말. 무는 개 짖지 않는다 무서운 사람일수록 말이 없다는 뜻. 무는 개를 돌아본다 무엇이든 나서서 보채야만 관심을 끌 수 있다는 말. 무는 호랑이는 뿔이 없다 혼자서 무엇이든 다 갖출 수는 없다는 말. 무당의 영신(靈神)인가 맥없이 있다가도 어떤 일을 맡기면 기꺼이 받아들여 날뛰는 사람을 두고 이르는 말. 무당이 제 굿 못하고 소경이 저 죽을 날 모른다 자기 일은 자기가 처리하기 어렵다는 말. 무른 감도 쉬어 가면서 먹어라 틀림없는 일이라도 잘 알아보고 조심해서 해야 한다는 말. 무른 땅에 말뚝 박기 1.매우 하기 쉽다는 말. 2.‘힘 있는 자가 약한 자를 억누름’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무병이 장자 병을 앓게 되면 비용이 많이 들게 되므로, 앓지 않고 사는 것이 곧 부자로 사는 것임을 이르는 말. 무섭다니까 바스락거린다 남의 약점을 알고 일부러 곤란하게 한다는 말. 무소식이 희소식(喜消息) 소식이 없는 것이 곧 잘 지내고 있다는 표시라는 말. 무쇠도 갈면 바늘 된다 꾸준히 힘쓰면 어려운 일도 이룰 수 있다는 말. 무식은 멸망이다 무식한 것은 자기를 망칠 뿐 아니라 나라와 민족에도 해가 됨을 이르는 말.  무식은 암흑이요 지식은 광명이다 무식한 사람의 앞날은 캄캄한 암흑과 같으나 지식을 갖춘 사람의 앞날은 광명한 세상이 된다는 뜻으로, 배움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이르는 말. 무엇 떨어지기를 기다린다 요행수를 바라고 기다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무엇 먹은 소경 같다 일을 잘못 처리하면 결과가 좋지 않음을 이르는 말.  무엇이든지 먹고자 한다 만사를 제쳐 놓고 먹기를 위주로 삼음을 이르는 말. 무자식 상팔자(上八字) 자식 없는 것이 도리어 걱정이 없어 마음이 편하다는 말. 무죄한 놈 뺨 치기 몰인정하고 심술 사나운 짓을 이르는 말. 무지각이 상팔자 아예 무식한 편이 오히려 마음이 편하고 행복하다는 말. 묵은 거지보다 햇거지가 더 어렵다 무슨 일이든 오래 한 사람이 처음 하는 사람보다 참을성 있고 마음이 굳다는 말. 묵은 낙지 꿰듯 일이 매우 쉽다는 말. 묵은 낙지 캐듯 무슨 일을 단번에 시원히 해치우지 않고 두고두고 조금씩 한다는 말. 묵은 장 쓰듯 아끼지 않고 헤프게 쓴다는 말. 묵은 치부장[치부책] [이미 쓸데없게 된 치부책이란 뜻으로] 소용없는 것이라 벌써 까맣게 잊어버린 것이라는 말. 문견이 좁으면 국량 배포도 좁아진다 사람은 지식과 경험이 많아야 함을 이르는 말. 문경이 충청도 되었다가 경상도가 되었다 어떤 일이 이랬다저랬다 한다는 말. 문둥이 떼쓰듯 한다 마구 떼를 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문둥이 버들강아지 따먹고 배 앓는 소리 한다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게 입 안으로 우물우물 말하거나 노래 부르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문둥이 시악 쓰듯 한다 무리하게 자기주장만 하고 떼를 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문둥이 자지 떼어먹듯 남의 것을 무쪽같이 떼어먹기만 하고 갚을 줄 모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문둥이 죽이고 살인당한다 대수롭지 않은 일을 저질러 놓고 큰 화를 당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문둥이 콧구멍에 박힌 마늘씨도 파먹겠다 욕심이 사납고 남의 것을 탐내어 다랍게 구는 사람을 욕하는 말. 문둥이나 문둥 어미나 한 값이다 결국은 같은 것이라는 말. 문비를 거꾸로 붙이고 환쟁이만 나무란다 자기가 잘못하고서 도리어 남을 나무란다는 말. 문서 없는 상전 까닭도 없이 남에게 몹시 까다롭게 구는 사람을 이르는 말. 문서 없는 종 행랑살이하는 사람, 또는 아내나 며느리를 이르는 말. 문채가 좋은 차복성(車福成)이라 용모가 빼어나고 옷차림이 화려한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문틈에 손을 끼었다 매우 곤란한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문틈으로 보나 열고 보나 보기는 일반 드러내 놓고 하나 몰래 하나 하기는 마찬가지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문 열고 보나 문 닫고 보나 보기는 일반. 문풍지 떨어진 데는 풀비가 제격 문풍지가 떨어지면 풀비로 풀칠을 하는 것이 좋다는 뜻으로, 격에 맞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물건을 모르거든 금 보고 사라 값은 물건의 질에 따라 정해지니, 좋은 물건을 사려면 비싼 것으로 사야 한다는 말. 물고기가 물속에 놓여 나다 본래의 영역으로 되돌아와 크게 활약할 수 있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물고기는 물을 떠나 살 수 없다 활동하는 데에 자신에게 걸맞은 터전이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물고기도 제 놀던 물이 좋다 한다 물고기조차도 제가 나서 자란 곳을 못 잊어 한다는 뜻으로, 나서 자란 고향이나 익숙한 곳이 생소한 곳보다 나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물고기도 큰 강물에 노는 놈이 더 크다 물이 깊고 큰 강물에서 사는 물고기가 더 크다는 뜻으로, 일반적으로 규모가 큰 생활환경에서 사는 사람이 보고 듣고 배우는 것이 많으며 생각하는 바가 더 크고 넓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물고기에 발을 그려 붙인다 쓸데없는 군더더기를 덧붙이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물독 뒤에서 자랐느냐 물독 뒤에서 자라서 멋없이 키만 호리호리하게 크다는 뜻으로, 마르고 키만 큰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물독에 빠진 생쥐 같다 물독에 빠진 생쥐처럼 사람의 옷차림이 흠뻑 젖어 초라하게 된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물때썰때를 안다 사물의 형편이나 진퇴(進退)의 시기를 잘 안다. 물만밥이 목이 메다 물에 말아 먹어도 밥이 잘 넘어가지 않을 만큼 매우 슬픔에 겨움을 이르는 말. 물 밖에 난 고기 ‘목숨이 경각에 다다랐거나 그런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 사람’을 빗대어 이르는 말. (참고)도마에 오른 고기. 물방앗간에서 고추장 찾는다 물방앗간에 가서 있을 리 없는 고추장을 찾는다는 뜻으로, 당치 않은 곳에 가서 있을 리 없는 것을 찾고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물 본 기러기, 꽃 본 나비 바라던 바를 이루어 득의양양함을 이르는 말. 물속에서 사는 사람은 물 귀한 줄 모른다 물건을 흔하게 다루는 사람이 그것이 귀중한 줄 모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사람이 행복하게만 살면 행복이 어떻게 이루어진 것인지 잘 모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물썬 때는 나비잠 자다 물 들어야 조개 잡듯 때를 놓치고 뒤늦게 행동하는 게으른 사람의 어리석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물어도 준치 썩어도 생치 본디 좋은 것은 오래되거나 변하거나 하여도 뛰어남에는 변함이 없다는 말.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말이나 행동이 변화가 없이 싱겁다는 말. 물에 빠져도 정신을 차리면 산다 아무리 어려운 경우에도 정신을 차리고 용기를 내면 살 도리가 있다는 말. 물에 빠지면 지푸라기라도 움켜쥔다 위급한 때에는 무엇이나 닥치는 대로 잡고 늘어진다. 물에 빠진 놈 건져 놓으니까 내 봇짐 내라 한다 남의 은혜를 갚기는커녕 배신함을 이르는 말. 물오른 송기 때 벗기듯 물오른 소나무의 속껍질을 벗긴다는 뜻으로, 겉에 두르고 있는 의복이나 껍데기 따위를 말끔히 빼앗거나 벗기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물은 건너 보아야 알고 사람은 지내 보아야 안다 물이 깊어야 고기가 모인다 덕망이 있어야 사람이 따른다는 말. 물이 깊을수록 소리가 없다 사람이 잘날수록 잘난 체하거나 떠벌리거나 하지 않는다는 말. 물이 아니면 건너지 말고 인정이 아니면 사귀지 말라 인정에 의한 사귐이어야만 참된 사귐이라는 말. 물장수 삼 년에 궁둥잇짓만 남았다 오랫동안 애써 수고한 일이 보람이 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물장수 삼 년에 남은 것은 물고리뿐. 물장수 삼 년에 남은 것은 물고리뿐 =물장수 삼 년에 궁둥잇짓만 남았다. 물장수 상(床)이다 물장수가 물을 대어 주는 집에서 밥을 얻어먹을 때에 그 밥상을 물로 씻듯이 깨끗이 먹어 치웠다는 데서, 먹고 난 밥상이 아주 깨끗하여 빈 그릇만 남았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뭍에서 배 부린다 육지에서 배를 사용한다는 뜻으로, 도저히 될 수 없는 일을 하고 있음을 비꼬는 말. 미꾸라지 용 됐다 미천하고 보잘것없던 사람이 크게 잘되었다는 말.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웅덩이를 흐려 놓는다 한 사람의 좋지 않은 행동이 어떤 집단이나 여러 사람에게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말. 미끄러진 김에 쉬어 간다 잘못된 기회를 이용하여 적절한 행동을 취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미끼 없는 낚시군 어떤 일을 하는 데 가장 요긴한 것을 갖추지 못한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미끼를 삼켜 버린 물고기 ‘낚싯바늘에 걸린 생선’의 북한 속담. 미나리 도리듯 하다 수확이 오붓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미랭시 김칫국 흘리듯 한다 목숨만 붙어 있을 뿐 사람 구실을 하지 못하는 이가 김칫국을 질질 흘리며 마시듯 한다는 뜻으로, 지저분하게 질질 흘리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미역국 먹고 생선 가시 내랴 미역국을 먹고 생선 가시를 낼 수 없는데도 내놓으라는 뜻으로, 불가능한 일을 자꾸 우겨 댐을 비꼬는 말. 미운 강아지 보리 멍석에 똥싼다 미운 벌레 모로 긴다 미운 사람의 행동은 무엇이든 다 비위에 거슬린다는 말. 미운 아이[놈] 떡 하나 더 준다 겉으로만 귀여워함을 이르는 말. 미운 털이 박혔나 자기를 괜히 미워하는 사람을 보고 ‘왜 못살게 구느냐?’는 뜻으로 되물어 나무라는 말.  미장이의 비비송곳 같다 깊은 생각에 빠져 안타깝게 되풀이하여 고민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미주알고주알 밑두리콧두리 캔다 속속들이 자세히 조사함을 이르는 말. 미지근해도 흥정은 잘한다 누구에게나 한 가지 재주는 있다는 말. 미치광이 풋나물 캐듯 일을 아주 거칠게 한다는 뜻. 미친개 눈엔 몽둥이만 보인다 한 가지 일에 되게 혼이 난 다음에는 모든 것이 그것같이만 보인다는 말. 미친년 널 뛰듯 미친 여자가 재미도 모르고 널을 뛴다는 뜻으로, 멋도 모르고 미친 듯이 행동하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미친년 달래 캐듯 일을 함부로 거칠게 하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미친년 방아 찧듯. 미친년 방아 찧듯 =미친년 달래 캐듯. 미친년의 속곳 가랑이 빠지듯 미친 여자가 옷을 입을 때 매고 여미고 하는 것을 단정하게 못하여 속곳이 겉으로 비어져 나온다는 뜻으로, 옷매무시가 단정하지 못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미친년의 치맛자락 같다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고 벌리고 다니는 미친 여자의 치맛자락과 같다는 뜻으로, 자기의 몸을 깨끗이 거두지 못하고 늘 지저분하게 하고 있는 사람의 옷차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미친년이 아이를 씻어서 죽인다 미친 여자가 아이 목욕시키는 것이 좋은 줄만 알고 자주 물속에 집어넣고 씻기다가 죽이게 된다는 뜻으로, 좋은 짓도 지나치게 자꾸 되풀이하면 도리어 해롭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쓸데없이 일을 여러 번 되풀이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미친 중놈 집 헐기다 당치도 않은 일에 어수선하고 분주하게 떠들거나 날뛴다는 뜻. 미친 체하고 떡판에 엎드러진다 도리를 잘 알면서도 눈 딱 감고 욕심을 부린다는 뜻. 민심은 천심 백성의 마음이 곧 하늘의 마음과 같다는 뜻으로, 백성의 마음을 저버릴 수 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믿는 나무에 곰이 핀다 믿고 있는데 뜻밖에 파탄이 생긴다는 말.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 믿고 있던 사람으로부터 해를 입는다는 말. 밀가루 장사 하면 바람이 불고 소금 장사 하면 비가 온다 운수가 사나우면 공교롭게도 일이 매번 뒤틀려짐을 이르는 말. 밀기름 새옹에 밥을 지어 귀이개로 퍼서 먹겠다 밀기름 그릇만 한 작은 그릇에 밥을 담고 귀이개만 한 숟가락으로 퍼먹는다는 뜻으로, 세상이 망하게 되면 있을 괴상망측한 짓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사람이 매우 잘거나 약아빠졌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밀물에 꺽저기 뛰듯 밀물이 들어오니 잔고기인 꺽저기가 좋아라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한다는 뜻으로, 똑똑하지 못한 놈이 제 세상이나 만난 것처럼 날뛰는 모양을 비꼬는 말. 밉다고 차 버리면 떡고리에 자빠진다 밑 빠진 독[가마/항아리]에 물 붓기 1.아무리 애써 하더라도 아무 보람이 없는 경우를 이르는 말. 2.아무리 벌어도 쓸 곳이 많아 항상 모자라는 경우를 이르는 말 밑구멍으로 호박씨 깐다 겉으로는 안 그런 척하면서 남모르게 엉큼한 짓을 한다는 말. 밑돌 빼서 윗돌 고인다 기껏 한다는 짓이 밑에 있는 돌을 뽑아서 위에다 고여 나간다는 뜻으로, 일한 보람이 없이 어리석은 짓을 하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밑알을 넣어야 알을 내어 먹는다 닭의 둥지에 밑알을 넣어 두어야 닭이 낳은 알을 내어 먹을 수 있다는 뜻으로, 무슨 일이든 공이나 밑천을 들여야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음을 이르는 말. 밑져야 본전 1.일이 잘못되어도 손해 볼 것은 없다는 말. 2.손해 볼 것이 없으니 한번 해 보아야 한다는 말. 밑천 먹는 소리 맡천을 들여서 배운 소리라는 뜻으로, 값이 있거나 수준이 있는 말이나 노랫소리를 이르는 말  밑천도 못 건지는 장사 어떤 이익을 얻자고 시작했던 것이 도리어 손해만 보게 된 경우를 이르는 말.     바느질하는 사람은 썰어버리는 솜씨가 있고 짚신삼는 이는 골치는 솜씨가 있어 어렵게 산다 삯바느질하는 사람과 짚신 장사 하는 사람의 살림이 피지 못함을 비꼬는 말. 바늘 가는 데 실 간다 ‘으레 따르게 되어 있는 두 사람이나 사물의 밀접한 관계’를 이르는 말. 바늘구멍으로 하늘 보기 (사물의 전체를 보지 못하는) ‘시야가 좁은 관찰 태도’를 비유하여 이르는 말. 바늘구멍으로 황소바람 들어온다 추운 겨울철에는 벽이나 문에 조그만 틈만 있어도 찬 바람이 제법 세게 들어온다는 뜻.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 작은 도둑이라도 진작 그것을 고치지 않으면 장차 큰 도둑이 된다는 말.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난다 1.‘사람의 생김새가 단단하고 야무지게 보임’을 이르는 말. 2.‘사람의 성격이 빈틈이 없거나 매우 인색함’을 이르는 말. 바다는 메워도 사람의 욕심은 못 채운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음’을 이르는 말. 바닥 다 보았다 맨속까지 다 보았다는 뜻으로, 모든 것이 다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금광(金鑛)에서 쓰던 말에서 유래하였다. 바닷가 개는 호랑이 무서운 줄 모른다 =미련한 송아지 백정을 모른다. 바디 구멍에도 용수 있다 =바위 속에도 용수가 있다. 바람결에 날려 왔나 떼구름에 싸여 왔나 기다리던 것이 뜻밖에 나타났을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바람받이에 선 촛불 =바람 앞의 등불. 바람벽에 돌 붙나 보지 바람벽에 돌을 붙이려 하여도 붙지 아니한다는 뜻으로, 되지도 아니할 일이거나 오래 견디어 나가지 못할 일이면 아예 하지도 말라는 말. 바람벽에도 귀가 있다 바람벽에도 듣는 귀가 있어서 몰래 한 말도 다 알게 된다는 뜻으로, 어떤 환경에서나 말을 함부로 하지 말고 조심하여야 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바람 부는 날 가루 팔러 가듯 ‘하필 조건이 좋지 않은 때에 일을 시작함’을 이르는 말. 바람 부는 대로 살다 뚜렷한 주관이 없이 그때그때의 형편에 따라 살다. 바람세가 좋아야 돛을 단다 바람이 꽤 기세 있게 불어야 돛을 단다는 뜻으로, 조건이 알맞아야 일을 벌이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바람세에 맞추어 돛을 단다 =바람 따라 돛을 단다[올린다]. 바람 앞의 등불 ‘생명이나 어떠한 일이 매우 위태로운 상태에 있음’을 이르는 말. 바람이 불어야 배가 가지 모든 조건이 잘 갖추어져야 일이 제대로 이루어짐을 뜻하는 말. 바른말 하는 사람 귀염 못 받는다 남의 잘못을 따지고 곧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모두들 꺼려한다는 뜻으로, 남의 비위를 건드리는 말은 삼가라는 말. 바보는 죽어야 고쳐진다  바쁘게 찧는 방아에도 손 놀 틈이 있다 아무리 바삐 방아를 찧는 속에서도 손으로 방아확 안의 낟알을 고루 펴 줄 만한 시간적 여유는 있다는 뜻으로, 아무리 분주한 때라도 틈을 낼 수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바쁘다고 물보리 가을할가 아무리 바쁘다고 해도 아직 채 익지 아니한 풋보리를 가을할 수는 없다는 뜻으로, 아직 성숙되지 않은 일을 이루어 보려고 몰아치지만 그렇게 할 수 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바쁜 살림에 늙는 줄 모른다 바쁘게 돌아가는 살림살이에 어느새 나이를 먹는지 알지 못한다는 뜻으로, 일에 매달려 열중하면 세월 가는 줄을 모른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바위를 차면 제 발부리만 아프다 일시적인 흥분으로 일을 저지르면 자기만 손해라는 말. 바위에 달걀 부딪치기 아무리 해도 승산이 없는 부질없는 짓을 한다는 말. 바지랑대로 하늘 재기 빨랫줄을 받치는 바지랑대로 높은 하늘의 높이를 재려 한다는 뜻으로, 도저히 불가능한 일을 하려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바지저고리만 다닌다 사람의 몸뚱이는 없고 바지저고리만 걸어 다닌다는 뜻으로, 사람이 아무 속이 없고 맺힌 데가 없이 행동하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바지저고리만 앉았다 ‘바지저고리만 다닌다’의 북한 속담. 바퀴 떼운[떨어진] 달구지 신세 바퀴 없이는 굴러갈 수 없는 달구지에서 바퀴를 떼어 버렸다는 뜻으로, 있어야 할 것이 없어서 아무 쓸모없이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박달나무 그루에 싸리나무 가지가 돋아날 수 없다 박달나무의 그루터기에서 싸리나무가 돋아날 수 없다는 뜻으로, 건강하고 튼튼한 부모에게서 연약한 자식이 태어날 수 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박달나무도 좀이 쓴다 나무의 질이 매우 단단하여 건축 및 가구재에 쓰는 박달나무에도 좀이 쓸 때가 있다는 뜻으로, 아주 건강한 사람도 허약해지거나 앓을 때가 있음을 이르는 말. 아무리 능력 있고 일을 잘하던 사람도 계속 노력하고 수양을 쌓지 아니하면 나중에는 뒤떨어지고 자신을 망치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박우물에 헤염 칠 사람 몸을 돌려 세울 자리조차 없는 박우물에 들어가서 헤엄을 칠 만한 인물이란 뜻으로, 궁리가 좁고 옹졸한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박쥐구실 새 편에 붙고 쥐 편에 붙다 낮에는 쥐가 되고 밤에는 새가 된다는 박쥐처럼 환경에 따라 구실을 바꾼다는 뜻으로, 자기에게 유리하다면 이쪽에도 붙고 저쪽에도 붙는 행동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박쥐의 두 마음 우세한 쪽에 붙는 기회주의자의 교활한 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밖에 나가 뺨 맞고 구들 우에 누워서 이불 차기 집 밖에서 남에게 뺨을 얻어맞고 집에 돌아와 구들 위에 이불 쓰고 누워서 그 분풀이로 발로 이불을 차고 있다는 뜻으로, 욕을 당한 그 자리에서는 꼼짝하지 못하고 있다가 엉뚱한 데서 새삼스럽게 분풀이를 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반나마를 부른다 아무 걱정 없이 ‘반나마 늙었으니…’ 따위의 노래를 부를 만큼 배포가 유하거나 태평하다는 말. 반드럽기는 삼 년 묵은 물박달나무 방망이 삼 년씩이나 가지고 다루면서 반들반들하게 된 물박달나무 방망이 같다는 뜻으로, 말을 잘 안 듣고 요리조리 피하기만 하는 몹시 약삭빠른 사람을 이르는 말. 반들반들하여 쥐면 미끄러져 나갈 것 같은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반달 같은 딸 있으면 온달 같은 사위 삼겠다 반딧불로 별을 대적하랴 ‘하찮은 것이 아무리 억척을 부려도 되지 않을 일을 함’을 이르는 말. 반벙어리 축문 읽듯 떠듬떠듬 또는 어물어물 입 안에서 응얼거리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반지빠르기는 제일이라 똑똑한 체하나 실은 모두가 반지빨라서 하나도 쓸데가 없다는 뜻으로, 되지도 못한 것이 교만스러워 아주 얄밉다는 말. 반찬단지에 고양이 발 드나들듯 반찬단지에 고양이가 부지런히 드나든다는 뜻으로, 매우 자주 드나드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반찬 먹은 개 반찬을 훔쳐 먹은 개가 꼼짝 못하고 매를 맞듯이 아무리 구박을 받아도 아무 대항을 못하고 어쩔 줄 모르는 처지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반찬 먹은 고양이[괭이] 잡도리하듯 반찬을 훔쳐 먹은 고양이를 잡아 족치듯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붙잡고 야단치고 혼내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반찬 항아리가 열둘이라도 서방님 비위를 못 맞추겠다 성미가 몹시 까다로워서 비위 맞추기가 매우 힘들다는 말. 반편이 명산 폐묘한다 못난 것이 도리어 잘난 체하다가 명산을 모르고 묘를 폐한다는 뜻으로, 못난이가 가만히 있지 못하고 오히려 이러쿵저러쿵하다가 일을 그르치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반풍수 집안 망친다. 반풍수 집안 망친다 ‘서투른 재주를 함부로 부리다가 도리어 일을 그르치게 됨’을 이르는 말. 받는 소는 소리 치지 않는다 일을 능히 처리할 수 있는 역량이 있는 사람은 공연한 큰소리를 치지 않는다는 말. 받아 놓은 밥상 ‘일이 이미 확정되어 틀림없음’을 이르는 말. 발가락의 티눈만큼도 안 여긴다 발가락에 난 귀찮은 티눈만큼도 여기지 아니한다는 뜻으로, 남을 몹시 업신여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발새 티눈만도 못하다. 발가벗고 달려드는 도깨비 부작을 써 붙여도 효험이 없다 부끄러움을 모르며 망칙한 몰골을 해 가지고 달려드는 도깨비는 귀신을 쫓는 부적을 써 붙여도 통하지 아니한다는 뜻으로, 죽기 살기로 체면 없이 마구잡이로 달려드는 사람에게는 그 무엇으로도 당해 낼 수 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발가벗고 달밤에 체조하다 분별없고 체통 없는 짓을 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발길도 이불깃을 봐 가면서 펴야 한다 ‘누울 자리 봐 가며 발을 뻗어라’의 북한 속담. ‘누울 자리 봐 가며 발을 뻗어라?’의 북한 속담. 발뒤꿈치가 달걀 같다 ‘미운 사람에 대해서는 없는 허물도 만들어 가면서 나무란다’는 뜻의 말. 발등에 떨어진 불만 보고 염통 곪는 것은 못 본다 ‘손톱 밑에 가시 드는 줄은 알아도 염통 밑에 쉬스는 줄은 모른다’의 북한 속담.  발등에 오줌 싼다 너무 바쁜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발바닥에 털 나겠다 가만히 앉아 호사스럽게 지내거나 몸을 놀리기 싫어함을 비난조로 이르는 말. 발바닥을 하늘에다 붙인다 손을 땅에 붙이고 거꾸로 선다는 뜻으로, 남에게 없는 특별한 재주를 부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되지도 않을 엉뚱한 짓을 하겠다고 나섬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발바닥이 두터우면 배 가죽도 두텁다 하나를 보면 전체를 알 수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발바닥이 두꺼워지도록 부지런히 일을 하게 되면 그만큼 풍족한 생활을 누리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발바리 새끼 쫓겨 가자 미친개 뛰여든다 시끄럽게 구는 발바리를 쫓아 버리니 이번에는 미친개가 뛰어든다는 뜻으로, 자그마한 위험을 피하니 그보다 더 큰 위험이 다시 들이닥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발(을) 벗고 따라가도 못 따르겠다 신발까지 벗고 쫓아가도 따라가지 못하겠다는 뜻으로, 능력·수준 차이가 커서 경쟁이 되지 못하는 경우를 비유하여 이르는 말. 발새 티눈만도 못하다 =발가락 티눈만큼도 안 여긴다. 발 없는 말이 천 리 간다 말을 삼가야 함을 경계하는 뜻의 말. 밟힌 지렁이 꿈틀한다 밤나무에서 은행이 열기를 바란다 밤나무에서는 은행이 도저히 열릴 수 없는데 은행이 열기를 바란다는 뜻으로, 불가능한 일을 바라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밤낮으로 여드레를 자면 참 잠이 온다 밤낮 여드레를 자면 더더욱 잠이 온다는 뜻으로, 잠은 잘수록 더 자고 싶어진다는 말. 밤 말은 쥐가 듣고 낮 말은 새가 듣는다 비밀히 한 말이라도 새어 나가기 쉬우니 항상 말을 조심하라는 뜻. 밤비에 자란 사람 ‘어리석고 덜된 사람’을 조롱조로 이르는 말. 밤새도록 가도 문 못 들기 밤새도록 갔으나 끝내 성문 안에는 들어가지 못했다는 뜻으로, 몹시 애를 썼으나 제 기한에 미치지 못하여 애쓴 보람이 없게 된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밤새도록 물레질만 하겠다 임을 기다리며 물레질만 하다가 공연히 밤을 새우겠다는 뜻으로, 할 일을 하지 않고 딴 짓만 하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속셈은 딴 데 두고 그것을 위하여 일을 하는 척하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밤새도록 울다가 누가 죽었느냐고 한다 =밤새도록 통곡해도 어느 마누라 초상인지 모른다. 밤새도록 통곡해도 어느 마누라 초상인지 모른다 죽었다고 하여 밤새도록 슬피 울었으나 어떤 마누라가 죽었는지도 모르고 있다는 뜻으로, 애써 일을 하면서도 그 일의 내용이나 영문을 모르고 맹목적으로 하는 행동을 비꼬는 말. ≒밤새도록 울다가 누가 죽었느냐고 한다실컷 울고 나서 뉘 초상인가 물어본다종야 통곡에 부지(不知) 하(何) 마누라 상사. 밤송이 우엉 송이 다 끼어 보았다 가시가 난 밤송이나 갈퀴 모양으로 굽은 우엉의 꽃송이에도 끼어 보았다는 뜻으로, 별의별 뼈아프고 고생스러운 일은 다 겪어 보았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밤송이채로 먹을 사람 성미가 몹시 급하고 덤비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밤에 보아도 낫자루 낮에 보아도 밤나무 밤이슬 맞는 놈 흔히 밤에 다녀 이슬에 젖는 놈이라는 뜻으로, ‘도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밤 잔 원수 없고 날 샌 은혜 없다 원한이나 은혜는 세월이 지나면 쉬 잊힌다는 말. 밥 군 것이 떡 군 것보다 못하다 밥그릇이 높으니까 생일만큼 여긴다 ‘조금 대접을 해 주니까 더 우쭐해하는 사람’을 두고 비웃는 말. 밥 빌어다가 죽 쑤어 먹을 놈[자식] ‘성질이 게으른 데다가 소견마저 없는 사람’을 욕으로 이르는 말. 밥은 열 곳에 가서 먹어도 잠은 한 곳에서 자랬다 밥풀 물고 새 새끼 부르듯 새의 먹이인 밥풀을 물고 손쉽게 새 새끼를 불러내듯 한다는 뜻으로, 일을 매우 쉽게 생각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방귀 뀐 놈이 성낸다 ‘제가 잘못하고서 도리어 성냄’을 이르는 말. 방귀가 잦으면 똥 싸기 쉽다 무슨 일이든지 소문이 잦으면 실현되기 쉽다는 말. 방둥이 부러진 소 사돈 아니면 못 팔아먹는다 방둥이가 부러져서 더 부릴 수 없게 된 소는 거절할 수 없는 처지에 있는 사돈이 아니면 팔아먹을 수 없다는 뜻으로, 흠이 있는 물건을 잘 아는 사람에게 떠안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방립에 쇄자질 격에 맞지 않는 지나친 호사를 하여 도리어 흉하게 보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방바닥에서 낙상한다 안전한 곳에서 뜻밖에 실수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마음을 놓는 데서 실수가 생기는 것이니 항상 조심해야 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방 보아 똥 싼다 사람의 지위를 보아 대접을 달리한다. 방앗간에서 울었어도 그 집 조상(弔喪) 집 안까지 들어가지 않고 밖에 있는 방앗간에서 울었다고 하여도 그 집에 조상한 것이라는 뜻으로, 마음이 문제이지 장소나 형식이 문제가 아님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방앗공이는 제 산 밑에서 팔아먹으랬다 무엇이나 산출되는 그 본바닥에서 팔아야 실수가 없지 더 이익을 남기려고 멀리 가지고 가거나 하면 도리어 손해를 보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방위 보아 똥 눈다 사람의 지위를 보아서 대접한다는 말. 방죽을 파야 개구리가 뛰어들지 물이 고일 수 있는 방죽을 파 준비를 해 놓아야 개구리가 뛰어든다는 뜻으로, 무슨 일이나 자기가 원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하려면 그에 합당한 준비를 갖추거나 노력을 해야 한다는 말. 방패연의 갈개발[갈기] 같다 방패연의 꼬리에 달린 종이 같다는 뜻으로, 무엇이 특별히 길게 치렁치렁 늘어진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밭도랑을 베개 하고 죽을 놈 제집에서 고이 세상을 떠나지 못하고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괴로운 말년을 보내다가 죽으라는 뜻으로, 남을 저주하는 말. 밭 팔아 논 살 때는 이밥[흰 쌀밥] 먹자는 뜻 못한 것을 버리고 나은 것을 취할 때는 더 낫게 되기를 바라고 한 것인데, 그렇지 못했을 때를 두고 하는 말. 밭을 사려면 변두리를 보라 농토를 사려면 경계선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는 말. 배가 남산만[앞 남산만] 하다 여자가 임신을 하여 배가 몹시 부르다. 배고픈 놈더러 요기시키란다 제 일도 처리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되지도 않을 것을 요구한다는 말. 배곯고 있을 게 있나 약과라도 먹고 있지 하다 못하여 약과라도 먹을 일이지 왜 배곯고 있느냐는 뜻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어려움을 모르는 자가 남의 사정도 모르고 하는 말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 어떤 대책을 제때에 취하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있는 경우를 놀림조로 이르는 말. 배꼽에 어루쇠를 붙인 것 같다 눈치가 빠르고 경우가 밝아 남의 속을 들여다보듯이 환히 안다는 말. 배나무 밑에 앉아 선 배 떨어지기를 기다린다 배나무 밑에 앉아서 배라도 떨어지면 가지겠다고 기다린다는 뜻으로, 이루어지리라고 생각할 수 없는 일에 기대를 걺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배나무에 배 열리지 감 안 열린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배 먹고 이 닦기 [배를 먹으면 이까지 닦이어 희어진다는 뜻으로] ‘좋은 일이 거듭해서 생기게 되는 경우’를 이르는 말.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 ‘딸린 것이 주되는 것보다 더 크거나 더 많음’을 이르는 말. 배부르고 등 따습다 배부르게 먹고 등이 따습게 옷을 입는다는 뜻으로, 잘사는 생활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배부르니까 평안 감사도 부럽지 않다 굶주렸던 사람이 배가 부르도록 먹으면 만족하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배부른 고양이 새끼 냄새 맡아 보듯 잔뜩 먹은 고양이가 흡족해서 제 새끼를 핥아 주며 냄새를 맡듯 한다는 뜻으로, 무슨 일에서나 마음이 흐뭇해서 이것저것 살펴보고 만져 보고 하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배부른 고양이는 쥐를 잡지 않는다 가난한 사람은 부지런하지만 돈 있는 사람은 게으르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배부른 매는 사냥을 않는다. 배부른 놈이 잠도 많이 잔다 배가 고프면 잠도 잘 오지 않는다는 뜻으로, 배가 불러야 모든 게 잘된다는 말. 배부른 데 선떡 준다 배가 부를 때 선떡을 주면 아무 고마움을 못 느낀다는 뜻으로, 생색이 나지 않는 짓을 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배부른 매는 사냥을 않는다 =배부른 고양이는 쥐를 잡지 않는다. 배부른 사람은 배고픈 사람 사정을 모른다 고생을 해 보지 않은 사람은 고생하는 사람의 사정을 모른다는 말. ≒배부른 상전이 배고픈 하인 사정 모른다배부른 상전이 하인 밥 못하게 한다. 배부른 상전이 배고픈 하인 사정 모른다 =배부른 사람은 배고픈 사람 사정을 모른다. 배부른 상전이 하인 밥 못하게 한다 =배부른 사람은 배고픈 사람 사정을 모른다. 배부른 자에게는 고량진미를 주어도 별맛을 모른다 배가 부르면 아무리 맛있는 것도 그 참맛을 모른다는 뜻으로, 늘 행복하게 사는 사람은 자기에게 있는 행복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잘 모른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배운 도둑질 같다 어떤 일을 버릇이 되어 자꾸 하게 된다는 말. 배 썩은 것은 딸 주고 밤 썩은 것은 며느리 준다 배 주고 속[배 속] 빌어먹는다 ‘큰 것은 남에게 빼앗기고 하찮은 것만 차지하게 되는 경우’를 이르는 말. 배지 아니한 아이를 낳으라 한다 없는 것을 내라며 무리하게 요구한다는 말. 배추 밑에 바람이 들었다 남 보기에 절대로 그럴 것 같지 않은 사람이 좋지 못한 짓을 하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배추 밭에 개똥처럼 내던진다 마구 집어 내던져 버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백년을 다 살아야 삼만 육천 일 백두산 까마귀도 심지 맛에 산다 백문이 불여일견(不如一見) 여러 번 말로만 듣는 것보다 실제로 한 번 보는 것이 더 나음.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만 못하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전시장으로 나오셔서 눈으로 확인하세요. 백미에 뉘 섞이듯 ‘아주 드물어서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움’을 이르는 말. 백발도 내일모레 인생의 성쇠가 잠시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만 못하다 여러 번 말로만 듣는 것보다 실제로 한 번 보는 것이 더 낫다는 말.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 백비탕 수본이라 끓인 맹물로 쓴 보고문이라는 뜻으로, 한번 써서 내려 보낸 명령을 수시로 뒤집어엎으면서 부당하게 벼슬자리를 제 마음대로 떼고 붙이고 팔아먹는 처사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백사지에 무엇이 있나 모래밭에 무엇이 나겠느냐는 뜻으로, 땅이 메말라 생산되는 것이 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백성을 멀리하면 나라가 망한다 국민의 의사와 이익을 존중하지 않으면 나라까지도 위태롭게 된다는 말.  백성의 입 막기는 내 막기보다 힘들다[어렵다] 백성들 속에서 일어나는 사회적 여론을 막는 것은 흐르는 냇물을 막기보다도 어렵다는 뜻으로, 국민의 여론이나 소문을 막을 수 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백성이 있어야 관청도 있다 관청과 같은 통치 기구도 백성이 있는 조건에서 존재한다는 뜻으로, 백성들을 너무 못살게 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백성이 제 구실을 돋운다 섣불리 나대다가 일 봐 주는 사람의 미움을 덧들여서 역효과를 낸다는 말. 백송고리 생치 차듯 성질이 사납고 날쌘 푸른 매가 꿩을 잽싸게 잡아채듯 한다는 뜻으로, 무엇을 날쌔게 잡아채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백일 장마에 하루만 더 왔으면 한다 백장도 올가미가 있어야 한다 장사에는 밑천이 있어야 한다는 뜻. 백장이 버들잎 물고 죽는다 죽을 때에도 자기의 근본을 잊지 않는다는 뜻. 백정 년 가마 타고 모퉁이 도는 격 실상은 흉악하면서 그것을 잘 모르는 사람 앞에서는 훌륭한 체하고 꾸미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백정네 송아지 제 죽을 날 모른다 짐승을 잡는 백정네 집에서 키우는 송아지는 제가 언제 죽게 될지 그 날짜를 알지 못한다는 뜻으로, 해를 가할 당사자가 가까이 있어도 자기에게 언제 위험이 닥쳐올지 짐작할 수 없음을 이르는 말. 남보다 잘 알 수 있는 환경에 있으면서도 미리 알아내지 못하고 끝내 화를 입게 되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백정도 올가미가 있어야 한다 장사에는 밑천이 있어야 한다는 뜻으로, 준비 없이는 어떤 일을 이룰 수 없음을 이르는 말. 백정이 가마를 타면 동네 개가 짖는다 =백정이 양반 행세를 하면 개가 짖는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 아무리 쉬운 일이라도 혼자 하는 것보다 서로 힘을 합쳐서 하면 더 쉽다는 뜻. 뱀 본 새 짖어 대듯 몹시 시끄럽게 떠드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뱀 설죽이듯 크게 봉변을 당할 수 있게 잘못 건드려 놓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뱀을 그리고 발까지 단다 쓸데없는 것을 덧붙여서 오히려 못쓰게 만듦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뱀의 굴이 석 자인지 넉 자인지 어찌 알랴 =구멍에 든 뱀 (길이를 모른다).  뱀의 세상에 난 개구리 개구리를 잡아먹는 뱀이 우글거리는 곳에 태어난 개구리와 같은 신세라는 뜻으로, 늘 기를 못 펴고 살면서 불행만 당하게 되는 처지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뱀이 용 되어 큰소리한다 변변찮거나 하찮은 사람이 신분이 귀하게 되어 아니꼽게 큰소리를 친다는 말. 뱀장어 눈은 작아도 저 먹을 것은 다 본다 뱀장어의 눈이 작게 생겼어도 제가 보아야 할 것은 다 본다는 뜻으로, 먹을 것을 잘 찾아 먹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비록 몸집이나 크기는 작아도 똑똑하게 제구실을 다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면 다리가 찢어진다 ‘남이 한다고 덩달아 제힘에 겨운 일을 하게 되면 도리어 큰 화를 당하게 됨’을 이르는 말. 뱃놈의 개 배에서 기르는 개는 도둑을 지킬 필요가 없다는 뜻으로, 하는 일 없이 놀고먹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뱃가죽이 땅 두께 같다 ‘염치없고 배짱이 센 사람’을 조롱하여 이르는 말. 뱃사공의 닻줄 감듯 내렸던 닻을 올리느라고 뱃사공이 부지런히 닻줄을 감듯이 무엇인가를 휘휘 잘 감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버들치가 룡 될 수 없다 하찮은 민물고기가 아무리 기를 쓴다고 해도 용이 되어 하늘을 오를 수 없다는 뜻으로, 본바탕이나 품성이 변변하지 못한 사람은 별의별 수를 다 해도 훌륭한 인물이 될 수 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버릇 굳히기는 쉬워도 버릇 떼기는 힘들다 나쁜 버릇이 들면 고치기 힘들다는 말.  버릇 배우라니까 과부 집 문고리 빼어 들고 엿장수 부른다 좋은 버릇을 길러 품행을 단정히 하라고 이르니까 오히려 못된 짓만 하고 돌아다님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버릇 사나운 막내자식 흔히 막냇자식은 부모들이 귀엽다고 받자를 해서 키우기 때문에 버릇이 나빠지기 쉽다는 말. 버마재비 매미 잡듯 불시에 갑자기 습격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버마재비가 수레를 버티는 셈 버마재비와 같은 작은 벌레가 감히 수레를 맞서려고 하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제 힘에 부치는 엄청난 대상에 맞서려는 무모한 짓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버선목이라 (오장을) 뒤집어 보이지도 못하고 아무리 의심을 풀고 밝히려 해도 상대편이 수긍하지 않을 때 쓰는 말.  버선 신고 발바닥 긁기 =신 신고 발바닥 긁기. 버선 신고 진창 걷기 버선발로 진창을 걷는다는 뜻으로, 격에 맞지 않게 하는 행동을 비꼬는 말. 번개가 잦으면 천둥을 한다 어떤 일의 조짐이 잦으면 반드시 그 일이 이루어지고야 만다는 뜻. 번갯불에 솜 구워 먹겠다 ‘거짓말을 쉽게 잘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번갯불에 콩 볶아 먹겠다 번갯불이 번쩍 하는 사이에 해치울 만큼 재빠르다는 뜻. 벋어 가는 칡도 한(限)이 있다 사물은 무엇이든지 한도가 있다는 뜻. 벌거벗고 환도(環刀) 차기 어울리지 않아 어색함을 이르는 말. 벌거벗은 손님이 더 어렵다 1.어린아이를 대접하기가 더 어렵다는 말. 2.가난한 사람을 대접하기가 더 어렵다는 말. 벌거숭이 잠자리 이것저것 가리지 못하고 함부로 행동하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벌레 먹은 배추[삼] 잎 같다 얼굴에 검버섯이 나거나 기미가 끼어 보기 흉한 것을 이르는 말. 벌쐰 사람 같다 말대꾸도 없이 오자마자 달아나듯 가 버리는 사람을 이르는 말. 벌집 보고 꿀돈 내여 쓴다 ‘너구리 굴 보고 피물 돈 내어 쓴다’의 북한 속담. 벌초 자리는 좁아지고 배코자리는 넓어진다 벌초를 마지못해 하는 탓으로 그 구역이 차차로 줄어들고 작아도 될 배콧자리는 쓸데없이 자꾸 넓어지기만 한다는 뜻으로, 주객이 전도되어 주되는 것은 밀려 나가고 부차적인 것이 판을 치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범벅에 꽂은 저(箸)라 ‘일이 튼튼하게 되지 않았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범 없는 골에 토끼가 스승이라 ‘잘난 사람이 없는 곳에서 못난 사람이 잘난 체함’을 이르는 말. 범도 새끼 둔 골을 두남둔다 ‘누구나 다 자기와 관계가 있는 것은 소중히 여김’을 이르는 말. 범도 제 말[소리] 하면 온다 1.당사자가 없다고 함부로 흉을 보지 말라는 말. 2.‘남의 말을 하는데 공교롭게 그 사람이 나타나는 경우’를 이르는 말. 범 모르는 관리가 볼기로 위세 부린다 범에게 날개 ‘세력(위세) 있는 사람이 더욱 좋은 조건을 갖추게 됨’을 이르는 말. 범에게 물려 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 ‘아무리 위험한 경우에 처하더라도 정신만 차리면 그 위험한 고비를 모면할 수 있다’는 말. 법당 뒤로 돈다 남이 다 보는 법당의 앞으로 가는 것을 피하고 법당의 뒤로 슬슬 돈다는 뜻으로, 남이 보지 않는 곳이라고 하여 남의 눈을 피하여 옳지 못한 짓을 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법당은 호법당(好法堂)이나 불무영험(佛無靈驗) 법당은 요란하게 잘 꾸몄으나 부처님은 영험이 없다는 뜻으로, 겉치레만 요란하고 실상은 아무짝에도 쓸모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법 밑에 법 모른다 법을 가장 잘 지켜야 할 곳에서 도리어 법을 어기는 수가 많다는 말.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 사리를 따지기 전에 완력부터 부린다는 말. 벗 따라 강남 간다 자기는 하고 싶지 않으나 남에게 끌려 덩달아 하게 된다는 말. 벙거지 시울 만지는 소리 애매하고 모호해서 알 수 없는 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벙거지 시울을 만진다 말이 막히어 어색하고 무안한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벙거지 조각에 콩가루 묻혀 먹을 놈 털로 만든 벙거지 조각에 아무리 콩가루를 묻혀도 먹을 것이 없는데 그것을 먹는다는 뜻으로, 못할 짓을 하여 재물을 남몰래 빼앗아 가는 자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벙어리 냉가슴 앓듯 ‘답답한 사정이 있어도 남에게 말하지 못하고 혼자 애태우는 경우’를 이르는 말. 벙어리 두 몫 떠들어댄다  벙어리 발등 앓는 소리냐 ‘노랫소리나 글 읽는 소리가 신통하지 않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벙어리 속은 그 어미도 모른다 설명을 듣지 않고는 그 사정을 정확히 알 수 없다는 말. 벙어리 재판 (양편 말이 다 분명하지 못하여) ‘시비를 가리기가 매우 어려운 경우’를 이르는 말. 벙어리 호적(胡狄)을 만나다 [가뜩이나 말이 통하지 않는 오랑캐를 벙어리가 만났다는 뜻으로] ‘서로 입을 다물고 말을 하지 않는 경우’를 이르는 말. 베개를 높이 하고 자게 되였다 큰 근심거리가 없어져서 마음 편안히 지내게 되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베 고의에 방귀 나가듯 무엇이 사방으로 쉽게 잘 퍼져 나가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베는 석 자라도 틀은 틀대로 해야 된다 불과 석 자짜리 베를 짜려고 해도 베틀 차리기는 마찬가지라는 뜻으로, 사소하거나 급하다 하여 기본 원칙을 무시할 수 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베돌던 닭도 때가 되면 홰 안에 찾아든다 홰에 오르지 않고 베돌기만 하던 닭도 때가 되어 자야겠다고 생각하면 절로 홰 안에 찾아오기 마련이라는 뜻으로, 서로 어울리지 않고 따로 놀던 사람도 때가 되면 언젠가는 다시 돌아올 때가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때가 되면 찾아올 사람은 다 찾아오는 법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벼락 치는 하늘도 속인다 속이려 들면 못 속일 것이 없다는 말. 벼룩도 낯짝이 있다 ‘몹시 뻔뻔스러운 사람’을 두고 이르는 말. 벼룩의 간을[선지를] 내먹는다 ‘조그만 이익을 당치않은 곳에서 얻어내려 하는 경우’를 이르는 말. 벼룩의 등에 육간 대청을 짓겠다 벼르던 아기 눈이 먼다 기대가 너무 크면 실망도 따를 수 있음을 이르는 말. 벼르던 제사에 물도 못 떠놓는다 벼린 도끼가 이 빠진다 애써서 벼린 도끼의 날이 그만 이가 빠져서 꼴사납게 되었다는 뜻으로, 공을 들여 잘 장만한 것이 오히려 빨리 못쓰게 되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벼슬은 높이고 뜻은 낮추어라 지위가 높을수록 겸손하여야 함을 이르는 말. 벼슬하기 전에 일산 준비 과거에 급제하기 전에 높은 벼슬아치들만이 쓰는 일산을 마련한다는 뜻으로, 일이 장차 어떻게 될 것인지도 모르면서 다 된 것처럼 서둘러 준비를 하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변소에 기와 올리고 살겠다 인색하게 굴어도 큰 부자는 못 됨을 비꼬는 말. 변죽을 치면 복판이 운다 =벽을 치면 대들보가 울린다. 별대 마병 편구 치듯 훈련도감 마병들이 편을 갈라 타구(打毬)하듯 친다는 뜻으로, 날쌘 몸짓으로 내리치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별성마마 배송 내듯 후환이 있을까 두려워서 배송(拜送)한다는 뜻으로, 마음에 매우 달갑지 아니하나 후환이 두려워 조심조심 좋도록 하여 내보내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병든 까마귀 어물전 돌듯 병들어 구실을 제대로 못하는 까마귀가 그래도 무엇인가 얻어먹을 것이 있을까 하여 어물전 위를 빙빙 돌고 있다는 뜻으로, 탐나는 것의 주위에서 미련을 가지고 떠나지 못하고 맴도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병든 날 세지 않고 죽은 날 센다 병이 들었을 때에는 전혀 안중에도 없다가 죽으니까 못 잊어 안타까워하며 제삿날을 따진다는 뜻으로, 사람이 죽은 다음에야 지성을 다하려 하는 경우를 이르는 말. 일이 다 틀어진 다음에 쓸데없는 짓을 하는 경우를 비꼬는 말.  병든 놈 두고 약 지으러 가니 약국도 두건을 썼더란다[썼더라 한다] 환자가 생겨 약 지으러 약국에 뛰어가니 약국은 자기보다 더 하게 이미 상사(喪事)를 만나 두건을 쓰고 있었다는 뜻으로, 가도 소용이 없으니 갈 필요가 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병든 솔개같이 잠시도 쉬지 않고 여기저기 살펴보며 빙빙 돌아다님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병들어야 설움을 안다 제 몸에 병이 나야 병난 사람의 설움을 안다는 뜻으로, 직접 경험하지 않고는 그 설움을 모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병신 자식이 효도한다 대수롭지 않던 사람이 뜻밖에도 믿던 사람보다 오히려 더 나은 구실을 할 때 이르는 말. 병아리 똥은 똥이 아닌가 사물 현상의 성격은 양적 측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질적 측면에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병아리 우장 쓰다 격에 맞지 아니한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병아리 터세하듯 ‘닭쌈에도 텃세한다’의 북한 속담.  병아리가 첫 울려면 날을 가린다 병아리가 다 자라서 처음으로 홰를 치며 울려고 할 때도 다 날을 가려 하는 법이라는 뜻으로, 어떤 일을 새로 벌일 때는 날을 잘 잡아야 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병아리는 가을에 가서 세여 보아야 한다 봄에 깐 병아리 중 몇 마리나 자라서 닭 구실을 하겠는가 하는 것은 가을에 가서 세어 보아야 정확하다는 뜻으로, 일의 결과를 보지 아니하고 타산만 앞세우다가는 실지와 맞지 아니할 수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병에 가득찬 물은 저어도 소리가 안난다 병자년 까마귀 빈 뒷간 들여다보듯 ‘무엇을 찾는 사람이 행여나 하고 구차스럽게 여기저기 기웃거림’을 비웃어 이르는 말. 병조 판서 집 활량 나그네 드나들듯 병조 판서의 집에 취직 청탁을 하러 오는 활량이 드나들듯 한다는 뜻으로, 매우 자주 출입하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병 주고 약 준다 해를 입혀 놓고서 돕는 체한다. 병풍도 꼬부려야 한다 병풍도 장마다 꼬부려야 서지 꼿꼿이 다 펴면 넘어진다는 뜻으로, 무슨 일에서나 그에 맞는 묘술과 방도가 있어야 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병풍에 그려 놓은 닭이 꼬끼요 하고 운다 =병풍에 그린 닭이 울가.  병풍에 그린 꽃이 향기 나랴 =병풍에 그린 닭이 울가.  병풍에 그린 닭이 울가 현실적으로 일어날 가능성이 전혀 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병풍에 그려 놓은 닭이 꼬끼요 하고 운다병풍에 그린 꽃이 향기 나랴.  병풍에 그린 닭이 홰를 치거든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어서 기약할 수 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병풍에 그린 닭이 홰를 치고 우는 한이 있더라도 비록 병풍에 그려 놓은 닭이 홰를 치며 우는 일과 같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생길지라도 기어이 해내겠다는 의지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병풍에 모과 구르듯 한다 병풍에 그려진 모과가 아무렇게나 굴러 있어도 상관없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뜻으로, 이리저리 굴러다녀도 탈이 없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보금자리 사랑할 줄 모르는 새는 없다 새조차도 제 보금자리를 극진히 사랑한다는 뜻으로,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가족과 가정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겨야 함을 이르는 말.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 겉이 아름다워야 속도 좋다는 뜻. 보따리 갖다 놓은 집이 주인이다 제 보따리를 가져다 풀어 놓거나 맡겨 둔 집이 바로 주인집이 된다는 뜻으로, 자기 물건이 있는 데에 따라 인연이 맺어짐을 이르는 말. 보름달 밝아 구황 타러 가기 좋다 구황을 타러 가는데 달이 밝으니 어두운 것보다는 좋다는 뜻으로, 별로 내키지 않는 일을 하는 데 약간의 좋은 조건이 갖추어졌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보름달이 밝은 줄 몰랐더냐 누구에게나 이치가 명백한 사실을 왜 모르느냐는 것을 이르는 말. 보리누름까지 세배한다 ‘지나치게 예의를 차림’을 농조로 이르는 말. 보리 누름에 선 늙은이 얼어죽는다 보리로 담은 술 보리 냄새가 안 빠진다 보리밥에는 고추장이 제격이다 무엇이든지 제격에 맞도록 하는 것이 좋다는 말. 보리밭에 가 숭늉 찾는다 ‘지나치게 서둘러서 행동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보리술이 제 맛 있다 =보리로 담근 술 보리 냄새가 안 빠진다. =보리로 담근 술 보리 냄새가 안 빠진다. 보리죽에 물 탄 것 같다 일이 아무 재미가 없고 싱거운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보릿고개가 태산보다 높다 ‘보릿고개 넘기가 매우 힘듦’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보약도 쓰면 안 먹는다 자신을 위하여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당장 괴롭거나 필요하지 않으면 잘 받아들이려 하지 않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보자 보자 하니까 얻어 온 장(醬) 한 번 더 뜬다 잘못을 따져서 꾸짖으려고 하는 참에 도리어 더 좋지 않은 일을 저지른다는 말. 보채는 아이 밥 한 술 더 준다 무슨 일에 있어서나 적극적으로 나서야 목적을 이룰 수 있다는 말. 복날(에) 개 맞듯 심하게 매를 맞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복날(에) 개 잡듯 몹시 심하게 때리거나 맞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복날(에) 개 패듯 몹시 심하게 때리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복달임에 죽을 개 끌듯 인정사정없이 끌고 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복덕방에 들어앉았다 복이 많이 생기는 방에 들어앉았다는 뜻으로, 먹을 일이 많고 행운이 차례지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음을 이르는 말. 복은 쌍으로 안 오고 화는 홀로 안 온다 볶은 콩 먹기 그만 먹겠다면서도 결국은 다 먹어 버림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볼모로 앉았다 일은 하지 아니하고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봄 꿩이 제 바람에 놀란다 자기가 한 일에 자기가 놀라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봄 꿩이 제 울음에 죽는다 꿩이 소리를 내어 자기가 있는 곳을 알려 죽게 된다는 뜻으로, 제 허물을 제가 드러냄으로써 화를 스스로 불러옴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봄날의 하루가 가을날 열흘 맞잡이 한 해 농사를 시작하는 때인 봄날은 다른 계절의 열흘과 맞먹을 정도로 중요한 시기라는 뜻으로, 봄철 농사가 매우 중요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봄날의 하루가 일 년 농사를 결정한다.  봄날의 하루가 일 년 농사를 결정한다 =봄날의 하루가 가을날 열흘 맞잡이. 봄도 한철 꽃도 한철 =봄꽃도 한때.  봄 돈 칠 푼은 하늘이 안다 농촌에서는 봄에 돈이 매우 귀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봄 떡은 들어앉은 샌님도 먹는다 먹을 것이 궁한 봄철에 해는 길고 출출하니 점잔만 빼고 들어앉은 샌님도 떡을 먹고 싶어 한다는 뜻으로, 봄에는 누구나 군것질을 좋아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봄 떡은 버짐에도 약이라 봄 떡은 버짐에 약으로 쓸 만큼 소중하다는 뜻으로, 봄철에는 식량이 귀하다는 말.  봄물에 방게 기어 나오듯 봄물이 지자 때를 만난 방게가 사방으로 정신없이 기어 나오듯 한다는 뜻으로, 여기저기서 많이 나오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봄바람에 말 씹도 터진다 봄바람을 쐬면 살갗이 잘 틈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봄바람에 여우가 눈물 흘린다 =봄바람은 첩의 죽은 귀신.  봄바람에 죽은 노인 봄바람을 맞고 얼어 죽은 늙은이라는 뜻으로, 몹시 추위를 타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봄바람은 첩의 죽은 귀신 봄바람이 매우 쌀쌀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봄바람에 여우가 눈물 흘린다.  봄바람은 품으로 기어든다 비록 봄이지만 바람 부는 날은 매우 쌀쌀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봄 방 추우면 맏사위 달아난다 봄철에 방이 추우면 견디기 힘듦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봄 백양 가을 내장 봄에는 백양산 비자나무 숲의 신록이, 가을에는 내장산의 단풍이 절경이라는 말. 봄볕에 그을리면 보던 임도 몰라본다 봄볕에 쬐이면 모르는 사이에 까맣게 그을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봄볕은 며느리를 쬐이고 가을볕은 딸을 쬐인다 =가을볕에는 딸을 쬐이고 봄볕에는 며느리를 쬐인다. 봄 보지가 쇠 저를 녹이고 가을 좆이 쇠판을 뚫는다 봄에는 여자가, 가을에는 남자가 춘정(春情)이 높아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봄비가 잦으면 마을 집 지어미 손이 크다 봄비가 자주 오면 풍년이 들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부인들의 인심이 후해진다는 뜻으로, 아무 소용없고 도리어 해롭기만 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봄비는 잠 비요 가을비는 떡 비라 봄철에는 식량이 귀하기 때문에 비 오는 낮에 낮잠이나 자지만 가을에는 낟알이 흔하기 때문에 비 오는 날에는 쉬면서 떡을 해 먹을 수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봄 사돈은 꿈에도 보기 무섭다 대접하기 어려운 사돈을 춘궁기에 맞게 되는 것을 꺼려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봄 소나기 삼 형제 ‘소나기 삼 형제’의 북한 속담.  봄에 깐 병아리 가을에 와서 세어 본다 봄에 깬 병아리를 중병아리가 되는 가을에 가서야 그 수를 헤어 본다는 뜻으로, 이해타산이 어수룩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벌여 놓은 일을 제때에 처리하지 못하고 게으름을 부리다가 뒤늦게 처리하느라고 바삐 돌아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봄에는 생말가죽이 마른다 봄철에는 일반적으로 날씨가 매우 메마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봄에 씨 뿌려야 가을에 거둔다 어떤 일이든지 제때에 대책을 세우고 공을 들여야 그만큼 성과를 거두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봄에 이붓애비 제 지낼가 ‘가을에 내 아비 제도 못 지내거든 봄에 의붓아비 제 지낼까’의 북한 속담.  봄에 하루 놀면 겨울에 열흘 굶는다 한 해 농사의 첫 시작인 봄철에 씨를 뿌릴 때에 게으름을 부리면 그만큼 농사가 안되어 열흘을 굶는다는 뜻으로, 봄철 농사가 매우 중요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봄 조개 가을 낙지 봄에는 조개, 가을에는 낙지가 제철이라는 뜻으로, 제때를 만나야 제 구실을 하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적절한 시기의 적절한 물건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봄 첫 갑자 일에 비가 오면 백리중이 가물다 봄추위와 늙은이 건강 당장은 대단한 것 같아도 이미 기울어진 기세라 오래가지 못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봇짐 내어 주며 앉아라 한다 속으로는 가기를 바라면서 겉으로는 붙잡는 체한다. 봇짐 내어 주며 하룻밤 더 묵으라 한다 봉당을 빌려 주니 안방까지 달란다 매우 염치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봉사 기름 값 물어 주기 ‘전혀 관계 없는 일에 억울하게 배상(賠償)을 내게 되는 경우’를 이르는 말. 봉사 단청(丹靑) 구경 본다고 보기는 하나, 그 참모습을 모르고 본다는 말. 봉사 등불 쳐다보듯 ‘서로 아무 관계 없이 지냄’을 이르는 말. 봉산 수숫대 같다 키가 멀쑥하게 큰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봉산 참배는 물이나 있지 =백미에는 뉘나 섞였지. 봉천답이 소나기를 싫다 하랴 빗물에 의하여서만 농사를 짓는 봉천답이 소나기를 싫다고 할 리 없다는 뜻으로, 틀림없이 좋아할 것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봉충다리의 울력걸음 능력이 좀 모자라는 사람도 여럿이 함께 하는 일에는 한몫 낄 수 있다는 말. 봉홧불 받듯 봉화대에서 봉화 연락을 받는 대로 지체 없이 봉홧불을 올리듯이 무엇을 연속으로 주고받는 상태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봉홧불에 김을 구워 먹는다 =봉홧불에 산적 굽기. 봉홧불에 떡 구워 먹기 =봉홧불에 산적 굽기. 봉홧불에 산적 굽기 봉홧불에 산적을 굽고 있다는 뜻으로, 일을 무성의하게 닥치는 대로 하여 좋은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봉홧불에 김을 구워 먹는다봉홧불에 떡 구워 먹기. 봉황에 닭을 비교한다 잘난 사람에다 못난 사람을 비교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부귀 빈천이 물레바퀴 돌 듯 한다 부끄러울 때는 두덜거려도 낫다 부끄러워 얼굴을 들지 못하게 될 때는 하다못해 못마땅한 듯이 두덜거리면 부끄러움을 좀 덜 수 있다는 뜻으로, 졸렬한 수단이나마 얼마간 창피를 모면할 수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부등가리 안 옆 죄듯[조이듯] 무슨 일을 저질러 놓고 마음이 놓이지 아니하여 안절부절못하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부뚜막 땜질 못하는 며느리 이마의 털만 뽑는다 부뚜막의 소금도 집어넣어야 짜다 손쉽게 할 수 있는 일이나 좋은 기회가 있어도 이용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는 말. 부러진 칼자루에 옻칠하기 쓸데없는 일을 함을 이르는 말. 부레풀로 일월을 붙인다 부레풀을 가지고 해와 달을 붙인다는 뜻으로, 못난 소리를 하는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 부모가 반팔자 어떤 부모에게서 태어나느냐 하는 것이 사람의 운명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부모가 온효자 되어야 자식이 반효자 자식은 부모를 본뜨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부모가 자식을 겉 낳았지 속 낳았나 부모는 자식의 육체를 낳은 것이지 그의 사상이나 속마음을 낳은 것은 아니라는 뜻으로, 자기의 자식이라도 그 속에 품은 생각은 알 수 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부모가 착해야 효자(가) 난다 부모가 착하여야 자식도 부모를 따라 착한 사람이 된다는 뜻으로, 윗사람이 잘하여야 아랫사람도 잘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부모가 효자가 되여야 자식이 효자 된다 ‘부모가 착해야 효자(가) 난다’의 북한 속담.  부모는 자식이 한 자만 하면 두 자로 보이고 두 자만 하면 석 자로 보인다 부모는 자기 자식이 한 자만큼 자라면 두 자로 커 보이고 두 자만큼 자라면 석 자로 커 보인다는 뜻으로, 부모 된 사람은 제 자식이 좋게만 보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부모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 부모의 말을 잘 듣고 순종하면 좋은 일이 생긴다는 말. 부모 명 잘 받드는 사람이 나라도 잘 받든다 부모를 위하고 가족과 고향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라야 나라에도 충성을 할 수 있다는 말.  부모 배 속에는 부처가 들어 있고 자식 배 속에는 범이 들어 있다 ‘부모 속에는 부처가 들어 있고 자식 속에는 앙칼이 들어 있다’의 북한 속담.  부모 상고에는 먼 산이 안 보이더니 자식이 죽으니 앞뒤가 다 안 보인다 부모가 돌아가셨을 때보다도 자식이 죽었을 때에 슬픔이 더 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부모 속에는 부처가 들어 있고 자식 속에는 앙칼이 들어 있다 부모는 누구나 다 제 자식을 한없이 사랑하지만 자식들 가운데는 부모의 은덕을 저버리는 경우가 없지 아니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부모와 자식 간에도 일이 사랑이다 =삼대독자 외아들도 일해야 곱다.  부모의 은덕은 낳아서 기른 은덕이요 스승의 은덕은 가르쳐 사람 만든 은덕이라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가르쳐 준 스승의 은덕도 친부모의 은덕에 못지아니하게 귀중하다는 말.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 [칼로 물을 베어도 흔적이 없듯이] 내외간의 싸움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곧 화합한다는 말. 부서진 갓모자가 되었다 사람이 남에게 꾸지람을 듣고 무안을 당하였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부스럼이 살 될까 이미 다 글러 버린 것이 다시 좋아질 수 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부시통에 연풍대 하겠다 좁은 부시통 안에서 연풍대라는 동작이 큰 칼춤도 추겠다는 뜻으로, 사람됨이 옹졸하여 일을 하면서 앞일을 헤아리지 못하는 경우를 놀림조로 이르는 말. 부앗김에 서방질한다 홧김에 분별없이 행동하여 더욱 큰일을 저지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부엉이 곳간 부엉이는 둥지에 먹을 것을 많이 모아 두는 버릇이 있다는 데서, 없는 것이 없이 무엇이나 다 갖추어져 있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부엉이 셈 치기 계산에 몹시 어두운 사람의 셈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부엉이 소리도 제가 듣기에는 좋다고 세상에 듣기 싫은 부엉이 소리조차도 부엉이가 들으면 듣기에 좋다는 뜻으로, 자기의 약점을 모르고 제가 하는 일은 다 좋은 것으로만 생각하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부엉이 집을 얻었다 횡재를 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부엌에 가면 더 먹을까 방에 가면 더 먹을까? 부엌에서 숟가락을 얻었다 대단찮은 일을 하고서는 큰 공이나 세운 듯이 자랑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부자간에도 돈을 헤여 주고받는다 돈거래를 할 때에는 정확히 해야 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부자 하나면 세 동네가 망한다  부잣집 맏며느리 같다 여자의 얼굴이 복스럽고 후덕스럽게 생겼다. 부잣집 외상보다 비렁뱅이 맞돈이 좋다 장사에는 외상을 경계해야 한다는 말. 부전조개 이 맞듯 1.‘빈틈없이 잘 들어맞음’을 이르는 말. 2.‘사이가 아주 가까움’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부조는 않더라도 제상(祭床)이나 치지 말라 도와주지는 않아도 좋으니, 낭패나 시키지 말라는 말. 부지깽이가 곤두선다 부지깽이도 누워 있을 틈이 없이 곤두서서 돌아다닌다는 뜻으로, 어떤 일이 몹시 바쁜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부지깽이가 뛰는 세월 부지깽이까지 뛰어다니는 때라는 뜻으로, 몹시 바쁜 때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부지깽이로 맞던 며느리가 며느리를 맞아 오니 방치로 때린다 ‘며느리 늙어 시어미 된다’의 북한 속담. 부지런한 것도 반복은 된다 부지런한 것이 행복한 생활을 이루는 중요한 요인이라는 말.  부지런한 농민에게는 좋은 땅과 나쁜 땅이 따로 없다 나쁜 땅도 부지런히 가꾸면 좋은 땅이 된다는 말. ≒부지런한 농사군에게는 나쁜 땅이 없다.  부지런한 농사군에게는 나쁜 땅이 없다 =부지런한 농민에게는 좋은 땅과 나쁜 땅이 따로 없다.  부지런한 물방아는 얼 새도 없다 물방아는 쉬지 아니하고 돌기 때문에 추워도 얼지 아니한다는 뜻으로, 무슨 일이든 쉬지 아니하고 부지런히 하여야 실수가 없고 순조롭게 이루어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부지런한 벌은 슬퍼하지 않는다 일에 충실한 사람은 비관하거나 불평하지 아니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부지런한 범재가 부지런하지 못한 천재보다 낫다 부지런한 보통 사람이 부지런하지 못한 천재보다 낫다는 뜻으로, 꾸준히 노력하여 공부하면 인재가 될 수 있다는 말.  부지런한 부자는 하늘도 못 막는다 부지런하면 반드시 부자가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부지런한 운전사에게는 나쁜 차가 없다 부지런한 운전사는 차의 좋고 나쁨을 따지지 아니하고 언제나 깨끗이 손질하고 관리한다는 말.  부지런한 이는 앓을 틈도 없다 일에 열중하면 좀처럼 시간의 여유가 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부처님 가운데[허리] 토막 (부처처럼) 어질고 착한 사람이라는 뜻. 부처님 살찌고 마르기는 석공에게 달렸다 부처님에게 생선 방어 토막 훔쳐먹었다고 한다 북단 거둥에 보군진 몰리듯 임금이 북단에 거둥할 때에 지형이 협소하여 보군(步軍)이 급히 달려갔다는 뜻으로, 무슨 일에 급히 덤비고 법석거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북데기 속에 벼 알이 있다 하찮은 북데기 속에 귀중한 벼 알이 섞여 있다는 뜻으로, 보통 대하게 되는 평범한 곳에 값진 물건이나 인재가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각담 밑에 구렝이 있고 북데기 속에 알이 있다. 북두칠성이 앵돌아졌다 ‘일이 낭패가 되었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북어 뜯고 손가락 빤다 ‘거짓으로 꾸미거나 과장함’을 이르는 말. 북어 한 마리 주고 젯상 엎는다 북은 칠수록 맛이 난다 무슨 일이나 하면 할수록 길이 나고 잘된다는 뜻. 북은 칠수록 소리가 난다 못된 사람과 싸우면 손해만 커진다는 말. 분에 심어 놓으면 못된 풀도 화초라 한다 못난 사람도 좋은 지위에 앉혀 놓으면 잘나 보인다는 말. 불고 쓴 듯하다 집이 너무 가난하여 아무것도 없이 휑하니 비었다는 말. 불난 끝은 있어도 물난 끝은 없다 불난 데 풀무질한다 남의 잘못된 일을 더 잘못되게 충동질하거나 성난 사람을 더욱 성나게 충동질한다는 말. 불뚝성이 살인낸다[살인한다] 갑자기 불뚝하게 성을 내면 좋지 않은 큰일을 일으키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불로초를 먹었나 보통 이상으로 장수하는 사람에게 하는 말. 불면 꺼질까 쥐면 터질까 자녀를 끔찍이 아끼며 소중히 기른다는 말. 불붙는 데 키질하기 일이 잘못되어 가는 판인데, 옆에서 충동질하여 더욱 잘못되어 가게 한다는 뜻. 불알 두 쪽만 대그락대그락한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고 알몸뿐이라는 말. 불알 밑이 근질근질하다 좀이 쑤셔서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한다는 말. 불알을 긁어 주다 남의 비위를 맞추어 주며 아첨한다는 말. 불 없는[꺼진] 화로, 딸 없는 사위 아무 쓸모가 없이 된 것을 이르는 말. 불장난에 오줌 싼다 불은 인정사정이 없으니 불장난을 하지 말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불탄 강아지 앓는 소리 불에 타서 죽어 가는 강아지의 울음소리라는 뜻으로, 기력이 다하여 소리도 제대로 못 내고 앓는 소리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불탄 개 가죽 같다 일마다 이루어지지 아니하거나 발전이 없고 점점 오그라들기만 하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불탄 쇠가죽 오그라들듯. 불탄 쇠가죽 오그라들듯 =불탄 개 가죽 같다. 불한당 치른 놈의 집구석 같다 집 안이 몹시 어수선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붉고 쓴 장 빛이 좋아서 맛있을 듯한 간장이 쓰다는 뜻으로, 겉모양은 그럴듯하게 좋으나 실속은 흉악하여 안팎이 서로 다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비는 데는 무쇠도 녹는다 지성으로 잘못을 빌면 용서하지 않을 수 없다는 말. 비단 대단 곱다 해도 말같이 고운 것은 없다 비단보에 개똥[똥 (싼다)] 겉모양은 그럴듯하나 내용은 흉하고 추잡함을 이르는 말. 비단옷 입고 밤길 가기 생색나지 않거나 보람 없는 일을 공연히 한다는 말. 비둘기 마음은 콩밭에 있다 자기에게 이득이 있거나 자기가 흥미를 가지는 것에 대하여서만 관심을 갖고 정신을 파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비둘기는 몸은 밖에 있어도 마음은 콩밭에 가 있다 먹을 것에만 정신이 팔려 온전히 다른 볼일을 보지 못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비둘기는 콩밭에만 마음이 있다. 비둘기는 콩밭에만 마음이 있다 =비둘기는 몸은 밖에 있어도 마음은 콩밭에 가 있다. 비둘기는 하늘을 날아도 콩밭을 못 잊는다 비둘기가 콩밭에만 마음을 두듯이 사람은 아무리 좋은 곳을 떠돌아다녀도 자기가 살던 고장을 잊지 못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비렁뱅이가 하늘을 불쌍히 여긴다 비렁뱅이 비단 얻은 것[격] 분에 넘치는 귀한 것을 얻어서 어쩔 줄 모를 때 하는 말. 비렁뱅이 자루 찢기 서로 위하고 동정해야 할 사람들끼리 오히려 헐뜯고 다투는 일을 이르는 말. 비루먹은 강아지 대호(大虎)를 건드린다 대적할 수 없는 이에게 철없이 함부로 덤빔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비린내 맡은 강아지 매 맞아 허리가 부러져도 뜨물통 앞에 가서 죽는다 비린내 맡은 강아지가 맞아 죽으면서까지도 냄새를 찾아 뜨물통 앞까지 기어가서 죽는다는 뜻으로, 어떤 물건이나 지위 따위에 눈이 어두워지면 죽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행동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비바리는 말똥만 보아도 웃는다 어린 처녀는 우습지 않은 일에도 곧잘 웃는다는 말. 비싼 놈의 떡은 안 사 먹으면 그만이라 비싼 밥 먹고 헐한 걱정 한다 쓸데없는 걱정은 하지 말라는 뜻으로 이르는 말.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 풍파를 겪은 뒤에 일이 더 든든해진다는 말. 비웃 두름 엮듯 한 줄에 잇대어 달아서 묶은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비위가 떡판[떡함지]에 가 넘어지겠다 떡판 옆을 가다가 짐짓 넘어진 체하여 떡을 먹을 만큼 비위가 좋다. 비지 먹은 배는 연약과(軟藥果)도 싫다 한다 하찮은 음식일지라도 먹어서 배가 부르면 좋은 음식이라도 더 당기지 않는다는 말. 비짓국 먹고 용트림한다 실속은 없으면서도 겉모양만 그럴듯하게 꾸밈을 이르는 말. 빈 수레가 요란하다 실속 없는 사람이 겉으로 더 떠들어 댄다. 빈대도 낯짝[콧등]이 있다 지나치게 염치가 없는 사람을 나무라는 말. 빈말이 랭수 한 그릇만 못하다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는 것보다는 목마른 사람에게 냉수 한 그릇을 대접하는 것이 낫다는 뜻으로, 말로만 하는 것보다는 실질적으로 도와주는 것이 훨씬 나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빈부귀천이 물레바퀴 돌듯 한다 ‘음지가 양지 되고 양지가 음지 된다’의 북한 속담. 빈집에 소 매였다 없는 살림에 큰 횡재를 하였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빈집의 빈대 먹지 못하고 굶주려서 바싹 여윈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빈천할 때 사귄 벗은 잊지 못한다 어려운 조건이나 생활 속에서 맺어진 벗이 매우 소중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빈틈에 바람이 나다 사이가 뜨면 아무리 두터운 정이라도 멀어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빌려 온 고양이같이 여러 사람이 모여 떠드는 데서 사람들과 어울리지 아니한 채 혼자 덤덤히 있는 경우를 이르는 말. 빌려 온 말이 삼경이 되었다 말을 잠깐 타고 돌려주겠다고 했는데, 시간이 흘러 밤늦은 삼경(三更)이 되었다는 뜻으로, 잠깐 빌려 온 물건이 그럭저럭 오래되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빌어먹는 놈이 콩밥을 마다할까 한참 궁한 판이니 좋고 나쁜 것을 가릴 처지가 못 된다는 말. 빗자루 든 놈보고 마당 쓸라 한다 빚 보증하는 자식은 낳지도 마라 빚은 값으로나 떡이라지 떡이 도무지 떡답지가 않고 빚어서 만들었다는 점만 떡 같다는 뜻으로, 제 기능을 잘 못하는 물건을 아쉬운 대로 써야 하는 경우를 이르는 말. 빚쟁이 발을 뻗고 잠을 못 잔다 남에게 빚을 진 사람은 발을 뻗고 편안하게 잠자지 못한다는 뜻으로, 남에게 빚을 진 사람은 늘 빚 갚을 일이 걱정되어 마음 편한 날이 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빚 주고 뺨 맞기 남에게 후한 일을 하고 도리어 욕을 본다는 말. 빚진 죄인(이라) 빚을 진 사람은 죄인처럼 빚쟁이에게 굽실거리게 된다는 말. 빛 좋은 개살구 보기에는 그럴듯하나 실속이 없는 것을 이르는 말. 빠른 말이 뛰면 굼뜬 소도 간다 일 잘하는 사람이 있으면 굼뜬 사람도 자연히 그를 따라가기 마련이라는 말.  빠른 바람에 굳센 풀을 안다 드센 바람 속에 꿋꿋이 서 있는 굳센 풀을 알아낼 수 있다는 뜻으로, 마음의 굳은 의지와 절개는 시련을 겪고 나서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는 말. 빨간 상놈 푸른 양반 모든 것을 드러내 놓고 마구 사는 상놈과 서슬이 푸르게 점잔을 빼고 있는 양반을 대조하여 이르는 말. 빨래 이웃은 안 한다 빨래할 때 가까이 있으면 구정물이나 튀지 좋은 일은 없다는 말. 빵따냄은 삼십 집 빵따냄의 위력이 삼십 집의 위력에 상당하다는 말. 뺨 맞는 데 구레나룻이 한 부조 쓸모없어 보이던 구레나룻도 뺨을 맞을 경우에는 아픔을 덜어 준다는 뜻으로, 아무 소용 없는 듯한 물건이 뜻밖에 도움을 주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뺨 잘 때리기는 나막신 신은 깍정이라 뺨 잘 때리기로는 나막신 신은 깍정이를 따라잡을 사람이 없다는 뜻으로, 되지 못하고 비열한 자가 도리어 잘난 체하며 남을 몹시 학대한다는 말. 일제 강점기에, 일본 사람이 툭하면 무고한 우리나라 사람을 때리고 업신여겼던 것을 증오하여 이르는 말.  뺨(을) 맞을 놈이 여기 때려라 저기 때려라 한다 죄를 지어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할 사람이 처분을 기다리지 아니하고 도리어 제 좋을 대로 요구함을 비웃는 말. 뺨을 맞아도 은가락지 낀 손에 맞는 것이 좋다 이왕 꾸지람을 듣거나 벌을 받을 바에는 권위 있고 덕망 있는 사람에게 당하는 것이 나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뻐꾸기도 유월이 한철이라 뻐꾸기도 음력 유월이 한창 활동할 시기라는 뜻으로, 누구나 한창 활동할 수 있는 시기는 얼마 되지 아니하니 그때를 놓치지 말라는 말. 뻗어 가는 칡도 한[끝]이 있다 무슨 일이든지 일정한 한도가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뻗정다리 서나 마나 뻗정다리는 서거나 앉거나 다 똑같다는 뜻으로, 하나 마나 마찬가지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뻗친 쇠발 이미 착수하여 버린 일임을 이르는 말. 뽕도 따고 임도 보고[본다] 두 가지 일을 동시에 이룸을 이르는 말. 뿌리가 다르면 줄기가 다르고 줄기가 다르면 아지가 다르다 어디서든지 근본이 기본이고 그에 따라 모든 현상과 결과가 좌우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뿌리 깊은 나무 가뭄 안 탄다 땅속 깊이 뿌리 내린 나무는 가뭄에 타지 않아 말라 죽는 일이 없다는 뜻으로, 무엇이나 근원이 깊고 튼튼하면 어떤 시련도 견뎌 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뿌리 없는 나무가 없다 모든 나무가 다 뿌리가 있듯이 무엇이나 그 근본이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원인이 없이 결과만 있을 수 없음을 이르는 말.  뿌리 없는 나무에 잎이 필까 원인이 없이는 결과가 있을 수 없음을 이르는 말. 근본이 있어야 결과도 기대할 수 있다는 뜻으로, 희망을 가질 아무런 근거도 없는데 기대를 가짐을 비웃는 말. 뿔 뺀 쇠 상이라 지위는 높지만 실권(實權)이 없음을 비유한 말.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올라간다] 주장 되는 사람이 없이 저마다 이러니저러니 하면 일이 제대로 되지 않음을 이르는 말. 사과나무에 배가 열렸나 사과나무에 배가 열린 것처럼 엉뚱하다는 뜻으로, 이치에 맞지 않는 전혀 뜻밖의 일이 생겼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사귀어야 절교하지 서로 관계가 있어야 끊을 일도 있다는 뜻으로, 어떤 원인이 있어야 결과가 있음을 이르는 말. 사기전에 종짓굽 맞추듯 들락날락함이 없이 꼭 같게 맞춤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사나운 개 콧등 아물 틈[날]이 없다 싸우기 좋아하는 사람은 상처가 아물 날이 없다는 말. 사나운 말에는 별난 길마 지운다 사내아이가 열다섯이면 호패를 찬다 남자의 나이 열다섯이 되면 어른으로 취급하는데, 이미 열다섯이니 제 한 몫을 할 때가 되었음을 강조하여 이르는 말. 사내자식 길 나설 때 갈모 하나 거짓말 하나는 가지고 나서야 한다 =사내가 우비하고 거짓말은 가지고 다녀야 한다. 사내자식은 수리개 넋이다 남자들은 솔개처럼 잘 떠돌아다님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사냥 가는 데 총 놓고 간다 =사냥 가는 데 총을 안 가지고 가는 것 같다. 사냥 가는 데 총을 안 가지고 가는 것 같다 무슨 일을 하러 가면서 거기에 가장 긴요한 물건을 빠뜨리고 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사냥 가는 데 총 놓고 간다. 사냥개 언 똥 들어먹듯[삼키듯] 음식 같은 것을 남이 손댈 사이도 없이 먹어 치움을 이르는 말. 사당치레하다가 신주 개 물려 보낸다 겉만 꾸미려고 애쓰다가 정작 요긴한 것은 잃어버리고 만다는 뜻. 사돈 남(의) 말 한다 제 일은 제쳐 놓고 남의 일에만 참견함을 이르는 말. 사돈 밤 바래기 이편에서 바래다 주면 곧이어 다음번에는 상대편에서 바래다 주고 하여 자꾸 되풀이됨을 이름. 사돈집 잔치에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한다 저와는 상관없는 일에 간섭함을 이름. 사또 떠난 뒤에 나팔 분다 마땅히 하여야 할 일을 제때가 지난 뒤에야 함을 조롱하여 이르는 말. 사람과 쪽박은 있는 대로 쓴다 사람 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 났나 아무리 돈이 귀중하다고 해도 사람보다 더 귀중할 수는 없다는 뜻으로 이르는 말.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 사람이라면 누구나를 막론하고 자유롭고 평등한 권리를 누릴 수 있다는 말. 사람은 구하면 앙분을 하고 짐승은 구하면 은혜를 한다 사람은 나이로 늙는 것이 아니라, 기분으로 늙는다 사람은 늙어지고 시집살이는 젊어진다 사람은 열 번 (다시) 된다 사람은 살아가는 동안에 여러 번 변화하고 발전한다는 뜻. 사람은 잡기를 해보아야 마음을 안다  사람은 죽으면 이름을 남기고 범은 죽으면 가죽을 남긴다 인생의 목적은 좋은 일을 하여 후세에 이름을 남기는 데 있다는 말. 사람은 키 큰 덕을 입어도 나무는 키 큰 덕을 못 입는다 나무는 큰 나무가 있으면 그 밑의 작은 나무는 자라지 못하나, 사람은 큰 인재가 나면 그 주위 사람이 덕을 입는다는 말. 사람은 헌 사람이 좋고 옷은 새 옷이 좋다 사람을 죽이는 세가지, 내리 쪼이는 태양, 만찬, 그리고 걱정 사람의 새끼는 서울로 보내고 마소 새끼는 시골[제주]로 보내라 사람은 넓고 큰 곳에서 자라야 출세할 기회가 많다는 말. 사람의 혀는 뼈가 없어도 사람의 뼈를 부순다 사람 죽여 놓고 초상 치러 주기  사랑이 여자에게 대하는 것은 태양이 꽃에 대하는 것과 같다 사릅 송아지는 이도 들어 보지 말랬다 세 살 먹은 송아지는 누구나 보면 안다는 뜻으로, 이를 보지 아니하고도 알 수 있음을 이르는 말. 사막에 꽃씨를 뿌린다고 꽃을 피울가 전혀 가능성이 없는 것을 하려고 애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사막에도 금강석이 있다 모래나 돌밖에 없어 보이는 사막에조차 귀중한 금강석이 있다는 뜻으로, 아주 보잘것없어 보이는 곳에도 귀중한 것이 있을 수 있으므로 어디나 하찮게 여겨서는 안 된다는 말.  사막에서 금강석을 찾는다 온통 모래로 뒤덮인 사막에서 귀중한 금강석을 찾는다는 뜻으로, 구하기가 매우 힘든 것을 앞이 막막하고 희망이 보이지 않는 곳에 가서 무모하게 찾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사모에 갓끈[영자] 제격에 맞지 않아 어울리지 않는 모양을 이르는 말. 사발 안의 고기도 놔주겠다 사발 안에 든 고기는 이미 자기 차지이나 그것도 못 먹고 놓아준다는 뜻으로, 자기 몫도 제대로 찾아 먹지 못할 만큼 어리석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사발 이 빠진 것 쓸모없이 되어 그대로 두기도 불편한 물건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사발에 든 고기나 잡겠다 사발에 담아 놓은 물고기나 잡을 만하다는 뜻으로, 무능하여 일을 처리하기는커녕 주는 밥이나 겨우 찾아 먹는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 사서삼경을 다 읽어도 누울 와(臥) 자가 제일 게으른 자가 누워서 뒹굴 때 핑계로 이르는 말. 사십에 첫 버선 1.나이 들어서 늦게 관직이나 일자리를 얻게 됨을 이르는 말. 2.늙어서야 뜻한 바를 이루게 됨을 이르는 말. 사위 사랑(은) 장모 사위를 사랑하는 마음은 장인보다 장모가 더하다는 말. 사위는 백 년 손이라 [사위는 영원한 손님이라는 뜻으로] 사위는 언제나 소홀히 할 수 없는 존재라는 말. 사위는 백 년 손이요 며느리는 종신 식구 사위도 반자식(이라) 1.장인과 장모에게 사위가 절반 제 자식이라는 뜻으로, 사위에 대한 정이 자식에 대한 정 못지않다는 말. 2.사위도 때로 자식 노릇을 할 때는 한다는 말. 사자어금니같이 아끼다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다. 사자 없는 산에 토끼가 왕[대장] 노릇 한다 주장 되는 사람이 없게 되면 못난 사람이 세력을 부리며 뽐낸다는 말. 사잣밥(을) 싸 가지고 다닌다 언제 어디서 죽을지 모를 위험한 처지에 놓여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사잣밥을 목에 매달고 다닌다. 사잣밥을 목에 매달고 다닌다 =사잣밥(을) 싸 가지고 다닌다. 사잣밥인 줄 알고도 먹는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험한 일인 줄 알면서도 다른 방도가 없어서 할 수 없이 하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사정이 사촌보다 낫다 사정만 잘하면 웬만한 것은 통할 수 있다는 말. 사주에 없는 관을 쓰면 이마가 벗어진다 사주팔자는 날 때부터 타고난다 운명은 아무리 피하려 해도 피할 수 없는 것임을 이르는 말. 사천왕 보고 앙증하다 한다 사천왕이 슬기가 있고 앙증하다 하여 그를 보고 앙증하다고 하는 것은 쓸데없는 짓이라는 의미로, 당연한 사실을 놓고 쓸데없는 말을 하는 상황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남이 잘되는 것을 시기함’을 이르는 말. 사침에도 용수가 있다 아무리 바빠도 틈을 내려면 낼 수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사타구니에 방울 소리가 나도록 아주 급하게 뛰어가는 모습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사후 술 석잔 말고 생전에 한 잔 술이 달다 사후 약방문(藥方文) 때를 놓치고 난 뒤에 기울이는 헛된 노력을 이르는 말. 사흘 굶어 도둑질 아니 할 놈 없다 아무리 착한 사람이라도 몹시 궁하게 되면 옳지 못한 짓을 하게 된다는 말. 사흘 길에 하루쯤 가서 열흘씩 눕는다 삭다례 떡 맛보듯 ‘삭단에 떡 맛보듯’의 북한 속담. 삭은 바자 구멍에 노란 개 주둥이 (내밀듯) 다 삭은 바자 구멍으로 개가 주둥이를 잘 내밀듯이 말참견을 잘하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삯일에 땀을 흘리면 죽은 할아버지도 무덤 속에서 돌아눕는다 남이 시키는 삯일에 땀을 흘리는 것을 보면 죽은 할아버지조차도 가슴 아파하며 보지 않으려고 돌아눕는다는 뜻으로, 삯일하는 사람들의 고된 처지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산골 중놈 같다 ‘의뭉스럽게 생긴 사람’을 조롱 조로 이르는 말. 산 김가 셋이 죽은 최가 하나를 못 당한다 산돼지는 칡뿌리를 노나 먹고 집돼지는 구정물을 노나 먹는다 돼지와 같이 욕심 많은 짐승도 먹을 것을 나누어 먹는다는 뜻으로, 욕심 사나운 사람을 비꼬는 말.  산돼지를 잡으려다가 집돼지까지 잃는다 산돼지를 잡겠다고 욕심을 부리던 나머지 집돼지를 잘못 간수한 탓으로 잃어버리게 되었다는 뜻으로,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다가 이미 차지한 것까지 잃어버리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산토끼를 잡으려다가 집토끼를 놓친다. 새로운 일을 자꾸만 벌여 놓으면서 이미 있는 것을 챙기는 데에 소홀하면 도리어 손해를 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산토끼를 잡으려다가 집토끼를 놓친다. 산 밑 집에 방앗공이(가) 논다[귀하다] 그 고장의 산물이 오히려 그곳에서는 더 귀하다는 말. 산 밖에 난 범이요 물 밖에 난 고기라 1.근거로 삼을 기반을 잃어버려 맥을 못 추게 된 경우를 이르는 말. 2.제 능력을 발휘할 수 없는 처지로 몰려난 경우를 가리키는 말.. 산보다 골이 더 크다 무슨 일이 사리에 맞지 않게 됨을 이르는 말. 산속에 있는 열 놈의 도둑은 잡아도 맘속에 있는 한 놈의 도둑은 못 잡는다 일단 제 마음속에 자리 잡은 좋지 못한 생각을 스스로 고치기는 매우 어렵다는 말. 산 속의 놈은 도끼질 들판의 놈은 괭이질 산에 가야 범을 잡는다 목적을 이룰 수 있는 방법과 방향으로 행동하여야 성공할 수 있다는 말. 산은 오를수록 높고 물은 건널수록 깊다 산이 높아야 골이 깊다 사람이란 외형부터 커야 그 품은 포부도 크다는 말. 산 (사람) 입에 거미줄 치랴 사람은 아무리 가난하여도 먹고살 수는 있다는 말. 산중 놈(의) 풋농사 두메 화전의 어설픈 농사라는 뜻으로, 여름에는 잘된 듯 보이나 산짐승도 와서 뜯어 먹고 하여 추수할 때는 별 수확이 없게 되는 농사를 이르는 말. 산중 놈은 도끼질 야지(野地) 놈은 괭이질 사람은 각기 자신의 환경에 따라 하는 일이 다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산중 벌이하여[농사지어] 고라니 좋은 일 했다 애써서 산속에 밭을 갈았더니 고라니가 내려와서 다 먹더라는 뜻으로, 기껏 고생하여 이루었으나 남만 좋은 일 해 준 결과가 되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산중에 거문고라 외딴 산속에 있는 거문고와 같이 어떤 자리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산지기가 놀고 중이 추렴을 낸다 놀기는 산지기가 놀았는데 그 값은 중이 문다는 뜻으로, 아무런 관련도 없는 남의 일로 부당하게 대가를 치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산지기가 산을 안 지키고 민간에 내려가서 행음을 하고 중이 불공은 안 드리고 술추렴을 한다는 뜻으로, 부당하거나 엉뚱한 짓을 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산지기 눈 봐라 도낏밥을 남 줄까 몹시 인색해 보이니 그에게 무엇을 얻을까 바라지도 말라는 말. 산지기 눈치 보니 도끼 빼앗기겠다 눈치를 보니 손해만 입게 될 것 같으므로 일찌감치 정신 차려야 한다는 말. 산 진 거북이요 돌 진 가재[자라]라 의지할 근거가 든든한 상태임을 이르는 말 산천 도망은 해도 팔자 도망은 못한다 비록 자연에서는 도망칠 수 있어도 운명 지어진 팔자에서는 도망칠 수 없다는 뜻으로, 타고난 팔자란 어쩔 수 없음을 이르는 말. 산토끼를 잡으려다가 집토끼를 놓친다 =산돼지를 잡으려다가 집돼지까지 잃는다. =산돼지를 잡으려다가 집돼지까지 잃는다. 산 호랑이 눈썹 (찾는다) 도저히 불가능한 것을 얻으려고 함을 이르는 말. 살갑기는 평양 나막신 신기에 편안한 평양 나막신처럼 붙임성이 있고 사근사근한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안쪽이 넓은 평양 나막신처럼 몸은 작은데 음식은 남보다 더 많이 먹는 사람을 비웃는 말. 살강 밑에서 숟가락 얻었다[주웠다] 횡재한 것 같으나 임자가 분명하여 아무 보람이 없음을 이르는 말. 살결이 희면 열 허물 가린다 살결이 흰 사람은 대체로 아름다워 보인다는 말. 살림에는 눈이 보배(라) 살림을 잘하려면 눈썰미가 있어야 한다는 말. 살림에는 낱낱이 살펴 보살피는 것이 제일이라는 말.  살림은 오장 같다 뱃속의 오장이 모두 제 기능을 다 해야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것처럼 아무리 많은 살림살이도 빠짐없이 모두 소용되기 마련이며, 또한 그 많은 살림살이가 모두 제 기능을 다하여 서로 손이 맞아떨어져야 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살림이 거덜이 나면 봄에 소를 판다 생활이 몹시 쪼들리게 되면 한창 소를 부려야 할 바쁜 농사철인 봄에도 소를 팔게 된다는 뜻으로, 생활이 쪼들려 막다른 처지에 이르게 되면 아무리 긴요한 물건이라도 꺼리지 않고 팔게 된다는 말. 살림이란 게 쓸 건 없어도 남 주워 갈 건 있다 하찮은 물건이라도 도둑이 집어 갈 것은 있기 마련이라는 말. 살림하는 녀편네가 손이 크다 살림하는 여자가 헤프게 살림하여 낭비를 많이 함을 이르는 말. 살아가면 고손자한테도 배운다 배움에는 위아래가 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살아가면 고향 오래 살면서 정이 들면 곧 고향처럼 정다워진다는 뜻으로, 어느 곳이든지 마음을 붙이고 살아가면 고향과 같이 정이 든다는 말. 살아날 사람은 약을 만난다 일이 잘될 사람은 불행한 처지에 있다가도 그 불행을 면할 수 있는 길이 열리기 마련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살아생이별은 생초목에 불붙는다 살아 있으면서 서로 이별하는 것은 불이 잘 붙지 않는 생초목조차 불붙을 만큼 애간장이 타는 일이라는 뜻으로, 생이별은 차마 못할 일임을 이르는 말. 살은 쏘고 주워도 말은 하고 못 줍는다 살이 살을 먹고 쇠가 쇠를 먹는다 동포 형제끼리 서로 해침을 이르는 말. 살찐 놈 따라 붓는다 실속 없이 남이 하는 대로 따라 할 필요가 없음을 이르는 말. 삼각산 바람이 오르락내리락 바람이 제멋대로 오르락내리락한다는 뜻으로, 거들거리고 놀아나는 모양을 이르는 말. 삼각산 풍류. 삼각산 풍류 ☞삼각산 바람이 오르락내리락. 삼간초가가 다 타도 빈대 죽어[타 죽는 것만] 좋다 =초가삼간 다 타도 빈대 죽는 것만 시원하다. 삼국 시절에 났나 말은 굵게 한다 공연히 큰소리치며 허세를 부림을 이르는 말. 삼년 가뭄에는 살아도 석달 장마에는 못 산다 삼년부조면 절교라 상기(喪期) 삼 년 동안에 한 번도 조상을 아니한 사람과는 절교한다는 말. 삼밭에 쑥대 삼밭에 자라는 쑥대는 저절로 곧아진다는 뜻으로, 좋은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그 영향으로 자기도 모르게 좋은 사람이 됨을 이르는 말. (참고)마중지봉(麻中之蓬). 삼베 주머니에 성냥 들었다 삼베 주머니에 어울리지 않게 성냥이 들었다는 뜻으로, 허술한 겉모양과는 달리 속에는 말쑥한 것이 들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삼복더위에 고기 국 먹은 사람 같다 몹시 무더운 삼복에 더운 고깃국을 먹고 땀을 뻘뻘 흘리는 사람 같다는 뜻으로, 땀을 몹시 흘리는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  삼복더위에 소뿔도 꼬부라든다 삼복더위에는 굳은 소뿔조차도 녹아서 꼬부라진다는 뜻으로, 삼복 날씨가 몹시 더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소뿔도 꼬부라든다. 삼사월 낳은 아기 저녁에 인사한다 삼사월에는 아침에 낳은 아기가 저녁에 인사한다는 뜻으로, 음력 삼사월은 낮이 몹시 긺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삼수갑산을 갈지언정 중강진은 못 간다 삼수갑산에 귀양살이를 갈지언정 자기 마음에 맞지 않는 중강진에는 가지 않겠다는 뜻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은 어떤 피해가 있더라도 절대로 할 수 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삼십 넘은 계집 한창때가 다 지나간 여자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삼십육계 줄행랑이 제일[으뜸] 형편이 불리할 때는 도망쳐 화를 면하는 것이 상책임. 삼일 안 새색시도 웃을 일 결혼한 지 삼 일도 안 된 새색시마저도 웃을 일이라는 뜻으로, 웃지 않고서는 도저히 배길 수 없는 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삼정승 부러워 말고 내 한 몸 튼튼히 가지라 권세나 권세 있는 사람들의 도움에 헛된 욕심을 두지 말고 제 몸의 건강이나 바른 행실을 위해 힘쓰라는 말. ≒삼정승을 사귀지 말고 내 한 몸을 조심하라정승 판서 사귀지 말고 제 입이나 잘 닦아라. 삼정승을 사귀지 말고 내 한 몸을 조심하라 =삼정승 부러워 말고 내 한 몸 튼튼히 가지라. 삼천갑자 동방삭이도 저 죽을 날은 몰랐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에게 닥쳐올 운명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삼촌 못난이 조카 장물 짐 진다 못난 삼촌이 조카가 훔친 물건을 지고 따라간다는 뜻으로, 덩치는 큰 사람이 못난 짓을 하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삼촌 삼촌 하면서 무엇 먹인다 =사돈 사돈 하며 가다가 들리고 오다가 들리고 한다. 삼태기로 앞 가리기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짓을 하는 어리석음을 이르는 말. 삼현 육각 잡히고 시집간 사람 잘산 데 없다 음악을 울리며 요란하게 시집간 사람이 잘사는 것을 보지 못하였다는 뜻으로, 호화롭게 시집간 사람이 불행하게 사는 수가 많음을 이르는 말. 알력과 모순으로 가득 차 있는 부자 집안에 시집가서 행복할 것이 없음을 풍자하여 이르는 말. 삽살개(의) 뒷다리 삽살개 뒷다리처럼 볼품이 없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삿갓에 쇄자질 =사모에 갓끈[영자]. 상감마마 어전 뜰에서 걷듯 상감마마가 뜰에서 거니는 걸음걸이와 같다는 뜻으로, 팔자걸음으로 흐느적흐느적 걷는 걸음걸이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상갓집 개 [노릇] 먹여 주고 돌봐 줄 주인을 잃은 상갓집 개와 같은 처지라는 뜻으로, 여기 가서도 천대를 받고 저기 가서도 천대를 받으면서도 비굴하게 얻어먹으러 기어드는 가련한 꼴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상갓집 개만도 못하다 제대로 얻어먹지를 못하는 상갓집 개만도 못한 신세라는 뜻으로, 의지할 곳 없고 천대받고 압박받는 처지가 몹시 가련하고 불쌍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상놈의 발 덕 양반의 글 덕 양반은 학식 덕으로 살아가고 학식 없는 상놈은 발로 걷고 노동하여 살아감을 이르는 말. 상놈의 살림이 양반의 양식이라 상놈이 힘들여 일하여 꾸려 가는 살림이 곧 양반의 양식이 된다는 뜻으로, 상놈이 힘겹게 살아가는 반면 양반은 그 덕에 호의호식하게 됨을 비난하여 이르는 말. 상농은 밭을 가꾸고 중농은 곡식을 가꾸고 하농은 풀을 가꾼다 진짜 농사를 잘 짓는 농사꾼은 밭을 기름지게 가꾸는 반면 농사를 못 지을수록 쓸데없는 풀만 가꿈을 이르는 말. 상덕을 바라지 하덕을 바라랴 사랑과 은덕은 으레 윗사람에게서 받기 마련이지 아랫사람에게서 받는 일은 없음을 이르는 말. 상두꾼에도 순번이 있고 초라니탈에도 차례가 있다 모든 일에는 차례와 순서가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상두꾼은 연폿국에 반한다 상여를 메는 상두꾼이 상갓집에서 끓이는 하찮은 연폿국 맛에 반한다는 뜻으로, 아무리 천한 일이라도 그 일 아니면 맛볼 수 없는 재미가 따로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상전 배 부르면 종 배고픈 줄 모른다 상전벽해 되어도 비켜설 곳(이) 있다 뽕나무 밭이 푸른 바다가 되더라도 피할 길이 있다는 뜻으로, 아무리 큰 재해 속에서도 살아날 가망은 있음을 이르는 말. 상전의 빨래에 종의 뒤축이 희다 남의 일을 하여 주면 그만한 소득이 있다. 상좌 중의 법고 치듯 무엇을 아주 빨리 쾅쾅 치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상좌 중이 많으면 가마솥을 깨트린다 상주 보고 제삿날 다툰다 정확히 아는 사람 앞에서 자기의 틀린 것을 고집한다는 뜻. 상추 밭에 똥 싼 개는 저 개 저 개 한다 한 번 나쁜 짓을 하다가 들킨 사람은, 나쁜 일이 드러날 적마다 의심을 받게 된다는 말. 상추쌈에 고추장이 빠질까 상추쌈에 고추장을 빼놓을 수 없다는 뜻으로, 사람이나 사물이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어 언제나 따라다니고 붙어 다니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상투가 국수버섯 솟듯 되지못하게 어른 행세를 하며 남을 함부로 부리는 이를 이르는 말. 상판대기가 꽹과리 같다 얼굴이 놋쇠로 만든 꽹과리 같다는 뜻으로, 몹시 파렴치한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상팔십이 내 팔자 강태공이 가난하였던 처음 80년 동안과 같다는 뜻으로, 가난이 팔자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상하사불급이오 이름만 석숭이가 되었다 이 일 저 일 벌여 놓기만 하고 실속은 없어 알뜰하게 모은 제 재물은 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새 까먹은 소리 근거 없는 말. 헛소문. 새꽤기에 손 베었다 변변치 못한 사람에게, 또는 어쭙잖은 일 때문에 뜻밖의 해를 입었다는 말. 새끼 아홉둔 소가 길마 벗을 날 없다 새남터를 나가도 먹어야 한다 곧 죽으러 새남터로 끌려 나가더라도 우선 먹고 봐야 한다는 뜻으로, 아무리 큰일을 당하더라도 우선 든든히 먹고 기운을 차리는 것이 중요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새는 앉는 데마다 깃이 든다[떨어진다] 이사가 잦으면 세간이 준다는 뜻. 새도 가지를 가려서 앉는다 처신을 가려서 하라는 말. 새도 염불을 하고 쥐도 방귀를 뀐다 새로 집 지은 후 삼 년은 마음을 못 놓는다 새로 집을 짓고 살면 처음 삼 년은 무슨 사고가 있을까 하여 마음을 놓지 못한다는 말. 새매도 오래면 꿩을 잡는다 꿩을 잡아 보지 못한 새매도 오래면 꿩을 잡을 수 있다는 뜻으로, 어떤 분야에 대하여 지식과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도 그 분야에 오래 있으면 얼마간의 지식과 경험을 갖게 됨을 이르는 말. 새 바지에 똥 싼다 미운 짓만 골라서 한다는 말. 새 발의 피 분량이 무시해도 좋을 만큼 적음. 새벽달 보려고 으스름달 안 보랴 아직 닥치지 않은 미래의 일만 생각하여, 지금 당장의 일을 무시할 수는 없다는 뜻. 새벽달 보자고 초저녁부터 기다린다 일을 너무 일찍 서두른다는 뜻. 새벽바람 사초롱 새벽바람에 꺼질까 봐 조심스럽게 들고 있는 비단 초롱이라는 뜻으로, 매우 사랑스럽고 소중한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새벽 호랑이(다) 세력을 잃고 물러나게 된 신세를 비유하여 이르는 말. 새사람 들여 삼 년(은 마음을 못 놓는다) 새로 일을 벌이는 때에는 적어도 삼 년은 두고 봐서 탈이 없어야 안심할 수 있다는 말. 새알 멜빵 하겠다 사람이 매우 약음을 이르는 말. 새알 볶아 먹을 놈 작은 새알을 꺼내서 볶아 먹을 만한 인간이라는 뜻으로, 이익만 생긴다면 무슨 일이든 상관없이 달려드는 극단적인 이기주의자를 비꼬는 말. 새 오리 장가가면 헌 오리 나도 간다 새우로 잉어를 낚는다 밑천을 적게 들여 큰 이득을 얻는다는 말. 새 잡아 잔치할 것을 소 잡아 잔치한다 새장에 갇힌 메새 오갈 데 없는 처지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새장에 갇힌 앵무새 자유를 구속당하고 갇혀 있는 처지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새침데기 골로 빠진다 보기에 얌전한 사람일수록 속은 엉뚱하다는 말. 새해 못할 제사 있으랴 말로야 새해에 잘못 지낼 제사가 어디 있겠느냐는 뜻으로, 어떤 일을 잘못하고는 이 다음부터 잘하겠다고 다짐하는 사람을 비꼬는 말. 색시 그루는 다홍치마 적에 앉혀야 한다 1.아내를 순종하게 하려면 신혼(新婚) 초부터 다잡아야 한다는 뜻. 2.사람을 가르치거나 길들이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엄하게 다잡아야 한다는 뜻. 색시 짚신에 구슬 감기가 웬일인고 분에 넘치는 호사나 사치는 도리어 샛강 물소리 멎을 때 북촌(北村) 마님 빈대떡 주무르듯 굉장히 바쁜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샛바람에 게 눈 감기듯 게 눈이 샛바람에 얼른 감겨 버리는 모양과 같다는 뜻으로, 몹시 졸린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날이 잘 가묾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생감 등때기 같다 생감의 두꺼운 껍데기 같다는 뜻으로, 낯가죽이 두껍고 지독하게 끈덕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생마 갈기 외로 길지 바로 길지 [갓난 망아지의 갈기가 왼쪽으로 눕게 될지, 오른쪽으로 눕게 될지 알 수 없다는 뜻으로] 어린이가 자라서 어떤 사람이 될지 미리 예측하기 어렵다는 말. 생마 잡아 길 들이기[들이지] 버릇없고 배우지 못해서 성깔이 고약한 사람은 가르쳐 바로잡기 어렵다는 뜻. 생선 망신은 꼴뚜기가 시킨다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킨다. 생시에 먹은 마음 취중에 나온다 =상시에 먹은 마음 취중에 난다. =상시에 먹은 마음 취중에 난다. 생원님이 종만 업신여긴다 무능한 사람이 자기 손아랫사람에게만 큰소리치며 잘난 체한다는 말. 생이 벼락 맞던 이야기를 한다 1.쓸데없는 잔소리를 즐겨 하는 것을 핀잔하는 말. 2.까맣게 잊어버린 옛일을 새삼스럽게 이야기함을 이르는 말. 생일날 잘 먹으려고 이레를 굶는다 어떻게 될지도 모를 앞일을 미리부터 지나치게 기대한다는 말. 생전 부귀요 사후 문장이라 부귀는 죽으면 그만이지만 문장은 죽은 후에도 영구히 빛난다는 말. 살아서는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으뜸이고 죽은 다음에는 글로 자기를 남기는 것이 으뜸이라는 말. 생쥐 볼가심할 것도 없다 아무 먹을 것도 없이 매우 가난하다는 뜻. 생초목에 불붙는다 뜻밖의 화를 당하거나 요절(夭折)하거나 하는 경우의 ‘기막히는 정상(情狀)’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생파리 잡아떼듯 말도 붙여 보지 못하도록 쌀쌀하게 거절하는 경우를 이르는 말. 서까랫감인지 도릿감인지 모르고 길다 짧다 한다 서낭에 가 절만 한다 뜻도 모르고 남의 흉내만 열심히 낸다는 말. 서낭에 난 물건이냐 물건 값이 너무 헐할 때 이르는 말. 서낭제 하고 벼락 맞는다 서낭당에 제사를 지내고 벼락을 맞는다는 뜻으로, 잘되라고 한 일에 도리어 화를 입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서당 개 삼 년에 풍월(을) 한다[읊는다] 어떤 방면에 아는 것이 없는 사람도, 그 방면에 오래 끼여 있으면 어느 정도 익히게 된다는 말. 서당 아이들은 초달(楚撻)에 매여 산다 1.글을 배우는 아이들은 선생의 벌을 가장 두려워한다는 말. 2.어떤 조직에 매여 있으면, 어쩔 수 없이 그 조직의 생활에 따르게 된다는 뜻. 서른세 해 만에 꿈 이야기 한다 오래 묻어 두었던 일을 이야기함을 비꼬아 하는 말. 서리 맞은 구렁이[병아리] ‘힘이 없고 동작이 몹시 굼뜬 사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서무날 바람은 꾸어서라도 분다 썰물과 밀물의 차이로 서무날인 음력 12일과 27일경에는 미세기 관계로 어김없이 바람이 분다는 것을 이르는 말. 서울 (가서) 김 서방 찾는다[찾기] 무턱대고 막연하게 찾아감을 이르는 말. 서울 소식은 시골 가서 들어라 가까운 주위의 소식이 오히려 먼 곳에 더 잘 알려져 있다는 말. 서울이 낭이라니까 과천[삼십 리]부터 긴다 미처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지레 겁부터 냄을 이르는 말. 서캐 훑듯 빠뜨림 없이 샅샅이 뒤지거나 조사한다는 뜻. 서투른 도둑이 첫날밤에 들킨다  서투른 무당이 장구만 나무란다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 자신의 능력은 모르고 도구만 탓한다는 말. 서투른 숙수가 (피나무) 안반만 나무란다 제 기술이 모자라서 일이 안 되는 줄은 모르고 도구가 나쁘다고 탓한다는 말. 석류는 떨어져도 안 떨어지는 유자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석새베에 열새 바느질 1.나쁜 것을 가지고도 기술만 좋으면 훌륭한 물건을 만들 수 있다는 말. 2.‘서로 어울리지 않는 것’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석새에서 한 새 빠진 소리 한다 석새에서 한 새가 빠졌으니 가운데가 비었다는 뜻으로, 실없는 소리를 하는 경우를 비꼬는 말. 석새짚신에 구슬 감기 ‘차림새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석수장이 눈깜작이부터 배운다 [석수장이가 돌 쪼는 기술보다도 먼저 튀는 돌 조각을 피하기 위하여 눈 깜짝이는 것부터 배운다는 뜻으로] ‘어떤 일을 내용보다도 형식부터 배우는 것’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석 자 베를 짜도 베틀 벌이기는 일반 선가 없는 놈이 배에는 먼저 오른다 실력이 없는 사람이 남보다 먼저 나서서 덤벙거린다는 말. 선떡 가지고 친정에 간다 제대로 익지 아니한 선떡을 하여 가지고 친정집에 찾아간다는 뜻으로, 변변찮고 성의 없는 선물을 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스스럼없이 가까이 지내는 데에는 그리 좋지 못한 선물을 가지고 가도 흉이 되지 아니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선떡 먹고 체하였나 웃기는 왜 웃나 별로 우습지도 아니한 일에 실없이 잘 웃는 사람을 핀잔하는 말. 선떡 받듯이 흡족하지 아니하거나 못마땅해하는 태도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선떡이 부스러진다 떡이 채 익지 아니하면 푸슬푸슬 부스러진다는 뜻으로, 어설프게 한 일은 곧 나쁜 결과를 가져옴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죽인다] 미숙한 사람이 잘하는 체하다가 일을 그르친다는 말. 선무당이 장구 탓한다 1.할 줄 모르는 사람일수록 핑계가 많다. 2.서투른 솜씨를 핑계 대어 변명한다. 선병자 의(醫)라 먼저 앓은 사람이 그 병에 경험이 있어서 뒤에 앓는 이의 병을 고칠 수 있음을 이르는 말. 어떤 일에 먼저 경험을 쌓은 사람이 남을 가르칠 수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선봉대장 투구 쓰듯 옛날 군대의 선봉대장이 굉장히 큰 투구를 뒤집어쓰고 완전 무장을 했듯이 무엇을 머리 위로부터 푹 내려 쓴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선불 맞은 노루[호랑이] 뛰듯 분에 못 이겨 거칠게 행동함을 이르는 말. 선비 논 데 용 나고 학이 논 데 비늘이 쏟아진다 선생님 앞에서 책장 번진다 ‘부처님한테 설법’의 북한 속담. 선생의 똥은 개도 안 먹는다 선생 노릇 하기가 무척 어렵고 힘듦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선손질 후 방망이 먼저 남에게 해를 입히면 자기는 뒤에 더 큰 해를 입게 됨을 뜻하는 말. 선심(을) 쓰다 남에게 후한 마음을 베풀다. ¶선심 쓰는 셈치고 오늘은 자네가 한턱 내지. 선영 덕은 못 입어도 인심 덕은 입는다 사람이란 조상의 덕은 입지 못해도 이웃 사람들의 고마운 덕은 입는다는 뜻으로, 죽은 조상에게 바랄 것이 아니라 이웃 간에 화목하고 서로 도와주는 의리를 지켜야 자신도 도움을 받는다는 말.  선영 명당(에) 바람이 난다 조상의 무덤을 잘 쓴 덕에 자손이 훌륭하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선왕재하고 지벌 입는다 죽어서 극락에 가게 해 달라고 부처에게 선왕재를 올렸는데 오히려 신불이 노하여 벌을 내렸다는 뜻으로, 잘되기를 바라고 공을 들였는데 도리어 화를 입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선짓국을 먹고 발등걸이를 하였다 선짓국을 먹고 발등걸이를 당한 것 같은 얼굴빛이라는 뜻으로, 술을 먹고 얼굴이 불그레해진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섣달그믐께 흰 쌀떡 치는 소리 관청에 잡혀가서 무참히 볼기를 맞는 소리를 떡 치는 소리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섣달이 둘[열아홉]이라도 시원치 않다 아무리 시일을 연기하여도 일을 성취시키거나 일이 이루어질 가망이 없다는 말. 설날에 옴 오르듯 희망차고 즐거워야 할 새해 첫날부터 옴이 오른다는 뜻으로, 재수가 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설마가 사람 죽인다[잡는다] ‘설마 그럴 리야 없겠지.’ 하는 믿음이나 방심의 결과로 크게 낭패를 본다는 말. 설 사돈 있고 누울 사돈 있다 같은 경우라도 사람에 따라 대하는 태도가 달라야 한다는 말. 설삶은 말[소] 대가리 고집이 세며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 설음 중에도 배고픈 설음이 크다 사람이 살아 나가는 데 먹을 것 없어 배곯는 것보다 더 서러운 일은 없다는 말.  설음에는 살찌고 근심에는 여윈다 =근심에 마르고[여위고] 설음에는 살찐다. 설 제 궂긴 아이가 날 제도 궂긴다 일의 시작이 순조롭지 못하면 내내 그렇다는 말. 섬짝을 지고 불 속으로 뛰여든다 ‘섶을 지고 불로 들어가려 한다’의 북한 속담. 섭산적이 되도록 맞(았)다 살이 갈갈이 찢기고 떨어져 나가도록 매우 심하게 두들겨 맞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성균관 개구리 ‘자나 깨나 글만 읽는 사람’을 농으로 이르는 말. 성급한 놈 술값 먼저 낸다 성급한 사람은 술을 얼마나 먹을지도 모르면서 먼저 술값을 치른다는 뜻으로, 성미가 급한 사람은 손해를 보기 마련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성나 바위 차기 잔뜩 성이 난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화풀이로 바위나 돌을 찬다는 뜻으로, 성이 난다고 앞뒤를 가리지 못하고 분별없이 화풀이하다가 자기에게 해가 될 부질없는 행동을 하는 경우를 비꼬는 말. ≒성난 끝에 돌 차기성내어 바위를 차니 발부리만 아프다?. 성나면 보리방아 더 잘 찧는다 성이 난 김에 하는 일이 더 잘되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성나서 바위 차면 제 발등만 아프다 ‘성나 바위 차기’의 북한 속담.  성난 끝에 돌 차기 =성나 바위 차기. 성난 발부리 돌을 찬다 ‘성나 바위 차기’의 북한 속담.  성난 승냥이 코침 잘못 주다 되물린다 성이 난 사람에게 섣불리 참견하였다가는 도리어 손해를 본다는 말.  성난 황소 영각하듯 성난 황소가 크게 울듯이 무섭게 고함치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성이 나서 노발대발하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성내어 바위를 차니 발부리만 아프다 =성나 바위 차기. 안될 일을 억지로 하다가는 스스로 해를 당한다는 말. 성인도 시속(時俗)을 따른다 상황에 따른 응변(應變)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말. 성현이 나면 기린이 나고 군자가 나면 봉이 난다 어진 이나 임금이 나와 나라를 잘 다스리면 기린이나 봉황이 나타나는 것과 같은 상서로운 일도 있게 됨을 이르는 말. 섶 지고 불로 들어가려 한다 짐짓 그릇된 짓을 하여 화를 자초하려 한다는 말. 세모시 키우는 사람하고 자식 키우는 놈은 막말을 못한다 세모시를 키우는 일과 자식을 키우는 일은 뜻대로 되지 않으니 막말을 하여서는 안 된다는 말. 세물전 영감이다 아는 것이 매우 많은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세 사람만 우겨 대면 없는 호랑이도 만들어 낼 수 있다 1.여럿이 힘을 합치면 안 되는 일이 없다는 말. 2.여럿이 퍼뜨린 말이나 소문은 결국 참말로 믿게 된다는 말. 세 살 먹은 아이도 제 손엣 것 안 내놓는다 세 살적 버릇[마음]이 여든까지 간다 어릴 때에 들인 버릇은 좀처럼 고치기 어렵다는 말. 세상모르고 약은 것이 세상 넓은 못난이만 못하다 아무리 약아도 보고 들은 것이 별로 없는 사람은 보고 들은 것이 많은 못난이를 이길 수 없다는 뜻으로, 많이 보고 듣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 세상인심이 감기 고뿔도 남 주기 싫어한다 인심이 나빠 무엇이든 남에게 주기를 싫어하다 보니 자기에게 해로운 감기조차 남에게 주지 아니한다는 뜻으로, 세상의 인심이 몹시 박하고 인색하다는 말. 세월이 약 아무리 괴로운 마음의 상처도 시간이 지나면 아물어 잊혀진다는 말. 세 잎 주고 집 사고 천 냥 주고 이웃 산다 세코짚신에는 제 날이 좋다 무엇이든지 분수에 맞는 것이 좋다는 말. 센둥이가 검둥이고 검둥이가 센둥이다 센둥이건 검둥이건 모두 개임에는 다름없다는 뜻으로, 겉이 달라도 본질은 같을 때 쓰는 말. 소가 짖겠다 하도 어이없는 일이라 소까지 비웃겠다는 말. 소같이 벌어서[일하고] 쥐같이 먹어라 열심히 일해서 저축한 것을 절약하며 써야 한다는 말. 소경 개천 나무란다 제 잘못을 모르고 남의 탓만 한다는 말. 소경 기름 값 내기 이해관계도 없이 남과 같이 부담한다는 말. 소경 단청 구경 보아도 이해하지 못할 것을 본다는 말. 소경 문고리 잡듯[잡은 격] 우연히 어떤 일을 이루거나 맞히는 것을 이르는 말. 소경 잠자나 마나 무엇을 하기는 하되 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말. 소고기는 시어머니와 며느리 싸움 붙이는 고기다 시어머니가 쇠고기를 삶으라고 내주었다가 삶아 놓은 것을 보고서는 며느리가 떼어 먹었다고 의심하여 싸움이 난다는 뜻으로, 쇠고기는 삶으면 그 부피가 본래보다 훨씬 줄어듦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소 궁둥이에다 꼴을 던진다 어리석고 미련한 사람은 아무리 가르쳐도 보람이 없다는 말. 소금 먹은 놈이 물켠다 죄지은 사람이 벌을 받고, 빚진 사람이 빚을 갚아야 한다는 말. 소금에 아니 전 놈이 장에 절까 큰일도 이겨낸 사람이 그만한 일에 넘어갈 리 없다는 뜻. 소금으로 장을 담근다 해도 곧이듣지 않는다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곧이듣지 않는다. (참고)콩. 소금이 쉴까 절대 그럴 리 없으니 믿어도 된다는 말. 소나기 삼 형제 소나기가 대체로 내렸다 멎었다 하면서 세 줄기로 오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소나기 종일 오나 한동안 내리쏟다가 멎는 것이 특징인 소나기가 종일 올 수는 없다는 뜻으로, 지금 한창 성한 것 같은 어떤 현상이 얼마 못 가서 곧 사그라지거나 멎어 버리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소나무가 말라 죽으면 잣나무가 슬퍼한다 어떤 사람에게 불행한 일이 생기면 그와 가까운 사람이 함께 동정하며 서러워한다는 말.  소나무가 무성하면 잣나무도 기뻐한다 가까운 동료나 친구 또는 자기편 사람이 잘되면 좋아한다는 말. 소 닭 보듯 (닭 소 보듯) 전혀 상관없다는 듯이 관심을 나타내어 보이지 않는 태도를 두고 이르는 말. 소댕으로 자라 잡듯 그저 모양만 비슷한 전혀 다른 물건을 가지고 와서 딴소리를 하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소더러 한 말은 안 나도 처(妻)더러 한 말은 난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말을 조심하라는 뜻.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 의지할 데가 있어야 무슨 일을 할 수 있다는 말. 소 뒷걸음질 치다 쥐 잡기 우연히 공을 세운 경우에 하는 말. 소리개 도련님 적이다 털이 부스스하여 볼품없는 솔개의 새끼와 같다는 뜻으로, 보기 싫게 부스스한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소리개는 매 편 ‘솔개는 매 편(이라고)’의 북한 속담.  소리개한테 채인 병아리 힘이 약해서 꼼짝없이 잡히게 된 가련한 처지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소리 없는 벌레가 벽 뚫는다 말 없는 사람이 실천력이 있다는 말.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 좋다고 소문난 것이 실지로는 별것이 아닐 때에 하는 말.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 이미 일을 그르친 뒤에는 뉘우쳐도 소용없다는 말. 소 잡은 터전은 없어도 밤 벗긴 자리는 있다 소증 나면 병아리만 쫓아도[봐도] 낫다 생각이 간절하면 그와 비슷한 것만 보아도 얼마간 마음이 풀린다는 말. 소한 추위는 꾸어다 가도 한다 속 빈 강정(의 잉어등 같다) 실속은 없이 겉만 그럴듯한 것을 두고 하는 말. 속곳 벗고 은가락지 낀다 격에 맞지 아니하게 겉치레만 하여 보기 흉하고 웃음거리가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속곳 벗고 함지박에 들었다 속곳 벗고 알몸이 된 채 몸뚱이 하나 가릴 수 없는 함지박 속에 뛰어들었다는 뜻으로, 옴짝달싹 못하고 낭패를 보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여러 사람 앞에서 톡톡히 망신을 당하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속곳 열둘 입어도 밑구멍은 밑구멍대로 (다) 나왔다 숨기려고 애를 써 보아도 숨길 수가 없어서 아무 소용이 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속병에 고약 속에 병이 들었는데 고약을 바른다는 뜻으로, 마땅하지 아니한 처사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속상한데 서방질이나 하자는 격 울분을 이기지 못하고 그 울분을 풀기 위하여 차마 하지 못할 짓까지 저지르려 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속옷까지 벗어 주다 지나치게 선심을 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상대편의 요구에 응하지 아니하면 안 될 구차한 형편에 놓여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속잎이 자라나면 겉잎이 젖혀진다 새것이 자라나면 낡은 것은 자연히 뒤로 물러나게 된다는 뜻으로, 새것과 낡은 것과의 교체는 자연스러운 현상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새잎이 돋아나면 묵은 잎이 떨어진다. 속저고리 벗고 은반지 격에 맞지 아니하게 겉치레만 하여 보기 흉하고 웃음거리가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속환이 되 동냥 안 준다 사정을 알고 협조하여 줄 만한 사람이 오히려 그렇지 못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손가락도 길고 짧다 =같은 손가락에도 길고 짧은 것이 있다. 손가락에 불을 지르고 하늘에 오른다 =손가락에 장을 지지겠다. =손가락에 장을 지지겠다.  손가락에 장을 지지겠다 상대편이 어떤 일을 하는 것에 대하여 도저히 할 수가 없을 것이라고 장담할 때 하는 말. ≒손가락에 불을 지르고 하늘에 오른다. 손바닥에 장을 지지겠다. 손톱에 장을 지지겠다. 자기가 주장하는 것이 틀림없다고 장담하는 말. ≒손가락에 불을 지르고 하늘에 오른다. 손바닥에 장을 지지겠다. 손톱에 장을 지지겠다.  손가락으로 하늘 찌르기 막연하여 이룰 가망이 없는 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손끝에 물도 안 튀긴다 =손끝으로 물만 튀긴다. 손끝으로 물만 튀긴다 아무 일도 안 하고 뻔뻔하게 놀고만 있는 것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 ≒손끝에 물도 안 튀긴다. 열 손가락으로 물을 튀긴다.  손끝이 거름 사람의 손이 많이 간 논밭은 좋은 거름을 친 것만큼 효과가 있다는 뜻으로, 손발을 놀려서 부지런히 일하는 것이 농사에서 가장 중요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손바닥에 장을 지지겠다 =손가락에 장을 지지겠다. =손가락에 장을 지지겠다.  손바닥에 털이 나겠다 손을 쓰지 아니하여 손바닥에 털이 다 날 지경이라는 뜻으로, 게을러서 일을 하지 아니함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 손바닥에서 자갈 소리 난다 손바닥이 굳어져서 비빌 때 나는 소리가 자갈 만지는 것 같다는 뜻으로, 노동으로 손바닥이 굳어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 가린다고 가렸으나 가려지지 아니한다는 말. 손바닥을 뒤집는 것처럼 쉽다 =쉽기가 손바닥 뒤집기다. 손샅으로 밑 가리기 가린다고는 하였으나 다 드러나 보인다는 뜻, 곧 하나 마나 한 행동을 이르는 말. 손 안 대고 코 풀기 일을 매우 쉽게 해치운다는 뜻. 손이 들이굽지 내굽나 제게 가까운 사람에게 더 마음이 가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라는 뜻. 손이 많으면 일도 쉽다 무슨 일이든지 여럿이 힘을 모아서 하면 쉽게 잘된다는 말. 손이 발이 되도록[되게] 빌다 살려 달라고, 또는 용서해 달라고 매우 간절히 싹싹 빌다. 손자를 귀애하면 코 묻은 밥을 먹는다 손자를 너무 예뻐하면 손자의 코가 묻은 밥을 먹게 된다는 뜻으로, 어리석은 이와 친하면 이익은 없고 손해만 입게 됨을 이르는 말. 손자 밥 떠먹고 천장 쳐다본다 겸연쩍은 일을 해 놓고 모른 척하고 시치미를 떼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손자(가) 오망(을) 하겠다 ‘손자 턱에 흰 수염 나겠다’의 북한 속담.  손자 잃은 영감 중요한 것을 잃고 멍하니 있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손자 턱에 흰 수염 나겠다 그렇게 오래 기다리다가는 손자가 늙어 버리고 말겠다는 뜻으로, 무엇을 오랫동안 기다리기가 싫증이 나고 지루한 경우를 이르는 말. ≒손자 환갑 닥치겠다. 손자 환갑 닥치겠다 =손자 턱에 흰 수염 나겠다. 손톱 밑에 가시 드는 줄은 알아도 염통 밑에 쉬스는 줄은 모른다 눈앞의 작은 이해관계에는 밝아도 큰 손해나 타격을 입을 일에는 어둡다는 말. 손톱 여물을 썰다 일을 당하여 혼자서 몹시 애를 태운다는 뜻. 솔개 까치집 뺏듯 갑자기 남의 것을 억지로 빼앗아 간다는 말. 솔개 어물전(魚物廛) 돌듯 어떤 한곳에 애착을 가져 떠나지 못함을 이르는 말. 솔개도 오래면 꿩을 잡는다 오랜 경력을 쌓으면 못하던 것도 할 수 있게 된다는 뜻. 솔방울이 울거든 소나무에 달린 솔방울이 절대로 울 리 없는 것처럼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올가미의 개가 멍멍 짖거든. 솔밭에 가서 고기 낚기 도저히 불가능한 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솔밭에서 바늘 찾기 ‘잔디밭에서 바늘 찾기?’의 북한 속담. ‘잔디밭에서 바늘 찾기’의 북한 속담. 솔 심어 정자라 앞날의 성공이 까마득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솔잎이 버썩하니 가랑잎이 할 말이 없다 버썩 소리를 낼 리 없는 솔잎이 버썩하니 버썩 소리를 잘 내는 가랑잎이 어이가 없어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한다는 뜻으로, 자기보다 정도가 덜한 사람이 먼저 야단스럽게 떠들어 대니 정작 큰 걱정거리가 있는 사람은 너무나 어이가 없어 할 말이 없게 됨을 이르는 말. 솔잎이 새파라니까 오뉴월[여름철]만 여긴다 추위가 닥쳐왔는데도 솔잎이 새파라니까 더운 여름철로만 여긴다는 뜻으로, 근심 걱정이 쌓여 있는데 그런 줄은 모르고 작은 일 하나 되어 가는 것만 좋아함을 이르는 말. 솜씨는 관 밖에 내어 놓아라 솜씨가 좋지 않고 재간이 없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 죽은 다음에도 솜씨만은 땅에 묻지 말라는 뜻으로, 솜씨가 매우 훌륭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솜에 채어도 발가락이 깨진다 부드러운 솜에 차이고도 발가락이 깨진다는 뜻으로, 궂은 일이 생기려 하면 대수롭지 않은 일로도 생긴다는 말. 송곳니가 방석니가 된다 ‘몹시 분하여 이를 갈도록 앙심이 깊음’을 이르는 말. 송곳도 끝부터 들어간다 일에는 순서가 있다는 말. 송곳 박을 땅도 없다 자기 땅이라고는 조금도 없다는 말. 송도 말년(末年)의 불가사리라 ‘행패가 심하여 손댈 수가 없는 자’를 이르는 말. 송도 오이 장수 이끗 때문에 왔다 갔다 하다가 헛수고만 하고 낭패당한 사람을 이르는 말. 송사리 한 마리가 온 강물을 흐린다 조그마한 송사리 한 마리가 까불며 바닥의 흙을 휘저어 강물을 흐리게 만든다는 뜻으로, 대수롭지 않은 존재의 부정적인 행위가 온 집단에 나쁜 영향을 끼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송아지 못된 것은 엉덩이에 뿔 난다 되지 못한 것이 남의 말 안 듣고 말썽만 피워 엇나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송아지 천자(千字) 가르치듯 미련하고 아둔하여 알아듣지도 못하고 들으려 하지도 않는 사람을 억지로 애써 가르치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송아지 팔러 가는 날 아침에 송아지 엉치에서 뿔이 난다 무슨 일을 하려고 할 때에 공교롭게도 난데없이 장애가 생기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송장 빼놓고 장사 지낸다 가장 긴요한 것을 잊어버리고 일을 치른다는 말. 송진 덩이가 불붙듯 한다 성질이 매우 조급하여 어떤 일을 당할 때 급히 행동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송충이가 갈잎을 먹으면 죽는다[떨어진다] 분수에 맞지 않는 일을 하다가는 낭패를 보게 된다는 말. 송편으로 목을 따 죽지 하찮은 일로 같잖게 화를 내어 우스갯감이 됨을 이르는 말. 솥뚜껑에 엿을 놓았나 ‘찾아온 사람이 서둘러 돌아가려고 함’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 솥 속의 콩도 쪄야 익지 힘들이지 않고서는 되는 일이 없다는 말. 솥은 검어도 밥은 검지 않다 겉모양은 흉해도 속은 훌륭하다는 말. 솥은 부엌에 걸고 절구는 헛간에 놓아라 한다 쇠가 쇠를 먹고 살이 살을 먹는다 친족이나 동류끼리 다툼을 이르는 말. 쇠고기 열 점보다 새고기 한 점이 낫다 참새고기가 매우 맛있다는 말. 쇠고집과 닭고집이다 하고 싶은 대로 하고야 마는 소나 닭처럼 고집이 몹시 셈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쇠귀에 경 읽기 둔한 사람은 아무리 일러도 알아듣지 못한다는 말. 쇠꼬리보다 닭 대가리가 낫다 큰 짐승에게 붙어 꼬리 노릇 하는 것보다는 비록 작은 짐승일지라도 머리 노릇을 하는 것이 낫다는 뜻으로, 크거나 훌륭한 것 중의 말단에 있는 것보다는 대수롭지 않은 데서라도 상석에 있는 것이 훨씬 더 나음을 이르는 말. 쇠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 아주 흔한 것도 쓰임이 있어 찾을 때면 눈에 띄지 않는다. 쇠똥에 미끄러져 개똥에 코 박은 셈이다 쇠모시 키우는 놈하고 자식 키우는 놈은 막말을 못한다 쇠목에 방울 단다 격에 어울리지 않게 지나친 장식을 하게 되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쇠불알 떨어지면 구워 먹기 언제 될지도 모를 일을 한없이 기다리거나 노력 없이 요행을 바란다는 말. 쇠붙이도 늘 닦지 않으면 빛을 잃는다 비록 능력 있고 훌륭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꾸준히 배우고 수양을 쌓지 않으면 뒤떨어지고 잘못될 수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쇠뿔도 각각 염주도 몫몫 ‘무슨 일이나 각각 특성이 있으므로 일하는 방식도 서로 다름’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빼라] 일을 하려고 했으면 주저 없이 해치우라는 말. 쇠스랑 발은 세 개라도 입은 한 치다 쇠스랑 한 입에 세 발이 찍혀 들어가듯이 남의 흠을 꼬집어 말하기를 즐기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쇠옹두리를 우리듯 두고두고 마냥 우려먹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쇠죽가마에 달걀 삶아 먹을라 1.‘경계하느라고 주의를 주는 말이 도리어 나쁜 방법을 가르친 꼴이 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2.‘격에 맞지 않게 거창하게 일을 벌임’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쇠코에 경 읽기 =쇠귀에 경 읽기. 쇠털같이 많다 ‘소의 털과 같이 수효가 셀 수 없이 많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쇠힘도 힘이요 새힘도 힘이다 수구문 차례(라) 1.술자리에서 술잔을 돌릴 때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 먼저 감을 우스갯소리로 이르는 말. 2.늙고 병들어서 세상을 떠나게 될 날이 가까워졌다는 뜻을 우스갯소리로 이르는 말. 수레 위에서 이를 간다 이미 때가 늦은 뒤에 원망하고 있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수박 겉 핥기 ‘일이나 물건의 본질은 모르고 겉만 건드림’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수수깡도 아래위 마디가 있다 아래위 분간이 어려운 수수깡조차도 아랫마디와 윗마디가 나뉘어 있다는 뜻으로, 어떤 일에나 위아래가 있고 질서가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수숫대도 아래위 마디가 있다. 수숫대도 아래위 마디가 있다 =수수깡도 아래위 마디가 있다. 수양딸로 며느리 삼는다 자기에게 편한 대로 아무렇게나 일을 처리하여 자신의 이익만을 꾀하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일을 처리하기가 아주 쉬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수양산 그늘이 강동 팔십 리를 간다 영향력이 큰 것이 먼 데까지 미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수염이 대 자라도 먹어야 양반이다 배가 불러야만 체면도 차릴 수 있다는 말. 수제비 잘하는 사람이 국수도 잘한다 어떤 일에 능한 사람은 그와 비슷한 다른 일도 잘한다는 말. 수탉이 울어야 날이 새지 가정에서는 남편이 주장하여 일을 처리하여야 일이 제대로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수파련에 밀동자 무당을 따라다니며 굿할 때 쓰는 종이꽃을 만드는 남자들이 대체로 밀로 만든 귀동자처럼 잘생겼다는 뜻으로, 기골이 약하고 얼굴이 곱게 생긴 남자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수풀엣 꿩은 개가 내몰고 오장엣 말은 술이 내몬다 수풀에 숨은 꿩은 개가 찾아내서 내몰지만 사람이 마음속에 품은 생각은 술이 취하면 나온다는 뜻으로, 술이 들어가면 마음속에 있는 것을 모두 말해 버리게 된다는 말. 숙맥이 상팔자 콩인지 보리인지를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이 팔자가 좋다는 뜻으로, 모르는 것이 마음 편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숙인 머리는 베지 않는다 항복하는 사람의 머리는 베지 않는다는 뜻으로, 잘못을 진실로 뉘우치는 사람은 관대히 용서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숟갈 한 단 못 세는 사람이 살림은 잘한다 숟갈 한 단도 못 셀 정도로 좀 미련해 보이는 여자가 오히려 다른 생각 없이 살림을 꾸준히 잘한다는 말. 술은 초물에(첫물에) 취하고 사람은 훗물에(끝물에) 취한다 1.술은 처음 마실 때부터 취하지만 사람은 한참 사귀고 나서야 친해진다는 말. 2.‘전처보다 후처에 더 혹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술장사 십 년에 깨진 주전자만 남는다 술장사를 십 년 동안 해도 남는 것이라고는 깨진 주전자밖에 없다는 뜻으로, 어떤 일을 오래 했어도 나중에 남는 것이 없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술친구는 친구가 아니다 술 마실 때에 같이 어울리는 친구는 참된 친구가 아니라는 말. 숨다 보니 포도청 집이라 피하여 숨는다는 것이 잡히면 혼나게 되는 포도청으로 들어갔다는 뜻으로, 어떤 일이 뜻밖에 낭패를 보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자신이 일을 저질러서 스스로 큰 화를 입게 된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숨은 내쉬고 말은 내 하지 말라 말은 함부로 입 밖에 내서는 안 되며 신중히 해야 함을 이르는 말. 숨을 쉬어도 같은 숨을 쉬고 말을 하여도 같은 말을 한다 여러 사람이 한 사람처럼 같은 생각과 뜻을 가지고 행동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숫눈길을 걷는 사람만이 제 발자국을 남긴다 남들이 하지 않은 일을 처음으로 개척하는 사람만이 자신이 한 일을 후세에 남길 수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새벽길을 걷는 사람이 첫 이슬을 턴다. 숫돌이 저 닳는 줄 모른다 숫돌에 무엇을 갈 때마다 숫돌 자신이 닳는 것은 알지 못한 채 점차 닳아서 패게 된다는 뜻으로, 조금씩 줄어드는 것은 잘 느끼지 못하나 그것도 쌓이면 무시할 수 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숭늉에 물 탄 격 구수한 숭늉에 물을 타서 숭늉 맛이 없어져 밍밍하게 되었다는 뜻으로, 음식이 매우 싱거운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사람이 매우 싱거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아무런 재미도 없이 밍밍한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숭어가 뛰니까 망둥이도 뛴다 ‘제 분수를 모르고 남이 하는 대로 따라 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숯이 검정 나무란다 ‘자기 흉은 생각지 않고 남의 허물을 탓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숯쟁이도 제 집에 들면 주인이다 사람들이 천하게 여기는 숯쟁이도 자기 집에서는 당당한 주인이라는 뜻으로, 아무리 보잘것없는 존재라도 자신만의 개성과 주장을 가지고 살아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숲도 커야 짐승이 나온다 숲 속의 호박은 잘 자란다 집 근처 호박은 매일 보니까 자라는 줄 모르지만 숲 속의 호박은 오랜만에 보기 때문에 많이 커 있는 것을 금방 알아보게 된다는 뜻으로, 한창 자랄 때의 사람이나 생물은 오랜만에 보면 몰라볼 만큼 잘 자라 보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숲에서는 꿩을 길들이지 못하며 못에서는 게를 기르지 못한다 통제하기 어려운 상황이나 조건에 있는 사람을 다스리고 가르치는 것은 어려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숲이 깊어야 도깨비가 나온다 자기에게 덕망이 있어야 사람들이 따르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일정한 바탕이나 조건이 갖추어져야 그것에 합당한 내용이 따르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숲이 커야 짐승이 나온다[든다].  숲이 짙으면 범이 든다 깊고 으슥한 곳에는 위험이 숨어 있기 마련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일이 뚜렷하지 못하면 반드시 잘못이 따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숲이 커야 짐승이 나온다[든다] =숲이 깊어야 도깨비가 나온다. 무엇이나 크면 그곳에 그만한 내용이 들어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체격이 큰 사람이 마음도 그만큼 넓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쉬파리 똥 갈기듯 한다 주책없이 무책임한 짓을 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쉬파리 무서워 장 못 만들까[담글까] 마땅히 해야 할 일은 약간의 장애가 있더라도 해야 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쉬파리처럼 아는 것도 많다 먹을 것만 생기면 몰려와서 윙윙거리는 쉬파리처럼, 자기만 잘 아는 듯이 떠들어 대는 사람을 비꼬는 말. 쉰 길 나무도 베면 끝이 있다 아무리 복잡해 보이는 일이라도 일단 시작을 하면 끝날 때가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쉰밥 고양이 주기 아깝다 =나 먹자니 싫고 개 주자니 아깝다. 쉽게 단 쇠가 쉽게 식는다 =쉬 더운 방[구들]이 쉬 식는다. 쉽기가 손바닥 뒤집기다 매우 손쉽게 할 수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손바닥을 뒤집는 것처럼 쉽다. 스님 눈물 같다 어두침침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승냥이가 양으로 될 수 없다 승냥이가 아무리 변신을 하여도 양이 될 수 없다는 뜻으로, 나쁜 본성을 가진 사람은 본성을 바꿀 수 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이리가 양으로 될 수 없다.  승냥이 날고기 먹지 않는 종자 없다 다른 짐승들을 잡아먹고 사는 승냥이 가운데 날고기를 싫어하는 종자가 있을 수가 없다는 뜻으로, 나쁜 본성은 어떤 조건 아래서도 변하지 않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승냥이 밑에서 빠진 건 다 날고기를 먹는다. 새끼는 반드시 그 어미가 가지고 있는 본성을 그대로 따르기 마련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승냥이 밑에서 빠진 건 다 날고기를 먹는다.  승냥이는 꿈속에서도 양 무리를 생각한다 남을 해치는 것에 익숙해진 사람은 늘 그런 생각만 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승냥이는 매로 다스려야 한다 남을 침략하는 자에게는 힘으로 맞서야 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승냥이 똥이라 어지럽고 지저분한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승냥이를 쫓는다고 호랑이에게 문을 열어준다 승냥이를 내쫓는다고 문을 열었다가 더 무서운 호랑이를 들이게 된다는 뜻으로, 하나의 위험을 면하려고 하다가 더 큰 위험에 직면하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승냥이 밑에서 빠진 건 다 날고기를 먹는다 =승냥이 날고기 먹지 않는 종자 없다. =승냥이 날고기 먹지 않는 종자 없다.  승냥이 앞에 고기 덩이를 내맡기는 격 =승냥이에게 어린 양을 보아 달라고 내맡긴다.  승냥이에게 어린 양을 보아 달라고 내맡긴다 위험한 것을 뻔히 알면서도 일을 행하는 어리석은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승냥이 앞에 고기덩이를 내맡기는 격. 시간은 우정을 돈독하게 하고 사랑을 엷게 한다  시거든 떫지나 말고 얽거든 검지나 말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사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시골 깍쟁이 서울 곰만 못하다 서울 사람이 시골 사람보다 몹시 인색하고 박정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시골 놈 제 말 하면 온다 이야기하는 자리에 그 사람이 없다고 하여 흉을 보지 말라는 말. 시골 놈이 서울 놈 못 속이면 보름씩 배를 앓는다 어수룩한 듯한 시골 사람이 오히려 서울 사람을 더 잘 속인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시골 당나귀 남대문 쳐다보듯 시골 당나귀가 서울의 남대문을 보아도 그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뜻으로, 나쁜 내막을 전혀 모르고 그저 보고만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시골 사람은 굶어도 보리밥을 굶지만 도시 사람은 굶어도 흰 쌀밥을 굶는다 도시 사람이 시골 사람을 무시하고 천시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시궁에서 용 난다 =개천에서 용 난다. 시궁창에서 용이 났다 미천한 집안에서 훌륭한 사람이 난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시꺼먼 도둑놈 마음씨가 몹시 음흉하고 흉악한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시냇가 돌 닳듯 시련을 당하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시냇물도 퍼 쓰면 준다 =강물도 쓰면 준다. 시누이 하나가 벼룩이 닷 되 ‘시누이는 고추보다 맵다’의 북한 속담.  시누이는 고추보다 맵다 시누이가 올케에게 심하게 대하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시누 하나에 바느이 네 쌈. 시누이올케 춤추는 가운데 올케 못 출까 시누이와 올케가 함께 춤추는 자리에서 올케라고 춤을 못 추겠느냐는 뜻으로, 자신도 마땅히 참여할 자격과 권리가 있음을 주장하며 이르는 말. 시누 하나에 바늘이 네 쌈 =시누이는 고추보다 맵다. 시든 배추 속잎 같다 시들어서 흐늘흐늘해진 배춧속 같다는 뜻으로, 맥없이 축 늘어져 있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시든 호박잎 같은 소리 패기나 의욕이 없는 이야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시러베장단에 호박 국 끓여 먹는다 실없는 사람들과 엉뚱한 일을 벌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시렁 눈 부채 손 눈만 높고 수완은 없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시렁 우에서 떨어진 호박 뜻하지 않게 생긴 행운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시렁에서 호박 떨어진다.  시렁에서 호박 떨어진다 =시렁 우에서 떨어진 호박. 시루에 물 퍼 붓기 아무리 돈을 쓰고 공을 들여도 아무 소용이 없음을 이르는 말. (참고)밑빠진 독에 물 붓기. 시모에게 역정 나서 개의 옆구리 찬다 =시어머니에게 역정 나서 개 배때기 찬다. 시부모에게 역정 나서 개의 옆구리 찬다 ‘시어머니에게 역정 나서 개 배때기 찬다’의 북한 속담. 시시덕이 재를 넘는다 쾌활하게 시시덕거리는 사람이 생활에서는 어려운 고비를 겪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시시덕이는 재를 넘어도 새침데기는 골로 빠진다 시시덕이는 힘을 들여 고개를 넘는데 새침데기는 꾀바르게 골짜기로 빠져나간다는 뜻으로, 겉으로 떠벌리는 사람보다 얌전한 척하는 사람이 오히려 나쁜 마음을 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시아버지 무릎에 앉은 것 같다 몹시 민망하고 불편한 상태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시아버지 죽으라고 축수했더니 동지섣달 맨발 벗고 물 길을 때 생각난다 시아버지가 미워서 죽기를 빌었으나 막상 동지섣달에 짚신 삼아 줄 사람이 없어서 맨발로 물을 긷고 보니 죽은 시아버지가 그리워진다는 뜻으로, 미워하고 싫어하던 물건이나 사물도 막상 없어지고 나면 아쉽고 생각날 때가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시아주버니와 제수는 백 년 손 시아주버니와 제수 사이는 친척 가운데 가장 거리가 멀고 서먹한 사이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시앗 싸움엔 돌부처도 돌아앉는다 시앗을 보면 길가의 돌부처도 돌아앉는다 남편이 첩을 얻으면 아무리 점잖고 무던한 부인네라도 시기를 한다는 말. 시앗 죽은 눈물이 눈 가장자리 젖으랴? 시어는 뼈가 많고 자미(子美)는 문(文)에 능하지 못하고 자고(子固)는 시(詩)가 변변하지 못하였다 준치는 아름답지만 뼈가 많은 것이 흠이고, 두보는 대시인이었지만 산문에는 능하지 못하였고, 증공과 같은 문장가는 운문에 변변치 못한 것이 유감이라는 뜻으로, 좋은 면의 한편에는 좋지 못한 일이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시어머니 죽으라고 축수했더니 보리방아 물 부어 놓고 생각난다 ‘시아버지 죽으라고 축수했더니 동지섣달 맨발 벗고 물 길을 때 생각난다’의 북한 속담.  시어머니가 오래 살자니까 며느리가 방아동티에 죽는 걸 본다 사람이 오래 살게 되면 망측한 꼴도 보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시어머니에게 역정 나서 개 배때기 찬다 엉뚱한 데 가서 노여움이나 분을 푸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시모에게 역정 나서 개의 옆구리 찬다시어미 미워서 개 옆구리 찬다시어미 역정에 개 옆구리[배때기/밥그릇] 찬다. 시어머니한테 괄시를 받아 본 며느리라야 후에 며느리를 삼아도 괄시하지 않는다 어떤 일을 직접 경험해 본 사람이 그 실정이나 사정을 잘 알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시어미가 오래 살다가 며느리 환갑날 국수 양푼에 빠져 죽는다 사람이 너무 오래 살게 되면 못할 일을 하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사람이 모질어서 남에게 못할 짓 하는 것을 비난조로 이르는 말.  시어미가 죽으면 안방은 내 차지 시어머니가 죽으면 며느리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는 뜻으로, 권력을 잡았던 사람이 없어지면 그 다음 자리에 있던 사람이 권력을 잡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시어미 말대답이 아니라 경우가 그러하외다 며느리는 시어머니에게 옳은 말을 하고도 말대답이라고 야단맞는다는 뜻으로, 자신이 괜히 대드는 것이 아니라 경우가 그러함을 이르는 말.  시어미 미워서 개 옆구리 찬다 =시어머니에게 역정 나서 개 배때기 찬다. 시어미 범 안 잡은 사람이 없다 시어머니 치고 젊었을 때에 고생 안 했다는 사람이 없다는 뜻으로, 일은 제대로 잘하지도 못하면서 자기 자랑만 늘어놓음을 이르는 말. 시어미 부를 노래를 며느리가 먼저 부른다 =내 할 말을 사돈이 한다. 시어미 속옷이나 며느리 속옷이나 모두 한 집안 식구의 것이라는 뜻으로, 구태여 내 것 네 것 가릴 필요가 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시어미 역정에 개 옆구리[배때기/밥그릇] 찬다 =시어머니에게 역정 나서 개 배때기 찬다. 시원찮은 국에 입(가) 덴다 대단하지 아니한 일에 해를 당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대단하지 아니한 사람에게 뜻밖의 봉변을 당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시원찮은 귀신이 사람 잡아간다.  시원찮은 귀신이 사람 잡아간다 변변하지 못하고 미련하여 보이는 사람이 도리어 큰일을 저지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시원찮은 국에 입(가) 덴다. 시작이 나쁘면 끝도 나쁘다 시작이 반이다 무슨 일이든지 시작하기가 어렵지, 일단 손을 대면 반 이상은 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는 말. 시장이 반찬 배가 고프면 반찬이 없어도 밥맛이 달다는 말. 시지도 않아서 군내부터 먼저 난다 같잖은 것이 미리부터 노숙한 체한다는 말. 시집갈 날[때] 등창이 난다 기다리던 때를 맞아 공교로운 일로 낭패를 본다는 말. 시집도 가기 전에 기저귀[포대기] 마련한다 일을 너무 일찍 서두른다는 말. 시집살이하려면 벙어리 삼 년 귀머거리 삼 년 해야 한다 =귀머거리 삼 년이요 벙어리 삼 년(이라). 시형님 잡숫고 조왕님 잡숫고 이제는 먹어보랄 게 없다 =터주에 놓고 조왕에 놓고 나면 아무것도 없다. 시집살이하는 여자는 먹을 것도 제대로 못 먹고 배를 곯는 경우가 많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시형님 잡숴야 잡순 듯하다 =시주님이 잡수셔야 잡수었나 하지. 식은 국도 맛보고 먹으랬다 =식은 죽도 불어[쉬어] 가며 먹어라. 식은 국도 불고 먹는다 뜨거운 국에 덴 경험이 있는 사람은 식은 국도 불면서 먹는다는 뜻으로, 한 번 놀란 후에는 조심을 하게 됨을 이르는 말. 식은 밥이 밥일가 =식은 밥이 밥일런가 명태 반찬이 반찬일런가.  식은 밥이 밥일런가 명태 반찬이 반찬일런가 음식 대접이 좋지 않음을 비난조로 이르는 말. 자신에게 차례진 것이 좋지 않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식은 밥이 밥일가.  식은 죽 먹고 냉방에 앉았다 공연히 덜덜 떨고 있는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 식은 죽도 불어[쉬어] 가며 먹어라 아무리 쉬운 일이라도 한 번 더 확인한 다음에 하는 것이 안전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식은 국도 맛보고 먹으랬다. 식지에 붙은 밥풀 하찮은 것은 그럭저럭 없어지고 만다는 뜻. 식칼이 제 자루를 못 깎는다 자신이 관계된 일은 자신이 하기가 더 어려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칼날이 날카로워도 제 자루 못 깎는다. 자신의 허물은 자기가 고치기 어려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칼날이 날카로워도 제 자루 못 깎는다. 식혜 먹은 고양이 속 죄를 짓고 그것이 탄로날까 봐 근심하는 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식혜 먹은 고양이[괴] 상 (같다) 잔뜩 찌푸린 얼굴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신골 망태 쏟아 놓은 것 같다 발의 크기에 따라 여러 층의 신골을 담아 둔 망태를 쏟아 놓은 것 같다는 뜻으로, 작은 것부터 큰 것에 이르기까지의 여러 개가 차례로 늘어져 있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신랑 마두에 발괄한다 신랑을 높은 벼슬아치로 착각하여 신랑이 탄 말의 머리에 대고 억울한 사정을 하소연한다는 뜻으로, 경우에 어긋나는 망측한 행동을 하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신발에 귀가 달렸다 쓸데없는 것이 덧붙어서 격에 맞지 아니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신 벗고 따라도 못 따른다 온 힘을 다해도 미치지 못한다는 말. 신선놀음에 도낏자루 썩는 줄 모른다 어떤 나무꾼이 신선들이 바둑 두는 것을 정신없이 보다가 제정신이 들어보니 세월이 흘러 도낏자루가 다 썩었다는 데서, 아주 재미있는 일에 정신이 팔려서 시간 가는 줄 모르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도낏자루 썩는 줄 모른다. 신작로 닦아 놓으니까 문둥이가 먼저 지나간다 애써 한 일을 가당찮은 사람이 망쳐 놓아 보람이 없게 된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기다리는 사람은 오지 아니하고 엉뚱한 사람이 오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신주치레하다가 제(祭) 못 지낸다 ‘겉치레만 하다가 정작 해야 할 일을 못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실도랑 모여 대동강이 된다 =티끌 모아 태산. 실뱀 한 마리가 온 바다를 흐리게 한다 한 사람의 잘못이 여러 사람이나 집단 전체에 폐를 끼치게 되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실없는 말이 송사 간다 무심하게 한 말 때문에 큰 소동이 벌어질 수도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실없는 부채 손 눈은 높아 좋은 것을 바라지만 손은 둔하여 이루지 못하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실없는 부처 손 아무 쓸모가 없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실 엉킨 것은 풀어도 노 엉킨 것은 못 푼다 잔일은 쉽게 해결할 수 있어도 큰일은 좀처럼 해결하기 어렵다는 말. 실컷 부려 먹고 생일날 잡아먹는다 논밭 일로 소를 실컷 부리고 난 후에 생일이 돌아오면 잡아먹고 만다는 뜻으로, 이해관계에 따라 양심도 버리고 행동함을 이르는 말.  실컷 울고 나서 뉘 초상인가 물어본다 =밤새도록 통곡해도 어느 마누라 초상인지 모른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싫어 싫어 하면서 손 내민다 싫은데 선떡 원래 먹기 싫은 떡인데 더구나 설기까지 했다는 뜻으로, 몹시 마음에 내키지 않는 경우를 이르는 말. 원래 먹기 싫었는데 선떡을 주니 거절할 이유가 생겼다는 뜻으로, 마침 거절할 이유가 생겨서 당당하게 거절할 수 있는 경우를 이르는 말. 싫은 매는 맞아도 싫은 음식은 못 먹는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음식 싫은 것은 도저히 먹지 못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싫은 밥은 있어도 싫은 술은 없다 술을 몹시 좋아하는 사람이 술이 최고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싫은 춤에 지게 지고 엉뎅이춤 춘다 하기 싫은 일에 억지로 참여하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심덕을 바로 가지면 하늘도 굽어본다 사람은 마음이 곱고 착해야 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심보가 고와야 첫아들 낳는다 다른 사람한테 마음을 곱게 써야 자신한테도 좋은 일이 생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심사가 놀부라 ‘본성이 탐욕스럽고 심술궂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심사는 없어도 이웃집 불난 데 키 들고 나선다 ‘남의 일은 가리지 않고 못되게 방해하는 사람’을 두고 이르는 말. 심사는 좋아도 이웃집 불붙는 것 보고 좋아한다 심술궂은 만을보(萬乙甫) 몹시 심술궂은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심술만 하여도 삼 년 더 살겠다 심술을 잔뜩 가졌으니 그것만 먹고도 삼 년은 더 살겠다는 뜻으로, 몹시 심술궂은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 심술이 왕골(王骨) 장골(張骨) 떼라 몹시 심술궂고 행동거지가 고약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왕골과 장골 떼는 심술이 사나운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심술쟁이 복을 받지 못한다 심술이 사나우면 결코 복을 받지 못함을 이르는 말. 십 년 가환에 잘사는 이 없고 십 년 태평에 못사는 이 없다 집안에 근심 걱정이 잦으면 살림살이가 펼 수가 없고 집안이 오랫동안 늘 편안하면 살림이 편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십년공부 도로 아미타불 오랫동안 공들여 해 온 일이 하루아침에 허사가 되고 말았다는 말. 십 년 과수로 앉았다가 고자 대감을 만났다 오랫동안 공들인 일도 복이 없고 운수가 나쁘면 아무 보람도 없이 쓸모없는 것이 될 수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리다 어떤 일로 인하여 더할 나위 없이 속이 후련하여진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십 년 세도(勢道) 없고 열흘 붉은 꽃 없다 부귀영화가 오래 계속되지 못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십 년이면 산천[강산]도 변한다 세월이 흐르게 되면 모든 것이 다 변하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십 년 적공이면 한 가지 성공을 한다 무슨 일이든지 오랫동안 꾸준히 노력하면 마침내는 성공하게 됨을 이르는 말.  십 리가 모랫바닥이라도 눈 찌를 가시나무가 있다 아주 친한 벗 사이에도 원수가 섞여 있을 수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아무리 좋은 조건이라도 방해물이 있을 수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십 리 강변에 빨래질 갔느냐 십 리나 되는 강변까지 갔다 오느라고 얼굴이 탔느냐는 뜻으로, 얼굴이 까맣게 그은 사람을 보고 이르는 말. 기다리는 사람이 좀처럼 나타나지 않을 때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십 리 길에 점심 싸기 십 리밖에 안 되는 가까운 데를 가더라도 점심밥을 싸 가지고 다닌다는 뜻으로, 무슨 일에나 준비를 든든히 할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십 리 눈치꾸러기 십 리 밖에서도 눈치를 챌 만큼 아주 눈치가 빠른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십 리 밖에 있어도 오리나무 아무리 십 리 밖에 있어도 오리나무는 여전히 오리나무라는 뜻으로, 사물의 본질은 변하지 않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십 리 반찬 ‘오 리’가 ‘오리’와 동음인 데서 오리 두 마리로 만든 반찬이라는 뜻으로, 좋은 반찬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십 리에 다리 놓았다 어떤 일에나 방해나 곡절이 많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십 리에 장승 서듯 무엇이 지키고 서 있기만 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어떤 것이 드문드문 서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십 리에 한 걸음 오 리에 한 걸음 걸음이 매우 더딘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싱겁기는 고드름장아찌라 매우 멋쩍고 싱겁기만 하다는 말. 싸고 싼 사향도 냄새 난다 싸라기밥을 먹었나 상대편이 함부로 반말질할 때 핀잔으로 이르는 말. 싸라기 쌀 한 말에 칠 푼 오 리라도 오 리 없어 못 먹더라 아무리 작은 돈이라도 우습게 여기지 말고 소중하게 써야 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싸리 밭에 개팔자 남부러울 것 없이 마음 편하게 늘어진 팔자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랬다 나쁜 일은 말리고 좋은 일은 권해야 한다는 말. 싸전에 가서 밥 달라고 한다 성미가 몹시 급함을 두고 이르는 말. 싹싹하기란 제철 참배 맛이다 사람이 매우 싹싹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싼 것이 비지떡[갈치 자반] 무슨 물건이든지 값이 싼 물건은 품질도 그만큼 좋지 못하다는 말. 쌀광에 든 쥐 =쌀독에 앉은 쥐. 쌀광에서 인심 난다 =쌀독에서 인심 난다. 쌀독에서 인심 난다 살림에 여유가 있어야 인정도 베풀 수 있다는 말. 쌀은 쏟고 주워도 말은 하고 못 줍는다 쌈짓돈이 주머니 돈 (주머니 돈이 쌈짓돈) 굳이 네 것 내 것 가릴 것 없는 같은 것, 또는 공동의 것이라는 말. 쌍동중매냐 똑같이 다니니 =쌍둥이 중매냐 똑같이 다니니. 쌍둥이 중매냐 똑같이 다니니 늘 나란히 다니는 사람을 두고 이르는 말. ≒쌍동중매냐 똑같이 다니니. 쌍태 낳은 호랑이 하루살이 하나 먹은 셈 쌍태를 낳느라고 배가 홀쭉한 호랑이가 아주 적은 먹이를 잡아먹은 것과 같다는 뜻으로, 먹는 양은 큰데 먹은 것이 변변치 못하여 양에 차지 않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쌍태 낳은 호랑이가 강아지 채 먹은 듯 ‘쌍태 낳은 호랑이 하루살이 하나 먹은 셈’의 북한 속담. 썩은 새끼로 범[호랑이] 잡기 아무 준비도 없이 큰일에 덤벼들려고 하는 잘못된 태도를 두고 이르는 말. 썰매는 여름에 장만하고 달구지는 겨울에 장만한다 무엇이든 제철이 되기 전에 준비하여 두어야 낭패를 보지 아니하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쏘아 놓은 살이요 엎지른 물이다  쏜살같고 총알 같다 매우 빠르게 내딛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쏟아진 물 이미 저질러져서 다시 돌이켜질 수 없는 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쑥대도 삼밭에 나면 곧아진다 ‘삼밭에 쑥대’의 북한 속담. 쑨 죽이 밥 될까 일이 이미 글렀기 때문에 후회해도 소용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쓰디쓴 시어머니 ‘쓰니 시어머니’의 북한 속담.  쓰러져 가는 나무는 아주 쓰러뜨려라 잘될 가능성이 없는 일은 빨리 치우고 새 일을 시작하라는 말. 쓰러져 가는 나무를 아주 쓰러뜨린다 곤란한 입장에 처한 사람을 더 곤란하게 만듦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쓴 배[개살구/외]도 맛 들일 탓 모든 일의 좋고 나쁨은 하는 사람의 주관에 달렸다는 말. 쓴맛 단맛 다 보았다 갖은 곡절을 겪어서 경험이 많다는 말. 쓸개(가) 빠지다 하는 짓이 줏대 쓸개 빠진 놈 정신을 바로 차리지 못하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 가 없음을 욕으로 이르는 말. 쓸개에 가 붙고 간에 가 붙는다 =간에 붙었다 쓸개[염통]에 붙었다 한다. 씨도둑은 못한다 1.조상 대대로 지녀 온 전통이나 내력은 없애지 못한다는 말. 2.아버지와 자식은 모습이나 성격이 비슷한 데가 많아서 속일 수가 없다는 말. 씨름에 진 놈이 말이 많다 일을 잘못하거나 또는 잘못을 범했을 때에 자꾸 변명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돌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씨름은 잘해도 등허리에 흙 떨어지는 날 없다 재간은 있지만 별수 없이 편히 살지 못하고 일만 하고 살아야 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씨름하는 데 터럭만 다쳐 주어도 쉽다 서로 힘이 비슷할 때에는 조금만 도와주어도 큰 힘이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씨아 등에 아이를 업힌다 일이 매우 바쁘고 급한 형편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씨아 틈에 불알을 놓고 견디지 씨아 틈에 불알을 놓고 견디는 것이 차라리 낫다는 뜻으로, 누군가 몹시 귀찮게 굶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씨아와 사위는 먹어도 안 먹는다 씨아가 목화를 먹는 것과 사위가 무엇인가를 먹는 것은 아깝지 아니하다는 뜻으로, 사위를 대단히 귀하게 여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씨암탉 잡은 듯하다 집안이 매우 화락할 때 이르는 말. 씻어 놓은 흰 죽사발 같다 생김새가 희멀쑥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씻은 배추 줄기 같다 얼굴이 희고 키가 헌칠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씻은 팥알[쌀알] 같다 외양이 말쑥하고 똑똑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아가리가 광주리만 해도 막말은 못한다 입이 아무리 커도 함부로 말할 수 없다는 뜻으로, 상대편이 어처구니없는 말을 함을 비난조로 이르는 말. 아가리 마구 난 창구멍인가 말이 너무 많거나 아무 말이나 막 하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아가리에 자시오 할 땐 마다하다가 아가리에 처먹으라 해야 먹는다 처음에 좋은 말로 할 때는 듣지 아니하다가 나중에 말이 거칠어져야 말을 듣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아궁이가 쌀밥을 먹는다 쌀을 팔아서 나무를 사 땐다는 뜻으로, 나무 값이 비쌈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아끼는 것이 찌로 간다 물건을 너무 아끼다 보면 결국 쓸모없는 물건이 되고 만다는 말. 아내가 귀여우면 처갓집 말뚝 보고도 절한다 한 가지가 마음에 들면 그것과 관계있는 다른 것까지도 좋아 보인다는 말. 아내 나쁜 것은 백 년 원수 된장 신 것은 일 년 원수 아는 것이 병[탈] 1.어설프게 알고 행하는 것은 도리어 걱정거리의 원인이 된다. 2.사리를 잘 알기 때문에 도리어 불리해질 경우가 있다. 아는 길도 물어 가랬다 아무리 쉬운 일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아는 놈 붙들어 매듯 ‘무엇을 허술하게 묶거나 단속할 때’를 비유하여 이르는 말. 아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 믿었던 사람에게 해를 입게 되는 경우를 이르는 말.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 원인이 없는 결과가 있을 리 없음을 이르는 말. 아닌 밤중에 찰시루떡 ‘요행’이나 ‘횡재’를 이르는 말. 아닌 밤중에 홍두깨 (내밀듯) 뜻하지 않은 말을 불쑥 꺼내거나 별안간 무슨 짓을 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아들네 집 가 밥 먹고 딸네 집 가 물 마신다 흔히, 딸의 살림살이를 아끼고 생각해 주는 부모를 두고 이르는 말. 아들 못난 건 제집만 망하고 딸 못난 건 양 사돈이 망한다 여자가 못되면 시집에도 화를 미치고, 친가에도 폐를 끼치게 됨을 이르는 말. 아래턱이 위턱에 올라가 붙다[붙나] 상하의 관계를 무시하고 아랫사람이 윗자리에 앉을 수는 없다는 말. 아랫길도 못 가고 윗길도 못 가겠다 이것도 저것도 다 믿을 수 없고 어찌하여야 할지 모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아랫돌 빼서 윗돌 괴고 윗돌 빼서 아랫돌 괴기 우선 다급한 처지를 모면하기 위하여 이리저리 둘러맞추는 임시변통을 이르는 말. (참고)하석상대(下石上臺). 아망위에 턱을 걸었다 배후를 믿고 하잘것없는 사람이 교만을 부림을 이르는 말. 아무것도 못하는 놈이 문벌만 높다 흔히 무능하고 못난 사람이 지체만 높아서 아니꼽게 구는 경우를 비꼬는 말. 아무 때 먹어도 김가가 먹을 것이다 자기가 취할 이익은 내버려 두어도 자신에게 돌아옴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아무 때고 리가의 먹을 밥이라 ‘아무 때 먹어도 김가가 먹을 것이다’의 북한 속담. 아무렇지도 않은 다리에 침놓기 아무 일 없는 것을 공연히 건드려서 탈을 내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아무리 바빠도 바늘허리 매어 쓰지는 못한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갖추어야 할 것은 갖추어서 해야 한다는 말. 아버지 종도 내 종만 못하다 남의 것은 아무리 좋아도 나 자신을 위한 실속이 못 되므로, 보잘것없는 나의 소유가 낫다는 말. 아쉬운 감 장수 유월부터 한다 돈이 아쉬워서 물건답지 못한 것을 미리 내다 팖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변변치 못한 일을 남보다 일찍 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아쉬워 엄나무 방석이라 아쉬운 대로 엄나무 방석에 앉았다는 뜻으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어서 하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아욱으로 국을 끓여 삼 년을 먹으면 외짝 문으로는 못 들어간다 아욱으로 늘 국을 끓여 먹으면 몸이 불어서 외짝 문으로 못 들어간다는 뜻으로, 아욱이 몸에 매우 좋다는 말. 아이도 낳기 전에 포대기[기저귀] 장만한다[누빈다] 너무 일찍부터 성급하게 준비하고 서둔다. 아이도 사랑하는 데로 붙는다 사람은 누구나 정이 많은 데로 따라간다. 아이 보는 데는 찬물도 못 먹는다 아이들 앞에서는 행동을 삼가야 한다는 뜻. 아이 싸움이 어른 싸움 된다 작은 일이 차차 커져서 큰 사건이 된다. 아재비 한 것만큼 따라한다 남이 하지 않은 일을 처음으로 하는 것이 어렵지 남이 이미 해 놓은 것을 따라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아저씨 아저씨 하고 길짐[떡짐]만 지운다 겉으로 존경하는 체하면서 부담되는 일을 시키거나 이용하기만 한다는 말. 아전은 시골 사대부 지방의 아전이 중앙의 사대부처럼 행세하면서 백성들을 못살게 구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아전의 술 한 잔이 환자(還子)가 석 섬이라고 관리에게 조금이라도 신세를 지게 되면 그 몇 곱으로 갚아야 함을 이르는 말. 적은 미끼에 걸려 많은 것을 바치게 되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아주까리 대에 개똥참외[쥐참외] 달라붙듯 생활 능력이 없는 남자가 분에 넘치게 여자를 많이 데리고 사는 경우에 비꼬아 이르는 말. 연약한 과부에게 장성한 자식이 여럿 있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아주머니 떡[술]도 싸야 사 먹지 아무리 친근한 사이라도 이익이 있어야 관계하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아주머니 떡도 커야 사 먹는다. 아주머니 떡도 커야 사 먹는다 =아주머니 떡[술]도 싸야 사 먹지. 아직 신날도 안 꼬았다 아직 시작도 아니하였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아직 이도 나기 전에 갈비를 뜯는다 제힘도 모르고 턱없이 힘에 겨운 일을 하겠다고 덤비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아침노을 저녁 비요 저녁노을 아침 비라 아침에 노을이 서면 저녁에 비가 오고, 저녁에 노을이 서면 아침에 비가 온다는 말. 아침놀 저녁 비요 저녁놀 아침 비라 아침에 놀이 서면 저녁에 비가 오고, 저녁에 놀이 서면 아침에 비가 온다고 전해오는 말. 아침 아저씨 저녁 소 아들 농가에서 한창 바쁠 때 머슴의 비위를 맞추려고 아침에는 대접을 잘하지만 저녁에 일 끝나고 돌아오면 대접은커녕 함부로 대하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일시 아첨하다가 일이 끝나면 짐승만큼도 여기지 아니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아침 안개가 중 대가리 깬다 아침에 안개가 낀 날은 낮이 되면 중의 머리를 깰 정도로 햇빛이 쨍쨍하다는 말. 아침에 까치가 울면 좋은 일이 있고 밤에 까마귀가 울면 대변(大變)이 있다 아침에 까치가 울면 기쁜 일이 생기고 밤에 까마귀가 울면 좋지 못한 일이 생긴다는 말. 아침에 심은 곡식은 먹어도 저녁에 심은 것은 못 먹는다 아침에 심은 곡식은 땅에 습기가 있어서 씨가 자랄 수가 있지만, 하루 종일 햇볕에 마른 저녁 땅에는 씨가 제대로 붙지 아니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아편 침 두 대에 황소 떨어지듯 독한 기운에 금세 의식을 잃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아픈 아이 눈 들어가듯 한다 독의 쌀 따위가 푹푹 줄어드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아 해 다르고 어 해 다르다 같은 내용의 말이라도 말하기에 따라 사뭇 달라진다는 말. 아홉 가진 놈(이) 하나 가진 놈 부러워한다 욕심이 많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가지면 가질수록 더 욕심이 생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아홉 마리 소에 터럭 하나 매우 많은 것 가운데 아주 적은 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아홉 살 먹을 때까진 아홉 동네서 미움을 받는다 =아홉 살 일곱 살 때에는 아홉 동네에서 미움을 받는다. 아홉 살 일곱 살 때에는 아홉 동네에서 미움을 받는다 아홉 살 일곱 살 때에는 아이들의 장난이 몹시 심하고 말도 안 들어 미움을 받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아홉 살 먹을 때까진 아홉 동네서 미움을 받는다. 아홉 섬 추수한 자가 한 섬 추수한 자더러 그 한 섬을 채워 열 섬으로 달라 한다 남의 사정은 돌보지 않고 자신의 욕심만 채우려 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부자들이 더 많은 재산을 가지려고 모진 행동을 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아흔아홉 섬 가진 사람이 한 섬 가진 사람의 것을 마저 빼앗으려 한다 재산을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재산에 대한 욕심이 더욱더 크게 생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악담은 덕담이다 악담이 듣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좋은 수가 될 수 있음을 이르는 말. 남에게 악담을 듣는 것이 자신의 수양에는 오히려 도움이 된다는 것을 이르는 말. 악독한 고승록(高承祿)이라 마음이 독한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악머구리 끓듯 '머구리 끓듯‘여러 사람이 시끄럽게 떠들어 댐’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악바리 악돌이 악쓴다 무슨 일에나 악착같이 제 고집을 세우고 물러날 줄 모른다는 뜻. 악박골 호랑이 선불 맞은 소리 상종을 못할 만큼 사납고 무섭게 날뛰는 짓, 또는 사납게 지르는 비명을 이르는 말. 악으로 모은 살림 악으로 망한다 안개 낀 날 소 찾듯 막연하게 헤매고 다니는 모습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안개 늙으니 비 된다 안개가 오래 끼어 있다가 비가 오는 경우를 이르는 말. 안광이 지배를 뚫는다[철한다] 눈빛이 종이를 뚫는다는 뜻으로, 이해력이 뛰어남을 이르는 말. 안는 암탉 잡아먹기 달걀을 품고 있는 암탉을 잡아먹는다는 뜻으로, 하는 짓이 염치가 없고 분별없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매우 아깝고 애석하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손실을 입게 되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안되는 놈은 두부에도 뼈라 액운에 빠진 사람은 일마다 뜻대로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전혀 뜻밖의 재난까지 입는다는 뜻. 안되는 사람은 자빠져도[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 운수 사나운 사람은 무슨 일을 하여도 되는 일이 없다는 말. 안되면 조상[산소] 탓 자기의 실패를 남의 탓으로 돌림을 이르는 말. 안뒷간에 똥 누고 안 아가씨더러 밑 씻겨 달라겠다 지나치게 염치가 없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안방에 가면 시어머니 말이 옳고 부엌에 가면 며느리 말이 옳다 모두 이유 있는 말이어서 잘잘못을 가리기가 어렵다는 말. 안벽 치고 밭벽 친다 1.이편에 가서는 이렇게 말하고, 저편에 가서는 저렇게 말한다는 말. 2.겉으로는 돕는 체하면서 실제로는 훼방을 놓는다는 말. 안 인심이 좋아야 바깥 양반 출입이 넓다 안중에 사람이 없다 조금도 신경 쓰지 아니하다. 전혀 문제로 삼지 아니하다. 안질에 고춧가루 눈병과 고춧가루는 상극이라는 뜻으로, 아주 상극이 되어 나쁜 영향을 끼치는 물건을 이르는 말. 성한 눈도 견디기 힘든 고춧가루를 앓는 눈에 뿌린다는 뜻으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주 나쁜 결과를 가져올 대책을 이르는 말. ≒눈 앓는 놈 고춧가루 넣기.  안질에 노랑 수건 눈병이 나면 노란 눈곱이 끼어서 눈곱 닦는 수건이 노랗게 된다는 뜻으로, 가까이 두고 매우 요긴하게 쓰는 물건을 이르는 말. 눈병과 노랑 수건은 서로 떨어질 수 없다는 데서, 매우 친밀한 사람을 이르는 말. 안팎곱사등이 굽도 젖도 못한다 진퇴양난에 빠진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앉아 주고 서서 받는다 빌려 주기는 쉽지만 돌려받기는 힘들다는 말. 앉은뱅이 용쓴다 ‘제 능력으로 할 수 없는 일’을 억지로 하려고 하는 경우를 비유하여 이르는 말. 앉은뱅이가 서면 천 리를 가나 능력도 기력도 없는 이가 장차 무슨 큰일을 할 듯이 서둘 때 핀잔 주는 말. 앉은 자리에 풀도 안 나겠다 ‘사람이 지나치게 깐깐하고 매서울 만큼 냉정한 경우’를 비유하여 이르는 말. 앉은장사 선 동무 견문이나 교제가 적어 세상 물정이 어둡고 그로 인하여 자주 손해를 보게 되는 경우를 이르는 말. 알기는 칠월 귀뚜라미 ‘매사(每事)에 유식한 듯이 자랑하는 이’를 놀리는 말.  앓느니 죽지 성가시게 늘 시달리기보다는 크게 한 번 당하고 마는 것이 낫다는 말. 앓던 이 빠진 것 같다 걱정거리가 없어져서 후련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암고양이 자지 베어 먹을 놈 세상에 별 못할 짓을 다 한다는 것을 욕으로 이르는 말. 암치 뼈에 불개미 덤비듯 이익이 있을 만한 것에 이 사람 저 사람 덤비어 달라붙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내주장(內主張)이 지나치면 집안일이 잘 되어 가지 않는다는 말. 암탉이 울어 날 샌 일 없다 여자가 나대어서 이루어지는 일이란 없다는 말. 앙얼 보살이 내릴 일 천벌을 받을 만한 일이라는 말. 앞길이 구만 리 같다 나이가 젊으니까 앞으로 어떤 큰일이라도 해낼 수 있는 세월이 충분히 있다는 뜻. 앞 남산 호랑이가 뭘 먹고 사나 호랑이에게라도 잡혀 먹혔으면 좋겠다는 뜻으로, 어리석고 못된 사람을 보고 미워서 죽어 없어지라는 말. 앞 달구지 넘어진 데서 뒤 달구지 넘어지지 않는다 앞서 간 달구지가 넘어진 자리에서는 뒤에 오는 달구지가 조심해서 몰기 때문에 여간해서는 넘어지지 않는다는 뜻으로, 다른 사람의 경험을 교훈으로 삼으면 앞서 저지른 잘못을 거듭 저지르지 않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앞 못 보는 놈 뺨 치고 뒤보는 놈 골 친다 눈이 멀어 앞을 못 보는 사람은 앞에서 뺨을 치고 뒤보느라고 쭈그리고 앉은 사람은 뒷골을 친다는 뜻으로, 대상의 특성을 고려하여 주어진 조건에 맞게 처리하거나 행동하여야 성과를 거둘 수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앞 못 보는 생쥐 정신이 몽롱하여 무엇을 잘 보지 못하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앞문으로 호랑이를 막고 뒷문으로 승냥이를 불러들인다 겉으로 공명정대한 체하나 뒷구멍으로 온갖 나쁜 짓을 다하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앞에 할 말 뒤에 하고 뒤에 할 말 앞에 하고 일의 차례가 뒤바뀌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앞에서 꼬리 치는 개가 후에 발뒤꿈치 문다 앞에 와서 좋은 말만 하고 살살 비위를 맞추기에 급급한 사람일수록 보이지 않는 데서는 험담을 하고 모해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앞으로 보나 뒤로 보나 정방산 앞으로 보나 뒤로 보나 정방산은 정방산이지 다르게 될 수 없다는 뜻으로, 아무리 여러 가지 모양으로 변해도 결국은 같은 대상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앞집 떡 치는 소리 듣고 김칫국부터 마신다 =떡 줄 사람은 꿈도 안 꾸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 앞집 처녀 믿다가 장가 못 간다 남은 생각지도 않는데 자기 혼자 지레짐작으로 믿고만 있다가 낭패를 보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애꿎은 두꺼비 돌에 맞다 남의 분쟁이나 싸움에 관계없는 사람이 뜻밖의 피해를 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애매한 두꺼비[거북이] 돌에 치였다 아무런 죄도 없는 두꺼비가 돌 밑에 들어가 있다가 치여 죽게 되었다는 뜻으로, 애매하게 화를 당하거나 벌을 받게 되어 억울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애호박에 말뚝 박기 버릇이 없고 심술궂은 짓을 한다는 말. 앵무새는 말 잘하여도 날아다니는 새다 앵무새는 비록 사람의 흉내를 내서 말을 잘할지라도 하늘을 나는 새에 불과하다는 뜻으로, 말만 잘하고 실천이 조금도 따르지 아니하는 사람을 비꼬는 말. 야단났다 야단났다 하면 정말 야단만 난다 공연히 자꾸 엄살만 부리거나 쓸데없이 죽는 소리를 하지 말라는 말. 야윈 말이 짐 탐한다 제격에 어울리지 않게 욕심을 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야장간에 식칼이 없다[놀다] ‘대장의 집에 식칼이 논다’의 북한 속담. 약과(를) 먹기(라) 하기에 쉽고도 즐거운 일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약과는 누가 먼저 먹을는지 제상에 오를 약과를 누가 먼저 먹겠느냐는 뜻으로, 누가 먼저 죽게 될지는 알 수 없다는 말. 약기는 묘구(墓寇) 같다 눈치 빠르고 영악한 사람을 이르는 말. 약기는 쥐 새끼냐 참새 굴레도 씌우겠다 약기가 쥐 새끼만큼이나 해서 약삭빠른 참새의 목에다 굴레를 씌울 만하다는 뜻으로, 꾀가 많은 사람을 비꼬는 말. 약방에 감초 [한방에 꼭 들어가는 약재인 감초처럼] 어떤 일에나 빠짐없이 끼어드는 사람, 또는 사물을 이르는 말. 약빠른 고양이 밤눈이 어둡다 약빨라 실수가 없을 듯한 사람도 부족한 점은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약삭빠른 강아지 밤눈이 어둡다약은 쥐가 밤눈 어둡다. 약빠른 고양이 앞을 못 본다 지나치게 영리한 사람이 도리어 판단을 잘못하여 기회를 놓치는 수가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약쑥에 봉통이 병을 고치는 데 쓰는 쑥에 난 흠집이라는 뜻으로, 자기가 자기 병을 못 고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약은 쥐가 밤눈 어둡다 =약빠른 고양이 밤눈이 어둡다. 약은 참새 방아간 지나친다 약아서 좋은 먹이를 노린다는 것이 방앗간을 놓치고 그냥 지나쳐 버렸다는 뜻으로, 약게 굴다가 좋은 기회를 놓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약은 쥐가 밤눈 어둡다’의 북한 속담. 얌전한 고양이[강아지/개](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 겉으로는 얌전하고 아무것도 못할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딴 짓을 하거나 자기 실속을 다 차리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양고는 심장(深藏)한다 [유능한 상인은 물건을 깊이 숨겨 두고 가게에 내놓지 않는다는 뜻으로] ‘어진 이는 학식이나 재능을 숨기고 함부로 드러내지 않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양반 김칫국 떠먹듯 아니꼽게 점잔을 빼는 사람을 보고 하는 말. 양반은 물에 빠져도 개헤엄은 안 한다 지조와 기개가 있는 이는 죽을지언정 비굴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는 말. 양반은 얼어 죽어도 짚불[겻불]은 안 쬔다 양반은 실속보다 체면을 중히 여긴다. 양반이 지게 진 것 같다 서툴고 어색한 모습을 이르는 말. 양은 쟁개비 끓듯 양은 쟁개비가 불에 올려 놓자마자 끓다가는 내려놓으면 곧 식고 만다는 뜻으로, 어떤 일을 할 때에 꾸준하지 못하고 처음에 얼마간 부글부글 끓듯이 열성을 내다가 금방 식어 버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양주 싸움은 칼로 물 베기 부부간의 싸움은 곧 화합이 잘된다는 말. 양지가 음지 되고 음지가 양지 된다 세상일이란 돌고 도는 것이어서, 처지가 뒤바뀌는 경우도 많다는 말. 양첩한 놈 때 굶는다 첩을 둔 사람은, 본집에서는 첩 집으로 첩 집에서는 본집으로 미루어 끼니를 굶는 일이 많다는 말. 양푼 밑구멍은 마치 자국이나 있지 자기 잘못에 대하여 조그마한 거리낌도 없는 뻔뻔스럽고 염치가 없는 사람을 비꼬는 말. 얕은 내도 깊게 건너라 작은 일이라도 가벼이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말. 어깨가 귀를 넘어까지 산다 허리가 구부러져서 어깨가 귀보다 올라갈 때까지 오래오래 산다는 뜻으로, 한 일도 별로 없이 오래 삶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어느 구름에(서) 비가 올지 언제, 어떤 일이 생길지 알 수 없다는 말. 어느 장단에 춤추랴 (시키는 일이 여러 갈래일 때) 누구 말을 들어야 할지 난처하다는 말. 어두운 밤에 눈 깜짝이기 남이 보지 않을 때 하는 일은, 알아주지 않아 보람이 없다는 말. 어두운 밤중에 홍두깨 (내밀듯) 생각지도 않았던 말을 갑자기 꺼내거나 예상 밖의 의견이나 제안을 느닷없이 내놓는다는 말. 어디 개가 짖느냐 한다 남의 말을 개 짖는 소리만큼도 여기지 않고 들은 체 만 체 한다는 뜻. 어른 괄시는 해도 애들 괄시는 하지 말랬다 나이 많은 늙은이는 괄시를 하여도 뒤탈이 크게 일어날 일이 없겠지만 앞날이 창창한 아이들은 뒷날을 생각해서 괄시하지 말라는 말. 어른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 어른이 시키는 대로 하면 실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로 이익이 됨을 교훈적으로 이르는 말. 어른 없는 데서 자라났다 어떤 사람이 버릇없고 방탕함을 이르는 말. 어른도 한 그릇 아이도 한 그릇 어른과 아이의 차별이 없이 나누어 주는 분량이 같다는 말. 어리석은 자가 농사일을 한다 농사일은 괴롭고 고된 일이라 우직한 사람이라야 견뎌 낼 수 있다는 말. 어리친 개 새끼 하나 없다 아무도 얼씬하지 않는다는 말. 어린아이 가진 떡도 뺏어 먹겠다 하는 짓이 염치없고 단작스럽다는 말. 어린아이 말도 귀담아들어라 어린아이의 말도 모두 쓸모없는 것은 아니라는 말. 어린아이 병엔 에미만 한 의사 없다 앓는 아이에 대한 어머니 정성은 아무리 이름난 의사의 의술도 당할 수 없을 만큼 극진하고 신통함을 이르는 말.  어린아이 보지에 밥알 뜯어먹기 아주 염치가 없어서 낯간지러운 짓을 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어린아이 예뻐 말고 겨드랑이 밑이나 잡아 주어라 아이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귀여워만 할 것이 아니라 잘 가르쳐 주라는 말. 어린아이 자지가 크면 얼마나 클까 아무리 크고 많다 한들 별다를 게 없다는 말. 어린아이 팔 꺾은 것 같다 잔인하고 참혹한 행동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매우 쉬운 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어린아이와 개는 괴는 데로 간다 누구든지 저를 사랑하고 위하여 주는 사람을 따른다는 말. 어린아이와 늙은이의 살은 한 밥에 오르고 한 밥에 내린다 어린아이와 늙은이는 한두 끼 잘 먹고 못 먹는 데 따라서 몸이 좋아지고 나빠진다는 말. 어린애 매도 많이 맞으면 아프다 조그만 손해도 여러 번 당하면 큰 손해가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어린애 수다한 것 ‘어린애 입 잰 것’의 북한 속담.  어린애 싸움이 어른 싸움 된다 =아이 싸움이 어른 싸움 된다. 어린애와 장독은 얼지 않는다 =장독과 어린애는 얼지 않는다. 어린애 울음은 장사도 못 당한다 =우는 아이는 장사도 못 당한다.  어린애 입 잰 것 아무 쓸모 없고 도리어 해롭기만 한 것을 이르는 말. 어린애 젖 조르듯 몹시 졸라 대며 귀찮게 굶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어린애 친하면 코 묻은 밥 먹는다 못된 사람과 친하면 해로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아이를 예뻐하면 옷에 똥칠을 한다. 어림 반 닷곱 없는 소리 한다 어림잡아 반에 다섯 홉이 모자라는 소리를 한다는 뜻으로, 조금도 이치에 맞지 아니하는 소리를 한다는 말. 어머니가 반중매쟁이가 되어야 딸을 살린다 딸을 둔 어머니는 중매쟁이가 되다시피 하여야 딸을 시집보낼 수 있다는 뜻으로, 과년한 딸을 가진 어머니는 딸을 시집보내기 위해서 누구보다 애쓰고 뛰어야 한다는 말. 어머니가 의붓어머니면 친아버지도 의붓아버지가 된다 어머니가 계모이면 자연히 아버지는 자식보다 계모를 더 위하여 주기 때문에 아버지와 자식의 사이가 멀어진다는 말. 어머니 다음에 형수 형수는 그 집안 살림을 맡아 하는 데 있어서 어머니 다음의 위치를 차지한다는 말. 어머니 배 속에서 배워 가지고 나오다 태어날 때부터 이미 알고 있다는 말.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킨다 ‘못난이일수록 동료들까지 망신시킴’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어설픈 약국이 사람 죽인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체하다가 일을 그르친다는 말. 어여쁘지 아니한 며느리가 삿갓 쓰고 으스름 달밤에 나선다 밉살스러운 사람은 하는 짓마다 더욱 밉살스럽게 보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어이딸이 두부 앗듯 뜻이 맞고 손이 맞아 일이 척척 잘되어 나감을 이르는 말. 어장이 안되려면 해파리만 끓는다 일이 안되려면 달갑지 않은 일만 생긴다는 말. 어정뜨기는 칠팔월 개구리 마땅히 할 일은 안 하고 몹시 엉뚱하고 덤벙대기만 함을 이르는 말. 어제 보던 손님 1.낯익은 사람. 2.만나자마자 곧 뜻이 맞아서 금방 친해진 사람. 어질병이 지랄병 된다 작은 병통을 다스리지 않고 그냥 두면 큰 병통이 된다는 말. 억새에 손가락[자지] 베었다 대수롭지 아니하게 생각하였던 상대에게 뜻밖의 손해를 보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억지가 사촌보다 낫다 남의 도움을 바라기보다는 억지로라도 제힘으로 하는 것이 낫다. 억지 춘향(이) (격에 맞지 않거나 어색하여 내키지 않는 일을) 억지로 우겨서 하거나 하게 되는 일을 이르는 말. 억지로 절 받기 상대편은 생각지도 아니하는데 이편에서 요구하여 강제로 대접을 받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언덕에 자빠진 돼지가 평지에 자빠진 돼지를 나무란다 같은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부질없이 남을 나무라고 있다는 뜻으로, 제 흉은 모르고 남의 흉만 탓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언문풍월에 염이 있으랴 쉽사리 해낼 수 없는 일에 그 성과의 좋고 나쁨을 따질 수 없다는 말. 언 발에 오줌 누기 일시적 효과는 있으나 곧 해로운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짓을 이르는 말. 동족방뇨(凍足放尿). 언청이 아니면 일색 어쩔 수 없는 결정적인 결함을 비꼬아 이르는 말. 얻어맞으면서도 내가 이겼다 하는 격 힘이 달리어 맞으면서도 입으로는 큰소리침을 이르는 말. 얻어먹은 데서 빌어먹는다 한번 얻어 온 것을 또 다른 사람이 좀 달라고 청하여 받는다는 뜻으로, 아주 궁핍함을 이르는 말. 얼굴에 모닥불을 담아 붓듯 몹시 부끄러운 일을 당하여 얼굴이 화끈화끈 달아오르는 모양. 얼기설기 수양딸 맏며느리 삼는다 어물어물하면서도 손쉽게 자기 이익을 채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얼뜬 봉변이다 공연히 남의 일에 말려들어 창피한 꼴을 당한다는 말. 얼레빗 참빗 품고 가도 제 복이 있으면 잘 산다 친정이 가난하여 입은 옷과 머리빗밖에는 가지고 간 것이 없지만 잘 살려면 얼마든지 행복하게 잘 산다는 뜻으로, 예장(禮裝)을 많이 하여야 잘 사는 것은 아니라는 말. 얼음에 박 밀듯 말이나 글을 거침없이 줄줄 내리읽거나 내리외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얼음에 소 탄 것 같다 얼음판 위에서 소를 탔기 때문에 언제 자빠질지 몰라 걱정스러워서 잠시도 마음을 놓지 못한다는 뜻으로, 어쩔 줄 모르고 쩔쩔매는 모양을 이르는 말.  얼음에 자빠진 쇠 눈깔 눈동자가 흐리멍덩하면서 눈을 크게 뜨고 두리번거리면서 껌벅거리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얼음판에 넘어진 황소 눈깔 같다. 얼음 우에 나막신 신고 다니기 어느 순간에 무슨 변을 당할지 모를 만큼 아주 조심스럽고 위태로운 행동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얼음판에 넘어진 황소 눈깔 같다 =얼음에 자빠진 쇠 눈깔. 얼크러진 그물이요 쏟아 놓은 쌀이다 일이 이미 다 틀어져서 바로잡기가 힘든 상태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얽거든 검지나 말지 본디 가지고 있던 흠에다 또 다른 결함이 있음을 핀잔하는 말. 엄벙덤벙하다가 물에 빠졌다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함부로 덤비다가 낭패를 보고 화를 입게 된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엄지발가락이 두 뽐가웃(이라) 일 안 하고 놀고먹으니 엄지발가락이 자라서 두 뼘가웃이나 되었다는 뜻으로, 일 안 하고 놀고먹는 사람을 핀잔하는 말. 업신여기는 나무에 상투[바지가랭이] 걸린다 아무리 보잘것없는 사람이라도 소홀히 여기지 말아야 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업신여기던 딸이 떡함지 이고 온다 평소에 깔보거나 업신여기던 사람에게서 뜻밖에 도움을 받게 되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업신여긴 나무가 뿌리 박힌다 하찮게 보이던 사람이 뜻밖에 잘되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업어다 난장 맞힌다 애써 한 일이 손해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말. 업으나 지나 이러나저러나 마찬가지라는 말. 업은 아이 삼 년 찾는다 업족제비가 비행기를 탔다 집의 재산을 늘려 준다고 하는 업족제비가 비행기를 타고 멀리 가버렸다는 뜻으로, 집안이 망하여 모든 일이 잘 안된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없는 꼬리를 흔들까 아무리 뜻이 있어도 그것을 해낼 만한 물질적 뒷받침이 없으면 할 수 없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없는 놈이 찬밥 더운밥 가리랴 급하고 아쉬울 때면 좋고 나쁜 것을 가리지 않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없어서 비단 치마 (비단 치마를 입어야 할 경우도 아닌데) 가난해서 단벌뿐인 비단 치마를 입을 경우를 비유하여 이르는 말. 없으면 제 아비 제사도 못 지낸다 (꼭 해야 할 일이라도) 가난해서 못하는 경우를 비유하여 이르는 말. 엉덩이에 뿔이 났다 어린 사람이 옳은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비뚜로 나가는 경우를 비유하여 이르는 말. 엎더져 가는 놈 꼭뒤 찬다 =엎어진 놈 꼭뒤 차기. 엎드러지면 코 닿을 데 =엎어지면 코 닿을 데. 엎드려 절받기 ‘상대편은 마음에 없는데 자기 스스로가 요구하여 대접을 받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엎어지면 코 닿을 데 ‘매우 가까운 거리’를 비유하여 이르는 말. 엎어진 김에 쉬어 간다 뜻하지 않던 기회를 이용하여 하려던 일을 이룬다는 뜻. 에해 다르고 애해 다르다 엑 하면 떽 한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여덟 가랭이 대문어같이 멀끔하다 무엇이 미끈미끈하고 번지르르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생김생김이 환하고 멀끔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여드레 병풍 친다 시일(時日)이 지나서 허탕을 침을 이르는 말. 여드레 삶은 호박에 도래송곳 안 들어갈 말이다 하는 말이 사리나 이치에 전혀 닿지 않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여드레 팔십 리(걸음) 일을 매우 더디고 느리게 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여든에 죽어도 구들동티에 죽었다 한다 여럿의 말이 쇠도 녹인다 여러 사람이 함께 모여 의견을 합치면 쇠도 녹일 만큼 무서운 힘을 낼 수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여럿이 가는 데 섞이면 병든 다리도 끌려 간다 여러 사람이 권하면 어쩔 수 없이 따라 행하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여름 불도 쬐다 나면 섭섭하다 쓸모없는 것이라도 있던 것이 없어지면 섭섭하다. 여름 비는 잠 비 가을 비는 떡 비 여름에 비가 오면 낮잠을 자게 되고, 가을에 비가 오면 떡을 해 먹게 된다는 말. 여름에 하루 놀면 겨울에 열흘 굶는다 여물 많이 먹은 소 똥 눌 때 알아본다 여북하여 눈이 머나 고생이 극도에 달하여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는 말. 심보가 몹시 고약한 사람에게 불행이 닥친 경우를 비꼬는 말. 여우볕에 콩 볶아 먹는다 행동이 매우 민첩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여울로 소금 섬을 끌래도 끌지 무슨 일이든 시키는 대로 하겠다는 말. 여윈 강아지 똥 탐한다 곤궁해진 사람이 음식을 몹시 탐한다는 말. 여윈 개 겨섬 뒤지듯 무엇을 극성스럽게 뒤지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여윈 당나귀 귀 베고 무엇 베면 남을 것이 없다 원래 넉넉하지 못한 데서 가장 두드러진 것을 한두 개 떼고 나면 남을 것이 없다는 말. 여윈 말이 짐 탐한다 몸이 약한 사람이 감당하지도 못하면서 남보다 오히려 많이 가지려고 하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여위고 마른 사람이 많이 먹으려고 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여윈 소 순대가 크다 여윈 짐승일수록 많이 먹는다는 말. 여의보주를 얻은 듯 =여의주를 얻은 듯. 여의주를 얻은 듯 일이 뜻대로 척척 되어 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여의보주를 얻은 듯. 여자가 셋이면 나무 접시가 들논다 여자들이 모이면 말이 많고 시끄럽다는 말.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그 영향이 무섭다는 말. 여자는 높이 놀고 낮이 논다 여자는 시집가기에 따라서 귀해지기도 하고 천해지기도 한다는 말. 여자는 제 고을 장날을 몰라야 팔자가 좋다 ‘여자는 바깥세상 일은 알 것 없이 집 안에서 살림이나 알뜰히 하는 것이 행복한 것임’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여편네 팔자는 뒤웅박 팔자라 (뒤웅박이 끈 떨어지면 어쩔 수 없듯이) 남편에게 매인 것이 여자의 팔자라는 말. 여포 창날 같다 매우 날카로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역기는 양지짝 까투리라 몹시 눈치가 역고 살살 빠지기 잘하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역놈의 새끼같이 대답을 잘한다 조금도 제 뜻을 굽히지 않고 떳떳하게 맞서서 말대답하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역말도 갈아타면 낫다 한 가지 일만 계속해서 하지 않고 가끔 가다가 다른 일도 하면 싫증이 없어진다는 말. ≒역마도 갈아타면 좋다. 무엇이든지 적당하지 않으면 다른 것으로 바꾸어 볼 것이라는 말. ≒역마도 갈아타면 좋다. 낡은 것도 나쁘지는 않으나 새것은 더욱 좋은 법이라는 말. ≒역마도 갈아타면 좋다. 역질 흑함(黑陷) 되듯 한다 불길한 징조가 나타났다는 말. 연못 골 나막신을 신긴다 면전에 있는 사람을 치켜세움을 이르는 말. 연자매를 가는 당나귀 일에 몰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처지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연주창 앓는 놈의 갓끈을 핥겠다 몹시 인색하고 다라운 사람을 두고 이르는 말. 열 골 물이 한 골로 모인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의 속은 모른다 사람 속마음은 짐작하기 어렵다는 말. 열녀전 끼고 서방질하기 겉으로는 깨끗한 체하면서 실제로는 추잡한 행동을 하는 경우를 비꼬는 말. 열 놈이 백 말을 하여도 들을 이 짐작 열 두 가지 재주 가진 놈이 저녁거리가 없다 열매 될 꽃은 첫 삼월부터 안다 잘될 일은 처음 그 기미부터 좋음을 이르는 말. 열무김치 맛도 안 들어서 군내부터 난다 아직 장성하기도 전에 못된 버릇부터 배워 바람을 피우는 경우를 비꼬는 말. 열 번 찍어 아니 넘어가는 나무 없다 아무리 뜻이 굳은 사람이라도 여러 번 권하거나 꾀고 달래면 마음이 변한다는 말. 열 벙어리가 말을 해도 가만 있거라 열 사람이 지켜도 한 도둑 못 막는다 열 사람 형리를 사귀지 말고 한 가지 죄를 범하지 말라 열 손가락을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 아무리 못난 자식이라도 부모로서는 한결같이 소중한 자식이라는 말. 열없는 색시 달밤에 삿갓 쓴다 정신이 흐려져 망령된 짓을 하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열에 한 술 밥이 한 그릇 푼푼하다 열의 한 술 밥이 한 그릇 푼푼하다  열흘 굶어 군자 없다 누구나 굶주리게 되면 점잖지 않고 옳지 못한 일까지 하게 된다는 말. 열흘날 잔치에 열하룻날 병풍 친다 때를 놓치고 일이 다 끝난 다음에야 하려는 것을 비꼬아 이르는 말. 염라대왕이 제 할아버지라도 큰 죄를 짓거나 중병에 걸려 살아날 가망이 없음을 이르는 말. 염병에 땀을 못 낼 놈 괴로워하다가 죽을 놈이라는 뜻으로 저주하며 욕하는 말. 염불도 몫몫이요 쇠뿔도 각각이다 무슨 일이나 각각 특성이 있으므로 일하는 방식도 서로 다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염불 못하는 중이 아궁이에 불을 땐다 염불에는 마음이 없고 잿밥에만 마음이 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은 건성으로 하고 잇속에만 마음을 둔다는 말. 염소 물똥 누는 것 보았나 있을 수 없는 일을 말할 때 이르는 말. 염초청 굴뚝 같다 마음이 검고 엉큼하다. 염치없는 조 발막이다 조가 성을 가진 사람이 궁궐에 들어가면서 신발이 없어 아내의 발막신을 신고도 부끄러운 줄을 몰랐다는 데서, 체면과 부끄러움을 전혀 모르는 파렴치한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염치와 담(을) 쌓은 놈 염치가 조금도 없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 염통에 고름 든 줄은 몰라도 손톱눈에 가시 든 줄은 안다 눈에 보이는 사소한 결함은 알아도 보이지 않는 큰 결함은 모른다는 말. =염통이 곪는 줄은 몰라도 손톱 곪는 줄은 안다. 염통이 곪는 줄은 몰라도 손톱 곪는 줄은 안다 =염통에 고름 든 줄은 몰라도 손톱눈에 가시 든 줄은 안다. 엽자금에 동자삼이라 무엇이 썩 좋거나 금상첨화(錦上添花)라는 뜻으로 하는 말. 엿을 물고 개잘량에 엎드러졌나 수염이나 털이 많이 난 사람을 놀리는 말. 영감 밥은 누워먹고 아들 밥은 앉아 먹고 딸 밥은 서서 먹는다  영감의 상투 보잘것없는 물건을 이르는 말. 옆구리에 섬 찼나 많이 먹는 사람을 보고 조롱하여 이르는 말. 옆집 개가 짖어서 도적 면했다 우연히 남의 덕을 입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이웃집 개가 짖어서 도적을 면했다. 옆집 처녀 믿고 장가 안 간다 옆집 처녀는 생각지도 아니하는데 그와의 결혼을 혼자 속으로 생각하여 장가를 안 간다는 뜻으로, 상대편의 의사는 알지도 못하면서 제 나름대로 생각하여 행동함을 이르는 말. 옆집 처녀 믿다가 장가 못 간다 상대편의 의사는 알지도 못하면서 제 나름대로 생각하여 행동하다가 일을 망치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이웃집 색시 믿고 장가 못 든다. 옆찔러 절받기 상대편은 할 생각도 없는데 자기 스스로가 요구하거나 알려 주어서 대접을 받는다는 말. 예쁘지 않은 며느리가 삿갓 쓰고 으스름 달밤에 나선다 가뜩이나 못난 자가 격에 맞지 않게 어설픈 짓을 하여 눈 밖에 난다는 말. 예쁜 자식 매로 키운다 귀여운 자식일수록 잘 기르려면 엄하게 가르치며 키워야 한다는 뜻. 예황제 부럽지 않다 아주 편하게 지내다. 옛날 갑인(甲寅) 날 콩 볶아 먹은 날 아주 오랜 옛날이라는 뜻. 옛말 그른 데 없다 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말은 옳지 않은 것이 없다는 말. 오강 사공의 닻줄 감듯 둘둘 잘 감아 동인다는 말. 오그라진 개 꼬리 대봉통에 삼 년 두어도 아니 펴진다 한번 고질이 되면 영영 고치지 못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오기에 쥐 잡는다 쓸데없는 오기를 부리다가 낭패를 본다는 말. 오뉴월 감기는 개도 아니 걸린다[앓는다] 여름철에 감기를 앓는 사람을 조롱하여 이르는 말. 오뉴월 개 가죽 문인가 추울 때 문을 열어 놓고 다니는 사람을 탓하여 이르는 말. 오뉴월 겻불도 쬐다 나면 서운하다[섭섭하다] 평소에 대단하지 않게 여기다가도 그것이 없어지면 아쉬움을 느낀다는 말. 오뉴월 더위에는 염소[암소] 뿔이 물러 빠진다 더위는 오뉴월에 가장 심하다는 말. 오뉴월 배 양반이오 동지섣달음 뱃놈 시절에 따라 세상의 대접이나 형편이 다른 직업이나 신분을 두고 하는 말. 오뉴월 병아리 하룻 볕이 새롭다 오뉴월 소나기는 쇠등을 두고 다툰다 여름 소나기는 같은 시간에 아주 가까운 지역끼리도 내리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이 있다는 말. 오뉴월 송장이라 ‘받들기 귀찮은 웃어른’을 욕으로 이르는 말. 오뉴월 쇠불알 (늘어지듯) [한더위 때 쇠불알이 축 늘어지듯] ‘사물이나 행동이 축 늘어져 있음’을 농조로 이르는 말. 오뉴월 쉬파리 ‘몹시 귀찮고 성가신 존재’를 조롱하여 이르는 말. 오뉴월 품앗이라도 진작 갚으랬다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곱다 남이 나를 정당히 대접해 주어야 나도 상대편을 정당히 대접해 주게 마련이라는 뜻. 오는 정이 있어야 가는 정이 있다 남이 나에게 잘해 주면 이쪽에서도 그만큼 상대편에게 잘해 주게 된다는 말. 오다가다 옷깃만 스쳐도 전세의 인연이다 인간이 살면서 부딪치는 사소한 만남이라도 불가에서 말하는 전생의 인연에서 비롯된다는 뜻으로, 살면서 겪게 되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는 말. 오달지기는 사돈네 가을 닭이다 보기가 좋아도 나와는 아무 상관도 없고 실속도 없다는 말. 오동나무만 보아도 춤을 춘다 성미가 너무 급하여 미리부터 서둔다는 뜻. 오동 숟가락에 가물칫국을 먹었나 살갗이 검은 사람을 놀리는 말. 오라는 딸은 아니 오고 외동 며느리만 온다 오라는 데는 없어도 갈 데는 많다 남이 긴히 여겨 주거나 청하여 주는 데는 없어도 자기로서는 가야 할 데나 하여야 할 일이 많다는 말. 오래 앉으면 새도 살을 맞는다 이로운 자리에 너무 오래 있으면 마침내 화를 당한다는 말. 오랜 원수 갚으려다가 새 원수가 생겼다 무슨 일에나 보복을 하고 앙갚음을 하면 그 뒤가 더 좋지 않다는 뜻. 오려논에 물 터놓기 매우 심술 사나운 짓을 이르는 말.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마라 가능성이 없는 일은 처음부터 바라지 말라는 말. 오른쪽 궁둥이나 왼쪽 볼기나 이것이나 저것이나 크게 다르지 아니하다는 말. 오리 알에 제 똥 묻은 격 제 본색에 과히 어긋나지 않아 흠잡을 것은 못 된다는 뜻. 오리 홰 탄 것 같다 제가 있을 곳이 아닌 데 있어서 격에도 맞지 않거니와 위태하다는 말. 오소리감투가 둘이다 일을 맡아 처리하는 사람이 둘이라, 서로 아옹다옹함을 이르는 말. 오월 미끈 유월 어정 칠월 동동 오이는 씨가 있어도 도둑은 씨가 없다 마음을 잘못 가지면 누구나 도둑이 되기 쉽다는 뜻. 오이를 거꾸로 먹어도 제멋[제 소청] 남의 눈에 벗어나는 이상한 짓이라도 제가 좋아하는 짓이라면 상관할 바가 아니라는 말. 오이씨에서 오이 나오고 콩에서 콩 나온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오입쟁이 헌 갓 쓰고 똥 누기는 예사다 되지 못한 자의 못된 짓거리야 놀랄 바가 아니라는 말. 오조 먹은 돼지 벼르듯 혼내 주려고 잔뜩 벼르고 있다는 말. 오죽한 도깨비 낮에 날까 하는 짓이 늘 무례 망측하지만 오죽 못났으면 그러겠는가 하고 그냥 내버려 두라는 말. 오줌 누는 새에 십 리 간다 잠시 동안이나마 쉬는 것과 쉬지 않고 계속하는 것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말. 오줌에도 데겠다 ‘몸이 너무 허약함’을 빗대어 이르는 말. 오초의 흥망이 내 알 바 아니다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자기는 상관하지 않겠다는 말. ?세상에 무슨 일이 있더라도 자기는 자기가 맡은 일이나 충실히 하겠다는 말. 옥니박이 곱슬머리와는 말도 말아라 옥니인 사람과 곱슬머리인 사람은 흔히 깐깐하고 매섭다는 속설에서, 이 두 가지를 겹친 사람은 그 정도가 매우 심하다는 말. 옥반에 진주 구르듯[굴듯] ‘목소리가 맑고 아름다움’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옥석도 닦아야 빛이 난다 =옥도 갈아야 빛이 난다?. =옥도 갈아야 빛이 난다?. 옥에 티 모든 점이 다 좋은데, 아깝게도 한 가지 작은 흠이 있다는 말. 옥에는 티나 있지 사람의 마음이나 물건의 바탕이 아주 깨끗하여 흠이 없다는 말. 옥에도 티가 있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나 좋은 물건이라도 작은 흠은 있다는 말. 온 바닷물을 다 켜야 맛이냐 욕심의 끝이 한이 없거나, 무슨 일을 꼭 끝장을 봐야겠다는 듯이 손을 놓지 않는 사람에게 하는 말. 온면 먹을 제부터 그르다 국수를 먹는 혼인날부터 벌써 글렀다는 뜻으로, 일이 시작될 때부터 잘못됨을 이르는 말. 온몸에 입이 돌라붙었더라도 할 말이 없겠다 ‘온몸이 입이라도 말 못하겠다’의 북한 속담.  온몸의 힘줄이 룡대기 뒤 줄이 되였다 온몸의 힘줄이 임금이 거둥할 때 들고 나가는 용대기의 뒤 벌이줄처럼 팽팽하다는 뜻으로, 사람이 극도로 흥분한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온몸이 입이라도 말 못하겠다 변명의 여지가 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온통으로 생긴 놈 계집 자랑 반편으로 생긴 놈 자식 자랑 큰 천치는 아내 자랑하는 사람이고 반 천치는 자식 자랑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지나치게 사랑하여 눈이 어두워지는 경우를 경계하는 말. 아내 자랑, 자식 자랑하는 사람을 조롱하는 말. 올가미 없는 개장사 밑천을 들이지 않은 장사를 두고 이르는 말. 올챙이 개구리 된 지 몇 해나 되나 어떤 일에 좀 익숙해진 사람이나, 가난하다가 형세가 좀 나아진 사람이 젠체함을 핀잔하여 이르는 말. 올챙이 적 생각은 못하고 개구리 된 생각만 한다 형세가 좀 나아진 사람이 지난날 어렵게 지내던 때를 잊고 오만하게 행동함을 빗대어 이르는 말. 옴딱지 떼고 비상 칠한다 앓는 옴을 빨리 고치겠다는 욕심에 옴딱지를 떼고 비상을 칠하여 더욱 악화시킨다는 뜻으로, 일을 빨리 처리하려고 무리한 방법을 써서 일을 더욱 어렵게 만듦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옴딱지 떼듯 무엇이나 인정사정없이 내버리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옴쟁이를 업고 다니다 화가 미칠 수 있는 께름칙한 대상을 가까이하면서 받든다는 말. 옷 입고 가려운 데 긁기 요긴한 데에 꼭 맞추지 못하여 시원치 않음을 뜻하는 말. 옷은 새 옷이 좋고 사람은 옛 사람이 좋다 물건은 새 것이 좋지만 사람의 경우는 오래 사귀어 정이 든 사람이 좋다는 말. 옷은 시집올 때처럼 음식은 한가위처럼 옷은 시집올 때처럼 아름답게 입고 싶고, 음식은 한가윗날처럼 좋은 음식을 먹고 싶다는 말. 옷이 날개라 못난 사람도 옷을 잘 입으면 잘나 보인다는 말. 의복이 날개라. 옹이에 마디 1.곤란이 겹쳐 생긴다는 뜻. 2.일이 공교롭게도 자꾸 꼬이게 됨을 이름. 옻을 타면 꿈에 대만 보아도 옮는다 [옻나무 잎과 대나무 잎은 닮았으므로 꿈에 대나무만 보아도 옻을 탈 만큼 옻을 잘 탄다는 뜻으로] 옻을 잘 타는 사람에게 하는 말. 와우각상의 싸움 좁은 곳에서 싸우거나 하찮은 일을 가지고 아옹다옹 다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작은 나라끼리의 싸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왕개미 정자나무 흔드는 격 아무리 건드려도 까딱도 하지 않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왕공도 망국하고 학사도 망신한다 사람은 아무리 귀하게 잘 살다가도 천해질 수 있으며, 아무리 훌륭한 사람도 큰 실수를 하여 낭패를 보는 수가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왕방울 껍데기 같다 실속은 없고 겉만 요란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왕방울로 솥[가마] 가시듯 쇠로 만든 솥을 왕방울로 가실 때처럼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소리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왕방울로 퉁노구 가시는 소리. 왕방울로 퉁노구 가시는 소리 =왕방울로 솥[가마] 가시듯. 왕지네 마당에 씨암탉 걸음 왕지네가 가득한 마당에 씨암탉이 걷는 걸음걸이라는 뜻으로, 살이 쪄서 어기적어기적 걷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왕지네 회 쳐 먹을 비위 끔찍하게 생긴 왕지네를 회를 쳐서 먹을 만큼 비위가 좋다는 뜻으로, 자기의 잘못에 조금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철면피한 심보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왕후장상이 씨가 있나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은 가문이나 혈통 따위에 따른 것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에 따른 것임을 이르는 말. ≒씨가 따로 있나. 왜가리 새 여울목 넘어다보듯 무엇을 얻을 것이 없나 하여 엿보거나 넘겨다보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남의 눈을 피하여 가며 제 이익만을 취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왜장녀냐 제명월(霽明月)이냐 똥 덮개냐 매무시가 흐트러져 어지럽고 더러움을 이르는 말. 외갓집 들어가듯 예의도 차릴 필요 없이 자기 집에 들어가는 것처럼 남의 집에 거리낌 없이 쉽게 들어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외갓집 콩죽에 잔뼈가 굵었겠나 남에게 신세를 지고 남의 호의로 살아온 것이 아니라는 뜻으로, 새삼스레 남의 도움을 받기 싫어 거절할 때 이르는 말. 외나무다리에서 만날 날이 있다 남과 원수진 사람은 언젠가는 피하기 어려운 데에서 만나 화를 입게 마련임을 이르는 말. 외로운 군사에 약한 병졸 =외로운 병아리에 쥐 달리듯.  외로운 병아리에 쥐 달리듯 가뜩이나 혼자 있어 외로운 병아리에 쥐까지 달려든다는 뜻으로, 아주 어려운 상황에 놓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외로운 군사에 약한 병졸.  외로운 뿌리 잘 살지 못한다 식물도 곁에서 함께 자라는 것이 있으면 잘 자라지만 따로 기를 때에는 잘 자라지 못한다는 뜻으로, 외아들은 잘못되기 쉬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외며느리 고운 데 없다 외며느리는 다른 며느리와 비교할 수가 없기 때문에 언제나 밉게 보이기 마련이라는 뜻. 외모는 거울로 보고 마음은 술로 본다 술이 들어가면 본심을 털어놓고 이야기한다는 뜻으로 하는 말. 외밭 원수는 고슴도치고 너하고 나하고의 원수는 중매쟁이라 중매결혼을 하고 사이가 나빠진 부부가 중매쟁이를 원망하는 말. 외삼촌 산소에 벌초하듯 정성을 들이지 않고 건성으로 일함을 이르는 말. 외상이면 소[당나귀]도 잡아먹는다 뒷일은 생각지 않고 당장 좋은 일이면 무턱대고 하고 본다는 말. 외손뼉이 소리 날까 ☞외손뼉이 울지 못한다. 외손뼉이 울랴 ☞외손뼉이 울지 못한다. 외손뼉이 울지 못한다 일이란 상대자가 같이 응해야지, 혼자서만 해서는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말. 외손뼉이 소리 날까. 외손뼉이 울랴. 외손자는 업고 친손자는 걸리면서 업은 아이 발 시리다 빨리 가자 한다 흔히, 친손자보다 외손자를 더 귀여워함을 빗대어 이르는 말. 외손자를 귀애하느니 방앗공이[절굿공이]를 귀애하지 외손자는 잘 보살펴 주어도 자란 다음에는 그 정을 모르기 때문에 귀여워한 보람이 없음을 이르는 말. 외아들 잡아먹은 할미 상(相) 더없이 궁상맞고 처참한 표정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외톨밤이 벌레가 먹었다 ‘단 하나뿐인 소중한 물건에 흠집이 생긴 경우’를 비유하여 이르는 말. 외할미 떡도 커야[싸야] 사 먹는다 비록 외할머니가 떡을 팔아도 다른 사람이 파는 떡보다 크거나 싸야 사 먹게 된다는 뜻으로, 아무리 가까운 친척이라도 자기 잇속과 관련지어 생각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왼발 구르고 침 뱉는다 무슨 일이든, 처음에는 앞장섰다가 곧 꽁무니를 빼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 왼새끼 내던졌다 두 번 다시 돌아볼 생각 없이 아주 내버릴 때 이르는 말. 왼팔도 쓸 데가 있다 평상시에 잘 쓰지 아니하는 것도 쓸모 있을 때가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요지경 속이다 ‘속 내용이 알쏭달쏭하고 복잡하여 뭐가 뭔지 이해할 수 없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욕심은 부엉이 같다 온갖 것에 욕심을 부린다는 말. 욕심쟁이 메주 빚어 놓듯 욕심꾸러기가 앞으로 다루기 힘들 것은 생각하지 아니하고 메주를 크게만 만든다는 뜻으로, 일의 전망은 생각지도 아니하고 덮어놓고 일을 크게 벌이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욕은 욕으로 갚고 은혜는 은혜로 갚는다 =떡으로 치면 떡으로 치고 돌로 치면 돌로 친다.  욕을 들어도 당감투 쓴 놈한테 들어라 이왕 욕을 먹고 꾸지람을 들을 바에는 점잖고 덕망이 있는 사람에게서 듣는 것이 낫다는 말.  욕을 먹고 살아야 오래 산다 남에게 욕을 먹었을 때 위로하거나 스스로 참고 웃어넘길 때 하는 말.  욕이 금인 줄 알아라 자기의 잘못에 대한 꾸지람을 고깝게만 생각하지 말고 자기의 발전과 수양을 위해서 소중히 받아들이라는 말. 욕이 사랑 아끼는 사람을 욕하는 것은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뜻이 있으므로 사랑의 표시라는 말. 용 가는 데 구름 가고 범 가는 데 바람 간다 용가마에 삶은 개가 멍멍 짖거든 들어줄 수 없는 일이나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을 두고 하는 말.  용마 갈기 사이에 뿔 나거든 전혀 실현될 가망이 없음을 이르는 말. 용 못 된 이무기 방천 낸다 되지 못한 사람은 반드시 못된 짓을 한다는 뜻. 용미에 범 앉은[맞은] 것 같다 위엄이 있어 남을 억압하는 듯한 인상을 지닌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용의 꼬리보다 닭의 머리가 낫다 크고 훌륭한 이의 뒤를 쫓아다니기보다는 작고 보잘것없어도 우두머리 노릇하는 것이 낫다는 말. 용이 물 밖에 나면 개미가 침노를 한다 용이 물을 잃은 듯 능력은 출중하나 그 능력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이나 조건이 사라져서 불행하게 되었다는 뜻. 우는 가슴에 말뚝 박듯 그렇지 않아도 가슴이 아픈데 더욱 큰 상처를 입힌다는 뜻. 우는 아이 젖 준다 보채고 조르고 해야 얻기가 쉬움을 이르는 말. 울지 않는 아이 젖 주랴. 우둔한 것이 범 잡는다 앞뒤를 살피지 아니하고 덥석 대드는 사람이 뜻밖에 큰일을 하는 수가 있다는 말. 우러러 하늘에도 부끄럽지 않고 굽어 땅에도 부끄럽지 않다 양심에 거리끼는 것이 조금도 없고 아주 떳떳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우렁이도 두렁 넘을 꾀가 있다 미련하고 못난 사람도 제 요량은 하고 있고, 한 가지 재주는 있다는 말. 우렁이도 집이 있다 (거처할 곳이 없을 때) 우렁이와 같은 미물도 집이 있건만 자기는 왜 없는가 하고 한탄할 때 하는 말. 우뢰처럼 만났다가 번개처럼 헤여진다 뜻하지 아니하게 반가운 상봉을 하였다가 갑자기 다시 헤어지게 된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우립 만드는 동안에 날이 갠다 비가 와서 우립을 만들면 이미 늦다는 뜻으로, 미리미리 준비를 하여야 한다는 말. 우마가 기린 되랴 본시 타고난 천품은 숨길 수 없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우물가에 애 보낸 것 같다 익숙하지 못한 사람에게 일을 시켜 놓고 몹시 불안해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우물고누 첫수 1.상대편을 꼼짝 못하게 할 수 있을 정도의 좋은 대책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2.한 가지 방법밖에는 달리 변통할 재주가 없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우물둔덕에 애 내놓은 것 같다 =우물가에 애 보낸 것 같다. 우물 들고 마시겠다 성미가 몹시 급하다는 뜻. 우물물은 퍼내야 고인다 무엇이나 자꾸 써야 새것이 생긴다는 말. 우물 안 개구리 ‘견문이 좁아서 세상 형편을 모르는 사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정저와(井底蛙). 정중와(井中蛙). 우물에 가 숭늉 찾는다 성미가 너무 급하여 참고 기다리지 못함을 이르는 말. 우물을 파도 한 우물을 파라 무슨 일이든 한 가지 일을 끝까지 꾸준히 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말. 우박 맞은 잿더미 같고 활량의 사포 같다 숭숭 구멍이 뚫렸다는 뜻으로, 얼굴이 심하게 얽은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 ≒우박 맞은 잿더미[소똥] 같다. 우박 맞은 잿더미[소똥] 같다 =우박 맞은 잿더미 같고 활량의 사포 같다. 우선 먹기는 곶감이 달다 그다지 실속은 없으나 당장 좋으니 취할 만하다는 말. 우수 경칩에 대동강이 풀린다 우습게본 나무에[풀에] 눈 걸린다[찔린다] 대수롭지 아니하게 여겼던 사람이나 물건으로 인하여 크게 손해를 입는다는 뜻으로, 아무리 대수롭지 않게 보이더라도 조심해야 한다는 말. 울고 싶자 때린다 무슨 일을 하고 싶으나 마땅한 구실이 없어서 하지 못하고 있는데, 때마침 좋은 핑곗거리가 생겼음을 이르는 말. 울며 겨자 먹기 하기 싫은 일을 마지못해 함을 이르는 말. 울바자가 헐어지니 이웃집 개가 드나든다 자신에게 약점이 있으니까 남이 업신여긴다는 말. 울음 큰 새라 울음만 컸지 볼품없는 새라는 뜻으로, 명성은 자자하나 실제로는 보잘것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울지 않는 아이 젖 주랴 ☞우는 아이 젖 준다. 울타리 밖을 모른다 세상 물정을 전혀 모른다는 뜻. 움도 싹도 없다 1.(사람이나 물건이) 감쪽같이 없어져서 간 곳을 모름을 이르는 말. 2.장래성이 전혀 없음을 이르는 말. 움막의 단 장 가난한 집의 음식이 맛있을 때 이르는 말. 움 안에서 떡 받는다 구하지도 않은 좋은 물건을 뜻밖에 얻게 됨을 이르는 말. 움집에 간장 있다 ‘움 안에 간장’의 북한 속담. 웃는 낯에 침 뱉으랴 좋은 낯으로 대하는 사람에게는 모질게 굴지 못한다는 말. 웃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 웃어른 모시고 술을 배워야 점잖은 술을 배운다 술은 윗사람 앞에서 배워야 예절 바르게 마시는 좋은 술버릇을 붙이게 됨을 이르는 말. 웃음 속에 칼이 있다 =웃고 사람[뺨] 친다. 웃음 끝에 눈물 처음에는 재미나게 잘 지내다가도 나중에는 슬픈 일, 괴로운 일이 생기는 것이 세상사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원님과 급창이 흥정을 하여도 에누리가 있다 원님 덕에 나팔[나발] 분다 남의 덕으로 분에 넘치는 대접을 받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원님도 보고 환자(還子)도 탄다 어떤 일을 동시에 겸하여 꾀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원두막 삼 년 놓으면 조상군이 없어진다 원두막을 지키는 일을 계속하면 인심을 잃게 되며 죽은 뒤에 조상하러 오는 사람도 없어진다는 뜻으로, 직업상 특성으로 사람들 속에서 인심을 잃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원두밭 삼 년 놓으면 외삼촌도 몰라본다. 원두밭 삼 년 놓으면 외삼촌도 몰라본다 ? =원두막 삼 년 놓으면 조상군이 없어진다. 원두한이 사촌을 모른다 원두막에서 참외나 수박 따위를 파는 사람이 사촌이 와도 하나도 거저 주지 아니한다는 뜻으로, 물건을 팔아서 이익을 얻는 장사치는 아는 사람이라고 해서 거저 주거나 더 헐하게 주는 등 인심을 쓰는 법이 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원두한이 쓴 외 보듯 원두한이 팔 수 없는 쓴 오이를 본다는 뜻으로, 남을 멸시하거나 무시함을 이르는 말. ≒쓴 도라지[오이] 보듯.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 남에게 원한을 사면 피할 수 없는 곳에서 공교롭게 만나게 된다는 말.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 아무리 익숙하고 잘하는 사람이라도 간혹 실수할 때가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나무 잘 타는 잔나비 나무에서 떨어진다닭도 홰에서 떨어지는 날이 있다. 원숭이 똥구멍같이 말갛다 취할 것 하나도 없거나 몹시 보잘것없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원숭이 볼기짝인가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 원숭이의 고기 재판하듯 이솝 우화에서 고기를 똑같이 나눠 준다고 하면서 야금야금 자기가 베어 먹어 마침내 다 먹는 원숭이처럼, 겉으로는 공정한 척하면서 실지로는 교활하게 남을 속이고 제 잇속을 차리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원숭이 이 잡아먹듯 샅샅이 뒤지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원숭이가 늘 이를 잡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잡는 것이 아닌 것처럼, 사람이 무슨 일을 하는 체하면서 실제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원숭이 흉내[입내] 내듯 생각 없이 남 하는 대로 덩달아 따라 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남의 흉내를 잘 내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원앙이 녹수(綠水)를 만났다 적합한 배필을 만남을 이르는 말. 월천꾼에 난쟁이 빠지듯 체격 조건이 적합하지 아니한 난쟁이는 월천꾼에 끼지 못한다는 뜻으로, 무엇을 하는 데 일정한 축에 못 들고 빠지게 되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월천꾼처럼 다리부터 걷는다 어떤 일을 하려 함에 있어 너무 미리부터 서둘러 대는 모양을 조롱하여 이르는 말. 웬 불똥이 튀어 박혔나 무슨 일을 당하였기에 그토록 찡그린 얼굴을 하고 있느냐는 뜻으로 이르는 말. 위하는 아이 눈이 먼다 무슨 일에나 너무 많은 기대를 걸면 도리어 잘되지 않는 법이라는 말.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 윗사람의 행실이 깨끗해야 아랫사람의 행실도 거기에 따라 깨끗해진다는 말. 윗입술이 아랫입술에 닿느냐 상대편이 불손한 말을 했을 때에 화내어 이르는 말. 유세통 졌나 세력을 믿고 남에게 못되게 굶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육모얼레에 연줄 감듯 무엇을 둘둘 잘 감는다는 뜻. 육초 먹은 강아지 육초를 얻어먹은 강아지가 더 얻을 수 있을까 하여 졸졸 따라다니듯이 남의 꾀에 넘어가 그가 하는 대로 따라가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윤달에 만난 회양목 [회양목은 윤년에 한 치씩 줄어든다는 전설에서] 1.일이 매우 더딤을 이르는 말. 2.‘키 작은 사람’을 농조로 이르는 말. 으르렁대는 소는 받지 않는다 받을 것처럼 으르렁대는 소는 실제로는 받지 않는 법이란 뜻으로, 능력이 없는 사람이 공연히 큰소리를 치거나 허세를 부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으슥한 데 꿩알 낳는다 은행나무도 마주 서야 연다 은행나무의 수나무와 암나무가 서로 바라보고 서야 열매가 열린다는 뜻으로, 사람이 마주 보고 대하여야 더 인연이 깊어짐을 이르는 말. ?남녀가 결합하여야 집안이 번영한다는 말. 은혜를 모르는 건 당나귀 은혜에 보답하지 아니한 사람은 사람으로 칠 가치도 없다는 말.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 감사로써 은혜에 보답해야 할 자리에 도리어 해를 끼침을 이르는 말. 음달 아래 개 팔자 ‘오뉴월 댑싸리 밑의 개 팔자’의 북한 속담.  음달에서 자라난 풀대 같다 몹시 연약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음달의 싱아대 같다 ‘봉산 수숫대 같다’의 북한 속담. 음력 칠월 기우는 해에 검정 소 뿔이 빠진다 음력 칠월에는 저무는 해에도 검정 소의 뿔이 익어서 빠진다는 뜻으로, 음력 7월의 햇볕이 무척 따가움을 이르는 말. 음식 같잖은 개떡수제비에 입천장(만) 덴다 우습게 알고 대한 일에 뜻밖에 해를 입었을 때에 이르는 말. 음식 싫은 건 개나 주지 사람 싫은 건 할 수 있나 싫은 음식은 안 먹으면 되지만 사람 싫은 건 어찌할 수도 없다는 말. 음식은 갈수록 줄고 말은 갈수록 는다 먹을 것은 먹을수록 주나 말은 할수록 보태져, 걷잡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니 말을 삼가라는 말. 음지도 양지 될 때가 있다 역경에 있던 사람도 때가 되면 행운을 만날 수 있다는 말. 음지의 개 팔자 남 보기에는 시시하게 보여도 실상 당사자에게는 더 바랄 것이 없을 만큼 좋은 처지임을 이르는 말. 응달에도 햇빛 드는 날이 있다 역경에 빠진 사람도 더러는 좋은 때를 만날 수 있다는 말. 응석으로 자란 자식(이라) 부모가 응석을 받아 주기만 하면서 키운 자식이라는 뜻으로, 버릇없이 제 욕심만 내세우고 아무 데도 쓸모없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의가 좋으면 천하도 반분한다 사이가 좋으면 무엇이나 나누어 가진다는 뜻. 의논이 맞으면 부처도 앙군다 여러 사람의 뜻이 합쳐지고 마음이 맞으면 무슨 일이라도 해낼 수 있다는 말. 의리는 산 같고 죽음은 홍모 같다 ?의리는 산같이 무겁고 죽음은 기러기의 털과 같이 가볍다는 뜻으로, 의리를 위하여 죽음을 가볍게 여기는 경우를 이르는 말. 의뭉한 두꺼비 옛말 한다 의뭉한 사람이 남의 말이나 옛말을 끌어다가 자기 속의 말을 한다는 말. 의복이 날개(라) ☞옷이 날개라. 의붓아비 떡 치는 데는 가도 친 아비 도끼질하는 데는 안 간다 의붓아비 제삿날 물리듯 마음에 없는 일이라 차일피일하고 뒤로 미룸을 이르는 말. 의붓어미 눈치 보듯 어려운 사람이나 무서운 사람의 눈치를 살핌을 이르는 말. 의붓자식 다루듯 남의 것처럼 하찮게 다룸을 이르는 말. 의젓잖은 며느리가 사흘 만에 고추장 세 바탱이 먹는다 못난 자가 미운 짓만 하느라고 사람을 놀라게 하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의주 륙섬 강냉이 가렴 보고 큰다 의주 육섬의 옥수수가 저를 사 갈 가렴의 소금 굽는 사람들을 바라면서 자란다는 뜻으로, 무슨 일이든지 희망을 걸고 하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의주를 가려면서 신날도 안 꼬았다 큰일을 하려고 하면서도 조금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의주 파발도 똥 눌 때[새]가 있다 =의주 파천(播遷)에도 곱똥은 누고 간다?. 의주 파천(播遷)에도 곱똥은 누고 간다 임금이 난을 피하여 의주로 피난을 가는 다급한 정황에도 이질(痢疾)이 걸리면 곱똥은 누고 가지 않을 수 없다는 뜻으로,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그보다 먼저 할 일은 하여야 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잠시 틈을 낼 수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의주 파발도 똥 눌 때[새]가 있다.  의질이 병 =의심이 병. 이것은 다방골 잠이냐 옛날 서울의 다동(茶洞)에는 부자가 많이 살고 있었는데 일 없이 잠을 즐기어 아침에 늦도록 일어나지 않았다는 데서, 늦잠 자는 것을 비꼬는 말. 이것은 재관 풍류냐 한 재상이 자신의 수연(壽宴)에 임금이 내린 어악(御樂)을 굳이 사양하고 받지 아니하여 하루에 아홉 번의 왕래가 있었다는 데서, 사람이 자주 왕래함을 이르는 말. ≒재관 풍류냐. 이것은 형조 패두의 버릇이냐 옛날 형조에서 볼기 치는 일을 맡았던 패두의 버릇처럼 경거망동으로 사람을 마구 때림을 꾸짖는 말. 이날 저 날 한다 일의 결정을 자꾸 미룬다. 이날 춤추기 어렵다 간섭이 많아 몸을 어떻게 가누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 이놈의 장기 흉년에 배웠나 흉년에 굶어서 닥치는 대로 먹으려 하는 것처럼 덥석덥석 잡아 먹기 잘하는 장기 수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이도 아니 나서 콩밥을 씹는다 재능과 역량이 부족한 사람이 분에 넘치는 일을 하려 한다는 말. 이도 안 난 것이 뼈다귀 추렴하겠단다[추렴한다] 무턱대고 자기의 능력에 부치는 일을 하려 한다는 말. 이래도 일생 저래도 일생 =이래도 한세상 저래도 한세상?. =이래도 한세상 저래도 한세상?.  이래도 한세상 저래도 한세상 사람이 잘살거나 못살거나 한평생 사는 것은 마찬가지라는 말. ≒이래도 일생 저래도 일생?. 어떻게 살든 한평생 사는 것은 마찬가지니 둥글둥글 원만하게 살자는 말. ≒이래도 일생 저래도 일생?. 이레 안에 경풍(驚風)에 죽으나 여든에 상한병(傷寒病)에 죽으나 죽기는 일반이라 어떻게 죽든지 죽는다는 사실과 죽은 결과는 같다는 말. 이유는 다르지만 결과는 같으니 동일하게 취급해야 함을 이르는 말.  이레 안에 백구(白鷗) 친다 태어나서 이레도 되기 전에 백구 타령을 친다는 뜻으로, 놀랍게 조숙한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이른 새끼가 살 안 찐다 1.조숙한 사람은 대체로 큰 인물이 되기가 어렵다는 말. 2.무엇이나 처음에 너무 쉽게 잘되는 일은 나중이 시원치 않다는 말. 이름난 잔치 배고프다 소문이 크게 난 것이 도리어 보잘것없다는 말. 이름도 성도 모른다 전연 모르는 사람이라는 말. 이름 좋은 하눌타리 ‘겉모양은 그럴듯하나 실속이 없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이름이 고와야 듣기도 좋다 이왕이면 사물의 명칭도 좋아야 한다는 말. 이리 해라 저리 해라 하여 이 자리에 춤추기 어렵다 이마를 뚫어도 진물도 아니[안] 난다 몹시 인색한 사람을 두고 하는 말. 이발이 맏아들보다 낫다 ‘이가 자식보다 낫다’의 북한 속담. 이밥이면 다 젯밥인가 같은 물건이라도 경우에 따라 각각 다르게 쓰이며 또 효과도 각각 다름을 이르는 말. 이부자리 보고 발을 펴라 =누울 자리 봐 가며 발을 뻗어라?. =누울 자리 봐 가며 발을 뻗어라?. 이사할 때 강아지 따라다니듯 어디든지 늘 붙어 다니며 귀찮게 굶을 이르는 말. 이삭 밥에도 가난이 든다 가난하게 살 징조가 보임을 이르는 말. 이십 안 자식 삼십 안 천량 자식은 이십 세 전에 낳고 재산은 삼십 세 전에 모아야 함을 이르는 말. 이알이 곤두서다 가난하던 사람이 밥 걱정이 없어지면 반지빠르게 행동한다는 뜻. 이야기 장단에 도끼자루 썩는다 이야기에 정신이 팔려 시간 가는 줄을 깨닫지 못함을 이르는 말. 이 없으면 잇몸으로 살지[산다] 꼭 있어야 할 것이 없으면 없는 대로 견디어 나갈 수 있다는 말. 이에 신물이 돈다[난다] 어떤 일을 거듭 당하여 지쳤거나 싫증이 몹시 나서 지긋지긋하다. 이왕이면 창덕궁 이왕 택할 바에는 나은 쪽을 택한다는 말. 이왕지사 온 김에 발치 잠이나 자고 가겠다 이왕 한 일이니까 별로 만족스럽지 않아도 상황이나 형편이 허락하는 한에서 일을 해치우는 수밖에 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이 우물에 똥을 누어도 다시 그 우물을 먹는다 이웃이 사촌보다 낫다 가까이 사는 이웃이 먼 곳에 사는 친족보다 좋다는 뜻으로, 자주 보는 사람이 정도 많이 들고 따라서 도움을 주고 받기도 쉬움을 이르는 말. 이웃집 개도 부르면 온다 불러도 못 들은 체하는 사람을 두고 핀잔하는 말. 이웃집 며느리 흉도 많다 늘 가까이 있고 잘 아는 사이일수록 상대편의 결점이 눈에 더 많이 띈다는 말. 익은 밥 먹고 선소리한다 사리에 맞지 않는 말을 싱겁게 하는 사람을 핀잔하여 이르는 말. 익은 밥이 날로 돌아갈 수 없다 일이 이미 다 되었으니 아무리 해도 소용없음을 이르는 말. 인간 만사는 새옹지마라 [인간의 길흉화복은 돌고 돈다는 뜻으로] 인생의 덧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인물 좋으면 천하일색 양 귀비 얼굴이 잘생겼음을 말하는 자리에서 얼굴이 잘생겼으면 얼마나 잘생겼느냐, 기껏해야 양 귀비만큼이나 하겠느냐고 반문하는 말. 인색한 부자가 손쓰는 가난뱅이보다 낫다 가난한 사람은 마음씨가 곱고 동정심이 많아도 남을 도와주기란 쉽지 않음에 비하여, 부자는 인색하여도 남는 것이 있어 없는 사람이 물질적 도움을 입을 수 있음을 이르는 말. 인심은 아침저녁 변한다 힘든 세상살이에 사람들의 인심이 수시로 변함을 이르는 말.  인심은 천심 백성이 생각하는 것이 옳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인심이 뚝집에서 난다 겉보기에 무뚝뚝해 보이는 사람이 오히려 마음이 너그럽고 인심이 후한 경우가 많음을 이르는 말.  인심이 한강수 인심이 매우 후한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인심 좋은 녀편네 풋나물 팔듯 인심 좋은 아낙네가 자기 이익은 별로 생각지 아니하고 듬뿍듬뿍 얹어 판다는 뜻으로, 쓸데없이 인심이 헤픈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인절미 팥고물 묻히듯이 온통 더버기로 뒤집어쓰거나 씌우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인절미에 조청 찍은 맛 구미에 딱 맞고 마음에 드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인정도 품앗이라 남도 나를 생각해야 나도 그를 생각하게 된다는 말. 인정은 바리로 싣고 진상(進上)은 꼬치로 꿴다 1.직접 자기의 이해에 관계 있는 일에 더 마음을 쓴다는 뜻. 2.하급 관원들은 실제적 영향력 때문에 높은 벼슬아치보다 더 권세를 부린다는 말. 인제 보니 수원 나그네 모르고 있었는데, 본인이 깨우쳐 주어서 다시 보니 아는 사람이라는 말. 인품이 좋으면 한 마당귀에 시아비가 아홉 여자가 품성이 좋으면 욕심내는 사람이 많아서 시아비 될 사람이 마당에 가득하다는 뜻으로, 사람이 잘나서 따르는 사람이 많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일가 못된 것이 항렬만 높다 못된 일가가 친족 관계의 항렬만 높다는 뜻으로, 변변치 아니한 사람이나 일이 잘되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일가 못 된 건 계수 일가 중에서 가장 서먹한 사람은 아우의 아내 되는 사람이라는 말. 일가 싸움은 개싸움 일가끼리 싸우는 것은 짐승과도 같은 일임을 이르는 말. ?일가끼리의 싸움은 싸우는 그때뿐이고 원한을 품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  일가에서[일가끼리] 방자한다 일가친척끼리 서로 허물을 잡고 탓하며 남에게까지 들추어내어 화근을 만든다는 뜻으로, 서로 돕고 화목하게 지내야 할 사람들이 화목하지 못함을 이르는 말. 일각이 삼추(三秋) 같다 [일각이 삼 년의 세월같이 여겨진다는 뜻으로] ‘기다리는 마음이 매우 간절함’을 이르는 말. 일곱 번 재고 천을 째라 무슨 일이든 낭패를 보지 아니하기 위해서는 신중하게 생각하여 행동해야 함을 이르는 말. 일 다하고 죽은 무덤 없다 일을 하려고 들면 끝이 없다는 말. 일색 소박은 있어도 박색 소박은 없다 1.아름다운 여자는 남편에게 박대를 받게 되나 못생긴 여자는 그렇지 않으니, ‘아무리 아름다운 여자라도 그 사람됨이 좋지 않으면 남편에게 버림받게 됨’을 이르는 말. 2.사람됨이 얼굴에 매인 것은 아니라는 말.  일생에 한 번은 좋은 날이 있다 기구하게 살아가던 사람에게도 일생에 한 번은 좋은 일이 생긴다는 뜻으로, 뜻밖의 행운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일생 화근은 성품 고약한 아내 악처는 평생의 애물단지임을 이르는 말. 일에는 베돌이, 먹을 뗀 감돌이 일할 때는 멀리 가 있으려고 살살 빼다가, 먹을 것이 있으면 조금이라도 더 많이 먹으려고 살금살금 다가오는 사람을 두고 이르는 말. 일은 송곳으로 매운 재 긁어내듯 하고 먹기는 돼지 소 먹듯 한다 일이 되면 입도 되다 일이 많으면 먹을 것도 많이 생기게 된다는 말. 일 잘하는 아들 낳지 말고 말 잘하는 아들 낳으라 사람이 말을 잘하면 처세(處世)하기에 유리하다는 뜻으로 이르는 말. 일 전 오 리 밥 먹고 한 푼 모자라 치사를 백 번이나 한다 일촌간장이 봄눈 슬듯 한다 걱정과 두려움이 극에 달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잃은 도끼나 얻은 도끼나 일반 잃은 헌 물건이나 얻은 새 물건이나 별 차이가 없음을 이르는 말. 잃은 도끼는 쇠가 좋거니 지금의 새로운 물건이나 사람이 먼저의 물건이나 사람보다 못하여 아쉬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잃은 사람이 죄가 많다 무언가를 잃은 사람이 애매한 여러 사람을 의심하게 됨을 이르는 말. 임도 보고 뽕도 딴다 한꺼번에 두 가지의 좋은 결과를 얻게 됨을 이르는 말. 도랑 치고 가재 잡는다. 입맛 나자 노수 떨어진다 입맛이 없어 먹지 못하던 사람이 입맛이 나게 되자 여비가 떨어져서 사 먹을 수 없게 되었다는 뜻으로, 일이 공교롭게도 서로 어긋나며 틀어지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입맛 없는 데 병아리 궁둥이만 따라다녀도 낫다 입맛이 없을 때는 병아리를 따라다니며 달걀 생각만 하여도 좀 낫다는 뜻으로, 별로 도움이 안될 것에까지 헛된 기대를 걸게 되는 매우 어렵고 궁한 처지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입맛이 반찬 입맛이 좋으면 반찬이 없는 밥도 맛있게 먹는다는 말. 입술에 침이나 바르지 거짓말을 천연스럽게 꾸며 대는 것을 욕하는 말. 입에 문 혀도 깨문다 사람인 이상 누구라도 실수는 있다는 말. 입에 쓴 약이 병에는 좋다 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바로 해라[하랬다] 언제든지 말을 정직하게 해야 한다는 말. 입이 밥 빌러 오지 밥이 입 빌러 올까? 입찬말은 묘 앞에 가서 하여라 자기를 자랑하며 장담하는 것은 죽고 나서야 하라는 뜻으로, 쓸데없는 장담은 하지 말라는 말. ≒입찬소리는 무덤 앞에 가서 하라. 입찬소리는 무덤 앞에 가서 하라 입찬소리는 죽어서나 하라는 뜻으로, 함부로 장담하지 말라는 말. 입춘 거꾸로 붙였나 입춘 뒤 날씨가 몹시 추운 경우에 이르는 말. 잇새도 어우르지 않는다 말 한마디 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잉어가 뛰니까 망둥이도 뛴다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 자기 분에 넘치는 다른 사람의 행동을 모방하여 되지 못하는 일을 하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잉어 낚시에 속절없는 송사리 걸린 셈 큰 결과를 바라고 한 일에 보잘것없는 성과밖에 얻지 못한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자기와 상관없는 일에 끼어들어 애매하게 화를 입게 된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잉어 숭어가 오니 물고기라고 송사리도 온다 무엇을 하는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남이 하는 대로 따라 하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잉엇국 먹고 용트림한다 작은 일을 큰일인 체하고 남에게 거짓 태도를 보이거나 행동한다는 말.   자가사리 끓듯 크지도 않은 것들이 많이 모여 복작거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자가사리 용을 건드린다 힘이 약한 것이 자기 힘으로 상대할 수 없는 강한 것을 함부로 건드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자는 범[호랑이] 코침 주기 공연히 건드려서 스스로 위험을 부른다는 뜻. 자다가 봉창 두드린다 얼토당토않은 딴말을 할 때 이르는 말. 자라나는 초목은 꺾지 않는다 젊은이들의 희망찬 포부를 꺾거나 전진을 제재하지 말아야 함을 이르는 말.  자라나는 호박에 말뚝 박는다 한창 잘되어 가는 것을 훼방을 놓고 방해하는 심술 사나운 마음이나 행동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자라목 오그라들듯 면구스럽거나 멋쩍어서 목을 옴츠림을 비유하는 말.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소댕[솥뚜껑] 보고 놀란다 무엇에 놀라면, 그와 비슷한 것만 보아도 겁이 난다는 말. 자랑 끝에 불붙는다 자랑이 지나치면 그 끝에 무슨 말썽이 생기기 쉽다는 말. 자발없는 귀신은 무랍도 못 얻어먹는다 너무 경솔하게 굴면 푸대접을 받고 마땅히 얻어먹을 것도 못 얻어먹음을 이르는 말. 자볼기 맞겠다 [아내가 쓰는 자막대기로 볼기를 맞겠다는 뜻으로] ‘아내에게 나무람을 듣겠다’는 말을 농조로 하는 말.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 일이 안되려면 하는 모든 일이 잘 안 풀리고 뜻밖의 큰 불행도 생긴다는 말. ≒엎어져도 코가 깨지고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재수가 없는 포수는 곰을 잡아도 웅담이 없고 복 없는 봉사는 괘문을 배워 놓으면 개좆부리 하는 놈도 없다재수 없는 놈은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재수 없는 포수는 곰을 잡아도 웅담[열]이 없다. 자빠지는 기둥 썩은 새끼로 매기 아무짝에도 쓸모없고 보람 없는 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자빠진 김에 쉬여 간다 ‘엎어진 김에 쉬어 간다’의 북한 속담.  자빠진 놈 꼭뒤 차기 궁지에 빠진 사람을 더 한층 괴롭히는 행동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자시오 할 땐 마다더니 아가리에 박으라 해야 먹는다 좋은 말로 할 때는 듣지 아니하고 거칠고 심한 말을 해야만 비로소 듣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자식 겉 낳지 속은 못 낳는다 자식 기르는 것 배우고 시집가는 계집 없다 자식 떼고 돌아서는 어미는 발자국마다 피가 괸다 자식 둔 골은 호랑이[범]도 돌아본다 짐승도 새끼를 사랑하는데, 사람이야 더 말할 나위 없다는 뜻. 자식은 내 자식이 커 보이고 벼는 남의 벼가 커 보인다 자식을 길러 봐야 부모 은공을 안다  자식을 보기에 아비 만한 눈이 없고 제자를 보기에 스승 만한 눈이 없다 자에도 모자랄 적이 있고 치에도 넉넉할 적이 있다 경우에 따라, 많아도 모자랄 수 있고 적어도 남을 수가 있다는 말. 자주 옮겨 심는 나무 크지 못한다 작게 먹고 가는 똥 누어라[싸지] 분수에 넘치지 않게 생활함이 마땅하다는 말. 작년 둥우리에 새가 없다 작년에 고인 눈물 금년에 떨어진다 어떤 일의 효과가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나타남을 이르는 말. 작년에 왔던 각설이 또 찾아왔다 반갑지 아니한 사람이 다시 찾아왔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작년이 옛날이다 세상이 변하고 발전하는 속도가 무척 빠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작년 팔월[추석]에 먹었던 오례송편이 나온다 다른 사람의 아니꼬운 행동에 속이 뒤집힐 것처럼 비위가 상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작은 고추가 더 맵다 작은 사람이 큰 사람보다 오히려 더 단단하고 오달지다는 말. 작은댁네 하품은 큰댁네한테는 옮지 않는다 하품은 본디 쉽게 옮겨지는 법인데도 옮겨지지 아니한다는 뜻으로, 본처와 첩 사이의 관계가 매우 좋지 않음을 이르는 말. 작은 도둑 사형을 하고, 큰 도둑은 존경을 한다 작은며느리 보고 나서 큰며느리 무던한 줄 안다 먼저 있던 사람의 좋은 점은 뒷사람을 겪어 보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된다는 말. 작은 바람은 불을 붙이고, 큰 바람은 불을 끈다 작은어미 제삿날 지내듯 =처삼촌 뫼에 벌초하듯. 작은집 다니듯 한다 몹시 출입이 잦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작작 먹고 가는 똥 누어라 욕심 부리지 말고, 분수에 맞게 행동하라는 뜻. 잔 가지를 휘기에 따라서 나무가 구부러진다 잔고기 가시 세다 몸은 작아도 속은 올차다는 뜻. 잔나비 궁둥짝[상판] 같다 얼굴이 보기 흉하게 울긋불긋한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잔나비 담배 먹듯 =잔나비 밥 짓듯.  잔나비 밥 짓듯 조심성 없이 경솔하게 행동하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실상도 모르면서 남의 흉내만 내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잔나비 담배 먹듯.  잔나비 잔치다 남을 흉내 내어 한 일이 제 격에 맞지 아니한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잔나비 흉내 내듯 남의 흉내를 잘 내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잔나비도 나무에서 떨어진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의 북한 속담. 잔디밭에서 바늘 찾기 무엇을 고르거나 찾거나 얻어 내기가 매우 어렵거나 불가능한 경우에 하는 말. 잔바늘 쑤시듯 무엇이나 착살맞게 들쑤시기를 잘한다는 말. 잔병에 효자 없다 늘 잔병을 앓고 있는 사람의 자식은 효도하기가 쉽지 않다. 잔생이 보배라 못난 체하는 것이 처세에 이롭다는 말. 잔솔밭에서 바늘 찾기 잔치는 잘 먹은 놈 잘 차렸다 하고 못 먹은 놈 못 차렸다 한다 어떤 일이나 사물에 대한 평가는 자기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게 됨을 이르는 말.  잔치 보러 왔다가 초상 본다 기쁜 일 뒤에 뜻밖의 안 좋은 일을 만나게 됨을 이르는 말.  잔치엔 먹으러 가고 장사엔 보러 간다 축하하여야 할 혼인 잔칫집에는 먹는 데만 신경을 쓰고, 위로하며 일을 도와주어야 할 초상집에서는 구경만 하는 야박한 인심을 이르는 말. 잔칫집에는 같이 가지 못하겠다 언제나 경사스러운 자리에서 남의 결점을 들추어내어 남의 좋은 일을 그르치게 하는 사람을 두고 이르는 말. 잘 자랄 나무는 떡잎부터 안다[알아본다] 앞으로 훌륭하게 될 사람은 어려서부터 남다른 점이 있다는 말. 잘난 사람이 있어야 못난 사람이 있다 선과 악, 좋은 점과 나쁜 점 따위는 비교가 되어야 뚜렷하게 나타난다는 말. 잘되는 집은 가지에 수박이 달린다 잘되면 제 탓[복] 못되면 조상[남] 탓 무엇이든 잘되면 제 공으로 돌리고, 잘못되면 남의 탓으로 돌리는 인정 세태를 이르는 말. 잘못한 것 없이도 사과나무 사과나무의 사과(沙果)를 사과(謝過)에 빗대어 이르는 말로, 잘못 없이 애매하게 사죄하는 경우를 이르는 말. 잠결에 남의 다리 긁는다 1.자기를 위해 한 일이 뜻밖에 남을 위한 일이 되어 버렸다는 뜻. 2.얼떨결에 하는 일은 실수하기 쉽다는 뜻. 잠꾸러기 집은 잠꾸러기만 모인다 어떤 집단이든 비슷한 유형의 사람이 모이게 마련임을 이르는 말. 잠방이에 대님 치듯 군색한 일을 당하여 몹시 켕긴다는 뜻. 잠을 자야 꿈을 꾸지 어떤 결과(結果)를 얻으려면 먼저 그에 필요한 조건을 갖추어 놓아야 한다는 뜻. 잠자고 나서 문안하기 남의 집에 들면 마땅히 인사를 먼저 해야 도리인데 하룻밤 자고 나서야 문안을 드린다는 뜻으로, 순서에 맞지 않은 일 처리를 이르는 말. 영문도 모른 채 일을 하고 나서야 영문을 물어보는 어리석음을 이르는 말.  잠자고 난 누에 같다 먹성이 좋아 잘 먹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잠자는 범에게 코침 주기 ‘자는 벌집 건드린다’의 북한 속담.  잠자는 범의 수염을 다친다 ‘자는 벌집 건드린다’의 북한 속담. 잠자코 있는 것이 무식을 면한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무식이 드러나지 않으므로, 모르면 가만히 있는 것이 상책이라는 말. 잡은 꿩 놓아주고 나는 꿩 잡자 한다  잣눈도 모르고 조복(朝服) 마른다 기본적이거나 기초적인 것도 모르고 가장 어려운 일을 하고자 함을 빗대어 이르는 말. 장가가는 놈이 무엇 떼 놓고 간다 ‘장가들러 가는 놈이 불알 떼어 놓고 간다’의 북한 속담. 장가가 석 달 같으면 살림 못할 사람 없다 ‘시집가(서) 석 달 장가가(서) 석 달 같으면 살림 못할 사람 없다’의 북한 속담.  장가들러 가는 놈이 불알 떼어 놓고 간다 가장 중요한 것을 잊거나 잃어버렸을 때 하는 말. 장구를 쳐야 춤을 추지 어떤 일이든 곁에서 거들어 주는 사람이 있어야 잘할 수 있다는 뜻. 장기짝 맞듯 영락없이 꼭 들어맞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장꾼은 하나인데 풍각쟁이는 열둘이라 여러 사람이 적당한 구실을 붙여 한 사람으로부터 돈이나 물건 따위를 받아 갈 경우에 이르는 말. 정작 중요한 사람보다도 곁다리나 구경꾼이 더 많다는 말. 장나무에 낫 걸기[걸이] 큰 세력에 턱없이 쓸데없는 대항을 하여 헛수고만 한다는 말. 장난 끝에 살인난다 우습게 보고 한 일이 큰 사고를 일으킬 수도 있음을 이르는 말. 장난을 하는 것은 과부집 수코양이 과부집 수코양이가 장난하는 소리에 과부가 공연히 의심받는다는 뜻으로, 아무 근거도 없는 일을 떠들어 말썽거리가 되게 한다는 말.  장난이 아이 된다 장난으로 한 일이 아이를 배게까지 한다는 뜻으로, 별 뜻 없이 시작한 일이 엉뚱하고도 뚜렷한 결과를 가져오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장날이 맏아들보다 낫다 많은 것을 구할 수 있는 장날이 아들의 손을 빌어 무언가를 얻는 것보다 나음을 이르는 말. 장님 문고리 잡기 1.‘재주가 없는 사람이 어떤 일을 우연히 성취하는 경우’를 비유하여 이르는 말. 2.가까이 있는 것도 찾지 못하고 헤맴을 이르는 말.  장님 손 보듯 한다 친절한 맛이 없음을 이르는 말. 장님 잠자나 마나 무엇을 했는데도 겉으로는 도무지 표가 나지 않을 때 이르는 말. 장님 코끼리 구경하듯 장님 코끼리 말하듯 1.일부분만 가지고 그것이 전체인 것처럼 말함을 이르는 말. 2.어리석은 사람이 엄청나게 큰 것을 아는 체할 때 비웃는 투로 이르는 말. 장닭이 울어야 날이 새지 집안의 일 처리는 남편이 주관해서 하여야 제대로 됨을 이르는 말. 장 단 집에는 가도 말 단 집에는 가지 말라 장대로 하늘 재기 ‘되지도 않을 어리석은 일을 함’을 이르는 말. 장독보다 장맛이 좋다 겉모양은 보잘것없으나 내용은 매우 좋다는 말. 뚝배기보다 장맛이 좋다. 장돌뱅이 사촌 입을 잠시도 다물지 못하고 줄곧 지껄이는 사람을 이르는 말. 장마가 무서워 호박을 못 심겠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까. 장마 개구리 호박잎에 뛰어오르듯 귀엽지도 아니한 것이 깡똥하니 올라앉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장마당 돼지 복숭아 싫달 적 있을가 탐욕스러운 사람은 자기 손에 굴러 들어온 이익이나 뇌물 따위를 거절하지 아니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장마당에 수염 난 령감은 다 너의 할아버지더냐 ‘장거리에서 수염 난 건 모두 네 할아비냐’의 북한 속담.  장마당에 쌀자루는 있어도 글 자루는 없다 장사와 공부는 서로 관계가 없으므로 공부를 하려면 장 같은 곳은 드나들지 말아야 한다는 말. ≒장에 쌀자루 나지 글 자루 나나?. 당장 먹고살 수 있는 벌이를 하는 것이 공부를 하는 것보다 낫다는 말. ≒장에 쌀자루 나지 글 자루 나나?.  장마당의 조약돌 닳듯 =장바닥의 조약돌 닳듯. 장마 도깨비 여울 건너가는 소리 무엇을 원망하기는 하지만 입속에서만 웅얼거려 그 말소리가 분명하지 아니한 경우에 이르는 말. 이치에 닿지 아니한 말을 하는 경우에 비꼬는 말.  장마 뒤에 외 자라듯 좋은 기회나 환경을 만나 무럭무럭 잘 자라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장마 때 홍수 밀려오듯 무엇이 갑자기 불어나 밀려오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장마 만난 미장쟁이 때를 잘못 만나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없는 사람을 이르는 말.  장마에 떠내려가면서도 가물 징조라 한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앞일을 예견한다고 주제넘게 장담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비꼬는 말.  장마에 오이 굵듯[크듯] ‘장마 뒤에 외 자라듯’의 북한 속담. 장마 진 하늘 잔뜩 찌푸린 얼굴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장마철에 비구름 모여들듯 구름처럼 많이 모여드는 모양을 나타낸 말. 장미꽃에는 가시가 있다 사람이 겉으로 좋고 훌륭하여 보여도 남을 해롭게 할 수 있는 요소를 가지고 있어 상대편이 해를 입을 수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장미꽃이 곱다고 함부로 다치지 말라 아름다운 얼굴에 반하여 지각없이 행동하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말. 장바닥의 조약돌 닳듯 사람의 성미가 뺀질뺀질하고 바라진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장마당의 조약돌 닳듯. 장발에 치인 빈대 같다 몹시 납작하여 반반하다는 뜻. 장부의 한 말이 천금같이 무겁다 [사나이가 한 한마디 말은 천금보다 무겁다는 뜻으로] 한번 한 말은 꼭 실행해야 한다는 말. 장비더러 풀벌레를 그리라 한다 장사 나면 용마(龍馬) 나고 문장(文章) 나면 명필(名筆) 난다 무슨 일이나 잘 되어지면 좋은 기회가 저절로 생긴다는 말. 장사 웃덮기 (장사꾼이 손님을 끌기 위하여) 겉으로만 허울 좋게 꾸밈을 이르는 말. 장사 지내러 가는 놈이 시체 두고 간다 장사치의 손님 장사하는 사람은 찾아오는 손님 누구에게나 잘 대하는 법이라는 뜻으로, 비록 마음에는 없어도 겉으로는 누구에게나 잘 대접한다는 말.  장설간이 비었다 배가 고픔을 이르는 말. 장승이라도 걸리겠다 장승조차도 걷게 할 수 있다는 뜻으로, 세도가 아주 당당함을 이르는 말. 장승하고 말하는 것이 낫겠다 말을 듣는 사람이 말귀를 못 알아들어 답답한 경우에 이르는 말. 장옷 쓰고 엿 먹기 겉으로는 점잖고 얌전한 체하면서 남이 보지 않는 데서는 좋지 않은 행동을 하는 경우에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장작불과 계집은 쑤석거리면[들쑤시면] 탈난다 잘 타고 있는 장작불을 들쑤셔 놓으면 잘 타지 않듯이 가만히 있는 여자를 옆에서 들쑤시고 꾀면 바람이 나게 됨을 이르는 말. 장판방에서 자빠진다 [방심함을 경계(警戒)하는 말로] 안전한 조건 아래에서도 실패할 수 있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재갈 먹인 말 같다 말문이 막혀 아무 소리도 못한다는 말. 재강아지 눈 감은 듯하다 ‘무슨 일이나 사물이 요행히도 발각되지 않고 감쪽같이 지나감’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재관 풍류냐 =이것은 재관 풍류냐. 재는 넘을수록 험하고[높고] 내는 건널수록 깊다 ‘어떤 일이 갈수록 더 어려워짐’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재떨이와 부자는 모일수록 더럽다 사람은 재물이 많이 모이면 모일수록 재물에 대한 욕심이 더욱더 생기고 마음씨가 인색해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재롱받이 아들 손자쯤으로 보듯 누구를 몹시 사랑하고 귀여워함을 이르는 말. 재미난 골에 범 난다 1.우선 좋은 일에만 골몰하면 결과가 나쁘게 마련이라는 말. 2.남몰래 나쁜 짓을 계속하면 마침내는 변을 당하게 마련이라는 말. 재산을 잃고 쌀알을 줍는다 많은 재산을 잃고 적은 수입으로 겨우 생계를 이어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재산이 늘수록 욕심도 는다 재물에 대한 욕심은 재물이 많아질수록 더함을 이르는 말. 재수가 불 일 듯한다 재수가 썩 좋아서 일이 뜻대로 잘되어 간다는 뜻. 재수가 옴 붙었다[붙다] 재수가 지독하게 없다는 말. 재수 없는 놈은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 하는 일마다 운수가 없다는 말. 재수 없는 포수는 곰을 잡아도 웅담이 없다 재앙은 눈섭에서 떨어진다 재앙은 피할 수 없게 갑자기 다급하게 닥친다는 말.  재앙을 물리치면 무값이요 물러서면 천 냥이라 재앙을 물리치겠다고 억지로 맞서서 희생을 내는 것보다 슬그머니 피하여 물러서는 것이 더 나음을 이르는 말.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되놈[주인/호인]이 받는다 정작 수고한 사람은 대가를 못 받고, 엉뚱한 사람이 가로챈다는 뜻. 재하자는 유구무언(이라) 아랫사람은 웃어른에 대하여 할 말도 제대로 못하고 지냄을 이르는 말. 잿독에 말뚝 박기 힘이 없는 사람을 만만히 보아 함부로 부리고 학대함을 이르는 말. ≒잿골에 말뚝 박기. 힘 안 들이고 할 수 있는 쉬운 일을 이르는 말. ≒잿골에 말뚝 박기. 잿불 화로의 불씨가 끊어져서는 집안이 망한다 예전에 불씨를 보전하는 것이 살림살이의 중요한 부분이었던 데서, 불씨를 꺼뜨리는 소홀한 살림살이로는 한집안을 잘 꾸려 나갈 수 없다는 말. 쟁기질 못하는 놈이 소 탓한다 할 줄 모르는 저를 탓하지 아니하고 도구를 탓한다는 뜻으로, 자기의 능력 부족을 남의 잘못으로 돌리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쟁반 안의 녹두알 전체에 비하여 보잘것없는 존재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쟁반이 광주리같이 길고 깊다고 우긴다 사실이 뚜렷한데도 불구하고 그렇지 아니하다고 우기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저 건너 빈터에서 잘살던 자랑하면 무슨 소용 있나 저 긷지 않는다고 우물에 똥 눌까 저녁 굶은 시어미 상(相) 1.‘매우 못마땅하여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있는 모양’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2.음산한 날씨를 이르는 말. 저녁 먹을 것은 없어도 도둑 맞을 것은 있다 저는 잘난 백정으로 알고 남은 헌 정승으로 안다 저 먹자니 싫고, 개 주자니 아깝다 저모립 쓰고 물구나무를 서도 제멋이다 제가 좋아서 하는 짓이니, 남이 간섭할 것이 아니라는 뜻. 저물도록 아이 보아 주고 욕먹는다 남의 일을 실컷 해 주고도 칭찬은 고사하고 욕을 먹게 되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저승 길과 변소 길은 대신 못 간다  저승길이 대문 밖이다 죽는 일이 나와는 아무 관계없이 먼 곳의 일 같지만 실상은 아주 가깝다는 말. 저승에 가야만 곱사등이 고친다 고칠 수 없는 곱사등이를 죽은 뒤에야 쭉 펴서 반듯이 눕힌다는 데서, 한번 틀어진 일이 고쳐질 가망이 전혀 없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저승에(서) 부처님 기다리듯 저승에는 부처가 갈 리가 없는데도 기다린다는 뜻으로, 오지도 아니할 사람을 혹시나 하고 무작정 기다리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저울눈에 파리 보잘것없는 파리라도 저울눈에 앉으면 금 사이가 왔다 갔다 하게 된다는 뜻으로, 비록 사소한 것이지만 무엇을 가늠하고 헤아리는 데 큰 영향을 미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큰 저울에 파리가 앉으나마나 별 영향을 미치지 아니한다는 뜻으로, 무슨 일에서 별로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보잘것없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저 중 잘 뛴다니까 장삼 벗어 걸머지고 뛴다 적게 먹으면 약주요 많이 먹으면 망주다 모든 일은 정도에 맞게 하여야 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적덕은 백 년이요 앙해는 금년이라 좋은 일을 하며 덕을 쌓으면 오래도록 그 공이 남지만 재앙과 손해는 얼마 가지 아니한다는 뜻으로, 불행하다고 하여 낙심하지 말고 덕을 쌓고 좋은 일을 하라는 말. 적삼 벗고 은가락지 낀다 격에 맞지 않는 짓을 하는 경우를 비유하여 이르는 말. 적적할 때는 내 볼기짝 친다 할 일이 없어 심심할 때에는 쓸데없는 일이라도 아무것이나 하게 됨을 이르는 말. 전년 추석에 먹은 오려 송편이 되올라온다 ‘작년 팔월[추석]에 먹었던 오례송편이 나온다’의 북한 속담. 전답을 사도 물소리 들리는 골에 것은 안 산다 논밭을 살 때 물의 피해를 받을 위험이 있는 곳은 사지 말아야 한다는 말. 전당 잡은 촛대(같고 꾸어 온 보릿자루 같다) ‘말없이 한구석에 덤덤하니 앉아 있기만 하는 사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전선대에 낫걸이 ‘참나무에 곁낫 걸이’의 북한 속담. 전정이 구만 리 같다 나이가 아직 젊어서 희망을 걸 만한 장래가 있다는 말. 절간에 가서도 눈치가 있어야 백하 젓국 얻어먹는다 새우젓 같은 것은 먹지 못하도록 금하고 있는 절간에 가서도 눈치만 빠르면 그 젓국을 얻어먹을 수 있다는 뜻으로, 눈치가 빠르고 세상 물정이 환하면 못 구하는 것이 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절간에 간 색시 ‘절에 간 색시?’의 북한 속담.? ‘절에 간 색시?’의 북한 속담.  절간에 간 색시 재에는 마음이 없고 재밥에만 눈이 간다 =절에 간 색시 재에는 뜻[마음]이 없고 재밥에만 눈이 간다.  절간의 부처님 아무 일도 하지 아니하고 우두커니 앉아 있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절간이 망하려면 백하젓 장사가 성한다 ‘절이 망하려니까 새우젓 장수가 들어온다’의 북한 속담. 절굿공이가 순경(巡更) 돌면 집안이 망한다 결혼한 여자가 집안 살림은 아니 하고 쏘다니기만 하면 그 집안 꼴이 안된다는 말. 절로 죽은 고목(枯木)에 꽃 피거든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어서 기약할 수 없음을 이르는 말. 절름발이 원행 잘 걷지도 못하는 자가 멀리 가려고 한다는 뜻으로, 무능한 자가 분수에 넘치는 짓을 하려는 경우를 비난하는 말. 절에 가면 중노릇 하고 싶다 줏대나 지조가 없이 남이 하는 일을 보면 덮어놓고 따르려고 한다는 말. 절에 가서 젓국 달라 한다 1.있을 수 없는 데 가서 당치 않게 찾음을 이르는 말. 2.엉뚱한 짓을 한다는 말. 절에 간 색시 ‘남이 시키는 대로만 따라 하는 사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절이 망하려니까 새우젓 장수가 들어온다 젊은 과부 한숨 쉬듯 시름이 가득하여 한숨을 많이 쉴 때 이르는 말. 젊은이 망령은 몽둥이로 고친다 젊은 사람의 망령됨은 철이 덜 든 까닭이니 매로써 정신을 차리게 해야 한다는 말. 젊은이 망령은 홍두깨로 고치고 늙은이 망령은 곰국으로 고친다 점잖은 개가 똥을 먹는다  점잖은 개가 부뚜막에 오른다[오줌 싼다] ‘겉으로는 점잖은 체하는 사람이 옳지 못한 짓을 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접시 밥도 담을 탓이다 무슨 일이나 머리를 써서 솜씨 있게 하기 나름이라는 뜻. 젓가락으로 김칫국을 집어 먹을 놈 어리석고 용렬하여 어이없는 짓을 하는 사람에게 하는 말. 젓갈 가게에 중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이 나타남을 이르는 말. 정 각각 흉 각각 정이 쏠리더라도 흉은 남아 있다는 말. 정강이가 맏아들보다 낫다 =발이 의붓자식[맏아들/효도 자식]보다 낫다. 정들면 그만이다 =정들면 미운 사람도 고와 보인다.  정들면 다다 =정들면 미운 사람도 고와 보인다.  정들면 미운 사람도 고와 보인다 사람이 밉게 또는 예쁘게 보이는 것은 외모에 따른 것이 아니라 사귀어 온 정에 의한다는 말. ≒정들면 그만이다 정들면 다다.  정들었다고 정말 말라 아무리 가깝고 다정한 사이라도 서로에게 해서는 안 될 말은 절대로 나누지 말아야 한다는 말.  정들자 이별 만나서 얼마 되지 아니하여 곧 헤어진다는 말. 정성이 지극하면 돌 위에 풀이 난다 정수리에 부은 물이 발뒤꿈치까지 흐른다 윗사람이 한 일은 무슨 일이나 아랫사람에게 영향을 준다는 말. 정승 말[개/당나귀] 죽은 데는 (문상을) 가도 정승 죽은 데는 (문상을) 안 간다 권력을 가진 자 앞에서는 아첨을 하다가도 그가 죽으면 돌아다보지도 않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정승 판서 사귀지 말고 제 입이나 잘 닦아라 윗사람에게 빌붙어 한자리하려 들지 말고 제 앞이나 잘 가리라는 말. 정신없는 늙은이[노친네] 죽은 딸네 집에 간다 딴생각을 하고 다니다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엉뚱한 곳에 가는 경우를 놀림조로 이르는 말. 정신은 꽁무니에 차고 다닌다 정신없이 엉뚱한 짓을 잘하거나, 건망증이 심하여 할 일을 잘 잊어버린다는 말. 정에서 노염이 난다 [정이 깊이 들면 좋아하는 마음이 크기 때문에 노염이 잘 난다는 뜻으로] 정다운 사이일수록 예의를 지켜야 한다는 말. 정이월에 대독 터진다 음력 정월과 이월쯤이 되면 으레 날씨가 풀린 것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이따금씩 더 심한 추위가 닥치는 날이 있음을 이르는 말. 젖 떨어진 강아지 같다 몹시 보챈다는 말. 젖 먹던 힘이 다 든다 몹시 힘이 든다는 말. 젖먹이 두고 가는 년은 자국마다 피가 맺힌다 어린 자식을 떼어 놓고 가는 어머니의 심정은 걸음걸음에 피가 맺힐 것같이 침통하다는 말. 제가 기른 개에게 발꿈치 물린다 은혜를 베풀어 준 사람에게서 도리어 해를 입게 됨을 이르는 말. 제가 춤추고 싶어서 동서를 권한다 제 꾀에 (제가) 넘어간다 남을 속이려다 자기가 속는다는 말. 제 논에 물 대기 자기에게만 유익하도록 일을 함을 이름. 제대로 되기는 제사가 글렀다 일이 제대로 되어 가기는 아예 글렀다는 말. 제 도끼에 제 발등 찍힌다 자기가 한 일이 도리어 자기에게 해가 되는 경우를 이르는 말. 제 돈 칠푼만 알고 남의 돈 열 네 닢은 모른다 제때의 한 수는 때늦은 백 수 보다 낫다 제물에 녹장이 난다 자기 스스로 맥을 잃거나 지쳐서 다시는 회복할 수 없게 됨을 이르는 말. ≒제물에 물러 떨어진다.  제물에 물러 떨어진다 =제물에 녹장이 난다.  제물에 배를 잃어버리다[잃어버렸다] 되어 가는 상황에 휩쓸려 가장 긴요한 것을 빠뜨렸음을 이르는 말. 제 발등엣 불 먼저 끄고 아비 발등엣 불을 끈다 제 버릇 개 줄까 나쁜 버릇은 고치기 어렵다는 말. 제 보금자리 사랑할 줄 모르는 새 없다  제 부모를 위하려면 남의 부모를 위해야 한다 제비는 작아도 강남(을) 간다 비록 모양은 작아도 제 할 일은 다 한다는 말. 제사 덕에 이밥이라 무슨 일을 빙자하여 이익을 얻는다는 말. 제 살이 아프면 남의 살도 아픈 줄 알아라 제 앞에 안 떨어지는 불은 뜨거운 줄 모른다 제 옷 벗어 남의 발에 감발 쳐 준다 제 절 부처는 제가 위하랬다고 제정신 어데로 가고 개혼이 씌운다 정신없이 돌아감을 비꼬는 말. 제주 말 갈기 외로 질지 바로 질지   제집 개에게 발뒤꿈치 물린 셈 =제가 기른 개에게 발뒤꿈치를 물린다. 제집 식개는 모르면서 남의 집 식개 알가 제가 잘 알 수 있는 저의 집의 식기 뚜껑도 모르면서 남의 집의 식기 뚜껑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하는 뜻으로, 자기가 맡은 일도 잘 몰라 바빠하는 형편에 남의 일을 모르는 것은 오히려 당연하다는 말. ≒제집 제사는 모르면서 남의 집 제사는 알가.  제집 어른 섬기면 남의 어른도 섬긴다 제집에서 잘하는 이는 밖에 나가서도 잘한다는 말. 제집 연기는 남의 집 연기보다 낫다 대수롭지 아니한 것이라도 정든 것이 좋다는 말. 제집 제사는 모르면서 남의 집 제사는 알가 =제집 식개는 모르면서 남의 집 식개 알가.  제집부터 꾸리고야 나라일도 본다 나랏일은 어떻게 되든 자기 집 일부터 먼저 보는 이기적인 관점이나 행동을 이르는 말. 제 집안부터 잘 꾸려야 마음 놓고 제게 맡겨진 일을 훌륭히 수행할 수 있다는 말. 제터 방죽에 줄남생이 늘어앉듯 많은 사람이 열을 지어 늘어앉은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제 칼도 남의 칼집에 들면 찾기 어렵다 제 코가 석 자 코가 쑥 빠져나올 정도로 몹시 어려운 처지에 있음을 이르는 말. 제 코도 못 씻는 게 남의 부뚜막 걱정한다 제힘 모르고 강가 씨름 갈까 자기의 능력을 스스로 헤아려 짐작하고 어떤 일을 해야 한다는 말. 제 흉 열 가진 놈이 남의 흉 한 가지를 본다 조개 속의 게 조개껍데기 속에 사는 게라는 뜻으로, 아주 연약하고 활동력이 없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조개와 황새의 싸움 남에게만 이익을 주는 어리석은 싸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황새는 조개의 살을 물고 조개는 황새의 부리를 물어 서로 어쩌지 못하고 있을 때에 지나가는 어부가 조개와 황새를 다 얻어 가졌다는 고사에서 유래한다. 조개껍데기는 녹슬지 않는다 천성이 착하고 어진 사람은 다른 사람의 나쁜 습관에 물들지 않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조개껍질은 녹슬지 않는다. 조개젓 단지에 괭이 발 드나들듯 한번 맛을 들여 잊지 못하고 자주 드나듦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조그만 실뱀이 온 바닷물을 흐린다 못된 사람 하나가 온 집안이나 사회 전체를 망친다는 말. 조는 집에 자는 며느리 온다 게으른 집에는 게으른 사람만 온다는 말. 조록싸리 피거든 남의 집도 가지 마라 조록싸리 꽃이 피는 초여름은 궁한 때이니 남의 집을 찾아가면 폐가 된다는 말. 조리에 옻칠한다 1.쓸데없는 일에 괜히 재물을 써 없앰을 이르는 말. 2.격에 맞지 않게 꾸며서 도리어 흉하다는 말. 조막손이 달걀 도둑질한다 자기의 능력 이상의 일을 하려고 할 때 이르는 말. 조밥에도 큰 덩이 작은 덩이가 있다 어디에나 크고 작은 것의 구별이 있다는 말. 조상에는 정신이 없고 팥죽에만 정신이 간다 조석 싸 가지고 말리러 다닌다 조약돌을 피하니까 수마석을 만난다 어려운 일을 가까스로 피하고 나니 더욱 어려운 일을 만나게 되었다는 말. 조약돌이 바위로 될 수 없다 ? 본래 바탕이 작은 것은 아무리 애써도 큰 것이 될 수 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조정엔 막여작(莫如爵)이요 향당엔 막여치(莫如齒)라 조정에서는 벼슬의 등급을 중히 여기고, 고장에서는 나이의 차례를 중히 여긴다는 말. 조카 생각하는 것만큼 아재비[숙부] 생각도 한다 남을 생각하여 주어야 남도 나를 생각하여 준다는 말. 족제비는 꼬리 보고 잡는다 무슨 일이나 다 목적이 있고 노리는 바가 있기 때문에 한다는 말. 족제비도 낯짝이 있다 아무 염치도 체면도 없는 사람을 나무라는 말. 존대하고 뺨 맞지 않는다 남에게 공손하면 욕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말. 좀꾀에 매꾸러기 좀스러운 꾀를 쓰다가는 매만 맞게 된다는 말. 좁쌀만큼 아끼다가 담돌만큼 해본다 좁쌀 한 섬 두고 흉년 들기를 기다린다 변변치 못한 것을 가지고 큰 효과를 노린다는 말. 좁은 데 장모(丈母) 낀다 차마 가라고는 할 수 없으나 가 주었으면 하는 사람이 가지 아니하고 있음을 이르는 말. 괄시하기 어려운 나그네가 끼어들어 생활이 부자연스러워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좁은 입으로 말하고 넓은 치맛자락으로 못 막는다 말은 하기 전에 미리 생각하여서 하라는 말. 좁은 틈에 장목(長木) 낀다 어울리지 아니하는 곳에 어색하고 거추장스럽게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종갓집 며느리 틀이 있다 사람이 덕성스럽고 인복이 있어 보인다는 말. 종개 한 마리가 온 강물[대동강 물]을 흐린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웅덩이를 흐려 놓는다’의 북한 속담. 종과 상전은 한 솥의 밥이나 먹지 종달새 깨 그루에 앉아 통천하를 보는 체한다 하찮은 자리에 올라선 자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우쭐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한강에 가서] 눈 흘긴다 욕을 당한 데서는 감히 말을 못하고 엉뚱한 데 가서 화풀이를 한다는 말. 종야 통곡에 부지(不知) 하(何) 마누라 상사 =밤새도록 통곡해도 어느 마누라 초상인지 모른다. 종의 자식을 귀애하면 생원님 나룻에 꼬꼬마를 단다 종이도 네 귀를 들어야 바르다 무슨 일이든 의견을 모으고 힘을 합해야 일하기가 쉽다는 말. 종이 종을 부리면 식칼로 형문(刑問)을 친다 남에게 눌려 지내던 사람이 지난 일을 생각하지 않고 아랫사람에게 더 모질게 군다는 말. 종잇장도 네 귀를 들어야 바르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 종잇장도 맞들면 낫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 좋은 농사꾼에게 나쁜 땅이 없다  좋은 일에는 남이요 궂은일에는 일가다 좋은 일이 있을 때는 모른 체하다가 궂은일을 당하면 친척을 찾아 다닌다는 말. 죄는 지은 데로 가고 덕은 닦은 데로 간다 죄지은 사람은 벌을 받고, 덕을 닦은 사람은 복을 받게 된다는 말. 죄는 천도깨비가 짓고 벼락은 고목이 맞는다 죄악은 전생 것이 더 무섭다 전생에 지은 죄를 이승에서 몇 배 더 심하게 받는다는 말. 죄지은 놈 옆에 있다가 벼락 맞는다 나쁜 사람과 사귀면 자기도 누명을 쓴다는 말. 주걱이 삽 구실까지 하겠단다 사람이 자기 직분에 맞지 아니하는 엉뚱한 짓을 하려 함을 비꼬는 말. 주금에 누룩 장사 ‘소견이 없고 사리에 어두워 소용없는 짓을 하는 사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주러 와도 미운 놈 있고 받으러 와도 고운 놈 있다 사람을 좋아하고 미워하는 감정이란 이치로 따져서는 알 수 없다는 뜻. 주린 고양이가 쥐를 만났다 놓칠 수 없는 좋은 기회가 닥쳤다는 말. 주막 년네 오줌 종작 무엇에 빗대어 시간 종작을 잡음을 이르는 말. 주머니에 들어간 송곳이라 선하고 악한 일은 숨겨지지 않고 자연히 드러난다는 말. 주먹구구에 박 터진다 계획성 없이 그저 대강 맞추어 하다가는 나중에 큰 봉변을 당하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주먹 맞은 감투(라) 아주 쭈그러져서 다시는 어찌 할 도리가 없이 된 상황을 두고 이르는 말. 주먹은 가깝고 법은 멀다 분한 일이 있을 때, 법에 호소하는 것은 나중 문제요, 당장에 주먹부터 먼저 들이치게 되는 경우를 이르는 말. 주먹이 운다[울다] 분한 일이 있어 치거나 때리고 싶지만 참는다는 말. 주사위는 던져졌다 일은 이미 시작되었다. 일이 이에 이르렀으니 결행(決行)하는 길밖에 없다. [옛날 로마의 카이사르가 자신의 정적(政敵)인 폼페이우스를 치기 위하여 로마로 향할 때, 루비콘 강을 건너면서 하였다는 말에서 유래함.] 주색잡기에 패가망신 안 하는 놈 없다 술과 계집질과 노름에 빠지면 누구나 집안을 망치고 신세를 망치게 된다는 뜻으로, 그런 좋지 못한 행실을 삼가라고 경고하는 말. 주인 모를[모르는] 공사 없다 주장하는 사람이 알지 못하는 일은 되지 않는다는 말. 주인 보탤 나그네 없다 나그네는 아무래도 주인에게 손해를 끼치게 된다는 말. 주인집 장 떨어지자 나그네 국 마단다 일이 아주 공교롭게 잘 맞아떨어지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주인 장 떨어지자 나그네 국 맛 없다 한다. 주정뱅이는 상감님 망건 살 돈도 술 사 먹는다 ?술에 미친 자는 감히 건드릴 수 없는 돈조차도 빼내어 술을 사 먹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죽기는 섧지 않으나 늙기가 섧다 죽마고우도 말 한 마디에 갈라진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말을 함부로 하면 서로의 사이가 벌어지게 된다는 뜻으로, 비록 한 마디의 말일지라도 조심하여야 한다는 말. 죽사발이 웃음이요 밥사발이 눈물이라 먹을 것이 있어도 근심과 걱정 속에 지내는 것보다 가난하게 살더라도 걱정 없이 사는 편이 낫다는 말. 죽을 먹으며 가난하게 사는 집안은 화기애애하나 돈 많은 집안은 불화가 그치지 아니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죽쑤어 개 바라지한다 애써 해 놓은 일이 남에게만 이로운 결과가 되었다는 말. 죽어 석 잔 술이 살아 한 잔 술만 못하다 죽은 뒤에 아무리 정성을 들여도 살아 있을 때 조금 생각한 것만 못하다는 말. 죽은 나무에 꽃이 핀다 보잘것없던 집안이 영화로운 일을 당하게 됨을 이르는 말. 죽은 자식 나이 세기 이미 그릇된 일을 자꾸 생각해 보아야 소용없다는 말. 죽은 정승이 산 개만 못하다 1.한번 죽으면 권력도 금력도 소용없다는 말. 2.아무리 어렵게 살더라도 죽는 것보다 낫다는 말. 죽을병에도 살[쓸] 약이 있다 어떠한 곤경에서도 희망은 있는 것이니 낙심하지 말라는 말. ≒죽을 약 곁에 살 약이 있다. 앓는 사람에게 낙심하지 말라고 하는 말. 죽을 수가 닥치면 살 수가 생긴다  죽을죄에도 할 말이 있다 제 잘못을 인정하지 아니하고 구실과 변명을 늘어놓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죽음에 들어 로소가 없다 늙은이나 젊은이나 죽는 것은 매한가지라는 말.  죽음에는 편작(扁鵲)도 할 수 없다 천하의 명의라도 죽는 사람은 어찌할 수 없다는 뜻으로, 죽음에 대하여 사람이 무력함을 이르는 말. 죽음은 급살이 제일이라 죽음을 당할 바에는 질질 끄는 것보다 빨리 죽는 것이 고통이 적어 좋다는 말. 죽이 끓는지 밥이 끓는지 모른다 무엇이 어떻게 되는지 도무지 모른다는 말. 죽이 풀려도 솥 안에 있다 줄밥에 매로구나 ‘재물을 탐하다가 남에게 이용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중년 상처는 대들보가 휜다 어린 자녀를 많이 남겨 놓고 아내가 죽게 되면 집안 살림이 엉망이 된다는 말. 중다버지는 댕기치레나 하지[한다] 자기의 모자라는 것을 다른 것으로 억지로 채우려 한다는 말. 중다버지라면 댕기라도 할 수 있겠는데, 그러지 못할 만큼 머리가 짧아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할 정도로 형편이 매우 난처한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중 도망은 절에(나) 가 찾지 행방이 감감하여 찾기 어려울 때에 쓰는 말. 중매는 잘하면 술이 석 잔이고 못하면 뺨이 세 대라 중매는 억지로나 함부로 권할 것이 아니라는 말. 중매 보고 기저귀 장만한다 중신아비 노전귀 뜯는다 중매인이 상대편을 설복하려고 찾아다니면서 성가시게 눌어붙는다는 말. 중의 상투 얻기가 매우 어려운 것을 이르는 말. 중이 고기 맛을 알면 절에 빈대가 안 남는다 무슨 좋은 일에 한번 혹하면 정신을 못 차리고 마구 덤빈다는 말. 중이 제 머리를 못 깎는다 아무리 긴한 일이라도 남의 손을 빌려야만 이루어지는 일을 가리키는 말. 중(이) 절 보기 싫으면 떠나야지 어떤 곳이나 대상이 싫으면 싫은 그 사람이 떠나야 한다는 말. 쥐 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 쥐고 펼 줄을 모른다 1.돈을 모으기만 하고 쓸 줄을 모른다는 말. 2.풀쳐서 생각할 줄을 모른다는 말. 쥐면 꺼질까 불면 날까 매우 소중하게 여긴다는 뜻. 쥐구멍에도 볕 들 날 있다 몹시 고생하는 사람도 좋은 때를 만나 운(運)이 트일 날이 있다는 말. 쥐구멍에 홍살문 세우겠다 가당찮은 일을 주책없이 한다는 말.  쥐 소금 나르듯[녹이듯] 조금씩 조금씩 줄어서 없어진다는 말. 증한 에미네 아이 핑계 하듯 이러저러한 핑계를 대고 꾀만 살살 피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증한 에미네[녀편네/일군] 밭고랑 세듯 게으른 사람이 일은 하지 아니하고 일이 언제 끝나겠는가 하고 앞으로 남은 일만 자꾸 가늠해 보고 있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지각이 나자 망령 [지각이 나자마자 망령이 들었다는 뜻으로] 이제 겨우 철이 들었나 보다 하던 터에, 다시 엉뚱한 짓을 하였을 때에 이르는 말. 지궐련 마는 당지로 인경을 싸려 한다 되지 않을 무리한 짓을 한다는 말. 애써서 흠집을 감추려 하나 아무리 해도 가리지 못한다는 말. 지나가는 달팽이도 밟아야 굼틀한다 가만히 있는 사람도 누가 건드려야 화를 내고 덤빔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지나가는 달팽이도 밟으면 꿈틀한다 가만히 있는 사람도 건드리면 덤벼든다는 말. 지나가는 불에 밥 익히기 일부러 어떤 사람을 위하여 한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그 사람에게 은혜가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우연한 기회를 잘 잡아 이용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지나는 불에 밥 익히기. 지난해 고인 눈물 올해에 떨어진다 어떤 좋지 못한 일의 여파가 뒤늦게 나타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지남석에 날바늘 틀림없이 제자리를 찾아와 멎거나 또는 한쪽만을 가리킴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지네 발에 신 신긴다 발 많은 지네 발에 신을 신기려면 힘이 드는 것처럼, 자식을 많이 둔 사람이 애를 쓴다는 말. 많은 일을 일일이 다 해결하느라고 애를 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지네도 굴 때가 있다 발이 많은 지네도 구를 때가 있다는 뜻으로, 조건이 다 갖추어지거나 충분한 능력을 갖추고 있는 사람이 예기치 않은 사고를 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지랄 발광 네굽질 미친 듯이 몹시 야단치는 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지랄만 빼놓고 세상의 온갖 재간 다 배워 두랬다 못된 지랄만 빼놓고는 세상에서 배울 수 있는 모든 재간을 다 배워 두면 어느 때나 쓸모가 있다는 말. 지랄병에 목침이 약 못된 짓을 하는 자에게는 엄격한 징벌을 가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지랄쟁이 녹두밭 버릊듯 하다 무엇을 마구잡이로 뒤범벅이 되게 헤집어 놓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지렁이도 밟으면[다치면/디디면] 꿈틀한다 아무리 보잘것없고 약한 사람이라도 너무 업신여김을 당하면 반항한다는 말. 지레짐작 매꾸러기 쓸데없는 데까지 미리 짐작하여 무슨 일을 하다가는 낭패를 보기가 일쑤라는 말. 지름길이 종종길이다 지름길은 가까운 길이기는 하나 결국 종종걸음으로 바삐 서둘러 가는 경우가 많은 길임을 이르는 말. 지린 것은 똥 아닌가 어떤 일을 조금 했다고 해서 하지 않았다고 발을 뺄 수는 없다는 말. 지붕 꼭대기로 소 끌어 올리는 격 되지도 아니할 일을 무리하게 억지로 하려고 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지붕의 호박도 못 따면서 하늘의 천도(天桃) 따겠단다 쉬운 일도 못하는 주제에 당치 아니한 어려운 일을 하려고 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지신에 붙이고 성주에 붙인다 가뜩이나 적은 것을 이리저리 벼르고 뜯기고 나면 남는 것이 없다는 말. 지어먹은 마음이 사흘을 못 간다 ‘한때의 어떠한 충격으로 일어난 마음은 오래가지 못함’을 이르는 말. (참고)작심삼일. 지어미 손 큰 것 아무 데도 소용이 없고 도리어 해로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지척의 원수가 천 리의 벗이라 지척이 천 리라 썩 가까운 곳에 살면서 오래 만나지 못하여 멀리 떨어져 사는 것과 같다는 뜻. 지키는 사람 열이 도둑 하나를 못 당한다 아무리 힘써 감시해도 남몰래 벌어지는 일은 막아 내기 어렵다는 말. 지팡이를 짚었지 어떤 한 곳에서 장차 크게 발전할 기초를 얻었다는 말. 진날 개 사귄 이 같다 1.‘귀찮고 더러운 일을 당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2.‘달갑지 않은 사람이 자꾸 따라다님’을 이르는 말. 진날 나막신 찾듯 ‘평소에는 돌아보지도 않다가 아쉬운 일이 생기면 찾는 경우’를 비유하여 이르는 말. 진눈 가지면 파리 못 사귈까? 진드기가 아주까리 흉보듯 진드기가 저와 모양이 비슷한 아주까리를 흉본다는 뜻으로, 보잘것없는 주제에 남을 흉보는 경우를 비꼬는 말.  진드기가 황소 불을 잘라 먹듯 진드기가 붙어서 황소의 불알을 해치듯이, 보잘것없는 존재가 저보다 엄청나게 큰 존재의 급소를 쳐서 이긴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진드기와 아주까리 맞부딪친 격 서로 엇비슷한 것끼리 맞붙어 옥신각신하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진 밭과 장가처는 써 먹을 때가 있다 장가들어 맞은 처는 아무리 못나고 마음에 맞지 아니하더라도 소박하거나 천대하면 안 된다는 말. 진상 가는 꿀 병[봉물짐] 얽듯 1.‘물건을 매우 단단히 동여맴’을 이르는 말. 2.‘얼굴이 몹시 얽은 것’을 놀리는 말. 진상 가는 송아지 배때기를 찼다 ‘쓸데없는 짓을 하여 봉변 당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진잎죽 먹고 잣죽 트림 한다 실상은 보잘것없으면서 아주 훌륭한 체하는 경우를 비유하여 이르는 말. 진창길에 흘린 좁쌀 줏기 찾아내거나 얻어내기가 몹시 힘든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질그릇 깨고 놋그릇 장만하다 대단찮은 것을 잃고 더 좋은 것을 얻게 되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질기 난 정 거지라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로 헐벗고 굶주린 진짜 거지라는 뜻으로,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기막힌 형편에 놓인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살림이 아주 형편없이 가난하게 된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질동이 깨뜨리고[깨고] 놋동이 얻었다 대단찮은 것을 잃고 그보다 더 나은 것을 가지게 되었다는 말. 상처한 뒤에 후처를 잘 얻었다는 말. 질러가는 길이 돌아가는[먼] 길이다 아무런 준비 없이 빨리 하려고 서둘기만 하다가 오히려 일을 그르치게 되거나 다시 하게 된다는 말. 질병에도 감홍로 겉모양은 보잘것없으나 속은 좋고 아름다운 것도 있다는 말. 질탕관에 두부장 끓듯 걱정이 있어 마음이 어지럽고 속이 부글부글 끓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짐승도 은혜를 안다 짐승도 은혜를 아는데 하물며 사람으로서 은혜를 모르고 저버릴 수 있겠느냐는 말.  짐승도 제 새끼는 사랑한다 짐승도 제 새끼를 사랑하는데 하물며 사람이야 오죽하겠느냐는 말. 짐작(이) 팔십 리 눈치로 하는 짐작을 이르는 말. 예견한 것이 대충 맞아떨어짐을 이르는 말. 집과 계집은 가꾸기 나름이다  집도 절도 없다 몸을 붙이거나 기댈 데가 아무 데도 없다는 말. 집안 귀신이 사람 잡아간다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해를 입었을 때 하는 말. 집안이 망하려면 맏며느리가 수염이 난다 일이 안 되려니까 별별 탈이 다 생긴다는 말. 집안이 망하면 집터 잡은 사람만 탓한다 잘못된 일은 남의 탓으로만 돌린다는 말. 집안이 화합하려면 베개 밑 송사는 듣지 않는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 들에 가도 샌다 집오리 떼 속에 섞인 물오리 자기 집단에서 떨어져 나와 홀로 딴 무리 속에 섞여 있는 처지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집장 십 년이면 호랑이도 안 먹는다 하는 일이 너무 모짊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징검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의 북한 속담.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 겉으로 떠드는 사람은 도리어 실속이 없다. 짖는 개는 여위고 먹는 개는 살찐다 사람도 늘 징징거리고 울상을 하고 지내거나 불평이 많아 앙앙하면 살이 내리고 이로울 것이 없다는 말. 짚불 꺼지듯 하다 1.잡았던 권세, 누렸던 호강이 아주 갑자기 몰락된다는 뜻. 2.아주 곱게 조용히 운명함을 이름.  짚불도 쬐다 나면 섭섭하다 하찮아서 쓸모가 없을 듯한 물건도 없어지면 서운하다는 말. 짚불에 무쇠가 녹는다 약한 일이라도 큰일을 해낼 수 있다는 말. 짚 속에 묻힌 바늘 종적을 찾기가 매우 어려운 물건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짚신감발에 사립[사립짝] 쓰고 간다 어울리지 아니하고 어색하여 보기가 흉한 경우를 이르는 말. 짚신도 제날이 좋다 자기와 같은 정도의 사람끼리 짝을 맺음이 좋다는 말. 짚신도 제짝이 있다 보잘것없는 사람도 배필은 있다는 말. 짚신을 거꾸로 끌다 반가운 사람을 맞으려고 허둥지둥 정신없이 뛰어나가다. 짚신을 뒤집어 신는다 ‘몹시 인색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짚신장이 헌 신 신는다 무엇이나 마땅히 있어야 할 곳에 그 물건이 없다는 말. 짜잖은 놈 짜게 먹고 맵잖은 놈 맵게 먹는다 짜지 않은 놈 짜게 먹고 맵지 않은 놈 맵게 먹는다 야무지지 못한 이가 짜게 먹고 싱거운 이가 맵게 먹는다 하여 아이들이 너무 짜고 맵게 먹는 것을 말리는 말. 짝 잃은 기러기 홀아비 홀어미의 외로움을 이름. 짝사랑에 외기러기 이성 사이에서, 상대편은 아무 생각도 없는데, 혼자서만 애모하여 마지않음을 이르는 말. 짧은 밤에 긴 노래 부르랴 바쁜 시간에 질질 끌 수 없다는 뜻으로, 일을 빨리 끝내야 함을 재촉하여 이르는 말.짧은 밤에 만경타령 부를가.  짧은 밤에 만경타령 부를가 짧은 밤에 긴 노래 부르랴.  짧은 세 치 혀가 사람 잡는다 ‘세 치 혀가 사람 잡는다[죽인다]’의 북한 속담. 쪽박 빌려주니 쌀 꿔 달란다  쪽박 쓰고 벼락을 피해[피하랴] 어림도 없는 방법으로 눈앞에 닥친 위험을 피하려 한다는 말. 쫓겨 가는 며느리 대답질하듯 남의 말을 받아 대꾸질을 잘하는 경우를 비꼬는 말.  쫓겨 가는 며느리 말이 많다 몰리거나 패한 처지에서 장황하게 변명을 늘어놓는 경우를 비꼬는 말.  쫓겨 가다가 경치 보랴 절박한 경우를 당하여 딴생각을 할 여유가 없음을 이르는 말. 쫓기는 개가 요란히 짖는다 힘이 약하여 쫓기는 자가 오히려 더 요란히 떠들어 댐을 비꼬는 말. 쭈그렁밤송이 삼 년 간다 몹시 약해 보이는 사람이 얼마 못 살 듯싶으면서도 목숨을 오래 이어 간다는 말. 쭈그리고 앉은 손님 사흘 만에 간다 생각보다 오래 견디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쭉정이가 머리 드는 법이고 어사는 가어사가 더 무섭다 실속이 없는 사람이나 가짜인 사람이 자기가 제일이라고 거들먹거리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쭉정이는 불 놓고 알맹이는 거둬들인다 버릴 것은 버리고 쓸 것은 들여놓는다는 말.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겠다 1.빈틈이 없이 야무지다. 2.몹시 인색하거나 모질다. 찔레꽃 이리에 비가 오면 개 턱에도 밥알이 붙게 된다 가뭄을 많이 타는 늦봄에 알맞게 비가 자주 오면 농사가 잘되어 풍년이 든다는 말. 찢어졌으니 언청이 어떤 명백한 결점이 있어서 어떻게 해도 좋게 볼 수는 없다는 말. 찢어진 잠뱅이 살을 가리지 못하고 그대로 드러내 놓은 찢어진 잠방이처럼 제구실을 하지 못하는 존재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찧는 방아도 손이 나들어야 한다 무슨 일에나 공을 들여야 그 일이 잘된다는 말.     차(車) 치고 포(包) 친다 1.‘일을 계획적으로 치밀하게 처리함’을 이르는 말. 2.‘분수에 넘치게 제멋대로 이리저리 휘두름’을 이르는 말. 차돌에 바람 들면 석돌보다 못하다 야무진 사람이 한번 타락하면 헤픈 사람보다 더 걷잡을 수 없다는 말. 차조 심으나 마나 차조를 심은 것은 조차떡이나 차조밥 또는 색다른 음식을 하여 먹자는 것인데 그런 음식은 구경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는 뜻으로, 애써 한 일이 아무런 보람도 없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찬물도 위아래가 있다 하찮은 것이라도 어른부터 차례로 대접하라는 말. 찬물 먹고 냉돌방에서 땀 낸다 찬물에 기름 돌듯 서로 화합하지 않고 따로 도는 사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찬밥 두고 잠 아니 온다 대수롭지 아니한 것에 미련을 두고 단념하지 못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자기가 좋아하는 일은 좀처럼 잊어버리지 못한다는 말. 무엇을 다 먹어 치우거나 또는 다 써 버리지 아니하고서는 견디지 못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찬밥(을) 먹기라 =찬밥으로 점심하기라.  찬밥에 국 적은 줄 모른다 살림이 가난하면 이것저것 없는 것이 많기 때문에 오히려 별로 불편하지도 아니하다는 말. 찬밥에 국 적은 줄만 안다 가난한 살림에는 없는 것이 당연한 것인 줄 모르고 무엇이 부족하다고 하여 마음을 씀을 이르는 말. 찬밥으로 점심하기라 있는 찬밥으로 점심을 차린다는 뜻으로, 일이 매우 쉽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찬밥(을) 먹기라. 참깨가 기니 짧으니 한다 변변하지 못하기로는 마찬가지면서 그래도 서로 따지거나 비교하는 못난 사람들의 짓을 탓하는 말. 참깨 들깨 노는데 아주까리 못 놀까 ‘어중이떠중이들이 다 활동하거나 참여하는 일에 어엿한 내가 어찌 못 끼겠는가’ 하는 뜻. 참나무에 곁낫 걸이 제 능력은 생각지도 않고 엄청나게 큰 세력에 부질없이 덤빔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참는 자에게 복이 있다 억울하고 분한 일이 있어도 꾹 참고 견디는 것이 상책이라는 말. 참대 밭에 쑥이 나도 참대같이 곧아진다 나쁜 사람도 좋은 사람들 속에 있으면 좋은 사람으로 변하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참빗으로 훑듯 남김없이 샅샅이 뒤져내는 모양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참고)이 잡듯이. 참을 인(忍) 자 셋이면 살인도 피한다 어떤 어려운 일이 있어도 꾹 참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말. 참새가 방앗간[올조 밭]을 그저 지나랴 1.욕심 많은 이가 잇속 있는 일을 보고 지나쳐 버리지 못한다는 말. 2.자기가 즐기는 것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다는 말. 참새가 작아도 알만 잘 깐다[낳는다] 비록 몸집은 작아도 제 할 일을 감당한다는 말. 참새가 죽어도 짹 한다 아무리 약한 사람이라도 괴롭힘을 당하면 반항하게 된다는 말. 참외를 버리고 호박을 먹는다 1.좋은 것을 버리고 나쁜 것을 가진다는 말. 2.착한 아내를 버리고 우둔한 첩을 좋아한다는 말. 찹쌀로 찰떡을 친대도 곧이듣지 않는다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하여도 곧이듣지 않는다’의 북한 속담. 찻집 출입 삼 년에 남의 얼굴 볼 줄만 안다 사람들이 모여 한담(閑談)하는 찻집 같은 곳에 다니는 것은 아무리 공력을 들였다 하더라도 남의 눈치 살피는 것밖에는 배우는 것이 없다는 말. 창공에 뜬 백구 손에 잡히지 아니하여서 실속 없고 소용없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창애에 치인 쥐 눈 ‘툭 불거져서 보기에 흉한 눈’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창피는 가난보다 오래 간다 창호지 한 날은 덥고 이불 꾸민 날은 춥다 창호지를 새로 바르면 바람구멍이 막혀 방이 즉시 더워지지만 새로 꾸민 이불은 자리가 잡힌 이불보다 따뜻하지 못함을 이르는 말. 채반이 용수가 되게 우긴다 ‘가당치도 않은 제 의견만 고집함’을 이르는 말. 채비 사흘에 용천관(龍川關) 다 지나가겠다 준비만 하다가 정작 할 일을 못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책력 보아 가며 밥 먹는다 [길일(吉日)을 골라 밥 먹는다는 뜻으로] ‘너무 가난하여 끼니를 자주 거름’을 이르는 말. 챈 발에[발이] 곱챈다 ‘어려움에 빠진 사람이 더욱 어렵게 됨’을 이르는 말. 처가살이 십 년이면 아이들도 외탁한다 처가살이를 오래 하면 아이들도 처가의 풍습을 닮게 된다는 말. 처가 재물 양가 재물은 쓸데없다 제 손으로 번 것이라야 제 재산이 된다는 말. 처갓집 말뚝에도 절하겠네 ‘지나친 애처가’를 빈정대어 이르는 말. 처남의 댁네 병 보듯 처남의 아내가 앓는 병에 대하여 가슴 아파하지 않고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는 뜻으로, 일을 진심으로 하지 않고 건성건성으로 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처녀가 늙어 가면 됫박 쪽박 안 남아난다 처녀가 애를 낳아도 할 말이 있다 잘못이나 실수에도 변명의 말이 꼭 있게 마련이라는 말. 처녑에 똥 쌓였다 해야 할 일이 쌓이고 쌓였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처삼촌 뫼에 벌초하듯 ‘일을 정성 들여 하지 않고 건성건성 함’을 이르는 말. 처서에 비가 오면 독의 곡식도 준다 처서 날에 비가 오면 흉년이 든다는 뜻. 처음에는 사람이 술을 마시다가 술이 술을 마시게 되고 나중에는 술이 사람을 마신다 술을 몸에 맞게 먹으라는 말. 처음이 나쁘면 끝도 나쁘다 시작이 좋아야 결과도 좋음을 이르는 말. 천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의 속은 모른다 사람의 마음은 변하기 쉬워서 대중할 수 없다는 말. 천 냥 빚도 말로 갚는다 [비록 큰 잘못이 있다 하더라도 순리로 말을 잘 하면 풀릴 수 있다는 뜻으로] ‘처세하는 데는 언변이 좋아야 함’을 이르는 말. 천둥에 개 뛰어들듯 ‘놀라서 어찌할 바를 모름’을 이르는 말. 천둥인지 지둥인지 모르겠다 뭐가 뭔지 도무지 분간할 수 없다. 천리마 꼬리에 쉬파리 따라가듯 자기는 하는 일 없이 남에게 기대어 살거나 싸다님을 이르는 말. 천산갑이 지은 죄를 구목(丘木)이 벼락 맞는다 죄 지은 사람이 아닌 곁의 다른 사람이 억울하게 벌을 받게 되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천생 버릇은 임을 봐도 못 고친다 타고난 버릇은 고치기 어렵다는 말. 천생 팔자가 눌은밥이라 [고작 좋아한다는 것이 누룽지라는 뜻으로] 가난을 면하지 못한다는 말. 천생연분에 보리 개떡 보리 개떡을 먹을망정 부부가 의좋게 삶을 이르는 말. 천석꾼에 천 가지 걱정 만석꾼에 만 가지 걱정 재산이 많으면 그만큼 걱정도 많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천왕의 지팡이라 [사천왕의 지팡이라는 뜻으로] ‘키가 썩 큰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 천자문도 못 읽고 인(印) 위조한다 어리석고 무식한 주제에 남을 속이려 함을 이르는 말. 천총 내고 파총(把摠) 낸다 한 입으로 이리 말하였다 저리 말하였다 하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철 그른 동남풍 ‘얼토당토않은 흰소리를 함’을 이르는 말. 철겨운 부채질 하다 봉변 안 당하는 놈 없다 경우에 어긋난 짓을 하면 으레 망신을 당한다는 말. 철나자 망령 난다 철이 들 만하자 망령이 들었다는 뜻으로, 지각없이 굴던 사람이 정신을 차려 일을 잘할 만하니까 이번에는 망령이 들어 일을 그르치게 되는 경우를 비난조로 이르는 말. ≒철들자 망령이라. 무슨 일이든 때를 놓치지 말고 제때에 힘쓰라는 말. ≒철들자 망령이라. 나이 먹은 사람이 몰상식한 짓을 하는 경우를 비난조로 이르는 말. ≒철들자 망령이라. 철들자 망령이라 =철나자 망령 난다. =철나자 망령 난다. =철나자 망령 난다. 철록어미냐 용귀돌이냐 담배도 잘 먹는다 늘 담배만 피우고 있는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 철모르는 자에게 삼강오륜 철도 나지 않은 어린 사람에게 삼강오륜을 요구하여 무엇 하겠느냐는 뜻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에게 힘들여 어떤 일을 해 보았자 보람이 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첫가을에는 손톱 발톱도 다 먹는다 가을에는 모든 것이 무르익어 먹는 것은 무엇이나 다 보약이 된다는 말. 첫날 온 새각시 같다 몹시 얌전하거나 수줍어하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첫나들이(를) 하다 ‘얼굴이 검정 따위로 더러워진 사람’을 조롱할 때 이르는 말. [지난날, 갓난아이가 첫나들이 할 때 잡귀를 물리치는 뜻으로 코끝에 숯칠을 한 풍속에서 온 말.] 첫날밤에 내소박을 맞다 사람이 지지리도 못나서 첫날밤에 아내의 구박을 받는다는 뜻으로, 철없고 부실하게 행동함을 이르는 말.  첫날밤에 속곳 벗어 메고 신방에 들어간다 매사에 격식을 따르지 아니하고 염치없는 짓을 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첫날 온 새각시 같다 몹시 얌전하거나 수줍어하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첫딸은 세간[살림] 밑천이다 ‘첫딸은 집안의 모든 일에 도움이 된다’는 뜻. 첫도가 세간 밑천이다 첫도 친 것을 섭섭히 여기지 말라고 위로하는 말. 첫맛에 가오릿국 못마땅하게 여기거나 부족한 사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초미에 가오리탕. 첫모 방정에 새 까먹는다 [윷판에서 맨 처음 모가 나오면 실속이 없다는 뜻으로] 1.‘상대편의 첫모쯤은 별것이 아니다.’고 농조(弄調)로 이르는 말. 2.일이 처음에 너무 잘되면 끝이 좋지 않다는 뜻. 첫사랑에 할퀴는 격 첫사랑을 하다가 배반을 당하고 봉변을 당하는 격이라는 뜻으로, 누구와 함께 처음으로 어떤 일을 재미있게 하다가 잘못되어 망신까지 당하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첫새벽에 문을 열면 오복이 들어온다 아침 일찍 일어나 문을 열면 온갖 복이 들어온다는 뜻으로, 게으름을 피우지 말고 일찍 일어나 부지런히 일하라는 말. 첫 사위가 오면 장모가 신을 거꾸로 신고 나간다 처가에서 첫 사위를 대단히 반갑게 맞이함을 이르는 말. 장모는 첫 사위를 매우 귀하게 여긴다는 말.  첫 서울 갔던 녀편네 지절대듯 처음으로 서울 올라갔던 여편네가 정신없이 주절대듯이 무엇이 무엇인지 분간하지도 못하면서 중얼대고 있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첫술에 배 부르랴 무슨 일이든지 처음부터 단번에 만족할 수는 없다는 말. 첫아기에 단산(斷産) ‘처음이자 마지막이 됨’을 이르는 말. 첫아들 낳기는 정승하기보다 어렵다 첫아들 낳기가 어렵다는 말. 첫해 권농(勸農) ‘어떤 일을 처음 함에는 서툴게 마련’이란 뜻. [시골 사람이 갑자기 권농(勸農)이 되어 사무 처리가 서툴렀다는 고사에서 유래함.] 청국장이 장이냐 거적문이 문이냐 못된 사람은 사람이라 할 수가 없고 좋지 아니한 물건은 물건이라 할 수 없다는 말. 청기와 장수 기술 같은 것을 자기만 알고 남에게 알리지 않아 그 이익을 독차지하려는 사람을 이르는 말. 청백리 똥구멍은 송곳 부리 같다 청백한 까닭으로 재물을 모으지 못하고 지극히 가난하다는 뜻. 청보에 개똥 ‘겉보기에는 그럴싸하나 속내는 매우 흉함’을 이르는 말. 청승은 늘어 가고 팔자는 오그라진다 나이 들어 살림이 구차하여지면 궁상을 떨게 되며 그렇게 되면 좋은 날은 다 산 셈이라는 말. 청천백일은 소경이라도 밝게 안다 분명한 사실은 누구라도 알 수 있다는 말. 청천에 구름 모이듯 ‘여기저기에서 한곳으로 많이 모여 옴’을 이르는 말. 청천 하늘에 날벼락 느닷없이 당하는 모질고 사나운 일. 청하니까 매 한 대 더 때린다 청하지 않은 잔치에 묻지 않은 대답 상관없는 일에 끼어들거나, 아무 말에나 아는 체하고 나서는 사람을 두고 이르는 말. 체곗돈 내서 장가들여 놓으니 동네 머슴 좋은 일 시킨다 애써 한 일이 결국엔 남에게만 좋은 일이 되었다는 뜻. 체면 차리다 굶어 죽는다 =체면이 사람 죽인다. 체면도 가죽 속에 있다 체면도 모르고 염치없이 구는 사람을 비꼬는 말.  체면이 사람 죽인다 지나치게 체면만 차리다가 결국 할 일도 못하고 먹을 것도 못 먹고 손해만 보게 되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체면 차리다 굶어 죽는다. 체 보고 옷 짓고 꼴 보고 이름 짓는다 모든 것은 제각기 격에 맞아야 한다는 말. 체수 보아 옷 짓는다 무엇이든 그 격에 맞도록 일을 계획하고 처리한다는 뜻. 쳇불관 쓰고 몽둥이 맞다 점잖은 사람이 망신을 당하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초가삼간 다 타도 빈대 죽는 것만 시원하다 비록 큰 손해를 보더라도 미운 놈만 없어진다면 속시원하다는 뜻. 초당 삼간이 다 타도 빈대 죽는 것만 시원하다. 초가집 대교(待敎)가 없고 물 건너 대교가 없고 얽은 대교가 없다 가난한 집에서 대교 벼슬이 나올 수 없고 물 건너 사는 세력 없는 집에서도 대교가 나올 수 없으며 낯이 얽어 못생긴 사람 가운데서도 대교가 나올 수 없다는 뜻으로, 어떤 자격으로서 돈 많고 세력 있고 외모가 번듯해야 함을 요건으로 내세울 때 이르는 말. 초고리는 작아도 꿩만 잡는다 작은 매라도 꿩만 잘 잡는다는 뜻으로, 몸집이 작은 사람이 제 할 일을 시원스럽게 잘 해냄을 이르는 말. 초년고생은 사서라도 한다 젊어서 고생을 하면 늙어서 낙이 올 것이니 참고 달게 여겨야 한다는 말. 초년 고생은 양식 지고 다니며 한다 초달에 매워 살다 매질이 무서워 마지못해 행동하는 경우를 이르는 말. 초당 삼간이 다 타도 빈대 죽는 것만 시원하다 ☞초가삼간 다 타도 빈대 죽는 것만 시원하다. (참고)초가삼간. 초라니 대상 물리듯 언젠가 치러야 할 일을 자꾸 미루는 모양을 비꼬아 이르는 말. 초라니 열은 보아도 능구렁이 하나는 못 본다 초례청에서 웃으면 첫딸을 낳는다 결혼식을 하는 날에 신부를 보고 쓸데없이 웃지 말라는 말. 초록은 동색(同色) [‘풀빛과 녹색은 같다’는 뜻에서] 1.이름은 달라도 성질이나 내용은 같다는 뜻. 2.어울려 같이 지내는 것들은 모두 같은 성격의 무리라는 뜻. 초립둥이 장님을 보았다 길에서 장님을 만나면 재수가 없다고 하는데 어린 장님을 만나면 더욱 그렇다는 점에서, 매우 불길한 경우를 이르는 말. 초미에 가오리탕 ‘애초부터 못마땅하거나 부족한 사물’에 대하여 이르는 말. 초사흘 달은 잰 며느리가[며느리라야] 본다 [웬만큼 재빠른 사람이 아니면 초저녁에 나왔다가 금세 지는 초승달을 볼 수 없다는 뜻으로] 미세(微細)한 사물의 변화는 혜민(慧敏)한 사람만 살필 수 있다는 말. 초상난 데 춤추기 ‘때와 장소를 분별하지 못하고 경망하게 행동함’을 빗대어 이르는 말. 초상집 개 같다 ‘의지할 데가 없이 굶주리며 이리저리 헤매어 다님’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초생달을 볼 사람이 야밤에 나와 기다린다 일이 다 지나간 뒤에서야 뒤늦게 서두르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초생에 안된 것이 그믐에 된다 처음에 안되던 일이 후에 가서 잘되는 경우도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초승달은 잰 며느리가 본다 초사흘 달은 잰 며느리가 본다. (참고)초사흘. 초시가 잦으면 급제가 난다 무엇이나 징조가 자주 보이면 결국에 가서는 그 일이 이루어지는 수가 많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초저녁 구들이 따뜻해야 새벽 구들이 따뜻하다 먼저 된 일이 잘되어야 나중 일도 잘 이루어진다는 말. 초하룻날 먹어 보면 열하룻날 또 간다 한 번 재미를 보면 자꾸 해 보려고 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초학 훈장의 똥은 개도 안 먹는다 훈장 곧 선생의 일이 매우 어렵고 힘듦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초헌에 채찍질 격에 맞지 않아 우습다는 뜻으로 이르는 말. 촉새가 황새를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진다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면 다리가 찢어진다. 촌놈 관청에 끌려온 것 같다 =촌닭 관청에 잡아다 놓은 것 같다. 촌놈 성이 김가 아니면 이가라 김씨와 이씨가 아주 흔하다는 말. 촌놈 엿가락 빼듯 어떤 일을 빨리 승낙하지 아니하고 미루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촌놈에 관장(官長) 들었다 촌사람 가운데서 훌륭한 사람이 나왔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촌놈은 똥배 부른 것만 친다 =촌놈은 밥그릇 높은 것만 친다. 촌놈은 밥그릇 높은 것만 친다 질보다 양만 많으면 만족해함을 비꼬는 말. ≒촌놈은 똥배 부른 것만 친다. 촌닭 관청에 간 것 같다 ‘경험이 없는 일을 당하여 어리둥절해하는 사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촌 닭이 관청 닭 눈 빼 먹는다 촌부자는 일부자 시골에서 부자라고 하는 것은 제힘으로 일해서 남보다 좀 넉넉히 먹고 사는 사람이라는 말. 총대(를) 메다 (위험 부담이 따르는 어떤 일에) 앞장을 서다. 총명이 둔필(鈍筆)만 못하다 무엇이든 틀림없이 하려면 낱낱이 적어 두어야 한다는 말. 총총들이 반 병이라 워낙 병이 작아서 가득 들어도 큰 병의 반밖에 되지 않는다는 뜻으로, 도량이 적은 사람을 이르는 말. 병에 무엇을 부을 때 급히 하면 반밖에 채우지 못한다는 뜻으로, 바삐 서둘면 손해를 본다는 말. 추녀 물은 항상 제자리에 떨어진다 [추녀 물이 항상 제자리에 떨어지듯이] 모든 일은 결국 법칙대로 되어 간다는 말. 추어주면 엉뎅이 나가는 줄 모른다 잘한다고 추어주니 남부끄러운 일이 생기는지 어떤지도 모르고 흥이 나서 미친 듯이 돌아다니는 모습을 비꼬는 말. 춘풍으로 남을 대하고 추풍으로 나를 대하라 남에게는 부드럽게 자신에게는 엄격하게 대하라는 말. 춤추고 싶은 둘째 동서 맏동서보고 춤추라 한다 =동서 춤추게. 춥기는 삼청 냉돌(三廳冷突)이라 [지난날 대궐 안의 금군 삼청에서는 불을 잘 때지 아니하여 항상 매우 추웠다는 데서] 방이 매우 차고 춥다는 말. 취객이 외나무다리 잘 건넌다 보기에 위태롭고 잘해 내지 못할 것 같으나 잘 버티어 나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취담 중에 진담이 있다 술에 취하여 횡설수설하는 말도 실은 제 진심을 드러낸 것임을 이르는 말. ≒취중에 진담이 나온다. 취중에 진담이 나온다 술에 취하여 함부로 하는 말 속에 솔직하고 진실한 말이 있다. 층암 상에 묵은 팥 심어 싹이 날가 도무지 실현될 가능성이 보이지 아니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층층시하에 줄방귀 참는 새댁처럼 몹시 참기 어려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치도하여 놓으니까 거지가 먼저 지나간다 ‘정성껏 애써 해 놓은 일을 달갑지 않은 사람이 먼저 즐겨서 속상함’을 이르는 말. 치마폭이 스물네 폭이다 ‘아무 상관도 없는 남의 일에 지나치게 참견함’을 비꼬아서 하는 말. 치수 맞춰 옷 마른다[짓는다] 무엇이든 격에 맞게 해야 한다는 말. 치장 차리다가 신주(神主) 개 물려 보낸다 무슨 일을 잘하려고 늑장을 부리다가 뜻밖의 낭패를 본다는 뜻. 치통 하는 모상이라 모습이 매우 초라하거나 보기에 매우 거북하고 곤란하여 보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친구는 옛 친구가 좋고, 옷은 새 옷이 좋다 물건은 새것이 좋지만 친구는 오래 사귄 친구일수록 정의가 두텁다는 말. 친사돈이 못된 형제보다 낫다 사돈은 어려운 사이이기는 하나 곤란한 경우에 도움을 받아야 할 때는 제구실을 못하는 형제보다 낫다는 말. 친 사람은 다리를 오그리고 자도 맞은 사람은 다리를 펴고 잔다 친손자는 걸리고 외손자는 업고 가면서 업힌 아이 갑갑해한다 빨리 걸으라 한다 =친손자는 걸리고 외손자는 업고 간다. =친손자는 걸리고 외손자는 업고 간다.  친손자는 걸리고 외손자는 업고 간다 딸에 대한 극진한 사랑으로, 친손자가 더 소중하면서도 외손자를 더 귀여워함을 이르는 말. ≒친손자는 걸리고 외손자는 업고 가면서 업힌 아이 갑갑해한다 빨리 걸으라 한다. 사랑에 있어 경중이 바뀌었다는 뜻으로, 행동에서 주객이 뒤바뀌었음을 이르는 말. ≒친손자는 걸리고 외손자는 업고 가면서 업힌 아이 갑갑해한다 빨리 걸으라 한다. 친정길은 참대 갈대 엇 벤 길을 신 벗어 들고도 새 날듯 간다 친정 일가 같다 남이지만 흉허물이 없이 가깝게 지낸다는 말. 친한 사이는 바늘 귀도 넓고, 친하지 않은 사이는 세계도 좁다 칠궁의 기아가 뒤덜미를 치고 대든다 가난한 사람들의 생활은 식량난이 심한 음력 칠월에 몹시 위협받는다는 말. 칠년대한 단비 온다 오랫동안 애타게 기다리던 것이 이루어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칠년대한에 대우(大雨) 기다리듯[바라듯] 매우 간절하게 기다리는 모습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칠년대한에 비 안 오는 날이 없었고 구 년 장마에 볕 안 드는 날이 없었다 세상의 모든 일이 궂은일만 계속되지는 아니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칠석날 까치 대가리 같다 칠월 칠석날 까마귀와 까치가 머리를 맞대어 오작교를 놓아서 견우와 직녀를 만나게 함으로써 머리털이 다 빠졌다는 전설에서, 머리털이 빠져 성긴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칠성판에서 뛰여 났다 죽을 처지에 놓여 있다가 살아났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칠십 로인 구대 독자 생남을 한 듯 이를 데 없이 몹시 기뻐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칠십에 능참봉을 하니 하루에 거둥이 열아홉 번씩이라 =여든에 능참봉을 하니 한 달에 거둥이 스물아홉 번이라. =여든에 능참봉을 하니 한 달에 거둥이 스물아홉 번이라.  칠십에 자식을 낳아서도 효도를 본다 늘그막에 자식을 보고서도 그 덕을 입게 됨을 이르는 말. 뒤늦게 된 것에 크게 효과를 보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칠월 더부살이가 주인 마누라 속곳 걱정한다 아무 관계 없는 일에 주제넘게 걱정한다는 말. 칠월 장마는 꾸어서 해도 한다 칠월에는 으레 장마가 있게 마련이라는 말. 칠팔월 수숫잎 성질이 약하여 칡덩굴 뻗을 적 같아서는 강계 위연 초산을 다 덮겠다 칡덩굴 뻗을 적 같아서는 강계 위연 초산을 다 덮겠다 한여름 칡덩굴이 뻗을 때에는 여러 지역을 다 덮을 것처럼 기세가 대단하다는 뜻으로, 한창 기세가 오를 때에는 굉장한 것 같지만 경과는 그다지 시원찮거나 보잘것없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침 먹은 지네 1.‘할 말을 못하고 있는 사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2.‘기운을 못 쓰고 기가 죽은 사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침 발린 말 듣기 좋게 꾸며서 하는 말. 침 뱉은 우물 다시 먹는다 다시는 안 볼 듯이 하여도 곧 아쉬워 찾게 됨을 이르는 말.   칼끝의 원쑤 칼을 들고 겨루어야 할 원수라는 뜻으로,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할 피맺힌 원수라는 말. 칼날 우에 선 목숨 목숨이 언제 끊어질지 모를 매우 위태로운 처지에 놓여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칼날 위에 서다 매우 위태로운 처지에 놓였음을 이르는 말. 칼날이 날카로워도 제 자루 못 깎는다 =식칼이 제 자루를 못 깎는다. =식칼이 제 자루를 못 깎는다. 칼날 잡은 놈이 칼자루 잡은 놈한테 당한다 칼날 쥔 놈이 자루 쥔 놈을 당할까 무슨 일이든지 주도권을 쥐어야 유리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칼로 물 베기 ‘(두 사람이) 곧잘 다투다가도 조금만 지나면 다시 풀리어 사이좋게 됨’을 이르는 말. [흔히, 부부 사이의 다툼을 두고 이름.] 칼부림을 즐기는 자는 칼[칼부림]에 죽는다 무력을 휘두르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그 행동에 해당하는 보복을 받게 된다는 말. 칼치가 제 꼬리 베 먹는다 ‘문어 제 다리 뜯어 먹는 것[격]’의 북한 속담. ‘문어 제 다리 뜯어 먹는 것[격]’의 북한 속담. 커도 한 그릇 작아도 한 그릇 코끼리는 생쥐가 제일 무섭다 보잘것없는 자그마한 존재를 두려워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코끼리 비스킷 하나 먹으나마나  코딱지 두면 살이 되랴 이미 그릇된 것을 어떻게든 되돌려 보려고 애씀을 비꼬는 말. 코 아래 진상이 제일이지 코에서 단내가 난다 ‘일에 시달려 몸과 마음이 몹시 고달픔’을 이르는 말. 코허리가 저리고 시다 몹시 슬프거나 감격하였을 때의 심경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콧구멍 같은 집에 밑구멍 같은 나그네 온다 가난하여 몹시 좁은 집에 반갑지 아니한 손님이 찾아옴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콧구멍 둘 마련하기가 다행이라 다행히도 콧구멍이 둘이 있어 호흡이 막히지 아니하고 숨을 쉴 수 있다는 뜻으로, 몹시 답답하거나 기가 참을 해학적으로 이르는 말. ≒콧구멍이 둘이니 숨을 쉬지. 콧구멍에 낀 대추 씨 매우 작고 보잘것없는 물건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콧구멍이 둘이니 숨을 쉬지 =콧구멍 둘 마련하기가 다행이라. 콩나물에 낫걸이 콩나물을 낫으로 친다는 뜻으로, 작은 일에 요란스럽게 큰 대책을 세우는, 격에 맞지 아니한 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콧대에 바늘 세울 만큼 골이 진다 눈살을 잔뜩 찌푸리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콩밭에 가서 두부 찾는다 지나치게 성급하게 행동함을 이르는 말. 콩밭에 소 풀어 놓고도 할 말은 있다  콧병 든 병아리 같다 꾸벅꾸벅 조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모든 일은 원인에 따라 결과가 생긴다는 말.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하여도 곧이듣지 않는다 1.남의 말을 그대로 믿지 않음을 이르는 말. 2.거짓말을 잘하는 사람의 말은 다 거짓말 같아서 믿기가 어렵다는 말. 콩죽은 내가 먹고 배는 남이 앓는다 좋지 못한 짓은 제가 하였으나 그에 대한 벌이나 비난은 남이 당하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크고 싱겁지 않은 사람없다 큰 고기는 깊은 물속에 있다 훌륭한 인물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말. 큰 과오를 피하는 길은 작은 과오를 조심하는데 있다 큰 말이 나가면 작은 말이 큰 말 노릇한다 큰 방죽도 개미구멍으로 무너진다 사소한 일이라고 얕보다가는 큰 화를 입게 된다는 말. 큰 북에서 큰 소리 난다 큰물에 큰 고기 논다 활동 무대가 커야 통이 큰 사람도 모이고 클 수도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큰상 받은 새서방 갑자기 좋은 일이 생겨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큰 악에서 큰 선이 생긴다   큰 일이면 작은 일로 두 번 치러라 큰어미 날 지내는 데 작은어미 떡 먹듯 본처의 제사를 지내는 데 후처는 좋아라고 떡을 먹는다는 뜻으로, 남이 불행한 일을 당하였는데 그 기회를 타서 자기의 이익만을 도모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큰집이 기울어져도 삼 년 간다 큰집 잔치에 작은집 돼지 잡는다 남에게 매여 지내는 탓으로 아무 이해관계도 없는 일에 억울하게 희생당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타고난 복은 남 못 준다 모든 일이 뜻대로 척척 잘되어 가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타고난 재주 사람마다 하나씩은 있다 사람은 누구나 한 가지씩의 재주는 가지고 있어서 그것으로 먹고 살아가게 마련이라는 말. 타고난 팔자 날 때부터 지니고 있어서 평생 동안 작용하는 좋거나 나쁜 운수를 이르는 말. 타고난 팔자는 죽는 날까지 떼여 놓지 못한다 자신의 정하여진 운명을 벗어날 수 없다는 말. 타관 양반이 누가 허 좌수인 줄 아나 어떤 일에 상관없는 사람이 그 일에 대하여 알 까닭이 있겠느냐고 반문하는 투로 이르는 말. 타관에 섰어도 고향 나무 고향 나무는 타관에 서 있어도 고향 나무라 한다는 말 놀림으로 이르는 말. 타는 불에 부채질한다 화가 나 있는 사람에게 더욱 부아를 돋우는 말이나 행동을 할 때, 또는 남의 재난에 돕기는커녕 오히려 해코지할 때 이르는 말. 타다 남은 나무에 불이 쉬 붙는다 타작마당에 가서 숭늉 찾겠다 ‘우물에 가 숭늉 찾는다’의 북한 속담. 탐관의 밑은 안반(安盤) 같고 염관의 밑은 송곳 같다 탐관은 엉덩이에 살이 쪄서 엉덩이가 안반 같고 청렴한 관리는 엉덩이에 살이 빠져 송곳 같다는 뜻으로, 탐관은 재산을 모으고 청렴한 벼슬아치는 가난하게 지낸다는 말. 탕건 쓰고 세수한다 격식을 어기거나 일의 순서가 뒤바뀌어 모양이 사납게 된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탕약에 감초(甘草) 빠질까 어떤 일에나 빠짐없이 끼어드는 사람을 두고 빗대는 말. 태를 길렀다[길렀나] ‘사람이 어리석고 못났음’을 이를 때 하는 말. 태산 명동(鳴動)에 서일필(鼠一匹)이라 [태산을 울리고 요동하게 하더니 겨우 쥐 한 마리를 잡았다는 뜻으로] 크게 떠벌리기만 하고 결과는 보잘것없음을 이르는 말. 태산을 넘으면 평지를 본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 터를 닦아야 집을 짓는다[짓지] 무슨 일이고 기초 작업부터 해 놓아야 한다는 말. 터주에 놓고 조왕에 놓고 나면 아무것도 없다 넉넉지 못한 것을 여기저기 주고 나면 남는 것이 없다는 말. 터주에 붙이고 조왕에 붙인다 여기저기에 갈라 붙임을 이르는 말. 터진 꽈리 보듯 한다 (쓰던 물건이나 사람을) 쓸데없게 된 것처럼 취급하여 안중에 두지 않음을 이르는 말. 터진 방앗공이에 보리알 끼듯 하였다 1.‘버리자니 아깝고 파내자니 품이 들어 할 수 없이 내버려 둘 수밖에 없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2.공교롭게도 방해물이 끼어들었음을 이르는 말. 털도 아니 난 것이 날기부터 하려 한다 어리석은 사람이 제 분수에 맞지 않는 짓을 하려 한다는 말. 털도 안 뜯고 먹겠다 한다 1.너무 성급히 행동함을 이르는 말. 2.남의 것을 통으로 먹으려 함을 이르는 말.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 털토시를 끼고 게 구멍을 쑤셔도 제 재미라 좋은 털토시를 끼고 게 구멍을 쑤시는 궂은일을 하더라도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면 그만이라는 뜻으로, 제 뜻대로 하는 일은 남이 참견할 것이 아님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텁석부리 사람 된 데 없다 [텁석부리는 사람다운 데가 없다는 뜻으로] 수염이 많이 난 사람을 조롱하여 이르는 말. 토끼 둘을 잡으려다가 하나도 못 잡는다 여러 가지를 욕심내다가는 한 가지도 이루지 못한다는 말. 토끼 입에 콩가루 먹은 것 같다 무엇을 먹은 흔적을 입가에 남기고 있다는 말. 토끼가 제 방귀에 놀란다 ☞노루가 제 방귀에 놀란다. (참고)노루. 토끼를 다 잡으면 사냥개 잡는다 필요할 때는 잘 부려먹다가도 쓸모가 없게 되면 쌓은 공도 무시하고 내치어 버린다는 말. (참고)토사구팽(死狗烹). 토막나무 끈 자국과 같다 토막나무를 끌고 간 자리와 같이 사물의 형상과 자취가 뚜렷하여 숨길 수 없다는 말. 통지기년 서방질하듯 이 남자 저 남자 가리지 아니하고 외간 남자와 함부로 놀아나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통지기 오입이 제일이다 한량패들이 장 보러 나오는 통지기들을 따라다니며 수작을 걸면 쉽게 오입을 할 수 있다는 말. 퉁노구의 밥은 설수록 좋다 퉁노구 솥은 밥이 잘 눋는다는 말. 틈 난 돌이 터지고 태 먹은 독이 깨진다 앞서 무슨 조짐이 보인 일은 반드시 후에 그대로 나타나고야 만다는 뜻으로, 어떤 탈이 있는 것은 반드시 결과적으로 실패를 가져온다는 말. 티끌 모아 태산(泰山)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쌓이고 쌓이면 큰 덩어리가 된다는 말. 파리 경주인(京主人) [지난날, 시골 아전이 서울에 오면 그 고을의 경주인의 집으로 모여들었듯이] ‘짓무른 눈에 파리가 꾀는 것’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파리도 여윈 말에 더 붙는다 파장에 수수엿 장수 때를 놓치고 볼꼴 사납게 된 사람이나 경우를 이르는 말. 파총 벼슬에 감투 걱정한다 하찮은 파총 주제에 감투 걱정을 한다는 뜻으로, 별로 대단치 아니한 일을 맡고도 시끄럽게 자랑하고 다니며 하지 않아도 될 걱정을 하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판돈 일곱 닢에 노름꾼은 아홉 보잘것없는 일에 터무니없이 많은 사람이 모이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팔 고쳐 주니 다리 부러졌다 한다 팔난봉에 뫼 썼다 허랑하고 방탕한 자식이 났음을 비꼬는 말. 팔도를 무른 메주 밟듯 전국 방방곡곡을 두루 다녔다는 말. 팔백금으로 집을 사고 천금으로 이웃을 산다 팔십 노인도 세 살 먹은 아이한테 배울 것이 있다 어린아이가 하는 말이라도 그것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는 말. 팔이 들이굽지 내굽나 가까운 사람에게 인정(人情)이 더 쏠리는 것은 사람의 상정(常情)이라는 말. 팔자는 독에 들어가서도 못 피한다 팔자 도망은 못한다 제가 타고난 운명에 따라야지,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 팔준마라도 주인을 못 만나면 삯마로 늙는다 힘이나 재능, 기술 따위가 있을지라도 그것을 발휘할 수 있게 이끌어 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하면 아무런 쓸모도 없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팥으로 메주를 쑨대도 곧이듣는다 지나치게 남의 말을 잘 믿음을 이르는 말. 팥이 풀어져도 솥 안에 있다 얼른 보아서는 손해를 본 것 같으나, 사실은 그리 손해는 아니라는 말. 팥죽 단지에 생쥐 달랑거리듯 =풀 방구리에 쥐 드나들듯. 패군의 장수는 용맹을 말하지 않는다 무슨 일에 실패를 하고 나서 구구히 변명을 할 필요가 없음을 이르는 말. 패독산에 승검초 패독산에는 승검초가 꼭 든다는 데서, 언제나 같이 따라다니는 물건이나 사람들의 관계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패랭이에 숟가락 꽂고 산다 ‘떠돌아다니는 가난한 살림’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편보다 떡이 낫다 같은 종류의 물건이지만 이것보다 저것이 낫게 보인다는 말. 편지에 문안 편지에는 으레 문안하는 말이 있다는 뜻으로, 항상 빠지지 않고 끼어드는 것이나 항상 빠뜨리지 않고 하는 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평반에 물 담은 듯 안정되고 고요한 상태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자칫하면 잘못되기 쉬운 것을 조심스럽게 다룸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평생소원이 누룽지 기껏 요구하는 것이 너무나 하찮은 것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평생소원이 보리 개떡 ‘평생소원이 누룽지’의 북한 속담. 평생을 살아도 임의 속은 모른다 임의 속을 짐작하기 어렵다는 말. 평생의 지팽이 평생 동안 의지해야 할 대상이라는 뜻으로, 일생을 같이 살아야 할 부부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평시에 먹은 마음 취중에 나온다 =상시에 먹은 마음 취중에 난다. =상시에 먹은 마음 취중에 난다. 평안 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이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당사자의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억지로 시킬 수 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평택이 깨어지나 아산이 무너지나 포도군사 은동곳 물어 뽑는다 도둑이 포졸에게 잡혀가면서도 포졸의 상투에 꽂힌 은동곳을 뽑는다는 뜻으로, 도둑질하는 습관을 쉽게 버리지 못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도둑질하는 솜씨가 매우 날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포도청 뒤문에서도 그렇게 싸지 않겠다 장물도 그렇게 싸지 않겠다는 뜻으로, 물건 값이 비싸다고 하면서 깎으려 할 때 그렇게 싼 데가 어디 있느냐고 비꼬는 말.  포도청 변쓰듯 남이 알아듣지 못할 말을 툭툭 내뱉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포도청의 문고리 빼겠다 대담하고 겁이 없는 사람의 행동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포선 뒤에서 엿 먹는 것 같다 겉으로는 근엄한 체 점잔을 빼면서 남이 보지 아니하는 데서는 바르지 못한 짓을 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포수집 개는 호랑이가 물어 가야 말이 없다 푸른 소에 돌 던지듯 깊어서 푸르게 보이는 소(沼)에 돌을 던져 봐야 아무 흔적도 남지 않는다는 뜻으로, 쓸데없는 행동으로 아무런 이익도 없이 공연한 짓을 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푸른 하늘에 별 박히듯 어떤 물건이 빼곡히 박히거나 좍 깔린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푸석돌에 불 난다 불이 날 리가 없는 푸석돌에 불이 난다는 뜻으로, 노력과 수단이 뛰어나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푸성귀는 떡잎부터 알고 사람은 어렸을 때부터 안다 크게 될 사람은 어려서부터 남다른 데가 있어 알아볼 수 있다는 말. 푸주에 들어가는 소 걸음 ‘하는 수 없이 가야 할 때의 내키지 않는 걸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푸줏간에 들어가는 소 걸음 벌벌 떨며 무서워하거나 마음에 내키지 아니하는 것을 억지로 하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풀 끝에 앉은 새 몸이라 ‘안심이 안 되고 불안한 처지에 있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풀 방구리에 쥐 드나들듯 ‘자주 들락날락하는 모양’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풀 베기 싫어하는 놈이 단 수만 센다 ‘하던 일이 싫증 나서 해 놓은 성과만 헤아리고 있음’을 비꼬아 이르는 말. 풀솜에 싸 길렀다[길렀나] 몸이 몹시 허약하거나 힘이 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풋고추 절이김치 [절이김치에는 풋고추가 가장 적당하다는 데서] ‘사이가 매우 좋아 언제나 어울려 다니는 사람’을 이르는 말. 풍년 개 팔자 걱정 없고 편한 처지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풍년거지 더 섧다 남은 다 잘사는데 자기만 어렵게 지냄이 더 서럽다는 뜻으로, 남들이 다 잘되는 것을 보고는 한층 제 처지가 서럽다는 말. 풍년 두부 같다 보기 좋게 살이 찐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풍년에 못 지낸 제사 흉년에 지내랴 유리한 조건에서 하지 아니하던 일을 불리한 조건에서 굳이 할 필요가 없다는 말. 피나무 껍질 벗기듯 무엇을 차근차근히 벗겨서 하나도 남기지 않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피나무 떡구유 같다 몸이 뚱뚱하고 무거운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  피나무 안반만 찾는다 자기에게 좋고 편리한 것만 바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피는 물보다 진하다 피 다 뽑은 놈 없고 도둑 다 잡은 나라 없다 피리부고 왓 정치고 돌아간다 피말 궁둥이 둘러대듯 무슨 일에 추궁을 당하였을 때에 임기응변으로 말을 잘 둘러대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피천 샐 닢 없다 ☞피천 한 닢 없다.  피천 한 닢 없다 수중에 돈이 한 푼도 없다. 피천 샐 닢 없다. ¶피천 한 닢 없이 길을 나서다니. 핑계가 좋아서 사돈네 집에 간다 ‘속으로는 어떤 일을 좋아하면서 겉으로는 다른 일이 좋은 듯이 둘러댐’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핑계 없는 무덤이 없다 무슨 일이나 핑곗거리를 찾으면 다 있다는 말. 하기보다 말이 쉽다 하나를 보고 열을 안다 한 부분만 보아도 전체를 미루어 헤아릴 수 있음을 뜻하는 말.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 사물을 두루 보지 못하고 융통성 없이 어느 한 면만 봄을 이르는 말.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라도 잊어버리시는 바 되지 아니하느도다 하늘 보고 손가락질한다[주먹질한다] 당치도 않은 행동을 함을 이르는 말.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하늘을 높이나는 새도 먹이는 땅에서 얻는다 하늘을 도리질 치다 기세가 등등하여 두려운 것이 없다는 듯이 행세함을 이르는 말. 하늘을 보아야 별을 따지 무슨 일이 이루어질 기회나 조건이 전혀 없음을 이르는 말. 하늘의 별 따기 이루기가 매우 어려운 일을 이르는 말. 하늘이 만든 화는 피할 수 있으나 제가 만든 화는 피할 수 없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 아무리 어려운 경우를 당하더라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있다는 말. 하늬바람에 곡식이 모질어진다 여름이 지나 서풍이 불게 되면 곡식이 여물고 대가 세진다는 말. 하늬바람에 엿장수 골내듯 하늬바람이 부는 겨울은 엿이 녹지 아니하므로 값이 더 나가는데도 엿장수가 공연히 성을 낸다는 뜻으로, 자기에게 유리한 조건이 이루어지는데도 도리어 못마땅하게 여기고 성을 내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