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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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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    아르뛰르 랭보 <지옥의 계절>섬광(閃光) / 이준오 번역(9) 댓글:  조회:1078  추천:0  2019-02-25
아르뛰르 랭보 <지옥의 계절>   섬광(閃光)1) / 이준오 번역(9)         인간의 노동! 이것이, 내가 있는 심연은 때때로 번개와 같이 비치는 는  폭발이다.   "비어 있는 것 따위는 아무것도 없다.2) 과학을 향해서, 자 전진이다! 근대(近代)의 '전도자'가, 즉 세간 사람들 전부가 그렇게 외친다. 그래도 역시 사악한 놈이랑 게으른 놈의 시체는, 다른 사람들의 심장 위에 무 겁게 떨어지는 것이다. --- 아! 서둘러라: 좀더 급히, 밤의 어둠을 넘어 서, 저편에는 미래(未來)의 영겁(永劫)의 그 보상이 있는 것이다.---우 리들은 그것을 놓쳐버리는 것인가?---   -나에게 이 세상에서 무엇이 가능한가? 나도 노동을 알고 있다. 그리 고 과학은, 너무나 발이 더디다. 기도는 질주하고 빛은 울려퍼진다.3)-- 그런 것도 나는 알고 있다. 그런 것은 너무 단순하다. 그리고 아주 무덥 다. 너의 손을 해롭게 할 것도 없다. 나에겐 나의 의무가 있다. 그놈의 곁 에 비켜놓고, 사람들이 잘 하고 있듯이 그런 식으로, 그 자의 자랑이라도  해볼까.   나의 생명을 낡아 없어졌다. 자아! 모두 함께 속여보자. 어영부영 게으 름으로 살자. 얼마나 가련한 꼴이냐! 그리고 우리들은, 즐거운 생각을 하 면서 회괴망측한 애욕이며 황당무계한 우주를 꿈꾸면서, 중얼중얼 불평 을 늘어놓으면서 살아가자. 또 이 세상의 겉보기만의 얼간이들을 상대로  싸움을 하면서 살아가자. 거리의 신파장이랑. 거렁뱅이랑, 강도 따위를  상대로. - 그리고 성직자를 상대로! 병원의 내 침대 위에서,4) 향내음이 저 렇게도 강렬하게 나에게 되살아났다. 성스러운 향료의 파수꾼, 고백자, 순 교자.5) ---   나는 거기에서 유년시절의 더러운 교육의 흔적을 인정한다. 그리고 무엇 이 있었는가! --- 다른 놈들이 20년 산다면 나도 앞으로 20년은 더 살아 주겠다.6) ---   싫다! 실어! 이제야말로 나도 죽음에 반항한다! 노동 따위, 내 자존심에게 는, 너무나 가벼운 것으로 보인다. 나의 이 세상에 대한 반역도, 너무나 짧 은 고통이겠지. 마침내 최후의 순간이 다가오면, 나는 좌우(左右)로 덤벼들 겠다 ---   그래, - 오호! - 사랑스러운 가련한 영혼이여, 그래도 영원은, 우리들로7)부 터 잃어버려져 있지는 않은지요!   1) 이 시는 앞의 장에 이어 자기를 구제할 방도를 탐색한 작품으로, 처움에 노동에의 몰두에 희망을 찾아내려고 하지만(그것은 1871년 파리 코뮌의 시기에 체험이다) 타고난 거만한 성 격과 부르조와 출신이라는 두 가지 이유로 그것도 단념하지 않을 수 밖에 없었다고 노래하고  있다.   2) 구약성서 첫머리의 시구 "헛되고 헛되도다"를 염두에 둔 표현이다.   3) 원래는 "빛은 질주하고 기도는 울린다"로 되어야 할 수사를 이렇게 전이시키는 수법이  속에서 말하는 '마법의 궤변'일까   4) 1873년 부뤼셀 사건 뒤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입원하고 있었을 때의 경험 때문일까   5) 고백자는 초기 기독교 박해 시대에 기독교 신앙을 고백한 사람들인데, 박해를 받아도  순교자는 되지 않은 사람들을 가리킨다.   6) 실제로 랭보는 "20년은 더 살아주겠다"고 말했으나 19년째의 1891년에 죽게 되었다.   7) '우리들'이란 베를렌에 대한 냉소적인 호칭일까. 에 있어 '넋나간 성처녀들'이  '그리운 영혼'이라고 불리고 있는 것이 그 단서가 되기는 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자신을  향한 호칭이라고 해석하고 싶다.  
699    아르뛰르 랭보 <지옥의 계절>불가능 / 이준오 번역(8) 댓글:  조회:1129  추천:0  2019-02-25
아르뛰르 랭보 <지옥의 계절>   불가능1) / 이준오 번역(8)       아 - 나의 소년시절의 - 저 생활, 일년 내내 거기를 헤메고 다녔고, 초자연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절식(節食)을 하고 거지 중의 상거지보다도 더 이욕(利慾)에 초연하였고, 고향도 없고 친구도 없는 것을 자랑으로 삼고 있었다. 생각하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었을까. - 그리고 나는 이제야 겨우 그것을 깨달았다! - 내가 저 사나이들을 경멸한 것은, 옳은 일이었다. 우리의 여자들의 정결과 건강에 기생하여 단 한 번의 애무의 기회라도 놓치지 않으려 하고 있었던 저 사나이들을 경멸한 것은, 하기야 오늘에 와서는 여자들이 우리와 죽이 딱 맞는다는 일은 절대로 있을 수 없지만.   - 나는, 나의 모든 경멸에 있어서 옳았었다. 왜냐하면 나는 이처럼 도망치고 있으니까!   나는 도망친다!   내 그 설명을 하리라.   어제도, 나는 이런 한숨을 쉬었다. "제기랄! 이 지상에도 이만큼 고약한 놈들이 수두룩하면 됐지! 나도 벌써 꽤 오랜 동안 놈들의 동아리였다! 나는 모든 놈들을 다 알고 있다. 우리들은 언제나 인식이 그러고도 서로 미워한다. 애덕(愛德)이란 것을 우리들이 알 까닭이 없다. 하지만 우리들은 예절은 바르다. 우리들과 세상과의 사귐 역시 아주 잘되어 있다." 이것은 놀라운 일인가? 세상인가! 장사꾼이랑, 우직한 친구들이야!   - 우리는 아무것도 명예를 더럽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 하지만 선택된 자들은, 이떤 모양으로 우리를 맞이할 것인지? 한때 세상에는 엉뚱하고 기분이 좋은 그런 상대방이란 것이 있다. 이런 자들은 가짜 선량(選良)들이야. 그 까닭은 우리들이 이런 상대와 가까워지려 하는 것은, 뻔뻔스럽게 뱃장을 부리거나 아니면 굽실거려야만 되기 때문이다. 선택된 놈이란 이런 친구들 뿐이야. 그러니까 상냥한 놈들은 아니냐!   꾀죄죄한 이성이 내게로 돌아와서 - 그것은 순식간에 사라져 없어지지만 - 나의 이 갖가지 불쾌는 자기들이 서구(西歐)에 있다는 것을, 일찌감치 생각에 넣어두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거기에 깨달음이 가는 것이다. 서구(西歐)의 늪지여! 이것은 그 빛이 바랬다던가, 그 형식이 쇠퇴하였다던가, 그 운동이 착란하였다던가, 그런 따위를 내가 생각하고 있다는 뜻이 아니라--- 좋다! 지금 내 정신은 동양의 종언 이래로, 인간 정신이 입어 온 모든 참혹한 발전을, 결연히 한몸이 받아들이려고 소망하고 있다.-- 내 정신이 그처럼 소망하고 있다!   ---꾀죄죄한 내 이성은 이것으로 끝장이다! - 정신의 권위를 떨치고 있어서, 그것이 나에게 서구(西歐)에 있기를 소망한다. 내가 전에 소망한 것과 같은 결과를 부치기 위해선, 그 정신을 침묵케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나는 순교자의 영광을, 예술의 광휘를, 발명가의 교만을 약탈자의 열정을 악마녀석에게 주어버렸다.2) 나는 동양으로 저 원초적이면서 영원한 예지로 돌아갔다. - 지금은 그런 일도 조잡한 안일의 꿈과 같이 생각된다.   그런데 나는 근대(近代)의 갖가지 고뇌(苦惱)를 피하는 기쁨 같은 것은 거의 생각도 못했다. 나는 코란의 절충적인 예지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 그러나 저 과학의 선언 아래로 그리스도교가, 인간이, '스스로를 희롱' 하며, 뻔한 것을 자기에게 증명해 보이고, 그것들 증명을 되풀이하고 즐거움으로 부풀어, 아마도 이렇게밖에 살 방도가 없다고 하는 그 자체야말로 참다운 형벌(刑罰)이 있는 것 아니겠는가! 조밀하게 꾸며진 어리석은 고문이다. 나의 정신적인 방황의 원천이다. 자연(自然)인들 이래 가지고는 아마 지루하겠지! 푸뤼돔 씨는 그리스도와 함께 태어났다.3)    그런 연유도, 우리들이 가득찬 안개를 가꾸고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우리들은 수분(水分)이 많은 야채와 함께 열병을 먹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곤드레 만드레다! 담배다! 무지다! 믿음이다! - 이 모든 것은 원시의 나라, 동양의 예지와 사상으로부터는 상당히 먼 것이 아닌가! 이와 같은 독물(毒物)이 발명되어 있고, 무엇이 근대 세계(近代 世界)냐?   '교회' 사람들은 말하리라. 아, 알고 있습니다. 헌데 당신이 말씀하시려는 것은, 에덴의 동산4)입니다. 동양 민족의 역사 속에는, 당신에게 어울리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고. - 그것은 정말이다. 내가 꿈꾸던 것이야말로 에덴동산이었다! 도대체 내 꿈에 있어서, 저 고대의 여러 민족의 순결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철학자는 말하겠지 "세계에는 연령 따위는 없습니다. 단지 그저 인류가 이동할 뿐입니다. 현재 당신은 서구(西歐)에 계십니다. 그런데 당신은 당신에게 필요한 동양이 아무리 오랜 것일지라도 자기 자신 동양 속에 자유로이 사시는 것입니다. - 또 즐겁게 거기에 사시는 것입니다. 당신은 패배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라고 젠장 철학자 제군, 당신네들도 역시 훌륭한 서구(西歐)입니다.   나의 정신이여, 정신차려라. 거칠은 구제수단 따위는 없단 말이야. 단단히 스스로를 단련하라! - 아! 과학은 우리들에게 만족할 수 있을만큼 급속히 진보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자기 정신이 잠자고 있음에 마음 쏠린다.   만약, 지금의 이 순간부터, 나의 정신이 끊임없이 또렷하게 눈뜨고 있어 준다고 하면, 우리들은 마침내 진리에 도달할지도 모른다. 진리는 아마도 눈물 젖은 천사들로서, 우리들을 감싸줄 것이다!5)-- 만약 내 정신이 이 순간까지 잠 깨어 있어 준다면, 나는 기억에도 없는 먼 옛 시대에, 무참히 유독성의 본능에 굴복할 까닭도 없었겠지! -- 만약 내 정신이 끊임없이 똑바로 잠 깨어 있어 주었다면. 나는 예지의 한복판을 노저어 건너가고 있겠지!   오호, 순결이여! 순결이여!   나에게 순결의 환상을 부여해 준 것은, 바로 이와 같은 깨달음의 순간이다! 정신을 통해서, 인간은 신을 향해서 가는 것이다!   몸을 찢기우는 불운(不運)이여!   1) 이 시 속에는 환상의 감옥을 벗어났지만 그러나 방황하는 랭보의 자화상이 그려져 있다. 소년시절의 출범은 현존 사회에서의 탈출이었다는 것, 기독교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것이 라는 것, 서구 사회를 부정하고 원시의 나라 동양으로 향하려 했다는 것, 이런 것을 그리다 가 결국 일체는 불가능하며 있는 그대로의 세계에 순종하는 수 밖에 없었다고 회상하고 있 다.   2) 이 대목은 서구 문명에 대한 랭보의 증오를 표현하고 있다. 기독교, 서구 예술, 과학의 진 보 및 산업의 발달, 동양인의 정신적 평정을 틈타 포악을 자행하고 있는 서양인의 식민지 정 책, 이 네가지를 들고 있는 것이다.   3) 앙리 모니에(1806~1877)가 창조한 작중 인물로 존재하는 우열한 부르조와의 전형.   4) 랭보가 찾아 헤매는 것이야말로 바로 이 '잃어버린 낙원'이었다. 자크 리비엘은 그야말로  원초의 죄없는 사람들이 사는 나라였다고 설명한다.   5) 여기의 표현에는 희구(希求)를 찾아내려고 하는 논지가 있다. 그러나 이 시가 부뤼셀의 사 건 후에 씌여졌음을 생각하면 그런 해석에는 무리가 있다.  
698    아르뛰르 랭보 <지옥의 계절>굶주림 / 이준오 번역(7) 댓글:  조회:1244  추천:0  2019-02-25
아르뛰르 랭보 <지옥의 계절>   굶주림1) / 이준오 번역(7)    내 취미가 있다면 땅이나 돌에 대한 것뿐 나는 언제나 공기나 바위나 석탄과 철을 먹는다.   내 굶주림이여, 돌아라, 굶주림이여, 소리의 풀밭을 뜯어 먹으라. 메꽃의 즐거운 독액을   깨진 조약돌, 오래된 교회의 돌들을 먹으라. 오래된 洪水의 자갈들. 회색 계곡에 심어져 있는 빵들을.   늑대가 나무 밑에서 그가 먹을 집짐승의 멋진 깃털에 침 뱉으며 낑낑대고 있었다. 그 녀석처럼 나도 소진했다.   샐러드와 과일은 따주기만을 기다린다. 그러나 울타리의 거미는 제비꽃만 먹는다.   잠자게 해다오! 솔로몬의 계단에서 끓게 해다오. 거품이 녹위를 달려 세드롱에2) 뒤섞인다.    마침내, 오 행복이여, 오 이성이여, 나는 하늘에서 창공을 떼어냈다 그것은 검은색이었고3) 나는 순박한 불빛의 금빛 불티처럼 살았다.  즐거워서, 나는 가능한한 우스꽝스럽고 정신나간 표현을 했다.   재발견4)  무엇을! 영원을 그건 태양과 섞인 바다.   내 영원한 영혼이, 밤이 홀로 있고 낮이 불타는데도 너의 서원을 관찰한다.   그래서 너는 벗어난다. 인간의 기도와 평범한 충동으로 너는 어디론가 날아가 버린다---   희망은 없다. 영광도 과학과 인내 고문은 확실하다.   내일은 없다. 사틴(satin)의 잉걸불이여 너희들의 열기는 의무이다.   재발견! - 무엇을? -영원을 그건 태양과 섞인 바다.    나는 기괴한 오페라가 되었다. 나는 모든 존재자가 행복의 숙명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행동은 삶이 아니라 어떤 힘을 반죽하는 방법이며, 신경질 부리기이다. 도덕은 뇌의 연약함 이다.   사람에게 마다 다른 여러 개의 삶이 있는 것 같았다. 이분은 자기가 무얼 하는지 모른다. 그이 는 천사다. 이 가족은 한배에서 나온 강아지 새끼들이다. 여러 사람들 앞에서 나는 아주 소리 높여 그들이 살 수 있었던 다른 삶 중의 하나의 어떤 순간과 이야기 했다. -그래서 나는 한 마 리의 돼지를 사랑했다.5)   나는 광태에서 나온 - 사람들이 가둬 놓은 그 광태 - 궤변의 어떤 것도 잊히지 않았다. 나는  모든 걸 모두 다시 말할 수 있다. 나는 그 조직을 알고 있다.  내 건강은 위협받았다. 공포가 왔다. 나는 여러날 수면 속에 빠져 있었다. 일어나면 슬픈 꿈을 계속하리라. 나는 죽음의 준비를 갖추었고, 위험한 길로, 내 연약함은 나를 세계와 킴메르6) 그 어둠과 회오리의 나라의 끝으로 이끌고 같다.   마치 나를 더러운 물에서 씻어내 준 게 틀림없다는 것처럼 내가 사랑하고 있는 바다 위에, 위 로의 십자가가 떠오르는 것을 나는 보았던 것이다. 나는 무지개에 의해 극도의 괴로운 벌을 받 고 있었다.7) "행복"은 나의 업보, 나의 심과 가책, 나의 고민의 씨앗이었다. 나의 삶은 언제나 너무 기대해서 향과 아름다움에는 헌신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행복! 엄청나게 부드러운 그의 이빨이 가장 침침한 도시에서 -꼭두새벽에- 나에게 예고했다.   오 계절이여 오 성곽이여! 결함없는 넋이 어디 있으랴?   나는 어떤 것도 모면 못하는 행복에 대해 대단한 연습을 했다.   골족의 수탉이8) 노래할 때마다, 그에게 인사를   아! 나는 더이상 부러울 게 없었다. 그는 내 삶을 책임졌다.   그 매력이 영육을 사로잡아 노력을 흩트렸다.   오 계절이여, 오 성곽이여,   그의 도피의 시간이 오호라, 죽음의 시간이리라.   오, 계절이여, 오 성곽이여.   @   그 일이 지나갔다. 이제 나는 美에게 절할 줄을 안다.9)   1) 후기운문시 참조. 그리고 이 '굶주림'의 시 뒤에 초고가 이어지는데, 이것은  바로 앞의 부분에 해당한다.   2) 구약성서에 나오는 팔레스티나의 급류, 예루살렘 근처에서 발원하고 감람산 기슭을 흘러 사해 로 나간다.   3) '나는 하늘에서 창공을 떼어냈다. 그것은 검은색이었고'라는 기묘한 표현은 발자크의 에 유사한 표현이 있으니, 어쩌면 여기서의 암시일까. 발고흐의 의 하늘 은 거무스레한 푸른 색이지만 -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의 이미지는 아닐까?   4) 마지감 운문시 속의 참조.   5) 한 마리의 돼지는 베를렌느를 가리키고 있다   6) 킴메르는 흑해 연안 지방의 옛 이름. 고대인이 세상의 끝에 있다고 믿고 있던 황천에 가까운 변경. 의 제11가에도 읊어져 있다.   7) '십자가'와 '무지개'는 종교를 상징한다. 에서는 기독교에 의해 지옥에 떨어졌다고 쓰 고 있다.    8) '수탉이 노래할 때마다'의 수탉은 프랑스를 상징하고 있다.   9) 이 마지막 행은 초고에서는 '이제 나는 신비적인 마음의 비약에, 기이한 문체에 싫증이 나 있다' 고 씌어 있다. 그렇게 되면, 여기서 랭보가 결별하려 하고 있는 것은 문학 일반에 대해서가 아니라, 문학으 어떤 하나의 형식에 대해서라는 점이 된다. 그것은 베를렌느의 문학과 형식미의 문학을 가 리키고 있는 것이 아닐까.  
작성자----린|작성시간18.11.27|조회수12 목록 댓글 0 글자크기 작게가 글자크기 크게가  아르뛰르 랭보 <지옥의 계절>   가장 높은 塔의 노래1) / 이준오 번역(6)     오라, 오라, 황홀한 시간이여.   얼마나 참았나 내 영원히 잊었네 공포와 고통도 하늘 높이 날아가 버렸고 위험한 갈증이 내 혈관 어둡게 하네.   오라, 오라, 황홀한 시간이여.   내 맡겨진 망각에 더러운 파리떼 기운차게 웅웅거리는데 香과 가라지를 키우고 꽃피우는 들판처럼   오라, 오라 황홀한 시간이여.   나는 사막과, 불파는 과수원, 시들은 상점, 미지근한 음료를 사랑    했다. 나는 냄새나는 거리를 기어다녔고, 눈을 감은 채, 불의 神, 태    양에 몸을 바쳤다.2)     3)        오! 주막 공동변소에도 취하는, 날벌레여,4) 서양지치 식물을 그리    워하며 한가닥 광선에 녹는 날개벌레여!   1) 최후의 운문시 속의 동명 시편 참조   2) 랭보의 태양 예찬(日神신앙)에 관해서는 초기시 와 의 와 르꽁뜨-드-릴의 을 참조할 것.   3) 이 부분에 관해 브이야느 드 라코스트는 " 속에 인용된 산문시'라고 말하고 있으나, 초고에 거의 같은 부분이 보이는 이상, 이 주장은 타당치 않다. '장군'이니 '대포'니 '마른 흙더미'니 하는 이미지는 1870년의 보불전쟁의 기억일까. 아니면 새벽 전투의 이미지에서 나온 것일까   4) 날개벌레란 랭보 자신을 가리키는 것일까.     * 일류미나씨옹(illumination): 1) 계시 2) 영감 3) 조명, 조명장식 (프랑스어)  
696    아르뛰르 랭보 <지옥의 계절>착란 2 / 이준오 번역(5) 댓글:  조회:1316  추천:0  2019-02-25
아르뛰르 랭보 <지옥의 계절>착란 2 / 이준오 번역(5)     언어의 연금술1)     나에게2) 대한, 내 광증 중, 하나에 대한 이야기.   나는 오래 전부터 가능한 모든 풍경을 소유할 수 있다고 자부하 고, 미술과 현대시의 명성을 가소롭게 여겨왔다.3)    나는 우스꽝스러운 그림들, 문의 윗장식, 배경, 어릿광대의 그림, 간판, 대중적인 채색삽화를 좋아했고, 낡은 문학, 교회 라틴어, 철자 없는 외설서적, 우리 조부의 소설들, 요정이야기, 동화 책들, 낡은 오 페라, 멍청한 후렴, 우직한 리듬을 좋아했다.4)    나는 十字軍을, 아직 기록되지 아니한 탐험여행을, 역사없는 공화 국을, 숨이 막히는 종교전쟁을, 풍습의 혁명을, 종족과 대륙을 뒤바 꿔 놓는 것을 꿈꾸었다. 나는 온갖 신기한 것을 다 믿고 있었다.   나는 母音의 색깔을 발명했다.- A는 검고, E는 하얗고, I는 붉고, O는 푸르고, U는 초록이다. - 나는 子音의 형태와 운동을 조절했 고, 본능적인 리듬으로 언젠가는 온갖 감각에 다다를 수 있는 시적 언어를 창조하리라 자부했다.5) 나는 번역을 보류했다.6)    그건 우선 연습이었다.7) 나는 침묵과 밤에 대해 썼고, 표현할 수 없는 것에 유의했다. 나는 현기증을 응시했다.   @   새와 양떼 그리고 마을처녀들8) 멀리 훈훈한 초록색 오후의 안개 속에서 정다운 개암나무 숲에 둘러싸인 히드 황야에서 무릎을 꿇고 내 무엇을 마셨는가? 이 어린 와즈강(江)9)에서 내 무엇을 마실 수 있었으리. 소리없는 느릎나무, 꽃 없는 잔디, 흐린 하늘이여! 내 사랑하는 집에서 멀리 떨어져 이 노란 호리병을 마신다.10) 땀 흘리게 하는 금빛 액체를.   나는 애매한 주막 표지판을 만들었다. -뇌우가 하늘을 믿고 왔다. 저녁에 숲의 물은 순수한 모래 위로 사라졌고 하느님의 바람은 늪지에 얼음조각을 던졌다.   울면서 나는 그 금을 바라다보았다. 그러나 마실 수는 없었다.   @   여름날 새벽11) 네시엔 사랑의 단꿈이 아직도 한창이고 작은 숲 아래선 즐거운 저녁냄새가 날아가네.   저기 저 넓다란 작업장 좀 봐. 사과지기 자매의 태양을 받으며12) 벌써 속옷바람의 목수들이 움직이네.   이끼 낀 사막에서 조용히 목수들이 귀중한 미장 널을 준비하면 거기에 마을이 거짓하늘을 그리리 오, 바빌론왕(王)의 신하들인 이 매력있는 노동자들을 위해 뷔너스여! 잠깐만 영혼이 관을 쓴 연인들을 떠나라   오 독자들의 여왕이여! 일꾼들에게 火酒를 주기를 正午 바다에서 헤엄칠 때까지 그들의 힘이 화평하도록.   @     낡은 시학(詩學)이 내 언어의 연금술에서 상당한 부분을 차지했 다.   나는 단순한 환각에 익숙했다. 나는 정말 솔직히 공장 자리에서 회교사원(回敎寺院)을, 천사가 만든 북학교를, 하늘의 길 위에서 사륜마차를, 호수 속에서 살롱을 보았고, 괴물들과 불가사이한 것 을 보았다. 소희극(小喜劇)표제는 내 앞에 공포를 세워 놓을 게다.   그리고선 나는 말들의 환각으로 내 마법의 궤변13)을 설명했다.   나는 게을렀고, 심한 열에 시달렸다. 나는 짐승의 충실성을 부러 워했다-, 임보의 무구성을 표상하는 애벌레, 童貞의 잠을 표상하 는 두더지를.14)    내 성격은 까다로워졌다. 나는 일종의 연가(romance)로 세상에 작별을 고했다.   1)이 시는 랭보가 을 쓰고 그 제작에 몰두하고 있을 당시의 심리를 회상하고, 그 명백한 실패를스스로 확인하며 자조한 작품이다. 자기의 과거 및 예술에 대한 절대적 비 판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2) '나'는 속의 '나'에 해당되지만, 의 '나'도 랭보로 보아 둘 다 랭보 자신이 라고 생각된다면 그의 이중성, 분열된 자아(自我)의 인격성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도록 하자.   3) 랭보는 당신의 예술이 지닌 인습적 형식과 수법에 대해 혐오하고 있었다. 1871년 드메니에 게 보낸 서한을 보면 그것을 알 수 있는데, 한편 1872년겨의 장래의 인상파 화가들(물론 당시 에는 전혀 무명이었다)을 벌써 인정하고 있다. 랭보와 함께 런던에 있을때 베를렌느는 모네, 마네, 아르비니에, 르느와르, 그리고 팡탕라루트를 절찬하고 있다.   4) '우직한 리듬'은 여기서는 시의 리듬을 가리키고 있다. 샹송을 상기해도 좋다.   5) '온갖 감각에 다다를 수 있는 하나의 시적 언어'에 관해서는 1871년 5월 15일 드메니에게  보낸 이른바 속에서 '일체의 언어가 관념인 이상 보편적언어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그 언어는 향기, 울림, 색깔 등 모든 것을 요약한 말이고, 영혼에서 영혼으로 얘기 하는 말이며, 사념을 갈구리로 끌어내는 생각을 말하고 있다.   6) 여기서 '번역'의 의미는 난해하지만 자기의 내적 시각과 성적체험을 말로써 표현하려고 하 는 진정한 문학적 시도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7) 왜 '우선'이라고 말하고 있는가. 이것도 논의가 많은 대목이다. 그러나 이것은 논리적인 순서 가 아니라 문학 표현상의 혹은 형이상학적인 의미일 것이다. 1871년의 최초의 파리 체재 당시 씌어진 운문서 에 이어 랭보는 여러 가지 종류의 시를 쓰고 있다.   8) 후기 운문서 참조   9) 랭보의 고향에 흐르는 강인데 벨기에에 그 수원(水源)이 있다.   10) 술에 취한 모습을 말함인가.   11) 후기 운문시 참조   12) 그리스 신화에서 초저녁의 별 헤스페로스의 딸들. 세계의 양쪽 끝에 살며 해라가 제우스와 결 혼했을 때 여신 계가 헤라에게 보낸 황금의 사과를 지켰다. 그녀들은 라돈이라고 부르는 용의 도움 으로 이 사과나무를 지키고 있었는데, 후일 헤라클래스가 모험에 의해 이것을 차지했다.   13) '마법의 궤변'도 '말들의 환각'도 의미가 분명치 않다. 다음 3번째 행에 '임보'의 뜻은 구약시대의  선인의 영혼이 예수의 강림가지 머물러 있는 옛 성소. 여기에는 세레를 받지 않고 죽은 어린이의 영 혼도 간다고 한다. 천국의 주변에 있고 불교에서 말하는 삼도(三道)내의 모래 강변 쯤 되는 곳.   14) 이 같은 애벌레나 두더지는 모름지기 랭보가 중세의 을 탐독한 소산일 것으로 추측된다.  
695    아르뛰르 랭보 <지옥의 계절>착란 1 / 이준오 번역(4) 댓글:  조회:1460  추천:0  2019-02-25
아르뛰르 랭보 <지옥의 계절>착란 1 / 이준오 번역(4)   넋나간 聖처녀   지옥의 남편1)      어떤 지옥 동료의2) 고백을 들어봅시다.  
694    아르뛰르 랭보 <지옥의 계절>지옥의 밤 / 이준오 번역(3) 댓글:  조회:1391  추천:0  2019-02-25
아르뛰르 랭보 <지옥의 계절>    지옥의 밤1) / 이준오 번역(3)     터무니 없이 독(毒) 한 모금을2) 꿀꺽 삼켰다.   - 나에게 온 충고여 세 번 축복받으라! - 나의 내장이 불탄다. 독액(毒液)이 격렬함이 내 사지를 뒤틀고 이그러뜨리고 나를 넘어 뜨린다. 갈증이 나 죽겠다. 숨이 막힌다. 소리를 지를 수도 없다 이 게 지옥이고, 영원한 고통이다. 보라, 이 불길이 어떻게 다시 일어 나는가를! 나는 멋있게 불탄다. 가라 악마여!   나는 선(善)과 행복으로 회개를, 구원을 예감했다. 그 환영을 내가  그릴 수 있을까? 지옥의 공기는 찬송가를 허용치 않는 것을! 수많은 멋진 피조물들! 그윽한 종교 연주회, 힘과 평화, 고귀한 야심, 그런  것들이었다.   고귀한 야심!   하지만 어쩌나, 그것이 인생인데! - 저주란 얼마나 영원한 것이랴! 자기의 팔다리를 자르려는 사람이야말로 천벌을 받은 게 아니랴!   내가 지옥에 있다고 믿으니, 지옥에 있게 된다.3) 이게 교리문답의  실천이다. 나는 내 세례의 노예이다. 부모들이여, 당신들은 나를 불행 하게 했고, 당신들 자신도 불행하게 했다. 가엾은 천진무구한 사람이 여!4) - 지옥이라도 이방인들을 공격을 못하는 것을.   - 하지만 어쩌나! 늦으면 늦을수록 저주의 맛은 더욱 오묘한 것을. 빨리, 인간이 만든 법(法)의 이름으로, 내 허무로 떨어진 죄를!5)    조용하라, 정말 조용하라! --- 그것은 수치이고, 비난이다.   지옥의 불길이 아무것도 아닌 사탄,6) 내 노여움이 정말 어리석구나!  - 됐어! --- 나에게 불어 넣어준 오류들, 마술, 거짓향기, 하찮은 음 악들 - 그러나 내가 진리를 걸쳤고, 정의를 보고 있다는 거지. 성스럽 고 확고부동하게 판단하고, 완성의 단계에 있다는거지 -- 오만.7) - 내 머리가죽이 마른다. 연민을! 주여, 저는 겁이 납니다. 저는 목마릅 니다. 정말 목마릅니다. 오! 유년시절, 풀, 비. 돌 위의 호수8) 종탑이 열 시를 울릴 때의 청명한 탑, --- 악마는 그 시간에 종탑에 있습니다. 마리 아여! 성처녀여! --- 정말 한심스러운 나의 어리석음.   저기 저 사람들은 나에게 선행을 베풀려는 정직한 사람들이 아닌가-- 이리와줘요 --- 입이 틀어막혔나, 그 영혼들은 내 소리를 못 듣는다.  그건 환영이다. 누군들 다른 사람 생각을 하랴. 다가오지마라, 누린내가 난다, 정말이다.   환각은 헤아릴수가 없다. 이건 내가 전부터 알고 있던 것이다. 역사에  대한 신앙도 없고, 원칙도 망각되었다.9) 조용히 있겠다. 그러면 시인과 환상가들이 질투하리라. 나는 정말 가장 부유한 자이다. 바다처럼 탐욕 스러워지자.10)    오 그래! 삶의 시계가 방금 멈췄다. 나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신학 (神學)은 믿을 만하다, 지옥은 정말 아래에 있구나 - 하늘은 위에 있고 - 불꽃둥지 속에서의 황홀, 악몽, 수면.   들판에서는 얼마나 관찰이 헷갈리는 것이랴11) -- 페르디앙 사탄은 야 생의 씨앗과 함께 달린다12) --- 예수는 붉은 가시덤불 위로 걷는다. 그 것들은 휘지도 않는다. --- 예수는 성난 물결 위를 걸었지. 램프는 우리 들에게 그가 하얗게 서 있는 것을, 에매럴드빛 물결 곁의 갈색의 머리를 보여 주었다.13) ---   나는 온갖 신비를 다 파헤칠 작정이다. 종교적인 신비건 자연의 신비건 몽땅. 죽음, 출생, 미래, 과거, 우주발생론, 무(無) 등을, 나는 환상대가(幻 想大家)이다.14)   잘 들어보시오 ---   나는 온갖 재능을 갖고 있다! --- 여긴 아무도 없다. 저기엔 누가 있다.  난 내 보물을 털어놓고 싶지 않아요. -   흑인의 노래를 부를까요. 선녀의 춤을 출까요? 사라져 버릴까요. 반지를 찾아 철수할까요?15) 해봐요? 나는 금을, 악을 만들겠다.   그러니 나를 믿으시오. 믿음은 위로하고 인도하고 치유한다. 모두들, 이 리 오시오 - 꼬마들까지도 - 내 당신들을 위로하리니, 당신들을 위해 내 가슴을 털어놓을테니 - 멋진 가슴을,16) 가엾은 자들이여, 노동자들이여!  나에겐 기도가 필요없다. 당신들이 믿어주기만 해도 나는 행복하겠다.   - 나에 대해 생각합시다. 그래야 세상 후회가 덜 나니까요. 더 고통스럽 지 아니할 기회이다. 정말 후회스러운 것이지만, 나의 삶은 기분좋은 광태 이었다.   까짓껏! 할 수 있는 대로 찡그려봅시다.   정말 우리는 세상 밖에 있다. 소리도 안 들린다. 감촉도 사라졌다. 오! 내  성체, 나의 색소니 모직(毛織)도, 내 버드나무 숲도, 저녁, 아침, 밤, 낮도 - -- 지긋지긋하구나.17)   분노를 위한 지옥, 오만을 위한 지옥을 가져야 할텐데 - 애무의 지옥을,  여러 지옥의 연주회를.18)    지긋지긋해 죽겠다. 이건 묘지다. 나는 구데기에게 간다. 무섭고 무서워 라! 사탄이여,19) 어릿광대여, 너는 너의 매력으로 나를 분해하려는가.20)  나는 요구하고 요구한다! 쇠스랑으로 때려주기를, 한 방울의 불을.   아! 나는 생(生)으로 떠오른다! 우리들의 추함에 눈을 던진다. 이 독(毒), 수천 번 저주받은 이 키스! 나의 연약함, 세계의 잔인함! 제발, 긍휼히 여겨  주세요. 절 숨겨 주세요.   난 너무 얌전치가 못해요! - 나는 숨겨진다. 나는 숨겨지지 않는다. 불이  저주받은 자와 함께 다시 살아난다.   1) 이 작품에는 초벌 원고가 보존되어 있다. 그것은 (에 수록된 세번 째 단편시이다)의 초고의 이면에 적힌 것이다. 이로써 짐작하건대 이 이 씌어진 것은 브뤼셀 사건 을 일으키고 샤를르빌에 돌아온 후의 일인 모양이다.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병원생활을 하고 있는 동안, 랭 보는 몇 번인가 신앙생활에 되돌아가려고 하며, 스스로도 '천사와의 싸움'이라 부르고 떨어지는 수 밖에 없 었다. 이 작품의 주제는 앞의 이 이교도인 자기의 무죄(무구 inncoent)를 주장하고 있는 데 대 해, 일단 세례에 의해 기독교도가 된 자기가 언제가는 지옥에 떨어질 운명에 있음을 노래한 것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그리고 지옥에 떨어진다는 절망을 품고 현세의 생활을 금해가는 자존심과의 사이에 이 작품이 이상할 정도로의 긴장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2) 이 '독(毒)'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관해 여러 설이 나오고 있다. 드라에에 따르면 이것은 부뤼셀의 비극 후에 랭보가 마신 '알코올의 큰 잔'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스타르키에 따르면 이 한 절은 1873년 6월이나 혹은 7월에 영국에서 씌어진 것을, 한 번 벗어났다고 믿은 베를렌과의 오탁(汚濁)의 생활에 또 다시 빠졌음 음을 암시하고 있다고 한다. 아투치는 회의(懷疑)의 독을 의미하며, 이 독이 모든 개종의 가능성을 방해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가르나에판의 주석자 스잔느 베르나르는 "랭보가 반드시 기독교신앙의 독을 암시했다 고 생각하는 것은 반드시 불가능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 베르나르의 견해가 가장 타탕 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이 저편이 기독교 신앙을 노래하고 있는 점과, 초기 운 문시 속에 있는 에 "나는 철부지 어린이였다. 그런데 기독교에 숨어 더럽혀졌 다. 덕분에 나는 목구멍까지 욕지기가 솟구쳐 있다" 등에서 보이는 것처럼 기독교가 독액(毒液)을 마시는 것 과 같은 고뇌의 씨를 심는 데 반발을 하고 있는 랭보의 사고 방식의 일관성과 이 두 가지 중요한 단서가 얻어 지기 때문이다.   3)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명제를 모방한 것일까   4) '죄 없는'은 이 대목에서는 아이러니로 사용된 데 지나지 않지만, 그러나 랭보가 무죄(무구)와 이교도의 사 이에서 하나의 상관관계를 발견하고 있었음을 알 필요는 없다. 랭보는 죄와 지옥과의 관념, 선과 악의 개념의, 그 바깥으로 나가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초고 에 "세상에는 지난 날 악에 살았고 지금도 악과 살며 더구나 어떻게도 느끼고 있지 않은 자들도 존재하는 것이다!"라고 씌어져 있다.   5) 이 언저리의 서술은 로마서에 전개되는 논리와 지극히 흡사하다고 한다. 7장 9절 "나는 지난 날 율법이 없 이 살았지만, 회개했을 때 죄는 살고 나는 죽었도다"라는 부분과, 하나의 탁월한 해석으로 보아도 좋다고 여겨 진다.   6) 이 '악마'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명확하지 않으나 의 각주 10)11)에서 언급했듯이 베를렌으로 보는  것은 극히 개연성(蓋然性)이 많다고 보아야 한다. 초고 의 해당 부분과 비교-대조해 보면 "잠 자코 있으라, 잠자코 있으라고 말하는 거야"로 시작되는 한 연이 "그렇다면 시인들은 지옥에 떨어진다"로 끝 나고 있으며, 적어도 악마라는 것의 책임의 일부를 베를렌이 지고 있는 것은 명백하다.   7) 베를렌의 시법(詩法)에 대한 빈정거림일까   8) '돌 위에 담겨진 호수'에 관해 의 속의 영상(影像)에 유사성을 발견하고 있다.   9) 드라에는 랭보의 상실된 시의 일부가 아닐까 하고 추정하고 있다. 플레이야판의 XIX에 보인다.   10) 우리는 이 '풍요'에 관해 랭보의 '견자'적 환술(幻術)의 방법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당장의 랭보는 견자 사상의 올바름을 현실 생활면에서는 자연적으로 긍정할 수 없는 상태에 있으나 그러나 예술상의 문제로서 는 자연적으로 긍정할 수 없는 상태에 있으나 그러나 예술상의 문체로서는 아직 충분한 자신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11) 원문을 보면 랭보가 글 쓸 때의 버릇으로 어느 쪽인가를 지우기 위해서라고 씌어있는 것이 둘 다 잘못 인쇄되었을 것이라는 설이 있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는 쪽이 알기 쉽다. 그러나 이대로라도 풀이 못할 것은  없다.   12) 드라에에 따르면 '악마의 페르디앙'이란 랭보의 고향 아르덴 주의 시골 거리인 보제 지방의 농민들이 악마를 부를 때의 호칭이라고 한다. 랭보의 시에는 간혹 이 같은 민간신앙적 요소가 나타나서 말할 수 없 는 표현 효과를 빚어내고 있다.   13) 요한복음 제 6장 제16절에서 21절까지의 내용을 바탕에 둔 것이다.   14) 몽환술(fantasmagorie)이라는 초자연 과학은 가짜 과학일 뿐이요, 요컨대 그것은 주술(마법)과 사기적 환술(幻術)이라고 볼 뿐이다. 랭보는 그 같은 마술적 유혹을 부인하고 있는 것이다.   15) 스잔느 베르날의 지적에 따르면 니벨룽겐의 반지를 전제한 것이 아닐까라고 한다. 바그너의 4부작 악극 의 종말에 하겐이 라인강의 물결에 몸을 던져 이 반지를 찾는 대목이 나온다. 니벨룽겐의 반지에 한정하지  않고 널리 고대 신앙에 나타난 신통력 있는 반지를 노래한 것을 풀이할 수도 있다.   16) '멋진 가슴을'에서 반역천사(마왕)의 향기의 정점을 볼 수 있다. 이 언저리의 서술에는 의 를 방불케 하는 것이 있다. "그는 우리들 모두를 알고 있어 우리들 모두를 알고 있어 우리들 모두 를 사랑해 주었다"로 되어 있는, 그 영마의 매력을.   17) 이 1행에는 어쩌면 보를레이 "어디든지 좋다. 이 세상 바깥으로"하고 노래한 것과의 연관이 있을지도 모르 지만 사실은 더 절박한 심정이 있다고 생각한다. 랭보는 에도 보이는 것처럼 항상 '진실한 생활이 없 는 ' 우리들은 이 세상에는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으나, 이 부분의 표현은 보다 정확한 의미를 가지고 있 다. 즉 지옥에 떨어진 사내란 인생에 죽은 사내인 것이라고 기독교에 의해 지옥에 떨어지는 낙인이 찍힌, 현세 의 사자(使者)인 자기 자신에 초조해져 있는 것이다.   18) '분노 때문에'는 랭보가 항상 '화를 잘 내는 어린애'(베를렌은 1875년의 속에서 '만사에 대해 쉴새 없이 분노를 터뜨렸다'고 정의하고 있을 정도다)였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지나친 자부심 때문에'에 관해서는  베를렌의 증언이 있다. '애무의 지옥'이라는 것은 베를렌과 랭보를 나락으로 끌고 갔던 음탕을 가리키는 것일까.   19) '사탄'은 초고에 따르면 베를렌을 가리키고 있는 것 같게도 생각되지만, 여기서는 그렇게 좁게 풀이하지 않 는 편이 오히려 다음 연과의 대응이 강해진다.   20) 마지막으로 마음을 덮쳐일으킬 때 지옥에 떨어지는 것은 '녹아버리는' 상태 따위는 단순하게 거부하는 것이 다. 고뇌야말로 생활인 것이라고 노래하는 것이다.  
아르뛰르 랭보 <지옥의 계절>    나쁜 혈통(血統)1) / 이준오 번역(2)      내 골족(族)의 조상으로부터 나는 푸르고 흰 눈과 좁은 두개골과  싸움에 서투른 것을 물려 받았다. 나는 내 옷이 그들의 것처럼 야 비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단지 나는 내 머리털에 버터를 바르지2) 않는다.    골족(族)은3) 그 당대의 가장 바보스럽게 풀을 베는 자들이었고, 짐승의 가죽을 벗기는 자들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또한 우상숭배와 신(神)에 대한 사랑을 얻었다. 오 모든 악덕, 화, 음란함 - 멋있도다, 음란함이여 - 특히 거짓과 나태를 얻었다.   나는 모든 직업을 무서워한다.4) 선생과 노동자는 모두 비열한 농 부들이다. 펜을 쥔 손은 쟁기를 쥔 손이나 마찬가지다. - 손, 손을 위한 세기 - 난 결코 내 손을 갖지 않으리라. "후에는 비굴함이 지 나치게 심해진다. 거지의 정직성은 나를 화나게 한다. 죄인들은 환 관(宦官)처럼 혐오스럽다. 나, 나는 완전하다. 하지만 그건 아무래 도 좋다.   하지만! 누가 내 혀를 이렇듯 불충하게 만들어 지금까지 내 나래 를 이끌어 보호해 오게 하였는가? 살기 위해서 내 몸을 움직이지도 않은 채, 두꺼비보다도 더 게으른 채, 나는 도처에서 살았다. 내가  모르는 구라파의 가족이란 없다.5)    - 나는 인권 선언에6) 모든 걸 빚지고 있는 가족들의 소리를 내 가 축 소리처럼 듣는다. - 나는 양가(良家) 집의 아들도 다 알고 있다.                 @     프랑스 역사에 그 어떤 흔적을 남겼으면!7)    하지만 아니지, 아무것도 아니지.   내가 언제나 열등 민족에 속해 있었다는 것은 나에게 명백한 사실이다. 나는 반항을 이해할 수 없다. 종족은 이전에는 약 탈하기 위해서만 일어섰다. 자신들이 죽이지 못한 짐승을 대하는 늑 대처럼.   나는 교회의 맏딸8)인 프랑스의 역사를 기억한다. 평민인 나도 성지 (聖地)를 여행할 수 있었더라면, 내 머리 속에 *수아브 지방의 평원에 뚫린 길들, 비잔티움의 조망, *솔림므9)의 성벽이 들어 있다. 마리아 숭배, 십자가에 못박힌 자에 대한 연민이 내 내부의 수많은 불경스러 운 마법 속에서 깨어난다. - 문둥이로서 나는 태양이 쏟아지고 있는 벽발치, 깨진 병과 쐐기풀 위에 앉아 있다. - 후에, 독일의 밤 아래 기 병(騎兵)처럼10) 야영할 수 있으면,   오! 다시 한번, 나는 붉은 임간지(林間地)에 있는 노파들과 아이들과 마녀들의 소란이 춤춘다.11)    이 땅과 기독교 정신 이전보다 더 오랜 것을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그 과거 속에서 나는 계속해서 나 자신을 다시 보게 될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혼자다. 가족도 없다. 도대체 나는 어느 나라 말을 하였던가, 그 리스도의 충고 속에선 나를 보지 못한다. 그리스도의 대변자들인 귀족 들의 가르침 속에서도,   지난 세기에12) 나는 무엇이었던가? 나는 오늘에야 내 자신을 되찾는 다. 유랑민도 없고, 잘 알 수 없는 전쟁도 없다. 열등 민족이 모든 걸 보 상했다. 흔히 말하듯, 인민을, 이성을, 국가와 과학을13)   오! 과학이여! 사람들은 모든 것을 되찾았다. 영(靈)을 위해 그리고 육 (肉)을 위해 - 임종 때 받는 성량(聖糧) - 사람들은 의술과 철학을 갖고 있다 - 늙은 여편네들의 약과 잘 정리된 민요(民謠)들을 갖고 있다. 왕자 (王子)들의 심심파적과 그들이 금한 놀이를! 지리(地理), 우주학, 역학(力 學), 화학(化學)!14) ----   과학, 새로운 고귀함! 진보, 세계는 나아간다! 왜 세계는 돌아오지 않을 까?15)    이것은 수(數)의 비전이다. 우리들은 성신(聖神)에게 나아가고 있다. 내 가 말하는 것, 이건 확실하다. 이건 신화(神話)이다. 나는 이해한다. 방언 들로밖에는 설명 못하므로 나는 침묵하고 싶다.16)     @     이교도의 피가 되살아난다! 성령(聖靈)이 가까이 있다. 내 넋에 고귀함과 자유를 주어, 예수는 왜 나를 돕지 못하나? 오오라! 복음서는 지나갔다! 복 음서! 복음서!    나는 무엇인가를 게걸스럽게 탐의하듯 신을 기다리고 있다.17) 나는 영원 히 열등 민족의 태생이다.   나는 * 아르모리크 해변가에18) 있다. 마을들이여 저녁이면 점화를 하라. 내 날이 이루어졌다. 나는 구라파를 떠났다. 바닷 공기가 내 폐를 불태우리라,  낯선 풍토(風土)가 나를 귀찮게 굴 것이다. 수영, 풀매기, 사냥, 특히 담배피 우기, 끓는 금속같이 센 술을 마시기 - 불을 돌며 내 친애하는 선조들이 행 한 것처럼.   나는 되돌아올 것이다. 강철 같은 사지와 검은 피부, 성난 눈으로, 내 가면 (假面)을 보고 사람들은 나를 강한 민족으로 판단하리라. 나는 금을 가질 것 이다. 나는 게으르고 격렬할 것이리라. 여인들은 더운 나라에서 되돌아온 잔 인한 병 약자를 보살핀다. 나는 정치 사건에 뛰어들겠다. 구원받겠다. 이에  나는 저주받았다. 나는 조국이 무섭다. 가장 좋은 것은, 몹시 취해 모래밭에 서 자는 것이다.   @     사람들은 출발하지 않는다 - 내 악덕을 짊어진 이곳의 길을 다시 가자. 철들 부렵부터 내 곁에 고통의 뿌리를 내린 악덕, 하늘에 올라가 나를 때리고, 나를 뒤엎고, 나를 끌고 가는 악덕.19)   마지막 순진함과 마지막 수줍음, 그건 이미 말했다. 세상에 내 혐오감과 내 반 역을 가지고 가지 않는 것.   가자! 행진, 무거운 짐, 사막, 권태와 분노.   누구에게 나를 찬양해 줄까? 어떤 짐승을 경배해야만 하는가? 어떤 성스런 영 상을 공격하는가? 어떤 혈기로 걸어가야 하는가?   오히려 정의를 보호해야 할 것20) -힘든 생활과 단순한 우둔함 - 메마른 주먹 으로 관 뚜껑을 들고, 앉고 숨을 끊는다. 그렇게 되면 늙음도 없고 위험도 없다. 공포는 프랑스적인 게 아니다.   - 오! 나는 완전히 버림받아 어떤 신적인 영상에게도 완전하려는 내 열망을 버 린다.    오 내 극기(克己)여, 오 내 굉장한 자애여! 하지만 이곳에서!   심오한 주여, 저는 얼마나 바보입니까!   @     아직 어렸을 때, 나는 감옥문이 언제나 그에게는 닫혀 있는 고집 센 어려운 도형 수를21) 찬양하였다. 나는 그가 머물러 성화되었을 주막과 곳간을 찾아다녔다. 찬 양하였다. 나는 그의 마음으로, 푸른 하늘과 들판의 멋진 작업을22)을 바라다 보았 다. 나는 도시에서 그의 운명을 냄새 맡았다. 그는 성자보다도 힘이 세고, 여행자보 다도 훌륭한 양식(良識)을23) 갖고 있었다. - 그러나, 그, 그만이 그의 영광과 그의 이상의 증인일 뿐이었다!   거리 위에서, 겨울 밤에, 숙소도, 옷도, 빵도 없는데, 어떤 목소리가 내 얼어붙은 가 슴을 압박하였다. "약함 혹은 강함이여, 네가 거기 있구나, 그건 강함이다. 너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왜 가는지도 모르고 아무 데나 들어가고 무슨 말에든 대답한다. 네가 시체였다면 이제는 널 죽일 수 없을까"   아침에 내 눈초리는 너무 멍청하고 얼굴은 너무 빈사 상태여서 내가 만난 사람들은 아마도 날 알아 보지 못했으리라.   도시에서는 진창이 갑자기 빨갛고 꺼멓게24) 보였다. 램프가 이웃방을 돌아다닐 때 의 거울처럼, 숲속의 보석처럼! 좋은 기회다라고 나는 외쳤다. 나는 하늘에서 불꽃과 연기의 바다를 보았다.25) 왼편 오른편에서 10억 개의 뇌성처럼 불타는 모든 풍요함.   그러나 주연과 여자 동반은 내게 금지되었다. 남자 친구도, 나는 화가 난 군중 앞에 서, 사형 집행하는 기병(騎兵) 앞에 있는 나를 보았다. 그들이 이해할 수 없었을 불행 때문에 울면서 그리고 용서하면서26) - 쟌느 다르크처럼 - "신부(神父), 교수(敎授), 선생(先生)들이여, 당신들은 나를 재판에 넘기는 잘못을 범했다. 나는 이런 사람들에 속하지 않았다. 나는 기독교인이 아니었다. 나는 고문을 받으며 노래하는 종족이다.  나는 법을 이해하지 못한다. 나에게는 도덕적 감각이 없다. 나는 난폭자이다. 당신들 은 잘못했다---"     그렇다 내 눈은 당신들의 불빛에 눈을 감는다.27) 나는 짐승이다. 흑인이다. 그러나 나는 구원받을 수 있다. 당신들은 가짜 흑인이다.28) 법관이여, 너는 흑인이다. 장군 이여, 너는 흑인이다. 황제여, 늙은 무뢰한이여,29) 너는 흑인이다. 너는 세금 붙지 아 니한 악마의 공장에서 나온 술을 마셨다 - 가장 멋진 것은 이 대륙을 떠나는 것이다. 여기선 이 한심한 자들에게 불모를 마련해 주려고 광기가 횡횡한다. 나는 *캄의30) 진 정한 어린이 왕국에 들어간다.   나는 아직 자연을 아는가? 나는 지신을 아는가? 할 말 없음. 나는 사자(死者)들을 내 뱃속에 매장한다.31) 외침, 북, 춤, 춤, 춤, 춤! 백인들의 상륙하였으므로 내가 무(無)로 떨어질 시간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굶주림, 목마름, 외침, 춤, 춤, 춤, 춤   @     백인들이 상륙한다, 대포! 세례를 받고, 옷입고, 일해야만 한다.   나는 가슴에 은총(恩寵)으로 충격을 받았다. 오! 나는 그걸 예견하지 못했다.   나는 나쁜 일을 하지 않았다. 하루하루는 나를 경쾌하게 할 것이고 회한도 줄어들 것 이다. 선(善)을 거의 버린 넋의 고통을 나는 갖지 않을 것이다. 그곳에서는 장례식의 양초처럼 강한 빛이 올라온다. 양가(良家)집 자제의 운명, 투명한 눈물로 뒤덮힌 오래 된 관. 아 정말로 주색잡기는 어리석은 짓이다. 썩은 것은 따로 던져놔야 한다. 하지만 시계는 순수한 고통의 시간만을 울리지는 않을 것이다. 모든 불행을 잊고 천국에서 놀 수 있도록 어린애처럼 죽을 수 있을까.   빨리! 다른 삶도 있는가? 부(富) 속에서의 잠은 불가능하다. 부는 언제나 공적(公的) 이었다. 신성한 사랑만이 과학의 열쇠를 수여한다. 나는 자연이 오직 선의의 광경이라 는 것을 안다. 공상이여, 이성이여, 오류여, 잘 있거라.   천사들의 올바른 노래가 구호선에 올라온다. 그것은 신의 사랑이다 - 두 개의 사랑! 나는 땅의 사랑으로 죽을 수도 있고, 헌신으로 죽을 수도 있다. 나는 여러 사랑을 포기 했다. 그들의 고통이 나의 출발 때문에 증가하리라! 당신은 나를 난파자 가운데서 선택 하였다. 남아 있는 자들은 내 친구가 아닌가?   그들도 구하라.   나에게 이성이 생겼다. 세상은 선하다. 나는 삶을 축복하리라. 나는 내 형제들을 사랑 하겠다. 그것은 유년 시절의 약속이 아니다. 늙음과 죽음에서 벗어나려는 희망도 아니 다. 신은 나에게 힘을 주셨으니 나는 신을 찬양한다.   권태는 이제 내 사랑이 아니다. 분노, 방랑, 광태, 나는 그것들의 모든 약동과 실패를 알고 있다. - 내 모든 짐이 벗겨진다. 미망없이 내 순결의 폭을 이해하자. 난 채찍질의  위로를 이제 요구할 수 없다. 나는 의붓아버지 노릇의 그리스도와의 결혼 때문에32) 승 선했다고는 믿지 않는다.   나는 내 이성의 죄수가 아니다. 나는 말했다. 신이여! 라고 나는 구원 속의 자유를 원 한다33) 어떻게 그걸 쫓을까? 사소한 취미는 나를 떠났다. 헌신도 신의 사랑도 이제는 필요없다. 나는 섬세한 사람들의 세기를 후회하지 않는다. 저마다 자기의 이성, 결멸, 사랑을 갖고 있다. 나는 양식(良識)이라는 이 천사의 계단 꼭대기에 내 자리를 잡아둔 다.   이미 확립된, 길들여진 혹은 길들여지지 않은 행복에 대해서는 아니다 --- 난 말 할 수 없다. 나는 너무 방탕하고, 너무 약하다. 생은 일을 통해 개화한다. 해묵은 진리다. 나, 나의 삶은 묵중하지가 않다. 그것은 날아가, 행동 위에 저멀리 세상의 정다운 이 지 점을 부유한다.34)   죽음을 사랑할 용기도 없는 노처녀가 되어 버렸구나!   신(神)이 나에게 옛 성자처럼 하늘의, 공중의 고요를, 기도를 허락해 준다면, 이제 우 리가 필요로 하지 않는 성자들, 강한 자들! 은둔자들! 예술가들!   계속되는 희극! 나의 순진함이 나를 울게 하리라, 삶은 모든 사람이 만드는 소극(笑劇) 이다.   @     충분하다! 이제 벌이다36) - 행진하라!   오! 폐가 불탄다. 관자놀이가 울부짖는다! 밤이 이 태양을 통해 내눈에서 굴러다닌다! 가슴 --- 사자 --   어디로 가는가? 싸움터로? 나는 약하다! 다른 사람들은 나아간다. 도구, 무기---시간! --   발포! 나에게 발포! 나는 항복한다. 겁장이들! 나는 자살한다! 나는 말(馬)의 발치에 몸을 던진다!   오오! ---   나는 - 거기에 길이 들이라.   이게 프랑스의 삶, 37) 명예의 길이리라!     1) 이 작품은 일반적으로 브릐셀 사건 전에 씌어졌을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열등 종족'이라는 개념, 기독교와 이교도 간의 싸움, 서구 문명과 서구 사회의 종교에 있어서의 흑인에 대한 평가, 소년기의 고독과 견딜 수 없는 악덕에 관한 극히 개인적인 환상 체험 등이 제시되어, 결국 랭보는 이교도인 자기는 기독교적인 죄와는 관계가 없고, 따라서 무죄(무구)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 작품에는 초벌 원고가 보존되어 있다.   2) '머리에 버터를 바르는 습속'은 샤토브리앙의 저서 와 속에도 보인다.   3) 첫머리의 2연 내지 3연에 보이는 골족(Gaulois)의 습성과 생활에 대한 고의적인 모욕이야말로 이 시 의 주제이다. 그리고 이것은 시 에서도 거듭 되풀이 된다. 랭보의 문학 의 한 측면인 '카인 숭배'의 하나로 보아도 무방하다.   4) 랭보는 노동이라거나 직업이라고나 사회적 지위 같은 것을 얻는 일을 극도로 거절하는 심성을  가지고 있었다.   5) "원죄(原罪)을 면제 당한" 랭보의 '무구'를 읽어내는 것도 가능하고 "선악의 저편에 몸을 두려고 하는"  오만으로 간주하는 것도 가능하다.   6) '인권선언' 이란 물론 1789년 프랑스 혁명이 시작된 직후에 국민공회(國民公會)가 제정한 선언 을 말한다. 기본적 인권(인권의 자유평등, 언론 출판의 자유, 소유권의 확립), 주권제민(主權在民)  등 근대정치 내지 시민사회의 기본원칙을 규정하고 있다.   7) 앞에서의 '인권선언'에 인용된 프랑스 역사를 회고하면서 랭보는 '열등종족'이란 주제을 제시한다. 랭보는 파리코뮌에 참가하려 한 적은 없다. 여기서 중세라는 시대를 더드머 자신의 몸 속에 있는 '나 쁜 혈통'이 야만인의 피의 유전에 있다는 전제에 서서, 자기를 중세 농노나 중세 십자군의 병사로 변 생(變生)시키고 있다. 더구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자기는 '열등 종족'이었다는 귀결에 도달하는 것이 다.   8) 교회의 맏딸: 예로부터 프랑스의 호칭의 하나.   9) 솔림므: 예루살렘, 구약시대의 예루살렘   10) 16, 17세기 칼빈파 신교도를 위해 일한 독일 기병(騎兵)을 말한다.   11) '샤바트(Sabbat)'는 구약시대에는 주의 7일째를 신에게 바쳐 안식일을 지킨 날을 말한다. 중세의 민간 전승에서는 이교도적 요소가 많아 섞여 있어, 토요일 한밤중에 악마를 중심으로 하여 모이는 마 법사 및 자녀들의 집회를 말하며, 또 어리석은 소동이라는 뜻으로도 사용되었다. 여기서 랭보는 중세 적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12) 현대의 세계, 즉 민주주의, 이상이 지배하는 세계, 민족주의, 과학의 승리의 세계를 말함.   13) 미슐레가 어떻게 종족의 관념이 구민의 관념 앞에 소멸되어 버렸는가를 밝혔는가를 여기서 한 번 생각해 볼 가치는 있을 것이다. 랭보는 미슐레와 프낭이 노래한 '과학에 대한 찬가'를 그 자신도 노래하 려 했던 것이다.   14) 과학이 발달한 덕택으로 민중은 지난날에 왕후(王侯)에게만 독점되었던 과학과 철학과 그 밖의 즐 거움을 이제는 마침내 차지할 수 있는 권리를 얻었다고 말하고 있다.   15) 갈릴레오가 말한 "그래도 세계는 돈다"를 바탕으로 한 하나의 언어적 유희이다.   16) 랭보가 여기에 제시하고 있는 과학 찬양 사상의 19세기 후반의 시대 사상이기도 했다. 이 같은 과학 및 진보의 사상은 레를렌과 랭보가 자주 교제하고 있는 런던에, 망명 중인 소수의 '코뮤나르'에 의해 고취되고 있었던 것이라고 한다.   17) "나는 무언가를 목마르게 탐내듯 신을 기다리고 있다"라고 한 대목은 랭보의 기독교에의 회귀를 증명하 는 것으로 인용되는 경우가 많으나, 다음의 구절을 보면 그 같은 단정은 할 수 없지 않을까 싶다. 신을 기다리 고 있거나 그러기 때문에 영원히 열등 종족이라는 관념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18) '아르모리크'는 현재의 브르타뉴를 일컫는 옛 이름. 원래 가리사의 한 지방명이었다. 그리고 이 한 연은 랭보가 자신의 때를 예언한 점으로 그야말로 놀라운 것이다.   19) 해석자들은 '악덕'이 바로 남색이었다고 믿었다. 이 해석은 잘못된 것이다. 랭보가 어린 시절부터 이끈  악덕은 모든 형태에 대한 무죄와 악을 향한 도시에 이끌림, 수줍음 그리고 반항에 대한 그의 투쟁인 것이다. 그것은 그가 우리에게 말했던 자신의 위선과 혐오를 설명하는 투쟁이다. 그는 그것들을 자기 몸에서 제거할 수 없으며밖으로 내놓기를 원치 않는다.   20) 그러나 인간의 정의를 보호해야  하며 우둔함 속에서 제거되야 한다.   21) '고집스럽기만 했던 도형수(徒刑囚)'는 고독하고 불행했던 랭보 자신의 소년시절을 상징하고 있으나 이것은 의 주인공 쟝 발쟝 등에 관한 상기(想起)일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22) '꽃처럼 피어나 있는'이라는 표현은 예컨대 의 에서 "별들과 그 밖의 것들 이 꽃피는 부드러움이--" 등에도 보이며, 랭보가 즐겨 애용하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전원을 방랑한 개 인적인 체험의 기억으로 보아도 좋을성 싶다.   23) 여기서 '올바른 판단력' 에 대해 어떤 평자는 '데카르트를 상기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탁견 (卓見)이다.   24) 진흙은 '붉고 또 검고'라고 느끼는 색채 감각은 랭보가 친숙해져 있는 환각 속에서의 하나의 상투 수법 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므로 유별난 추상적-사상적 의미를 추구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25) 이 부분의 표현을 부이야느 드 라코스트 등은 1871년 5월의 파리 코뮌때 일어난 화재의 정경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나 차라리 랭보에게 자주 찾아온 화염의 환각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스잔느 베르날에 따르 면, 이것들은 베를렌이 '성서의 거리'로 "화염과 진흑의 오점이 묻은 하늘의 거대한 도시" 라는 표현도 보 인다. 주24)의 '붉고 또 검고"도 포함하여 이것들은 랭보에게 집요하게 달라부튼 암유(暗喩)의 하나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26) 파리 코뮌에 가담한 일단에 도정과 관심을 보내는 신문들은 사격대에 반대하는 폭동, 즉 그들에게 총 을 겨누는 군인들에게 눈을 부릅뜨려고 노력하는 폭도들을 묘사했다.   27) 물리적 광선 외에 이성 및 신앙의 빛이라거나 계몽 같은 의미도 있으나, 여기서는 굳이 쉽게 옮겨 보 았다.   28) '거짓 니그로'란 진짜 흑인보다도 더 검고 또 엉큼한 백인을 말하고 있다. 이디오피아에서 생활하고 있 던 1890년이 되어서도 예를 들면 그 해 2월 25일자로 가족엑데 보낸 서한 속에서 '이른바 문명국의 백인 흑인들' 등과 같은 말을 쓰고 있다. 물론 여기에 한 연에 보이는 격렬한 매도(罵倒)와 독설은 서구문명에 대 해 던져진 공격의 화살이다.   29) 이 기묘하기 짝이 없는 표현은 스잔느 베르날에 따르면 빅토르 위고의 시집 속의 에빌 나드누스의 시 "비천한 자들이여', 너희들에겐 너희들의 살갗을 하고 있는 근질거리는 황제를 긁어낼 손톱 은 없는가!'하는  표현에 출전을 삼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말한다.    30) '캄(Cham)'이란 구약성서 속의 인물인데, 대홍수에서 벗어난 노아의 차남. 전설에 따르면 그 자손이 흑 인이 되었다고 한다. 서구 사회에 있는 '협잡꾼 흑인' 곁을 떠나 랭보는 원시적이며 소박하며 위선 따위가 전 혀 없는 생활을 시작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31) 원시적인 생활로 돌아가는 것은 '나는 사자(死者)들을 뱃속에 매장했다'라고 하는 것 같은 식인육(食人肉) 의 습속'이라거나, '이젠 말이 더 필요치 않다'고 하는 것 같은 서구적 이지(理智)적 형식의 결별이 따르지 않고  있지는 않다. 이 부분의 표현에 '북' '댄스'가 자주 나오는 것은 미개 종족의 상기에 의한 원형적 연상이다.   32), 33) 다같이 요한복음 제2장에 보이는 설화에서의 착상이지만, 오히려 아주 짖굳은 말로 기독교에 대해 결 정적으로 거절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혼연(婚宴)'이 이어지는데 운문의 비유는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결부를 암 시했다고도 보인다.   34) '행동'에 관해 속에서 "행동"은 생활이 아니고 그것은 힘의 낭비의 하나의 수단이며 무기력 한 것이다"라고 쓰고 있다. 랭보는 보들레르가 속에서 "이제 나는 물러가려 한다. 이 나 는 행동의 몽상의 여동생은 아니었던 이 세상에 만족을 느끼며"로 노래하고 있음을 상기했던 것이 아닐까. 사색과  몽상이 없는 범속한 문명생활은 랭보로서는 죽음과 마찬가지였을지도 모른다.   35) '이제 우리가 필요로 하지 않는'이라는 표현은 성자에게도 은둔자에게도 연관이 되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 다. 기독교의 '유혹'에 후속하여 반항한 것이다.   36) 초고는 여기에 이어진다.   37) 신랄한 표현이다. 랭보가 '프랑스의' 라거나 '프랑스인의' 라는 형용사를 사용할 때는 항상 비방 내지 모멸하는 감정을 간직하고 있었다. 1871년에 드므니에게 보낸 서한 속에서 뮈세의 작품을 논평하며 "정말 프랑스적이라는 것은 이제는 극한까지 타기해야 한다는 뜻이다"라고 쓰지 않을 수 없었고, 그는그것을 정말로 싫어하고 있었다. 그리고 '명예'에 이르러서는 그는, 그런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692    아르뛰르 랭보 <지옥의 계절> 서시(序詩) / 이준오 번역(1) 댓글:  조회:1384  추천:0  2019-02-25
아르뛰르 랭보     서시(序詩) / 이준오 번역(1)     돌이켜 생각하면 지난날, 나의 인생은 향연이었다. 잔치에는 모든 마음이 열리고 온갖 술들이 흘렀다.   어느 저녁 나는 미(美)를 내 무릎에 앉혔다.2) - 그리고 보니 못 마땅한 것임을 알았다. - 그래서 욕을 퍼부어 주었다.3)    나는 정의(正義)에 항거하여 무장을 단단히 했다.4) ---   나는 도망했다. 오 마녀여,5) 오, 불행이여, 오 증오여, 내 보물을 나는 너희들에게 의탁했다.   나는 내 정신 속에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온갖 희망을 사라지게 하기에 이르렀다. 그 희망의 목을 비트는데 즐거움을 느껴, 나는 잔  인한 짐승처럼 음험하게 뛰었다.   나는 죽어가면서 그들의 총자루를 물어뜯으려고 사형집행인을 불 렀다. 나는 피와 모래에 범벅이 되어 죽기 위해 재앙을 불렀다. 불행 은 나의 신이었다. 나는 진창 속에 팍 쓰러졌다.6) 나는 죄의 바람에 몸을 말렸다. 나는 광대를 잘 속여 넘겼다.   봄은7) 나를 향해 백지처럼 무시무시한 웃음을 웃었다.   그런데, 요즘 마지막 껄떡소리를 낼 찰나에,8) 나는 옛날의 축제를 다시 열어줄 열쇠를 찾으려 했다. 그러면 아마도 욕망을 되찾을지 모른다.   자애(慈愛)가 열쇠다 - 그런 생각을 하는 걸 보니 내가 전에 꿈 을 꾸었나보다.9)    "너는 잔인한 놈으로 남으리라----" 따위의 말을, 그토록 멋진 양귀비꽃을 나에게 씌어준 악마가10) 다시 소리친다. "네, 모든 욕망 과 이기주의와 모든 너의 죄악을 짊어지고 죽으라"   오! 내 그런 것은 실컷 받아들였다. 하지만, 사탄11)이여, 정말 간청 하노니, 화를 덜 내시라! 그리고 뒤늦게 하찮은 몇 가지 비겁한 짓을 기다리며,12) 글쟁이에게서 교훈적이며 묘사적인 능력의13) 不在를 사랑하는 당신에게 나는 저주를 받은 나의 수첩(手帖)에서 보기 흉 한 몇 장을 발췌해 준다.   1) 첫머리에 놓인 이 시는 보통 나 으로 불리고 있는 것이다. Delahaye에게 보낸 서한에 따르면 랭보는 에 실린 시편 중 에서 적어도 3편을 1873년 4월 11일 이후 1개월이 걸려서 로슈의 헛간에 서 써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랭보는 그후 다시 런던에 가서 브뤼셀의 저 격사건을 겪고 나서 다시 로슈에 돌아온 뒤 나머지 6편이 정리되었던 것이 다. 이 시편들은 1873년 4월 10일 벨기에의 푸트 인쇄소에 보내져서 얼마 후 자비 출판되지만, 전 작품의 빌미에 '1873년 4월 ~ 8월'이라고 주기(注 記)되어 있으므로, 이 기간 내에 완성을 보게 되었음은 거의 확실할 것이다. 이 에서 랭보는 극히 최근에 일어난 내부적 위기를 그려 내려고 하 기보다도 자신의 정신적 과거 및 문학적 과거에 관한 본질적 과정을 마무리 하려 했던 것이다.   2) 이 한 절은 파르나시앙이 탐구한 '미(美)'와 고전적인 '미'로 간주되는 인 습적이고 유형적인 것에 대한 반항을 나타낸 것이다. '저주받은 시인"의 출 발이다.   3) 이 도입부를 이루는 한 절은 자유롭고 희망에 넘친 청춘 시절을 회상한  것이다.    4) '정의'란 물론 사회가 인습적으로 정의로 보고 있는 '가짜의' 의사적(擬似 的)'인 정의를 말한다. '무장한'에는 파리 코뮌을 계기로 하는 세계 개혁에 소 년 시인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다.   5) '여자 마법사'란 요컨대 '신시대의 견자'이다.(미슐레가 한 말) 따라서 "나 는 달아났다"로 시작되는 이 한 절은 '견자(Voyant)'와 '마술도(魔術道)'에의 출발을 노래한 것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6) 이 부분의 서술, 이른바 '견자에의 행보에서의 랭보가 타락하고 있을 때를 생각하고 있다고 보아도 좋고, 아나키스트 내지 파리 코뮌의 가담자로서의 랭보의 한 시기를 그대로 묘사했고 보아도 좋다. 및 과 연관하여 생각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7) '봄'이란 후기 운문에서 열중한 1872년 봄을 회고하고 있는 듯하다. 그 시 기에 베를렌과의 동거생활이 시작되었다.   8) 브뤼셀에서의 베를렌의 저격 시대를 가리키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듯 하다. 여러 평론가들의 견해도 대개 그렇다.   9) '자애'는 가톨릭 신학에 있어 '신앙'및 '희망'과 함께 3덕의 하나로 가톨릭계 의 평가는 그 점을 강조하고 싶어하지만 우리로서는 "꿈을 꾸고 있는데 대한  증거가 된다"고 쓴 랭보의 '부정적' 기분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10)11) '악마' 친애하는 '사탄' 군도 베를렌을 가리키고 있을 것이다.    12)랭보가 베를렌에게 보내기로 약속하고 있는 시를 가리키는 말인 듯하다.   13)베를렌은 실제로 묘사가 철저하게 잘된 소설에 대해서는 비난하는 심장을  품고 있었다. 예컨대 교화(敎化)나 혹은 교훈의 재능에 대해서는 보들레르와  고티에 등 상징주의 세대의 사람들은 한결같이 반대하는 자세를 보이고 있었 던 것이다.  
691    상상력과 가스통 바슐라르 댓글:  조회:1086  추천:0  2019-02-24
상상력과 가스통 바슐라르   이미지의 4원소론   바슐라르는 이러한 이미지의 물질성에 착안하여, 모든 이미지들을 물, 불, 공기, 흙의 네 가지 원소라는 기준에 의해 분류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는 이 네 가지 원소의 이미지들을 기준으로 5권의 책을 썼는데 — 『불의 정신분석』, 『물과 꿈』, 『공기와 꿈』, 『대지와 의지의 몽상』, 『대지의 휴식의 몽상』 — 이 5권의 물질적 이미지에 대한 연구를 흔히 '이미지의 4원소론'이라 부른다. 『물과 꿈』의 서문에서 바슐라르는 다음과 같이 물질적 상상력에 의한 시학의 포부를 밝히고 있다.   "우리는 상상력의 영역에서 불, 공기, 물, 흙의 어느 원소에 결부되느냐에 따라 다양한 물질적 상상력을 분류해주는, 4원소의 법칙을 규정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그리고 만약 우리가 주장하는 바와 같이, 모든 시학이 물질 본질의 구성요소 — 그것이 아무리 미약한 것이라 할지라도 — 를 받아들여야 한다면, 시의 영혼들을 가장 강력하게 결합시키는 것은 원초적인 물질 원소에 의한 분류임엔 분명하다. 하나의 몽상이 하나의 작품을 제작하는 데 충분한 항구성을 가지고 계속되기 위해서, 또한 그것이 단순히 덧없는 무위(無爲)의 시간이 아니기 위해서는 자신의 물질을 찾아야만 하며, 어떤 물질 원소가 자신의 실체, 규칙, 또는 특별한 시학을 몽상에 제공해야만 한다."   모든 것을 물, 불, 공기, 흙 네 가지 원소의 조합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4원소론은 사실 바슐라르가 고안해 낸 것은 아니다. 4원소론은 원래 고대 그리스 철학자 엠페도클레스 이래로 서구에서 널리 확산되어 온 인식론이다. 엠페도클레스는 자신의 저서 『자연에 대하여』에서 만물의 근원을 흙, 물, 불, 공기라고 주장했다. 이 불생불멸(不生不滅)의 4원소가 '사랑'과 '미움'에 의해 결합하거나 분리하여 세계의 여러 가지 상태를 만들어낸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물과 포도주는 서로 사랑하기 때문에 잘 섞이는데 비해 물과 기름은 서로 미워하기 때문에 잘 섞이지 않는다는 식이다. 그는 이 세상이 만들어질 때 사랑이 완전히 지배하는 시기에는 4원소가 혼합된 구형(球形)의 물체가 만들어지고, 미움의 지배가 커지는 시기에는 세계와 생물이 만들어지고, 미움이 완전히 지배하는 시기에는 4원소가 각각 분리된 4개의 덩어리가 만들어지고, 사랑의 지배가 커지는 시기에는 세계와 생물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엠페도클레스의 생각을 발전시켜 더욱 구체적인 4원소설을 주장하게 된다. 그는 모든 원소는 따뜻함과 차가움 그리고 건조함과 축축함의 네 가지 기본 성질 중 두 가지를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4원소는 기본 성질의 조합이 달라지면 서로 변환될 수 있다는 원소 전환설의 내용을 포함하였다. 예를 들어 물에 불이 작용하면 공기가 되고, 불이 식으면 흙이 된다는 식이다. 이 세상의 물질은 4원소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기존에 존재하는 물질도 인위적으로 조합을 바꿔주면 물질이 바뀌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착상은 훗날 중세 연금술의 이론적 근거가 되기도 한다.   4원소론은 동양의 오행설(五行說)과 유사한 점이 많다. 오행이란 금(金), 수(水), 목(木), 화(火), 토(土)의 다섯 가지 원소를 뜻한다. 동양에서는 자연현상을 이 오행의 원리로 설명하였다. 오행 사이에는 서로 도와주는 성질과 다른 것을 이기는 성질이 있어서, 물질을 이루거나 물질이 변하는 데 영향을 준다. 예를 들면 물을 먹고 사는 나무는 불에 타버리고, 불은 흙의 모태이며, 흙은 금의 뿌리이다. 또 금속에서는 물이 나며, 물은 나무가 살기 위한 필수요소이다. 흙에서 양분을 취하는 나무는 흙을 이기지만 금속에게는 지며, 나무에게 지는 흙은 물을 이긴다. 또 금은 물을 이길 수 없다. 이와 같이 모든 것은 서로 서로 연결되면서 영원한 순환의 고리를 이룬다.   4원소론은 과학적 진실의 차원이 아니라 서구적 세계관의 차원에서 이해하여야 한다. 우리가 동양의 음양오행사상을 객관적 과학적 사실이 아니라, 동양인의 정신세계를 구성하는 사상체계로 이해하듯이, 서구의 4원소론은 서구인의 상상계를 구성하는 체계로서 이해되어야 한다. 4원소론의 네 원소는 네 개의 원소가 아니라 세계의 모든 원소를 뜻한다. 세상의 모든 물질이 이 네 원소의 결합이므로 4라는 숫자는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숫자이다.   역으로 5번째 원소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원소를 뜻한다(뤽 베송의 「제 5원소」라는 영화를 상기해 보라.). 이 4원소론은 고대의 우주론이나 중세의 연금술 이외에도 폭넓게 서구인들의 상상계를 차지해 왔다. 이와 같은 4원소론을 바슐라르가 자신의 이미지 연구에 적용시킨 것은 그것이 과학적 진실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서구인의 상상계를 구성하는 기본적인 틀이기 때문이었다.   4원소론은 과학의 입장에서 보면 명백한 인간 정신의 '오류'이며, '인식론적 장애물'이지만, 상상계의 입장에서 보면 세계를 바라보는 인간의 꿈, 즉 인간의 몽상의 틀을 보여준다. 과학적 오류인 4원소론은 상상력의 세계에서는 진실인 것이다. 이 이미지의 4원소는 각기 독립적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서로 결합하여 새로운 의미를 갖기도 한다. 예를 들어 알코올이 들어있는 음료인 '펀치'는 물과 불의 결합이고, 진흙은 물과 대지의 결합이다.   바슐라르는 문학 이미지를 연구하면서, 문학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작가들도 이 4원소들 중의 하나의 원소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모든 시인은 자신이 애호하는 원소를 가지고 있으며 이것은 무의식적으로 작품에 반영되어 나온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호프만의 작품에는 불에 대한 이미지가 주로 나오며, 에드가 포우나 스윈번 같은 작가들은 물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작가들이다. 또 대기의 이미지가 강한 작가로는 니체가 있다.  
  수필의 새 진로: 상상을 통한 문학의 길 박양근 (부경대 영문과교수, 문학평론가)   1. 짧은 시간의 긴 만남을 위하여   수필은 ‘짧은 시간의 긴 만남’이다. 5분 미만에 읽는 한 편의 수필에는 작가가 겪어온 생활과 개성적 사유가 함유되어 있다. 우리가 어떤 사람과 하루를 보낸들, 며칠을 함께 여행한들, 그의 본성을 모두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문화비평가 콜라쿠시오가 “한 나라의 민족성을 알려면 그 나라의 고전을 읽어라.”고 하였듯이 사람을 알기위한 가장 적절한 방식은 그의 수필을 읽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만큼 수필은 글쓴이의 자전성이 강하게 배어나는 문학으로서 이러한 자전성과 문학성을 결속시키는가라는 방식이 문제로 남는다. 수필문학의 정체는 물상의 내적 의미를 밝혀내는 ‘의미화 작업’이다. 그리고 의미화는 미적구조로 구축되는 과정으로써 수필의 문예화는 상상이라는 얼개에 걸려져 있어야한다는 뜻이다. 진지한 수필가는 한 편의 수필을 쓸 때 체험을 나상의 상태로 기록하지 않고 미적구조로 변환시킨다. 이러한 수필화 작업이 상상에 의존하는 이유는 수필은 사실의 기록이라기보다는 상상의 재구성이기 때문이다. 문학적 상상이 없으면 현실 상황이나 사물을 묘사하더라도 외적 묘사에만 그치게 되고 그런 수필은 수기나 생활보고문에 그쳐버리기 십상이다. 문학적 상상을 이루기 위해서는 삶 자체가 수필적일 필요가 있다. 자동차를 타기도 하지만 한번쯤 틈을 내어 바닷가 바위틈을 걸어보는 불편을 마다하지 않고, 냉잇국을 좋아하는 마음의 가난함을 거부하지 않고, 무리지어 수다를 떨기보다 홀로 핀 야생초와 대화를 하면 좋은 수필이 다가온다. 이러한 고독, 소외, 초연은 현실과 유리된 삶을 추구하자는 유혹이 아니라 우주와 소통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가져야한다는 필수조건으로서 사물의 의미를 포착하고 문학을 이해하는 기회가 된다.     2. 좋은 수필의 요건은 무엇인가   좋은 수필은 시적이고 소설적이며 드라마틱하다. 시보다 영감이 넘치며 소설보다 구성력이 뛰어나고 드라마보다 현장감이 있어야한다는 요청이다. 수필은 본질적으로 개인의 리얼리티를 보여주는 소설적 요소와 삶의 단편을 극명하게 무대에 올리는 드라마적 요소, 그것에 율격을 부여하는 시적 요소가 조화롭게 어울려야 하는 것처럼 수필은 사상과 철학을 담되 딱딱한 외골수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달리 말하면 영성과 샤머니즘에 가까운 소통으로 인간애와 자연애를 그려내면서 사회학, 신화, 생물학과 구별된다. 수필의 문학성은 무엇보다 언술을 격조 있게 발전시키는 데 있다. 진솔한 수필은 부끄러운 약점, 잘못된 실수, 숨기고 싶은 결점을 포함하여 자신의 모든 면을 진지하게 성찰하여 표현해낸다. 서사를 전개하는 구성, 적절한 비유, 참신하며 유연한 문체를 통해 체험을 형상화하고 의미화한 수필은 춘풍처럼 부드럽게 속삭이고 때로는 날선 비수처럼 폐부를 찌르며 때로는 가을 낙엽처럼 처연한 몸놀림을 보여주게 된다. 그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수필의 서사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서술구조와 의미전달과의 관계를 안정감 있게 구축하는 데 있다. 그것은 압축성, 독창성, 절제성, 체험성, 소통성, 해학성, 서사성, 그리고 심미성의 기법을 차용하는 일이다 위대한 문학작품일수록 독자에게 제공하는 해석의 폭은 넓고 무한하다. 해석의 무한상은 텍스트가 그 자체로서는 불안정한 존재라는 말과 같다. 독서의 대상으로서 텍스트는 작가가 꾸며낸 스토리와 선택한 담론의 결합체가 아니라 독자의 관점에서 읽고 수용하는 대상이라고 할 것이다. 사실 독자가 작품을 통해 향유하는 즐거움은 독서 행위를 통해 습득하는 다양한 의미의 생산이라는 점에서 수필은 본질적으로 열려진 텍스트여야 하며, 이러한 텍스트와 독자의 관계를 데리다(Derrida)는 "산종(Dissemination)"이라는 개념으로 정의했다(Cuddon 250). Cuddon, J. A. A Dictionary of Literary Terms and Theory. Oxford: Blackwell, 1991. 하지만 수필의 열려진 구조는 허구와 본질적으로 다르다. 서사성을 바탕으로 하는 수필이 허구적 구조가 아니라 열린 구조를 가진다 함은 스토리를 이루는 등장인물, 배경, 사건을 왜곡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 행동이 지니고 있는 의미를 밝히거나 독자 스스로 의미를 찾아내도록 미적구조를 구축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수필의 가독성과 의미의 확장을 간과하고 수필의 사실성을 허구화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작금의 논쟁은 소모적일 뿐만 아니라 본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결과라고 아니할 수 없다. 그러면 수필이 의미구조를 통하여 의미를 생성하고, 미적구조를 통하여 심미감을 전유(傳諭)하려면 어떤 조건을 구비하여야 하는가. 우선 수필에는 언술의 4차원이 충족되어야한다. 1차원은 고백의 진지성을 말한다. 여기에서는 허구가 끼어들 여지가 없으며 사실의 왜곡이나 누락은 문학의 진실성을 훼손하면서 말 그대로 신변잡기가 되어버린다. 문학성을 추구하는 작가는 일상을 기본소재로 하면서도 일상의 다양성, 수용의 다양성, 지식의 다양성, 그리고 표현의 다양성을 통해 자기의 문학적 자질을 발전시켜 나간다. ‘내가 하니까’ 개성이 아니라 ‘나만 할 수 있으니까’ 개성이다. 다양한 문학의 재료인 인생을 자신이 지닌 색깔로 서술하여야 자조와 자성과 자각의 공유가 이루어진다고 하겠다. 수필을 최고의 인생학이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차원은 지적 생산성을 가진 수필을 말한다. 캐캐묵은 지식이나 피상적 개념으로 짜깁기한 글은 설득력뿐만 아니라 정보의 바다인 IT시대에서는 인상미와 호소력이 부족하다. 산문으로서 수필은 신선한 지성, 객관적 논리, 공유화되는 경험이 수반될 필요가 있다. 이것은 문학의 효용론에서 말하는 교훈설에 부응하는 요건으로서 수필은 아는 것만큼 쓴다고 하듯이 읽을거리가 있어야 독자가 공감하고 생각거리를 가지게 된다. 그러나 체계화된 지식이 아니라 흩어진 이삭 같은 글이라면 별다른 소용이 없을 것이다. 3차원은 연륜의 향기가 풍겨나야 한다는 뜻이다. 연륜이라 함은 인공적인 지식이나 싸구려 감정이 아니라 주위의 사람과 사물을 이해할 수 있는 포용력과 관용을 말한다. 과거의 체험을 반추하여 현재와 현실을 입체적으로 조명하고 해석하는 능력을 보여주는 것으로 지식 그 자체를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을 종합하고 분석하고 체계화하는 능력, 달리 말하면 메타지식체계를 담아내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지적 여과장치를 거친 글은 미래와 우주를 꿰뚫어내는 통찰력을 지니게 된다. 4차원은 예술가적 소명감을 지니는 경우다. 시적 요소인 미래, 이상, 감각, 사색, 감성, 직관이 수반되는 이 단계에서는 수필의 완성단계인 예술수필이 나타난다. 지정의(知情意)가 문자향(文字香)을 얻고 우주를 읽어내는 투시력(透視力)을 지닐 수 있다는 말이다. 잡문수필가가 자신이 수필가라는 명예에 골몰하는 현시욕(現示慾)에 빠지고 저자수필가는 양적 발표에 집착한다면 작가수필가는 비로소 문인다운 수필가로서 하나의 표현에도 문학성을 저울질하고, 마지막으로 예술가수필가는 영감의 문학화에 헌신하는 끼를 실천한다고 할 것이다.     3. 상상력의 3가지 질문   노드롭 프라이는 일찍이『문학의 구조와 상상력』에서, “상상력이란 인간의 경험을 토대로 하여 있음직한 본보기(model)를 구성하는 힘이다”라고 정의하였다. 베이컨은 “상상은 사실의 세계에 매이지 않고 사실들을 마음대로 변형시켜 사실보다 더 아름답게, 더 좋게, 더 다양하게 만들어 즐기는 것”이라고 하였으며, 영국의 수필가인 조셉 애디슨(Joseph Addison:1672~1719)은 「상상의 즐거움」이라는 평론에서 “상상은 감각의 대상이 없을 때에도 머리 속에서 심상을 만들어가며, 여러 심상들을 융합하여 전혀 새로운 심상을 형성할 수 있는 능력이다.”라고 풀이하였다. 상상력이 ‘경험을 토대로 한다’ 함은 살고 있는 현실에 대한 인식과 비판을 의미하고, ‘있음직한 본보기를 구성하는 힘’이라 함은 ‘우리가 살고 싶은 이상 세계’의 제안을 뜻하며 “새로운 심상을 형성한다.” 함은 현실의 이상화라는 변증법적 상상을 의미한다. 수필적 생성은 “새롭게 보기”다. 작가는 체험 속에서 새로운 눈으로 새롭게 선택된 소재를 가지고 새롭게 형상화한다. 이때 “새롭게”라는 뜻이 바로 작가 나름의 체험과 인식력을 바탕으로 극히 평이한 소재조차 남다른 가치와 실존성을 지니도록 하는 의미화 작업을 말한다. 대상을 새롭게 바라보고 해석하고 표현하면 이미지와 의미가 재창조된다. 작고한 김병규 씨가 “수필가가 일상생활 속에서 여태껏 발견되지 못한 것을 발견하여 썼을 때 그것은 하나의 창조에 해당한다.”고 했을 때 그가 의도한 창조의 의미는 “새롭게 보기”에 일치한다. 그렇다면 상상은 미완의 무엇인가를 완전하게 꾸미는 과정이라고 하겠다. 상상력은 신이 인간에게 내린 최고의 선물이다. 오직 인간만이 시공을 초월하여 경험을 분석하고 종합하며 때로는 의식주라는 생존조건을 무시하면서까지 문화와 예술을 통해 더욱 인간답게 살아가려는 창조력과 상상력을 지닌다. 작가는 부단하게 움직이면서 생각하고 인생을 통해 주변을 항상 주시하지만 저편에 있는 그 무엇과 제3자가 세월의 주름을 새기며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음을 모를 경우가 많다. 그러던 차에 어느 날 갑자기 그라는 존재와 자신 사이에 어떤 굴레가 있음을 알게 된다. 이처럼 인간은 기본적으로 오감을 통해서 대상을 만나지만 사실은 영감만으로 새롭게 포착할 수 있는 미지의 세계가 존재한다. 여기에 상상이 필요하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로 구분되는 시간과, 이곳과 저곳이라는 이분법으로 분할되는 공간은 상상계에서는 저해 요소가 되지 못한다. 또한 기술과 문명이 지금도 진화하고 있지만 그것들이 답보하는 세상에 만족할 수 없다. 하지만 상상은 시간과 과학의 경계를 뛰어넘는다. 상상이라는 존재는 우리의 심신 안에 무의식 상태로 숨어있을 수도 있고, 오감을 넘어선 저편에 있을 수 있으며, 인류가 꿈꾸는 미지의 세계일 수 있고, 물리적으로 아무리 노력하여도 도달할 수 없는 초월적 우주일 수도 있다. 가령 작가가 꽃병에 담긴 싱싱한 꽃과 쓰레기통에 버려진 시든 꽃을 대비하면서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고 한 편의 글을 쓰게 되더라도 독자의 입장에서는 그러한 동일시의 사색 과정이 주어지지 않거나 그 과정이 어렵기 마련이다. 따라서 작가는 꽃과 인간에 관해 가능한 모든 생각들을 떠올려 보아야 하며 그 미지의 세계로 작가의 영혼을 안내하는 인공위성과 같은 것이 상상력의 정체라고 말할 수 있다. 상상력이 철학적이며 미학적 담론이라는 난해한 풀이를 할지라도 그 본질적 요체는 “왜”라는 부단한 질문에 불과하다. “왜”라는 질문은 인식의 입구로 들어서는 초인종과 같으며 질문의 대상은 기본적으로 세 가지로써 모두 우주를 대상으로 한다. 첫째는 대상이 지닌 근원에 대한 집요한 질문이다. 이를테면 “무엇?”이라는 내재적 질문이다. 근원은 오감이 포착할 수 없는 미지(未知) 그 자체로서 사랑의 근원, 미움의 근원, 존재의 근원, 아름다움의 근원, 갈등의 근원, 죽음의 근원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를테면 “새(鳥)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조류도감에 해설된 새가 아니라 새라는 존재의 뿌리가 어디에서 출발하는가에 대한 무한한 궁금증을 말한다. 둘째는 우주 전체에 대한 외향적 질문이다. 작가가 선택한 제재가 우주 전체와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지에 대한 외적 물음이라고 하겠다. 우주의 대상 하나 하나는 다른 우주의 대상과 유기적인 관련성을 맺고 있으며, 역으로 범우주 역시 개체로서의 대상과 이어지는데, 작가는 자신이 선택한 제재를 통해 우주는 무엇이며, 우주는 어떤 구조와 층으로 이루어있는가 하는 전모를 이해하려는 소망을 꿈꾼다. 작가는 “새는 왜 나무에 머무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새와 나무, 새와 하늘, 새와 둥지 등을 입체적으로 조명하고 모든 대상이 우주의 일부이면서 독자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밝혀야한다. 셋째는 선택한 제재를 매체로 인간 세계를 향해 던지는 인과적 질문이다. 곧 “그렇다면”에 해당한다. 모든 인간이 그 제재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묻다 보면, 작가는 어느 순간 대상과 우주와 인간이 거대한 패러다임 속에서 상호 의존적으로 존재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예를 들면 “새의 울음은 내겐 뭔가”와 같은 질문을 던지다 보면 새, 자아, 타자, 그리고 우주가 거대한 구조를 이룬다는 독특한 인식 방법과 안목을 획득하게 된다. 그러면 작품을 통해 진정한 수필가는 상상력을 이용하여 어떻게 질문을 던지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첫 번째 예는 대상을 근원 세계와 연결시켜 질문을 던지는 경우이다.   바싹 마른 옥수숫대 너덧 잎 남은 이파리가 몸뚱이를 감싸 안고 바람 앞에 울고 있다(청각). 한 잎은 꺾이어 아랫도리를 감았고, 또 한 잎은 위로 어깨를 감싸 안았다.(시각) 누렇게 마른 이파리는 영락없는 삼베다. 꺼칠하면서도 풀 먹인 베처럼 온몸을 두르고 있다.(촉각) 덩굴이 기어올라 등허리를 감아버린 모습 같이 말라 있다. 그것도 제 몫이려니 참아낸 옥수숫대. 마른 잎 속에는 비바람과 폭염에 시달린 삶이 숨겨져 있다. -강돈묵, 「옥수숫대」 일부   옥수숫대의 종말에 대한 명상을 보여주는 이 글에서 작가가 도달하고자 하는 근원은 죽음이다. 옥수수의 죽음에 대한 질문 속에는 우주의 근원에 대한 구도자적 사색이 발견된다. 시각, 청각, 촉각 이미지로 가득한 상상을 통해 죽음이 무엇인가를 나지막한 목소리로 들려줌으로써 대상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강조한다. 이것은 마치 작가가 물속에 들어가서 물위에 있는 사물을 살피기 위해 잠망경을 올려 돌려보는 것과 같다. 전반부의 표층적인 줄거리를 보면 바싹 마른 옥수숫대의 묘사에 불과하다. 겨울바람에 노출된 옥수숫대는 말라서 물기도 생명이 없지만 비바람을 맞이하는 꼿꼿한 모습으로 서 있는 모습을 의미화하면 무엇인가를 지켜내는 성자나 수행자 같기도 하고 가족을 위해 모든 기운을 다 쏟아버린 늙은 가장의 모습이기도 하다 옥수수의 이야기를 인간의 이야기로 읽기 시작하면 충격적인 인식의 세계와 만난다. 옥수수가 보여주는 것은 다름 아닌 삶의 과정이 옥수수에서도 나타나고, 모든 시공에서도 발견된다는 점이다. 강돈묵의 옥수수는 혼신의 힘을 다해 살다가 죽어 존재의 근원으로 귀환한다. 그 간절한 순간에 작가는 옥수수를 안테나로 삼아 생멸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우주와 교신하려한다. 작가가 사별이라는 극적 순간에 어떤 영성을 체험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문인에게조차 이러한 체험이 쉽지 않다는 점에서 경이적이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질문은 작가가 상상력으로 대상과 우주 전체를 연결시켜 질문을 던지는 경우이다. 이러한 예로는 김용옥의「수련」을 들기로 한다. 독자들은 이 작품을 통해서 상상력이 얼마나 원대하고 강력한 투시력을 발휘하는 가를 새삼 깨달을 것이다. 진지한 작가라면 누구나 일생동안 우주의 근원에 질문을 던지지만, 그 탐구 결과를 제대로 들려줄 수 있는 수필가는 드물다. 그래서 현재 살아가는 우리 수필가가 탐구하여야할 질문거리가 여전히, 어딘가 남아있다는 점에서 다행스럽다고 말할 수 있다.   좁은 물둠벙을 메우다시피 한 수련잎 사이로 눈이 부시게 하얀 꽃 한 송이가 떠 있다.(질문1) 백옥같이 흰 꽃잎으로 울 두른 속을, 샛노란 꽃술들이 촘촘히 도열하여 또 하나의 작은 원을 그리고 있는 수련 한 송이. 꽃이라기보다는 사뿐히 물 위에 내려앉은 선녀의 모습이다.(답1-1) 새하얀 색과 샛노란 색의 신비한 조화는 그 청순함이 극에 이르러 있다. 이럴 때의 수련은 정녕 관음보살의 화신이 아닐 수 없다(답1-2)는 생각에 조용히 두 손을 모은다. 맑은 물 속에는 다음으로 피어날 봉오리가 말없이 기다리고 서 있다.(질문2) 그것은 두 손을 곱게 합장한 소녀의 손이다.(답2-1) 그 봉오리에 시간이 여물어 꽃을 피울 양이면 우선 물 밖으로 고개를 내민다. 그러다가 아침 해돋이부터 모았던 봉오리를 조금씩 조금씩 펴기 시작한다. 이어 연못 가득 아침 햇살이 덮는 때를 기다려 수련은 순백의 속살을 살포시 펼친다. 일생일대의 찬연한 개화이다.(답2-2) -김용옥, 「수련」 일부   한 마디로 놀랍고 경탄스러운 질문과 답이 이어지고 있다. 어떻게 무심히 피어나는 연꽃 하나에서 우주의 생명과 생태계의 기운을 감지할 수 있는가. 강돈묵의 옥수숫대가 안테나로서 우주와 교신하고 있듯이 김용옥은 연꽃의 형상에서 소녀의 기도 모습을, 이미지에서 관음보살의 화신을, 기능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마이크가 된다. 화자는 우주의 신비로운 변화를 외계에 전파하는 천체망원경의 구실을 연꽃에서 감지하고 있다. 그래서 김용옥의 연꽃은 시인조차 부러워할 영성을 지니게 된다. 상상력을 지닌 작가는 과학자보다도 먼저 우주를 비행하고, 철학자보다 앞서 우주의 근원 세계와 교신한다. 이러한 상상력은 근원세계에 도달하고자하는 간절한 수행과 미미한 물체에서조차 우주의 태아로 볼 수 있는 내공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상상은 초월적인 영성의 힘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밤을 새워 공부하는 작가, 뼈를 깎는 노력, 그리고 허명을 버리고 무욕으로 정진하려는 작가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이유도 이런 까닭이다. 세 번째 질문은 대상과 인간 세계를 유기적으로 연결시켜 보는 작용과 관련된다. 설령, 탁월한 상상으로 사물의 근원과 전체 우주를 향한 투시가 가능하더라도 그것을 삶과 연결시킬 수 없다면 무용지물이 되어버린다. 우주가 전하려는 가치는 작가 자신과 우주가 연관성을 맺고 상호 영향을 주고받을 때 나타난다. 그러므로 작가에 내재하는 상상력은 대상을 매체로 하여 우주적 관점을 찾는 X-레이와 같은 투시경의 역할을 한다.   한발 두발 숲길을 따라 걷는데 앞 산등성이에서 ‘솨아아’ 소리를 내며 불어오는 바람소리(현상1)에 발을 멈추었다. 정수리부터 가슴까지 오장을 타고 흘러드는 시원한 소리는 심한 갈증을 풀어내 준 샘물 (투시1)같았다. 그 맑은 바람에 취해 정신을 잃고 있는데 또다시 초록색 잎새 사이에서 마른 침엽수 잎이 우수수 (현상2)떨어져 내렸다. 소나무는 이른 봄 내 머리에다 풋 익었던 인생의 낙엽(투시2)을 고스란히 떨구어 주었다. 그 밑 넓은 공간은 마른 갈비가 고르게 펼쳐져 있어 보료를 깔아놓은 듯 했다. 두 사람은 달려가 그 자리에 벌떡 누웠다. 눈앞의 빽빽한 초록 숲 사이로 간간이 햇빛이 새어 들어왔다. 그 녹색의 파노라마 속에 휩쓸려 쾌적하고 상쾌한 솔바람 소리를 드는 행복감은 말하지 않아도 전류가 되었다.(교감) 사랑의 눈빛이 푸르름 안에 번졌다. (관상(觀想)) -박종숙,「소리1」일부   화자는 숲길과 바람소리와 침엽수 잎의 자연현상을 통해 자신이 어디에 있으며 어떤 삶의 계단에 도달해 있는지를 계속하여 자문한다. 숲길을 지나가는 바람과 나뭇잎을 투시하면서 화자는 이것을 촉감이나 시각으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영감으로 “그러면 그들은 내게 무엇인가?”라고 내적 질문을 던진다. 나아가 바람을 영감과 생명의 원형으로 인지하여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과 삶을 연결하는 입체적 시선을 얻게 되었다. 숲 속에 간간이 비치는 햇살과 솔바람 소리에서 행복을 느끼는 화자는 타자 중심의 실존을 인식하며 이때 자연과 인간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관계는 보은(報恩)이다. ‘나는 바람으로 산다.’라는 다음 단락의 시적 도입문이 보여주듯이 화자는 자연을 관조하는 것이 아니라 나뭇잎과 바람에서 인간과의 생태적 상관성을 찾아내는 관상의 경지로 나아가고 있다. 이로써 박종숙의 숲은 우주의 원리를 건져내는 투망이면서 보이지 않는 고리를 찾는 투사물이 된다. 화자는 우주가 부단하게 던지는 물음을 적극적으로 포착하여 얻고자 하는 답을 찾았다. 그리고 “숲 속에 들어가면 서서 걷는 것이 아니라 마른 갈비 위에 눕는다.”는 행위처럼 숲에 대한 경배와 귀의라는 수필적 삶에서 이 글이 쓰였다. 대상을 통한 인식은 모든 작가가 궁극적으로 얻어야 하는 질문이며 여기서부터 문학적 주제가 싹트고 철학적 인식이 열매로 맺는다는 사실을 보여준 수필이다.   그런 의미에서 수필가는 자연이라는 텍스트가 여백으로 남겨두고 있는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야 하고 “왜”, “무엇”이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는 내공을 키워 철학적 단애(斷崖)로 한없이 내려가야 한다. 문학적 상상력의 반지를 끼고 대상과 우주 전체를 투사하면서 그것이 우리의 삶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를 보여주고 들려주는 것이 예술가문학가의 사명이다. 모름지기 수필가는 상상력의 영토를 넓혀가는 알렉산더이고 상상의 우주를 유영하는 스타워즈 선단의 전사들이다.     4. 상상의 4원소   문학 창작의 질적 수준은 상상력의 유무와 고저와 순도(純度)에 좌우된다. 문학 창작의 순서는 우선 무엇을 쓸까 하는 주제가 선행되고 다음으로 그것에 부응하는 소재를 찾아 나서는 경우다. 아니면 소재에서 얻은 인상을 바탕으로 무엇을 쓸까 하는 순서도 가능하다. 그 어느 경우든 주제를 뽑아내고, 미적 구조를 이용해서 사물의 속성을 살펴 인간의 속성을 유추해내는 과정은 유사하다. 여기에 상상의 힘이 자연스럽게 끼어든다. 어떤 대상에 상징성을 부여하고, 새로운 주제로 의미화하려면 특별한 상상이 필요하다. 상상은 불완전한 사실을 완전하게 꾸며내는 일종의 능력으로서 정서와 형식을 유기적으로 맺어주는 계단과 같다고 하겠다. 프랑스의 과학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는 “상상력에 대한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을 가져왔다. 그는 상상이 현실과 아무 관계가 없는 비현실적 기능이면서도 현실세계를 변형하고 변모하는 놀라운 창조성을 지닌 것이라고 새롭게 인식한 인물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인간 정신활동의 보편적인 기능으로서 상상력은 주체가 자신의 전 존재를 통해 이미지를 활성화하거나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행위로서 상상은 외부 사물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주체 자체에 내재되어 있음을 보여주었다. 바슐라르가 말한 상상의 주체는 인간과 세계, 인간과 인간, 인간과 우주와의 일치가 가능하도록 노력하며 종국에는 그 상상력을 통하여 존재의 근원에까지 닿으려고 한다. 상상력이라는 힘은 아니무스라는 논리적 분석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심리 속의 아니마라는 넋에 맡겨야 한다는 의미에서, 바슐라르의 상상력은 말 그대로 연구 방법이 아니라 이미지가 이끄는 힘에 자신을 맡기는 현상학이 된다. 문학적 상상력은 물질적, 역동적, 원형적, 그리고 변증법적 상상력으로 구분된다. 상상력에 대한 이러한 메커니즘은 글의 미학이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설명해주는 단서의 역할을 한다. 문학적 상상력을 좌표화한다면 양극단에는 물질적 상상력(현실세계)과 변증법적 상상력(예술세계)이 자리하고 있으면 그 사이에서 역동적 상상력(감성세계)과 원형적 상상력(이성세계)이 상호 작용하고 있다. 사람이 살아가는 우주를 구분하면 삶을 영위하는 현실세계와 창조하고자 하는 욕구에 부응하는 예술세계가 존재한다. 나아가 현실이 예술에, 인간이 세계에 어떻게 순응하고 접속하는가라는 방식에 따라 감성에 주로 의존하는 역동적 상상계와 이성으로 인식하는 원형적 상상계가 있다. 두 상상은 물질적 상상력과 변증법적 상상력 사이에서 상호 작용을 한다. 물질적(物質的) 상상력은 희랍의 철인 엠페도클레스가 주창한 4원소론에 바탕을 둔 것으로서, 만물이 지닌 형태와 질료와 그 용도적인 기능을 파악하는 힘을 말한다. 가령 “정선의 곤드레 밥은 손님대접을 하는 양식으로서 그 밥이 밥상에 오르면 양식이 떨어졌다는 신호”라는 경우에는 곤드레 밥의 용도를 해학적으로 밝힌 물질적 상상이 나타나 있고, 사람 인(人)을 “죽어서도 자기의 소임을 다하고 하얗게 말라 기운이 느슨해진 울타리와 버팀목”으로 나타낸다면 덩굴손을 받친 버팀목에서는 사람(人)의 형태에 일치시킨 물질적 상상의 예가 발견된다. 역동적(力動的)상상력은 존재 가치를 추론해내는 힘으로써 진선미와 같은 가치를 감성적 분위기로 엮어내는 상상을 말한다. 이것은 주로 사물을 의미화 하는 서술에 적합한 상상으로서 “한국을 근화지향(槿花之香)이라 하여 무궁화의 나라”로 부른다면, 무궁화꽃은 민족정신을 밝혀내고, 정선아리랑을 이야기하면서 “쌓인 애환을 가슴에 삭혀 마지막 한의 찌꺼기를 물소리마냥 풀어내는” 강을 그려낸 단락에서는 역동적 상상의 예를 찾을 수 있다. 원형적(原型的)상상력은 시공을 초월하여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의미를 찾아내는 것으로, 어머니라면 모성애, 갈대라면 생각하는 사람으로 해석하는 구조이다. 원형적 상상력은 세계와 꿈, 현실과 이상과의 상관관계 밑에서 파악해준다. 가령 “호수는 언제나 제 자리에 있어 긴 여행을 할 줄 모르고 고향 지킴이처럼 어떤 유혹에도 휩쓸릴 줄 모른다.”라고 묘사한 박종숙의 「내 마음의 호수」에서 호수는 불변성, 항구성, 생명의 자궁이라는 의미로 환원되고 있다. 한 가지 예를 더 들면 ‘박수는 상대를 즐겁게 하고 스스로 손바닥을 자극하여 건강에도 보탬이 된다.’는 박수의 이점을 제시한 글에서는 관용의 미학을 찾아낸 원형적 상상이 발휘된 글이라고 할 수 있다. 변증법적 상상력은 역동적 상상력을 분출하는 단계로서 사물을 뒤집어보거나 낯설게 보거나 거꾸로 보면서 상식과 인습과 관습을 전복하여 반전을 가져오는 상상의 단계를 말한다. 예를 들면 모성이 지닌 용기를 형상화하거나 겨울에만 맛볼 수 있는 구들장의 온기를 강조하거나 뜨거운 눈물처럼 모순어법을 통하여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하여내는 상상을 말한다. 흔히 수필에서는 부재의 대상을 부활시키는 줄거리에서 변증법적 상상이 자주 구사되는데 ‘아비 없는 아들은 버릇이 나쁘다’는 가설을 바탕으로 아버지가 없음으로 더욱 아버지답게 처신하려는 노력을 표현한 내용이 있다면 부성의 부재를 반전시킨 변증법적 해법이라고 할 것이다. 수필에 있어서의 성찰은 매우 중요하다. 자기 행동에 따른 성찰을 바탕으로 문학성과 철학성을 제대로 살려내려면 작품마다 물질적 상상에서부터 변증법적 상상이 필요해진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보면 상상의 유형과 위계는 물질적 상상력 → 역동적 상상력 → 원형적 상상력 → 변증법적 상상력으로 진행되는 흐름을 살필 수 있다. 이러한 바탕은 포착된 제재가 어떻게 의미화 하는가를 체계적으로 보여주는 기준이 된다. 그런 점에서 상상력은 현실세계의 모순을 해결하고 이상세계를 제시하는 기능을 수행한다고 할 수 있다.     5. 에필로그 상상력은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정서적이며 이지적인 기능이다. 예술을 창조하고 수용하기 위한 불가피한 미적 기능이기도 하다. 영국의 철학자인 베이컨은 역사는 기억을, 철학은 이성을, 문학은 상상(想像)을 바탕으로 전개된다고 할 만큼 모든 예술작품은 상상의 모태에서 태어난다. 상상력은 작가의 문학적 세계를 확장시켜 주는 동력이다. 작가가 작품에서 보여주는 경계는 그가 비행할 수 있는 상상력이라는 동력에 비례하므로 상상력은 작품 세계의 깊이와 넓이, 높이와 두께, 그리고 사상과 인식의 무게까지 결정짓는다. 만일 어떤 작품에 질적 한계가 있다면 그것은 문장표현의 한계나 체험의 제약 때문이 아니라 우주에 대한 상상력의 한계 때문이다. 화가, 목공, 작곡가, 작가 등 예술 분야가 무엇이든 그가 주변소재에 대하여 얼마나 깊게 상상력에 취해있고 얼마나 폭넓게 상상력을 발휘하는가에 따라 미적 수준이 결정된다. 이런 의미에서 상상력은 작가의 문학적 수준을 가늠하는 바로미터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상상이라는 쟁기로 우주를 밭갈이하는 농부다. 작가는 부단하게 ‘상상적 농기구를 개량’하면서 문학적 자산을 넓혀나가야 한다. 적어도 문학적 수필을 쓰려는 수필가에게 상상력은 위대한 신약이면서 스스로 짐져야할 시지프스의 바위임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  
689    雨是一朵金色花 文/小树霓裳 댓글:  조회:1482  추천:0  2019-02-21
雨是一朵金色花 文/小树霓裳   云朵也会说话 你知道么 就像青蛙吹着荷叶喇叭   云朵也会唱歌 你知道么 就像车轮弹奏马路吉他   云朵也会打呼噜 你知道么 就像瀑布敲打石头架子鼓   云朵会开花的事儿 我怎么不知道   咔嚓嚓 云朵开出一朵金色花 亮闪闪的金色花 一眨眼晴就不见啦 金色花去哪里了 哗哗哗 她在给大地妈妈洗澡呢     来源 "儿童诗歌"  
688    春天在哪里 文/胡香文 댓글:  조회:1533  추천:0  2019-02-21
春天在哪里 文/胡香文   听说春天已经来了 我咋看不见? 楼前小树 踮起脚尖儿说   一群小鸟飞来 叽叽喳喳 告诉小树   一个说 春天正在路上 坐着东风姑娘的花棚马车   一个说 春天藏在天上 就在太阳公公红红的脸膛里   一个说 春天躲在泥土里 正和苏醒的种子说话儿   一个说 春天在你的盼望里呀 你看你看 你的皮肤已经泛绿   来源 "儿童诗歌"  
687    [스크랩] 한비문학 2008년 2월호 세계 명시 감상_에즈라 파운드 댓글:  조회:1445  추천:0  2019-02-09
[스크랩] 한비문학 2008년 2월호 세계 명시 감상_에즈라 파운드     이재관 시인 한국 한비문학 작가협회 상임이사  숭실대 명예교수            에즈라 파운드 -시문학과 미술의 만남-           미국 시인 에즈라 파운드(Ezra Pound, 1885-1972)는 27세에 소용돌이라는 미술 유파를 태동시켰고 유럽의 화가, 조각가, 문인들과 교류하면서 독특한 시세계를 구축했다. 거칠고 난해한 그의 시를 해석하기 위해 사람들은 흔히 모더니즘의 조류를 대입하거나 그의 개인적 특징을 강조한다. 그러나 그의 시를 보다 잘 해석하기 위해 미술사를 넘겨볼 필요가 있다. 에즈라 파운드 자신의 평론 또는 그에 관한 전문적 논문들이 매우 다양하고 많지만 미술사와 연관된 부분에 초점을 두어보는 이 글은 나름대로 유익하리라 생각한다.       1. 문학과 미술의 만남   아카데미즘은 19세기 중반, 프랑스에서 만국박람회나 살롱의 출품작을 심사했던 일종의 국립단체인 아카데미 데 보자르 Academie des Beaux-arts의 전통을 말한다. 이 단체의 회원 화가들은 부자들의 취향에 영합했으며, "예술은 아름다움이다. 추한 것을 찾아 나설 이유가 없다. 시대와 무관하게 오직 한 가지 회화가 있을 뿐이다."라고 자신들을 변명했다. 아카데미 화가들은 주로 역사, 신화, 종교, 귀족, 신화의 영웅을 모델로 삼았으나, 개혁적인 화가들은 평민, 상인, 하녀 등 보통사람을 그림의 모델로 등장시켰다. 현대성 및 사실주의를 대안으로 내세운 것이다. 시대와 함께 하고 눈에 보이는 것을 그려야 한다는 것이다.     20세기로 들어서는 문턱은 높았다. 충동, 본능 등 정신분석학적 개념들과의 갈등이 불거져 미술의 전통적 법칙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화가들은 기호와 시어詩語를 빌려 본능적 인간을 표현하려 하거나 추상미술 쪽으로 진출했다. 폴 세잔은 회화를 언어나 수학 같은 것, 새 시각을 위한 실험의 일종으로 취급하고 윤곽선, 명암, 원근법을 무시했으며 뒤이어 나비Nabis파, 야수파, 다리파 등 '색채에 의한 혁명'의 유파들이 거의 동시에 등장한다.     나비파의 피에르 보나르는 형상의 소실점을 과감히 제거하고 빛은 차가운 색으로, 그늘은 따듯한 색으로, 채색방법을 대담하게 전도시켰으며 말라르메의 상징주의 시를 열심히 읽었다고 한다. 다리파(또는 표현주의)는 “인간은 초인과 짐승 사이의 다리”라는 니체의 말에 근거하여 다리 역할을 자처했다. 양극화, 경제적 고통, 사회주의 등 혼란기의 독일에서 부르주아적 가치를 혐오하는 화가들이 공동화실을 설치하고 대중에게 다가선 것인데 다리파는 야수파와 마찬가지로 원근법을 무시하고 격렬한 색을 사용하지만, 현실 참여적이고 심리적 과장을 한다는 점에서 야수파와 달랐다. 모딜리아니, 샤갈 등 파리에 모여든 화가들은 자유분방한 생활을 하면서 파리파를 형성했고 지중해 연안에서는 우체국 직원, 농사꾼, 인쇄공, 가정부, 세관원 등 평범하지만 재능 있는 화가들이 소박파의 기치를 걸었다. 소박파는 구상의 전통을 이어받았으나 대담한 색채혁명을 시도했으며 소박하지만 꼼꼼하고 세밀했다.     개혁파를 대별하면 ‘색채에 의한 혁명’과 ‘형태에 의한 혁명’,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후자를 통칭하여 아방가르드avant-garde라 부른다. 아방가르드는 군대 용어였으나 러시아 혁명 당시에는 계급투쟁의 선봉을 가리켰고 기존 예술을 뒤엎는 혁명적 예술운동을 또한 아방가르드라 한다. 그 계보는 입체파, 소용돌이파, 미래파, 러시아 아방가르드 등으로 이어졌다.     소용돌이파Vorticists는 미술의 유파지만 산업사회 및 문학적 배경이 강했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마르크스주의, 프로이드 심리학, 과학혁명, 전쟁 등 변화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세상은 훨씬 복잡해졌다. 1910년대 미국 포드자동차 회사는 연간 수십만 대라는 경이적인 대량생산 기록을 수립하고 있었으며 그러한 신기계문명은 기대와 불안을 함께 안겨주었다. 소용돌이파의 잡지 창간호(1914-15)에 게재된 선언문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소용돌이vortex는 최대의 에너지, 최대효율을 내는 지점이다. 최대효율이란 기계공학의 최대효율과 같은 뜻이다. 인간은 방향성을 갖는 지각perception의 운동체인데, 인간은 환경의 장난감일 수도 있고 환경에 대항하는 유체 역학적 통제권자가 될 수도 있다. 소용돌이파는 각자의 물감을 신뢰한다. 개념과 정서는 스스로 구현되는 것이지만 활기찬 양심과 주된 방식에 따른다. 미술은 100편의 시요, 음악은 100편의 그림, 가장 많은 에너지를 요구하는, 가장 강력한 표현이 가능한 문장이다. 경험을 소용돌이에 퍼붓는다. 모든 과거, 전환점, 경쟁, 달리던 추억, 평온을 원하는 본능, 에너지가 담기지 않은 미래, 모두를. 인간 소용돌이 속에 벌어지는 미래의 설계. 과거를 미래에 쏟아 붓고 소용돌이에서 잉태시킨다. 바로 지금"     에즈라 파운드는 이 창간호에서 라는 제목의 다음과 같은 시로 인사말을 대신하고 있다. "타임지의 점잖음을 비웃어주자, 하하/입마개 쓴 평론가들 너무 많다/벌레들이 몸에 우글거릴 때 깨달을까/..."     소용돌이 운동은 3년간(1912~1915) 전개되었고 1차 세계대전으로 중단되었으나 전후 "X 그룹"이란 명칭으로 계승되었다. 초기 가담자는 화가이며 소설가인 윈덤 루이스, 화가 윌리엄 로버츠, 에드워드 웨즈워드, 프레데릭 이첼스, 조각가 고디에-브르체스 등이다. 로버츠는 소용돌이파 10인의 에펠탑 회동 장면을 그림으로 남겼다. 루이스 Wyndham Lewis가 중추적인 역할을 맡았는데 그가 영국인이기 때문에 소용돌이 운동은 흔히 영국의 예술혁신운동, 영국의 아방가르드 또는 영국판 큐비즘이라고도 한다.     의식세계는 불완전하다. 환경, 감정, 사회적 요소가 끊임없이 감각과 판단을 왜곡시킨다. 작가가 애초에 의도했던 대로 독자(또는 관람자)들이 동일한 의미를 느끼도록 하려는 노력 자체가 종종 헛수고로 끝난다. 따라서 화가와 시인들은 추상과 무의식 세계로 영역을 확장하는 새로운 실험에 착수했다. 현실과 의미적 일대일 대응에 지쳐버린 작가들로서는 비로소 진정한 휴식과 자유의 가능성을 전망하게 되었다. 추상의 세계에서는 의미를 규정하는 부담이 줄어들고 새로운 조형언어를 찾아내는 신선함이 있다.     바실리 칸딘스키와 프란츠 마르크는 청색(힘) 또는 노란색(감미로움)의 말을 좋아했고 자신들을 청기사라고 호칭하였다. 피터 몬드리안 등은 수학기호와 기하학적 도형을 통해 추상의 세계를 구축했다. 1910~1920년에 나타난 다다이즘, 메르츠, 초현실주의는 모두 문학에 기원을 둔 것들이다. 특히 초현실주의 운동에 많은 시인들이 참여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본능, 리비도, 충동에 종속된 상상의 세계였다. 시인 앙드레 브르통은 "말, 글 또는 다른 모든 방식을 통해 사고의 실제를 표현할 수 있도록 해주는 순수한 정신적 자동성"이라고 초현실주의를 정의한다. 조르지오 키리코는 모든 사물의 외양을 "무의식의 거울"이라고 보았다. 의식세계 일변도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현실감각을 파괴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했다. 다다이즘 예술가들은 복고주의를 규탄하고 틀에 박힌 언어를 흥분된 의성어로 변형시켰다. 갖가지 조각과 고물을 더덕더덕 붙이는 꼴라주, 아상블라주, 레디메이드가 시도되고, 그라타주(긁어내기), 환각제, 약물 등이 사용되었으며 비참한 사회의 고발에 몰두하였다.       2. 에즈라 파운드의 시 감상   앞에서 고찰한 미술사, 그리고 화가와 시인들의 정신적 교류와 혼신의 몸부림을 생각하면서 에즈라 파운드의 시를 읽으면 새로운 맛을 느낄 수 있다. 그가 소용돌이 운동기에 쓴 시들은 그의 시집 (1917)에 실려 있다. 초기의 비판적인 시를 중심으로 가급적 짧은 작품 5편을 번역하여 전문을 소개하고자 한다.     에서는 미국의 대표적 시인인 휘트먼에 대해 빈정대고 있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빈정거림이 아니다. 휘트먼으로 대표되는 시문학의 전통을 어떻게 계승 발전시킬지 고민하는 마음과 각오가 서려 있다. 은 문학뿐만 아니라 기성세대 전체에 대해 도전하는 시라고 볼 수 있다. 은 자기 자신에 대한 채찍질이다. 즉, 이 시에서의 비판 대상은 자기 노래(시)라고 볼 수 있다. 는 1920년에 출간된 시집에서 뽑은 장시의 일부분이다.         계약  -A Pact     당신과 계약 한 건 합시다, 월트 휘트먼 씨 나는 아주 오랫동안 당신을 혐오했답니다. 당신은 고집쟁이 부친 슬하의 다 큰 아이 같았는데 나는 친구를 사귈 만큼 나이를 먹었어요. 나무를 자른 건 당신이었고 이제 나는 목각을 제작해야 하니 우린 한 뿌리 한 수액을 공유하는 셈입니다. 둘이 거래를 해봅시다. -----------         연극처럼  -Histrion     아직 아무도 이런 걸 감히 쓴 적이 없었지 아직 내가 알기로는, 우리 곁을 지나간 모든 사람들의 영혼이 어찌 그리 위대한 척 했는지 우리 모두 홀딱 빠졌지 반성시켜야 할 그들을 구원하지 못하고 그러니 나 역시 한 구석에선 단테였고 또 다른 구석에선 발라드의 왕이자 도둑인 프랑소아 빌론이었지 이런 거룩한 자들에 대해 내 이름 때문에 모독적 언행은 못했다네 하지만 순간에 지나가 불길은 꺼졌지     우리 한 복판에서 반투명구체, 용해시킨 황금인 "나"를 자라게 하면서 요상한 프로젝트를 집어넣어 스스로 그리스도 또는 존 또는 위대한 피렌체 가문인 척 했지 그 후 즉시 떠밀려 당대에 해야 할 일을 그만 두었네 정해진 형식이 투명하지 못한 것이었거든 뭐 그렇고 그래서 '영혼의 대가'들이 영원한 거지 -----------         추가적인 주의사항  -Further Instructions     내 노래야 정신 좀 차려 우리의 더 근본적인 열정을 표현해보자 안정된 직장에서 장래를 걱정하지 않는 자를 부러워할 건 없다 내 노래야 너는 게을러서 끝이 안 좋을까봐 그게 두렵다 너는 길거리에 나가 모퉁이와 버스정류장을 서성대고 있다. 아무 일도 안 하려는 것인가     우리 태생이 고귀한 신분이란 것조차 노래에 담질 않는구나 그러면 끝은 안 좋을 거야     나는 어떠냐구? 반쯤 깨져 못 쓰게 됐어 너를 보면 꼭 나를 보는 것 같다고 네게 입이 닳게 말했지 건방진 작은 놈! 뻔뻔스럽기는! 옷이나 걸쳐라!     그러나 너, 많은 중 제일 새로운 노래, 너는 아직 젊다 나쁜 짓을 많이 할 새가 없었지 나는 네게 용이 수놓아진 중국제 초록 코트를 입게 했지 산타마리아노벨라의 아기 그리스도 상에서 따온 진홍 실크바지를 입혔지 우리가 맛이 갔다거나 천한 신분이라고 사람들이 말하면 안 되니까 -----------         새벽의 노래 (알바) -Alba     새벽녘 내 곁에 누워 있는 그녀는 계곡의 백합 젖은 잎처럼 차고 창백했다. -----------         휴 셀윈 마버리 I-2  -Hugh Selwyn Mauberly, Part I-2     시대는 다른 이미지를 요구했다 가속적으로 찌푸려지는 얼굴 같은 것 현대적 무대에 필요하다고들 하는 것 하여튼 희랍식 기품과는 다른 어떤 것   아니, 내면의 애매한 몽상은 분명 아니고 고전 미사여구들 보다는 나은 허위!   시대적 요구란 시간 손실 없이 회반죽 본을 뜨는 일 산문 영화, 아니, 확실히 그건 설화석고 또는 운문의 조각 작품 -----------         3. 아름다운 고발   현대 예술의 주류는 사실주의와 표현주의다. 사실주의는 폭로 고발하는 것이고 표현주의는 자기 주관을 뿜어내는 과시(또는 자기고발)이다. 그런데 사실주의적 고발이든 표현주의적 자기과시든 자칫 지저분한 것이 되어버리기 쉽다. 그래서 궁극적 가치관이 요구된다. 작가들은 처절하게 고발하거나 자기고발을 하거나 아니면 새로운 실험에 도전함으로써 궁극적으로 고결한 미에 다가서고자 몸부림친다. 자연, 동식물, 거짓과 폭력의 현장에서 고결한 미를 찾고 작품화한다는 것은 어쩌면 말이 안 되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작가는 무표정하고 허약한 자신, 오염된 자신을 먼저 꾸짖는다.     화가는 빈 공간을 의미 있게 채우기 위해 추상, 무의식, 초현실성까지 동원한다. 캔버스는 의미들이 와서 형성되거나 부서지는 장소가 된다. 거리 공간은 의미의 공간으로 거듭난다. 화가는 점, 선, 색, 도형, 빛들을 의미 있는 조형미로 바꾼다.     시인은 일상 언어를 쪼개고 갈고 붙여서 의미 있는 시어로 바꾼다. 그것은 기술적 실험일 수도 있다. 많은 시인들이 언어의 유희에 빠진다. 반대로 현장고발이나 주관의 표현에만 급급한 경향도 있다. 화가들이 필사적으로 공간과 싸우는 것처럼 시인들은 시 정신을 가다듬으면서 처절하게 시어를 만져야 한다.     고발하거나 고발당하는 치열함, 실험에 대한 열정, 고결한 미의 추구는 미술과 문학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중심축이었다. 시는 예술과 문학의 꽃이고 그런 만큼 아름다워야 한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이 단지 아름다움만을 위한 것이라면, 19세기 미술사의 아카데미즘과 무엇이 다를까? 그렇다고 해서 일부러 혐오스러운 단어를 써야 진보적이라 할 것인가? 에즈라 파운드의 거친 표현의 시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의 4행 시 을 음미하면서 이 글을 마치기로 한다.         보석계단의 불평  -The Jewel Stairs' Grievance     보석 박힌 계단이 이슬에 많이 젖었다, 너무 늦어 나의 외올베 양말이 젖었지 뭐요 그래서 난 크리스털 커튼을 내리고 청명한 가을을 통해 달을 바라봤지요 -----------     원작자가 이백(李白, Rihaku)임을 밝히면서 파운드는 자기가 개작한 시와 그 해설을 발표했다. 고대 라틴 시, 중국 시 등을 왕성한 열정으로 번역한 파운드는 간간히 이와 같은 개작에도 많은 관심을 보였다. 개작은 파운드의 경우 그의 실험정신의 일단이었다. 사실 시의 번역은 직역만으로는 부족하다. 이 시에 대한 파운드의 해설은 다음과 같다.     "보석이 박힌 계단이라면 아마 왕궁일 것이다. 그 곳에 불평이 있다는 것인데 외올베(가제, 紗) 스타킹은 귀부인이 신는 것이니 불평하는 사람은 귀부인일 것이다. 귀부인은 청소가 늦은 것을 탓하니 너무 일찍 현장에 온 것이다. 날씨는 쾌청하니 날씨 탓을 하는 것도 아니다. 결국 귀부인은 아무도 직접적으로 책망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시는 멋있다"     에즈라 파운드는 "직접적으로 책망하지 않는다." 라는 이유로 이백의 이 시가 좋다고 말한다. 평생 비판적인 시를 썼던 그가. 그 많은 독설과 빈정거림, 비아냥대는 시를 썼던 사람이 재치 있게 하는 해설이니 또 한 방 맞은 것 같다. 그러나 생각을 고쳐본다. 만일 그가 누구를 지목해서 괴롭히려고 그런 시를 쓴 것이 아니었다면, 진정한 사랑이 복받쳐 터져 나온 비판이나 고발이었다면 말이 되지 않을까 그 또한 아름답지 않은가.    
686    [공유] [dc도갤 펌] 낯설게하기(Defamiliarization) 관련 정리 댓글:  조회:1280  추천:0  2019-02-09
  [공유] [dc도갤 펌] 낯설게하기(Defamiliarization) 관련 정리     출처 JBC 블로그|어린잎 러시아 형식주의(Russian Formalism)의 주요용어로 빅토르 쉬클로프스키가 예술적 지각과 문학적 담론의 독특한 성질을 기술하기 위해서 사용.  축자적으로는 '이상하게 만들기(make strange)'를 의미.  쉬클로프스키에 따르면 문학은 일상언어와 습관적인 지각양식을 교란. 문학의 목적은 '대상을 친숙하지 않게 만들고, 형태를 난해하게 만들고, 지각과정을 더욱 곤란하고 길어지가 하는 것'이다. '낯설게하기'는 문학언어와 일상언어를 구별시킬 뿐만 아니라 문학 내부의 역학을 가리키기도 한다.  한 지배적인 문화형식이 지나치게 자주 사용되어 당연하게 여겨지고 일상언어처럼 취급되면 종전의 종속적인 위치에 있었던 형식이 전경화되어 그 문학적 상황을 낯설게 만들고 문학 발전과 변화를 야기하게 된다.  '낯설게하기'는 또한 현실을 재현하여 사회의 지배적인 사상을 교란하는 문학의 능력에 해당한다.   -------현대문학문화비평사전(문학동네)      톨스토이의 일기메모의 예 중 '만일 많은 사람들의 복잡한 생활 전체가 무의식 속에 지나가고 마는 것이라면, 그 생활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지각작용이 습관화되면서 자동화된다는 사실의 예 삶의 감각을 되찾고 사물을 느끼기 위해서, 돌을 돌답게 만들어 주기 위해서 예술이라 불리는 것이 존재한다.  예술의 목적은 사물에 대한 느낌을 알려져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지각된 대로 느끼게 하는데 있다.  따라서 예술기법은 사물을 '낯설게 하고' 형식을 어렵게 하며, 지각을 힘들게 하고 지각에 소요되는 시간을 연장시키는 기법이다.  톨스토이의 낯설게 하기 기법은 사물을 통상적인 이름으로 부르지 않고 대상을 처음 본 것처럼 묘사, 사건도 처음 일어난 것처럼 묘하사는데 있다.  어떤 것을 묘사할 경우에 그 대상의 어느 부분에 대한 인정된 명칭을 피하고 대신에 다른 대상에서 그에 상응하는 부분의 명칭을 갖다 붙인다.  문맥에서 이탈하여 사물을 바라보는 방법.  쉬클로프스키는 개인적으로 낯설게 하기는 이미지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이미지의 목적은 대상에 대한 독특한 지각을 창조하는 것, 즉 대상의 '인지'가 아니라, 대상에 대한 '시야'를 창조한다.  낯설게하기는 색정적 수수께끼의 기법, 즉 완곡어법일 뿐만 아니라 모든 수수께끼의 기초이며 유일한 의미이다.  에로틱한 이미지도 낯설게 하기의 기법이다.  대구법의 목적은 대상에 대한 지각을 일상적 지각으로부터 새로운 지각의 영역으로 전이시키는 일 즉,  독특한 의미의 변화를 가져오게 하는 일. 예술이 공통된 특징은 지각의 자동화를 제거하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것.  작가의 목적은 예술 속에서 지각의 비전을 제시하는 일,  지각을 지연시키고 가능한 한 최대 한도로 지각의 힘을 요구하고 지각하는 시간의 길이를 연장하여  '인위적으로'만들어진 것이다. 이때 대상은 공간 속에서가 아니라 시간의 지속성 속에서 지각된다.      -----------------러시아 현대 비평이론(민음사)      지각의 탈 자동화. 일상생활에서 마주치는 사물들을 우리는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슈클로프스키에 따르면, 보지 못하고 자동적으로 대응할 뿐이다.  예술은 그러므로 대상을 우리가 이미 알고있는 방식대로가 아니라,  우리가 새롭게 느끼는 그런 방법으로 담아내야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슈클로프스키의 지각의 법칙은 예술 일반의 보편적인 원칙으로 확대되고, 예술은 지각의 자동화에서 탈피하여, 대상을 낯설게 하려는 기법들의 집합체인 것이며, 이미지는 결과적으로 대상을 낯설게 만드는 기법의 한 수단인 것이다.    --------러시아 형식주의(한국외국어대학출판부)     
685    공유] 무의식: 프로이드의 발견과 라깡에 의한 그의 재독해 댓글:  조회:1002  추천:0  2019-02-07
[공유] 무의식: 프로이드의 발견과 라깡에 의한 그의 재독해     출처 흐르는 물처럼|우강  무의식: 프로이드의 발견과 라깡에 의한 그의 재독해                                                   피에르 스크리아빈 - 권희영 역 (정문연)         머리말   그의 세미나의 마지막 강의를 라깡은 라고 이름 붙였는데, 거기에서 그는 무의식이라는 용어가 환원불가능하다고 하였다. 시니피앙으로 환원할 수 없으며 지식으로 환원할 수도 없고 의미로 환원할 수도 없는 것이다. 확실히 무의식에는 어떤 의미가 있다. 그 때문에 그로부터 프로이드의 발견이 나오는 것이며 그 때문에 이 숨은 의미는 주체의 고통의 대가로 벗겨지고 인정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무의식적 지식에서 관계되는 것은 의미를 넘어서 혹은 이 의미와 반대하여, 시니피앙의 물질성 가운데, 그 결합가운데, 그 해석가운데 그 의미의 장소에는 아무런 관계도 없이 주체가 그것을 즐기는 태도이며 향락이 거기에 깃들이는 방식인 것이다. 그로부터, 의미에 만족하는 것은 정신분석으로 하여금 길을 잘못 들게 하는 막다른 골목인데, 의미는 심리치료로의 쉬운 비탈길의 미끄럼틀 역할을 하며 정신분석가의 욕망을 배제하는 심리주의적 실추가 되는 것이다.   이 주제는 따라서 우리로 하여금 분석적 경험의 약동의 본질적인 지점으로 우리를 이끌어가게 하는데, 라깡이 구분하였던 4개의 근본 개념 중의 하나인 무의식으로부터 출발하여 이론적인 경계에 있어서나 임상적인 경계에 있어서 우리는 아주 엄격하게 분석적 경험에 있어서의 대체 즉 의미를 향락으로 대체하는 것 같은 역설처럼 보이는 질서들을 구분하고, 미늘을 벗기고, 풀어내려고 하며 그럴 때 무의식은 그 영역이자 동시에 흔적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정신분석적 노선과 실천의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 같은 문제는 우리로 하여금 “마지막 라깡” 즉 1970년 이후의 라깡의 가르침의 지점에로 프로이드적 발견의 단면으로 이끌어간다.       주체가 없는 지식   프로이드적 발견으로부터 시작하자. 그것은 한 주체가 증상을 제시하며 그로부터 고통을 당하고 불평하기 위하여 그것에 대해 말하며, 가끔 문제를 일으키는데 이것은 불가항력으로 실언이나 실수같이 그의 말과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확인에 기초한 것인데, 또는 그 주체는 꿈을 꾸며 농담을 하며 주체 스스로가 그로부터 오는 것에 대하여 놀라게 된다는 그 확인에 기초한 것이다.   프로이드는 꿈, 농담, 실언, 실수에 주목하였는데 왜냐하면 그는 이 현상들이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고 증상과도 같은 구조와 인과관계의 질서를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드디어 그것들의 구조를 밝히면서 프로이드는 증상과 무의식의 구조를 발견한다. 무의식의 소산들인 이 현상들에 대해 그는 그 해독이 가능하다며 하나의 해석에 이르게 되는 것을 보여주는데, 이것들은 또한 주체에게 강요하며 주체의 통제나 의지를 벗어나게 한다는 점을 공통으로 가지고 있다. 그 주체가 말하고 행동하고 느끼는 것은 그가 말하거나 행동하거나 느끼려고 했던 것이 아니다. 주체인 나로서 볼 때는 아무런 힘이 없는 것이다. 이 현상들을 프로이드는 말과 꿈의 이야기와, 자유연상을 통하여 접근한다. 그리고 라깡은 “무의식은 말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말은 말하기 하는 것이고 그것은 메시지를 만들어낸다. 따라서 그 무의식은 어떻게 말하며 무엇을 말하는가?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 이 말은 라깡이 우리에게 “샹폴리옹 같은 방법”인 프로이드의 해독법을 따라서 무의식이 “어떻게 말하는가”라는 것을 공식화시킨 것인데, 거기에서 라깡은 그것은 시니피앙과 그것들의 결합, 다른 말로 언어의 구조, 은유, 환유의 법칙들에 대하여 말한 것이다. “샹폴리옹과 같은 방법”, 이 말은 기록에 관계하는 것이며 우리로 하여금 무의식의 문자와의 유관성을 검토하게 한다. 각자는 무의식의 형성의 프로이드적 이미지가 풀어야 할 그림수수께끼와 같다는 것을 안다. 그림수수께끼는 필적이며 스스로 읽지 못하는 것이고 해독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그림수수께끼에 있어서 이미지는 시니피앙과 같으며 이는 또한 시니피에와는 관계가 없다. 예컨대 물양동이인 소(seau)의 이미지는 시니피앙으로서 음소인 “so”의 물질적 지지이며 이는 단어의 구성에 있어서 그러한 가치를 가지고 있지만 이는 또한 멍청이 소(sot)가 될 수도 있고 약동(saut)이 될 수도 있고 또다시 양동이(seau)가 될 수도 있으며 도시 소(Sceaux)도 될 수 있다.   지나는 길에 일본어가 한자를 音讀으로 읽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을 언급하여 두자. 이것은 의미론적인 가치와는 무관하게 글자로서 음소를(그들의 중국어 읽기) 나타내는 것뿐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 같은 중국어를 이용하여 프랑스어를 쓸 수 있듯 이 글자들을 이용하여 일본어를 쓰고 글자를 바꿔 쓴다. 이 필적은 정확하게 문자라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우리에게 나타내어준다. 문자란 의미작용으로부터 떨어진, 시니피에로부터 떨어진 것으로서의 시니피앙이다. 그리하여 필적은 해석과 해독을 포함한다. 그렇기에 라깡이 그의
684    거지 황아전 / 김 춘 수 댓글:  조회:1604  추천:0  2019-02-06
거지 황아전   김 춘 수     어릴 때 본 참빗과 나막신이 없다. 약과틀도 없다. 죽음이 주검이 되어 얼굴이 조막만하다. 살갗이 가짓빛이다. 체인 코코스는 메뉴가 화려하다. 대낮이다. 햇살이 햇살을 보고 히죽이 웃는다. 공원에 다람쥐가 없다. 한바[飯場]의 벽에는 바끔한 틈도 없는 빈대의 핏자국이다. 눈앞에 남자의 그것이 축 늘어져 있다. 날이 샜는데 아침이 오지 않는다. 작년에 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다. ―『현대문학』, 2005년 1월     물성物性들의 혼곤하고 아름다운 엇섞임, 또는 퍼즐 풀기의 즐거움       해제에 따르면 이 작품은 선생의 유일한 미발표작이다. 먼발치에서 몇 번 뵙고 정진규 선생님의 소개로 선생의 맥주도 두어 차례 받아 마셔 본 적이 있을지언정, 선생을 향한 무슨 살뜰한 감정이 있을 리 없다. 그런데 유일한 미발표작이라는 이 시를 곰곰이 뜯어 읽으면서, 선생의 생전 모습과 내가 전혀 모르는 그의 내력來歷이 불현듯 살갑게 느껴지는 까닭은 나도 잘 모르겠다.   이 시는 매우 난해하게 여겨진다. 내용도 그렇지만 "거지 황아전"이라는 제목부터 그 의미를 간추리기 어렵다. "거지", 그리고 "-전"에 주목하면 "황아"라는 이름을 가진 거지의 전기傳記, 또는 「임경업전」이나 「조웅전」처럼 주인공의 이름을 딴 고전소설의 제명題名을 떠올리게 한다. 이는 결구 "작년에 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다"의 뒷받침을 얻는다. 그러나 이러한 추리는, 전고典故에 따른 것이 아니라면 "황아"라는 이름이 낯설다. 더구나 대개 "황아"가 ‘황아장수’에서처럼 ‘황화荒貨’, 즉 담배나 쌈지 따위의 잡동사니를 가리킨다는 점, 그리고 시의 "참빗", "나막신", "약과틀" 등속이 황아장수가 파는 잡동사니라는 점에서 다르게 해석될 여지를 품는다. 그렇다고 "황아"를 ‘황화荒貨’로 이해한다면, 앞에서의 "거지"나 "-전", 그리고 결구와 정면으로 충돌을 일으킨다. 참 난처한 딜레마다. 일단 숙제로 남겨 놓는다.   화자는 무릎을 담요로 덮은 채 흔들의자에 앉아 창틈으로 새는 봄볕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문득 두 가지 장면이 기억의 창고로부터 빠져나와 화자의 눈앞에 스크린처럼 펼쳐진다. 하나는 "공원에는 다람쥐가 없다"까지 비교적 가까운 과거의 에피소드고, 다른 하나는 "……축 늘어져 있다"까지 비교적 먼 과거의 에피소드다. 과거의 일을 현실에서 동시에 환상처럼 다시 보며, 화자는 창밖의 봄볕을 바라본다. 무심히 어렸을 때 불렀던 동요의 한 구절, "작년에 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다"를 떠올린다.   화자는 패밀리레스토랑 코코스의 체인점에 와 있다. 손자․손녀를 포함한 가족단위 외식을 위한 모임일 듯하다. 코코스는 현대식 레스토랑답게 선명한 붉은빛을 주조로 깨끗하면서 쾌적하게 꾸며져 있다. 해가 잘 들도록 설계해서 실내는 한층 밝고 화려해, 잘 다듬어진 공원과 같은 분위기다. 그러나 공원이 아닌 레스토랑의 실내에 "다람쥐"가 있을 리 없다. 모처럼의 가족 외식에 화자는 한껏 들떠 있다. 실내 가득한 "햇살"도 손주들을 혼자 생각하며 흡족히 바라보는 화자의 미소처럼 "히죽이" 웃는 것 같다. 메뉴는 햄버거스테이크와 데리야끼소스를 이용해 만든 치킨요리를 묶은 믹스드그릴, 부드러운 안심스테이크에 석탄난로로 구운 왕새우를 곁들인 것, 닭가슴살구이에 바삭바삭 튀겨진 옥수수칩을 섞은 멕시칸 샐러드 등속이다. 그런데 식탁 위에 놓인 스테이크요리가 갑자기, 화자의 눈에 음식물이 아닌 생명체의 "주검"으로 비친다. 어쩌면 의식의 한 모서리에서 늘 죽음을 감촉하면서 생활한 까닭인지도 모른다. 화자는 하나의 "주검"인 채 "가짓빛"으로 놓여 있는 스테이크요리에서, 언젠가 이장移葬할 때 본, 거의 육탈해 터무니없이, "조막"만하게 작아진 얼굴을 가진 "가짓빛" 시신을 겹쳐 떠올린다. 화자는 자신의 뜬금없는 상상에 스스로 놀라 새삼 주변을 둘러본다. 현대식 패밀리레스토랑에 "참빗"이나 "나막신", "약과틀" 따위가 있을 까닭이 없다. 그런데 화자가 돌연 그것들을 찾는 이유는 뭘까.   그건 결구 "작년에 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다"에서 짐작할 수 있다. 화자가 창밖의 봄볕에서 떠올린 것은 "각설이"다. "각설이"는 봄볕의 비유물이다. 매년 어김없이 찾아온다는 점에서 유사성을 띤다. 화자의 어린 시절 기억에 남아 있는 "각설이"는 황아장수다. 떠돌이행상인 그는 늘 초라하기 짝이 없는 거지몰골일 수밖에 없다. "각설이"처럼 주기적으로 나타난다는 점도 황아장수를 "각설이"로 기억하는 이유다. 화자는 어린 시절 마을에서 그가 풀어놓는 보따리의 각양각색 잡동사니에 "참빗", "나막신", "약과틀" 따위가 섞여 있음을 생각해 낸다. 봄볕을 보며, 잠시 과거의 기억에 취해 있던 화자는 다시 순간적으로 머릿속에 틈입한 현대식 패밀리레스토랑 "체인 코코스"의 환상 속에서 그것들을 더듬어 찾는다.   "체인 코코스"의 환한 환상과 겹쳐 떠오른 것은 아득히 먼 젊은 시절의 기억이다. 어떤 정황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화자가 요기를 위해 든 곳은 노무자들의 임시식당인 "한바[飯場]"다. 그때의 장면을 회상하는 것은 "체인 코코스"와 식당이라는 면에서 겹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곳과 선명한 대조를 이루는 분위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장면은 화자의 자의식을 예리하게 긁는다. "바끔한 틈도 없는 빈대의 핏자국"은 기억의 사생寫生이다. 의미보다는 "체인 코코스"에 대비된, 습기가 많고 채도가 낮은 이미지를 위해 봉사한다. 이것은 "벽"에 그려진 낙서의 우울한 배경이 된다. 남자의 성기인 "그것이" "축 늘어져 있다". 비록 그림일지언정 하늘을 향해 탱탱하게 용립聳立하지 못하고 땅으로 초라하게 "늘어져 있는" 모습은, 단순한 성적 기호記號를 넘어 삶과 죽음의 회로도가 이미 포함하고 있는 것들에 대한 환멸과 체념의 고단하고 쓸쓸한 상징이다. 그것은 화자 스스로도 느끼지 못하는 사이 자신의 자의식을 베낀다. 이러한 환상 속에서 화자가 "날이 샜는데 아침이 오지 않는다"고 느끼는 것은 낯설지 않다.    여기까지 이 시를 풀이하는 과정에서 제목 "거지 황아전"의 의미가 드러났다. 이는 애초 "거지 황아장수전"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선생은 "-전" 앞의 "황아장수"가 너무 길고 구체적인 인물을 가리키지 않는 일반명사라 어색할뿐더러, 제목다운 여운을 주기에는 의미가 너무 선명하다. 과감히 "장수"를 빼 본다. "거지 황아전"의 "황아"는 특정인을 가리키는 이름 같기도 하고 황화荒貨, 즉 잡동사니를 의미하는 것 같기도 하면서, 상상력의 숨통을 묘한 방향으로 뚫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이름으로 치더라도 「우상전虞裳傳」의 "우상"처럼 예스러우면서 그럴 듯하다. 선생은 투명한 사실 대신 모호한 언어적 묘미를 선택한다. 선생의 제목 짓기에 대해 상상해 보았다.   이 시의 난해함은 문장의 배열이 시간의 맥락이나 에피소드의 인과관계와는 상관없이 "무의식의 자동기술법"을 본따 이루어졌다는 데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본따’라고 표현한 것은 그 배열이 ‘무의식의 자동기술법’에 따른 것이 아니라, 다분히 전략적으로 그 비슷하게 배열했다고 여겨서다. 그러나 그것이 2류시인의 유치한 꾀부림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은 탄력있게 조였다 끊는 리듬의 깨끗함도 깨끗함이지만, 천진하면서도 그윽한 이미지의 태깔과 그것들의 리드미칼한 파동 때문이다.    이 시의 주조적 이미지는 "참빗", "나막신", "약과틀", "가짓빛" "주검"으로부터 투사된다. 이 낱말들이 서로 충돌하면서 산란散亂하는 이미지들은 얼핏 검박 ․ 산뜻하면서도 마치 오래 손때가 탄 채 맑게 닦인 대청마루의 어슬녘빛 같은 깊고깊은 고요를 거느린다. "주검"조차 그렇게 여겨진다. 그것은 "주검"의 표면에 칠해진 "가짓빛" 식물성 이미지의 윤기 있는 진보라빛 깊고 향긋한 채색으로부터 발원한다. "가짓빛" "주검"은 "참빗", "나막신", "약과틀"의 이미지와 약간 거리를 둔 채 그것들을 더 깊고 향기롭게 감싼다. 또 "바끔한 틈도 없는 빈대의 핏자국" 위에 "축 늘어져" 있는 남근男根은 그것이 품는 의미와 상관없이 미묘한 조형성을 느끼게 한다. 이중섭의 은지화銀紙畵나 「꽃과 어린이와 게」처럼 낡고 꼬질꼬질한 배경 위에 송곳이나 목탄 따위로 그려진 남근을 연상하게 된다. 여기에서 조형미를 바라보는 것은 나만의 상상인지 모르겠다.     더 중요한 미덕은 "날이 샜는데 아침이 오지 않는다"의 타나토스적 전경前景 아래 봄볕을 각설이패로 비유하는 은근하면서도 흐벅진 여유다. 위에서 말했지만, "각설이"는 황아장수이며, 그것은 현재 화자가 무릎을 담요로 덮고 바라보는 거실 바깥의 봄볕이다. 어쩌면 더욱 비감 어리게 할 수 있을 봄볕을 각설이의 개구지고 활발한 이미지로 바꿔치기할 수 있는 것은 단순히 노련한 세공술사의 솜씨만으로는 설명이 어렵다. 각설이패의 이면에 가려진 비애를 감안하더라도 마찬가지다. 타나토스적 정황 속에서도 놓치지 않는 그러한 여유는 언어에 대한 무봉無縫하고 겸허한 태도에서 유로된다.   이 시를 다 읽고 난 후 독자들은 원래의 의미와 정서는 봄볕에 희석된 채, 각각의 이미지들만이 살아 순연한 물성物性에 육박하는 장면을 경험하게 된다. 그것은 소위 무의미시로 다듬어지고 세척된 정서의 염결과 세련에 연유한다. 이는 선생의 가장 선생다운 기호嗜好다. 아무러나 이 시가 내장한 퍼즐을 푸는 것은 어렵고 재미없는 난수표를 읽는 곤혹스런 짜증이 아니라, 유쾌한 사건을 추리하는 탐정의 그것처럼 시원한 재미를 선사한다.  
683    문학 작품의 해석 방법 댓글:  조회:1854  추천:0  2019-02-06
  문학 작품의 해석 방법   문학은 그 자체로 진공의 상태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작자 - 작품 - 독자'의 구도 속에서 '현실 세계'에 역동적으로 구체화되는 현상이다. 따라서, 문학의 참된 의미는 작자, 독자,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파악되어야 한다. 이 가운데서 어디에다 중점을 두고 문학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양한 관점이 나온다.    현실세계 ∥ 작가 〓 작품 〓 독자      표현론적 관점(생산론적)   ⑴ 기본 입장 : 문학 작품은 작가의 체험, 사상, 감정의 반영물이다.                      문학 작품은 작가의 창조 능력의 소산이다. ⑵ 특징 ♠ 작품이 작자와 맺는 관계를 중요시하는 관점 ♠ 문학 작품은 작가의 표현욕구가 드러난 대상이기에 작가의 모든 것을 작품에 연관시켜 해석하려 함. ♠ '작가론(作家論)'과 밀접한 관련성을 지님. ⑶ 방법 ♠ 작품을 창작한 작가의 창작 의도에 대한 연구 ♠ 작가에 대한 전기적(傳記的) 연구 ― 성장환경, 가계, 학력, 교우관계, 취미, 사상, 병력 등의 조사. ♠ 작가의 심리 상태에 대한 연구 ⑷ 장 • 단점 ♠ 장점 : 작가의 개인적인 능력과 천재성을 중시함. ♠ 단점 : 의도의 오류를 범할 수 있음.(작가가 표현하고자 의도한 것과 그것이 실제로 표현된 결과인 작품이 서로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음)    반영론적 관점   ⑴ 기본 입장 : 문학 작품은 현실 세계의 반영이다. ⑵ 특징 ♠ 아리스토텔레스의 '모방론'에서 비롯된 것으로, 작품과 현실 세계와의 관계를 중시하는 관점임. ♠ 실제로 인간의 삶은 현실 세계에서 영위되고 있으므로, 작품은 인간의 현실적 삶을 내용으로 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작품에 나타난 현실과 실제의 현실이 맺고 있는 관련성에 촛점을 맞추어 해석하는 방법임. ⑶ 방법 ♠ 작품이 대상으로 삼은 현실 세계에 대해 연구한다. ♠ 작품에 반영된 세계와 대상 세계를 비교 검토한다. ♠ 작품이 대상 세계의 진실한 모습과 전형적 모습을 반영했는지 검토한다. ⑷ 장 • 단점 ♠ 장점 : 문학이 단순한 상상력의 산물이 아니라 구체적 현실에서 출발한다는 점을 일깨워주며, 문학 작품에 대한 이해가 삶의 현실, 시대 및 역사에 대한 이해로 확대될 수 있게 한다. ♠ 단점 : 이 방법이 지나치면 작품을 작품으로서가 아니라 실제 사실들의 조립체 또는 역사적 자료로 보게 되는 단점이 있음.    효용론적 관점(수용론적)   ⑴ 기본 입장 : 문학은 독자에게 미적 쾌감, 교훈, 감동 등의 효과를 주기 위해 창작한 것이다. ⑵ 특징 ♠ 작품과 독자의 관계를 중시하는 관점 ♠ 능동적 참여자로서의 독자의 역할을 강조함.(독자가 작품을 수용함으로써 의미가 구현된다는 점, 즉 작품 해석이 수용자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될 수 있다는 점 등을 제시함) ♠ 작품의 가치를 독자에게 어떤 효과를 어느 정도 주었느냐에 따라 평가하려는 관점이다. ⑶ 방법 ♠ 독자의 감동이 무엇이며, 그것이 구체적으로 작품의 어떤 면에서 촉발되는가를 검토한다. ♠ 그 시대의 최고의 지성과 정신 등 객관적이고 타당한 기준이 도입된다. ⑷ 장 • 단점 ♠ 장점 : 독자가 능동적인 주체가 되며, 일반 독자들이 쉽게 실천할 수 있는 관점이다. ♠ 단점 : 독자의 주관적 느낌이 작품의 진정한 의미라고 생각하는 오류에 빠질 염려가 있음.    절대주의적 관점(구조론적)   ⑴ 기본 입장 : 문학 작품은 고도의 형상적 언어로 조직된 자율적인 체계이다. ⑵ 특징 ♠ 작품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자료는 작품밖에 없으며, 작품 속에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다고 생각함. ♠ 작품을 그 자체로 독립된 자족적 세계로 인식하기 때문에, 작품의 가치를 절대적으로 생각함. ♠ 작품을 작가나 시대, 환경으로부터 독립시켜 이해한다. ♠ 언어 표현의 방식과 작품의 내적인 짜임새를 중시함. ⑶ 방법 ♠ 작품의 언어적 구조를 중시한다. ♠ 문학의 언어가 지니는 특징 및 언어의 이미지, 비유, 상징 등에 주목한다. ♠ 작품을 유기적 존재로 본다. 특히, 시에 있어서 시어와 시어 사이, 행과 행, 연과 전체 작품의 상관 관계, 운율과 의미와의 관계 등을 분석적으로 이해한다. ⑷ 장 • 단점 ♠ 장점 : 언어에 민감한 시의 분석에 뛰어난 성과를 보임. ♠ 단점 : 작품에 대한 해석의 폭을 좁힐 수 있으며, 문학이 궁극적으로는 역사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는다.    종합주의적 관점   ⑴ 기본 입장 : 작품의 총체적이고도 통일적인 의미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표현론적, 반영론적, 효용론적, 절대주의적 관점을 통합하여 연구해야 한다. ⑵ 특징 ♠ 작품을 어떤 하나의 관점으로만 바라보면 그 작품의 부분적 의미만을 볼 가능성이 있음을 전제함. ♠ 작품은 다양한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것을 총체적으로 이해하려면 다각도의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⑶ 방법 ♠ 네 가지 관점을 통합한다. ♠ 네 가지 관점을 부분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유기적으로 통일시키는 것이다. ♠ 주관성을 배제하고 객관성을 유지한다  
682    [공유] [[[세계 명시 모음]]] 댓글:  조회:1830  추천:0  2019-02-05
출처 천명(天命;인생의 의미) | 영원속으로 원문 http://blog.naver.com/hanjun105300/221304113260   양치식물이 자라는 언덕  - 딜런 토마스     풀이 푸르렀던 만큼, 쾌활한 집 주변의  사과나무 가지 아래에서 내가 어렸고 편안했기 때문에,  별처럼 빛나는 골짜기 위로 밤이 올 때,  시간은 내게 인사하게 했고,  시간의 눈의 전성기 속으로 즐겁게 오르게 했다.  그리고 사륜차 사이에서 존경받으며 나는 사과 마을의 군주가 되었고,  그 전에 이미 바람에 날려 떨어진 등불의 강 아래로  보리와 데이지를 이끌어 가는  나뭇잎들과 나무들을 나는 당당하게 가지게 되었다. 집이 농가였던 만큼, 나는 생기가 넘쳤고 걱정이 없었으며  행복한 마당 주변의 헛간들 사이에선 유명했으며 노래를 불렀었기 때문에,  아직 이른 태양 속에서 단 한 번,  시간은 내가 장난치게끔 하였고, 시간의 의도된 자비 속에서 나를 매우 즐겁게 하였다.  푸르게 빛났던 나는 사냥꾼이었으며 목동이었다.  송아지들은 내 뿔에 노래했고 언덕 위의 여우들은 맑지만 냉담하게 짖어댔다.      신성한 개울의 조약돌 속에서  안식일은 천천히 지나갔다. 해가 떠 있는 동안 내내, 그것은 쫓겨 나갔고, 사랑스러웠다.  집 같이 높은 건초 밭, 굴뚝으로부터 나오는 선율,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으며, 장난치며,  사랑스럽고 물 같으며 풀처럼 푸른 불이었다.  그리고 밤에는 소박한 별들 아래서,  내가 잠을 잘 때, 부엉이들은 농가에서 멀어져가고,  달이 떠있는 내내, 나는 들었다. 건초가리와 함께 날아가는 쏙독새와  어둠 속으로 휙~하고 움직이는 말들이  마구간에서 신의 은총을 입는 소리를. 그리고 깨어나서는 이슬에 젖은 하얀 방랑자와도 같은 농가가  돌아온다, 수탉을 그의 어깨 위에 올린 채. 그것은 매우 빛났다.  그것은 애덤과 아가씨였다.  하늘이 다시 모였다.  그리고 해는 바로 그날 둥글어졌다.  소박한 빛의 탄생 이후에 있었으리라,  처음에 맴돌던 곳에서, 히힝 울어대는 녹색 마구간으로부터  찬송의 밭을 향해 따뜻하게 주문에 걸린  말들이 걸어 간 것은. 마음이 넉넉했던 것처럼, 새로 만들어진 구름들 아래 있는  즐거운 집 옆에 있는 여우와 꿩들 사이에서 존경 받으며 행복한,  계속에서 태어나는 태양 속에서  나는 경솔한 길을 내달렸었다.  내 희망들은 집처럼 높은 건초 밭을 달려 나아갔고,  내가 파란 하늘을 가지고 거래를 하고 있었을 때,  생기 넘치고 즐거운 아이들이 기품과는 동떨어진 그를 따라가기 전에  그의 아름다운 변화 속에서 시간은 그토록 많은 아침 노래들을 허락했지만  난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 양같이 하얀 날에, 시간은 내 손의 그림자 옆의 다락에 밀어닥친  제비에게 까지 나를 데려갔지만, 나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  언제나 떠오르는 달빛 속에서,  나는 높은 밭들과 함께 그가  날아가는 소리를 듣고 그리고 아이가 없는 땅으로부터  영원히 달아나버리는 농가를 깨워야 되서 잠들지 않았다.  오 나는 시간의 의도된 자비 속에서 어렸고 편안했었지만,  내가 그 바다와 같이 내 사슬 안에서 노래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나를 푸르른 채 죽어가게 했다.   만개한 벚꽃나무 아래서    -다시사시   만개한 벚꽃나무에 기대어 있을 때 해체된 말의 앞다리가 달려왔다 뒤이어 뒷다리도 달려왔다 그 뒤를 이어 하늘에서 떨어진 몸통이 네 다리 위에 올라 앉았고 머리가 없는 채로 말은 잠자코 서 있다 이윽고 짐수레를 끌고 노파가 다가와서 짐받이에 싣고 온 말의 머리를 나의 발 아래에 내려놓고 갔다 나는 말의 머리를 제자리에 붙연호고 다시 말을 보았다 그 말은 내가 소년이었을 적에 사산으로 해체된 모태에서 끌려 나온 말이었다 말은 이제야 처음으로 보는 걸 허락 받은 자와 같았다 나는 침으로 상처를 닦아 주고 손을 번쩍 들어 말의 엉덩이를 쳤다 말은 우렁차게 울고 나서 들판 끝으로 달려갔다 그때 봄 폭풍으로 한꺼번에 지던 벚꽃 꽃잎을 온몸으로 받으며 나는 벚꽃나무가 문득 비틀거리는 것을 보았다.     화살과 노래  - H.W.롱펠로우   나는 공중에 화살을 하나 쏘았다 그것이 땅으로 떨어졌고,  나는 그 행방을 몰랐다 그것이 너무 빨리 날아서, 눈으로 그것이 날아가는 것을 좇을 수 없었기 때문에   나는 공중에 노래 하나를 불러 보냈다 그것이 땅으로 떨어졌고, 나는 그 행방을 몰랐다 누가 그토록 예민하고 우수한 시력이 있어, 그 노래의 날아가는 것을 좇을 수 있겠느냐   오래 오래 뒤에,한 참나무에서 나는 아직 꺾이지 않은 화살을 찾았고, 노래는 첫 구절에서 끝까지,  한 친구의 가슴 속에 들어 있음을 알았다   ​ 수선화  -윌리암 워즈워드     골짜기와 산 위에 높이 떠도는 구름처럼 외로이 헤매다니다 나는 문득 떼지어 활짝 펴 있는 황금빛 수선화를 보았나니,   호숫가 줄지어 선 나무 아래서 미풍에 한들한들 춤을 추누나.     은하에서 반짝이며 깜빡거리는 별들처럼 총총히 연달아 서서 수선화는 샛강 기슭 가장자리에 끝없이 줄지어 서 있었나니!   흥겨워 춤추는 꽃송이들은 천 송인지 만 송인지 끝이 없구나!     그 옆에서 물살도 춤을 추지만 수선화의 흥보다야 나을 것이랴. 이토록 즐거운 무리에 어울릴 때 시인의 유쾌함은 더해지나니,   나는 그저 바라보고 또 바라볼 뿐 내가 정말 얻은 것을 알지 못했다.     하염없이 있거나, 시름에 잠겨 나 홀로 자리에 누워 있을 때 내 마음에 그 모습 떠오르나니, 이는 바로 고독의 축복 아니랴,   그럴 때면 내 마음은 기쁨에 넘쳐 수선화와 더불어 춤을 추노라.                                                                        추수하는 아가씨  - 윌리암  워즈워드     보아라 혼자 넓은 들에서 일하는 저 아일랜드 처녀를,   혼자 낫질하고 혼자 묶고 처량한 노래 혼자서 부르는 저 처녀를   여기에서 잠시 쉬든지 가만히 지나가라 오 들으라! 깊은 골짜기 넘쳐흐르는 저 소리를     아라비아 사막 어느 그늘에서 쉬고 있는 나그네 나이팅게일 소리 저리도 반가우리,   멀리 헤브리디즈 바다 적막을 깨뜨리는 봄철 뻐꾸기 소리 이리도 마음 설레리     저 처녀 무슨 노래를 부르는지 말해 주는 이 없는가   저 슬픈 노래는 오래된 아득한 불행 그리고 옛날의 전쟁들   아니면 오늘 흔히 있는 것에 대한 소박한 노래인가     아직껏 있었고 또다시 있을 자연적인 상실 또는 아픔인가   무엇을 읊조리든 그 노래는 끝이 없는 듯 처녀가 낫 위에 허리 굽히고 노래하는 것을 보았네   나는 고요히 서서 들었네 그리고 나 언덕 위로 올라갔을 때   그 노래 들은 지 오랜 뒤에도 음악은 가슴 깊이 남아 있네       가여운 수잔의 환상 - 워어즈워드      우드가 모퉁이에, 해가 떠오를 때면 목청 돋우어 우는 한 마리 티티새, 지난 3년 동안 한결같았다.   가여운 수잔이 이곳을 지나다 고요한 아침에 그 노랠 들었었다. 황홀한 그 노랫소리; 무슨 번민이라도 있단 말인가?   수잔은 본다 솟아 오르는 산, 나무들의 환영을;   뭉개뭉개 떠오르는 빛나는 안개는 로드 버리를 지나 미끄러져 가고, 한 줄기 강이 치잎사이드의 골짜기를 흘러내린다.   푸른 목장을 그녀는 본다. 작은 골짜기의 한복판에서, 양동이 하나 들고 그녀가 자주 오르내렸던 그 골짜기,   그리고 비둘기장 같은 한 채의 오두막집을 본다. 그녀가 이 세상에서 사랑하는 단 하나의 집을,   이 모두를 보고 그녀의 마음은 천국에 잠긴다, 그러나 그 모두는 사라진다.   안개도 강물도 언덕도 그늘도, 시냇물은 흐르려 하지 않고, 언덕도 솟아나려 들지 않는다. 온갖 아롱진 빛이 모두 다 그녀의 눈에서 사라져 버렸다.     바벨론 강가에서 앉아서 우리는 울었도다.  - 바이런     우리는 바벨의 물가에 앉아서 울었도다.   우리 원수들이 살육의 고함을 지르며    예루살렘의 지성소를 약탈하던 그 날을 생각하였도다.   그리고 오 예루살렘의 슬픈 딸들이여!   모두가 흩어져서 울면서 살았구나.     우리가 자유롭게 흐르는 강물을 바라볼 때에   그들은 노래를 강요하였지만,    우리 승리하는 노래는 아니었도다.   우리의 오른 손, 영원히 말라버릴지어다!   원수를 위하여 우리의 고귀한 하프를 연주하기 전에     버드나무에 하프는 걸려있고   그 소리는 울리지 않는구나. 오 예루살렘아!    너의 영광이 끝나던 시간에   하지만 너는 징조를 남겼다.   나는 결코 그 부드러운 곡조를    약탈자의 노래에 맞추지 않겠노라고.       그날은 지나갔다  - 죤 키츠      그날은 지나갔다 달콤함도 함께 사라져버렸다!   감미로운 목소리, 향긋한 입술, 보드라운 손, 그리고 한결 부드러운 가슴   따사로운 숨결, 상냥한 속삭임, 매혹적인 반음 빛나는 눈, 균형잡힌 자태, 그리고 곧게 뻗은 허리!   살졌도다 꽃과 그 모든 꽃봉오리의 매력들은 사라졌도다  내 눈으로부터 아름다운 모습이 사라졌도다   목소리가, 따뜻함이, 하얀 낙원이 향기로운 커튼을 친 사랑의 아늑한 축제의 밤낮이  은밀한 환희를 위해    두터운 암흑의 씨줄을 찌는 저녁녘 일시에 자취를 감추었도다   그러나 내가 오늘 온종일 사랑의 미사책을 읽었을 때 사랑의 신은 나를 잠들게 하리라   내가 단식하고 기도하는 것을 보고서.     그리스 항아리에 부치는 노래   - 죤 키츠     너는 더럽혀지지 않은 그대로인 정적의 신부 너는 침묵과 기나긴 세월 속에 자라난 양자 너는 숲속의 역사가.   우리 시인의 노래보다 더 멋있게 꽃처럼 아름다운 노래를  이렇듯 전해 줄 수 있다니-.    네 둘레에 감도는 것은 어떤 전설인가?   죽음에 관해선가, 영원한 것인가? 그 모두에 관해선가? 템페 골짜기인가, 아카디아 언덕의 일인가? 사람들의 일인가, 신들의 일인가, 신과 인간 모두의 일인가?   어떤 사람들일까, 어떤 신들일까? 도망치려는 것은 어떤 소녀일까? 이 얼마나 미친듯한 구애인가, 도망치려는 몸부림인가? 어떤 피리이며 어떤 북인가?  얼마나 미친듯한 환희인가?     귀에 들리는 선율 아름다우나 귀에 울리지 않는 선율은 더욱 아름답다. 자, 네 부드러운 피리를 계속 불어라.   육신의 귀에다 불지 말고 더욱 친밀히 영혼을 향해 소리없는 노래를 불러라.   나무 그늘에 있는 젊은이여, 네 노래는 멈추는 일이 없고 이 나무들의 잎도 떨어지지 않는다.    사랑에 빠진 사람아, 너는 결코 입맞출 수 없으리라. 목표 가까이에 닿긴 해도-.   그러나 슬퍼 말아라. 너 비록 크나큰 기쁨을 얻지 못할지라도 그녀는 빛바래는 일 없으매 영원히 사랑하라, 그녀는 영원히 아름다우리라.       아아 너무나도 행복겨운 나뭇가지들이여! 잎은 지는 일 없고, 봄에 작별을 고하는 일도 없다.   또한 행복겨운 연주자여, 피곤할 줄 모르고 영원히 새로운 노래를 영원히 연주할지니   더욱 행복스런 사랑이여! 너무나 행복겨운 사랑이여! 언제나 따스하고 영원히 즐거워라.   언제까지나 불타듯 추구하고 언제까지나 젊도다. 살아있는 인간의 정열이란 끊임없이 추구하여 가슴은 슬픔이 넘치고 이마는 불타며 혀는 타올라 네 사랑에 미치는 것이 아니다.     이 희생 의식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오오! 신비로운 사제여, 명주와 같은 몸에다 화환을 장식하고 하늘을 우러러 우는 송아지를 어떤 초록빛 제단으로 데려가는가?   이 거룩한 아침, 여기 모인 사람들이 남겨두고 온 것은 강변의 작은 마을이던가, 바닷가의 마을이던가?   아니면 평화로운 성채로 둘러싸인 산위의 마을이던가? 조그만 마을이여, 네 거리는 영원히 조용해질 것이리라. 그리고 황폐해질 거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리라.     오오 아티카의 형체여! 아름다운 모습이여!  대리석 남자와 여자가 조각되어 있고 숲의 나뭇가지들과 밟혀진 갈대도 있구나.   너는 침묵의 모습, 차가운 전원이여! 우리를 생각하지 못하게 하고 영원하구나.   사람이 나이들어 한 세대를 마감할 때도 너는 남아서 이렇게 말하리라. '아름다운 것은 진리요, 진리는 아름다움이다.' - 이것이 너희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아는 것 전부이고, 알아야 할 것은 이 뿐이다.      부숴져라, 부숴져라, 부숴져라  - 앨프리드 테니슨      부숴져라, 부숴져라, 부숴져라,   네 차디찬 잿빛 바위에, 오 바다여!   그리고 나도 내 혀가 심중에 솟아오르는   생각을 표현할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오, 어부의 아들은 좋겠구나,    누이와 고함지르며 놀고 있네!    오, 젊은 뱃사람은 좋겠구나,    포구에 배 띄우고 노래 부르네!     우아한 기선들도 갈 길을 가는구나,    언덕 아래 항구를 향해.   오, 그리워라, 사라진 손길의 감촉이여,    소리 없는 목소리여!     부숴져라, 부숴져라. 부숴져라,    네 벼랑 기슭에, 오 바다여!   하지만 가 버린 날의 다정한 행복은    내게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      눈물, 덧없는 눈물 - "공주"에서 - 앨프리드 로드 테니슨      눈물, 덧없는 눈물, 까닭 모를 눈물이 거룩한 절망의 바닥에서 가슴에 솟아올라 눈에 고이네.   행복한 가을 들녘 바라보며 가 버린 날들을 생각하노라니.     저승에서 벗님네들 싣고 오는 돛배  그 돛배에 반짝이는 첫 햇살처럼 새롭고 사랑하는 이들 모두 싣고 수평선 넘는 돛배   그 돛배 빨갛게 물들이는 마지막 햇살처럼 슬퍼라. 그처럼 슬프고 새로워라, 가 버린 날들은.     아, 슬프고 야릇하여라. 어둑한 여름날 동틀 녘   죽어 가는 이의 눈에 창문의 네모꼴이 차츰 흐릿해 보일 무렵 그의 귀에 들려오는  잠 덜 깬 새들의 첫 지저귐처럼.   그처럼 슬프고 야릇하여라, 가 버린 날들은.     죽은 뒤 생각나는 키스처럼 다정하고 딴 이에게만 허락된 입술에 헛되이 해보는    상상의 키스처럼 감미로워라. 사랑처럼 깊고 첫사랑처럼 깊어라. 오만가지 회한으로 미칠 것 같아   오, 삶 가운데 죽음이어라, 가 버린 날들은.     평생의 사랑  - 로버트 브라우닝                 방에서 방으로 나는 그이와 함께 살고 있는 집을 빠짐없이 찾아 헤맨다.   내 마음이여 걱정하지 말지니, 너는 꼭 찾으리라- 이번에야말로 그이 자신을- 커텐에 남겨진 그이가 지나간 흔적이라든가 벤취에 남은 향내가 아닌 그이 자신을   지나가면서 그이가 닿기만 했을 뿐으로 허리판에 새겨진 꽃은 새로이 피고 맞은 편의 거울도 모자의 깃털에 반짝이었네.     그런데 이 하루도 점차 남은 때가 얼마 안 되고 문 저쪽에 다시 문이 이어진다.   나는 다시 그 운세를 시험해 본다- 넓은 집을 거기에서 중앙에로 먼저와 같은 결과로다, 내가 들어가면 그이는 이미 나간 뒤여라.   이렇게 꼬박 하루를 탐색에 허비한다 치고 그것이 대체 무슨 일이랴.   이제 이미 해거름의 때, 그러나 조사해야 할 방은 멀리까지 이어져 있고 찾아야 할 방, 있고 싶은 방은 끝없다.    이니스프리 호수섬 - 예이츠     나 일어나 지금 가리, 이니스프리로 가리. 가지 얽고 진흙 발라 조그만 초가집 지어,   아홉 이랑 콩밭 일구어, 꿀벌 치면서 벌들 잉잉 우는 숲에 나 홀로 살리.     거기 평화 깃들어, 고요히 날개 펴고, 귀뚜라미 우는 아침 노을 타고 평화는 오리.   밤중조차 환하고, 낮엔 보랏빛 어리는 곳,  저녁에는 방울새 날개 소리 들리는 거기,     나 일어나 지금 가리, 밤에나 또 낮에나 호수물 찰랑이는 그윽한 소리 듣노니   맨길에서나, 회색 포장 도로에 서있는 동안에도 가슴에 사무치는 물결 소리 듣노라. ​   하늘의 융단  - 예이츠     금빛과 은빛으로 무늬를 놓은 하늘의 수놓은 옷감이라든가   밤과 낮과 어스름한 저녁 때의  푸른 옷감 검은 옷감이 내게 있다면   그대의 발 밑에 깔아 드리오리다만 내 가난하여 가진 것 오직 꿈 뿐이라   그대 발 밑에 내 꿈을 깔았으니 사뿐이 밟으소서, 내 꿈을 밟고 가시는 이여!   훔쳐 온 아이- 예이츠     스루스 숲 바위산이 호수 속에 잠긴 곳에 나뭇잎 우거진 섬 하나 떠 있다.   푸드득 나래치는 왜가리들이 잠자는 물쥐들을 깨우는 그 곳   우리들 요정의 통 속엔 딸기를 가득 훔쳐 온 빨간 버찌를 가득 숨겨 두었다.     "자 아이야, 어서 오너라! 거친 들판 물가로 손에 손을 잡고 요정과 함께 오너라.   세상은 생각보다 눈물이 많은 곳이니."     어두운 잿빛 모래밭 달빛 물결이 빛나는    먼 로시즈 해변에서 우리는 밤새도록 춤을 춘다.   손에 손을 잡고서 서로 마주보며   저 달이 사라져 버릴 때까지 옛 춤을 엮어낸다.     우리는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끓어오르는 물거품을 쫓지만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차고 잠 속에서도 근심에 싸여 있다.     "자 아이야, 어서 오너라! 거친 들판 물가로 손에 손을 잡고 요정과 함께 오너라.   세상은 생각보다 눈물이 많은 곳이니."     그렌 카 언덕 사이로 굽이치는 시냇물 쏟아지는 곳 별 하나 목욕할 수 없는 등심초 우거진 웅덩이 속에   우리는 잠자는 송어들을 찾아내어 그들의 귀에 대고 속삭이며 불길한 꿈을 안겨 준다.   작은 시냇물 위에  눈물방울 떨어뜨리는 고사리들 사이 살짝 몸을 내밀고서,     "자 아이야, 어서 오너라! 거친 들판 물가로 손에 손을 잡고 요정과 함께 오너라.   세상은 생각보다 눈물이 많은 곳이니."     이 아이는 우리와 함께 가고 있다. 진지한 눈을 하고서.   이제 다시는 듣지 못하리라, 따뜻한 언덕 위 송아지 우는 소리를, 난롯가 주전자의 평화로운 노래를.   다시는 보지 못하리라, 갈색 새앙쥐가 귀리통을 돌고 도는 것을.     "사람의 아이 그가 오는구나. 거친 들판 물가로 손에 손을 잡고서 요정과 함께 오는구나.   세상은 생각보다 많은 눈물로 가득 찬 곳이니."    쿨 호수의 백조를 보며 - 예이츠      나무들은 가을의 아름다움으로 단장하고 숲 속의 길들은 메말라 있다.   10월의 황혼녘 물은고요한 하늘을 비치고 돌 사이로 넘쳐흐르는 물 위에는 쉰 아홉 마리의 백조가 떠 있다.     내가 처음 백조의 수를 헤아린 이래 열 아홉 번째의 가을이 찾아왔다.   그땐 미처 다 헤아리기도 전에 백조들은 갑자기 날아올라   요란스런 날개 소리를 내면서 끊어진 커다란 원을 그리며 흩어지는 것을 보았다.     지금껏 저 찬란한 새들을 보아 왔건만 지금 나의 가슴은 쓰리다. 맨처음 이 호숫가   황혼녘에 저 영롱한 날개 소리를 들으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걸었던 그때 이래 모든 것은 변해 버렸다.     지금도 여전히 피곤을 모른 채 짝을 지으며 차가운 물 속을   정답게 헤엄치거나, 하늘로 날아오르는 그들의 가슴은 늙을 줄 모르고   어디를 헤매든 정열과 정복심이 여전히 그들을 따른다.     지금 백조들은 신비롭고 아름다운 고요한 물 위에 떠 있지만   어느날 내가 눈을 뜨고 그들이 날아가 버린 것을 알았을 때   그들은 어느 등심초 사이에 집을 짓고 어느 호숫가나 웅덩이에서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해줄 것인가?                                                     내 나이 하나 하고 스물이었을 때  - 하우스먼     내 나이 하나 하고 스물이었을 때 어느 어진 이가 하는 말을 나는 들었다.   "돈이야 금화이건 은화이건 주어 버릴지라도 네 마음만은 결코 주어서는 안되고,   보석이야 진주건 루비건 주어 버릴지라도 네 생각만은 자유분방해야 하느니라"     그러나 내 나이 하나 하고 스물이었으니 나에겐 소용없는 말이 되었지.     내 나이 하나 하고 스물이었을 때 또 그가 하는 말을 나는 들었다.   "가슴 속으로부터 우러나는 마음은 결코 헛되어 주어지진 않는다.   그것은 많은 한숨으로 보답되고 끝없는 연민으로 팔리게 된다."     이제 내 나이 둘 하고 스물이 되니 오, 그것은 진실, 참다운 진실.    팔리지 않는 꽃  - 하우스먼     나는 땅을 갈아 도랑을 파고 잡초를 뽑고 그리고 활짝 핀 꽃을 시장에 가져 갔다.   그러나 아무도 사는 이 없어 집으로 가져왔지만 그 빛깔 너무 찬란하여 몸에 치장할 수도 없다.     그래서 여기저기 꽃씨를 뿌렸나니 내가 죽어 그 아래 묻히어서   사람들의 기억에서 까마득히 잊혀지고 말았을 때 나와 같은 젊은이가 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어떤 씨앗은 새가 쪼아 먹었고 어떤 것은 계절의 매움에 상처받았으나   그래도 이윽고 여기저기에 고독한 별들을 피우게 될 것이다.     바람 부는 밤의 광시곡 - 엘리어트     열두 시.  달의 종합 속에 들어있는 쭉 뻗은 거리를 따라  속삭이는 날의 주문은 기억의 심층과  그 모든 뚜렷한 관계와  그 구분과 정밀성을 용해하고,   스쳐 지나가는 가로등은 저마다 숙명적인 북처럼 울리고,  어둠의 공간을 통하여 한밤은 기억을 뒤흔든다, 광인이 죽은 제라늄을 흔들듯이.     한 시 반. 가로등은 침을 튀겨대고, 가로등은 중얼대고, 가로등은 말했다. "저 여자를 보라 방긋 웃는 듯이 열려 있는 문간의  불빛 아래서 그대를 향해 망설이고 있는 저 여자를,   그녀의 옷자락이 찢겨져  모래로 더렵혀진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녀의 눈꼬리가  구부러진 핀처럼 비틀린 것도 볼 수 있다.     추억은 많은 뒤틀린 것들을 높이 밀어올려 마르게 하고, 해변의 비틀린 가지는  매끈히 벌레에 먹히고 반들반들 닳아 마치 세계가 희고 빳빳한 그 뼈대의 비밀을  내던져 버린 것 같다.   공장 마당의 부서진 용수철, 힘이 빠져 막막하게 구부러지고 꺾일 지경이 된 그 형체에 달라붙은 녹.     두시 반, 가로등이 말했다.   "보라 도랑에 납작 업디어 혀를 쑥 내밀고 한 조각의 썩을 버터를 탐식하는 저 고양이를"   그렇게 어린 아이의 손이 자동적으로 쑥 나와 부두를 따라 달리는 장난감을 호주머니에 넣었다.   나는 그 아이의 눈 뒤에서 아무 것도 볼 수 없었다. 나는 거리에서,불켜진 덧문 사이로  들여다보려고 하는 눈들을 보았다.   그리고 어느날 오후 웅덩이 속에서 게 한 마리가, 등에 조개삿갓이 붙은 늙은 게 한 마리가, 내가 손에 쥐고 있는 막대기 끝을 움켜잡았다.     세시 반. 가로등은 침을 튀겨대며, 가로등은 어둠속에서 중얼댔다. 가로등은 흥얼거렸다--   "저 달을 보라, 달은 아무런 원한도 품질 않는다, 그녀는 약한 눈을 깜박이며  구석구석에 미소를 보낸다. 그녀는 풀의 머리털을 쓰다듬는다.   달은 기억을 잃었다. 색이 바랜 천연두로 그녀의 얼굴은 금이 가고 그녀의 손은 먼지와 오 드 꼴로뉴의 냄새를 풍기는 종이 장미를 비튼다.   그녀는 다만  머리 속을 스쳐 지나가는  오랜 밤의 온갖 냄새와 더불어 있도다"   추억이 밀려온다 햇빛 받지 못하는 마른 제라늄과  갈라진 틈바구니의 흙과    거리의 밤 냄새와  덧문 닫힌 방의 여자의 냄새와 복도와 담배와  술집과 캐테일 냄새 등의 추억이.     가로등은 말했다. 지금은 네 시, 여기 문 위엔 번호가 있다. 추억이라고!   열쇠를 가진 것은 그대, 작은 등불이 계단에 원을 펼쳤으니, 올라오라. 침대는 비었고,칫솔은 벽에 걸려 있다 신일랑 문간에 놓고,잠자라,그리고 내일의 삶에 대비하라      나이프의 마지막 비틀림     버언트 노오튼 I. - '4중주곡'에서 - 엘리어트     현재의 시간과 과거의 시간은  아마 모두 미래의 시간에 존재하고  미래의 시간은 과거의 시간에 포함된다.    모든 시간이 끊임없이 존재한다면  모든 시간은 보상할 수 없는 것이다.    있을 수 있었던 일은 하나의 추상으로서  다만 사색의 세계에서만 영원한 가능성으로서 남는 것이다.   있을 수 있었던 일과 있은 일은  한 점을 향하여, 그 점은 항상 현존한다.    발자국 소리는 기억 속에서 반향하여 우리가 걷지 않은 통로로 내려가  우리가 한 번도 열지 않은 문을 향하여  장미원薔薇園속으로 사라진다. 내 말들도  이같이 그대의 마음속에 반향反響한다.   그러나 무슨 목적으로  장미 꽃잎에 앉은 먼지를 뒤흔드는지 나는 모르겠다.     그 밖에도 메아리들이 장미원에 산다. 우리 따라가 볼까?    빨리, 그걸 찾아요, 찾아요, 모퉁이를 돌아서.  새가 말한다. 첫째문을 빠져, 우리들의 최초의 세계로 들어가, 우리 따라가 볼까   믿을 순 없지만 지빡새를? 우리들의 최초의 세계로 들어가. 아 있구나. 위엄스럽게, 눈에도 안 보이게, 죽은 잎 위에 가을 볕을 받으며, 하늘거리는 대기 속에 가벼이 움직인다.    그러나 새는 노래한다, 관목 숲속에 잠긴  들리지 않는 음악에 호응하여. 보이지 않는 시선이 오고간다. 장미는 우리가 보는 꽃들의 모습이었다.    그건 영접받고 영접하는 우리의 빈객이다.  우리들이 다가서자 그들도 하나의 정형의 패턴으로  텅 빈 소로小路를 따라 변두리 황양나무 숲속으로 들어가  물마른 연못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연못은 마르고, 콘크리트는 마르고, 변두리는 갈색 햇빛이 비치자 연못은 뮬로 가득차,  연꽃이 가벼이 가벼이 솟아오르며, 수면은 광심光心에 부딪쳐 번쩍인다.    그리고 그것들은 우리의 등 뒤에서 염못에 비치고 있었다. 그러자 한 가닥 구름이 지나니 연못은 텅 빈다.  가라, 새가 말했다. 나뭇잎 밑에 아이들이 가득 소란하게 웃음을 지니고 숨어 있다.   가라, 가라, 가라, 새가 말한다. 인간이란  너무 벅찬 현실에는 견딜 수 없는 것이니.  과거의 시간과 미래의 시간,  있을 수 있었던 일과 있었던 일은 한 끝을 지향하는 것이고, 그 끝은 언제나 현존한다.       살아야 할 것인가, 아니면 죽을 것인가, 이것이 문제로다.   '햄릿'에서   - 쉐익스피어                                                                살아야 할 것인가 아니면 죽을 것인가, 이것이 문제로다.        잔인한 운명의 돌팔매와 화살을  마음 속으로 참는 것이 더 고상한가,    아니면 고난의 물결에 맞서 무기를 들고 싸워  이를 물리쳐야 하는가, 죽는 것은 잠자는 것-  오직 그뿐, 만일 잠자는 것으로 육체가 상속받은  마음의 고통과 육체의 피치 못할 괴로움을  끝낼 수만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심으로 바라는 바 극치로다.   죽음은 잠드는 것! 잠들면 꿈을 꾸겠지? 아, 그게 곤란해.  죽음이란 잠으로 해서 육체의 굴레를 벗어난다면   어떤 꿈들이 찾아올 것인지 그게 문제지.    이것이 우리를 주저하게 만들고, 또한 그것 때문에   이 무참한 인생을 끝까지 살아가게 마련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 누가 이 세상의 채찍과 비웃음과   권력자의 횡포와 세도가의 멸시와  변함 없는 사랑의 쓰라림과 끝없는 소송 상태,    관리들의 오만함과 참을성 있는 유력자가  천한 자로부터 받는 모욕을 한 자루의 단검으로   모두 해방시킬 수 있다면 그 누가 참겠는가.    이 무거운 짐을 지고 지루한 인생고에 신음하며  진땀 빼려 하겠는가.    사후(死後)의 무언가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면   나그네 한번 가서 돌아온 일 없는  미지의 나라가 의지를 흐르게 하고    그 미지의 나라로 날아가기보다는  오히려 겪어야 할 저 환란을 참게 하지 않는다면-.    하여 미혹은 늘 우리를 겁장이로 만들고   그래서 선명한 우리 본래의 결단은  사색의 창백한 우울증으로 해서 병들어 버리고    하늘이라도 찌를 듯 웅대했던 대망도   잡념에 사로잡혀 가던 길이 어긋나고  행동이란 이름을 잃고 말게 되는 것이다.          화살과 노래   - 롱펠로우          나는 공중을 향해 화살을 쏘았으나,      화살은 땅에 떨어져 간 곳이 없었다.        재빨리도 날아가는 화살의 그 자취,      누가 그 빠름을 뒤따를 수 있으랴.          나는 공중을 향해 노래를 불렀으나,      노래는 땅에 떨어져 간 곳이 없었다.        그 누가 날카롭고 강한 눈이 있어      날아가는 그 노래를 따를 것이랴.          세월이 흐른 뒤 참나무 밑둥에      그 화살은 성한 채 꽂혀 있었고,        그 노래는 처음에서 끝 구절까지      친구의 가슴 속에 숨어 있었다.     애너벨 리  - 애드가 앨런 포우          아주 오랜 옛날       바닷가 어느 왕국에         당신이 아실지도 모를 한 소녀       애너벨 리가 살고 있었지         날 사랑하고 내 사랑을 받는 일밖엔       소녀는 아무 다른 생각이 없었지.           바닷가 그 왕국에선       그녀도 나도 어린 아이였지만         나와 나의 애너벨 리는       사랑 이상의 사랑을 하였지.         천상의 날개 달린 천사도       그녀와 나를 부러워할 그런 사랑을.           그것 때문에, 오랜 옛날       바닷가 이 왕국에는        구름으로부터 바람이 불어왔고       나의 애너벨 리를 싸늘하게 했네.         그녀의 고귀한 친척들은 그렇게       그녀를 내게서 빼앗아갔지.         바닷가 왕국       무덤 속에 가두기 위해.           우리의 절반도 행복하지 못했던       천사들이 우리를 시샘한 것.         바로! 그것이 이유였지(바닷가 왕국 사람들이 모두 알지).       한밤중 구름에서 바람이 불어와         그녀를 싸늘하게 하고       나의 애너벨 리를 숨지게 한 것이지.           하지만 우리들의 사랑은       우리보다 나이 든 사람들의 사랑보다도-         우리보다 현명한 사람들의 사랑보다도-       훨씬 더 강하여 천상의 천사들도         바다 밑 악마들도       내 영혼을 아름다운 애너벨 리의 영혼으로부터      떼어내지는 못했네.           달이 비추면 나는 아름다운 애너벨 리의 꿈을 꾸고.       별이 떠오르면 나는 아름다운 애너벨 리의 빛나는 눈을 느끼네.         그러면서, 나는 밤새도록 내 사랑, 내 사랑      내 생명 내 신부 곁에 누워있나니.        거기 바닷가 무덤 안에      물결치는 바닷가 그녀의 무덤 곁에.     짐승 - 휘트먼     나는 모습을 바꾸어 짐승들과 함께 살았으면 하고 생각한다. 그들은 평온하고 스스로 만족할 줄 안다.   나는 자리에 서서 오래도록 그들을 바라본다. 그들은 땀흘려 손에 넣으려고 하지 않으며  자신들의 환경을 불평하지 않는다.   그들은 밤 늦도록 잠 못 이루지도 않고  죄를 용서해 달라고 빌지도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의무 따위를 토론하느라  나를 괴롭히지도 않는다. 불만족해 하는 자도 없고, 소유욕에 눈이 먼 자도 없다.   다른 자에게, 또는 수천년 전에 살았던 동료에게  무릎 끓는 자도 없으며 세상 어디를 둘러봐도 잘난 체하거나 불행해 하는 자도 없다.     나는 고뇌의 표정이 좋다 - 에밀리 딕킨슨     나는 고뇌의 표정이 좋아. 그것이 진실임을 알기에-   사람은 경련을 피하거나 고통을 흉내낼 수 없다.     눈빛이 일단 흐려지면-그것이 죽음이다. 꾸밈없는 고뇌가   이마 위에 구슬땀을 꿰는 척할 수는 없는 법이다.       죽음을 위해 내가 멈출 수 없어- 에밀리 디킨슨     죽음을 위해 내가 멈출 수 없어 그가 나를 위해 친절히 멈추었다.   마차는 바로 우리 자신과 불멸을 실었다.     우리는 서서히 달렸다. 그는 서두르지도 않았다. 그가 너무 정중하여   나는 일과 여가도 제쳐놓았다.     아이들이 휴식 시간에  원을 만들어 뛰노는 학교를 지났다.   응시하는 곡식 들판도 지났고 저무는 태양도 지나갔다.     아니 오히려 해가 우리를 지나갔다. 이슬이 스며들어   얇은 명주, 나의 겉옷과 명주 망사-숄로는 떨리고 차가웠다.     부푼 둔덕처럼  보이는 집 앞에 우리는 멈추었다.   지붕은 거의 볼 수 없고 박공은 땅 속에 묻혀 있었다.     그 후 수 세기가 흘렀으나 말 머리가 영원을   향한듯 짐작되던  바로 그 날보다 더 짧게 느껴진다.     눈 내리는 저녁 숲가에 서서   - 로버트 프로스트     이것이 누구의 숲인지 나는 알겠다  물론 그의 집은 마을에 있지만   그는 재가 여기 서서 눈이 가득 쌓이는 자기 숲을 보고 있음을 못 볼 것이다.     내 작은 말은, 근처에 농가도 없고 숲이 얼어붙은 호수 사이에   한 해의 가장 어두운 저녁에 서 있음을 이상하게 여길 것이다.     내 작은 말은 방울을 흔들어 무슨 잘못이라도 있느냐고 묻는다   다른 소리라고는 다만 스쳐가는 조용한 바람과 솜털 같은 눈송이뿐,     아름답고 어둡고 아늑한 숲 속. 그러나 내게는 지켜야 할 약속이 있고,   자기 전에 가야 할 길이 있다. 자기 전에 가야 할 길이 있다.     밤에 익숙헤지며  - 로버트 프로스트     나는 어느새 밤에 익숙해지게 되었다.    빗속을 홀로 거닐다 빗속에 되돌아왔다. 거리 끝 불빛 없는 곳까지 거닐다 왔다.     쓸쓸한 느낌이 드는 길거리를 바라보았다.   저녁 순시를 하는 경관이 곁을 스쳐 지나쳐도 얼굴을 숙이고 모르는 채 했다.     잠시 멈추어 서서 발소리를 죽이고 멀리서부터 들려와 다른 길거리를 통해  집들을 건너서 그 어떤 소리가 들렸으나     그것은 나를 부르기 위해서도 아니었고  이별을 알리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오직 멀리 이 세상 것이 아닌 것처럼 높다란 곳에 빛나는 큰 시계가 하늘에 걸려 있어     지금 시대가 나쁘지도 또 좋지도 않다고 알려 주고 있었다. 나는 어느새 밤에 익숙해지게 되었다      창가의 나무  - 로버트 프로스트   내 창가에 서 잇는 나무, 창가의 나무여  밤이 오면 창틀은 내리게 마련이지만   나와 나 사이의 커튼은 결코 치지 않으련다.     대지에서 치솟은 몽롱한 꿈의 머리 구름에 이어 크게 확대되고 있는 것   네가 소리내어 말하는 가벼운 말이 모두 다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지는 않으리라.     하지만 나무여, 바람에 흔들리는 네 모습을 보았다. 만일 너도 잠든 내 모습을 보았다면   내가 자유를 잃고 밀려 흘러가  거의 절망이었음을 알게 되었으리라.     운명의 여신이 우리 머리를 마주 보게 한 그 날 그녀의 그 상상력을 발휘한 것이다.   네 머리는 바깥 날씨에 많이 관련되고 내 머리는 마음 속 날씨에 관련되어 있으니.     자작나무 - 로버트 프로스트     꼿꼿하고 검푸른 나무 줄기 사이로 자작나무가  좌우로 휘어져 있는 것을 보면   나는 어떤 아이가 그걸 흔들고 있었다고 생각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흔들어서는 눈보라가 그렇게 하듯 나무들을 아주 휘어져 있게는 못한다     비가 온 뒤 개인 겨울 날 아침 나뭇가지에 얼음이 잔뜩 쌓여있는 걸 본 일이 있을 것이다.   바람이 불면 흔들려 딸그락거리고 그 얼음 에나멜이 갈라지고 금이 가면서 오색 찬란하게 빛난다   어느새 따뜻한 햇빛은 그것들을 녹여 굳어진 눈 위에 수정 비늘처럼 쏟아져 내리게 한다   그 부서진 유리더미를 쓸어 치운다면 당신은 하늘 속 천정이 허물어져 버렸다고 생각할는지도 모른다   나무들은 얼음 무게에 못 이겨 말라붙은 고사리에 끝이 닿도록 휘어지지만   부러지지는 않을 것 같다. 비록 한 번 휜 채 오래 있으면 다시 꼿꼿이 서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리하여 세월이 지나면 머리 감은 아가씨가 햇빛에 머리를 말리려고   무릎꿇고 엎드려 머리를 풀어던지듯 잎을 땅에 끌며 허리를 굽히고 있는 나무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얼음 사태가 나무를 휘게 했다는 사실로 나는 진실을 말하려고 했지만   그래도 나는 소를 데리러 나왔던 아이가 나무들을 휘어 놓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어진다     시골 구석에 살기 때문에 야구도 못 배우고       스스로 만들어낸 장난을 할 뿐이며   여름이나 겨울이나 혼자 노는 어떤 소년 아버지가 키우는 나무들 하나씩 타고 오르며   가지가 다 휠 때까지 나무들이 모두 축 늘어질 때까지   되풀이 오르내리며 정복하는 소년 그리하여 그는 나무에 성급히 기어오르지 않는 법을   그래서 나무를 뿌리째 뽑지 않는 법을 배웠을 것이다 그는 언제나 나무 꼭대기로 기어 오를 자세를 취하고   우리가 잔을 찰찰 넘치게 채울 때 그렇듯 조심스럽게 기어 오른다   그리고는 몸을 날려, 발이 먼저 닿도록 하면서 휙 하고 바람을 가르며 땅으로 뛰어 내린다     나도 한때는 그렇게 자작나무를 휘어잡던 소년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시절도 돌아가고 싶어한다   걱정이 많아지고 인생이 정말 길 없는 숲같아서   얼굴이 거미줄에 걸려 얼얼하고 근지러울 때 그리고 작은 가지가 눈을 때려   한 쪽 눈에서 눈물이 날 때면 더욱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진다   이 세상을 잠시 떠났다가 다시 와서 새 출발을 하고 싶어진다   그렇다고 운명의 신이 고의로 오해하여 내 소망을 반만 들어주면서 나를 이 세상에 돌아오지 못하게 아주 데려가 버리지는 않겠지     세상은 사랑하기에 알맞은 곳 이 세상보다 더 나은 곳이 어디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나는 자작나무 타듯 살아 가고 싶다 하늘을 향해, 설백의 줄기를 타고 검은 가지에 올라   나무가 더 견디지 못할 만큼 높이 올라갔다가 가지 끝을 늘어뜨려 다시 땅위에 내려오듯 살고 싶다   가는 것도 돌아오는 것도 좋은 일이다. 자작나무 흔드는 이보다 훨씬 못하게 살 수도 있으니까.      각자와 모두       저 들판의 붉은 코트 어릿광대는  그대가 산꼭대기에서 보고 있는 걸 생각지도 못하며;    저 멀리 고원목장 어린 암소의 아득한 울음소리 그대 귀를 즐겁게 하기 위한 것 아니고;    교회종지기가 울리는 정오의 종소리 또한 알프스를 넘어가는 나폴레온과 그의 군대     말을 멈춰 그 소리에 귀기울여  즐겁게 들을 거라 생각지도 않으며;    그대 인생이 그대 이웃 읊조리는 사도신경에  어떤 도움을 줄 건지 알지 못할지라도    모든 것은 각각에게 필요한 것이며  제 홀로 유익하거나 정당한 것 아무것도 없나니       나는 새벽 오리나무 가지에서 노래하는  참새 소리를 천국의 것으로 여겼도다.    저녁때 참새 둥지 채 옮겨 집에 두었는데; 녀석은 노래 부르지만 즐겁지가 않네,    강과 하늘을 가져오지 않아서 그런가봐 새는 내 귀에, 모두는 내 눈에 노래했던 거라네.      깨질 듯 아름다운 조개들 바닷가에 있어, 파도의 거품들이 금방 밀려와     그 속 진주들 화려한 광택 빛나게 하고 사나운 바다는 포효하는 굉음을 내면서    나로부터 벗어나며 인사를 하네  나는 해초와 거품을 걷어내어    바다의 보물들을 집으로 가져왔지만 초라하고 보기 싫은 하찮은 것들이 되었네    태양과 모래와 파도소리의 아름다움을 바닷가에 두고 와서 그런가봐..      연인은 그 우아한 소녀를 눈여겨 보며  처녀들의 행렬에서 뒤 처지기를 기다렸지    그렇지 않으면 그녀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     '백설' 성가대에 계속 묶여있을 것같았네      마침내 그녀를 그의 외딴집에 데려왔는데  숲속 새를 새장 속에 넣은 것 처럼    얌전한 아내 되었지만 우아한 멋 없어지고  쾌활하고 황홀한 매력 또한 사라졌네       그래서 난 진리를 갈망한다고 말했는데  아름다움은 미숙한 어린애의 속임수며     청춘의 유희로 끝나버린다고; 또 난 말했네, 내 발 밑 땅바닥의 소나무는    화환처럼 둥근 원을 그리며 이끼 낀 돌 막대 위로 뻗어 있고      나는 제비꽃 향기를 마시네; 내 주위에 참나무와 전나무들이 둘러 서있고     솔방울과 도토리들은 땅바닥에 구르고; 빛과 신성이 가득차고 충만한 영원한 하늘은    내 머리 위 높이 솟아 있네; 나는 다시 보았고, 다시 듣게 되었다네.    출렁이는 강물과, 새벽녘 새의 노래를.    아름다움이 몰래 내 감각 속으로 파고들어 나는 그 완벽한 조화에 굴복하고 말았다네.      가을   - 라마르틴     아직 변색하지 않은 녹음에 덮인 숲이여, 잔디 위에 마구 흩어져 있는 노릇한 낙엽들이여,   아름다운 가을의 날들이여 ! 안녕 ! 자연의 슬픔은 내 괴로움과 어울려 내 눈길에 정다웁다     나는 명상에 잠겨 한적한 오솔길을 따른다. 약한 햇살로 내 발밑의 어두운 숲을 희미하게 밝혀주는   이 창백해 가는 해를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보고 싶구나.     그렇다. 자연이 숨져 가는 이 가을날, 베일에 싸인 듯 몽롱한 그의 시선 속에서 나는 더 한층 매력을 느낀다.   가을은 사랑하는 친구의 이별이며 죽음으로 영원히 닫혀지려는 입술에 떠도는 미소이다.     이처럼 인생의 지평선을 떠날 준비를 갖추고, 내 오랜 생애에 품었던 희망이 이제 스러져감을 한탄하면서   나는 다시 한번 몸을 돌려 선망의 눈초리로 내가 즐겨보지 못한 인생의 아름다움을 생각해 본다.     천지여,태양이여,계곡이여, 아름답고 다정스런 자연이여, 나는 그대들로 인해 죽음에 임해 눈물을 흘린다.   대기는 너무도 향기롭고 빛은 너무도 맑다. 숨져가는 이의 시선엔 태양은 진정 아름답고나.     나는 이제 단맛 쓴맛이 함께 뒤섞인 이 술잔을 마지막 한방울까지 몽땅 비우련다.   내가 생명을 들이마시던 이 잔 밑바닥에 어쩌면 한 방울의 굴이 남아있을지도 모르지 않겠는가.     어쩌면 아직도 미래가  희망이 다 없어졌던 행복을 내게 다시 돌려줄지도 모른다.   어쩌면 군중 속에 내가 알지 못하는 한 영혼 내 영혼을 이해해주고 그리고 내게 응답해줄지도 모른다.     미풍에 향내를 풍기며 꽃잎이 떨어진다. 그것은 바로 생과 태양에 대한 이별.   내가 여기 죽어가는데 숨이지는 그 순간에 슬프고도 가락진 음향처럼 내 영혼이 퍼진다.      호  수    - 라마르틴                                이렇게 항상 새로운 여울을 향해 밀리고, 돌아올 길도 없이 끝없는 어둠에 휩쓸려   넓은 세월의 바다 위에 단 하루만이라도 닻을 내려 정박할 수가 없을까?     오, 호수여 ! 이제 겨우 한 해가 지나 갔는데, 그이가 다시 와야 할 이 사랑스런 물가에   일찍이 그이가 앉았던 바로 그 바위 위에  보라, 이젠 이렇게 나만 홀로 와서 앉았다.     너는 지금처럼 깊숙한 바위 밑에서 울부짖었고 지금처럼 그 울퉁불퉁한 바위에 마구 부딪쳤었지.   그 날도 지금처럼 바람은 네 물결을 튕겨 사랑스런 그이의 발 위에 거품을 끼얹었었지.     호수여, 그 밤을 너는 기억하는가 우리는 말없이 노를 젖고 있었다.   위로 하늘, 아래로 물결, 그 사이엔 가락맞춰 조화롭게 물결을 헤쳐 나가는 노소리뿐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었지.     그때 갑자기 지상의 소리 같지 않은 음성이 매혹된 호수가에 메아리쳐 울렸었다.   물결은 조용히 귀를 기울이고, 내게 지극히 사랑스런 그 음성이 이런 말들을 남겼다.     시간이여, 날음을 멈추어라. 그리고 너 행복된 시절이여, 운행을 중지하라.   우리 생애에서 가장 아름다운 날의 이 덧없는 희열이나마 우리 좀 맛보게 해다오.     이 세상의 많은 불행한 이들은 너를 애원하노니, 그들을 위해 어디 흘러가거라.   그들을 괴롭히는 근심들까지 그 시간과 더불어 가져가거라 그리고는 행복한 사람들을 잊어다오.     아직 몇 분 더 머물기를 바래도 소용없구나! 시간은 나를 빠져나가 자꾸 도망쳐 간다.   이 밤이 제발 느리게 지나가라 간청하지만 새벽이 와서 어둠을 흐트러 놓으리라.     그러니 우리 서로서로 사랑하며 서둘러 이 덧 없는 세월을 즐겨 보자구나.   인간에겐 항구가 없고 시간엔 기슭이 없다. 시간은 흘러가고 인간은 사라지고!     시기에 찬 시간들이여, 사랑의 행복에 함뿍 취한 이 기쁜 순간을   불행한 날들과 그렇게 똑같은 속도로 우리 한테서 앗아갈 수 있단 말인가?     진정 우리는 행복된 순간의 흔적조차 남길 수가 없단 말인가.   영원히 지나가 버리고 영원히 사라져 버리고 만단 말인가.   즐거움을 주었다가, 그리고 그것을 앗아간 시간이 이제 다시는 그 즐거움을 돌려줄 수 없단 말인가.     영원이여, 허무여, 과거여, 너희들의 심연이여! 너희들이 사켜 버린 그 시간은 무엇에 쓰려느냐?   우리에게서 앗아간 그 숭고한 도취를 언제 돌려주려하느냐?     오, 호수여, 말없는 동굴이여, 어두운 숲이여! 시간이 아껴두고 또다시 젊게도 해줄 수 있는   너희들, 아름다운 자연이여, 이 밤의 추억만이라도 간직해다오.     아름다운 호수여, 네 휴식 속에, 네 폭풍 속에 그리고 물 위로 불쑥 솟은 험한 바위 사이에 그 추억을 간직해다오!   살랑거리며 불어오는 산들바람에 네 물결가에 연방 부딪치는 파도 소리에   보드라운 빛으로 수면을 희게 비추는 은빛 별들 속에  그 추억을 간직해다오!     탄식하는 바람, 한숨짓는 갈대, 향기로운 대기의 가벼운 향기,   들리고, 보이고, 숨쉬는 그 모든 것이 다같이 말해주길, '그들은 서로 사랑했다!' 라고.     모래언덕 위에서 하는 말                      - 위고     나의 인생이 햇불처럼 옴츠러 들어간 지금, 나의 임무가 끝난 지금,   애상과 나이를 먹는 동안 어느샌가 무덤 앞에 이르게 된 지금,     그리고 마치 사라진 과거의 소용돌이처럼 꿈의 날개를 펴던 저 하늘 속에서   희망에 부풀었던 과거의 시간들이 어둠을 향해 빨려 들어가는 것을 보게 된 지금,     어느 날인가 우리는 승리를 하지만 그 다음날은 모든 것이 거짓이 되고 만다고    말할 수 있게 된 지금, 슬픔을 안고 꿈에 취한 사람모양 몸을 구부린 체,     나는 바라본다. 뭉게구름이 산과 계곡,   그리고 끝없이 물결짓는 바다 저 위에서 욕심장이 북풍의 부리에 휩쓸려 들어가는 것을.     하늘의 바람소리가 ,암초에 부딪치는 물결소리가, 익은 곡식단을 묶는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귀 기울인다. 그리고는 속삭이는 것과 말하는 것을 내 생각 깊은 마음속 에서 비교해 본다.     나는 때때로 모래언덕 위 듬성듬성 난 풀 위에 몸을 던진체, 꼼짝 않고 시간을 보낸다.   그러노라면 흉조를 띤 달이 떠올라와 꿈을 펴는 것이 보인다.     달은 높이 떠올라 가만스런 긴 빛을 던진다. 공간과 신비와 심연 위에,   광채를 발하는 달과 괴로움에 떠는 나, 우린 서로를 뚫어지게 바라본다.     사라진 내 날들은 어디로 갔을까? 나를 알아주는 이, 하나라도 있을까?   이 노곤한 눈동자 속에 젊은 날의 빛 한 오라기라도 남아 있는가?     모든 것이 달아난 걸까? 나는 외롭고 이젠 지쳤다. 대답없는 부름만을 하고 있구나.   바람아! 물결아! 그래 난 한가닥 입김과 같은 존재였단 말이냐?   아 슬프게도! 그래 난 한줄기 물결에 지나지 않았단 말이냐?      사랑했던 그 어느 것도 다시 볼 수 없단 말이냐? 나의 마음속 깊숙이 저녁이 내린다.   대지야, 네 안개가 산봉우리를 가리웠구나, 그래 난 유령이고 넌 무덤이란 말인가?     인생과 사랑과 환희와 희망을 모두 살라 먹었을까? 막연히 기대를 건다. 그러다간 애원하는 마음이 되어   한줌이라도 혹 남아 있을지 모른다고 단지마다 기울여 본다.     추억이란 회한과 같은 것인가, 모든 것은 우리에게 울음만을 밀어다 주는구나!   죽음, 너 인간의 문의 검은 빗장아, 너의 감촉이 이리도 차냐!     나는 생각에 잠긴다. 씁쓰레한 바람이 일어오는걸, 물결이 붉게 주름지어 밀려오는 걸 느끼면서,   여름은 웃고, 바닷가 모래밭에는 파아란 엉겅퀴꽃이 피어나는구나.     떠나가는 집시들                      - 보들레르   어제 길을 떠났네, 미래를 점치며 불타는 눈동자를 한 부족   아이들을 등에 업지 않았으면, 혹은 축 늘어진 유방의 준비된 보물을 그들의 엄쳐흐르는 식욕에 내맡긴 체.     번들거리는 무기를 어깨에 멘 사나이들, 식구들이 옹기종기 탄 수레를 따라 걸어가네.   침울하게 미련을 갖고 이미 사라진 환상에  무거워진 눈으로 허공을 들러보며.     귀뚜라미는 감추어져 있는 모래 구멍 속에 숨어 그들의 행렬을 보며 한층 크게 노래 부르네.   대지의 신은 그들을 사랑하여 푸른 초목을 번창시키고.     그 길손들 앞에는 바위에서 샘이 솟고 사막이 꽃을 피우니,   그들을 맞기 위해 다가올 짙은 어둠의 왕국은 열려 있었네.       끝간 데 없이 늘어선 생울타리                          - 베를렌     끝간 데 없이 늘어선 생울타리 거품 인 맑은 바다 같네.   그 위로 맑은 안개, 향긋한 햇장과 내음 풍기고.     날렵한 망아지들이 와서 뛰놀며 흩어지는   부드러운 초원, 그 위로 가볍게 보이는 나무들과 풍차들.     일요일의 이 허허한 벌판 속에 다 큰 양떼들도   장난치며 놀겠다네, 저들의 흰 양모같이 부드러운.     그 위로 젖빛 하늘 속에서 방금 피리 소리 같은 종소리의   파장이 소용돌리처럼 궁글며 퍼져 나갔다.       캄캄한 깊은 잠이                 - 베를렌                                                   캄캄한 깊은 잠이 내 삶 위에 떨어지네.   잠자거라, 모든 희망아. 잠자거라, 모든 욕망아 !     이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선과 악의   기억마저 사라진다...... 오, 내 슬픈 이력아 !     나는 어느 지하실 허공속에서 어느 손에    흔들리는 요람. 침묵, 침묵 !       *랭보를 권총으로 쏜 사건의 초심 판결 언도를 받은 날 절망속에서 쓴 시.       감각                        - 랭보      여름 야청빛 저녁이면 들길을 가리라, 밀잎에 찔리고, 잔풀을 밟으며.   하여 몽상가의 발 밑으로 그 신선함 느끼리. 바람은 저절로 내 맨머리를 씻겨주겠지.     말도 않고, 생각도 않으리. 그러나 한없는 사랑은 내 넋 속에 피어오르리니,   나는 가리라, 멀리, 저 멀리, 보헤미안처럼, 계집애 데려가듯 행복하게, 자연 속으로.           지옥에서 보낸 한 철                                - 랭보     1.서시     옛날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나의 삶은 모든 사람들이 가슴을 열고   온갖 술들이 흘러다니는 하나의 축제였다.        어느날 저녁 나는 美를 내 무릎에 앉혔다.    그러고보니 지독한 치였다- 그래서 욕을 퍼부어 주었다.      나는 정의에 항거하여 무장을 단단히 했다.   나는 도망했다. 오 마녀여, 오 불행이여, 오 증오여,      내 보물을 나는 너희들에게 의탁했다.    나는 내 정신 속에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온갖 희망을 사라지게 하기에 이르렀다.      그 희망의 목을 비트는데 즐거움을 느껴,    나는 잔인한 짐승처럼 음험하게 날뛰었다.     나는 죽어가면서 그들의 총자루를 물어 뜯으려고    사형집행인을 불렀다. 불행은 나의 신이었다.      나는 진창 속에 팍 쓸어졌다. 나는 죄의 바람에 몸을 말렸다.    나는 광대를 잘 속여 넘겼다.     봄은 나를 향해 백치처럼 무시무시한 웃음을 웃었다.   그런데, 요즘 마지막 껄떡 소리를 낼 찰라에,      나는 옛날의 축제를 다시 열어줄 열쇠를 찾으려 했다.    그러면 아마도 욕망을 되찾을지 모른다.      자애(慈愛)가 그 열쇠다--- 그런 생각을 하는 걸 보니    내가 전에 꿈을 꾸었나보다.   "너는 잔인한 놈으로 남으리라....." 따위의 말을,       그토록 멋진 양귀비 꽃을 나에게 씌어준 악마가 다시 소리친다.    "네, 모든 욕망과 이기주의와    모든 너의 죄종(罪宗)을 짊어지고 죽으라"       오! 내 그런 것은 실컷 받아드렸다. 하지만, 사탄이여,    정말 간청하노니, 화를 덜 내시라!      그리고 하찮은 몇 가지 뒤늦은 비겁한 짓을 기다리며,    글쟁이에게서 교훈적이며 묘사적인 능력의 결핍을 사랑하는 당신에게     내 나의 저주받은 자의 수첩에서 보기흉한 몇 장을 발췌해 준다.       *죄종(罪宗)  기독교에서 말하는 7개의 주된 죄                 교만, 탐욕, 邪淫, 질투, 탐심, 분노, 태만      나의 방랑 생활                          - 랭보     난 쏘다녔지, 터진 주머니에 손 집어넣고, 짤막한 외투는 관념적이게 되었지,   나는 하늘 아래 나아갔고, 시의 여신이여! 그대의 충복이었네, 오, 랄라! 난 얼마나 많은 사랑을 꿈꾸었는가!   내 단벌 바지에는 커다란 구멍이 났었지. -꿈꾸는 엄지동자인지라, 운행 중에 각운들을 하나씩 떨어뜨렸지.    주막은 큰곰자리에 있었고. -하늘에선 내 별들이 부드럽게 살랑거렸지.   하여 나는 길가에 앉아 별들의 살랑거림에 귀기울였지,   그 멋진 구월 저녁나절에, 이슬 방울을 원기 돋구는 술처럼 이마에 느끼면서,   환상적인 그림자들 사이에서 운을 맞추고,   한발을 가슴 가까이 올린 채,  터진 구두의 끈을 리라 타듯 잡아당기면서!         낙엽   - 구르몽              시몬.. 나뭇잎이 져버린 숲으로 가자. 낙엽은 이끼와 돌과 오솔길을 덮고 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낙엽은 너무나도 부드러운 빛깔,  너무나도 나지막한 목소리..   낙엽은 너무나도 연약한 땅 위에 흩어져 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황혼 무렵 낙엽의 모습은 너무나도 서글프다. 바람이 불면 낙엽은 속삭인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밟으면 낙엽은 영혼처럼 운다. 낙엽은 날개 소리, 여자의 옷자락 소리.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오라.. 우리도언젠가 낙엽이 되리라. 오라.. 벌써 밤이 되고 바람은 우리를 휩쓴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시몬, 나무 잎이 저버린 숲으로 가자. 이끼며 돌이며 오솔길을 덮은 낙엽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발자국 소리가?   낙엽 빛깔은 상냥하고, 모습은 쓸쓸해 덧없이 낙엽은 버려져 땅 위에 딩군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발자국 소리가?   저녁 나절 낙엽의 모습은 쓸쓸해 바람에 불릴 때, 낙엽은 속삭이듯 소리친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발자국 소리가?   서로 몸을 의지하리 우리도 언젠가는 가련한 낙엽 서로 몸을 의지하리 이미 밤은 깊고 바람이 몸에 차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발자국 소리가?          눈  - 구르몽                     시몬, 눈은 그대 목처럼 희다. 시몬, 눈은 그대 무릎처럼 희다.   시몬, 그대 손은 눈처럼 차갑다. 시몬, 그대 마음은 눈처럼 차갑다.   눈은 불꽃의 입맞춤으로 받아 녹는다. 그대 마음은 이별의 입맞춤에 녹는다.   눈은 소나무 가지 위에 쌓여서 슬프다. 그대 이마는 밤색 머리칼 아래 슬프다.   시몬, 그대 동생인 눈은 안뜰에서 잠잔다. 시몬, 그대는 나의 눈, 또한 내 사랑이다.         순박한 아내를 위한 기도 - 프란시스 잠                           주여, 내 아내감이 될 여인은 겸손하고 온화하며, 정다운 친구가 될 사람으로 해 주소서   우리 잠잘 때에는 서로 손 맞잡고 잠들도록 해 주소서   메달이 달린 은 목걸이를 그녀 가슴 사이에 보일듯 말듯 목에 걸도록 해 주소서   그녀의 살갗은 늦여름, 조는듯한 자두보다 한결 매끄럽고 상냥하며 보다 더한 금빛으로 빛나게 해 주소서   그녀의 마음 속에는 부드러운 순결이 간직되어 서로 포옹하며 말없이 미소짓도록 해 주소서   그녀는 튼튼하여 꿀벌이 잠자는 꽃을 돌보듯 내 영혼을 돌보도록 해 주소서   그리하여 내 죽는 날 그녀는 내 눈을 감기고 내 침대를 움켜 잡고 흐느낌에 가슴 메이게 하며   무릎을 꿇는 그 밖의 어떤 기도도 내게 주지 않도록 해 주소서..      식당방 - 프란시스 잠                           우리 집 식당방에는 윤이 날 듯 말 듯한  장롱이 하나 있는데, 그건    우리 대고모들의 목소리도 들었고  우리 할아버지의 목소리도 들었고  우리 아버지의 목소리도 들은 것이다.    그들의 추억을 언제나 간직하고 있는 장롱.  그게 암 말도 안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잘못이다.  그건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까.      거기엔 또 나무로 된 뻐꾹시계도 하나 있는데,  왜  그런지 소리가 나지 않는다.  난 그것에 그 까닭을 물으려 하지 않는다.    아마 부서져 버린 거겠지,  태엽 속의 그 소리도.  그냥 우리 돌아가신 할아버지들의 목소리처럼.      또 거기엔 밀랍 냄새와 잼 냄새, 고기 냄새와 빵 냄새  그리고 다 익은 배 냄새가 나는    오래된 찬장도 하나 있는데, 그건  우리한테서 아무 것도 훔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충직한 하인이다.      우리 집에 많은 남자들이, 여자들이  왔지만, 아무도 이 조그만 영혼들이 있음을 믿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 나는 빙그레 웃는 것이다.    방문객이 우리 집에 들어오며, 거기에 살고 있는 것이  나  혼자인 듯 이렇게 말할 때에는  -- 안녕하신지요, 잠 씨?      애정의 숲  - 발레리                  우리는 순수한 것을 생각했었다. 나란히 길을 따라가면서   우리는 서로 손을 잡았다.  말도 없이......이름 모를 꽃 사이에서;     우리는 약혼자처럼 걸었다. 단둘이, 목장의 푸른 밤 속을;   그리고 나눠 먹었다 저 선경의 열매, 광인들이 좋아하는 달을.     그리고, 우리는 죽었다 이끼 위에서 단둘이 아주 머얼리, 소곤거리는 친밀한   그리고 저 하늘 높이, 무한한 빛 속에서 저 숲의 부드러운 그늘 사이에서;     우리는 울고 있었다. 오 나의 사랑스런 말없는 반려여!     클로틸드에게  - 아뽈리네르              사랑과 경멸 사이 우수가 잠든 정원에   아네모네와 노방초가 돋아나기 시작했다     그곳에 우리들의 그림자도 스며든다 밤이 흩어버릴 그림자이지만   그림자를 거두는 태양도 언젠가는 그림자와 함께 사라지리라     맑은 물의 이 신기한 힘 그것은 머리털을 적시며 흐르나니   가라 네가 찾는 이 아름다운 그림자를 너는 찾아가야만 한다     시인의 죽음   - 쟝 꼭토                     나는 죽소, 프랑스여! 내가 말할 수 있게 가까이 와요,   좀더 가까이. 난 그대 때문에 죽는다오. 그대 날 욕했고 우스꽝스럽게 만들었고 속였고 망하게 했지.    이젠 상관없는 일이오. 프랑스여, 나 이제 그대에게 입맞추어 야겠소.    마지막 이별의 입맞춤을. 외설스런 세느강에, 보기 싫은 포도밭에, 밑살스런 밭에, 너그러운 섬들에,   부패한 파리에, 죽이는 입상에 마지막 입맞춤을 보내야겠소. 좀 더 가까이, 더 가까이, 나 좀 보게 해주오.    아! 이젠 나 그댈 붙잡았오. 소릴질러도 누굴 불러도 소용없지.   죽는 자의 손가락을 펼 수는 없는 것. 황홀히 나 그대 목을 조르오. 이제 난 외롭게 죽지 않으리니.       한 순간의 거울    - 폴 엘뤼아르            그것은 빛을 분산시키고, 그것은 사람들에게 외모와는 다른 섬세한 모습을 보여주고,   그것은 사람들에게 방심할 여유를 앗아가버린다. 그것은 돌처럼 단단하다,   형태가 없는 돌, 움직임이 있고 시각이 있는 돌처럼,   그리고 그것의 섬광은 그 어떤 갑옷이나 그 어떤 가면도 일그러질 만큼 찬란하다.   손에 잡혀 있었던 그것은 손과 동화되기를 거부하고, 이해되었던 것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새는 바람과 뒤섞이고, 하늘은 진리와   사람은 현실과 뒤섞인다.       그리고 미소를  - 폴 엘뤼아르           밤은 결코 완전한 것이 아니다.   내가 그렇게 말하기 때문에 내가 그렇게 주장하기 때문에   슬픔의 끝에는 언제나 열려 있는 창이 있고   불켜진 창이 있다.   언제나 꿈은 깨어나듯이 충족시켜야 할 욕망과 채워야 할 배고픔이 있고   관대한 마음과 내미는 손 열려 있는 손이 있고   주의 깊은 눈이 있고   함께 나누어야 할 삶 삶이 있다.       자유   - 폴 엘뤼아르                  국민학교 시절 노트 위에 나의 책상과 나무 위에   모래 위에 눈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내가 읽은 모든 페이지 위에 모든 백지 위에   돌과 피와 종이와 재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황금빛 조상 위에 병사들의 총칼 위에   제왕들의 왕관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밀림과 사막 위에 새 둥우리 위에 금작화 나무 위에   내 어린 시절 메아리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밤의 경이로움 위에 일상의 흰 빵 위에   결합된 계절 위에 나는 어늬 이름을 쓴다     누더기가 된 하늘의 옷자락 위에 태양이 곰팡 슬은 연못 위에   달빛이 싱싱한 호수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들판 위에 지평선 위에 새들의 날개 위에   그리고 그늘진 방앗간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새벽의 입김 위에 바다 위에 배 위에   미친 듯한 산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구름의 거품 위에  폭풍의 땀방울 위에   굵고 무미한 빗방울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반짝이는 모든 것 위에 여러 빛깔의 종들 위에   구체적인 진실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깨어난 오솔길 위에 뻗어나간 큰 길 위에   넘치는 광장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불켜진 램프 위에 불꺼진 램프 위에   모여 있는 내 가족들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둘로 쪼갠 과일 위에  거울과 내 방 위에   빈 조개껍질 내 침대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게걸스럽고 귀여운 우리 집 강아지 위에 그 곤두선 양쪽 귀 위에   그 뒤뚱거리는 발걸음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내 문의 발판 위에 낯익은 물건 위에   축복받은 불의 흐름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화합한 모든 육체 위에 내 친구들의 이마 위에   건네는 모든 손길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놀라운 소식이 담긴 창가에 긴장된 입술 위에   침묵을 넘어선 곳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파괴된 내 안식처 위에 무너진 내 등댓불 위에   내 권태의 벽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욕망없는 부재 위에 벌거벗은 고독 위에   죽음의 계단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되찾은 건강 위에 사라진 위험 위에   회상없는 희망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그 한마디 말의 힘으로 나는 내 삶을 다시 시작한다.   나는 태어났다 너를 알기 위해서 너의 이름을 부르기 위해서     자유여.       성냥개비 사랑 - 밤의 파리  - 프레베르                          고요한 어둠이 깔리는 시간 성냥개비 세 개에   하나씩 하나씩  불을 붙인다     첫째 개피는 너의 얼굴을 보려고 둘째 개피는 너의 두 눈을 보려고   마지막 개피는 너의 입을 보려고   그리고 송두리째 어둠은 너를 내 품에 안고 그 모두를 기억하려고.         눈물젖은 빵을 먹어본 적이 없는 자 - 탄금시인(1)  - 괴테                              눈물젖은 빵을 먹어본 적이 없는 자,   슬픈 밤을 한 번이라도 침상에서 울며 지새운 적이 없는 자,   그는 당신을 알지 못하오니, 하늘의 권능이시여.     당신을 통하여 삶의 길을 우리는 얻었고   불쌍한 죽을 자들 타락케 하시어 고통 속에 버리셨으되,   그럼에도 저희는 죄값을 치르게 됩니다.       마왕   - 괴테                 이 늦은 밤 어둠 속, 바람 속에 말타고 가는 이 누군가? 그건 사랑하는 아이를 데리고 가는 아버지다.   아들을 팔로 꼭 껴안고,  따뜻하게 감싸안고 있다.     "뭣 때문에 얼굴을 가리고 무서워 하느냐?" "보세요, 아버지, 바로 옆에 마왕이 보이지 않으세요?   왕관을 쓰고 옷자락을 끄는 마왕이 안 보이세요?" "아이야, 그건 들판에서 피어오르는 안개란다."     "오, 귀여운 아이야, 너는 나와 함께 가자!   거기서 아주 예쁜 장남감을 많이 갖고 나와 함께 놀자.   거기에는 예쁜 꽃이 많이 피어있고 우리 엄마한테는 황금 옷이 많단다."     "아버지, 아버지, 들리지 않으세요? 마왕이 지금 제 귀에 말하고 있어요."   "조용히 해라 내 아가야, 너의 상상이란다. 그건 슬픈 바람이 나뭇잎을 흔드는 소리란다."      "귀여운 아이야, 자, 나와 함께 가자꾸나. 나의 딸들이 널 예쁘게 돌봐주게 하겠다.   나의 달들은 밤마다 즐거운 잔치를 열고 춤추고 노래하고 너를 얼러서 잠들게 해줄거다."     "아버지, 아버지, 저기에 보이지 않으세요? 마왕의 딸들이 내 곁에 와 있어요."   "보이지, 아주 잘 보인단다. 오래된 회색 빛 버드나무가 그렇게 보이는 거다."     "귀여운 아이야 나는 네가 좋단다. 네 귀여운 모습이 좋단다. 네가 싫다고 한다면 억지로 끌고 가겠다."   "아버지, 아버지, 마왕이 나를 꼭꼭 묶어요! 마왕이 나를 잡아가요!"      이제 아버지는 무서움에 질려 황급하게 말을 몬다. 신음하고 있는 불쌍한 아이를 안고서.   가까스로 집마당에 도착했으나 팔 안의 아이는 움직이지 않고 죽어 있다.       미뇽에게  - 괴테                 골짜기와 강물 위를 아주 높이, 눈부신 태양 마차는 지나간다.   아아! 태양은 그의 길을 가면서,  그대와 나의 슬픔을 불러 내나니,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언제나 아침마다 또 다시.     내겐 밤이 와도 소용이 없나니  내가 꾸는 꿈마저도  슬픈 모습으로 오기 때문이라.   나 슬픔을 느끼나니, 가슴 속에서 조용히 새롭게 솟아나는 힘과 함께.     오래 전부터 저 밑을 지나는 배를 보았나니   정박지를 찾아가는 것이라. 하지만 아아, 멈춰버린 슬픔은   마음 속에서 뜨질 않고 흘러가지 못하네.      예쁜 나들이 옷, 오랜만에  장롱에서 꺼내 입어야 하네.   오늘이 축제날이라. 아무도 모르리니   쓰디쓴 슬픔에 젖은 내 가슴  무섭게 찢끼운 것을.     남 몰래 울면서도 혈색 좋은 건강한 얼굴로   즐거운 모습 보일 수 밖에 없으니 이 슬픔이 죽어서    내마음 속에서 사라졌다고 한다면 아아, 오래전에 난 죽었어야 하기 때문이니.     장갑  - 쉴러                          사자 우리 앞에서 격투 경기를 기다리며 프란츠 왕이 앉아 있다.   주위에는 귀족들이 둘러 앉아 있고 높은 발코니에는 귀부인들이 아름다움을 뽐내며 둘러 앉아있다.     왕이 손가락으로 신호하자, 사자우리의 문이 열리고   육중한 발걸음으로  사자 한 마리가 밖으로 나와,   주위를  천천히 둘러 보더니,   입을 크게 한 번 벌리고, 갈기 털을 부르르 떨더니만,   그 자리에 몸을 눞혔다.     다시 왕이 신호를 하자  두 번째 우리의 문이 열리고   거기서 호랑이 한 마리가 사납게 뛰쳐 나오더니   사자가 앞에 있음을 보고 커다란 소리로 으르렁거리며   꼬리를 흔들면서 둥그렇게 한바퀴 돌더니   불타는 혀를 드러내고 무시무시한 울음소리를 내면서   사자 주위를 빙빙 돌더니만, 으렁거리면서 사자옆에 몸을 눞혔다.     왕이 또 신호를 내리자 우리문이 두 개가 열리고 표범 두 마리가 뛰쳐 나왔다.   살기찬 표범들은 호랑이에게 달겨들었다. 호랑이는 날카로운 발톱으로 표범을 붙들자,   사자가 위엄있는 모습으로 일어나 울부짖었고 모든 것이 조용해졌다.   그리고 맹수들은 살기를 품은 채  원을 그리더니  모두들 자리에 누웠다.     그 때 발코니 윗자리에서 장갑 한 짝이 아름다운 손에서 떠나   호랑이와 사자가 있는  한 가운데 떨어졌다.   쿠니쿤트 공주는 비웃는 듯이 기사 델로게스를 돌아보며 말하기를,   "기사님, 당신의 사랑이 열렬하고 늘 내게 맹세한 말씀이 참말이라면   저 장갑을 주워 올 수 있겠지요?"     그러자 기사는 즉시 일어나 힘찬 걸음으로 경기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맹수들 한가운데에서 겁 없이 장갑을 주워들었다.   놀람과 몸서림을 치면서 모든 기사와 귀부인들이 그걸 보았다.   태연히 장갑을 가져오는 그에게 모든 사람들은 칭송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그 중에서도 참다운 행복을 기대하는 쿠니쿤트 공주는   부드러운 사랑의 눈동자로써 그를 맞이하였다. 기사는 공주의 얼굴에 장갑을 던지며,   "공주여, 나는 감사의 말을 바라지 않소." 기사는 그 자리에서 공주를 버렸다.     원망하지 않으리 - 하이네                      원망하지 않으리, 이 가슴 찢어져도. 가버린 사람아! 원망하지 않으리.   수많은 다이아먼드로 몸을 꾸며도 그대의 마음은 캄캄한 밤이어라.     나는 일찍부터 알고 있었노라. 그대를 꿈꾼 그 때 그대 마음의 어두움도 보았다.   그대 마음을 갉고 있는 뱀도 보았다. 연인이여, 너는 정말 불행한 사람이었다.         [사랑고백] - "아그네스여, 나 그대를 사랑하노라"   - 하이네[노래의 책]중, 북해(1825~1826)편에서    첫번째 연작시 6번      저녁이 되어 어둠이 찾아 드니  바다는 더한층 거세게 파도 쳤다.   바닷가에 앉아 하얗게 부숴지는 파도의 춤을 바라보며 내 가슴은 바다처럼 부풀어 올랐다.   그때 그대를 향한 사무치는 그리움에 사로잡혔다. 아름다운 모습, 그대의 모습은 내 주위에서 맴돌고 어디에서나 나를 부른다. 세찬 바람속에서도,  거친 파도 속에서도, 내 가슴의 한숨 속에서도,  어디에서나...  어디에서나...   나는 가느다란 갈대를 꺾어 모래 위에 썼다.   "아그네스여, 나 그대를 사랑하노라"   하지만 심술궂은 파도가  이 달콤한 고백 위를 덮쳐가며 흔적도 없이 지워버렸다.   약한 갈대여, 먼지처럼 흩어지는 모래여, 사라지는 파도여, 난 이제 너희를 믿지 않으리!   하늘은 점점 어두워지고 내 마음은 더욱 날뛴다. 이제,  나 저 노르웨이의 숲에서  가장 크고 푸른 전나무를 찾아 그 뿌리채 뽑아   저 애트나의 불타오르는  샛빨간 분화구에 담갔다가   그 불이 붙은 거대한 붓으로  나 저 어두운 하늘을 바탕삼아 쓰겠노라.   "아그네스여, 나 그대를 사랑하노라"고     이렇게 하면 저녘마다 하늘에는 영겁의 필적이 타올라   뒤에 오는 후손들은 모두 즐거운 소리를 지르며    하늘에 쓰인 말을 읽으리라.     "아그네스여, 나 그대를 사랑하노라"      고독  - 릴케                 고독은 비와도 같은 것   저녁을 찾아 바다에서 오른다. 멀고 먼 외진 들녘에서 오른다.   늘상 고적하기만 한 하늘로 옮겨갔다가 하늘에서 비로소 도시에 내린다.     아침을 향해 골목골목이 몸을 일으키고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한 육신들이 실망과 슬픔에 젖어 서로 떠나갈 때,   서로 미워하는 사람들이 같은 잠자리에서 함께 잠들어야 할 때,   낮과 밤이 뒤엉킨 시각, 비가 되어 내리면     고독은 강물과 함께 흘러간다.....      지키는 사람처럼 - 릴케               포도밭에 원두막을 짓고서 지키는 사람처럼   주여, 저는 당신 안에 있는 원두막입니다. 오오 주여, 저는 당신의 밤에 싸인 밤입니다.     포도밭, 목장, 오래 된 사과밭 봄의 계절을 건너뛸 줄 모르는 밭   대리석처럼 단단한 땅에서도 많은 열매를 맺는 무화과나무     당신의 둥근 가지에서 향기가 흐르고 있습니다. 당신은 저에게 지키고 있느냐고 묻지 않습니다.   진액에 거침없이 녹아 들어 당신의 깊은 뜻이 제 곁을 고이 타오릅니다.        방랑    - 헷세                              슬퍼하지 말아라, 멀지 않아 밤이다.   그러면 우리는 창백한 들판 너머   싸늘한 달님이 미소지으면   손과 손을 맞잡고 휴식하리니.   슬퍼하지 말아라, 멀지 않아 때가 온다.   우리는 안식하리니 우리의 십자가가   환한 길섶에 두 개 나란히 내리리라,   그리고 바람 또한 불어오고 불어가리라.     낙엽    - 헷세                        꽃마다 열매가 되려고 합니다.  아침은 저녁이 되려고 합니다.   변화하고 없어지는 것 외에는 영원한 것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그토록 아름다운 여름까지도 가을이 되어 조락을 느끼려고 합니다.   나뭇잎이여, 바람이 그대를 유혹하거든 가만히 끈기 있게 매달려 있으십시오.   그대의 유희를 계속하고 거역하지 마십시오. 조용히 내 버려 두십시오.   바람이 그대를 떨어뜨려서 집으로 불어가게 하십시오. ​   신이여, 저를 미치지 않게 하소서.   - 푸쉬킨               신이여, 저를 미치지 않게 하소서. 아니, 그보다는 차라리 보따리와 지팡이가 나아요 아니, 고생스럽고 배고픈 게 차라리 더 나아요.   그것은 내가 나의 이성을 존중해서도 아니고 이성과 헤어지는 것이 기쁘지 않아서가 아니요.     나 자유로이 둔다면 그 얼마나 활개치며 어두운 숲으로 달려가리!   열병에 걸린 것처럼 노래를 부르고, 또 부르고 그 얼마나 자유로이 멋진 꿈에 도취되어 나를 잊으리.     그리고 나의 파도소리에 귀기울이고 행복에 가득차서 빈 하늘을 바라보리니   나 그 얼마나 힘차고 자유로우리 들판을 파헤치고 숲을 휘어뜨리는 회오리처럼.     그런데 불행히도 : 미친다는 것은 페스트보다 더 두려운 일,   곧 갇히고 사슬에 묶이리니,   사람들은 창살 사이로 짐승을 찌르듯 찌르러 올 것이고,     그리고 밤에는 들을 것이다. 꾀꼬리의 울 리는 낭랑한 목소리도 아니고   빽빽한 참나무숲의 웅성거림도 아니고 울리는 것은   친구들의 외침소리, 밤의 파수꾼의 욕설, 사슬이 쩔렁이고 삐걱이는 소리뿐     ​ 시베리아 깊은 광맥속에 제까브리스트 12월 혁명이후 유형간 사람들에게 보내는 시.    - 푸쉬킨                       시베리아 깊은 광맥 속에 그대들의 드높은 자존심의 인내를 보존하소서   그대들의 비통한 노력과 높은 정신의 지향은 사라지지 않으리니.     불행의 신실한 누이, 희망은 암흑의 지하 속에서   용기와 기쁨을 일깨우리니 그 날은 오리니:     사랑과 우정이 그대들에게 닿으리니 깜깜하게 닫힌 곳 빗장을 열고   지금 그대들의 감방 그 굴 속으로 나의 자유의 소리가 다다르듯이.     무거운 사슬이 풀어지고 암흑의 방은 허물어지고 - 자유는   기쁨으로 그대들을 마중나오리니 그리고 형제들은 그대들에게 검은 건네리니.      나 혼자 만나러 가는 밤   - 타골                                 사랑하는 이 만나러 나 홀로 가는 밤 새들 조용하고 바람이 불지 않네   길가의 집들도 고요히 서있어서 내 발걸음 소리만 점점 커져 부끄럽구나     발코니에 앉아서 그이의 발자국 소리를 기다릴 제, 나뭇잎들 멈춰 있고 강물 소리도 조용하네   잠든 보초의 무릎에 놓인 칼처럼. 거칠게 뛰는 나의 가슴은    어이해야 진정될까.     사랑하는 이 오시어 내 곁에 앉으시어 내몸 떨리고 내 눈 감길 때면    밤 어두어지고 바람은 등불을 끄고 구름은 별을 가리우는구나   내 가슴의 보석은 반짝이며 빛을 발하는데 어이해야 감출 수 있을까       유적(遺謫)의 땅(The Land of Exile)    - 타고르                                어머니, 하늘에 햇빛이 어스레해졌습니다. 때가 어찌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놀아도 재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어머니한테 왔습니다. 때는 토요일, 우리의 주일입니다. 일은 그만 두셔요, 어머니. 여기 창가에 오셔서 옛날 이야기의  테판타르 사막이 어디 있는지 말씀해 주세요.   비의 그림자가 끝에서 끝까지 햇빛을 가리웠습니다. 사나운 번개가 손톱으로 하늘을 찢습니다.   구름이 우르렁거리고 천둥이 울리면 가슴이 뛰어 어머니  품에 매달리고 싶습니다.   굵은 비가 대나무 잎을 몇 시간이나 때리고 우리 집 창문이 바람  불 때마다 흔들리고 소리를 낼 때면,    어머니, 나는 어머니와 방에 단둘이 앉아  옛날 테판타르 사막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어머니, 그 사막은 어디 있는가요? 어느 바닷가, 어느 산모통이,  어느 왕의 영토인가요?   거기에는 들판을 표시하는 울타리도 없고, 해가 떨어지면  마을 사람들이 마을을 찾아갈 발자국 조차 없습니다. 뿐입니까?    숲 속에서 마른 나뭇가지를 줍던 아주머니가 짐을 저자로 가져간  발자국도 없답니다.    모래밭에 몇 조각의 노란 잔디풀과 약빠른 늙은 새 한 쌍이 보금자리를 마련한 나무 한 그루만 있을 뿐,    테판타르 사막은 그냥 누워 있습니다.   바로 이런 흐린 날이면 임금의 어린 아들이 혼자 회색 말을 타고  사막을 지나 알지 못하는 강 건너 거인의 궁전에 갇혀 있는 공주를  찾아가는 모습을 그려볼 수 있습니다.   먼 하늘에 비안개가 내리고 번갯불이 괴로운 병에 걸린 듯  미쳐 날뛸 때에, 옛날 이야기의 테판 타르 사막에 말을 타고 가면서,    왕자는 홀로 떨어진 가엾은 자기 어머니가 눈물을 닦으며 외양간  쓰레질만 하고 있는 것을 잊겠습니까?-   어머니, 보셔요, 해가 지기 전에 벌써 날이 거의 어두워 갑니다.  그리고 마을길 너머에는 이미 길가는 사람도 없습니다.   목동은 벌써 목장에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사람들도 이미 들에서  돌아와 오막살이 처마밑 자리에 앉아 거친 구름을 쳐다보고 있습니다.   어머니, 나는 책을 다 선반에 꽂았습니다 - 이제는 나보고 공부하라고  말씀을 하지 마셔요.   내가 자라서 아버지만큼 되면 배울 것을 모두 배우겠지요. 그렇지만 오늘만은 어머니, 옛날 이야기의 테판타르 사막이  어디 있는지 말씀해 주셔요.     거지  - 뚜르게네프                        거리를 걷고 있노라니....늙어빠진 거지 하나가  나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눈물어린 충혈된 눈, 파리한 입술, 다 헤진 누더기 옷,  더러운 상처.....오오, 가난은 어쩌면 이다지도 처참히  이 불행한 인간을 갉아먹는 것일까!   그는 빨갛게 부푼 더러운 손을 나에게 내밀었다..... 그는 신음하듯 중얼거리듯 동냥을 청한다.   나는 호주머니란 호주머니는 모조리 뒤지기 시작했다...... 지갑도 없다. 시계도 없다, 손수건마저 없다...... 나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었다.   그러나 거지는 기다리고 있다.......나에게 내민 그 손은  힘없이 흔들리며 떨리고 있다.   당황한 나머지 어쩔 줄을 몰라, 나는 힘없이 떨고 있는  그 더러운 손을 덥석 움켜 잡았다......   "용서하시오, 형제, 아무 것도 가진게 없구려" 거지는 충혈된 두 눈으로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파리한 두 입술에 가느다란 미소가 스쳤다..... 그리고 그는 자기대로 나의 싸늘한 손가락을 꼭 잡아주었다.   "괜찮습니다, 형제여" 하고 속삭였다. "그것만으로도 고맙습니다. 그것도 역시 적선이니까요"   나는 깨달았다....나도 이 형제에게서 적선을 받았다는 것을.  ​ 개  - 뚜르게네프                                 방 안에서 우리 둘....개와 나.  밖에는 사나운 폭풍이 무섭게 울부짖고 있다.   개는 내 앞에 앉아서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고 있다. 나도 개를 바라보고 있다.   개는 무슨 말인가를 나에게 하고 싶어하는 눈치다.  개는 벙어리라 말을 모른다. 자기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개의 심정을 이해한다. 나는 알고 있다.....지금 이 순간, 개도 나도 똑같은 감정에  젖어 있다는 것을, 우리 둘 사이에는 어떠한 간격도 없다는 것을.    우리 둘은 조금도 다른 것이 없다.  똑같이 전율에 떠는 불꽃이 저마다의 가슴 속에 불타며 빛나고 있다.   이윽고 죽음이 다가와서 이 불길을 향해  그 싸늘한 넓은 날개를 퍼덕거리리라......   그러면 끝장이다! 그렇게 되면 누가 알랴, 우리 저마다의 가슴 속에  어떤 불길이 타고 있었는가를?   그렇다! 지금 시선을 교환하고 있는 것은  동물도 아니고 인간도 아니다......   서로 응시하고 있는 것은 동일한 두 쌍의 눈. 동물과 인간, 이 두 쌍의 어느 눈에도 동일한 생명이    서로를 의지하며 겁먹은 듯 다가서고 있는 것이다. [출처] 세계 명시 모음 |작성자 은유   [출처] [[[세계 명시 모음]]]|작성자 영원속으로  
681    생각 속의 여우 / T․휴즈 댓글:  조회:1551  추천:0  2019-02-04
생각 속의 여우 T․휴즈   나는 이 한밤 순간의 숲을 상상한다. 무언가 살아 있다. 시계의 고독과 내 손가락이 움직이는 이 백지 옆에서.   창 밖엔 별 하나 보이지 않는다. 비록 어둠 속에서 깊어졌으나 더욱 가까워진 무엇인가 고독 속으로 들어오고 있다.   차갑고 검은 눈(雪)처럼 섬세하게, 한 마리 여우의 코가 잔가지와 잎을 건드린다. 두 눈이 하나의 동작을 대신한다, 그리고 또 그리고 지금,   흰 눈 속에 선명한 자국을 찍는다, 나무들 사이에서 그리고 조심스럽게 한 절룩거리는 그림자가 그루터기 옆을 느릿느릿 지나간다 그리고 숲 속의 빈터를 대담하게 가로질러 나온 몸뚱아리의 움푹 둘어간 공동(空洞) 속에서, 눈 하나가, 넓어지고 깊어지는 초록 하나가, 휘황하게 골똘하게 제 일을 시작하고 있다   문득 여우의, 코를 찌르는 악취와 함께 그게 어두운 머리 속으로 들어올 때까지, 창에는 여전히 별이 보이지 않는다. 시계는 똑딱거리고 백지가 채워진다. (글이 쓰여진다)     *테드 휴즈(Ted Hughes, 1930~1998 : 영국의 시인.극작가.비평가). 시작법(한기찬 역,청하출판사,1993)   [감상] 여우의 움직임을 통해 시 창작 과정을 밝히고 있는 이 시에서 1연은 한밤중 화자인 나는 시상을 정리하기 위해 숲의 모습을 생각한다. 그 숲속에는 시인 이외 다른 무언가가 살아 있다. 방안에는 시계의 째깍거림 이외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고요한 적막이다. 적막 가운데 화자는 백지를 펼쳐 놓고 그 위에 손을 올려 놓고 있다. 2연에서는 화자가 숲속 광경을 마음 속으로 상상하고 있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창문을 통해 별을 볼 수 없다고 하는 그는 별과 같이 멀리 떨어져 있는 상상의 대상이 아니라, 보다 가까이에 있는 대상을 느낀다. 그것은 어둠 속에 보다 깊이, 보다 가까이에 위치해 있다. 고독 속에서 시상은 떠오르는 법. 3연은 보다 가까이 있는 그것은 다름아닌 여우다. 여우는 코로 나뭇가지와 나뭇잎을 살며시 만진다. 여우의 코가 나뭇잎과 나뭇가지에 닿는 모습이, 흡사 어두운 밤에 눈이 살포시 내리는 것 같다고 한다. 시상이 매우 부드럽게 착상되는 순간이다. 여우는 두 눈으로 자신의 움직임을 본다. “지금”이라는 말이 계속 반복된 것은 여우가 한 발짝 한 발짝 발걸음을 옮기는 것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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