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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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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    하이네 시모음 댓글:  조회:1970  추천:0  2017-08-09
하이네 시모음     로렐라이  소녀  백합 꽃잎 속에  별은 아득한 하늘에  나무 아래 앉아서  그대가 보낸 편지  흐르는 내 눈물은  서시  아름다운 봄이 찾아와  잔잔한 여름철의  노래의 날개를 타고  연꽃  너는 한 송이 꽃과 같이  꿈의 신이 나를  온갖 꽃들이  밤은 잔잔하고  아아,나는 눈물이 싫어졌다  둘이는 서로 속을  다이아몬드랑 진주랑  너는 꽃에라도 대고 싶다  산위에 올라  뺨에 뺨을 비비며  그대 눈동자를 바라볼 때면  나는 꽃속을 거니네  내 눈을 이토록  너의 그 말 한마디에  ~~~~~~~~~~~~~~~~~~~~~~~~~~~~~~~~~~~~~~~~~~~  로렐라이  왜 그런지 그 까닭은 알 수 없지만  내 마음은 자꾸만 슬퍼지고  옛날부터 전해져 오는 이야기가  계속해서 내 마음에 메아리친다.  싸느란 바람 불고 해거름 드리운  라인강은 소리 없이 흐르고  지는 해의 저녁놀을 받고서  반짝이며 우뚝 솟은 저 산자락.  그 산 위에 이상스럽게도  아름다운 아가씨가 가만히 앉아  빛나는 황금빛으로  황금빛 머리카락을 빗고 있다.  황금빛으로 머리를 손질하며  부르고 있는 노래의 한 가락  이상스러운 그 멜로디여 마음속에 스며드는 그 노래의 힘.  배를 젓는 사공의 마음속에는  자꾸만 슬픈 생각이 들기만 하여  뒤돌아보는 그의 눈동자에는  강속의 바위가 보이지 않는다.  무참스럽게도 강 물결은 마침내  배를 삼키고 사공을 삼키고 말았다.  그 까닭은 알 수 없으나 로렐라이의  노래로 말미암은 이상스러운 일이여  ~~~~~~~~~~~~~~~~~~~~~~~~~~~~~~~~~~~~~~~~~~~~~~~~~~~~~~~~~  소녀  장미를 백합을 비둘기를 태양을  일찌기 이 모든 것을  나는 마음 깊이 사랑했었습니다.  이제 나는 그들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오직 내가 사랑하는 것은  귀엽고 맑고 순정스러운  한 소녀일 뿐,  사랑이 샘솟는 그 소녀만이  장미며, 백합이며, 비둘기며, 태양입니다.  ~~~~~~~~~~~~~~~~~~~~~~~~~~~~~~~~~~~~~~~~~~~~~~~~~~~~~~~~  백합 꽃잎 속에  백합 꽃잎 속에  이 마음 깊이 묻고 싶어라.  백합은 향기롭게  내 임의 노래를 부르리라.  노래는 파르르 떨며  언젠가 즐겁던 그 한때에  나에게 입맞춰 주던  그 입술의 키스처럼 생생하리라.  ~~~~~~~~~~~~~~~~~~~~~~~~~~~~~~~~~~~~~~~~~~~~~~~~~~~~~  별들은 아득한 하늘에  별들은 아득한 하늘에  몇 해를 두고 몸 하나 까닥않고  그리워 하는 저쪽 별에게  눈 웃음 보내고 있다.  별들이 말하는 얘긴  아름답고 너무나도 푸짐해  지금 세상 어떤 학자도  그 뜻은 알아내지 못한다.  그러나 나만은 그것을 배워  언제나 잊지 않고 익히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여 그대 얼굴에  그것을 풀 수 있는 방식이 있다.  ~~~~~~~~~~~~~~~~~~~~~~~~~~~~~~~~~~~~~~~~~~~~~~~~~~~~~~~~~  나무아래 앉아서  하얀 나무 아래 앉아서  너는 새된 먼 바람 소리를 듣고 있다.  하늘에서 말없는 구름이  안개에 싸이는 것을 보고 있다.  지상의 숲과 들이 시들고  앙상해진 것을 바라보고 있다.  너의 주위에도, 네 속에도 겨울이 와서  너의 마음은 얼어 붙었다.  갑자기 새하얀 눈송이 같은 것이  네 머리 위에 떨어져 내린다.  너는 짜증스레 생각한다.  나무가 눈보라를 뿌리는 것이라고  ~~~~~~~~~~~~~~~~~~~~~~~~~~~~~~~~~~~~~~~~~~~~~~~~~~~~~~~  그대가 보낸 편지  그대가 보내 주신 편지에  나는 전혀 마음 슬퍼하지 않겠소.  그대는 이제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했지만,  그러나 그 편지는 너무나 길었습니다.  열두 장이 넘도록 오밀조밀하게 쓰신!  이 정성스러운 글씨를!  만약 그대가 이별을 원한다면  이토록 상세하게 쓰실 수는 없는 것을.  ~~~~~~~~~~~~~~~~~~~~~~~~~~~~~~~~~~~~~~~~~~~~~~~~  흐르는 내 눈물은  흐르는 내 눈물은  꽃이 되어 피어나고  내가 쉬는 한숨은  노래되어 울린다.  그대 나를 사랑하면  온갖 꽃들을 보내 드리리  그대의 집 창가에서  노래하게 하리라...  ~~~~~~~~~~~~~~~~~~~~~~~~~~~~~~~~~~~~~~~~~~~~~~~  서시  옛날에 한 기사가 있었다. 우울하여 말이 없으며,  두 볼에는 살이 빠지고 핏기가 없었다.  언제나 흐릿한 꿈을 꾸고 있는 듯,  비틀대며 바깥을 흔들흔들 나돌고 있었다.  멍청하고, 굼뜨고,  돌에 채어 비트적거리며 걸어갈 때면,  주위에서 꽃과 소녀들이 낄낄 웃었다.  집에서는 항상 깜깜한 구석에 움추리고 있었다.  그곳이면 인간세사를 피할 수가 있었다.  이윽고 무엇인가 동경하며 두 팔을 내밀었지만,  말은 한 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한밤중에  기이한 노래가 울리기 시작하고---  누군가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넘실대는 바다 물결의 포말같은 옷을 입은  사모하는 여인이 들어선다.  선명하게 타오르는 장미의 아름다움,  금은으로 치장된 그녀의 면사포,  남실대는 금발에 날씬한 몸매,  두 눈에 넘치는 달콤한 미소---  두 사람은 다가가서 끌어안는다.  기사는 사랑으로 힘껏 안는다.  멍청하던 사람이 생기를 되찾고,  창백한 얼굴에 피가 돌며, 흐릿한 꿈에서 깨어난다.  수줍음은 점덤 사라져간다.  그러나 익살맞게 그를 놀려서,  그녀는 반짝이는 하얀 면사포를  살며시 그의 머리에 덮에 씌운다.  그러자 기사는 마법에 걸려,  어느덧 바다밑 수정궁에 와 있다.  휘황한 반짝임에 눈이 부셔  어찌할 바 모르는 기사를  바다의 요정이 상냥히 안아준다.  지금, 기사는 신랑, 요정은 신부.  수많은 쳐녀들이 찌터를 연주한다.  구슬같이 아름다운 노래 소리와  춤추는 옷깃에서 드러나는 발.  기사는 넋을 잃고  사랑스런 요정을 끌어안는다.--  그때. 불이 갑자기 꺼지고,  기사는 다시 외롭게 집에 앉아있다.  침침한 시인의 방에.  ~~~~~~~~~~~~~~~~~~~~~~~~~~~~~~~~~~~~~~~~~~~~~~~~~~~~~  아름다운 봄이 찾아와  아름다운 봄이 찾아와  온갖 꽃망울들이 피어날 때에  내 가슴속에도  사랑이 움텄네.  아름다운 봄이 찾아와  온갖 새들이 지저귈 때에  그리운 그대에게  불타는 사랑을 고백했지.  ~~~~~~~~~~~~~~~~~~~~~~~~~~~~~~~~~~~~~~~~~~~~~~~~~~~~~~~  잔잔한 여름철의  잔잔한 여름철의 저녁 어스름,  숲에, 푸른 들에 내려 깔린다.  파아란 하늘에 황금빛 달이  향기롭게 흔흔히 내리비친다.  귀뚜라미 찌륵찌륵 우는 시냇가,  물 속에 흐늘흐늘 그림자 하나.  나그네는 물소리에 귀 기울인다,  고요 속에 들려오는 숨쉬는 소리.  인적 없는 시냇가에 살며시 홀로  아름다운 요정이 멱을 감는다.  백설같은 두 팔과 가는 목덜미,  달빛 속에 은은히 떠오른다.  ~~~~~~~~~~~~~~~~~~~~~~~~~~~~~~~~~~~~~~~~~~~~~~~~~~~~~~~~~~~~~  노래의 날개를 타고  노래의 날개를 타고,  나의 사랑이여, 내 너와 함께 가련다.  갠지스 강의 들판 저편으로,  거기에 나는 가장 아름다운 곳을 알고 있다.  고요히 흐르는 달빛 아래  빠알간 꽃이 가득 핀 정원이 있고,  연꽃들은 그곳에서  사랑스런 자매를 기다린다.  제비꽃들은 소리죽여 웃으며 애무하고  하늘의 별들을 우러러보며,  장미꽃들은 몰래 귓속말로  향기로운 동화를 주고받는다.  온순하고 영리한 영양(羚羊)들은  깡충깡충 뛰어와 숨어서 기다리고,  머얼리서 성스러운 강의 물결이  파도치는 소리 들려온다.  그곳 야자나무 아래  우리 함께 내려앉아,  사랑과 안식을 마시며  행복한 꿈을 꾸고 싶다.  ~~~~~~~~~~~~~~~~~~~~~~~~~~~~~~~~~~~~~~~~~~~~~~~~~~~~~~~~~~  연꽃  연꽃은 찬란한  햇님이 두려워,  머리 숙이고 꿈꾸며  밤이 오기를 기다린다.  달님은 그녀의 연인,  달빛이 비쳐 그녀를 깨우면,  연꽃은 수줍게 얼굴을 들고  상냥하게 님을 위해 베일을 벗는다.  연꽃은 피어 작열하듯 빛나며  말없이 높은 하늘을 바라보고,  향내음 풍기며 사랑의 눈물 흘리고  사랑의 슬픔때문에 하르르 떤다.  ~~~~~~~~~~~~~~~~~~~~~~~~~~~~~~~~~~~~~~~~~~~~~~~~~~~~~  너는 한 송이 꽃과 같이  너는 한 송이 꽃과 같이  참으로 귀엽고 예쁘고 깨끗하여라.  너를 보고 있으면 서러움이  나의 가슴 속까지 스며든다.  언제나 하느님이 밝고 곱고 귀엽게  너를 지켜주시길  네 머리 위에 두 손을 얹고  나는 빌고만 싶다.  ~~~~~~~~~~~~~~~~~~~~~~~~~~~~~~~~~~~~~~~~~~~~~~~~~~~~~~~~~  꿈의 신이 나를  꿈의 신이 나를 커다란 성으로 데리고 왔다.  후덥지근한 방향과 반짝이는 등화와  그리고 잡다한 인파가  미궁처럼 착잡한 방마다 범람하고 있었다.  창백해진 사람들이 손을 비비고 불안에 흐느끼며  나갈 문을 찾고 있다.  그 중에서도 젊은 쳐녀들과 기사들이 눈에 띈다.  나도 인파에 싸여 움직여갔다.  그러나 갑자기 나 혼자만 남게 되었다.  어느덧 군중이 사라져 버린 것을 보고  나는 놀라며 혼자 걸어갔다.  그리고 기묘하게 구부러진 수많은 작은 방을 급히 지났다.  다리는 납처럼 무겁고, 마음은 불안과 슬픔에 찼다.  나갈 문을 못찾아 거의 절망하고 있을 때  가까스로 마지막 문에 이르렀다.  나가려고 하자 --- 거기에,  그 문 앞에 애인이 서 있었다.  입술에는 고통이, 이마에는 근심이 어려 있었다.  돌아오라고 나에게 손을 흔든다.  조심하라 주의를 시키는지, 화를 내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두 눈에는 감미로운 빛이 반짝이고 있다.  그것이 번갯불처럼 내 마음과 이마를 꿰뚫는다.  그녀가 근엄하고 기괴하게, 그러나 애정이 넘치는 눈으로  나를 바라본 순간,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  온갖 꽃들이  온갖 꽃들이 피어나는  아름다운 5월에  수줍게 피어난  마음속의 이 사랑.  온갖 새가 노래하는  아름다운 5월에  님을 잡고 하소연한  그리 웁던 이 사랑.  ~~~~~~~~~~~~~~~~~~~~~~~~~~~~~~~~~~~~~~~~~~~~~~~  밤은 잔잔하고  밤은 잔잔하고 거리는 고요하다.  바로 이 집에 내 애인이 살고 있었다.  그녀는 오래 전에 이 고장을 떠났지만  집은 그대로 옛 자리에 있다.  집 앞에 옛날처럼 사람이 서 있다.  손을 비비며, 몸을 뒤틀며 우러러 보고 있다.  그 사람의 얼굴이 보였을 때, 나는 섬뜩하였다.  달빛에 틀림없는 바로 내 얼굴.  오, 바로 나를 닮은 창백한 사나이여,  사랑으로 괴롭던 나를 왜 닮는가,  허구 많은 밤들을 이 자리에서  괴로움에 지새던 옛날의 나를.  ~~~~~~~~~~~~~~~~~~~~~~~~~~~~~~~~~~~~~~~~~~~~~~~~~~~~  아아,나는 눈물이 싫어졌다  아아, 나는 눈물이 싫어졌네.  달콤한 근심에 쌓인 사랑의 눈물.  그처럼 그립던 마음이  그리움 그대로 끝나지 않을까 두렵구나.  아아 사랑의 달콤한 근심과  그 아프고 슬픈 기쁨이  또다시 내 가슴을 괴롭히려고  미처 아물지도 않은 가슴속에 밀려드누나.  ~~~~~~~~~~~~~~~~~~~~~~~~~~~~~~~~~~~~~~~~~~~~~~~~~~~~  둘이는 서로 속을  둘이는 서로 속을 잘 알고 있었지만  이를 데 없이 사이가 좋았다.  우리 둘이는 곧잘 를 했지만  할퀴고 때리고 싸우지는 않았다.  둘이는 어울려 소리치고, 시시거리고  아주 다정히 입맞추곤 하였다.  그런데 필경에는 어린아이 마음에  숲과 골짜기에서 을 하였다.  그러나 너무도 깊이 숨어버려서  다시는 서로를 찾아내지 못했다.  ~~~~~~~~~~~~~~~~~~~~~~~~~~~~~~~~~~~~~~~~~~~~~~~~~~~~~~~~~~~~  다이아몬드랑 진주랑  다이아몬드랑 귀한 진주랑  그밖에 갖고 싶은 모든 것을 가지고,  거기에다 어여쁜 눈을 하고서 --  그런데도 너는 또 무엇을 바라는가.  그지없이 어여쁜 너의 눈을 위하여  정성을 다하여 쉴 사이 없이  노래를 차례 차례 나는 지었다 ___  그런데도 너는 또 무엇을 바라는가.  그지없이 어여쁜 너의 눈으로  나를 몹시도 괴롭히면서  이렇게도 절망 속에 몰아넣고서__  그런데도 너는 또 무엇을 바라는가.  ~~~~~~~~~~~~~~~~~~~~~~~~~~~~~~~~~~~~~~~~~~~~~~~~~~~~~~~~~~  너는 꽃에라도 대고 싶다  너는 꽃에라도 대고 싶다  정말 귀엽고 예쁘고 티없는......  나는 너를 볼 때마다  슬픈 심경을 견디기가 어렵다......  나는 문득 두 손을 내밀어  네 머리 위에 얹고  언제까지나 귀엽고 예쁘고 티없이  있게 하라고  하느님께 기도를 드리고 싶어진다.  ~~~~~~~~~~~~~~~~~~~~~~~~~~~~~~~~~~~~~~~~~~~~~~~~~~~~~  산위에 올라  산 위에 올라 보니  웬지 자꾸 슬퍼지누나.  만일 내가 산새라면  어느만치 한숨을 내쉴 것이메냐?  만일 내가 제비라면  그대 있는 곳에 날아갈 것을.  그런 후 그대 집 창가에  조그만 둥지를 만들어 볼 것을.  만일 내가 원앙새라면  그대 있는 곳에 날아갈 것을.  그런 후 푸른 저 보리수에서  밤마다 들리어 줄 노래 부름을.  만일 내가 비둘기라면  이내 그대 가슴에 날아갈 것을.  비둘기 좋아하는 그대일지니  어리석은 번뇌쯤 잊으시리라.  ~~~~~~~~~~~~~~~~~~~~~~~~~~~~~~~~~~~~~~~~~~~~~~~~~~~~~~~~~~~~~~~~~  뺨에 뺨을 비비며  뺨에 뺨을 비비며  울어 봅시다.  가슴과 가슴을 맞대며  불태웁시다.  눈물이 불길에  떨어질 때엔  서로 꼭 껴안고서  죽어 버립시다.  ~~~~~~~~~~~~~~~~~~~~~~~~~~~~~~~~~~~~~~~~~~~~~~~~~~~~~~~~~~  그대 눈동자를 바라볼 때면  그대 눈동자를 바라볼 때면  근심도 괴로움도 이내 사라지네  그대와 더불어 입맞출 때면  내 마음 금방 생기가 도네  그대가 내 품에 안길 때면  천국의 즐거움 용솟음치고  그대를 사랑한다 호소할 때면  눈물은 하없없이 솟아나네  ~~~~~~~~~~~~~~~~~~~~~~~~~~~~~~~~~~~~~~~~~~~~~~~~~~~~~~~~~~~~~  나는 꽃속을 거니네  나는 꽃 속을 거닐고 있네  마음도 꽃도 활짝 열리어  마치 꿈인 양 거닐고 있네  한걸음 한걸음 휘청거리며.  아아, 내 사랑아, 날 놓지 말지니  안 그러면 사랑에 취한 나머지  그대 발 아래 쓰러질 듯하네  사람들이 보고 있는 이 정원에서  ~~~~~~~~~~~~~~~~~~~~~~~~~~~~~~~~~~~~~~~~~~~~~~~~~~~~~~~~~  내 눈을 이토록  내 눈을 이토록 흐려만 놓고  적적한 눈물은 어찌해야 하는가?  적적한 이 눈물은 옛날부터  내 눈 속에 고여 있던 것.  투명하게 빛나는 눈물도 많았지만,  모두 다 흘러가 버렸고  내 온갖 슬픔과 기쁨과 함께  밤과 바람 속으로 사라져 갔다.  살포시 웃음 지며 내 가슴 속에  기쁨과 슬픔을 담뿍 안기어준  영롱하고 귀여운 작은 별도  안개가 사라지듯 사라져갔다.  덧 없는 입김의 허무함처럼  내 사랑마저 사라져가고  옛부터 고여 있는 이 적적한 눈물이여,  너도 이제는 사라지기를  ~~~~~~~~~~~~~~~~~~~~~~~~~~~~~~~~~~~~~~~~~~~~~~~~~~~~~~~~~~~~~~~  너의 그 말 한마디에  너의 해맑은 눈을 들여다보면  나의 온갖 고뇌가 사라져 버린다  너의 고운 입술에 입 맞추면  나의 정신이 말끔히 되살아난다..  따스한 너의 가슴에 몸을 기대면  마치 천국에 온 것 같은 기분  "당신을 사랑해요"  너의 그 말 한마디에  한없이 한없이  눈물이 흘러내린다..  
219    헤세 시모음 댓글:  조회:1818  추천:0  2017-08-09
(독일)헤르만 헤세의 시 모음     - 헤르만 헷세 인생에 주어진 의무는 다른 아무것도 없다네 그저 행복하라는 한 가지 의무뿐 우리는 행복하기위해 세상에 왔지 그런데도 그 온갖 도덕 온갖 계명을 갖고서도 사람들은 그다지 행복하지 못하다네 그것은 사람들 스스로 행복을 만들지 않는 까닭 인간은 선을 행하는 한  누구나 행복에 이르지 스스로 행복하고 마음속에 조화를 찾는 한 그러니까 사랑을 하는 한... 사랑은 유일한 가르침 세상이 우리에게 물려준 단 하나의 교훈이지 예수도 부처도 공자도 그렇게 가르쳤다네 모든 인간에게 세상에서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그의 가장깊은곳 그의 영혼 그의 사랑하는 능력이라네 보리죽을 떠먹든 맛있는 빵을 먹든 누더기를 걸치든 보석을 휘감든 사랑하는 능력이 살아 있는 한 세상은 순수한 영혼의 화음을 울렸고 언제나 좋은 세상 옳은 세상이었다네  - 헤르만 헤세 안개 속을 거니는 이상함이여,  덩굴과 돌들 모두 외롭고,  이 나무는 저 나무를 보지 못하니  모두가 다 혼자로구나!  나의 삶이 밝았던 때에는  세상엔 친구들로 가득했건만  이제 여기 자욱한 안개 내리니  아무도 더는 볼 수 없어라.  회피할 수도 없고 소리도 없는  모든 것에서 그를 갈라놓는  이 어두움을 모르는 이는  정녕 현명하다고는 볼 수 없으리.  안개 속을 거니는 이상함이여,  산다는 것은 외로운 것,  누구도 다른 사람 알지 못하고  모두는 다 혼자인 것을!  -헤르만헤세 하느님이시여, 저를 절망케 해 주소서  당신에게서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 절망하게 하소서  나로 하여금 미혹의 모든 슬픔을 맛보게 하시고  온갖 고뇌의 불꽃을 핥게 하소서  온갖 모욕을 겪도록 하여 주시옵고  내가 스스로 지탱해 나감을 돕지 마시고  내가 발전하는 것도 돕지 마소서  그러나 나의 자아가 송두리째 부서지거든  그 때에는 나에게 가르쳐 주소서  당신이 그렇게 하셨다는 것을  당신이 불꽃과 고뇌를 낳아 주셨다는 것을  기꺼이 멸망하고 기꺼이 죽으려고 하나  나는 오직 당신의 품속에서만 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헤르만헤세 이야기할 것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너무나 오랫동안 나는 멀리 객지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가장 나를 이해해 준 분은 어느 때나 당신이었습니다. 오래 전부터 당신에게 드리려는 나의 최초의 선물을 수줍은 어린아이 손에 쥔, 지금 당산은 눈을 감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읽고 있으면 이상하게도 나의 슬픔을 잊는 듯합니다. 말할 수 없이 너그러운 당신이, 천가닥의 실로 나를 둘러싸고 있기 때문입니다. ------------------------------------- -헤르만헤세 어찌할 바를 몰라 슬픔에 젖어 이곳에 서 있다. 고향을 멀리 떠나  나는 헤매이며 왔다. 내가 알고 있던 꼿이여 푸른 높은 산이여 인간이여, 들판이여 이제 나는 너희들을 모른다. 다만, 너의 입에서만 엿날의 소리를 듣고 다정한 동화의 말처럼 옛날의 소식을 듣는다. 멀지 않아 착한 원정인 죽음이 부모가 기다리는 저녁 노을 속으로 그의 정원으로 나를 데리고 갈 것이다. --------------------------------------- -헤르만헤세 언제나 같은 꿈이다. 빨간 꽃이 피어 있는 마로니에 여름 꽃이 만발한 뜰 그앞에 외로이 서 있는 옛집 저 고요한 뜰에서 어머니가 어린 나를 잠재워 주셨다. 아마도, 이제는 오랜 옛날에 집도 뜰도 나무도 없어졌을 것이다. 지금은 그 위로 초원의 길이 지나고 쟁기가 가래가 지나 갈 것이다. 고향의 뜰과 집과 나무를 이제는 꿈에서만 남을 것이다. 설레이는 마음으로 떠올리는 무수한 낯모르는 얼굴들.... 서서희 하나, 둘 불빛이 흐려간다. 그 여린 빛이 회색이 되고 --------------------------------------------------------   헤르만 헤세 지난날 어린 시절부터 나에게 행복을 약속한 하나의 음향이 나에게로 다가 온다. 만일 이것이 없으면 살기가 너무나 괴로울 것이다. 이 마력의 음향이 울리지 않는다면 나는 빛없이 서서 주위에 불안과 암흑만을 볼 것이다. 그러나 슬픔과 죄에 다치지 않는 소리가 행복에 찬 달콤한 음향이 울린다. 슬픔과 죄악에도 파멸되지 않는 그 음향이. 너 자랑스런 목소리여 내 집의 불빛이여 다시는 꺼지지 말고 그 푸른 눈을 감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세계는  부드러운 빛을 모두 잃고 크고 작은 별들이 차례로 떨어져 나만 홀로 남게 될 것이다. -------------------------------------------------------   헤르만 헤세 지금은 벌써 전설이 된 먼 과거로부터 내 청춘의 초상이 나를 바라보며 묻는다. 지난날 태양의 밝음으로부터 무엇이 반짝이고 무엇이 타고 있는가를 ! 그때 내 앞에 비추어진 길은 나에게 많은 번민의 밤과 커다란 변화를 가져 왔다. 그 길을 나는 이제 다시는 걷고 싶지 않다. 그러나 나는 나의 길을 성실하게 걸었고 추억은 보배로운 것이었다. 잘못도 실대도 많앗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    헤르만 헤세 세상에는 크고 작은 길들이 너무나 많다. 그러나  도착지는 모두가 다 같다. 말을 타고 갈 수도 있고, 차로 갈 수도 있고 둘이서 아니면, 셋이서 갈 수도 있다. 그러나 마지막 한 걸음은 혼자서 가야 한다. 그러므로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혼자서 하는 것보다는 더 나은 지혜나 능력은 없다. --------------------------------------------------    헤르만 헤세 양떼를 몰고 목동이 조용한 오솔길을 가고 있다. 집들은 잠이 오는 듯 벌써 깜박이고 있다. 나는 이 마을에서, 지금 단 하나의 이방인 슬픔으로 하여 나의 마음은 그리움의 잔을 남김없이 비운다. 길을 따라 어디로 가든 벽난로에는 따뜻한 불이 타고 있었다. 오직 나만이 고향과 조국을 느껴보지 못했다. ------------------------------------------   헤르만 헤세 피곤한 여름이 마침내 고개를 숙이고 호수에 비친 그의 마지막 모습을들여다본다. 일상에 지친 나는 먼지에 싸여 가로수 그늘을 방황하고 있다. 포플러 사이로 바람이 지나간다. 그러면 내 뒤로 황혼이 금빛으로 타오르고 앞에는 밤의 불안이 죽음과 함께 온다. 먼지에 싸인 채 지친 걸음을 옮겨 놓는다. 그러나 젊음은 머뭇거리듯 뒤로 밀려나며 고운 모습을 감춘 채 나와 함께 앞으로 가려 하지 않는다. ------------------------------------------------------   헤르만 헤세 검은 수목들의 그림자가 꿈을 식히는 어둠 속을 그는 즐겨 걸었다. 그러나 그의 가슴속에는 빛에서 빛으로 타오르는 욕망에 갇혀 괴로움을 다하고 있었다. 머리 위에 은빛으로 맑은 별이 가득 찬 하늘이 있음을, 그는 몰랐다. -----------------------------------------------------------   헤르만 헤세 전나무 아래서 쉬고 있노라면 지난날이 생각난다. 익은 숲의 냄새가 최초로 소년의 슬픔을 잉태했던 그날이. 바로 이곳이었다. 내가 이끼위에 누워 수줍은 소년의 열정이 가냘픈 금발 소녀의 모습을 꿈꾸었다. 환한 속에 처음 핀 장미를 꺾어 넣고. 세월은 흐르고 꿈은 늙어지고 멀어져서 다른 꿈이 왔다. 그것도 작별한 지 이미 오랜 일이다. 최초의 꿈의 주인이 누구였는지 나는 늘 괴로워했다. 그래, 누구였을까. 잊혀지지 않는 것은 ? 다만, 그녀가 상냥하고 가냘픈 금발이라는 것 뿐이다. -------------------------------------------------------------   헤르만 헤세 슬픈 듯 너는 얼굴을 잎새에 묻는다. 때로는 죽음에 몸을 맡기고 유령과 같은 빛을 숨쉬며 창백한 꿈을 꽃피운다. 그러나 너의 맑은 향기는 아직도 밤이 지나도록 방에서 최후의 희미한 불빛 속에서 한 가닥 은은한 선율처럼 마음을 적신다. 너의 어린 영환은 불안하게 이름 없는 것에 손을 편다. 그리고 내 누이인 장미여, 너의 영혼은 미소를 머금고 내 가슴에 안겨 임종의 숨을 거둔다. ----------------------------------------------------------- (크눌프의 추억)   헤르만 헤세 슬퍼하지 말아라, 곧 밤이 오리라. 그러면 우리들은 파리해진 산 위에서 몰래 웃음짓는 것 같은 시원스러운 달을 보리라. 그러면 손을 잡고 쉬자. 슬퍼하지 말아라, 곧 때가 오리라. 그러면 우리는 쉬리라, 우리들의 십자가가 밝은 길가에 나란히 설 것이다. 그리고 비가 내리고, 눈이 오고 바람이 불 것이다. ---------------------------------------------------    헤르만 헤세 젊은 날에는 하루같이 쾌락을 쫓아 다녔다. 그 후에는 우수에 싸여 괴로움과 쓰라림에 잠겨 있었다. 지금 나에게는 기쁨과 쓰라림이 형제처럼 스며 있다. 기쁜 듯 슬픔 듯 둘은 하나로 되어 있다. 신이 나를 지옥으로 탱양의 하늘로 인도한다면 나에게는 둘 다 같은 곳이다. 신의 손길을 느끼고 있는 한. ----------------------------------------------   헤르만 헤세 서쪽에서 바람이 불어 온다. 보리수가 깊은 신음소리를 내고 달빛은 나뭇가지 사이로 내 방을 엿본다. 나를 버린 그리운 사람에게  긴 편지를 썼다. 달빛이 종이 위로 흐른다. 글위를 흐르는 고요한 달빛에  나는 슬픔에 젖어 잠도, 달도, 밤 기도도 모두 잊는다. ----------------------------------------------------   헤르만 헤세 가을의 찬 바람이 시든 갈대밭을 스잔히 불어간다. 갈대잎은 밤 사이에 회색이 되었다. 까마귀는 버드나무를 떠나 육지로 날아간다. 호수에서는 한 노인이 외로이 서서 쉬고 있다. 머리에 바람과 밤과 다가오는눈을 느끼고 그늘진 호수에서 밝은 하늘을 바라본다. 거기 구름과 호수 사이에 한 줄기 물가의 육지가 햇빛 속에서 따뜻하게 빛나고 있다. 꿈과 시처럼 행복에 찬 금빛 호수가. 노인은 빛나는 이 풍경을 똑똑히 눈 속에 간직하고 고향을, 지난 행복한 세월을 생각한다. 그리고 황금빛 태양이 흐려지고 사라지는 것을 보자 머리를 돌려 버드나무에서 떠나 천천히 육지로 걸어간다. ---------------------------------------------------   헤르만 헤세 나는 항상 방랑의 길에 있었다. 순례자였다. 내가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기쁨도 슬픔도 흘러갔다. 나는 방랑의 의미도, 목적도 알지 못한다. 몇 천 번을 쓰러지고 그때마다 다시 일어났다. 아, 내가 찾고 있었던 것은 성스럽고 멀리 높은 하늘에 걸려 있었던 사랑의 별이었다. 그러나 그 별을 안 지금은 목적을 알지 못하던 동안에는 마음 편히 걸어 갔고 기쁨과 행복을 가질 수 있었다. 이미 늦었다. 별은 돌아서 버리고 아침에 거센 바람이 불어왔다. 나는 그렇게도 사랑하던 화려한 세상과 작별을 해야 한다. 나는 목표를 잃어버렸으나 그래도 가야 할 나그네의 길이 있었다 ----------------------------------------------------------   헤르만 헤세 나는 촛불을 꺼버렸다. 열린 창문으로 밤이 밀려와 살며시 나를 안고, 나를 벗으로 형제로 삼는다. 우리들은 같은 향수에 젖어 있다. 불안한 꿈을 밖으로 내쫓고 소곤소곤 아버지 집에서 살던 지난 날을 이야기한다. -----------------------------------------------------------   헤르만 헤세 숲이 금빛으로 타고 있다. 상냥한 그이와, 여러 번 나란히 걷던 이 길을 나는 혼자서 걸어 간다. 이런 화창한 날에 오랜 동안 품고 있던 행복과 고로움이, 향기 속으로 먼 풍경으로 녹아 들어간다. 풀을 태우는 연기 속에서 농부의 아이들이 껑충거린다. 나도 다른 아이들처럼 노래를 시작한다. 
218    폴 발레리 시 모음 댓글:  조회:5676  추천:1  2017-08-09
폴 발레리 시 모음 발레리 1871-1945     남 프랑스 지중해안의 항구 sete에서 이탈리아인의 혈통을 받고 태어난 발레리는 프랑스정신의 '지중해적'.'아폴로적' 특질을 남김없이 발휘한 시인,평론가이다.   말라르메의 문하생으로 문학생활을 시작한 그는 전위적인 문학잡지 등에 시를 발표했으나   그후 20년간의 긴 침묵 끝에 '젊은 파르크'라는 장시를 발표하면서 부터 당대 최고의시인으로 군림,  아카데미회원, college de france교수등의 영광을 얻게된다.     주요작품: 다양성(Variete)1924,          다양성Ⅱ(VarieteⅡ)1929,          다양성Ⅲ (VarieteⅢ) 등     잃어버린 포도주   어느 날인가 나는 대양에 (허나 어느 하늘 아래선지 모르겠다)   던졌다, 허무에 진상하듯, 귀중한 포도주 몇 방울을.     누가 너의 유실을 원했는가, 오 달콤한 술이여? 내 필시 점쟁이의 말을 따른 것인가?   아니면 술을 따를 때 피를 생각하는 내 마음의 시름을 쫓았던가?     장미빛 연무가 피어오른 뒤,   언제나 변함없는 그 투명성이 그토록 청정한 바다에 다시 다다른다 ......     그 포도주는 사라지고, 물결은 취해 일렁이도다! ......   나는 보았노라 씁쓸한 허공 속에서 끝없이 오묘한 형상들이 뛰어오르는 것을 ......       석류   알맹이들의 과잉에 못 이겨 방긋 벌어진 단단한 석류들아,   숱한 발견으로 파열한 지상의 이마를 보는 듯하다!     너희들이 감내해 온 나날의 태양이, 오 반쯤 입 벌린 석류들아,   오만으로 시달림받는 너희들로 하여금 홍옥의 칸막이를 찢게 했을지라도,     비록 말라빠진 황금의 껍질이 어떤 힘의 요구에 따라   즙든 붉은 보석들로 터진다 해도,     이 빛나는 파열은   내 옛날의 영혼으로 하여금 자신의 비밀스런 구조를 꿈에 보게 한다.     애정의 숲                   우리는 순수한 것을 생각했었다. 나란히 길을 따라가면서   우리는 서로 손을 잡았다. 말도 없이......이름 모를 꽃 사이에서;     우리는 약혼자처럼 걸었다. 단둘이, 목장의 푸른 밤 속을;   그리고 나눠 먹었다 저 선경의 열매, 광인들이 좋아하는 달을.     그리고, 우리는 죽었다 이끼 위에서 단둘이 아주 머얼리, 소곤거리는 친밀한   그리고 저 하늘 높이, 무한한 빛 속에서 저 숲의 부드러운 그늘 사이에서;     우리는 울고 있었다. 오 나의 사랑스런 말없는 반려여!       시      시의 젖가슴에 안겨 젖을 빨던 입이   깜박 놀람에 엄습되어 입술을 뗀다.     ---- 따스한 정 흘러 나오던 오 내 어머니 지성이여   젖이 말라도 가만히 있는 이 무슨 소홀함인가!     그대 품안에서 하얀 밧줄로 짓감기면,   재보(財寶)로 가득 찬 그대 가슴의 바다 물결은 곧장 나를 어르곤 했노라.     그대의 침침한 하늘에 잠겨, 그대의 아름다움 위에 기진하면,   어두움을 삼키면서도, 빛이 나를 침범함을 느꼈노라!     자기 본질에 숨어 지고한 안정의 인식에   그지없이 순종하는 신(神)인 나,     나는 순수한 밤과 맞닿아, 이젠 죽을 도리도 없어라,   면면히 흐르는 강물이 내 체내를 감도는 것만 같아서 ......     말하라, 그 어떤 부질없는 공포 때문에, 그 어떤 원한의 그림자 때문에,   이 현묘한 영감의 수맥이 내 입술에서 끊어졌는가?     오 엄밀함이여, 그대는 나에게 내가 내 영혼 거스르는 징조여라!   백조처럼 비상하는 침묵은 우리들의 하늘엔 이미 군림하지 않나니!     불사의 어머니여, 당신의 눈시울은 나에게 나의 보물들을 인정하지 않고,   내 몸을 안았던 부드러운 살은 이제 돌이 되고야 말았구나!   그대는 하늘의 젖마저 내게서 앗아가느니, 이 무슨 부당한 보복인가?   내 입술 없으면 그대는 무엇이며 사랑이 없으면 나는 또 무엇인가?   허나 샘물은 흐름을 멈추고 박정함 없이 그에게 대답한다.   ----당신이 하도 세게 물어뜯어 내 심장이 멈추고 말았노라고!     뚜렷한 불꽃이                 뚜렷한 불꽃이 내 안에 깃들어, 나는 차갑게 살펴본다 온통 불 밝혀진 맹렬한 생명을......   빛과 뒤섞인 생명의 우아한 행위는 오직 잠자면서만 사랑할 수 있을 뿐.     나의 나날은 밤에 와서 나에게 눈길을 돌려주며, 불행한 잠의 첫 시간이 지난 뒤,   불행마저 암흑 속에 흩어져 있을 때, 다시 와서 나를 살리고 나에게 눈을 준다.     나날의 기쁨이 터질지라도, 나를 깨우는 메아리는 내 육체의 기슭에 죽은 이만을 되던졌을 따름이니,   나의 야릇한 웃음은 내 귀에 매어단다     빈 소라고동에 바다의 중얼거림이 매달리듯, 의혹을---- 지극히 불가사의의 물가에서,   내가 있는지, 있었는지, 잠자는지 아니면 깨어 있는지?       실 잣는 여인 / 폴 발레리                            나리꽃은 --- 길쌈도 않는다.     가락도 아름다운 뜨락에 넘실거리는 파아란 유리창가에 앉아 실 잣는 여인; 코고는 낡은 물레 소리에 취해 버려.   푸른 하늘을 마셨기에, 갸날픈 손가락 피하는 어리광쟁이 머리카락 잣기에 지쳐, 여인은 꿈꾸고, 작은 머리가 숙여지고,   작은 관목과 맑은 공기가 분수를 만들고, 햇빛에 매달려 흐믓한 분수는 꽃잎을 뿌려 일없는 여인의 뜨락을 적셔 준다.   바람둥이 바람이 와서 쉬는 나무줄기 하나, 눈부신 제 장미 송이를 늙은 물레에게 바치며, 총총한 별 모양 맵시있는 헛인사를 보낸다.   그런데도 잠꾸러기 여인은 외로이 양털을 잣고; 그 여린 그림자는 이상하게도 자아져 조으는 길다란 손가락들 따라 짜여진다.   꿈은 천사처럼 게으르면서도 끊임없이 순하고 숫된 가락에 감겨들고, 머리카락은 쓰다듬는 손 따라 일렁거리고---   창공은 그 많은 꽃들 뒤로 숨으니, 잎가지와 빛에 둘러싸인 실 잣는 여인아; 초록빛 하늘이 온통 죽어간다, 마지막 나무가 타오른다.   한 성녀가 미소짓는 큰 장미 송이인 네 언니가, 그 순결한 숨결 바람으로 네 흐릿한 이마에 향을 뿌리니, 너는 나른해지는 기분---너는 사라진다   네가 양털을 잣던 그 파아란 유리창가에서.     / 박은수 역   헬레네 / 폴 발레리   푸른 하늘아! 나예요--- 나는 죽음의 동굴을 빠져나와 웅성거리는 층계들에 부서지는 물결 소리 들으며, 갤리선들이 새벽빛 속에 금빛 노들을 저어대며 어둠에서 되살아나는 걸 다시 보고 있어요.   소금처럼 하얀 수염으로 내 순결한 손가락들 달래던 군주들을 내 외로운 두 손이 부르고 있어요; 나는 그때 울고 있었죠. 그들은 자기네의 어두운 승리들과 배 고물에 사라지는 물굽이들을 노래하고 있었고.   깊숙한 소라고동 소리며, 날개치는 노들과 장단 맞추는 전투 나팔 소리가 지금도 들려와요. 노 젓는 사람들의 낭랑한 노래가 법석을 억누르고,   물보라 덤벼드는 용맹의 뱃머리에는 우쭐한 신들이 그 옛날 그대로의 미소를 띄고, 그 조각된 너그러운 팔들을 나에게 내밀고요.   은밀한 노래 / 폴 발레리     눈부신 추락, 이토록 기분 좋은 마지막, 싸움들은 잊어버리기, 춤을 춘 후, 매끈한 몸이 이끼 바로 위에 눕는 이 즐거움!   이 여름 불티들과도 같은 섬광 한 가닥이 땀 흘리는 한 이마 위에서 승리를 축하한 적은 일찍이 없다!   그러나 황혼이 다가오자, 수 많은 일들을 이루어 낸 이 위대한 몸도, 춤을 추며 헤라클레스를 꺽던 이 몸도, 이젠 하나의 장미꽃 더미일 뿐!   서서히 몸 사그러든 승리자여, 별들의 발걸음들 아래 잠들어라. 왜냐하면 영웅과 맞수인 히드라별자리도 몸을 끝없이 펼쳐 놓았으므로---   영혼이 돌이킬 수 없는 시간으로 들어갈 때는, 오 황소별자리 개별자리 곰별자리 따위의 엄청난 전리품들을, 영혼은 형체 없는 공간으로 밀어넣는다!   하늘나라에 가 있는 위대한 업적들을, 괴물들과 신들을 내세워 온 누리에 널리 선포하는 더할나위 없는 마지막, 눈부심이여!   시간 / 폴 발레리     시간이 나한테 와서 미소짓다가 사이렌이 되고: 내가 새로운 햇빛에 모두가 환히 밝아지니: 햇살아, 어둡지만 더할나위 없는 영혼의 앞뜰에서    너는 오래 춤출 생각인가?   이젠 시간, 목마름, 샘물 그리고 사이렌.   내 욕망 채워 주는 시간아, 너를 위해 과거가 타오르니: 마침내 외로운 자의 광채, 오, 나를 가로챈 보물들, 나는 지금대로의 내가 좋으니; 내 고독은 바로 여왕! 내켜서 노예가 된, 어없이 은밀한 내 악마들이 내가 살고 있는 바로 이 그빛 햇살과 공기 속에서 명석한 의견들 지닌 순수한 지혜 하나를 완성시키니;    나의 여기 있음은 아주 맑고 잔잔하다.   이젠 시간, 목마름, 샘물 그리고 사이렌,   햇살아, 저견의 앞뜰에서, 내 더할나위없는 밤의 검은 눈 앞에서, 오래 춤출 생각인가?       해변의 묘지 / 폴 발레리                  내 넋이여, 영생을 바라지 말고,              힘 자라는 분야를 바닥내라.               -핀다로스, 중에서     비둘기들 거니는 저 조용한 지붕이, 소나무들 사이, 무덤들 사이에 꿈틀거리고, 올 곧은 정오가 거기서 불꽃들로 바다를 구성한다, 늘 되풀이되는 바다를! 오, 신들의 고요에 오래 머문 시선은 한 가닥 명상 뒤의 고마운 보답!   날카로은 번갯불들의 순수한 작업이 잔 물거품 속 무수한 금강석을 간직하고 있어 아늑한 평화가 잉태되는 것만 같지 않은가! 하나의 해가 심연 위에 쉴 때는, 영원한  두 가지 순수 작품인 시간은 반짝이고 꿈은 곧 깨달음이다.   견고한 보물, 소탈한 미네르바* 신전, 고요의 더미, 눈에 보일만큼 풍성하게 저장된 것들, 우뚝 솟은 물, 불꽃 너울을 쓴 채 무수한 잠을 내면에 간직한 눈이여, 오, 나의 침묵!---영혼 속의 신전, 그러나 기왓장도 무수한 금빛 등마루같은 지붕아!   단 한번의 한숨에도 요약되는, 시간의 신전, 이 순수점에 나는 올라가 익숙해진다. 바다 두루 살펴보는 내 눈길에만 둘러싸여서; 그리고 바다의 잔잔한 반짝거림이 온갖 경멸을 바다 깊이 씨뿌린다 신들에게 바치는 내 최고의 제물인 양.   과일이 즐거움이 되어 녹아들듯이, 과일이 제 모습 죽어가는 입 안에서 자신의 사라짐을 환희로 바꾸듯이, 나도 여기서 미래의 내 연기를 들이마시고, 하늘은 웅성거리는 해변들의 변화를 타 없어진 영혼에게 노래해 준다.   아름다운 하늘, 진실한 하늘아, 나를 바라보라, 나는 그 많은 자만 끝에, 이상야릇하면서도 능력 넘치는 그 많은 무위 끝에, 이 빛나는 공간에 몸을 내맡기고, 내 그림자는 죽은이 집들 위를 지나가며 제 허약한 발걸음에 나를 길들인다.   사정없는 화살들 지닌 빛의 놀라운 올곧음, 하지점의 햇불을 쬐는 넋이여, 나는 버티고 서서 너를 쳐다본다! 나는 너를 순수한 그대로 네 으뜸 자리로 돌려주니: 네 모습을 보라! ---그러나 빛을 돌려주면 그림자의 어두운 반쪽도 따르게 마련.   오, 나만을 위해, 나 혼자서, 나 자신 속에서, 한 마음 곁에서, 시의 샘물들에서, 나는 기다린다, 내 속에 있는 위대함의 메아리를, 늘 미래인 빈속을 넋 속에 울리는, 쓰고 어둡고 소리 잘 내는 저수탱크를!   잎가지들에 갇힌 듯한 가짜 포로, 이 앙상한 쇠울짱** 갉아먹는 물굽이 감겨진 내 눈 위의 눈부신 비밀들아, 어떤 육신이 제 게으른 종말로 나를 끌고가고, 어떤 이마가 이 뼈투성이 땅으로 육신을 끌어당기는가를? 불똥 하나가 거기서 내 부재자들을 생각한다.   막혀, 거룩하고, 물질 없는 불로 가득 차, 빛에게 바쳐진 땅 조각, 이곳이 나는 좋다, 횃불들이 지켜주고, 금빛과 돌과 침침한 나무들로 구성된 곳, 숱한 대리석이 숱한 망령들 위에 떨고 있는 이곳이; 충직한 바다가 여기서 잔다, 내 무덤들 위에서!   눈부시게 빛나는 암캐야, 우상 숭배자를 피하라! 목동의 미소를 짓는 내가 외로이, 신비의 양들, 고요한 내 무덤들의 하얀 양떼를, 오랫동안 풀 뜯기고 있을 때는, 멀리하라, 조심성 많은 비둘기들을, 부질없는 꿈들과 호기심 많은 천사들을!   여기에만 오면, 미래는 바로 게으름. 깔끔한 매미는 메마름을 긁어대고; 모두가 타고 허물어져, 공기 속에 스며든다 나도 모를 무슨 가혹한 정기가 되어--- 부제에 도취하면 삶은 한없이 드넓고, 쓴맛이 달고, 정신은 환히 맑다.   숨겨진 죽은이들은 바로 이 땅속에 있고 땅은 그들을 다시 태워 그들의 신비를 말린다. 저 높은 곳에 정오가, 꼼짝도 않는 정오가 저 속에서 저를 생각하며 저 자신의 마음에 드니--- 완전한 머리, 완벽한 왕관아, 나는 네 속에서 은밀한 변화일 따름.   네가 주는 겁을 당해낼 자는 나뿐! 나의 뉘우침들, 나의 의혹들, 나의 얽매임들은 네 거창한 금강석의 흠집이고--- 그런데도 나무 뿌리들 달린 흐리멍텅한 주민은, 대리석들로 온통 무거워진 자기네 어둠 속에서 이미 서서히 네 편이 되고 말았다.   그들은 두꺼운 부재 속으로 녹아들었고, 붉은 찰흙이 하얀 종족을 마셔 버렸으며, 살아가는 재간은 꽃들 속으로 옮아 갔으니! 죽은이들의 그 단골 말투들이며, 저마다의 솜씨, 남다른 마음씨들은 지금 어디 있는가? 눈물 맺히던 그곳에는 애벌레가 기어다닌다.   간지럼먹은 처녀들의 킬킬거림, 그 눈들이며 이빨들, 젖은 눈까풀들, 불꽃과 장난치는 귀여운 젓가슴, 순종하는 입술들에 반짝이는 피, 막바지 선물과 그걸 감싸는 손가락들, 모두가 땅밑으로 가서 윤회에 다시 끼여드니!   큰 넋이여, 그래도 너는 바라겠는가 물결과 금빛이 여기서 육신의 눈앞에 빚어내는 이 거짓말 빛깔들도 이미 갖지 않을 그런 꿈을? 네가 안개가 될 때도 너는 노래할 생각인가? 자아! 모두가 도망친다! 나의 현존은 잔구멍투성이. 영생을 바라는 거룩한 조바심 또한 죽어가니!   금칠을 해도 검은 수척한 영생이여. 죽음을 어머니 태로 삼는, 끔찍스럽게도 월계관 받쳐쓴 위안자여, 아름다운 거짓말과 경건한 속임수여! 이 텅빈 머리통과 이 영원한 웃음을, 누가 몰라보고, 또 누가 마다하지 않으랴!   그 숱한 삽질들의 흙 무게 아래서, 흙이 되어 우리의 발걸음도 분간 못하는, 깊은 곳의 조상들, 아무도 살지 않는 빈 머리들아, 정말로 좀먹는자, 막무가내인 벌레는 묘석 아래서 잠자는 당신들 위한 것은 아니어서, 생명을 먹고살고, 나를 떠나지 않으니!   어쩌면 나 자신에 대한 사랑인가, 아니면 미움인가? 그 숨은 이빨은 하도 바싹 내게 달라붙어 있어 어떤 이름으로 불러도 다 알맞을 수 있을 판! 상관없어! 벌레는 보고, 바라고, 꿈꾸고, 만지고! 내 육신이 제 마음에 드니, 내 잠자리 위에서까지도, 나는 이 생물에 딸려서 살고 있는 걸!   제논! 잔인한 제논! 엘리아의 제논이여! *** 날면서도 날아가지 않는 그 바르르 떠는 날개돋친 화살로 너는 나를 꿰뚫었어! 그 소리는 나를 낳고 화살은 나를 죽이니! 아! 태양은--- 성큼성큼 달려도 꼼짝않는 이킬레스인 이 넋에게는 이 무슨 거북한 그림자인가!   아니야, 천만에! ---일어서라! 잇닿은 시대 속에! 내 육신아, 생각에 잠긴 이 형태를 깨뜨려라! 내 가슴아, 태어나는 바람을 들이마셔라! 바다가 내뿜는 시원한 기운 한 가닥이, 내 넋을 내게 돌려주니--- 오, 짭짤한 힘이여! 물결로 달려가 거기서 힘차게 솟구쳐오르자!   그럼! 광란을 거느린 큰 바다, 얼룩덜룩한 표범 털가죽과 태양의 무수한 영상들로 구멍난 망토여, 침묵과도 비슷한 야단법석 속에서 번쩍이는 네 꼬리를 자꾸 물어뜯으며, 네 시퍼런 살에 도취해, 날뛰는 히드라여***   바람이 인다! ---살려고 애써야겠다! 가없는 공기가 내 책을 열었다가 다시 닫고, 부서진 물결이 바위들로부터 마구 용솟음치니! 날아올라라, 온통 눈이 부셔 어지러워진 책장들아! 부수어라, 물결들아! 흥에 겨운 물로 부수어라 삼각돛들이 모이 쪼던 저 조용한 지붕을!       *Minerva 로마 신화에 나오는 공에, 직업, 예술의 여신, 나중에는 전쟁의 여신이 되었다. 일반적으로 그리스 아네나 여신과동일시된다. **쇠울짱  쇠로 만든 말뚝 을 죽 늘어서 세운 울타리  ***Zenon of Elea  BC 495경~ 430경.  그리스의 철학자·수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변증법의 발명자라고 부른 인물로서 특히 역설로 유명하다. 그의 역설은 논리학과 수학의 엄밀성을 발전시키는 데 이바지했으며 연속과 무한이라는 개념이 정확하게 발전하고서야 비로소 해결될 수 있었다.     *** 히드라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괴물로 물속에 사는 뱀. 아홉 개의 커다란 머리를 가졌는데 그 가운데 하나는 불사의 마력을 지녔다고 하며 머리 하나를 자르면 그 자리에 새로 두 개의 머리가 생겨났다고 한다. 헤라클레스에 의해 퇴치되었다.
217    프랑스 명시선 ( 3 ) 댓글:  조회:2318  추천:0  2017-08-09
프랑스 명시선 ( 3 )   풍신(風神) / 폴 발레리     보이지도 알 수도 없는, 바람에 실려 살기도 죽기도 하는 나는 뜬 향기(香氣)라네!   보이지도 알 수도 없는 우연인가 영감(靈感)인가? 왔다 할 땐 일은 이미 끝났다!   누가 읽고 누가 알 것인가? 명석한 정신에게도 얼마나 많은 오해의 씨앗이 담겨 있는가!   보이지도 알 수도 없는, 속옷 갈아입는 여인의 언뜻 보이는 젖가슴의 순간!     *이 5음절의 경쾌한 시는 시집 안에 들어 있다. "풍신(실프Sylphe)란 겔트나 게르만 족의 신화에 나오는 공기나 바람의 신이다. 발레리는 이 바람의 신에 기탁하여 시인의 마음에 떠오르는 시상(詩想)의 도래를 암시하 려고 한 것 같다. 이 때 "풍신"은 마녀의 지팡이 같아 한 번 때리면 끝난다. 그러나 읽혀지지도 이해되지도 않고 많은 오해를 일으킬 소지가 있다는 제 3절은 천재나 특이한 생각을 가진 시인의 참뜻은 이해되지 않는다는 고립감을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한 번 더 추측해 보면 여기서 말하는 "풍신"은 발레리가 가장 경계하고 멀리하려는 소위 낭만파 시인들의 영감(靈感)이나 감흥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에 의하면 영감이란 없는 것은 아니 지만 믿을 수 없는 것이며, 때로는 환상에 불과하며 도저히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수 없을 때가 많다. 그리고 '빛 나는 것이 모두 금은 아니다'라는 속담대로 영감은 영감이 아닌 것과 구별할 도리가 없다고 했다. 여하튼 이 시에서는 이상 세 가지 추측이 모두 동시에 가능한 점에 묘미가 있다. 그렇다고 발레리가 이 시에서 추상적인 논리를 전개하 는 것은 아니다. 그의 시는 구체적이며 명료하고 감각적이며 제 4절에 보는 바대로 관능적이기도 하다. 구체적 사물과 추상적 상징이 완전히 밀착되어 있고 조화되어 있는 점에서 상징파 시인으로서의 그의 면모가 잘 나타나 있다.     석류들 / 폴 발레리     너의 수많은 씨알의 힘에 못 이겨 마침내 반쯤 벌어진 굳은 석류들이여, 스스로의 발견에 파열된 고매한 이마들을 보는 듯!   오, 반만 입을 연 석류들이여, 그대들이 받아 온 햇볕들은 자만심에 움직인 그대들로 하여금 홍옥(紅玉)의 장벽을 무너뜨리고,   그리고 금빛 메마른 껍질마저 어떤 힘의 욕구에 밀려 과즙(果汁)의 붉은 구슬되어 터진다 하지만,   이 눈부신 파열은 일찌기 내가 가졌던 어느 영혼의 은밀한 구조를 몽상켸 한다.     *이 시도 시집 에 수록된 것으로 그의 작품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짧은 시이다. 짧은 시이나 아름다운 색채 이미지와 상징이 교묘히 조화된 아름다운 시이다.  이 시의 상징은 익어 벌어진 붉은 석 류들을 빌어, 오랫동안 마음 속에서 익어 가다 드디어 어떤 신비로운 힘에 의해 굳은 벽을 뚫고 나오는 어 떤 사상이나 시상(詩想)을 암시한다. 그러나 발레리는 사상가로서가 아니라 시인으로서 반쯤 벌어진 석류를 통해 언어가 지닌 음과 색채와 뜻을 서로 어울리게 하고 침투시킴으로써 독자의 마음에 미적 감각 과 이미지와 상징을 떠오르게 한다. 어떤 사람은 발레리의 세잔느나 마티스의 정물화에 비하고 있다.     해변의 묘지 / 폴 발레리     1 비둘기들이 걷는 고요한 지붕1)은 소나무 사이에서 무덤 사이에서 가물거린다;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는 정오는 거기에 불로써 바다를 항상 다시 시작하는 바다를 구성한다! 신들의 정온(靜穩)함을 오래 바라다본다는 것은 오 명상 뒤에 오는 크나큰 보상!                               1)바다를 지붕으로 보았다.   2 섬세한 섬광들의 얼마나 순수한 작업이 자디잔 물거품의 무수한 금강석을 태우고 얼마나 큰 평화로움이 형성되는 듯한가! 태양이 바다의 심연 위에 쉴 때 영원불변의 순수한 두 작품 시간은 반짝거리며 꿈은 지식이다.     10 닫혀지고, 신성하며 물질 아닌 불로 가득 찬 광명에 바쳐진 대지의 한 모퉁이, 태양의 횃불 아래 압도되어 금과 돌과 침울한 나무들로 이루어진 이 곳이 내 맘에 든다 그 많은 대리석이 그 많은 망자(亡者)들 위에서 떨고 있    는 이 장소가, 충직한 바다는 여기 나의 무덤들 위에서 잠을 잔다!     11 찬란한 암캐여, 우상 숭배자들을 멀리 하라! 내가 외롭게 목자(牧者)의 웃음을 머금고 오랫동안 신비스런 양들을, 고요한 무덤들의 흰 양 떼를 칠 때에, 너는 이 무덤들로부터 멀리하게 하라, 신중한 비둘기2)들을, 헛된 꿈을, 호기심 많은 천사3)들을!   2)3): 기독교 신앙의 상징들.   12 일단 여기 오면 미래는 안일무위(安逸無爲). 날카로운 벌레는 대지를 긁는다; 모든 것은 타고 해체되고 어떤 알 수 없는 순화(醇化)된    본질이 되어 대기 가운데 흡수된다--- 부재(不在)에 도취될 때 인생은 광대하며, 고통은 달고, 또한 정신은 맑다.   13 숨겨진 망자(亡者)들은 이 땅 속에서 평안히 쉬고 있으며 대지는 그들의 몸을 따듯하게 하고 그들의 생의 신비를     말린다. '정오'는 저 높은 곳에, '부동(不動)의 정오'는 자기 속에서 스스로 생각하고 자기에게 자족(自足)하고     있다--- 완벽한 두뇌이며 완전한 왕관(王冠), 나는 그대 속에 은밀히 변화하는 존재.     14 그대의 공포를 제어하는 자는 나 하나뿐! 나의 회한(悔恨), 나의 회의(懷疑), 나의 부자유는 그대의 큰 금강석의 흠--- 그러나 나무 뿌리 아래 누운 어렴풋한 인생들은 대리석에 눌려 한없이 무거운 그들의 밤 사이에 이미 서서히 그대의 편에 가담했다.     15 죽은 자들은 두꺼운 부재(不在) 속에 용해되었고 붉은 진흙은 그들의 흰 형질(形質)을 마셔 버렸다. 생명의 천혜(天惠)는 꽃 속으로 옮겨 갔다. 지금 어디 있는가, 망자(亡者)들이 항시 쓰던 말들, 개인적인 기교, 특이한 정신들은? 눈물 맺혔던 곳엔 구더기들이 줄지어 달린다.     16 간지럼당한 처녀들의 찢는 듯한 소리, 그 눈, 그 이, 촉촉히 젖은 눈꺼풀들 불장난하는 매혹적인 젖가슴 내맡기는 입술에서 빛나는 피 최후의 보물들, 이를 지키는 손가락들 모든 것이 땅 밑으로 가고 자연의 운행으로 되돌아간다!     17 그리고 그대 위대한 영혼이여, 그대는 여기 이 물결과 저 황금의 태양이 육체의 눈에 지어 내는 이 허구의 색채를 갖지 않을 어떤 꿈을 바라고 있는가? 그대는 그대가 공기로 증발할 때도 노래부를 것인가? 가거라! 이 세상 모든 것은 달아난다! 나의 존재는 공기      구멍으로 되어 있으며, 영생을 바라는 성스러운 초조감도 또한 죽는다!     18 흑색과 금색으로 된 앙상한 영생(永生)이여, 죽음을 어머니의 품으로 만든 끔찍한 월계관을 쓰는 위안자(慰安者)여, 이 아름다운 허위와 이 경건한 속임수! 누가 그것을 모르며 누가 이를 거절치 않으랴, 이 텅 빈 두개골과 이 영원한 웃음을!     22 아니다, 아니다--- 일어서라 이어가는 시대 속으로! 깨뜨리라, 나의 육체여, 이 생각하는 형태를! 마셔라, 나의 가슴이여, 바람의 탄생을! 바다에서 떠오르는 싱그러움이 나에게 영혼을 돌려 준다--- 오, 소금의 짠 힘이여! 파도로 달려가자 거기서 다시 살아 솟구쳐 오르기 위해!     23 그렇다! 광란(狂亂)을 천성(天性)으로 하는 너는 표범의 가죽, 그리고 태양의 수천 수만의 우상으로 뚫린 고대 그리스 인의 망토, 너의 푸른 육체에 취하여, 침묵과 같은 소란 속에서 네 자신의 반짝거리는 꼬리를 물려는 날뛰는 히드라여,     24 바람이 인다! 살려고 애써야겠다! 크나큰 대기는 나의 책을 열고 또 닫는다. 파도는 물 안개가 되어 바위에서 힘차게 용솟음친다! 날아가라, 광명에 눈이 어두운 책장들이여! 무너뜨려라, 파도들이여! 무너뜨려라 즐거워하는 물결로 작은 돛단배들이 먹이를 쫓고 있는 이 고요한 지붕을!     *"해변의 묘지"는 발레리의 작품 중 걸작으로 꼽히며 와 더불어 그의 이름을 드높인 작품이다. 전 6행, 24절로 된 이 장시(長詩)는 또한 난해한 것으로도 유명해 많은 주석가(註釋家)-해설가 -연구가 들이 정력을 바친 작품이다. 이 시를 쓰게 된 동기는 시인 자신의 말에 의하면 어떤 감상이나 사상을 전개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순전히 그가 아직까지 써 보지 않은 하나의 시 형식, 즉 매행 10 음절로 된 6 행 시를 써 보기 위해 시작했다고 한다. 이렇게 써 가며 그는 이 시 가운데 하나의 개인적 독백을 담고자 했다 따라서 어렸을 때의 추억은 고향인 세트 바닷가의 묘지가 머리에 떠오르게 되고 급기야 이 시는 묘지에서 바 라다보는 바다 앞에서 삶과 죽음, 동(動)과 부동, 존재와 무에 대한 명상이 되었다. 이 세트의 묘지는 그리고 그 앞에 펼쳐진 지중해의 눈부신 바다는 그가 어린 시절 자주 가고 자주 바라보며 명상한 곳이다.  이 시는 이러한 자연의 광경을 배경으로 한 사색과 철학의 시이다. 시인은 태양과 바다와 묘지, 이를 바라보 는 시인을 통하여 부동의 절대자와 변화하고 활동하는 인간의 생을 관조하고 부재와 정적(靜寂)이 지배하는 묘지와 광란을 내포하는 바다를 명상한다. 특히 위의 발췌된 10절의 이하에서 시인은 대리석 돌 아래 누운 죽 은 자들을 통하여 죽음과 영생(永生)에 대하여 생각한다. 무와 정온(靜穩)의 영원한 세계는 그를 유혹하나 종교적 신앙의 위로나 사후의 영생은 이를 완강히 물리친다. 모든 것을 앗아가는 죽음과 빈 해골 앞에 무의 열반 (涅槃)의 세계도 무산된다.. 결국 그는 이 시의 끝부분에서 신(神), 영원, 절대 부동의 세계를 바라느니보다 인간적인 것, 순간적인 것, 연속적인 것, 행동과 변화와 창조가 승리한다고 믿는 것 같다. 그의 도덕적 결론은 고대 그리스 시인 핀다로스(BC518?~438?)의 명구(銘句)와 같이 "나의 영혼아, 영생을 갈구하지 말고 가능 한 땅을 끝까지 파라"이다.  시인 발레리는 이러한 주제와 명상의 철학시가 가지기 쉬운 현학(衒學)과 생경(生硬)을 극복하고 풍부한 감 수성, 명쾌하고 은밀한 이미지, 연상적(聯想的)인 상징, 때로는 시인 자신이 가장 경계하던 서정적이며 관능적 인 감정과 감각도 섞어 표현하고 있다. 또한 이 시가 가진 시적 음악성은 거의 마술적인 미를 가졌다고 한다.   이런 뜻에서 볼 때 필자가 이 시를 번역한 것은 피상(皮相)을 면치 못한 것 같다. 더우기 원시의 형해(形骸) 도 전달하지 못한 것 같다. 더우기 윈시(原詩)는 24절로 되어 있으나 여기서는 1-2, 10-18, 그리고 마지막 부분 22-24절만 번역 게재하였다. 지면 관계와 독자의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서였다.     폴 발레리(1871~1945): 폴 발레리는 신앙적 절대주의자인 폴 클로델과는 대조적인 위치에서 20세기 프랑스 전반의 시단을 대표하는 시인이다.  남 프랑스 지중해안의 세트에서 출생하였는데 아버지는 코르시카, 어머니는 이탈리아의 제노바 출신이다. 따라서 그는 자연 황혼의 땅인 북방 유럽인과는 다른 자중해 정신을 타고났고 그 속에서 자라났다. 지중해 정신이란 모호하고 신비하고 격정적인 정신에 비해 명쾌하고 지성적이며 정적인 정신을 말한다.  그는 몽펠리에 법과 대학에서 수학하였는데 이 동안(1889~1890) 우연히 피에르 루이스를 만나 사귀게 되고 그의 주선으로 앙드레 지드, 말라르메 등을 알게 된 일은 그의 생애에 중대한 영향을 주었다. 그는 이 때 이미 시를 쓰고 있었고 이 시들은 당시 전위적인 문예지에 발표되어 상당한 호평을 받고 있었다. 그의 교우 관계로 보나 그의 타고난 재질로 보아 그가 가야 할 길은 분명한 듯 했다. 즉 문학 특히 시의 길이었다.  그러나 1892년 10월 어느 날 밤, 그는 이상한 거의 계시와 같은 심적 동기로 일체의 문학이나 시작(詩作)을 버리고 지적 활동에 전념하게 된다. 정서적인 예술 활동이 명료하고 논리적인 지적 활동이나 엄격한 사고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한 때문이었다.  이리하여 그는 모든 문학이나 시작에서 손을 떼고 사색과 성찰의 생활로 들어가 자기 자신에 대한 철저한 인식과 사고에 대한 흔련 및 과학적 연구에 몰두한다. 이 때에 그는 파리에서 처음에는 육군성, 후에는 아비스 통신사 사장의 개인 비서로 일하고 있었는데 매일 새벽 5시부터 출근시까지, 그리거 시간만 잇으면 자기 방에 칩거하여 논리와 추상적 과학 방법의 연구와 훈련에 정력을 쏟았다. 이렇게 하여 그는 17년 동안이나 문학이나 창작 방면에는 완전히 침묵을 지키고 추상적인 과학적 연구 방법에 전념했는데 이 동안 얻은 지적 작품이 , , 등이다. 그가 문학 창작을 중단하였다고 해서 그가 예술계와 접촉을 끊은 것은 아니었다. 말라르메가 죽기까지 그는 그의 가장 충실한 제자이었고 전기한 루이스, 지드, 에레디아 등의 작가들과 자주 만났으며, 또한 유명한 화가 드가, 르느와르 등과도 교분이 있었다. 또한 자주 음악 특히 글록이나 바그너의 오페라를 즐겨 들었다고 한다. 이러한 폭넓은 취미와 접촉이 후의 그의 탁월한 미학이나 예술론의 바탕이 된 것은 물론이다.  그의 속에서 잠자고 있던 시인이 다시 깨어난 것은 그 후 20년이 지난 1913년 그것도 순전히 타의(他意)에 의한 것이었다. 즉 "지드"와 "갈리마르" 출판사의 강력한 권고에 따라 발레리는 드이어 젊은 시절에 써 두었던 시들을 모아 한 권의 시집으로 출판하는 데 동의하였다. 그리고 그 첫 시집을 완성하기 위하여 단시(短詩) 한 편을 더 쓰기로 하였다. 이 단시가 유명한 이며, 이 시는 그의 의도와는 달리 512행의 장시가 되었으며, 이 시를 깎고 다듬는 데 발레리는 5년이란 긴 세월을 바쳤다. 결국 이 시는 단독으로 출판되었다(1917), 이 작품은 난해한 것이었으나 그 성공은 그만큼 경이적이었다. 그는 모든 지적 엘리트를로부터 세기적 시인으로 인정되었고, 여기 자극되어 그는 다시 시를 쓰게 되었다. 그러나 신중하며 작품에 완벽을 기하는 그는 결코 다작(多作)이지도, 빠르지도 않았다. 그의 걸작이라고 하는 "해변의 묘지"도 가 발표된 지 3년 후에야 발표되었다(1920). 발레리는 이 시를 비롯하여 20세기 전후의 젊은 시절 그가 써 발표하였던 시들(1890~1893) 약 20편을 합쳐 같은 해 그의 첫 시집 을 출판하였다. 이 시들은 약 30년 후에 빛을 본 것이나 이 가운데에는 이미 발레리의 독창성을 보여 주는 시들이 들어 있으며 그 중의 많은 시가 아직도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는 다시 1922년 그가 이후에 쓴 최후의 시집을 출판하였다. 이 두 권의 시집으로 그는 모든 사람이 공인하는 '현대 시인'가운데 가장 위대한 시인이 된 것이다.  시집 을 계기로 시인으로서의 그의 창작 활동은 끝나고 이후부터 발레리는 지성인의 대표, 현대 사회의 정신적 지도자로 활동하게 되었다. 유명한 신문이나 잡지에서 그의 논문과 수기를 다투어 싣고 프랑스 국내는 물론 세계 각국의 저명한 학회나 단체들로부터 초청을 받아 많은 강연과 주제 발표를 하였다. 이러한 논문과 수기와 강연이 편집되고 출판되어 20세기 전반의 상상계와 정신계에 깊은 통찰과 많은 시사를 남기었다.  만년에 그는 프랑스의 국가적 시인이며 국제적인 지식인의 상징이 되었다. 1925년에는 아나톨 프랑스의 뒤를 이어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이 되었고, 1924년에서 1934년 까지 국제 펜 클럽(Pen Club)의 회장이었다. 1935년에는 의장으로 국제 연합 제5차 예술 학문 회의를 주재하였고, 1939년 부터 죽기까지 콜레지 드 프랑스의 교수로 임명되어 시학 강좌를 맡고 있었다. 이는 시인에게는 처음 있는 영예였다. 제 2차 세계 대전 독일군 점령 시절 그는 지조를 굽히지 않았고, 국민 작가 위원회에 소속하여 레지스탕스 운동에 참여하였다. 그의 최후의 작품이며 독일 점령군 치아의 어두운 심경을 쓴 것이 라는 작품이다. 심신이 극도로 쇠잔된 발레리는 해방된 다음 해인 1945년 병을 얻어 7월 20일 세상을 떠났다. 프랑스 정부에서는 그의 장례식을 국장으로 거행했으며 그의 유해는 그의 소망대로 세트 해변 묘지에 묻혔다.    시인으로서의 발레리는 보들레르, 말라르메를 잇는 심미적 상징주의 계보에 속하나, 시의 창작도 지적 작업의 소산이며 엄밀한 방법에 의하여 제작된다는 그의 주장대로 주지적이며 기교적인 면이 두드러진다. 그에 따르면 시는 산문과 달라서 시인의 사상이나 감정-감흥을 전달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순수한 시는 언어가 가진 모든 능력을 구사하여 독자의 마음 속에 어떤 미의 감각, 조화의 세계를 낳게 만드는 일이다. 따라서 시인은 말의 모든 힘(음, 리듬, 음률, 낱말과 낱말의 접근과 대조, 이미지, 상징, 비유 등등)을 구사하여 이러한 미의 세계를 만들어 내는 일종의 기하학자-건축가-지성인이다. 그러므로 시인에게 필요한 것은 영감이나 정열이 아니라 맑은 의식과 각고면려(刻苦勉勵)하는 노력이다. 라고 했다. "나는 무아 상태에서 번갯불을 기다리느니보다 맑은 정신, 의식적의 의지를 가지고 나의 마음대로 반짝거리는 불꽃을 만들기를 좋아한다"고도 했다.  이러한 그의 시론은(말라르메의 시론과 더불어) 세계 제 2차 대전 후의 프랑스 시단에 중요하고 깊은 영향을 주었고 주지적 심미파에 속하는 많은 시인들은 그들의 시적 창작 활동의 일부 또는 전부를 이 두 스승에게서 배우고 있는 형편이다.   미라보 다리 / 아폴리네르      미라보 다리 아래 센느는 흐르는데 나는 왜 우리들의 사랑을 기억해야 하는가   기쁨은 늘 아픔 뒤에 왔는데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가고 나는 남는다   손에 손을 맞잡고 얼굴 마주 대하자 그러면 우리들의 두 팔이 놓은 다리 아래로 영원한 눈빛의 피로한 물결이 지나간다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가고 나는 남는다   사랑은 간다 흐르는 이 강물같이 사랑은 간다 얼마나 인생은 더딘 건가 또 얼마나 희망은 강렬한가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가고 나는 남는다   날이 가고 달이 지나도 가버린 세월과 우리의 사랑은 돌아오지 않는다 미라보 다리 아래 센느는 흐른다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가고 나는 남는다     상테 감옥에서 / 아폴리네르     1 감방에 들어가기 전 나는 알몸이 되어야 했다 한즉 어떤 불길한 목소리가 웅얼거린다 "기욤 군, 이게 어찌된 일이요"   무덤에서 나오는 나사로 대신에 무덤으로 들어가는 나의 신세 잘 있거라 잘 가거라 노래하는 원무(圓舞)여 오 나의 청춘이여 젊은 아가씨들이여     2 아니, 여기서는 이미 나는 나라는 생각이 안 든다 이제 나는 11 감방의 제 15 번   햇빛이 창문으로 흘러들어 햇살은 내가 쓰는 시 위에서 장난을 치며   종이 위에서 무용을 한다 귀 기울이니 누구인가 발로 천정을 두드린다   3 구렁 속의 곰처럼 매일 아침 나는 걷는다 돌자 돌자 쉬지 말고 돌자 하늘은 쇠사슬처럼 푸르다 구렁 속의 곰처럼 매일 아침 나는 걷는다   바로 옆 감방에서는 수도물 꼭지를 틀어 놓는다 열쇠를 쩔거럭거리며 잔수가 오가곤 하나 바로 옆 감방에서는 수도물 꼭지를 틀어 놓는다.     4 뿌연 페인트 칠한 맨벽 안에서 나는 한없이 지루하다 종이 위에 파리 한 마리 종종걸음으로 들쑥날쑥한 글 줄 위를 바삐 다닌다   오 저의 고통을 잘 아시며 그 고통을 주신 하나님 저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불쌍히 여기소서 눈물 마른 제 눈과 창백한 제 얼굴 쇠 사슬에 매인 저의 걸상 소리를   그리고 이 감옥 안에서 숨쉬는 모든 불쌍한 가슴들을 저와 항상 함게 하시는 사랑의 신이시여 저의 연약한 이성과 이를 능가하는 절망감을 특별히 불쌍히 여기소서.   5 시간들은 얼마나 느리게 지나가는가 마치 장례식 행렬 같아   그대가 울고 있는 이 시간도 슬퍼할 때가 있으리라 모든 시간과 같이 이 시간도 너무 빨리 지나갈 것이므로     6 나는 거리에서 들리는 소리에 귀 기울인다 그러나 지평선이 없는 죄수에게는 미움에 찬 하늘과 이 감옥의 쓸쓸한 담장들만이 보일 뿐   날이 저물고 이윽고 감방 속에 전등불 하나가 붉게 켜진다 아름다운 불빛 친애하는 이성(理性)아 이 감방 속엔 너와 나 단 둘뿐이다.   *1911년 가을 프랑스 르부르 박물관 소장의 유명한 다빈치의 그림 "모나리자"가 없어졌다. 그러자 혐의는 당시 과격파 예술 운동 의 하나인 미래파 예술가들에게 걸렸다. 당시 미래파 문인이나 화가들은 극렬 분자로 통용되어 있었던 만금 이들이 과거의 예술품 이나 전통을 파괴하기 위하여 이 불후의 명작을 없애 버릴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피래파 그룹을 조사해 보니 아폴리네 르가 이 운동의 선봉장이며 열렬한 옹호자인 것이 드러났다. 결국 장물 은닉죄라는 죄목으로 그는 파리의 상테 감옥에 수감되었다. 친구들이 백방으로 노력하고 탄원을 넣어 약 1주일만에 집행 유예로 풀려났으나 이 수치스런 경험은 그에게 상당히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 이 시는 그때의 경험을 쓴 것이다.     기욤 아폴리네르(1880~1918): 현대시의 시발자(始發者)로 불리는 기욤 아폴리네르의 일생은 그의 경쾌하고 화려한 인상과는 달리 슬프고 너무 짧았다. 그는 이탈리아 로마 태생인데 아직 누구인지 확실하지 않은 아버지와 폴란드에서 이주해 온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다. 향락과 도박을 좋아하는 어머니를 따라 남 프랑스 지방의 간느-니스 등지를 옮겨 다니며 거기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세 때 어머니와 함께 파리로 올라왔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에 많은 독서를 하였고 이 때에 폭넓은 교양을 쌓았다고 한다. 파리의 생활은 어려워 은행의 말단 행원의 일을 해오다가 한때는(1901~1902)어떤 부유한 독일 가정의 가정 교사로 초빙되어 독일에 가서 일하기도 했다. 이 동안에 거기서 가정부로 와 있던 영국 소녀 애니라는 처녀와 사랑에 빠지나 얼마 안 되어 실연의 고배를 마시게 된다. 이 때의 착찹한 심정을 노래한 것이 유명한 "사랑 못 받는 남자의 노래(1903)"이다.  파리로 돌아와서는 신문 기사를 쓰거나 잡지 등에 주로 에로틱한 글을 기고하여 생활을 하면서 앙드레 살몽-막스 쟈콥 등 문인들과 문예지를 펴내기도 하고, 화가 피카소-브라크-블라멩코 등 소위 당시 화단의 전위파(前衛派)들과 친교를 맺어 예술 운동을 하기도 하였다. 특히 그는 전위파 예술 운동에는 언제나 선두에 서서 활약했는데 입체주의, 미래파, 흑인 예술, 환상파, 그리고 초현실주의 등 새로운 유파나 '이즘'이 나올 때마다 그는 선구자이며 또 그 운동의 강력한 이론가이기도 했다. 쉬르레알리즘(초현실주의)라는 낱말은 그의 창작이다.  1913년 그가 33세 때 그의 첫 시집 이 출판되어 성공하였다. 제 1차 세계 대전을 전후한 무겁고 음울하고 불안한 유렵 사회에 그의 새롭고 신기하고 경쾌하고 애수 섞인 유머는 인기가 있었다. 소위 새 정신이었다.(이 말도 그의 창작이다).  제 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나 그는 비록 외국 국적을 가졌으나 자원하여 출전하였다. "나는 모든 것을 프랑스에 빚지고 있다. 프랑스를 위해 싸우는 것은 나의 최소의 봉사이다." 라고 했다. 1916년 그는 전장에서 포탄의 파편으로 머리에 부상을 입어 두 번이나 뇌 수술을 받았고, 결국 이것이 원인이 되어 1918년 "아름다운 빨간 머리"로 유명한 젊은 부인의 팔에 안겨 30세을 일기로 죽었다.    그는 두 권의 시집을 남겼는데 하나는 앞서 말한 이며 또 하나는 죽기 전에 끝낸 *이다. '칼리그람'이란 낱말도 그가 지어 낸 새로운 단어이다.  에는 그가 두 번에 걸쳐 겪은 실연이 서정적이며 회고적인 엘레지와 그가 본 세상에 대한 스냅 사진에다 그의 독특한 꿈과 환상과 무의식을 병치(竝置) 혹은 뒤섞은 현대적인 시들이 들어 있다. 또한 그는 그의 시에서 일체의 구두점을 빼버려 시구의 리듬을 완전히 유동화시켰다. 이는 '상드라르'의 시를 읽고 받은 충격으로 그는 시집 의 최종 교정시에 자기 시에서 모든 구두점을 없앴다는 것이다. '상드라르'가 무의식적으로 부분적으로 한 일을 아폴리네르는 의식적으로 전적으로 한 것이다. 이후 많은 현대 시인들이 구둣점 없는 시를 쓰고 있다.  그리고 그의 두번째이며 마지막 시집인 에서는 그가 시집 출판 이후 추진해 온 시에 있어서의 새로은 혁신을 더욱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 카페의 소음 속에서 들리는 대화를 주어 모은 소위 대화시라든가 추상파 화가의 수법을 시에 적응시킨 추상시들이 들어 있다. 또한 그는 이 시집에서 시에다 형상적(形象的)인 요소를 합치는 시도를 하고 있다.  즉 시를 구성하는 활자나 활자로 구성되는 시구의 배치로 어떤 현상을 나타내어 무언 중에 어떤 이미지를 표현하자는 방법이다. 그러므로 지금까지와 같이 시행을 같은 모양으로 늘어 놓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그림을 그려서 독자의 시각에 호소하는 수법이다. 심장은 하트 모양, 시가(cigar)는 여송연 담배 모양으로, 분수는 물이 올라가 버드나무같이 퍼져 떨어지는 모양으로 활자를 배열하였다. 시의 음과 그림을 함께 볼 수 있게 한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시도는 그의 생존시에는 사람들을 놀라게 혹은 즐겁게 할 뿐이었으나 그의 사후 차츰 세월이 감에 따라 그가 시에서 시도한 새로운 정신과 형식의 추구는 20세기의 시가 갈 길에 대하여 큰 시사와 문제를 남겨 주었다. 지금에는 그의 시는 고전(古典)이 되어 프랑스 중학생들이 암송하고 소르본느 대학에서 강의되는 전통 문학이 되었다.   *calllgramme: 시구의 배열이 도형을 이루어 시의 대상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형태로 아폴리네르가 만든 조어.   빙산 / 앙리 미쇼      난간도 울타리도 없는 빙산(冰山)에, 지친 늙은 까 마귀들과 요사이 죽은 수부들의 망령들이 북극의 마(魔) 와 같은  밤에 와서 팔꿈치를 괸다.   빙산, 빙산, 영원한 겨울의 무종교(無宗敎)의 대 성당(大聖堂), 유성(流星) 지구의 머리 위에 씌운 빙모(氷 帽) 추위에서 태어난 너의 기슭은 얼마나 고귀하고 또 순 결한가.   빙산, 빙산, 북대서양의 등, 아무도 바라보지 않는 바다 위에 얼어 붙은 장엄한 불상(佛像), 출구 (出口) 없 는 죽음의 번쩍거리는 등대, 침묵의 절규는 수세기 동안 계속된다.   빙산, 빙산, 필요 없는 고독인, 갇히고 멀고 벌레 없는 나라, 섬들의 가족, 샘물의 가족인 그대들은 보면 볼 수록 얼마나 나에게는 친숙한 것이냐---     익살광대 / 앙리 미쇼     어느 날, 어느 날, 아마도 곧 어느 날 나는 바다에서 먼 곳에 내 배를 매어 둔 닻을 뽑 아 내리니. 나는 무(無), 무 가운데서도 무가 되기 위해 필요한 일종 의 용기를 가지고 나에게서 분리할 수 없이 가깝게 보였던 것을 버리리라, 나는 그것을 짜르고, 그것을 뒤엎고, 그것을 꺾고, 그것 을 땅 위에 딩굴게 하리라. 나의 비참한 수치심(羞恥心), 조물조물 이어가는 나의 구차한 계략(計略)과 논리의 맥락을 단번에 내뱉어 버리며, 소위 큰 인물이라는 종기를 짜내 버린 뒤 나는 자양(滋養) 있는 공간을 다시 마시리라.   조소와 실추(失墜)에 의하여(도대체 실추란 무엇인가?)> 파열(破裂)과 같이 공허와 전적인 소산(消散)-모멸(侮蔑) -배출(排出)로 나는 사람들이 나의 주위 환경이나 이 고상하고 고상한 나의 주변 인물들과 썩 잘 합치되고 맞고 조화되고 어울린다고 믿고 있는 생활 형태를 나 의 몸에서 쫓아 낼 것이다. 큰 재난 앞의 겸손이나 극심한 공포 뒤와 같은 완전한 평 지화(平地化)로 줄어 들고 재어 볼 품도 없이 낮아진 나의 참된 위치, 알 수 없는 어떤 생각-야심에서 내가 버렸던 가장 미미한 내 자 리고 되돌아와 고상함도 존경도 사라지고 머나먼 곳에서(혹은 있지 않은 곳인지도 모른다) 이름도 신원(身元)도 잃어버리고, 익살 광대가 되어 조소(嘲笑)와, 폭소와 괴기(怪奇) 가운 데, 내가 모든 양식(良識)에도 불구하고 나의 중요성 에 대하여 가졌던 생각을 없애 버리며 나는 뛰어들리라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이,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는 숨어 있는 무한 정신 속으로 나 자신 새롭고 놀라운 새벽 이슬에 열려 아무것도 아님으로 해서 그리고 벌거숭이가 됨으로 해서--- 그리고 웃음거리가 됨으로 해서--     플룀 씨 여행 하다 / 앙리 미쇼     풀륌 씨는 여행 중 사람들이 자기를 지나치레 우대 해 준다고 말할 수는 없다. 어떤 사람들은 무단히 그의 몸을 밟고 지나가고  어떤 사람들은 꺼리낌 없이 그의 양복 저고리에 손을 닦는다. 결국 그는 이런 일에 익숙해 졌다. 겸손하게 여행하는 게 더 좋았다. 가능한 한 그는 그렇게 할 것이다. 만약 식당에서 그의 접시 위에 나무 뿌리를 큼직한 나무 뿌리를 내놓고 무뚝뚝하게 "자 먹어요, 먹지 않고 무얼 기다리시요" 하면 -"좋습니다, 곧 먹지요, 자아, 끝냈습니다" 그는 공연히 그 날 밤 그에게 방이 없다고 거절하면서 "뭐요? 당신은 그렇게 먼 곳에서 잠자러 온 것은 아닐테지요, 그렇지요? 자, 당신의 가방과 물건들을 드 시요. 지금 이 시각이 하루에서 가장 걷기 좋은 때요." -"좋습니다, 좋아요, 그럼은요---그렇구 말구요. 물론 웃자고 한 말이지요. 그저 노---농담으로" 그리하여 그는 어두운 밤중에 다시 떠난다. 그리고 만일 누가 그를 기차 밖으로 밀어 내면서 "아니, 우리가 벌써 세 시간 전부터 기관차를 데우 고 여덟 칸의 객차를 단 것이 당신 같은 나이에 건강한 몸을 한 청년을, 또 여기서도 얼마든지 소용이 있고 다른 곳으로 떠나가야 할 필요가 없는 사람을 수송하기 위해서 라고 생각하시오? 그리고 우리가 터널을 뚫고 나이너마이 트로 수천 톤의 바위를 폭파하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수백 킬로의 철로를 놓은 것이 그래 이런 일을 위해서였단 말이 오? 그뿐인가, 사보타지(怠業)가 있을 염려 때문에 아직도 철로를 감시해야 하는 일을 빼놓고라도 말이지. 그런데 이 모든 일이 그래---" -"좋습니다, 좋아요. 잘 알았습니다. 제가 기차에 오른 건 그건 그저 한 번 둘러보기 위해서였지요 자 이젠 됐습니 다. 단순한 호기심, 그런 거지요 참으로 고맙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다시 짐을 들고 길로 되돌아 나온다. 그리고  그가 로마에서 콜롯세움 원형 극장을 보겠다 고 하면 "아, 안 됩니다. 제 말 들으시오. 이 곳은 이미 관리가 잘 못되어 있어요. 그리고 조금  뒤에 선생은 그것을 만지려고 할 것이고 그 위에 기대려고 할 것이고 앉으려고 할 거요. --- 그리하여 이 곳은 도처에 폐허밖에 남지 않았소. 이건 우 리에게 교훈이, 준엄한 교훈이 되었소. 그러나 앞으로는 안 됩니다, 이젠 그만이오, 알겠소?"   ---"좋습니다, 좋습니다! 그건 --- 저는 그저 그림 엽서나 혹은 사진을 얻고자 했을 뿐입니다---- 혹시 있으면 말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아무것도 보지 않고 이 도시를 떠난다. 또한 만일 여객선 위에서 배의 사무장이 갑자기 그를  손 가락으로 가리키며 "저 자는 여기 무얼하고 있지? 거 참, 아래쪽에는 전혀 규율 이 없어 보여.  빨리 저 자를 선창 아래로 내려 보내도록 해! 방금 반시(半時) 종이 쳤어"라고 말하고 나서 그는 휘파람을 불며 가버렸고 플륌으로 말하면 배가 항해 하는 동안 내내 웅크리고 앉아 있다. 그러나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불평도 하지 않는다. 그는 전혀 여행을 할 수 없는 불쌍한 사람들을 생각해 본다. 그런데 자기는 여행을 한다. 계속해서 여행 하지 않는가.     앙리 미쇼(1899~1984):  앙리 미쇼는 때로는 자기의 무의식 속을 파고들어가 존재의 실태와 존재 이유를 찾기도 하고 또는 악의(惡意)에 찬 세계에 둘러싸인 현대인의 고뇌와 무력(無力)을 독특한 풍자와 유머로 표현하므로써, 현재 프랑스는 물론 전세계적으로 높은 평가와 인정을 받고 있다. 그는 원래 프랑스어계의 벨기에 출신으로 1955년에야 프랑스 국적을 얻었다. 어려서부터 극히 고독한 성격으로 부모형제나 어떠한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자기는 이방인이라고 느꼈다고 한다. 브뤼셀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신비 작가의 작품이나 성인들의 전기들을 즐겨 읽었고 잠시 의과(醫科) 대학에 다닌 적도 있었으나 중도에 포기했다. 21세 때 새로운 다른 세계를 동경하여 일개 수부(水夫)가 되어 약 2년 동안 바다를 떠다니며 방랑 생활을 하기도 했다.  1924년 부터 파리에 정착하여 글을 쓰기 시작하였으며 특히 '로트레아몽'의 작품을 읽고 큰 감동과 충격을 받아 글을 쓰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1927년 자아(自我)의 분열을 다룬 시집 를 발표하고, 계속하여 자신에 대한 거의 과학적-의학적 관찰 보고서인 , 그리고 현대 사회에서 박해받는 인물을 풍자적으로 그린 , 그리고 꿈과 환각-충동을 조사-보고한 등의 시집을 내어 주목을 끌었다. 아울러 1927년에서 1939년에 이르는 동안 그는 또 다시 다른 세계를 찾아 에쿠아도르를 비롯한 남미-터기-인도-중국-일본 등을 여행하고 두 권의 여행기 와 을 펴내었는데 저자는 이 가운데 각국의 도시-인물-풍습-동식물에 대한 학자적인 정밀한 관찰과 시인으로서의 깊은 성찰을 하여 많은 독자에게 감명을 주었다.  1940년 제 2차 세계 대전 중에는 남 프랑스의 코트다지르로 피난하였는데 여기서 '앙드레 지드'를 만났고 '지드'는 미쇼의 내면적 시가 가지는 현대적 뜻과 가치를 높이 평가하여 "앙리 미쇼를 발견하자!"라는 강연을  하여 그의 이름을 높이었다. 같은 시기에 그가 전시(戰時) 중에 쓴 특이한 항전시(抗戰詩)가 발표되어 일약 그는 유럽에서 유명해졌다. 뿐만 아니라 그는 30대 부터 아무에게서도 배우지 않은 자기류의 그림을 발표해 왔는데 이 특이한 그림이 화단에서도 높이 인정되어 그의 이름은 더욱 널리 퍼졌다.  그는 시인으로 계속하여 , 등의 환상적인 시집과 라는 가공적이며 상상적인 3부작 기행 문집을 펴내었다.  1955년 경부터 인간의 심층 내부를 철저히 탐색하기 위해 그는 마약인 '메스칼린'을 복용하여 그 환각과 취기를 이용하여 의식 내부를 탐험하려고 하였다. 즉 자신의 마음 속 깊이 잠입하여, 약의 힘을 빌어 인간의 모든 감각, 꿈, 인상, 이미지, 무의식을 알고 느끼고 경험하려 하였다. 그는 그가 직접 느끼고 본 것을 그의 시로 또는 그림으로 옮기었다. 어느 작가도 그만큼 인간의 희미하고 붙잡기 힘는 내부 세계를 이렇게 철저하게 탐험-실험하려고 애쓴 작가는 없었다.  약 15년에 걸친 실험에서 얻은 작품으로 "비참한 기적(1955)" , "소란스러움의 무한(1957)" "구렁에서 얻은 지식(1961)", "정신의 큰 시련(1966)" 등이 있다.  미쇼는 만년에도 인간의 내부 세계와 환상 세계에 대한 많은 작품을 ("잠든 모양, 깬 모양"(1969); "사라지는 것과 대면하여"(1976)) 등을 내놓았으나 점점 글자로 표현하기보다는 형상적 그림으로 나타내는 경우가 더욱 많아졌다. 그의 그림이란 회화라기보다 현미경 아래 보는 박테리아의 표본이나 X선 사진 같은 기이하고  독특한 것이다. 그러나 화가로서 그는 거의 매년 프랑스를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전람회을 열었고 그 때마다 주목과 논란을 일으켰다. 1965년에는 파리의 국립 현대 미술관에서 그이 총작품 전시회가 개최되어 그의 예술에 대한 경의를 표하였다. 그러나 같은 해 국가 문학 대상의 수상자로 추대되었으나 그는 이를 사절하였다. 그는 시인으로서 겸손하고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있으며 엄밀한 뜻에서 문학권 외에 있으면서도 1940년대 이후 젊은 시인들에게 큰 영향을 주고 있다.   *김현, 권오룡 번역의 또 한 편의 앙리 미쇼의 시   바다와 사막을 지나 / 앙리 미쇼   효력 있다 숫처녀와 씹하듯 효력 있다 효력 있다 사막에 물이 없듯 효력 있다 내 행동은 효력 있다   효력 있다 죽일 준비가 되어 있는 부하들에게 둘러싸여 따로 서 있는 배반자처럼 효력 있다 물건을 감추는 밤처럼 효력 있다 새끼를 낳는 염소처럼 조그맣고 조그맣고 벌써 비탄에 잠긴 새끼들   효력 있다 독사처럼 효력 있다 상처를 낸 단도처럼 그걸 보존하기 위한 녹과 오줌처럼 강하게 하기 위한 충격, 동요처럼 효력 있다 내 행동은   효력 있다 결코 마르지 않는 증오의 대양을 가슴에 심 어주기 위한 모멸의 웃음처럼 효력 있다 몸을 말리고 넋을 굳히는 사막처럼 효력 있다 내팽겨쳐 논 시체를 뜯어 먹는 하이네나의 턱처럼   효력 있다 내 행동은.   프랑스 명시선 25. 생-존 페르스(1887~1975): 최완복 번역(25)     원정(遠征) / 페르스     1 세 위대한 계절 위에 영예롭게 포진(布陣)하며 나는 나의 법을 세운 이 땅의 전도(前途)가 탄탄하리라 점친다.   아침에 무기들은 아름답고 또한 바다도: 우리들의 말에 맡겨진 이 편도(扁桃) 열매 없는 땅은 맑고 변함없는 이 하늘과 더불어 우리들에게 손색이 없다. 태양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으나 그 힘은 우리들 가운데 있다. 그리고 아침의 바다는 정신의 오만함과 같다. 힘이여, 너는 우리들의 야간 행군길에 노래 불렀다 --아침이 한창 퍼진 지금 우리들은 우리들의 상속권자인, 꿈에 대하여 무엇을 아는가? 아직 일 년 동안 그대들과 함께! 곡식의 주인, 소금의 주인으로, 그리고 공사(公事)는 공평의 저울로! 나는 다른 기슭의 사람들을 부르지 않으리라. 나는 산비탈 위에 산호(珊瑚)의 백사(白沙)로 도시들의 구역들을 긋지 않으리라, 허나 나는 너희들과 함께 살 계획이다. 천막(天幕) 입구에 높은 영광 있으라! 나의 힘은 너희들 가운데! 그리고 소금알같이 순수한 관념이 대낮에 회합한다     ---그런데 나는 너희들의 꿈의 거리에서 자주 나타나 인적 없는 장터에서 내 영혼의 순수한 교역을 결정하 는 것이었다. 너희들 가운데서 보이지 않게 그리고 재빨리 마치 강품 속의 가시나무 불같이 힘이여, 너는 우리들의 장도(壯途)에서 노래 불렸 다--- "정신의 모든 창(槍)날은 소금의 단맛에 황홀하며 ---나는 소금으로 욕망의 죽은 입을 소생케 하리라! 목마름을 찬양하며 모래밭의 물을 투구로 떠마시지 않은 자와의 영혼의 교역을 나는 신뢰하지 않는다---(그리고 태양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으나 그 힘은 우리들 가운데 있다).   인간들, 먼지 같은 자들과 또 가지각색의 인간들, 상인과 한가한 자, 변두리 사람과 타처 사람, 아, 이 고장의 기억 속에 아무 무게도 없는 자, 골짜기와 고원에 사는 자, 우리들의 기슭의 말단에 사는 자: 징후(徵候)와 종자의 냄새를 맡는 자, 그리고 서방(西方)의 숨결을 듣고 보는 자; 발자취와 계절을 쫓는 자, 새벽의 미풍에 장막을 걷는 자; 오 다른 곳으로 떠나기 위해 이유를 찾는 자, 오, 그 이유를 얻은 자, 그대들은 이 때보다 더 강력한 소금을 사지 못한다. 즉 아침에 왕국들과 죽은 듯한 바닷물이 높이 이 세상의 연기 위에 걸려 있는 예조(豫兆) 가운데 유배의 북소리 가 변경에서 모래 위에서 하품하는 영원을 깨울 이 때.   * ---청결한 옷을 입고 너희들과 더불어, 아직 1년 동안 너희들과 더불어! "나의 영광은 바다 위에, 나의 힘은 너 희들 가운데! 우리들의 운명에 약속된 다른 기슭에서 오는 이 소슬 바 람은, 저울대에서 그 정점(頂點)에 이른 세기의 광휘를 시대의 파종을 넘어 저 먼 곳으로 싣고 간다----" 소금의 떠 있는 얼음에 매달린 수학! 시가 자리잡는 나의 이마의 예민한 점(點)에 나는 불멸의 배들을 조선 창(造船廠)으로 끌고 가는 나는 가장 도취된 한 민족 전 체의 이 노래를 새긴다.   *'Anabase'란 진군(進軍) 또는 원정이란 뜻이 있다. 역사상으로는 사이러스 2세가 이끈 그리스 용병대의 중앙 아시아 원정이 유명하며 또 이 장시(長詩)와 약간의 공통점이 있다. 시집 은 전후 두 편의 노래 와 10편의 연으로 구성되어 있고 여기 게재한 것은 그 제1편이다.  전체적으로 어느 군단이 대륙의 연안을, 그러나 황무지와 고원을 넘어 서쪽으로 서쪽으로 일면 파괴하며 일면 건설하며 진군하여 마른나무라는 도착지까지 이르는 군사적 원정을 주제로 하는 이야기다. 그러나 내면적으로 는 모험에 대한 인류의 끝없는 도전, 영원한 것, 상승, 확대에 대한 인간의 본능적 갈망을 상징한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제 1편은 도시를 건설할 땅에 정복자가 도착한 장면이다.  생-존 페르스는 유년기의 회상을 담은 를 발표한 지 13년 만에 이 서사시를 발표하였는데 이는 그가 외무성 재직시의 일이다.  이 장시는 그의 다른 모든(초기 작품은 제외) 작품같이 난삽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어구와 표현이 산재해 있 다. 이 점이 노벨 문학상과 세계의 여러 위대한 작가들의 찬사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이 경원시되고 일반 에게는 읽혀지지 않는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이 인류적이며 문화사적인 서사시는 그 방대한 구상, 백과 사전적인 해박한 지식과 아울러 간소하 며 강력한 리듬, 고양(高揚)된 억양과 변화 있는 문체로 프랑스의 옛 서사시에 견주어지고 있다.     시인이 증언한 것은--- / 페르스     시인이 증언한 것은 이렇듯 극한적인 순간에서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대망(待望)의 극한점에서 누구도 방으로 되돌아갈 생각은 하지 말라! "탄생되는 날이 황홀함--- 새 술이 이보다 더 진 실될 수 없으며 새로운 삼베가 이보다 더 신선할 수 없 으니---   이방인인 나의 입술 위에 느끼는 이 월귤의 맛은 무 엇인가? 이는 나에게는 새로운 것이며 이상한 것인데? ---   서두르지 않으면 나의 시는 해방을 잃을 것이다. --그리고 그대들은 이 순간에 탄생하기엔 너무나 짧은 시간밖에 없다. (이는 마치 제주(祭主)가 새벽 제사(祭司)를 드리기 위해 한계단 한 계단 안내를 받으며 앞으로 나아갈 때와 같다. - 삭발한 머리와 맨손, 그리고 손톱에 이르기까지 빈틈 없이 차리고 - 그의 존재의 향기로운 이파리가 낮의 첫 햇살에 발하는 메시지는 매우 빠를 것이다.) 그리고 시인도 우리와 함께 그의 시대의, 인간의 길 위에 있다. 우리들의 시대의 흐름에 쫓아, 이 큰 바람의 흐름에 따라,   우리들 사이에 그의 사명; 주어진 메시지를 명료히 하는 일, 그리고 심정의 계시에 의하여 그의 마음 속에 주어지는 응답.   쓰여진 것이 아니라 사물 그 자체, 생동하는 사물 에서 직접 얻은 것이며 전체적인 것.   복사된 것이 아니라 원본의 보존, 그리고 시인의 기술(記述)은 조서(調書)를 따른다.   (내가 말하지 않았던가? 기술된 것들도 또한 변하 리라고 - 문제의 장소; 이 세상의 모든 모래 사장들)   "드디어 나는 나타나리라, 잃어버린 숫자여!--- 너무나 많은 기대가 우리들의 청각의 기능을   무디게 하지 않기를! 어떤 불순함도 시각의 문턱을 더럽히지 않도록!---   그리고 시인은 아직 우리와 함께 있으니, 그 시대 사람들 가운데, 그 시대의 악을 지닌 채----   낙인 찍힌 자의 침상에서 자고 나서 그로 인해 온통 얼룩이 진 자와 같이 엎질러진 기름 속을 걸어 흠뻑 더러워진 자와 같이 꿈으로 부패된 인간, 성스러운 것에 감염된 인간,   스키타이* 인처럼 대마초 연기 속에 취함을 찾는 자 들이 아니라                     *스키타이: 기원 전 6~3세기에 걸쳐 흑해와 카스피해 연안에서                                     활약한 이란계의 기마 민족                                     새나 짐승 무늬를 청동기에 새기는 등의 독자적인 문화를                                     확립했고 중앙아시아를 거쳐 초원 지대의 여러 유목 민                                     족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가지의 식물 - 벨라돈나나 사리풀에 중독되는 것도 아니며   아마존의 사람들이 먹는 올로기의 둥근 씨앗을 냄 새 맡는 자도 아니며   사물의 이면(裏面)을 나타나게 하는 빈자(貧者)의 칡뿌리, 야게나 필루 풀도 아니고   자신의 명철한 정신을 주시하며 자신의 권위에 민 감하며 바람 속에서도 자신의 이미지를 대낮같이 명 확하게 견지하는 자.   "이 부르짖음! 신의 날카로운 부르짖음! 그것이 우리들을 방 속에서가 아니고 군중의 한가운데서 붙잡도 록   그 소리는 군중에 의하여 전파되어 우리들의 지각(知覺) 의 한계점까지 울려 퍼지기를----   자기의 열매를 찾아 끈적끈적한 담벽 위에 그려진 새벽이 우리들의 이 강렬한 소망을 흐리게 하지 못하리 라."   그리고 그 시인은 아직도 우리들 가운데 있다---- 이 시간, 아마 마지막일지 모르는 이 시간, 아니 바로 이 순간, 이 찰나!--- 그런데 우리는 이 순간에 태어나기에는 너무나 짧 은 시간밖에 없다.   "---약속 자체가 숨결이 되는 이 기대의 극한적인 시점에서,   그대는 스스로 숨을 죽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리고 보는 자에게 기회가 있지 않을까? 듣 는 자에겐 그 응답이?---   시인은 아직도 우리들 가운데----아마도 마지막일 이 시간---바로 이 순간--- 이 찰나!   -"이 부르짖음, 우리들 위에 신의 날카로운 부르짖 음!   *이 시는 그의 주요 작품의 하나인 의 제 3 제 6가(歌)이다. 생-존 페르스는 바람, 비, 눈 등의 자연 현상을 주제로 한 몇 편의 시집을 펴내었다. 에서는 우주 현상이 가진 무한한 힘과 이것이 인간의 생활-문명- 문화가 가지는 관계를 우화나 신화처럼 다루고 있다. 시인은 바람을 땅과 인간과 시와 정신을 창조하는 근원적 인 힘으로 보고 노래하고 찬양하고 있다. 여기 제 6가(歌)가 발췌된 제 3편에서는 이러한 창조적인 바람과 인간 과의 협력 관계가 취급된다. 따라서 에서 정복자의 동료들과 같은 인간 문명의 선구자들에 대한 열거가 전개 된다. 자산가, 상인, 법률가, 성직자, 개혁자, 과학자, 집제사(執祭司) 등등이다. 이 가운데 시인은 특수한 위치에 있다. 시인은 극한적인 간구에서 증언하기 때문이다. 제 6가에서는 시인과 시, 특시 시가 탄생하는 최고의 그리고 최후 의 순간에 대한 시인의 증언을 나타내고 있다. 시인은 현실 배후에 숨어 있는 시, 생동하는 사물 자체이며 전체적인 것 을 붙잡으려는 정신의 최후의 순간에 대하여 그 긴박성, 찰나성을 증언하고 있다.     생-존 페르스(1887~1975): 1960년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이기도 한 생-존 페르스는 시인으로서의 그의 이름은 모국인 프랑스에게서보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더 유명하며 그의 작품은 현대 시인 가운데 가장 많이 외국어로 번역된 시인의 하나다.  그는 쿠바 동쪽 과들루프라는 프랑스 령(領) 섬에서, 프랑스의 오랜 명문 가정에서 태어나 귀공자와 같은 유년 시절을 보냈다. 11세 때 온 가족과 더불어 프랑스 서남단의 포(Pau)시로 이주하였는데 이 곳 중고등 학교에서 프랑시스 잠, 발레리, 라르보 등과 만나 친구가 되었고 또 잠의 소개로 그의 집에서 클로델과 알게 되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젊은 페르스는 클로델과 같이 자기도 장차 외교관이 될 뜻과 시를 쓸 의욕을 가지게 된 듯하다. 그후 보르도 대학으로 진학하여 법률 공부와 함께 시의 창작도 병행하였다.  이 시기에 그는 수십 편의 시를 써서 이라는 제목으로 출판한 적도 있으나. 1911년 여러 친구들의 권고와 주선으로 라는 첫 시집을 낸 것이 그의 문학 활동의 첫걸음이었다. 이 시들은 카리브 해의 과들루프에서 지낸 그의 유년 시기의 생활과 그의 머리에 비친 어린 시절의 신선하고 이국적인 풍물에 대한 회상, 바다, 종려나무, 꽃 선풍(旋風), 원주민들의 풍습 등을 다채롭고도 섬세하게 그린 것이다.  1914년 외무성 외교관 시험에 합격하였고, 이어서 중국 북경 공사관에 파견되어 서기관으로 약 5년 동안 근무하며, 일본, 한국, 몽고, 중앙 아시아 각국을 여행하였다. 제 1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프랑스로 돌아와 외무성에서 일하게 되었다. 당시 유명한 정치가이며 외무 장관이던 아리스티드 브리앙의 중요한 보조자가 되어 1920년대에서 20년 동안 그는 외무성의 모든 중요한 자리를 맡았고 최고 실무 책임자인 외무 차관으로 재직하였다. 이 시기에도 일면 창작 생활을 계속한 듯하며 1924년 생레제 레제라는 필명으로 이라는 장시를 발표하였다. 이는 호메로스의 와 같은 모험과 정복의 서사시이나 전설과 현실과 꿈이 뒤섞인 신화(神話)와 같은 작품이다.  1940넌 제 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 6월 14일 독일군이 파리를 점령하고 페탱 원수가 비시 정부를 수림함에 이르러 페르스는 6월 16일 보르도에서 배를 타고 처음에는 영국으로 갔으나 다시 미국으로 망명길을 떠났다. 그는 미국 정부의 호의로 워싱턴의 국회 도서관에서 프랑스 어 자문 의원으로 일하며 본격적인 창작 활동을 시작하였다. 1942년 비로소 생-존 페르스라는 필명으로 를 1944년 , 1945년에 을 발표하였다. 이러한 작품들은 인간 존재의 고뇌를 극복하려는 철학적인 시이거나 혹은 바람-비 등 자연적인 힘과 인간의 관계를 다룬 우주적인 서사시로 방대한 구상과 장중한 음률, 박학 심오한 지식으로 위대한 시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영국-미국의 시인-비평가들로부터 높은 인정을 받고 있으며, 영국의 엘리어트는 일찍부터 그의 작품을 소개-번역하였다.  1944년 전쟁의 종식으로 그는 40년에 박탈당했던 프랑스 국적과 영예가 복권되었으나 1958년이 잠시 프랑스에 귀국하였을 뿐 계속 워싱턴 근처에 살며 시작과 연구 그리고 카리브 해와 뉴 멕시코 등지를 여행하며 지냈다. 이 시기의 작품으로는 바다와 사랑의 무한성을 찬미한 . 시간을 정복한 인간과 지구의 위대함과 영원함을 노래한 등이 있다. 이 해에 그는 프랑스 대사로 복권되고 그의 전작품에 대한 노벨상이 수여되었다. 이후에도 시의 창작 활동이 계속되어 1963년에는 13가(歌)로 된 를 출간하였고 1975년에는 몇 편의 장시를 모은 시집 를 내놓았다. 이는 그의 최후의 메시지가 되었다. 그는 이 해 지중해의 지앙 반도에서 숨을 거두었다.    생-존 페르스는 넓은 뜻에서 자연 시인이다. 자연과 세계는 그에게 있어서 늘 경이의 대상이었다. 따라서 그는 쉬지 않고 여행하며 보통 사람보다 훨씬 광대한 세계에 살았다. 이미 그의 초기 작품인 에서 자연에 대한 영광의 노래를 불렀고, 에서도 중앙 아시아 지방 유목지의 풍물과 사물에 대한 깊은 애착과 동경을 그리고 있다. 또한 빛과 색체와 동식물이 넘쳐 흐르는 땅과 세계는 그에게 있어서 늘 신선한 놀라움과 신비의 근원이었다. 대지를 비단같이 감싸주는 눈, 때에 따라 부는 바람, 우주의 리듬에 따라 움직이는 바다 등은 그의 시의 영원한 원천이었다. 그는 자연을 무한히 또한 쉬지 않고 찬양한다. 현대시의 조류가 세계와 자연을 멸시하고 저주하는 경향과는 극히 대조되는 태도이다. 그러나 시인 생-존 페르스는 자연을 그리는 데 있어서 서정(抒情)이나 감상으로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만물에 대한 깊고 넓은 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구성할 뿐 아니라 자연의 현상과 힘을 인간의 역사와 운명, 인류의 문화와 문명과의 관계에서 다룬 점에 그의 작품의 깊은 뜻이 있다. 또한 언어와 리듬의 장중함, 다채로움, 풍부함, 다양한 이미지와 불가해(不可解)한 상징이 곁들어 그의 작품의 위대함과 신비함과 또한 난해함을 이루고 있다.   종소리 / 피에르 르베르디       모든 것이 꺼졌다 바람이 노래하며 지나간다  그리고 나무들이 몸을 떤다 동물들이 죽었다 이제 아무도 없다      보라 별들은 반짝임을 멈추었다       지구도 더 돌지 않는다 머리 하나가 숙여졌다       머리카락으로 밤을 쓸면서 서 있는 최후의 종탑은       자정을 친다     서로 가슴을 터놓고 / 피에르 르베르디       드디어 나는 여기 서 있다 나는 그 곳을 지나왔다 누군가 지금 또한 그 곳을 지나간다 내가 그랬듯이 어디를 가는지 모르면서   나는 떨고 있었다 깊은 방 속에 벽은 캄캄했다 그 벽도 흔들리고 있었다 어떻게 나는 이 문지방을 넘어 올 수 있었던가   소리칠 수도 있으리라 아무도 듣지 않는다 나는 어둠 속에서 너의 망혼(亡魂)을 만났다 망혼은 너 자신보다 온화하였다 전날에는 방 한 구석에서 슬픈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죽음이 너에게 이 평화로움을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너는 아직 말을 하고 있다 나는 너를 두고 떠나려 한다   한 줄기 바람이라도 불어 온다면 바깥 세상을 우리들이 아직도 분명히 볼 수 있게 해 준다면 숨이 막힌다 천정이 내 머리를 누르고 나를 떠밀어 낸다 어디에 몸을 둘 것인가 어디로 가야 하나 내게는 죽을 자리도 변변히 없다 저 멀리 내게서 멀어지는 발걸음 소리는 어디로 가나 나와 나의 그림자, 우리는 둘뿐이다 밤이 내린다.     한데서 / 피에르 르베르디      나는 아마 열쇠를 잃어버렸던 모양이다. 그래서 모 두들 나를 둘러싸고 웃으며 각자 자기 목에 건 큼직한 열 쇠를 내게 보여 준다.   나만이 어디라도 들어가자면 가져야 할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유일한 존재, 그들은 모두 사라져 버리고 닫 혀진 문들은 거리를 더욱 쓸쓸하게 만든다. 아무도 없다. 나는 모든 문을 두드리리라.   욕설이 창문들에게서 터져 나오고 나는 거기서 떠나 간다.   그러자 나는 이 거리에서 좀 떨어져 있는 곳에 강 과 숲 가장자리 사이에 문이 하나 있는 것을 찾아 냈다. 허술한 살문으로 자물쇠도 없다. 나는 그 문 뒤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나서 창문들은 없지만 넓은 커튼이 드리운 밤 아래서 그리고 나를 지켜 주는 숲과 강 사이에서 잠을 잘 수 있었다.       피에르 르베르디(1889~1960): 한때 초현실주의 대장인 브르통, 수포, 아라공 등이 한결같이 당대 살아 있는 가장 위대한 시인이라고 부른 르베르디는 한동안 잊혀져 있었으나 현대시의 큰 조류가 허무-부재(不在)-고뇌를 주제로 함으로 인해 다시 새로운 조명을 받게 되었으며 현대시의 선구자로 부각되었다.  피에르 르베르디는 프랑스 남쪽 지방 나르본느에서 태어나서 소년 시절을 태양이 빛나고 샘물이 노래하는 야생의 자연 가운데서 지냈고 투르즈와 나르보느의 중고등 학교에서 공부를 했다. 1907년에 이 지방에서 일어난 포도 재배 노동자들의 폭동은 그의 아버지의 포도밭을 망쳐 버렸으며 이를 진압하기 위해 출동한 군경과의 유혈 사태는 소년 르베르디에게 큰 충격을 주어 현실 사회에 대한 깊은 혐오감을 갖게 했다고 한다.  돌과 나무를 깎아 조각을 하며 생활하고 문학과 학문을 좋아하던 부친의 권고와 격려를 받아 그는 문필가로 살기 위해 1910년 파리로 올라왔다. 몽마르트 언덕 꼭대기에 있는 다락방에 자리를 잡고, 생활을 위해 인쇄소의 교정일이나 직공의 밤일을 하여 가며 남몰래 열심히 시를 썼다. 가난과 고독과 고뇌 속에서 시만이 그를 살게 하는 유일의 것이었다.  제 1차 세계 대전에는 지원병으로 참전하고 돌아와 소위 입체파(立體派)의 예술가로서 잡지 을 창간하여 약 1년 반 동안 전위 예술을 위해 애쓰기도 하였다. 이 동안에도 계속 시를 써 오며 1915년에는 를 비롯 등의 시집을 연속적으로 내놓아 입체파 시인 혹은 초현실파 또는 서정 시인이란 평을 받았다.  그는 원래 극히 개성적이고 고독한 사람이며 자기 자신을 남에게 알리기 싫어하는 성격으로 비록 그가 전위파의 예술가 브라크, 피카소, 아폴리네르 등과 교류가 있었다고 하나 누구도 그의 진정한 심중을 알 수 없는 신비로운 인물이었다. 그는 누룰 수 없는 고독감과 인생과 현실에 대한 허무와 위화감으로 고민했으며 시를 이러한 고뇌와 불안을 극복하는 구제 수단으로 삼고 있었다.  그리하여 1923년 그는 종교적 목적이라기보다 세속으로부터의 초탈과 진실에 대한 갈구로, 유명한 솔레슴 수도원 근처로 은거하였다. 이 때부터 1960년 생을 마칠 때까지 그는 여기서 궁핍과 고독와 명상의 생활을 했다. 그의 후기에 속하는 중요한 시와 산문을 수록한 , 이 있으며 , 는 그의 정신적 문학적 자서선이다.    그의 시는 당시의 사상계와 문단을 지배하던 객관주의-자연주의-물질주의에 근본적으로 대치한 것으로 감각이나 통속적인 관념으로 그리는 자연이나 현실이 아니라 사물과 현상 배후에 있는 진정한 실재, 순수한 본질을 파악하고 이를 표현하려고 애썼다. 또한 인간이나 인생의 문제에 있어서도 사회적인 문제보다도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 인간의 고독과 허무와 고뇌의 상황과 그 감정을 상징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뜻에서 그의 시는 부재와 허무에 대하여 명상하는 현대 실존주의 파 시에 30년이나 앞섰던 것이다.  그의 언어는 혼자서 조용하게 고백하는 말이며, 그의 어조는 낮고 단조로우며 모든 화려한 음이나 이미지를 고의로 피하고 있다. 또한 그가 그리는 상황은 모든 사물이 정지되고 침묵이 지배하는 세계, 이상한 고뇌의 빛이 감도는 한 폭의 정물화 같은 것이다.  그의 시가 가진 이러한 정신성과 단순성은 그에게 시인으로서의 큰 영광을 주진 않았으나 그 깊은 내면성과 순수성은 현대시의 가장 중요한 선구적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무희(舞姬) / 쟝 콕토      게는 발 끝으로 걸어 나온다 두 팔로 꽃바구니 모양을 만들고 귀 밑까지 찢어진 듯한 웃음을 짓는다.  오페라의 무희는 꼭 게 모양을 닮아 색칠한 무대 뒤에서 두 팔로 원을 그리며 나온다.     너의 웃음은 / 쟝 콕토    장미꽃 잎의 가장자리처럼 위로 잦혀진 네 미소는 너의 변신(變身)에 원망스럽던 내 심사를 달래 준다. 너는 잠이 깨어 이제는 꿈은 잊어버렸다. 나는 또다시 너의 나무에 매어진 몸이 된다. 너는 제 작은 힘을 다하여 내 몸을 얼싸안는다. 우리는 어째서 나무가 되지 않는가, 한 껍질 한 체온(體溫), 한 빛깔의 나무가, 그리고 우리들의 입맞춤이 그 나무의 유일의 꽃이 되지 않는가     나의 시풍(詩風)이--- / 쟝 콕토   이 시집의 시풍이 전과 다르다 해도 오호라, 나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일. 나는 항상 시를 기다리기 힘들어 그저 오는 것을 붙잡는다.   독자여, 뮤즈 시신(詩神)의 뜻은 하나님의 뜻과 같아 나는 알 수가 없다. 나를 무대로 삼아 움직이는 저들의 깊은 책략을 나로서는 추측할 수가 없다.   나는 저들이 내 머리 속에서 춤추며 맺었다 풀었다 혹은 중단하는 대로 내버려둔다, 저들의 법을 쫓는 길 외에 별다른 무모한 일을 할 수 없기 때문.   쟝 콕토(1889~1963): 나의 귀는 소라 껍질/ 바다 소리가 그립습니다,  경쾌하고 신기하고 때로는 신비하기까지도 한 시나 소설을 써서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도 하고 한편 즐겁게도 한 쟝 콕토는 한때는 20세기 초반 문단의 총아로, 유럽은 물론 이웃 나라 일본이나 우리 나라 독자에게도 친숙한 작가이다. 특히 그는 영화 , , 등의 제작자로도 유명하다,   그는 파리의 명문 가정 태생으로, 조숙하여 어린 시절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였으며, 20세 전후에 이미 세 권의 시집을 내어 문단과 일반의 주목을 끌었다. 그는 조숙할 뿐 아니라 실로 다재다능하여 문필뿐만 아니라 미술-조각-연극-영화-발레 등 열 손가락에 이르는 예술 방면에서 창작 활동을 했고, 그의 작품들은 나올 때마다 화제가 되었고 문제를 불러 일으켰다.  그의 재능과 취미는 다방면에 걸쳤으나 본령은 어디까지나 시(詩)였다. 그가 손을 덴 모든 예술 양식은 그의 중심 사상인 시 정신의 표현 수단이라고 그 자신이 말해 왔다.  제 1차 세계 대전 이후 시집으로 , 등을 발표하고, 이 시기 후에 그는 상당히 긴 공백 기간을 이용하여 소설-수필-연극-영화-데생 등에 몰두하였다. 다방면에 걸친 마술사 같은 그의 재간은 실로 종횡무진하여 전기의 활동 이외에도 교회의 내부 장식, 색종이로 붙인 회화, 러시아 발레에서 샤넬의 의상 고안까지 그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1941년 다시 시단으로 돌아와 등의 시집이 발표되었다. 그의 시풍은 시집마다 경향을 달리하여 각각 전위적, 미래적, 초현실적, 환상적, 주지적, 고전적 등등의 평을 받았으나. 본인은 시에 필요한 것은 시 정신이지 유파(流派)가 아니라고 응수했다. 그런데 라는 시집은 이상하게도 죽음의 찬가이다. 콕토는 60이 훨씬 넘어서도 그의 정신의 젊음과 시 정신은 변치 않았다. 새로운 것, 이상한 것, 마적(魔的)인 것에 대한 추구는 계속 각방면에서 추구되었다. 다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좀더 평온해지고, 좀더 신비로운 것으로 기울어진 점이다. 이 시기의 시집으로서는 이 있다. 이 유행과 신기(新奇)의 추구자는 1955년 프랑스 문예의 권위와 전통을 자랑하는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회원이 되어 다시 한 번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그의 여러 방면에 걸친 많은 작품도 지금에 이르러서는 많은 것이 망각의 세계에 묻히고 말았다. 100여 편이 넘는 작품 가운데 10여 편의 작품 또는 제작이 그의 걸작으로 인정되고 기억되고 있을 뿐이다. 그것도 상당한 일이다.  다재다능하고 카멜레온같이 변화무쌍한 그는 당대에 유례없는 오해와 비난을 받았다. 경박-피상은 물론, 앙드레 브르통 같은 시인은 그를 한때 사기꾼으로 혹평하였다. 그러나 차츰 그의 가치를 공정하게 인정하고 그의 독창적인 위치를 높이 평가하는 경향이 생겼다. 즉 피상적인 허구와 단순한 말장난으로 보이는 많은 그의 작품의 표면 뒤에 진정한 시인, 날카로은 지성의 시인을 발견하고, 화려하게 보이는 이 예술의 곡예사가 사실은 늘 고독과 허무와 죽음의 깊은 늪을 보아 온 심각한 작가라는 것이 차츰 알려지게 되었다. 시인이란 그가 말한 대로 "참다운 시인은 죽은 사람과 같아 산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다"가 진실이었는지 모른다.  '지붕 위의 황소'라는 카바레의 주인에서부터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 짧으나마 경건한 카톨릭 신자가 되기도 한 콕토는 실로 복잡하고 모순되고 항상 변하고 알 수 없는 인물임에는 틀림없었다. 그 자신도 자신을 몰랐는지 혹은 숨겼는지 모른다. "나는 항상 진리를 말하는 허위이다"라고도 했고, 또 "나는 낙관적인 비관론자이다"라고도 했으니까---.   확신 / 폴 엘뤼아르       내가 그대에게 말하는 것은 그대의 말을 더욱 잘 듣기 위함이며 내가 그대의 말을 들으면 나는 확실히 깨닫는다   그대가 짓는 미소는 나를 더욱 차지하기 위함이며 그대가 미소 지을 때 나는 온 세계를 본다   내가 그대를 끌어안음은 나를 유지하기 위함이며 우리들이 살면 모든 것이 기쁨이리라   내가 그대를 떠나면 우리는 서로 기억할 것이며 서로 헤어짐으로써 우리는 다시 만나리라    *이 세상의 많은 사랑의 시 가운데서도 이렇게 다정하며 자연스럽고 뜻깊은 시는 드물다. 마치 사랑하면 이이렇게 된다는 것을 열거라도 하는 것 같다. "서로 헤어짐으로 우리는 다시 만나리라"는 구절은 확신적이며 인상적이다. 사실 시인으로서 엘뤼아르의 근원적 감정은 사랑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사랑의 시인으로 출발했고 또 끝냈다. 그 사랑은 남녀의 사랑, 부부간의 사랑, 조국에 대한 사랑, 인류에 대한 사랑으로 퍼져 나갔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서 기본이 되는 것은 물론 남녀의 사랑이었다. 실제로 그의 생애는 개인적인 사랑의 역사, 여인을 만나고 헤어지는 사건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1912년~1930년 '갈라'와의 만남과 헤어짐, 뉘슈와의 만남, 1946년 이 여인의 돌연한 죽음과 그 이후 몇 해 동안의 위기, 1949년 도미니크를 만남으로써 생의 회복 등이 그것이다. 엘뤼아르는 이 사랑을 통해서 세상을 보았고 사랑을 모델로 우주를 만들려고 했다. 그에게 있어서 여성은 시인과 우주의 매개체이었으며 양자를 잇는 교량이었다. "나는 너를 통해서 이 세상이 옳다고 했다" 고 그는 노래 했다. 레지스탕스가 낳은 걸작시의 하나이며 엘뤼아르의 이름을 세계에 유명하게 한 시 "자유"도 그 자신의 술회에 의하면 처음에는 한 여성에 대한 사무치는 사랑으로 출발하였지만 차츰 써 가다 보니 문제는 애인의 이름을 쓰는 한 남자의 사랑뿐만이 아니라 세계의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 억압되어 있는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 즉 자유가 문제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했다. 그가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정치에 가담한 것도 따지고 보면 사랑의 차원을 개인적인 지평에서 모든 사람의 지평으로 확장한 데 지나지 않는다. "우리들은 서로 사랑하므로 다른 사람들을 구하고자 한다"고 했다. 따라서 그의 사랑의 시와 정치적 시와의 사이에는 영감이나 근원-어조에 별 차이가 없다.  그의 시는 시인의 호흡같이 자연스럽고 그의 육체와 마음 속에서 흘러나오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의 말은 애써 찾아낸다든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직접적이고 있는 그대로를 노력하는 가운데 가장 보편적인 진리를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언어의 음악성이나 시구(詩句)의 리듬을 잃지 않는 점이 그의 시를 고전적으로 평가받게 하는 이유다.   나는 혼자가 아니다 / 폴 엘뤼아르    입술엔 가벼운 실과를 물고 몸은 가지각색의 꽃으로 치장하고 태양의 팔에 안겨 빛나며 낯익은 새 한 마리에 행복하며 빗물 한 방울에 황홀해하는 아침 하늘보다 더 아름다운 정숙한 그녀   나는 정원을 말하고 있는데 꿈을 꾸는 모양이다.   그러나 분명 나는 사랑하나 보다     그리고 하나의 미소 / 폴 엘뤼아르      절대로 완전한 밤이란 있을 수 없는 법이오, 내가 말하거니와 내가 확언하거니와 슬픔의 끝에는 항상 열려진 창문이 빛이 비치는 창문이 있소 항상 눈 뜨고 있는 꿈이 있고 이루어질 욕망 채워질 주림 너그러운 마음 내민 손, 벌려진 손 지켜보는 눈 한 인생, 서로 나누어 살 인생이 있는 법이오.     올바른 정의 / 폴 엘뤼아르      포도로 술을 만들고 석탄으로 불을 만들고 입맞춤으로 사람을 만드는 일 이것은 인간의 따뜻한 법칙이다   전쟁과 빈곤 속에서도 죽음의 위험 속에서도 순결히 몸을 지키는 일 이것은 인간의 힘겨운 법칙이다   물을 빛으로 꿈을 현실로 적을 형제로 변하게 하는 일 이것은 인간의 아름다운 법칙이다   어린애의 가슴 속으로부터 최고의 이성(理性)에 이르기까지 항상 완성시켜 가는 오래고도 새로운 법칙이다.     야간 통행 금지 / 폴 엘뤼아르     문은 감시되어 있다 그게 어쨌단 말인가 우리들은 갇혀 있다 그게 어쨌단 말인가   도로는 막혀 있다 그게 어쨌단 말인가 도시는 무릎을 꿇었다 그게 어쨌단 말인가 도시는 배가 고프다 그게 어쨌단 말인가 우리는 무장 해제되었다 그게 어쨌단 말인가 밤이 되었다 그게 어쨌단 말인가 우리들은 사랑을 했다 그게 어쨌단 말인가   * 이 우아하면서 유머러스한 시는 제 2차 대전 중 수만 수십 만의 프랑스 인이 그의 장시 "자유" 다음으로 즐겨 부른 노래다. 이러한 시로 그는 아라공과 더불어 민중 시인이 되었으며 그것은 그의 희망이었다. 엘뤼아르는 이미 "이미 오늘날 시인의 고독이란 무너져 버렸다. 오늘날 시인은 이미 사람들 사이의 사람이다. 그들은 형체를 가진다"라고 말한 바 있다.  여기에서는 "그게 어쨌단 말인가"란 야유적이며 반항적인 그리고도 낙천적인 말투에 묘미가 있다.      폴 엘뤼아르(1895~1952): 사랑의 시인, 혹은 정치적 시인이란 평을 받는 폴 엘뤼아르는 20세기 프랑스 대표적 시인의 한 사람이다. 그는 파리 북쪽 교외에 있는 노동자의 거리 생-드니에서 출생하였으나 아버지는 회계사이며 어머니는 양재사인 비교적 유복한 중산층 출신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몸이 허약하여 중고등 학교 시절 페결핵으로 공부를 중단해야 했고, 1911년에서 1913년까지 스위스의 다보스라는 곳에 있는 사나토륨(요양원)에서 지내게 되었다. 여기에서 그는 보들레르, 아폴리네르 등의 작품을 읽게 되고 특히 미국 시인 휘트만의 시를 좋아하며 스스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 또한 소년 엘뤼아르는 여기에서 러시아 태생의 한 소녀를 만나 사랑하게 된다. 그 사랑은 결실되어 4년 뒤인 1917년 드디어 결혼하게 되는데 후일 그가 애칭으로 '갈라'라고 부른 여인이다. "그녀는 순결한 눈을 녹게 하고 풀 속에서 꽃을 태어나게 한 유일의 존재이다"라고 그는 찬양했다.  이 보다 앞서 1914년 제 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났고 엘뤼아르는 요양원에서 나오자마자 간호병으로 전선에 동원되었다. 그는 야전 병원에서 전쟁의 참상을 맛보았고 이는 그의 마음 속에 큰 충격을 주어 전시 중 병원에서 쓴 "평화를 위한 시"외 1편의 선언문 같은 시들을 자비 출판하였다.  파리에 돌아온 그는 한때 '차라'와 당시 유행하던 다다이즘 운동을 벌였고 후에는 앙드레 브르통을 만나 데스노스-아라공과 함께 초현실주의 운동의 중요하고 열렬한 멤버가 되었다. 엘뤼아르와 초현실주의와의 관계는 밀접할 뿐 아니라. 이 새로운 문학 정신이 그의 시에 준 영향은 깊다. 1920년에서 1936년까지 그는 브르통이나 르네 샤르와 공동으로 여러 권의 초현실주의적인 시집과 평론을 펴냈을 뿐 아니라 "죽지 않으므로 죽는 일(1924)" 및 그의 걸작으로 꼽히는 "고통의 수도(1926)" "사랑, 시(1929)", "직접적인 생(1932)" "모든 사람의 장미(1934)" 등 그의 중요한 시 작품들은 모두 직접 간접으로 초현실주의의 영향을 받은 것들이다.    시집 로 그이 초현실주의 시대는 끝난다. 이 동안에 엘뤼아르는 첫 부인 갈라와 헤어지고 제2의 부인 마리아 벤즈, 속칭 뉘슈와 결혼한다. 뉘슈와의 사랑과 애정은 그의 첫사랑인 갈라에 못지않게 짙고 깊어 수많은 아름다운 시를 낳게 하였으며, 그녀의 영향은 그녀가 죽은(1946) 뒤에도 계속되었다.  1936년을 전후하여 그의 시는 점차 사회적-정치적 관심을 보이고 인류와 정의를 위한 연대 운동에 가담한다. "지금의 모든 시인은 그가 다른 사람의 생(生)에, 공동의 생에 깊이 관여되어 있음을 주장할 권리와 의무를 가지고 있는 때가 왔다."라고 그는 썼다. 1936년 스페인 내란이 일어나자 그는 공화파에 가담하였고 "게르니카의 승리(1938)"를 발표하였다. 이 도안 인간애와 자유를 노래한 시점에 < 볼 것을 준다(1939)>등이 있다.  1940년 제 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자 한때 사랑과 꿈의 시인이었던 엘뤼아르는 자유와 조국을 위한 투사가 되었다. 이로부터 1944년 전쟁이 끝날 때까지 항독(抗獨) 비밀 저항 운동에 가담하여 싸웠고 작가 국민 위원회의 북부 책임자가 되어 비밀 출판물인 를 간행하여 자유와 조국 해방을 위하여 시를 통해 투쟁하였다. 이 동안에 그는 시집으로 유명한 그의 시 "자유"가 맨첫머리에 실려있는 , < 독일인의 집합지에서(1944)> 등이 있다. 1942년에는 영국의 항공 편대가 수천 부의 그의 을 독일군 점령 아래 싸우는 프랑스의 마키자르(항독투사) 위에 뿌렸다. 시가 무기가 된 것이다.  대전이 끝나자 그는 세계 각국을 여행하며 인간에 대한 신뢰와 연대감을 고취하고 계속 개성적이며 서정적이고, 그의 시의 주재는 언제나 영원한 사랑과 죽음-평화-자유이었다.  1946년 그가 강연 여행으로 스위스에 있을 때 아내 뉘슈의 죽음의 통지를 받았다. 그는 한때 절망과 공허에 빠져 약 1년 동안 실어증에 빠져 있었으나 인류에 대한 신뢰와 사랑과 희망으로 이 위기를 극복하였다. 1949년 멕시코의 세계 평화 회의에 참석하였다가 거기서 다시 도미니크라는 여성을 만나 제 3의 부인으로 맞이했다. 이 재혼을 기하여 엘뤼아르는 이라는 시집(사후에 출판됨)을 써서 생의 기쁨을 되찾은 행복을 노래했다. 그러나 1952년 엘뤼아르는 과로와 협심증을 일으켜 급서하였다. 그의 유해는 전세계의 지식인과 문인의 애도를 받으며 파리의 페르-라세즈 묘지에 묻히었다.   엘사의 눈 / 루이 아라공      너의 눈은 한없이 깊은 심연(深淵), 내가 마시려 몸을 굽 히면 이 세상 모든 태양들이 그 속에 와 비추고 모든 절망한 사람들이 죽기 위해 그 속에 몸을 던지는 것 을 나는 보았다 너의 눈은 한없이 깊어 나는 거기서 기억을 상실한다   네 눈은 새들 그림자에 거칠어진 대양(大洋) 짐짓 날씨가 개면 네 눈도 변한다 여름은 천사들의 앞치마를 잘라 구름을 만들고 밀밭 위에 보이는 하늘만큼 푸른 것은 또 없다   바람이 불어 창공 위의 슬픔들을 날려 버려도 소용 없어 눈물로 빛날 때 네 눈은 창공보다 더 맑아 비 내린 뒤의 하늘도 네 눈을 시새운다 깨진 유리의 틈살보다 더 푸른 빛은 없다   칠고(七苦)의 어머니, 아, 젖은 빛이여 일곱 개의 검(劍)이 오색의 프리즘을 꿰뚫었다. 눈물 속에 돋는 해는 더욱 감동적이며 검은 점이 박힌 홍채(紅彩)는 상복(喪服)을 입어 더욱 푸 르다   네 눈은 불행 속에 이중(二重)의 돌파구를 열고 이를 통하여 동방 박사의 기적이 또 다시 일어난다 세 박사가 모두 뛰는 가슴 누르고 말 구유에 걸린 성모 마리아의 망토를 보았을 때의 그 기적이   5월에 이 세상 모든 노래, 모든 탄식을 부르기 위한 말에 단 하나의 입이면 족하다 수백 만의 별을 담기엔 너무나 좁은 창공 성신(星辰)들에게는 너의 눈이 그리고 저들의 숨은 쌍동이 별이 필요했다   아름다운 그림에 도취한 어린애의 벌어진 눈도 너의 눈보다는 크지 못해 나는 네가 큰 눈을 뜰 때 혹시 거짓말을 하는가 싶어 차라리 소나기가 야생의 꽃을 벌린다 하리라   네 눈은 벌레들이 격렬한 사랑을 벌이는 이 라벤더 꽃 그 속엔 번갯불이 숨어 있는가 나는 많은 유성(流星)의 그물에 걸렸다. 8월의 한중턱 바다에서 죽는 한 수부(水夫)처럼   나는 우라늄 광석에서 이 라디움을 뽑아 냈다 나는 이 금단(禁斷)의 불에 손가락을 태웠다 아, 백 번도 넘게 찾았다 되잃은 낙원이여 네 눈은 나의 페루(Perou)나의 골콩드(Golconde) 나의 인도 제국(帝國)   어느 날 저녁 세계는 해적(海賊)들이 불태운 암초에 걸려 깨졌다. 그러나 나는 바다 위에 영롱하게 빛나는 것을 보았다. 엘사의 눈 엘사의 눈 엘사의 눈   *아라공에 있어서 그의 부인이 된 '엘사 트리올레'와의 만남은 단테가 '베아트리체'를 만남과 같이 그의 생에 일대 전기(轉機)를 가져다주었다. 엘라 트리올레는 러시아 여자로 소련의 시인 마야코프스키의 처제였으며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지성적인 여성이었다. 1928년 11월 4일 아라공은 이 여성을 몽파르나스의 기차 정거장 같이 넓은 카페 쿠폴에서 마야코프스키와 함께 처음 만났다. 그 다음 날 아라공은 같은 장소에서 엘사와 단 둘이서 만났으며 그 후 두 사람은 엘사가 1970년 죽기까지 떨어지지 않았다. 이후 엘사는 아라공의 문학의 원천이었으며 그의 시의 존재 이유였으며 그의 정신적인 이상이었다.  사실 엘사를 만나기 2 개월 전만 하더라도 아라공은 허무주의에 빠져 베니스에서 자살하려고 계획했었다.   나는 언제나 나의 고뇌의 교향악을 가지고 다녔다. 런던의 태양은 안개 속에 신음하고 있었다. 파리의 마로니에는 얼마 안 되어 누래졌다. 나는 베니스에서 죽고자 한다.   이 때 엘사가 그의 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녀의 도움으로 또한 그녀를 위하여 그는 다시 살고 또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한다..  엘사에 대한 그의 사랑과 경애와 감격은 엘사가 죽은 뒤까지 계속되었다. 따라서 그의 시 가운데는 엘사에 주는 노래, 가요, 송가 등이 수없이 많은데 "엘사의 눈"(이는 그의 두번 째 시집의 이름이기도 하다)은 그 중의 하나로 아라공의 엘사에 대한 사랑과 경이(驚異)를 나타내는 대표적 작품이다.     (19)40년의 리처드 2세 / 루이 아라공   나의 조국은 사공들이 버리고 간 거룻배처럼 처량하며 나는 불행보다 더 불행해져 자기 슬픔의 왕으로 남아 있던 저 임금 같아   산다는 건 한낱 책략일 뿐 바람도 흐르는 눈물 말릴 줄 모르고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을 미워해야 하며 이미 내게 없는 것도 그들에게 내주어라 나는 변치 않고 나의 슬픔의 왕   심장은 뛰지 않을지 모르며 핏줄에는 찬 피가 흐를지 모른다 도적들의 놀음놀이에서는 이미 2 더하기 2는 4가 아니다 나는 변치 않고 나의 슬픔의 왕   해가 죽으나 다시 사나 하늘은 그 빛을 잃었다 나의 젊은 시절의 다정한 파리여 케-오-플뢰르의 봄이여 안녕 나는 변치 않고 나의 슬픔의 왕   숲과 연못들을 멀리하라 조잘대는 새들이여 입을 다물라 너희들의 노래는 격리(隔離) 당했다 새잡이들이 판치는 세상이다 나는 변치 않고 나의 슬픔의 왕   고난의 시대가 있는 법이니 이럴 때에 쟌느가 보쿨뢰르에 왔다 아 프랑스를 난도질하라 그 날도 이렇게 창백한 날이었다 나는 변치 않고 나의 슬픔의 왕   *"리처드 2세"는 아라공이 1940년 9월에 쓴 단시이다. 1940년 프랑스 군이 허망하게 패배하고 독일군이 파리 시를 점령한 지 불과 2 개월, 잇단 충격으로 비탄에 빠진 아라공은 프랑스와 파리를 잃은 절망감과 슬픔을 리처드 2세의 고통과 불행에 견주고 있다. 리처드 2세는 14세기 영국에 실제 있었던 비운의 왕이나 아라공은 세익스피어의 동명(同名) 비극에 나오는 주인공을 암시하고 있다. 특히 매 시절(詩節) 끝에 있는 후렴, "나는 변치 않고 나의 슬픔의 왕"은 직접 세익스피어 희곡 제 4막 제 1장에서 옮긴 것이다. 이 장면에서 리처드 왕은 탄식한다. "그대는 나의 영광과 나라를 없앨 수 있다. 그러나 나의 슬픔은 없앨 수 없다. 나는 변치 않고 나의 슬픔의 왕이로다" 또 독일군의 점령 아래 갇혀 살게 된 프랑스의 비참한 모습을 역시 국민과 신하들의 배신을 당하여 프린트 성 가운데 유폐된 리처드 2세의 신세에 비한 것이다.  아라공은 평이하고 자연스러운 아이러니칼한 필치로 나치 지배하의 절망적인 생활 단면을 그리고 있다. 새잡이꾼의 통치와 도적들의 '놀이'가 판치는 세상에서는 자연도 피해야 하며 새도 침묵을 지켜야 한다. 그러나 아라공은 최후의 기적을 믿는다. 그는 마지막 시절(詩節)에서 한 줄기 희망을 건다. 프랑스를 구원한 오를레앙의처녀 쟌느 다르크가 보쿨뢰르에 나타났던 것도 프랑스가 가장 비참한 때가 아니었던가. 지금은 바로 그런 슬픈 때이다.   루이 아라공(1897~1982): 1897년에서부터 20세기 거의 전부를 살아오면서 60여 년의 작품 생활과 시-소설-에세이-예술 비펑-정치 논설 등 근 80권에 이르는 작품을 남긴 그의 일생은 학실히 현대의 위대한 작가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아라공이 그의 정수(精髓)를 보이고 후세에 그의 이름을 길이 남길 수 있었던 것은, 시 특히 제 2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군에게 패배한 프랑스의 슬픔과 분노와 저항을 나타낸 시들과 또한 그의 아내이며 영원한 여성인 엘사(Elsa)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통하여 그의 프랑스에 대한 사랑과 자유와 희망을 노래한 10여 권의 시집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라공은 실은 의학도였으나 청년 시절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에 가담하여 핵심적 인물로 활약했고 이를 계기로 작가로서의 사명감을 가지게 되었다. 이 때에 쓴 시를 모든 시집으로 과 이 있다.  그러나 일찍부터 현실적이며 전투적이었던 그는 환상적이며 현실과 동떨어진 초현실주의에 대하여 회의를 느끼고 차츰 이와 결별한다. 1017년 발발한 러시아의 10월 혁명의 여파는 유럽에도 강하게 몰아쳐 아라공은 1927년 프랑스 공산당에 가입했다. 그러나 이는 그의 고민의 돌파구에 지나지 않을 뿐 모든 것에 허무를 느끼고 생의 방향을 잃은 그는 한때 자살까지 기도하였다. 이 암담한 시기에 만난 것이 러시아 여인 엘사 트리올레였다. 두 사람은 만나자마자 결합되었는데 이후 엘사는 그의 생활과 작품 활동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아라공이 시인으로서 특히 프랑스의 민중 시인으로서 그의 진면목을 나타낸 것은 1940년을 전기로 한 그의 상황시(狀況詩)와 사랑의 시에서였다. 1940년 5월 그의 조국 프랑스는 썩은 집같이 무너졌다. 이 허망과 절망 속에서 그는 패배하고 점령당하고 자유를 잃은 프랑스의 설움과 분노와 희망을 노래로 부른 것이다. 아라공은 이 전쟁과 전후를 통하여 문필로써 항독(抗獨) 운동을 전개하며 "단장(斷腸)의 아픔(1941)>, , ,
216    프랑스 명시선 ( 2 ) 댓글:  조회:3597  추천:0  2017-08-09
프랑스 명시선 ( 2 )   유쾌한 죽은 자(死者) / 샤를르 보들레르     달팽이 우굴대는 진흙 땅 속에 내 손으로 깊은 구멍을 파리라 그 곳에 내 늙은 뼈를 한가로이 눕히고 파도 아래 상어와 같이 망각 속에 잠을 자리라.   나는 유언과 묘석(墓石)을 싫어하나니 사람의 한 줄기 눈물을 청하기보다는 차라리 살아서 까마귀들을 불러 내 더러운 육체의 모든 끝에서 피를 빨게 하리라,   오, 땅의 벌레들아, 귀 없고 눈 없는 암흑의 친구들, 방탕의 철인(哲人)들, 부패의 자손들이여 보라, 그대들을 위하여 한 자유롭고 유쾌한 죽은 자가 보   리니.   주저 말고 나의 잔해(殘骸) 속에 파고들어가 죽은 자 가운데 죽고 혼 없는 이 늙은 몸에 말해 다오, 아직도 무슨 고통이 남아 있는지를.   가을의 노래 / 샤를르 보들레르   멀쟎아 우리들 잠기리 차디찬 어둠 속에 잘 가거라 너무나 짧았던 여름의 강렬한 빛이여! 벌써 들리나니 안 마당 깔림돌 위에 음울한 소리내며 떨어지는 나무 토막들.   가슴 속에 온통 겨울이 되살아오리니 분노, 증오, 전율, 공포, 강요된 고된 일 나의 심장은 북극 지옥에 매달린 태양처럼 붉게 얼어 붙은 한 덩어리 혈괴(血塊)에 불과하리니.   몸서리치며 귀기울리며 툭툭 떨어지는 장작 소리 사형대 세우는 울림이 이보다 더 무딘걸까 내 마음은 무거운 파성목(破城木)의 연타 아래 무너져내리는 성탑과도 같아.   단조롭게 부딪치는 소리에 흔들리며 듣나니 어디선가 서둘러 관 뚜껑에 못박는 소리 누굴 위하여? ---어제는 여름; 어제는 가을 이 신비의 소리는 마치 출발인 양 울리네     명상 / 샤를르 보들레르   아, 나의 고통아, 떠들지 마라 그리고 좀더 조용히 하라 네가 저녁을 원했다; 저녁이 내린다; 자 황혼이다; 어떤 사람에겐 안식을, 어떤 사람에겐 근심을 가져다주며.   인간의 천한 무리들이 쾌락이라는 사정 없는 사형 집행인의 채찍 아래 노예의 잔치로 후회를 거두러 가는 동안 나의 고통아, 손을 내게 다오; 이리로 가까이 오라. 저들을 멀리하고 보라, 저 하늘의 난간 밖으로 해바랜 옷을 입은, 고인(故人)이 된 세월들이 몸을 굽히는   모습을 웃음 띠운 회한이 깊은 물 속에서 떠오르는 것을.   빈사(瀕死)의 석양이 다리의 아치 아래 잠드는 것을 그리고 동쪽에서 긴 수의(壽衣)가 옷자락을 끌며 오듯 들어라, 정다운 고통아, 걸어오는 따사로운 밤의 발소리를.     취하시오 / 샤를르 보들레르      항상 취해 있어야 한다. 핵심은 바로 거기에 있다. 이것이야말로 그대의 어깨를 짓누르고 그대의 허리를 땅으 로 굽게 하는 무서운 시간의 중압을 느끼지 않게 하는 유일 한 과제이다. 쉬지 않고 취해야 한다. 무엇으로냐고? 술, 시, 혹은 도덕, 당신의 취함에 따라, 하여간 취하라. 그리하여 당신이 때로 고궁(古宮)의 계단이나 도랑의 푸른 잔디 위에서 또는 당신 방의 삭막한 고독 속에서 취기 가 이미 줄었든가 아주 가 버린 상태에서 깨어난다면 물으 시오. 바람에게, 물결에게, 별에게, 새에게, 벽시계에게, 달아나는 모든 것, 탄식하는 모든 것, 구르는 모든 것, 노래하는 모든 것, 말하는 모든 것에 물으시오. 지금 몇 시냐고; 그러면 바람은, 별은, 새는, 벽시계는 대답하리다. "지금이 취할 시 간이다!" 당신이 시간의 학대받는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취 하시오; 쉬지 않고 취하시오! 술로, 시로, 또는 도덕으로, 당신의 취향따라."     샤를르 보들레르(1821~1867): 이 세상에는 그 시대나 사회의 목소리나 조류를 잘 대변하는 천재가 있는가 하면 때로는 극히 개성적이며 특이한 천재가 있어서 당대에는 이해되지 않으나 후세에 가서야 이해되고 영향을 주는 경우가 있다. 보들레르는 후자의 경우이다. 그가 이해되고, 진가가 알려지기까지 많은 세월이 흘러야 했고 많은 오해와 비난과 박해 뒤에 비로소 근대시의 원조(元祖)로 추앙되었다. 널리 알려진 그의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넓은 이마, 빛나는 눈, 꼭 다문 입은 그의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참고 이기려는 굳은 의지를 보는 듯 하다. 46세를 일기로 한 이 시인의 생애는 시종 비참과 불행의 늪을 헤매었다고 볼 수 있고 그의 시들도 우울과 슬픔과 절망감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보들레르는 7살 때 늙은 아버지를 잃었는데 그의 젊은 어머니는 1년도 못 되어 군인인 오피크라는 사람에게 개가하였다. 감수성이 예민하고 자존심이 강하며 남달리 죽은 아버지를 사랑했던 소년은 의붓아버지인 이 장군과 뜻이 맞지 않았다. 질서와 규율을 숭상하는 아버지는 이 반항아를 정상적으로 교육시켜 훌륭한 외교관으로 만들려고 노력하였다. 유명한 파리의 루이 르 그랑 중고등학교에 입학시켜 성적도 좋았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소년은 졸업을 몇 달 앞두고 이 학교를 퇴학해 버렸다. 개인 교사의 지도 아래 바카로레아(대학 입학 자격 시험)에 통과, 법과 대학에 등록까지 해 주었으나 그는 학교에 나가는 일 없이 파리의 라킨 구역을 배회하며 보헤미안적인 생활을 즐겼다.  이를 보다못해 장군은 묘안 하나를 짜냈다. 아들의 파리에서 무궤도한 생활 태도를 바꾸기 위해 상당 기간 동안 긴 항해 여행을 시키는 일이었다. 이로써 파리의 병적 생활을 청산하고 아울러 항해를 함으로써 호연지기를 기르고 외국의 풍물에도 접하게 하자는 뜻이었다. 이 계획에 따라 보들레르는 1841년 5월 9일 보르도를 떠나 캘커타로 향하는 배를 탄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도중에 배는 큰 풍랑을 만나 동인도양의 모리스 섬에 기착하게 되었고 보들레르는 더 이상 항해하기를 완강히 거부했다. 결국 그해 11월 4일 프랑스로 오는 배를 타고 되돌아오게 되는데 이로써 일대 여행 계획은 좌절되었으나 이 수개월 동안의 항해와 남국 일대 열대 지방의 체재는 그에게 이국 풍물과 정서를 담은 많은 시를 남기게 하였다.   항해에서 돌아온 보들레르는 건전하고 성실해진 것이 아니라 전보다 더욱 반사회적이며 부도덕하게 되었다. 21세의 성년이 된 그는 아버지에게 자기 몫의 유산을 요구하여 당시로는 막대한 75,000 프랑의 유산을 받게 되자 그가 동경하던 댄디(dandy,멋장이)의 호화 생활을 즐긴다. 유명한 피모당 호텔에 묵으면서 귀족 같은 시치스러운 생활을 하면서 음주-마약 복용 등을 일삼아 급기야는 성병-두뇌 동맥의 결함증이 생겨나고, 혼혈의 정부 쟌느 뒤발과의 파란 많은 치정 생활은 그의 정신과 육체를 차츰 마멸시킨다.  이에 당황한 그의 의부는 법정에 제소하여 그를 금치산자로 만들어 버렸다. 이 결과 보들레르의 생활은 완전히 궁핍에 빠졌고, 이 고고한 시인은 병과 가난과 싸우며 미술 비평-음악론-번역 등으로 겨우 생활을 유지하여 가며 자존심을 달랬다.  36세 때에 이라는 시집을 출판하였다. 당시 이미 문단의 대가인 빅토르 위고는 이 시집을 새로운 전율을 가져왔다고 격찬했는데, 경찰은 풍속 문란이라는 죄목으로 3백 프랑의 벌금과 6편의 시를 삭제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 사건으로 그의 이름은 유명해졌으나 심한 생활고와 그의 정신적 육체적 고통은 깊어만 갔다. 40세에 이미 그는 심신이 쇠잔한 노인이 되었다. 미국의 괴기 작가 에드가 알렌 포우의 작품 번역 등에 몰두하다 1864년 벨기에의 브뤼셀로 간다. 거기서 조용한 생활을 하며 문학 강의도 하고 자기 작품의 전집을 내기 위한 정리 작업을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신경 질환으로 쓰러지게 되어 급거 파리로 옮겨졌으나 전신 마비와 실어증으로 약 1년 동안 신음하다 1867년 여름 외로운 어머니의 품에 안겨 생을 끝냈다.    보들레르는 그의 단 하나의 시집, 으로 존재되고 기억된다. 이 시집은 출판되자 풍속 문란이란 죄명으로 기소 처벌되고 당시 비평계의 권위자인 브륀티에르는 "이 시집에서는 부도덕과 광기 외에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다"고 혹평했다. 그러나 이 한 권의 시집은 후세에 전세계에서 읽혀지고 감동을 주어 시인들의 성전(聖典)이 되었다.  무엇때문에 사람들은 그의 시를 읽고 공감하고 혹은 비난 혹은 감격하는가? 그것은 그가 근대 문학사상 처음으로 자기의 고백을 통하여 인간의 죄악, 비참, 슬픔, 외로움, 소망을 정직하고 성실하게 나타내고 고발한 까닭이 아닐까? 그는 인간이 쓴 가면과 가식을 벗겨 버리고 적나나하게 인간 상황과 그 내면 세계를 깊이 파헤치고 조명한 까닭이 아닐까? 이런 뜻에서 그의 을 단테의 에 비하는 사람도 있다. 단테가 내세의 지옥과 연옥을 탐색한 것과 같이, 보들레르는 인간 심중의 지옥으로 사람을 인도한다는 뜻에서이다. 하여튼 그는 인간의 내면 세계를 탐사하기 위하여 인간의 숨겨진 심층과 치부, 사회 질서와 도덕의 터부를 파헤쳤다. 많은 시인묵객들이 그들의 시상(詩想)을 자연이나 사랑-예술의 꽃동산에서 찾을 때 보들레르는 악의 늪에서 미를 얻으려고 했고 현실이라는 거름통에서 금을 캐내려고 했다. 이러한 시인의 기도는 당시의 사회와 시단에서는 가히 혁명적이며 충격적이며 광기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러나 보들레르는 이 시집 가운데 타락하고 추잡하고 절망적인 인간 상황만을 담은 것은 아니다. 외롭고 비참한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여 허무로부터의 탈출을 기도하는 노력, 동물로 떨어지려는 욕망에 항거하여 이상을 향해 올라가려는 인간의 본질적 갈구가 일면 청순한 샘물같이 흐르고 있다.  보들레르는 그의 난맥과도 같고 오욕에 찬 생활 가운데서도 일생 높은 기품을 잃지 않았고, 영혼의 순결과 고매한 정신적 이상을 추구한 노력은 비장한 바가 있다. 이러한 그의 사상, 심정, 종교, 분노를, 그는 시인으로서 그의 독특한 감성과 풍부한 상상과 암시로 나타내고 있다. 특히 가히 마술적이라고 할 언어와 음률로 새로운 세계, 신비로운 분위기, 전율적인 감각을 창조함으로써 그는 프랑스 시 가운데 깊고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였다. 이 점이 오늘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그의 시를 찾고 공감하게 하는 까닭이 아닌가 생각한다.  은 초판에는 101편의 시가 들어 있었으나 후에는 151편으로 늘어났다. 이 시집은 6장으로 나뉘어 있는데, 1. 우수와 이상, 2. 파리 풍경, 3. 술, 4. 악의 꽃, 5. 반항, 6. 죽음 등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시인은 이 시집을 자신의 시학-철학-종교를 담는 하나의 체계적인 건축물을 구상한 듯 하나 그렇게 논리적이거나 체계적이지는 않다. 에서는 형식적으로나 내용적으로 가지각색의 서로 모순되는 것 같은 이질적인 시들이 섞여 있다.   앙트완느와 크레오파트르 / 에레미아     둘은 함께 높은 망루에서 바라다보고 있었다 이집트는 숨막히는 하늘 아래 잠들고 나일 강은 검은 삼각주를 쪼개 가며 뷰바스트 혹은 사이스를 향해 기름 같은 물결을 굴려    간다   이 로마인은 이제 어린애를 잠재우는 한낱 포로 병사 그가 두 손으로 포옹한 요염한 육체가 사랑의 승리자인 그의 가슴 위에 휘어져 쓰러짐을 무거운 갑옷 아래서도 느끼었다   검은 머리칼 사이로 보이는 창백한 얼굴을 돌려 그녀는 입술과 맑은 눈동자를 강렬한 향수에 도취된 남자에게 내맡겼다.   여인 위에 몸을 굽힌 열에 뜬 이 통수(統帥)는 금점(金點)들이 별같이 박힌 그녀의 두 큰 눈동자 속에 망망한 바다와 그 물 위를 달아나는 로마의 병선(兵船)들   을 보았다.   *앙트완느는 유명한 로마의 장군 아토니우스의 불어 표기다. 시이저가 죽은 뒤 그는 옥타비우스와 함께 로마 제국을 삼등분하였다. 이 때 앙트완느는 도양 지방(지금의 중동)을 맡고 옥타비우스의 누이동생을 아내로 삼았다. 그러나 동방으로 간 앙트완느는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에게 매혹되어 여왕의 야심에 좇아 이집트를 중심으로 동방 제국을 세우려 하였다. 이는 로마의 국익에 배반되는 일이므로 옥타비우스는 군선을 이끌고 동방 원정에 나서 악티움 해전에서 앙트완느와 클레오파트라의 연합 함대를 궤멸시킨다. 그 결과 알렉산드리아에 포위된 앙트완느는 자살하고 클레오파트라는 독사에 물리게 하여 자결한다는 역사는 널리 알려진 이야기. 이 시는 다가오는 악티음 해전의 전야(前夜)를 나타내고 있다. 앙트완느 통수와 클레오파트라여왕은 지금 사랑의 절정에 있으나 그들의 앞날에 대하여 불안과 절망감을 느끼고 있는 듯 하다 로마의 통수는 사랑하는 여왕의 눈동자, 금점이 가득히 박힌 눈 속에서 망망한 바다 위를 도주하는 무수한 자신의 군선들을 봄으로써 자신의 패망과 사랑의 비극적 종말을 예견하고 있다.     정복자들 / 에레디아   거대한 매가 자라난 소굴을 떠나 날듯 이제 잔병(殘兵)들과 명장(名將)들은 도도하나 비참한 생   활에 지쳐 영웅적이며 난폭한 꿈에 취하여 모게르의 팔로스*를 떠난다.   이들은 지팡고* 나라의 아득한 광맥 속에서 익고 있는 신기한 금속을 정복하러 가는 길 등에서 부는 계절풍은 서방 세계의 신비로운 해안을 향해 그들의 범선 돛대를 휘게 한다.   매일 저녁, 웅대한 다음 날을 바라는 이들의 꿈은, 열대 바닷물의 인광(燐光)을 발하는 하늘색 물빛을 금빛 신기루로 변화시켰다;   혹은 흰 카라벨 범선의 뱃머리에 기대어 이들은 대양(大洋) 깊은 곳으로부터 미지의 하늘로 오르는 새로운 별들을 바라다보는 것이었다.   *팔로스: 콜롬버스는 1492년 그의 최초의 대륙 발견 항해를 스페인의 안달루시아 지방 모세르 근처의 항구 팔로스에서 떠났다. *지팡고: 일본에 대한 중국식 이름 Zippan Khou가 와전된 것.     호세-마리아 데 에레디아(1842~1905): 호세-마리 데 에레디아는 원래 스페인의 콘키스타도레스의 후예로 스페인계 아버지와 프랑스계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다. 그러나 어려서 프랑스로 이주하여 상리스에서 중고등 학교를 마치고 파리에 올라와 고문서 대학(古文書大學)을 수료했다. 이때부터 시단의 고답파의 거장, 르콩트 드 릴르를 스승으로 또 친구로 삼고 그가 주제하는 문학 모임이나 그가 주관하는 잡지의 가장 열렬하고 성실한 지지자이며 협력자이었다. 또한 젊은 시인 앙리 드레니에의 장인(丈人)이 되기도 하였다.  고문서 학교를 나온 그는 유명한 아르스날 도서관에서 일하며 옛날의 기록, 고서(古書), 판화, 유물 등을 관리하며 그 가운데 고대의 이국에 대한 풍부한 시상(詩想)을 얻었다.  그는 극히 과작(寡作)의 시인으로 이따금 시 한 편씩을 잡지 등에 발표하였는데, 1893년 그가 51세 될 때 비로소 한 권의 시집으로 출판되었다. 이 시인의 시집은 이 한 권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러나 시인으로서의 그의 사명과 명성은 이것만으로 족하였다. 라는 이름의 이 시집에는 118편의 소네트가 들어 있다. 내용은 고대 그리스-로마-동양-스페인-브르타뉴 지방 등의 역사와 인물-풍물들을 주제로 한 것이다. 시인은 이러한 주제들을 거의 완벽한 기교와 회화적인 수법으로 고대와 이국적인 정취를 간결하면서도 생생하게 표현하고 아름다운 또는 극적인 장면을 그림과 조각과 같이 완전히 재현시켰다. 이러한그림과 조각의 시는 풍부한 음률과 깎고 다듬은 형식과 잘 조화되어 그의 시집은 단 한 권이나 프랑스 문학의 하나의 빛나는 보석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새들의 죽음 / 프랑스와 코페     저녁, 난롯가에 앉아 나는 참으로 여러 번 지금 숲속 어느 곳에 있을 어떤 새의 죽음을 생각했다. 지루한 겨울, 구슬픈 날이 계속되는 동안 가엾은 빈 새 둥지들, 내버려진 둥지들은 무쇠 잿빛 하늘 아래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아, 얼마나 많은 새들이 겨울에 죽어갈 것인가! 그러나 오랑캐꽃 피는 계절이 돌아올 때 우리가 뛰어다닐 4월의 잔디 위에 새들의 가냘픈 뼈들은 볼 수 없으리라 새들은 죽기 위해 숨는 것일까?     향기 / 프랑스와 코페     향기의 쾌락! 그렇다, 모든 냄새는 마술사다. 내가 저녁때 뜨뜻해진 오렌지 껍질을 벗기면 나는 극장과 그 깊은 무대 장치를 상상한다; 내가 장작불을 지필 때면 나는 겨울 숲속에 사냥꾼들이 뿔나팔을 불며 멎는 모습을 본다. 심지어 악취나는 검은 아스팔트가 가마솥 주위에 내뿜는 연기 속을 지날 때 나는 마치 역청(瀝靑) 향기 나는 어느 부둣가에 서서 보라빛 바다의 금강석 물결 사이를 달려오는 흰 쌍돛배를 바라보는 착각이 든다.     영원히 / 프랑스와 코페     "영원히!"라고 그대는 말한다. 이마를 내 어깨 위에 대고, 그러나 우리는 헤어질 것이다. 이것이 운명이다. 우리들 중 하나가 먼저 죽음에 붙잡혀 주목(朱木)이나 버드나무 아래 잠자러 갈 것이다.   부두를 한가로이 거니는 이 늙은 수부(水夫)는 수십 번 쌍돛배가 깃발로 장식되어 돌아오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어느 날 그 빼는 북쪽을 향해 떠났다. 그 후 감감 무소식, 배는 북극 얼음장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봄바람이 불면 우리 집 처마 끝에 철새들이 돌아왔다. 수십 년 동안을; 그러나 이번 여름, 둥지에는 그 제비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나의 애인이여, 그대는 내게 영원한 사랑을 맹세한다; 그러나 나는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 이별을 생각한다. 어찌 죽을 입술 위에 "영원히"라는 말을 올리는 가?     프랑스와 코페(1842~1898) : 프랑스와 코페는 프랑스 서민의 시인, 대중적 시인으로 꼽히어 한때 그의 시는 프랑스 시의 본보기로 교과서에 실리고 프랑스 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 특히 일본이나 우리 나라에서도 많은 독자들로부터 사랑을 받은 시인이다.  그는 파리 변두리 태생으로 거의 한 번도 파리를 떠나지 않았다는 진짜 파리지엥(Parisien)이다.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 아버지를 잃고 생활고로 학교도 중단하고 작은 회사의 사무원, 관청의 말단 직원, 후에는 국회 상원의 도서관 사서, 프랑스 국립 극장의 문서 보관원 등으로 이라며 시와 연극, 소설 등을 썼다.  그도 처음에는 당시 유행하던 파르나스(고답적) 풍의 시를 써 보았으나 차츰 자기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과 그들의 생활에 애정과 애착을 가지게 되어 그 후부터는 이들의 생활을 주제로 한 시를 쓰게 되었다. 그는 시집 , 등에서 그 자신이나 서민들의 가장 평범하고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살고 생각하고 느끼는 것을 단순하고 평이한 필치로 그리고 있다. 그의 시의 매력은 일상다반사를 보는 그의 우아하고 따스한 눈, 소위 친밀한 사실주의에 있다. 또한 때에 따라서는 신랄한 풍자 정신도 잊지 않는 골(Gaule) 정신에 있다.  따라서 그의 시는 가장 널리 읽혀지고 가장 광범한 독자층으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42세 때(1884)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이 된 것도 이를 말해 주고 있다. 아나톨 프랑세즈는 그를 평하여 "코페는 참되고 자연스러운 시인이다. 그런 면에서 그는 아주 독특한 시인이다. 그 까닭은 자연스러움은 예술 가운데 가장 귀한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그의 시는 통속시라는 평도 받았다. 그러나 그의 시는 진실되기 때문에 감동을 주었고 또 독자에게 사랑을 받았다.  코페는 시인으로서뿐 아니라 극작가-소설가로서도 유명했다. 그의 만년 프랑스 사회를 뒤흔든 드레퓌스 사건 때는 프랑스 조국 연맹이라는 극우 단체에 가담하여 반(反) 드레프스 파로 싸웠다. 당시의 문인-지식인들 대부분이 드레프스 옹호파였으므로 이로 인해 그는 많은 비방과 오해를 받았다. 그의 최후의 해는 고통스러운 병으로 고생했으나 친구 쟝 리시팽을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으로 선출시키기 위하여 아픈 몸을 이끌고 아카데미 프랑세즈에 나가 투표에 참가한 우정 깊은 친구이기도 하였다. 그 후 몇 주일 후에 그는 파리의 자택에서 56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소네트 / 말라르메   순결하고 생기 넘치며 아름다운 오늘이야말로 그의 취한 날개를 한 번 쳐서 달아나지 못한 비상(飛翔)들의 투명한 얼음 덩어리가 흰 서리 아래 배회하는 이 얼어 붙고, 잊혀진 호수를 깨   뜨려 줄 것인가!   지난 날의 한 백조는 회상한다. 그가 바로 황량한 겨울의 우수(憂愁)가 찬란할 때 자기가 살아야 할 곳을 노래하지 않았기에 화려한 생물이지만 이 구속에서 벗어날 희망이 없는 자임을.   그는 온 목을 흔들어 떨쳐 버릴 것이다. 공간이, 원치 않는 새에게 억지로 과하는 이 백색의 임   종의 고뇌는, 그러나 그의 날개를 붙잡는 대지에 대한 공포는 없앨 수   없다.   그는 순결한 빛이 이 장소에 부착시키는 환영(幻影)이   되어 백조는 무익한 유배 속에서 그가 스스로 감싸는 경멸의 차가운 꿈을 안고 적연부동(寂然不動)이다.   * 백조는 그 아름다운 자태와 흰 빛깔로 예부터 많은 전설을 낳게 했다. 특히 그 새가 죽기 전에 아름다운 노래를 부른다는 이야기는 백조와 순수한 시인을 동일시하는 풍조가 생기게 하였다. 이 소네트는 백조를 빌어 말라르메 시인 자신의 고뇌와 심경을 읊은 것이다. 이 시는 말라르메의 시 중 언어와 음악성에 있어서 두드러지게 아름다운 시일 뿐 아니라 그의 시풍(詩風)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 시의 하나로 꼽힌다.    차가운 기운이 넘치는 청명한 겨울날, 우리 눈앞에는 흰 서리롸 얼음 덩어리가 배회하는 황량한 풍경이 펼쳐진다. 얼어 붙은 호수에는 백조 한 마리가 얼음에 갇혀 이를 벗어나려고 허우적거린다. 날개를 한 번 쳐서 천상(天上)으로 향하고 싶으나 이 구속에서 빠저나갈 희망이 없다. 또한 이미 여러 번 실패를 하였다. 그에게는 순결하고 고독한 이상만이 있을 뿐 현세나 현실과의 타협이 없기 때문이다. 현세(공간)가 그에게 부과하는 종말의 고뇌는 뿌리칠 수 있으나 결국 백조는 얼음의 호수 속에 하나의 하얀 환상이 되어 부동의 자세로 조용히 죽어 간다. 그의 마음 속에 현실과 자신에 대한 부정(否定)과 멸시를 품은 채---    이것이 이 시의 내용이며 개요이다. 의미상, 백조는 물론 시인 자신이라는 데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것은 말라르메가 자주 시적 무력감에 빠졌고 백조가 얼음에 갇혀 벗어나지 못하는 것과 같이 그 자신도 전혀 시를 쓰지 못하던 시기가 있어 자주 고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의 순수하고 난삽한 시 정신은 백조와 같이 순결하고 아름다우나 일반 독자나 사람에게는 이해되지 않고, 그의 생활도 지극히 평범하고 가난한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어 자연히 무익한 유배를 택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러한 유배를 죽어가는 백조와 같이 차가운 경멸감을 가지고 감수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순수시를 지향하는 말라르메는 이 시로 위와 같은 정경(情景)이나 시인의 심경-사상-도덕을 나타내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시인으로서 상징-암시-연상을 통한 추상적 이미지와 순수한 언어가 가지는 음악성을 배치-조화시킴으로써 미적 세계와 시적인 미를 창출하고자 한 것이다. 이 때에 언어는 그가 가지는 뜻이나 문법적 기능보다 악보와 같이 음(音) 부호의 구실을 많이 한다고 보겠다. 따라서 이 시의 바른 감상을 위해서는 논리적 분석보다 음과 리듬의 연구가 더욱 필요하다.  우선 이 "소네트"는 전 14행이 모두 (i)나 (ui)음으로 끝나는 데 주목하여야 한다. 또한 이 (i)음은 마지막 3행시절의 끝 두 절 안에서도 반복된다. 그런데 알베르 티보데니 그 외의 여러 비평가에 의하면 (i)음은 이 시에서 방대하고 단조로운 흰 공간과 추위를 환기시킨다고 한다. 그러므로 이 시를 장조(長調)의 소네트라고도 부른다. 그 외에도 첫쩨와 둘째 4행시절에서의 장중한 (v)음의 호응, 그리고 전체 시 위에 떠 있는 환상적인 신령스러운 기운, 추상적 언어에 의한 최후의 백조(Cygne)를 대문자로 써서 하늘의 백조 별자리를 환기시킨 점 등등으로 이 시는 말라르메의 시학의 표본을 이루고 있다.   창(窓) / 말라르메   음침한 병실과 허름한 흰색 커튼을 쫓아 향불 연기가 빈 벽에 지루하게 달린 큰 십자가상을 향해 올라가며 풍기는 빈사의 병자는 늙은 허리를 펴,   몸을 이끌고 썩은 육체를 따스하게 하려기보다 돌 위에 비치는 햇빛을 보기 위해 창가로 가 흰 수염과 여윈 얼굴의 뼈를 아름답고 맑은 햇살이 들이쬐는 유리창에 대고,   그리하여 열띠고 푸른 창공에 허기진 입으로 따스한 금빛 유리창에 오랫동안쓴 입술을 댐으로써 흔적을   묻힌다. 마치 그의 입이 젊은 시절 그의 보물인양 옛날 한때 순결했던 한 살갗을 들이마시려 하였듯이,   도취 속에 그는 살았다. 임종시의 성유(聖油)의 두려움도 탕약(湯藥)도 벽시계도 피할 수 없는 병상도 기침도 잊고; 그리하여 저녁 노을이 기왓장 사이에서 피를 흘릴 때 그의 눈은 빛으로 가득 찬 지평선 위에,   백조같이 아름다운 황금색의 범선(帆船)들을 본다. 이들은 보라와 향기의 강 위에 떠서 추억 가득한 한가   로움 속에 현란한 황갈색의 반짝이는 선(線)들을 본다. 이들은 보라와 향기의 강 위에 떠서 추억을 가득 실은 한가   로움 속에 현란한 황갈색의 반짝이는 선(線)들을 흔들면서 잠자고 있었다.   이리하여 냉혹한 영혼의 소유자인 인간 단지 식욕만으로 먹는 행복 속에 뒹굴며 자기 자식들에게 젖을 물리는 아내에게 바치려고 이 오물(汚物)을 찾아 광분하는 인간이 끔찍해,   나는 도망친다. 그리고 나는 생(生)에 등을 돌리는 모든 창문가에 매달린다. 그리하여 영원한 이슬에 씻기고 무한의 청결한 아침이 금빛   으로 물들이는 창문 유리알 속에 축복받은 내가 비춰지고   내가 천사임을 본다! 그리고 나는 죽는다, 유리창이 예술이기를, 신비이기를-- 그리하여 나는 내 꿈을 면류관으로 삼고 미(美)가 꽃피는 전생의 하늘에서 재생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어찌하랴! 속세가 주인임을: 이 고정 관념은 때로 안전한 내 은신처까지 쫓아와 나를 메스껍게 하고 어리석음의 불결한 구토는 나로 하여금 창공 앞에서 코를 막게 한다.   오오, 인생의 고뇌를 아는 나는 괴물에게 멸시받는 수정문(水晶門)을 깨뜨리고 들어가 털 없는 내 두 날개를 펴 달아날 방법이 있는 건가? -영원한 시간 동안 떨어질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말라르메는 중등 학교 영어 교사 자격증을 얻기 위해 1862년 11월 부터 1년간 영국에 체재하였다. 이 시는 이 기간에 쓰여진 것이다. 따라서 이 작품은 그의 극히 초기의 것으로 그가 21세 때의 창작이다. 그는 이 시와 그 외 몇 편의 작품을 1863년 6월 영국 런던에서 그의 친구이자 후견인인 카잘리스에게 보냈다.  그의 영국 체재는 불행한 것으로 그가 말한 바대로 고뇌-절망-가난에다 장차 그이 아내가 될 마리 제라르와의 사랑의 갈등이 뒤범벅이 된 시기였다. 또 그가 런던에 도착한 직후 발병하여 병상에 누운 일도 있다. 이 경험이 작품 "창"에 나타나는 음울한 병실과 빈사의 병자를 상상케 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 시의 줄거리는 속세와 현실 세계를 혐오하는 병자가 병상에서 일어나 창가로 가 창문 유리를 통해 빛나고 아름다운 바깥 세계를 몽상한다. 이 때 유리창은 그를 병실(현실)에 가두어 두는 벽인 동시에 열려진 세계(이상)로 통하는 문이요 길의 상징이다. 병자의 욕망은 일격으로 유리창을 깨뜨리고 열린 세계로 자유로이 비상하려고 하나 결국 자신의 무력(無力)으로 갇혀진 세계의 운명을 감수한다는 것이다. 현실과 이상의 갈등과 자신의 무력감이라는 이 주제는 이후, "창공(1884)"과 위에 수록된 백조의 "소네트" 등으로 이어진다.     목신(牧神)의 오후(발췌) / 말라르메     목가   목신: 나는 이 요정들을 영원하게 하고 싶다.                                그녀들의 연분홍 살빛은 너무 깨끗하여, 무성한 잠에 졸고 있는 대기 속을 떠돈다.                            내가 사랑했던 것은 꿈이었나? 옛 밤에 축적된 내 의혹은 많은 작은 나뭇가지 같이 끝나 버렸는데 이들이 그대로 진정한 숲으로 남아 있다는 사실은 오호라! 나 혼자만이 장미꽃들에 대한 상상적 유린을 승리로 돌리    고 있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곰곰이 생각해 보자----                 그대가 쉬지 않고 이야기하는 여인들이란 그대의 상상적 감각이 원한 것의 형상이라면! 목신이여, 그 환상은 가장 정숙한 여인의 푸르고 찬 눈에서 나오듯 울고 있는 샘물 소리에서도 나온다 그러나 한숨에 싸인 다른 여인에 대해선 반대로 그대 가슴털에 스치는 낮의 더운 미풍에서라고 할 것인가? 아니다! 더위는 부동(不動)의 권태로운 무력감으로 살아나려는 신선한 아침의 목을 죄고 속삭이는 물이란 단지 화음(和音)으로 젖은 숲 위에 내리는 내 피리 소리뿐이요, 다만 한 줄기 바람이란 소리를 메마른 빗속으로 흩뜨려 버리기도 전에 피리의 두 도관 밖으로 나오자마자 날라 버리는 숨결뿐, 이 바람은 주름 하나 없이 평평한 지평선상에 하늘로 되돌아가는 영감(靈感)의 눈에 보이는 평온하며 인공적인 숨결이다.   * 오, 태양빛과 겨루려는 내 헛된 욕망이 유린하는 섬광(閃光)의 꽃다발 아래 묵묵히 누운 고요한 늪의 시칠리아 기슭이여, 이야기하라 "나는 이 곳에서 숙련으로 길들인 빈 갈대를 꺾고 있었다. 이 때 포도 덩쿨을 샘들 위에 드리우고 있는 아득히 보이는 초록의 녹색 금빛 위에 쉬고 있는 생물(生物)의 흰 모습이 잔물결친다. 그리고 풀피리가 살아나는 느린 서곡(序曲)에 이 백조의 무리, 아니! 요정들의 무리는 혹은 달아나고 혹은 물 속으로 뛰어든다----"                 만물은 무력하게 황갈색 시간 속에 타고 '라'의 화음을 찾는 연주자가 바라던 너무나 많     은 결혼이 어떠한 계략으로 일제히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는지 그 때 나는 고대의 빛 물결 아래 홀로 우뚝 서 나의 첫 정열에 눈뜨리라 백합이여! 순결함에 있어 나는 너희 모두들 중 하나이다.   저들의 입술이 퍼뜨리는 이 달콤하고 실없는 일 속삭여 사랑의 배신자를 안심시키는 이 입맞춤과는 달리 완전무결하게 순결한 내 가슴은 어느 고귀한 이(齒)가 물어 생긴 신비로운 상처의 흔적을     증언한다; 그러나 좋다! 이러한 신비로운 흔적은 그의 마음을 들어 줄     친구로 창공 아래서 굵은 두 개의 갈대를 골랐다. 갈대는 빰의 동요를 자신에게 돌려 긴 독주(獨奏)로 주위의 아름다움과 우리들의 소박한 노래를 거짓 혼동케 함으로써 주위의 아름다움을 즐겁게 해 주었다고 꿈꾼다 또 갈대는 사랑의 노래를 힘껏 높여서 하나의 낭랑하고 공허하고 단조로운 선율이 내가 눈 감고 쫓는 등과 순결한 허리의 통상적인 환상을 사라져 흩어지게 한다고 꿈꾼다.   도주(挑走)의 악기여, 오 심술궂은 신(神)의 피리여. 네가 나를 기다리는 호수에서 다시 꽃피어나도록 하라; 나는 내 자랑스런 목소리로 여신들의 이야기를 오랫동안    말하리라 그리고 우상 숭배자들의 그림으로 저들의 어두운 부분에서 또 다시 허리끈을 풀리라; 그리하여 내가 거짓으로 위장에 물리쳤던 미련을 떨쳐 버    리기 위해 포도알들의 광명을 빨았을 때 웃으며 나는 그 빈 포도 송이를 여름 하늘에 쳐들고 빛나는 껍질 속에 내 숨결을 불어넣으면서 도취를 갈망하며 저녁때까지 나는 그 속을 투사한다.   * 위의 시는 "목신의 오후"의 일부 발췌시이다. 이 시는 그가 일생 탐구한 절대시(絶對詩)가 어떤 것인지 보이기 위한 표본이라고 할 수 있다. 프랑스 문학도들에게도 난해하고 신비로운 이 시의 감상은 각자의 능력과 노력에 맡길 수 밖에 없다. 이 시를 이해-감상하기 위해서는 차라리 드뷔시의 교향시 "목신의 오후 서곡"을 듣는 것이 더 좋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그동안 많은 학자-연구가-시인들의 계속적인 연구와 해설, 주석들로 인해 과거보다는 훨씬 시에 대한 이해도 분명해지고 시인의 의도도 밝혀졌으나 시에 대한 해석과 주석도 너무 구구하여 어떤 것이 정통적이며 정확하다고 단정할 수 없는 실정이다.  이러한 난해-난삽의 평에도 불구하고 이 시는 말라르메의 시 중 가장 널리 알려져 있고 또 그의 대표작으로 통하고 있다. 또한 이 시는 그가 새롭고 아름다운 시를 얻기 위해 주야로 악전고투하여 쓴 것이며, 10년 동안 닦은 각고(刻䇢)의 결정체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독창적인 시가 그의 시를 늘 게재해 오던 제 3집에 편짐위원회, 특히 아나톨 프랑스로부터 거부를 당하였다. 그 이유는 "만일 이 작품이 게재되면 독자들로부터 항의를 받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목신의 오후"는 그 다음 해 단행본으로 당대 유명한 화가 마네의 목판화를 곁들인 호화판으로 출판되어 다시금 세인의 주목을 끌었다. 그 후 마네에 이어 마티스-피카소 등의 화가들이 시를 주제로 그림을 그렸고, 1894년에는 말라르메 찬양가이던 드뷔시가 이 시를 주제로 한 교향시를 써 유명해졌다. 더우기 1912년에는 러시아의 무용가 니진스키가 발레로 안무-상연함으로써 이 시는 전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이 목가는 18세기 프랑스 화단의 거장인 부셰의 그림에서, 또는 그의 선배 시인인 방빌의 한 연극에서 시상(詩想)을 얻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하나의 출발점, 대강의 줄거리에 지나지 않고 그 내용이나 분위기-상징은 전적으로 말라르메의 꿈과 환상으로 만들어진 세계이다. 그는 말했다. "아름다움이란 이 세상 것이 아니며 완전히 만들어 내야 한다. 꿈만이 아름다움에 도달할 수 있다"고.  이 시의 줄거리를 말한다면 대략 다음과 같다.  전반부: 목신이 잠에서 깨어난다. 간밤의 정사(情事)의 기억이 떠오른다. 그는 스스로 묻는다. 그가 본 못가에서 미역을 감던 이 요정들은 실제의 인물이던가 혹은 그가 꿈을 꾸었던가? 그의 기억 속에 두 요정이 떠오른다. 하나는 정숙하고 차갑고, 다른 하나는 한숨만 쉬는 요정이었다. 그는 이 요정들의 육체를 범했던가? 그러나 그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자연 가운데 혼자 있었다. 그는 피리를 만들어 불며 기억을 더듬는다. 혹은 그들의 존재를 의심도 하고 혹은 사실을 낱낱이 회상도 하며--- 그러나 그는 피리를 불음으로써 사랑의 신비로운 잇자국을 잊어버리고 영감(靈感)의 기쁨을 맛본다.   참고로 여기 싣지 않은 후반부의 개요를 말하면 다음과 같다.  후반부: 이 영감은 다시 목신이 욕정을 일으킨 장면을 상세히 보여 준다. 몸이 얽힌 두 요정이 잠들어 있다. 목신은 이 들을 하나씩 겁탈한다. 그러자 두 요정은 서로 떨어져 도망쳐 버린다. 허망에 빠진 그에게 또 다른 요정 비너스가 에트나 산에 나타난다. 그는 사랑의 여신을 포옹한다. 그러나 이 또한 환상으로 그에게서 사라진다. 이제 목신은 뜨거운 오후의 열기 속에 굴복하여 목마른 모래 위에서 다시 잠이 든다. 꿈에서 님프들을 다시 만나 보기를 바라면서---  이 시에 대한 해설도 구구하다. 말라르메에 대한 명쾌한 해설가 피튀로는 이 시는 우아한 상징 속에 격렬한 에로티시즘을 감추고 있다고 했고, 어떤 학자는 이 시는 말라르메의 집념인 사랑과 시, 욕정과 영감, 꿈과 현실의 갈등을 상징한다고 했다. 그러나 말라르메는 시가 어떤 사상이나 도덕, 또는 감정을 전달하는데 대한 극도의 혐오감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이 시에서는 단지 목신의 전설을 빌어 감각적이며 우아하고 몽환적인 세계의 분위기를 나타내고자 하였을 것이다. 이것이 짙은 육체의 향기와 원색적인 이미지, 추상적이면서도 관능적인 언어로 표현되어 음악과 회화와 시의 종합적인 공예 작품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순수시의 길에서 이 시만큼 멀리 간 것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스테판 말라르메(1842~1989): 말라르메는 문학 사조에서 상징파에 속하는 시인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그는 상징주의적인 시를 썼다기보다 순수시, 시의 이상적 형태를 위해 일생 생각하고 찾고 쓴, 시의 수도사(修道士)와 같은 존재이다. 그러므로 그의 양적으로 많지 않은(단 한 권의 시집) 시는 난해라는 장애와 비난에도 불구하고 많은 추앙자를 내었다. 그가 죽은 지 100여 년이 된 지금에도 계속 많은 추종자들이 배출되어 그의 작품을 연구-해석하고 그의 교리에 따라 시를 짓고 있다.   말라르메는 파리 태생으로 하급 공무원 가정 출신이다. 5살 때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는 재혼하여 일종의 고아와 같은 처지로 외할아버지-외할머니의 손 아래에서 자라났다. 학교 시절부터 심약한 그는 고독하였으며 야유하는 동료들을 피하여 혼자 몽상과 노트에 시를 쓰는 것을 좋아하였다. 성인이 된 말라르메는 시골 중학교 영어 교사가 되어 이후 일생 동안 계속(약 30년 동안) 주로 지방 중고등 학교의 영어 교사로 빛 없는 평범하고 가난한 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교사란 직업은 생활 수단에 지나지 않았고 그의 참다운 생은 시에 대한 사색과 탐구와 각고로 일관했다.  그가 시를 써서 발표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경부터인데 때때로 산문시나 소네트를 문학 잡지 등에 기고하였다. 1866년 라는 문학지에 10편을 써서 발표한 것이 문단의 주목을 끌게 된 계기가 되었다. 세상에 잘 알려진 "창문", "창공", "바다의 미풍" 등이 이 가운데 들어 있다. 이것은 그의 20대 때의 시이다. 그가 그의 온 정력을 다 쏟아 쓴 독창적인 시는 시극(詩劇) "에로디아드(1868)"와 "목신의 오후(1876)"이다. 이 2편의 시는 그가 오랜 시일에 결쳐 갈고 다듬은 것으로 특이한 사상과 정밀한 시적 언어를 구사한 작품으로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두번째 작품은 후일 드뷔시가 같은 이름의 교향시 서곡을 써서 더욱 유명하다. 그러나 이 두 작품은 모두 극히 난해하여 전체적인 이해와 통일된 해석이 불가능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러한 난해성과 과작(寡作)으로 인하여 그는 1884년경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시인이며 그의 작품은 경원시되어 왔다. 그의 유명한 "목신의 오후"는 원래 제 3집에 싣기로 되어 있었으나 심사 위원회에서 부결되어 게재되지 못하였다. 온화하고 누구에게도 친밀한 그도 이 일에는 격분하여 반대의 주동자 아나톨 프랑스에게 일생 원한을 가졌다 한다. 극소수의 시인들만이 그를 추앙했고 말라르메 자신 또한 대중적 명예를 무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1884년 베를렌느가 그의 시인론 가운데 말라르메의 시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를 게재하였고, 같은 해 위스망스의 소설 의 주인공이 말라르메의 시 "에로디아"에 압도되었다는 대목이 널리 전파되어 그의 이름이 갑자기 유명해지고 이어서 젊은 상징파 시인들이 그를 정신적 지도자로 삼았다.  그는 1871년 가을 파리로 올라와 계속 영어 교사로 지내면서 로마 가(街)의 작은 그의 아파트에서 '화요회'를 주재했다. 그의 탁월하고 깊이 있는 시와 예술론에 힘입어 1880년대에는 당신의 유명한 시인과, 문인 라포르그, 레니에, 바래스, 클로델, 지드, 발레리 등이 참석-경청하여 그의 작품 못지않게 시단에 영향을 주었고 그의 이름을 높이었다. 그가 파리에 정주한 시기는 비교적 안정되고 평화로운 시기로 창작에 있어서도 일종의 휴식 시기였다. 생활을 위해서인지 - 등의 어학 서적과, 그리스 신화의 해설팜인 을 출판하였고, "최신 유행"이라는 유행 잡지의 편집을 맡는 등 상당히 세속적인 활동도 하였다.  그러나 말라르메가 또다시 난해무쌍한 장시(長詩)를 쓰기 시작한 것은 1885년 "데 제생트를 위한 산문"을 발표한 이후이다. 데 제생트란 앞서 나온 위망스의 소설 의 주인공이다. 이 시는 시인을 위한, 시인의 이상을 노래한 시의 본보기라고 하나 이 시의 해석은 난해한 일 중의 난해한 일로서 일반인에게는 접근이 단절되어 있다. 그러나 일부 상징주의자와 그의 주석자(註釋者)들에게는 일종의 경서(經書)가 되었다. 만년에 이르러 그는 산문이나 소네트 형식으로 시인의 입장과 사명감 같은 것을 내용으로 한 시를 많이 썼고 또한 보들레르-베를렌느 등의 시인, 바그너-샤반느와 같은 예술가, 바스코 다 가마와 같은 항해사의 업적을 찬양하는 시를 써서 그의 걸작으로 남아 있다.  이제 그의 이름은 프랑스뿐만 아니라 전유럽에 퍼지고 그의 작품도 세계 각국에서 번역-출판되었다. 그의 화요회는 유럽의 가장 유명한 문인 인사들이 참가하는 모임이 되었고 1896년에는 젊은 시인들에 의하여 베를렌느에 뒤이어 시왕(詩王)으로 추대되기도 하였다.  그는 그의 전생애를 통하여 방랑가인 베를렌느나 반항아인 랭보와는 정반대의 성품으로 우아하고 절제 있고 다른 불행한 시인들을 따뜻하게 돌보아 주는(베를렌느도 보호 받은 사람 중 한 사람) 인정 있고 고귀한 성격의 소유자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비록 시론에 있어서 그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에게도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1897년 1월 그의 예술론인 과 같은 해 5월에 국제적인 잡지, 에 시 "한번의 주사위가 우연을 없앨 수는 없으리라"가 발표되어 소수의 그의 동조자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다음 해 9월 8일, 파리 근교 발랑에 있는 시골 집 서재에서 일하던 중 갑자기 후두 경련을 일으켜 다음 날 아침 절명했다. 그의 나의 56세였다.   흰 달빛--- / 베를렌느     흰 달빛 숲속에 환하고; 가지가지마다 한 목소리 흘러나와 나무 그늘 아래로---   오, 사랑하는 이여,   연못은 깊은 거울, 그 속에 검은 버드나무 그림자 드리우고 그 위에 바람이 운다---   자, 지금은 꿈꿀 때,   크고도 부드러운 안식이 달무리진 창공에서 내려오는 듯---   지금은 더없이 그윽한 때.     가을 노래 / 베를렌느     가을날 바이올린의        긴 흐느낌 외로운 가락으로       내 마음 여이나니.   종소리 나면 가슴 꽉 막혀       파리한 얼굴로 지난 날 돌이켜보며       눈물 흘린다.   나도 가버리리라, 모진 바람에       실려 이리저리 떠도는       낙엽과 같이     거리에 비 내리듯--- / 베를렌느                      거리에 조용히 비가 내린다.                         -아르튀르 랭보-   거리에 비 내리듯 내 맘 속에 눈물 내린다. 가슴 속에 스며드는 이 외로움은 무엇이런가?   속삭이는 비 소리는 땅 위에, 지붕 위에! 울적한 이 가슴에는 아, 비의 노래 소리여!   역겨운 내 맘 속에 까닭 없는 눈물 흐른다. 무엇, 배반은 없다고? 이 슬픔은 까닭 없는 것.   사랑도 미움도 없이 내 마음 왜 이다지 아픈지, 이유조차 모르는 일이 가장 괴로운 아픔인 것을!     하나님은 나에게 말씀하셨다 / 베를렌느          1 하나님은 나에게 말씀하셨다. "내 아들아, 나를 사랑하여 야 한다. 너는 보지 않는가? 창에 찔린 내 옆구리, 빛나며 피 흘리는 내 심장, 그리고 너의 죄로 무거운 내 아픈 팔을   그리고 내 두 손을! 그리고 너는 보지 않는가? 십자가와 못들과 담즙과 해면(海綿)1)을,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네게 육(肉)이 지배하는 이 괴로운 세상에서 내 살과 피, 내 말과 목소리만을 사랑하라고 가르친다.   나 자신도 너를 죽기까지 사랑하지 않았던가? 오, 성부(聖父) 안의 내 형제여, 오, 성신(聖神)  가운데 내 아들이여 그리고 나는 기록된 바와 같이 고난을 받지 않았던가?   나는 너의 최후의 고뇌를 흐느껴 울지 않았던가? 그리고 나는 네가 밤마다 흘리는 땀을 흘리지 않았던가? 그런데 한심한 친구여, 그대는 내가 있는 곳을 찾고 있다고?                                                    1)십자가에 달린 예수가 목 마르다고 하자                                                                군사들은 담즙(혹은 초)로 적신 해면을                                                                그의 입에 갖다 대었다는 성경 구절을 말함.              8   아, 주님이시여, 어찌된 일입니까? 아아! 저는 지금 엄 청난 기쁨으로 온통 눈물에 젖어 여기 있습니다, 당신의 목소리는 저에게 기쁨과 동시에 고통을 줍니다. 그리고 악(惡)과 선(善)은 똑같이 저를 끄는 힘을 가졌습     니다.   저는 웃고, 웁니다. 주님의 목소리는 마치 무기를 들고 전장으로 나오라 부르는 나팔 소리와 같습니다. 저는 봅니다, 방패 위에 높이 실려가는 청백(靑白)의 천군 천사(天軍天使)들을 그러나 이 나팔 소리는 저를 자랑스러운 불안으로 이끌어 갑니다.   저는 당신이 저를 택하심에 황홀하여 또한 두렵습니다. 저는 그럴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관용을 압니다. 아! 얼마나 큰 노력이, 그러나 이 얼마나 뜨거운 열정(熱情) 입니까! 그리하여 저는   겸허한 기도에 가득 차 지금 여기 있습니다. 비록 이 크 나큰 심적 동요는 당신의 목소리가 저에게 알려 주신 소망을 아직은 혼동하 고 있어, 저는 떨면서 갈망하고 있습니다.     폴 베를렌느(1844~1896): 베를렌느의 생애는 추문으로 얼룩지고 비참과 불행으로 연속되었다. 한 마디로 의지라는 것이 결여되어 음주와 방랑과 본능적 충동에 휘말려 아내에게는 동성애로 인해 이혼 당하고, 두 번이나 감옥살이를 하였으며, 만년에는 가난과 병으로 계속 자선 병원의 신세를 져야만 했던 인생이었다. 그런데 이 추하게 생긴 용모와 난폭한 성격의 소유자이며 알콜 중독자인 그에게 이렇게 맑고 깨끗하고 부드러운 시가 흘러나왔다는 것은 기이한 신의 배합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폴 베를렌느는 프랑스와 독일의 국경 도시 메츠에서 출생하였다. 외아들로 부모의 지극한 사랑을 받으며 자라났다. 7세 때 부모와 함께 파리로 올라와 당시의 보나파르트 중고등 학교(지금의 콘돌세 중고등 학교)에 입학, 이를 졸업하고 바카로레아(대학 입학 자격 시험)도 합격하였다. 그러나 세상일에 별다른 야심이 없는 그는 대학 진학에는 뜻이 없어 얼마 후 그가 20세 되던 해 그의 아버지 친구의 주선으로 파리 시청의 하급 서기로 들어갔다.  그 후 7년 동안 보불 전쟁이 일어나 그가 그 자리를 물러나기까지, 그는 줄곧 같은 과, 같은 자리, 같은 책상에 앉아 매일 똑같은 일을 되풀이 했다. 그렇다고 불평하거나 전직을 생각한 적도 없었다. 그의 유일의 관심사, 유일의 노력은 마음이 내키면 시를 써 보는 일이었으며 유일의 즐거움은 퇴근 후 카페에 들러 압생트 술을 마시며 친구들과 문학과 세상일을 이야기하는 일이었다. 그의 음주벽은 이 때 이미 상당히 진전되어 그의 부모나 친구들도 걱정할 정도이었다.  그는 시청 재직시 2권의 시집인 과 를 자비로 출판하였다. 이 두 시집이 나왔을 때 위고를 비롯, 일부 문인들의 형식적인 찬사와 격려도 없지 않았으나 그의 진가를 알아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1870년 보불 전쟁이 일어나기 직전 그는 마틸드 모테라는 16세 소녀를 만나 사랑하고 결혼했다. 비록 전쟁의 위험과 불행이 예견되었으나 이로써 베를렌느는 오랜 외로움과 무위 끝에 그의 생애에 밝은 햇빛이 비추는 듯했다. 이 아름다운 심경을 노래한 얄팍한 시집이 이다. 그러나 가정적 불행은 너무나 빨리 찾아왔다. 결혼한 지 1년도 못 되어 랭보라는 소년이 나타났다. 베를렌느 보다 10년이나 아래인 17세의 폭풍 같은 이 천재는 그를 삽시간에 정복하고 지배하였을 뿐 아니라 그의 신혼 가정을 산산이 부셔 버렸다. 드디어 베를렌느는 아내와 가정을 버리고 랭보와 함께 벨기에-영국 등지를 방랑하며 동거 생활을 한다. 그러나 이 두사람 사이에도 갈등이 생긴다. 부뤼셀에서 사소한 일로 베를렌느는 랭보에게 총을 쏘아 부상케 하여 벨기에의 몽스 감옥에서 2년 동안 옥고를 치르게 되었다.  1875년 1월 베를렌느는 어머니만이 홀로 기다리는 옥문을 나섰다. 그는 2년 동안의 옥중 생활로 참회하고 새사람이 되었다. 그는 감방에서 를 써서 아내 마틸드에게 용서를 구하고, 출옥하기 얼마 전에는 신비적인 체험을 통하여 열렬하고 눈물겨운 기독교인이 되었다. 그가 이로부터 훨씬 뒤에(1881) 출판한 시집 와 이외의 몇 편의 작품집은 이 때의 종교적 체험을 순수하고 솔직하게 담은 것이다.  감옥을 나온 그는 새사람이 되어 자기 힘으로 살기 위하여 파리를 떠나 그 후 몇 해 동안 영국과 벨기에의 시골 중학교의 교사로 초빙되어 프랑스어 또는 영어를 가르쳤다. 성실하고 모범적인 선생으로 학생들과 학부형에게 사랑과 존경도 받았다. 한때는 농부가 되어 농원을 일으키려고 노력도 하였다. 그러나 그의 결심도 노력도 허사였다. 그의 마음 속에 도사리고 있던 사탄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어떤 사람은 그 이유로서 그가 내심 극진히 사랑하여 온 아내 마틸드가 그이 호소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법적으로 헤어지게 된 사실을 든다. 여하튼 그는 다시 술을 마시게 되고 본능적 충동과 욕구가 그를 엄습해 그는 하루 아침에 모든 것을 버리고 파리로 올라왔다. 파리에서의 그의 생활은 비참 그것이었다. 팔리지 않는 원고를 들고 떨리는 한 손에 단장을 짚고 한 쪽 다리를 끌려 두 눈을 반쯤 감고 파리의 거리를 헤매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 어려운 동안에도 시작(詩作)과 소설과 평론 등의 작품 활동은 계속한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그 가운데서도 그의 시학(詩學)이 들어 있는 , 그리고 당시 문단에서 무시되거나 참다운 가치가 알려지지 않았던 코르비에르, 빌리에 드 릴르-아당, 말라르메, 랭보와 자기 등 불행한 시인들의 예술적 가치를 논한 그의 시론 은 문단에 큰 파문을 일으켰고 별로 알려지지 않고 잊혔던 이들 시인에 대한 새로운 검토가 활발하게 일어나게 되었다.  1886년, 그를 사랑하고 돕고 보살펴 주던 유일의 보호자인 그의 어머니도 죽었다. 이 헌신적인 어머니를 그는 한 해 전에 목을 졸라 죽게 할 뻔하여 1개월간 감옥살이를 했다. 이제 베를렌느는 혼자 살아가기 위해 더욱 많은 시. 소설, 수기, 잡문 등의 글을 써야 했다. 이 가운데는 그의 시 작품 가운데 걸작이라고 인정되는 "평행하여(1889)"도 들어 있다.  그가 50세가 된 만년에는 그의 시가 차츰 알려지고 젊은 시인들 특히 상징주의와 데카당(퇴페주의)파의 시인들 사이에서 그의 시에 대한 가치가 인정되고 이것은 또 그의 불행하고 파란 많은 생활과 겹쳐 그를 둘러싼 일종의 문학적 전설이 생겨났다. 이제 그는 카페나 병원으로 그를 찾는 많은 젊은 문인들에게 새로운 예술을 가르치는 시단의 소크라테스와 같은 존재가 되었다. 이 젊은 문인들의 추대로 르콩트 드 릴르의 뒤를 이어 '시의 왕'으로 선출되기도 하였다.  1896년 그는 52세로 빈민굴의 하숙방에서 청부의 팔에 안겨 쓸쓸하게 죽었다. 그러나 그의 유해는 운집한 시인, 화가, 문인, 배우 등 그의 숭배자들에 둘러싸여 성대하게 바티뇰 묘지로 갔다.   감각 / 아르튀르 랭보     여름날 푸른 석양 녘에 나는 샛길을 걸어가리라. 밀 이삭에 찔리며 여린 풀을 밟으며 꿈꾸듯 가는 나는 산뜻한 풀잎들을 발에 느끼며 들 바람이 나의 맨머리를 씻게 하리라.   아무 말도 하지 않으리,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리 그러나 맘 속에 솟아오르는 끝없는 사랑 나는 가리라, 멀리 더 멀리 보헤미안처럼 자연 속을 여인과 함께 가듯 행복에 젖어.   *자연스런 이 짧은 시는 그의 초기의 것이며 특별한 설명이 필요없는 것이다. 이 시는 16세의 고등 학교 학생 랭보가 당시 그보다 30세나 위이며 시단의 중견인 방빌에게 보낸 편지 속에 들어 있었다. 그가 늘 좋아하며 마음껏 걸어다니던 들판을 생각하며 쓴 것일까? 혹은 모든 것을 버리고 어디론가 가버리고 싶은 마음의 충동을 느끼며 쓴 것일까? 여하튼 "나는 가리라 멀리 더 멀리"에서 방랑자 랭보의 앞날이 나타나 있다.  우리 나라의 시인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한 구절이 생각나는 시이다.       나는 온 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 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모음(母音)들 / 아르튀르 랭보     A 검정색, E 백색, I 빨강색, U 초록색, O 파랑색; 모    음들이여, 나는 언젠가 너희들의 은밀한 탄생을 말하리라; A, 코를 찌르는 악취 주변에서 잉잉대는 빤짝거리는 파리 떼들의 털난 검은 조끼,   어둠의 만(灣);E, 안개와 텐트의 순진무구함, 오연(傲然)한 빙산(氷山)의 창(槍), 백발의 왕(王), 산형    화(繖形花)의 떨림; I, 붉은 색의 옷, 토한 피, 분노 가운데 아름다운 입술에서 나오는 웃음 또는 참회의 도취; U, 천체(天體)의 순환, 녹색 바다의 신비로운 진동 가축들이 널려 있는 목장의 평화, 넓은 학구적인 이마 위에 연금술이 새겨 놓은 주름살의 평화로움!   O, 이상한, 날카로운 소리로 가득 찬 최후의 나팔 온 세상과 천군천사가 지나간 뒤의 침묵; -오, 오메가, 그녀의 눈의 보라색 광채여!   * 이 시는 비평가, 문학사가 들로 하여금 그 설명에 가장 많은 잉크를 쏟게 하였고 지금도 논란과 다른 의견의 대상이 될리만큼 유명하다. 이미 보들레는 향기와 소리와 빛깔이 서로 응답하는 세계를 예견한 바 있는데 랭 보는 이를 좀더 철저하게 조직적으로 탐구하고 실천한 점에 특색이 있다. 어떻게 랭보가 글자(모음 들)에서 빛 깔을 느끼게 되었는가에 대하여서도 여러 가지 연구와 설명이 있다. 보들레르의 '조응(照應) 이론' 외에도 그가 유년 시절 글자를 배울 때 색칠한 알파베트를 즐겨 본 기억이 무위식적으로 잠재해 있었다든가, 신체적 공감설, 신비설 등 여러 가지가 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랭보는 우리들의 여러 감관(感官)이 파악하는 현상 뒤에 통일되고 서로 호응하며 어떠한 감관에도 파악될 수 있는 어떤 절대적인 실재를 믿었던 것 같다. 그리고 감 각의 조직적 착란과 의식적 환각 상태의 유지로서 이러한 세계를 엿볼 수 있는 하나의 좋은 보기이다.  그러나 그의 기도나 목적을 떠나서 생각하더라도 이 시는 그 놀라운 연상력, 대담한 상상, 강렬한 인상과 환상 이 뒤섞인 특이한 시이다.     새벽 / 아르튀르 랭보   나는 여름 새벽을 가슴에 끌어 안았다.   궁전(宮殿)의 앞쪽은 아직 아무 기척 없이 고요했 다. 물도 죽은 듯 했다. 어둠의 진영(陳營)은 숲속의 길을 내놓지 않고 있다. 나는 생생하고 따스한 공기를 깨우며 걸어갔다. 이슬 보석들이 쳐다보았다. 그리고 밤의 날개 들은 소리 없이 일어났다.   나의 첫 사업은 이미 신선하고 푸른빛으로 가득 찬 오 솔길에서 나에게 자기 이름을 일러 주는 한 송이의 꽃을 만난 일이었다.   나는 전나무 사이로 머리칼을 풀어 헤치고 떨어지는 금발의 폭포에게 웃음지었다. 나는 은빛 나뭇가지 끝에 서 여신(女神)을 알아보았다.   그러자 나는 여신의 베일을 하나하나 벗겼다. 길 에서는 팔을 흔들어 대며, 들판에서는 수탉에게 그녀를 밀고(密告)했다. 그녀는 큰 도시의 종각들과 둥근 지붕 사이로 도망쳤다. 나는 거지처럼 대리석 부둣가를 달려 가며 그녀의 뒤를 쫓았다.   월계수 숲 근처의 언덕길 높은 곳에서 나는 주어 모은 그녀의 베일로 그녀의 몸을 감쌌다. 그리고 나는 그녀의 방 대한 육체를 약간 느꼈다. 새벽과 어린아이는 숲 아래로 쓰러졌다.   깨어 보니 대낮이었다.   *시집
215    프랑스 명시선 ( 1 ) 댓글:  조회:2550  추천:0  2017-08-09
프랑스 명시선   1. 프랑스와 비용(1431~1463)   대유언서(발췌)   26. 아, 하나님, 어리석었던 젊은 시절 공부 열심히 하고 조신했다면 집과 포근한 잠자리가 있었을 것을 헌데, 오호라, 나는 악동(惡童)마냥 학교에서 도망질쳤지. 이런 글 적는 나의 가슴 찢어질 듯하구나   35. 어릴 적부터 나는 가난했다 돈 없고 미천한 집 태생으로 나의 아버지는 별 재산이 없었고 오라스라 불린 그의 아버지도 가난뱅이 가난은 우리 집 모두의 뒤를 쫓아다녔다 나의 조상들의 무덤 위에는 신이여, 그들의 영혼을 보살펴 주소서! 면류관도 왕홀(王笏)도 볼 수 없었소.   36. 가난을 한탄할 적마다 나의 속마음은 자주 나에게 타이른다 "이 사람, 그리 슬퍼하지 말게 그런 설움 또한 나타내지도 말게! 자네는 자크 커르 영감만큼 돈이 많지 않지만 가난하고 껄끄러운 옷을 걸치고라도 살아 있는 편이 생전에 고관이었다가 지금 호사스런 무덤 속에 썩고 있는 것보다는 낫네."   37 고관이었던 것보다 낫다구! 이 무슨 말인가? 이제는 오호라! 이미 대감이 아니란 말인가? 다윗의 말에 의하면 "영혼이 거하던 처소를 영영 알지 못하리라" 했으니까 이 이상 이 문제를 거론치 않으리라 그것은 죄인인 내가 관여할 바 아니므로 나는 이것을 종교가들에게 맡긴다. 바로 이런 일는 설교가들의 직책이니까.   38 곰곰이 자신을 생각해 보아라 나는 별이나 천체(天體)로 장식된 면류관을 쓴 천사의 아들이 아니다. 나의 아버지는 죽었고 하나님의 그의 영혼을 거두었으며 그의 육신은 무덤 돌 아래 누워 있소 나는 나의 어머니가 멀잖아 죽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고 불쌍한 어머니도 그것을 잘 알고 있소 그리고 그의 아들도 오래 남아 있지 않으리라는 것을   50 미남 파리스도 미녀 헬레네도 죽었다 누구나 죽는다, 죽어도 고통스럽게 죽는다 숨통이 꽉 막혀 죽는다 쓸개즙은 염통에서 터지고 그리고 땀을 흘린다. 끔찍한 땀을! 그러나 아무도 그의 고통을 덜지 못한다. 이 때 그를 대신하고자 하는 자식도 형제도 누이도 없기 때문이다.   51 죽음을 그를 떨게 하고 창백하게 만든다 코는 비뚤어지고 핏줄은 뻣뻣해지며 목은 부어오르고 살은 흐늘거리며 뼈마디와 신경줄은 늘어나고 벌려진다. 그토록 보드랍고 매끄럽고 향기로운 그토록 귀중한 여인의 육체여, 그대도 이러한 고통을 맞이하여야 하는가? 그렇소, 그렇지 않으면 살아서 천당으로 곧장 가야지.     왕년의 미녀의 노래   말해다오 어드메 어느 땅에 있는가! 아리따운 로마의 유녀(遊女) 플로라는, 아키피아드는, 그리고 그녀의 사촌동생 타이스는, 강물 위나 연못 위에서 소리나면 응답하던 그 에코는? 가히 초인간적인 미모를 지녔던 이 요정은? 그런데 지금은 어디 갔나 지난 해의 눈(雪)은?   어디 있는가 저 슬기롭던 엘로이즈는, 그녀로 인해 피에르 아벨라르는 거세되어 생-드니 수도사가 되었지 그의 고난도 결국 그의 사랑 때문 또한 어디 있는가? 뷔리당을 자루에 넣어 세느 강 속에 던지게 한 여왕은? 그런데 지금은 어디 갔나 지난 해의 눈은?   인어(人魚) 시렌느의 목소리로 노래하고 백합같이 희었던 블랑시 황후 발이 큰 배르트 태후, 그리고 비에트리스, 알리스 멘느 주를 다스렸던 아랑뷔르지스 백작 부인 그리고, 영국 군사들이 루앙에서 불태워 죽인 로넨느의 착한 처녀 쟌 다르크는 그녀들 지금 어디? 어디에? 성모 마리아시여! 그런데 지금은 어디 갔나 지난 해의 눈은? 님이시여, 그 미녀들 지금 어디 있는지 이 해에도 다음 해에도 묻지 마시오 그런데 지금 어디 갔나 지난 해의 눈은?     비용의 묘비명(墓碑銘)      비용이 교수형 집행을 기다리는 그의 동료들과      자신을 위하여 쓴 발라드 형식의 묘비명.   우리 죽은 뒤 살아갈 형제들이여 우리에게 냉혹한 마음 품지 말라 차라리 그대들 우리를 불쌍히 여길 때 신께선 곧 당신들에게 자비를 베푸시리라 보라, 여기 우리들 다섯 여섯씩 목매달려 포식(飽食)으로 길러 온 육체는 이미 오래 전에 뜯어지고 썩어지고 우리들의 해골들은 흙이 되어 간다 아무도 우리들의 비운을 비웃지 말라 다만 신께 구하라 우리 모두의 죄를 용서해 줄 것을!   우리 비록 법으로 처형된 몸이나 그대들을 형제라 부름을 탓하지 말라 인간이 모두 옳은 생각만을 가질 수 없는 일 이는 그대들도 알고 있다 이미 우리는 죽은 몸이니 용서하고 성모 마리아의 아들께 기도드리라 우리에게 내리는 그의 은총이 마르지 않고 지옥의 불길에서 우리를 지켜 주도록 우리는 죽은 몸 누구도 우리를 괴롭히지 말고 다만 신께 구하라 우리 모두의 죄를 사해 줄 것을!   빗물은 우리를 적셔 씻겨 내고 햇빛은 우리를 말려 검게 태운다 까치와 까마귀는 우리들의 눈을 파내고 수염과 눈썹을 쪼아 낸다 우린 잠시도 쉴 때가 없다. 바람 부는 대로 이리저리 한없이 흔들리며 새 쪼아 먹은 몸은 골무보다 더 험상궂다 그러므로 행여 우리 같은 신세 되지 말고 다만 신께 구하라 우리 모두의 죄를 사해 줄 것을!   만백성을 주관하시는 왕자 예수시여, 지옥의 권세에 들지 않도록 우리를 지켜주시고 그 곳에서 할 일도 갚을 것도 없게 하소서 사람들이여 이 일은 절대 비웃을 일이 아니니 다만 신께 구하라 우리 모두의 죄를 사해 줄 것을!     프랑스와 비용: 1431년 말이나 1432년 초에 파리 태생으로 되어 있다. 어렸을 때 아버지를 잃고 홀어머니 밑에서 가난하게 자라다가 '성 베네디트' 교파의 기욤 드 비용이라는 신부집에 맡겨졌는데 비용이란 이름도 그가 기른 이 신부의 이름을 딴 것이다. 1452년 당시 소르본느 대학 문학부에서 문학 석사 학위를 얻었다. 그대로 나갔으면 그의 서사시에 있듯이 교직자로서 좋은 자리와 안락한 생활을 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때부터 그의 난폭한 성질이 드러나 젊은 혈기와 더불어 위험한 장난, 패싸움, 도박, 그리고 민중 봉기에 가담하였다. 당시에는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 전쟁 직후로서 강토는 황페해지고 도처에 도적과 살인과 방화가 잇달아 민심이 흉흉하던 때이고 당시의 학생이란 일종의 부랑자. 불한당이 많았으므로 비용도 이 때까지는 이런 부류에 속하였다. 1455년 어느 여름 저녁, 비용은 여자 문제로 인한 사소한 싸움 끝에 세르모아즈라는 신부를 돌로 쳐서 숨지게 했다. 이 사건 후 비용은 자취를 감추었다가 다음 해 그에 대한 사면장(赦免狀)이 나오자 파리로 되돌아왔다.그런데 그 해 12월 나바르 대학의 금고를 깨드리고 그 속에 든 돈자루를 훔쳐 간 도난 사건이 일어났다. 비용은 이 사건 며칠 뒤 파리에서 이라는 작은 책자를 하나 써 내놓고 앙제르로 떠난다. 이 책에서 그가 파리를 떠나는 이유는 자기의 사랑을 배반한 한 여자에 대한 원한을 잊기 위하여, 그의 말을 빌면  "사랑이라는 감옥의 쇠사슬을 끊기 위하여"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 나바르 대학의 도난 사건은 범인들이 붙잡히고 그 중 하나가 자백하여 비용이 일당 5명 중의 하나라는 것이 드러났다. 비용은 도난당한 금화 120 에퀴의 변상을 조건으로 파리로부터 추방령을 받았다. 이로 미루어보아 이란 책자는 결국 자기의 범죄를 은페하려는 데 목적이 있어 보이나 이 시집 속에는 그의 시인으로서의 기질과 재질이 마음껏 발휘되어 웃음과 눈물과 야유와 풍자가 교차하는 주옥 같은 시가 많이 들어 있다.  추방령을 받은 이후부터 그의 신세는 완전한 부랑자, 거지가 되어 앙제르, 부르지 블르와 등지를 전전한다. 블르와에서는 한때 시인 왕족 샤롤르 도를레앙의 식객이 되기도 하였다. 그 후 그의 행방은 묘연하여졌는데 사건 후 5 년이 지난 1461년 그가 다시 묑-쉬르-르와르 감옥에 갇혀 있었던 것이 기록에 나타나 있다. 그 지방 주교의 명으로 투옥되었는데 그 근처에서 일어난 절도 살인 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마침 이때에 왕위에 오른 루이 11세가 묑 근처를 방문했을 때 모든 죄수에게 사면령을 내리게 되어 비용은 풀려나 다시 파리로 돌아오게 된다. 그의 나이 겨우 30세이나 그 동안 겪은 가난과 고생과 방랑과 감옥살이로 심신이 모두 병들어 있었다. 이제 죽음의 예감도 깊이 들었던지 그는 그의 생활을 총람하는 을 썼다. 이는 그의 대표작이다.  이 시집도 과 같이 자기를 미워하는 자는 은혜를 베푼 사람들에게 논공행상(論功行賞)을 하고 있다. 자기를 감옥에 보낸 디보 도시니 주교에게는 무서운 저주를 퍼붓고 자기를 사면해 준 루이 11세에게는 감사를 드리고 있다. 그러나 유언이나 유품 분배는 하나의 구실에 불과하고 그는 이 가운데 자신의 생을, 후회를, 소망을 이 세상에 대한 분노와 조소를 강렬하게 토로하고 있다. 그리고 아무도 피할 수 없는 죽음의 공포와 더불어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여 신의 자비를 빌고 있다. 한 마디로 비용은 이 가운데 그 자신을 투사함으로서 인간의 모든 것, 그의 약점과 죄악, 그의 사랑과 즐거움, 그의 소망과 믿음, 인생의 무상, 죽음의 가혹함 등을 꾸밈없이 성실하게 또한 감동적으로 보여 준다.  비용의 불행과 불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다음 해 또 다시 우연한 패싸움에 끼어 들어 샤를레 감옥에 투옥된다. 전과자로 가중되어 교수형의 선고를 받는다. 비용은 당신의 최고 재판소에 탄원서를 내어 겨우 사형은 면했으나 10년 동안 파리 입성을 금하는 추방령을 받았다.  이후부터 그의 이름은 역사상의 기록이나 사람의 입에서 영영 사라진다. 영국에 가서 살았다고도 하고 프와투에서 신비극을 쓰고 또 상연했다는 말이 있으나 확인할 수 없다. 회개하고 새로운 사람이 된 비용을 상상할 수도 있으나 그것을 뒷받침할 근거는 전혀 없다. 병과 가난으로 불쌍하게 죽었다는 것이 가장 가능성이 많다.     2, 피에르 드 롱사르(1524~1585)     님에게 꽃다발 보내오니 (마리에게 바치는 소네트)   활짝 핀 이 꽃들 꽃다발로 손수 엮어 님께 지금 보내오니 이 꽃들 이 저녁에 따지 않으면 내일이면 땅 위에 떨어지리.   이는 그대에게 분명한 교훈되오 그대 미모 지금 한창 꽃핀 듯 화려하나 멀지 않아 시들어져 떨어지오 홀연히 사라지는 낙화(落花)와 같이.   님이여, 세월은 가고 자꾸만 가오 아니, 가는 것은 세월 아닌 우리들 인생 멀지 않아 우리들도 북망산 아래 누우리다.   우리들이 이야기하는 이 사랑도 우리 사후(死後) 말하는 사람 없으리다 그러니 그대 모습 아름다운 지금 이 내 몸 사랑해 주오.     늙어짐 (엘렌드에게 바치는 소네트)     그대 늙어 저녁 촛불 아래, 불가에 앉아 실 뽑고 감을 때, 나의 노래 읊으며 감탄하듯 말하리라: "롱사르는 내 아름다운 시절 날 찬미했었지."   이 때 일에  지쳐 반쯤 잠든 그대 시녀들도 이 소식 듣고, 불멸의 찬사로 그대 이름 축복한 나의 이름 소리에 깨어나지 않는 자 없으리라.   이미 나는 황천(黃川)에 내려 뼈 없는 망혼(亡魂)이 되어 도금양(挑金孃) 그늘 아래 몸을 쉴 때 그대는 난롯가 쭈그린 노파되어,   나의 사랑과 이를 뿌리친 그대 교만을 뉘우치리라. 진정 그대에게 말하노니 오늘을 사시오  내일을 기다리지    말고: 꺽으시오 이 날부터 인생의 장미꽃을     최후의 시     이제 뼈만 앙상한 내 몸은 해골과 같아 살은 빠지고 힘줄은 늘어지고 근육은 물러나고 바싹 마른    몸에 죽음의 화살은 가차 없이 날아와 박혔네 몸이 떨려 차마 내 팔을 바라볼 수도 없구나.   아폴론과 그 아들, 두 위대한 명의(名醫)도 내 병은 고칠 수 없어 그들의 의술도 내겐 소용 없겠지 잘 있거라, 즐거운 태양아! 나의 눈은 벌써 가려져 간다. 내 몸은 아래로 내려간다 만물이 사방으로 흩어지는   곳으로.   어느 친구가 이 앙상한 모습 보고 자리에 누운 나를 위로하고 내 얼굴에 입맞추고 죽음으로 잠들어 가는 내 눈을 닦아 주며   슬프고 눈물 괸 눈으로 돌아가지 않겠는가? 잘 있게나, 나의 동무들! 잘 있게나 나의 친구들! 내가 먼저 가서 자네들 자리 미리 준비하겠네     피에르 드 롱사르(1524~1585)    16세기에 들어서면 유럽에 르네상스라는 새 바람이 일기 시작한다. 그 진원지는 이탈리아.  프랑스에서는 프랑스와 1세가 즉위한 다음(1515) 이탈리아로부터 많은 예술품들과 예술가, 학자들을 데려와 새로운 학문과 예술을 널리 퍼지게 한다. 프랑스와 1세도 퐁텐느블로나 르와르  강변에 많은 아름다운 이탈리아 식 궁성을 지어 그 안에서 연극, 무도회, 음악회 등을 열어 생의 즐거움을 구가함으로써 르네상스의 꽃을 피우게 된다.  롱사르는 이 시절에 생을 즐긴 사람이다. 시골 귀족 가문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12살 때 프랑스와 1세의 블르와 왕국에 시동(侍童)으로 들어가 장래에는 군인이나 외교관이 되고자 하였다. 그러나 얼마 안 되어 중병을 앓은 끝에 반귀머거리가 되어 그의 꿈은 깨지고 말았다. 그는  그 대신 문필로 후세에 이름을 남기기로 결심하고 시골로 돌아가 고대 문학을 열심히 공부했다. 계속하여 파리에 올라와 당대의 석학 도라(Dorat)의 지도 아래 약 5년간 고대 문학 특히 그리스 시인들의 작품을 모방한 시를 썼으나 차츰 독창적이며 순수하고 서정적인 시를 쓰게 되었다. 그가 16세 되던 해부터 30대 전반에 이르기까지 그의 시작은 절정에 이르렀으며 그의 이름은 궁중과 시단에서 유명하여졌고 그의 시집은 계속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리고 그는 당대의 유명한 시인 6명과 더불어 라는 시파(詩派)를 조직하여 프랑스의 언어와 시를 더욱 세련되고 우아하게 만드는 데 공헌하기도 했다. 이로써 그는 당대의 버질(Virgil)이라는 평을 들었으며 자타가 공인하는 시의 왕자가 되었다.  그의 행운은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앙리 2세는 그를 궁중 시인으로 임명했다. 비록 그의 공식적인 임무는 미사 때 왕에게 성수(聖水)를 떠 바치고 왕이 무릎을 꿇을 때 방석을 펴는 일이었으나 그의 주된 직책은 왕실에서 거행되는 모든 축제 행사를 주관하는 일이었다. 공이 있는 궁신이나 신하들의 찬사를 시로 쓰고 중요한 서한, 사랑의 편지도 대필하기도 했다. 이것은 그에게 명예와 더불어 큰 재산을 가져다주었다. 그는 특히 이름 난 미인들에게 큰 인기가 있었다. 그 까닭은 그의 시 속에 한번 음미되면 그녀의 이름과 재덕과 미모는 영원불멸하게 되기 때문이다.  성품이 관대하고 우아하고 때로 용감하기도 한 그는 역대 왕의 총애를 받았고 왕실 귀현과 숙녀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으며 영광과 행복 속에 살았다. 그러나 롱사르는 사랑의 시인만은 아니었다. 16세기 후반 프랑스가 신구 종교의 싸움으로 두 쪽으로 갈라져 싸운 내란 시절, 그는 위험을 무릎쓰고 이 싸움에 가담하였다. 처음에는 양파의 잘못을 지적하며 관용과 국민적 단합을 호소했고 이에 실패하자 카톨릭 편에 서서 문필로써 싸웠다. 이라는 3부작이 그것으로 그 논조는 당당하고 성실하여 반대파로부터도 존경과 공감을 얻었다고 한다.  51세로 왕실 시인의 자리를 물러나 시골에서 은퇴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지병인 통풍의 심한 고통 가운데서도 계속 시를 쓰고 작품 퇴고를 쉬지 않았다. 유명한 등은 이 시절의 것이다.  그는 61세를 일기로 세상을 하직하였는데 그의 장례식은 죽은 지 2개월 뒤 파리에서 일찌기 볼 수 없을 만큼 성대하게 거행되었다.    그런데 이 풍부하고 다양하고 아름다운 그의 노래들이 그후 200년 동안 전혀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채 묻혀 있었던 일은 문학사상 기이하고도 불행한 일이었다.  이는 그리스 로마 문학을 모델로 한 그의 작품에 대한 말레르브,브왈 등 국수파의 반발이었으며, 조화, 명확, 규칙을 금과옥조로 하는 이들이 롱사르의 독창성, 서정성과 감수성을 이해하지 못한 까닭이다. 석학 아르노르 같은 사람도 '롱사르의 한심스러운 시'라고 할 정도였다. 19세기의 낭만파 문학이 일어날 때야 비로소 그의 진가가 알려졌는데 이에는 특히 당대의 비평가 생트-뵈브의 역할이 컸다. 그 후부터는 문학파마다 롱사르를 자기파의 선구자로 삼으려고 할 정도였다.   죽음과 나무꾼 /장 드 라 퐁넨느     불쌍한 나무꾼 하나 온통 나뭇가지에 뒤덮여 나뭇짐과 쌓인 나이 아래 짓눌려 끙끙거리며 굽은 허리에 무거운 발걸음으로 연기에 그을린 오두초막집으로 돌아가는 중 드디어 힘이 빠지고 고통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나뭇짐을 내려 놓고 제 가엾은 신세를 곰곰이 생각한다. 이 세상에 태어나 지금까지 무슨 낙이 있었나? 둥근 땅덩이 위에 나보다 더 가련한 인생 있을까? 뻑하면 식량이 떨어지고 한시도 쉴 새가 없다 여편네와 자식들 병사들과 세금   빚장이와 부역(賦役)으로 나야말로 불쌍한 인간의 완전한 본보기가 아닌가 나무꾼은 죽음을 부른다. 죽음은 지체 없이 대령한다.   그에게 무엇을 해 드릴까 묻는다.   "할 일이란" 그는 말한다. "나를 도와 이 짐을 다시 지워 주시오 당신이면 금방 하리다"     죽음은 와서 모든 고통을 덜어 준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있는 곳에서 꼼짝 말자   죽기보다는 괴로운 게 낫지   이것이 인간이 만들어 낸 표어(標語).     이리와 개 / 장 드 라 퐁넨느     이리 선생 한 분 피골(皮骨)이 상접하게 되었는데   이는 견공(犬公)들이 그만큼 집을 잘 지킨 까닭, 이리 선생이 우연히 힘 세고 잘생긴 맹견 하나를 만났지요. 살이 오르고 털에 윤기가 나는 이 맹견은 잠깐 실수로 길   을 잃었던 것, 달려들어 갈기갈기 찢는 것은 이리 선생의 간절히 바라는 것이나 그러자면 일전(一戰)을 각오해야 하며 이 맹견 모양을 보아 하니 일대 방어전을 벌일 성 싶다.     그러므로 이리 선생 겸손히 견공 가까이 가 말을 건네고 살이 보기 좋게 쪄서 부럽다고      찬사을 한바탕, 견공 대답하길      "나같이 살 오르기가 소원이시라면 그야 다만 선생 마음 먹기에 달린 일 숲을 떠나시요 그게 좋으리다 선생의 그 곳 동료들의 신세는 말이 아닙니다. 불쌍하고 가엾은 거지 신세들 굶어 죽기에 꼭 알맞은 형편이죠 그 이유야 뻔하죠, 무엇 하나 확실한 것이 있나, 거저 얻 어 먹는 밥이 있나, 모든 것은 목숨 걸고 싸워야 하니까요. 날 따라오시오. 훨씬 신세가 편하게 되리다" 이리 선생이 말한다 "그럼, 나는 무얼 하면 되겠소?" "별로 하는 일 없지요,"라는 견공 대답. "몽둥이 든 자나 거지들은 쫓아 내고 집안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고 주인에게는 맘에 들게 꼬리를 흔들면 당신의 보수는 갖가지 푸짐한 상물림 병아리 뼈에다 비둘기 뼈 주인의 애무는 말할 것도 없고" 이리 선생, 이미 고져친 팔자를 머리에 그리며 감격의 눈물을 흘린다. 길을 가다가 문득 견공의 목덜미에 털 빠진 자국을 보고 이리 선생이 묻기를 "이게 뭐요?" - "아무것도 아니요" - "아무것도 아니라니, 뭐요?" "대수롭지 않을 일" - "그렇지만 좀 압시다" - "선생이 보신 건 아마 나를 잡아 매었던 끈 자국인가 보오" - "잡아 매다니" 이리 선생의 말: 그럼 댁은 가고 싶은 곳에 달려갈 수 없단 말이요? - 견 공: "그럴 때도 있지만 그게 뭐 대수롭소?" - 대수롭다마다요, 그 값을 치른다면 귀댁의 고량진미도 난 원치 않고 금은보화를 준다 해도 난 원치 않소 이 말 끝내자 이리 선생 출행랑을 칩니다. 지금도 달립니다.     토끼와 개구리들 / 장 드 라 퐁넨드     토끼 생원 제 굴 속에서 몽상에 골똘합니다. (하기야 굴 속에서 몽상 외에 별 할 일이 없지만) 이 토끼 생원 깊은 수심 속에 빠져 있습니다. 이 짐승는 원래 심란한 성질인데다 겁이 많아 스스로를 괴롭힙니다. "겁 많게 태어난 사람들은 정말 불행하지" 하고 한탄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몸에 이롭다는 음식을 먹을 수가 있나 맘 놓고 즐길 수가 있나 항상 전전긍긍합니다. 이것이 내가 사는 생활: 이 고약한 겁 때문에 나는 눈뜨고 잘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을 고치시오"라고 어떤 머리 좋은 사람이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겁이라는 게 고쳐지는 겁니까?" 그런데 사실은 인간들도 나처럼 겁장이라는 생각도 든다고 토끼씨는 추리합니다 이 동안에도 그는 주위를 살핍니다. 그에게는 모든 것이 수상하고 불안합니다. 한 줄기 바람 한낱 그림자 하챦은 모든 것들이 열을 오르게 합니다. 이 우울한 동물이 이런 생각에 골몰할 때 어디서 바스락 소리, 이는 그에게 자기 굴 쪽으로 도망치라는 신호 달려가다 연못가를 지나갑니다 갑자기 개구리들 저마다 물 속으로 뛰어듭니다 그들도 그들의 깊은 토굴 속으로 되돌아갑니다 아니! 토끼 군이 말합니다. 나도 남이 나한테 하듯 남에게 할 수 있다고! 나의 출현이 또한 사람들을 무섭게 만든다고! 온 진지(陳地)에 비상사태를 편다고! 도대체 어디서 이런 용기가 나한테 생기는가? 아아! 내 앞에서 벌벌 떠는 동물들도 있다니! 나야말로 그들에겐 용맹 장군 아닌가! 알았다. 이 세상에는 아무리 겁장이라도 그보다 더한 겁장이가 있구나!   장 드라 퐁넨느: 프랑스의 어느 작가가 라 퐁넨느를 가리켜 비도덕적인 모랄리스트이며 아마추어 시인이지만 가장 완벽한 시를 쓴, 그의 우화 속에 나오는 동화적인 인물이라고 평하였다. 그는 본의 아니게 프랑스의 태양왕 루시 14세 치하의 기라성 같은 문인 중의 하나가 되었으며 현재까지 프랑스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고 애독하는 시인이 되었다.  그는 명예나 지위에 대한 욕망이라든가, 이해타산, 남의 평판 같은 데는 전혀 관심이 없는 비실제적인 사람이었다.  고향에서 아버지가 물려준 유력한 산림관(山林官) 자리도, 그가 공부한 변호사 자리도, 성직자 자리도 마다하고 시골에서 유유자적, 산책과 명상과 책 보는 일만 즐겼다. 그가 26세 때 아버지가 결혼을 시켰고 부인과의 사이에 어린 자식도 있었으나 그는 35세 때 홀연히 가정을 버리고 단신 파리로 올라와 버렸다. 이 일로 인하여 당시는 물론 후세에도 많은 사람들로부터 무책임한 사람으로 비난을 받았으나 본인은 별 잘못을 느끼지 않는 듯 했다.  반면 그의 아이 같은 청순한 마음과 아무것에도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정신은 많은 사람에게서 사랑을 받아, 아무 밑천이나 준비 없이 파리에 와서 이후 일생 동안 당시의 유명한 고관과 귀부인들의 보호와 총애 밑에 살았다. 그렇다고 그들의 식객이나 종자로서 도움을 받은 것이 아니라 그의 순수한 인간성과 재질로 인해 그들의 애정과 존경을 받았다. 또한 라 퐁텐느로서도 이들에 대하여서는 끝까지 애정과 의리를 저버리지 않았고 때로는 신변의 위험이나 고난을 무릎쓰고 이들의 안위나 명예를 위하여 진력한 용기있는 사람이기도 하였다. 또 당시의 유명한 문인과도 친교를 맺어 라신느, 몰리에르, 브왈로와는 평생 변치 않는 우정을 가졌다. 이렇게 보호자와 친구들 사이에 태평스럽게 지내며 기회 있는 대로 여러 내용과 형식의 작품을 생각나는 대로 썼으며 친구들의 주선으로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이 되기도 했다.(1684).  대기(大器)는 만성(晩成)이라고 그의 시재(詩才)는 상당히 느리게 성장하여 그의 이름을 후세에 길이 빛나게 한 그의 작품, 즉 우화 제1집이 나온 것은 그가 47세 때였다. 그 후 다시 10년 뒤인 57세 때에 제2집이, 그리고 마지막 편인 제3집이 나온 것은 그가 74세의 나이로 죽기 1년 전의 일이다. 그러므로 그의 우화집은 장장 27년 동안 씌어졌고 출판된 것이다. 그러나 이 한 권의 우화집은 그의 이름과 함께 프랑스 문학에서 영원히 남게 될 걸작이다.  그의 만년은 그의 보호자이던 사블리에르 부인이 죽자 데르바르 부인의 초청을 받아 그녀의 저택에서 인생의 모든 영예와 행복을 즐기며 지내다 1695년 74세로 생을 마쳤다.  그의 작품을 떠난 개인적 생활은 일생을 권세가나 귀부인 비호 아래 살아가며 인생의 목적이나 책임을 모르고 일종의 향락주의자의 무위도식의 생활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도 스스로 이것을 느끼고 있었던 모양으로 "어느 게으름뱅의의 묘비명"이란 제목으로 일종의 자기 묘비명을 썼다.     쟝은 밑천과 수입을 모두 까먹고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갔노라.   그의 소용 없는 것을 보물인 양 간직했었다.   시간만은 잘 쓸 줄 알았는데   두 부분으로 나누어 한 쪽은 잠자는 데   또 한 쪽은 무위(無爲)에 썼다.    그러나 이러한 묘비명은 다분히 자조적이며 유머러스한 것으로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될 것이다. 도리어 권문대가의 비호 아래 살면서도 그의 마음 속에서는 사회적 양심이 잠자지 않고 있었으며 만사에 흥미와 열의가 없는 그의 태도 속에서도 관찰의 눈은 쉬지 않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는 17세기 프랑스 귀족 사회의 가식, 불의, 모순을 모르지 않았으며, 인간성의 비굴, 허위, 간교 등을 너무나 생생히 보았고 느껴 왔고 겪어 왔다. 다만 그는 이러한 자신의 관찰이나 생각을 공공연히 직접적으로 나타내려고 하지 않았다.(시대가 그것을 용인하지 않았고 그에게 그러한 정열도 없었다.)따라서 그는 간접적이며 우회적인 표현을 통하여 그의 사상이나 인생관, 철학을 나타내려고 하였다. 이 우회적인 표현 수단이 바로 '우화'였다고 할 수 있다.   네에레 / 앙드레 셰니에     그러나 아름다운 백조가 죽음 앞에 마지막으로 탄식하며 그 부드러운 목소리로, 곧 끊어져 버릴 그의 목소리로 떠나기 전, 인생에 이별을 고하며 노래하듯 그녀는 슬픔과 죽음이 가득 찬 눈에 창백한 모습으로 최후의 힘을 다하여 입을 열었다: "아아, 그대들 세베투스 강을 배회하는 나이아테스의 요   정들이여 나의 무덤 위에 그대들의 금발의 머릿단을 잘라 주어요. 잘 있어요, 나의 클리니아스; 그대의 마음에 들었고 그대를 사랑한 나를 그대는 다시 보지 못할 거요. 오오, 하늘이여, 오오, 땅이여, 오오, 바다여, 들과 산과   바닷가여, 꽃밭, 노래하는 숲, 골짜기와 험난한 동굴이여 그로 하여금 자주, 그로 하여금 항상 기억켸 하라 네에레, 그의 모든 행복, 네에레 그의 모든 사랑 오오라, 그가 나의 네에레라고 부른 이 네에레는 그를 위하여 죄인되어 어머니를 버렸고 그를 위하여 도망질치며 이곳 저곳으로 헤매었고 사람들의 눈앞에 차마 얼굴도 들지 못하였지요. 오오! 헬레네의 두 형제의 깨끗한 별이 그대의 뱃전 아래 이오니아의 파도를 잔잔케 하거나 페스툼 해안가의 그대의 정원이 그대의 정성스런 손길 아래 해마다 두 차례씩, 장미꽃으   로 덮일 때 석양에 그대 마음 외로와져 조용하고 부드러운 명상에 빠지면 그러면, 나의 클니아스여, 나를, 나를 불러요, 나는 오리다, 나는 그대에게 날아오리다. 떠다니는 내 영혼은 나뭇잎새들을 지나오면서 떨 것입니다, 바람 위에 혹은 어떤 구름 위에 그대는 보리다, 내 영혼이 내려오는 것을, 혹은 바다 한   가운데서 꿈과 같이 솟아올라 공중 속에서 빛나는 것을 그리고 언제나 부드럽고, 다정하나 한 맺힌 내 목소리는 떠나가며 그대의 기울인 귓전을 스칠 것이외다."     젊은 여수(女囚) / 앙드레 셰니에     "새로 돋은 이삭은 낫의 방해를 받지 않고 익어 가며; 포도알들은 압착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여름내   달콤한 새벽의 선물을 마신다; 포도처럼 아름답고 이삭처럼 영롱한 나는 아무리, 지금 이 시간 불안과 슬픔이 있다 해도   아직 죽고 싶지는 않다.   냉정하게 죽음을 찾아가는 냉혈한도 있으리라 그러나 나는 울며 또 바란다, 모진 폭풍이 불면   나는 머리를 숙였다 다시 든다. 괴로운 날들이 있으면 지극히 행복된 날들도 있는 법! 아아, 쓴 뒷맛 안 남기는 꿀이 어디 있었으며   폭풍이 불지 않는 바다 있었던가?   무성한 몽상이 나의 가슴 속을 채우고 있어 감옥의 벽이 무겁게 누른다 해도 소용 없다   나에게는 희망의 날개가 있으므로 잔악한 새잡이의 그물을 빠져 나와 밤 꾀꼬리는 넓은 하늘에서 더욱 경쾌하고 더욱 행복하게   노래 부르고 또 솟구쳐 오른다.   내가 죽으리라고? 나는 편안히 잠들며 또 편안히 눈 뜬다: 자나깨나   나에게 후회는 없다. 일어나면 나를 반기는 모든 눈에 웃음이 떠오르고 감방 속의 내 모습은 절망한 얼굴들 위에   거의 기쁨을 소생케 한다.   나의 아름다운 인생 행로의 종점은 아직은 너무나 멀어 나는 지금 출발할 뿐, 길 양쪽에 늘어선 느릎나무도   나는 이제 그 몇 그루를 지나왔을 뿐 겨우 시작된 인생의 향연에서 아직 내가 든, 가득 찬 술잔에   단 한 순간 입술을 대었을 뿐.   나는 인생의 봄일 뿐, 수확의 가을을 보고 싶다. 그리고 계절에서 계절로 움직이는 태양처럼   나는 나의 한 해를 다하고 싶다. 나무 줄기 위에서 빛나며 정원의 자랑인 나는 빛나는 아침 햇살밖에 보지 못하였으니   나는 나의 하루를 다하고 싶다.   오, 죽음이여 그대는 기다리라; 떠나가라. 멀리 가버리라 가서 수치와 공포와 챙백한 절망이 괴롭히는   마음들을 위로하라. 나에게는 아직 팔레스 신의 푸른 안식처와 입맞춤의 사랑이 있고 풍류의 무즈 신이 있으니   나는 아직 죽고 싶지 않다." 이리하여 슬프고 갇힌 내 거문고는 젊은 여수(女囚)의 이 탄식, 이 목소리, 이 소망을 듣고   깨어났다. 그리하여 지루한 나날의 짐을 떨어 버리고 그녀의 사랑스럽고 천진한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아름다운 시구(詩句)에 담았다   나의 감방 격조 높은 증인인 이 노래들은 학문적 여가를 즐기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 아름다운 여인이 누구였나 찾게 하리라; 그녀의 얼굴과 말에는 우아한 기품이 있었으며 그녀의 옆에서 나를 지낼 사람들은 그녀와 같이   저들의 생이 끝남을 보기 두려워하리라.     이얌므 8 / 앙드레 셰니에     사람들은 산다; 사람들은 비열하게 산다. 어찌하겠는가?   그럴 수밖에 없는 걸;     비열한 자들도 먹고 자야 하니까. 이 곳에서도, 이 울타리 속에서, 우리들이 죽음 앞에 풀   을 뜯고     단두대 작도가 우리들을 제비 뽑는 이 곳에서도   허튼 수작, 어리석은 자들의 음모 따위 노래를 부른다; 노름을 한다; 치마를 올린다;   유행가를 부르고 재담을 한다; 어떤 자는 바람을 넣은 공을 밀어 내어   지붕과 창문 위에서 튀게 한다. 속이 빈 공이라면 7백명의 저속한 무뢰한들의 연설이 그   러하고   그 중에서 바레르라는 자가 제일 유식한 자. 다른 자는 달리고 또 어떤 자는 뛰고 정치가 이론가들은   고함 지르고 마시고 웃는다. 갑자기 쇠돌쩌귀 위에 문 여는 소리가 삐걱거린다.   우리들은 호랑이 판사 나리들의 징발관이 나타난다. 오늘 단두대 칼이 부르는   밥은 누구일까? 모두 부들부들 떨며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는 아직   자기 차례가 아닌 것을 알고 기뻐한다---     앙드레 셰니에(1762~1794): 1794년 6월 25일, 지금의 파리 콩코르드 광장에서 앙드레 셰니에는 26명의 사람들과 함께 단두대의 칼날 아래 목이 떨어졌다. 그의 나의 32세였다. 이 때에 누구도 그들이 한 시인을, 아니 한 위대한 시인을 죽였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만큼 한때 혁명가였던 이 사람을 시인으로 아는 사람은 없었고 그의 작품도 발표된 적이 없었다.   그가 단두대에서 사라진 지 25년이 지난 1819년 라쿠슈라는 출판사에서 그의 작품이 간행됨으로써 비로소 그는 갑자기 위대한 시인으로, 특히 사막 같은 18세기 문단에 솟은 유일한 종려나무라는 절찬을 받았다. 특히 당시에 낭만파 시인들은 그들의 선구자라고 환호성을 올렸고, 앙리 드 레니에는 프랑스의 가장 위대한 시인으로 롱사르, 위고, 셰니에의 이름을 꼽을 정도였다.   앙드레 셰니에는 1762년 콘스탄티노풀에서 당시 이 곳에 프랑스 영사로 부임해 있던 아버지와 그리스 태생의 아름답고 교양 있는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따라서 그는 그는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영향으로 그리스의 문화와 문학에 대한 애착과 동경을 가졌다. 그 후 파리로 돌아온 뒤에는 사교가이기도 한 어머니가 그녀의 살롱에 많은 문인, 학자, 다비드 같은 유명한 화가를 손님으로 맞이하였으므로, 젊은 셰니에는 이 모임에 자주 참석하였고 그의 문학에 대한 관심과 정열도 높아졌다. 이 때에 그는 그리스 시가를 본뜬 몇 편의 시를 썼다.   그가 25세  때 프랑스 대사관의 서기관으로 런던으로 가게 되었는데 이 2년에 걸친 영국 생활은 그에게는 무척 고통스럽고 무료하고 적적하였던 모양이다. 그는 이 망향의 슬픔과 고적한 생활을 달래기 위해 방대한 작품을 계획하고 "헤르메스"와 "아메리카"라는 두 작품을 썼다.   2년이 좀 넘어 1790년 그는 꿈에도 못 잊던 프랑스에 돌아왔다. 때는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난 지 몇 달 되지 않아 파도와 불이 소용돌이치는 격동기였다. 젊고 정열에 넘치는 셰니에는 이 와중에 뛰어들어 열렬한 혁명가가 되어 변혁과 자유를 찬양하는 노래와 시를 썼다. 그러나 그는 자유와 동시에 정의와 질서를 사랑하는 온건주의자로서 공포 정치로 치닫는 자코뱅의 과격한 행동을 비판 공격하고 차츰 루이16세의 옹호파와 협력하게 된다. 이리하여 그는 혁명파에 의하여 반동파, 인민의 적으로 규정되고 루이 16세가 처단된 뒤에는 베르사이유 교외에 숨어서 지내다가 1794년 3월 파리에서 체포되어 생 라자르 감옥에 수감되었다.   감옥 속에서도 그는 굴하지 않고 몰래 12편의 이얌브라는 형식의 풍자시를 써서 자코뱅의 폭정과 독재를 맹렬히 공격한다. 이 원고를 그는 세탁함 속옷 속에 숨겨 자기 아버지에게 보냈다.감옥에 들어온 지 약 4개월 뒤 인민의 적이라는 죄목으로 그는 단두대위에서 사라진다. 그가 죽은 지 이틀 뒤에 그의 적이던 로베스피에르도 같은 형장에서 사라졌다.     그는 비록 32세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하였으나 그가 남긴 작품은 그 자체로 보나 그 작품들이 후세에 미친 영향으로 보나 매우 중요하다.   그는 당시의 사회 환경이나 가정 교육으로 보아 자연히 그리스의 고대 문화가 문학에 젖고 심취되어 있었다. 따라서 그의 시(특히 초기의 것) 가운데는 헬레니즘의 취미 사상이 가장 자연스럽게 흐르고 있다. 그러나 셰니에의 독창적인 점은, 고대 세계에 안주하지 않고 차츰 그가 살고 있는 시대와 사회를 자신의 풍부한 감수성과 열정으로 가지고 살았으며 그것을 고대의 형식미와 조화시켜 표현한 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작품이 세기를 넘어 아직도 기억되고 있는 까닭은 그가 시대의 감각, 감정, 사상, 믿음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을 성실하고 힘차게 표현한 데 있다. 또한 17세기, 18세기의 프랑스의 시가는 감정이 마르고 개성이 없어 귀족이나 풍류객들이 즐기는 말의 기교나, 언어의 유희에 불과하였다. 이 메마른 땅에 셰니에는 마음을 불러들였다. 그의 유명한 말에 "기교는 시구(詩句)를 만들 뿐 마음만이 시인이다"가 있다. 이는 바로 말의 기교가 아니라 마음의 표현이 시를 이룬다는 새로운 태도로, 앞으로 올 낭만파의 구호가 된다. 한편 그는 문학에 있어서 개성과 마음을 중요시하였지만 그가 이어받은 고대 그리스-로마 시가의 미의 이상인 우아와 절도, 형식과 내용의 조화, 조형미와 음악성의 융화를 잊지 않고 있었다. 이러한 고전성이 또 후에 파르나스 파의 선구가 된 것이다.   나비 / 알퐁스 드 라마르틴느     봄과 더불어 태어나 장미와 함께 죽으며 하늬바람 날개에 실려 맑은 하늘 속을 헤엄치며 겨우 피기 시작한 꽃가슴에 앉아 하늘거린다 향기와 빛과 창공에 취하고 아직 젊은 몸에 날개의 분가루를 뿌리면서 한 줄기 바람처럼 무한한 창공으로 날아가는 것 이것이 나비의 매혹된 운명. 이는 결코 쉴 줄 모르고 만사를 스쳐 가나 만족됨이 없어 결국 쾌락을 쫓아 하늘로 되돌아가는 인간의 욕망 같이.     호수 / 알퐁스 드 라마르틴느     아아, 이렇듯 항상 새로운 기슭으로  밀려가고 돌아오지 않는 영원한 밤 속으로 실려 가는 우리들은 일월(日月)의 바다 위에 단 하루도    닻을 내릴 수 없단 말인가?   오, 호수여! 세월은 이제 겨우 한 해의 운행을 끝냈을   뿐인데 그녀가 와서 다시 보았을 정다운 물가에 보라, 내가 홀로 이 바위 위에 앉았노라.   너도 보았지. 그녀가 와서 거기 앉던 것을 !   너는 그 때도 이렇듯 깊은 바위 밑에서 울부짖고 있었노라 너는 그 날도 이렇듯 바위 모서리에 부딪쳐 깨지고 있었   노라. 그 날도 이렇게 바람은 너의 파도 거품을 그녀의 너무나   사랑스러운 발 위에 끼얹고 있었노라.   어느 날 저녁, 너는 기억하는가? 우리는 말없이 배를 저   어 가고 있었다. 물결 위와 하늘 아래 저 멀리서 들리는 것이라곤 장단 맞춰 너의 아름다운 수면을 치는   노 젓는 이의 소리뿐이었다.   갑자기 이 세상 소리 같지 않은 음향이 홀린 듯한 기슭에서 메아리친다. 불결도 귀기울인 채 나에겐 정다운 목소리가   이런 말을 떨어뜨렸다.   "오오, 시간이여, 너의 날개를 멈추어라! 그리고 행복의   순간들이여     그대들의 흐름을 멈추어라! 우리들로 하여금 가장 아름다운 날들의      일순간의 환희를 맛보도록 하라!   그러나 이 세상의 많은 불행한 사람들이 그대에게 탄원하    나니 시간이여,      흘러라, 흘러라 저들을 위하여 가져 가라, 저들의 날들과 함께 저들을 괴롭히는 근심 걱정도      행복한 자들은 잊어버려라.   "내가 몇 순간의 유예(猶豫)를 청했으나 부질없는 일,     시간은 나를 피하여 달아났다. 나는 이 밤에게 말한다. "좀더 더디 가라" 그러나 새벽은   이미 밤을 거두려 한다.   "사랑하자, 그러므로 사랑하자! 달아나는 시간을     서둘러 즐기자! 인간에게 항구가 없고 시간에게 기슭이 없으니     시간은 흐르고 우리는 지나간다!"   시기 많은 시간이여, 사랑이 우리들에게 철철 넘치게 행복을 부어 주는 이 도취의 순간들도 불행한 나날들과 같이 빨리 우리들로부터 멀리     날아가 버릴 수 있단 말인가?   뭐라구! 우리는 도취된 순간의 자취마저 간직할 수 없을     것인가? 뭐라구! 영원히 지나가 버렸다고? 무엇이! 완전히 없    어져 버렸다고? 그 순간들을 주었고 또 그것을 지워 버리는 이 시간을     우리들에게 그것을 돌려 주지는 않을 것인가?   영원이여, 허무여, 과거여, 어두운 수렁이여, 너희들이 삼켜 버린 이 날을 어찌하려는가? 말하라, 너희들이 우리에게서 앗아간 이 숭고한 황홀의     순간들을 우리에게 돌려 줄 것인가?   오, 호수여! 말없는 바위여! 동굴이여! 검푸른 숲이여! 시간이 아직 손대지 않고 때에 따라서 다시 새롭게 하는 그    대들은 간직해 다오, 아름다운 자연이여     이 밤의 추억이나마 간직해 다오!   아름다운 호수여 그대의 휴식 속에 또는 폭풍우 속에 그대의 웃는 듯한 언덕의 모습 가운데 그리고 이 검은 전나무와 물 위를 내려다보는     거친 바위 가운데!   살랑거리며 지나가는 미풍 속에 너의 기슭에 부딪치고 또 기슭에 반복되는 물결 소리 가     운데 보드라운 광채로 너의 물 위를 하얗게 물들이는     은색 얼굴의 달 가운데 깃들게 하라!   울부짖는 바람, 탄식하는 갈대, 너의 향긋한 대기 속의 가벼운 향기 듣고 보고 숨쉬는 만물이여, 모두 말하라;     "그들은 사랑하였노라"고.     고독 / 알퐁스 드 라마르틴느     해질 무렵 나는 자주 산 위에 올라 해묵은 떡갈나무 그늘 아래 힘없이 앉는다. 무심코 눈초리를 들판으로 돌리면 변모하는 전야(田野)의 풍경화가 발 밑에 펼쳐진다.   이 쪽에선 거품 이는 강물이 웅얼대며 흘러 이리저리 굽어서 먼 어둠 속으로 숨어 버리고 저 쪽에선 움직이지 않는 호수물이 잠든 듯 펼쳐 있다. 그 위에 저녁별이 푸른 하늘 위에 솟는다.   검푸른 나무로 덮인 이 산마루에는 석양이 아직도 그 마지막 햇살을 던지고 있으며 어둠의 여왕 달님의 수레가 어렴풋이 떠올라 벌써 지평선 가장자리를 희게 물들인다.   이윽고 고딕 종탑에서 날아오는 경건한 종소리가 공중에 울려 퍼지면 길손은 발걸음을 멈추고 마을 종소리는 이 날의 마지막 소음에 성스러운 주악을 섞는다.   그러나 이 온화한 풍경들 앞에서 나의 무심한 영혼은 아무 매력도 열광도 느끼지 않는다. 나는 떠다니는 환영처럼 대지를 바라다볼 뿐 살아 있는 사람들의 태양은 이미 죽은 자들을 덥게 해 줄    수가 없다.   이 언덕에서 저 언덕으로 부질없이 눈길을 돌리며 남에서 북으로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 광대한 공간의 구석구석을 찾아보고 나는 말한다; "행복이 나를 기다리는 곳은 아무데도 없   다"고.   이 골짜기들, 이 화려한 건물들, 이 초가집들이 나에게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이미 나에게는 흥미를 잃은 부질없는 물건들 강물도 바위도 숲도 정다운 외로움도 한 존재가 없을 때엔 모든 것이 비어 있다.   태양의 순회가 시작되건 끝나건 나는 무관심한 눈으로 그 운행을 쫓는다; 혹은 흐린, 혹은 맑은 하늘에 해가 지건 돋건 태양이 나에게 무슨 상관인가? 나는 나날에 아무 기대도   갖지 않는다.   비록 내가 그의 광대한 행로를 쫓을 수 있다 해도 나의 눈으 도처에 허공과 사막을 보리라. 나는 태양이 비추는 모든 것에서 아무것도 원하는 것이   없으며 무한한 이 우주에서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다.   그러나 아마도 태양계의 한계를 넘은 저 쪽에 참다운 태양이 다른 하늘을 비추는 곳에 내가 만일 나의 육체의 허물을 지상에 버릴 수 있다면 내가 그토록 꿈꾸던 것이 눈앞에 나타나리라!   거기서 나는 그리던 샘물에 취할 것이며 거기서 나는 희망과 사랑을 그리고 모든 영혼이 갈망하나 지상에는 그 이름조차 없는 최상의 복락을 되찾으리라!   어찌하여 나는 오로라의 수레에 실려 나의 소원의 막연한 대상인 그대에게 달려갈 수 없는가? 어찌하여 나는 아직까지 유배의 땅에 머물러 있는가? 이 땅과 나와는 아무런 공통되는 바가 없다.   나뭇잎이 초원에 떨어지면 저녁 바람이 일어 낙엽들을 골짜기로부터 몰아간다. 나는 또한 시든 낙엽과도 같으니; 거센 북풍이여, 나를 저 나뭇잎처럼 실어 가 다오!     알퐁스 드 라마르틴느(1790~1869): 샘 솟듯 흘러나오는 감정의 토로, 호수-숲-골짜기를 거닐며 과거에 대한 회상-현실에 대한 실의로 시작하여 체념 혹은 희망으로 끝나는 알퐁스 드 라마르틴느의 시는 1820년 프랑스 독자를 매혹하고 열광시켰다.  5세기에 걸친 오랜 왕정이 허무하게 무너지고 혁명이라는 거센 바람에 휘말리다 나폴레옹의 출현과 더불어 전설과 꿈 같은 제정 시대에 젖었던 프랑스 국민은 또 다시 하루 아침에 황제와 그 제국의 붕괴를 눈앞에 보게 되자 깊은 허무감과 무상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너무나 급격하고 잇단 변천은 사람들을 깊은 실의와 애수에 빠지게 하였고, 그들은 마음을 공감하고 위로받고 달래 주는 무엇을 찾고 있었다. 라마르틴느의 시는 바로 이러한 공감과 욕구를 채워 주는 것이었다.   라마르틴느는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난 다음 해 즉 1790년에 포도주의 명산지 마콩에서 태어났다. 원래 귀족 가문이었던 그의 집안은 혁명의 거센 바람에 휩쓸려 그의 아버지가 감옥에 들어갔다가 1794년 풀려 나오자 더 이상의 화를 피하기 위하여 온 가족이 시골 밀리(Milly)로 이사하였다. 이제 세월을 바뀌어 나폴레옹이 출현하고 공화국은 제정으로 바뀌었다. 20세가 된 라마르틴느는 외교관이 되거나 또는 그의 아버지와 같이 군인이 될 생각이었으나 그의 가문은 원래 왕정파로서 왕위의 찬탈자 아래 봉사하기를 원치 않았다. 1815년 루이 18세가 복위된 뒤 1820년 비로소 그는 외교관이 되어 이후 10년간 이탈리아 각지에서 서기관 또는 대리 대사로 지내게 된다. 그런데 이 동안 그는 외교관으로서 일하기보다는 시인으로서 더 많이 일하였으며 더 널리 알려졌다.  1820년  , 1825년의 , 1830년에는 두 권의 등이 출판되었다. 특히 첫 시집 을 발표한 뒤 그는 일약 새로운 시대를 고하는 국민 시인이 되었고 1829년에는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에 선출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라마르틴느는 문학을 일생의 직업으로 삼기를 원치 않았다. 그는 국민 대중과 인류를 위하여 일하는 것을 자기 사명으로 삼았다. 1830년 7월 혁명이 일러나 복구된 왕정이 전복되고 루이 필립 아래 소위 입헌 군주제가 수립되자 1833년에 라마르틴느는 정치에 참여하기 위해 외교관을 퇴임하고 국회 의원으로 출마하여 당선된다. 이리하여 그는 1851년 루이 나폴레옹이 구테타로 공화 체제를 전복할 때까지 18년 동안 국정에 참가하였고 특히 1848년 5월 혁명 직후에 수립된 과도 정부에서 외무 장관으로서 또 실제로는 정부 수반으로 온건파의 공화국을 지키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한 쪽에서는 폭력적인 파리 시민과 다른 쪽에서는 군의 지지를 업은 유산층(有産層)의 틈바구니에서 악전 고투를 하다 결국 4개월 만에 정치 판도에서 물러나고 말았다. 정직하고 용감하고 성실하고 미래를 볼 줄 아는 사람이었으나 너무나 선량하고 이상적이었으며 관대한 그는 필경 정치에는 맞지 않는 사람이었다. 놀라운 일은 이러한 정치적 생활 가운데서도 그는 간헐적으로 시를 썼고 여러 편의 시집을 출간한 일이다.  유명한 도덕적, 종교적 서사시 , , , 그리고 정치가로서의 저서인 등이 있다.   그의 만년의 20년(1849~1968)은 비참한 것이었다. 정치인들에게는 무시되고 대중에게는 잊혀진 그는 고독 가운데에서 가난과 싸워야 했다. 천성이 대범하고 관대한 그는 그 동안 생각없이 걸머진 빚을 갚아야 했고 그 돈을 벌기 위해 책을 썼다. 역사 소설, 자서전, 심지어 월간지-문학의 대중 강좌도 맡아 했다. 스스로 문학의 강제 노동을 한다고 했다. 그러나 경제적 곤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겨우 그가 죽기 2년 전 그를 동정한 정부로부터 약간의 연금을 받아 겨우 숨을 돌리게 되었다. 그는 기진맥진하여 79세의 긴 일생을 파리에서 마쳤다.   이리의 죽음 / 알프레드 드 비니   1 구름은 불길 위를 날아가는 연기처럼 붉은 달 위를 달리고 숲은 땅 끝까지 이어져 있었다. 우리들은, 묵묵히 젖은 풀숲을 밟으며 총총한 잡목, 키 큰 가시나무 속을 걸어가고 있을 때 문득 랑드 지방의 솔 비슷한 전나무 숲 아래 우리들이 쫓던 그 떠돌이 이리들이 남긴 큰 발톱 자국들을 보았다. 우리는 귀를 기울였다. 숨을 삼키고 발걸음도 멈춘 채-숲도 들도 숨소리 하나 공중에 내지 않았다; 단지 바람개비만이 황량하게 하늘을 향해 소리치고 있었다. 바람이 땅 위로부터 높은 곳으로 불어 발꿈치로 외롭게 선 첨탑을 스치고 갈 뿐 땅 위에 떡갈나무들은 바위에 몸을 기대고 팔굽을 베고 누워서 잠이 든 듯했다. 천지가 고요한 이 때 이리 떼를 찾고 있던 포수 중 제일 연장자가 몸을 줍혀 모래 바닥을 살폈다; 이윽고 아직 한 번도 틀린 적 없는 이 노인은 낮은 목소리로 방금 생긴 이 발자국들은 두 마리의 큰 삵쾡이와 그들의 두 새끼들의 걸음걸이와 억센 발톱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들은 모두 사냥칼을 갖추고 너무 희게 빛나는 총부리를 감춘 채 나뭇가지를 헤치며 한발 한발 걸어나갔다. 세 명의 포수가 걸음을 멈춘다. 그러자 나는 그들이 보고   있는 쪽을 찾다가 갑자기 이글이글 타는 두 눈을 보았고 그 뒤쪽으로 네 개의 희미한 형상이 달빛 아래 잡목 덩굴 속에서 춤추는 것을 보았다. 마치 주인이 돌아오면 좋아 날뛰는 사냥개들이 큰 소란을 피우며 뛰노는 늘 보던 그런 모습이었다. 그들은 형태도 뛰는 모습도 비슷했다. 그러나 새끼들은 소리 없이 놀고 있었다. 이는 바로 지척지간에 인간이란 그들의 적이 그의 집 안에서 깊이 잠들지 않고 있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비 이리는 서 있고 그 뒤로 좀 떨어져 어미 이리는 나무 옆에서 쉬고 있었다. 그 모습은 옛날 로마 인들이 숭앙하고 그 털 난 가슴에 반신(半神) 레무스와 로물루스를 품었던 대리석 이리   상(像)과 같았다. 아비 이리는 앞으로 나와 앉았다. 두 앞발을 세우고 갈퀴 같은 발톱을 모래 속에 박았다. 뜻밖에 당한 일이므로 살 길이 없다고 판단했다. 퇴로는 차단되었고 모든 길은 막혔다; 그러자 이리는 불타는 듯한 입으로 가장 용맹스러운 개의 헐덕이는 목덜미를 물었다, 그의 살을 꿰뚫은 총탄에도 무쇠 집게와 같이 그의 넓은 배창자 속을 십자로 꽂는 날카로운 비수에도 그의 강철 같은 턱은 벌리지 않았다. 목 졸린 사냥개가 그보다 훨씬 앞서 죽어 그의 발 아래 내동그라진 최후의 순간까지도, 그제야 이리는 개를 놓고 나서 우리들을 쳐다본다. 우리의 칼들은 그의 허리에 손잡이까지 꽂혀 피로 홍건한 풀밭 위에 그를 못박아 놓았으며; 우리의 총부리는 험상한 초승달처럼 그를 에워싸고 있었다. 그는 계속 우리를 쳐다본다. 그리고는 입가에 질펀한 피를 핥으면서 다시 눕는다. 그리고 어떻게 자기가 죽게 되었는지 알려고도 하지 않고 큰 눈을 다시 감으면서 아무 소리도 지르지 않고 죽어 간다.   2 나는 화약에 빠진 총대에 이마를 대고 생각에 잠겨, 남은 암 이리와 그의 두 새끼들을 뒤쫓을 일조차 결심할 수 없었다. 이 세 식구는 모두 아비 이리를 기다리고 있었으리라 내가 생각컨대 이 아름답고 슬픈 빛의 암 이리는 그의 두 새끼만 없었던들 그가 홀로 이 큰 시련을 받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어미의 의무는 자식들이 굶주림을 잘 참으며 인간이 비열한 가축들과 맺는 도시의 협약에 절대 말려들지 않도록 가르치기 위하여 그들을 구원하는 일이다. 이 노예 근성의 가축들은 그들의 잠자리를 얻기 위해 인   간의 앞에 서서 숲과 바위의 원 소유자들을 몰아 내고 있는 것이다.   3 나는 생각했다. 아아, 인간이란, 이 위대한 이름에도   불구하고 나약한 우리들 인간을 나는 얼마나 부끄럽게 생각하는   가! 사람이 이 세상과 인생의 모든 고난을 어떻게 떠냐야 하   는지 그것을 아는 자는 너희들, 고귀한 짐승들아! 우리가 지상에서 무엇이었으며 무엇을 남기고 가는지 생   각할 때 무언(無言)만이 위대할 뿐 그 외의 모든 것은 연약한 일 --아아 야성(野性)의 방랑자여, 이제 너희 뜻을 깨달   았으니 너의 마지막 눈초리는 나의 가슴까지 와 닿았다. 그 눈초리는 말하였다; "그대 할 수 있다면 꾸준히 노력하고 생각함으로써 너의 영혼이 가장 높은 인종(忍從)의 자존지경(自存之境)   에 이르도록 하라 숲 속에서 태어난 우리들이 처음부터 올라선 이 높은 곳으로, 탄식, 눈물, 기원, 이는 모두 비겁한 일 운명이 그대를 부르고자 한 길에서 그대 오래고 무거운 과업을 힘차게 다하라. 그리고 나서 나와 같이 소리 없이 괴로와하고 죽어라."     알프레드 드 비니(1797~1863): 시인이며 소설가며 극작가였던 알프레도 드 비니는 프랑스 시골의 군인 귀족 가문 출신이다. 이 귀족 가문도 프랑스 대혁명이라는 회오리 바람 속에 몰락해 버렸으나 젊은 비니는 귀족의 명예를 지키고 영광을 되찾기 위해 군인이 되기를 원하였다. 왕정의 열열한 지지자인 그는 18세의 소년으로 루이 18세의 복귀와 망명 때에는 총사(銃士)의 붉은 제복을 입고 호위하였다. 그러나 여러 번 실패를 거듭한 후 들어간 군문(軍門)은 그의 기대와는 달리 지루하고 단조로운 굴종의 생활에 불과하였다. 이미 나폴레옹의 몰락과 더불어 전쟁과 영광의 시대는 지나갔던 것이다. 따라서 비니는 군인으로서가 아니라 문인으로서 영광을 되찾기로 하였다. 그는 타고난 시인이며 명상가이며 철학자였다. 군복을 입은 채 시를 쓰고 또 소설을 썼다. 그리하여 그가 군인 생활에 환멸을 느껴 자진 퇴역하기 1 년 전 즉 1826년 그는 을 발표하고 이어서 역사 소설 를 출판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1829년에는 세익스피어의 를 번안하여 국립 극장 에서 상연함으로써 일약 극작가로서의 명성을 높였다. 이에 자극되어 1827년 그는 군인 생활을 청산하고 파리로 올라와 창작과 아울러 위고를 중심으로 한 낭만파 운동의 핵심 인물로 활약하였다. 이 때까지 그는 유명한 작가이며 행복한 인간이었다.  그러나 1839년을 고비로 타고난 염세적인 고독감과 정치에 대한 깊은 실망, 기독교와 생에 대한 완전한 회의를 느낀 그는 차츰 문단과 사회를 멀리하고 자신의 세계에 들어앉아 자신의 체험과 사상을 담은 시, 연극, 소설을 발표하였다. 천재의 정신적 고독을 다룬 소설 , 이 소설을 극화한 , 자신의 군인 생활의 체험과 사상을 담은 , 종교적 비관주의를 쓴 등이 있다. 또한 이 때부터 그는 순수한 문학 작품이라기보다 사회적-철학적 문제를 다룬 많은 책을 출판하였다. 또한 이 시절 그는 인생의 다른 현실적인 시련을 겪게 되었다, 사랑하던 어머니의 죽음, 문인 친구들과의 심한 불화, 더우기 그가 열애하던 무대 여배우 마리 도르발의 변심과 배반은 그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다. 드디어 그는 파리를 떠나 고향 멘느-지로로 내려갔다. 외부와의 일체 접촉을 끊고 소위 생트-뵈브가 말한 상아탑에 들어가 사색과 명상과 시작(詩作)으로 지냈다. 그는 만년의 대부분을 여기에서 지냈다. 그러나 이러한 유페 생활은 그에게 가장 아름답고 심오한 사상이 담긴 시를 낳게 하였다. , , , , 등 정신적-철학적 시와 아주 만년에 그의 유일한 내면적 수기 를 썼다. 앞서 말한 시들은 그가 죽은 다음해 1864년 이란 제목으로 출판되었고 도 1867년 사후 출판되었다. 이 몇 편의 시와 일기는 그의 시인으로서의 위치, 아니 위대한 시인으로서의 그의 위치를 확보하기에 충분하였다.   만년에 그는 작가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여섯 번이나 아카데미 프랑세스 회원에 입후보하였으나 낙선되어 1845년에 겨우 회원이 되기도 하였다. 1848년에는 자기 고향에서 대의원으로 입후보하여 낙선의 고배를 마시기도 하였다. 그의 사회 생활은 불운의 연속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1863년 고향에서 위암으로 사망했다.   내일은 새벽부터 / 빅토르 위고     내일은 새벽부터 들이 훤해지면 난 떠날 테다. 난 안다, 네가 기다리고 있음을. 나는 가련다, 숲을 지나 산을 넘어. 이 이상 더 너와 멀리 떠나 있을 수가 없구나.   나는 걸을 테다, 나의 눈은 오로지 한 생각에 골똘하여 눈에 보이는 것 귀에 들리는 것 아무것도 없을 게다 홀로, 낯선 나그네, 굽은 등에 두 손을 맞잡고 슬픈 나에겐 대낮도 밤과 같으리라. 나는 저무는 석양녘의 항금빛도 멀리 아르폴뢰르 항구 향해 내려가는 돛단배들도 보지   않으련다 다만 너 있는 곳에 다다르면 네 무덤 위에 푸른 호랑 가시나무와 꽃핀 히드 다발을 놓으리라.     파종의 계절, 저녁 / 빅토르 위고     황혼의 순간 나는 문간에 앉아 노동의 마지막 시간을 비추는 이 하루의 종막을 황홀하게 바라본다.   어둠에 젖은 들판에서 미래의 추수를 한 줌씩 밭고랑에 뿌리는 한 노인의 해진 옷을 나는 감격된 맘으로 본다.   그의 크고 검은 영상(影像)은 깊은 밭고랑들을 제압하고 나는 지나가는 나날들의 유익함을 그가 얼마나 믿고 있는지 느낀다.   그는 막막한 들판을 걸으며 가고, 오고, 멀리 씨를 던지고 손을 다시 펴 또 뿌리기 시작한다. 나는 명상에 잠긴다. 무명(無名)의 증인.   그 동안, 웅성거리는 소리가 섞인 어둠의 장막은 베일을 한장 한장 펼쳐 내린다. 씨뿌리는 사람의 장엄한 움직임을 별들에게까지 퍼지게 하는 듯.     최종(最種)의 말 / 빅토르 위고     나는 굴하지 않으리라! 입에 불평의 소리를 울리지 않고 조용히, 슬픔은 가슴 속에, 짐승 같은 인간의 떼 무시   하며 나는 이 거친 유형(流刑)의 땅에서도 아아, 조국을 나의 제단(祭壇)으로, 자유를 나의 깃발로   삼으리라! 나의 고결한 동지들이여, 나는 그대들의 신앙을 지키리라 우리 비록 추방되었으나 공화국은 여기 있고 우리를 결합   한다. 나는 저들이 멸시하는 모든 것을 영광으로 삼으며 나는 저들이 찬양하는 모든 것을 저주하리라   나는 재(灰) 부대를 몸에 쓰고 목소리 되어 "화(禍) 있을진저!" 할 것이며 입 되어 "아니   다!" 외칠 것이다. 너의 하인들이 너에게 루브르 왕궁을 가리킬 때 나는 너, 케사르여, 너에게 미친 자의 감방을 가리키리라.   배신의 행위와 숙여진 머리들 앞에서 나는 팔짱을 끼고 보리라, 분노하나 평온한 마음으로, 무너진 것에 대한 슬픈 충성이여 나의 힘, 나의 기쁨, 나의 청동(靑銅) 기둥이 되어라!   그렇다, 그가 거기 있는 한, 사람들이 그 앞에 굴하든 참   고 견디든! 아, 프랑스! 우리들이 사랑하며 슬퍼하는 프랑스 나는 너를 다시 보지 못하리라 너의 아름답고 슬픈 땅을, 나의 조상이 묻힌 곳, 나의 사랑의 보금자리!   나는 다시 보지 못하리라 우리를 부르는 그 강가를 프랑스! 아아, 그러나 나는 의무(義務) 외엔 모든 것을   잊으리라. 나는 고난받는 자 가운데 나의 장막을 칠 것이며 나는 서 있기 원하므로 추방자로 남으리라.   나는 이 험난한 유형을 달게 받으리라 비록 끝도 기한도   없을지라도 좀더 굳세리라 믿었던 누군가 굴복했고 머물러야 했던 몇 사람이 가 버렸는지 나는 알려고도, 생각하려고도 않는다.   이제 천 명밖에 안 남을지라도, 그야 물론 나는 그 속에   있을 것이며 만약 이제 백 명밖에 안 남았다 해도 나는 계속 독재자에게 항   거할 것이다 만일 열 명밖에 안 남았다 해도 나는 그 열번 째가 될 것   이며 이제 단 한 명밖에 안 남았다면 나는 그 한 명이 되리라!     빅토르 위고(1802~1885): '위대한'이란 형용사를 사람에게 쓸 수 있다면 빅토르 위고는 이 형용사를 받기에 적합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일찌기 앙드레 지드는 "프랑스에 가장 위대한 작가가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답하여, "할 수 없다. 위고다"라고 했다는데, 그의 이 평은 위고가 많은 인간적 내지 예술적 결함을 가졌으나 그의 위대성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고충을 피력한 말이다.   19세기를 거의 다 살면서, 이 긴 세월 동안 그는 위대한 시인, 위대한 극작가, 위대한 소설가, 위대한 사상가이었고 또 위대한 투쟁가이었다. 한때 그의 목소리는 프랑스 민중의 양심과 감정과 희망의 울림판이었으며 그의 박애주의적 인도주의 사상은 19세기 후반에 전 유럽 사회에 빛을 던져 주었다.    이미 14세의 소년 시절에 '사토브리앙이 되든가 그렇지 않으면 무(無)'라고 쓰고 문학에 뛰어든 그는 26세 시집 를 출판하여 화려하게 문단에 데뷔한 이래 1843년 장녀 레오폴딘느의 익사로 인해 잠시 동안 문학 활동을 중단할 때까지 약 20년 동안 6권의 시집, 3편의 소설, 9편의 연극을 발표하였다. 이 가운데 시집으로서 , , , 등이 소설로는 , 연극으로는 , 등의 작품이 유명하다.   정력적인 그는, 쉴 줄 모르는 창작 활동과 동시에 열정적인 문학 운동도 폈다. 연극 공연을 둘러싸고 일어난 고전파-낭만파 싸움에서 사령관 위고는 학생-문학 청년- 무명 화가들, 그리고 네르발이나 고티에 등의 20대 젊고 전투적인 시인들을 동원하여 육탄적인 공격으로 승리를 거두었고, 당시의 쟁쟁한 시인, 작가들, 비니, 뒤마, 메리메, 발자크, 생트-뵈브, 네르발, 고티에 등을 자기 집에 모아 일종의 낭만파 문학클럽 세나클(Cenacle)을 조직함으로써 낭만파 운동의 총수가 되었으며 젊은 세대의 우상이 되었다. 그는 1941년 39세의 젊은 나이로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자리를 차지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1843년은 그의 생애에 전기(轉機)를 이루는 해였다. 위고의 사랑하는 장녀 레오폴딘느는  이 해 결혼한 지 얼마 후인 9월 4일, 남편과 함께 세느 강 하류에서 보트를 타다 얼마 후인 9월 4일, 남편과 함께 익사했다.   졸지에 사랑하는 딸을 잃은 충격으로 위고는 언어 상실증에 걸렸다.  겨우 일년 만에야 마음의 안정을 되찾았으나 이 시기를 계기로 그는 문학 운동과 창작 활동을 중단하고 혁명적인 이상을 사회에 펴기 위하여 정치에 깊이 관여한다. 그의 생각으론 시인의 사명은 민중의 목소리가 되는 것이었다. 이러한 정치적 경향의 결과 위고는 1845년 왕당파로 프랑스 국회 상원 위원이 되었고, 1848년 2월 혁명 후에는 파리 출신 제헌 의회의원으로 또 입법 의회 의원으로 활약하며 가난한 자와 피압박자의 편에 서서 자유, 평등, 공화 체제를 위한 싸움에 가담했다. 드디어 군(軍)과 우익 정당을 배경으로 등장한 나폴레옹 1세의 조카 루이 나폴레옹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반미주적인 헌법 개정을 하자 위고는 그의 가장 격렬한 반대자가 되었다. 1851년 루이 나폴레옹이 쿠테타를 일으켜 의회를 해산하고 헌법을 정지하고 반대파와 공화파 의원을 체포할 때 첫번째 대상이 된 것이 그였다. 위고는 파리 시민을 봉기시키려 했으나 실패하고 동료 의원 72 명과 함게 프랑스를 떠나 망명의 길에 올랐다. 그의 망명은 이후 19년 동안 계속되었다. 위고는 벨기에의 브뤼셀을 거쳐 영불 해협의 제르제섬으로, 다시 고도(孤島) 게르네제 로 옮겨 이 섬에서 1870년 고국에 돌아고오기까지 15년이란 긴 세월을 지냈다. 이 동안 그는 루이 나폴레옹으로 부터 두 번에 걸친 사면령과 귀국 권고를 받았으나 응하지 않고 나폴레옹 3세의 몰락과 자유의 회복 후에야 비로소 프랑스로 돌아왔다.    이 괴롭고 외로운 망명 생활은 그를 슬프거나 좌절케 하지 않고 도리어 그의 가장 중요한 작품들을 이 때에 창작 또는 완성시켰다.   루이 나폴레옹을 매도한 , , 그리고 역사에 유래가 없는 풍자 시집 , 죽은 딸 레오폴딘느에 대한 추억의 시를 담은 그의 걸작 시집 ,  인간의 서사시 , 그리고 위대한 소설 , 평론 , 소설 , , 환상적 서정 시집 , 등이 있으며 그 중의 한 작품만으로도 가히 한 작가의 영광을 가져올 수 있는 명작들이다.  위고는 나폴레옹 3세가 보불 전쟁에서 패하여 퇴위, 망명하고 파리 시가 프러시아 군에 의하여 완전 포위되기 직전 파리로 돌아왔다. 이 극적인 입성은 용감하고 희생적이었으며 파리 시민은 그를 애국적 영웅으로 맞이하였다. 이로부터 그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만년의 생활(1870~1885)은 주로 창작 활동에 바쳐졌다.  비록 그는 다시 국회 의원으로 선출되고 파리 지역의 상원의원이 되었으나 정치에 있어서는 실패와 실망을 맛보았다. 그러나 그의 작품 활동은 쉬지 않아 파리의 농성과 점령을 다룬 시 , , < 세기의 전설>의 보충편(1877) 등의 시와, 과학 문제를 다룬 , , 소설로는 프랑스 대혁명의 이야기를 다른 등 노년에 이르러서도 무한한 재질의 다양성을 보여 주고 있다.  그는 1885년 5월 22일 83세를 일기로 죽고 프랑스 정부는 이례적으로 그의 장례식을 국장으로 정했다. 6월 1일 그의 유해는 긴 국장 행렬 가운데 온 파리 시민들의 애도와 추모를 받으며 개선문에서 팡테옹으로 향하였다. 가난한 사람의 영구차와 간소한 장례식을 요구한 그의 유언과는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위고의 작품에서 독자가 받는 강렬한 인상과 감동은 그의 다이내믹한 생명력에서 오는 변화무쌍한 창조력, 무진한 상상력, 강렬한 감정 등에서 온다. 이 거대한 창조력은 그로 하여금 시-연극-소설 등 여러 분야에서 창작하게 했으며 각 분야에서도 다양한  작품을 써, 그가 손대지 않은 문학 부분으 거의 없다.  시인으로서의 그의 주된 힘은 상상력이다. 이 상상력은 무궁무진할 뿐 아니라 머리 속에 상상하는 바를 실제로 있는 존재같이 정확 명료하게 보는 힘을 가졌다. 그러므로 그는 서사시-역사소설-환상극 등에 있어서 뛰어나며 자연이나 환경-인물 묘사에 탁월하였다. 구약 성서 시대의 인물들의 성격과 생활, 중세 기사들의 영웅적 모험, 나폴레옹 휘하 군대의 전투 장면 등 세밀한 사항에 이르기까지 실제와 방불하게 묘사함은 풍부한 고증이나 사실(史實)보다는 강력한 상상력에 의한 것이다.  시인 위고에게는 치밀한 지성이나 분석적인 정신이 없는 대신 크고 풍부한 감정과 감수성을 가지고 있었다. 차라리 그는 감정의 큰 불덩어리였다. 이러한 감정은 그의 작품과 생활에서 일차적으로 사랑으로 나타난다. 특히 가족에 대한, 그리고 어린이들에 대한 끝없는 애정으로 나타난다. 또 이 사랑은 확산되어 약한 사람, 가난한 사람, 압박받는 사람에 대한 연민과 사상으로 번져 그의 중심 사상이 되었다.  이렇게 강력하고 웅건한 상상력과 우주 만상에까지 펼쳐지는 감정을 위고는 또한 천재적인 언어의 구사로 자유자재로 표현하였다. 그의 문장은 숨쉬듯 자연스러웠으며 강물같이 도도했으며 장엄 화려했고 많은 이미지를 동반했다. 이로서 그는 가장 작고 평범한 일과 사물에 생명을 주고 일상적인 행위와 감정을 승화시켜 우주적인 비젼을 일으키는 마력을 지녔다고 하겠다.  물론 그에게 결점이나 결함이 없는 것은 아니다. 상상력이 지나쳐 때로 터무니없는 공상으로 흐르는 점, 위대함과 장중을 좋아하는 허장성세, 웅변조, 지나친 언어의 기교, 대중에 영합하는 통속성 등 열거하면 한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결점을 내포하면서도 그는 19세기의 프랑스 문단의 최고봉이었으며 프랑스 문학사의  빛나는 거성이었다.   환상 / 제라르 드 네르발     롯시니, 모짜르트, 베버의 음악을 다 준다 해도 내가 바꿀 수 없는 곡조가 있다 그것은 아주 낡고 느리고 구슬픈 것이지만 오로지 나에게만 숨은 매력을 지녔다.   그런데 우연히 그 곡조를 들을 적마다 내 마음은 2백 년이나 젊어진다; 때는 루이 13세 치하; 나의 눈에 보이는 듯 석양이 노랗게 비치는 굽이치는 푸른 언덕이,   그리고 모서리가 돌로 된 벽돌의 성관(城館) 거기에 불그스레 물든 유리창들 성곽을 둘러싼 광활한 정원, 성 밑을 적시며 꽃 사이를 흐르는 한 줄기 강물;   그리고 드높은 창가에 나타난 한 부인 검은 눈에 금발을 하고, 옛 의상을 걸친 이 부인은 어쩌면 전생에서 내가 이미 만났고 그리고 내가 지금 기억하는 그 여인!     황금시(黃金詩) / 제라르 드 네르발   인간이여! 자유 사상가 - 그대는 믿고 있는가? 생명이 모든 것에서 작렬하는 이 세상에서 그대만   이 생각하는 존재라고? 그대는 가진 능력을 자유로이 쓸 수 있다. 그러나 그대의 모든 생각에서 만물은 빠져 있다.   짐승 속에서 움직이는 정신을 존중하라--- 모든 꽃은 하나하나 대자연에 핀 독립된 영혼이며 금속(金屬)에는 사랑의 신비가 담겨져 있다; 만물은 느낀다; - 그리고 만물은 그대의 존재에 강력하   게 작용한다.   눈 없는 벽 속에 그대를 살피는 눈을 두려워하라 물질에도 언어가 부여되어 있으니--- 이를 불경한 일에 쓰지 말라.   자주, 희미한 존재 가운데 신이 숨어 있으며 갓난아기의 눈이 눈꺼풀로 덮여 있듯 순수한 정신이 돌 껍질 속에서 자라고 있다.     제라르 드 네르발(1808~1855): 제라르 드 네르발은 유명한 가문 출신으로 파리에서 태어났으나 세 살때 어머니를 잃어 르발르와 지방에 사는 큰아버지 집에서 자라났다. 이 지방의 쓸쓸한 풍경과 전설로 가득찬 자연과 환경, 그 위에 심령교(心靈敎)-점성술에 흥미를 가지고 있던 큰아버지의 영향이 어머니 없이 자란 어린 네르발에게 강하게 작용한 듯 하다.  소년기가 되어 파리에 올라와 샤를마뉴 중고등 학교에 다녔는데 마침 테오필 고티에가 동창이어서 함께 어울려 문학적 방랑 생활을 즐겼다. 이때부터 그는 여행을 즐겨 유럽 각지와 중동 지방을 찾아다녔다. 독일 문학에 심취되어 19살 때에 이미 괴테의 를 번역했으며 이어서 독일 작가이며 작곡가인 호프만 류의 환상적인 이야기(contes)를 쓰기도 했다. 이때부터 이미 그에게는 환상과 현실이 뒤섞이는 징후가 나타나 이 때 쓴 그의 시 가운데는 그의 영원한 여성이며 수세기 전 수녀원에서 죽은 금발의 아드리엔느가 현실로 나타난다.  1836년 가을 그가 28세 때 무대 여배우 제니 콜롱을 알게 되었는데 네르발은 그녀에게 대한 열렬한 사랑에 빠진다. 이 여배우는 그의 작품 가운데 또는 라는 이름으로 나타나는데 그는 제니 콜롱이 그가 소년 시절 보았다고 생각하는 영원의 여성 아드리엔느의 환생이라고 확신한다. 제니 콜롱은 그의 사랑을 모르지 않았으나 얼마 안 되어 다른 남자롸 결혼한다. 이 일은 그에게 극심한 심적 충격을 주어 현실 생활 속에서 꿈의 유출이 심해진다. 1842년 정신 착란을 일으켜 약 8개월 동안 정신 병원에 입원되었다가 회복하였으나 그 다음 해의 제니의 죽음은 그의 신비적인 꿈을 더욱 짙게 하였다. 영원한 여성이라는 낭만적 관념은 그가 줄곧 가지고 있던 고정 관념이나 죽은 제니의 모습은 앞서 말한 아드리엔느뿐만 아니라 시바의 여왕, 고대 이집트의 여신 이시스, 성모 마리아, 심지어 그의 어머니의 화신(化身)으로까지 이어진다.  이후부터 그의 생활은 때때로 일어나는 발광증과 가중되는 생활고으로 몸 담을 집도 없이 거리를 헤매는 비참한 생활을 하게 된다. "내가 시를 쓰게 된 것은 처음에는 청춘의 정열이었으며, 다음은 사랑, 최후는 절망이다"라고 술회할이만큼 40대의 그의 생은 절망의 시대였다.  그러나 이때부터 그는 마치 인생을 정리나 하듯 정신이 들 때마다 자신의 관찰, 연구, 정신적 체험을 담은 작품을 하나 둘 출판했다. 그리고는 1855년 1월 이른 아침, 파리의 한 모퉁이에서 목을 매어 자살하였다.    그는 미친 상태와 냉철한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가운데에서도 비교적 많은 작품과 번역-연구를 남기었으나, 결국 시집(오델리아>와 콩트 라는 두 권의 작품으로 기억되고 있으며 두 작품은 프랑스 문학의 걸작으로 평가되고 있다.이 두 작품은 모두 상상적 기억의 이야기로서, 는 오델리 즉 제니 콜롱의 이야기이며, 는 그의 고향인 발르와 지방의 시골 처녀의 이야기이다. 이야기라고 하지만 그의 꿈과 기억 속에 있는 이야기이다. 이러한 환상적이며 꿈의 세계를 가장 성실하고 명쾌하게 그리고 아름답고 감동적으로 쓴 점에 그의 문학적 가치가 있다.  시의 특성도 그가 살고 느낀 환상적이며 초자연적인 체험을 성실하고 진실되게 기술한 점에 있다. 그런데 그에게 있어서 꿈은 꿈이라 아니라 다른 하나의 생(生)이었고 이 생 가운데 신비로운 세계를 보았다. 이 꿈 속에서 개인의 과거는 인류 전체의 과거와 혼합되고 눈에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초현실적 세계 사이에는 일종의 신비로운 조응(照應)이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이러한 세계에서는 지상에서 일어나는 일은 초자연적인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의 상징이며 징조가 된다. 이러한 면에서 그의 시는 앞으로 올 상징주의나 초현실주의의 선구적인 시가 되었다. 또한 그가 마음 속에서 체험하는 꿈과 환상을 냉철히 관찰하고 분석하여 새로운 세계와 진리에 도달하려던 노력은 그 후 현대 문학에도 이어져 많은 시인과 작가들이 그의 생애와 작품을 연구하고 있다.   창백한 저녁별--- / 알프레드 드 뮈세   석양의 베일을 제치고 빛나는 얼굴을 드러내는 먼 곳에서 온 사자(使者), 창백한 저녁별이여, 창공 속 그대의 푸르른 궁전에서   그대는 이 들판의 무엇을 바라봅니까?   폭풍우는 물러가고 바람도 잡니다. 떨고 있는 숲은 히드 황야에서 울고 있소; 금빛 나방이 가벼운 날개를 치며   향긋한 초원을 지나갑니다.  그대는 잠 든 이 땅 위에서 무엇을 찾습니까? 그러나 이미 그대는 산봉오리 쪽으로 내려오고 있소; 그대는 웃음 지으며 도망갑니다. 우수의 친구여, 그대의 떨리는 눈초리는 꺼질 듯 합니다.   푸른 언덕 위에 내리는 별이여 칠흑의 밤 망토 위에 달린 슬픈 은(銀)의 눈물 방울. 목자가 타박타박 걷는 긴 양 떼를 거느리고 길을 가며 멀리서 쳐다보는 그대,- 별이여, 이 무한한 밤 속에 어디로 가는 겁니까? 강가의 갈대 숲 속에 잠자리를 찾으려는 겁니까? 그렇잖으면 아름다움 별이여, 이 고요한 시각에, 그대는 한 잎의 진주알같이 물 속 깊이 떨어지려는 겁   니까? 아아, 그대가 죽어야 한다면 아름다운 별이여 만일 그대가 금발의 머리를 망막한 바다 물 속에 던지려   한다면 우리를 떠나기 전 잠깐 멈추기를; - 부디 하늘에서 내려오지 말기를, 사랑의 별이여!     잘 있거라 쉬종 / 알프레드 드 뮈세     잘 있거라 쉬종, 금발의 장미화야, 네가 날 사랑한 건 단 여드레지만; 이 세상이 가장 짧은 쾌락이 때로는 가장 진실된 사랑도 된다. 널 두고 떠나는 이 순간도 나는 몰라, 떠돌이 내 별 따라가는 이 내 몸은 어디로 가는지 그러나 나는 간다 내 사랑아   멀리멀리 바삐바삐   항상 다름질치며,   떠나는 내 더운 입술 위에 네 마지막 키스가 아직 타고 있다. 내 두 팔 속에, 분별 없는 아가씨야 네 예쁜 얼굴이 와 묻혔으니 네 가슴 얼마나 고동치는지 들리는가? 지난 날 네 가슴 얼마나 즐겁게 뛰었던가! 그러나 나는 간다 내 사랑아   멀리멀리 바삐바삐   항상 널 사랑하며,   철썩! 내 말 위에 안장 얹는 소리 어찌하여 나 가는 길에, 내 사랑아 네 퉁명스런 얼굴 데러갈 수 없나, 내 손은 네 머리 향기로 온통 물들었는데! 너는 요정처럼 도망치며 웃음 짓는다. 귀여운 새침데기 그러나 나는 간다 내 사랑아   멀리멀리 바삐바삐   활짝 웃음지으며,   네 정다운 이별 속에는 귀여운 아가씨야 슬픔도 많고 매혹도 많아 네 눈 속에 진정이 담겨 있을 땐 네 모든 것이, 네 눈물까지 날 취하게 해. 네 눈을 보면 나는 살고 싶어 그 눈은 나 죽을 때 위로되리라. 그러나 나는 간다, 내 사랑아   멀리멀리 바삐바삐   온통 눈물 뿌리며,   혹시 네가 나를 잊는다 해도, 쉬종 우리들의 사랑만은 잠시 남기도록; 창백해진 꽃다발인 양 네 귀여운 가슴 속에 숨겨 두어라! 잘 있거라 행복일랑 이 집에 두고 추억만이 나와 함께 떠나가니 그 기억은 나와 함께 가리라, 나의 사랑아.   멀리멀리 바삐바삐   언제나 네 생각 품고.     시월이 밤 / 알프레드 드 뮈세     시인이여, 그만해 두오, 그대를 배반한 여인에 대한 그대의 환상이 단 하루밖에 지속되지 않았다 해도 그녀를 말할 때 이 날을 저주하지 말아요. 그대가 사랑받기 원한다면 그대의 사랑을 존중하시오. 타인으로부터 받은 고통을 애써 용서한다는 일이 약한 인간으로서 너무나 힘든 일이라면 적어도 사람을 미워하는 괴로움만은 피하시오. 용서를 할 수 없다면 잊어버리도록 하시오. 죽은 자들의 땅 속에서 평화로이 잠자듯 우리들의 꺼진 감정도 잠자야 합니다. 심정의 유뮬(遺物)들도 유해(遺骸)을 가지고 있으니 이 성스러운 꺼진 감정도 잠자야 합니다. 그대는 왜 이 쓰라린 고뇌의 이야기 가운데 하나의 꿈, 배신당한 사랑만을 보려 합니까? 신의 섭리가 동기 없이 일어난다고 생각합니까? 그럼, 그대를 매질한 신이 그렇게 소홀한 분이라고 생각   합니까? 도리어 그대가 불평하는 이 타격은 그대를 지켜 주었는지   모릅니다. 젊은이여; 바로 그로 인해 그대 마음이 열렸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배우는 자, 고통은 그를 가르치는 스승 고통을 당하지 않고서는 아무 일도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고난의 세례를 받아야 하며 이 슬픔의 값을 치르고야 모든 것이 얻어진다는 것은   가혹한 법칙이나 절대적 법칙이며 이 세상이나 운명과 같이 오랜 것입니다. 곡식이 익기 위해선 이슬이 필요하며 인간이 살고 인생을 느끼기 위해선 눈물이 필요합니다. 기쁨이란 아직 비에 젖고 꽃으로 덮인 한 대의 꺾어진 풀잎이 그 상징입니다. 그대는 어리석은 잘못에서 깨어났다고 생각하지 않았던가요? 그대는 젊고 행복되고 어디서나 환영받지 않나요? 인생을 사랑하게 하는 이 작은 쾌락들도 만일 그대가 눈물 흘린 적이 없었다면 이런 것들의 가치를 얼마나 인정했을까요? 해 저무는 석양의 잡목 우거진 광야에 앉아 정다운 친구와 함께 한가로이 술 마실 때 그대가 만일 기쁨의 댓가를 치루어 보지 못했다면 말해 봐요, 그대가 기쁜 마음으로 잔을 들 수 있을까요? 그대는 꽃과 풀밭과 초목의 푸르름을, 패트라르카의 소네트와 새들의 노래 소리, 미켈란젤로와 예술을, 세익스피어와 자연을 그대는 좋아   할 수 있엇을까요? 만일 그대가 그 속에서 옛날 그대가 체험한 오열을   다시 보지 않았다면? 만일 그대가 그 어느 먼 곳에서 몸의 열기와 못 이루는   잠으로 인해 영원한 안식을 희구한 적이 없었다면 천상의 오묘한 조화를, 밤의 침묵을 중얼거리는 파도 소리를 이해할 수 있을까요?   * 그대는 무엇이 불만입니까? 불멸의 희망이 불행의 손길 아래 그대 맘 속에서 다시 단련된 것입니다. 어째서 그대는 젊은 날의 체험을 싫어하며 그대를 보다 훌륭하게 만든 이 고통을 미워하려 합니까? 오, 나의 젊은이여! 불쌍히 여겨요, 한때 그대를 눈물 흘리게 한 이 아름다운 변심의 여인을 불쌍히 여겨요, 이는 여자이며 신께서는 그녀를 그대 곁   에 둠으로써 고통을 통하여 행복된 자의 비결을 그대에게 깨닫게 한   것입니다. 그녀의 역할은 괴로운 것이었으며 그대를 아마도 사랑했   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운명은 그녀로 하여금 그대의 가슴을 찢도록 원한   것입니다. 그녀는 인생을 알았고 그것을 그대에게 알게 한 것입니다. 다른 여인이 그대의 고통의 열매를 거두었지요. 그 여인을 불쌍히 여겨요, 그녀의 슬픈 사랑은 꿈같이 지   나가 버렸습니다; 그녀는 그대의 상처를 보았으나 그것을 아물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녀의 눈물이 다 거짓은 아니었습니다. 설사 다 거짓이었다 해도 그녀를 불쌍히 여겨요; 이제   그대는 사랑할 수 있어요---   *알프레드 드 뮈세(1810~1857): 알프레드 드 뮈세는 파리의 한 부유하고 교양 있는 가정에서 태어났다. 우아하고 매력있는 이 청년은 인생의 여러 가지 복을 타고 났는데 천재라는 귀한 복도 가지고 있었다. 총명하고 재기 넘치는 이 세기아(世紀兒)는 인생의 여러 길 가운데 생을 살고 맛보고 즐기기 위하여 결국 시를 선택했다.  18세 되던 때부터 이미 유명한 위고의 문학 서클 등에 출입하여 재기와 환상으로 모든 사람의 주목과 사랑과 촉망을 받았으며 20세 되던 해에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풍물을 주제로 한 경쾌하고 재치 있는 시 의 제1부, 뿐만 아니라, 신비로운 사랑의 모험담, 극적인 멜로드라마 연극 등을 출판하여 문단과 사교계의 놀라움과 찬탄을 한 몸에 받았다.  그가 아직 24세가 채 되기 전에 조르지 상드를 만났다. 상드는 30세의 풍만한 육체의 정열적인 부인으로, 가정에서 뛰쳐나와 소설가가 되었다. 두 사람은 곧 열렬한 사랑에 빠진다. 파리 근교 퐁텐느블로우 등에서의 아름다운 밀월(密月) 후 상드는 뮈세를 데리고 이탈리아의 제노바, 플로렌스 등으로 사랑의 도피 여행을 떠난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실망은 빨랐다. 베니스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되어 뮈세는 중병(뇌막염)에 빠져 생사를 헤매게 된다. 상드는 헌신적으로 그를 간호한다. 그러나 그녀는 이 동안 뮈세의 주치의인 이탈리아인 파젤로란 젊은 의사와 또 다른 사랑을 하게 된다.  절망과 질투에 빠진 뮈세는 한때 목숨을 끊으려고도 하였으나 병을 안고 혼자 귀국, 그 후 4개월 동안 온종일 그의 방에 들어 앉아 울고만 있었다고 한다. 그 후 두 사람은 다시 화해하려는 노력도 있었으나 결국 영원히 헤어지고 말았다.  이 사랑과 갈등에 대하여 뮈세는 이란 책 가운데 그 내막을 폭로하였고 상드는 라는 책을 써서 자기 자신을 옹호하였다.  이 3년에 걸친 사랑과 파탄은 뮈세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주었으나 다행이 이 위기를 통하여 시인은 더욱 성숙해지고 인생과 예술을 보는 눈이 깊어졌다. 그리고 그의 시작(詩作) 활동은 왕성해지고 열기를 띠었으며, 문체는 더욱 유려(流麗)해져 가히 절창이라고 부를 만한 일련이 시를 남겼다. 즉 그는 1835년에서부터 약 6년 동안(25세부터 30세까지) "밤"이란 제목의 네 편의 장시(長詩)를 썼는데 "5월의 밤"(1835), "12월의 밤"(1835), "8월의 밤"(1836)과 "10월의 밤"(1837)이다. 이 영혼의 절규는 그의 시 가운데서도 가장 아름답고 유창하여 프랑스 낭만파 서정시의 걸작이라고 하는 작품 들이다.  이 시들 가운데 시인은 그 자신의 고통과 슬픔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며 절망과 저주에서 벗어나 어떻게 마음의 평화를 회복할 수 있는가를 다루고 있는데 특히 그는 인간의 고통과 슬픔이 인생과 예술 창작에 있어서 어떠한 역할을 하는가를 찾고 있다. 인간은 고통과 슬픔을 통해서 더욱 깊어지고 힘차지고 이를 통해서 비로소 자연과 예술의 아름다움을 알 수 있고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결론이다.     그의 만년은 비참한 것이었다. 그는 30세에 이미 노성(老成)한 폐인(廢人)으로 그 후에도 몇 편의 시, 몇 개의 단편소설, 그리고 큰 성공을 거둔 연극 작품도 있었으나 지나친 음주와 무절제한 생활로 그의 정신과 육체를 조기에 마멸시켜 버렸다.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이기도 한 그가 47세의 나이로 소식 없이 죽었을 때에는 겨우 30명 내외의 친지가 모여 그의 관을 따랐다고 한다.   뮈세의 무덤은 파리의 몽마르트 근처에 있는 페르 라세즈 공동 묘지 안에 있는데 그 무덤 옆에는 그의 희망에 따라 한 그루의 버드나무가 심어져 있고 그의 묘석에는 다음과 같은 그의 6행시가 새겨져 있다.   내가 죽거든, 내 친구들이여, 무덤 위에 버드나무 한 그루 심어 주오. 나는 그 늘어진 잎새를 좋아하며 그 푸른 빛깔은 부드럽고 다정해, 내가 잠자는 땅 위에 산뜻한 그림자를 드리울 거요.    뮈세는 세상 사람들이 말하듯이 '낭만파의 응석동이' 혹은 '무서운 아이'였다. 모든 재능과 자질을 겸비하면서도 사회적 안목과 도덕적 척추가 결여된 그는 자연히 인생의 향락과 청춘의 구가에 온 정력을 소진했다. 특히 음주와 연애 행각에 몸과 마음을 다 바쳤다. 그는 사랑을 하지 않고서는 살 수 없는 인간이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이 방탕아는 이러한 사랑의 편력 가운데서 사랑의 본질을 추구했고, 그 고뇌를 체험했고, 그 고통에서 벗어나려 했고, 그 가치를 찾으려 했다. 이러한 노력과 싸움은 성실하고 진지하고 강렬하여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데가 있었다. 그는 라는 시의 끝에서   "이제  이 세상에 남은 나의 유일한 재산은 때로 눈물 흘렸다는 일"   이라고 했는데 그 대신 "때로 사랑을 했다는 일"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뮈세는 사랑의 시인이었다. 그는 사랑의 절대성을 믿었고 사랑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변치않는 유일의 현실이라고 생각했다.   그대의 뼈는 관 속에서 먼지로 남으리라. 그대의 기억도 이름도 명예도 사라지리라. 그러나 그대의 사랑만은, 만일 그 사랑이 그대에게 귀한 것이   라면 그대의 영원한 영혼은 이 사랑을 기억하리라.    사랑의 절대성을 믿었던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사랑하였다는 그 사실, 그 추억은 이 세상의 다른 어떤 행복보다도 감미롭다고 믿었다. 그가 옛날 사랑을 주고받던 곳에 돌아가 보고 그는 이렇게 노래했다.   나는 단지 이렇게 말하리라; 이 때 이 곳에서 한때 나는 사랑받았고 사랑했고 그녀는 아름다웠다. 나는 이 보물을 내 영원한 영혼 속에 묻고 하늘 나라로 가져가리라.    이러한 생각과 믿음은 그의 지식이나 사고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그의 심정에서, 그의 감정에서 그대로 우러나온 것이다. "예술가나 시인에게 필요한 것은 감정이다"라고 그는 말한다. 또 "네 가슴을 두드리라" 거기에 천재가 있다" 라고도 했다. 이러한 점에서 그의 시는 영원히 낭만파에 속하며 이 영원한 감정에 대하여 그는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운 표현을 주었다. 이것이 그로 하여금 낭만파의 4대 시인의 하나로 꼽히게 하였으며, 그의 시가 지니고 있는 흥미롭고 근대적인 가치라고 하겠다.   바닷가에서 / 테오필 고티에     드높은 창공에서 달님이 손에 든 오색 찬란한 큰 부채를 잠시 방심한 사이 바다의 푸른 융단 위에 떨어뜨렸소.   건지려고 달님은 몸을 숙여 은빛 고운 팔을 내밀었으나 부채는 흰 손을 빠져 나가 지나는 파도에 실려 나갔소.   그대에게 부채를 돌려주기 위해, 달님이시여, 천 길 물 속에라도 뛰어들리다 그대가 하늘에서 내려오신다면 이 몸이 하늘로 올라갈 수만 있다면.     비둘기들 / 테오필 고티에     저기 무덤들 널려 있는 언덕 위에 아름다운 종려나무 한 그루, 군모(軍帽) 앞의 녹색 깃털   처럼 우뚤 서 있고 거기에 저녁마다 비둘기들 몰려와 그 속에, 깃들이며 몸을 숨긴다. 아침되면 이 새들, 나뭇가지를 떠나간다. 목걸이 구슬알이 풀려 나가듯 흰 비둘기들 푸른 하늘 속에 산산이 흩어졌다가 좀더 먼 지붕 위에 내려앉는다.   나의 영혼은 이 종려나무, 거기에 밤마다, 비둘기처럼 산란한 환상의 흰 떼들이 날개를 퍼덕이며 하늘에서 내려왔다가 새벽 빛이 들자마자 날아가 버린다.     랑드의 소나무 / 테오필 고티에     흰 모래로 뒤덮인 진정 프랑스의 사하라라고 할 랑드의 광야를 지날 때 보이는 나무라곤 메마른 풀숲과 초록색 웅덩이에 솟아나는 옆구리에 상처입은 소나무들 뿐,   이는 소나무의 눈물, 송진을 훔치기 위해 자기가 살해한 자의 희생으로만 사는 인간이라는 욕심 많은 창조물의 사형 집행인이 나무의 아파하는 몸통에 넓은 홈을 파놓기 때문.   뚝뚝 떨어지는 핏방울을 아쉬워함도 없이 소나무는 향유(香油)와 수액(樹液)을 흘린다. 그러면서도 길가에 시종 꿋꿋이 서 있다. 서서 죽기를 원하는 부상병같이.   시인도 인간의 광야에서는 이 나무와 같아 상처가 없을 때엔 자기의 보화를 심중에 간직하나 일단 그의 노래, 성스러운 황금 눈물을 뿌리기 위해서는 그의 가슴 속에 깊은 상처를 가져야 한다.     테오필 고티에(1811~1872): 테오필 고티에는 소위 '예술을 위한 예술'의 주창자로 유명하다. 시인으로서 처음에는 낭만파의 색채가 농후했으나 차츰 감정의 시가(詩歌)에서 벗어나 지적이며 냉철한 파르나스파(Parnassien 고답파)의 시가로 넘어가는 과도기를 이루고 있다.  그는 프랑스 서쪽 국경 지대, 피레네 지방의 타르브에서 태어났으나 어려서 부모와 함께 파리로 이주했다. 처음에는 루이 르 그랑 중고등학교를 다니다가 후에 샤를마뉴 중고등학교로 옮겼는데 여기서 제라르 드 네르발을 만나 친교를 맺는다. 젊은(19세) 시절, 빨간 조끼의 시인 고티에는 동창생 네르발과 젊은 화가-시인들을 규합하여 전투적인 낭만파를 조직, 빅토르 위고의 깃발 아래 고전파 공격에 앞장섰다. 1830년 위고의 연극 상연 첫날 밤에는 빨간 공단 조끼에 녹색 바지를 받쳐 입고 머리에 챙 넒은 모자를 쓰고 위고 편에 서서 소위 의 싸움을 승리로 이끈 일은 유명한 이야기이다. 이 일은 당시의 고전파 인사들과 상류층 신사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데 충분했다.  이 때부터 그는 그림을 버리고 문학, 특히 시에 생을 바치기로 결심하였다. 그러나 생계를 꾸려가기 위하여 신문사에 들어가 예술과 연극 비평가로 기사, 잡문, 논설, 신문 단편소설 등을 썼는데 여가를 내어 시도 썼다. 1830년에 발표한 첫 시집 를 비롯하여 , , , 그리고 그의 대표 시집으로 등이 있다. 형태와 색채를 즐기는 그는 또한 여행을 좋아하여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 터기, 러시아 등을 두루 다니며 이를 주제로 한 많은 풍물기와 시들을 썼다. 특히 이베리아 반도의 거칠고 햇빛으로 가득 찬 풍경과 스페인 화가 들의 그림을 주제로 한 시들은 아름다운 소품들이다.  그는 원래 화가가 되려다 문학으로 옮긴만큼 시에서 시각(視覺)을 중요시한 이미지스트(Imagiste)이며 자연미 보다 인공미를 만들어 내는 것이 시인의 본질이라고 생각한 사람이다. 그러므로 그는 시를 이루는 말과 형태를 깎고 다듬어 완성된 조형미를 만들어 내는 데 전력을 다하였다. 자기의 역작이며 중심 작품의 이름을 이라고 붙인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마치 금은 보석의 세공사와도 같이 작은 형상을 아름답게 갈고 다듬어 완전한 형대를 만드는 데 그의 노력을 바쳤다. 따라서 문학사에 있어 그의 공적은 낭만파의 조잡한 자연 묘사나 무절제한 감정 토로에서 벗어나 시가의 미(美)에 인공적 미를 가하고 아름다운 형태미를 창조하는 역할을 한 데 있다.   또한 그는 시나 문학에서 예술 이외의 모든 것 즉 사상이나 정치, 도덕, 철학, 그 밖의 모든 유용성을 배격한 예술을 위한 예술의 주창자로 나섰다. "아무 것에도 쓰일 수 없는 것만이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다. 유익한 모든 것은 추하다"라고 선언했다. 이 주창의 정당성은 차치하고라도 그의 이론과 실천(창작활동)은 의외로 많은 예술가와 문인의 호응을 받았고 또 보들레르, 방빌, 플로베르 등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특히 그보다 10살 아래인 보들레르는 이 이론의 열렬한 신봉자이었다. 보들레르가 그의 유일한 시집 을 고티에 선생에게 바치고 그 헌사(獻詞)에서 그를 '완전 무결한 시인', '프랑스 문학의 마술사'라고 부른 것은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이다.    나폴레옹 3세 제정(帝政)시 고티에는 관보(官報)의 편집 책임자로 임명되고 생활도 나아졌으나 1870년 보불 전쟁과 뒤이은 파리 코뮌(Commune)의 충격으로 1872년 파리 근교에서 급서(急逝)하였다.  
214    시(詩) 창작에 도움되는 창작기법 댓글:  조회:1447  추천:1  2017-08-09
 시(詩) 창작에 도움되는 창작기법   1. 식물이나 동물들에 늘 관심을 갖고 메모, 관찰하는 습관을 지녀라.   (꽃, 나무, 풀, 조류, 곤충류, 어패류 등....多識於鳥獸草木之名)   모란꽃 / 박강남 봄바람 서둘러 지나간 / 간이역 같은 어머니의 텃밭에 / 장다리꽃 파꽃 쑥갓이 무성터니 귓불 빨갛던 꽃봉오리 / 오월 미풍에 환하게 웃었다.// 붉디붉게 목숨 불사룬 / 신라 여왕 우아한 그 웃음에 / 어머니댁은 궁정되고 구름 떠가는 드맑은 하늘 따라 / 아욱도 제 키를 쭈-욱 뽑는다.     2. 자연과 늘 친화하고 기후와 계절의 변화에 민감하게 접근하라.   (안개, 봄비, 꽃샘, 폭풍, 빗소리, 구름, 동서남북풍, 강바람, 산바람, 신바람, 솔바람 등) 윤사월(閏四月) / 박목월 송화(松花) 가루 날리는 / 외딴 봉우리 // 윤사월 해 길다 / 꾀꼬리 울면 // 산지기 외딴 집 / 눈 먼 처녀사 // 문설주에 귀 대고 / 엿듣고 있다. 푹 삭힌 홍어 맛에 콧등이 쏴 하듯이 추위 속 가지마다 봄비에 눈물 맺혀 꽃망울 곤지 찍고서 필듯 말듯 웃었다. - 이흥우,「꽃샘 추위에도 봄은 웃는다」   3. 시어의 선택에 늘 골몰하라, 선택을 엄격히 하여 참신성을 고조시켜라.   시는 언어의 예술이다, 시어사전이나 우리 고유어 사전을 비치해 놓고 창작시에는 순수한 우리말을 많이 활용하라(제목은 범위를 좁혀라(구체화): 꽃→유채꽃, 여우→불여우) 시인은 언어의 조련사, 함축적 시어들을 많이 활용해야 시다운 시다. (나무 전지→미적 가치)   * 시의 3요소 : 음악적 요소(운율), 회화적 요소(심상,이미지),의미적 요소(주제,함축적 의미)   덥고 긴 날 / 조운 북방한계선에서/ 碧松 찌는 듯 무더운 날이 / 길기도 무던 길다 까마귀 노을타고 북쪽으로 넘어가고 고냥 앉은 채로 / 으긋이 배겨 보자 흰구름 바람결에 자유로이 흘러가니 끝내는 제가 못 견디어 / 그만 지고 마누나. 제발 좀 놓아들 다오 지긋한 이념에서   4. 때때로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가라 (大人 赤子之心, 사람심기, 입치, 귀치)   5. 늘 고독을 벗 삼아라(고독은 진정한 자아발견의 찬스이며, 문예 창작 최고의 창작 환경이다.)   김형석 / 고독이라는 병 ---정신인은 그와는 반대다. 아름다운 예술이 탄생 되는 것도, 훌륭한 사상이 쳬계를 가지는 것도, 위대 한 학문이 주어지는 것도 모두가 이러한 정신인의 고독한 창조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그러므로 범죄한 사람들을 교도소에 가둔다는 일은, 자연인에게는 무서운 처벌이 되나 정신인에게는 오히려 훌륭한 자기 완성의 도장이 되기도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6. 발상의 전환(낯설게 하기의 기법)을 위해 늘 무엇이든 뒤집어서 생각하라.   넌센스, 알레고리(우의,풍유,풍자)의 미학, 패러독스(역설:소리 없는 아우성 등)에 접근하는 길이다. - 17 - 현대시는 낭송을 하거나 읽기 위한 시가 아니라 독자로 하여금 상상하고 공감을 느끼도록 이끈다. 때로는 뜻밖의 아이디어 진술, 엉뚱한 제목, 엉뚱한 발상, 시상 등은 시의 참신성을 더해 줄 것이다. 내용에 따른 상상력은 독자와 평론가의 몫이다.   바람만 가득히 찬 공은 / 다만 / 모나기를 거부한 존재 그렇기에 속없이 / 이리 둥글 저리 둥글/떠돌이의 넋으로 구르다가 / 발길에 차이는 존재 하지만, / 네 넋에 단 하나뿐인 / 바람기마저 없다면 / 네 생명은 끝이다. -진의하, 전문   7. 모든 사물을 생명체로 보고 감각적 교감을 나눠라. (만물에 눈,코,귀,입 다 있다. 나무가 걸어다닌다. 돌에서 피를 뽑아내니 신음 소리가 진동한다 등) 개성적 안목의 관찰로 특징을 터득하는 습관을 갖는다.   가을 이미지 / 이우종 잘 익은 가을볕이 / 창을 톡톡 두드리네 못 죽을 그리움에 / 갈잎이 굴러가네 때 묻은 기억들이 / 악수를 청해 오고 빈 방을 서성대다 / 절반쯤 문을 열자 하늘도 / 구름 사이로 / 엉덩이를 들썩이네. 남산이 / 발꿈치 들고 / 알몸으로 안겨 오네.   8. 사물에 이름표를 붙여줘라(새로운 의미 부여로 참신한 글이 되도록 노력하라)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 그는 나에게로 와서 / 꽃이 되었다. -   9. 문제의식을 늘 가져라.(어떤 사물을 대할 때, 어떤 생각을 할 때, 현실적․사회적 문제의식→ 이것이 시정신이며 작가정신이다.)---평범 속에 진실이 발견되는 진솔한 글   도루묵 / 변인숙 은어라 불러주면 비늘조차 황홀하다 도루묵 불러내면 그 맛조차 텁텁하고 얄궂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세상사가.   10. 농축된 체험을 돌려써라(진실성과도 연관, 자기만 의 체험에서 우러나온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 보면 독자들의 입맛을 돋울 것이다. 사람을 대할 때 우리는 진실성을 제일로 꼽는다. 진실한 글은 자기만의 체험에서 우러나왔기에 억지로 꾸밈이 없다. 문학기행에 의한 체험은 작문의 좋은 창의력을 제공해 준다.)   공원 벤치 풍경 / 이종철 자작나무 그늘 아래 추억이 머물던 곳 한 여름 매미 소리 그늘 속에 듣던 노인 찬바람 일렁이니 가을도 떠날 채비 백발도 낙엽지니 남녘 딸네 가시었나 낙엽은 가기 싫은지 벤치 위를 뒹군다. 가을비 심술궂게도 정든 노심 쓸어간다.   11. 늘 떠오르는 시상을 메모해 두는 습관을 지녀라.(베갯머리에도 필기도구 준비)   사랑(思郞)이 거즛말이 님 날 사랑 거즛말이 꿈에 와 뵈단 말이 긔 더욱 거즛말이 날 갓치 잠 아니 오면 어늬 꿈에 뵈리오. - 김상용(1561-1637)   - 18 -   12. 설명하려 들지 말고 사물의 특징으로 간접적으로 돌려 표현하라.(메타포-은유와 상징) 돌려쓰기(비유)의 기법을 시도해야 품격도 높아지고 문학성도 가미된다. 음식도 맛이 있어야 하는데, 적절한 수사법 활용은 한층 글의 맛을 더해 준다. (거짓말로 참말하기-유안진) * ~ 열릴 듯 닫힌 문으로 눈이 자주 가더라. (최남선), * 청산리(靑山裡) 벽계수(碧溪水)야~ (황진이)   13. 형상화, 구상화, 구체화시켜라 --추상적 관념적 대상을, 즉 안 보이는 대상을 보이는 것처럼 구 상화․형상화시켜 표현하라 (방긋 웃는 아침 소망, 나뭇가지에 걸린 보름달 등)추상적 관념을 구체화 (형상화)시켜야 이미지가 형성된다.------(詩中有畵, 畵中有詩) * 나뭇가지가 흔들거린다. → 나뭇가지가 하늘을 빗질하고 있다. * 추억이 빨간 노을에 젖어 있었다. 벤취 위엔 소녀들이 남기고간 가벼운 웃음과 시들은 꽃다발이 흩어져 있었다. 聖敎堂의 지붕 위에선 분수(噴水)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김광균)   14. 공감대가 형성되도록 글을 쓰라.   글은 누구나 공감을 느끼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도록 감수성의 동일화(원형상징)를 이끌어 내도록 써야 한다   분수도 모르고 하늘로 치솟는 물줄기 아래로 흐르는 것이 세상의 이치였음을 뒤늦게 / 깨달아 얻는 / 곤두박질의 저 미학(美學). - 조흥원, 「분수」전문   위의 글은 ‘분수’라는 제재의 발음이 지니고 있는 중의적 의미를 가지고, 재치 있게‘날뛰는 군상들’을 꼬집는 글이다. 이러한 글들은 대개 체험으로부터 우러나온 깨달음에 의해 창작된 것이기에 경구적 의미나 금언 ‧ 격언 등의 공감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좋은 기법이다   15. 시는 고심 끝에 고쳐서 내보내고 명시를 많이 읽어보라.   그리움/ 안영희 시장 길 / 접어들면 / 우체통 하나 있지 // 괜스레 / 울먹이는 / 마음 하나 집어넣고 // 뒤돌아 / 뒤돌아서면 / 따라오는 그리움   인생사 / 대우 문틈에 우는 바람 / 달래고 잠재운 건 // 들보나 기둥 아닌 / 문풍지 한 장인 걸 // 인생사 / 꿈의 무게도 / 이런 것이 아니던가.   16. 자신의 창작물을 늘 가까이 읽어 주며 충고해 주는 사람을 두어라.(스승이나 벗, 부부 등)    
213    에밀리 디킨슨 시모음 댓글:  조회:2749  추천:0  2017-07-31
에밀리 디킨슨 시모음   1830-1886   미국 시인   미국의 여성 시인. 매사추세츠 주 에머스트의 청교도 가정에서 태어나 일생 동안 외부 세계와 담을 쌓고 지냈다.   에머스트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뒤 마운트 홀리요크 신학대학에 입학하였으나 1년 만에 중퇴하고 시쓰는 일에 전념하며 평생을 독신으로 보냈다. 처자가 있는 목사와의 사랑이 실연으로 끝나자 그녀의 시적 재능은 둑을 터뜨린 봇물처럼 넘쳐흘렀다.   그러나 그녀가 쓴 시 1775편 가운데 생전에 발표된 것은 단 7편에 불과하다.     그녀의 시는 자연과 사랑 외에도 퓨리터니즘을 배경으로 한 죽음과 영원 등의 주제를 많이 다루고 있다.   운율에서나 문법에서나 파격적이었기 때문에 19세기에는 인정을 받지 못하였으나, 20세기에 들어와서 이미지즘과 형이상학파적 시의 유행과 더불어 높이 평가받게 되었다.     작품으로는 〈상처난 사슴은 높이 뛴다〉 등이 있다.   주요저서 : 《전시집(全詩集)》(1855) 《전서간집 (全書簡集)》(1858)           애 타는 가슴 하나 달랠 수 있다면     애 타는 가슴 하나 달랠 수 있다면 내 삶은 결코 헛되지 않으리.   한 생명의 아픔 덜어줄 수 있거나, 괴로움 하나 달래 줄 수 있다면,   헐떡이는 작은 새 한 마리 도와 둥지에 다시 넣어줄 수 있다면,   내 삶은 결코 헛되지 않으리.       길에 뒹구는 저 작은 돌     길에서 혼자 뒹구는 저 작은 돌 얼마나 행복할까   세상 출셀랑 아랑곳없고 급한 일 일어날까 두려움 없네   천연의 갈색 옷은 지나던 어느 우주가 입혀줬나   혼자 살며 홀로 빛나는 태양처럼 다른 데 의지함 없이   꾸미지 않고 소박하게 살며 하늘의 뜻을 온전히 따르네       죽음을 위해 내가 멈출 수 없어     죽음을 위해 내가 멈출 수 없어 그가 나를 위해 친절히 멈추었다.   마차는 바로 우리 자신과 불멸을 실었다.     우리는 서서히 달렸다. 그는 서두르지도 않았다. 그가 너무 정중하여   나는 일과 여가도 제쳐놓았다.     아이들이 휴식 시간에 원을 만들어 뛰노는 학교를 지났다.   응시하는 곡식 들판도 지났고 저무는 태양도 지나갔다.     아니 오히려 해가 우리를 지나갔다. 이슬이 스며들어   얇은 명주, 나의 겉옷과 명주 망사-숄로는 떨리고 차가웠다.     부푼 둔덕처럼 보이는 집 앞에 우리는 멈추었다.   지붕은 거의 볼 수 없고 박공은 땅 속에 묻혀 있었다.     그 후 수 세기가 흘렀으나 말 머리가 영원을   향한듯 짐작되던 바로 그 날보다 더 짧게 느껴진다.     나는 고뇌의 표정이 좋다     나는 고뇌의 표정이 좋아. 그것이 진실임을 알기에-   사람은 경련을 피하거나 고통을 흉내낼 수 없다.     눈빛이 일단 흐려지면-그것이 죽음이다. 꾸밈없는 고뇌가   이마 위에 구슬땀을 꿰는 척할 수는 없는 법이다.     내 인생은-장전된 총     내 인생은 - 장전된 총으로 구석에 서 있던- 어느 날   마침내 주인이 지나가다- 날 알아보고 나를 데려갔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국왕의 숲을 헤매면서 사슴사냥을 하고 있다.   내가 주인 위해 말할 때마다- 산들이 당장 대답한다.     내가 미소지으면 힘찬 빛이 계곡에서 번쩍한다.   베수비어스 화산이 즐거움을 토해내는 듯하다.     밤이 되어 멋진 하루가 끝나면 나는 주인님 머리맡을 지킨다.   밤을 함께 보내다니 푹신한 오리 솜털 베개보다 더 좋다.     그분의 적에게- 나는 무서운 적이다. 내가 노란 총구를 겨누거나   엄지에 힘을 주면 아무도 두 번 다시 움직이지 못한다.     비록 그분보다 내가- 더 오래 살지 모르나 그분은 나보다- 더 오래 살아야 한다.   나는 죽이는 능력은 있어도 죽는 힘은 없으므로-       희망은 날개를 가지고 있는 것   희망은 날개를 가지고 있는 것 영혼 속에 머무르면서   가사 없는 노래를 부르면서 결코 멈추는 일이란 없다.     광풍 속에서 더욱더 아름답게 들린다. 폭풍우도 괴로워 하리라.   이 작은 새를 당황케 함으로 해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했었는데.     얼어들 듯 추운 나라나 멀리 떨어진 바다 근처에서 그 노래를 들었다.   그러나 어려움 속에 있으면서 한 번이라도 빵조각을 구걸하는 일은 하지 않았다.         황야를 본적 없어도     나 아직 황야를 본 적 없어도, 나 아직 황야를 본 적 없어도,   히드 풀이 어떻게 생긴 것인지 파도가 어떤 건지 알고 있다오.     나 아직 하느님과 말 못 했어도, 저 하늘 나라에 간 적 없어도,   지도책을 펴놓고 보는 것처럼 그 곳을 자세하게 알고 있다오
212    로버트 프로스트 시모음 댓글:  조회:2199  추천:0  2017-07-31
로버트 프로스트 시모음   1874~1963   미국의 시인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났다. 교사, 신문 기자로 일하다가, 1912년 영국으로 건너갔는데, 그것이 시인으로서의 새로운 출발이 되었다.   토마스·브룩 등 영국의 시인과 사귈 기회를 얻었으며 그들의 추천으로 첫 시집 《소년의 의지》가 런던에서 출판되었고, 이어 《보스턴의 북쪽》이 출간됨으로써 시인으로서의 지위를 확립하였다. 소박한 농민과 자연을 노래함으로써 현대 미국 시인 중에서 가장 순수한 고전적 시인으로 꼽힌다. 일상적인 언어와 익숙한 리듬, 평범한 생활에서 취한 상징을 사용하여 뉴잉글랜드 지방 생활의 평온함을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그 밖의 시집으로는 《산의 골짜기》 《서쪽으로 흐르는 개울》 《표지의 나무》 등이 있다.   가지 않은 길 (The Road Not Taken)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고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 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 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던 게지요.   그 길을 걸으므로,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이지만. 그날 두 길에는   낙엽을 밟은 자취는 없었습니다.   아, 나는 다음 날을 위하여   한 길은 남겨 두었습니다.   길은 길에 연하여 끝없으므로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자작나무 꼿꼿하고 검푸른 나무 줄기 사이로 자작나무가 좌우로 휘어져 있는 것을 보면   나는 어떤 아이가 그걸 흔들고 있었다고 생각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흔들어서는 눈보라가 그렇게 하듯 나무들을 아주 휘어져 있게는 못한다     비가 온 뒤 개인 겨울 날 아침 나뭇가지에 얼음이 잔뜩 쌓여있는 걸 본 일이 있을 것이다.   바람이 불면 흔들려 딸그락거리고 그 얼음 에나멜이 갈라지고 금이 가면서 오색 찬란하게 빛난다   어느새 따뜻한 햇빛은 그것들을 녹여 굳어진 눈 위에 수정 비늘처럼 쏟아져 내리게 한다   그 부서진 유리더미를 쓸어 치운다면 당신은 하늘 속 천정이 허물어져 버렸다고 생각할는지도 모른다   나무들은 얼음 무게에 못 이겨 말라붙은 고사리에 끝이 닿도록 휘어지지만   부러지지는 않을 것 같다. 비록 한 번 휜 채 오래 있으면 다시 꼿꼿이 서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리하여 세월이 지나면 머리 감은 아가씨가 햇빛에 머리를 말리려고   무릎꿇고 엎드려 머리를 풀어던지듯 잎을 땅에 끌며 허리를 굽히고 있는 나무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얼음 사태가 나무를 휘게 했다는 사실로 나는 진실을 말하려고 했지만   그래도 나는 소를 데리러 나왔던 아이가 나무들을 휘어 놓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어진다     시골 구석에 살기 때문에 야구도 못 배우고 스스로 만들어낸 장난을 할 뿐이며   여름이나 겨울이나 혼자 노는 어떤 소년 아버지가 키우는 나무들 하나씩 타고 오르며   가지가 다 휠 때까지 나무들이 모두 축 늘어질 때까지   되풀이 오르내리며 정복하는 소년 그리하여 그는 나무에 성급히 기어오르지 않는 법을   그래서 나무를 뿌리째 뽑지 않는 법을 배웠을 것이다 그는 언제나 나무 꼭대기로 기어 오를 자세를 취하고   우리가 잔을 찰찰 넘치게 채울 때 그렇듯 조심스럽게 기어 오른다   그리고는 몸을 날려, 발이 먼저 닿도록 하면서 휙 하고 바람을 가르며 땅으로 뛰어 내린다     나도 한때는 그렇게 자작나무를 휘어잡던 소년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시절도 돌아가고 싶어한다   걱정이 많아지고 인생이 정말 길 없는 숲같아서   얼굴이 거미줄에 걸려 얼얼하고 근지러울 때 그리고 작은 가지가 눈을 때려   한 쪽 눈에서 눈물이 날 때면 더욱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진다   이 세상을 잠시 떠났다가 다시 와서 새 출발을 하고 싶어진다   그렇다고 운명의 신이 고의로 오해하여 내 소망을 반만 들어주면서 나를 이 세상에 돌아오지 못하게 아주 데려가 버리지는 않겠지     세상은 사랑하기에 알맞은 곳 이 세상보다 더 나은 곳이 어디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나는 자작나무 타듯 살아 가고 싶다 하늘을 향해, 설백의 줄기를 타고 검은 가지에 올라   나무가 더 견디지 못할 만큼 높이 올라갔다가 가지 끝을 늘어뜨려 다시 땅위에 내려오듯 살고 싶다   가는 것도 돌아오는 것도 좋은 일이다. 자작나무 흔드는 이보다 훨씬 못하게 살 수도 있으니까.         창가의 나무   내 창가에 서 잇는 나무, 창가의 나무여 밤이 오면 창틀은 내리게 마련이지만   나와 나 사이의 커튼은 결코 치지 않으련다.     대지에서 치솟은 몽롱한 꿈의 머리 구름에 이어 크게 확대되고 있는 것   네가 소리내어 말하는 가벼운 말이 모두 다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지는 않으리라.     하지만 나무여, 바람에 흔들리는 네 모습을 보았다. 만일 너도 잠든 내 모습을 보았다면   내가 자유를 잃고 밀려 흘러가 거의 절망이었음을 알게 되었으리라.     운명의 여신이 우리 머리를 마주 보게 한 그 날 그녀의 그 상상력을 발휘한 것이다.   네 머리는 바깥 날씨에 많이 관련되고 내 머리는 마음 속 날씨에 관련되어 있으니.       눈 내리는 저녁 숲가에 서서     이것이 누구의 숲인지 나는 알겠다 물론 그의 집은 마을에 있지만   그는 재가 여기 서서 눈이 가득 쌓이는 자기 숲을 보고 있음을 못 볼 것이다.     내 작은 말은, 근처에 농가도 없고 숲이 얼어붙은 호수 사이에   한 해의 가장 어두운 저녁에 서 있음을 이상하게 여길 것이다.     내 작은 말은 방울을 흔들어 무슨 잘못이라도 있느냐고 묻는다   다른 소리라고는 다만 스쳐가는 조용한 바람과 솜털 같은 눈송이뿐,     아름답고 어둡고 아늑한 숲 속. 그러나 내게는 지켜야 할 약속이 있고,   자기 전에 가야 할 길이 있다. 자기 전에 가야 할 길이 있다.       밤에 익숙해지며     나는 어느새 밤에 익숙해지게 되었다.   빗속을 홀로 거닐다 빗속에 되돌아왔다. 거리 끝 불빛 없는 곳까지 거닐다 왔다.   쓸쓸한 느낌이 드는 길거리를 바라보았다.   저녁 순시를 하는 경관이 곁을 스쳐 지나쳐도 얼굴을 숙이고 모르는 채 했다.     잠시 멈추어 서서 발소리를 죽이고 멀리서부터 들려와 다른 길거리를 통해 집들을 건너서 그 어떤 소리가 들렸으나     그것은 나를 부르기 위해서도 아니었고 이별을 알리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오직 멀리 이 세상 것이 아닌 것처럼 높다란 곳에 빛나는 큰 시계가 하늘에 걸려 있어     지금 시대가 나쁘지도 또 좋지도 않다고 알려 주고 있었다. 나는 어느새 밤에 익숙해지게 되었다       불과 얼음   어떤 사람은 이 세상이 불로 끝날 거라고 말하고, 또 어떤 사람은 얼음으로 끝난다고 말한다.   내가 맛 본 욕망에 비춰 보면 나는 불로 끝난다는 사람들 편을 들고 싶다.   그러나 세상이 두 번 멸망한다면 파괴하는 데는 얼음도   대단한 힘을 갖고 있다고 말할 만큼 나는 증오에 대해서도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게 말하는 걸로 충분하다  
211    롱펠로우 시모음 댓글:  조회:1848  추천:0  2017-07-31
롱펠로우 시모음 1807~1882   미국의 시인   메인주(州)의 포틀랜드 출생. 보든대학을 졸업한 뒤 약 3년 동안 유럽에 유학하고, 1829년 귀국하여 모교 교수로 있다가 하버드 대학 교수가 되었다.   1839년 독일 낭만주의 영향을 받은 첫 시집 《밤의 소리》를 발표하면서 시인이 된 뒤, 많은 시를 발표하였다. 국민 시인으로서, 건전한 인생관을 가진 그의 시는 비교적 쉽게 쓰여 있어 많은 사람들에게 읽혔다.   또한, 유럽의 민요를 미국 대중에게 널리 전달한 공은 크다.  그 밖의 작품으로는 등이 있다.   화살과 노래     하늘을 향해 나는 활을 당겼다. 화살은 땅에 떨어졌었다. 그곳이 어디인지는 알 수 없지만, 너무도 빨리 날아가 버려 눈으로도 그 화살을 따를 수 없었다. 하늘을 향해 나는 노래를 불렀다. 노래는 땅에 떨어졌었다. 그곳이 어디인지는 알 수 없지만, 눈길이 제 아무리 예리하고 강하다한들 날아가는 노래를 그 누가 볼 수 있으랴. 오랜 오랜 세월이 흐른 후 한 느티나무에서 나는 보았다. 아직 껏이지 않은 채 박혀있는 화살을 그리고 노래도 처음부터 끝까지, 한 친구의 가슴 속에 살아 있는 것을 나는 발견하였다.   인생예찬   슬픈 사연으로 내게 말하지 말아라. 인생은 한갓 헛된 꿈에 불과하다고 !   잠자는 영혼은 죽은 것이어니 만물의 외양의 모습 그대로가 아니다.     인생은 진실이다 ! 인생은 진지하다. 무덤이 그 종말이 될 수는 없다.   "너는 흙이어니 흙으로 돌아가라." 이 말은 영혼에 대해 한 말은 아니다.     우리가 가야할 곳, 또한 가는 길은 향락도 아니요, 슬픔도 아니다.   저마다 내일이 오늘보다 낫도록 행동하는 그것이 목적이요, 길이다.     예술은 길고 세월은 빨리 간다. 우리의 심장은 튼튼하고 용감하나   싸맨 북소리처럼 둔탁하게 무덤 향한 장송곡을 치고 있으니.     이 세상 넓고 넓은 싸움터에서 인생의 노영 안에서   발 없이 쫓기는 짐승처럼 되지 말고 싸움에 이기는 영웅이 되라.       잃고 얻은 것     잃은 것과 얻은 것 놓친 것과 이룬 것   저울질해 보니 자랑할 게 별로 없구나   내 아느니 많은 날 헛되이 보내고   화살처럼 날려보낸 좋은 뜻 못 미치거나 빗나갔음을   하지만 누가 이처럼 손익을 따지겠는가   실패가 알고 보면 승리일지 모르고 달도 기우면 다시 차오느니     바다의 소리   바다는 한밤중 정적을 깨고, 조약돌 해변에 몰려온다.   나는 잠을 깨고 거침없이 밀려드는 썰물 소리를 듣는다;   심연의 정적을 뚫고 나오는 소리, 산허리에 떨어지는 폭포 소리처럼,   울창한 절벽을 스치는 성난 바람 소리처럼, 신비하게 바뀌는 소리를.     때로는 우리 인생에도, 미지의 세계에서 고독의 파도가 밀려온다.   영혼으 조수가 밀려온다; 우리에게 떠오르는 영감,   인간의 힘으로 알 수 없는 예지의 하느님의 뜻이.     비오는 날   날은 춥고 어둡고 쓸쓸하여라 비는 내리고 바람은 그치지 않고,   허물어지는 벽에는 담쟁이 덩굴, 바람이 불 때마다 잎을 날려가네,   날은 춥고, 쓸쓸하네.     내 인생도 춥고, 어둡고, 쓸쓸하네, 비는 내리고 바람은 그치지 않네.   내 생각은 허물어지는 과거의 담벽에 붙어 불어오는 질풍에 젊음의 꿈을 날려 보냈네.   날은 어둡고, 적막하네.     슬픈 가슴이여, 조용하라! 불평은 그만하라!   먹구름 뒤에는 밝은 태양이 비치고 있다. 그대의 운명도 예외는 아닌 것!   모든 사람의 운명에 얼마의 비는 내리는 것, 인생이 어둡고 쓸쓸할 때도 있는 것!     연인의 바위     결코 죽을 수 없는 사랑이 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부서진 가슴으로 각자 운명을 맞이하고   마치 별들이 뜨고 불타고 지는 것처럼 그 사람들도 떠나가 버렸다   부드럽고 젊고 찬란하고 짧았던 봄에 떨어진 잎새 속에 자기네 세월을 묻은 채     결코 죽을 수 없는 사랑이 있다!   아아, 그 사랑은 무덤 너머로 이어진다 수많은 한숨으로 삶이 꺼지고   대지가 준 것을 대지가 다시 거둘 때 그 사랑의 빛은 싸늘한 바람이 불어도   깨닫지 못한 사람들의 집을 비춘다       마을의 대장간     가지를 펼친 밤나무 아래 마을 대장간의 오막집이 있다.   대장장이는 건장한 사나이로서 손은 커다랗고 아주 억세다.   우람한 그 팔뚝의 근육은 무쇠 테처럼 강하다.     그의곱슬머리는 검고 길며 얼굴은 구릿빛이다.   눈썹은 깨끗한 땀에 젖어있다. 그는 힘껏 일해 벌고   세상을 똑바로 보고있나니 아무에게도 빚이 없기 때문이다.     매주 마다 아침부터 밤까지 풀무 소리가 들려온다.   가락에 맞추어 느릿느릿하게 저녁해가 질 때 교회지기가   울리는 마을의 종소리처럼.     학교에서 돌아오는 어린이들이 문으로 안을 들여다 본다.   모두들 불을 뿜는 대장간의 풀무를 보기도 하고 풀무소리 듣기가 하도 좋아서   타오르는 불꽃이 탈곡장의 낟알처럼 날아다니는 것을 본다.     그는 주일날이면 교회에 가서 어린이들 사이에 앉는다.   목사님의 기도나 설교말씀을 듣고 그의 딸의 목소리가   성가대 속에서 들려오면 대장쟁이의 마음은 크게 두근거린다.     그에게는 그 목소리가 천국에서 노래하는 아내의 목소리처럼 들려서   대장쟁이는 무덤에 잠들어 있는 아내를 생각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일하고 기뻐하며 슬퍼하면서 그는 앞을 향해 살아나간다.   매일 아침 그 어떤 일이 시작되고 매일 저녁 그일은 끝나게 된다.   무슨일인가를 시도하고 또 그 일을 끝내고서 하룻밤의 휴식을 취한다.     고맙구나 나의 친구 귀한 벗이여 그대가 베푼 교훈에 감사하노라!   그러한 인생의 불타는 풀무로부터 우리는 행복을 얻게 되는 것이며   그처럼 인생의 소리 나는 모루위에서 불타는 위업과 사상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210    월트 휘트먼 시모음 댓글:  조회:1926  추천:0  2017-07-31
월트 휘트먼  시모음 1819~1892   미국의 시인, 수필가, 저널리스트. 19세기 미국 문학사에서 포우, 디킨슨과 함께 가장 중요한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롱아일랜드에서 태어났고 어렸을 때 뉴욕의 브루클린으로 이사해 공립학교를 나온 뒤 인쇄소 사환을 거쳐 식자공일을 했다. 한때 교사직을 갖기도 했지만 1838년 이후에는 주로 브루클린 지역의 많은 신문들을 편집하였다.   1855년에 출판사와 작가의 이름도 밝히지 않고 표지에 자신의 초상만을 실은 초판을 발행하였다.   형식과 내용이 혁신적인 시집이었다. 이 시집에서 시인은 영혼과 육체에 대한 동등한 존중, 열린 정신, 정치적 자유의 향유를 촉구한다.   형식은 정형을 타파한 자유 형식이었다. 이 작품으로 휘트먼은 자유시의 새로운 전통을 수립하면서 미국 문학사에서 혁명적인 인물로   등장하였다. 그는 유례없이 한 개인으로서의 를 대담하게 찬양할 뿐 아니라, 육체와 성욕까지도 강렬하게 표현했다. 이 시집을 읽은 에머슨은 당장 그의 천재성을 알아보고 '재치와 지혜가 넘치는 비범한 작품'이라는 찬사를 보낸 편지를   쓴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1855년 시집 《풀잎》을 자기 돈으로 출판하였는데, 이것은 미국의 적나라한 모습을 자유로운 형식으로 노래한 것이었다.   논문에서도 미국 사회의 물질 만능주의를 비판하였다.   1865년 남북 전쟁을 소재로 한를 출 판하고, 이듬해 그가 존경하던 링컨 대통령에 대한 추도시를 발표하였다.   오! 선장, 나의 선장   오오 선장, 나의 선장이여!   무서운 항해는 끝났다.   배는 온갖 난관을 뚫고   추구했던 목표를 획득하였다.   항구는 가깝고,   종소리와 사람들의 환성이 들린다.   바라보면 우람한 용골돌기,   엄숙하고 웅장한 배.   그러나 오오 심장이여! 심장이여! 심장이여!   오오 뚝뚝 떨어지는 붉은 핏방울이여,   싸늘하게 죽어 누워있는   우리 선장이 쓰러진 갑판 위.   오오 선장, 나의 선장이여!   일어나 종소리 들으오, 일어나시라-   깃발은 당신 위해 펄럭이고-   나팔은 당신 위해 울리고 있다.   꽃다발과 리본으로 장식한 화환도   당신을 위함이요-   당신 위해 해안에 모여든 무리.   그들은 당신을 부르며,   동요하는 무리의 진지한 얼굴과 얼굴.   자, 선장이여! 사랑하는 아버지여!   내 팔을 당신의 머리 아래 놓으오.   이것은 꿈이리라.   갑판 위에 당신이 싸늘하게 죽어 쓰러지시다니.   우리 선장은 대답이 없고,   그 입술은 창백하여 닫힌 채 움직이지 않는다.   우리 아버지는 내 팔을 느끼지 못하고,   맥박도 뛰지 않고 의지도 없으시다.   배는 안전하게 단단히 닻을 내렸고,   항해는 끝났다.   무서운 항해에서 승리의 배는   쟁취한 전리품을 싣고 돌아온다.   열린 길의 노래   두 발로 마음 가벼이 나는 열린 길로 나선다. 건강하고 자유롭게, 세상을 앞에 두니 어딜 가든 긴 갈색 길이 내 앞에 뻗어 있다.   더 이상 난 행운을 찾지 않으리. 내 자신이 행운이므로. 더 이상 우는소리를 내지 않고, 미루지 않고, 요구하지 않고,   방안의 불평도, 도서관도, 시비조의 비평도 집어치우련다. 기운차고 만족스레 나는 열린 길로 여행한다.   대지, 그것이면 족하다. 별자리가 더 가까울 필요도 없다.   다들 제 자리에 잘 있으리라. 그것들은 원하는 사람들에게 소용되면 그뿐 아니랴.   (하지만 난 즐거운 내 옛 짐을 마다하지 않는다. 난 그들을 지고 간다, 남자와 여자를, 그들을 어딜 가든 지고 간다.   그 짐들을 벗어버릴 수는 없으리. 나는 그들로 채워져 있기에. 하지만 나도 그들을 채운다)   강 건너는 기병대   초록색 섬 사이를 누비며 가는 긴 대열, 뱀같이 꾸불꾸불하게 가고 있다.   해빛에 무기가 번쩍인다- 들으라 음악같은 울림소리,   보라, 은빛 강물, 그 물 첨벙거리며 건너다 목을 축이는 말들, 보라, 갈색 얼굴의 병사들, 각각의 무리들과 사람들 그림을,   말 안장에 앉아 방심한 듯 쉬고 있고, 한편으로는 건너편 뚝에 올라가고 있는 병사들, 지금 강물에 들어가는 병사들,   홍, 청, 순백, 삼색기가 선명하게 바람에 펄럭인다.   낯 모르는 사람에게   저기 가는 낯 모르는 사람이여! 내 이토록 그립게 당신을 바라보고 있음을 당신은 모릅니다.   당신은 내가 찾고 있던 그이, 혹은 내가 찾고 있던 그 여인,(꿈결에서처럼 그렇게만 생각 됩니다.)   나는 그 어디선가 분명히 당신과 함께 희열에 찬 삶을 누렸습니다.   우리가 유연하고, 정이 넘치고, 정숙하고, 성숙 해서 서로를 스치고 지날 때 모든 것이 회상됩니다.   당신은 나와 함께 자랐고, 같은 또래의 소년이었고, 같은 또래의 소녀였답니다.   나는 당신과 침식을 같이했고, 당신의 몸은 당신의 것만이 아닌 것이 되고, 내 몸 또한 그러 했습니다.   당신은 지나가면서 당신의 눈, 얼굴, 고운 살의 기쁨을 내게 주었고,   당신은 그 대신 나의 턱수염, 나의 가슴, 나의 두손에서 기쁨을 얻었습니다.   나는 당신에게 말을 걸어서는 안됩니다.   나 홀로 앉아 있거나 혹은 외로이 잠 못 이루 는 밤에 당신 생각을 해야합니다.   나는 기다려야 합니다. 당신을 다시 만나게 될 것을 믿어마지 않습니다.   당신을 잃지 않도록 유의 하겠습니다.   짐승   나는 모습을 바꾸어 짐승들과 함께 살았으면 하고 생각한다. 그들은 평온하고 스스로 만족할 줄 안다.   나는 자리에 서서 오래도록 그들을 바라본다. 그들은 땀흘려 손에 넣으려고 하지 않으며 자신들의 환경을 불평하지 않는다.   그들은 밤 늦도록 잠 못 이루지도 않고 죄를 용서해 달라고 빌지도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의무 따위를 토론하느라 나를 괴롭히지도 않는다. 불만족해 하는 자도 없고, 소유욕에 눈이 먼 자도 없다.   다른 자에게, 또는 수천년 전에 살았던 동료에게 무릎 끓는 자도 없으며 세상 어디를 둘러봐도 잘난 체하거나 불행해 하는 자도 없다.   시집 '풀잎' 서문에 쓴 시   땅과 태양과 동물들을 사랑하라. 부를 경멸하라. 필요한 모든 이에에 자선을 베풀라.   어리석거나 제 정신이 아닌 일이면 맞서라. 당신의 수입과 노동을 다른 사람을 위한 일에 돌려라.   신에 대해 논쟁하지 말라. 사람들에게는 참고 너그럽게 대하라.   당신이 모르는 것, 알 수 없는 것 또는 사람 수가 많든 적든 그들에게 머리를 숙여라.   아는 것은 적어도 당신을 감동시키는 사람들. 젊은이들, 가족의 어머니들과 함께 가라.   자유롭게 살면서 당신 생애의 모든 해, 모든 계절, 산과 들에 있는 이 나뭇잎들을 음미하라.   학교, 교회, 책에서 배운 모든 것을 의심하라. 당신의 영혼을 모욕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멀리하라.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라.   첫 민 들 레   겨울이 끝난 자리에서 소박하고 신선하게 아름다이 솟아나서,   유행, 사업, 정치 이 모든 인공품일랑 일찍이 없었든 양, 아랑곳 없이,   수플 소북히 가린 양지 바른 모서리에 피어나 통트는 새벽처럼 순진하게, 금빛으로, 고요히,   새봄의 첫 민들레는 이제 믿음직한 그 얼굴을 선보인다.   나 여기 앉아 바라보노라   나는 앉은 채로 세상의 모든 슬픔을 두루 본다 온갖 고난과 치욕을 바라본다   나는 스스로의 행위가 부끄러워 고뇌하는 젊은이들의 가슴에서 복받치는 아련한 흐느낌을 듣는다   나는 어미가 짓눌린 삶 속에서 아이들에게 시달려 주저앉고 앙상하게 마른 몸으로 죽어감을 본다   나는 아내가 지아비에게 학대받는 모습을 본다 나는 젊은 아낙네를 꾀어내는 배신자를 본다   나는 숨기려해도 고개를 내미는 시새움과 보람없는 사랑의 뭉클거림을 느끼며, 그것들의 모습을 땅위에서 본다   나는 전쟁, 질병, 압제가 멋대로 벌이는 꼴을 본다 순교자와 죄수를 본다   뱃꾼들이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주는 일에 목숨을 걸고 나설 차례를 정하려고 주사위를 굴리는 모습을 본다   나는 오만한 인간이 노동자와 빈민과 흑인에게 던지는 경멸과 모욕을 본다   이 모든 끝없는 비천과 아픔을 나는 앉은 채로 바라본다 보고, 듣고, 침묵한다   나 자신의 노래  [나 자신의 노래 1]  나는 나를 예찬하고 나 자신을 노래한다. 그리고 내 것은 네 것이기도 하다. 대체로 내게 속하는 일체의 원자는  마찬가지로 네게도 속하는 것이다. 나는 빈둥빈둥 시간 보내며, 나의 영혼을 초대한다. 나는 마음 편히 몸을 기대고,  빈둥대며 여름 풀의 싹을 응시한다. 나의 혀, 내 피 속의 일체의 원자는  이 땅에서, 이 대기에서 만들어진 것, 나는 여기에서 내 양친에게서 생겼고,  양친은 또 그 양친에게서, 또 그들은 양친에게서, 나는 지금 37세의 완전한 건강체로 시작한다. 죽을 때까지 중단 없기를 바라면서. 종파나 학파는 잠시 두어 두고, 그것이 어떻든 지금 상태로 족하니, 잠시 거기에서 물러나,  그러나 결코 잊진 않고 나는 선악을 다 용납하고 만난을 무릅쓰고 마음껏 말하련다, 본유의 정력으로 거리낌 없이 자연을, 나의 천성을 [나 자신의 노래 2] 집이란 집, 방이란 방은 모두 향기로 가득 차고,  선반도 모두 향기에 차 있다. 나는 그 향기를 들이마시고, 그것을 분간하고 그것을 좋아한다. 그 향기를 증류하면 그것이 날 취하게 하겠지만,  나는 그렇게 하진 않겠지. 대기는 향료가 아니다,  그것은 증류수 같아서 맛도 향기도 없다. 그것은 언제나 내 입에 맞아서 나는 그것에 심취한다. 나는 숲가의 둑으로 가서, 순수하게 벌거숭이가 되리라. 나는 나에게 와 닿는 것을 미친 듯이 갈망한다. 내 숨결의 연기, 메아리, 잔물결, 은밀한 속삭임, 사랑뿌리, 비단실, 나무 아귀와 덩굴, 나의 내뱉는 숨결과 들이마시는 숨결,  내 심장의 고동, 내 폐부를 드나드는 피와 공기, 푸른 잎과 마른 잎의 냄새,  바닷가와 거무스레한 바닷돌의 냄새, 창고의 건초 냄새, 선풍의 소용돌이 속에 풀리는 내 목소리의 토해내는 언어의 음향, 몇 번의 가벼운 키스, 몇 번의 포옹, 허리를 감싸는 팔, 연한 가지가 흔들림에 따라 나무 위에 춤추는 빛과 그늘, 혼자 있든 아니면 거리의 혼잡 속이든  들판이나 언덕 기슭 따라 갈 때의 기쁨, 건강체의 감촉, 대낮의 떨리는 소리,  침상에서 일어나 태양을 맞이하는 내 노래. 너는 천 에이커의 땅을 크다고 생각하는가.  이 지구를 굉장하다고 생각했는가. 너는 읽기를 배우는 데 그렇게 오래 연습했는가. 너는 시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그렇게 자랑스러운가. 오늘 하룻밤 하룻밤, 나와 함께 있으면,  너는 모든 시의 근본을 파악한다. 너는 이 지구와 태양의 정수도 파악한다 (기타 천만의 태양이 있다), 너는 이제 이 사람 저 사람의 손을 통하여 물건을 받아선 안 된다.  그리고 죽은이의 눈을 통하여 보든지,  책 속 도깨비에게서 밥을 얻어 먹어선 안 된다, 너는 이 내 눈을 통하여 보아서도 안 된다,  내게서 무엇을 얻어도 안 된다, 너는 널리 귀를 기울여야 하고, 네 자신의 체로 걸러내야 한다.        [나 자신의 노래 6] 한 아이가 두 손에 가득 풀을 가져오며  “풀은 무엇입니까” 라고 내게 묻는다. 내가 어떻게 그 아이에게 대답할 수 있겠는가.  나도 그 애처럼 그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나는 그것이 필연 희망의 푸른 천으로 짜여진  나의 천성의 깃발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아니면, 그것은 주님의 손수건이거나, 신이 일부러 떨어뜨린 향기나는 기념의 선물일 것이고, 소유주의 이름이 구석 어딘가에 들어 있어서  우리가 보고서 ‘누구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나는 추측한다,  풀은 그 자체가 어린아이, 식물에서 나온 어린아이일 것이라고. 혹은 그것은 모양이 한결같은 상형문자일 것이라고. 그리고 그것은 넓은 지역에서도 좁은 지역에서도 싹트고, 검둥이 사이에서도, 흰둥이 사이에서도 자라며 태나다인, 버지니아인, 국회의원, 니그로,  나는 그들에게 그것을 주고, 그들에게서 그것을 받는다. 또한 그것은 무덤에 난 깎지 않은 아름다운 머리털이라고 생각한다. 너 부드러운 풀이여, 나는 너를 고이 다룬다. 너는 젊은이들의 가슴에서 싹트는지도 모르겠고, 만일 내가 그들을 미리 알았더라면,  나는 그들을 사랑했을지도 모르는데, 아마 너는 노인들,  혹은 생후 곧 어머니들의 무릎에서 떼낸 갓난아이에서 나오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자, 여기에 그 어머니의 무릎이 있다. 이 풀은 늙은 어머니들의 흰머리에서 나온 것으로선 너무 검다, 노인의 색바랜 수염보다도 검고, 엷게 붉은 입천장 밑에서 나온 것으로서도 너무 검다. 아, 나는 결국 그 숱한 발언들을 이해한다, 그리고 그 발언이 아무 의미 없이  입천장에서 나오지는 않는다는 것을 안다. 나는 젊어서 죽은 남녀에 관한 암시를 풀어낼 수 있었으면 싶다, 또한 노인들과 어머니들,  그리고 그들의 무릎에서 떼낸 갓난아이들에 관한 암시도. 너는 그 젊은이와 늙은이가 어떻게 됐다고 생각하는가. 여자들과 어린아이들이 어떻게 됐다고 생각하는가. 그들은 어딘가에서 살아서 잘 지내고 있다, 아무리 작은 싹이라도 그것은 진정 죽음은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만일 죽음이 있다면,  그것은 생을 추진하는 것이고,  종점에서 기다렸다가 생을 잡는 것은 아니다. 만물은 전진하고 밖으로 진전할 뿐  죽는 것은 하나도 없다, 죽는 것은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과는 다르며,  훨씬 행복한 것이다. [나 자신의 노래 7] 태어나는 것이 행복하다고 생각한 자가 있는가. 나는 당장 그나 그녀에게  태어나는 것은 죽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행복하다고 이르리라,  나는 그것을 알고 있다. 나는 임종하는 자와 더불어 죽음의 문을,  산욕하는 갓난아이와 더불어 생의 문을 통고한다,  나는 자기 모자와 신발 사이에 한정된 사람은 아니다, 그리고 각양각색의 사상을 음미한다,  한 가지도 같은 것은 없고 모두가 선하다. 지구도 좋고 별도 좋다,  그리고 거기에 뒤따르는 것들도 모두 선하다. 나는 지구도 아니고, 지구의 부속물도 아니다, 나는 민중의 벗이고, 반려자다,  그들은 나 자신과 마찬가지로 불멸이며, 무한히 깊다, (그들은 어떻게 불멸인가를 모른다, 그러나 나는 안다) 세상 만물은 동류끼리 모인다,  나에겐, 나의 남자와 여자, 나에겐, 일찍이 청춘이었던 자들과 여자를 사랑한 일이 있는 자들, 나에겐, 연인과 노처녀를, 나에겐, 모친을, 그리고 모친의 모친을, 나에겐 미소 지은 일이 있는 입술을, 눈물 흘린 일이 있는 눈을, 나에겐, 아이들을, 그리고 아이를 낳는 사람들을. 옷을 벗어 던져라.  너희들 누구나 나에게 죄가 없다,  재미 없는 자도 배척받은 자도 아니다, 나는 검은 나사천이건, 목면이건 그 옷을 통하여  너희들의 인물을 투시한다, 나는 근처에 있어, 끈질기게 추구하고,  권태를 모르고 흔들려 떨어져 버리지 않는다. [나 자신의 노래 9] 농가의 곡간의 대문은 열려서 준비가 돼 있다, 수확철의 건초가 천천히 끌리는 마차에 높이 실리고, 밝은 햇빛이 그 황갈색과 녹색이 교차하는 짐 위에서 넘실거린다, 쌓인 건초의 느슨한 곳에 한 아름이 더 채워진다. 나도 거기에 있어 돕는다,  나는 건초 짐 위에 사지를 펼치고 돌아온다, 한쪽 도리를 다른 쪽에 포개고서 나는 마차의 가벼운 동요를 느낀다, 나는 외양간 가로대에서 뛰어내려 클로버와 큰조아재비풀을 움켜쥔다, 그리고 거꾸러져 머리가 건초를 뒤집어쓰고 헝클어진다. [나 자신의 노래 10]  홀로, 멀리 황야로, 산으로  나는 사냥간다, 자신의 경쾌함과 쾌활함에 경탄하며 방황한다, 해질 무렵이면 밤을 보낼 안전한 곳을 찾고, 불을 피워서 갓 잡은 사냥감을 굽고, 엽총을 옆에 놓고 끌어 모은 낙엽을 깔고 사냥개와 함께 잠이 든다. 양키 쾌속정이 돛을 하늘에 닿게 달고  번쩍이는 파도와 물안개를 뚫고 달린다, 내 눈은 육지를 응시하고  뱃전에 걸터앉거나 갑판에서 환희의 소리를 지른다. 가공과 조개 파는 이가 일찍 일어나 나를 찾아왔다, 나는 바지 끝을 장화 속에 구겨넣고서  가서 재미있는 시간을 가졌다. 너도 그 날 우리와 함께 있어 조개 남비 주변에 모였으면 좋았을 것을. 나는 먼 서부의 야외에서 벌어진  한 덮엽사의 결혼식을 보았다.  신부는 미국 토인의 아가씨였다, 신부의 아버지와 그 친구들은  가까이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조용히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모두 사슴가죽의 신을 신고  어깨엔 큰 두꺼운 모포를 걸치고 있었다. 거의 가죽옷으로 차림하고서,  멋진 수염과 곱슬머리가 목을 덮고 있는 덮엽사는  신부의 손을 잡고 둑 위에 쉬고 있었다, 신부는 긴 속눈썹에다, 머리엔 아무 장식도 없고,  빳빳한 머리털은 그녀의 풍만한 팔다리에 처져 발까지 닿았다. 도망친 노예가 내 집에 와서 문밖에 멎었다. 그가 움직여서 쌓아놓은 땔나무에서  가지가 부러지는 소리를 들었다, 열린 반쪽 부엌문으로,  나는 지쳐서 다리를 저는 그를 보았다, 나는 그가 통나무 위에 앉아 있는 곳으로 가서  그를 집안으로 데리고 들어와 안심시켰다, 그의 땀에 젖은 몸과 상처난 발을 씻도록  통에 물을 가득 퍼주었다, 그리고 내 방으로 통하는 방 하나를 그에게 주고서  거친 감의 깨끗한 옷가지를 내주었다, 그때 그가 눈을 휘둥글게 뜨고서 주저주저하던 것이 잘 기억난다, 또한 그의 목과 발꿈치의 상처에  고약을 붙여 주었던 것도 기억한다, 그는 건강을 회복하고서 북으로 달아날 때까지  일주간 내게 머물렀다. 나는 식탁에서 그를 내 곁에 앉히고,  방 구석에는 화승총을 세워 두었다. [나 자신의 노래 11] 28인의 젊은이가 해변에서 멱감는다, 28인의 젊은이가 모두 사이가 좋다, 28년간의 여자의 생애는 모두 고독하다, 그녀는 강둑 고지에 좋은 집을 소유하고 있다, 그녀는 곱게 화려하게 차려입고 창문 발 뒤에 숨는다. 그녀는 젊은이들 중 누구를 제일 좋아하는가. 아, 그 중에서 제일 못난 남자가 그녀에겐 아름답다. 부인, 어디로 가시나요. 내겐 당신이 보입니다, 당신은 거기 물 속에서 물을 튕기며,  그러나 당신은 자기 방에서 꼼짝 않고 있다. 해변을 따라 춤추며 웃으며 29세의 여자 수영객이 왔다, 다른 사람들은 그녀를 안 보았지만,  그녀는 그들을 보고 그들을 좋아했다. 젊은이들의 수염이 물 묻어 번쩍였고,  물이 긴 머리에서 흘렀다, 작은 물줄기가 그들의 전신을 흘러내렸다. 그녀의 보이지 않는 손이 그들의 몸을 쓰다듬었다. 그 손이 관자놀이에서 가슴으로 떨리면서 내렸다. 젊은이들이 자빠져서 둥실 떠 있고,  그들의 흰 복부가 해를 향하여 부풀어 있다,  그들은 누가 그것을 꽉 잡아 주는가를 묻지 않는다, 그들은 누가 몸을 늘어뜨리고 구부려서  훅훅 불거나 가라앉는가를 모른다, 그들은 누구에게 물을 끼얹는가를 모른다. [나 자신의 노래 15]  아름다운 콘트랄토이 가수가 오르간 놓인 단상에서 노래한다. 목수는 재목을 손질하고,  그의 대패날이 사납게 밀어올리는 마찰음을 울린다. 기혼의 또는 미혼의 자녀들이  감사절 만찬에 참석하려고 마차로 귀향한다, 키잡이가 키바퀴를 잡고서  힘센 팔로 배를 한쪽으로 기울인다, 운전사는 포경선에 긴장해서 서서,  창과 작살을 준비하고 있다,  우리 사냥꾼은 발자국 소리 안 나게  조심껏 몸을 뻗치고 걷는다, 집사는 제단 앞에서 십자를 그으며 임명을 받고 있다, 실 뽑는 여공은 큰 물레바퀴의 소리에 맞추어 일진일퇴한다, 농부는 일요일 산보에 목책 옆에 서서  연맥과 호맥의 작황을 본다, 광인은 증세가 확인되어 드디어 수용소로 운반된다, (그는 지금까지처럼, 어머니 침실의 침대에서 다시는 자지 못하리라) 머리가 하얗고 턱뼈가 앙상한 견습 인쇄공은  활자 케이스 옆에서 일한다, 그는 흐릿한 눈으로 원고를 보면서 씹는 담배를 입안에서 돌린다, 기형의 수족이 수술대에 결박되어 있고, 제거된 것이 흉하게 쓰레기통 속에 버려진다. 흑백 혼혈녀가 경매대에서 팔리고,  주정뱅이가 술집 난로가에서 졸고 있다, 기계공은 셔츠의 소매를 걷어올리고,  경관은 자기 순찰구역을 순찰하고,  문지기는 통행인을 주목한다. 젊은 녀석이 화물운반차를 몰고 (그를 모르지만 나는 그가 좋다) 혼혈아가 경주에 나가기 위하여  운동화의 끈을 조른다, 서부지방에서의 칠면조 사냥에는  늙은이 젊은이가 모인다,  어떤 이는 엽총에 기대고,  어떤 이는 통나무에 걸터앉았다, 군중 사이에서 명사수 하나가 걸어나와서,  자세를 취하고 총을 겨눈다. 새로 온 이민의 무리가 선창과 부두를 뒤덮는다, 사탕수수밭에선 양털머리의 흑인노예가 풀을 뽑고,  감독은 그것을 말타고 지켜본다. 무도장에서 나팔소리가 울리자  신사들이 파트너 쪽으로 달려가고,  춤추는 짝들이 서로 인사를 한다, 삼나무 판장의 지붕밑 방에서  젊은이가 눈뜨고 드러누워서  음조 고운 빗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휴론호로 흘러드는 지류에서  미시간주의 어부가 덫을 장치한다, 노란 테를 두른 옷을 입은 여자가  사슴가죽 구두와 구슬백을 팔고 있다, 미술 감정사는 몸을 옆으로 구부리고,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고서 전시장을 보며 돌아다닌다, 갑판에서 일하는 선원이 배를 묶어매는 동안  널판이 다리 놓여져서 상륙개을 건너게 한다. 누이동생이 실꾸리를 두 손으로 잡고 있고,  언니는 그것을 실패에 감으며,  때때로 실이 얽히면 손을 쉰다. 결혼 후 일 년의 아내는 일 주 전에 첫애를 낳고  건강이 회복되면서 행복하다. 두 발이 깨끗한 양키 소녀는 재봉틀에서,  혹은 작업장이나, 공장에서 일한다, 포도공사의 인부는 손잡이가 둘 달린 메에 기대고 있고,  기자의 연필은 수첩 위를 빨리빨리 움직이고,  간판장이는 푸른색과 금색의 글씨를 써간다. 운하공은 뱃길을 총총걸음으로 걷고,  부기사는 책상에서 계산하고 구두공은 실에 초칠을 한다, 지휘자는 악대를 지휘하고 연주원들 모두 그를 따른다, 유아는 세례를 받고,  개종자는 그의 최초의 신앙을 고백한다,  범주경기가 만 위에서 전개되어 경주가 시작됐다 (번쩍이는 흰 돛!) 가축 몰이꾼은 우리에서 도망치려고 하는 놈에게  큰소리를 지른다, 행상인은 등에 진 짐으로 땀을 흘리고,  (고객은 한 푼 두 푼을 깎는다) 신부는 흰 드레스의 주름을 펴고,  시계의 초침이 더디기만 하다, 아편 흡연자는 굳어진 머리로 멍하니  입을 벌리고서 몸을 기울인다, 창녀는 숄을 질질 끌고,  그녀의 모자는 흔들흔들하는 여드름 투성이의 목 위에 매달려 있다. 군중이 그녀의 욕지거리를 비웃고,  사내놈들은 조롱하며 서로 눈짓한다, (가엾은! 나는 너의 욕을 비웃거나 조소하지 않는다) 각의를 열고 있는 대통령은 훌륭한 장관들에 에워싸여 있다, 광장에는 부인 셋이 팔짱을 끼고  으스대며 다정하게 걷고 있다, 어선의 선원들이 선창에 넙치를 채곡채곡 쌓아올린다, 미주리주이 남자는 상품과 소떼를 끌고서 평야를 건너간다, 차삯을 거두는 차장은 열차 안을 통과할 때  거스름돈을 달랑거리며 주의를 끈다, 마루를 까는 목수는 마루를 깔고,  양철공은 지붕에 양철을 씌우고,  석공은 모르타르를 가져오라고 소리친다, 노동자들의 일단이 일렬로  각자 어깨에 벽돌상자를 지고서 나아간다, 계절은 계절을 쫓아가고,  말할 수 없이 많은 군중이 군집했다,  오늘 7월 4일, 도립기념일 (대포, 소포의 예포소리!) 계절은 계절을 쫓아가고,  농부는 밭을 갈고,  풀 베는 이는 풀을 베고,  겨울 씨앗은 땅에 떨어진다. 호수 안창에서 열기잡이가  얼은 수면에 뚫은 구멍 옆에서 지켜보며 기다린다, 그루터기가 개간지 주변에 빽빽이 서 있고,  벌목꾼은 도끼를 깊이 찍는다, 평저선 선원들이 저녁 무렵,  사시나무나 호두나무 근처로 배를 몬다, 곰 사냥꾼은 레드강 유역에,  또는 테네시강이나 아칸서스강이 흐르는 유역을 찾아다닌다, 차타후치강, 혹은 알타마호강에 깔린 어둠 속에 횃불은 타고, 늙은 노인들은 자식, 손자, 증손을 거느리고 저녁식탁에 앉아 있다, 어도우비 벽돌 담 안이나 캔버스 천막 안에,  사냥꾼과 덫꾼들이 그날의 사냥을 끝내고 쉬고 있다, 도시도 쉬고 시골도 쉰다, 산 자는 주어진 자기 시간을 자고,  죽은 자도 주어진 자기 시간을 잔다, 늙은 남편은 아내 곁에서 자고,  젊은 남편도 아내 곁에서 잔다, 그리고 그것들은 안으로 향하여 내게 오고,  나는 밖으로 향하여 그들에게로 간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그러하듯이, 그런 것들은 많건 적건 나다, 그리고 그것들을 모두 가져와서 나는 내 노래를 짠다. [나 자신의 노래 24]  훨트 휘트먼, 나는 하나의 우주,  맨해턴 태생의 한 사나이, 성미가 거칠고, 살집 좋고, 욕정이 넘치고,  잘 먹고, 잘 마시고, 잘 생산하고, 감상주의자는 아니고,  남의 위에 서 있는 자 아니고,  그러나 그들과 유리된 자 아니다, 방종하지도 않고, 그렇대서 도학자도 아니다. 문이란 문에서 자물쇠를 떼어 버려라! 옆기둥에서 문 그 자체를 떼어 버려라! 누구나 다른 사람을 내리깎는 사람을 나는 내리깎는다, 무엇이고 동작이 가고 말이 가면 그것은 결국 내게로 돌아온다. 나를 통하여 영감의 물결은 오고 가고 나를 통하여 흐르는 조류와 지표. 나는 원시적인 암호말을 하고, 데모크라시의 신호를 보낸다, 단호히!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은 조건으로  그들의 분신적 상대물을 취하지 않는다면,  나는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않으련다. 나를 통하여 오랫돋안 입다물던 목소리들이 들린다, 무수한 세대에 걸치는 죄수와 노예들의 목소리, 병자와, 절망자와, 도둑과 난장이의 목소리, 중비와 증대의 순환의 목소리, 그리고 별들을 연결하는 맥락의 목소리, 자궁과 정자의 목소리, 다른 이들에게 짓밟혀지는 자들의 군리의 목소리, 불구자와 쓸모없는 자와 평범한 자와 어리석은 자와 경멸받는 자의 목소리, 대기 속의 안개, 변 덩어리를 굴리는 풍뎅이의 목소리. 나를 통하여 나가는 금지된 목소리, 성과 욕정의 목소리, 베일을 쓴 목소리, 나는 그 베일을 제거한다, 점잖지 못한 목소리,  그 말은 나로 말미암아 명백해지고 훌륭해진다. 나는 손가락으로 입을 막지 않는다, 나는 두뇌와 심장에 대하여 하듯이, 창자 둘레를 곱게 보살핀다, 성교는 내게 죽음이나 다름없이 추악하지 않다. 나는 성욕과 식욕을 다 인정한다, 보고 듣고 만지는 것이 모두 기적이다,  그리고 나의 어느 부분이나 내 옷자락 하나도 모두 기적이다. 나는 내부 외부 할 것 없이 신성하다, 나는 내가 손대는 것,  내게 닿는 것을 무엇이고 신성하게 한다,  이 겨드랑이에서의 냄새는 기도보다도 훌륭한 방향이다, 이 머리는 교회보다도, 성경보다도, 그리고 어느 신조보다도 그 이상이다. 만일 내가 어느 것을 다른 것보다 더 숭배한다면,  그것은 내 자신의 육체의 전부이거나 그 일부일 것이다. 반투명의 나의 모형, 정액 그것은 너다! 그늘에 있는 선반과 휴식처, 그것은 너다! 탄탄한 남성의 보습날, 그것은 너다! 나의 생식충동을 이루는 것은 무엇이고, 너다! 너, 나의 짙은 혈액이며,  너의 젖 같은 흐름은 나의 생명의 창백한 긴 가닥이다! 남의 젖가슴에 몸을 부벼대는 젖가슴, 그것은 너다, 나의 두뇌, 그것은 너의 유현한 뇌의 회전이다, 씻긴 창포 뿌리여! 비겁한 연못 도요새여!  잘 지켜진 한 쌍의 달걀이 들어 있는 둥우리여! 그것은 너다! 헝클어진 건초 같은 머리칼, 수염, 근육, 그것은 너다! 자비로운 태양, 그것은 너다! 내 얼굴에 명암을 던지는 공중의 수증기, 그것은 너다! 땀흘리는 개울과 이슬, 그것은 너다! 부드럽게 간질이는 음부로 내 얼굴을 문질러 주는 바람이여, 그것은 너다! 넓은 광대한 들판, 떡갈나무 가지,  꼬불꼬불한 오솔길을 가는 어여쁜 산책자,  그것은 너다! 내가 쥔 손, 내가 키스한 일이 있는 얼굴,  내가 일찍이 접촉한 일이 있는 인간,  그것은 너다. 나는 내 자신을 뜨겁게 사랑한다,  거기에 풍부한 나 자신이 있고, 모두 감미롭다, 하나하나의 순간도, 그리고 무엇이 일어나든,  나는 기뻐서 몸을 떤다, 나는 나의 발꿈치의 굴절을 설명할 수 없고,  나의 가냘픈 소망의 원인을 말할 수 없다, 또한 내가 발산하는 우애의 원인도,  그리고 내가 다시 받아들이는 우애의 근원도  설명할 수 없다. 집의 현관으로 걸어 들어가서 발을 멈추고  이것이 과연 내 집인가를 생각해 본다. 내 창 앞에 핀 나팔꽃이 책 속에 쓰인 형이상학 이상으로 만족을 준다. 동트는 하늘을 바라본다! 희미한 빛이 무한한 투명한 음영을 지워 간다, 대기는 내 미각에 상쾌하나다. 천진난만하게 뛰놀며 회전하는 세계의 중량이 조용히 올라오고,  신선하게 발산하고, 높고 낮게 비스듬히 달린다. 내게는 안 보이는 무엇인가가 그 음탕한 뾰족끝을 위로 내민다, 찬란한 액체의 바다가 하늘에 충만하다. 대지는 하늘 가에서 그 밤을 유숙했던 것이다,  양자가 매일 회합한 결과, 그 순간 내 머리 위에서, 동쪽에서 솟아오른 도전, 조롱조의 말, “그렇다면 네가 천지의 지배자가 될 것인가, 아닌가!” [나 자신의 노래 31] 나는 믿는다, 풀잎 하나가 별의 운행에 못지 않다고. 그리고 개미도 역시 완전하고, 모래알 하나, 굴뚝새의 알 하나도 그렇다, 그리고 청개구리는 최고의 걸작품이다. 그리고 땅에 뻗은 딸기 덩굴은 천국의 객실을 장식할 만하다. 그리고, 머리를 푹 숙이고 풀을 뜯는 소는 어떤 조각보다도 낫다. 그리고 한 마리 생쥐는 몇 억조의 불신의 무리들을 아연하게 할 만한 기적이다. 나는 자기가 편마암이나, 석탄, 길게 이어진 이끼,  과일, 곡식용 풀뿌리와 일체가 되고, 또한 나는 전신이 네 발 짐승과 조류의 색과 모양이 된다, 내 뒤에 있는 것은 충분한 이유에서 멀리멀리 뒤쳐져 있지만,  내가 필요할 때엔, 무엇이고 다시 불러오게 할 수 있다. 속력을 내는 것이나 주저하는 것이나 헛된 일이다, 나의 접근에 대하여, 화성암이 그 옛날의 열기를 방출해도 헛된 일이다, 역사 이전의 거상이 가루가 된 자신의 백골 밑으로 물러가도 헛된 일이다, 물체들이 서로 멀리 떨어져 존재하고,  각양각색의 형상을 취하는 일도 헛된 일이다, 대양이 지구의 텅빈 곳에 자리잡고,  큰 괴물들이 해저 깊이 누워 있어도 헛된 일이다, 말똥가리 매가 몸으로써 하늘에 집을 친들 헛된 일이다, 배암이 담장이나 통나무 사이를 미끄러져 가도 헛된 일이다, 큰 사슴이 숲속의 뒤안길로 달려가도 헛된 일이다, 부리가 예리한 바다오리가 멀리 라브라도르의 북쪽으로 날아간들 헛된 일이다, 나는 재빨리 뒤쫓아, 벼랑의 틈새에 지은 둥지로 올라간다. [나 자신의 노래 32] 나는 몸을 바꾸어 동물과 함께 살 수 있을 것 같다,  그들은 아주 태평하고 자족하다, 나는 서서 그들을 오래 바라본다. 그들은 애쓰지 않고, 저희들의 상황에 불평하지 않는다, 그들은 어둠 속에 깨어 일어나, 저희 죄 때문에 울지 않는다, 그들은 신에 대한 의무를 논하여 나를 괴롭히지 않는다, 한 놈도 불만인 놈은 없고,  한 놈도 소유욕으로 미쳐 있지 않다, 한 놈도 다른 놈에 대하여, 또는 수천 년 전에 산 동류에 대하여  무릎을 꿇지 않는다, 온 세상에서 한 놈도 존경할 만하거나, 부지런한 놈은 없다. 이리하여 그들은 그들과 나와의 관계를 밝히고,  나는 그들을 받아들인다, 그들은 내 자신의 흔적을 내게로 가져와서,  그것이 그들의 소유인 것을 분명히 표시한다. 그들은 어디에서 그런 흔적을 입수했을까, 그 방면을 내가 먼 옛날에 통고하여,  무심코 그것을 떨어뜨렸던 것이 아닐까. 나 자신 그때나 지금이나 그리고 영원히 전진한다, 항상 더욱 많이 모으고 드러내 보이며, 속력 있게, 무한히, 그리고 영원히 재창조된다.  내 노래하는 것이 그 속에 들어 있고, 나의 기념물에 가까이 오는 자 누구도 제외하지 않는다, 여기에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가려내어,  그와 형제간처럼 사이좋게 가련다. 내 애무에 응하는 한 마리 새뜻하게 아름다운 종마의 거대한 아름다움, 앞 이마 훤칠한 머리, 귀와 귀 사이가 넓고, 사지는 번들번들 유연하고, 꽁지는 질질 땅에 닿고, 눈은 반짝반짝 악의가 가득하고, 귀는 잘 서서 부드럽게 움직인다. 내가 발꿈치로 동체를 껴안으니, 두 콧구멍이 부푼다, 내가 일주하여 돌아오니, 그 잘 발달된 사지가 기쁘게 떨린다, 나의 종마여, 나는 다만 잠깐 너를 탈 뿐이니, 그리고선 놓아주마, 내 자신이 너를 앞질러 달릴 수 있는데, 왜 너를 탈 필요가 있겠는가. 나는 서 있건 앉아 있건, 너보다 훨씬 빨리 달릴 수 있다. [나 자신의 노래 35] 너에게 옛날의 해전 이야기를 들려 줄까 달과 별빛 아래에서 누가 이겼는가를 알고 싶은가. 선원이었던 나의 조모의 부친이 내게 들려준 이야기를 들어 봐라. 자기들의 적이 배 속에 숨는 비겁자는 아니었다(고, 그는 얘기하기 시작했다,) 적은 무서운 영국혼을 가진 놈이었다,  이보다 강인하고 진실한 놈은 과거에도 미래에도 결코 없을 것이다, 저녁 무렵에, 적은 맹렬한 사격을 가해 왔다. 우리는 바싹 접근하여, 돛대가 서로 얼키고, 대포가 맞붙었다,  저희들의 선장은 손수 배를 적선에 꽉 묶어맸다. 자기들은 배 밑으로 약 18파운드의 탄환의 발사를 받았다, 아래 갑판의 포대에는, 두 대의 큰 포가 첫 발 쏠 때에 파괴되어  주변의 병사를 다수 살해하고, 천정까지도 폭파하였다. 해질녘의 전투, 암야의 전투, 밤 열 시, 만월이 중천에 올라왔을 때,  침수는 늘어나, 5피트라고 보고되었다, 위병하사관은 뒤 선실에 감금된 포로들을 풀어 주어,  그들에게 살 수 있는 기회를 찾도록 했다. 화약고의 통로는 이제 보초에 의하여 차단되고, 낯선 얼굴이 하도 많아서 누가 아군인지, 전연 믿을 수가 없었다. 자기들의 군함에 불이 붙었다, 누군가는 살려 달라고 해 봤으면 하기도 했다. 자진해서 깃발을 내리고 항복하면 어떨까 하고 말하기도 했다. 나는 만족스럽게 크게 웃었다,  나의 그 작은 선장의 목소리가 들려왔기에. 그는 태연하게 외쳤다  “우리는 패하지 않았다,  우리는 이제 우리의 전쟁을 막 시작한 것이다.” 불과 세 기의 대포가 사용 가능하였다, 하나는 선장이 손수 적의 중심 돛대를 향하여 쏘았다, 적의 갑판을 일소했다. 이 작은 포대를 원조하는 것은, 장루, 특히 주잘우뿐이었다, 그들은 전투 중 시종 용감하게 견뎌냈다. 전투는 잠시도 쉬지 않았다, 침수는 증가하여 펌프로는 되지 않았다, 불은 화약고 쪽으로 타들어 갔다. 펌프 하나가 탄환에 날아가 버렸다,  모두 이제는 침몰한다고 생각했다. 작은 선장은 태연하게 서 있다, 서둘지 않고, 목소리는 높지도 낮지도 않았다, 그의 눈은 전함의 등불보다 더 형형한 불빛을 우리에게 비추었다, 자정 가까이, 달빛 휘황한 속에서 적은 우리에게 항복해 왔다. [나 자신의 노래 36]  한밤중이 긴장 속에 고요하다. 두 개의 큰 선체가 어둠의 한복판에 꼼짝 않고 있다, 그 중의 한 척 자기들의 것은,  관통되어 서서히 가라앉고 있다,  노획한 군함으로 옮겨 탈 준비, 홑이불처럼 창백한 얼굴의 선장이  뒷 갑판에서 냉정하게 명령을 내린다, 근처에 사관실에서 일하던 소년의 시체가 눈에 뜨이고, 긴 백발에 곱게 손질한 구레나룻을 가진  늙은 해병의 얼굴도 있다,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화염이 배의 아래 위로 퍼진다, 아직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2, 3명의 사곤의 목쉰 소리, 사지가 없는 시체, 또는 시체 그대로인 것,  돛대나 돛 가로대에 붙은 살조각들, 밧줄의 단편, 매달려 있는 색구,  고요한 파도에서 오는 가벼운 충격, 머리 위에서 말없이 슬프게 비치는 큰 별, 해풍의 미묘한 소리, 바닷가 갈대풀과 들판의 냄새,  생존자에게 남겨진 유언들, 외과의의 메스 휘드는 소리,  그의 수술용 톱의 쓸어 들어가는 톱니, 힘든 호흡, 울음 소리, 떨어지는 핏방울의 튀김,  짧고 거친 비명, 길게 둔하게,  점차 날카로와지는 신음 소리, 이런 것들, 다시 되찾을 수 없는 이런 것들. [나 자신의 노래 44] 이제 나 자신을 설명할 때다- 자, 우리 모두 일어서자. 이미 아려진 일체의 것을 내던지고서, 나는 모든 남녀와 더불어 미지의 세계로 돌진한다, 시계는 이 순간을 가리킨다 - 그러나 영원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우리들은 지금까지 수억조의 겨울과 여름을 겪어 왔다, 앞으로도 수억조의 세월이 있고, 그 앞에도 수억 조가 있다. 탄생은 우리에게 풍요와 다양을 가져왔다, 그리고 또 다른 탄생이 우리에게 풍요와 다양을 가져올 것이다. 나는 어느 하나를 더 크다고,  그리고 다른 것은 더 적다고 말하지 않는다, 이 시간과 장소를 점유하는 것은 다른 어떤 것과도 동등하다. 나의 형제여, 자매여,  인류는 너희에게 잔혹하거나 시기스러웠던가. 그렇다면, 안됐구나,  그들은 나에게는 잔혹하거나 시기스럽지 않았다. 모두가 나에게는 친절했다,  나는 슬픔을 말할 만한 것이 없다. (슬픔이 내게 무슨 상관이 있나) 나는 완성된 사물의 극치이고,  일어날 일체의 것을 포괄하는 자이다. 나의 발은 계단의 정점의 다시 그 정점을 밟는다, 층마다에 시대의 다발, 그리고 그 층과 층 사이에 더 큰 다발이 있다, 발 아래의 것은 모두 내가 걸어온 자국, 나는 다시 오르고 또 오른다. 오르고 오르는 데 따라서, 뒤에는 지난 날의 환영들이 고개 숙이고 있다, 멀리 밑으로 나는 거대한 태초의 無를 본다, 거기에도 내가 있었음을 안다, 나는 보이지 않는 상태로 언제나 기다렸다,  그리고 혼수상태의 안개 속에 잠들어 있었다, 그리고 서서히 �를 기다렸고, 악취를 내는 탄소의 해를 받지 않았다. 오랫동안 나는 꼭 껴안았다 - 오래 오랫동안. 나를 위한 준비는 엄청난 것이었다. 나를 도운 팔은 성실하고 친절했다. 시간의 회전은 쾌활한 뱃사람 모양 노젓고 노저어  나의 요람을 실어 보냈다, 내 자리를 마련하기 위하여 별들은 저희 궤도를 벗어나 운행했다, 그들은 나를 떠받칠 것을 지켜 주기 위하여 온갖 힘을 보내 주었다. 내가 어머니에게서 탄생하기 전에, 여러 세대가 나를 인도했고, 나의 태아는 언제나 생동했고, 어떤 것도 그것을 압도할 수 없었다. 나의 태아를 위하여 이 한 구체에 집중했고, 태아를 그 위에 앉히기 위하여 오랜 완만한 지층이 쌓였다, 풍요한 식물이 거기에 양분을 주고, 거대한 도마뱀이 그것을 입으로 운반하여, 조심껏 땅에 내려 놓았다, 온갖 힘이 나를 완성하고 나를 즐겁게 하기 위하여 부단히 쓰였다.  그리하여, 이제 이 자리에 나는 튼튼한 영혼을 갖고 서 있다. - 월터 휘트만(Walter Whitman 1819-1892)이란 사람은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시인 중의 한 사람입니다. 그는 시에서 서민들의 희망과 자유를 진실하게 노래합니다. 휘트만의 작품은 모든 인류가 하나임과 인간의 가치가 얼마나 큰가를 노래하는 것이 주내용입니다.  이 시인은 말년에 여러 가지 질병으로 불행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한 의사가 하는 말을 듣고 그가 노래한 인간의 최고의 가치가 무엇인가를 새삼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그 의사의 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저는 의사가 된지 어언 30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처방을 해 왔습니다만 아픈 사람에게 가장 좋은 처벙 약은 다른 것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휘트만은 크게 공감하면서  "그러면 사랑이란 약이 듣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하지요?" 라고 의사에게 질문했습니다.  그러자 의사는  "그땐 처방약을 두 배로 늘리게 되지요" 하고 말했답니다. 뉴욕주 롱아일랜드 출생. 아버지는 목수였는데, T.페인(1737∼1809)의 인권사상 등에 심취하였고, 어머니는 네덜란드 이민 출신으로 자유롭고 민주적인 기풍을 지녔다. 4세 때 브루클린으로 이주, 가정사정으로 초등학교를 중퇴하여 인쇄소 직공으로 있으면서 독학으로 교양을 쌓았다. 1835년 고향에 돌아가 초등학교 교사, 신문 편집 등에 종사하였다. 그 후 뉴욕으로 옮겨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기 시작하여, 1846년에는 브루클린의 미국 민주당계 일간지 《이글 Eagle》의 편집자가 되었다. 그러나 1848년 ‘프리 소일(free soil) 운동’을 지지하는 그의 논설이 민주당 보수파의 분노를 사게 되어 사임, 전부터의 염원이던 프리 소일파의 주간신문 《자유민 Freeman》을 창간하여 그 주필로 활약하였다. 그러나, 또다시 민주당 보수파의 공격을 받고 겨우 1년 만에 사임하였다.  1850년대에 들어서자, 그는 합승마차의 마부석 옆에 앉거나 나룻배에 타거나 하여 민중의 생태를 관찰하고, 또는 아버지의 목수일을 도우며 많은 시간을 독서와 사색으로 보냈다. 이 내부침잠(內部沈潛)의 시기를 거쳐서 그의 시인으로의 전신(轉身)이 이루어졌다. 1855년 시집 《풀잎 Leaves of Grass》을 자비출판하였는데, 이것은 종래의 전통적 시형(詩型)을 크게 벗어나 미국의 적나라한 모습을 고스란히 받아들여 찬미한 것이었다. 그러나 제3판(1860)에 이르자, 새로 수록된 《카라마스》 등의 시군(詩群)을 통해서 사랑과 연대(連帶)라고 하는 일정한 주장이 표면화하기 시작하여, 이른바 ‘예언자 시인’으로의 변모를 드러냈다. 논문 《민주주의의 미래상 Democratic Vistas》(1871)에서도 미국사회의 물질주의적인 경향을 비판하고, ‘인격주의’의 필요성을 주장하였다.  1862년 겨울, 남북전쟁에 종군 중이던 동생 조지가 부상당한 것이 계기가 되어, 1863년 이후는 관청에 근무하면서 워싱턴의 병원에서 부상병을 간호하기도 하였다. 어떻든 남북전쟁을 극복하고 통일을 지킬 수 있었다는 것은 그에게는 커다란 기쁨이었으며, 자신의 고통과 죽음을 견디는 젊은 병사들의 모습을 직접 목격한 경험은 그의 마음속에 미국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불러일으켰다. 1865년, 남북전쟁을 소재로 하는 72페이지의 작은 시집 《북소리 Drum-Taps》를 출판하고, 이듬해 링컨 대통령에 대한 추도시(追悼詩) 《앞뜰에 라일락이 피었을 때 When Lilacs Last in the Dooryard Bloom’d》를 포함한 24페이지의 《속편(續編)》을 출판해서 곧 《풀잎》(4판, 1867)에 재록(再錄)하였다.  1873년에 중풍의 발작이 있었으나 요양에 전념, 1879년에는 서부 여행, 1880년에는 캐나다 여행도 할 수 있을 만큼 회복되었다. 1882년에는 산문집 《자선일기(自選日記) 기타》를 출판, 문명(文名)도 높아졌다. 1884년에는 《풀잎》의 인세(印稅)로 세운 뉴저지주 캠던의 미클가(街) 자택에는 내외의 방문자가 빈번히 드나들었다. 그러나 체력도 약해졌지만 그 자신은 점차 염세주의로 기울었으며, 1888년 재차 중풍이 발작한 후, 1892년 폐렴(肺炎)으로 세상을 떠났다. (네이버 발췌)  
209    오순택의 동시 100편 [한국] 댓글:  조회:2201  추천:0  2017-07-07
    1. 봄비   나직나직 꽃의 말에 귀 기울이는 봄비   꽃잎에 고운 발자국을 놓고 간다   알몸이 되어 푸르르 푸르르 떨고 있는 풀잎에 앉으면 초록 구슬이 되는 봄비   연못엔 음표를 놓고 간다 《풀벌레 소리 바구니에 담다》, 아동문예, 1981     2. 노랑나비   노란 꽃잎이 바람도 없는데 하늘하늘 떠간다   그 꽃잎은 하느님이 만드신 것 중에서 가장 귀여운 것 가장 예쁜 것   바람도 없는데 노란 꽃잎이 나풀나풀 떠간다   길가의 민들레가 방긋 웃는다 아동문예 1981     3. 새는 꽃빛깔로 운다   새의 목소리는 꽃이다 새는 꽃빛깔로 운다   새벽녘 마알간 부리로 꽃빛깔 한 모금 물어다가 창 곁에 놓아두고 하늘한 실가지 끝 날개 접고 앉아서 보랏빛으로 운다   수수깡 마른 줄기에 된장잠자리 앉았다 날아가는 어스름 녘   새는 고운 목소리 꽃잎에 토해 놓고 창 곁에 귀를 잠재운다   새는 꽃이다 꽃빛깔로 운다 아동문예 1985     4. 나는 나무가 좋습니다   나는 나무가 좋습니다   혼자 서서 생각하는 나무     새가 날아와 가지에 똥을 누고 가도 바람이 잎을 마구 흔들어도 말없이 서서 하늘 향해 기도하는 나무   나무의 몸에 가만히 등을 기대면 따스한 체온이 묻어나는 것 같고 잎을 만지면 손은 온통 초록 물이 드는 것 같은 나무   나는 나무가 좋습니다 아동문예 1985     5. 산마을 -겨울   눈이 숨겨 놓은 외딴집 고운 발자국이 길을 내었다   그 발자국 따라가 보면 보나마나 툇마루엔 함지박이 놓여 있고 함지박 안엔 찐 고구마가 담겨 있을게다   누가 왔다 갔는가 알 듯도 하다 우체부 아저씨가 꽃씨 같은 읍내 소식 놓고 갔거나 건너 마을 순이 어머니가 씨 강냉이 얻으러 왔을게다   산마을엔 새는 보이지 않고 꽃물 묻은 고운 목소리만 눈처럼 싸리울을 적시고 있다 아동문예 1985   6. 보리   하필이면 추운 겨울날 아이들이 손을 호호 불며 보리밭을 밟고 있다   아이들은 신이 나서 보리를 밟아대지만 그럴수록 보리는 파르르 파르르 살아나 새처럼 날고 싶어 한다   연한 풀잎사귀 같은 것이 겨울을 용케도 견디어 내는 걸 보면 참 대견스럽다   손을 호호 불며 보리밭을 밟는 아이들의 가슴 속에 보리 잎사귀 같은 초록 물이 든다 아동문예 1985     7. 메밀꽃 피면   고추잠자리 쉼 없이 날고 있었지 누나 손을 잡고 메밀밭 가에 서면 소금을 뿌린 듯 메밀꽃 피어 있었지 앉을까말까 고추잠자리 생각하고 살래살래 메밀꽃 고갤 흔든다     실바람 숨죽이고 모여 있었지 누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 올 때쯤 달빛을 덮고 메밀꽃 자고 있었지 깨울까말까 실바람 생각하고 가만가만 메밀꽃 고운 꿈꾼다. 아동문예 1987   8. 자운영꽃 따서   학교 가는 길 논둑길의 자운영꽃 따서 꽃시계 만들어 손목에 찹니다 친구 시계는 재깍재깍 내 시계는 소올솔 꽃내음이 납니다   돌아오는 길 논둑길의 자운영꽃 따서 꽃목걸이 만들어 목에 걸지요 누나 목걸이는 반짝반작 내 목걸이는 사알살 꽃내음을 풍겨요 아동문예> 1987   9. 코스모스 꽃길   코스모스 꽃길을 걸어서 가면 발자국엔 고운 꽃물이 고여요   코스모스 꽃길을 손잡고 가면 손바닥엔 연분홍물이 들지요   코스모스 꽃길을 걸어오면 책가방 가득 꽃내음이 담겨요 아동문예 1987   10. 예쁜 나무 나의 친구와 나눈 이야기   “나무야, 나무야 잠은 언제 자니?” “봄엔 잎을 피우고 여름엔 꽃을 피워야지 잠잘 시간이 어디 있니” “밤에 잠을 자면 돼지 뭐” “밤은 너무 조용해서 잠이 오니” “그럼 밤엔 무얼 하니?” “별을 헤이며 하루를 반성하지” “날마다 반성하니?” “그럼” “가을엔 무얼 하니?” “하늘을 향해 기도 하지 하느님이 열매를 주시니까” “겨울엔?” “조용히 서서 귀를 기울이고 있지” “귀를?” “봄이 어디만큼 오고 있나 알아보는 거지” “봄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니?” “그럼 봄의 발자국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지고 있지” “어디 있니?” “응 그건 사람들에겐 보이지 않지” “그런 시시한 말이 어디 있니” “나무는 하느님이 만든 가장 예쁜 시인이야* 봄의 발자국 소리도 들을 수 있고 열매가 자라는 것도 볼 수 있는·······” *조이스 킬머의 에서 따옴. 아동문예 1987     11.꽃신   꽃씨만큼씩만 자라나는 신발 한 켤레   우리 현이의 신발에선 꽃내음이 난다   의좋은 다섯 발가락 나란히 누워 잠자는 조그만 방   밤이면 달님이 내려와 꽃방석 깔아주고 간다   꽃나무가 자라듯 밤에만 몰래 크는 꽃신 한 켤레 눈높이 대교출판 1988     12. 시골 친구  시골에서 온 내 친구 목소리에선 장다리꽃 냄새가 나지요   시골에서 온 내 친구 호주머니 속에는 풀잎 바람이 들어 있어요   시골에서 온 내 친구 신발에는 개울물 소리도 묻어 있지요   시골에서 온 내 친구 마음씨는 분꽃 씨 같아요   눈높이 대교출판 1988   13. 참새   참새 서너 마리 부리에 음표를 물고 전깃줄에 앉아 있다   다섯 줄 전깃줄이 오선지인 줄 아나 봐 눈높이 대교출판 1988   14. 아침마다   꽃도 밤에는 잠을 자나 봐 아침마다 이슬로 얼굴을 닦고 있는 걸 보면   나무도 잠을 자며 꿈을 꾸나 봐 아침마다 잎사귀들이 반짝반짝 빛나는 걸 보면 아동문예 1989   15. 무지개    여름 오후 해님이 잠깐 졸고 있는 사이   소나기가 놓고 간 일곱 줄 현악기   부리 고운 새가 날아가며 튕겨보지요 아동문예 1989     16. 바다   돛단배는 갸우뚱 딛고 가고   통통배는 뒤우뚱 딛고 가는    하늘만한 디딤돌 아동문예 1989   17. 까치집   키 큰 미루나무 파아란 하늘이 묻은 가지에 둥긋한 집 한 채   방 한 칸뿐인 까치집   단출한 까치네 식구들   하늘은 그의 뜰   구름도 까치집 뜰에 와서 논다 아동문예 1990   18. 우리나라의 새   우리나라의 새는 악기입니다   까치는 이른 아침 사립문에 꽃물 묻은 햇살을 물어다 놓고 까작, 까작, 까작 타악기 소리를 내고   실개천 말뚝에 앉은 털빛 고운 물총새는 돌 틈을 흐르는 물소리 같이 목관악기 소리를 냅니다   가르마를 타듯 바람이 보리밭을 헤치고 지나가면 종달새는 피리소리를 내며 돌팔매질을 하듯 보리밭에 내려앉고   몸은 솔숲에 숨겨 놓고 꽃 같은 고운 목소리만 내어 보이고 있는 뻐꾸기는 금관악기입니다   우리나라의 새는 예쁜 악기입니다 아동문예 1990   19. 고추잠자리   빨갛게 익었다.  고추처럼 익었다   여름 한낮 뙤약볕 받아먹고 곱게 핀 백일홍 꽃잎 같은 날개   파아란 하늘을 날며 꽁지로 시를 쓴다 계몽사 1992     20. 여름 한낮    소나기가 작은 북을 두드리듯 연잎을 밟고 지나가면   매미는 미루나무 가지에 앉아 연주를 한다   호박 덩굴이 살금살금 기어가는 울타리 너머로 쏘옥 고개 내민 해바라기 얼굴이 햇볕에 누렇게 익은 아빠 얼굴 같다   아까부터 장독대 곁 꽃밭에선 봉숭아 씨가 토록토록 여문다 계몽사 1992     21. 연못  연못은 오선지   보슬비가 음표를 놓고 간다   연못은 푸른 색종이   물방개가 동그라미를 그린다 계몽사 1992   22. 가을비   가을비는 낙엽을 밟고 옵니다   외로운 아이처럼 빈 가지만 들고 서 있는 나무 밑을 서성거리다가 까치집 문 밖에서 안을 기웃거립니다   가을비는 아이처럼 종종걸음으로 옵니다   댓돌 위에 나란히 놓여 있는 꽃신 속에 귀뚜라미를 울려 놓고 사립문 밖에선 굴뚝새가 물고 올 겨울을 기다립니다 계몽사 1992     23. 사과의 무게   사과는 땅에 내려오기 위하여 처음엔 모험을 했을지도 모른다   가지에 매달려 있을 때만 해도 공중으로 날아가 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사과가 뚝- 하고 땅에 떨어졌을 때   지구는 사과의 무게만큼 무거워 졌다 계몽사 1992   24. 어촌에 가면   햇살 고운 돌담 옆에서 어부가 그물을 깁고 있다   짙푸른 파도도 걸리게 촘촘히 촘촘히 햇살도 조금 섞어 그물을 깁고 있다   조그마한 꽃게 한 마리 푸른 바다 한 조각 집어 들고 와서 그물코에 놓고 가면   그물코에 걸린 푸른 바다는 갓 잡아 올린 고기처럼 파닥거린다   그물을 깁고 있는 어부의 손등은 비늘 벗겨진 고기 등 같다 계몽사 1992     25. 귀이개   귀이개로 귀지를 파다보면   친구와 소곤소곤 나눈 귓속말도 귀이개에 묻어 나오고   선생님의 귀한 말씀도 부스러기가 되어 버린다   그래 쪼끄만 게 내 비밀을 다 캐내는구나 선영사 1993     26. 아빠 구두   밤에만 현관에 놓이는 아빠 구두   가만히 구두를 신어 봅니다   구두 한 짝 속에 나의 두 발이 포옥 담깁니다   아빠의 따스함 묻어 있는 구두 한 켤레 도서출판 가꿈 1995     27. 하늘 세수   세수를 했습니다 콸콸 쏟아지는 수돗물을 받아 세수를 했습니다   대야엔 찰랑찰랑 강물이 담겼습니다   강물엔 산이 빠져있고 하늘이 담겨 있습니다   나는 두 손으로 물을 떠서 세수를 했습니다   하늘을 떠서 세수를 했습니다 도서출판 가꿈 1995     28. 개망초꽃 꺾어서   들녘에 나가 종일 꽃을 꺾었습니다   가슴엔 온통 꽃물이 들었습니다   보랏빛 꽃잎을 따서 들녘에 흩뿌렸더니 새가 되어 날아갔습니다   이윽고 밤하늘엔 개망초꽃 같은 별이 하나 둘 반짝이기 시작했습니다 학예원 1997   29. 갈매기   갈매기야 갈매기야 너는 집이 어디니?   푸른 물결위에서 너울너울 춤을 추며 3자를 쓰는 갈매기야   너는 소녀니? 소년이니?   물결은 혀를 날름거리며 방죽을 핥고 있고 배들은 묶인 채 떠나지 않는데   끼륵끼륵 갈매기야 누굴 찾고 있니?   푸른 바다 위를 가벼이 나는 너는 먼 나라에서 보내 온 편지 같구나   갈매기야 갈매기야 너의 예쁜 이름 누가 지어 주었니? 학예원 1997   30. 꽃과 나비의 입맞춤   나비가 뽀뽀를 했대요   꽃의 입술에 뽀뽀를 했대요   저것 봐요 나비 입술에 꽃 내음이 묻어있잖아요 학예원 1997   31. 찔레꽃   수수깡 울타리 위에 등불을 켜 놓고 고샅길을 하얗게 밝혀 주고 있다 학예원 1997     32. 구두약   아기 얼굴은 엄마가 닦아 주고   아빠 구두는 구두약이  닦아 주지요 문공사 1998   33. 개똥벌레   꽁무니에 불을 달고 까불대는 벌레 한 마리   풀숲에 호롱호롱 불을 켜네요 문공사 1998   34.아이와 우산   아이가 산을 들고 갑니다   비 오는 날   산 속엔 비가 오지 않습니다 문공사 1998     35. 나의 신발   나의 신발은 배이에요   나 혼자 타는 배이에요   나를 싣고 학교 가는 작은 배이에요 문공사 1998   36. 거미에게   거미야 거미야   네가 짜 놓은 그물 바람도 걸리니?   거미야 거미야   네가 짜 놓은 그물 빗방울도 걸리니? 문공사 1998   37. 우산꽃    비를 맞으면 활짝 피어나는 꽃 문공사 1998   38. 아가 이   엄마의 숨결 묻은 꽃씨 두어 개 묻어 놓은 아가의 입 속에   새하얀 봄이 쏘옥 돋는다 문공사 1998   39. 아름다운 것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아기다   아기의 눈 아기의 코 아기의 입 아기의 귀   그리고 아기의 손가락 아기의 발가락   아기는 이따가 필 꽃이다 아동문예 2005   40. 똥꼬가 뽀꼼   엄마가 아기 똥꼬를 들여다봐요   꼭 나비가 꽃을 들여다보는 것 같아요   똥꼬가 뽀꼼 열려요   튜브에서 치약이 나오듯 똥이 나와요   향내 소올솔 풍겨요 아동문예 2005   41. 아기 양말   발가락 포옥 잠재워 주는 아기 양말   보송보송 엄마가 사온 털실 양말   포근포근 봄 햇살 같아요 아동문예 2005   42. 꽃씨 눈   아기 눈은 꽃씨 눈이에요   흙 속에서 첫 눈 뜨는 해바라기 씨눈처럼 말똥해요   아기는 노랑나비 날개 접듯 살포시 눈 감아요 아동문예 2005   43. 새 싹에서 나는 향내   아기 입에선 향내가 나요   봉숭아 새 싹에서 나는 향내 같아요   아기 입은 금붕어 입처럼 쪼그마해요 아동문예 2005   44. 사슴섬의 뻐꾸기 -한하운 시인에게   뻐꾸기 한 마리 숲속에서 울고 있었다 고운 햇살 온몸에 감고   손을 내밀어 가만히 잡아 주고 싶은 목이 긴 사람들이 사는 사슴 섬   미움도 없고 시새움도 없는 아! 이곳은 아픈 당신들의 천국이었구나   어릴 때 함께 뛰어 놀던 친구들 모두 고향에 다 있는데 보리피리 불며불며 서럽게 찾아온 땅 소록도여!   그는 죽어 뻐꾸기가 되었는가 뻐꾹, 뻐꾹, 뻐꾹   숲속에 숨어 꽃잎에 붉은 울음을 토해 놓고 있었다 *사슴 섬: 전남 고흥군 도양면에 속하는 섬으로 어린 사슴을 닮았다고 하여 소록도라고 한다. *한하운: 나병에 걸려 소록도로간 시인. 아동문예 2007   45. 선운사 동백꽃   선운사 동백꽃은 누나 입술 같이 곱더라   고운 입술에 봄빛 듬뿍 물고 배시시 웃고 있더라   지난 겨울 싸락눈 먹고 자란 초록 잎사귀가 저렇게 붉은 꽃 피웠겠지   꽃이 지면 어쩌지 붉은 동백꽃 똑똑 따며 봄이 가 버리면 어쩌지   어디서 날아왔는지 꽁지 몽땅한 새 한 마리 떨어진 꽃잎을 쪼아 먹고 있더라 *선운사: 전북 고창에 있는 고찰. 대웅전 뒤꼍엔 오래된 동백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아동문예 2007.       46. 웃는 돌 -경주 남산에서   돌이 앉아서 웃고 있다   눈도 웃고 입도 웃고 귀도 웃는다 *경주 남산은 마치 불상들의 박물관 같다. 모두가 웃고 있다. 귀로도 웃고 입으로도 웃고 눈으로도 웃는 돌. 얼굴 없는 불상도 있다. 아동문예 2007   47.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황지에서 낙동강까지   나는 물이에요 졸졸 쫄쫄 촐촐 악기 같은 새 소리도 흉내 내며 산 속 바위틈을 지나 개울에 이르면, 어디서 왔는지 그 곳에는 얼굴이 푸르스름한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었지요 가다가 숨차면 댐에 갇혀 햇볕에 포슬포슬 등을 말리기도 하고, 그래도 심심하면 폭포처럼 뛰어내려 하야말갛게 부서지며 깔깔댔어요 물은 물끼리 만나면 즐거워요 금세 강에 다다랐는지 토끼풀 주섬주섬 모아 꽃피우는 강가를 바라보며 우리는 한 마음이 되어 큰 강을 만들지요 강은 깊을수록 휘휘 휘파람을 불며 흘러가지요 나는 친구들과 헤어져 어느 집 수도관으로 들어갔지요 수도꼭지를 틀어 놓고 물을 콸콸 흘려버리면 어쩌나 싶어 가슴이 콩닥거렸어요 이윽고 누군가가 수도꼭지를 틀었어요 후유! 손이 조그맣고 귀여운 여자 아이였어요 나는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어 주었지요 “너를 만나려고 낙동강 일천삼백 리를 달려왔지” 나는 나푼나푼한 이파리처럼 말하였지요 *황지: 낙동강 일천삼백 리가 시작 되는 연못. 강원도 태백시에 있다. 아동문예 2007   48. 마이산을 바라보며   전라북도 진안엔 말의 귀 모양을 한 산이 하나 있는데요   가까이 다가가면 바윗덩이만 보이는데 멀리서 바라보면 두 개의 봉우리가 영락없이 쫑긋한 말의 귀 같지요   사람 사는 것도 그렇다나요 가까이 있을 땐 몰랐는데 멀리 떨어져 있으면 아름다운 마음이 새록새록 솟는데요   그래요 자연은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한 소중한 것을 일깨워 주지요 *마이산: 두 개의 산봉우리가 말의 귀를 닮아 마이산(馬耳山)이라고 한다. 높이 685미터. 아동문예 2007     49. 하회마을   낙동강이 휘돌아 흘러가며 감싸고 있는 마을   그곳에 가면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아 하늘 맑은 날 찾아갔지요   고샅길 따라가면 마른 풀 향내 나는 토담집이 정겹고   솟을대문 열고 들어서면 기와 이고 있는 오래 된 집들은 파릇한 손때가 묻어 있었지요   그곳에 가면 하회탈 쓰고 더덩실 더덩실 어깨춤 추는 초랭이도 만날 수 있지요 *하회마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낙동강이 감싸고 있는 마을. 물도리동 이라고 함. 한국민속문화의 한 전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전통양반 마을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됨. *하회탈:9개의 하회탈은 국보 제121호로 지정되어 있다. *초랭이: 양반의 하인을 상징하는 탈. 아동문예 2007   50. 제암리 예배당   제암리엔 일요일이면 하느님이 내려 오셨다가 잠깐 쉬어가는 조그만 예배당이 있습니다   예배당 옆 난쟁이 풀꽃들 나직나직 무슨 말 하는지 볼이 불그레한 꽃잎 피어나고 있습니다   어린 새싹은 보드라운 손길로 쓰다듬어 주시고 고운 햇살 골라 과일 속에 단물 고이게 하시는 그분 만나기 위해 일요일이면 예배당엔 신발이 가지런히 놓입니다.   발가락이 쏘옥 나온 구멍난 양말을 신은 소녀 곁엔 문틈으로 들어온 햇살이 오도마니 앉아 있습니다   기도 소리가 하늘까지 닿았는지 구름도 지나가다가 잠시 머물다 갑니다 *제암리: 3 · 1 운동 순교 유적지. 당시 일본군이 마을 기독교 주민 30명을 집단으로 학살한 곳.(경기도 화성군 향남면 제암리) *교회 뒤쪽에 제암리 3 · 1 운동 순국 묘가 있다. 아동문예 2007     51. 풀벌레   온종일 풀잎에 앉아 놀더니   온몸에 초록물이 들었구나 청개구리 2009   52. 달팽이   풀잎에 맺힌 이슬 핥아 먹고   봉숭아 씨 같은 똥을 눈다   똥에선 풀꽃 향내 난다 청개구리 2009     53. 저녁 눈   사락사락 누가 연필을 깎고 있다   하얀 종이 위에 시를 쓰려나 보다 청개구리 2009     54. 향내 나는 말   운동장 한쪽에 있는 세면대에서 아이들이 까르르까르르 이을 닦고 있습니다   입가엔 함박꽃이 핍니다   친구에게 하고 싶은 말도 선생님에게 여쭐 말도 반짝반짝 닦입니다   양치질을 끝낸 아이들이 쪼르르 교실로 들어옵니다   재잘재잘 아이들의 말에서 향내가 납니다 교실에도 향내가 묻어납니다 청개구리 2009   55. 못   한 곳에 박혀 있다고 무시하지 마   회사에서 돌아온 아빠 옷도 내가 받아 거는걸   쬐그맣고 볼품없다고 무시하지 마   너의 온몸 비춰볼 수 있는 거울도 내가 들고 있는걸 청개구리 2009     56. 쪽배가 된 초승달   옥토끼가 갉아 먹다 남은 초승달이 나뭇가지에 걸려 있다   꽁지 몽땅한 새가 잠자러 가면서 쪽배인 줄 알고 타고 간다 청개구리 2009   57. 눈 오는 날   버스 정류장에 헌 옷 입은 아저씨가 빈 깡통 옆에 놓고 졸고 있다 사람들은 못 본 척 버스를 탄다 하느님은 아까부터 내려다보고 있었나 보다 싸락눈을 빈 깡통에 담아주고 있다 청개구리 2009   58. 달빛   달빛이 햇볕처럼 뜨거워 봐 꽃들이 어떻게 잠을 자겠니   달빛이 햇볕처럼 밝아 봐 새들이 어떻게 잠을 자겠니 청개구리 2009   59. 아기 염소가 웃는 까닭   꽁지 몽땅한 새가 날아가면서 싼 똥 민들레 꽃잎에 똑- 떨어졌다   민들레 얼굴이 노래진다   새순을 뜯어 먹고 있던 아기 염소가 까르르 웃는다 청개구리 2009   60. 할아버지의 과일   시골 할아버지가 보내 준 과일 속엔 해가 들어 있지요   뜨거운 여름 햇볕 받아먹고 빠알가니 익었으니까요   시골 할아버지가 보내 준 과일 속엔 빗소리도 들어 있어요   뭉게구름 지나가다가 과일 밭에 들러 비 뿌려 주고 갔으니까요   시골 할아버지가 보내 준 과일 속엔 새소리도 들어 있지요   온음표 물고 날아가던 새 과일나무 가지에 앉아 노래하다 갔으니까요 청개구리 2009   61. 낚시   아빠는 강에 물음표를 놓았습니다   강은 대답 대신 고기 한 마리 올려 보냅니다 청개구리 2009    62. 누구니? · 1   누구니?   외딴 마을에 풀꽃 피었다고 나비에게 누가 전화 했니? 청개구리 2009   63. 캥거루   탁아소가 필요 없지요   엄마가 항상 데리고 다니니까요   유모차가 필요 없지요   주머니에 아기를 넣고 다니니까요 청개구리 2009     64. 슬플 때는   꽃이 없다고 나비는 슬퍼하지 않는단다 개미는 바빠서 슬퍼할 겨를이 없단다   밤하늘에 박혀있는 별을 따서 가슴 가득 담아 봐 슬플 때는   그래도 슬플 땐 들꽃을 만나 봐   아무도 보러오지 않아도 웃고 있지 않니   그러면 가슴속에 들어 있는 슬픔이 채송화 꽃씨같이 토옥 튀어 나와 동글동글 굴러가 버릴 거야 청개구리 2009   65. 공룡이 뚜벅뚜벅   아이가 공룡이 그려진 책장을 넘깁니다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타르보사우루스가 뚜벅뚜벅 걸어 나옵니다   아이의 눈이 동그래집니다   엄마가 얼른 책장을 덥습니다 아평 2011     66. 민들레꽃 웃음   아이 손잡고 유치원 가는데   누군가 부르는 것 같아 뒤돌아보았다   한 떨기 민들레꽃이 노랗게 웃고 있었다 아평 2011   67. 딸기   내가 좋아하는 주근깨투성이 소녀   가만히 바라보면 부끄러워 얼굴 빨개진다 아평 2011     68. 부탁해   나비야 꽃잎 밟지 마라   연한 꽃잎에 발자국 생기면 어쩌니 아평 2011       69. 우체통   초록 바람이 손을 넣어 보며   -없네     꽁지 몽땅한 새가 들여다보며   -비었군 아평 2011     70. 발가락도 숨을 쉰다   발가락이 꼼지락꼼지락 거려요   “숨이 막히니?”   양말이 빠꼼히 구멍을 내주지요 아평 2011   71. 나비의 집   나비야 넌 집이 어디니?     꽃밭   그럼 겨울엔 어디서 사니?   꽃씨 속 아평 2011   72. 제비꽃의 봄   쪼그만 입으로 봄볕 오물오물 먹고 있는 자주색 제비꽃   모시나비 한 마리 사뿐사뿐 날아와 제비꽃 자주색 입술에 뽀뽀하고 있다 아동문예 2012     73. 봄은   봄은 세 살배기 아기다   이제 막 말을 하려고 입을 여는 아기다   봄은 아침마중 2013     74. 신문지 이불   지하도에서 아저씨가 신문지 덮고 자고 있다   누군가가 다 읽고 버린 신문지도 때로는 이렇게 따뜻한 이불이 된다 아침마중 2013   75. 크레파스   살빛은 달라도 한 방에서 나란히 누워 잠잔다   태어날 땐 키가 똑같았는데   밖에 나가 신나게 놀다오면 키가 작아진다 아침마중 2013     76. 봉선화처럼   봉선화 꽃이 손톱에 고운 꽃물을 들여 주듯   나도 너의 마음속에 연분홍 꽃물로 물들고 싶다 아침마중 2013       77. 방패연이 걸어놓은 빨랫줄    방패연이 하늘에 걸어놓은   팽팽한 빨랫줄   해님이 물 먹은 구름을   탈탈 털며 널고 있다 아침마중 2013       78. 해바라기와 흰줄표범나비   긴 꽃대위에 노랑 쟁반 올려놓고   햇볕 달달 볶고 있다   흰줄표범나비 한 마리 날름날름 햇볕 핥아 먹고 있다 아침마중 2013   79. 이사 가는 나무   미루나무 한 그루 누워서 이사 간다   나무에 세 들어 사는 까치네도 함께 간다   다친 발 친친 동여매고 트럭에 누워 이사 간다   나무가 이사 가는 마을이 궁금해 푸른 하늘도 따라 가고 해님도 빙그레 웃으며 따라 간다 아침마중 2013   80. 빈집·1   바닷가에 소라 한 개 버려져 있다   -안에 누구 계셔요?   갈매기가 목 길게 빼고 들여다본다 아침마중 2013   81. 달걀   부엌에선 프라이가 되지만   둥우리에선 병아리가 된다 아침마중 2013       82. 탯줄   세상에 막 나온 아기에게 엄마가 전화를 했답니다   -아가야 세상은 넓은 바다와 같은 거란다   -엄마 세상이 참 아름다워요   탯줄은 엄마와 아기가 주고받은 아름다운 유선 전화랍니다 아침마중 2013   83. 수평선    하늘과 바다가 그어 놓은 금줄이다   하늘을 나는 새는 헤엄을 못치고   바다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는 날지 못해   조심하라고 그어 놓은 금줄이다 아침마중 2013     84. 산을 먹은 송아지   산이 슬렁슬렁 강으로 내려가 물구나무를 섭니다   강둑에서 새순을 뜯어 먹고 있던 송아지가 겅중겅중 뛰어가 후루룩 강물을 먹습니다   음매에~ 어미 소를 부르는 송아지 울음이 꼭 산의 울음 같습니다 아침마중 2013   85. 봄볕 먹기   봄볕이 맛있나 봐   민들레 노란 꽃잎에 앉아 있는 모시나비도 먹고 풀밭에서 뛰어 노는 아기 염소도 먹고   뜨락에서 뒹구는 고양이도 먹고 유치원에 가는 아이들도 먹는다   봄볕이 참 맛있나 봐 아침마중 2013   86. 나무야, 아프지 마   과천 정부청사 앞 나무 한 그루 주사기를 꽂고 링거를 맞고 있다   노랑턱멧새 한 마리 문병 와서 포도 알 같은 슬픈 눈망울하고 나무의 어깨에 앉아 울고 있다 아침마중 2013   87. 똥꼬 보고 웃기   아이가 길을 가다가 풀밭에 똥을 눴단다   바지를 내리고 쪼그리고 앉아 똥을 눴단다   똥 덩이에 눌린 풀잎은 푸렁 물이 들었단다   누가 연락했는지 쉬파리가 맨 먼저 찾아왔단다   풀꽃이 아이 똥꼬를 봤는지 까르르 웃고 있었단다 아침마중 2013       88. 굴렁쇠를 굴리는 아이   미루나무 줄지어 서 있는 강둑을 아이는 굴렁쇠를 굴리며 달려간다   은빛 송사리 떼 헤엄치며 따라가고   토끼풀 주섬주섬 모아 꽃피우는 강둑에 잎싹 날름날름 뜯어 먹고 있는 아기 염소 두 마리 끔벅끔벅 눈도 까맣다   해님이 잠자러 가면서 노을 한 자락 걸어 놓으면   아이는 굴렁쇠에 노을을 감으며 집으로 돌아온다 아침마중 2013   89. 연못 속의 나무   나무 한 그루 연못에 제 모습을 비춰보고 있다    물구나무 서 있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 몸을 바르르 떤다   이윽고 나뭇가지에 앉아 있던 새가 포르르 날아간다   연못이 까르르 웃는다 아침마중 2013   90.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다   바퀴에 감긴 길을 동그란 실뭉치 풀듯 풀어보고 싶다   추운 겨울 누나 목에 두른 목도리 같은 고속도로도 감겨 있고 고운 햇살 머금고 발그레 웃고 있는 코스모스 길도 감겨 있겠지   바퀴를 뒤로 굴리면 동글동글한 실뭉치가 둘둘둘둘 풀리듯 고속도로 옆 그림처럼 펼쳐진 산과 들도 손잡고 따라 나오고 코스모스 발그레한 웃음도 향내 머금고 따라 나오겠지   동그란 실뭉치 풀듯 바퀴에 감긴 길을 둘둘둘둘 풀어보고 싶다 아침마중 2013   91. 목련   남녘에 사는 바람이 편지를 보내왔다   연둣빛 봉투 귀퉁이를 가위로 잘랐다   이윽고 봄이 좌르르 쏟아졌다   뾰뾰뾰 멧새 소리도 들어 있었다 아침마중 2013     92. 똥 싸는 감나무   아이가 시골 외할머니 집 감나무 밑에 쪼그리고 앉아 있다   감나무가 끙 힘을 준다   홍시 한 개 철벅 땅에 떨어진다   아이도 끙 힘을 준다 똥 한 덩이 철벅 떨어진다 아침마중 2013     93. 벌레들의 놀이터   풀밭은 벌레들의 놀이터   실베짱이는 풀잎에 앉아 첼로를 켜고 긴알락꽃하늘소는 더듬이로 무전을 치고 모시나비는 긴 입으로 꽃에 주사 놓고 버들잎벌레는 풀대 위에서 미끄럼 타고   이슬은 무당벌레 등에 업혀 눈 깜박깜박   풀밭은 벌레들의 즐거운 놀이터 아침마중 2013   94. 무 밭에는   지하에 방 하나 있다   몸매 매끈한 무가 살던 방   창문이 없어 햇빛이 들어오지 못하는 무가 이사 간 반지하 방   불개미 가족 우글우글 살고 있다 아침마중 2013       95. 달은 힘이 세다   달은 힘이 센가 봐요   바닷물을 채웠다 비웠다 하잖아요   어딘가에 바다보다 더 큰 그릇이 있나 봐요 아침마중 2013     96. 자국   비 갠 오후   꽃밭에 지렁이 기어간다   한 획 휙 그은 붓   참새가 그 붓 낚아채간다   꽃밭엔 붓 자국만 남는다 아침마중 2013     97. 벌레와 갈잎   초록 잎사귀를 사각사각 갉아 먹고 자란 벌레가     먹다 버린 갈잎을 도르르 말고 겨울잠을 자는 것은   갈잎은 여름 뙤약볕을 받아서 햇볕처럼 따스하기 때문이야 아침마중 2013     98. 횡단보도를 건너는 아이   아이가 피아노 건반 위를 뛰어 간다   도 레 미 파 솔 라 시 도   얼마나 빨리 달리나 신호등이 재깍재깍 시간을 재고   자동차는 멈춰 서서 눈 깜박이며 음악 감상 한다 아침마중 2013     99. 봄의 잠 깨우기   겨울의 뒤꼍에 가 보았니? 이따가 한 번 가 봐 싸락눈 내린 고샅길 지나 지붕 야트막한 집 한 채 싸리 울타리 두르고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강아지 데리고 살고 있지 마당귀엔 두레박으로 길어 올리는 우물도 있어 겨울 햇살 포슬포슬 놀고 있는 장독대 배불뚝이 항아리들 장맛 잘 들었을 거야 그 뒤꼍에 가 봐 매화나무가 있어 가지마다 이슬만 한 뽀얀 몽우리 맺혀 있지. 봄이 여윈잠 자고 있을 거야 귓불을 간지럼 시켜 봐 머루알 같은 눈 비비며 봄이 깨어날 거야 아침마중 2013     100. 쉬   수원 영통 홈플러스 3층의 인형과 자동차가 있는 완구 코너에서 네 살배기 쌍둥이 손녀손자와 놀고 있는데 두 아이가 오줌 마렵다고 하여 바삐 화장실 앞까지 갔었지요   손녀는 여자 화장실로 들어가자고 하고 손자는 남자 화장실로 들어가야 한다며 나의 손을 잡아끌었지요   허허 참! 어쩌면 좋으냐   화장실 밖에서 두 아이가 똑같이   할아버지 쉬- 아침마중 2013  
208    【시적 상상력을 구사하는 몇 가지 방법】 / 고재종 댓글:  조회:1360  추천:0  2017-06-28
【시적 상상력을 구사하는 몇 가지 방법】  / 고재종 범속한 사물과 일상 속에서 생의 의미를 들여다보고자 갈망하는 이들이야말로 시인이다. 그들은 이 겨울 산야에서도상고대며 설화며 인동초며 동백꽃 등 갖가지 꽃들이 風光 속에서 눈부시게 명멸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가만히 시를기원한다. 세상의 외진 한 귀퉁이를 여리게나마 밝히는 등불 같은 시도 기원한다. 그것들은 시인의 삶의 절절한 체험속에서만 탄생한다. 그러나 아무리 절절한 삶의 체험이라도 그것이 상상력을 통한 시적 체험으로 올라서지 않는 한우리는 그러한 시들에서 삶의 의미와 꿈은커녕 일상의 지루한 설명만 듣게 되는 것이다.  우선 다음 상상력의 기본을 잘 구사한 시 두 편을 보자.  (0) 재로 지어진 옷 - 나희덕  흰나비가 소매도 걷지 않고  봄비를 건너간다  비를 맞으며 맞지 않으며  그 고요한 날갯짓 속에는  보이지 않는 격렬함이 깃들어 있어  날개를 둘러싼 고운 가루가  천 배나 무거운 빗방울을 튕겨내고 있는 것이다  모든 날개는 몸을 태우고 남은 재이니  제 마음 몇 배의 돌덩이를 굴려 올리면서도  걸음이 가볍고 가벼운 저 사람  슬픔을 물리치는 힘 고요해  봄비 건너는 나비처럼 고요해  비를 건너가면서 마른 발자국을 남기는  그는 남몰래 가졌을까  옷 한 벌, 흰 재로 지어진  흰 재로 지어진 옷 한 벌을 남몰래 가진 사람은 비를 건너가면서도 마른 발자국을 남긴다. 소매도 걷지 않고 봄비를건너가는 나비의 고요한 날갯짓 속에는 사실 얼마나 격렬한 삶의 욕망이 있겠는가. 그럼에도 날개를 둘러싼 고운 가루가 천배나 무거운 빗방울을 퉁겨내면서 비를 맞으며 비를 맞지 않으며 가는 나비! 그 나비는 제 마음 몇 배의 돌을굴리면서도 걸음이 가볍고 가벼운 사람과 같다. 봄비 건너는 나비처럼 무거운 슬픔을 물리치는 힘도 고요히 간직한사람이다. 한데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모든 날개는 몸을 태우고 남은 재인 것처럼 그 사람도 이미 흰 재로 지어진옷 한 벌을 남몰래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결국 재 혹은 흰 재인데, 이건 삶의 허무나 혹은어떤 큰 지혜를 가르키는 바, 그런 걸 소유한 사람은 역시 남보다 몇 배의 무거운 돌멩이를 굴리면서도 나비처럼 고요하고 가볍게 한 세상을 건널 수 있지 않겠는가. 참으로 빗속의 나비날개와 흰 재와 그것을 무욕의 사람과 연결시키는상상력이 놀라울 뿐이다.  (0) 채와 북 사이, 동백 진다 - 문인수  지리산 앉고  섬진강은 참 긴 소리다.  저녁노을 시뻘건 것 물에 씻고 나서  저 달, 소리북 하나도 중천 높이 걸린다.  산이 무겁게, 발원의 사내가 다시 어둑어둑  고쳐 눌러앉는다.  이 미친 향기의 북채는 어디 숨어 춤추나  매화 폭발 자욱한 그 아래를 봐라  뚝, 뚝, 뚝 듣는 동백의 대가리들.  선혈의 천둥  난타가 지나간다.  이 시는 강가에서 북을 치며 판소리가락을 내뽑는 사람의 모습을 일단 표현한 것인데, 그 소리꾼은 지리산으로, 북은중천의 보름달로, 터져 나오는 노래는 섬진강 긴 자락으로, 그 노래의 한은 시뻘건 저녁놀로, 북채는 폭발하는 매화향기로, 그리고 선혈의 난타는 뚝뚝뚝 듣는 동백의 대가리로 상상을 한 시로 가히 우주적이다. 상상력의 전범을 보여준 시다.  그러면 여기서 우리 모두 상상력을 잘 구사할 수 있게 하는 몇 가지 시적 전략을 생각해 보자.  1. 발견, 그 새로운 눈  발견이란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발명과 달리 고작해야 이미 존재하는 것을 찾아내는 것이다. 수많은 삶의 편린들속에서 시가 될 수 있는 특정한 편린들을 찾아내는 것이다. 뒤샹이란 화가가 있다. 그는 한 전시회에서 수세식 변기를그대로 전시장으로 옮겨 놓고는 그것을 이라고 이름 붙였다.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이 작품을 두고 사람들은 숱한 입방아를 찧었다. 더러는 예술을 모독한 것이라고, 어찌 변기를 이 신성한 예술 전시의 공간으로 끌어들였느냐면서 당장 철거하라고 발광을 했다. 더러는 천재적인 예술가의 등장으로 예술의 영역이 한없이 확장될 것이라고 조심스런 전망을 내리기도 했다. 더러는 예술과 예술이 아닌 것은 결코 선을 긋듯이 명확한 것이 아니며, 다만 예술이란제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면 모든 것이 예술임을 피력하기도 했을 것이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다음 시를 보자.  (1) 숙자는 남편이 야속해 - 황지우  길중은 밤늦게 돌아온 숙자  에게 핀잔을 주는데, 숙자는  하루종일 고생한 수고도 몰  라주는 남편이 야속해 화가  났다. 혜옥은 조카 창연이  은미를 따르는 것을 보고 명  섭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이모는 명섭과  은미의 초라한 생활이 안쓰  러워…  어느 날 나는 친구집엘 놀러  갔는데 친구는 없고 친구 누  나가 낮잠을 자고 있었다. 친  구 누나의 벌어진 가랑이를  보자 나는 자지가 꼴렸다. 그  래서 나는…  (2) 掌篇 - 김종삼  작년 1월 7일  나는 형 종문이가 위독하다는 전달을 받았다  추운 새벽이었다  골목길을 내려가고 있었다  허술한 차림의 사람이 다가왔다  한미병원을 찾는다고 했다  그 병원에서 두 딸아이가 죽었다고 했다  부여에서 왔다고 한다  연탄가스 중독이라고 한다  나이는 스물둘, 열아홉  함께 가며 주고받은 몇 마디였다  시체실 불이 켜져 있었다  관리실에서 성명들을 확인하였다  어서 들어가보라고 한즉  조금 있다가 본다고 하였다  시 (1)은 (하오 9시 45분)라는 부제가 달려있는데 말할 것도 없이 이 시의 전반부는 신문의 TV프로 안내에있는 프로그램 소개문이다. 그리고 후반부는 공중변소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저질 낙서이다. 시인은 이두 가지 글을 빌려와 나열해놓았을 뿐 시인 자신의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두 종류의 글이어떤 시적 연관을 지니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면 이 시의 의미는 무엇인가? 시인은 앞의 글과 뒤의 글이 같다는 것을 말함으로써 결국 저질연속극을 신랄하게 야유하고 있다.  그런데 이 시의 소재 자체는 우리가 흔히 일상에서 체험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발견적 상상력이라는 엄격한 시선이 이 시를 관장하고 있고, 또한 그 밑에 시대상황 혹은 시대정신에 대한 주제의식이 치열하게깔려 있어 시로서 성공한 것이다. 사실 이 시는 어떤 의미에서 시의 폭력이다. 시인과 독자가 맺은 약속의 공간을 과감하게 일탈해버린 시라고 할 수도 있다. 이에 대한 면책은 오로지 시적 진실로서만 가능하다.  시 (2)는 매우 드라이한 시이다. 형 종문에 대한 병문안을 가다가 추운 새벽 골목길에서 만난 허술한 차림의 사람을 만나 병원까지 가다가 들은 이야기를 시적 주체의 그 어떠한 반응도 생략한 채 간략하게 기록했을 뿐인 시이다. 그러나 그 시적 내용은 천둥벼락이라도 쳐서 무너져 내릴 듯한 것이다. 꽃다운 나이에 공장에 다니다가 연탄가스에 중독되어 죽은 두 딸을 찾아가는 아버지의 마음을 무엇으로 표현할 것인가. 그 내용의 참담함을 시적 주체가 아무리 긴절한 언어로 표현한다 해도 미치지 못할 것임을 시인은 잘알기에 오히려 간략한 사실기록 형식을 취했을 것이다. 더구나 끝의 두 행, 곧 “어서 들어가보라고 한즉/ 조금 있다가 본다고 하였다”라는 함축적인 표현을 통해 그 아비의 끝없이 무너져 내리는 마음을 잘드러내고 있는데 어쩌면 이 시는 바로 위 두 행 때문에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이다.  어쨌거나 이 시도 흔히 겪을 수 있는 일상의 체험을 시로 옮긴 것인데 바로 시의 끝 두 행의 예리한 발견을 통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다.  사실 발견적 상상력은 소재를 새로운 눈으로 보는 것이다. 한편의 문학작품을 읽을 때 독자들은 일정한前理解을 갖게 마련이다. 전이해는 작품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이다. 전이해란 일종의 선입견으로,동시대의 삶의 상황과, 시와 시인에 대한 기대 그리고 언어지식, 자신의 인생관 등등이 얼크러져 있는 인식의 배경이다. 한편의 시를 읽을 때 그 시에 대한 전이해가 중요한 해석의 수단이 된다. 그러나 전이해가 그대로 이해가 되지는 않는다. 작품 속의 구체적 사실들의 의미를 전이해를 통하여 해명하지만, 그 부분들은 다시 이해의 틀을 수정한다. 즉, 전체의 의미는 부분들의 의미를 밝혀주지만 그 부분들의 의미는다시 전체의 의미를 변환시킨다. 그러므로 독자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전이해에 아무런 변화를 요구할 수 없는 시는 새로움이 없는 시다.  2. 관찰, 갈망으로 들여다보기  떨어지는 별똥별을 보며 소원을 빌면 그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속설이 있다. 정말 그럴까. 별이 떨어지는그 짧은 순간에 소원을 빌기 위해서는 그 바람을 언제라도 가슴에 담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갑작스런 유성의 낙하 앞에서 간절하게 그 바람을 간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와의 사랑이 이루어지길’ 언제라도 기원할 수 있는 그 갈망, 그 열망이야말로 희망을 현실로 바꾸는 원동력이다. 그 갈망이있을 때에야 늘 범속한 사물과 일상 속에서도 생의 의미를 들여다보고 관찰해낼 수 있는 것이다.  (4) 공터 - 최승호  아마 무너뜨릴 수 없는 고요가 .  공터를 지배하는 왕일 것이다  빈 듯하면서도 공터는  늘 무엇인가로 가득 차 있다  공터에 자는 바람, 붐비는 바람,  때때로 바람은  솜털에 쌓인 풀씨들을 던져  공터에 꽃을 피운다  그들의 늙고 시듦에 .  공터는 말이 없다 .  있는 흙을 베풀어주고  그들이 지나가는 것을 무심히 바라볼 뿐.  밝은 날  공터를 지나가는 도마뱀  스쳐가는 새가 발자국을 남긴다 해도  그렇게 오래 가지는 않을 것이다  하늘의 빗방울 자리를 바꾸는 모래알들,  공터는 흔적을 지우고 있다  아마 흔적을 남기지 않는 고요가  공터를 지배하는 왕일 것이다  (5) 둑 - 김춘수  봄이 와 범부채꽃이 핀다.  그 언저리 조금씩 그늘이 깔린다.  알리지 말라,  어떤 새가 귀가 없다.  바람은 눈치도 멀었다. 되돌아와서  한번 다시 흔들어 준다.  범부채꽃이 만든  (아무도 못 달래는)  돌아앉은 오목한 그늘 한 뼘.  점점점 땅을 우빈다.  시 (4)의 대상은 ‘공터’이다. 아무도 없는 여름 한낮 그 공터의 한쪽 귀퉁이에 앉아 시인은 적요와 적멸이 아니라, 동그란 세모와도 같은 역설적인 텅 빈 충만을 지켜보고 있다. 고요의 지배 아래 공터에는“자는 바람, 붐비는 바람” 풀씨들을 던져 꽃을 피우는 바람으로 가득 차 있다. 또 거기에는 밝은 날 지나가는 도마뱀과 스쳐가는 새발자국과 빗방울과 그 빗방울에 자리를 바꾸는 모래들이 있다. 그러나 공터는 이 존재하는 것의 고통스런 생로병사에 왈가왈부하지 않는다. 그저 흙을 베풀고 “무심히 바라볼뿐”이다. 그리고 이 공터에는 어떤 흔적조차 오래가지 않는다. 그 흔적은 “하늘의 빗방울에 자리를 바꾸는 모래알들”로 지워져 버리기 때문이다. 고요 아닌 그 어떤 것도 공터를 지배하지 못하고 고요만이왕인 것이다.  이 시에 내재된 기본적인 상상력은 유추이다. 하나의 대상을 구축함으로써 넌지시 다른, 정작 말하고자하는 또 다른 대상을 환기시키는 상상력 말이다. 그렇다면 이 시 곧 공터를, 고요가 지배하는 공터를 통해 시인이 건네고자 하는 진짜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공터라는 대상의 즉물적인 세계가 아니라 인간적인 세계임은 물론이다. 그렇다면 인간적인 세계는 어떠한 세계인가? 구체적인 단서는 ‘늙고 시듦’에서찾을 수 있다. 그것은 생로병사의 인생의 四苦를 의미한다. 더욱이 이 시 전체 흐름이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는 이항대립을 넘어서 있다는 점에서 현저히 불교적인 사상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텅 빈 충만’이라는 역설적인 세계인식이 도처에서 드러나며, 따라서 이 시에서 유추해낼 수 있는 인간적 세계는 우리들이 살아가는 세상살이인 것이다. 이 세상살이를 한 차원 높은 ‘빗방울’을 내리는 하늘의 관점으로 들여다보면, 지독히 분주하게 움직이는 이 세상에서 삶의 진정한 주인이란 오히려 적요와 적멸뿐이라는 것이다. 色卽是空이라는 인식이 견고하게 버티고 있는 것이다. 그러하거늘 ‘흔적을 남긴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겠는가? 그 삶의 흔적인 생의 자취란 잠깐 남기는 도마뱀, 스쳐가는 새의 발자국이자 조만간 작은 모래알로 지워져버릴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시에서 유추적 상상력보다 더욱 선명한 이미지로 드러나는 것은 관찰로서의 상상력이다. 그 관찰은 보이지 않는 ‘고요’를 보게 할뿐만 아니라 ‘붐비는 바람, 잠드는 바람’도 보게 한다. 무엇보다도 “하늘의 빗방울에 자리를 바꾸는 모래알들”이란 관찰은 얼마나 정교하고 놀라운가. 그 미세한 움직임조차 또렷이 형상화함으로써 시인은 이 세계의 놀라운 추이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시 (5)에서는 시적 주체가 사라진다. 시적 대상에 반응하는 시적 주체의 마음이나 감정이나 생각이 전혀없다. 그리고 오로지 이 시에는 눈, 관찰의 눈, 투명한 관찰의 눈만이 존재한다. 어쩌면 이 관찰의 투명한 눈 속에 시적 주체가 들어가 있다. 우리의 모든 서정시에 공식처럼 얘기되는 주관성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봄이 오는 날 시인은 둑에 피는 범부채꽃을 본다. 그러나 그가 강조하는 그 언저리에 깔리는 그늘이다. 이 그늘은 존재의 비애를 표상한다. 그러기에 이른 봄 속의 해질 무렵이고, 새도 귀가 없는 새이고, 바람도 눈치없는 바람이다. 이 바람이 흔드는 것은 범부채꽃이 아니라그늘이고, 땅을 후비는 그늘 한 뼘이다. 이 그늘 한 뼘이 세상이고 그의 내면이라면 결국 모든 존재는 비애의 존재이고 그 비애는 시시각각으로 점점점 더 우리를 후빈다.  다음 시에서 관찰의 힘이 얼마나 큰가를 살펴보라.  작약꽃이 한창인 아파트 단지의  화단을 나비 한 마리가 날고 있다  어린 후박나무를 지나 향나무를  지나 목단을 넘고 화단 가장자리의  쥐똥나무를 넘어 밖으로 가더니  다시 속으로 들어와  한창인 작약꽃을 빙글빙글 돌더니  아무 것도 없는 허공을  혼자 훌쩍 날아올라 넘더니  비칠대는 온몸의 균형을 바로잡고  날아넘은 허공을 뒤돌아본다  뒤돌아보며 몸을 부풀린다  ―(6)오규원의 「나비」  관찰만 예리하게 잘 하여도 시의 절반은 이룬 셈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관찰은 시적 묘사에 있어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묘사가 없는 시가 있을 수 없듯이 관찰이 없는 묘사 또한 있을 수 없다. 위의 시는 순전히 관찰만으로 막막한 아파트 단지의 생명성과 존재의 비의를 환하게 드러내주는 수일한 시이다.  3. 연상, 사랑에 관한 단상  사랑은 시와 흡사하다. 사랑이 시와 흡사한 것은 양자가 모두 논리의 대척점에 서 있다는 사실이다. 이남자가 누구의 남자인가는 아랑곳없이 마음의 길이 언제나 그에게 향하고, 그에게 맞닿아 있듯, 남들이보기에는 하잘 것 없는 왜소한 존재임에도 바닥 모를 깊이로 몰두한 채 시의 길도 달리고 있는 것이다.콩깍지가 씌어도 몇 겹으로 덧씌웠는지 알 수 없을 만치 혼미한 가운데 연인들과 시는 앞 다투어 마음의길을 달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사랑에 빠졌을 때, 이 주체할 수 없는, 나 아닌 또 다른 존재를 향한 갈망 또한 시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시 역시 다른 존재를 향한 짙은 그리움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시는 망망한 밤하늘의 한점 불빛이다. 반짝반짝 또 다른 살아 있는 정신에게 보내는 간절한 신호인 것이다. 사람들 사이에 가로놓인 섬을 넘어서서 마침내 따수운 손길을 부여잡고자 하는 갈망에 찬 몸짓이 시인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곤혹스러운, 무어라고 규정할 수 없는, 예전엔 느껴 본 적도 없던 이 독특한 감정이야말로시와 다르지 않다. 무어라고 딱히 명명할 수 없는, 망명하는 순간 이미 그것이 아닌 다른 것으로 변질되어 버리는 느낌, 사랑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표현한 순간 그저 범속한 사랑이 되어버리는 절망감, 공동변소와도 같은 그런 통속적인 ‘사랑’이라는 단어로는 결코 자신만의 설렘과 두근거림을 표현할 수 없다는 안타까움. 사랑이라는 범속한 단어 그 근처에서 기미라도 알아차리게 만드는 단어를 결코 사용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자신만의 고유한 사랑을 전해줄 언어를 모색하는 지난한 과정, 이것이 시쓰기의 심부에닿아있는 작업인 것이다.  오직 자신만의 관점으로 세계를 보는 완벽한 주관성, 자신의 세계를 방기할 정도로 타자에 몰두하는 전적인 沒我. 그 어떤 언어로도 자신을 드러낼 수 없다는 절망과 모색 등이야말로 시와 사랑의 교차지점이다.이들 특성은 견고한 세계의 질서를 모두 자신의 열망 안으로 끌어들이며, 외적 대상 자체로부터 사유를시작하는 바탕을 이루며, 직접적인 제시 대신 함축적인 은폐를 기도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 모든 독특한갈망들을 연상은 너끈히 감당한다. 연상이야말로 의미를 은폐하고 세계를 자신의 내부로 끌어들이는 유효한 방법이며 모든 세계를 한 곳으로 끌어 모으는 힘인 것이다. 사랑에 빠진 여자는 모든 존재하는 대상들을 그 남자와 연결하기를 마다하지 않는 것이다.  (7) 산수유 - 정진규  수유리라고는 하지만 도봉산이 바로 咫尺이라고는 하지만 서울 한복판인데 이거 정말 놀라운 일이다 정보가 매우 정확하다 훌륭하다 어디서 날아온 것일까 벌떼들, 꿀벌떼들, 우리집 뜨락에 어제오늘 가득하다잔치잔치 벌였다 한 그루 활짝 핀, 그래, 滿開의 산수 유, 노오란 꽃숭어리들에 꽃숭어리들마다에 노랗게취해! 진종일 환하다 나도 하루종일 집에 있었다 두근거렸다 잉잉거렸다 이건 노동이랄 수만은 없다 꽃이다! 열려 있는 것을 마다할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 건 세상 어디에도 없다 그럴 까닭이 있겠는가 사전을 뒤적거려 보니 꿀벌들은 꿀을 찾아 11킬로미터 이상 往復한다고 했다 그래, 왕복이다 나의 사랑도 일찍이 그렇게 길 없는 길을 찾아 왕복했던가 너를 드나들었던가 그래, 무 엇이든 왕복일 수 있어야지 사랑을 하면 그런 특수망을 갖게 되지 光케이블을 갖게 되지 그건 아직도 유효해! 한 가닥 염장 미역으로 새까맣게 웅크려 있던 사랑아, 다시 노오랗 게 사랑을 採蜜하고 싶은 사람아, 그건 아직도 유효해!  꿀벌떼들이 찾아온다. 서울 한복판에 벌떼들이 뜨락의 만개한 산수유를 찾아온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얼마나 정보가 정확하기에 아파트숲과 소음과 시멘트와 먼지 속을 뚫고 꿀벌들이 찾아왔을까. 그 꿀벌 떼들의 꽃숭어리 잔치에 시인도 하루종일 두근거리고 잉잉거리고 노랗게 취한다. 그걸 지켜보다가 시인은결국 사전을 뒤적인 끝에 ‘왕복’이라는 단어를 찾아낸다. 산수유와 벌떼들, 그 둘을 하나로 이어주는단어, 왕복! “그래, 왕복이다” 우리들의 사랑도 왕복인 것이다. 길 없는 길을 찾아 왕복하는 것이다.그런 사랑을 하게 되면 자연히 사람도 특수 통신망인 광케이블을 갖게 되어서 네 속을 드나드는 것이다.특수 통신망 광케이블이라는, 시에는, 더구나 사랑시에는 너무나 비시적인 언어로 충분한 낯설게 하기를감행하면서 시를 고양시켜 나간다. 이 시의 절정은 ‘염장 미역’이란 비유다. 자신의 내면에 빼빼 마르고 까맣게 졸아든 채로 웅크려 있는 염장 미역 같은 사랑이 사랑의 물을 만나면 바가지 가득 부풀다가,마침내 바호밥나무처럼 무성하게 자라 어린 왕자의 별을 휘감게 되는 것이다. 산수유 꽃숭어리와 벌떼들로부터 연상해낸 사랑은 마지막 행에 이르러 ‘노오랗게 사랑을 채밀하고 싶은 사람아’라는 호소력 있는호명으로 모든 대상을 하나로 결합하며 시적 화자 자신을 명료하게 드러내고, 다분히 김수영을 연상시키는 “아직도 유효해!”의 ‘!’로 시를 끝맺고 있다. 더더욱 이 시가 감동적인 것인 시적 화자의 나이가60살 가까이 된, 이젠 사랑보다는 생을 관조해야될 나이에 이런 연상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살아온 삶의 허망함처럼 “아직도 유효해!”라고 외치는 그 사랑도 필경 허무로 끝날지 모르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사랑은 그만큼 생을 맹목적이게 만들기도 하는 것이다.  (8) 明鏡 - 박형준  강나루 가에는 커다란 버드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나는 소매에서 책을 꺼내 읽었다  여인들이 버드나무 밑에서 울고 있었다  여인들은 잎이 무성한 버드나무를 꺾었다  배에 올라탄 남정네들에게  버드나무 가지를 둥글게 구부려 정표로 주었다  배가 떠날 시간이었다  내려서 뒤돌아보지 말고 걸어야 했다  책갈피에 버드나무 잎이 끼여 있었다  저녁 무렵 잠깐 잠이 든 사이였다  꿈속에서 한 권의 책을 손에 쥐고 있었다  꿈속에서 해가 지고 있었다  그 책은 이승에서 내가 평생 써야 할 시였다  이 슬프면서 아름다운 우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저녁 무렵 잠깐 잠든 사이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도 해가 질 무렵이었다. 꿈속에서 한권의 책을 손에 쥐고 읽고 있었다. 그런 그 앞에선 버드나무 아래서 여인들이 울고 있고, 배가 막 떠나려 하고 있고, 배에 올라탄 남정네들에게 여인들은 사랑의정표로 버드나무 가지를 둥글게 구부려 주고, 그 버드나무잎이 그의 책갈피에도 끼여 있지만, 배에서 내려서도 뒤돌아보지 말고 걸어야만 하는 슬픔이다. 어쩌면 인생은 덧없는 꿈이라는 상투적인 것을 얘기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아니다. 여기서 배는 인생이고, 그 인생 속에서 우리는 사랑과 이별을 할 수밖에 없고, 그중 이별은 강을 건너는 행위 곧 이승과 저승으로 나뉠 수밖에 없는 상태인 것이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의 눈물을 뒤로하고 오연하게 앞으로 나아감으로 성취될 수 있는 그 무엇이 시라고 말하는,저승까지 가져갈 것이 시라면, 뒤집어서 이승에서도 평생 써야할 시는 그 책갈피에 낀 버드나무잎같이 생생한 사랑과 이별의 변주인 시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는 꿈속에서 본 이별의 광경을 통해 시인이 끝내 써야할 시가 무엇인가를 조용히 연상케 하는 시인 것이다. 이제 다음 시를 보자.  먼저 그대가 땅 끝에 가자 했다/ 가면, 저녁은 더 어둔 저녁을 기다리고/ 바다는 인조 견 잘 다려놓은 것으로 넓으리라고/ 거기, 늦은 항구 찾는 선박 두엇 있어/ 지나간 불륜 처럼 인조견을 가늘게 찢으리라고/땅끝까지 그대, 그래서인지 내려가자 하였다// 그대는 여기가 땅끝이라 한다, 저녁놀빛/ 물려놓는 바다의남녘은 은도금 두꺼운/ 수면 위로 왼 갖 소리들을 또르르 또르르/ 굴러다니게 한다, 발 아래 뱃소리 가르릉거리고/ 앞섬들 따 끔따끔 불을 켜대고, 이름 부르듯/ 먼 데 이름을 부르듯 뒷산숲 뻐꾸기 운다/ 그대옆의 나는 이 저녁의 끄트막이 망연하고/ 또 자실해진다, 그래, 모든 것이 이 땅의 끝/ 벼랑에 서처럼 단순한 투신이라면야…// 나는 이마를 돌려 동쪽 하늘이나 바라다보는데/ 실루엣 을 단단하게 잠근 그대는이 땅 끝에 와서/ 어떤 맨처음을 궁리하는가 보다, 참 그러고 보니/ 그대는 아직 어려서, 마구 젊기만 해서/ 이렇게 후욱 비린내나는 끝의 비루를/ 속 수한 것들의 무책을 모르겠구나/ 모르겠는 것이겠구나―(9)이문재의 「해남길, 저녁」  이문재의 시는 적어도 가식이 없다. 자신이 직면한 고통에 솔직하게 대면하고 있다. 그는 사랑의 끝이 땅끝과 마찬가지로 벼랑의 투신처럼 자명하기를 바란다. 망연자실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삶이란 얼마나 너절한 것인지. 인연이란 얼마나 질긴 것인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속수무책일 수밖에없는 것이다. 아직 어린 그대가 끝의 비루를 알지 못하는 것이 그나마 다행인 것이다. 땅끝에서 손쉽게건져 올린 사랑의 끝을 생각하는 이 시는 풍부한 묘사와 함께 한자 성어를 적절하게 분리시킴으로써 자신의 내면을 풍자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 드러냄은 미화될 여지조차 있다. 그러나 그것은 미화될 성질의것이 아니다. 그저 그렇고 그런 불륜일 따름이기 때문이다. 지독한 사랑의 끝은 비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름다움이 아니라 그것이 존재이유가 되어 버릴 때도 불륜이 비루일 수 있는가.  4. 투사, 삶의 본질에로의 날카로운 진입  시적 대상이 있다. 그 대상을 바라보는 서정적 주체가 있다. 주체는 반드시 주체의 관점을 통해서 대상을바라본다. 그 관점은 지극히 주관적이다. 그럼에도 그 주관은 삶의 본질을 날카롭게 가로지르는 주관이자, 어떤 객관적인 언술로도 감당할 수 없는 진실을 향해 비약하는 주관이다. 그 주관은 일체의 과정을과감하게 생략함으로써 획득된 것이며 순간적으로 지각된 느낌을 명징하게 드러냄으로서 이루어진 것이다. 다라서 그 어떤 논증적인 결론에 뒤지지 않는 심정적인 깨우침을 안겨준다. 그리고 독자는 이 당연한주관성을 엿봄으로써 공감을 느끼거나 부적절함에 대한 반감을 토로함으로써 시적 상상력에 개입한다. 무엇보다 이 내밀하고 주관적인 관점이 우리에게 건네는 공감이야말로 시의 아름다움이 갖는 본질적인 표딱지인 것이다. 여기에서 이 주관을 가능케 하는 힘을 투사라고 한다. 이 투사는 또 직관력을 절대로 필요로 한다.  (10) 墨畵 - 김종삼  물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11) 自尊 - 이시영  화창한 가을날  벌판 끝에 밝고 환한 나무 한 그루  우뚝 솟아 있다  모든 새들이 그곳에서 난다  시 (10)은 회화적이다. 이는 첫 행과 두 번째 행을 통해 누구의 눈에라도 확연히 그 풍경을 지각할 수 있다. 저물 무렵, 아마도 깡마른 손임에 분명한 할머니 손이 물먹고 있는 소의 목덜미를 어루만지고 있는외딴집 울타리 속의 풍경. 제목이 묵화이듯이 어떤 묵화를 바라보고 썼거나, 거꾸로 풍경과 人事의 여러자잘한 가지를 생략해버리고 고단위의 긴장과 절제의 방법으로 여백과 농담의 미가 충만한 묵화의 세계를지향했거나 상관없다. 이 시는 묘사적 풍경에서 멈추지 않는다. 3행으로 넘어가면서 직바로 본질로 진입해 가는 시인의 날카로운 주관적 투사, 곧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적막하다고,” 말해버림으로 물먹는 소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지는 단순하고도 객관적인 풍경이 소와할머니 사이에 지극한 교감으로 바뀌고, 또 단순하고 객관적인 풍경이 생의 비애, 존재의 고통의 면모를선명하게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투사로서의 상상력은 한 존재가 맞닥뜨린 생에 대한 자각과 그에 반응하는 섬세한 존재의 울림을 고스란히 확인케 함으로써 우리를 천박하고 저열한 우리의 그저 놓여진 일상을 새롭게 충전하는 것이다.  시 (11)도 이 점에선 시 (10)에 한 점도 뒤지지 않는 시이다. 오히려 시 (10)이 3행부터의 투사적 진술이우리를 깨우치긴 하지만 존재와 풍경이 감추고 있는 아득한 비의를 약간은 깨버린 듯한 인상을 주는 데비해 시 (11)은 그렇지 않다. 이 시에서도 너무도 확연한 그림 하나를 볼 수 있다. 화창한 가을날이면 하늘은 높고 햇살은 순금빛으로 쏟아지고 대기는 맑다 못해 푸르른 날일 것이다. 그런 날 벌판 끝에 그 햇살을 받고 나무는 역시 황금빛으로 빛나는 은행나무도 좋겠고 투명한 갈색으로 빛나는 느티나무도 좋겠다. 얼마나 밝고 환할 것인가. 그것이 우뚝 솟아 있다. 황금나무다. 세계수다. 은행나무라면 땅에서 하늘로 팔 벌린 상태일 것이고 느티나무라면 둥그렇게 마을을 감싸는 모습일 것이다. 은행나무나 느티나무나모두 지상과 하늘을 매개하는 영매이다. 어쨌든 그것은 얼마나 신비롭고 아늑하고 정정하고 성성하고 밝고 환할 것인가. 여기까지는 객관적 풍경의 언어적 그림이다. 이에 덧붙여 연을 달리한 마지막 한 줄이투사적 진술을 감행한다. “모든 새들이 그곳에서 난다”라고. 객관적 사실은 모든 새들은 그곳에서 날수도 있고 날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밝고 환한 나무에서 새가 날지 않고 어디서 날겠는가. 새는자유, 순수, 평화 등 모든 것을 상징한다. 그 새는 인간의 비상의 꿈을 하늘로 치솟음으로 상징해준다.그러나 들판의 새는 대개 옆으로 난다. 여기 밝고 환한 나무에서 나는 새도 그 나무에서 솟는 새이기도해야 하지만 그 나무를 가로질러 나는 새이기도 해야 한다. 그래야 나무의 수직과 새의 수평이 이루어지는 것을 상상치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시는 이런 모든 췌사를 불필요하게 만든다. 풍경에 대한 언어의 선연한 그림과 이에 날카로운 투사적 상상력을 보탬으로 존재의 비의를 한층 더 깊게 만드는,말을 침묵에 가깝게 줄임으로 되레 수많은 말을 가능케 하는 시의 진경이 여기에 펼쳐져 있는 것이다.  (12) 어린 게의 죽음 - 김광규  어미를 따라 잡힌  어린 게 한 마리  큰 게들이 새끼줄에 묶여  거품을 뿜으며 헛발질할 때  게장수의 구럭을 빠져나와  옆으로 옆으로 아스팔트를 기어간다  개펄에서 숨바꼭질하던 시절  바다의 자유는 어디 있을까  눈을 세워 사방을 두리번거리다  달려오는 군용 트럭에 깔려  길바닥에 터져 죽는다  먼지 속에 썩어가는 어린 게의 시체  아무도 보지 않는 찬란한 빛  (13) 직관 - 고재종  간밤 뒤란에서  뚝 뚜욱 대 부러지는 소리 나더니  오늘 새벽, 큰 눈 얹혀  팽팽히 휘어진 참대 참대 참대숲 본다  그중 한그루 톡, 건들며 참새 한 마리 치솟자  일순 푸른 대 패앵, 튕겨져오르며 눈 털어낸 뒤  그 우듬지 바르르바르르 떨리는  저 창공의 깊숙한 적막이여  사랑엔, 눈빛 한번의 부딪침으로도  만리장성 쌓는 경우가 종종 있다  김광규의 시는 밑바닥에 깔린 첨예한 시대의식을 감지할 수 있다면, 그의 투사적 직관력이 시에 얼마나큰 힘을 부여하고 있는가를 수일하게 짐작할 수 있다. 투사력이라 해도 좋고 직관력이라 해도 좋은 이 상상력은 무릇 시인치고 누구나 갖고 있는 것이지만 이걸 얼마나 잘 갈고 닦느냐에 따라 좋은 시를 쓸 수있는가 없는가 판가름이 난다. 필자의 「직관」이라는 시도 함께 살펴보기 바란다.  5. 유추, 빗대어 말하기  시란 다른 질서 안에서 존재하는 사물을 자신의 질서로 바라보는 것이다. 시는 타자를 자신의 질서 안에재편할 뿐만 아니라, 타자의 질서를 통해 자신의 존재가 뿌리내리고 있는 본질적 의미를 역설적으로 깨닫기도 하는 것이다. 이러한 타자를 통해 자신을 들여다보는, 혹은 자신의 질서 안으로 타자를 끌어들이는시적 관계 양상을 유추라고 명명할 수 있다.  유추는 두 대상을 나란히 마주 세움으로써 시작된다. 물론 그 한편에는 항상 인간의 삶이 있다. 이솝우화에 등장하는 여우는 여우가 아니라 사람이다.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에 등장하는 나폴레옹이라는 시커먼 돼지 역시 탐욕스런 인간의 상징적 대체물이다. 이 두 상징이 얼마나 엄밀히 조응하는가에 따라 유추의 효과는 그 빛을 발한다.  일반적으로 유추를 통해 획득되는 시적 인식은 계몽적이거나 풍자적인 형태로 드러난다. 유추의 대상을통해 삶이 무엇인지를 배우라고 말하고 싶거나, 삶이 얼마나 비루한 것인지 잔뜩 조롱하고 싶은 것이다.그러나 유추가 삶 전체를 통해 무차별적으로 열려 있지만은 않다. 시가 문제 삼는 삶은 특정한 삶이지 포괄적이고 일반적인 추상으로서의 삶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가 어떠한 삶을 풍자하거나 외경스러워하는지를 무엇보다 명료하게 인식해야 한다.  (14) 느티나무 여자 - 안도현  평생 동안 쌔빠지게 땅에 머리를 처박고 사느라  자기 자신을 한번도 돌아보지 않았다  가을날, 잎을 떨어뜨리는 곳까지가  삶의 면적인 줄 아는  저 느티나무  두 팔과 두 다리로 허공을 헤집다가  자기 자신을 다 써버렸다  그래도 햇빛이며 바람이며 새들이 놀다 갈 시간은  아직 충분히 남아 있다고, 괜찮다고,  애써 성성한 가지와 잎사귀를 흔들어 보이는  허리가 가슴둘레보다 굵으며  관광버스 타고 내장산 한 번 다녀오지 않은  저 다소곳한 늙은 여자  저 늙은 여자도  딱 한 번 뒤집혀 보고 싶을 때가 있었나 보다  땅에 박힌 머리채를 송두리째 들어올린 뒤에,  최대한 길게 다리를 쭉 뻗고 누운 다음,  아랫도리를 내주고 싶을 때가 있었나 보다  그걸 간밤의 태풍 탓이라고 쉽게 말하는 것은  인생을 절반도 모르는 자의  서툴고 한심한 표현일 뿐  (15) 오징어 3 - 최승호  그 오징어 부부는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부둥켜안고 서로 목을 조르는 버 릇이 있다  시 (14)는 태풍이 지나간 뒤 쓰러진 느티나무의 모습에서 모든 유혹을 물리친 채 온갖 고생을 다하며 열심히 살아온 농촌여성의 내면에 깃든 광포한 욕망을 읽어내는 시인의 눈길이 예사롭지 않다. “가을 날,잎을 떨어뜨리는 곳까지가/ 삶의 면적인 줄 아는/ 저 느티나무” 같은 구절은 얼마나 의미심장한가. 또스러진 느티나무를 여자에 비유하며 “최대한 길게 다리를 쭉 뻗고 누운 다음,/ 아랫도리를 내주고 싶을때가 있었나 보다”처럼 표현한 구절은 얼마나 짓궂은 유머를 담고 있는가.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걸 간밤의 태풍 탓이라고 쉽게 말하는 것은/ 인생을 절반도 모르는 자의/ 서툴고 한심한 표현일 뿐”이라고 한대목에서 이 시인의 경우바른 성실함이 물씬 묻어난다. 비유가 극명하게 드러난 시이지만 사실 비유조차도 유추적 상상력을 통한 삶의 진실을 드러내는 방법인 것이다.  시 (15)는 3행으로 이루어진 시다. 이 짧은 시의 대상은 ‘오징어 부부’이다. 그 오징어 부부는 사랑을표현하는 방식이 남다르다. ‘부둥켜안고 목을 조르는 버릇’은 결코 사랑의 자연스런 방식이라고 볼 수없기 때문이다. 사실 이 표현은 오징어의 여러 개의 긴 발의 형상에서 취한 상상력인데, 그러나 이러한부부는 그 오징어 부부만이 아니라는 현실 때문에 표현의 성공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도 이런 류의 사랑은 많다.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정작은 숨이 턱에 닿을 때까지 목을 조르고 있지는 않았던가.교묘하게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구속하고 억압하고, 풍부한 인간적 감성을 마모시키지나 않았던가. 결국그 오징어 부부는 우리들 사랑의 본질을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은 욕망으로 뒤덮인 인간이며 그 사랑의 방식은 우리들이 항용 지니고 있던 버릇이었던 것이다.  안도현과 최승호의 시는 모두 인간적인 세계가 아닌 자연의 세계 혹은 우화의 세계를 이야기하고 있다.한데 이런 유추는 현실과의 접촉면이 현저히 차단된 채 자연 세계의 환멸과 동경만을 가능케 할뿐이다.어떻게 한 편의 우화를 통해 삶의 현실성을 획득할 수 있겠는가. 고작해야 즉자적인 찬탄과 모멸이라는양극단의 감정적 대응만이 가능할 뿐이다.  (16) 개밥풀 - 이동순  아닌 밤중에 일어나/ 실눈을 뜨고 논귀에 킁킁거리며/ 맴도는 개밥풀/ 떠도는 발끝을 물밑에 닿으려 하나/ 미풍에도 저희끼리 밀고 밀리며/ 논귀에서 맴도는 개밥풀/ 방게 물 장군들이 지나가도/ 결코 스크럼을 푸는 일없이/ 오히려 그들의 등을 타고 앉아/ 휘파 람 불며 불며 저어가노나/ 볏짚 사이로 빠지는 열기/ 음력 사월 무논의 개밥풀의 함성/ 논의 수확을 위하여/ 우리는 우리의 몸을 함부로 버리며/ 우리의자유를 소중히 간직하 더니/ 어느날 큰비는 우리를 뿔뿔이 흩어놓았다/ 개밥풀은 이리저리 전복되어/ 도처에서 그의 잎파랑이를 햇살에 널리우고/ 더러는 장강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어디서나 휘몰 리고 부딪치며 부서지는/ 개밥풀 개밥풀 장마 끝에 개밥풀/ 자욱한 볏짚에 가려 하늘은 보이지 않고/ 논바닥을 파헤쳐도 우리에겐 그림자가 없다/ 추풍이 우는 달밤이면/ 우리 는 숨죽이고 있다/ 옷깃으로 눈물을 찍어내며/ 귀뚜라미 방울새의 비비는 바람/ 그 속 에서 우리는 숨죽이고 있다/ 씨앗이 굵어도 개밥풀은 개밥풀/너희들 봄의 번성을 위하 여/ 우리는 겨울 논바닥에 말라붙는다  이 시 또한 다르지 않다. 이 시의 화자는 분리되어 있다. 전반부는 관찰자의 시선으로 개밥풀이란 수생식물의 생태를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후반부에 들면 관찰자의 관찰에 응답이라도 하듯, 개밥풀 자신의 목소리로 한 떼의 여리고 작은 이파리들의 헌신을 노래한다. 여름에서 가을로, 다시 겨울로 이어지는 계절의 변화 안에서 그들이 어떻게 몸을 부리며, 마침내 어떻게, 그리고 왜 논바닥에 말라붙는지를 노래한다.물론 이 개밥풀을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유추의 원형질은 민중이다. 김수영의 풀보다 더욱 미천하고 더욱낮은 대상에까지 천착하여 형상화함으로 이 땅을 살아가는 이름 없는 무지렁이 민중들과 그들 민중의 삶구석구석에 연결된 자그마한 살아 잇는 모든 것이 얼마나 견고하게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지를 보여준다.그들은 단지 헌신과 희생의 속성만이 연결될 뿐만 아니라 자잘한 생태적 순환들까지도 완벽하게 일체가됨으로써 자연의 순환 안에서 살아가는 모든 존재들의 긴밀한 유대와 삶의 동일성을 여지없이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자연으로부터 삶의 지혜를 배운다’는 말이 있다. 이 간명한 명제야말로 시적 상상력을 튼실하게 받치고 있는 또 다른 한 축인 것이다. 느티나무, 오징어, 개밥풀 등 이 모든 세상을 구성하는 존재들로부터이 세상을 구성하는 다만 또 다른 하나의 존재에 불과한 인간들이 삶의 철학과 방법을 배운다는 것이다.그러나 이제 우리는 위의 명제를 ‘존재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삶을 배운다’라고 수정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6. 전복, 뒤집어보기 꿰뚫어보기  헤겔은 ‘이성적인 것이 현실적인 것이며, 현실적인 것이 이성적인 것이다’라는 아리송한 말을 『법철학』에서 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 말은 헤겔의 상속인들이 좌파와 유파로 갈리게 되는 헤겔 사유에 내재한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마르크스를 비롯한 좌파들은 이 말의 앞부분에 방점을 찍고, 우파들은 이 말의뒷부분에 방점을 찍는다. ‘이성적인 것이 현실적인 것’이란 곧 인간의 사유가 언제라도 현실로 전화될수 있다는 것으로 철학의 실천적 의미를 극대화한 주장이다. 이성적 사유는 단순한 관념이 아니라, 이론적 실천으로 전화될 수 있다는 이 주장은 마르크스의 이론을 단순히 이론이 아닌 실천으로 이끌어내는 강력한 동기가 되었다. 반면에 ‘현실적인 것이 이성적인 것’이란 명제는 현실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그자체로 이성적 사유의 결론이라는 주장으로 현실을 정당화할 논거를 마련해주고 있다. 실제 헤겔은 반동적인 독일의 정치적 현실을 이상화함으로써 진보의 반대편에 서고, 그 결과 한동안 파산선고를 받은 채사상사의 변경에 서 있어야 했다.  그러나 잠깐이라도 눈여겨보면, 헤겔의 보수적 선회는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현실적인 것, 곧 존재하는 것이 이성적 사유의 결과일 수 없음은 명확하다. 현실은 오히려 지극히 비이성적인 탐욕의 결과이거나, 반이성적인 폭력으로 은폐된 허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상적 삶에 파묻혀 사는 우리는 안타깝게도이 허위와 위선에 더 이상 분노하지 못한다. 그 분노가 우리의 현실적 삶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것을 현명하게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때는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하리라’는 잠언에 몸을 떨지만 오히려 지금에 와서는 ‘진리가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리라’는 자각에 몸을 비켜 세우는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다르다. 시인은 진리가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리라는 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그 고통에 기꺼이 온몸을 바치는 사람들이다. 비록 그 진리가 영원히 자유와는 무관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온몸으로 예감하면서도 시인은 단호하게 거부하고 저항한다. 그리하여 시인은 존재하는 것으로부터 존재해야 할 것들을즉각적으로 이끌어내며 또 표출한다. 그 표출이 불러일으킬 고통이 실핏줄 구석구석을 터질 듯이 메워 갈지라도 기꺼이 그 고통 아래에 목을 늘어뜨린다. 이 또한 상상력의 일종이다. 현상을 통해 현상의 이면에숨죽이며 떨고 있는 본질을 드러내는 사유의 힘, 그것이 꿰뚫어보는 상상력이며 뒤집어보는 상상력이며,일체의 허위를 전복하는 상상력인 것이다.  (17) 받들어 꽃 - 곽재구  국군의 날 행사가 끝나고  아이들이 아파트 입구에 모여  전쟁놀이를 한다  장난감 비행기 전차 항공모함  아이들은 저희들 나이보다 많은 수의  장난감 무기들을 횡대로 늘어놓고  에잇 기관총 받아라 수류탄 받아라  무서운 줄 모르고  서로가 침략자가 되어 전쟁놀이를 한다  한참 그렇게 바라보고 서 있으니  아뿔사 힘이 센 304호 아이가  303호실 아이의 탱크를 짓누르고  짓눌린 303호실 아이가 기관총을 들고  부동자세로 받들어 총을 한다  아이들 전쟁의 클라이막스가  받들어 총에 있음을 아이들은 알지 못한다  떠들면서 따라오는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과 학용품 한아름을 골라주며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들 앞에서  나는 얘기했다  이름답고 힘있는 것은 총이 아니란다  아름답고 소중한 것은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과 별과  나무와 바람과 새 그리고  우리들 사이에서 늘 피어나는  한 송이 꽃과 같은 것이란다  아파트 화단에서 피어난 과꽃  한 송이 꺾어들며 나는 조용히 얘기했다  그리고 그 꽃을 향하여  낮고 튼튼한 목소리로  받들어 꽃하고 경례를 했다  받들어 꽃 받들어 꽃 받들어 꽃  시키지도 않은 아이들의 경례소리가  과꽃이 지는 아파트 단지를 쩌렁쩌렁 흔들었다  (18) 北魚 - 최승호  밤의 식료품 가게  케케묵은 먼지 속에  죽어서 하루 더 손때 묻고  터무니없이 하루 더 기다리는  북어들.  북어들의 일 개 분대가  나란히 꼬챙이에 꿰어져 있었다.  나는 죽음이 꿰뚫은 대가리를 말한 셈이다.  한 쾌의 혀가  자갈처럼 죄다 딱딱했다.  나는 말의 변비증을 앓는 사람들과  무덤 속의 벙어리를 말한 셈이다.  말라붙고 짜부라진 눈,  북어들의 빳빳한 지느러미.  막대기 같은 생각  빛나지 않는 막대기 같은 사람들이  가슴에 싱싱한 지느러미를 달고  헤엄쳐 갈 데 없는 사람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느닷없이  북어들이 커다랗게 입을 열고  거봐,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귀가 먹먹하도록 부르짖고 있었다.  시 (17)은 전복적 상상력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는 집으로 돌아오는 중 아파트 어귀에서 전쟁놀이를 하고 있는 아이들과 마주친다. 아이들은 우리가 항용 마주치는 아이들이 그러하듯 시끌벅적하게서로 한껏 총질을 해대며 ‘죽어, 죽어!’를 외치고 있었을 터이다. 그것이 현실이다. 이 현실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섬뜩하고 짠하다. 아이들의 노는 방식이 섬뜩하고, 왜 아이들이 이렇게 놀고 있을까 하는 원인에 대한 탐구는 분단된 내 조국의 아픈 상채기 하나를 만지는 듯해 서글프다. 그러나 그저 그렇겠거니,어른들이 그렇게들 살고 있으니 아이들이라고 무어 다를 것이 있겠어 하고 외면해버릴 우리와 달리 시인은 이 현실을 인정하지 못한다. 그는 아이들을 아파트가 쩌렁쩌렁 울리도록 ‘받들어 총’이 아니라 ‘받들어 꽃’이라고, 죽음의 놀이가 아니라 작은 생명에 대한 지극한 외경의 의식을 행하기를 요구하고 있는것이다. 폭력에 대한 굴종 대신 생명에의 축복으로 아이들 놀이가 바꾸어져야 한다는 것을 부드럽게 주장한 것이다. 주변에 널려 있는 수많은 왜곡과 은폐의 더께를 걷어내고, 그 자리에 빛나는 삶의 진정성을일구어 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전복적 상상력의 탁월한 기능이다.  시 (18)은 참 재미있는 시이다. 식료품가게 꼬챙이에 꿰어진 채 널브러져 있는 북어를 직접 들여다보고있는 듯이 형상화하고 있다. 더욱 세밀한 묘사가 계속 이어지다가 ‘가슴속에 싱싱한 지느러미’를 꿈꾸는 가운데 교묘하게 북어가 사람으로 대체되어 있다. 헤엄쳐 가기를 원하는 것은 북어가 아니라 사람인것이다. 그 순간 느닷없이 커다란 입을 벌린 북어들이 큰소리로 ‘너도 북어지!라고 귀가 먹먹하도록 계속 부르짖는 눈부신 전복으로 시를 끝맺고 있다.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말라 찌부러진 요즈음의 우리들 자신인 것이다.  (19) 銀山鐵壁 -오세영  까치 한 마리  미루나무 높은 가지 끝에 앉아  새파랗게 얼어붙은 겨울하늘을  엿보고 있다.  銀山鐵壁.  어떻게 깨뜨리고 오를 것인가.  문 열어라, 하늘아.  바위도 벼락맞아 깨진 틈새에서만  난초 꽃대궁을 밀어 올린다  문 열어라, 하늘아.  은산철벽이다. 은산철벽이라 함은 禪家에서 禪僧들이 화두를 참구하는 데서 오는 막막함이다. 온 산이 온통 흰 눈으로 덮이고 얼음으로 짜 올려져 철벽을 이룬 상태인 바, 세상의 分別智 정도로는 도대체 그걸깨뜨릴 수 없다. 한마디로 백색 절망의 상황인 것이다. 이런 상황 속의 까치 한 마리, 곧 선승은 홀로 미루나무 높은 가지 끝에 앉아 있다. 백천간두에 처해있는 것이다. 한 발만 까딱 잘못 재겨 디뎌도 수천 수만 리 허공으로 추락해버릴 그 자리. 그 한계상황을 박차고 하늘로 치솟아 올라야 하는데, 그 하늘조차새파랗게 얼어붙어 있다. 은산철벽을 먼저 깨트려야 되는데, 그래야 그나마 새파랗게 얼어붙은 하늘로 오를 생각을 해볼 수 있는데, 상황은 여전히 암담하다. 전후좌우를 헤아려보고, 차가운 이성과 불같은 감정을 동원해보고, 피투성이의 몸부림을 해봐도 눈에 보이고 귀로 열리는 것은 추호도 없다.  안 된다. 안 된다. 그렇다면 에라이 모르겠다. “문 열어라, 하늘아,” 호통칠 수밖에 없다. 분별지 같은걸로 어림없는 세계. 직관력 아니고는 어림짐작할 수도 없는 세계. 결국 선승으로서는 일대 전쟁을 감행할 수밖에 없이 하늘하고 상대를 하는 것이다. 이모저모 따질 것 없이 곧바로 하늘하고 맞붙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하늘이 문을 여는가.  결국 “바위도 벼락 맞아 깨진 틈새에서만/ 난초 꽃대궁을 밀어 올린다.”라는 깨달음에 이른다. 은산철벽 속 어떠한 고통이라도 감수하고 이를 극복하는 데서만 비로소 난초 꽃, 곧 삶의 극적인 진실이 열리는것이다. 그것도 “문열어라, 하늘아”라고 다시 한번 호통치는 그 용기로 인해서다.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막다른 골목에 몰리는 고통에 처했을 때 마지막 뚝심으로 돌아서서 그 몰아대는 자를 악착같이 물어버리는 대전복이 청천벽력처럼 일순간에 일어나는 것이다.  진실의 근원이라고 여겨지는 하늘에다 대고도 호통칠 수 있는 자만이 얻을 수 있는 깨달음. 그러기에 시형식도 여러 진술이나 묘사를 생략하고 간명한 막대기 같은 언명만 필요하다. 이런저런 군더더기 없이 팽팽한 긴장과 절제의 언어만이 필요한 것이다. 어쩌면 불립문자의 세계를 말하기 때문에 여타의 모든 말들은 언어도단이 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뒤틀린 현실을 전복하고자 할 때 전복적 상상력은 비판적 세계인식을 드러내는 유효한 무기가 된다. 따라서 이것은 앞의 발견적 상상력과 함께 리얼리스트들의 중심적인 상상력을 형성한다.  7. 종합, 상상력의 유대  지금까지 살펴보았던 시적 상상력의 개진 방식들은 사실 추상화되어 있다. 한 편의 시는 모름지기 단 하나의 주도적인 상상력으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섬세한 발견과 관찰, 날카롭게 대상의 본질을길어 올리는 투사와 유추, 분리된 것을 결합하는 연상과 현실을 부정의 눈으로 확인하는 전복의 상상력들은 사실 한 편의 시에 긴밀하게 습합되고 용해된 채, 하나의 시적 세계를 튼실하게 엮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편의상 이런 분리는 상상력의 실체를 더욱 선명하게 들여다보기 위한 장치라는 점에서 놓칠 수 없는 이점들을 갖는다. 더욱이 상상력들은 동일한 깊이로 시적 세계를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주도적인 상상력이 전면에 배치된 채 여타의 상상력들은 후경에서 마치 삼각형의 꼭지점을 위한 밑변과 옆변을 형성하는 것처럼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시들을 보면 이러한 결합의양상은 더 선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20)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 황지우  映畵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삼천리 화려 강산의  을숙도에서 일정한 群을 이루며  갈대숲을 이륙하는 흰 새떼들이  자기들끼리 끼룩거리면서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  일렬 이열 삼렬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  이 세상에서 떼어 매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우리도 우리들끼리  낄낄대면서  깔쭉대면서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 세상 떼어 매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각각 자기 자리에 앉는다  주저앉는다  이 시에는 다채로운 상상력이 사용되어 있다. 무엇보다도 이 시의 모티브로 존재하는 것은 현실에서의 경험이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이 시를 쓴 80년대는 영화가 시작되기에 앞서 줄곧 애국가를 틀어주었다. 어쩌면 김남주의 말대로 세금고지서와 징병통지서 밖에 가져다 주지 않는 조국에 대한 애정을 강요하기라도하는 듯 틀어주던 애국가였다. 그런데 이 일상적 경험은 사실 발견적 상상력에 속한다. 영화 속의 한 화면을 그대로 시적 경험으로 수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이 시의 중심적인 시상에는 이 발견에 대한, 시적 인식으로서의 투사가 중핵을 이루고 있다.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날아오르는 새들이 ‘어디론가 날아간다’는 객관적 사실을 ‘세상을 뜨는구나’라는 주관적인 인식으로 슬그머니 환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명백히주관적인 의식의 투영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왜 이런 투사가 가능하며 이는 과연 충분한 공감을 자아내는가? 이 시가 1981년에 발표되었음을 생각해 보라. 광주항쟁을 겪었고, 군사독재가 한층 더 강화되고 있던그때, 시인을 비롯한 깨어있는 모두가 시의 이면에 그 아픔의 흔적과 고통을 가지고 있었다. 그 고통 안에서 심지어 그 고통의 현실과 무관한 새들조차 이 한반도의 남쪽을 벗어나고자 할 것이라 생각하였던 것이다. “끼룩거리면서” “낄낄대면서”로 투사된 채. 이러한 웃음 역시 남겨 두고 떠나는 세상에 대한빈정거림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한없는 모멸을 남긴 채 새들이 “자기들의 세상을/ 이 세상에서떼어 매고” 앞 화면에서 비추었던 조용한 아침의 나라를 뜨는 것이다. 그런데 이 투사는 시의 후반부에서 짝을 이루는 유추로 정교하게 반복된다. 우리 역시 낄낄대면서, 깔쭉대면서, 다시 말해 빈정거리면서,야유를 퍼부으면서 썩어빠진 세상을 떠나 깨어있는 우리들끼리라도 “우리들의 대열을 이루며” “이 세상 밖”의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 것이다. 그러나 새들은 날아갈 수 있으나 우리들은 날아가지 못한다. 그 부푼 꿈이 애국가가 끝나자 “각기 자기 자리에 앉는다.” 그냥 앉는 것이 아니라 어쩌지 못한채 주저앉는다. 영화관의 자리에 주저앉는 것이 아니라 광주에, 현대사의 고통의 심부에, 썩은 세상에 주저앉는 것이다. 한마디로 의식에서의 꿈이 애국가가 끝나는 현실로 돌아오면서 그만 전복이 되는 것이다.전복적 상상력인 것이다. 뜬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결코 낄낄거리거나 깔쭉대지 못한 채 고통과 눈물로 우리들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 한편의 시에는 발견과 투사, 유추와 전복이 다채롭게 융합되어 있다. 이제 다음의 시를 보라.  (21) 성모성월․1 - 이성복  그날 꽃들은 부끄러운 가슴과 눈물겨운 뿌리를 쓰다듬으며 피어오르고 봄은 달아나는 애 인처럼 꽃 속에묻혀 자꾸 죽고 싶어했다 봄은 아랫도리를 가리지 않은 아이처럼 길가에 방뇨했고 후후, 뜨거운 입김을뿜으며 음료수 가게로 달려갔다 아름다운 오월 건조한 고기 압의 땅에서 우리는 자꾸 죽고 싶었다 그날사마리아 여인들과 함께 미사를 볼 때 버드나 무 꽃가루가 창을 넘어 들어왔고 우리는 자꾸 죽고 싶었다,죽을 생각은 없이 천주의 어린 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여…늙은 양들의 기도는 간절했고 우리는 자꾸 죽고 싶었다 흰 나룻배보다 긴 꽃잎 속에 몸을 감고, 눈부시고 목메어 고개 흔들며 아무도 밟지 않은땅을 가고 싶었다 아름다운 오월 버드나무 꽃가루가 눈을 덮을 때 미사는 끝났고 붉은 제 단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사랑의 어머니,  당신의 이름을 힘겹게 부를 때마다  임종의 괴로움을 홀로 누리시는 어머니,  불러주소서  그 눈짓, 그 음성으로  죄의 한 아이를…  이 시는 ‘성모성월’이란 제목을 달고 있다. 아마도 시의 내용으로 볼 때 성모성월은 5월일 터이다. 5월은 우리에게, 적어도 80년 5월을 깨어있는 정신으로 대면해야 했던 이들 모두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로존재한다. 이는 현대사의 질곡일 뿐만 아니라 개인의 상처로도 남아 있는 것이다. 이 시는 그 상처를 어루만지고자 하는 시적 대응이다.  시는 크게 두 부분으로 어우러져 있다. 앞의 길게 이어지는 진술과 뒤의 기도문의 형식을 빈 간구로. 그런데 진술은 이성복 특유의 자유로운 연상을 주축으로 이루어져 있다. 더욱이 그 연상 안에서 이루어지는다양한 수사들은 특정한 상상력의 유형으로 묶어두기에는 지나치게 분방하다. 예컨대 첫 번째 문장의‘봄’과 ‘꽃들’은 유추의 틀 안에서 이후에 연결되는 ‘우리는’과 동류의 ‘사람들’로 읽어야 한다.그리고 이들은 공통적으로 ‘죽고 싶었다’는 고통에 찬 정서의 토로로 묶여 있다. 따라서 유추일 뿐만아니라 시적화자의 정서를 통해 모든 대상을 전일적으로 인식하는 투사 역시 개재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투사는 “붉은 제단에서 식은땀이 흘렀다”는 묘사로 완결된다. ‘죽고 싶다’는 자괴감이 고스란히 신의 제단에도 전달되었고, 그 전달은 계시를 내리는 대신 고통의 몸짓을 나누어 가짐으로써 절망적으로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이어지는 기도는 산문적인 진술 전체에 가름하는 집약적인 제시일 뿐만 아니라 산문적인 진술의 진전이기도 하다. 고통에 찬 기도에 스스로의 괴로움으로 화답하는 ‘사랑의 어머니’는 인간과 신의 세계를 간구와 긍휼의 세계로 서로 연결하며, 죄로부터의 구원을 단서를 열어 보이고 있는 것이다. “불러주소서”란 소명에의 간구야말로 단순한 죄씻음에 그치지 않고, 참담한 시대에도 의연히 자신을 세울 수 있는 자존을 향한 갈구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데 이 후반부의 기도문은 특정한 상상력으로 명명하기 힘들만큼 내면의 심경이 그대로 제시되어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역시 현실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새로운모색에 전율하는 전복의 상상력이 존재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22) 昇天 - 이수익  내 목소리가  저 물소리의 벽을 깨고 나아가  하늘로 힘껏 솟구쳐 올라야만 한다  소리로써 마침내 소리를 이기려고  歌人은  심산유곡 폭포수 아래서 날마다  목청에 핏물 어리도록 발성을 연습하지만  열길 높이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는  쉽게 그의 목소리를 덮쳐  계곡을 가득 물소리 하나로만 채워버린다  그래도 그는 날이면 날마다  산에 올라  제 목소리가 물소리를 뛰어넘기를 수없이 기도하지만,  한번도 자세를 흐뜨리지 않는 폭포는  준엄한 스승처럼 곧추 앉아  수직의 말씀만 내리실 뿐이다  끝내  절망의 유복자를 안고 下山한 그가  발길 닿는 대로 정처없이 마을과 마을을 흘러 다니면서  소리의 昇天을 이루지 못한 제 恨을 토해 냈을 때  그 핏빛 소리에 취한 사람들이  그를 일러  참으로 하늘이 내리신 소리꾼이라 하더라  시 (22)도 관찰과 유추와 투사와 전복적 상상력이 종합적으로 융해되어 있다.  시적 상상력을 통해 시를 읽고, 나아가 시를 쓰는 일은 사실 시의 전부라고 말할 수 없다. 그것은 다만시라는 작은 세계의 커다란 진실을 들추어보는 하나의 조촐하고 소박한 매개가 될 따름이다. 무엇보다도이러한 틀을 통한 시읽기와 시쓰기가 아니라 이러한 틀의 이면에 잠복해 있는 시정신일 터이다. 이런 시적 상상력도 중요하지만 ‘시는 온몸으로 쓰는 것이다’라는 김수영의 거친 갈파에서 확인되는 시정신이더욱 소중한 것이다.* 
207    쉘 실버스타인 작품들 댓글:  조회:2028  추천:0  2017-06-22
쉘 실버스타인 작품들   쉘 실버스타인 (1932~1999)은 미국 시카고에서 태어났으며,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 시인, 음악가로 폭넓은 예술 활동을 했다. 그의 작품에는 시적인 문장과 함께 풍부한 해학과 번뜩이는 기지가 녹아 있다. 뿐만 아니라 직접 그린 아름다운 그림들은 글의 재미와 감동을 한껏 더해 준다. 1964년에 출판된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그 대표적인 작품으로 많은 어린이들과 어른들에게 가장 감명 깊은 책으로 손꼽힌다. 작품으로는 《어디로 갔을까, 나의 한쪽은》, 《떨어진 한쪽, 큰 동그라미를 만나》, 《총을 거꾸로 쏜 사자, 라프카디오》,《다락방에 불빛을》, 《길이 끝나는 곳》들이 있다.     여덟 개의 풍선 / 쉘 실버스타인     아무도 사 가지 않은 여덟 개의 풍선이 어느날 오후 모두모두 풀려 났다네. 줄 달린 여덟 개의 풍선이 날고 있네. 제멋대로 마음껏 할 수 있게 된. 하나는 날아서 해에 닿았지.-펑 하나는 고속도로 위에서 놀고 싶었지.-펑 하나는 선인장 더미 속에서 한숨 잤지.-펑 하나는 장난꾸러기 아이와 놀았지.-펑 하나는 숯불 고기를 맛보려고 하다가.-펑 하나는 고슴도치와 사랑에 빠졌지.-펑 하나는 악어 입을 가까이서 들여다 보았지.-펑 하나는 김이 빠질 때까지 앉아만 있었지.-쉬익 아무도 사 가지 않은 풍선 여덟 개. 모두모두 풀려서 멀리멀리 날아 갔다네. 마음대로 떠돌고 마음대로 날다가 마음대로 펑펑 터지며. ======================================================   함 / 쉘 실버스타인     우리가 만나 "안녕"하면, 인사함이요. 기분이 어떠냐고 물으면, 고려함이요. 우리가 잠시 머물러 이야기를 주고 받으면, 대화함이요. 우리가 서로서로 이해하면, 통함이요. 우리가 따지고 외치고 삿대질하면, 말다툼함이요. 나중에 풀어져서 서로 미안하다고 하면, 화해함이요. 우리가 서로 도우면, 협조함인데, 이 모든 함이 다 보태져서 훌륭함을 이룬다.   (내가 이걸 근사한 시라고 우기면, 그것은 과장함일까?)   ====================================================   원반의 모험  / 쉘 실버스타인     이리저리 날기에 지겨워서, 하고 싶은 다른 일들도 생각나서 다음번에 던져졌을 때 공중에서 빙 돌아서 멀리멀리 날아가 새로운 일거리들을 찾았다. 안경이 되고자 했으나 그걸 통해서 아무것도 볼 수 없었고, 비행 접시가 되려고 했지만, 모두들 그를 알아채버렸다. 반찬 접시가 되려고 했으나, 금이 가서 버려졌고, 빈대떡이 되고자 했으나, 던져지고 구워지고 뜯겨졌다. 자동차 바퀴 모자가 되려고 했지만, 차들은 모두 너무 빨리 달렸고, 음반이 되고자 했으나, 어지럼증에 견딜 수 없었고, 동전이 되려고도 했으나, 너무 커서 쓰기에 불편했다. 그래서 다시 집으로 굴러와 원반으로 되돌아 온 게 기쁘고 즐거웠다.   ========================================================   두려움  / 쉘 실버스타인     물에 빠져 죽을까 봐 무서워진 무섬이는 헤엄쳐 본 적도 없고, 배를 타 본 적도 없고, 목욕한 적도 없고, 개울을 건너 본 적도 없었다. 문을 꼭 걸어 잠그고, 창문에도 못질을 한 채, 밤이고 낮이고 앉아만 있었다. 물결이 밀어 닥칠까 두려움에 떨며, 너무나 많이 울어서, 눈물은 방안을 가득 채우고 드디어 그는 빠져 죽었다.   =====================================================   겉이냐, 속이냐? / 쉘 실버스타인     노마는 오만원짜리 겉옷은 샀으나 속옷 살 돈이 없었다. 노마가 지껄이길 "겉 모습이 정말 그럴듯하면, 속에 무얼 입었는지 알게 뭐야."   삼돌이는 수만원짜리 속옷을 샀으나, 겉옷은 너덜너덜, 솔기마저 터졌다. 삼돌이가 중얼대며, "속에 무얼 입었는지, 나만 알면 됐지. 남이 무슨 상관이야."   누리는 피리와 색연필 한 상자, 빵과 고기와 잘 익은 배를 한 개 샀다. 겉옷이나 속옷에 관해서는 생각해 본 적도, 신경 써 본 적도 없었다.     쉘 실버스타인 시집에서    딱따구리 ㅡ쉘 실버스타인 이제까지 봤던 일 가운데 가장 슬펐던 일은 딱따구리가 만든 나무를 쪼고 있던 일이야. 딱따구리는 힘 없이 내뱉었어. "아,모든 것이 옛날 같지가 않아". ***   도둑아 게 섰거라 /  쉘 실버스타인   순경 아저씨, 순경 아저씨, 제발 도와주세요. 누가 내 무릎을 훔쳐 갔어요. 쫓아갈래도 발이 떨어지지 않아요.
206    무당벌레 댓글:  조회:1723  추천:0  2017-06-19
무당벌레 / 강려   솔바람이 파란잎 받침판위 알록달록 마우스를 요리조리 이동한다   꽃잎모니터속 이슬커서(光标)가 요기조기 옮겨지고   칠색지구가 찰칵 여닫힌다 2017년도 6월 9일 “중국조선족 소년보”  “진달래아동문예”면 발표작
205    민들레 꽃씨 댓글:  조회:1574  추천:0  2017-06-19
민들레 꽃씨 /강려   내가 꺼내놓은 지우개로    누가 틀린 글씨 뽁 뽁 지웠나?   누가 잘못 그린 그림 빡 빡 문질렀나?   달랑 쬐꼼한 꽁다리만 하얗게 남았네   2017년도 6월 9일 “중국조선족 소년보”  “진달래아동문예”면 발표작
204    벌레들의 별명 댓글:  조회:1999  추천:0  2017-06-17
벌레들의 별명 / 강려   애개개 ! 바퀴를 굴리지도 않으면서 넌 웬 별명이 “바퀴벌레” 니?     쳇 ! 귀신이 어디 있다고 니는 별명이 “무당벌레”니 ?     히히히 강아지똥 굴리지도 않으면서 네는 웬 별명이 “개똥벌레” 니 ?   2017년 6월 9일 연변일보 해란강문학면 연변작가협회 아동분과 6.1 아동절 특집 (2)에 나간 발표작
203    봄날 댓글:  조회:1533  추천:0  2017-06-17
봄날 / 강려   “ 호호, 날 못 꺾겠지.” 벼랑위 진달래꽃이 빨간 혀를 내밀고 메 ㅡ 롱     “ 히히, 날 붙잡아보렴” 버드나무에 버들개지 한마리 하얀 볼 내밀고 메 ㅡ롱     “헤헤, 스케트 탈줄 모르겠지 ?” 강물위 조그만 얼음 한장 스케트 타면서. 메ㅡ롱   2017년 6월 9일 연변일보 해란강문학면 연변작가협회 아동분과 6.1 아동절 특집 (2)에 나간 발표작
202    꽃샘추위 댓글:  조회:1486  추천:0  2017-06-17
꽃샘추위 / 강려   ‘어머 ! 목 시리겠다’ 봄눈이 진달래꽃망울한테 하얀 목도리 돌 돌     ‘어머 ! 붕어들 감기 걸리겠네’ 강물이 열린 얼음창문 꽁꽁     ‘어머 ! 잰 혼자잖아" 뒤돌아보던 찬바람이 파란 싹 하나 어깨동무해준다   2017년 6월 9일 연변일보 해란강문학면 연변작가협회 아동분과 6.1 아동절 특집 (2)에 나간 발표작
201    <오순택 등단 50주년 >기념 동시 . 동시조 100편 [한국] 댓글:  조회:2234  추천:0  2017-06-12
​ *동시(50편)*     나비   나비는 예쁜 그림책.   접었다 펼치는   두 장 뿐인 그림책.     배추흰나비   너도 아기였를 땐   초록 배춧잎에 송송 구멍을 낸 못말릴 애벌레 였단다.     모시나비   민들레가 제일 좋아하는 머리핀.     나비의 무게   나비의 무게는 몇 그램이나 될까?   꽃잎 한 장에 향기를 더한 무게일까?   자주제비꽃에 앉은 작은주홍부전나비는 자주제비꽃 향기만큼 무거울까?   개망초꽃잎에 앉은 수풀꼬마팔랑나비는 개망초꽃 노랑 꽃잎만큼 무거을까?   꽃만 알고 있는 나비의 무게.     나비의 책 읽기   애기똥풀 꽃잎 한 장 한 장은 노란 책장.   모시나비가 앉아서 한 장 한 장 책장 넘기며 읽고 있다.     나비야 나비야   나비야. 나비야.   꽃밭에서 뭐 하니?   뽀뽀하지.   뽀뽀만 하니?   밤이면 꽃잎 덥고 잠자지.       오목눈이   이른 아침 우리 집 우편함 속에서 오목눈이가 빠끔 내다보고 있다.   어젯밤 집을 잘못 찾아 우편함 속에서 잤나보다.   우체부도 한번쯤 저렇게 이쁜 편지 배달해 주었으면 좋겠다.     노랑턱멧새   -나도 꽃이야.   불그레한 매화 몽우리 맺힌 가지에 눈빛 고운 노랑턱멧새 한 마리 앉아 있다.   아이야! 발소리 가만히 걸어라 꽃 날아갈라.     뻐꾸기 소리   뻐꾸기 소리에선 산국화의 보랏빛 향내가 난다.   뻐꾸기 소리에선 보리 익는 누르스름한 냄새가 난다.   뻐꾸기 소리는 시골 외할머니가 나를 부르는 소리 같다.     보리똥나무가 직박구리에게   보리똥나무의 열매가 익을 무렵   직박구리가 와서 노래를 불러 주었다.   풀빛 고운 노래 공짜로 듣는 것 미안해 보리똥나무는 직박구리 입 속에 빨간 열매 하나 넣어 주었다.     대추 한 개   갈색 조그만 대추 한 개.   벌레가 먼저 맛을 보고 있었다   나는 달짝지근한 대추 한 개를 벌레와 나눠 먹었다.     따뜻한 밥   포클레인은 커다란 숟가락이다.   흙밥 푹 퍼서 트럭에게 먹여 준다.   고봉밥 먹은 트럭 부릉부르릉 트림하며 간다.   달   아이가 운동장에서 공을 뻥 찼다.   하늘에 공만한 구멍이 뻥 뚫렸다.     우산병원   우리 아빠가 원장인 한 평 우산병원.   펜치 하나로 날씨를 접었다 폈다 하신다.   아빠가 고친 우산은 빗방울의 신나는 미끄럼틀이고   아빠가 고친 양산은 고운 햇볕 받아 먹고 핀 접시꽃이다.     수평선   젖은 구름도 걸리고 때로는 물 먹은 미역도 걸려 있다.     톡, 튕기면 물방울이 뚝, 뚝 떨어질 것 같은   팽팽한 빨랫줄.     꽃을 보고 있으면   꽃을 보고 있으면 나도 꽃이 됩니다.   꽃이 되면 몸에서 향내가 납니다.     엄마 냄새   아침 햇귀 같은 아가 옷 빨랫줄에 너는 엄마.   바람도 가만 와서 아가 옷 속 들락거리고   부리 예쁜 새도 빨랫줄에 앉아 엄마 냄새 맡고 있다.     함께 먹는 식사   상추 잎에 구멍이 나 있었다.   벌레가 먼저 먹었던 잇자국이다.   벌레가 먹고 남긴 상추 잎 나도 맛있게 먹었다.     마당을 쓸며   마당을 쓴다. 아침에   어둠은 잘게잘게 부서지고 햇귀는 비질에도 쓸려나가지 않는다.   눈 고운 곤줄박이 온음표로 물고 온 아침 햇살 푸르스름하다.       하늘 냄새   아침 일찍 들녘에 나갔다.   별이 내려와 놀다갔는지 풀잎에서 하늘 냄새가 난다.     봄비   자박자박 아기가 걸어옵니다.   하얀 종아리 드러내고 종일 마당에서 자박자박 걸음마를 배웁니다.     목련   입 안에 함빡 봄을 머금고 와서   푸우~ 푸우~ 뱉고 있다.   봄이 화르르 쏟아진다.     파꽃   머리에 행성 하나이고 있다.   그 행성에서 비릿한 향내 물큰 난다.     두부   처음엔 동그란 콩이었어요.   반듯한 네모 보드라운 살빛으로 다시 태어났지요.   그런데 사람들은 가장 보드라운 것을 가장 날카로운 칼로 벱니다.     선풍기   새장에 갇혀 파닥이는 저 날개 좀 봐.   날개만 남겨두고 새야! 어디 갔니?     장미   6월이 담장을 넘다가 가시에 찔렸대요.   담장이 온통 빨갛게 물들었대요.       여우비   어린 하느님이 대낮에 쉬를 하고 있다.   부끄럽지도 않나 봐.     *여우비: 볕이 나 있는데 잠깐 오다 그친 비.   너는 누굴 닮을래?   물고기는 몸속에 가시를 숨기고 산단다. 고슴도치는 몸 밖에 가시를 내놓고 산단다.   너는 누굴 닮을래?     고드름   나는 눈이 아니야.   나는 물도 아니야.   그럼 넌 누구니?   나는 해님이 만든 수정이야.     겨울나무   하느님이 X-레이로 나무의 가슴을 찍었다.   나무의 가슴 뼈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겨울나무 참 건강하다.       31. 놀랜 바다   건드리지 마라 바람아.   푸른 몸 생채기 나면 물고기들도 아파한다.   파도가 뭍으로 기어오르는 건   상처 난 지구 소금기 묻은 혀로 핥아주는 거란다.     비 갠 오후   꽃밭에 지렁이 한 마리 죽어 있다.   까만 옷 입은 개미들이 어깨에 메고 집으로 간다.   꽃무늬 옷 입혀 하늘나라로 보내주려나 봐.       마음   세모난 꽃씨 봤니?   동글동글해야 꽃씨지.   네모난 꽃잎 봤니?   동그스름해야 꽃잎이지.   그래, 모나지 않은 마음이라야 향그럽지.     걸레   누가 너를 함부로 대하랴 엄마가 자주 찾는 이름 아니더냐.   보드라운 비의 혓바닥도 환한 바람의 빗자루도 너처럼 세상 구석구석 닦아 주진 못한다.   겉보다 마음이 깨끗한 너는 해진 헝겊의 성자다.     해질 무렵   해질 무렵 호숫가에서 발을 씻고 있는 황새 한 마리.   -엄마가 걱정하신다 얼른 집에 가거라.   갈대가 사르락사르락 말을 건다.       아기의 첫 울음   아기의 첫 울음은 알림이에요.   하느님에겐 인구 한 명 더 늘어났다고   땅에겐 지구가 더 무거워졌다고   알리는 것이에요.     아름다움이 있는 곳   내려오려고만 하지마라. 폭포야. 하늘이 아름답지 않니.   올라가려고만 하지마라. 분수야. 꽃이 아름답지 않니.     우리 집   오늘 아침 우리 집 뜰엔 세상에서 제일 맑은 아기 웃음 같은 목련꽃이 피었습니다.   내 동생이 태어날 때처럼 목련꽃 핀 우리 집이 동네에서 제일 환합니다.     제비꽃의 봄   쪼그만 입으로 봄볕 오물오물 먹고 있는 자주색 제비꽃.   모시나비 한 마리 사뿐사뿐 날아와 제비꽃 자주색 입술에 뽀뽀하고 있다.     미안해   놀이터에서 친구와 놀다가 개미를 밟았어.   나는 미안하다는 말을 못했어.   그런데 잠을 자려는데 개미의 모습이 떠올라 잠이 오지 않았어.   ‘개미야, 미안해’ 맘속으로 말했어.       엄마 스타킹   우리 집에 뱀이 살아요.   지난 여름 풀밭에서 본 뱀이 허물을 벗어 놓고 갔나 봐요.     코스모스꽃   가녀린 꽃대위에 분홍 접시 하나.   접시엔 향기 몇 스푼   벌 나비 불러 모아 나눠준다.     벌레들의 도서관   노래책이 빼곡한 벌레들의 도서관.   싸르락싸르락 바람이 책장 넘겨주면   별이 눈 뜨는 초저녁부터 벌레들은 낭창낭창 글을 읽는다.   별은 밤늦도록 자지 않고 벌레들의 글 읽는 소리 듣고 있다.     자반고등어   싸락눈 덮고 자고 있다.   보름달   밤하늘에 동그란 창하나 있다.   그 창문 가만히 열면   발 시려 동동거리는 펭귄도 볼 수 있고   그 창문 열고 나가면   아프리카 눈이 큰 아이도 만날 수 있을까?     소나기   소나기는 하느님의 회초리 인가 봐.   풀잎은 소나기 맞고 푸렁물이 들고   꽃잎은 소나기 맞고 얼굴이 빨게 진다.     소금   나는 바닷물이었어요.   네모진 널찍한 마당에 갇혀있었어요.   햇볕도 듬뿍 받아먹고 바람도 함빡 받아먹었지요.   고운 햇볕 향그런 바람 참 맛 있었어요.   등이 가려웠어요 포슬포슬 몸이 말라 갔어요.   사르락사르락 온몸에 하얀 꽃이 피고요.   하얀 이 드러내고 웃는 메밀꽃 같았어요 짭조름한 메밀꽃 같았어요.     4월   봄은 민들레 노란 꽃신을 신었어요.   부리에 봄을 물고 노랑턱멧새도 와 있었어요.   나비는 젖은 날개를 말리느라 햇볕을 쬐고 있어요.   제비는 꽃잎 같은 새끼 주둥이에 벌레 넣어주기에 바쁘답니다.     나무의 육아 법   도토리나무는 쬐고만 방에 아기 혼자 잠재우고   밤나무는 밖에 가시 울타리 쳐놓고 삼형제를 한 방에서 키운다.   포도나무는 여러 형제 뺨 부비며 자라게 하고   모과나무는 못생겨도 좋다며 향기로 키운다.     항아리에 빠진 달   놀이터에서 놀던 아이들이 집으로 가면   달도 아이들을 따라가요.   아이가 쪼르르 방으로 들어가면   달은 심심해서 마당을 기웃거리고 다니다가   그만 장독대 물 항아리에 풍덩 빠졌대요.   오순택 등단 50주년​ *동시조(50편)*   바늘 귀   가진 건 아주 작은 귀 하나 뿐이어도   실을 꿰어 해진 것 다 깁는다. 바늘 너는   너처럼 깨끗한 귀 하나 가졌으면 좋겠다.     하늘만큼만   ㅉ ㅉ ㅉ 새소리가 아침을 맑게 연다.   순한 햇살 눈을 뜨고 나팔꽃도 입을 연다.   아가야, 하늘만큼만 꼭 고만큼만 자라라.     꽃 발걸음 소리   햇볕도 곱게 익은 가을 길 저만치서   자박자박 걸어오는 발걸음 소리 들린다.   아이야, 내일도 그렇게 분홍으로 걸어라.     꽃씨 속이 궁금해   곱게 접힌 연둣빛 싹 포근히 감싸 안고   귀는 반쯤 열어 놓고 빗소리도 듣는단다.   나비는 꽃씨 속에서 겨울잠을 잔단다.     가을 익다   백일홍 꽃잎 위에 고추잠자리 앉혀 놓고   가을도 덩달아서 빨갛게 익고 있   풀무치 초록 날개도 불그스레 물든다.     그늘 옷 깔고 앉은   산에서 저벅저벅 내려온 나무 한 그루.   밭 언덕에 서늘한 그늘 벗어놓고 서 있다.   밭에서 일하던 농부 그늘 옷 깔고 앉아 있다.     탱자나무에 갇힌 집   오촉짜리 전구만한 노오란 탱자 열매.   누가 몰래 따 갈까 봐 가시울타리 쳐 놓았다.   울안엔 비릿한 향내 함뿍 젖은 푸른 달빛.     꽃씨 닮은 아이들   이슬 먹고 꽃 피우는 나팔꽃도 닮고 싶고   부리에 음표달린 종달새도 닮고 싶은   이제 막 여물기 시작한 꽃씨 닮은 아이들.     아이들이 가꾼 지구   사과 한 개 떨어져도 땅이 얼른 받아주고   배춧잎도 벌레들의 맛있는 밥이 된다.   아이들 웃음소리가 과꽃처럼 피는 곳.     아파트에 사는 아이   뜰이 없다며 햇볕도 돌아가고 골목을 쏘다니던 바람도 길을 잃고 아이는 엘리베이터 안에 갇혀 외롭다.     그 아이   속눈썹 긴 여자 아이. 꼭 나리꽃 닮은 아이. 맑은 햇살 창 너머로 들여다 본 5학년 교실. 책상에 금 그어 놓고 넘어오면 안 된다던.     항아리   할머니는 간장 된장 담으면 좋겠다하시고   엄마는 꽃병으로 했으면 좋겠다하신다.   배 불룩 그 항아리에 나는 꿈을 담고 싶다.     누에   문도 없는 집을 짓고 스스로 들어앉아   여러 날 꼼짝 않고 무슨 생각 했는지.   동그란 문 하나 내고 나비되어 나온다.     호미   날마다 우리 엄마 텃밭에 글을 쓴다.   틀린 글자 지우듯이 잡풀도 뽑아낸다.   호미는 엄마의 연필 텃밭은 공책이다.     몽당연필   비밀 일기 쓸 때에도 내가 대신 써 주었지   비밀 편지 쓸 때에도 나에게 부탁했지   내 키가 작아졌다고 내버리면 안 되지     반가사유상   턱을 괴고 발은 포갠 채 무슨 생각 하시는지.   천년을 하루 같이 그대로 계셨지요.   이제는 말씀 한 마디 들려주면 안되나요.   *반가사유상: 오른 발은 왼 발의 무릎에 얹어 놓고 대좌에 걸터앉아 오른 손을 뺨에 받쳐대고 생각에 잠긴 모습을 한 불상.     낮달   낮달이 둠벙 속에 풍덩 빠져 있습니다.   어미 소가 둠벙물을 후루룩 먹습니다.   낮달이 어미 소 뱃속에서 쿨렁쿨렁 거립니다.     첫눈   깨금발로 단풍나무 사잇길로 온 첫눈이   콩콩콩 발자국만 찍어 놓고 그냥 간다.   참새가 좁쌀인 줄 알고 찍어본다. 콕콕콕     종소리   때리면 때릴수록 그 울음 맑고 곱다.   아기의 첫 울음이 저렇게 맑았겠지.   온 세상 모든 소리가 종소리만 같아라.     나비의 새 신발   순한 벌레 같이 곰실대는 봄 햇살이 이제 막 입을 여는 목련꽃 속으로 들어간다.   나비는 새 신발을 신고 어디만큼 오고 있나.     모과   잘 익은 모과 새 개 그 빛깔 향기까지 소반에 올려놓고 우리 엄마 하신 말씀 사람은 겉보다 속이 야무져야 한단다.       달을 보며   초승달을 바라보면 채우고 싶어지고   보름달을 바라보면 비우고 싶어진다.   하늘에 달 하나 있어 나의 꿈도 영근다.     월식   벌레가 둥근달을 아삭아삭 먹고 있다.   위성 하나 사라졌다 아이들이 소리친다.   담장에 둥근 달이 그린 수채화도 지워졌다.     겨울 바다   얼지 않고 출렁이는 겨울 바다에 가 보아라.   부리 고운 갈매기도 고음으로 노래하고   파도는 피아노 치듯 방파제를 때린다.     섬   바다가 만들어 놓은 커다란 디딤돌.   통통배도 쉬어가고 새들도 딛고 간다.   물고긴 튀어 올라와 비린내를 풀어 놓는다.     강화 갯벌   철새들이 찾아오면 갯벌도 바빠진다.   갯가재 갯지렁인 온몸엔 뻘투성이다.   붉은 발 도요새들도 깝죽깝죽 놀고 있다.       겨울 학교 -순천만   출석을 불러본다 흑고니 재두루미·····   한국의 겨울이 좋아 너희들 또 왔구나.   고맙다 너희들 있어 바닷빛이 곱구나.     봄 오는 실개천엔   멧새가 앉았다 간 실개천 버들가지.   새똥만한 잎눈들이 소로록 눈을 뜬다.   봄 오는 실개천엔 피라미도 은빛이다.     봄볕 한나절   부리 고운 새 한 마리 봄을 물고 왔나보다.   마중 나온 목련꽃이 뾰뾰뾰 입을 연다.   아이야, 어서 나와 봐. 봄볕이 참 곱구나.     꽃밭에선   벌레들도 꽃밭에선 온몸에 꽃물 들고   바람도 꽃밭에선 향긋한 물이 든다.   씨앗들 익는 소리에 꽃밭이 수런댄다.     둑방길을 걸으며   날름날름 송아지가 풀잎싹을 뜯고 있다.   고운 덧니 드러내고 풀꽃들이 웃고 있다.   실개천 맑은 물소리에 조약돌이 씻긴다.     여름의 동화   온음표 부리에 물고 물총새가 날아간다.   송사리 떼 헤엄치는 실개천 차암 맑다.   아이는 물장구 치고 순한 햇볕 따스하다.     가을빛 시골집   장독대 옆 봉숭아꽃 또로록 씨 여물고   고운 이 드러내고 석류가 익고 있다.   할머닌 대문도 없는 집에 꽃과 함께 사신다.     혼자 온 가을   가을이 깨금발로 초록 언덕 건너오면   은행잎은 시나브로 노랗게 물이 든다.   가지 끝 잎새 하나가 소리없이 내려온다.     가을산은   도토리 데구루루 다람쥐 귀가 쫑긋.   꽁지 긴 산새들도 휘파람을 불고 있다.   풋 열매 빨갛게 익듯 가을 산도 익는다.     우리 마을 -봄   털 빛깔 뽀오얀 작은 새 두어 마리.   봄마중 나왔는가 고개 갸웃갸웃.   어미 샌 부리에 햇살 물고 마을을 돌고 있다.     우리 마을 -여름   매미가 오동나무에 악기를 걸어 놓고 여름 내내 음악회를 여는 우리 마을. 장대비 지나가다가 오동잎을 두드린다.     우리 마을 -가을   잘 익은 햇살 한 줌 과일 속에 들어 있다.   그 과일 똑 따다가 한 입 가득 깨물면   입 안에 가득 고이는 고운 햇살 그 향내.       우리 마을 -겨울   싸락싸락 방문앞엔 싸락눈이 쌓이는데   아이는 엎드린 채 책상 앞에 잠이 들고   엄마의 봉곳한 가슴엔 동화책이 서너 권.     자연도 저렇게   머리가 무거워진 해바라기 고개 숙이고 벼이삭도 잘 익으면 스스로 고개 숙인다. 자연도 익으면 저렇게 머리를 숙일 줄 안다.     소나기   누가 잘 익은 콩을 저헣게 쏟고 있나.   또로록 마당 가득 실로폰 소리 난다.   소나기 그치고 나면 하늘빛이 더 맑다.     벌레 잠   벌레들이 낙엽 이불 끌어안고 자고 있다.   햇볕 묻은 따스한 잎 솜털보다 푹신하다.   한자락 바람이 와서 들춰보는 벌레 잠.     버려진 꽃병   이 빠진 꽃병 하나 빈터에 버려져 있다.   고양이도 들여다보고 바람도 들락날락   한때는 탁자에 앉아 뽐내기도 했었지.     어른들은 모르는 것   산을 뚫고 땅을 파서 새 길을 낼 때마다   지구는 아파하고 짐승들도 떠나간다.   지구가 병이 드는 걸 어른들은 왜 모를까.     자연의 이치   꽃에게 향기가 없다면 나비가 찾아오겠니?   과일이 네모라면 대구루루 굴러 가겠니?   심는 건 우리들 차지 가꾸는 건 자연의 일.       복사꽃 피는 마을   봄 햇살 꽃물인양 마당귀를 적시는데   건넛마을 복사꽃 향기 물고 왔는가.   박새는 마을을 돌며 풀피리를 불고 있다.     산마을의 가을   산새는 긴 부리로 메아리를 물어 나르고   갈잎 속 벌레들은 고운 꿈 꾸고 있다.   도토리 열매가 익는지 나뭇가지 휘어진다.     바닷가 고깃배   닻줄에 매어 있는 고깃배 두어 척이   바다로 나가자고 하루 종일 보챈다.   파도는 혀를 날름거리며 놀려대고 있었다.       햇빛 고운 한낮에   애벌레는 배춧잎에 예쁜 모양 창을 내고   장다리 꽃잎위엔 졸고 있는 배추흰나비.   맑은 눈 노랑턱멧새 털빛이 더 고웁다.     하늘에도 길이 있다   기러기는 날아갈 땐 줄을 지어 날아간다.   하늘에도 길이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새들도 지킬 줄 안다. 올바른 교통법규.   -등단 50주년 기념 동시. 동시조 100편- 꽃 발걸음 소리(2016년 1월 13일: 아침마중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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