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 묻고 온 그 언덕위에
글/김혁 金赫
(40회한민족통일문예대전 한국 통일부 장관상)
하늘이여
이이 메마른 목울림이 다 할때까지 죽어도 잊지 못할 내 고향엔,, 올해에도 봄은봄은 피였습니까?
할아버지와 살구나무
일제의 잔혹한 침략으로 조선땅이 피 그대로 즐벅할때 할아버지는 쪽지게로 인생 을인생을 이시고 남부녀대하며 한국 경주군에서 이 만주땅으로 걸어오셨습니다.까치의까치의 달착 지근한 울음소리에 묻혀 그리움으로 술렁이는 만주의 갈대밭을 바라보며 할아버지는 늙은 소나무에소나무에 기대여 한없이 한없이 우셨습니다.피 어린 태줄을 묻고묻고 온 고향이란 그때부터 흘려도 마르지 않는 눈물이 되였습니다.
그후그후 두손으로 갈구어 가꾸신 자그마한 땅에서 새로운 삶의 터전을 시작하고 그 쓸쓸한 마음의마음의 땅에 쓰라린 어제를 심으셨습니다.할아버지는 자그마한 초가집 뒤울안 에뒤울안에 한그루 살구나무를 심으셨습니다.고향을 떠나 도중에서 배 고플때고플때 요기하려고 호주머니에 넣었던 살구 세알,먹고 남은 종자종자 세알을 뒤울안에 뿌려놓았을때 이듬해 그 자리엔 오직 한뿌리만 뾰족하게 돋아났습니다.나머지 두알은 굶주림에 눈도 감지 못한채 죽어간 굶주림에 아팠던 두 동생처럼동생처럼 사라지고.
한그루 살구나무는 할아버지의 고향에 대한대한 마음을 허비는 그리움이였습니다. 계절이 지고는 피고 피고는 지듯지듯 살구나무는 봄마다 새하얗게 꽃을 피웠습니다. 두눈이 멀도록 그리워도그리워도 닿을수 없었던 경주—그곳엔 타향에 몸을 묻을수 밖에 없었던 한숨겨운 한 나그네나그네 라이프스토리 그 한줄기 메아리라도 스쳐지났을까?
당년,일본침략자들이일본침략자들이 항복하고 무리지어 제 나라로 돌아갈때 그들은 마지막 발악 으로 보이는것 만지우는것을만지우는것을 모두 불태우고 략탈했었습니다.풍성하게 살구 달린 한그루 나무마저나무마저 눈에 거슬려 그것을 뿌리채 뽑아버리려던 그들의 만행에 할아버지는 다리에 칼 찍히는찍히는 피의 대가로 겨우나 지켜낸 살구나무.
나무는 뽑아버리면 그만이건만그만이건만 어찌 내 마음에 뿌리내린 고향에 대한 기억을 뽑으려나!붉게 타오른 황혼에 젖어 할아버지는 살구나무를 부등켜안고 한없이 한없이 흐느꼈습니다.
그후 생활난도 조금씩 풀리고 굶주림에 허덕이던 그 기억도 꿈인듯 색바래색바래 갈때에도 할아버지는 초담배 메마른 연기만 물끄러미 바라보시며 깊은 생각에 잠기시군 했습니다했습니다 .자신의 한숨을 볼수 있기에 담배를 피우신다는 할아버지의 마음마음 ,그 한숨뒤에 묻힌 한은 무엇이였을까?
그날밤은 서리 까마귀까마귀 울지 않았습니다.
할아버지의 한숨소리만
아물아물 등잔아래 저물어 가고
숨이 다하도록
사태치는 미련이
만주의 써늘한 야밤을
애절하게 묵도할때
그그 비원과 한사슬에 묶이운
할아버지의 그리움은
그날도그날도
눈물에눈물에 색 올리던
목목 메인 향음,
역사의 옥맺힌 한이였습니다.
늙그막에 치매로 모든 기억을기억을 잃어갈때에도 할아버지는 유독 그 살구나무만을 잊지 않으셨습니다.허줄한허줄한 흰 저고리 저미시고 살구나무 그늘아래의 긴 걸상에 비스듬히 누우셔서 남쪽땅을 바라보며바라보며 혼자서 부들부들 떨며 불렀던 할아버지 어릴때 꽃노래는 바람에 가냘픈 향기로 옛이야기처럼 스쳐갔습니다.
그 옛날이 사막으로 변하고 모래바람이 한숨으로 나오면 나는 웃으며 고향에고향에 가리라!
살구나무여,그리운 경주여,, 이국타향에서의 뼈저린 부름을 기억하시나이까?고향을 떠나 고국을고국을 떠나 그 낯선 문화에 허덕이여도 뼈로 깍아도 버리지 않았던 하얀 숨결숨결,그 가냘픈 숨결을 어찌!
아버지와 족보(族譜)
할아버지의 그렁그렁 수심어린 두눈을두눈을 바라볼때마다 아버지는 고개를 돌려 옷소매로 눈귀를 닦군 했습니다.마음같아서는 할아버지를 모시고 그리운 경주에로 갔으련만 그건 어디까지나 아름다운 꿈에 불과했습니다불과했습니다 .
할아버지가 치매에 아프기 전의 어느날 밤,희미한 등잔아래 장자이신 아버지를 마주앉히고는 문지 오른 옷궤속에서 자그마한 함을 꺼내꺼내 아버지에게 열어보였습니다. 귀중한 비단으로 깜싼 그 안에 누런색누런색 비단으로 된 족보가 그 힘겨운 풍상고초도 이겨내고 조용히 남아있었던것입니다..
그것이 어찌 단순하게 이름만 적혀있는 족보이랴!그속에 수두룩히수두룩히 박혀있는 오고간 발자욱들!아버지에겐 눈물겨운 향기로 다가서고 마음마음 저민 빛으로 느껴왔으며 커다란 힘으로 맥박속에서 꿈틀거렸습니다.아아 , 그 족보는 하늘에 떠보낸 민족의 하아얀 영혼이며 하얀 넋의 한줌 비원에비원에 소지 올려 사르는 역사의 한자락이 아니였던가?그리운 한국한국 그 고국땅에서 한덩이 흑토로 삶을 가꾸어 가신 우리 선조들의 피와 땀이땀이 그대로 어려있는 족보를 바라보며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부등켜 울고 말았습니다..
족보를 지키거라!
족보를 꼭 지키겠습니다!
《농군이라고 어느때까지나 일만 하는것이하는것이 아니네라,공부를 해야지!》
할아버지의 간곡한 이 말씀을말씀을 아로새기며 아버지는 방향 잃었던 마음을 지식으로 채우기 위해 열심히 공부를 했었습니다했었습니다 .그렇게 항상 불끈불끈 괴여오르는 구지욕으로 분투하던 아버지에겐 그그 한때는 청천벽력이였습니다,느닷없이 내리꼰진 마른 벼락이였습니다.. 문화대혁명—10년 대동란!
당년에 아글아글아글아글 한이삭도 끌어모아 생활을 가꾸어서 남부럽지 않게 사셨던 그것이 그 시대엔 부농으로서부농으로서 자본주의를 꾀한다는 억울한 꼬깔모자를 쓰게 되고 공부를 조금 했다는 그것마저도 잘못이잘못이 되여 사회의 반감을 자아냈던 그 시대,부농을 타도하라、지식인은타도하라、지식인은 물러나라는 무지막매한 웨침에 온 사회가 들썽일때 그에 연루된 사람들은 모두 사회극진분자들의사회극진분자들의 물매뿐만아니라 지어 생명까지도 위험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집에 있는 책들을책들을 불에 태워버리고 족보같은 봉건색채가 있는 모든 물건을 버렸으며 온 사회가 공포에공포에 떨고 있을때,아버지는 먼저 생각히우는 족보였습니다.. 어찌해야 하나?족보가 극진분자들의 손에 들어가는 날엔날엔 족보에 적혀있는 할아버지 형제뿐만아니라 온 가족이 연루되여 위험할것이고 족보같은 봉건《물짝》을 지니고지니고 있었다는 그 이유로 자신마저 죽음을 면하지 못할 그 삼엄한 시기,단풍 든 살구나무에 기대여 치매로 헛소리만 하시는 할아버지를 바라보며바라보며 아버지는 한숨 가득히 혼자서 울고 말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삼동설한에 눈이 펑펑펑펑 내리던 밤,남몰래 창고에서 족보를 불에 태우며 남쪽땅을 향해향해 몇번이고 이마를 쫓으며 이 못난 자식의 죄를 용서하라고 흐느끼던 아버지,그 마음이 여북했으랴여북했으랴 !가족을 살리기 위해 족보마저 지키지 못했던 한 아들의아들의 죽음보다 더 괴로았던 그 자책감!
족보는 그렇게 한가닥 불길에불길에 타버리고 말았습니다.한쪼각 피어린 역사가 지른 문화충돌의 그그 불길에!
아,타버린것이 어찌 족보 그그 비단자락뿐이겠는가?
고향 떠나 이국타향에서 그리움에 울고 계시던 할아버지의 평생평생 원한도 타버리고 어느날인가 족보 찾아 선조가 살아 계시던 고향으로 돌아가려던 아버지의아버지의 소원도 타버렸으며 그보다 수천년 적어 내려온 우리 가족 우리 문화,아무리 멀리 있어도 하나로 되여야 한다는 우리 민족의 그그 신념이 타버렸던것입니다.
족보는 그렇게 한줌 재로 되였고 남은것은 《한국《한국 경상북도 경주군 강서면 갑산리》라는, 아버지에겐 어느때까지나 낯선 고향주소뿐이였습니다.
그날밤그날밤 ,그리움은 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 울었습니다[①].
나와 경주
너무나너무나 조용한 밤하늘입니다.한껏 빛을 뿜으며 휘영청 밤하늘에 걸려있는걸려있는 둥근달을 우러러 나는 경주 새심마을의 콩크리트길가에 서있었습니다.모두들모두들 잠든 이 달밤에 나 홀로 밖에서 나와 마음을 다듬고 있었습니다.. 멀리서 들려오는 길고 먼 황새소리는 길옆 논밭의 벼잎을 스쳐지나는 바람에바람에 섞이여 더없는 잔잔한 그리움을 불러옵니다.
산빛은 환히
밝아 오는데
달빛에 목선(木船)가듯
조으는 보살(( 菩薩)
꽃 그늘 환한 물물
조으는 보살[②].
재외동포재단에서 주최하는 《2008글로벌코리안유스네트워크》프로그램에 선발되여 한국에 올수 있었고 또 농촌체험으로 경주새심마을로 온 나는 무엇보다도 경주란경주란 이 두글자에 저도 몰래 흥분되는것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