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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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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3    누구룰 위하여 종은 울리나... 댓글:  조회:4090  추천:0  2016-05-19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 존 던(1572~1631)   그 누구도 스스로 온전한 섬이 아니다. 모든 사람은 대륙의 일부분, 전체의 부분이다. 만일 흙 한 덩이가 바다에 씻겨 나가면, 유럽 대륙이 그만큼 작아질 것이고, 바다의 갑(岬)도 그럴 것이고, 당신의 친구나 당신 자신의 영지(領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누구의 죽음도 나를 줄어들게 한다,     왜냐하면 나는 인류에 개입되어 있으니까. 그러니 누군가를 보내 알려하지 마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냐고. 종은 당신을 위해 울린다. 헤밍웨이의 소설 제목으로 차용되어 더 유명해진 시다. 그 누구도 (고립된) 섬이 아니다. 관계가 존재의 본질이다. 모든 부분은 전체와 연결되어 있으므로 부분의 손실은 전체의 손실이다. 누군가의 죽음을 알리는 조종(弔鐘)은 나의 부분이 빠져나가고 있다는 신호다. 타자의 죽음을 나의 죽음과 분리시키지 않는 것, 그것이 “인류에 개입되어” 있는 관계적 자아가 하는 일이다.  
1442    {자료}- 김철 시인 / 김응준 시인 댓글:  조회:7168  추천:0  2016-05-18
사람들은 흔히 시는 젊어서 쓰는것이라고 한다. 젊은 시절의 랑만과 젊은 시절의 정열이 없다면 시는 쓰기 어렵다는 뜻이 되겠다. 하지만 원로 시인 김철시인은 오늘까지도 시의 붓을 놓지않고있다. 얼마전 시인은≪황혼의 로맨스≫,≪휴전선은 말이 없다.≫란 시집을 펴냈다.       생사의 언덕을 넘어       긴 눈썹의 인자한 할아버지모습인 시인은 “다들 이 눈썹을 가리켜 장수하고 복받을 눈썹”이라 한다며 롱담을 하시였다. 참으로 시인의 눈썹은 옛이야기에 나오는 장수 할아버지의 눈썹처럼 길다는것이 인상적이였다.   그런 “팔자 좋은 눈썹”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김철시인은 몇번이나 저승문턱에 갔다옴으로서 기적같은 전설을 엮었다. 혹자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시인을 두고 “팔자 좋은 눈썹”덕이라 할수 있고 또 미리 그런 액땜을 했기 때문에 지금 이처럼 보람있는 나날을 보낼수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할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것은 파란많은 나날을 겪을대로 겪은다음의 오늘의 시인을 두고 해보는 안위의 “롱담”에 지나지 않는다.   시인이 넘어왔을 그 생사의 고비를 어찌 감히 “팔자”란 한마디로 가벼이 넘길수있으랴.   1932년 8월 가난한 배사공 김상기씨와 성판녀씨의 장남으로 일본 시모노세끼에서 태여난 시인은 걸음마도 변변히 타기전에 부주의로 2층에서 거꾸로 떨어졌다. 죽은거라고 생각했던 시인은 다행히 한 유명한 외과의사의 덕으로 목숨을 건지였다.   그리고 아버지를 따라 한국으로 건너가 전라도 곡성군에서 소학시절을 보낼 때 섬진강에 빠져 물귀신으로 될번 하였다.   룡정에서 대성중학교에 다닐 때 시인은 집안살림을 돕기위하여 부친과 함께 눈내리는 산길을 타며 회령으로 쌀장사 나갔다가 호랑이밥이 될번하기도 하였다. 젊은 시절 지원군으로 조선의 전쟁터에 나갔을 때는 폭탄의 세례를 받아야 했으며 또 ≪문화대혁명≫의 세례까지 받다보니 시인의 운명은 실로 파란많은 전설같은 인생이라 하지 않을수 없다.   언젠가 한국 국회에서 자아소개를 할때 “저의 일생은 마치도 우리 민족 재난의 축도와도 같은 일생이며 제가 걸어온 길은 눈보라 사나운 국제류랑아의 설음많은 길이였습니다.”라고 말한적 있다.   일본에서 대만으로, 대만에서 고향으로, 고향에서 또 두만강건너 동북으로...실로 시인의 류랑사는 민족의 수난사라고 하지않을수 없다.     꿈과 현실의 갈림길에서       1953년 ≪지경돌≫로 문단에 데뷔하여 평생 시로 늙어온 시인, 그는 선후하여 ≪변강의 마음≫, ≪동풍만리≫, ≪동틀무렵≫(장편서사시), ≪산향길≫, ≪새별전≫(장편서사시), ≪가야금≫(한문), ≪태양에로 가는 길≫, ≪인간세상≫, ≪김철시선집≫, ≪나는 진짜 바보이고싶다≫, ≪황혼의 로맨스≫, ≪휴전선은 말이 없다.≫ 등 무려 30권의 시집을 국내외에서 출판하였으며 시인이 작사하고 유명한 작곡가 정진옥이 작곡한 대합창 가 제6차세계청년예술축전에서 은상을 타면서부터 전국소수민족문학상. 미국해외민족문학상, 한국해외문학상. 아리랑문학상, 백두컵문학상, 천지문학상, 중국계관시인상, 국가특수공헌상, 세계계관시인상, 세계문화명인성취상, 국제평하복지상 등 많은 상을 수상하였다.   허나 어린 시절 시인의 꿈은 가수나 마라톤선수가 되는것이였다. 흑룡강성 해림현 신안진에 있을 때 시인에게는 마을의 곰보가수-영삼아저씨가 우상이였다. 가수로 되기위해 시인은 늑대바위골 폭포에서 목소리를 틔우려고 열심히 노래를 불렀다한다. 목에서 세번 피가 터지면 명가수가 된다고 했는데 두번째로 목에서 피가 터질무렵 잔치집에서 먹은 막걸리 때문에 아예 목이 닫혀버렸다고한다.   중학시절엔 마라톤선수로 활약했던 시인은 신안진중학교 추석운동대회에서 마라톤 1등을 하였으며 목단강고급중학교에 다닐때에는 목단강시 마라톤대회에서 1등, 전 동북지구 운동대회에서 마라톤 2등을 하였다. 하여 장자 마라톤선수나 되여볼가 하는것도 먼 옛날 시인의 꿈이였다. 이 밑천을 바탕으로 시인은 신문사의 기자로 있던 1953년 “9.3”명절에 주 마라톤경기에서 1등을 하기도 하였다.   가수로, 마라톤선수로 되는것이 어린 시절의 꿈이였으나 전쟁은 그로하여금 시인의 길을 걷게하였다.   물론 격정과 랑만을 지녀 고중시절 앞다투어 지원군전선으로 나갔던 열혈청년인 그에게 장차 시인되면 어떨가 하는 생각도 전혀없었던것은 아니였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시인의 길을 걷게된것은 전선에서 그토록 숭배하던 조선의 유명한 시인 조기천을 만난후부터였다. 전쟁중 마을의 불을 끄다가 담밑에서 타다남은 조기천의 장편서사시 “백두산”을 주어들고 무슨 보배라도 얻은듯 흥분했던 시인인지라 우연히 조기천을 만나게 되여 평생 잊지못할 추억의 한단락을 남기였으며 또한 시인의 길을 걸으려는 신념을 굳히게 되였다.   고난의 행군길은 시 창작의 좋은 시간이였다. 그후 김철시인은 행군길에 짬짬히 시를 지어 메모해두었다. 손전등을 켜고 시집을 읽다가 비생기야간공습을 받아 목숨을 잃을번도 했고 행군을 하면서 시를 쓰다가 천길벼랑에 굴러떨어질번도 하였다. 가렬한 전투의 나날 그는 한시도 시 창작을 잊은적 없었다. 당시 출판같은것은 상상도 할수없는일이라 시인은 그것들을 누런 포장지같은 종이에 정히 메모하여 “자작시집”으로 묶어두었다. 전선에서 돌아올 때 이런 자작시집이 3권 되였다고 한다.   참혹하고 무자비한 전쟁이란 현실과 피끓던 청춘, 그리고 그토록 숭배하던 조기천과의 만남으로 시인은 평생 걸어가야할 시인의 길을 선택하게 되였다.     홀로서기와 더불어 사는 세상       2006년 8월에 출판된 시인의 근작시집 ≪황혼의 로맨스≫에는 ≪허수아비≫라는 시가 있다.   “논벌은 만삭이 되여도/ 넌 늘 배고파 운다/ 그늘진 삶의 광야에/ 숙명의 느낌표 하나 세워놓고/ 뻗치며 살아가는/ 고달픈 인생의 홀로서기!”   어찌보면 여러번 생사의 고비를 넘기면서, 또한 파람많은 나날들은 지나오면서 시인이 절실히 느꼈던 외로우면서도 끈질긴 생의 행로에 대한 시심의 발로가 아닌가 싶다. 세상은 “만삭”이 되여도 “그늘진 삶의 광야”라는 그 소외된 공간속에서 늘 “배고픔”을 느끼지만 “숙명의 느낌표”를 찍으며 꿋꿋이 살아가는 생명의 저력. 인생에 대한 이러한것들을 잘 알고있었기에 시인은 그 어떤 어려움에 부딪친다 하더라도 절대로 포기하지 않았다.   생은 어디까지나 홀로서기임을 잘 알고 있을뿐만 아니라 또한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임도 시인은 잘 알고있었다.   항미원조전쟁이 끝난후 시인은 중국 연변의 ≪동북조선인민보≫(연변일보)에서 기자생활을 하였으며 나중에 북경 ≪민족문학≫의 주필을 담당하였다.   북경에 전근한 시인은 ≪민족문학≫부주필, 주필을 력임하면서 자신의 창작도 견지하였지만 소수민족작가대오양성과 소수민족간부대오양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1983년 시인이 북경에 전근될 때만 하여도 많은 소수민족지역들에는 작가군이 아직 이루어지지 못하고있는 상황이였다. 소수민족작가를 양성하기 위하여 시인은 동료들과 함께 신강문필회, 내몽골문필회, 장백산문필회, 연태문필회, 운남문필회 등10여차의 문필회를 조직하였는데 번마다 40-50명 회원들이 참가하였다. 그리고 로신문학원에 청년작가반을 위탁하여 소수민족지구의 청년작가들에게 배움의 기회를마련해주었다. 이로부터 소수민족지구에는 점차 작가군체가 형세하기 시작하였다.   그 외 시인은 소수민족지구의 문화수준이 낮은 형편을 고려하여 전국소수민족문화인재를 양성할 타산으로 북경제2외국어학원과 중앙민족대학에 위착하여 문학, 비서반을 조직하였다. 하여 첫기에 260명의 소수민족간부를 양성하였는데 후에 그들은지방에 돌아가 문련지도일군, 형장, 법원 원장 등 여러 문화, 행정직을 맡게 되였다.   시장경제의 급속한 변화와 함께 우리 조선족들도 고향을 등지고 외지로 돈벌러 나가게 되였다. 북경에도 역시 많은 조선족들이 진출하게 되였는데 그들은 낯설은 타향에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게 되였다. 때론 어떤이들은 시인이 북경에 좀 오래있었다는 리유만으로 무작정 찾아와 도움을 청하기도 하였다. 북경에 전근된후 문학, 문화인들과만 접촉하여온 시인이지만 차마 거절할수 없어 파출소며 공상국 등 기관을 찾아다니면서 그들을 도와나섰다. 그러는 가운데 하나의 도리를 모색해냈는데 뭉치지 않으면 외지에서 살기 바쁘겠다는 도리였다. 하여 시인은 기업인들을 모아 기업협회를 꾸려 앞으로 조선족들이 사업하는데 서로 힘이 되자는 의향을 내놓았다. 이는 많은 사람들의 찬성을 받았으며 드디여 북경조선족기업가협회 "KOREA"경제문화연구회가 설립되게 되었다. 이 협회는 조선족기업인들을 위해 북경대학과 련합하여 "최고경영자과정연수반"을 조직하였으며(북경대학 수료증 발급)일본, 한국, 미국 등 여러나라에 기업고찰단을 파견하여 외국의 선진경영경험을 배우도록 하였다. 그리고 각종 학술세미나와 예술공연, 국가대사 경축활동 등을 다양하게 펼치여 환영을 받고있다.   산업화로 나가는 요즘 시인은 KOREA 경제문화연구회의 회장, OKTA(무역협회)부회장, 국제 GCS중국본부총재직무를 감당하면서 경제문화면에 심혈을 기울이고있다.   하지만 시쓰는것을 숙명으로 여기는 시인은 오늘도 거친 생의 들판에 나름대로의 시편을 엮어가고있다. ///전춘매   [출처] 정열에 불타는 시인-김철|작성자 혜흔   ==============================    내(림금산)가 김철시인을 처음 알게 된것은 지금으로부터 30여년전 연변대학시절이였다. 그때 우리 조문학부학생들은 “종소리”문학사란 문학단체를 활발히 꾸려나갔는데 쩍하면 시낭송모임같은걸 가졌었다. 그러던 어느 한번의 시낭송모임에 김철시인이 직접 오셔서 대학생들과 함께 시낭송을 하시였다. 그때 본 김철시인은 아주 열정적이고 말씀도 아주 빠르고 듣기좋게 했으며 행동도 아주 민첩하고 특히 눈빛이 유난히 빛뿌리였는데 시도 아주 멋지게 랑송하셨다. 우리는 몇번의 접촉이 있은후 “종소리”잡지 제일 첫페지에 김철시인의 권두언을 싣기로 우리끼리 약속하고 감히 김철시인의 댁으로 찾아갔다. 그때 나는 “종소리”문학사의 주요책임을 맡았음으로 한반 아래인 백일승(지금은 중앙국제방송국근무)동무와 함께 철남에 있는 김철시인네 댁으로 찾아갔다. 사모님께서는 우리를 아주 열정적으로 반기였지만 아쉽게도 김철시인은 댁에 안계셨다. 그때는 전화같은것도 없으니깐 먼저 예약할수도 없는 때였다. 우리는 아쉬운 대로 사모님한테 권두언에 대한 부탁의 말씀을 남기고 되돌아 나왔다. 헌데 며칠후 다시 찾아갔을때 역시 김철시인은 사업이 다망해 집에 안계시고 책상우에다 우리가 부탁한 권두언을 다 써서 놓고 가셨다. 우리는 너무도 흥분되여 아이들처럼 막 퐁퐁 뛰기까지 했다.그때까지 우리는 김철시인을 잘 알고 있었지만 김철시인은 우리들을 누구인지 모르고 있을때다. 그저 연대학생들이란것밖에 몰랐었다. 하지만 우리의 문학활동을 이렇게 지지하고 또 권두언까지 정성들여 써주신건 참으로 고마왔고 우리 연변대학 문학동아리활동에 대한 지대한 지지와 성원이였다. 그래서 우리는 처음으로 감히 대시인의 원고로 우리 “종소리”잡지의 첫페지를 아주 멋지게 장식하게 되였다. 그 무렵 나는 북경대학의 최응구교수가 김철시인의 인물론을 쓴 책을 읽게 되였는데 특히 김철시인이 조선전쟁에 나갔다가 우연한 기회에 조기천시인이 함박눈이 내리는 창가에 서서 시를 읊는 걸 목격하는 대목은 문학을 좋아하는 나의 마음을 거세차게 설레이게 하였다. 나는 또 이 책을 통하여 김철시인의 과거에 대해 더욱 상세하게 알게 되였다. 김철시인은 1932년 8월 6일 일본시모네세끼에서 출생하였고 4살까지 부모를 따라 일본, 대만에서 살다가 고향인 전라남도 곡성군 입면 삼오리에 돌아와 초등학교 4학년까지 다니다 중퇴하였다. 그후 부모를 따라 중국으로 이주하였다. 8.15 광복후 길림, 오상, 목단강, 용정 등 지를 피난 다니다가 환고향 길이 막혀 다시 흑룡강성으로 이주민으로 들어가 시골학교에서 교편을 잡기도 했다. 운동을 즐기는 김철시인은 또 1949년 마라톤선수로 연변과 흑룡강성에서 1등을 따냈고, 전 동북구에서 2등까지 한 스포츠맨이였으며 가수가 되여보려던 꿈도 갖고있었다.   1950년, 그는 중국인민지원군에 참군하여 군예술단에서 무용배우와 안무가로 활약하였다. 1952년 그가 군에서 창작한 무용 은 중국인민해방군, 중국인민지원군 제1차 예술콩클에서 1등상을 수상하였으며 전국 순회공연에 참가하는 영광을 누리기도 하였다. 1953년, 군제대후 그는 선후로  기자로 취직하여 문필활동을 시작하였는데 그가 창작한 시이  신춘문예에 입선하면서 문단에 데뷔하였다. 1956년에 그가 창작한 대합창 는 제6차 세계청년예술축전에서 대상 을 수상하였는데 그때 그의 나이 24살이였다. 그후 그는 련속 많은 시집과 시작품들을 창작해 냈으며 길림성청년련합회 부주석, 연변청년련합회 주석도 맡아보았다. 허나 전례없던 문화대혁명은 그한테도 덮쳤다. 그는 갖은 죄명을 쓰고 5년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옥중에 갇혀있는 기간 그는 장편서사시 “동틀무렵”을 구상하였고 옥에서 나와서는 “천지”잡지사에서 일을 보면서 창작에 들어갔는데 련속 장편서사시와 서정시집들을 쏟아냈다. 그는 연변작가협회 부주석겸 비서장으로 발탁되였고 후에는 또 연변작가협회주석과 연변문련주석을 담임하기도 했다. 북경 “민족문학”에서 그를 모셔간후 우리는 문단활동에서도 그를 자주 볼수가 없게 되였다…  내가 소년신문사에서 문예편집을 맡아할때였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의 신문에 김철시인의 글을 실어볼가…그때는 이미 김철시인님께서 북경으로 전근해간지도 10여년 된 후였다. 나는 고민하던 끝에 또 학창시절때처럼 감히 북경에 편지를 날렸다. 만약 김철시인이 아이들글을 쓸 시간이 없어 안되더라도 믿져야 본전이겠지…하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헌데 얼마 안되여 북경에서 김철시인의 따뜻한 문안편지와 함께 원고가 날아왔다. 원고제목은 “연안의 담요”였다. 즉 연안에 있을때 주덕총사령께서 모택동주석께 담요를 주었던 그런 이야기를 아이들 동심에 맞게 수필로 쓴 글이였는데 나는 너무도 감사하여 제일 빠른 시간으로 우리 어린이 신문에 올렸다… 아마도 김철시인과는 그 어떤 인연이 있는지. 그후에도 나는 여러차 김철시인을 뵙는 기회를 가지게 되였다. 한번은 민족문학잡지를 중심으로 해서 북경의 여러 문인들이 연변에 와서 전국소수민족필회를 가졌는데 그때도 김철시인께서 중공중앙선전부 부부장으로 있던 하경지시인을 모시고 왔었다. 회의기간 하루는 공원의 소나무숲으로 들놀이를 갔는데 술이 몇순배돌자 김철시인은 당장에서 일어나 노래하며 춤까지 추셨다. 그후 오래동안 우리는 김철시인을 만나지 못하다가 어느 한번 김철시인이 제20번째 시집 출간기념회를 연길에 와서 연변빈관에서 거행하였다. 우리 시인들은 모두 김철시인께서 직접 싸인한 시집을 받게 되였다. 그번 출간회에는 저명한 소설가 마라친부도 참석하였고 당시 국가민족사무위원회 부주임으로 있던 리덕수동지도 연변시찰차 참석하여 보귀한 연설도 하였다. 그후 우리는 또 오래동안 김철시인을 만나지 못하였다.   세월이 많이도 흘러 우리도 이젠 시단의 중임을 맡고 여러가지 이번트를 조직할때가 돌아왔다. 5년전 연변작가협회에서는 김영건을 시가창작위원회 주임으로 선거하고 나를 부주임으로 임명하였다.이미 20여년이나 이끌어온 시단의 성회-“두만강여울소리”도 이젠 우리들이 조직해야 하였다. 하지만 해마다 한번씩 진행되는 “두만강여울소리”를 어떻게 하면 더 다채롭고 내용이 더 풍부하게 조직할것인가가 고민이였다. 우리 조선족시단에서 “두만강여울소리”라 하면 해외에서도 소문이 짱한 명브랜드활동이였다. 더우기 동북3성을 포함한 전국의 우리 민족시인들이 대거 참가하는 그런 모임이였고 또 우리가  처음으로 시가창작위원회의 중임을 맡은후의 첫 행사였으니 신경이 안쓰일수가 없었다.   마침 박장길씨가 화룡시민족식당으로부터 일정한 자금과 음식상 갖추는걸 후원해 왔다. 우리는 기뻤다. 인맥이 넓은 김영건주임은 화룡시정부에 직접 련계를 달아 “제24차두만강여울소리”를 화룡시정부 회의실에서 거행하기로 협의를 보았으며 연변의 인기배우들과 가수들을 동원하여 회의에 멋진 공연을 선물하기로 하였다. 우리가 처음으로 조직하는 일이 잘되게 하늘이 도와주었는지 김철시인부부도 마침 연길에 와 있을때라 우리의 초청에 의해 이번 회의참가차로 직접 화룡시에까지 오셨으며 주당위선전부, 화룡시정부 등 정부차원에서 대폭적인 지지와 성원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회의 첫날 저녁에는 민족식당에서 개를 앉히고 연회를 베풀었으며 소박하고 멋들어진 공연도 선보여 회의 분위기를 확 잡아왔다. 이튿날 오전에는 탐구시를 심사하는 날이였는데 우리는 김철시인한테 심사위원들의 심사를 감독해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래서 심사는 아주 공정하게 진행되였다.   회의군들은 이튿날 연변의 금강산으로 불리우는 선경대를 유람하였고 또 선경대아래동네에 있는 유동림장에 가서 사슴까지 잡아 잔디밭우에다 사슴고기로 연회를 베풀었다. 김철시인은 당장에서 유동림장책임자한테 일필휘지하여 족자까지 써주셨다. 대회는 진짜 성공적으로 잘 되였다. 그때 일을 생각하면 우리는 늘 김철시인한테 감사한 마음이다. 그때까지만도 우리는 김철은 중국조선족의 저명한 시인으로만 알고 있었지 그후 북경에서 수도권의 우리 민족을 위하여 눈부신 사회활동을 활발히 펼치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감감 모르고 있었다.   연변작가협회에서 령도사업을 할 때 연변대학과 합작하여 4년간 문학본과반을 꾸려 많은 문학인재를양성한 김철시인은 북경에 전근되자마자 민족문학잡지를 꾸리는 한편 전국 소수민족 문과대학을 꾸려 각 민족의 문학인재를 양성하였다. 아무런 기초와 준비도 없이 대학반을 꾸린다는것은 그리 쉬운일이 아니였다. 교실이 없어 빌어쓰고 교원이 없어 수도의 여러 대학에서 교수를 초빙하였다. 학교관리일군도 여기저기서 초빙했다. 민족문학의 주필인 시인도 바쁜 편집사업의 틈을 타서 학교운영을 지도했다.   학생들도 여러 변강지구에서 오다보니 민족이 다르고 생활습관이 서로 달랐다. 하기에 여러 가지 복잡한 사항이 생길 때마다 김철시인은 직원들과 함께 여러 민족의 특성과 습관에 맞게 세심하고 살뜰하게 그들을 보살펴주었다. 한데서 2년간 학교는 큰 차질이 없이 잘 운영되여 국가민족사무위원회의표창을 받기도 했다.   학교에서는 2년동안에 250명 여러 민족 학생들을 졸업시켰는데 중앙민족대학 졸업증을 수여받은 학생들은 지금 각 소수민족지구에 돌아가 현위서기, 법원 원장, 문예단체 책임자와 중견작가로 활약하고있다. 그뿐만 아니라 그후 김철시인은 또 기업가협회 회장사업도 맡아하였다.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한다. 시인이 어떻게 기업가협회 회장이 되였느냐고. 여기에는 그럴만한 사정이 있다. 개혁개방후 각지에서 돈을 번 사람들이 수도 북경에 몰려들었다. 그러나 수도에 발붙인다는것은 말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였다. 식당을 개업도 못한채 돌아간 사람, 식당을 꾸렸다가 일부 망나니들의 성화에 못견뎌 그만둔 사람… 여하튼 억울함을 당한 사람이 한두명이 아니였다. 여기서 뭉쳐야할 필요성을 실감한 김철시인은 북경조선족기업가협회라는걸 발족하였다.   지도기구를 구성할 때 부회장 인선은 있는데 회장인선이 없었다. 사흘을 고민하던 끝에 사람들은 시인 김철선생을 추대하였다. 그때 그는 완곡히 거절했다. 그러나 모두들 한결같이 추대하는 바람에 할수 없이 응낙했던것이다.   기업가협회 회장이 된 후 그는 수도권의 기업가들을 위하여 많은 일을 했다. 그들의 경영수준을 제고하기 위하여 북경대학 경영학원과 합작하여 최고경영자 연수반을 꾸리고 북경대학과 국가경제단체의 유명한 학자, 교수들이 세계경제발전 추세와 최고경영학을 강의하게 했다.   경제인들의 시야를 넓혀주기 위해 경제인 국외시찰단을 무어 미국, 일본, 한국 등 나라에 가서 경제고찰을 하게 했으며 한상대회, 세계해외무역인대회 등에 그들을 참석시켜 견식을 넓히게 했다.   그는 또 경제인 경험교류회와 좌담회 등 모임을 조직하여 서로간 경영비결을 따라배우게 했다. 그뿐만아니라 해외에 좋은 투자항목이 있으면 훌륭한 파트너를 소개해 합작하게 하는 등 기업인들의 친근한 벗으로, 사업의 길잡이로 되였다.   1996년 정부의 지시에 따라 북경 고려문화경제연구회가 창립되였다. 원유의 기업가협회도 여기에 합류했다. 정부의 위촉을 받아 시인은 또 고려문화경제연구회의 회장직을 담임하게 되였다. 하여 그의활동무대는 더 넓어졌다.   김철시인은 수도권의 문화예술생활에 많은 관심을 돌렸다. 그는 우리 조선족예술인들의 성장을 돕기위해 북경 음악청에서 민족가무단의 청년가수 리성주독창음악회를 도와주었다.   그는 또 연변의《꽃노을예술단》을 북경에 초청하여 1200명을 수용하는 대극장에서 공연을 하도록함으로써 수도권에서의 그들의 영향력을 넓혀주었다.   뿐만아니라 국제공연도 조직하였는데 한국의 《국제경로단》공연, 《보리수예술단》의 공연은 매우이채로왔다.   지금 고려문화경제연구회 산하에는 《미인송예술단》이 있는데 상당한 수준을 갖춘 이 예술단은 자기들의 다채로운 예술공연으로 수도권의 문화생활을 활성화시키고있다.   이토록 수도권에서 맹활약을 하고있는 그지만 짬짬이 틈을 타 시창작에 몰두하면서 팔순이 넘는 고령이지만 청춘의 활기를 과시하고있다. 그는 늘 말한다. 《시인은 영원히 청춘이다. 세월은 흘러도 바빠서 늙을새가 없다!》고.   2013년 1월 23일, 연변의 시인들은 연변주정부 정무청사C-108호 회의실에서 “중국조선족시화선집”출판기념회를 가지였다. 헌데 누구도 몰랐다. 81세 고령의 김철시인께서 전날 비행기편으로 이 모임에 참가하고저 친히 북경에서 날아올줄이야. 비록 북경에서도 많은 일들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김철시인은 우리들의 상세한 회보를 접한후다른 일들은 잠시 미루고 전국 조선족시인들 작품을 집대성한 이 시화선집의 출판을 축하해주기 위해 불편한 몸으로 직접 추운 겨울날씨도 마다하고 사모님과 함께 쉽지않은 걸음을 하신것이였다. 그는 이날 대회에서 보귀한 축하말씀도 주셨으며 자신이 직접 북경에서 만들어온 공로패를 김영건시인한테 수여함으로 김영건을 비롯한 이날 모임에 참가한 많은 로시인,청년시인들을 감동시켰고 고무해 주었다.시인들은 다시 한번 우리 민족 대시인의 인자한 모습을 보게되였으며 김철시인이 민족시단에 대한 끝없는 배려와 사랑을 가슴뜨겁게 느끼게 되였다.   이미 38권의 저작을 출판하여 반세기 남짓한 문단생애에서 빛나는 업적을 쌓아올린 김철시인은 미국 링컨재단의 세계문화예술훈장과 일본황실의 국제문화공로훈장, 한국문인협회의 해외문학상을 비롯하여 50여개의 크고작은 상패와 메달을 수상, 그의 자택의 한쪽벽은 몽땅 상패, 공로패, 감사패로 가득 채워져있다. 오늘도 그는 시창작에 몰두하는 한편 여러가지 유익한 사회활동으로 여력을 발산하고있다.       =========================== 오이를 거꾸로 먹어도 제멋이라는데                             * 김철 시인 나는 요즘《중국조선족명시》라는 책을 읽고 별난 느낌 하나를 적고싶다. 연변에 나가보니 이 책을 잘 펴냈다느니, 못했다느니 말썽이 많은데 나는 그런 시비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참여도 하고싶지 않다. 왜냐 하면 시라는건 각자 제나름대로 평가하고 감상하는것이고 고 정된 척도가 없으니 말이다. 마치도 누구는 소고기료리를 좋아하는데, 또 누구는 돼지고기 료리를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비게가 질색이라는데, 또 어떤이는 일부러 비게만 골라먹고 곱을 많이 먹으면 단명이라는데, 세계에서 제일 오래 산 사람은 또 그 비상이라는 비게만 골라 먹는다니,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추어야 할꼬?  책을 읽고 느낌 그대로 솔직히 말한다면 앞부분, 그러니까 세상에 이미 널리 알려진 명시 들은 그저 그러려니 하고 읽었는데 뒤부분, 그러니까 지금의 무명시인, 젊은 친구들이 쓴 시들에 나는 홀딱 반해버렸다. 그래서 절반쯤 읽고 시집을 덮어버리려 했다가 끝까지 탐독 했고 후반부는 두세번씩 다시 읽었다. 이것이 나의 진솔한 고백이다. 어떤 사람은 오늘의 우리 시가 30년대 수준이라기도 하고 또 어떤이는 그것도 과분하다고 까지 하는데 천만의 말씀! 속담에 오이를 거꾸로 먹어도 제멋이라는데 시를 보는것도 다 제멋에, 제나름대로 평가할 수는 있겠지만 이 책을 읽고 나는 한마디로 말해서 진정한 명시는 우리 젊은이들속에, 말 하자면 이제 솟아나는 무명시인들 손에 있다고 떳떳하게 말할수 있다. 시를 어떻게 비겨야 하는가. 오늘의 중국조선족시가 30년대수준이라 한다면 오늘의 한국시는 다 명작이란 말 인가. 솔직히 말해서 나에게는 한국의 여러 문학월간지들이 달마다 증정되여오는데 나는 그것들을 접수할 때마다 우선 시들을 골라본다. 그런데 어떤 달에는 한수도 맛있게 읽을 시감이 없어 실망하군 한다. 그럼 이런 현상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그런데 우리의 문학 지들에서는 달마다 심심치 않게 맛있는 시들을 만나게 된다. 이건 누가 시켜서 하는것도 아니요, 아무런 선입감도 없는 상황에서 나타난 현상인걸 어찌하랴. 문제는 단도직입적으 로 말해서 오늘의 한국시들이 다 그렇게 수준이 높은것도 아니요, 우리의 시들이 모두 그 렇게 쓰레기가 아니라는 말이다. 한국시에도 명작이 있고 우리의 시에도 명작이 있다는 말이 되겠다. 여기에 변증법이라는게 필요한것 같다. 이 책에 수록된 30년대, 그리고 해방직 후에 인정받은 명작이라째孤?그때는 좋다고 보았는데 지금에 와 다시 보니 그것도 그저 그 래, 라고 생각되는걸 어찌하랴,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 시대 시들을 부정하고싶은 생각은 꼬물만치도 없다. 문제는 그 시대의 시도 반드시 그 시대에 맞춰, 그 시대의 다각적인 인 소를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충분히 긍정하거나 실제에 맞게 평가되여야 한다는 말이다. 여 기에 맹목적인 긍정이나 부정은 금물이다. 더구나 오늘의 자대로 옛것을 재거나 옛날의 자 대로 오늘을 부정하거나 해서는 안되는것이다. 어느 시대, 어느 시인이나 명작이란 그리 많지 않는 법이다. 그 일부의 명작을 가지고 오늘의 전반 수준을 평가하거나 절대적인 부 정, 또는 긍정해서도 안된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이 시집을 읽고 신심과 희망을 갖게 된것은 우리의 시단, 특히는 젊은 시인들 손에서 명작들이 적지 않게 나오고있고 이미 나왔다는 점에 있다. 평소에 나는 우리 잡지나 신문 들에 나오는 시들을 다 읽지는 못했는데 적지 않게 처음 접하는 시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적지 않게 이름을 모를 시인들이여서 뒤끝의 소개를 보니 많이는 연변대학 조문학부를 졸 업한 젊은이들이였다. 그래서 그들을 만나고싶었고 고무해주고싶었다. 이 글을 쓴것도 바 로 그래서이다. 솔직하게 말해서 이 책에는 (특히 뒤부분) 혼자 무릎을 툭 치게 되는 시들이 많았다. 나는 여기서 우리 시단의 로시인이나 이미 많이 평가 받은 시들에 대해서는 다시 구구히 말하 고싶지 않고 새로 두각을 드러낸 젊은이들의 좋은 시 몇수에 대해 나의 천박한 소감을 피 력하고싶다.   나는 이 책에서 김영춘의 《8월의 호수가를 거닐며》, 허련화의 《가을산》, 남철심의 《우리들의 자화상》, 리범수의 《형씨 K의 자취방 소문》, 박설매의 《마지막 신화》, 전춘매의 《다조》, 윤영애의 《초불》과 《늙은 량주》, 박정웅의 《자화상》, 김영건의 《철쭉꽃》, 김선희의 《비》, 림금산의 《당신은 아십니까》, 석화의 《외로움》과 《옥수수밭에서》, 박문봉의 《과부》, 리임원의 《동해바다》, 류광철의 《남편》, 김일량의 《버드나무숲》, 최룡국의 《아버지 말소리》, 김학송의《갈대》, 리문호의 《자라곰탕》, 김문세의 《산》, 최기자의 《채소바구니를 들지 않는 건》, 김철학의 《학두루미》, 김동진의 《가을로 가는 나무》 등을 매우 감명깊게 읽었다 . 이 책을 펴낸 사람이 아주 잘 고른것 같다. 그외에도 우리의 로시인, 중견시인들의 명시 들도 많은데 여기에서는 략하겠다. 그래서 좋?시들을 례로 든것도 제일 뒤페지부터 든 까 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젊은이들의 시에는 몇가지 공동한 특점이 있는것 같다. 첫째, 그들의 시는 착상이 기발하다. 엉뚱하다는 말이다. 남이 생각지 못하는 시, 같은 제 목이라도 읽고나면 놀라게 하는 시, 그것이 진짜 시가 아닐가. 하늘의 달은 수천년동안, 수천명이 노래했어도 시인마다 그 감수가 다르다. 그래서 그것이 시가 되는것이다. 최기자 는 사람들이 날마다 들고다니는 《채소바구니》를 가지고 시를 썼는데 평범한 채소바구니 에 인생철학을 담았다. 함께 먹어줄이 찾기가 그렇게 어려울수가 있습니까/잠간 함께 먹어주는 그림자가/그토록 아프게 내 피를 말린다는걸 /당신은, 당신은 아십니까 이 대목에서 최기자라는 인간이 빤히 보인다. 절절한 하소연, 한 녀인의 고독과 외로움… 피말리는 인간의 그리움 이런것들이 너무나도 평범한 시구에서 평범하지 않은 체험을 진실 하게 잘 말해주고있다. 류광철의 《남편》을 보자. 여리디 여리였던/행화(杏花) 같은 꽃나이를 /그대의 이름자에 이것이 진짜 명시가 아닌가. 《밉고도 고운 그 이름을 먹고 사는》 녀자, 한국의 노래에는 사랑을 먹고 산다는 말은 있으나 《밉고도 고은 그 이름》을 먹고 산다는 말은 못들었다. 중국시단에서도 못보았다. 진짜 엉뚱한 소리다. 시는 남이 말하지 않은 소리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을 시론에서는 시적발견이라 한다. 어쩌면 젊은 사람들이 이런 엉뚱한 생각을 했을가? 나는 반세기 남짓이 시농사를 짓고있지만 이런 생각을 못해보았다. 석화의 《외로움》이나 《옥수수밭에서》도 그렇다.《외로움을 손가락사이에 끼워/불 붙여 물면/먼 기억은 가물가물 눈앞에 피여오르고/옛날은 하얗게/재털이에 쌓이다/손가락끝에 서 짧아지는 고독/빨갛게 타는 심사 비벼끄는》 사나이의 형상이나 《등에/그리고 가슴에/ 아기를 업고 또 안고있는/내 엄마같은 옥수수》의 형상은 매우 생신하고 너무나도 진실하 다. 《눈에 띄우는/꽃잎 하나 피우지 못한채/벌써 오늘의 계절에/휘여질듯 서있는/옥수수…》 그것이 마치도 애기를 업고 서있는 어머니 같다는 말이다. 나는 아니 우리는 한평생 수없 이 옥수수를 보고, 옥수수밭을 지나다녔지만 누구도 그것을 애기를 업고있는 어머니에게 비유한 사람은 아직 없는걸로 알고있다. 이것이 바로 재치있는 시인의 눈이다. 범상한 일 상생활이나 사소한 사물에서 시의(詩意)를 발견할줄 아는 재간, 그것이 시인의 남다른, 독 특한 사고방식인것이다. 허련화의 《가을산》을 보자. 가을산은 언제든지 벗는다/못벗는건 나다//산은 벗어도 당당하고/나는 입고있어도 춥기만 하다. 이것이 시의 전부다. 모두 합쳐 4행시에서 얼마나 많은 사색을 자아내는가. 이것은 대단히 세련된 높은 수준의 시라 하겠다. 이런 시들을 어찌 수준이 낮은, 보잘것 없는 시라고 하 겠는가. 오늘 우리의 시단에는 이런 시들, 쟁쟁 소리나는 시들이 적지 않다. 더구나 이런 시들을 어찌 30년대 수준이라 하겠는가. 누군지는 몰라도 이렇게 평가하는 사람이 진짜 시 를 알고 하는 소리인지 의심하지 않을수 없다. 둘째, 이런 시들은 흔히 시적구상이나 발상이 기묘하다. 김영춘 의 《8월의 호수가를 거닐며》 같은 시는 진짜 명시라고 생각한다. 8월의 호수가를 거니는 《나》는 한마디 《은빛잉어》가 되고싶다고 한다. 《물속에 숨어 그대를 지켜보는/자그 마한 꿈이고싶다》고 한다. 《그러다 서글피 읊조리는 그대 사랑시/나를 부르는 예쁜 미끼 라 믿어질 때/그대 사랑의 낚시를 텀벙 물고/행복한 죽음으로 그대 손에 이르고싶다》고 한다. 행복한 죽음으로 그대 손에 이르고싶어하는 잉어의 심정, 매우 심각한 의미와 철리 를 내포하고있는 사랑시라 하겠다. 고금중외 수많은 시인들이 사랑을 노래했지만 이렇게 의미심장하게, 지어는 비장한 사랑을 형상적으로 재치있게 노래한 시는 매우 드물다. 얼마 전에 나는 초청을 받고 세계시인대회에 참석한적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노벨상수상자도 있 고 각국의 저명한 대표시인들이였건만 각자 랑송하는 자작시들중에서 내 가슴을 쿡 찌르는 시는 그리 많지 않았다. 시란 절대로 미신할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우리 의 젊은이들이 얼마나 좋은 시들을 쓰고있는가. 그들은 절대 얕잡아보아서는 안될것이다. 세계적인 수준이라는것도 상대적이지 결코 절대적인것은 아니다. 북데기속에 알맹이가 있 다는 농민들의 말은 실로 명언이라 하겠다. 우리의 평론가들은 이런 《알맹이》를 골라낼 줄 알아야 하고 그 싹을 부추켜 키워줄줄 알아야 할것이 아닌가! 이런 견지에서 나는 진짜 젊은이들의 《명시선》을 따로 하나 펴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나도 언젠가 낚시군의 시를 시도해본적이 있는데 김영춘시인처럼 그렇게 심각한 시의를 발견하지 못하고 포기한적이 있었다. 낚시군과 물고기, 이는 본래 모순의 량극이다. 그런데 그것을 《행복한 죽음》으로 통합시켜 사랑이 주제를 고도로 승화시켰다. 이 얼마나 기묘한 시적전환인가. 실로 보통솜씨가 아니다. 우리가 얼마쯤 어떻게 써야 《세계수준》이라고 할수 있을가. 도대체 《세계수준》이란 어떤걸 두고 하는 말일가. 우리는 그런걸 쓸수 없단 말인가. 너무 허무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보기도 한다. 셋째로는 이 시들이 삶의 밑바닥을 훑고있다는 점이다. 진솔한 시들이 특징적이다. 시의 진짜 감칠맛은 생활의 밑바닥에 있다. 감정의 솔직한 고백이라 할가. 이것이 그리 쉽지는 않다. 이는 시를 써본 사람만의 체험일것이다. 흔히 좋다는 시들은 솔직한 멋에 있다. 생 활의 진실, 인간 내면세계의 발굴, 진솔하고 소박하고 가식없는 시어의 고백, 고금중의 명 시들에는 이런 색채가 농후하며 복합적으로 표달되고있다. 시의 공명이란 왕왕 시인의 체 험이 독자 체험의 공감대에서 이루어지는것이다. 공명―공감―체험의 공감대, 이것들이 어 찌 보면 유기적인, 자연적인 통합에서 이루어질 때가 많다. 윤영애의 《늙은 량주》 참 실감이 나는 시라 하겠다. 《돌아보면 안해란/꼭 지난가을에 장독밑에 묻어/절인 무오가리 같은 존재/안해에게 난 무 엇일가/가만히 거울을 들여다본다/면도칼 갈던 성미에도 녹이 쓸어/흰수염 몇오리 턱밑에 말라붙어있고/아무렇게나 남은 이발 몇대/겨우내 이마를 벽에 쪼으며/처마에 매달려있는/ 삶은 강냉이 같은 존재가 아닐가》 이 시에서는 군때 묻은 늙은 량주의 몸내가 진하게 풍긴다. 가식없는 삶의 묘사, 실감나는 생활의 향기, 누구나 보고 아, 그렇다! 하고 동감이 온다. 《싸― 하게 맞혀오는 매운 성미/먹은 뒤에도 오래동안/입안에 여춤이 남아돌게 하는 녀자 /언제나 귀벽을 긁어주는 칼칼한 목소리/까드득―까드득―/이발이 저리게 하는 녀자》누구 나 체험하고있는 늙은 량주다. 밉고도 고운, 싸움을 하면서도 헤여질수 없는 령감 로친, 한뉘 원쑤라고는 입버릇처럼 하면서도 한시도 떨어질수 없는 사이, 《까드득―까드득》이 를 갈면서도 밤이면 등을 긁어주며 살아가는 늙은 부부… 삶의 밑바닥을 긁어대는 시란 명 시가 아닐수 없다. 솔직히 말해서 이런 시는 현대 한국시에서도 찾기가 힘들다. 공연히 자 기걸 너무 얕잡아보지 말아야 할것이다. 박정웅의 《자화상》도 상당히 멋지다. 《그림자처럼/무시당하고 짓밟히는 사람/마침내 자신이/그림자로 되여가는 사람》이 세상 에는 이런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그래서 《외롭고 지쳐보이는 사람》… 불운한 사람, 많 고도 많은 서민층의 군상을 불과 8행밖에 안되는 단시에 매우 잘 개괄하였다. 많은 내용을 짧게 표달하는 재간, 이것이 시의 본질이 아닌가. 한족들은 이것을 함금량(含金量)이라 한다. 짧은 시행에 금싸락 같은 값진것이 많이 포함될수록 좋다는 말이다. 시는 되도록 짧 게 써야 한다. 튕기면 챙챙 소리나는 언어, 값비싼 금속품이라야 한다. 여위여진 하늘을 짜면서 내린다는 김선희의 《비》, 사랑이란 두글자는 한획만 틀리게 씌여져도 글자마다 아파한다는 림금산의 시, 단 3행 시에서 독자들은 많은것을 사색하게 된다. 《밤마다/그녀 의 깊어가는 방으로/발자국 한줄이 곧추 뻗어가건만/그녀의 옆 빈자리는 시종 메워지지 않 는다》는 박문봉의 《과부》, 모두 함축된 생활의 진실이다. 《명금의 시작은 굵고/끝은 가늘다》라고 시작한 리성비의 《손금》도 매우 철리적이다. 비늘 떨어진 상처투성이 몸으로 강을 거슬러 지느러미 젓는 연어의 삶을 통해 사람들은 많 은것을 생각하게 된다. 시인의 재간은 자기가 말하지 않은 깊은 함의를 독자가 생각하게 하는것이다. 이것을 만약 줄글로 쓴다면 아마도 긴 소설이 될것이다. 독자가 음미하도록 사색을 이끌어주는것이 시의 공능이라 할가. 아무튼 시는 하나의 공명통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물론, 명시집에 수록된 젊은이들의 시에 티가 없는것은 아니다. 많은 주옥속에 간혹 티도 보인다. 미숙한것들이 있다는 말이다. 발견은 잘했고 시작도 잘 뗐는데 그것을 더 깊이 피 지 못하고 파다가 만것 같은 아쉬움이 가끔 보인다. 좀더 사색을 무르익혔더라면 진짜 명 시가 될번한것들이 있어 읽는 사람은 안타깝게 한다. 좋기는 많이 생각하고 짧게 쓰는것이 상책이다. 그리고 내가 잡지들에서 본 젊은이들의 좋은 시들이 여기에 수록되지 못했음이 아쉽지만 그거야 사람마다 보는 각도와 취미가 다르니 하는수 없는거고. 문제는 우리 선 배들이, 평론계가, 그리고 전 사회가 원예사가 되여 두각을 나타낸 새싹들을 잘 키우는것 이다. 가끔 우리의 신문 잡지들에 젊은이들의 좋은 시가 선보이는데 사람들은 여기에 너무 무관심하고 반응이 없다는 섭섭한 생각이 든다. 망울을 터친 이쁜 꽃은 끝까지 가꾸어야 하고 튕겨진 불꽃은 거기에 불이 달리게 해야 한다. 흔히 기성작가에 대한 분촌 없는 지나 친 평가나 지어는 우상화하는 문장은 많아도 신진작가나 시인을 고무하고 보듬어주고 이끌 어주는 따뜻한 평론이 적은것은 하나의 유감이 아닐수 없다. 우리가 모두 원예사가 되자. 그리고 알심들여 새싹을 키우자. 없다고 낮다고 나무리지만 말고, 알짜를 골라서 키우는 작업 다 같이 하자. 오늘의 기성작가나 시인도 옛날에 다 그 렇게 한걸음한걸음씩, 남의 손목에 이끌려 자라나지 않았던가. 그래야 우리 민족의 문단에 희망이 있게 되고 21세기에 우리 민족시단에 새로운 명인이 나타나게 될것이 아닌가!         ▲ 김철 시인     ▲ 김철 시인에게 중국정부에서 수여한 영예시민상 , 아주 특별한 공로가 인정될 때 받을 수 있는 상이라고 한다.    ▲ 김철 시인 가족에게 수여한 5호가정, 가장 모범적인 시민에게 수여되는 귀한 상이라고 했다.     ▲ 김철 시인이 남녘에서 출간한 같은 내용의 두 권의 시집     ▲ 김철 시인이 북경고려경제문화연구회 신년 행사에서 조선족동포들을 격려하고 있다.  ////////////////////////////////////////////////////////////   “황혼이 다가와도 저녁놀은 아름답게”         “나의 인생은 어언 석양길에 들어섰고 글쓰기에서도 오래잖아 황혼이 다가올 것이다. 최후의 피 한방울까지 불 태워 쓰는 글로써 내 인생의 저녁놀을 조금이라도 어여쁘게 물들이고 싶은 욕망, 아직도 살아있다.” _김응준     김응준, 그의 숙명은 문학이요, 그의 천명은 시인이다. 광풍이 련련히 몰아치고 고패치는 그 세월에 한때 억울한 서리를 맞고 변강 벽지에 가서 움츠러들어 거의 절필하다시피 했던 시절에도 그는 마음속 깊이 알게모르게 움틀거리는 문학에 대한 욕망을 앞으로 언젠가는 터치울 것이라는 다짐을 했다. 때는 일찍 그가 뿌리를 내린 중국 변강의 땅 훈춘으로 이른다.        가난한 학창시절   그는 1934년 10월 14일(음력) 길림성 훈춘시 밀강향 태평구(현 해방촌)의 한 농민의 가정에서 태어났다. 12살적 월사금을 내지 못해 학교에서 쫓겨났는데 그때 아버지는 검정귀버섯을 팔아 공부를 계속시키려는 목적으로 산에 갔다가 전염병(왜놈들이 패망하기 직전 동북대륙을 휩쓸던 그 몹쓸 전염병 콜레라로 인해)에 걸려 결국 열흘만에 사망하고 연이어 삼촌과 여동생을 모두 잃었다. 태평소학교를 다녔던 그는 어릴적부터 공부를 유난히 잘하였지만 가난한 살림때문에 부득불 학교를 중퇴했어야만 했다. 이젠 농사를 하려고 하던 찰나, 1942년 로을룡선생의 간곡한 권고 하에 그는 2년간 짚신을 신고서 밀강소학교에 통학을 하게 된다. 그 시절, 가난한 살림에 도시락을 싸갖고 가지 못하여 배고픔을 달래러 마을 관자집에 들어가서 타래떡 냄새를 맡군 하였는데 그렇게 향기로울 수가 없었다. 5,6학년을 밀강소학교에서 마치고 또 다시 집안일을 도우려고 다짐을 하였다가 초중입학시험 일주일 전 전학손선생의 “초중에 입학하면 5원의 조학금을 받을 수 있고 또한 기숙사에도 들어갈 수 있다. 절대 포기하지 말고 공부를 계속하라”는 의미심장한 얘기에 생각을 바꾸었다. 후에야 그는 그때 전학손선생이 통신학부에 “앞으로 계속 노력하면 우수한 머리에 무한한 발전을 기할 것이다.”라는 글을 쓴 것을 보고 희망찬 앞날에 대한 신심을 가지게 되었다. 초중입학시험 결과 12명중 2명이 입학하게 되었는데 그도 포함되었다.    훈춘중학에 입학하여 과외독서와 글쓰기에 매진한 그는 작문경색에 나가 우수상을 받게 되었는데 이는 앞으로 걷게 될 문학의 길에서 재능과 소질이 있음을 보여준 사건이라 할수 있다.    고중에 올라갈 무렵인 1952년, 그는 리학용 담임선생님의 권고로 학비가 안드는 연변한어사범학교(로동자문화궁 서켠에 있는 공상은행 사무소 자리에 허름한 단층 벽돌집)에 입학하였다. 이는 나중에 연변대학 중문계로 입학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이 학교에서는 자연과를 설치하지 않고 주로 중문을 몇개 과목으로 나누어 배우는 외에 조선어, 정치, 력사, 지리, 음악 등 과목을 더불어 가르쳐주었다. 자연과학을 전공할 길은 막히고 문과를 전공하는 길밖에 없었다. 초중시절 문학에 흥취를 갖고있었고 작문 경색에서 입상한적도 있었던 그는 그곳에서 문학의 길을 가려고 다짐하였으며 고리끼와 푸쉬킨, 조기천 등 문학거인들의 작품을 남김없이 열독하였다. 드디어 1954년 초 처녀작  이 연변문예에 발표되었다. 그 이듬해인 1955년 5월에는 작품 가 역시 연변문예에 발표 되었는데 1956년 8월 연변작가협회 창립시 학생신분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문예상과 함께80원의 상금까지 받아안았다. 그 80원의 상금으로 그는 여동생을 데리고 볼품없는 초가집에서 살고있는 어머니에게 50원을 보내여 새로이 집을 장만하게 하였다. 1955년 그는 연변대학 중문계로 입학하게 되는데 1956년 말부터 1958년 7월까지 북경대학 중문계로 연수를 떠난다. 이러한 좋은 기회가 따라준 것은 연변한어사범학교 시절인1955년의 사연이 계기가 되었다. 그해 5월, 교도주임은 우수한 학생들을 불러 연변대학 중문학부에 입학할 자격에 부합되는 학생들을 선발하겠다고 선포하였던 것이다. 운동대회에서 문예대회, 졸업생대표발언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서 우수한 학생이었던 그는 마침내 연변대학 중문학부에 입학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그가 북경대에 연수를 가게 된 첫걸음이었다.    연변대학 중문학부에서 그는 , ,  등 작품을 발표하였고 북경대학 시절에는  등 다수의 글을 써냈다. 북경대학은 중국 최고의 학부인만큼 일류의 학습환경을 구비하였고 동방어문학부에는 도서들이 굉장히 많았는데 그는 이 자원을 충분히 이용하여 열람식에서 2년동안이나 폐문독서를 하며 문학지식을 늘였다. 고문과 열독에 몰두하였으며 라는 한문으로 된 7언시도 발표하였다.        훈춘에서의 20년 세월   시작이 좋아 한창 부풀어오르던 이 시절, 반우파투쟁이 일어나 기술실무만능주의(白专道路: 문학에만 열중하고 정치적활동에 적극적이지 못하였다.)로 “우파언론이 있고, 공청단원 1년간 보류, 사용제한”(有右派言论, 留团查看1年, 限制使用)이라는 처분을 받고 1959년 8월 훈춘시 제2고중에 분배받게 된다. 그는 그곳에서 14년동안 한어교원사업에 충성하였고 모범공청단원이 되면서 사회주의 교양운동으로 인해 공작대대장 리용눌으로부터 1965년 6월에 재해방 되면서 입당을 하였고 부교무주임으로 승진하였다. 문학에 대한 욕구를 제대로 표출하지 못했을 그때, 리상각과 김성휘, 김철 등 문학친구들의 권고로 다시 필을 든 그는 , , ,  등 작품을 써냈다. 1973년, 그는 훈춘시 서기 김성화의 추천으로 훈춘시 외사반공실 주임으로 전근하게 되어어 6년간 그곳에 있었다. 그후 1978년 즈음 훈춘시 진교향당위서기로 1년간 종사하다가 1979년 3월 훈춘을 떠나 연변작가협회 부비서장으로 임명되었지만 편제가 없어 1년간 연변군중예술관 “해란강”잡지(문예지)의 편집을 맡게 되었고 1980년 3월부터는 연변인민출판사에 30년의 청춘을 바쳤다.        문학의 봄날   문학의 꽃망울을 틔우려다 사그러든 그는 다시 문학의 봄날을 맞이하게 되었다. 1980년대 말, 지식분자들이 걸어온 역사를 돌이키며 해방받지 못한 울분을 토한150행에 이르는 를 발표하였고, 1984년 10월에는 아내를 잃은 슬픔으로 쓴 연변문학상을 수상한 (대표작가운데의 하나)를, 1980년대 말에는 100수에 달하는 인생3부작인 연작시 (연변문학상 수상작품), 사랑주제 , 겨례의 역사 를 써냈다. 이 시기에 쓴 가요 은 2007년도 장백산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1993년 해외문물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그는 1993년에는 러시아, 1996년, 1997년, 2000년 3차례에 거쳐 약 2년간 미국에 머물었다. 그 시기 그는 여행을 하고 글을 쓰며 손군들을 키우는 등 일들을 하였으며 사랑하는 딸을 잃은 아픔으로 라는 기행시집을 써냈다. 그리고 자본가의 상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맑스의 중 잉여가치의 이론을 직접 체험하기도 하였다. 그곳의 선진문화를 폭넓게 받아들여 문학의 전통에서부터 현대에로의 탈바꿈을 시도한 그를 평론가 우상렬은 “인류를 내다보는 시인”이라고 칭하기도 하였다.    2006년 3월, 그는 연변시인협회를 창립하여 현지창작과 도서출간, 시상식 등과 같은 활동들을 활발히 펼치고있다. 그는 장백산의 웅위함은 수많은 여러 봉우리들에 있다고 말한다. 시인협회의 창립 역시 시의 새로운 도약을 위하여 좋은 시를 뽑아 웅기중기 솟아서 이채를 돋구어 새로운 각자의 향기를 풍기게 하기 위함에 있다고 한다.      돌아보면 아득한 세월, 류수처럼 구름처럼 무정한 세월은 흘러흘러 그의 생에도 어언 황혼의 석양무렵이 다가왔다. 이팔청춘에 아침노을을 곱게 짜보려고 직기에 올라탔다가 때아닌 서리를 맞고 광풍에 휘말려 가슴깊이 상흔을 남긴적도 있었다만 문학에로의 사랑, 시에로의 사랑은 올곧이 인이 박혀 그한테서 떨어지지를 않았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좋은 시절을 맞이하여 봄바람을 타고 꽃노을을 짜는 직기에 다시 오른지도 30년의 세월, 그리고 지금도 짜고있는 저녁노을쪼각이 앞으로 우리의 겨례가 나아가는 앞길에 한송이 꽃댕이나 한오리 옷고름으로 날릴수만 있다면 그는 흔쾌히 웃을 것이다. “시쟁이”인 그는 인생의 황혼이 바득바득 다가오는 석양무렵에도 그냥 분초를 다투어 연소하고 있다.        김응준시인 략력   1.2.3.4.5.6.7.8.9.10.11.12.13.14.15.16.17.18.19. 김응준의 소년시절   김응준의 청년시절 2000년, 샌프로시스코, 유람선위에서의 김응준   해란강닷콤 류설화 기자 ==================================          [김응준ㆍ1934년 10월 14일(음력) 길림성 훈춘시 밀강향 태평구 출생.ㆍ1959년 연변대학 중문학부 졸업 후 훈춘시2고중, 훈춘시 외사판공실 근무.ㆍ1979년 이래 문학편집에 종사, 연변인민출판사 편심, 중국작가협회 회원, 연변단풍수필회 부회장 겸 비서장.ㆍ1954년 처녀작 발표 후 시집 『별찌』, 『남자와 여자와 사랑과 시』, 『사랑새를 기다린다』 등 다수ㆍ시초 『사랑의 애가』, 연작시 『불타는 황혼』, 가요 『사랑아 어찌 늙으랴』 등 40여 편 수상.]   시적상관물 응용해 새로운 이미지 창출한 력작      "그쯤에 나는 원래 쓰던 나의 사실주의의 재래식 시를 어수룩하고 재미없게 보고있었습니다. 이미지즘의 시를 쓰려고 했으나 완전히 현대파의 우점을 융합해서 자기의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궁리하고 있었습니다. '나이아가리폭포'가 그 실험작이라 할수 있습니다."    김응준 시에서의 획기적인 돌파일 뿐만 아니라 우리 시단에서도 보기 드문 우수작이라고 정평나 있게  한 "나이아가라폭포"창작경위를 물었을 때 김시인은 이렇게 말머리를 뗐다.     1996년 5월말부터 12월초까지 반년 남짓한 기간 김시인은 맏딸 홍화의 덕분으로 미국에 체류하면서 세계 최강의 경제력과 최고의 과학기술을 소유한 부요지국을 편답할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하여 당시까지 세계에서 제일 높았던 시카코의 시얼즈청사며 현대총아들의 모임인 뉴욕의 마천루빌딩을 바라보면서 경탄했고 필라델피아의 독립운동시기의 거대종을 두드려보면서 감격하기도 했다.     "그때 우연히 뉴욕교외 마우드 키스코에 사는 치과의사 겸 시인인 장석열선생을 만나게 되였는데 우리는 서로 현대시에 대한 견해도 교류하고 즉흥시도 주고 받으면서 유쾌히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미국을 느껴 보고픈 갈증은 대도시 구경만으로는 풀 수가 없었던 시인은 미국의 대자연에 눈길을 돌리게 됐다. 순수, 청신, 거대의 상징인 나이아가라폭포에 그 목표가 정해졌다. 딸애가 아버지를 위해 전문 마련했다는 '링컨'표 승용차에 앉아 나이아가라폭포를 향해 떠나는 마음은 하냥 들뜨기만 했다. 운전대를 쥔 사위는 나이아가라폭포에 대해 신나게 설명해주었지만 직접 보지 않고는 그 진가를 가늠할 수 없는지라 마음이 조급해지기만 했다. 9월 13일, 이른 새벽에 뉴욕에서 출발한 차는 눈깜짝 할 새에 천리길을 달려 오후나절에 버팔로시에 도착, 멀리서 쿵쿵 울려오는 폭포소리가 벌써부터 마음을 설레이게 했다. 기진맥진한 사위는 구경을 래일로 미루자고 했으나 조급해난 시인은 폭포가로 당장 달려가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었다. 하여 같은 숙박집에 들어있는 버팔로대학원 박사연구생 허원수씨의 안내로 급기야 폭포유람에 나섰다.     뉴욕주와 카나다와의 국경을 흐르는 나이아가라강에 있는 나이아가라폭포는 세계에서 제일 큰 폭포인데 락차가 51메터, 너비가 1240메터이다. 원래 고우트 섬에서 두갈래로 갈라져 미국폭포와 카나다폭포로 나누여 졌는데 지금은 유람선에 앉아 계선 없이 두 개 폭포를 마음대로 유람한다고 했다. 매일 찾아 오는 유람차만 해도 1만여대, 1년 사시절 관람인수는 무려 1200만을 넘긴다고 하니 엄청난 관광지가 아닐 수 없었다.     차가 폭포근처에 다가갈 수록 쿵쿵하는 폭포의 굉음이 더욱 커져 가슴마저 두근거렸다.     "그 천둥같은 굉음은 십여리 밖에서 부터 들려 오고 금장에 이르러 보니 그 기세는 천군만마가 질주하는 듯이 호대하고 그 모습은 밤하늘의 은하수가 내리 걸린 듯이 장관이였습니다. 해빛 아래 아롱거리는 물보라는 칠색무지개를 만들고 있었는데 아름다운 무지개가 폭포에 가로 걸려있어 문자그대로 수정궁에 들어선 듯한 황홀한 극치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승강기를 타고 50메터 벼랑을 내려가 7.5딸라의 유람선표를 사가지고 거기서 발급해주는 하늘색 비닐비옷을 입고 유람선에 오른 시인은 마음이 더욱 들뜨기만 했다. 물보라가 아름찬 물안개를 만들고 있는 속으로 들어가는 유람선, 그저 쿵쿵하는 폭포의 굉음만 들릴 뿐 폭포는 보이지 않았지만 완전히 딴 세상에 온 듯한 기분이였다. 참으로 혼자서는 구경하기가 아까운 경관이였다. 서로 면목없는 이국 친구들이였으나 엄지손가락을 내밀면서 감격의 의사를 나누기도 했다. 조선족처럼 생긴 두 아가씨가 옆에 다가서고 있는지라 조선말, 한어 등으로 물었더니 일본어로 대답했다. 일어를 구사할 수 있었던 시인은 격동된 심정을 터놓았다. 교또에서 온 대학생처녀들은 세계 여러 나라를 유람했지만 이렇게 굉장한 경치는 처음이라고 감탄하고 있었다.     머리가 젖든 말든 비옷모자를 벗어 버리고 폭포를 바라보았다. 거대자연의 순수 앞에서 물보라 같은 자신을 발견한 시인인 격앙된 목소리를 뿜지 않을 수 없었다. 아, 이건 대자연의 교향곡이다. 저 폭포는 수천수만의 악사가 아니고 뭔가. 말발굽처럼 반형으로 둘러선 저 악사들은 천하제일의 곡을 연주하고 있구나.    숙박집에 돌아온 시인은 낮에 보았던 그 장쾌한 폭포의 출연이 자꾸 눈에 밟혀와 도무지 잠을 청할 수가 없었다. 침대에서 벌떡 일어난 시인은 필을 찾아 쥐였다. 쓰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미국에 온 후 이미 서양의 현대시론과 현대시들을 많이 읽고 있었는지라 이번의 시만은 이미지수법을 도입하여 새롭게 써보려고 작정했다.     "폭로는 다부작의 교향곡이다. 이것이 바로 종자이며 발견이다. 이것을 쥐고 다른 것은 다 버리자. 그 모습, 그 소리는 교향악대이며 교향가수이며 교향곡인 것이다. 이 세상 그 어떤 교향곡도 대자연의 교향곡보다 못하다. 자연만이 가장 아름다운 교향곡을 울릴 수 있다. 모든 때를 여기서 깨끗이 씻을 수 있다."    김시인은 필을 든 채 혼자소리로 중얼거렸다. 어느새 필이 날려졌다.     하얀 너울을 쓴     수천만 가수와 악사들    휘우듬히 반원으로 둘러서서    장엄한 교향곡을 울린다.    튕기는 하아얀 목소리    하아얀 마음에 젖어    속세의 어지러움과 소음    쥐 죽은 나라로 달려가고 청순한 순수만 메아리쳐    구중천을 휘젓는다.    천만년 부르고 불러도     끝이 없는 다부작 연주     그 속에서 한번만 젖어 보아도     혼령마저 시원히 가셔지는     너그러운 대자연의 교향곡이여!    창작된 시는 대해를 건너 연변땅으로 날아왔다. 연변일보 문예부 편집으로 있었던 최룡관씨는 김응준 시인의 이 시를 처음 받았을 대를 이렇게 회상하고 있다.     "금싸락을 얻은 듯이 기뻤다. '나이아가라폭포'는 실로 웅장하고 장쾌한 교향곡이였다. 처음에 이 시를 읽어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김시인이 이런 시를 쓰리라고 꿈에도 생각 못했기 때문이다. 60이 넘어서 새롭게 시를 시작한 그의 몸가짐이 실로 멋있었다." 그후 최룡관씨는 시론 "폭포가 울리는 장쾌한 교향곡"에서 이 시를 이렇게 평하기도 했다. "이 시에는 폭포에 대한 설명이나 해석이 한마디도 없다. 제목에 '나이아가라폭포'라는 명칭만 있을 뿐 본문에는 폭포라는 언어조차 비치지 않는다. 이 시에서 표현되는 것은 '너그러운 대자연의 교향곡'뿐이다. 내가 알건대 이미지시학으로 말하면 이는 시적 상관물의 응용이다. 시적 상관물은 시인의 받은 감수를 새로운 사물이나 사실로 표현하는 작업이다. 시적 상관물을 응용하는 것은 현대시의 정수를 응용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김시인이 추출해낸 새로운 사실이 나이아가라폭포에 대용되고 있어서 참신한 이미지 - 장엄한 교향곡이 되었다... 이제 폭포 앞에 선 시인은 폭포를 보는 것이 아니라 수천만 가수와 악사들이 하얀 너울을 쓰고 있는 장엄한 교향곡을 현장에서 보고있고 폭포를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교향곡을 듣고있는 것이다... 폭포와 교향곡은 완전히 다른 사물이지만 김응준시인에 의하여 하나로 일치되고 있다. 량자는 서로 침투하고 융합 되여 폭포이자 교향곡이고 교향곡이자 폭포로 되었다. 그 외에도 시인은 '목소리'와 '악음'에다 있지도 않는 색깔을 울림으로써 추상적 언어의 구상화에로의 전이도 실현 하였거니와 '하아얀' 목소리와 악음이라는 새로운 언어를 창출해내기도 했다."    "이미 10권 시집을 펴냈는데 이 시가 들어있는 미국기행시집 '그리움 천만리'가 가장 좋다는 얘기더군요. 솔직히 말해 창작 당시거나 지금도 '나이아가라폭포'가 정말 좋은 시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옆에서 다들 좋다고 하니 그저 글쎄 하는 마음일 뿐입니다. 아무튼 이 시에다 나는 나름대로의 환상적인 시세계를 그리려 한 것만은 사실입니다."    엊저녁에 내린 눈이 목화송이처럼 피여 있는 창밖을 바라보면서 김응준시인은 그때의 감격에 다시 젖어있는 것 같았다.    /////////////////////////////////////////////////////// 가족, 제자들과 연변시인협회에서 축하의 꽃묶음을 시인에게 드렸다. 8월 9일 오전, 중국조선족시단의 대표적인 시인의 한 사람인 연변시인협회 김응준회장이 80고령에도 왕성한 창작력을 과시하면서 19번째 시집 《사랑으로 가는 길》(연변인민출판사)을 출간하여 연변국제호텔에서 출간기념식을 개최하였다. 1934년 10월 14일에 길림성 훈춘시 밀강향 태평구에서 출생한 김응준시인은 1954년에 문단에 데뷔한후 시집 《별찌》, 《남자와 녀자와 사랑과 시》, 《김응준시선집》 등 18부의 시집을 펴내고 《세계명언》(공저), 《문학묘사사전》(공저), 《문학명작소개》(공저), 수필집 《짚신으로부터 구두에로》(2013) 등을 펴냈으며 《사랑아 어찌 늙으랴》, 《두만강 천리》 등 70여수의 가요를 창작하여 노래로도 중국조선족사회에 널리 알려졌다. 연변작가협회 문학상, 《장백산》문학상 등 수차의 수상경력을 가지고있는 시인은 1959년 연변대학 중국언어문학학부를 졸업하고 훈춘시제2고중과 훈춘시외사사무실에서 근무하다가 1979년부터 연변인민출판사에서 문학편집, 편심으로 사업하였다. 중국작가협회 회원인 시인은 퇴직후에 연변시인협회를 설립하고 회장과 시총서 《시향만리》의 주필을 맡고 활발한 문학창작활동을 하고있다. 웃줄 왼쪽으로부터: 김철, 채영춘, 림혜영, 최국철, 김응룡, 림장춘, 최삼룡, 채미화, 김동진, 김영능. 이날 출간기념식에서 저명한 시인 김철, 전임 연변주인대 부주임 리득룡(채영춘 대독), 연변주신문출판국 국장 림혜영, 연변작가협회 상무부주석 최국철, 연변시인협회 부회장 김응룡, 연변일보사 전임 부사장 림장춘(제자대표) 등이 축사를 하고 평론가 최삼룡과 연변대학 교수 채미화가 시인의 시와 시창작에 대하여 평론을 진행하였다. 제자들이 김철시인과 동희철작곡가와 함께 《선생님의 들창가 지날 때마다》를 열창하고있다. 이날 출간식은 시인의 출생 80주년, 문단데뷔 60주년, 19번째 시집 출간기념 등 다양한 내용으로 진행, 훈춘2고중시절의 제자들과 김철, 리상각 등 저명한 시인들 그리고 연변시인협회 회원과 연변작가협회 부분적인 회원 등 15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제자들의 축하공연과 연변가무단 가수들의 축하공연, 시랑송 등이 곁들여지면서 시인의 건강장수를 기원하고 시인의 시집출간을 기념하며 시인이 창작한 가요를 부르는 등 이색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제자들속에서 흥겹게 춤추는 김응준 시인(가운데 사람). 동희철(좌2)작곡가와 김철시인부부와 함께. ================================== 길림성조선족경제과학기술진흥총회 주관, 연변동북아문학예술연구회 주최 2014년 10월 18일 오후, 연길시 신라월드에서 개최된 연변동북아문학예술연구회 10주년기념행사에서 김철, 김응준, 조룡남, 리상각 등 4명 원로시인이 개혁개방 전후시기에 황페화되였던 우리시단을 구축하기 위하여 견마지로를 다하고 문단의 기틀을 잡아준 동시에 문학창작에서 거둔 성과들이 높이 인정되여 《시스승님》상을 수상했다. 1932년 일본 시모노세끼에서 출생한 김철시인은 20세기 50년대에 해방군예술단에서 활약하였고 신문기자, 문예편집 등을 거쳐 연변작가협회 주석, 연변문련 주석 등을 력임하였으며 1956년에 중국작가협회에 가입하였다. 문화대혁명시기 억울한 루명을 쓰고 4년간 옥살이를 하였다. 1982년 중국작가협회로 전근하여 중국작가협회 《민족문학》 주필을 담임하였다. 세계예술축전 대상(1956년 모스크바), 전국문학상, 계관시인상, 세계문화명인성취상, 한국해외문학상, 국무원특수공헌상, 세계문화예술공로훈장 등 다수를 수상한바 있다. 서정시집 《휴전선은 말이 없다》, 장편서사시 《새별전》 등 20여부의 시집을 출간하였다. 신봉철(오른쪽)회장과 오장권부회장이 김응준시인에게 시스승님상을 시상하였다. 1934년에 훈춘시 밀강향에서 출생한 김응준시인은 1959년에 연변대학 중문학부를 졸업하고 교원, 외사주임, 연변인민출판사 문예편집, 편심 등을 력임하다가 1994년 정년퇴직하였다. 2006년에 연변시인협회를 세우고 협회시전문지 《시행만리》를 창간하였다. 중국작가현회 회원, 연변작가협회 회원인 그는 1954년 서정시《념원》을 처녀작으로 문단에 데뷔하였으며 동요동시집 《꽃도 웃고 나도 웃고》, 서정서사시집 《별찌》, 《남자와 녀자와 사랑과 시》 등 19부의 시집을 출간하였다. 연변문학상, 장백산《모두모아》문학상, 연변주진달래문예상 공훈상 등 다수를 수상했다. 신봉철회장과오장권부회장이 조룡남시인에게 시스승님상을 시상하였다. 1935년에 훈춘현 춘화향에서 출생한 조룡남시인은 연변사범학교 졸업하고 교원으로 사업하다가 우파로 몰려 23년간 고생, 1979년부터 연변인민출판사 《아리랑》문학편집을 담당하였다. 연변작가협회 회원, 중국작가협회 회원, 연변작가협회 부주석, 연변주정치협상회 제7기, 제8기 상무위원 등을 력임하였다. 1951년부터 서정시 《해빙기의 강변에서》, 《영원한 미소》 등 서정시 500 여수와 《반디불》, 《제비네 학교》, 《딸랑강아지》등 동요 300 여수를 발표하였다. 시집 《그 언덕에 묻고 온 이름》, 《그리며 사는 마음》, 《고향마을 동구 앞에서》와 동요동시집 《반짝반짝 반디불》, 산문집《노래 저켠의 추억》등 이 있다. 리랑문학상, 천지문학상, 도라지문학상, 장백산문학상, 연변작가협회상, 연변주정부우수작가상, 연변주정부진달래문예공훈상, 길림성아동문학상, 길림성정부《장백산문예상》, 전국소수민족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1936년 9월 14일 조선 강원도 양구에서 출생한 리상각시인은 1961년-1996년 《연변》, 《연변문예》, 《연변문학》의 편집, 총편, 연변작가협회 부주석을 력임한 중국작가협회 회원이다. 시집 《샘물이 흐른다》, 《사랑의 꽃바구니》, 《두루미》, 서사시집《만무과원 설레인다》 등 10여부 출간했으며 《중국조선족구전민요집》, 중문번역시집《인생삼매》, 의형제시조집《민들레 홑씨 둘이서》, 문학리론집《시조와 시조론》 등 다수가 있다. 길림성민족문화상, 중국소수민족문학상, 중국작가협회 우수편집 영예상, 중국당대소수민족문학연구회 원예사상, 중국당대소수민족문학연구회 문학사과 1등상, 길림성장백산문예대상 다수를 수상하였다. 신봉철회장과 오장권부회장이 리상각시인에게 시스승님상을 시상하였다. 주관단위인 길림성조선족경제과학기술진흥총회(이하 진흥총회) 신봉철회장은 개회사에서 수십년간의 창작생애에서 거둔 4명 시인들의 문학성취와 업적을 높이 평가하고 다년래 진흥총회가 주관한 문화경제활동들을 소개했다. 그는 진흥총회는 《감동중국 조선족걸출인물평선활동》, 《길림성산재지구 조선족중소학교 취재탐방 조사연구》, 《정률성탄신 100주년 계렬기념행사》, 《남영전토템시문화축제》, 《동북3성 조선족서법, 미술, 촬영작품전시회》, 《길림성산재지구 조선족기업가탐방》 등 무게있고 큼직큼직한 활동들을 87차례 조직하였으며 앞으로도 《50년대 출생한 조선족중견작가좌담회》, 《고 리정문동지 기념문집출판》 등 다양한 활동과 행사들을 조직하게 된다고 하면서 조선족경제사회발전과 민족의 꿈을 실현하기 위하여 노력을 아끼지 않을것이라고 밝혔다. 주최단위인 연변동북아문학예술연구회 최룡관회장은 페회사에서 연구회가 걸어온 지난 10년간의 성과들을 회고하고 《시스승님》상을 수상한 김철, 김응준, 조룡남, 리상각 등 4명 시인들에게 열렬한 축하를 보냈다. (김철시인은 사유로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시상식에서는 또 스승님상을 수상한 시인들의 대표적인 서정시들이 랑송되였으며 허룡석, 림원춘, 남영전, 김만석, 오상순, 한석윤 등 문인들과 평론가들이 축사를 하였다. \\\\\\\\\\\\\\\\\\\\\\\\\\\\\\\\\\\\\\ 2007년 11월 14일 14시 04분  작성자: 김응준 ♧ 추모수필 ♧  우리 시단의 한 거성을 추모하며 김응준 우리 시단의 한 거성― 임효원시인이 지난 11월 19일, 간암이란 잔혹한 병마에 시달리다가 80세를 일기로 불행히 별세했다. 며칠전 리상각 등 몇몇 시우들이 문병하러 갔을 때까지만 해도 《감사하오!》 몇마디 말씀까지 하시던 분이 이렇게 빨리 가실줄은 몰랐다. 인간의 생명은 병마앞에서 너무도 취약하고 한 인생은 너무도 총망히 사라지는구나.  임효원시인은 일찍 1945년에 처녀작 시를 발표했고 문학에 큰 뜻을 품고 흑룡강성으로부터 우리 연변에 와서 정착하였으며 연변을 고향으로 삼고 사랑했다. 그는 60년이란 세월속에서 시로써 우리에게 본보기를 보여주었고 장시기 동안 한 지도일군으로 우리 문단을 이끌어오면서 로고를 아끼지 않고 많은 업적을 쌓았다. 림종전에는 우리 연변시인협회의 고문을 맡았었다.  임효원시인이 주필을 맡아하시던 1954년에 필자는 《연변문예》(지금의 《연변문학》 전신)지에 처녀작을 발표했고 1956년 연변작가협회창립시기에 임효원시인을 비롯한 선배님들의 추천으로 졸작시 《령을 넘으며》가 창작상까지 받았었다. 구호식 서정토로가 범람하던 그 년대에 임효원시인은 비유와 상징적수법으로 《길짱구》, 《아, 산딸기는 익어가건만》 등 개성적인 시를 써냈다. 이런 시들은 그 비뚤어진 년대에 억울하게 《독초》로 몰리워 비판을 받았지만 실제는 시적형상이 아름다운 생명시, 련애시였다. 우리 일대는 임효원시인 등 여러 선배시인들의 많은 수작들을 따라배우면서 문학의 길에 들어섰고 또 성장해왔다.  1978년 말과 1979년 정초로 기억된다. 우리 나라 동란의 시기가 끝나고 연변작가협회가 방금 사업을 회복하자 주석을 담당한 임효원시인은 김철시인(부주석 겸 비서장)과 함께 당시 필자(진교향 당위서기)가 일하는 훈춘으로 두번이나 찾아왔었다. 두번째로 왔을 때 두 시인은 현당위 책임자의 동의를 얻었다면서 나의 집으로 오셨다. 임효시인은 나의 손을 굳게 잡고 연길에 가서 함께 문단의 일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시를 쓰라》고 신신당부했다. 1979년 3월, 나는 과연 본의 아니게 푹 빠져있던 행정사업에서 벗어나 작가협회 부비서장 명의로 연길로 전근되였고 임효원시인과 김철시인의 수하에서 일하는 한편 시창작, 문학편집을 정식으로 하게 되였다.  한사람의 생애에 큰 영향을 주는 기회는 여러번 주어지지 않는다. 나를 《비문학(非文學)》의 길에서 본격적으로 문단에 진출하도록 절호의 기회를 마련해주고 몸소 이끌어주신 선배님의 그 은정과 고마움을 영원히 잊을수 없다.  1984년 3월초, 연변작가협회에서 조직한 현지창작조 십여명 성원들은 화룡현으로 갔다. 임효원시인은 가장 년로한 분이였다. 그는 원래 그리 건강하지 못한데다 감기까지 걸려 간신히 우리와 동행하였다. 여러 후배들이 먼저 귀가하라고 권했지만 그는 《나도 좀 단련해야지!》라고 하면서 화룡현의 두만강일대와 평강벌일대를 십여일간에 걸쳐 편답했고 좋은 시 몇수 써냈다. 그때 제일 인상깊은것은 서정시 《여울소리》이다. 이 시는 후에 임효원시인이 가사로도 개작하여 좋은 곡이 붙어서 널리 불리웠다.  임효원시인은 많은 후배들을 양성했고 별처럼 빛나는 시들을 써냈다. 그는 평생에 《진달래》, 《오월은 노랑저고리》 등 여러 부의 시집을 출간하였다. 그의 많은 시들은 상징법, 비유법을 잘 운용하여 아름다운 시적형상이 부각되였고 간결한 언어속에 깊은 뜻을 묻어두었기에 음미할 멋이 있다. 민족의 얼을 읊조리고 인생, 향토, 애정에 바쳐진 주옥 같은 시편들, 이를테면 《아, 오월은 노랑저고리》, 《백의동포》, 《길짱구》, 《거친 수림에》, 《아, 산딸기는 익어가건만》 등 수작들은 우리의 심금을 울려줄뿐만아니라 후손만대에 길이 전해질것이다.  우리 시단의 한 거성― 임효원시인이여, 몸은 비록 갔으되 시는 큰 별로 길이 빛날것이다.   2007년 1월호 \\\\\\\\\\\\\\\\\\\\\ 추억이 살아있는 집》을 돌아보며  ―김철 신작시집 《황혼의 로맨스》를 읽고  김응준  우리 중국조선족시단의 거두인 김철시인은 이미 고희에 올라선 만년에 나라안팎의 문단활동에 아주 바삐 도는 와중에도 게으름없이 펜을 놀려 하냥 타작의 본새를 보임으로써 이미 30부의 시집을 펼쳐내는 기꺼운 성과를 올리고있다. 그가 최근에 출간한 시집《황혼의 로맨스》를 감명깊게 읽어보았다. 이 시집에는 김시인이 인생의 황혼무렵에 서서 홀러간 자기의 인생, 고향, 안정 등에 대한 추억과 사고가 맥맥히 흐르고있으며 많은 시편들이 감정이 절절하고 시적형상이 아름다워 독자의 가슴을 울리고있다. 시집에는 고향을 그리는 사향(思鄕)의 정회를 읊조린 시편들이 많은데 그중 《추억이 살아있는 집》을 돌아보면서 필자의 감상을 적어보려 한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인지상정(人之常情)으로서 고향의 자연이나 인문을 두고 많은것을 쓸수 있지만 김시인은 인간의 정서를 가장 쉽게 건드릴수 있는 고향집을 둘러싸고 상상의 날개를 펼치였다.  낮에는 버얼건 해가 알몸으로  퇴마루에 누워 뒹굴고  밤이면 하아얗게 분바른 달이   늘 기웃거리는 집…  이 시는 첫련부터 독자를 비록 아득한 옛말이지만 눈앞에 선히 떠오르는 어여쁜 현장으로 끌고 들어간다. 시인이 표면에 써낸것은 퇴마루의 《해》와 《달》이지만 실지는 상징적인 수법으로 독자에게 떠올리는것은 천진란만하게 벌거숭이로 뒹굴며 자라나던 동년시절이며 분바르고 찾아와 갸웃거리던 소꿉시절의 곱살스런 소녀의 모습이다. 이 어여쁘고 정겨운 집에서 시인은 《장국을 많이도 먹었습니다》라는 소박한 구절로 장국을 좋아하는 우리 백의민족의 한 생활특성을 표현해주었고 자기를 키워준 고향집에 대한 뜨거운 감사의 정을 표달하였다.  두번째 련에서 김철시인은 집의 담장을 기여오르다 지친 《노오란 별》, 《꽃별》(아마 김시인이 별처럼 예쁜 꽃이라 하여 조합시킨 단어인것 같음)과 《시들해진 담쟁이》의 형상을 부각했는데 그 본의는 꽃과 풀을 쓰는데 그치는것이 아니라 어린 시절 황홀하게 꽃핀 담장을 넘어다니다 지쳐 잠들었거나, 가난한탓으로 여위여지긴 했지만 부드러운 마음은 변함없이 《연한 바람을 휘젓고있는》 인간의 형상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이것 역시 은유적인 기법이 묘하게 운용된 일례라 하겠다.  세번째 련에서 김시인은 추억이 살고있는 이 고향집을 어머니께서 욕먹고 아버지께서 매맞던 일까지 모두 《사랑》으로 승화시켜 모든것을 고마운 감정으로 노래하며 세월의 풍상에 고향집은 찌그러졌지만 그리움과 사랑의 정은 《추녀밑에 깔려있고요》로 장생함을 읊조리면서 인차 다음 련의 주정토로로 과도한다.  금의환향 바라시던 두분의 말씀이  지금도 귀전에 쟁쟁하건만  그렇게 못하는 내 신세라  공연히 남의 탓만 같아 한스런 세월  그렇다, 자식을 낳아키움에 고생 많은 부모들은 자식들이 출세할것을 바라며 또 출세하여 귀향하는것을 크낙한 자랑으로 알고 락으로 여기며 자식들은 자기를 키워준 부모님의 은정에 고향의 은정에 무엇으로나 잘 보답하려는 선량한 마음을 지니고 고향을 떠나며 또 흔히는 고향을 떠난 다음에도 그렇게 하겠다는 결의를 잊지 않고 살아간다. 하지만 세상살이란 흔히 그대로 잘 이루어지는것이 아니여서 늘 향수에 빠지거나 통한과 죄책까지 느끼게 되는것이다. 부모에게 효성 다하지 못하고 고향에 보답하지 못한 떠돌이 불효자의 그 한이 진솔하고 친절하게 표현된 대목이라 보여진다.  울고 웃는 변덕스러운 창상의 세월에 고향집 우물도 인제는 말라버리고 가난에 의해 억압에 의해 《설음을 토해내던 청개구리도》 자취를 감추었다고,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한스레 읊은 다섯번째 련을 과도하여 마감련에서 김시인은 인생의 무상함을 아래와 같이 솔직하게 읊조린다.  아리송한 기억속으로   증발해버린 고향의 정  그래도 고향엔 예와 다름없이  철이 되면 봄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네요  김철시인의 년보를 들추어보면 그의 고향은 한국 전라남도 곡성이니 고향집도 거기에 두고있는것이다. 김시인이 오랜만에 이 고향을 찾아가서 지은 《가시든 살점》이라고 통절하게 읊은것은 바로 그 뼈아픈 마음의 소산이라 보아진다. 그제날 침략자에게 쫓기고 가난에 몰려 떠돌이하던 불우의 세월은 물론 오늘 현실에 이르기까지도 이러저러한 여건으로 인해 고향에 고향집에 가보고싶어도 자유로이 가볼수 없는 형편이다. 많은 시인들은 수십년을 지나가도 고향에 대한 기억이 아주 또렷하게 살아있는것으로 쓰고있지만 김시인은 자기의 개성적인 생활체험을 솔직하고 진실하게 기억이 아리송해지고 고향정이 바래지는것으로 독특하게 썼다. 인생의 무정과 무상을 자연의 유정과 영생을 형상적으로 깊이있게 표현하여 독자에게 긴긴 사색의 여운을 남겨준다.  《추억이 살아있는 집》은 그 편폭이 좀 길다는 느낌이 가긴 하지만 총적으로 김철시인의 원 스찔의 발양으로서 재래의 사실주의적인 창작기법에다 현대화의 은유, 상징 등 기법을 재치있게 도입하여 고향에 대한 숭고하고 경애하는 정회를 세련된 언어로 절절하게 읊조린 성공한 시편으로서 필자의 가슴을 깊이 울렸을뿐아니라 여러 독자들의 심금도 울려주리라 믿는바이다.  2007. 5. 23  2007년 7월호  
1441    시문학 부흥의 묘약은 어디?... 댓글:  조회:4060  추천:0  2016-05-18
중국 시문화의 몰락 그리고 일견                      허동식   1     곁에 동년배 시인이 한분 있다. 언젠가는 열혈남아로서 詩作도 엄청나게 했었고 대학교 詩社의 회장도 지냈으며 지금은 대학교 선생으로 일하는 시인의 시집 한권을 얻어 읽었다. 좀 미안하기는 했지만 나로서는 끝까지 읽어내려갈수가 있는 그런 詩作들은 아니였다.   시인은 지금은 시창작을 그만두고 소설을 쓴다고 한다. 인터넷에 인기소설을 많이 연재했고 또 출판도 해서 많이 판매되여 돈도 벌었고 동료들로부터 명과 리를 일거량득한 유명인물이라고 부러움을 받으며 산다. 그래서 시집외에도 시인의 소설책도 안받침하여 받았는데  나로서는 읽어내려갈 자신이 없는 소위 대학생생활소설이라  그만 책장에 넣어버렸다.    물론 사람마다 흥미가 다르고 사는 재미가 다르겠지만 나는 과거에는 정열적인 순수 문학도였고  소박한 詩情을 너무나도 틀에 째이게 표현하던 (시인의 시에 대한 나의 느낌) 시인이 현재는 독자들의 구미에 따라 소설창작도 아닌 소설을 하는 상업형 작가로 대전환된데 대하여 조금 아쉬움을 느끼면서 그 시인의 문학창작의 대전환에 대한 의심으로부터 다시 20세기 80년대 말엽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시가 독자들을 많이도 잃어버렸고 중국의 시인들이 어떻게 보면 漫長하기도 한 이 세월을 침묵으로만 대하는 현상을  소위 중국 시문화의 몰락이라 이름짖고 그 현상과 근원에  대하여 좀 생각해보고 싶었다.   2   중국은 먼 옛날부터 詩國이였다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사용하는 문자가 표현수단이 이미지적인 문자이고 또 유학의 學과 術을 바탕으로 삼은 과거시험제도를 대표로 하는 문화전통의 원인으로 말미암아 음운문이 아주 각광을 받아왔었다. 그래서  중국 전통적인 인테리들의 공부는 시공부가 많았었고 시를 모르면 인테리(士)라고 말할수 없을 정도였다. 따라서 시문화는 관방문화권과 귀족문화권 그리고 인테리문화권만이 아니라 민간문화권에서도 절대적인 중심을 자리매김하여 왔었다.   중국고전소설의 대작으로 꼽히는   도 사실은 명나라 후기부터 시작되는 市井문화권 산물로서 에 평민들이 모여들어 선생의 를 얻어듣던 시대의 이야기 각본에서 기인되였으며  그 시대에는  문학의 高品에 전혀 끼이지도 못했었다.   중국의 문학적인 목적을 지닌 서사문학은 근대와 현대를 거치면서 서방문화와 서방소설을 접하고 백화문운동을 해서부터 시작된다. 그 뒤에는 파금 전중서를 비롯한 소설 名家들도 많이 나타났고 20세기 30년대로부터 서서히 문학의 서사시대로 진입하였다. 하지만 그러한 문학쟝르형식의 전이과정에서도 중국문학은 시문화와 완벽한 리탈을 한것은 아니다.  深厚한 시문화 우세를 빌어 국난시기와 격변시기에는 詩國 이름에 손상이 없도록 곽말약  애청 등  훌륭한 현대시인들을  배출하였었다.   당대에 들어서서는 비상시기였던 50년대로부터 70년대 초엽까지는 시를 쓰고 읽는 사람도 많았고 全民이 시를 쓰는 애국운동까지 했었지만  별로 훌륭한 시인들을 낳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70년대 중엽에 발생했던 북경시민들이 천안문광장에 모여 주은래총리를 기념하는 집회와  을 분쇄하던 사회정치사건을 배경으로 北島를 대표시인로 하는 몽롱시파가가 중국의 시문화사의 또 하나의 크지도 작지도 않는 고봉기를 만들었었다.        하지만  80년대말엽으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서사문학의 상대적인 번영과는 판이하게 시문학은  독자군체가 많이 줄어들고 있으며  점차적으로 중국시인의 사회지위 사회영향 등이  아주 미소해졌다.   내가 대학을 다닐적에는 문과생은 거지반 시집을 몇권씩은 챙기고 있었는데 요새 우리 회사에 취직하는 대학생들을 보면 태반이 문과생이기는 하지만 조금이라도 시를 좋아하는 사람이 별로 없으며 집사람 학생들을 보아도 시를 좋아하는 대학생들이 별로 없다. 대학생들마저 시를 별로 읽지를 않는다면 서점의 시집이 잘 팔리지않는다는 문화현상은 리해하기 아주 쉬운 일이다. 그리고 나 자신을 볼 때에도 전에는 시를 자별나게 좋아했느데 요새는 시 읽을 기분이 많이 줄어들고 있다. 이러한 시문화현상을 나는 중국시문화의 몰락이라 칭하고싶다.   3     경극을 비롯한 중국의 전통적인 희곡들이 거의 박물관에 보존되여 가듯이 중국의 시와 시인도 이제는 자취를 감추어버리는것이 아닐가?   眼下를 둘러보면 시와 시인은  냉대를 받지만 나의 생각에는 아무것도 아닌 超女들이 크게 환대받고 있으며 또 새로운 문화형식과 문화현상들이 우후죽순처럼 나타나는것들을 보면서 나는 詩徒로서 조금은 당황감을 다소 지니게된다.   나는 중국 시문화가 몰락하는 원인은 우선은 문화표현교류수단의 다양화와 중국국민경제의 쾌속적인 공상업화와 국민들의 물질생활의 향상 반면에 내존하는 非적응성이라는 객관원인에서 찾아보고싶다.   문화가 언어와 문자에만 크게 의뢰하던 과거와는 다르게 과학기술의 발전과 리용에 따라 현시대는 여러가지 표현수단이 중겹으로 사용되는 시대이다. 문자에만 종이에만 매달리던 사유가 현재는 테레비요 인터넷이요 하는  여러가지 현대적인 표현교류수단을 리용하고 있으며 그래서 빠르게 전수하고 빠르게 받아들이고 빠르게 보급되는 소위 快餐문화가 주요한 문화표현교류형식으로 변해감에 따라 언어문자가 아닌 符號들이 조금은 강제적이고 폭력적으로 우리의 사유방식과  문화방식을 영향주고 간섭하고 또 계층의 생활방식을 지배한다.따라서 언어문자와 인쇄업을 표현전달수단으로 하는 시문화는 자연히 그 수단의 전통성과 어느 정도의 을 필수로 하는 詩文자아요구로 하여 자연히 독자들을 많이 잃어버리게 되였고 시문화와 시인은 부득불 사회지위의 하락을 맞이하게 된다.     거의 30년이 되는 중국의 개혁개방은 사실은 선진적인 공상업시대로 돌입하는  초급단계이다 .중국은 기나긴 농경사회를 거치였고 또 수십년에 달하는 침침한 계획경제시대와 가난에 시달리다가 갑자기 공상업화의 물결에 휘말려들었기에 공상업시대의 視角과 높이라는 다른 차원에서 진행하여야 할  전통문화정리를 미처 끝내지 못한 사정이며  어떻게 보며는 버리지말어야 할 문화전통을 많이도 잃으며 또 허겁지겁 버리기도 한다. 중국시문화도 당연히 그 재화를 입고있다. 공상업사회의 혜택을 입어 물질생활수준의 향상되는 반면에 詩徒들을 포함한 중국의 인테리들과 국민들의 삶은 개인소유시간의 소실이 많아졌으며 또 제한된 개인시간소유내에도 가볍게 쉽게 오락적이게도 접촉할수 있는 문화생활형식이 많아졌으므로 자연히 인간의 정서와 사상을 조금은 발로하는 특징을 지닌 시문화를 버리고 꺼리고 있다. 快餐문화와는 달리 상대적으로 시간소모가 길고 정서적인 대가를 요구하는 시문화는 상술한 사회변혁조건하에서는 렬세에 처하여있으며 또 공상업사회의 초급단계에 보여지는 중국인테리들과 국민들의 自若이 부족한 非적응성은  중국의 시문화를 더욱 창백하게 무력하게 만들고 있다.  4     중국의 시인과 시문화는 이러한 현실앞에서 흰기를 내들것은 아니다 . 언어와 문자가 존재하는한, 언어와 문자가 인류사회의 제일 기본적인 교류수단으로 사유수단으로 존재하는한 나는 중국인의 언어와 문자를 통한 사상정서의 발로가 필연코  존재하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중국시문화의 몰락을 거절하고 중국시가 문화와 문학의 一席을 차지하려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나는 중국 시문화의 남다른 자아반성도 중국시문화 몰락을 저지하는 필수품이 아닌가고 생각한다.   중국은 詩國이기는 하지만 서구문화권과 비교하면 세계적으로 알려진 시인은 아주 적다. 그 주요한 원인은 중국시를 다른 문자로 옮기는 번역난문제에 있기는 하지만 문화력사적인 시각으로부터 볼 때는  나는 중국시인 인문정신의 폭과 깊이가  제한을 받아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거의 당대에 이르기까지 중국인테리와 중국시인들의 머리를 지배하여온 사상은 유학사상이다. 물론 중국인테리와 중국시인들이 불교와 도교의 사상영향을 받기는 하였지만 불교사상은 중국식불교사상이였고 도교사상도 많이는 에만 제한되였다. 서구와 비교하면 중국의 인테리들과 시인들의 인간수업은 과 이라는 리상적인 境界도 있기는 하였지만  인간의 終極價値에 대한 관심과  神과의 대화( 형식적으로는 신령과의 대화로 보이지만 사실은 인간으로서 인간과의 대화가 아닌가고 생각한다)를 지니지를 못했었다. 따라서 중국의 인테리와 시인들은 종교사상의 洗禮와 인문사상의 대폭팔(서구에서의 문예부흥)을 감지하지 못했으며 인간과 사회를 보는 시각과 높이가 지역성이 짙었고 지방정치색채가 짙었다.     때문에 중국의 인테리들과 시인들은 줄곳 대인문정신부족증에 깊이 빠져있었었다.  그 대신 중국의 인테리들과 시인들은 전통적으로  지역정치에 대한 지나친 관심과 민감도를 지니고 있었으며 력대적으로는 실리를 추구하여 국가기구와 지배층에 아부도 많이 했고 의뢰도 많이 했으며 반항도 많이 했다. 굴원의 시는 였고 리백 두보를 대표로 하는 당시인들도 자신을 알아주는 좋은 황제를 만나 한자리 하려는 幹谒詩라는 시형식마저 만들었으니 옛날 중국시인들의 내실의 일부분을 알아보기에는 알마춤한 실례라고 생각한다. 중국시인들의 대인문정신부족증은 당대 시인들의 몸에서도 많이 나타난다. 아주 재간둥이였던 곽말약이 문화대혁명 시기에 쓴  詩作과 유명한 시인이였던  애청의 문화대혁명이 금방 끝난 시기에 쓴  詩作들을 읽으면 그러한 陋習의 변형형이 일목료연하게도 잘  보여진다.      중국인테리들과 중국시인들의 대인문정신부족증에 대하여 어느 정도 판단이 된다면 , 당대에 있었던 거짓말도 아주 화려하게 꾸미던 중국시인들의 詩作을 읽으면  지금 겪고 있는 중국시문화의 몰락은 리해하기가 쉬운 문화현상이 아닐가? 개혁개방이래 중국국민들의 사유의 폭과 깊이가 엉청난 변화를 가져왔고 심층적으로는 전통보다도 높은 차원의 심미요구와 대인문정신을 기대하고있음은 의심할바가 없다.      이러한 의미에서 나는 중국인테리들과 중국시인들이 자아반성은 아주 필요하며 중국도 진정으로 령혼의 자유를 지니고 있는 시인 만들기를 하는 작업이 바로  시문화 부흥의 묘약의 하나가 아닐가 하는 욕심을 생각해본다. [ 2016년 05월 16일 07시 25분 ]   이미지를 클릭하면 다음이미지가 보여집니다. 4 / 2    
1440    이승의 버스가 씨근거리고... 새가 된 꽃이라며... 댓글:  조회:4681  추천:0  2016-05-18
[9강] 시의 행과 연의 관계 오늘은 시의 행과 연의 관계를 먼저 공부하기로 하겠습니다. 그 다음에 연의 구분에 대해서 공부하고, 시의 첫 행을 공부 했으니 시의 마무리를 공부함으로 우선 시의 행과 연에 대한 단원은 마치기로 하겠습니다. 1.시의 행과 연의 관계 시에서 반드시 행이나 연의 구분을 해야하느냐는 문제가 최근 더욱 부쩍 많은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옛날 정형시에서는 그 형태적으로 행과 연이 정해져 있었지만 현대시로 발전해 오면서 그 형태와 내용의 자유스러움으로 인해서 최근에는 행과 연을 구분하지 않는 시들이 많이 이용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시의 행이나 연을 어떻게 구분하십니까? 일단 행 에 대해선 앞 시간에 배우긴 했지만, 사실 그 동안은 본인의 기분에 따른 구분을 하였으리라 믿습니다. 그러면서도 요즘은 시의 행과 연이 없는 시가 더 멋있게 보이 고, 더 현대적으로 보이고 할 것입니다. 그리고 행과 연의 구분이 없어도 아주 성공적인 시를 읽으면서 과연 행과 연의 구분이란 것이 꼭 필요한 것인가 하는 의아심 을 가질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행과 연의 구분은 철저히 작가의 의도에 따르는 것입니다. 공간적, 시간적, 의미적, 조화적, 이미지적, 통일적 구분의 필요성이 있는가 없는가에 따라 하기도 안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어떤 시는 행과 연을 구분해야 그 이미지가 더 살아나고, 시 가 더 전달이 잘 된다면 그렇게 해야겠지요. 그러나 구분에 큰 의미가 없고 행과 연을 구분하지 않는 산문시이면서도 그 운율이나 의미 전달, 이미지의 활용 등에 문제가 없다면 구태 여 구분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조병무님의 설명을 참고하면서 설명드리겠습니다. ⓐ허영자님의 꽃아 정화수에 씻은 몸 새벽마다 참선하는, 미끈대는 검은 욕정 그 어둠을 찢는 처절한 미소로다 꽃아 연꽃아. ⓑ조병무님의 돌들이 마주 앉아 침묵한다 물들이 마주 앉아 침묵한다 바람이 사이를 누비며 한올씩 한올씩 캐어내는 재미 구름밑에 하늘밑에 한폭의 그림으로 자리하는데 스님은 어디론가 바쁘게 간다. 흔적도 없이 빠르게 간다. ⓒ조영서님의 저 속엔 스스로 트이는 하늘이 있습니다. 해는 한 변두리와 알맞은 빛깔을 내던졌고, 나는 의미가 익어 가는 눈짓을 보 내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당신에게로 향하는 사랑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가을은 다시 차고 넘치는 바다가 되었습니다. ⓓ신동춘님의 꽃을 짓이기어 얻은 진한 진액에서 꽃의 아름다움을 찾아보 지 못하듯 좋아하는 사람 곁에 혹처럼 들러 붙어 있어도 그 사람과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는다. 꽃과 꽃만큼 아름다운 사람은 옆에 있을 때 굳이 멀리 두고 보듯 보아야 하고 떨어져 있을 때 애써 눈앞에 놓고 보듯 보 아야하느니. 우리는 서로 날 때와 죽을 때를 달리하기 때문에 꽃과 꽃처럼 사랑스러운 이에게 가는 데는 참으로 그 길밖에 딴길이 없다 한다. 지금까지 인용한 시들을 중심으로 한번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는 행과 연의 구분이 있는 자유시 ⓑ는 행은 있되 연의 구 분이 없는 자유시 ⓒ는 행과 연의 구분이 없는 산문시 ⓓ는 연구분은 있되 행은 산문시로 되어 있는 특징이 각각 있습니 다. ⓐ의 경우, 행과 행 사이의 시간적 공간적인 쉼과 의미의 전 달, 리듬적 요소, 회화적인 생동감 등 복합적 요소가 모두 나 타나게 됩니다. 아무리 행과 연이 작가의 자유라하지만 우리는 분명 시의 연 이나 행 구분이 아무렇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란 건 이미 배운 이야기입니다. 대부분의 자유시엔 하나 이상의 연 구분이 가능하고 그 연 구분 자체가 시적 생명감을 더욱 불어 넣어 주기도 합니다. 그 것은 의미의 전달이 연과 연의 구분, 행과 행의 구분 속 에도 포함되어 있는 때문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첫행이면서 첫연인 '꽃아'와 둘째 연 '정화수 씻은 몸/ 새벽마 다/참선하는' 은 도치되어 있습니다. 즉 정화수 씻은 몸 새벽 마다 참선하는 꽃의 모습을 그 연을 변경시킴으로 생동감을 불러 일으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시를 읽을 때 도 '꽃아' 다음엔 잠시 쉼의 간격을 주어야 할 것입니다. ⓑ에서는 연 구분이 없이 한 행, 한 행의 의미 전달과 음악적 요소만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연 구분이 없으면 다소 그 탬포 가 빨라지지만 우린 그 행간의 시간적 개념을 생각하면서 감 상하시면 좋을 것입니다. ⓒ는 산문시 형태입니다. 그러나 이 시에서도 우리는 분명히 운율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다만 자유시처럼 행과 연의 구분 으로 시의 호흡을 하지 않기 때문에 전달 속도가 다소 빠르긴 하지만 오히려 생동감을 느낄 수가 있을 것입니다. ⓓ는 ⓒ와 비슷한 산문시 형태지만 연의 구분이 있습니다. 앞 의 연과 뒤의 연 사이의 시간적 간격을 유지해보려고 하는 것 입니다. 조향님의 이란 시의 마지막 세 연을 읽어보겠습니다. 건너편 언덕 신작로 오르막길. 이승의 버스가 씨근거린다. 永 訣 終 天 이 시를 보면 을 한 자씩 띄움으로써 영결이란 행사의 시간적 느림과 힘듬, 그리고 아쉬움이 나타나게 하는 효과를 노리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天'을 한 연으로 잡은 것은 시각상 으로나 운율상 멀고먼 곳으로 망령이 가고 있음을 느끼게 합니 다. 아마, '天'자를 앞 연에다 붙여서 썼다면 그 의미는 반감되고 느낌도 사라지고 없었을 것입니다. 그만큼 연의 구분에 의해 독자에 대한 의미나 감정의 전달이 달라질 것입니다. 이경순님의 를 읽어보겠습니다. 구름에서 내려온다. 비비비비비비비비비 비비비비비비비비비 빈가지에푸름이피고 비비비비비비비비비 비비비비비비비비비 애타는가슴을적시고 비비비비비비비비비 비비비비비비비비비 물 위에로 흘러간다. 이 시는 세 연으로 되어 있습니다. 아마 여러분은 한 눈에 매우 회화적이고 청각적인 이미지의 시이구나 느낄 것입니다. 벌써 읽기 전부터 비가 주룩주룩 나리는 모습을 떠올릴 것입니다. 빗방울이 계속적으로 이어서 떨어지는 수직의 모양 속에 '빈가지에푸름이피고'나 '애타는가슴을적시고'는 추임새 정 도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하늘에서 수직으로 쏟아지는 시는 땅바닥에 고여 수평으로 흐릅니다. 아래 '물 위에로 흘러간다'는 고인 물이 흘러가는 모양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그렇게 보면 1연 '구름에서 내려온다' 는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의 형태를 나타냅니다. 마지막으로 박목월님의 의 일부를 읽어보겠습니다. 눈이 오는데 옛날의 나직한 종이 우는데 아아 여기는 명동 성니코라이 사원 가까이 이 시에서는 2연인 '아아' 한 행이 하나의 연이 되어 있습 니다. 시인 김춘수님의 해설을 옮깁니다. "여기서 연의 구실을 하고 있는 감탄사의 앞뒤에 배치된 연 들을 생각해보라. 앞의 연은 과거의 회상에서 아직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뒤의 연은 완전히 현실의 어느 지점이 각성되고 있다. 즉 이 두 개의 연은 '아아'라는 감탄사를 사이에 하고 회상에서 현실로 완전히 각성하는 그 대목들이 다. 그러니까 이 '아아'는 감개무량과 가벼운 감탄을 나타 내는 '아아'인 것이다. 그것은 이 시의 주제로 보아 충분히 하나의 연을 차지할만한 중령을 지니고 있다." 한 연의 '아아'라는 감탄사를 가지고 과거의 회상에서 현실로 의 각성하는 것에 대한 감격이면서 과거와 현재를 구분시키는 장치로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최근 시 중 시의 행은 존재하는데 연의 구분이 없는 시 하나를 예시로 올립니다. 고진하님의 입니다. 어떤 이가 새가 된 꽃이라며, 새가 아닌 박주가리 꽃씨를 가져다 주었다 귀한 선물이라 두 손으로 받아 계란 껍질보다 두꺼운 껍질을 조심히 열어젖혔다 놀라왔다 나도 몰래 눈이 휘둥그래졌다 새가 아닌 박주가리 꽃의 새가 되고 싶은 꿈이 고이 포개져 있었다 그건 문자 그대로, 꿈이었다 바람이 휙 불면 날아가버릴 꿈의 씨앗이 깃털 가벼움에 싸여 있었다 하지만 꿈이 아닌, 꿈의 씨앗도 아닌 박주가리의 生, 어떤 生이 저보다 가벼울 수 있을까 어느 별의 토기에 새겨진 환한 빛살무늬의 빛살이 저보다 환할 수 있을까 몇며칠 나는 그 날개 달린 씨앗을 품에 넣고 다니며 어루고 또 어루어 보지만 그 가볍고 환한 빛살에 눈이 부셔, 안으로 안으로 자꾸 무너지고 있었다 ======================================================   357. 폭설 / 오탁번                                                폭설                           오 탁 번   삼동에도 웬만해선 눈이 내리지 않는 남도 땅끝 외진 동네에 어느 해 겨울 엄청난 폭설이 내렸다 이장이 허둥지둥 마이크를 잡았다 - 주민 여러분! 삽 들고 회관 앞으로 모이쇼잉! 눈이 좆나게 내려부렸당께!   이튿날 아침 눈을 뜨니 간밤에 또 자가웃 폭설이 내려 비닐하우스가 몽땅 무너져내렸다 놀란 이장이 허겁지겁 마이크를 잡았다 - 워메, 지랄나부렀소잉! 어제 온 눈은 좆도 아닝께 싸게싸게 나오쇼잉!   왼종일 눈을 치우느라고 깡그리 녹초가 된 주민들은 회관에 모여 삼겹살에 소주를 마셨다 그날 밤 집집마다 모과빛 장지문에는 뒷물하는 아낙네의 실루엣이 비쳤다   다음날 새벽 잠에서 깬 이장이 밖을 내다보다가, 앗! 소리쳤다 우편함과 문패만 빼꼼하게 보일 뿐 온 천지가 흰 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하느님이 행성만한 떡시루를 뒤엎은 듯 축사 지붕도 폭삭 무너져내렸다   좆심 뚝심 다 좋은 이장은 윗목에 놓인 뒷물대야를 내동댕이치며 우주의 미아가 된 듯 울부짖었다 - 주민 여러분! 워따, 귀신 곡하겠당께! 인자 우리 동네, 몽땅 좆대버렸쇼잉!     오탁번 시집 중에서  
1439    [한밤중 詩와 함께]- 배꼽 댓글:  조회:4037  추천:0  2016-05-18
배꼽 - 박성우(1971~ )   살구꽃 자리에는 살구꽃비 자두꽃 자리에는 자두꽃비 복사꽃 자리에는 복사꽃비 아그배꽃 자리에는 아그배꽃비 온다 분홍 하양 분홍 하양 하냥다짐 온다 살구꽃비는 살구배꼽 자두꽃비는 자두배꼽 복사꽃비는 복숭배꼽 아그배꽃비는 아기배꼽 달고 간다     아내랑 아기랑 배꼽마당에 나와 배꼽비 본다 꽃비 배꼽 본다 비는 내리는 자리마다 다른 꽃, 다른 배꼽으로 다시 태어난다. 무슨 “하냥다짐”이라도 하듯이 비는 새 세계를 이룬다. 그리하여 배꼽들은 비로소 단독자(單獨者)가 된 어린 세계들의 흔적이다. 비와 꽃들이 만나면서 이루어 내는 이 무한생성의 축제를 “아내랑 아기랑” 쳐다본다. 이들도 다른 존재들이 만나 이룬 새 존재들이다. 존재들 사이의 이 뜨거운 인력(引力)을 우리는 ‘사랑’이라 부른다.  
1438    詩論을 알면 시쓰기 힘들다... 댓글:  조회:4379  추천:0  2016-05-17
[8강] 시의 행 만들기(2) 시의 이론을 알면서부터 시를 쓰기가 힘들다는 분들이 계신데요. 아마 그 것이 정상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시를 보는 안목이 생긴 것이지요. 일반인들과 시를 공부한 사람들의 차이도 그 것입니다. 일반 인들이 좋아하는 시라는 것은 다분히 감정적인 것이어서 우리 의 말초를 자극하는 것입니다. 사랑과 연애와 눈물, 절망 물론 그런 것들이 우리의 시에서 영원히 떠날 수는 없지만 직접적으로 써서 눈물을 자극하는 유행가 같은 시는 결코 좋은 시가 될 수 없습니다. 적당히 감추고, 또 적당히 축약시키고, 더러 과감히 생략하며 어떤 이미지를 보여줌으로서 잔잔한 감동을 느끼게 하고 그 감동이 마음 속에 오래 남아있게 하는 것이 진정 좋은 시입니다. 그런 언어가 절제된 좋은 시를 쓰기 위해서 여러분들 은 지금 공부를 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어제에 이어 의미의 단락으로 행 만들기를 공부하겠습니다. 2)의미의 단락으로 행 만들기 에즈라 파운드의 말을 빌리면 시 속에 나타나 있는 의미란, 한 마디로 말하자면, 시라는 예술 작품 공간에 자리잡고 있 는 모든 표현의 내용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내용은 시적 언술의 특성답게 묘사되어 있거나 진술되어 있습니다. 그러 니까 시 속에 묘사되어 있는 것 또는 진술되어 있는 것들이 곧 의미가 된다는 말입니다. 물론 묘사되어 있는 것이라 하더라도 서경적, 서사적,심상적 인 작품 구조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 있기도 하고, 그것들은 또 축어적으로 표현되어 있기도 하고, 비유적으로 표현되어 있기도 할 만큼 그 의미의 가시적 양태는 다양할 것입니다. 그러니 시 속에 나타난 의미란 시만큼 다양하다고 보아야 하 겠지요. 그러나 의미가 중심이 되기 때문에 시의 리듬 부분에 대해서 혹은 이미지에 대하여 느슨해질 수가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할 것입니다. 김준태님의 를 읽어보지요. 이 시는 언젠가 한 번 읽은 시이던가요? 산그늘 내린 밭귀퉁이에서 할머니와 참깨를 턴다. 보아하니 할머니는 슬슬 막대기질을 하지만 어두워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젊은 나는 한번을 내리치는 데도 힘을 더한다. 세상사에는 흔히 맛보기가 어려운 쾌감이 참깨를 털어내는 일엔 희한하게 있는 것 같다. 한번을 내리쳐도 셀 수 없이 솨아솨아 쏟아지는 무수한 흰 알맹이들 도시에서 십년을 가차이 살아온 나로선 기가 막히게 신나는 일인지라 휘파람을 불어가며 몇 다발이고 연이어 털어낸다. 참깨처럼 솨아솨아 쏟아지는 것들이 얼마든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정신없이 털다가 "아가, 모가지까지 털어져선 안되느니라" 할머니의 가엾어하는 꾸중을 듣기도 했다. 이 시의 행은 어제 읽은 시들과는 완전히 그 형태가 다른 것을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행 구분이 리듬의 단락에 의 거했을 경우에는 하나의 행이 뚜렷한 운율을 형성하게 되 지만 이 시에서는 운율감은 다소 떨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의 행마다 의미들이 자연스럽게 담겨져 있어, 읽는 독자 들에겐 그렇게 거북하거나 거슬리지 않는 것입니다. 이렇게 의미 단락으로 행을 놓으면 독자들에겐 시적 의미들이 오히려 쉽고 자연스럽게 살아날 수가 있는 장점은 있겠지만 리듬감이 약해질 수 있다는 점에 꼭 유의하셔야 할 것입니다. 3)이미지의 단락으로 행 만들기 우리가 이미 이미지에 대해선는 공부를 했지요. 결국 이미지란 우리가 겪은 사실적 경험을 감각화 시킨 것, 육화(肉化)시킨 것 을 말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이미지가 언어 발달의 단계에 따라 정신적 이미지, 비 유적 이미지, 상징적 이미지로 나뉜다는 것도 이미 배운 바 있습니다. 복습하는 차원에서 말씀드리면 정신적(심리적)이미지는 감각 기관(시각, 청각, 촉각, 미각, 후각 등)에 의해 이루어진 정 신 현상을 말하는 것이구요. 두 개 이상의 다른 감각이 합해 진 형태를 공감각(共感覺)이라고 한다는 것도 모두 알고 계실 것입니다. 이미지 단락에 의해서 행을 만들게 되면, 의미의 단락으로 만 든 행에서 느꼈던 자연스러움보다는 선명한 인상이 부각될 것 입니다. 김기림님의 의 일부를 읽어보겠습니다. 海峽(해협)은 배암의 잔등 처럼 살아났고 아롱진 아라비아의 의상을 둘른 젊은 산맥들. 바람은 바닷가에서 사라센의 비단幅(폭)처럼 미끄러웁고 오만한 풍경은 바로 午前(오전) 七時의 절정에 가로누웠다. 헐덕이는 들 우에 늙은 향수를 뿌리는 교당의 녹슬은 종소리. 송아지들은 들로 돌아가려무나. 아가씨는 바다에 밀려가는 輪船(윤선)을 오늘도 바래보냈다. 이 시의 첫 연의 행들을 한 번 살펴 볼까요. 이 행들은 자연스러운 의미 단락으로 행을 놓는 것이 아니라, 각각 시어의 이미지가 살아나도록 이미지의 행을 배치하고 있습니다. 만약 의미의 단락으로 구분했다면 비늘 돋힌 해협은 배암의 잔등처럼 살아났고 아롱진 아라비아의 의상을 둘른 산맥들. 아마 이렇게 그 형태가 바뀌었을 것입니다. 이 것을 시각적 이미지를 살아나게 각각 한 행으로 독립시킨 것입니다. 특히 당연히 붙어 있어야 할 조사 '처럼'을 떼어 다음 행에 배치함으로서 배암의 잔등이 더욱 더 선명한 이미지로 나타 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을 볼 때 이미지의 단락을 하나의 행으로 놓은 시인 의 의도가 시의 형태 속에서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김관식님의 를 읽어보겠습니다. 조그만 암캐 마아리가 있었다 토굴 속에는, 천정에서 떨어지는 푸른 빗방울 宮 ... 商 ... 角 ... 徵 ... 羽 ... 오음이 和諧(화해)하는 소리 끼니가 없어도 호올로 晏如(안여)함은 갈색 피부에 주름살이 새겨진 인도의 숲 속 마하트마 깐디가 원탁회의에 양을 몰고 나가듯 젖만을 먹고 살기 때문이지요. 벼슬아치가 수레를 머무르고 찾아온다 할지라도 두 다리 쭈욱 뻗고 마루에 걸터앉아 괼타리를 까 배꼽을 내놓은 채 이를 잡으며 말할 것이다. 옆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이 시에서 3연을 한번 살펴보실까요? 난데없이 宮, 商, 角, 徵, 羽라은 다섯 개의 한자어가 각각 하나씩 행을 이루고 있는 독특한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시인이 이러한 독특한 모습을 차용한 것은 똑,똑,똑,똑,똑 빗방울 떨어지는 모습을 이미지화 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또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를 동양 음악의 오음을 아울러 이르는 궁, 상, 각, 치, 우에 비유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독자에게 청각적 이미지와 시각적 이미지를 느끼 게 해주고 있어 이 시의 분위기는 감각적이면서도 재기발랄 하게 살아나고 있습니다. 이수익님의 의 부분을 읽어보겠습니다. 설레는 봄, 봄날이다 종다리는 까무라치게 자꾸 울어쌓고 이 시에서 감각적 대상은 '봄'과 '종다리'입니다. 그 둘은 '화냥기처럼 설레는' 특성과 '까무라치게 우는' 특성 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왜 이렇게 행을 놓았을까는 여러분들이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시의 행과 연이 아주 자유스럽고 특이한 시를 소개 합니다. 어디까지가 행이고 어디까지가 연인가 한번 씩 나누어 보십시오. 고재종님의 를 올립니다. 잦은 바람 속의 겨울 감나무를 보면 그 가지들이 가는 것이거나 굵은 것이거나 아예 실가 지거나 우둠지거나 모두 다 서로를 훼방 놓는 법이 없 이 제 숨결 닿는 만큼의 찰랑한 허공을 끌어 안고 바르르 떨거나 사운거리거나 건들거리거나 휙휙 후리 거나 모두 다 제 깜냥껏 한 세상을 흔들거리는데 그 모든 것이 웬만해선 흔들림이 없는 한 집의 주춧기 둥 같은 둥치에서 뻗어나간 게 새삼 신기한 일이다. 더더욱 그 실가지 하나에 앉은 조막만한 새 한 마리 의 무게가 둥치를 타고 내려가 깜깜한 땅속의 그 중 깊이 뻗은 실뿌리에까지 거기 흙살에까지 미쳐 그 무게를 견딜 힘을 다시 우둠지에까지 올려보내는 땅심의 배려로 산 가지는 어느 여린 것 하나라도 어 떤 댑바람에도 꺾이지 않는 당참을 보여주는 것인가. 아, 우린 너무 감동을 모르고 살았구나! ============================================================   356. 밥냄새 1 / 오탁번                                 밤냄새 1                           오 탁 번   하루 걸러 어머니는 나를 업고 이웃 진외가 집으로 갔다 지나다가 그냥 들른 것처럼 어머니는 금세 도로 나오려고 했다 대문을 들어설 때부터 풍겨오는 맛있는 밥냄새를 맡고 내가 어머니의 등에서 울며 보채면 장지문을 열고 진외당숙모가 말했다 - 언놈이 밥 먹이고 가요 그제야 나는 울음을 뚝 그쳤다 밥소라에서 퍼주는 따끈따끈한 밥을 내가 하동지동 먹는 걸 보고 진외당숙모가 나에게 말했다 - 밥때 되면 만날 온나   아, 나는 이날 이때까지 이렇게 고운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태어나서 젖을 못 먹고 밥조차 굶주리는 나의 유년은 진외가 집에서 풍겨오는 밥냄새를 맡으며 겨우 숨을 이어갔다     오탁번 시집 중에서    
1437    55년만에 발굴된 민족시인 - 심련수 / ... 댓글:  조회:5187  추천:0  2016-05-16
-55년만에 발굴된 항일민족시인 심련수(沈連洙)     기자는 2000년 7월 연변 조선족 자치주 내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며 우리 민족의 민족적 서정의 시세계를 펼쳐 보여주고 있는 연변의 시인들을 만나기 위해 중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 뜻밖에도 항일 민족 시인 심련수 시인의 실체를 알게 되었다. 아래의 글은 지난해 기자가 한국 방송대학교 학보를 통해 지상에 소개한 기사이다. 오마이뉴스를 방문하고 있는 많은 독자들에게 심련수 시인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이미 지상에 보도된 내용을 상당 부분 인용하고 그때 소개되지 못한 시편들을 추가로 소개하고자 한다. 또한 이후 심련수 시인의 동창이신 이기형 시인과의 만남에 대한 후일담을 소개하고자 한다. 추가로 가필한 내용에 대해서는 '-'로 표기하여 원고를 작성하기로 한다. 55년만에 발굴된 항일민족시인 심련수(沈連洙) 1945년 8월 8일 일본인의 손에 피살된 시인. 도대체 왜 일본인은 해방을 불과 며칠 앞둔 시점에서 그를 살해했으며, 그는 누구인가? 전언했듯 그는 윤동주, 이육사 등 일제에 시로써 항거한 시인들과 동시대를 살다간 시인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지금까지 그가 시인이었다는 사실을 밝혀줄 수 있는 것은 1940년대 초 만주의 에 발표되었던 , , 등 다섯 편의 시 뿐이다. 그런 그가 지금에 와서 `용정에서 솟아난 또 하나의 별'이라는 애칭을 갖고 우리 앞에 `불쑥' 나타난 것은 대체 무슨 연유인가? 침략과 수탈로 점철되었던 민족의 역사가 우리를 의인의 품으로 이끌어 주었다. 그리고 만주벌은 그 역사적 정점으로서 살아있는 흔적이기도 하다. 오늘 여기 `심련수'라고 하는 시인이 나타나 우리들에게 다시 만주를 자각하게 하는 것 또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라 생각된다. 필자가 연변을 찾은 것은 연변지부 시인들과의 만남을 위해서였다. 그런데 거기서 뜻밖의 시인을 알게 되었다. 연변의 민족시인인 조용남 선생께서 넌지시 말씀하신 심련수라는 시인의 이력을 듣자니 너무나 설레고 놀라웠다. 심련수는 1918년 5월 20일 강원도 강릉군 난곡리에서 소작농이던 심운택 씨의 일곱 자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심련수는 일제의 압박과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1924년 가족들과 함께 러시아로 이주, 그후 중국 용정에 뿌리를 내리고 유소년기를 보냈다. 1941년 일본 유학길에 올라 일본대학 예술학원 창작과에서 공부했으며 이 때 심련수는 시와 조국과 민족해방에 대해 뜻을 세우고 분출하게 된다. 그의 동생 심호수 씨는 지금 연변 조선족자치주 용정시에 살고 있다. 심호수 씨는 형이 죽은 후, 언젠가 떳떳하게 세상에 밝힐 수 있는 날이 오리라는 기대감으로 항아리 속에 담아 두었던 시 3백여 편, 소설 3편, 평론 1편, 기행문 1편, 편지 2백여 통, 일기 3백여 편을 알뜰살뜰하게 보관해 오고 있었다고 전한다. 그럼 여기서 한두 편의 작품을 엿보는 것으로 심련수 시인의 족적을 우리가 받아들이는 계기가 되길 기대하면서 그의 시를 읽어보자. 빨래 빨래를 생명으로 아는 조선의 엄마 누나야 아들 오빠 땀 젖은 옷 깨끗이 빨아주소 그들의 마음 가운데 불의의 때가 있거든 사정 없는 빨래 방망이로 뚜드려주소. 이 시가 바로 55년 동안 항아리 속에 묻혀 있었던 3백여 편의 시 중 한 편이다. 소박하고 정갈한 정이 배어 있는 시이다.그러나, 그 절박한 시적 호소력은 빼앗긴 나라에 대한 구원의 마음이 너무나도 절절하게 스며 있다는 자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특히 “불의의 때가 있거든/사정없는 빨래 방망이로/뚜드려주소”의 부분에서는 식민지 조선의 청년 정신을 간직하고 살아가기 위해 식민지 조선의 청년들이 간직해야 할 뼈아픈 고통의 감수까지가 스며있는 것이다. 이는 엄마와 누나가 얼마나 절박하게 바라보는 광복에의 희망인가? 이는 자기 각성과 식민지 조선청년 모두에게 각성을 요구하는 자기점검자적 요구를 시적으로 형상화해서 이야기 해내고 있는 것이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던 그는 고국에 부모로부터 보내온 돈을 받아든 순간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오늘 호수로부터 돈을 받았다. 손이 떨리고 가슴이 떨린다. 집에서 준 것일까 쌀을 판 것일까. 편지에는 번연히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하지만 내 어찌 걱정하지 않을 수가 있으랴. 몸이 고달프지만 일요일엔 꼭 밀차를 밀어야겠다.” 이 글에서도 볼 수 있듯이 어려운 집안 환경을 떠받치고 살았던 그는 이주민 조선인의 가난한 모습을 이겨내기 위해 자신의 실체적인 경험 속에서 부단하게 항일운동에 매진했었으며 또한 작품 속에 용해시켜내고 있었다. 가난한 거리 내가 걷는 좁다란 골목 까아맣게 끄슬은 처마밑길 울타리 없는 몽둥이집들마다 새까만 나무쪽문패가 초라하고 누덕발대 걸린 밑엔 주름진 낯이 얼른거리고 헐벗은 애들이 맨땅에 주저앉아 발버둥친다 가난한 거리 때물에 함빡 젖은 살림 번화를 자랑하는 뒤골목에는 말못할 비극이 도리질하고 탄력잃은 창백한 혈관으로 죽은 피가 쩔룩거리나니 그것은 일에 지친 이 거리의 사내였고 빛 잃은 좁은 거리는 조폐국(造幣局) 뒤골목이었다 이 시는 당대의 척박한 식민지 조선의 이주민들이 겪은 삶의 진상을 소상하게 고발해 주고 있는 시다. 지친 거리의 사내란 어쩌면 시인 자신은 아닐까? 그러나, 지친 시인 자신으로서 멈추어 버리지 않고 그 지친 이주민들과 함께 일어나고야 말겠다는 시인의 심성은 보다 더 적극적으로 대항하며 싸우는 민족의 운명과 함께 하는 일체감을 갖고 나아가고 있다. 그렇게 그는 살았다. 적어도 그가 일본인에 의해 피살된 1945년 8월 8일까지 그는 그렇게 살아갔던 것이다. 그의 시적 진실은 그가 썼던 일기와 기행문, 편지, 평론 등에 다양하게 증거로 나타나 있다. 머지 않은 장래에 그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리라 믿는다. 또한 이는 민족정신의 복원과 맞물려 참으로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남북의 통일과 민족 정신의 회복은 우리에게 요구되는 21세기 민족의 철학적 모티브를 제공하는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그러한 전제를 더욱 분명하게 해주는 것은 우리가 가져야 할 정신 문화적 자산을 발굴하고 그 영역을 확보하는 데 선결적인 과제가 주어지는 것이라 생각하면서 오늘의 심련수 선생의 이름에 값할 수 있는 연구 성과들이 나올 수 있도록 문학을 하는 사람들이나 문학연구가들의 관심을 기대하면서 소개를 마친다. "이 기사가 나간 후 알게 된 사실은 참으로 한심하고 답답한 언론의 유통구조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실제 심련수 시인의 존재가 알려진 것은 지난해 4월 그러니까 2000년 4월이다. 그 당시 연변 조선족 자치주 문화인들을 돕는 일에 앞장서 온 서울의 이상규 시인이 연변을 방문했을 당시 심련수 시인이 생존하고 있는 동생 심호수 선생에 의해 그 작품과 당시의 경과들이 소개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상규 시인이 국내의 여러 신문사에게 보도를 청했으나 국내의 유력 언론사들이 그 기사의 실체를 증명해서 알려주면 보도하겠다며 보도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아는 상식으로 보면 제보만으로도 그 제보의 신빙성이 확인된다면 기자를 파견하든지 취재를 하여 허물어진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희생된 한 민족시인의 존재를 적극적으로 알리려는 노력을 했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렇게 되지 못하였던 것이다. 기자가 연변에서 알게 된 이상규 시인을 찾아뵌 것은 위 기사가 방송대학교 학보에 소개된 이후이다. 기자가 이상규 시인에게 신문을 펼쳐 보이자 너무나 즐겁고 반가워 하면서 자신이 보도 요청을 했던 자료들을 내놓으시며 마치 기자가 큰 일을 해낸 것처럼 기뻐하였다. 이후 주요 일간지 기자들에게서 기자에게 전화가 걸려와 자료를 청했다. 그러나, 당시 해당 기자들이 무성의한 태도로 자료만 건네줄 것을 청해 자료를 제공하지 않고, 지역에 강원도민일보에서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여 기자가 직접 강원도민일보에 자료 일체를 건네주기도 하였다. 후일에 출판사 업무차 시인이시며 독립운동가이신 이기형 선생을 찾아뵙고 또한 의외의 이야기를 전해듣게 되었다, 다름아닌 심련수 시인과 동기동창생이셨다는 사실이며 이기형 시인과는 일본에서 함께 유학을 했으며 신문팔이 등을 통해 학비를 충당하고 손수레꾼 노릇을 하며 함께 학업을 하였다는 것이다. 이기형 시인은 이미 에서 간행된 몽양 여운형 선생의 평전에 몽양 선생과 심련수 시인, 그리고 이기형 선생이 함께 유원지에서 나누었던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었다. 그 내용은 당시 우리 민족의 운명과 일제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기형 선생께서는 해방 후 소문으로 그의 존재에 대해 죽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바 있다고 말씀 하셨다. 너무나 놀랐던 사실에 대해 자랑삼아 심련수 시인을 알게 된 계기를 말씀 드렸다가 선생께서 그 심련수 시인과의 또렸했던 과거를 기억하고 계신다는 데 대해 다시 한번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아! 역사가 이렇게 구체적으로 재생되는구나. 그후, 각지에서 심련수 시인의 작품을 보내달라고 하여 전해주기도 하고, 이메일도 보내주었다. 또한, 작년 연말에는 강릉에서 최초로 문학세미나가 개최되기도 하였다. 다음은 본문에 없는 시편들을 추가로 소개하고자 한다. 추후에도 기행문과 일기, 시편들을 소개하도록 하겠다. 방랑(放浪) 나는 가련다 정처없이 또 이 발길 가는 곳 어데냐 맞아줄 이 없는 낯선 땅 머물 곳 정함없는 타향에서 호올로 헤매고저 또 떠나노라 떠나는 나그네길 서글퍼도 안갈수 없는 방랑의 신세 어제 머물던 오막살이엔 박꽃이 수없이 피였건마는 서리전에 굳을 열매 과연 몇이나 될고. 소화 17년 8월 4일 귀한 그들 이 땅에 귀한이 몇몇이던가 묻노니 이 마음 차거니 그들을 세비로양복에 당나귀발통 신고 고리를 흔들거리는 멋쟁이보다 적동색 억센 몸에 호미쥐고 서 있는 농촌의 젊은이가 얼마나 귀하더냐 뾰족구두 색양장(色洋裝)에 가는 허리 한들거리는 아가씨보다 툭툭한 무명옷에 고무신 신은 물 긷는 농촌아가씨가 얼마나 귀하더냐 몸가짐 거칠다 깔보지 말라 수수한 그들속엔 아름다운 참마음 빛나고 있어 겉이 귀한 그들보다 속이 더욱 귀하여라. 소화 7년 4월 저녁의 부두 노동자의 지친 모습 휘청이는 부두 후줄근한 옷자락에 피곤이 흘러 콩크리트 바닥에 떨어지고 부두의 저녁은 저물어간다 먼길 떠나는 짐실은 배 떠나는 기적소리 처량도 해 모든 것 실어서 보내고 싶어 바다가 전토(戰土)는 한숨짓더라. 소화 16년 10월 21일 들불 임자모를 불 거침없이 타는 천리 저쪽녘 누가 놓은 불씨기에 저토록 꺼짐없이 밤하늘을 붉히느뇨 사정없이 타오르는 불길! 불길! 불길! 끌래야 끌 수 없는 위대한 작탄! 언제까지 이 들판에 살아있을지 어두운 저녁 혼자 보는 들불 그 불똥이 이 가슴에 튀여오기를 삼가 경건히 머리숙이고 말없이 숭엄히 바라보노라. 소화17년 1월4일 수평선 부풀어오는 수평선너머 그 님이 계신다고 내 마음이 흰돛을 달고 네 가슴을 헤쳐가리라 그 가슴에 안겨지러 가리라. 거리에서 출렁거리는 인파에 밀려 생의 활극인 막을 열면서 모두가 유명무명의 배우가 되어 스스로 즐기는 화장을 하였다 울 때는 웃고 웃을 때는 우는 극속에 극을 연출하고 있다 누구나 될수 있는 배우 누구나 볼수 있는 관중 모두가 분별없는 한곳에서 울고 웃고 먹고 자고 사랑하고 있는 땀이 쬐쬐한 그 상판에서 무슨 커다란 표정이 있을가 휩쓸려 한바탕 뒹구는 것이 무슨 경향이 있을소냐... 소화 17년 10월 비 밤비 내리는 이향거리 흐린 추억에 뻗는 고적 젖어드는 옷섶을 꺾으며 고향밤 별하늘에 님의 샛별눈 그리노라 가라앉던 그리움 설레이는 가슴속에 웃는 초상 어리는 듯 기다려 참는 고비 넘으리라 지나면 사랑의 웃음. 소화17년 6월 23일 기적(奇迹) 인간사회에는 기적이 없다 그러나 있으면 있을수 있다 네 손으로 만든 것이 그것이며 네 마음으로 아는 것이 그것이다 참다운 기적은 평범가운데서 나고 그 평범은 부단한 노력에서 온다. 소화17년 10월 5일 강무(江武)에 앉아서 네가 할 일 바줄은 끊어졌다 지말은 빨대는 먼지속에 떨어졌다 버텼던 장대도 맥없이 넘어졌다 버티어야 한다 이어야 한다 씻어야 한다 널어야 한다 끊어진 바줄! 장난군아이가 얄밉게 저지른 저주의 악극(惡劇) 사명의 줄 어느 한쪽을 풀어야만 동강난 두토막을 이을수 있을게다 키 못믿는 억센 매듭을 어떻게 풀리 이어서 씻어서 매여야 하지 장대를 버티고 널어야 하지 불쌍한 고아의 설음 꾸지람을 무서운 일에 씻어 애타는 초조의 작은 가슴을! 누구의 힘으로 누구의 손으로 누구의 귀로써 오! 너는 불쌍한 소녀 아프도록 지친 몸도 쉬더냐. 소화 18년 2월 8일밤 ////////////////////////////////////////////////  연변의 민족 시인 조용남 연변 조선족 자치주에 민족문학인들이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우리로 치면 문협과 작가회의와 같이 치열한 당파성(지금 그런 게 있기나 한가?)도 존재한다. 그런 면을 보면 문학에서의 치열한 자기 돌파 노력속에는 내적으로 필연적인 갈등이 존재하는 모양이다. 사실 필자가 작년 7월 연변을 방문했을때 연변문학의 총편집장으로 부터 점심 초대를 받았다가 종무소식으로 한나절을 보낸 적이 있는데 우리로 치면 민작과 같은 민족적 입장에 충실한 연변문학의 총편집장께서 연변의 사정을 전혀 모르는 필자가 조용남 시인댁에서 일주일을 기거하게 된 것을 두고 홀대하게 된 것이란 사실을 나중에야 연변문학 한국 지사장 석화 시인에게서 이야기를 듣고 알게 되었다. 그러나 조용남 시인은 우리의 민족의 입장을 정면으로 배반한 그런 시인이 아니라, 다년간 민족문학을 통해서 작품을 널리 펼쳐오셨음에도 불구하고 한때의 과오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조국인 우리 한국에서는 그런 부분의 평가를 극단적으로 한다는 것이 좀 가혹하다 싶다. 허허벌판 만주에서 우리의 삶터를 닦아오시던 분들이 우리의 운명적 고난을 감내하지 못한 애석함은 갔되 완전히 무시하여서는 안된다는 생각으로 조용남 시인의 작품을 소개한다. 일주일간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함께 두만강변을 거닐기도 했다. 조용남 시인의 한때의 과오가 짐이되고 있지만, 그는 많은 후학들에게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있으면서 동족의 미래를 위해 여러가지 일들을 열심히 수행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조용남 시인의 큰 아들은 지금 원광대 약학대에서 석사과정을 수련중이다. 그럼 조용남 시인의 웅대한 민족적 기상에 찬 시편들을 감상하시길 바라며 앞으로도 지속해서 북한 시인들의 시편과 연변 시인들의 시, 그리고 재일교포 시인들의 시를 연재해서 통일 제1세대가 될 대학생들이 민족적 동질성을 확립하는 데 일조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면서 대학생들이 보다 더 적극적으로 나서 저 미제국주의자들과 보수 우익세력들의 책동에 민족의 이름으로 단일한 대오를 굳건하게 해 나가길 기대한다. 백두산석 분출된 암장의 덩어리 이글거리던 분노는 식었으나 쩡쩡 울리는 쇠소리속에 반항의 넋은 아직도 살아있는가? 남이장군이 검을 갈던 돌 애국지사 의지와 신념을 갈던 돌 한 많은 겨레의 뼈가 된 돌 불멸의 역사에 얼이 된 돌 나도 오늘 성스러운 이 돌 위에 천지물 끼얹으며 마음을 간다 유구한 족속의 이념에, 정감에 새파란 날을 세운다 오 겨레여, 우리 어데서 살든 끌날같은 백두의 얼로 살자! 우리 어데서 죽든 쇠소리 나는 백두산 돌이 되자! 옹달샘 갈수록 어지워지는 세상에서 너는 아직도 그렇게 정갈하고 그렇게 성결하다 일찍 내 혈관의 피가 되었고 내 마음의 눈물이 된 샘물 너의 물맛은 오늘도 변함없이 어머니의 젖 맛이구나 샘가에 앉아 맑디맑은 물속을 들여다보면 땅속에서 송골송골 솟아나 고로한 옛동요를 지절대며 흐르는 샘물 그립고 소중한 것이, 순결하고 천진한 것이 하나 둘 소실되어가는 이 세상에서 너는 나의 애련한 마지막 눈물방울 아니더냐 너는 안다, 태평양의 물로도 못다 씻을 오염된 이 세상의 때를 어찌 너의 이 작은 샘물로 씻어낼 수 있으랴 하지만 다음 번엔 기어코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오리라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너의 샘물로 그것들의 마음을 닦아주리라 산꽃 - RS에게 바침 지금도 나는 알지 못한다 네 이름이 무엇인지를 아무렴 그 고장 사람들처럼 그저 산꽃이라 불러두자 나의 먼 오솔길에 그 거치른 운명의 고개 위에 꿈인 듯 황홀하게 피어나 내 기억에 뿌리 박은 산꽃 너의 담대한 꽃이었다. 능욕도 짓밟힘도 두려움 없이 세월의 길목에 조용히 피어나 기다리였지 갈망하였지 나는 놀랐다 해 짧고 구름 많은 북녘 하늘아래 이 버림받은 척박한 진흙땅에 어찌 이렇듯 어여쁜 꽃이 피어날 수 있느냐고? 그리고 나는 탄식하였다 너에게는 정말 이름이 없는지? 꽃의 족보에 오르지 못해 정말 아무 목, 아무 과에도 속하지 못하는지? 그때는 나도 너처럼 집없이 떠돌던 서러운 나그네 알아볼 겨를조차 없었구나 설혹 알아본다 해도 누가 나서 대답해 주었으랴 너의 미소의 부드러운 애무를 받으면서 나는 아픔 상처 마물구었고 너의 숨막히는 그 향기에 취해 나는 고달픈 세상일을 잊어버렸다 소치는 사람들은 너를 그저 산꽃이라 불렀다 그 투박한 손이 어쩌다 너를 꺾어 소뿔바에 꽂아주면 너는 거기서 수줍게 웃다가 반날도 못 가 시들어버렸다 하지만 너는 완강히 다시다시 길가에 피어났고 길지 못한 생명의 한철을 고집스런 기대 속에 지나 보냈다 너는 다만 이슬만 먹고 자라 맑은 향기를 세상에 남기었다 너의 꽃은 볼수록 예뻤으나 너의 뿌리는 기가 차게 쓰거웠다 이젠 너의 오솔길은 끝나 넓은 포장길 시원히 트이고 길녘 화단들에는 뭇꽃이 요염하게 웃고 있네만 나는 진정을 오로지 먼 추억에만 바친다 산꽃, 이름도 없는 산속의 꽃 이 세상 가장 꽃다운 꽃 너는 올 봄도 그 적막한 산길에 피어나 막연한 세월을 외로이 기다리리라         조용남 1935년 중국 길림성 훈춘시 출생 1951년 초중학생시절 지에 처녀작 발표 1957년 정치 풍파 후 장기간 추방생활 1984년부터 연변인민출판사 문학 총간 편집 시집으로 외 다수 그 밖의 수필 아동문학, 번역작품 다수가 있고, 연변작가협회 문학상, 전국 소수민족문학상 수상 등 다양한 수상경력이 있음. 중국작가협회회원, 중국소수민족작가회의 이사, 연변작가협회 부주석, 시분과위원회 주임 역임 현 연변시조시사 회장, 연변자치주정협 제7기~제8기 상무위원 시작노트: 시의 기발에 씌여진 눈부시게 빛나는 두 글자는 곧 이다. 한 편의 시의 생명은 그 시가 표달한 진실한 감정에 있다. 우수한 시는 가장 쉬운 말로 가장 깊은 뜻을 표현한다 ///////////////////////////////////////////////////// 민족이라는 뿌리는 사적 감정으로 뿌리 뽑힐 일이 아니다         한국인, 조선족, 고려인은 한민족이란 기사에 대한 댓글이 너무나 악의적인 느낌이다. 혹자가 사적 감정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한다. 그가 누구일지는 모르나, 정상적인 사고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아울러 그러한 사적 이해의 태도가 대다수의 불특정한 중국교포 모두에게 덧씌워져서도 안될 일이다. 시인의 시적 대상으로서 역사란 왜곡해서도 안되고 왜곡할 수도 없는 서정의 발로라는 측면에서 석화시인이 갖는 서정을 보여줄 수 있는 대표적인 시 세 편을 소개한다. 먼저 "발해를 만나다1"과 "발해를 만나다2"를 보라! 누가 중국인이라 할까? 혹여 발해의 역사와 민족의 역사에 대해서 전혀 문외한인 바가 아니라면 한 시인의 사적 성장과정에 민족이 각인된 거짓없는 진실한 체험과 그에 대한 정의에 대해 몰찬 지탄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독자들의 객관적인 판단을 기대한다. 지금 우리의 문단에 역사가 사라지고 시적 토대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분명한 역사성을 보여주는 민족적 서정을 확보한 아래의 시에 대해 본인은 큰 공감과 한민족으로서의 자긍심이 시적으로 승화되고 있음을 깊이 목도하게 되었음을 고백하고자 한다. 발해를 만나다 . 1 -東京城역에서- 밤 기적소리 한줄기 베개머리를 스쳐간다 열차의 칸마다에 실려서 반짝반짝 눈을 뜬 꿈들이 여래보살 옥구슬로 목덜미 따라 줄지어 가고 큰소리치는 기차가 어둠 속에 지워진다 발해를 만나려 동경성역에 내리면 나를 싣고 온 밤 기차 해가 뜰 때까지 굽이굽이 몸 속을 굴러가며 울먹이는 기적소리를 듣게 한다 2000.5.2 *동경성: 발해국 동경부가 있었던 고을이름 발해를 만나다 . 2 -씨앗- 잃어버린 것이 아니다 밭고랑사이에 묻어둔 것 일뿐 우리들의 눈에 잠시 보이지 않아도 사라진 것이 아니다 하늘과 땅 사이에 서리는 기운 껴안고 씨앗들은 가만히 눈을 감고 누었다 구름이 비로 내리고 꽃은 열매로 모양을 바꾼다 천년이 간들 어떠리 오동성 담벼락에 부서지는 햇살이 늘 저러하지 않았다고 누가 말하리 *오동성: 발해국의 첫 서울 다음의 시 "꼬리에 대하여"는 소시민들이 꽉찬 서울의 혹은 도심의 변두리 포장마차에서 술잔을 깊이 들이마시며 사회주의 문학에서 찾아보기 힘든 모던한 상징성을 보여주고 있다. 아무튼 연변문학과 한민족으로서의 동질성이 중요시 되는 우리의 민족 상황에서 단점을 극구 가릴 일이야 없다하더라도 희생과 고난으로 점철된 이민족의 삶을 견디고 살아낸 민족을 모독하는 태도는 바람직한 것 같지 않다. 설령, 사적으로 판단될 일이 있다하더라도 그것을 일반화 하기에는 무리가 아닌가 생각된다. 꼬리에 대하여 1. TV속 동물세계를 들여다보다가 저도 모르게 엉덩이께로 손이 갔다. 밋밋한 미추 골이 만져질 뿐 아무 것도 없었다. 우리는 꼬리가 잘리 왔기 때문에 그들로부터 추방당하여 이 곳에 온 것 일가. 그네들 아름다운 세계에는 이미 꼬리가 삭 제된 우리들이 설자리가 없다. 모두가 아름답고 힘찬 그것을 달고있는 그들 속에 궁둥이가 밋밋한 우리들이 위치는 이젠 아무 데도 없다. 2. 꼬리곰탕 집을 나오며 피-시식 헛웃음이 나왔다. 누가 우리에게 그것이 없다고 하더냐. 이렇게 맛있는 꼬리곰탕을 먹으니 배가 뿌듯하고 혈색이 돌고 그것이 꿋꿋해지고 힘이 뻗히는데 누가 우리에게 그것이 없다고 하더냐. 그저 그 짓을 하려고 에덴동산 에 살금살금 기어 들어가기 위하여 사타구니에 깊숙이 감췄을 뿐인데 누가 우리에게 그것이 없다고 하더냐. 헛웃음을 피-시식 웃으며 꼬리곰탕 집을 나오던 것이 엊그제 일 이였는데 지금은 아니다. 3. 꼬리를 달아볼까. 줄무늬 곱게 간 다람쥐꼬리는 예쁘장한 아가 씨 엉덩이에 달아보고 굵직하고 꾿꾿한 물소꼬리는 이마 번듯한 어르신 궁둥이에 붙여 보고 그밖에 쥐꼬리, 소꼬리. 개꼬리, 토끼 꼬리, 여우꼬리, 말꼬리, 염소꼬리, 코끼리꼬리, 도야지 꼬리, 락타 꼬리, 당나귀꼬리, 범 꼬리, 사자꼬리, 양 꼬리 꼬리꼬리 꼬리마다 마춤한 궁둥짝들이 따로 다 있겠지만 어쩐지 아닌 것 같다. 4. 꼬리가 있으면 TV화면 속 저 해 빛 찬란한 언덕에 뛰어 가서 꼬 리 달린 그네들 흥겨운 춤판에라도 끼여들어 보겠는데 아무래도 자신이 없다. 그 숱한 줄말들과 캥거루들과 하이에나들과 노루, 사 슴들이 "에-익 꼬리도 없는 자식" 하듯이 눈도 한번 흘겨보지 않고 저희들끼리만 무리를 지어 화면 밖으로 내달아 가버린다. 그래서 빈방에 혼자 남겨져 심심해진 나는 저도 모르게 손이 자꾸만 궁둥 이를 만져 보지만 꼬리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영 자신이 없다. 5. 그래서 늘 뒤가 허전하다. 위트와 재치, 그리고 해학이 넘치는 시적 구성력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또한 우리의 가락이 넘치는 반복적 열거가 주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시작법은 평범한 말잇기가 시적으로 승화되어 독자로 하여금 웃음이 넘쳐나게 하고 있다. 서울 생활, 아니 팔도를 누비며 생활하고 있는 석화 시인의 2년 조금 넘는 한반도의 남쪽에서의 생활에서 얻어낸 시적 성과로서 너무나 빛나는 웃음을 주는 작품이다. 오늘도 석화 시인과 중국 교포들의 뒷뚱이는 어깨 넘어로 서산에 해는 지고 있다. //////////////////////////////////////////////////////// 연변의 민족 시인들(9) 윤청남 시인       그리움의 서정은 어디인들 다르랴, 인간이 살아가는 곳 그 어느 곳엔들 그리움이 없을까, 그런데 윤청남 시인의 시적 정한은 여전히 한민족의 그 모습이다. 그것은 우리 민족 여성이 보여주는 그리움의 서정인 것을 어쩔 수 없이 드러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페미니즘 미학으로 포장되는 요즘에도 여전히 우리에게는 남녀노소 할 것없이 사랑하는 상대에 대한 어쩌지 못하는 인내와 애타는 그리움들을 내면으로 깊이깊이 곰삭이고 있음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흔히들 세상살이의 풍경과 세태가 완연하게 변모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리고 그러한 자신의 모습을 외부적으로 강하게 발언하면서도 여전히 자신의 내적 정한의 세계 속에서는 참고 참고 또 참는 그런 그리움의 모습을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만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도 모자라 그러한 정한을 간직하고 참고 인내하느라 속 깊은 울음을 남 몰래 참아내느라 애태우는 것이 우리 민족의 서정인 것만은 속일 수 잆는 진실인 모양이다. 시인은 이미 그리움의 대상을 어디론가 보내고 나서 그 그리움의 대상을 못내 아쉬워하며 그리워 그리워 하면서 봄, 여름, 가을, 겨울마다 예민하게 계절마다 함께 했던 추억들을 되새기고 있는 듯하다. 가을이거나 봄이거나 사람이 간직한 그리움은 언제나 뭉게뭉게 피어오르나 보다. 게절이 가고 또 갈 때마다 더욱 더 깊은 그리움으로, 연기처럼 피어오르나 보다. 당신이 떠나고 돌아오는 봄 1 윤청남(중국 길림성) 강물은 흰 빛으로 머언곳에 서있고 산은 안개속에 두웅둥 떠있다. 기억에 없던 플랫폼의 종소리는 서간마다 다앙당 산간을 울리고 사토길 굽이굽이 남향작 내려앉은 해살이 어쩌면 이다지 이쁠수 있을까. 래일 앞서 꽃을 홀로 보는 마음 이 봄은 모르리. 당신이 떠나고 돌아오는 봄 2 꽃병에 꼿혀 피는 꽃이 가련하다. 당신이 없는 마당의 동요는 눈물겹다. 흙이 없어도 꽃은 피지만 산이 없어도 꽃은 피지만. 당신이 떠나고 돌아오는 봄 3 지난 가을 가을 바람속에 한잎두잎 동만자 기슭에 피던 진달래 꽃이 불현 듯 이 밤에 떠오른다. 기실 진달래 꽃이 가을에 피는데는 아무런 리우도 없다. 편벽한 기슭에 볕이 들면 한밤에도 슬퍼질뿐이다. 그런데 지난 가을 가을 바람속에 한잎두잎 동만자 기슭에 피던 진달래 꽃이 불현 듯 한밤에 피어난다. 당신이 떠나고 돌아오는 봄 4 그리워도 애타하지 말자 그대가 비워놓은 자리만큼 봄은 온다. 외로워도 흔들리지 말자 그대가 그리운 하늘만큼 꽃은 핀다. 너무 쉽게 슬퍼하지 말자 그대가 알면 아파할라. 당신이 떠나고 돌아오는 봄 5 더펄더펄 더펄더펄 나래 하나로 온 몸이 숨을 쉬는 이 봄의 호랑나비 장모님이 입선때 보약을 람용해서 왈패로 자랐다는 안해 더펄더펄 더펄더펄 호랑나비 이 창가를 스쳐가면 마주오는 해드라이트 불빛이 이 밤의 앞길을 꽈악 매워라 더펄더펄 더펄더펄 서있는 이 낮밤 바람 그 속을 호랑나비 꽃을 찾아 날아가면 당신이 떠나고 돌아오는 봄 6 호수가에 마알간 해살이 얼마나 진한 어둠인지를 누구도 모르리. 홀로 마주하기에는 너무나 푸진한 주안이 너무너무 목이 매라. 굶주린 저 노을 아래 어머님의 여윈 영상은 오늘도 사막에 일어서는 신기루 루각인가. 이 봄에는 설련화꽃이 한송이 두송이 눈속에 피는 사연을 조금은 알듯싶다. 당신이 떠나고 돌아오는 봄 7 간밤 창공을 수놓았던 별들이 이 아침에는 산과들에 반짝이는 이슬로 내려왔다. 한데 저녁이 아슬아슬 돌아와도 꽃은 하늘로 돌아가지 않는다. 꽃은 송이송이마다 모두 너무나도 살뜰한 천당 빛 거울이다. 이 봄에는 푸른잎에 맑은 령혼인 당신이 내 곁에 돌아와 바람으로 되어있다. 당신이 떠나고 돌아오는 봄 8 여보 우리집 창가에 홀로 초롱을 지키고 있던 새 한 마리를 기억하고 잇겠지 여보 그 연두빛이 해살을 몰고 우리 신혼의 푸른숲으로 날아왔던 그때는 어느해 해맑은 봄이 였던가 그리고 여보 그 연두빛이 짝을 잃고 쓸쓸했던 그 진붘은 황혼무렵은 또 어느해 황금빛 가을이 였고 여보 내 오늘 그 새를 놓아보낸다오 꽃이 피어 구름고운 저 하늘로 내 오늘 늦으나마 소리쳐 보낸다오 여보 그 연두빛이 울음 곱던 외로움의 찬란한 그 창가를 아직 잊지않고 있겠지 당신이 떠나고 돌아오는 봄 9 응달에는 이슬이 이 봄의 애수로 정오에도 푸른잎에 고여있다. 욕설을 나온 바위가 해살에 그림으로 곱다. 바람이 불어오는 끝을 따라 물은 흘러가고 파아란 수평선우로 파도가 하얗게 밀려온다. 속깊이 눈물을 다아 말린 새들이 또 운다. 당신이 떠나고 돌아오는 봄 10 그대도 떠났지만 나도 떠났다. 돌아오는 것은 봄이 아니라 내가 돌아오는 것이리. 해는 지구를 향해 오지 않는다 지구가 그의 곁을 돌뿐이다. 해는 앞뒤면이 따로 없다. 지구가 밤낮이 있을 뿐이다. 언제면 돌아간 어머님이 이 아들의 기억속에 지워질까 그것은 나와 어머님이 또다시 천당에서 만나는 순간이리. 당신이 떠나고 돌아오는 봄 11 잘 익은 과일나무 한구루를 애수의 눈매로 바라보는 바위속의 원숭이 유기형 5배년의 종점은 어딜까 한 낮에 내리는 애잔한 운석비 바다는 온 세상 끝물이 모여온 황금빛 가을 초원의 꽃밭우를 내닽는 바람의 쪽밭이 곱다 /////////////////////////////////////////////// 연변의 민족 시인들(10) 송미자 시인         길림성 용정시는 우리 민족 문화가 개화(開花)한 본거지이다. 그것은 한국에 있는 우리에게만 알려진 사실이 아니라, 중국내 교포사회에서도 여전하게 중요시 되고 있는 지역이다. 그러나, 문명 개화의 흐름이 빨라지면서 용정사람들은 어느새 소외의 쓴맛을 겪으며 용정에 대한 관심을 가져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연변과 우리 사회의 교류가 급속하게 발전되면서 상대적인 소외감을 겪고 있는 것이 용정시에 사는 우리 교포들의 현실이다. 우리의 더 큰 관심이 필요한 때인 것이다. 송미자 시인이 바로 용정에서 태어나 용정에서 살고 있는 시인이다. 대개의 교포 작가들이 그러하듯 그도 역시 수필과 산문도 많이 선보이고 있다. 그가 쓴 아래의 시편에서 보여지듯 그는 여전히 눈물 많은 시인인 모양이다. 그가 쓴 수필 박 꽃의 한 부분을 인용한다. "그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혈육의 피, 그 무엇으로도 끊을 수 없는 육친의 정이다. 천리만리 떨어져 있어도, 철조망이며 국경이 가로 놓여도 박꽃은 해마다 피여나고 혈육의 정을 잇는 뉴대로 되고 있다. 하기에 할머니께서는 해마다 박꽃을 피우셨고 언제나 박바가지를 쓰셨다. 조선(북한)에 계시는 큰 어머니도 해마다 박을 심으시면서 남편과의 상봉을 고대하고 있단다. 하얀 전수건을 하얀 머리에 두르시고 꼬부라진 허리도 펴시지 못하시면서 담너머로 강너머로 산너머로 기다림에 지치신 할머니, 오늘은 흩어진 혈육의 정한이 서린 이 자리를 어머니께서 메우며 서 계신다. 하얀 박꽃이여, 어서어서 열매 맺어라.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의 기다림으로 이루어진 숙명의 완성을 위하여, 피맺힌 수난의 력사에 종지부를 찍는 혈육의 만남을 위하여.....," 위의 박꽃에서 우리는 여전히 현 세기나 지난세기나 할 것없이 우리 한 민족이 숙명적으로 이산의 한을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것이 결국 우리 민족이 살고 있는 땅이라면 만주벌이든 남과 북이든 일본이든 세계 어느 나라에서든 유효한 민족 갈등의 요소이면서 우리가 극복해야할 과제란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시인은 그러해서 눈물에 맺힌 시적 정한을 풀어내느라 무던히 애를 쓰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젊은 시인은 이미 늙은 노인의 눈을 깊이 있게 응시하고 바라보는 처지에 다다른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하여 눈물이 맺히고 천리 만리 홍수라도 질 정도로 눈물을 쏟아놓고 무지하다할 정도의 큰 화해의 강을 간절하게 염원하면서 눈물을 쏟아낼 그날을 기약하며 박꽃이 피기를 고대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시인이여, 조금 이제는 조금만 더 참고 서로를 바라보노라면 우리가 염원하던 민족의 대동세상이 오지 않겠습니까? 시인이여. 이제 서로 바라볼 생각은 하는 때이니, 조금 더 참고 기다리며 앞장 서 나가십시다. 슬픈 시인이여! 노인의 눈(眼) 송미자 기인 긴 그리움의 터널 기인 긴 서러움의 터널 그 눈속(眼里)을 다시 걸어 들어간다해도 장-장 반백년이 걸리리 눈물 고목의 눈에서 흐르는 것은 뼈가 녹은 뼈물이요 피가 려과된 피물이리 반 백년 삭여낸 마을의 정수(淨水)로 사책(史策)에 얹힌 먼지 씻어낼 듯 홍수 칠천만의 눈에서 쏟아지는 눈물에 반도가 잠긴다 태평양 수위가 오른다 그리움이 터진 서러움이 터진 정감의 홍수여 지심(地心)이 흐느끼는가 이글거리는 용암같은 뜨거운 피 걸죽한 피 쏴-쏴 마지막 방파제를 터친다 피를 속일수 없더라 다섯 번 변한 강산이라도 피는 변할 수 없더라        송미자(宋美子): 중국 길림성 용정시 개산툰 남산 ///////////////////////////////////////////// 연변의 민족 시인들(8) 홍용암 시인   그를 만나지는 못했다. 그것은 전적으로 그가 바쁜 탓이다. 그저 이메일을 통해 받은 시편 정도로 그를 안다. 연변의 작가들을 통해 들은 풍월은 있다. 그는 아래 이력에서 보듯 70년 생이다. 그런 그가 5개 회사를 갖고 있는 연변 조선족의 거부가 될 때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고 한다. 그럼 그렇지, 그런 우여곡절이 결국 그를 문화에 기여하게 하고 연변 문화인들의 풍요한 삶의 일부를 보장하고 있는 것이겠지. 그는 연변에서 행해지는 여러 문화 행사에 대해서 많은 기부를 하면서 그 또한 문화인으로서의 본색을 유감없이 보여주듯 틈틈이 시편을 정리해가고 있다고 한다. 그는 연변 최초의 외국어 학교를 세우면서 많은 사람들의 시기 속에서 무난하게 버텨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한족이 지배하고 있는 중국이란 나라에서 자치주라고 해서 완전한 자치체제도 아닌 이민족이 그만한 사업을 이루었다는 것은 참으로 장한 일이다. 그러한 일이 그다지 쉬운 일이 아닐 뿐 아니라 엄청난 경계의 대상인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남북관계가 좋아지면서는 더욱 그들의 경계가 노골화 되어가고 있고, 주요 부처의 장은 중국 내 거주 교포들이 맡아 하지만, 최소한 서열 2위의 직 정도는 맡아 보는 것이 일상화하는 추세라고 하니, 본국이라 할 남북한에서의 연변에 대한 대응 태도는 어떤 것인지 깊이 있게 생각해 볼 문제인 것이다. 홍용암, 필명 백운, 그야말로 조선적인 닉네임들이 아닌가? 이제 그가 이룬 대업이 중국 내 교포들의 생활과 문화적 토양을 굳건하게 하는 토대가 되도록 우리가 더 많은 관심과 성원을 보내주어야 할 것이다. 연변조선족 자치주 인민대표위원회 상임위원이며 중국연변인민출판사 문예편집부장의 말에 따르면 그와 연변 조선족 자치주에서는 공동으로 문예창작학과를 두고, 문학상 등을 제정하는 등에 대한 논의를 수차례 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중국 내 공안 당국의 방해로 그 결실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이지 않게 저항의 뿌리는 지속성을 갖고 뻗쳐 내려오는 데 우리는 너무도 작아져 버린 것은 아닌가? 남북으로 갈라져 서로의 등을 돌린 지도 반세기가 지났다. 그런 마당에 남쪽 내부에서의 토착화된 지역 감정의 벽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우리의 내적 구심을 더욱 강화하고 우리의 시선을 저 멀리 만주나 시베리아로 돌려 바라볼 때가 아닌가 생각된다. 어려운 여건 하에서 기업을 일으켜 민족 문화의 내적 자산을 키워가고 있는 젊은 미래의 희망은 우리 민족의 젊은 기상으로 꽃 피어날 것이라 기대하면서 그의 건승을 기원한다. 그의 시가 수작은 아닐지언정, 그의 시의 내면에 담긴 동화적 상상력은 인정되어야 할 것으로 보이며, 그의 진실한 고백이 담겨져 있는 것 또한 그의 진실성을 보여주는 창작으로 인정하고 싶다. 하루살이가 되고 싶었던 그 날 홍용암 나는 그 어느 가장 청명한 여름날의 하루살이가 되고 싶었다 우리는 순간적인 그 하루만 사슴처럼 새처럼 사랑했다 이튿날 헤여져야 했으니깐 그 아름답게 사랑했던 하루 그날 새벽 0시에 태어나 자정 24시에 죽었다면 나의 기억속에는 다음날의 비애가 없을 것이다 영원히 그 행복했던 하루만 내 한생에 전부로 길이 남아 그러면 나는 단 하루를 살아도 행운스럽게 길한 날 태여나서 유감 한점 없는 삶을 마칠 것이다.... 꽃무덤 무수한 관광객들이 드나드는 초가을 공원 길거리에 깨끗하게 늙은 어멈 한 분이 떨어진 꽃잎을 쓸어모아 무져서는 한무더기 꽃무덤을 만든다 아무래도 무심히 지나칠수 없다 어쩐지 그 한잎한잎의 꽃무덤이 그 어멈이 스쳐지난 자취같이 보인다 얼마나 아름다운 나날들을 그윽한 향기속에 흩날렸을가... 녀자 가장 가냘픈건 고독한 녀자다 고독한 녀자보다 측은한건 버림받은 녀자다 버림받은 녀자보다 불쌍한건 죽은 녀자다 죽은 녀자보다 불행한건 잊혀진 녀자일게다 까맣게... 물고기 륙지의 자그마한 개울물에 살던 물고기 한 마리가 바다가 번화하다는 소문을 들었다 꾀죄죄한 개울을 떠나 한번 그곳에 가서 보람있게 버젓이 살아보리라 마음먹었다 항구도시에 이르러 사품치는 바다격류에 휘말려들자마자 물고기는 그만 지각을 잃고말았다... 욕 인간들이 서로 욕지거리 한다 --개같은 것이! 개들도 물고 뜯을 땐 개나라에서 가장 험한 쌍욕을 할 것이다 --인간같으니라구야 에잇 퉷퉷... 홍용암: 필명 백운(白云) 1970년 6월 26일 중국 흑룡강성 동녕현 삼차구향 동방룡촌에서 출생 16세에 첫동시집 「꽃무지개」를 출판 서정시집 「흰구름이 된 이야기」, 「려행자」, 동시집 「나는 시골아이」, 「사슴뿔 나무」등 출판 전국, 성, 주 및 해외문학상 수차 수상 현재 「청춘극장」신문사 사장, 「별나라」특약편집, 연길시외국어학교 등 5개 회사의 리사장, 흑룡강작가협회회원, 연변작가협회회원 /////////////////////////////////////////////////////// 임금산 시인     중국에서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동명이인의 교포작가로 임금산이 있다. 심양에 임금산과 연변에 임금산이 그들이다. 오늘은 연변의 임금산 시인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화끈하다. 그러면서도 뒤가 좀 무르다는 느낌도 주는 사나이다. 사람이 살아가다 보면 이런 일, 저런 일, 겪는 것이 인지상정이리라. 본인은 임금산 시인을 만나자마자 뜨거운 환대의 정을 받았다. 그것은 심양의 임금산 시인도 마찬가지였다. 심양의 임금산 형에 대해서는 나중에 이야기 하기로 하자. 오늘 언급하려는 연변의 임금산 시인은 거나하게 마신 술에 급하다 싶을 정도로 본인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리고 자신의 일터인 연변작가협회로 아니, 월간 연변문학 사무실로 초대를 해주었다. 그런데 약속한 시간이 다 지나도록 아니 일년이 가까워지는 지금까지도 연락이 두절이다. 우리의 역사를 따르는 것인지, 아니면 한민족의 애환의 역사가 저 만주벌이나 세계 만방에 한민족이 사는 곳 어느 곳에라도 어두운 그림자를 하고 따라 다니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다름이 아니라, 이념성을 전제로 하고 양갈래로 나뉘어 서로가 서로의 적인냥 형성되는 이념적 기류에 휘말려든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쩔수 없이 그러한 현실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본인이 나중에 연변문학 한국지사장을 통해 안 사실이 참으로 우습고 기가 막히다. 사실인즉 연변에도 우리처럼 문단의 갈래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주요 갈등 요인의 하나인데 흔히 말하는 민족문학파라든가? 문협파라든가 하는 식의, 그런데 그것이 우리의 경우와 상통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이국의 땅에 사는 민족간의 갈등 요인인 것을 분명하다. 누가, 아니 무엇이 우리 민족을 이렇듯 뼈저리 고통 속에 가두었던가? 중국의 사회적 변화, 문화적 변화 속에서 특정한 입장에 대하여 선택을 강요받는 상황에서 어떤 입장을 택한 사람을 본인이 가깝게 만나서 함께 만나게 된 것이 그 이유라니, 아무런 사정도 모르고 중국에 있는 반가운 교포 시인들을 만난 본인의 입장에서는 일면 억울하기도 한 일이지만, 본인에게는 모두가 한결같은 민족시인이었다. 나중에 임금산 시인을 만나거든 이런 저간에 이야기조차 다 털어놓고 술 한잔 진하게 마셔야겠다. 슬픔을 머금은 을 하듯 한번 살짝이 말을 건네볼 일인 것이다. 사슴의 귀띔 임금산 아지치는 나무가 자꾸 하늘 속에 손을 뻗치잔다. 또 하나의 언덕이 불쑥 솟는다 잊으려 해도 못잊을 사람아 너는 언제가야 새들의 노래랑 내 물의 속삭임과 흙의 향기랑 먹을 줄 알 것인가 나는 지금 불타는 서산기슭에서 슬피 우는 사슴의 울음소리에 귀가 솔깃해진다 야, 내일은 우리 함께 청산에 또다시 꽃이나 심어볼까! 불새가 난다 빨랫줄에 하느작이는 꽃 적삼에 눈 뿌리가 빠진다 코마루선이 반짝거려 활랑이는 가슴 고운 목청은 잔디밭에 구운다 님아 그 퍼덕이는 날개 밑에서 싱싱한 바람 한줌 쥐여보고 싶구나 그 청청한 잎을 뜯어 이 한 몸에 푸른 피를 수혈하고프다 총알처럼 가슴 짜개고 빠져 나오는 불새 하늘 끝은 구름 한 점 없다 시작노트: 시는 내 마음의 등불이다. 걸어가는 내 인생비탈에 시는 지팡이며 친구다. 시의 영혼을 부르며 나는 살아있음을 깨친다. 야박한 《인간》들 무리 속에서 시만이 나를 호흡하게끔 틈서리를 준다. 임금산(林錦山) 1960년 중국 길림성 도문시 출생. 1984년 연변대학 조선어문학부 졸업. 1982년부터 작품활동. 서정시, 동시, 수필, 실화 400여편 발표. 동시집 《사랑의 동그라미》펴냄. 현 중국 조선족 소년보사 주임편집. 연변작가협회 이사. 《두만강 여울소리상》,《한국월간아동문학상》등 10여 차의 문학상 수상. 연변의 민족 시인들(6) 이성비 시인       어머니가 휴전선에 계시데요. 아! 이 연변의 하늘에서도 시인은 분단의 어머니를 떠 올리고 있건마는, 우리는 지금 무엇하고 있는 걸까요. "발 길이 닿는 곳마다 나는 시의 얼굴을 봅니다. 그대로인 그 모습에 시가 있다는 것은 우리가 머무는 곳 마다, 우리의 온 천지가 민족의 얼굴과 민족의 영토였기 때문입니다." 이성비 시인의 말이다. 깊이 패인 눈빛에서 부터 그의 진지함은 드러난다. 혹여 그가 거친 얼굴과 거친 말투를 가지고 있는 시인이라 생각하진 말아 달라. 그는 은은한 미소와 잔잔한 파문조차 머물지 않을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이성비 시인, 그의 시편에서 볼 수 있는 것은 가는 곳마다 시의 열매로 화(化)하는 것이다. 내가 어디 갔다. 그는 그것을 시로 말한다. 시인이 시에만 갇히는 것은 자칫 자가당착에 빠지기 쉬운 면이 없지 않으나, 그가 머무는 시를 향한 눈길에는 질곡과 역사의 살가운 체험과 실질의 마음이 함께 하고 있음에서 그는 온통 진정성이 몸 안에 박혀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연변의 시인들이 대개의 경우, 문학일군으로 자리잡고 있듯 그도 마찬가지로 출판일을 하고 있다. 어떠한 체면과 겉치레에도 아랑곳 없는 그의 고집은 연변의 시인들 속에서도 은밀하게 감춰져 보이는 진실이다. 그저 자기만의 시적 세계에 집착이 또 다른 고집으로 나타난 것은 아닐까? 다시 그를 본다면 말벗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싶다. 그와는 짧은 술잔을 나눈 것 말고 이야기가 없었다. 어쩌면 그는 만남의 그 순간에도 시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의 기행 시편과도 같은 아래의 시들은 우리가 오가지 못한 휴전선까지 오가면서 쓴 시이다. 감나무 - 옥천에서 이성비 손이 델가 두려워 그저 쳐다만 보데 주인님 계시냐 물어도 대답이 없데 뚝 뚝 뚝 속살까지 무르익은 사랑 뜰안에 떨어져 뭉클하니 터지데 밤이면 고양이 눈에 불덩이가 맺히데 장승 - 순천에서 설음이 욱실거릴 때 할배할매 설음만 잡아먹고 느러지게 배부르고 살찌고 장수한 액막이 천하대장군 지금은 설음이란 놈이 야생동물처럼 총을 맞고 잠만 자기에 한해에 겨우 한두 번씩 맛보는 신세 굶주린 창자 끌어안고 목쉰 장승 앞에 나는 술 부어 올리고 쌓인 한을 한마당 토해 놓는다. 어머님 - 휴전선에서 남쪽에 계시기도 저어하시고 북쪽에 계시기도 저어하시네 꿈이면 꿈마다 하얀 갈꽃 날리시며 휴전선에 서 계시는 어머님 그 옛날 귀한 자식 때리시던 손바닥으로 그 옛날 가갸거겨 가르치시던 손끝으로 가슴 찌르는 가시철망 움켜잡으시고 남몰래 검붉은 피 흘리시네 얄리얄리 동동 남에도 귀여운 내 새끼 도리도리 동동 북에도 귀여운 내 새끼 어머님은 오늘도 중얼중얼 하루해를 서산에 지우시네 시작노트: 시는 내 인생에 민족정신의 구세주와도 같다. 이 구세주를 잘 모시는 것은 나의 시적 자존심과 정직성과 양심을 개발하는 것과 정비례 될 것이다. 이성비(李成飛) 1955년 중국 길림성 연변 출생. 시집《나는 당신의 고무지우개인가》, 《이슬 꿰는 빛》등 다수. 《길림성 인민정부 장백산 문예상》등 30여차 문학상 수상.  연변작가협회 회원. 연변민간 문예가 협회 사무국장, /////////////////////////////////////////////// 연변의 민족 시인들(5) 박정웅 시인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무수히 많은 간극들이 조금씩 틈을 벌이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 간극을 좁히기 위해 한 켠에서는 피와 땀을 흘리며 애쓰는가 하면, 다른 한켠에서는 그 간극을 좀 더 벌려서 호화로운 삶을 영위하려고만 한다. 그것이 물질적이건 정신적이건 분명한 사실이다. 여기는 사회주의 중국이다. 박정웅 시인이 살고 있는 곳은 분명 중국이란 땅이다. 그의 자화상 속에서 우리는 보편적인 인간의 속성을 볼 수 있다. 그가 중국이란 땅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시를 통해서 알 수 있는 대목은 없다. 오히려 우리에게는 저 울산의 노동 현장이나 구로동 노동현장, 그리고 도시 서민들의 억눌린 서정을 더 쉽게 보여주고 있다고 해야 할 것만 같다. 그러나, 그는 분명 사회주의 중국, 개혁과 개방의 조화로운 자본주의(?) 시장 시스템을 어느정도 수용해가고 있는 나라에서 살고 있다. 그런 그가 쓴 시를 보면서 우리가 갖게 되는 생각은 인간적 보편성을 통해 그의 시가 구현되고 있다는, 창작되고 있다는 생각이다. 그는 30대 초반의 청년 시인이다. 그리고 그는 한민족의 후예다. 끊임없이 미래에 대한 희망을 꿈꾸고 있는 시인 박정웅이 애달파하는 모습을 굳이 시적 해설이란 수사로 설명하지 않아도 될 듯 싶다. 우리에게 저 박정웅 시인과 같은 고민과 고독한 인내가 지금 존재하고 있는지 자문하면서 한 통일되는 날, 그와 함께 고락의 술 한잔을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한다. 하얼빈에 가시거든 안중근 의사만 찾지 말고, 이 시대를 사는 안중근이라할 우리의 교포들 자랑스러운 안중근의 후예들과 정성으로 만나보시기를 권한다. 자화상 그림자처럼 밟히고 무시당하는 사람 그림자처럼 수상하고 불길한 사람 그림자가 길어 늘 지치고 외롭고 추운 사람 마침내 자신이 그림자로 되여가는 사람 꿈 뉘시오? 내 꿈의 삼림에서 쩡쩡 나무를 찍고 있는 것은 거 뉘시오? 어서 나오시오 꿈밖에 없는 시인에게서 꿈만큼은 제발 앗아가지 마시오 락엽 현실의 나무가지를 떠난 락엽 하나가 투명한 대기속에서 류랑자처럼 떠가다가 취한처럼 휘우뚱거리다가 신부처럼 사뿐 내 마음에 내려앉는다 겨울이 왔나부다 박정웅 1990년 할빈공업대학 본과 졸업. 현재 "대중과학"잡지 편집, 서정시, 수필, 문학평론 다수편 발표. ///////////////////////////////////////////// 연변의 민족 시인들(3) - 김현순 시인       낮은 눈높이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인 김현순, 그는 연변의 중국 교포 사회에서 아이들의 동심을 키우는 전도사 역할을 하고 있는 시인이다. 그가 복무하고 있는 일 또한 그의 시심대로 행해지고 있다. 그는 아동 출판 관계 일을 하면서 계속적으로 아동문학의 발전을 위해 여러가지 행사도 기획하고 백일장 같은 문예창작 의욕을 북돋우는 일에도 앞장서고 있다. 그가 아이들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에는 이념도 국경도 없다. 그저 편안하고 아늑하게 바라보는 아이들에 나라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그의 시는 동시가 아니라도 동화적이다. 우리가 읽는 그의 시가 동화적인 세계로 투영되어 바라보이는 것은 순전히 그의 따스하고 다정한 눈길에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사랑스럽고 천진한 눈으로 바라보는 아이들에 서정 안에서 언제나 밝고 투명한 김현순 시인은 함께 부른 노래를 부를 때도 재기발랄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래서 어깨라도 감싸주고 싶은 그런 시인이었다. 토실토실한 토실이의 몸뚱이를 한 시인은 아직 총각이다. 그가 바라보는 선한 눈매에 어울리는 배필을 이 봄에 맞았을 지도 모르겠다. 봄 봄은 기다림이 있는 곳으로 찾아온다 때로는 기다림이 없는 곳에도 찾아온다 보잘 것 없는 한 송이 피고 보면 얄미운 나비가 날아와 화심을 짓이기고 짓이기우는 아픔이 싫어 지고 보면 어찌할 수 없는 슬픔의 향수 봄은 두살박이 아이가 어머니 품에 안기듯 타박타박 어푸러지며 달려오고 때로는 빛깔 곱고 맛갈스러운 새까만 까마귀 열매로도 열린다 낙엽 푸른 하늘 우러러 한껏 펼친 나뭇가지에 매달려 푸르름을 뽐내다가 온 몸을 불태워, 빨갛게 불태워 엄마의 자장가 즐겨듣던 태초의 아침에로 서슴없이 뛰어내릴 일이다 우수수 우수수 귀 맛 좋게 들려오는 낙엽의 노래 허무함과 고독함 헐벗은 나뭇가지에 걸어두고 스핑크스처럼 야릇한 미소지으며 흙에로 찾아드는 장엄한 모습이랄까 세월의 길목에서 사람들에게 짓밟히고 이리저리 바람에 불리어도 한 움큼 하늘을 껴안고 태동하는 봄을 꿈꾸는 낙엽이야기 이제 꿈보다 더 곱게 사랑보다 더 밝게 소문 없이 피어날 일이다 그리고 봄 오는 날 뾰족뾰족 눈뜰 햇순들을 위하여 포근히 꿈을 덮어줄 일이다 한잎 두잎 날아내리는 가을 낙엽 제 이름을 기억할 새도 없이 단풍은 오늘도 빨갛게 탄다 안경알 때로는 크게 때로는 작게 때로는 뚜렷이 때로는 희미하게 안겨오는 세상이 있었습니다 시력이 0.5 밖에 안 되는 사내 콧등에 도수 높은 안경 얹어 놓았을 때 세상은 비로소 불편함이 없었습니다. 두 개 밖에 안 되는 안경 알 속에 세상이 그렇게 쉽게 담기는 것은 웬 까닭일까요? 꿈을 깨고 보면 모든 것이 정다운 모습들인데 덩치 큰 가슴이 아닌 밤 중 쓸쓸해지는 것은 사랑에 근시인 마음의 콧등에 안경알이 얹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라 하겠습니다.         김현순 1968년 중국 길림성 안도현 만보향 공영촌 출생 연변대학 조문학부 졸업 300여 편의 문학작품 발표 해란강 문학상, 한국계몽아동문학상 등 해내·외 문학상 수차례 수상 시집으로는 , 가 있음 중국 연변작가협회 회원 시작노트 시는 인생공부의 흔적이다. 한편의 좋은 시를 쓰기 위해 모지름 쓴다는 것은 그만큼 인생에 대하여 열심을 보인다는 것이다. ////////////////////////////////////// 연변의 민족 시인들(2), 권순진 시인     연변의 토비라 불리는 왕발 권순진 시인 젊은 시인이다. 연변에서는 별명이 토비로 불리는 데, 토비란 우리말로 조폭(?)이란 의미 쯤으로 해석해도 될 듯하다. 물론, 실제 토비는 아니다. 그는 연변작가협회 회원으로 연변이나 용정 등 우리 민족의 자취에 대해 세세한 항목까지 모르는 바가 없다. 그러하기에 그의 가이드를 받는다는 것은 행운이다. 하다못해 땅의 평수, 인구수, 그리고 세세한 민족의 역사에 대하여 꿰뚫고 있는 해박한 지식의 소유자이다. 그는 연변의 가무단에서 한 때 무용을 하기도 했을만큼 여타 예능에도 뛰어난데, 그가 가는 곳마다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필자는 그와 함께 민족의 성산 백두산을 찾았다. 연변에서 백두산까지는 약5시간 가량이 소요되는 거리인데, 길거리에 노점부터 백두산의 공안까지 모르는 이가 없었다. 덕분에 식사는 무료 접대를 받았고, 백두산 천지를 택시로 오르는 것도 공안의 협조를 받아서 가능했다. 그는 정이 넘치고 노래와 춤에 일갈을 하고 있어 흥겨움도 넘치는 젊은 친구다. 그의 아내는 중학교 선생, 연변의 교원이다. 그는 지난 봄까지 중국에서도 남쪽지방인 해남도에서 한국의 신혼부부를 위한 가이드를 도맡아 해주었다. 그리고 지금은 다시 연변에 돌아와 글쓰기와 가이드일을 하고 있다. 젊은 그가 우리 민족의 구성체로서 긍지를 갖고 살아가는 것을 보고 도울 길이 없나 늘 생각하는 필자는 그를 생각하면 항상 미안한 마음뿐이다. 그가 보여준 정성스러움이 그 어릴적 고향의 정에 넘치는 맏형 같은 품이 넓은 도량을 보여주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필자보다 나이가 어리지만, 두만강변을 지날 때나, 용정에 명동학교에서나 그가 우리 민족정신을 꿰뚫고 열변을 토하는 것을 볼 때, 망연자실 나의 모자람에 고개를 수그리게 되었다. 연변의 낯선 하늘에 우리 민족의 긍지가 살아 숨쉬고 있으니 이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멀리서나마 그의 건필을 빈다. 그리고 올 여름에는 꼭 가서 다시 만나야 하겠다. 그의 시들 속에서 사랑이 넘치는 데, 그는 시달린 민족의 지난날 속에서 빠져 나와 이제 어여쁜 사랑을 노래하는 시인이고 싶단다. 천사 폭포 같은 머리를 곱게 드리고 수줍은 듯 몸을 꼬는 버드나무를 보면 그녀 생각이 난다 귤쪽 하나를 집어 잘근잘근 씹으니 여린 그녀 입술 씹던 느낌이다 그녀 누웠던 자리에 달빛을 조용히 펴놓고 있노라면 그녀가 살아 움직인다 거리에 나서면 사내들 눈뿌리 빼던 향기 그윽한 아름다운 자태로 조용히 내게 걸어온다 하얀 티셔츠에 까만 미니스커트 떠날 때의 차림대로 언제나 내게는 유혹으로 와 닿던 예쁜 가슴을 쑥 내밀고 스타킹도 신지 않은 예쁜 다리를 잔뜩 드러내고 그 모습 너무도 눈부셔 나는 눈을 감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녀는 가고 없었다 제 자리로 간 게다 아득히 먼 천국으로 그녀는 오늘도 스무살이다 천국에 간 사람은 나이를 먹지 않는단다 그녀는 천사로 된 게다 아니 그녀는 워낙 천사였다 봄 해거름 강가에 동그마니 앉아 명상에 잠겨 있는 소녀 하나 강바람에 날려오는 향기는 소녀향기일까 봄향기일까 가만히 다가서면 놀란 사슴처럼 달아날까 아니면 웃으며 반겨줄까 해거름 강가를 거닐며 이름 모를 소녀한테 나는 마음을 빨리웠고 혼을 앗기었다 무궁화같이 이쁜 소녀 봄 가슴 설렌다 그리움 멀리 간 숙이가 그리워 남 다 자는 밤 그리움을 밤하늘에 걸어본다 그러면 그리움은 별이 되어 반짝인다 저 빛이 숙이 있는 곳까지 갈까 숙이가 저 빛을 볼 수 있을까 바보스런 생각 굴리다 담배를 붙여 문다 그리움은 또 담배불이 된다 빨면 빨수록 가슴 태우는 빠알간 이윽고 날이 밝는다 그리움은 또 해가 된다 그리움은 이글이글 누리에 타 번진다 그래서 식을 줄 모르는 영원한 존재가 된다 숙아 겨울을 좋아했던 숙아 바람속에 세월은 흘러 계절은 가고 또 오지만 너는 왜 돌아오지를 않느냐? 솜같은 눈송이가 그대로 그리움이 되어 내려 쌓이는 밤 아름다운 추억이 하얗게 깔린 거리를 홀로 거닌다 숙아 애단로 길모퉁이엔 이 밤도 구운 고구마 파는 아저씨의 사구려 소리가 귀 맛 좋다 숙아 기억나니? 어느 동지달 눈 오던 날 해방로 포장마차에서 먹던 팥죽이 얼마나 걸었던가 삼꽃거리를 눈 속에 묻혀 행복에 묻혀 언제나 정답게 느껴지는 하얀 눈 우리의 만남을 축복해주던 하얀 눈 마주보며 눈 속을 거닐 때 유난히 긴 네 눈초리에 맺히던 하얀 눈 너무나 익숙했던 너의 모든 것들 갈라진지 오래지만 잊혀지지 않는 그 모든 것들이 시시각각 내게로 다가와 내 마음 괴롭힌다 제발 잊어달라는 너의 마지막 부탁 미안해! 들어 줄 수 없어 아무리 세월이 흐른다해도 너만은 잊을 수 없어 이제 다시 만난대도 난 사랑한다고 말할 거야 숙아 영원한 내 사랑아 권순진 1967년 중국 길림성 훈춘 출생 1989년부터 작품활동 시작 서정시, 동시, 수필 60여편 발표 현재 연변작가협회 회원 신문 편집부 주임 **시작노트** 시는 나의 사랑이다 시와 함께 울고 웃으며 한 생을 살고 싶다. ////////////////////////////////// 심연수 시인의 봄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온다(?)           식민 치하의 봄은 대개의 시인들의 시에서 조국광복의 기대에 찬 상징적 은유로 일반화 되고 있다. 또한 식민 치하가 아니라도 보편적으로 사람들은 억압과 굴종 속에서, 혹은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두루 쓰는 상징으로 봄을 가져온다. 제 1 편 소년아 봄은 오려니 봄은 가까이에 왔다 말랐던 풀에 새움이 돋으리니 너의 조상은 농부였다 너의 아버지도 농부였다 전지(田地)는 남의 것이 되었으나 씨앗은 너의 집에 있을 게다 가산(家山)은 팔렸으나 나무는 그대로 자라더라 재밑의 대장간집 멀리 떠나갔지만 끌 풍구는 그대로 놓여있더구나 화덕에 숯 놓고 불씨 붙여 옛소리를 다시 내여봐라 너의 집이 가난해도 그만한 불은 있을 게다 서투른 대장쟁이의 땀방울이 무딘 연장을 들게 한다더라 너는 농부의 아들 대장의 아들은 아니래도... 겨울은 가고야만다 계절은 순차(順次)를 명심하자 봄이 오면 해마다 생명의 환희가 생기로운 신비의 씨앗을 받더라. 지금 우리에게도 봄은 오는가? 눈물겨운 한탄에 강력한 응집력을 보이면서 봄을 끌어다라도 맞이하겠다라는 상징적 표현들이 이미 우리가 보아온 많은 시편들에 있다. 심연수 시인의 시편들에도 예외가 아닌데, 그 절절함이 목소리 높이 처절한 절규에 가까울 것 같기도 하건마는, 왠지 심연수 시인은 너무도 담담하다. 그래서 필자는 이렇게 보았다. "이육사 시인 같기도 하고 이상화 시인같기도 하고 윤동주 적이기도 하다." 때로는 지사적 풍모를 볼 수 있을 만큼 단호한 시어가 드러나는가 하면 할머니의 숨결 같고 어머니의 숨결같은 그런 자근자근한 목청으로 시를 써내려 가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심연수 시인은 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담담하게 소근거린다. 하고 읊조린다. 그래 분명 안 올 수 없다. 그런 당당한 기백같은 것이 숨겨져 있는 것 같다. 나즈막하지만, 단호하고 단호한 것 같지만, 너무나도 유유자적하게 걱정 말란 듯이, 봄이 올테니 걱정 마라! 소년아! 쯤으로 읽어도 전혀 무리가 없을 듯 하다. 그래서 많은 시인들이 제목에 그리 신경을 쓰는 것인가? 심연수 시인의 시에서는 대부분 상징이 강한 응집력을 보여주는 것은 물론, 편편히 경망스런 표현보다는 차분하고 가녀린 듯하면서도 단호한 느낌을 준다. 그럼 또 다른 시 두편을 감상해보자. 제2편 솔밭을 걸으며 솔밭엔 길 없어도 걷기만 좋더라 묵은 솔방울이 땅에 떨어져 굴고 있는데 뜻모를 골바람만이 이곳을 쓰다듬는다 새조차 안우는데 골바람마저 멀어 모를 곳 그 어디에서 바디소리 들려온다 망향에 쩔은 몸이니 갈줄을 몰라라. 제3 편 방랑(放浪) 나는 가련다 정처없이 또 이 발길 가는 곳 어데냐 맞아줄이 없는 낯선 땅 머물 곳 정함없는 타향에서 호올로 헤매고저 또 떠나노라 떠나는 나그네길 서글퍼도 안갈수 없는 방랑의 신세 어제 머물던 오막살이엔 박꽃이 수없이 피였건마는 서리전에 굳을 열매 과연 몇이나 될고. 구구절절하게 평을 써보기도 하겠지만, 이 시편들을 굳이 시평이라고 쓴다는 것이 왠지 서먹하다. 식민의 경험이 있는 조국에 사는 우리가 굳이 설명을 아니 평을 보아가면서 시를 감상한다는 것은 시인에 대한 모독이든 식민 조국에 살아온 조상들에 대한 모독이든 아무튼 그냥도 읽어 내려가 그 의미가 새록새록 우리의 뇌파에 전이될 만한 완벽한 시라는 생각에서 더 이상에 평은 쓰지 않기로 하겠다. 위의 몇자 정리한 것도 평이라기 보다는 심연수 시인의 작품들을 앞으로 소개해 나가려는데 일부 필요한 서설이 이라 생각해 주시길 바라면서 작품을 감상해 주시길 바라고 일본의 교과서 왜곡을 다시한번 되새김질해 보시길 권한다. 앞으로 틈틈이 시의 짧은 평과 시를 소개하기로 약속하면서 이만 줄입니다. /////////////////////////////////////////////// 제1편 고독의 향연 외 2편 김경희 산에 안겨 다소곳해지는 나무는 산그늘에 커간다 눈감으면 외로웠다는 너의 쓸쓸한 너의 목소리 날 울린다 산이 떠난 보이지 않는 자리에 나무는 말없이 무거운 그리움 심고 비인 하늘 바라보며 너처럼 눈감는 련습 해본다 제2편 플랫트홈에서 오는 자취 없이 한 자락 운무가 내린다 이슬이 자오록이 차 오르는 지평선이 흔들리고 있다 터지는 울음을 참는 진달래의 목 메이는 모습 어느 사이 하늘은 보이지 않는다 진한 아픔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흐르고 있다. 제3편 어머니 아프면 떠올리는 하늘이 있다 목마른 이에게 청신한 아침처럼 지치면 시름없이 누워도 좋은 잔디밭이 있다 해 빛 하나 넘겨주고 대신 젖어있는 행복한 그림자가 있다 시작노트--내가 나와 가까워 질 때면 시는 나를 부릅니다. 조용한 나와 대화합니다. 이슬처럼 령롱히 내 령혼을 깨웁니다. 김경희 1961년 중국 길림성 도문시에서 출생 1997년 〈은하수〉에 처녀작 단편소설 〈허공멜로디〉를 발표 이미 소설,수필,시 50수(편)발표 그 중 대부분이 시. 현재 중국연변작가협회회원 1999년 〈은하수〉의 〈엄마 아빠 되던 날〉짧은 글짓기 응모에서 1등 상을 수상. 중국 길림성 도문시국가세무국근무 제1편 짧은 절망 외 2편 김 충 벌레가 나를 눈뜨게 한다 뛰고 뛰여도 먼먼 무지개 날개 없는 이 아픔... 그래도 가야 하는가 꿈 찾아 기고 또 기는 저 뽕잎 위의 버러지처럼... 제2편 애기 엄마 되던 날 애기 엄마 되던 날 나는 엄마가 보구펐다 남편의 따스한 손 이마의 땀 닦아주어도 먼 곳의 엄마 손이 그리웠다 어릴적 내 뺨도 때리던 손이지만 그 뼈 앙상한 손이 그리웠다 애기 엄마 되던 날 나는 엄마가 보구펐다 시어머님의 다정한 목소리 조용조용 아픔을 씻어주어도 먼 고향집 엄마말소리 듣고팠다 ---- 춘아, 조금만 더 힘내 애 엄마 될 애가 울기는... 애기 엄마 되던 날 나는 엄마가 너무너무 그리웠다 엄마의 포근한 숨소리가 그리웠다 엄마의 맑은 눈물이 그리웠다 말할 줄 아는 엄마 눈이 그리웠다 고운 눈 가진 남자애라며 하늘만큼 기뻐할 엄마모습 보고팠다 맨 딸만 키우느라 고생 많던 우리 엄마... 제3편 언덕 위의 풍경 먼데서 보면 나비 떼 같은 새무리들 흰 날개 꿈같이 펴고 입 다문 황소 바람 향해 무겁게 서있다 잔디는 살아남으려고 땅의 옷자락 꼭 붙잡고 나무는 잎새번뇌 쫓느라 여윈 팔 힘껏 내젓는다 가을해살 그대로 업어주는 허리 굽힌 나그네의 뒷 잔등 시작노트--푸른 하늘, 하얀 파도... 그리고 연분홍 살구꽃 같은 아가의 웃음이 너무 아름다워 시를 찾아 함께 지켜본다. 김 충 본명은 김영춘 1968년 출생 연변작가협회 회원 현재 중국 길림성 도문시 석현종이공장 신문중심에서 근무 제1편 그리움의 빛깔 외 1편 김추월 눈부신 봄 빛살에 산과 들 눈뜬다 담쟁이처럼 자라는 내 그리움도 부드러운 감촉으로 손끝에 닿는 내 그리움은 저 혼자 시냇물 마냥 밀려와 기쁨을 물 이랑처럼 번져놓는다 연초록 빛깔의 물 이랑은 불투명한 초록으로 성숙해서 끝없는 경험의 세계를 넓혀준다. 제2편 시골·초가·살구나무 밥짓는 향연 사라진지 이슥한 초가의 뜰 안에 살구꽃은 의구해 색동저고리 사다주마 도련님의 금의환향 귀 다듬어 떠나기가 싫은 듯 슬프게 피고 다시 또 피여 세련되는 시골냄새 꽃 냄새는 짙어만 가도 시골의 한 귀퉁이를 지켜 다소곳이 피고 다시 또 피네 시작노트 시는 내 그리움의 샘이다. 계절이 따로 없이 내 핏줄에 봄의 약동을 심어주고 헤아릴 수 없는 죽음을 경험하면서 새롭게 태어나는 내 세포의 샘이다. 김추월 1968년 중국 길림성 연변출생, 1991년 연변대학 조선어문학부 졸업, 시, 수필을 물덤벙 술덤벙 몇편 발표, /////////////////////////////// = {자료} = //////////////////////   정몽호시비 제막식 및 제 26차 시가탐구회가 2009년 10월 12일 도문에서 있었다. 중국조선족의 저명한 시인인 고 정몽호선생의 시비는 아름다운 도문시 두만강공원에 세워졌다.  시비의 정면에는 정몽호의 시 《접어둔 날》이, 뒤면에는 도문시문련과 도문시 작가협회에서 소개한 정몽호의 간력이 새겨져있다. 정몽호(1935.7-2005.3)시인은 동북사범대학을 졸업한후 연변한어사범학교교원, 도문시문화관관장, 도문시문련주석을 력임, 중국소수민족작가협회회원, 연변작가협회리사였다.  정몽호 시인은 《두만강여울소리》 시탐구회 발기자로서 시창작과 시리론을 결부하여 왕성한 창작활동으로 중국조선족문단에 모범을 모여주었고 후대양성에도 심혈을 쏟았다. 시인, 평론가, 아동문학가인 정몽호 시인은 《두만강의 아들》 등 4 권의 시집과 《실용수필창작의 기교》등 수 편의 론문을 발표하였다.  연변작가협회 시가창작위원회에서 주최한 이번 제막식에는 연변작가협회 주석 허룡석, 도문시정무 부시장 정희수, 시가창작위원회 주임 김영건, 연변시인협회 회장 김응준이 제막을 하였고 허룡석주석, 정희수 부시장, 김영건 주임, 김응준 회장이 축사를 하였고 고 정몽호선생의 가족이 인사말을 올렸다. 이번 제막식에는 연변문단의 작가 시인들과 각 부분의 지도자 및 유지인사들 백여명이 참석하였고 연변작가협회, 연변작가협회 시창작위원회, 연변시인협회, 도문시 작가협회에서 시비에 꽃다발을 올렸다.     - 출처: 연변작가협회, 길림신문
1436    詩人과 詩 그리고 갱신의 길 / ... 댓글:  조회:4595  추천:0  2016-05-16
시인과 시 그리고 갱신의 길           - 우리 시단의 류파와 나의 경우                                                   * 김동진 1985년, 우리 북방시단의 중견이며 또 수필가이고 평론가인 한춘씨가 중국조선족시단의 침체상태를 보고만 있을수 없어 선두에 나서서 모더니즘시를 시도하면서 “시가관념갱신”을 호소하였다. 이 호소는 구체적으로 “몽롱시로 대표되는 서방모더니즘기법”의 도입을 시도하는것으로서 개방적인 사고방식을 전제로 하여 표현기법에서의 돌파를 주장한것이다. 그로 하여 우리 시단은 고요한 호수에 돌을 던진듯이 파문이 일면서 술렁거리기 시작하였고 잇따라 “시가관념갱신”의 열띤 쟁론이 시작되였다. 당시 나는 서방문예리론을 먼저 접촉한 사람들의 발언에서 나오는 “정신분석학”이요, “의식의 흐름”이요, “흑색유머”요, “모더니즘”이요, “이미지”요, “폭력조합”이요 하는 새로운 단어를 도무지 알아들을수 없었다. 그만큼 새로운 사조를 받아들이는 면에서 나의 사유는 경화상태였고 그리하여 시탐구모임에 가서는 뒤구석에 앉아있다가 돌아오는, 할 말이 없는 말석시인이였다. 개혁개방은 문학이 더는 정치에 종속되지 않는 시대를 열어주었고 문인들에게는 전례없이 넓은 창작자유가 주어졌다. “3돌출”의 틀이 무너지고 “시가관념갱신”을 부르짖던 그 시기는 필자에게 있어서 자신이 걸어온 문학의 길을 뒤돌아보는 반성과 번뇌의 시기였다. 바로 그때 할빈에 계시는 리삼월선생님께서 편지로 다음과 같은 조언을 보내주시였다. “쟁론에 류의하기 바랍니다. 시가의 관념을 갱신해야 한다는것은 누가 어떻게 말해도 필요한것이고 또 필연적인것인데 어떻게 갱신할것인가에 분기가 있는것 같습니다.” 때를 같이하여 소위 “실험시”들이 그때 적지 않게 창작되였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일러 “몽롱시”, “난해시”라고 하였다. 하지만 그 급류에 휩쓸리지 못한 나는 북방의 어느 한차례 시인진맥에서 전통관념을 탈피하지 못한 시인의 하나라는 락후생명찰을 달아야 했다. 그뒤로 이거 안되겠구나 하여 “현대서방철학강요”라는 리론서를 구해 보았는데 알고보니 새로 들어온 서방문예리론과 사조는 남들이 적어서 50년전  길다면 100여년전부터 써먹은것이였지만 우리에게는 너무나 생신한것이여서 우리 시인들에게는 관념갱신의 둘도 없는 “보약”이 된것이였다. 어찌했건 새로운것은 우리 시단의 활성화를 이루는 촉매제가 되기에 충분하였고 시단의 면모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다준것만은 틀림이 없다. 당시 나는 그러한 “난해시”를 리해할수 없는것을(지금도 잘 리해하지 못함) 자신의 무지로 간주하였고 그렇게 쓰지 못하는 자신을 부끄러워하면서 앞서가는 시우들과 평론가들을 부러운 눈길로 바라보았었다. 평론가들의 말을 빌면 확실하게 “시가관념의 갱신은 풍성한 성취를 거두었다.” 재래식의 따분한 정형의 틀에서 벗어난 자유시의 형태결구에 다양한 기법의 인입으로 우선 표현형식의 변화를 다그친것이다. 례하면 이미지시의 출현, 시어의 자유결합, 풍격의 개성화와 같은것이라 하겠다. 그런데도 늘 마음 한구석이 께름직하고 머리 한구석이 개운치 못하였다. 한것은 “시가관념갱신”이 바라는것이 진정 이런것인가, 시는 꼭 이렇게 몽롱하고 난해한 쪽으로만 발전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을 지워버릴수 없기때문이였다. 아닌게아니라 시단에서 갱신의 성과를 놓고 중구난방으로 떠드는데 밖에서는 질책이 터지기 시작하였다. 조선족시단의 소위 “현대시(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를 놓고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자다가 봉창 두두리는 소리”, “도깨비 기와장 번지는 소리”라는 질책의 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오기 시작한것이다. 우리의 갱신은 이런 욕을 먹자고 한것은 아닌데 왜서 이런 비난의 소리를 들어야 하는지,? 그것도 한두사람이 소리라면 귀등으로 넘겨버릴수 있겠지만 도처에서 이런 말이 나올 때는 문제가 다른것이다. 몇몇 평론가가 아무리 좋다고 올리추어도 광범한 독자와 공감대를 이루지 못한다면 그 시는 실패작이라는것이 나의  판단이다.  생명의 뿌리인 민족과 생활의 요람인 나라를  초월하여 과연 좋은 시를 쓸수 있단 말인가? 나는 여직껏 민족의식과 국가의식을 떠난 시인이 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시인이란 자고로 성스러운 이름이지만 그렇다고 문학을 빙자하여  제멋대로 민족과 나라를 초월할수 있는 대단한 사람은 아니다. 력대의 노벨문학상 시부문의 작품과 작자를 살펴보아도 일부 그 특별한 기법이 인정받아 수상한 실례가 있지만 그 대부분이 모두 어느 나라에서 살았건, 어떤 기법을 썼건 모두가 자기 나라의 력사와 민족의 애환(전쟁과 평화, 사랑과 증오, 부유와 가난, 선과 악 등등)으로 인간세상과 인간심령의 깊이갈이를 한것이다.  류파는 류파마다 선언 비슷한 자기의 주장이 있기마련이고 또 그래야 류파로 될수 있는것이며 그것이 바로 세상에 존재할수 있는 리유로 되는것이다. 하지만 자기의것만을 유일정확하다고 소리를 높이면서 모두가 자기를 따르라고 하는것은 아무래도 과분한 욕망이 아닌가싶다.  그래서 현재 우리에게 “창작의 자유”가 주어진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우리의 “시가관념갱신”은 마땅히 주어진 창작환경속에서 그리고 주어진 자유속에서 내용과 형식의 갱신을 꿈꾸어야 할것이며 우리 민족시의 건전하고도 아름다운 발전을 가져와야 할것이다. 그런데 사실은 기대와 어긋나 독자들이 머리가 아파나서 못보아주겠다는 시를 만들어내고있으니 이는 우리의 관념갱신에 문제가 있음을 말해주는것이다. “시가관념갱신”은 일조일석에 완성되는 일이 아니기에 실험이 필요했고 모방이 필요했다. 이런 실험과 모방이 말로는 우리 민족 시문학의 우수한 전통을 계승, 발전시키는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표현기교에만 집착하여 그 많은 알둥말둥한 새 기법을 마구 도입하는데만 급급해한 결과가 오늘의 이 모습이 아닌가싶다. 그러한 갱신은 유구한 력사속에서 형성된, 우리 민족의 맥락으로 다듬어진 그윽한 민족정서와 아름다운 언어운률을 홀시 또는 무시한것은 아닌지 알아보지 않을수 없다. 시에서의 이미지화와 “낯설기”는 현재 좋은 시를 평하는 기본조건의 하나로 보아진다. 그래서 “낯설기”하기에 고심하는데 그렇다고 딱딱한 어휘배렬이거나 시어의 이상한 조합이거나 복합이미지의 창조만으로 “낯설기”가 완성되는것이 아니다. 나는 “낯설기”의 근본은 고유한 우리의 다채롭고 풍부한 언어의 새로운 발견과 여러 기법의 유기적인 결합에 있다고 본다. 그런데 우리의 시어를 보면 어제도 오늘도 늘 쓰던 시어이다. 우리는 지금 그런 시어들을 가지고 새로운 시를 만든다고 한다. 친일행위가 있어 력사의 말밥에 오르면서도 한번도 반성한적이 없다는 서정주시인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시단의 시성으로 받들리는것은 그가 민족어의 대부이기때문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한국시단에서 이때까지 서정주시인만큼 우리 민족의 고유어를 아름답게 피루어낸 시인이 더는 없다는것이다. 이 점을 감안할 때 우리의 “낯설기”도 우리 민족의 생활속에 잠재하고있는 입맛을 돋구는 언어의 끊임없는 발견이 없이는 아니될줄로 안다. 빈곤한 언어를 가지고 모방을 한들 난해를 조성하는 기법의 “낯설기”밖에 될것이 없다는 말이다. 일본은 모방의 전능대가이다. “모방하는 원숭이”로 소문난 일본의 재간은 모방하여 자기것으로 만드는데 있다. 발전한 과학기술을 리용하여 남이 크게 만든 산품을 가져다가 작게 또 작게 하여 완전한 자기만의 산품인 미니형 신제품을 만들어 세계시장을 공략하고있다. 모방으로 자기의 문화와 전통을 이룩하고 세계의 주목을 받는것도 일본민족이라고 한다. 뜻인즉 모방도 재치있게 하면 자기의 창조로 된다는 말이다. 유감스럽게도 우리에게는 아직 이런 모방재능이 결여하다. 한국시단이 서방리론과 사조를 받아들인 현대시의 력사는 이미 백년을 꼽는다. 그러니 우물안의 개구리였던 우리보다 상당히 앞선것인데 지난해 작가이며 언어학자인 양효성씨가 한국시단을 향해 “과연 우리는 모방이라도 제대로 하는가?”라는 질문을 제기하였다. 이에 앞서 김지하시인은 “이미지와 상징, 기호에 경도되여 사치를 부리면 안된다.”, “현재 한국시는 혼돈, 추함, 렵기, 리기 등의 요소가 지배”한다고 지적하였고 최근에는 “독자”라는 닉네임의 주인이 사이트 “문학의 창”에 “시인들에게 드리는 고언”을 올리였다. 그 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시를 읽으면 골치가 아픕니다. …때로는 아름답지 못한 비틀린 시어마저도 소위 ‘시어’라고 극찬하는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끼리 문단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문인과 민중사이를 단절시키는 성벽쌓기를 주저하지 않고있습니다. …딱딱한 서양식표현법에 물들어 아름다운 우리식표현법이 배척당하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내가 자신있게 말할수 있는건, 현재 우리 나라 시인들의 의식전환이 있지 않고는 향후 모든 시인들은 더욱 어려운 환경에 처해질것이라는 점입니다.” “독자”는 이렇듯 안타깝게 우수한 전통을 무시하는 한국의 현대시와 시단의 병집을 꼬집으면서 시인들의 의식전환을 요구하고있다. 손꼽아보니 우리가 시가관념갱신을 하면서 살아온지도 자그마치 25년이나 된다. 하나의 인생에 25년은 결코 작은 수자가 아니다. 내가 보건대 이 25년의 관념갱신은 25년의 쟁론과 25년의 분기로 하여 현재 우리 시단은 여러 파가 있겠지만 크게 두개의 류파로 나뉘여진 상황이다. 낡은 모식에서 해탈하지 못한 극히 개별적인 시인을 제외하고 하나는 모더니즘시만이 시이고 다른것은 시가 아니라고 하는 소위 현대파이고 다른 하나는 민족시의 우수한 전통(시어와 정서와 운률)을 계승발전시키기 위해 새로운 리론과 사조를 접목해야 한다는 소위 접목파이다. 누가 나에게 일부러 “당신은 어느 파요?” 하고 묻는다면 나는 서슴없이 접목파라고 대답한다. 나는 고금중외의 좋은것들에서 자양을 뽑아 우리의것을 살지우는 그런 갱신만이 진정한 갱신이라고 믿는다. 다시 말하면 “모더니즘”(현대주의)이요, “포스트모더니즘”(후기현대주의)이요, “아이디얼리즘”(리상주의)이요, “휴머니즘”(인문주의)이요, “센티멘털리즘”(감상주의)이요, “다다이즘”(허무주의)이요, “오토마티즘”(자동주의)이요, “이마지즘”(이미지주의)이요 하는 그 많은 “주의”(主义)에서 우리에게 유익한 알맹이를 뽑아 그것을 영양제로 우리의 전통시를 더욱 호함지고 아름답고 향기롭게 해야 한다는것이다. 그러면서 잊지 말아야 할것은 우리가 신선하다고 말하는 이런 사조나 주의들이 모두 우리가 겪어본적 없는 자본사회의 권력과 금전, 인간사회의 첨예한 모순, 갈등속에서 그 시대, 그 사회의 시인들과 철학인들이 심령의 허무와 정신의 고독에서 해탈하는 방법으로서의 필연적인 산물이라는것이다. 이러한 갱신을 개량이라고 하면 어떨가? 비유하건대 한국의 한복과 같은 개량 말이다. 한국에서는 우리 민족 전통복장의 고유의 멋스러움을 잃지 않으면서 현대감각이 돋보이는, 간편하고 실용적인 개량한복을 만들어내였다. 개량한복은 고리타분함과 거치장스러움에서 벗어난 하나의 훌륭한 보기이다. 이는 집으로 말할 때  쓰러지는 초가집을 허물고 그 터전우에 현대의 선진적인 건축재료로 추녀 높은 우리식의 전통식 한옥―팔간기와집을 짓는것과 같은 경우이다. 우리것을 잃지 않는 현대, 우리를 위하여 복무하는 현대란 바로 이런것이다. 하긴 취미와 여건에 따라 양복을 입고 양옥을 지을수도 있겠지만 그속에 우리의 말과 글이 살아있고 우리의 노래와 춤이 살아있고 우리의 된장내음, 김치내음이 살아있다면 문제로 될것이 하나도 없다. 나는 우리 시단의 갱신도 이런 개량식이 되였으면 좋겠다. 생각은 이러하지만 생각처럼 갱신은 그렇게 쉬운것이 아니다. 나는 나의 전통시에 현대를 접목하려고 꾀하지만 생각처럼 잘되지 않는다. 그래서 국외의 유명시인들과 대비하면서 원인을 찾아보았는데 세가지의 치명적인 부족점이 있었다. 하나는 자연과 인간사회에 대한 체험과 인식이 그들과는 전혀 비할수도 없이 천박한것이고 다음으로 그들과 같이 풍부한 문학수양과 종합지식, 탐구정신을 갖추지 못한것이고 그 다음으로 장악하고있는 시어가 너무나 빈약한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이런 자질을 가지고 시인이 된것이 부끄럽다. 그래도 자존의 마음은 죽지 않아 가던 길에서 돌아설 생각은 없다. 한글자씩 배우면서라도 내나름의 견해와 주장을 가지고 갱신에 생명소모를 해야하는거다. 접목파의 최대의 약점이 시의 이미지화를 비롯한 여러가지 기법을 유용하게 활용하는면에서 선명한 돌파를 가져오지 못한것이라고 자인하면서 나는 우리 시단의 시가관념갱신의 현실을 바라보며 나의 견해와 주장을 다시한번 반복한다. “나는 전통을 사랑한다. 그러나 전통을 한사코 고집하지는 않는다. 전통은 뿌리와 같은것이여서 계승, 발전시켜야지 전면부정하거나 말살하지 말아야 한다. 나는 관념을 갱신한다고 하여 일조에 현대파로 둔갑하려고는 하지 않는다. 그럴만한 재간도 없거니와 현대파라고 하여 다 좋은게 아니기때문이다. 나는 접목을 시도한다. 그것만이 나의 시를 구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기때문이다. 그것은 우리 시의 고유한 민족성을 잃지 않으려는 아집이기도 하다. 나는 지나치게 난해한 시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시의 안중에는 광범한 인민대중(독자)이 없다. 시가 소수인이 심심풀이하는 수수께끼거나 오락궁이 되는것은 시의 불행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관(观)에 대한 변명”이라는 부제를 단 “나의 문학관”에서 밝힌것이다. 나는 나의 이런 주장과 견해가 스스로 옳다고 여길뿐이지 절대로 유일정확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직 실천만이 진리를 검증하는 유일한 표준이라는 진리앞에서 각자의 주장과 견해는 오로지 장구적인 실천에 의거하여 그 무게와 가치를 확인받을수 있기때문이다. 시가관념갱신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고 미래지속형으로써 끝이 없는 사유와 행위작업이다. 우리 시단의 시가관념갱신이 25년이 흘러간 이 시점에서 시인마다 우리의 갱신이 어디까지 왔으며 어떤 위치에 놓여있는가를 한번 랭철하게 숙고해봄이 좋지 않을가? 25년간 우리의 시가관념갱신이 시인들의 의식구조변화와 더불어 풍성한 성과를 거둔것도 비하할수 없는 사실이고 25년간의 시가관념갱신이 새로운 관념의 새로운 문제와 분기로 하여 시단에 조화롭지 못한 분위기를 형성한것도 묵과할수 없는 사실이다. 좋은 시를 한수라로 더 창작하여 중국조선족문학과 시문학의 발전에 기여하고싶은 우리 시인들의 심정은 똑같은것이다. 따라서 류파가 형성된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 진정 두려운것은 류파마다 자타의 장점과 약점을 정시하지 않고 무조건 절대적으로 자기만이 옳다고 고집을 부리면서 시야비야하는것이다. 정말 그렇다면 시인이 불과 몇십명밖에 안되는 우리의 시단에 무슨 희망을 기탁할수 있을것인가? 이점을 깨우쳐야만 우리의 시단에는 지나간 25년보다 더 풍요롭고 다채로운 시의 번창기가 도래하게 되리라는것이 나의 주관적인 생각이다. =============================== 연변의 민족 시인들(12) 김동진 시인       중국 교포 사회의 끈끈한 인간관계를 잘 모른다. 다만 문인들의 교류는 어느 곳에서든 끈끈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처럼 서로 잦은 왕래를 하면서 막걸리잔을 비우듯 그들도 술잔을 기울이면서 회포를 풀어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여기 김동진 시인은 거나한 술꾼의 폼을 다 갖춘 풍모를 보여주는 시인중의 시인이시다. 걸출한 대머리에 옅은 선그라스를 끼고 연변시내를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면 흡사 이방인의 모습이다. 그는 교포사회의 대표적인 시조시인이다. 한국 사회에서 시조가 풍류적인 멋, 혹은 자연생태적인 것들을 소재로 시를 쓰는 방향으로 제한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반면에 그가 보여주는 시조는 자연생태적인 것은 물론이고 한국 사회에서 말하는 참여적 기풍을 보여주는 시가 많다. 그가 노래한 대부분의 시조들은 남과 북, 민족의 한이 서린 사연들에 집중되어 있는 것 같다. 그러니 자연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역사적인 진실을 찾아 시의 길이 열리는 것도 자연스러운 것인 모양이다. 아래는 흑룡강성 조선민족출판사에서 펴낸 그의 시조시선집에 쓴 그의 시조에 대한 견해이며, 그가 가고자하는 문학의 좌표같은 혹은 시작 노트 같아서 일부분을 인용한다. 그는 여전히 조국을 찾아 길을 가고 있고 민족을 찾아 길을 가고 있다. 문학이라는 기제를 통해서... 그의 성공을 기원한다. "자랑스러운 우리 문학의 유산을 이어받는 것은 남의 일이 아닌,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 자신의 일임은 더 말할 것도 없는 것이고 세상에 우리 겨레의 오곡밥 같은 정감세계를 소복소복 담을 수 있는 이토록 깜직하면서도 어여쁜 그릇이 더는 있을 수 없다는 것으로 하여 스스로 긍지를 느낀다. 할머니께서 내내 반짝반짝 닦아놓으시던 대물림 놋식기 같은 이 작은 그릇에 그토록 풍부하고 섬세한 정감세계를 재미나게 담아온 선조들의 슬기와 지혜도 그러하거니와 이러한 시조에 우리 조상의 청순하고 고결한 체취와 숨결이 스며있다는 것으로 하여 시조의 당당한 존재가치는 의심할 바 없는 것이리라. 시인이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도록 한생에 진정으로 좋은 글 하나만 얻어볼 수 있다면 천개의 밤을 지새운들 무슨 후회가 있을가? 꿈이 푸르르고 사랑이 진실하고 고통을 감내할 수 있다면 이러한 꿈과 사랑과 고통이 능히 새로운 나를 만들어낼 수 있으리라고 믿으면서 이 새벽도 동트는 두만강변의 노을빛 하늘을 바라본다." 고조선 김동진 천지의 조화로다 묘향산 절승경개 단군의 뜻이 어린 천오백년 고조선아 해뜨는 아침의 나라 금수강산 삼천리. 북위 38도선 억수의 비줄기도 씻어가지 못한 치욕 끊어진 레루장이 벌겋게 울고있는 여기는 북위 38도선 산그늘이 어둡다 꿈이 다른 대문밖에 원성을 걸어놓고 한세기가 저물도록 풀지 못한 옥매듭 철조망 가까이 하면 해와 달도 어둡다. 1998년 6월 발해고성(古城) 옛날 발해왕이 울바자 세운 자리 성은 허물어져 티끌로 날려가고 유적지 하얀 패쪽이 오늘을 지켜본다 봄가을 몰아치는 북녘의 비바람에 토담은 씻기여도 씨앗만은 품었던가 그날의 백대후손 같은 방초만 푸르러라 꿈이던가 생시던가 흘러간 흥망사화 옛숨결 찾아보는 회포끓는 한가슴이 낮아진 황성옛터에 애수로 들먹인다. 1998년 8월 청자기의 꿈 파아란 하늘가에 송이구름 살아있고 소나무 푸른 가지 백학이 넘나들어 살포시 안아보고픈 어여쁜 빛갈일세 흙으로 빚었건만 옥으로 빛나는건 다듬은 천년꿈에 애틋한 소망이라 옛사람 모두 갔어도 뜻만은 남겼구려. 1993년 5월 백두산 천심(天心)의 뜻을 지닌 백산으로 솟아올라 뿌리 깊은 줄기줄기 삼천리에 뻗었으니 반만년 배달족속의 기둥뼈가 네로구나 칠성별 우러르며 드리는 정화수(井華水) 천지샘 맑은 물에 비껴내린 흰옷자락 칠천만 가슴가슴에 하얀 얼로 나붓기네. 1998년 2월 김동진 시인 약력 1944년 흑룡강성 녕안시 동경성진 출생 연변대학 통신학부 조문전업 졸업 중국소수민족문학작가학회 회원 연변작가협회 리사 훈춘시문화국 창작원, 부연구관원 문학상, 문학상, 문학상 등 30여차 수상. 시집 , , (7인집), 청자기의 꿈 등이 있음 //////////////////////////////////////////////////////////// 연변의 민족 시인들(14) 김응룡 시인       상처의 자욱이 짙다. 우리 민족의 모든 시인들이 특히 그렇다는 생각이다. 상처가 없는 민족의 시라면 그 시에서 상처가 드러나는 것은 어쩌면 거짓과 허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팔레스타인의 시에 조국 잃은 아픔을 노래하지 않는다면 무언가 모자라다는 생각이 들고 팔레스타인의 시에 슬픔과 애환의 역사를 노래하지 않은 것을 본적이 별로 없다. 그것은 번역된 시편들이 별로 많지 않아서 혹은 원문을 받아 읽어내지 못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겠으나, 보편적으로 필자가 접한 시들에서 보았던 아픔과 애환을 믿기로 한다. 그것은 우리 민족의 수난속에서 보여지는 상처의 흔적을 믿기 때문이다. 한많은 두만강을 노래하는 김응룡 시인의 아픔도 따지고보면 저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 민족의 수난사와 별반 다름없는 이치에 가닿는 일이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연변문학에 소개된 그의 시편에서 그의 육중한 몸에 맞는 시의 느낌은 없다. 그저 약하고 순정한 시인으로만 읽힌다. 그러나 그가 보여주는 그런 시적 허약함에는 약한 자의 모습이 아닌 굽어서 사는 민족의 애환 속에 숨겨져 있는 고통의 깊이가 보인다. 필자가 만난 그는 결코 약하지 않았다. 내면과 외면이 이질적일 수는 있겠으나, 그는 호방하고 소탈한 사람이었다. 물론 중국식으로 평해서 거나하게 취하도록 마셔보지 않고서 사람을 말하지 말라는 말에는 할 말이 없다. 그와는 짧은 두 시간을 보냈을 뿐이니, 그러나 육중한 그의 몸매는 야구감독 김응룡처럼은 아니라도 위압적인 건 사실이었다. 며칠 후 그를 만나 또한 회포를 풀어볼 생각이다. 좀 더 깊이 대화를 나눠볼 참이다. 연변의 시인들이여! 부디 건강하시라. 화로불 이글이글 열기 뿜는 화로불 한겨울 초가집의 사랑이였다 엣말과 웃음 동그랗게 피워 올리며 토감자 익는 냄새 구수했다 언 밤을 그렇게 언 마음을 그렇게 따뜻이 녹이며 초가의 겨울은 흘렀다 날샐녘 화로불은 꺼져 싸늘한 재로 되였다 부모님 인생의 등불도 꺼져 한 줌의 흙으로 되였다 하지만 내 마음속의 화로불가엔 상금도 못잊을 사랑이야기 서리서리 감돌고있다 민들레 파란 잔디밭에 노란 얼굴 활짝 피운 어여쁜 아가씨 민들레 아가씨 비바람속에 하루하루 흰머리칼 늘더니 마침내는 하얀 우산 들고 승천한다 무엇이 애석해선가 하늘에 떠서도 다시다시 돌아보는 그 마음 아, 엄마- 날 두고 가지를 마오 선경대 하느님이 하사한 이 명산에 나의 태를 묻은 어머님 초라한 절당에서 내 명복 빌어 수십성상 세월은 흘러 그것은 아득한 옛일 이 불효자식은 이제야 거들먹거리며 고향의 명산금수 찾아왔소 궁룡송 구불구불 예와 다름 없고 감로천의 그 성수 맛 또한 의연하지만 웬지 나 서러워 홀로 서러워라 산천은 의구해도 사람은 의구치 않아 그리움이 구름처럼 가슴에 서리는데 가이드아가씨 쉴새없이 재잘거리며 날 이끌어 오르는 또 하나의 산정 두만강 물안개 두만강에 피여오르네 물안개 물안개 하얀 넋이 하늘로 오르네 흘러가는 물결 떠오르는 물안개 서러운 백의민족 못잊을 추억이라네 한많은 두만강 그 뽀얀 물안개속에 상금도 처량타네 물새의 울음소리 김응룡 시인 1956년생 /////////////////////////////////////////////// 연변의 민족 시인들(13) 김충 시인       수줍음도 많고 부끄럼도 많은 아이의 엄마, 어머니의 모습으로 사는 그가 작년 9월쯤 한국에 왔다. 아래의 시들은 그녀의 첫번째 시집 (안개속의 여자, 장백인민출판사)에 실린 시편들이다. 설레임과 두려움도 많은 그가 처음 온 한국에서 좀 더 체류를 하여 경제적으로 소득을 좀 얻어볼 생각으로 고민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도 그럴것이 합법적으로 한국에 오는 것이 쉽지 않은 중국에 사는 교포라서 많은 것들을 고민하여 결정하시라고 말했다. 그때 그는 시아버지와 아이들을 걱정한다. 밥은 어떻게하고 아이들은 어떻게 하는가? 두달, 세달을 더 머무를 수 없는 아이엄마 김충 시인의 모습은 천상 한국의 여인, 한 민족의 엄마들에 모습을 벗어나지 않았다. 필자가 6월 28일부터 보름간의 일정으로 중국에가면서 걱정되는 것은 벌써부터 그들의 환대를 어떻게 뿌리칠까이다. 생면부지의 얼굴로 찾아갔던 작년 너무나 많은 환대에 무거운 책임같은 것을 떠맡은 느낌이었기에 이번에도 역시 두만강변과 백두산을 다시 찾을 것인데 그들과 무슨 이야기를 나눌까 고민하게 된다. 무산철공소의 물로 손을 담그기가 힘들 정도였던 두만강물은 좀 깨끗해졌을까? 여기 김충 시인의 살림 살이에 대한 걱정은 좀 덜어졌을까? 지금 한민족이 사는 모든 곳은 일자리 걱정, 밥거리 걱정이다. 우리가 한민족으로서 공동운명체란 사실을 인식시키기위한 신의 처방인가? 북한의 가뭄, 남한의 가뭄 그리고 우리 교포들의 힘겨운 삶의 터전들, 이제 시인 김충님이 걱정하고 고통받던 의 아픔은 사라져야 할텐데, 시인이여! 제 개미떼도 제 살 궁리로 산다는 그 말은 너무나도 고통스런 현실에 대한 흐느낌으로 절절하단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우리는 믿고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의 외로움도 에 고통도 어둠을 밝히는 같은 희망 속에 견뎌낼 수 있는 것이며, 만약 그렇지 못하면 우리는 곧 현대라고 하는 승냥이에 먹히고 만다는 사실을 아는 시인이니, 그 시인의 마음으로 그 희망의 끈을 붙들고 저 천년 만년의 역사를 살아온 우리 민족 앞에 희망을 버리지 말고 살 것을 청합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시인께서는 두만강변의 세찬바람도 이겨내며 아이를 낳아 기르고 시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의인입니다. 고국을 눈앞에 둔 이국에서 살고 있는 시름 속의 세월도 거뜬히 이겨내며 시로서 마음을 달래고 타인의 고통도 함께 할 줄 아는 의인 아니십니까? 저 개미도 제살이에 여념없는데 떠도는 구름처럼 흐느끼는 마음 정처없이 어데로 가나? 사는게 너무 힘겨워 길옆에 풀썩 물앉고싶은 지금 한숨조차 시름놓고 쉴수 없구나 일을 하고파, 일을! 나에게 땀 흘릴 곳을 주오... 겨울밤 말없이 동행하다 봄아침 울면 조용히 사라지다 진정 나를 슬프게 하는건 바로 너의 눈이였다 번개처럼 날카로운 야성이 번뜩이던 그 옛날의 네 눈빛과 하늘땅 사이를 메우며 용맹의 노래 휘뿌리던 위풍 이젠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양처럼 순한 눈매로 철창밖의 나를 바라보는 너는 나를 우울케 하는 풍경이였다 짙은 북풍이 불 때마다 꿈속의 초원이 그리워 운다던 전설 속의 승냥이는 나와 점점 멀어지고 한가닥 애수가 흐르는 너의 흐린 눈빛만이 가까와지고 있다 네가 너무 승냥이답지 않은 모습이길래 아름다운 사람옷을 입은 승냥이들 이 결울에 하나, 둘 늘어가는걸가? 진정 나를 슬프게 하는건 바로 너의 눈이였다 너를 너답지 않게 만든 이 부셔버릴수 없는 쇠살창과 양보다 더 어진 너의 눈매였다 언제부터인가 너도 외로왔다 시골 영화관 벽에 비딱 걸려서 배고픈 기다림에 울먹였다 하냥 즐거웠던 어제날엔 잎새 속삭임 꽃의 고백 듬뿍 안고 가슴뿌듯이 행인 향해 미소 지었지만 오늘은 허전한 그리움에 지쳐있다 너를 외롭게 한 전화선이 미운지 고운지 생각할 힘도 없이 슬픈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고 멀리 가버린 소녀 웃음 그리며 소외당한 아픔에 소리없이 울고 있다 김 충 본명은 김영춘 1968년 출생 연변작가협회 회원 시집 =========================== 연변의 민족시인들(11) 이상각 시인       한 민족이라며 누구라도 주저없이 통일된 소리로 통일된 말을 하는 것이 있다. 그것이 바로 백두산 천지를 민족의 발상지라고 부른다는 점이다. 이렇듯 우리 모두가 경외스러운 마음으로 우러르는 민족의 성산 백두산에 대해 시인이 감탄하는 것은 그리 특별날 일은 아닌 듯하다. 하나같이 우러르는 민족의 산, 백두산에 올라 그 감회를 우러르는 시인은 온 몸이 말라깽이 형상을 한 단신의 시인이다. 그러나 우직하고 고집스러움은 어쩔 수 없는 시인적 삶을 담보해 주고 있다. 그는 자신 스스로 말라깽이 시인이면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김철 시인이나 이성휘 시인과 함께 말라깽이 삼총사 시인의 한 축에 있으면서 서로 거나하게 차린 술자리에서의 비화를 곧잘 이야기하곤 한다. 우리네 민족이 어디에서든 너나없이 반기며 주고받는 술잔 속에서 서로의 평화를 나누려는 것은 무슨 연유일 것인가? 연변인민출판사 총편집이시며 소설가이자 연변인민대표 대회 상임위원회 위원이기도 한 류연산(43세) 씨는 자신의 저서 에 서장으로 "아! 백두산"이란 제목을 붙여 우리 민족의 천지와의 뗄 수 없는 관계를 또 다시 보여주기도 하였다. 연변에 사는 교포들은 하나같이 천지와 백두산을 일컬어 이는 "인간의 창조력으로는 도저히 미칠 수없는 선경같은 대자연의 걸작"이라고 평한다. 이는 류연산 씨의 글 속에도 나타난 문장이지만, 시조이든, 시에서든, 극작에서든, 백두산과 천지를 떠나서는 우리 민족적 기상을 피워 낼 수 있는 길이 없다 할 정도로 긴밀한 연관 속에 있다. 다름 아닌 우리 민족적 서정과 민족적 웅비의 기상이 우리 문화와 예술혼의 기둥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본류로 받아들이게 된다. 필자도 백두산을 다녀오고 쓴 졸시가 있다. 이를 시라고 해야할 지 시작메모라 해야 할지 모르나, 필자의 감회를 정리한 것으로 이해해도 좋으리라. 백두산 한라산도 설악산도 좋았다. 태백산도 무등산도 좋았다. 치악산도 계룡산도 삼악산도 좋았다. 백두 영봉 백두산을 오르기 전 나, 그 감격을 어찌 잊으리요. 백두를 오르기 전, 아무튼 한 번 백두산에 오르면 그만큼 자신도 모르리만큼 넓어지는 그런 느낌을 간직하게 되리란 생각이 든다. 마치 삼라만상을 두루 호령하는 그런 자리에 서 있는 듯한 그런 느낌 속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오늘 그런 산을 시의 전면에 두고 시를 써 나가는 시인 이상각 시인의 바쁜 날들을 대신하며 이 시편들을 소개한다. 많은 작품도 중요하지만 그는 요즘 당시의 풍모를 어느 만큼 받아들이는 것이 우리의 시단을 풍성하게 하리라고 목에 힘을 주어가면서 토로하였다. 연변의 민족문학인들이 함께 모인 자리에서 열변을 토하는 그의 모습이 일년이 지난 아직도 생생하다. 신비로운 산 우러러보면 볼수록 높아가는 산 둘러보면 볼수록 커가는 산 신비로운 성산! 구름을 딛고선 금빛 봉우리들 어깨를 비비며 둘러서서 쪽빛 천지물을 고이 지켜섰다 산도 물도 벼랑도 칠색 무지개발을 날린다 숭엄한 기상을 숨어있는 푸른 정기를 고운 말 골라 그리렸더니 무궁한 아릿다움에 그만 나는 넋을 잃었다 부끄러운 마음 걸음걸음 저며 디디며 망설이는 이 못난이 차라리 목놓아 운다 백두 폭포되어 벼랑을 쾅쾅 들부시며 가슴이 쓰리도록 내 시도 소리쳐 운다 아 백두산! 백두산! 천지 초동의 바스락 소리에 하늘로 날아가버린 선녀들 멱을 감았던 천지도 자꾸만 숨어버린다 하많은 손들이 찾아와 시글벅작 떠드는 바람에 수집고 부꾸러워설가 하얀 옷소매로 얼굴을 덮었다 애타게 기다려도 좀체로 나타나지 않은 님이여 아쉽다 차라리 숨어서 가만히 훔쳐나 봤을걸 이상각 1936년 강원도 양구 출생 1938년 북만주로 이주 1961년 연변대학 졸업 연변작가협회 부주석 역임 연변문학 주필 역임 현재 중국 작가협회 회원 저서로는 , 등 16권 출간 시작노트 : 시는 내 몸의 한 부분입니다. 그것은 내 몸과 떨어질 수 없는 내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꿈과 사랑과 착한 것과 참된 것, 아름다운 모든 것을 지향하는 내 마음이 시를 만듭니다. ////////////////////////////////////////////////////////// 연변의 민족 시인들(10) 송미자 시인         길림성 용정시는 우리 민족 문화가 개화(開花)한 본거지이다. 그것은 한국에 있는 우리에게만 알려진 사실이 아니라, 중국내 교포사회에서도 여전하게 중요시 되고 있는 지역이다. 그러나, 문명 개화의 흐름이 빨라지면서 용정사람들은 어느새 소외의 쓴맛을 겪으며 용정에 대한 관심을 가져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연변과 우리 사회의 교류가 급속하게 발전되면서 상대적인 소외감을 겪고 있는 것이 용정시에 사는 우리 교포들의 현실이다. 우리의 더 큰 관심이 필요한 때인 것이다. 송미자 시인이 바로 용정에서 태어나 용정에서 살고 있는 시인이다. 대개의 교포 작가들이 그러하듯 그도 역시 수필과 산문도 많이 선보이고 있다. 그가 쓴 아래의 시편에서 보여지듯 그는 여전히 눈물 많은 시인인 모양이다. 그가 쓴 수필 박 꽃의 한 부분을 인용한다. "그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혈육의 피, 그 무엇으로도 끊을 수 없는 육친의 정이다. 천리만리 떨어져 있어도, 철조망이며 국경이 가로 놓여도 박꽃은 해마다 피여나고 혈육의 정을 잇는 뉴대로 되고 있다. 하기에 할머니께서는 해마다 박꽃을 피우셨고 언제나 박바가지를 쓰셨다. 조선(북한)에 계시는 큰 어머니도 해마다 박을 심으시면서 남편과의 상봉을 고대하고 있단다. 하얀 전수건을 하얀 머리에 두르시고 꼬부라진 허리도 펴시지 못하시면서 담너머로 강너머로 산너머로 기다림에 지치신 할머니, 오늘은 흩어진 혈육의 정한이 서린 이 자리를 어머니께서 메우며 서 계신다. 하얀 박꽃이여, 어서어서 열매 맺어라.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의 기다림으로 이루어진 숙명의 완성을 위하여, 피맺힌 수난의 력사에 종지부를 찍는 혈육의 만남을 위하여.....," 위의 박꽃에서 우리는 여전히 현 세기나 지난세기나 할 것없이 우리 한 민족이 숙명적으로 이산의 한을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것이 결국 우리 민족이 살고 있는 땅이라면 만주벌이든 남과 북이든 일본이든 세계 어느 나라에서든 유효한 민족 갈등의 요소이면서 우리가 극복해야할 과제란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시인은 그러해서 눈물에 맺힌 시적 정한을 풀어내느라 무던히 애를 쓰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젊은 시인은 이미 늙은 노인의 눈을 깊이 있게 응시하고 바라보는 처지에 다다른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하여 눈물이 맺히고 천리 만리 홍수라도 질 정도로 눈물을 쏟아놓고 무지하다할 정도의 큰 화해의 강을 간절하게 염원하면서 눈물을 쏟아낼 그날을 기약하며 박꽃이 피기를 고대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시인이여, 조금 이제는 조금만 더 참고 서로를 바라보노라면 우리가 염원하던 민족의 대동세상이 오지 않겠습니까? 시인이여. 이제 서로 바라볼 생각은 하는 때이니, 조금 더 참고 기다리며 앞장 서 나가십시다. 슬픈 시인이여! 노인의 눈(眼) 송미자 기인 긴 그리움의 터널 기인 긴 서러움의 터널 그 눈속(眼里)을 다시 걸어 들어간다해도 장-장 반백년이 걸리리 눈물 고목의 눈에서 흐르는 것은 뼈가 녹은 뼈물이요 피가 려과된 피물이리 반 백년 삭여낸 마을의 정수(淨水)로 사책(史策)에 얹힌 먼지 씻어낼 듯 홍수 칠천만의 눈에서 쏟아지는 눈물에 반도가 잠긴다 태평양 수위가 오른다 그리움이 터진 서러움이 터진 정감의 홍수여 지심(地心)이 흐느끼는가 이글거리는 용암같은 뜨거운 피 걸죽한 피 쏴-쏴 마지막 방파제를 터친다 피를 속일수 없더라 다섯 번 변한 강산이라도 피는 변할 수 없더라        송미자(宋美子): 중국 길림성 용정시 개산툰 남산 =================================== 연변의 민족 시인들(9) 윤청남 시인       그리움의 서정은 어디인들 다르랴, 인간이 살아가는 곳 그 어느 곳엔들 그리움이 없을까, 그런데 윤청남 시인의 시적 정한은 여전히 한민족의 그 모습이다. 그것은 우리 민족 여성이 보여주는 그리움의 서정인 것을 어쩔 수 없이 드러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페미니즘 미학으로 포장되는 요즘에도 여전히 우리에게는 남녀노소 할 것없이 사랑하는 상대에 대한 어쩌지 못하는 인내와 애타는 그리움들을 내면으로 깊이깊이 곰삭이고 있음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흔히들 세상살이의 풍경과 세태가 완연하게 변모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리고 그러한 자신의 모습을 외부적으로 강하게 발언하면서도 여전히 자신의 내적 정한의 세계 속에서는 참고 참고 또 참는 그런 그리움의 모습을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만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도 모자라 그러한 정한을 간직하고 참고 인내하느라 속 깊은 울음을 남 몰래 참아내느라 애태우는 것이 우리 민족의 서정인 것만은 속일 수 잆는 진실인 모양이다. 시인은 이미 그리움의 대상을 어디론가 보내고 나서 그 그리움의 대상을 못내 아쉬워하며 그리워 그리워 하면서 봄, 여름, 가을, 겨울마다 예민하게 계절마다 함께 했던 추억들을 되새기고 있는 듯하다. 가을이거나 봄이거나 사람이 간직한 그리움은 언제나 뭉게뭉게 피어오르나 보다. 게절이 가고 또 갈 때마다 더욱 더 깊은 그리움으로, 연기처럼 피어오르나 보다. 당신이 떠나고 돌아오는 봄 1 윤청남(중국 길림성) 강물은 흰 빛으로 머언곳에 서있고 산은 안개속에 두웅둥 떠있다. 기억에 없던 플랫폼의 종소리는 서간마다 다앙당 산간을 울리고 사토길 굽이굽이 남향작 내려앉은 해살이 어쩌면 이다지 이쁠수 있을까. 래일 앞서 꽃을 홀로 보는 마음 이 봄은 모르리. 당신이 떠나고 돌아오는 봄 2 꽃병에 꼿혀 피는 꽃이 가련하다. 당신이 없는 마당의 동요는 눈물겹다. 흙이 없어도 꽃은 피지만 산이 없어도 꽃은 피지만. 당신이 떠나고 돌아오는 봄 3 지난 가을 가을 바람속에 한잎두잎 동만자 기슭에 피던 진달래 꽃이 불현 듯 이 밤에 떠오른다. 기실 진달래 꽃이 가을에 피는데는 아무런 리우도 없다. 편벽한 기슭에 볕이 들면 한밤에도 슬퍼질뿐이다. 그런데 지난 가을 가을 바람속에 한잎두잎 동만자 기슭에 피던 진달래 꽃이 불현 듯 한밤에 피어난다. 당신이 떠나고 돌아오는 봄 4 그리워도 애타하지 말자 그대가 비워놓은 자리만큼 봄은 온다. 외로워도 흔들리지 말자 그대가 그리운 하늘만큼 꽃은 핀다. 너무 쉽게 슬퍼하지 말자 그대가 알면 아파할라. 당신이 떠나고 돌아오는 봄 5 더펄더펄 더펄더펄 나래 하나로 온 몸이 숨을 쉬는 이 봄의 호랑나비 장모님이 입선때 보약을 람용해서 왈패로 자랐다는 안해 더펄더펄 더펄더펄 호랑나비 이 창가를 스쳐가면 마주오는 해드라이트 불빛이 이 밤의 앞길을 꽈악 매워라 더펄더펄 더펄더펄 서있는 이 낮밤 바람 그 속을 호랑나비 꽃을 찾아 날아가면 당신이 떠나고 돌아오는 봄 6 호수가에 마알간 해살이 얼마나 진한 어둠인지를 누구도 모르리. 홀로 마주하기에는 너무나 푸진한 주안이 너무너무 목이 매라. 굶주린 저 노을 아래 어머님의 여윈 영상은 오늘도 사막에 일어서는 신기루 루각인가. 이 봄에는 설련화꽃이 한송이 두송이 눈속에 피는 사연을 조금은 알듯싶다. 당신이 떠나고 돌아오는 봄 7 간밤 창공을 수놓았던 별들이 이 아침에는 산과들에 반짝이는 이슬로 내려왔다. 한데 저녁이 아슬아슬 돌아와도 꽃은 하늘로 돌아가지 않는다. 꽃은 송이송이마다 모두 너무나도 살뜰한 천당 빛 거울이다. 이 봄에는 푸른잎에 맑은 령혼인 당신이 내 곁에 돌아와 바람으로 되어있다. 당신이 떠나고 돌아오는 봄 8 여보 우리집 창가에 홀로 초롱을 지키고 있던 새 한 마리를 기억하고 잇겠지 여보 그 연두빛이 해살을 몰고 우리 신혼의 푸른숲으로 날아왔던 그때는 어느해 해맑은 봄이 였던가 그리고 여보 그 연두빛이 짝을 잃고 쓸쓸했던 그 진붘은 황혼무렵은 또 어느해 황금빛 가을이 였고 여보 내 오늘 그 새를 놓아보낸다오 꽃이 피어 구름고운 저 하늘로 내 오늘 늦으나마 소리쳐 보낸다오 여보 그 연두빛이 울음 곱던 외로움의 찬란한 그 창가를 아직 잊지않고 있겠지 당신이 떠나고 돌아오는 봄 9 응달에는 이슬이 이 봄의 애수로 정오에도 푸른잎에 고여있다. 욕설을 나온 바위가 해살에 그림으로 곱다. 바람이 불어오는 끝을 따라 물은 흘러가고 파아란 수평선우로 파도가 하얗게 밀려온다. 속깊이 눈물을 다아 말린 새들이 또 운다. 당신이 떠나고 돌아오는 봄 10 그대도 떠났지만 나도 떠났다. 돌아오는 것은 봄이 아니라 내가 돌아오는 것이리. 해는 지구를 향해 오지 않는다 지구가 그의 곁을 돌뿐이다. 해는 앞뒤면이 따로 없다. 지구가 밤낮이 있을 뿐이다. 언제면 돌아간 어머님이 이 아들의 기억속에 지워질까 그것은 나와 어머님이 또다시 천당에서 만나는 순간이리. 당신이 떠나고 돌아오는 봄 11 잘 익은 과일나무 한구루를 애수의 눈매로 바라보는 바위속의 원숭이 유기형 5배년의 종점은 어딜까 한 낮에 내리는 애잔한 운석비 바다는 온 세상 끝물이 모여온 황금빛 가을 초원의 꽃밭우를 내닽는 바람의 쪽밭이 곱다. ///////////////////////////////////////// 연변의 민족 시인들(8) 홍용암 시인   그를 만나지는 못했다. 그것은 전적으로 그가 바쁜 탓이다. 그저 이메일을 통해 받은 시편 정도로 그를 안다. 연변의 작가들을 통해 들은 풍월은 있다. 그는 아래 이력에서 보듯 70년 생이다. 그런 그가 5개 회사를 갖고 있는 연변 조선족의 거부가 될 때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고 한다. 그럼 그렇지, 그런 우여곡절이 결국 그를 문화에 기여하게 하고 연변 문화인들의 풍요한 삶의 일부를 보장하고 있는 것이겠지. 그는 연변에서 행해지는 여러 문화 행사에 대해서 많은 기부를 하면서 그 또한 문화인으로서의 본색을 유감없이 보여주듯 틈틈이 시편을 정리해가고 있다고 한다. 그는 연변 최초의 외국어 학교를 세우면서 많은 사람들의 시기 속에서 무난하게 버텨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한족이 지배하고 있는 중국이란 나라에서 자치주라고 해서 완전한 자치체제도 아닌 이민족이 그만한 사업을 이루었다는 것은 참으로 장한 일이다. 그러한 일이 그다지 쉬운 일이 아닐 뿐 아니라 엄청난 경계의 대상인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남북관계가 좋아지면서는 더욱 그들의 경계가 노골화 되어가고 있고, 주요 부처의 장은 중국 내 거주 교포들이 맡아 하지만, 최소한 서열 2위의 직 정도는 맡아 보는 것이 일상화하는 추세라고 하니, 본국이라 할 남북한에서의 연변에 대한 대응 태도는 어떤 것인지 깊이 있게 생각해 볼 문제인 것이다. 홍용암, 필명 백운, 그야말로 조선적인 닉네임들이 아닌가? 이제 그가 이룬 대업이 중국 내 교포들의 생활과 문화적 토양을 굳건하게 하는 토대가 되도록 우리가 더 많은 관심과 성원을 보내주어야 할 것이다. 연변조선족 자치주 인민대표위원회 상임위원이며 중국연변인민출판사 문예편집부장의 말에 따르면 그와 연변 조선족 자치주에서는 공동으로 문예창작학과를 두고, 문학상 등을 제정하는 등에 대한 논의를 수차례 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중국 내 공안 당국의 방해로 그 결실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이지 않게 저항의 뿌리는 지속성을 갖고 뻗쳐 내려오는 데 우리는 너무도 작아져 버린 것은 아닌가? 남북으로 갈라져 서로의 등을 돌린 지도 반세기가 지났다. 그런 마당에 남쪽 내부에서의 토착화된 지역 감정의 벽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우리의 내적 구심을 더욱 강화하고 우리의 시선을 저 멀리 만주나 시베리아로 돌려 바라볼 때가 아닌가 생각된다. 어려운 여건 하에서 기업을 일으켜 민족 문화의 내적 자산을 키워가고 있는 젊은 미래의 희망은 우리 민족의 젊은 기상으로 꽃 피어날 것이라 기대하면서 그의 건승을 기원한다. 그의 시가 수작은 아닐지언정, 그의 시의 내면에 담긴 동화적 상상력은 인정되어야 할 것으로 보이며, 그의 진실한 고백이 담겨져 있는 것 또한 그의 진실성을 보여주는 창작으로 인정하고 싶다. 하루살이가 되고 싶었던 그 날 홍용암 나는 그 어느 가장 청명한 여름날의 하루살이가 되고 싶었다 우리는 순간적인 그 하루만 사슴처럼 새처럼 사랑했다 이튿날 헤여져야 했으니깐 그 아름답게 사랑했던 하루 그날 새벽 0시에 태어나 자정 24시에 죽었다면 나의 기억속에는 다음날의 비애가 없을 것이다 영원히 그 행복했던 하루만 내 한생에 전부로 길이 남아 그러면 나는 단 하루를 살아도 행운스럽게 길한 날 태여나서 유감 한점 없는 삶을 마칠 것이다.... 꽃무덤 무수한 관광객들이 드나드는 초가을 공원 길거리에 깨끗하게 늙은 어멈 한 분이 떨어진 꽃잎을 쓸어모아 무져서는 한무더기 꽃무덤을 만든다 아무래도 무심히 지나칠수 없다 어쩐지 그 한잎한잎의 꽃무덤이 그 어멈이 스쳐지난 자취같이 보인다 얼마나 아름다운 나날들을 그윽한 향기속에 흩날렸을가... 녀자 가장 가냘픈건 고독한 녀자다 고독한 녀자보다 측은한건 버림받은 녀자다 버림받은 녀자보다 불쌍한건 죽은 녀자다 죽은 녀자보다 불행한건 잊혀진 녀자일게다 까맣게... 물고기 륙지의 자그마한 개울물에 살던 물고기 한 마리가 바다가 번화하다는 소문을 들었다 꾀죄죄한 개울을 떠나 한번 그곳에 가서 보람있게 버젓이 살아보리라 마음먹었다 항구도시에 이르러 사품치는 바다격류에 휘말려들자마자 물고기는 그만 지각을 잃고말았다... 욕 인간들이 서로 욕지거리 한다 --개같은 것이! 개들도 물고 뜯을 땐 개나라에서 가장 험한 쌍욕을 할 것이다 --인간같으니라구야 에잇 퉷퉷... 홍용암: 필명 백운(白云) 1970년 6월 26일 중국 흑룡강성 동녕현 삼차구향 동방룡촌에서 출생 16세에 첫동시집 「꽃무지개」를 출판 서정시집 「흰구름이 된 이야기」, 「려행자」, 동시집 「나는 시골아이」, 「사슴뿔 나무」등 출판 전국, 성, 주 및 해외문학상 수차 수상 현재 「청춘극장」신문사 사장, 「별나라」특약편집, 연길시외국어학교 등 5개 회사의 리사장, 흑룡강작가협회회원, 연변작가협회회원  
1435    詩의 언어는 과학적 언어가 아니다 댓글:  조회:4468  추천:0  2016-05-16
시의 언어 시는 일상언어를 재료로 하며 일상언어가 사용하는 단어와 문법을 사용한다. 그러나 시는 일상언어에서 사용되지 않는 단어들을 자주 사용하고 시에만 고유한 문법을 사용하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시와 일상언어를 구분하는 문제는 상당히 어려운 문제로 취급되고 있다. 리차즈는 언어를 과학적 언어와 정서적 언어로 구분하고, 전자를 일상적 언어, 후자를 시의 언어로 본다. 일상적 언어는 과학적 용법에 의한 언어로 관련대상을 어김없이, 그리고 정확하고 논리적으로 지시하는 언어이다. 그것은 기호의 뜻이 관련대상을 적확하게 포착하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기호화하는 과정 즉 말로 표현할 때도 정확한 지시가 이루어질 것이 요구된다. 그리고 기호는 관련대상은 진실적 관계로 대신한다. 이에 비해 시의 언어는 관련대상을 명확하게 지시하는 데 목표가 있는 것이 아니고 독자에게 얼마나 효과적으로 정서를 빚어낼 수 있는가가 문제이다. 시의 언어 즉 정서적 언어는 관련대상에 대한 지시에 있어서 오류가 있다하더라도 태도나 정서(정서적 반응)을 일으킨다면 그것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가령, 유치환, [울릉도]라는 시를 보면 과학적 언어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과학적으로 보면 울릉도 언저리의 수심은 100m정도, 그러나 부근에는 깊이가 200m이상이 되는 심해에 있는 섬이다. 사실 여부는 이러한 과학적 진술에 비해서 그 말의 내용이 증명가능하나, 시에서 쓰이는 말과 그 문장형태는 과학에서처럼 증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것은 다만 어떤 태도에 의해서 수용될 뿐이다. [울릉도]에서 '장백의 멧부리 방울 뛰어'라고 한 것은 증명불가능한 차원이다. 허황되고 부질없는 말이지만, 이 부분을 읽고 어떤 마음 속의 감흥이 일어나면 그것이 바로 시적 언어이다. 이러한 시적 언어의 속성은 의사진술(pseudo statement)에 속한다. 의사진술은 우리의 충동과 태도를 풀어놓고 혹은 조직화하는 효과로서 전적으로 정당화되는 하나의 언어형식이다. 관련대상의 적절한 지시가 아니라 충동과 태도를 효과적으로 조정하는 언어이다. 이에 비해 진술은 관련대상 내지 사실에 부합하기를 기하면서 쓰는 언어를 진술이라고 한다. 시의 언어는 외연을 갖지만, 외연에만 만족할 수 없다. 거기서 요구되는 정서의 폭과 깊이를 넓히고, 크게, 짙게 하기 위해서 시의 언어는 내포 또는 함축적 의미를 사용한다. 이 유형의 의미는 사전에 적혀 있지 않다. 그보다 이런 말의 뜻은 문맥을 통하여 빚어지며 제 나름의 독특한 맛이나 멋을 지닌다. 시에서의 함축성은 시어의 애매성을 가져온다. 시가 함축적 의미를 더 많이 가지려고 하면 할수록 시어는 더욱 애매해진다. 시어의 애매성은 시어의 함축성이 다양하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독자가 가질 수 있는 반응의 폭도 넓어지고 깊어진다. 미국의 신비평가들은 시와 비시의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 시의 언어적 특징을 밝힌다. 그 결과 그들은 시가 일상언어를 사용하지만 시의 언어와 일상언어는 근본적으로 다른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즉 시는 일상언어를 재료로 하고 일상언어의 문법에 구속되기는 하나 근본적으로 다의적인 언어이고 표면적인 의미와 시적 의미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그것을 엠비규어티, 역설, 아이러니, 텐션 등 각기 다른 용어로 설명하고 있다. 근본적으로 그들은 시의 언어는 다의적이라는 데 동의하고 있다. 신비평가들은 1930-1950년대에 걸쳐 일어난 미국의 비평운동이다. 그들은 1) 시는 그 자체로서 취급되어야 하고 독립적이며 자기 충족적인 객체로 여겨져야 한다(의도론적 오류, 영향론적 오류 지적) 2) 신비평의 특징은 정독, 정해인 바, 한 작품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의 복잡한 상호관계와 애매성을 상세하고 정밀하게 분석한다. 이 경우 단어 사이의 관계라든가 의미의 세부가 지니는 의의, 행과 행이나 연과 전체가 갖는 연관관계를 파악하려고 한다. 3) 신비평의 근본원리는 근본적으로 언어적이다. 문학은 과학적, 논리적 언어와 대비되는 속성을 지닌 하나의 특별한 언어로 여겨진다. 그들은 주로 단어와 의미의 상호작용 그리고 상징 등을 다룬다. 4) 문학작품의 기본요소들은 인물, 사상, 구성이 아니라 단어, 이미지, 상징들이라고 보고 언어적 요소들이 중심테마를 축으로 하려 조직되고, 다양한 충동들의 조화, 대항세력들의 평형인 구조 안에서 긴장, 반어, 역설 등이 생긴다고 본다. 러시아 형식주의는 1910년대부터 30년대까지 약 20년간 문학의 내용이나 사회성을 중시하는 사회주의적 연구태도를 반대하고, 전위파의 실험적인 문학을 중시하면서 문학작품의 형식과 방법의 연구에 주력한 새로운 문학운동이다. 러시아 형식주의자들 역시 시와 비시, 문학과 비문학적 담화 사이의 차이를 밝히고 문학연구의 독자적인 영역을 확보한다. 그들은 문학연구는 문학작품이 아니라 문학을 문학답게 만드는 특징, 즉 문학성에 대한 연구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그것을 문학이 언어를 사용하는 형식에서 찾는다. 그 결과 그들은 문학을 다른 발화 양식과 달리 일상적인 언어용법을 왜곡하고 비틀어서 낯설게 한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낯설기 하기라고 명명한다. 즉 문학은 다른 발화양식과 달리 낯설게 하기를 통해 형식에 주의를 집중시키고 내용을 새롭게 인지시킨다는 것이다. 인간의 행동, 감각, 사고, 표현이 되풀이되면 자동화(automatization)되어 새롭거나 기이한 느낌이 소멸된다. 일상적으로 친숙화된 언어는 아무런 참신성도 느낄 수 없다. 이는 현대인의 생활이 무의식적으로 반복되면 그것의 참의미를 모르고 사는 것과 같다. 시의 언어는 이러한 자동화된 상황을 깨뜨리고 생활감각을 되찾기 위해, 사물을 느끼기 위해, 돌을 돌답게 느끼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다. 시의 언어가 도모하는 목적은 사물의 감각을 인식으로서가 아니라 지각되어지는 것으로 전달하는 것이다. 시의 언어적 기법은 대상들을 낯설게 만들어 형식을 모호하게 하고 지각의 어려움과 지속시간을 증가하여 대상에 대해 새롭게 접근하도록 하는 것이다. 즉 낯설기 하기란 예술을 여러 가지 방법에 의해 자동화로부터 대상을 일탈시키는 벗어남의 방식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내용이 아니라 형식이다. 언어를 특수화하여 언어의 음향적 효과를 의도하거나 일상적 통사규칙을 일탈하는 메타포를 사용하여 낯설게 표현하는 것 등이 사용된다. 일상적 발화에서는 내용만 인지되면 형식을 버려지고 잊혀진다. 중요한 것은 내용이지 형식이 아니다. 그러나 시는 낯설기 하기를 통해 기계적 지각을 막고 지각을 탈자동화시킨다. 이런 점에서 형식주의자들이 말하는 형식은 기존의 내용/형식의 이분법을 떠난다. 과거의 내용/형식 이분법에서 형식은 포도주와 포도주의 잔의 관계처럼 내용을 담은 그릇에 지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포도주지 용기가 아니었다. 그러나 형식주의는 형식인 생명체와 그 내용인 생명의 관계처럼 내용과 형식을 분리할 수 없고 내용이 그것을 통해 실현되는 성질의 것이라고 본다. 이들의 이러한 인식은 시적 언어는 일상언어와 근본적으로 다른 왜곡된, 낯설게 된 언어이며 시를 일상언어처럼 읽으려고 할 때 비문법적인 언어로 이해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신비평과 러시아 형식주의의 견해는 오늘날 기호학자에게 이어지는데, 그들 또한 시의 언어와 일상언어는 동일한 언어가 아니고 다른 문법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로트만은 언어를 세가지로 구분하는데, 자연언어, 인공언어, 2차 모델링언어로 나눈다. 시는 자연언어를 재료로 하지만 그것과는 다른 결합원리를 가진 또 다른 언어로 자연언어가 기호들을 결합세계를 모델화하는 것처럼 시 역시 하나의 기호로서 세계를 모델화하는 기능을 갖는다. 자연언어가 세계를 모델화하는 1차언어라면 시는 1차언어 위에 나름의 2차적인 질서를 덧붙여 세계를 모델화하는 2차언어라는 것이다. 그는 2차적인 질서를 덧붙임으로써 시에서는 모든 성분들, 심지어 일상 발화에서는 형식적인 요소까지 의미론화되고, 일상언어에서는 결합할 수 없는 것들을 2차적인 질서화에 의해 강제적으로 결합시킴으로써 시는 일상언어와 비교될 수 없는 높은 정보량을 가지고 보다 현실감있는 세계를 보여줄 수 있다. 야콥슨은 시의 이러한 2차적 질서화를 "시는 등가적 원리를 선택의 축에서, 결합의 축으로 투사한다"고 설명한다. 그에 의하면 일상언어의 결합규칙은 계열체내에서 단어를 선택하여 그것을 계기적 사슬로 결합하는 인접성의 원리에 의하는 것인데, 시는 이와 반대로 등가의 원리를 결합의 원리로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의 특징은 시로 하여금 일상언어의 문법적 규칙을 위반하게 하고 시를 일상적 담화에 구분짓는다. 리파테르는 시의 개념은 시대에 따라, 그 시대의 미적 관념에 따라 달라져 왔지만 변하지 않은 것은 시가 의미론적으로 간접적인 전달방식이라는 점이다고 보고 기존의 율격의 유무로 보던 전래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에 의하면 시는 율격이 아니라 뜻을 전달하는 방식에 따라 다른 발화양식과 구분된다. 즉 시는 직접 대상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간접적인 방식으로 그것을 가리키며 이것을 통해 저것을 말한다. 그는 일상언어의 의미단위는 단어나 구인데 비해 시의 의미단위는 텍스트라고 보고, 일상언어가 전달하는 의미를 뜻, 시가 전달하는 의미를 시적 의미로 구분한다. 이런 의미에서 시는 일상적인 산문과 달리 하나의 통일성을 갖는 구조, 모델, 기호, 하나의 단어처럼 기능한다. 그는 시에서 의미론적 간접화가 일어나는 방식으로 전이, 왜곡, 창조 3가지를 들고 있다. 전이는 은유나 환유처럼 한가지 뜻이 다른 뜻으로 의미가 바뀔 때 일어난다. 즉 한가지 단어가 다른 단어를 뜻하게 될 때 일어난다. 왜곡은 중의성, 모순, 넨센스가 있을 때 생긴다. 창조는 다른 식으로는 의미가 없을 수도 있는 항목들로부터 텍스트 공간이 기호를 만드는 조직원리로 수용될 때 생긴다. (가령, 대칭, 압운, 연속의 위치상의 상동체 사이의 의미론적 등가) 이러한 시의 간접화 수단은 세계의 문학적 재현을 지속적으로 위협하며 시를 지시적 의미에서 문법적 일탈, 즉 비문법성으로 지각하게 한다. 그러나 지시적 차원에서의 비문법성은 지시적 차원에서는 비문법적이나 또 다른 체게에서는 문법적이 된다 즉 그것들은 시에는 물질적으로 실현되지 않은 다른 체계를 시 속에 끌여들임으로서 두 체계 사이의 대화 관계를 형성하고 시 속의 모든 단어를 다른 코드로 재해석하게 한다. 시가 일상적인 언어와는 다른 문법성을 지닌다면 시의 독서는 일상언어의 독서와 다른 방법을 요구한다. 시에서 비문법성과 구조적 통일성은 그 자체로 텍스트가 시인가, 일상언어인가를 가늠하는 기준이다. 시를 읽을 때 먼저 염두해야 하는 것은 시 텍스트를 하나의 전체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시 텍스트는 의미단위가 단어나 구가 아니고 텍스트 전체이고, 시 텍스트는 하나의 단어가 여러개의 형태소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전체인 것처럼 통일된 전체이다. 단어들이 여러개의 형태소로 결합된 것과 달리 시는 그 구성요소의 단위가 클 뿐이다. 단어 속에서 형태소들이 독립적인 의미를 갖지 못한 것처럼 시에서도 하나의 단어나 문장은 독자적인 의미를 갖지 못한다. 다른 단어나 문장, 텍스트 전체와 관련해서만 의미가 있다. 또한 단어가 그 부분들이 아닌 기초 전체를 통해서 어떤 사물이나 현상을 지시하는 것처럼 시는 부분부분을 통해 사물이나 세계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고 텍스트 전체를 통하여 어떤 것을 대신한다. 일상언어는 지시적 의미에 따라 계기적인 사슬을 통해 읽어가도록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시는 지시적인 의미가 아니라 간접화된 의미끼리 결합하여 하나의 등가적 질서를 갖도록 구성된 폐쇄된 통일성의 언어이다. 따라서 시를 판독하는데 있어 개별단어의 지시적 의미가 아닌 그 단어가 연상시켜 주는 다른 의미들을 추적하여 그것들을 하나의 전체로 구성하고 시가 텍스트라는 매개체를 통해 어떤 것을 대신하는지 파악하는 일이 중요하다. 이렇게 할 때 우리는 시와 그것이 전달하는 것 사이에 비유적 관계가 성립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독서 과정에서 모든 단어와 문장은 지시적 의미를 넘어 문맥으로 재코드화되고 다른 의미로 바꿔 나간다.  
1434    순화된 언어속에서 건져 올리는 낯설기라야 가치 있다 댓글:  조회:4206  추천:0  2016-05-16
詩 낯설기에 대한 실증     세상은 늘 불균형의 대가를 통해서 양면성을 가지고 존재한다. 그것이 곳 현실세계의 모순이고 병폐이다 그렇다고 세상에 평행선을 그을 수는 없다. 이것은 인간이 존재하는 한  욕심이라는 또 다른 자아로  자기만족을 취하는 방법이기도 하지만 욕심이라는 대가의 불균형이 취해지지 않는다면 인간은 살아감에 있어 별다른 흥을 느끼거나 즐거움을 얻을 수 없는 이유이다. 역설적인 표현인지는 몰라도 대가의 불균형으로 인해 인간은 보다 나은 것으로의 지향을 꿈꾸고 불합리하고 모순된 것을 고치고자 노력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로 본다면 (예술) 이라고 하는 그 모든 것이 대가의 불균형 속에서 탄생 되는 것이다. 그에 한 범주로 내적 작업의 산고인 글도 그러한 맥락으로 탄생되는 것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갈망 한다 그것이 그림이던 아니면 소설 또는 가볍게 읽혀지는 산문이나 수필에서조차 늘 새로움에 목말라한다. 그렇다면 詩는 어떤가? 아마도 가장 많은 낯설기와 새로움을 갈망하는 것이 詩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낯설기나 새로움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대두된다. 왜? 무슨 이유로?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새로움을 꿈꾸고 갈망하는가? 일면 생각하면 평등성의 원칙에서 벗어나는 것이 낯설기고 새로움에 대한 추구다.  보편성과 타당성을 담보로 하여 여러 사람들에게 가장 익숙하고 편안한 것이라는 상식은 낯설기나 새로움이라는 의식의 전환 앞에서 일반적인 틀은 심한 모욕감을 당하기도 하고 때때로 가치 이하의 대접을 받는다.   그렇다면 과연 낯설기는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가치 기준을 뛰어 넘을 만큼 대가성이 있는 것이고 그만한 가치를 가지고 있느냐 하는 점이다.   우선 詩 라는 한자어를 풀어보면 말씀 言과 모실 寺 사 자가 모여서 만들어진 합성이다. 동양적인 사상에서 보면 시의 어원을 찾기를 寺刹題詠詩  (사찰제영시)에서 찾는 까닭인지는 몰라도 (시)라는 글자 자체가 말씀을 모신다는 뜻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말은 입을 통해서 나오지만 생각을 담보로 하고 생각은 가슴의 느낌으로 표출되는 것이 곳 글이고 하나의 맥락들이 무리를 이어 예술이라는 이름을 달고 갈래를 나눈다.   한 예로 사찰제영시를 살펴보면 하나의 풍경과 하나의 대상을 두고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수천편의 글을 지었지만 모두가 새로운 느낌 새로운 모습으로 풍경을 그려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살펴보기 속에서 모든 예술이라고 총칭하는 행위에는 가슴을 떨리게 하는 감동이 있어야 하고 그 감동과 가슴의 전이가 깊을수록 좋은 예술이라는 이름을 부여한다. 이것은 곳 새로움에 대한 의식의 진보이고 전환이 낯설기 속에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낯설기를 예술 속에서 찾는 이유는 무엇인가? 또한 낯설기라는 것이 예술 속에서만 존재하는가? 단연코 아니다. 낯설기는 우리의 삶 곳곳에 산재해 있고 끊임없이 시도 된다. 누군가 편리성의 일환으로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 내는 것도 낯설기고 작은 불편함을 편리 성으로 전환하는 순간적인 생각도 낯설기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누구나 생각하고 도모할 수 있는 의식의 전환이냐 아니냐 하는 비중의차이만 있을 뿐이지 가치성을 둔다고 한다면 모두가 대단하고 경이로운 일이다.   그렇다면 시에서의 낯설기는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다. (하늘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라는 성현들의 말처럼 언어가 존재했던 고대 사회나 지금의 현실에 비추어 보아도 새로운 것은 없다는 결론이다.     그러나 간과 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같은 언어로 조탁해내는 수없이 많은 詩들이 전해지는 느낌이 다르고 그려지는 이미지가 다르다는 것이다. 이것은 다시 말해 같은 그림을 보고 느낌을 담는다고 해도 전이되는 감정의 파동이 각자의 사상이나 받아들이는 사유함의 깊이에 따라 수천수만의 느낌으로 전이된다는 까닭이다.   인간은 욕구의 동물이자 이성과 감성을 겸비한 동물이다. 이러한 인간의 원초적인 감성이 욕구를 자극하면 새로움에 대한 갈구가 일어나고 그 욕구는 낯설기를 끊임없이 갈망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원초적인 인간 감성의 욕구가 좋은 면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의 이 욕구야 말로 끊임없는 도전을 낳고 지속적인 발전성을 도모한다는 이유 탓으로 오늘 날까지 새로움은 경이의 대상이고 그 새로움은 낯설기에 대한 사상의 뿌리를 넓혀가는 것이다.   그렇다고 보편성에 근거를 둔 글이 기대치 이하라는 생각은 몹시 위험한 생각이다. 어떠한 세계에서든 신선함과 새로움을 추구하는 것은 보다 발전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바람직한 사고이지만 그것이 자칫 새로움만이 가치를 갖는다는 偏狹(편협)된 사고로 일관한다면 낯설기에 대한 가치는 그 빛을 잃을 것이다.   이런 일렬의 방법 속에서 낯설기는 일상적인 언어에 기초를 두고 그 영역을 넓혀가야 하는 것이고 보다 순화된 언어 속에서 건져 올리는 낯설기라야만 그 가치를 인정받을 것이다.
1433    [초저녘 詩 읊다]- 초승달 카페 // 송몽규를 다시 떠올리다 댓글:  조회:4480  추천:0  2016-05-16
초승달 카페 이용한 초승달 카페는 한껏 붉은 입술을 벌린다 초승달 카페는 가끔 아프고, 헐거운 주인이 마호가니 바에 앉아서 물고기처럼 술을 마신다 어느 새처럼 울던 사내는 오지 않는다 처음부터 새와 물고기가 사랑한 저녁은 없었다 절대로 그런 일은 없다 구름이 벗겨진 천장과 강물이 흘러간 마룻바닥과 천둥과 번개만이 누렇게 얼룩진 초승달 카페는 천 길 벼랑 끝에서 삐걱이고, 아침이면 아가미 같은 문을 닫는다. ------------------------------------------------------------------------------ 안녕, 후두둑 씨 후두둑 씨에게 늦은 소포가 온다 나는 잘 있다고 포장된 외로운 책이다 갈피마다 부엌에서 침대까지 걸어간 발자국이 적혀 있다 후두둑 씨는 되풀이하고 싶지 않은 외투를 걸치고 식탁에 앉는다 지난봄에 들여놓은 아들 녀석이 잠깐 불가사의한 안녕을 묻는다 낡은 커피라도 드릴까요? 후두둑 씨에게 인생은 앉아 있는 것이다 뒤꿈치가 닳아서 무표정한 의자가 매일같이 삐걱이는 후두둑 씨를 기다린다 사뿐히― 갈라진 여백을 중얼거리며 아들아 거의 다 왔다, 문이 닫힌 아내가 지붕 위에서 성큼성큼 쏟아져 내린다. /////////////////////////////////////////////////////////////////// 송몽규를 기억하다 - 룡정.윤동주연구회 반일지사, 문사 송몽규를 기리는 행사 펼쳐 2016년 5월 15일 오전 룡정.윤동주연구회에서 반일지사, 문사이며 윤동주의 숙명의 동반자인 송몽규를 기리는 뜻깊은 행사를 펼쳤다.   3부로 펼쳐진 행사는 1부로 룡정 동산마루에 잠들어 있는 송몽규묘소와 윤동주 묘소를 참배하고 헌화, 제주를 올렸다. 2부는 송몽규의 모교인 룡정중학에서 력사기념관을 돌아보았다. 3부는 룡정시 도서관에서 거행, 룡정.윤동주연구회 회원들이 송몽규의 작품인 시 “밤”, “하늘과 더불어”, 꽁트 “숟가락”이 선독되였다. 룡정.윤동주연구회 회장인 김혁소설가가 “윤동주의 소울메이트 송몽규”라는 제명의 특강을 하였다. 김혁회장은 특강에서 송몽규의 일대기에 대해 본인의 답사와 연구물과 더불어 방대하고 치밀한 분석을 가했다. 김회장은 특강에서 “송몽규는 걸출한 문사이자 반일지사이다, 한국의 김동리, 정비석, 서정주보다도 일찍 등단한 문학가이자 일제의 횡포에 저항하다가 윤동주와 나란히 일제 감옥에서 옥사한 철저한 반일지사로서 윤동주와 더불어 또 한분의 룡정이 낳은 인걸에 대해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고 력점을 주었다. 행사에서는 윤동주연구회 사무국에서 룡정의 문화와 력사의 선양에 힘쓰고있는 룡정.윤동주연구회에 성원을 아끼지않은 룡정시 도서관에 감사패를 증정했다. 이어 김혁회장이 사업보고를 했다. 김회장은 사업보고에서 모두가 사명감, 책임감으로 고향이 낳은 인걸들에 대해 적극 조명하고 노래하며 더욱이 윤동주 탄생 백주년을 맞아 룡정.윤동주연구회의 임원들이 만가동을 걸것을 주문했다. 행사에는 윤동주 친지 윤인주 그리고 룡정.윤동주연구회, 룡정3.13반일기념사업위원회, 룡정한락연연구중심 및 룡정.윤동주연구회 회원들과 작가, 교원, 룡정의 문학도, 매체 기자 40여명이 참석했다. 한편 룡정이 낳은 걸출한 민족시인 윤동주의 문학정신, 민족정신을 선양하고 조선족문화의 발상지 룡정의 문화와 력사를 조명하여 만방에 알리기위한 취지로 작가, 학자, 교원, 매체인원들로 설립된 룡정.윤동주연구회는 2014년 9월에 설립된 이래 윤동주를 기리고 룡정의 력사를 조명하는 묵직한 기념행사들을 련이어 펼쳐 사회와 문단의 주목과 충분한 긍정을 받고 있다. 송몽규는? 윤동주의 고종사촌인 송몽규는 1917년 9월 28일에 북간도 명동촌의 윤동주 생가에서 태여났다. 1935년 소설”숟가락”이“동아일보”신춘문예에 꽁트 당선작으로 선정되여 룡정과 전 북간도를 놀래웠다. 1935년 3월 말 중국 락양군관학교 제2기생으로 입학하여 일제에 항거하기 위한 군사지식을 습득했다. 중국 산동성 제남에서 일제 경찰에 체포되였다가 석방되여 1937년 4월 룡정의 대성중학교(현 룡정중학)에 4학년으로 편입하였다. 1938년 4월 9일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진학하였다. 학생회 문예부장으로 활동하면서 잡지 《문우》의 편집을 맡았다. 1942년 4월에 윤동주와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교또제국대학 사학과 서양사 전공에 입학하였다. 1943년 7월 “반일독립운동”의 죄목으로 교또지방재판소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후쿠오카 감옥에 수감, 옥사했다. 1945년 3월 7일에 후쿠오카형무소에서 일제의 잔인한 생체실험으로 윤동주와 한달 간격으로 옥사했다. 유골은 1990년 윤동주 묘소의 곁으로 이장되였다. /조글로미디어 김단비
1432    詩의 언어는 음악적이여야... 댓글:  조회:4616  추천:0  2016-05-16
[7강] 시의 행 만들기(1) 3.행은 어떻게 만드는가 행은 시의 구조에서 기본 골격을 이루고 있습니다. 여러 학자에 따라서 그 분류가 다르기는 하지만 김춘수 시 인은 리듬의 단락으로 행 만들기, 의미의 단락으로 행 만들기, 이미지의 단락으로 행 만들기 이상, 셋으로 분류하였습니다. 오규원씨의 현대시작법도 김춘수씨의 분류를 따르고있습니다. 이 말은 리듬이나 의미나 이미지 그 어떤 것을 중요시하였는 가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 여기에 강희근 시인은 힘 줌의 작은 마디를 하나의 행으로 놓는 경우를 첨가하여 네 가지로 나누고 있습니다. 박용래님의 을 읽어보겠습니다. 능금의 떨어지는 당신의 地平(지평) 아리는 氣流(기류) 타고 수수 이랑 까마귀떼 날며 울어라 물매미 돌 듯 두 개의 태양 이 시는 리듬을 중시하여 행을 구분한 예입니다. 만약에 이 시를 의미를 중시해서 행을 재배치 한다면 능금이 떨어지는 당신의 地平 아리는 氣流 타고 수수 이랑 까마귀떼 날며 울어라 물매미 울 듯 두 개의 태양 아마, 이렇게 되지 않았을까 싶네요. 그러나 이렇게 바꾸어 버리면 시인이 원래 강조하고자 했던 하나 하나의 단어의 그 이미지와 시 전편에 걸친 경쾌한 리듬이 죽고 말게 됩 니다. 따라서 시인이 처음부터 의미의 단락을 중시했다면 문체나 어휘 선택이 달라졌을 것이 확실합니다. 이렇듯 시인이 어디에 그 의미를 두느냐에 따라 시 전체가 달라질 수 있는 것을 감안하시고 강의를 들어주시기 바랍니 다. 또 같은 시인의 이란 시를 보면요. 그 길에 아지랑이가 피듯 태양이 타듯 제비가 날 듯 길을 따라 물이 흐르듯 그렇게 그렇게 天然(천연)히 울타리 밖에도 花草(화초)를 심는 마을이 있다 오래오래 殘光(잔광)이 부신 마을이 있다 밤이면 더 많이 별이 뜨는 마을이 있다 앞의 시와 한 번 비교해 보십시오. 앞의 시는 한 단어가 한 행이 되었고 또 시 전체가 한 연으로 되어 있지요. 다음 시 는 '천연히'라는 한 단어가 한 행인 동시에 한 연이 되어 있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렇듯 행과 연의 구분은 작가가 자기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 을 어떻게 표현하는가 하는 순전히 작가 중심으로 되어 있습 니다. 그러나 아무리 자기의 마음이라 해도 충분하거 나 필요한 이유 없이 마음대로 하면 안되겠지요. 여기에서 보면 '천연히'는 단 한 마디의 단어로 되어 있지만 그만큼 이 말 하나로 작가가 강조하고 싶은 것이 있었기 때 문입니다. 그러니까 이 작품 속의 '천연히'는 앞과 뒤에 있는 가 연과 맞먹는 이미지의 중량을 작가가 부여하고 있다고 볼 수가 있겠습니다. 실제로 이 이미지는 한 행의 기능을 충분히 수행하고 있을 만큼 효과적입니다. 정형시(시조)는 규칙적으로 행과 연이 규정되어 있으므로 시인 의 자유가 한정된다 하여도 자유시에서는 행과 연은 시인의 자유의사에 따릅니다. 그러나 거기에도 원칙이 있다고 앞서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우리는 김춘수 시인의 구분에 따라 세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보기로 하겠습니다. 1)리듬의 단락으로 행만들기 리듬을 중시하여 리듬의 한 단락을 행으로 놓는 경우입니다. 에즈라 파운드는 시를 음악시, 회화시, 의미시로 나눈 일이 있습니다. 이는 물론 시가 언어의 음악적 성질 그것만으로, 회화적 이미지 그것만으로, 또는 의미 그것만으로 되어 있지 않고 시가 어떠한 것을 중요시하고 있느냐에 하는데 따른 구분이라는 주장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김춘수의 행과 연을 리듬, 이미지, 의미의 단락에 따라 구분한다는 주장도 같은 맥락으로 보시면 되겠습니다. 여기에서 오규원님의 이야기를 참고로 들어보겠습니다. "시의 리듬이란 언어를 음악적 효과가 나도록 소리를 유형화 한 것이다. 소리와 의미의 복합체인 언어를 '의미를 수식하고 변형시키고' 의미를 확충하도록 소리를 작품속에 조직하는 것 이다. 그런 시의 리듬은 정형시의 그것과 자유시의 그것과는 다르다. 정형시의 리듬은 압운과 율격을 기본으로 한다. 압운은 영시 나 한시에서 볼수 있는 바처럼, 시행의 시작, 끝, 중간에 유 사한 소리를 내는 음절을 반복시키는 것이다." 리듬은 우리의 전통시가인 고시조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시조의 초.중.종의 3장은 지금 현대시에 나타나는 행이라 할 수 있겠지요. 그 각 행은 음수율과 음보율을 갖고 있는 규칙 적인 리듬에 근거하여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윤선도님의 의 부분을 읽어보겠습니다. 작은 것이 높이 떠서 만물을 다 비취니 밤중에 광명이 너만한 것이 또 있느냐 보고도 말 아니 하니 내 벗인가 하노라 아마 학교에서 배워서 잘 아시겠지만, 시조의 각 장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를 한 번 살펴 보시지요. 글자 수는 3.4조의 음수율이 일반적이며 자연스럽게 끊어 읽는 단위를 한 보라 할 때 보통 4번, 즉 4음보로 되어 있습니다. 그 글자 수도 종장의 첫구에서 3음절, 5음절을 제외하고는 대개 2자에서 5자까지 변형이 가능했었습니다. 현대시조가 그 형태를 많이 다양화하고 자유스러워졌다 하여도 아직은 그 정형성이 고스란히 살아있습니다. 조병기님의 을 읽어볼까요. 누구의 목숨일까 기다리는 동구밖 속사연 아직 남아 뜬눈으로 밤새우고 이슬밭 남 먼저 일어나 뻐꾸기를 손짓한다 어머니 가시던 해 그토록 서럽더니 울타리 기대 서서 먼 산을 바라는가 때절은 옷자락 벗고 촛불 하나 켜느니. 이 시조는 각 장의 구들을 한 행으로 놓음으로써 한 행이 2음보율을 살려내고 있습니다만 행을 중첩하여 읽어보면 고시조와 같은 4음보율이 살아납니다. 김소월님의 을 읽어보기로 하겠습니다.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더 한 번...... 저 山에도 가마귀, 들에 가마귀, 西山에는 해 진다고 지저귑니다. 앞 강물, 뒷 강물, 흐르는 물은 어서 따라오라고 따라가자고 흘러도 연달아 흐릅디다려. 이 시의 행을 살펴보면 행을 구분하는 기준이 리듬에 의한 것 임을 그냥 알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가만히 소리 내어 읽 어보십시오. 아마 7.5조의 음수율을 느낄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런 예는 우리가 얼마든지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예전부터 시조와 정형시들을 많이 읽어왔기에 그냥 구 분이 가리라고 봅니다. 시조와 같은 정형시는 아니라도 리듬의 단락으로 행이 구분된 현대시를 부분으로 한 번 읽어보고 오늘 강의를 마치겠습니다. 김수용님의 를 읽어보겠습니다. 넙적다리 뒷살에 넙적다리 뒷살에 말이 빼라지 손에서는 손에서는 불이 나라지 수챗가에 얼어빠진 수세미모양 그대신 머리는 온통 비어 움직이지도 않는다지 그래도 좋아 그래도 좋아 이 승훈님의 을 읽어보겠습니다. 별안간 따분해 찾아간 게 아니다 그런 게 아니다 별안간 천둥이 쳐 비가 내려 꽃잎이 떨어져 찾아간 게 아니다 그런 게 아니다 그런 게 아니다 별안간 너래도 만나고 싶어서 기막힌 치욕이 와락 나를 껴안고 이상 살펴본 바와 같이, 시의 행과 연은 작가의 의도를 껴안 은 채 리듬을 창조하는 방향에서 운용되는 것입니다. 오늘 배운 과목과는 상관이 없지만 계절에 맞는 시 두 편을 올리겠습니다. 강계순님의 -작은 손 18입니다. 오랜 잠 속에 누워 있었네 숨 쉬고 있던 모든 것들 단칼에 베어내고 차디찬 뒷모습으로 떠나간 그대 깊이 벤 상처 땅 속에 묻고 아주 오래 어둠 속에 갇혀 있었네. 이제 밤낮 익은 암호가 어디선가 누설되지 않은 주파수를 변조하여 깊고 단단한 잠 속으로 삐삐삐삐 은밀하게 타전해 오더니 물빛 사발통문을 만들어 여기저기 뿌리면서 그대 다시 돌아와 내 앞에 섰네. 흙 묻은 손발 햇살로 씻어내고 삭고 찌든 어둠도 부드럽게 밀어내고 연초록의 화신으로 다시 일어서서 보이지 않던 빛 다시 보이고 들리지 않던 소리 다시 들리게 하는 비밀의 주파수 삐삐삐삐 신비한 암호를 보내면서 여기에서 저기에서 호출부호를 누르고 있네. 다음은 김명리님의 를 올리겠습니다. 원추리 노란꽃 위에 남방나비가 앉았다 물봉선 붉은꽃 위에 작은주홍부전나비가 앉았다 비비추 보라꽃 위에 사향제비나비가 앉았다 하악을 찢어져라 벌리고 노려보며 말짱한 대낮에 꽃잎 우산살을 낱낱이 펼쳐 든 어수리 환삼덩굴잎 뒷면에다 마악 알을 낳은 네발나비가 이리로 날아올지 멧노랑나비, 큰흰줄나비 갈고리나비 떼가 날아들지 오오 모두들 가만히 스치고 날아가버릴지! ===================================================   355. 낙향을 위하여 / 오탁번                                                  낙향을 위하여                           오 탁 번   까마득하게 흐려져 버린 내 사랑의 호적등본만 한 빈터가 실은 내 생애의 전부였음을 이제야 알겠다 술지게미 먹고 깨금발로 뛰어놀던 내 사랑의 빈터에 말 안 해도 마음 다 알아 줄 아주 예쁜 사람이 살고 있음을 이제야 알겠다 지에밥에 누룩 풀어 담근 술항아리에서 상강 날 해거름쯤 술이 익으면 첫서리 내린 들창문 반쯤 열어 놓고 마주 앉아 잔 비우고 싶은 내 마음의 노른자위가 될 아주 예쁜 사람을 전생의 꿈을 꾸듯 찾아가야겠다     오탁번 시집 중에서         오탁번 연보   1943년( 1세) 충청북도 제천군 백운면 평동리에서 4남 1녀 중 막내로 출생.   1945년( 3세) 부친 별세.   1951년( 9세) 백운초등학교 입학.   1954년(15세) 원주중학교 입학.   1960년(18세) 원주고등학교 입학.   1962년(20세) 학원문학상에 시 당선.   1964년(22세) 고려대학교 영문학과 입학.   1965년(23세) 고대신문사 기자.   1966년(24세) 동아일보 신춘문예 동화 당선.   1967년(25세)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고대신문사 편집국장. 고대신문 문화상(예술부문) 수상.     1969년(27세) 대한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 고려대학교 대학원 국문학과 입학.   1971년(29세) 고려대학교 대학원 국문학과 졸업(문학석사).              육군사관학교 교수부 국어과 교관(육군 중위).   1973년(31세) 육군사관학교 교수부 전임강사(육군대위). 첫 시집 출간.   1974년(32세) 육군 제대. 수도여자사범대학 전임강사. 첫 창작집 출간.   1976년(34세) 수도여자사범대학 조교수. 평론집 출간   1977년(35세) 창작집 출간.   1978년(36세) 고려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조교수. 창작집 출간.   1981년(39세) 고려대학교 부교수. 창작집 출간.   1983년(41세) 고려대학교 교수. 문학박사. 하버드대학 한국한연구소 객원교수.   1985년(43세) 제2시집 , 창작집 출간.   1987년(45세) 단편 으로 제12회 한국문학작가상 수상.              소년소설 출간.   1988년(46세) 논문집 , 창작집 출간.   1990년(48세) 평론집 출간.   1991년(49세) 제3시집 , 산문집 출간.   1992년(50세) 문학선 출간.   1994년(52세) 제4시집 출간. 동서문학상(시) 수상.   1997년(55세) 시 로 제9회 정지용 문학상 수상.   1998년(56세) 계간시지 창간. 산문집 출간.   1999년(57세) 제5시집 출간.   2002년(60세) 제6시집 출간.   2003년(61세) 충북 제천시 백운면 애련리 백운초등학교 애련분교에 개설.              시집 으로 한국시인협회상 수상. 출간.   2006년(64세) 계간시지 과 도서출판 이 합동으로 시리즈 발간.              제7시집 출간.   2008년(66세) 한국시인협회장 취임.   2010년(68세) 제8시집 발간. 김삿갓문학상.   2011년(69세) 고산문학상.   2012년(70세) 육필시선집 출간.   현재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한국시인협회 평의원.  
1431    그 새벽, 시인이 서 있는 곳은,ㅡ 댓글:  조회:4897  추천:0  2016-05-16
[6강] 시의 구조 - 행과 연.4 강의를 이제 두번째 하게 되다보니 오랫동안 이 강의실을 지키셨던 급우들과는 한 가족처럼 되었습니다. 우리의 이런 관계가 더욱 아름답게 발전하여 서로 서로 좋은 글을 쓸 수있는 격려가 되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어제에 이어서 시의 구조 행과 연에서 여덟번째 내용입니다 8)그 시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의 한 부분이나 핵심 이 되는 내용을 시의 첫 행에 내 세울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시의 내용을 이루는데 있어 첫 행이 중심이 되기때문에 이어서, 오는 모든 행들이 첫 행을 향하여 집중되게 되어 있습니다. 첫 행이 시상 전개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제 대학원 주임교수님이셨던 허형만교수님의 를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풀꽃은 풀꽃끼리 외롭지 않네. 가난이야 하나님이 주신 거 때로는 슬픔의 계곡까지 몰려갔다가 저리 흐르는 게 어디 바람뿐이랴 싶어 다시금 터벅터벅 되돌아오긴 하지만 도회지 화려한 꽃집이 부러우랴 밤안개 아침 이슬 모두 함께이거늘 풀꽃은 풀꽃끼리 외롭지 않네 외로움이야 하느님이 주신 거 사람 속에 귀염받는 화사한 꽃들은 사람처럼 대접받고 호강이나 하겠지만 때로는 모진 흙바람 속에 얼마나 시달리며 괴로워하리. 때로는 무심히 짓밟는 발에 뭉개져 얼마나 피눈물을 흘리리. 시르렁 시르렁 톱질한 박일랑 우리사 연분없어 맺지 못해도 궂은 날 갠 날도 우리 함께이거늘 풀꽃은 풀꽃끼리 외롭지 않네. 이 시에 대해 조태일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첫행을 이룬 "풀꽃은 풀꽃끼리 외롭지 않네" 는 이 시의 핵심이 되고 있는 행이며 주제를 함축하고 있다. 따라서 이 첫 행을 바탕으로 다음 행들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면서 하나의 시적 공간을 형성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이처럼 시의 중심적 의미나 핵심이 첫 행에 자리 잡으면 이 첫행이 다음 행들을 풀어나가는 데 단서가 되거나 길잡이가 되는 것이다. 9)수식어와 그 수식을 받는 중심 단어로 첫 행을 이루는 경우가 있습니다. 앞에서 공부한 평서문이 첫 행으로 나오는 경우는 한 문장이 앞에 옴으로 시작에 좀 부담이 될 수가 있지만 이 경우는 그 보다 훨씬 자유스럽습니다. 마종기님의 겨울 노래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눈이 오다 그치다 하는 나이. 그 겨울 저녁에 노래부른다. 텅 빈 객석에서 눈을 돌리면 오래 전부터 헐벗은 나무가 보이고 그 나무 아래 아직도 웃고 있는 것도 보인다. 내 노래는 어디서고 끝이 나겠지. 끝나는 곳에는 언제나 평화가 있었으니까. 짧은 하루가 문닫을 준비를 한다. 아직도 떨고 있는 눈물의 몸이여. 잠들어라. 혼자 떠나는 추운 영혼. 멀리 숨어 살아야 길고 진한 꿈을 가진다. 그 꿈의 끝 막이 빈 벌판을 헤메는 밤이면 우리가 세상의 어느 애인을 찾아내지 못하랴. 어렵고 두려운 가난인들 참아내지 못하랴. 역시 조태일님의 해설을 옮깁니다. -하나의 관념인 '나이'를 중심으로 수식어들이 그를 적절하게 꾸며 줌으로써 '나이'라는 언어는 딱딱한 개념적 요소에서 벗어나 구체적이며 감각적으로 다가온다. 시는 개념을 피하고 정서를 증폭할 수 있는 표현을 찾는 것이 중요한데 이런 의미에서 수식어들은 한 단어를 치장하거나 한정 시키는 것에 그치지 말고 수식 받는 언어의 '의미 의 육화'를 만들어 줘야만 한다. 그래야 시의 첫 행이 독자들의 가슴 속으로 스며 들어 올 수가 있다. 10)어떤 행동이나 사건의 제시를 통해 시의 첫 행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은 그 다음에 오는 상황이나 풍경, 생각, 느낌 등에 대해 호기심과 궁금증을 갖게 해주게 마련이기 때문이지요. 특히 첫 행에 '~하면'따위의 형태로 어떤 행동이 제시되었을 경우엔 그다음에 펼쳐질 내용들에 대한 기대가 더욱 커지게 될 것입니다. 이정록님의 을 읽어보기로 하지요. 뒤뜰에 가면 무거운 침묵으로 항아리가 있고 힘이란 것이 저런 거야 뚜껑을 열면 반쯤 젖은 돌 하나 그 젖은 얼굴, 아니면 물끄러미 내려보는 겨울 낮달, 갈수록 돌절구처럼 말씀 없으신 아버지 이성부님의 를 읽어보십시다. 누군가는 그가 죽었을 거라고도 하고 누군가는 그가 아편쟁이로 묻혔을 거라고도 하고 또 누군가는 그가 촌부로 늙었을 거라고도 한다. 그래도 그녀를 찾아가지 않으면 안된다. 그녀의 죽음까지도 찾아가지 않으면 안된다. 아니 그녀의 흔적 하나하나마저 되밟아가지 않으면 안된다. 아아 그녀는 경주시 성건동 신라아파트 A동 몇 호에 우리네 흔한 할머니로 살고 있었다. 가난이야 가난이야 웬수놈의 가난이야 복이라 하는 것을 어찌 허먼 잘 타는고오.... 야윈 물 어디에서 그토록 힘찬 소리 터져 나오는가 이미 낯 선 곳 흘러와서 잃어버린 소리. 短歌 한 토막으로도 어떻게 그토록 九泉을 뒤흔드는가. 이 시에서는 '누군가가 그가 죽었을 거라 하고'와 같은 하나의 사건의 제시가 첫 행에 옴으로서 시에 이야기의 요소가 가미 되기 때문에 그 흥미를 높이 는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11)명사, 동사, 형용사, 부사, 감탄사, 또는 의성어 의태어 등 하나의 낱말로써 시의 첫행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의 낱말을 첫행으로 삼는 것은 그 언어를 강조하거나 시인이 의도하는 운율의 효과 를 살리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명사들의 경우엔 호격조사를 붙이거나 그 자체로서 호명이 가능 하기 때문에 독자들의 청각을 자극하면서 친근 감을 자아낸다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명사와 동사에 비하여 형용사나 부사는 첫행을 만드는 경우가 적습니다. 왜냐하면 형용사 나 부사 등은 동사나 명사보다 첫행이 주는 긴잗감 이 덜 하기 때문입니다. 감탄사 또한 단독으로 시의 첫행을 만드는 경우가 극히 드문 일입니다. 감정의 직접적인 노출이 자칫 감상적으로 흐를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이버상에 보면 감상적인 시들이 난무하는데 이는 시에 대해서 깊은 이해가 없이 사이버 독자들의 말초만 자극하는 것으로 그 생명이 결코 길지가 않을 것입니다. 의성어, 의태어 역시 가벼움이나 말장난으로 빠질 수가 있기 때문에 첫행으로 놓을 때는 언어를 다루는 기술이 더욱 요구되기 때문에 섣불리 시도하지 않 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외에도 첫 행을 청유형이나 명령법, 가정 법 등으로 시작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제껏 설명을 드렸지만 말하자면 시의 첫 행에는 대부분의 언어의 수단이 올 수 있다는 것이 되겠지요. 다만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할 것은 어떤 방법으로 시의 첫 행을 만들든 간에 첫행은 독자들의 호기심을 불러 일으켜 독자를 끌어당기는 힘을 내장해야 하고, 다음에 오는 행은 물론 마지막 행까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서 유기적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도 딱딱한 공부하느라 애쓰셨습니다. 시 창작에 사실 이론이 매우 중요한 건 아닙니다. 그러나 이론을 알면 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요. 또 여기에 예문으로 올리는 시들은 좋은 시들이 많으므로 좀 어렵기는 하지만 잘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좋은 시 읽기의 일환으로 시 한 편을 올립니다. 남진우님의 입니다. 그 새벽 나는 사과나무 아래 서 있었다 휘어진 가지마다 붉게 익은 심장이 마악 솟아오른 아침 햇살을 받아 번 뜩이고 어둠에서 풀려나온 잎사귀 끝에 맺힌 물방울들이 후두 둑 내 이마 위로 떨어져 내렸다 어디에도 과수원지기는 보이지 않았다 반쯤 무너진 황폐한 돌담 옆으로 저 멀리 소실점을 향해 늘어서 있는 사과나무들 거기 두근두근 열린 태양의 과실들 나는 손을 뻗어 붉게 익은 심장 하나를 땄다 내 손바닥 위에서 팔딱이는 붉고 동그란 심장 한입 가득 그것을 베어 물자 어디선가 맹렬히 타종소리가 울려퍼지고 보이지 않던 새들이 깃을 치며 일제히 날아올랐다 그 새벽 내가 서 있는 곳은 우물가였다 나는 마른 우물 바닥 저 밑에서 홀로 붉게 빛나는 것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이승훈님의 해설을 덧붙입니다. "그의 꿈 속엔 사과나무가 있고, 그 아래 그가 서 있 고, 붉은 사과는 붉게 익은 심장이 되어 아침 햇살에 번득인다. 얼마나 아름다운 풍경인가? 그는 거기서 태양, 사과, 꿈을 따고 그걸 베어 먹고, 그때 종소리 가 들린다. 이 종소리를 매개로 그가 삼키는 태양, 사과, 새 들은 날아간다. 안이 밖이고 삼킴이 비상 이다. 새벽 우물 바닥에도 붉은 사과, 태양이 빛나 고, 사과 하나가 지상 천상 지하를 물들이는 이 유 토피아, 이 화엄(華嚴)의 세계에 누군들 가고 싶지 않으랴." ================================================================   353. 십칠야 날씨, 포근함 / 장이지                             십칠야 날씨, 포근함                                        장 이 지   열이렛날 밤 달빛이 야위었다. 자다 깬 텁텁한 입에 보름날 먹다 남은 부럼 털어 넣고, 달빛에 홀려 창가 의자에 엉덩일 내려놓는다. 죽은 나무 위에서 고양이 그리자벨라가 솔로로 「메모리」를 열창하는 밤, 올해는 소원도 빌지 못했구나.   호주머니에 신화를 넣고 다니던 시절, 달님은 동요 속 쟁반, 검은 설탕물 걸쭉하게 흐르는 호떡, 개구쟁이들의 축구공이었다. 신화를 잃은 사람들이 꿈을 꾼다. 가족의 건강, 사업의 번창, 사랑의 기원, 집 장만, 복권 당첨.   대학 입시 때인가 처음 정월 보름달에 빌었다. 고향집 앙상한 목련 나무 꼭대기, 대머리 달은 내 인생의 편집자처럼 앉아 있었다. 내 생의 스토리를 다 안다는 듯. 타관 땅 서울에서의 정월 대보름달은 한강 밑으로 잠긴 은항아리로 내게 있다. 짝사랑에게 전화 걸고 돌아오는 길 깊이 가라앉는 달을 보았다. 은항아리 안을 휘도는 물의 발레!   열이렛날 밤 달빛에서 호두 맛이 난다. 늦은 더위라도 팔아볼까, 허물없는 달에게. 나는 아직 꿈을 꾸지만, 달이 무슨 소원을 이루어주는 것은 아니리. 달은 아버지가 아니겠는가. 고3 때 자율학습 끝나고 늦은 귀갓길 무거운 가방 들어주러 나오시던. 짝사랑에 가슴 조이던 대학 시절 술잔 건네며 격려해주시던. 달은 그렇게 아버지처럼 늘 곁에서 걸었다.   달빛에 기대어 잠시 졸아도 좋으리. 열이렛날 밤 달빛의 품이 벌써 봄 같다. 그리자벨라가 하늘 사다리를 타고 행복한 기억 속으로 마실 나가던 십칠야 날씨, 포근함.     장이지 시집 중에서    
1430    동심이라는 이름의 마법 댓글:  조회:4857  추천:0  2016-05-16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씌어지지 않았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려지지 않았다.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    가장 넓은 바다는 아직 항해되지 않았고 가장 먼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불멸의 춤은 아직 추어지지 않았으며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별   무엇을 해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 비로소 진정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가 비로소 진정한 여행의 시작이다.    ㅡ 나짐 히크메트       동심이라는 이름의 마법   아이들은 연기자다 아이들은 그들 세계 속의 대상을 연기한다.
1429    비긋는 아침, 당신의 고해소는 어디?... 댓글:  조회:4213  추천:0  2016-05-16
                    등대로           / 이경교 (1958~ ) 등대는 별의 출입문 바다로 띄우는 초대장, 나는 네 기별만 기다리다가 청춘을 다 보내고 말았으니 어둠 속으로 편지를 보내거나 해변의 낡은 우체통처럼 아직도 너는 서 있지만, 내가 받은 건 장밋빛 엽서가 아니라, 시퍼렇게 드러누운 늪, 한때 사랑했던 푸른 뻘이거나 너를 지나면 낯선 항구, 저기 처음 보는 여자가 있다  나의 고해소  시집 《목련을 읽는 순서》(시인동네) 中  /// 세상의 모든 것엔 빛이 존재한다. 그렇지만 삶의 등대를 얻는 일은 쉽지가 않다. 세상에 베이고 상처 입은 일 많을 때, 우리는 고해하고 싶어한다. 시인은 고해하는 마음으로 등대가 별의 출입문이고, 바다로 띄우는 초대장이라고 쓴다. 《등대로》란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도 떠오르지만 그것보다 무수히 많은 사랑 고백들 아니 떠오를 수 없겠다. 그 사랑의 실패들이 우리에게 포용과 관용을 등대 불빛처럼 일러주지 않았던가. 비긋는 아침, 그대의 고해소는 어디에 있는가? 이소연 시인
1428    교훈조의 詩는 좋은 詩가 아니다 댓글:  조회:4797  추천:0  2016-05-15
이창배 교수의 시 창작 특강; 교훈조의 시는 좋은 시가 아니다 교훈시나 교훈조의 시는 시가 아니라는 말은 어불성설이지만 서정시를 논하는 입장에서 보았을 때엔 그것이 좋은 시라고 하기 어렵다. 교훈시는, 혹은 교훈조의 시는 엄격히 말해서 운문으로 쓰여진 설교문, 訓話라고 할 수 있어서 같은 뜻이라도 산문으로 쓰여졌을 때보다 기억하기 쉽고 교훈적 효과가 크다. 우리나라의 시조 대부분의 경우가 그러하다. 시조는 그 간결한 표현과 기발한 비유에도 불구하고 엄격히 말해서 시라기보다는 교훈을 담은 격언이고 주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조가 애송되는 까닭은 거기에 운문에서 오는 기쁨이 수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정서적 표현이 아니고 이념적 '논술'이기 때문에 산문의 영역에 속한다. 그리고 내용면에서 종교적 도덕적인 지식, 철학적인 지식이 주가 되는 개념의 전달일 뿐 감정적 체험은 아니다. 시인 중에서도 상상력보다는 개념적 사고 능력이 우세한 시인들의 작품에서 교훈조의 시를 많이 볼 수 있다. 영국 시인 중에는 신고전주의 시대의 풍자시인들, 드라이든, 포우프 등의 시를 교훈시 혹은 '논설시'라고 부를 수 있고, 우리나라에서는 이광수, 설창수 등의 시를 교훈시라고 할 수 있다. 이광수는 본인이 자신을 시인이라고 자신있게 생각할 수 없을 정도였으니까 독자들은 그를 시인으로 대접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여러 편의 시를 썼고, 그 대부분이 교훈조의 시들이다. 그는 소설에서와 마찬가지로 시에서도 인간의 존엄함, 사랑의 고귀함, 우주질서의 오묘함과 같은 서구 계몽시대의 도덕철학을 문학의 형식에 담은 계몽사상가이고 도덕적 설교사이다. 다음에 인용하는 '빛'이란 시는 이광수의 교훈족 시세계를 잘 보여준다. 만물은 빛으로 이어서 하나, 중생은 마음으로 붙엇 하나, 마음 없는 중생 있던가? 빛 없는 만물 있던가? 흙에서도 물에서도 빛은 난다. 만물이 탈 때에도 온몸이 모두 빛. 모든 별과 나, 빛으로 얽히어 한 몸이 아니냐? 소와 나, 개와 나, 마음으로 붙어서 한 몸이로구나. 마음이 엉키어서 몸, 몸이 타며는 마음의 빛. 항성들의 빛도 걸리는 데가 있고 적외선 엑스선도 막히는 데가 있건마는 원 없는 마음이 빛은 시방(十方)을 모두 비쳐라. 이광수는 위 시에서 빛과 마음으로 만유가 한 데 묶여 있다는 계몽시대 철학자들이 주장하는 '존재의 사슬'과 유사한 관념론적 주장을 내세운다. 그 사상은 불교의 '보편불성' 혹은 범신론이 만유신성론에 해당한다. 이와 아주 흡사한 사상이 미국 시인 에머슨의 [개체와 전체 Each and All]에서도 볼 수 있다. 에머슨은 19세기 미국의 초절주의 사상을 대표하는 철인이고 시인이다. 그 역시 이광수와 마찬가지로 교훈조의 시를 써서 철학적 주장으로 독자를 효과적으로 설득시킨다. 이 장시의 마지막 6행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머리 위에 빛과 신성으로 가득한 영원의 하늘이 솟아 있다. 다시 나는 말하고, 다시 나는 들었다, 저 굽이치는 강물 소리와 아침 새소리를…… 나의 다섯 감각에 美가 스며들어 나는 이 완전한 총체에 몸을 내맡긴다. 이 시에서 에머슨은 우주질서의 완전함과, 그 안에 사는 인간의 환희와 기쁨을 노래했다. 다음 시는 설창수의 시 [민족의 바다]라는 시이다. 이 시인 역식 이광수나 에머슨과 같이 일체만상이 화합하고 민족은 같은 유대에 묶여 있음을 주장한다. 민족동포사상의 찬가인 셈이다. 一切는 아름다워라 - 찢어봐도 兄弟 씹은들 姉妹 千萬 千萬 또 千萬…… 은실 금실 谿流는 흘러간다 巖壁에 부딪쳐 가루나도 다시 모여 靑潭이 되다. 千年 千年 만만년 - 흘거감만 凜凜하여라. 咆哮도 憤激도 旋回도 비약도 沫散도 저주까지도 오로지 함께 절대의 交響. 千里 千里 三千里 - 금수 찬란 山河 森羅하고나 녹슬어도 이끼 묻어도 헐어져 있어도 조각져 있어도 거룩할손 나의 것. 전체 6연 중 4연의 인용이다. 이렇게 몇 세대 이전의 시에서 예를 드는 것이 부적적한 것을 알고 있지만 이번에는 또 한 편 전형적인 교훈조의 시를 인용해보겠다. …… 그러나 그대의 영원한 휴식처에 그대 혼자만이 가는 것이 아니고, 이보다 더 장엄한 잠자리를 바랄 수도 없느니라. 그대는 눕게 된다, 원초시대의 족장들과 함께 - 그리고 제왕들, 지상의 강자들과 함께 - 현인들, 선인들, 미인들, 그리고 과거시대의 백발의 예언자들과 함께, 모두가 하나의 거대한 무덤 속에. …… 그러니 살다가, 저 신비의 나라, 제각기 죽음의 침묵의 궁전에서 자기 방을 차지하고 있는 그 무수한 대열에 참가하라는 소환장이 오거든, 그대는, 채찍에 맞아 토굴로 들어가는 채석장의 노예처럼 가지 말고, 태연자약하게 부동의 신념으로 그대의 무덤으로 가라, 잠옷을 몸게 감고 상쾌한 꿈나라로 향하여 자리에 눕는 사람처럼. 이상은 미국시인 브라이언트 Bryant의 [死觀]이란 시에서의 인용이다. 이 시에서 시인은 인간은 결국 자연으로 돌아가 자연물로 환원하는 것이고, 죽음은 인간의 운명이고 영원한 자연의 섭리인즉 두려워할 것이 없다는 죽음에 대한 보편적 진리를 설교한다. 이상 인용한 몇 편의 시에서 본 바와 같이 이 시들은 한결같이 시의 형식을 빌어서 어떤 신념이나 주의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시인의 신념이나 사상이 시가 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형상화되어야 한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나의 주장이다. 즉 엘리엇이 말했듯이 사상이 장미 향기처럼 감각적으로 파악되어야 한다. 그것이 무슨 뜻인가를 설명하기 이해서 대표적인 현대시 두 편에서 그 실례를 들어본다. 다음에 인용하는 딜런 토마스의 [런던의 한 아이의 불타 죽음을 슬퍼하지 않으련다]라는 시는 태초 이래 인간은 죽어서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니 죽음을 슬퍼할 필요가 없다는 死觀을 피력한 시로서 앞서 인용한 브라이언트의 시의 주제와 동일하다. 인류가 창조되고 새, 짐승, 꽃이 창생되고 만물의 겸허한 암흑이 정적으로써 마지막 광선의 트임을 알리고 고요의 시간이 질서 있게 혼돈의 바다에서 생기고 나는 둥근 물염주의 시온성당에 그리고 보리이삭의 유태인 교회당에 다시 돌아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니 음성의 그늘에 기도시키거나 베옷의 아주 작은 골짜기에 나의 소금 종자를 뿌려서 불타 죽은 그 애의 장엄한 죽음을 슬퍼하지 않으리라. 나는 더 이상 순진과 젊음의 죽음을 슬퍼하는 哀歌로써 엄숙한 진실을 안고 간 그 애의 인류를 살해하거나 생명의 성지를 모독하지 않으리라. 최초의 죽음과 함께 런던의 아이는 누워 있다. 오랜 동무들과 세월을 초월한 낱알과 그 어머니의 검은 혈액에 싸여서 물결치는 템즈강의 슬퍼하지 않은 강변에 아무도 모르게 누워 있다. 최초의 죽음 후엔 죽음이란 없다. 이 시에는 '죽음을 슬퍼하지 않는다' 또는 '죽음 후엔 죽음은 없다'와 같은 역설적인 표현, 그리고 '보리이삭' 또는 '음성의 그늘' 같은 기발한 메타퍼 때문에 읽기가 그리 쉽지 않지만 주제는 비교적 단순하다. 이 시는 2차대전 때 런던에 가해진 독일의 폭격으로 한 아이가 죽은 것을 보고서 시인 자신의 사관을 피력한 시이다. 시인은 말하기를 지상에 빛이 생기고 만물이 창조되고 역사가 시작된 후 우리 인간은 죽어서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 자연과 합쳐지는 것이니 눈물을 흘려 죽은 아이를 슬퍼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불타서 죽은 런던의 그 아이는 태초 이래 죽어간 무수한 친구들과 더불어 대자연의 품안에 누워 있다. 실로 죽음이란 모든 생명의 근원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에 불과한 것이니 필요없이 슬퍼할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최초의 죽음' 후에 운명적으로 인간에겐 죽음이 정해진 것이니까 새삼스러이 죽임이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 1연은 천지창조 시의 암흑과 고요의 혼돈 속에서 최후의(우리 쪽에 말하는 최초의) 빛이 터지고, '시간'의 역사가 시작되었음을 말한다. 2연 '둥근 물염주의 시온성당'이란 말은 자연물의 이미지이고, 염주는 시온성당과 함께 종교적 이미지이기 때문에 인간은 죽어서 자연으로 돌아가고 신에게로 돌아간다는 뜻이고, '보리이삭의 유태인 교회당'도 똑같이 자연물('보리이삭')과 기도의 장소를 결합시킨 메타퍼이다. '음성의 그늘'에서 그늘은 슬픔을 의미하기 때문에 '슬픈 음성'이란 뜻이다. '베옷의 골짜기'는 슬픈 가슴에 대한 비유이다. 베옷은 성경에서 죽은 사람을 애도할 때 허리 아래를 가리는 베로 된 천을 말한다. '소금종자'는 눈물을 말한다. 3연에서 '인류를 살해한다'는 말은 런던의 폭격으로 죽은 아이는 인류의 대포라는 뜻과, 사람이 죽은 것은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인즉, 그 죽음을 슬퍼하는 것은 곧 살해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는 뜻이다. '생명의 성지'는 카톨릭에서 십자가 순례하는 14개의 예배 장소와 관련되는 말이다. 4연 '세월을 초월하는 낱알과 그 어머니의 검은 혈액에 싸여서'라는 말은 이전에 죽은 모든 인간들이 인류 근원의 모체 혈관 속으로 환원되었음을 말한다. 이상 해설에서 본 바와 같이 시인은 이 시에서 죽음에 대한 사상이나 이념을 주장한즌 것이 아니라 그 사상을 표상하는 수많은 이미지를 제시하여 독자의 감각적 체험을 유도할 뿐이다. 다음에 인용하는 시도 같은 현대시인 엘리엇의 유명한 시 [번트 노튼]중의 한 섹션이다. 이 섹션에서 엘리엇은 이광수나 에머슨과 마찬가지로 이 혼돈의 세계 너머의 조화와 질서의 세계를 구체적인 이미지로 보여준다. 진흙 속에서 마늘과 청옥은 파묻힌 車軸에 엉겨붙는다. 핏속에서 떨리는 철선은 만성의 성처 밑에서 노래하며 오래 잊혀진 전쟁들을 달랜다. 동맥에 전해진 舞蹈와 淋巴의 순환이 성좌의 운행에 표상되고 위로 올라가 나무 아래에서 전성한다. 무늬진 나뭇잎에 내리는 빛 속에서 우리는 움직이는 나무 위에서 움직이며 아래로 질퍽거리는 바닥에서 쫓는 사냥개와 쫓기는 멧돼지가 전과 다름없이 그들의 패턴을 쫓는 것을 듣는다 그러나 성좌 속에서는 조화되어 있고. 위 시에서 시인은 이 세상의 미천한 것과 희귀한 것의 상징으로 마늘과 청옥을 제시하여 그것이 진흙 속에서 파묻힌 차축에 엉켜붙는다고 말한다. 진흙은 혼돈과 무질서의 이 세계를 의미하는 것인즉 마늘과 같은 범속한 것과 진귀한 보석이 무질서의 혼돈 속에 공존하지만 보이지 않는 우주의 원리(차축)에 의하여 통솔되고 대질서를 이루어 차바퀴가 돌듯이 돌아간다. '핏속에 떨리는 철선은 / 만성의 상처 밑에서 노래한다'는 말은 움직이는 세계가 전파를 통하여 메시지가 전달되듯이 우리의 혈관 속에서 그 고동이 느껴지며, 본능적인 생명의 기쁨으로 말미암아 비록 우리가 원죄(만성의 상처)를 짊어지고 있을망정 창조 당시의 하늘에서의 천사들의 싸움을 잊고 살아감을 말한다. 혈액의 순환을 통한 생명의 기쁨을 '동맥에 전해진 무도'라 하였고, 동맥이나 임파선의 순환과 같은 소우주적인 조화상은 대우주적인 성좌의 운행의 조화상과 상응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인체 내의 동맥과 임파선의 순환을 나무의 수액에 비유하여 그것이 가지로 올아와 잎과 꽃이 피듯이 인간적 질서가 나무를 통하여 우주적 질서로 바뀐다고 하였다. 이 나무는 차축을 의미하며 우주의 중심 로고소 즉, 신의 세계이다. 시인은 이제 세속을 초월하여 '움직이는 나무'의 상공에서 천국의 빛을 받고 있는 듯이 햇볕받아 무늬지는 나뭇잎을 아래로 바라보며 움직이고 있는 듯한 환상에 젖는다. 그렇게 초월한 입장에서 보니 질퍽거리는 하계에서 '쫓는 사냥개와 쫓기는 멧돼지'의 생존투쟁의 소리가 들린다. 그러나 이 투쟁과 갈등의 현상이 천국에선 조화의 양상으로 바뀐다. 이상 딜런 토마스와 엘리엇은 다같이 시에서 생각을 이밎로 통해서 전개키시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두 사람 사이에 굳이 차이점을 찾는다면 토마스의 경우는 그 이미지가 주로 생과 죽음, 종교의 사상에 관련되어 있으면서도 끝내 초월이 없이 생명세계에 집중되어 있는데 반하여 엘리엇에게서는 그것이 인체나 자연물에 관련지어져 있는 것 같으면서도 '무도' '순환' '조화'와 같은 중심적 우주 질서의 사상에 이끌리는 듯한 상향적 자세를 드러낸다.
1427    잊혀진 시인 찾아서 - 설창수 시인 댓글:  조회:4752  추천:0  2016-05-14
설창수(薛昌洙:1916~1998)선생 흉상(胸像) 위 사진은 진주시민의 기억속에서 사라져 가고 있는 독립운동가이자 예술가,문인으로서 진주(晋州市)를 빛낸 설창수(薛昌洙) 선생의 남강변 고수부지에 세워진 흉상(胸像)이다.그의 아호는 파성(巴城)이였으며 1916년(음력 10월8일)경남 창원군 창원면 북동리에서 태어나 진주로 이주하여 진주를 위해 많은 업적을 이룩하고 진주시 칠암동 자택에서 83세를 일기로 별세하여 대전(大田) 국립묘지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되었다.그는 창원 공립보통학교,진주농림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동경대학 예술과에서 창작을 전공했으며,1942년 항일운동으로 2년간 옥고를 치뤘고, 1946년 경남일보사 주필 16년.사장10년을 역임하고,1947년 영남문학회 창설 14년간 운영,영문(嶺文)18집 발간하였으며,1949년 제1회 영남 예술제(개천예술제) 청시,11회(1959년)까지 대회장을 맡았으며,1960년 초대참의원 의원,1961년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대표의장,1963-1987년 전국 순력(巡力),시(詩),서(書),화(畵)전 224회 개최,1977년 독립유공자 표창수상.이후~광복회 경상남도 지부장.중앙회 부회장.1981년 한국문학협회 창립이사장,1985-1996년 개천예술제 제사장,1988년 사단법인 개천예술제탑 건립위원회 창립.1991년 개천예술탑 건립(진주성내),시집(詩集)-개폐고(開閉槁),설창수 전집(시,수필,희곡),미주기행문,성좌있는 대륙 등을 발간하였고,눌원문화상,진주시 문화상,경상남도 문화상,사회교육 문화상 문학부 대상,향토문화대상,은관문화훈장 등을 수상하며 진주를 빛낸 위대한 선구자 이시다. 흉상의 좌측면에 새겨진 그의 시 남강(南江)가에서 진양성외(晋陽城外) 수동류(水東流)를 왜 남강(南江)으로 이름했음일까? 아무도 모른다. 언제 어드메서 처음되었는지 너 강줄기의 족보를 아무도 모른다. 멍던 선지피로 흘렀던 짓밟힌 청강(靑江)의 젖가슴에 말없이 남아 있는 돌 하나- 그 묵어(默語)를 아무도 모른다. 둥근 달과 뭇 별을 눈망울에 담고도 차라리 여울마다 목메이는 서러움을 아무도 모른다. 천지(天地) 보군(報君) 삼장사(三壯士)로 읊조렸던 왕이란 것 따로 없는 만백성의 나라- 역사(歷史)란 얼굴을 비쳐주는 푸른 거울임을 아무도 모른다. 흉상 후면에 새글 서기 2001년 10월 3일 문화예술인들의 뜻을 담아 재단법인 진주문화예술재단에서 세우다. 글씨 정도준 조각 박찬걸 동상 후면의 세움 글   설창수(薛昌洙)선생 흉상(胸像)#1 좌측에서 바라본 흉상(胸像)#2      흉상 옆의 정자 전경[2011.7.14(목)Sony撮影] ☞.진주라하면 임진왜란 3대첩중의 한곳인 진주성을 먼저 떠올리게 되며,그 때 전공을 세운 춤무공 김시민 장군은 충남 병천 사람이였고,적장을 껴안고 남강물에 투신한 의기 논개는 전남 장수 사람이였으며,진주 전투에서 용맹을 떨친 충장공 김덕령 장군은 전남 사람이고,의병장 곽재우 홍의장군은 경남 의령 출신이며,진주출신으로 진주를 빛낸 사람으로는, 청담,경봉 큰스님,가수 남인수가 있으나 설창수 선생과 같이 타지에서 이주해와 위대한 업적을 쌓고 진주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은 특별히 찾을 수가 없다. 흉상을 세울 당시만 해도 고인의 위대한 업적에 뜻있는 많은 시민들이 동참하고 고인을 기렸지만 이제는 남감변 고수부지 숲속에서 잊혀져 가고 있다. 이시대에 진정 진주(晋州)에 혼을 불어 넣어줄 위대한 인물은 없는가? ============================ 시인. 호는 파성(巴城). 경상남도 창원(昌原) 출생. 1942년 일본 니혼대학[日本大學] 창작과를 2년 수료하고 46년 《경남일보(慶南日報)》 주필·사장을 역임하였으며, 47년 동인지 《등불》에 시 <창명(滄溟)> 등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데뷔하였다. 57년 국제펜클럽 한국대표를 지내고, 60년 초대 참의원에 당선된 데 이어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대표의장에 선출되었으며, 81년 문학협회 이사장에 취임하였다. 《영남문학회》와 《시와 시론(詩論)》의 동인으로 활동하였고, 초기의 동인지 《등불》을 《영문(嶺文)》으로 고쳐 1961년까지 18집을 발간했으며 63년부터 전국 각지에서 200여 회의 시화전을 개최했다. 저서로는 개인시집 《개폐교(開閉橋)》과 《설창수문학전집(6권)》이 있으며, 주요작품에 《개폐교》 《파초(芭草) 제 2 장》 《적막》 《의랑논개(義娘論介)의 비문》 등이 있다. ===================================== 汎生의 章 (범생)    (장)                    薛昌洙(설창수)      꼭 작년 오늘 그의 俗魂(속혼)은 이승을 떠났다.- 智異山    줄기  1500 해발의 細石高原(세석고원)에 아물아물 가 없이    철쭉들의 한창 무렵, 열두번째로 主峰(주봉)「天王」을 넘은    그로선 분명 익혀 아는 毒草(독초) 누루치의 뿌릴 汁(즙)으로 먹고    서로 인연 따라 한동안 다녀간 前生 菩薩(보살)의 化身(화신)이란    傳說도 있으나 하필이면 武陵桃源(무릉도원) 같더란 山上의 꽃 그    늘에서 남몰래 숨진 召命(소명)과 같이 自意의 까닭을 모른다。   맹아, 이승에서 스므햇 동안을 나의 어질디 어진 아들    이었던 네 이놈 맹아, 저승이냐 너 먼저 갔다 한들    이승의 천륜을 잊고 말 너가 아니리라。 아비는 오늘도 창천을 감감히 우러러 근심하고, 이 北    邙(북망)의 골짝을 살피며 근심하노니 冥道(명도)엔 시장도 추위    도 눈바람이야 따로 없으련만 혹시 네가 의지할 곳    없는  客魂(객혼)의 혼이 되어 표표한 가랑닢처럼 헤매이    고 있지나 않느냐。 구태여 벗을 찾아 무리지어 놀기    를 즐겨하던 너가 아니었건만 冥天(명천) 冥府(명부)의 가없는    薄命(박명)의 천지에서 無主 孤魂(고혼)이 되어 서럽진 않느냐。    恒河(항하)의 모래알 하나 같은 이승의 나도 살고 죽음이    란 萬有의 實存(실제)에 비길진댄 이미 有無 起滅(기멸)의 소식    조차 못될지 모르지만 恢恢(회회)하고도 아예 새지 않는    天網(천망)이더든 어찌 어진 나의 아들 영혼을 無依    孤魂(무의고혼)으로 헤매이게야 하실소냐。 마땅히 선한 뜻과 영혼은 大宇宙의 時空 生滅 (생멸)위에 자    리한 드높고 푸른 하늘의 영원 및 大榮光과 綠由(연유)되    고 또 調和(조화)됨이려니 목숨 나게 하신 恩惠(은혜) 또한 목숨    거두어 드리는 恩惠와 더불어 둘이 아닌 한 줄일 것    임을 아비는 믿어 의심치 않노라。 나의 이승에서 어진 아들, 저승에서 또한 오래도록 나    의 아들됨을 싫다 하지 않으리니 욕되고 병든 나라,    가난한 아비의 아들로 태어났었다가 웃으며 작별하    고 너발로 걸어서 黃泉(황천)의 門으로 들어 간 나의 착하    고도 믿음직하던 아들 맹아, 이놈아。 우리 이제 死生을 아득히 넘어 三生을 함께 살아 不滅 (불멸)     코자 하노니 오늘은 江 하나 가로놓여 있을 뿐인 이    삼생의 浩浩(호호) 無涯(무애)한 벌판 위에 汎生(범생) 共存을 믿고 누    려서 또 헤어짐이 영영 없게 하리로다。   南無十方諸佛, 南無大悲阿彌陀佛, 南無一切經,南無大方廣佛華嚴經, 합장。 (나무십방제불, 나무대비아미타불 나무 일체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芭草(파초) ⑦ 揚揚衝天舞 孤高向天掌 (양양충천무 고고상천장)                  薛昌洙(설창수)     계절이 나에게 無綠(무록)한 지 오래언만 너는 내 窓 앞에서 나의 여름을 대표한다。   이젠 흘러 가 버린 내 젊음의 江언덕에서 나에게도 있었던 그 한때를 立證(입증)하여 주고。   너를 客觀으로 比喩(비유)하기를 삼갈진대 넌 곧 나의 召喚者(소환자), 내 主觀의 同化者。   내가 무엇을 잃어버렸다고 새삼 말하는가 내가 本是(본시) 가진 것 없었음을 너는 理解(이해)하고 있다。   너를 옷 입고 나의 靈魂(영혼)은 다시 푸르다。 계절을 뚫고 선 너의 對話者는 오직 하늘 뿐。   춤춰라 춤춰라 춤춰라 律動(율동) 없는 너의 춤을 그것만이 너가 갖는 唯一한 言語임을。   나에겐 차라리 너를  통한 夜禱(야도)만이 있나니 너는 나의 寺院(사원), 나의 敎會(교회)일까。   너의 後光인 별 아래 때로는 苦行僧인 듯 壯嚴(장엄)한 立像은 나의 祭壇(제단)일 수 있다。   十一月, 너를 지키려는 내 斷刀(단도) 아래 샘솟는 맑은 물은 또 겨울이 외로울 내 영혼에의 눈물일까。                     설창수(薛昌洙.1916.1.16∼1998.6.29)      시인. 경상남도(慶尙南道) 창원(昌原) 출생. 호 파성(巴城). 1937년 진주농업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으로 유학하여 1939년 리쓰메이칸대학 예과를 다니다 중퇴하고, 1942년 니혼대학 법문학부 예술과를 중퇴하였다. 1940년 일본 유학 중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항일 민족의식을 고취하다 일제에 사상범으로 체포되어 2년의 옥고를 치렀다.    1941년 12월 일문(日文) 시집 을 출간하려다 산변의 유고(有故)로 유산(流産)되었다. 8ㆍ15광복 후 1946년 [경남일보]를 창간하여 주필 겸 사장을 맡았으며, 좌익 문학단체에 대응하는 조선청년문학가협회에 참여하였다. 1947년 동인지 [등불]에 등 4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등단하였다.    1949년 영남예술제(1959년 개천예술제로 변경)를 창시하였으며, 문교부 예술과 과장을 지냈다. 1960년 4ㆍ19혁명 직후 총선에서 6년 임기의 참의원에 당선되었으나 5ㆍ16군사정변으로 정계를 떠났다. 이후 군사정권과 타협하지 않고 독재타도에 앞장서기도 하였다. 1951년 이후 전국을 돌며 223회의 시화전을 열었으며, 1972년 일본에서도 2차례 열었다.    1957년과 1965년, 1975년, 1988년 네 차례 국제펜대회에 한국대표로 참가하였다. 1981년 한국문학협회 이사장, 1986-1994년 광복회 부회장을 지냈으며, 1994년 인간 상록수로 추대되었다.    짙은 역사의식 속에서 탈(脫) 주지주의적 정신주의를 추구하는 작품 활동을 하였으며, 시집, 수필집, 산문집 외에 100여 편의 희곡도 남겼다. 1984년 시ㆍ수필ㆍ희곡 등을 모아 (6권)이 간행되었다. 1990년 그의 시 정신을 기리는 파성문학상이 제정되어 허유가 첫 수상자가 되었다.     1959년 제1회 눌원문화상을 비롯하여 진주시 문화상, 대통령 표창 독립유공상(1977), 건국훈장 애족상(1990), 은관 문화훈장(1990), 예총 예술대상, 향토문화대상 등을 받았다.    장지 : 대전 국립 현충원 애국지사 묘역. 【경향】그의 시는 짙은 역사의식 속에서 이를 정시(正視)하려는 경향으로 탈주지적 정신주의를 추구하고 있으면서도 역사와 현실에 대한 강한 비판과 풍자를 드러내고 있으며, 초기의 서정성은 점차 풍자시로 변모하였다. 【시】(1947) (1954) (1955) (1956) (1956) (1957) (1989)   【시집】(3인시집.1950) (1976) 【수필집】(1960) 【산문집】 【전집】(6권.1984)                 < 시집 이미지 >              설창수외 / 삼인집        1952년 / 영남문학회 / 95 쪽 ======================================= 개폐교(開閉橋)   설창수(파성, 1916~1998 경남 창원)   짓밟음, 바람비, 수레바퀴, 침뱉음을 오랜 동안 말없이 참아 온 내다. 내 등덜미의 살결은 메마르고 뼈, 힘줄, 주름살, 흉터만이 남아 있다. 디디어 보라, 내 껍질은 따글거린다.   이제 난 일어선다. 성낸 쟈이안트처럼 감연히 일어선다. 예각(銳角)화된 내 등덜미 위에 아무도 기어오르지 못한다.   내 두 줄기 동정맥(動靜脈)은 불꾼 번쩍이고, 내 머리카락은 끊어진 양 곧게 뻗어 난 이 때 발목으로 자유(自由)를 보장한다. 난 푸른 항만(港灣)의 숨통을 해방한다. 난 양양(兩洋)의 등경을 연결한다.   내 성낸 궐기(蹶起)는 모든 세속적 타협을 모른다. 내 아슬아슬히 목 없는 견평선(肩平線)― 접속철판(接續鐵板)의 냉엄한 감각 위에 한 마리의 비둘기도 날아 앉지 못한다. ―미모(美貌)도 공갈(恐喝)도 특권(特權)도 아유(阿諛)도.   난 무자비한 괴한(怪漢)이 아니다. 외로운 어머니의 복약(服藥) 시간을, 첫 청춘의 밀회(密會) 시간을 막으려곤 않는다. 난 규율과 섭리(攝理) 앞에 순종할 뿐, 난 배신(背信)을 모른다.   난 위대한 원시인(原始人)이다. 난 위대한 문명인(文明人)이다. 서건 눕건 난 위대한 노예(奴隸)다.   芭草(파초) 揚揚衝天舞 孤高向天掌(양양충천무 고고상천장) 薛昌洙(설창수)   계절이 나에게 無綠(무록)한 지 오래언만 너는 내 窓 앞에서 나의 여름을 대표한다。   이젠 흘러 가 버린 내 젊음의 江언덕에서 나에게도 있었던 그 한때를 立證(입증)하여 주고。   너를 客觀으로 比喩(비유)하기를 삼갈진대 넌 곧 나의 召喚者(소환자), 내 主觀의 同化者。   내가 무엇을 잃어버렸다고 새삼 말하는가 내가 本是(본시) 가진 것 없었음을 너는 理解(이해)하고 있다。   너를 옷 입고 나의 靈魂(영혼)은 다시 푸르다。 계절을 뚫고 선 너의 對話者는 오직 하늘 뿐。   춤춰라 춤춰라 춤춰라 律動(율동) 없는 너의 춤을 그것만이 너가 갖는 唯一한 言語임을。   나에겐 차라리 너를 통한 夜禱(야도)만이 있나니 너는 나의 寺院(사원), 나의 敎會(교회)일까。   너의 後光인 별 아래 때로는 苦行僧인 듯 壯嚴(장엄)한 立像은 나의 祭壇(제단)일 수 있다。   十一月, 너를 지키려는 내 斷刀(단도) 아래 샘솟는 맑은 물은 또 겨울이 외로울 내 영혼에의 눈물일까。   ==================================             민족의 바다                      / 巴城 설창수 일체는 아름다워라 찢어 봤자 형제, 씹은들 자매 천만 천만 사천만 은실 금실 계류는 흘러 간다 암벽에 부디쳐 가루나도 다시 모여 청담이 되다 천년 천년 사천년  흘러 감만 늠엄(凜嚴)하여라  포효도 분격도 선회도  비약도 말산(沫散)도   주사(呪駟) 까지도  오로지 한개 절대의 교향  천리 천리 삼천리  금수 찬란, 산하 삼라하고나  녹슬어도 이끼묻어도  헐어 있어도 조각져 있어도  거룩할손 나의 것  이 장대한 동방의   만다나(曼茶羅)  광망은 뻐쳐 간다,   일시(一矢) 또 일시…  깨어지라 혼돈의   야장(夜帳)이여  아아 살아 있도다  보아라 썩지 아니하였었도다   소리소리 줄기줄기  모두 바다를 향하도다  파성 설창수(巴城 薛昌洙, 1916~1998) 선생은 한 마디로 요약해 경남 진주의 문화 대들보였다. 창원에서 출생해 진주농고 입학을 계기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줄곧 진주에서 정신적 거목으로 버텨왔다. 애국지사, 언론인, 정치가이기도 했던 시인 파성은 특히 서예에도 조예가 깊어 파성만의 독창적 필흔을 남겼다. 여기 소개된 옥고 ‘민족의 바다’도 선생의 지대한 애국심의 발로로 민족혼을 일깨우는 노래인 것이다.  
1426    잊혀진 시인 찾아서 - 김종한 시인 댓글:  조회:5386  추천:0  2016-05-14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문인들. 왼쪽부터 박두진 시인, 김학철 소설가, 김종한 시인 김종한 - 시인·평론가. 함경북도 경성군(鏡城郡) 명천(明川) 출생. 호는 을파소(乙巴素)·월전무(月田茂). 니혼[日本]대학 예술과 졸업. 193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낡은 우물이 있는 풍경》이 당선되고, 39년 《문장》에 《귀로》 《고원(故園)의 시》 등이 추천되면서 문단활동을 시작하였다. 주요 작품으로는 《해협의 달(1938)》 《연봉재실(1940)》 《살구꽃처럼(1940)》 등이 있다. 그의 시는 솔직·명쾌하며, 속도감이나 시각적 공간성을 추구하는 특성을 보이고 있다. 그는 또 주지적 경향을 비난하면서 이른바 《최고의 순간》을 표하는 단시(短詩)를 주장하였는데, 이는 한국 현대시사에서 등장한 최초의 선시이론(禪詩理論)으로 꼽힌다. ============================================= 낡은 우물이 있는 풍경 김종한 능수버들이 지키고 섰는 낡은 우물가 우물 속에는 푸른 하늘 조각이 떨어져 있는 윤사월 - 아주머님 지금 울고 있는 저 뻐꾸기는 작년에 울던 그놈일까요? 조용하신 당신은 박꽃처럼 웃으시면서 두레박을 넘쳐흐르는 푸른 하늘만 길어 올리시네. 두레박을 넘쳐흐르는 푸른 전설만 길어 올리시네. 언덕을 넘어 황소의 울음소리도 흘러오는데 - 물동이에서도 아주머님 푸른 하늘이 넘쳐흐르는구려. (‘조선일보’ 1937)   능수버들이 지키고 서있는 ‘낡은 우물이 있는 풍경’은 일정한 곳에 정착하여 오랜 세월을 두고 살아온 한 집안의 깊은 연륜과 내력이 고아하고 그윽한 분위를 자아냅니다. 우리의 기억 속에 위엄 있게 박혀 있는, 마을의 한가운데에 있던 오래된 종가 집 같다고 할까요. 우물 속엔 푸른 하늘조각이 떠있고, 긴 한 낯을 뻐꾸기가 웁니다. ‘지금 울고 있는 저 뻐꾸기는 작년에 울던 그놈일까요?’ 그놈이 아니면 어떻습니까. 울음소리는 늘 한결같은 걸요. 요즘처럼 재빨리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때로는 매우 느리게 적응해 가는 것도 중요할 수 있겠다 생각합니다. 잘 변하지 않는 것들의 지고한 속내로, 느리게 흐르는 시간이 주는 깊은 울림을, 조용하신 당신은 박꽃처럼 웃으십니다. 아, 어떻게 웃으면 박꽃처럼 웃을까요. 오래오래 마음속에 고여 가슴을 환하게 하는 웃음, 언덕 너머 황소가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울게 하는 웃음, 물동이에 푸른 하늘이 넘쳐흐르게 하는 웃음, 뻐꾸기가 작년마냥 어김없이 찾아와 똑같은 소리로 울게 하는 웃음. 도저히 필설로 그려낼 수 없는 신비한 한국 여인만이 지닌 웃음입니다. 아마도 종가의 넉넉한 맏며느리일 것으로 추측되는 아주머니는 하염없이 물을 길어 올리지요. ‘넘쳐흐르는 푸른 하늘’을, ‘넘쳐흐르는 푸른 전설’을 연신 길어 올립니다. 지금 아주머니가 길어 올리는 저것들은 선조들이 남기고 가신 낡은 풍경의 진정한 아름다움들 아닐까요. 시간과 장소는 삶을 떠받치는 힘이지요. 오랜 세월을 견디고 살아남은 것들은 시간의 손때로 반짝입니다. 그 반짝임 속에 다가오는 본래부터 우리 것이었다는 긍지와 자부심 같은 것, 그런 것들을 우리는 오래된 미덕이며 전통이라 하지 않던가요. 우리가 이룩할 미래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오랜 세월을 견뎌온 의미 있는 과거는 마땅히 존중 되어야 합니다. 신자본주의의 길목에서 그런 동아시아적 가치야말로 세상을 지탱해나갈 견고한 힘입니다. 김종한 시인은 1916년 함경북도의 변방인 경성에서 태어나 서른을 넘기지 못하고 타계했습니다. 그의 호를 을파소(乙巴素)라 한 것을 보면 꽤나 민족에 대한 긍지를 지녔던 것 같고요. 이 시는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입니다. 그 후 주로 정지용 선생이 주관하던 ‘문장’지를 중심으로 활동했고요. 짧은 한 생애를 통하여 그가 길어 올리려했던 푸른 하늘은 아마 한국의 전통 쪽빛 하늘이었을 테지요. 지금도 우리의 하늘에는 시인이 길어 오리던 그 빛이 흐르고 있는지, 아니면 지나친 서구화의 물결 속에 우리 본래의 빛이 바래지지는 않았는지, 한 번쯤 하늘을 우러러볼 일입니다.         작가 소개 김종한(金鍾漢 1916-1944) 시인. 1916년 함경북도 경성군 명천 출생. 니혼(日本) 대학 예술과 졸업. 1936년 에 시 “망향곡” 발표. 1937년 신춘문예에 시 “낡은 우물이 있는 풍경” 당선. 1939년 문장에 “귀로”, “고원의 시”, “그늘”, “할아버지”, “계도” 등이 추천되었음. 시집에 (1943), < 설백집(雪白集)>(1943)이 있음   "낡은 우물이 있는 풍경"   능수버들이 지키고 섰는 낡은 우물가 우물 속에는 푸른 하늘 조각이 떨어져 있는 윤사월(閏四月)   - 아주머님 지금 울고 있는 저 뻐꾸기는 작년에 울던 그 놈일까요? 조용하신 당신은 박꽃처럼 웃으시면서   두레박을 넘쳐 흐르는 푸른 하늘만 길어 올리시네. 두레박을 넘쳐 흐르는 푸른 전설만 길어 올리시네.   언덕을 넘어 황소의 울음 소리도 흘러 오는데 - 물동이에서도 아주머님 푸른 하늘이 넘쳐 흐르는구료.     핵심 정리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율격 : 내재율 성격 : 시각적. 청각적. 공감각적 어조 : 전원의 평화롭고 그윽한 분위기를 느끼게 해 주는 서정적 어조 표현 : 오래된 우물이 있는 고가(古家)의 그윽한 정취와 아늑한 분위기가 우리의 고유한 언어로 묘사되어 있다. 각 연이 2행으로 구성되어 단아하고 절제된 느낌을 자아낸다. 제3연의 통사 구조의 반복을 통해 물긷는 동작이 느릿하면서도 규칙적인 리듬감을 자아낸다. 구성 :     1연  윤사월의 낡은 우물가의 풍경     2연  한가로운 뻐구기 소리와 박꽃처럼 웃는 아주머니의 모습     3연  푸른 하늘과 전설을 길어올리시는 아주머님     4연  물동이에 넘쳐흐르는 아주머님의 푸른 하늘 제재 : 낡은 우물이 있는 전형적인 시골 풍경 주제 : 평화와 그윽함이 넘치는 시골 고가(古家)의 풍경.  이상화된 농촌의 모습 출전 : (1937)   이해와 감상 같은 사물을 대하면 서도 사람들이 읽어 내는 의미나 분위기는 서로 다를 수 있다. 가령 한가로운 농촌의 모습에서 어떤 사람은 억센 노동 뒤의 휴식을 찾아내고, 어떤 사람은 한없는 단조로움과 권태를 읽을지 모른다. 이 작품은 ‘능수버들이 지키고 섰는 낡은 우물가’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능수버들과 낡은 우물이라는 사물들은 매우 온화하고도 안정된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때는 봄도 거의 지나가는 윤사월, 우물 속에는 푸른 하늘이 한 조각 비쳐 있다. 여기서 물을 긷는 아주머니에게 작중 화자는 묻는다. 지금 우는 뻐꾸기가 작년에 울던 그 새일까라고. 여기서 뻐꾸기는 작품 세계의 고요함과 평화로움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어떤 상황의 고요함은 아무 소리가 없을 때보다 그 속에 어떤 평화로운 소리가 간간이 끼여들어 올 때 더 잘 나타나는 법이다. 아주머니는 그의 물음에 답하지 않고 ‘박꽃처럼’ 웃기만 한다.  그 웃음 속에는 이 한가로운 세계에서 있는 대로의 삶을 누릴 뿐, 굳이 그 이유를 묻지 않는 소박하고도 담담한 태도가 스며들어 있다. 그 말없는 웃음이 이 시가 그리는 세계의 평화로움을 더욱 부드러운 것이 되게 한다. 그러면서 아주머니는 물을 길어 올린다. 이 부분은 문장의 구조가 똑같은데, 그것은 물긷는 동작의 느릿하고도 규칙적인 움직임을 연상하게 한다. 그리고 두 행에 같이 들어 있는 ‘넘쳐 흐르는’이라는 구절에서는 어떤 풍성함이 느껴진다. 그렇게 해서 아주머니가 길어 올리는 물은 그저 물만이 아니라, 푸른 하늘이기도 하고 푸른 전설이기도 하다. 이 중에서 푸른 하늘을 길어 올린다는 구절은 두레박의 물에 푸른 하늘이 비쳐 있다는 사실의 시적 표현이겠지만, 푸른 전설을 길어 올린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 물음을 푸는 열쇠는 앞에서 본 ‘낡은 우물’이라는 데에 있다. 아마도 그 아주머니는 오래 전부터 이 곳에서 살았을 것이다. 어쩌면 여러 대에 걸쳐서 그 집안이 이 마을에서 살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할 때 이 우물은 그들이 대대로 물을 길어 올렸던, 그리하여 이 평화로운 세계의 삶을 영위했던 생활의 근원이다. 그 물은 그래서 푸른 전설처럼 그윽하고 예스러우며 아름답다.   이러한 시상의 흐름에 평화로운 분위기를 더하는 요소가 마지막 연에 나오는 ‘황소의 울음 소리’이다. 나지막하고 게으른 듯한 황소의 울음 소리, 그 속에서 물동이를 이고 일어서는 아주머니, 물동이에 출렁거리는 맑은 물과 거기에 비친 하늘……. 이러한 모습으로 그윽한 평화와 아름다움이 넘치는 세계의 모습이 완성된다. 다시 한번 천천히 읽으며 상상의 그림을 그려 보면 이 점을 더욱 깊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살구꽃처럼          /김종한     살구꽃처럼 살구꽃처럼 전광(電光) 뉴스대(臺)에 하늘거리는 전쟁은 살구꽃처럼 만발했소.   음악이 혈액(血液)처럼 흐르는 이 밤.   살구꽃처럼 살구꽃처럼 흩날리는 낙하산부대, 낙화ㄴ들 꽃이 아니랴 쓸어 무삼하리오.   음악이 혈액처럼 흐르는 이 밤.   청제비처럼 날아오는 총알에 맞받이로 정중선(正中線)을 얻어맞고 살구꽃처럼, 불을 토하며 살구꽃처럼 떨어져가는 융커기(機).   음악은 혈액처럼 흐르는데,   달무리같은 달무리같은 나의 청춘과 마지노선과의 관련, 말씀이죠? 제발 그것만은 묻지 말아주세요.   음악은 혈액처럼 흘러 흘러,   고향집에서 편지가 왔소. 전주 백지(白紙) 속에 하늘거리는 살구꽃은 살구꽃은 전쟁처럼 만발했소.   음악이 혈액처럼 흐르는 이 밤,   살구꽃처럼 차라리 웃으려오. 음악이 혈액처럼 흐르는 이 밤. 전쟁처럼 전쟁처럼 살구꽃이 만발했소.         김종한(金鐘漢,1914 함북 경성~ 1944)- 시인.   호는 을파소(乙巴素), 창씨명은 월전무(月田茂). 1940년부터 폐병으로 요절한 1944년까지 짧은 기간 활동했다. 친일 매체에서 활동하였고 집중적으로 창작활동에 참여한 기간이 태평양전쟁 시기와 겹치면서 총 22편의 친일 저작물을 발표했다. 니혼대학[日本大學] 예술과를 졸업했다. 니혼대학에 재학중이던 1936년 〈동아일보〉에 시 〈망향곡〉을 발표하였고, 1937년 〈조선일보〉신춘문예에 시 〈낡은 우물이 있는 풍경〉이, 1939년 〈문장〉지에 〈귀로 歸路〉·〈고원의 시〉·〈할아버지〉·〈그늘〉·〈계도 系圖〉 등이 추천되면서 시인으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했다. 정지용은 추천사에서 "솔직하고 명쾌하고 단순하며 비애를 기지로 포장하는 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김종한의 시는 속도감과 공간성을 활용한 기교적인 면모와 함께 표현주의적 경향을 보이고 있었다. 1939년 〈문장〉지에 〈나의 작시설계도(作詩設計圖)〉에서 '최고의 순간'을 표현하는 단시(短詩)를 주장했는데, 이는 한국현대시사에 등장한 최초의 선시(禪詩)이론으로 꼽힌다. 〈인문평론〉과 〈매일신보〉의 기자를 지냈고, 1942년 부일(附日)문학지인 〈국민문학〉의 편집을 담당하면서 친일문학자로 전향하였다. 〈시문학의 정도(正道)〉에서 시적인 상황을 그 자체로서 파악하여 시화해야 한다는 현대의 시정신을 다룬 순수시론을 발표하기도 했으며, 일본 도쿄에서 〈이인 二人〉이라는 시동인지를 발간하여 민요풍의 서정시를 발표하기도 했다. 그는 〈조선시단의 진로〉(1942)라는 평론에서 '국민시운동이 대동아공영권 운동'이라는 개념을 수립하고 동양에의 복귀, 흙에 투철한 정신, 민족융화의 사상 등을 주장했다. 시 〈원정 園丁〉(1942)에서 일본과 조선의 동조동근론(同祖同根論)을, 시 〈거종 巨鐘〉(1943)에서는 대동아공영권 문화에 대한 향수를, 〈용비어천가〉(1944)에서는 대동아건설에 참여하는 반도인의 풍모와 감격을 노래하는 내용 등을 썼다. 또한 전사한 군인의 유가족을 찾아가 만난 뒤 쓴 수필〈영예의 유가족을 찾아서〉(1943)를 쓰기도 했다. 이밖에 주요작품으로 〈해협의 달〉(1938)·〈하기휴가〉·〈길〉(1939)·〈연봉제설 連峰霽雪〉·〈살구꽃처럼〉(1940)·〈항공애가 航空哀歌〉(1941)·〈유년징병(幼年徵兵)의 시〉(1942) 등과, 일본어판 시집 〈수유근지가 垂乳根之歌〉(1943), 한시일역집〈설백집 雪白集〉(1943), 수필 〈남방에의 초대〉·〈바다, 효석, 하숙〉등이 있다. 이효석의 작품 〈황제〉를 일본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문학부문에 선정되었다. ================================= 고원의 시((故園-詩)>            - 김종한 밤은 마을을 삼켜버렸는데 개고리 울음소리는 밤을 삼켜버렸는데 하나 둘…… 등불은 개고리 울음소리 속에 달린다.   이윽고 주정뱅이 보름달이 빠져나와 은(銀)으로 칠한 풍경을 토하다.                    - [문장] 3호(1939년 4월호) -  해설】    시 와 함께 묶어 발표된 작품의 하나이다. 당시 추천자 정지용은 추천사에서 ‘명암(明暗)이 적확(的確)한 회화(繪畫)’라 하였는데, 이 시는 농촌의 여름밤 풍경을 그린 시로서는 매우 특이하다. 아주 새롭고 인상적인 회화시인 것이다. 【주제】 신선한 이미지로 포착한 저녁 무렵의 전원 풍경 【내용 풀이】 ▶제1연 : 밤의 어둠은 완전히 마을을 칠흑으로 덮어 버렸는데, 요란하게 우는 개구리 울음소리가 그 어둠을 또 삼켜 버렸는데, 하나, 둘……보이는 마을의 등불은 개구리 울음 속에 마치 달리는 것처럼 빛나고 있다.   ― 원색의 여름밤 농촌 풍경이다. ① 마을을 삼켜 버린 밤의 어둠 ② 밤이 되어 신나게 우는 개구리 울음이 삼켜 버린 밤(개구리 울음이 밤을 지배하고 있다) ③ 하나, 둘, 셋…몇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등불만이 빛나고 있다는 것이다.    ‘등불은 개구리 울음 속에 달린다’는 표현은 매우 현대적이고 또한 역동적(力動的)이다. 이것은 시각과 청각의 결합이니, 등불(시각)이 와글와글 우는 개구리 울음(청각)과 조화를 이루면서 반짝이는 모습을 ‘달린다’는 동사로 묶었다. 따라서 마을은 어둠 속에 완전히 감추어지고, 개구리 울음과 불빛만 남은 농촌 여름밤의 짙은 풍경이 선명하다. ▶제2연 : 이윽고 먹장구름이 덮인 하늘에서 마치 주정뱅이 같은 모습의 보름달이 구름에서 빠져나와 은가루를 뿌린 듯한 하얀 풍경을 비추어 낸다.   ― 2연의 주부(主部)가 되는 ‘주정뱅이 보름달’의 표현도 특이하다. 구름에 가리우고  이그러진 모습을 ‘주정뱅이’라 한 것이지만, 이것은 농촌의 이미지와 가까운 시어이며, 거기다 그것이 지상을 비추는 모습을 ‘은으로 칠한 풍경을 토한다’고 하였다. 하얗게 쏟아지는 달빛, 거기에 나타나는 하얀 풍경……그것을 달이 ‘토한다’고 한 것은 의인법의 표현인 동시에, 시각 이미지에 호소한 회화성(繪畫性)이다. 【감상】    제목의 ‘고원(故園)’은 ‘전에 살던 곳’의 뜻으로 고향을 뜻한다. 향수에 젖어 그리운 고향 풍경을 이와 같이 독특하게 회상, 선명하게 그려내었다. 그가 주장하는 어떤 사물이나 대상에 대한 이른바 ‘최고의 순간’을 잡은 표현주의의 시라 할 것이다. (조남익: )      이 시는 이미지 표현을 위주로 한 시다. 그런데 이미지의 표현 방법이 기발하고 우수하다. 이 시는 부분적으로 비유적 이미지가 사용되지만, 전체적으로는 묘사적 이미지가 주를 이루고 있다. 밤의 한 정경을 산뜻한 이미지로 제시해 보려는 것이 시인의 의도인데, 대단히 유니크한 이미지를 그림으로써 성공을 거두고 있다.    밤이 마을을, 밤을 또 개구리 울음 소리가 삼켰다는 시적 진술은 퍽 기발하다. 개구리 울음 소리만이 가득한 고향의 밤 정취를 물씬 풍기게 한다. 밤이 깊어지면서 하나 둘 등불이 밝혀지는 것을 개구리 울음 소리에 등불이 달린다고 표현했다.    여기까지가 장면 1이었다면 제2연은 장면 2에 해당한다. 장면 1과 장면 2 사이의 전환과 휴지는 연 구분을 통해 구별되는데, 적절한 연 배치는 독자의 호흡을 쉬게 하면서 새롭게 전개될 장면 2의 경이로운 광경을 시적 긴장 속에서 기다리게 하는 효과를 준다. 이 휴지의 긴장 뒤에 펼쳐지는 놀라운 광경은 달빛이 자아내는 풍경이다. 보름달이 비치면서 드러나는 은은한 마을 광경을 마치 보름달이 토해낸 것으로 본 착상은 새롭고 뛰어나다.    주정뱅이로 보름달을 비유한 것은, 달의 시인 이백에 대한 정서가 투영되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달이 좋아 달을 노래하고 달과 함께 죽어간 시인. 그리하여 '이태백이 놀던 달'로 민요 속에 고스란히 간직된 우리의 정서를 기묘하게 표상한 데서 이 시인의 천재성을 감지할 수 있다.    한편, 화자 자신이 술에 취해 논길을 걸어가는 것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주취(酒趣)가 시취(詩趣)에 이를 때의 정취야말로 서정성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이 시의 매력은 이미지의 신선함에 있다. (송승환)    
1425    동시인 김득만 "365밤 동요동시" 출간 댓글:  조회:4810  추천:0  2016-05-14
김득만의 동요동시집 《365밤 동요동시》가 일전 연변교육출판사에 의해 출간됐다. 중국조선문우수문예작품선집으로 선정된 시집은 1월 1일 “새해는 달려옵니다”로 시작해 12월 31일 “둥근달 보름달”로 결말을 맺는다. 저자의 동요세계는 잘 짜이고 다듬어진 음악의 세계이다. 시인의 동시들은 주로 유치원생으로부터 소학교 저급학년을 대상으로 하고있는데 이 시기 어린이들의 동심세계가 남김없이 파헤쳐지고있다. 시인의 동시들은 동심과 어우르는 생동한 시적형상에 끌려들게 된다.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생동한 형상화는 어린이들에게 아름다운 세계를 펼쳐보임으로써 그들에게 미적감수를 안겨준다. 저자 김득만은 30여년간 연변진달래문학상, 연변작가협회문학상, 중앙문화부상, 방정환아동문학상 등 국내외 상 60여차 수상했다. 연변일보 신연희 기자
1424    사랑의 방정식 댓글:  조회:4656  추천:0  2016-05-14
사랑법 -강은교(1945~ )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고 그리고도 남는 시간은 침묵할 것. 또는 꽃에 대하여 또는 하늘에 대하여 또는 무덤에 대하여     서둘지 말 것 침묵할 것. (…)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 뒤에 있다. 사랑은 대상을 ‘나’의 프리즘에 가두지 않고 풀어 주는 것이다. 그러나 서두르지 않고 침묵하면서 꽃과 하늘과 무덤을 놔 주는 일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붙잡기―놓아 주기 사이에 고통스러운 사랑의 변증법이 있다. 그래도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내 앞이 아니라 나의 배후에 있으므로 놓아 줘야 한다. 그게 사랑의 방정식이다.  
1423    울음상점에서 만나다... 댓글:  조회:4382  추천:0  2016-05-13
[5강] 시의 구조-행과 연.3 6)평서형문장으로 시의 첫 행을 시작하는 경우. 이 평서형 문장은 시의 의미나 시인의 개성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으니 그의 형태야 많은 변화가 있을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주어가 생략이 되버리거나 혹은 일인칭으로 되는 경우가 있으며 사람이 아닌 명사가 주어가 될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서 박노해님의 을 예문으로 들 어 보겠습니다. 월요일 아침이면 나는 우울하다 찌부둥한 몸뚱이 무거웁고 축축한 내 영혼 몹시 아프다 산다는 것이 허망해지는 날 일터와 거리와 이 거대한 도시가 낯선 두려움으로 덮쳐누르는 날 월요일 아침이면 나는 병을 앓는다 날카로운 호루라기 소리로 나를 일으키는 먹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 이 엄중함 나는 무거운 몸을 어기적거리며 한 컵의 냉수를 빈 속에 흘러보낸다 푸르름 녹슬어가도록 아직 맛보지 못한 상쾌한 아침, 생기찬 의욕, 울컥이면서 우울한 월요일 아침 나는 또다시 생존 행진곡에 몸을 던져 놓는다 이 시는 작가가 시의 첫 행에 일인칭 주어인 '나'가 나오는 예로 들었지만 여기에서 주어 가 생략된다고 해도 그 의미 전달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겠지요. 하지만 여러분께서 '나'란 주어를 생략하고 한 번 읽어보십시오. 그러면 그 주어의 생략으로 인해서 시적 분위기나 화자의 태도 등은 상당히 다르게 인식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결국은 이 자리에 '나'라는 주어 를 놓음으로써 다른 사람과 차별돠는 오직 자신 만의 삶의 모습이 확실하고 뚜렷하게 부각될 것 이며 그럼으로써 그의 언술이 보다 솔직하고 진실성 있게 느껴질 것입니다. 주어인 '나'를 시인이 사용함으로써 거짖없는 독백의 어조가 독자의 마음을 사로 잡을듯 강하게 어필될 것 입니다. 다음에는 주어가 사람이 아니고 사물이 오는 경 우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오장환님의 입니다 눈 덮인 철로는 더욱 싸늘하였다 소반 귀퉁이 옆에 앉은 농군에게서는 송아지의 냄새가 난다 힘없이 웃으면서 차만 타면 북으로 간다고 어린애는 운다 철마구리 울 듯 차창이 고향을 지워버린다 어린애가 유리창을 쥐어뜯으며 몸부림친다 두 예문을 올려드렸지만 평서형의 문장이 시의 첫 행으로 오는 경우는 특정한 사람의 이름이나 구체적 사물의 이름, 관념어들이 오는 예가 훨씬 많습니다. 이제 여러분들도 시를 읽으면 평서문이 나오는 경우에 그 주어들을 살펴보면 재미가 있을 것입니다. 김명리님의 을 올립니다. 枯死(고사)된 배나무밭 사이로 길은 사라지고 없다 이미 반 년도 넘게 한쪽 옆구리가 기우뚱한 적산 가옥이 한 채. 한 겹의 얇은 슬레이트로 내려앉으려는 하늘을 간신히 떠받들고 있다 떠나가고 없는 사람들 죽은 나뭇가지에 여전히 매달려 있는 죽은 배나무 잎사귀들 쿵, 쿵쿵쿵 한 때는 저 잘 익은 먹골배의 씨방 속에 한 종지의 설탕물처럼 제법 흥건히 깃들었을 두근거림 따위는 이제 완전히 사라지고 없는 것이다 누구든지 후려칠 기세로 앙상하게 배배 틀린 회초리 같은 배나무들 아직은 한 사나흘 더 죽은 나뭇가지에 악착같이 매달려 있는 죽은 배나무들의 잎사귀들! 이 시를 해설한 이광호님은 -시는 "길은 사라지고 없다"는 묘사로 시작되는데 우리는 마치 어떤 존재의 길들을 본 것만 같다고 했습니다. 여기서의 주어는 길이란 것은 여러분도 잘 아시는 것입니다. 다음엔 제3인칭인 경우를 예시로 들어보겠습니다. 김상미님의 을 보실까요? 그는 남쪽에 있다 남쪽 창을 열어놓고 있으면 그가 보인다 나는 젖혀진다 남쪽으로 남쪽으로 젖혀진 내 목에서 붉은 꽃들이 피어난다 붉은 꽃들은 피어나면서 사방으로 퍼진다 그의 힘이다 그는 남쪽에 있다 그에게로 가는 수많은 작은 길들이 내 몸으로 들어온다 몸에 난 길을 닦는 건 사랑이다 붉은 꽃들이 그 길을 덮는다 새와 바람과 짐승들이 그 위를 지나다닌다 시작과 끝은 어디에도 없다 그는 남쪽에 있다 우리가 배우는 주제와는 관계없지만 이왕 시를 읽 으셨으니 이남호님의 해설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김상미의 사랑 노래는 단순하면서도 아름답고 절 실하다. 사랑하는 사람은 남쪽에 있다. 이때 남쪽 은 단순한 방향이 아니라, 따뜻한 곳, 생명의 근 원인 곳이다. 그곳으로부터 생명을 얻어 화자는 꽃 핀다. 화자는 남쪽으로 젖혀지는 붉은 꽃이다.그 것으로도 모자라서 화자는 고 말하고, 그 길을 닦고 또 꽃으로 장식한다. 그리고 그 길 위로 새와 바람과 짐승들처럼 화자의 그리움은 지나다 닌다. 7)비유로써 첫 행을 시작할 수가 있습니다. 이미 배우신 바와 같이 비유는 낯설게 하는 장치 등을 통해서 우리들의 일상적인 고정관념을 깨뜨 려 충격을 주기 때문에 독자들의 관심을 불러이르 키는데 크게 기여를 합니다. 유용주님의 을 읽어보겠습니다. 도시는 거대한 솥, 펄펄 끓는다 반짝이며 수없이 떠오르는 고기떼들 썩은 고기들의 끝없는 악취 그래도 매운탕엔 향기가 나야 제맛이지 깻잎과 미나리와 쑥갓을 듬뿍 넣고 소주 한잔 카아악! 어디에선가 무지막지한 큰 손이 자꾸만 장작을 가져와 불을 지핀다. 여러분은 물론이고 이 시를 읽는 독자들이면 누구나 당돌한 이 시의 첫 행에 관심을 가지고 다음 구절을 읽고 싶어질 것입니다. 이렇듯 비유를 첫 행에 씀으로써 독자들에게 긴장감을 느끼게 하며, 시 속으로 빠져들어가게 하는 것을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박형준님의 을 읽어보겠습니다. 작은 창을 두드리고 간 얼룩들. 물 빠진 담벼락에 기댄 꽃대가 허공에 밀어올리고 있다. 누구나 하나씩은 흘려보낸 바구니. 작은 창에 저녁별 들어와 그 환함이 오래오래 한 자리에 앉아 있게 할 때. 먼 세상의 내륙에 가 닿아 갈대밭에서 우는 새들. 바구니에 담긴 가엾은 아이 소금처럼 단단해져 꽃대 위 머문다. 비유와 이미지가 살아있는 시입니다. 첫 행이 비유인 예로 올렸습니다. 오늘은 여기에서 마치겠습니다. 가능하면 예시를 많이 올려 여러분들이 시를 많이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합니다. 시를 공부하다가 막히면 옛날 강의를 다시 한번 경청해 보시기 바랍니다. 저도 제 강의실에 들어가서 여러분의 입장으로 강의를 들어보았습니다. 쉽게 한다고 하지만 여전히 딱딱하고 어려운 부 분이 많았으며, 오자가 가끔 발견되어서 미안했 습니다. 그러나 몇 번이고 반복해서 공부하면 그렇게 어렵게 생각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아마 열심히 공부하신 분들은 지금쯤 더러 저보다 앞 서 가는 분도 계시리라 믿습니다. 이 번 강의의 특징은 강의 말미에 따로 최근에 발표된 시 중 좋은 시 한 두 편을 올린다는 것 입니다. 그 날 강의한 주제와는 특별한 상관이 없더라도 좋은 작품 읽기의 일환이니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김선우님의 을 올립니다. 월경 때가 가까워 오면 내 몸에서 바다 냄새가 나네 깊은 우물 속에서 계수나무가 흘러나오고 사랑을 나눈 달팽이 한 쌍이 흘러나오고 재 될 날개 굽이치며 불새가 흘러나오고 내 속에서 흘러나온 것들의 발등엔 늘 조금씩 바다 비린내가 묻어 있네 무릎베개를 괴어 주면 엄마의 몸냄새가 유독 물큰한 갯내음이던 밤마다 왜 그토록 조갈증을 내며 뒷산 아카시아 희디흰 꽃타래들이 흔들리곤 했는지 푸른 등을 반짝이던 사막의 물고기 때가 폭풍처럼 밤하늘로 헤엄쳐 오곤 했는지 알 것 같네 어머니는 물로 빚어진 사람 가뭄이 심한 해가 오면 흰 무명에 붉은, 월경 자국 선명한 개짐으로 깃발을 만들어 기우제를 올렸다는 옛이야기를 알 것 같네 저의 몸에서 퍼올린 즙으로 비를 만든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들의 이야기 월경 때가 가까워 오면 바다 냄새로 달이 가득해지네 이 시에 대한 남진우 님의 해설도 곁들입니다. "달과 여인과 바다. 이 이미지의 연상망은 원형적인 만큼이나 상투적인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시인은 이를 기계적이고 작위적으로 연결시켜 놓지 않고 구체적이고 토속적인 상황 설정을 통해 제시함으로 써 설드력을 얻고 있다. 여인의 몸은 바다의 조류가 넘나들고 달이 운행하는 우주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그것은 모든 것이 흘러 나오는 무한한 생산성을 약 속한다. 여인의 몸에서 이 비가 되어 내린다는 발상 속에는 풍요를 기원하는 대지모신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 시인의 시가 지닌 건강성은 요즘 젊은 시인들의 시에서 보기 힘든 에너지를 과시하고 있다." 시를 참 잘 썼습니다. 몇 번씩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평안한 하루 보내시구요. 내일 뵙겠습니다. ================================================================   352. 안국동울음상점 / 장이지                        안국동울음상점                                                                                       장 이 지     나선형의 밤이 떨어지는 안국동 길모퉁이, 밤 푸른 모퉁이가 차원의 이음매를 풀어주면, 숨 쉬는 집들, 비칠대는 길을 지나 안국동울음상점에 가리.   고양이 군은 바닐라 향이 나는 눈물차를 끓이고 나는 내 울음의 고갈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진열장에 터키석처럼 놓여 있는 울음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고양이 군은 ‘혼돈의 과일들’이니 ‘그믐밤의 취기’니 ‘진흙 속의 욥’이니 ‘거위 아리아’니 ‘뒤집힌 함지(咸池)’니 하는 울음의 이름들을 가르쳐주겠지.   나그네가 자신의 그림자에게 말하듯 내가 고양이 군에게 무언가 촉촉한 음악을 주문하면 스탄 게츠의 「이파네마에서 온 소녀」가 바다 밑처럼 깔리리. 나는 내 안의 함지에서 울음을 길어다 주는, 이 세상에서 내 울음을 혼자만 들어주는 소녀 같은 것을 상상하며 그 아이가 아픈 것은 아닌지 어떤지 걱정을 하게 되리.   밤이 깊도록 나는 눈물차를 이백(李白)처럼 마시리. 내가 등신대의 눈물방울이 되는 철없는 망상에 빠져.   그러나 새벽이 오기 전에는 돌아가야 하리. 내일의 일용할 울음을 걱정하며 내가 일어서려 하면, 고양이 군은 ‘엇갈리는 유성들과도 같은 사랑’을 짐짓 건넬지도 모르리. 손에 가만히 쥐고 있으면 론도 형식의 회상이 은은히 퍼지는.   지갑은 텅 비었지만 울음을 손에 쥐고 고양이 군에게 뒷모습을 들키면서, 보석비가 내리는 차원의 문을 거슬러 감동 없는 거리로 돌아와야겠지. 비가 내린다면 맞아야하리. 비의 벽 저편 어렴풋 내 울음을 듣는 내 귀가 아닌 내 귀의 허상을 응시하면서, 비가 내린다면 역시 맞아야하리.     장이지 시집 중에서         장이지 약력   1976년 전라남도 고흥 출생.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동 대학교 대학원 석사 및 박사학위 받음.   2000년 신인추천 등단.   2007년 제1시집 발간.   2009년 계간 편집위원. 편저.   2011년 제2시집 발간. 발간. 2012년 제2회 김구용시문학상, 바움젊은시인상 수상. 조선대학교, 성공회대학교, 성균관대학교 출강. 현재 불편 동인
1422    시인의 몸에 몇개의 지문이 없다... 있다... 댓글:  조회:4685  추천:0  2016-05-13
[4강] 시의 구조-행과 연 2 두 번째 단원에 들어가기 전에 신중신 시인의 시의 첫 행에 관한 주장을 들어보기로 하겠습니다. "시를 쓸 의욕이 팽배해지면 나는 밤이 깊기를 기다렸다가 방 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리기 마련이다. 습작 노우트를 펼쳐 두고 볼펜을 손에 쥔 채 어떤 긴장의 늪으로 빠져 든다. 시는 현실 자체와는 분명히 다른 또 하나의 경험 세계이다. 현실과는 전혀 별개였던 어떤 것이 완성의 순간에 현실의 한 영역을 차지하게 된다. 이 과정, 다시 말하면 변용의 과 정에서 미묘한 갈등과 모순을 겪어내야만 한다. 그것을 초월 에의 의지라 해도 좋고, 또는 창조적 투쟁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시 창작에 있어서 첫 행은 이 투쟁의 전초기지가 되는 셈이다. 새로운 세계를 구축하기 위한 촉발성, 예민한 집중력이 이 첫 행에 요구 된다.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개체에 윤곽을 주어 구 체적 사물로 떠올리게 하는 일이 결코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나는 가장 밝은 백열등 불빛을 받으면서 오랜 시간 펼쳐진 하 얀 백지의 강박감, 그 공포를 수없이 체험했다. 의의로 쉽게 술술 풀리면서 한 편이 순식간에 이루어지는 경우가 없지는 않 지만, 대개는 황막한 관념의 벌판에 외로이 던져진 채 그 벌판 을 헤쳐 나오려는 초극에의 안간힘을 겪기 마련이다. 첫행이 출구의 열쇠가 됨은 너무나 당연한 논리이다. 그래서 좀체 시행이 만들어지지 않는 날엔 이것저것 낱말만 흩뜨려 적어 보기도 하고, 때로는 엉뚱하게 사화집 따위의 다른 시집 을 펼치면서 나의 시작품 첫 행이 어떻게 쓰여졌나 일별해 보기 도 한다. 실로 막연하고 불확실한 도노가 아닐 수 없다. 시의 첫행은 창조행위중 가장 지적 모험정신이 충일한 창조작 업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그것은 나에게 있어선 끝없이 되풀이 되는 비상에의 출발점이다. 때문에 첫행이 풀려 나가면 그것을 중도에서 팽개치기 어려워 좋든 궂든 한편을 얻는데 귀착되는 점이 또한 나의 약점이 되기도 한다." 잘 들으셨지요? 이러한 시인들의 이야기는 우리가 시를 쓰는데에 많은 참고가 될 것입니다. 어제에 이어 시의 첫행은 어떻게 시작하는가를 계속 강의하겠습니다. 2)공간적 언어 시간적 언어 만큼이나 공간적 언어는 시의 첫 행을 이루는 가장 일반적인 유형입니다. 그러나 이런 특정 공간이 살아나기 위해서는 다음에 오는 행 들이 그 것을 구체적 의미로 형상화할 수 있도록 떠받쳐 주어 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유의할 사항은 한 시인이 똑 같은 장소를 너무 빈번하 게 사용하면 상투적이 되기 쉽다는 것입니다. 강형철님의 을 읽어보겠습니다. 호남선 터미날에 나가면 아직도 파김치가 올라온다 고속버스 트렁크를 열 때마다 비닐봉지에 싼 파김치 냄새 텃밭에서 자라 우북하였지만 소금 몇 줌에 기죽은 파들이 고춧가루를 벌겋게 뒤집어 쓰고 가끔 국물을 흘린다 호남선 터미널에 나가면 대처에서 사는 자식들을 못 잊어 젓국에 절여진 뻣뻣한 파들이 파김치가되어 오늘도 올라온다 우리들 어머니 함께. 여기서 '호남선 터미널'은 고유명사이면서도 대중공간이기에 보통명사나 다름 없이 쓰이고 있습니다. 아마 시골에 집을 두 고 있는 사람이라면 쉽게 공감하는 장소이기에 더욱 친숙하 게 다가오게 될 것입니다. 강은교님의 을 읽겠습니다. 빠알간 망사주머지 속에서 빠알갛게 언 알몸을 비벼대고 있는 빠알갛게 부어오른 눈으로 조심조심 창 밖을 내다보고 있는 일 킬로그램의 양파들에게 전해 주게 이 말을 지금 이 별엔 봄이 왔다,고 짧은 시이지요? 우리가 흔히 보는 양파의 빨간 망사주머니가 여기에선 시의 첫 행 으로 나오는 특정의 공간 언어입니다. 우리가 흔하게 보면서도 뭐 저게 시어가 되겠느냐 하는 것이 여기에 첫 행으로 등장하여 우리의 호기심을 끌기에 충분합 니다. 우리는 늘 자기 주위에 하찮게 스치고 지나가버리는 것들도 다시 한 번 시인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훈련을 쌓아야 겠습니다. 우선 그 것들에게 생명을 주어(肉化시키어) 시의 소재로 삼는 것입니다. 여기에선 작고 하찮은 공간을 첫 행에 올림으로써 우리의 관 심을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박용래님의 를 읽어 볼까요? 어디선가 原木(원목) 켜는 소리 夕陽(석양)에 原木 켜는 소리 같은 참매미 오동나무 잎새에나 스몄는가 골마다 끝에나 스몄는가 누님의 반짇고리 골무만한 참매미. 여기에선 "어디선가"라는 불특정 공간이 첫 행으로 나와서 그 불확실성과 막연함으로 인하여 한정적인 공간에서는 느낄 수 없는 분위기와 매력을 자아냅니다. 그러나 첫 행이 이렇게 막연한 시어가 나올 경우에는 그 다음 행이 보다 극적이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겠지요. 말하자면 더욱 시적 긴장감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시 전체가 풀어지고 애매한 느낌을 주고 말 것입니다. 그렇쟎으면 불특정 공간의 여운이 사라지고 말던지요. 이 시에서는 참매미 소리를 원목켜는 소리로 비유함으로서 시적 긴장감을 확실히 살려주고 있습니다. 3)시간과 공간의 언어들이 함께 어우러져 시의 첫 행을 이루는 경우 시간이나 공간이 함께 어우러져 나오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 운 것입니다. 거기에 구체성까지 확보할 수 있어서 독자들 에게 쉽게 흡수될 것입니다. 시가 아무리 상상력을 동원한다고 하지만 구체성이 없는 시는 믿음이 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최두석님의 를 읽어보겠습니다. 새벽 노을 속 까마귀떼 잠 깨어 날아오른다 깃들인 자리 대숲 댓잎에 내린 된서리에 부리를 닦고 사나운 꿈자리 날개짓으로 훨훨 털어내며 날아오른다 눈녹이물 다시 논밭에서 서릿발로 일어선 텅 빈 들판 위로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칼날 바람 타고 잇따라 솟구쳐 오른다 어느새 수백 수천의 까마귀 결빙의 하늘에서 만나 원무를 춘다 거친 숨결 하늘에 뿜어 드디어 능선 위로 불끈 해가 솟는다 위의 시에선 '노을 속'이란 공간과 '새벽'이라는 시간이 함께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는 보통 노을이라면, 석양 즉 일몰의 광경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여기선 저녁 노을이 아니라 새벽의 노을이라는 표현을 써서 솟구쳐 오르는 까마귀들에게 어떤 희망의 공간을 제공 하는 듯한, 여태까지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느낌을 주고 있습 니다. 4)자연물이나 기후현상이 시의 첫 행으로 오는 경우 자연 대상은 시인들이 특히 즐겨 사용하는 소재입니다. 따라 서 이 중심 소재가 시의 첫 행에 자주 나타날 수가 있겠지요. 기후 현상도 거기에 따른 독특한 분위기를 형성하는 힘이 있으므로 시의 첫행에 자주 제시가 되고 있습니다. 이문재님의 을 읽어보지요. 봄 풀 꽃, 저 햇빛의 작은 지문들 5월 늦은 오후, 깨끗하게 늙어가는 선생을 만나고 돌아오는데, 민들레들 길섶에서 달구어져 있다. 햇살이 지그시 민들레를 누르고 있는 것이다 노오란 이 빛의 방울들 작은 소리를 터뜨리며 번져나간다 세상에 같은 지문은 없는 것이다 선생님은 아직도 문 밖에 계시다 언덕길 오르다 돌아다보니 선생님은 보이지 않는 눈길로 나를 떠밀고 계셨다 내 몸에 몇 개의 지문이 찍힌다 너무 좋은 시이지요. 비유적 이미지가 아주 잘 살아있는 시입니다. 아주 우리가 흔히 쓰는 시어 들이지만 긴장감이 살아있는 시입니다. 이 시에서 나오는 풀, 꽃, 햇빛을 비롯하여 하늘, 별, 달, 강, 바다, 산, 나무, 비, 새, 바람, 바위, 파도, 눈, 이슬 등은 여러 시들 속에 아주 빈번히 나타나는 소재입니다. 이 자연 대상물들은 평소 우리 독자들과 친숙하기 때문에 시인들은 이들을 시의 첫 행에 즐겨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친숙하다는 건 익숙하다는 뜻도 되기 때문 에 보다 신선하고 참신한 모습으로 표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황인숙님의 을 읽어보겠습니다. 눈이 온다 먼 북극 하늘로부터 잠든 마당을 다독이면서 단풍나무 꼭대기에서 갸우뚱거리던 눈송이가 살풋이 내려 앉는다 살풋살풋 둥그렇게 마당이 부푼다 둥그렇게, 둥그렇게 눈은 마당에 깃드는 꿈 마당은 커다란 새가 됐다 그리고 단풍나무 꼭대기에서 작은 새가 내려 앉는다 저 죽지에 뺨을 대고 싶다 하지만 어떻게 그의 잠을 깨우지 않고? 저도 눈이 오는 날이나 비가 오는 날에 날씨를 가지고 시를 많이 씁니다. 이 때 이런 눈이나 비가 오는 모습이 시의 첫 행으로 많이 등장하는 것은 아무래도 기후변화에 민감한 우리들의 속성 때문일 것입니다. 또 눈이나 비가 내리는 분위기 그 자체로서도 시적 정서를 형성하는데 효과적이어서 우리들의 관심을 자연스럽게 끌어 들이는 역할까지도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5)참신한 이미지의 제시 참신한 이미지를 시의 첫행으로 제시하는 경우는 시인의 개성적인 시각이 돋보이고 독자들의 상상력을 크게 자극 함으로소 시에 관심을 갖게 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참신한 이미지인 경우에 독자들에게 충격을 줄 수가 있는데 이러한 충격효과가 시의 첫 행에서부터 나타나는 것입니다. 김명인의 를 예문으로 읽어보겠습니다. 철둑 가장일 끌고 오는 여우비, 저물 무렵 잠깐 놀러 나온 구름이 길을 묶는다 만곡 끝 닿는 곳까지 갖은 파랑 펼쳐놓고 바다 한쪽을 후둘겨 소낙빌 털어내는 여우비, 한 풍경에도 이렇게 확실한 두 세계의 경계가 있다. "나, 지금 물든 풍경의 틈새에 끼어 한켠으론 젖고, 한켠으론 매마르며 땅거미 속 아득하게 지워져가는 저 철길 보고 있다" 길 사라져 헤맬 일로 고단해지면 우는 화상아, 그대나 나나 둑 아래 감탕밭 스쳐간 비 자리 엎어진 물 웅덩이로 주저앉아 갈 곳 없는 노을 텅 비게 담아내며 명지 바람에도 주름 접힐 파문으로 남았다 바다 건널 일도 힘에 부쳐 겨우 겨우 모래펄을 쓸고 있는 여우비, 어느새 몸 무거워진 가을머리 저 여우비 먼저 양해를 구할 것은 행이 계속되다가 " " 안의 글이 몇 단어가 들어가 글이 씌여 있으나 저의 기술 부족으로 " "로 묶었음을 말씀드립니다. 위 시의 첫 행 '철둑 가장일 끌고 오는 여우비,'는 비가 오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이미지를 통 하여 표현하고 있습니다. 오늘 강의 중에 비유나 이미 지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는 시를 쓰는데 아주 중요한 것들입니다. 이제 강의를 처음 받으신 분들은 꼭 지난 번 강의의 비유법이나 시의 이미지화 등을 공부 하시기 바랍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이 시를 읽고 신선한 감각을 받았을 것입니다. 이는 시인의 주관적인 상상력에 의해 형성된 것 이기 때문에 우리의 관심을 강하게 끌어들이는 것입니다. 여느 때처럼 시 한편을 소개하며 오늘 강의를 마치겠습니다. 여러분께서 다른 시의 첫 행에서 오늘 배운 것들이 제시 된 예 를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무척 많이 찾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내일 또 몇 가지 예가 더 있어 말씀드리겠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시의 첫 행에 제시되는 것들은 꼭 이래야 한다는 원칙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시의 첫 행에 많이 쓰인 것들 끼리 모아 분류한 것이라는 것을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구순희님의 입니다. 경포대 동쪽 하늘에 걸려 있다 신성한 몸일 때 잃어버린 새빨간 머리띠 출렁거리는 머리카락 사이로 어른이 다 되어 물구나무서는 바다 바다가 머리띠를 잡으려 하자 부화 직전의 계란, 실핏줄 툭툭 터진다 이슬이 비치고 쑥 빠져나오는 시뻘건 불덩어리 하늘 끝에 깊은 동굴이 생겼다 하룻밤 풋정 빠져나간 자리 선명한 구멍 깊숙이 따뜻한 불빛이, 산후의 안식이 찾아왔다 =====================================================   351. 내일, 슬픈 / 정일근                         내일, 슬픈                                                     정 일 근     사랑으로 오늘 숨죽여 우는 이여 그대 두 손의 흥건한 피눈물보다 더 슬픈 진실은 사람이기 때문에 살아가야 한다는 것     내일 또 밥 먹고 똥 누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       정일근 시집 중에서  
1421    시작의 첫 줄에 마음 써라... 댓글:  조회:4214  추천:0  2016-05-12
[3강] 시의 구조-행과 연 1 어제까지는 총론이라 생각하시면 되겠구요 오늘부터는 지난 강의를 이어하는 강의로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강의 방법은 전과 같은 방법으로 하겠습니다. 1.시의 행과 연 형태상으로 보자면 시의 구조는 행(行)과 연(聯)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행과 연은 시의 형태를 만들어 주는 구조의 기본골격이란 말과 같겠지요. 행은 단어, 구(句), 절(節) 또는 그 것들의 연합으로 되어 있고 연은 하나의 행, 또는 행의 연합으로 구성 됩니다. 그러므로 이론상으로는 단 하나의 단어만으로도 한 편 의 시가 될 수도 있겠지요. 하이데거는 시를 가리켜 '언어의 건축물'이라는 말을 하였는데 이 건축물을 이루는 기본골격이 바로 행과 연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자기 집을 새로 지으신 분들이 계 실 것입니다. 아니 아파트에 사신다고 해도 마찬가지 이지요. 아무리 훌륭한 재료를 썼다 하더라도 구조가 좋지 못하면 형태가 온전하지 못하지요. 마찬가지로 아무리 좋은 시상과 좋은 시어를 사용하여 시를 쓴다 고 하더라도 행과 연을 잘 이루지 못하면 시적 성공률 은 그만큼 떨어질 것이 자명한 일입니다. 처음 시를 쓰거나 아직 많은 시를 써보지 않으신 분들 은 아무런 필연성이나 계산성도 없이 뗐다 붙였다 행 과 연을 구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행과 연 의 구성은 전적으로 작가 개인의 마음대로 입니다. 그 러나 행과 연의 잘못으로 시적 전달이 잘 못 되거나 시적 감응을 반감시킬 염려가 있으니 주의해야 합니 다. 어떤 경우는 불필요한 행과 연을 구분해서 오히 려 전체적인 형태마저 기형적으로 만드는 것을 볼 수 가 있습니다. 시의 구조는 매우 치밀한 것입니다. 오늘부터 하는 강의를 잘 들으시어 여러분들의 시작 에 많은 참고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2.첫 행은 어떻게 시작하는가 우리는 시작이 절반이란 말을 늘 합니다. 그만큼 시작 이 중요합니다. 실제로 여러분들도 시를 쓰거나, 꼭 시가 아니고 편지를 쓸 때도 첫 번 화두를 펴기가 제 일 힘들다는 경험을 하셨을 것입니다. 첫 줄만 시작하면 그 뒤로는 줄줄이 나오는 글들도 늘 그 첫 마디 한 마디에서 막히거든요. 그만큼 처 음 시작이 중요합니다. 첫 단추를 잘 끼워야 그 다음 단추도 바로 끼어지는 것이 여기에서도 그대로 적용 이 되는 것입니다. 더구나 시에서 첫 행은 독자들의 관심과 호기심까지 유도해야 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소설이나 다른 글을 보더라도, 아니면 싸이버 세상의 모든 글들도 첫 행에 이상한 글이 있다던지, 너무 흔한 말이라든지 이런 글이 있으면 더 이상 읽고 싶지 않 을 것입니다. 말하자면 처음 만나는 사람의 첫 인상 과 같은 것이지요. 거기에 시의 첫 행은 다음에 이어지는 행들과 연들을 끌어 올리며 시 전체의 내용을 자연스럽게 풀어내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스켈톤은 시의 첫 행의 이미지가 그 다음에 오는 모 든 이미지에 연결되어 그것이 전체의 이미지로 확산 이 되어진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너무 복잡 한 설명이어서 여기 생략합니다만 대개 그런 뜻입니 다. 다만 첫 행의 시는 시 전체를 압축적으로 하여 줄 수도 있고 또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 야 하겠습니다. 예를 들면 라는 이상화의 시에서는 이 첫 행 에 시 전체의 주제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러 나 이렇게 시 전체 주제가 첫 행에 압축되어 있는 것 은 아닐지라도 시의 첫 행은 전체 시의 내용과 직결된 다는 점을 늘 마음에 두셔야 할 것입니다. 그 첫 행 의 이미지가 무척 중요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시의 첫 행은 어떻게 해야하나 누가 한 번 이야기 해 보시지요. 대답하기 어렵지요? 참 어려운 질문입니다. 마치 우리 가 무슨 일을 할 때 처음에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이 늘 그렇듯 답하기 어렵습니다. 조태일님도 이야기 했지만 첫 행에 대한 모범답안은 없습니다. 따라서 지금부터 하는 분류는 순전히 그 동안 써 온 많은 시인들의 시를 참고하여 작성한 것임을 참고하 시고, 다만 참고로 삼아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로지 시는 여러분 개인의 창작물임으로 시의 첫 행 도 보다 독창적이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1)시간적 언어 즉 특정한 시간이나 계절 등을 첫 행으로 시작할 수 가 있습니다. 시간과 계절은 생명의 생성과 성장, 결실, 소멸과 관 계가 깊으며 우린 이 시간성과 계절성에 민감하게 반 응합니다. 아마 지난 가을을 아주 힘들게 지나신 분들 이 계실 것입니다. 아니면 이제 돌아온 봄을 견디기 힘들어하시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즉,나는 봄을 탄다, 나는 가을을 탄다 하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어떤 분들은 환절기를 견디기 힘들어하시 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이런 마음을 시의 첫 행에 끌어내면 아주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계절에 대한 아픔이 없다고 그 계절에 대해 아무 감각이 없는 것은 아니 니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외려 가슴 깊이 아픔을 삭히는 분도 있을 터이며 더구나 그런 이유로 시를 못쓰는 것은 아니니까요. 이는 다만 한 예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에게 직접적 반응을 일으키는 시간적 언어 를 첫 행으로 사용하면 충분히 독자의 관심을 끌 수 있을 것입니다. 박봉우님의 를 읽어보겠습니다. 늦은 밤 별밭을 찾아간다 누구도 알지 못하는 이 밤을 남몰래 울어 본다 내가 여기 서 있다는 것이 더욱 無意味(무의미)로울 때 나의 고독은 더한층 심연이다 별들만이 아는 비밀 세상에 태어나 서 있을 때처럼 無意味로운 것은 더욱 없다 오늘도 별밭을 찾아 고독들 피흘리는 고독을 나누어 본다 시간으로 시작되는 첫 행은 아주 그 숫자만큼이나 많 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간이 앞으로 전개될 시적 담론의 배경을 미리 알려주는 효과는 있을지언정, 우 리에게 너무 익숙한 표현일 수가 있어 오히려 관심을 반감시킬 수 있으니, 상투적인 표현을 피하고 새로운 변화를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김영석님의 를 읽어보겠습니다. 하늘이 시퍼렇게 얼어붙은 겨울날 手話(수화)를 나누던 너와 나의 하얀 손이 까마득히 낙엽진 날 마음속 깎아지른 벼랑을 떠나 온종일 허공을 맴도는 매 한 마리 사계절이 시의 첫 행으로 오는 경우도 흔히 볼 수 있 습니다. 특히 봄과 겨울이 많다고 합니다. 이러한 계절이 첫행 으로 자리잡은 까닭은 시간의 흐름이나 바뀜이라는 단순성을 넘어서 하나의 원형이 되고 있는 보편적 의 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노드롭 프라이에 의하면 봄은 영웅의 탄생신화, 희 극, 열광적 찬가, 광상곡의 원형이며, 여름은 인간의 신격화와 낙원에 관한 신화, 로맨스, 전원시, 목가의 원형입니다. 가을은 신과 영웅의 사망에 관한 신화, 비극과 엘레지의 원형이며,겨울은 대홍수와 혼돈의 신 화, 영웅 패배의 신화, 풍자와 아이러니의 원형입니다. 여러분들이 이 노드롭 프라이의 말을 이해하시려면 먼 저 이 원형이라는 문학비평용어를 알아야하실 거 같 아 여기 짧게 설명을 하겠습니다. 문학의 원형 이론은 케임브리지대학의 비교인류학파로 부터 유래한다고 합니다. 이 학파의 기본 책자는 프레 이저의 『황금가지』인데, 이 책의 대부분은 다양한 문화들이 가지고 있는 의식 속에 반복되어 나타나는 신화나 제의의 기본적인 형태들이 있음을 주장했고, 또 그 것을 추적한 것입니다. 다른 한 편으로 이 이론은 융이라는 심리학자의 심층 심리학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융은 "원형"이란 용 어를 "원초적 이미지"에 적용하였는데, 이 것은 바로 우리에게 옛 선조들의 생할에서 반복되던 경험 형태들 의 "심리적 잔존물"로서, 인류의 "집단 무의식"을 통 하여 전해져 내려오고, 신화, 종교,꿈, 개인적 환상뿐 만 아니라 문학작품 속에서도 표현되고 있다고 융은 주장하였습니다. 점점 더 어려운 용어가 나오는군요. 쉽게 말하면 우리 의 글에는 알게 모르게 그 원형 즉 그 뿌리에 신화의 요소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알에서 조상이 나 온다는 것이 박혁거세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적 을 그런 이야기가 많다는 것입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귀라는 이야기도 여러 나라에서 발 견됩니다. 그래서 어떤 소설을 끝까지 추적하다 보면 어떤 신화 에 도달한다고 보고 분석하는 것이 비평의 한 방법인 신화원형 비평입니다. 이야기가 다른 쪽으로 비약하고 있습니다만, 이 강의 실에서 아주 열심히 공부하는 분 중에 비평에도 관심 있으신 분이 있을 것 같아서 아주 조금 더 설명을 하 겠습니다. 이 원형이란 용어는 문학비평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 어 왔습니다. 비평에서 "원형"은 신화, 꿈 심지어는 사회적 행동인 제의 양식에서 뿐만 아니라 문학작품 속의 인물 유 형, 또는 이미지들에 적용되기도 합니다. 특히 노드롭 프라이의 『비평의 해부』에서 원형적 접 근을 성경에까지 확대시켜, 문학이론과 문학비평의 실 제에 있어서 많은 진보적 발전을 하게 하였습니다. 이 비평에 속하는 모든 사람들은 문학 속에 내재한 신 화형태를 강조합니다. 즉 먼저도 설명했지만 모든 문 학 작품은 신화원형 이론에 의해 분석하면 그 원형은 신화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주장하는 것을 보면, 보다 한정적이긴 하지만 문학 속에서 자주 재현되고 있는 다른 원형적 테마, 심상, 그리고 인물들로는 지하여행, 승천, 아버지를 찾는 행위, 낙원과 지하계 심상, 프로메테우스 같은 반역적 영웅, 속죄양, 대지의 여신, 죽어야 할 운명 에 놓인 여자 등입니다. 이를 더 자세히 하기엔 어려움으로 이 정도로 마치고 본 강의로 들어가겠습니다. (강의를 처음 들으신 분들을 위해 말씀드리는데요. 강의를 받을 때 어려운 인용이나 설명이 있을 것입 니다. 여기에서도 신화원형 같은 용어는 비평 용어 임으로 그런 것이 있다는 정도만 아시면 되지. 굳이 이해하거나 외우려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러나 대학이나 대학원에서 배우는 이론임으로 참고하시 라고 올렸습니다. 싸악,,,,잊어버리세요.) 이가림님의 를 읽어보겠습니다. 언제부터 이 잉걸불 같은 그리움이 텅 빈 가슴속에 이글거리기 시작했을까 지난 여름 내내 앓던 몸살 더이상 견딜 수 없구나 영혼의 가마솥에 들끓던 사랑의 힘 캄캄한 골방 안에 가둘 수 없구나 나 혼자 부등켜안고 뒹굴고 또 뒹굴어도 자꾸만 익어가는 어둠을 이젠 알알이 쏟아놓아야 하리 무한히 새파란 심연의 하늘이 두려워 나는 땅을 향해 고개 숙인다 온몸을 휩싸고 도는 어지러운 충만 이기지 못해 나 스스로 껍질을 부순다 아아, 사랑하는 이여 지구가 쪼개지는 소리보다 더 아프게 내가 깨트리는 이 홍보석의 슬픔을 그대의 뜰에 받아주소서 이 시에선 불특정의 시간이 첫 행으로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불가지의 시간적 표현이 오히려 막연 한 시간이 자아내는 울림으로 시적 상상력을 자극하 고 관심과 호기심을 불러 일으킬 수가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참고로 유경환 시인의 시의 첫행에 대한 견 해를 들어보기로 하겠습니다. "별다른 생각없이 시의 첫 줄을 써 왔었다. 지극히 자 연스럽게 첫 시작이 시작되었기 때문이었다. 쓰려고 하는 것을 몇 달씩 가슴에 넣고 삭여오다가 잎이 돋 듯 그렇게 나오는 것을 원고지에 옮겨 써왔던 나의 시 작 태도에 기인했던 것일께다. 그러나 한 십여년 전부터 이런 나의 시작태도에 변화 가 생겼다. 난 그것을 겪어야 할 변화라고 생각하고 싶다. 쓰려 고 하는 내용을 유도하는, 그런 의미를 의식하게 되면 서 부터 내적인 작은 고민이 자리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고민은, 첫 줄만 써놓고 버리는 원고지의 양을 차차 늘여서, 오히려 시 작업에 저해 요소로 까지 영향 을 미친다. 아마 이것은 나만의 경우가 아닌듯 싶 다. 시의 첫 줄이 그대로 시제가 되는 예를 미루어 보 거나, 또는 내용 전체의 의미를 표상하는, 함축적인 감각을 지니게 되는 예를 미루어 볼 때에, 나만의 고 민이 아니구나 하고도 생각하게 된다. 이 것은 시를 어렵게 생각하게 되는 한 과정 또는 매 듭 단계에서 겪는 고민이 아닐까 여겨진다. 쓰지 않고선 못배길 정도로 내적인 발효가 이루어진 경우엔 쉽게 나오고, 그대신 써야겠다고 마음먹고 당 위성을 가지고 시작할 때엔 어렵게 나오게 된다. 나의 경우 길을 가다가, 책을 보다가, 또는 산책을 하 다가 문득문득 떠오르는 것을 아무데나 한 줄씩 메모 해두는 버릇이 있는데 거의 이 한 두줄의 메모가 그대 로 첫줄로 등장할 때가 있다. 첫 시작의 첫 줄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경우, 시의 경직성을 띠고 전개되기 쉽고, 첫 시작의 첫 줄에 전연 의미를 내포시키지 않고 자연스럽게 도입구의 역할만 하게 쓰면, 시는 자연스럽게 풀려 나갈 수 있다. 그런데도, 나는 요즘 첫 시작의 첫 줄에 마음을 써야하 는 모순의 고민을 지닌다. 이것은 시를 어려운 것으 로 알기 시작했다는 한 반증이 아닐까 자위해 본다." ========================================================================   350. 보일러 만트라 / 정일근                        보일러 만트라                                         정 일 근   우리집 나무 보일러는 전생이 티베트 라마승 같다 나무불 넣으면 보일러는 염불부터 먼저 한다 하루는 옴마니반메훔을 중얼거리고 또 하루는 히말라야 만트라를 노래한다 그렇게 긴 염불 뒤에 사람 한숨을 쉬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깜짝 놀라 일어나서 벽 하나 사이에 사는 늙은 라마승에게 오체투지의 경배를 올린다, 그 해 히말라야 가우리 상카르산山*의 곰파에서 만나 호흡으로 생명을 나눠 준 그 늙은 라마승 낮은 숨소리와 똑같아 깜짝깜짝 놀라는 것이다 착하게 낡은 것에게는 영혼이 깃드는 법이니 내가 왔다는 동쪽이 궁금했던 늙은 라마승 잠시 몸을 바꾸어 우리집 나무 보일러 속에 앉았는지 겨울밤 내내 나무 보일러의 만트라를 들으며 내 몸 안에서 터지는 설산 눈꽃에 아득해진다   * 높이 7,144m, 에베레스트 서쪽 약 58km 지점에 있는 산.   정일근 시집 중에서   ※ 만트라(Mantra) : 짧은 음절로 된 주문, 진언(眞言), 기도문 등을 의미.    
1420    시의 이미지는 진화한다... 댓글:  조회:5059  추천:0  2016-05-12
 이원 시인          글, 사진 - 이신조 소설가                                                                                   이미지는  진화한다                       아, 이 사람도 공기(空氣)를 느끼느라 힘겹겠구나, 색도 소리도 맛도 냄새도 질감도 없는 공기를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고 만지느라 힘겹겠구나, 외롭겠구나, 그런 생각을 했었다. 시인 이 원이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고, 맛볼 수도 냄새 맡을 수도 만질 수도 없는 공기를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고 만져서 탄생시킨 공기의 이미지들······. “세계와의 불화가 에너지인 사람들 / 사이로 공기를 덧입은 돌들이 / 둥둥 떠다닌다”, “떠나온 곳을 알 수 없는 한 떼의 공기 / 주전자의 보리차처럼 그림자에게 쏟아져 내린다”, “너의 이름과 주소에서는 / 온통 수선화의 우주가 만져지겠지 / 공기도 리듬의 붕대를 풀 거야”, “공기의 귀가 떨어져 나가 사방에서 / 바람이 몰려들고 있어”, “하늘이 자주 지퍼를 배꼽 근처까지 내리고 / 레고블럭 같은 공기들은 허공에 끼워지고 있다”, “공기가 알을 낳는다”, “집 안에서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가 허공을 재봉틀처럼 박아간다”, “단단한 사과 하나가 새벽의 공기 위에 떠 있다 / 이 사과는 관념에 물든 사과다.” 아, 이 사람도 잠수함의 토끼처럼 전조(前兆)를 느끼느라 힘겹겠구나, 인간보다 더 철학적이고 멜랑콜리한 사이보그들이 등장하는 SF영화의 한 장면 같은 잿빛 세상, 디스토피아로 치닫는 음울한 미래, 시인 이 원이 불길한 예지몽처럼 만들어낸 어둡게 번뜩이는 ‘현대’의 이미지들······. “나는 그 순간의 ‘나’를 눌러 그 세월을 프린트하기 시작했다 간혹 빛바랬거나 지워진 곳들도 있다 호흡을 중단했던 곳에서는 잠깐 프린트가 중단되기도 한다”, “내 몸의 사방에 플러그가 / 빠져나와 있다 / 탯줄 같은 그 플러그들을 매단 채 /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다”, “휴대폰을 받다 얼굴이 떨어져 깨져버렸다 깨진 조각 하나를 들어 오른쪽 팔목을 그었다 비틀린 혈관 하나 끊어지자 해가 땅에 뚝 떨어진다”, “실습용 재료 같은 사내와 여자가 나란히 검은 주유기를 제 옆구리에 꽂고 서 있다 그들은 서울의 밤이 꿈 대신 선택한 텍스트이다”, “흰 변기에 파탄 같은 알몸의 한 사내가 주저앉는다 / 두 다리 사이에 파묻은 사내의 머리는 납작하다 / 출구가 없는 그의 몸에서 그림자가 흘러내린다” 공기든 전조든 그것은 결국 기운(氣運)이다. 에너지다. 희로애락에 근거하는 소박한 서정만으로는 온전히 아우를 수 없는 거대한 무엇, 복잡다단한 무엇이다. 그것은 어떤 리듬, 감히 우주적인 리듬에 관여하고 있다. 아, 이 사람도 - 짐짓 서글프고 애틋한 느낌. 그러나 그런 만큼 묘한 동질감과 은밀한 연대감을 느껴온 터였다. 시인 이 원이 만들어낸 이미지에 매료된 지 10여 년, 늦더위가 유난했던 여름의 끝자락 그녀를 처음으로 만났다. 이 원은 여리고 차분하고 선명하고 다감하고 사려 깊었다. 그리고 몽상가였다. 나는 그 모두를 좋아한다. 그러나 그로 인해 치러야 할 대가를 알기에 마냥 좋다고만은 하지 못한다. 어쩌면 인간을 말할 수 있는 진짜 권리는 사이보그에게만 있는 것인지 모른다. “내 도구가 언어라는 걸 꽤나 늦게 깨달은 편이에요. 책벌레 문학소녀는 전혀 아니었어요. 글을 쓰고 싶다고 열망한 적도 없었고요. 그런데 왜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에 들어갔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데, 대입 원서를 쓸 무렵 잘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에게서 우연히 그런 말을 들었어요. 예대 문창과에 가면 꽃잎이 허공을 둥둥 떠다닌다고. 좀 우스운 얘기 같겠지만 이상하게 그 말이 잊히지 않았어요. 마음 속 깊은 곳의 무언가를 건드린 느낌. 물론 그만큼 학과 분위기가 예술적이라는 비유적인 표현이었겠지만 결국 그 한 마디에 원서를 내고 시험을 본 게 되어버렸어요.” 이 원은 중학생이 되던 해 낯선 서울에서 살기 시작한다. 스스로 ‘훼손’이라 부를 만한 신변의 큰 변화를 겪은 직후였다. ‘사춘기’라는 말로는 온전히 설명할 수 없는 자신의 복잡한 내면을 조금씩 감지해간다. 소녀 이 원은 어느 날 집안 어딘가에서 수동카메라를 찾아낸다. 필름을 넣을 줄도, 초점을 맞출 줄도 모른다. 물론 디지털카메라도 폴라로이드도 없던 시절이다. 블로그나 미니홈피란 그야말로 SF이자 사이보그인 시절이다. 그러나 어쨌든 소녀 이 원은 사진을 찍기 시작한다. 단순한 취미 생활이 아니다. 이미지의 시작이다. 표현의 시작이다. 하늘의 구름이 변하는 모습을 시시각각, 책상 위에 올려 둔 사과가 썩어가는 모습을 매일매일, 소녀는 이미지와 표현을 ‘낳기’ 시작한다. 도구가 필요한 삶, 이 원은 막연히 사진을 찍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11년 전 출간된 이 원의 첫 시집 자서(自序)에는 ‘이 막막한 첫 시집을, 스승께 바친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시간이 흐르고, 올해 발표된 그녀의 세 번째 시집 의 첫머리에는 ‘제 언어의 맨 처음에 계시는 오규원 선생님 영전에 바칩니다’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언어의 처음’을 시작할 수 있게 이끌어 준, 이 원의 진짜 도구를 찾고 사랑하게 해 준 스승의 죽음. 사제 간의 정을 실감할 수 있는 그럴싸한 일화 한 토막을 청하는 것이 너무 얕은 짓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미 학생문사(文士)로 중고교 시절부터 이름을 날리던 동기, 선후배들이 과에 가득했어요. 그에 비하면 전 문학에 무지하다 싶을 정도였고요. 문학을 알게 되고 시를 흠모하게 되었지만 주눅이 들어 있을 수밖에 없었죠. 이미 시를 잘 쓰기로 소문이 나 있던 학생들에게 오규원은 선생님은 ‘네가 시에 대해 알고 있는 모든 걸 버려라’라고 엄하게 말씀하실 때가 많았어요. 그런데 제게는 늘 좀 다른 차원의 얘기를 들려주셨어요. ‘너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고. 이제야, 이제야 그 뜻을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원의 세 번째 시집에는 무엇보다 거울의 이미지가 가득하다. “거울에 들어가 거울을 생각하면 거울이 달아난다”, “거울 : 내가 들여다보면 내가 사라져버리는 벽 또는 언어”, “거울의 꿈은 제 내부를 온전하게 텅 비우는 것이다 꿈은 이루어지지 않을 때까지만 꿈인 것이어서 거울은 계속 실존한다”, “거울 : 내가 밖으로 나와도 내가 사라지지 않는 내가 갇혀서 끓고 있는 진창”, “거울로 들어가는 문을 찾지 못해 내게는 오늘의 밤이 계속 된다 얼굴이 낯설어진다 내가 거울 밖으로 고개를 다 돌리기도 전에 거울 속의 얼굴이 뒤통수를 보인다 사랑은 공포여서 나는 거울 밖으로 걸어 나온다 몇 걸음도 걷지 못하고 나를 두고 거울의 밤 속으로 사라진 얼굴이 벌써 그립다”, “거울 속에서 얼굴이 달린다 가도 가도 끝없는 거울이다 거울의 풍경이 바뀌지 않는 것은 안이 온통 사막이기 때문이다”, “방은 거울이다 / 방의 어디에서나 내가 보인다 / 나는 늘 구석구석의 내가 어리둥절하다” 거울 뿐만이 아니라 물론 공기도, 전조도, 초현실적 디스토피아도 여전하다. 그러나 그것은 동어반복이 아니다. 진화(進化)다. 시인 스스로도 밝혔듯이 이미지의 진화다. “이미지는 스스로 운동한다. 평면적이고 수동적인 풍경들은 스스로의 운동을 통해 입체적이고 능동적인 이미지가 된다. 즉 나만 풍경을 들여다보는 단방향이 아니라 풍경 스스로가 제 속을 열어 보여주는 쌍방향이 된다. 점층적으로 변화하면서, 이미지는 진화한다.” 이 원과 나는 서태지와 자코메티와 존 배와 영화 와 와 키냐르의 소설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예의 ‘입체적이고 능동적인’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우리는 사이보그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사이보그는 말한다. 아니 외친다. 사이보그처럼 존재하는 인간들은 참을 수 없다고, 견딜 수 없다고. 저물녘, 헤어질 곳에 도착하기 위해 그녀와 함께 여전히 더운 거리를 걸었다. 그 시각 미처 알지 못했지만, 해와 달과 지구, 개기일식이 일어나고 있었다. 며칠 뒤 함께 하늘이라도 올려볼 걸 그랬다는 메일을 보내자, 그녀는 애니메이션 을 보고 ‘미래에서 기다릴게’라는 대사를 메모해 두었다는 답장을 보내왔다. 지난겨울, 시인 오규원 선생의 부음을 들었던 날, 빈소를 찾지 못한 나는 종일 그의 시집들을 꺼내 읽었다. 시인 이 원에 대한 글의 마무리를 시인 오규원의 시로 대신하는 것 - 우리의 도구가 결국, 끝내, ‘언어’이기 때문이다. “개울가에서 한 여자가 피 묻은 / 자식의 옷을 헹구고 있다 물살에 / 더운 바람이 겹겹 낀다 옷을 / 다 헹구고 난 여자가 / 이번에는 두 손으로 물을 가르며 / 달의 물때를 벗긴다 / 몸을 씻긴다 / 집으로 돌아온 여자는 그 손으로 / 돼지 죽을 쑤고 장독 뚜껑을 / 연다 손가락을 쪽쪽 빨며 장맛을 보고 / 이불 밑으로 들어가서는 / 사내의 그것을 만진다 그 손은 / 그렇다 - 언어이리라” - (오규원의 시, ‘손-김현에게’ 전문)               ● 이원 시인 약력   1968년 경기도 화성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성장했다.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와 동국대학교 문예대학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1992년 을 통해 등단했으며, 시집 , , 를 출간했다. '현대시학 작품상'과 '현대시 작품상'을 수상했다.     ////////////////////////////////////////////// 접시 안의 달걀 / 이원     둥근 접시 안에 둥근 달걀 세 개가 담겨 있다 서로 닿으면서 불시착한 소행성처럼 머뭇거린다 흰 껍질에는 평화와 우울이 오래된 비닐처럼 붙어 있다 달걀과 달걀의 벌어진 사이를 비집고 공기들이 블록처럼 쌓인다 관절이 없는 것들에게서 비린내가 난다 뜨겁고 동그랗게 갇힌 비명       오토바이 / 이원   왕복 4차선 도로를 쭉 끌고 은색 오토바이가 굉음을 내며 질주한다 오토바이의 바퀴가 닿은 길이 팽창한다 길을 삼킨 허공이 꿈틀거린다 오토바이는 새처럼 끊긴 길을 좋아하고 4차선 도로는 허공에서도 노란 중앙선을 꽉 붙들고 있다 오토바이에 끌려가는 도로의 끝으로 아파트가 줄줄이 따라온다 뽑혀져나온 아파트의 뿌리는 너덜너덜한 녹슨 철근이다 썩을 줄 모르는 길과 뿌리에서도 잘 삭은 흙 냄새가 나고 사방에서 몰려든 햇빛들은 물을 파먹는다 오토바이는 새처럼 뿌리의 벼랑인 허공을 좋아하고 아파트 창들은 허공에서도 벽에 간 금을 필사적으로 붙잡고 있다 도로의 끝을 막고 있던 아파트가 딸려가자 모래들이 울부짖으며 몰려온다 낙타들이 발을 벗어들고 달려온다 그러나 낙타들은 우는 모래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고 모래들은 울부짖으면서도 아파트 그림자에 자석처럼 철컥철컥 붙어간다 모래도 뜨겁기는 마찬가지여서 오토바이는 허공에 제 전 생애를 성냥처럼 죽 그으며 질주한다 아파트는 허공에서도 제 그림자를 다시 꾸역꾸역 삼키고 있다       나는 클릭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 이원     잉크 냄새가 밴 조간신문을 펼치는 대신 새벽에 무향의 인터넷을 가볍게 따닥 클릭한다 신문 지면을 인쇄한 모습 그대로 보여주는 PDF 서비스를 클릭한다 코스닥 이젠 날개가 없다 단기 외채 총 500억 달러 클릭을 할 때마다 신문이 한 면씩 넘어간다 나는 세계를 연속 클릭한다 클릭 한 번에 한 세계가 무너지고 한 세계가 일어선다 해가 떠오른다 해에도 칩이 내장되어 있다 미세 전극이 흐르는 유리관을 팔의 신경 조직에 이식 몸에서 나오는 무선 신호를 컴퓨터가 받는다는 12면 기사를 들여다보다 인류 최초의 로봇 인간을 꿈꾼다는 케빈 워윅의 웹 사이트를 클릭한다 나는 28412번째 방문객이다 나도 삽입하고 싶은 유전자가 있다 마우스를 둥글게 감싼 오른손의 검지로 메일을 클릭한다 지난밤에도 메일은 도착해 있다 캐나다 토론토의 k가 보낸 첨부 파일을 클릭한다 붉은 장미들이 이슬을 꽃잎에 대롱대롱 매달고 흰 울타리 안에서 피어난다 k가 보낸 꽃은 시들지 않았다 곧바로 나는 인터넷 무료 전화 dialpad를 클릭한다 k의 전화번호를 클릭한다 나는 6589 마일리지 너머로 연결되고 있다 나도 누가 세팅해놓은 프로그램인지 모른다 오른손으로 미끄러운 마우스를 감싸쥐고 나는 문학을 클릭한다 잡지를 클릭한다 문학 웹진 노블 4월호를 클릭한다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어딘가에 샘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라고 표지의 어린 왕자는 자꾸자꾸 풍경을 바꾼다 창을 조금 더 열고 인터넷 서점 알라딘을 클릭한다 신간 목록을 들여다보다 가격이 20% 할인된 폴 오스터의 우연의 음악과 15% 할인된 가격에 르네 지라르의 폭력과 성스러움을 주문 클릭한다 창밖 야채 트럭에서 쿵쿵거리는 세상사 모두가 네 박자 쿵착 쿵착 쿵차자 쿵착 나는 뽕작 네 박자를 껴입고 트럭이 가는 길을 무심코 보다가 지도를 클릭한다 서울에서 출발하는 길 하나를 따라가니 화엄사에 도착한다 대웅전 앞에 늘어선 동백 안에서 목탁 소리가 퍼져 나온다 합장을 하며 지리산 콘도의 60% 할인 쿠폰을 한 매 클릭한다 프린터 아래의 내 무릎 위로 쿠폰이 동백 꽃잎처럼 뚝 떨어진다 나는 동백 꽃잎을 단 나를 클릭한다 검색어 나에 대한 검색 결과로 0개의 카테고리와 177개의 사이트가 나타난다 나는 그러나 어디에 있는가 나는 나를 찾아 차례대로 클릭한다 광기 영화 인도 그리고 나………나누고 ……나오는…나홀로 소송……또 나(주)… 나누고 싶은 이야기……지구와 나………… 따닥 따닥 쌍봉낙타의 발굽 소리가 들린다 오아시스가 가까이 있다 계속해서 나는 클릭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지금은 영혼을 팔기에 좋은 계절 / 이원     지금은 모든 것이 초록인 계절.모든 것이 초록으로 흔들리는 계절. 우리도 흔들리는 두 팔과 다리 몸통과 머리 그리고 두 손과 두 발이 있어요. 자르고 갈고 붙이고 맞추고 쇠나 플라스틱을 끼울 수도 있어요. 공구세트는 당일 배송 되요. 지금은 초록의 계절. 모든 것이 초록 아니면 안되는 계절. 살은 다 발라내고 싶은 계절. 팔 다리 몸통 머리 그런 분할은 너무 도식적이니 단면으로 지하 1층에서부터 옥상까지처럼 몸을 통째로 쓱 자르는거죠. 3천여 개의 칼이 완비된 칼마트에서 종합 조리용 장미목 식도세트를 팔고 있어요. 왼손잡이용 칼 사용법도 동영상으로 배울 수 있어요. 지금은 진초록의 계절. 나무들의 잎잎이 공포로 꽉 찬 지금은 영혼을 팔기에 좋은 계절. 쓰지 않는 영혼을 팔아 고원이나 북극으로 떠나기 좋은 계절. 바람이 좋아서요. 햇빛이 좋아서요.     시간에 관한 짧은 노트 1 / 이원    첫째날     해가 지기도 전에 별이 하나 떴다 그 옆에 새가 발자국을 콱 찍었다 둘 다 반짝거렸다 그 사이로  시간의 두 다리가 묻힌다 더 이상 별은 떠오르지 않았다 이해되지 않는 모국어 같은 순간이 있다    둘째날     흰 초생달이 서쪽에 떴다 그 달 아래 별도 하나 떴다 버려진 거울 속에 갇힌 지난 시간이 자꾸 운다 눈앞에서 허물어지고 금방 다시 지어지는 집들의 동쪽에도 별이 두 개 떠올랐다 그 곳으로 머리를 한데 모아 비벼대는 시간들 초록색으로 떨며 서서 지구의 지붕을 뒤지는 시간들 흰 달 위에 위태롭게 올라탄 외눈박이 별들    세째날    낮이 되어도 몸을 지우지 못하는 달이  하늘 밖에 떠 있다  창들이 화분을 허공에 내놓았다 내 앞으로  시간이 사람들을 이쑤시개처럼 쑤시며 지나갔다    넷째날    연이어 시간이 사람들을 이쑤시개처럼 쑤시며 지나갔다    다섯째날     달이 뜨지 않았다 달이 떴던 자리에서 시간의 녹슨 뼈대가 덜커덕 올라온다 공기들이 자주 길을 바꾼다 시간은 잘 구겨지는 금속인지도 모른다 꺼진 스피커처럼 둘러선 하늘에 녹이 슬어간다  사방에서 말더듬이 같은 별들이 돋아났다................  부패한 별들도 자기 자리를 잡는다    여섯째날    반달이 떴다 별똥별이 떨어져왔다 은색을 칠해 창앞에 걸어둔다 바람이 부니까 시간과 함께 달그락거린다 반달너머 하늘에도 상표처럼 납작하게 별 하나가 박힌다 순식간에 그 적막 안으로 시간이 돌멩이를 집어던진다 지나가던 사람들도 맞는다나?    일곱째날    휴일이었다  시간이 되감기 버튼을 눌렀다     Ghost World / 이원   겨울밤 차고 미끄러운 불빛과 차고 울퉁불퉁한 시간을 짝짝이로 신고 다리를 건너 쇼핑몰에 간다   쫄깃쫄깃한 고단백 눈알 통조림을 두 캔 산다 캔을 안고 있다 보면 어느 별에 몸이 닿기도 한다 눈알은 들소나 야생 고양이나 송골매의 것이라는 설이 분분하나 화성에서 온 짐승의 것이라는 풍문도 있다 먹게 되면 한시도 몸이 어두워지지 않는 붉은 색의 눈알을 나는 특히 좋아한다   나비 2천마리의 날개로 만든 분말을 한 병 산다 나는 서른다섯 번째 이 병을 산다 한 숟가락을 물 없이 삼키면 동남쪽에 폭우가 쏟아진다 다시 거기서부터 20리 떨어진 곳의 하늘에 해가 여럿 생겨난다 다시 거기서부터 50리 떨어진 곳에서 곡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그 곡소리를 일년 내내 듣게 되면 썩지 않는 영혼이나 심장을 갖게 된다   사과처럼 머리 꼭지를 사각사각 도려낼 수 있는 칼세트를 산다 혼자서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어 머리 깊숙이 칼날이 들어가도 육즙 한 방울 나지 않는다 불면과 두통이 심할 때 머리 꼭지를 둥글게 도려낸 후 뇌를 꺼내 씻을 수 있다 전문 의료기로 분류되어 있지는 않지만 서북쪽의 사철 내내 몽오리만 맺힌 채 꽃은 피지 않는 신품종 동백나무숲에 살고 있는 짐승들은 이 칼세트를 단체 구입한다 숲 밖으로 나오면 발소리만 나고 몸은 투명해지는 그들이 일년에 두 번이나 사들여 이 칼세트는 구입하기가 쉽지 않다   말굽 세트를 산다 약간의 빛이 스미는 곳에서 발목을 자른 뒤 끼운다 프리사이즈지만 의심하거나 두려워하면 맞지 않는다 말굽을 끼고 무엇이든 한가지만 간절히 원하면 바람의 길로만 다니는 좀비들과 놀 수 있다   낱개로 포장된 DIY 시간팩을 하나 산다 미로형으로 완성을 시키면 사방 7백리의 숲을 걸을 수 있으며 머리가 없고 몸이 새하얀 외짝신을 신은 사내들을 만날 수 있다 그들은 손 안에 외눈이 박혀 있다 그들이 주식으로 사용하는 심야 전기를 나에게도 나누어준 적이 있다   지금까지 보존하던 5천년 묵은 뿌리를 버리고 새로 5십년 짜리를 산다 이 신종은 흙이나 쇠나 유리 그 어디에서도 잘 자라며 1백 8가지 모양의 잎을 한꺼번에 달고 꽃은 필 때마다 달라서 그 종류와 빛을 헤아릴 수 없다   (『문학사상』 2002년 1월호)     시간과 비닐 봉지 / 이원    검은, 비닐봉지 하나, 길바닥을 굴러다닌다 계속해서 시간은, 길보다 먼저 다리를 뻗는다, 검은 비닐봉지, 이번에는 계단이 있는 곳까지, 굴러가더니 멈춘다 잠시 따갑게, 부스럭거린다 시간은 다리를, 양 옆으로 길을 벌리며 간다, 가다 간판, 밑에서 멈춘다 무방비 상태로 옷의 앞을 모두, 풀어놓은 채 시간은 계속되고, 있다며 비닐봉지, 검은 쓰레기가 있는 곳으로 굴러 들어간다, 한참 나오질 않더니 검은, 그림자를 흔들며 헤집으며, 나무 밑에 멈춰 있다, 그곳에서 시간과, 비닐봉지가 같은 색으로 만난다, 나무에 등을, 기댄 시간의 한쪽 다리가 무릎에서, 잘려 있다 뒤를 보니 나무의, 중간쯤에 다리를 접어 올리고, 있다 비닐봉지는 여전히, 나무 밑에 머물러 있고 몸을 앞으로, 숙인 시간은 무엇인가를 뒤로, 껴안고 있다 1992년 『세계의문학』가을호 당선시       3월과 나에 관한 짧은 노트 4 / 이원      허공이 흔들리지 않는다 하늘도 흔들리지 않는다 흔들리는 것이 없어 숨 막힌다 3월은 수요일에 시작되었다 다시 수요일이 시작되었다 다시 수요일이 돌아왔다 수요일과 수요일 사이에 여섯 개의 단지가 들어 있다 피는 말라붙었고 돌아온 수요일에서만 피 냄새가 난다 돌아온 탕아에게서는 낯선 피 냄새가 난다 탕아는 돌아올 자격이 있고 피는 낯설어야 신선하다 돌아온 수요일은 3월의 첫 번째 탕아이고 곧 낯선 피 냄새로 지상이 흔들릴 것이다    -계간 정인문학 2006년 여름호 발표-     3월과 나에 관한 짧은 노트 5 / 이원     3월이 왔고   3월1일이 왔고   계속해서 2일이 왔고   그렇게 열아홉 번의 낮과   열아홉 번의 밤이 왔고   지금 스무 번째의 낮이 왔다   열아홉 번의 낮과 밤은   자궁 속을 빠져나오고 있는 태아 같아서   어느 쪽이 자궁인지 어느 쪽이 태아인지   분간이 되지 않아서   열아홉 번의 낮과 밤은   하늘 끝으로 달려가고 있는 길 같아서   어느 쪽이 길인지 어느 쪽이 하늘인지 분간이 되지 않아서   열아홉 번의 낮과 밤이 되었고   스무 번째 낮은 스무 번째 밤과 구분이 되지 않을 것이어서   아직은 자궁이고   태아이고 길이고 하늘이다   계간 정인문학 2006년 여름호 발표     즐거운 인생 1 / 이원   -창세기                                              첫째 날 신은 빛과 어둠을 복제했다 빛과 어둠 속에는 신의 소유가 아닌 것들이 수두룩했다 순식간에 천지간이 있었다 달이 있고 해가 있었다 그 순간부터 불법복제물이 성행했다 의외의 사태는 신이 보시기에 좋았다 둘째 날 신은 풍문을 복제했다 어디할 것 없이 천지간은 풍문에 휩싸였다 유력한 진원지가 안개구름 하수구 그림자 거울로  쉴 새 없이 바뀌었다 심심하지 않아 신은 보시기 좋고 놀기 좋았다 셋째 날 신은 짐승을 복제했다 전지전능했으므로 기분 나는 대로 복제해 천지간에 던졌다 머리 몸통 다리가 한 개에서부터  서른두 개까지 제 각각이었으나 피비린내 나는 것들이 모두  여기에 속했다 우두커니 흙을 파먹는 것 서로 몸속을 파고드는 것 제 살을 쪼아 먹는 것까지 제각각이었으나 닮은 것들은 보자마자 서로 핥거나 울부짖었다 넷째 날 무허가 신들도 짐승을 복제했다 한밤이 되자 먹다 남은 흙과 휘발유와 신나와 소다와 방부제와 어둠과 우리밀가루를 섞어  반죽했다 무엇이든 듬뿍듬뿍 넣었다 신의 가까이에 고압전류가 흐르고 있다는 풍문이 무성했으므로 짐승들은 하늘 쪽으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발아래가 풍성해졌으므로 신이 보시기에 좋았다 다섯째 날 신은 눈물을 복제했다 지난밤의 과음으로 목이 말랐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 내내 신은 제 눈물을 받아먹었다 여섯째 날 신은 인간을 복제했다 한참이 지나자 나침반이 동이 났다 인간  만들기에 흥이 난 신은 많은 수를 나침반을 넣지 않고 그대로 마무리했다 이들의 작동 버튼은 고의라기보다는 신의 실수로 눌러졌다는 풍문이 우세했다 몸에 나침반이 들어 있지 않은 인간들은 자주 길을 잃게 되었다 일곱 째 날 인간은 새우깡을 만들었다 이것에서는 찝질한 냄새가 났다 오래 전에 죽은 영혼에 배여 있던 몸 냄새라고도 했다 누구나 이것을 먹으면 허기가 없어졌다 2003 제48회 현대문학상 수상시집 중에서       추파춥스 / 이원   교복을 입은 아이가 깨진 보도블록 위에 추파춥스를 빨며 서 있었다 여자아이의 그림자를 차들이 계속해서 짓이기고 지나갔다 한 사내아이가 돌을 던지자 여자아이의 두 다리가 쨍그랑 깨져버렸다 돌 안에서 낯선 발소리가 다급하게 들려왔지만 여자아이는 여전히 추파춥스를 빨며 서 있었다   2003년 현대문학상 수상시집 중에서     목 잘린 부처는 하루 종일 힙합만 듣는다 / 이원     목이 잘린 불상의 얼굴 하나가 내게 왔다. 화두를 붙들고 있었을 몸은 다른 곳에 두고, 아래로 내려뜬 눈과 공기를 가두고 있는 코와 살며시 다문 입과 잘린 목까지 펄럭이며 내려오는 귀만 가지고 왔다. 부처를 동백나무 옆에 놓아두었더니 부처가 없는 왼쪽으로만 꽃이 핀다. 요즘 접시에 깔린 명사산 모래 속에 겨우 목을 담그고 있는 부처는 스피커와 모니터 사이에서 산다. 하루 종일 힙합만 듣는 부처를 디지털 카메라로 찍어보니 왼쪽 관자놀이에 흰색 플러그가 꽂혀 있다 목 잘린 부처는 힙합을 들으며 러시안룰렛 게임 중이다.  2003년 현대문학상 수상시집 중에서   여자가 간다 / 이원       등에 짐을 지고 한 여자가 언덕을 내려온다 땀이 흥건한 여자의 가죽을 햇빛이 옥수수 껍질처럼 벗긴다 사나워진 햇빛에 찔린 새들은 뜨거운 다리를 떼어내지 못하고 날아간다 상한 냄새가 진동하는 여자는 몸에서 쉬지 않고 길을 뽑아낸다 길은 연탄집게 같은 여자의 맨발이 지나간 곳에서만 생겨난다 살로 만들어진 물컹거리는 길 아래로 지붕들이 모여든다 여자의 몸에서 두 개의 유방이 나란히 허공으로 떠오른다 유방은 하늘 속을 파고 들어간다 떠도는 두 개의 봉분이 된다 허공에서도 지우지 못하는 대지의 시간을 피해 새들이 급강하한다 하늘에는 몸의 길이 끊긴 유방이 떠가고 언덕에는 녹슨 자궁이 덜그럭거리며 떠밀려온다 같은 풍경을 담고 썩지도 못하는 창 근처까지 온 새들은 먼저 날개부터 감춘다       쇠 난간에서는 비린내가 난다 / 이원     쇠 난간 끝에서 새 한 마리가 중심을 잡는다 그 옆에 화초의 동그랗고 빨간 열매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햇빛들도 여물고 있다 여무는 것들에게는 씨가 생긴다 중심이 들어선다 새는 눈에 씨를 심어놓고 있다 두 다리 위에 떠 있는 새의 눈에 확확 달궈진 햇빛이 박힌다 난간의 중력을 빨아들이고 있는 새는 온몸이 검다 흘러내리는 살은 난간에 거꾸로 매달린 그림자에 달라붙는다 햇빛에 숨구멍을 모조리 틀어막힌 화초가 사방에 비린내를 풍긴다 공기들이 몰려들어 단물을 핥는다 하늘을 벗을 사이도 없이 구름들은 몸 안 가득 물고 있던 칼날들을 뭉텅뭉텅 떨어뜨린다 남은 살을 추켜올리며 새는 난간 밖의 허공으로 들어간다       사랑 또는 두 발 / 이원        내 발 속에 당신의 두 발이 감추어져 있다    벼랑처럼 감추어져 있다    달처럼 감추어져 있다    울음처럼 감추어져 있다               어느 날 당신이 찿아왔다               열매 속에서였다               거울 속에서였다               날개를 말리는 나비 속에서였다               공기와 몸 속에서였다               돌멩이 속에서였다      내  발 속에 당신의 두 발이 감추어져 있다    당신의 발자국은 내 그림자 속에 찍히고 있다    당신의 두 발이 걸을 때면      어김없아 내가 반짝인다 출렁거린다    내 몸이 쓰라리다   시집『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오토바이』(문학과지성사, 2007) 중에서       길 또는 그물 / 이원       길은 그물이다 몸을 가진 것들은 걸린다 걸려본 발이 길을 알리라 길 가운데 선 청동의 동상에도 그물의 그림자가 비친다 허리에 찬 위풍당당한 칼도 예외는 아니다 공기가 포장지처럼 바스락거린다 길 밖의 키작은 채송화는 다른 길을 만든다 간간히 꽃망울 잎망울까지도 물과 흙을 담은 길이다 길의 무너지는 무덤들이 꽃속으로 스며든다 이파리와 아파리 사이에서 조금씩 벌어지는 하늘이 새하얗게 바랜다 공기는 얼룩이 져 있다 어김없이 하늘을 따라가는 길 가파른 매듭을 보여주고 매듭은 깊은 골짜기를 몰고온다 높은 곳의 웅덩이에서 몇 개의 자루를 지고 가는 구름 구름속으로 지상의 그물이 삭아내린다   버스정유장에서 만난 다섯 소녀 / 이원     1 햇빛이 꿰매고 있는 소녀의 얼굴 가장자리가 주글주글하다 2 횡단보도 신호등은 붉은색이고 횡단보도 끝을 밟고 소녀는 혀를 빼물고 섰다 오래된 나무 그림자는 연한 소녀를 두서없이 뜯어낸다 차 소리가 소녀의 혀를 계속 자르며 지나간다 소녀의 눈에 부서진 시간이 짝짝이로 박힌다 소녀의 얼굴이 모래의 시간으로 출렁인다 갑자기 신호등이 바뀐다 3 나무와 길에는 금이 가고 있다 입에 추파춥스를 문 소녀는 상하고 있는 등을 벽에 기댄다 시간은 소녀의 이마에 구멍을 뚫고 있다 살냄새도 모르면서 구름은 시간의 거울에 걸린 소녀의 몸으로 들어가고 있다 4 버스정류장에 서 있는 소녀의 치마가 확 올라간다 속에 자주색 팬티를 입었다 뒤집혀진 치마속에 사과가 넷 그려져 있다 사과에는 모두 초록색 이파리가 달렸고 시간이 베어 물었는지 사과 하나는 절반만 남아 있고 소녀의 치마 밖에서는 붉은 장미가 흩날린다 문이 닫힌 버스를 향해 뛰어가는 소녀의 다리는 한쪽은 검고 한쪽은 노랗다 5 한쪽 눈에는 어둠을 끼고 한쪽 눈에는 햇빛을 끼고 한쪽 귀에는 휴대폰 한쪽 귀에는 바람의 노래 한쪽 다리에도 무릎까지 오는 얼룩말 무늬 양말 얼룩말 무늬 속에 사육된 시간 한쪽 다리에는 덜그럭거리는 시간의 관절을 그대로 달고 소녀는      거울 속에서 낙타는 어디까지 갔을까 / 이원        사막의 달은 차고 환해 내가 들여다봐도 내가 나오지 않는 거울이야. 인공관절을 두 개  박고 병원 문 앞에서 다시 일어서려는 낙타와 그 낙타가 눈 속에 급히 쑤셔 넣은 모래의 허공과 어제의 표지로 뒹구는 뼈와 사막을 뜯어먹는 바람이야. 나도        거울 속으로 밧줄을 늘어뜨려        거울 속으로 낙타를 산 채로 들여보내        거울 속으로 돌을 떨어뜨려      달의 사막은 미끄러워 숨차 당신의 그림자만 깔려있는 거울이야. 숫자가 박힌 문짝과 핏빛 미로와 낙타의 울음소리가 묻은 달빛과 죽은  자의 귀 두 개와 귀에 붙어 있던 바다야. 나도          몸 속에서 손에 잡히는 해는 건져내        모자와 말발굽쇠는 집어내        죽은 양의 가죽을 벗겨 거울 밖에 내걸어          우리들이 저 거울의 모뎀을 공유하고 있지 않다면        우리들의 몸이 쉴 새 없이 두려움의 속에서 끄집어내는 것이        이 세계가 아니라면        이 한밤에 거울이 대용량의 길을 장착했겠니   시집『야후!의 강물에 천 개의 달이 뜬다』(문학과지성사, 2001)  중에서     나이키 1 / 이원     한 무리의 아이들이 자신들의 그림자가 달라붙어 있는 벽을 향해 뛰어간다 입을 항문처럼 오므렸다 폈다하며 두 다리를 번갈아 들었다 내렸다 하며 뛰어간다 아이들의 그림자는 계속 벽을 밀고 있다 미끄러져 내리지는 않는다 길들은 벽을 피해 양쪽으로 갈라진다 물렁한 벽인 하늘이 녹아내린다 짓무른  길의 가랑이 속에서 그림자를 죽죽 늘이며 아이들은 함성을 지르며 뛴다 함성과 발소리가 아이들 앞에 순식간에 벽이 되어 선다 그러나 자궁을 찢고 나온 적이 있는 아이들은 속도를 줄이지 않는다 아이들의 몸에 하늘이 고름처럼 엉겨붙는다 아이들의 몸이 점점 더 불어난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세운 벽을 뚫고 다시 벽을 세우고 다시 뚫는다 아이들은 진득진득하고 달콤하다 몸에 서 떨어져본 적이 없는 그림자도 벽을 계속 밀어낸다 벽 위까지 튕겨 오르던 그림자는 벽을 뛰어넘지는 못한다 그러나 그림자는 벽 속으로 스미지 않는다 높고 가파른 벽 너머는 보이지 않는다 아이들은 벽 너머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뛴다   시집『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오토바이』(문학과지성사, 2007) 중에서     월요일 / 이원     여자는 서쪽 허공을 낙타처럼 잡아끌고 이곳까지 왔다 여자는 사방에서 유리가 반짝이는 거리를 지나왔다 유리가 있는 한낮과 길은 계속되었고 여자의 몸은 텅텅 비어 있었다 그 속으로 쉴 새없이 기름을 실은 탱크로리가 달려갔다 몸 속으로 차오르는 것은 어둠이어야 했다 그곳을 향해 여자의 밸브는 자주 열렸다 여자의 몸은 밤의 전극에 닿고 싶었다 그러나 여자의 몸은 오랫동안 낮과 밤을 갈아 끼우지 못했다 여자의 발자국은 몸에 새겨졌고 도시에서 빼내고 있는 여자의 두 다리는 녹이 슬어 있었다       얼굴이 그립다 / 이원       얼굴이 거울을 열고 들어간다   나도 따라 들어가려고 하니 얼굴은 어느새  거울을  잠가버린다 거울로 들어 가는 문을 찿는다 거울은  미끄럽고  태연하다 구름무 늬가 양각된 타일이 얼굴의 사방에  붙는다 얼굴은 벽 의 시간이 된다 나는 이제 막 내  등까지  도착한 오늘 의 밤에 기댄다  밤은 나를  뒤적이지  않는다 내가 밤 을 버릴 수 없는 것은  내가  공포이기  때문이다 공포 는 사랑이며 공포는 껴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아는 지 거울 속의 얼굴이 나 대신 입을  벌린다  그곳의 밤 이 얼굴을 한 줄 한 줄 벗겨낸다  맨살이 새잎 나고 꽃 필 것처럼 깜깜하다 거울로 들어가는 문을 찿지 못해 내게는 오늘의 밤이 계속된다 얼굴이  낯설어진다 내 가 거울 밖으로 고개를 다  돌리기도  전에 거울 속의 얼굴이 뒤통수를 보인다 사랑은 공포여서  나는 거울 밖으로 걸어나온다 몇 걸음도 걷지 못하고 나를 두고 거울의 밤 속으로 사라진 얼굴이 벌써 그립다 시집『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오토바이』(문학과지성사, 2007)      몸 밖에서 몸 안으로 / 이원             새벽은 어둠의 녹슬어가는 몸이다 사람들은 이 몸을 희망이라고 믿는다 믿음은 오해일수록 좋다 믿음이라는 허방은 사방에 널려 있다   몸이 닿았던 자리는 썩어 들어간다 남김없이 썩어 들어간 허공을 사람들은 하늘이라고 부른다 높은 곳을 찾아가는 것은 하늘에 좀더 가까워지고 싶은 몸 썩은 냄새에 이끌리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몸은 죽음이 썩히고 있는 삶이다 무엇이 간절해질 때 사람들은 잊었던 그 냄새를 찾는다   길은 낯선 곳으로 못 나간다는 비명이다 사람들은 빈 땅마다 보도블록을 깔고 더 이상 그곳을 길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래서 불빛이 아래 더 이상 길인 곳은 없다   죽음은 끝가지 관념이다 제 품에서 죽어간 몸도 마지막 숨을 넘기는 제 몸도 관념이다 관념을 벗은 몸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순간에 사람들은 먼저 제 죽음을 만난다     몸이 썩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타일을 몸에 붙인다 사람들끼리 몸을 만지면 단단하고 미끄럽다   손은 바닥에 지도를 감추어 두고 있다 사람들은 만나면 서로 은밀한 길을 맞대어 본다 그러나 서로의 길이 보일까 봐 손을 위아래로 세차게 흔든다 몸의 길은 쏟아지지도 뒤엉키지도 않는다   뼈가 필사적으로 붙들고 있어 살은 어두워지는 법이 없다 살이 어두워지려면 오랫동안 뼈와 함께 흐르는 물에 씻겨야 한다   입: 몸을 벗어버리고 싶은 간절한 구멍   몸 : 입을 메워버리고 싶은 간절한 무덤 (시집 :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오토바이』, 문학과지성사, 2007.6)           인연(불새OST) / 이승철 눈을 떠 바라보아요. 그대.. 정말 가셨나요.. 단 한번 보내준 그대 눈빛은 날 사랑했나요.. 또 다른 사랑이 와도 이젠.. 쉽게.. 허락되질 않아 견디기 힘든 걸.. 운명 같은 우연을 기다려요.. 지워질 수 없는 아픈 기억들.. 그리워하면서도... 미워하면서도.. 나,, 널....... 너무 사랑 했었나 봐요.. 그대.. 보고 싶은 만큼 후회되겠죠. 같은 운명처럼 다시 만난다면... 서러웠던 눈물이 가슴속에 깊이 남아 있겠죠 날 위해 태어난 사람.. 그대.. 이젠 떠나줘요.. 힘들어.. 지쳐도.. 그댈 그리워하며 살아가요 지워질 수 없는 아픈 기억들.. 그리워하면서도.. 미워하면서도.. 그댈.. 난 사랑할 수 없었나 봐요 이젠.. 그저 바라볼 수밖엔 없겠죠.. 나 살아가는 동안 다시 만난다면 차마 볼 수 없음에.. 힘겨운 눈물을 흘리죠.. 난 아직 정말 그댈 사랑해요
1419    [안개 푹 설레이는 아침 시 한컷]- 옛 엽서 댓글:  조회:4430  추천:0  2016-05-12
옛 엽서 - 조병화(1921~2003)   온종일 비가 내렸습니다 연락선이 왔다 간다는 항구로 남행열차는 쉴 새 없이 달렸습니다 삼등실 좁은 차창에 빗물이 흐르고 흐르고 수족관에 뜬 어린 시(詩)같이 싹 튼 보리밭이 보이고 포플라가 보이고 늙은 산맥이 보였습니다. 말소리도 잠들어 버린 차간에     나는 중앙아세아 어느 바다로 가는 것일께니 하고 졸음 없는 눈을 감아 보았습니다. 기억은 생을 풍경의 액자로 보여준다. 빗물 흐르는 삼등열차를 타고 “수족관에 뜬 어린 시”와 “늙은 산맥”을 스치다가, “중앙아세아 어느 바다”로 향해 가는 옛 엽서의 풍경은 얼마나 고즈넉한가. 엽서가 사라진 세상은 폭이 없는 순간의 이미지들로 가득해서 기억이 발효될 시간을 주지 않는다. 이 시는 무려 41년 전(1975년)에 구입했던 옛 시집에서 발견한 것이다. 이 화면 위에, 당시 까까머리 “고딩”이었던 한 문청(文靑)의 풍경이 겹친다.  
1418    왁자지껄한 평화속에서 꽃 피우라... 댓글:  조회:3920  추천:0  2016-05-11
사방의 평화                       /이원(1968~ ) 아, 그때 나는 왜 허겁지겁 뛰어들어가지 못했을까 동평화 청평화 신평화 사방에서 터져나오는 왁자지껄한 평화 속으로... -------------------------------------------------------------------------------- 일찍이 영랑은 '찬란한 슬픔'으로 이 땅의 만개한 모란꽃 속의 봄을 노래했다. 그런데 "나는 클릭한다. 고로 존재한다"며 노마드 시대를 살고 있는 젊은 시인은 '왁자지껄한 평화'를 동.청.신평화 시장에서 노래하고 있다. 너무 많은 평화는 유사품이기 쉽다. 시인이 허겁지겁 뛰어들지 못한 사방에서 터져나오는 왁자지껄한 평화는 구호이기 쉽다. 그런데 얼마 전, 대낮에 잠시 오수에 빠졌다가 전신을 옥죄는 불안으로 소스라쳐 눈을 뜬 적이 있다. 너무 조용한 사방. 쪽 고른 호루라기 소리. 전쟁이 난 것 같았다. 아니면 무슨 도발이라는 이름의 사건이? 커튼을 밀치고 아파트 마당을 내려다보았다. 민방위 훈련이 실시되고 있었다. 오오, 인간이 사는 세상은 소음이 평화이고 침묵이 비상이었다. 이 시는 역설과, 펀(말놀이)이 주는 표현주의의 재미도 배제할 수 없다. 자, 이제 망설이지 말고 어서 거품과 소음 속으로 풍덩 뛰어들거라. 거기 한 송이 '찬란한 슬픔'의 꽃을 피우라. 나의 젊은 시인이여. 문정희 
1417    아이는 삶으로 뛰여든다... 댓글:  조회:4106  추천:0  2016-05-10
주저앉고 싶은 상태를 넘어 그냥 주저앉게 되는 순간이 있어요. 척추는 세워져 있는데 어찌된 일입니까. 자꾸만 흐트러져서 곧 흩날릴 것만 같은, 어찌할 바를 모를 때가 있어요. 그럴 때는 황급히 혼자가 되어, 혼자가 아닌 것처럼 오른손과 왼손을 맞잡아 보기도 하고 시선을 조금 멀리 던져보는 시늉도 하지요. 그러는 어느 순간 팔을 뒷목을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손길이 있어요. 따뜻한 물속 같아요. 다시 말끔해지는 기분. 알고 있는 느낌이에요. 품에 안고 가만가만 아기를 씻기지요. 품을 떠나 물에 들어가도 아기는 이내 울음을 그치지요. 손을 뻗으면 닿을 곳이 있거든요. 아기가 아이가 되고, 아이가 어른이 되는 속도로 부모는 노인이 됩니다. 자식은 어른이어도 아이입니다. 새로 씻기는 손이 있기 때문이지요. 무너져 내리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생각나지 않을 때 양동이와 스펀지 빗과 타월을 준비하고 어김없이 나타나는 손이 있습니다. 조상彫像에 생기를 불어넣으면 그 어느 때보다도 깨끗해져서 어김없이 그 팔에서 뛰어나오는 몸이 있습니다. 혹자는 그 반복을 부모의 역사라고도 하고, “오 그 주의 깊은 조심성,/귀여운 속임수,/그 사랑스런 투쟁!”은 실은 서로의 고도의 전략이기도 하지요. 어쨌거나 지상에서 가장 오래된 사랑의 역사임에는 틀림없어요. / 이원 시인   [ 2016년 05월 11일 08시 03분 ]   이미지를 클릭하면 다음이미지가 보여집니다. 11 / 1   다섯 쌍둥이   [ 2016년 05월 11일 08시 03분 ]   이미지를 클릭하면 다음이미지가 보여집니다. 11 / 6   다섯 쌍둥이  
1416    나무들은 때로 불꽃 입술로 말한다... 댓글:  조회:4224  추천:0  2016-05-10
[시 창작의 실제] 2.시는 언어로 쓰여진 문학작품이다                                                       /김영천    시는 언어로 쓰여진 문학 작품 오늘까지는 몸을 푼다는 형식으로 시의 전반에 대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내용을 모두 아시는 분들은 강의 도중에 있는 시들을 새로 읽게 되는 재미로 강의 를 들으시기 바랍니다. 이왕에 시작한 공부를 빠지지 않고 계속해나가기 위해서는 스스로 시간을 정해놓고 가능하면 그 시간이면 규칙적으로 공부를 하시도록 자신과의 약속을 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2.시는 언어로 쓰여진 문학작품 문단에서나 일반 학계에서조차 시의 위기를 주장해 온 것이 사실이긴 합니다. 사실 오늘 날의 시의 독 자는 소설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우 적은 실정입니다. 그러나 사이버 세상의 발전은 다시 시의 발전을 불러 일으키고 있습니다. 홈페이지마다 작고 큰 시와 시인의 방을 갖고 있으며, 아름다운 시화가 많이 저장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길고 지루한 산문보다는 짧고 얼른 읽어서 감동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시란 장르가 사이버세대의 취향에 맞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시인의 입장에선 아주 바람직한 일로 보고 있습니다. 때문에 등단한 정식 시인은 아니더라도 시에 대해서 공부를 하고, 나아가서 시를 써서 자기의 감정을 옮길 수 있으면 더욱 좋으리라 생각 합니다. 여기에서 안도현님의 최신작 을 한 번 읽어보 기로 하겠습니다. 장하다. 목련 만개한 것 바라보는 일 이 세상에 와서 여자들과 나눈 사랑이라는 것 중에 두근거리지 않은 것은 사랑이 아니었으니 두 눈이 퉁퉁 부은 애인은 울지 말아라 절반쯤만, 우리 가진 것 절반쯤만 열어놓고 우리는 여기 머무를 일이다 흐득흐득 세월은 가는 것이니 참 좋지요? 한참 피어나는 목련이나 그 사이로 아직 절반쯤만 열고 있는 꽃봉오리, 흐득흐득 지는 꽃잎들. 뭐 그런 것이 연상되지요? 여러분도 열심히 공부하시면 이런 시를 쓰시게 될 것입니다. 시는 언어로 쓰여진 예술의 한 장르입니다. 따라서 시가 무엇이냐를 알려면 시의 언어가 무엇인가를 먼저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시의 언어란 결코 따로 있는 것이 아니면서도, 분명 또 일상의 언어와 구별이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장미꽃을 보면 다 아름다움을 느낍니다. "장미가 아름답다"고 쓰면 일상의 언어입니다. 그러나 그늘에 있는 장미의 아름다움이나, 비 맞은 장미의 아름다움, 또는 무리지어 핀 장미나 외롭게 한 송이만 남은 장미의 아름다움은 시적 언어 로만이 표현될 수 있을 것입니다. 친구집에 문상 가서 위로의 말을 전할 때, 그 상대방 의 대답 또한 여러가지 일 것입니다. 그냥 대답 없이 흑흑 울기만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 매우 슬프다든지, 말로 할 수 없다든지 할 것입니다. 이런 광경을 우리가 시적 언어 외에는 달리 그 감정 을 그대로 옮길 수가 없겠지요. 이렇듯 시는 일상의 언어로서는 표현하기 힘든 대상 의 어떤 실제를 특별한 언어를 통해 표현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지난 번 시창작 강의에서 아주 자세히 강의가 되었 으니 처음 오신 분들은 꼭 그 강의를 읽어보시기 바 랍니다. 참고로 지난 번 강의한 총 42강의 내용을 예습하는 차 원에서 제목을 열거해보면 1)시를 창작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2)사물을 바라보는 마음의 눈 3)언어와의 사랑 4)많은 문학적 경험을 하라 5)따뜻한 가슴으로 사물을 보라 6)多作-많이 써라 7)시창작의 바탕 8)시창작의 단계 9)시의 언어가 갖는 특성 10)이미지의 유형과 실제 11)이미지는 언어의 그림 12)이미지와 상상력 13)이미지가 시 속에서 하는 일 14)이미지의 종류 15)시와 비유 16)비유의 종류 17)시와 아이러니 18)시와 상징 19)시와 어조 잠시 쉬었다 가는 의미로 윤동주님의 을 읽어보겠습니다. 괴로운 사람아 괴로운 사람아 옷자락 물결 속에서도 가슴속 깊이 돌돌 샘물이 흘러 이 밤을 더불어 말할 이 없도다. 거리의 소음과 노래부를 수 없도다. 그신 듯이 냇가에 앉았으니 사랑과 일을 거리에 맡기고 가만히 가만히 바다로 가자. 바다로 가자. 시의 가장 중요한 본질은 그 것이 산문어에 비해 상대적으로 상상력을 많이 원용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시의 본질이 감정의 환기 및 상상력 의 깊은 원용이라 하는 것은 결국 시가 지녀야 할 다 른 조건들을 결정 시켜주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 것은 곧 시의 언어가 이미지, 상징, 은유,신화, 역설과 같은 방법에 의해서 형상화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시는 일차적으로 그 언어가 관념적이거나, 추상적, 직설적 진술이어서는 안됩니다. ⓐ내 마음은 슬프다. ⓑ내 마음은 벌레먹은 능금이다. 이 두 문장을 비교해보시기 바랍니다. 시를 공부하지 않은 분들은 처음 문장처럼 시를 씁니다. 그러나 이 것은 시적 언어가 아닙니다. 단순히 슬픔이란 감정을 사실대로 써놓은 것일 뿐이지요. 그러나 두번 째 글은 그렇지 않습니다. 시인 자신에게 환기된 독특한 감정이 형상화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표현을 할 수 있는 비결 은 시인이 그의 상상력을 통해서 자신의 체험한 바 정서적 반응을 은유법으로 표현할 수 있는데 있습니다. 아마, 강의를 처음 들어오신 분은 잘 모르는 소리 일 것이나 강의를 들어오신 분은 그냥 알아 들으 실 것입니다. 시를 많이 읽는 것이 좋은 시를 쓸 수 있는 비결 입니다. 강의도 중요하지만 도중 도중 들어있는 시들을 잘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이 번 강의는 지난 번 강의와 중복되어서는 안되 므로 자세한 강의는 지난번 강의를 참고하시고요. 내일부터는 지난 번 강의에 하지 못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강의하겠습니다. 좋은시 두 편을 소개하면서 오늘 강의를 마치겠습니 다. 좀 어려운 시라고 느껴질 것입니다. 그러면 왜 이런 시를 읽어보라고 할까하며 몇 번씩 읽어보십 시오. 사랑시는 쉽고 알기 좋지만 이젠 이런 시들을 자꾸 읽어보면 그 안에 삶이 있고 철학이 있답니다. 먼저 감태준님의 입니다. 쉬지 않는 것이 강이다 떠나면 이어서 오고 떠나면 이어서 온다 우리 곁에서 서러워하는 세월의 희망이 저기에 있다 우리 곁에서 서성거리는 눈물의 뿌리가 저기에 있다 아무도 돌아오지 못했지만 버스는 끊임없이 사람들을 실어내고 아무도 돌아오지 못했지만 그들을 닮은 아이들이 저 강가에서 놀고 있다 이기철님의 를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사랑하는 시간만 생이 아니다 고뇌하고 분노하는 시간도 끓는 생이다 기다림만이 제 몫인 집들은 서 있고 뜨락에는 주인의 마음만한 꽃들이 뾰루지처럼 붉게 핀다 날아간 새들아, 어서 돌아오너라 이 세상 먼저 살고 간 사람들의 안부는 이따 묻기 로 하고 오늘 아침 쌀 씻는 사람의 안부부터 물어야지 햇빛이 우리의 마음을 배추잎처럼 비출 때 사람들은 푸른 벌레처럼 지붕 아래서 잠깬다 아무리 작게 산 사람의 일생이라도 한 줄로 요약되는 삶은 없다 그걸 아는 물들은 흔적을 남기지 않고 흘러간다 반딧불 만한 꿈들이 문패 아래서 잠드는 내일이면 이 세상에 주소가 없을 사람들 너무 큰 희망은 슬픔이 된다 못 만난 내일이 등 뒤에서 또 어깨를 툭 친다 생은 결코 수사가 아니다 고통도 번뇌도 힘껏 껴안는 것이 생이다 나무들은 때로 불꽃 입술로 말한다 생은 피우는 만큼 붉게 핀다고 ==============================================================   349. 가을 억새 / 정일근                          가을 억새 - 경주 남산                                     정 일 근   때로는 이별하면서 살고 싶은 것이다 가스등이 켜진 추억의 플랫폼에서 마지막 상행선 열차로 그대를 떠나보내며 눈물에 젖은 손수건을 흔들거나 어둠이 묻어나는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터벅터벅 긴 골목길 돌아가는 그대의 뒷모습을 다시 보고 싶은 것이다 사랑 없는 시대의 이별이란 코끝이 찡해오는 작별의 악수도 없이 작별의 축축한 별사도 없이 주머니에 손을 넣고 총총총 제 갈 길로 바쁘게 돌아서는 사람들 사랑 없는 수많은 만남과 이별 속에서 이제 누가 이별을 위해 눈물 흘려주겠는가 이별 뒤의 뜨거운 개회를 기다리겠는가 하산길 돌아보면 별이 뜨는 가을 능선에 잘 가라 잘 가라 손 흔들고 섰는 억새 때로는 억새처럼 손 흔들며 살고 싶은 것이다 가을 저녁 그대가 흔드는 작별의 흰 손수건에 내 생애 가장 깨끗한 눈물 적시고 싶은 것이다.     정일근 시집 중에서    
1415    살구나무에 몸을 비벼본다... 댓글:  조회:4509  추천:0  2016-05-10
[시 창작의 실제] 1. 시란 무엇인가                              /김영천         1 시란 무엇인가 연 전에 제가 섬진강 시인 김용택시인을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또 작년엔 목포문협 행사에 와서 아주 짧게 강의를 하고 간 적이 있는데요. 그가 근무하는 학교는 섬진강가 언덕위에 있는 학교인데 아주 작은 미니 초등학교랍니다. 그래서 언젠가는 폐교가 될 위기에 처해 있는데 요즘 학생들이 자꾸만 불어나고 있다합니다. 그 학교 학생들이 전부 시인이 되어서 시집도 내고 한다는 소문에 글솜씨가 있는 아이들이 도시에서 전학을 오기 때문이지요. 그럼 이 시인은 그 아이들에게 어떤 시 교육을 시키는 것일까요? 그는 결코 아이들게게 따로 시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우선 그 자연을 보는 훈련을 시킨다고 합니다. 시간만 나면 산으로 강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자연을 보는 훈련을 시킨다는 것이지요. 그러고 나서 그 것들을 본대로 쓰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훌륭한 시가 나온다는 것이지요. 여기에는 시를 잘 쓰는 세 가지 이론이 들어있습니다. 그 하나는 많이 보고 많이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자연은 물론이지만 시집도 많이 읽으라는 것입니다. 간접 경험도 중요한 것이니까요. 둘째는 많이 써보는 것입니다. 많이 보았으면 또 본대로 쓴다면 많이 쓸 것은 분명하지요. 셋째는 아이들의 눈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아이들의 눈길은 순수하지요. 아무런 가식이 없습니다 시는 가식이 있으면 좋지 않은 시가 되기 쉽습니다. 이제 여러분도 좋은 시인이 되려면 많은 경험을 하셔야 합니다. 물론 지금까지의 많은 경험도 그 경험 중에 들어갑니다. 그 다음에 그 경험들을 시로 써내는 것입니다. 다만 순수한 마음으로요. 그렇다면 이렇게 우리가 공부를 하며 또 써보고자하는 시란 무엇일까요? 우선 우리 모두는 나도 시를 쓸 수 있을까요? 이런 질문을 하게 될 것입니다. 안도현님이 금년 새로 발간한 책에 나와 있는 이란 시의 첫 연을 보면 생각해보면, 딱 한 번이었다 내 열두어 살쯤에 기역자 손전등 들고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푸석하고 컴컴해진 초가집 처마 속으 로 잽싸게 손을 밀어넣었던 적이 있었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는 아무래도 초가집 지붕 처마 속으로 손을 넣어 참새를 잡던 경험을 그대로 늘어놓고 있습니다.아 무리 읽어보아도 그 경험을 그대로 옮겨 놓는 것 밖에는 없습니다. 이렇게 쓰는 것이 시라면 여러분이 못쓸 것이 무엇입니까? 안도현이라면 지금 제일 잘 팔리는 시인 중에 하나 이거든요. 또 시도 아주 잘 쓰는 시인입니다. 그러나 이 속에는 어렸을 때의 아름다운 추억이 들어 있습니다. 그는 처음으로 참새의 펄떡이는 심장을 손에 쥐고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고야 말았던 사랑이 들어있기에 시가 되는 것입니다. 김억이란 시인의 시를 한 번 볼까요. 오다 가다 길에서 만난 이라고 그저 보고 그대로 갈 줄 아는가. 이 것의 그의 시 의 첫 연입니다. 정말 너무 평범하고 일상적인 말입니다. 몇 행으로 구분해놓아서 그렇지 그저 한 줄로 늘어놓으면 누가 시라고 하겠습니까? 그러나 이 말이 시가 되는 것은 오다 가다 길에서 만난 사이지만 사알짝 웃어주고 간다든지 아는 척을 하고 가는 마음을 표현하고 있기에 그런 사랑을 표현하고 있기에 시가 됩니다. 시는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시인이 되지 않습니다. 흔히 우리가 젊어서 피가 끓을 때 특히 이성에게 많은 관심을 가질 때는 그 누구 하나 시인이 아닌 사람이 없습니다. 아마 하루에 절반은 시인으로 하루에 절반은 철학자 로 살았던 것이 아닌가 할 정도입니다 여러분도 그랬지요? 그래서 그 나이에 시들을 많이 씁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누구나 그 절절한 사랑을 옮기기만 하면 시인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평생 그렇게 뜨거운 사랑만 하고 있을 수도 없고, 또 그런 감상적인 시만 계속 쓰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합니까? 그 것은 우리의 사랑의 대상을 한 사람 연인에서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내 주위의 모든 자연 과 사물을 사랑의 대상으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만큼 시의 소재가 많아지겠지요. 그리고 그들을 뜨겁게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난을 사랑해서 난에 관한 연작시를 쓰기 도하고 어떤 분은 바둑이나, 화초, 바다, 도자기, 강, 여행, 등등 자기가 좋아하는 대상에 대한 시들을 많이 쓰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일상 언어에서 아름다운 말과 추한 말이 있듯이 우리가 시가 될 말을 골라서 써야 할 것입니다. 아무 언어나 자기의 관심사를 기록하면 그 것은 시가 아니라 일지나 단순한 기록서가 되고 말 것 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시에 대해서 공부를 하는데요. 작은강의실 제1강 시창작 강의를 필하시기 바랍니다. 오늘부터 하는 강의는 실제로 시를 쓰실 분들에게 시의 행과 연의 구분이라든지, 제목을 붙이는 방법 이라든지 시의 마무리에 관한 것을 서로 연구해보 려고 합니다. 오늘은 첫 시간이니 이 정도로 강의를 마치구요. 김용택시인을 찾아갔다가 썼던 제 시 한편을 먼저 소개하겠습니다. ** 시인을 찾아서-김용택 ** -김영천 그 작은 운동장도 얼마나 크냐고 대견해하며 몇 명 안되는 아이들과 궁그르며 뛰놀고 끙끙거리며 시도 쓰고 더러 강으로 고기잡이도 가는 시인은 우리더러 너무 어른이라 한다 강이나 들길에서 함부로 만나는 자운영이나 사철쑥이 아니고 쇠똥이나 반딧불이나 개구리가 아니고 우리더러 너무 사람이라 한다 왕방울 같은 눈을 쓰윽 쓱 돌리며 쳐다보더니 아이들이 시를 참 잘 써요 쉽게 쓰거든요 우리를 얼른 보내고 밖에 나가서 너무도 넉넉한 햇살이나 이제 막 물오른 들녘이나 강물하고 뛰놀고 싶을까 사진 찍는 것도 마다하고 서둘러 들어간다 시인을 보러 가서야 아무렇게나 방치된 시골 풍경이나 순한 아이들이나 쉽게 쓰는 시가 다 똑 같다는 것을 겨우 알았다 안도현님의 최근작 을 올립니다. 나무 속에 보일러가 들어 있다 뜨거운 물이 겨울에도 나무의 몸 속을 그르렁그르렁 돌아다닌다 내 몸의 급수 탱크에도 물이 가득 차면 詩, 그것이 바람난 살구꽃처럼 터지려나 보일러 공장 아저씨는 살구나무에 귀를 갖다대고 몸을 비벼본다     ===============================================tk============= 348. 달 / 정일근                 달 - 경주 남산                                 정 일 근   부처골 빈 절터에 앉아 찻물을 끓이며   찻잔 속의 달이 익길 기다리는 저녁   산은 광배 같은 둥근 경주 남산   달은 유월 보름달 두둥실 떠올라 기다리고   어두워질수록 노랗게 익는 달 보라   찻잔 가득 고소하게 익는 달 보라.     정일근 시집 중에서  
1414    하이쿠 = 17자 댓글:  조회:4348  추천:0  2016-05-10
고요한 연못  고요한 연못 - 마쓰오 바쇼(1644~1694)    고요한 연못 개구리 뛰어드는 물소리 퐁당     바쇼는 일본의 대표적인 하이쿠(俳句) 시인이고 위 시는 원래 제목이 없다. 하이쿠는 단 17자의 짧은 분량에 삶과 세계와 우주를 담아내는 형식으로 유명하다. 1910년대 중·후반 미국의 이미지즘 시 운동을 주도했던 에즈라 파운드도 하이쿠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의 ‘지하철역에서’라는 유명한 시도 단 두 행으로 이루어져 있다. 구조주의자들의 발견대로 세계가 이항대립(binary opposition)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세계는 이 대립물 사이의 끝없는 길항(拮抗) 혹은 횡단의 기록이다. “고요한 연못”으로 뛰어드는 개구리는 고요를 비(非)고요로 만드는 행위자다. 그 순간의 “퐁당” 소리는 고요한 세계의 고요성을 더욱 부각시킨다. 개구리에 의해 비고요의 상태로 바뀐 연못은 금세 다시 고요로 돌아갈 것이다.    
1413    구체시 = 구상시 댓글:  조회:4718  추천:0  2016-05-10
한 번의 우연적 만남과            두 번의 필연적 만남 - 고원(1951~ )   남 남 남 남 남 남 남 남 남 남 남 남 만 남 남 남 남 남 남 남     남 남 남 남 남 문자에 의미를 넘어 회화적·시각적 물질성을 부여하려는 시도는 기원전 2~3세기 그리스 시인들에게서 이미 시작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브라질의 일부 예술가가 시도했다가 1960~70년대에 주로 독일어 문화권을 중심으로 주목받은 이러한 시들을 ‘구체시’ ‘구상시(具象詩’라고 부른다. 위 시는 수많은 타자(“남”) 사이의 만남을 형상화하고 있다. 중앙의 “만”자를 중심으로 다양한 관계가 교차된다. 우리는 수많은 “남”을 경유하며 때로는 고립된 “남”의 상태로 혹은 “남남” 혹은 “남남남남남”(∞)의 관계로 존재한다. 우리는 어느 방향으로든 이 무한한 관계의 순열조합 속으로 진입할 수 있다.  
1412    혁명시인 - 김남주 시모음 댓글:  조회:4903  추천:1  2016-05-07
김남주 시모음 감을 따면서   감을 따면서 푸른 하늘에 초가을의 별처럼 노랗게 익은 감을 따면서 두 발의 연장인 사닥다리의 끝에 서서 두 손의 연장인 간짓대의 끝으로 감을 따면서 나는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태초에 노동이 있었다 그리고 인간이 인간의 뿌리가 있었다 네 발로 기어다니는 짐승과는 구별되는   나는 감 따는 노동을 중지하고 인간의 대지로 내려왔다 직립보행의 동물인 나는 손을 호주머니에 찌르고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감나무와 감나무 사이를 왔다갔다하면서   그렇다 인간을 인간이게 한 것은 노동이었다 수천년 수만년 수백만년의 노동이었다 숲과 강과 자연과의 싸움에서 노동 속에서 인간은 짐승과는 다른 동물이 되었다 인간이 되었다 보라 감을 쥐고 있는 이 상처투성이의 손을 손과 발의 연장인 이 간짓대와 사닥다리를 간짓대와 사닥다리를 깎고 잘랐던 저 낫과 톱을 낫을 갈았던 저기 저 숫돌까지를 보라 노동의 손자국이 나 있지 않은 것이 어디 있느냐 노동의 과실 아닌 것이 어디 있느냐 보라 내가 지금 앉아서 먼 산을 바라보고 있는 이 평상을 이 평상 위에 놓은 네 발 달린 밥상과 밥상 위의 밥을 보라 내가 짓고 있는 저 돼지막과 내가 기거하고 있는 저 초가집과 지붕 위에 우뚝 솟은 검은 굴뚝과 굴뚝에서 하얗게 피어 올라 하늘 끝으로 사라지는 연기를 보라 장독대를 그 위에 가득 찬 옹기그릇을 옹기에 가득가득 담겨져 진한 냄새를 뿜어내고 있는 간장과 된장을 어느 것 하나 노동의 결실 아닌 것이 있느냐 모두가 모든 것이 노동의 역사 아닌 것이 있느냐 뿐이랴 내가 입고 있는 이 내의도 내가 벗어 놓은 저 저고리의 단추도 노동의 과실이자 옷의 역사다 내가 만지고 있는 이 장딴지의 굳은살도 굽혔다 폈다 할 수 있는 이 팔의 뼈도 그리고 내 가슴에서 뛰고 있는 이 심장의 피도 수천년 수만년 수백만년의 노동이 창조한 물질이다 노동의 역사이고 인간의 역사다 그리고 지금 내가 쥐고 있는 이 펜도 펜 끝에서 흐르는 언어의 빛도 종이 위에서 끝없이 이어지는 말의 행렬도 하나가 하나같이 노동의 결정이고 인간 역사의 기록이다   이제 확실해졌다 노동이야말로 인간을 인간이게 한 장본인이었다 짐승과는 다르게 살과 뼈와 피를 빚어낸 마술이었다 기적이었다 노동이야말로 인간의 출발점이고 과정이고 종착역이다 한마디로 끝내자 인간의 본질은 노동이다 노동에서 멀어질수록 인간의 짐승에 가까워진다 이제 분명해졌다 적어도 나에게는 나의 가장 가까운 적은 노동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인간이다 아니다 노동에서 이미 멀어져 버린 인간은 인간이 아니다 그것은 된장 속의 구더기다 까맣게 감잎을 갉아먹는 불가사의한 벌레다 쌀 속의 좀이고 어둠 속의 쥐며느리이고 축축하고 더럽고 지저분한 곳에서 서식하는 이고 황소 뒷다리에 붙어 있는 가증스런 진드기이고 회충이고 송충이고 십이지장충이고 기생충이고 흡혈귀다 인간의 동지는 노동 그 자체다     고목   대지에 뿌리를 내리고 해를 향해 사방팔방으로 팔을 뻗고 있는 저 나무를 보라 주름살투성이 얼굴과 상처 자국으로 벌집이 된 몸의 이곳 저곳을 보라 나도 저러고 싶다 한 오백 년 쉽게 살고 싶지는 않다 저 나무처럼 길손의 그늘이라도 되어주고 싶다.     꽃이여 피여 이름이여   내란의 무기 위에 새겨진 피의 이름   시가전의 바리케이드에서 피어나는 꽃의 이름   자유여 나는 부르지 않으리 함부로 그대 이름을   그대가 한 발짝 전진하면 그 뒤에는 피가 강물이 되어 흐르고   그대가 한 발짝 물러나면 그 앞에는 시체가 산이 되어 쌓이고   오 자유여 무서운 이름이여 나는 부르지 않으리 그대 이름을 함부로   내란의 무기 위에서 시가전의 바리케이드 위에서 피의 꽃으로 내가 타오르는 그 순간까지는     나의 꿈 나의 날개   하늘을 나는 새가 나를 비웃네 날개도 없는 주제에 내 꿈의 높이가 하늘에 있는 줄 알고 그 꿈 키우다가 땅에 떨어져 이런 신세 철창 신세 면치 못한 줄 알고 그러나 웃지 마라 새야 십년을 하루같이 벽과 벽 사이에 갇혀 오가도 못하는 이 사람을 보고 팔다리 육신이야 이렇게 기막히게 철창과 철창 새에 끼여 옴짝달짝 못한다만 나에게도 날개가 있단다 꿈의 날개가 바람의 속도로 별과 달의 세계를 정복할 수 있는 무기의 꿈이 있고 햇님의 은총을 받아 기름진 대지에 달무리의 원을 그리며 씨를 뿌리고 만인의 입술에 가을의 결실을 가져다주는 노동의 날개가 있단다 그러나 새야 하늘 높이에서 나를 비웃고 철창에 그림자를 떨어뜨리며 비켜가는 매정한 새야 나의 꿈은 너처럼 먼 데 있지 않단다 나의 날개는 너처럼 높은 데 있지 않단다 나의 꿈 나의 날개는 지금 이곳에 있단다 지상에 있단다 노동의 팔이 닿을 수 있는 인간의 대지에 있고 발을 굴러 산맥과 함께 강과 함께 전진할 수 있는 벌판의 싸움터에 있단다 가장 높아야 내 꿈의 날개는 하늘 아래 첫동네 백두산에 있단다 그 산기슭에서 강가에서 숲 속에서 재롱을 피우며 자작나무 가지를 오르락내리락하는 다람쥐의 꼬리에 있단다 팔팔하게 뛰노는 붕어의 지느러미에 있단다 무지개 끝을 달리는 청노루의 뒷다리쯤에 있단다 다람쥐와 함께 붕어와 함께 청노루와 함께 춤과 노래로 밤을 지새는 온갖 잡새와 함께 인간세계를 이루고 사는 작은 농장에 있단다 무르익은 노동의 과실 맑은 물과 맑은 공기 하늘의 별과 산에 들에 만발한 꽃과 인간에게 공기와도 같은 것 밀이며 옥수수며 남새며 이슬이며 집이며 인간에게 기본적인 이런 것들이 너나없이 만인의 입으로 가슴으로 골고루 들어차는 그런 세상 바다에 있단다 가장 높아야 내 날개의 꿈은 기차로 한나절쯤 달리면 닿을 수 있는 청천강 푸른 물결 위에 있단다 그 물결 위에 아롱진 이름이여 아침의 나라여
1411    민족시인- 김남주를 알아보기 댓글:  조회:5445  추천:0  2016-05-07
    ▲ 김호석 作 '김남주'/1995/206 x 141/수묵/작가소장   민족시인 또는 혁명시인 '김남주'   김남주 시인의 시를 노래한 안치환의 음반 'Remember' 와 '꽃다지', '노찾사' 그외 곡들, 그리고 김남주 육성낭송 까지 전곡 모두 이어듣기로 만들었습니다. 곡이 많아서 파일용량을 줄였습니다. 개별곡을 듣고자 하시는 분들은 각 곡의 제목을 딸깍(클릭)하시면 됩니다. 노래 제목의 ( ) 안의  제목은 시의 원 제목 입니다. 모든 곡은 노래의 가사가 아닌 김남주 시인의 원작을 올렸습니다. 전곡 모두 파일을 열어서 들을 수도 있고 각자 저장해서 들을 수도 있습니다. 단, 좀 더 나은 음질을 듣기를 원하시는 분들은 각 파일의 용량을 늘리시면 됩니다. 안치환의 음반 수록곡 중에서 마지막 곡인 김남주 시인의 육성 낭송인 '이 가을에 나는' 은 김남주 육성낭송시선에 있습니다.     김남주, 그는 누구인가   김남주 시인은 80년대 한국 민족문학을 대표하는 사람이다. 그는 80년대 사회변혁운동의 이념과 정신을 온몸으로 밀고나간 '전사(戰士)시인' 이며, 혁명적 목소리로 한국문단을 일깨운 '민족 시인'이다. 또한 청춘의 10년을 감옥에서 보내는 등 반독재 투쟁에 앞장선 혁명 시인이었다.   1946년 전남 해남에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호남의 명문 광주일고를 입학하였으나 입시 위주의 교육에 반대, 자퇴하였고 이후 검정고시로 전남대 영문과에 입학하였다. 대학 재학중 '3선개헌반대투쟁'에 참여하는 등 반독재 학생운동에 투신한 그는 1972년과 이듬해에 전국 최초의 반유신투쟁 지하신문 '함성'과 '고발'을 제작·배포하여 징역 8개월의 옥고를 치렀고, 이후 대학에서 제적당했다. 1974년『창작과비평』에「진혼가」등으로 문단에 얼굴을 내민 김남주 시인은 이후 작가 황석영 등과 함께 '민중문화연구소' 등을 결성하기도 했다.   1978년 가장 강력한 반유신투쟁 지하조직 '남민전'의 '전사'로 활동하다가 이듬해 10월 4일, 80명의 동지와 함께 체포·구속된 김남주 시인은 이 사건으로 징역 15년형이 확정되어 광주교도소 등지에서 복역했다. 그는 옥중에서 교도관 몰래 수많은 옥중시를 써서 극비리에 유출했는데, 이 시들은 80년대 우리사회 변혁운동에 일대 도화선이 됐다. 또한 김남주 시인은 1988년 12월 21일 9년 3개월의 옥고 끝에 석방되기까지 80년대 한국문학의 빛나는 정점이자, 큰별이었다.     김남주 시인은 석방 이후 각종 재야집회에서 시낭송을 했는데 이는 만인의 심금을 울린 뜨거운 절창이었다. 디지털문화예술아카데미은 이 육성 시낭송을 사이버 상에 최초로 공개한다. 김남주 시인은 민족문학작가회의 상임이사, 민예총 이사 등을 역임하였고, 단재상·윤상원문화상을 수상하였으며, 서거 이후에 민족예술상이 수여되었다.   김남주 시인은 옥중투쟁에서 얻은 지병으로 투병하다가 1994년 2월 13일, 불과 마흔 아홉의 나이로 그 생을 마감했다. 2월 16일, '민족시인 고 김남주선생 민주사회장'이 치러져 광주 망월동 5·18 묘역에 안장됐다. 2000년 5월 20일, '민족시인김남주기념사업회'와 '광주전남작가회의' 주최로 광주 비엔날레공원 안에 대표작「노래」가 수록된 '김남주 시비(詩碑)'가 제막되었다. 유족으로는 박광숙 여사와 아들 토일 군이 있다.       김남주 시인 주요 저서   1984년 첫시집『진혼가』간행 1987년 제2시집『나의 칼 나의 피』간행 1988년 제3시집『조국은 하나다』간행 1989년 시선집『사랑의 무기』제4시집『솔직히 말하자』간행 1990년 광주항쟁시선집『학살』간행 1991년 제5시집『사상의 거처』간행 1992년 제6시집『이 좋은 세상에』 및                           옥중시선집『저 창살에 햇살이』간행 1993년『나의 칼 나의 피』『조국은 하나다』재출간 1994년 유고시집『나와 함께 모든 노래가 사라진다면』간행   김남주 시인의 시와 노래 전곡듣기     ▲ 임옥상 作 김남주시인 / 1994 / 53 x 40cm / 흙에 채색   김남주의 시를 노래하다 - 안치환의 음반 'Remember'   똥파리와 인간   똥파리에게는 더 많은 똥을  인간에게는 더 많은 돈을  이것이 나의 슬로건이다   똥파리는 똥이 많이 쌓인 곳에 가서  떼지어 붕붕거리며 산다 그곳이 어디건  시궁창이건 오물을 뒤집어쓴 두엄더미건 상관 않고   인간은 돈이 많이 쌓인 곳에 가서  무리지어 웅성거리며 산다 그곳이 어디건  범죄의 소굴이건 아비규환의 생지옥이건 상관 않고   보라고 똥없이 맑고 깨끗한 데에 가서  이를테면 산골짜기 옹달샘 같은 데라도 가서  아무도 보지 못할 것이다 떼지어 사는 똥파리를   보라고 돈 없이 가난하고 한적한 데에 가서  이를테면 두메산골 외딴 마릉 깊은 데라도 가서  아무도 보지 못할 것이다 무리지어 사는 인간을   산 좋고 물 좋아 살기 좋은 내 고장이란 옛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똥파리에게나 인간에게나  똥파리에게라면 그런 곳을 잠시 쉬었다가  물찌똥이나 한번 찌익 깔기고 돌아서는 곳이고  인간에게라면 그런 곳은 주말이나 행락철에  먹다 남은 찌꺼기나 여기저기 버리고 돌아서는 곳이다   따지고 보면 인간이란 게 별 것 아닌 것이다  똥파리와 별로 다를 게 없는 것이다     ▲ 김봉준 作 '해방의 십자가'/1983/250x400/아크릴릭/분실   자유   만인을 위해 내가 노력할 때  나는 자유이다  땀 흘려 힘껏 일하지 않고서야 어찌 나는 자유이다라고 말할 수 있으랴  만인을 위해 내가 싸울 때 나는 자유이다  피 흘려 함께 싸우지 않고서야 어찌 나는 자유이다라고 말할 수 있으랴  만인을 위해 내가 몸부림칠 때 나는 자유이다  피와 땀을 눈물을 나워 흘리지 않고서야 어찌 나는 자유이다라고 말할 수 있으랴  사람들은 맨날  밖으로는 자유여, 형제여, 동포여! 외쳐대면서도  안으로는 제 잇속만 차리고들 있으니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도대체 무엇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제 자신을 속이고서     지는 잎새 쌓이거든   당신은 나의 기다림  강 건너 나룻배 지그시 밀어 타고  오세요  한줄기 소낙비 몰고 오세요   당신은 나의 그리움  솔밭 사이 사이로 지는 잎새 쌓이거든  열두 곁 포근히 즈려밟고 오세요   오세요 당신은 나의 화로  눈 내려 첫눈 녹기 전에 서둘러  가슴에 당신 가슴에 불씨 담고 오세요   오세요 어서 오떼요  가로질러 들판 그 흙에 새순 나거든  한아름 소식 안고 달려 오세요  당신은 나의 환희이니까요   ▲ 홍성담 作 '창'(全州獄에서)/23 x 17/종이에포스터칼라   저 창살에 햇살이(햇살 그리운 감옥의 창살)   내가 손을 내밀면  내 손에 와 고운 햇살  내가 볼을 내밀면  내 볼에 와 다순 햇살  깊어가는 가을과 함께  자꾸자꾸 자라나  다람쥐 꼬리만큼은 자라나  내 목에 와 감기면  누이가 짜준 목도리가 되고  내 입술에 와 닿으면  어머니가 씹어주고는 했던  사각사각 베어먹고 싶은  빨간 홍당무가 된다.   ▲ 김호석 作 '농부 아저씨 김씨의 한숨'/1991/182 x 91/수묵채색/개인소장   물따라 나도 가면서   흘러 흘러서 물은 어디로 가나  물 따라 나도 가면서 물에게 물어본다  건듯건듯 동풍이 불어 새봄을 맞이했으니  졸졸졸 시내로 흘러 조약돌을 적시고  겨우내 낀 개구장이의 발때를 벗기러 가지  흘러 흘러서 물은 어디로 가나  물 따라 나도 가면서 물에게 물어본다  오뉴월 뙤약볕에 가뭄의 농부를 만났으니  돌돌돌 도랑으로 흘러 농부의 애간장을 녹이고  타는 들녘 벼포기를 적시러 가지  흘러 흘러서 물은 어디로 가나  물 따라 나도 가면서 물에게 물어본다  동산에 반달이 떴으니 낼 모레가 추석이라  넘실넘실 개여울로 흘러 달빛을 머금고  물레방아를 돌려 떡방아를 찧으러 가지  흘러 흘러서 물은 어디로 가나  물 따라 나도 가면서 물에게 물어본다  봄 따라 여름가고 가을도 깊었으니  나도 이제 깊은 강 잔잔하게 흘러  어디 따뜻한 포구로 겨울잠을 자러 가지   ▲ 너희는 아느냐, 돌멩이 하나에 실린 역사의 무게를….   돌멩이 하나   하늘과 땅 사이에  바람 한점 없고 답답하여라  숨이 막히고 가슴이 미어지던 날  친구와 나 제방을 걸으며  돌멩이 하나 되자고 했다  강물 위에 파문 하나 자그많게 내고  이내 가라앉고 말  그런 돌멩이 하나   날 저물어 캄캄한 밤 친구와 나 밤길을 걸으며  불씨 하나 되자고 했다  풀밭에서 개똥벌레즘으로나 깜박이다가  새날이 오면 금세 사라지고 말  그런 불씨 하나   그때 나 묻지 않았다 친구에게  돌에 실릴 역사의 무게 그 얼마일 거냐고  그대 나 묻지 않았다 친구에게  불이 밀어낼 어둠의 영역 그 얼마일 거냐고  죽음 하나 같이할 벗 하나 있음에  나 그것으로 자랑스러웠다   ▲ 노순택 作 '잠시 멈춘 전쟁 024'/80*120 (cm)/2003   3.8선은 3.8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삼팔선은 삼팔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걷다 넘어지고 마는  미팔군 병사의 군화에도 있고  당신이 가다 부닥치고야 마는  입산금지의 붉은 팻말에도 있다  가까이는  수상하면 다시 보고 의심나면 짖어대는  네 이웃집 강아지의 주둥이에도 있고  멀리는  그 입에 물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죄 안 짓고 혼줄 나는 억울한 넋들에도 있다  삼팔선은 삼팔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낮게는  새벽같이 일어나 일하면 일할수록 가난해지는  농부의 졸라 맨 허리에도 있고  제 노동을 팔아  한 몫의 인간이고자 고개 쳐들면  결정적으로 꺾이고 마는 노동자의  휘여진 등에도 있다  높게는  그 허리 위에 거재(巨財)를 쌓아올려  도적도 얼씬 못하게 가시철망을 두른  부자들이 담벼락에도 있고  그들과 한패가 되어 심심찮게  시기적절하게 벌이는 쇼쇼쇼  고관대작들이 평화통일 제의의 축제에도 있다  뿐이랴 삼팔선은  나라 밖에도 있다 바다 건너  원격조종의 나라 아메리카에도 있고  그들이 보낸 구호물자 속이 사탕에도 밀가루에도  달라의 이면에도 있고 자유를  혼란으로 바꿔치기 하고 동포여 동포여  소리치며 질서의 이름으로  한강을 도강(渡江)하는 미국산 탱그에도 있다  나라가 온통  피묻은 자유로 몸부림치는 창살  삼팔선은 감옥의 담에도 있고 침묵의 벽  그대 가슴에도 있다.       산국화   서리가 내리고 산에 들에 하얗게  서리가 내리고 찬서리 내려 산에는 갈잎이 지고 무서리 내려 들에는 풀잎이 지고 당신은 당신을 이름하여 붉은 입술로 꽃이라 했지요 꺽일 듯 꺽이지 않는 산에 피면 산국화 들에 피면 들국화 노오란 꽃이라 했지요.       희망이 있다(나와 함께 모든 노래가 사라진다면)   내가 심고 가꾼 꽃나무는  아무리 아쉬워도  나 없이 그 어느 겨울을  나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땅의 꽃은 해마다  제각기 모두 제철을  잊지 않을 것이다.  내가 늘 찾은 별은  혹 그 언제인가  먼 은하계에서 영영 사라져  더는 누구도 찾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하늘에서는 오늘밤처럼  서로 속삭일 것이다.  언제나 별이  내가 내켜 부른 노래는  어느 한 가슴에도  메아리의 먼 여운조차  남기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삶의 노래가  왜 멎어야 하겠는가  이 세상에서..  무상이 있는 곳에  영원도 있어  희망이 있다.  나와 함께 모든 별이 꺼지고  모든 노래가 사라진다면  내가 어찌 마지막으로  눈을 감는가.     ▲ 김봉준 作 '총파업 시대' / 1989 / 70x40 / 와트만지,담채 붓그림 / 작가소장   아이고! I Go!(날마다 날마다)   차에 깔려 죽고  물에 빠져 죽고  날마다 날마다 죽음이다  흉기에 찔려 죽고  총기에 맞아 죽고  날마다 날마다 죽임이다  공부 못해 죽고 대학 못가 죽고  취직 못해 죽고 장가 못가 죽고  날마다 날마다 죽음이다  아이는 단칸 셋방에 갇혀 죽고  에미는 하늘까지 치솟는 전세값에 떨어져 죽고  날마다 날마다 죽음이다  농부는 농가부채에 눌려 죽고  노동자는 가스에 납에 중독되어 죽고  날마다 날마다 죽음이다  여름이면 흙사태에 묻혀 죽고  겨울이면 눈사태에 얼어 죽고  날마다 날마다 죽음이다  낮에 죽고 밤에 죽고  아침에 죽고 저녁에 죽고  시도때도 없이 세상을 온통 죽음의 공동묘지  이 묘지에서 고개 들고 죽음이 세계에 항거한 자는  쇠파이프에 머리가 깨져 죽고  최루탄에 가슴이 터져 죽는다       노래(죽창가)   이 두메는 날라와 더불어  꽃이 되자 하네 꽃이  피어 눈물로 고여 발등에서 갈라지는  녹두꽃이 되자 하네   이 산골은 날라와 더불어  새가 되자 하네 새가  아랫녘 웃녘에서 울어예는  파랑새가 되자 하네   이 들판은 날라와 더불어  불이 되자 하네 불이  타는 들녘 어둠을 사르는  들불이 되자 하네   되자 하네 되고자 하네  다시 한번 이 고을은  반란이 되자 하네  청송녹죽(靑松綠竹) 가슴으로 꽂히는  죽창이 되자 하네 죽창이     ▲ 여명 / 1983 / 55x43 / 채색목판화 / 작가소장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셋이라면 더욱 좋고 둘이라도 함께 가자  뒤에 남아 먼저 가란 말일랑 하지 말자  앞서 가며 나중에 오란 말일랑 하지 말자  일이면 일로 손잡고 가자  천이라면 천으로 운명을 같이 하자  둘이라면 떨어져서 가지 말자  가로질러 들판 물이라면 건너주고  물 건너 첩첩 산이라면 넘어주자  고개 넘어 마을 목마르면 쉬어가자  서산 낙일 해 떨어진다 어서 가자 이 길을  해 떨어져 어두운 길  네가 넘어지면 내가 가서 일으켜주고  내가 넘어지면 네가 와서 일으켜주고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언젠가는 가야 할 길  누군가는 이르러야 할 길  가시발길 하얀 길  에헤라, 가다 못 가면 쉬었다나 가지  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     ▲ 김봉준 作 '노래' / 1983 / 35x26 / 채색목판화 / 작가소장   김남주의 시를 노래하다 꽃다지, 노찾사, 메아리, 노동자 노래단, 문민협, 박치음 등등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 꽃다지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 노찾사 함께 가자 우리 이길을  - 서울대 메아리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셋이라면 더욱 좋고 둘이라도함께 가자 앞서가며 나중에 오란 말일랑 하지 말자 뒤에 남아 먼저 가란 말일랑 하지 말자 둘이면 둘 셋이면 셋 어깨동무하고 가자 투쟁 속에 동지 모아 손을 맞잡고 가자 열이면 열 천이면 천 생사를 같이하자 둘이라도 떨어져서 가지 말자 가로질러 들판 산이라면 어기여차 넘어주고 사나운 파도 바다라면 어기여차 건너주자 고개너머 마을에서 목마르면 쉬었다 가자 서산낙일 해 떨어진다 어서 가자 이 길을 해 떨어져 어두운 길 네가 넘어지면 내가 가서 일으켜주고 내가 넘어지면 네가 와서 일으켜주고 산 넘고 물 건너 언젠가는 가야 할 길 시련의 길 하얀 길 가로질러 들판 누군가는 이르러야 할 길 해방의 길 통일의 길 가시밭길 하얀 길 가다 못 가면 쉬었다 가자 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       사랑은(사랑) - 대학노래패   사랑만이 겨울을 이기고  봄을 기다릴 줄 안다 사랑만이 불모의 땅을 갈아엎고 제 뼈를 갈아 재로 뿌릴 줄 안다 천 년을 두고 오늘 봄의 언덕에  한 그루의 나무를 심을 줄 안다  그리고 가실을 끝낸 들에서 사랑만이 인간의 사랑만이  사과 하나를 둘로 쪼개  나눠 가질 줄 안다     ▲ 홍성담 作 '혈루'/1993_1994/목판화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오월을 노래하지 말아라 - 노동자 노래단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오월을 노래하지 말아라  오월은 바람처럼 그렇게  오월은 풀잎처럼 그렇게  서정적으로 오지는 않았다  오월은 왔다 비수를 품은 밤으로  야수의 무자비한 발톱과 함께  바퀴와 개머리판에 메이드 인 유 에스 에이를 새긴  전차와 함께 기관총과 함께 왔다  오월은 왔다 헐떡거리면서  피에 주린 미친 개의 이빨과 함께  두부처럼 처녀의 유방을 자르며  대검의 병사와 함께 오월은 왔다  벌집처럼 도시의 가슴을 뚫고  살해된 누이의 웃음을 찾아 우는  아이의 검은 눈동자를 뚫고  총알처럼 왔다 자유의 거리에  팔이며 다리가 피묻은 살점으로 뒹구는  능지처참의 학살로 오월은 오월은 왔다 그렇게!   바람에 울고 웃는 풀잎으로  오월을 노래하지 말아라  오월은 바람처럼 그렇게  오월은 풀잎처럼 그렇게  서정적으로 일어나거라 쓰러지지 않았다  오월의 무기 무등산의 봉기는  총칼의 숲에 뛰어든 맨주먹 벌거숭이의 육탄이었다  불에 달군 대장간의 시뻘건 망치였고 낫이었고  한 입의 아우성과 함께 치켜든 만인의 주먹이었다  피와 눈물 분노와 치떨림 이 모든 인간의 감정이  사랑으로 응어리져 증오로 터진 다이너마이트의 폭발이었다   노래하지 말아아 오월을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바람'은  학살의 야만과 야수의 발톱에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노래하지 말아아 오월을  바람에 일어나는 풀잎으로 '풀잎'은  피의 전투와 죽음의 저항에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학살과 저항 사이에는  바리케이드의 이편과 저편 사이에는  서정이 들어 설 자리가 없다 자격도 없다 적어도 적어도 오월의 광주에는!     ▲ 홍성담 作 '친구'/1993_1994/203 x 270/목판화   벗에게 - 조국과 청춘   좋은 벗들은 이제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네 살아 남은 이들도 잡혀 잔인한 벽 속에 갇혀 있거나 지하의 물이 되어 숨죽여 흐르고 더러는 국경의 밤을 넘어 유령으로 떠돌기도 하고   그러나 동지, 잃지 말게 승리에 대한 신념을 지금은 시련을 참고 견디어야 할 때, 심신을 단련하게나 미래는 아름답고 그것은 우리의 것이네   이별의 때가 왔네 자네가 보여준 용기를 가지고 자네가 두고 간 무기를 들고 나는 떠나네 자네가 몸소 행동으로 가르쳐준 말   "참된 삶은 소유가 아니라 존재로 향한 끊임없는 모험 속에 있다는 투쟁 속에서만이 인간은 순간마다 새롭게 태어난다는 혁명은 실천 속에서만이 제 갈 길을 바로 간다는"   그 말을 되새기며       그대에게(지는 잎새 쌓이거든) - 개똥이   당신은 나의 기다림  강 건너 나룻배 지그시 밀어 타고  오세요  한줄기 소낙비 몰고 오세요 당신은 나의 그리움  솔밭 사이 사이로 지는 잎새 쌓이거든  열두 곁 포근히 즈려밟고 오세요 오세요 당신은 나의 화로  눈 내려 첫눈 녹기 전에 서둘러  가슴에 당신 가슴에 불씨 담고 오세요 오세요 어서 오떼요  가로질러 들판 그 흙에 새순 나거든  한아름 소식 안고 달려 오세요  당신은 나의 환희이니까요     ▲ 김봉준 作 '대지의 그늘'/ 1998 / 24x28 / 목판화 / 작가소장   고목 - 조국과 청춘   대지에 뿌리를 내리고 해를 향해 사방팔방으로 팔을 뻗고 있는 저 나무를 보라 주름살투성이 얼굴과 상처 자국으로 벌집이 된 몸의 이곳 저곳을 보라 나도 저러고 싶다 한 오백 년 쉽게 살고 싶지는 않다 저 나무처럼 길손의 그늘이라도 되어주고 싶다.       산국화 - 박치음   서리가 내리고 산에 들에 하얗게  서리가 내리고 찬서리 내려 산에는 갈잎이 지고 무서리 내려 들에는 풀잎이 지고 당신은 당신을 이름하여 붉은 입술로 꽃이라 했지요 꺽일 듯 꺽이지 않는 산에 피면 산국화 들에 피면 들국화 노오란 꽃이라 했지요.       김남주 육성 낭송 시선   전사 2   해방을 위한 투쟁에서  많은 사람이 죽어갔다 많은 사람이 실로 많은 사람이 죽어갔다 수천 명이 죽어갔다 수만 명이 죽어갔다 아니 수백만 명이 죽어갈지도 모른다 지금도 죽어가고 있다 세계도처에서 나라 곳곳에서 거리에서 공장에서 산악에서 감옥에서 압제와 착취가 있는 바로 그곳에서 어떤 사람은 투쟁의 초기 단계에서 죽어갔다 경험의 부족과 스스로의 잘못으로 어떤 사람은 승리의 막바지에서 죽어갔다 이름도 없이 얼굴도 없이 죽어갔다 살을 도려내고 뼈를 깎아내는 지하의 고문실에서 쥐도 모르게 새도 모르게 죽어갔다 감옥의 문턱에서 잡을 손도 없이 부를 이름도 없이 죽어갔다 그러나 보아다오 동지여! 피의 양분없이 자유의 나무는 자라지 않는다 했으니 보아다오 이 나무를 민족의 나무 해방의 나무 민족해방투쟁의 나무를 보아다오 이 나무를 키운 것은 이 나무를 이만큼이라도 키워 낸 것은 그들이 흘리고 간 피가 아니었던가 자기 시대를 열정적으로 노래하고 자기 시대와 격정적으로 싸우고 자기 시대와 더불어 사라지는 데 기꺼이 동의했던 사람들 바로 그 사람들이 아니었던가 오늘 밤 또 하나의 별이  인간의 대지 위에 떨어졌다 그는 알고 있었다 해방투쟁의 과정에서 자기 또한 죽어갈 것이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자기의 죽음이 헛되이 끝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을 그렇다, 그가 흘린 피 한 방울 한 방울은 어머니인 대지에 스며들어 언젠가 어느 날엔가 자유의 나무는 결실을 맺게 될 것이며 해방된 미래의 자식들은 그 열매를 따먹으면서 그가 흘린 피에 대해서 눈물에 대해서 이야기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부끄럽게 쑥스럽게 이야기할 것이다.     ▲ 홍성담 作 '가자,도청으로'/1993_1994/545 x 408/목판화   학살 2   오월 어느날이었다  80년 오월 어느날이었다  광주 80년 오월 어느날 밤이었다 밤 12시 나는 보았다  경찰리 전투경찰로 교체되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앗다  전투경찰이 군인으로 대체되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미국 민간인들이 도시를 빠져나가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도시로 들어오는 모둔 차량들이 차단되는 것을 아 얼마나 음산한 밤 12시였던가  아 얼마나 계획적인 밤 12시였던가 오월 어느날이었다  1980년 오월 어느날이었다  광주 1980년 오월 어느날 낮이었다  낮 12시 나는 보았다  총검으로 무장한 일단의 군인들을  낮 12시 나는 보았다  이민족의 침략과도 같은 일단의 군인들을  낮 12시 나는 보았다  민족의 약탈과도 같은 일군의 군인들을  낮 12시 나는 보았다  악마의 화신과도 같은 일단의 군인들을 아 얼마나 무서운 낮 12시였던가  아 얼마나 노골적인 낮 12시였던가 오월 어느날이었다  1980년 오월 어느날이었다  광주 1980년 오월 어느날 밤이었다 밤 12시  도시는 벌집처럼 쑤셔놓은 심장이었다  밤 12시  거리는 용암처럼 흐르는 피의 강이었다  밤 1시  바람은 살해된 처녀의 피묻은 머리카락을 날리고  밤 12시  밤은 총알처럼 튀어나온 아이의 눈동자를 파먹고  밤 12시  학살자들은 끊임없이 어디론가 시체의 산을 옮기고 있었다 아 얼마나 끔찍한 밤 12시였던가  아 얼마나 조직적인 학살의 밤 12시였던가 오월 어느날이었다  1980년 오월 어느날 낮이었다 낮 12시  하늘은 핏빛의 붉은 천이었다  낮 12시  거리는 한 집 건너 울지 않는 잡이 없었다  무등산은 그 옷자락을 말아올려 얼굴을 가려 버렸다  낮 12시  영산강은 그 호흡을 멈추고 숨을 거둬 버렸다 아 게르니카의 학살도 이리 처참하지는 않았으리  아 악마의 음모도 이리 치밀하지는 않았으리       진혼가   총구가 나의 머리숲을 헤치는 순간  나의 양심은 혀가 되었다  허공에서 헐떡거렸다 똥개가 되라면  기꺼이 똥개가 되어 당신의  꽁구멍이라도 싹싹 핥아 주겠노라  혓바닥을 내밀었다  나의 싸움은 허리가 되었다 당신의  배꼽에서 구부러졌다 노예가 되라면  기꺼이 노예가 되겠노라 당신의  발밑에서 무릎을 꿇었다 나의  양심 나의 싸움은 미군(迷宮)이 되어  심연으로 떨어졌다 삽살개가 되라면  기꺼이 삽살개가 되어 당신의  손이 되어 발가락이 되어 혀가 되어   삽살개 삼천만 마리의 충성으로  쓰다듬어 주고 비벼 주고 핥아 주겠노라  더 이상 나의 육신을 학대 말라고  하찮은 것이지만 육신은 나의  유일(唯一)의 확실성(確實性)이라고 나는  혓바닥을 내밀었다 나는  손발을 비볐다 나는       마지막 인사   오늘밤 아니면 내일 내일밤 아니면 모레 넘어갈 것 같네 감옥으로      증오했기 때문이라네 재산과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자들을 사랑했기 때문이라네 노동의 대지와 피곤한 농부의 잠자리를     한마디 남기고 싶네 떠나는 마당에서 어쩌면 이 밤이 이승에서 하는  마지막 인사가 될지도 모르니 유언이라 해도 무방하겠네     역사의 변혁에서 최고의 덕목은 열정이네 그러나 그것만으로 다 된 것은 아니네 지혜가 있어야 하네 지혜와 열정의 통일 이것이 승리의 별자리를 점지해준다네 한마디 더 하고 싶네 적을 공격하기에 앞서 반격을 예상하고 그에 대한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지않으면 공격을 삼가게 패배에서 맛본 피의 교훈이네     잘 있게 친구 그대 손에 그대 가슴에 나의 칼 나의 피를 남겨두고 가네 남조선민족해방전선 만세!     ▲ 홍성담 作 '개밥'/1987/28 x 21/종이에 목판화   이 세상에   사슬로 이렇게 나를 묶어놓고 자유로울 사람은 없다 이 세상에 압제자 말고는 벽으로 이렇게 나를 가둬놓고 주먹밥으로 이렇게 나를 목메이게 해 놓고 배부를 사람은 없다 이 세상에 부자들 말고는 아무도 없다 이 세상에 사람을 이렇게 해 놓고 개처럼 묶어 놓고 사람을 이렇게 해 놓고 짐승처럼 가둬 놓고 사람을 이렇게 해 놓고 주먹밥으로 목메이게 해 놓고 잠자리에서 편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압제자 말고 부자들 말고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천에 하나라도 만에 하나라도 세상에 그럴 사람이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어디 한 번 나와 봐라 나와서 이 사람을 보아라 사슬 묶인 손으로 주먹밥을 쥐고 있는 이 사람을 보아라 이 사람 앞에서 묶인 팔다리 앞에서 나는 자유다라고 어디 한 번 활보해 봐라 이 사람 앞에서 굶주린 얼굴 앞에서 나는 배부르다라고 어디 한 번 외쳐 봐라 이 사람 앞에서 등을 돌리고 이 사람 앞에서 얼굴을 돌리고 마음 편할 사람 있으면 어디 한 번 있어 봐라 남의 자유 억누르고 자유로울 사람은 없다 이 세상에 남의 밥 앗아먹고 배부를 사람은 없다 이 세상에 압제자 말고 부자들 말고는         ▲ 조규봉 1959년   어머니   어머니 그 옛날 제가 외지로 나설 때마다 동구 밖 신작로에 나오셔서 차 조심하고 사람 조심하라고 신신당부하시던 어머니 가가 먼 길 구풋하면 먹어두라고 수수떡 계란이며 건네주시고 옷고름 콧잔등에 찍어 우시던 어머니 이제는 예순 넘은 나이로 끌려간 자식놈이 그리워 철이 바뀔 때마다 옷가지 챙겨 들고 흰 고개 검은 고개 넘나드시는 어머니 서러워하거나 노여워 마세요 날 두고 언 놈이 뭔 말을 하더라도 내 또래 친구들 발길 뜸해지더라도 어머니 저를 결정할 사람은 저들이 아니니까요 사형이다 무기다 10년이다 사형 구형 놓기를 남의 집 개이름 부르듯 하는 저 당당한 검사 나으리가 아닌니까요 높은 공부하여 높은 자리에 앉아 사슬 묶인 나를 굽어보는  저 준엄한 판사 나으리가 아니니까요 나를 결정할 사람은 결국 나 자신이고 날 낳으신 당신이고 당신 같으신 어머니들이고 날 키워 준 이 산하 이 하늘이니까요 해방된 민중이고 통일된 조국의 별이니까요.         ▲ 임옥상 作 '어머니'/1988   이 가을에 나는   이 가을에 나는 푸른 옷의 수인이다  오라에 묶여 손목이 사슬에 묶여  또다른 감옥으로 압송되어 가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이번에는  전주옥일까 대구옥일까  아니면 대전옥일까  나를 태운 압송차가  낯익은 거리 산과 강을 끼고  들판 가운데를 달린다  아 내리고 싶다 여기서 차에서 내려  따가운 햇살 등에 받으며  저 만큼에서 고추를 따고 있는 어머니의  밭으로 가고 싶다  아 내리고 싶다 여기서 차에서 내려  숫돌에 낫을 갈아 벼를 베는 아버지의  논으로 가고 싶다  아 내리고 싶다 나도 여기서 차에서 내려  아이들이 염소에게 뿔싸움을 시키고 있는  저 방죽가로 가고 싶다  가서 나도 그들과 함께 일하고 놀고 싶다  이 허리 이 손목에서 사슬 풀고 오라 풀고  발목이 시도록 들길을 걷고 싶다  가다가 숨이 차면 아픈 다리 쉬었다 가고  가다가 목이 마르면 샘물에 갈증을 적시고  가다가 가다가 배라도 고프면  하늘로 웃자란 하얀 무를 뽑아 먹고  날 저물어 지치면 귀소의 새를 따라  나도 집으로 가고 싶다  나의 집으로  그러나 나를 태운 압송 차는 멈춰 주지를 않는다  강을 건너 내를 끼고 땅거미가 내린 산기슭을 달린다  강 건너 마을에는 저녁밥을 짓고 있는가  연기가 하얗게 피어오르고  이 가을에 나는 푸른 옷의 수인이다  이 가을에 나는  이 가을에 나는  푸른 옷의 수인이다     ▲김봉준作'어머니 돌아왔어요'/1981/19x21/목판화   편지   산길로 접어드는  양복쟁이만 보아도  혹시나 산감이 아닐까  혹시나 면직원이 아닐까  가슴 조이시던 어머니  헛간이며 부엌엔들  청솔가지 한 가지 보이는 게 없을까  허둥대시던 어머니  빈 항아리엔들 혹시나  술이 차지 않았을까  허리 굽혀 코 박고  없는 냄새 술 냄새 맡으시던 어머니 늦가을 어느 해  추곡 수매 퇴짜 맞고  빈 속으로 돌아오시는 아버지 앞에  밥상을 놓으시며 우시던 어머니  순사 한나 나고  산감 한나 나고  면서기 한나 나고  한 지안에 세 사람만 나면  웬만한 바람엔들 문풍지가 울까부냐  아버지 푸념 앞에 고개 떨구시고  잡혀간 아들 생각에  다시 우셨다던 어머니 동구 밖 어귀에서  오토바이 소리만 나도  혹시나 또 누구 잡아가지나 않을까  머리끝 곤두세워 먼 산  마른 하늘밖에 쳐다볼 줄 모르시던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다시는 동구 밖을 나서지 마세요  수수떡 옷가지 보자기에 싸들고  다시는 신작로 가에는 나서지 마세요  끌려간 아들의 서울 꿈에라도 못 보시면 한시라도 못 살세라  먼 길 팍팍한 길  다시는 나서지 마세요  허기진 들판 숨가쁜 골짜기 어머니  시름의 바다 건너 선창가 정거장에는  다시는 나오지 마세요 어머니       철장에 기대어   잡아보라고  손목 한번 주지 않던 사람이 그 손으로 편지를 써 보냈다오  옥바라지를 해주고 싶어요 허락해주세요 이리 꼬시고 저리 꼬시고  별의별 수작을 다해도  입술 한번 주지 않던 사람이  그 입으로 속삭였다오 면회장에 와서  기다리겠어요 건강을 소홀히 하지 마세요 15년 징역살이를 다하고 나면  내 나이 마흔아홉 살  이런 사람 기다려 무엇에 쓰겠다는 것일까  5년 살고 벌써  반백이 다된 머리를 철창에 기대고  사내는 후회하고 있다오  어쩌자고 여자 부탁 선뜻 받아들였던고     ▲ 박광수 作 '동토의 자식들_말등타기'   권력의 담   나는 나가야 한다 살아서  살아서 더욱 튼튼한 몸으로   나는 보여줘야 한다 나가서  나가서 더욱 의연한 모습을   나는 또한 보여줘야 한다  놈들에게  감옥이 어떤 곳이라는 것을  전사의 휴식처 외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무기를 바로잡기 위해  전선에서 잠시 물러나 있었다는 것을   보라 창살에 타오르는 이 증오의 눈을  보라 주먹으로 모아지는 이 온몸의 피를   장군들 이민족의 앞잡이들  압제와 폭정의 화신 자유의 사형집행자들  기다려라 기다려라 기다려라  나는 싸울 것이다 살아서 나가서 피투성이로  빼앗긴 내 조국의 깃발과 자유와 위대함을 되찾을 때까지  토지가 농민의 것이 되고  공장이 노동자의 것이 되고  권력이 민주의 것이 될 때까지.     ▲ 김봉준 作 '민주주의 만세' / 1990 / 120x150 / 유화 / 개인소장   자유   만인을 위해 내가 일할 때 나는 자유 땀흘려 함께 일하지 않고서야 어찌 나는 자유이다 라고 말할 수 있으랴 만인을 위해 내가 싸울 때 나는 자유 피 흘려 함께 싸우지 않고서야 어찌 나는 자유이다 라고 말할 수 있으랴 만인을 위해 내가 몸부림칠 때 나는 자유 피와 땀과 눈물을 함께 나눠 흘리지 않고서야 어찌 나는 자유이다 라고 말할 수 있으랴 사람들은 맨날 겉으로는 자유여, 형제여, 동포여! 외쳐대면서도 안으로는 제 잇속만 차리고들 있으니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제 자신을 속이고서.         혁명전사로서의 삶과 예술적 실천  1980년 5월 광주민중항쟁 당시의 학살을 "무등산은 그 옷자락을 말아올려 얼굴을 가려버렸다/ 밤 12시/ 영산강은 그 호흡을 멈추고 숨을 거두어버렸다"([학살2])고 노래한 시인 김남주.  현실사회주의가 무너지고 자본주의는 이념적 착종현상을 보이고 있는 21세기 벽두에도 여전히 그의 시가 문제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합리주의적 생산성을 추구하는 근대적 이성이 무력해지고 경계선이 불분명해진 오늘날까지도.  시인 황지우는 김남주의 죽음을 애도하는 자리에서 그를 일러 "아아, 이 아무도 못말리는 꼴통이여, 통큰 강도여, 혁혁한 전사여, 혁명가여,/ 그러나 끝끝내는 시인이여, 이 저주받은 대지를 노래한 시인이여"라고 규정한다.  아마도 인간 김남주를 이 보다 더 적합하게 표현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는 길지 않은 전 생애 동안 '사랑의 무기'로서 시를 가지고 온몸으로 혁명을 실천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대가리를 치면 꼬리로 일어서고  꼬리를 치면 대가리로 일어서고  가운데를 한 가운데를 치면  대가리와 꼬리가 한꺼번에 일어서고  뭐 이 따위 것이 있어  그래 나는 이 따위 것이다  만만해야 죽는 시늉하고 살아야  밥술이라도 뜨고 사는 세상에서  나는 그래 이 따위 것이다.  ([率然] 전문)  "침묵의 시위를 떠나 피로 씌어진 언어의 화살로 가자"([길])고 다짐하는 예술적 실천이 혁명가로서 그의 임무였다. 그 혁명은 손자병법에 있는 솔연(率然)처럼 하는 것이었다.  대가리를 치면 꼬리로 일어서고 꼬리를 치면 대가리로 일어서며 한 가운데를 치면 대가리와 꼬리로 한꺼번에 일어서는 솔연의 병법이야말로 싸움에 이길 수 있는 적극적인 전술이다.  그가 감옥에서 밖으로 보낸 편지들에는 필명으로 이 '솔연'이 쓰이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 그가 얼마나 철저한 혁명 전사로 살고자 했는가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그가 삶과 예술에서 보여주었던, 불의에 저항하는 혁명의 선도성과 불굴의 실천력은 한국문학의 시금석으로 자리하게 될 것이다. 역사적 사건을 추동하는 힘으로서 동학혁명, 3·1운동, 4·19혁명, 5·18민중항쟁 등이 그 구체적인 과정을 사상하고 오직 그 이념만이 시퍼렇게 살아 오늘날까지 우리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는 것처럼,  보다 나은 삶을 향한 인간정신의 숭고함을 혁명전사적 치열함으로 문학적 실천을 선도했던 김남주의 시정신은 앞으로 한국문학의 형상적 이념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시정신은 끊임없이 우리 문학사에 끼어들면서 한국문학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혁명의 진정성과 순결성, 그리고 실천적 선도성은 한국문학의 문학적 이념은 될 수 있을지언정 미학적 예술성까지 담보하지는 못한다.  김남주의 시가 한국 현대시의 미적 전통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새로움의 미적 자질과 형상성을 획득하고 있어야만 한다. 그의 시가 그런 자질과 특성을 머금고 있는가를 밝히는 작업이 곧 이 글의 목적이다.  2. 김남주 시의 인식론적 토대  김남주가 혁명가의 길을 걷고, 그의 시가 혁명전사에 대한 찬가일 수밖에 없었던 정신사적 맥락은 어디에 있을까. 산업화되어 가는 1970·80년대에 분단된 한국의 현실을 어떻게 인식하는가에 대한 인식론적 토대를 살핌으로써 그 맥락을 짚어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의 개인사적 삶이 투쟁과 투옥의 연속이었고, 시의 대부분이 감옥에서 씌어졌기 때문에 실제 현실에서 일정하게 절연되어 구체성이 떨어지고 신념에 가까운 고정관념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은 인정된다.  그 고정관념이란,  첫째 시는 혁명의 무기로서 복무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 시는 여타의 물리적 수단들과 마찬가지로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  둘째 모든 사회적 현실과 인간관계, 나아가 자연현상들까지도 유물론적·계급적 관점에서 파악해야 하며 시의 성취도는 그 철저성에 비례한다는 것,  셋째 시는 이지적 판단에 의해 계산되고 통제되어야 한다는 것,  넷째 우리 민족사회의 본질적 현실은 제국주의에 의한 분단과 매판적 지배계급의 독재적 지배로 규정될 수 있고, 따라서 근로 대중의 비타협적 계급투쟁만이 새로운 사회를 가능하게 할 수 있으며 시인은 모름지기 그러한 혁명운동의 이념적 전위가 되어 동참함으로써만 감동적인 시를 쓸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유물변증법적 인식의 토대가 시의 육체라고 할 수 있는 시적 형상성을 얼마만큼 획득하고 있는가에 있다.  다음의 시는 김남주의 고정관념이라고 할 수 있는 인식론적 토대가 어떻게 시적 형상성을 획득하는가를 보여준다.  마을 앞에 개나리꽃 피고  뒷동산에 뻐국새 우네  허나 무엇하랴 꽃 피고 새만 울면  산에 들에 나물 깨는 처녀가 없으면  시냇가에 아지랑이 피고  보리밭에 종달새 우네  허나 무엇하랴 산에 들에  쟁기질에 낫질 하는 총각이 없다면  노동이 있기에  자연에 가하는 인간의 노동이 있기에  꽃 피고 새가 우는 봄도 있다네  산에 들에 나물 캐는 처녀가 있기에  산에 들에 쟁기질 하는 총각이 있기에  산도 있고 들도 있고  꽃 피고 새가 우는 봄도 있다네  ([나물 캐는 처녀가 있기에 봄도 있다] 전문)  이 시에서 우리는 김남주의 유물론적 인식태도를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다. 어느 평론가는 이 작품이 우리 현대시에서 사랑의 걸작으로 평가받을만하다고 말하면서 "자연의 변증법적 단계의 애정관을 뛰어넘어 우주 삼라만상의 주체자로서의 인간이 향유해야 할 사랑의 참모습을 추구"하고 있다고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사랑을 문제삼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 대상과의 관계에서 인간이 주체적으로 노동함으로써 이상적인 세계를 건설해 가야 한다는 이성중심주의적이고 유물변증법적인 인식론을 시로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자연에 가하는 인간의 노동'이란 주체가 대상에 의미를 부여하는 근대적 사유방식이다. 그러므로 개나리꽃, 뻐꾹새, 꽃, 새, 시냇가의 아지랑이, 보리밭의 종달새 등은 그 자체로 존재 의의가 있는 것이 아니라 노동하는 인간과 함께 할 때 존재자로서의 의미를 부여받는다.  그에게 자연과 사회는 인간의 삶의 조건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변혁되어야 하는 대상일 뿐이다. 그는 하이네, 마야코프스키, 네루다, 브레히트, 아라공의 시와 생애를 통해서 유물론적이고 계급적인 관점에서 세계와 인간관계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하는 창작기술을 배웠으며 전투적인 휴머니스트로서 그들의 인간적인 매력에 압도되기도 했다.  그들이 김남주에게 주었던 교훈은 "인류에게 유익하고 감동적인 작품을 쓰기 위해서는 작가 자신이 진실된 삶을 살아야 하고, 자기 시대의 중대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착취와 억압에 저항하는 불굴의 전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그들의 시에는 '육체를 가진 인간'이 있고, '인간과 인간 사이를 원수지게 하기도 하고 동지이게 하기도 하는 물질'이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따라서 "사랑마저도 그들에게는 물질적이다 전투적이다 유물론적이다"([그들의 시를 읽고])고 노래한다.  나는 그린다 여인의 얼굴을  허공에 담배연기 속에 그 까만 눈을  내 고뇌의 무덤 그 하얀 유방과  달빛에 젖은 골짜기 그 축축한 허벅지를  눈을 감고 그린다 허공에 담배연기 속에  오 부챗살처럼 펼쳐지는 여인의 몸 밤의 잠자리여  입술을 기다리는 입술  팔을 기다리는 허리  가슴을 기다리는 가슴  오 귀가 멀수록 가깝게 들리는 그대 거친 숨결이여  나는 놓는다 나는 놓는다 나는 놓는다  그대가 마시는 모든 술잔에 나의 입술을  그대가 만지는 모든 사물에 나의 무기를  그대가 그리는 모든 그리움에 나의 노래를  깊고 깊은 골짜기에서 그대는 갈증의 샘처럼 흐르고  나는 땅속 깊이 그대를 파헤쳐 하늘 아래 별처럼  붉은 아기 하나 태어나게 하고 싶다  ([고뇌의 무덤] 전문) 남녀의 사랑까지도 유물론적 전투성을 바탕으로 한다. [고뇌의 무덤]은 에로티시즘의 절창이라고 할만하다. 그러나 그 사랑은 '붉은 아기'를 태어나게 하는 혁명의 메타포이다.  그는 철저하게 막시스트였다. 막시즘의 두 기둥이라고 할 수 있는 실천논리와 유물변증법이 그의 시적 토대이다. 전자는 세계를 해석할 것이 아니라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이고, 후자는 인간의 존재를 결정하는 것은 인간의 의식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사회적 존재가 인간의 의식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이러한 인식론적 편향성을 가지고 있는 그가 시 쓰는 이유를 "변혁운동의 사회적 토대이며 원동력인 대중의 정서와 이성에 어떤 변화를 일으켜 대중들 스스로가 현실에 대한 바른 이해와 변혁의지를 갖도록 하는 데"에 두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의 시가 평이하고 논리 정연한 어법으로 대중을 가르치려고 한 작품이 많다는 것은 여기에서 연유한다.  김남주는 체험적 진실과 시를 동일시한다. "위대한 작품을 창조해내는 유일한 길은 위대한 삶인 것이다"라는 명제를 시금석으로 삼기 때문에 그의 시는 체험의 세계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그의 시들은 그의 인간적 체험 모두를 여과없이 그대로 보여준다. 우리는 그의 시들만 읽어가도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 수 있다. 그래서 그의 시에는 시적 주체인 화자가 대부분 김남주이거나 그를 닮은 '전사'이다. 그는 자신의 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래서 당연하게도 내 시의 내용은 맑은 공기, 깨끗한 물, 따뜻한 불, 밥이며 집이며 옷이며 학교며 노래며, 이런 것들을 갖고 싶어하되 그것을 제 뼈와 살의 노동으로 만들어내는 노동자 농민에 대한 애정이고, 기본적인 그런 것들을 갖고 싶어하면서도 그것을 남의 노동의 대가를 착취함으로써 독점하려는 자들에 대한 증오이고, 증오의 대상 '나쁜 사람들'을 찾아 무기를 버리는 사람들에 대한 찬가이다.  김남주 시의 큰 구도는 못 가진 자들에 대한 애정과 가진 자들에 대한 증오를 예각화하는 것이고, 노동의 대가를 착취하여 자본을 독점하는 '나쁜 사람들'과 '솔연'처럼 싸우기 위해 무기를 버리는 사람(혁명전사)들을 찬양하는 것이다.  그가 추구한 시의 길은 계급해방을 기저에 깔고 이것이 구체적으로 전개되는 과정에서 "억압의 사슬에서 민중이 풀려나는 길이고/ 외적의 압박에서 민족이 해방되는 / 노동자와 농민이 자본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길"([길])로 세분화되었다.    나의 양심은 혀가 되었다 허공에서 헐떡거렸다 똥개가 되라면 기꺼이 똥개가 되어 당신의 똥구멍이라도 싹싹 핥아 주겠노라 혓바닥을 내밀었다   나의 싸움은 허리가 되었다 당신의 배꼽에서 구부러졌다 노예가 되라면 기꺼이 노예가 되겠노라 당신의 발밑에서 무릎을 꿇었다 나의  양심 나의 싸움은 미궁(迷宮)이 되어 심연으로 떨어졌다 삽살개가 되라면 기꺼이 삽살개가 되어 당신의 손이 되어 발가락이 되어 혀가 되어      삽살개 삼천만 마리의 충성으로 쓰다듬어 주고 비벼 주고 핥아 주겠노라 더 이상 나의 육신을 학대 말라고 하찮은 것이지만 육신은 나의 유일(唯一)의 확실성(確實性)이라고 나는 혓바닥을 내밀었다 나는 무릎을 꿇었다 나는 손발을 비볐다 나는    2  쓰고 있다 지금 나는 쓰고 있다 세 겹으로 네 겹으로 갇혀 쓰고 있다 내 탓이다라고 서투른 광대의 설익은 장난 탓이다라고 어설픈 나의 양심 탓이라고 미지근한 나의 싸움 탓이다라고 모두가 모든 것이 내 탓이다라고 나는 지금 쓰고 있다 움푹 패인 주먹밥 위에 주먹밥에 떨어진 눈물 위에 눈물 같은 국물 위에 환기통 위에 뺑끼통 위에 시멘트 바닥에 허공에 천장에 벽 위에 식구통 위에 감시통 위에 침 발라 손가락으로 발가락으로 혓바닥으로 마르도록 벗겨지도록 피나도록 쓰고 있다    여러 골이 쑥밭이 된 것도 여러 집에 뒤집힌 것도 설익은 광대의 서투른 장난 탓이라고 함께 사랑했다는 탓으로 불려다니고 끌려다니고 밥줄이 막히고 끊어지고 스승의 난처한 입장도 나의 어설픈 양심 탓이다라고 법관의 어색한 표정도 간수의 안타까운 동정도 또 누구의 미안한 응원도 모두가 모든 것이 내 탓이다라고    공포(恐怖)야말로 인간의 본성을 캐내는 데 가장 좋은 무기(武器)이다라고  3  참기로 했다 어설픈 나의 양심과 나의 미지근한 싸움은 참기로 했다 양심이 피를 닮고 싸움이 불을 닮고 피와 불이 자유를 닮고   자유가 시멘트바닥에 응집된 피 같은 불 같은 꽃을 닮고 있다는 것을 배울 때까지는 응집된 꽃이 죽음을 닮고 있다는 것을 알 때까지는 만질 수 있을 때까지는 온몸으로 죽음을 포옹할 수 있을 때까지는 칼자루를 잡는 행복으로 자유를 잡을 수 있을 때까지는 참기로 했다 어설픈 나의 양심 미지근한 나의 싸움 양심아 싸움아 너는 차라리 참아라 차라리 참는 게 낫다고 참아라  ([진혼가] 전문)    이 시는 《창작과비평》 1974년 여름호(32호)에 그가 처음으로 문단에 시를 발표한 8편중의 하나이다. 이 시도 "하찮은 것이지만 육신은 나의/ 유일(唯一)한 확실성(確實性)"이라고 믿는 유물론적 인식태도가 밑바탕을 이루고 있다.  시적 주체는 1973년 '함성지 사건'으로 취조를 받을 때 총구가 머리숲을 헤치는 극단적인 죽음의 공포 앞에서 얼마나 무참하게 굴복하고 말았는가를 통렬하고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다.  미지근한 싸움에 대한 처절한 자기반성에서 그는 감방에서 주는 주먹밥과 거기에 떨어지는 자신의 눈물과 국물과 환기통, 뺑끼통(변기), 시멘트바닥, 허공, 천장, 벽, 식구통, 감시통 위에 침을 발라 손가락, 발가락, 혓바닥으로 '마르도록 벗겨지도록 피나도록' 모든 것이 자신의 미지근한 싸움 탓이라고 쓴다.  이렇게 처절하게 쓰는 행위는 자기반성이며 그의 시이기도 하다. 한국 현대시에서 부당한 권력에 굴복하고 이처럼 처절하고 통렬하게 자기반성을 수행하고 있는 시가 있었는가? 염무웅이 "김남주의 싸움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남이 대신하기 어려운 무기는 그의 대책없는 순결성이다."라고 말한 것도 여기에서 연유한 것이다.  따라서 이 시는 총구로 인해서 영혼이 파괴되었는데 이 상처받은 영혼을 달래는 방식이면서 동시에 미지근하고 어설픈 투쟁과 설익은 양심을 지닌 생활인으로서 김남주를 조상하는 진혼가이고, 혁명 전사로서 시인의 출발을 알리는 선언문의 성격을 띠고 있다.  그가 미지근한 싸움을 참기로 한 것은 혁명가의 전술에 의한 것이다. 이것은 '피의 교훈'으로서 반격하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의미한다. '남민전사건'에 연루되어 감옥으로 넘어가면서 뒤에 남은 '남조선민족해방전선' 동지들에게 유언처럼 '마지막 인사'를 하면서 화자는  "역사의 변혁에서 최고의 덕목은 열정이네/ 그러나 그것만으로 다 된 것은 아니네 지혜가 있어야 하네/ 지혜와 열정의 통일 이것이 승리의 별자리를 점지해준다네/ 한마디 더 하고 싶네 적을 공격하기에 앞서/ 반격을 예상하고 그에 대한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공격을 삼가게 패배에서 맛본 피의 교훈이라네"([마지막 인사])라고 말하고 있는 점이 이를 반증한다.  만반의 준비는 곧 "온몸으로 죽음을/ 포옹할 수 있을 때," "칼자루를 잡는 행복으로/ 자유를 잡을 수 있을 때"이다. "다시 한번 칼자루를 잡아 보기 위해서"는 살아 남아야 하고, 아낌없이 가진 것을 내줄 줄 알아야 하는데, 예를 들면 "개떡인 양 한 점 살점이라도/ 선뜻 던져줄 줄 알아야"([일보전진 이보후퇴]) 진정한 혁명가"라는 것이다.  열정과 지혜의 통일을 이룬 혁명전사의 덕목은 때를 기다려 승리를 쟁취한다는 데 있다. 그러나 그 승리는 전사의 자기희생에 다름 아니다.  꽃이다 피다  육신이다 영혼이다  그대는 영혼의 왕국에서  육신을 어떻게 다루었는가  그대는 피의 꽃밭에서  영혼을 어떻게 다루었는가  파도의 침묵 불의 노래  영혼과 육신은 어떻게 만나  꽃과 함께 피와 함께 합창하던가  숯덩이처럼 검게 타 버리고  잿더미와 함께 사라지던가  ([잿더미] 부분)  그대가 한 발자국 전진하면  그 뒤에는 피가 강물이 되어 흐르고  그대가 한 발자국 물러나면  그 앞에는 시체가 산이 되어  오 자유여 무서운 이름이여  나는 부르지 않으리 그대 이름을 함부로  내란의 무기 위에서 시가전의 바리케이드에서  피의 꽃으로 내가 타오르는 그 순간까지는  ([꽃이여 이름이여 자유여] 부분)  그의 시에서 '꽃'은 혁명을 실천하는 육신을 상징하고, 피는 자유를 부르는 고귀한 영혼을 가리킨다. 그 육신과 영혼이 혁명의 실천 과정에서 "숯덩이처럼 검게 타 버리고/ 잿더미와 함께 사라"진다는 것은 "내란의 무기 위에서 시가전의 바리케이드에서/ 피의 꽃으로 내가 타오"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것은 '피의 꽃으로 내가 타오르는' '전사'의 자기 희생만이 자유를 쟁취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천명하고,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소망의 시적 형상이다. 그에 따르면 "싸움을 낳는 죽음보다 아름다운 죽음은 없"기 때문이다.  불의에 투쟁하다 죽는 것이야말로 아름다움이며, 이것이 역사에의 진보를 가능하게 했다는 시적 인식이다.  그가 시속에서 보여주는 '혁명의 길'은 "끝이 보이지 않는 도피와 투옥의 길이고/ 죽음으로써만이 끝장이 나는 긴긴 싸움"([혁명의 길])이었다. 그래서 "기어코/ 어둠을 사르고야 말 불빛"([솔직히 말해서 나는])이 되고자 했던 이 같은 도덕적 우월성과 혁명적 열정이 김남주 시의 미덕이라고 할 수 있다.  그에게 있어서 최선을 다하지 않은 미지근한 싸움은 역사 앞에서 유죄가 된다.([시집 {진혼가}를 읽고]) 따라서 '투쟁의 그날그날'이 김남주에게는 시의 요람이었다.  "혁명이 나의 길이고 그 길을 가면서/ 부러진 낫 망치 소리와 함께 가면서/ 첨으로 시라는 것을 써보게 되었다고/ 노동의 적과 싸우다 보니 농민과 함께 노동자와 함께/ 피 흘리며 싸우다 보니/ 노래라는 것도 나오더라고 저절로 나오더라고/ 나는 책상머리에 앉아 시라는 것을 억지로 써본 적이 없다고/ 내 시의 요람은 안락의자가 아니고 투쟁이라고 그 속이라고/ 안락의자야말로 내 시의 무덤이라고"([시의 요람 시의 무덤]) 노래하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 우리는 그가 감옥에 있을 때 오히려 더 행복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된다. 그래서 그의 옥중시들이 더욱 시적 긴장을 유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4. 촌철살인(寸鐵殺人)의 직접성과 서정적 진실  김남주의 시가 '전사의 찬가'로서 시적 형상성을 얻는 것은 단숨에 문제의 핵심에 육박해서 촌철살인하는 직접성에 있다.  시적 주체가 물러설 수 없는 싸움에 임하는 전사이기 때문에 살기(殺氣)에 가까운 적의를 가지고 적과 대치하는 긴장된 투쟁상황이 시의 형식을 간명하게 만든다. 군더더기 없는 진술은 문제의 핵심으로 곧바로 치고들어 시를 무기로 만든다.  예를 들면 "시인이여/ 누구보다 먼저 그대 자신이/ 싸움이 되어서는 안 되는가/ 시인이여/ 누구보다 먼저 그대 자신이/ 압제자의 가슴에 꽂히는/ 창이 되어서는 안 되는가"([시인이여])의 경우에서처럼 실천 없이 입으로만 자유 평등과 투쟁을 노래한 시인에게 거침없이 일침을 놓는다. 이런 시작법은 시적 대상을 간접적으로 에둘러 표현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 기존의 시문법을 무질러버린다.  낫 놓고 ㄱ자도 모른다고  주인이 종을 깔보자  종이 주인의 모가지를 베어버리더라  바로 그 낫으로.  ([낫] 전문)  종으로 상징되는 민중의 분노와 복수를 그 어떤 수식도 없이 섬뜩하게 보여준다. 가진 자에 대한 증오를 넘어서서 광기에 가까운 분노의 폭발이다. 유대인들의 지혜서인 {탈무드}에서는 복수와 증오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자네가 나에게 낫을 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나도 말을 빌려줄 수 없네"라고 한다면 '복수'이고, "자네가 낫을 빌려주지 않았지만 나는 자네에게 말을 빌려주겠네"라고 한다면 증오이다.  김남주의 시에서는 점잖은 증오의 차원을 훨씬 뛰어 넘어버린다. 피아의 관계설정 자체가 목숨을 담보하여 싸우는 전장이다. 이렇게 긴장된 전투적 정신의 백열상태가 '허위의 장막'을 헤치는 '시인의 칼'([하늘과 땅 사이에])로서 촌철의 시 형식을 가능하게 하고, 그러한 시는 '피묻은 진실'을 알몸으로 드러낸다. 이것이 [나의 칼 나의 피]의 세계이다.  미군이 있으면  삼팔선이 든든하지요  삼팔선이 든든하면  부자들 배가 든든하고요  ([쓰다 만 시] 전문)  미군이 없으면  삼팔선이 터지나요  삼팔선이 터지면  대창에 찔린 깨구락지처럼  든든하던 부자들 배도 터지나요  ([다 쓴 시] 전문)  위의 두 시는 상호텍스트적으로 읽어야만 시적 긴장과 의미가 살아난다. 김남주 시의 한 축인 반외세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이 시는 분단국가인 현실에서 부자들이 미군의 보호를 받으며 든든하게 잘 살고 있는 현실과 그런 현실의 파괴를 두려워하는 부자들의 허위의식을 섬뜩한 이미지로 표현하고 있다.  그에게 미국은 "침략과 약탈로 거재를 쌓아올린 마천루의 나라"([아메리카여 아메리카여 아메리카여])이기 때문에 "내가 죽어 차라리 개로 환생할 수 있다면/ 내 눈엣가시 주둔군의 저 철사줄이라도 물어뜯을 것을/ 내 증오의 깃발 성조기에 대고 울부짖기라도 할 것을"([동두천에서])하고 염원하기도 한다.  이러한 민족의 문제는 "조국은 하나다"라는 슬로건으로 응집된다.  "조국은 하나다"  이것이 나의 슬로건이다  꿈속에서가 아니라 이제는 생시에  남 모르게가 아니라 이제는 공공연하게  "조국은 하나다"  권력의 눈 앞에서  양키 점령군의 총구 앞에서  자본가 개들의 이빨 앞에서  "조국은 하나다"  이것이 나의 슬로건이다  ([조국은 하나다] 부분)  하나된 조국을 방해하는 세력은 크게 세 가지이다. 하나는 인간다운 삶을 구속하는 독재권력으로 시속에서 '권력의 눈'으로 구체화되었다. 또 하나는 민족해방을 가로막는 외세인데 이것은 시속에 '양키 점령군의 총구'로 표현되었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계급해방과 평등사회를 가로막는 자본가계급으로 이 시속에서는 '자본가 개들의 이빨'로 이미지화되었다. 이 방해 세력이 적이고, 이 적을 물리치기 위한 전사가 시인이며, 그 시인의 슬로건이 "조국은 하나다"이다. 김남주의 이러한 슬로건이나 선전선동시들은 역사에 대한 성급한 열망에서 연유한다. 이런 시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은 대중을 지나치게 피동적인 존재로 설정한다는 데 있다. 변혁운동에 나설 것을 목청껏 외친다고 변혁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독자 대중들이 능동적으로 변혁운동에 참여할 때 변혁은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좋은 시는 답답한 현실일지라도 그 현실을 집요하게 추구하여 그 본질을 드러냄으로써 독자 대중이 스스로 변혁의 방향과 동력을 찾아내고 이를 자각하는 데 있다.  이런 선언적 명제로서의 슬로건이나 선전선동이 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와 같은 이야기 시(narrative poem)가 가지고 있는 솔직성과 냉혹한 자기비판, 그리고 곧바로 진실에 육박하는 촌철살인의 직접성, [어떤 관료] 등에서 쓰인 풍자나 알레고리 등 다양한 기법을 동원한 혁명적 대중성 등이 시적 형상성을 얻었기 때문이다.  알레고리적 상징의 사용을 예로 들면, "이 길로 가다 오른 쪽으로 꺾으면 노예의 길이고/ 저 길로 가다가 왼 쪽으로 펴지면 해방의 길이다/ 옳지 옳지"([옳지 옳지])와 같은 경우, 우익은 노예의 길이고 좌익은 해방의 길인데 전자는 꺾이고 후자는 펴진다는 이미지가 부각된다.  시적 사유가 여기와 저기, 오른쪽과 왼쪽, 노예와 해방, 꺾이고 펴지고 등 철저하고 단순하게 이분법적이지만 이것들이 서로 대위법적으로 맞물리면서 좌우익에 대한 시인의 정치적 이념이 구체적 형상을 얻는다.  이처럼 시적 사유가 이분법적인 까닭은 시인의 효용론적 문학관에서 연유한 것인데, 몽매한 대중으로 하여금 진취적이고 혁명적인 정서를 배양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시의 대중성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시를 시답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혁명적 서정성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 서정성은 철저한 자기성찰을 거치고 나서야 가능하다. 대지적 상상력에 기대고 있는 김남주의 시가 자신의 생활 기반을 벗어나면 공허한 관념의 차원에 머물고 만다.  시인이 "생활의 이 기반에서 내가 발을 떼면/ 내 시는 깃털 하나 들어올리지 못한다"([다시 시에 대하여])고 언표하고 있는 것은 자신의 시가 관념의 차원에서 벗어나 구체성을 획득해야 한다는 사실에의 통각이었다.  그가 자신의 현실을 얼마만큼 집요하게 추구하면서 과장하지 않고 자신의 삶으로의 성찰로 내면화시켰느냐에 따라 시의 성패가 좌우된다. 다음과 같은 시는 그러한 내면화가 충실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나를 태운 압송차가  낯익은 도시 거리의 인파를 빠져나와  들판 가운데를 달린다  아 내리고 싶다 여기서 차에서  따가운 햇살 등에 받으며 저만큼에서  고추를 따고 있는 어머니의 밭에서  숫돌에 낫을 갈아 나락을 베고 있는 아버지의 논에서  빙둘러 서서 염소에게 뿔싸움을 시키는 아이들의 제방에서  내려서 그들과 함께 일하고 놀고 싶다  내려서 손발에서 허리에서 이 오라 풀고 이 사슬 풀고  내달리고 싶다 아이와 같이 하늘 향해 두 팔 벌리고  내달리고 싶다 발목이 시도록 논둑길을  내달리고 싶다 가슴에 바람 받으며 숨이 차도록  가다가 목이 마르면  손으로 표주박을 만들어 샘물로 갈증을 적시고  가다가 가다가 배라도 고프면  땅으로 웃자란 하얀 무우를 뽑아 먹고  날 저물어 지치면  귀소의 새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고……  그러나 나를 태운 차는 멈춰주지 않고  들판을 가로질러 역사의 강을 건넌다  갑오농민들이 관군과 크게 싸웠다는 황룡강을  여기서 이기고 양반과 부호들을 이기고  장성갈재를 넘어 전주성을 넘보았다는  옛 쌈터의 고개를 나도 넘는다  이 가을에 나는 푸른 옷의 수인이 되어.  ([이 가을에 나는] 부분)  시적 주체는 열정적 파토스를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자신의 처지와 희망을 점검한다. 다른 감옥으로 이송되면서 느끼는 소망이 어린 날 자신이 체험했던 고향을 추체험하는 것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체험의 세계는 가장 구체적이고 자유로운 곳이다. 이 세계가 감옥이라는 세계와 대비되면서 시적 주체의 자유에 대한 간절함이 뚝뚝 묻어난다. 그러나 여기에서 끝나지 않고 그를 태운 차가 들판을 가로질러 '역사의 강'을 건넘으로써 시인의 인식의 지평이 넓어진다.  지금 이 순간 감옥살이하면서 장성 갈재를 넘는 행위 자체가 동학혁명 때 동학도들이 평등 사회를 만들기 위해 넘었던 행위와 겹치면서 동일시된다. 이것은 곧 자신의 수인생활이 동학의 떨쳐일어섬과 다름없다는 역사인식이다.  이 같은 내성적 사유를 거쳐 이루어진 시들은 독자 대중을 단순하게 피동적 존재나 계몽의 대상으로 삼지 않고 자신과 함께 가야 할 능동적 존재로 설정함으로써 시적 형상성을 얻고 독자에게 감동을 준다.  시인은 모름지기 삶 앞에 다소곳하게 서서 귀 기울여야 하는 것, 그의 시적 표현대로 한다면 "파란만장한 삶/ 산전수전 다 겪고/ 이제는 돌아와 마을 어귀 같은 데에/ 늙은 상수리나무로 서 있는/ 주름살과 상처자국투성이의 기구한 삶 앞에서/ 다소곳하게 서서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시인은 모름지기])이 필요하다.  이런 성찰을 거치고 난 다음 시인이 추구하는 삶의 모습은 혁명적 서정성을 동반한다.  한파가 한차례 밀어닥칠 것이라는  이 겨울에  나는 서고 싶다 한 그루의 나무로  우람하여 듬직한 느티나무로는 아니고  키가 커서 남보다  한참은 올려다봐야 할 미루나무로도 아니고  삭풍에 눈보라가 쳐서 살이 터지고  뼈까지 하얗게 드러난 키 작은 나무쯤으로  그 나무 키는 작지만  단단하게 자란 도토리나무  밤나무골 사람들이 세워둔 파수병으로 서서  그 나무 몸집은 작지만  다부지게 생긴 상수리나무  감나무골 사람들이 내보낸 척후병으로 서서  싸리나무 옻나무 나도밤나무와 함께  마을 어귀 한구석이라도 지키고 싶다  밤에는 하늘가에  그믐달 같은 낫 하나 시퍼렇게 걸어놓고  한파와 맞서고 싶다  ([이 겨울에] 전문)   해방공간에서 백석이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를 정신적으로 닮아가려고 했다면 김남주는 1980년대 민주화의 시대에 "삭풍에 눈보라가 쳐서 살이 터지고/ 뼈까지 하얗게 드러난 키 작은", "싸리나무 옻나무 나도밤나무와 함께/ 마을 어귀 한구석이라도 지키"는 '도토리나무'나 '상수리나무'를 닮아 '한파'로 상징되는 압제를 막아내기 위해 '파수병'이나 '척후병'으로 행동할 수 있기를 소망하고 있다.  그런 소망이 구체적인 이미지와 메타포를 통하여 이루어지고 있다는 데 김남주 시의 아름다움이 있는 것이다.  김남주는 민중이 해방되기를 바라는 혁명의 노래를 부르다 갔다 . '피로 씌어진 언어의 화살'인 그의 시에는 '피묻은 진실'이 담겨 있고, 그런 진실은 한국문학의 형상적 이념으로 계승되어 갈 것이다. 마치 김수영과 김지하가 각각 1960년대와 1970년대 시정신의 벼리 역할을 담당했듯이 김남주는 1980년대 우리 시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담당했다.  고은 시인이 그의 시야말로 "우리 자신들의 비겁을 깨뜨리게 하는 사상과 정서의 무한 교직의 폭력"이라고 언급한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그런 폭력적 이념이 [진혼가], [이 겨울에], [이 가을에 나는], [쓰다 만 시], [다 쓴 시], [낫], [어떤 관료], [고뇌의 무덤] 등과 같은 몇 작품에서 육체를 얻었다.  혁명적 이념이 시적 육체를 얻을 수 있었던 가장 주요한 요인은 시인의 처절하리만큼 냉엄한 자기반성과 내성적 사유, 그리고 현실의 본질과 진실을 촌철살인하는 직접성과 혁명적 서정성에 있다.   < 김남주 육성 낭송시선 >   9. 철창에 기대어     잡아보라고    손목 한번 주지 않던 사람이   그 손으로 편지를 써 보냈다오    옥바라지를 해주고 싶어요 허락해주세요   이리 꼬시고 저리 꼬시고    별의별 수작을 다해도    입술 한번 주지 않던 사람이    그 입으로 속삭였다오 면회장에 와서    기다리겠어요 건강을 소홀히 하지 마세요   15년 징역살이를 다하고 나면    내 나이 마흔아홉 살    이런 사람 기다려 무엇에 쓰겠다는 것일까    5년 살고 벌써    반백이 다된 머리를 철창에 기대고    사내는 후회하고 있다오    어쩌자고 여자 부탁 선뜻 받아들였던고
1410    [한밤중 詩 읊다]- 우리 엄니 댓글:  조회:4667  추천:0  2016-05-07
우리 엄니 -김춘성(1956~ )   엄니 글씨는 언제나 삐뚤이 날아 아슬아슬 춤을 추는 DA 300   수줍은 나비처럼 아직도 자유당 시대인 채 “술 째꼼 밥 꼬꼭”이라 써놓고 서산으로 날아간다 ///“술 째꼼 밥 꼬꼭”이라는 어머니의 메모가 서러운 것은 그것이 맞춤법도 모르는 막무가내 사랑이기 때문이고 “아직도 자유당 시대”인 시대착오적(?) 사랑이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대책 없는 사랑은 시대와 문법을 넘어서거나 아예 무시한다. 이 사랑이 더 서러운 것은 그 “엄니”가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면서도 계속 이런 메시지를 보내오기 때문이다. 아무도, 아무것도 엄니의 사랑을 말리지 못한다.
1409    눈(안眼)인가 눈(설雪)인가... 댓글:  조회:4399  추천:0  2016-05-07
끝내 모를 것을 사랑하면    나의 시를 말한다, 이원     봄 셔츠        이 원     당신의 봄 셔츠를 구하고 싶습니다 사랑을 만져 본 팔이 들어갈 곳이 두 군데 맹목이 나타날 곳이 한 군데 뚫려 있어야 하고 색은 푸르고  일정하지 않은 바느질 자국이 그대로 보이면 했습니다   봄 셔츠를 구하고 싶었습니다 차돌을 닮은 첫 번째 단추와 새알을 닮은 두 번째 단추와 위장을 모르는 세 번째 단추와 전력(全力)만 아는 네 번째 단추와 잘 돌아왔다는 인사의 다섯 번째 단추가     눈동자처럼 끼워지는 셔츠     들어갈 구멍이 보이지 않아도 사명감으로 달린 여섯 번째 단추가 심장과 겹쳐지는 곳에 주머니가 숨어서 빛나고 있는 셔츠를 입고     사라진 새들의 흔적인 하늘 아래에서 셔츠 밖으로 나온 당신의 손은 무엇을 할 수 있나요     목에서 얼굴이 뻗어나가며, 보라는 것입니다     굳지 않은 피로 만든 단추. 우리의 셔츠 가장 안쪽에 달려 있는          - 2014 여름호 수록     우선 발음해보자. 셔츠, 하고. 당겨진다. 팽팽해진다. 연이어 몇 번 소리 내어 부르면 찢어질 것 같다. 망설임도 없이. 한 방향으로 정갈하게. 셔츠. 셔츠. 다시 발음해보자. 베어질 것 같다. 깊숙이 아니고 슥슥. 사방으로 그어진다. 슥슥. 슥슥. 어디를 열심히 닦고 있는 것 같다. 펀치가 되려고 뭉치는 것 같다. 슥슥. 눈(眼)이다. 슥슥. 슥슥. 눈(雪)이다.   셔츠를 찬찬히 바라보면 비로소 셔츠가 보이기 시작한다. 셔츠를 구하려면 먼저 보이지 않는 셔츠부터 만나볼 것. 원하는 셔츠를 떠올려보자. 셔츠는 옷걸이에 걸려 있다. 옷걸이가 어디에 걸렸는지는 보이지 않는다. 꽤 넓은 곳이라는 것. 분명 ‘있다’는 것. 바람은 하나가 아니라는 것. 그것들에 셔츠는 흔들린다. 섞인 바람들 소리가 난 듯도 하다.   셔츠는 반으로 갈라진 옷이다. 온건한 듯 보이지만 맨 위에서 맨 아래까지 정중앙을 열어젖힌다는 면에서 조끼만큼이나 단호한 옷이다. 반반을 봉합하는 방법. 한쪽에는 단추. 한쪽에는 구멍. 둘은 영 다르다. 하나는 단단하고 동그랗고 하나는 비어 있고 길쭉하다. 다른 모양이 서로에게 개입되면 안이 생긴다. 단추가 떨어지면 구멍은 내내 단추를 기다린다. 구멍이 막혀 있다면. 단추는 그곳을 견디면서 수평의 연대를 기다린다.   셔츠를 옷걸이에서 꺼내, 반반에 각각 있는 단추와 구멍으로, 반반을 봉합한다. 이렇게 셔츠를 입을 사람과 그 모습을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 이상의 의 호흡을 빌린다면, 셔츠를 입은 사람은 셔츠를 입은 모습을 보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는 사람이다. 셔츠를 입은 사람을 보고 있는 사람은 셔츠를 입은 사람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모르는 사람이다. 셔츠를 입은 사람과 셔츠를 입은 사람을 보고 있는 사람은 서로 들여다보는 몰두를 알아채지 못하는 거울이다.     셔츠를 입은 사람과 셔츠를 입은 사람을 보고 있는 사람.   이쁘다. 마주 서서 단추를 하나하나 채워줄 때.   잘 다녀와. 어깨를 쓸어줄 때. 알맞은 길이의 셔츠 소매를 괜히 걷었다 다시 내릴 때.   재미있는 시간 보내고 와. 채워진 단추에 시선을 주며 시간을 세어볼 때. 손 아니고 소매 깃을 살짝 잡아볼 때.   그리고는 금방 와. 구겨진 곳 없는 등을 쓰다듬으며 따라갈 때.   남겨지는 적막. 발소리. 슥슥. 슥슥. 셔츠의 팔 안쪽과 옆구리 스치는 소리.     조금만 더 보이지 않는 셔츠를 떠올리자. 보이지 않는 셔츠는 구하고 싶은 셔츠. 마음이 원하는 형상. 한 땀 한 땀 바느질로 간절함 너머까지 닿아보자. 하나의 감각 기관이 박탈당하면 고도의 집중력이 생긴다. 이것은 절박한 생존이다. 비페이위 장편소설 에서, 눈먼 사람은 수술실에 들어갔고 눈먼 동료들은 수술실 앞까지 일렬로 손을 잡고 걸어간다. 손은 하나가 아니어서 오른손을 잡히면 왼손을 다른 이에게 내밀었다. 본 적 없는, 볼 수 없는 이들은 침묵한다. 전력을 다해 생각하기 위해. 생각의 형상에 닿기 위해, 생각의 형상을 만들 때까지.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수술실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눈먼 사람은 괴로워했다. 마사지센터에 온 영화감독이 눈먼 여자 마사지사의 얼굴을 마주하자마자 던진 한마디, 정말 아름다워라는 탄식을 들은 후부터다. 남자는 단 한순간도 본 적이 없는 아름다움을 깊이 사랑하게 된다.   본 적 없는 아름다움은 끝내 모를 것인가. 끝내 모를 것을 사랑하면 아름다움이 될 것인가. 시선을 조금 멀리 펼쳐 놓고. 셔츠가 나타날 때까지 셔츠를 떠올리는 일. 셔츠를 만지는 일. 셔츠가 생겨날 때까지 셔츠를 생각하는 일.   불쑥 팔부터 넣고 본 상태. 목은 나타나지 않은 상태. 그러므로 얼굴은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 그러므로 표정은 말할 것도 없고. 그런데, 아니 그러니까, 맹목의 힘으로 셔츠, 발음하면 불모(不毛)가 찢어지기 시작한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불모를 찢고 나오는 눈빛. 새싹. 단추부터 하나 만들기 시작하자.   이원   이원 / 1992년 으로 등단. 시집 를 냈다.         텅 빈 주체의 얼굴을 그리다       “얼굴이 거울을 열고 들어간다 나도 따라 들어가려고 하니 얼굴은 어느새 거울을 잠가버린다”(‘얼굴이 그립다’). “제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의 시선은/ 안으로 향해 있다 제 안의 어둠이 유일/ 한 경전이 되는 세계.”(‘얼굴 속으로’)   얼굴은 ‘나’를 앞서가거나 ‘나’의 뒤에, 너머에 남아 있다. ‘나’는 얼굴이 없는 대신, 잃어버린 얼굴을 들여다보는 시선, 즉 눈을 갖고 있다. 얼굴 없이 홀로 방황하는 발을 갖고 있기도 하다. 얼굴을 잃고 분해된 기관으로 존재-부재하는 ‘나’는 “제 안의 어둠”만을 들여다보며 그 어둠에 포위된다. 얼굴 없는 자의 어두운 내면은, 단적으로 말하면, 상실과 부재의 존재 방식을 주입하는 현대문명의 메커니즘의 산물로, 현대적 자아와 주체의 텅 빈 내부를 의미한다. 내면은 인간의 깊이와 인간성을 보장하고 시를 탄생시키는 무한한 심연에서, 인간 존재와 주체의 소멸이 진행되는 황폐한 사막으로 변했다. 시의 형질과 시 쓰기의 방법, 시적 주체의 위상이 달라져야 할 것은 자명하다.   디지털 시대의 초입에 이 원은 ‘클릭의 코기토’와 ‘마우스의 존재 선언’으로 이런 정황을 압축했다. “나는 클릭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집 속에 마우스와 내가 있다.” 클릭으로 존재 근거를 확보하고, 마침내 마우스와 등가의 존재가 된 ‘나’는 디지털이라는 거대 기계의 한 부품이다. 일상에서 종종, “가볍고 사소해/ 마치 인간이 된 듯한 기분”을 느끼는 비인간이다. 다음은 비인간 시인의 시적 신념의 한 대목. “내가 노래하는 방식으로서가 아닌 용접의 방식으로 시를 쓸 수밖에 없는 것은 언어에 함부로 피와 살을 이식하는 일을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세계는 표현하는 만큼 존재한다’)     ‘나’의 부재를 응시하면서, 허구와 가상의 “없는 안을 만들어내”(‘살가죽이 벗겨진 자화상’)지 않고, 오직 표현함으로써 세계를 다시 존재하게 만드는 것. 이원의 시는 지금, ‘없는 나’가 건설하는 ‘있음의 세계’에 “불쑥 팔부터 넣고 본 상태. 목은 나타나지 않은 상태”. 조만간 얼굴이 만들어질 상태.       /김수이 문학평론가·경희대 교수  
1408    {이것도 詩라고 하는데...} 5월이 시작되다... 댓글:  조회:4091  추천:0  2016-05-07
무슨 무슨 날이 많은 오월이 시작되었어요. 그러니까요. 왜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어린이날 선물을 받지 못할까요? 법이 그렇다는데, 그런 법이 어디 있어요! 양파튀김 얘기에요. 어린이날 선물 얘기예요. 어린이날 얘기예요. 주고 싶은 것과 받고 싶은 것에 대한 얘기예요.   엇갈리는 것에 대한 얘기예요. 그럼에도 멈추지 않는 것에 대한 얘기예요. 김승일은 ‘뭘 쫌 아는’ 반항소년의 화법을 가졌죠. 최선에 최선을 다한 나의 호소와 엄마의 양파튀김이 계속되면, 부엌의 엄마와 화장실의 나는 같은 시계 아래서 만나게 될까요? 어린이날이 품고 있는 것은 사랑이죠. 불행을 안 느끼는 것이 아니라 불행을 여러 각도로 생각할 수 있는 힘이 사랑이죠. 나는 어린이로 취급하는 엄마에게서 벗어나고도 싶고 엄마에게 언제까지나 어린이로도 남고 싶어요. 아아 물론 당장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어린이날, 특별한 선물이 매우 중요하고요! / 이원 시인  
1407    詩人은 언어의 마술사이다... 댓글:  조회:4131  추천:0  2016-05-06
4. 현상의 시학적 탐색-「날(生)이미지」로 1991년에 출간된 『사랑의 감옥』과 1995년에 출간된 『길, 골목, 호텔 그리고 강물소리』에서 시인은 다시 「문학」으로 되돌아온다. 다시 문학적 언어의 문제가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는 것이다. 오규원의 반어적 어법이나 광고 패러디시는 시의 의미공간을 보다 확산시키고 자본주의 사회의 폐해와 정치적인 억압을 날카롭게 풍자, 비판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당대적인 의미를 얻었지만, 고도로 다원화되는 혹은 변화되는 현실 사회에 광고형식의 기능적인 언어로는 더이상 맞설수 없다는 한계를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언어화된 현실의 힘을 빌려 세계의 허구성과 절대적 의미를 해체하고자 하는 중기의 문명비판시들은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비전을 확보하는데는 성공했지만, 이미 광고라는 기능화된 형태에 익숙해져 있는 독자들에게 그것은 비슷한 방식의 체험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 부분이 바로 그로 하여금 다시 「언어」의 문제로 돌아가게 만들었을 것이다. 시쓰기와 시적 방법론에 유난히 예민했던 오규원은 파편화된 형태로 파편화된 사회에서의 시쓰기란 더 이상 적절한 방법이 아님을 쉽게 간파했을 것이다. 도구화된 자본주의 사회의 언어를 「해석과 환원」의 방식으로 재구성하던 오규원의 시들은 이제 새로운 전환을 맞이하게 되는데, 시인은 자신을 둘러싼 현실을 자신의 관념으로 해석해 오면서, 우리의 삶에 새로운 의미와 새로운 실재를 창조하는 기제가 다름아닌 은유의 원리라고 파악했다. 그러나 은유적인 해석은 일종의 명명(命名)행위이며 어느 정도 정형화된 사고의 틀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세계를 왜곡할 수 있는 모순과 위험을 내포한다. 다시 말해 삶의 다양한 양상을 획일적으로 재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세계를 왜곡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시인은 현실의 세목을 개념화시켜 해석하고 나열해오던 기존의 은유적인 방법론을 반성하면서 있는 그대로의 시선과 현상을 중시하는 면모를 보인다. 그러나 그 질문과 반성은 초기시에서 던져지던 관념적인 형태, 혹은 중기시에서 던져지던 도구화된 형태의 것이 아니라 보다 실체화된 것이라는 점에서 우리의 주목을 요한다. 한 남자가 가운데가 접힌 식단표 사이로 머리를 박는다 한 여자가 즐거운 얼굴로 남자의 세계를 건너다본다 건너다보는 세계는 아름답다-고 누가 말했다면 나는 이 순간을 위해 믿고 싶다 그 사이 벽을 타고 기어내려 오던 ··고고한 가락은 힘에 부치는지 여자의 목을 잡고 늘어진다 오오 나는 당신께 사랑을 원하지 않았어요- …… 남자는 다시 식단표 사이로 고개를 처박고 여자는 손가락으로 식탁을 가볍게 톡톡친다 세상이 저렇게 가볍게 톡톡 울린다고 누가 말했다면 이 순간을 위해 내가 믿지 못할 이유를 누구에게 물어보랴?                          -「세계는 톡톡 울리기도 한다」에서 우리는 식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담소를 나누는 남녀의 모습을 즐겁게 연상할 수 있다. 손가락으로 식탁을 가볍게 「톡톡」치는 여자의 이미지는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마주 앉은 남자와 여자 사이에는 투명한 세상이 펼쳐져 있는 것이다. 이 두 시집에는 유난히 의성어가 많이 등장하는데, 「톡톡」이나 「툭툭」 「척척」 「쭐쭐」이라는 의성어마저 일종의 부피감을 느끼게 한다. 일상의 삶을 가볍게 흐르도록 만드는 시인의 감수성은 「톡톡」이라는 의성어에까지도 생기를 불어넣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사물과 현상 그 자체를 보다 투명하게 인식하려는 태도와 깊이 맞물려 있으며, 시인은 이런 시선으로 아름답고 선명한, 그러면서 유의미한 삶의 한 장면을 인식의 선반위에 진열하고 있다. 뱃속의 아이야 너를 뱃속에 넣고 난장의 리어카에 붙어서서 엄마는 털옷을 고르고 있단다 털옷도 사랑만큼 다르단다 바깥 세상은 곧 겨울이란다. …… 오 그래 그 구멍 숭숭한 사랑의 감옥으로 너를 데리고 가려 한단다 그렇게 한동안 견뎌야 하는 곳에 엄마가 산단다 언젠가는 털옷조차 벗어야 한다는 사실을 뱃속의 아이야 너도 태어나서 알게 되고 이 세상의 부드러운 바람이나 햇볕 하나로 너도 울며 세상의 것을 사랑하게 되리라 되    리라만                          -「사랑의 감옥」에서 시인은 길 위에 펼쳐진 소박한 삶에서 의미의 공간을 확장시키려는 노력을 보여준다. 「난장의 리어카에 붙어서서」엄마는 뱃속의 아이에게 「어찌이 추운 세상을 다 막고 가릴 수 있겠느냐. 구멍 숭숭한 사랑의 감옥으로 너를 데려 가」겠다고 말한다. 추위와 가난, 고통으로 얼룩진 이 척박한 세상은 견고한 감옥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엄마가 고르는 「구멍 숭숭한 털옷 안의 집」이야말로 삶의 고통과 갈등을 무화시킬 수 있는 사랑의 공간인 것이다. 그곳에는 아무리 갇혀 있어도 힘들거나 외롭거나 고통스럽지 않기에 뱃속의 아이는 세상을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구멍 숭숭 뚫린 남루한 털옷,- 「사랑의 감옥」은 삶의 긍정성으로 나아갈 수 있는 해방의 이미지 공간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다. 여성의 모성애를 세계에 대한 희망과 사랑으로 변주시킨 이 작품에서 우리는 삶의 긍정과 희망이야말로 감옥같은 현실을 넉넉히 감싸안을 수 있는 동력이 된다는 시인의 전언을 읽어낼 수 있다.           ♀♀ 중간생략 ♀♀    버스 정거장 푯말이 하나 있다 쇠기둥과 나란히 선 한 사내의 얼굴도 팻말처럼 동그랗    다 동그랗고 차다 차들이 다니는 길 안쪽 경흥공업 주식회사 건물은 사철 푸른 나무 울타    리가 꽉꽉 지키고 있다. 스포츠형 머리의 학생이 휘파람을 불며 사철나무 아랫도리를 구    둣발로 내지르고 있다.         --「외곽」에서 시인은 풍경의 한 장면과 사물을 단편적이면서도 기계적으로 나열하고 있다. 앞의 작품들에서는 객관적인 익명의 정조만이 감돌뿐 시인의 존재는 전혀 감지되지 않는다. 그의 언어는 이제 관념을 제거한 상태로 나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런 언어를 그는 「대체관념」이라는 용어로 부르기도 한다. 재해석이나 재구성이 아닌 의미가 정해져 있는 형태가 아닌 다른 어떤 것. 명명하거나 해석되기 이전의 알몸의 사물과 현상. 이것을 시인은 「날(生)이미지」라고 밝히고 있다. 시인은 명명하고 해석할때 중심축으로 쓰는 은유적 수사법을 버리고 사물을 묘사할때 쓰는 환유적 수사법을 중심축에 두면서 세계를 보고 있는 것이다. 그가 일체의 관념을 거부하고 시를 쓰겠다는 이유는 언어가 이데올로기에서 파생된 의미로 왜곡되어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의미는 존재의 진실을 은폐하며 사물과 세계를 훼손시키고 파편화시킨다. 「의미를 규정하는 것은 독재라는 정치적 메타포와 같다. 여기서 시인과 독재가는 근본적으로 만난다」(「네 개의 노트」)고 한 산문에서 이미 시인 자신이 밝혔듯이 이데올로기적인 의미가 지배하는 세계에서 그 허구성을 파기하는 방법은 자신과 세계를 구속하지 않는 살아있는 현상을 지향하는 것이다. 언어로부터 혹은 인간의 일정한 시각으로부터 의미의 개입을 배제하는 것은 이분법적 사고에 대한 회의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획일적인 의미의 공간을 지워나가고 언어에 자유를 불어넣을 것. 그것이 최근의 오규원이 보여주고 있는 작업이다.                  5. 나아가면서:언어가 창조한 「해방의 이미지 공간」 우리는 언어의 관념성에서 출발한 오규원이 그의 시작 과정에서 어떻게 그 관념성을 반성하고 물신주의에 대한 공격으로 나아갔으며 또 끊임없는 방법론의 갱신에 따라 현상의 탐구로 나아가게 됐는지를 살펴보았다. 시종일관 「언어」라는 문제를 중심축에 두고 70·80년대 자본주의의 기능화된 사유구조와 파편화된 현실에 맞서는 대결의지를 보여주던 시인이 90년대의 변모를 거쳐 최근 시집에서 관념과 의미를 배제한 「날(生)이미지」를 운용(運用)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날(生)이미지」는 시인의 언급을 빌리자면 「정해져 있는 의미가 아니라 활동하는 이미지」일 뿐이므로 세계를 함부로 구속하거나 왜곡하거나 파편화시키지 않는다. 사물이나 현상 그 자체가 가지는 한 순간의 이미지를 환유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세계의 현상을 획일적인 관념의 틀속에 가두지 않으려는 시인의 노력은 초기부터 탐구해왔던 죽은 관념이나 죽은 언어와의 싸움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관념의 껍질을 벗겨나가는 것. 사물이나 현상을 내쪽으로 끌어당겨 해석하기보다는 시인 스스로 현상을 향해 자신을 열어 보이고 수용하는 것. 그리고 의미의 세계보다는 실체의 세계를 지향하는것. 이것이 오규원이 도달한 시적 여정의 한 결론이다. 그 살아있는 의식속에는 시인 스스로 「톡톡」치면서 열어보인 우주의 공간이 꿈틀거리는 삶이 스며들어 있다. 나도 그 「톡톡」두들긴 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언어가 창조한 시원(始原)의 공간속에서 새롭게 열린 사물과 세계를 꿈꾸고 싶다. ========================================================================================   346. 빨래 / 정일근                                        빨래                                 정 일 근   다시 시작해야겠다 찌든 걸레 같은 삶을 헹구고 부는 바람 앞에 하얗게 펄럭이고 싶다 한 줌 오욕의 물기마저 다 말리고 싶다   남루여 산 번지 빈 마당 가득 눈부신 깨끗한 남루여     정일근 시집 중에서  
1406    詩人은 현대의 돈키호테이다... 댓글:  조회:4499  추천:0  2016-05-06
3-1. 등기된 언어질서 읽어내기 순수한 원형의 공간을 지향하면서 순수한 언어를 꿈꾸는 시인의 의식은 자신의 진정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노력의 산물이라는 점에서는 평가할 만하지만 자신의 관념속에서 언어와 삶을 추상화시켰다는 것은 현실의 음영을 틈입할 수 없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다분히 문제적이다. 순수한 언어, 투명한 심상의 세계를 다루는 언어들은 추상적인 세계에서만 가능하며 현실의 구체적인 형상을 통한 인식이라는 문제가 자신의 관념속에서만 「위험하게」채색될때 한 개인의 삶은 표백될 수 밖에 없다. 세번째 시집 「王子가 아닌 한 아이에게」에서부터 시인은 일상의 구석 구석을 대상화시키면서 관념의 개념적 인식에서 탈피, 현실로 무게중심이 바뀌어가는 「현실주의자」의 면모를 보여준다.     楊平洞에서 가장 가까운 역은 永登浦. 永登浦에서 11시 열차로 사랑하는 서울을 떠남.    내 사랑은 두고 서울만 떠남. 좌석이 없어 입석을 구입, 맥주를 마시는 핑계로 식당차에     편히 앉음. 떠나며 돌아보니 속옷 바짓가랑이가다 나온 永登浦가 떠나는 나를 보더니 한    번 픽 웃고 돌아섬. 떠남. 역사의서울, 꿈의 서울, 여자의 서울                                                           -「한 나라 또는 한 女子의 길」에서 시의 화자는 이제 양평동으로 영등포로, 거리로, 남산으로, 버스 정거장으로 자신의 존재를 풀어 놓는다. 관념의 입김이 지배적인 초기시들과는 달리 시어선택이 상당히 대조적임을 눈치챌 수 있다. 기차의 식당차, 술집 뒷골목, 쇼핑센터같은 도시적인 삶의 공간들과 이에 수반되는 세목들이 시의 소재가 되고 시인은 현실속으로의 적극적인 진입을 시도한다. 시인은 「양평동」 연작을 쓸 무렵부터 시의 힘에 대해 확신하면서 시의 순수성이 마주친 현실을 시 안에 수용하기 시작한다. 그는 부정적인 세계의 모습, 일그러진 현실의 이면을 들추어내면서 자본주의적인 삶의 양태가 가장 고도화된 도시공간에 초점을 둔다. 무질서와 타락, 자본으로 넘실거리는 도시공간은 현대 산업사회의 기형적인 구조에 의해 획일성과 자동성을 고유한 존재방식으로 부여받는다. 시인은 이러한 부정적인 세계의 모습을 시의 현실로 시화(詩化)한다. 「커튼을 걷고 창밖을 내다봄. 거리는 오늘도 安寧함. 安寧한 거리에 하품나옴」(「나의 데카메론」)이라거나, 「어제 나는 술을 마셨고/마신 뒤에는 취해서 유행가/몇 가닥을 뽑았고/그래서 세상이 형편없어 보였고 또/세상이 형편없었으므로 안심하고/네 다리를 쭉 뻗고 잤다」(「빈약한 상상력속에서」)에서처럼 그가 몸담고 있는 도시속에는 수동적이고 사물화된 우울한 일상의 모습이 넘쳐 흐른다. 그러나 시인은 그러한 부정적인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거나 수락하지는 않는다.    幻想. 흔들리는 나무 잎사귀. 실바의 펠리시아노 기사담 다시들다 팽개침. 등기되지 않    은 현실, 幻想. 등기되지 않은 현실속으로 뛰어듦. 갑옷,투구, 방패 손질함. 스스로 구속할    자기의 이름들을 구함.        -「등기되지 않은 현실 또는 돈키호테 略傳」에서 시인은 투구와 방패를 메고 「등기되지 않은 현실」속으로 뛰어드는 현대의 돈키호테이다. 그 환상의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등기된 현실만을 보게 될 때 시인은 「문득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그는 획일적인 판단과 시각을 강요하는 제도화된 현실을 「등기된 현실」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정작 시인이 투시해야 할 것은 「당신의 눈에도 보입니까. 등기되지 않은 현실」이라고 되묻듯이 그 등기된 현실이 아니라 「등기되지 않은 현실」 -현실과 대립되는 환상, 꿈 이상같은- 환상극의 현실이다. 환상과 현실이 전도된 돈키호테의 희극적인 모습속에는 일그러져 있는 사회의 비극성과 모순이 내재되어 있다. 이제 시인은 그 모순된 현실속에서의 억압적인 삶을, 등기화된 언어질서를 날카롭게 지적하는 작업으로 나아간다.    시는 추상的이니 구상的은 오해마라. 시인은 病身이니 안 病身은 오해마라. 지금 한국은    散文이다. 정치도 散文 사회도 散文 시인도 散文이다. 散文的이기 위한 전쟁시대, 시인들    이 전쟁터로 끌려가는 모습이 보인다. 끌려가는 시인의 빛나는 制服, 끌려가지 못하는 病    身들만 남아 制服도 없이 아, 시를 쓴다.                          -「詩人들」에서 중기로 접어든 오규원의 시는 「산문적」인 삶에 대해 예리한 시선을 보낸다. 70년대. 고도경제 성장과 산업화의 물결속에서 「잘 살아보자」는 자력갱생의 성장 이데올로기 깃발만이 맹목적으로 휘날리던 시절. 급속한 사회변동과 자본주의의 거센물결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려는 개인의 실존은 위협받거나 위태롭게 흔들린다. 현실의 억압을 견디기에는 전통적인 시 양식이 무력할 수 밖에 없다는 일종의 좌절감이 깔려 있는 이 시는, 당시 오규원의 시적 입지점을 드러내주는 시론이기도 하며 이후의 시의 향방을 예고해주는 징표가 되기도 한다. 이런 삶 속에서 오규원의 시는 본격적인 「산문화」의 경향을 보이게 되는데, 그것은 필연적인 과정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시양식으로서는 도저히 현실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세계는 복잡하고 추악하게 뒤틀려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부조리하고 타락한 세계를 냉철하게 바라보는 시인의 지적인 양식은 점차 사회 비판력을 얻게 되며, 그는 어떻게 현실에 새롭게 대응해야 하는가 하는 의식을 반어나 패러디 같은 양식으로 보여준다. 여기에 속하는 시들은 대부분 희화적인 어조와 본격적인 일상어를 채용하고 있는데, 이로써 현실과 세계에서 오는 갈등과 중압감에 대응하는 방식을 드러낸다. 이제, 시인은 모든 「기교」를 동원해 현실과 맞닥뜨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3-2. 현실을 방법적으로 드러내기-시쓰기의 기교 사랑이 技巧라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나는 사랑이란 이 멍청한 명사에 기를 썼다. 그리고 이 同義反復이 이 시대의 후렴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까지도 나는 이 멍청한 후렴에 매달렸다.                  -「사랑의 技巧. 2」에서 시인은 현실속에 침윤된 자신과 세계를 바라보고 인정하면서, 그러한 자신을 바라보는 자신에 대해 반성적인 인식을 개입시킨다. 그래서 그에게는 「기교주의자」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사랑이 곧 기교라는 등식, 이 「멍청한 명사」에 매달린 화자는 사랑도 꿈도 시쓰기도 그 결과가 비참한 것임을 반어적으로 깨닫는다. 「슬픔의 기교」는 그에게 곧 시의 「패배」를 의미한다. 그러나 오규원은 기교 그 자체를 시화하거나 추구하는 시인이 아니다. 그가 기교를 시화한다면 그것은 그가 자신의 시작(詩作)행위에 대해 매우 명징한 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즉 자신의 시작의 의미를 반어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방법적으로 긴장」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이 「방법적 긴장」은 그의 시작 행위의 숨겨진 원리이며, 현실에 대한 시적 주체의 인식을 심화시켜 주는 계기로서의 적극적 의미를 갖는다. 그렇다면 그에게 기교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가 말하는 기교는 변화하는 세계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표현하기 위해 생겨나며 타락한 현실, 타락한 언어가 가진 허위의식을 드러내려는 전략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시인은 자신을 규정짓고 있는 삶과 세계에 우회적인 태도, 즉 시는 언제나 「너의 패배가 아닌 나의 패배」라는 자조적인 진술을 통해 현실과의 의식적인 긴장된 거리를 환기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는 「침묵의 상징시대, 동사가 없는 시대, 물먹이기 시대」(「물에 물먹이기」에서)의 한 복판에서 현실적으로 순수한 언어란 불가능한 것임을 고통스럽게 깨달으며 「아직도 서정시가 씌어지는」 현실을 「신기해」한다. 현실은 시인에게 부정적이고 대립적인 것이며 타락한 세계에서 왜곡되지 않은 언어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태도는 현실과 시가 상호대립적인 관계에 놓여있다는 믿음을 함축한다는 점에서 초기시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러나 오규원은 「배반을 모르는 시가 있다면 말해보라. 의미하는 모든 것은 배반을 안다. 시대의 시가 배반을 알 때까지 쮸쮸바를 빨고 있는 저 여자의 입술을 시라고 하면 안되나」(「버스 정거장에서」에서)라고 반문하면서 일상의 공간에서 시의 의미공간을 더 넓히고자 한다. 다시 말해, 관습적이고 상투적인 시양식으로부터 탈피할 적극적인 방법론을 모색하는 것이다. 이것은 파편화된 현실을 파편화된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상상력과 현실의 긴장관계를 끝까지 견지하고자 하는 노력의 산물이다.  그는 기존의 규범적 사고와 언어적 질서를 거부하면서 새로운 인식과 지평의 전환을 보여주는데, 이렇게 현실과 대결하는 시적 정신은 더욱 팽팽한 긴장을 수반하며, 그를 점점 더 「싸움」의 복판으로 나아가게 한다.                  3-3. 기능화 된 언어를 전복시켜 해석하기-방법적 인용                           ♀♀ 중간생략 ♀♀ 시인이 한창 원기왕성한 시절, 광고문구나 CF를 방법적으로 인용한 일련의 상품 광고시는 도구화된 사회에서 기존의 시 언어가 아닌 도구화된 형태의 글쓰기, 즉 새로운 미학적 모험이라는 전략으로 맞선다는 점에서는 가히 선구자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시기의 시적인 탐구는 순수한 의미에서의 「문학적 언어」와는 거리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순수한 문학적 언어에 관심을 가지기에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세계와 자아 사이의 긴장된 갈등을 첨예하게 보여주는 문제가 더 절박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   345. 바다가 보이는 교실 10 / 정일근                                  바다가 보이는 교실 10 유리창 청소                                정 일 근   참 맑아라 겨우 제 이름밖에 쓸 줄 모르는 열이, 열이가 착하게 닦아놓은 유리창 한 장 먼 해안선과 다정한 형제섬 그냥 그대로 눈이 시린 가을 바다 한 장 열이의 착한 마음으로 그려놓은 아아, 참으로 맑은 세상 저기 있으니     정일근 시집 중에서         정일근 연보   1958년 경남 진해시에서 정성모 안숙자의 1남 1녀 중 장남으로 출생.   1970년 아버지는 교통사고로 별세.   1980년 제30회 진주 개천예술제 백일장 대학·일반부 시 장원.        주체 전국대학생 현상공모 시 당선.   1981년 월간 대학생 문예 시 당선. 국풍81 전국시조백일장 장원.   1984년 4월호 시조부문 신인상 당선.        10월호 신인작품모집에 등 7편 발표.   1985년 신춘문예 시(유배지에서 보내는 정약용의 편지) 당선.        경남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학과 졸업. 진해남중학교 국어교사 임용.   1986년 신춘문예 시조(저물 무렵의 시) 당선.        동인에 참여.   1987년 4인(황선하, 민병기, 김태수, 정일근) 시집 발간        제1시집 발간.   1988년 문화부 문학담당 기자로 전직.        이후 사회부, 전국부, 사회2부 기자로 근무. 1988~1998년 : 기자 근무 시 노조 대의원, 언노련 대의원. 제3회 이달의 기자상 수상.   1991년 제2시집 발간.   1992년 부산에서 울산으로 이사. 개인 시창작 강좌인 개설 운영.   1993년 제3시집 발간.   1995년 제4시집 발간.   1996년 ‘문학의 해’기념 문체부장관 표창.        울산대 사회교육원 문예창작 과정 지도교수.   1997년 문예진흥기금 수혜로 경주남산연작장시집 300부 한정본 발간.   1998년 뇌종양 진단 후 수술. 제5시집 , 사랑시선집 발간.        문예진흥원 한국문학 특별창작지원금 및 언론인고용지원센터 저술지원금 수혜.        2002년 울산월드컵 문화시민운동협의회 계간 편집주간.        울산월드컵 문화축제 위원.   2000년 울산MBC 제작 다큐멘터리 직접 취재.        이 작품으로 한국방송대상(라디오 다큐멘터리 부문) 수상.        제10회 한국시조작품상 수상(작품 : 목욕을 하며).   2001년 제6시집 발간.        이 시집으로 제6회 젊은시인상 수상.     2002년 울산대 국문학부 문예창작 과정 강사. 대통령 월드컵 기장 수여.   2003년 제7시집 발간.        제18회 소월시문학상 대상 수상. 경남대학교 공로상 수상.     2005년 제8시집 발간.   2006년 제9시집 발간. 영랑문학상 수상.   2008년 포항동해국제문학상 수상.   2009년 제10시집 발간. 지훈상(문학 부문) 수상.   2010년 이육사시문학상 수상.   2012년 육필시집 발간.   현재 경남대학교 교수.    
1405    詩人은 쉽게 잠들지 못한다... 댓글:  조회:6644  추천:0  2016-05-06
  해방의 언어 그 날(生)이미지를 찾아가는 시적 여정 …오규원論-                                                                                      이연승                              1. 들어가면서:시적 「언어」의 폐허와 시인의 자리 짧은 시간동안 급속한 정치, 경제, 문화적 변혁을 치러야 했던 우리 사회는 이제 새로운 전환기에 놓여있다. 지난 시대의 「중심의 담론」은 붕괴 되었고 다양한 문화현상들이 분산된 지형도를 그리면서 우리의 현실을 지배하고 있다. 90년대 중반을 가로지르면서 탈중심, 다원주의, 대중문화, 일상, 생태학같은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하고 기존의 시각과 삶의 양식을 해체하려는 물결이 등장한 것은 분명 변화하는 우리 삶에 대한 나름대로의 대응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현상적인 유행에 민감한 저널리즘과 컴퓨터를 비롯한 영상 산업의 폭발적 팽창, 그리고 세속적이고 일상화된 욕망의 분화구 사이에서 90년대의 분방하고 다발적인 논의들은 체계적인 사회, 문화적 맥락으로 조성되지 못한채 파편화되어 있다. 전망이 불투명한 사회속에서 문학은 지루한 소모품으로 전락하거나 감각적인 새로움을 요구하는 대중의 욕망에 편승하여 상업적 생산과 소비의 유통구조 속으로 빨려들어가고 있기도 하다. 나는 삶의 진정성이 외면당하는 가치부재의 현실, 경건성이 질식당하는 문학판에서 문학이 책임질 수 있는 몫은 무엇인지를 새롭게 자문한다. 우리가 문학에서 진정 필요로 하는 것은 「언어」를 매개로 한 비판적인 사유의 치열함과 부단한 자기 갱신으로 거듭나는 정신적 모험일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한 중견시인을 만난다. 지각변동과 같은 급속한 사회변화속에서도 시종일관 「언어」라는 주제에 집요하게 자신을 쏟아붓고 있는 시인. 그는 우리 시단에서 30년 가까이 언어에 대한 치열한 반성과 고민을 통해 시형식, 시예술의 다양성과 새로움을 모색해 온 오규원이다. 새롭다는 것은 곧 한 시대의 전위적 측면을 의미할진대, 그에게 새로움이란 항상 새로운 감성의 체계와 새로운 긴장의 창조라는 시적 전망의 개진으로 이어져왔다. 최근 시집 자서(自序)에서 시인은 『모든 존재는 현상으로 자신을 말한다. 참된 의미에서, 모든 존재의 언어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언어도 그 현상의 하나이다 (「길, 골목, 호텔, 그리고 강물소리」)』라고 말하고 있다. 이 시집이 그 이전의 시집들과 다른 특성을 보이는 것은 「현상」에 대한 시적 탐구가 하나의 미학적 방법론으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규원 시를 관통하는 「언어」라는 문제는 그의 시세계 속에서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가. 그리고 최근의 인식상의 변화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현상 자체에 대한 탐구와 그가 실험하는 「날(生)이미지」란 무엇인가.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런 문제들이다. 이런 문제들을 다루기 위해 이 글에서는 그의 초기시부터 근작시까지를 살펴보도록 한다. 자신이 쓰는 모든 시는 「해방의 이미지」라는 그의 시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작품들을 꼼꼼이 뜯어 읽어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이 작업을 통해 우리는 끊임없이 세계와 삶에서 질문된 「언어」를 투사하면서 자신을 새롭게 열어나가는 오규원의 시적 행로를 다시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2. 언어화된 추상의 세계, 「吳氏의 마을」 오규원의 시적 언어의 특징은 우선, 그 언어가 구체적인 현실세계를 그대로 모방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물론 시는 현실의 단순한 복제가 아니라 변형이며 재창조이다. 언어에 대한 순수한 믿음이 대상세계를 보여줄 수 있다는 확신으로 자리잡고 있던 초기시. 시인은 「나를 확신하기 위하여 나의 말을 믿」으며 「萬象을 확실하게 하기 위하여 나의 말을 믿는다」(「말-속 순례10」에서)라고 쓴다. 그가 시종일관 「말」이라는 시의 질료를 문제삼고 시에 대해 되묻는 것은 「확실하게 형체를 드러내는」 확신을 가지려고 하는 자기 욕망의 소산이다. 시인은 언어를 매개로 해서 관념과 사물을 자신의 시적 공간속에서 새롭게 만들어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매우 비유적이고 수사적인 초기의 작품들에서 시인은 시적 대상에 독특한 입김을 불어넣고 있는데, 그는 비록 독립적인 사물의 존재를 포착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경험하는 실제 사물이 환상이든 아니든간에, 사물들이 관념속에서 간접적으로 우리에게 나타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믿음으로 시를 쓰고 있다. 고요한 환상의/출장소/뜰, 뜰의 달콤한 구석에서/언어들이/쉬고 있다. 추상의 나뭇가지에/살고있는 언어들 중의/몇몇은/위험한 나뭇가지 사이를 날아다니다/떨어져 죽고. 나의/고장난 수도꼭지에서도/ 뚜욱 뚜욱/언어들이 죽는다. 건강한 언어의/아이들은 어미의 둥지에서/알을 까고, -「몇 개의 현상」에서 우리는 이 작품에서 하나의 메시지를 포착하기 이전에 관념적인 분위기로 채색되어 있는 두 개의 현상-「달콤한 구석에서 쉬고 있」으며, 「위험한 나뭇가지 사이를 날아다니다 떨어져 죽」는 시니피앙의 움직임을 목도한다. 그의 언어는 현실 혹은 실재라는 시니피앙을 지시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시니피앙을 차용해 독자적이고 원형적인 제3의 세계를 창조하려 한다. 그가 꿈꾸는 언어, 순수한 언어가 살아 숨쉴 수 있는 원형의 공간은 「고요한 환상의 출장소」이다. 그 추상적인 공간은 구체적인 현실의 음영이 제거된 「환상의 땅」으로 상정되며, 현실과는 대립되는 곳으로 그려지고 있다. 「환상의 땅」에서 언어는 훼손되기 이전의 순결한 시간과 공간을 지향하지만, 실제 현실 속에서 그 언어는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시인의 의식 속에서 이것은 가능해지며 「의식의 먼 강변에서/출렁이는 물결 소리로/차츰 확대」되거나 「소멸을 딛고 일어」나 자유로운 질서 속으로 흩어져, 완전한 존재로 빛나기도 한다. 그러니까 초기의 오규원이 열망하는 순수한 언어는 그의 관념 속에서 조형된, 추상의 공간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다. 투명한 심상의 바다 속에 사는 낱말은  외로운 몇 사람이 늘 서 있는 그 배경만큼 조용히 사색의 귀를 열고 있다                 -「현상실험- 別章」에서 라는 구절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언어는 추상적인 공간-「투명한 심상의 바다」에서 「사색의 귀」를 열어놓거나 땅 위에서 「조용히 쉬며 빛」난다. 타락한 현실 속에서 언어는 본래의 순수성을 잃어버린다. 시인은 사물의 핵(核)을 간직하고 있는 절대언어를 꿈꾸고 있지만, 이런 언어는 현실과는 괴리된채, 그저 「흔들리」거나 「비키니 스타일로 벗어버린 대낮의 감미로운 피부」로 떠돌 뿐이다. 이 환상적인 영역에서 시인은 언어를 끌어들여 확정된 의미구조 속으로 가두어 둘 수 없다. 말은 그 자체로 자유로우며 「언어의 뚜껑을 열고 나와 다시 독립」하기 때문이다.    나는 미국문학사를 읽은 후 지금까지 에밀리 디킨슨을 좋아하는데, 좋아하는 그녀의 신    장, 머리칼의 길이, 눈의 크기, 그런 것은 하나 모른다. 그녀의 몸에 까만 사마귀가 하나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가끔 그녀의 몸에 까만 사마귀가 하나 있다고 시에    적는다.                  -「시」에서   에밀리 디킨슨이라는 한 인물에 대한 시선은 「시」에 대한 자신의 관념을 투사시키면서 굴절되어 나타나는데, 「시」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이 작품은 그가 시를 대하는 태도를, 세계를 해석하는 방법을 보여준다. 한 편의 시가 실제의 에밀리 디킨슨이라는 인물을 그대로 형상화시키거나 지시해줄 수는 없는 것이다. 시인은 하나의 이미지를 구상하고 여기에 자신의 관념을 육화시킨다. 에밀리 디킨슨의 몸에 「까만 사마귀가 하나 있다고」 자신의 시에 적는 것. 이것은 자신이 꿈꾸는 언어로 세계를 해석하며 관념화시키겠다는 의도에 다름 아니다. 실제의 모습과는 상관없이 까만 사마귀가 있는 그녀의 모습은 시인의 관념 속에서 새로운 시적 향상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꿈꾸는 시의 세계는 어떠한가. 詩에는 무슨 근사한 얘기가 있다고 믿는 낡은 사람들이/아직도 살고 있다. 詩에는 아무 것도 없다 조금도 근사하지 않은/우리의 生밖에 믿고 싶어 못 버리는 사람들의 무슨 근사한 이야기의 幻想밖에는.         -「龍山에서」 자원전쟁시대 유류전쟁시대 그러나 걱정마라, 우회전쟁시대,  이 글은 패배전쟁시대의 시 얘기가 아니니 오해마라.    시인의 나라는 높은 산 골짜기에 있다.                 -「시인들」에서 순수한 언어, 순수한 시의 세계는 현실과는 동떨어진 곳- 「높은 산 골짜기」에 존재한다. 그 세계는 「환상」의 세계이며 현실적인 가치와는 위배될 수 밖에 없는 공간이다. 따라서 시인은 「시에는 아무 것도 없다. 조금도 근사하지 않은 우리의 생밖에」라는 선언적인 진술을 통해 시의 세계가 풍요롭고 초월적이라는 기존의 관념을 뒤집고, 시와 대립되는 현실이 얼마나 위악적인지를 우리에게 되묻는다. 그러나 그는 시인이기 때문에 언어를 버릴 수 없다. 언어와 삶, 현실과 순수성의 대립에서 비롯되는 딜레마는 오규원에게 더욱 절박한 문제로 자리잡고 있다. 「안녕」치 못한 시대, 「패배전쟁시대」, 그리고 일상화된 억압의 현실 속에서 절대적으로 순수한 언어가 유지되기는 사실 불가능한 일이다. 그는 시와 삶의 대립에서 삶의 패배를 읽어내지만, 순수한 언어에의 믿음과 타락한 세상이 빚어내는 팽팽한 긴장 사이에서 순수한 언어를 갈망하는 것이야말로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며 현실에 대응할 수 있는 힘으로 자리잡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언어의 명징함, 그리고 의식의 깨어있음이야말로 자신의 존재 좌표가 될 수 있으리라는 믿음 때문이다. 잠이 오지 않는 밤이 잦다. 오늘도 감기지 않는 내 눈을 기다리다 잠이 혼자 먼저 잠들고, 잠의 옷도, 잠의 신발도 잠의 文碑도 먼저 잠들고 나는 남아서 혼자 먼저 잠든 잠을 내려다본다. …… 남들이 시를 쓸때 나도 시를 쓴다는 일은 아무래도 민망한 일이라고 나의 시는 조그만 충격에도 다른 소리를 내고         -「남들이 시를 쓸 때」에서   시인은 쉽게 잠들지 못한다. 왜냐하면 시인의 의식이란 깨어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남들이 시를 쓸 때 나도 시를 쓰는 일」은 「민망한 일」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자신의 실존적인 삶을 포기하고 훼손된 현실과 제도화된 가치에 스스로를 던져놓는 일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이 「문득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 이야말로 바로 시쓰기의 원동력이다. 시인은 순수한 의식과 진정성을 되묻고 이것을 추구한다. 그에게 안정을 부여하는 언어에 대한 절대적 믿음은 현실과의 싸움을 포기하지 않고 꿈을 간직할 수 있는 내적인 동인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 고통스러운 현실을 깨어서 견뎌야 하며 자신의 의식을 일깨워 건강한 언어를 활성화시키고자 하는 열망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정신성을 벼려나감으로써 시의 세계를 현실과는 동떨어진 순수의 세계에 두고자 하는 노력의 산물이다. 「이 시대의 純粹詩가 음흉하게 不純」해지는 것은 언어의 순수함에 대한 갈망이 현실속에서 와해되어 버릴만큼 현실은 타락했고 자신은 현실속에서 소외되었기 때문이다. 오규원은 언어를 믿는 것이 자신의 소외를 상쇄시켜 주리라 믿었고 이것은 세계를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시적 주체의 힘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었다. 오염된 현실 속에서도 타락하지 않은 완전한 존재, 진정한 가치를 잃지 않는 것이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언어의 순결성에 대한 시인의 의식은 길들여진 관념이나 제도화된 가치, 그리고 굳어진 언어와의 싸움이라는 전략적 의미를 띠고 수행된다. 그의 시작(詩作)은 언어화된 현실의 힘을 빌려 세계를 인정하면서 거부하고 거부하면서 인정하는 긴장과 갈등의 양극을 순회하면서 새롭게 펼쳐진다. =========================================================================     343. 겨울나무 / 장석주                                                 겨울나무                                  장 석 주   잠시 들렀다 가는 길입니다. 외롭고 지친 발걸음 멈추고 바라보는 빈 벌판 빨리 지는 겨울 저녁 해거름 속에 말없이 서 있는 흠 없는 혼 하나   당분간 폐업합니다, 이 들끓는 영혼을. 잎사귀를 떼어 버릴 때 마음도 떼어버리고 문패도 내렸습니다.   그림자 하나 길게 끄을고 깡마른 체구로 서 있습니다.     장석주 시선집 중에서    
1404    詩人은 골목길을 좋아한다... 댓글:  조회:5358  추천:0  2016-05-06
◈  엉큼함과 솔직함 사이에서  ◈      / 진영대 나는 엉큼하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투명하지 않다는 말일 것이다. 영혼이 맑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들키지 않으려고 후미진 곳을 찾아 납작 엎드려 있는 내 영혼. 영혼의 몸도 역시 보호색으로 변해 있을 것이다. 그늘 빛으로 변해 있을 것이다. 엉큼하다는 말속에는 불쑥 두 쪽으로 갈라진 혓바닥을 내밀고 당신들을 향해 달려들지도 모른다는 경계의 뜻과 함께 이미 그 속내를 알고 있으니 엄두도 내지 말라는 경고의 메시지를 포함해서일 것이다. 내가 당신들을 물어뜯고 상처 내고 덧나게 해야 하는지, 더 낮게 똬리를 틀고, 혹시 밟히더라도 사람들이 다 지나갈 때까지 꿈틀거리면 안 되는 상황인지는 나의 판단이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나는 아직 단단하게 굳어진 허물 때문에 물어뜯을 기운이 남아 있지 않다. 제 허물 벗기기에도 너무 힘들다. 상처 입은 내 영혼이 덧나지 않고 새 살이 돋기를 기다릴 뿐이다. 산딸기 덩굴 속에 똬리를 튼 것도 그 이유 중의 하나다. 내 몸에는 가시가 없기 때문에 내 몸을 보호해 줄 가시밭에다 영혼을 숨겨 두고 쉬고 싶은 것이다. 내가 제일 두려운 건 가시나무 숲에서 기어나와 기다란 몸뚱어리를 끌고 사람들이 수시로 지나가는 길을 건너가야 할 때다. “나는 그 속에 있다.”  이 문장은 오랫동안 내가 준비한 대답이었다. 내가 입은 상처가 누구에게서 입은 것이었던지 당장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우선이었다. 하다 못해 치통으로 날밤을 새워야 했던 날에도 나는 날이 밝으면 당장 어금니든 송곳니든 모두 뽑아 버리고 말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어떤 아픔이든지 간에 아픔을 참고 견딘다는 일은 미련한 일처럼 느껴졌다. 항상 상처받지 않으려면 조심하는 일밖에 없었다. 꿈은 아프지 않을 때나 가능한 일이었다. ① 물 속에서 유영을 즐기던 버들붕어 한 마리가 물 속에 비친 내 그림자를 제 집인 줄 알았던지 그림자 속으로 들어와 휴식을 취한다. 내 안에 버들붕어 한 마리가 살게 된 것이다. ② 등뒤에서 햇살은  그림자를 자꾸 호수 안으로 밀어 넣는다. 내가 물 속으로 들어가는 것도 아닌데 그럴수록 내 몸은 더욱 산언덕에다 등을 기댄다. ③ 성큼성큼 산 그림자가 물 속으로 걸어간다.  버들붕어의 크고 단단한 집이 되는 것이다. ④ 내 몸도 그러는 사이 유선형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상처 입지 않은 영혼도 집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은 지극히 사소한 경험에서다. 어느 날 물가에 서 있는데 버들붕어 한 마리가 물 속에 비친 내 그림자 속으로 들어왔다. 그것이 전부다. 그 후로 버들붕어가 내 그림자 속에서 오래 머물러 있었는지 혹은 물 속을 유영하던 중에 우연히 내 그림자를 통과하게 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어쩌면 물고기의 습성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수초 사이 후미진 곳이 아늑한 집이 된다는 것을 물고기는 오랜 습성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나는 얼마 전에 한 시인으로부터 생물의 진화에 대해서 장황한 설명을 들은 적이 있다. 인식 이전의 무의식만이 진실이다. 모든 세포는 우리가 인식해서 자신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각 기관에 명령을 내리기 전에 각각의 세포가 인식한 방향으로 변해 가고 있다. 그것이 곧 진화요, 진화는 의식으로 되는 것도 아니며 생존에 임해서 가장 솔직한 세포들의 생각이다. 그것이 곧 진실이다. 당시 나는 술에 취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런 유의 얘기에 크게 관심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곧 잊어 버렸다. 형태 면에서 가장 완벽한 진화의 예로 우리는 물고기의 유선형을 예로 들곤 한다. 내 몸도 곧 유선형으로 변해 갈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낀 것은 순간이었을까. 「집」이라는 제목을 달아 놓고 후에 읽어보니 너무 과장이 심했다. 초점도 없이 감상에만 젖어 한 가락 뽑아 놓았으니 제 속은 후련했겠다 싶었다. 그러나 실상 그렇지도 못했다. ①에서 버들붕어가 내 그림자 안으로 들어왔다는 사실만을 묘사해도 충분한 일을 화자의 주관을 너무 장황하게 설명하는데 급급했던 것이다. ②와 ③에서는 물밖에 서 있는 화자에게로, 이어서 배경으로 버티고 있는 등뒤의 산으로 시야가 옮겨지면서 또다시 그림자 안으로 렌즈를 굴절시키는데 ④로 옮겨오는 것이 그것이다.(①물 속의 버들붕어→ ②물 밖의 화자→ ③등뒤의 산→ ④산 그림자 안의 화자)  빈번한 시야의 이동은 비록 동일한 장소라 할지라도 산만해지기 쉬울 뿐만아니라 내용 면에서도 긴장감을 줄 수 없는 약점을 갖는다. 그래서 개작을 하면서 시야를 좁혀 보기로 하고 버들붕어에게 더 많은 말을 시켜 보았던 것이다. ① 버들붕어 한 마리, 물 속에 비친 내 그림자 속으로 들어왔다. ※습성은 쉽게 버려지는 것이 아니어서 물살을 향한 자세를 풀지 않았다. 내 그림자의 가슴 안쪽에 돌이 하나 박혔던지 물살이 생기곤 했는데  버들붕어는 그 물살을 기어오르느라고 가슴을 마구 헤집어 놓았던 것이다. 좁은 내 목에도 돌이 하나 불쑥 솟아 나왔다. 물 밖으로 튀어나온 돌을 뛰어 넘느라고  텅, 텅 계단 밟는 소리를 냈던 것이다. 겨우, 돌을 하나 뛰어 넘은 버들붕어는 ※내 그림자의 눈구멍 안으로  제 머리를 쓱 디밀어 본다. 방마다 물이 가득 차 있다. ② 나의 어디에 물이 차 있을까 어느새 나를 제대로 오므리지 못하고 버들붕어를 모두 흘려보냈던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 동안에도  햇살은 등뒤에서 나를 떠민다. 내 그림자의 손목을 잡고 자갈밭으로 가고 있다. 자갈밭, 마른 웅덩이에서는 버들붕어 한 마리가  퍼덕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시야의 이동은 ①물 속의 버들붕어에서 ②물 밖의 화자로 단순화시킬 수 있었지만 여전히 불만이 많아 이것저것 건드려 보느라고 제목을 「집」에서 「빈 집」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러는 사이 장소도 호수에서 여울물로 바뀌어서 물이 흘러가게 했는데 아무래도 작위적이다.  자신에게도 이 시는 아직도 불만이 많다는 것은 결코 예의가 아님을 안다. 얼마 전에 가깝게 지내는 한 시인에게 보여준 적이 있는데 ※부분에서 주관적 해석내지 의미를 부여하려고 한 흔적이 남아 있다든지(내 그림자의 가슴 안쪽에 돌이 하나 박혀 있었던지) 시에서 몸을 차용하여 표현하고 있는 부분의 안이함(현재 많은 시에서 나타나는 현상 중의 하나) 등에 대해서 지적 받은 바 있다. 실제로 “그림자의 가슴 부분에 돌이 박혀 있다” 정도로 사실적인 묘사를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아 있었음에도 그대로 싣기로 한 것은 어떤 잡지에 이미 원고를 보낸 작품이었기 때문에 발표된 후에 수정을 함이 옳겠다는 생각과 함께 이 글이 나 자신에게 시를 공부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의도에서다. 나는 지금 이 시가 또 한번 변하게 될 거라는 예감에 사로잡힌다. 문장의 수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시야의 변화를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다. 나는 사실 이 시에서 화자와 버들붕어 중의 어느 하나에게 눈길을 주지 못하고 갈팡질팡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연민의 의미와도, 따뜻함의 포장과도 무관한 것이다. 욕심이며 유보다. 머뭇거림이다. 애매함이며 무지다. 시에 있어서 가장 경계해야 할 악덕일 뿐이다.  그러면서도 내가 선뜻 이 시를 텍스트로 삼은 것은 뻔뻔스러워서도 아니고 좋은 시여서도 아니다. 가장 최근에 썼던 시이기 때문에 나에게 가까울 수 있고, 솔직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시에 대해서 솔직하게 인정하기보다는 변명하려고 대들었던 경험을 잊을 수 없다.  지금도 그렇다. 이 시를 쓸 때 나는 버들붕어가 물고기라는 이상의 정보도 의미도 부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버들붕어에 대해 필요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고 정보를 제공하려고 한다. 그렇게 읽혀지기를 기대한다. 버들붕어는 맑은 물보다는 어느 정도 탁한 물에서 더 많이 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1급수가 아니어도 충분히 살아 남는다. 수초 사이의 그늘을 좋아해서 좀처럼 물 밖에서는 찾기가 힘들다. 숨어 있기를 좋아한다. 그래서인지 조금은 탁하고 검은빛의 비늘을 가진다.  이쯤에서 시인들은 내 변명에 대해서 싫증을 내기 시작할 것이다. 시인들이 짜증을 내며 떠난 후에도 나는 오랫동안 버들붕어와 잠시 그의 집이 되어 주었던 그림자에 대해서 생각에 잠기곤 할 것이다. 그리고는 텅 빈 그림자를 바라보며 나는 또 시를 쓰고 있을 것이다. 자갈밭, 마른 웅덩이에서는/ 버들붕어 한 마리가/ 퍼덕거리고 있었다./ 햇살의 손목을 뿌리치고/ 바지를 걷어올리고/ 나는 마른 웅덩이 안으로 들어간다. 물은 아직 멀다./ 웅덩이 자갈밭에다 두 손에 모아온 물을 쏟아 놓는다/ 햇살이 잠깐 물에 젖는다./…… 어느 날 나는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잘박잘박 자갈밭을 걷고 있는 나의 그림자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나는 그런 그림자의 뒷모습을 보면서 엉큼하다는 생각을 떠올릴 것이다. 시를 쓰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면서 가장 어려웠던 일이 솔직함이다. 솔직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도 용기이지만 위험한 것도 용기이다. 솔직하면 나의 상처는 치유가 될망정 가장 가까운 사람이 상처입기 마련이다. 그리고 좀 멀리 떨어진, 내 칼끝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은 칼날이 그의 귓가를 스쳐간 후에도 상처입지 않았다는 쾌감을 느낄 것이다.  시를 쓰면서 제일 먼저 배우는 것이 관념어를 빼고 말하기이면서도 막상 시에 있어서 관념어를 버리지 못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느라고 항상 고개를 숙이고 발끝만 보며 걷기도 하고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골목길을 더 좋아하지만 가로등 밑에 오래 서 있는 것을 보면 나는 역시 엉큼하다. 내 시의 구 할이 관념어일망정 내 인생의 구 할은 사실이기를 바란다.◑ ◇진영대 97년 『실천문학』으로 등단. ========================================================================   344. 애인 / 장석주                           애인                                  장 석 주   누가 지금 문 밖에서 울고 있는가. 인적 뜸한 산언덕 외로운 묘비처럼 누가 지금 쓸쓸히 돌아서서 울고 있는가.   그대 꿈은 처음 만난 남자와 오누이처럼 늙어 한 세상 동행하는 것 작고 소박한 꿈이었는데 왜 그렇게 힘들었을까.   세상의 길들은 끝이 없어 한번 엇갈리면 다시 만날 수 없는 것 메마른 바위를 스쳐간 그대 고운 바람결 그대 울며 어디를 가고 있는가.   내 빈 가슴에 한 등 타오르는 추억만 걸어놓고 슬픈 날들과 기쁜 때를 지나서 어느 먼 산마을 보랏빛 저녁 외롭고 황홀한 불빛으로 켜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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