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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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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0    윤동주묘 발견 당시 "묘비는 제대로 서있었다"... 댓글:  조회:2119  추천:0  2017-09-15
윤동주 시인의 ‘묘소’ 최초 발견자는 일본인 학자 (ZOGLO) 2017년9월15일 와세다대 오무라 명예교수(오른쪽)과 전상중 제독 와세다대 오무라 명예교수 세계한글작가대회서 밝혀 1985년 봄 시인 동생 부탁받고 조선족 문인들과 발견 [아시아엔=전상중 국제펜클럽 회원, 해군 예비역 제독]=  애국시인 윤동주의 묘를 최초 발견한 사람은 일본인이다. 와세다대학 오무라 마스오 명예교수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오무라 교수는 ‘윤동주와 한국문학’이란 심도 있는 평론을 쓰는 등 남북한 문학 연구에 평생을 바쳤다. 경주에서 12일 개막, 15일 끝나는 제3회 세계한글작가대회에 참가하고 있는 오무라 교수는 “1985년 5월 발견 당시 한국과 중국이 국교 수립 이전이어서 한국인 학자들의 접근이 쉽지 않았을 것”이라며 “윤동주 시인의 동생(윤일주)이 1984년 도쿄를 방문해 내게 부탁해 묘지를 찾게 됐다”고 말했다. 오무라 교수가 시인의 묘지를 찾은 것은 1985년 5월14일로 윤동주 시인이 용정에 묻힌 지 40년 만의 일이다. 오무라 교수는 “윤 시인은 죽을 때까지 시인으로 대우받지 못했다. 후쿠오카 감옥에서 옥사하여 한줌의 재로 돌아온 손자를 북간도에 묻은 다음 할아버지가 ‘시인 윤동주의 묘’라는 비석을 세워놓아 비로소 시인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 시인의 무덤을 찾아냈다는 사실에 가슴 벅찼다”고 술회했다. 오무라 교수는 “봉분이 허물어져 편평할 정도였다”며 “5월이었는데도 새싹은 돋지 않았고, 잡초만 무성해서 황량하기 그지 없었다”고 했다. 그는 발견 당시 묘비가 넘어져 있었다고 알려진 것과 관련해 “묘비는 제대로 서있었다”고 했다. 윤동주 시인 묘지 발견에는 중국 옌볜대학 권철 부교수, 조선문학 고연실 주임, 이해산 강사와 용정중학 한생철 교사 등 조선족 문인과 학자들이 동행했다. 오무라 교수 등은 발견 닷새 뒤인 5월19일 옌볜민속박물관에서 전통제기를 빌려 두만강에서 잡은 생선을 제상에 올려 제사을 지냈다고 한다.
729    시의 재료는 바로 시인 자신이다... 댓글:  조회:2027  추천:0  2017-09-15
  시의 재료는 바로 시인 자신이다   /   김 경 주    어떤 죽음  죽은 그의 얼굴엔  젖은 신문이 흡착되어  그의 눈과 귀와, 그리고 코를   그 입을,  잘 염습하여  숨을 막고 있었다  죽은 그의 귀와 눈  시즙이 흐르는 입 속엔   썩은 텔레비전이, 텔레비전 애벌레가  살았다, 살아있었다  신문을 뚫고 기어 나왔다    졸시 ‘어떤 죽음’은 신문으로 얼굴을 덮어 둔 어느 노숙자의 주검을 본 순간 충동을 받아 쓴 시조이다. 그것은 평소 내 의식과의 돌연한 만남이었다. 그 노숙자는 아마 기아와 한기 때문에 죽었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얼굴에 덮혀 있는 신문지 한 장 때문에, 그 죽음의 원인이 신문이나 텔레비전 언어 등에 의한 무차별적 공격성에 있다는 충동을 받은 것이다. 사람들은 매스미디어 등의 언어에 의해 종속되고 오염되고 세뇌되어 휩쓸린다는, 그래서 개인의 생명력은 사라지고 신문이나 텔레비전만 얼굴 없는 대중(민중) 속에 살아있다는 평소의 고뇌가 헝클어진 실뭉치처럼 풀리지 않고 있었는데 이 노숙자의 죽음을 보는 순간 부싯돌을 치는 것처럼 뜨거운 영감과 함께 풀려나온 것이다.    신문이 젖어 흡착되었다느니, 생명의 구멍들을 모두 막아 염습하였다느니, 시즙이 흐르는 입 속에서 텔레비젼이 기어나온다는 것 등은 물론 팽배한 의식이 만들어낸 환상이다.  사람은 태어남과 동시에 본디 온전한 생명력을 어느 정도 상실하게 된다고 한다. 분별심이 생기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더 많은 능력을 잃게 된다고, 그것이 곧 적응이라고 탈무드에서도 그리했듯이, 성경에서는 에덴의 동산에서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써 분별심(선이니 악이니 하는)이 생겨 마침내 완전한 삶을 상실하고 고통의 삶이 시작되었음을 비유적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불가에서는 알음알이와도 같은 분별심을 버리는 것을 해탈의 기본으로 삼고 있다.    분별심은 언어에 의해 발생하는 관념이다. 우리들은 언어로 사고하고 언어로 삶을 표현하고 완성한다. 그러나 사실 언어 때문에 관념이 형성되고 모든 고통은 관념 때문에 일어난다. 언어가 없는 동식물이나 무정물은 사고하지 못하고, 그러므로 관념을 만들어 괴로워하지도 않는다. 사람들은 언제나 사람들이 만든 것에 종속되고 노예처럼 끄달리는 것이다.    환언하면 우리는 모두 행복 때문에 불행한 것이며, 그런 분별의 언어 장난으로 생사를 구별하기 때문에 죽음이 두려운 것이다.  신神 또한 인류가 만들어낸 환상의 지팡이이며 굴레가 아니던가.   시인이라고 다르지 않다. 우리는 언어로 사고하고 언어로 삶을 표현하거나 완성한다. 그러나 시인이 표현하고 완성코자 하는 세계는 일상적인 의미와는 다른 창조의 세계이다. 언어에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언어로 다시 태어나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는 점점 많은 량의 언어를 소유하고 이용하지만 언어에 대한 믿음과 애착은 옛 사람들에 비해 빈약하다. 언어의 지시성, 도구성에만 의지하다 보니 언어가 가진 고유의 정서적 환기나 음악성 등을 믿지 않는다.    그러나 시인은 일반인들과는 다르게 언어와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어 언어의 객관적 일반적 지시성보다는 주관적인 창조성과 음악성을 믿고 있다. 시인은 언어의 내부에 켜진 불뿜는 이미지를 사냥하는 사람들이다. 시인에게 있어서 언어는 도구나 수단이 아니라 목적 그 자체이다. 이 불가분의 관계에 의해 시인은 언어에 종속되지 않고 언어와 함께 숨쉬고 살아가며 새로운 삶을 창조하는 동반자가 된다.    언어는 인간과의 관계 없이 존재할 수는 없다. 그래서 언어를 사고의 통로라고도 하고 존재의 집이라고들 하는 것이다. 한 겨레의 언어는 그 겨레가 전 역사를 통해 이룩해 낸 온갖 사고의 집약이라고 일찍이 석학들은 설파했다. 그러므로 언어 속에는 의미가 갖는 지시성 외에 그 겨레의 얼과 문화와 정서, 역사적인 환기, 음악적 문양 등 독자적으로 내포되어 있는 생명력이 있다.    그런데 시인은 이미 언어가 만들어 놓은 상황에 대해서 다시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상황을 새롭게 한다. 다시 말하면 일상적 의미와는 다른 차원의 언어를 느끼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언어의 내포적 의미를 확산시키는 작업이다. 언어에 새로운 질서를 부여하고 일상적인 삶 또한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한다.    언어의 일상적 의미 즉 지시성이나 도구성에 의존하는 신문 같은 기사 속에는 그것을 쓴 개인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대량의 언어군이 우리 생활 속에 정보라는 이름으로 홍수처럼 밀려들지만 우리는 그 정보에 대해 자신 있는 결단을 내릴 수도 없다. 정보는 넘쳐나는데 오히려 상황은 더욱 혼미해지는 것이다. 그것은 신문에 사용되는 언어가 기업이나 권력 따위에 종속되기 때문이다. 신문의 언어가 권력화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핍박당하고 있는가. 그들이 보도하는 뉴스는  사건을 재료로 하여 만들어낸 그들의 상품에 불과하다.    이러한 상황 속의 언어는 온갖 관념을 만들어 사람들을 현혹하는 죽은 언어이다. 사어의 바다에서 숨가쁘게 자맥질하는 시인은 이러한 현실이 괴롭다. 어떤 대상이 언어에 의해 종속되어 그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는 상황도 괴롭다. 그러므로 시인은 이러한 외부현실을 내부적 현실로 받아들여 고뇌한다. 그리하여 비로소 그 외부현실을 의식 속에 가열케 하고 성숙케 하여 새로운 내부적 현실로 발효시킨다.    말이 한참 돌아왔지만, 결국 시인은 일상적인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일상적의 의미와는 다른 차원의 언어를 구사하는 것이다. 그것은 마침내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이나 관념이 아닌 구체적인 내용을 형상화하여 설명이나 객관성을 벗어나 감각적으로 느끼도록 하는 것이다.    시의 작법에 대해 소개해 놓은 대부분의 책들은 시를 쓰는 순서가 정해져 있는 것처럼, 소재, 제재, 모티브(동기), 테마(주제)의 등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시 쓰기의 통일된 생명력을 분해하여 나열해 놓은 것으로서 마치 삶을 분해, 분석하여 설명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것은 삶의 일부분을 이해시킬 수 있을지 모르나 새로운 삶을 창조할 수는 없다. 삶이란 총체적으로 느끼고 체험하는 것이다. 시 또한 삶에 대한 이해와 주장이므로 이러한 방법은 시를 쓰는 데 있어서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실제로 시를 써 보면, 의식화되어 있는 혹은 시인의 내부에 잠재해 있는 어떤 강렬한 충동이(동기,주제) 어떤 대상이나 현실과의 돌연한 만남에 의해  구체화되고 형상화된다는 걸 알 수 있다.    시인의 내적 충격이 재료를 선택하는 것이다. 이때 언어는 비로소 도구적 차원에서 승화되어 시적상황, 시적현실로 창조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시인의 내적충격은 목적이나 본질에 앞서는 불가피성에 의한다고 볼 수 있다. 그 불가피성은 평소 시인이 쌓아온 경험과 사상과 철학과 사회현실 혹은 역사의식 같은 총체적으로 들끓고 있는 에너지에서 분출하게 된다. 늘 깨어 있어야 한다는 말은 이러한 에너지가 늘 충만해 있는 긴장상태에 있어야 한다는 말의 다른 표현일 것이다.    백일장 같은 행사에서는 소재 혹은 주제를 먼저 정해 놓고 시 쓰기를 강요하기 때문에 소재가 시를 쓰는 사람의 내적충동과 맞아떨어지지 않으면 아무리 능력 있는 시인이라 하더라도 실패할 수 있다. 화가들은 자기가 터득한 기법에 의해 언제나 어느 정도 수준의 작품을 내놓을 수 있겠으나, 시인은 한 마디도 쓸 수 없을 수 있다. 시는 손끝에 의해 씌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를 문학의 꽃, 예술의 꽃이라고 특별히 지칭하기도 하는 것이다. 시적 언어는 허구를 만들어내는 언어이다. 그것은 시인의 개인적인 체험, 언어 안에 불씨처럼 박혀있는 상상력에 의한 영상의 환기 같은 것이다.  한 편의 시의 가치는 현실 속에 있는 외적인 사물이나 외적인 진실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소재는 시의 가치와는 관계가 없다. 시에 동원된 소재, 현실의 상황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들은 일단 시적 언어 속, 허구 속에서 해체 되거나 재조립을 본 언어의 관계 속에서 새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림의 재료는 물감이고 시의 재료는 언어이다. 화가는 물감으로 되어 있지는 않지만, 시인은 언어로 되어 있는 환등이요 꿈이다. 시인이 언어로 되어 있다는 말은 시의 재료가 바로 시인 자신이라는 뜻이다. 시인 내부에 몽롱하게 켜져 있는 의식의 등불이 대상(언필칭 '소재'는 촉매일 뿐이다)을 꿈속처럼 비추어 새롭게 하는 것이다                   
728    미국 시적 스타일 실험영화 감독, 시인 - 제임스 브로톤 댓글:  조회:3180  추천:0  2017-09-15
출생 1913년 11월 10일, 미국 캘리포니아 머데스토 사망 1999년 5월 17일, 미국 워싱턴 포트 타운젠트 본명 제임스 브로튼 (James Broughton) 수상 1989년 미국 영화 연구소(AFI : American Film Institute) 마야 데렌(Maya Deren)상, 1954년 칸 국제영화제 시적판타지 최우수 영화상() 데뷔 (The Potted Psalm, 1946) 요약 제임스 브로톤은 미국의 영화 감독으로, 시적 스타일의 실험영화로 잘 알려져 있다. 영화감독 이외에 시인으로 오랜 기간 활동했으며, 샌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 하는 진보적 문화예술 운동에 참여했다. 대표작으로는 (The Potted Psalm, 1946), (The Bed, 1968), (Song of the Godbody, 1977), (The Garden of Eden, 1981) 등이 있다. 목차 접기 생애와 이력 작품세계 영화사적 평가 작품목록 저서 제임스 브로튼 James Broughton 생애와 이력 제임스 브로튼은 1913년 11월 10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머데스토에서 태어났다. 경제적으로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1918년 전 세계적으로 창궐한 스페인 독감으로 인해 아버지를 잃고, 예민하고 고압적이었던 어머니 밑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다.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해 어린 시절을 보낸 후에는 스탠퍼드 대학교(Stanford University)로 진학한다. 1945년 자신이 쓴 희곡 『썸머 퓨리(Summer Fury)』로 스탠퍼드 드라미티스 얼라이언스가 수여하는 알든상(Alden Award)을 수상한다. 브로튼은 당시 샌프란시스코에서 희곡을 쓰고 실험영화를 만들던 폴린 카엘(Pauline Kael)과 동거를 했으며 그녀와의 사이에서 1948년 출생한 한 명의 자녀를 두었다. 향후 그녀는 '뉴요커(The New Yorker)'를 비롯한 많은 지면에 오랫동안 영화 비평글을 연재한 미국의 저명한 영화평론가가 된다. 한편, 제임스 브로톤은 1950년대에는 유럽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친구 커밋 시트(Kermit Sheets)와 함께 단편 영화 (The Pleasure Garden, 1953)을 연출하는데, 이 영화는 1954년 칸 국제영화제에서 장 콕토(Jean Cocteau)로부터 ‘시적 판타지 영화’ 부문 최우수상을 받는다. 1950년대를 주로 유럽에서 보낸 후 미국으로 돌아온 그는 49세의 늦은 나이에 연극관련 일을 하던 수잔나 하트(Suzanna Hart)와 결혼한다. 당시 브로튼은 카를 융(Carl Jung)의 분석심리학의 탐구에 푹 빠져있던 때였다. 결혼식은 태평양 연안에서 3일 간 지속되었는데 친구인 실험영화 감독 스탠 브래카주(Stan Brakhage)가 결혼식을 촬영했다. 브로톤은 하트와의 사이에서 두 명의 아이를 두었다. 이후, 브로튼과 하트는 철학자 앨런 와츠(Alan Watts), 시인 마이클 맥클러(Michael McClure), 무용가 겸 안무가인 애너 핼프린(Anna Halprin), 사진작가 이모젠 커닝햄(Imogen Cunningham) 등과 더불어 문화공동체를 건설하기도 했다. 브로튼은 여러 문화예술 운동의 일원으로 활동했는데, 미국의 시적 아방가르드의 중심으로 유명해진 표현이자 샌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 한 시적 활동을 통칭해서 일컫는 ‘샌프란시스코 르네상스’(San Francisco Renaissance)에 속하는 시인이자 1950년대 미국에서 일어난 문학 및 예술 운동인 ‘비트 세대’(Beat Generation)에 속하는 시인들을 가리키는 ‘비트 시인’(Beat Poet)의 선구자였다. 또한, 1970년대 미국 캘리포니아를 중심으로 생겨난 반문화(counter-culture)적 토양에서 만들어진 국제 그룹인 ‘래디컬 패어리즈(Radical Faeries)'의 초창기 시인이기도 했다. 종교 의복을 입으면서 보수적인 성개념을 비판하고 성적 소수자를 차별하는 것을 반대하는 인권 운동 단체 ‘영원한 방종의 자매들(Sisters of Perpetual Indulgence)'의 일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브로튼은 샌프란시스코 아트 인스티튜드(San Francisco Art Institute)에서 영화와 예술적 의식에 관한 교육을 할 때 학생들 사이에서 큰 신망을 얻었다. 학교 재직 중 『빛을 보기』(Seeing the Light)라는 영화 만들기에 대한 책을 저술하기도 한다. 말년에 조엘 싱어(Joel Singer)라는 25세의 캐나다 영화학도를 만나게 되고 그와 깊은 관계에 이르게 된다. 싱어와의 만남은 브로튼의 인생의 전환기가 되었는데, 특히 많은 영화 작품을 만드는 계기가 된다. (Hermes Bird, 1979)를 시작으로, 그들이 스리랑카에 거주했을 때 만들었던 (The Garden of Eden, 1981)과 (Devotions, 1983), 그리고 그의 마지막 작품으로 유쾌한 방식으로 죽음에 집착하면서 자신의 시와 영화 만들기에 대해 경의를 표한 (Scattered Remains, 1988) 등 다양한 작품을 발표했다. 브로튼은 1989년 미국 영화 연구소(AFI : American Film Institute)가 독립영화 예술가들에게 수여하는 마야 데렌(Maya Deren)상을 받는다. 그는 1999년 5월 17일 연인 싱어와 10년간 살고 있던 워싱턴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사망한다. 작품세계 제임스 브로튼의 예술 세계는 그가 인생의 대부분을 보냈던 캘리포니아와 샌프란시스코와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그의 작품은 철저히 캘리포니아의 정서를 담고 있다. 그는 온 세상을 울리는 태평양의 파도가 내는 굉음과 함께 야생과 문명, 남성과 여성, 육체와 정신이 만나는 경계의 극단에서 미학적 탐구를 지속했다. 브로튼은 “나는 시에 대하여 본질적으로 문학보다는 음악과 미술로부터 더 많이 배웠다"라고 밝혔다. 시와 희곡을 쓰던 그에게 영화는 새로운 예술의 지평을 제시했는데, 이에 대해 그는 “내가 서른두 살 때 영화는 예술가 동료들 상호 간의 애정이라는 경이로운 현실을 보여줌으로써 나를 자살로부터 구했다"라고 기술했다. 바로 이런 연대의 정서라는 주제가 그의 85년의 생애에 함께했다. “시를 쓰는 것만큼이나 시적인 삶을 사는 것 또한 중요하다”라는 브로튼의 말은 그의 삶과 예술의 일치를 보여준다. 브로튼의 모든 작품은 미스테리, 상상, 성적 정체성, 위험, 유머, 변신의 퍼레이드라고 할 수 있다. 브로튼의 첫 번째 영화는 1946년 시드니 피터슨(Sidney Peterson)과 공동 연출한 (The Potted Psalm, 1946)으로, 이야기의 파편들과 이미지의 소리 없는 결합을 특징으로 한다. 죽음을 상징하는 듯 기타를 든 남자, 나뭇잎을 먹는 여자, 자신의 몸에 술을 붓는 머리가 없는 남자 등 초현실적 이미지들이 등장하고, 이어서 이미지들이 사라지고 반사, 굴절, 변형된 이미지들이 그 뒤를 잇는다. 요약된 시편 The Potted Psalm 칸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하면서 브로튼의 초기작 중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은 38분의 러닝타임을 지니는 (The Pleasure Garden, 1953)이다. 영화에서 화창한 날씨의 조각 정원에서 사람들이 산책을 하며 저마다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한 청교도 신사가 모든 여가 활동을 금지하자는 유인물과 함께 사람들의 여가를 방해하기 시작한다. 영국영화연구소(British Film Institue)의 지원으로 제작된 이 작품은 모든 종류의 금기에 대항하여 사랑과 자유의 승리를 유머스럽게 연출한 판타지 영화이다. 이후, 제임스 브로튼은 15년 간의 공백기를 거쳐 (The Bed, 1968)를 만든다. 인간의 삶을 표현하는 춤을 찬양하며 특히 알몸 노출에 대한 금기를 깨뜨린 영화로 많은 영화제에서 수상을 한다. 이 작품을 시작으로 브로튼의 창작욕은 다시 활기를 되찾았고 이후 여러 편의 작품들을 만들었다. 신화 속에 등장하는 아이의 몸을 한 영원한 젊음의 상징인 ‘영원한 소년(Puer aeternus)'에 대한 경의인 (This is it, 1970), 인간의 육체에 대한 경의를 바치는 영화 (The Golden Positions, 1971), 여성의 불멸성을 이상화하는 철학적 원칙인 ‘영원한 여성(Eternal Feminie)'에 대한 (Dreamwood, 1972), 우주와 모든 생명 그리고 에너지는 영원히 순환한다는 ‘영원 회귀’에 대한 영화 (The Water Circle, 1975) 등은 브로튼 영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영화사적 평가 제임스 브로튼은 자신의 영화적 화두에 대해 "영원한 소년, 영원 회귀, 영원한 여성 등 영원성은 인간의 미, 영혼의 놀라움, 즐거움의 필요성을 찬양했다"라고 기술했다. 또한, 브로톤은 개인과 사회를 위해 치유와 평화를 지탱하는 굵은 뿌리로서의 신체(神體)(Godbody)인 인간의 육체라는 사원을 계속해서 탐험했다. 하지만 그의 전체 경력을 통한 시적, 영화적 탐험에도 불구하고 무기력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결코 해결할 수 없는 어머니에 대한 문제에도 항상 빠져있었다. 또한, 그는 자신의 생애에 걸쳐 아주 깊게 죽음의 문제를 탐구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문화의 큰 흐름인 샌프란시스코의 각종 문화예술 운동에 중심적으로 참여했던 제임스 브로튼은 미국 실험 영화계의 중요한 감독으로 인간의 육체, 삶과 죽음, 영원으로의 회귀 같은 철학적, 존재론족 문제들에 대한 깊은 성찰을 영화에 담아내고자 했다. 그의 영화 제작은 사회의 터부나 금지에 대한 저항의 실천이면서 그와 함께하는 동료들과의 연대의 증거이기도 하다. 작품목록 (The Potted Psalm, 미국, 1946, 단편, 공동 연출) Sidney Peterson 공동 연출 (Mother’s Day, 미국, 1948, 단편) (Adventures of Jimmy, 미국, 1950, 단편) (Loony Tom, 미국, 1951, 단편) (Four in the Afternoon, 미국, 1951, 단편) (The Pleasure Garden, 미국, 1953, 단편, 공동 연출) Kermit Sheets 공동 연출 (The Bed, 미국, 1968, 단편) (This is it, 미국, 1970, 단편) (The Golden Positions, 미국, 1971, 단편, 공동 연출) Kermit Sheets 공동 연출 (Nuptiae, 미국, 1971, 단편) (Dreamwood, 미국, 1972, 단편) (High Kukus, 미국, 1973, 단편) (The Stars Are Beautiful, 미국, 1974, 단편, 헌정인) Stan Brakhage (Testament, 미국, 1974, 단편) (The Water Circle, 미국, 1975, 단편) (Together, 미국, 1976, 단편) (Erogeny, 미국, 1976, 단편) (Song of the Godbody, 미국, 1977, 단편, 공동 연출) Joel Singer 공동 연출 (James, 미국, 1979, 단편, 배우) Laird Sutton 연출 (Hermes Bird, 미국, 1979, 단편) (The Garden of Eden, 미국, 1981, 단편) (Devotions, 미국, 1983, 단편, 공동 연출) Joel Singer 연출 (Jungle Girl, 미국, 1984, 단편, 배우) Richard Myers 연출 (Scattered Remains, 미국, 1988, 단편) (Herogeny, 미국, 2010, 단편, 시나리오) Jessica Plumb 연출 저서 『어떤 어린이들을 위한 노래』(Songs for Certain Children, 1947)  『더 플레이그라운드』(The Playground, 1949 )  『뮤지컬 체어스』(Musical Chairs, 1950)  『언 얼마낙 포 애머리스트스』(An Almanac for Amorists, 1955)  『트루 그리고 폴스 유니콘』(Ture & False Unicorn, 1957)  『더 라이트 플레이메이트』(The Right Playmate, 1964)  『타이팅스』(Tidings, 1965)  『하이 쿠쿠스』(High Kukus, 1969)  『어 롱 언드레싱』(A Long Undressing, 1971)  『씽잉 더 라이트』(Seeing the Light, 1977)  『오드스 포 오드 어케즌스』(Odes for Odd Occasions, 1977)  『더 앤드로자인 저널』(The Androgyne Journal, 1977)  『힘스 투 헤르메스』(Hymns to Hermes, 1979)  『그래피티 포 더 존스 오브 헤븐』(Graffiti for the Johns of Heaven, 1982)  『엑스터시스』(Ecstasies, 1983)  『에이 투 제트 : 26 서머네트스』(A to Z : 26 Sermonettes, 1986)  『후플라스』(Hooplas, 1988)  『75 라이프 라인스』(75 Life Lines, 1988)  『스페셜 딜리버리스』(Special Deliveries, 1990)  『커밍 언버튼드』(Coming Unbuttoned, 1993) 『리틀 서먼스 오브 더 빅 조이』(Little Sermons of the Big Joy, 1994)  『리틀 프레이어스 투 빅 조이스 마더』(Little Prayers to Big Joy’s Mother, 1995)  『패킹 업 포 파라아이스 : 셀렉티드 포엠스 1946-1996』(Packing Up for Paradise : Selected Poems 1946-1996, 1997)
727    미국 실험영화 감독, 시인 - 크리스토퍼 맥클레인 댓글:  조회:2813  추천:0  2017-09-15
  출생 1923년, 미국 오클라호마(Oklahoma)주 와파뉴카(Wapanucka) 사망 1975년, 미국 캘리포니아 본명 크리스토퍼 맥클레인 (Christopher Maclaine) 데뷔 (The End, 1953) 요약 크리스토퍼 맥클레인(Christopher Maclaine)은 미국의 실험영화 감독이자 시인이다. 1940~1950년대 당시 기성 세대의 주류 가치관을 거부하는 반문화 운동인 '비트 제너레이션(Beat generation)' 운동에 참여했다. 시인으로서 활동하던 맥클레인은 1953년 (The End, 1953)을 데뷔작으로, (The Man Who Invented Gold, 1957), (Beat, 1958), (Scotch Hop, 1959) 등의 실험영화를 통해 1950년대 미국 아방가르드 영화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목차 생애와 이력 작품세계 영화사적 평가 작품목록 저서 생애와 이력 크리스토퍼 맥클레인(Christopher Maclaine)은 미국의 실험영화 감독 겸 시인이다. 1923년 미국 오클라호마(Oklahoma) 주(州)의 작은 마을 와파뉴카(Wapanucka)에서 태어난 맥클레인은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 UC Berkeley)에서 스페인어를 전공했다. 1946년 대학을 졸업한 그는 이듬해부터 동료이자 아내인 노르마 스미스(Norma Smith)와 함께 시문학 전문지인 『콘투어』(CONTOUR)를 창간한다. 맥클레인은 당시 기성 세대의 주류 가치관을 거부하는 반문화 운동인 '비트 제너레이션(Beat generation)' 운동에 참여한 '캘리포니아 비트 시인(California Beat poet)' 중 한 명이었는데, 1947년부터 1949년까지 발행한 4권의 『콘투어』에 자신과 아내의 시와 함께 잭 스파이서(Jack Spicer), 로버트 던컨(Robert Duncan), 필립 라만티아(Philip Lamantia), 데니스 르베르토프(Denise Levertov), 케네스 패첸(Kenneth Patchen), 케네스 렉스로스(Kenneth Rexroth) 등의 시를 실었다. 맥클레인은 1948년의 창작 시집 『자생적인 상처』(The Automatic Wound, 1948)를 시작으로, 『미친 새』(The Crazy Bird, 1951), 『말』(Words, 1954), 『타임 캡슐』(The Time Capsule, 1960) 등을 출판하면서 1960년까지 시에 대한 관심과 열정을 이어나간다. 시인으로서 나름대로 명성을 떨치던 맥클레인은 1953년 (The End, 1953)이라는 제목의 단편 실험영화를 발표하면서 영화계에 입문한 후, (The Man Who Invented Gold, 1957), (Beat, 1958), (Scotch Hop, 1959) 등의 실험영화를 연출했다. 젊은 시절부터 보헤미안의 자유로운 정신세계를 지니고 있던 맥클레인은 광인(狂人)으로 불릴 만큼 기이하고 과감한 행동들을 했다. 1960년대 이후에는 알코올과 약물에 지나치게 중독되어 창작은 물론 더 이상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그는 1975년 캘리포니아의 한 정신병원에서 51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 작품세계 맥클레인의 1953년 데뷔작 (The End, 1953)은 미국이 한국전쟁에 참여하고 있던 1952년 미국과 소련의 수소폭탄 실험과 전쟁이 가져올 인류 종말을 극도의 실험적 이미지를 통해 표현한 영화로, 단절적이고 편집증적인 몽타주 기법과 검은화면의 빈번한 사용 등을 통해 영화에 대한 회의적인 자의식을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작품은 1940년대 미국 아방가르드 영화운동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시네아스트 프랭크 스타우패커(Frank Stauffacher)가 아방가르드 영화의 미학적 가치에 대한 강한 신념을 바탕으로 1946년부터 1954년까지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San Francisco Museum of Modern Art)에서 진행했던 아방가르드 영화 정기 상영 프로그램 (Art in Cinema)에서 처음 상영되었다. 을 본 관객들은 작품의 모호함과 지나친 실험성에 혹평을 보냈는데, 이러한 반응에 대해 맥클레인은 의연한 태도를 지녔다고 한다. 첫 영화에 대한 대중의 부정적인 반응에도 불구하고 맥클레인은 이후 3편의 영화를 계속해서 만든다. 1957년에 발표한 (The Man Who Invented Gold, 1957)는 제목이 암시하듯이 컬러 필름과 흑백 필름의 병치를 통해 영화가 지닌 빛과 색의 조작 가능성을 마치 연금술처럼 직접적으로 실험한 작품이다. 1958년 작 (Beat, 1958)는 '비트 제너레이션' 운동이 한창이던 시기에 발표한 영화로, 불규칙한 프레임과 점프컷, 콜라주 등의 기법을 통해 당시 사회의 불안함을 표현한 작품으로, '비트' 운동을 영화적 이미지로 표현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맥클레인의 마지막 영화작품은 1959년에 발표한 (Scotch Hop, 1959)인데, 그는 이 작품을 통해 자신의 뿌리인 스코틀랜드의 정신과 전통에 대한 애정을 표현한다. 영화사적 평가 크리스토퍼 맥클레인은 '비트 제너레이션(Beat generation)' 운동을 주도한 시인으로서, 또 실험영화 감독으로서 1950년대 미국 아방가르드 영화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는 단지 4편의 실험영화를 만들었지만, 그의 영화 속에 담긴 실험성과 새로운 표현 기법은 스탠 브래카주(Stan Brakhage), 브루스 코너(Bruce Conner), 로버트 넬슨(Robert Nelson) 등 미국 실험영화의 대표적 시네아스트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작품목록 (The End, 미국, 1953, 단편, 실험영화) (The Man Who Invented Gold, 미국, 1957, 단편, 실험영화, 연출/촬영감독/음악) (Beat, 미국, 1958, 단편, 실험영화) (Scotch Hop, 미국, 1959, 단편, 실험영화) 저서 『자생적인 상처』(The Automatic Wound, 1948) 『미친 새』(The Crazy Bird, 1951) 『말』(Words, 1954) 『타임 캡슐』(The Time Capsule, 1960)
726    미국 비트시인 - 코소 댓글:  조회:3084  추천:0  2017-09-15
  출생 1930. 3. 26, 미국 뉴욕 뉴욕 시 국적 미국 요약 미국의 시인.   1950년대 중반 비트 운동을 이끌었다. 고아원에서 자라다가 입양되었으나, 11세가 되던 해 재혼한 아버지가 찾아와 그와 함께 살았다. 가출을 되풀이해 소년원에 수감되기도 했다. 17세 때 절도죄로 뉴욕 주 단네모라에 있는 클린턴 교도소에서 3년간 복역했다. 그곳에서 문학을 알게 된 뒤 1950년 그리니치빌리지에서 시인 앨런 긴즈버그를 만나, 그를 통해 작가수업과 '전과자' 교육을 쌓았다. 1951~52년 〈로스앤젤레스 이그재미너 Los Angeles Examiner〉에서 일했으며, 그뒤 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를 여행했다. 매사추세츠 주 케임브리지에서 살던 1955년 처녀 시집 〈순결한 처녀가 아주 분주하여 The Vestal Lady on Brattle〉를 출판했다. 1956년 코소는 긴즈버그가 살고 있던 샌프란시스코로 갔고, 그곳 술집이나 다방의 낭독회에서 비트 운동이 탄생했다. 코소의 시 가운데 〈가솔린 Gasoline〉(1958)에 실린 시들은 낭송하기에 효과적인 운율문체와 주술문체를 이용한 대표적인 것이다. 〈죽음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The Happy Birthday of Death〉(1960)에서는 좀더 쉬운 대화체로 돌아갔다. 그뒤의 작품으로는 〈장수한 사람 Long Live Man〉(1962)·〈영혼의 변화 The Mutation of the Spirit〉(1964)·〈시선집 Selected Poems〉(1962)·〈서글픔 Elegiac Feelings American〉(1970) 등이 있다. 희곡 〈이 좌절의 시대 This Hung-Up Age〉(1955)와 장편소설 〈미국 급행 The American Express〉(1961)도 썼다.
725    미국 시인 비트운동의 지도자 - 케루악 댓글:  조회:2991  추천:0  2017-09-15
  출생 1922. 3. 12, 미국 매사추세츠 로얼 사망 1969. 10. 21, 플로리다 세인트피츠버그 국적 미국 요약 미국의 시인, 소설가, 비트 운동의 지도자 겸 대변인(→ 비트 운동). 본명은 Jean-Louis Kerouac.   비트 운동이라는 단어를 만들어냈고, 일련의 소설을 통해 이 운동의 규범인 가난과 자유를 찬미했다. 〈길 위에서 On the Road〉(1957)는 이 계열의 첫소설이면서 가장 유명하다. 프랑스계 캐나다인의 후손으로서 어린시절 학교에서 제2외국어로 영어를 배웠다. 제2차 세계대전중 해군에서 복무하다 정신분열증으로 제대하고 상선 선원이 되었다. 그뒤 미국과 멕시코를 떠돌며 철도원·산림경비원 등 갖가지 직업을 전전하다가 첫소설 〈시골과 도시 The Town and the City〉(1950)를 펴냈다. 그러나 인습적인 소설에 불만을 느낀 케루악은 새롭고 즉흥적이며, 종지가 없고 편집도 하지 않은 글을 써서 세련된 양식을 좋아하는 작가들을 놀라게 했다. 3주 만에 쓴 〈길 위에서〉는 이 새로운 양식이 낳은 첫작품이다. 특정한 형식이 없는 이 작품은 돈 한푼 없는 여러 젊은이들이 온나라를 이리저리 헤매며 미친 듯이 여행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그들은 삶·아름다움·재즈·성(性)·마약·속도감·신비주의에 매료되었으며 자명종·시간표·도로지도·저당증서·연금·근면의 대가로 주어지는 인습적인 미국식 보상 일체를 철저히 경멸했다. 이 책은 앨런 긴즈버그, 그레고리 코소, 윌리엄 버로스, 존 클레런 홈스, 피터 오를로브스키, 개리 스나이더, 필립 훼일런 같은 비트 운동의 주요작가들을 비롯한 시인·대중가수·재즈광·신비주의자·기인으로 이루어진 광범한 지하문화에 대중의 관심을 끄는 기폭제가 되었다. 〈수행의 방랑자 The Dharma Bums〉(1958)·〈지하의 사람들 The Subterraneans〉(1958)·〈삭스 박사 Doctor Sax〉(1959)·〈외로운 나그네 Lonesome Traveler〉(1960)·〈쓸쓸한 천사들 Desolation Angels〉(1965)을 비롯한 모든 작품이 자전적이며, 대개는 대표적인 비트 작가들이 등장인물로 나온다. 사후에 발표된 〈코디의 환상 Visions of Cody〉(1972)은 원래 〈길 위에서〉의 일부였다. 배리 기퍼드와 로렌스 리가 편집한 〈잭의 책 Jack's Book : An Oral Biography〉(1978)은 케루악의 친구와 동료들이 그에 대해 이야기한 것들을 모은 책이다.          
724    [시문학소사전] - "비트"문학이란?... 댓글:  조회:3411  추천:0  2017-09-15
요약 미국의 사회·문학 운동. '길 잃은 세대'의 뒤를 이은 미국 현대문학의 한 조류다. 관습적이고 '획일적인' 사회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한결같이 허름한 옷과 태도, 그리고 '히피' 어휘를 받아들였다.   1950년대에 시작되었으며, 샌프란시스코의 노스비치, 캘리포니아의 베니스 웨스트, 뉴욕 시의 그리니치빌리지 등지의 보헤미아 예술가 그룹들이 그 중심이 되었다. 이 운동의 지지자들은 자신들의 스타일을 '비트'(원래는 '기진맥진한'이라는 뜻이며 후에는 '행복에 넘친'[beatific]이라고 해석되는 경우도 있었음)라고 자처했으나 사람들은 그들을 비트닉스(beatniks)라는 조롱조의 명칭으로 불렀다. 그들은 자신들이 관습적이고 '획일적인' 사회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한결같이 허름한 옷과 태도, 그리고 재즈 음악가들에게서 빌려온 '히피' 어휘를 받아들였다. 일반적으로 정치와 사회적 문제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으며 마약, 재즈, 섹스, 선불교의 수양 등으로 생기는 고도의 감각적 의식을 통한 개인적인 해방·정화·계시를 주창했다. 〈부조리하게 자라다 Growing up absurd〉(1960)의 저자 폴 굿먼을 비롯한 비트족의 변호자들은 현대사회가 즐거움도 목적도 없으므로 도피와 반항이 충분히 정당하다고 여겼다. 비트 시인들은 시를 까다로운 강단에서 해방하여 '거리로 돌려보내자'고 했다. 그들은 샌프란시스코의 '코이그지스턴스 베이글 숍'이나 로렌스 퍼링게티의 '시티 라이츠 서점' 같은 비트족의 본거지에서, 때로 프로그레시브 재즈의 반주에 맞추어 자작시를 낭송하기도 했다. 그들의 시는 대개 혼란스럽고 외설스러운 표현 투성이었지만, 때로는 앨런 긴즈버그의 〈울부짖음 Howl〉(1956)과 같이 강한 힘과 감동을 지닌 작품도 있었다. 긴즈버그를 비롯해 소설가 잭 케루악 같은 비트 운동의 주요인물들은 일종의 자유롭고 비구성적인 창작을 지지했다. 이것은 작가가 즉각적인 경험을 전달하기 위해 자신의 사상과 감정을 아무런 구상이나 수정 없이 적어내려가는 방법이었다. 그러한 방식으로 인해 비트족의 모방자들은 전혀 규율이 없고 앞뒤가 맞지 않는 장황한 요설을 늘어놓게 되었다. 비트 운동은 그 일시적 유행이 사라지기 시작한 1960년대까지 흥미롭고 유망한 작가들을 여러 명 배출했는데 예를 들면 퍼링게티, 그레고리 코르소, 필립 웨일런, 게리 스나이더 등이다. 비트 운동은 또한 블랙 마운틴 시인들이나 소설가 윌리엄 버로스같이 예전에는 무시당했던 비정통적인 작가들이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을 닦아주었다. 존 타이텔의 〈벌거벗은 천사들:비트 세대의 삶과 문학 Naked Angels:The Lives and Literature of the Beat Generation〉(1976)은 이 운동에 대한 연구서이다.          
723    만약 당신과 함께 지구별 한 골목에서 세탁소를 연다면... 댓글:  조회:3240  추천:0  2017-09-14
앨런 긴즈버그(Irwin Allen Ginsberg) 미국의 시인. ‘비트 세대’의 대표 작가. 1956년에 발표한 시 을 통해 동세대가 느끼는 정서를 파격적 에너지로 표출해 새 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 1960년대 이후 반문화의 물결 속에서 활발히 사회 운동에 참여했으며, 록 뮤지션이나 각국의 지도자들과 교류하며 히피 세대의 계관시인 역할을 했다. 평생 산업문명과 검열, 억압과 전쟁에 저항했고, 불교도로서 서구에 동양사상을 전하는데도 기여했다. 그는 비트 세대의 ‘월트 휘트먼’으로 불리며 현대 미국사회가 잊고 있던 시인의 역할을 일깨웠다고 평가 받는다.               아메리카   아메리카 나는 네게 다 주었고 이제 아무것도 없다. 아메리카 2달러 27센트 1956년 1월 17일. 나는 스스로 정신을 차릴 수 없다. 아메리카 우리는 언제쯤 인류의 전쟁을 끝낼까? 네 원자폭탄으로 좆이나 까라. 기분이 언짢으니 귀찮게 굴지 마. 정신을 차리기 전에는 시를 쓰지 않겠어. 아메리카 너는 언제쯤 선해질 수 있을까? 언제면 너는 네 옷을 벗을까? 언제면 너는 무덤을 통해 스스로를 볼 수 있을까? 너는 언제쯤 백만 명의 트로츠키주의자들 값을 할래? 아메리카 너의 책장에는 왜 이리 눈물이 많은지? 아메리카 너의 계란을 언제쯤 인도에 보낼래? 나는 네 정신 나간 요구사항에 진절머리가 나. 나는 언제쯤 제대로 된 모습으로 슈퍼마켓에 가서 필요한 것들을 살까? 아메리카 무엇보다 다음 세대가 아닌, 너와 나면 완벽해. 너의 기계들은 내게는 너무 과해. 너를 보면 나는 성인(聖人)이 되고 싶어져. 이 논쟁을 잠잠케 할 다른 방법이 있겠지. 버로스는 탕헤르에 있고 돌아올 것 같지 않아 해로운 일이지. 너는 해로워지려는 거야, 아니면 그저 농담 같은 건가? 나는 이해해 보려 해. 나는 내 강박을 포기하지 않을 거야. 아메리카 그만 좀 닦달해, 내가 하는 일은 내가 잘 알아. 아메리카 매화꽃이 떨어지고 있어. 요 몇 달 나는 신문도 읽지 않았지, 매일 누군가 살인을 계획해. 아메리카 우울증을 생각하면 감상적인 기분이야. 아메리카 나는 어릴 때 사회주의자였지만 이젠 아니야, 미안해. 나는 기회만 되면 마리화나를 피워. 나는 며칠이고 집에 앉아 옷장 속 장미들을 바라보는 거야. 차이나타운에 가면 술에 취하지만 약은 절대 안 해. 나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걸 확실히 알고 있으니까. 너는 내가 마르크스를 읽는 걸 봤겠지. 내 정신분석가는 내가 완전히 옳대. 주기도문은 외지 않겠어. 나는 신비주의적인 비전이 있고 우주의 떨림을 느껴. 아메리카 나는 아직도 막스가 러시아에서 건너 왔을 때 네가 그에게 한 일은 이야기하지 않았어. 아메리카 나는 너를 부른다. 너의 삶의 감성을 타임지가 조종하도록 내버려 둘 거야? 나는 타임지에 사로잡혀 있어 매주 이걸 읽어. 내가 저 모퉁이 사탕가게를 지나 몰래 도망갈 때면 타임지 커버가 나를 응시하고 있어. 나는 버클리 공공도서관 지하에서 이걸 읽어. 언제나 내게 책임에 대해 말해.  사업가들은 진지해.  영화 제작자들도 진지해.  나를 빼고 모든 사람이 진지해. 불현듯 내가 아메리카라는 생각이 드는 거야. 다시 나는 스스로에게 말하지.   아시아는 내게 대적해 약진하고 있다. 나는 중국인의 기회를 가진 일이 없는데. 나의 국가 자원을 헤아려 봐야지. 내 국가 자원은 마리화나 두 개피와 수백만의 생식기 시속 1400마일로 가는 출간하지 못하는 개인적인 문학작품들 2500개의 정신병원 나는 내 감옥들이나 500개의 태양 아래 둔 나의 화분 속, 수백만 소외계층에 대하여는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나는 프랑스의 매음굴을 폐지했고 다음은 탕헤르를 향한다. 내 야망은 대통령이 되는 것, 나는 카톨릭 교도지만.   아메리카 너의 바보 같은 기분으로 내가 어떻게 경건한 기도문을 쓸 수 있을까? 나는 헨리-포드처럼 멈추지 않을 테고 내 연시는 그의 자동차들만큼이나 더욱 개성이 있어서 그것들 모두가 각각 다른 섹스인 거지. 아메리카 나는 내 연시를 너에게 작품당 2500달러에 팔 거야 네 옛날 것보다 500달러나 싸지 아메리카 탐 무우니를 풀어줘 아메리카 스페인의 충신들을 살려줘 아메리카 사코와 반제티는 죽어서는 안 돼 아메리카 나는 ‘스코츠버러 소년들’이야 아메리카 내가 일곱 살이었을 때 엄마는 나를 사회주의 조직 모임에 데리고 가곤 했고 그들은 티켓 하나당 병아리콩 한 줌을 주었어 티켓은 하나에 5센트였지,  연설은 자유로웠고 모두들 선하고 노동자들에 대해 슬퍼했어,  이건 너무나 진실해서 너는 1835년에 이 당이 얼마나 좋았는지 모를 거야,  스콧 니어링은 위대한 노인이었고 진정한 인간(mensch) 마더 블로어, 실크 파업자들의 영원한 여성(Ewig-weibliche)은 나를 울게 했어,  이스라엘 앰터의 이디시 연설가를 본 적이 있었지. 모두들 스파이였어. 아메리카 너는 전쟁을 하러 가고 싶지 않잖아. 아메리카 나쁜 건 러시아 놈들이야. 저 러시아 놈들, 러시아 놈들, 저 중국 놈들. 그리고 다시 러시아 놈들. 러시아는 우리를 산 채로 먹고 싶어 해. 러시아의 완력은 화가 나 있지.  그녀는 차고에 걸어들어와 우리 자동차를 훔치고 싶어 해. 그녀는 시카고가 갖고 싶은 거야. ‘리더스 다이제스트’를 적화해야겠다 싶은 거야.  그녀는 시베리아의 자동차 공장들이 갖고 싶은 거야.  그 거대한 관료주의가 우리의 주유소들을 먹여 살리니까. 그건 좋을 게 없어. 으윽. 그는 인디언에게 글을 가르쳐.  그는 크고 까만 검둥이들이 필요한 거야. 허.  그녀는 우리가 하루에 열여섯 시간 일했으면 하는 거야. 살려줘. 아메리카 이건 상당히 심각해. 아메리카 이게 내가 텔레비전을 틀어 놓고 받은 인상이야. 아메리카 이게 옳은 걸까? 나는 당장 직업을 얻어야 할까 봐. 군대에 가거나 정밀부품 공장에서 선반을 돌리기 싫은 건 사실이야,  나는 아무튼 근시안적이고 사이코패스이니까. 아메리카 나는 내 퀴어* 어깨를 바퀴에 얹는다. 버클리, 1956년 1월 17일 *queer.     ==================================== //////////////////////////////////////////////////////   만약 당신과 함께 지구별 한 골목에서 세탁소를 연다면   당신이 미국을 세탁기 안에 집어넣는 동안   나는 세탁법이 불분명한 정치인들을 비눗물 속에 담글 것이다   방사능에 창백해진 양떼구름과 함박눈과 아이들의 헝겊 인 형을 당신이 문질러 빠는 동안   나는 입술 튼 강과 기름 무지개 뜬 모래톱을 세척해   점박이 물새알과 거북이 알들에게 돌려줄 것이다   당신이 이스라엘과 아랍 성직자들의 묵은 때를 벗기기 위해   강력 세제를 사러 슈퍼마켓에 갈 때   나는 성당 계단에서 잠든 노숙자들의 옷을 빨아   고통의 얼룩들을 제거한 뒤   순백의 겨울 볕에 내다 널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을 외면하는 데 지친   산성비에 녹슨 대자대비관음보살과 성모마리아의 어깨를 양 철 수세미로 문질러 닦고   세상의 모든 지폐들을 표백제에 담가 숫자를 지울 것이다   미해결된 증오와 불치병과 사랑한 시간이 많지 않은 고독들 을 탈수기에 넣고 돌릴 것이다       지속 불가능해진 지속 가능 발전과 파헤쳐진 길들과 공장투 성이 시골들을   침묵을 방해하는 소음들과 무의미한 날들과 깊이 없이 아름 다운 것들을   편 가르기 하는 지식인들과 소녀들 납치하는 검은 손들을   오래오래 삶을 것이다   정오쯤 달라이 라마가 세탁소 문을 열고 들어와 검정 운동화 를 맡기면   우리는 셋이 앉아 버터차를 마시며 그의 호탕한 웃음에   함께 티베트식으로 웃을 것이다   당신이 중국해의 파도 거품들 속에   지느러미가 떼어진 채 버려진 상어들의 상흔을 소독해   남극의 얼음 지대로 돌려보내는 사이   나는 빨래 방망이로 일본 고래잡이배들을 두들겨 팰 것이다   멸종 위기에 놓인 붉은머리오목눈이 세발가락도요 흰목물 떼새   통사리 꾸구리 얼룩새코미꾸리를 가로챈   때에 쩌든 욕망과 무지와 곰팡이 핀 권력들을     세탁소 뒷마당 산수유나무 아래 파묻을 것이다   새가 노래하지만 무엇을 노래하는지 모르는   우파와 좌파들의 경색된 뇌를 애벌빨래해 대기권 밖에 내다 널고   당신이 농약과 화학비료 판매상들의 돈을 세탁해   아시아와 아프리카 농부들에게 나눠 주는 동안   나는 티베트에서 네팔까지 밀고 내려오는 중국제 물건 실은 트럭들을   하수구로 쓸려 보낼 것이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국제결혼 한 처녀들의 슬픈 예복과 머 리 장식을   당신이 정성스레 다리미질하면   나는 잠시 가부좌하고 앉아 인디언 노래를 부를 것이다   그리고 당신의 제안대로 자정 무렵 세탁소 문을 닫고   근처 공원에 가서 안드로메다 부근의 별자리들을 구경한 뒤  우리는 주말 동안, 혹은 영원의 시간 동안 이 지구 행성을 떠 나 있을 것이다   *  앨런 긴즈버그(1926~1997) - 미국 시인       너무나 많은 것들  ​                                               앨런 긴즈버그 ​너무나 많은 공장들 너무나 많은 음식 너무나 많은 음악 너무나 많은 철학 너무나 많은 주장 그러나 너무나 부족한 공간 너무 부족한 나무 너무나 많은 경찰 너무나 많은 컴퓨터 너무나 많은 가전제품 너무나 많은 돼지고기   회색 슬레이트 지붕들 아래 너무나 많은 커피 너무나 많은 담배연기 너무나 많은 종교 너무나 많은 욕심 너무나 많은 양복 너무나 많은 서류 너무나 많은 잡지 지하철에 탄 너무나 많은 피곤한 얼굴들 그러나 너무나 부족한 사과나무 너무나 부족한 잣나무 너무나 많은 살인 너무나 많은 학생폭력 너무나 많은 돈 너무나 많은 가난 너무나 많은 금속물질 너무나 많은 비만 너무나 많은 헛소리 그러나 너무나 부족한 침묵 나는 너무 많은 것들 속에서 한숨을 쉬고 있다.  많은 것을 보태지 말자. 나무를 보자.     만약 앨런 긴즈버그와 함께 세탁을 한다면 /류시화     만약 당신과 함께 지구별 한 골목에서 세탁소를 연다면 당신이 미국을 세탁기 안에 집어넣는 동안 나는 세탁법이 불분명한 정치인들을 비눗물 속에 담글 것이다   방사능에 창백해진 양떼구름과 함박눈과 아이들의 헝겊 인형을 당신이 문질러 빠는동안 나는 입술 튼 강과 기름 무지개 뜬 모래톱을 세척해 점박이 물새알과 거북이 알들에게 돌려줄 것이다   당신이 이스라엘과 아랍 성직자들의 묵은 때를 벗기기 위해 강력 세제를 사러 슈퍼마켓에 갈 때 나는 성당 계단에서 잠든 노숙자들의 옷을 빨아 고통의 얼룩들을 제거한 뒤 순백의 겨울 볕에 내다 널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을 외면하는 데 지친 산성비에 녹슨 대자대비관음보살과 성모마리아의 어깨를 양철 수세미로 문질러 닦고 세상의 모든 지폐들을 표백제에 담가 숫자를 지울 것이다 미해결된 증오와 불치병과 사랑한 시간이 많지 않은 고독들을 탈수기에 넣고 돌릴 것이다   지속 불가능해진 지속 가능 발전과 파헤쳐진 길들과 공장투성이 시골들을 침묵을 방해하는 소음들과 무의미한 날들과 깊이 없이 아름다운 것들을 편 가르기 하는 지식인들과 소녀들 납치하는 검은 손들을 오래오래 삶을 것이다   정오쯤 달라이 라마가 세탁소 문을 열고 들어와 검정 운동화를 맡기면 우리는 셋이 앉아 버터차를 마시며 그의 호탕한 웃음에 함께 티베트식으로 웃을 것이다   당신이 중국해의 파도 거품들 속에 지느러미가 떼어진 채 버려진 상어들의 상흔을 소독해 남극의 얼음 지대로 돌려보내는 사이 나는 빨래 방망이로 일본 고래잡이배들을 두들겨 팰 것이다   멸종 위기에 놓인 붉은머리오목눈이 세발가락도요 흰목물떼새 통사리 꾸구리 얼룩새코미꾸리를 가로챈 때에 쩌든 욕망과 무지와 곰팡이 핀 권력들을 세탁소 뒷마당 산수유나무 아래 파묻을 것이다   새가 노래하지만 무엇을 노래하는 지 모르는 우파와 좌파들의 경색된 뇌를 애벌빨래해 대기권 밖에 내다널고 당신이 농약과 화학비료로 판매상들의 돈을 세탁해 아시아와 아프리카 농부들에게 나눠주는 동안 나는 티베트에서 네팔까지 밀고 내려오는 중국제 물건 실은 트럭들을 하수구로 쓸려 보낼 것이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국제결혼 한 처녀들의 슬픈 예복과 머리 장식을 당신이 정성스레 다리미질하면 나는 잠시 가부좌하고 앉아 인디언 노래를 부를 것이다   그리고 당신의 제안대로 자정 무렵 세탁소 문을 닫고 근처 공원에 가서 안드로메다 부근의 별자리들을 구경한 뒤 우리는 주말 동안, 혹은 영원의 시간 동안 이 지구 행성을 떠나 있을 것이다   *앨런 긴즈버그(1926-1997)-미국시인     앨런 긴즈버그           거룩! 거룩! 거룩! 거룩! 거룩! 거룩! 거룩! 거룩! 거룩! 거룩! 거룩! 거룩! 거룩! 거룩! 거룩! 세상은 거룩해! 마음이 거룩해! 살갗이 거룩해! 코가 거룩해! 혀와 좆과 손과 똥구멍은 거룩해! 모든 게 거룩해! 누구나 거룩해! 어디나 거룩해! 나날이 영원해! 모두 천사야! 건달이 천사처럼 거룩해! 미친 놈이 거룩해 너처럼 내 마음이 거룩해! 타자기가 거룩해 시가 거룩해 목소리가 거룩해 듣는 사람들이 거룩해 황홀이 거룩해! 거룩한 피터 거룩한 앨런 거룩한 솔로몬 거룩한 루시앙 거룩한 케루악 거룩한 헝크 거룩한 버로우 거룩한 캐서디 거룩한, 알 수 없는, 후장 먹힌 놈과 고생하는 거지 거룩한, 끔직한 인간 천사들! 정신병원에 계신 거룩한 어머니! 거룩한, 캔자스 할아버지들 좆!   거룩한, 신음하는 색소폰! 거룩한 비밥 아포칼립스! 거룩한 재즈밴드 대마초 재즈광 평화 & 고물 & 드럼!   거룩한, 초고층빌딩와 포장도로 고독! 거룩한, 수백만으로 꽉 차는 구내 식당! 거룩한, 거리 아래 눈물스러운 신비 강!   거룩한, 외로운 거대한 괴물! 거룩한, 중산층스러운 막대한 새끼 양! 거룩한, 미친 폭동스러운 목사! 로스 앤젤레스를 파내는 사람은 로스 앤젤레스다 * los angeles!   거룩한 뉴욕 거룩한 샌 프란시스코 거룩한 피오리아 & 시애틀 거룩한 파리 거룩한 탕헤르 거룩한 모스크바 거룩한 이스탄불! 거룩한, 영원 속 시간 거룩한 시간 내 영원 거룩한, 공간 속 시계 거룩한 사차원 거룩한 제5 인터내셔널 거룩한 몰록 속 천사!   거룩한 바다 거룩한 사막 거룩한 철로 거룩한 기관차 거룩한 환상 거룩한 환각 거룩한 기적 거룩한 눈알 거룩한 심연!   거룩한 용서! 자비! 자선! 믿음! 거룩한! 우리들! 몸뚱이들! 고생! 아량! 거룩한, 초자연스러운 특별한 찬란한 총명한 호의스러운 마음    
722    "새는 자기의 자취를 남기지 않는다"... 댓글:  조회:2240  추천:0  2017-09-14
황지우 시 모음 41편     어버이날 입니다 허둥지둥 출근하여 책상에 앉았습니다 지인께서 감동적인 글을 보내셨네요 한분은 하늘나라에 계시고, 한 분은 세월의 무게를 온통 지시고 힘겨운 하루를 보내고 계실텐데,,,,   어제는 전화를 드렸습니다 죄송하다는 둥,,,, 어머니께서 이러시네요 큰애야! 내일 휴일이면 산으로 운동가거라   지난주 와서 보고 밥 먹었는데,,,,   나도 부모가 되었고, 시간은 바삐도 흘러서 중년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을 알고, 깊어지는 것은 무엇일까요?   사랑합니다 저를 키우시고, 먹이시고, 교육시키느라고,,, 아직도 뒷바라지 하시느라고 고생하셨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저를 이 땅에 보내주신 부모님께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으로 보답하고자 합니다   ☆★☆★☆★☆★☆★☆★☆★☆★☆★☆★☆★☆★ 11월의 나무       황지우 11월의 나무는, 난감한 사람이  머리를 득득 긁는 모습을 하고 있다  아, 이 생이 마구 가렵다  주민등록번호란을 쓰다가 고개를 든  내가 나이에 당황하고 있을 때,  환등기에서 나온 것 같은, 이상하게 밝은 햇살이  일정 시대 관공서 건물 옆에서  이승 쪽으로 측광을 강하게 때리고 있다  11월의 나무는 그 그림자 위에  가려운 자기 생을 털고 있다  나이를 생각하면  병원을 나와서도 병명을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처럼  내가 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11월의 나무는  그렇게 자기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나는 등뒤에서 누군가, 더 늦기 전에  준비하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했다  ☆★☆★☆★☆★☆★☆★☆★☆★☆★☆★☆★☆★ 12월      황지우 12월의 저녁 거리는 돌아가는 사람들을 더 빨리 집으로 돌아가게 하고 무릇 가계부는 가산 탕진이다 아내여, 12월이 오면 삶은 지하도에 엎드리고 내민 손처럼 불결하고, 가슴 아프고 신경질나게 한다 희망은 유혹일 뿐 쇼윈도 앞 12월의 나무는 빚더미같이, 비듬같이 바겐세일품 위에 나뭇잎을 털고 청소부는 가로수 밑의 생을 하염없이 쓸고 있다 12월의 거리는 사람들을 빨리 집으로 들여보내고 힘센 차가 고장난 차의 멱살을 잡고 어디론가 끌고 간다                       ☆★☆★☆★☆★☆★☆★☆★☆★☆★☆★☆★☆★ 거룩한 식사           황지우 나이든 남자가 혼자 밥을 먹을 때  울컥, 하고 올라오는 것이 있다.  큰 덩치로 분식집 메뉴표를 가리고서  등 돌리고 라면발을 건져 올리고 있는 그에게  양푼의 식은 밥을 놓고 동생과 눈흘기며 숟갈 싸움하던  그 어린것이 올라와, 갑자기 목메게 한 것이다.  몸에 한 세상 떠 넣어주는  먹는 일의 거룩함이여  이 세상에서 모든 찬밥에 붙은 더운 목숨이여  이 세상에서 혼자 밥 먹는 자들  파고다공원 뒤편 순대집에서  국밥을 숟가락 가득 떠 넣으시는 노인의, 쩍 벌린 입이  나는 어찌 이리 눈물겨운가  ☆★☆★☆★☆★☆★☆★☆★☆★☆★☆★☆★☆★ 거울에 비친 괘종 시계          황지우 나, 이번 생은 베렸어  다음 세상에선 이렇게 살지 않겠어  이 다음 세상에선 우리 만나지 말자  ......  아내가 나가버린 거실  거울 앞에서 이렇게 중얼거리는 사나이가 있다 치자  그는 깨우친 사람이다  삶이란 게 본디, 손만 댔다 하면 중고품이지만  그 닳아빠진 품목들을 베끼고 있는 거울 저쪽에서  낡은 쾌종 시계가 오후 2시가 쳤을 때  그는 깨달은 사람이었다  ☆★☆★☆★☆★☆★☆★☆★☆★☆★☆★☆★☆★ 겨울 나무로부터 봄 나무에로          황지우 나무는 자기 몸으로 나무이다  자기 온몸으로 나무는 나무가 된다  자기 온몸으로 헐벗고 영하 13도 영하 20도 지상에  온몸을 뿌리박고 대가리 쳐들고 무방비의 나목으로 서서  아 벌받은 몸으로, 벌받는 목숨으로 기립하여. 그러나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온 혼(魂)으로 애타면서 속으로 몸 속으로 불타면서  버티면서 거부하면서 영하에서 영상으로  영상 5도 영상 13도 지상으로 밀고 간다, 막 밀고 올라간다  온몸이 으스러지도록 으스러지도록 부르터지면서  터지면서 자기의 뜨거운 혀로 싹을 내밀고  천천히, 서서히, 문득, 푸른 잎이 되고  푸르른 사월 하늘 들이받으면서  나무는 자기의 온몸으로 나무가 된다  아아, 마침내, 끝끝내  꽃 피는 나무는 자기 몸으로 꽃피는 나무이다.  ☆★☆★☆★☆★☆★☆★☆★☆★☆★☆★☆★☆★ 겨울 산          황지우 너도 견디고 있구나  어차피 우리도 이 세상에 세들어 살고 있으므로  고통은 말하자면 월세 같은 것인데  사실은 이 세상에 기회주의자들이 더 많이 괴로워하지  사색이 많으니까  빨리 집으로 가야겠다  ☆★☆★☆★☆★☆★☆★☆★☆★☆★☆★☆★☆★ 길         황지우 삶이란  얼마간 굴욕을 지불해야  지나갈 수 있는 길이라는 생각  돌아다녀 보면  朝鮮八道,  모든 명령은 초소다  한려수도,內航船이 배때기로 긴 자국  지나가고 나니 길이었구나  거품 같은 길이여  세상에, 할 고민 없이 괴로워하는 자들아  다 이리로 오라  가다보면 길이 거품이 되는 여기  내가 내린 닻, 내 덫이었구나  ☆★☆★☆★☆★☆★☆★☆★☆★☆★☆★☆★☆★ 꽃피는 삼천리 금수강산        황지우  개나리꽃이 피었습니다 미아리 점쟁이 집 고갯길에 피었습니다 진달래꽃이 피었습니다 파주 인천 서부전선 능선마다 피었습니다 백목련 꽃이 피었습니다 방배동 부잣집 철책담 위로 피었습니다 철쭉꽃이 피었습니다 지리산 노고단 상상봉 구름 밑에 피었습니다 라일락꽃이 피었습니다 이화여자대학 후문 뒤에 피었습니다 유채 꽃이 피었습니다 서귀포 앞 남마라도 산록에 피었습니다 안개풀꽃이 피었습니다 망월리 무덤 무덤에 피었습니다 망초 꽃이 피었습니다 동두천 생연리 봉순이네 집 시궁창에 피었습니다 수국꽃이 피었습니다 순천 송광사 명부전(冥府殿) 그늘에 피었습니다 칸나꽃이 피었습니다 수도육군통합병원 화단에 피었습니다 백일홍 꽃이 피었습니다 태백산 탄광 간이역 침목가에 피었습니다 해바라기 꽃이 피었습니다 봉천동 판자촌 공중변소 문짝 앞에 피었습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경북 도경 국기 게양대 바로 아래 피었습니다 그러나, 개마고원에 무슨 꽃이 피었는지 영변 약산에 무슨 꽃이 피었는지 은율 광산에 무슨 꽃이 피었는지 마천령산맥에 백두산 천지에  그렇지 금강산 일만이천봉에 무-슨-꽃-이-피-었-는-지 무슨 꽃이 피었는지 나는 모릅니다 나는 못 보았습니다 보고 싶습니다 ☆★☆★☆★☆★☆★☆★☆★☆★☆★☆★☆★☆★ 나무는 여러번 살아서 좋겠다          황지우 11월의 나무는, 난감한 사람이  머리를 득득 긁는 모습을 하고 있다  아, 이 생(生)이 마구 가렵다  어언 내가 마흔이라는 사실에 당황하고 있을 때,  하늘은 컴퓨터 화면처럼 푸르고  환등기에서 나온 것 같은, 이상하게 밝은 햇살이  왜정 시대의 로마네스크식 관공서 건물 그림자를  가로수가 있는 보도에까지 늘어뜨리고 있다  11월의 나무는 그 그림자 위에  가려운 자기 생을 털고 있다  내가 어떻게 마흔인가  병원을 나와서도 병명을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처럼  나는 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으며  11월의 나무는  아직도 살려고 발버둥치는 환자처럼, 추하다  그래도 나무는 여러 번 살아서 좋겠다  ☆★☆★☆★☆★☆★☆★☆★☆★☆★☆★☆★☆★ 너를 기다리는 동안         황지우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 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욱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 너무 오랜 기다림         황지우 아직도 저쪽에서는 연락이 없다  내 삶에 이미 와 있었어야 할 어떤 기별  밥상에 앉아 팍팍한 밥알을 씹고 있는 동안에도  내 눈은 골리앗 크레인에 올라간  현대중공업 노동자 아래의 구직난을,  그러나 개가 기다리고 있는 기별은 그런 것은 아니다,  고 속으로 말하고 있는 사이에도  보고 있다  저쪽은 나를 원하고 있지 않음이 분명하다  어쩌다가 삶에 저쪽이 있게 되었는지  수술대에 누워 그이를 보내놓고  그녀가 유리문으로 돌아서서 소리나지 않게  흔들리고 있었을 때도  바로 내 발등 앞에까지 저쪽이 와 있었다  저쪽, 저어쪽이  ☆★☆★☆★☆★☆★☆★☆★☆★☆★☆★☆★☆★ 눈 맞는 대밭에서      황지우  단식 7일째  도량 뒤편 눈 맞는 대밭에  어이없이 한동안 서 있다  창자 같은 갱도를 뚫고  난 지금 박장을 막 관통한 것이다  눈 맞는 대밭은 딴 세상이 이 세상 같다  눈덩이를 이기지 못한 댓가지 우에  다시 눈이 사각사각 쌓이고 있다  여기가 이 세상의 끝일까  몸을 느끼지 못하겠다  내 죽음에 아무런 판돈을 걸어놓지 않은 이런 순간에  어서 그것이 왔으면 좋겠다  미안하지만, 후련한 죽음이  ☆★☆★☆★☆★☆★☆★☆★☆★☆★☆★☆★☆★ 눈보라       황지우 원효사 처마 끝 양철 물고기를 건드는 눈송이 몇 점,  돌아보니 동편 규봉암으로 자욱하게 몰려가는 눈보라  눈보라는 한 사람을 단 한 사람으로만 있게 하고  눈발을 인 히말라야 소나무 숲을 상봉으로 데려가 버린다  눈보라여, 오류 없이 깨달음 없듯,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는 사람은 지금 후회하고 있는 사람이다  무등산 전경을 뿌옇게 좀먹는 저녁 눈보라여,  나는 벌받으러 이 산에 들어왔다  이 세상을 빠져나가는 눈보라, 눈보라  더 추운 데, 아주아주 추운 데를 나에게 남기고  이제는 괴로워하는 것도 저속하여  내 몸통을 뚫고 가는 바람 소리가 짐승 같구나  슬픔은 왜 독인가  희망은 어찌하여 광기인가  뺨 때리는 눈보라 속에서 흩어진 백만 대열을 그리는  나는 죄짓지 않으면 알 수 없는가  가면 뒤에 있는 길은 길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 앞에 꼭 한 길이 있었고, 벼랑으로 가는 길도 있음을  마침내 모든 길을 끊는 눈보라, 저녁 눈보라,  다시 처음부터 걸어오라, 말한다  ☆★☆★☆★☆★☆★☆★☆★☆★☆★☆★☆★☆★ 늙어 가는 아내에게           황지우 내가 말했잖아  정말, 정말, 사랑하는, 사랑하는,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들은,  너, 나 사랑해?  묻질 않어  그냥, 그래,  그냥 살어  그냥 서로를 사는 게야  말하지 않고, 확인하려 하지 않고,  그냥 그대 눈에 낀 눈굽을 훔치거나  그대 옷깃의 솔밥이 뜯어주고 싶게 유난히 커 보이는 게야  생각나?  지금으로부터 14년 전, 늦가을,  낡은 목조 적산 가옥이 많던 동네의 어둑어둑한 기슭,  높은 축대가 있었고, 흐린 가로등이 있었고  그 너머 잎 내리는 잡목 숲이 있었고  그대의 집, 대문 앞에선  이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바람이 불었고  머리카락보다 더 가벼운 젊음을 만나고 들어가는 그대는  내 어깨 위의 비듬을 털어 주었지  그런 거야, 서로를 오래오래 그냥, 보게 하는 거  그리고 내가 많이 아프던 날  그대가 와서, 참으로 하기 힘든, 그러나 속에서는  몇 날 밤을 잠 못 자고 단련시켰던 뜨거운 말:  저도 형과 같이 그 병에 걸리고 싶어요  그대의 그 말은 에탐부톨과 스트렙토마이신을 한알 한알  들어내고 적갈색의 빈 병을 환하게 했었지  아, 그곳은 비어 있는 만큼 그대 마음이었지  너무나 벅차 그 말을 사용할 수조차 없게 하는 그 사랑은  아픔을 낫게 하기보다는, 정신없이,  아픔을 함께 앓고 싶어하는 것임을  한 밤, 약병을 쥐고 울어버린 나는 알았지  그래서, 그래서, 내가 살아나야 할 이유가 된 그대는 차츰  내가 살아갈 미래와 교대되었고  이제는 세월이라고 불러도 될 기간을 우리는 함께 통과했다  살았다는 말이 온갖 경력의 주름을 늘리는 일이듯  세월은 넥타이를 여며주는 그대 손끝에 역력하다  이제 내가 할 일은 아침 머리맡에 떨어진 그대 머리카락을  침 묻힌 손으로 집어내는 일이 아니라  그대와 더불어, 최선을 다해 늙는 일이리라  우리가 그렇게 잘 늙은 다음  힘없는 소리로, 임자, 우리 괜찮았지?  라고 말할 수 있을 때, 그때나 가서  그대를 사랑한다는 말은 그때나 가서  할 수 있는 말일 거야  ☆★☆★☆★☆★☆★☆★☆★☆★☆★☆★☆★☆★ 들녘에서        황지우 바람 속에  사람들이......  아이구 이 냄새,  사람들이 살았네  가까이 가보면  마을 앞 흙벽에 붙은  작은  붉은 우체통  마을과 마을 사이  들녘을 바라보면  온갖 목숨이 아깝고  안타깝도록 아름답고  야 이년아, 그런다고  소식 한 장 없냐  ☆★☆★☆★☆★☆★☆★☆★☆★☆★☆★☆★☆★ 等雨量線 1         황지우 1  나는 폭포의 삶을 살았다, 고는 말할 수 없지만  폭포 주위로 날아다니는 물방울처럼 살 수는 없었을까  쏟아지는 힘을 비켜갈 때 방울을 떠 있게 하는 무지개 ;  떠 있을 수만 있다면 空을 붙든 膜이 저리도록 이쁜 것을  나, 나가요, 여자가 문을 쾅 닫고 나간다  아냐, 이 방엔 너의 숨소리가 있어야 해  남자가 한참 뒤에 중얼거린다  2  이력서를 집어넣고 돌아오는 길 위에 잠시 서서  나는, 세상이 나를 안 받아준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파트 실평수처럼 늘 초과해 있는 내 삶의 덩어리를  정육점 저울 같은 걸로 잴 수는 없을까  나는 제자리에 그대로 있는데 아이들이 마구 자라  수위가 바로 코밑에까지 올라와 있는 생활  나는 언제나 한계에 있었고  내 자신이 한계이다  어디엔가 나도 모르고 있었던,  다른 사람들은 뻔히 알면서도 차마 내 앞에선 말하지 않는  불구가 내겐 있었던 거다  커피 숍에 앉아, 기다리게 하는 사람에 지쳐 있을 때  바깥을 보니, 여기가 너무 비좁다  3  여기가 너무 비좁다고 느껴질 때마다  인도에 대해 생각한다  시체를 태우는 갠지스 강 ;  물 위 그림자 큰 새가  피안을 끌고 가는 것을 보고  세상이 너무 아름다워  기저해 쓰러져버린 인도 청년에 대해 생각한다  여기가 비좁다고 느껴질 때마다  히말라야 근처에까지 갔다가  산그늘이 잡아당기면 딸려들어가  영영 돌아오지 않는 여행자에 대해 생각한다  ☆★☆★☆★☆★☆★☆★☆★☆★☆★☆★☆★☆★ 메아리를 위한 覺書     황지우 불 속에 피어오르는 푸르른  풀이어 그대 타오르듯  술 처마신 몸과 넋의 제일 가까운  울타리 밑으로 가장 머언  물 소리 들릴락말락  (우리는 어느 溪谷[계곡]에 묻힐까 들릴까)  줄넘기하는 쌍무지개  둘레에 한세상 걸려 있네  ☆★☆★☆★☆★☆★☆★☆★☆★☆★☆★☆★☆★ 바깥에 대한 반가사유        황지우  해 속의 검은 장수하늘소여  눈먼 것은 성스러운 병이다  활어관 밑바닥에 엎드려 있는 넙치,  짐자전거 지나가는 바깥을 본다, 보일까  어찌하겠는가, 깨달았을 때는  모든 것이 이미 늦었을 때  알지만 나갈 수 없는, 無窮(무궁)의 바깥  저무는 하루, 문 안에서 검은 소가 운다  ☆★☆★☆★☆★☆★☆★☆★☆★☆★☆★☆★☆★ 발작      황지우 삶이 쓸쓸한 여행이라고 생각될때  터미널에 나가 누군가를 기다리고 싶다  짐 들고 이 별에 내린 자여  그대를 환영하며  이곳에서 쓴맛 단맛 다 보고  다시 떠날때  오직 이 별에서만 초록빛과 사랑이 있음을  알고 간다면  이번 생에 감사할 일 아닌가  초록빛과 사랑: 이거  우주 기적 아녀 ☆★☆★☆★☆★☆★☆★☆★☆★☆★☆★☆★☆★ 붉은 우체통        황지우 버즘나무 아래  붉은 우체통이  멍하니, 입 벌리고 서 있다  소식이 오지 않는다  기다리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思想이 오지 않는다  사랑하는 이여, 비록 그대가  폐인이 될지라도  그대를 버리지 않겠노라  고 쓴 편지 한 통 없지만,  병원으로 가기 위해  길가에서 안개꽃 한 묶음을 사는데  두 다리가 절단된 사람이  뱃가죽에 타이어 조각을 대고  이쪽으로 기어서 온다  ☆★☆★☆★☆★☆★☆★☆★☆★☆★☆★☆★☆★ 비 그친 새벽 산에서            황지우 비 그친 새벽 산에서  나는 아직도 그리운 사람이 있고  산은 또 저만치서 등성이를 웅크린 채  槍 꽃힌 짐승처럼 더운 김을 뿜는다  이제는 그대를 잊으려 하지도 않으리  산을 내려오면  산은 하늘에 두고 온 섬이었다  날기 위해 절벽으로 달려가는 새처럼  내 希望의 한 가운데에는 텅 비어 있었다  ☆★☆★☆★☆★☆★☆★☆★☆★☆★☆★☆★☆★ 상실       황지우 귀밑머리 허옇도록 放心한 노교수도  시집간다고 찾아온 여제자에게  상실감을 갖는 것이 사실이다.  하물며,가버린 낙타여  이 모래 바다 가는 길손이란!  어쩌면 이 鹿苑은  굴절되어 바람에 떠밀려 온 신기루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모래밭과 풀밭이 갈리는 境界에 이르러  나는 기를 쓰고 草錄으로 들어가려 하고  낙타는 두발로 브레이크를 밟고 완강히 버티고  결국,어느 華嚴 나무 그늘에서  나는 고삐를 놓아버렸지  기슭에 게으르게 뒹구는 사슴들,  계곡에 내려가지 않고도  물의 찬 혓소리 듣는 법을 알고  목마름이 없으므로  '목마름'이 없는 뜨락  멋모르고 처음 돌아오는 자에게도  돌아왔다고 푸른  큰 나무 우뢰 소리 金剛 옷을 입혀 주는구나  내가 놓아버린 고삐에 있었던 낙타여  내 칼과 한 장의 지도와 經 몇 권 든 쥐배낭  안 그래도 무거운 肉峰에 메고 어느 모랫바람 속에서  방울 소리 딸랑거리고 있느냐  새 길손 만나 왔던 길을  初行처럼 가고 있지 않은지  내 귀밑머리 희어지도록 너를 잊지 못하고  내가 슬퍼하는 것은 그대가 나를 떠났다는 것이지만  내가 후회하는 것은 그대를 끝끝내 끌고  여기에 오지 않았다는 것,  차라리 그대를 내 칼로 베어버리고  그 칼을 저 鹿溪에 씻어줄 걸  씻어줄 걸  ☆★☆★☆★☆★☆★☆★☆★☆★☆★☆★☆★☆★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황지우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삼천리 화려 강산의  을숙도에서 일정한 군 (群)을 이루며  갈대숲을 이룩하는 흰 새떼들이  자기들끼리 끼룩거리면서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  일렬 이열 삼렬 횡대로 자기들의쭬세상을  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우리도 우리들끼리  낄낄대면서  깔죽대면서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 세상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각각 자기 자리에 앉는다.  주저앉는다.  ☆★☆★☆★☆★☆★☆★☆★☆★☆★☆★☆★☆★ 雪景          황지우 날 새고 눈 그쳐 있다  뒤에 두고 온 세상.  온갖 괴로움 마치고  한 장의 수의(壽衣)에 덮여 있다.  때로 죽음이 정화라는 걸  일러주는 눈발  살아서 나는 긴 그림자를  그 우에 짐부린다.  ☆★☆★☆★☆★☆★☆★☆★☆★☆★☆★☆★☆★ 세상의 고요       황지우 맑고 쌀쌀한 초봄 흙담벼락에 붙어 햇볕 쬐는데  멀리 동구 밖 수송기 지나가는 소리 들렸을 때  한여름 뒤란 감나무 밑 평상에서 낮잠 자고 깨어나  눈부신 햇살 아래 여기가 어딘지 모르게 집은 비어 있고  어디선가 다듬이질 소리 건너올 때  아무도 없는 방, 라디오에서 일기 예보 들릴 때  오래된 관공서 건물이 古宮으로 드리운 늦가을 그림자  그리고 투명하고 추운 하늘을  재판 받으러 가는 호송 버스에서 힐끔 보았을 때  백미러에 國道 포플러 가로수의 소실점이 들어와 있을 때  야산 겨울숲이 저만치 눈보라 속에서 사라질 때  오랜만에 올라온 서울, 빈말로라도 집에 가서 자자는 놈 없고  불 꺼버린 여관 앞을 혼자 서성일 때  흰 영구차가 따뜻한 봄산으로 들어갈 때  그때, 이 세상은 문득 이 세상이 아닌 듯  고요하고 한없이 나른하고 無窮과 닿아 있다  자살하고 싶은 한 극치를 순간 열어준 것이다  ☆★☆★☆★☆★☆★☆★☆★☆★☆★☆★☆★☆★ 소나무에 대한 예배         황지우 학교 뒷산 산책하다, 반성하는 자세로, 눈발 뒤집어쓴 소나무, 그 아래에서 오늘 나는 한 사람을 용서하고 내려왔다. 내가 내 품격을 위해서 너를 포기한 것이 아닌, 너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이것이 나를 이렇게 휘어지게 할지라도. 제 자세를 흐트리지 않고 이 地表 위에서 가장 기품 있는 建木 소나무, 머리의 눈을 털며 잠시 진저리친다. ☆★☆★☆★☆★☆★☆★☆★☆★☆★☆★☆★☆★ 손을 씻는다     황지우  하루를 나갔다 오면 하루를 저질렀다는 생각이 든다 내심으로는 내키지 않는 그 자와도 흔쾌하게 악수를 했다 이 손으로 만져서는 안 될 것들을 스스럼없이 만졌다 義手를 외투 속에 꽂고 사람들이 종종걸음으로 사라지는 코리아나 호텔 앞 나는 共同正犯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비누로 손을 씻는다 비누가 나를 씻는 것인지 내가 비누를 씻는 것인지 미끌미끌하다 ☆★☆★☆★☆★☆★☆★☆★☆★☆★☆★☆★☆★ 수은등 아래 벚꽃       황지우 사직공원(社稷公園) 비탈길,  벚꽃이 필 때면  나는 아팠다  견디기 위해  도취했다  피안에서 이쪽으로 터져나온 꽃들이  수은등을 받고 있을 때 그 아래에선  어떤 죄악도 아름다워  아무나 붙잡고 입맞추고 싶고  깬 소주병으로 긋고 싶은 봄밤이었다  사춘기 때 수음 직후의 그  죽어버리고 싶은 죄의식처럼,  그 똥덩어리에 뚝뚝 떨어지던 죄처럼  벚꽃이 추악하게, 다 졌을 때  나는 나의 생이 이렇게 될 줄  그때 이미 다 알았다  그때는 그 살의의 빛,  그 죄마저 부럽고 그립다  이젠 나를 떠나라고 말한,  오직 축하해주고 싶은,  늦은 사랑을  바래다주고 오는 길에서  나는 비로소  이번 생을 눈부시게 했던  벚꽃들 사이 수은등을 올려다본다  ☆★☆★☆★☆★☆★☆★☆★☆★☆★☆★☆★☆★ 아직은 바깥이 있다         황지우 논에 물 넣는 모내기철이  눈에 봄을 가득 채운다  흙바닥에 깔린 크다란 물거울 끝에  늙은 농부님, 발 담그고 서 있는데  붉은 저녁 빛이 斜繕으로 들어가는 마을,  묽은 논물에 立體로 내려와 있다  아,  아직은 저기에 바깥이 있다  저 바깥에 봄이 자운영꽃에 지체하고 있을 때  내  몸이 아직 여기 있어  아직은 요놈의 한세상을 알아본다  보릿대 냉갈 옮기는 담양 들녘을  노릿노릿한 늦은 봄날, 차 몰고 휙 지나간 거지만  ☆★☆★☆★☆★☆★☆★☆★☆★☆★☆★☆★☆★ 안부 1        황지우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어머님 문부터 열어본다.  어렸을 적에도 눈뜨자마자  엄니 코에 귀를 대보고 안도하곤 했었지만,  살았는지 죽었는지 아침마다 살며시 열어보는 문;  이 조마조마한 문지방에서  사랑은 도대체 어디까지 필사적인가?  당신은 똥싼 옷을 서랍장에 숨겨놓고  자신에서 아직 떠나지 않고 있는  생을 부끄러워하고 계셨다.  나를 이 세상에 밀어놓은 당신의 밑을  샤워기로 뿌려 씻긴 다음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빗겨드리니까  웬 꼬마 계집아이가 콧물 흘리며  얌전하게 보료 위에 앉아 계신다.  그 가벼움에 대해선 우리 말하지 말자.  안부 2  안녕하신지요. 또 한 해 갑니다  일몰의 동작대교 난간에 서서  금빛 강을 널널하게 바라봅니다  서쪽으로 가는 도도한 물은  좀더 이곳에 머물렀다 가고 싶은 듯  한 자락 터키 카펫 같은  스스로 발광하는 수면을  남겨두고 가대요  그 빛, 찡그린 그대 실눈에도  對照해 보았으면, 했습니다  마추픽추로 들어가는 지난번 엽서,  이제야 받았습니다  숨쉬는 것마저 힘든  그 空中國家에 제 생애도  얼마간 걸쳐놓으면 다시  살고 싶은 마음 나겠지요마는  연말연시 피하여 어디 쓸쓸한 곳에 가서  하냥 멍하니, 있고 싶어요  머리 갸우뚱하고 물밑을 내려다보는  게으른 새처럼  의아하게 제 삶을 흘러가게 하게요  ☆★☆★☆★☆★☆★☆★☆★☆★☆★☆★☆★☆★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            황지우 초경을 막 시작한 딸아이, 이젠 내가 껴안아줄 수도 없고  생이 끔찍해졌다  딸의 일기를 이젠 훔쳐볼 수도 없게 되었다  눈빛만 형형한 아프리카 기민들 사진;  "사랑의 빵을 나눕시다"라는 포스터 밑에 전 가족의 성금란을  표시해놓은 아이의 방을 나와 나는  바깥을 거닌다, 바깥;  누군가 늘 나를 보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사람들을 피해 다니는 버릇이 언제부터 생겼는지 모르겠다  옷걸이에서 떨어지는 옷처럼  그 자리에서 그만 허물어져 버리고 싶은 생;  뚱뚱한 가죽부대에 담긴 내가, 어색해서, 견딜 수 없다  글쎄, 슬픔처럼 상스러운 것이 또 있을까  그러므로,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혼자 앉아 있을 것이다  완전히 늙어서 편안해진 가죽부대를 걸치고  등뒤로 시끄러운 잡담을 담담하게 들어주면서  먼 눈으로 술잔의 수위만을 아깝게 바라볼 것이다  문제는 그런 아름다운 폐인(廢人)을 내 자신이  견딜 수 있는가, 이리라  ☆★☆★☆★☆★☆★☆★☆★☆★☆★☆★☆★☆★ 이 문으로        황지우 이 문으로 들어가면 넓고  이 문을 나오면 좁다  이 문에는 종교성이 있다  풀잎 하나가 풀잎의  전체를 보여 준다  제자리 걸음으로  수십 킬로 먼 곳까지 다녀온다  끼니 때마다 내 밥의  1/3을 비둘기에게 던져 주고  갇혀 있음으로  내 몸이 무장무장 투명해진다  새들이 내 흉곽으로 기어들어와  날개 짓는 소리가 소란하다  내려가고 싶다  유리 같은 땅  ☆★☆★☆★☆★☆★☆★☆★☆★☆★☆★☆★☆★ 이 세상의 고요          황지우 맑고 쌀쌀한 초봄 흙담벼락에 붙어 햇볕 쬐는데  멀리 동구 바깥으로 수송기 지나가는 소리 들릴 때  한여름 뒤란 감나무 밑 평상에서 낮잠 자고 깨어나  눈부신 햇살 아래 여기가 어딘지 모르게 집은 비어 있고  어디선가 다듬이질 소리 건너올 때  아무도 듣지 않는 라디오에서 일기예보가 들릴 때  오래된 관공서 건물이 古宮으로 드리운 늦가을의 짙은 그림자  그리고 사람들이 땅만 보면서 바삐 지나가는 것을  재판 받으러 가는 호송버스에서 힐껏 보았을 때  빽밀러에 國道 포플라 가로수의 먼 소실점이 들어와 있을 때  목탄화 같은 겨울숲이 저만치 눈보라 속에서 사라질 때  오랜만에 올라온 서울, 빈말로라도 집에 가서 자자는 놈도 없고  불 꺼버린 여관 앞을 혼자 서성거릴 때  흰 여구차가 따뜻한 봄 산으로 들어갈 때  그때, 이 세상은 문득 이 세상이 아닌 듯,  고요하고 무한하다  ☆★☆★☆★☆★☆★☆★☆★☆★☆★☆★☆★☆★ 인사         황지우 개가하고 돌아오는 사람에게 색종이 뿌리듯  가을 금남로 은행잎들이 마구 쏟아지는 걸  넋 놓고 잠시 바라보았더니  뒤에서 빵빵거린다  뒤돌아보며 은행나무를 가르키자  영업용 택시 기사도 은행나무를 가리키며 웃는다  차라리 모르는 얼굴에는 인간의 光背가 있다  집에 도착해서도 프라이드 차창에 붙어 있는  금빛 스티커 오늘은 하느님이 색종이 뿌려 주시는  황금나무 밑을 지나온 거다  ☆★☆★☆★☆★☆★☆★☆★☆★☆★☆★☆★☆★ 일 포스티노         황지우 자전거 밀고 바깥소식 가져와서는 이마를 닦는 너,  이런 허름한 헤르메스 봤나  이 섬의 아름다움에 대해 말해보라니까는  저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으로 답한 너,  내가 그 섬을 떠나 너를 까마득하게 잊어먹었을 때  너는 밤하늘에 마이크를 대고  별을 녹음했지  胎動하는 너의 사랑을 별에게 전하고 싶었던가,  네가 그 섬을 아예 떠나버린 것은  그대가 번호 매긴 이 섬의 아름다운 것들, 맨 끝번호에  그대 아버지의 슬픈 바다가 롱 숏, 롱 테이크되고;  캐스팅 크레디트가 다 올라갈 때까지  나는 머리를 박고 의자에 앉아 있었다  어떤 회한에 대해 나도 가도 가해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 땜에  영화관을 나와서도 갈 데 없는 길을 한참 걸었다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휘파람 불며  新村驛을 떠난 기차는 문산으로 가고  나도 한 바닷가에 오래오래 서 있고 싶었다  ☆★☆★☆★☆★☆★☆★☆★☆★☆★☆★☆★☆★ 재앙스런 사랑         황지우 용암물이 머리 위로 내려올 때  으스러져라 서로를 껴안은 한 남녀;  그 속에 죽음도 공것으로 녹아버리고  필사적인 사랑은 폼페이의 돌에  목의 힘줄까지 불끈 돋은  벗은 생을 정지시켜놓았구나  이 추운 날  터미널에 나가 기다리고 싶었던 그대,  아직 우리에게 체온이 있다면  그대와 저 얼음 속에 들어가  서로 으스져라 껴안을 때  그대 더러운 부분까지 내 것이 되는  재앙스런 사랑의  이 더운 옷자락 한가닥  걸쳐두고 싶구나  이 세상에서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한 말은  아무리 하기 힘든 작은 소리라 할지라도  화산암 속에서든 얼음 속에서든  하얀 김처럼 남아 있으리라  ☆★☆★☆★☆★☆★☆★☆★☆★☆★☆★☆★☆★ 죽기 아니면 사랑하기 뿐            황지우 내가 먼저 待接받기를 바라진 않았어! 그러나  하루라도 싸우지 않고 지나가는 날이 없으니.  다시 이쪽을 바라보기 위해  나를 對岸으로 데려가려 하는  환장하는 내 바바리 돛폭.  만약 내가 없다면  이 강을 나는 건널 수 있으리.  나를 없애는 방법,  죽기 아니면 사랑하기뿐!  사랑하니까  네 앞에서  나는 없다.  작두날 위에 나를 무중력으로 세우는  그 힘  ☆★☆★☆★☆★☆★☆★☆★☆★☆★☆★☆★☆★ 출가하는 새        황지우 새는  자기의 자취를 남기지 않는다  자기가 앉은 가지에  자기가 남긴 체중이 잠시 흔들릴 뿐  새는  자기가 앉은자리에  자기의 투영이 없다.  새가 날아간 공기 속에도  새의 동체가 통과한 기척이 없다  과거가 없는 탓일까  새는 냄새라는  자기의 체취도 없다  울어도 눈물 한 방울 없고  영영 빈 몸으로 빈털터리로 빈 몸뚱아리 하나로  그러나 막강한 風速을 거슬러 갈 줄 안다  生後의 거센 바람 속으로  갈망하며 꿈꾸는 눈으로  바람 속 내일의 숲을 꿰뚫어본다  ☆★☆★☆★☆★☆★☆★☆★☆★☆★☆★☆★☆★ 화광동진(和光同塵)          황지우 이태리에서 돌아온 날, 이제 보는 것을 멀리 하자!  눈알에서 모기들이 날아다닌다. 비비니까는  폼페이 비극시인(悲劇詩人)의 집에 축 늘어져 있던 검은 개가  거실에 들어와 냄새를 맡더니마는, 베란다 쪽으로 나가버린다.  TV도 재미없고 토요일에 대여섯 개씩 빌려오던 비디오도 재미없다.  나에게는 비밀이 있다; 그건 자꾸 혼자 있고 싶어한다는 점이다.  뜯긴 지붕으로 새어들어오는 빛띠에 떠 있는 먼지.  나는 그걸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 흔적도 없이 지나갈 것        황지우 아내가 말했었다 "당신은 이 세상에 안 어울리는 사람이야  당신이 지독한 뜻을 알기나 해? "  쾌종 시계가 두 번을 쳤을 때  울리는 실내:그는 이 삶이 담긴 연약한 막을 또 느꼈다  2미터만 걸어가면 가스벨브가 있고  3미터만 걸어가면 15층 베란다가 있다  지나가기 전에 흔적을 지울 것  쾌종 시계가 들어가서 아직도 떨고 있는 거울  에 담긴 30여평의 삶 지나치게 고요한 거울  아내에게 말했었다:" 그래,내 삶이 내 맘대로 안 돼"  서가엔 마르크시즘과 관련된 책들이 절반도 넘게  아직도 그대로 있다  석유 스토브 위 주전자는 김을 푹푹 내쉬고  ☆★☆★☆★☆★☆★☆★☆★☆★☆★☆★☆★☆★  
721    시인은 시에서 때론 목소리를 낮출줄도 알아야 한다... 댓글:  조회:1893  추천:0  2017-09-14
강하게 말하기와 약하게 말하기  황정산 (문학평론가, 대전대 교수)    시는 분명 언어이지만 그냥 언어는 아니다. 말이면서 말을 부정하고 말이 아니면서 진정한 말이 되기도 한다. 상투적인 언어들의 허위와 허망함을 사물의 본래적 생생함으로 환원시키는 것이 바로 이런 시적 언어의 기능이기도 하다. 이런 시어를 통해 시인들은 가려진 진실을 보기도 하고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신의 영역을 훔쳐보기도 한다. 시가 말이면서 말을 넘어서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시는 말의 의미로 말을 만들지 않는다. 그것은 종교적 교의나 정치적 신념 같은 것을 만들어 내는 말의 방식이다. 시는 말하는 방식을 통해 말을 거부하고 또 말을 만든다. 최근 발표된 시 중에 이런 말하기 방식이 특별한 몇 작품을 주목해 보고자 한다.  흔히 시인들은 말을 넘어서기 위해 말을 증폭한다. 사소한 것들을 과장 해서 대단한 것으로 만들고 남들이 쉽게 느끼지 못하는 아픔을 비명으로 내질러 고통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어금니 세 개가 빠졌다    앞니가 1㎜쯤 벌어졌다    금강교 아랜 꽃잎 그득 흐를까    개골산 쪽으로 갔다는 바람이 온몸을 휘감는다    한곳에 오래 머물지 못했다 지나간 다음에야 알았다 뿌리까지 캐낼 듯  휘감는 모습을 몽타주로도 그려낼 수 없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달려들지  도대체가 묘연한 얼굴들,    경사진 쪽으로만 불었다 골바람처럼 매서웠다 바람을 겨누던 발암發癌이  바람으로 읽히었다 투신자살을 시도하려던 발자국들이 서서히 방향을 틀었다    곪아터진 흔적이 고스란히 담겼다    빠져나가는 뒷모습이 선명히 잡혔다    씹히는 바람마다 이빨사이에 끼이고    여전히 마무리 중,    어디에도 기록되기를 원치 않는다                       - 박정원,「 디카에 잡힌 바람」(《우리詩》2010년 6월호)    ‘디카’는 디지털카메라의 약자이다. 대개 그것은 디지털카메라 중에서도 아주 조작하기 간편한 콤팩트형 카메라를 일컫는 데 쓰는 용어이다. 그래 서 그것을 흔히‘똑딱이’라 말하기도 한다. 시인은 그런 카메라에 잡히는 풍경을 그리고 있다. 디지털카메라에 잡히는 풍경이란 아주 사소한 것이다. 큰맘을 먹고 작품 사진을 찍은 것도 아니고 사람들을 불러 세워놓고 기념촬영을 한 것도 아니다. 다만 지나가는 길에 문득 보이는 한 장면과 한순간의 흔적에 불과하다. 그런데 시인은 그 흔적에서 참으로 많을 것을 본다. 무엇보다도 시인은 사진 속에서 바람을 본다. 사진에 찍힌 대상과 배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스치고 있는 바람을 보고 있다. 흔히 바람을 한 순간 스쳐지나가는 것으로 간주한다. 그것은 없는 것이 기도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덧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시인은 그바람의 모습을 증폭해서 우리에게 낯설게 보여준다. 디카에 잡힌 풍경이 바람을 강조하듯이 시인의 언어가 바람의 느낌을 강렬한 경험으로 과장하고 극대화한다. “어금니가 세 개가 빠”지고“앞니가 1㎜쯤 벌어”진 것은 결국 바람 때문이다. 세상의 풍파가 시인을 그렇게 만든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바람이 그런 흔적을 남긴 것이다. 그래서 디카에 잡힌 바람에는 “곪아터진 흔적”과 “빠져나가는 뒷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우리를 늙게 만들고 곪아터지게 만들지만 어디에도 기록되기를 싫어하는 바람은 결국 우리의 욕망이기도 하고 또한 자유이기도 하다. 그것 때문에 우리는 세상의 고통 속에 우리를 던지고 우리를 휘감고 달려드는 삶의 억압을 견디고 있다.    사내는 몸속에서 울음을 꺼냈다 울음은 우는 화살이 되어 허공을 갈랐다  울음의 변방에 빗살무늬를 장치한 구름이 빗발쳤다    과녁을 향해 당겨지는 화살은 빗줄기의 연대, 피할 도리가 없으므로 그  가 사랑한 사슴과 말과 여자는 붉은 비애, 피가 홍건했다    광대처럼 광대싸리나무 속에 울음을 가둔 그는 온몸이 화살통인 사내,  핏발 선 눈으로 뼈를 날려 보내는    사랑이 과역이라면, 흉노의 피를 지닌 그를 사랑하련다. 오랑캐, 오랑캐  하고 부르면 말편자처럼 닳아 돌아오는 그를,    구멍 뚫린 염통에서 붉은 울음 꺼이꺼이 토해내는 서녘을 밟고 일몰의  태양이 멀어진다 입시울소리처럼 오래전에 잃어버린 일촉즉발의 활시위가  팽팽해진다    배를 갈라 울음을 꺼낸 단발명중은 살부림의 효시   북방중원의 무덤 속인 듯 오후 6시의 과녁이 운다 몸이 떨리고 목젖이  운다 과녁을 삼킨 나의 화살은 그렇게 흐느낀다                               - 강영은,「 우는화살」(《시안》2010년 여름호)    이 시는 자극적인 언어로 우리의 모든 감각을 일깨우고 있는 작품이다. “몸속에서 울음을 꺼냈다”는 것은 화살을 꺼내는 행위를 두고 한 말이다. 활시위를 떠난 화살이 우는 소리를 내며 날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울음을 꺼낸다는 표현은 아주 처연하게 느껴진다. 온몸으로 자신의 고통을 하나씩 꺼내는 한 사람의 모습이 생생한 이미지로 나타내고 있다.   살기 위해 벌이를 하고 사랑하고 또 그것들 속에서 상처를 입는 일들은 일상 속에서 아주 흔한 일들이다. 아니 어쩌면 우리의 일상이라는 것이 그런 것들의 의미 없는 연속이기도 하다. 그런데 시인은 이 상투적인 일상사를 흉노족 사내의 활쏘는 모습으로 바꿈으로써 그 상투성 속에 있는 삶의 진실을 꿰뚫어 보고 있다.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보이는 그 일상의 일들이 사실은 항상 피를 흥건히 준비하고 있는 팽팽한 긴장의 연속임을 시인을 간파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깨달음을 역설하기 위해 시인은 “붉은 울음”과 도 같은 강력한 언어로 일상에 함몰된 우리의 무딘 감각을 다시 깨우고 있다.    다음 작품은 좀 더 재밌는 방식으로 언어에 힘을 부여한다.  늦동이 하나 낳으면 잉여라고 이름 짓겠다  떨어지지 않는 애물단지  과분하게도 가치창출의 꽃이라네  널출넌출, 홍냥홍냥  이 가지 저 가지 앵겨붙는  귀룽열매 눈망울 순한, 햇빛 좋은 날 소풍 같은 아이야  사랑이 밑밥인 밥통잉여가 엄마의 업이다  월척의 꿈 놓아건지는 낚시다  너는 전승의 꽃가지를 확, 불질러 버리거라  장벽이나 구획 따위에 물리지 않는  잉여, 물색 다른 그님은  한 생이 붕어해도, 잉어해도 해갈 안되는 물고기  우리는  소시랑게 눈흘김 얄랑얄랑 너름새 넣어  노들강변 한허리 감아 도는 잉어이고 싶었다  한 목숨 수족관 잉여로 치부되는 순간이란다  저인망 논리가 바다까지 털기 전에  절체절명이여,  그 아리아리한 효율 토란 알토란 낳기를!                          - 이인주,「 잉여」(《애지》2010년 여름호)    잉여는 남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그런데 남는 것은 불필요한 것이 아니라 늦동이 아이처럼 또는 과분한 선물 같이 아름답고 또한 기쁨을 주는 존재이다. 사실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이 남는 것으로부터 기인하는지 모른다. 세상에 쓸모없는 것이 예술이 되고 당장에 먹고사는 일에서 벗어날 때 우리는 창조적인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세상은 이것을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착취하여 가치창출의 수단으로 만들거나 불필요한 것으로 업신여긴다. 시인은 바로 이런 것을 표현하기 위해 언어의 전복을 시도한다. 경제학적인 용어로 흔히 사용되는 잉여라는 말을 예쁜 늦동이 아이의 이름으로 갖다 앉히기도 하고 잉여를 잉어로 바꿔 부르기도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잉여라는 말과 그 말에 들어 있는 사회적 함의를 뒤집어 보고 그 안에 들어 있는 허위의식을 꼬집는다. 언어의 전복이 생각의 전복을 만들고 그러한 전복의 힘이 우리의 의식에 확 불을 지르고 있다.하지만 강하게 말하여 과장하고 자극적으로 감각에 호소하는 것만이 시적 말하기의 방식은 아니다. 최근 강하게 말하기 방식이 시단의 주류를 형성하여 피가 튀고 살점이 흩어지는 하드고어적 언어가 난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는 하지만 약하게 말하는 방식이 훨씬 더 큰 시적 효과를 발휘하는 경우가 많다.    건물 더미에 한쪽 다리를 묻은 소녀가 이쪽을 쳐다본다.    그날 밤, 엄지발가락이 이상하게 욱신대더니 통풍痛風이란다.    바깥으로 빠져나가야 할 게 안으로 쌓였다니    안팎으로 통通하지 못한 잘못을 따끔하게 찔린 통痛이다.    통풍에 잘 듣는다는 노간주나무를 찾았다.    노간주나무의 몸통을 아래로 바짝 휘게 해서 한쪽 발로 누르고 열매를  땄다.    파랗게 여문 햇것도 검게 익은 묵은 것도 가리지 않고 마구 그러담다가  가시에 찔리고야 나무를 놓아주었다.    접힌 허리가 다 펴지지 않아 반쯤 올라가고 반쯤 누운 나무가 그제야 눈에  뜨인다.    평생을 불임과 요통으로 고생할 노간주나무, 그를 슬퍼하듯 곡소리를 내는  바람이 사무친다.    미안하다, 자신을 건사하려고 이렇게 주위를 아프게 하다니.    부기가 덧난 발가락을 꼬무락꼬무락한다.    통증은 통通하려는 마음을 부르는지 동상에 걸린 노간주나무의 부러진  가지가,    없는 다리를 긁을 소녀의 눈망울이 그렁그렁하다.                        - 이동훈,「 아이티소녀의눈물」(《우리詩》2010년6월호)    아이티는 최근 지진 피해를 당해 참혹함을 겪은 나라이다. 그곳에서 발견된 한 소녀를 시적 대상으로 하고 있는 작품이다. 비참함과 삶의 고통과 남겨진 자의 비애가 두드러지게 표현되는 것이 당연한 주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시인은 아주 담담한 어조로 그것을 표현하고 있다. 지진 피해의 참상을 직접 그리지도 않고 피해를 당해 다친 몸으로 살아 남았을 소녀의 심정을 직접적으로 대변하고 있지 않다. 반대로 시인은 아주 뜬금없이 노간주나무와 자신의 통풍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하여 노간주나무의 부러진 가지와 소녀의 잘려진 다리 그리고 통풍으로 아픈 자신의 다리를 연결시키고 있다. 그것을 통해 아주 먼 나라의 한 아이의 아픔이 자신의 아픔이고 지상에 살아있는 모든 생명들의 아픔임을 아주 에둘러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약하고 낮은 목소리로 에둘러 표현하는 것 역시 시의 오래된 말하기 방식 중의 하나이다. 이렇게 말함으로써 한발 물러나 생각을 하게 만들고 또한 목소리 높은 모든 주의주장들의 허위를 꿰뚫어 보게 하기도 한다.  땡볕 아래 납작하게 눌린  갈대가 모래를 건너간다  평평한 모래밭을 기어오른다  사방을 움켜쥔 갈퀴손  한 번씩 쉴 때마다 단단하게 뿌리를 박아둔다  그것은 모래를 다잡는 유일한 방법  촉지의 어금니를 디디며  한발 한발 모래밭을 기어오른다  어디서 물 냄새가 난다  고도 제로, 수평의 정상에 물이 있을 것이다  아직 멀었다 몇 번 비가 오고 비가 그치고 바람은 그 다음의 일  흔들리는 것은 그 다음의 일  근친들이 불어터진 발목을 담그고 서 있는  그 곳  뼈만 남은 나룻배 하나                               - 정병근,「 갈대」(《통》2010년봄호)    시인은 자신의 목소리를 감추고 있다. 애써 나지막하게 말함으로써 자신의 느낌을 가급적 드러내지 않으려 한다. 그냥 사물의 모습을 그리고자 한다. 그것도 아주 자세를 낮추고 사물들이 가지고 있는 특징과 성질을 포착해내고 있다. 그런 시인의 눈으로 봤을 때 갈대는 모래밭을 기어서 건너고 있다. 갈대가 모래밭에 조금씩 뿌리를 내리고 번져가는 모습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리 라. 흔들리는 갈대라는 상투적인 말을 시인은 “그 다음의 일”이라는 점잖은 표현으로 부정해 버린다. 그럴 때 비로소 갈대의 살아가는 모습이 보인다. “불어터진 발목을 담그”는 삶의 진창을 함께 하면서 모여 서로의 생명을 확장해가는 갈대의 강인함을 시인은 발견한다.  이렇듯 시인은 자신의 목소리를 낮추고 자신의 신념과 격정을 가라앉히며 사물 그 자체에 낮은 자세로 육박해 들어갈 때 그것들이 가지고 있는 진실한 모습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약하게 말하는 것이 결국 큰 언어적 힘을 얻게 되는 것은 바로 이런 점에서이다.    이 점에서 다음 시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묵중한 눈꺼풀 사이로 소리와 냄새가 먼저 들어왔다.    어린 나는 마을 어귀 나무평상에 앉아 일하러 가는 사람들의 소리를 듣  는다. 조석으로 내 앞을 지나 들로 나가는 여러 종류의 마을 가축들을 만난  다. 각기 다른 발굽 소리와 특유의 냄새가 목에 달린 종소리와 나 사이에서 보초를 선곤 했다.    페스Fez의 골목, 나귀가 경쾌한 걸음으로 내 앞을 지나간다. 비킬 사이  도 없이 오줌을 확 갈긴다. 그때 목에 달린 종소리가 도덕 같은 안전장치는  될 수 없었다. 아무 일도 없었던 표정으로 그놈이 날렵하게 다시 걸어갈 때  크고 묵직한 소리를 내는데 흙길에서조차 원초적인 것, 영원해 보이는 것을  향해 기꺼이 다가가는 나의 발자국 소리와 다르지 않았다.                      - 윤향기,「 나귀들의시간」(《시로여는세상》2010년봄호)    시 안에서 이미 시적화자는 목소리를 낮추고 있다. “ 어린 나”로 시적화자를 설정함으로써 세상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목소리를 아직 갖지 못한 인물로 자신을 대신하고 있다. 바로 그런 눈으로 세상을 볼 때 나는 세상의 한 모습 속에서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시인은 그것을 “영원해 보이는 것을 향해 기꺼이 다가가는 나의 발자국 소리와 다르지 않았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을 표현하고 싶어서 너나 없이 안달이다. 목소리 높여 말하고 무엇인가를 큰 목소리로 주장해야 자신의 정체성이 확고해진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못하면 고통스러운 비명이라도 내질러야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 시의 시인은 자신을 먼 외국을 여행하는 어린 아이로 설정함으로써 자신을 지우고 있다. 그럴 때 바로 세상 사람들과 나 아닌 모든 것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것이다.    모든 말들이 꽉 차 서로를 주장하는 이 시대에 이렇게 나직하고 약하게 말하는 시들에 더 마음이 끌리는 것은 필자만은 아닐 것이다              
720    이상시인 문학의 매력은 "모호함"... 댓글:  조회:2042  추천:0  2017-09-14
서울예술단 '굳빠이, 이상' 21~30일 공연..김연수의 동명 소설 각색 소설가 김연수(좌)와 극작가 겸 연출가 오세혁 [서울예술단 제공] (서울=연합뉴스) 임수정 기자 = 김연수의 시인 이상(1910~1937·본명 김해경)에 대한 비상한 관심은 익히 알려진 바다. 그의 이름에서 '연'(衍)은 이상의 유고작품 '단발'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 이름에서 가져온 것이다. 그를 한국문학계 '대스타'로 떠오르게 한 출세작도 이상에 대해 쓴 장편소설 '굳빠이, 이상'(2001)이다. 이상의 유품인 '데드 마스크'(고인의 얼굴에 유토나 점토를 발라 뜬 석고모형)를 중심으로 이상의 삶과 죽음에 얽힌 수수께끼를 화자 세 명의 시선으로 풀어나가는 작품이다. 오는 21~30일 서울 중구 CKL스테이지에서 공연하는 서울예술단의 창작가무극 '굳빠이, 이상'은 이 소설을 무대로 옮긴 작품이다. 김연수의 작품이 공연화되는 것은 소설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을 극단 '슈퍼마켓 가계도'가 동명의 연극(2013) 무대로 옮긴 이후 이번이 두 번째다. 연극과 뮤지컬 무대 등을 오가며 활발히 활동 중인 연출가 겸 극작가 오세혁이 각색과 작사를 맡아 소설을 무대로 옮겼다. 14일 서울 종로구 통인동 '이상의 집'에서 기자들과 만난 김연수와 오세혁은 이상 문학의 매력으로 '모호함'을 꼽았다. 김연수는 초등학생 시절 월간지를 통해 읽은 '오감도 시제1호'로, 그러니까 그 유명한 '13인의아해가도로를질주하오'라고 시작하는 이 시를 통해 난해하지만 매력적인 시인을 처음 접했다. 본격적으로 이상을 좋아한 것은 고등학생 시절부터다. "이과를 선택했기 때문에 문학은 교과서에 실리는 정도만 접했어요. 그러니까 해석이 되는 문학만을 접했던 거죠. 그런데 이상 작품은 그게 아니잖아요. 이상은 제게 '문학은 이해해야 한다'는 전제를 처음으로 버리게 한 작가입니다. 그리고 그게 또 우리 삶을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하고요. 받아들이기 어려운, 답을 구하려 노력하지만 그 답을 찾기 힘든 게 인생이잖아요. 한국 문학사에서 가장 문제적인 작가라고 생각해요."(김연수) 어린 시절 수필 '권태'로 이상을 처음 접했다는 오세혁도 이 시인에 대해 "어떤 명확한 방향성의 모호함을 지닌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그가 2015년 이상의 기일을 기념하는 행사 '이상과 13인의 밤'을 준비하며 지인 13명에게 전화를 걸어 '이상이 누구냐'라고 물었을 때 지인들은 모두 다른 답변을 내놓기도 했다. "이상이 신화적인 인물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명확하지 않고 모호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최근 다른 공연의 소재가 됐던 백석, 윤동주 시인의 경우 어떤 명확한 지점들이 있는데, 이상은 정확히 어떠어떠한 사람이라고 규정하려 하면 할수록 점점 공연이 이상해지는 것 같더라고요."(오세혁) 그래서 이번 공연도 이상의 글쓰기 방식만큼이나 파격적이고 실험적 형식을 취하기로 했다.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허물어 관객을 관람자에서 참여자로 끌어들이는 '이머시브 공연'을 표방한다. 특별한 주인공이나 뚜렷한 서사를 내세우지도 않는다. 김연수는 "반드시 원작의 이러이러한 부분을 지켜달라고 부탁한 부분은 없었다"며 "스토리는 많이 해체됐지만, 인상적인 형식과 실험성을 즐길 수 있는 공연이 될 것 같다"고 소개했다. "(소설 속 등장인물인) 서혁민이 도쿄제국대학 부속병원 응급실에 가서 젊은 이상을 만나는 환상을 꾸는 장면, 군중이 이상의 데드 마스크를 뜨는 장면, 이 두 가지는 공연에서 살아남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는데 그 장면들은 공연 속에 다 담겨 있습니다. 아직 대본밖에 읽지 못했지만 기대가 많이 됩니다.(웃음)" 오세혁은 "한 명이 주인공이 아닌, 작품에 출연하는 16명 전부가 각자의 재능과 특기로 동등하게 참여하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김연수는 가끔 공연 관람을 즐기지만, 직접 공연 대본이나 영화 시나리오를 쓴 적은 없다. 그는 "소설은 생각인데 연극은 대사이다 보니 훨씬 말들이 강렬해지는 느낌을 받는다"며 "영화를 쓰면 행동으로, 연극으로 쓰면 대사로 다 보여줘야 할 테니 소설가로서 선뜻 이런 걸 해보겠다고 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대신 그는 자신의 소설 '밤은 노래한다'는 꼭 한 번 희곡으로 옮기는 도전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1930년대 옛 북간도(연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외부자의 입장으로 썼던 작품인데, 내부자의 시선으로 된 글을 다시 한 번 써보고 싶습니다."        
719    "윤동주 전문가" - 마광수님 댓글:  조회:1992  추천:0  2017-09-14
자기 내면에 저항한 파격의 휴머니스트” / ‘윤동주 전문가’ 마광수 교수가 말하는 윤동주 이혜민 기자 |  월간 [신동아] 2016년 04월 호 “윤동주는 자기 내면에 저항한 파격의 휴머니스트” ● 쉬운 詩語로 빛나는 은유 만들어 ● ‘저항시인’보다는 ‘사랑의 시인’ ● 영화 ‘동주’, 尹 시인의 문학 조명 못해 ● 윤동주와 나의 공통점은 ‘솔직함’ 윤동주(1917~1945) 시인과 마광수(65) 연세대 국문과 교수. 언뜻 보면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윤동주 시인은 청순(淸純)하고, 마광수 교수는 퇴폐(頹廢)한 이미지다. 하지만 연세대(연희전문) 출신인 두 사람을 잇는 다리가 있다. 마 교수의 박사학위 논문이다. 국회도서관 홈페이지에서 마 교수의 학위논문을 검색하면 ‘尹東柱 硏究 : 그의 시에 나타난 상징적 표현을 중심으로’ (馬光洙, 연세대학교 대학원, 1983. 8 학위논문(박사)’가 나온다. 청년 마광수는 이 논문으로 좋은 평을 받고 이듬해 연세대 조교수로 임용됐다.  두 사람은 대척점에 선 느낌이다. 윤 시인은 친구들의 도움으로 펴낸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로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 반면 마 교수는 에세이집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소설 ‘즐거운 사라’로 외설 논란에 휩싸였다. 윤 시인은 특히 ‘서시(序詩)’로 유명한데, 마 교수도 책을 낼 때마다 서문 격으로 서시를 쓴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윤동주 ‘서시’(1941년 11월 20일 作)  별것도 아닌 인생이/ 이렇게 힘들 수가 없네.// 별것도 아닌 사랑이/ 이렇게 사람을 괴롭힐 수가 없네.// 별것도 아닌 도덕이/ 이렇게 스트레스를 줄 수가 없네.(…) --- 마광수 ‘서시’(2011년 7월 作) 자신에게 저항한 시인 영화 ‘동주’가 화제가 되면서 새삼 윤동주 시인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윤 시인, 그리고 그의 시가 지닌 문학적 가치를 제대로 알고 싶어 마 교수를 만나고자 했다. 마 교수는 논문에서 ‘윤동주의 작품들은 일제 말 암흑기, 우리 문학사의 공백을 밤하늘의 별빛처럼 찬연히 채워주었다’고 평가했다. 그에게 전화를 걸어 “‘아줌마 기자’와 영화 같이 보고 윤동주 문학 얘기를 하자”고 제안하자 마 교수는 다짜고짜 “집으로 오라”고 했다. 3월 7일 그의 집을 방문해서야 굳이 집으로 오라는 이유를 알았다. 그는 기자와 대화하면서도 담배를 연신 피워댔다. ▼ 윤동주 연구로 박사학위 논문을 쓴 윤동주 전문가라고 들었다.  “내 논문이 1983년에 나왔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윤동주 연구가 별로 없었다. 대개 시 한 편 내지 두세 편을 연구했는데, 난 그의 시 전편의 상징적 표현에 주목했다. 요즘도 중·고교 참고서에 내 연구 내용이 나온다.” ▼ 그 시절 윤동주에 대한 평가는 어땠나.  “평판 자체가 거의 없었다. 시집도 정음사란 출판사 한 곳에서만 나왔다. ‘그 어린애가 뭘 알았겠나…’ 했을 거다. 그가 어디 박사 감이 되나. 근데도 우기고 썼다. 내 연구 이후로 많은 사람이 윤동주를 사랑하게 됐으니 뿌듯하다. 물론 윤동주가 고결한 외모 덕에 점수를 받은 점도 있다. 윤동주는 심약한 휴머니스트다. 저항이 잘 안 보인다.” ▼ ‘미친 말의 수기’(마광수, 꿈의열쇠)에서 ‘윤동주 연구를 상징 분석 중심으로 써가면서 그가 절대로 저항시인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내면적 저항을 한 ‘자아 해부’의 시인이었다’고 설명했던데.  “윤동주는 저항시인이 아니다. 소극적이지. 그 당시 시인이나 소설가는 방탕했다. 본처 버리기 운동이 한창이었다. 그렇다고 윤동주가 독립운동에 뛰어든 것도 아니다. 창씨개명 하면서까지 일본에 간 건 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배우러 간 거다. 그게 안타깝다. 연세대 학적부에 보면 ‘윤동주’에 줄이 그어 있고 일본 이름(平沼東柱)이 있다. 창씨개명을 안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윤동주는 비명횡사했다. 윤봉길이나 안중근이 아니다.” 윤동주의 저항은 자기 내면 또는 본능적 자의식과의 끊임없는 투쟁이었다. 이러한 투쟁이야말로 진정한 ‘저항’이 되는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그가 목표했던 저항의 대상은 외부로부터의 물리적 압박이나 조국의 현실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별 헤는 밤’이 최고 ▼ 왜 윤동주를 연구했나.  “좋으니까. 시의 서정성이나 완성도의 최고는 ‘별 헤는 밤’이다. 중학생 때 문예지 ‘학원’을 봤다. 나는 ‘학원’에서 주는 문학상을 받았는데 그때 정호승 시인도 상을 받아서 지금도 알고 지낸다. ‘학원’에서 매월 ‘기억할 만한 시’ 한 편을 소개했다. 언젠가 그 코너에 윤동주의 ‘서시’가 나왔는데, 단순하면서도 의미의 함축이 대단했다. 이해하기 쉽고.” ▼ 마 교수도 글을 이해하기 쉽게 쓰는데, 그런 점에서 통했나. “맞다. 광복을 전후해 나온 시들 중에서 주석(註釋)을 안 보고 이해할 수 있는 시는 윤동주 시밖에 없다. ‘또 다른 고향’만 난해한 편이다. 정지용 시만 해도 어려운 조어가 많다. ‘향수’에도 ‘해설피’(해가 질 때 빛이 약해진 모양)가 나오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지 않나. 서정주도 일반인이 못 알아듣는 시어를 많이 썼다. 다른 사람들은 더했고.”  ▼ 백석의 시도 이해하기가 쉽진 않다. “이상하게 비평가들이 어려운 글을 높이 평가한다. 언제부턴가 백석을 막 띄우더라. 하지만 백석과 정지용은 기교다. 이건 보통 일이 아니다. 자, 이름을 대보자. 김훈, 이문열 이런 사람들의 문장은 두 번씩 읽어야 한다. 난 학생들에게 ‘한 줄을 두 번 읽게 쓰지 마라’고 한다. 소통이 안 되는 건 문학이 아니다. 우리나라 책이 안 팔리는 데는 (작가들의) 어려운 문장 탓도 있다. ‘한국 사람들은 책도 안 사면서 노벨문학상 수상만 바란다’는 기사가 나왔던데, 창피한 일이다.”  ▼ 영화 ‘동주’는 봤나.  “봤다. 실망했다. 윤동주의 비애를 상기시켜주긴 했다. 끝날 때 눈물 한두 방울은 나왔다. 윤동주 역(강하늘)이 시 낭송을 아주 잘했다. 일본말 외우느라 고생도 많았을 거다. 근데 너무 저예산으로 찍었다. 윤동주가 경성 시내 다방도 많이 갔고, 헌책방 순례도 하고 그랬는데 그런 장면이 하나도 안 나온다. 동경 거리 장면에선 거리는 안 나오고 전차만 나온다. 그마저 너무 조악하다. 더구나 연희전문이 안 나온다는 게 말이 되나.”  ▼ 연희전문? 졸업식 장면에서 본 것 같은데….  “예고편에 기숙사 건물이 보이는 것 같던데, 영화에서는 안 보이더라. 졸업식 장면이 나오지만 실내가 정체불명이다. 그동안 이준익 감독의 영화를 잘 봐왔는데 이번에는 좀 날로 먹었다. 윤동주가 살던 기숙사 건물, 공부한 건물이 그대로 있으니 찍으면 됐을 텐데….” ▼ 연희전문이 등장하지 않은 게 그렇게 문제가 되나.  “당연하다. 윤동주는 대표작들을 연희전문 다닐 때 거의 다 썼다. 그때가 낭만이 꽃피던 시절인데, 왜 그런 묘사를 안 했을까.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도 연전 캠퍼스 오가며 착상한 건데, 일본 장면에서 내레이션으로 나오더라. ‘서시’도 연전 졸업할 때 출판하려다 못한 시집의 서문인데 라스트 신에 나오고. 고등학생들은 윤동주를 저항시인으로 보는데, 시를 봐라, 사랑이다. 가난한 사람, 여린 것들, 비둘기, 토끼, 노루… 이런 것들이 나오지 않나.”  ▼ ‘동주’를 영화가 아닌 다큐멘터리로 보고 평가하는 건 아닌가.  “그래도 너무하다. 재판 장면도 안 나온다. 판결문이 명확히 남아 있는데도, 윤동주의 죄목이 뭔지도 불분명하다. 영화에는 문학적인 조명도 빠져 있다.” ▼ 영화에 시가 내레이션으로 나와서 좋던데…. 윤동주 문학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윤동주는 한국문학의 축복이다. 근데 윤동주 시집이 왜 정음사에서 나왔을까. 그 이후에도 시집이 군소(群小) 출판사에서만 나온다. 이번에 나온 복각본 시집도 1인 출판사에서 나왔더라. 모 교수는 ‘윤동주 시인은 동시를 썼다, 유치하다, 유아기로의 퇴행’이라면서 폄하했다. 우리나라는 문단이 권력이 됐다. 나만 해도 문단에서 왕따를 당하지 않나.”  ▼ 마 교수는 논문에서 ‘부끄러움’이란 단어로 윤동주 시를 해석했다. ‘부끄러움이란 시어가 나오는 작품이 10편이나 된다. 이는 우리나라 시인들이 표피적 정서나 표피적 이데올로기만을 좇는 경향과 비교해볼 때 가히 파격적이리만큼 독특한 문학 세계다’라고 했는데.  “시 ‘자화상’은 자기혐오다. 우물에 왔다, 갔다 하는 거다. 마지막에, 우물 속에는 하늘이 있고 추억처럼 한 청년이 서 있다고 하는데, 자기 갈등을 그린 거다. 윤동주 시에는 부끄러움이란 단어가 무지 많이 나온다. 그렇지만 아주 독창적이다.” “자기 내면에 저항한 파격의 휴머니스트” ▼ 얼마나 독창적인가.  “정지용처럼 모더니즘도 아니고, 청록파같이 자연회귀도 아니다. 일기 같은 시다. 작품마다 날짜를 적어두지 않았나. 이광수처럼 계몽가로서의 강박관념에 시달린 것도 아니다. 저항시도 아니고 시류를 전혀 타지 않았다. ‘내 모가지를 드리워서 꽃처럼 드리우는 피를 흘리겠다’는 건 마조히즘이다. 독창적이다. 다만 본능에 충실했다. 시 ‘팔복’을 보면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오’란 대목이 나온다. 예수는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하늘나라로 간다’고 했는데 기독교에 대한 회의도 한 거다.” ▼ 시 ‘자화상’의 우물을 ‘자궁으로 가는 통로’라고 설명했던데, 동의하기 어렵다.  “정신과 의사들이 보는 ‘정신분석 상징사전’이란 책이 있는데, 거기 보면 물의 이미지가 양수, 자궁, 여자다. 자궁은 물이 아니라 긴 통로를 거쳐야 하는 양수다. 윤동주에게도 성욕이 있었을 거 아닌가. 이상은 여성편력이 심했는데 윤동주는 연애도 한 번 못 한 것 같다.” ▼ 논문에서 ‘윤동주는 가장 솔직한 인물이면서도 내면의 본능에 솔직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당시에 이상 정도는 프로이트를 알았고, 성에 대한 시를 몇 개 썼다. 다방 개업할 때 ‘69’라고 했고. 하지만 윤동주는 술도, 연애도, 담배도 안 했다. 할아버지, 아버지가 독실한 기독교인이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 윤동주 시인과 마 교수가 닮은 점도 있다고 보나.  “우리 둘 다 ‘솔직’하다. 소통도 잘하고. 내가 69학번인데 그때 연세대에 윤동주 시비가 생겨서 자주 갔다. 윤동주처럼 ‘알아듣기 쉽게 써야겠다’ ‘구어체로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 만약 윤동주가 살아 있었다면 어땠을까.  “어떻게 보면 윤동주가 더러운 꼴 안 보고 죽은 게 다행이다 싶다. 6. 25가 나고 세상이 얼마나 복잡해졌나. 살아서 월북했다면 다른 월북 문인들처럼 이용만 당했을 테고, 남한에 있었더라도 납북될 수 있는 거니까. 어떻게 보면 행복한 죽음일 수 있다. 기다리던 광복을 맞았는데, 동족상잔의 비극을 보고 얼마나 힘들었겠나.” ☆    "난 욕망에, 윤동주는 내면에 솔직.......그와 난 닮았다" / 2016년 8월에 정년퇴임하는 마광수 교수 [중앙일보] 입력 2016.03.31   순결의 시인 윤동주 현상에 대해 ‘세속 작가’ 마광수가 입을 열었다. 윤동주 시에 대해 “내면 갈등을 투명하게 드러내 아름답다”고 했다.  요즘 문화계에서 가장 뜨거운 인물은 70년 전 세상을 뜬 시인 윤동주(1917∼45)다. 그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15만 부 넘게 팔리고, 5억을 들인 저예산 영화 ‘동주’는 114만 명이 관람했다(29일 현재). 관련 출판도 잇따른다. 시 소개 평전 『처럼』, 사진 자료를 강화한 시·산문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나왔다. 월간 문예지 ‘문학사상’ 3월호는 일본법원의 1944년 윤동주 판결문을 구해 실었다. 그가 조선 독립의 야망 실현을 위해 릿쿄(立敎)대에서 도시샤(同志社)대로 학교를 옮겼다는 억지 주장이 나온다. 늘 회의하며 내면 파헤친 윤동주, 그의 저항 대상은 자기자신, 과장도 없고 가르치려하지도 않아 왜 지금 윤동주인 걸까. 문학평론가 유성호씨는 “여러 가지로 훼손된 우리 삶의 모습과 정 반대인, 흠 없는 사람을 찾는 현상”이라고 해석했다. 종교적 경건함마저 느끼게 하는 희생 제물 이미지가 작동한다는 얘기다. 연세대 마광수(65) 국문과 교수도 할 말이 많은 사람이다. 그는 여대생 제자와 성관계를 갖는 대학교수가 나오는 92년 소설 『즐거운 사라』로 구속·해임되는 등 고초를 겪었다. 하지만 국내 윤동주 박사 1호다. 83년 윤동주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땄다. 시 전편을 상징주의 이론으로 분석했다. 윤동주가 상징주의를 배워 활용한 적은 없지만 쉬우면서도 모호해 풍부한 해석의 여지가 있다는 내용이다. 2016년 3월 24일 오후 마 교수의 서울 이촌동 자택을 찾았다. 그는 8월이 정년퇴임이다. 아직도 90년대 소설 외설 시비의 상처가 큰 듯 했다. 자꾸 자기 얘기로 돌아갔다. 기관지가 약해져 줄인 게 하루 두 갑이라며 줄담배를 피웠다. 뜻밖이다. 윤동주 1호 박사라니. 응답 : “내가 변태 교수로 몰려 억울하게 잡혀가는 바람에 윤동주와 내가 안 맞는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 그 사람도 솔직했고 나도 솔직했다. 둘 다 글을 아주 쉽게 쓴다. 그리고 나도 시인 아뇨. 소설보다 시로 먼저 등단했잖아.” 솔직하다면. 응답 : “사람이 먹는 거 하고 섹스, 둘밖에 더 있어. 나는 인간의 성적인 욕망을 솔직히 고백했다. 그러다 피 봤지. 아무도 안 하는 걸 해봐야겠다 그런 거였거든. 이 사람 역시 성적인 것을 빼고는 자기를 다 드러냈다. 시가 곧 자기 고백이다. ‘참회록’ 같은 시를 봐라. 온통 자기에 대해 분석하고 부끄러워하는 내용이다. 끊임없이 회의와 모색을 하며 자기 내면을 해부한 사람이다. 시에 교훈도 별로 없다. 맑은 동심으로 쉽게 시를 썼다.” 저항 시인의 이미지가 강한데. 응답 : “그의 시를 저항시라고 하면 틀린 말이다. 그의 저항 대상은 자기 자신이었다. 일본에 독립운동하러 간 게 아니다. 도항증(渡航證)을 받기 위해 창씨개명까지 하며 문학 공부하러 갔다. 시에 명시적인 저항이 없다. 오히려 내 목을 댈테니 잘라라, 는 식의 마조히스트 색채가 있다. 그만큼 내부 갈등이 많았던 사람이다.” 문학적으로는 어떻게 평가하나. 응답 : “당대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았다. 정지용과 교류했지만 모더니즘 계열이 아니다. 좌파 문학과도 관련 없고 청록파의 자연으로 돌아가자, 도 아니었다. 당시 시인들은 뭘 가르치려 하거나 과장되게 흐느끼거나 아니면 카프처럼 나가 싸우자고 부르짖거나 였다. 윤동주에게는 세 가지가 하나도 없다. 가장 독창적인 시인이다. 시가 일기 같다.” 내성적이었나. 응답 : “말도 못하게. 술·담배도 모르고 여자도 몰랐다. 아무리 추적해도 연애한 기록이 없다. 연희전문(연세대 전신) 다닐 때 수업 끝나면 본정통이라고 불렀던 지금의 명동에 가서 책방 순례를 한 다음 카페에서 차 마셨다. 그래서 나는 윤동주가 기적이라고 본다. 그의 작품을 보관했다가 나중에 출판한 정병욱 같은 친구가 없었다면 세상 빛을 보지 못하고 사라졌을 거다. 기적이고 축복이다. 그런 윤동주가 부럽다. 나도 곧 죽을 텐데 내 원고를 보관해 줄 사람은 없을 거야, 아마.” 요즘 윤동주 현상은 어떻게 보나. 응답 : “사람들이 이제야 시를 볼 줄 알게 된 거다. 그동안 난해하고 철학적인 것만 좋은 건 줄 알았지. 윤동주는 신통하게도 주석 없이도 누구나 알 수 있게 썼다. 윤동주의 그런 점에 끌렸다. 난 난해한 걸 제일 싫어한다. 문학이 결국 소통 아닌가. 역시 영화가 기폭제 역할을 한 것 같다. 또 윤동주에게는 두 가지 장점이 있다. 하나는 일찍 죽었다는 점, 우리에게는 요절한 사람에 대한 이상한 숭배가 있다. 내 제자지만 기형도도 그렇고. 또 하나는 잘 생겼다. 정직하고 깨끗하게 생겼다. 못생기고 뚱뚱했다면 이런 신화나 열광은 없었을 거야.” 곧 정년퇴임인데. 응답 : “고난이 많았다. 내가 잡혀간 지 25년이 됐는데 제2의 마광수도 안 나오고 검열은 더 심해졌다. 한국이어서 일어난 일이다. 일본이나 프랑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잡혀간 사람을 동정하기는 커녕 오렌지족의 대부라고 했다. 한국 사람들은 ‘페이머스(famous·유명한)’뿐 아니라 ‘노토리어스(notorious·악명 높은)’도 질투한다. 퇴임하면 수입이 팍 줄 거다. 중간에 8년을 놀아 연금도 얼마 안 된다. 외로운 독거노인이지 뭐.” 후회는 없나. 응답 : “많지. 마흔한 살에 잡혀 들어가 40대 10년을 잃어버렸다. 하지만 변절은 안 했다. 다른 글은 몰라도 적어도 소설과 시로는 성을 파고 들었다. 너무 중요하잖아요.” 그는 최근 산문집 『섭세론(涉世論)』을 출간했다. 거친 세파를 헤쳐 나가는 데 필요한 경구를 모은 책이다. 인생은 본질적으로 허무한 것이기 때문에 적극적인 성적 쾌락 추구로 달래야 한다는 튀는 주장을 담았다. 집필 계획을 묻자 “『인간에 대하여』라는 또 다른 산문집도 곧 내고 누가 웹소설 써보라고 해서 곧 연재를 시작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으면 독창적인 예술작품이 나올 수 없다. 개인들도 공포를 느끼며 살 정도니….” ★ 마광수=1951년 서울 출생. 77년 박두진 추천으로 시인 등단. 산문집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시집 『가자』, 『장미여관으로』를 냈다. 92년 소설 『즐거운 사라』로 구속(음란물 제작 및 배포 혐의) 된데 이어 95년 연세대 교수 직에서 해임되며 표현의 자유 논란을 불렀다. 98년 복직됐으나 2000년 논문실적 부실 판정을 받고 휴직했다가 2003년 다시 강단에 섰다. 글=신준봉 기자  [출처: 중앙일보] "난 욕망에, 윤동주는 내면에 솔직…그와 난 닮았다"     
718    마광수님은 "값비싼 대가"로 통시적 진실를 치렀다... 댓글:  조회:2017  추천:0  2017-09-14
  마광수 소설 의 시대적 가치 -- 마광수론 (이종섭 씀) (문학사조 변환기에 희생된 작가와 작품)       이 뜻하는 변명   지금으로부터 불과 18년 전, 마광수의 소설 는 세상에 발표되자마자 외설적 내용이라는 이유를 들어 국가 권력에 의해 사라졌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그 작가와 작품에 대한 국가 권력의 폭력을 묵인했다.   뿐만 아니라 작가는 직장이었던 학교의 교수직에서마저 추방당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국가와 사회, 그리고 그의 직장 등 3자 모두가 힘을 합하여 한 작가의 인격을 보복적으로 살해하고 그의 작품 하나를 철저히 생매장해 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국가와 우리 사회는 품위 있는 내용의 고상한 허구만을 창작의 자유로 허용하는 것인가? 또한 그 품위의 기준은 타당한 것이었는가?   작가는 작품을 발표하면서 불길한 기운을 미리 예견이라도 하듯 작품의 발문으로 이라는 제하의 겁먹은 설명을 덧붙였다.   N. 프라이는 그의 저서 에서 “비평은 말을 할 수 있지만, 모든 예술은 벙어리인 것이다.” 라고 했는데, 이것은 물론 시에 대하여 중점을 두고 한 이야기지만 다른 여타 장르의 예술에 있어서도 반박할 근거는 없다.   따라서 소설가가 작품의 서문이나 발문에서 자신의 작품 내용에 대한 외연적 설명이나 해명을 가했다면 이는 작품에 대한 변명으로 받아들여야 마땅하며, 이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독자의 상상력을 제한하고 작품 해석과 평가를 획일적으로 몰고 가려는 의도가 분명하므로 가치에 대한 이득보다 손실이 클 것이다.   그렇다면 작가가 작품의 가치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변명을 늘어놓은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바로 작품이 당시의 사회적 정서로 볼 때 지나칠 정도의 외설적 내용에 치중하고 있었다는 고백이며, 따라서 그로 인해 몰고 올 사회적 파장을 미리 예견하고 해명을 가하고자 했다는 추측을 피할 수는 없다.   불과 18년 전인 1992년은 지금처럼 인터넷이 상용화되지 않아 모든 정보의 유통이 오프라인에 의해 이루어지던 시대였으며, 우리 사회는 도덕적으로 외설의 기준이 지금보다 강했다. 따라서 사회의 통일지향적인 구조 속에서 사회를 향한 개인의 사사로운 의사 표시는 함몰되기 일쑤였으며, 그 대신 상당한 규모를 갖춘 언론매체가 대부분의 여론몰이를 주도하고 있었다.   1987년의 민주화운동 시기를 거치면서 과거보다는 한결 창작의 자유가 인정되는 민주사회로 발전되기는 했지만, 루카치의 총체성 개념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당시 소설 문학의 이념적 사회구조 속에서 고삐 풀린 미친 말처럼 아무런 제약 없이 치부를 노출시키는 자연주의 소설은 일정정도 비판을 받을만한 이유가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작가는 에서 자연주의와 사실주의를 합일시키려는 의미 있는 시도를 뚜렷이 보이고 있다.   “문학이 준엄하고 결벽한 교사(敎師)나 사제(司祭)의 역할, 또는 혁명가의 역할까지 짊어져야만 한다면, 문학적 상상력과 표현의 자율성은 질식되고야 만다. 또한 소설의 근본은 역시 에 있는 바 (실제적 현실을 그리든, 내면적 현실 또는 상상적 현실을 낭만적으로 그리든, 모든 것은 다 리얼리즘이다), 그것의 소재가 혹시 퇴폐적이고 반동적인 부르주아적 상상력의 소산이라 할지라도 결코 매도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 점에서 나는 비판적 리얼리즘이나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에 반대한다.”   뒤이어 김동인의 유미주의 소설의 대표격인 에 대하여 리얼리즘의 가치를 크게 부여하고 있는 것을 보면, 작가의 자유로운 창작활동을 위해 이념과 사회적 책임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하는 몸부림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것은 작가가 인간의 마음속에만 숨어 있던 모든 것, 이를테면 저속하게 보여진다거나부끄럽게 생각되는 마음 까지도 모두 솔직하게 낱낱이 들춰냄으로써 문명의 발달과 도덕에 의해 가려졌던 날조된 원초적 진실을 바로잡겠다는 야심찬 주장이기도 하다.   주인공 “즐거운 사라”의 인물적 성격   지금은 이미 과거에 묻혀버린 에 대하여 여태껏 사회의 여론이 가졌던 주된 관심은 그것이 외설이냐 아니냐에 모아졌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문학의 관점에서 중요한 것은 작품의 ‘사라’가 무엇을 말하려는가가 문제이지 그것이 외설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는 관심도 의미도 없다.   주인공 사라가 추구한 것과 같이 인간이 소망하는 원초적 즐거움은 육체적인 것에 근거하며, 이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그렇게 변한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동물의 근원적 속성이 그랬던 것이다.   그러나 정신적 사랑보다 육체적 접촉에서 오는 쾌락이 더욱 즐겁기는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현대의 환경 등 여러 제약으로 인해 그것을 자유롭게 즐길 수는 없으므로 항상 무엇인가 부족함을 느낀다. 따라서 ‘사라’는 즐거워야 할 ‘사랑’에서 무언가 하나 정도 빠져버린 ‘결핍된 사랑’이고 문명화된 사회에서 원시로 되돌아가고 싶어 몸부림치는 ‘한 인간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녀가 흥분되는 마음을 억누르려 하지 않고 자신의 성기에 땅콩을 넣어보는 행위는 육체적인 만족을 추구하는 솔직한 욕망의 실행이며 동시에 정당한 호기심의 발로이기 때문에 작품에서의 그러한 표현이 있었다 하여 비난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유교적 도덕률로 무장되어 있는 시대에 있어서도 무의식 중에 간혹 원초적 본능의 갈증을 느끼기는 하겠지만 그것을 행동으로 나타낸다면 그는 천하다거나 속되다고 말해지며 동양적인 사고에서는 특히 더하다.   주인공인 사라는 그러한 행동을 과감하게 실천하며 살아가고는 있지만, 지성적 인간으로 향하는 어엿한 명문대학의 학생이었다. 그러한 사라는 동물적 성격을 지닌 인간이 사회적 제약으로 말미암아 짐승보다도 자유로운 성적 쾌락을 누리지 못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따라서 사라는 국가가 그어 놓은 미성년의 선을 넘어서면서 성년으로서의 권리를 소유하게 되었으므로, 그 권리를 실천하기 위하여 자유로운 성의 바다에 뛰어드는 행위는 마땅히 양심의 가책이나 죄의식이 있을 수 없고 정당하다. 그래서 우선 먼저 여성에게만 채워져 있는 원죄의 족쇄에서 해방되기 위해 그녀의 첫 번째 남성인 ‘기철’에게 처녀성을 내던져버렸다. 이것은 지금까지 남성사회가 만든 도덕적 관념에 의해 억압받아왔던 여성의 용기 있는 성적 해방 선언이었다.   사라가 성적 자유를 얻고 난 후 여성보다 오히려 남성이 상대적으로 약자였음을 깨달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사라는 성의 즐거움이 무엇인가를 실험하려 하지만, 원초적 성의 즐거움을 억압하는 위선적인 사회에서는 유흥업소가 가장 자유로운 지대라는 사실 또한 더욱 위선적이고 왜곡된 현실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주간에는 학교에서 수업을 받고 야간에는 유흥업소에서 성의 유희를 즐기는 이중적인 생활을 하며 여러 가지 성적 테크닉을 실습하는데 있어 즐거운 성적 행위란 페팅이나 자위행위뿐만 아니라 에이널 섹스, 동성애, 사디즘과 매저키즘도 예외가 될 수 없으며, 이런 자유로운 행위가 어떠한 제한도 받지 않게 될 때 ‘변태’라는 비웃음의 용어도 사라질 것이다.   사실 원래부터 사랑하는 사람 또는 좋아하는 남녀 간의 자유로운 성행위에는 제한이 있을 수 없음에도 경건주의적인 성 도덕 관념이 ‘변태’라는 개념을 만들어 낸 것이기 때문에 그 용어는 당연히 없어져야 할 단어이다. 또 사라가 원할 때 육체적 성을 즐기려 하는 것은 억압적으로 지속되어 온 여성 성행위의 수동적 관습으로부터 공격적이고 능동적으로 변해가려는 시대적 의미를 내포한 중대한 사건이다. 따라서 사라는 바로 일인칭 서술자인 주인공으로서, 작품을 읽는 모든 독자 자신인지도 모른다.   진정한 가치 있는 성 해방의 의미   사라가 대변하는 일차적 주장은 기존의 도덕률 파괴에 있다. 이것은 여성뿐 아니라 남녀 모두에게 억압의 빌미를 주게 되므로 성 의식에 대한 왜곡의 근원이 된다. 또한 사라는 남을 의식하는 눈치보기나 사회적 계층에 따라 같은 행위를 달리 보는 차별의식을 비판한다. 형식상의 민주사회에서 진정한 민주사회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은 모두가 평등하게 인식되는 사회가 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학생 신분인 사라가 아무리 화려하게 차려입고 버스를 타더라도 자신은 그리 창피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지만, 승객들은 힐끔거리면서 사라를 쏘아보며 아주 불결한 여자를 보는듯한 눈초리를 보내는 것이라던가, 달동네 판잣집에 사는 여자가 밖에 나갈 때는 삐까번쩍하게 차려 입고 나간다고 욕을 하고 전셋집에 사는 주제에 자가용을 굴린다고 비난 섞인 개탄을 해대는 것 등이 평등하지 못한 사회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런 것들은 당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고가 얼마나 위선적이며 모순적인 차별의식을 가지고 있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며, 이 소설의 주인공 사라가 공장의 여공이나 사창가의 창녀가 아닌 대학생이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고, 앞으로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할 차별 없는 성의 자유화를 이룰 수 있는 진정한 민주화의 방향설정이기도 하다. 같은 사람이 야간에는 유흥업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주간에는 명문대학의 여대생으로 생활한다는 것은 신분이나 계급의 통합을 상징하기도 하다.   다음으로 궁극적인 목표는 역시 성은 자유로워야 하고 즐거워야 한다는 것이며 이것은 여성의 상대인 남성의 존재를 사실 그대로 인정했을 때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사라는 급진적 여성해방 운동가들의 주장을 이해하지 못한다. 다시 말해서 성을 본격적으로 경험하기 시작한 사라로서는 남녀평등을 빌미로 섹스에 있어 남녀 간의 성차(性差)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며, 이는 페미니즘의 성격과도 상당한 거리를 가진다.   우리나라 사교춤의 역사를 보면 처음에는 남성이 이끌고 여성이 따르는 질서정연한 타입이었다. 그러던 것이 1960년대 트위스트를 거쳐 고고와 디스코로 옮겨오면서 상대와 동등한 위치에서 춤을 즐기게 되었다. 두 남녀가 함께 붙어서 추는 부루스에 있어서도 남성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는 고전적 정통 부루스의 스텝보다는 그저 부둥켜 앉고 규칙도 리더도 없이 박자에만 맞추어 움직이는 형태로 변했지만, 그렇다고 하여 현대적 춤이 옛날의 춤보다 더 여성에게 즐거움을 준다고 할 수 없다.   따라서 여성의 성해방을 이루기 위해서는 여성도 기존의 도덕에 억매임 없이 자유로이 즐길 수 있어야 하되, 진정한 즐거움이란 남녀 간의 미묘한 성차(性差)에서 오는 것이라는 생물학적 현실을 인정하고자 하는 것이다. 여기서 사디즘과 매저키즘의 정당성이 확보되며 남성과 여성은 투쟁의 대상이 아니라 동료로서 진정한 양성 존재의 의미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등장인물들이 대변하는 것들   사라의 상대 남성은 먼저 학교 선배인 기철이었다. 기철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친구가 별로 없는 사람이었는데, 그 이유는 대학생이나 지식인들이 민중운동에 빠져드는 시대의 현실에서 한 발짝 벗어나 있기 때문이었다.   “이상하게도 몇 년 전부터 민중미술 바람이 불어, 기철의 친구들이 몽땅 열렬한  민중미술지지자들이 되었다. 워낙 기철은 어떤 유파에 가담한다든가 공동작업을  하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에, 더욱더 외톨이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설명은 구조화시대에서 탈이념적이고 개인적인 삶의 가치체제로 나아가야만 한다는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투쟁적 이념사조에 대한 비판은 다음에 만난 정아와 자신과의 비교에서도 강조된다.   “나는 다시금 정아와 나를 비교해 보았다. 정아에 비해 볼 때 아무래도 나는 뭐든 지 복잡하게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민중운동을 하든 부르주아처럼 살든, 일단  대학생 딱지가 붙어버리면 다들 계산적으로 돼버리는 게 요즘 대학생들이기 때문 이다.“   이는 반항적 민중운동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던 진보적 지식사회에 대한 거부감으로서, 다음 시대는 거창한 사회적 이념보다는 개인적인 근원적 가치를 중시하는 시대가 될 것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다음에 만나는 성의 상대는 여고동창 정아와 장사꾼인 김승태였다. 정아와 함께 벌이는 레즈비언 성행위나 정아, 사라, 그리고 김승태 등 2 대 1의 혼합섹스는 섹스의 종류나 방식에 구애받지 않는 또 다른 자유의 육체적 즐거움이다.   김승태가 돈이 많음에도 생활에서 무엇인가 부족함을 느끼는 것은 역시 성에 관한 불만문제이다. 아내를 정신적으로는 사랑하지만 아내에게서 맛볼 수 없는 또 다른 육체적 즐거움을 위해 정아를 찾았고 사라와도 만났다. 그것이 설사 플레이보이 기질이라 하더라도 흉이 될 수 없고 이것은 눈물을 동반하는 로맨틱한 센티멘털리즘적 사랑보다 육체적 사랑이 더 즐겁고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식사 중 성기를 빨게 하는 것과 에이널 섹스 등은 매저키즘에서도 성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다음 택시 운전사와의 카섹스는 장소에 구애 없는 성행위를 뜻하는 것이고, 정력이 뒤떨어지는 연예인 김철과의 사랑은 누구나 성을 즐기며 사랑할 수 있음을 뜻한다. 마지막 등장인물인 한지섭은 사회적으로 존경과 신망을 받는 대학 교수라는 직업의 지식인으로서 그러한 지식인의 위선적인 껍질을 스스로 벗고자 몸부림치는 파격적 인물이며, 그의 행동은 이야기의 절정을 이루고 있다.   교수인 한지섭의 참여는 다른 계층의 사람들보다도 특별한 의미를 갖는데, 지금까지 사라가 만난 인물들은 대학 선배인 미술가 기철, 전문대학생 정아, 사업가 김승태, 택시운전사와 연예인 김철 등 대부분이 보통 이하의 계층이었으나, 지적으로 가장 상류층 계급에 속하는 한지섭마저 전형성을 깨트리고 참여시킴으로써 성의 자유를 완성시키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가 깊이 숨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예로부터 사회적으로 천한 계층에서는 간혹 성의 자유를 시도하려는 여성들이 존재하기도 했었지만, 사회를 이끌고 있는 지식계급이 전형적인 엄숙주의나 경건주의를 고수하고 있는 한 성의 자유는 획기적으로 증진될 수 없었다.   따라서 한지섭의 등장은 성에 관하여 누구든지 솔직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뜻하며 지식인도 예외가 없음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 교수에 관해 성적으로 문란한 내용은 문학작품에서도 금기로 취급되어 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를테면 1950년대의 (정비석 작) 같은 것이 그 좋은 예일 수 있는데, 그 작품은 교수 부인과 바람둥이 대학생과의 춤바람을 그렸다 하여 당시 교수사회로부터 상당한 공격을 받았다.   그러나 는 작가 자신이 대학 교수이고, 작중 인물인 한지섭 또한 작가 자신과 매우 유사한 성격의 인물인데, 이것은 다분히 의도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한지섭이 과목을 담당하는 국문학 교수인 것은 시대적 사명인 육체적 즐거움의 자유로운 구현을 선도할 용기 있는 모험가는 문학인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뜻하며, 동시에 작가 자신이 시대의 선봉에 서서 그 짐을 짊어지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읽혀지기도 한다.   문학이란 결국 인간학이고, 그래서 인간의 본성과 행동을 잘 드러낼 수 있는 예술장르이며, 문학은 결국 이 그 내용의 전부이고, 인간 역시 동물의 일종이기 때문에 식욕과 성욕이 삶의 실존적 근거가 되게 마련인데, 식욕에 대해 공부하는 것이 경제학이라면 사랑에 대해 공부하는 게 문학이라는 논리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당시 시대에서 지식인들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던 민중해방을 부르짖는 투쟁적 이데올르기보다도 사랑에 관련된 육체적 즐거움의 문제를 더 우위에 올려놓는 획기적인 발상인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 국가와 문학인 그리고 독자들은 이를 두고 변화되어가는 문학사조의 새로운 선언으로 보기보다는 타락한 몽상가의 잠꼬대 같은 헛소리로 간주함으로써, 그것이 머지않아 우리 앞에 닥쳐올 현실이라는 사실을 전혀 예견하지 못했다.   한지섭은 외로움을 느끼던 차에 사라와 육체관계를 지속적으로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결혼은 커녕 동거 같은 잠시의 얽매임도 수용하려 하지 않았다. 이것은 한지섭이 어떠한 형태의 형식이나 관례와 연관된 사회의 위선적 요소를 모두 다 거부하고, 인간의 동물적 본능에 기초한 완전한 자유를 추구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작가는 그것이 곧 겉과 속이 똑같은, 다시 말해서 본능적 욕구와 실제적 행동이 똑같은 예술가적 정렬을 가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야한 사랑’이라고 결론 내린다.   한편 이 소설의 작가는, 작품에 기술되어진 언어가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국가권력의 제재를 받는다고 하더라도, 문학은 그 언어가 문학적으로 어떤 기능을 하는가에만 관심을 가질 뿐,그 어떤 이유에서라도 표현의 자유가 제한을 받는 금기가 설정되면 안 된다고 보고 있다. 자유에 대한 모든 속박으로부터의 해방은 언어의 자유로부터 시작된다. 즉 성에 관한 언어의 자유는 성에 대한 완전한 자유의 시작을 의미하므로, 작품에서 사용된 언어에 대한 외설 여부의 문제제기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적 최상위 계층에 속하는 등장인물들이 사회적으로 비판받을만큼 매우 저속하다고 일컬어지는 섹스 용어들을 그대로 사용한 것은, 오히려 가식 없이 솔직한 성적 표현일 수도 있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보지, 자지, 성교, 불두덩, 페팅, 자위행위, 항문 섹스, 동성애, 사디즘, 매저키즘, 씨발, 좆 같은, 씹 같은.....”   이러한 용어는 다른 소설에서도 일반적으로 사용되어온 용어이기 때문에 문학사적으로 심각하게 받아 들여야 할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며, ‘씨발’, ‘좆 같은’, ‘씹 같은’ 등의 언어가 상스러운 욕이기는 하지만 소설 내에서 사실적 감정이나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한 대화체나 독백체로 사용되었다 하여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 이유 또한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당 시대에 있어 사회적으로 문제가 제기된 이유 중 하나는 이러한 용어를 다른 작가도 아닌 대학 교수가 거침없이 썼다는 ‘품위의 문제’였다. 유흥가나 독신자 아파트, 러브호텔 등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성행위의 구체적 묘사 또한 문제가 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러한 구체적인 사실적 묘사는 자연주의 또는 사실주의 소설에서 매우 중시되는 예술적 성격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가 지식수준이 낮은 사람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이해하기 어렵거나 고상한 느낌을 주는 언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계층 간의 평등을 강조하는 의미가 포함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작가 마광수의 소설이나 시들은 대부분 쉬운 말로 쓰여 있어 이를 간접적으로 증명해준다.   결국 는 가장 지식수준이 높고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존엄한 대학 교수가 전통적으로 유지되어 온 위선적인 엄숙주의나 경건주의를 파괴할 의도를 가지고 사회적으로 낮은 계층이 사용하는 언어를 사용하여 사실주의에 충실하려 노력한 결과물인 것이다. 따라서 사라와 한지섭이 벌이는 행동은, 대학사회 등 지식층 집단도 이념적 투사를 가장해야 하는 시대에서 개인적이고 근원적인 성적 즐거움에 더 가치를 두는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의 문학사적 위치   라는 작품에서는 E.M.포스터가 말한 “작가는 가능한 한 현재의 시간을 유보하고 현실적 진실을 떠나 통시적 진실을 계시해야 한다.” 라는 ‘철학적 신비성을 가지고 있는 플롯’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전체를 위해 짜여진 줄거리라기보다는 단편적인 작은 이야기들의 연속적인 이음으로 이루어진 구성으로 되어있어, 독자에게 사건의 흐름을 이해하기 위한 ‘기억력과 지성적 능력’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사회적 파장을 예견하고 이라는 해명성 변명을 붙인 까닭은 무엇이며 그것이 작품 속에서 갖는 의의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물론 이것은 작가의 이력이나 직업, 경력 등으로 볼 때, 그가 작가로서의 수사적인 언어능력이나 작품기획과 구성 등에 대한 창작 능력이 부족해서 그런 것은 아닐 것이라는 것을 전제한 질문이다.   돌이켜 보건데, 우리는 항상 과거의 과오를 쉽게 잊어버리는 습관이 있음을 느낀다.  발표 당시와는 달리 지금은 개인용 PC가 대다수 국민들에게 보급되었고, 인터넷이 생활화 되어 모든 정보가 신문이나 방송 매체보다도 개인에 의해 더 빠르게 무차별적으로 흘러다니고 있다. 그래서 지금 시점에서 18 년 전의 작품인 를 다시 읽어보면, 어느 누구도 이 소설이 작가가 실형을 선고받고 작품이 판매금지 될만한 외설문학이라고 평가하지는 않을 것이다. 소설 속 사라의 성행위를 변태적이라고 비난하지 않을만큼 우리는 마음이 더 넓어지고 시대적으로도 성숙해져 있는 것이다.   지금은 작가가 그보다 훨씬 더 야한 내용의 작품을 발표해도 외설이라는 이유로 작가와 작품에 대하여 트집을 잡지 않으며, 사이버 상에 발표되는 문학이 상당부분 대중문학을 선도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사이버시대의 문학은 전통적인 소설기법의 플롯을 중요하게 여기기보다는 처럼 단막의 이야기 중심으로 전개되는 서사를 선호하며 전통적인 텍스트의 규범을 무시하기 일쑤다.   뿐만 아니라, 1990년대 초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우리 사회는 이념적 투쟁의 집단에 끼어드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였고 과거 있는 여성은 더러운 여성으로 간주하려는 시대였으나, 지금은 너나 할 것 없이 개인 지향적인 삶을 추구하고 있으며 여성의 지위는 과거를 따지지 못할 정도로 높아져 가정에 얽매이는 결혼보다 자유로운 독신을 선호하기도 한다. 이는 분명 가 지향했던 방향과 일치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문학사적인 입장에서 볼 때, 사건은 작가가 의식을 했든 아니했든 간에 이념적으로 구조화된 사회로부터 개인 지향적이고 성적 즐거움의 가치가 우선시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로 진입하기 위하여 반드시 거쳐야만 했던 선구적 역할의 진통을 값비싼 대가를 치르면서 겪은 사건임이 분명하다.     
717    시쓰기는 남자가 녀자를, 녀자가 남자를 꼬시는것과 같다... 댓글:  조회:2300  추천:0  2017-09-13
9. 가장 쉬운 시쓰기는 자기 얘기(추억, 기억)를 쓰면 된다.  이 안에 진솔함이 있다.  그리고 자기만의 얘기는 남과 가장 차별화되는 얘기이기도 하다.  멀리서 시를 찾지 말고 자기안에서, 일상에서 찾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10. 대상의 고유한 특성을 잡아라. 한 대상의 고유한 특징을 잡아 의미를 확장시켜 전혀 다른 대상으로 만들어라. 아래 시에서 갈대를 개꼬랑지로, 머루를 유두로 만들 듯.  갈대가 흔들리는 것이 개꼬랑지가 사람을 반겨 흔들리는 것 같고, 머루는 애를 낳은 여자의 유두와 같지 않은가? 분홍빛 처녀의 유두와 달리, 검은 유두엔 일종의 한과 서글픔이 있다.  이처럼 전혀 다른 대상으로 의미를 확장했으면 그걸 가지고 나만의 기억을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라. 그러면 원 대상은 굳이 내가 상징을 부여하지 않아도 저절로 상징성을 갖게 된다.  너무 어렵나?  11. 시를 받아낼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시는 쓴다, 가 아니라 받아낸다, 는 말을 많이 한다. 시는 늘 온다. 길을 가다가도 오고, 잠결에도 오고, 밥을 먹을 때도 온다. 하지만 받아낼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시는 오다가도 사라진다. 그렇기에 마음과 손이 하나가 될 수 있도록 항상 준비를 해야 한다. 예를 들면 야구에서 투수가 직구를 던지고 싶은 마음으로 공을 던졌는데, 평소에 연습을 하지 않으면 자꾸만 엉뚱한 방향으로 공이 가는 것과 매한가지이다. 생각과 손이 따로 노는 것이다. 시를 쓰는 경우도 똑같다. 내가 어떤 대상을 보고 쓰려고 했는데도 처음 생각한 것과 달리 이상하게 써지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평소에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볼 컨트롤이 되지 않는다. 계속 공을 던지는 연습을 통해 내가 직구를 던져야지 생각하면 손이 직구를 던질 수 있게, 커브를 던져야지 생각하면 손이 커브를, 슬라이더를 포크볼을 던질 수 있게끔 몸과 마음이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 좋은 시상이 떠올라도 공이 엉뚱한 곳으로 던져지듯 제대로 써낼 수가 없다. 포수가 새를 발견했다고 치자. 꿩을 잡기 위해서는 항상 총알이 장전이 되어 있어야 한다. 꿩은 어디에서 튀어나올지 모른다. 꿩을 발견하고, 어, 꿩이네! 생각하고 주머니에서 총알을 꺼내 장전하고 방아쇠를 당기려고 하면 그 사이 꿩은 시야에서 사라지게 마련이다. 꿩을 발견하면 바로 겨냥해서 떨어뜨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을 시적인 상태로 먼저 만들어 놓아야 한다. 12. 시쓰기는 남자가 여자 꼬시는 것, 여자가 남자 꼬시는 것과 같다  글쓰기는 남자가 여자 꼬시는 것, 여자가 남자 꼬시는 것과 같다. 다들 누군가를 좋아하여 꼬시기도 하고 꼬심을 당하기도 했을 것이다.  애인(詩)을 만들려면 먼저 좋아하는 이상형을 찾아야 한다. 이상형은 찾았으면 어떻게 해야할까? 먼저 그리워해야한다. 자기 전에도 떠올려보고, 밥을 먹다가도 빙그레 웃으면 떠올리고 길을 걷다가도 떠올려야 한다. 하지만 그리워만 한다고 애인이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그 다음엔 조금씩 접촉을 해야 한다. 그가 나타나는 시간을 알아내고, 어느 길로 가는지를 알아내고, 우연을 가장한 채 만나기도 하고, 밤늦도록 문 앞에서 기다리기도 하고, 일부러 어깨를 부딪치기도 해야 한다. 한번 두 번, 접촉하면서 안면도 서로 트고, 인사도 나눠야 한다. 그 다음은 상대도 나를 좋아할 수 있도록 자신을 예쁘게 단장해라.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할 수 있도록 예쁘게 화장도 하고 옷장을 뒤져 좋은 옷을 골라 입기도 해라. 그러면 상대도 나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할 것이다. 상대가 나에게 관심을 보이면 그 다음엔 조금씩 유혹을 해라. 먹을 것도 갖다 주고, 선물공세도 하고, 당신의 마음을 공개적으로 표현하라. 그다음 적당한 때를 골라 사랑한다고 열렬히 고백하라. 몸도 주고 마음도 줘라. 서로 옷을 벗고 불 끄고 뜨겁게 하나가 되라. 그러면 생명이 탄생한다. 그 생명이 詩다.  세상에 공짜로 얻어지는 아무 것도 없다. 하나 되는 공식이라는 것이 있다. 어떻게 하면 되는가? 하나 되는 공식은 다음과 같다. “관심- 정성-신뢰-사랑- 하나” 즉 관심을 가지면 보이지 않던 것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한다. 그 보이는 것에 정성을 드리면 신뢰가 생기고 신뢰가 생기면 서로 사랑하게 되고 서로 사랑하게 되면 하나가 된다. 하나가 되면 생명이 탄생한다. 남녀 관계도 글쓰기도 마찬가지이다. 관심도 갖지 않고 정성도 드리지 않고, 신뢰도 생기지 않은 상태에서, 사랑도 나누지 않은 상태에서 글과 하나가 될 수 없으며 시가 탄생하지 않는다. 글쓰기는 남자가 여자 꼬시는 것, 여자가 남자 꼬시는 것과 같다. 사랑 후에 애가 생기는 것과 같다. 13. 스파링 파트너를 만들어라! 혼자 거울 앞에서 쉐도우 복싱을 하듯 혼자서 시를 쓰면 쉽게 늘지 않는다. 권투선수가 맞으면서 크듯 시 쓰기도 어느 시기까지는 맞아야 큰다. 맞아야 주먹이 보이기 시작한다. 시를 쓰기 위해서는 권투와 마찬가지로 괜찮은 스파링 파트너를 선택해야 한다. 혼자 거울 앞에서 폼 잡고, 자기 폼에 취해 권투를 하다보면 실전에 올라가 몰매를 당하고, KO패를 당하기 십상이다. 자기 폼과 자기 주먹에 대한 객관화를 위해서는 반드시 스파링파트너가 필요하다. 자기 폼이 개폼인지, 똥폼인지, 아니면 진짜 제대로 된 폼인지 스스로 느끼고 확인해야 한다. 그렇기 위해서는 칭찬도 좋지만 아프게 때려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런 후 어느 정도 자기 폼이 잡히고, 상대의 주먹도 보이고, 실전능력이 쌓이면 그때 정말 고독하게 자기를 상대로, 거울을 보면서, 자기 그림자를 보면서 쉐도우 복싱을 해야 한다.  등단 초, 저 같은 경우엔 같은 해에 신춘문예로 등단한 친구가 있어 매일 1~2편씩의 시를 써서 메일로 주고받곤 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참으로 가혹했다. 아마 그 친구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서로 시를 주고받는 일은 없다. 그냥 지면에 소개되면 어떻더라! 한마디 정도뿐이다. 그와 나는 2년 넘게 서로를 위해 실전과 같은 스파링 파트너의 역할을 했다. 그게 큰 엄청난 도움이 됐다고 말하고 싶다.  14. 링에 올라가라. 계속 경기를 해야 한다. 축구선수나 야구선수가 경기에 나가지 못하면 경기감각이 떨어진다. 아무리 프리미어리그에 있다하더라도 벤치멤버로 있으면 그 선수를 대표로 뽑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계속적으로 경기에 나가 경기감각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운동선수가 한 달을 쉬면 숨을 끌어올리는데 최소 6개월에서 1년이 걸린다고 한다. 시 쓰기도 마찬가지이다. 쉬면 쉴수록 경기감각이 떨어진다. 1시간을 뛰던 선수가 10분을 뛰고 헉헉거리게 된다. 선수는 무조건 경기장에 나가야 한다. 축구선수라면 K리그가 없으면, N리그라도 나가야 하고, N리그가 없으면 동네 조기축구회에 나가서라도 공을 차야 한다. 공을 차고, 뛰고, 몸을 부딪치고, 골을 넣을 때 비로소 그는 축구선수가 되는 것이다. 선수는 그라운드에서 얘기하는 자이다. 마찬가지로 시인도 지면이 어떻든 간에 지속적으로 발표지면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지면 속에서 다른 시인들과 함께 놓여 있을 때 자기 시가 어느 수준인지 확연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아! 내 실력이 이 정도구나! 아! 다른 시인들의 실력이 이 정도였구나! 더 분발하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생각 자체가 경기감각이다.  혼자 달리기를 하다가 여럿이 출발선상에서 총소리를 듣고 달릴 때 진짜 자기의 헉헉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고 가슴이 터질 것 같은 통증을 느끼게 된다. 권투 선수라면 링 밖에서 후두웤을 할 것이 아니라 링 위에 올라가라! 링이 없으면 새끼줄이라도 묶어놓고 권투장갑이 없으면 주먹에 수건이라도 감고 시합을 해라. 축구선수라면 그라운드에 나가 뛰어라! 그라운드가 없으면 애들을 모아놓고 초등학교 운동장에 나가서라도 공을 차라. 시를 쓰는 사람이라면 떨지말고 어디든, 어디든, 자꾸, 자꾸 발표를 해라!  그래야 경기감각이 생긴다. 정 발표할 곳이 없으면 블러그를 만들어 자기 시를 올려라. 그 블러그가 경기장이 된다. 그리고 그곳에 자기 시를 올려놓는 순간 그 시는 객관화되기 시작하며, 나로부터 분리되어 그 시를 객관적인 눈으로 보게 된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자기 시의 문제점들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한다. 이는 관객이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연극을 하는 것과 관객을 앞에 놓고 연극을 하는 것과 같은 경우다. 자기 시가 관객들 앞에서 당당히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자기 동작을 내는지 볼 수 있을 것이며, 아니면 배우가 부실하여 말문이 자꾸만 막히고, 대사를 까먹고  다리가 후들거려 식은 땀을 흘리는지 스스로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선수는 죽을 때까지 그라운드에 있어야 한다. 그게 선수다! 시쓰는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15. 자기를 믿고, 자기를 사랑하라 두서없이 썼는데, 이 글이 마지막이 될 듯합니다. 같잖은 글이지만 나름 조금이나마 제가 갖고 있는 것을 나누고자 마음을 내보았습니다. 자기의 시작법이나 시론, 문학관과 많이 다른 부분도 있으리라 봅니다. 가져갈 부분은 적당히 취하시고, 전혀 가져갈 것이 없다고 보시면 그냥 무시하고 다 버리면 됩니다.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말은 자기를 믿고, 자기를 사랑하세요! 시 쓰기는 자기를 정말 사랑하는데서 비롯된다. 먼저 자신을 믿어라!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해라. 나는 누구보다 뛰어나다. 감수성이 예민하다. 아직 때를 만나지 않았을 뿐이다. 나에게는 시적인 무한 광맥이 있다. 나는 지금도 잘 쓰지만 앞으로 세상을 놀래킬 멋진 시를 써낼 것이다.  이러한 자기 확신이 필요하다. 세상은 생각하는 대로 된다. 겉마음과 속마음을 일치시켜라. 속에서 “너는 안돼! 너는 안돼!” 이런 소리가 들리면 다시 자신에게 사랑과 믿음을 줘라. 내 몸과 마음이 열려야 그때부터 뭔가가 들어오기 시작한다. 너는 잘 쓸 수 있다고. 너는 멋진 시인이 될 수 있다고 말해라!  힘들고 좌절감이 올수록, 눈물이 나올수록 자신에게 그렇게 말해라. 그러면 분명 멋진 시를 쓸 수 있다! 고 나는 믿습니다.   “페루 인디언들은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기 전 낚싯대와 대화를 한다. 너는 바다에 나가면 고기를 많이 잡게 될 거야. 이 말을 통해 그 낚싯대는 고기를 잘 잡는 낚싯대가 된다. 남태평양 어느 섬의 원주민들은 나무를 쓰러뜨리기 위해 이런 방법을 쓴다. 그들이 쓰는 무기는 날이 선 톱이 아니라 아우성이다. 모든 주민들이 쓰러뜨릴 나무 주위에 둘러서서 3일 밤낮 나무를 향해 고함을 쳐댄다. 그러면 나무속에 깃들어 있던 혼이 빠져나가면서 나무가 쿵, 하고 쓰러진다.”    
716    시를 쓰는것은 집을 짓는것과 같다... 댓글:  조회:2015  추천:0  2017-09-13
시작법(詩作法) / 고영민  1. 자기의 핵심역량을 찾아라!   - 누구나 가장 잘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걸 찾으면 됩니다. 남을 따라하면 절대 최선을 다해도 최고가 될 수 없습니다. 내가 가장 잘 하는, 잘 쓸 수 있는 것이 뭔지를 찾아야 합니다. 자기와 맞는 글쓰기를 찾으세요! 거북이와 토끼가 경주를 합니다. 산에서 경주를 하면 백이면 백, 토끼가 이깁니다. 거북이가 이기는 방법은 바다에서 경주를 하는 것입니다. 내가 토끼인지, 거북이인지 먼저 판단을 해야 합니다. 바다로 갈지 산으로 갈지 판단해야 합니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글쓰기를 하세요! 그걸 찾는 것이 우선입니다. 2. 차별화 해라 - 에서 자신의 핵심역량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자신이 토끼인지, 거북이인지 먼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하여, 내가 거북이라고 판단을 해서 바다로 갔습니다. 그런데 바다에 갔더니 나 말고도 날고 기는 거북이들이 수두룩 한 것입니다. 그럴때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저 역시 바다에 갔더니, 나와 비슷한 함민복 거북이, 이정록 거북이, 손택수 거북이, 문태준 거북이들이 먼저 장악을 하고 있더군요. 이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바로 차별화입니다. 이들이 갖고 있지 않은 것을 가지고 글쓰기의 승부를 거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 차별화의 전략으로 위트, 해악, 쉽게 쓰기, 12남매의 가족사 등을 가지고 승부를 걸었습니다. 이것이 내가 그들과 차별화 될 수 있는 방법이었습니다. 여러분이 토끼라고 판단을 했다면 토끼가 있는 곳을  한번 가볼까요? 그곳엔 이미 황병승 토끼, 김행숙 토끼, 김민정 토끼, 강정 토끼 등이 이미 토끼 마을을 장악했군요! 당신이 만약 조금 늦게 토끼 마을에 갔다면 어떻게 차별화 시킬 예정입니까?  산토끼 토끼야~ 어디를 가느냐? 깡총깡총 뛰면서 어디를 가느냐? 자~ 당신을 차별화 하시기 바랍니다!! 3. 경험을 써라! 가장 절실한 것을 써라! 줄거리(서사)를 만들어라! (공광규 시인의 시 작법과 동일)에서 한가지를 더 추가하면 '드라마틱'을 만들어라! 좋은 시에는 분명 드라마틱이 있다. 드라마틱을 만들기 위해서는 3미를 창출해야 한다. 3미란 바로 흥미, 의미, 재미이다. 드라마틱은 경험이고, 진실함이고, 줄거리를 갖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속에 독자의 관심을 끌 수 있는 흥미, 그리고 그 안에 의미를 집어넣을 수 있는 능력, 그리고 재미를 주는 것이다. 하지만 너무 흥미를 추구하면 소재주의에 빠진다 너무 의미만을 추구하면 잠언에 빠진다. 너무 재미만을 추구하면 꽁트가 된다. 이 상태를 얼마나 적절하게 간을 맞출 수 있는가가 시인의 관건이다.  시를 잘 쓰는 사람은 대체로 간을 잘 맞춘다. 당신이 만약 음식 솜씨가 없고 간을 잘 못 맞춘다면 시쓰기를 일찍 포기하는 것이 좋다^^ 우리 딸이 귓속말로 하는 말 “엄마가 끓인 라면보다 아빠가 끓인 라면이 훨씬 맛있어요!” 결국 시도 간을 맞추는 것이다. 얼마나 면발을 꼬들꼬들하게 할 것인지!, 냄비에 물을 얼마만큼 넣을 것인지! 불의 세기를 얼마만큼으로 조절할 것인지!! 퍼진 글을 내 놓은 것은 퍼진 라면을 독자에에 먹으라고 내놓은 라면가게 주인처럼 무책임한 것이다. 4. 끊임없이 펌프질을 해라 펌프질 해본 분? 펌프질을 안하고 반나절만 그냥 놔두면 펌프속의 물은 다시 땅속으로 잦아든다. 그럴 땐 한바가지 마중물을 붓고 다시 열심히 펌프질을 해야 한다. 처음엔 탁한 물이 나오다가 나중에 차고 맑은 물이 나오기 시작 한다.  시도 마찬가지이다. 펌프질을 안하면 뻔한 내용의 글을 쓰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시상이 떠오르면 계속 파고 들어가야 한다.  일전에 시창작 강의를 한번 한 적이 있다. 5팀으로 나뉘어 학생들을 대상으로 게임을 해보았다. “당신에게 소포가 배달되었습니다. 도장을 찍지 않으면 배달된 소포를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도장은 있고 인주가 없네요! 인주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을 3분 동안 최대한 써보시기 바랍니다” 3분 동안 대략 각 팀마다 30개 정도 인주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을 써냈다. 하여, 각 팀마다 처음 생각한 것 5가지를 불러보라고 했다. 대답은 거의 비슷했다. 물감, 피, 흙, 봉숭아꽃, 김치국물....뭐 이런 식이었다.  그럼 제일 끝에 나온 5가지를 불러보라고 했다. 대답이 가관이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대답들이 나왔다.  제가 드리고 싶은 것은 바로 처음 생각한 5가지는 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내가 생각한 것을 남도 똑같이 생각한다는 것이다. 뻔한 시가 된다는 말이다. 결국 시가 되는 것은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상상을 초월하는 가장 밑의 것을 끄집어 낼 때 가능한 것이다. 펌프질을 하면 처음엔 흙탕물이 나온다. 하지만 계속 펌프질을 하면 차고 맑은 물이 나온 것과 동일하다. 상투성을 벗는 것이 시에서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5. 쓰고, 또 쓰고, 또 써라! 그 외에 어떤 방법이 없다. 나는 시인이 되는 게 꿈이 아니었고 소설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게 시인이 되어 버렸다. 생각지도 않게 시인이 되어버렸을 때 나는 시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는 청맹과니였다. 어떤 것이 좋은 시인지도 어떤 것이 좋지 않은 시인지도 구분할 줄 모르는 상태였다. 한마디로 나는 공짜로,  눈먼 잉어가 걸린 격으로 시인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너무 무섭고 떨렸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미친 듯이 쓰는 방법 밖에 없었다. 나는 새벽에 일어나 시가 될만한 것이 있을까 일어나 돌아다니기도 했다. 그 사연을 소개한다. 지금 여기에 들어와 이 글을 읽는 모든 분은 당시의 나 보다 훨씬 시에 대해서 많이 알고 경험이 있으리라 본다. 그래서 용기를 갖고 자신에게 도전을 해보길 권한다. 누구나 가장 잘 쓸 수 있는 자기 만의 핵심역량을 갖고 있다. 그걸 찾아 쓰고, 또 쓰고 또 쓰길 바란다. 시가 당신에 넙죽 절을 하며 찾아 올 것이다. 자신을 믿어라! 불안해도 믿어라! 6. 대상을 새롭게 의미부여하라. 기존에 부여된 의미를 새로운 눈으로 접근하는 것이 좋다. 나쁜 것을 좋은 쪽으로, 좋은 쪽을 나쁜 쪽으로, 아름다운 것을 추한 것으로, 추한 것을 아름다운 것으로, 숭고한 것을 천박한 것으로, 금기시되는 것을 일상적인 것으로, 일상적인 것을 금기시 하는 것으로..... 이러면서 시가 새롭게 환기될 수 있다.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추한 것을 추하다고 말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은 것으로,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한 것으로 의미부여 하라. 그곳에 바로 시가 있다. 7. 시를 쓰는 것은 집을 짓는 것과 같다. 시를 쓰는 것은 집 짓는 것과 같다. 누구나 집을 지을 수 있다. 하물며 개미도 집을 짓고, 까치도 집을 짓고, 벌레도 집을 짓는다. 사람이야 말하여 무엇하겠는가? 당연히 집을 잘 짓는다. 이 말은 누구나 시를 쓸 수 있다는 말이다. 문제는 집을 짓는 순서를 모를 뿐이다.   집을 짓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먼저 기둥을 세우는 것이다. 그리고 시에서 기둥은 바로 줄거리이다. 처음부터 고대광실을 지으려고 하지 말고 먼저 기둥부터 세워라. 기둥만 세우면 반은 집을 지은 것이다. 기둥만 세우면 비닐만 올려도 집이 되고, 양철만 올려도 집이 되고, 짚을 얹혀 놓아도 집이 된다. 먼저 기둥을 세워라. 기둥은 줄거리이다. 자기가 접한 대상에 줄거리를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면, 어제 트럭에 소나무 두 그루가 실려 가는 장면을 보았다. 자, 그럼 이걸 가지고 줄거리를 만들어 보자.  “뽑혀 실려 가는 나무 두 그루를 보니, 살던 집을 버리고 이사를 가는 가난한 내외 같다. 어디로 옮겨질지 불안하다. 잔 뿌리들은 어린 새끼들 같다. 트럭에는 살던 낡은 가재도구도 있다. 늦은 저녁 옮긴 자리에서 두 소나무는 가재도구를 정리하고 늦은 저녁밥을 짓는다. 두 내외(소나무)가 어둑한 집에서 밥을 먹는다.” 그대로 쓰면 된다. 8. 시를 쓸 때는 門을 어떻게 낼 것인지 고민해라 시도 집을 지을 때와 같이 문을 어떻게 낼 것인지 고민을 해야 한다. 독자들이 들어갈 수 있는 문을 어떻게 낼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대문을 얼마나 크게 낼 것인지, 쪽문을 몇 개를 달 것인지. 요즘 시는 문이 너무 작다. 하여 독자들이 쉽게 그 집에 들어갈 수 없게 만든다. 집이 아니라 일종의 감옥 같은 시들이 많다. 들어가도 나올 수도 없다. 시가 아니라 미로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너무 문을 많이 내는 것도 문제다. 이런 시는 속이 훤히 들여다보여 너무 적나라하고 필요이상의 바람이 들이쳐 집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만든다. 시는 집이라고 했다. 집은 안에서 밖을 내다보는 풍경이다. 그러면서 밖이 안과 적절하게 내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바로 드나들 수 있도록 해야한다. 시에는 안방의 역할을 하는 부분, 대청마루의 역할을 하는 부분, 부엌, 헛간의 역할, 마당의 역할을 하는 부분이 필요하다. 이는 적절하게 시의 문을 닫아놓느냐 열어놓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시를 쓸 때는 문을 어떻게 낼 것인지? 얼마의 크기로 낼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   서양의 우화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 이정하   한 가난한 농부가 성실하게 노력해서 큰 농장을 하나 갖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이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더 많은 땅을 갖고 싶어했다. 그러던 그는 어느 날, 땅이 많은 어느 지주로부터 약간의 돈만 걸면 하루 동안에 그가 돌 수 있는 만큼의 땅을 주겠다는 제의를 받았다. 단, 거기에 따르는 한 가지 조건은 출발한 장소에 당일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이다.   농부는 가슴이 설레었다. 그래서 다음 날 동이 트자마자 돈을 내고는 서둘러서 출발하게 되었다. 한참 뛰다보니 땀이 비오듯 흐르고 숨이 턱에까지 차올라서 입이 바짝바짝 말랐다. 다리도 후들후들 떨렸다. 그러나 이 농부는 자기가 밟은 땅은 모두 가기의 땅이 된다는 욕심에 돌아올 시간과 거리는 생각지도 않고 오직 달리기만 했을 뿐이다. 해질 무럽에서야 방향을 돌려 허겁지겁 출발 지점으로 뛰어오던 중, 그는 그만 지쳐 쓰러지고 말았고, 다시는 깨어나지 못했다. 결국 그에게 필요한 따은 그의 육신을 눕힐 조그만 땅덩이가 전부였던 것이다.   언젠가 때가 되면 육신마저 버리고 가야 한다. 그런데 무엇이 그리 필요할까?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노력해야 할 것은 사실 얼마만큼 소유랄 것인가가 아니라, 소유하고 있는 것에 대해 얼마만큼 감사해야 할까가 아닐까.     //                         
715    "윤동주는 기적, 우리 문학 축복"="윤동주처럼 멋진 시인이 꿈" 댓글:  조회:2152  추천:0  2017-09-12
[SBS funE연예뉴스팀] '불멸의 윤동주'…마광수 "윤동주는 기적, 우리 문학의 축복" 지난 2016년 3월 6일 저녁, KBS 공사창립 '불멸의 청년 윤동주'가 조명. “윤동주는 기적이에요, 기적. 친구들이 없었다면 지금까지 육필원고가 보존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생전에 시인으로 공인받은 적이 없었던 그의 시가 친구들의 힘으로 발굴된 것은 우리나라 문학의 축복입니다.” (마광수·연세대학교 국문과 교수) 방송에서 마광수 연세대 교수는 시인 윤동주에 대해 이 같이 평했다. 마광수 교수는 1980년대 중반 최초로 윤동주 시 연구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그는 윤동주 시의 미학을 본격적으로 연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시인 윤동주는 1945년 해방을 여섯 달 앞둔 채 만 스물일곱의 나이로 후쿠오카 감옥에서 생을 마감했다. 비록 생전에는 시집 한 권 조차 펴내지 못한 무명의 청년 시인이었지만 현재 그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1위에 올라 있다.  이럴 수 있던 데에는 그의 시를 부활시킨 친구들의 헌신 때문이었다. 방송에 따르면 윤동주의 연희전문학교의 후배 정병욱은 당시로서는 위험했던 윤동주의 육필시고를 생가의 마루 밑에 깊숙이 숨겨뒀다. 윤동주 동기 강처중은 해방전후의 혼란기에 끝까지 윤동주의 유품과 편지에 담긴 시들을 지켜냈고, 윤동주의 시는 오늘까지 부활될 수 있었다. 방송은 여러 전문가들의 말을 통해 윤동주 시인의 시가 왜 감동적인지를 들려준다. “영혼이 굉장히 아름답다는 것이 시에 나타나 있어요. 영혼의 아름다움, 슬픔이 거기에 있어요. 한 영혼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세계 그 자체가 아름답게 빛나는 것처럼 느껴지는 정말 훌륭한 시입니다.” (가와즈 키 요에·일본 현대시수첩상 수상 시인) “윤동주의 시는 결코 한 민족의 것이 아니라 인류, 인간 그 모든 것의 근원으로 통하는 시입니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은 역시 사랑이죠. 인류입니다. 인류와 사랑.” (니시오카 겐지·일본 후쿠오카현립대 명예교수) “윤동주의 소장도서에 접근한 한국인은 제가 최초였습니다. 윤동주는 서정시인으로 여겨졌지만 그가 소장하고 있는 책들은 비평서나 이론서가 많았어요. 아름다움으로 제국주의를 극복하고자 하는 것이 그의 독서체험의 중심이었습니다. (왕신영·단국대 일본어과 교수) “전 윤동주 시 중 ‘해바라기 얼굴’을 가장 좋아합니다. 많은 독자들이 그 시를 읽으면서 떠올리는 지점이 70년대, 80년대가 아닐까요. 사람들이 윤동주의 시를 좋아하는 수도 없이 많은 이유가 있지만, 아주 슬픈 이야기를 하면서도 희망의 단서를 놓지 않는 그만의 특징이 있어요.” (이정록·윤동주문학상 수상시인) "가슴이 철렁하고 이렇게 감동적이 시가 있구나 느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시어가 문어체가 아니고 구어체죠. 해방 이전, 아니 해방 전후까지도 지금까지 생생하게 읽히는 시를 대봐라, 윤동주밖에 없어요."(마광수 교수) 매년 윤동주의 기일이 되면 일본 곳곳에서 시인의 숭고함을 추모하는 추도회와 윤동주의 시를 연구하는 강연회가 개최한다. 현재 윤동주의 시는 일본뿐 아니라 프랑스, 독일, 스페인 등 8개국에 번역되어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사진 출처 : KBS '불멸의 청년 윤동주')      ========================================= '즐거운 사라’ 등의 작품으로 한국 사회의 엄숙주의를 조롱하며 표현의 자유 논란을 일으킨 작가 마광수 전 연세대 국문과 교수가 지난 9월5일 서울 용산구 동부이촌동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향년 66세. 이날 오후 1시 51분께 마 전 교수가 베란다 숨져 있는 것을 가족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에 따르면 현장에서 마 전 교수 자신의 유산과 시신 처리를 시신을 발견한 가족에게 맡긴다는 내용의 유서가 발견됐다. 이를 조사한 경찰은 자살로 결론지었다.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 끊은 마광수…말년에 우울증 심화 ‘윤동주 연구’로 박사학위 받고, 시인으로 등단한 문학가 문학계의 이단아…‘즐거운 사라’로 사회적인 논란 일으켜 ‘쾌락주의 사상’…허례허식·허세 넘치는 사회분위기 비판   ▲ 각종 외설 논란으로 유명한 마광수 전 교수가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사건의 내막=김범준 기자] 1951년 서울에서 출생한 마광수 전 교수는 1·4 후퇴 중에 태어나 유복자로 자랐으며, 대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국문과에서 학사,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입학부터 수석 입학에 4년 전액 장학금을 받고 다녔으며 학부과정을 올 A로 졸업했다고 한다.        문학계의 이단아?    청록파 시인 박두진의 추천으로 26세에 등단했으며, 홍익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당시 28세)를 거쳐 1983년부터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인문학부 국어국문학과 교수(당시 32세)로 재직하다 2016년 8월 정년 퇴임했다.    마 전 교수는 원래는 1977년 현대문학에 시로 등단한 시인이다. 1989년 장편소설 로 소설가로서의 첫 발을 내딛었다. 이후 , , , , , 등의 소설집과, , , 육필시집 등의 시집, 등의 수필집을 집필했다.     1989년 시집 를 영화화하려고 했고, 감독으로도 결정되었으나, 제작사는 중간에 감독을 교체하고, 마 교수는 여기에 비난 기자회견을 한 바 있다. 일설에 의하면 마광수 전 교수의 연기지도가 너무 야해서 당시 검열을 통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교체했다.    이같은 작품들을 써낸 마 전 교수는 작가로서 상당히 성공했다. 는 당시 제법 회자되며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문제작 는 일본에서 10만 부가 넘게 판매되어 한국 소설 최초로 일본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당시 일본내 유명작가도 5만 부 팔기 힘들었다고 하니 상당히 선전한 셈이다. 역시 일종의 문화원류로서 한국 시문학 역사에 획을 그은 시집이다.   무엇보다 마 전 교수는 문학 연구가로선 커다란 업적을 남겼다. 바로 윤동주의 재발견이다. 윤동주 하면 떠오르는 정서인 ‘부끄러움’도 마광수의 발견이며 이는 마 교수 본인의 가장 큰 프라이드 중 하나이다.      마 전 교수는 그간 문학계에 만연한 ‘지적허영’에 대해 큰 반감을 가지고 있다. “진짜 좋은 글은 쉽게 읽을 수 있는 글”이라는 게 마광수의 작문철학으로 그는 가독성을 매우 중시하여 복잡한 문장구조와 어려운 어휘들을 피해 글을 쓴다.    때문에 글이 쉽고 전달력이 매우 높다. 즉 그의 글에는 문학적 허세가 없고 글의 전달력이 높아, 읽는 데 피곤하지 않다는 장점이 있다. 오히려 “쉽게 쓰는 게 어렵다”라고 말할 정도로 글의 전달력, 가독성에 힘을 쏟는 스타일이다. 작가로서 대단한 장점으로 평가 받는다.       즐거운 사라    이같은 마광수 전 교수가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지난 1991년 소설 가 건전한 성의식을 심각하게 왜곡하는 음란물이란 이유로 검찰에 구속되면서이다.   소설의 내용을 간략히 요약하자면 ‘성에 대해 보수적인 한국 사회 전반에서, 프리섹스를 추구하는 자유로운 여대생 사라가 온갖 섹스를 즐기며 쾌락을 추구한다’는 내용이다. 사실 소설을 읽어보면 그 음란함은 당시 PC통신에서 돌아다니던 평범한 야설 수준과 거의 비슷했다. 마광수 전 교수는 강의 중에 경찰에게 연행되었다고 한다.    는 지난 1991년 서울문화사에서 출간됐으나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간행물 윤리위원회 고발로 자진 수거됐다. 또 이듬해 8월 개정판이 청하 출판사에서 출간됐지만, 그 해 10월 마 전 교수와 장석주 청하출판사 대표가 음란물 제작 및 배포 혐의로 구속됐고, 같은 이유로 소설은 문화부에 의해 판매 금지됐다.    당시 마광수 전 교수는 검찰에 강력하게 항의하였으나 세간의 인식은 매우 좋지 않았다. 소수의 사람들이 표현의 자유를 내세우며 마광수를 옹호했으나, 결과는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이라는 유죄판결이 내려졌다.    당시의 판결문에서, 판사는 “이 판결이 불과 10년 후에는 비웃음거리가 될지도 모르겠으나, 나는 판사로서 현재의 법 감정에 따라 판결할 수밖에 없다”고 명시했다.   사건 당시 유력 보수일간지 등의 지면을 통하여 마광수를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한 지식인들이 많았는데, 대표적으로 서울대학교의 손봉호 교수는 “마광수 때문에 에이즈가 유행한다, 마광수는 교수가 아니라 마광수 씨로 불러야 한다” 등 공격적 발언을 쏟아내기도 했다.   이밖에도 이태동 같은 사람들은 “에 나오는 여대생과 그를 가르치는 교수 사이에서 문란하고 변태적인 성 관계가 성실한 노력의 상징인 학점의 흥정대상이 된다는 것은 커다란 사회적인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라는 주장으로 마광수와 여제자 사이의 모종의 성적 거래가 있었을 것이라는 인신공격을 하기도 했다.    문제는 는 그다지 야한 소설도 아니며, 당시 출판계를 봐도 그보다 훨씬 야한 일본 에로소설 “여인 추억” 같은 소설도 아무 문제없이 버젓이 출판되던 시기였다는 점이다.   마광수 교수 자신은 만 그리 혹독한 처분을 받은 것이 일단 교수가 쓴 것이기 때문이고 주인공 ‘사라’가 방탕한 쾌락 끝에 불행지거나 정신차리는 교훈적, 도덕적 결말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또한 단행본으로 나오기 전 잡지에 연재될 때는 누구도 클레임을 걸지 않았다. 실제로 이 소설의 ‘음란성’이 당대의 기준에서 봐도 그리 심하지 않았다는 평가가 많았다.    실질적으로 마광수를 법적 처리하라고 검찰에 ‘명령’한 것은 당시 현승종 국무총리인데 현승종 총리는 원래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교수였고 정치적으로도 매우 보수적인 사람이다. 후에 진보정권이 들어선 이후 극우적인 시국선언에도 단골로 나왔다. 일설에는 연세대 교수가 그런 소설을 썼다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해서 검찰에 그런 지시를 했다는 말도 있었다.   참고로 문재인 정권 초기 법무부 장관후보자가 되었다가 자진사퇴한 안경환 전 법무부 장관이 마광수 교수의 항소심에서 즐거운 사라 2차 감정 때 재판부측 감정인으로서 감정을 했는데 그 감정서로 인해서 마광수 교수의 항소심이 기각되었다고 한다.   결국 이로 인해 마광수는 당시 연세대학교 교수직에서 해임되었으나 1998년에 다시 교수직에 복직했다. 그러나 는 아직도 재판이 허용되지 않는 금서이며, 마광수 교수 본인은 다른 교수들 사이에서 ‘변두리’ 취급을 받았다. 해임 및 복직과정에서 본인을 지지하는 교수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본인의 개인주의를 반성하는 시간도 되었다고 한다.   이 사건은 ‘ 필화 사건’이라고 불리고 있으며, 이현세 화백의 와 함께 ‘예술과 외설의 경계가 과연 어디까지인가?’하는 논쟁을 사회전반에 일으키기도 했다.   그런데 마 교수는 훗날 를 인터넷에 다시 올렸다가 2007년에 약식기소되기도 하였다. ‘달라진 시대상에 비추어 봐도 음란물이기는 하지만 과거 정식기소했을 때보다는 음란성이 약하다’라는 것이 약식기소의 이유였다.    해당 사건으로부터 10년이 지난 2002년이나 20년이 지난 2012년과 앞으로 이어갈 현재를 기준으로 본다면, 에서 묘사되는 삶의 태도는 소설 속에서가 아니라 일상의 영역에서 등장해도 별 문제가 안 될 정도로 성적인 개방이 이뤄졌다. 덕분에 해당 판결은 비웃음거리가 되다 못해 아예 잊혀지고 말았다.    마광수 본인도 “10년 정도 지나면 어처구니 없던 해프닝으로 기억할 것”이라고 예언한 바 있다. 그 말대로 최근에는 해프닝이 되었지만, 현재까지도 는 재출판되지 않고 있다. 재출간되려면 마광수 본인에게 내려진 유죄 판결을 재심을 통해 뒤집어야 하는데, 아직도 한국 사회는 보수적이고 마광수 또한 노쇠해서 법정 싸움을 다시 벌일 기력이 없는 탓이었다. 그리고 9월5일 마광수 전 교수가 세상을 떠나면서 더욱 힘들게 됐다.       ▲ 마광수 전 교수의 장편소설 는 당시 큰 사회적 논란을 가져왔다.      쾌락주의 사상    마 전 교수는 허례허식과 허세를 비판하며, ‘성(性)’에 솔직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건전한 사회를 위해서는 성적인 욕망을 표현하고 해소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리고 그 성적 욕망을 표현하는 데에 누구보다도 앞장섰다.    이같은 마 전 교수는 ‘유미주의적 쾌락주의’를 전적으로 추구한다고 주장했다. 쾌락은 모든 사건의 근본이자 목표라는 것. 다원화된 사회에서 얼마든지 주장될 수 있는 사상이지만, 사건으로 마광수 전 교수가 세간의 입방아에 오르자 이문열을 필두로 많은 동료 문인들은 ‘그런 쓰레기같은 소설을 쓴 자는 소설가로 부를 가치조차 없다’고 맹비난을 가했다. 특히 마광수 전 교수와 이문열 작가의 사이는 상당히 나쁘다.    이런 사상외에도 문체에 대해서도 양 측의 갈등이 심했는데, 마광수 전 교수는 소설을 쓸 때 무조건 쉽게 읽히게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어서 이문열처럼 작가 자신의 화려한 필력를 자랑하기 위해 글을 어렵게 글을 쓰는 작가들을 비판했다.    실제 마광수 전 교수의 소설들은 책장이 술술 넘어갈 정도로 이해하기 쉬운 문체로 쓰여 있다고 평가받는다. 같은 학술적 서적을 보면 마광수 전 교수가 글을 어렵게 쓸 수 없어서 쉽게 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한다.    마광수 전 교수의 최대 문제는 수많은 여성들을 마광수의 적으로 돌리게 만든 ‘외모 우월주의’라는 것이다. 지난 2005년 MBC 백분토론에서 “예쁜 애들이 공부도 잘한다”고 발언한 사례는 아주 유명하다.    다만, 해당 발언 자체는 ‘예쁜 애들이 머리도 좋다’는 식의 억지스러운 건 아니고, 외모나 몸매를 가꾸는 것 역시 노력이 필요한 일이고, 공부 역시 노력이 필요한 일이라는 논조였다. 한마디로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처럼 자기 관리를 위하여 노력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외모에도 신경 써서 상대에게 호감을 주는 모습을 갖추려고 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타고난 생김새처럼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는 영역을 두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이 점에서 ‘예쁜 애들이 공부도 잘한다’는 자극적인 딱지만 떼고 본다면, 자기계발 열풍의 일환으로써 등장한 몸짱열풍과 별로 다른 주장은 아니다. 성형수술도 의료보험 대상으로 해야한다는 주장 역시, 공교육을 확충하자는 주장과 비슷한 맥락인 셈이다.   하지만 같은방송에서 발언한 “외모 보고 반하지 마음보고 어떻게 아나?”, “마음이 고와야 여자다. 얼굴이 예쁘다고 여자냐라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 등의 발언을 보면 그가 온전히 자기개발과 외모관리의 상관성을 말하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다만, 이러한 관점이 ‘인간 각각의 개성을 인정하지 않고, 일원적인 기준에 따라 모든 사람을 평가하려는 전근대적 발상’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물론 가능하다는 비판도 많다. 자기 영역에서 비할 바 없는 성실함을 보이지만, 외모에는 전혀 신경 안 쓰는 사람이라는 것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는, 마 전 교수 자체가 자기 관심분야에서는 실컷 급진적인 척 하더니, 정작 인간관 자체는 근대적인 근면성실주의에서 한 발짝도 못 벗어났다고 비판하는 것 역시 가능할 것이다.    또한 마 전 교수는 부부강간죄, 성희롱 방지법, 원조교제, 즉 미성년자 성매수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것을 남성을 억누르는 악법이라고도 주장하여 논란을 만들기도 했다. 억울한 피해자가 나올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한 법률가는 “그런 식으로 따지면 남아있을 수 있는 법이 얼마나 될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결국 이같은 마 전 교수의 사상의 영향으로 1990년대에는 불경한 음란문학이라며 지탄받았지만, 현재는 그가 말한대로 성적 욕망의 표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공중파에서 야한 농담이나 수위 높은 걸그룹들의 춤 등이 만연하는 이 시대와 비교해보면 가벼운 편이다.   변태이미지와 다르게 학생을 성추행하거나 한 적은 없다고 한다. 마광수 전 교수 본인이 강의 중 그런 루머에 대하여 말하길, “소설이랑 현실을 구분을 못하는 거지”라고 말하기도 했다. 일설에 따르면 오히려 학생들에게는 굉장히 매너 있고 젠틀한 편이었다고 증언한다.       ▲ 윤동주 연구로 박사가 된 마광수 전 교수는 “윤동주 처럼 멋진 시인이 꿈이었다”라고 밝힌 바 있다.   우울했던 말년    한편,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마광수 전 교수가 각종 인터뷰를 우울한 심경을 전한 사실이 알려졌다.    마 전 교수는 지난해 8월 정년퇴임 직후인 10월 연세대 학보인 ‘연세춘추’와 가진 인터뷰에서 “어디에서든 강의를 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기회가 생기지 않아 많이 아쉽기도 하다”라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교편을 놓는 시기에 대해 “착잡하기도 하고 우울하기도 하다”라며 “무엇보다 학생들과 헤어지게 된 것이 무척 서운하다”라고 말했다.    당시 인터뷰에서 퇴임 후 계획도 밝혔다. 그는 “우선 올해 시집이 하나 발간될 예정이고, 내년 초에는 소설이 나오게 될 것 같다”며 “하지만 향후 문학작품 활동을 계속 이어나갈지는 잘 모르겠다. 요즘엔 너무 우울해서 예전보다 글이 잘 써지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또한 올해 초 에서 연재하는 ‘김동률 서강대 교수의 심쿵 인터뷰’에서도 우울한 심경을 표현하기도 했다. 마 전 교수는 인터뷰에서 “난 실패한 인생이다”라고 회한 가득한 본인의 인생을 되돌아봤다.    그는 “문학도 인정받지 못했고 학계나 문단에서도 철저하게 외면당했다”며 “한 많은 인생이다. 하루 종일 멍하니 지낸다. 같이 살던 어머니마저 연전에 세상을 떠나셨다. 넓은 아파트에서 덩그렁 혼자 산다. 말 상대도 없다. 몹시 우울하고 외롭다. 여자친구가 너무 아쉽다”고 털어놓았다.    또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라는 작품을 왜 내놓게 되었냐고 김 교수가 질문하자 마 전 교수는 “겉으로는 근엄한 척하면서 뒤로는 호박씨 까는 우리 사회의 행태에 시비를 걸어보고 싶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지금 이 순간 주위를 둘러보라. ‘섹드립(섹스에 관한 애드리브)’이 난무하는 세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사라 때문에 인생을 망쳤다”고 슬퍼했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이런 말도 했다. “난 윤동주 연구로 박사가 됐고 교수가 됐다. 윤동주 처럼 멋진 시인이 꿈이었다. 하지만 후세 사람들이 나를 변태, 색마, 미친 말(광마)로 기억할까 두렵다”며 우울해 했다...         
714    윤동주 "별 헤는 밤"에서의 "패, 경, 옥"은 "페이, 징, 위"로... 댓글:  조회:2381  추천:0  2017-09-12
“탄생 100년, 윤동주 정본 시집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ZOGLO) 2017년9월11일  일본의 한국문학 전문가 오무라 교수 주장 “육필원고와 현재 시집 사이에 차이 있어” 펜클럽 주최 세계한글작가대회 특별강연     12~15일 경북 경주화백컨벤션센터에서 열리는 ‘제3회 세계한글작가대회’에 참가하는 한국문학 전문가 오무라 마스오 와세다대 명예교수. 자료사진     올해로 탄생 100주년을 맞은 윤동주의 시집 정본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이 나왔다.     국제펜클럽한국본부(이사장 손해일) 주최로 12~15일 경북 경주화백컨벤션센터에서 열리는 제3회 세계한글작가대회에 참가하는 일본의 한국문학 전문가 오무라 마스오 와세다대 명예교수(사진)는 13일 오전에 행할 특별강연 ‘원고로 읽는 윤동주 시’에서 이렇게 주장하고 있다. 오무라 교수는 1985년 중국 용정에서 윤동주의 묘를 처음 발견했으며 등의 연구서를 낸 한국문학 전문가다. 1999년 왕신영·심원섭 등 한국인 연구자들과 윤동주의 조카 윤인석 교수와 함께 을 펴낸 바 있는 그는 미리 배포한 강연 원고에서 ‘병원’ ‘곡간’ ‘아침’ ‘별 헤는 밤’ 등 윤동주의 시 네 편을 예로 들며 정본 확정이 불가능한 까닭을 설명한다.     자필 시집 의 원래 표제로 삼으려 했을 만큼 윤동주가 소중하게 여긴 시 ‘병원’의 2연 4행 중 “이 지나친”에 이어지는 “放○”의 “○”이 무슨 글자인지 해독하기 어렵다고 오무라 교수는 밝혔다. ‘방일’(放逸)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문맥으로 보아 맞지 않는다는 것. 시 ‘곡간’(谷間)은 처음에는 6연으로 썼는데 최종본에는 이 가운데 두 연이 삭제되었다. 삭제된 두 연에는 “말탄섬나라 사람이,/ 길을뭇고지남이 이상한일이다.”와 같은 대목이 들어 있는데, 윤동주가 자기검열을 한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 오무라 교수의 추측이다.     ‘아침’은 10행짜리로 나오는 윤동주의 원고에서 여섯 행에 ×표를 치고 여백에 “고칠 것”이라 써넣었는데, 그의 사후 시집 편찬자가 그의 다른 습작 원고의 시구를 뽑아내어 남은 4행과 합쳐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이것이 윤동주 자신이 의도한 최종본이 아니었기 때문에 정음사판 와 (2004, 연세대출판부)의 ‘아침’은 각각 다르다.       ‘별 헤는 밤’에 나오는 이국 소녀들 이름 ‘패, 경, 옥’은 윤동주의 원고에는 한자로 되어 있다. 오무라 교수는 “윤동주는 이 시를 쓰면서 화룡현립 제일소학교 고등과에서 1년간 중국어를 공부했던 시절을 떠올렸던 것임에 틀림이 없다”며 “윤동주가 이 시를 썼을 때는 틀림없이 중국어 발음이 귀에 맴돌고 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패, 경, 옥’이 아니라 ‘페이, 징, 위’로 읽어야 한다는 뜻이다. 같은 시에는 독일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등장하는데, 오무라 교수는 윤동주가 릴케 시를 일본어 번역으로 읽었을 것이라며 당시 일본에서 릴케의 이름은 ‘라이너’가 아니라 ‘라이넬’로 읽었고 역시 1955년 재판까지는 ‘라이넬’로 표기했다가 그 뒤부터 ‘라이너-’로 표기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별 헤는 밤’의 마지막 4행은 초고에는 없었으나 후배 정병욱이 “어쩐지 끝이 좀 허한 느낌이 드네요”라고 소감을 말하자 나중에 써서 덧붙인 것으로 확인된다. 이 때문에 홍장학 편 (문학과지성사, 2004)에서는 이 4행을 아예 삭제해 버렸는데, “이 부분도 윤동주가 쓴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는 점에서 삭제해 버리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오무라 교수는 지적했다.     ‘세계화시대 한글문학, 평화를 꿈꾸다’를 주제로 열리는 세계한글작가대회에는 고은·신경림·유안진·김종회·방민호 등 17개 나라 문인과 연구자 63명이 발표와 토론자로 참여하고 국내 문인과 동포 문인, 경주 시민 등 수백명이 참가한다.   /한겨레
713    "600년보다 더 길고 긴 60년"... 댓글:  조회:1897  추천:0  2017-09-11
시를 만들어내는 기억의 기능들/송기한                                                  인간의 사고작용가운데 무시할 수 없는 것이 기억의 작용이다. 이것이 있기에 인간은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로 나아갈 수가 있다. 만일 기억이 없다고 하면 어떤 작용이 벌어질까. 우선 곱아볼 수 있는 것이 시간 관념의 무색일 것이다. 시간이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로 이어지는 계기적 질서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인간자신에게는매우 중요한 학습효과란 것이 거의 유명무실해질것으로 보인다. 이 효과란 인간의 방향타 역할을 하기에 그러하다.  기억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인간에게 꼭 좋은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이른바 대타 효과란 것이 있어서 좋지않은 기억 역시 인간의 삶에 있어 꼭 필요한 기제다. 이러한 기억이 있어야만 그렇지 않은 것들이 보다 가치있는 것으로 현현하기 대문이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좋지않은 기억을 갖지 않으려고, 가급적 이를 피하려 든다. 삶에 대해 나쁜 영향을 끼친다는 이유에서이다. 이런 류의 기억은 대부분 병적인 것으로 간주되는데, 정신분석학적 관점으로 보면, 거의 억압에 가깝다. 이를 통상 콤프렉스로 치부하거니와대개의 경우 그것은 비생산적인 어떤 것으로 간주되는 것이 상례이다. 그러나 이러한 콤프렉스들은 철학이나, 정신분석학 혹은 에술학에서 각광을 받아온 것이 사실인데, 이는 이 기제들이 생산적인 예술적 에네르기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기억은 순기능도 하고 역기능도 한다. 그리고 모든 기억은 기념비적인 것이어서 순기능적 요소를 갖춘 것은 더더욱 말할 필요도 없지만, 그러나 그것이 자기 훼손적인 것이라서 배제되어야할 이유도 없다고 본다. 기억은 그것이 인간에게 기능적 기제로 작용하는 한 의미있는 그 어떤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러한 기억의 기능적 가치 가운데 맨 앞자리에 놓고 싶은 것이 인간의 불구화된 인식에 대한 완결로 보고 싶다. 곧 현재를 인식하고 미래에 대한 올곧은 모색이 그것이 긍긍적 가치일 것이다. 기억이란 개인의 특수한 체험에 의해서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사회의 제반 여건에 의해서도 형성된다. 전자가 개인적 무의식이라면, 후자는 사회적 무의식에 해당된다. 개인적인 차원의 것들이 신변잡기적인 것으로 한정된다면, 사회적인 차원의 것들은 이를 넘어 좀더 폭넓은 외연을 갖는다. 그러나 방향이 다르다고 해서 기억의 기능적 가치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모두 인식의 완결이라는 가치로 환원된다는 점에서 결국 동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집 뒤엔 미나리꽝이 있고 미나리꽝 뒤엔 기찻길이 있었다. 미나리꽝 미나리가 연초록으로 피어오르던 어느날 화물을 가득 실은 기차가 미나리꽝 근처에 섰던 적이 있다. 화물칸에는 무명천으로 싼 하얀 상자들이 가득 실어 있었다. 전쟁이 멎고, 고향 찾아가는 유골상자들이었다.  미나리꽝 햇미나리 향기 흩어지는 봄날이었다.   -이건청전문, 2008 가을   이 시는 전쟁을 바탕으로 씌어진 작품이다. 전쟁이 종료된 이후 많은 시간이 지났기에 그것은 그 세월의 무게 만큼이나 이제 모두의 기억에서 잊혀져 가고 있다. 그러나 시인에게 전쟁은 잊혀지지도 끝나지도 않았다. 그것은 아직도 시인의 뇌리 속에 생생하게 피어오르고 있다. 전쟁에 대한 이러한 시상은 전쟁을 체험한 세대만의 것이 아니어서 이와 무관한 세대에게는 그저 관념적인 경험으로만 남아 있을지 모르겠다. 지금은 반공주의가 넘쳐나는 시기도 아니고 획일주의가 지배하는 시대도 아니다. 전쟁을 확기한다는 것 자체가 아웃사이더의 존재성을 드러내는 일인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시점에서 왜 전쟁일까 하는 의구심에 시인의 답은 너무 뻔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분단에 대한 자기 확인 정도가 아닐까 하는 대답이 준비될 것이기 때문이다.   전쟁이 스치고 간 시간들은 너무 오래여서 이제 구태의연한 어떤 것이 되었다. 부수되는 이야기로서 분단 극복이라든가 우리는 하나라는 구호조차 대단히 식상한 일이 되어버린지도 오래 되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지나간 아픔에 대한 기억을 굳이되살리는  것은 낭만적 추억거리로 비춰질지도 모른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체험 세대로서 전쟁의 의미와 그것인 남긴 유산에 대한 진진한 모색이 매우 돋보이는작품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있다. 그것은 이미 50여년전에 끝난 것이지만, 그 기억을 다시 한번 환기시킴으로써 분단 현실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하게끔 하는 것이 이 작품이 의도하는 내포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 전쟁으로부터 받은 시인의 상처다. 이는 전자의 경우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이긴 하지만, 이 작품에서 전쟁을 환기하는 시인의 정서는 아련하고 슬픈 것으로 표상되어 있다. 전사자들이 모습이 햇 미나리 향기로 퍼져가면서 그러한 전쟁의 상처들이 매우 감각적으로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그러한 향기가 시인으로 하여금 전쟁을 일깨우는 근본 에네르기로 작동케 한다. 이 작품은 그런 면에서 매우 서정적이면서도 아픈 기억을 담고 있는 시라고 하겠다.    아가야/ 둥근 젖병을 움켜쥐고/ 아인슈타인을 쭉쭉 빨아대는 아가야// 어때 맛이 괜잖니/ 배가 쿨렁쿨렁 소리나게 부르니/ 올해 60회갑을 맞은 이 할아버지는/ 너를 등에 업고 먼 산에 올라가 보련다/ /(중략)/ /그래, 60회갑을 맞은 나 또한 슬퍼하느니/600년보다 더 길고 긴 60년, 저 젖을 봐라/ 한반도 허리춤에 내리꽂힌 총칼을 보아라//백두에서 한라까지 이땅은 블랙홀/ 서울과 평양사이의  들꽃들도 블랙홀/ 금강산 앞바다에 치솟는 태양도 블랙홀/ 귀신들이 무더기로 우글거리는 블랙홀/ 생목숨마저 빨려들어가버리는 블랙홀//미움과 증오뿐인 저 절벽의 벌벽의 세월/ 머저리와 머저리들의 바보같은 그 세월/남들이 만든 시계 속에서 청춘도 사랑도 /한꺼번에 휩쓸려 가버린 아 코리아 60년!//(중략)/ 아 풀비린내도 없이 온 몸 살결이 향기로운/통일 코리아 텍스트 밤낮으로 굼꾸는 아가야/그래서 나도 너처럼 똥을 바가지로 싸놓고도. 방긋방긋 웃는 벌거숭이 아가가 되고 싶단다.                                     -김준태 전문, 2008,가을 김준태의 는 분단을 소재로 슨 시이다. 시인 자신이 맞이한 60이라는 나이가 분단의 시기와 겹쳐지면서 한반도 현실에 대한 감회를 읊은 작품이다. 우선 이 시는 분단과 같은 거대담론을 작품의 소재로 끌어들이고 잇다는 점에서 이채롭다. 시의 질료들이 어떤 것이어야 한다는 공식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시의성이라는 것은 분명히 존재한다고 본다. 특히 대 사회적인 발언을 하는 담론들의 경우는 더더욱 그러하다. 우리 시사에서 분단과 통일에 대한 관심도가 가장 활발히 논의 되던 때는 1980년대이다. 남한의 변혁운동과 더불어 진행된 이 때의 논의들은 통일의 방법이라기보다는 그 주체가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통일은 누구에 의해서, 그리고 그것이 이루어졌을 때 그 국가는 어떤 모양새를 띄어야 하는가 등등이 그 주된 관심거리였다.  변혁운동의 주체들에 의해 심도있게 논의되던 이 주제들은 매우 이상적인 것이어서 감성의 영역이 틉입할 여지가 없엇다. 이 논의의 핵심은 막연한 통일지상주의라든가 감상적 동포주의 등등을 경계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후, 곧 거대담론이 물러나면서 우리 사회에서, 그리고 우리 시단에서 서서히 사라져 갔다. 김준태의 시가 담아내고 있는 소재가 이채롭다는 것은 이렇듯 그 시의성이란 맥락에서다. 80년대의 시각에서 보면, 인용시의 통일론은 감상적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워 보인다. 왜 통일이 되어야 하고, 그 통일의 실체는 무엇이어야 한다는 구페적, 객관적, 이론적, 접근이 없는 가닭이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의미있게 다가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이작품이 지금의 현실에서 오히려 흔하지 않게 되어버린 분단과 같은 거대담론을 다루고 잇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또한 이 작품은 그러한 독특한 주제를 아주 특이한 상상력으로 풀어내고 있기에 어둑 웅숭 깊다. 시인의 상상력은 아이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인" 에너지와 질양은 등가이고 변한가능하다"는 이론을 빌어 "빛도 휘고 청천하늘도 무지개로 휜"다로 자신의 상상력을 글어올린다. 이는 고정된 인간의 변화가능성, 미움과 증오의 사랑으로서의 전화 등 분단의 고착을 유연한 흐름으로 풀어헤쳐서 긍극적으로는 그 분단을 하나로 만드려는 의지로 발전시킨다. 이 작품 역시 자신의 이력과 분단의 상황을 기억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과거의 기억을 통해서 현재의 상황을 극복하련은 것이 이 작품의 근본 구도인데. 기억이라 이처럼 통합의 상상력을 구현해내는 데 유효한 기제로 기능하고 있다.  베르그송에 의하면 기억이란 지속의 속성을 갖는다. 따라서 그것은 과거의 어느 시점에 형성되어 지금 여기의 의식에서도 생생히 살아있게 된다. 문제는 기억의 질과 양이가. 어떤 것이 긍정적이고 그렇지 않은가, 혹은 매 사람마다 있을 수 잇는 그것의 많고 적음의 문제이다. 이는 개인마다 고유한 것이어서 어떤 것이라고 특정하여 말하기는 대단히 어렵지만, 체험의 경우들에 달려 잇는 문제일 것이다. 개인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에 그 외연을 확대하고 있는 경우라면, 다음의작품들은 주로 시인 자신의 체험과 같은 작은 영역에 관계되는 경험들을 시화한 경우이다.    안감이 꼭 저런 옷이 있었다. 안감이 꼭 저렇게 붉은 옷만을 즈력 입던 사람이 있었다/ 일흔일흔 일곱살 죽산댁이었다 우리 할머니였다 돌아가신지 꼭 십년 됏다/ 할머니 무덩마겡 앉아 바라보는/ 앞산 마루 바라보며/ 생각해보는-------//봄날의 안감은 또 얼마나 따뜻한 것이냐//봄날의,//이 무덤의 안감은 또 얼마나 깊고 어두운 것이냐          -유홍준, 전문 2008,11월호   유홍준의 개인의 경험과 그 기억을 토대로 생산된 작품이다. 시인은 어느 따뜻한 봄날 할미꽃을 바라보면서 할머니를 연상해낸다. 그녀는 주로 붉은 색의 안감을 입었고, 죽산댁으로 불려졌으며, 돌아가신지는 10년이 되었는데, 자신의 할머니이다. 시인은 그 할머니가 그리워 무덤가를 찾아간다. 이곳에서 그는 할미곷을 보면서 할머니의 평소 모습을 환기해낸다. 시인은 봄날의 따스함 속에서 할머니의 온정을 느끼기도 하고, 차가운 무덤 속의 깊이를 혜량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 시의 소재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적인 것이다. 사회적 외상에 의한 것도 아니고, 또 개인적인 외상에서 온 것도 아니다. 아주 평범한 일상 속에서 만드렁진 기억을 토대로 직조된 것이 이 작품의 특색이다.    기억의 중요한 기능 가운데 하나가 통합에 있음을 지적한 바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그러한 기억의 기제와는 거리가 멀다. 시인은 과거의 기억을 통해서 현재를 통합하려 한다거나 인식의 분열을 치유하려들지 않는다. 이 시는 통상적인 그러한 기억의 역능을 넘어선다. 사회적 흠결이나 내부의 외상에 대한 통합에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시가 직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시인에게는 그림리움의 감수성만이 남아있다. 자신의 일상을 구성하고 잇던 대상의 상실과 그로부터 얻어진 결손의 정서가 이 시에 넘쳐나고 잇는 것이다. 이런 듯에서 보면 기억이란 거의 추억에 가가운 것은 아닐까 한다. 다음의 작품도 이 범주에 속하는 경우이다.            얼마나 떠나기 싫었던가!/ 얼마나 돌아오고 싶었던가!// 낡은 옷과 낡은/신발이 기다리는 곳//여기,/바로 여기.                          -나태주, 전문, 시집(시학,2008)   짧은 시임에도 불구하고 본능에 대한 희구가 이토록 강렬하게 느껴지는 시를 만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최근에 매우 심각한 병으로부터 회복된 시인이기에 이 작품이 주는 함의는 더욱 예사롭지가 않다. "바로 여기"라는 말 속에 함유된 그 힘의 질량을 느껴보면 더욱 그러하다. 그렇기에 이 시는 시인의 외상이 매개된 시라고 보아도 무방하리라. 집은 시인에게, 아니 우리 모두에게 끈끈이 주걱과 같은 것이다. 뗄레야 뗄 수 없는 것이 집이 아닌가. 그것은 인간 모두의 고향이고 근원이며 귀착지이다. 인신록적으로 말하자면 통합의 근원이다. 따라서 집은 물질적 공간을 뛰어넘는 초월적이며 형이상학적인 그 어떤 의미를 내포한다.    그러나 이러한 가족주의에의 몰입이 경우에 다라서는 시민사회의 소시민성으로 비판 받을 수도 있고, 보편적 대중주의로부터의 일탈로 폄하될 수도 있다. 가족 내의 테두리가 저질러졌던 그동안의 내포들을 꼼꼼히 살펴보게 되면 이러한 비판들이 결코 과장된 것도 아님을 알게 된다. 소시민성이야말로 근대 시민사회에서 가장 비생산적인 삶의 모형으로 인식되어 왓기 대문이다. 그러나을 그러한 거대담론으로재단하기에는 너무 처연하지 않은가. 삶과 죽음의 경계를 지나 온 시인에게 '낡은 옷'과 '신발'은 어쩌면 한 줄기 빛이 아니었을까. 시인의 의식너머의 세계 속에서도 계속 그 빛을 주시햇을 것이다. 또한 그것은 시인에게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기억 속에, 혹은 무의식 속에 남아있는 삶의 진정성일 것이다. 이 작품의 예사롭지 않음은 바로 여기에 있다.     오빠 지금 한가하지? 나 화끈하게 벗었어/궁금하면 눌러봐,/휴대폰의 액정 화면 속으로 /문자가, 들어왔다 / 문자를, 눌러볼 시간은 넉넉했지만/문자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 지 난감했다/문자의, 벗은 몸이 보고 싶지만 /문자에게, 쉽게 속을 보이는 것 같았다/문자의, 눈치를 적당히 보다가/문자를, 눌러보았다/문자가, 나긋나긋하게 속삭였다/문자를, 보긴 했지만/문자가, 누군인지 모르므로 /문자의, 말을 씹어버렸다/문자는, 날마다 찾아왔다/문자가, 내 속도를 노크할 때마다 겁이 덜컥 났다/문자에게, 목덜미를 잡힌 것 같았다/문자 때문에, 머리가 빙빙 돌 것 같았다/문자의, 세상 속으로 들어가 //뜨겁게 나를 던져 봐?죽어도 좋아, 정사 신이나 펼쳐 봐?            -강영은, 전문, 시집, (종려나무, 2008)   두말하면 잔소리일 정도로 휴대폰 없이 살아가기 힘든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전 국민의 대부분이 휴대폰을 갖고 있으니까 말이다. 우리를 되돌아보면 쉽게 알 수 있듯이 휴대폰이 없으면 웬지 불안하다. 잠시라도 휴대하지 않으면 뭔가 일어날 것 같은 불안과 미망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휴대폰이란 그만큼 현대인의 필수 불가결한 물품의 하나로 자리잡은지 오래가 되었다. 휴대폰의 노예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요즈음의 사람들은 이 굴레로부터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인용시는 그러한 현대인의 심리와 휴대폰의 문화를 다룬 작품이다. 휴대폰은 필수품이지만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다. 스팸 문자의 홍수를 더올려보면 그것의 폐허 또한 적지않음을 알게 된다. 휴대폰을 필요악으로 만든 주범은 바로 스팸 문자나 넘쳐나는 광고등등에 있기 때문이다.  휴대폰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는 좋지않은 기억, 곧 스팸 문자에 대한 기억을 갖고 있다. 이 작품이 가장 먼저 시선을 돌리고 있는 부분도 이런 좋지 않는 기억에 있다. 스팸문자를 받는 사람들은 반복되는 그 문자들의 기억때문에, 그리고 그 좋지 않은 내용의 기억 때문에 무심히 넘어가기도 하고 경우에 다라서는 과감히 지워버리기도 한다. 그 문자들은 나의 일상성을 구성하는 세게와는 전혀 다르고 삶의 순탄한 흐름을 차단하기 대문이다(시인은 그래서 문자 다음에 쉼표를 찍어서 이를 구문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습관화된 일상성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궁금함을 미처 떨쳐버리지 못한다. 스팸 문자의 내용이 무엇일가 하는 호기심 혹은 욕망이 머리를 들기 때문이다. 욕망과 습관화된 기억(물론 이 기억은 좋지않은 기억이다)의 팽팽한 줄다리기가 시작되는 것도 이 지점에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이 작품 속의 작용하고 있는 기억은 앞의 시들과는 매우 다른 경우라 할 수 있다. 그것이 사회적 외연의 것에서 온 것이든 아니면 개인의 체험에서 온 것이든 간에 기억이란  인식의 통합이나 완결성을 지향해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에서 기억이란 인간의 욕망을 시험하는 잣대 역활을 한다. 휴대전화에 남겨진 문자 속으로 들어갈 것인가 말 것인가의 여부를 이 기억은 계속 시험하고 있는 까닭이다.    사람과 함게 이길을 걸었네 /꽃이 피고 소낙비가 오고 낙엽이 흩어지고 함박눈이 내렸네/오래 서 친숙한 말로 인사를 건네면/ 금세 초록이 되는 마음들/ 그가 보는 하늘도 내가 보는 하늘도 다 함께 푸르렀네/ 바람이 옷자락을 흔들면 모두는 내일은 기약하고/ 밤에는 별이 뜨리라 말하지 않아도 믿었네/ 집들의 안녕의 문을 닫는 저녁엔/ 꽃의 말로 안부를 전하고/ 분홍신 신고 덜어가 닿을 집이 있다고/ 마음으로 속삭였네/ 불 켜진 집들의 마음을 나는 다 아네/ 오늘 그들의 소망과 내일 그들의 기원을 안고/ 사람과 함께 이 길을 걸어가네       - 이기철,전문,  시집 (서정시학, 2008) 이 기철의 시는 매우 아름다운 시이다. 여기서 아름답다는 뜻은 수사적 장치의 현란함이라든가 서정적 풍경의 원근 같은 것은 아니다. 한 인생을 살아온 시인의 모습이,그리고 그와 더불어 살아온 다른 사람의 모습이 이토록 순연한 조화를 만들며 살아왓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담담할 수 있단 말인가.그런 진솔한 모습이 이기철 시학의 모습이거니와 이 작품에서도 그런 빼어난 솜씨를 읽는 일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이 작품은 얼마전 정년을 맞이한 시인의 인생을 반영한 것처럼 보인다. 그가 살아온 길은 사람과 더불어 살아온 길이었고, 현재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라는 것이 이 작품의 주제이다. 삶의 지속적 흐름을 그 바탕에 깔고 있기에 이 시의 구성 역시 기억이 중요한 시적 기제가 되고 있다. "사람과 함게 이 길을 걸었다" 는 것은 온연한 과거의 사실이며 그러한 기억을 바탕으로 " 발자국이 발자국에 닿으면/ 어제 낯선 사람도 오늘 낯익은 사람이 되"는 현실로 구현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현재를 완결시키고 미래의 동력으로 나아가게 만든 과거의 기억이란 시인에게 어떤 것이었을까. 우선 시인에게 그 기억은 철저하게 길어올려진다. 관념이나 초월적인 현실에서 직조된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의 생생한 일상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것은 인생의 역경이기도 했고(소낙비가 오고 함박눈이 내리는 현실), 즐거움(꽃이 피는 현실)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기억들은 인생에 있어 순기능이었든 혹은 역기능이었든 간에 시인의 현재의 삶에는 필수불가결한 자양소 역활을 했다. " 오늘 그들의 소망과 내일 그들의 기원을 안고/ 사람과 함께 이 길을 걸어가"는 미래의 동력으로 승화시키기가지 한다. 기억은 시인에게 인생의 길을 안내하는 조타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실상 이런 류의 기억은 앞의 시들에서 보아왔던 기억의 기능적 역활과 비교해보면 예외적 국면을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 시인의 기억들은 인식의 완결과 같은 현실 너머의 세계를 제어하는 기능적 장치가 아니기 때문이다. 가령, 근대의 불안에서 오는 인식의 완결이나 무의식적 분열을 치유하기 위한 기억에의 여행들이 지극히 관념적인 동기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그러나 인용시의 상상력은 그러한 초현실적인 동기와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는 경우이다. 시인의 기억에의 상상력은 지극히 현실적인 동기내서 유발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이 시의 장점이며, 시인의 시적 특성이기도 하다. --계간비평(2008, 시와정신 겨울호) 송기한 1966, 충남 논산 출생, 1991년 평론으로 등단, 비평집, 등, 현재 편집위원, 대전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712    "평생을 같은 수컷의 씨를 품는 암늑대란 없다"... 댓글:  조회:2009  추천:0  2017-09-09
시창작에서의 상상력의 실제  -"내가 암늑대라면"의 예를 들어  양애경 (시인, 공주영상대 교수)  작년(2005)에 내가 4시집을 냈을 때, 시집 제목이 『내가 암늑대라면』이라고 하면 웃어버리는 분들이 많았다. 늑대가 아주 나쁜 동물로 묘사되는 일이 많은데다가, 엉큼한 남성을 늑대에 비유할 때가 많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이야기가 나온 김에, 시집의 표제가 된 시 내가 암늑대라면 이 어떻게 쓰여졌는가에 대해 말해 보려고 한다.  늑대  나는 개과 동물을 아주 좋아한다. 개, 여우, 너구리, 늑대, 이리는 모두 개과 동물이다. 그 중에서도 개의 충실함과 정직함, 그리고 다감한 애정은 감동적이다. 먼 옛날 인류의 선조는 첫 번째 가축으로 늑대를 선택하여, 길들이고 변형시켜 개로 만들었다고 한다. 지금도 개에 대한 인간의 선택과 변형은 계속되고 있다.(애완견은 유행에 따라 개량되고 번식된다). 개는 사랑스럽지만 존경할 만하지는 않다. 하지만, 아직도 남아있는 순혈의 늑대라면, 존경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길들여지지 않고, 변형되지 않고, 사람에게 먹이와 주거를 의존하지 않는 진짜배기 야생동물인 늑대, 멋지다고 생각했다.  거기다가 동물소설가가 쓴 늑대 또는 늑대개에 대한 이야기의 영향도 있겠고, 또 늑대인간 전설을 그린 나자리노 라는 영화도 있었는데, 낮에는 사람이지만, 달이 뜨는 밤에는 늑대로 변해버리는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의 이야기다. 소녀다운 감수성이었겠지만 참 슬프고 아름다운 사랑이야기였다. 늑대에 대한 동물학자의 증언도 고무적이다. 늑대는 무리를 지어 노약자를 보호하며 살아가는 아주 의리있고 사회성이 있는 동물이라는 것이다. 식량이 부족하면 마을의 가축을 해치는 일이 있기는 하지만, 그만큼 배가 고프면 사람이라도 남의 것에 손을 대리라. 늑대는 무차별로 살생하지도 않고, 먼저 사람을 공격하지도 않는다. 그러니, 늑대에 대한 많은 험담은 대부분 누명인 것이다. 언젠가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늑대와 함께 살며 늑대를 연구하는 남자에 대한 다큐를 읽은 적이 있었다. 그처럼 살고 싶었다.  벚꽃  벚꽃나무는 아주 델리케이트한 느낌을 준다. 잎도 피지 않은 나무에 확 불이 붙듯 한꺼번에 피어나지만, 꽃의 빛깔은 거의 흰색에 가까운 연분홍으로 담백하다. 벚나무 둥치도 유별나게 아름다워서, 밤에는 흑단처럼 매끄러워 보인다. 게다가 꽃이 질 때는 세상의 허무를 상징하듯 일시에 떨어져 버린다. 일본에 벚꽃에 대한 환상적인 이야기가 많은 것도 아마 이렇듯 화려하면서도 허무한 벚꽃의 미학 때문이리라. 사실 벚꽃나무는 아주 관능적이다. 요염하면서 허무하다. 그래서 그런지 벚꽃의 이미지는 요절 夭折한 젊은 여자다. 이런 느낌들 때문에 벚꽃나무 아래를 지나며 라는 시를 쓴 적도 있었다.  한편, 식물학적으로 보면, 꽃은 식물의 생식기다. 개화는 암꽃술 과 수꽃 가루가 만나 수정하는 기회다. 그렇다면 밤벚꽃 놀이는 벚나무의 왕성한 생식을 구경하며 축하하는 잔치이다. 사람들이 밤의 벚꽃에 매혹되는 이유는, 문명화되어 야성이 퇴화해 버린 인간에게는 가끔 자연의 생명력, 그 氣를 받는 일이 필요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야성의 늑대가 사랑의 의식을 벌이는 장소로는 봄의 산벚꽃나무 아래가 가장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늑대는 꽃 핀 벚나무 아래에서 개과 짐승다운 애정표현으로, 몸을 비벼대고, 핥고, 다치지 않을 만큼 깨물기도 하면서 교미를 하리라. 간혹, 나무둥치에 쿵쿵 몸을 찧으면, 위에서 벚꽃잎이 눈보라처럼 내려오리라.  그러한 생식은, 환경호르몬. 스트레스. 알콜과 니코틴 때문에 저하된 생식력을 가진 현대의 도시남자의 것과는 다르게 아주 신선한 씨를 퍼뜨리리라. 암늑대의 입장에 서서 나는 그렇게 상상해 보았다.  여기까지의 생각으로 인해 쓰여진 시의 앞부분은 다음과 같다.  내가 만약 암늑대라면  밤 산벚꽃나무 밑에서 네게 안길 거다  부드러운 옆구리를 벚꽃나무 둥치에 문지르면서  피나지 않을 만큼 한 입 가득 내 볼을 물어떼면  너는  만약 네가 숫늑대라면  너는 알콜과 니코틴에 흐려지지 않은  맑은 씨앗을  내 안 깊숙이 터뜨릴 것이다 그러면 나는  해처럼 뜨거운 네 씨를  달처럼 차가운 네 씨를  날카롭게 몸 안에 껴안을 거다  우리가 흔들어놓은 벚꽃 둥치에서  서늘한 꽃잎들이 후드득 떨어져  달아오른 뺨을 식혀줄 거다  결혼제도  늑대를 연구하는 동물학자는 늑대가 일부일처제를 지키는 지조 있는 동물이라고 말한다. 아마, 호모사피엔즈(인간)를 연구하는 외계인 학자가 있다면, 같은 이야기를 할지도 모르겠다. 모두 그렇지는 않지만 대부분은 일부일처제를 유지하니 말이다.  임신하여 만삭이 된 암늑대는 먹이사냥을 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 새끼를 출산하고 젖 먹여 기르는 동안에는 더욱 그렇다. 그때는, 새끼들의 아빠인 숫 늑대가 먹이를 물어다가 부양해야 할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인간의 여자가 까다롭게 남편감을 고르는 이유도 그것인 듯 하다. 임신하기 전에, 출산과 육아가 계속되는 기간 동안 자신과 아이들을 부양해 줄 능력과 책임감이 있는 남자인지를 판단해야 한다. 잘못하면 아이와 함께 굶어 죽을 것인지, 아이들을 버리고 혼자라도 살아남을 것인지를 선택해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간혹 새끼를 낳은 동물이 자기 새끼를 죽이거나 먹는 예를 본다. 그것은 식욕 때문은 아닐 것 같다. 환경이 불안해서 무사히 새끼와 함께 살아남기 어렵다고 판단한 때문이 아닐까. 그러고 보면, 생활고를 비관해서 아이들과 동반자살하는 엄마의 심정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다.  그 다음 연은, 새끼가 어느 정도 자란 후 가족을 버리고 다른 모험을 찾아 떠나는 숫 늑대를 연상한 것이다. 남자들은 여자들 보다 모험심이 많고, 그 ‘모험심’은 세상의 진보에 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솔베이지 처럼 평생을 남자의 귀환만 기다리는 여자가 되기는 싫다.  그래서 중간 부분은 이렇게 되었다.  내 안에서 그 씨들이 터져  자라고 엉기고 꽃피면  (꽃들은 식물의 섹스지)  나는 언덕 위에서  햇볕을 쬐며 풀꽃들 속에 뒹굴 거다  그러다 사냥을 할 수 없을 만큼 몸이 무거워진 내 곁을  네가 떠나 버린다면  그래서 동굴 안에서 혼자 새끼를 낳게 한다면  나는 낳자마자 우리의 새끼들을 모두 삼켜버릴 거다  하지만 너는 그러지 않겠지  움직이지 못하게 된 내 곁을 지키면서  눈시울을 가느다랗게 하면서  내 뺨을 핥을 거다  후에 네가  수컷의 모험심을 만족시키려 떠난다면  나는 물끄러미  네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거다  그리고 다음 해 봄에는  다른 수컷의 뺨을 깨물 거다  평생을 같은 수컷의 씨를 품는 암늑대란  없는 거니까  “평생을 같은 수컷의 씨를 품는 암늑대란 없다” 는 구절에 대해서는 더 알아보아야 할 듯하다. 평생 같은 수컷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개의 경우, 선택의 폭이 넓다면 굳이 해마다 같은 개의 짝이 되어 새끼를 낳지는 않는 것 같다. 또 수컷은 되도록 많은 암컷에게 자신의 씨를 뿌리고 싶어하는 게 본능이라고 하지 않던가. 수컷의 본능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왠지 울컥해져서, 이렇게 단정적으로 써버렸다.  사회제도  마지막의 두 연은, 시점이 주인공인 암늑대에게 맞추어졌다. 여기서, 늑대 무리의 우두머리는 나이 들고 지혜로운 암늑대이다. 사실, 원시사회에서 혈통을 대표하는 것은 남자보다는 여자였다고 한다. 당시의 집단 난혼 亂婚상태에서는, 아버지를 구분하기가 어렵고, 어머니는 확실하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이른바, 모계사회다. 혈연의 중심에서 가족을 결집시키며, 경험이 많고 지혜로워, 구성원들을 위험에서 지키고 풍부한 먹이가 있는 곳으로 인도할 수 있는 암컷, 이것이 모계사회의 족장이 아니었을까?  내 꿈 또한 오래 살아남아 그런 현명한 암늑대가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젊음과 미모로만 가치를 인정받는 꽃이 아니라, 젊은이들을 보호하는 대모 代母가 되리라.  가장 나이 들고 현명한 암컷이 되는 것  뜨거운 눈으로 무리를 지키면서  새끼들의 가냘픈 다리가 굵어지는 것을 바라보는 일  그리하여 나는 거기까지 가는 거다  이 밤 이 산벚꽃나무 밑둥에서 출발하여  해 지는 언덕 밑에 자기 무리를 거느린  나이 든 암컷이 되기까지  매력적인 암컷에서 현명한 지도자가 될 수 있을 때까지, 오래도록 살아남고 싶다는 희망, 이것이 나의 꿈이고 이 시의 주제다. 이처럼, 이 작품은 늑대와 벚꽃의 이미지에서 출발하여, 결혼제도와 사회제도에까지 생각이 이어지면서 쓰여졌다.     
711    마광수님과 "대추 한알" 댓글:  조회:2574  추천:0  2017-09-09
             오시영 숭실대 법대 교수 / 변호사 / 시인   가을에는 야해져야 한다. 가을에는 신이, 자연이 인간더러 야해지라고, 야해지는 법을 가르친다. 가을이 되면 자연은 옷을 벗을 채비를 한다. 여름내 잎사귀로 가리던 자신의 위선을 발가벗는다. 여름은 위선의 어른이고, 가을은 진실의 갓난아이이다. 인간은 위선의 가면 안에 있을 때 가장 인격적 인간이라 칭송받고, 진실의 진면목을 보일 때 가장 비인격적 인간이라 비판받는다. 문화는 인간의 인격과 비인격의 경계를 넘나들며, 인간과 비인간, 사람과 짐승을 대칭시킨다. 누가 만들었는지 알지 못하는 문화가, 삶의 잣대가 되어 인간을 천국과 지옥을 오가게 하고, 인간의 자연적 욕망의 출구와 폐쇄구가 된다. 오늘 하루를 얼마나 성실하게 살았느냐의 평가는 인간이 만든 문화규범의 한계 안에서 얼마나 자신의 욕망을 억제하며 살았느냐에 의해 결론난다. 지난 9월 5일, 마광수 교수가 스스로 자신의 집 베란다에서 목을 매고 자살했다. “즐거운 사라”라는 소설을 써, 음란물을 제작 반포하였다는 죄명으로 형사처벌 받고, 재직 중이던 연세대학교에서 축출당하기도 했던 그가 스스로 자신의 삶의 기간을 결정지었다. 문득 어느 시인이 술좌석에서 했던 말 “자살은 인간의 가장 용기 있는 행위”라는 말이 떠오른다.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는 신의 섭리를 부정하는 가장 최종적이고, 단호한 용기 있는 행동이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끊는 자살이라는 취지였다. 인간이라면 모두가 두려워하는 죽음을 스스로 택하는 자살결정이 사실은 절박하게 살아남고 싶은 자의 마지막 몸부림임을 우리 모두는 잘 안다. 얼마나 의미 있게 살고 싶으면 죽음으로 모든 것의 의미가 사라지는 자살을 택하겠는가?  법조인으로서, 법률가로서, 대학교수로서 학생들에게 반사회질서행위의 의미를 가르치고 있다. 9월 이때쯤, 학기초면 어김없이 새로운 학생들에게 어김없이 “반사회질서행위”를 가르친다. 프리섹스니, 원조교제니, 축첩행위니 많은 성풍속 사례들을 그 예로 들기도 한다. “즐거운 사라”라는 그의 소설이, 포르노보다 못하다며(이때 못하다는 의미는 더 하다는 의미인데, 왜 더 하다는 의미를 못 하다고 표현하는지, 한국어의 반어성이 사뭇 재미있다), 이런 저질의 외설물에 소설이라는 포장으로 면죄부를 줄 수 없다며 그를 음란물제작반포죄로 대한민국은 형사처벌하였다. 시중 유통이 뒤늦게 금지되었지만, 그 소설은 알게 모르게 시중에 유통되었고, 호기심 있는 이들은 어찌저찌 그 책을 구해 읽었다. 하지만 소설의 문체가 감동을 줄 만큼 오밀조밀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부분 “별 거 없네!” 하고 도중에 읽기를 그만 두기도 했을 법한 소설이다. 어찌 보면 국가 권력이 쓸 데 없는 곳에 낭비되기도 한 셈이다. 이 가을에, 야한(?) 시를 한 편 읽어보자. 이인원 시인의 “사랑은, 3”이라는 제목의 시는 이렇다. “그 뒤처리는// 반드시 며느리밑씻개풀로.// 그것도// 여러 번, 아주 철저하게”라는 아주 짧은 시다(전문, 시집 ‘궁금함의 정량’, 작가세계 간). 독자는 저 짧은 시 속에 나오는 “며느리밑씻개풀”이라는 꽃말 하나에 묘한 상상을 하면서 괜히 야하다는 느낌을 가질지도 모른다. 며느리밑씻개풀의 꽃말은 “시샘, 질투”이다. 며느리밑씻개풀을 만져본 사람은 그 잎새에 껄끄러운 자디 잔 가시가 아주 많음을 안다. 요즘이야 여성 청결제가 많이 출시되어 문제가 없는 세상이 되었지만, 얼마나 시기와 질투심이 컸으면 저렇게 잔 가시가 많은 며느리밑씻개풀로 여성 청결제를 대신하도록 했겠는가? 이인원 시인은 저 시를 통해 사랑이 끝나면 철저하게 정리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듯하다.  이인원 시인의 같은 시집에 수록된 다른 시 “절해고도”를 본다. “내 팔 길이보다 딱 한 치 더 먼/ 환장할 그 바다// 간질간질 보채는 파도가/ 넘실넘실 해안을 할퀴는// 딱 간장종지 만한 섬// 애간장 끓이다 끓이다// 쨍그랑,// 간장이고 뭐고 피범벅으로 깨뜨려버리고 마는”(전문). 저 시를 읽는 독자들로서는 절해고도라는 제목에서 바닷가 어디쯤에 있는 작은 섬 하나를 떠올릴지도 모르겠고, 사랑하다 헤어진 첫사랑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필자가 앞서 언급한 “사랑은, 3”과 연관지어 이인원 시인의 심중을 헤아려보려고 할지도 모른다. 우리네 삶은 “내 팔 길이 보다 딱 한 치 더 먼 환장할 그 바다”의 연속이다. 내 팔 길이가 한 치만 더 길든지, 아니면 그 섬이 한 치만 가깝든지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인데, 그 한 치의 간격이 모든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고통에 빠지게 한다. 50여 년 전 중고등 남학생들의 필독서(?) 중에 “꿀단지”라는 야한 소설이 있었다. “꿀단지”라는 제목의 저 소설은 진짜 야설 소설이었다. 마광수 교수의 “즐거운 사라”는 감히 비교할 수도 없는 야한 내용들로 가득찬 소설이었고, 책이 귀했던(?) 시절이라 이 소설을 돌려보며 히히덕덕 거리고는 하였던 기억이 문득 난다. 작가의 이름도 기억나지 않고, 소설도 양장이 아니었기에 별로 멋져보이지도 않았지만, 내용이 상당한 음담패설로 되어 있어서 남학생들의 성적 호기심을 자극했던 소설이다. 지금 청소년들이야 인터넷을 통한 음란동영상을 보다 더 쉽게 접근하는 세상이 되었지만, 그때 당시에는 전혀 그런 문화가 없었기 때문에 어찌 보면 “꿀단지” 정도의 야설을 읽는 것이 최고의 음란물 접촉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소설을 읽은 남학생들이 그로 인해 크게 잘못된 적도 없었고, 다들 정상적으로 성장하여 사회인이 되었다. 평범한 월급쟁이나 사업가, 또는 공직 등에서 일생을 살아왔다. 왜 jys정권 시절에 갑자기 “즐거운 사라”를 그렇게 음란물의 최고봉으로 평가하여 거의 사문화되어 있던 음란물제작 반포 등의 죄로 처벌하였을까? 나는 아직도 그 속내를 제대로 알지 못하지만, 그 기저에는 지금의 문화계 블랙리스트와 같은 문화계 길들이기의 한 방편으로 삼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을 해 볼 뿐이다. 현재의 동영상 시대가 도래할 것을 미처 알지 못한, 활자문화에 갇혀 있던 이들의 집단반발이 은연 중에 한 몫을 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때 당시 마광수 교수를 단죄하기에 앞장섰던 수많은 교수와 문단 사람들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상당히 웃기는 일인 것만은 틀림없다. 조금 앞서가는 사람을 따라잡지 못하는 이들의 경직된 사고가 자신의 뒤쳐짐을 자백하는 행위였던 것은 아닐까? 마광수 교수를 기소한 검사도, 판결한 판사도 어쩌면 웃기는 짓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하긴 담당 판사도 10년쯤 지나면 자신의 판결이 웃기는 판결이 되지 않을까 하고 자조했다는 말이 시중에 떠돌기도 했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그 일로 인해 1987년에 서정윤 시인의 “홀로서기”를 출간하여 출판으로 성공하였던 장석주 시인이 5년 뒤 “즐거운 사라”를 출간하여 마광수 시인과 함께 공범으로 형사처벌받는 바람에 출판사가 풍비박산나기도 하였으니, 세상일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내친 김에, 예전에 필자가 소개한 적이 있지만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이라는 시를 다시 한 번 보자.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낱이 들어서서/ 둥글게 만드는 것일 게다”  가을이다. 대추 한 알로 상치되는 우리네 삶 속의 사랑도, 미움도, 홀로 서기도 모두 이인원 시인의 “절해고도”이다. 그러다 마광수 교수의 자살로 의미와 무의미가 혼재되기도 한다. 이인원 시인의 “절해고도”는 우리네 팔이 닿지 않는 등짝 어느 한 점이 가려워, 그 가려운 부분을 긁어 시원해지려고 몸부림치는 우리네 모양새를 그린 작품이다. 그러다 징한 인간이 그 가려운 한 점 절해고도를 기어이 등긁개로 긁고 긁다가 피 터지게 하고 마는 형상을 통해, 인간의 참지 못하는 욕망과 피를 보고서야 가려운 부분의 긁기를 끝내는 인간의 무지를, 약함을 묘사한 재미있는 글이다. 장사꾼들은 그 등긁개를 “효자손”이라는 이름을 붙여 장사수단으로 삼기도 한다. 오늘도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마광수 교수가 있다. 자신들이 속한 분야에서 마광수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은 이들이 있다. 세상은 그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백안시하거나 축출하려고 한다. 이단아 취급을 한다. 이인원 시인의 “절해고도”처럼 이 세상에 가려움을 안겨 주기에, 이 세상은 이를 참지 못하고 그 가려움을 긁어 피가 터지게 하고 만다. 그 간장종지보다 작은 그 한 부분을 우주 같이 광대한 몸 전체가 견디어내지 못한다. 서정윤 시인의 “홀로서기”를 허용하지 않는다.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처럼 이 가을의 햇살을 받아 붉게, 맛있음직하게 익어가는 그 가려운 사랑을 이 세상은 견디지 못한다. 그리하여 이인원 시인의 “사랑은, 3”처럼 며느리밑씻개풀로 거칠게, 아프게 긁고 또 긁어 상채기를 남기려 한다.  마광수 교수는 스스로 자신의 삶을 마무리하였다. 스스로 이 세상에서 철저한 패자(敗者)가 됨으로써, 스스로 자신의 삶에서 패자(覇者)가 되었다. 50년 전 청소년들이 호기심으로 읽었던 “꿀단지”보다 훨씬 내용이 순화된 소설 “즐거운 사라”가 국가적으로 공식 음란물로 판정이 되고, 형사처벌을 받았다. 음란물을 만든 이가 그 작품에 자신의 이름을 붙이는 경우는 사실 없다. 시인이, 소설가가, 교수가 자신의 이름을 내건 작품에 세상은 “음란물”이라는 딱지를 붙였다. 마광수 교수는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현실은 “즐거운 사라”보다 훨씬 더 음란스럽다고. 자유의지를 가진 이가 자유의지에 의해 자유롭게 살아가는 세상을 당신의 눈으로 “음란”이라고 말하지 말라고. 어두운 곳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당신은 얼마나 더 많은 음란한 생각을 하고, 음란한 행동을 하느냐고. 그런데 왜 밝은 곳에서, 보이는 곳에서는 여름의 잎사귀에 가려진 숲속처럼 위선의 가면을 쓰고 있느냐고. 하지만 마광수 교수는 그 시대가 아직 여름이었음을, 가을이 아직 멀었음을 인식하지 못한 잘못이 있다. 조금 더 기다려야 했던 것임을 깨닫지 못한 채 몸으로 부딪혔던 것이다. 그러니 본인이 이인원 시인의 절해고도처럼 파도에 부서져야 했던 것이다. 가을이 오고 있다. 야해져야 할 때이다. 자연이 모두 옷을 벗고 야해질 심호흡을 하고 있다. 이 가을에 한 권의 시집을 사자, 그리고 읽자, 가난한 시인들이 인세로 밥값을 벌 수 있도록 제발 좀 한 권의 시집을 사서 읽자. 영혼을 살찌울 대추 한 알을 씹어 먹고, 절해고도의 피터짐과 남겨짐의 지혜를 배우자. 저 소개된 시들, 시인들이 써내려간 짧은 몇 줄에 마음에 울림은 없는가? 곰탕 한 그릇 값에 지나지 않는 시집 한 권 사는데 왜 그리 인색한가? 허리통 굵어지는 비만 걱정을 덜어, 한 끼 절식하는 호기로움으로 한 권의 시집을 손에 들기를 바란다.  문득 ...이 글을 읽고, 시집 한 권을 사서 읽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대한민국 목사님들이, 스님들이 성경과 불경을 놓고 한 권의 시집을 읽었으면 한다. 그래서 그 분들이 시인들의 이글거리는 시를 읽고, 즐거운 사라를 읽고, 그리고도 “명경지수와 같은 맑고 평안한 상태의 고요”를 유지했으면 한다. 세상은 여전히 새로운 마광수를 찾기 바쁘다. 심지어 “마광수 나와!”라고 고함치기도 한다. 지금도 필자는 “꿀단지”의 저자가 누구인지 궁금하다. 누가 그때 그렇게 야한 소설을 썼을까? 그 많은 청소년들의 성적 호기심을 만족시키며 학교 성적에 영향을 미쳤던. 야해지는 가을, 다시 한 번 말하고 싶다, 시를 읽자고. 필자의 “사랑”이라는 미발표 시로 글을 마친다. “달빛에 붓으로/ 검은 점 하나 찍는다//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다” ============================= ** '내가 죽은 뒤에는' ** 내가 죽은 뒤에는  내가 「윤동주 연구」로  박사가 되었지만  윤동주처럼 훌륭한 시인으로 기억되긴 어렵겠고  아예 잊혀 버리고 말든지  아니면 조롱 섞인 비아냥 받으며  변태, 색마, 미친 말 등으로  기억될 것이다  하지만 칭송을 받든 욕을 얻어먹든  죽어 없어진 나에게  무슨 상관이 있으랴  그저 나는 윤회하지 않고 꺼저버리기를 바랄 뿐  ** '내가 쓸 자서전에는' ** 내가 쓸 자서전에는 누구의 자서전처럼 고생 끝의 성공 자랑으로 가득 차 있지도 않고 누구의 자서전처럼 똥도 안 누고 섹스도 안 할 것 같은 사람이 있지도 않을 것이다 내 자서전에서 독자들은 너무나 고상한 지식인 사회에 섞여 살며 힘들어했던 자신의 나약한 모습을  슬퍼하는 사람과 으리으리한 교회 앞에서 구걸하는 걸인을 보고 가슴 먹먹해 하는 사람과 사람은 누구나 관능적으로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고  믿는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다 또한 그것으로  너무나 불이익을 당했기에 과거의 집필 생활을 후회하는 사람도 독자들은 만나게 될 것이다 내가 쓸 자서전에는 나의 글쓰기는 이랬어야 했다고 후회하는 장면이 담겨있을 것이다 우선 손톱 긴 여자가 좋다고 말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고 그리고 야한 여자들은 못 배운 여자들이거나  방탕 끝의 자살로 생(生)을 마감하는 여자여야 했다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라는 즐겁지 않았어야 했다고 권선징악으로 끝을 맺는 소설 속 여자이어야 했다고 나의 고된 삶 속에서 그나마 한줌 상상적 휴식이 돼주었던 그녀와 나의 잠자리가 타락이었다고  그래서 반성한다고 ================= < 나는 찢어진 것을 보면 흥분한다> / 마광수 나는 찢어진 것을 보면 흥분한다  그녀의 찢어진 입술  그녀의 찢어진 눈꼬리  그녀의 찢어진 미니스커트  그녀의 찢어진 청바지  아아아 찢어진 거미줄 찢어진 신문지 조각 찢어진 나방의 날개 찢어진 북어의 살점 오오오 너무 길게 길러 찢어진 그녀의 손톱 너무 꽉 조여 매 찢어진 그녀의 코르셋 너무 무거운 귀걸이를 달아 찢어진 그녀의 귓불 너무 순정을 지키다 찢어진 그녀의 정조 나는 찢어진 것을 보면 흥분한다   - 삼가 마광수님의 명복을 빕니다.-  
710    마광수님의 자유로운 령혼과 죽음앞에서... 댓글:  조회:2174  추천:0  2017-09-09
중앙일보 "『즐거운 사라』 두 달 간 옥살이, 공개적 망신주기 " 독특한 유형의 심약한 천재를 변태로 몰아세워  고인의 죽음은 사회가 공모한 타살에 가까워 한 솔직하고 자유로운 영혼의 죽음 앞에 ―고 마광수 선생님을 기리며 마광수(1951.4.14.~ 2017.9.5.) 선생의 별세 소식이 갑자기 날아들었다. 날벼락 같은 부고(訃告)였다. 어제 오후,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와 받으니 한 일간지 기자였다. 기자는 마 선생이 몇 분 전에 자택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고 전했다. 전화를 끊으니 여러 매체에서 잇달아 연락이 왔다. 나는 휴대전화를 꺼버렸다. 서울 동부이촌동 아파트에 경찰은 오후 1시 51분에 도착하고, 그는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유서가 나오고, 자살로 추정할 만한 죽음이었다. 아, 마 선생이 돌아가셨구나! 놀라움과 황망함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추스릴 수 없는 슬픔이 덮쳐 의자에서 일어나는데 다리가 휘청거렸다. 마 선생은 지식사회가 온통 마르크스 이념에 경도되던 1980년대 단독자로 성 담론을 들고 나왔다. 그는 독특한 유형의 천재였다. 그는 솔직하고 유쾌하고 명랑한 성정의 사람이었다. 그는 책과 본성이 둘이 아니라 하나인 사람이었다. 내가 경영하는 출판사에서 그의 초기 저작물들인 『마광수 문학론집』, 『상징시학』, 『심리주의 비평의 이해』를 펴내고, 1992년에 장편 『즐거운 사라』를 펴냈다. 1992년 10월 29일, 마선생과 출판사 대표인 나는 『즐거운 사라』 건으로 서울 지검에서 조사를 받고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었다. 검찰 권력이 소설의 가치와 의미를 따지고 심판했다. 사문화된 법을 들이밀며 ‘음란문서 제조 및 반포’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유죄를 선고했다. 우리는 ‘공범’으로 포승줄에 묶이고 수갑을 찬 채 끌려 다니다가 두 달 만에 집행유예로 나왔다. 두 달간의 ‘옥살이’는 공개적 ‘망신주기’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 필화사건은 마 선생과 내 인생에서 지울 수 없는 큰 변곡점이 되었다. 그는 연세대학교에서 쫓겨나고, 법정 싸움을 벌이며 해직과 복직을 반복했다. 나는 이듬해 출판사를 접었는데, 사업과 가정이 다 깊은 내상을 입고 풍비박산이 났다. 최근 마광수 선생은 건강이 안 좋고, 우울증 약을 처방받아 먹었다. 병고와 생활고와 외로움이라는 삼중고에 시달렸다. 연금을 받았지만 입주가정부 월급을 주면 생활비가 빠듯했다. “책을 써도 낼 데가 없다!”고 자주 하소연했다. 화랑주인에게 그림을 팔아달라고 맡겼으나 불경기 탓에 잘 팔리지 않았다. 마 선생은 새 책을 내면 내게 꼬박꼬박 부쳐주었다. 그때마다 만나기를 청했으나 건강이 좋아지면 만나자고 미뤘다. 마 선생 목소리는 기진(氣盡)한 듯 땅으로 꺼져 들어갔다. 그의 건강이 염려되었으나 도울 방법이 없었다. 그는 누구보다도 앞서서 성 담론의 해방을 외쳤다. 그는 『소돔 120일』을 쓴 마르 끼 드 사드 후작이고, 『눈 이야기』를 쓴 조르쥬 바타이유였다. 하지만 우리는 그를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고 외친 미치광이이고, “장미여관으로 가자”고 꼬드기는 사악한 유혹자며, 건전한 성 풍속을 해치는 사회 질서의 파괴자로 낙인찍었다. 그를 제1급 전염병균 보균자나 된 듯이 사회에서 격리하자고 한 목소리로 외쳤다. 우리는 심약하고 고립된 한 예술가에게 저주를 퍼붓고 방자를 해 죽음에 이르게 했다. 한 시대의 아이콘이고 영웅이 될 수도 있었던 그를 우리 사회 전체가 공모해서 죽인 것이다. 이 죽음은 억울하고 분한 죽음이다. 앙토냉 아르토는 빈센트 반 고흐의 자살을 두고 ‘사회적 타살’이라고 했다. 마찬가지로 마 선생의 죽음도 자살의 형식을 빌렸지만 한 사회가 공모한 사회적 타살에 가깝다. 우리 모두는 그를 몰이해와 냉대 속에 오래 방치하고, 이 천재를 ‘변태’라고 몰아세웠으며, 죽음에 이르게 했다. 그를 향해 빗발치는 저주의 말들은 그의 뇌수를 쇠꼬챙이로 쑤시는 듯 했을지도 모른다. 따돌림 당하고 조리돌림을 당한 뼈에 사무친 외로움과 살을 저미는 절망을 우리가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으랴! 한번 핀 것은 지고, 온 것은 기어코 돌아간다. 그게 자연의 섭리이다. 우리 목숨이 화사하다 한들 그 섭리를 넘어설 수는 없을 테다. 그러나 마 선생의 죽음은 너무 빨리, 억울하게 온 죽음이다. 솔직하고 자유로운 한 영혼의 죽음은 슬프고 안타깝다! 마광수 선생님, 서둘러 이승의 삶을 등지고 떠난 그곳은 얼마나 평화로운가요? 아침이면 누리에 금빛을 뿌리는 해가 뜨고, 저녁이면 누리의 빛들을 거두며 해가 지나요? 이제 바글거리는 생명마저 놓으셨으니, 이승의 좋은 인연과 나쁜 인연도 다 놓아주시고, 고단한 영혼을 편히 쉬게 하소서! 당신 영전에 머리 숙이고 흰 국화꽃 한 송이를 바칩니다. ///장석주 삼가 바침(시인, 문학평론가) 내가 죽은 뒤에는  내가「윤동주 연구」로 박사가 되었지만  윤동주처럼 훌륭한 시인으로 기억되긴 어렵겠고  아예 잊혀져 버리고 말든지  아니면 조롱섞인 비아냥 받으며  변태, 색마, 미친 말 등으로 기억될 것이다  하지만 칭송을 받든 욕을 얻어먹든  죽어 없어진 나에게 무슨 상관이 있으랴  그저 나는 윤회하지 않고 꺼저버리기를 바랄뿐  - 마광수 시 전문 내가 쓸 자서전에는 누구의 자서전처럼 고생 끝의 성공 자랑으로 가득차 있지도 않고   누구의 자서전처럼 똥도 안 누고 섹스도 안 할 것 같은 사람이 있지도 않을 것이다   내 자서전에서 독자들은 너무나 고상한 지식인 사회에 섞여 살며 힘들어 했던 자신의 나약한 모습을 슬퍼하는 사람과   으리으리한 교회 앞에서 구걸하는 걸인을 보고 가슴 먹먹해 하는 사람과   사람은 누구나 관능적으로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고 믿는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다   또한 그것으로 너무나 불이익을 당했기에 과거의 집필생활을 후회하는 사람도 독자들은 만나게 될 것이다   내가 쓸 자서전에는 나의 글쓰기는 이랬어야 했다고 후회하는 장면이 담겨있을 것이다   우선 손톱 긴 여자가 좋다고 말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고 그리고 야한 여자들은 못 배운 여자들이거나 방탕 끝의 자살로 생(生)을 마감하는 여자여야 했다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라는 즐겁지 않았어야 했다고 권선징악으로 끝을 맺는 소설 속 여자이어야 했다고   나의 고된 삶 속에서 그나마 한줌 상상적 휴식이 돼주었던 그녀와 나의 잠자리가 타락이었다고 그래서 반성한다고   - 마광수 시 전문
709    "시대의 狂人" - 마광수님은 시인이였다... 댓글:  조회:2236  추천:0  2017-09-09
  마광수(馬光洙) 시인의『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작품 해설 / 禹原浩와 명시 감상  2011/01/30  우원호와 명시감상   <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 / 마광수(馬光洙)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꼭 금이나 다이아몬드가 아니더라도 양철로 된 귀걸이, 반지, 팔찌를 주렁주렁 늘어뜨린 여자는 아름답다 화장을 많이 한 여자는 더욱더 아름답다 덕지덕지 바른 한 파운드의 분(粉) 아래서 순수한 얼굴은 보석처럼 빛난다 아무 것도 치장하지 않거나 화장기가 없는 여인은 훨씬 덜 순수해 보인다 거짓 같다 감추려 하는 표정이 없이 너무 적나라하게 자신에 넘쳐 나를 압도한다 뻔뻔스런 독재자처럼 적(敵)처럼 속물주의적 애국자처럼 화장한 여인의 얼굴에선 여인의 본능이 빛처럼 흐르고 더 호소적이다 모든 외로운 남성들에게 한층 인간적으로 다가온다 게다가 가끔씩 눈물이 화장 위에 얼룩져 흐를 때 나는 더욱 감상적으로 슬퍼져서 여인이 사랑스럽다 현실적, 현실적으로 되어 나도 화장을 하고 싶다 분으로 덕지덕지 얼굴을 가리고 싶다 귀걸이, 목걸이, 팔찌라도 하여 내 몸을 주렁주렁 감싸 안고 싶다 현실적으로 진짜 현실적  -- 시집 『광마집』(심상사, 1980) 중에서 마광수(馬光洙) 시인 1951년 경기도의 수원에서 출생. 연세대학교 국문과를 졸업.1983년 로 문학박사 학위를 수여받음. 1977년 《현대문학》에 ,,,,,등 여섯 편의 시가 박두진 시인에 의해 추천되어 시문단에 데뷔. 문학이론서와 평론집을 출간해오던 그는 1989년 에세이집 와 시집 를 출간함으로써 세간에 화제를 모음. 《문학사상》에 장편 를 연재하면서 소설가로서 활동을 시작한 그는 1992년 장편소설 로 인해 구속되고, 교수이던 연세대학교에서도 해직당하지만 복직됨.  작품 해설  마광수(馬光洙) . 그는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3월 10일, 가족들이 1.4 후퇴로 피난가서 잠시 머물렀던 경기도의 발안에서 태어났다. 그후, 종군사진작가였던 아버지가 전사하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으며 그는 서울 청계초등학교, 대광중학교, 대광고등학교를 거쳐 연세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통해 1983년 로 문학박사 학위를 수여받았다.  그는 최초 1977년 《현대문학》에 , , , , , 등 여섯 편의 시가 박두진 시인에 의해 추천되어 시문단에 데뷔했다. 그리고 1980년 처녀시집인 『광마집』을 심상사에서 출간했다.  그는 홍익대학교 국어교육과 전임강사 시절도 있었지만 1982년 조교수로 승진한다. 1984년 연세대학교 국문학과 조교수로 취임하고, 1988년 부교수로 승진했다. 문학이론서와 평론집을 출간해오던 그는 1989년 에세이집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와 시집 『가자 장미여관으로』를 출간함으로써 세간에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문학사상》에 장편 를 연재하면서 소설가로서 활동을 시작한 그는 1992년 장편소설 로 인해 구속되고, 연세대학교에서도 해직당하지만 1998년 3월31일에 사면·복권되고 연세대학교 교수로 다시 복직했다. 익히 아는 바와 같이 교수와 작가로서의 마광수의 언행은 늘 세간의 화제가 되었다. '구속', '수감', 항소심' 등이 말이 등장하는 마광수의 이력은, 그동안 그의 글들이 얼마나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으며 동시에 얼마나 많은 관심을 모았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마치 무슨 민주화 운동가의 이력을 보는 듯할 만큼 극적이다. 그러나 문제는 마광수가 정작 자신은 자신을 '무슨 운동가'로 규정하지 않는다는데 있다. 물론 마광수가 자신을 규정하는 사회적 주류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마광수의 논리는 아주 단순하다. 자신은 자신의 하고싶은 말, 옳다고 생각한 말을 했을 뿐이고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한 자신은 처벌받을 일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마광수는 무슨무슨 운동과는 거리가 먼 전형적인 자유주의자로서의 면모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광수의 글과 생각은 그것이 발표될 때마다 일종의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어쨌든 그처럼 발표하는 작품마다 사회적 issue가 되었던 작가는 그리 흔치 않다. 그 때문에 그를 가리켜서 이른바 '이 시대의 광인(狂人)'이라 論하고 있음에도 이젠 그런 애칭이 오히려 더욱 잘 어울리는 작가인지 모른다.  오늘 소개하는 는 1979년도에 발표된 시로 그의 첫 시집 『광마집』에 수록되어 있으며 우리의 근엄한 엄숙주의 밑의 속물근성을 드러내고 폭로해주는 시이다. 1980년대 후반 또 하나의 엄숙주의가 유행하던 시기에 시인은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라는 수필집을 내면서 법정시비에 휘말리고 대학에서 쫓겨나는 등 파란만장한 삶을 살게 되었지만 정작 이 시가 씌어진 것은 1970년대 후반 시인이 대학원 다니던 시절이었다. 수필집과 더불어 즐거운 사라 등 소설에 손을 대면서 한 쪽 방향으로 멀리 나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하지만 이 시는 나름대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시라고 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화장한 여자에 대한 긍정과 화장기 없는 여자에 대한 비판을 통해 우리 문화 저변에 팽배해 있는 엄숙주의적인 태도의 허위성을 비판하고 폭로해주는 시이다. 연 구분 없이 전체 23행으로 되어 있는 이 시는 의미상으로 화장한 여자에 대한 예찬, 화장기 없는 여인에 대한 비판, 그리고 나도 화장하고 싶다는 내용의 세 단락으로 나뉘어질 수 있다.  첫단락에서 시인은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는 파격적인 발언에 이어 "꼭 금이나 다이아몬드가 아니더라도/ 양철로 된 귀걸이, 반지, 팔찌를/ 주렁주렁 늘어뜨린 여자는 아름답다", "화장을 많이 한 여자는 더욱더 아름답다", 다음 단락의 "덕지 덕지 바른 한 파운드의 분 아래서 순수한 얼굴은 보석처럼 빛난다"로 화장의 농도를 점층적으로 강화시켜 나가면서 화장한 여자가 좋다는 주장을 과장적으로 역설하고 있다. 첫 단락의 과장적인 어조는 시를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이 부분이 지적인 것에는 관심이 없고 화장에만 신경을 쓰는 여인들의 천박한 속물성을 비꼬기 위한 언어적 아이러니가 아닌가 생각하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시의 묘미는 그러한 상식적인 논리를 뒤집어엎는 마광수 특유의 어법에서 나온다. 시인은 순진한 척 하면서(실제로 순진하다) 화장한 여자가 좋다고 우겨댐으로써 실제로는 화장기 없는 메마른 여성보다 화장한 여자를 좋아하면서 겉으로는 화장한 여자를 천박하게 생각하는 엄숙주의적 태도의 이중성을 비웃고 있는 것이다. 웃음이 나올 정도로 어리숙한 것 같으면서도 실제로는 진지하고 세상에 대해 비판적이면서도 그것에 부딪칠 만한 힘이 없는 시인의 자신에 대한 씁쓸한 시선이 반어적인 어조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두 번째 단락에서 시인은 화장한 여자와 화장기 없는 여인을 대조시켜 화장한 여자의 얼굴에서는 순수한 얼굴이 보석처럼 빛나고 화장기 없는 여인은 독재자, 속물주의적 애국자 같다는 역설적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상식적인 의미에서 화장은 거짓이나 감춤, 속임수 등을 상징하기 때문에 "덕지덕지 바른 한 파운드의 분(粉) 아래서/ 순수한 얼굴은 보석처럼 빛난다", "아무 것도 치장하지 않거나 화장기가 없는 여인은/ 훨씬 덜 순수해 보인다"는 구절은 논리적 모순처럼 보인다. 그러나 논리적으로 모순된 것처럼 보이는 이 구절은 화장이라는 것이 남에게 잘 보이고자 하는 인간의 자연스런 욕구의 표현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표면적인 논리 이면의 또 다른 진리를 드러내게 된다. 이성 중심적 사고에서 지상적 욕망이나 감정은 부정적인 것, 또는 억압의 대상으로 생각되기 쉽다. 그러나 감정과 욕망은 생명 그 자체의 자연스런 표출이며 어떤 의미에서 생명 자체와 동일시될 수도 있는 성질의 것이다. 시인이 보석에 비유한 순수한 얼굴은 바로 이성에 의해 억압되지 않은 원시적인 발랄한 욕구와 생명력을 의미한다. 화장은 인간의 자연스런 모습을 감추는 것이 아니라 생생한 원시적 생명력의 존재를 드러내주는 양식이기 때문에 화장한 여자는 아름다운 것이다.  억압되지 않은 발랄한 생명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이다. 거기에는 자아와 세계 사이의 완벽한 조화와 통일이 있다. 현대의 이성 중심적 사회는 그러한 조화와 통일을 허용하지 않는다. 냉정한 가슴과 머리, 화장기 없는 얼굴만이 가득할 뿐 인간의 발랄한 생명력은 가슴 속 깊이 억압되어 묻혀 있다. 이성 중심적 사회에서 그것은 마치 땅 속 깊이 묻혀 있는 보석과 같은 것이 아닐 수 없다. 화장은 묻혀 있는 보석, 즉 억압되어 있는 자연 그대로의 순수한 인간적 욕망과 감정을 드러내주는 수단인 셈이다. 따라서 화장한 여자는 욕망을 억압하고 감추는 이성 중심적인 냉정한 가슴을 의미하는 화장기 없는 얼굴보다 훨씬 더 순수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시인이 화장기 없는 여인을 독재자나 속물적 애국자와 비유하여 비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독재자나 속물적 애국자는 그들의 획일적 이데올로기를 강요하고 자신과 다른 사람의 자유와 욕망을 억압한다. 그들에게 지상적 욕망은 부정적이고 천박한 것일 뿐이다. 그들은 자신의 욕망을 숨기고 엄숙한 얼굴을 가장한다. 그들의 엄숙주의 밑에서 지상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생명과 욕망은 질식당한다. 화장을 한다는 것은 어떤 점에서 가장 인간적인 행위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남에게 자신을 잘 보이고자 하는 본능적 욕구와 관련된다. 따라서 그것을 거부한다는 것은 인간 자체에 대한 부정과 같다. 인간은 이성적 존재만은 아니다. 화장을 기피하거나 천박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이성적 엄숙성을 가장하고 있을 뿐이다. 아무 것도 치장하지 않은 여인이나 화장기 없는 여인은 인간다운 욕망이 없거나 그것을 감추고 엄숙을 가장하는 것일 뿐이기 때문에 똑같이 인간의 자연스런 욕망을 억압하는 독재자나 속물적 애국자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마지막 단락에서 시인은 자신도 현실적으로 되어 화장을 하고 싶다고 말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되어" 라는 구절은 시인 스스로 현실적으로 살고 있지 못하다는 것, 즉 엄숙주의적 세계에서 욕망을 숨기고 그것을 가장하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시인을 억압하고 있는 엄숙주의적 세계는 시인으로 하여금 자연 그대로 마광수로서의 삶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 속에서 시인의 자아는 질식당할 것 같은 위기에 처해 있다.  시인은 과장적인 어조로 "화장을 덕지덕지 바르고 귀걸이 목걸이, 팔찌로 주렁주렁 몸을 감싸고 싶다"고 말하고 있는 데 이는 이성 중심적 사회 속에서 극도로 억압된 자아의 자기실현을 위한 애절한 몸짓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이성중심적 사회에서 엄숙주의의 탈을 쓰고 살아가는 시인의 지상적 자아는 극도로 위축되고 억압될 수밖에 없다. 분열 직전의 위축된 자아는 화장한 여자들처럼 화장을 덕지덕지 바르고 귀걸이, 팔지, 반지, 목걸이로 몸을 주렁주렁 감쌈으로써 자연 그대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살고 싶은 것이다. 욕망이란 인간이 타고난 것이다.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면 욕망 역시 신이 만든 것이다. 모든 욕망이 긍정적인 것은 아니지만 남을 불쌍히 여기는 것도, 도와주고 싶은 것도, 부처가 되고 싶은 것도 욕망이다. 욕망의 부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해서 욕망을 부정할 일은 아닌 것이다. 욕망이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살아있다는 증거이고 욕망이 없다는 것은 생명이 없다는 것, 즉 인간으로서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욕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인간은 아름다울 수 있으며 욕망이 살아 있는 사회는 자유와 생명이 살아 넘치는 사회이고 욕망이 억제된 사회는 죽은 사회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의 역사는 신적인 세계관과 지상적인 세계관 사이의 투쟁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한 시대에 신적인 질서가 지배적이면 다음 시대에는 지상적인 질서가 들고 일어나게 된다. 신적인 질서가 지배적일 때 인간의 지상적 욕망은 억압된다. 반대로 지상적 질서가 지배적일 때 무질서와 혼돈이 초래된다. 그것은 또 다른 억압을 초래한다.  인류 역사가 시대별로 지향점을 바꾸는 이유는 이성적인 것과 감성적인 것, 신적인 것과 지상적인 것을 적절하게 조화시켜 인간의 자유와 행복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필요성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인류 역사가 두 축을 중심으로 교체되기는 하지만 어느 시기를 막론하고 지상적인 질서와 욕망에 억압이 가해지지 않는 시기는 없었다. 지금까지 많은 문학들이 성적인 자유와 해방을 외쳤던 것도 이성주의적이고 신적인 세계관의 억압으로부터 지상적 존재로서의 인간 자유를 획득하려는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성적인 자유를 외쳤던 많은 문학들은 당대에는 외설로 지탄받고 법정에 서기도 했다. 그러나 뒷날 그런 문학들은 고전으로 추앙받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훗날 문학史에 지금까지 발표했던 마광수의 많은 작품들이 어떻게 평가될지 현재로선 한마디로 단언하기 어렵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우리가 주목하고 늘상 우리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그도 바로 이 시와 소설 '즐거운 사라' 등의 작품들로 인해 구설수로 끊임없이 독자들의 입과 매스콤에 오르내리면서 사회의 비판과 혹독한 곤욕을 치루었고 '즐거운 사라'는 외설 소설이라는 비판과 함께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으며 또한 향후에도 논란과 비판의 대상으로 여전히 주목받는 작가라는 점이다. [문학·책, 마광수(馬光洙)시인의『나는야한여자가좋다』작품해설 / 禹原浩와명시감상]    
708    [작문써클선생님들께] - 글은 쉽게 써내는것 명문장이야... 댓글:  조회:2159  추천:0  2017-09-09
    좋은 문장에 관한                       작가들의 명언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독자로 하여금 사전을 들춰보게 할 만한 단어는 한 번도 사용한 적 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윌리엄 포크너 "당신의 소설을 읽으면서 한 번도 사전을 뒤져보지 않았습니다. 고맙습니다." -- 서머싯 몸이 받은 편지 中 "글쓰기에서 정말 심각한 잘못은 낱말을 화려하게 치장하려고 하는 것으로, 쉬운 낱말을 쓰면 어쩐지 좀 창피해서 굳이 어려운 낱말을 찾는 것이다. 그런 짓은 애완 동물에게 야회 복을 입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애완 동물도 부끄러워하겠지만 그렇게 쓸데없는 짓을 하는 사람은 더욱더 부끄러워해야 마땅하다. 그러므로 지금 이 자리에서 엄숙히 맹세하기 바란 다. '평발'이라는 말을 두고 '편평족'이라고 쓰지는 않겠다고. 대신에 고 쓰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고 말이다. 는 말이 독자들에게 불쾌감이나 혐오감을 줄 것이라 고 생각한다면 고 써도 좋다 ( '존은 하던 일을 멈 추고 응가를 했다' 도 괜찮겠다)." -- 스티븐 킹, 中 "요즘 상 받았다는 시를 보면 무슨 놈의 시가 그렇게 어려운지. 소설도 그렇고. 어려운 글 은 심오한 글이 아니라 못쓴 글이야. 근데 사람들은 어렵게 쓰는 걸 좋아해. 난해하게 써야 존경을 하지. 내 글은 쉽고 술술 넘어가는데 그걸 가볍다고 해. 사실 새로 낸 내 소설 도 최대한 쉽게 가려고 몇 번을 고치고 고친 거야. 우리나라는 작가들이 문장으 로 독자를 고문하고 있는데도 그걸 존경해. 쉽게 말해서 한국 독자나 비평가들은 마조히스 트야." -- 마광수, 2011년 5월 둘째 주판(5.9~5.15) 인터뷰에서  
707    {쟁명} - 동시도 "하이퍼동시"로 쓸수 없다?... 있다!... 댓글:  조회:1901  추천:0  2017-09-08
하이퍼동시집   나비 돛배와 잠자리 십자가.(21ㅡ40)           최룡관     21책.1       무슨 책 보면   새가 될가   무슨 책 보면   꽃이 될가   무슨 책 보면   별이 될가   책이 조물주라는데       22책.2       달달한 사탕 나온단다   날마다 가서 먹자야   씽씽  자동차 나온단다   날마다 가서 타자야   부르릉 비행기 나온단다   날마다 가서 몰아보자야       23동시에선       물방울 휙 비행기 된다   돌이 휙 호랑이 된다   나무 휙 원숭이 된다   새가 휙 타래떡 된다   풀잎 휙 태양이 된다   휙 휘익 휙휙휙       24연필     지렁이 하늘을 갈다   고래가 하늘에 뜨다   수리개 땅속을 날다   뛰여가는 노루다리   기여가는  검은 악어       25하늘은...     비행기 하늘을 갈라도   생채기 하나 생기지 않고   고래가 바다를 갈라도   금 한오리 생기지 않고   우뢰가 산을 두드려도   흔적 한점 남기지 않고           26나무     바람의 산파   꽃의 궁전   열매의 나라   시의 샘터   비가 짓는 다락           27대화       비가 말한다   나는 젖을 먹이러 다니는 보모   나무가 말한다   나는 하늘에 집을 짓는 건축가   개구리 말한다   나는 절로 노젓는 매생이   고양이가 말한다   나는 놀고 먹는 땅딸보       28시계       똑딱똑딱  해를 오라 부르면 얼굴이 발개서 달려오고 달을 가라 쫓으면 뒤등이 뿌옇게 사라진다       똑딱똑딱 꽃이야 피여라 소리치면 빨간 꽃 노란 꽃 다투어 피여나고 꽃이야 지여라 소리치면 파아란 열매들 쏘옥 머리내민다     똑딱똑딱 새끼야 나오라 알을 호호 불면 거부기새끼 악어새끼 땅속에서 발발 기여나오고 멧새 새끼 독수리새끼 알을 톡톡 깨고 나온다                    2017.8.28.       29해 달 지구       해는 적토마   달은 백마   지구는 수레   백마 적토마 수레를 끌고 간다       해는 진달래   달은 돌배꽃   강물은 기차   진달래 돌배꽃 기차를 끌고 간다   2017.6.13.           30배 가락       배(梨) 향기   하늘을 높이 밀어올린다       배(船)가 흰 날개 펴고   강위를 난다       배(布)가 짱짱   할머니 맘에 무지개 세운다       침은 배(肚)아픈 이슬 따   풀잎에 노란 빨간 꽃 피운다       31톡톡       이슬이 풀잎에서 톡톡 튄다   고무풍선이 하늘에서 톡톡 튄다   콩알이 재철에서 톡톡 튄다   비방울이 나무에서 톡톡 튄다   밤알이 땅에서 톡톡 튄다           32민들레       민들레마다   하얀   모자 썼네       민들레 비행장서   쬐만   은빛 비행기 뜬다       여름 풀밭에서   쏭쏭   눈송이 쏜다      2017.6.13.                   33돋보기       승용차바퀴   사과 두알   한쌍 늪   해와 달   2017.6.14.                   34지렁이 동네       지렁이 구불구불   철길 놓씁니다   메새가  쫑긋대며   글을 읽습니다   떡갈나무잎이 우스워   뚜루루 이슬 뿌립니다                2017.6.16.       35물도랑에서       돌쫑개가 수염 비비 꼬며   빨래돌밑은 내집이야   물방치 짱짱짱   내 장단소리 듣기 좋니   올챙이들 꼬리로 부채질하며    여긴 신선 놀이터야     쭈르르 꽃뱀이 건너며   여긴 우리들  공원이야   2017.6.16.       36 어떤 동네.1       매미들 재릉재릉   거문고 뜯으면   나비들 나플나플   부채질 하고요   잠자리들 짝짝   박수를 칩니다      2017.6.16.       37나비 동네.       하얀 나비 하하하   웃음 보따리 헤치고요   노랑나비 노노노   쪽배 달리고요   호랑나비 호르르   피리 분대요   2017.6.16.       38해살마을       해살이     풀잎에 와 앉아   머리 살래살래       이슬이 또르르   련잎에서   담아치기 하구요       물고기   꺼꾸로 서서   꼬리 한들한들       39무엇이라 속살거리지     조약돌 무엇이라 속살거리지   내 몸에 진달래 폈다 속살거리지   조약돌 무엇이라 속살거리지   내 몸에 물이 있다 속살거리지   조약돌 무엇이라 속살거리지 내 몸에 금이 있다 속살거리지     조약돌 무엇이라 속살거리지   개미들도 친구라 속살거리지   조약돌 무엇이라 속살거리지   물새가 가려운데를 긁어준다 속살거리지   조약돌 무엇이라 속살거리지   별들이 밤마다 놀러온다 속살거리지.       40  8월       꿀벌이 붕붕   색스폰 분다   소곰재 쌩쌩   여름 편지 나른다   귀뚜라미 또르르   가을 밤 짠다     2017.6.16.   (후일 계속)      
706    "세상에서 가장 긴 강은 '엄마의 젖강'인것을"... 댓글:  조회:1789  추천:0  2017-09-08
대화와 부정, 그 겹의 언어    박남희   살아있다는 것은 그 순간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있다는 것과 다른 것이 아니다. 인간을 굳이 사회적 동물이라고 규정하지 않아도 인간은 혼자서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태어나면서 스스로 독립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데, 이는 인간의 삶이 근본적으로 관계에 의해서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그 최초의 형태는 모성과의 만남이다. 이처럼 모성이 부여한 생명은 관계성에 의해서 규정된다. 이러한 관계성은 인간이 삶을 영위하면서 차츰 확장되어 나간다. 즉 인간의 삶은 무수한 만남과 관계의 연속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이러한 관계를 온전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대화가 필요하다. 다시 말하면 존재의 필수조건 중의 하나가 관계성이다. 이는 엘리어트의 관계성에 대한 사유와도 상통한다. 어떤 사람 또는 객체는 밖으로부터 의미를 취하는 관계들의 얽힘(nexus of relations)에 의해서만 가치를 가질 수 있다고 보는 엘리어트의 시학은 관계성의 시학으로 명명될 수 있다. 그에 의하면 하나의 실체는 그 자체로서 정확하게 고정될 수 없다. 왜냐하면 모든 실체는 그 자체로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오직 다른 대상들에 대한 중첩하는 관계지어짐(relatedness) 속에서만 존재한다. 즉 개인 또는 사물은 그 자체로서 자족하는 존재성을 갖지 못하고, 다른 것들과의 관계적 얽힘에 의해서만 그 의미를 갖는다. 이는 엘리어트의 철학과 문학 사상을 집약하고 있는 비개성주의, 유기체주의, 전통주의의 인식론적 바탕이 된다. 그 핵심은 한 마디로 자아 또는 자기동일성이 선험적으로 미리 주어진 것이 아니고 관계적인 구축물이라는 것이다.( Miller, J. Hillis. Poets of Reality: Six Twentieth-Century Writers. Cambridge, Mass.: Harvard UP, 1966. pp.167-8, 170-2.)   이 글의 서두에서 엘리어트의 관계성의 시학을 언급하는 것은 이 글의 텍스트인 이대흠 시인의 시들이 긴밀한 관계성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대흠의 시를 지배하는 핵심어를 두 가지로 요약하자면 ‘대화’와 ‘부정’이다. 이대흠은 본질적으로 자신의 시를 포함한 모든 것들이 세계와의 관계성 위에서 존재한다는 것을 이미 체득하고 있다. 그가 그의 첫 시집 『눈물 속에는 고래가 산다』의 후기에서 “아직껏 시라는 걸 쓰면서 나는, 내 이름을 달고 나가는 시들을, 나 혼자 썼다고 믿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나를 빌어 쓴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그 누군가란, 내 영혼이 있다고 믿는 온갖 동물들이나 식물들, 그리고 작은 돌멩이들, 내 안에 든 무수한 죽음들인 것이다. 그것들, 삶 이전의 것과 살아있는 것 그리고 죽은 것들, 나는 그들과 오랜 대화를 나누고, 그 내용에 나의 이름을 달 뿐이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만 보아도 시에 대한 그의 태도를 알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열망과는 상반되게 현실은 종종 그에게 허용되었던 대화의 통로를 폐쇄하려는 음모를 드러낸다. 그는 이러한 현실의 태도에 반감을 나타낸다. 그의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부정의식이 주로 현실에 관계된 것이라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지만 이러한 현실에 대한 부정의식이 현실과의 단절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그의 부정의식의 이면에 세계에 대한 대화의 열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의 시는 이렇듯 대화와 부정이라는 피륙으로 짜여진 겹의 언어로 이루어져 있다. ‘대화’와 ‘부정’은 그의 시를 끌고 가는 두 개의 바퀴와도 같은 것이다. 우선 다음의 시를 읽어보자.   공장생활을 하는 햇어미들은 아기 젖 줄 시간을 맞추지 못해서 퉁퉁 불은 젖을 감추고 일을 하는데 그래도 아기가 배고플 즈음이면 어미가 먹었던 밥이 모조리 젖으로 와서 강 흐르듯 자연스레 몸 밖으로 흘러나오는데   그 강에 닿아야 할 풀뿌리 같은 아기 입이 없어서 쏟아져 나오는 젖을 플라스틱 통이 먼저 맛보고   그런데 신비로운 것은 몇 리나 떨어진 집에 있는 아기가 어미 젖 짜는 그 시간을 용케도 알아서 감전된 듯 감전된 듯 울어댄다는 것   세상에서 가장 긴 강은 미시시피강이나 아마존강이 아니라 어미의 젖내 흐르는 젖강인 것을   마흔 넘어 바다 건너 온 내가 바닷가를 서성이는 것은    두고 온 늙은 어미의 젖내가 갯바람에 몰아쳐서 자꾸만 자꾸만 눈이 아려서                                                ―「젖 감전」전문   부모와 자식의 관계처럼 필연적인 관계는 없다. 이는 이들의 관계가 사회적 관계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혈연에 의해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혈연이라는 관계의 끈은 생래적이라는 점에서 함부로 변경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중에서도 모성은 엄마와 아기 사이를 무엇보다도 강력한 관계의 끈으로 연결해준다. 인용 시를 읽어보면 공장 생활을 하는 어미가 아기에게 젖을 주지 못하고 젖을 짜내는 행위와 아기의 울음이 맞물리면서 엄마와 아기 사이의 관계성은 시공을 초월해서 존재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아기가 배고플 즈음이면 어미가 먹은 밥이 모조리 젖으로 와서 강 흐르듯 자연스레 몸 밖으로 흘러나온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필연적인 관계도 사회적인 조건의 제약을 받는다. 공장의 노동자라는 어미의 신분은 아기에게 마음대로 젖을 먹일 수 없게 만든다. 즉 젖으로 연결되는 어미와 아기 사이의 대화가 공장이라는 현실적 환경에 의해서 단절되는 것이다. 여기서 둘 사이의 결핍이 생기게 된다. 시인은 마흔이 넘어서도 바다 건너의 늙은 어미의 젖내를 그리워하는 모습을 통해서 이러한 결핍이 어미와 어린 자식과의 관계에 한정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세상에서 가장 긴 강은 미시시피강이나 아마존강이 아니라 어미의 젖내 흐르는 젖강”이라는 시인의 진술은 어미와 자식 간의 관계가 영원한 것임을 의미한다. 시인에게 있어서 어머니는 그의 생의 처음이자 마침표와 같은 분이다.(「마침표를 먼저 찍다」)시인이 모성성을‘강’이라는 이미지로 은유하고 있는 것은 인간의 몸과 자연을 하나의 전체로 인식하는 유기체적 상상력과 무관하지 않다. 그가 「눈물 속에는 고래가 산다」에서 “내 몸에는 탐진강이 흐르고 있으며/북한산과 용두봉이 둥지를 틀고 있다/나는 이미 한강의 일부이며 그 강은/나의 일부이다 나는 매일/이 땅의 산과 강으로 호흡한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된다. 이처럼 그의 시에는 제유를 바탕으로 한 유기체적 상상력이 도처에서 발견된다. 이것은 그의 시가 본질적으로 인간과 세계(우주)의 관계성을 지향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신의 발길이 끊어지면서부터 달의 빛나지 않는 부분을 오래 보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무른 마음은 초름한 꽃만 보아도 시려옵니다 마음 그림자 같은 달의 표면에는 얼마나 많은 그리움의 발자국이 있을까요    파도는 제 몸의 마려움을 밀어내며 먼 곳에서 왔습니다 항구에는 지친 배들이 서로의 몸을 빌려 울어댑니다 살 그리운 몸은 불 단 노래기처럼 안으로만 파고듭니다   아무리 날카로운 불빛도 물에 발을 들여 놓으면 초가집 모서리처럼 순해집니다 먼 곳에서 온 달빛이 물을 만나 문자가 됩니다 가장 깊이 기록되는 달의 문장을 어둠에 눅은 나는 읽을 수 없습니다   달의 난간에 마음을 두고 오늘도 마음 밖을 다니는 발걸음만 분주합니다                                     ―「애월(涯月)에서」전문                               부모 자식 간의 사랑이 생래적인 필연성으로 연결되어 있다면 연인 간의 사랑은 후천적 관계성을 필연으로 연결시켜주는 ‘인연의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남녀 간의 인연의 끈은 그리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 남녀가 서로의 사랑을 찾아서 헤매는 것은 ‘인연의 끈’이 그들의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남녀가 서로 만나서 사랑을 나눈다고 할지라도 그들의 관계가 영원히 지속되리라는 보장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누구나 이별의 아픔을 경험한다.「애월(涯月)에서」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경험한 시적 화자의 심리상태를 애월(涯月), 즉 ‘달의 난간’에 마음을 두고 떠나간 사람을 그리워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화자가 “달의 빛나지 않는 부분을 오래 보는 버릇이 생겼”다고 말하는 것은, 그 어두운 부분이 자신의 마음의 은유로 보였기 때문이다.“마음 그림자 같은 달의 표면에는 얼마나 많은 그리움의 발자국이 있을까요”라는 진술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추억에 대한 회상이면서 동시에 육체적인 사랑에 대한 그리움을 동반하고 있다. 그것은 “제 몸의 마려움”이나“ 살 그리운 몸은 불 단 노래기처럼 안으로만 파고듭니다”라는 표현에서도 드러난다. 이것은 그가 “그리움이란 성욕의 다른 이름”(「꽃핀 나; 검증 없는 상상」)이라고 한 것과도 연결된다. 이것은“아무리 날카로운 불빛도 물에 발을 들여 놓으면 초가집 모서리처럼 순해”지는 이치가 남녀 간의 육체적인 사랑에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시인은 “달빛이 물을 만나 문자”가 되는“가장 깊이 기록되는 달의 문장”을 읽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그의 마음이 오랫동안 어둠에 눅어서 빛의 문장을 감별할 수 있는 심안心眼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여기서의‘어둠’은 그의 현실적인 삶의 부정성과 무관한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나는 꽃을 아네 내가 꺾고 버리지 못한 꽃 꽃은 귀퉁이부터 말라갔네 나는 꽃을 아네 참 많은 꽃을 꺾었네 참 많은 꽃에 꺾였네 한 송이 꺾을 땐 죄스러웠지 또 한 송이 꺾을 땐 운명을 생각 했다네 세 송이 네 송이 될 때엔 꽃을 보지 못했네 나는 꽃을 아네 한 아름의 꽃을 꺾어도 다하지 못할 때 나는 꽃을 꺾지 않았지 나는 꽃을 아네 꺾어야만 순결함이 유지되는 그 비운을 꺾지 않으면 슬퍼지는 그 운명을 나는 꽃을 아네 씨앗으로 담기에는 너무 먼 기쁨 꺾기에는 너무 뜨거운 슬픔 나는 꽃을 아네 나는 꺾네 다 꺾어도 꺾이지 않은 꽃을                                     ―「나는 꽃을 아네」전문   꽃은 자연 속에 피어서 스스로의 존재성을 드러내며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인간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존재이지만, 꽃이 아름답고 향기로운 것은 꽃 역시도 관계성을 지향하는 존재라는 것을 말해준다. 꽃은 인간에게 아름다움과 향기를 주지만 인간은 꽃에게 유익을 주기보다는 폭력성을 보여주는 경우가 훨씬 많다.「나는 꽃을 아네」에서 화자가 꽃을 꺾는 행위는 꽃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폭력성이다. 그렇기 때문에 화자가 꺾고 버리지 못한 꽃은 귀퉁이부터 말라가서 결국엔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나와 꽃의 관계가 꺾고 꺾이는 관계로 연결되어있다는 것은 비극이다. 하지만 이것은 쉽게 해소될 수 없는 비극성을 내포하고 있다. 왜냐하면 화자가 꽃을 꺾는 행위는 본질적으로 인간의 욕망과 관계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화자가 꽃을“꺾지 않으면 슬퍼지는 운명”을 자각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인간이 살아있는 한 욕망의 굴레를 벗어나기 힘들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인간이 꽃을 꺾는 것은 인간의 욕망 속에 내재하는 조급함 때문이다. 시인이“씨앗을 담기에는 너무 먼 기쁨”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인간의 욕망이 씨앗을 얻기 위해서 먼 기쁨을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것을 암시해준다. 시인이“꺾여야만 순결함이 유지되는 비운”을 역설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도 그 순결함이라는 것이 자아중심의 순결함이고 극히 이기적인 순결함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꽃을 꺾지만 정작 꽃은 “꺾어도 꺾어도 꺾이지 않는 꽃”으로 남아있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시의 제목인 “나는 꽃을 아네”라는 시인의 진술은 역설일 수밖에 없다. 이 시를 사랑 시로 보면 남성의 욕망의 이면에 숨어있는 폭력성을 보여준 것이고, 생태 시로 보면 자연에 대한 인간의 폭력성을 보여준 것이 된다. 이 시에서 꽃(자연)과 나(인간)의 평등한 관계를 파괴하는 것은 꽃은 꺾어야 한다는 인간의 강박관념이다. 이러한 강박관념의 심층에는 시인의 육체적 욕망이 자리하고 있다. 이것은 그의 의식에 자리잡고 있는 부정성이 외적인 환경에서 온 것뿐 아니라 내면적인 것임을 말해준다. 그가 “어느 음부엔가 이 수억의 정자/집어넣고 싶다 해탈하고 싶다 여인이여/나를 이끌 여,……미치겠네 쓱/밀어넣고 싶은 이 딱딱한 지식이라는/이 성기”(「책꽂이의 책이 내 삶의 단면이냐?」)라고 했을 때, 그의 욕망은 개인적인 차원에서 사회적인 차원으로 확산된다. 그의 시의 건강성은 자신의 욕망을 개인적인 차원에 고정시키지 않는 데에 있다.   ------- 박남희 1996년 경인일보, 199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으로 『폐차장 근처』,『이불속의 쥐』,평론집으로『존재와 거울의 시학』이 있음.  
705    "시인"을 마음대로 사고 파는것은 절대 용납할수 없다... 댓글:  조회:1942  추천:0  2017-09-08
시의 초심 닦기 (2) / 위선환 (시인) 문인이 된다는 것, 혹은 시인이 된다는 것이 단순히 개인적 욕망을 채우는 일로 끝나는 것 같아 서글퍼질 때가 있다. 특히 시를 장신구로 활용하고 싶은 사람들을 유혹하는 데 앞장서고 있는 문예지를 보면 역겨움이 느껴진다. 등단 기회 제공을 최후의 목적으로 하는 정체 불명의 문예지의 범람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런 잡지에 유혹 당한 사람들은 자신의 가슴에 시인이라는 명찰을 달아준 대가로 정해진 거래를 따라야 한다. 수백 부씩 그 잡지를 구매해야 하고 편집자에게는 전혀 문학적이지 않은 향응도 제공해야 한다. 말하자면 시인을 사고 파는 것이다. 이러한 시인들이 특정 문인단체에 가입을 하고 회장 선출 등의 투표권을 행사하면서 또 하나의 문단 권력 만들기에 기여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들이 바로 이상한 시인의 나라를 만드는 사람들이다.  제대로 된 시인의 나라는 진정 만들 수 없나. 시인이 되는 일에 급급해 문학의 물을 흐리는 미꾸라지가 되지 말고 시를 읽고 쓰는 행위를 통해서 스스로가 맑아지는 꿈을 꿀 수는 없나. 시인이라는 간판을 그럴싸하게 걸어 놓고 전을 펼치지 않아도 그 삶이 곧 시인인 사람 어디 없나.  - 안도현의 "이상한 시인의 나라" 부분  < 추기> 다음은 라즈니쉬의 '남전' 어록강의(손민규 옮김) 중에서 발췌한 것이다. 나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내 경우에는 예이츠의 역할을 스스로 한 점이 다르다.  타골이 노벨상을 받았을 때에 이상한 사건이 일어났다.  그는 『키탄잘리』라는 작은 시집으로 노벨상을 받았다. 원래 그 시집은 타골의 모국어인 벵골어로 씌어졌다. 그 다음에 그는 자신의 시를 영어로 옮겼다. 그런데 그는 영어로 옮기면서 망설이게 되었다. 영어로 옮긴 시가 그의 모국어만큼 아름다운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그 당시 인도에 살고 있던 유명한 선교사 엔드류에게 부탁했다.  「당신이 살펴보고 만일 문법적으로 틀리거나 언어학적으로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내가 고칠 수 있도록 지적해 주시오.」  엔드류는 해박한 지식을 갖춘 선교사였다. 그는 타골의 시를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다만 네 구절을 지적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여기 이 네 구절만 바꾸면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시가 될 겁니다.」  그래서 타골은 엔드류의 의견을 따라 네 구절을 바꾸었다.  타골의 친구이며 훌륭한 시인인 에이츠가 타골을 시인들의 모임에 초대했다. 그 모임을 통해 타골은 런던에서 처음으로 키탄잘리를 읊기로 되어 있었다. 타골의 시를 듣고 모든 사림이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 시집은 말할 수 없이 아름다운 책이다. 세상에 그와 비교될 수 있는 문학작품은 극소수이다.  그런데 예이츠는 다소 석연치 않은 기색을 보였다. 그가 타골에게 말했다.  「아주 훌륭합니다. 그런데 네 구절에서 무언가 잘못되었어요.」  그 네 구절은 엔드류가 집어넣은 것이었다. 예이츠는 그 네 구절을 정확하게 지적하면서 말했다.  「여기에서 시의 흐름이 끊겼습니다. 누군가 다른 사람이 개입했어요. 지식에 얽매인 사람이...., 원래 당신이 쓴 구절은 문법적으로 틀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중요하지 않아요. 언어의 규칙이나 문법에 얽매이지 않고 가슴에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은 시인의 자유입니다. 여기에다 당신 자신의 구절을 집어넣으십시오.」  그래서 타골은 엔드류가 써넣었던 구절을 자신의 언어로 바꾸었다. 그러자 예이츠가 말했다.  「이제 시의 흐름이 완벽해졌습니다. 걸리적거리는 게 없어요.」  < 추기> 다음은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2003년 11, 12월호에 실린 양애경 시인의 글이다.  '시라는 것은 웬지 모를 모호한 부분이 있어야 멋져 보이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여러 번 보았다. 필자의 생각에는 습작기에는 '모호함의 문학적 효과' 보다는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정확히 전달하는 기술'부터 배워야 할 것 같다. 그런데 그것을 납득시키기가 참 힘든다. 시에는 기교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부분이 있게 마련이며, '그럴듯해 보이는 기술'이 좋은 시를 쓰게 해 주지는 않는다. 쓰는 이의 영혼이 담겨야 할 것이다.  < 추기> 다음은 [시작] 2003년 겨울호에 실린 이명원의 평론 ‘속도성을 거슬러서’에서 발췌한 글이다.  적어도 동일화를 기본원리로 하는 시의 장르적 특성 때문에, 새로움에 대한 속도전이 마냥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자기와 세계를 유기적인 연관 아래 포섭하고 미적으로 형상화하는 시의 원칙, 즉 ‘은유의 수사학’으로 지탱되었던 전통적인 수사체계의 급격한 붕괴는, ‘환유의 수사학’으로 명명될 수 있는, 의미의 중심을 분산시키고 파편화시키는 새로운 시적 언술방식의 출현과 함께, 사실상 시의 언어를 분열증환자의 언어와 별다른 차이가 없는 상태로 하강시킨다. ‘무의식이 나를 말한다’로 표현할 수 있는 이러한 시적 상황의 변모는, 그것이 필연적인지 아니면 불가피한 것인지는 모르나, 시에 대한 독자들의 향수 권리를 박탈시키는 새로운 역리(逆理)룰 파생시키기도 하는 것이다.  문명의 혁신과 속도성에 대한 숭배, 새로움의 특권화는 역설적으로 문화적 문맹화를 더욱 부추기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새로움과 속도성에 대한 숭배는 심원한 사유에 기반한 지혜와는 사실상 무관한 지식과 정보의 파편 속에서, 대중들의 감수성을 이른바 ‘문명 속의 야만인’의 상태로 구조화하고 있으며, 이러한 상황 속에서 오히려 번성하는 것은 안일하면서도 말초적인 감상주의에 기반한 상투적 감정배설의 언어들이다.  역설적이게도, 아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 자체가 사실상 역설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우리들은 우리시대의 시적 새로움을 이 악무한적 속도성을 ‘거스르는’ 지점에서 찾아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것은 시를 알쏭달쏭한 담론의 수준으로 퇴행하게 만드는 관행화된 시작법의 매너리즘에서 탈피하여 삶에 대한 연속성의 감각을 복원시키고, 이제는 거의 멸종되다시피한 ‘육성(肉聲)을 되살리는 한편, 공감과 감흥을 기반으로 한 ’감정교육‘을 포기하지 않고 지속하는 데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복고적이며 관조적인 서정의 세계로 귀한하는 시대착오를 반복하자는 것은 물론 아니다.  감흥이랄까 공감이 전제되지 않은, 싸늘한 개념적 원리에 입각한 시쓰기는 새로움이라기보다는, 얼마 지나지 않아 폐기될 ‘미래의 골동품’일 것이기 때문이다.  < 추기> 다음은 월간 [현대시] 2003년 12월호에 실린 좌담 내용 중 부분이다. 발언자는 평론가 이재복이다.  저도 올해 신인들을 대상으로 몇 편 글을 썼는데 신인들의 시에서 참신하다는 작품을 발견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는 사실과 함께 시가 서술화되면서 긴장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이것의 원인은 '지금' '여기'에서의 문화의 획일성과 가치의 무차별화에서 찾을 수도 있고 또 제도화된 문학교육 속에서 찾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시는 붕어빵처럼 제도화된 교육을 통해 찍어내는 것이 아니라 삶의 현장 속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까? 삶의 현실이 배제되면서 함께 배제된 것이 아웃사이더적인 의식과 지적인 모험 같은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제도적인 보호라고나 할까, 이 제도에 길들여지면서 진정한 의미의 자유나 진리에 대한 지적인 모험을 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 시가 대체적으로 그 수준의 평범성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대학의 국문과나 문창과를 다니면서 특히 문창과를 다니면서 제도화된 교육을 받은 신인들의 시가 등단의 주류를 형성하면서 이런 경향은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이 사실입니다. 문학교육을 위해 만들어진 학과가 아이러니컬하게도 문학의 왜소성과 매너리즘을 확대재생산하는 데 앞장 서고 있다고 봅니다. 이런 식의 교육을 받고 문단에 나온 올해의 신인들의 시가 대부분 그렇다고 봅니다.  < 추기> 다음은 중앙일보 이경철 기자가 쓴 '신춘문예에 응모하려는 분들에게' 중 부분이다. 현장의 발언이다.  예전, 좀더 정확히 말해 1990년대 이전까지 문학도들은 선배 문인들의 작품을 읽든지, 직접 개인적으로 찾아가 지도를 받든지 하는 직, 간접의 사사(師事) 방식으로 창작 수련을 했습니다. 신경숙씨 같은 작가는 좋아하는 작품을 꼼꼼히 옮기는 방식으로 문학 수업을 했다합니다. 찬찬히 음미하며 필사하다보면 문체의 향기는 물론 작가의 숨은 의도도 그냥 읽을 때보다 더 잘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특히 시일 경우는 더욱 그렇습니다.  이런 필사로서도 성에 안차면 존경하는 기성작가에게 자신의 창작을 직접 들고 가 문인으로서의 가능성은 물론 작품의 잘잘못을 지적 받기도 했습니다. 이런 사사식 창작교육에서는 문학도로서 가장 중요한 개성은 물론 문학, 문인으로서 끝끝내 지켜내야만 할 진정성과 절실성을 견지할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삶에서 충동된 그 어떤 절실한 것이 먼저 창작으로 나아가게 했으니까요.  그러나 문학 수업이 학원화, 실기화 되면서 사정은 달라진 듯 합니다. 90년대 초반은 각종 문화센터의 문학창작반 수강생들이 신춘문예, 특히 소설 부문을 싹쓸이하다시피 했습니다. 그러나 그 때 그렇게 나온 당선자 중 지금까지 창작활동을 펴고 있는 작가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창작 교육을 잘 못 받았기 때문입니다. 당시 취재한 바에 의하면 그들은 몇 명씩 그룹으로 유명 작가 밑에서 자신들의 창작품 1, 2편만 가지고 1, 2년씩 교육을 받았습니다. 시류에 걸맞는 주제의 작품을 계속 지적을 받아가면서 그토록 오랫동안 고치고 가다듬었으니 주제 좋고 소재 좋고 구성 기막히고 문장 정갈하여 신춘문예의 예, 본심을 미끈하게 통과할 수밖에요.  그러나 등단 후가 문제입니다. 이제 홀로 놓여져 써야할 기성 문인의 입장으로 작품 구상도 떠오르지 않으니 답답할 수밖에요. 신춘문예 당선자로서의 자존심은 강하고, 작품은 안나오니 이중으로 죽을 맛이겠고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차라리 좋은 문학 독자, 애호가로 남아 더 행복했을 많은 사람들이 문인으로 들어와 고통을 당하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이런 관계로 90년대 후반 들어서부터 신춘문예 심사에서 작품의 완성도 보다 참신성, 개성, 실험성 등을 더 따지게 됐습니다. 물론 각 장르의 문법에 맞고 문장이 정확해야 함은 기본입니다. 80년대 후반에 나온 일부 젊은 여성 작가들 중 여성의 은밀한 욕구과 감성을 발랄하게 까발리며 주목은 받고 있으나 문학의 기본기가 의심스러운 작가들 또한 도태됐거나 문인으로서의 생명 또한 길지 않을 것은 뻔하기 때문에 자기만의 문장이면서 정확한 구사야말로 문학의 기본이기 때문입니다.  < 추기> 다음은 대구카돌릭문학 13호에 실린 강희근의 글 중 일부이다.  시에서 종교를 다루게 되면 실패율이 높다. 주제가 시의 전면에 서기 때문이다. 형식과 세계의 일원적 성취가 종교를 다룰 때는 이루기가 힘들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말하자면 세계가 형식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 추기> 다음은 남진우의 "신서정과 젊은 시인" 중의 일부이다.  ......다시 말해서 신서정은 이미 그 태동 자체에서 어느 정도 복고성과 회귀성을 요청받고 있는 셈이며 무분별한 궤도 이탈 대신 원상복구에 더 많은 노력을 경주하는 흐름이라고  할 수 있다. 민중시나 해체시의 대명사처럼 여겨졌던 시인들이 이전의 과격하거나 방만한 몸짓을 지양하고 서정시가 가진 본래의 성격을 점차 회복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 부류의 시에서 느껴지는 것은 세계와의 긴장된 대결의지이기보다는 급박하게 돌아가는 현실의 소용돌이에서 한 걸음 물러선 채 사태를 관망하는 성찰적 시선이다. 한결 정돈되고 정제된 어조로 내면을 깊숙이 응시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 이들 시는 인간과 자연 사이의 소통과 호환을 중시하는 유기체적 세계관에 경도된 모습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유형의 작품에 아쉬움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앞에서도 암시한 바와 같이 1990년대 젊은 시인들은 다들 도전적인 정복자가 되어 제위 찬탈에 나서기보다는 물려받은 영지를 잘 관리하고 가꾸는 제후의 처지에 만족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새로운 시문법을 제시하고자 하는 야심을 불태우기보다는 기존 문법에의 적응 및 숙달에 더 민감한 경향이 있다. 그 결과 상대적으로 개개 시편의 완성도는 더 높아진 편이다. 이처럼 조숙한 젊은 시인들이 많아지는 것은 한편으로 안심을 주면서 다른 한편으로 왠지 맥이 빠지게 만든다. 다들 너무 안전한, 성공이 보장된 길로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더욱이 그 성공이란 것이 일정한 높이 이상으로 나아갈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이 계열의 시인 가운데 상당수는 종종 따뜻한 감성 탓이기도 하겠지만 낙천적이라 할 만큼 세계와 쉽게 몸 섞는, 그래서 때로 시를 예정된 화해의 공간으로 인도하는 부정적 효과를 산출하기도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신서정 또한 이제 해체와 갱신의 역학에 몸을 맡길 시점에 이른 듯하다. 이 시대의 서정은 좀더 사납고 가혹한 언어에 의해 단련될 필요가 있다.(1998)  < 추기>다음은 이성부 시인이 [열린시학] 2003년 겨울호에 자선한 대표작 "봄"에다 붙인 시론 중 일부이다.  사물(대상)을 보고 느끼고 생각하여 얻어진 것을 시라고 합니다. 이때 사물을 어떻게 보아야 하느냐에 따라 시의 성패가 갈린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시각을 여늬 사람들과 달리 한다든가, 사물을 주체화, 또는 의인화시킨다든가, 아니면 나(주체)를 객체화(사물화) 시킨다든가, 하는 일들이 모두 어떻게 보느냐와 관계가 있습니다.  느낌과 생각이라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 다른 사람과 달라야 하고, 이렇게 다른 느낌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호소력을 지닐 때, 좋은 시의 몫에 값한다고 하겠습니다.  < 추기> 다음은 박시교 시인이 '열린시학' 2003년 가을호에 쓴 '시를 위한 변명' 중 부분이다. 관련하여 자선한 대표작 "전봉건(全鳳健) 추억" 전문을 아래에 싣는다.  말의 홍수시대를 살면서 시마저 길고 복잡(?)하게 써야할 이유가 있는걸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삶의 다난한 이야기를 하면서 군더더기를 철저하게 발라내는 것도 옳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어찌되었건 시는 짧아야 한다. 그 짧은 행간에 넓고 아득한 그 무엇을 담아내는 일, 그 것이 시가 열어야 할 지평이라고 나는 믿는다.  양평 지나 가산 근처 남한강 가 돌밭// 해오라기 한 마리 긴 목 추스리고 섰다// 강물은 저만한 풍경 위해 천년을 뒤척였으리.// 수면 위로 반짝이며 부서지는 푸른 햇빛// 애초에 그리움은 순간의 꽃이었다// 오석(烏石)에 칼자국 같은 차고 흰 선(線) 한 획.  < 추기> 다음은 [현대시]2004년 신년호 '기획특집/ 새 시대 새로운 시인들' 에 실린 정과리의 글 "파열된 연대의 시적 기록, -2004년의 젊은 시인들" 冒頭이다.  2004년 벽두 젊은 시인들의 풍경은 잡동사니들이 굴러다니는 헛간과도 같다. 모가지가 달아난 병, 헌 책들, 용도를 잃은 나무토막들, 해체된 나사들, 그리고 부러진 언어들, 부은 목젖, 갈라진 입술, 뽑힌 혀, 이 모든 것들이 어떤 개별성도 없는채로, 그렇다고, '뭉치면 산다'식의 집단 농성도 아닌 채로, 아주 오래 전에 무너져서 빛까지 우중충한 토막 더미들처럼, 그렇게 시는, 시들은, 시들은 채로, 살고 있는 듯이 보인다. 4중의 고갈이 그들을 짓누르고 있을 것이다. 소재의 고갈, 영감의 고갈, 표현의 고갈, 그리고 리듬의 고갈. 이 고갈들은, 실은, 어쩌면, 포만에서, 생각만 해도 욕지기가 치밀어 오르는 물림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 추기> 다음은 [현대시]2004년 1월호에 실린 이지엽 시인의 "현대시 창작 강의"의 말미이다. 이미지를 잘 쓰는 것이 시를 완연하게 다르게 만들 수 있다는 점에 주의하며 시인이 정리해둔 창작 포인트를 아래에 옮긴다.  1. 이지지의 생명은 명확성과 새로움이다. 모호한 이미지는 오히려 시상의 전개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  2. 내 시가 힘이 없어 나약하다면 시각적 이미지로 표출되는 동태적인 장면을 묘사해보자. 더 나아가 청각이나 후각, 근육감각적인 이미지 등을 활용해보자.  3. 내 시가 너무 들떠 있다고 판단되면 동태적인 면보다는 정태적인 가운데 아주 느릿한 움직임들이나 존재하는 것들을 촘촘한 사고로 엮어보자.  4. 시각적 이미지는 집중의 효과를 나타내는데 적합하고 청각적 이미지는 분산과 확산의 효과를 나타내는데 적합하다.  5. 한 이미지만을 즐겨 쓰는 것은 시인의 개성일 수 있으나, 그것에 대해 특별한 신념이 없다면 서로 다른 이미지를 적절히 교차해서 써보자. 훨씬 더 탄력적이고 긴장감이 높은 시를 만들 수 있다.  . 이미지 너머의 것을 생각해보자. 보이는 것의 미세한 움직임을 따라가다 보면 너머의 것이 보인다. 보인다면 과감히 잡아라. 보이는 것보다 더 명료하게 그려내라.  < 추기> 다음은 정진규 시인의 산문집 [질문과 과녁]에서 따온 글이다.  그냥 보아서는 어렵다 팔색八色조차 우리 눈은 한 눈으로 가려내지 못한다 팔색조八色鳥의 팔색八色은 따로따로 놀지 않는다 이음새가 절묘하다 서로 끌고 당겨서 일색一色을 빚어낸다 조류보호협회鳥類保護協會 회원 이향란이가 가져다 준, 가만히 바위 위에서 졸고 있는, 경남 거제도 동부면 학동리에서 윤무부 새박사가 직접 찍었다는 팔색조八色鳥의 사진을 며칠 들어다보다가 또 한 수手 배웠다 오, 일색一色이여 미인美人이여  -팔색조(八色鳥), 몸시(詩) 별편(別篇)  이 시를 발표한 뒤에 나는 위의 시에 나오는 라는 말을 로 바꾸어 놓고 있다. 왜냐하면 의 라는 말은 아무래도 이어진 부분이 노출된 느낌을 준다. 라는 말은 아무래도 가 축약된 말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 는 와 같은 뜻으로 쓰이는 접미사이지만 훨씬 아름다운 상징성을 음성적으로 내포하고 있으며, 아주 잘 빠진 조화의 실체를 보이기에 그렇게 고쳤다.  < 추기> 다음은 [시와 사람] 2004년 봄호에 실린 오탁번 시인의 글중 부분이다.  어떤 하찮은 사물을 보는 순간에도 이상한 울림이 가슴에 와 닿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 울림이 무슨 뜻인지 모른 채 수첩에다 그냥 몇 자 적어두곤 한다.  짐짓 모른 채하고 내버려두면 이내 잠잠해져서 내가 왜 그런 기록을 했는지 스스로도 땅띔 못할 때가 있고, 그것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별별 심상과 이야기로 피어나면서 수첩 속에서 얼른 해방시켜 달라고 조를 때도 있다. 그러나 시 한 편을 쓸 때마다 이것이 나의 絶筆이라는 독한 마음을 먹고 유혹을 뿌리치고 또 뿌리친다.  한 편의 시가 태어나는 과정은 정말 지루하고 괴롭다. 아기를 낳는 산모의 지독한 아픔과 기쁨이 바로 시라는 것을 왜 모르랴.  '杏字板 검자주 옻칠 소반에 정갈한 백자 대접 흰 달 같이 놓이고, 다른 반찬 소용없이 간장 한 종지 앙징맞게 동무하여 따라온 것이, 벌써 마른 속에 입맛 돌게 하는데, 간장 한 숟가락 끝에 찍어 흰죽 위에 떨구어 한 술 뜨면'  -'魂불'에 나오는 흰죽 먹는 장면이라네  말 하나하나 고르며 밤을 밝힌 최명희는  시 짖는답시고 죽을 쑤는 시인보다  정말 진짜 시인이었네  - 오탁번의 시 "시인" 부분  < 추기> 다음은 [시작]2004년 봄호에 실린 평론가 정효구의 글 중 부분을 축약한 것이다.  사람은 홀로서기와 함께살기를 같이 한다. 한 사람이 ‘나 자신, 혹은 나 자신의 삶이 진정 자유로운가?’ 라는 질문 앞에서 ‘진정 그렇다’라는 답이 나오기까지 5단계에 걸치는 치유의 방법을, 우리 시단의 현황과 관련해서 말하고자 한다  첫째 우리들 각자가 인간사회 속에서 ‘사회적 자유’를 획득하는 것이다. 일제 강점기의 저항시, 카프시, 해방후의 다양한 사회비판시, 민중시, 노동시, 문명비판시 등이 그렇다.  둘째 사회인으로서 홀로서기와 함께살기를 가능하게 한 사람은 그 범위를 넓혀 자연인으로서, 자연생태계 속에서 역시 홀로서기와 함께서기를 가능하게 하여야 한다. 즉 자연인으로서 자연에 지배당하지도, 그렇다고 자연을 침범하지도 않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셋째 사회적 자유를 얻고, 자연 속에서 자유를 얻은 다음, 인간은 ‘몸적 세계’ 속으로 자신을 확대하거나 내려 보낼 수 있다. 여기서 몸적 세계란 생의 첫 자리, 다시 말하면 아무런 사회적 의미나 장치가 덧붙여지지 않은 시원의 상태를 뜻한다. 몸적 세계로 내려갔을 때, 그곳에는 알, 밥, 쌀, 자궁, 살 등과 같은 것이 의미하는 세계가 존재한다. 우리는 거기에서 시작했고, 그곳으로 돌아간다. 정진규가 그렇다.  넷째 몸적 세계의 차원으로까지 자신을 확대 혹은 침잠시킨 사람이 갈 수 있는 다음 단계는 물질적 세계로 그 자신을 들여놓는 것이다. 물질적 세계로 가면 모든 존재는 해체되고 뒤섞인다. 여기서 개체는 무의미해진다. 처음도 끝도 이곳엔 없다. 서로가 서로의 영역을 넘나들 뿐이다. 여기선 어떤 화학작용도 다 일어난다. 그러므로 무엇이 될 가능성은 무한대이다. 나는 무엇이 될 수도 있고, 개체와 개체 사이의 경계는 무화되며, 나는 존재를 주장하지 않는다. 나는 현상계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먼 곳까지 나온 것이다.  다섯째, 마지막으로 도달할 수 있는 세계는 현상계를 넘어선 ‘虛’‘空’‘無' 와 같은 세계이다. 이것은 실제하는 세계도 아니며, 있거나 없는 세계도 아니며, 현상계의 언어로 설명하기도 어려운 세계이다. 無邊의, 無限의, 無形의 이 세계 속으로 발을 들여놓으면, 우리는 진정 현상계의 그 무엇에도 의지하지 않으며 자유인으로서 홀로서기를 할 수 있다. 최승호의 시집 ’달마의 침묵‘에서 이 단계에 이르려는 노력이 보인다. 그는 전술한 다섯 단계를 다 탐구해본 시인이다.  < 추기> 다음은 [시작] 2004년 봄호에 실린 평론가 유성호의 글 중 부분을 축약한 것이다.  교과서를 통한 문화전수 행위나 우리 문화의 전통수립 작업에서 배제되어 왔던 타자를 일별하면  1) 종교적 상상력, 이를테면 영원에 대한 추구, 신성의 지상적 복원에 대한 의지, 초월의지, 영성에 대한 내밀한 감각과 그것의 추구, 사랑의 구현, 그리고 모든 불가시적 세계에 대한 見者로서의 역할을 자임하는 지향성 등,  2) 몸의 발견과 해석  3) 아방가르트 미학, 이를테면 李 箱, 초현실주의 지향, 모더니즘의 가장 진보적인 형식, 해체지향의 시학,  4) 노동시와 민중미학  5) 대중 친화력의 시 등이다.  < 추기> 한명희 시인이 여러 문인들과 인터뷰한 글을 모아서 책(삶은 조심스럽게 문학은 거침없이)을 냈다. 다음은 천양희 시인과 인터뷰한 내용 중의 부분이다.  나는 “어떻게 하면 저도 시를 잘 쓸 수 있을까요?” 라는 질문을 “시를 쓸려는 학생들에게 어떤 말을 들려주고 싶으세요?”로 바꾸어 물었다. 그녀는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거나 강연을 할 기회가 있으면 언제나 많이 생각하고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찢어버리라는 말을 한다고 했다. 그리고 꼭 하루살이에 대해서도 이야기 한다고 했다. 하루살이는 물속에서 천일을 있다가 스물다섯 번 허물벗기를 한 후 태어난다고 한다. 그리고 꼭 하루를 날고 짝짓기를 한 후 죽는다고 한다. 하물며 하루살이가 이러한데 문학작품이 태어나는 과정이 어떠하겠는가. 그녀는 문학을 쉽게 보려면 차라리 연예계로 가라고 한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는 요즘 학생들이 시 보다는 영화나 광고쪽 일을 더 하고 싶어하는 세태에 대해서 나름대로 진단을 내렸다. 그녀는 좋은 글을 쓰면 먹고 살아진다면서, 잘 산다는 건 “정신 있게 사는 것”이라고 부연설명 했다. 그리고 또 “우리가 옛날 선비잖아요? 선비가 장사꾼 보다 못하면 안 되잖아요” 라고 말했다. 좋은 시에 대해 묻자 그녀는 공감을 주고 감동을 주는 글이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시에 순정을 바치면 정말 좋을 시를 쓸 수 있다고, 운명을 걸고 써야 한다고 말했다.  < 추기> 소설가 김현이 'TV 책을 말하다'에 나왔다. 화제는 그의 소설 "현의 노래" 였다. 받아 쓴 것은 아니나, 대담 내용 중 일부를 줄여서 적어둔다. 치열함에 대하여 생각하게 하는 말들이다.  - 나는 "칼의 노래"와 "현의 노래"를 쓰면서 이빨 8개를 뽑았다. 몰아서 쓰다보니 이빨들이 들솟았다. 빼서 쓰레게통에 버리면서 썼다.  - 나는 많은 작품을 쓰지 못할 것이다. 앞으로 아마 두세 편, 또는 단편을 포함해서 다섯 편쯤 글을 쓸 것이다. 그 다섯 편을 다 쓰고 나면 자연사 할 것이고, 아니면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는 나이가 되어 있을 것이다. 나는 당대에 이름을 날린다거나, 죽어서 이름을 남기는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다만, 그 두세 편 (또는 다섯 편)의 작품을 쓰는 일에는 관심이 있다.  - 전작인 "칼의 노래"의 문장은 칼의 이미지에 걸맞게 짧고 날카롭더니 이번 "현의 노래"의 문장은 거문고의 이미지에 걸맞게 유현하고 음악적이었다는 한 평론가의 지적에 대하여 그가 대답했다 "저는 문장의 리듬을 정하지 못하면 글을 쓰지 못합니다"  < 추기> 다음은 [열린시학] 한국 젊은 시인상.작가상 예심평이다. 본심 해당작이 없다  오늘날 우리를 둘러싼 문학의 담론은 큰 줄기를 잡기가 어렵다. 지극히 사변화되고 말초화된 실뿌리가 모래밭에 위태롭게 심어져 있는 형국이다. 속도와 죽음과 욕망의 화두에 얽매이면서 극심한 개인주의로 매몰되고 있다.문학적 상상력도 실종되고 있다. 은 당초 이러한 한국의 문학적 풍토를 일신하고자 하는 젊은 문학도를 발굴한다는 취지 아래 제정되었기 때문에 보다 새로운 패기와 도전정신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응모된 작품들의 수준이 기대에 못미쳐 본심에 회부하지 않기로 했다. 기존의 문학적 사고를 답습하여 어느 정도의 적당한 실력만을 갖춘 적당한 인재를 발굴하는 것은 오히려 이들의 안일함을 부추기는 경과만을 가져올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 추기> [생각과 느낌] 2004년 여름호에서 인용한 '마광수 문학론집' 중 '평폐론(評弊論)의 부분을 옮긴다.  요즈음 비평가들에게는 심금을 울리는 문학적 감동이란 우스운 것이고, 어떤 기발한 문체, 신기한 사건의 전개, 이상심리적인 주인공의 변태가 더 재미있고 가치가 있다. 그럴듯하게 수식해 놓은, 평론에는 도무지 맞지 않는 번드레한 문체가 이제는 우수한 평론 문체가 되어 버렸다. 평론은 실로 이제까지 가졌던 문장정신의 예언자로서의 고매한 영역을 떠나 언어적 유희로서의 상완(賞翫)의 지경에 이르고 만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평론 자체로서만 끝나면 괜찮겠는데, 그러한 평론들은 스스로의 궤변을 계속 고집해 나가려고 하기 때문에, 그 폐는 이만저만 큰 것이 아니다. 창작가들은 자연히 종당에는 평론가들의 눈치를 살피기 마련이며, 그러한 터무니없는 문학적 가치기준 위에서 글을 쓰게 된다. 그릇된 평론이 문학 자체와 독자들에게 주는 해는 보통 생각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크다.     
시의 초심 닦기 (1) / 위선환 (시인) 1) 한 작품에 많은 사연을 담지 말것. 한 편의 시가 전달하는 메시지는, 정서든 이미지든 하나여야 하고, 다른 모티프들은 그것이 뿜는 자장(磁場) 안에 들어 있어야 한다. 이때 시는 통일성을 얻는다. 2) 비유와 상징을 아낄 것. 비유는 아낄 수 있는 데까지 아껴야 오롯한 품위을 갖는다. 상징은 시인이 조립하는 것이 아니라 시의 숨결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어야 한다.  3) 긴 시를 경계할 것. 시의 참된 맛은 행간에 있다. 행간에는 침묵의 언어와 정서의 긴장이 깃들여 있다. 긴 시는 행간을 매립하는 위험을 안고 있다.  4) 시상을 풀어가는 수단으로써, 분명하게 몸으로 감촉할 수 있는 것들을 사용할 것. 불투명한 관념이나 감정을 시 비슷한 문법으로 채색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할 것  5) 정서의 결을 잘 다듬을 것. 몇 번의 침전과정을 거친 그리움이라면 슬픔 따위가 개운하게 세척된 상태라야 한다. 물기가 없이 잘 마른 상태라면 더욱 좋다.  6) 구문이 거추장스러운 것, 관형구나 부사구가 무거운 것은 금기다. 줄기가 가지를 지탱하기 어렵다. 관형어나 부사어가 상쾌하게 오려진 문장은 조촐하고 산뜻하다.  7) 시로 삶의 각성이나 잠언적인 의도를 노출시키지 말것. 시는 철학이 아니라 미학이다.  < 노트> [시안] 2002년 봄호에 실린 글을 축약해둔다. 시를 쓰면서 자칫 지나치기 쉬운 일들을 찬찬하게 지적해주었다. 두고 읽을만 하다.  < 추기> 다음은 평론가 박재열은 2001년 겨울호에서 멜로우 포에츄리의 예로서 다음 몇 가지를 들었다.  1)잠언이나 금언 경구 같은 것을 과다하게 사용하는 것  * 시인 황동규는 서정시학 2002년 여름호에서 어느 정도 성공한 아포리즘으로서 유머와 슬픔의 반경 안에 들어 있다고 평가되는 이정록의 "슬픔"의 전문인, '열매보다 꽃이 무거운 생이 있다'를 들어 보이면서 '그러나 이 멋진 아포리즘은 시의 근원인 노래에서 멀어지기 쉽다'고 지적한다.  2)대상 자체의 물질성이나 즉물성에 대한 깊은 통찰 없이 자신이 즐겨쓰는 시어에 의탁하여 통속적인 정서를 불러내는 것  3)이미 여러 시에서 도식화해 놓은 등장인물, 주제, 시적 언어들을 사용하는 것  4)도식적으로 소재를 인식하는 것, (양식화한 자연관, 이분법적 사고와 고식적인 태도를 포함한다)  < 추기>  .......그(윤동주)는 한 마디의 시어 때문에도 몇 달을 고민하기도 했다. 유명한 에서  어둠 속에서 곱게 풍화작용(風化作用)하는  백골(白骨)을 들여다보며  눈물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  라는 구절에서 '풍화작용'이란 말을 놓고, 그것이 시어답지 못하다고 매우 불만스러워한 적이 있다. 그러나 고칠 수 있는 적당한 말을 찾지 못해 그대로 두었지만, 끝내 만족 하지를 않았다. 위와 같이, 윤동주 시인의 연희전문 2년 후배인 정병욱씨가 1976년 23호에 발표했던 회고담 중 일부를 인용하면서. 강인한 시인은 "시의 어법이 결국은 합리적, 보편적 상식과 바른 문장 표현으로부터 출발한다" 는 점을 강조했다.(현대시 2002년 7월호)  < 추기> 시인 송수권은 자선시집 에 실은 배한봉 시인과의 "대담"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렇습니다. 시는 사유재산이고 비밀재산이에요. 그런데 대중을 상대로 유통언어를 얼마나 많이 뿌리는가요? 그런 시를 나는 '뽕짝조' 타령이라고 부르거든요. 그것이 카페정서지 민족정서라곤 볼 수 없어요. 대학 강단에선 언급도 안되는 시들이 바깥 세상을 얼마나 오염시키는가요. 베스트셀러 시집들의 속성이 그렇잖아요. 말초적 감각을 흔드는..., 그래서 잘 팔리는 시인들이 따로 있지요. 이런 현상은 저널리즘이 문제입니다. 아카데미즘이 아닌...., 시를 보는 눈이 천박한 독자 수준을 넘지 못해요. 문창과 신입생들에게서 이 유통언어를 걷어내는 데 1년이 넘게 걸려요. 또 사회교육원 시 전문반만 해도 뽕짝조에 물들어 자기 사적인 비밀언어를 무덤 쓰고 살아요. 시가 기본수준도 안되는 원인이 이 때문인 줄 모르니 여고생 때 썼던 시를 평생 쓰고 있는 우스개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지요.  < 추기> 시인 유용주의 다음 "고백"을 들어보자  참 부드럽고 아늑하고 겉보기에 풍성한 곳을 많이도 찾아 다녔다네. 사근사근 혓바닥에 구르는 당의정처럼 독이 더 많이 들어 있는 연애시의 마을, 자기가 쓰고도 무슨 말을 썼는지 모른 해독 불가능한 난해시의 패거리, 요설과 장광설 하나로 포스트모던의 적자임을 강조하는 외국 입양을 못해 안달하는 어린아이 같은 모임, 엄살과 광기로 얼룩진 반장들 동네, 공식을 만들어 놓고 언어를 조립하는 조립식 건축업자들의 단체, 한 수 가르쳐 주겠다는 도사풍의 시, 끊임없이 남의 시를 조금씩 베끼는 쥐새끼들의 시, 주제만 너무 주장하다가 그 주장에 치어 저도 감당하지 못할 말을 주저리주저리 동어반복하는 사람들까지 수없는 마을과 동네를 기웃거렸다네.  한때는 그 사람들과 들고나면서 만고풍상을 겪었지만 결국 문학이란 사람살이에서 오는 눈물겨움 아니던가. 잘 드러나지 않은 그늘의, 배면에 깔려 있는, 생명 있는 것들의 안쓰러움 아니던가. 모시고 섬기는 일에 너무 인색해. 모두들 자기가 제일 잘났다고 착각하는 것이지. 지금 말한 내 말도 내가 그런 과정을 거쳐 오면서 부화뇌동했다는 고백을 하기 위함일세.  - 서정시학 2002년 여름호  오늘의 우리 시를 읽는 대중들은 김소월을 뛰어넘지 못하는 소박한 수준임에 비추어 정지용 이상의 수준은 잘 모르겠다고 손사래를 칠 게 불을 보듯 뻔하다. 요즘의 대중들에게 인기 있는 시들을 한두 편 예로 들면 대체로 이런 부류의 시들이다.  ① 바다의 깊이를 재기 위해/ 바다로 내려간/ 소금인형처럼/ 당신의 깊이를 재기 위해/ 당신의 피 속으로 / 뛰어든 / 나는 / 소금인형처럼 / 흔적도 없이 / 녹아 버렸네  ② 그대를 만나던 날 / 느낌이 참 좋았습니다. // 착한 눈빛, 해맑은 웃음 / 한 마디, 한 마디의 말에도 / 따뜻한 배려가 있어 / 잠시 동안 함께 있었는데 / 오래 사귄 친구처럼 / 마음이 편안했습니다  ①은 류시화의 '소금인형' ②는 용혜원의 '함께 있으면 좋은 사람'이라는 시들이다. 그래도 류시화의 경우는 깊이 있는 명상을 동반하는 시이므로 나은 편이지만 용혜원의 경우는 사춘기 소년 소녀들을 겨냥한 얄팍한 감상주의의 옷을 입고 있으며 그것을 한 꺼풀 벗기면 에로틱한 연애편지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어느 글에선가 이승하 시인이 지적했듯이 류시화의 시는 이 땅의 현실이 완전히 제거된 신비주의적 명상 내지는 잠언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문제가 있고, 목사 시인인 용혜원의 시는 소녀적인 감상을 포장한 것이라는 점에서, 둘 다 상업적인 전략의 차원에서 쓰여진 시라 할 것이다  - 강인한 '시와 시인, 독자와 시의 거리'―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중에서  시는 언어예술이기에 시인은 말을 잘 부릴줄 알아야 한다. 또한 시는 진실을 추구해야 한다. 이른바 진정성을 확보해야 하는 것이다. 시는 새로워야 한다. 형식이든 내용이든 참신해야 한다. 그래서 기존의 시와는 다른 목소리와 모습을 지녀야 한다. 그런 것들이 또다른 시와의 변별성이며 개성이다. 그러기 위해서 시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끊임없이 새로운 언어의 모험을 해야 한다. 그 결과 얻어지는 것이 시의 독창성이며, 시의 진실이며, 시의 감동이며, 시의 진정한 모습으로 시를 시답게 하는 것이다.  - 제13회 신인상 심사평 중에서  딸의 신발이 작다고 신발을 벗기고 발가락을 자르는 아버지, 내 몸을 둘둘 말아 접시에 올려놓았더니 나를 집어 먹으려는 어머니, 몸이 기우뚱거리지 못하도록 아버지에게 자신을 쾅쾅 박아달라는 딸……. 그러나 여성시에 관한 한 이런 진술들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조말선의 시에는 박서원의 자기 신체 훼손, 노혜경의 카니발리즘, 김언희의 도발적 상상력 등 선배 여성시인들의 언어가 큰 변주 없이 한 집에 모여들어 있기 때문이다. 말의 낡음이 사유의 낡음과 무관하지 않다면, 언어의 답습은 적지 않은 결함으로 지적될 수 있다.  한국시에 관한 한, 서정적 경향의 시라고 분류되는 것에는 공통적으로 찾을 수 있는 부정적 측면이 존재한다. 대체로 자연친화적이고, 복고적이며, 전근대적 삶에 향수를 느끼고 있고, 세계의 불화나 갈등 보다 화해나 조화에 관심을 기울이며, 안이한 감상성에서 탈피하지 못한 점 등을 들 수 있다. 문단에서 여전히 주류를 점하고 있는 이러한 시들의 생산은, 정치적 현실로부터 독립성을 지키지 못했던 제도권 문학의 탓도 있지만, 최근 생태주의적 인식의 대두에 고무되어 목소리를 더 높이는 경향이 있다...안이한 서정시일수록 세계의 복잡다단함과 폭력성을 직시하기보다는 대상과의 합일이 가능하다는 사고에 기울어지는 추세가 있다. 그를 위해 순진무구한 자아를 설정하거나, 세계와의 합일이 가능한 시대나 지역이라고 생각되는 전근대 또는 문명화되지 않은 영역이 등장하는 경향이 한국 서정시에 빈번하다.  - 정문순 (다층 2002년 겨울호 '2002년 시를 점검한다' 중에서)  < 추기> 요즘 읽는 시들 중 많은 것은, 비록 말장난의 시라도 말할 수 없는 것까지도, 표현이라는 개념도, 대화라는 개념도 없다. 중언부언 도대체 요령부득인, 그래서 안이하고 탄력없는 시가 새로움이란 가면을 쓰고 난무한다.  - 신경림, 시집에 실은 '시인이라 무엇인가' 중에서  다음은 시의 문장에 관한 이희중의 글이다.  시에 쓰이는 문장이 모두 통사적으로 완벽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은 까다롭다. 그러나 원칙적으로는 그래야 한다도 대답할 수밖에 없다.일상의 말도 마찬가지이지만, 자명하게도 시가 요구하는 통사적 완성은 표현을 제약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확한 전달을 위해서 요청된다. 시인은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정확히 표현할 통사구조를 구하지 못했을 때, 또는 정확한 전달을 원하지 않을 때, 통사적 완성을 포기할 수 있다. 이때 시인은 이를테면 도박을 하고 있는 셈이다. 아무도 깊은 뜻을 눈치채지 못할 때도 생기므로.  < 추기> 다음은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2003년 3,4월호에 실린 평론가 이재복의 글이다.  요즘 젊은 신인들의 가증 큰 특징 중의 하나가 바로 시어의 요설과 사설이다. 언어를 응축하고 갈고 닦아 가려서 조금씩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안에 있는 생각들을 가감없이 밖으로 쏟아내는 것이 하나의 유행처럼 되어 버린지 오래다. 시적 환경의 변화가 그 이유일 것이다.  모든 것이 불확정적이고 파편화 되어가는 시대에는 오히려 이런 식의 어법이 더 적절할 수 있다. 그러나 시어의 요설과 사설로 인해 고전적인 시의 양식이 가지는 응축과 균형의 묘미를 잃어감으로써 운문의 참맛을 느낄 수 없게 된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 추기> 다음은 산문집 에 있는 최하림의 말이다.  명사나 동사, 형용사만을 중시하지 말아라. 현 편의 시에서는 토씨도 명사나 동사 이상으로 율조에 큰 역할을 하며 울림에 크게 기여한다.  < 추기> 다음은 평론가 이형권이 쓴 김선태시 의 리뷰에서 발췌했다. 따라서 인용된 시는 모두 같은 책에 실린 김선태의 시이다.  1)오호라, 지천으로 지천으로 물이 올라, 어디를 가도 한참은 정신이 몽롱한 남도의 봄 연애사태여, 그리하여 나도 대지 위에 벌렁 누워 뒹굴고 싶은 아흐, 더는 참을 수 없는 봄의 오르가슴이여 ("봄의 오르가슴' 부분)  사실 감탄사는 모더니즘의 세례를 받았거나 그 영향권 내에 있는 시인들에게는 경계의 대상이다. 감탄사는 명징한 이미지를 형상화하거나 지적인 인식에 이르는 데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남발되는 수준이 아니라면 감탄사는 낭만적 감정이나 서정적 영감을 드러내는 데 여간 유요한 게 아니다. 이 시에서 사용된 감탄사 '오호라'와 '아흐'는 시상을 고양하여 여운은 길게 늘어뜨리는 데 긴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2)딱따구리 소리 또 한 번 딱따그르르/ 숲 전체를 두루 울릴 수 있는 것은/ 숲의 나무와 이파리와 공기와 햇살/ 숲을 지나는 계곡의 울음소리까지가 서로/ 딱, 하나가 되기 때문이다 ("딱따구리 소리" 부분)  '딱'은 의성어이자 의태어이다. 새가 내는 소리의 한 부분으로 들을 때는 의성어이지만,아귀가 잘 드러맞는다는 뜻으로는 의태어 구실을 한다. 이것은 일종의 음성상징어로서 '숲 전체'를 구성하는 것들인 '나무와 이파리와 공기와 햇살' '물소리'등이 '하나'로 조화된 국면을 형상화하는 데 적잖은 효과를 발휘한다.  3)마음은, 지금, 어느, 남쪽, 섬, 기슭, / 한, 마리, 갯고동, 처럼, 엎으러져, 있어라("마음의 거처" 전문)  불과 12단어(혹은 어절)로 구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쉼표가 11개나 사용되었다. 이 쉼표들은 시의 중심 매타포인 '갯고동'의 생리를 적실히 드러내는 데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쉼표가 일반적인 용법에서 벗어나 시상의 흐름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 추기> 다음은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2003년 5,6월호에 실린 정한용의 글 중 부분이다.  '깊은 어둠 속에서 힘차게 빨아들이던 희망/ 돌밭에 뿌리 드러내고 아침처럼 서 있는 나무/텅빈 허공을 향해 힘차게 뻗어가는 헛된 뿌리/ 날선 빛들로부터 얻은 굳은 상처/'  (시의) 각 시행이 거의 전편에 걸쳐 수식어구와 피수식어로 이루어져 있어 답답하다. 이런 수식은 시인이 대상을 묘사하면서 자의식에 지나치게 사로잡힌 데에서 오는 오류이다. 수식이 많으면 많을수록 상상이 풍부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독자의 감상폭을 옥죄는 감옥이 된다.  < 추기> 다음은 [시와 사람] 2003년 여름호에 실린 신인작품심사평의 일부이다.  이상하게도 비슷비슷한 시들이 많다. 곁보기에는 매끈하게 만들어져 있는데 알멩이가 없고, 무슨 소리를 하고 싶어 하는 것인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여기에는 대학안팎의 각종 시창작강의의 영향이 없지 않은 것 같다. 어떻게 쓸것인가는 배워서 아는데 무엇을 쓸것인가가 미처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에 대들어 이렇게 되는 것일까? 요컨데 억지로 만든 시에 삶의 무게가 실릴 턱이 없다.  < 추기> 다음은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2003년 7,8월호에 실린 이승훈시인의 말이다.  따지고 보면 시는 그렇게 많은 말이 필요한 것이 아니고 무슨 관념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고 중심낱말을 반복하고 혹은 변주하는, 그러니까 결국은 동어반복의 세계이다. 최근의 우리의 시가 재미없는 것은 이런 미학에 대한 공부를 제대로 안하고 무슨 말들만 많이 하면 시가 되는 것으로 착각하기 때문이다. (이승훈 시인은 이 글에서 '낱말을 반복하라', '구와 절을 반복하라', '문장과 연을 반복하라',는 소제목을 붙였다)  < 추기> 다음 두 글은 [시안]2003년 가을호에 실린 신인상 심사평이다.  세련된 언어감각은 정확성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사유나 감정이나 관찰이 매우 섬세하고 정확하지 않다면 그것을 드러내는 언어는 허술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시는 막연하고 모호한 것이 아니다. 시에서 인정되는 애매모호함이란 것도 실은 단순하게 드러낼 수 없는 의미나 느낌의 실체를 가장 정확하게 드러내는 한 방식이 되어야 한다. 시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언어를 세공하고 조탁하려는 큰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고, 이는 곧 사유와 인식의 정확함을 높이는 노력이 될 것이다.(이남호)  시를 쓰는 것은 일종의 창조행위다....따라서 시를 구성하는 데 다른 사람들이 한번은 써먹었음직한 상식적 언술의 사용은 피하는 것이 좋다.  작품중에는 산문체시를 즐겨 사용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이 유행처럼 관례화되어 시의 긴장감과 응축성은 고려하지 않은 채 무작정 행 구분을 하지 않고 산문시 스타일로 이어가는 것은 병폐라 아니할 수 없다.  형식의 절제가 필요하다. 긴 시행은 반으로 줄이고 시행의 수도 삼분의 이로 줄여보라. 시는 서정이지 서사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하고 시상의 포인트를 중심으로 잔가지를 쳐내는 훈련을 해야 한다. 라든가 등의 과거형 어사를 남발하는 것도 시의 긴장감을 떨어뜨린다.(이숭원)  < 추기> 다음은 월간 [현대시] 2003. 10월호에 실린 이은봉 시인의 말이다. 시인은 프로시인을 대상으로 말하고 있지만, 구태여 프로시인에게만 한정되는 말이 아닐 것이다.  진정한 프로시인은 절제된 가운데 내용과 형식이 일치하는 시를 쓰는 사람입니다. 그러한 시를 쓰려면 무엇보다 시인이 저 자신의 고유한 언술방식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누가 읽어도 누구의 작품인지 곧바로 알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지요. 가령 신경림 시인이나 고은 시인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703    시는 운률도 적절히 살리고 여백의 미도 적당히 활용할줄도... 댓글:  조회:2259  추천:0  2017-09-07
새로운 시와 지루한 시  이 승 하 (시인, 중앙대 교수) 내용의 측면에서건 형식의 측면에서건 새로운 구석이 조금도 없는 시를 읽으면 지루해짐을 넘어 고통을 느끼게 된다. 구태의연한 시는 상상력의 빈곤을 말해줄 따름이다. 하지만 새로움이 시의 진정성을 무시한, 이를테면 실험을 위한 실험이라면 그것은 언어 유희요, 새로움을 가장한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젊은 시인 중에는 재기 발랄함을 빼면 아무 것도 남지 않는 이가 꽤 된다. 물론 재기 발랄함만을 갖고 있다 해도 큰 재산이기는 하겠지만. 부지불식간에 몸이 나뒹굴려져 아리고 아린 갖가지 삶의 고리를 엮듯 몸을 질질 끌어 공간을 지우는 섬뜩한 경계 없음의 퍼포먼스 선명한 경계를 세우며 휘두른 후리채에 맞고 나가떨어진 파리, 모기, 하루살이, 거미, 때로는 길을 잘못 든 귀뚜라미의 육신을 보며, 그 박살난 몸뚱이를 보며, 또한 나는 경계를 허물지 못했던 매 순간을 탓하며 진정, 아리게 바닥에 나뒹구는 몸. 죽음을 당기고 있는 생의 순간들이 저릿저릿하게 바닥을 긋는 선, 지울 수 없는 궤적이 파인다. 대단원의 피날레에 사선이 그어진다. ―김광기, 「스키드 마크」전문 김광기 시인의 등단 지면을 나는 모른다. 동국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를 나왔다고 하나 학부는 어디를 나왔는지 모른다. 나는 이 시인의 시를 이번에 처음 보았는데 흥미로운 요소가 있어 논해 보고자 한다. 스키드 마크(skid mark)는 자동차가 급브레이크를 밟았을 때 옆으로 미끄러지면서 차도에 남겨지는 자국이다. 제일 앞 4행을 읽고 나는 고속도로상에서의 사고를 연상했다. 차는 완전히 구겨진 종이조각처럼 되고, 사람의 몸은 도로상에 나뒹굴거나 차체에 질질 끌려간다. 마치 후리채(파리채?)를 맞고 나가떨어진 파리나 길을 잘못 들어 몸이 박살난 귀뚜리처럼 말이다. '경계'란 무엇일까? 삶과 죽음의 경계, 살아 숨쉬는 육신과 박살난 몸뚱이와의 경계, 육과 영의 경계……. 뭐 이런 상대적인 것 사이의 경계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이 둘 사이의 경계는 눈 깜짝할 사이에 엇갈리기도 한다. 그 시간에 졸지 않았더라면, 그 시간에 승선하지 않았더라면, 그 시간에 그 자리에 있지 않았더라면……. 살 사람이 죽고 죽을 사람이 산다. 그런데 스키드 마크는 그 사건의 일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증언할 수 있다. 인간의 자력으로, 혹은 자의로 그 경계를 허물지는 못한다. 그 경계는 운명의 힘이 관장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경계를 관장하지 못하기 때문에 '아치!'하는 순간에는 이미 "아리게 바닥에 나뒹굴"게 된다. 시인이 이해한 스키드 마크는 "죽음을 당기고 있는 생의 순간들/저릿저릿하게 바닥을 긋는 선"인데 아뿔싸! 사고가 나버린다. 지울 수 없는 궤적이 파인다. 이 시에서 가장 돋보이는 부분이다. 생의 순간들이 죽음을 당기고 있다는 표현도 절묘하지만, "저릿저릿하게 바닥을 긋는 선"이라는 시행에 이르러서는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대단원의 피날레에 사선이 그어진다"는 것은 끔찍한 교통사고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것이 바로 스키드 마크라는 뜻이리라. 이 시의 소재는 당연히 스키드 마크이고, 주인공도 '나'라기보다는 스키드 마크인 듯하다.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쓴 시인가 다소 막연하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특이한 소재를 다루는 솜씨를 높이 사주고 싶다. 떠벌이 복서 무하마드 알리가 죽음의 링에서 그 집을 발견했다 맞고 터지고 정신을 잃다 보면 들어가 쉬고 싶은 방문이 보인단다 나, 지금 그 앞에 와 있다 ―김형수, 「혼몽(昏 )의 집」앞부분 이 시의 강점은 흡입력이다. 처음 3연을 읽어보고 흥미를 느끼면서, 곧바로 그 다음이 읽고 싶어진다. 무하마드 알리는 맞기보다는 나비처럼 날아가 벌처럼 쏜(때린) 복서이지만 어쨌든 많이 맞았기에 노년에 들어 병고에 시달리고 있다. 복서가 다운을 당했을 때 무엇을 보았을까 하고 시인은 생각해보았다. 그것을 가리켜 '혼몽의 집'이라 하고는 상상력을 마음껏 펼쳐본다. 시대의 슬픈 관능 위에서 더불어 궁핍했던 지상의 촉수(觸手)들아 아프고 병든 인간들의 극장에서 맹인가수처럼 우리는 노래했다 세상의 혼란과 사랑의 목마름을 저 완강한 삶의 공허 앞에 주저앉은 사람을, 인생을, 이별을 이제 목도 쉬고 듣는 이도 없다 나도 들어가 편하게 눕고 싶다 ―「혼몽(昏 )의 집」가운데 부분 시는 제 4연으로 접어들면서 아연 분위기를 바꾼다. 제 4연은 지나치게 관념적이고 엉뚱하다는 느낌이 들기는 하는데, 가운데 4개의 연을 보면 시인이 떠벌이 복서 무하마드 알리를 노래하고자 이 시를 쓴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우리'가 노래한 장소는 아프고 병든 인간들의 극장이었고, 우리는 "저 완강한 삶의 공허 앞에/주저앉은 사람"을 맹인가수처럼 노래했다. 우리는 혹 시인이 아닌가? "세상의 혼란과 사랑의 목마름"을 노래하는 음유시인. 그런데 이제 나도 우리도 늙고 지쳤다. 들어가고 싶지 않았던 혼몽의 집에 거하고 있는 것이다. 떠벌이 복서 알리도, 가수도, 나도, 우리도……. 상대방의 펀치를 맞았건 세상의 뭇매를 맞았건 늙음 앞에 장사일 수 없다. 시는 이렇게 끝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무하마드 알리가 링 위에 누우며 했던 말을 떠올린다 너를 먼저 보내고 싶었는데 내가 와서 이렇게 기다리는구나 마지막 연이 알리가 링에 누우면 했던 말인 것 같지는 않다. 의문이 드는 것은 '너'가 누구냐 하는 것이다. 구태여 해석을 해보자면 너는 혼몽이 아닐까. 알리에게는 혼몽이 많이 맞아서 온 것이겠지만 화자에게는 나이를 먹어가면서 느껴지는 것. 평자는 시의 마지막 연을 되새기는 동안 자꾸만 백발가가 떠올랐다. 『시와반시』 이번 여름호가 배출한 2명의 시인의 시는 대체로 길다. 김산옥의 「영산홍」이 제 1연 11행, 이세경의 「봄길」이 제 6연 9행, 「冬眠」이 제 7연 10행으로 되어 있어 비교적 짧을 뿐, 20행이 넘는 시가 대부분이다. 시가 길다는 것이 흠이 될 수는 없다. 그런데 시가 시종일관 뻣뻣한 산문 문장으로 되어 있다면, 즉 운율이 전혀 배어 있지 않은데 길기까지 하다면 문제가 있다. 두 분은 이제 갓 등한한 신인이니까 앞으로 좋은 시, 혹은 시다운 시를 쓰면 된다. 등단작 중 2편을 예로 들어 조언을 좀 하고 싶은데, 너무 기분 나빠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가 횡단보도를 건넌다 다리를 벌리고 어기적어기적 그가 걷는 것만 봐도 어디가 아픈지 어디서 진물이 나는지 병원에 가서 어디를 수술받고 왔는지 대번에 안다 그는 최대한 빨리 걷지만 제일 느리다 그는 부산하게 움직이지만 제일 굼뜨다 그가 보도블록을 걷는다 다리를 최대한 벌리고 느릿느릿 붙었다 떨어지는 보도블록 기울어져 벌건 국물을 토해낸다 몸이 자꾸 기울어진다 이쪽저쪽으로 무게가 표나게 옮겨다닌다 그는 뛰지 않는다 아무 데나 앉지 않는다 그가 다리를 벌린 채 걸음을 멈춘다 함부로 내려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두리슈퍼 평상 위에 방석을 놓는다 엉덩이를 뒤로 빼고 엉거주춤 한참 생각한다 천천히 자세를 바꾸고 손으로 평상을 짚는다 그가 조심스레 방석에 앉는다 은행잎 한 장 그보다 먼저 장기판에 앉는다 그는 상처를 모시고 다닌다 거기에 집중한다 ―김산옥, 「대장」전문 국군간호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육군 대위로 전역한 김산옥 시인이기에 이 시는 상고나 중 한 사람이었던 어떤 대장을 형상화해 본 시인 듯하다. 대장의 행동거지를 꽤나 자세히 묘사하고 있는데, 그럼으로써 독자는 대장의 성격까지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이 시는 참으로 지루하다. 제 2행 "다리를 벌리고 어기적어기적"에서부터 제 3행 "대번 안다"까지가 제법 긴 문장일 뿐 비교적 짧은 문장이 계속 이어지는데, 그 숫자가 무려 19개이다. 19개의 무미건조한 문장이 나열되어 있으니 얼마나 지루한가. 특별한 사건도 없고 감칠맛 나는 묘사도 없다. 직설적인 직유도 은근한 은유도 없다. 一言以蔽之왈, 시가 이래서는 안 되는 것이다. 소월과 영랑, 미당과 백석의 시를 보라. 우리말도 잘 살아 있지만 이들의 시에는 은밀히 숨어 있는 운율이 은은한 향기를 풍긴다. 그래서 시인 것이다. 「대장」은 산문의 나열이지 시라고 봐주기 어렵다. 그는 숲에 앉아 있다 시커먼 불판에 가리워진 참나무 숯불이 숨어서 지는 밤 투명하고 맑은 소줏잔을 부딪치면서도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사람들 그늘 속에서, 말이 없다 뭉턱뭉턱 덤으로 잘려 나온 선명한 붉은 간, 기름장에 찍으며 맥없이 웃어도 보지만 독을 숨긴 간사한 방울뱀의 혀를 가져보지 못했거나 하늘로 오르는 동아줄 스쳐본 적도 없이 길고 지루한 회식 상 맨 끄트머리에서 또 말이 없다 세상이 내민 손 잡을 줄 모르는 게 아니었으나 이 숲을 벗어나 동네 어귀에 다다를 쯤이면 아이들에게 줄 몇 마리의 붕어빵, 그 온기가 소록이 손에 닿을 때마다 외등으로 서성이는 푸른 별빛이 늘 고개 숙인 가슴에 스몄던 것이다 ―이세경, 「황소고집, 숯불구이」부분 연 구분 없이 총 34행으로 되어 있는 시인데, 제 1∼23행을 적어 보았다. 이 시의 등장인물들은 "길고 지루한 회식 상"에서 숯불구이를 먹고 있다. 주인공 격인 '그'는 아이들에게 몇 마리의 붕어빵을 사줄 정도로 착실한(?) 가장이다. 시의 내용으로 보아 가장은 꽤 소심하다. 독자는 전형적인 소시민이 회식 자리에서 말없이 숯불구이를 먹고 있는 장면을 연상하면 된다. 그런데 문제는 시의 문장이다. 제 8행 "뭉턱뭉턱 덤으로 잘려 나온"부터 시작되어 제 15행에서 한 문장이 끝난다. 무려 여덟 개의 행이 한 문장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 다음 문장도 마찬가지로 길다. 제 16행부터 23행까지 역시 여덟 개의 행이 한 문장을 이루고 있다. 행을 나누어 두어 시처럼 보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시가 아니다. 라 풍텐의 우화시에도 리듬이 숨어 있고 투르게네프나 정진규의 산문시를 봐도 외양이 얼추 산문 같지만 그 속에는 리듬이 담겨 있다. 시의 문장을 맺고 끊는 맛이 있어야 하는데 길고 긴 문장이 중첩되는 이런 시는 내용을 음미하기 이전에 형식이 맛을 완전히 죽여버린다. 두 사람이 이런 시답지 않은 시를 쓴 데 대해 비난을 할 수도 없다. 중견, 원로 시인들도 이런 식으로 문장이 축축 늘어지는 시를 쓰고 있기 때문에 '배운 대로' 쓴 것일 따름이다. 하지만 심사평에서 이런 점에 대해 지적을 좀 했더라면 어땠을까. 오늘날 독자들이 시집을 사 읽지 않는 데는 이런 이유도 있는 것이다. 시가 도무지 시 같지 않은데 무엇을 느끼겠다고 시집을 사본단 말인가. 베스트셀러 시집을 내는 사인방 류시화·용혜원·원태연·이정하의 시집을 보면 내용은 제쳐두고라도 감칠맛 나게 말을 구사할 줄 안다. 운율을 적절히 살리고 여백의 미를 적당히 활용하기에 적어도 외양으로는 시에 가깝다. 정통문학권에서 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는 정호승·안도현·김용택·나희덕 네 시인의 시집을 봐도 마찬가지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눈으로 보아도 음미가 가능하고 입으로 낭송하면 더욱 시의 맛과 멋을 느낄 수 있기에 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다. 신인의 등단작을 갖고 타박하여 미안하지만, 우리 시의 앞날이 밝게 느껴지지 않아 고언을 한 것이니 이해해 주시기를.    
702    "문단의 이단아" 마광수님은 항상 "자유인"이 되고싶어 했다... 댓글:  조회:2175  추천:0  2017-09-07
[라이브 이슈] ‘즐거운 사라’ 필화로 우울증 겪다 떠난 ‘광마’ 마광수 [앵커] 즐거운 사라로 널리 알려진 마광수 전 연세대학교 교수가 어제 숨진채 발견 돼 충격을 줬습니다. 필화사건으로 우울증을 앓아왔다고 하는데요. 자세한 소식 스포츠문화부 장보경 기자와 알아보겠습니다. 장 기자, 어서 오세요. 어제 오후 갑작스러운 소식이었는데요. 자세한 소식을 좀 전해주시죠. [기자] 네, 어제 오후 1시 51분께였는데요. 마광수 전 연세대 교수가 자택인 서울 용산구 동부 이촌동의 한 아파트에서 숨져 있는 것을 이웃집에 살고 있는 가족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경찰에 따르면 베란다에 넥타이로 목을 맨 상태로 발견이 됐고 집에는 유산과 시신처리를 가족에게 맡긴다는 내용의 A4 1장짜리 유서도 발견됐습니다. 경찰은 이 유서는 지난해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고인은 1985년 결혼했다가 5년 뒤 이혼했고 자녀는 두지 않았습니다. 재작년 모친이 사망한 후에는 가사 도우미와 함께 지내왔는데요. 도우미가 정오에 집을 비운 사이, 숨진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앵커] 여러 정황상 마 전 교수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이는데요. 우울증을 앓아 왔다고요? [기자] 네, 그렇습니다. 마광수 교수는 1992년 즐거운 사라로 실형을 받는 등 필화사건을 겪은 뒤 우울증을 앓아왔다고 합니다. 마 전교수가 자주 했던 말 중에 하나는 ‘억울하다’, ‘답답하다’ 였다고 합니다. 자신의 소설 즐거운 사라보다 더 거침없는 다른 작품들이 있었는데, 자신이 표적이 되었다라는 억울함과 답답함을 내내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이 필화 사건을 겪은 후 정신적으로 매우 힘든 상황에 빠졌고 우울증으로 지속적으로 약을 복용해왔다고 합니다. 또 지난해 8월 정년퇴임을 했는데, 필화 사건으로 해직을 당하면서 자격 요건을 갖추지 못해 명예교수도 되지 못했습니다. 이에 따른 허탈함도 많이 토로해왔다고 합니다. [앵커] 장 기자가 언급한대로 마광수 교수는 1992년 즐거운 사라 필화 사건으로 대중에게 각인이 되었는데요. 어떤 사건이었습니까. [기자] 아마 시청자 여러분 역시 ‘즐거운 사라’는 익숙할 것입니다. 즐거운 사라는 사라라는 여대생의 자유분방한 성생활이 주된 내용입니다. 1992년 10월 마광수 교수는 강의 도중 경찰에 연행돼 구속됐습니다. 당시 죄목은 음란문서 유포였는데요. 바로 이 음란문서로 분류 된 것이 소설 즐거운 사라였습니다. 이 사건으로 마교수는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고요. 이 책 즐거운 사라는 문화부가 판매를 금지했습니다. 마교수는 1998년 3월 김대중 정부에 의해 사면 복권 됐지만 소설 즐거운 사라는 현재까지도 판매 금지 상태입니다. 즐거운 사라 사태는 당시 예술과 외설의 경계에 대해 논의를 촉발시키는 일대 사건이었습니다. 실제로 외설스러운 소설을 썼다는 이유로 저자가 구속된 세계 최초의 사례이기도 했습니다 [앵커] 이 책이 대체 어떤 내용이 담겨있길래 이런 논란이 있었는지 궁금한데요? [기자] 여성관에 대한 논란이 있었던 안경환 전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이 작품에 대해 엄격한 검증의 잣대를 들이댔던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안 전 후보자는 1994년 2월 ‘즐거운 사라’에 대한 음란물 제조 혐의 항소심에서 재판부에 “헌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문학작품의 수준에 미달하는 음란물”이라는 감정서를 제출했습니다. 당시 검찰과 변호인 측이 중립감정인으로 공동 선임한 안 전 후보자는 이 작품에 대해 “통상적인 성인 독자의 기준으로 판단할 때 예술적 가치가 없는 음란물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밝혔는데요. 특히 ‘문학적, 예술적, 정치적, 사회적 가치가 없는 법적 폐기물’, ‘하수도의 무대에 머물러야 마땅한 작품’이라는 격한 단어를 쓰며 혹평했다고 합니다. [앵커] 사실 마광수 교수는 사실 오랫동안 저작활동을 해온 인물인데요. 즐거운 사라 논쟁에 다른 부분이 함몰된 느낌입니다. 마 교수에 대해서 좀 더 알아보고 싶은데요? [기자] 네, 마광수 교수가 박사학위를 받은 것은 소설이 아닌 시에 대한 연구였는데요. 윤동주 시인에 대한 연구였습니다. 어떤 평론가들은 ‘우리 나라에서 윤동주 시인에 대해 가장 정통한 인물이 마광수 교수다’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합니다. 마 전 교수는 천재로 불리며 28살에 홍익대 교수로 처음 강단에 섰고요. 1984년부터는 모교인 연세대학교에 부임했습니다. 하지만 10년도 되지 않아 즐거운 사라 사건이 터졌습니다. 마광수 교수의 대표작은 1990년대 소설 ‘광마일기’와 시집 ‘가자 장미여관으로’, 에세이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등이 있는데요. 필화 사건 이후에도 작품활동을 했지만 자기검열 탓에 과거처럼 적극적이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여 사건 이전 작품들이 대표작으로 남아있습니다. [앵커] 마 교수는 사실 즐거운 사라 외에도 크고 작은 사건에 많이 휘말린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기자] 네, 2007년에 개인 홈페이지에 ‘즐거운 사라’를 비롯한 음란물을 올린 혐의로 벌금 200만원에 약식기소됩니다. 당시 마 교수는 항소하지 않았는데요. 또 같은 해 제자들의 시를 거의 그대로 본인의 시집에 실어 물의를 빚기도 했습니다. 2011년에는 자신의 원작을 각색한 연극 의 언론 인터뷰에서 “젊은 사람 중에 나보다 야한 작가나 시인이 없는 게 안타깝다”고 밝혀 논란이 됐습니다. 당시 본인을 전과 2범에 감옥을 가고 학교를 두번이나 잘렸다고 소개한 마광수는 “제2의 마광수가 나오지 않는 게 아쉽다”고 언급했습니다. [앵커] 대담한 성담론을 꺼내놓은 마 교수의 작품들의 의의를 따져본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기자] 마광수 교수가 생각하는 문학의 가치는 물론 좀 남다른 부분이 있었습니다. 본능적인 욕망과 욕구를, 문학으로 상상하게 해서 읽는 독자들이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이들도 있었는데요. 특히 1989년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를 발표하면서 우리 사회에 문화적 충격을 주기도 했지만 이 시대의 가장 독창적인 작가로 자리매김합니다. 또 2013년에 즐거운 사라를 새로 펴내면서 적은 저자 소개글을 보면 그가 스스로 생각했던 자아가 어떤 것이었는지 대강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아무리 나이를 먹더라도 죽어도 ‘나이값’은 안 하겠다는, 그래서 마음만은 언제나 ‘야한 상태’로 있겠다는 괴짜 시인이자 소설가, 대학교수라고 본인을 소개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항상 자유인으로 살아가며 ‘이중적 위선’에 맞서 싸우는 문화운동가”라고 적혀있는데요. 저는 이 지점이 마 전 교수가 항상 스스로 논란의 중심에 서면서도 외로움을 느낄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파악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앵커] 네, 그렇군요. 문단의 이단아라는 표현을 쓰는 사람도 있던데, 고인의 명복을 빌겠습니다. 잘 들었습니다. ///연합뉴스TV  (끝) =================     지난 1월 중앙SUNDAY와 인터뷰했을 때의 마광수 교수. 이미 그때도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한 시대를 상징했던 또 하나의 영웅이 퇴장했다. [중앙포토] ‘마광수’가 죽었다. 외람되게도 부고에서 이름 석 자만 쓴 것은 마광수라는 이름이 우리의 한 시대를 상징하는 기호였기 때문이다. 소설가 김연수가 “대뇌의 언어로 말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성기의 언어로 말하던 시절”이라고 회고했던 1990년대 들머리, 마광수는 스스로 시대를 드러내는 아이콘이었다.   유언장 남기고 자택서 숨진 채 발견 92년 『즐거운 사라』 책 냈다 구속 평소 “한 여자 때문에 인생 망쳤다” 98년 복권 뒤 작년 연세대 정년퇴임 2000년에 “우울증 앓고 있다” 고백 ‘여성에 성 주체성 부여’ 평가도 명문 대학 교수가 “야한 여자가 좋다”고 떠들고 다녀서, 또는 “장미여관으로 가자”고 뭇 여성을 꾀어서 마광수에 열광했던 것은 아니다. 고지식하고 점잖은(혹은 그러한 척만 하는) 사회와 혼자만의 방식으로 맞짱을 뜬 혈혈단신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응답하라’로 시작하는 TV 드라마가 동화처럼 어여쁘게 그려낸 그 시절, 마광수는 문화 게릴라였고 민주화 투사였다. 마광수를 기억하는 세대에게 그의 황망한 부고는 씁쓸하다. 하필이면 페미니즘 열기가 뜨거운 즈음이어서 얄궂다고 할 수도 있겠다. 이렇게 또 한 시절이 모퉁이를 돌아갔다.   ◆유언장 남겨=5일 서울 용산경찰서에 따르면 마광수 전 연세대 국문과 교수는 서울 동부이촌동 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이 낡은 아파트에서 20년 넘게 살았다. 경찰은 “목을 맨 것 같다. 오후 1시51분쯤 현장에 도착해 보니 이미 숨진 상태였다”고 전했다.   마 전 교수의 방에서 지난해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A4 용지 한 장 분량의 유언장이 발견됐다. 유언에는 재산을 이복 누나에게 부탁한다는 내용이 담겼다고 한다. 그는 오랜 세월 어머니와 둘이서 살았다. 어머니는 지난해 돌아갔다.   경찰은 마 전 교수가 지난해 8월 정년 퇴임한 뒤부터 우울증 증세를 보였다고 발표했지만 그의 병력은 오래됐다. 2000년에도 그는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을 앓고 있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그때도 그는 심하게 낯을 가렸고 손을 떨었다.   퇴임한 뒤에는 생활고에 시달렸다. “연금을 받고 있지만 집안일을 봐주는 아주머니에게 월급을 주고 나면 남는 게 없다고 투덜댔다”고 한다. 출판사도 더 이상 원고 청탁을 하지 않아 그는 틈틈이 그렸던 그림을 팔려고 내놨다. 그러나 화랑에서도 마광수는 외면당한 이름이었다.   그는 지난해 본지 인터뷰에서 “중간에 8년을 놀아(교수직에서 해임됐던 기간) 연금도 얼마 안 된다”며 “외로운 독거노인”이라고 신세 한탄을 하기도 했다. 그는 올해 예순여섯 살이었다.   ◆야한 여자 사라=지금은 뜨악해할지 모르겠다. 마광수가 ‘야한 여자론’을 들고 나온 80년대 끄트머리 여성운동가 상당수는 여성운동의 하나로 길거리에서 담배를 물었다. 민주화 열기가 문화 영역으로 확장되던 시절이었다. 마광수는 바로 그 시대의 아이콘이었다.   89년 1월 발표한 에세이집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로 그는 유명 인사로 떠올랐다. 대가도 혹독했다. ‘프리섹스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니 프리페팅을 즐기자’는 식의 주장은 여성을 성의 도구로 인식한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비난 여론이 들끓자 그는 전공과목 강의에서 배제됐다.   생전의 마광수는 “한 여자 때문에 인생을 망쳤다”고 여러 번 얘기했다. 그의 인생을 망친 여자가 ‘사라’다. 마광수는 92년 여대생 사라의 문란한 성생활을 다룬 소설 『즐거운 사라』를 발표했고, 그해 10월 29일 음란물 제작 및 배포 혐의로 『즐거운 사라』를 발간한 ‘청하’ 출판사의 장석주(62) 당시 대표와 함께 구속 수감됐다. 두 달 만에 집행유예로 풀려났지만 대학에서는 쫓겨났다. 장 전 대표는 “감옥에 갔다온 뒤 회복할 수 없어 출판사를 정리했다”고 말했다.   98년 그는 사면 복권됐다. 대학에도 돌아갔고 『즐거운 사라』도 재출간됐다. 그러나 시장의 반응은 냉담했다. 마광수가 죄인이었던 시절 『즐거운 사라』가 일본에서 번역 출간됐다. 일본에서 『즐거운 사라』는 8만 부 이상 팔렸다. 그러나 “표현 수위에 실망했다”는 독후감이 대부분이었다.   ◆우리들의 우울한 영웅=마광수는 2005년 ‘13년 만에 내놓은 야한 소설’이라는 요란한 광고 문구와 함께 소설 『광마잡담』을 발표했다. 그러나 기대 이하였다. 소설은 야하지 않았다. 표현의 수위나 상상력의 문제가 아니었다. 마광수에 따르면 ‘야하다’는 표현은 일탈과 모반의 기운을 동반해야 했다. 소설은 다만 음란할 뿐이었다.   마광수가 변한 것은 아니었다. 변한 것은 사회였다. 젊은 여성의 반짝이는 긴 손톱에서 성적 상징을 읽어냈던 90년대 초입 마광수는 ‘변태’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네일아트는 젊은이들의 지배적인 문화 코드가 된 지 오래다. 아무도 섹스를 말하지 않던(또는 못하던) 시절이어서 마광수는 야했다. 2007년 그는 제자들의 시를 거의 그대로 제 시집 『야하디 알라숑』에 실어 물의를 빚기도 했다.    DA 300   올해는 시인 마광수가 등단한 지 40주년이 되는 해다. 그는 77년 청록파 박두진의 추천으로 등단했다. 마광수는 국내 윤동주 박사 1호이기도 하다. 83년 윤동주 연구로 박사 학위를 땄다. 마광수는 올 1월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나와 윤동주 모두 솔직한 시인”이라고 말했다.   마광수는 한국 문학 최초로 여성에 성 주체성을 부여한 작가였다. 90년대 여성단체 대부분이 마광수를 비난했지만 검찰은 사라가 끝내 도덕적으로 반성하지 않았다며 유죄를 주장했다. 무엇보다 그는 한국의 지식인 사회가 거대 담론에서 허우적거릴 때 개인의 가장 내밀한 욕망에 관해 발언했다.   마광수를 시대를 앞서간 지식인이었다고 기억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마광수는 죽기 전까지도 야한 여자를 찾았다. 그는 다만 획일적이고 답답한 세상이 싫었을 뿐이었다. 그의 넥타이 맨 모습이 기억에 없다. 그의 가는 목을 감싼 건 늘 스카프였다. ///중앙일보
701    "별것도 아닌 인생"길에서 미술도 열심히 좋아했던 마광수님 댓글:  조회:2238  추천:0  2017-09-07
뉴시스 곡절 많은 인생을 스스로 마감한 소설가 마광수의 유작이 재조명되고 있다. 지난 5일 마광수의 자살 소식이 전해진 후 소셜미디어에는 그가 남긴 시를 공유하며 고인의 명복을 비는 게시물이 빠르게 늘었다. 그 중에 많은 네티즌이 공감한 작품은 ‘별 것도 아닌 인생이’였다.     별것도 아닌 인생이  이렇게 힘들 수가 없네  별것도 아닌 사랑이  이렇게 사람을 괴롭힐 수가 없네  별것도 아닌 결혼이  이렇게 스트레스를 줄 수가 없네  별것도 아닌 이혼이  이렇게 복잡할 수가 없네  별것도 아닌 시가  이렇게 수다스러울 수가 없네  별것도 아닌 똥이  이렇게 안 나올 수가 없네  ‘별것도 아닌 인생이'는 마광수가 1999년 11월부터 2000년 9월까지 문화일보에 연재한 글의 제목이기도 하다. 여주인공 ‘로라'의 주변 인물들이 겪는 일상을 파노라마처럼 구성했다. 이 글을 엮어 2005년 ‘로라'라는 제목으로 2권까지 책이 출간됐고, 이후 원래 제목에 내용을 수정해 2012년 재출간됐다.  마광수는 1977년 박두진 시인의 추천으로 문단에 데뷔한 후 시, 소설, 에세이, 평론 등 여러 장르를 아우르는 40여권의 저서를 쏟아냈다. 그는 ‘자살자를 위하여’라는 시도 남겼다. 마광수는 자살한 이들을 ‘스스로의 생명을 스스로 책임 맡은 자/ 가장 비겁하지 않은 자/ 가장 양심이 살아 있는 자’라고 표현했다. 그 자신에게도 해당되는 말이 되고 말았다.    우리는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것은 아니다  그러니 죽을 권리라도 있어야 한다  자살하는 이를 비웃지 말라  그의 좌절을 비웃지 말라  참아라 참아라 하지 말라  이 땅에 태어난 행복,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의무를 말하지 말라  바람이 부는 것은 바람이 불고 싶기 때문  우리를 위하여 부는 것은 아니다  비가 오는 것은 비가 오고 싶기 때문  우리를 위하여 오는 것은 아니다  천둥, 벼락이 치는 것은 치고 싶기 때문  우리를 괴롭히려고 치는 것은 아니다  바다 속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것은 헤엄치고 싶기 때문  우리에게 잡아먹히려고,  우리의 생명을 연장시키려고  헤엄치는 것은 아니다  자살자를 비웃지 말라  그의 용기 없음을 비웃지 말라  그는 가장 용기 있는 자  그는 가장 자비로운 자  스스로의 생명을 스스로 책임 맡은 자  가장 비겁하지 않은 자  가장 양심이 살아 있는 자  지난 2월부터 운영된 트위터 ‘마광수 봇’ 계정은 그가 타계한 뒤에도 여전히 작가의 말을 전하고 있다. ‘봇'은 로봇의 줄임말로 자동으로 글을 올리게 프로그래밍됐거나 또는 익명으로 운영되는 계정을 말한다.  6일 오전 ‘마광수 봇’에 올라온 글은 다음과 같다.  “개인적으로는 미술이 참 좋아. 복잡하고 어려운 문학에 비해 일단 자유로우니까 그냥 내 마음대로 표현해도 아무도 뭐라고 안하고 검열도 없고. 그런 일탈이 오히려 예술이 되는것 같아. 표현의 자유로만 보자면 미술이 훨씬 좋지.”  /박상은 기자  [출처] - 국민일보 
700    마광수, 그는 도대체 누구인가?!... 댓글:  조회:3634  추천:0  2017-09-07
마광수   2017-09-07 01:18:12 최연소 교수 부임 시절    1. 소개2. 학문적 업적3. 작문 스타일4. 성향5. 필화 사건6. 사상7. 기타8. 타계   1. 소개[편집] 馬光洙[1] 한국의 소설가, 시인.(1951년 4월 14일 ~ 2017년 9월 5일, 향년 66세) 서울 출생으로 1.4 후퇴 중에 태어났으며 종군사진작가였던 아버지는 전쟁 중에 사망해 홀어머니 슬하에 자랐다. 대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국문과에서 학사,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입학부터 수석 입학에 4년 전액 장학금을 받고 다녔으며 학부과정을 올 A로 졸업했다고 한다. 청록파시인 박두진의 추천으로 26세에 등단했으며, 홍익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당시 28세)를 거쳐 1983년부터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인문학부 국어국문학과 교수(당시 32세)로 재직하다 2016년 8월 정년 퇴임했다.  원래는 1977년 현대문학에 시로 등단한 시인이다. 1989년 장편소설 로 소설가로서의 첫 발을 내딛었다. 이후 [2], 이란 제목으로 개정판이 나왔다.">[3], , (...)이란 제목으로 개정판이 나왔다.">[4] , 등의 소설집과, , , 육필시집 등의 시집, 등의 수필집을 집필하였다.부터다.">[5] 1989년 시집 를 영화화하려고 했고, 감독으로도 결정되었으나, 제작사는 중간에 감독을 교체하고, 마 교수는 여기에 비난 기자회견을 한 바 있다. 일설에 의하면 마광수의 연기 지도가 너무 야해서 당시 검열을 통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교체했다고.의 일부 모티브가 되었다고 한다.">[6] 2016년 8월, 연세대학교에서 정년퇴임하였다. 따라서 그의 강의를 앞으로 들을 수 없게 되었다. 아쉬운 일이다. 그런데 기사에 따르면 연금도 못 받았다고 한다.[7] 그래서마련해 놓은 여비도 얼마 없었다고 한다. 그야말로 쓸쓸하기 그지없는 말년을 보내던 중 2017년 9월 5일 목을 매어서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2. 학문적 업적[편집] 작가로서는 굴곡이 많았지만는 당시 제법 회자되며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문제작 는 일본에서 10만 부가 넘게 판매되어 한국 소설 최초로 일본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당시 일본내 유명작가도 5만 부 팔기 힘들었다고 하니 상당히 선전한 셈이다. 역시 일종의 문화원류로서 한국 시문학 역사에 획을 그은 시집이다.">[8] 문학 연구가로선 커다란 업적을 남겼다. 바로 윤동주의 재발견. 윤동주 하면 떠오르는 정서인 '부끄러움'도 마광수의 발견이며 이는 마 교수 본인의 가장 큰 프라이드 중 하나이다.[9] 다만 이 이후론 제대로 된 연구성과가 거의 없어서 비판받기도 한다. 실제로 이후론 이렇다 할 논문이 없다. 예를들어 2000년 재임용 심사 때 연구 실적물로 제출한 것이 에세이집 1권, 장편소설 1편, 단편소설 2편, 시 8편 등 창작물이 대다수고 신문 등 매체 기고문과 학술논문은 겨우 6편밖에 되지 않았다.[10] 국문과 교수로서 논문보다 창작활동에 매진했다는 것은 본연의 임무를 다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3. 작문 스타일[편집] 문학계에 만연한 지적허영에 대해 큰 반감을 가지고 있다. "진짜 좋은 글은 쉽게 읽을 수 있는 글"이라는 게 마광수의 작문철학으로 그는 가독성을 매우 중시하여 복잡한 문장구조와 어려운 어휘들을 피해 글을 쓴다. 때문에 글이 쉽고 전달력이 매우 높다. 즉 그의 글에는 문학적 허세가 없고 글의 전달력이 높아, 읽는 데 피곤하지 않다는 장점이 있다. 오히려 "쉽게 쓰는 게 어렵다"라고 말할 정도로 글의 전달력, 가독성에 힘을 쏟는 스타일이다. 작가로서 대단한 장점이다.   4. 성향[편집] 그는 허례허식과 허세를 비판하며, '성(性)'에 솔직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건전한 사회를 위해서는 성적인 욕망을 표현하고 해소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리고 그 성적 욕망을 표현하는 데에 누구보다도 앞장선다.  그 때문인지 1990년대에는 불경한 음란문학이라며 지탄받았지만, 현재는 그가 말한대로 성적 욕망의 표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공중파에서 섹드립을 치는 지금과 비교해보면 우스운 일이다. 변태이미지와 다르게 학생을 성추행하거나 더럽게 군 적은 없다. 마광수 교수 본인이 강의 중 그런 루머에 대하여 말하길, "씨발놈들이[11] 소설이랑 현실을 구분을 못하는 거지"라고(...) 오히려 학생들에게는 굉장히 매너 있고 젠틀한 편이다.   5.  필화 사건[편집] 관련 문서: 대한민국/문화 규제와 탄압, 검열 연행 당시 모습 마광수가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1992년 소설 가 건전한 성의식을 심각하게 왜곡하는 음란물이란 이유로 검찰에 구속되면서이다.  소설의 내용을 간략히 요약하자면 '성에 대해 보수적인 한국 사회 전반에서, 프리섹스를 추구하는 자유로운 여대생 사라가 온갖 섹스를 즐기며 쾌락을 추구한다'는 내용이다. 사실 소설을 읽어보면 그 음란함은 당시 PC통신에서 돌아다니던 과 같은 평범한 야설 수준과 거의 비슷하다(...). 마광수는 강의 중에 경찰에게 연행되었다고 한다. 다니자키 준이치로와 같은 쇼와 거장과는 비슷한 수위임에도 다른 처분을 받게되었다. 당시 마광수는 검찰에 강력하게 항의하였으나 세간의 인식은 "뭐, 야한 소설을 썼어? 저런 음탕한 자식!! 저 자식을 당장 쳐죽여라!!" 수준이었다... 소수의 사람들이 표현의 자유를 내세우며 마광수를 옹호하였으나, 결과는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이라는 유죄판결이 내려졌다. 당시의 판결문에서, 판사는 "이 판결이 불과 10년 후에는 비웃음거리가 될지도 모르겠으나, 나는 판사로서 현재의 법 감정에 따라 판결할 수 밖에 없다" 고 명시하였다. 사건 당시 유력 보수일간지 등의 지면을 통하여 마광수를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한 지식인들이 많았는데, 대표적으로 서울대학교의 손봉호[12] 교수는 "마광수 때문에 에이즈가 유행한다, 마광수는 교수가 아니라 마광수 씨로 불러야 한다" 등 공격적 발언을 쏟아내면서 자신의 위세(?)를 높이기도 했다. 이밖에도 이태동 같은 사람들은 "에 나오는 여대생과 그를 가르치는 교수 사이에서 문란하고 변태적인 성 관계가 성실한 노력의 상징인 학점의 흥정대상이 된다는 것은 커다란 사회적인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라는 주장으로 마광수와 여제자 사이의 모종의 성적 거래가 있었을 것이라는 인신공격을 하기도 했다.  사실 는 그다지 야한 소설도 아니며, 당시 출판계를 봐도 그보다 훨씬 야한 일본 에로소설 "여인 추억" 같은 소설도 아무 문제없이 버젓이 출판되던 시기였다. 마광수 교수 자신은 만 그리 혹독한 처분을 받은 것이 일단 교수가 쓴 것이기 때문이고 주인공 '사라'가 방탕한 쾌락 끝에 불행지거나 정신차리는 교훈적, 도덕적 결말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또한 단행본으로 나오기 전 잡지에 연재될 때는 누구도 클레임을 걸지 않았다. 실제로 이 소설의 '음란성'이 당대의 기준을 그리 뛰어넘지 못하고 있다.  실질적으로 마광수를 법적 처리하라고 검찰에 "명령"한 것은 당시 현승종 국무총리인데 현승종은 원래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교수였고 정치적으로도 매우 보수적인 사람이다. 후에 진보정권이 들어선 이후 극우적인 시국선언에도 단골로 나왔다. 일설에는 연세대 교수가 그런 소설을 썼다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해서 검찰에 그런 지시를 했다는 말도 있다.  참고로 문재인 정권 초기 법무부 장관후보자가 되었던 자진사퇴한 안경환 전 법무부 장관이 마광수 교수의 항소심에서 즐거운 사라 2차 감정 때 재판부측 감정인으로서 감정을 했는데 그 감정서로 인해서 마광수 교수의 항소심이 기각되었다고 한다. # 이로 인해 마광수는 당시 연세대학교 교수직에서 해임되었으나 1998년에 다시 교수직에 복직하였다. 그러나 는 아직도 재판이 허용되지 않는 금서[13]이며, 마광수 본인은 다른 교수들 사이에서 아웃사이더 취급을 받았다. 여러모로 안습. (강의시간에 대놓고 국문과 교수들을 깐다.)[14]이 사건은 필화 사건이라고 불리고 있으며, 이현세 화백의 와 함께 예술과 외설의 경계가 과연 어디까지인가? 하는 답없는 논쟁을 사회전반에 일으키기도 하였다. 그런데 마 교수는 훗날 를 인터넷에 다시 올렸다가 2007년에 약식기소되기도 하였다. '달라진 시대상에 비추어 봐도 음란물이기는 하지만 과거 정식기소했을 때보다는 음란성이 약하다'라는 것이 약식기소의 이유였다.# 해당 사건으로부터 10년이 지난 2002년이나 20년이 지난 2012년과 앞으로 이어갈 현재를 기준으로 본다면, 에서 묘사되는 삶의 태도는 소설 속에서가 아니라 일상의 영역에서 등장해도 별 문제가 안 될 정도로 성적인 개방이 이루어졌다. 덕분에 해당 판결은 비웃음거리가 되다 못해 아예 잊혀지고 말았다. 그러나 매우 안타깝게도 마광수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사실 warning.or.kr의 존재와 이를 아직까지 존재하게 하는 원동력의 존재를 감안하면 아직 갈 길이 먼 것은 확실하다. 에서 외설에 걸렸던 내용은 다음과 같으나, 엔간하면 심신미약이 아닌 성인만 보도록 하자. #.  여담이지만 당시 마광수를 지지한 연세대 학생들이 "마 교수를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라는 플래카드를 내걸었다가 주한 인도 공화국대사관의 항의를 받는 일이 있었다.[15] 마광수 본인은 "10년 정도 지나면 어처구니 없던 해프닝으로 기억할 것"이라고 예언한 바 있다. 그 말대로 위키러들이나 누가 보기에도 웃기는 옛날 해프닝이 되었지만, 현재까지도 는 재출판되지 않고 있다. 재출간되려면 마광수 본인에게 내려진 유죄 판결을 재심을 통해 뒤집어야 하는데, 아직도 한국 사회는 보수적이고 마광수 또한 노쇠해서 법정 싸움을 다시 벌일 기력이 없는 탓이었다. 그리고 2017년 9월 5일 마광수 선생이 세상을 떠나시면서 상황은 더욱 더 안쓰러운 문학계의 치욕스러운 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6. 사상[편집] 이른바 '유미주의적 쾌락주의'를 전적으로 추구한다고 주장한다. 쾌락은 모든 사건의 근본이자 목표라는 것.의 경우, 일반적으로는 가난한 빈민들의 도덕적 타락이 주제라고 이야기하지만, 마광수는 그냥 떡치는 게 좋다고 외치는 소설 아니냐는 이야기를 한다.">[16] 사실 그렇게 이해못할 사상도 아니고 다원화된 사회에서 얼마든지 주장될 수 있는 사상이지만[17], 사건으로 마광수가 세간의 입방아에 오르자 이문열을 필두로 많은 동료 문인들은 '그런 쓰레기같은 소설을 쓴 자는 소설가로 부를 가치조차 없다'고 맹비난을 가했다. 특히 마광수와 이문열 사이는 엄청나게 안 좋다.[18] 자세한 부분은 이 링크를 참조하자. 마광수와 이문열의 논쟁. 강준만, 발췌 수많은 여성들을 마광수의 적으로 돌리게 만든 '외모 우월주의'로도 악명이 높다. 2005년 MBC 백분토론에서 "예쁜 애들이 공부도 잘한다"고 발언한 사례는 아주 유명하다. 다만, 해당 발언 자체는 '예쁜 애들이 머리도 좋다'는 식의 억지스러운 건 아니고, 외모나 몸매를 가꾸는 것 역시 노력이 필요한 일이고, 공부 역시 노력이 필요한 일이라는 논조였다. 한마디로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처럼 자기 관리를 위하여 노력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외모에도 신경 써서 상대에게 호감을 주는 모습을 갖추려고 할 것이라는 이야기. 타고난 생김새처럼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는 영역을 두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이 점에서 '예쁜 애들이 공부도 잘한다'는 자극적인 딱지만 떼고 본다면, 자기계발 열풍의 일환으로써 등장한 몸짱열풍과 별로 다른 주장은 아니다. 성형수술도 의료보험 대상으로 해야한다는 주장 역시, 공교육을 확충하자는 주장과 비슷한 맥락인 셈. 하지만 같은방송에서 발언한 "외모 보고 반하지 마음보고 어떻게 아나?", "마음이 고와야 여자다. 얼굴이 예쁘다고 여자냐'라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 등의 발언을 보면 그가 온전히 자기개발과 외모관리의 상관성을 말하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다만, 이러한 관점이 '인간 각각의 개성을 인정하지 않고, 일원적인 기준에 따라 모든 사람을 평가하려는 전근대적 발상'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물론 가능하다. 자기 영역에서 비할 바 없는 성실함을 보이지만, 외모에는 전혀 신경 안 쓰는 사람이라는 것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지 않은가? 또는, 자기 관심분야에서는 실컷 급진적인 척 하더니, 정작 인간관 자체는 근대적인 근면성실주의에서 한 발짝도 못 벗어났다고 비판하는 것 역시 가능할 것이다. 또한 부부강간죄, 성희롱 방지법, 원조교제, 즉 미성년자 성매수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것을 남성을 억누르는 악법이라고도 주장하여 논란을 만들기도 했다. 억울한 피해자가 나올 수도 있다고 하는데, 그런 식으로 따지면 남아있을 수 있는 법이 얼마나 될런지... 다만, 링크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듯 억울한 피해자가 나올 수도 있으니 무조건 없애야 하는 법이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부부강간죄의 경우는 부부간의 특수한 관계[19]에 비춰 생각해 볼 때 성관계에 대한 (능동적인) 동의를 부부 외의 성관계와 같은 수준으로 요구할 수는 없고, 부부강간죄의 필요성에 대한 근거로 여성계가 제시한 사례들은 형법 체계 내에서도 처벌이 가능한 사례들이라는 주장이고, 성희롱 방지법 부분은 가해자의 행동에 대한 객관적 판단 기준 없이 피해자의 입장만으로 성희롱이 성립된다고 보는 것이 법적 형평성과 합리성에 어긋난다는 주장이며, 미성년자 성매수자 신상 공개 문제는 1) 살인이나 강간같은 흉악범죄를 저지른 자도 신상공개를 당하지 않는데, 미성년자 성매수자의 신상을 공개한다는 것은 미성년자 성매수를 살인, 강간등의 흉악범죄보다 더 무겁게 처벌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으며 2) 만 15세~19세의 청소년을 만 14세 이하로 (법적인) 자기책임능력이 없는 청소년과 같은 기준으로 대하고 있으며 3) 미성년자 성매수에 대한 형사적 처벌을 받은 상태에서 신상공개를 또 하는 것은 이중처벌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는 주장에 가깝다. 사실, 글의 논조가 과격한 점이나 편견에 기반한 점이 많고 주장에 억지스러운 점이 많은 것[20]은 사실이고, 이 때문에 널리 동의를 얻기 힘든 주장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덮어놓고 '혹시 무고한 피해자가 나올지 모르니 악법이다'라고 주장하는 것이라 보기는 힘들다.    7. 기타[편집] 상술했듯이, 강의 시간에 성적인 농담 및 '자X' 등의 용어를 자주 사용함에도 희한하게 학생들로부터 성희롱 등으로 문제가 일어나거나 하는 등의 논란이 일어난 적은 없다. 마광수니까 가능한 건가? 연세대 학생들의 생각은 어떠련지 강의신청할 때 이미 어떤 말을 쓰시고 어떤 과제를 내시는지 알고 신청한다. 이제는 못하지만...   가장 최근의 근황이라면, 웹 소설에도 도전한다고 한다!! 덧없는 것의 화려함 - 여기서 볼 수 있다.[21]   소설가로 유명해졌지만 원래 시인으로 등단했고 시집을 내기도 했다. 소설과 달리 시는 대놓고 야하지 않으며[22], 의외로 현대인들의 감각에 맞으면서 꽤 괜찮은 작품들이 많다. 특유의 페티시즘적인 흔적이 있기는 하지만 밸런스는 잘 잡혀있는 수준이다. 윤동주 연구자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의외로 지식인으로서의 자신에 대해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시가 많다.   실제로 대한민국을 통틀어 한 손에 꼽히는 천재 문학가이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현재 교육과정에 실린 윤동주의 시 대부분이 마광수 교수의 박사논문을 토대로 한다. 게다가 20대의 나이에 교수로 취임[23]했다는 것은 당시 시대상을 감안하더라도 대단히 뛰어난 재능이라는 방증이다. 또한 한때는 신춘문예 단독 심사위원이기도 하였다. 동아일보 신춘문예 심사위원이었는데 그가 발굴해 낸 문인들이 무려 기형도와 안도현. 안도현은 이미 1981년에 대구매일신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으나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는데, 198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재등단하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기형도는 198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는데, 마광수 교수 본인이 쓴 수필을 통해 밝힌 바에 따르면 연세대 내 동아리인 연세문학회에서 지도교수와 학생의 신분으로 서로 대강은 알고 있었다고 한다. 엄밀히 말하면 인맥성이 없지 않아 있으나 그로 인해 오늘날까지 회자되는 명시인이 빛을 보게 됐으니 비난하기도 참 애매하다.[24]   연세대학교에서 교양과목 와 을 가르쳤었다.[25] 그 수업을 들어본 학생으로서 말하자면 그냥 두 수업 모두 혹은 다(...). 수업에서는 음담패설, 욕설, 경험담 등이 날아다니며, 19세 미만이 듣기에는 부적절한 경우가 많다. 대학 수업이잖아 빠른 생일들은 안습 연세대학교 송도캠퍼스로 유배가는 14학번부터는 어차피 1학년 때 본캠 수업 못 들어서 상관 없다 그리고 욕이 매우 찰지다. 그렇다고 해서 아주 막 나가는 막장은 아니고, 수업 중간중간에 딱 필요한 부분을 이걸로 메꾸는 형식이다. 따라서 잘 듣다보면 매우 유익한 수업이 될 수도 있다(?). 주로 쉬는 시간 백양관 휴지통 앞에서 담배를 피고 있는 모습이 많이 목격된다고 한다. 단 국문과 학생이라면 마광수의 수업을 수강하는 것은 금기시되어 있다. 국문과의 다른 과목 담당교수에게 들켰을 경우 학점이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말이 적혀있는 거 치고는 2015년 기준 국문과 수강생들도 많이 있다. 다만 이 국문과 수강생들이 담당교수에게 불이득을 받을 것을 감안하고 수강하는 건지 아니면 애초에 불이득 이야기가 근거도 없는 유언비어였는지[26] 아니면 세월이 지남에 따라 변화된 것인지는 현직 연세대 국문과 학생들이 추가바람.   유명교수 효과로 수업초반에는 사람들이 북적북적거리지만, 조금만 지나면 출석체크만 하고 나가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중반쯤 지나면 약 30명만이 조촐하게 남아 수업을 듣는 수준이라고 한다. 안습[27][28].   교수의 독특한 시험문제의 훌륭한 예로, '에로틱 판타지 소설'을 과제로 제출해야 한다. 본인은 러브스토리를 써오라고 하지만 실상은 '야설 써오기'다. 어지간한 것들은 보았기 때문에 참신하지 않으면 점수를 주지 않았다는 것(...). A맞은 것중 하나는 "공동묘지에서 시체를 파내어..". 라고 한다.[29] 근친, 동성 요소를 넣으면 가산점을 준다는 말도 했다카더라. 뽕빨물을 배껴가자 이런 거라던가 이런 거일 수도?   또 다른 잘 쓴 과제로, 건물에 무단 침입하여 한 모녀를 강간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마광수 교수의 부인과 딸이었다는 야설을 예로 들었다. 이에 영감을 받은 한 학생은 마광수 교수를 강간하는 레포트를 썼다(Ang??). 그는 C를 받았다고 한다. 혹시 본인?   인터넷에 떠도는 레포트 A+ 맞는 방법 -1. 마 교수님 문체 따라하기 -2. 마 교수님 페티쉬 이해하기 -3. 마 교수님 수업 듣고 내용 참고하기   또다른 소문으로는 예쁜 여학생이 있으면 일부러 성적을 잘 주지 않아 재수강을 받게 한다고 한다(...). 정확하게는 예쁜 여학생에겐 A+를 주며, 정말 엄청난 미모를 지닌 여학생에겐 D를 주어 재수강하게 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만, 농담조로 하는 얘기다. 물론 루머다. 나무위키가 엔하위키이던 시절에 이 문서에 적혀있던 본인에 대한 루머를 보고는, 사실이 아니라고 밝힌 바 있다.[30]   평소 학생들에게 굉장히 예의 바른 분이라, 교수들에게 '교수님들, 학생은 아랫사람이 아닙니다'라고 주장하시는 분이다. 이 분이 지나가실 때 인사를 꾸벅 하면 곧바로 똑같이 인사를 한다. 처음 보는 사람들은 굉장히 놀란다.당시 학생의 글 뭔가 미화집 같지만 [31]   개그 콘서트에서 박성광이 자신의 패러디인 '마 교수'라는 캐릭터로 야한 개그를 하는 것을 불쾌해해서 박성광은 그 캐릭터의 이름을 '박 교수'라고 바꿨다. 하지만 얼마 안되어서 짤렸다. 당시 개그콘서트의 시간대가 1시간 앞으로 옮겨지면서 심의의 기준이 되는 시간대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표절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다. 엄밀히 말하면 도용. 2006년 4월에 출간된 시집 에 실린 가 1983년 홍익대 교지에 실린 김이원의 시 와 똑같은데 당시 마광수 교수는 홍익대 국문과 조교수 겸 교지 편집위원으로 일한 바 있다. 논란이 일자 본인은 도용 사실을 인정했다. 시집을 내지 않는 제자의 시가 묻히는 것이 아까워서 그랬으며 이전에 제자와 대화하면서 협의가 된 줄 알았다고...[32][33] 하지만 당연히 도용에 대한 도덕적 불감증이라는 비판을 피하지는 못했다. 본인은 내가 미쳤나 보다 하면서 잘못을 시인하고 언론에 공식 사과했으며 이후 문제가 된 시집을 모두 수거·폐기함으로써 법정 싸움까지는 가지 않고 사태가 일단락되었다. 한편 이메일을 통해 창작을 지도하던 주부의 작품을 도용했다는 논란도 있었는데 이는 마 교수와 주부 간의 사전 협의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일련의 도용 논란으로 인해 마광수 교수는 연세대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어 정직 2개월과 2007년 1학기 출강 금지의 경징계를 받았다.[34]   여성의 긴 손톱, 긴 생머리, 하이힐에 페티시즘을 느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심지어 긴 발톱에까지 페티시즘을 느낀다는 말도 돈다. 전형적 여성성 페티시.   더 자세한 것이 궁금하다면 마광수 교수의 개인 홈페이지를 방문해보자. 참고로 이 사이트에서는 자작 단편소설, 야사[35]와 영화 스트리밍 서비스(...저작권은?)를 제공한다. 홈페이지 해당 홈페이지에서는 직접 댓글을 달아주기도 한다. 이건 수위가 낮은편   고려대학교 호법제에 강연을 하러 오기도 했다. 강연이 끝난 후 받은 사인에 쓰X 야해지자! 마광수라고 남겼다고. 흠좀무.   2013년 1월에는 본인의 비공개 홈페이지에서 소설가 이외수의 학력을 전문대 중퇴라고 비하한다거나 화천 감성마을을 두고 미친X 호화주택이라고 비난하는 등의 글을 올려 논란이 되고 있다. 공교롭게도 마광수는 과거에 이외수 등과 함께 23년전 '4인의 에로틱 아트전'에 참가한 경력이 있었다.   2013년 3월에는 자신의 수업을 듣는 수강생들에게 영수증을 제출해야 학점을 준다는 식으로 저서를 강매한다는 보도로 "돈 벌려고 혈안이 되었냐"는 네티즌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이어진 인터뷰 기사에서 "영화 한 편이나 커피 한 잔에는 돈을 펑펑쓰면서 만원짜리 교재 하나 안 사려는 학생에게 교육적 소신으로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실 수업에 들어가는 학생이 교재를 준비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며, 교재를 아예 준비하지 않거나 저작권자인 교수 앞에서 저작권법을 대놓고 위반하고 제본한 교재를 펼쳐놓는 것은 당연히 예의가 아니며 분명히 잘못이 맞다.   이전에 지도교수로 있던 연세대 내 문학 동아리 연세문학회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바 있다. 다른 연세문학회 출신 문인들은 부정하겠지만. 그의 문학론에 영향을 받은 에로티시즘 문학제가 열리기도 했다. 야설 쓰기 대회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사실 그게 맞다.   엄청난 골초다. 평생동안 담배나 여자 둘중에 하나만 고르라고 하자, 담배라고 대답한 것은 이미 레전드이며, 체포되었을 때 갇혔다는 사실보다는 아침에 담배를 못 피운다는 것이 더 신경을 거슬렸다고 한다.   조영남과도 상당히 친한지, 같이 전시회도 하고 술도 마시고 한다고 한다.   2014년 11월 21일 국민라디오 정영진의 불금쇼에 출연해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상세히 밝혔다.   무신론자이다.   무신론 성향과 반금욕주의적 성향이 결합, 시오노 나나미처럼 로마가 기독교 때문에 멸망했다고 주장한다. #[36]   월간 로드쇼 1990년 1월 호에 그의 영화추천 목록이 있다.#[37]   나무위키에 직접 들어오지는 않지만 지인이나 팬(?) 등을 통해서 자신의 항목에 대한 언급을 받고 있는 듯 하다. 최근에는 본인의 항목에 대해 좀 아쉽다는 평가를 남겼다.   8. 타계[편집] 2017년 9월 5일 오후 1시 51분쯤, 자택인 서울 용산구 동부이촌동의 한 아파트에서 숨져 있는 것을 가족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집에서 유서를 발견했고 자살로 추정했다.## 지난해 1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누가 불러주질 않아 그냥 집에서 지낸다."라면서 "우울하다", "서운하다"라는 말을 반복하기도 했다. 지인들에 의하면 마광수 전 교수는 제자를 많이 길러내고 싶어했는데 교수 사회 왕따로 교양수업만 해야 했고, 전과자 이력 때문에 연금도 제대로 밪지 못해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또 최근 어머니의 사망을 겪었고, '마광수 시선'을 출간하면서 시평이나 추천사를 동료 국문학자들에게 의뢰했는데 대부분 거부하거나 답변을 회피해 상처를 크게 받았다고 했다. 2017년 9월 6일 네이버-문화일보 “故마광수 대학·문단서 왕따… 처지 비관했었다” 평소 우울증을 앓고 있어 자살로 결론 날 것으로 보이며, 유서에는 자신의 유산을 시신을 발견한 가족에게 준다고 썼다고 한다. • 광마집 (한국문학도서관, 1980) • 상징시학 (청하, 1980; 청하, 1985; 청하, 1997; 철학과현실사, 2007) • 윤동주 연구( 정음사, 1986; 철학과현실사, 2005) • 심리주의 비평의 이해 (오늘의시민서당, 1987; 청하, 1995) •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했는데도 (유림, 1988; 유림, 1990) • 가자 장미여관으로 (출판사: 자유문학사,발행일: 1989년 5월 1일; 책읽는귀족, 2013) •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출판사: 자유문학사,발행일: 1989년 10월 1일; 북리뷰, 2010) • 귀골 (평민사, 1985; 한국문학도서관, 1989) • 권태(출판사: 문학사상사,발행일: 1990년 1월 1일; 해냄, 2005; 책마루, 2011)) • 사랑받지 못하여(출판사: 행림출판사,발행일: 1990년 2월 1일) • 왜 나는 순수한 민주주의에 몰두하지 못할까 (민족과 문학사,1991; 사회평론, 1997) • 즐거운 사라 (출판사: 2008; 서울 문화사 1991년 7월 1일; 청하, 1991) • 열려라 참깨(출판사: 행림출판사,발행일: 1992년 7월 1일) • 마광수 문학론집 (청하, 1989; 청하, 1992) • 시창작론 (한국문학도서관, 1992) • 즐거운 사라 (청하, 1992) • 광마일기 (행림출판사, 1992) • 사랑의 다른 기술 (여원, 1992) • 사라를 위한 변명 (열음사, 1994) • 심리주의 비평의 이해 (청하, 1995) • 운명 (출판사: 사회평론, 발행일 : 1995년 10월 1일) • 불안(출판사: 리뷰앤리뷰,발행일: 1996년 10월 12일) • 카타르시스란 무엇인가(출판사: 철학과현실사,발행일: 1997년 3월 1일; 한국문학도서관, 2008) • 성애론(출판사: 해냄출판사,발행일: 1997년 7월 1일; 해냄, 2006) • 시학(출판사: 철학과현실사,발행일: 1997년 10월 1일) • 사랑의 슬픔(출판사: 해냄출판사,발행일: 1997년 11월 1일) • 자유에의 용기(출판사: 해냄출판사,발행일: 1998년 12월 1일) • 자궁속으로 (사회평론, 1998) • 색 (출판사: 고도, 발행일: 1999년 6월 1일) • 인간(출판사: 해냄출판사,발행일: 1999년 11월 1일) • 남자도 이혼을 꿈꾼다(출판사: 동서고금,발행일: 1999년 12월 1일) • 알라딘의 신기한 램프 1,2 (출판사: 해냄출판사,발행일: 2000년 4월 1일) • 문학과 성 (출판사: 철학과현실사, 발행일: 2000년 12월 1일) • 비켜라 운명아, 내가 간다!(출판사: 오늘의책,발행일: 2005년 5월 18일) • 로라 1,2 (해냄, 2005) • 광마잡담(출판사: 해냄출판사,발행일: 2005년 6월 1일) • 광마일기 (사회평론, 1996; 사회평론, 2005) • 자유가 너희를 진리케 하리라(출판사: 해냄출판사,발행일: 2005년 6월 1일) • 사라를 위한 변명 개정판(출판사: 열음사,발행일: 2005년 8월 10일) • 마광수 문학론집 삐딱하게 보기 (철학과현실사, 2006) • 마광쉬즘 (인물과사상사, 2006) • 유혹 (해냄, 2006) • 야하디 얄라숑 (해냄, 2006) • 이 시대는 개인주의자를 요구한다 (새빛에듀넷, 2007) • 나는 헤픈 여자가 좋다 (철학과현실사, 2007) • 빨가벗고 몸하나로 뭉치자 (시대의창, 2007) • 인간 (한국문학도서관, 2008) • 나는 헤픈 여자가 좋다 (한국문학도서관, 2008) • 문학과 성(한국문학도서관, 2008) • 귀족 (중앙북스, 2008) • 모든 사랑에 불륜은 없다(출판사: 에이원북, 발행일:2008년) • 광마일기 - 마광수 장편소설(출판사: 북리뷰, 발행일:2009년 8월 10일) • 연극과 놀이정신(출판사:철학과현실사, 발행일:2009년 1월 20일) • 사랑의 학교(마광수 소설집) (출판사:북리뷰, 발행일:2009년 4월 15일) • 일평생 연애주의 (문학세계사, 2010) • 첫사랑 (북리뷰, 2010) • 비켜라 운명아, 내가 간다 (오늘의책, 2010) • 마광수의 뇌구조 (출판사: 오늘의책, 발행:2011년) • 미친 말의수기 (꿈의 열쇠, 2011) • 돌아온 사라 (아트블루, 2011) • 페티시 오르가즘 (아트블루, 2011) • 세월과 강물 (책마루, 2011) • 소년 광수의 발상 (서문당, 2011) • 인간론 (책마루, 2011) • 더럽게 사랑하자 (책마루, 2011) • 멘토를 읽다 (출판사: 책읽는귀족, 발행:2012년) • 별것도 아닌 인생이 (책읽는귀족, 2012) • 나는 찢어진 것을 보면 흥분한다 (지식을 만드는 지식, 2012) • 모든 것은 슬프게 간다 (책읽는귀족, 2012) • 청춘 (출판사: 책읽는귀족, 발행:2013년) • 2013 즐거운 사라 (책읽는귀족, 2013) • 마광수의 유쾌한 소설읽기 (책읽는귀족, 2013) • 상상놀이 (책읽는귀족, 2013) • 사랑학 개론 (철학과 현실사, 2013) • 나의 이력서 (책읽는귀족, 2013) • 육체의 민주화선언 (책읽는귀족, 2013) • 행복 철학 (출판사: 책읽는귀족, 발행:2014년) • 마광수의 인문학 비틀기 (책읽는귀족, 2014) • 아라베스크 (책읽는귀족, 2014) • 생각 (책읽는귀족, 2014) • 스물 즈음 (책읽는귀족, 2014) • 천국보다 지옥 (등대지기, 2014) • 나만 좋으면 (어문학사, 2015) • 나는 너야 (어문학사, 2015) • 인생은 즐거워 (등대지기, 2015) • 섭세론 (출판사: 철학과현실사, 발행:2016년) • 인간에 대하여 (어문학사, 2016) • 사랑이라는 환상 (어문학사, 2016) • 마광수 시선 (출판사: 페이퍼로드, 발행:2017년) [1] 춘원 이광수와 한자가 같다.[2] 출간 금지 판결 이후로 재심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영원히 출간될 일이 없는 전설상의 소설이다. 단 도서관에서나 중고책으로 볼 수 있다.[3] 이란 제목으로 개정판이 나왔다.[4] (...)이란 제목으로 개정판이 나왔다.[5] 의외로 멀쩡한 수필집이라고 한다. 애초에 일종의 평론서고, 시의 제목에서 따온 것이다. 마광수는 이걸 저항의 언어로 1980년대 민중문학에 종언을 고했다고 자찬한다고 한다. 민중문학, 또는 저항문학의 종언이라는 개념은 현대 문학사, 특히 현대 한국 소설사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개념 중 하나라는 점에서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할 만한 문제다. 군사독재정권 시대 내내, 그리고 90년대에서 이천년대 초반까지도 한국 문단과 소설계의 주축은 참여문학이나 민중문학, 저항문학 등으로 불리는 사회성이 강한 작품들에 있었으며, 이러한 경향에 반하는 작품들, 특히 유미주의적이거나 쾌락주의적이고 오락성이 강한 작품에 대해서는 '비겁하다'거나 '현실도피적이다'는 비판이 가해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21세기 초반 무렵부터 이러한 참여문학 전통이 순식간에 와해되고 오락으로써의 문학이 급성장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80년대 후반~90년대 초반 무렵 마광수의 작품활동을 선구적이라고 볼 여지는 분명히 있다. 사실 마광수가 호오가 공존하는 평가를 받는 호시절이 끝난 건 부터다.[6] 이 때의 경험이 소설 의 일부 모티브가 되었다고 한다.[7] 사립학교 교직원 연금법상 실형선고시 사학연금을 받을 수 없게 되어있다고 한다. 밑에 나오는 즐거운 사라 사건 때문이다.[8] 그래도 는 당시 제법 회자되며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문제작 는 일본에서 10만 부가 넘게 판매되어 한국 소설 최초로 일본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당시 일본내 유명작가도 5만 부 팔기 힘들었다고 하니 상당히 선전한 셈이다. 역시 일종의 문화원류로서 한국 시문학 역사에 획을 그은 시집이다.[9] 다만 이전 서술과 같이 마광수의 연구 이전에 윤동주가 아는 사람만 아는 수준의 시인이었던 것은 아니었는데, 윤동주의 시는 1차 교육과정의 국어 교과서부터 국정교과서가 사라질 때까지 단 한 차례도 교과서에 실리지 않은 적이 없으며, 본고사 시절부터 이미 단골 출제대상이기도 했다.[10] 다만 90년대 필화사건을 겪으며 8년간 야인으로 지내 타의로 절필을 하다시피 한 것을 감안을 해야한다.[11] 각색이 아니다! 실제로 강의 중 욕설은 물론이고 자X, 보X, 쓰리썸, 포썸 같은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스타일.[12] 국어국문학과의 이론 성향에 있어 연세대와 서울대는 거의 견원지간인 사이로 알려져 있다. 손 교수는 당시 서울대 사범대학에 재직 중이었는데 이 때 이후 교회 할배의 행보를 보이며 동덕여자대학교 총장, 초대 정보통신윤리위원회 위원장 등을 지낸다.[13] 1992년 초판본만이 일부 헌책방에서 괴랄한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는 실정이다.[14] 다만 필화사건 이후 해임 및 복직과정에서 본인을 지지하는 교수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본인의 개인주의를 반성하는 시간도 되었다고 한다.[15] 플래카드를 건 사진이 신문 1면에 나왔고, 이를 본 인도 대사관이 아직도 우리가 식민지냐고 항의했고, 시위하던 연세대학교 학생회가 사과했다고 한다(...)[16] 가령 나도향의 소설 의 경우, 일반적으로는 가난한 빈민들의 도덕적 타락이 주제라고 이야기하지만, 마광수는 그냥 떡치는 게 좋다고 외치는 소설 아니냐는 이야기를 한다.[17] 따라서 마광수의 사상에 동조하는 사람들 역시 상당히 많은 편이다[18] 이외에도 마광수는 소설을 쓸 때 무조건 쉽게 읽히게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어서 이문열처럼 작가 자신의 화려한 필력를 자랑하기 위해 글을 어렵게 글을 쓰는 작가들을 비판한다. 실제 마광수의 소설들은 책장이 술술 넘어갈 정도로 이해하기 쉬운 문체로 쓰여 있다. 「성과이해」같은 학술적 서적을 보면 마광수가 글을 어렵게 쓸 수 없어서 쉽게 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19] 일반적인 관계에서는 특별한 이유가 있어야만 성관계를 하지만, 부부 사이에서는 성관계를 하지 않는 쪽이 오히려 특별한 경우에 속한다.[20] 예를 들어, 부부강간죄의 성립 근거 중 하나는 부부간이라 하더라도 성관계를 갖고 싶지 않을 때는 거절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를 무시해버렸다.[21] 현재 막힌 상태다.[22] 소설은 대놓고 야하다. 등단 40년이 되는 2017년 출간한 '마광수 시선'도 마찬가지.[23] 당시 최연소 교수로 27세에 교수가 되었다.[24] 희한하게도 백석과의 인연이 연결된다. 윤동주나 안도현 모두 백석을 롤모델로 하거나 존경하는 유명 시인들이다. 더구나, 고교 후배이자 위 즐거운 사라 당시 불교방송 출현시에 동조했다는 이유로 징계를 당한 고교 후배이기도 하는 노래하는 시인 김광석의 법명을 길상사를 기부받은 법정스님이 원음이라 지었다.[25] 전공수업은 교수들의 반대로 할 수가 없다...[26] 사실 이럴 가능성이 크다. 국문과 담당교수 입장에서 자신의 마음에 안 드는 교수 수업을 듣는다는 이유만으로 학생을 차별하여 불공정하게 학점을 매긴다는 것은 교수 자질이 없는 것이다. 실제로 학생이 공식적인 루트로 이의를 제기하기 시작하면 교수로써는 골치 아파지므로 이를 감수하고 굳이 차별할 이유 역시 없다. 교수 자질이 없는 사람이 실존해서 가능성은 있지만, 확실한 증거가 없으면 자신에게 불리해질 뿐이다.[27] 사실은 기계 출석체크 외에는 더는 출석을 체크하지 않으며 중간고사(정확히는 대체 레포트) 기말고사(수업내용 정리하기)가 고정인 탓에 출석을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연세대에서 가장 널널한 과목 중 하나. 대신 너무 사람이 없으면 가끔 불시에 출석체크를 따로 할 때도 있으니 주의요망[28] 이에 관해 연대생들 사이에서 떠도는 농담 중 하나가 있다. 3주 내리 출튀(기계 출석체크 후 도망가는 것)를 하는 것은 조금 찔려서 간만에 강의에 들어간 학생이 앞에 앉은 학생에게 "지난 시간에 뭐 했어요?"라고 묻자 앞에 앉은 학생 왈, "저도 1달만에 와서..."라고 했다고.[29] 실제로 중간고사 대체 리포트로 존재하는 과제이며, 사실은 그냥 성의만 있는 수준이면 점수는 잘 나온다고 한다. 더불어 마광수 교수의 소설 독후감 쓰기도 중간고사 대체 과제. 지정 도서는 매번 바뀐다[30] 위의 국문과 교수 루머에서도 적어놓은 말이지만, 만약 사실이라면 외모에 따라 학생을 차별하여 불공정하게 학점을 매긴다는 의미이므로, 교수로서의 명예를 훼손하는 루머일 수 있다. 교수 본인이 아니라고 밝힌 이상, 확실한 근거가 없다면 이와 같은 루머를 퍼뜨리는 것은 자제하자.[31] 애초에 홈페이지 자체가 마광수 복직 등을 위한 모임이다.[32] 그러면서도 김이원한테는 "오히려 그 시를 (시집에) 집어넣어서 다른 작품들이 죽었다"고 디스하기도 했다. 한편 홍익대 교수 시절에는 문학 강의 시간에 그 시를 극찬하며 줄줄 외우기도 했다는데, 이게 참 뭐가 뭔지...[33] 처음에 마광수 교수는 "사전에 제자와 만나 이야기하려고 했으나 당시에는 연락이 전혀 되지 않았"으며 "지난 11월 제자가 갑자기 연락을 해서 그런 사실을 먼저 이야기했"고 "당시 옛 추억을 이야기하고 기분 좋게 헤어져 그냥 양해가 된 줄로 믿었"는데 "당시에는 아무 말도 안 하고 지금 와서 이런 식으로 나오는 것은 이해할 수 없"으며 "먼저 내게 다시 출처를 밝히라거나, 삭제하라고 요구했다면 다 들어줄 수 있는 일이었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김이원은 사전에 협의가 된 적이 없으며 "마 교수가 아무렇지도 않게 ‘그 시가 아까워서 내 시집에 실었다’고 말을 꺼냈"고 황당해서 따지자 '미안하게 됐다. 그럼 내 소설 1권을 주마' 하는 태도에 분노하여 "표절을 너무나 쉽게 생각하는 도덕적 불감증에 경종을 울리려는" 취지로 폭로를 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34] 그 와중에 이런 소소한 잡음이 있기도 했다.[35] 은꼴사라고 하기엔 수위가 좀 심하다.[36] 계몽주의계열 문학에 큰 반감을 보이는 사람이 계몽주의적 역사관의 오류를 인용하는 점은 아이러니.#[37] 그 바로 옆에 있는 것은 다름아닌 박평식의 영화추천 목록이다.   분류   1951년 출생   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대한민국의 시인   소설가   교수   2017년 사망  
699    마광수-국문학 력사상 처음으로 윤동주시인의 모든 시를 분석 댓글:  조회:3764  추천:0  2017-09-07
2017-09-06 17:45 뉴스듣기프린트 트랜드뉴스 보기위터 왼쪽부터 마광수, 윤동주, 기형도. 동아일보DB.   정말입니다. 마광수 교수(1951~2017)가 없었다면 우리는 여태 윤동주 시인(1917~45)이 누구인지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할지 모릅니다. 기형도 시인이 세상 빛을 보게 된 것도 마 교수 덕분입니다.   이제 윤 시인은 ‘국민 시인’이라고 불러도 모자람이 없는 인물. 하지만 1980년대 초반까지도 윤 시인은 이 정도 평가를 받는 인물은 아니었습니다. 정부에서 1990년 광복절이 되어서야 윤 시인에게 건국공로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는 게 그 방증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윤 시인이 명성을 얻게 된 건 마 교수가 1983년 쓴 박사 논문 ‘윤동주 연구: 그의 시에 나타난 상징적 표현을 중심으로’ 덕분이었죠. 마 교수는 이 논문에서 국문학 역사상 처음으로 윤 시인의 모든 시를 분석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쓴 시에 ‘부끄러움’이라는 정서에 깔려있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대학수학능력시험 대비 문제집에서 윤 시인 시를 해설한 내용은 거의 이 논문에서 따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마 교수는 이 논문에 “그의 시에 나타나는 자학적이며 자기부정적인 이미지의 대표적 보기를 들면 이 점이 분명해진다. 앞서 말했듯 ‘부끄러움’이란 시어가 나오는 작품이 10편이나 되는데, 이는 예나 지금이나 우리나라 시인들이 표피적 정서나 표피적 이데올로기(또는 사상)만을 좇는 경향과 비교해 보면 가히 파격적이리만큼 독특한 문학세계를 형성하고 있다”고 썼습니다.  마 교수는 또 이렇게 분석했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이상하게도 ‘투사’보다는 ‘유약하지만 솔직한 사람’을 한 시대의 상징적 희생물로 만드는 일이 많다. 윤동주는 바로 그러한 역사의 희생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작품들은 일제 말 암흑기, 우리 문학의 공백을 밤하늘의 별빛처럼 찬연히 채워주었다.” 마 교수는 소설이나 에세이를 쓰는 산문 작가로 유명하지만 원래는 청록파 시인 박두진(1916~98)의 추천으로 등단한 시인이었습니다. 그는 1983년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된 뒤 이듬해 동아일보 신춘문예 예심 심사위원을 지냈습니다. 응모작 3000편 중 15편 정도를 골라 본심에 올리는 게 그의 임무. 그해(1985년) 최종 당선작으로 뽑힌 게 바로 기 시인이 쓴 ‘안개’였습니다.  198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입상작을 소개한 그해 1월 5일자 동아일보 문화면.  그러나 마 교수는 이 시를 별로 탐탁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그는 나중에 “예심을 보던 중 어떤 응모작이 전혀 마음에 안 들어서 낙선작으로 던져 버리고 난 직후에 무슨 텔레파시 같은 육감이 느껴져서 던져버린 작품을 다시 집어 들고 보니 작자가 (내가 지도 교수로 있던 연세문학회 회원) 기형도 군이었다. 그래서 완전히 인맥으로 그의 시를 특별히 뽑은 것이다. 사실 공정한 심사위원으로서는 해서는 안 될 행위였다”고 말했습니다.  마 교수는 끝까지 기 시인을 크게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2009년 여성동아를 통해 가수 조영남 씨와 대담을 하면서 “기형도는 난해해. ‘물속의 사막’, 이게 무슨 소리야.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라는 시구가 있는 시 제목이 ‘빈집’이야. 무슨 연관이 있어? 사람들이 무슨 말인지 알고나 기형도를 좋아하는 걸까. 어려운 글은 무조건 못쓴 글”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너는/누구에게/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는 시구로 유명한 안도현 시인(52·우석대 교수)이 ’서울로 가는 전봉준‘이라는 시로 198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될 때도 마 교수가 예심 심사위원이었죠.    마 교수와 동아일보의 인연은 한양대 강사 시절이던 1977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는 그해 4월 11일자 동아일보에 ’세상을 그르치는 신념의 공해‘라는 칼럼을 실었습니다. 마 교수는 이 글에서 ”단발령을 내렸을 때 땅을 치며 통곡하던 유생(儒生)들의 애절한 신념, 그 편협한 선비주의적 신념의 잔재가 아직도 우리들에게는 미덕으로 남아 있다“면서 ”이 세상의 악과 불행은 ’이상의 결핍‘ 때문에 비롯되지 않는다. 되레 모든 악과 불행은 오로지 ’잘못된 이상‘, ’잘못된 신념‘으로부터 발생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유약하지만 솔직한 사람‘이었던 마 교수가 일생을 떠받친 신념은 아마도 ”위선적인 성(性)문화를 바로 잡자“는 것이었을 터. 하지만 여전히 ’선비주의적 신념‘이 지배하던 시대는 쉽게 마 교수의 신념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그는 희생양이 되어야 했습니다. 소설 ’즐거운 사라‘를 쓴 죄로 감옥살이를 해야 했던 그는 최근까지도 ”사회적으로 학살당했다“며 괴로워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마 교수는 우리에게 윤동주와 기형도를 남긴 채 자기 시집 제목 ’모든 것은 슬프게 간다‘처럼 떠났습니다. ”현실적, 현실적으로 되어 나도 화장을 하고 싶다/분(粉)으로 덕지덕지 얼굴을 가리고 싶다/귀걸이, 목걸이, 팔찌라도 하여/내 몸을 주렁주렁 감싸 안고 싶다/현실적으로/진짜 현실적으로“ - 마 교수 시 ’나는 야한 여자다 좋다‘ 중에서 /황규인 기자
698    구수한 "배추국"과 마광수님의 "배출구"는 어디?!... 댓글:  조회:2150  추천:0  2017-09-07
    마광수(馬光洙·54) 교수가 기지개를 활짝 켰다. 2005 년 5월 초 자신의 박사논문인 ‘윤동주 연구’ 개정판에 이어 6월1일 철학 에세이집 ‘비켜라 운명아, 내가 간다!’, 소설 ‘광마잡담’, 에세이집 ‘자유가 너희를 진리케 하리라’ 3권을 동시에 출간했다. 1992년 ‘음란물’로 찍힌 소설 ‘즐거운 사라’를 ‘제조’한 혐의로 구속됐다가 풀려난 후 13년 동안 산전수전을 다 겪은 마 교수. 2003년 가을학기 연세대 강단에 복귀한 이후 서서히 일탈했던 삶의 정상궤도에 올라서는 모습이다. 그 사이, 그의 얼굴에 깊게 팬 주름살만큼이나 세상은 많이 변했다. 오랫동안 움츠렸던 그가 느끼는 변화는 더욱 크다. 하지만 마 교수는 오히려 그게 더 반갑다. 1980년대 후반, 그를 검열의 공포로 몰아넣었던 ‘페티시즘’ ‘페티시’ ‘피어싱’ ‘염색’ 같은 단어가 이젠 그를 괴롭히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어느덧 일상용어가 됐다. 소설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1989)에서 밝혔듯 마 교수의 성적 취향은 ‘손톱이 긴 여자’다. 과거 보수 문학계는 그를 ‘변태’로 취급했지만, 오늘날 ‘네일 아트’라는 산업이 생겨나 호황을 누리고 있다. 1989년 마 교수의 첫 장편소설 ‘권태’에 등장한 여주인공은 10㎝의 손톱에 머리는 초록색으로 염색을 하고 12㎝에 달하는 하이힐을 신은 모습으로 그려졌다. 당시로서는 엄청난 파격이었지만 지금은 그다지 특별할 게 없다. 그래서 사회평론가 강준만 교수(전북대)는 마 교수를 “염색 하나만 예로 들더라도 시대를 앞서간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이런 변화를 바라보는 마 교수의 심경은 어떨까.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놓은 ‘즐거운 사라’에 대한 변명에서 진한 페이소스가 전해진다.   “‘즐거운 사라’가 일본에서 번역출간(1994)돼 베스트셀러가 됐을 때, 일본 평론가는 책 이름 옆에다 ‘성적 교양소설’이라고 붙였어요. 일본 쓰쿠바대 한국학자 후루다 교수는 한국에서 근대 이후 반유교적 소설은 ‘즐거운 사라’가 최초라면서 가부장제도에 대한 반발이자 반유교적 이념소설이라고 평가하더군요. 그런데 그게 우리나라에서는 음란물이었죠.” 1992년 구속, 1993년 해직, 1995년 유죄확정, 1998년 복직, 2000년 재임용 탈락. 그후 마 교수의 건강은 급속도로 악화됐다. 스트레스에 하루 담배 3갑, 술로 지새는데 버틸 장사가 없다. 결국 중증 우울증에 당뇨질환까지 겹쳤다. 이 시기에 그나마 그의 기력을 지탱해준 음식이 바로 ‘러시안수프’다. 1971년 대학 2학년 때 함께 몰려다니던 친구의 애인에게서 레시피를 전수받은 후 30여 년째 마 교수가 즐겨 먹는 음식이다.           “톨스토이나 투르게네프의 소설을 보면 ‘러시안수프’가 자주 나오는데 보통 ‘배춧국’이라고 번역하더군요. 하지만 레스토랑에서 나오는 야채수프와는 달라요. 원래 러시아 농민은 고기를 안 넣었지만 고기가 좀 들어가야 제 맛이 납니다. 가난한 대학시절에는 고기가 비싸서 시레이션(미군 전투식량)으로 대용하기도 했죠. 집에 한솥 끓여놓고, 출출할 때 빵을 적셔 먹거나 밥을 말아 먹으면 좋아요. 만들기도 쉽고, 맛도 그만이죠.” 음식의 중심재료는 채소와 고기다. 먼저 양배추와 브로콜리, 셀러리, 당근, 양파, 피망, 감자 따위를 잘 씻은 후 적당한 크기로 썬다. 센 불에 푹 익히기 때문에 너무 잘게 썰지 않고 ‘숭덩숭덩’ 자른다. 고기도 마찬가지. 고기는 쇠고기 양지머리 부위가 적당하다. 그 다음 냄비에 채소와 고기를 한꺼번에 집어넣고 버터로 볶는데, 이때 버터의 맛이 가장 중요하다. 버터가 음식 맛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채소와 고기가 적당히 볶아졌으면, 냄비에 담긴 재료가 충분히 잠길 만큼 물을 붓고 감자가 완전히 익을 때까지 푹 끓인다. 그리고 소금으로 간을 본 다음, 케첩이나 잘 익은 빨간 토마토를 넣고 10분 정도 더 끓인다. 이때 브라운소스가루(밀가루를 버터로 볶은 것)를 넣으면 수프가 걸쭉해지는데, 마 교수는 요즘 넣지 않는다. 그래야 맛이 담백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먹어보니 양배추 등 채소에서 우러나온 단맛과 버터의 고소한 맛 고기의 육수가 어우러진 맛은 환상적이다. 여기에 빵과 밥을 더하면 그 나름의 맛이 하나 더 추가되는 셈이다. 사람은 먹는 만큼 배설욕구를 느낀다. 배설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섹스를 통한 배설도 그중 하나다. 하지만 “마 교수는 아내와 이혼한 1990년 이후 15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번도 ‘배설’을 하지 못했다”는 게 절친한 친구인 정신과 전문의 신승철 박사의 전언이다.   마 교수에게 글은 성적 욕구불만의 배출구다. 그가 진정 쓰고 싶어 하는 글은 ‘혼음’처럼 일탈을 소재로 한 무라카미 류의 소설. 하지만 그는 아직 자신이 없다. 또다시 들이댈 검열과 윤리적 비판의 칼날이 두렵기 때문이다. “카타르시스의 원뜻은 ‘설사’입니다. 배설이나 같은 뜻이죠. 우리는 그걸 ‘정화’라고 잘못 가르치고 있습니다. 나에게 글은 카타르시스고, 문학은 설사이자 배설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시원하게 배설하지 못하고 있어요. 무서워서.”   -마광수 에세이 ‘자유가 너희를 진리케 하리라’의 서시 중-    
697    "솔직한 시인" 윤동주와 "부끄러움" 찾아낸 마광수 댓글:  조회:2307  추천:0  2017-09-07
  서문 / 마광수 정지용의 서문이 붙은 윤동주의 유고시집 가 처음 간행된 것은 1948년이다.그러나 해방이 가져다준 감격의 소용돌이속에서 오 랫동안 잊혀져 왔던 윤동주를 문학적으로 재평가하고,그에게 정당한 위치를 찾아주려는 노력이 활발하게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70년대에 들어오면서부터 였다. 윤동주의 생애는 지극히 짧은 것이었다.그는 1917년 12월30일 북간도 용정 에서 아버지 윤영석과 어머니 김용의 맏아들로 태어났다.그의 집안은 학문에 대한 열의가 대단하고 애국정신이 강했으며 경제적으로도 넉넉한 편이었다. 기록에 의하면 할아버지는 함경북도 회령에서 간도로 이주하여 개척사업과 교육사업에 공헌한 지도적 인사였고,아버지 또한 학교 교원으로 일했다고 돼 있어 지사적 기개가 넘친 집안임을 짐작케 한다.그리고 조부와 부친이 똑같 이 그곳 교회에서 장로직을 맡은 것으로 보아 윤동주의 성장배경에는 가정적 으로 기독교적 분위기가 상당히 강했던 것 같다. 아동잡지 `어린이'의 애독자였던 그의 어릴 적 이름은 해환이었다.1931년 명 동 소학교를 마치고 중국인 관립학교에서 공부하다가 1935년 평양 숭실중학 교에 전입했다.그러나 숭실중학교가 신사참배문제로 문을 닫고 일본 사람 손 에 접수되자 용정으로 돌아와 광명중학교에 전입하였다. 그즈음부터 동시를 많이 써서 `카톨릭 소년'지에 `빗자루'(36년) `병아리'(36년) 등을 `동주'란 이름으로 발표했다. 1938년엔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하여 1941년 11월에 졸업한다. 이때 스스로 추려 뽑은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자비출판하려 했으나 일본경찰의 단속을 걱정한 스승 이양하의 만류로 단념하고 후일 1942년초 `평 소동주'란 이름으로 창씨개명을 했으며 동년 4월 일본 동경의 입교대학 영문과 에 입학했으나 가을에 경도의 동지사대학 영문과로 전학하였다. 1943년 여름방학에 귀국하려던 그는 고종사촌 송몽규와 함께 사상범으로 체포 되어 고문섞인 취조를 받았다.결국 그는 1945년 2월16일 28세의 나이로 운명하고 만다. 그는 한.일합방이후에 태어나서 민족광복을 맞이하기 직전에 죽었다. 그가 시를 썼던 시대(1936년~1943년)는 모든 사람들이 시를 외면했던 때였다.중.일전쟁과 대동아전쟁의 소용돌이속에서 그가 즐겨 바라보던 하늘에서는 공습경보가 울리 고 있었고 거리에는 군가가 흘러넘쳤다. 그의 시 곳곳에 나타나는 `부끄러움'의 이미지,그리고 이나 같은 작품에서 보이는 소외의식에 넘친 절망적인 몸부림은,이러한 시대상황속에서 창백하고 무기력한 식민지 지식인으로서의 자기자신을 한탄하는 윤동주의 처절 한 고백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시에 자연을 소재로 한 상징적 어구들이 자주 보이는 것도 그 당시 문학인 들에게 만연했던 현실도피,자연귀의의 사조와 아주 무관하진 않다. 그러므로 윤동주는 저항시인이아니라 순수한 휴머니스트로 보아야 한다는게 나의 생각이 다. 그의 시 어느 곳에도 저항의 기백은 나타나 있지 않다. 그가 옥사한 것은 어찌 보면 군사독재시절 이한렬군이나 박종철군의 죽음과 견주어질 만한것으로서 시 대를 잘못 태어난 양심적 지식인의 억울한 비명횡사라고 보는 편이맞을 것이다. 그는 깊은 애정과 폭넓은 이해로 인간을 긍정하면서도 실제로는 회의와 혐오로 자신을 부정한, 어찌 보면 결백증에 가까운 휴머니스트였다.그는 변변한 연애 한번 못해보고 낭만적인 폭음 또한 멀리했던,당시로 보면 `시인답지 않은 시인' 이었다. 기독교 가정에 기독교 학교로만 일관한 그의 환경이 그를 청교도적 죄의식으로 이끌어갔을 것이라고 생각된다.남에 대한 애정이 곧 자기자신에대한 자괴감과 부정의식으로 변모하는 그의 인생관이 그의 시 곳곳에 나타나 있다. 같은 작품이 그 보기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윤동주를 투쟁적 이미지의 저항시인으로 보지 않고 회의적 휴머니스트로 본다고 해서 그의 시의 가치가 깎여지는 것은 아니다.무엇보다도 그는 스스 로에 진짜로 `솔직한' 시인이었기 때문이다. 시의 가치가 정치적 사회적 상황과 함께 생각될 수는 없다.시는 시인의 자기 통찰과 자기연민,그리고 본능적 욕구의 대리배설로 이루어질 때 한결 진솔한 감동을 준다.그런 점에서 볼 때 윤동주의 저항은 끊임없는 자기 내면 또는 본능적 자의식과의 투쟁이었다.이러한 `투쟁'이야말로 진정한 `저항'이 되는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스스로의 시인기질에 따른 시인으로서의 역할을 잘 자각하고 있었던 그는 시가 정치나 이데올로기에 참여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그는 자신의 욕구와 비애를 시창작을 통해서 극복하려고 했으며 철저한 자기분석을 통해서 자아의 변증법적 발전을 시도했던 것이다. 그가 목표했던 저항의 대상은 외부로부터의 물리적 압박이나 조국의 현실이 아니라 바로 자기자신이었다. 등의 작품을 통해서 우리는 그의 내적 투쟁의 기록을 역력히 읽을 수가 있다. 특히 그의 시에 나타나는 자학적이며 자기부정적인 이미지의 대표적 보기를 들면 이 점이 분명해진다.앞서 말했듯 `부끄러움'이란 시어가 나오는 작품이 10편이나 되는데,이는 예나 지금이나 우리나라 시인들이 표피적 정서나 표피 적 이데올로기(또는 사상)만을 좇는 경향과 비교해 보면 가히 파격적이리만큼 독특한 문학세계를 형성하고 있다. 말하자면 그는 무언가를 `부르짖거나' `가르치거나' `과장적으로 흐느끼는' 대신 스스로를 `발가벗기고' 있는 것이다.물론 윤동주의 `발가벗기'는 다분 히 실존적 현학의 냄새나 종교적 형이상성의 냄새를 풍기는 발가벗기이다.그 래서 좀더 자신의 심층아래로 내려가 본능적 욕구를 발가벗기는 데는 미치지 못하는 것 같은 아쉬움을 느끼게 한다. 그렇지만 그는 `퓨리터니즘'이라는 옷을 태어날 때부터 두텁게 입을 수밖에 없었고 또 그 당시 지식인들의 정신적 정황이 본능보다는 관념에 치우칠 수 밖에 없었다는 점을 감안해 볼 때 윤동주는 `발가벗기'정도만 가지고서도 우 리 문학사에 커다란 기여를 했다고 본다.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의 문학은 이광수류의 계몽적 시혜주의에서 한 발자욱 도 못벗어나고 있기 때문이다.윤동주 시의 또 다른 장점은 그가 어느 계파나 유행에 연연하지 않고 스스로의 독자적 시세계를 구축해 나갔다는 사실이다. 1930년대라면 대부분의 시들이 정지용류의 감각적 서정주의나 카프식의 정치 적 이데올로기시,둘중 하나일 때였다. 또 자연을 노래한다고 해도 전원주의적 회고주의가 고작이었고 윤동주처럼 자연을 내적 갈등의 상징으로 응용한 시인은 없었다.남들이 모더니즘이니 초 현실주의니 하고 외국의 유행사조에 민감해 있을 때 그는 다만 일기를 써나 가는 형식으로 경향에 구애받지 않고 스스로의 심경을 담담히 고백해 나갔던 것이다. 나는 문학은 문학일 뿐 그것이 문학이상의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고 보지 않는다.여기서 말하는 `엄청난 힘'이란 문학이 혁명가나 사제의 역할까지 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문학은 문학 나름대로의 `힘'을 어찌됐든 가지고 있다. 그 힘은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이요,정신중에서도 이성에 속하 는 것이 아니라 감성이나 감각 또는 본능에 속하는 것이다.그러므로 문학은 정치나 이데올로기처럼 단기간에 효력을 나타낼 수는 없다.문학의 효력은 서 서히 나타나 인간의 의식자체를 변모시킨다. 여기서 말하는 `의식'이란 이성과 감성,본능과 도덕이 합쳐서 이룩되는, 보 다 통체적인 직각(直覺)의 양태를 가리키는 것이다. 윤동주는 옥사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절대로 `총각귀신'이 되고 싶지 않았 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이상하게도 `투사'보다는 `유약하지만 솔직한 사람' 을 한 시대의 상징적 희생물로 만드는 일이 많다.윤동주는 바로 그러한 역사 의 희생물이라고 할 수 있다.그러나 그의 작품들은 일제말 암흑기, 우리 문학 의 공백을 밤하늘의 별빛처럼 찬연히 채워주었다. (마광수 저 [철학과현실사 발행] 중에서)                  
696    시교육은 권위주의적인 주입식 일방적 통로와 결별해야... 댓글:  조회:2250  추천:0  2017-09-04
비유와 이미지에 대한 시교육의 방향  박호영(문학평론가·한성대 교수)  1. 새로운 시교육을 위하여  시교육이 어렵다는 것은 교육현장에 있는 교사들의 한결같은 반응이다.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시들이 비교적 이해하기 쉬운 서정시 위주로 선택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시의 수사적 장치나 내포적 의미의 파악이 만만치 않다고 한다. 그러므로 그들이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대개 의존하고 있는 것은 참고서나 전공서적에 실린 해설이다. 마치 절대적인 해석인 양 단언적으로 규정해 놓은 해설은 입시에 매달려 촌각의 시간도 아까운 교사들과 학생들을 매료한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바람직한 시교육의 환경이 아니다. 특히 수용자의 입장에서 볼 때 개인에 따른 해석의 다양성을 애초부터 차단하는 것이고, 텍스트의 유연성도 배제하는 것이다.  시교육의 소통 구조를 생산자로서의 작자, 중개자로서의 교사, 수용자로서의 학생으로 놓고 볼 때 사실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는 것은 수용자로서의 학생이다. 그들의 다양한 관점에 따라 시텍스트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다. 중개자로서의 교사는 다양한 관점을 이끌어내는 데 능숙해야 한다. 그것이 훌륭한 중개자의 역할이다. 서울의 모고등학교에 재직하고 있는 어느 교사는 학생들에게 김소월의 [진달래꽃]에 등장하는 시적 화자의 심정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밝히라는 과제를 내줬는데, 의외로 대다수의 학생들이 자기가 사랑하는 이라면 진심으로 축복하며 보내줄 수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시교육의 사례를 발표한 적이 있다. 그것은 요즈음의 학생들의 사랑관과 기성 세대의 사랑관이 차이가 있음을 말해준다. 그런데 교사가 기존의 어느 한 쪽의 해석에만 매달려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아이러니나 역설의 표현 기교를 구사한 시로 인식토록 가르친다면 그것은 수용자의 입장을 무시한 중개자의 횡포밖에는 안된다. 수용자는 그 나름으로 시작품을 향수할 권리가 있는데 이 권리를 박탈한 셈이다.  그러므로 시교육 현장에서 교사와 학생은 수직적인 관계보다 수평적인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 교사는 지식을 전달하는 자보다는 "학습자가 시를 보다 잘 해석할 수 있도록" 하는 가이드의 역할을 해야 한다. 이것이 시교육의 목표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교사는 시의 이해를 위한 단서 제공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 이 단서들은 시의 중요한 구성 요소들 -비유, 이미지, 상징 등-중에서 찾아진다. 비유, 이미지, 상징 등은 생산자인 시인이 자신의 의도를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마련한 장치이다. 그러나 시의 중요한 구성 요소들의 개념을 날카롭게 구분하거나 고정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시적 텍스트는 궁극적으로 단 한 번만 '演技되는' 것이 아니고, 그와 정반대로 언어의 특수화된 용법을 통해 구조화된 한 공간 내부에서 벌어지는 무한한 '遊戱'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비유나 이미지, 상징 등의 분석에 규격적인 잣대를 사용해 온 우리 시교육에는 상당한 문제점이 있다. 이에 필자는 우리에게 고정화되다시피 한 시텍스트의 비유와 이미지를 살펴보고 다른 해석의 가능성을 점검해 봄으로써 참다운 시교육의 일단을 본고를 통해 모색해 보고자 한다.  2. 비유에 대한 해석의 다양성  비유는 시적 표상의 가장 기본이 되는 형태이다. 시인은 어떤 사물이나 감정을 표현하고자 할 경우 자신의 독창적인 인식을 보여주기 위해 비유를 사용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생각이 상대방에게 보다 잘 전달되리라고 믿는 것이다. 이 경우 비유의 과정에서 시인의 의도가 내재되게 마련이다. 즉 하나의 사물에 대한 의미 규정을 다른 사물을 빌어 표현하는 것이 비유인데, 이 때 비유되는 두 사물 간에 시인의 세계관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이 세계관의 파악은 비유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될 지는 모르지만 시교육적 측면에서는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시교육에서 텍스트 해석이란 완결된 의미를 밝혀내어 학생들에게 그것을 보여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불확정적이어야만 그들이 텍스트의 의미역을 넓히고, 텍스트에 흥미를 갖는다. 특히 비유는 두 대상 간의 유추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模糊性과 多義性을 구비한다.예를 들어 "내 마음은 호수요"라고 할 때 내 마음의 상태가 잔잔하다고 할 수도 있고, 평화롭다고 할 수도 있으며, 맑고 깨끗하다고 할 수도 있다. 그 외에도 호수로부터 환기되는 어떠한 정서도 '내 마음'으로 연결될 수가 있다. 그러므로 교사는 비유를 가르칠 때 해석의 다양성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비유의 의미가 다른 각도에서 조명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이육사의 시 [절정]을 통해 살펴보기로 한다.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  마침내 北方으로 휩쓸려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高原  서릿발 칼날진 그 위에 서다.  어데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이 시에서 문제삼을 부분은 비유이다. 이에 대한 해석은 대개 "비극적 자기 초월의 아름다움"(김재홍), "절망적 상황을 통해 발견된 영원한 생명 혹은 이념의 세계"(오세영)의 범주 속에 놓여 있다. 문학 교과서 자습서에서는 "은유. 겨울과 강철의 매서움과 단단함이라는 복합 심상이 '무지개'와 결합되어 유미적 빛깔로 승화되고 있다. '겨울'의 이미지는 어두운 일제 치하의 현실을, '강철'은 광물성 이미지를 통한 저항의식을 보여주며, '무지개'는 역설적 이미지를 통해 꿈과 희망을 암시한다"(김윤식·김종철)고 설명되어 있기도 하고, "강철이 현실의 절망과 죽음의 표상이라면, 무지개는 새로운 소망과 재생의 표상으로 서로 모순 관계에 있다"(김봉군·한연수)고 설명되어 있기도 하다. 이 모두를 종합해 보면 절망적 현실을 극복하려는 시적 화자의 초극적 자세를 나타낸 것이라고 보는 것이 공통적인 견해이다. 물론 이 해석이 틀린 것은 아니다. 더구나 이 시의 작자가 일제 말기의 대표적인 저항시인이라는 사실은 이같은 해석이 타당하다는 근거를 확보한다. 그러나 이 비유는 달리 해석할 수도 있다. 즉 3연까지의 극한적 상황 서술과 4연의 '이러매'와 '∼밖에'라는 어휘가 주는 뉘앙스를 바탕으로 시적 화자가 초극적 자세를 지닌 것이 아니고 체념적인 자세를 지녔다고 보는 것이다. '무지개'란 시어가 있는데 어떻게 절망적인 태도를 보였냐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무지개'가 아니라 '강철로 된 무지개'란 점에서 논리의 객관성을 지탱한다. '무지개'란 시어는 그의 다른 시에서도 여러 차례 등장한다.  ① 밤은 옛일을 무지개보다 곱게 짜내나니  한가락 여기 두고 또 한 가락 어데멘가  내가 부른 노래는 그 밤에 江 건너 갔소.  -[강 건너간 노래]  ② 무지개같이 황홀한 삶의 光榮  罪와 겻드러도 삶즉한 누리  -[鴉片]  ③ 船窓마다 푸른막 치고  촛불 鄕愁에 찌르르 타면  運河는 밤마다 무지개 지네.  -[獨白]  ④ 그리고 새벽 하늘 어데 무지개 서면  무지개 밟고 다시 끝없이 헤여지세.  -[芭蕉]  ⑤ 담배를 피우면 입술을 조붓하게 오무리고 연기를 천정으로 곱게 부러올리는 것이였다. 거기에 나는 개인 날의 무지개를 그리는 것이었다.  - [계절의 표정] (수필)  ①-⑤에서 무지개는 '고움', '황홀함', '그리움', '꿈', '희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것은 시인의 '무지개'에 대한 인식이 대개 이런 의미의 범주 안에 놓임을 말해준다. 따라서 에서 겨울, 강철, 무지개의 이미지를 중심으로 볼 때 '무지개'는 차가움, 비정함, 절망적, 현실적 등의 이미지를 지닌 '겨울' '강철'과 대척적인 위치에 놓인다. 이를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겨울 ---+  |←────→ 무지개  강철 ---+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무지개'와 '강철로 된 무지개'는 다르다는 것이다. '무지개'가 아름답고, 환상적이고, 긍정적이고, 일시적인 것이라면, '강철로 된 무지개'는 차갑고, 단단하고, 현실적이고, 부정적이고, 지속적인 것이다. 또한 의 비유가 성립할 수 있는 것은 '겨울'과 '강철로 된 무지개'가 동질적이기 때문이다. 즉 이들 사이에는 다음과 같은 관계가 형성된다.  무지개 ←----------------→ 강철로 된 무지개  겨울 = 강철로 된 무지개  그러므로 이 시의 마지막 행 의 의미 속에는 겨울은 봄의 도래를 약속하는, 무지개와 같은 꿈과 희망의 계절이어야 하겠는데, 이 시대의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개'이기에 그렇지를 못하고 겨울이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다는 시인의 염려가 담겨 있다. 혹자는 지사적인 면모를 지닌 시인이 어떻게 나약한 심성을 드러낸 체념적인 시를 썼겠는가라고 반문할 지 모르지만 이육사는 실제로 [남한산성], [자야곡], [편복] 등의 시에서 보듯이 절망적이고 체념적인 상태를 노래한 시를 썼고, 텍스트 자체만을 놓고 분석할 때는 얼마든지 이같은 해석이 가능한 것이다.  3. 이미지에 대한 시교육  이미지는 신체적 지각에 의해 산출된 감각을 마음 속에 다시금 재생시켜 놓은 것이다. 이 정의를 음미해 보면 이미지라는 것이 개인의 상상력에 따라 얼마든지 다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신체적 지각의 과정과 마음 속에 생산되는 과정이 얼마든지 주관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정월 대보름의 달을 차갑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포근하게 받아들이는 이도 있고 그 결과 같은 달일지라도 사람에 따라 달의 이미지는 달라지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교육 현장에서 가르치는 시의 이미지는 어떠한 것인가? 우리가 기억하는 시들, 예를 들어 김수영의 [풀]에서의 '풀'의 이미지라든가 윤동주의 [서시]에서의 '밤'의 이미지가 머리 속에 고정되어 떠오르는 것을 보면 이미지에 대한 다양한 가능성의 모색을 거치지 않았다. 이는 비유와 마찬가지로 이미지에 대한 교육에도 문제점이 있음을 시사한다. 박목월의 [윤사월]을 실제의 예로 들어보기로 한다.  송화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윤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  산지기 외딴 집  눈먼 처녀사  문설주에 귀 대이고  엿듣고 있다.  이 시는 4연 8행의 짧은 시이지만 독자로 하여금 풍부한 연상 속에 놓이게 하는 시이다. 이 시에서 눈먼 처녀의 비극적인 상황-산지기 딸로서 가난하고, 어릴 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눈이 멀게 된 비극을 겪었고, 과년하도록 시집을 가지 못했고, 지금은 외롭게 살고 있는 한과 설움의 삶-은 교육 현장에서 대개 지적되었다. 그러나 송화가루, 꾀꼬리의 노란 빛깔의 이미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심도 있는 천착이 되지 않았다. 도시의 학생들에게는 송화가루의 빛깔이 어떤 색인지도 잘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이 시를 가르치는 데에 있어서 송화가루나 꾀꼬리의 이미지를 물어보는 것은 필수적이다.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에 나오는 에서 '노오란'의 이미지가 '성숙'을 의미하는 것처럼 이 시에서 노란 빛깔의 이미지가 성숙을 의미할 수도 있고, 그 경우 그 '성숙'의 이미지는 눈먼 처녀의 성숙함과도 연결되어 마지막 연에서의 처녀의 행동, 즉 '듣는' 것이 아니라 '엿듣는', 부끄러움의 미학으로도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상 아무도 없는 외딴 집에서 들려오는 꾀꼬리 소리를 자연스럽게 듣지 않고, '엿듣는다'는 것은 상식적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일. 처녀의 성숙함과 부끄러움으로 연결되어야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 때 '문설주'는 안과 밖의 통로요, 자연과 인간의 통로이며, 외부의 성숙함과 처녀의 성숙함의 통로이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는 이 시를 다음과 같이 도표화해 보일 수 있다.  | 송화가루 |-------→ | 문설주 | --------→ | 눈 먼 처녀 |  | 꾀꼬리 |  위에서 보듯 한 편의 시에 대한 해석은 대상의 이미지를 폭넓게 파악하는 데에 따라 다양하게 전개될 수 있다. 대상의 이미지를 고정적인 지식으로 받아들이게 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것인가는 이를 보더라도 증명이 된다.  이미지라는 것이 우리의 내면세계를 자극하고, 독자의 반응을 유도하여 시를 정서와 연결시켜주는 구실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방적인 이미지의 해석으로 '열린 독서'가 방해를 받아서는 안된다. [윤사월]이란 시를 통해서도 살펴 보았듯이 주목하지 않은 대상의 이미지 분석에 의해 시에 대한 인식의 폭이 넓어졌다. 물론 이것은 단적인 예에 지나지 않는다. 학생들의 교육 현장 참여가 이루어지면 보다 신선하고 다양한 해석이 이루어질 수 있다. 교사는 여러 가지 의견을 수렴하여 그들이 공감을 하게끔 올바른 해석으로 이끌어야 한다. 이 경우 교사는 독선적이거나 지배적이 되어서는 안된다. 같이 생각해 보자는 태도, 학생들의 시각도 수용 가능성이 있는 것이라는 격려 속에서 해석의 단서만을 제공해야 한다. 그리고 이미지라는 것이 마음 속에 떠오르는 것이기 때문에 한 편의 시를 대하면 먼저 한 두 번을 찬찬히 읽고 눈을 감고 그 시의 분위기를 상상하도록 하는 일도 이미지 교육에 중요한 몫을 할 것이다.  4.맺음말  문학교육의 전반적인 문제이겠으나 시교육에 있어서 시인의 의도를 중심으로 시를 해석하거나 텍스트에 대한 구조적 분석으로 해석을 확정짓는 것은 誤讀이 될 지 모르는 위험한 일일 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열린 사고를 억제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또한 교육자가 지배적인 위치에서 피교육자에게 자신의 주관적인 해석을 받아들이도록 강요하는 것도 자의적인 해석이 얼마든지 가능한 시라는 장르의 성격상 불합리한 일이다. 가장 이상적인 시교육은 이 중간층의 해결점을 모색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비평적 객관주의와 주관주의 사이에서 시교육을 定位하는 일이야말로 시교육 전문가들이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라는 지적은 타당성을 얻는다. 그러나 과거의 우리 시교육을 살펴보면 권위주의적인 주입식 시교육이 대부분이었다. 해석에 있어 일방적인 통로만 열려진 셈이다. 그 결과 학생들은 항상 수동적인 입장에서 시를 받아들였고 시를 보는 안목을 신장시키지 못했다. 특히 비유와 이미지는 시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그 의미 규정에 있어 다양한 시도가 없었다. 앞서 살핀 바와 같이 비유나 이미지는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시 해석의 폭이 넓혀질 수도 있고 좁혀질 수도 있다. 그러므로 이상적인 시교육을 위해서는 학생들의 능동적인 교육 현장의 참여로 가장 설득력이 있는 해석이 이루어져야 한다. 텍스트의 실체는 그같은 작업을 통해 드러난다. 우리가 비유와 이미지에 대한 과거의 교육을 시정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695    독일 시인 - 베르톨트 브레히트 댓글:  조회:3676  추천:0  2017-09-03
  [시가 있는 월요일]             살아남은 자의 슬픔                                   /매일경제 허연 기자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난밤 꿈속에서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 그러자 나는 내 자신이 미워졌다. - 베르톨트 브레히트 作 <살아남은 자의 슬픔>   독일 출신의 시인이자 극작가인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파란 많은 삶을 살았다. 오죽했으면 "구두보다 나라를 자주 바꿨다"는 말을 남겼을까. 브레히트는 젊은 시절, 나치를 피해 핀란드와 러시아를 전전하다 미국에 정착한다. 하지만 매카시즘에 휘말려 미국에서도 추방당한 후 스위스를 거쳐 동베를린에서 생을 마감한다.   시에는 사연이 있다. 1941년 브레히트는 턱밑까지 진격해온 나치를 피해 모스크바를 탈출하면서 결핵 때문에 거동이 불편한 연인이자 동지인 스테핀을 남겨두고 떠난다. 훗날을 기약했겠지만 스테핀은 결국 결핵병동에서 숨을 거둔다. 스테핀에 대한 죄책감은 이 명작을 탄생시켰다.   살아남은 것이 자랑이 아니라 죄스러운 일이 됐던 시대. 그 격동의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을 생각해본다. 인간은 역사 앞에서 얼마나 초라한가. 인간은 도대체 얼마나 작은가.   [허연 문화부장(시인)]   베르톨트 브레히트(독일어: Bertolt Brecht, 1898년 2월 10일 ~ 1956년 8월 14일)는 20세기에 활동한 독일의 극작가, 시인, 그리고 연출가다. 주로 사회주의적인 작품을 연출했으며, 낯설게 하기라는 개념을 연극연출에 사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표현주의를 거친 신즉물주의적(新卽物主義的) 스타일로, 현실에 대한 가차 없는 비판과 풍자를 극화한 니힐리스트. 후에 사회주의자가 되었다.     생애[편집]   독일 바이에른 주 아우크스부르크에서 제지공장주의 아들로 태어났다. 뮌헨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 했으며, 제1차 세계 대전 동안은 뮌헨에 있는 병원에서 잠시 일했다.   전쟁이 끝난 뒤 뮌헨에서 극작가·연출가로 출발하여 후일 베를린으로 나가 막스 라인하르트의 독일 극장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처녀작 희곡 《바르》(1918)와 이어서 제2작 《밤의 북[鼓]》(1919)으로 클라이스트 상을 받았고, 《도시의 정글 속에서》(1923)와 《서푼짜리 오페라》(1928)로 극단에 결정적인 지위를 굳혔는데, 《서푼짜리 오페라》는 무려 100회가 넘는 공연이 베를린에서 있었다.   초기에는 무정부주의자였으나, 나중에는 전쟁체험을 통해서 자기의 계급에 등을 돌려 차츰 혁명적인 방향으로 나아갔다. 마르크스주의를 받아들인 브레히트는 부르주아의 탐욕을 드러내는 극본과 사회주의 소설 《서푼짜리 소설》을 집필하는 좌파작가로 활동했다. 1933년 극우정당인 나치의 집권과 나치가 좌파탄압을 위해 날조한 사건인 독일 국회의사당 방화 사건으로 미국에 망명했다. 망명 중에 집필한 《제3제국의 공포와 비참》, 《갈릴레이의 일생》(1938),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1939), 《코카서스의 백묵원》(1944) 등의 상연으로 새로운 연극의 길을 제시하였다.   세계 대전이 끝난 뒤, 미국에서도 1947년 12월 극단적인 반공주의인 매카시즘이 불어 브레히트는 다시 독일 민주 공화국(동독)으로 이주해야 했다. 당시 많은 동료 좌파작가들이 독일 연방 공화국(서독)을 택했지만, 그만은 동독을 택했다. 하지만 동독 공산당(SED) 간부들이 관료주의에 물들어 있던 동독도 그에게 만족을 주지는 못하여 풍자시를 쓰기도 했으며, 정부가 인민을 버렸다면서 1953년 동독 노동자 봉기 진압을 비판하기도 했다. 1956년 8월 지병인 심장병으로 숨을 거두었으며, 가족으로는 1929년 결혼한 아내 헬레네 바이겔과 두 자녀(슈테판, 바바라)가 있다.   주요작품[편집]   시[편집]   브레히트의 주요 시 작품으로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 〈1492년〉등이 있다. 그의 작품들은 기존 가치관에 대한 비판의식, 인간에 대한 사랑,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는 평화주의가 담겨 있는 것이 특징이다. 실례로 시 〈1492년〉은 이민을 심사하는 판사가 일부러 쉬운 문제를 내서, 가난한 이탈리아인 가족의 입국을 허용한다는 내용이다.   희곡[편집]   브레히트는 처음엔 표현주의 작가로 출발하였으나 후일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추구하게 되었다. 처녀작인 , 출세작이 된 귀환병극(歸還兵劇) , 인간소외의 문제를 앞세운 에는 아직 안비바렌트한 도취나 익살, 조소의 빛이 강하지만 차츰 마르크스주의로 기울어져, 대상에의 거리적(距離的)인 태도는 사회적인 인식을 구하는 새로운 서사적 연극의 주요한 수법인 이화효과(異化效果)를 낳았다. 그리고 실지교시(實地敎示)를 중시한 일련의 교육극의 시도는 이미 그러한 지향(志向)을 보인 것이다. 단순한 정감에 흐르지 않는 음악과 극의 새로운 종합을 구하는 방향은 작곡가 바일의 협력을 얻어 (1928)와 (1930)을 낳았다. 와 은 정치적으로 가장 첨예한 극이다. 불우한 망명생활 중 그의 연극론은 차츰 체계화되었으며 이를 뒷받침하는 걸작 등을 연달아 집필, 전후에는 동베를린으로 넘어가 베를리나 앙상블을 결성하고 실제의 연극활동을 통해서 그의 연극의 혁신적인 의의를 무대 위에서 입증하여 세계적인 주목을 모았으나 변증법적 연극으로 발전시키는 도상에서 세상을 떠났다.         Bertolt Brecht 베르톨트 브레히트 1898.2.10. – 1956.8.14.   1. 개요[편집] 독일의 극작가 겸 연출가이며 시인으로도 활동했었다. 독일문학계에서는 절대 빠질 수 없는 이름이며 독일문학을 넘어 그야말로 세계 연극계에 한 획을 그었다고해도 과언이 아닐 사람이다. 그가 남긴 무수한 작품들은 그가 떠난 지금도 여전히 연구대상이며 무대에 올려지고 있으며, 그의 극작론은 연극계를 넘어 다른 학문분야에까지 영향을 미칠 정도이다. 2. 생애[편집] 독일 바이에른 주 아우크스부르크에서 출생했다. 1차대전에 징집되지 않으려고 뮌헨 대학교에서 의학을 전공했지만 결국 제1차 세계대전 말기에 병원에서 의무병으로 1달간 근무하였다. 1922년 <밤의 북소리>로 클라이스트 상을 수상하였으며, 28년 연극 <서푼짜리 오페라>로 명성을 얻기 시작하였다. 그는 초기에는 무정부주의적 경향을 보였으나, 1920년대 후반부터는 마르크스 주의를 받아들여 좌파적 성향을 작품에 이입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그의 작품은 실질적으로는 그의 동료들과 공동으로 집필한 작품이 굉장히 많다. 그 예로 의 각본은 거의 대부분 그의 여비서였던 엘리자베스 하우프트만이 영국인 존 게이의 를 번역한 것을 메인 텍스트로 삼은 것이어서 후에 하우프트만이 공동 저자로 인정되었다  그의 작품으로는 <어머니>, <도살장의 성 요한나> 등이 있다. 1933년 나치스가 독일 정권을 장악하고 독일 국회의사당 방화 사건을 날조하자, 브레히트는 덴마크로 망명하여 정치적 의식을 드러내는 시를 쓰는 한편, 연극 <제3제국의 공포와 빈곤>,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 등을 썼다. 이후, 1941년 핀란드를 거쳐 미국으로 망명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에는 미국의 매카시즘 때문에 스위스로 떠나 <안티고네>와 <파리 코뮌의 나날>을 쓰고, 연극론에 대한 개설서 <소사고 원리>를 집필하기도 했다. 만년에는 동독의 동베를린으로 가 자신의 작품들을 연출하면서 후배 연극인을 양성하였다. 모스크바에서 스탈린 평화상을 수상하였으며, 동독에서도 여전히 체제를 풍자하고 비판하는 작품을 남겼다. 브레히트는 사회주의를 연극 작품에 접목시킨 좌파 극작가로도 유명하지만, 그의 시 작품으로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 <1492년> 등이 유명하다. 휴머니즘 속에서 현실의 폭력성을 비판하고 전쟁을 고발하는 내용이 많다. 3. 작품세계[편집] '소격효과(Verfremdungseffekt)'라는 기법으로 극작계에 큰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소격효과는 '생소화 효과', '낯설게하기 효과'로도 알려져 있다. Verfremdung이라는 단어의 철학 번역어가 그 유명한 소외다. 인간소외 현상의 소외. 이런 입장을 따르면 브레히트의 연극이나 시에 관객이 감정이입을 하게 되면 독자는 작가의 의도를 잘못 해석한 셈이다. 읽는 내내, 그리고 읽고 나서도 껄끄러운 불편함이 남아서 현실을 비판하기 시작해야 한다. 서사극은 아리스토텔레스에서부터 내려온 기존 극작기법에 반기를 들고 나온 것이다.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연극을 감상할 때의 보통의 태도(연극 무대에 대한 공감, 주인공에 대한 동화, 대리만족 등)들을 부정한다. 대신 연극에서 벌어지는 모든 상황을 '낯설게' '관찰하는' 연극을 보여준다. 때문에 관객들 입장에서는 극의 진행을 예상할 수 없어 굉장히 충격적으로 다가올 수도 있으며 감성적인 관람보다는 이성적이며 생각하고 판단하는 관람을 작가가 주문한다. 예술은 자본주의가 현실에서 주체를 소외시키는 것에 대항해야 한다. 즉 현실을 위한하게 만드는 이데올로기에 감정이입을 하지 못하게 만들어서 현실을 이성적으로 직시하게 만들어야 한다. 연극은 관객을 몰입시키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모순을 드러냄으로써 관객을 불편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관객이 현실을 다시 생각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너를 속이는 현실에 감정이입하지 말아야 한다 렇게 연극을 통해 관객이 현실에서 소외되어 있으며 자신이 현실에 소외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하기 위해, 연극이 관객을 몰입시키지 않고 소외시키도록 한다. 관객은 현실에 소외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연극을 통해 감정이입에 실패하고 소외당하면서 깨닫게 된다.  아래는 소격효과를 반영하는 예들이다. - 브레히트는 초기작에서부터 무대에 이런 현수막을 걸었다고 한다. "그렇게 낭만주의적인 얼빠진 눈으로 바라보지 마시오!" - 브레히트의 희곡에는 장편의 현실비판적 노래들이 어이없게갑작스레 끼어드는 경우가 많다. 극의 줄거리와 크게 상관도 없으면서 갑자기 현실비판에 들어가기 때문에 몰입을 오히려 방해해버리는데, 이는 소격효과를 위해 의도적으로 장치된 것이다.  - 연출을 맡을 당시 배우들에게도 등장인물에 감정이입하지 말라고 주문했다. 그래서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의 초연 후 대히트를 쳤을 때 배우가 억척어멈에 감정이입하는 것을 보고 크게 실망하여 판권을 회수하고 동베를린에서 초연 시 브레히트의 아내이자 여배우인 헬레네 바이겔(Helene Weigel)이 억척어멈역으로 재공연하였다. 브레히트에 따르면 연극을 볼 때 그 인물에 대해 관객이 느끼는 답답한 감정에 이입해야 한다. 보는 내내 답답하고 화가 나는 등장인물인 억척어멈 역을 맡은 배우는 그 억척어멈이 실제로 느꼈을 감정인 굳센 의지와 억척스러움, 어떻게든 나만 살아남으면 된다는 감정을 표현하면 안 된다. 또 이렇게 연기해서 관객에게 억척어멈이라는 인물을 동정하게 하면 안 된다. 억척어멈이 하는 행동을 보면서 화를 내고 그러면서 전쟁을 벌이는 현실을 비판하게 되는 관객에 감정이입해서 답답해하고 화를 내면서 연기해야 한다. 그래서 억척어멈을 연기하는 배우는 "이 놈의 세상 전쟁나든 말든 어떻게든 나하고 가족들만 잘 살면되지"라는 내용의 대사를 하면서도, "이 미련한 인간아, 전쟁나면 네 가족도 죽고 너도 죽는거야."라고 억척어멈을 비판하고 답답해 하는 입장에서 연기해야 한다. 아이구 브레히트 이놈아 배우들 정신분열 걸리겠다  때문에 브레히트가 20년대 좌파적 성향을 띄고, 나아가 30년대 '망명문학(Exileliteratur)'의 기수로서 다분히 사회비판적인 작품을 내놓을 수 있던 것은 그의 연극이론에서부터 이미 보이고 있었다. 다음 그의 말은 그가 연극을 통해 무엇을 추구했으며, 그가 만든 결과물들이 의미하는 것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희곡작가이다. 나는 내가 본 것을 알리고자 한다. 인간시장에서 나는 보았다. 인신매매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나는, 희곡작가인 나는 그런 것을 알리고자 한다." 생소화 효과는 연극계 뿐만 아니라 관련 인문학에서도 종종 인용이 된다. 심지어는 연극학하고는 전혀 관련이 없을 것 같은 역사교육이론에서도 역사 해석과 역사적 사고 증진 등의 방법으로 논의될 정도이니 이 정도면 한 획을 그었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나무위키에서도 자주 나오는 용어인 제 4의 벽 역시 브레히트가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이다. (최초는 아니다) 이러한 그의 작품세계의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독일어권 작가는 '막스 프리슈(Max Frisch)'나 이른바 '희비극'으로 알려진 '프리드리히 뒤렌마트(Friedrich Duerrenmatt)' 등을 꼽을 수 있다. 브레히트 바로 다음 세대 독일어권 연극계를 잡았던 작가들이다. 참고로 이 두 사람은 모두 스위스인이다. 4. 애증의 대상, 동독[편집] 앞서 언급하였듯이 브레히트는 망명생활을 청산하는 과정에서 두 개의 독일 중 사회주의 진영에 있던 동독을 선택했다. 브레히트 외에도 안나 제거스(독일의 대표적인 사회주의 소설가, '일곱번째 십자가'로 알려져있음) 등 다수의 문인들과 예술가들이 독일 땅에 세워진 새로운 이념국가로써 동독을 선택했고, 브레히트 역시 그들처럼 본인이 영향을 받았던 좌파적이면서 사회비판적인 성향을 때문에 동독을 선택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러시아 혁명 시절부터 냉전시기까지 사회주의라는 이념은 매우 이상적이고 희망찬 이념으로 알려졌었고, 더욱이 '약자의 해방'이라는 이미지와 겹쳤다. 때문에 상당수 지식인들과 예술인들은 사회주의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고 동독 역시 그러한 새로운 이념 국가로써 진정한 이상적인 독일로써 이념적 우월성을 얻어 서독에 지지않으려 했었다.  하지만, 사실 브레히트가 결정적으로 동독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고한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연극 세계를 제대로 펼칠 수 있는 극장이 바로 동베를린에만 있었다는 것이었다. 동독 당국은 이 걸출한 연극 스타에게 실제로 그에 걸맞는 대접을 해주었다. 독일의 최승희 이런 말이 괜히 가능한 것이 아닌게 북한 역시 만담의 귀재 신불출, 식민지 조선을 넘어 세계에도 알려진 최승희, 그리고 내가 고자라니 심영 등 수많은 문학가들과 예술가들을 받아들이면서 그들에게 연구소 설립 등 전폭적인 예술활동 지원을 했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이념선전의 도구였으며 56년을 기점으로 이런 예술인들은 모조리 숙청을 당하게 된다.  브레히트에게는 당시 베를린의 최고 극장 중 하나인 '베를린 앙상블'을 주어졌으며, 그는 걱정없이 작품활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받았지만...그는 자신의 상황을 이렇게 빗대었다. "예술작품은 사무실의 예술견해를 예술작품으로 옮길 수 있는 능력이 없다. 우리가 자로 재서 만들 수 있는 것은 장화 뿐이다." 실제로 브레히트는 스탈린 체제에 대해서도 공공연연히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기도 했다. 다행히 정치적인 분쟁에 휩쓸리지 않고 조용히 보내긴 했지만... 5. 작품[편집] 그가 지은 작품에는 큰 특징이 있는데, 작품의 무대가 대부분 독일 밖이라는 것이다. 5.1. 픽션[편집] Geschichten vom Herrn Keuner(코이너씨의 이야기)   5.2. 연극[편집] 입문하고자 하는 사람은 임한순 교수의 이 좋다. 작품 해설도 붙어 있고 과거 판본에 비해 번역도 깔끔하다. 많은 작품이 유명하지만, 당대에 가장 인기있었고 현재에도 가장 인기있는 작품은 '서 푼짜리 오페라',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 '갈릴레이의 생애', '사천의 선인'이다. (국내에 대본이 번역되어 있거나 잘 알려진 작품은 굵은 글씨로 표시) ------------------------------   베르톨트 브레히트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베르톨트 브레히트   출생 1898년 2월 10일  독일 아우쿠스부르크 사망 1956년 8월 14일  동독 동베를린 사인 심장병 거주지  독일,  동독,  미국 국적  독일 직업 극작가, 시인, 무대 감독 자녀 한나 히옵, 슈테판 브레히트, 바바라 브레히트 서명 베르톨트 브레히트(독일어: Bertolt Brecht, 1898년 2월 10일 ~ 1956년 8월 14일)는 20세기에 활동한 독일의 극작가, 시인, 그리고 연출가다. 주로 사회주의적인 작품을 연출했으며, 낯설게 하기라는 개념을 연극연출에 사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표현주의를 거친 신즉물주의적(新卽物主義的) 스타일로, 현실에 대한 가차 없는 비판과 풍자를 극화한 니힐리스트. 후에 사회주의자가 되었다.   목차   [숨기기]  1생애 2주요작품 2.1시 2.2희곡   생애[편집] 독일 바이에른 주 아우크스부르크에서 제지공장주의 아들로 태어났다. 뮌헨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 했으며, 제1차 세계 대전동안은 뮌헨에 있는 병원에서 잠시 일했다. 전쟁이 끝난 뒤 뮌헨에서 극작가·연출가로 출발하여 후일 베를린으로 나가 막스 라인하르트의 독일 극장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처녀작 희곡 《바르》(1918)와 이어서 제2작 《밤의 북[鼓]》(1919)으로 클라이스트 상을 받았고, 《도시의 정글 속에서》(1923)와 《서푼짜리 오페라》(1928)로 극단에 결정적인 지위를 굳혔는데, 《서푼짜리 오페라》는 무려 100회가 넘는 공연이 베를린에서 있었다. 초기에는 무정부주의자였으나, 나중에는 전쟁체험을 통해서 자기의 계급에 등을 돌려 차츰 혁명적인 방향으로 나아갔다. 마르크스주의를 받아들인 브레히트는 부르주아의 탐욕을 드러내는 극본과 사회주의 소설 《서푼짜리 소설》을 집필하는 좌파작가로 활동했다. 1933년 극우정당인 나치의 집권과 나치가 좌파탄압을 위해 날조한 사건인 독일 국회의사당 방화 사건으로 미국에 망명했다. 망명 중에 집필한 《제3제국의 공포와 비참》, 《갈릴레이의 일생》(1938),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1939), 《코카서스의 백묵원》(1944) 등의 상연으로 새로운 연극의 길을 제시하였다. 세계 대전이 끝난 뒤, 미국에서도 1947년 12월 극단적인 반공주의인 매카시즘이 불어 브레히트는 다시 독일 민주 공화국(동독)으로 이주해야 했다. 당시 많은 동료 좌파작가들이 독일 연방 공화국(서독)을 택했지만, 그만은 동독을 택했다. 하지만 동독 공산당(SED) 간부들이 관료주의에 물들어 있던 동독도 그에게 만족을 주지는 못하여 풍자시를 쓰기도 했으며, 정부가 인민을 버렸다면서 1953년 동독 노동자 봉기 진압을 비판하기도 했다. 1956년 8월 지병인 심장병으로 숨을 거두었으며, 가족으로는 1929년 결혼한 아내 헬레네 바이겔과 두 자녀(슈테판, 바바라)가 있다. 주요작품[편집] 시[편집] 브레히트의 주요 시 작품으로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 〈1492년〉등이 있다. 그의 작품들은 기존 가치관에 대한 비판의식, 인간에 대한 사랑,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는 평화주의가 담겨 있는 것이 특징이다. (실례로 시 〈1492년〉은 이민을 심사하는 판사가 일부러 쉬운 문제를 내서, 가난한 이탈리아인 가족의 입국을 허용한다는 내용이다.) 희곡[편집] 브레히트는 처음엔 표현주의 작가로 출발하였으나 후일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추구하게 되었다. 처녀작인 , 출세작이 된 귀환병극(歸還兵劇) , 인간소외의 문제를 앞세운 에는 아직 안비바렌트한 도취나 익살, 조소의 빛이 강하지만 차츰 마르크스주의로 기울어져, 대상에의 거리적(距離的)인 태도는 사회적인 인식을 구하는 새로운 서사적 연극의 주요한 수법인 이화효과(異化效果)를 낳았다. 그리고 실지교시(實地敎示)를 중시한 일련의 교육극의 시도는 이미 그러한 지향(志向)을 보인 것이다. 단순한 정감에 흐르지 않는 음악과 극의 새로운 종합을 구하는 방향은 작곡가 바일의 협력을 얻어 (1928)와 (1930)을 낳았다. 와 은 정치적으로 가장 첨예한 극이다. 불우한 망명생활 중 그의 연극론은 차츰 체계화되었으며 이를 뒷받침하는 걸작 등을 연달아 집필, 전후에는 동베를린으로 넘어가 베를리나 앙상블을 결성하고 실제의 연극활동을 통해서 그의 연극의 혁신적인 의의를 무대 위에서 입증하여 세계적인 주목을 모았으나 변증법적 연극으로 발전시키는 도상에서 세상을 떠났다. 베르톨트 브레히트  이 문서에는 다음커뮤니케이션(현 카카오)에서 GFDL 또는 CC-SA 라이선스로 배포한 글로벌 세계대백과사전의 내용을 기초로 작성된 글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694    시인들이여, "낯설게 하기"는 어디에서 어떻게 왔을가... 댓글:  조회:3713  추천:0  2017-09-03
낯설게 하기  Defamiliarization   예술기법의 하나로 러시아의 문학자이자 형식주의자인 빅토르 시클로프스키가 개념화했다. 그는 사람들이 매일 마주치는 일상적이고 친숙한 것보다 새롭고 낯선 대상으로부터 미학적 가치를 느낀다는 사실에 착안했다. ‘낯설게 하기’라는 개념을 받아들인 브레히트는 예술이 심미주의로 흐르거나 이데올로기를 위한 도구로 전락하지 않고 실천적인 가치를 창조하는 이론으로 정착시키는 데 기여했다.   일상적이고 익숙한 사물이나 관념을 낯설게 하여 전혀 새롭게 느끼도록 하는 예술기법의 하나. 빅토르 시클로프스키(Viktor B. Shklovsky)가 제안한 이 기법은 러시아 문예사조의 하나인 형식주의의 이론적 토대가 되었고, 독일의 연극 연출가이자 시인인 베르톨트 브레히트(B. Brecht)에 이르러 중요한 결실을 맺게 되었다. 빅토르 시클로프스키 러시아 형식주의자 빅토르 시클로프스키(victor Shklovsky) 1935년 러시아에서 메이란팡(梅蘭芳)의 중국 경극을 관람한 브레히트는 이를 통해 기존의 서양 연극이 가진 관습을 전복시키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았다. 이른바 서사극이라 부르는 이 경극이 브레히트에게는 매우 낯설게 보였다. 이 연극의 요체는 관객이 연극에 몰입하는 것을 방해함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극의 현실에 거리를 두도록 하는 것이었다. 브레히트는 종종, 배우들로 하여금 연극이 끝난 뒤 관객을 향해 이렇게 말하도록 했다. “여러분, 하지만 현실에서는 절대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이 거리 두기의 목적은 관객이 몰입을 통해 지배 이데올로기 속으로 자연스럽게 빠져드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브레히트의 ‘낯설게 하기‘는 분명하고 명백한 사건이나 인물에 대해 놀라움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연극적인 시도였다. 러시아의 형식주의자들이 ‘낯설게 하기’를 언어, 특히 시어(詩語)의 효과로 받아들인 데 반해 초현실주의자들은 이것을 사물의 효과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초현실주의자들은 사람들이 사물을 낯설게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해 특별한 오브제를 사용했다. 이들은 무의식 속에 습관화된 이데올로기나 매일 보는 일상적인 대상 속에 감추어져 있는 경이로움을 느끼도록 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대표적인 예로 마르셸 뒤샹의 를 들 수 있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변기를 화려하고 우아한 미술관에 전시함으로써 변기는 전혀 낯설고 새로운 대상이 된다. 이때 변기는 변기의 용도를 넘어, 변기 그 자체로서 독립적인 대상물로 인지하도록 하여 보는 이의 이목을 환기시키고 신선한 충격을 준다.   제공처; 백과사전   낯설게하기 defamiliarization   어떤 사건이나 상황을 묘사할 때 친숙하거나 새롭지 않은 언어, 사물, 관념, 상황을 두드러지게 돋보이게 하여 보는 사람에게 일종의 거리감을 느끼게 하는 기법. 러시아의 형식주의자 빅토르 보리소비치 시클롭스키(Viktor Borisovich Shklovsky)가 제기한 이론이며, 독일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의 서사극 이론의 바탕이 되는 극작 기법이다. 가령 연극에서 관객의 몰입을 방해하는 장치를 두어 관객으로 하여금 극중 현실에 비판적 거리감을 취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브레히트는 이를 소격효과(疏隔效果)라고 했다. 이 기법은 문학, 연극, 영화, 드라마 등의 재현 장르에서 관습적인 지각 방식을 변화시킴으로써 일상적인 것으로 넘겨버렸던 것에 대한 각성을 일으켜 최소한 우리가 보고 있는 사건의 의미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도록 하는 구실을 한다. 광고는 일반적으로 유형화된 메시지 형식을 취하지만, 때때로 형식 전복을 통해 상황을 생소한 방식으로 묘사함으로써 오디언스로 하여금 광고 내용 혹은 상품과 의미 있는 거리감을 창조하여 화제를 일으키곤 한다. 1998년 한미은행이 전개한 일련의 광고 캠페인을 예로 들 수 있는데 한 부부의 거실 대화를 소재로 한 이 은행 광고의 에피소드는 상황이 너무 일상적이어서 무척 이질적으로 보인다. 이때 시청자는 광고가 묘사하는 상황에 빠져드는 대신 그것을 관찰하면서 광고 에피소드를 자신의 방식대로 받아들인다.      
693    "가져오기주의"와 "받아먹기주의"와 그리고 "민족적인것주의" 댓글:  조회:1980  추천:0  2017-09-02
문화의 현대화문제 2017년 08월 27일 작성자: 최균선                                               문화의 현대화문제                                                          진 언        세계화의 시대이다. 인간적세계화를 모색하는것을 의미하는 세계화가 진정한 진보라면 인간화시키는 방향이여야 한다는 론리를 가지고 있고 또한 력사적 필연성이므로 부정할수는 없다. 문화령역에서 감별할 때 세계화의 종지는 세계통일문화를 건립하는것으로서 전 지구촌에 대해 말하면 웅대한 구상이다. 이 구상은 1961년 마샬. 맥크가 처음 제기한것이라 한다. 전자산품 특히는 텔레비죤의 쾌속적발전에 따라 사 람들은 통일된 사상과 문화의 방향에로 나가리라고 인식하였던것이다.     현대화는 인류의 숙명이다. 맑스는 전통으로터 현대화에로 나가는것은 “세계력사” 의 진정한 시작이며 그것은 고립적민족의 력사적 종결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만약 누가 주동적으로 순응하지 않으면 현대화조류속에 매몰될것이며 다른 사람의 현대화가 그 민족을 해산시키는 방식으로 현대화를 실현할것인바 락후한 민족은 현대문명의 변연민족으로 되고 궁극에 가서는 훼멸을 자초할것이다. 이렇듯 시대정신은 반드시 문화의 전통에서 벗어나 현대화에로 나갈것을 요구한다.     문화의 현대화에로의 근본적전화하는 현대화문제로서 시대정신을 체현하며 민족부흥문제로서 민족의 운명과 관계된다. 이는 또한 력사사명으로서 그 시대적내용으로 하여 사람들의 주의를 일으키고있다. 총체적으로 볼 때 전통문화는 시대가 지나고 락후하며 봉건적이고 우매한것이라 말할수 있지만 전통문화가 민족문화의 주체라는것을 부인할수 없듯이 민족정신은 때지난것이 될수 없다. 결단코!!!     현대문화의 시대정신의 형식과 내용은 통일된것이며 모종 민족성을 초월한것이기도 하다. 한편으로 문화의 주요한 공능은 곧 문화동일시(同一視)로서 문화에 대 한 일시동인은 군체내부에서의 리지로 공동한 인식을 형성하는것이고 감정상에서 공명을 산생시키는것이며 의지상에서 공동한 추구를 달성하는것이다.     문화동일시에는 여러 층차가 있는데 주요하게 시대적동일시, 민족동일시, 계급동일시, 종교동일시 등이 있다. 문화세계화에서 통치지위를 차지하는것은 관념, 산품 및 서방의 혁신의 본질로서 모두 서방문화공업에서 과시되고있다. 많은 연구인들은 자본주의제도의 본질인즉 확장주의로서 의식형태 혹은 소비문화의 힘을 빌어서 사회와 개인들을 자본주의적소비자로 환골탈태시키려고 기도하고 있다고 지적하고있다. 이렇듯 현대화의 세계적보편성은 강대한 물질적력량을 끼고 있는바 민족의 경계선을 타파하고 지구촌의 모든 민족을 현대화의 급류속에 몰아넣는다.     팔레스티나의 동방학가 에드워드 싸이더는 서방세계는 힘을 믿고 자기네의 문화와 가치관을 세계 기타 지방에 강요하고 있는데 이것을 문화식민주의라고 하면서 문화제국주의가 수출하는것은 근근히 상품만이 아니라 서방의 가치관과 생활방식이라고 지적했다. 세계문화도구의 불평등한 분배는 국제문화통신에 같은 조건을 창조할수 없다. 각민족은 세계무대에서 각이한 문화가 일체화에로 나가는것을 반대하면서 자기들의 풍속습관과 전통문화를 견지하려고 노력하고있다.       많은 사람들은 현대화개념과 서양화개념을 혼동하고있는데 세계화문제는 생각처럼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세계와의 일치는 우리에게 무엇을 예시하며 실행과정에서 우리가 얻을것은 무엇이며 잃는것은 무엇일가? 불가항력의 충격파앞에서 맹동에 가까운 자세를 취하고있는바 심사숙고할 문제가 아닐수 없다. 정치,경제, 과학 기술문화는 물론 일상 생활에까지 치렬하게 그리고 막무가내하게 주고있는 부정적인 영향력과 그 수용에서 자중과 성찰을 앞세워야 하지 않을가싶다.     우리는 우리의 땅에서 현대의 삶을 살지만 서양문화를 숭배하면서부터 우리것을 지키고자 하지 않는다. 문화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것들을 공유하는 사고체계라고 할수 있는바 이질적인것을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는 그런 맹종에서 자아상실이 가속화되고있다. 우리는 지금 옛것을 빌어 오늘에 리용하고 서양의것을 중국에 리용한다는 합목적구호밑에 발달국가의 문화기술, 생활모식 등을 거의다 받아들이고 있는데 역시 환득환실의 잠규칙을 벗어날수 없다.     가져오더라도 진보적인것, 유익한것을 가져와야 한다. 남이 쓰다 남은것, 어떤 알리지 못할 목적밑에서 선심을 쓰듯이 내주는것이면 유해한것이라도 감지덕지해서 마구가져오는것은 기실 “가져오기주의”가 아니라 “받아오기주의”이다. 세계화의 급선봉들은 전 지구화를 “동일화”, “일체화”로 착각할수도 있다. 그저 외제란 그 우월성에 매료되여《받아오기주의》열광속에서 자신마저 상실한다면 심층적의미에서의 문화지배와 피지배, 공제와 피공제의 비동질성관계의 확립을 감각하지 못한 의식이다.     우리는 예술분야에서도 빌려온 감정을 자기 감정인것처럼 표현하는 실태를 곤혹스럽게 보고있다. 례컨대 우리 조선민족에게 있을 법한 전통적감정표달은 다파먹은 김치독이 되고 맹종의 결과물인 무병신음같은《노래》들이 판을 치는바람에 전통가요는 마치 새노래를 배우지 못한 늙은이들이나 부르는 옛가락으로 치부되고있다.     서양문화는 동양보다 진보적이다. (서양은 합리적이다, 서양이 표준이다)라는 전제로부터 시작한 모든 인식은 결국 “미국이 제일이다, 왜? 미국이니까” 라는식의 동어반복적 맹신만을 생산할뿐이요 자꾸 문화노예를 만들어낼뿐이다. 결국 편견 즉 서양은 합리적이다=서양적이 아니기에 불합리하다는 문화맹종에 자신의 신념을 넝마처럼 버리게 된다. 서양사람들이 개방적이고 합리적이라는 그런 인식이 진리라고 말할수 있을가? 다만 서양적이 아니라는것 외에 어떤 신념의 체계이든 어떤 형태의 사회이든 인간자체가 지닌 사고와 행동방식은 비슷하게 나타난다.     서양사람들이 동양질서나 성향에 대해 개방적이라고 말할수 없다. 그들에게 있어서 합리성과 개방성이라는것은 서양적삶의 태도를 지칭하는 말일뿐이다. 소위 세계화하는 과정에 인간의 가치가 와해되고 행위가 규범을 상실하고 있으며 신앙이 붕괴되고 동정심과 도덕적량지마저 상실됨으로써 인성의 마비와 잔인성까지 횡행하고있다.       우리 문화가 설자리를 잃어가고있는 형편이라면 그게 바람직한 세계화일가? 우 리가 이런 추세로 남의것만 맹종한다면 동방하늘에 솟는 달도 밝지 않다고 할지 모를 일이다. 민족문화사에 허무주의를 내세우며 구라파중심주의 사로를 맹종할수 없다. 한 민족이 세계에로 나아가려면 근근히 경제상에서 천지개벽을 해서는 안되며 문화상에서도 립신해야 한다는것은 상식이지만 문화현대화는 전통적인 모든것을 포기하고 오로지 서양의것으로 대체한다는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선지자는 고향에서 령험하지 않다”는 서방격언이 있다. 우리 속담중 “먼데 무당이 용하다”와 표현은 다르지만 본질은 같다. 중국에는 “外来的和尚会念经)”이라는 말이 있는데 “타향에서 온 중이 경을 잘 읽는다”의미쯤 되겠다. 그렇더라도 력사를 긍정하고 자기를 긍정할줄 알아야 한다.     어떤 리익이나 주장을 절대시하게 되면 그 반대편에 대한 극단적증오와 이에 따른 파괴가 자행된다는 사실은 력사에 너무나 흔한 일이다. 민족적일수록 세계화가 되는것임을 명기하자. 모든 일의 시작에 끝이 있고 그 끝나는 곳에 새 시작이 있다. 가장 어두운 곳에 가능하게 진짜 보배가 묻혀있을수 있으며 가장 정확한것이 맹점속에 숨어있을수 있다는 진리는 세월에 의해 색바래지 않는다.                                                                                             2007. 3. 28
692    동시의 예술은 오로지 이미지변형, 그 표준;- 하하하 없단다... 댓글:  조회:2039  추천:0  2017-09-02
하이퍼동시집   나비 돛배와 잠자리 십자가   최룡관     동시에 대한 대화       동시 어떤거지? 아이들 언어의 집. 동시 왜 쓰지? 내 욕망의 발작. 동시대상 누구지? 보는 사람.     동시언어 어떤거지? 언어기능 발휘. 언어기능이 어떤거지? 낱말의 자유결합. 언어와 실제사물이 어떻게 다르지? 언어는 언어 사물은 사물.   동시관이 어떻지? 모든 사물 한집식구. 동시 어떻게 쓰지? 사물관계 새롭게 밝히기. 동시핵심이 뭐지? 이미지 만들기.   동시가 예술이 되자면? 유일한 방법은 변형. 변형이란 어떤것이지? 한사물이  다른 사물되여 움직이기. 변형표준이 뭐지? 하하하 없다. 상상이 되는 대로.   하이퍼동시 어떤거지? 첫째 횡적구성. 횡적구성이 어떤거지? 성질 다른 이미지가 한수의 시에서 함께 살기. 둘째 서두와 결말이 따로 없기. 그래서? 그냥 딴것딴것딴것으로 중심 없애기. 그럼 링큰 뭐지?  여러가지 이미지에 있는 같은 말. 같은 말이 없음? 초링크...   시는 어떤 사상을 추구하지? 사상이 아니라 새롭고 강력한 상상을 추구하기. 현실과 다른 꿈세상 만들기.  독자도 보다가 이어 쓸수 있기. 임마, 제멋대로 쓰기구나!       1반짝   풀잎 발가락     반짝   자갈 손톱   반짝       부엉이 부리   반짝   송아지 애기뿔    반짝       바람이 반짝   2017.6.12.       2모아산       돌호랑이   야웅야웅 울고   솔바람   소올소올 노래하고   등산길 층층층   하늘 오른다       봉긋한 엄마젖       3하늘       해님   해해해   글자를 쓰는 곳       새가   새새새   글자를 쓰는 곳       달님   달달달   글자를 쓰는 곳       4강물     오라줄이 구불구불   산을 묶으러 간다     악기들 흐름     물오리 뿡뿡   건반을 치고   바위가 쟁쟁   징을 친다       5무지개       번개들이 짠 칠색단   해나라 가는 오솔길     칠색 현금줄   가야금이 뿌웅뚜웅       2017.6.12.       6 바람     볕분수를 뿌려   제비들 오는 길을 닦다가       빠알간 단풍이다가   하아얀 함박눈이다가     구름마차를 몰아   하늘과 땅에 다리놓다가        2017.7.10       7바람 이야기       바람(风)이 바람(盼)을 일으켜   산이 되고 구름이 되며   바람꽃 피운다야   바람이 바람줄로   언덕길이 잰다야   바람 신 신고 달리다가   바람에 채여 넘어지다       8망이야기       망이 산이 된다 하늘이 찰찰 넘친다 날아가던 구름 한덩이 걸린다   망이 옥수수를 빻는다 해살 똥구리들 망을 돌리고 노랑 나비 포릉거린다     망을 보는 뻐꾹새  뻐국뻐국 술래가 된다     망(網) 눈알 바짝인다 물고기들 눈을 먹으려다 눈에 걸려 풍어기 날린다        09아파트     꺽다리   별무리   사다리   성냥갑   벌둥지   동그라미   사과 먹기       10시내길     시내에 친 그물       꽃뱀들 구불구불       거리 은빛 별   줄지어 반짝       외다리 가로수   푸른 치마 팔랑        11책     유람선에 앉아 달린다 반짝이는 새 반짝이는 나무 반짝이는 꽃   태양 들어 어둠 한 점 없어     국수 먹고 싶으면 국수 나오고 꾀꼬리 보고 싶으면 꾀꼬리 나오고   로케트 타고 하늘 오른다 별들이 손끝에서 논다   2017.8.3       12가람 뫼 바람       가람은 밤낮   베 짜기만 하고   뫼는 밤낮   연만 띄우고   바람은 밤낮   헛손질만 하네      2017.6.12. 밤중에       13글이야기       1       글이 영차   산을 쌓네   글이 줄줄   거미줄 치네   글이 포롱   새를 날리네   글이 동동   해를 띄우네       2    .............     2017.6.13.           14조화       이슬은 해살 꿰여서   무지개 만들고   풀잎은 소리 꿰여서   은방울 빚는다       가지는 바람 꿰여서   궁궐을 짓고   언덕은 구름 꿰여서   풍차를 조각한다        2017.6.13.         15뜨락녀석들       강아지는 멍멍   시를 읊고       송아지는 음매   매화꽃 피우고       해님 띄우는 참새들 울음   살속에서 파닥거린다       16나무초리       나무초리 토닥토닥   하늘 두드린다       병아리 삐야띠야   구름다리 놓는다       비방울 뱅그르   바레무 춘다       17우뢰     빨간 지렁이   검은 밭을 밭갈이 한다     소나기는 골목에서   하얀 오그랑죽 끓인다      태양은 빨간 보자기   구름들 헤쳐보러 온다     18새무리     새무리 수만 새무리   까만 점들로     그림 그린다   산을 그렸다가   풍선 그렸다가   구름 그렸다가   강을 그렸다가...       19꽃들 잔치       진달래는 빠알간 가마   노란 꿀을 지진다       해바라긴 해가마   가만 지짐떡 굽는다       민들레는 파종기   하늘밭에 씨앗 뿌린다       20퐁퐁퐁     샘물 퐁퐁퐁   하얀 양산 판다   다람쥐 퐁퐁퐁   줄뛰기 한다   토끼 퐁퐁퐁   길닦이 한다   딱다구리 퐁퐁퐁   절구질 한다  
691    시에서 낯설음의 이미지용법은 곧 시적 해방이며 자유이다... 댓글:  조회:2168  추천:0  2017-09-02
낯설음의 언어 / 홍문표 언어의 경제학 : 시나 산문이나 문학이나 비문학이나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동일하지만 그 중에서도 시가 시일 수 있는 이유는 언어를 보다 정서적인 측면에서 사용하거나 상상적인 세계를 추구하거나 사전적이고 일상적인 의미를 벗어나 함축적이고 내포적인 2차적인 의미의 확대를 꾀하는 것이 시어의 독특한 용법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러시아에서 언어와 시를 연구하던 일련의 학자들은 언어의 근본적인 형식인 운율과 구조를 연구하면서 문학의 문학스러움이나 시의 시다운 근본적 특징이 바로 언어의 특이한 용법에 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이들은 문학의 내용, 즉 이념성을 강조하던 시기에 문학성을 언어형식에서 찾고자 했기 때문에 형식주의라고 했는데 러시아 형식주의자들로 대표적 이론가는 야콥슨, 쉬클로프스키며 프라그 학파의 무카로브스키, 코펜하겐의 엘름슬레브 미국의 웰렉등으로 확산되었다.  이들의 기본 입장은 문학성의 발견에 있었으며 그 해결책은 전통적인 대답이나 임시변통적인 방식이 아니라 근본적인 문학성의 본질과 소재에 대한 해명이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따라서 심리학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과 함께 모든 외재적 이론들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낭만주의나 상징주의에서 즐겨 쓰는 영감이나 상상력 또는 전재등에 관한 모든 공론들도 일소에 붙였다 독특한 문학성의 소재지를 작가나 독자의 정신 속에서가 아니라 작품 그 자채내에서 찾아야만 했던 것이다.  이들은 현대시학에서 금과옥조로 여기고 있는 이미지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었다. 시의 경우에 있어 비유, 리듬, 독특한 구문, 어려운 낱말등은 그러한 정신의 절약을 돕기는커녕 오히려 정신의 노력을 더욱 강요할 뿐이라고 하였다. 그들은 산문과 다른 시의 변별성을 단순한 이미지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그것이 사용되는 용법에서 찾아야 한다고 하였다. 그것은 이미지를 전적으로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산문의 이미지와 시의 이미지가 전혀 다름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이들이 말하는 시어의 변별성, 즉 시를 시답게 하는 근본적인 어법은 무엇인가. 그것을 그들은 낯설게 만들기와 전경화로 설명한다.  낯익음과 낯설음  쉬클로프스키의 표현을 비리면 시의 문학성은 시어의 낯설음의 구조에 있다는 것이다. 친숙한 의미의 이미지가 아니라 생소한 충격을 주는 이미지, 뭔가 새롭게 생각하고 느끼도록 활력을 주는 언어의 창조가 바로 낯설음이며 산문과 구별되는 시어의 정수가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존의 시어나 산문적인 언어들은 바로 낯설음의 언어가 아니라 낯익음의 언어이고 낯익음의 이미지였고 낯익음의 형식이었다는 말이된다. 사실 고전주의나 낭만주의에서 시에 대한 인식이나 시어의 기능은 효과적인 전달이나 경제적인 표현이라는 목적에서 설명되었다. 포프는 시의 재치는 늘 생각하면서도 그처럼 잘 표현할 수 없는 것, 즉 어려운 것을 적절히 표현하는 것이라 하였고 워즈워드는 낯선 세계를 인간에게 친숙하도록 만드는 기능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쉬클로프스키는 언어는 친숙이야말로 가장 비시적인 것으로 규정한다.  처음 바다를 경험하는 사람은 파도가 신기하지만 바닷가에사는 사람들은 팓오 소리에 익숙해져서 그들은 그것을 신기하게 듣지 않는다. 이런 사실은 일상적인 언어 생활에서도 언어를 친숙한 일상의 것으로 사용할 때는 감동으로 듣는 것이 아니라 기계적으로 듣는다. 산문의 언어들이 그렇다. 늘 사용하는 말은 감동이 없다. 처음엔 감동하지만 차츰 만성이 되어 버린다. 그리하여 낯익은 사람끼리는 서로 바라보지만 우리는 더 이상 서로를 주의깊게 쳐다보지는 않는다.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시들어 버려서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단순한 인정뿐이다 라고 하였다.  친숙화하는 동일한 사물에 대한 우리의 지각이 반복되어 습관화 되었을 때 조성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직각은 자동화되고 감각은 마비되어 낯익은 사람 사이에는 언어를 생략하고 손짓이나 눈짓으로 의사를 교환하는 탈언어화 상태가 된다. 지각적인 인식의 언어가 생략될 때 남는 것은 기호뿐이다.  인간과 사물, 인간과 인간 사이에 기호만 존재하게 될 때 그것은 시의 세계가 아니라 수학이고 과학이고 산문이다. 추상적인 개념과 습관적이고 기계적인 생활만 존재하는 삶이란 이미 창조적 인간이 아니고 기계나 동물이나 다를 바 없는 비인간화의 무의미한 세계일 뿐이다.  (1) 달 달 무슨 달  쟁반같이 둥근 달  어디어디 떳나  남산 위에 떳지  (2) 당신은 짐승, 별, 내손가락 끝  뜨겁게 타오르는 정적  외로운 사람들이 따모으는 꽃씨  외로운 사람들의 죽음  순간과 머나먼 곳.  이방(異邦)의 말이 고요하게 시작됩니다  당신의 살갗 및으로 대지(大地)는 흐릅니다  당신이 나타나면 한 개의 물고기 비늘처럼  무지개 그으며 내가 떨어질 테지만  -이성복「당신은 짐승, 별」  인용한 (1)의 동요에서 ‘쟁반같이 둥근 달’이란 말은 수사학적으로 보면 직유법의 구절이라고 하겠지만 쟁반이나 둥근이란 말은 너무나 익숙한 말이며 아예 복합어로 인정될 만큼 굳어버린 일상적인 말이다. 여기서 일상적이니 익숙하니 하는 말은 너무나 평범하게 사용되기 때문에 무의식 중에 나오는 자동화의 언어란 말이다. 남산이란 말도 그렇다. 이 말은 서울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 사는 고장이면 어디에나 남산은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이러한 문장은 어린이들에게 교육적 가치는 있겠지만 쟁반이나 남산이란 언어가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과 감동을 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2)의 당신에 대한 표현이 구절마다 새롭고 낯설다. 당신은 짐승. 별, 손가락 끝, 정적, 꽃씨, 죽음, 머나먼 곳 등으로 전혀 상식적인 상상을 비약하여 충격을 준다.  따라서 예술가가 대항하고 투쟁해야할 것은 바로 이 일상과 습관과 안일과 매너리즘의 권태다. 대상을 습관적인 문맥에서 뜯어내고 본질적으로 다른 개념들과 함께 묶음으로써 시인은 상투적 표현과 거기에 따른 기계적 반응에 치명적인 일격을 가해서 대상들의 감각적인 결을 고양된 상태에서 인식하도록 해야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시의 언어는 바로 일상적인 낯익음의 용법을 배제하고 보다 낯선 용법을 창조하여 지각의 신선함을 회복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시적 자유이고 해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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