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엎음갚음
2013년 12월 28일 15시 59분  조회:1509  추천:0  작성자: 옛날옛적
      단편소설   엎음갚음
                        박 병대
초겨울의 날씨는 제법 쌀쌀하다. 마작터의 단골손님인 정식이는 아침 식사를 마치자 <출근장소>에 도착하였다. 그런데 오늘은 어인 영문인지 그보다 더한 적극분자들이 이미 <작업터>에 와서 <마우>들을 기다리며 한담을 나누고있었다.
  "호근이가 달포전에 한국서 왔다던데 그게 정말이야?"
  한 친구의 물음에 다른 친구가 대답했다.
  "이사람 참 아직도 한밤중이구먼. 걔가 오기만 한줄 아나? 이번 공일날에 아들 장가보낸다던데 니는 아직 통지도 못받았는게로구나."
  "그럼 아들 장가보낼라고 한국서 왔나? 5년동안 남의 대사에도 낯도 안내밀었는데 지집 잔치엔  맻이나 갈가? 대사에 부조하는것도 엎음갚음인데 안그래?"
   정식이는 그들의 말에 동감이 갔으나 붙는 불에 키질하는건 친구간의 도리가 아닌것 같아 못들은척하고 밖만 내다봤다.기실 그는 며칠전에 소학교 동창생인 호근이가 걸어온 청첩전화를 받았었다.친구가 아들 나이 서른이 넘어서야 결혼하게 되였으니 그보다 더 기쁜 일이 있을가만은 자기집의 결혼잔치요.손자돌잔치요 하는 대사에 한번도 오지 않은 친구댁에 하객으로 가는게 그리 달갑지 않았다.하지만 당시 집에 없어서 못참가한 호근이를 탓할 처지는 아니몄다. 그까짓 돈 백원 던지면 그만인데. 그리고 잔치집에 가서 축하한다는건 명분일뿐 그 기회에 떠난지 오랜 고향도 돌아보고 오래동안 못만난  동창들과 젊은 시절의 친구들을 만나 술 한잔에 지너온  인생사 한토막을 담으며 가슴속에 쌓이고 쌓인 회포를 푸는것이 진짜 동기였다...
   일요일날 아침, 나들이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선 정식이는 장거리뻐스를 두번 갈아타고 호근이가 사는 고향마을로 찾아갔다.뻐스가 마을 가까이 다가오자 아득히 펼쳐진 논판이 한눈에 안겨왔다. 9년제 학교를 졸업하고 농사일을 배울 때  호도거리를 시작해 청춘의 희망과 정열을 뿌리던  기름진 논판이 아닌가? 그런데 그 논판이 지금 무슨 꼴이 되였나? 논뚝에는 풀이 한자씩이나 자랐고 벼를 벤 끌터기도 높고 낮아 어설프기 짝이없었다. 동구앞에서 뻐스에 내려 마을복판길을 걸으며 주위를 돌아보니 고향마을은 한산하기 그지없었다. 십년전에 백 오십호의 조선족이 오붓하게 살던 마을인데 길에는 행인들을 찾아보기 드물었고 대부분 집은 쇠장군이 지키고있었으며 개짖는 소리, 닭울음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간혹 만나는 사람은 떠돌이장사군뿐이였다
  마을서쪽끝에 사는 호근이의 집 근처에 가니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리였다. 삼층 벽돌집에 벽돌담장을 친 대문앞에 이르니 한복을 입은 호근이가 달려와서 그의 손을 으스러지게 잡으면서 말했다. 
  "야, 참 오래간만이구나. 먼 곳에 있는 널 부르긴 미안했어도 네가 안오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는데 정말 고맙다. 손님들이 거의 왔으니 이제 곧 례식을 지낼거야. 불편하지만 잠간 기다려줘." 호근이는 말을 마치자 부랴부랴 례식장을 꾸리는 사람들한테로 갔다. 대문안에 들어서니 20여명의 하객들이 마당에 모여서서 법석이고있었다. 그는 마당에 있는 친구들이며 마을사람들과 한참동안 인사를 나누었다.
  이윽고 혼례식이 시작되였다. 문옆의 벽에 포장을 치고 그 우에 신랑 누구 신부 누구의 결혼의식이라고 쓴 빨간종이를 붙인것이 례식장 전부였다. 촌 주임을 맡은 40대의 중년이 사회를 하여 10여분만에 의식을 끝냈는데 악대나 록화같은것은 아예 없어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한국가서 돈을 벌어온 사람이 시가지의 혼례식장도 못구하나?정말 째째한 친구같으니라고. 정식이는 롱 절반 참 절반으로 한마디 던질가하다가 남의 희사에 찬물을 뿌리는것 같아 간지러운 입을 다물었다..
  하객이 약 쉰명되기에 이웃집 두곳을 빌려 술상을 마련하였다. .정식이가 든 방에는 그 나이또래의 친구들과 동창생들이 들었는데 주인인 호근이가 나타나지 않아 좀 불쾌하였다.
  "호근이는 우릴 놔두고 어디서 뭘하는거야?"
  한 친구가 볼부은 소리를 하자 정식이가 말리였다. 잔치상이 어디 여기뿐이냐? 좀 있으면 오겠지. 자, 받아논 술상인데 마시며 기다리자구.."
  친구들은 너도 나도 "위하여!"를 웨치며 술잔을 비우고 또 비웠다. 이윽고 호근이가 방에 들어오더니 술잔을 들고 말하였다.
  "동쪽집 어른들 대접하느라 늦어 미안하네. 시내 음식점보다 개인집이 더 편할것 같아 여기서  했어. 뜨시한 방에 편안히 앉아 엉치장 지지며 마시는 술은 별맛일거야. 자 한잔 쭉 내자."
  친구들은 일제히 술잔을 따고나서 반찬을 집었다.그들은 일변 술을 마시며 일변 이야기를 널어놓았다.모처름만에 동창들이 만나니 술보다 할 이야기가 더 많았다
  "집에서 잔치준비하느라 얼마나 시끄럽니? 돈은 좀 들지만..." 
  한 친구의 말에 호근이가 대답했다.
  "시내에서 잔치하면 늬들이 우리집에 오기나 하겠니? 이 핑게로 고향마을도 구경해야잖나?"
 더운 방에서 엉덩이를 지지고 땀을 빼며 술을 마시고 학창시절이며 갖 농사를 하던 때의 이야기를 나누니 20대의 피끓던 시절로 돌아간것만 같아 술병이 여러병 굽나 술상아래에 구불어졌건만 어느 누구도 취하는줄을 몰랐다. .
  술기운이 도도해진 정식이가 호근이한테 백원짜리 지폐를 내놓으며 
  "부조를 어디할지 몰라 각고있다가 늬한테 준다. 적지만 받아라."라고 하자 눈치를 살피던 동창들이 일제히 부조돈을 내밀었다.
  "에이, 내가 원제 부조돈 바라고 늬들 불렀나? 어서 넣어."
  호근이가 정색하자 얼떨떨해진 친구들이
  "그게 무슨 소리야. 잔치집에 부조 안하고 먹는 법이 워딨어? 잔말 말고 어서 받아!" 라고 말하며 지폐든 손을 내밀었다.
  "그 손 놓고 내 말 들어봐. 나는 집 나가 여러해 있다보니 늬들 대사에 한번도 못가봐서 본래 사죄삼아 늬들을 따로 부를라고 했는데 잔치가 림박이고 또 늬들 다 모이기도 쉬울것같잖아 오늘 겸사겸사 부른거야. 늬들뿐 아니라 마을 어른들한테도 일전 한푼 받지 않았다. 그럼 알만하지?"
  호근이의 말이 진심인걸 안 친구들은 마지못해 내놨던 돈을 다시 호주머니안에 넣었다
  이윽고 촌장이 술잔을 들고 찾아왔다.
  "형님네들 늦게 찾아와서 미안해요. 동네 어른들 대접한다고 그만 늦었네요.오늘 이 자리를 빌어서 여러 형님들께 한가지 기쁜 소식을 알려려고 해요. 호근형님이 이번에 시내에 가지 않고 집에서 잔치상을 벌려 남은 돈이라면서 우리마을 로인활동에 보태쓰라고 5천원을 내놨어요. 얼마나 장한 일이예요."
  뭐 오천원이나 기부했다고? 좌중의 동창들은 자기의 귀를 의심하다가 저도 몰래 "야!" 하며 힘차게 박수를 쳤다. 이때 촌장이 한마디 더 했다.
  "그뿐만이 아니예요. 호근형님은 이번에 한족들에게 임대한 20여호의 땅을 되찾아 농사일을 크게 해 쓰러져가는 마을을 살리겠다고 준비하고있습니다. 얼마나 장한 일이예요."
 호근이의 담대한 행동에 친구들은 얼떨결에 또다시 박수를 보냈다.
  이때 호근이가 쑥스러워 머리카락을 긁으면서 말하였다.
  "나는 평생 농사나 지어봤지 다른건 아무것도 모르니 농사일밖에 할수 없잖나?그리고 농사를 지을바에는 좀 크게 해야 남을게 있을것 같아 경운기, 이앙기 탈곡기부터 마련했는데 비용이 이만저만이 아니라 마을위해 별힘을 쓰지 못했다네. 어떤 친군 시내에 집을 사서 만년을 편히 보내라지만 시내서 하루 드는 돈이 얼마라구. 뼈빠지게 번 돈 몇해면 바닥이 날판이고 아직 팔다리 성할때 로후밑천이라도 장만할라고  도시생각은 접었다네.뭐 내가 생색낸다고는 생각말게.다 엎음갚음이니까? 이 마을이 없다면 우리의 오늘이 있겠나?"
  "하긴 그래. 늬 말이 옳아."
  엎음갚음 그게 어디 부조민 가리키는 말인가? 인간세상에서 주고받는 따뜻한 정이 본시 엎음갚음이 아닌가? 친구들은 호근이의 장한 오늘 처사을 두고 제각기 깊은 생각에 잠기였다.
   이윽고 노래판이 벌어졌다.커다란 알미늄대야에 찬물을 담아와서 그우에 바가지를 엎어놓고 힘차게 두드리며 신나게 류행가를 부르고 곱새춤을 흥겹게 추며 흘러간 젊은 시절로 되돌아왔다. 어느덧 서산마루에 걸렸던 해가 서서히 지고 밤이 깃들었다. 적막에 잠겻던 고향마을은 오래만에 생기를 찾았다.
                     2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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