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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사인물 학봉김성일2.
2015년 08월 12일 10시 05분  조회:1394  추천:0  작성자: 옛날옛적
 2.심중의 목소리
 
    나젊은 선조왕을 국왕으로 추대한 조정의 개혁파 대신들은 한동안 페지되였던 현량과(贤良科)를 회복하고 전국 각지에 숨어있는 인재들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나라에서 증광문과(增广文科) 시험을 친다는 방(榜)을 본 학봉 김성일은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올라왔다.  9월달에 그는 문과시험에 급제한 뒤 벼슬길에 올랐다. 조정의 명에 의해 처음 승문원(承文院  주:조선시대에 외교문서를 관할하는 관청)에서 권지부정자(权知副正字)를 맡았던 그는 이듬해에는 정자(正字 주:승문원에서 주로 와교문서의 교정을 검토하는 직무)로 승진하였고 선조 3년에는 예문관검열(艺文馆检阅)겸 춘추관기사관(春秋馆记事官)을 담임했다. 
춘추관이란 나라의 대사를 기록하고 력사재료를 보관하는 부처인바 춘추관의 기사관들은 날마다 궁전안팎에서 벌어지는 나라의 대사를 적어서 력사자료로 남기는것이 그들의 직책이였다. 
학봉 김성일은 기사관이란 비록 실권이 보잘것없는 벼슬이지만 나라의 한시기의 력사를 적는만큼 무엇보다 중요한 직책임을 깊이 느꼈다. 그는 궁전에서 벌어진 크고작은 일을 하나도 빠짐없이 적어놓고 밤이면 그것을 일일이 정리하느라 하루도 한가한 날이 없었다.
    <<김공, 무슨 일로 밤마다 이렇게 바삐 보내시오?>>
    어느날, 학봉의 침소에 마실왔던 한 동료가 학봉의 어깨를 두드리며 물었다.
    <<낮에 적어놓았던것을 정리하는중이요. 밤에 잘 정리해놓아야 래일 다시 정서할수 있잖겠소>>
    <<김공은 사관(史官)노릇을 처음 하니 이곳 정황엔 깜깜이구려. 기사를 깐깐히 쓴다 하여 록이 더 오르기를 하오? 아무렇게나 두어줄 적어놓으면 될걸가지고 고생을 사서 할 필요가 뭐요?>>
   김성일이 동료가 하는  말을 듣고보니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우리 사관들은 글 한자를 적어도 나라에 책임져야 하는거요. 우리가 한 시대의 력사를 진실하게 적어놓지 않는다면 후손들이 장래에 어떻게 우리나라의 진실한 력사를 료해할 수 있겠소?.....>>
   성일은 엄숙하게 동료를 꾸짖었다.
   이튿날 성일은 사관들이 적은 기록들을 돌아봤는데 기록들은 정말로 말이 아니였다.
     X월X일 날이 흐리다.
     오늘 조회가 없었다.
 
      X월 X일 날이 맑다.오늘은 별일 없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력사기록이란 말인가? 삼척동자의 습작일기보다도 간단한 기록을 춘추관에 보관한다면 그게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 하루 세끼 밥을 배불리 먹고 장기를 둔다 바둑을 둔다 하면서 온종닐 놀기만 하는 기생충들을 조정에서 쫓아내지 않고 국록을 주고있으니 나라 일이 어찌 되뎄는가? 하나둘도 아니고 하루 이틀도 아니고 해해년년 이렇게 해나간다면 신성한 춘추관은 쓰레기통과 다를 게 무엇인가? 조정의 대신들도 이런 정황을 모를리 없겠는데 왜 다 수수방관하고있는것일가? 나라의 력사의 진면모를 후손들에게 옳게 알려주려면 반드시 사관제도를 개혁해야 한다. 김성일은 사관제도의 개혁에 관한 여섯가지 생각을 머리속으로 정리하여 글로 적어 스승이신 퇴계선생에게 물어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때 일흔고개에 오른 퇴계선생은 신상에 여러가지 병환을 지녔기에 관직을 사퇴하고 고향 례안에 돌아가 휴양하고있었다. 학봉은 초불을 밝혀놓고 퇴계선생에게 올리는 글을 썼다.
 
     <<...... 1. 사관의 직책은 주로 임금의 거동을 기록하는 일이기에 임금의 용모며 기색에 이르기까지 마땅히 자세히 살펴보아야 자세히 기록할수 있을것입니다. 그런데 궁전에 입시(入侍)하는 신하들은 모두 부복(俯伏)하고 임금의 얼굴을 감히 쳐다보지도 못하고있으므로 그 언행을 개괄적으로 기록할수는 있지만 임금의 어투며 기색에 대해서는 기록할 방도가 전혀 없으니 이래서야 무슨 기사(记事)로 되겠습니까? 지난번에 한 사관이 아것을 론계(论启)한 일이 있었지만 앉아서 임금을 마주볼수 있게하는 례식은 끝내 정해지지 못했습니다. 제가 이제 다시 임금께 청계(请启)하고자 하는데 그렇게 하면 되겠습니까?
    2. 사관은 사실에 의거하여 진실하게 기록하는것이 법도(法度)에 맞는 일이 아닙니까? 지금 사관들은 한사람이 보적(褒贬)을 당한 결론만 기록하는데 한사람의 력사에는 전후의 공과(功过)가 다르고 우결점이 각기 있는데 무턱대고 한데 묶어놓고 일필(一笔)로 선악(善恶)을 판단할수 있겠습니까? 만약 그가 한 일에 따라 그대로 적어놓으면 옳고그름이 다 적혀지고 공과 죄가 서로 가리워지지 않게 되고 선과 악이 서로 뒤섞이지 않게 되여 후세의 사람들이 정당한 결론을 내릴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지금 사관들은 법에따라 일을 적으려고 해도 웃자리에 앉아있는 관리가 한마디로 <<이렇게 하라>>하고 엄명을 내린다면 어쩔 방도가 없습니다. 저는 력사를 기록하는 근본 법을 굳게 지켜 절개를 굽히지 않고 도리에 맞게 적으려 하는데 괜찮겠습니까? 
    3. 안명세【安明世 1518--1548, 주:홍문관의 정자로 되여 을사사화 전후의 시정기(施政记)에 중종비 장경왕후의 오빠이며 인종의 외삼촌인 윤임(尹任)을 찬양하는 글을 적어넣었는데 동류중에서 간신 리기(李芑),정순명(郑顺明)에게 아부하는자가 있어서 상전에게 고발하였다. 그는 체포되여 혹형을 받으면서도 리기, 정순명의 죄악상을 낱낱이 폭로하고 의젓한 자태로 형장에 나가 사형을 당하였다.] 는 직필(直笔어떤 것에도 구애되지 않고 어떤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적음. 또는 그 글)때문에 직책을 다하다가 억울하게 죽었으니 마땅히 보증(褒赠)을 하는 식전(式典)이 있어야 할터인데 아직 보증이 없습니다. 저는 사관으로 된 사람의 립장에서 이 일을 청계하려 하는데 어떻겠습니까?
4. 경연에서 일을 아뢸사관들은 모두 입을 다물고 말을 하지 않는것이 통례(通例)로 되였으니 이것은 <<맡은 일 밖의것은 생각하지 않는다(思不出其位)는 뜻에서 말하지 않는것입니까? 아니면 미관말직(微官末职)에 있다고 하여 말을 하지 않는것입니까? 때로는 말을 반드시 올려야 될터인데 말을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으니 이것은 어찌된 영문입니까? 밤에 임금을 만나거나 또는 임금이 한가히 계실 때 임금의 곁에 가서 저의 생각을 털어놓고싶은데 그렇게 하면 되겠습니까?
   5. 사관(史馆)인 춘추관의 풍습은 궁중의 일을 기록하는 책임을 하번직원(下番职员) 한사람에게 맡길뿐 다른 사람은 아예 참여하지 않으니 국가의 력사를 믿을수 없게 되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관직을 새로 맡은 햇내기들은 궁중일에 생소하고 어리벙벙하여 조정의 시비곡직(是非曲直 옳고 그르고 굽고 곧음이라는 뜻으로, 옳고 그름 또는 잘함과 잘못함을 이르는 말.)을 알지 못하기에 붓을 들어도 귀머거리나 다름없어 어떻게 기록할지 몰라 망설이고있습니다. 그들이 적는것이란  고작해야 <<날씨가 흐리다 개다 >>하는 조보( 朝报)형식에 불과한것입니다. 이런 페단(弊端)을 고치려면 봉교(奉教:예문관에 두었던 정7품의 벼슬로서 임금의 교칙을 마련하는 일을 맡아보는 직무)이하의 직원들로 하여금 날마다 번을 돌게 하여 한사람이 하나씩 적게하고 여덟직원이 적은것을 가지고 한자리에 모여서 의론하고 참증(参证 )하고 쓸데없는것은 버리고 서로 의문나는것이 없도록 한 후에 시정기(时政记)에 적어넣도록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6. 옛날 태사관(太史官)들은 모두 다 한자리에 오래동안 사업했기때문에 한시대의 믿음직한 력사를 써낼수 있었는데 반고(班固 32--92)나 사마천(司马迁 중국 전한시기의 력사학자로서 <<사기의 저자.기원전145?--기원전86?)같은분들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후세에 와서는 그렇게 되지 않고 자리바꿈이 무시로 있게 되여 들락날락하게 되니 사람마다 력사를 적는것을 귀찮게 여기고 그날그날을 흥청거리며 보내고있으니 력사기록을 진정으로 책임질 사람이 없게 되였습니다. 이렇게 하고서야 믿음직한 력사자료가 어떻게 마련되겠습니까? 오늘 우선 해야 할 일이란 기사관을 뽑을 떄 인재를 구해야 하고 일단 인재를 얻었으면 그 직무를 오래동안 행하도록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학봉은 이튿날 수하의 사람을 시켜 자신이 쓴 편지를 퇴계선생에게 보내고 답장이 오기를 초조히 기다렸다. 보름이 지나서야 안동으로 내려갔던 하인이 돌아왔다. 봉투를 뜯어보니 퇴계선생의 글발이 한눈에 안겨왔다. 그런데 옛날의 룡이 날고 봉황이 춤추는듯한 힘있는 글발은 간곳 없고 글가운데도 드문드문 먹물이 떨어진 흔적이 보였다. 스승님께서 이젠 필도 제대로 드시지 못하니 세상을 하직할 날도 멀지 않았구나. 학봉은 서글픈 마음을 달래면서 스승의 답장을 읽어보았다. 그런데 그렇게도 믿어마지않던 스승의 편지에서 그는 실망하지 않을수 없었다.
 
  ... 사관(史官)이 임금을 마주보는 례식은 의례 정해져야 하겠지만 임금의 령이 없는한 굳이 청할수야 있겠는가...
   사실을 직술(直述)하는것은 마땅한 일인데 춘추관의 집체의견으로 제출한다면 허락받을지 모르지만 낮은 벼슬에 있는 사람이 단독으로 처사하면 옳지 않은 일인가 하오...
   안명세의 보증문제는 이전에 임금에게 계청했어도 허락을 받지 못했는데 이제 또 계청하면 온당할는지...
   경연에서 행해지는 언사(言辞)는 각각 책임진 경연관이 맡아하는것이니 사관은 언사를 삼가고 기록을 충실히 하는데 힘을 기울여야 될것 같소.
   집체토론을 거쳐 시정기(时政记)에 적자는 건의는 매우 훌륭하오. 그러나 이때까지 내려온 페단을 하료배(下僚辈)가 없어지게 한다는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니 장차 직위가 높아짐을 기다려서 당상관(堂上官: 정3품의 관직)들에게 름의(禀议)해서 개혁하는것이 좋을것 같소...
   사관들을 한 직무에 고정시키는것은 좋은 일이기는 하지만 오늘날에는 실현하기가 어려울것 같으니 차라리 말을 떼지 않는것이 좋을것 같소...>>
 
    스승의 편지를 거듭거듭 읽으면서 학봉은 솟아나는 눈물을 금할수 없었다. 예지로 충만된 스승님의 사색과 일월성진(日月星辰)을 휘여잡을수 있던 웅략(雄略)은 어디에 갔나? 인생의 마지막 고개를 맥없이 톺아가는 스승을 생각하니 하늘을 버틴 기둥 하나가 금시 넘어가는것만 같았다. 그렇게 믿어 마지않던 스승님한테 도움과 지지를 받지 못한 학봉은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내가 하려는 일이 그르잖은 이상 도리대로 처사하지 않고서야 되겠는가. 마음을 낸 이상 끝까지 밀고나가보자.)
  잠자리에 누운 학봉은 춘추관의 개혁방안을 구상하느라 온 밤을 뜬눈으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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