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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조의 명신 학봉 김성일 11.금성산의 봄빛
2015년 08월 17일 09시 53분  조회:1038  추천:0  작성자: 옛날옛적
  11. 금성산의 봄빛
    선조 16년 8월, 학봉 김성일은 라주목사에 부임하라는 조정의 명을 받고 남행길에 올랐다. 황해도 순무어사로 내려갔다가 서울로 돌아온지 며칠 되지 않았지만 국왕의 새로운 조서가 내린이상 편안히 쉴수는 없었다.그는 로독을 풀념도 하지 않고 인차 서울을 떠났다. 쌍두마차우에 앉아서 대통로 량켠에 펼쳐진 푸르른 전야를 내다보는 그의 머리속에는 부임후에 해야 할 일들이 맴돌이쳤다. 호남지방은 비옥한 땅이 있고 수리조건이 좋은 곳이지만 인구밀도가 높고 인심이 메마른 곳이라 다스리기 힘들다는것은 불보듯 뻔한것이였다. 해마다 풍년이 든다 해도 보리고개를 넘기기 어려워하는 곳이 라주지방이요 도적떼가 욱실거리기로 소문난 곳도 바로 라주지방이였다. 백성들의 고통을 단 얼마라도 덜어주겠다고 주야장천 로심초사하여 장계도 많이 써올렸지만 그렇다 할 효력을 보지 못한 김성일은 자신의 힘과 지혜가 작용할수 있는 라주땅에서나마 도학정치를 실행하여 백성들이 격앙가를 부르며 살아 갈 수 있게 해보겠다고 속다짐하였다.
    학봉일행이 라주성에 이르러 보니 어느때 소식을 들었는지 수백수천명의 백성들이 길가에 나와서 신임목사를 환영하였다. 함경도, 황해도에 순무어사로 내려가서 선정을 베풀었다는  소문이 난데다가 문필 또한 출중한 학자가 이 지방의 목사로 내려온다는 소문을 들은 백성들은 신관사또에 대한 기대가 아주 컸었다.
라주목사로 부임한 김성일은 륙방관속을 모아놓고 지방관원들이 청렴정직해야 한다는 도리를 강조하였고 당지의 명류들을 찾아가서 도학정치를 의론하였으며 여러 고을을 돌아다니면서 백성들의 생활고를 자세히 료해하였다. 그는 각 고을에 방을 내걸고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이 관청에 신소하게 하였고 법을 어긴 불법관리들을 사정없이 처단하였으며 성을 쌓고 관청을 수리하는 등의 부역을 엄격히 제한하고 농민들이 시름놓고 농사일에 몰두하도록 여러가지 합당한 조치를 취하였다. 
 학봉 김성일은 라주목사로 부임한 뒤,  지방관리들이 도학정치를 모르고 명문의 후손들이 조상의 뼈나 이어받았지 학문이 너무도 얕다는것을 가슴깊이 깨달았다. 명문이 많이 사는 고장에 선현(先贤)을 봉안(奉安)하는 장소조차 없으니 정말 유감스럽다고 생각한 그는 교육을 틀어잡아야 되겠다는것을 새삼스레 깊이 느꼈다.
    어느날 라주성 서쪽에 있는 금성산을 돌아보던 학봉선생은 수려한 산기슭에 서원을 세우기로 작심하였다. 그는 관청에서 지방관원들과 서원을 세울 일을 토의하고나서 각 고을에 방을 내걸고 명류들이 서원을 세우는데 돈과 물자를 기부하라고 호소하였다.
오래지 않아 금성산기슭에 대곡서원(大谷书院)이 일어섰다. 이 서원의 규모나 학령(学令)은 모두 다 당시에 이름난 백록동(白鹿洞)서원을 모방하였다. 그는 서원에 사당(祠堂)을 세우고 조선조의 5현가(五贤家)들인 한훤당(寒暄堂 ) 김굉필(金宏弼1454--1504 ), 일두( 一斗)정여창(郑汝昌1450--1504 ), 정암( 静奄) 조광조(赵光祖1482--1519 ), 회재(晦赍) 리언적(李彦迪1491--1553 ), 퇴계( 退溪) 리황(李滉1501--1570 ) 등 대학자들을 봉안(奉安)하였다. 
나라의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사업을 남달리 중시한  학봉선생은 관청에서 정사를 마치고 여가만 있으면  홀로 말을 타고 서원으로 달려갔다. 그는 서원에 들어서면  재생(赍生)들의 학습정황을 료해하고 재생들과 마주 앉아 경서의 오묘한  뜻을 강론하기도 하였고 재생들의 재주와 신근성을 알아볼 목적으로 글짓는 내기도 걸어보고 여러가지 과업을 맡겨 시험해보기도 하였다. 
학봉선생은 대곡서원에서  퇴계선생이 만년에 지은 대표작인 성학십도(圣学十图)를 출판하였고 계산잡영(溪山杂咏)등 훌륭한 책들을 간행하였다. 그에게 있어서 행정이나 군정이나 교화나 재정이나 문화사업 등의 어느것이나 다 도학정신을 구현하는데 있어서 분리할수 없는 하나의 통일체였다.
라주백성들의 운명을 한어깨에 짊어진 학봉 김성일은 그 고장 백성들의 고통을 단 얼마라도 덜어주기 위하여 때식을 잊고 공무를 보았고 밤낮을 이어가며 사색의 실마리를 풀어갔다.  
그가 부임한지 몇달 지나지 않아 둘째형님 규봉(奎峰)이 별세했고 2년이 지난 뒤에는  또 큰형님 약봉(药峰)이 세상을 떠났다. 십여년전에 과거보러 갈 때 세째형님을 잃었고 또 부친을 여인 뒤 또 손우의 형님들을 다 잃은 학봉선생의 마음은 칼로 에이는듯 아팠다. 그러나 그는 주림과 기아에 허덕이는 불쌍한 라주백성들을  버려두고  고향에 돌아가서 마음놓고 오래동안 머물수 없었다.  부고를 접했을 때마다 그는 필마단기로 고향집에 달려가서 형님의 령구앞에 엎드려서 통곡을 하고나서는 자녀들을 설복하여 초상을 간소하게 치르도록 이르고는 출상이 끝나기 바쁘게 라주로 돌아왔다.
    김성일이 라주목사로 부임한지 어느덧 3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짧디짧은 3년동안 라주지방은 몰라보게 변모하였다. 부역때문에 농사일을 버리고 타지방에 나가 류리걸식하던 농민들은 하나둘 고향으로 돌아왔고 농민들이 안심하고 농사를 지었기에 라주에서는 농민들이 해마다 풍작의 기쁨을 안아왔으며 금성산기슭에는 언제나 글읽는 소리가 랑랑히 울렸다.
    (3년간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구나. 이곳의 도학정치도 이젠 기반을 갖추었으니 이젠 고향으로 돌아가서 학문이나 연구해야 되겠다.)
    라주지방을 한바퀴 돌아보고난 김성일은 흐뭇한 기분에 사로잡혀 조정에 사임서를 써올리고는 고향으로 돌아갈 차비를 하였다. 3년만에 고향으로 돌아간다지만 그에게는 가져갈 아무런 살림살이도 없었다. 항상 아끼고 사랑하는 책밖에는 가져갈것이란 아무것도 없었다.
    학봉선생이 사임하고 관청을 떠난다는 말에 온 라주백성들은 서운한 생각을 금할수 없었다.
    <<목사어르신, 어르신께서 우리를 버려두고 고향에 가시면 이곳의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랍니까? 가권을 이곳에 모셔와서 이곳 라주에서 우리들과 함께 살아갑시다.>>
    <<사또어르신께서 이곳을 떠나가시고나면 이제 또 어떤 분이 새목사로 부임하게 될는지...>>
김성일이 관청을 나서자 배웅하러 나온 관원들과 백성들은 길 량옆에 줄느런히 늘어서서 눈물을 흘리면서 안타까와하였다. 눈물투성이가 되여가지고 손을 저으며 바래주는 백성들을 돌아보는 김성일도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코마루가 시큰해났다.  3년동안 고락을 같이하고 정을 나눈 순박한 이곳 백성들과 갈라지자니 섭섭한 감을 금할수가 없었다. 라주 백성들은 전관사또의 그림자가 금성산서쪽으로 사라질 때까지 오래오래 손을 저으며 바래주었다.
이 시기에 학봉선생은 또 많은 주옥같은 시편을 창작했는데 후에 금성록(金城录)이란 책에 수록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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