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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조의 명신 학봉 김성일 13. 파란많은 사행길1)
2015년 08월 17일 12시 31분  조회:1531  추천:0  작성자: 옛날옛적
   13.파란많은 사행길
1)
      선조 23(1590 )년 4월 27일, 바람 한점 없이  맑은 화창한 봄날 아침이였다. 쪽빛 하늘에는 고기비늘같은  구름이 드문드문 비껴있고 무르른 바다에는 은빛 파도가 절주있게 일고있 항구에서 가까운 바다에는 눈같이 하얀 갈매기들이 잔잔한 파도를 희롱하며 깃을 적시기도 하고 먹이를 찾아 대가리를 물속에 넣었다가는 하늘로 날아올라 커다란 원을 그리기도 한다.
      이때 <<조선국통신사>>라고 쓴 기발을 높이 날리는 룡선 한척이 각앵각색의 기발을 흔들며 바래주는 사람들의 정어린 눈길을 담아싣고 동래항구를 서서히 떠나갔다. 십여명의 사공들은 웃도리를 벗어버리고 룡선의 량켠에 줄지어 서서 절주있게 삿대를 젓고있었고 정중에는 사모관대를 한 량반 몇사람과 화복차림의 사람 몇이 마주 앉아있었다. 정좌에 앉아있는 나이 50여세 되여보이는  검은 수염을 기른 량반은 이번에 일본에 통신사로 가는  정사 황윤길이였고 그곁에 앉아있는 의관이 단정하고 풍채가 름름한 50대의 사나이는 례빈사정으로 있다가 이번에 통신사의 부사직을 맡은 학봉 김성일이였고 그 곁에 앉은 40대의 얼굴빛이 하얀 사람은 서장관직을 맡은 허성이였다. 그리고 맞은켠에 앉은 화복차림의 일본사람은 겐쇼오였다. 그는 원씨(源氏)를 격멸하고 일본관백으로 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심복인데 작년 10월 조선에 사신으로 왔다가 답례방문을 하러 일본으로 가는 조선통신사를 안내하게 되였다.
     배에 앉은 사람들중의 절대다수는 출국행이 처음이였고 더러는 배를 타고 먼 바다로 나서보기도 처음이였다. 사람들은 망망한 바다의 극경에 취해 아득한 수평선에 눈길을 박고 찬탄을 금할줄 몰랐다. 호기심이 어린 수십쌍의 눈길은 하늘과 바다가 맞붙은 수평선우에서 흰갈기를 일으키며 달려오는 파도를 따라 움직였다. 흥이 도도한 악공들은 북도 치고 노래가락도 뽑으면서 천재일우의 즐거움을 누리였다. 
    정좌에 앉아있는 정사 황윤길과 서장관 허성은  번역관을 옆에 앉혀놓고 마주 앉은 겐쇼오와 한담을 하기에 여념이 없었으나 김성일은 그들의 대화에는 아무런 흥미도 가지지 않았는지 말 한마디 거들념하지 않고 묵묵히 먼 바다를 바라보며 보며 깊은 상념에 잠겨있었다.
     ( 이번 사행길이 순통할수 있을가?)
 이 일을 가지고 김성일은 몇날며칠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어쩐지 길상한 징조는 보이지 않았다. 몇년전에 서장관이란 직무를 맡고 윤두수를 따라 명나라에 주청사로 갔을 때는 가고 올 때 아무런 걱정도 없었는데 이번 행차는 웬 일인가?  외국을 가보기는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데 왜 일본행차에는 자꾸 불안감이 앞서는것일가? 학봉선생은 생각에 생각을 굴리였다. 그렇다. 풍토인정이며 언어례절이 우리와 다르기는 일본도 명나라와 별반 차이가 없지만 형제나라로 되여 세세대대 사귀여온  명나라와 오랑캐들이 욱실거리는 섬나라는  서로 비교할수도 없는  일이였다. 좁은 바다 하나를 사이에 두고있으면서도 근 백년동안 아무런 래왕도 없이 지낸 조선과 일본사이이니 서로간에는  아무런  좋은 감정도 있을리 없었던것이다. 
이번에 겐쇼오가 가지고온  일본 관백의 국서도 사행길의 어려움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지 않은가? 명나라를 치기 위해 길을 빌려달라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엉큼한 속심, 그의 코대를 꺾어놓으면서도 동방례의지국의 너그러움을 보이도록 처사해야 할 일, 생각밖의 일들에 부딪칠 때 응급조치를 대야 할 일... 가지가지 경우를 상상해보노라니 머리는  어지러워 현훈증이 날 지경이였다.
웃음을 싣고 노래를 싣고 우수를 싣고 돛배는 동으로 동으로 미끄러져갔다.  한나절이 지나자 서쪽하늘로 기울어졌던 해는 시뿌연 구름속에 숨어버리고 해상에는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달콤한 잠에서 깨여난 파도는 바람의 부추김을 받아 기세를 올리더니 마치 힘자랑이나 하는듯 요란스레 배창을 들이치기 시작했다. 해질무렵이면 잠잘줄 알았던 바람은 점점 더 기승을 부렸고 산더미같은 물결은 성난 사자같이 날뛰면서 배를 금시 삼킬듯이 아우성을 치며 배전으로 바라오르기 시작했다. 
 세찬 바람에 평형을 잃은 배는 좌우로 기우뚱거리며 속도를 늦추었다. 이윽고 물사태를 몰고 천둥같이 노호하는 태풍이 일어났다. 사공들은 짭짤한 바다물방울에 눈도 바로 뜨지 못한채 이를 악물고 억세게 노를 저었으나 배의 전진속도는 점점 느려졌다. 룡선을 곱게 단장했던 꽃종이와 각종 아름다운 수식은 비물에 함뿍 젖고 세찬 바람에 갈기갈기 찢겨지고 벗겨져서 멀리멀이 날려간지 오래였고 돛도 거세찬 폭풍의 강타에 견디기 어려워 째지는 듯한 가냘픈 신음소리를 내였다.
 배창안에 편안이 앉아서 바다의 황홀한 경치를 구경하며 려로의 기쁨을 만끽하던 사람들은 뜻밖의 봉변을 당해 숨도 바로 쉬지 못하고 초조한 마음으로  창밖만 내다보고있었다. 황혼무렵이면 바람이 좀 수그러들기 마련인데 심술궂은 바람은 사람들과 엇서보려는듯  점점 더 사납게 달려들었다. 이윽고 <<뿌지직__>>하는 신음소리가 들려오더니 무엇인가 <<쿵>> 하는 요란한 굉음을 내며 배창을 내려쳤다. 돛대로 세워놓은 장딴지같이 굵은 참대기둥이 부러져서 배창을 때렸던것이였다. 
 돛을 잃은 룡선은 방향을 바로 잡지 못하고 기우뚱거리면서 굼뱅이같이 움직였다. 행여나 조금만 더 참으면 바람이 자겠는지? 하늘이 그리도 무심할라구 하면서 행여나에 실날같은 희망을 걸었던 사람들은 다가온 사신(死神)을 앞에 두고 얼굴이 재빛으로 되여 부들부들 떨었다.
      <<이젠 올데갈데없는 수중고혼(水中孤魂)이 되는가보네.>>
      누군가 맥없는 소리를 뱉어놓자
 
     <<우리가 여기서 귀신도 모르게 죽는것을 우리 부모처자들은 알기나 할가?>> 하고 누군가 맞장구를 쳤다.
      이국강산을 돈 한푼 쓰지 않고 구경하려던 아름다운 꿈은 순식간에 수포로 되여버리고 자칫하면 바다에서 원통하게 어복지혼(鱼腹之魂)이 되겠다는 생각이 든 수행인원들은 하나둘 눈물을 훔치기 시작하였는데 미구에 흐느낌소리는 점차 울음의 합창으로 변해버리고말았다.
    학봉선생이 황윤길과 허성네를 돌아보니 그들도 내심 당황함을 감추지 못하고있었다.
     (어떻게 하면 이 사람들의 정서를 온정시킬수 있을가?)
 
<<그렇게 합시다. 며칠 늦더라도 배를 잘 수리해야겠습니다.>>
황윤길의 말을 이어 서장관 허성도 동감을 표시했다.
<<사공들 들으시오. 배머리를 뒤로 돌리고 다대포항으로 돌아갑시다!>>
황윤길이 일어나서 사공들이 들으라고 크게 웨치자 사공들은 일제히 배머리를 돌렸다. 비록 똧이 떨어져나간 배였지만 순풍에 삿대를 저으니 룡선은 살같이 빨리 나갔다.
이튿날새벽에 배는 무사히 다대포항구에 이르렀다. 그들은 대포관(大浦馆)에 류숙하면서 돛대를 바꾸고 배창을 수리하면서 바람이 자기를 기다렸다.
5월1일 아침, 다대포바다를 연분홍빛으로 물들이며 수평선에서 솟아오른 붉은 태양이 하늘높이 떠오르자 바다에는 은빛 파문이 일었다. 언제 광풍이 몰아쳤더냐고 말 하는듯 고요한 바다는 새색시같이 유순하게 배길을 열어놓는다. 돛을 높이 올린 룡선은 동으로 동으로 서서히 떠나갔다. 망망한 바다에서 또다시 풍랑을 맞을가봐 사공들은 진땀을 흘리면서 노를 저었다. 사흘낮 사흘밤을 쉬지 않고 노를 저은 덕에 룡선은 나흩날 아침에 일본령토에 속하는 대마도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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