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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세기인 정치가 리항복 14)청운의 뜻을 품고
2015년 12월 22일 14시 19분  조회:1577  추천:0  작성자: 옛날옛적
14.청운의 뜻을 품고 
 
권소저와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린 리항복은 성균관에 들어가서 률곡선생의 강의를 받으며 학문을 연찬했다.그가 25세에 들던  1580년에 조정에서는 알성과를 보았다.리항복은 4등이란 우수한 성적으로 알성과 병과에 급제했고 그보다 다섯살 아래인 리덕형(1561-1613)은 을과에 급제하여 함께 벼슬길에 올랐다.
리항복이 알성과에 급제한 뒤 의기양양하여 고향집에 돌아오니 옛날 리항복이 난봉꾼시절에  단짝이 되여 함께 놀던 활량이며 청루의 기생들은 쥐구멍에 해살이 들었다고 기뻐하며 크게 잔치를 벌이려고 덤비였다. 
리항복은 자기가 과거에 급제했다 하여 그와 함께 허물없이 지내며 우정을 쌓아온 옛날의 친구들을 내 몰라라 하고 차버릴수는 없었다.그들과 함께 지내는 동안 그는 서당이나 서책에서는 볼수도 들을 수도 없는 많은 생활을 친히 체험해봤고 량반들의 권세에 눌려서 신음하며 사는  최하층백성들의 인정세태를 많이 깨달았던 것이였다.마음같아서는 그들과 큰상을 차려놓고 취하도록 술을 마시면서 옛날로 돌아가보고싶었다. 그러나 이 시각 그가 지닌 신분으로는 난봉꾼들과 함께 주안상을 차려놓고 먹고 논다는것은 불가능하였다.
“함께 놀수 없어서 미안하다.약소하나마 이 돈으로 옛날 친구들을  다 불러 한상 차려놓고 나 대신 즐겁게 마시고 놀려무나.”
그는 주머니를 털어 약간의 돈을  한 난봉꾼친구에게 주어 그들이 경축연을 벌이고 하루종일 즐기게 하였다.
집으로 돌아온 리항복은 먼저 선친의 빈소에  들어갔다.그는 선친의 빈소에  술을 올리고 그가 과거에 급제했다는 기쁜 소식을 조상들께 정중히 알리고나서 한시기 장난에 빠져 어머니의 가슴속에 재를 뿌렸던 부끄러운 지난날을 깊이깊이 반성하였다. 
리항복이 입궐하여 조정에서 처음 맡은 직무는 교린에 관한 문서를 맡는 관청인 권지승문원(权知承文院)의 최하위 관직인 부정자(副正字:종9품벼슬)라는 벼슬이였다.리항복은 취직한 뒤 먼저 자기에게 학문을 배워주신 존경하는 은사이신 문성공 률곡 리이선생을 뵈러 갔다.
률곡선생은 리항복이 장차 나라의 훌륭한 인재감임을 알아보고 반겨 맞으면서 그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리항복이 돌아가려 할 때 리이선생이 말씀했다.
“나는 몸이 불편해서 관직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갈 뜻이 있으니 그때 자네는 석담(石潭)으로 나를 찾아오게.”
“스승님께서 장차 귀향을 하시려구요? 장차 스승님을 자주 찾아 가르침을 받겠습니다.”
리항복은 리조판서를 맡은 률곡 리이선생이 자기를 남달리 사랑하고 그를 파격적으로 등용하려는 생각이 있다는것을  인츰 알아차렸다.
리항복은 학문이 연박한 률곡선생을 자주 찾아가서 학문과 정치에 대해 많은것을 문의하고싶었지만  그가 률곡선생댁을 자주 찾아가면 남들의 말밥에 오르게 될것 같아서 평소에 별 일이 없이 그댁을 찾아가는것을 극력 자제하였다.
 젊은 항복이는 자기의 재능을 충분히 발휘하여 조정의 신임을 받았다.이듬해에 그는 학예와 문학을 관할하는 예문관(艺文馆)에 뽑혀들어가 검열(检阅:정 9품벼슬)이란 벼슬을 맡았다. 
1583년의 어느날,선조대왕은 홍문관의 대제학을 맡은 률곡 리이선생을 불러 
분부했다.
“장차 통감강목(通鉴纲目)을 강의해야 하니 고문에 대비할만한 훌륭한 
선비들을 몇명 추천하시오.”
나라의 동량으로 될만한 젊은 학자들을 손금보듯 환히 보고있는 률곡선생은 리덕형(李德衡),심의수(沈喜寿),홍이수(洪履祥),정창연(郑昌衍),리정립(李廷立),오억령(吴亿龄),리항복(李恒福) 등 7명의 전도유망한 젊은 학자들을 임금에게 천거했다.
     선조왕은 률곡선생이 추천한 학자들의 명단을 보고나서  매우 흡족해하면서 통감강목 한질을 하사하고나서 시사(试射) 등 여러가지 번잡한 기예로 번거롭게 하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리항복은 사가독서(赐假读书)를 하고 옥당(玉堂:홍문관의 딴이름)에 뽑혀들어가서 학문을 깊이 연구할수 있는 더없이 좋은 기회와 영광을 가졌다.그는 임금을 제외하곤 누구도  드나들수 없는 어고(御库)를 자유자재로 드나들면서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수 없는 보귀한 서적을 마음껏 읽으며 학문을 연찬할수 있었다.
리항복은 을유(乙酉:1585)년 봄에 예문관(艺文馆)의 봉교(奉教:정7품)를 제수받았고 차례에 따라 성균관전적(成均馆典籍:종6품)으로 승진하였다가 다시 사간원 (司諫院)의 정언(正言:)을 제수받았다.오라지 않아 그는 또 조정의 천거에 의해 리조좌랑 지제교(吏曹佐郎 知制教)를 제수받았다.
다른 부처에 있는 관리들은 행정과 관리들을 임면하는 이 벼슬자리가 실권이 막강한 관직이라 몹시 부러워하면서 이 부문에 들어오지 못해 안달아했다.그러나 모든 일을 원칙에 따라 엄숙히 처리하는 리항복에게는 그 자리가 개인의 권세를 시위하는 곳이 아니기에 어디보다  더 바쁜 일터였다.
일찍 이 부처에 있던 두 관리는 사간원으로 관직을 옮기기 위해 그를 찾아와서 도움을 청하면서 갖은 수단을 다썼지만 리항복은 이들이 인품이 바르지 못함을 알고 끝내 추천해주지 않았다.
이듬해인 병술(丙戌:1586)년에 리항복은 다시 정언(正言)을 맡았다가 그 이듬해인 정해(1587)년에는 교리로 승진되였고 한해 뒤인 무자년(1588)년에는 다시 리조로 옮겨와서 리조정랑(吏曹正郎:정5품 벼슬)을 맡았고 또 그 이듬해에는 례조(礼曹)의 정랑을 맡았다.
 이해에 정여립(郑如立)의 모반사건이 일어났다.정여립(-1589)은 선조3년에 
문과에 급제하였는데 성격이 사납고 잔인했으나 통솔력이 있고 두뇌가 명석하여 경사(经史)와 제자백가(诸子百家)를 통달하였다.본래 서인(西人)이였다가 동인(东人)이 득세하자 동인에 아부하였다.조정에서 수찬으로 있으면서 성혼, 박순 등 학자들을 헐뜯다가 선조왕의 신임을 잃자 사직하고 고향에 돌아갔다. 그는 왜구의 침입을 막는데 공을 세우자 그것을 밑천으로 하여 대동계를 꾸리고 모사들을 모집한 뒤 “리씨가 망하고 정씨가 흥한다”는 소문을 퍼뜨려 민심을 흉흉하게 만들었다.
그는 겨울철에 서울에 쳐들어와서 병조판서를 살해하고 나라의 병권을 잡으려고 모반을 획책했다.그러나 그가 거사를 진행하기도 전에 비밀이 탄로나서 관련자들이 하나둘 체포되였다.모반이 성공할 가망이 없어진것을 본 그는 아들과 함께 진안 죽도로 도망가서 몸을 숨기고 재기할 기회를 노리였다.그러나 관군의 물샐틈없는 포위망을 뚫고나갈 가능성이 보이지 않자 절망한 그는 칼을 뽑아 자결하고말았다.
    비록 이번 모반사건의 주범인 정여립이 자살하여 주범은 없어졌지만 역모사건에 련루가 되는 사람은 수백명도 넘었다.
   이것은 워낙 중대한 사건인지라 선조임금이 친히 국문에 참석하였다.
이때 문사랑(问事郎)을 담당한 리항복은 입시한 뒤 옥에서 끌어온 혐의자들을 하나하나 자세히 문초하였다. 그는 예리한 통찰력과 령활한 질문방법으로 죄수들이 저지른 죄의 경중을 가려내여 알맞는 형을 내리게 하였고 억울하게 역모사건에 걸려든 사람들은 주저없이  풀어주었다. 
이번 사건을 원만히 처리하자 선조왕은 리항복의 비상한 재능에 찬탄을 금치 못하였다. 그뒤 리항복에게는 평난공신이란 호가 내려졌고 무릇 중대한 사건을 처리할 때 선조왕은 리항복에게 임무를 맡기는것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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