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상감께선 좀 굶으셔도 되오”
의주에 도착하여 림시 행재소를 잡은 선조왕은 찹잡한 마음을 걷잡을수 없었다.그는 몇몇 신하들을 데리고 압록강변에 자리잡은 통군정(统军亭)에 올라갔다.
평안북도 통군정
통군정은 의주읍밖의 압록강기슭 가장 높은 삼각산봉우리에 자리잡고 있다. 고려초기에 세운 이 통군정은 조선의 관문으로서 해마다 중국에 사신을 보낼 때는 다 이 통군정에서 중국에 가져가는 물건들을 검사하였고 중국에 갔다가 오는 사신들도 통군정에서 검사를 받는다. 통군정에 올라 푸르른 압록강물에 점점이 떠있는 섬들이며 이끼푸른 의주성벽을 바라보는 선조왕은 비분을 금할수가 없었다.그는 시 한수를 지어 읊었다.
산에 걸린 달을 보니 절로 통곡이 나고
심심한 가슴 압록강 찬바람이 쓰리게 하네
리항복은 임금에게 하루 속히 낡은 관청을 수리하여 림시 궁전으로 삼을것을 청구하였다.어가가 장기적으로 의주에 머무른다는 뜻을 백성들에게 널리 알려 백성들이 마음을 놓고 의주에 돌아오게하기 위해서였다.
선조대왕과 조정이 의주성안에 장기적으로 주둔한다는 소문이 고을 안팎에 널리 퍼지자 집을 버리고 산속으로 도망갔던 지방관리들과 백성들도 다시 하나둘 성안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어느날, 가산(嘉山)의 백성들은 임금님을 대접하겠다고 닭을 여러마리 잡아서 닭고기국을 끓여가지고 목판에 고기그릇을 담아이고 조정을 찾아왔다.리항복은 시골백성들의 순박한 마음이 눈물이 나도록 고마웠다.
임금에게 진상하는 음식은 반드시 안전검사를 하는것이 궁내의 법도였다.외처에서 가져온 음식이 정결한지 어떤지 혹은 나쁜놈들이 음식에 몰래 독약을 넣었는지 알수 없는 일이였다.하지만 즉석에서 그 음식을 검사한다면 백성들의 성의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라 참으로 난처했다.이 일을 어떻게 처리한담? 잠시 생각을 굴리던 리항복은 임금에게 국그릇을 날라가려는 내관을 불러 세워놓고 성을 버럭 내면서 볼멘 소리를 질렀다.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소? 상감께서 좀 굶으시면 어떻소? 앞에서 힘든 일을 하는 우리가 먼저 배를 채워야겠소.”리항복은 내관이 국그릇을 다 내려놓자 리덕형을 보고 말했다.
“리대감,자넨 요사이 그 누구보다 고생이 많았으니 제일 배가 고플게 아닌가? 몹시 시장할텐데 자네 먼저 한그릇 받아먹게.”
리덕형이 흠칫 놀라 급히 한발 물러서며 대꾸했다.
“그건 아니되는 소릴세.상감님을 두고 신하인 내가 어이 감히 먼저 음식을 먹는단 말인가?”
“내가 먹으라면 자네는 얼싸 좋다하고 먹게.뒤일은 내가 다 감당할테니까.”
리덕형은 친구의 성화에 못이겨 닭고기국을 받아놓고 몇숟가락 떠서 먹었다. 몇달만에 맛보는 닭고기국이라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를 판이였다.그러나 리덕형은 혼자 닭고기국을 먹어서 임금한테 큰 불경을 저지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는 먹지 못하였다.
리항복은 리덕형이 고기국을 먹어도 아무런 탈이 없는것을 보고 빙그레 웃으면서 말하였다.
“국이 식기전에 어서 전하께 한사발 올리시오. 그리고 당신들도 꿔온 보리자루처럼 앉아있지 말고 한사발씩 나누어 들게나.”
리항복의 명이 떨어지자 모두들 부리나케 국을 나누어 먹었다.그들이 서울을 떠난 뒤 처음으로 먹어보는 맛있는 음식이였다.모두들 고기국을 받아 정신없이 다 먹고나자 리항복이 리덕형을 보고 롱쪼로 말하였다.
“명보(한음의 자), 오늘 자넨 진정 나의 뜻을 몰랐나? 백성들가운덴 벼라별 사람이 다 있을텐데 자넨 무턱대고 임금한테 올리려고 했는데 그게 옳은 일인가?그 후과는 생각해보지 않았나?”
“아. 자넨 그래서 나더러 먼저 먹으라고 했나?”
“그렇지. 아무것도 모르는 자넬 가지고 시험을 했다네.”
“자네는 왜 먼저 맛보지 않았나?독이 있으면 죽을까봐 두려워서였나?”
“음식을 관할하는 내가 먼저 맛보면 백성들이 의심하지 않겠나?그리고 자네는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니까 주저없이 먹을수 있겠기에 내가 자네를 가지고 시험해보기 안성맞춤하지 않나?”
“그럼 자넨 국에 독이 있었다면 나더러 죽으라고 한 짓이구만.”
“거야 물론이지,사정을 모르는 자네가 죽어야지 모든 사정을 다 아는 내가 죽어서야 될 일인가?하하하.”
리덕형이 얼핏 생각해보니 리항복의 처사가 십분 옳았다.그는 친구의 지혜에 다시 한번 탄복했다.
“자상이,자넨 정말 나한테는 스승일세.오늘 자네가 아니였다면 나는 임금한테 불경죄를 저지를 뻔 했네.큰 죄를 모면하게 된건 전적으로 자네 덕분일세.”
외처에서 들어온 음식을 먼저 맛도 보지 않고 직접 임금에게 진상하려했던 한음은 후에 생각해봐도 몸이 오싹했다. 그는 주위의 신하들을 보고 “오성은 참으로 성인이오.”하고 칭찬을 거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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