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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세기인 정치가 리항복 33) 잠방이를 입은 장군
2015년 12월 24일 15시 09분  조회:1080  추천:0  작성자: 옛날옛적
  33.잠방이를 입은 장군
을미년(乙未年:1595년)에 리항복은 선조왕의 교지를 받고 리조판서로 되여 홍문관대제학,예문관대제학,지의금부사(弘文馆大提学,艺文馆大提学,知义禁府事) 등 직무를 다 겸임하였다.
이해 여름의 어느날 아침, 리항복은 입궐하러 가는 길에 처가댁에 잠시 들렸다. 장인인 도원수 권률도 조회에 나갈 준비를 하느라 바빴다.권률장군은 속에 걸칠 만한 옷이 없어서 이것저것 뒤지느라 한창이였다. 
리항복은 곁에 서서 그것을 보기있기가 참으로 민망했다.
“장인어른, 오늘은 날씨가 아주 무더운데 조회에 의관속대를 다 갖춰 입고 가시지 말고 베 잠방이우에 융복만 걸치고 가십시오.”
“그래도 될가?”
“누가 옷을 벗고 검사를 한답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융마생활에 습관된 권률장군은 고지식하게 사위의 말에 좇아 집안에서 입는 베 잠방이우에다 융복만 걸치고 대궐에 가서 조회에 참석했다. 물론 리항복은 리조판서의 조복을 제대로 차려입고 입궐했었다.
이날은 날씨가 유달리 무더워서 임금이 조회를 하는데 땀이 방울방울 솟아나서 잔등을 푹 적시였다.
그 광경을 본 리항복이 일어나서 임금에게 주청했다.
“전하, 오늘은 날씨가 유달리 무더우니 숨이 막혀서 이대로 조회를 열기 어렵습니다. 모두들  거치장스러운 관복을 시원하게  벗어버리고 조회를 계속하는것이 어떠하오리까?”
“그거 참 좋은 제의로군. 외부에서 온 사람이 없으니 모두 융복을 벗고 조회를 계속합시다.”
선조왕이 너그럽게 윤허하자 조회에 참가한 대신들은 얼싸 좋다 하고 저마다 서둘러  관복을 벗었다.
그런데 좌석에 있는 권률장군만 난처하지 않을수 없었다. 오늘 아침 그는 사위의 권고를 듣고 관복안에 짧은 베 잠방이만 걸치고 나왔는데 맹랑하게도 사위되는 사람이 임금한테  관복을 벗고 조회를 계속하자고 주청했으니 참으로 울도웃도 못할 사정이였다.권률장군은 무척 난감했지만 임금의 명이라 관복을 벗지 않을수 없었다.
권률장군이 몸에 베 잠방이만 걸친것을 본 선조왕은 흠칫 놀랐다.
“ 경은 댁에 긴 속옷이 없으시오? 어찌하여 속에 베 잠방이만 입으셨소?”
임금의 물음에 대답할 적당한 말을 찾지 못해 쩔쩔매는 장인을 보던 리항복이 일어서서 임금한테 솔직히 아뢰였다.
“전하, 도원수께서는 살림살이가 너무 구차해서 여름에는 언제나 짧은 속옷만 입고 계십니다.심히 부끄럽습니다.”
“이번 임진왜란에서 혁혁한 전공을 이룬 도원수께서 잠방이만 입고 조회에 참석하신줄도 모른것은  과인의 불찰이오..백성들이 이 정황을 안다면 과인을 나무람하겠으니 어디 될일이오?”
선조왕은 즉시 내시를 불러 좋은 속옷 한벌을 가져오게 한 뒤 권률장군에게 하사하였다.
리항복은 아직 전쟁이 완전히 끝나지 않아 백성들이 도탄속에 허덕이는데 몇몇 대신들이 사치를 부리느라 모시옷이나 명나라에서 수입해온 비단옷을 입고 으시대는것을 보고 무척 못마땅해하였다. 그는 전쟁마당에서 목숨을 내걸고 적들과 싸워  대공을 수없이 세우고도 항상 백성들같이 어렵게 생활하는 장인 권률장군의 검소함을 임금에게 보여주고 일부 대신들이 사치를 부리는 꼴을 임금더러 직접 보게 하려고 일부러 앾은 꾀를 써서 장인을 일시 난처하게 만들었었다.
 리항복은 정치를 하면서 시를 멀리하였다. 그는 시인을 광대와 풀벌레로 비유하며 시를 짓지 않고는 못배기는 자신을 억제하느라 손가락을 깨물며 시를 말하기를 꺼려하였다.그러나 시를 만나기만 하면 즐거워서 마치 술을 즐기다 병이나서 억지로 술을 절제하는 사람이 이내 해장술을 마시려드는 꼴이라고 말하였다.
 리항복은 확실히 타고난 시인이였다.하지만 그는 문장을 잘써서 립신양명한 문인이였다.수십편의 묘지명과 시집을 보면 그의 학문과 시재가 얼마나 놀라운가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그가 쓴 시는 다른 시인들과 달리 재치와 기지가 넘친다.허나 정치에 몸담은 그는 평소에 시를 가까이하여 정력을 분산시킬까봐 시를 두려워하고 피하였다.
아들의 생일날, 백사는 자식들이 부어주는 술을 얼근히 마시고나니 시상이 떠올랐다.비록 째진 가난속에 허덕이지만 마음이 깨끗하고 정직한 애들을 보면  대견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얘들아, 오늘 내 시한수를 읊을테니 들어보아라.”
백사는 장난삼아 즉석에서 아래와 같이  시를 지어 읊었다.
            부자집은 딸을 낳아 온갖 시름 모여들지만
             가난뱅이는 아들 낳아 만사가 넉넉하네.
            부자는 날마다 천냥 돈 들여 사위대접하느라 고생하지만
             나는 책 한권 아들에게 읽히면 그만이지.
 
             나는 지금 아들만 있을뿐 딸이 없는데
             큰애는 글을 알고 작은애는 례절을 아네
             뉘집에서 딸길러 효부(孝妇)를 만들어놓을지
             내 아들 보내 천년손님 만들어야지.
 
             집 지키고 취한 몸 부축할 일 걱정없으니
             장가 보내고 늘그막에 락이나 누리련다.
  “아버님, 즉석에서 명시를 지으셨네요.. 아버님의 깊은 뜻 명심하겠습니다.”
맏아들 성남이가 말하자 둘째아들 정남이도 거들었다.
“아버님께선 입만 여시면 명시가 나오시네요. 우리는 발벗고도 따라가지 못하겠네요.”
“그러니 학문이란 아무리 배워도 끝이 없다는게 아니냐?”
좁은 방안에선 웃음소리가 차고넘치였다.
리항복이 아들을 부자집 규수에게 시집을 보내겠다고 한것은 물론 그의 진심이 아니다. 그는 부패하고 탐욕스런 관리들을 비꼬면서 청백한 자신을 위로하고 자식들을 격려하기 위해 약간의 익살을 부린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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