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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세기인정치가 리항복 40) 도체찰사의 중임을 맡고
2015년 12월 25일 06시 34분  조회:1668  추천:0  작성자: 옛날옛적
 40.도체찰사에 원수의 중임을 맡고
조정안은 얼마동안 잠잠하더니 또 붕당싸움으로 몸살을 앓았다.서인들이 우의정인 류성룡을 강력하게 공격해나섰던 것이였다. 그 리유는 갑오년에 명나라의 제독 리여송이 왜놈들과 화의를 하자고 주장했을 때 선참으로 동의한 사람이 바로 우의정 류성룡이라는 것이였다. 그들은 명나라와 일본이 갑오년에 화의를 했기때문에 정유재란이란 참혹한 전쟁이 재발생다고 하면서 류성룡에게 죄를 씌우려고 하였다.
기실 왜놈들과 화의를 주장한것은 리여송이였지 우의정인 류성룡은 아니였다.류성룡은 리여송이 화의를 하려고 할때 남먼저 반대하였던것이였다.조선을 지원하러 온 명나라의 제독이 기어코 화의를 하겠다고 나서니 류성룡이나 리항복은 막을수가 없었던 것이였다.
조정의 모든 신하들이 하나같이 똘똘 뭉쳐도 당면한 난제를 수습하기 어려운 판국인데 조정은 붕당싸움으로 인해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으니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한담? 리항복은 생각하면 할수록 한숨만 났다.그의 입에서 저도몰래 시조 한수가 흘러나왔다.
            시절도 저러하니
시절도 저러하니 인사도 이러하다
이러하거니 어이 저러 아니하리
이렇다 저렇다 하니 한숨겨워하노라.
임진왜란 때 누구보다 바삐돌면서 큰 공을 세운 류성룡을 구하려면 서인에 속한 자신부터 탄핵야겠다고 생각한 리항복은 임금에게 소장(疏章)을 올렸다.
 “…신도 일찍 왜적과 화의하는데 찬성하였습니다. 3사에서 우상에게 죄를 묻는데 신이 요행을 바랄수는 없는 일입니다.전하께서 신을 돌보려 생각하지 마시고 우상과 함께 처벌해주십시오.”
리항복은 자신을 탄핵하는 소장을 써올렸지만 임금의 윤허를 받지 못하자 마침내 병을 핑게하고 사직하고말았다.이로하여 동인에 속한다하여 죄를 받을뻔했던 서애 류성룡도 죄를 모면하게 되였다.
오랜 뒤에 그는 “남과 함께 일을 해놓고 끝에 가서 번복하는 자는 리모의 죄인이다”라고 말하였다.
나라 일로 걱정하며 잠못이루는 밤이 하루이틀이 아니였다.리항복은 이때의 심정을 다음과 같은 시로 표현했다.
                잠 못이루며
세상이 어지러워 공자가르침 멀어지고
시절이 하도 험해 큰어른 말도 꺼리네.
잠 못이루고 나라걱정하면서도
창생을 구제할 힘이 없구나.
 
초조해하는것은 새해의 꿈
쓸쓸한것은 옛역사로다.
고향집 벌써 천리나 먼데
그 누가 내 안부 물어줄거냐.
           难眠
世乱疏儒术, 时危忌太言.
不眠忧社稷, 无力济黎元
 
草草新年梦, 萧萧古驿轩.
家乡已千里, 谁肯问寒喧.
리항복은 경자년(庚子年:1600)에 사망한 권률장군의 뒤를 이어 도원수(都元帥)에 올랐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선조왕은 그를 도체찰사 (都体察使 )에 임명하고 경상도와 전라도 일대의 모든 사황을 시찰하고 관할하게 하였다.리항복이 호남땅에 이른지 며칠이 지나지 않아서였다. 선조왕이 리항복에게 지방에서 반역을 하려고 꿈꾸는 무리들이 있는가 잘 기찰하라는 어명이 내렸다. 어느 세월에도 임금된 사람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반란이였다.
임진왜란을 갖 겪은 남방의 백성들은 상상도 하지 못할 큰 고역을 겪고 있었다.전쟁의 피해로 경작지의 절반이상이 페허로 된데다가 로동력이 대량으로 줄어들어서 해마다 흉년이 거듭되였으니 백성들이 기아에 허덕이는 참상은 상상만해도 알수 있었다.오죽하면 남의 무덤을 파헤쳐 죽은  사람의 고기를 먹는 일까지 종종 발생하겠는가. 나라에서 마땅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있으니 생사의 고비속에 허덕이는 백성들이 나라에  불만이 적을 리가 없었다.
리항복은 국왕이 민란이 일어날것을 두려워하는 심정은 얼마든지 리해할 수 있었다.그러나 무턱대고 무고한 백성들을 역적으로 의심하여 잡아다 문초하는것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만 했다.
이에 리항복은 임금에게 계를 써올려 임금의 잘못을 지적하였다.
“역적은 금수(禽兽:새나 짐승)나 어별(鱼鳖:물고기와 거부기)처럼 아무곳에서나 생산되는 물건이 아닙니다.신이 역모를 기찰하기란 너무너무  어렵나이다.”
그 계를 읽어본 대신들은 리항복의 주장이 참으로 기이한 말이라고 탄복하였다.전라도지방을 돌아보면서 농민들의 비참한 생활을 목격한 리항복은 한시도 방임할수가 없었다.그는 즉시 임금에게 전라도 농민들의 부역을 경감해줄것을 주청하고 또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고 해상의 방위를 가강할데 관한 대책으로 십륙책(十六策)이라는것을 써서 올렸는데 선조왕은 그 대다수를 채납하였다.그리하여 남방의 백성들은 조정에 감사한 마음을 지니고 조정의 령에 더욱 잘따랐다.이해 여름에 리항복은 령의정에 임명되여 서울로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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