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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짐이 좋다.
기대해도 좋을것 같은 그런 예감이랄가.
주당위 서기 장안순이 전국인대 대표총회에서의 범상치 않은 행보가 무언가를 강력하게 시사하고있다는 느낌이다.
전국인대 대표신분으로 상경하기에 앞서 장안순서기가 주신문출판국 국장을 불러 국가”동풍”출판프로젝트와 관련한 여건을 자세하게 알아보더라는 그 메시지를 그냥 무심하게 대했던것 같다. 그런데 장안순서기의 이번 상경이 “문화행보”(文化之旅)의 짙은 색채를 띠고있음이 점차 그 륜곽을 드러내게 되였다.
길림대표단 대 매체 개방일에는 40여개 매체기자들에게 “문화발전으로 민족의 발전을 추진하며 문화의 번영으로 민족의 번영을 이룩한다”는 확실한 문화리념을 드러냈는가 하면 《중국문화보》의 단독인터뷰에서는 문화민생으로 조화로운 연변사회 구축에 일조한다는 문화적 책무를 내비쳤으며 오방국 전국인대 상무위원회 위원장을 모신 길림대표단 회의석상에서는 많은 화제를 제쳐놓고 연변조선족출판을 국가 “동풍”출판프로젝트에 편입시키며 민족문화부축 강도를 더한층 높여야 할 절박성을 호소하기도 하였다. 한 지역사회의 수장보다도 문화를 주관하는 지도자로 착각할 소지가 다분히 풍기는 그런 행보를 작정하고 시도한것이다.
민족문화는 연변의 영원한 버팀목이라 할수 있다. 어찌 보면 연변의 자존심은 문화가 아닌가 생각한다.때문에 민족문화의 넋이 빠져나간 연변은 더는 연변이라고 할수 없다는게 필자의 소견이다. 연변의 지명도는 경제가 아니라 문화에 의해서 얻어진것이라 해서 반기를 들 사람은 없을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주당위 서기의 문화행보는 그 의미가 크다.
지난 세기 40년대 후반, 50년대 초반에 벌써 신문사, 출판사, 잡지사, 방송국, 가무단, 문련, 작가협회, 대학교, 축구단과 같은 굵직굵직한 단체들로 문화기반을 닦은 지역은 아무리 훑어도 연변을 제외한 국내의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수 없을 정도로 연변문화의 초창기는 찬란하였다. 지금 봐도 연변 민족문화의 귀틀은 그때 이미 형성됐다고 할수 있다.
지난 세기 80년대 초반, 자치주 친선대표단 일원으로 자매자치주인 신강 이리까자흐자치주를 방문했을 때 하루는 까자흐자치주기관의 일군과 담소를 나눈적이 있었다. 화제가 문화교육으로 넘어가면서 연변이 6개 대학교와 많은 중등전문학교를 보유하고있다는 내 말에 까자흐일군은 눈을 화등잔처럼 뜨며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더니 자기들은 중등사범학교 한개가 있는것을 그냥 자랑스레 여겨왔다면서 금시 풀이 죽어하는것이였다. 그때만 해도 이리까자흐자치주는 경제력에서 연변을 훨씬 릉가한 부유한 고장이였지만 까자흐일군은 별로 우월감을 느끼는 눈치가 아닌것 같았다. 그날 나는 저도 모르게 목에 힘을 줄수 있었으며 우리에게 문화자존심을 심어준 조상들에 대한 고마움을 가슴 뭉클하게 느낄수 있었다.
강산을 세우기는 쉬워도 지키기는 쉽지 않다는 말이 있다. 연변의 민족문화강산을 지키고저 우리는 리념으로부터 실천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수험료”를 많이 지불한다는 생각을 가끔 하게 된다.
문화대재난의 “쓰나미”가 온 나라를 휩쓸었던 10년 문화대혁명과 같은 광란의 년대는 두번 다시 없겠지만 만약 우리가 자기 좌표를 잘못 인식한다면 결국 틀린 리념의 포로가 될수 있다는게 필자의 생각이다. 지난 세기 90년대 중반부터 2000년 초반에 시장경제하의 민족문화출로라는 겪어본적 없는 소용돌이속에서 치렀던 곤욕이 그 사례로 된다.
민족문화의 시장화를 주제로 하는 어느 회보회의석상에서 민족문화의 특수성을 들먹이며 연변가무단의 시장화를 자제하고 연변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공익성 공연에 얼굴을 돌리게 하는 방향문제를 가지고 회보발언을 했다가 나는 그 자리에서 한바탕 면박을 당했던 일이 있다. 하기는 “시장(市场)은 눈물을 믿지 않는다”는 그 당시의 류행어가 “시장은 민족문화의 눈물을 믿지 않는다”는 랭혹한 말로 비화되여있던 시기였으니 그럴만도 했고 나 또한 면박을 당하면서도 억울하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았다. 하지만 얼마후 남방에 문화개혁고찰을 내려가있던 정부관계자가 전화로 한 말이 나를 크게 자극시켰다 —남방은 아직 문화개혁이 초읽기에도 들어가지 않았는데 우리가 너무 빨리 나가는것 같다.
중국개혁개방의 선두를 달리는 남방연해도시가 문화개혁에 신중성을 기할 때 변강소수민족자치주가 “모범”을 보이고있다고 생각하니 허구픈 웃음이 나왔다. 결국 그후 당 17차 대표대회가 문화에 대한 과학적인 정의를 내리면서 우리는 비로소 시장경제하에서 민족문화의 대안에 대한 인식을 실사구시적으로 정리할수 있었다.
올 3월 21일자 《인민일보》는 “사회주의문화건설을 적극 추진할데 대해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는 글에서 “문화를 통털어 산업으로 만들어 ‘문화산업화’하지 말아야 하며 문화를 모두 시장에 넘겨 ‘문화시장화’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하였다.
“조선족자치주”, 이는 나라에서 연변에 부여한 “특수카드”로서 지난 계획경제시대나 지금의 시장경제년대를 막론하고 모두 “통용”되는 “상방보검(尚方宝剑)”이라고 생각한다. 시대가 변하고 사회가 발전해도 “연변조선족자치주”라는 립지가 동요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이는 조선족이 중국에서 기타 민족과 더불어 공동발전, 공동번영을 기할수 있는 정치적토대이고 문화자존심을 지킬수 있는 대전제이기때문이다. 연변에 내려진 국가의 “특수카드”혜택을 충분히 향수하는것은 조선족과 기타 민족의 정치적권리라고 생각한다.
우리 민족의 우수한 문화전통은 당중앙의 시종일관한 소수민족정책 그리고 초대 자치주 주당위 서기 주덕해로부터 시작된 력대 지도자들의 중앙으로 이어진 끈끈한 “문화행보”에 의해서만이 오늘까지 전승돼오면서 연변의 문화자각으로 승화되고 문화자존심으로 지켜질수 있었다.
오늘날 문화의 대발전, 대번영이 시대의 거센 흐름으로 도래하고있다. 경제에 의한 문화발전보다 문화에 의한 경제와 사회 발전이 강조돼야 하는 시점에서 연변민족문화의 새로운 부활을 위해 국가에서 부여한 “특수카드”를 잘 리용한다면 장안순서기가 내세운 “문화발전으로 민족의 발전을 추진하고 문화의 번영으로 민족의 번영을 이룩한다”는 목표는 확실한 전환점을 맞을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라의 방침, 로선이 확정된후 지역사회 발전에서 제1인자의 사유와 용단이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한다. 다른 소수민족지역과 차별되는 연변의 지정학적 “특수성”은 연변이 중앙과 성의 “특수한” 관심과 배려를 받게 되여있다. 연변의 60년 발전력사가 제시한 경험이다. 지난 동안 나라에서 하사한 “특수카드”의 마력에 힘입은 자치주 주요지도자들의 리지적인 행보에 의해 연변은 일련의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였다. 국가 “서신” 방송프로젝트 편입에 의한 연변위성방송의 출범은 이 면에서의 걸작으로 손꼽힌다.
장안순서기의 “문화행보”는 좋은 조짐이고 따라서 긍정적인 결실을 안아올것이라는 기대를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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