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가집숙모가 양로원에 간지 벌써 7년째다. 명절 때 마다 찾아가 보면 항상 머리를 깨끗하게 빗어넘기고 돋보기 걸고 신문을 본다. 여든을 넘긴 로인들 치고 보기 드문 모습이다.
아들은 한국에서 일한다. 로인이 독거생활 중 심장질환으로 곤혹을 치른 다음부터 양로원 생활을 선택했다. 처음 아들이 반대하면서 한국에서 하던 일을 걷어치우고 로인을 모시러 왔지만 로인을 모시는 일이 어디 하루 이틀 뿐인가, 살림살이가 유족한 편이면 몰라도 쪼들리는 축이라 한동안 모시다가 끝내 양로원을 선택하게 되였다.
친척들은 문안하고 돌아와 의론이 분분했다. 양로원에 대한 선입견을 갖고 부정적인 생각이 있는가 하면 긍정적으로 찬성하는 마인드도 있다. 현재 양로원은 활동시설, 의료봉사, 거주환경, 식단배합 등 여러면으로 옛날과 비할바 없이 훌륭하다. 엇비슷한 년령배들과 담소를 나누고 때로는 서로를 걱정하며 위안해주고 때로는 손자손녀자랑에 해지는 줄 모르는 즐거움이 있다.
하지만 양로원이란 결코 무릉도원 같이 평화롭고 자유스러운 복지공간이 아니다. 특히 인지능력의 저하로 따른 치매, 또는 지체장애로 도움이 필수인 로인에게 제공할 맞춤형 서비스 대신 홀대와 박해를 당하는 일이 가끔 발생하여 가족과 양로원사이에 불신과 원망의 목소리가 귀청을 아프게 때릴 때가 있다.
문제는 양로원에서 제공하는 시스템관리에 체질적으로 거부감이 생기는 건 물론 굳어진 생활습관때문에 당분간 적응하기 힘들어 아예 보따리 챙겨들고 뛰쳐나온다 든가 아니면 수심끝에 우울증에 시달리는 로인이 많다는 점이다. 그런 연고로 어떤 자녀들은 로인을 잘 모시지도 못하면서 양로원의 선택을 극구 반대해 나선다.
옛날 코딱지만한 구들에서 3대 지어 4대가 함께 살아야 했던 불편한 진실이 사회 열점문제로 크게 불거진 것이다. 자녀가 꼭 제집에서 부모를 모셔서 효자가 되는 것도 아닌데 양로원에 보냈다 하여 시큰둥해하거나 흉을 보는 일이 주변에서 가끔 생긴다. 육신을 괴롭히는 질병보다 로인들 태반은 지꿎게 갈마드는 고독과 무료함이 두려워 양로원생활을 선택한다.
자식들한테 부담이 되는걸 싫어 평생 손때 묻어 정든 집을 떠날 때 로인의 심정을 읽을 줄 아는 현명성이 필요하다. 보통 자식의 뒤바라지하면서 로후대책마련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살아온 로인과 경상적인 의사소통을 갖고 로인의 지향을 존중하고 소원이 이뤄지도록 적극 도와드리는 자녀들의 처사가 효중 효일 것이다. 열가지 맛나는 료리보다 가슴에 와닿는 따뜻한 말 한마디, 백가지 치료제보다 응어리 풀어주는 스킨십이 로인한테 그처럼 소중하고 그리운 것이다.
로인의 바램이 뭔지도 모르고 그냥 무시한채로 제 주장만 앞세우려는 미욱함은 로인의 생각을 위축시키는 결과밖에 없다.
고령화시대 더는 가족의 일로만 국한 되여있지 않는 로인생활의 선택을 사회측면에서 옳바르게 풀어가는 일거일동이 로인을 존중하고 공경하며 민족의 미풍량속을 이어가는 좋은 행보가 아닐가 귀뜸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길림신문 2017-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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