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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장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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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은 소통을 등진 그림자
2021년 01월 04일 08시 28분  조회:875  추천:0  작성자: 최장춘

고독은 생활의 혹독함에 절어 버캐처럼 시뿌옇게 돋은 좌절감이다. 때론 몸을 웅크리고 이름마저 잃은 채 객기를 부린 코뿔소가 되여 적막에 숨막히는 사막길을 홀로 터벅터벅 걷는 모습이다. 고독은 겪어본 사람만이 안다. 전설 속에 맹강녀(孟姜女)가 신혼의 행복을 빼앗긴 슬픔을 통채로 쏟아내여 만리장성의 한 모퉁이를 무너뜨렸고 죽어서도 맺힌 한을 풀길 없어 망인을 맞는 길목에서 맹파탕(孟婆汤)을 건네주며 세상사를 깨끗이 잊으라고 권장한다니 생전의 고독이야말로 진짜 못할 짓이나보다.

무소유의 고독에는 그런대로 수긍이 가지만 천하를 얻고도 고독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린 호걸들의 불가사이한 행실이 씁쓸하고 허구프기만 하다. 왕관을 쓰고 옥좌에 앉은 명나라 만력(万历) 황제는 고독의 시달림에 지치다 못해 ‘에라, 나도 몰라라’ 식으로 28년 동안 정사와 담을 쌓고 매일 주색에 흠뻑 젖었은즉 고독은 직위가 높든 낮든, 가진 것이 많든 적든, 잘나든 못나든 나이를 불문하고 찾아오는 불청객임이 틀림없다. 고독을 푸는 해법을 인간과의 소통에서 찾지 않고 저급적인 술파티에 의탁하는 것은 고집불통들의 결과라고 하겠다.

인간의 생활은 가끔 고독을 달래려 안깐힘을 쓰는 몸부림이다. 겉은 후더우나 속이 차겁고 믿고 따랐는데 배신당하면 육신은 김빠진 풍선처럼 허무와 고독이 칭칭 감겨들어 괴로움에 시달린다. 그렇다고 알짝지근한 쓴맛을 남들과 대놓고 하소연해봤댔자 별로 귀담아들어줄 사람도 없는 실정이라 요즘은 태반 외로움의 발길은 어정어정 투전판으로 향한다. 넷이 머리를 맞대고 자신의 울타리만 끌어안고 쌓고 허물고를 반복하며 속을 썩이는 게임이 모르고 처음이지 공연히 재미를 얻다가 고독을 풀기는 고사하고 혹 떼러 갔다가 되려 혹을 붙여오는 격이 된다.성격이 활달하고 애호가 다방면인 사람과 속이 비좁고 취향이 단일한 사람의 경우 고독을 경험하는 느낌이 분명 차이가 난다. 심리적 반응을 나타내는 현상이 첫시작은 미세할지라도 대응방식이 단조롭고 더디면 줄곧 흐린 날씨에 진눈까비가 날려서 병이 아닌 데도 곧잘 심한 증후군 취급을 받는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오리니.” 뿌쉬낀의 시를 곱씹어 읽어보노라면 워낙 세상의 문은 우리가 어떤 마음의 키를 갖고 다가서느냐에 따라 활짝 열려져있을 수도 있고 꽁꽁 닫혀져있을 수도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자신을 밀페된 독방에 가둬놓고 세상의 인심이 야박하다 한탄하는 궁냥과 망가진 열쇠를 갖고 소통이 안된다며 지꿎게 원망하는 타입의 그릇은 서로 피장파장, 오십보, 백보와 맞먹는다. 마음이 통하지 않으면 만능열쇠도 무용지물인셈이다. 세상의 흥미로움을 혼자 노력으로 만들 수 없다. 산에 들에 피는 꽃과 열매는 조물주가 인간의 소원 대로 비가 내리고 해볕을 쏟아주며 온갖 곤충떼들 붕붕 날아다니게 한 보람으로 이뤄진 걸작이다. 승리의 과실을 혼자 독점하려고 욕심을 부리다가 게도 잃고 구럭도 잃고 결국 빈털터리 신세로 고독의 포로가 된다. 어쩌면 고독이란 집뜨락에 잠시 비여있는 여백일지도 모른다. 혹자는 그 공간을 가리기에 급급해 꽃나무를 심는다, 놀이터를 만든다, 지어 흔들이의자를 갖다 놓고 셈평 좋은 시간을 보내려 들지만 고독의 심연은 갈수록 깊게 마음복판을 파고든다. 에던동산이 아무리 수려해도 고독을 이기지 못한 아담이 자신의 갈비 두대로 이브를 만들었고 끝내는 금과을 먹어 쫓기운 신세가 된 걸 감안하면 생명의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지 그 무게를 새삼 느끼게 된다. 기실 울긋불긋한 마음의 꽃밭은 홀로 흔상하기보다 이웃과 함께 나누는 즐거움이 인지상정의 의미를 담는다.꽃 한송이 꺾어 이웃에 보내면 그쪽에서도 성의로 보답하여 자연히 오가는 정이 생기게 되여 암울했던 그늘이 훤히 트이면서 고독은 한발 물러선다. 가족의 성원끼리 밥상을 마주하고 대화하기는커녕 제각기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분위기라면 집안은 구석구석 썰렁해 고독은 문고리 잡고 기웃거린다. 한 청년이 취업면담에 련속 실패하여 고독감에 시달렸다. 그러던중 언젠가  면접을 본 사장님의 분부 대로 앓아누운 어머니의 발을 씻어드렸다. 처음엔  이 일이 자신의 취업과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고 어정쩡한 기분이였으나 물속에 잠긴 어머니의 발을 잡는 순간 이상하게 가슴이 뭉클해졌다. 나무껍질처럼 터실터실 갈라지고 군살이 박힌 발바닥이 울퉁불퉁 심히 변형되여 보기 흉했다. 이것이 나를 낳아 키워준 어머니의 발이란 말인가. 문뜩 유복자를 키우느라 홀로 고독의 험한 준령, 가시밭길을 걸어오신 어머니의 로고가 눈앞에 우렷이 떠올라 목이 꺽 메였다. 청년은  몹시 후회하면서 그 후부터 일부러 어머니와 많은 대화를 나누며 기쁨을 드리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정성이 지극한 청년에게 드디여 좋은 일자리가 차례졌고 살림이 쭉쭉 펴지면서 고독의 찬 기운이 서서히 물러갔다.

사사건건 토라져 원망과 저주를 뿜어내기보다 너와 나의 차이를 인정하며 윤활한 소통을 시도하려는 지혜가 고독이 설자리를 말끔히 가셔낸다. 생활의 자각은 고독을 자아성찰, 동산재기의 기회로 만들고 한가닥 빛에서 신심과 용기를 얻어 행운의 변곡점을 이룬다. 오늘날 대통로에서 활개치는 사람의 추억 속엔 어쩌면 과거 소외된 계곡을 벗어나기 위한 환골탈태의 처절했던 흔적이 수레바퀴자국마냥 깊숙이 패여져있지 않을가 하는 생각이 스스로 불쑥 고개를 쳐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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