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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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절 수기
2012년 06월 15일 22시 32분  조회:8845  추천:0  작성자: 최균선
 
                                           제2절 수기

    1. 수기의 함의
    수기(手记)란  자기의 생활이나 체험 같은 것을  직접 쓴 기록으로서 수록이라고도 한다. 수기란 바로 자기 생활상과 체험을 꾸미거나 분식하지 않고 고지곧대로 기록한 글이다.
   수필은 자기 인생일사, 어떤 현상에 대한 느낌과 해석, 태도를 주로 쓴 글이라면 수기는 있은 그대로의 사실을 직접 적으면서 느낌을 곁들 어 쓰는 글이라 할 수 있다.
    한편의 수기는 생활을 바탕으로 생활을 의미화한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자기 인생길에서의 희로애락, 그 보람과 지표를 선명히 하고 그것을 발전, 전개하며, 문자화한 인생장면을 널리 알림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 인생의 의미를 해석해주며 참다운 인생가치를 깨닫게 하는데 수기의 취지가 있다. 그러므로 수기는 단순한 일생생활의 기록부가 아니라 역경이나 그 속에서 겪었던 인생고에서 얻은 특수한 체험을 얻게 된 지혜 등 생활의 진실, 생활의 본질 그리고 생활의 어떤 의미를 스스로 파악 하여 전 달하는 작업이 바로 수기 쓰기이다.
2. 수기 쓰기의 실제
    수기만큼은 주어진 주제에 따라 쓸 수는 있지만 주어진 명제에 따라 쓰기 어렵다. 자기의 머리 속에 가장 생생하게 기억되고 있는 생활 체험을 일정한 주제의 궤도를 따라 차례로 적어나간다.
    첫째 서두 쓰기에서 독자들을 단번에 흡인하기 위해 너무 다듬은 듯한 화려체를 피면해야 하며 자극을 센세이숀을 일으키려고 사실열거 에만 필묵을 돌려서는 아니 될 일이다.
한 편의 수기에서 독자가 관심을 끄는 것은 생활에서 얻은 느낌이 글줄마다에서 감상적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그 생활체험에서 얻은 작자의 선명한 인상 속에서 빛발치는 경험과 일종 도리이다.
※ 서두 쓰기
  1) 시간으로 시작하기  2) 계절로 시작하기 3) 주제나 의미가 담긴 낱말로 시작하기 4) 장소로 시작하기 5) 사건으로 시작하기 4) 대화글로 시작하기 5) 인용으로 시작하기 6) 의성어로 시작하기 7) 겪은 일로 시작하기 8) 본 것으로 시작하기 9) 들은 것으로 시작하기
3. 보기글

예문 1.                                                           1000

    국민학교 1학년 내 용돈은 하루에 100원이었다. 100원을 가지면 왠만한 과자를 사 먹을 수 있었고, 내 취미였던 '종이 인형 옷 자르 기'도 두 장이나 살 수 있었다. '이달 동아'나 '말굽 자석'같은 준비물이 필요할 때면 엄마가 직접 사다 주셨기 때문에 그리 부족하지 않은 용돈이었다.
    그런데 친구들 중에 일주일에 1000원, 한달에 5000원씩 단위를 크게 받는 아이들이 있었다. 그 아이들은 가끔 자기 편 애들 5명 쯤 분식집으로 몰고 가서 1000원어치 떡볶이를 살 만큼 여유가 있었다. 그 틈에 껴서 자주 얻어 먹던 나는 정말 그 아이들이 부러웠지만 100원을 10일동안 모아서 똑같이 해보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었다. 여름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죠스바 하나 사먹으면 그걸로 땡인 100원은 다른 친구들에게 베풀 틈새가 없었다. 왠지 빈대 같다는 찝찝한 느낌이 날 따라다녔다.
    당시 우리학교는 8시 30분가지 등교였는데 우리집에서 학교까지는 걸어서 10분도 안 되는 거리였다. 그래서 종종 방심한 나는 느릿느릿 씻다가 학교까지 날래게 뛰어가야 할 때가 많았는데 그날 아침도 그랬다. 미술 준비물이 있는 날이었는데 엄마는 학교 앞 문구점에서 사라며 1000원을 쥐어 주셨다. 행여나 지각할까 문구점까지 재빨리 뛰어가서 아줌마한테 " - 만들기"요 하고 외쳤는데… 내가 늦게 와서 준비물을 다른 애들이 다 사고 없다는 것이었다. 그날 미술 시간엔 준비물을 못 사왔던 다른 아이들과 함께 복도에서 무릅 꿇고 손을 들어야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당시 삼총사를 결성했던 지은이, 윤화와 함께 교문을 나섰다. 문득 준비물을 못 사고, 책가방에 숨어있던 1000원 짜리가 생각났다. 도대체 나는 무슨 배짱이었을까? 난 분식집으로 아이들을 끌고 들어갔다. 자랑스레 떡볶이를 시켜서 같이 나눠먹고, 50원짜리 뽑기도 몇판 했던 것 같다. 그렇게 1000원을 홀랑 날리고 친구들과 헤어져 혼자 집으로 돌아오는데 두려움이 엄습하기 시작 했다.   
    엄마한테 허락받은 것도 아닌데 1000씩이나 되는 돈을 군것질 하고 장난치는 데 다써버리다니.. 엄마한테 혼날게 분명했다. 꾸중만으론 안 끝나고 빗자루나 옷걸이로 손바닥을 맞을지도 몰랐다. 엄마의 빨간 눈만 떠오르는데 변명할 꺼리가 없었다. 당장 내일 준비물을 다시 사가야 할텐데 어떡해야 할지 까마득했다. 이런 저런 생각에 집까지 가기도 전에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한 방울, 두방울, 눈물을 질질 흘리며 쿵쾅대는 가슴을 안고 집으로 들어서는데 엄마 얼굴이 보였다. 엄마는 뭐라하지도 않았는데, 너무나 가슴이 떨렸던 나는 엄마 얼굴을 보자 마자 대성통곡하기 시작했다.
    영문도 모르고 우는 딸을 보던 우리 엄마는 왜 우냐며 자꾸 물으셨다. 엄마한테 안기지도 못하고 나는 그 자리에 우두커니 써서 준비물 사라고 줬던 1000원을 다 써버렸다고, 아침에 준비물이 떨어져서 못 샀는데 집에 오다가 그걸 다 써버렸다고 서럽게 고백했다. 엄마는 기가 막히셨더니 피식 웃으시며 어디에 썼냐고 물으셨다. 막상 할 말이 없던 나머지, 난 나도 모르게 다 써버렸노라고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날 엄마는 날 때리지도 않았고, 긴 잔소리도 하지 않으셨다. 그저 "잘했다"라고만 하셨다.
   올해 나는 아직도 믿기지 않는 대학생이 되었다. 꼴에 대학생이라고 얼마나 쓸 돈이 많은지 통장 잔액은 매일 바닥을 향해 뛰어간다. 겨울 옷을 정리하다가 코트 속에서 1000원을 발견했다. 공돈이 생긴 것 같아 좋아하다가 갑자기 국민학교 때 일이 기억났다. 이 글을 쓰면 서도 나는 몇번이나 쿡쿡 거렸다. 그리고 고등학교 때 가지고 싶은게 있어서 엄마한테 문제집 산다고 거짓말 하고는 만원을 슬쩍한 것도 생각난다.
    1000원을 멋모르게 쓰고 서럽게 울던 나와 만원을 태연스럽게 감추는 나 사이에는 얼마나 넓은 강이 있는 것일까? 세상의 강에서 놀던 나는 밀려오는 물결에 순수와 진실의 신발을 떠내려 보낸 것만 같다.

예문 2.        (대학생 생활수기)                         

                                                          고등어 파는 어머니

    실밥이 뜯어진 운동화, 지퍼가 고장 난 검은 가방 그리고 색 바랜 옷.....내가 가진 것 중에 헤지고 낡아도 창피하지 않은 것은 오직 책과 영어사전 뿐이다. 집안 형편이 너무 어려워 학원수강료를 내지 못했던 나는 칠판을 지우고 물걸레질을 하는 등의 허드렛일을 하며 강의를 들었다. 수업이 끝나면 지우개를 들고 이 교실 저 교실 바쁘게 옮겨 다녀야 했고, 수업이 시작되면 머리에 하얗게 분필 가루를 뒤집어 쓴 채 맨 앞자리에 앉아 열심히 공부했다.
    엄마를 닮아 숫기가 없는 나는 오른쪽 다리를 심하게 절고 있는 소아마비다. 하지만 난 결코 움츠리지 않았다. 오히려 내 가슴속에선 앞날에 대한 희망이 고등어 등짝처럼 싱싱하게 살아 움직였다. 짧은 오른쪽 다리 때문에 뒤뚱뒤뚱 걸어 다니며, 가을에 입던 홑 잠바를 한겨울 에까지 입어야 하는 가난 속에서도 나는 이를 악물고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그러던 추운 어느 겨울날, 책 살 돈이 필요했던 나는 엄마가 생선을 팔고 있는 시장에 찾아갔다. 그런데 몇 걸음 뒤에서 엄마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차마 더 이상 엄마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눈물을 참으며 그냥 돌아서야 했다. 엄마는 낡은 목도리를 머리까지 칭칭 감고, 질척이는 시장 바닥의 좌판에 돌아 앉아 김치 하나로 차가운 도시락을 먹고 계셨던 것이다. 그날 밤 나는 졸음을 깨려고 몇 번이고 머리를 책상에 부딪혀 가며 밤새워 공부했다. 가엾은 나의 엄마를 위해서...
    내가 어릴 적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엄마는 형과 나, 두 아들을 힘겹게 키우셨다. 형은 불행히도 나와 같은 장애인이다. 중증 뇌성 마비인 형은 심한 언어장애 때문에 말 한마디를 하려면 얼굴 전체가 뒤틀려 무서운 느낌마저 들 정도이다. 그러나 형은 엄마가 잘 아는 과일 도매상에서 리어카로 과일 상자를 나르며 어려운 집안 살림을 도왔다. 그런 형을 생각하며 나는 더욱 이를 악물고 공부했다.
    그 뒤 시간이 흘러 그토록 바라던 서울대에 합격하던 날, 나는 합격 통지서를 들고 제일 먼저 엄마가 계신 시장으로 달려갔다. 그 날도 엄마는 좌판을 등지고 앉아 꾸역꾸역 찬밥을 드시고 있었다. 그때 나는 엄마에게 다가가 등 뒤에서 엄마의 지친 어깨를 힘껏 안아 드렸다. '엄마...엄마..., 나 합격했어.....' 나는 눈물 때문에 더 이상 엄마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엄마도 드시던 밥을 채 삼키지 못하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시장 골목에서 한참동안 나를 꼬~옥 안아 주셨다.
  그날 엄마는 찾아오는 단골손님들에게 함지박 가득 담겨있는 생선 들을 돈도 받지 않고 모두 내주셨다. 그리고 형은 자신이 끌고 다니는 리어카에 나를 태운 뒤. 입고 있던 잠바를 벗어 내게 입혀 주고는 알아 들을 수도 없는 말로 나를 자랑하며 시장을 몇 바퀴나 돌았다. 그때 나는 시퍼렇게 얼어있던 형의 얼굴에서 기쁨의 눈물이 흘러내리 는 것을 보았다. 그날 저녁, 시장 한 구석에 있는 순대국밥 집에서 우리 가족 셋은 오랜만에 함께 밥을 먹었다. 엄마는 지나간 모진 세월의 슬픔이 북받치셨는지 국밥 한 그릇을 다 들지 못하셨다. 그저 색 바랜 국방색 전대로 눈물만 찍으며 돌아가신 아버지 얘기를 꺼냈다.
   '너희 아버지가 살아 있다면 기뻐했을 텐데....너희들은 아버지를 이해해야 한다. 원래 심성은 고운 분이다. 그토록 모질게 엄마를 때릴 만큼 독한 사람은 아니었어. 계속되는 사업 실패와 지겨운 가난 때문 에 매일 술로 사셨던 거야. 그리고 할 말은 아니지만.....하나도 아닌 둘씩이나 몸이 성치 않은 자식을 둔 애비 심정이 오죽했겠냐? 내일은 아침 일찍 아버지께 가 봐야겠다. 가서 이 기쁜 소식을 얼른 알려야지.
   내가 어릴 때 부모님은 자주 다투셨는데, 늘 술에 취해 있던 아버지는 하루가 멀다. 하고 우리들 앞에서 엄마를 때렸 다. 그러다가 하루 종일 겨울비가 내리던 어느 날, 아버지는 아내와 자식들에 대한 죄책감으로 유서 한 장만 달랑 남긴 채 끝내 세상을 버리고 말았다.
    고등학교 졸업식 날, 나는 우등상을 받기 위해 단상위로 올라가다가 중심이 흔들리는 바람에 그만 계단 중간에서 넘어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움직이지 못할 만큼 온 몸이 아팠다. 그때 부리나케 달려 오신 엄마가 눈물을 글썽이며 얼른 나를 일으켜 세우셨다. 잠시 뒤 나는 흙 묻은 교복을 털어 주시는 엄마를 힘껏 안았고 그 순간, 내 등 뒤로 많은 사람들의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한번은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컵라 면으로 배를 채우기 위해 매점에 들렀는데 여학생들이 여럿 앉아 있었다. 그날따라 절룩거리며 그들 앞을 걸어갈 자신이 없었다. 구석에 앉아 컵라면을 먹고 있는 내 모습이 측은해 보일까봐, 그래서 혹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올까봐 주머니 속의 동전만 만지작거리다가 그냥 열람실로 돌아왔다. 그리곤 흰 연습장 위에 이렇게 적었다.
    '어둠은 내릴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어둠에서 다시 밝아질 것이 다.' 이제 내게 남은 건 굽이굽이 고개 넘어 풀꽃과 함께 누워 계신 내 아버 지를 용서하고, 지루한 어둠 속에서도 꽃등처럼 환히 나를 깨어 준 엄마와 형에게 사랑을 되갚는 일이다. 지금 형은 집안일을 도우면서 대학 진학을 목표로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아무리 피곤해도 하루 한 시간씩 큰소리로 더듬더듬 책을 읽어가며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발음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은 채. 오늘도 나는 온종일 형을 도와 과일 상자를 나르고 밤이 되서야 일을 마쳤다.
  그리고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어두운 창밖을 바라 보며 문득 앙드레 말로의 말을 떠올렸다.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 간다.'는 너무도 아름다운 말이다. 

※주: 위의 글은 10년 전 서울대학교 합격자 생활수기 공모에서 고른 글이다. 그 후 이 학생은 우수한 성적으로 공부하여 지금은 미국에서 우주항공을 전공하여 박사과정에 있으며 국내의 굴지 기업 에서 전부 뒷바라지를 하고 있으며 어머니와 형을 모두 미국으로 모시고 가서 같이 공부하면서 가족들을 보살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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