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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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원 창작사상 연구 (고효홍)
2013년 01월 24일 21시 38분  조회:10035  추천:0  작성자: 최균선
 
                            
   
   韩文学是韩民族在朝鲜半岛营生以来近两千年流传下来的文学。其中汉诗从韩国古代诗歌中呈现了出来并慢慢在韩国文学中占据了一部分。其中孤云崔志远被认为是是新罗韩文学的代表人物,是韩文学的始祖。
    在哲学思想、文学、历史学等许多方面,崔志远可以作为当时的代表。崔志远的思想体系在探究我们国家的固有思想和古代思想方面提供了许多。崔志远自己也因为对时代的不满和对学问的热情在矛盾中苦恼而留下了许多作品。所以他的诗并不能单纯地仅只从诗里去理解,而应该从时代环境、个人情况等方面来评价。
 
    关键词:崔志远、汉诗、创作思想 哲学思想 时代环境
 
                                       초  록
 
   한문학은 한민족이 한반도에서 삶을 영위해 온 이래 거의 2000년 가까이 접해온 문학이다. 그 중에서도 한시는 한국 고대시가의 모습을 나타내면서 서서히 한국 문학의 일부분으로 자리잡았다. 그 중에서도 고운(孤雲) 최치원 (崔致遠)은 신라 한문학을 대표하는 인물이자, 한국 한문학의 개조 (開祖)로 일컬어진다.
  최치원은 철학 사상、문학、역사학 등 여러 방면에 있어, 당시의 학구적 지성을 대표할 만한 존재였다. 최치원의 사상체계는 우리나라 고유사상과 고대사상을 탐구하는 데 있어 많은 실마리를 제공하여 준다. 최치원 자신도 시대에 대한 불만과 학문에 대한 열정으로 인한 갈등 속에서 고뇌하였기에 이와 같이 많은 작품을 남길 수 있었다고 본다. 그래서 그의 시는 단순히 시안에서 이되는 것이 아니라 시대적 환경. 개인적 상황에서 평가되어야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작업이다.
 
   키워드:최치원  한시  창작사상 철학사상 시대환경
                 
                       차 례
 摘要……………………………………………………………2
초록……………………………………………………………3
서론……………………………………………………………5
    1.연구목적과의의…………………………………………5
    2.기존 연구사검토…………………………5             
    3.연구범위와 방법…………………………………………5
본론……………………………………………………………6
    1.최치원의생애와창작활동………………………………6
     1.1최치원의 생애………………………………………6
     1.2최치원의 창작사상……………………………7
     1.3최치원 시의 배경……8
     1.4창작동기와 문학관……………………………8
    2.최치원의 문학세계……………………………………9
     2.1최치원의 문학성과………………………………9
     2.2최치원 시의 세계…………………………………9
결론……………………………………………………………15
감사의 말씀…………………………………………………16
참고문헌……………………………………………………16
 
                           1. 서 론

 1.1  연구 목적과 의의
  한문학은 한민족이 한반도에서 삶을 영위해 온 이래 거의 2000년 가까이 접해온 문학이다. 그 중에서도 한시는 한국 고대시가의 모습을 나타 내면서 서서히 한국 문학의 일부분으로 자리잡았다. 이처럼 한시는 개화기 이전의 한국 문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은 신라 한문학을 대표하는 인물이 자, 한국 한문학의 개조(開祖)로 일컬어진다. 오늘날에 오기까지 그가 남긴 업적은 시와 문장 등에서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모두 중국과 대등한 수준의 한문학을 산출해 놓아 ‘동국문종(東國文宗)’이라 추앙받았다.
1.2 기존 연구사 검토
최치원의 연구는 대체로 문학사적인 접근으로써 한문학적인 평가에 그친감 이 있었고 본격적인 의미에서 근대 사학적인 연구라 하기엔 미비점이 많았다. 한국 역사 학에서는 학문적 연구 논문이라 칭할수 있는 연구는 금서룡 (今西 龍)에서 비롯 되었 다고 할수 있지만, 고운의 시와 문을 총체적으로 연구한 김중열의 논문과 생애와 시무책의 성격을 다룬 최경숙의 논문이 나옴으로써 전반적인 연구가 시도되었다 할 수 있다.
1.3 연구범위와 방법 
한 작가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그 작가의 삶을 관찰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할것이다.  본 논문에서는 그의 문학작품 중에서도 한시(漢詩)에 대하여 다루 기로 한다. 그의 한시에서는 그가 가진 천부적 재능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개인적 그의 감성을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2.

2.1 최치원의 생애와 창작활동
2.1.1. 최치원의 생애
최치원은 후기신라의 진보적 시문학을 대표하는 시인의 한 사람이다. 그는 경주의 사령부의 양반가정에서 태어났는데 최치원의 탄생설화가 널리 전해짐 으로서 아주 신비한 색채를 띠고 있지만 그의 사망연대는 전해지지 않고 있다. 최치원 (857~?)의 자는 고운 또는 해운이라 하였다.
  12살 때인 868년부터 884년까지 당나라에 들어가서 공부를 하고 18세에 빈공과에 과거에 급제하였으며 20세에 선주율수현위로 임명받은 후 그곳에서 한동안 벼슬살이를 하였다. 《계원필경》의 서문에 의하면 이 시기에 그는 많은 시와 산문을 창작하여 뛰어난 시재로, 재능있는 문필가로 널리 알려져 중국의 이름난 시인, 문필가들을 경탄시켰다. 그는 당나라에서 벼슬살이를 하던 첫 시기에는 반동적인 통치계급의 입장에 서있었으나 자신의 생활체험을 통하여 점차 관료생활에 환멸을 느끼고 당대의 현실을 비판적으로 대하기 시작하였다. 사상의 경향에서의 이러한 변화는 그로 하여금 고국에 대한 그리움을 더욱 짙게 하였으며 그가 16년 간의 이국살이를 끝내고 귀국할 결심을 품게 한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그는 28살이 되던 885년에 고국에 돌아와 약 10년간 시독, 한림학사, 병부시랑, 지서서감, 아찬 등의 벼슬살이를 하였다. 이 기간에 그는 문란 하여진 신라의 정치체제를 바로잡고 잘못된 정사를 고치는 것에 대한 견해를 제기하는 등 다방면으로 활동을 하였다. 그러나 어느 하나도 자신의 뜻대로 실현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완고한 통치세력들로부터 미움을 받고 지방관리로 밀려나기까지 하였다.
이러한 생활과정을 통하여 최치원은 신라의 운명을 더 수습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깊이 느끼게 되었으며 이로부터 40대 이후에는 벼슬살이와 완전히 인연을 끊고 여러 지방을 떠돌아다니다가 가족을 이끌고 가야산으로 은둔하였으나 그 최후행방을 모른다.
2.1.2. 최치원의 창작사상
최치원은 철학 사상, 문학,역사학 등 여러 방면에 있어, 당시의 학구적 지성 을 대표할 만한 존재였다. 특히 문장으로 이름을 날려 “동국문종” 또는 <동방문학의 개산조> 등으로 일컬어져 왔다.
  고운은 다방면의 인생체험과 학문으로 인하여 역사, 철학, 문학, 그리고 민속 문화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관심을 보여주었다. 당시 개혁을 통하여 진보적인 사상으로 사회를 선도해 보려고 진력했던 점이 두드러졌으나 만년 에는 은거하여 학문과 자신의 수양을 통하여 도(道)를 찾고자 하였다.  최치원은 유교뿐만이 아니라 불교, 도교 모두를 아우르는 작품들을 썼으며 또한 문장의 아름다움을 중요시하였다. 문장이란 뜻이 통하는 것은 물론이며, 또 사람들에게 뜻이 통하게 하려면 관심을 끌어야 하는데 이러한 관심은 아름다움에서 나온다고 생각하여 그는 글 자체를 중요시 하였다.
   최치원의 사상적 지향은 풍류도에 있었는 바 그 풍류도는 유가와 도교 그리고 불교를 차별 없이 수용한다. 그의 사상적 출발은 유가라 해야 할 것이다. 그는 끝까지 당대 사회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서 유가 제도에 의한 왕권의 중앙집권을 주장하였던 것이다. 그는 불교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가졌다. 최치원은 일련의 불교 저술을 통해 문장(文章)을 뜻하는 구학 (口學)보다는 선법을 뜻하는 심학(心學)을 중시하여 심학(心學) 을 주체로 하여 구학(口學)을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최치원은 중국의 전통적 한문학 장르들을 다양하게 수용하여 시험했다. 그러나 그의 문학 세계는 내용 면에서 안정돼 있지 않다. 이런 그의 문학관은 쇠망해 가는 통일 신라 사회에 절망하면서 그 사회를 쇄신할 삶의 원동력조차 상실했던 그의 환경과 연결해 이해해야 할 것이다.
2.2.3 최치원 시의 배경
  최치원은 철학자라기보다는 문학가이며 사상가라기보다는 문장가라고 평가 되어 왔다. 이것은 최치원이 체계적이거나 이론적인 사상을 피력한 바 없고, 문장에 있어서 지나치게 수식적인 병려문을 많이 산출한 데 기인한다. 이러한 연유로 하여 최치원은 주로 문학적인 측면에서 접근이 이루어졌으며 철학 사상적인 측면에서의 접근은 엉성했을 뿐 아니라 한결 같이 최치원이 일관된 사상이나 이론을 펴지 못하고 단편적인 사상을 기록 술회한 데 그쳤다는 평가를 내리곤 했다.
최치원의 사상은 당대의 사회 문화적인 문맥에서 단편적인 것도 비체계적인 것도 아니며 특히나 중국 에서 성장기를 보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의 사상은 동양사상을 그대로 내보인 것으로 지극히 당연한 귀결이라 할 수 있겠다. 한편 최치원의 철학사상은 주로 유교의 진취적인 사회정치적 이념과 도덕적 관념 그리고 도교의 자연우위사상과 불교의 비관출세사상의 영향을 많 이 받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2.2.4  창작동기와 문학관
  최치원은 한마디로 과거에 급제하여 입신양명할 것을 목적으로 문학을 시작한 사람이다. 최치원은 글이란 언어의 조탁보다 그 작자의 마음에 쌓은 뜻을 담는 것이 중요하고 또 이것은 바른 성정에서 근본한다고 보았다. 그래 야만 비로소 가르침이 있고 감동이 있다는 것이다. 즉 최치원은 주로 유교적 문학관을 표방하고 또 그것을 충실히 수행했는가 하면 동시에 도교적 언어 관에 의한 표현론적인 문학관 또한 상당히 중요시하였던 것으로 이해된다. 그가 그처럼 많은 저작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환경이나 직업의 영향도 있었 으나 근본적으로는 이와 같은 표현론적 문학관의 한 반영이라 할 수도 있다.
3. 최치원의 문학세계
3.1 최치원의 문학성과
최치원의 수많은 문장을 남긴 문장가이다. 비록 고국에 돌아온 후, 당나라 에서 지은 문장의 대부분을 스스로 버리기도 했지만, 그의 문장에는 다분히 현실적인 면도 드러나고 있다. 그는 이처럼 곡절 많은 생활과정을 통하여 다양한 주제의 우수한 시작품들과 <두 여자의 무덤>을 비롯한 수이전체 산문 작품들을 창작하였으며 역사, 민속, 철학 등에도 깊은 관심을 돌렸다.
그의 저서로서는《사륙집》1권, 《계원필경》20권,《문집》30권이 있었으나 현재까지 전해진 것은《계원필경》뿐이다. 이외 많은 시와 산문들이 여러 문헌들에 실려있다.(정홍교ㆍ박정원, 조선문학개관, 한국문화사,1986, p50~51.)
3.2 최치원 시의 세계
최치원의 시 세계를 몇 가지로 분류해 고찰할 수 있다.
① 개인적 감정을 읊은 시
                        <제가야산독서당> 
    
     제멋대로 첩첩 쌓인 돌들에 달리어 겹친 뫼뿌리에 으르렁거리니
     사람의 말소리가 지척 간에서도 알아듣기 어렵다.
     항상 시시비비하는 소리가 귀에 들릴까 두려워
     짐짓 흐르는 물(소리)로 하여금 다 산을 채웠나 보다.
 
이렇게, 그는 산중에 있으면서 세상 명리에 대한 미련과 유혹을 자기 의지 로써 떨쳐 버리고 흐르는 물을 시켜서 세상의 시비 소리를 차단하려 하고 있다. 여기서 광분하는 물소리는 최치원 자신의 내면의 갈등의 상징적 표현 으로, 이것으로서도 그가 얼마나 세상 명리에 집착하였는지 알 수 있다. 자연 을 읊으면서 더 나아가 은둔한 자신의 처지를 노래한 것이다.
② 정과 사 (현실 인식의 시)
                               
                                  <강남녀>
             
              강남 땅은 풍속이 방탕해서 
              딸을 기를 때 애교 있고 어여쁘게만 하는구나. 
              습성이 모양만 내고 바느질하기를 부끄러워하여 
              몸단장을 하고 나서 관현에 들어가기만을 다투네. 
              배운 것이 정악(바른 음악)이 아니라 
              춘정에 끌림이 많구나. 
              스스로 생각하기를 꽃다운 안색 
              청춘이 영원할거라 생각하네 
              어느 날 이웃집 여자가 
              베짜는 것을 보고 비웃으며 말하기를 
              비단 짜기에 비록 몸은 고달프지만 
              비단옷은 네게 이르지 않으리

  이 시는 그가 선주 율수현위에 있을 때 강남지역의 백성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당시의 모순된 사회상을 반영한 작품이다. 한 여자를 주인공으로 하여 쓴 점도 특이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그 여자의 행동과 마음가짐을 통하여 그 시대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고 방탕한 생활을 하는 강남녀와 자기가 만든 것도 자신 것이 되지 못하는 이웃집 여자를 대조시켜서 계층 계급간의 격차를 표현하고 있다. 직접적이고 대조적 묘사를 통하여 모순된 사회상․현실의 불합리성을 보여준 그의 대표적 사회 비판의 시이다.
                           
                                 <고의>

                 여우는 능히 미인으로 변할 수 있고,
                 삵쾡이 또한 선비가 될 수 있네
                 누가 알겠는가? 짐승의 무리들이
                 사람으로 둔갑해서 속이고 흘림을
                 형체를 바꾸는 것은 쉽지만,
                 마음 바로가짐은 진실로 어렵고 말고,
                 참과 거짓 가릴려면
                 마음의 거울을 닦고 보시오
 
   귀국후 신라사회는 사회적으로 혼란스러웠다. 이 시에서 그는 신라말 귀족 통치자들을 여우나 삵괭이로 비유하여 부패상과 사회적 혼란상을 잘 보여준다.
                             
                                       <우흥>

                    부디 이익의 문을 닫고
                    주신 몸을 해치지 마시오
                    어찌하랴, 진주를 캐는 사람은
                    목숨을 가볍게 여겨 바다 밑을 들어가는구나.
                    몸의 영화는 티끌에 물들기 쉽고
                    마음대로 물로 씻기 어렵다
                    누구랑 담담한 맛을 의논하리오
                   사람들은 단술만을 좋아하는고.
 
  세상의 탐욕적인 행동을 깊은 바다밑에 기어들어가 구슬을 찾는 행동에 빗대어 말하고 있고 그들이 일시적으로 출세한다고 해도 한 번 더러워진 마음 은 영원히 씻기 어렵다고 경고하고 있다. 재물과 권세에 대한 탐욕이 극도에 달하여 그 무엇도 꺼리지 않고 날뛰는 파렴치한 봉건 통치배들의 모습과 사회상을 보여주고 그 안에서 세상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할 사람이 없는 자신의 처지를 함께 노래하고 있다.
                                 
                                   <촉규화>

                  거칠은 밭가장자리 쓸쓸한 곳에
                  탐스런 꽃송이들 여린 가지를 누르는구나
                  장마가 그치자 향기 가볍고
                  보리익음에 그림자는 하늘거린다.
                  수레탄 자 어느 누가 와서 보리오
                  벌나비만 부질없이 서로 엿보네
                  천한데 태어난걸 부끄러워할 뿐,
                  버림당해도 한스러워 할 수 있나?
 
태어난 땅은 황량한 밭 가장자리이므로 버려져도 할 수 없이 참을 수밖 에 없는 촉규화의 처지는 곧 자신의 처지이다. 자신이 갖추고 있는 학문과 자질 에 대한 높은 긍지와 그것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는데 대한 깊은 비탄 등이 엇갈린 시이다. 아무리 탁월한 재능을 가졌어도 쓰이지 못하고 있는 자기 시대의 계급관계의 불합리성을 말하고 있는 동시에 그러한 불행한 처지에 놓여있는 자신에 대한 처지를 노래하고 있다.
③ 좌절과 원망(역시 개인적 감정을 읊은 시)
  주지하는 바와 같이 최치원은 향수와 객고 혹은 이별의 정한을 토로한 많은 작품들을 남겼다.
                         
                                <추야우중>

              가을 바람에 오직 괴롭게 읊조리기만 하니
                 세상엔 지음(나를 알아주는) 이 적은데
                    창 밖엔 삼경 비가 내리고
                       등불 앞엔 만리를 가는 마음
 
   이 작품은 5언 절구의 한시이다. 깊어 가는 가을 밤 비바람 속에서 시적 화자는 괴로운 심정으로 시를 읊는다. 시를 짓는 일도 괴롭지만 무엇보다 고통스러운 것은 세상이 자신을 알아 주지 않는 것이다. 바람 불고 비 내리는 황량한 가을 밤, 화자는 가슴을 안고 늦도록 잠이 들지 못해 등잔을 마주 했으나 마음은 만리 밖을 떠돈다.
이 시는 오언 절구이며, 기승전결(起承轉結)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 시는 만 리나 떨어진 타국에서 고국 신라를 그리워하는 심정을 ‘만리심’ 은 이 세상과 화자 사이에 벌어진 심리적 거리를 표현한 것이며, 이 때 ‘지음’이란 자신을 알아 주는 벗이기도 하지만, 자신을 알아 주는 세상이기도 하다. 결구 (結句)는 등불 앞에서 잠 못 이루며 느끼는 고독과 비애, 소외감, 탈출 욕구 등이 절실하게 나타난 주제구이다.

                            <우정야우>

여관에 늦가을 비가 내리는데
쓸쓸한 창 고요한 밤 등불 밝히고
수심 속에 앉았으니 스스로 가련하기만 하네
진실로 한낱 정에 든 중이로다

이상의 시의 내용을 개략적으로나마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최치원 문학의 성가에 관한 기록을 통하여 그가 우리 문학사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당나라에서 떨친 명서에 주목한다. 동방의 시는 최치원에 이르러 비로소 발휘되었으며, 최치원 이전의 을지문덕의 여수 장우중문시나 선덕여왕의 직금송 같은 것은 비교할 만한 것이 못 된다고 하였다.
  둘째, 최치원의 시에 대한 여러 사람의 평은 비록 그것이 오늘의 안목 에서 볼 때 만족할 만한 것은 못되지만 우리가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임에 틀림 없다. 이들의 평은 크게 상반된 두 부류로 나뉜다. <추야우중>은 당시 (속악) 에 넣어도 무방할 정도이며 <우정야우>는 당나라 사람도 미치지 못할 뛰어난 작품이라 평가되었다. 그리고 <강남녀> <증지광상인> <우정 야우> 등을 들어서 가히 중국시인들과 겨룰만하다고 하였다.                             
                               
                                        4. 결론


작가를 평가할 때 그 사람의  작품만 가지고 그의 세계를 다 안다고 하는 것은 무리인 듯 하다. 왜냐하면 최치원의 작품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그의 작품 속에는 그의 정서를 지배하는 시대적인 흐름이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국가가 하대로 갈수록 혼란스럽고 왕권이 쇠퇴하듯이 최치원이 유학갔던 당뿐만 아니라 신라도 이미 쇠퇴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이 최치원 을 더욱 갈등하게 했고, 그로 인한 불안정함이 작품세계에 그대로 반영되었 음을 알 수 있었다.
최치원 자신도 시대에 대한 불만과 학문에 대한 열정으로 인한 갈등 속에서 고뇌하였기에 이와 같이 많은 작품을 남길 수 있었다고 본다. 무엇보다 전원 시의 원류로서나 고향의식을 시로 표현하여 개인 서정시를 확립한 점 등은 대단한 성과이다.
  또한 최치원의 시는 인간의 감정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관극시 및 현실 풍자의 시까지 넓게 지어졌다. 사회적 현실의 여러 측면들을 자신의 생활을 바탕으로 진실되고 생동감 있게 재현하였으며, 자기자신이 소속된 봉건귀족 계급 내부의 모순과 부패상을 사실적으로 예리하게 노래하고 비판적 입장을 보여 주려고 노력하였다. 그의 시는 단순히 시안에서 이해 되는 것이 아니라 시대적 환경. 개인적 상황에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최치원 자신도 시대에 대한 불만과 학문에 대한 열정으로 인한 갈등 속에서 고뇌하였기에 이와 같이 많은 작품을 남길 수 있었다고 본다. 무엇보다 전원시의 원류로서나 고향의식을 시로 표현하여 개인 서정시를 확립한 점 등은 대단한 국문학사적 의의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감사의 말
  논문완성과정에서 논문집필 과정에서 최균선 선생님의 사심없는 지도를 받아 순리롭게 완성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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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손영목, 삼국왕조 야록, 오늘,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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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양귀선, 고운 최치원, 1995, 한불문화학술총서
6. 이재운, 고운 최치원, 한국문화연구원, 1999, 한국문화연구원
7. 장문평, 위인전기 최치원, 1985 금성
8.박희병, 『한국전기소설의 미학』, 돌베개, 1997,
9.이헌홍, 「최치원의 전기소설적 구조」, 부산여대, 1982.
10.장효현, 「전기소설의 장르 개념과 장르사의 문제」, 『한국고전 소설 사연구』, 11고려대출판부, 2002.
11.이헌홍, 「고소설의 기점설정 문제 재론」, 계명문화사, 1992.
한국고소설학회, 「한국고소설론」, 아세아문학사, 1991.
12.박태상, 「『태평통제』소재 <최치원전> 연구」, 한국고소설학회, 고소설연구, 1995
지준모, 「최치원전 평석」, 동방한문학회, 1999
13.주류성, 『신라 최고의 사상가 최치원 탐구』, 한국사학회, 2001
14.이구의, 『崔孤雲文學硏究』, 아세아문화사, 2006
15.정출헌-고미숙-조현설-김풍기 지음, 『고전문학사의 라이벌』, 한겨레출판,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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