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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부른 돼지와 배고픈 소크라테스
2013년 02월 05일 07시 50분  조회:9203  추천:0  작성자: 최균선
                                  배부른 돼지와 배고픈 소크라테스
    
                                                        최 균 선
 
    위대한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그의 위명과는 어울리지 않게 왜 배고픈 고생하며 살아야 했을가? 아무런 작품도 남기지 않았다가 제자였던 플라톤과 크세노폰이 글을 내놓아서야 후세에 위대한 철학자로 세상에 알려지였다. 그대신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자기의 철학사상의 현답을 전하고 지적해주어 존경을 받았으니. 당시 집권자들에게 눈에 가시로 되여 추방과 죽음사이에 놓이게 된것은 세인들이 아는 사실이다.
    크세노폰의 《좌담회》라는 책에 의하면 소크라테스가 활발하고 술을 좋아했을뿐 아니라 녀색을 좋아했고 녀자들도 적절한 교육만 받으면 체력적인 면을 빼고는 남자에 비해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녀성옹호론자였다. 그런데 운명의 안배였던가? 그의 안해 크산티베는 공자의 처, 잔 웨슬리의 처와 함께 세계 3대악처로 락인찍혀있다. 공자가 성인이 되고 소크라테스가 철학자가 된것은 악처와 살았기때문이였을가? 물론 위대한 남편들은 가장으로서는 거의 미달이였을게다.
    소크라테스가 살림도 돌보지 않고 알아듣기 어려운 말만 지껄이는것에 크산티베가 늘 불만이였다고 한다. 그래서 한번은 경제에 무능력한 남편에게 가혹한 욕을 퍼부었다. 소크라테스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자 더구나 화나서 밖에서 물통을 들고와 그의 머리위에다 쏟아부었다. 그 장면이 오늘까지 명화로 남아있다.
    소크라테스는 화도 내지 않고 "허허, 천둥이 치더니 드디어 소나기가 쏟아지는군"라고 말했다던가, 사람들은 이 위대한 학자가 하필이면 그런 악처에게 시달리며 고생할 필요가 있느냐고 수군거렸다. 마침내 어떤 사람이 소크라테스에게 물었다.
      "선생님은 왜 하필 그렇게 악한 녀자를 부인으로 데리고 사십니까?”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대답했다.
    "훌륭한 기수는 가장 성질사나운 말을 택하는 법이라오. 그런 말을 잘 훈련시켜서 탈수 있는 사람이라면 다른 어떤 말이라도 다 잘 탈수가 있기때문이오. 나역시 성질나쁜 아내를 잘 달랠수만 있다면 어떤 사람이라도 잘 달랠수 있을것이 아니겠소."
   참으로 대철학자 소크라테스만 할수 있는 명창이였다. 현대의 시점에서 경제적으로 무능하여 한 가정을 운영하지 못하는 남편에게는 성모마리아도 배겨내지 못할것이라고 리해를 달려볼수도 있다. 어느 날, 제자들이 소크라테스에게 물었다. 소크라테스의 대답은 즉흥적이였지만 또 아이러니컬하다고 해야 하겠다.
   "선생님, 결혼은 해야 옳은것입니까? 안해야 옳은것입니까?소크라테스는 주저하지 않고 말했다."결혼하시오. 좋은 안해를 얻으면 행복할것이고 나쁜 안해를 얻으면 철학자가 될터이니…" 이역시 우문에 현답이라 하겠다.
    죤 슈트어트 밀은 “배부른 돼지이기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 가 되라고 했다. 경제동물로 살기보다는 생각하는 사람, 인생을 보람있게 가꾸며 살아야 한다는 교훈일것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와 배부른 돼지의 본질적차이는 무엇일가? 그것은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나는 왜 배고픈가?”하고 자문하며 고민하는데에 있을가?” 아니, 고민하는것을 잊는 순간, 현실에 배가 부른 순간 우리는 돼지가 되여버리는것이 아닐가 생각해본다. 그 다음은 무뇌충이 되여 오로지 생물학적, 육체적만족에만 빠져 정신적, 지적, 령적만족을 추구하지 않는 상태에 자족할것이고…
    우리는 왜 힘들어도 그냥 살아갈가? 인간은 생각할줄 아는 동물이기에 위대한 존재요, 보다 보람찰 인생, 결과적으로 보다 살기좋은 사회를 만들어가려는 령장동물이다. 현대 지성인이라면 생각하면서 살아가고, 살면서 생각하는 사람이여야 한다. 소크라테스는 “성찰없는 생활은 살 가치가 없다”고 가르치였다.
   한 사람이 만약 생각하기를 포기한다면 그것은 정신적인 파산선고라고 하지 않는가? 비록 사회구조가 인간을 생각하는 로보트로 만들고 있지만 스스로 “배부름”에 자족하며 향락을 추구하고있다. 물론 인간은 너무 배고파도고통스럽다. 반대로 너무 배불러도 개운하지 못할것이다. 절충적으로 말하면 인간은 배부른 돼지만으로도 살수 없거니와 배고픈 소크라테스로만으로도 살수 없는데는…
    만약 누가 “배고픈 소크라테스로 살겠는가? 배부른 돼지로 살겠는가?”하는 우문을 던진다면 “허, 이왕이면 배부른 소크라테스로 사는게 리상적이지 않을가요?”하고 반문할수 있다. 이는 재치있는 유모아이다. 그러나 사색할라치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소크라테스는 철학의 대명사이고 철학은 본질의 가치와 의미를 탐구하는것이며 배고플만큼 생활이 곤궁한것은 찾고자 하는 가치에 대한 갈망과 깨달음에 대한 열정과 목마름이라고 생각하면 괴리일가?
    소크라테스에게는 비고픈 삶 그자체가 삶의 의미이고 인생교실이며 분발의 동력이기에 보다 배부름에로의 지양만이 아닌 체험과 깨달음으로서 인간, 인생, 사회에의 탐구가 더 극성스러워지고 학문적으로 더 접근하게 된것이 아니겠는가, 배부른 돼지는 인간으로서의 가치나 삶의 의미 등 안개같이 몽롱한것보다는 생활의 편리와 자족의 틀을 마스고 성공을 추구하는 보람있는 삶을 의미하는것이 아니겠는가?
    먹고 잘줄밖에 모르는 돼지라는 일차적인 본능에 매달리는 대명사로 대조시켰지만 어쩌면 배부른 돼지라기보다 배가 부르기기만 바라는 돼지라고 해야 사개맞을듯싶고 그들은 소크라테스만큼 나름대로의 고민과 사고와 갈등이 있을법도 하다고 생각 해주어야 객관적일것이다. 같은 생명들로서 량자의 차이를 찾아낸다면 본능을 전제로 하되 고민하고 생각하고 추구하는 지적인 인간으로서 목적달성의 차이가 있을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말은 철학의 명제만이 아니다.
    인간은 소망ㅡ리상이라는 차표를 지니고 욕망이라는 대형렬차에 올라 자족의 중간역도 지나쳐 가고 또 가다보면 “죽음”이라는 종착역에 이르고만다. 생명은 모두 존재의 안전감과 생명력의 충족을 갈구하며 인간은 가외로 행복감이라는 감각적추구 도 가지고 살아간다. 그러므로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느냐? 배부른 돼지가 되느냐 하는 문제는 삶의 질적인 향상만이 아니라 삶의 목적, 선택, 양상의 문제가 되는게다.
    인간사회의 실속을 뒤집어보면 도처에 선택의 기회마저 상실당한 수많은 “소크라테스”들과 먹어도 먹어도 불평, 불만족을 꿀꿀거리는 배부른 “돼지들”이 공존하고 있는 현주소이다. “소크라테스”들의 삶의 철학이 무시당하고 제약받을수록 세상은 더욱 불공평해지고 잡음이 그치지 아니하고 패륜, 범죄가 기승부린다. 고급주택도 수십백채씩 챙기고 돈도 수백천만원을 후무리고 떵떵거리는 사람들은 잠시는 행복의 외투를 입고 강자의 행세를 하지만 결과는 거개 돼지처럼 “우리”속에 갇힌다. 그러구 보면 지능적으로 매우 차한 “배부른 돼지들”이라는것이 실증된다.
    어느 시대, 어떤 나라에든 배고픈 소크라테스들이 더 많고 소수의 “배부른 돼지” 들을 부러워하며 살게 되여있다. 사회분위기와 제도의 결구, 특히 욕망의 늪에서 딩구는 “돼지”들에 의해 포식과 기아의 갈등이 더 날카로워지고있다. 배부른 돼지는 배고픈 소크라테스의 철학을 알수도 없거니와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배고파보지 못한 이상 절실하게 체험할수 없고 터득할수도 없기때문이다.
   물론 마냥 배에서 꼬르륵 소리를 내는 “소크라테스”로 살수는 없지만 모두가 껄껄거리며 트림하는 배부른 “돼지”로 될수도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배부르기에만 목숨을 걸지 말고 지성적인 인간의 삶과 사회가치에 대해 심사숙고해봐야 할것이다. 다함께 배불러서 무랍없이 마주웃으며 살수 있는 사회라야 조화로운 사회라 할것이다.
   누군가 나에게 “너는 무어냐?”하고 물을 때 “나는 그냥 배고픈 돼지이지”라고 대답할수밖에 없는 처지라면 역시 서글프고 안쓰럽고 명랑하지 못할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금덩이의 노예로 살다가 금덩이에 죽음당하는 그런 인생도 욕심내지 않는다. 이야기하자면 이렇다. 프랑스에 금을 모으는것만을 생의 보람으로 느끼며 사는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모을줄만 알았지 값있게 사용할줄은 몰랐다. 어느 날 그 사람이 행방불명되여 많은 사람들이 찾아나섰으나 찾을길이 없었다. 나중에 수사기관에서 급기야 금고를 마스고보니 금고안에 갇혀 죽어있었다…
    아무튼 본질의 대상이 생명 즉 삶의 양태이고 삶과 직결된 전제라면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된다는것은 배가 고파보아야 인생의 진의미를 사색하게 되고 분발하여 배를 불리려는 의욕이 생기게 된다는 철리를 말한다. 배부르게 먹으며 산다는것은 인간의 원초적욕망이고 최저의 행복임은 사실이지만 육체가 형성되고 유지되는것은 군살이 아니라 굵고 강단있는 골격이다. 어느 나라국민의 인생자세도 마찬가지이다.
    배부른것으로 문명의 척도를 재일양이면 그는 분명 배불리고 백주에 쿨쿨거리는 돼지에 다름이 아니니 배부르면 능사이고 만사대길인것도 아니다. 사람에게 귀중한것은 인간존엄이다. 돼지에겐 존엄이란게 없다. 만포식후이면 자연좇아 식곤증이 방문하고 자족이 베개를 베워주며 권태가 잠꼬대를 하기십상이다. 배고픈 사람들이 우선 먹거리를 찾는것은 사실이나 두뇌는 더 활약적이고 랭철할것이다.
   좀 탈절된 얘기지만 특정된 한 국가에서 우주개발의 첨단기술을 만방에 현시하였을 때 동족으로서 “흥, 세끼 때마다 죽물도 제대로 못먹는 주제에 과학기술은 무얼, 우주쓰레기나 보태는걸”하고 댓글을 다는 사람들이 많던데 그 말속에 사촌이 기와집 지으니 배를 앓는 증세를 배제할수 없음을 절감하게 된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행위는 무엇인지 생각할 지능도 상실하고 망발하기때문이다. 사유방식이 그정도밖에 안된다면 배고픈 소크라테스의 철학의 내핵이 무엇인지 죽었다 살아나도 모를것이다.
 
                          2013년 2월 2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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