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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크루스테스침대”계시록
2013년 06월 15일 19시 46분  조회:9171  추천:0  작성자: 최균선
                                    “프로크루스테스침대”계시록
 
                                                        최 균 선
 
    프로크루스테스는 희랍신화에 나오는 인물로서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아들이다. 이름에 담긴뜻은 “늘이는자 또는 두드려서 펴는자” 이며 일명 폴리페몬(풀루피이언?) 또는 다마스테스라고도 한다. 화제는 세인들이 잘 알고있는 신화에 그치는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철학문제가 은밀하게 함축되여있다는것이다.
    프로크루스테스는 아티카(아테네) 교외의 케피소스 강가에 살면서 지나가는 나그네를 자기집으로 유인하여 쇠로만든 침대에 눕히고는 침대길이보다 짧으면 다리를 망치로 잡아두드려 늘이고 길면 잘라버리는 방법으로 죽였다. 그는 인과보응으로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에게 자신이 저지른 악행과 같은수법으로 죽임을 당하였다.
    신화는 편견과 아집과 고정관념으로 일정한 형식적인 틀을 만들어놓거나 실제로 있지도 않은 기준을 설정해놓고 만사를 이 틀이나 기준에 억지로 틀어맞추어 획일적으로 처사하려는 무모한 사람을 경고하였는데 이로부터 “프로쿠루테스침대” 라는 말이 격언처럼 되여졌다. 이는 백사에 자기중심적이고 자기본위로 판단하면서 자기 자신이 만물의 척도인양 착각하는 사람에게는 다시없는 행동지남이 될것이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는 형식이고 긴다리, 짧은다리는 내용이 된다는것이 론점이라 할 때 론증이 따라서야 할것이다. 내용이 우선이냐 형식이 우선이냐 하는 문제는 닭이 먼저냐 닭알이 먼저냐 하는 문제와는 격(格)이 틀리는 문제이다.
    요즘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는 론거부재, 론증불가의 괴담이 다음에 버젓이 떠있는데 그 화자가 누구이든 틀리는것은 틀릴수밖에 없다. 흔히 명인이 한말을 명언이라 할지라도 장마다 망둥이가 나오랴 하는 속담처럼 명인이라해서 마디마디 명언만 나올수는 없는 노릇이다. 가령 한 명인이 배고프면 음식을 먹는게 가장 좋고 병이 나면 죽을수도 있다는식의 말도 명언이 될수 없기때문이다.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는 말이 괴리인가? 괴담인가 하는 물음자체가 우문에 우문이라 정답이 아닌 엉터리대답도 불가하지만 그러하다는 론증은 가능하다. 모든 사람을 자기기준에 맞추려고 세상은 넓고 사람은 많으며 각각이라는 현실마저 도외시하며 부득부득 인정하려하지 않은것은 무슨 주견이 아니라 외고집도 아니고 억지이다. 획일화된 사회가 아니거늘 다양성, 층차성이 당연지사가 아니겠는가? 자신의 기준을 다른사람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해서 억지로 맞추려는 편견과 고집은 백해무익하다. 그것을 알면서도 행하는 자들이 고대에도 있었으니 뿌리깊은 병페인것같다.
  《한비자의 외저설좌상편(韩非子·外储说左上)》에 우화를 많이들 읽었을것이다. 정나라에 어떤 사람이 장에가서 신을 사려고 별렀다. 그는 노끈으로 치수를 재여놓았는데 이튿날 서둘러 떠나다보니 장에 이르러서야 치수를 재인 노끈을 두고온것을 알았다. 그는 신파는 사람에게 발을 잰 노끈을 두고와서 다시 가져와야 하겠다고 말하고는 부랴부랴 집에 달려가서 노끈을 찾아가지고 장마당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날이 저물어 이미 장이 파한뒤인지라 숨차게 왕복길을 달렸지만 신을 사지못했다.
    곁에서 보던 사람이 괴이해하며 물었다. “당신은 어이 제발에 신어보지 않고 기어이 잣대를 가져올 궁리만 하였소?” 정나라사람의 대답이 만고절창이였다. “쳇, 모르는소리!나는 잣대를 믿지 내발을 믿지않는단 말이요.” 한비자의 뜻인즉 객관실제를 불구하고 굳어진 틀을 고집하려는 사람은 흔히 황당하고 가소로운 웃음거리를 만들어낼수 있다는것을 꼬집은것이다. 역시 내용과 형식문제이다. 현대시점에서 진실한 내용인 제발을 뇌두고 형식인 노끈만에 목을맨 옛사람은 가소롭다.
    사람의 발이 있었기에 신이 필요하게 되였다. 옛사람들의 발과 현대인의 발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갈수록 각양각색의 신개발은 형식미의 수요일뿐 사람의 발이 천태만상으로 달라졌기때문이 아니다. 아닌가? 하지만 내용이 형식을 결정한다는 이 규 률을 기계적으로 리해하지 말아야 함은 자명하다. 내용은 사물을 구성하는 일체요소의 총화로서 바로 사물에 내재한 각종 모순 및 그로부터 규정되는 사물의 특성, 성분, 운동과정과 발전추세의 총화인것이다.
    형식이란 내용의 제요소가 통일된 결구 혹은 내용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주지하다싶이 내용과 형식의 관계는 대립통일의 관계일뿐만아니라 상호의존하고 작용하는 관계이다. 무릇 어떠한 내용이든 모종 형식을 가지게 된다. 형식을 떠나서 내용이 존재하지 않지만 반대로 어떤 형식이든 모두 일정한 내용의 형식으로서 내용을 떠난 형식이란 없다. 소가죽이 없는데 털이 있을소냐?
    물론, 아무도 형식이 내용에 대하여 반작용을 한다는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은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는 론리와는 정반대문제이다. 우리는 형식을 선택하고 리용하며 적합한 형식을 창조해내여 내용의 발전을 촉진하게 해야 한다는것을 부정하지 않으며 내용을 충실히 하는것과 형식을 결합하는것을 홀시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용과 형식의 변증관계의 원리를 몰각하면 아무일도 해낼수 없기때문이다.
    형식과 내용의 관계는 복잡한바 동일한 내용에 부동한 조건으로 말미암아 여러가지 형식이 묻어설수 있고 부동한 형식 역시 부동한 내용을 표현할수 있다. 새로운 내용에 가히 낡은형식을 리용할수 있고 낡은내용에 새로운 형식을 리용할수 있다. 내용과 형식은 광범위하면서도 구체적인 개념이다. 량자의 구별은 상대적이지 결코 절대적이 아니다. 그리하여 다만 추상적의의에서 그것을 나누어보게 될뿐이다.
    내용과 형식의 관계는 결코 병렬관계일수 없다. 어쨋든 내용이 주도작용을 하며 결정적작용을 논다. 내용이 형식을 결정(지배?)하고 형식은 내용을 위해 복무한다. 이는 내용과 형식의 일반관계이다. 내용은 사물존재의 기초이고 형식은 사물존재의 조건이다. 그만큼 내용은 다변적이고 활약적이지만 형식은 상대적으로 온정상태이다. 내용이 형식을 결정하므로 형식은 반드시 내용에 적합해야 한다. 이는 절대적이다.
    내용의 발전여하가 형식의 늦고 혹은 빠른 변화를 결정하게 된다. 내용과 형식의 상호작용은 어디까지나 변증적인 모순운동의 과정으로서 적합한것으로부터 불적함에 이르게 되고 다시 새로운 적합성을 찾게되는 그런 부단한 발전과정이다. 한복처럼 구식의 옛옷이 다시 돌아와 선호되는 경우처럼 형식미는 륜회의 속성도 가지고있다.
    어떤 사람이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는 말은 형식이 없는 곳에 내용이 없다는 말을  강조한것으로 유교적가치관에서 나온것이라고 단언하면서 중국의 유교는 형식, 절차, 순서를 중시했다는것을 론거로 내세웠다. 참으로 기담이 아니라 천하괴담이다. 꽃과 꽃병으로 말할진대 꽃은 꽃병의 내용이고 꽃병은 꽃의 형식이다. 그런데 꽃병이 없으면 꽃이 없어지는가? 화분이나 화단이 없으면 꽃은 존재하지 않는가?유교가 형식과 절차. 순서를 중시한다해서 유교의 내용이 소실되는것은 아니지 않는가?
     더 의론한다면 약탕관을 바꾸었다해서 약이 달라지는가? 약탕관에 보약약탕관이라 크게 써붙이고 전문 보약을 달이려한다면 그건 자유이지만 보약약탕관이니 익모초나 명아주를 넣고 달여도 보약이 될것인가? 무모하고 부질없는 일이다. 무릇 기준의 성립도 보편성이 전제될때만 합의가능하다.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기준은 강권론리로서 강박증의 근원은 심리불안이다. 나의 잣대로 남을 가늠할 때 대방도 나를 자기 저울로 떠보려 한다. 만사에 상대성원리가 통용되는것이다. 리념적으로 형이상학을 고집한다 하여도 내용과 형식의 관계를 해석함에서 주관성은 발붙일곳이 없다.  

                                                  2013년 6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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