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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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네 합창을 들으며
2014년 06월 28일 20시 03분  조회:5828  추천:1  작성자: 최균선
                                               개구리네합창을 들으며
 
                                                           최 균 선
 
    낮에 찔끔거리던 비가 밤에도 질질 짜고있다. 창문을 여니 난데없는 개구리울음소리가 들린다. 연집하반, 낡은주택구역이여서인가 희출망외인데 격에 맞지 않은듯 좀 이색적이나마 귀속을 파고든다. 언제부터 개구리소리도 싹잊고 살았던가. 시끌벅적한 도시의 잡다한 소음에 귀가 멍멍해진탓인가 아니면 도시문명과 자연의 소리는 인연이 없다고 아예 체념하고 있었던 탓인가, 상념이 저도모르게 세월을 거슬러 오른다.
    지금도 향촌의 밤에 개구리울음소리가 요란한지… 옛날 무공해벼농사를 지을때는 개구리합창소리가 번거로울 정도였다. 모내기가 끝나서 벼포기들이 우썩 키도움할 때면 개구리들이 밤합창에 신이났더랬다. 개굴개굴,개굴개굴…겨끔내기로 울어대여서 시내사람들에게는 소음이였을지 모르지만 진종일 밭일에 지친 농부들은 개구리들의 합창을 수면곡처럼 듣다가 곯아떨어지는데 습관되였다. 종종 듣그럽긴하였지만 꿈도 노그라진 농부에게는 마다할것도 없는 자연의 소리요 귀맛좋은 소야곡이였다.
    휘영청 달밝은 향촌의 한여름밤, 무논의 벼들이 지글지글 끓이던 한낮의 열기를 식혀갈때 푸른달빛도 은은하여 예이제 개구리울음소리가 자지러진다. 향촌에만 있는 꿈꾸듯 고요한 여름밤, 유정한 달그림자아래 제철을 찾은 개구리들이 향촌의 소야곡을 연주하던 모아산아래 고향마을이 잊어버리고있던 신화처럼 새삼 떠오른다…
    논판에 찰랑찰랑 생명수 넘치여 살판만났다고 농부들에게 감사의 찬가를 부르는건지, 논물이 너무 얕다는건지, 밤새도록 울어야만 하는 그 사연을 알아달라는건지, 보다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소리로 농부님네 이목을 끌어내고 관심받으려는건지 알배 없지만 아무튼 향촌에 없지못할 화성(하모니)임에는 틀림없었다. 저마끔의 생각, 제잘 난맛에 서로 제입이 크고 목청이 높다고 내기라도하듯 하는데 한바탕 밤비가 쏟아진 뒤에는 더구나 와글와글, 왁자지껄 요란스러웠다.
    아이들을 훈계하기 위해 엮어진 동화속에 그 청개구리의 후손들인가? 가라면 오고 메라면 지고…한사코 정반대로 하다가 엄마의 유언대로 강가에 묻고나서 홍수지면 떠내려갈까봐 운다는 이야기대로인가? 어떤 생물학자는 개구리들이 약속이나 한듯이 이구동성 울어대는 리유는 천적을 헷갈리게 하기 위해서란다. 사방에서 왈가왈부하니 어느놈을 잡아먹을지 종잡을수 없게 한다고.
    아무튼 한놈이“개굴”하고 선창을 떼면 일제히 개굴거리고 어느 한순간 약속이나 한듯 딱그치고 잠간 쉬였다가 다시 자지러지게 울어대며 밤을 팬다. 개구리울음소리도 들을탓이라 달빛이 어린 창호지너머 들려오는 소리는 마음가짐에 따라서 느낌이 각각이다. 도레도레미파미파, 쏠라쏠라씨도, 도씨라쏠파미레…
    울음이든 노래이든 집안에서 듣거나 퇴마루에 나앉아 듣기보다 논벌이나 늪가에 앉아서 들으면 더 질감이 난다. 벼가 무성할무렵, 논코나 실도랑에 고기발을 놓고 쑥타래타는 연기에 눈을 씀벅거리며 붕어든 미꾸리든 내리기를 기다리고 앉았노라면 개구리의 울음소리에서 천지와 음양의 조화를 터득할수 있을듯싶기도 하여 그야말로 고즈넉한 심야의 향촌에는 즐거운 “소음”이라 할것이다.  
    그런데 천생미물인지라 아무리 요란하게 합창하지만 곡조가 엇박자여서 도무지 질정할수 없다. 어떤때는 듣다못해 소리나는 곳으로 저벅저벅 다가가서 발을 탁구르면 (실은 진땅이라 구르는 소리가 날리없지만)워낙 민감한 놈들인지라 한창 합창에 열을 올리다가도 약속한듯“한창 흥겨운데 웬 잡놈잉교? 깜짝 놀랐잖아?”하고 숨을 죽이다가 적정이 사라진듯싶으면 다시 목청을 돋우고 다시 기척을 내면 숨을 꼴깍하는데 내사 절로 싱거운 생각이 들기도 했다.
    개구리울음소리는 마치 밤이 되면 너나없이 무작정 울어야 한다는 단합심의 체현은 아닐터인데 낮에 자지러지게 우는 매미들처럼 극성이였다. 그런데 대합창대원들로는 부적격이다. 그러나 주어진 생명현상이요 살아서 저저 뽑아내고싶은 소리를 마음껏 토해내니 상하좌우 눈치를 보며 제할소리 다못하고 사는 인간들보다는 퍼그나 자유로운 생명들이라 할것이다.
    미물들이라 지음(知音)을 알리야 없겠지만 저들만의 지음이 있어서 화답하는지도 나로서는 알턱이 없었다. 도리대로는 제소리의 근원 (근본) 을 알고 그릇됨없는 본연의 소리를 낼때 여타의 소리를 바로듣고 아는것이 지음자 (知音者)요 그래서 서로 다른 소리가 그릇됨없이 묘하게 하나를 이루는 절묘한 화음을 이끌어낼줄 알아야 일컬어 지적(知的)이 되는것이다. 그러나 지음을 모르는 개구리들이라도 때때로 엉뚱한 계시를 주기도하였다. 말하자면 인촌의 시시비비와 련관지어주는것이다.
    제모르는건 남도 모르는줄 알고 제아는것은 저만 아는줄 알고 제아는것만을 고아대고 정작 아무것도 모르면서도 아는체 고아대는 인간심사가 개구리울음과 인과관계는 없어도 련상은 가능하였다. 스스로 논판에“개구리”밖에 안되는줄 모르고 타인의 알고모름을 섣불리 판단하고 선각자연 마구 추단하며 아전인수하기에 극성이다.
    누군가 어리석은자의 특징은 타인의 결점을 들어내고 자신의 약점은 잊어버리는것이라고 했다. 진실된것을 믿지않고 각자 편견에, 리해득실에 따라 믿고싶은것만 믿는것은 인간의 본능인가? 치명적약점인가? 저마끔 잘난 개구리들의 자아표현에서 우리는 무엇을 사색해야 하나? 자아중심주의시대, 자아감각의 팽창시대, 저저 잘나셨더라도, 아무리 자아가치를 표현하더라도 청개구리네는 닮지말아야 하리라.
    남의 속사정도 모르면서 대소사에 유별나게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없는곳이 없다. 유익한 조언이나 내마음을 빌어 남의 마음도 헤아려야 할 아량은 당초 인연이 없는듯 제어두운 속심으로 남을 밝히려는 심리는 고약하다. 네가슴, 내가슴에서부터 소통의 길을 내야만 단합을 이룰지도 모를일인데 왜 개구리들처럼“내잘난것”만 내세우려 하는지? 공생의 협화음과 갈등의 불협화음중에서 무엇을 선택할것인가 생각하지도 않는다면 그냥 개구리사유를 벗어나지 못할것이다.
    울자고 작정하면 참개구리,청개구리, 두꺼비…들이 덩달아 덩둘해서 울어싼다.  개구리소리는 결코 그윽하지도, 그렇다고 은은한 가락도 아니다. 그저 울고웃는 인간촌에도 산촌의 밤소리가 아니면 정한에 사무치는 개구리네의 원성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 소리에서는 인간처럼 남의 불행과 고통뿐만 아니라 심지어 한까지도 더불어서 슬퍼하고 아파하는 공감같은것을 느낄수는 없다.
    인류의 력사는 시간의 선위에 굴러가는 소리와 모습의 함수관계라고 할까. 세상이 달라지면 소리도 변하고 소리가 달리지면 세상도 변해갔다. 이제 지상에서 자연의 소실되면 세상의 풍성함도 소실되는것이다. 그런데 생태환경의 엉망으로 하여 대 자연의 선률은 차츰 문명의 소리에 밀려났다. 그래서 다시 들어보는 개구리소리가 이리도 감명스러운것이 아니랴싶다. 개구리울음소리는 친환경에 이르는 길을 제시하는듯싶다. 존재의 각성과 확인을 위한 메시지일것이다.
    지금 내가 살아가는 곳이 도시이지만 아름다움과 진실된 느낌은 향촌에서만 얻는것이 아닌데 욕망과 향락의 소용돌이속에서 자연에로 향한 감관이 마비된 모양이다. 이밤, 비소리와 조금은 이외인 개구리합창을 들으며 모든것을 잊고싶은것도 또 다른 심리파동인가, 졸문을 대충 마무리하고 다시 창문을 열고 귀기울여보니 밤깊도록 울어서 목이 쉬였는가 아니면 누가 그만 울라고 호통이라도 쳤는가? 어째 잠잠하다.

                                                2014년 5월 19일 밤                      (2014.6.20 연변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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