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저 인생이란 만남에서 시작된다던가? 우연히 세상에 태여나면 먼저 엄마를 만나고 아버지, 형제자매들을 만나고 차차 사회마당에서 딩구노라면 본의가 아닌 이런 저런 만남과 헤여짐이 무시로 엇갈리니말이다. 상봉의 언덕에는 웃음이요 리별의 정거장은 눈물인데 인생려정에서 참으로 에돌아갈수 없는 중간역인가.
리별은 만남과 더불어 동일선상에 하나의 점이다. 어쩌면 리별은 삶의 삽곡이고 삶은 또 리별의 서곡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만나고 헤여짐이 반복무상한 인생길에서 리별의 아픔을 새기지 않고 끝까지 갈수 있는 사람이 있다할지라도 우리의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하는것은 아마도 리별의 정임에는 틀림없으리라.
일상의 하루에도 참기 어려운 슬픔이 스며드는것은 가슴속에 알게모르게 차지하고 있는 리별의 아픔이 고질이 되여서인가? 오호라, 만나지 않으면 헤여짐도 없을 것이요 오지 않으면 갈일도 없을테지만 리별은 어이 우리네 인생에 얽히기만 하는 것인가? 리별은 떨치고 가버린 님의 뒤모습처럼 무정하지만 언젠가는 새로운 모습으로 즐거운 만남이 마련되는 기다림의 언덕이라 하고 추억이 미움을 죄다 불사른 다음에 앙금이 되여 낳은 기쁨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더라만 그것은 다 여유로운 마음으로 써갈기는 락서에 불과한것이 아닐가싶다.
느닷없는 리별은 거친 바위틈에서 비비대며 껍질을 벗는 뱀의 아픔처럼 그렇게도 처절한것이다. 누구나 가슴을 극하게 앓고나면 리별의 의미가 새라새롭게 새겨질게다. 가슴을 어루쓸며 애달프게 헤여지면 석별이요 다시 만나자고 손잡고 약속하면 작별이요 떠난다고 알리면 고별인이요. 다시 만날 기약이 없으면 영별이고 죽어서 갈라 지면 사별이라 한다.
그 어떤 리별이든 가슴이 쓰리고 아리지 않을수 없다. 더구나 살아있으면서도 만나지 못하는 생리별은 가슴을 오리오리 찢는 아픔이요 고통의 극한이다. 리별을 견뎌내지 못하는 몸짓과 리별의 아픔이 쏟아내는 피눈물이 없다면 그저 담담함이나 무정한 정도가 아니라 차디찬 돌심장을 가졌기때문이리라.
무릇 추억이 더더욱 추억되게 하는것은 리별이 있기때문이다. 리별은 대전제이 기때문에 갖가지 형태의 리별의 기억을 가질수밖에 없다. 한번도 리별의 고통을 체험 하지 못했거나 리별의 시각에 미처 할말을 챙기지 못했다면 마음속으로라도 눈물젖은 리별가를 불러보라.
리별이 리별의 사실로만 기억된다면 사람에겐 애초부터 그리움이란 없었을것이다. 리별은 바람에 실려가는 하늘가에 뜬구름이라고 허무함을 노래한 시도 있지만 리별은 결코 허무가 아니고 망각은 더구나 아닌것이다. 진실이다. 진실한 리별의 슬픔을 경험하지못한 사람은 참다운 만남도 없었던 사람임이 분명하다. 떠난다는 말이 없이 헤여진것은 리별이 아니라 도망이다.
리별의 눈물보다 그 뒤에 오는 축축한 망각의 시간이 훨씬 더 고통스러운 법이다. 리별의 시각이 다가오는 순간과 물러가는 순간을, 리별의 그 긴 그림자를 즈려밟으며 지치지않고 걸을수 있다는 사람은 대단한 사람이다. 서서히 잊어가며 다시 시간을 거 슬러돌아가 축음기처럼 생생하게 리별이전의 일까지 재생시키는 힘든 과정이 리별이 라는 사실의 전 면모가 아니다.
잠시동안의 리별은 등뒤를 허전하게 만들고 며칠 눈물이 끌썽해지게 할것이지만 아무래도 헤여져야 한다며 피치못할 마음의 정리로 알라고 말할수 있다는것은 아무나 가질수 있는 풋풋함이 아니다. 잊는 고통이 없다면 생명없는 사물처럼 될것이고 기다림이란 슬프도록 아름다운 마음의 언덕이 없을것이라고 가볍게 말하지말라.
꽃잎이 스러진후의 열매까지를 포함하는 기대같은것이 리별의 종점이라고 생각한다면 사랑하는 사람과 헤여지는 괴로움을 겪을일도 없을것인가? 리별의 정거장에서 아무느낌도 없다면 덤덤히 돌아서면 될것이지만 사랑하기에 헤여진다며 흔연히 종지부를 찍는다는 말은 연극대사일뿐 진솔한 인생대화는 아니다.
아무튼 리별은 인생의 영원한 주제가로서 력대문인들의 절창들도 많다. 고대의 리별가로 유명한것은 리인로 할아버지의《대동강》시이다.
비개인 긴 방축에 풀빛은 짙은데
그대를 남포로 보내며 비가를 부르노라
대동강물이 어느때 마르겠는가
리별의 눈물 해마다 푸른 물결을 더치거늘
어쩌면 우리는 모두 리별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삶자체가 리별의 마디마디로 이어져서 그 순간을 느끼고 있을틈이 없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매 일 리별을 련습하며 산다. 리별은 사랑하는 남녀간에 더 유난하겠지만 련인들의 언저리에서만 일어나는 일도 아니고 딸을 둔 산골의 어머니에게만 있는 일도 아니다.
우리는 너나없이 리별의 아픔을 새길줄 알아야 한다.
경우야 어찌되였든 그리고 어떻게 헤여지든 무릇 생리별은 형언할길없이 가슴이 쓰라린 일이다. 리별의 아픔이란 헤여짐의 아픔을 치유하는것이 아니라 그 아픔을 다르게 변형시키여 생각하는 일이다. 그리하여 리별의 아픔이 잘 치유되지 않는것이요 그 속성은 의지, 생각, 감정에 상관없이 독립적인것이다.
찔레꽃 붉게피던 남쪽나라 내고향
언덕우에 초가삼간 그립습니다.
자주고름 입에물고 눈물젖어서
리별가를 불러주던 못잊을 사람아…
흘러간 옛가락처럼 동서고금의 리별가의 주제는 대동소이하리라. 그러나 흔히《정》과 《한》의 민족이라 일컫는 우리 단군족만큼 리별의 한에 눈물젖은 민족도 흔치않을것이다. 약소민족으로 외세의 침탈과 강압속에서 피눈몰로 루루천년 항쟁의 력사를 써내려온 우리가 아니던가?
고대대륙의 강족들이 입침할 때마다 조공으로 바쳐진 녀인들, 노예로 끌려간 사람들이 그 얼마였으랴! 36년, 일제놈들의 망국노로 살면서 소위 근로봉사로, 대포밥으로, 성노리개로 끌려간 수백만의 서러운 사람들의 가슴속에 서리고얽힌 리별의 한은 개개인의 가슴에 새겨진 상처였지만 결국 그것은 전 민족적인 리별사였다.
우리의 리별가에는 후렴도 길다. 남북분단에 의한 리산가족은 더 말치않더라도 코리안드림인지하는 열풍에 리별의 정거장에서 눈물을 휘뿌린 사람들은 또 얼마인가? 물론 자기가 원해서 눈물젖은 리별가를 엮는 사람들이니《정》과《한》으로 해석하기는 무리이겠지만 결과적으로는 리별민족들이 아닌가?
만날사람이 있다는것은 행복한가? 상봉의 날이 기약되였다면 더욱 행복한가? 허 위단심 달려오는 만남의 길, 가슴에 새긴 정이여서 마음부터 달려오는 상봉의 그 언덕을 당신은 어디쯤에서 바라보고 있는가? 고향의 진달래 한송이와 더불어 만나는 기쁨은 얼마나 눈물젖어 있는가? 아아, 가슴이 아려나는 리별의 노래는 왜 불러야 하는것인가? 참으로 나도 알수 없는 마음이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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