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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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엇인가?
2016년 08월 10일 19시 42분  조회:4091  추천:0  작성자: 최균선
                                                  《나》는 무엇인가?
 
    흔히《나는 누구인가?》라는 자문에《나는 나이지!》하고 호기를 부릴수 있겠지만 스스로《나는 무엇인가?》하고 자문하면 대답이 퍽 궁색해진다. 전반생은 농민이였다고, 후반생은 교원이였다고, 지금은 성쌓고 남은 돌신세가 된 일개 로옹이라고 대답해야 정답이라고 할수 있을가?
    하지만 어느 하나로 자기를 딱 소리나게 개괄해내지 못하는것은 무엇때문일가? 이 세상의 그 많은 모든 “나”는 시공간의 변화속에서 존재할수 밖에 없기때문이다. 인생길 굽이굽이 한갑자를 돌아서 생의 막바지에 올라 차분히 자신을 정리해보면 자기를 잘 알고있다고 가볍게 생각해온것이 심히 부끄럽다.
    기실 자기를 잘 안다는 대답의 절반은 자신심에서 온것이고 다른 절반은 이른바 겸손에서 오는 말로서 자기를 똑똑히 안다는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로자가 “남을 알면 지혜요, 자기를 알면 밝음”이라고 하였지만 이것은 자신의 옹근 총명과 맞먹는 복잡한 인생계산식을 풀었다는것과 같은것이다.
    똘쓰또이는 한 사람을 분수라 할 때 분자는 그의 실가치이고 분모는 그가 느끼고 있는 가치라고 했다. 아닌게 아니라 우리들 거개가 자기를 흥량하는데 아주 너그러워서 실제보다 높이 본다. 가진것이란 몸에 때밖에 없는 아Q 씨마저 “자신이 이를 씹는 소리가 왕텁석부리보다 더 요란하다.”고 긍지를 느끼고 있음에랴
    사람은 워낙 이왕보다 형편이 조금 나아지거나 조금 명성을 얻게 되면 자기를 보는 눈이 더 높아지는 법일가?
    우선 나 자신이 그렇다. 간혹 사람들이 나를 “지식분자”라고 하는데 내가 정말 지식분자가 옳기나 한가? 일정한 문화과학지식을 가진 뇌력로동자를 지식분자라 한다면 나도 명색이 지식분자일듯싶다.
    그러나 진정 의미에서이 지식분자란 얼마나 어마어마한 칭호인가? 서방에서 말하는 지식분자는 비교적 많은 교육을 받았고 일종이 전업일터에서 헌신하는외에도 강렬한 책임감, 사회량지와 정의를 신장하려는 정신 등을 구비한 지성인이다. 한마디로 지식분자는 사회의 량심인것이다.
    또 다른 설법에 따르면 지식분자는 독서인일뿐만아니라 거기에 독립정신과 창조능력을 구비하여야 하고 반드시 사회의 비판자, 아주 가치있는 반대자여야 한다. 로신은 “진정한 지식분자는 사회에 대하여 영원히 만족하지 않고 감수는 영원히 고통스러우며 보는것은 영원한 사회페단이므로 장차 희생할 각오도 가지고있다.”고 하였다.
    고대희랍의 소크라테스, 에피쿠로스, 제정로씨아의 라지쎄브를 비롯해 체르늬쉡스끼, 12월당원들…프랑스의 졸라, 그리고 로신, 고준, 장지신 등이야말로 진정 리상을 위해 살았고 현실의 암흑과 비리와 싸운 명실상부한 지식분자들이며 인류의 정화들이다.
    지식, 문화, 신앙을 지식분자의 3대요소라고 한다. 나름대로 거기에 보충한다면 바로 용기이다. 이것이 중요하다. 약간한 지식도 문화소양도 있고 모종 신앙심도 조금 갖추었지만 내게 부족한것이 바로 정의를 위해 싸우려는 용기이다. 그러니 나는 한갖 이 세상에 이름없는 소지식인쯤이나 될가?
    누군가 어떤 장소에서 나를 일러 수필가니 소설가니 할 때 처음엔 등허리에서 무엇이 스멀거리는감을 느꼈지만 거짓말도 천번 하면 참말이 된다더니 그것이 화자가 례의적으로 한 말이라는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그럴만하게 들어넘기였다.
    지금은 전대미문의《명인시대》이고《××가》의 시대인같기도 하지만 내가 정말 무슨 “××가”인가? 근근히 글줄이나 끄적거리는 말단기고인이 아니던가? 가령 나같은 글쟁이 정말 무슨 “××가”라면 이 세상엔 “××가”들이 곳곳에 득시글거리는 패덕자들보다 더 많을것이 아니겠는가?
    다른 사람들의 눈에 자칫 교오로 오해될수도 있는 지나친 겸손일지 모르나 록록한 학생들앞에서도 “나 작가야!”하고 흰소리를 쳐보지 못했다. 지각한 작가지망생이던 때까지도 작가를 하늘만큼 우러르며 불가접근의 존재로 여겼던 나이다. 지금은 작가라면 소학생도 별로 눈이 휘둥그래서 쳐다보지 않지만…
    하다면 자신을 무조건 폄하하는것이 자신에 대한 옳바른 평가일가? 물론 아니다. 사람들이 몇번인가 “××가”라고 치켜올릴 때 나는 한번도 즉석에서 아니라고 겸양해 본적이 없다. 이것은 바로 분에 넘치는줄 알면서도 은근히 자기를 높이 보고있다는 반증이다.
    문화인으로서의 이런 허명이 물론 다른 사람을 해치지는 않는다. 마치 대중에게 미안할만큼 미운 녀자라도 한마디 예쁘다고 칭찬해준다면 그녀가 당신을 절대 욕하지 않는것처럼 말이다. 그렇듯 사람마다 도취감이 있는 법이며 바로 그때문에 제 잘난 멋에 살아가는 재미가 하냥 늙지 않는것이리라.
    많은 사람들이 한자리 했을 때는 좌우에 사람들을 거느리고 내노라 하며 떵떵거리지만 기실 차지한 그 위치에 높았던것이지 결코 그 자신이 대단한것이 아니요 엉덩이가 도금되였을뿐이지 그 자신이 환골탈태하여 풍골이 된것이 아니다. 물론 그 자신은 어깨가 높아있겠지만 그를 론하는 다른 사람들의 눈은 공정한법이다. 물론 당면에서 보는가 배후에서 보는가가 다르지만도,
    비유하건대 한 난쟁이가 백두산 산정에 올랐다면 높이 보일지는 몰라도 그 자신이 키다리가 되여진것은 아니요 골짜기에 선 거인이 난쟁이를 보려한다면 쳐다볼수 밖에 없으나 그 자신이 왜소해진것은 아니지 않는가?
    바로 여기에 가변성을 고유한 위치의 오묘한 변증철학이 담겨있는것이다. 영예는 늘 과거의 등에 업혀있다. 지위도 널뛰기처럼 한쪽이 솟구치면 한쪽은 떨어져야 한다. 직업은 바뀔수 있고 권세자도 나중에 백성이 될수 있다. 명예도 그 순간이 지나면 과거에 대한 기록일뿐으로서 현재의 그를 의미하지 않는다.
    별로 복잡하게 생각할것 없다. 쉽게 이발로 비유해보자. 이발이 잇몸에 단단히 박혀있을 때는 시고 달고 땅땅하고 무른 온갖것을 잘도 씹어주며 제구실을 하지만 삶은 콩도 씹을수 없을 정도로 거들거리거나 아예 하강(下崗)해버리면 한낱 뼈쪼각에도 속하지 못하는 무용지물이 되고말지 않는가?
    그런데 농촌에서 한번 생산대장을 하면 평생 허대장, 백대장으로 불리듯이 진작 자리를 내놓았는데도 정국장이니 한주임이 하는 호칭을 불러주면 당사자는 귀맛좋게 듣는다. 총리질하다가도 물러나면 백성으로 되는 선진국과는 별개인 인문환경탓일가?
    “나는 무엇인가?”하는 자문에 가장 좋은 대답은 우선 인간이였고 향후에도 인간이라는것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설사 그가 위인이였든 민초였든 그 가 없이도 지구는 의연히 돌아가고 사람들은 그냥 그렇게 웃고 떠들고 식욕을 느끼고 성유희를 놀것이다.
    3황5제이면 어떻단 말인가? 천하를 호령하던 진영정이면 어떻단 말인가? 죽은 후에 다만 다른 사람들보다 지면을 좀 많이 차지하고 있을뿐이고 역시 살은 썩고 백골이 진토되여 탄수화합물로 합성되지 않던가? 일대의 천교도 류성처럼 사라진 과객이였거늘 자고로 뒤에 오는 사람들은 담담한 기색으로 선인들의 해골을 밟고 지나왔다.
    남이야 나를 무엇으로 빚어주든간에 뭐라고 품평하든간에 그동안 빚어온 진실한 인간상만이 사람들의 머리속에 잠간 남아있거나 아니면 곧바로 잊혀질뿐이다. 그것을 스스로 알고있어야 하건만 우리 동양인들은 그런 자각과 자률을 알려고 하지 않는게 통병이다.
기어이 스스로를 높이 모시려 한다면 무거운 기억의 보따리를 걸머지고 촉박한 인생길마저 헐씨근거릴것이다. 번져보아도 뒤집어보아도 빈대떡은 그냥 빈대떡인것처럼 “나”는 나대로일뿐이다. 막차는 이미 떠났다. 남은것은 미구에 사라질 한오리 연 기뿐이다.
    어제의 자신에 미련을 가지지 말아야겠다. 세상에 보이고있는 지금의 내 인간상이 요긴하다. 오로지 자신만일 때 가장 나 자신다운 모습이거늘…

                          2006년 7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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