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http://www.zoglo.net/blog/cuijunshan 블로그홈 | 로그인
<< 11월 2024 >>
     12
3456789
10111213141516
17181920212223
24252627282930

방문자

조글로카테고리 : 문학 -> 발표된 작품 -> 칼럼

나의카테고리 : 칼럼/단상/수필/기행

문화의 실총과 총애의 문화
2016년 08월 10일 19시 56분  조회:4346  추천:0  작성자: 최균선
                                              문화의 실총과 총애의 문화
 
     
    시대의 발전과 더불어 문화의 내함이 더없이 풍부해지고 또 그만큼 각양각색으로 해석되고있는바 현재 문화에 대한 정의가 5백개도 넘는다고 한다. 이것은 문화에 대 해 한마디로 정의를 내릴수 없다는 말이 된다.
    문화개념이 어떻게 해석되든 결국 물질문화와 정신문화로 나뉘여지고 정신문화도 아(雅)문화와 속(俗)문화 혹은 정영문화, 대중문화로 분류된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정 영문화 혹은 대 전통문화는 지식계층의 규범문화에 속하며 대중문화 혹은 소 전통문화는 곧 인민군중들속에서 자발적으로 산생된 비규범성문화이다.
    어쨋거나 문화가 보통명사일 때 옹근 인류사회력사의 유전을 가리키고 하나의 복수명사로 될 때 력사유전중의 모종 특수한 부분을 가리키는것으로 리해하면 될것이다. 만약 문화의 정체를 립체적계통으로 볼 때 문화결구의 세개 층차에서 핵심은 심리층차부분 즉 문화심리상태이다. 이에는 가치관념, 사유방식, 심미취미, 도덕정조, 종교정서, 민족성격 등이 포괄된다.
    인간은 문화의 존재이다. 인간은 문화의 창조자이면서도 동시에 문화에 힘입어서 산생되였다.  이것을 “위대한 인과순환계통”이라 한다. 인간이 문화양상을 결정하지만 문화는 되돌아와서 인간적모습을 부각해준다. 문화의 각도에서 볼 때 매개인은 문화에 의해 결정되고 연후에 문화의 창조자로 될수 있다.
    격변시대, 경제생활과 정치생활의 변화에 따른 문화생활, 정신세계의 변화는 불가피적이고 불가역전적이다. 문화발전의 네개 층차에서 첫층차는 물질층차이고 다음으로 제도층차, 풍속습관층차, 사상과 가치층차이다, 이런 변화는 물론 먼저 대중문화로부터 시작된다. 이것은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다. 그런데 시장경제시대에 진입하여 사람들의 생활방식, 심미정취, 도덕표준 나아가서 가치관념 등에서의 변화가 우리에게 일종의 불안감과 위기감을 주는것은 무엇때문일가?
    시장경제의 충격파앞에서 사람들은 화페의 이난성(两难性) 즉 “문화가 돈에 의거할것인가, 아니면 돈의 속박에서 해탈할것인가?”하는 모순에 직면하였다. 정영문화의 위기는 결과적으로 “화페”와 “문화”의 관계에서 기인된것이다.이는 문화학, 문화현상연구에서 가장 핵심적이고 본질적문체의 하나이다. “공방형”자체는 워낙 무가치하지만 그 역시 일종 문화상징부호이다. 그리하여 현대세계성문화형성에도 화페라는 이 상징부호공능의 강화의 확대가 수반될수 밖에 없다.
    아닌게아니라 돈냄새에 취한 사람들이 “문화”의 실천능력에 편중하고 집착하다보니 고귀한 생산성문화가 실총당하고 대신 비생산성문화가 각별히 총애를 받고있다. 이른바 “생산성문화”란 “랑비문화”, “오락문화”등을 포괄하는 “비생산성문화” 범주에 상대하여 하는 말로서 결코 경제의의상의 생산을 의미하는것이 아니며 또한 직접적인 물질적리득을 의미하는것도 아닌 정신문화를 가리킨다.
    여기서 “생산성”은 “창조성”, “리성” 및 세계에 복리와 재부를 증가하는것을 의미한다. “생산성문화”는 자체의 내함과 광범위한 특질과 사상소재로 하여 사람들에게 인도적행동방향 강대한 행위동력을 가져다주며 그로부터물질과 정신층차상에서 일종 관리에 부합되는 리성적가치를 표현한다.
    생산성문화가 발달한 민족과 지구에서 사람들은 정신과 물질상에서 풍성함을 감수하게 되며 선택의 다양성이 가능해진다. 생산성문화야말로 인간의 정신에 동력학적 효응을 가져다주는 문화이다.
    문제는 새시대, 시장경제의 격류속에서서 자맥질하는 국민들이 일조일석에 문화의 귀중함을 절감하고 문화인으로 환골탈태한듯이 너나없이 다투어 “문화”향수에 심취되여가는 현상이다. “풍조문화”시대라고 할가? 그러나 기실 엄격한 의미에서의 풍조문화차원에도 미달이고 사람들이 심취되여 들어선 곳은 오히려 “생물문화위기”구역 이라 해야 할것이다. 왜냐하면 동기와 정감, 가치, 목적 등 방면에서 동시에 생리와 문화 이 두가지 력량의 모순충돌속에서 우왕좌왕하고 망연자실해하고 있기때문이다.
    흥성하는 문화의 충격속에 실총당한것은 경전문화ㅡ정영문화이다. 일찍 력사의 진전에 영향을 주었고 전통적지식, 가치리념, 사상체계를 수립해준 경전문화의 주요한 특징은 거대한 력사적관성이다. 경전문화의 독립성과 온정성은 바로 이런 력사적 관성 즉 력사선택의 전통력량에서 왔으며 그로써 확보되였다. 그런데 물욕이 횡행하 고 한탕주의가 살판치는 현시대에 이르러 마침내 화폐의 이난성앞에서 막무가내하게 색바래고 있으니 심히 개탄할 일이 아니랴!
    이른바 총애의 문화란 곧 음주문화, 식문화, 거피문화, 차문화, 복장문화, 거주문화, 개고기문화 심지어는 성문화, 변소문화 등 온갖 잡다한 실천문화로서 한창 만방에 향기를 풍기고있다. 옛문화고국이 동산재기한듯 문화풍경에 눈이 확 트인다. 거리에 나서면 온갖 유흥업소의 간판들에 “쉐익스피어술집”,“괴테노래방”, “신사다방”, “숙녀안마방”등 동서고금의 유명짜한 문화상징어들이 보란듯이 붙어서 문화냄새를 물씬 풍기는가 하면 개고기보신탕집에 “개고기살롱”이라는 이름까지 나붙는 판이니 가관이 아닐수 없다.
    그야말로 곳곳에서 중국특색의 현대문화경관을 이루고있다. 남녀로소가 갑자기 각성하여 국수를 발양하는지 보이느니 “××활동실”이요 들리느니 마작을 옮겨 “새 장성”을 쌓는 소리이다. 이런 대중문화는 고루하지만 총애받은 현대문화로 부상된 것이다. 성시의 대중문화는 우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매 가정에도 침투되였다. 그것은 서로 닮아가려는 시민의식과 무주견성을 리용하여 영원히 엉킬수 없는 모래알로 만들어버리고 아무 계통성도 없는 주견과 생활가치기준을 가지도록 개변시켜놓아 동일함을 추구하는 의식과 한가함을 달래는 보편적수단이 된것이다.
     대중문화는 총애의 문화로 되였지만 또한 어제의 취미를 가장 쉽게 잊게 하며 아무런 사색도 없이 오늘의 취미속에 말려들게 한다. 물론 대중문화는 응집력도 있어 끊임없이 화목과 친선을 창출해내여 사람들로 하여금 그속에서 도취되게 하지만 거개 일종의 가상적대명사로 되였다. 그것은 환상중에서 마를줄 모르는 영양소를 얻고있다. 총애문화의 오락방식은 모두 환상의 후과를 야기시킬수 있다.
    총애문화의 환상성은 주요하게 환상으로 사람들의 생활을 이끌거나 실현할수 없 는 다른 설계도를 그리는데 있는것이 아니라 그 환상 자체가 벌써 생활내용에서 비상히 중요한 부분을 구성한데 있다. 그것은 사람들의 생활의 프로그람에서 한단락을 차지하고 있고 그것의 마취성분에 사람들이 인이 박히게 하고있다.
    반면에 성시 대중문화는 항구적이 못된다. 한것은 경박성을 띠고있기때문이다. 그것이 열중하는것은 축하연이지 장례식이 아니다. 이런 문화에는 영원히 비극의식이 결여되여있는바 자체에 경방성이 고유해있으며 천박한 원인도 그에 있다. 성시대중문에 만약 우연히 엄숙한 의미가 담긴다면 그것은 현실에 대한 구체적 불만이거나 그로부터 터져나오는 발설로서 태반이 현실적향수에 대한 지향을 방애하는 외부세계이고 그에 속박당하지 않으려는 심령 자체이다.
    총애의 문화는 감수성이 매우 풍부한바 절대 사고에 빨려들지 않는다. 그것은 사고하지 않기에 사고를 배척하며 또한 사고할 힘도 없다. 바로 그때문에 성시대중문화에서 영원히 진정한 철학이 나올수 없는것이다. 총애받는 대중문화에서 가장 결핍한것은 독립적인 견해로서 성시대중의 맹목성과 수의성은 어떠한 독립성적인 견해든지 거부하며 심지어 저들의 안일한 생활방식에 대한 폭로와 종종의 비평도 거절해버린다. 총애받고있는 성시대중문화는 온갖 용속한것을 키워내는 온상이다. 그것은 대중이 환영한다는 명의로 비평의식을 눌러놓는다.
    젊은세대의 사람들은 지금은 감각시대이고 감각을 따르던 삶의 질이 향상된다고 자랑처럼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아름다운 오해이다. 문화의 일종으로서 “감각문화” 라는 개념이 있는것은 사실이다. 미국의 한 사회학가는 력사운동의 본질을 론하면서 력사발전이란 곧 “감각적문화와 관념문화”간의 련속적이면서도 불규칙적인 파동이라 고 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감각문화는 일체 표달방식(예술, 문학, 종교, 법률, 륜리, 철학, 교육학, 미학과 사회관계) 에서 감각을 얻을수 있고 거기에서 감각의 수요와 념원을 만족시키는 문화이다. 감각문화는 사람들이 오인하고 있는것처럼 감각의 력량을 강조하는것이 아니라 일종 리론문화류형을 구분하는데 그 의미를 두고있는것이다.
    현재 도시대중문화의 영향하에 시민들의 감각은 오색잡다한 자극물에 침점당하고 시민들의 지혜는 오색령롱한 류행과 견해들에서 랑비되고있으며 시민들의 리성은 아롱다롱한 관념에 의해 무너지고있다. 산만하고 잡다하며 둔감하고 빈약한것이 흔히 아롱다롱한 색채로 도금된 도시대중문화표상 배후의 정신실질이다.
    시민들이 선호하는것은 풍조와 류행 행위에서 구성되는 심리문화현상인 풍조문화로서 소비, 복장, 심미, 교제, 직업활동 등에서 피차간에 어슷비슷하게 변화되는바 일종의 취미, 류행옷, 생활방식 등 구석구석에서 중복되고이는것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수도 있다. 도시대중문화는 어디에 없는 곳이 없다. 그것은 정신상 아무 방비능력도 없고 제어능력도 없는 도시민들을 선풍마냥 휩쓸어버린다. 이렇듯 도시대중문화의 급 변과 과잉후과는 시민들의 정신생활을 날이 갈수록 더욱 창백하게 만들고있다.
    도시대중문화는 이미 일부분 시민들로 하여금 누구를 따라 해야 할지 모르거나 혹은 아예 자기를 봉페시키고 자기에게만 속하는 생활권을 건설할 필요마저 느끼게 하고있다. 저질적인 도시대주문화는 불가피면적으로 전면적으로 적치되고 체화된 하나의 력사계단에 진입하였으며 쇠락시기에 들어섰다. 사람들은 조만간에 도시대중문 화에 대한 맹종과 추구야말로 한바탕 헛되이 정력을 소모한 생명랑비였음을 깨닫게 될것이다.
    이를테면 유흥과 오락같은 문화활동따위는 사람들에게 어떠한 가치도 남겨주지 않을것이며 기억속에 남아있지도 않을것들이다. 이러한 도시대중문화는 사람들이 너무 밀집하고 지나치게 호상 영향을 준 산물로서 일종 공간감각도 없고 시간지속성도 없는 문화이다. 그러나 도시대중문화는 신기한 오락과 자극성을 추구하는 무수한 시민들을 흡인할것이며 또한 상당수의 사람들로 하여금 권태를 느끼게 하고있다. 그들 은 이제 더는 대중문화의 조종하에 주견을 상실한 문화동물이 되기를 원치않는다. 하여 자아도취의 개체문화권을 구축하려 하고있다. 이를테면 다시 열독경지에 잠기거나 꽃을 가꾸며 즐기거나 컴퓨터로 채팅하는 재미에 빠지거나 게임을 하는 등등 자족자득의 생활방식을 즐기려 하는것이다.
    대중문화평론가인 버나드 루쎈버그드도 “대중사회에 부족한것은 단조롭고 평탄하고 용속하며  상실된 인성과 부유한 생활에서 기인된 유혹과 고독감”이라고 지적하면서 영화, 텔레비죤, 라디오방송, 신문, 잡지 등 대중문화매체를 통해 전파되고 표현되는 이런 대중문화는 사람들로 하여금 현실생활속에서의 망연함, 고독감과 생존위기 감을 잠시적으로 극복하게 할수는 있으나 반면에 인류문화의 진정한 표준을 낮추게 할수 있으며 기나긴 력사의 흐름속에서 사람들의 이화를 가심화할수 있다고 피력했다
    총애문화와 실총문화의 병존현상은 우리에게 심사숙고와 우려와 더불어 오도되여 곁길로 빠지는 문화를 어떻게 바르게 신장시킬것인가 하는 이 시대의 난제를 제기하고있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사람들이 사랑하는것은 문화 자체가 아니라 문화속의 리용가치이다. 저층차적문화가 총애를 받게 된것은 진정한 문화로 말하면 일종 재난이 아닐수 없다.
    지금은 일반 고중생, 대학생들속에서 세계명작열독은 문화고갈의 시기에나 있을 법한 문화향수로 간주되고있다. 이른바의 한류(韩流) 의 격랑속에서 고중생들의 애독물은 만화이다. 연변1중의 대문가에 자리잡은 “학우서점”에 한참 앉아 관찰하노라면 21세기 고중생 들의 열동흥취와 범위, 문화관념, 가치취향을 단층적으로나마 일별할수 있다. 필자가 이 5년가 사립학교에서 고중생들을 가르치면서 심각하게 느껴진것은 세계명작열독이 완전히 전 세대들의 특허권이였다는것이다. 물론 대상이 지력층차상 매우 낮은 학생군체이지만 단면적으로나마 오늘 세대들의 문화자률성이 얼마인지 가늠할수 있었다.
    진정한 문화가치는 비참하게 실총당하여 나날이 망각되고 만구할수 없을 정도로 류실되고있다. 서점가에 한번 가보라. 고중입시, 대학입시준비에 속이 달아올라서 참고서적따위나 찾는 중학생들이 간혹 보이고 보귀한 정신량식을 보충하려고 찾아오는 어른들은 가물에 콩싹나듯함을 볼수 있다. 도서관에 가보라. 한적한 도서관엔 그야말로 고상한 한적함과 고즈넉함이 사람을 질식시킬듯 한다. 그러나 노래방, 사우나, 찜 질방, 안마방, 술집에 가보라. 그야말로 온 민족이 현대문화생활을 만끽하는 기꺼운 경상을 보이고있다.
    문화전변기중에 사상이 혼란되고 시비가 불투명하며 물욕이 횡행하는 문화단렬현상이 있게 되는것은 세계적조류이고 사회발전에 부합되는 새로운 문화인소라고 볼수도 있겠다. 그리고 문화일반에서 말할 때 문화가 시장속으로 들어가는것이 일종 자체 해방이라고 볼수도 있다. 그러나 해방을 얻음과 동시에 발전과 번영을 도모해야 한다. 다만 사람들을 놀래우는 거폭의 알락달락한 문화기발과 돈벌이를 위한 유혹적인 외투가 행진하게 해서는 아니될 일이다. “새의 날개에 금덩이를 달아놓으면 새는 다시 날지 못한다.”는 인도 시인 타고르의 명언이 있다. 사실 총애의 “문화”가 향기를 풍 길수록 문화에 대한 사람들의 의식은 날이 갈수록 색이 바래지게 되고 원래부터 여린 문화의 꽃을 무정하게 스러지게 한다.
    당대미국의 인류문화학가이고 사회심리학가인 엠. 미드는 자기의 저서《문화와 승낙》에서 문화를 세가지 류형으로 나누어 천술하고있다. 첫째류형은 “전유(前喻) 문화”로서 젊은일대들이 로일대에게서 따라배우는것을 특점으로 하는 원시적문화이 고 두번째는 이른바 “동유( 同喻)문화”로서 매 동시대인들이 동년배에게서 배우는것을 특점으로 하는 문명력사이래의 전통문화이고 세번째로는 이른바 “후유(后喻)문화” 로서 로일대가 새 일대들에게서 배우는것을 특점으로 한 당대문화이다. 미드는 이런 문화류형의 변화로써 현대문화의 독특성을 강조하면서 당대문화에서의 “세대차이” 의 산생과 해결방법을 탐색하고있다.
    조기문화학자들은 문화의 진화률을 제기했고 현대의 공능파학자들은 또 문화의 과정률을 제기했다. 현시대는 문화침입의 시대, 문화전파의 시대, 호상화시대, 문화돌변의 시대, 문화대체시대, 그에 수반된 일종 문화의 위축 내지는 퇴화의 시대, 문화해체의 시대라고 개괄할수 있다. 그렇지 않은가? 우리 전통문화는 소외당하고 외래문화가 총애를 받게 되였는데 이는 일종의 진보이면서 일종의 퇴보이기기도 하다. 문화생 태에 심각한 불균등이 생기는 근원은 공리주의에 있는것이다.
    시쎌로는 “지혜의 문화는 곧 철학”이라는 글에서 “지혜문화내용은 인간의 내재세 계를 개조하고 완선화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리상적공민의 소질을 구비하게 하는 과정”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보면 현시대 사람들이 사랑하는것은 문화 자체가 아니라 문화속에의 리용가치이다. 이러한 “문화군”은 소중할것이 없으며 소비에서 소비로, 향락에서 향락으로 그치고말것이다.
    여기서 우리 중국에서 정영문화의 생장점문제가 나선다. 번창하는 대중문화속에 서 우리 민족문화, 정영문화의 새로운 생장점을 찾는것은 현시대 모든 지식인, 문화인들의 시대적사명이다. 그러나 새 시기 많은 문화인재들이 문화진지를 떠나 “경제전선”에서 생존권을 개척하고있다. 그리고 수많은 문화단위들이 생존난으로 상품경제의 물결속에 뛰여들지 않을수 없게 되였다. 력대로 청고하고 숭엄하던 음악단체나 예술단체들이 한때 기업에 “출가”한 문화현상이 기억에 생생할것이다.
    문예지들이 경제난에 헐떡거린다. 전국의 그많은 잡지들이 평균발행부수가 3천부 를 넘지 못한다니 우리 민족문자로 된 문예잡지들의 현황과 운명은 더 말할것도 없다. 누구의 발명창조인지는 몰라도 미명 한번 좋은 “젖떼기(断奶)” 정책은 기실 정부차원의 문화소외이다. 순 문학잡지의 발행부수가 늘어나지 못하는것이 소위 “문학의 본연에로 돌아와 ‘가슴’,‘하신’으로 창작한다는 ‘미녀작가’들의 야비한 짓거리처럼 자아표현을 위해 작품을 쓴다는 상아탑속의 문인들이 쓴 작품의 질탓이라고 한다면, 작가들의 출판난과 매출난은 독자대중의 문화가치관념의 변화탓이라고 한다면, 총체적출판업의 경영난은 누구의 탓이라 해야 할가?”
    인간의 의의와 인간의 문화수요가 모두 물질욕에 귀속된다는 그 자체가 벌써 이 시대의 비극이며  우리 모두의 비애이다. 이 비애를 해결하는 기본고리는 총체상의 정치체제와 경제체제, 법률체제의 혁신문제로부터 입수하는데 있으며 “화페”의 기제 가 더욱 구체적이고 합리한 문화부축정책을 체현하는데 있을것이다.
 
                       2005년 7월  15일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820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820 인생살이 이모저모 2019-02-26 0 4316
819 (잡문) 진실과 허구의 비애 2018-11-26 0 4413
818 (잡문) 인간다운 삶, 비인간적인 죽음 2018-11-23 0 4552
817 (잡문) 땅, 바다, 하늘 그리고… 2018-11-23 0 4578
816 (잡문) 웃기는 참회 2018-11-16 0 3596
815 (잡문) 시와 시인의 아리러니 2018-11-09 0 3509
814 숲속의 대변론 2018-11-09 0 3622
813 그저 미중부족만이 아닐세그려 2018-11-09 0 3483
812 (잡감) 우문현답 2018-10-05 0 3700
811 (잡문) 진리를 평범하게 말해보다 2018-10-05 0 3989
810 (칼럼) 문학사랑 인간사랑 2018-09-30 0 3799
809 (수필) 구름에 실어본 명상 2018-09-28 0 4165
808 (문화칼럼) 문학혼 2018-09-20 0 4099
807 (잡문) 작가의 량지 2018-09-20 0 3927
806 ( 잡문) 작가정신을 기리다 2018-09-20 0 4172
805 ( 칼럼) 왜 기어이 “북한”이고 “주민”이 되냐? 2018-09-20 0 3637
804 (잡감) 숙명인가? 비애로다 2018-09-14 0 3549
803 (잡문) 엉터리들을 엉터리로 론함 2018-09-03 0 4310
802 자기 부정이 기꺼운 일인가? 2018-08-24 0 4597
801 딱해진 우리네 문학 2018-08-18 0 3777
‹처음  이전 1 2 3 4 5 6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