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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언수상록 49))수단의 목적화와 목적의 수단화
2017년 03월 30일 08시 58분  조회:4018  추천:0  작성자: 최균선
                                               수단의 목적화와 목적의 수단화
 
 
                                                                        진 언
           
    사람은 먹기 위해 사는가? 살기 위해 먹는가? 하는 문제는 퍼그나 유치하지만도 조금 돌려서 심각하게 생각하면 곧 목적과 수단이라는 철학범주에 소급되는 문제로 된다. 환언한다면 자아를 중심으로 하는 가치관문제에 이르게 된다는 말이다.
    이처럼 목적과 수단이란 말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이 없겠지만 수단이 어떻게 목적으로 변하는가 하는 문제를 사색해보는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우리는 어떤 일을 도모할 때 예기된 효과를 두루 목적이라 부르고 그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 투입한 전부의 노력을 수단이라 부른다.
    론리상에서는 수단이 목적에 선행한다고 하지만 가치판단의 순서에서는 목적이 수단에 선행한다. 수단은 목적의 존재하에서만 존재리유를 가지기때문이다. 그만큼 수단은 목적의 전개이고 목적은 수단의 론리적결과이다. 수단이 주의, 제도, 규칙, 법률순서, 륜리규범 등에 해당한다면 목적은 인간의 자유, 민주, 안전, 존엄 등 가치 보증과 맞물린다. 바늘 가는데 실이 가듯이 수단에는 방법이란게 따라붙는다.
    원래 목적은 목적이고 수단은 수단이지만 무질서가 질서일지도 모를 만화경같은 혼동시대여서인가 시행과정에서는 부지불식간에 목적과 수단의 계선이 헛갈리게 된다. 무릇 목적에 반영되는것은 주체의지의 지향이며 그것은 수단을 통하여 주체의 지향의 전 과정에 관통된다. 그래서 지자는 무슨 일을 시작할 때 반드시 결과를 예상한다.
    주체는 개체일수도 있고 군체, 사회, 국가일수도 있다. 인간과 동물의 또 하나의 근본적인 구별점은 행위의 목적성인바 목적달성을 위해 천방백계를 다한다. 현시대에 가장 흔하게 볼수 있는 목적과 수단의 혼동은 돈에 관한 문제이다. 돈벌이는 보다 나은 생활을 영위하려는 합목적 수단인데 돈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남을 해치는것도 마다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곧 비리이다. 근검치가의 수단은 절약이지만 도를 넘으면 수전노로 된다. 이처럼 수단과 목적은 변증법적으로 통일되고있다.
    사람은 돈을 벌기위해 사는가? 살기 위해 돈을 버는가? 수단이 목적으로 번지면 그랑데같은 돈자체로 타락하고만다. 우리가 밥해 먹고 잠자고 성을 즐길 장소로서의 집은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그러나 가질수록 더 크고 더 호화롭고 좋은터에 자리잡은 별장까지 가지려하는데 결국 수단이 목적으로 된것이다.
    독일의 고전철학가 칸트는 일찍 인간은 목적이지 수단이 아니라는 유명한 명제를 제출했다. 당시 봉건사회귀족들이 자기를 목적으로 삼고 백성들과 노예를 자기네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도구와 수단으로 삼는데 대한 반발이였다. 하지만 인간은 이 철학명제와는 달리 문명해질수록 스스로를 수단으로 삼아왔다. 육체교역으로 인생을 영위하는 밤골목의 이른바《성복무업자》들이 전형이라 할것이다.
    한 녀자가 한 남자의 안해가 되였을 때 그 남자는 비로소 남편이 되는 목적에 도달한다. 이때 그 녀인도 한 남자의 안해로 됨으로써 안해가 되려는 목적에 도달한다. 결혼이 바로 수단이 된다. 많은 녀인들이 가정과 아이의 장래를 위해 소위 위장결혼극까지 놀면서 한국에 나갔는데 후에 마음이 변하여 남편도 아이도 돌보고싶은 마음이 사라지고 한국생활에 애착을 가졌다면 목적이 수단으로 변한것이 된다.
   수단의 목적화는 거창한 문제로 번지기도 한다. 루쏘의 설법대로 하면 사람들은 천연적인 자유를 희생한 대가로 하나의 공동체를 결성하고 국가와 군주라는 관리자에 의해 충분히 자유를 향수하기를 바랐는데 결과적으로는 수단으로 삼으려했던 관리자 가 자기의 목적을 공동체의 목적위에 올려놓았다. 이 론리에 력사유심주의 모자를 씌울수도 있으나 이런 정황은 유사이래 줄곧 존재해온것은 사실이다.
    수단이 목적으로 변하고 심지어 목적이 해제되는것을 철학상에서 일종의 “이화” 라고 한다. 맑스는 이화가 실제상에서는 인간과 인간지간의 이화라고 천명했다. 요긴 한것은 이런 이화가 현대시대에 극에 이르렀다는것이다. 루쏘로부터 시작되였다는 병태적사회현상과 인간의 정신질환은 많은 세월의 언덕을 넘어서 의난잡증이 되였다.
    통찰력이 뛰여난 모든 사상가들은 일찍 수단과 목적이 통일되고 다시 분렬되는것을 보아냈지만 수단이 최종적으로 목적을 뒤엎어버린 론리적과정이 무엇인지를 천명한 사람은 없었다. 중요한것은 목적의 수단화이다. 이런 목적은 왕왕 아주 숭고하고 매우 신성한 리상이였지면 결국 실현되지 않았을뿐만아니라 도리어 전제정치를 수호하는 수단이 되고말았다.
    례컨대 태평천국을 이룬다던 홍수전은 처음엔《밥이 있으면 다같이 먹고 옷이 있 으면 다같이 입고 돈이 있으면 같이 쓰고 밭이 있으면 다 함께 농사지어 먹고 어디 에 공평하지 않은 곳이 없고 어디에 배부르고 따뜻하지 않은 곳이 없다》는 리상을 내걸었다. 하여 아주 매혹적인《천묘제도》들 공포하여 장병들이 그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목숨을 내걸고 혈전하였다.
    그러나 소위 령수들은 벌써부터 황제로 칭하고 제왕으로 칭하기에 급급하다가 마침내 만청왕조보다 더 엄연한 등급제도를 세웠다. 목적화의 수단이 원래의 리상을 구중천에 팽겨치고 장병들의 피에 젖은 승리의 과실을 수단화한것이다. 숭고하던 목적이 비렬한 수단으로 타락했다고할가. 아니, 자초에 목적을 수단으로 삼은 음흉한 사기극이였는지 누가 알랴,
    물론 수단의 목적화와 목적의 수단화는 때론 물에 술을 탄것처러 분별하기 어렵지만 기실 어느 위치에서 어떤 시각으로 보는가에 달린 일이다. 정계의 부패도 기실 수단의 목적화의 결과물이다. 인간은 누구나 잘 살려는것인데 그를 위한 수단인 소유에 초점이 맞추어져있어 목적이 불투명해지고 결국은 목적을 잊어버린다. 수단은 어디까지나 목적을 위한것이다. 목적이 옳다면 수단도 자동적으로 정당한것이 되여야 하는데 현실에서는 그냥 비틀어지고있다.
    원래 목적 자체인 인간으로서 자신을 수단으로 삼는 인생은 슬픈 인생이 아닐수 없다. 그렇지 않은가? 물론 사회라는 이 거대한 기계에서 하나의 나사못 노릇도 못하고 생명도 삶도 주재할수 없는 민초들은 수단일수밖에 없는 숙명을 타고난것은 사실이지만 자기절로 자기를 수단이기를 바란다면 더구나 슬픈 숙명이 아닐수 없다. 한 나라의 위정자도 수단과 목적의 관계를 혼동한다면 혼군이 될수밖에 없다.
    인간은 바로 여기에서 파멸한다. 인간은 어떤 사나운 동물보다도 야만스럽게 스스로를 타락의 길로 이끌어오면서 괘락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고 인생을 쾌락을 얻는 수단으로 삼았다. 무지경의 향락욕은 모든 인성악의 온상으로 되였다. 례컨대 대자연이 인류에게 하사한 항구한 선물도 악의 보금자리가 됨으로써 인류는 스스로가 자멸의 낭떠러지에 선 우둔한 동물이 되여졌던것이다.
    경우에 따라 목적보다 수단을 우선시해야 살아남을수 있다. 그러나 목적달성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것은 인간의 법칙이 아니다. 힘있는 자만이 살아남는것은 동물세계의 법칙이다. 인간도 동물이긴해도 리성동물이라는데서 짐승과 구별 된다. 인간이 스스로 용서못받을 잘못은 목적을 수단으로, 수단을 목적으로 삼았기에 그런 실수는 끝내야 하는 곳에서 시작하고 시작해야 할 곳에서 끝을 내도록 오도하였고 지금도 진행형이다. 그리고 그 오도의 끝이 어딘지 우리는 알지 못하고……

                                                      2009년 6월 15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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