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http://www.zoglo.net/blog/cuijunshan 블로그홈 | 로그인
<< 11월 2024 >>
     12
3456789
10111213141516
17181920212223
24252627282930

방문자

조글로카테고리 :

나의카테고리 : 칼럼/단상/수필/기행

(진언수상록 61)성명과 운명
2017년 08월 04일 18시 10분  조회:2667  추천:0  작성자: 최균선
                                                                성명과 운명
 
                                                                    진 언
 
    대저 이름성명에 성(姓)은 가족계통의 부호이고 이름 (名)은 개인을 대표하는 특정된 부호로서 그것은 한 사람과 다른 사회성원들과 구별하는 첫째가는 표지로 된다. 그러나 자초에는 사람들이 저저 이름이란것을 모르고 진화하였다. 사회가 이뤄지면서 서로 교제할 때 근근히 그 사람의 모습과 목소리의 특징으로 서로를 구별하였는데 사람들의 마음속에 무성부호가 새겨져 있은것이라고 할수 있다.
   후에 사회활동범위가 확대되고 교제가 빈번하게 되였는데 대방의 형체와 목소리로 인지하는 이런 묵기(默记)방법으로는 역부족이였다. 더우기 해가져서 어둑어둑해진 때에 만나면 서로 대방의 얼굴을 알아볼수 없게 되였다. 하여 입으로 자신을 밝혀야 했으므로 어떤 부호로 자신을 표명하기에 이르렀다. 그로부터 이름(名)은 “저녁석(夕)”밑에 입구(口)가 붙어서 만들어진 글자라고 풀이하고있다.
    원래 우리민족은 홍익인간(弘益人間)의 리념과 인내천(人乃天)사상으로 인하여 인간을 최고의 가치로 보았기때문에 성명자(姓名字)를 인간의 존엄과 가치의 상징으로 여겼다. 하여 자손에게 집안의 상징인 성씨와 그 안에서의 서렬인 항렬자와 자손의 장래를 념원하는 부모의 마음을 담아 정성으로 선정한 한자를 조합하여 이름을 지어주고 과거, 현재, 미래를 특정하려 하였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 이름을 잘짓느라고 하다가 도리어 화를 부르는 경우도 있다. 오래전 관내에서 있은 일이다. 성이 학(郝)씨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련속 딸 다섯을 낳았다. 첫딸이 태여날 때가 바로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되여서 학애중 (郝爱 中)이라 짓고 그아래는 차례로 학애화(郝爱华),학애인(郝爱人), 학애민(郝爱民), 학애국(郝爱国)이라 지었는데 셋째딸 학애인이 요절하다보니 딸넷이 남았다.
    그런데 문화대혁명이 터지자 어느 반란파동지가 총명이 폭발해서 네 딸의 이름을 쭈욱 이어봤는데 일호차착도 없는 “중화민국(中华民国)”이 되였다. 이건 그저 일이 아니였다. 이렇게 이름지은건 장가왕조를 복벽하려는 꿍꿍이속이 틀림없고, 이런 숨은 현행반혁명분자를 그대로 놔둘수가 없었다. 결국 학씨는 투쟁받다가 혁명열의 충천한 홍위병들의 기탄없는 몽둥이찜질에 비명횡사하고 말았다.
    또 다른 곳에 성씨가 백가라는 한 농민이 있었는데 대약진년대에 낳은 아들에게 백약진(白跃进)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출생신고를 하고 호구를 올릴때까지도 파 출소에서 무슨 꼬투리를 잡지 않았다. 그런데 일년후 건덕지가 없어서 잡아내지 못하던 반우파운동이 벌어지면서 화가 눈섭에서 떨어졌다. (白跃进) 이라니? 이건 필시 “세폭의 붉은기”를 공격하고 대약진을 반대한 우경기회주의두목의 숨은 졸개가 아닌가? 그래서 느끼하도록 비판투쟁을 받고 이름을 고쳐서야 겨우 해결되였다.
    이름이 그 사람의 표상이긴 하지만 이름대로 그 사람의 운명이 좌우지되고 인생이 만사대길하거나 길흉화복이 무상한가를 믿고 안믿고는 각자의 자유이다. 이름 한번 잘 가진 악한도 있고 망나니도 있고 패륜아도 있으니 말이다. 공자의“지식을 교묘히 다듬어서 세상을 혼란스럽게 하는것은 도둑놈보다 더 나쁘다”는 말을 가져다 붙이면 어방사할지 모르겠으나 이름자와 그 사람의 운명이 정비례되는게 아니다.
    1920년대 조선작가 전영택의 단편소설 “화수분”에 주인공의 이름은 화수분이고 그의 맏형은 장자, 차형은 거부였다. 화수분(貨水盆)은 안에다 온갖 물건을 넣어두면 새끼를 쳐서 끝없이 나오는 보물단지라는 뜻으로 “재물이 자꾸 생겨서 아무리 써도 줄지 않음을 이르는 말이다. “화수분을 얻었다.”는 속담도 있는데 그렇게 좋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남의 행랑살이를 하다가 나중에 길가 소나무밑에서 안해와 서로 껴안고 참혹하게 얼어죽었다. 이는 좋고좋은 이름이 엮은 아이러니인가?
    한자속에는 글자마다 고유한 령(灵)이 깃들어 있는데 이를 부르고 쓰는 과정에서 령이 동(动)하여 우리 인간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친다고 여긴다. 이런 사실이 성명학이 있게 된 연유가 되고 성명학은 후천적인 운명에 영향을 준다는 리유로 된다. 그런데 장파한뒤 갓쓰기같이 뒤늦게 남의 이름을 풀이하며 운세를 론하는데 절대적인양 하는것은 그저 별로이다. 지난해 말 호상명(胡相銘)이라는 중국의 역술인인지 하는 자가 이름자를 가지고 길흉을 점치고 횡설수설했는데 조금도 고명한데 없었다.
    호씨는 "삼국지의 류비(刘备)는 “갖출 비(备)”로서 삼국통일의 대업을 준비만하다 말았으며 류선(刘禅)은 자리를 양보(让)한다는 의미로 위나라에 항복하고 나라를 넘겨주었다는식으로 해석하고있다. 그에 앞서 청나라 왕인지(王引之)라는 학자도 항우의 이름을“籍读如鹊,古音籍与鹊近,故鹊通作籍…楚项籍字羽,籍亦鹊之假借。鹊,鸟名也故字羽)라고 해석했다. 그래서 개세의 영웅이 류방에게 패한것이라고 말하려 했는지. 기실 이름때문이 아니라 성격에서 비롯된것이라는게 정설이다.
   호씨의 추리대로라면 호(胡)씨에 상(相)은 서로 상, 재상이라는 상이고 명(铭)은 새길 명으로서 됴코됴흔 이름이라 재상의 운명으로 각인되였다는 뜻인가? 칼이 제자루를 깎지 못한다고 성은 호이나 상명이라 이름짓고 큰 기대를 걸었겠는데 좋게 말해서 역술가이지만 토속적으로 왜 점쟁이밖에 못되였는가? 혹시 아이를 보고 이름을 지으라했는데 아이가 그닥지 않았는가? 그야말로 웃기는 자가당착이 아닐수 없다.
    악명이 자자한 A극전범인 도조 히데끼(东条英机)의 이름에는 일세영달하다가 교형당할 운명이라도 담고있었던가? 이름이 곧 그 사람이지만 이름이 곧 그의 절대운명일수는 없다. 리자성(李自成),홍수전(洪秀全)은 이름자가 나빠서 일패도지하였는가? 황소(黄巢)에서 “소”는 보금자리, 혹은 큰 피리라는 뜻인데 봉기를 일으켜 중원을 휩쓸며 도처에서 살인방화하고 무고한 백성 30여만을 잡아먹는 인간만행을 저지를 이름자였단말인가? 대력사가 사마천 (司马迁)은 이름자가 옮길천자여서 붓으로 천백년간의 력사사실을 종이위에 옮기는 일밖에 못했다고 말할수 있는가?
    물론 사람들은 자기의 이름으로 자기의 뜻과 개성특징을 표달하고 싶어한다. 력사상 수많은 명인들의 이름은 다 래력이 있는것은 사실이다. 례컨대 장개석의 이름은《역경(易经)》“64卦中的“豫”卦,其卦辞为“利建侯行师”인데 건국봉후와 행군작전에 리롭다(有利于建国封侯和行军作战)는 길한 의미를 가진단다. 다른 학자들은(心志操 守,坚如磐石,不终日沉迷于享乐,是最吉利的.)라고 해석한다. 그런데 이름이 좋아서  “패전장수”로 전전긍긍하다가 섬도로 줄행랑을 놓는 업적을 이루었을가?
    무슨 궁금증이 발작해서 그랬는지 아니면 어떤 음모가들의 사주를 받고 그랬는지 오지랖넓게 국계를 넘어 이름풀이하며 횡설수설한 호씨나 구천현녀의 천서나 얻은듯 덩더쿵 북치고 장구치며 대서특필한것이나 다 웃기는 작태들이다. 놀부도 아닌 현대인으로 남이 잘못되기만 바라고 산다면 제일로 불쌍한 넋들이 아니랴, 농촌말로 늘어나지 못할 “느지”를 하는것이라고 단정해야 할가? 점술이 시간이란 판관에게 뒤집혀져 당나발이 될때는 닭쫓던 개 울쳐다보듯 할가? 아니면 제혀를 꽉 깨물가?
    사람의 앞날은 한치앞도 내다볼수 없다. 모든것이 변하는 마당에서 절대적이란게 없는데 조석에 따른 풍운조화를 누가 예측할손가? 성명학이고 점성학이고 세상에서 보편적진리는 “두고봐야지” 이다. 말도 두었다가 할 때가 있다. 아니면 “예의 주시” 하던가, 말단집에 장이 쓰다고 말이 선행하면 언제든 불측한 법이다. 결국 점이 맞지 않아도 일만팔천리나 떨어졌으니 이제 무슨 점괘를 고안해낼수 있을랑가?

                                                              2014년 1월 3일 초고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820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820 인생살이 이모저모 2019-02-26 0 4316
819 (잡문) 진실과 허구의 비애 2018-11-26 0 4413
818 (잡문) 인간다운 삶, 비인간적인 죽음 2018-11-23 0 4552
817 (잡문) 땅, 바다, 하늘 그리고… 2018-11-23 0 4572
816 (잡문) 웃기는 참회 2018-11-16 0 3596
815 (잡문) 시와 시인의 아리러니 2018-11-09 0 3496
814 숲속의 대변론 2018-11-09 0 3612
813 그저 미중부족만이 아닐세그려 2018-11-09 0 3473
812 (잡감) 우문현답 2018-10-05 0 3700
811 (잡문) 진리를 평범하게 말해보다 2018-10-05 0 3980
810 (칼럼) 문학사랑 인간사랑 2018-09-30 0 3790
809 (수필) 구름에 실어본 명상 2018-09-28 0 4158
808 (문화칼럼) 문학혼 2018-09-20 0 4099
807 (잡문) 작가의 량지 2018-09-20 0 3917
806 ( 잡문) 작가정신을 기리다 2018-09-20 0 4163
805 ( 칼럼) 왜 기어이 “북한”이고 “주민”이 되냐? 2018-09-20 0 3628
804 (잡감) 숙명인가? 비애로다 2018-09-14 0 3541
803 (잡문) 엉터리들을 엉터리로 론함 2018-09-03 0 4310
802 자기 부정이 기꺼운 일인가? 2018-08-24 0 4595
801 딱해진 우리네 문학 2018-08-18 0 3768
‹처음  이전 1 2 3 4 5 6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