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http://www.zoglo.net/blog/cuijunshan 블로그홈 | 로그인
<< 11월 2024 >>
     12
3456789
10111213141516
17181920212223
24252627282930

방문자

조글로카테고리 :

나의카테고리 : 칼럼/단상/수필/기행

진언수상록 88) 작가를 말하다
2018년 07월 21일 04시 21분  조회:2189  추천:1  작성자: 최균선
                                                        작가를 말하다
                                    
                                                               진 언
 
    작가란 무어냐? 문헌재료에 의하면 오늘날 영광스러운 호칭으로 되여있는 작가란 자초에는 가무를 관리하는 치가(治家)의 의미였다. 이 말이 서책에 수록된 첫사례는 《삼국지,양희전(三国志·杨戏传)》인데“请为明公作家譬之”《晋书·食货志,“(汉)桓帝不能作家,曾无私蓄。”이였다. 여기서 3국시기로부터 진(晋) 때까지는 “작가”란 “치가”를 가리키였다는것을 설명하고있다. 한조의 항제는 등극하기 이전까지 청빈한 생활을 하였기에 치가에 재산을 모을줄 잘 모르다보니 축재하지 못했다고 한다.
   “작가”란 개념이 지금의 뜻으로 쓰인것은 당조때부터였다. 북송의 리방찬 (李防 撰)의《태평광기(太平广记)》에“唐宰相王好与人作碑志,有送润毫(酬金)者,误叩左丞王维门,维曰:‘大作家在那边。’”라고 기재되여있다. 바로 당송시기에 문학예술상 에서 성과가 탁월한 자를“작가”라고 호칭한 유래이다. 이는 성당 (盛唐时) 시기에 선 출해 낸 “작가”들로는 섬서(秦) 산서(晋)인들이 많았다는 설명이다.
    작가라는 이 단어가 연변된 과정을 본다면 작가와“작자(作者)”의 구별점은 이 룩한 성취와 가지고 있는 자력(资历)에서 비롯된것이다. 무릇 저작이 있으면 모두 “작자”라고 칭할수 있으나 꼭 작가인것은 아니다. 작가는 이미 일정하게 명망을 가진 작자로서 문학계에서 확실히 공인해야 한다. 
    창작하는 전문 분야에 따라 구분하는 소설가, 산문가, 시인, 극작가, 문학리론가, 문학평론가 등을 통털어 작가라고 부른다. 보다 높은 차원에서 문학가라는 호칭도 있는데 상술한 쟝르의 작품들을 발표하고 일정한 수량과 가치있는 작품집을 발표하고 일정하게 영향력이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개념의 뜻풀이는 이만 접고, 문학적으로, 상징적으로 말할 때 작가란 과연 무슨 사람일가? 응당 무엇을 해야 하는가? 작가는 현실을 꿈처럼 묘사하여 사람들더러 읽게 하는 사람이다. 여기서“현실”이란 곧 작가가 작품에서 반영하려는 취지이다. 여기서“꿈”이란 작가의 문필의 결과 즉 작품이 가지는 미학가치이다.
     작가는 무엇때문에 한사코 창작에 열중하는가? 두말할것없이 사람들, 특히 지성적인 독자들에게 읽혀지게 하기 위해서다. 진정한 작가는 늘 독자의 마음을 앞세우고 창작의 길을 떠나야 한다. 물론 작자의 마음은 하나로 융합되여야 할 전제를 가진다. 비유하건대 찢어진 두 마음이 부딪쳤을 때 량자가 하나로 엉켜서 완미한 마음으로 될지 우리는 모른다. 다만 명백한것은 작가의 마음은 진지해야 한다는것이다.
     흔히 어떤 종류의 글이든 글을 써내면 문인이라고 할수는 있되 엄밀하게 말해 그 모두를 작가라고 부를수는 없다. 써낸 책마다 베스트셀러가 된다면 다행이지만 죽고나서야 명성을 떨치는 작가도 있다. 례하여 카프카는 죽을때까지 보험국에서 일 했지만 작가소리는 재대로 듣지 못했다. 죽고나서 20년이 지난 후에야 그의 글의 발견되여 대문호소리를 듣게 되였다.
    에밀리 디킨슨은 또 어떤가? 그녀가 죽은후 서랍장에 차곡차곡 챙겨져있던 약 2천여수의 시가 발견되기 전까지는. 그녀를 시인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중요한것은 남이 알아주거나 말거나 자아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꾸준히 글을 쓰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작가라는것이다. 마치 로동벌이 꿀을 빚는 일과 같다고할가,
    운이 좋아 당대에 작가로서 대접을 받을수도 있다. 반대로 죽을때까지 아무도 자신의 글을 읽지 않을지 모른다. 만약 그런것에 신경을 앞세우며 글을 쓰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이미 작가이기를 포기한 사람이다. 엄밀하게 말해 그런 사람은 작가가 아니라 타산에 밝은 글쟁이에 불과하다고 해야 할것이다. 
    오늘날 문학이 열광적이던 독자들에게서 소외당하여 침체상태에 빠진것은 치렬한 작가정신의 부재에서 기인된것이다. 난해할수록 좋은 시라고 주장하며 자기네끼리 북 치고 장구치니 독자들에게서 소외당하지 않을리 없다. 그리하여 문학의 호황기는 력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거니와 이제 회생하기도 망연하게 되였다.
    사람들은 흔히 “그렇게 많은 작품을 써내다니 참 글재간이 좋으시네요”라고 한다. 하지만 그건 피상적으로 알고 하는 말이다. 창조적인 글을 단순히 문장을 잘 엮는 재간으로 쓸수 있을가? 하긴 기준도 명백하지 않은 글재간도 있어야 하지만 단순히 “글재간”만으로는 역부족이다. 그것이 시이든 소설이든 수필이든 문학작품은 철두철 미 인간사상의 예술화활동, 생명연소의 산물이기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인생은 초행길이다. 갈래갈래 인생길에 어떤이는 작가의 길을 선택한 다. 인생길도 기구하지만 작가의 길은 더구나 파란만장할수밖에 없다. 작가의 인생길은 남다른 바탕색을 가지게 된다. 그 바탕색의 기본색은 창작이다. 인생고에서 얻은 풍부한 체험이 창작의 밑거름이 된다.
    작가의 인생려정과 수련은 짓밟힐수 없다. 불행이 작가를 낳고 분노가 시인은 낳는다는 말이 널리 인용되고 있듯이 처음부터 복속에서 작가로 성장한 사람보다 고난 의 려정을 걸으며 작가로 성장한 사람들이 더 많다. 례하면 쎄르반떼스나 스탕달, 고리끼같은 대문호들의 작가의 길은 숙명인듯 다 인생의 저곡에서 시작되였다.
    진정한 작가는 아는것이 많아야 할뿐더러 보통사람들보다 독특한 작가적정신이 수립되여 있어야 한다. 작가정신이란 단순개념이 아니라 범주이다. 말하자면 작가정신에 포괄된 내함이 다종다양하고 다층차적이라는것이다. 작가정신은 작가의 본령이면서도 작가적자질의 핵심이다. 조금 추상적인 표현일지 모르나 문학을 목숨처럼 여기는 치렬한 작가적태도와 작가의식, 그리고 사명감과 자긍심을 가져야 한다.
    작가, 시인이 왜 그런것들에 신경을 써야 하느냐는것이 이들의 공통된 가치판이 다. 그런 세속적인 사상에서 가슴을 울리고 납함이 나올수 없다. 한부의 소설에서 주요한것은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아니라 소설속에 스며있는 작가의 사상이다. 여기서 “사상”이란 철학서에 론술하는 사상이 아니라 생활에 대한 작가의 남다른 감수와 사고와 견해이다.
    작가는 독자에게 “이것은 무엇인가?” 하는 물음을 던져준다. 그러면서 문학은 생명의 직각이며 생명과 생활이 마주쳤을 때 터져나오는 개탄이라고 자답하기도 한다. 보통사람의 탄식은 한숨을 토하는것에 그치지만 작가의 탄식은 사상을 연소키는 생명의 소모이기도 하다. 작가는 자아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창작에 몰입하지만 까다로운 독자들과의 대화를 준비해야 하기에 창작에 열중할 때 고독을 모른다.
    만약 매 한편의 작품이 급공근리에 매달린것이면 일컬어 글재주로 만든것이여서 너무 심심해 책장을 뒤적이는 사람들의 소일거리가 되여질뿐이다. 만약 조류와 경향에 영합하여 작가정신이 굴절될 때 순수 문학을 위한 문학인이 된다. 작가의 심령은 시종일관 거짓되지 않아야 한다.
    작가가 창작 이외의 일에 너무 관심을 쏟으면 기본품성을 잃고만다. 서구의 묵은 문학사조들을 새조류마냥 받들어 모시고 가급적으로 완벽하게 닮아보려 하거나 문인상경의 구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패거리를 뭇고 명리(名利)를 앞세우는 작가들, 현실과 독자들의 취향에 관심이 없는 작가들은 필경 랭담한 독자들만 만나게 될것이다.
                               
                                                2015년 7월 30일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820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780 (진언수상록 76) 그럭저럭 살다의 묘미 2018-04-18 0 2276
779 고전적 문학언어의 묘미 2018-04-12 0 2444
778 작가에게 도화원은 없다 2018-04-08 0 2627
777 인권타령의 후렴구 2018-04-05 1 2186
776 가장 아름다운 단어공부 2018-03-31 0 2505
775 지기를 떠나보내며 2018-03-28 1 2997
774 (중편소설) 동토대의 인연 2018-03-27 0 2212
773 치욕의 력사 반복되는도다? 2018-03-19 0 2497
772 (칼럼) 민족화해의 봄은 오는가? 2018-03-10 1 2351
771 “3.1절” 99주년 기념일 소고 2018-03-06 0 2212
770 (칼럼) 기똥찬 “색문화” 2018-03-02 0 3398
769 황혼소곡 2 2018-02-28 0 2457
768 (칼럼) 띄여쓰기와 읽기, 말하기에서의 호흡관계 2018-02-20 0 2642
767 (잡감) 이래서 아모것도 안된다 아잉겨? 2018-02-14 0 4272
766 (칼럼) 용인자우 (庸人自擾)라 2018-02-10 0 2513
765 헐, 바닥이 드러나네 2018-02-07 0 2417
764 (칼럼) 헉! 호사다마로군!!! 2018-01-27 2 3245
763 (잡문) 이불안에 활개짓 2018-01-23 0 2818
762 (사회칼럼) 병적인 콤플렉스 2018-01-05 1 2637
761 (칼럼) 정유년 묵시록 2018-01-01 0 2667
‹처음  이전 1 2 3 4 5 6 7 8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