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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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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명 벗은 옹정황제
2016년 04월 03일 16시 01분  조회:6931  추천:2  작성자: 넉두리
 
루명 벗은 옹정황제


 

청나라 4대 강희황제부터 아들 옹정황제, 손자 건륭황제에 이르는 134년은 중국력사의 전성기이다. 지금 중국의 엄청난 땅덩어리는 이때 정해졌다. 6000만명이던 인구도 이 기간에 2억명으로 늘었다. 강희황제와 건륭황제는 력사상 가장 뛰여난 군주”라는 명예도 함께 누렸다. 그러나 옹정황제에게는 유독 “잔인한 독재자”의 형상이 따라다녔다.

강희황제는 아들이 서른다섯이나 되였다. 강희황제가 일찌감치 둘째아들을 황태자로 지명하자 신하들이 아들에게 줄을 서는 일이 벌어졌다. 그는 황태자를 페위했다. 그러자 황자(皇子)들간에 후계자리를 놓고 다툼이 뜨거웠다. 서로 헐뜯고 고자질했다. 1722년에 강희황제가 죽게 되자 아들들이 모였다. 대신(大臣) 롱고도가 방에 들어가 황제의 뜻을 받아왔다. 계승자는 넷째 아들, 후날의 옹정황제였다.
옹정황제는 몸을 돌보지 않고 일했지만 후계지명을 둘러싼 음모설에 시달렸다. 음모설은 이랬다.
“강희황제는 원래 열넷째아들에게 제위를 물려준다는 뜻으로 롱고도의 손바닥에 “十四(십사)”라고 썼다. 옹정황제에게 매수된 롱고도가 방을 나오면서 “十四”에서 “十”을 혀로 핥아 지우고 “四”만 남겼다.”

강희황제가 “열넷째 아들에게 넘겨준다(传位十四皇子)”고 종이에 써둔것을 옹정황제가 훔쳐서 위조했다는 소문도 있었다. “十四”의 “十”을 “~에게”를 뜻하는 어조사 于(우)로 바꿔 “넷째아들에게 물려준다(传位于四皇子)”가 되게 했다는 얘기이다.

옹정황제는 소문을 퍼뜨린 이복형제들을 “개”, “돼지”라고 부르고 감옥에 가둬 죽게 했다. 그는 죽을 때까지 황태자를 발표하지 않았다. 후계자이름을 적은 종이를 황궁안의 “정대광명(正大光明)”이라고 쓰인 액자뒤에 두고 “내가 죽으면 열어보라”고 했다. 그러고는 “한번 후계자로 마음에 뒀더라도 잘못하면 언제든 바꿀수 있다”고 했다. 그랬더니 황자들은 아버지 마음에 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황제가 되기 위한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옹정황제식의 황위세습제도는 청나라가 끝날 때까지 계속되였다.

최근에 료녕성에서 옹정황제의 “황위찬탈”루명을 벗겨줄 강희황제의 유서가 발견됐다고 한다. 유서에는 “넷째아들은 인품이 남다르고 생각이 깊어 대통(大統)을 이을 만하다”고 되여있다. 유서는 만주어와 몽골어로도 씌여있어 한자 몇글자로 고치는것으로는 내용을 바꾸기 어렵게 되여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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