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천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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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질구질 했던 모내기철
2013년 08월 22일 14시 15분  조회:1240  추천:0  작성자: 홍천룡
구질구질 했던 모내기철

홍천룡

요즘 참 날씨가 더럽다. 5월중순부터 잡아비트는 날씨는 내내 6월중순까지 찌뿌둥해져있다. 하늘이 설익은 시루떡을 먹었을가! 통 기분이 돌아서질 않는다. 그 날씨때문에 멋을 피우고 싶은 아가씨들의 허벅지자랑이 칙— 스톱되는 상황이다. 날씨 좋은 날이면 달랑 들릴가 말가 하는 미니스커트 아래로 떡국대처럼 길고 새뽀얗게 부어뺀듯한 젊은 녀자들의 긴 다리가 또각거리는 하이힐에 반주되여 거리에 절주감을 부여시킨다. 참, 보기만 해도 시원해지던데… 요즘은 요망한 날씨때문에 거리에 나서도 움츠러만 드는 기분이다. 화창한 봄기운이나 초여름의 싱싱함이 구겨진다. 어쩐지 모내기철이면 요렇게 날씨가 변덕스러워질가? 모내기철 내내 구질구질해지는 날씨인데도 누구 하나 모내기에 대해 근심걱정하는 사람이 없다. 하긴 모내기철을 모르고 세월을 보내는 사람들이 대다수이니깐. 몰라도 배를 곯는 법이 없고 그 누구에게 죄송스러운 느낌도 없다. 풍년이 들었다 해서 더 얻어먹는다는 즐거움도 없어졌고 흉년이 들었다 해서 배를 곯는 고통도 없어진 세월이다. 농사를 짓는 농부들 또한 느긋한 심사다.

누구의 방조도 바라지 않고 누구의 동정도 바라지 않는다. 한적한 분위기에 부부간, 또는 부자간, 좀 손이 딸리면 친척친구들, 일손을 돕는다기보다는 모여서 즐거움을 나누는 분위기다. 요즘엔 그런 모임도 잘 안돼여 품앗이두레 비슷한 삯군쓰기가 흥행되고 있다. 사람도 삯으로 쓰고 기계도 삯으로 쓰고 운수판매도 삯으로 리용한다. 쌍방에 다 리익이 되고 일이 빨리 끝나고 뒤끝이 깨끗하다. 농촌에서도 이제는 모든 일에 돈이 통한다. 쌀독에서 인심이 나던 농경시대와는 다르게 자본시대의 특징인 자본이 서서히 돌아간다. 경작지가 점차 소수 경영인에게 집중되면서 우리의 농촌도 점차 기계화작업에 자본화운영이 시작되고있는 추세를 맞이하고있다. 아직 사회주의공유제라는 큰 울타리에 더 기대여 보고싶은 심정이여서인지 좀 어설퍼지는 감정을 금할수가 없다. 요즘 날씨처럼…

구름이 낮게 드리우고 몸이 오싹 떨리게 바람이 소슬해진 날씨에는 의례 속을 덥혀주는 술생각부터 난다. 술 한잔 들어가면 자연히 옛날옛적이 추억속에서 그리워진다. 그제날 공유제의 말단 형체인 생사대에서 모내기철이 닥쳐오면 한 보름쯤은 내내 전투적인 분위기에 휩싸인다. 푸름한 새벽부터 논물관리원이 하루의 모내기를 위해 물도랑을 점검하고 논고를 풀어놓는다. 그러면 써레군들이 모판을 공구고 이어 모내기대군이 출동하고 펄럭이는 기발을 따라 경색도 벌어진다. 비가 구질구질 내리는 날에도 하얀 비닐박막쪼각으로 몸을 무장하고 벼모꽂기가 찰랑찰랑 열을 올린다. 찬비속에서 찬기운을 이겨내는 로동의 즐거움을 맛보며 푸른 주단을 촘촘히 엮어가는 보람찬 화면작성에 풍작을 기대해 보는 희열도 느껴본다. 벼모나르는 총각의 벼모단뿌리기에 어느 처녀의 고운 얼굴이 흙탕물로 얼룩지면 논판은 웃음바다로 번지여진다. 가식없이 통쾌하게 웃어대며 함박꽃 피우던 그 얼굴들…그렇게 정다울수가 없다. 모내기철 내내 음침한 날씨에 랭랭한 랭기가 감돌아도 논판에서 수시로 터지는 폭소에 웃음꽃은 매일과 같이 그칠새 없었다. 더구나 모내기대회전이 승리적으로 끝나게 되는 총결만회는 내내 행복감속에서 기다려진다. 뉘집 돼지를 엎었던간에 그 고기맛이 그렇게 고소할수가 없었다. 볶음료리도 아니고 그저 장국탕에 훌훌 삶아내고 대충 썩뚝썩뚝 저며낸 그 고기가… 그런 분위기, 그런 맛을 지금 다시 음미해볼 수가 있을가!

농사군에게는 하늘이 괘씸한 요술쟁이다. 모내기철이 지나가면 하늘은 기다렸다는듯이 구름을 말끔히 밀어가고 맑은 모습에 해님을 띄워 무더위를 몰아온다. 그러면 또 호미를 얻어쥐고 콩밭기음이나 조이밭기음에 나서 얼굴을 까맣게 태워야 한다. 해살이 쫙 펴지면 논판의 벼모며 언덕밭의 강냉이며 길가의 풀포기며 모든 생장물이 소리치며 우썩우썩 자라면서 싱싱함을 뽐낸다. 아무튼 구름이 꽉 낀 음침한 날씨보다 찬란한 태양이 빛 뿌리는 맑은 날씨가 더 약동적인것 같다. 헌데 그 약동적인 무더위속에서 행복의 웃음꽃이 잘 피여나지 못하고 즐거운 웃음소리가 잘 울려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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