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천룡
http://www.zoglo.net/blog/hongtianlong 블로그홈 | 로그인
<< 11월 2024 >>
     12
3456789
10111213141516
17181920212223
24252627282930

방문자

나의카테고리 : 칼럼/단상/수필/기행

호박골의 떡호박
2009년 05월 08일 09시 51분  조회:1223  추천:55  작성자: 홍천룡

1

 

호박골은 예나제나 경치 하나만은 사람들의 눈뿌리를 뽑아줄 지경이다. 랑떠러지기 절벽이 얼음층처럼 줄무늬졌는가 하면 늬연한 비탈은 주단처럼 한쪽으로 비스듬히 펼쳐져있다. 봄이면 붉은 진달래꽃과 하얀 살구꽃이 울긋불긋하고 여름이면 싱싱한 곡식자람새가 파랗게 물들고 가을이면 누런 황금으로 주름잡힌다. 날카로운 해빛과 부드러운 달빛에 변색하며 희롱하는 카멜레온이라 할가!

그가운데로 내봉하가 산굽이를 따라 굽이쳐 흘러내린다. 남산꼭대기에 올라서서 멀찌감치 내려다 보면 뱀새끼가 꼬불딱거리는것 같고 산자락으로 내려서서 가까이에서 보면 미풍에 흐느적거리는 푸른 비단 같다. 고기새끼가 꼬리치는 고장이라 근간에 와서는 낚시군들 걸음이 잦아졌다. 신작로가 오불꼬불 늘어져 다니기 편리해졌고 그보다도 오염없는 물에 고기가 생신하다고 찾아든다.

경치 좋고 공기 좋고 물이 좋아서인지 종덕이는 애비없이도 둥글둥글하게 잘 자랐다. 어릴 때에는 동네 개구쟁이들의 놀림감이 되였고 학교시절에는 남자애들이 걷어차는 “축구공”이요 녀자애들이 화풀이 할수 있는 “배구공”이였다. 학교문을 나와서 몇년간 농사를 지으면서 그는 다시 동네사람들의 말밥에 “밑반찬거리”가 되여버렸다.

“너 이자식, 종덕이 사촌이 되고싶냐? 늘 머절스럽게만 노니?”

“야, 뒤마을 ‘풍덩개과부’라도 좀 채라. 종덕이처럼 녀자맛도 못 보구 늙자구?”

“이놈아, 좀 발라맞출줄도 알고 똑똑하게 놀아라. 한뉘 종덕이처럼 출세도 못해보자구 그러느냐?”

지난 세기 약진년대에 호박골의 박씨네가 새 며느리를 맞았었다. 벌방 녀자로 호박골색시처럼 얼굴이 호박처럼 두리두리하고 엉뎅이가 펑퍼짐하여 마을아낙네들의 부러움을 자아냈다. 더구나 두눈섭사이에 미간을 돋보이게 하는 붉은 점이 딱 중심에 박혔다. 헌데 그 점때문에 녀인은 고생스러운 인생을 살게 되였다. 어느 점쟁이가 그 점이 악재를 가져다준다고 했고 시어머니는 그 점때문에 시아버지가 돌아갔다고 했으며 나중에 시어머니가 미쳐죽게 되고 남편까지 술중독으로 아들이 태여나는 날 죽어버렸다. 그 점때문에 귀신이 붙었다고 온 가정이 풍지박산이 났다고 소문이 자자해서 마을에서 따돌림을 당했다.

박종덕, 돼지굴어귀에서 비오는 날 태여난 녀석이다. 태여난 그날부터 아버지 없이 자란 과부의 아들이다. 그 아들 하나만을 보고 살아온 과부 민옥이에게는 설음이 많았었다. 아무리 섧어도, 아무리 분해도, 아무리 억울해도, 아들이 기시를 받았도 그 아들 하나만을 위해서는 모든걸 다 참아왔었다. 아들에 대한 기대도 크지 않았다. 앓지 않고 건실하게만 자라길 바랐다. 학교 다닐 때에는 아들이 락제점수를 맞고와도 좋아했고 다 큰 다음에는 동네에 나가 돈을 떼워도 뉘집 잔치부조를 해준것만큼이나 여겼다. 그 아들이 서른고개를 넘어서고 자기도 쭈글쭈글한 로파가 되여가면서 아들의 혼인대사와 손자를 안아보고싶은 념원이였다. 헌데, 귀신이 붙은 과부네 집 아들이라고 혼사말이 들어오지 않는다.

세월이 개혁개방되면서 별스레 녀자들의 몸값도 올라가서 웬간한 촌구석 처녀애들도 종덕이쯤은 곁눈으로도 보지 않았었다.

그렇게 자란 종덕이는 생김새와 같이 둥글둥글하게 굴러다니는 법을 배웠다. 누가 호박처럼 생겼다고 “호박새끼” 하고 놀려줘도 그저 헤벌쭉 웃고말고 누가 걸음걸이가 느리고 건방져보인다고 뒤에 와서 궁둥이를 걷어차도 돌아다보며 벌씬 웃고만다.

어느 한시기에는 이상하게도 종덕이와 접촉한 사람들까지 다 탈이 생겨났다. 종덕이네 집에 가서 공짜술을 얻어마신 녀석들은 배탈이 났고 종덕이를 놀려준 녀석들은 입술이 부르텄고 종덕의 궁둥이를 실없이 걷어찼던 녀석은 교통사고로 다리가 부러지고… 그래서 마을사람들은 남녀로소를 불문하고 그를 외면했고 그를 따돌렸다. 누구도 그와 말을 걸지 않았고 누구도 그와 놀아주질 않았다. 그래도 종덕이는 늘 벌씬거리며 혼자 잘 놀았다. 산에 올라가 꿩둥우리를 털어 꿩알을 얻어오기도 하고 심심하면 강변에 나가 물고기잡이를 하기도 했다. 물고기를 한다래끼 잡으면 그걸로 생선장국을 끓여놓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지 않으면 외지 낚시군들을 불러들여 술잔을 함께 나누기도 했다. 인품을 후하게 쓰니 개핀 땅에 물이 고인다고 점차 친구들이 생기게 되였다. 공짜를 좋아하는 동네친구들, 술을 좋아하는 아래마을 친구들, 신세를 지려는 외지의 낚시군들…

종덕이네 돼지굴곁에는 오얏나무가 있는데 해마다 오얏이 잘 열렸다. 하루는 난데없이 찦차 두대가 달려오더니 그 오얏나무 그늘밑으로 빠진 달구지길어구에 와서 멈춰섰다. 신사 같은 남자 넷과 꽃같은 녀자 셋이 차에서 내렸다. 그때 마침 종덕이가 물고기를 한구럭 골똑 잡아가지고 왔다. 호기심에 찬 그 사람들이 우루루 모여들어 구럭을 헤쳐보았다. 펄떡펄떡 뛰는 물고기들이 생신해보였다. 그걸로 생선국을 끓이면 맛있겠다는 사람도 있었고 붕어새끼로 생회를 쳐서 술안주로 하면 그저 그만이겠다고 입을 다시는 사람도 있었다.

“그럼 들어가깁소. 제가 끓여드릴테니까.”

“아니, 어찌 그런 페를 끼치게…”

그 사람들은 은근히 좋아하면서도 미안함을 금치 못했었다. 종덕이는 아무 사람이건 자기 집에 와서 술을 마셔주면 좋아했었다. 종덕이는 그 사람들을 울안으로 청해들인 다음 무르익은 오얏을 한대야 가득 뜯어다놓고 맛을 보며 기다리라고 해놓고는 로모 민옥이와 함께 불을 지핀다, 밸을 딴다 하며 돌아쳤다. 그 꽃같이 고운 녀자들도 팔을 걷어부치고 그들 모자를 도와나섰다. 그바람에 종덕이는 더 신바람이 나서 엎딘김에 절이라고 암탉까지 한마리 잡고 처마밑에 말린 물고기도 풀어내렸다. 나중에 푸짐한 술상이 갖춰졌다. 종덕이가 근들이 술을 떠오려고 허연 비닐통을 들고 나서니 그 사람들이 말리면서 찦차에서 고급술 몇병을 꺼내오는것이였다.

술이 서너순배 돌자 술상 분위기가 흥그러워졌고 종덕이도 연신 굽석거리며 잔을 비웠다. “야, 술이 정말 유하꼬마.”

두리두리한 면상이 불그스레 퍼져 보기 좋았다. 모두들 중간에 앉은 통통한 사람을 “지부장”이라고 불렀는데 아마도 꽤나 급이 있는 사람 같았다. 지부장은 가마목에서 “궁둥이운전”을 하고있는 민옥이에게 손수 술을 부어올리는것이였다.

“어마이, 이집 장맛이 정말 구수합니다. 옛날 우리 어마이가 끓여주시던 그 장국맛을 다시 맛보는것 같습니다.”

지부장이 감개무량해하자 곁사람들도 덩달아 구수하다며 연신 후르륵거리며 국물을 마셔댔다.

기분이 도도해지는데 촌장인 리종수가 촌의 모모한 량반들을 거느리고 들이닥쳤다.

“지부장께서 진작 오신줄 모르고 우린 눈이 빠지게 기다렸습니다. 저기 부녀주임네 집에다 하늘을 나는 놈, 땅에서 기여다니는 놈, 륙, 해, 공군을 몽땅 출동시켰으니 지부장께서 이런 루추한 곳에서 식사하시지…”

리촌장이 크게나 차리고 기다렸다는 자부심으로 불깃한 얼굴에 아첨발린 웃음을 담고 벌씬거리는데 지부장의 못마땅한 음성이 찬물에 불궜다가 꺼낸 가죽채찍처럼 꽛꽛하게 안겨왔다.

“어허, 무슨 소릴!”

지부장의 둥그레한 얼굴도 불깃해졌다. 면상이 일그러지며 량미간에 내천자가 그려졌다.

“루추하다니? 나도 이런 루추한 집에서 자란 놈이요. 만약 루추하다고 께름직하면 돌아가서 당신에 그 륙, 해, 공군이나 거느리시구려.”

천만 생각밖이였다. 가죽채찍에 한매 얻어맞은듯 종수의 얼굴이 삽시간에 변하여 볼편 근육이 푸들거렸다. 머리도 뗑― 해났다. 머리에 털이 나서부터 이런 축객령을 받아보기는 처음이다. 돌아서야 할지 그냥 서있어야 할지 아니면 구들에 올라가 앉아야 할지…

그때 가마목에서 뱅글뱅글 돌아치던 민옥이가 긍지에 빠진 종수를 끄잡아냈다.

“생원이―” 민옥이는 종수에게 남다른 감정을 가지고있었다. 종수가 남편이 생전일 때 “형님”이라고 불렀고 자기를 “아주머니”라고 불러주었었다. 그보다도 돼지굴옆에서 소낙비를 맞으며 종덕이를 낳을 때 마침 종수가 찾아와서 다행히 모자 목숨을 구해준 일이 너무나 고마워서 평생 그 은혜를 잊지 말자고 속다짐했던것이다. 그래서 아들의 이름을 지을 때에도 종수라는 “종”자에 덕이라는 “덕”자를 골라잡았던것이다.

“생원이, 날래 올라가 술잔이라도 드시우. 전번에두 암탉을 고아놓고 오시라고 해도 오시지 않더니만 마침 잘됐수. 날래!”

민옥이가 종수의 팔소매를 잡아당겼다.

기실 종수는 민옥이와 그의 아들 종덕이를 께름직하게 여기고있었다. 뭐 군생활도 해보고 당원에까지 든 그가 동네토배기들처럼 미신적관념에서 께름직한것은 아니지만… 뭐 구차하게 산다고, 뭐 루추한 집에서 산다고, 뭐 사람축에 못 간다고… 뭐 딱 찍어 무엇이라고 말할수는 없지만 아무튼 전 촌 4백여명 되는 촌민들이 차례로 자리잡고있는 촌장의 심중에는 민옥이와 그의 아들 종덕이가 제일 마지막 꼴찌자리였다. 특히 앞뒤를 재일줄 모르고 굴러다니는 종덕이가 숱한 사람들앞에서 “삼촌! 삼촌” 하며 헤벌쭉거릴 때면 속이 부글부글해나면서 뒤틀린다. 웃는 낯에 침 못 뱉는다고 철 모르는 녀석이 좋다고 부르는데다 랭수바가지를 퍼부을수는 없었다. 자기의 이미지를 자키기 위해서라도.

한창 지부장에게 술을 부어올리던 종덕이는 종수네가 들어서는걸 보고 입이 헤벌쭉해졌다. 오늘은 녀석이 제세상이나 된듯 벌거이드르르해서 흐물넙적거린다.

“아하, 삼촌, 삼촌이 어쩌다가 우리 집에 발을 들여놓았소? 해가 서쪽에서 뜨겠구만. 반갑소, 어서!”

에미 아들이 맞장구를 치며 지부장앞에서 자기의 이미지를 납작하게 만든다고 속이 꼬부장해났지만 어쩌는 수가 없었다. 괘씸한 종덕이 녀석이 손을 잡아끌 때에는 귀쌈이라도 한매 후려붙이고싶었지만 꾹 참았다.

억한 심정으로 끌리워 겨우 서먹서먹하게 술자리에 끼여앉았는데 현에서 내려온 간부들은 알은체도 안하고 완전히 그를 무시한채 지부장을 위시해서 자기네끼리만 자기네 말만 주고받았다.

“이 집에 토장이 구수하면서도 시원해서 국물을 마시면 가슴이 활― 열리는것만 같습니다 그려. 허허!”

퍼그나 격동되였는지 지부장이 술잔을 들고 일어서더니 민옥이 앞으로 나가섰다.

“어마이, 오늘 우연하게 댁에 들어와 페를 끼치며 토장국맛을 보았습니다. 정말 구수합니다. 저의 이 술잔을 들어주십시오.”

민옥이는 진작 얼굴이 시루떡이 되였다.

“난 술이라고…”

민옥이는 입으로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손으로는 술잔을 받는것이였다.

“고맙소이. 시골노댁이 담군 장이 맛이 있으면 얼마나 있겠소만 정 맛이 있다면 갈 때 가지고 가소. 많이 담궜으니 가져갈바엔 푹푹 떠갑소.”

지부장이 엄지손가락을 내든 오른팔을 힘있게 내저었다.

“동무들, 들었습니까? 이것이 곧바로 우리 어머님들의 인품입니다.”

또 박수갈채가 터졌다. 술상 분위기가 바야흐로 무르익어가고있었다. 민옥이가 겨우 술 한잔을 두번 꺾어 마시고는 둬어번 캑캑거렸다.

“고맙습니다. 어마이, 전 오늘 이 집에 들어서면서 고향집에 들어선 감을 느꼈습니다. 저도 이런 루추한 초가집에서 자란 촌놈이였습니다. 특히 어마이를 보는 순간에 저는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우리 어머님을 다시 뵙는것 같았습니다. 어머님은요 우리 칠남매를 키우시느라 평생 고생만 하시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자식들에게 효도할 기회조차 주시지 않고 말입니다. 지금 생전이시라면 정말 얼마나…”

지부장의 목소리가 점차 떨렸고 눈에는 이슬이 반짝이였다.

“어마이, 저는 경박한 사람이 아닙니다. 기관에서 어떤 사람들이 양딸을 삼는다, 양아버지를 모신다고 서로 치근덕거리는걸 보고는 싱거운 녀석들의 단정치 못한 작풍이라고 여겨왔댔습니다. 허지만 오늘 그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어마이는 겉으로 보는 외모도 우리 어머니와 같고 인품도 우리 어머니처럼 후하신것 같습니다. 어마이께서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시겠지만 저는 어마이를 어머니로 모시며 효도하고싶습니다.”

술을 좀 마셔 얼굴이 불깃했지만 지부장의 태도는 아주 진지했다. 민옥이는 당황해났고 술상에 앉은 사람들도 저으기 놀라는 눈치였다.

“아니꼬마. 촌구석에 일개 허줄한 노댁이 어찌 높이 계시는 량반의… 아슴채이소만 너무나도 황감해서…”

민옥이가 입을 싸쥐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생각밖으로 지부장이 무릎을 꿇어앉더니만 그 육중한 몸을 꾸부리며 넙죽 절을 하는것이였다.

“이 아들의 절을 받으십시오.”

민옥이뿐만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다 아연해졌다.…

그 이튿날부터 그 소문이 마을내에는 물론 린근 동네에까지 파다히 퍼져나갔다. 종덕이를 바보 취급해왔던 마을내 촌민들의 태도가 하루아침새에 급변했다. 골안바람이 아무리 회오리친다고 이처럼 돌개바람처럼 치지는 않았건만! 이 골안에서 제밖에 없노라고 턱을 잔뜩 쳐들고 다니던 촌간부들도 찌그러질듯한 종덕이네 집으로 발길이 잦아졌다.

얼마후에는 종덕이의 어머니 민옥이의 이마에 난 기미에는 재앙을 부르는 귀신만 앉아있는것이 아니라 복덩이를 굴리는 신선도 앉아있는다는 소문이 돌았다. 원래 귀신과 신선은 쌍둥이였다고 하며 재앙이 없으면 복이 없고 복이 없으면 재앙이 없다는 설이였다. 과연 그 설법에 일리가 있다고 증명하기라도 하듯 그 이듬해 이른봄 현 인민대표대회에서는 원 현위조직부 부장 지동구를 현장으로 임명할 결의안을 한결같이 채택하였다.

양아들로서의 지현장은 양어머니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다고는 할수 없겠지만 그래도 명절때면 잊지 않고 사람을 시켜서 먹을것이며 입을것이며 한구럭씩 보내오군 했다. 거기에 공무때문에 몸 뺄수가 없어 가뵙지 못해 죄송스럽다는 전갈까지 붙여보내 민옥이를 울리군 했다. 어마어마한 현장으로서 그쯤 해도 조련찮은 일이라고 이웃들에서 더 감동을 받았고 부러워도 했다.

 

 

2

 

그해 촌장 기바꿈을 앞두고 금불촌아래우 몇개 동네에서는 몇개 파가 은근히 각축전을 벌리고있었다. 금불촌에는 종친적으로 세개 파가 세력이 컸는데 이 근년에 와서는 리종수가 촌장이 되면서 리씨네들이 우세를 차지했고 그다음 김씨였는데 대표인물로는 촌지서인 김봉철이였다. 옛날 김대장의 맏아들이다. 인구비례를 따지면 박씨네가 제일 많았지만 어쩐지 대중을 휘동할만한 인물이 못 나오고있었다. 리종수와 김봉철이는 나이도 비슷했고 경력도 비슷했다. 둘 다 군대에 가서 입당까지 하고 돌아온 제대군인이였다. 고향에 돌아와 고향건설에 공헌이 큰 사람들이였고 그만큼 조직능력이나 사회능력이 뛰여났었다. 그래서 봉철이가 촌장질 할 때에는 종수가 지부서기사업을 맡았었고 후에 종수가 촌장으로 되니 봉철이가 지부서기로 된것이였다. 촌급 간부보조로임때문에 대개 다른 촌에서는 한사람이 서기와 촌장을 겸임했지만 금불촌에서만은 이 두 사람때문에 좀 특수하게 되였다. 둘사이에는 늘 분쟁이 생겨 네탈내탈 했지만 일단 의견이 소통되면 손발이 잘 맞아떨어졌다. 그렇게 재작년부터 둘사이는 완전히 버성기여 고양이와 쥐가 되여버렸다. 이 호박골에서 네가 있으면 내가 꺼져버리고 내가 있으면 네가 굴러가야 한다고 촌민들앞에서 여러번 다투기도 했었다. 한 골짜기에 범이 둘이 있을수 없고 한 나라에 임금이 둘이 있을수 없다는것이다. 탈은 종수네 딸과 봉철네 아들 지간에서 생겨났던것이다. 마을에서 현소재지 고중에 붙어 공부하는 고중생은 대여섯명밖에 안되는데 그중 종수네 딸과 봉철네 아들이 눈이 맞아 좋아했었다. 방학이면 둘이 함께 돌아와서 같이 붙어다녀서 그또래 친구들의 질투를 자아내기도 했었다. 헌데 봉철네 아들이 대학에 붙은 다음 종수네 딸을 차버리고 같은 대학생처녀와 좋아했었다. 그 일로 종수네 안해와 봉철네 안해가 우사마당에서 서로 머리채를 끄잡아당기며 물고뜯고 허비면서 동네를 웃겼던것이다. 그것이 도화선이 되여 종수와 봉철이 사이도 마침내 크게 폭발되였던것이다. 그래서 이번 기바꿈에 어디 좀 보자고 서로들 벼르고있었던차 서로 내가 되지 못할지언정 너만은 되지 못하게 하겠다는 앙심을 품고있었다. 헌데 민심의 동향은 분명 종수쪽으로 더 기울고있었다. 우선 래일에 가서는 어떻게 되든지간에 현임 촌장의 덕으 로 보는 사람이 더 많았다. 크나작으나 시골사람들은 덕을 보면 배은망덕하지 않는다. 그다음 농촌사람들의 애정관은 시종일관할것을 주장한다. 좋아했던 녀자를 차버리고 대학생처녀의 치마꼬리를 잡았다는 봉철의 아들은 도덕상에서 벌써 모든 촌민들의 비난을 받게 되였다. 엎친데덮친다고 거기에 몇년전 봉철이가 촌장질 할 때 과수원을 한족집 왕가네한테 눅게 준것이 뒤로 돈을 챙겨받고 한 짓거리였던것이라는 뒤공론이 요즘 일고있다.

앞뒤를 재여볼줄 아는 봉철이는 요즘 집에다 술상을 자주 차려놓고 이 구실 저 구실 대며 마을사람들을 청해들였고 또한 마을에 누구네 집에 일이 생기면 부조돈도 푹푹 쥐여주었다. 그러면서 사람들의 오고가는 말끈을 뜯어다가 저울질해봤다. 확실히 균형을 잡기 곤난하게 저쪽으로 기울고있었다. 희망이 없게 되였음을 통감한 그는 자기가 되지 못할바에는 종수도  못하게 만들자고 생각했다. 그는 한편으로 종수의 이미지를 깨버릴수 있는 “죄장”을 수집해서 여론조성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촌장이 될수 있는 인물을 골라잡아야 했다. 좋기는 자기 말을 잘 듣고 뒤에서 자기가 조종할수 있는 인물이였으면…

요즘 종수는 자신심에 배포유해졌다.(봉철이 네깐 놈이 그따위 덕성으로 나와 겨뤄보라구. 어림도 없지.) 종수도 똑똑한 축이였다. 사람을 부려먹을줄도 알고 선심 쓸줄도 알았다. 그래서 그의 뒤꽁무니에 늘 졸졸 따라다니는 사람이 많았다. 그의 심중에 벌써 수자가 있었다. 누구 누구는 문제 없을거고 누구누구는 동요하겠지만 어찌어찌 해놓으면 저절로 벌벌 기여들것이고 누구누구는 얼리고 닥쳐도 왜지밭으로 달아날것이다. 그런 완고한 반대파들에 대해서는 헛돈을 팔 필요도 없고 풋정을 베풀 필요도 없었다. 오히려 드세게 드잡아 깔아뭉개야 한다. 종수도 요즘 인심을 후하게 썼다. 하지만 봉철이처럼 모든 사람을 다 좋게 대하는척 한것이 아니라 자기의 안목에 따라 부동하게 대했다. 특히 자기의 반대편에 설 사람들이 무슨 일이 있어 찾아오면 추호의 양보도 주지 않았다. 동네집 개도 궁둥이를 치면 돌아서 무는 법이다. 어느때부터인지는 몰라도 마을 구석구석에서 사람들이 끼리끼리 모여 수군덕거리더니 종수에 대한 험담이 새벽안개처럼 솔솔 퍼져나왔다. 무슨 수로 대학에 붙지 못한 딸을 미국에 보냈는가? 대서양 저쪽 부귀의 천당 아메리카 합중국으로 가자면 적어도 인민페 20만원 이상은 메쳐야 한다는데? 그 돈이 어디서 왔는가? 일년에 한번씩이나 가실가말가 하는 렬군속, 오보호 모임도 촌장부가 거꾸로 섰다고 이집 저집 잔돈을 끌어모아 하는판에? 외국으로 품팔이 나간 집들에서 내놓은 경작지를 왜서 무턱대고 한족집 왕가네 집에다만 주는가? 종수가 촌장질해서부터 지금까지 왕가네 줄을 놓아 이주해온 한족집이 벌써 열대여섯호가 늘어나고있다. 그래 그 사람들이 일전 한푼 팔지 않고 호박골로 들어와서 자리를 잡고 터전을 닦고 벽돌기와집을 짓고 산단 말인가? 호박골의 황금은 그들이 다 파간다. 왕가네가 지금 재산이 얼마나 되고 돈을 얼마나 저축했는지 그 누구도 짐작할수 없다. 촌에서 돈이 딸릴 때면 그 집 돈을 먼저 선대해서 쓴 일도 여러번 된다. 한번은 빚대신에 촌민들이 그 집 콩가을까지 해준 일이 있었다. 그때 성질이 괴벽한 사내 몇이 종수의 멱살을 거머쥐고 우리가 도대체 머슴이냐 소작농이냐며 조겨대기까지 했었다.

지금 선거를 앞두고 이런 말들이 오고가니 자연 옛일들이 떠오르게 된다. 그것이 고요해졌던 사람들의 심중에 던져진 돌이 되여 파문을 일렁이게 했다. 그런 회상에 빠지니 자연 종수에 대한 믿음이 한쪽으로 무너져내리기도 했다.

촌장질 하면서 조금씩 얻어먹는 일이 누구에겐들 없겠느냐!

강가에 나서 누군들 바지가랭이를 젖히고싶어 젖히겠냐! 마을사람들을 잘 이끌수만 있다면 그런 일은 별문제라고 시시하게 여기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런 의문이 자그만하게 파문을 일렁이더니 이번에는 큰 파도를 출렁이게 하는 험담이 나돌았다. 종수가 최학빈이네 셋째딸을 깔아뭉갠적이 있었다는 소문이다. 호박골에서는 금시초문이였다. 말도 안되는 헛소리! 종수는 오십을 바라보는 나그네고 최학빈이네 셋째딸 미려는 스무살 금방 벗어난 꽃송이다. 말하자면 애비와 딸 같은 년령차이다. 미려는 호박골에서 제일 곱게 생긴 처녀애다. 개천에서 룡이 난다더니만 시골에도 드문드문 간혹 봉이 깃드는 모양이다. 초롱초롱한 눈이라든가 앵두 같은 입이라든가 오뚝한 코날이라든가 조물주가 그걸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게 애호박 같은 얼굴에다 맞춤하게 그림 같이 붙여놓은것 같았다. 입을 벌리고 웃으면 요란한 목단이요, 입을 다물고 있으면 조용한 수련이였다. 미려는 학교시절부터 가수가 되겠다, 영화배우로 되고싶다며 호들갑을 떨기도 떨었다. 헌데 옥에 티라고 할가. 보기에는 그 어느 녀자애보다 령리하고 총명해보이는 미려가 천성적으로 어딘가 아둔한데가 있었다. 녀자야 뭐 인물이 환하게 생기면 그만이지 머리가 좀 둔한게 무슨 탈이 되겠소만 예술학교에 해마다 시험친것이 해마다 떨어지는것이 문제로 되였다. 그래서 한때는 강물에 빠져 물귀신이 되겠다, 농약을 먹고 하늘로 날아오른다 하며 온 동네가 소란스러울 지경으로 야단법석을 피우기도 했었다. 죽어날게 부모들이였다. 그래서 종수가 나서 문예계통에서 한자리 하고있는 부대전우를 찾았고 최학빈이가 소를 판 돈을 밀어넣어서야 겨우 예술학교 예습반의 자비생으로 들어가게 되였던것이다. 그때 도와준 일이 고맙다고 미려의 어머니가 종수에게 고급양복 아래웃벌을 사주기도 했었다. 동네에서도 종수가 “뒤문”관계가 세다고 인정해주었을뿐 다른 뜬소문은 없었다. 헌데 지금 선거를 앞두고 말도 안되는 뜬소문이 돌고있다. 큰 시내 한복판에서 종수가 미려를 끼고 식당놀이를 하는걸 보았다느니 여름방학 기간에 중둥바위아래 옥수수밭으로 미려가 종수의 옷자락을 쥐고 기여들어가는걸 보았다느니 모기가 앵앵거리는 저녁무렵에 둘이 홀딱 벗고 내봉하에 뛰여들어 노는걸 보았다니 뭐니 하면 별소리가 다 떠돌았다. 지금 뭐 도시에서는 한자리 한다는 녀석들이 자기의 비서나 문서아가씨들을 놀이감처럼 데리고 놀아도 그저 덜된 인간이라고 손가락질 할뿐 별로 심각하게 여기지는 않는것 같다. 허지만 농촌에서는 완전히 다르다. 남녀작풍문제에서 잘못 걸리면 그의 정치생명은 칼도마우에 오르게 되는것이다. 종수는 아직 칼도마에는 오르지 않았지만 그 소문이 준 타격은 엄청나게 컸다. 그도 벌써 동네사람들이 자기를 바라보는 눈길이 달라졌음을 감촉했었다. 가슴 한쪽이 서늘해옴을 느꼈다. 헌데 더 큰 타격은 뒤에 있었다. 어느 녀석이 이 모든것을 서류로 작성해서 현위에다 익명신으로 보냈던것이다. 하여 현위에서 파견한 조사조가 마을로 내려와 그의 뒤조사를 하게 되였던것이다. 당금 무슨 일이 벌어질것만 같은 분위기였다.

 

 

3

 

요즘 촌지서 김봉철에게는 새 습관이 하나 더 붙었다. 동네사람들이 나들이가 잦아질 쯤인 점심무렵이면 옷맵시 깨끗하게 차리고나서 어슬렁어슬렁 점잖게 지부서기답게 뒤짐을 지고 마을길을 한바퀴 빙 돈다. 젊은이건 낡은이건 아낙네건 나그네건 사람을 만나면 길쭉한 얼굴에 아래입이 쫙 째지게 환한 웃음을 짓고 허리를 살짝 굽혀보인다. 그러다가도 어떤 사람을 만나면 “별일이 없으면 한잔 좀 할가?” 하고 자기네 집으로 꼬신다. 김서기로서의 “인심끌기공정”이다.

오늘은 어슬렁어슬렁 걷다가 내봉하기슭으로 통하는 달구지길에 들어섰다. 벌써 사흘째 다니지 않던 이 길에 들어서는 셈이다. 호젓한 이 길로는 다니는 사람이 별로 없다. 길 아래쪽 오얏나무밑에는 종석이네 집이 게딱지처럼 들어앉아있다. 봉철이는 좀 묘한 사람이다. 사람을 청해다 술을 먹여도 “자식, 곱다고 먹이겠나, 촌장선거가 있으니 먹이는거겠지.” 하는 불안감을 주지 않기 위해 될수록이면 자연스럽게 장면을 만들기에 애를 쓴다. 분위기와 효과를 따진다.

내봉하기슭에 거의 가닿는데 버들숲속으로부터 초모자를 쓴 녀석이 고기다래끼를 흔들며 올라오고있었다.

“야, 이게 호박새끼 종덕이 아니냐? 호박골에서는 네가 제일 운이 트는구나. 쟈, 어디 보자구나. 고기를 얼마나 잡았냐?”

봉철이는 두팔을 벌리고 너스레를 떨며 당금 끌어안기라도 할듯 반기였다.

“허허, 김서김둥! 요즘 물이 쫄아 얼마 잡지 못했습꾸마.”

종덕이는 어줍게 고기다래끼를 봉철이 앞으로 내밀었다. 그걸 봉철이가 헤쳐보며 다시 부산을 떨었다. “와야! 생칠하구나. 이 먹음직한것을 그저 둘수야 없지. 자자, 이걸 가지구 우리 집으로 가자. 우리 집에 좋은 술도 있거든.”

봉철이는 종덕의 손에서 고기다래끼를 슬쩍 나꿔챘다.

“아니 김서기네 집까지 가서 아주머니께 끼칠거야… 아예 우리 집에서 그저…”

여직껏 마을사람들의 따돌림을 당해왔던 종덕이로서는 마을의 모모한 김서기가 집으로 청하니 좀 황송하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했다.

“어허, 이놈이 셈이 드는가부다. 한동네끼리 페는 무슨 페야!”

종덕이는 뒤더수기를 긁적거리며 어줍게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돌렸다.

“그럼… 헌데 요까짓걸 가지구 어떻게… 내 집에 들어가 마른걸 더 거둬가지구…”

“그래? 그럼 그래! 그럼 네 아주머니가 오죽 반기겠냐!”

종덕이는 집쪽으로 털썩털썩 달아갔다. 타원형 호박이 삐그덕삐그덕 굴러가는것만 같았다.

그 뒤모습을 바라보며 봉철이는 시무룩 혼자 웃었다. (그래, 내 생각이 맞아. 저런 놈을 앞세우는것이 옳아. 진심이구 고분고분하거든.) 기실 봉철이는 엉뚱한 궁리를 하며 종덕이를 찾아온것이다. 이번 선거에 박종덕이를 내세워보겠다는 기발한 착상이였다. 제딴에는 무슨 평형관전투작전이나 찜놓은듯해서 흥분했는데 녀편네는 너무나도 어이없다고 봉철의 이마전을 짚어보기까지 했다.

“동무, 온기나 있는 소릴 합까? 어디 고장나도 든든히 고장났구만요. 숨구멍이나 좀 짚어보쇼. 제정신이 아닌것 같습다. 동네를 한번 웃겨보자고 그럼까?”

봉철이는 자기 녀편네 하나도 설복시키지 못하면 다른 사람은 더구나 설득시킬수 없다는 도리쯤은 알고있었다. 그는 이틀저녁이나 이불밑에서 녀편네를 끌어안고 슬슬 녹여냈다. 녀자란 원래 열을 가하면 질질 녹아나는 법이거늘! 그가 박종덕이를 내세우자는 건덕지는 대개 이러했다.

종덕이가 마을사람들의 따돌림을 당하며 자라왔지만 마을사람들과 척을 진적이 없는지라 속으로 그를 미워하는 사람이 없다는것, 특히 박가네들이 다 밀어줄것이라는것, 군중기초는 없지만 동네에서 사회적위치가 완전히 달라졌다는것, 능력은 없지만 마음이 후해서 덕으로 민심을 끌수 있다는것 등등이고 자기의 타산으로서는 라이벌인 리종수를 재껴버릴수 있다는것, 그리고 중요한것은 종덕이를 내세우면 자기가 뒤에서 얼마든지 조종할수 있다는것, 즉 다시말해서 력사드라마에서 나오는 황태후처럼 “수렴청정(垂帘听政)”할수 있다는것이다. 그래서 녀편네도 해시시 해졌었다…

봉철이가 종덕이를 꽁무늬에 달고 들어서니 해반주그레하게 생긴 봉철의 녀편네는 본가집 동생이나 맞아들이듯 아양을 떨며 부산을 피웠다. 여지껏 녀자들의 애교스러운 대접을 받아보지 못했던 종덕이는 송구스러우면서도 마음은 즐거워났다. 농촌집 같지 않게 모든게 다 알른거려 종덕이는 발을 어떻게 옮겨디딜줄 몰라 선자리에서 디디장 디디장거리며 헤벌쭉 헤벌쭉 웃기만 했다. 봉철의 녀편네가 끌어안다싶이 끌어다가 밥상곁에 앉혔다.

술이 서너잔 들어가자 종덕의 얼굴이 불깃불깃해졌고 봉철이도 홍당무우가 되였다.

“너 금년에 몇살이더라?”

“서른셋이꾸마.”

“벌써? 자, 그럼 장가부터 들어야겠구나. 그래 봐둔 색시라도 있냐? 자자, 이잔 들구.”

“나 같은데로 누가 오겠습둥?”

“아니아니, 너희 집엔 좋은 색시 들어와야 한다. 너네 어마이두 한뉘 고생했재. 자, 여보, 여보!”

찰랑거리는 반잔 술을 찰랑! 상우에 놓고 봉철이는 부엌간으로 고개를 돌리며 안해를 불렀다.

“예, 예, 올라감다. 자, 물고기튀김이예요!”

봉철의 녀편네가 노랗게 튀긴 물고기를 알른거리는 유리접시에 담아들고 한들거리며 올라와서는 종덕의 곁에 납쭉 붙어앉는다. 싱긋한 녀자체취가 기분 좋게 종덕의 코를 간지럽힌다.

“여보, 그 흥지촌에 일남이가 그렇게 좋은 색시를 얻었다메?”

봉철이가 녀편네한테 한쪽 눈을 슬쩍 찔끔거려 보인다.

“예. 동무 말두 맞습죠. 색시 영 좋슴다. 웬체 그 부엉이 같은 에미나와는 비기지도 못함다. 곱기루 어찌나 고운지 한입 꼭 물어주고싶습데다. 말두 잘하고 똑똑하구 맘씨두 곱구… 일남이두 흥지촌 촌장이 되면서 신세를 고치게 된게 아니구 뭡꺄! 전 현적으로 제일 젊은 총각 촌장이라구 소문이 나자 숱한 혼사말이 들어왔지 않구 뭡꺄! 촌장이 되더니만 일등 미인을 골라끼구 고래등 같은 기와집두 지어놓구. 우리 그 마다매가 입이 함박만해졌지 않구 뭡꺄!”

봉철이는 연신 “그래, 그래.” 하고 맞장구를 쳐주며 고개를 주억거린다.

“그래 그렇지. 옛날 똥별을 달구 전방으로 나갈 때에는 늙은 엄마밖에 바래주는 사람이 없었다지만 장군이 되여 개선하자 숱한 서울 미녀들이 성밖에 나가 줄을 치며 영접했다 하지 않나. 사람이란 크나작으나 ‘자’자를 달아야 빛갈이 나는거지. 자, 우리 종덕이 한번 좀 촌장질 안해볼래? 그럼 색시두 생길거구. 그럼 때벗이를 쫠 할게구. 어때?”

종덕이는 수집어서 몸을 비틀며 머리를 사타구니에 틀어박는다.

“내 같은게 언제…”

“야, 이놈아, 한뉘 호박새끼처럼 딩실 구을기만 하면 다겠냐! 정신 좀 차려. 이 못난 녀석아!”

봉철이가 그의 뒤통수를 건너받아 툭 쳤다. 그제야 종덕이는 고개를 쳐들고 민망스레 헤벌쭉거렸다.

“종덕아, 나는 너를 진심으로 생각해서 하는 말이다. 누가 너를 관심해주겠냐! 아직 나이가 어리니 앞날을 생각해야지. 전도 말이다. 밤낮 령감두상들처럼 고기잡이나 하고 세월을 보내겠냐! 내 말을 듣거라. 내가 그래도 너 보다 소금알을 더 녹였고 건너온 다리가 네가 걸은 길보다 더 길면 길었지 짧지는 않았을거다. 무슨 일이나 내가 다 배치해놓고 밀어줄테니 너는 그저 자보만 하고 명확하게 하면 되는거다. 이 자식아!”

그 말을 듣고나서야 종덕이는 그저 일이 아님을 감촉하고 저으기 긴장해났다.

“그… 그런데 김서기, 저 같은 놈이…”

“야, 근심 말어! 너 같은 놈이 어째? 너도 당당한 이 나라의 공민이구 금불촌 촌민이다. 안될게 뭐야? 더구나 이 당당한 공산당 김봉철서기가 밀어주는데야! 자신감을 가져! 사내놈이 그런 똥담도 없이 그걸 무겁게 달고 다닐게 있냐? 활 떼버리고말지.”

“호호, 그래요. 종덕이가 될수 있구말구요. 지현장 같은 든든한 뒤심이 있겠다 박씨네 종친들이 많겠다 왜 안되겠어요? 기운 내요. 우리 김서기는 종덕이 같은 진투를 좋아하거든요.”

봉철의 녀편네도 곁에서 돼지오줌깨 뿔구듯 입김을 불어넣는다.

잔뜩 긴장해서 앉아듣던 종덕이가 점차 탕개를 느슨히 풀며 눈을 띠룩거렸다.

“그럼… 야, 이거 정말… 그럼 밑져 본전이라구 한번…”

“그래, 그래야지. 인제야 사내답구나. 너의 아버지 송식이 형님도 술좌석에서는 장군이였네라. 쟈, 우리 래일의 금불촌 촌장 박종덕의 휘황한 앞날을 위해서 한잔!”

그 시각 금불촌 현임 촌장 리종수도 사처에 사람을 띄워 종덕이를 찾고있었다. 종수는 지금 단가마우에 오른 개미신세가 되여 안절부절이다. 현에서 내려온 조사조가 한단락의 뒤조사를 끝마치고 이제 돌아갔다. 그동안 생활하기 불편한 마을에 내려와서 고생이 많았다고 개를 한마리 잡아 부녀주임에 집에 삶아놓고 청했는데 한사람도 오지 않았을뿐만아니라 그동안 주숙비를 규정대로 일전 한푼 곯지 않게 물고 갔다. 그것이 더구나 속에 퀭기였다.

무슨 단서를 쥐고 간것만 같았다. 그러찮으면 왜 개고기 한끼니도 먹지 않고 가겠는가? 도대체 어디까지 파고들었을가? 그것이 가슴에 찔렸다. 어제밤 느즈막이 그는 누구도 모르게 왕가네 둘째를 찾아갔다. 무명농장이나 다름없는 왕가네 가정군체에서 둘째가 모든것을 쥐고 흔들어대고있었다. 둘째가 가슴을 치며 담보했다. 자기의 입으로는 털끝만치도 토하지 않았다는것이다. 다만 자기의 소개로 이주해온 친척이 십여호에 수십명 되는데 그가운데는 입이 빠른 녀석도 있고 거짓말 못하는 고지식한 사람도 있고 앞뒤를 재일줄 모르고 나발불기를 좋아하는 인간도 있는데 조사조가 그들을 일일이 찾아본것이 속에 걸린다며 그들의 입에서 뱀이 나갔는지 구렝이 나갔는지는 아직 자기도 모른다는것이였다.

집에 돌아와서도 종수는 새벽잠을 이루지 못했다. 접대용 “중화표”고급담배를 두갑이나 꺼내 다 피워버렸다. 량심적으로 일을 처사해왔고 밑구멍이 깨끗하다면야 현이 아니라 중앙에서 내려와도 발편잠을 얼마든지 잘수 있었을텐데… 종수는 지금 자기가 재수없게 마을안의 미친개한테 물렸다고 한탄했다. 촌장질을 해먹은 녀석치고 밑구멍이 깨끗한 녀석이 도대체 몇이나 되느냐고 그는 자기나름대로 이를 몰라주는 하늘을 저주하고있었다. 그는 자기를 문 미친개가 다름 아닌 촌지서 김봉철이라고 넘겨짚었다. 그를 내놓고는 그런 서류를 작성할만한 인간이 마을안에는 없다는것이다. 이가 갈리고 치가 떨렸다. 부엌간의 나무패는 도끼를 집어들고 한달음에 달려가 그 여우같은 놈의 뒤통수를 단박에 까부시고싶은 생각도 불쑥 들군 했다. 담배가 꿈틀거리면 솟구치는 그 흉념을 억제해주었다. 아직 똑똑한 근거를 쥐기전에는 절대 경거망동해서는 안된다고 수없이 자기를 채찍질했다.

지금 종수를 놓고볼 때 촌장선거가 급선무인것이 자기의 운명이였다. 물에 빠진 이상 지푸라기라도 붙잡아야 했다. 평상시 내봉하에 가보면 지푸라기 아니라 별것이 다 뜬다. 나무토막, 널판자, 풀잎 지어는 구불거리는 뱀도 떠내려간다. 헌데 지금 자기가 물에 빠지고보니 나무토막은커녕 지푸라기도 보이지 않는다. 돈이 날개라고 돈만 내밀면 뚫지 못할 벽이 없었는데 관건적인 시각엔 돈이 아니라 사람이라는것을 그는 절감했다. 자기에게 구원의 손길을 뻗쳐줄 사람이 없는게 한스러워났다. 그는 자기가 얻어먹을것을 저울질해보았다. 등곬에 식은땀이 쭉 흐르는듯 섬찍해났다. 그까짓 촌장이야 누가 되든말든… 아니, 아니지. 그 여우 같은 봉철이가 되면 안된는거야. 호박골에서 제일 막된놈이 되더라도 그 여우 같은 녀석이 되면 안돼. 어떻게 한다? 그는 또 담배를 피워물었다. 파르스름한 연기속에서 벼라별 인간이 다 떠오른다. 웃는 얼굴, 찡그린 상판대기, 찔 갈기는 눈길, 고통에 빠진 몰골… 담배불에 두 손가락 사이로 뿌지직 타들어가는 순간에 그는 옳지! 하고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는 담배꽁초를 거실바닥에 대고 힘껏 부벼댔다. 번개불 같이 번쩍 스치는 순간을 빌어 그는 여우같은 그녀석을 밀어벌수도 있고 또 구명은인도 찾을수 있을것만 같은 칠색무지개다리를 얼핏 보아냈다. 그는 두팔을 쫙 펴고 기지개를 켰다. 뼈마디 관골마다에서 우두둑 소리가 났다. 창문카텐을 활 열어젖혔다. 강렬한 해빛에 눈이 부시여났다. 아니 벌써? 벽시계를 올려다보니 시침이 열한시를 가리키고있었다. 그는 부랴부랴 옷을 주어입고 문밖에 나섰다. 그리고는 내봉하쪽으로 종종걸음을 놓았다.

게딱지만한 초가집문을 삐꺽 열고 들어서니 시크무레한 냄새가 기분 나쁘게 코를 찔렀다. 부엌간에서 민옥이가 돼지죽을 끓이고있었다.

“아주머니, 무고하셨수? 그간 자꾸만 와본다 하면서두 일이 어찌 밀리는지…”

“아니 이거 누구여? 생원이, 오랜만이우. 어서 날래!”

종수가 구들 복판에 올라가 올방자를 틀고앉아 담배를 꺼내 피워물고있다.

“종덕이는?”

민옥이가 거무스레한 행주에 손을 닦으며 일어섰다.

“몰라. 아까 마른고기 한꾸레미 찾아들고 허둥대며 나가더니…”

“아주머니, 미안하오. 평소 관심이 부족해서. 마음속엔 그래두 늘 생각이 있었는데 어째 생각대로 안되오. 생전 송식이형님과의 정분을 봐서두 이 집에 등한해서는 안되는건데…”

종수가 자책에 빠진듯 미간을 찌푸리며 담배연기를 길게 내뿜는다.

“어이구, 무슨 그런 말씀을. 아슴채이케. 생원의 은혜야 내가 눈에 흙이 들어가두 잊지 못할건데.”

민옥이는 문득 찾아든 종수가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그 옛날 민옥이가 종덕이를 키우며서 절반 배를 곯으며 정말 죽지 못해 살 때에도 종수는 이 집에 얼굴 한쪽 내밀지 않았다. 그래도 민옥이는 종수에 대한 고마움을 고이고이 품고있었다. 지금 이렇게 문득 찾아들어와도 더 고맙고 더 반가을수 밖에 없었다.

“아주머니, 지현장 그 량반께서는 기별이라도 있소?”

“어이구, 생원이, 말도 마오. 난 송구스러워 못 살겠소. 명절마다 빼놓지 않구 한꾸레미씩 보낸다오. 맨 얼럭덜럭한 고급으루. 사램이 어쩌면 그렇게두 지극한지. 그걸 어떻게 갚자고 내가 주면 주는대로 다 받는지. 우리야 뭐 보낼게 있어야지. 그저 장떼나 떼서 보내구 종덕이 그녀석이 말린 물고기나 보낼뿐이요…”

“그러면 되는거지요. 아주머니, 그게 그 사람들에게는 제일 좋은거라오. 아주머닌 정말 양아들을 잘 뒀소.”

“글쎄 말이우. 생원이, 난 이게 꿈인지 생신지 통 분간 못하겠소. 늘그막에 어쩌다가…”

“자, 가만 있자. 아주머니, 그 이마의 기미가 보통 기미 아니오. 그 기미가 아주머니의 전반생에 숱한 화근을 빚어내더니만 인젠 그 화가 다 보내고 복만 남아있는게요. 아니요. 보오, 그래서 세상에 둘도 없는 양아들이 저절로 생겨난게 아니겠소? 그리구 이제 종덕이한테도 대운이 터서 출세두 하고 색시를 얻을게구 그러면 손자두 생겨 안아볼게구…”

“어이구, 생원이 이렇게 고마울 법이라구야. 정말 그렇게 될가?”

민옥이는 구들우에 올라와 무릎걸음으로 벌벌 기여와 종수의 두손을 꼭 잡았다. 감격에 울먹거렸다.

“어이구, 이렇게 고마울 법이라구야. 앗차, 내 이 정신 좀 보지. 생원이, 잠간만! 내 인차 차릴테니.”

“아니아니, 시간이 없스꾸마. 다음에 종덕이를 찾아야 할텐데…” 일어나 인사를 남기고는 문밖으로 나왔다. 그리고는 부녀주임과 치보주임을 시켜 당장 종덕이를 찾아오도록 했다. 그들이 반나절이나 찾았지만 찾지 못했다. 누구도 그 시각 종덕이가 봉철이네 집에서 고급대우를 받아가며 고급술을 마시고있을줄을 몰랐다.

어슬렁 황혼에 이르러서야 종덕이가 내봉하기슭에 나타났다. 강바람이 그의 옷자락을 시원히 흩날려준다. 종덕이는 지금 평생처음 인생이요 전도요 하는 문제를 가지고 숭엄한 기분에 잠겨본다. 아이들 듣기에 떡소리를 하지 말아야 한다더니 봉철의 전도교육을 받고보니 종덕이에게도 새롭게 삶을 살아보고싶은 욕망이 꿈틀거려났다. 한번 해보기로 작심하니 가슴이 후두두 떨려왔다. 이렇게 가슴이 떨려보기는 그의 인생에서는 처음이다. 그는 강가에 내려가 두손으로 강물을 떠서 푸― 푸― 거리며 얼굴이고 머리고 마구 적셨다. 시원해났다. 그때 “종덕이! 종덕이!” 하고 부르는 녀자의 목소리가 울려왔다. 부녀주임이였다. 종덕이는 부녀주임한테 끌려서 종수앞으로 오게 되였다. 종덕이를 대하는 종수의 태도는 이왕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말투부터 친삼촌 같이 부드러운 어조였다.

“너 오늘 술 마셨구나. 술도 작작 마시고 몸도 가꿔와. 이게 무슨 주제냐! 옛다. 이걸 가지구 아래우 몇벌 갖춰라. 젊은 놈이 멋이 있어야 녀자애들두 따르지.”

종수가 종덕이 손에 인민페 백원짜리를 여라문장 쥐여준다.

“아니 삼촌, 이… 이것… 안되오.”

엉겹결에 돈을 받아쥔 종덕이는 당황해서 그걸 다시 되돌려주려고 팔을 내민다.

“임마, 잔소리 말고 집어넣어! 삼촌이란 허울을 썼으니 삼촌값을 해야지. 이제껏 삼촌노릇을 제대로 못했는데 량해해라. 앞으론 삼촌이 좀 너를 꼴기 있는 놈으로 키워야 하겠다. 그러니 내 말 잘 들어.”

종덕이를 바라보는 종수의 눈길에는 일종 기대감이 차있었다. 이게 오늘 웬 일인가 하여 종덕이는 좀 어안이 벙벙해져 눈을 꺼부럭거렸다.

“종덕아, 너 형님의 지일이 언제냐?”

“형님이라니? 누굴 그리오?”

“앗따 실루. 이놈이 철딱서니 없구나. 너네 엄마가 지현장을 양아들로 삼았으니 네게는 형님벌이 될게 아니겠냐?”

“아, 지현장 말이요? 생진이 언제인지 잘 모르겠수.”

종덕이는 재국를 친 아이처럼 뒤더수기를 긁적거렸다.

“야, 이 답답한 놈아, 아직 셈이 못들었구나. 남은 그런 인맥을 만들자구 해두 차례가 없는데 입안에 들어온 떡도 못 먹어! 덕을 입었으면 갚을줄 알아야 사람이 되느니라. 지현장의 지일을 알아보고 좀 다녀라. 인간이란 서로 오고가고 주고받는데서 정이 생기는 법이다. 알겠냐?”

“양! 꼭 그렇게 하겠수, 삼촌!”

종수는 저으기 흡족해났다. 꽝꽝 얼어붙었던 가슴 한끝이 스르르 녹아내리는것만 같기도 했다. 엊저녁에 잠못 이루며 고민하던 끝에 고안해낸 첫 작전계획이 소기의 예측대로 돌아갈것 같았다. 종수는 지금 자기를 구해줄수 있는 “구명환”이 아니라 지푸라기마저도 없다. 시누런 흙탕물이 가슴팍을 칠뿐이다. 그래서 생각해낸것이 지현장이다. 지현장이라는 그 큼직한 “구명환”을 잡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구경 어떤 위인이라는것을 알아내야 했다. 지금까지 촌장질도 해보고 서기질도 해보면서 크고작은 지도일군들과 많이 접촉하였고 그 와중에 그로서의 그런 인물들의 부동한 속성을 장악해둔것이 있었다. 어떤 지도일군은 돈을 특별히 좋아한다. 돈만 들이밀면 푸른 등을 켜준다. 어떤 지도일군들은 색을 좋아한다. 인물도 인물이겠지만 성격, 애호, 품위 등 방법이 차원적으로 어금지금한 녀자를 어울려주면 일체는 오케이다. 또 어떤 지도일군은 돈도 아니요, 색도 아니요 의리를 중히 여긴다. 우환이 없도록 기반을 닦는거다. 그리고 어떤 지도일군은 사업상의 새로운 돌파를 아주 중시한다. 기층간부가 자기의 그 어떤 리념에 따라 새로운 경험을 모색해낸다면 그것을 그 무엇보다도 중하게 여긴다. 그렇다면 지현장은 어떤 속성을 가진 인간일가? 종수에게는 그것을 알아내는것이 급선무였다. 구멍을 봐가며 쐐기를 깎으라 하지 않았는가! 그걸 알아내자면 종덕이를 리용해야 했다. 그뿐만아니였다. 종덕이를 리용해서 여우 같은 봉철이를 밀어내야 했다. 세상에 별라게도 돌아간다. 종덕이가 이렇게 대단해질줄이야! 관건적인 시각에 자기의 운명과 관계되는 가장 중요한 인물이가 될줄이야. 종수는 입을 한쪽으로 실룩거리며 쓰겁게 픽 웃고는 종덕이를 자기앞으로 불러앉혔다.

“종덕아, 근간에 이 삼촌이 너무 다망했구나. 숨이 찬다. 그래서 쉬면서 좀 숨이나 돌려야겠다. 그저 쉬는게 아니라 내가 물러앉고 너한테 기회를 주마. 사람이란 기회를 잘 틀어쥐고 자기를 다듬을줄 알아야 하네라. 네가 지금껏 한절반 죽어있었는데 네가 어떤 눔이라는걸 내가 잘 알지. 말은 안했어두 인젠 잠에서 깰 때가 된것 같구나. 서른살이 됐지? 내 후임으로 촌장질이나 해봐!”

종덕이는 생각밖이라는듯 눈을 슬쩍 치떴다. 점심에 봉철서기가 제기했던 문제가 아닌가! 다만 오늘 하루가 이상한 감이 들었다. 서기와 촌장이 하루도 아닌 반날사이에 동일한 문제를 제기한것이 별스럽게 생각될뿐이였다.

“삼촌, 내 같은게 촌장질 하문 누가 내 말을 듣겠수?”

“그건 문제없다. 아무렴 금불촌에서 너를 사람으로 보는 인간이 몇이나 되겠느냐만 내가 뒤에 서있으면 누구도 찍소리 못할게다.”

“그럼 삼촌부터 내 말을 듣겠수?”

“그건 문제없다. 아무렴 금불촌에서 너를 사람으로 보는 인간이 몇이나 되겠느냐만 내가 뒤에 서있으면 누구도 찍소리 못할게다.”

“그럼 삼촌부터 내 말을 듣겠수?”

멀쩡해보이는 종덕이지만 엉뚱한데가 있는 녀석이다.

“어허, 이눔 봐라. 되겠어. 어벌때기 있는 눔이구나. 되겠다, 되겠어. 그래그래 내부터 말을 잘 듣지. 웃기는 녀석이다. 으하하하!”

종수는 다가와서 종덕의 어깨를 툭툭 쳐주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물론, 애로가 많을거다. 촌민들이 아이들 장난이라구 가소롭게 여길거구 진당위에서도 동의하지 않을거다. 이건 내가 뒤에서 깨끗하게 밀어버릴테니까 근심말어. 자, 우리 집으로 가자. 오늘은 너의 찬란한 앞날을 위하여 우리 아재비 조카끼리 한번 통쾌하게 마셔보자!”

 

 

4

 

두달후에 촌장선거가 끝났다.

“세월이 둔갑하고있나? 나원 더러워서, 퉤퉤! 이제 호박골이 망해빠지는 꼴을 어찌 보나. 일찌감치 북망산에 가서 눈을 감아버리는것이 상책이지.”

“모두들 제정신이 있소? 그 바보같이 엉뚱한 눔을, 아무것도 모르는 도깨비를 촌장시키다니? 나원 기가 딱 막혀서!”

“아니 금년엔 서기와 촌장을 겸임시킨다더니 왜 비당원을 시킨다오? 그래 우리 금불촌 당원들이 다 죽었는가!”

“암, 알구두 모를 일이야. 그 봉철이 아새끼는 왜 종덕이를 올려놓지 못해 그렇게 악을 쓴다우?”

“그러게 말이우 성님, 난 봉철이 그 아새끼보다 종수란 눔이 더 괘씸하더라이. 그눔이 돈깨나 쓰며 뒤에서 종덕이를 올리받쳤다네!”

동구밖의 비술나무아래에서 몇몇 동네령감들이 모여앉아 선거끝의 불만을 토해내고있다. 모두들 입에서 뱀이 나가는지 구렝이 나가는지 모르고 침방울을 튕기고있을 때 맨끝에 앉아 담배만 폴싹폴싹 피우던 최학빈령감이 담배꽁초를 부벼끄고 일어나면서 “에헴!” 하고 마른 기침을 깇어댔다.

“관들 두시우! 하늘이 무너지겠수. 똑똑하다구 잰내비처럼 들볶아치던 눔들이 할 때보담 무뚝뚝한 눔들이 걸썽걸썽 할 때가 더 잘되더라니 이제 두고 보시우, 에헴!”

최학빈령감은 해수로 꼬부장한 등을 연신 촐싹이며 마을로 내려갔다. 모두들 그 령감이 내려가는 뒤모습을 바라보며 입을 다물어버렸다. 어느때든가 마을내에서는 최학빈령감이 신을 업었다는 뒤소문이 돌기도 했었다.

박종덕이가 촌장이 되였다. 호박골도 웃겼을뿐만아니라 린근 촌부락도 웃겼다. 촌장이 된 종덕이 몸에서는 여전히 어리무던한 촌티가 흘렀다. 두가지만은 변했다. 하나는 김봉철서기의 조언에 따라 고기잡이를 그만두고 신문잡지에 눈길을 돌린것이고 다른 하나는 리종수 원촌장의 요구대로 아래우 깜장 양복에 까만 구두를 신고 다니게 된것이다.

첫 한두달은 촌내 두개파의 “전쟁”으로 “포연”속에서 보냈다. 봉철이네 “보수파”와 종수네 “개혁파”지간의 “전쟁”이였는데 승자도 없었고 패자도 없었다. 량자간에 “피”만 흘리고 손실만 보았던것이다. 촌민위원회는 7명으로 새롭게 조직구성을 짰는데 종덕이를 제외하고 봉철이네 인마가 3명, 종수네 인마가 3명, 소위 “무소속” 지명인사가 1명이 들어가게 되였다.

진정부나 상급에서 촌장회의를 부르게 되면 종덕이는 회의내용과 상황에 따라 봉철이를 보내지 않으면 종수를 보내군 했다. 촌민들이 무슨 일이 있어 찾아오면 역시 일에 따라 봉철이를 내세워 처리하게 하지 않으면 자연 봉철이와 종수가 촌에서나 촌 밖에서나 촌장행세를 할 때가 많았다. 그래도 종덕이는 개의치 않았다. 일이 잘되든 못되든 헤벌쭉거리며 잘했다고 춰주기만 했다. 헌데 어떤 때는 봉철이가 처리한 일을 종수가 꼬집고 나설 때가 있었고 종수가 처리한 일을 봉철이가 꼬리잡고 나설 때가 있었다. 그래서 그들 둘지간에 개니 쇠니 하며 말다툼 할 때가 있었고 때린다 친다 하며 손찌검질 할 때도 있었으며 지어 죽인다 살린다 하며 낫이나 삽자루를 들고 서로 허둥거릴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종덕이가 중간에 끼여들어 이쪽에 대고 헤벌쭉 저쪽에 대고 헤벌쭉거리며 말리느라 땀동이를 쏟군 하였다. 괜히 중간에 들어섰다가 애매한 매를 맞을 때도 있었다. 지어 코피가 터져 상판이 피칠갑이 되여가지고서도 계속 헤벌쭉거리며 말린다. 어찌보면 고양이와 쥐싸움에 뜯기우고 할퀴우고 밟히는 병아리새끼라고 할가. 종덕이는 자기의 여린 마음으로 어찌나 그들 지간의 모순을 화해시키려고 애를 썼다. 허지만 그들 지간의 “내전”은 점점 거칠어져만 갔다. 한두마디에도 서로 눈에 쌍불을 켜고 입으로 불을 토했다. 종덕이에게는 그것이 제일 큰 골치거리였다. 그들의 “내전”으로 촌민위원회에서는 아무 일도 할수 없었고 동네가 부산하기 그지없었다. 그럭저럭 그해 년말이 닥쳐왔다. 년말 총결을 지어야겠는데 촌에는 술살 돈도 없었다. 왕년에는 그래도 돼지를 엎지 않으면 송아지를 엎어놓고 동네사람들뿐만아니라 린근촌의 촌간부들을 청해오고 진정부의 간부들도 청해오군 하였다. 누군가 한족집 왕가네 둘째를 찾아가 사정해보라고 귀띔했지만 종덕이는 찾아가질 않았다. 그는 어머니가 알뜰하게 기른 돼지 두마리를 잡아엎게 했다. 민옥이가 안된다고 락루하면서 막아나섰지만…

이듬해 모내기 뒤끝에 현에서는 리종수문제를 락착 짓겠다고 두번째로 조사조를 내려보내기로 했다. 그 소식을 접한 종덕이는 급기야 직방 지현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현장, 아니 형님, 내가 촌장질 할 때까지는 조사조를 내려보내지 말기를 바라오.”

“종덕아, 이건 당의 기률에 따르고 나라의 법에 따라 처리되는 일이니 그 누구도 간섭할 권리가 없다. 그러니…”

“그래도 안되오. 형님. 조사조가 내려오면 난 쫓아버리겠소.”

“어허, 촌장사업까지 한다는 네가 이렇게 무지막지할줄은 몰랐구나. 내 지금 너한테 정중하게 경고한다. 절대 이 일에서 경거망동하지 말거라!”

전화가 탁 끊어났다. 다시 련속 서너번 했는데 그쪽에서 받아주질 않았다.

이튿날 오전 9시경에 까만 승용차가 촌사무실앞에 와서 멈춰섰다. 차에서 네명의 사업일군이 내렸다. 실팍하게 생긴 중년남자가 조사조 장명조장이라며 잘 협조해줄것을 부탁하였다. 종덕이는 촌의 상황을 회보하고나서 조사를 미루어주길 요구했다. 그러나 조사조에서는 현당위 지시니 할수 없다고 했다. 한창 쟁론끝에 싱갱이질이 생겼고 나중에 결이 난 장조장이 이곳저곳 해당부문에다 전화를 치는것이였다. 미구에 진파출소의 경찰차가 앵― 앵― 경보기를 울리며 들이닥쳤다. 사태는 엄중해졌다. 온 마을사람들이 까맣게 모여들었다. 뒤이어 경찰들과도 싱갱이질이 벌어졌다. 종덕이는 겅찰들앞에서도 추호의 두려움도 없이 떳떳하게 팔을 내저으며 시비를 캐고있었다. 마을사람들은 종덕이를 다시 보게 되였다. 대견스럽게 보였고 영웅답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들과 경찰지간에 밀고닥치는 몸싸움이 벌어졌고 서로 한데 엉켜서 돌아갔다. 나중에 경찰측에서는 과단한 조치를 대여 종덕이와 종수를 진파출소로 호송해갔다.

이튿날 종덕이는 풀려나왔고 종수는 현으로 호송되여갔다. 파출소울안에서 나온 종덕이는 현으로 올라가는 뻐스를 탈가말가 주저하다가 생각을 고쳐먹고 금불촌으로 내려가는 길에 들어섰다. 털썩털썩 거리며 바위굽이를 도는데 앞에서부터 봉철이가 자전거를 타고 달려오고있었다.

“종덕아, 벌써 여기까지 왔냐? 난 네가 풀려나온다는 소식을 얻어듣고 지금 막 마중하러 오는중이다.”

“김서기 고맙습꾸마. 무슨 이렇게 여기까지…”

둘은 서로 껴안았다. 하루사이라도 경난을 겪고난 뒤의 만남이란 또 다른 감정이 있는것이다.

“자, 우리 여기 앉아서 담배나 한대 꼬슬리구 숨이나 돌렸다가 다시 돌아가자.”

둘은 길가의 백양나무밑에 가서 나란히 앉았다.

“종덕아, 어 아직 어리구나. 어제는 왜 그렇게 머절싸하게 헤덤볐니? 봐라, 영향이 얼마나 나쁜가! 너 금방 입당지원서를 쓰구 그게 뭐냐? 종수, 그새끼 조사를 받아야 하구 엄중하면 콩밥까지 먹어야지. 차라리 이럴 때에 그새끼를 아예…”

“김서기,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함둥? 지금 저의 곁에는 김서기도 있어야 하고 그 종수삼촌도 있어야 되는데 그럼둥?”

봉철이는 종덕의 얼굴표정을 슬쩍 곁눈길해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 네가 아직 어리구 경험이 부족하니 곁에 사람이 있어야 한다. 허지만 종수 같은 사람은 없어야 한다. 있으면 너의 전도에 불리하고 우리 촌의 발전에 불리하다. 봐라, 그새끼가 쩍하면 걸구드는 바람에 할 일도 못하구 동네가 부산해지구. 그새끼가 지금 널 내세우고 생각해주는척 하지만 기실은 제앞의 불을 끄기 위해서란다. 지금 현에서 그눔의 재료를 다 장악했다. 잘못하면 곁사람도 물려들어간다. 조심해라!”

종덕이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잠자코 듣기만 했다. 봉철이는 그의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한거라고 짐작했다.

“그리구 당원이 되자면 관점이 명확해야 하구 립장이 견정해야 하네라. 지금 종수의 문제가 그저 일반 착오가 아니야. 일단 법적추긍을 받게 되면 그건 성질이 달라지는거야. 이럴 때 조직에서는 너의 태도를 본다. 너를 고험하는거지. 감싸주어도 안되고 그저 보기만 해도 안되고 맞서서 투쟁해야 해. 알겠냐?”

종덕이가 고개를 더 숙였다. 봉철이는 그의 기색변화를 주의깊게 살피며 품속에서 허연 서류묶음을 꺼내쥐였다.

“종덕아, 너 그눔의 가면에 얼리워 넘어가지 말라. 이전에는 그눔이 너를 어디 사람으로 보았냐? 지금은 제가 바쁘게 되니 너를 통해 지현장의 관계를 리용해먹자는 심보밖에 없어. 내 솔직히 알려주마. 그눔이 인제 볼장을 다 봤어. 이것봐라, 내가 장악한 재료만으로도 얼마든지 콩밥을 먹게 되였느니라.”

봉철이가 서류묶음을 종덕의 앞으로 내밀었다. 천천히 고개를 쳐들며 그걸 받아보던 종덕이가 불시에 벌떡 일어섰다.

“김서기, 이게 무슨짓임둥? 전번에 익명으로 김서기가 보낸것입지비. 에익―씨!”

종덕이는 그 서류를 쫙쫙 찢어서 길가의 도랑물에다 활 뿌렸다. 허연 종지쪼박들이 사처로 흩날렸다. 뜻밖에 일어난 정경에 봉철이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도 부들부들 떨며 일어섰다.

“그게 어떤 자료라고?! 이자식!”

그의 오른팔이 허공으로 반쯤 올라갔다 내려오면서 종덕의 왼쪽뺨에가 철썩 하고 들어붙었다. 불깃한 얼굴에 퍼런 빛이 번개처럼 스쳤다. 종덕이는 몸을 휘청거리다가 다시 반듯이 섰다. 왼쪽코구멍으로 빨간 액체가 가는선을 긋더니 입술 언저리에까지 와서 멈췄다. 그런대로 종덕이는 미간을 찌푸리고 이윽토록 서있다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봉철의 씩씩거리는 숨소리를 등뒤에 달고…

이튿날 종덕이는 진당위 방서기를 찾아가서 촌민들의 의견을 여실히 반영하였고 자기의 의향을 내놓았다. 그런데 방서기는 현위의 구체지시가 아직 내려오지 않았다며 회의를 핑게대고 몸을 빼는것이였다. 종덕이는 현에 올라가 직접 지현장을 찾았다. 헌데 회의참석중이라고 만나볼수가 없었다. 전번 일이 노여워서인지 아니면 정말 회의가 중해서인지… 종덕이는 먼 친척벌 되는 집에 주숙을 정하고 점심에는 광천수에 빵을 사서 에때우며 련 사흘이나 현위사무청사를 드나들었다. 경비일군들의 눈에 들어 몇번 쫓겨나기도 했다. 나흘째 되는 날 아침에 현위 울안에서 지현장이 승용차에 올라 차문을 닫으려는 순간에 종덕이가 차문을 잡았던것이다.

“형님!”

저으기 놀란 지현장이 아니꼬운 눈길로 종덕이를 쏘아보는것이였다.

“어허, 너 개고기보다 더 질긴 눔이구나. 나 지금 바쁘니 오후 2시에 다시 보자!”

오후 2시부터 비서실에서 기다린것이 4시에야 지현장과 마주앉을수 있었다. 지현장의 태도는 간단하고 명백했다. 리종수에 대한 조사는 계속 진행하고 사람은 이미 내놓기로 결정했다는것이다. 그 말에 종덕이는 헤벌쭉 웃었다. 갈라질 때 지현장이 종덕이의 이마를 툭 튕겼다.

“자식, 이제 다시한번 이 일에 헤덤볐다가는 혼쌀 먹을줄 알아!”

종덕이는 다시 지현장을 향해 헤벌쭉 웃었다.

림시수용소에서 풀려나온 리종수를 보니 열흘도 되나마나한 동안에 열살이나 더 먹은듯 훨씬 겉늙어보였고 몸이 몹시 수척해졌다. 그는 대문가에서 자기를 기다리고있는 종덕이를 와락 껴안고 엉, 엉! 황소울음을 터뜨렸다. 이번 일에 그는 진정 종덕이를 알게 되였다. 원래는 자기 몸을 빼기 위해 허수아비로 내세우자고 했는데 지금은 그게 아니였다. 자신이 궁지에 빠지게 되니 평상시 먹어라 써라 하며 그렇게 믿음직하게 놀던 친구들도 자기의 옷섶에 불티가 튕길가봐 이런저런 구실을 대고 비실비실 피해감을 이번에 그는 똑똑히 보아냈다. 헌데 종덕이는 그런 인간이 아니였다. 자기와는 애잡짤한 관계도 아닌데 완전히 몸을 내번지며 나섰다. 백살도 못사는 사람일생에서 진정 믿을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것이 얼마나 복스러운 일인가! 자기가 왜 이 녀석을 좀 더 일찍 보아내지 못했을가 하는 자책감도 들었다.

종수는 풀려나온 이튿날부터 앓아누웠다. 그간 제대로 먹지 못해 몸이 허약해진탓이라고 마누라가 영양보충을 한답시고 공대를 잘했는데 그게 아니였다. 현병원에 가서 검사해보고 주급 병원에까지 가서 검사해보았다. 암은 암인데 양성반응을 보였다가 음성반응으로 넘어가 확실한 진단을 내리지 못했다. 하여 북경으로 해서 상해까지 가려고 했다. 미국에 있는 딸이 딸라를 부쳐왔고 국내에서 안되면 국외로 나오라는 기별도 왔단다. 북경으로 떠나가는 날 종덕이를 비롯한 촌간부 몇몇이 연길공항까지 가서 바래였다. 친척들은 하늘로 날아오르는 비행기를 보고 울음을 터뜨렸다. 마지막 길이 아니되였는가 해서!

종수가 없게 되자 금불촌은 봉철의 세상으로 되여버렸다. 아마도 손바닥만한 호박골에 범 두마리까지는 용납하기 곤란한 모양인가부다.

봉철이는 요즘 기분나게 돌아쳤다. 어쩜 세월을 거슬러 가는가! 대여섯살쯤은 더 젊어진건만 같았다. 무슨 새 마을건설계획전망도를 내온다, 무슨 치부정보를 수집해서 기업을 앉혀 항목을 연구한다, 무슨 집집마다 만원수입을 올릴 부업거리를 쥐라고 호소한다 하며 마을안팎을 들볶아놓는다. 완전히 금불촌의 제1선줄군이요, 제1대변인이요, 제1개혁자의 자태로 나서고있었다.

종수를 보내고 난 종덕이는 기분이 잡쳐져 무슨 일이나 갈피를 잡을수 없었다. 그런 정신없는 겨를에 봉철이가 이런걸 한다 저런걸 한다 하며 날뛰는 꼴이 아니꼽게 보였지만 촌민들을 위해 하는 일이라서 건성으로라도 지지해주는수 밖에 없었다.

하루는 종덕이가 아래마을 한족집 둘째와 함께 내봉하기슭을 오르내리며 지형을 살폈다. 내봉하 저쪽켠에 인가는 없지만 경치가 좋고 산나물이 많고 땅이 비옥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농한기가 되면 허리치는 강물을 건너가 나물도 캐오고 화전식으로 경제작물도 심어 걷어오군 했다. 사람만 다닐수 있는 공중다리라도 놓으면 건너편에다 대면적의 황무지도 개발할수 있고 소방목지도 얻을수 있는것이였다. 몇년전에 촌에서 해당수속까지 다 밟아놓았지만 자금난으로 손을 대지 못했던것이다. 내봉하에서 매일 고기잡이를 할 때부터 종덕이는 어느때엔가 꼭 자기의 힘으로 다리를 놓겠다는 자그마한 소망을 꿈꾸어왔던것이다. 지금도 걸림돌은 자금난이였다. 그래서 왕가네 둘째를 찾았다. 왕가네 둘째는 그만한 돈은 낼수 있는데 다리가 락성된 다음에는 건너가고 건너오는 사람들에게서 길세를 받아야겠다는것이였다. 원, 기가 막혀! 돈이 돈을 번다고 돈버는데 이골이 튼 녀석들과는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바락 화를 냈었다. 한 골안에서 한갈래 강물을 마시며 서로 의지해서 살아온 고향사람들지간에 무슨 길세냐고. 정 그렇게 옴니암니 따지겠으면 림시호구로 이 골안에 와서 땅을 부치고있는 너의 친척들을 다 쫓아버리고 경작지를 되찾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자 왕가네 둘째가 누그러들었다.

“박촌장, 나두 그런 인간이 아니우. 내 뭐 그 다리를 놓아 돈을 벌겠소? 내 돈이 들어갔으니 그저 알아봐달라는거지.”

그렇게 타협을 본 둘이 지형을 돌아보았고 저녁에는 왕가네 집에서 푸짐히 한끼니 얻어먹었다.

온 하루 끌려다녀 다리가 시큼시큼해났지만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촌사무실에 들려 혼자 흥얼흥얼거리는데 봉철이가 두툼한 자료를 안고 벌떡 뛰여들었다.

“야, 종덕아, 끝내 찾았구나, 찾았어!”

봉철이는 어찌나 흥분되였는지 얼굴이 붉스그레 상기되여있었다.

“뭘 찾았다는 말습입둥?”

“자, 이거 한입으로 어떻게 다 말할가! 우리 전촌 촌민들이 다 벼락부자가 되고 우리 촌의 락후한 면모를 일신시킬수 있는 치부항목을 찾았단 말이다. 알겠느냐?”

그 말에 종덕의 귀도 번쩍 트이였다.

봉철이가 말하는 치부항목이란 녹두알만한 인공진주구슬을 낚시줄 같은 실에 꿰여서 각종 공예품이나 일용품을 짜내는것이였다. 채색사진으로 소개된 샘플들은 그야말로 정교하면서도 깜찍스러웠다. 자료의 소개에 따르면 학비를 내고 반달간 그 기술을 배워내고 한두달 견습한 다음 기본 원자재를 사가지고 정식작업에 들어갈수 있는데 한사람이 하루에 작은것은 2~3건 짜낼수 있고 큰것은 절반이나 되는 반성품이나 완성품 하나쯤은 짜낼수 있다는것이였다. 작은것은 가공비가 백원가량이고 큰것은 몇백원, 지어 천원짜리도 있었다. 말하자면 하루 일을 제일 작게 쳐도 2~3백원은 넘는다는것이다. 이런 호떡이 세상에 또 어디 있을가! 항목경영에서 첫 걸림돌로 되고있는 직장건물, 기계설비, 동력전기, 물공급 등 경영조건은 하나도 필요없다는것이다. 남녀로소가 다할수 있는데 특히 손부리 여문 녀자들이 하면 효률이 높다는것이다. 이제 호박골사람들은 불시에 돈낟가리에 올라앉아 돈을 어떻게 쓸지 몰라 허둥대지 않을가!

허나, 만일의 경우를 위해서 심중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래서 촌민대회를 열고 이 일을 대토론에 붙였다. 반팔 노란 샤쯔에 나비넥타이를 받쳐 맨 봉철이가 나서 이 가공항목에 대해 자세히 소개하고 설명을 가했다.

돈이란 귀신 같은 마력을 가지고있다. 돈을 하루에 몇백원, 한달에 만원, 일년에 몇십만원씩 벌수 있다고 하니 전촌 촌민들이 격동을 금치 못했다. 수시로 우야! 라고 환성이 터졌다. 사기 오른 봉철이 두팔을 저력있게 흔들었고 그사이에서 나비넥타이가 보기 좋게 나풀거렸다. 겨울에도 녀자들은 따스한 가마목에 모여앉아 우스개를 피우면서 돈을 벌수 있다니 부녀들도 야― 하고 환성을 올렸다. 몇년만에 처음 들어보는 녀자들의 환성이다.

봉철이가 령솔자로 부녀주임과 손부리가 여문 처녀를 데리고 떠나기로 했다. 북경에 가서도 여기로 오기만큼이나 더 가야 한다는 절강성 온주로 가자니 세 사람의 차비, 주숙비도 웬간한 돈이 수요되였고 거기에 학비까지 하니 2만여원이 수요되였다. 원자재구입비는 매호에서 먼저 백원어치씩 사오기로 했다. 그 돈이 4만여원이 되였다. 만약의 경우 사기를 당했거나 잘못된다 해도 백원쯤 떼우는것은 개개의 집집의 정황을 놓고말하면 큰 손실이 아니라는것이였다. 먼저 적게 가져다가 시험해보고 확실하면 두번째부터 많이 구입해보자는 시골사람들의 총명이였다.

이튿날 그들은 온 마을사람들의 배웅을 받으며 떠났고 진정부에 들려 소개신까지 떼가지고 갔다. 한달후에 돌아온 그들은 각가지 견본도 가지고 왔고 매호에 나눠줄수 있는 원자재도 가지고 왔다. 밤마다 우사마당에 200볼트짜리 전구알 대여섯개씩 걸어놓고 세 사람이 세 분조로 나뉘여 구슬꿰는 기술을 촌민들에게 전수했다. 그런 다음 통일적으로 정식작업에 들어갔다. 봉철이와 부녀주임이 품질검사원이 되여 집집이 돌아다니며 질을 보장하라고 강조했다. 어찌나 돌아다니며 닥쳐댔는지 둘은 입술이 다 부르텄다. 백원어치의 원자재를 어떤 집에서는 사나흘 동안에 해냈고 어떤 집에서는 다시 반복해서 하다보니 이레씩 걸렸다. 그걸 회사측 요구대로 포장한 다음 현 기차역까지 싣고 가서 부쳤고 봉철이와 부녀주임이 따라갔다. 며칠후에 그들 둘은 비행기를 잡아타고 돌아와서 집집이 인건비를 나눠주었다. 백원어치를 가공했고 그것도 촌민위원회에 20프로의 관리비를 떼고도 집집이 3백원내지 4백원씩 돌아갔다. 마을에선 경사가 났다. 우사마당에서는 밤중까지 술상이 벌어졌고 집집마다 별다른 음식을 갖춰놓고 축하했다. 돈이란 정말 보배중의 보배다. 사람들은 래일의 희망을 내다보게 되였다. 그래서 이번에는 집집마다 통이 크게 접어들 예산이였다. 호박골이 물이 고이지 않는 고장이라고 평소에는 돈잎이 그리워 전기세도 제대로 내지 못하는 집이 많았다. 그런데 이번 두번째 원자재구입에는 제일 곤난한 빈곤호에서도 3천원 이상씩 냈다. 2만원, 3만원씩 낸 집들이 푸술했다. 어떤 집에서는 친척집 돈을 꿔왔고 어떤 집에서는 자식들의 대사에 쓰자고 저축해두었던 돈을 꺼냈고 어떤 집에서는 미국으로 가자고 준비했던 돈도 꺼냈다. 적지 않은 집들에서는 소와 돼를 내다 팔았다. 며칠사이 몇백만원 거금이 모아졌다. 그걸 진거리 신용사를 통해 회사측 은행구좌에 송금한 다음 즉시 봉철이와 부녀주임이 연길공항까지 가서 비행기를 탔다.

마을에서는 집집이 청소도 하고 벽도 회칠하고 창고도 정리하면서 만단의 준비를 갖췄다. 그리고는 가셔지지 않은 흥분의 여운속에서 물건과 그들이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비행기를 탔으니 당날로 도착했을거고 그날 저녁은 회사측 책임자들과 술잔이나 나눴을거고 이튿날엔 부친 돈 액수에 따라 포장정리했을거고 사흗날엔 역전에 나가 부쳤을거고 아니, 몇백만원어치의 엄청난 물건을 하루사이에 역전까지 다 날라갈수 있단 말인가? 이틀은 걸려야 할걸. 물건이 온주로부터 여기까지 오자면 며칠이나 걸릴가? 사흘, 나흘… 그런데… 그런데 한주일이 지나가고 열흘이 지나가고 보름이 지나갔는데도 전화 한통도 없다. 사람마다 속이 타서 가슴에 재가 들어앉는것만 같다. 어떤 사람은 입술이 초들초들 말라들었고 어떤 사람은 밤잠도 자지 못해 눈이 벌겋게 충혈되기도 했다. 온 마을에서 웃음소리라도 들을수 없었고 밤이면 괴괴한 마을이 귀신나라 같았다. 종덕이도 눈이 벌겋게 충혈되였다. 회사측에다 하루에도 몇번씩 잔화를 했는데 번마다 뚜― 뚜― 하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들이 떠나서 열이레 되는 날 아침에 촌사무실에 전화가 따르릉― 하고 울렸다. 종덕이가 번개처럼 와락 송수화기를 집어들었다.

“종… 종덕아…”

봉철의 목소리였다.

“김서기! 김서기!”

종덕이가 미친듯이 부르짖었다.

저쪽에서는 이윽토록 울먹거리며 말을 못하고있었다.

“종덕아, 난 인젠 끝장이다.”

순간, 종덕이는 집안이 빙그르르 돌아가는것만 같은 현기증을 느꼈다. 그래서 눈을 꼭 감았다. 미구에 정신을 가다듬었을 때에는 대방에서 전화를 끊은 뒤였다. 종덕이는 앞이 캄캄해났다. 일이 틀려진것만 확실해졌다. 이 뒤수습을 어떻게 할가? 머리속에 하얀 안개가 끼는것처럼 생각이 전혀 돌아가지 않았다.

점심에 그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먹고싶지 않았던것이다. 저녁에도 억지로 민옥이와 밥상에 마주앉았다. 처음으로 밥알이 모래알처럼 느껴졌다. 어머니에게 근심을 끼쳐드리지 않으려고 억지로 밥술을 드는둥마는둥 했다.

그때 문이 벌컥 열리며 회계가 뛰여들었다.

“박촌장, 날래 가보우. 김서기네 집에서 지금 란리가 터졌소. 무슨 재국이 날것 같소.”

종덕이는 밥술을 던지고 내복바람에 맨발로 뛰여나갔다. 아마도 김봉철이와 부녀주임이 밤중에 마을로 돌아온것 같았다.

김봉철네 울안에선 손전지불이 어지럽게 흔들거렸고 숱한 사람들이 까맣게 모여들고있었다. 종덕이가 방안에 들어서니 벌써 성질이 불 같은 몇몇 장년들이 봉철이를 붙잡고 얼크러져 돌아갔고 봉철의 마누라는 사람을 죽인다고 악, 악 비명을 지르고있었다.

여기저기에서 수시로 유리가 깨여지는 소리가 짤라당, 짤라당! 울렸고 이쪽저쪽에서 울음소리가 터져나왔다. 남자건 녀자건 모두 제정신이 아니였다. 눈에 달이 올라서 퍼렇게 번뜩이고있었다. 돈을 벌 때에는 더 큰돈을 벌겠다고 내놓았는데 정작 떼우게 되니 그게 아니였다. 그게 어떤 돈인가? 피땀으로 바꿔온 돈이고 한잎 두잎 귀중한데 쓰려고 모아둔 돈이고 사정사정 손이야 발이야 빌어서 꿔온 돈들이다. 무고한 마을사람들과 무슨 원쑤진 일이 있다고 우리 돈을 홀려서 남방에다 처넣었는가? 죽일 놈, 죽일 놈이다! 죽여라! 사태는 험악하게 돌아갈것만 같았다. 종덕이가 부엌으로 씽하고 달려가더니 넙죽한 한족식칼을 집어들었다. 그걸 비껴들고 그는 방안에 들어가 높직한 걸상우에 올라섰다. 그리고는 악! 악! 소리를 지르며 천장우의 장식등을 련속 세개나 쳤다. 팍, 팍! 퍼런 불이 연신 번쩍이더니 방안이 절반 어두워졌다.

“조용해라! 거 김서기를 놔라! 놓지 않으면 내 이 식칼을 뿌리겠다!”

종덕이가 한족식칼을 번뜩이며 추켜들었다. 방안은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마을사람들은 지금 두번째로 종덕이를 다시 보게 되였다. 그저 유들유들하고 바보스럽기만 해보이던 종덕이가…

“기실 이번 일은 김서기탓이 아니꾸마. 내가 그 정보를 얻어다가 김서기한테 맡겨 연구하게 했던것입꾸마. 그러니 죽이려면 나를 죽입소. 자, 이 실칼로!”

종덕이는 네귀 번듯한 한족식칼을 구들바닥에 철렁 던졌다. 허나 누구도 그 식칼을 집어드는 사람은 없었다.

“여러분, 좀 가슴에 손을 없고 생각해보깁소. 돈을 번다고 좋아서 벌자고 한노릇입지비. 우리 어마이두 저를 장가보내겠다고 모아둔 돈을 몽땅 털어내왔스꾸마. 그게 어떤 돈입둥? 내 이 한몸을 칼탕쳐서라도 한잎도 곯지 않구 갚아드리겠스꾸마.”

사내들은 고개를 푹 숙였고 아낙네들은 소리를 죽여가며 쿨쩍거렸다. 종덕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여러분, 래일 우선 먼저 우리 촌간부들이 김서기와 부녀주임을 데리고 현공안국에 가서 이 사건을 보고하고 현당위와 현정부를 찾아 정황을 회보한 다음 구체적지시를 요청할 예정이꾸마. 그런 다음 마을에 돌아와 김서기와 부녀주임 전체 촌민들께 사건의 자초지종을 말씀드리게 하겠스꾸마. 거기에 맞춰 돈을 찾아올 방도를 내오고 만약 찾아올수 없을 정황이라면 어떻게 손실을 미봉할것인가를 연구해야 되지 않겠슴둥? 기실 제가 갚는다고 했지만 제 한몸으로 갚자면 몇십년, 아니 몇백년 벌어야 그걸 다 갚겠슴둥? 김서기와 저를 죽인다고 그걸 갚을수 있겠슴둥? 여러분의 지혜와 힘을 합해야 저도 그걸 하루빨리 갚을수 있는게꾸마. 자, 김서기를 봅소. 오죽했으면 반쪽이 되여 돌아왔겠슴둥? 지금은 그에게 매를 안겨줄것이 아니라 휴식할 시간을 줘야 하지 않겠슴둥?”

사람들은 하나 둘 방안에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문밖으로 나서며 오열을 토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사람들이 다 빠져나가고 수라장이 된 방안이 어지럽게 남았다.

“종덕아!”

눈이 퀭해진 봉철이가 종덕이를 와락 끌어안더니 엉, 엉! 하고 황소울음을 터뜨렸다.

봉철이도 원래는 종덕이를 허수아비로 내세우고 자기가 뒤에서 모든것을 좌우지 하려고 했던것이다. 그러나 이 시각 그는 종덕이를 다시 알게 되였다. 내심으로부터 종덕이에게 감복되지 않을수 없었다. 그는 왜 일찌감치 종덕이를 보아내지 못했을가 하는 자격지심이 들기도 했다.

 

 

5

 

그들 일행은 봉두산 정상인 박두봉을 향해 톱아오르고있었다. 갈수록 심산이라더니 오를수록 산은 험해졌고 오를수록 절경이였다. 깎아지르는듯한 절벽밑을 지나면 우중충한 소나무숲이 우거지고 썰렁할가말가한 소나무숲속을 빠져나오면 파아란 비탈이 사선으로 뻗어져있기도 했다. 호박바위굽이를 지나오니 저 아래 깊숙한 골짜기로 은띠 같은 내봉하가 구불구불 산기슭을 에돌아 흐르고있었다.

“딩호우, 따따디 딩호우!(너무 좋아, 정말 너무 좋아!”

진작 땀투성이 되여 런닝그샤쯔까지 다 벗어버린 팡리사상은 연신 엄지손가락을 내밀었다. 육중한 몸체인 팡리사장의 살집은 하얀 두부모 같았다. 희번뜩한 얼굴 역시 하얀 만두처럼 희한했다. 그가 검누런 고급려송연을 꺼내 물자 종수가 눈치 빠르게 라이타불을 찰칵! 켜서 붙여올렸다.

“원래는 저기 저 아래쪽 강폭이 좁은데다가 다리를 놓자구 했습지비…”

종덕이가 내봉하물이 산기슭굽이를 에돌아 마을쪽으로 빠지는 곳을 가리켰다.

“뿌, 뿌, 나리 뿌싱. 하이쓰 짜이쩌얼 샤밴 즈제 다거쵸쭈이호우. 요칸 왠잰.(아니, 아니, 거긴 아니야. 그래도 이 아래쪽에 직접 다리를 놓는게 좋아. 원견성이 있어야지)”

팡리사장은 앞으로 풍경구의 전망을 내다보며 다리를 놓아야 한다는것이다. 풍경이 제일 좋은 곳에다 다리를 놓아야 저쪽 산과 이쪽 산의 정체적인 조합을 이를수 있다는것이다. 자기는 세계의 명승지란 명산을 두루 다 돌아보다싶이 했는데 이 봉두산경치가 금강산이나 묘향산, 한라산에 비기지는 못하지만 또 그보다 별다른 특색이 있다는것이다. 면적이 작고 거대감은 없지만 흐르는 물이나 수직으로 깎아지른 절벽이나 산세들이 아주 정교하게 맞물려 아늑한 선경 같은 황홀감을 이뤄준다는것이다. 거기에 이제 구름다리까지 놓으면 그림 같은 풍경구가 될수 있고 많은 투자인들의 눈길을 끌것이라고 그는 예언까지 했다. 그가 지금 내봉하에 구름다리를 놓고 주변환경개조에 거금을 투자하겠다고 나선 사람이다. 그도 광풍의 어느 한 산간벽촌에서 자란 농민이였다고 한다. 개혁개방초기에 돼지치기를 해서 목돈을 벌고 그 돈으로 사료업에 진출해서 떼돈을 벌고 그 돈으로 부동산업에 뛰여들어 거금을 모으고 그 거금으로 지금은 북경에다 어마어마한 회사를 꾸려놓고 관광, 금융투자업에 종사하고있단다. 그리고 예쁘장하게 생긴 막내딸 쇼팡이를 비서삼아 데리고 다니는데 쑈팡은 영어는 물론 한국말과 일본말도 아주 류창하게 했다. 팡리사장은 종수가 북경병원에 가서 입원치료를 받을 때 같은 입원환자로 친한 사람이였다. 암으로 여겼던 종수의 병이 암이 아니고 일반 종류가 생긴것이여서 수술하고 완전히 완쾌되였던것이다.

마을에 돌아온 종수는 금불촌을 위해 몇가지 실질적인 일을 해놓았다. 확실히 머리가 잘 돌아가는 사람이였다. 그전에는 그 머리를 개인적 명예와 리익만 따지는 흑심에다 썼었다. 이번에 와서는 종덕이를 봐서라도 금불촌을 위해 진심으로 일해보자고 속심을 다졌던것이다. 그러다가 현에서 봉두산풍경구를 건설할 의향이 있다는 말을 듣고 팡리사장을 초청했던것이다. 현에서도 이에 고도의 중시를 돌렸다. 지현장이 직접 전 대의 사업을 지휘했다. 전번날에는 친히 팡리사장을 배동하여 장백산천지관광까지 하고왔다. 봉두산 풍경구건설은 지현장이 일찍부터 품어왔던 꿈이였다…

“그리고 앞으로 저기 저쪽 츠렁바위아래로 길게 뻗어내려간 산자락을 리용해서 스키장을 앉혔으면 좋을것 같습니다.”

김봉철이가 팡리사장에게 광천수병을 넘겨주며 이런 의견을 내놓았다.

“호우주의 니먼쩌니 더 뚱지쬬창, 짼거 쏘싱 화쉐창덕화 뚱지예커이 쪼다이 화쉐미. 워꾸지 샤쉐즈허우 쩌얼 더 펑징껑 미런.(좋은 건의웨다. 여긴 겨울철이 길어서 소행스키장을 앉힌다면 겨울에도 손님을 끌수 있을거웨다. 눈이 내린 다음의 경치가 더 볼만 할거웨다)

“그러면 스키장건설계획도 환경개조건설 첫 단계 계획에 넣으시겠습니까?”

봉철이는 완전히 흥분되였다.

“쩌쓰 이챈 메이샹또더. 뿌리, 또스허우칸칸바.(이건 생각지도 못했던 일인데요.  허지만 그때 가서 봅시다)”

“감사합니다. 리사장님은 정말 우리 호박골의 은인이시구 또한 저의 은인이십니다. 전 평생 이 은혜를 잊지 않을겁니다. 풍경구건설에 이 한몸을 바치는것으로 그 은혜에 보답하렵니다.”

봉철이는 늘씬한 허리를 버들가지처럼 굽히며 굽썩 경례를 올렸다. 아닌게아니라 봉철이게는 은인으로 될만한 리사장이였다.

그 구슬공예품가공항목에 사기당한 풍파가 있은 다음에 현공안국에서 적극적으로 온주공안부문과 련계를 달고 사건해명진전을 알아보았다. 얼마후에 공안부문에서 사건조작자들을 전부 나포하였다. 그들은 전국을 상대로 수천만원을 사기쳤던것이다. 지금 그들의 부정축재금과 장물을 절반쯤 몰수해들였는바 사건해명이 끝나면 일부분은 돌려받을수 있는것이였다. 불행중 다행이라 할가 봉철이는 한절반 숨을 쉬게 되였다. 헌데 빚군들의 성화에는 견뎌낼수가 없었다. 많은 가정에서 한달내지, 두달만 쓰고 갚겠다고 꿔온 돈들이였다.

마을로 외지빚군들이 매일 들이닥쳤고 봉철이네 문앞에서는 아침저녁으로 “전쟁”이 벌어지군 했었다. 봉철의 마누라가 농약을 마시고 자살한다고 번져지기도 했고 봉철이도 어느날 종덕이를 찾아와 살고싶지 않다고 눈물을 흘렸었다. 그때 종덕이가 봉철의 멱살을 거머쥐고 내봉하기슭으로 질질 끌었다. 죽겠으면 혼자 죽지 말고 같이 죽자고! 강기슭에 개울물에 옷이 흥건히 젖어들 때 봉철이가 다시는 그런 말을 꺼내지 않겠다고 다짐해서야 종덕이는 그의 멱살을 풀어주었던것이다.

빚군들의 성화가 더 가심해지고있을 때 종수가 초청한 팡리사장이 마을로 찾아왔던것이다. 촌간부들이 그를 배동하여 여기저기 돌아보기도 하고 촌사무실에 앉아 좌담하기도 했다. 하루는 그들이 우사마당으로 들어서는데 몇몇 외지빚군들이 기세 사납게 달려오더니 다짜고짜 봉철이를 휘여잡고 밀치락거렸다. 종덕이는 손님앞이라 창피스럽다고 그들을 한쪽구석으로 몰아붙였다.

점심식사를 하면서 팡리사장이 그 일에 대해 궁금증을 내비쳤다. 그래서 종덕이가 그 사건의 자초지종을 말해주었다. 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딸의 번역에 귀를 기울였다. 표정을 보니 별로 시답게 여기는것 같았다. 다 듣고나서 서서히 눈을 뜨더니 그는 그 돈을 자기가 선대해주겠으니 바쁜 목을 풀라는것이였다. 종덕이는 너무나도 고마와서 그의 손을 덥썩 쥐고 련신 흔들었다.

“쎄쎄! 쩐 쎄쎄!(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자기가 세계적인 명승지나 풍경구를 많이 돌아보았는데 주변 사람들은 가난뱅이가 없고 모두 부자였다는것이다. 앞으로 이 호박골사람들도 다 부자가 될것이라며 부자가 된 다음 그 본전을 갚으라는것이다. 부자가 된 다음에는 같은 사람도 받는 사람도 기분이 다 좋다는것이다. 그때 가면 리식이 본전보다 몇갑절 더 넘어날게 아닌가고 그는 종덕이에게 눈을 찔끔거려보았다.

오후에 딸 쑈팡이가 봉철이를 찾아 수요되는 돈액수와 촌의 신용사구좌번호를 물어보고 즉시 북경에 있는 본사에 팩스로 보냈다. 이튿날 송금이 되여 또 한번 온 동네가 감격으로 들끓었다. 숱한 사람들이 줄레줄레 꼬리에 꼬리를 물고와서 면목도 없던 팡리사장께 굽썩굽썩 경례를 드렸고 어떤 사람들은 엎드려 절까지 올렸다. 팡리사장은 그 장면에 어쩔줄 몰라했고 저으기 감동을 받는듯했다.

“쩌리더 런민 떠우쓰 춘푸싼량더 호우런, 호우런 까이 궈 호우르즈라.(여기 사람들은 다 순박하고 선량한 좋은 사람들이구만요. 좋은 사람들이 좋은 나날을 보내게 돼야죠)”

봉철이는 팡리사장을 끌어안고 “따거(형님)”로 모시겠다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었다…

팡리사장이 돌아가게 되였다. 저녁에는 마을에서는 환송만회를 열기로 했었다. 지현장과 현 해당부문의 책임자들도 참석하기로 되여있었다.

종덕이는 김봉철서기더러 팡리사장 일행을 우사마당으로 모시라고 해놓고논 종수의 옷자락을 슬며시 당겼다. 종덕이와 종수는 버드나무숲속으로 들어가 바위돌우에 나란히 앉았다.

“삼촌, 내 조카로선 후배로서 이런 말을 해야 되는건지… 며칠 고민했소. 말이 떨어지질 않소만 어쨌든 한마디 해야겠소.”

“무슨 말?”

종수는 미간을 쪼푸리며 심각해지는 종덕의 표정을 유심히 살폈다.

“삼촌, 전번에 삼촌이 북경으로 치료받으러 간 다음에 현에서 파견한 두번째 조사조가 내려와서 삼촌의 재료를 해갔소. 아마 충분히 해갔을거요. 이번엔 마지막으로 또 내려와 보충할건 보충하고 확인할건 확인한다오. 내 생각에는 그들이 내려오기전에 삼촌이 모든걸 숨김없이 깨끗하게 다 털어놓고 자백하는것이 좋을듯하오. 이번에 삼촌이 부디 호박골을 위해서, 아니 전현을 위하여 대공을 세웠소. 이건 현위 렴서기도 공정했고 지현장도 공정했소. 그러니 립공속죄가 되겠소. 기회가 좋으니 시원히 다 털어버리고 거뿐하게 사는것이 좋을것 같소.”

그 말을 듣고난 종수는 눈을 지그시 감으며 이윽토록 말이 없었다. 미구에 그는 천천히 일어섰다. 종덕이도 일어섰다.

“내 알았다. 네 말대로 하마!”

둘은 서로 손을 뜨겁게 잡았다.

우사마당에다는 200볼트짜리 전구를 대여섯개 내다 걸었다. 촌에서는 소를 한마리 잡아엎었다. 음식에 미립이 튼 아낙네들이 명절분위기에 휩싸여 가분가분 돌아가며 음식을 정성껏 갖췄다.

정면의 길다란 상에는 오른쪽에 손님측인 팡쟈망 일행이 앉고 왼쪽에 지현장을 비롯한 현지도일군들이 앉고 그 상 맞은켠 네모난 상에 촌간부들이 앉았다. 그뒤로는 로인들은 로인들끼리, 젊은이들은 젊은이들끼리, 부녀들은 부녀들끼리, 끼리끼리 둥근상을 에워싸고 널려앉았다.

이제 환송만회가 시작되면 촌을 대표하여 김봉철서기가 환송사를 읽게 되고 그다음 팡리사장이 호박골 풍경구건설전망과 구체공정계획에 대한 설명이 있게 되고 나중에 지현장의 중요연설이 있게 된다.

정면 중간상에 앉은 지현장과 팡리사장이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수시로 껄껄 웃음보를 터뜨리고있었다. 그러다가 지현장이 불현듯 무슨 생각이 스쳤는지 종덕이를 불렀다.

“종덕아!”

“예, 형님!”

지현장이 팡리사장과 자기가 앉은 공간사이에 대고 손을 흔들었다.

“이 중간에 앉으실분을 모셔오지 않았구나.”

“어마이를 모셔오너라!”

“아니 형님두 이런 장소에 어떻게…”

“아니다. 오늘은 8월 8일 길일이다. 꼭 어마이를 모셔온다고 하느니라.”

로인들과 부녀들이 앉은 상에서 그래야 한다고 몇몇이 일어나 팔을 내저었다.

“앗따실루, 이것 참!”

사람들에게 밀리여 민옥이 끌려나온다.

가리마가 선명하게 쪽 빗어넘긴 하얀 머리, 이마전엔 주름이 얼기설기했지만 중간에 박힌 기미만은 여전히 유표하게 도드라져있었다.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1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11 그 때 그 시절의 대학꿈 (홍천룡) 2010-09-08 24 1109
10 문학동네 “강아지”들 2009-06-02 34 1038
9 귀신 별찌 룡 2009-05-08 26 793
8 맛이 없게 해서 맛이 있게 먹자 2009-05-08 38 783
7 호박골의 떡호박 2009-05-08 55 1223
6 숙녀들, 좀 더 뽐내봐 2009-05-08 23 856
5 생활 예술 천당 2009-05-08 28 897
4 미래의 부자는 그 누구? 2009-05-08 14 792
3 세상특미-돼지고기 2009-05-08 36 855
2 문학창작의 세가지 현상시대 2009-05-08 21 847
1 “야, 지주가 되고싶냐?” (홍천룡) 2009-02-19 21 894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